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어울리기/그 사람49 청렴 판사 조무제 전 대법관 청렴 판사 조무제 전 대법관 1941년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월횡리에서 농사를 짓는 집안에서 3남2녀의 막내로 태어난 조무제는 진주사범학교 병설 중학교와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61년 동신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임용되면서 동아대학교 국문과 야간과정에 입학했으나 박정희에 의한 군사정변이 일어나고 "군복무를 마치지 않으면 초등학교 교사가 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군복무를 위해 신체검사를 받았지만 불합격 판정을 받고 교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동아대학교 주간부로 옮겼다. 동아대학교 법과대학에서 수석을 하던 조무제는 3학년때 사법시험 1차시험에 합격하고 4학년때인 1964년에 2차시험에 합격하여 최종적으로 22명을 선발한 1965년 제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1967년부터 공군 법무관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 2025. 2. 1. 영화 '1987' 속 실제 교도관 한재동 교도소 넘은 진실…전병용→김정남→함세웅으로박정기-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버지 39 1987년 3월 서울 영등포교도소에서 보안계장 안유를 통해 상황을 파악한 이부영은 한재동 교도관에게 볼펜과 종이를 요청했다. 한재동은 자신이 지니고 있던 볼펜과 근무용지인 ‘보고전’ 몇 장을 제공했다. 수감자들에게 필기도구조차 금지된 때였다. 이부영은 3통의 편지를 써서 “박종철 사건에 관해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다”며 건네주었다. 한재동은 편지를 교도소 밖으로 가지고 나가 전직 동료 교도관 전병용에게 전달했다. 그는 당시 수배상태였던 전병용과 연락하고 지내고 있었다.한재동은 영등포교도소 안에 있는 철공장의 재소자들을 관리·감독하는 일을 했다. 철공장에선 재소자들이 수갑 등을 만들었다. 일을 마치는 오후 5시부터 퇴근시간인 .. 2025. 1. 11. 이영희와 ‘전환시대의 논리’ 발간 50주년 민주주의, ‘젊은이의 피’와 ‘리영희의 혼’ 먹고 자랐다‘전환시대의 논리’ 발간 50주년거짓·폭압, 권력 판칠수록…푸르게 타오르는 진실의 불꽃“내가 종교처럼 숭앙하고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키려고 하는 것은 국가나 애국이나 그런 것이 아니야, 진실이야” (고 리영희 선생 2004년 인터뷰, 리영희 재단 갈무리)시인 김지하는 ‘1974년 1월’이라는 시를 이렇게 시작했다.“1974년 1월을 죽음이라고 부르자/ 오후의 거리, 방송을 듣고 사라지던/ 네 눈 속의 빛을 죽음이라 부르자.”왜 1974년 1월은 죽음이었던가. 그 두 해 전 10월, 박정희는 보통선거로 대통령을 뽑는 헌법을 폐지하고 영구 집권을 보장하는 ‘유신헌법’을 만들어 민주주의의 숨통을 끊었다. 이듬해 8월 국외에서 반유신 투쟁을 하던 야당 정치인.. 2024. 10. 6. 방자명 중령-쿠데타 막다 옥살이, 63년 만에 무죄 쿠데타 막다 옥살이, 63년 만에 무죄 받아든 아들의 한탄[인터뷰] 고 방자명 중령 장남 문성씨 "돌아가신 아버지, 사과 없는 국가... 공허한 마음“▲ 육군 헌병대 제15범죄수사대 대장 시절 방자명의 모습.ⓒ 방자명 유족 "이렇게 기쁜 소식을 아버지도 살아생전에 들았다면 제게 뭐라고 하셨을까요? 이런 기분을 느끼지 못하고 돌아가셨으니..." - 고 방자명 중령의 장남 방문성씨63년. 쿠데타를 막으려다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한 군인이 재심에서 무죄를 받기까지 걸린 세월이다.아버지의 출소를 반기던 초등학생 아들은 장성해 가정을 꾸리고 나서야 알았다. 아버지가 박정희 소장이 일으킨 5·16 군사정변의 희생양이었다는 것을. 아내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25년이 지나서야 말할 수 있게 됐다. 내 남편은 무죄.. 2024. 9. 27. 이전 1 2 3 4 ··· 1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