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9월 14일 막내를 데리고 낙동강 히구를 찾았다. 녹색도시부산21에서 해양폐기물과 관련 강사초빙 자리였다. 막내의 경우 집에 있어면 필시 컴퓨터나 티브이 또는 스마트폰에 빠질 것이 분명하여 하구의 펼쳐진 바다며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할 둣 하여서다. 예상대로 막내는 즐거운 힌 때를 보냈다.
낙동강하구 을숙도의 방문은 참으로 오랬만이었다. 막내 또래의 초등학생과 학부모들로 구성된 참가자들에게 하구의 생성과 특징, 그리고 문제를 공유하는 한편 해양폐기물의 기원과 문제, 저감에 대한 이동식 강의를 하였다. 마침 솔개 한마리 머리 위를 선회했고, 내침김에 철새의 서식지이지 월동지로서, 중간기착지로 기능하는 낙ㄷㅇ강하구의 생물세계도 전해 주었다,
2010년 6월 분뇨처리장 모습
해양폐기물 정화작업을 위한 선박 승선을 위해 을숙도남단 분뇨처리장으로 이동했다. 분뇨처리장은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사람들의 기피시설이 리모델링을 통해 새롭게 거듭난 것이다.
컨셉은 서울 한강 양화대교 중간에 위치한 선유도공원을 모방했다. '물(水)의 공원'이라 불리는 선유도는, 정수장 건축구조물을 재활용하여 국내 최초로 조성된 환경재생 생태공원이다. 양화대교를 조금 지나면 만날 수 있는데, 원래 선유봉(仙遊峰)이라는 작은 언덕이 있어 신선들이 뱃놀이를 하며 즐겼다고 한다. 겸제 정승의 그림속에 남아 있다. 일제감점기 일제는 선유봉을 채석장으로 사용하여 절반 이상을 깎아냈고, 광복 후에는 미군들이 인천으로 가는 길을 만들기 위해 채석장으로 사용했다. 1962년 제2한강교의 착공으로, 선유봉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모래밭이 생겼다. 1965년 양화대교가 개통되고, 1968년 본격적인 한강 개발이 시작되면서 선유도는 섬이 되었다고 한다. 1978년 정수장으로 만들어진 뒤 2000년 폐쇄된 뒤 물을 주제로 한 공원으로 만들기로 하고 산업화의 증거물인 정수장 건축 시설물을 재활용하여 녹색 기둥의 정원, 시간의 정원, 물을 주제로 한 수질정화원, 수생식물원 등을 만들었다. 2002년 4월 26일, 선유도공원으로 문을 열면서 시민들이 찾기 시작했다.
아무튼 분뇨처리장의 변신은 공원녹지 분야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신선했다. 그간의 오명과 입지상의 문제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긴 했지만 넓지 않은 주변 시설을 둘러 본 느낌으로서는 제대로 활용하는 방안이 필요할 듯하다.
사실 을숙도 분뇨처리장의 기원은 오래됐다. 그전 까지만 하더라도 하단일원은 분뇨투기가 이루어 지던 곳이었다. 본디 하단포(下端浦)는 부산항 개항(開港)(1876년) 당시 부산으로 들어오는 모든 물자가 모였고, 이곳에서 다시 낙동강 물을 이용하여 내륙지방에 운반되던 상업의 요지였다. 당시 상인들은 인근 명지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싣고 삼랑진(三浪津), 왜관(倭館), 상주(尙州)로 드나들며 나락과 교환했다. 하단포에는 나락을 사들여 도정(搗精)하는 객주업(客主業)이 발달하였고, 소금 노적가리가 곳곳에 쌓여 있었다.
1892년 7월 처음으로 기계 시설에 의한 부산정미소(釜山精米所)가 생기면서 하단포에 닿은 낙동강 유역과 김해평야의 나락이 이곳으로 운반되어 정미소로 들어가기도 하고 일본에 수출하기도 하였다. 미곡(米穀) 거래 시장으로 하단의 번창은 대단하여 부산에서 대티(大峙)만 넘으면 모두 하단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따라서, 상품이나 농산물의 교역지(交易地)로 흥청댔고, 구포(龜浦)와 함께 큰장(市場)이 섰던 곳이다. 부산장, 하단장, 동래장은 그 당시의 이름난 장이었다.
번창했던 하단의 영화는 철도 부설 계획이 지역민의 반대로 철회 한 뒤 몰락하기 시작했다. 열차편을 이용한 물자의 운반으로 정미업이나 그 밖의 교역지는 자연적으로 하단에서 구포로 옮겨지게 되었고, 화륜선(火輪船)과 각종 상선(商船)이 분주하게 오가던 낙동강엔 옛 동산유지(東山油指) 옆에서 명지(鳴旨)로 오가는 도선만이 남아 있었다.
이렇듯 구한말(舊韓末)까지 큰 포구로서 번성했던 하단은 매년 낙동강의 홍수로 그 하상(河床)이 높아져 좋은 포구(浦口)가 될 수 있는 조건을 잃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1930년 부산부(釜山府)가 9만석(九萬石)을 수용하는 분뇨(糞尿)탱크를 하단에 만들어 대티고개의 투기장에 버린 분뇨가 지하구(地下溝)를 통하여 이곳에 저장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저장된 분뇨는 낙동강으로 뻗어나간 분뇨관을 통하여 배출되어 분뇨선(船)에 실려 김해평야로 나가기도 하고, 낙동강에 버리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이곳에 이주해 오는 사람이라곤 없어졌고, 하단을 메마른 빈촌으로 만들었다. 분뇨처리장은 1973년 폐쇄되었다. 그 오명은 어래도록 기억되었다.
부산시는 사상구 감전동에 위생처리 관리소를 세웠다. 1973년 6월의 일이다. 이곳에서는 분뇨에 섞인 각종 찌꺼기와 불순물을 제거한 다음, 을숙도 위쪽에서 낙동강으로 분뇨를 내버렸다. 그러나 1987년 하두국이 건설되면서 을숙도에서 분뇨를 버리는 일이 어려워졌다.설왕설래 하던 부산시는 1992년 6월 을숙도 남쪽 끝에 새로운 위생처리 관리소를 지었다. 이곳에서는 감전동의 위생처리장에서 분뇨 이송관을 통해 들어온 분뇨를 배에 실어 먼 바다에 내보냈다. 분뇨가 버려진 곳은 부산에서 50km떨어진 동해 쪽의 공해이다. 하구 일원의 12개 어천계 주민들이 해상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한겨레 신문 1993년 기획기사 '물을 살리자 14-해양폐기물 투기' 편은 당시의 분뇨투기현장을 르뽀로 기사한 것인데 충격적이었다. 아무튼 어찌된 노릇인지 문제가 없다는 설명 한 번으로 주민 시위는 어느날 중단되었다. 더하여 을숙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사건이 쓰레기 매립장의 건설이었다. 부산시는 넘쳐나는 쓰레기처리를 위해 을숙도에 매립장을 조성했다. 지난 93년 6월부터 4년간 매립된 쓰레기만도 10톤 청소차로 57만대분이었다.
을속도에 가해진 인간의 폭력이 마지막으로 행사된 사건은 을숙도대교 구)명지대교 건설이었다. 지역의 환경단체들이 오래도록 저항했다. 나는 그 논쟁의 중심에 서 있었다. 십년 전이었다.
낙동강하구의 지형은 끊임없는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생성과 소멸이 거듭되고있고 여기에는 1987년 준공된 하구둑 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을숙도 남단에서 맹금머리는 이어진 등이었다. 이름하여 십리등 이었지만 잘려져 나갔다. 그래서 맹금머리는 속칭 짤린섬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해양폐기물정화 활동 현장은 신자도 동쪽 끄트머리에서 이루어 졌다.
2008 2009
2010 2011
한때 이곳을 밥 먹듯이 출입하였다. 해서 눈감고도 어디가 어딘지, 계절별 도래하는 철새들이 나래를 접는 곳까지 흰히 꿰뚧고 있었다. 그런 활동으로 나는 1999년 과 2002년 람사르회의 한국 민간대표로 코스타리카와 스페인을 다녀오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놀아야 할 물은 이곳이었는지도 모른다. 요즘 그런 생각을 가끔식 한다. 놀던 물이 다르면 ... 하지만 나는 인간이기에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고자 하는 것이고 , 도전하고자 했다. 영역을 넓히는 것이고 전파와 네트워크의 개념이다. 하지만 시방 그 과정이 고달프고 몹들다.
그런점에서 본다면 낙동강하구와의 조우는 오래 전서부터 바래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2009 항공사진 출처: 다음
참가자들은 백해주 초록생활 NGO 대표(전 그린라이프 네트워크)가 소유한 29t 환경감시선 무지개보라 호를 타고 신자도로 향했다. 사실 백대표는 환경운동연합 시절 기동감시단 활동을 했던 사람이다. 그와 나누었던 에피소드도 적지 않다.
그는 승선자들에게 나름의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었다.
을숙도 대교 교각 아래 하구둑, 둘다 이 땅 부산지역의 환경운동사에 있어서 전환점이 된 상징적 구조물이다. 다만 그 구조물 너무도 인간적 관점에서 만들어지다 보니 이로 인한 대규모 생태계의 변화와 단절은 예측하지 못했다. 그 교훈이 하구둑의 건설이었음에도 토건자본이 지배하는 이 땅에 있어서 을숙도대교의 건설은 환경운동의 갈래를 분화시켰다.
그때 목청을 돋구고 핏대를 세워 논쟁하던 사람들은 이제 중년을 넘어 장년의 세계로 접어들고 있다. 세상사 참
신자도로의 접근은 물때와 접근의 어려움으로 별도의 이동선박을 필요로 했다. 신이난 것은 막내와 또래의 아이들이었다.
다시 밟은 하구 모래톱, 육상과 해양으로부터 파로에 밀려온 폐기물이 모래사주 가장자리를 점령하고 있었다.
국제연안정화행사를 계기로 2000년대 초반 진우도를 해양폐기물 모니터 한 바 있다. 약 1년 가량 이 비디에 몰려든 폐기물들의 성상과 기원을 추적하면서 시민의 참ㄴ여를 끌어 들였다. 시민참여 환경활동으로서 해양폐기물 정화 활동만큼 표시나는 그리하여 참가자들의 성취감이 제대로 느껴지는 활동중의 하나다. 당시 활동은 EBS 하나뿐인 지구(2001 바다로 간 쓰레기)를 통해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그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해양수산부 소속의 홍선욱(현 동아시아 바다 공동체 오션 대표) 씨 등을 만나 국제교류세미나까지 참석한 바 있다. 그 만남은 이후 바다에 대한 이해, 폐기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10년이 넘는 세월이 경과했지만 바다는 여전히 쓰레기들로 신음중이다.
오래 전 인류의 조상들은 일상생활에서 돌, 동물의 뼈, 가죽, 조개껍질 정도만 쓰레기로 남겼다. 의식주를 모두 자연에서 재료를 얻어 사용하고 썩지 않는 쓰레기를 유산으로 남기지 않았다. 사람이 사용하는 도구의 재질로 시대를 구분할 때에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로 분류하여 왔는데, 분명 우리는 철기와는 전혀 다른 물질을 주로 사용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자연에는 없는 합성물질 ‘플라스틱’으로 채워져 있는 환경에서 사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플라스틱기(Plastic器)’에 들어와 있다!
최초의 플라스틱은 1800년대 중반에 식물재료로부터 만들어졌지만, 흔히 플라스틱이라 불리는 합성고분자가 활발하게 생산되고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부터이다. 석유나 석탄에서 얻은 에틸렌이나 아세틸렌에 다른 화학물질을 첨가하여 고온에서 만들어 내는 합성고분자인 플라스틱은 이전의 천연재료와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었다. 사용 목적에 맞게 모양, 색상, 무게, 강도 등을 쉽게 조절하여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쉽게 부식되거나 분해되지 않는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생활용품 중 첨가물이 없는 돌, 나무, 유리, 철 등 자연물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제품에 사용이 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는 직간접적으로 하루 24시간 플라스틱의 놀라운 혜택 속에 살고 있다.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나서 폐기해야 할 때에는 장점이 단점으로 바뀐다. 버려진 플라스틱을 매립하면 썩지 않기 때문에 매립지 공간이 지속적으로 필요하고, 소각을 하려면 독성물질을 제대로 처리할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그냥 버리면 바다로 들어간다. 그렇게 하여 전 세계 바다에 떠다니는 쓰레기의 90%는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다. 에베레스트 산꼭대기에서 남극까지, 심지어 태평양 깊은 바닷속에 이르기까지, 보이는 곳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곳까지, 플라스틱재질로 되어있지만 모양이나 용도는 천차만별인 바다쓰레기들이 유령처럼 끈질기게 떠돌며 숨어들어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 [출처] ] 바다로 간 플라스틱: 쓰레기와 떠나는 슬픈 항해(홍선욱, 심원준 저) 에서
2013년 한해 한반도 남쪽 연안 스무 곳에 대한 해양폐기물 모니터링이 있었다. 플라스틱류가 전체 쓰레기의 절반을 차지했고, 스티로폼류가 20%로서 그 뒤를 이었다 반면 부피면에서는 스티로폼류가 가장 많았다. 다시 짚어 볼 것은 각종 폐기물들의 분해 과정이다.
종이는 2~5년/ 우유팩 5년 /나무젓가락 20년년/ 일회용컵 20년 이상 /가죽20~40년 /나일론 천 30~40 년/금속 캔 100년 /일회용기저귀/ 칫솔 100년이상 /알미늄캔 플라스틱, 스티로폼 500년 이상이라는 사실이다 . 당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수백년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시간을 가늠해야 하지만 이 또한 실험적 결과 일 뿐이다. 죽은 알바트로스의 배 속에서 60년 전 추락한 비행기에서 나온 플라스틱이 발견된 것처럼 플라스틱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플라스틱의 분해 기간이 500년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한없이 작아 지기만 할 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해양폐기물은 생물의 서식지와 수산물의 생산활동 관광, 해양운항 두루 영향을 끼치고 있다. 신자도에서만난 민물도요(좌측 제일 앞은 송곳부리도요)들이 휴식이 안스러웠다. 마땅히 쉴 고 없고 먹이자원을 상실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이같은 해양 폐기물의 집적이다. 민물도요 백만마리가 낙동강 하구에 머물면서 지릴발괸을 한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순환의 시스템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 일부인 인간은 썩지 않는 것을 추종하다 보니 앞날을 예측할 수 없게 되었다. 바다의 ㅅ후용력도 이미 한계를 선언한 지 오래다. 여기서 자유로울 생명체는 아디에도 없다.
어른아이 합쳐 29명이 두시간 남짓한 정화 활동으로 일대의 널부러져 있는 폐기물들을 수거했다. 정식으로 한다면 기록카드를 가지고 갯수, 무게 등을 기입하며 정량화 했어야 하는데, 주최측이 그것까지 준비하는 여력은 없었다. 최근 환경운동에는
'4R'이라는 새로운 구호가 등장했다. 감량(Reduce), 재이용(Reuse), 재활용(Recycle)에 더하여 아예 플라스틱 소비를 '거부(Refuse)'하자는 운동이다. 플라스틱이 가져다 준 소비문명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시민들 속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다급해진 플라스틱 업계도 행동에 나섰다. 올해 3월, 세계 29개 국의 주요 플라스틱 업체들이 '해양 쓰레기 줄이기 선언'을 발표하고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와 정책 개발에 협력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럼에도 쓰레기가 제거된 모래톱 가장자리가 모두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14년6월 23일부터 아프리카 케냐의 나이로비에서는 80여개 나라의 장관급 인사들을 포함한 170여개국 정부 대표단이 ‘유엔 환경총회’(UNEA)를 하고 있다. 지구촌의 목표인 지속가능한 발전, 불법 야생 동식물 거래, 대기오염과 같은 국제사회 공통의 환경문제를 주제로 열리는 첫 유엔 환경총회였다.
유엔 환경총회 첫날, 유엔환경계획은 인간의 플라스틱 사용이 지구 생태계에 주는 피해를 ‘자연자본 비용’(Natural capital cost)으로 환산한 보고서를 발표하며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유엔환경계획이 지원하는 ‘플라스틱 공개 프로젝트’(PDP)에서 작성한 <플라스틱 평가> 보고서는, 소비자들이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해 지구에 해마다 750억달러 규모의 자연자본 비용 손실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평가했다. 플라스틱 생산과 폐기 과정에서 공기질 악화, 플라스틱에 의한 해양환경오염 등의 피해를 환산한 금액이다. 보고서는 이 가운데 해양환경오염에 의한 자연자본 비용 손실액을 연간 130억달러로 제시했다.
버려진 폐그물에 걸리거나 바다에 떠다니는 비닐봉지를 먹이인 줄 알고 삼켰다가 죽어가는 물고기와 거북 등 바다생물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다. 최근 들어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바다에 떠다니는 크기가 5㎜ 이하인 미세 플라스틱이다. 이들 미세 플라스틱은 치약이나 세안용 스크러버와 같은 생활용품에 사용된다. 그 뒤 하수처리장에서 걸러지지 않은 채 바다로 그대로 흘러들기도 하고 버려진 쓰레기가 풍화작용으로 부서져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 작은 플라스틱 알갱이 속에 함유된 유해 화학물질들은 해양 생물의 먹이사슬을 통해 전달돼 생태계에 축적될 수 있다. 보고서는 특히 바다에 떠다니는 미세 플라스틱 표면은 유해한 미생물과 세균 등에 좋은 서식 공간이 돼, 미세 플라스틱이 이들 유해 생물을 확산시키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잠시 주어진 자유시간 아들과 아이들은 강물에 뛰어들었다.
다대포 해상의 목도가 건너다 보인다.
몰운대와 다대포 해수욕장 앞 사주
집으로 돌아갈 시간, 남영선 신모라 창조어미니회 대표가 배를 밀어 준다.
가덕도와 거제 연안
부산신항
하구일원이 모습이 달리지고 있다. 주변 연안에 고충아파트들이 하루가 다르게 들어서고 있다.
다대포 아미산 자락을 밀고 들어선 롯데캐슬
노래출처: 다음 블로그 홍이 이뜨리에
Somebody to love - Jeff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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