모처럼 토요일 쉰다. 마음 같아서는 사무실로 나가 복잡하게 꼬인 일들을 정리하고 다음주 이후의 하반기 사업을 준비하고자 하였으나 담배 피러 나왔다 올려다 본 하늘이 너무도 평화로워 집에 머물기로 했다. 뜬 구름들이 나를 붙잡은 것이다. 아니 쉬고 싶었다
마침 집에 할일도 많았다. 아내는 며칠 전 친구들과 옻닭을 먹고 힘들어 했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약을 먹기는 했지만 한번 오른 옻 알레르기가 쉽게 가라앉을 리가 없었다. 안스러워 민간요법을 써 보기로 했다. 밤나무 잎사귀 다린 물로 가려운데를 발라주는 것이다. 막내를 꼬셔 집뒤 통일동산으로 갔다. 봐 둔 밤나무 몇 그루가 있어 갔지만 하마 잎들이 마르고 있었다.
풀 숲에 숨어 있던 모기들이 달려 들었다. 목과 손등, 얼굴에 몇 방씩 물리고서야 잎들을 채취할 수 있었다. 덤으로 밤 몇 알과 도토리를 한줌 주웠다. 시나브로 숲이 변했다. 조만간 닥칠 겨울 준비에 들고 있었다. 풀과 나무들이 메말라가며 거칠게 보였다. 가끔씩 발 밑에 상수리 열매들 굵은 알이 툭 툭 떨어 졌다.
지난 8월 벌초와 가끔씩 산책삼아 나선 길에 주웠던 도토리를 본가에 주었더니 어머니 이렇게 묵을 만드셨다. 일로 삼아 줍지 않았기에 맛보기로 만든 묵이었다. 그 묵 생각하며 도토리를 한 주머니 주었던 것이다. 통일동산에는 도토리를 먹이로 하는 동물이 거의 없다. 어쩌다 어치가 보이긴 하지만 둥지를 짓고 살지는 않는다. 그래서 다소 덜 미안한 마음으로 주었다.
결실의 가을을 떠 올렸다. 이 도시에서 결실은 어떤 의미일까.
알 낳기 직전의 불룩한 배의 사마귀도 본능에 충실하다.
무성했던 여름 숲도 저물기 시작했다. 계절의 변화를 실감한다. 이제 겨울을 준비하는 것이다, 촘촘히 집을 만든 거미 역시 닥쳐올 세월을 준비하는 것이다. 뒤돌아 본다. 큰 아들 고3, 작은아들 이제 초등 5학년, 부모님 연로해지고 ... 어떻게 대비를 할 것인가. 욕심내지 않고 살았던 또는 운동을 했던 선배들이 애들 대학 보내면서 대부분이 투 잡을 했다. 그들이 헌신했던 세월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후배들은 그런 삶을 거부한다. 그래서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변혁 운동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집으로 와서는 세면대 수리를 했다. 워낙 오래된 그래서 새로 바꾸지 않으면 안될 지경이었는데 급기야 고장이 났고, 쉬는 김에 수리에 들었다. 대발이 철물점 주인이 바뀌었다. 그집 아지메 참 서글서글 호탕하여 단골집이었는데 호주로 갔다고 했다. 단지 필요할 마다 그 집에 페인트나 철물 사러 간 일 밖에 없지만 그 아짐을 더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무튼 수리를 하며 여러가지를 생각했다. 바꾼다는 것, 교체한다는 것
사무실 팀장이 지난 금요일 근무를 끝으로 공식적으로 사직했다. 처음엔 지켜주지 못해 미안했는데,막상 챙기면서 보니 기가 막혀 당혹스럽다. 좀더 면밀히 따져 지켜 볼 일이다만 어처구니가 없다. 허나 그도 나의 잘못으로 귀결된다. 관리부재? 그건 아닌 것 같다. 몇 번이나 주의를 줬고, 평가를 통해 공개적으로 지시했다. 어쨌든 요즘 이 친구로 인해 머리가 많이 복잡하다. 감정이 아닌 이성적 관점으로 지혜로은 대처가 요구된다.
Sad Cafe - Eag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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