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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단체 회원들, 세월호 유가족 모욕하며 또 농성장서 행패 718 민중의 소리
'나라 위해 목숨 바친 것도 아닌데' 등 극언
세월호 단식 농성장이 있는 광화문 광장에 18일 오전 보수단체 회원들이 몰려와 난입을 시도하고 있다.ⓒ출처 : 최진미 페이스북
세월호 가족대책위 단식농성장 앞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의 막말과 행패가 이틀째 계속됐다 18일 오전 세월호 가족대책위의 단식농성장에 '엄마부대 봉사단'이라고 적힌 조끼를 입은 중년 여성 30여명이 모여 기자회견과 피켓시위를 벌였다. 이들이 들고 있던 피켓에는 '유가족들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도가 지나치면 국민들이 분노합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것도 아닌데 이해할 수 없네요'라고 적혀 있었다. 피켓에는 '나라지킴이여성연합', '탈북여성회' 등의 단체 이름이 적혀 있었다.
경찰은 이들이 농성장쪽으로 진입하는 것을 차단하고 "자극하지 말라"고 제지했으나 구호를 외치고 행패를 부리다 약 15분 뒤 해산했다. 17일에는 어버이연합 회원 30여명이 세월호 가족대책위 단식농성장에 난입하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고 무산됐다. 이들 역시 세월호 참사에 학부모들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등 극언을 퍼부었다.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지난 14일부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광화문 광장에서 5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왜 학살이 아닌가 718 주간한국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변은 사방이 바다와 국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거대한 집단 감옥인 셈이다. 인구의 절반은 14세 이하의 아이들이다. 이스라엘이 공습을 퍼붓는 가자지구는 그런 곳이다. 18일(현지시간) 가자시티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팔레스타인 의료진이 부상한 아기를 치료하고 있다. 가자=AP 연합뉴스
가해자가 누구인가. 힘센 쪽은 어딘가. 달아날 곳도 없다. 매찜질은 고스란하다. 교전이라니. 민망하다. 도륙 아닌가. 인종주의의 극단에서 죽이는 자도 죽는 자도 인간성을 잃었다.
“이스라엘은 공습을 하기 전에 미리 ‘가짜 미사일’로 가자지구의 민간인들에게 친절히 경고해준다고 주장한다. 알아서들 피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하늘만 뚫리고 사방이 막힌 감옥’과도 같은 가자지구에서, 어디로 도망칠 수 있단 말인가. (…) 인구 180만명 중 100만명 이상이 난민인 가자지구는 세계 최대의 난민촌이자 세계 최대의 감옥이다. 무너진 건물 터에서 재와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숨진 아이들을 나르는 사람들, 피흘리는 아이를 끌어안은 부모들. 그들에게 여기가 지옥이 아니고 어디일까. 가자지구는 인구 절반이 14세 이하의 아이들이다. 도망칠 곳 없이 죽어가는 아이들. 이보다 참혹한 광경은 없다. (…) 또 한 장의 사진이 있다. 가자지구 북쪽, 이스라엘 스데롯의 언덕 위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가자 공습을 지켜보는 이스라엘인들의 사진이다. 이스라엘군이 발사한 미사일들이 하늘에 흰 줄을 그리며 날아갈 때, 미사일이 가자지구의 어느 구석엔가 내리꽂히고 폭발이 일어날 때 그들은 박수를 친다. (…) 스데롯 시네마의 관객들이 지옥에 있는 게 아니라면, 누가 지옥에 있을 것인가. (…) 스데롯의 관객들은 자기들이 땅을 빼앗고 내몬 사람들, 이웃이자 공존해야 할 사람들이 죽도록 몰아가면서 거기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이스라엘ㆍ가자, 두 개의 지옥(경향신문 ‘로그인’ㆍ구정은 국제부 차장) ☞ 전문 보기
“대부분 국내 매체들도 진실과 영혼이 결여된 채, 친유대계 외신들의 논조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한다. 하마스가 저항의 표시로 쏘아올린 로켓포 몇 발과 이스라엘의 무차별 표적 공격을 전면전으로 표현한다. 어떻게 이것이 전쟁인가? 분리장벽에 갇히고, 해상이 봉쇄된 상태에서 이스라엘 영토를 통과하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집단 감옥에서 이스라엘이 물과 전기마저 통제하거나 끊어버리는 상황에서 ‘여기도 사람 있어요’라고 세상을 향해 외치는 저항을 테러라고 한다. (…) 이스라엘 10대 3명의 납치·살해가 사태의 발단이라면, 지금까지 팔레스타인인 2500명 이상이 납치되어 구금당하고, 살해당하거나 행방불명된 상태다. 누가 누구에게 보복을 해야 하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서방세계의 방조와 동조 자세다. (…) 온갖 첨단 무기로 무장한 세계 10위의 군사대국 이스라엘과 국제법상 무장을 할 수 없어 소총과 정밀도 떨어지는 재래식 로켓포로 위협 시늉만 하는 하마스를 동일선상에 놓고 전쟁으로 표현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1948년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몰아내고 설립한 이스라엘 국가 자체를 부정하는 아랍 국가는 지금 거의 없다. (…)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1967년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빼앗은 이웃 아랍 주권국가들의 영토다. 안보리 결의안이나 국제법으로 되돌려주어야 하는 땅인데도 아직도 대부분의 땅을 이스라엘이 강제로 점령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합의한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의 정신을 훼손하는 행위다.”
-전쟁 아닌 ‘팔레스타인 학살’(7월 14일자 경향신문 ‘국제칼럼’ㆍ이희수 한양대 교수(중동학)) ☞ 전문 보기
민족주의는 이념보다 집단 정서에 가깝다. 국가에 불리한 실상은 배척되기 십상이다. 해석은 말할 것도 없다. 자유주의의 적이다. 다만 정치가 동원한 허구까지 허용되는 건 아니다.
“박유하 세종대 교수에 대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민ㆍ형사 제소 소식에 ‘올 것이 왔구나’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 판매금지가처분 소송이 덧붙은 데서 알 수 있듯, 지난해 나온 그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뿌리와 이파리)가 직접적 이유다. (…) 한일 양국의 여러 시각에 접한 경험에 비추어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다. 오랜 논란을 부른 ‘강제동원’을 일부 사례로 한정하는 대신 대부분이 소개업자나 인신매매업자가 개입된 사기나 유괴 등의 결과로 파악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 올 게 왔다는 생각 다음으로 은근한 분노를 느껴야 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헌법적 권리인 학문과 양심의 자유까지도 억누르려는 세태에. 박 교수는 역사 전공자가 아니다. (…) 학계의 통설에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운 정통 연구자와 달리 인접 분야 출신의 연구자들의 자유로운 시각과 접근법이 학문 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박 교수도 대표적 예의 하나다. 설사 그의 작업이 뚜렷한 가치를 갖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 성향이 보수든 진보든, 새빨갛던 시퍼렇든, 개인의 지적 호기심, 나아가 헌법적 권리인 학문과 양심의 자유를 억누르려는 사회는 숨이 막힌다. 에드워드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 이런 자유로운 역사의 ‘해석 공간’은 개인, 특히 연구자들에게는 커다란 기쁨이다. 그 동안 축적된 역사서술의 틈새를 살펴 그것을 메울 가설과 해석을 펼쳐 보일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의 책도 그런 기쁨의 산물이라고 볼 만하다. 최소한 우리 사회의 지적 관용과 학문의 자유를 환기시켰다. 그런 시각에 이견이 있다면, 학문적 논쟁을 통해 해소하거나 대비되어 마땅하다. (…) 그런 정당한 경로가 아닌 지식 탄압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정치권력이 신물 나게 보여주지 않았나.”
-박유하 교수의 피소(한국일보 ‘황영식의 세상만사’ㆍ논설실장) ☞ 전문 보기
“학술언어는 대개 정치적 함의를 바탕에 깔고 있다. (…) 식민지근대화론은 경제학 언어의 탈을 쓴 정치언어다. 이 나라 기득권세력이 자신들의 뿌리를 정당화하는 데 쓰는 담론 도구가 식민지근대화론이다. (…) 자본주의화를 곧 근대화로 보는 것인데, 그런 주장을 학설로 내놓는 거야 학문 행위의 자유이니 말릴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문제는 식민지근대화론이 일제강점기에 자본주의 경제가 발전했다는 단순한 주장을 넘어 식민지를 겪지 않았으면 자본주의 발전을 하지 못했을 거라는 주장으로 나아간다는 데 있다. (…) 이 주장을 더 밀고 나가면 친일파야말로 식민지 근대화에 이바지한 사람들이 된다. (…) 식민지근대화론의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이면 항일독립투사들은 일제의 근대화 노력에 발목을 건 시대착오적 훼방꾼이 되고 만다. (…) 이 역사 쿠데타가 마지막에 노리는 것은 친일파의 태반에서 자라나온 해방 후 독재세력, 다시 말해 이승만·박정희와 그 아류들에게 근대화의 주역이라는 역사의 월계관을 씌워주는 것이다. (…) 일제와 독재에 부역하며 기득권을 쌓아올린 무리를 역사적으로 정당화하고 항일·반독재 세력을 헛것과 싸운 자들로 낙인찍어 쳐내는 것이 식민지근대화론의 정치적 임무다. 일제 덕에 근대화 토대를 닦았고 독재 덕에 산업화에 성공했으니 친일이 옳았고 독재가 맞았다는 것이다.”
-식민지근대화론과 역사 쿠데타(한겨레 ‘아침 햇발’ㆍ고명섭 논설위원) ☞ 전문 보기
청와대발 인사 실패의 배경은 간단하다. 대통령의 독선이다. 내 사람 아니면 믿지 않는 게 철칙이다. 제 편은 시퍼런 서슬과 강요된 의리로 묶는다. 문제는 유유상종이란 경험칙이다.
“야당이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의 사생활 정보를 전달하기 전까지 청와대는 요지부동이었다. (…) 여기서 우려되는 건 독선의 위험이다. “사심이 없다”는 말부터 그런 조짐을 보인다. 뒤집으면 다른 사람은 사심을 가져 내가 항상 옳다는 뜻이 아닌가. 어이없는 검증 실패도 이와 무관치 않다. ‘윗분’의 의지가 지나치게 강하면 내부 검증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의리’와 짝을 이루는 코드는 ‘친박(親朴)’이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비박(非朴)’ 판이다. 이에 대비해 내각에는 친박들이 포진했다. 혹시라도 당이 협조하건 않건 내각 중심으로 국정을 끌고 가겠다는 포석이라면 걱정이다. (…)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의리가 없으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죠”라고 했다. 하지만 의리는 대통령이 내세울 도덕률은 아니다. ‘할 말은 하겠다’는 집권당 대표마저 ‘우파 정권’을 강조하면 ‘국민’이 들어설 자리는 사라지고, 통합은 공염불이 된다.”
-박근혜, 김무성, 의리코드(중앙일보 ‘김진국 칼럼’ㆍ대기자) ☞ 전문 보기
“박(근혜) 정부의 인사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위원장인 인사위원회가 맡지만 ‘윗분의 뜻’을 받드는 데 머문다는 혹평을 받고 있다. (…) ‘국회의원은 아무리 부패해도 유권자의 눈치를 보지만, 관료 출신은 아무리 훌륭해도 인사권자의 눈치만 살핀다’는 말이 있다. 관료 출신인 정(진철 인사)수석도 ‘받아쓰기’만 하면 보좌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 대통령에게 통상의 3배수 명단에 2명을 늘려 5배수로 인사안을 보고하더라도 대통령이 “이 사람은 어때요”라며 다른 사람을 들이밀면 반론을 제기하기 힘들다. 그렇게 ‘수첩 속의 인사’가 낙점된 사례가 여럿이라는 소문이 꼬리를 문다. 그러다 보니 인사 참사가 벌어져 청와대 내에 인사 포비아(공포증)라는 말까지 나와도 누가 잘못했는지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 박 대통령도, 김 비서실장도 달라질 가능성이 없다면 정 수석이라도 새 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 시간이 날 때 인사수석으론 선배 격인 정찬용 전 수석에게 한 수 배우러 가면 어떨까. 인사의 디테일보다, 지엄한 대통령에게 ‘항명’까지는 아니더라도 할 말을 하는 기개는 배우면 좋겠다.”
한국 NGO에 ‘노동’은 없다? 718 시사인
비영리단체 쪽에는 농담 아닌 농담이 있다. 인권단체에 직원 인권이 없고, 복지단체에 직원 복지가 없다는.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에 노동의 가치나 보상에 쉽게 눈감아버린다
연말이면 회사 인트라넷에 공지사항이 올라왔다. ‘잔여 연가 신청서 올려주세요!’ 공휴일도 다르고, 시차도 정반대인 지구 반대편과 일하며 매일 야근에 시달리는 직원들은 연말이면 열흘 넘게 휴가가 쌓인다. 관행상 초과근무 수당도, 연가보상비 지급도 되지 않는 비영리단체 사업장에서는 연말에 일괄 연가 신청을 받는다. 그리고 직원들은 당연하다는 듯 휴가 신청을 한 상태에서 출근을 한다. 이는 비단 한 단체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이런 농담 아닌 농담이 있다. “인권단체에 직원 인권이 없고, 복지단체에 직원 복지가 없고, 보호단체에는 직원 보호가 없으며, 국제개발단체에는 직원 개발이 없다.” 실제로 인권이나 복지, 개발 가운데 하나라도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 드물다. 운영비를 낮추라는 경영진의 압박에 시달리다 보니 임금도 낮고, 직원이 모자라 매일 야근을 하다 보니 자기 개발을 하거나 복지를 챙길 시간도 없다.
단순히 경영 효율성, 혹은 사업비 비중을 높여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이런 희생을 강요하는 것일까. 다른 이유가 있지는 않을까. 분명 운영비가 모자라서는 아니다. 규모가 작은 기관들은 예산 부족으로 직원들에게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몸담았던 NGO 같은) 대형 기관들은 연간 해외사업비 송금액에서 환차익으로만 수억원씩 잔여금이 생긴다. 애초에 사람을 위해 일한다는 단체가 경영 효율성 등을 기반으로 운영한다는 것이 모순이기도 하다.
일하는 사람에 대한 인권·복지·보호·개발의 부재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 내에서 노동, 그리고 노동의 가치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특히 ‘좋은 일’을 한다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이들은 노동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봉사를 한다고 여긴다. 기부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라 하더라도, 내부에서 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과, 애초에 기부를 강요하는 것과는 노동자의 의욕에 많은 차이를 낳는다.
노동과 그에 합당한 보상은 공정 사회를 위한 기본 약속 중 하나
비영리조직의 노동 특성 자체가 윤리성·전문성·비생산성 등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활동을 노동으로 인식하고 규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비영리조직의 경영자뿐 아니라 노동 당사자 역시 노동의 대가를 바라는 것이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일을 하면서 높은 경제적 보상까지 바라는 건 옳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점이다. 하지만 수식어를 모두 잘라내고 ‘일과 보상’, 즉 노동과 그에 따른 합당한 대가를 받는 것은 공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약속 중 하나다. 무엇보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더 높은 경제적인 보상이 따르는 게 맞지 않을까?
낮은 임금, 높은 노동강도, 열악한 근무환경은 비영리조직의 활동가들에게 업무 수행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하고 현장을 떠나게 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다. 비영리조직의 이직률이 타 직종에 비해 매우 높고, 숙련된 인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력 부족은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의 질을 낮추고 전반적인 활동 수준을 떨어뜨린다. 공여자에게도 수혜자에게도 해가 되는 결말이다.
노동은 모든 사회의 기반을 이루는 힘이다. 노동이 배제된 조직은 겉보기에는 아름다울지 몰라도 기반이 없는 건물과도 같다. 조직 내에서 성과물을 공정하게 분배하지 못하고, 사회적 윤리를 창출하지 못하며, 공동체적 결속을 회복하고 연대할 수 없다면 소외된 이들과 함께, 혹은 그들을 위해 연대할 수 있을까? 우리가 바라는 가치를 조직 안에서조차 현실화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떤 가치를 위해 일하는 것인가?
지하철역에 야권후보 가득...'새누리당만 좋겠네' 717오마이뉴스
[현장] 7·30 동작을 보궐선거 운동 개시... 여야 후보 5인 각양각색 선거운동
▲ 7.30 재보선 선거벽보 바라보는 시민 7.30 재보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17일 오전 서울 동작구 중앙대 정문 앞에 부착된 동작을 후보자 선거벽보를 한 시민이 쳐다보고 있다. ⓒ 남소연
"박원순의 부시장"이라고 적힌 어깨띠를 두른 기동민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시민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로부터 30미터 뒤에는 유선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있었다. 선거운동원들은 "진보당이 살아야 정치가 바뀝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후보의 이름을 외쳤다. 노회찬 정의당 후보는 지하철역 안에 있었다. 노 후보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라고 외치는 선거운동원들과 함께 부지런히 시민들과 악수를 나눴다.
7·30 재보궐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17일 오전 서울 동작구 남성역 1번 출구. 동작을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야권후보 4명 중 3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자리에는 나경원 새누리당 후보와 김종철 노동당 후보만 없었다. 1 대 4 여야 구도로 치러야 할 이번 선거의 현주소가 공교롭게도 선거운동 첫날 출근인사 때부터 펼쳐진 셈이다.
새정치연합의 당직자는 "동작을이 인구밀도가 높은 좁은 지역구다 보니 지역주민들이 남성역과 이수역을 주로 이용해 많이들 출근하신다"라며 "이처럼 각 후보들의 '동선'이 겹치는 상황이 빈번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나경원 후보의 지지율이 다른 야권후보들을 앞서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일보>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과 지난 10~15일 지역 유권자 8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나 후보는 43.2%를 기록해 기 후보(15.0%)와 노 후보(12.8%)를 30%p 안팎의 격차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5%p). 이는 향후 동작을 보궐선거의 이슈가 '야권후보 단일화'로 흐를 수밖에 없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나경원] "동작을 강남4구로...국회일 하려면 3선 의원쯤 돼야"
▲ 엄지 치켜올린 나경원 후보 7.30 재보선 서울 동작을에 출마한 나경원 새누리당 후보가 17일 오후 서울 동작구 사당역 인근에서 출정식을 갖고 한 지지자와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남소연
나경원 새누리당 후보의 전략은 '집권여당 의원의 힘'으로 요약됐다. 나 후보 측 선거운동원들은 이날 오후 12시 30분 사당역 8번 출구 앞에서 열린 나 후보 출정식에서 "동작을, 강남 4구로"를 연신 외쳤다. '원조' 강남인 동작 지역을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3구에 버금가도록 발전시키겠다는 얘기였다. 유세차에 오른 나 후보는 "제가 서울시장 출마했을 때 동작을 지역구를 살펴보니 정부 지원이나 막강한 뒷받침 없이는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숙제가 있다는 걸 알았다"라며 "(동작을 출마를 권유한)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께서 '전적으로 동작을 지원해주시겠다'고 했다, 이쯤 되면 동작의 해묵은 숙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제가 이번에 (국회) 들어가면 3선 의원이 된다, 국회 가면 3선 의원쯤 돼야 예산도 가져오고 저희가 원하는 대로 발전방향과 개발방식을 바꿀 정책과 법도 만들 수 있다"라며 "그냥 아무 것도 안 해본 사람이 아니라 국회 경험 있는 사람이 국회일 잘 할 것 같다는 생각 안 드시나"라고 말했다.
사실상 첫 국회의원 선거를 뛰는 기동민 새정치연합 후보를 겨냥한 발언이었다. 한 캠프 관계자는 "기동민 후보는 국회의원 보좌관 시절 2012년 국회 몸싸움 사태로 벌금형 400만 원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야당파트너와도 뜻이 맞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작갑 지역구 의원인 전병헌 전 새정치연합 원내대표가 얼마 전 전화 해 '열심히 하라'고 했다"라며 "여야가 싸우기도 하지만 사이도 좋다"라고 강조했다.
나 의원의 보조 무기는 "동작에서 태어난 나경원"이었다. 서울 중구 지역구 의원이었던 그가 동작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것을 두고 '철새'라고 하는 데 '작명지'로 반박한 것이다. 나 후보는 "어머니께서 상도시장 작명소에서 내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라며 "나경원이란 이름이 상도시장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외할아버지는 흑석동에서 태어나셨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왔다갔다 말고 네가 태어난 동작에서 봉사하라'고 (저를) 부르신 것 같다"라며 "이쯤하면 동작의 본토박이라고 할 만하죠"라고 강조했다.
[기동민] "박원순과 함께 새로운 서울 만들 사람"
▲ 출근인사 하는 기동민 후보 서울 동작을에 출마한 기동민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17일 오전 서울 동작구 남성역 입구에서 출근하는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은 선거운동 지원에 나선 김한길 공동대표. ⓒ 남소연
기동민 후보의 공식선거운동 첫날은 '기동민과 박원순'으로 요약됐다. 이날 80여 명의 의원들과 함께 기동민 후보 선거캠프에서 의원총회를 여는 등 물량공세를 편 새정치연합은 '기동민과 박원순'을 반복 언급했다. 김한길 대표는 "박원순과 함께 새로운 서울을 만들 사람"이라며 기 후보를 치켜세웠다. 안철수 대표는 "기동민을 살려야 박원순을 살린다"라며 "박원순의 새로운 변화와 가치가 한 발짝 더 나갈 수 있나, 멈추냐는 동작에서 판가름 난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전략공천'의 내홍을 극복하고 윤장현 광주시장을 당선시키기 위해 "윤장현이 살아야 안철수도 산다"는 논리를 설파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기 후보 역시 '서울시 정부무시장' 경력을 전면에 내세우며 "서울시의 예산·정책·사람이 돌아가는 걸 뻔히 알고 있다, 이걸 다 동작에 가져오겠다"라며 "6·4 지방선거에서 보여준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는 서울시민의 전진, 여기서 멈출 수 없다"라고 말했다. 기 후보는 이날 당으로부터 확실한 지원사격을 받았다. 오전 7시 30분께부터 의원들이 삼삼오오 나타나 기 후보의 출근인사에 합류했다.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와 박영선 원내대표까지 합류했을 때 20여 명의 의원들이 기 후보 옆에 섰다. 처음에는 기 후보에게 데면데면하게 대하던 주민들도 안 대표 등이 등장하자 기 후보의 손을 반갑게 잡았다.
이후 오전 10시부터 이어진 남성시장 유세는 '전략공천' 파동으로 갈등을 겪은 허동준 전 동작을 지역위원장이 기 후보와 함께 하며 '화해'의 모습으로 지지를 호소했다. 허 전 위원장은 "내 사랑을 온전하게 기동민에게 보여 달라"라고 호소했다. 허 위원장과 손을 맞잡은 기 후보는 "어제부로 내 이름은 기동준으로, 허동준은 허동민으로 개칭하기로 했다"라며 "둘이 크게 하나 돼서 최선을 다해 정치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라고 강조했다. 시장 상인과 만나면서도 기 후보는 "허동준 손잡고 따라왔다"라고 운을 뗐고, 허 전 위원장은 "나라고 생각하고 도와달라"라고 말했다.
[노회찬] "공주냐 비서냐 머슴이냐, 내가 머슴이 되겠다"
▲ 인사하는 노회찬 후보 서울 동작을에 출마한 노회찬 정의당 후보가 17일 오후 서울 동작구 남성시장을 찾아 상인들에게 지지를 당부하고 있다. 가운데는 지원에 나선 심상정 원내대표. ⓒ 남소연
"이번 선거는 공주를 뽑을 것이냐 비서·오른팔을 뽑을 거냐, 머슴을 선택할 것이냐다."
나경원 후보를 '공주'로 기동민 후보를 '비서·오른팔'로 표현한 노회찬 동작을 정의당 후보는 '머슴론'을 설파했다. 남성시장 내 동작 2동 주민센터 앞에서 유세를 펼친 그는 "노회찬이 머슴이 되겠습니다"라며 "무수한 거물 정치인이 왔다갔지만 그들이 동작구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라고 목소리 높였다.
'일 잘하는 머슴'으로서 그는 소상공인보호와 지원 특별법 제정을 약속했다. 노 후보는 "선거가 끝나면 바로 박원순 시장을 만나서 동작구 상업용지를 서울시 평균 수준으로 높여달라고로 요구하겠다"라며 "7호선 이수역에서 남성역까지 죽어버린 거리를 장사 잘 되는 거리로 만들겠다"라고 강조했다. 노 후보는 나경원 후보의 '강남 4구'론에는 "나 후보는 아직도 강남을 잊지 못하는 거 같다, 정신적으로는 강남구민인 거 같다"라며 "동작을 강남 4구로 만들겠다? 200만 원도 못 버는 자영업자들이 30%가 넘는데 강남처럼 집값만 오르면 어떻게 하냐"라고 비판했다. 이날 정의당에서는 심상정 원내대표와 김제남 원내대변인, 서기호 의원도 유세현장을 함께하며 노 후보 지원에 적극 나섰다.
노 후보는 이날 확실한 '인지도'로 승부했다. 출근 중에도 '인증샷'을 찍자고 요청하는 주민도 있었다. 이날 오전 6시 50분께부터 남성역 안에서 출근인사를 하는 노 후보를 향해 반가움을 나타내는 주민들도 눈에 띄었다. 등산모를 쓴 한 중년남성은 "노 의원이 제일 좋아"라고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오후에 이어진 남성시장 유세에서 몇몇 시민은 "팬입니다", "잘 되실 겁니다"라며 노 후보를 격려했다.
[유선희·김종철] '3파전 프레임'에 갇힌 군소 진보후보
▲ 거리인사하는 유선희 후보 7.30 재보선 서울 동작을에 출마한 유선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17일 오전 서울 동작구 남성역 인근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나경원-기동민-노회찬' 3파전 구도 하에서도 묵묵히 지역을 다지는 후보들도 있다. 바로 유선희 통합진보당 후보와 김종철 노동당 후보다. 유선희 후보는 이날 오전 남성역 앞 출근인사에서 일일이 주민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손을 맞잡았을 땐 "진보당이 살아야 정치가 바뀝니다"라고 말을 건넸다. 기동민·노회찬 후보와 함께 의도치 않게 함께 출근인사를 하게 된 데는 "아무래도 지역에서 야권후보들 지지율이 낮아서"라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유 후보는 이날 출근인사 뒤 이어진 유세에서 '진보단일화'를 강조했다. 그는 "나경원 후보는 친환경무상급식을 거품 물고 반대했던 사람 아니냐, 후보로서 자격이 없다"라며 "야권이 나뉘어져 어부지리를 주는 것 아닌가?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다, 진보단일화를 이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통합진보당을 '종북'이라 매도하는데 이는 과거 독재정권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빨갱이'라고 했던 수법과 똑같은 것"이라며 "'종북' 색깔론은 사실 새정치연합을 겨냥한 것이다, 야권연대를 못하게 분열시키려는 새누리당의 장기집권 책략"이라고 강조했다.
▲ 거리인사하는 김종철 후보 7.30 재보선 서울 동작을에 출마한 김종철 노동당 후보가 17일 오전 서울 동작구 이수역 인근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김종철 노동당 후보는 이날 야권후보 중 유일하게 이수역 13번 출구 앞에서 출근인사를 했다. 이미 동작을 지역구에서만 세 번 출마했던 그답게 김 후보를 알아보는 주민들도 있었다(관련기사: 진보진영에서만 후보 셋... 답답하고 황당하다"). "안녕하십니까, 제가 김종철입니다, 손 한 번 잡아주세요"라고 손을 내미는 그를 뒤에서 껴안으며 격려하는 주민도 있었다.
그는 "주민들이 저를 보면서 '어디서 본 사람인데'라고 갸웃하시다가 손을 내밀면서 인사하면 알아봐주시는 편"이라며 자신이 오랫동안 지역을 지킨 일꾼임을 강조했다. 또 "이번에 진보후보만 3명이 나오면서 새누리당·새정치연합과 차별화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결국 제가 동작에서 살아온 지역의 진보후보임을, 다른 사람들은 (낙선되면) 떠날 사람임을 강조하려 한다"고 말했다.
[민심] "이제 둥지 틀 사람 필요하다, 여당 쪽으로 기운다"
'민심'은 그리 야권에 녹록지 않았다.
남성시장에서 건어물을 파는 장주영(55)씨는 "다들 잠깐 있다가 철새처럼 날아가는데 이제 둥지를 틀 사람이 필요하다"라며 "현재 분위기로는 나경원이 될 거 같다"라고 말했다. 부동산을 운영하는 최 아무개씨 역시 "동작이 원래는 뿌리 깊은 야당 지역이었지만 부동산 등의 영향이 크고 외부 사람들이 많이 유입됐다"라며 "이제는 인물로 좌우되는데 여당 쪽으로 기우는 거 같다"라고 민심을 전했다.
노 후보를 지지한다는 박상수(62)씨는 "국회에서 제일 바르신 분인데, 저런 분이 국회로 가야 한다"라며 "야권이 지명도 낮은 후보를 낼 게 아니라 야권이 힘을 합쳐서 지원해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본래 야권을 지지해왔다는 윤 아무개(56)씨는 "야권이 4파전이다, 노회찬 후보랑 기동민 후보가 서로 표를 나눠 갖게 될까 불안하다"라며 "나는 기동민 후보가 되길 바라지만 여론이 별로 좋지 않다"라고 우려했다. 노 후보를 발견한 한 주민도 "(야권이) 합쳐야지, 안 그러면 새누리당 도와주는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야권연대가 쉽게 이뤄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 후보는 '야권연대' 가능성에 "당대당 야권연대를 제안했지만 새정치연합이 답이 없다, 21일 전까지 단일화 하지 않으면 투표 용지에 후보 이름이 찍히게 된다"라며 "이번 주말까지 답이 없으면 야권연대는 새정치연합에 의해 무산된 걸로 간주하고 앞만 보고 갈 것"이라고 못 박았다. 기 후보는 "야권연대에도 명분이 있어야 한다, 여기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들끼리 연대부터 얘기하면 벌써부터 정치 공학 얘기 하냐고 하실 것"이라며 "일단 신뢰를 쌓는 게 1차적인 과제"라고 말했다.
"우리가 구원파? 좀 웃겼어요" NYT '세월호 광고' 숨은 이야기 716 오마이뉴스
[해외리포트] 닉네임 '디자인 미씨'가 들려주는 막전막후... '007작전' 방불
"… 평범한 엄마입니다… 촛불집회 참석하러 갔다가… '서명했어요'라고 말하고 돌아가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서명했다'는 말을 한 게 너무 미안했어요. 그냥 또 할 걸. 백번이라도 할 걸. 힘내시라고 손이라도 잡아드릴 걸… 그 이후로 저는 서명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37년을 살아오면서 세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악을 방관하며 살지 않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대구에 사는 도원이·려원이 엄마가 1만 명이 서명한 용지와 함께 유가족에게 건넨 손편지에 누구보다 공감한 이들은 바로 '엄마'들일 것이다. '내 자식'만 알았던 엄마들은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세상일에 눈을 떴다. 누구보다 많이 울고 가슴 아파하며 분노한 엄마들이 만든 대표적 '사건'이 바로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광고일 것이다.
베일에 가려있던 그 광고팀이 처음 그동안의 사정에 대해 입을 열었다. 세월호에 대한 관심이 식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광고팀의 일원으로 디자인을 맡았던 닉네임 '디자인 미씨'가 그 주인공이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다.
▲ 세월호 광고 1차 시안. 무산될 찰나에 마음을 담아 올린 시안이 공감을 얻었고 다시 팀을 꾸릴 수 있었다. ⓒ Indiegogo
- 아줌마들에겐 '디자인 미씨'로 유명합니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현재 미국 남부에 살고 있고 만으로 두 살짜리 아이를 둔 엄마입니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현재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 세월호 참사 이후 '앵그리 맘'을 대표한 사건이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의 광고였지요. 당시 어떻게 광고팀을 꾸리게 됐나요?
"'앵그리 맘'은 단순히 화가 난 엄마가 아닙니다. 자식이 수장되는 모습을 지켜봤던 엄마의 고통을 함께한다는 의미이지요. 세월호가 잠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찢어졌고 우울했고 화가 났습니다. 정부의 구조 발표에 '다 거짓말'이라고 울며 항의하는 가족들을 보면서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지요. 에어포켓에 대한 희망이 사라질 즈음엔 너무 울어서 무기력 상태가 될 정도였어요.
엄마들 사이에서 한국 정부의 구조 의지를 의심하는 얘기들이 오갔고 우리가 나서서 뭔가 해보자는 움직임이 일었어요. 그때 한 주부가 외국 신문에 광고를 내자는 의견을 내면서 카피라이터와 광고 디자이너를 모집했어요. 어차피 밤잠도 못 자고 울기만 하느니 뭐라도 돕는 것이 좋겠단 생각에서 자원했지요.
물론 모임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처음 제안하셨던 분께서 계속 참여하실 수 없다는 의사를 밝히는 등 무산될 위기가 있었거든요.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마음에 준비한 1차 디자인 시안을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리면서 제 마음을 담은 글을 남겼습니다. 다행히 수많은 분들이 격려와 호응을 보내 줬어요. 유럽, 일본, 독일... 세계 각지의 재외동포들까지 말이죠. 안타깝게 생각하신 한 분이 나서서 광고 펀딩을 시작해 주셨어요. 거기에 광고 경험이 있으신 두 분의 주부가 더 자원해주셔서 극적으로 광고 모금을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매일 밤 9시 채팅 회의 뒤 새벽까지 작업
- 모금 전부터 워낙 관심이 집중돼 있어서 광고 디자인에 대한 고민도 컸을 것 같습니다. 모금 시 올린 시안과 실제 광고 디자인은 차이가 있지요?
"일이 구체화되고 보도가 되자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시겠다고 했어요. 특히 미국에서 활동한다는 전문가 팀이 합류의사를 밝히기도 해 고민을 했지요. 아무래도 전문가의 손을 거치면 훨씬 세련된 광고가 될 테니까요. 하지만 회의를 통해 우리 엄마들의 진심을 담은 광고가 더 힘이 세다는 의견을 모았고 처음 계획대로 밀고 갔습니다.
당시 우리의 일정을 설명하자면, 각자 하루 일을 마치고 매일 저녁 동부시간 9시쯤 채팅창 앞에 모여 치열한 회의를 시작합니다.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요. 그 결과를 갖고 각자 자기작업을 시작하는데 보통새벽 3~4시, 늦은 경우 6시에 끝나기도 했어요. 다음날 아침, 작업한 파일을 공유하고 다시 밤 9시에 모이는 방법이었습니다.
저희 팀 누구나 그랬겠지만 특히 제가 맡은 디자인 부분은 더 고민이 컸고 부담됐습니다. 한국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을 한 눈에 설득시켜야 하는 거잖아요. 더군다나 한국 정부의 문제에 대한 비판을 싣는 것이니까 사실에 의존해야 하고 실수하지 않아야 했죠. 이미 1차 광고 시안이 보도를 통해 알려진 상태라, 더 나은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중압감이 컸습니다.
제 디자인 모티브는 침몰하는 세월호였습니다. 전 세계인이 세월호 침몰을 지켜보았으니 침몰하는 배의 이미지만한 소재는 없었지요. 1차 시안이 감성에 호소한 광고였다면 신문에 올릴 광고의 콘셉트는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정보 전달로 잡았습니다. 그림의 비율을 30%로 한 텍스트 위주의 심플하면서도 강한 이미지가 필요했거든요. 실사 사진은 기사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어 블랙의 단순한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보통 디자인을 하면 나오는 순간까지 고치고 싶은데 의견을 충분히 나눠서 그런지 만족스러웠어요. 오히려 카피를 담당하시는 세 분이 매일 새벽마다 팀 미팅을 하며 고생하셨죠. 서로 카피를 공유하고 수정하고 영문 작업을 하느라 마감 바로 직전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셨거든요. 문장 하나, 어감 하나 신중을 기해야 했으니까요. 돈을 받고 일하는 회사라면 절대 이렇게 못 했을 거예요. 매일 이렇게 날밤을 함께 새니까 서로에 대한 믿음이 저절로 쌓이더군요. 그 믿음이 끝까지 서로 의지하며 일을 마칠 수 있는 힘이 됐습니다."
- 무엇보다 뛰어난 팀워크와 추진력을 보여준 '광고팀'의 구성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합니다. 어떤 분들이셨나요?
"광고팀은 광고 카피 시안을 맡아주신 분, 영문 카피와 모금, 신문사와의 협상과 진행을 맡으시는 분, 광고 전략과 온라인 사이트(thetruthofsewolferry.com)를 관리해주시는 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는 디자인을 맡았고요. 하지만 회사 작업과는 달리 팀원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 않았는데요. 한 사람이 주도적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팀원 모두 의견을 제시하고 조율했어요. 매우 민주적으로요. 세월호 참사에 분노한 아줌마들이 모여서 그런지 상대방을 배려하고 서로의 말을 경청하는 등 조화롭게 팀이 운영되더군요.
회사 일을 하다보면 내 말이 더 옳다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있는데, 우린 항상 '이렇게 하면 어때요?'라고 시작했습니다. 각자 커리어가 있고 각 분야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잡은 분들이라 자신의 주장을 고집할 수 있었을 텐데도 아무도 그렇지 않았어요. 다들 멀티 플레이어들이라 실수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 마칠 때까지 '환상의 팀워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분들과 일하게 된 것을 내내 감사할 정도로요."
▲ <뉴욕타임스>에 실린 세월호 광고 시안 ⓒ The Truth of Sewol Ferry
-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에선 광고도 사실 확인을 꼼꼼히 한다고요?
"유력 신문에 올리는 광고는 내용이 모두 사실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자료를 찾고 증명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광고가 실렸다는 건, 그 신문사가 광고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했다는 얘기도 되지요. 여기저기서 '망신'이라며 '그만두라'고 하는 상황에서 망신스럽지 않은 수준 높은 광고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열심히 했어요. 다행히 저희 팀원 분들이 각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가들이라 그 역량을 최대한 발휘했고 결과적으로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었지요."
- 두 번에 걸친 광고를 무사히 마치고 잔금으로 국내 양심 언론 후원까지 하셨어요. 많은 분들이 광고팀의 똑 부러지는 일 처리에 감탄했는데요. 그 비결이 뭘까요?
"저도 굉장히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미국동부와 서부 등 다른 지역에 살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이 팀을 이루었는데 어떻게 일이 이렇게 잘 진행되었나 싶어요. <오마이뉴스>에서는 저희 작업을 '007작전'이었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지요.
후원자들이 모두 똘똘 뭉쳐 광고팀을 보호해주고, 광고가 실리기 전까지 우릴 믿고 지켜봐 주시는 모습에 감명 받았어요. 광고팀을 그대로 옮겨서 회사를 차리면 아주 성공할 거라는 생각까지 했네요.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훌륭한 엄마들이 세월호라는 이름으로 모였고 그간의 역량을 발휘한 결과라 볼 수 있겠습니다."
- 광고 진행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컸을 것으로 짐작만 하고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광고팀의 투명성을 의심하는 글에서부터 우리가 구원파 같은 단체의 일원이라는 등등 많았지요. 대부분은 비공개인 저희 신분을 의심하며 이간질하는 거였어요. 하지만 우리 팀 신분이 처음부터 비공개였던 것은 아니었어요. 펀딩 시작 당시엔 모두 실명을 공개했고 이를 보고 연락해오는 기자도 있었지요. 그런데 자꾸 이상한 접촉들이 발생하고 개인정보가 유출되더라고요. 펀딩 사이트인 INDIEGOGO측에서도 민감한 사항이니 실무자들이 이니셜을 사용하면 좋겠다고 권하더군요.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우리에 대한 음해와 오해들을 보면서 속상해 울기도하고, 화내기도 했어요. 우리들 모두 엄마로, 한국 사람으로 나선 건데, 우리에게 '사기꾼', '빨갱이'라니요. 그 소리에 밤새 울다가 다음날 아침이 밝으면 다시 툭툭 털고 일을 시작했어요. 우리가 힘이 든다고 해서 자식을 잃은 유가족보다 더하겠냐고 생각했거든요. 자식을 눈앞에서 잃으신 분들도 우리랑 똑같이 '빨갱이' '협잡꾼' 소리를 들으셔야 했잖아요. 그렇게 위기를 넘겼지요."
- 게시판 글이나 댓글이 아니라 언론에서도 그런 모함을 들으셨잖아요..?
"솔직히 한국 언론이 우리에게 '종북', '빨갱이', '구원파'라고 했을 땐 좀 웃겼어요. 우리는 모두 한국 사람이지만 어렸을 때 미국에 온 이들도 있어서 빨갱이가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분들도 있었거든요. '정부 비판했다고 빨갱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정말 믿을까?' 하며 우리끼리 웃기도 했지요. 생각이 다르면 다른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잖아요. 이런 교육을 받은 우리였기에 그런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끝까지 진상규명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요즘 '구원파'란 소리도 하던데, 이건 '종북'의 다른 말 같아요. 이참에 저희도 알았네요. 내 생각과 다르면 '빨갱이', 나쁜 집단으로 몰고 싶으며 '구원파'인 거지요? 이런 이름 짓기는 정치가 아니라 선동일 뿐입니다. 권력을 이용해 국민들을 조롱하는 거라 생각해요."
"NYT 광고팀이 종북·빨갱이?... 미국 교민사회도 걱정"
▲ 디자인 미씨님이 더 많은 이들과 오랫동안 세월호를 공유하고 싶어 만든 컴퓨터 바탕화면. ⓒ 디자인미씨
- 광고 진행과정에서 선의건 악의건 여러 곳에서 접촉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NYT 광고팀'은 기관이나 언론사의 접촉을 모두 거부하셨어요. 왜 그러셨나요?
"솔직히 말하면… 한국 언론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습니다. 광고팀이 이렇게 모인 게 세월호 때문인데 세월호가 '참사'가 된 것은 정부만큼이나 언론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NYT광고에서 정부의 무능뿐 아니라 한국 언론에 대해 신랄히 비판했던 겁니다. 진실 보도는 외면한 채 사건을 축소하고 관심을 돌리려고 하는 한국 언론을 믿을 수 없어 저희는 어느 언론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국에 언론의 자유가 있다고 느꼈다면 한국 신문에 광고를 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둘째 이유는 우리 광고팀은 모금해주신 4000여 분의 뜻을 구체화시키는 진행팀일 뿐이지 결코 주동자도 대표자도 아니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냥 보통 주부들일 뿐인데 언론을 통해 정치범, 선동꾼으로 몰리면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했고요. 괜한 신상공개로 우리를 마녀사냥 하려는 사람들, 흠 잡으려는 언론들에게 먹잇감을 던져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지면을 통해 할 말은 다 했다 생각합니다. 광고에 담긴 말이 널리 전해지기를 원했지 저희에 대한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다 생각했으니까요. 이 모든 것이 새벽 회의를 통한 결과였습니다."
- 광고 이후 한국 정부와 언론에 어떤 변화가 있었다고 평가하나요?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KBS 기자들의 자기반성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CBS 같은 언론사들도 당당히 제 목소리를 내는 게 보였고요. 나라밖에서 강한 정부비판이 나오자 정부옹호 일변도의 언론들도 일제히 우리 광고전문을 실어주었지요. 덕분에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이 번역되어 한국에 그대로 전달되었습니다. 정부가 외국 여론의 동향에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뉴욕타임스> 광고 후에는 대부분의 미디어에서 우리 광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정부도 부담을 느끼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듯이 보이더군요. 물론 지방선거가 끝나자 다시 다 덮으려는 것 같이 보여 씁쓸하지만요..."
- 외국 신문에 광고가 나간 후 비난도 거셌잖아요?
"솔직히 우리팀은 광고가 나가면 모두가 신문 들고 펑펑 울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럴시간이 없더라고. 그 후 쏟아진 비난에 대처해야 했으니까요. 우리 광고에 반대하는 미국 내 한인단체들이 미국 내 한국 신문에 저희를 '종북·빨갱이'로 모는 광고들을 게재했잖아요, 미국에 몇 십 년 사신 분들도 몰랐던 수많은 단체가 연합해서 비슷한 문구로 광고를 냈더라고요. '<뉴욕타임스> 광고는 사실이 아니다', '광고팀은 종북이다', '연합단체 광고가 진짜다, 우리를 믿어라' 하는데, 그게 한국에서 하는 비난과 내용이 똑같더라고요.
우리가 종북단체의 지원을 받았다고 하는데, 우리 모금내역은 실시간으로 INDIEGOGO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투명한 운동이었습니다. 반박 광고를 한 단체들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돈을 모으고 디자인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게 아니라 그냥 '종북'이라 몰아서 매도하더군요. 모든 미주한인 매체에요. 미국 각지에 한인단체가 이렇게 많은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다행인 건, 뜻 있는 많은 교민들이 '이참에 이런 단체들을 적극 감시하자'고 이야기했다는 점입니다. 진짜 학부모는 우리 안에 있는데 학부모 모임 대표라는 분이 우리 엄마들을 빨갱이로 몰고, 한인단체 임원이란 노인이 아이 손잡고 세월호 추모 시위에 나간 엄마에게 심한 욕설을 퍼붓는 등의 일을 겪으면서요. 한국 사회만 걱정할 게 아니라 그 축소판이 된 미국 교민 사회도 걱정해야 한다고 다들 입을 모았지요."
- 프로젝트가 기획됐던 사이트는 광고 진행 과정에서 지속적인 해킹으로 인한 게시물 삭제와 디도스로 추정되는 트래픽 증가, 그리고 광고팀을 모략하는 댓글들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겁나지 않으셨나요?
"일 시작하는 초반부터 이메일 해킹을 경험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서웠는데 나중엔 덤덤해지더라고요. 미국 내 커뮤니티 사이트를 이렇게 공격하는 것은 중범죄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나 싶어요. 미국 사이트에도 이러는 것을 보면 한국에서는 더 하겠죠? 근데, 그런 행동이 왜 문제인지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판단력과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지금 한국 사회를 이끌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우린 이 일을 하면서 생전 처음 당하는 모욕에 욕도 먹었습니다. 초기엔 겁이 났지만 나중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어느 한 순간, 겁을 주며 위협할 순 있어도 사람의 삶 전부를 지배할 수는 없다 믿습니다. 아이를 지키는 엄마의 마음으로 오히려 당당하게 우리 할 일을 했지요. 그런 낡고 오래된 방법은 우리 '화난 엄마들'에겐 통하지 않았던 거죠."
미국의 9·11, 한국의 세월호
- 많은 이들이 미국의 9·11처럼 한국 사회도 세월호 참사 전후로 크게 나뉘게 될 거라고 합니다. 본인의 삶도 달라졌다고 느끼시나요?
"이미 너무 많이 달라졌어요. 저는 창의력이 요구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세월호 이후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더군요. 유족들처럼 저도 세월호 사고에 대한 진상이 규명되어야 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더는 세상을 순진하게 바라볼 수 없게 된 듯합니다. 많은 사람이 죽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는데 예전처럼 웃고 떠든다면 너무 미안하잖아요. 미국의 9·11이 '분노'가 아닌 '추모'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분노할 시간을 충분하게 주고 같이 반성하고 고치고 함께 상처를 치유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 세월호 사고는 어떤가요? 유가족이 슬퍼하는 것도 지나치다 하고 드러나는 진실에 대해 분노하면 '아직까지 그러고 있냐'고 정치적이라고 몹니다.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 사건을 제대로 추모하고 사회를 변화시켰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제2의 세월호를 막을 수 있겠지요. 고리원전 위험이나 롯데월드 주변 지반 붕괴 등의 문제를 해외에서 접할 때마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 국민들에게 화가 미칠까봐 너무 불안해요.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만들지 않으려면 이번에 제대로 진상규명하고 책임자 처벌해야 합니다. 이런 일들이 진정한 예방의 첫 단계라 믿습니다. 솔직히 이러한 사회인식도 세월호 전엔 갖지 못했는데... 세월호가 저와 같은 엄마들을 똑똑하게 만들어주었다 싶네요."
- 많은 한국인들이 세월호를 비롯한 답답한 현실에 '떠나고 싶다'고 하십니다. 미국에 사는 젊은 교민으로서 어떤 얘기를 해줄 수 있을까요?
"한국을 떠나 이민 가버리고 싶다.' 유가족께서 하신 말씀이기도 하지요. 미국 사는 너희는 한국서 사는 일이 얼마나 각박한지 모를 테니 참견하지 말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한국 밖에 사는 저 같은 교민들이 왜 일도 못 하고 잠도 못 자고 우는지 아세요? 밖에서 보면 더 또렷이 잘 보이거든요. 한국의 현실이 어떤지 정확히 보도해주는 여러 해외언론들과 이번에 알게 된 한국의 '양심언론'들을 통해 다양하게 접하면서 말입니다. 한국 현실이 암담한 것은 맞아요. 저도 '이러다가 우리 대한민국이 망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두렵기도 해요.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 못하게 한국 언론들이 통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재외교포들이 느끼는 슬픔을 우리 국민들과 교류하고 싶은데 그것마저 통제되는 느낌입니다.
'현실을 떠나고 싶다', '내 나라를 버리고 싶다'고 하지만 떳떳치 못한 나라의 국민은 외국에서도 무시당합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감옥에 가야지 왜 우리 무고한 국민들이 나라를 떠나야 하나요? 남의 아픔에 공감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면 대한민국은 바뀌고 더 좋은나라 될 겁니다. 착한 국민이 아니라 이 땅에 살면 안 될 사람을 쫓아내자는 생각을 하면 좋겠어요. 저희들도 힘껏 돕겠습니다.
하루 잠깐씩은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해...
▲ 세월호 가족 국회 농성 이틀째 세월호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와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대책위 회원들이 지난 12일 오후부터 여의도 국회의사당앞에서 제대로된 '4.16특별법'(4.16 참사 진실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해 노숙농성에 들어갔다. 13일 오전 세월호참사 희생자 가족들이 국회의사당 주위에 노란 종이배와 피켓을 놓고 있다. ⓒ 권우성
- 미국 신문에 광고를 내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현실을 알리고 무엇보다 한국 정부와 언론을 압박하는 일은 이번 일로 마무리가 된 것 같은데...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요?
"<워싱턴포스트> 광고까지 게재하고 펀딩의 남은 금액을 양심언론에게 기부하는 일을 마지막으로 광고팀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습니다. 그러나 조직만 없앤 것이지 하던 일은 같아요. '온 마음으로 세월호를 추모하기', '가만히 있지 않기'. 우리는 한국 정부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어요. 한국 정부에서 하는 이야기가 외신을 통해 보도됩니다. 그게 다 기록되는데도 말을 막 바꾸더군요.
내세울 인물이 없다고 해임한 총리를 다시 유임시킨 사건을 외신들은 비웃고 있습니다. 구조를 안 했던 것처럼, 진실 규명의 의지도 없어 보입니다. 이게 바로 해외 교민들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한국을 망신시키는 기사가 어제 아침에도 <뉴스타임스>에 났더군요. 어떤 이웃은 저에게 대놓고 물어요. '너희 나라랑 북한이랑은 뭐가 다르냐고'. 다르다고, 우린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루 빨리 얘기해 주고 싶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세월호 잊지 말자고 서로 응원하기, 가슴 아팠던 느낌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마음 나누기, 그리고 김치며 슬리퍼, 딸기잼 같은 걸 만들어서 세월호 후원바자회 같은 데 나가 열심히 마음 나누기 등등. 우리는 정치적인 단체도 아니고 세월호 추모한다고 뭐 하나 이득을 취할 일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린 그냥 유가족들이 원하는 일을 하는 거예요. 그 일이 무엇이 되었든 힘을 모아볼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 나라 주인이 누구인지 정부에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미국에서는 세월호 추모시위 운동이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외국 언론의 한국기사를 한국어로 번역 소개하는 작업과 국내 소식을 해외언론에 번역해 소개하는 일도 외국어 능력 있는 주부들끼리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할 줄 아는 게 디자인이니까, 추모의 포스터나 월페이퍼 디자인을 해서 공유하고 있고 추모시위에 쓰일 자료들을 수집하고 있어요. 다들 일상으로 돌아가서 건강 챙기고 열심히 일하면서도 하루 잠깐씩은 세월호를 위해 투자하면 좋을 것 같아요.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지치지 말고요. 전 우리 엄마들은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그녀가 지난 몇 달간 그런 큰일을 해냈다는 건, 그녀의 남편과 두 명의 미국 친구들 외엔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친정과 시댁은 물론 한국친구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평소 정치·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 주변사람들의 이런저런 우려와 걱정 때문이었다. 그녀는 세월호를 추모하는 일에 매달리느라 지금 한창 뛰어다니는 아기에게 소홀했다.
하지만 나중에 아이가 자라 2014년 너무나 바빴던 엄마를 이해해주고 더 자랑스러워 해줄 거라 믿는다. 이번에 만난 광고팀 구성원 모두 그녀와 같다. 평범한 주부로 아이 키우고 집안 일 하고 회사 다니는, 그녀들은 우리가 만나는 보통의 한국 아줌마들이다. 세월호가 그녀들을 성장하게 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반문하게 한 것이다. 그녀는 그녀의 이번 인터뷰로 세월호 사건이 다시 한 번이라도 사람들 사이에 오르내리길 바랐다.
"세월호 사고의 진상이 규명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정부와 나쁜 언론, 못된 정치꾼들에게 상처받고 있는 유가족분들에게 우리가 힘이 되어 주자고요."
그녀의 마지막 메시지다.
여름방학 앞둔 교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나 717 오마이뉴스
[아이들은 나의 스승 18] 방학이 기쁘지 않은 학부모-학생-교사
▲ 졸음을 참지 못한 학생들이 책상에 기대 잠시 잠을 자는 한 고등학교 교실 풍경. ⓒ 정은균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을 앞둔 요즘, 학교는 '개점휴업' 상태다. 시험 준비하느라 다들 벼락치기 공부를 해서인지, 아니면 마른 장마에 때 이른 무더위 때문인지, 대부분 아이들이 마치 병든 닭처럼 축 늘어져 있다. 1학기 성적이 합산돼 수행평가도 끝난 마당이니 대놓고 엎드려 잔다고 해도 딱히 제어할 수단조차 변변치 않다.
2학기 때 시험 범위라고 채근하며 진도를 나가보지만, 긴장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수업 시작 채 10분도 안 되어 책상에 엎드려 자는 아이들이 태반이다. 다가가 깨우고 나무랄라치면, 되레 지금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라며 대뜸 '휴식권'을 보장해 달라고 토끼눈을 치뜬다. 애초 되지도 않을 아이들과의 '기싸움'이었는지도 모른다.
실랑이 끝에 교과서는 2학기를 기약하며 덮었다. 대신 학기 중에는 진도 나가기에 급급해 엄두가 나지 않던 모둠별 토론수업을 의욕적으로 시도했지만 그것도 이내 실패했다. 동기부여가 안 되는 낯선 주제라서, 또 참여를 독려할 '당근'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다. 그냥 아이들은 이구동성 '귀찮다'고만 했다. 그냥 자습 시간을 주면 안 되겠느냐고 애걸하면서.
기말고사 끝난 교실 풍경
결국 수업 내용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상물을 찾아 보여주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물론, 아무리 메시지가 좋아도 웬만큼 선정적이지 않으면, 무겁게 내려앉는 아이들의 눈꺼풀을 들어올리기란 쉽지 않다. 늘 그렇듯, 영상물이 교육적일수록 아이들의 잠드는 시간은 빨라진다. 사실 '합의'란, 교사는 '보는' 것으로, 아이들은 '자도 되는' 것으로 서로 이해한 것일 뿐이다.
따지고 보면, 학기 말 수업을 그렇듯 훼방 놓는 아이들의 행동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들 말마따나 온전한 방학이란 중학교 졸업과 함께 이미 끝났다. 대학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순간부터, 방학이라는 말은 그저 학사일정표에나 등장하는 용어일 뿐이다. 방학을 기대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순진한 아이는 단 한 명도 없다.
학교마다 방학식은 하지만, 그건 방학 중 보충수업이 없는 교사와 극소수 아이들에 해당할 뿐 별다른 의미는 없다. 굳이 학기 중과 다르다면, 수업 시간표가 수능 교과목 중심으로 편성된다는 것과, 통상 밤 10시까지 행해지던 야간자율학습이 오후 6시경으로 당겨진다는 점이다. 하긴 몇몇 아이들은 '어두워지기 전에 하교하는 게 어디냐'며 행복에 겨워하는 모습이다.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를 만큼 이미 '관행'으로 굳어져 버린 방학 중 보충수업. 학기와 방학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 보니, 아이들은 기말고사 직후부터 방학식이 있는 얼추 열흘간을 '유일한 휴식 시간'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학교마다 새 학년이 시작되기도 전에 학기 중 시간표와 방학 중 시간표를 함께 작성하는 지경이니 더 말해서 무엇 할까.
교사는 학부모들이 바라기 때문이라 하고, 학부모들은 자녀가 집에서 뒹구는 꼴을 못 보겠다고 한다. 물론, 학교에서 자필로 쓴 희망 신청서를 받긴 하지만, 그걸 아이들의 자발적인 의사라고 보는 이는 거의 없다. 학교에서든, 가정에서든 아이들은 '미성숙한' 피교육자일 뿐이다. 교육부도, 교육청도 '강제성'만 없다면 방학 중 보충수업을 용인할 뿐더러 당연시 여긴다.
각자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 듯 두루뭉술 답하지만, 방학 중에도 수업이 진행되어야 하는 나름의 이유 한두 개쯤은 다 갖고 있었다. 며칠 전 기회가 닿아 몇몇 동료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학생들에게 각각 같은 질문을 던져봤다. 방학 중 보충수업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답변은 각각 이랬다.
학부모 : "우리나라에서 방학 때 노는 고등학생은 단 한 명도 없을 걸요. 어차피 학교에서 수업이 없다면, 부모 입장에서 학원에 기댈 수밖에 없어요. 대개 고등학생들의 방학 중 일정은 '주중엔 학교, 주말엔 학원'으로 짜이는데, 만약 학교가 해주지 않으면 방학은 오롯이 학원의 몫이 될 게 뻔해요."
학생 : "방학 때 놀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그런데, 막상 찾아보면 놀 친구가 없어요. 친구들을 보면 다들 학원에다 독서실까지, 학기 중 일과와 별반 다르지 않게 지내더라고요. 놀아도 같이 놀아야지, 혼자라고 생각하면 노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일 뿐이에요. 방학 중 보충수업에 '울며 겨자 먹기'로 신청할 수밖에 없는 이유죠."
"학교에 기댈 수밖에 없어요"
한 마디로 불안하다는 거다. 그때 만난 적잖은 학부모들은 "이럴 바에야 차라리 방학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심지어 몇몇 아이들조차 수긍했다. '꼴찌도 보습 학원엔 다닌다'는 우스갯소리처럼, 방학 중 보충수업 역시 공부를 잘 하든 못하든 간에, 대부분의 고등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불가피한 선택인 셈이다.
'불안에 떠는' 학생과 학부모들이야 그렇다 치자. 적이 황당했던 건 몇몇 동료 교사들의 반응이었다. 하도 오래된 '관행'으로 굳어진 탓일까, 처음부터 그런 생각은 아니었을 테지만, 그들에게 방학 중 보충수업은 학기 중과 별반 다를 게 없는 '필수적인 교육과정'인 양 인식되고 있었다.
동료 교사 : "아이들에게 수능을 준비 시키자면 학기 중 정규수업 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교과서의 진도 나가기도 빠듯한데, 수능과 연계된다니 EBS 교재도 빼놓을 순 없잖아요. 게다가 수능 문제에 적응력을 키우자면 다양한 유형의 문제집 한두 권 정도는 기본이니, 이걸 다 대강이라도 훑어보려면, 현실적으로 방학 아니고서는 어림도 없죠."
선배 교사인 그에게 이렇게 반문했다.
"그렇다면, 학기 중 정규수업만으로도 충분할 만큼 수능 문제의 수준을 낮춰야 하지 않을까요? 교과서에 시험 문제를 맞추는 게 옳지, 시험 문제에 교과서를 맞출 순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랬더니, 대뜸 조롱 섞인 답변이 되돌아왔다.
"그건 교육부에 가서 알아봐야지, 우리 같은 일개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
기말고사가 끝난 수업시간 그냥 자게 해달라는 아이를 나무라면서, 또, 방학 중 보충수업에 대한 아이와 학부모, 그리고 동료 교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깨달은 게 있다. 이른바 '교육의 3주체'라는 그들 모두 '무기력'하다는 거다. 하나같이 입버릇처럼 '어쩔 도리가 없지 않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불안'도 '무기력'의 또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주지하다시피, 진정한 의미의 방학이란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진로를 탐색해 보고, 학기 중에는 쉽지 않은 봉사활동 등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는 시간이다. 가정, 지역사회와 괴리된 채, 학교가 아이들의 교육을 일임할 수는 없다. 어쩌면 방학 중 보충수업이 아이들을 더욱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방학이 다음 학기를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 되어야 하는 교사들조차도.
단돈‘100원짜리’에.. 눈물의 양파 세일 717 파이낸셜뉴스
양파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백화점에서 양파를 공짜로 나눠준데 이어 '100원짜리' 양파가 등장했다. 17일 홈플러스가 23일까지 전국 139개 전 점포 및 인터넷쇼핑몰에서 국내산 양파를 개당 100원에 판매한다고 17일 밝혔다. 망(15입 이내)으로 구매 시에는 1000원으로, 개당 가격이 100원에도 못 미치게 된다. 통상 대형마트 취급 양파가 개당 150g 내외임을 감안하면 시중 가격(287원)보다 65% 이상 저렴한 수준이란게 마트측 설명이다.
양파는 최근 재배 면적 증가와 작황 호조 등으로 공급물량은 크게 늘어났다. 실제로 통계청 기준 올해 양파 재배면적은 지난해보다 19%가량 증가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와 6.4 지방선거 등 각종 모임이 자제되면서 소비는 급감했다.
가격도 크게 떨어졌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기준 16일 평균 양파(1kg) 소매가격은 1277원으로 전년(1898원)보다 32.7%내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양파 수확을 포기하는 농가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유통업계가 양파 소비 진작 행사에 나섰다.
홈플러스는 이번 행사를 위해 경북 문경, 예천, 상주 등 양파 주요 산지에서 총 400여 톤 물량을 매입했다. 지난해 홈플러스 일주일 평균 양파 판매량이 60톤 수준임을 감안하면 약 7배에 가까운 물량이다.
현대백화점은 아예 양파를 공짜로 나눠준다. 현대백화점은 17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전국 13개 점포 정문 앞에서 1인당 1.2㎏ 한정으로 130톤 물량의 양파를 무료로 제공한다. 현대백화점 계열 식자재 유통 회사인 현대그린푸드는국내산 양파 800톤을 구매해 전량 대만에 수출할 계획이다. 신세계백화점도 양파 수확을 포기한 농가의 양파를 매입해 양파즙으로 만들어 판매했다.
"아이들 통학로까지 막다니.." 아파트 이웃들 '아우성'717 mbc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단지 골목길이 철문을 가로막혔습니다. 그 아파트에 사는 주민이 아니면 다른 길로 돌아가라는 얘기인데요. 학교와 지하철역 가는 동네 지름길로 여겨지던 곳이라 이웃끼리 갈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 리포트 ▶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 용역 직원들이 뾰족한 날이 붙은 철조망을 담장 곳곳에 치고 있습니다. "40년 다 된 길을 왜 막아. 지금까지 다니던 길을!" 단지 안에 있는 골목길을 다른 아파트 주민들이 다닐 수 없게 막고 있는 겁니다.
◀ 인근 아파트 초등학생 ▶
"다니질 못하니까 빙 돌아서 20분이나 더 걸려요. 맨날 지각해요 그러면." 이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지난 7일에는 골목길 입구에 철문도 달았습니다. 지하철역과 학교 세 곳으로 바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인 단지 안 골목길에 다른 아파트 주민들이 쉴새 없이 드나들어 피해가 심각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 아파트 관리소 직원 ▶
"애들 등교시간이 우리 주민들도 차 가지고 출근을 하는데, 한 차선을 학생들이 다 차지할 정도라서 교통사고 위험도 놓고" 철문에 철조망까지 등장하자, 주변 아파트 주민들은 수십 년 동안 다닌 길을 이렇게 막는 경우가 어디 있냐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 신인용/인근 아파트 주민 ▶
"이해는 할 수 있는데 아이들 통학로를 막았다는 건 좀 너무한 처사 아닌가.."
또 골목길을 다시 열지 않으면, 철조망을 친 아파트 주민들도 주변의 다른 아파트에 못 들어오게 할 거라며 맞불을 놓고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 통행 문제로 이웃끼리 갈등을 벌이는 곳은 서울 강남에만 5곳. 단지 안에 있는 길이 아파트의 사유지여서 지자체도 개입하지 못하는 가운데, 주민들끼리 감정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학살은 외면, 무기에 감탄하는 중앙일보 715 미디어오늘
[비평] “이·팔, 대등한 관계에서 전쟁하는 것처럼 보도”
지난 7일부터 이어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닷새 만에 팔레스타인 주민 170여명이 사망했고 사상자는 1200명이 넘었다. 이스라엘이 장애시설·종교사원 등 민간시설에 무차별 폭격을 가하고 지상군을 투입한 결과다. 언론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학살’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다수의 언론들은 팔레스타인이 가진 무기가 이스라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세라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11일 16면 기사 <드론·아이언 돔 對 구식 로켓포…이·팔 ‘결과 뻔한 싸움’>에서 “한 해 150억달러(약 15조원)의 국방 예산을 지출하는 이스라엘은 현역 18만명, 예비군 45만 명을 보유한 세계 10위 규모의 군사 강국”이라면서 “아직 하마스 로켓포로 인한 공식적인 이스라엘 희생자는 발표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이스라엘 원자로가 있는 사막 지역 디모나에 로켓을 발사했지만 2발은 공터에 떨어지고, 나머지 1발은 이스라엘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인 ‘아이언 돔’에 격추됐다.
▲ 한국일보 12일자 1면 사진기사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자 처벌’
10일까지 이스라엘군은 무인기(드론)를 이용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750여곳을 폭격하는 등 사실상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가자지구를 폭격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들이 ‘이·팔 전면전’ 혹은 ‘이·팔 교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국민일보 지난 10일자 <이스라엘·하마스 무력충돌 격화…전면전 치닫나>, 동아일보 14일자 <이스라엘軍, 가자지구 첫 진입…하마스와 교전>, 한겨레 <공습·로켓 맞대응, 이·팔 전면전 위기> 등 보수·진보 언론 모두 마찬가지였다.
팔레스타인 평화운동단체인 ‘경계를 넘어’의 최재훈 활동가는 15일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침공이고 학살인데 마치 대등한 관계에서 전쟁을 벌이는 것처럼 표현하는 것 자체가 이스라엘 중심적인 보도이며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주류 언론들의 공통된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최 활동가는 “이스라엘의 ‘하스바라’(정보와 홍보의 중간 의미)는 전 세계 언론을 상대로 이런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며 미국도 하마스가 로켓포를 쏘니 이스라엘이 자위권 발동 차원에서 공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주류 언론에서도 이를 답습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 왜곡”이라고 강조했다. 단순한 어휘의 문제가 아닌 이·팔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라는 얘기다.
▲ 경향신문 10일자 6면 기사
경향신문만이 ‘전면전’과 ‘교전’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학살’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경향신문은 지난 10일 인터뷰 기사를 통해 “외부에서는 이·팔 양측이 ‘폭력의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표현하지만, 이스라엘의 가자 공습은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집단처벌’일 뿐”이라는 한국에 온 팔레스타인인 누라의 발언을 전했다.
조선일보는 15일 <비정한 이스라엘의 '스데롯 시네마'>에서 “(이스라엘)스데롯의 일부 주민은 공습 시간에 팝콘을 먹거나 맥주로 건배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며 학살을 바라보는 이스라엘의 시각을 전하기도 했다.
▲ 조선일보 15일자 18면 기사
사람 죽어 가는데 ‘아이언돔’ 성능에 감탄
이번 사태를 다루는 최악의 보도는 언론들이 이스라엘 무기의 성능을 소개하는 기사였다. 공습 초기 인 8,9,10일 침묵하던 중앙일보는 지난 12일 6면 기사 <하마스 로켓포 막아낸 아이언돔…“명중률 90%”>에서 “적군 로켓포나 포탄의 궤적을 계산해 미사일로 요격하는데 이스라엘은 자체 평가를 통해 명중률이 90%에 이른다고 주장한다”면서 “이스라엘 사상자 수가 미미한 수준인 데서 알 수 있듯 아이언돔은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았다”고 했다.
▲ 중앙일보 12일자 6면 기사
한국일보도 지난 12일 <로켓 요격률 90% 이스라엘 '아이언 돔' 최강의 방패로 이목>이라는 기사를 실었고, 국민일보도 11일 <하마스 신형 로켓 vs 이스라엘 ‘아이언 돔’>이라는 기사에서 두 진영의 무기 성능을 소개했다. 특히 국민일보는 하마스의 로켓에 대해 “주로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접경지대에 집중됐던 로켓 공격이 북부로까지 확대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이 신문은 정작 로켓의 명중률이 매우 낮고, 이스라엘 사망자 수가 ‘0’이라는 사실을 전하지 않았다.
‘충돌’ 이라는 방송사들은 보도량도 적어
지상파 방송사들도 이번 사태를 ‘충돌’의 시각에서 접근했다. KBS는 12일 “국제사회의 휴전 촉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 사이의 무력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고, SBS는 10일 “유대인 청소년 납치 살해와 이스라엘 측의 보복으로 촉발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교전 수위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 SBS <8뉴스> 10일자 리포트
방송사들은 관점의 문제를 떠나 이번 사태를 다룬 보도량 자체가 적었다. (7월14일 기준) MBC는 이스라엘이 지상군을 투입한 13일이 돼서야 이번 사태를 한 차례 전했다. SBS는 10일과 14일 두 차례에 걸쳐 이번 사태를 보도했다. KBS는 14일 <‘피의 보복전’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 눈덩이> 등 총 3차례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어린이 살해자” 각국서 규탄 시위 ‘봇물’ 714 한겨레
10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마가지 난민촌에서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숨진 아기들의 갈가리 찢긴 주검을 주민들이 안은 채 장례를 치르고 있다. 전날 이스라엘군이 가정집을 폭격해 전기공 부부와 이들의 조카인 이 아기들이 모두 숨졌다. 8일부터 이어진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으로 11일 현재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100명을 넘어섰다. 가자/AP 뉴시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사실상 민간인 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시위가 세계 곳곳에서 잇따르고 있다.
외신들은 13일 프랑스와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인도네시아, 홍콩, 인도 등지에서 반이스라엘 시위가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이날 프랑스 파리에서는 수천명의 시위대가 “팔레스타인의 투쟁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인종차별국 이스라엘을 보이콧하자” 등의 글귀가 적힌 팻말 등을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 시위대는 행진이 끝나는 지점인 바스티유 광장에서 경찰과 충돌했고,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진압에 나섰다. 시위대 일부는 막대기 등을 들고 유대교 예배당(시나고그) 두 곳으로 몰려가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에 저지당하기도 했다. 프랑스 북부 릴에서도 2300~6000명이 반이스라엘 시위를 벌였다. 프랑스는 서유럽에서 무슬림과 유대인이 가장 많은 나라로 꼽힌다.
독일 베를린과 뒤셀도르프, 프랑크푸르트 등에서도 시위가 이어졌다. 2000여명이 참가한 프랑크푸르트의 시위에서는 한 참가자가 경찰차 확성기를 이용해 “이스라엘은 어린이 살해자다”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도 3000여명이 시청 앞에서 보여 시위를 했다. 녹색당 소속의 리 라이애난 상원의원은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민간인을 공습 표적으로 삼고 있다. 이것은 수치스러운 짓이다”라고 시위대 앞에서 발언했다. 무슬림 인구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도 시위대가 팔레스타인 국기와 이스라엘 공습으로 살해된 어린이들의 초상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홍콩에서 반이스라엘 시위대는 이스라엘 국기에 있는 ‘다윗의 별’ 대신에 독일 나치의 상징은 ‘갈고리 십자가’(하켄크로이츠)를 넣은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행진했다. 현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자행하는 짓이 나치 독일이 유대인한테 자행한 짓과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앞서 미국 워싱턴에서는 11일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반대 시위가 열린 데 이어 12일에도 수십명이 백악관 앞에 모여 가자지구 공습 중단을 촉구했다. 이밖에도 터키와 이집트, 튀니지 등을 비롯해 영국, 노르웨이 등에서도 이스라엘 반대 시위가 잇따랐다.
한겨레 사설] 아랍평화 흔드는 이스라엘의 무차별 가자 공습 711
이스라엘이 하마스가 이끄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8일 이후 연일 공격을 가하고 있다. 지금까지 750여곳이 공습을 받아 팔레스타인 사상자가 700여명이나 발생했다. 사상자 대부분이 민간인이다. 이스라엘은 지상군 투입을 시사하고 하마스도 반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가자 지구가 전면전 위기로 빠져드는 양상이다. 150여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죽은 2012년 11월의 ‘8일 교전’ 이후 최대의 유혈사태다.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은 지난달 이스라엘 10대 소년 3명의 납치·살해가 발단이 됐다.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배후로 지목하고 ‘가혹한 보복’을 다짐하던 중 이번에는 팔레스타인 10대 소년이 이스라엘 괴한들에게 납치돼 잔인하게 살해됐다. 이스라엘은 대대적인 공습에 나섰고, 양쪽의 충돌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전투력의 극심한 불균형으로 인해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대립은 대등한 충돌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의 일방적 살육이라고 해야 할 상황이다. 이스라엘은 아이언돔이라는 최첨단 미사일방어망을 가동해 하마스가 쏜 미사일 90여발을 격추했다. 요격미사일의 적중률이 90%에 이른다고 한다. 반면에 하마스의 미사일은 사거리가 3~25㎞에 불과하고 정밀성도 떨어져 이스라엘에 사실상 충격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화력의 절대적 우위로 무장하고서 가자 지구를 무차별로 타격하고 있다. 하마스가 가정집을 지휘통제부로 삼는다면서 민간인들이 사는 집을 겨냥하는가 하면 일반인이 가는 식당에도 사람들이 모였다는 이유만으로 폭탄을 퍼부어대고 있다. 이 때문에 노인·어린이·병약자들이 집중적으로 희생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공습은 사실상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학살극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주민들의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전면적 민중봉기(인티파다)가 또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팔레스타인은 1987년과 2000년에 두 차례 대규모 인티파다로 수천명이 목숨을 잃었고 이스라엘도 정치적·도덕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이런 때일수록 국제사회의 개입이 필요하다. 유엔과 미국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 이스라엘의 공습 중단을 이끌어내고 장기적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공존 체제를 만드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또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중재와 상관없이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무차별 공습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생업전선 뛰어드는 중장년 주부들 7.14 한국
남편 은퇴 후 생계 맡는 경우 급증 신규 비정규직 63% 55세 이상 女
서울 중구 봉래동 롯데마트 서울역점 계산대에서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중장년 여성들이 분주히 일하고 있다. 배우한기자
평생 가정주부로 살았던 최모(64)씨는 지난해 서울 소재 한 건물에 청소 노동자로 취업했다. 근무 시간은 오전 4시30분부터 오후 2시까지. 불안한 비정규직 신분에 월급은 100만원이 채 안 되지만 생계를 꾸리려면 별다른 방도가 없다. 3년 전 퇴직한 남편이 당뇨를 얻어 바깥 일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씨는 “처음에는 몸이 힘들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직장에서 사람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면서도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이 적은 건 다소 아쉽다”고 말했다.
최씨처럼 남편의 은퇴 이후 생계를 꾸리기 위해 생업 전선에 나서는 중장년층 이상 여성이 크게 늘고 있다. 이들이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그러나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가 대부분인 것으로 조사됐다.
14일 한국노동연구원의 ‘월간 노동리뷰’ 7월호에 실린 ‘근로형태별 부가조사를 통해 본 최근 비정규직 노동시장의 변화’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으로 55세 이상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는 89만8,000명이다. 지난해 3월(78만5,000명)에 비해 11만3,000여명 늘었다. 이는 지난해 3월~올해 3월 전체 비정규직 증가 규모인 17만9,000여명의 63.1%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비정규직 증가폭은 55세 이상 여성이 가장 컸고 55세 이상 남성이 78만1,000명에서 84만5,000명으로 6만4,000명 늘어 두번째였다. 35~54세 남성 비정규직(5만8,000명), 15~24세 여성 비정규직(1만9,000명)이 뒤를 이었다.
55세 이상 여성이 전체 비정규직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엔 8.1%에 불과했지만 2011년 10.8%, 2012년 12.2%, 2013년 13.7%로 늘고 있는 상황.
이에 대해 정성미 한국노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노동시장의 양극화로 중간 기술직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든 탓에 기계로 노동력을 대체하기 어려운 단순 노무직이 남았다. 고령층 여성들이 이런 일자리를 채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고령층 여성이 주로 취업하는 청소 간병 요양 등 보건사회복지업종 일자리가 늘었고, 과거와 다르게 은퇴 후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도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55세 이상 여성 비정규직 규모가 커지며 전체 여성 비정규직 숫자도 함께 늘었다. 2007년 남녀 비정규직 규모는 각각 296만8,000명, 280만5,000명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많았지만 최근 7년 간 남성은 23만4,000명이 줄어들었고, 여성은 37만 2,000여명이 늘었다. 그 결과 올해 남녀 비정규직 규모는 각각 273만4,000여명, 317만7,000여명으로 역전됐다.
최저임금 시위에 벌금형… 알바노조의 비애 714 경향
ㆍ법원, 하루벌이 노조원 20명에 모두 1500만원 선고
ㆍ노조 “법 잣대 폭력적”… 노역형 자원·모금 운동도
“하루하루 알바로 사는데, 벌금 100만원 낼 돈이 어디 있겠어요. 저도 결국 노역형을 살아야겠죠.”
지난 13일 수화기 너머로 들린 대학생 김재섭씨(24) 목소리엔 허탈함이 가득했다. 7학기 동안 학자금 대출로 2600만원을 짊어진 채 대학생활을 해나간다. 아르바이트로 힘겹게 생활비를 벌어가던 그는 지난해 아르바이트 노동자 권리에 눈 뜨면서 ‘알바노조’에 가입했다. 하지만 1년 뒤 받아든 건 법원이 선고한 100만원의 벌금이었다. 지난 6월13일 최저임금 인상 시위를 벌이면서 한국경영자총연합회(경총) 건물 처마에 오른 게 처벌 대상이 됐다.
‘벌금 폭탄’ 규탄 구교현 알바노조 위원장(왼쪽에서 두번째)이 14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최저임금 1만원 운동과정에서 부과된 1500만원의 벌금에 대해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던 알바노조 관계자들에겐 30만~400만원의 벌금이 부과돼 누적벌금이 1500만원에 달한다. 구 위원장은 “알바들은 벌금 낼 돈이 없다”며 “직접 노역을 하겠다”고 밝혔다. | 강윤중 기자
‘벌금 폭탄’은 김씨만의 문제는 아니다. 알바노조 조합원 20여명은 지난해부터 진행한 ‘최저임금 인상’ 운동으로 모두 1500여만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조합원 이장원씨(22)에게 떨어진 벌금은 50만원이다. 그는 “동생이 내년에 대학에 들어가게 돼 이제 부모님에게 학비도 지원받기 힘든 상황이다. 벌금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알바노조는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단체 벌금형에 대해 법원과 경총을 규탄했다. 구교현 알바노조 위원장은 “1인당 100만원이 넘는 벌금은 알바생들이 지금 최저임금으로 한달 내내 일해도 못 버는 돈”이라며 “폭력 성향의 집회도 아니었는데, 취지엔 관심을 갖지 않고 현행법 잣대만 들이대는 게 폭력적인 행위”라고 말했다. 벌금형을 받기 쉬운 알바노조 운동의 어려움도 설명했다. “기존 노동조합처럼 하나의 사업장에 다수의 노동자가 있는 단체라면 파업도 하고 집단적 힘을 행사할 수 있는데, 알바 노동자들은 시간적 여유도 없고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어요. 시위를 해도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많은 사람에게 빨리 널리 인상 깊게 알려야겠다는 마음이 앞서게 되죠.” 벌금 400만원이 부과된 구 위원장은 14일 서울 서부지검에 출두해 자진 노역형에 들어갔다.
알바노조 조합원들은 집단 벌금형 때문에 위축되어 있다. 이장원씨는 “벌금 50만원이 떨어져도 오래 일한 돈이 그냥 날아가다 보니 조합원 중에는 투쟁 현장에 오길 꺼려 하는 이들도 있다. 나 역시 때론 조합원 활동을 그만 두고 싶을 때가 있다”고 했다. 이씨는 그럼에도 알바노조 활동을 계속할 생각이다. 그는 “당장 최저임금을 안 지키고 부당한 일을 시키는 사업장에 가게 되면 알바노조 말고는 비빌 언덕이 없다”고 말했다.
알바노조는 14일부터 모금 운동에 들어갔다. 벌금을 낼 형편이 안되는 조합원들에게 수배가 떨어지기 전 지원을 하기 위해서다. 구 위원장은 “벌금 때문에 모금하게 됐다는 사실보다 알바노동의 문제로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은 이들이 알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인 삶의 質 비교해보니… 생계 찾는 韓 취미 찾는 日 714 국민
일본 도쿄의 번화가 하라주쿠(原宿)가 젊은이들의 거리라면 스가모(巢鴨)는 노인들의 거리다. 스가모역 인근 지조도오리(地藏通) 상점가는 철저하게 노인의 수요에 맞춰져 있다.
스가모에는 하라주쿠처럼 최신 유행 패션은 없지만 내복 가게, 카스텔라 상점, 약국 등 고령자가 필요로 하는 상품과 편의시설이 가득하다. 어르신들을 배려해 가격표는 큼지막하고 거리 곳곳에 벤치와 쉼터가 있다.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는 일부러 느리게 작동시킨다. 이 노인 전용 상점가는 매출이 수년째 오르고 있어 노인 복지를 연구하는 유럽 학자들이 논문을 쓰려고 자주 찾는다.
기초연금 25일 지급…액수 2배 늘었지만 '소득 하위 70%' 지급은 무산 715 jtbc
이달 25일에는 기초노령연금을 받고 있던 413만명 중 410만명이 기초연금을 수급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달 30일 기준으로 기초노령연금 수급자에 대한 소득·재산을 확인한 결과 410만명이 기초연금 선정기준에 해당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15일 밝혔다.
이들 중 급여지급을 위한 자료정비가 완료된 409만명을 살펴볼 때, 378만5000명(92.6%)은 전액(단독 20만원, 부부 32만원)을 받을 것으로 보이며, 소득·재산과 국민연금액이 상대적으로 많은 약 30만명(7.4%)은 일부 감액될 것으로 예상된다. 감액된 가구를 보면 단독 20만원 미만~10만원 이상·부부 32만원 미만~16만원 이상을 받는 가구는 25만5000명(6.2%), 단독 10만원 미만~2만원 이상, 부부 16만원 미만은 4만7000명(1.2%)이다.
변경된 선정 기준으로 희비도 엇갈렸다. 대체적으로 고액 자산가는 탈락한 반면 재산이 거의 없는 일하는 어르신은 기초연금 수습자가 됐다. 기초노령연금 수급자 중 3만명은 소득인정액이 선정기준을 초과했거나 고가회원권·고급승용차 등을 보유해 탈락했고 2만여명은 근로소득 공제율을 확대한 결과 기초연금을 계속 받을 수 있게 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기초노령연금 제도가 지속됐을 경우 탈락 예정자는 5만명이었다"며 "기초연금 기준을 적용하면서 탈락예상자가 2만명 감소한 것은 기초연금에서 근로소득 공제를 확대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득 하위 70% 지급'은 이번에도 달성되지 못했다. 65세 이상 어르신이 639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이 중 70%인 447만명이 수급 대상이 된다. 그러나 실제 이달 기초연금을 받는 어르신은 410만명으로 37만명이 모자란다. 수급액이 대부분 2배 정도 늘었지만 신청 등을 하지 않은 어르신이 여전히 많아 기초노령연금자 수와 별 차이가 없게 된 셈이다.
한편 이달 기초연금을 신청한 어르신은 수급 여부를 결정하기까지 30일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수급자로 인정되면 다음 달 7월 급여를 함께 받는다. 이달 1일부터 14일까지 신규 신청자는 23만명으로 집계됐다
7·30 재·보선 출마자 55명 중 30명 전과기록… 서산·태안은 3명 전원 음주운전 714경향
7·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출마 후보자 55명 가운데 30명에게 전과기록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충남 서산·태안의 경우 출마한 후보자 전원이 음주운전 전과가 있었다.
1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정보공개 자료에 따르면 재·보선 출마자 절반이 넘는 30명(54.5%)이 최소 한 차례에서 최대 다섯 차례의 전과기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대다수는 민주화 운동 과정 등에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처벌받았다. 그러나 일부 후보자들은 사기와 뇌물수수, 음주운전 등의 전과기록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광주 광산을에 출마한 새누리당 송환기 후보는 2009년 사기 혐의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고, 같은 지역에 출마한 무소속 양창석 후보는 1993년 뇌물수수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 및 추징금 처분을 받았다.
가장 많은 전과를 신고한 후보는 새정치민주연합 신정훈 후보(전남 나주·화순)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배임 등 다섯 차례 전과기록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지역의 무소속 강백수 후보도 풍속영업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네 차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개그맨 출신 무소속 이재포 후보(경기 김포)는 무면허·음주운전으로 네 차례 적발됐다.
특히 충남 서산·태안에 출마한 새누리당 김제식, 새정치연합 조한기, 무소속 박태권 후보는 모두 음주운전 전력이 있었다.
후보 55명의 평균재산은 11억7023만원으로 조사됐다. 새누리당 이중효 후보(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가 89억8916만원, 새누리당 홍철호 후보(경기 김포)가 60억7504만원으로 각각 1·2위를 기록했다.
누린 자들의 '민낯'은 온통 볼썽사납다714 프레시안
[의정일기] 인사청문제도는 더 강화돼야 한다-배재정 국회의원
“역시 안대희였구나.”
정홍원 국무총리의 ‘대독’ 정치에 매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다음 국무총리 인사청문은 꼭 직접 뛰겠다고 했을 때부터 그는 후보자 1순위였다. 박근혜 정부의 인력풀은 정말 한계가 뚜렷하다. 무엇부터 시작할까? 먼저 관보부터 찾아 부장검사 시절부터 비교를 해 봐야겠고…. 그렇지 미얀마가 있었다. 그건 18대 국회 때부터 축적돼 온 자료가 있다. 어? 이상하다. 고검장을 마칠 무렵 재산이 왜 이렇게 적지? 대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관, 법무부장관, 검찰총장 등 법조 인사청문은 안 해 본 게 없는데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법조 고위인사들은 커 온 과정에 패턴이 있다. 집안이든, 누구든 든든한 조력자가 있다. 안대희 후보, 그게 더 수상하다.
안대희, ‘청렴’이 아킬레스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관예우’로 벌어들인 막대한 수임료가 곧바로 터져 나왔다. 그리고 시작된 후보자의 반전카드 내밀기, 사회환원과 읍소. 그런데 국민 감정이 더 나빠졌다. 안 후보자 검증의 초점은 역시 ‘청렴’이었다. 그는 그동안 국민을 상대로 ‘청렴’을 너무 팔아왔다. 의무경찰로 복무한 아들의 보직 특혜 의혹 보도가 나올 무렵, 우리 의원실의 조준선은 부모의 재산형성 과정을 겨냥하고 있었다.
모친은 줄곧 관보 고지거부를 해 오다가 대법관이 된 이후 고지거부를 해지했다. 부친은 88세 고령임에도 지금까지 금융권에 예치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살아올 수 있지? 상식은 곧 의심이 된다. 이윽고 ▲부친의 주택 증여 ▲위장전입(주민등록법 위반) ▲미성년자 자녀 증여 ▲20차례에 걸친 부모의 '이상 전입' ▲안 후보자의 보유 재산액을 줄이기 위한 모친의 부산 해운대구 아파트 매매 등 각종 의혹들이 정리됐다. 이 모든 게 안 후보자가 오랫동안 잘 준비해 온 '위장 청렴'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5월 28일 오후, 안 후보자가 지명 일주일 만에 전격 사퇴했다. 다음날 한 신문사 2면 머릿기사로 잡혀 있던 배재정 의원실의 기사도 날아갔다. 허탈했다. 하지만 ‘국민 검사’의 민낯을 더 들여다보지 못한 아쉬움이 더 컸다.
언론계가 더 부끄러워 한 문창극 후보
안 후보자의 바통을 이을 사람은 누구일까. 언론에 각종 하마평이 오르내릴 즈음 정말 의외의 인물이 지명됐다. 중앙일보 주필 출신 문창극? 여의도 정가가 발칵 뒤집혔다. ‘윤창중에 이은 대형 참극이 벌어질 것’이라는 평가가 우세했다.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 것은 오히려 언론계였다. 진보, 보수를 떠나 전 언론사가 벌떼처럼 검증에 뛰어들었다.
법조인들의 커온 과정에 패턴이 있듯이 언론인 출신들도 패턴이 있다. 각종 특혜에 익숙하다. 그래놓고 그 삶의 궤적을 잘 관리하지 못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지명됐던 신재민 씨가 가장 가까운 사례이다.
문 후보자에 대한 검증 과정은 정말 독특했다. 국회 인사청문위원회가 구성되지 않았고, 더군다나 본인이 제출하게 돼 있는 인사청문 요청서도 국회에 당도하지 않았는데 기사가 쏟아졌다. 그 만큼 깊게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문 후보자는 삶의 궤적 곳곳, 경력을 추가할 때마다 특혜의 흔적을 남겨두었다. 문 후보자 검증을 한 단어로 압축한다면 ‘셀프’라는 농담이 나올 지경이었다.
우리 의원실이 한 신문사와 단독으로 내보낸 ‘군 복무 중 대학원 재학 특혜’도 그랬다. 프로필을 읽어 내려가다가 든 의문을 간단한 자료 요청만으로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대한민국 보수는 특혜의식이 체화돼 있다. ‘신상털기’를 할 필요도 없다.
▲ 왼쪽부터 문창극-김명수-정성근 후보자 ⓒ연합뉴스
‘달인’ 김명수 후보 · ‘뻔뻔’ 정성근 후보
우리 의원실은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 검증을 시작으로 무려 한 달 반을 인사청문에 매달렸다. ‘진이 빠진다’는 이럴 때 쓰는 말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그래도 성과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언론에 이름이 나서? 천만의 말씀이다. 함량미달 고위공직자가 이끄는 대한민국호는 필연코 또 다른 세월호 참사를 만들어낼 것이 뻔하다. 지난 주 대한민국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인상청문 검증대 위에 올라온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와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를 지켜봤다.
김 후보자는 ‘논문베끼기·가로채기의 달인’ ‘주식투자의 달인’ ‘특강의 달인’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정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검증 중단 후보가 됐다. 청문회가 끝난 뒤 금융감독원은 김 후보자의 주식거래 내역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고, 정 후보자는 또 다른 의혹이 추가로 드러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새누리당은 현행 인사청문회가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주장한다. 동의한다. 지금의 인사청문제도는 대통령과 행정부가 국민을 속이려 들면 얼마든지 은폐할 수 있는 맹점을 갖고 있다.그런데도 후보자들은 왜 속속 낙마하는 것일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당신들의 민낯이 얼마나 볼썽사나운지.
보수·극우 세력이 ‘문창극을 원했던 이유’ 7.3 시사인
한 편의 막장 드라마 같은 시국이 흘러간다. 차라리 드라마라면 텔레비전을 꺼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4월16일 이후 우리는 이 드라마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지금이 종반부인지, 아니면 아직 도입부에 불과한지조차 모호하다. 확실한 것은 사라진 줄 알았던 악역 배우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다. 얼굴에 점 하나 찍지 않은 채로.
‘황당’ ‘당혹’이라는 평이 가장 맞춤하다. 사의를 표한 국무총리가 헌정 사상 최초로 살아남았다. 정치권의 모든 하마평과 ‘설’이 무색해졌다. 세월호 참사 직후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절규하는 가족들 앞에서 팔짱을 낀 채 자동차에 숨어 있던 무능한 총리가 다시 돌아온 까닭도 명확해졌다. 설마 했지만, 더 이상 청와대가 내놓을 인물이 없다는 뜻이다.
청와대는 6월26일 정홍원 국무총리 유임 방침을 발표하면서 “청문회 과정에서 노출된 문제로 국정 공백과 국론 분열이 큰 상황이다.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서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의를 반려했다”라고 밝혔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이다. 청와대가 방치할 수 없는 것은 물론 ‘국론 분열을 일으킨 문창극의 친일 논란’이다. 그런데 조금 다른 시각도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 대목을 이렇게 해석했다. “밖에서 보기에는 문창극씨가 버틴 것처럼 보이지만, 버틸 때까지 버틴 건 사실 청와대다.” 버틴 게 청와대라니,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상황을 버텨낸 걸까.
6월20일 문창극 총리 후보자 지지자들이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후보자의 퇴근을 기다리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보수 논객들도 ‘문창극 청문회’ 개최를 강력히 주장했다. ⓒ연합뉴스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총리 후보자 자격으로 활동한 14일 동안 역사 시계는 거꾸로 돌아갔다. 일제 강점기와 남북 분단은 하나님이 주신 시련이 되었고, 제주 4·3은 폭동이 되었다. 22년째 매주 수요일에 시위를 벌이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의 문제는 이미 종결된 사건처럼 되었다. 안대희 전 총리 후보자의 자진 사퇴 파동이 채 가라앉기도 전이었다.
그 결과 정권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질렀고, 두어 달 전만 해도 60%를 웃돌던 대통령 지지율이 40%대 초반으로 주저앉았다. 청와대로서는 문창극 카드를 하루 속히 접었어야 했다. 그러나 결국 2주일을 끌었다. 이런 ‘방치’가 꼭 마땅한 인물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이상한 흐름이 감지되고 있었다. 국민 10명 중 7명이 문창극 후보자가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는 와중에 문 후보자를 옹호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6월13일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이 신호탄을 쏘았다. 그는 한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문창극 후보자가 햇볕정책과 종북을 비판해서 괘씸죄에 걸렸다”라고 주장했다. 이때는 문창극 후보자의 온누리교회 강연 동영상이 공개된 직후였다. 국민 여론이 문창극 후보자에 대해 가장 싸늘할 때 ‘용감하게’ 칼을 빼든 셈이다.
이후 보수 인사들의 ‘지원사격’이 하나둘 이어졌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선동 언론과 부패한 국회의원들이 편향된 정보를 확산시켜 문창극 후보자를 두들겨패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장춘 전 외무부 대사도 “문창극 후보자가 기독교 장로로서 세속 한국의 정체를 깜빡 잊고 터뜨린 오발탄(‘하나님의 뜻’) 빼고는 넘치는 애국심에 따라 개진한 관찰·소신에 무슨 잘못이 있나?”라는 트윗을 올렸다.
‘문창극 구하기’에 나선 류근일·조갑제·MBC
하이라이트는 MBC의 ‘참전’이었다. MBC는 6월20일 밤 9시50분 <긴급대담, 문창극 총리 후보자 논란>을 방영했다. 자사의 간판 토론 프로그램인 <100분 토론>보다 30분이나 긴 이례적인 편성이었다. MBC는 이 프로그램에서 문창극 전 후보자의 온누리교회 강연 동영상을 통으로 공개했다. ‘토론을 빙자한 문창극 살리기’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결과적으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이후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다. 해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낼 것이라는 예측을 깨고 주말 내내 아무런 조처를 내놓지 않았다. 반면 MBC 방영 이후 보수 언론은 문창극 지키기에 화력을 집중했다. 문창극 후보자에게 청문회에서 해명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KBS 보도가 앞뒤 맥락을 자른 짜깁기라고 비판했다.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압박이었다.
>2009년 <친일인명사전>이 편찬(오른쪽)되는 등 보수·극우 세력의 어두운 과거가 폭로되면서 보수 세력의 역사 전쟁도 본격화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뉴시스
앞서 말한 정치권 관계자가 박 대통령이 ‘버텼다’고 말하는 시기가 바로 이때다. 그의 말은 이랬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의 친일 행적을 의식해서인지 친일 문제에는 단호한 태도를 보여왔다. 아베와는 공식적으로 악수하는 것도 꺼릴 정도다. 그런데 문창극 사태가 불거지면서 스타일이 구겨졌다. 카드를 버리려는데 후보자가 뜻밖의 태도를 보였고, 보수 진영에서 일제히 지원사격에 나섰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며칠을 버틴 셈이다. 만약 여론이 문창극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뀌기라도 했다면 대통령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인사 청문회가 열리는 꼴을 보게 됐을지도 모른다.”
문창극 후보자가 자진 사퇴한 뒤에도 논란이 수그러들기는커녕 더욱 커져간다. 유명 보수 논객부터 극우 성향 사이트 일베(일간 베스트 저장소) 이용자들까지, 각계 보수층의 박근혜 지지 철회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의 말마따나 “보수 성향 지지자들의 분노가 KBS와 새누리당을 넘어 대통령에게 집중”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조 전 대표는 정홍원 국무총리의 유임 직후 “악역을 피하려는 지도자는 그만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라고까지 말했다.
여기서 질문을 던져보자. 문창극 사태에서 보수(극우) 세력이 진정 원한 건 무엇이었을까. 이들은 한결같이 “문창극 후보자가 청문회까지 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6월22일 보수 인사 482명은 “문창극씨가 청문회도 없이 사퇴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라며 지지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청문회에서 문창극씨가 대체 뭘 보여줄 수 있기에?
문창극 후보자가 사퇴한 이튿날 <중앙일보> 박보균 대기자는 ‘문창극 드라마’라는 칼럼에서 “장관 자질의 핵심은 역사관이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문창극 청문회는 달랐을 것이다. 역사 논쟁의 치열한 무대가 되었을 것이다. 친일파, 조선시대 평가, 친미와 반미, 한국전쟁과 북한 다루기, 중국과 한반도, 경제민주화와 개인 자립심이 주제였을 것이다. 그것은 정치 수준을 높일 기회였다.”
‘역사 논쟁의 치열한 무대.’ 보수 세력은 문창극 청문회를 본격적인 역사 논쟁의 장으로 삼고 싶어했다. 문창극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자신의 역사관에 대해 해명하고 반성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 아니었다. 한 보수 논객의 말처럼 ‘친일파 인민재판에 굴하지 말고 당당하게 맞서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는 것이다.
6월24일 문창극 후보 사퇴(위 왼쪽), 6월26일 정홍원 총리의 이례적인 유임 발표 이후 보수층의 ‘박근혜 지지 철회’ 선언이 이어졌다. 오른쪽은 2013년 2월26일 박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는 정홍원 총리. ⓒ시사IN 이명익, 연합뉴스
보수·극우 세력이 ‘역사 전쟁’을 시도한 건 10여 년 전부터다. 2000년대 들어 민족지를 자처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친일 행각이 널리 알려지면서 이들의 ‘위기감’이 커졌다. 이즈음 보수 세력이 ‘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결집하면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특히 2000년대 후반 <친일인명사전> 편찬 작업이 본격화하고,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을 통해 독재 정권의 어두운 과거가 폭로되면서 보수 세력의 역사 전쟁도 본격화한다. 뉴라이트 역사 단체인 ‘교과서 포럼’을 통해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작업에 착수했고, <대안 교과서> 논쟁으로 토대를 일궜다. 지난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교학사 역사 교과서 채택 논란은 그 연장선에 있었다.
보수 세력의 격한 저항은 ‘박근혜 길들이기’?
이들에게 문창극 후보자는 ‘열매’였다. 일제의 식민 지배를 하나님의 시련이라 표현하고, 4·3을 공산주의자의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한국 사회의 국무총리가 되는 것을 ‘역사 전쟁의 승리’로 여기고 싶었을 것이다. 총리가 못 되더라도 청문회 자리에서라도 자신의 역사관을 피력해주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끝내 수포로 돌아갔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지금 상황은 극우 세력이 문창극 후보자를 통해 공세적 반격을 시도했고, 패배하자 누군가에게 그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보수 세력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극렬하게 저항하는 것을 일종의 ‘길들이기’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6월24일 사퇴 기자회견에서 문창극 전 후보자는 “국민의 뜻만 강조하면 여론 정치가 된다. 이 여론이라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가. 여론은 변하기 쉽고 편견과 고정관념에 의해 지배받기 쉽다”라고 말했다.
문창극을 사퇴시킨 건 대통령도, 정치권도 아니었다. 친일·반민족을 용납할 수 없다는 우리 사회의 눈높이였다. 공동체를 설득하고 이끌어가야 할 총리 후보자가 공동체의 여론을 무시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이번 사태는 잘 보여준다. 안쓰러운 것은 문창극 전 후보자와 보수 세력은 왜 자신들이 여론으로부터 외면당했는지 여전히 모르고 있으리라는 점이다.
쌀 전면개방은 식량안보 포기다 714 미디어오늘
[김영호 칼럼] 국민의 생존과 직결되는 사안, 국민적 논의도 거치지 않고 결정
박근혜 정권이 내년부터 쌀시장을 전면개방하겠다고 나섰다. 쌀시장은 WTO(세계무역기구) 농업협정에 따라 20년에 걸쳐 소비수요의 8%가 개방되었다. 내년부터는 그 협정시한이 만료되어 현재처럼 부분개방을 유지하느냐, 전면개방하느냐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그런데 박 정권이 수출국과 협상도 시도하지 않고 전면개방하겠다고 서둔다. 쌀은 주식이다. 국민의 생존과 직결되는 중차대한 사안을 국민적 논의도 거치지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해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다.
언론도 이 중대한 국가적 현안을 전혀 공론화하지 않는다. 농민들이 반발해 쌀을 지키겠다며 상경투쟁을 벌였지만 경찰의 물대포만 맞았고, 언론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쌀시장을 전면개방하더라도 현재의 의무수입량 40만9,000t을 그대로 수입해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시장도 추가로 개방하는 것이다. 그런데 박 정권은 관변단체-학자들을 내세워 이 같은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400~500%의 관세를 붙이면 쌀시장을 지킬 수 있다고 장담한다. 문제는 미국이 그 같은 고율의 관세를 수용해 스스로 수출 길을 막겠느냐는 점이다.
▲ 6월 28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쌀 전면개방반대, 민영화 저지, 노동기본권 쟁취 시국대회' 참석자들이 집회 후 종로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FTA(자유무역협정)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는 무관세를 목표로 한다. 정부가 전방위 FTA와 TPP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WTO를 통해 고율의 관세를 보장받더라도 그것을 유지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식량은 해외에서 사서 먹는 게 싸다는 비교우위론자에 포획된 박 정권이 쌀시장 전면개방을 강행하고 있다.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니 식량주권을 식량대국에게 맡기겠다는 발상이 나오는 것이다.
2008년 세계적인 식량파동으로 곡물가격이 폭동하자 30여개국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당시 수출국은 곡물을 전략상품(strategic commodity)로 지정하고 수출관세-할당-금지를 통해 수출을 통제했다. 중국은 모든 곡물의 수출을 금지했고 아르헨티나는 제한했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밀,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은 쌀의 수출을 통제했다. 하지만 한국은 식량파동의 심각성을 모르고 살았다. 농민들이 경찰의 곤봉세례를 맞아가면서 시장개방을 반대하며 쌀 자립을 지킨 덕택이다.
지구촌에 곡물파동이 잦아지고 있다. 곡물파동이 7~10년 주기로 나타나더니 근년에 들어 이상기후 탓에 그 주기가 짧아지는 추세다. 환경오염과 물 부족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또 사막화-산업화-도시화가 가속화하면서 농지축소와 이농현상이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식물연료(biofuel)도 곡물파동의 한 원인이다. 인구대국인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가 소득향상에 따라 육류소비가 증가하면서 사료용 곡물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여기에다 세계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이 WTO와 FTA를 통해 세계의 가족농을 파괴하고 있다. 가족농은 식구끼리 농사를 지어 먹고 남아야 판다. 미국은 막대한 정부지원에 힘입은 초국적 기업농이 농업을 영위한다. 미국은 경작지가 세계에서 가장 넓어 비행기로 파종하고 비행기로 농약을 살포한다. 한국은 가족농이라 값싼 미국산과는 경쟁을 할 수 없다.
세계적인 식량위기가 고조되는 시점에 이명박 정권은 농지축소를 감행했다. 2008년 6월 우량농지인 농업진흥지역의 농지를 다른 용도로 전용할 경우 이에 상응하는 농지를 농업진흥지역으로 대체하도록 지정하는 제도를 없앴다. 2009년 11월 평균 경사율 15% 이상 농지를 비농업인이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또 11월에는 농업적 가치가 낮다는 명목을 내세워 6만5,000㏊ 규모의 절대농지를 농업진흥지역에서 해제했다.
이명박 정권은 이어 2012년 9월 개별공시지가의 30%를 내는 농지보전부담금 감면대상에 경제자유구역-기업도시, 관광단지-관광시설용지, 체육시설을 추가하기로 했다. 농지감축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다. 농지가 1990년에만 해도 210만9,000ha였는데 역대 정권이 농지감축 정책을 쓰는 바람에 2000년 188만9,000ha, 2011년 169만8,000ha로 20년간 20%나 줄었는데 여기에 추가해 또 농지축소를 단행한 것이다.
농지축소에다 이상기후가 겹쳐 쌀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2000년에만도 529만t이었는데 10년 새 100t 가까이 줄었다. 2007년 27년만에 큰 흉년이 들어 생산량이 441만t으로 줄었다. 2008년 484만t으로 다소 회복되었다가 2010년 이후 내리 3년간 더 큰 흉년이 들었다. 생산량이 2010년 430만t, 2011년 422만t, 2012년 401만t으로 급감했는데 지난해는 423만t으로 다소 늘었다. 이에 따라 쌀 자급률이 80%대로 뚝 떨어졌다. 쌀이 남아돈다고 난리였지만 이제 수입해야만 먹고산다.
냉전체제하에서 소련은 집단농장의 실패로 만성적인 식량난에 시달렸다. 구조적인 식량난은 미국과의 대결국면에서도 서방세계에 구호의 손길은 내밀게 만들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은 곡물수출금지를 선언하고 나섰다. 식량무기화로 소련의 목덜미를 죄였던 것이다. 결국 식량난은 세계의 절반을 둘러친 철의 장막을 일순간에 붕괴시켰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을 깨는 망치 소리를 시발로 동구에 이어 소련에서도 공산주의가 삽시간에 와해되었던 것이다.
그것을 잘 아는 중국이 식량증산에 나섰다. 산업화-도시화-사막화가 진행되면서 농지를 급속하게 잠식하고 있다. 여기에다 해마다 이농민이 1,500만명씩 발생했다. 이에 따라 중국은 농지세를 2006년부터 아예 없애버렸다. 휴경지에 생산을 재개하고 이농민의 귀농을 독려하고 있다. 그것을 위해 농촌의무교육을 무료화하고 의료혜택을 확대했다. 증산정책은 도시-농촌간의 소득격차를 완화하려는 사회-경제정책의 일환이기도 하다.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22.6%에 불과하다. 쌀을 80% 이상 자급하니 그나마 유지된다. 미국의 값싼 밀에 밀려 이 땅에서 밀밭이 사라졌다. 쌀시장을 전면개방하면 밀의 전철을 밟을 것이 자명하다. 주곡인 쌀 생산기반이 붕괴되면 무기안보와 함께 식량안보도 미국의 손에 놓이게 된다. 식량안보를 지키려면 단순한 경제적 논리를 떠나 식량주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기후변화에 대비해서도 식량자립기반을 견지해야 한다. 한번 문을 열면 닫을 수 없다
수입쌀 ‘완판’의 비밀 715 시사인
“수입쌀이요? 그거 잘 안 팔려서 창고에 쌓여 있지 않나요?” 수입쌀이 얼마나 팔리는지 아느냐고 묻자 주부 김선화씨(45·가명)는 이렇게 되물었다. 과연 그럴까? 수입쌀은 크게 두 가지, 가공용 쌀과 밥쌀용 쌀로 나뉜다. 가공용 쌀은 막걸리·인스턴트 밥 같은 가공식품에 쓰이고, 밥쌀용 쌀은 말 그대로 우리 밥상에 직접 오르는 쌀이다.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타결된 직후인 1994년부터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한 가공용 쌀과 달리 밥쌀용 쌀이 들어온 것은 2005년부터다(아래 도표 기사 참조). 그 이듬해 본격적으로 시중에서 판매되기 시작한 밥쌀용 쌀은 그러나 한동안 냉대를 받았다. 쌀을 수입한다는 데에 대한 일반 소비자들의 심리적 거부감도 있었거니와 수입쌀에서 냄새가 난다는 둥 구설이 끊이지 않으면서 한때는 수입쌀 공매를 책임진 한국농수산식품공사가 사실상 ‘떨이’ 가격으로 이를 밀어내기도 했다.
ⓒ시사IN 윤무영
상황이 급변한 것은 2011년 이후다. 2011년은 100% 이상을 유지하던 한국의 쌀 자급률이 83%로 추락한 첫해다. 이듬해인 2012년에도 쌀 자급률은 86.1%에 불과했다. 이로 인한 국산쌀 부족 현상이 겹치면서 수입쌀 판매는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서울 양재동 양곡도매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미국 쌀이건 중국 쌀이건 지금은 갖다 놓기만 하면 금방 다 팔려나간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양곡도매시장 곳곳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산 ‘칼로스’와 중국산 ‘복임문’ ‘그린라이스’ 따위 수입쌀 포대가 1800㎏씩, 일명 팰릿 포장으로 묶인 채 쌓여 있었다.
수입쌀이 잘 나가는 것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농림수산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2010년과 2011년 도입한 밥쌀용 수입쌀은 ‘완판’을 기록했다(아래 도표 상단 그림 참조). 현재 시중에서 팔리는 2012년 도입분 밥쌀용 쌀도 재고가 99% 이상 소진됐다. 도입 연도가 아닌 연 판매량을 기준으로 삼으면 밥쌀용 수입쌀의 약진은 더 두드러진다(아래 도표 하단 그림 참조). 2010년 2만5447t에 불과했던 밥쌀용 쌀 판매량은 2011년 8만5972t으로 치솟더니 2012년 급기야 14만2760t에 이르렀다. 쌀 개방 유예 대가로 매년 들여와야 하는 밥쌀용 쌀 의무도입물량(2012년 기준 11만t)을 훌쩍 뛰어넘은 수치다. 덕분에 정부는 그간 남아 있던 재고를 모두 처리했을 뿐 아니라 2년치 의무도입물량 중 일부를 앞당겨 들여오기도 했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당시 한국 정부는 2004년까지 쌀 전면 개방(쌀 관세화)을 미루는 대신, 매년 일정량의 쌀을 수입하기로 세계무역기구(WTO)와 약속했다. 이를 의무도입물량(MMA·최소시장접근물량이라고도 표현한다)이라 한다. 이에 따라 1988~1990년 국내 쌀 소비량의 1%에 해당하는 5만여t을 1995년 처음 수입했고 의무도입물량을 단계적으로 늘려갔다. 2004년, WTO와 쌀 재협상을 벌이면서 한국 정부는 2014년까지 쌀 전면 개방을 미루는 대신 의무도입물량을 더 늘리기로 했다. 2004년 당시 국내 쌀 소비량의 4%(20만5000t) 수준이었던 수입쌀 물량을 2014년까지 8%(40만9000t) 수준으로 늘리기로 한 것이다. 이때부터는 밥쌀용 쌀도 수입하기 시작했다. 2014년 현재 의무도입물량으로 수입하는 밥쌀용 쌀은 전체 쌀 수입량의 30%에 이른다. 앞으로 쌀 전면 개방이 이뤄진다 해도 2014년 수준의 의무도입물량(40만9000t)은 계속 유지된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당시 한국 정부는 2004년까지 쌀 전면 개방(쌀 관세화)을 미루는 대신, 매년 일정량의 쌀을 수입하기로 세계무역기구(WTO)와 약속했다. 이를 의무도입물량(MMA·최소시장접근물량이라고도 표현한다)이라 한다. 이에 따라 1988~1990년 국내 쌀 소비량의 1%에 해당하는 5만여t을 1995년 처음 수입했고 의무도입물량을 단계적으로 늘려갔다. 2004년, WTO와 쌀 재협상을 벌이면서 한국 정부는 2014년까지 쌀 전면 개방을 미루는 대신 의무도입물량을 더 늘리기로 했다. 2004년 당시 국내 쌀 소비량의 4%(20만5000t) 수준이었던 수입쌀 물량을 2014년까지 8%(40만9000t) 수준으로 늘리기로 한 것이다. 이때부터는 밥쌀용 쌀도 수입하기 시작했다. 2014년 현재 의무도입물량으로 수입하는 밥쌀용 쌀은 전체 쌀 수입량의 30%에 이른다. 앞으로 쌀 전면 개방이 이뤄진다 해도 2014년 수준의 의무도입물량(40만9000t)은 계속 유지된다.
그 많은 밥쌀용 수입쌀은 어디로 갔을까
하지만 상황이 이런데도 사람들은 이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수입쌀 실태를 알려주자 주부 김선화씨는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왜 내 주변에는 수입쌀 먹는다는 사람들이 없는 거죠?” 양곡 판매업자들에 따르면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가정집은 여전히 국산쌀을 애용하는 것 같다. 수입쌀을 찾는 쪽은 대부분 식당 등이다”라고 서울 신림동에서 양곡 소매상을 하는 김종삼씨는 말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수수께끼가 발생한다. 수입된 쌀을 쓴다고 밝힌 식당 또한 찾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농수산물의 원산지 표시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국의 모든 식당은 쌀과 김치 등의 원산지를 손님 눈에 잘 띄는 곳에 표시하게끔 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 식당에서 쌀 원산지를 미국 또는 중국이라 표기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한 해 10만t 이상 팔려나간 수입쌀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일단 의심할 수 있는 것은 식당들이 원산지를 속였을 가능성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김춘진 의원(새정치연합)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수입쌀 부정 유통은 해마다 늘고 있다. 수입쌀을 국내산으로 속이거나 원산지 표시를 하지 않아 적발된 업소는 2010년 18건에서 2011년 131건, 2012년 372건으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동네 분식집에서 대형 프랜차이즈 식당, 뷔페에 이르기까지 업소 종류도 다양했다. 이들이 유통시킨 물량 또한 2010년 22t에서 2012년 3438t 규모로 급증했다.
식당 주인도 모른 채 수입쌀이 국내산으로 둔갑해 유통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수입쌀을 국내산으로 바꿔 포장하는 이른바 ‘포대갈이’의 유혹은 업자들에게 상존한다. 지난해 11월 충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중국쌀을 수입해 국내산 쌀과 섞은 다음 이를 ‘100% 국내산’으로 속여 판 일당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유통시킨 물량은 무려 5000여t(시가 103억원 상당). 이제껏 적발된 쌀 불법 유통 사례 가운데 최대 규모다.
국산쌀과 수입쌀을 몰래 섞은 이런 식의 불법 혼합은 발각될 때마다 소비자들의 공분을 산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게 있다. 불법 혼합뿐 아니라 합법 혼합도 가능하며, 그것이 이미 일반화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최재관 여주군농민회 교육부장은 올 초 뜻밖의 제보를 받았다. 수입쌀과 국산쌀을 섞은 혼합쌀이 ‘기찬○○쌀’이라는 우리말 상표를 달고 슈퍼마켓 진열대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확인에 나선 최씨는 깜짝 놀랐다. ‘기찬○○쌀’이라는 상표 밑에는 ‘이천△산’이라는 상호가 선명했다. 쌀 포장지만 얼핏 봐서는 경기도 이천에 있는 어떤 양곡처리장에서 내보낸 쌀로 착각하기 쉬웠다. 그러나 포장지 한쪽에 가로세로 5㎝ 남짓한 크기로 붙어 있는 흰색 라벨에는 ‘원산지:국산 찹쌀 5%, 칼로스(미국) 95%’라고 적혀 있었다. 라벨에 따르면 이천△산은 경기도 이천과는 무관하게 서울 양재동에 주소지를 둔 수입업체였다. 최씨가 더 놀란 것은 이것이 완벽하게 합법이라는 사실이었다. 2011년 양곡관리법이 개정되면서, 묵은쌀과 햅쌀을 섞거나 품종이 다른 쌀을 섞는 등 국산쌀을 혼합하는 것뿐 아니라 수입쌀과 국산쌀을 섞는 것도 허용한 결과였다.
농수산물유통공사 비축기지에 쌓여 공매를 기다리는 수입쌀. ⓒ시사IN 조남진
여주군농민회는 전국 농민회 차원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했고, 그 뒤 여기저기서 혼합쌀을 봤다는 제보가 잇달았다. 농부○랑, 자연□쌀, 천△인처럼 하나같이 우리말 상표를 단 혼합쌀이었다. 기자 또한 인터넷 유명 쇼핑몰에서 이런 쌀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 쇼핑몰에서도 품종과 원산지는 따로 표시를 하게끔 되어 있다. 그러나 상품 정보를 끝까지 읽지 않는 한 이것이 혼합쌀인 줄 알기는 쉽지 않았다. ‘2013년 온라인 쌀 판매 히트상품’임을 앞세운 미소○의 경우 중국산 백미 95%와 미국산 백미 5%를 섞은 100% 수입산 혼합쌀이다. 그러나 상호 자체가 순우리말인 데다, 상품 설명서 상단에 ‘농수산물 유통공사에서 품질을 보증하는 쌀’ ‘맛있고 차진 밥맛을 가진 좋을 쌀을 유통단계를 반으로 줄여 거품 없는 가격에 공급해 드립니다’ 따위 문구가 빼곡해 이 사실을 눈치채기는 쉽지 않았다. 또 다른 혼합쌀도 ‘유통 단계를 반으로 줄여 거품을 쏙 뺐다’며 ‘재구매율이 90% 이상’임을 내세우고 있었다. 얼핏 봐서는 수입쌀이어서가 아니라 유통구조 개선으로 가격이 내려간 것처럼 소비자를 오인케 하는 문구들이다.
이들 쌀의 혼합 비율은 천차만별이다. 미국 쌀과 중국 쌀을 반반 섞은 것도 있고, 미국산이나 중국산 백미와 국산 찹쌀을 8대2나 9대1 비율로 섞은 것도 있다. “국산 찹쌀을 조금만 섞어도 밥에 찰기가 돌아 식당 주인들이 선호한다”라고 한 업자는 귀띔했다.
혼합쌀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누가 뭐래도 싼 가격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수입쌀 평균 가격이 국산쌀의 64.9%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지난 4월 이운룡 의원(새누리당)이 국회에서 주최한 ‘쌀 불법유통 근절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박병오 한국유통협회 부회장은 “혼합쌀을 쓰려는 소비자의 요구가 분명히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떡집·김밥집 등 서민층이 주로 이용하는 음식점이나 외국인 노동자 거주지의 식당 등을 중심으로 이미 뚜렷한 수요가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3월16일 ‘식량주권과 먹거리 안전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수입쌀과 국산쌀의 혼합 금지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혼합쌀 정책의 피해자는 소비자와 농민
문제는 이로 인해 골탕을 먹는 쪽은 소비자와 농민이라는 사실이다. 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밥상에 오른 것이 혼합쌀인 줄 모르고 먹을 공산이 크다. 혼합쌀을 쓰면서 원산지를 국내산이라 표기한 식당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관계자는 “식당에서 혼합쌀을 쓰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원산지를 국내산이라 표기하면 ‘원산지 거짓 표시’에 해당돼 처벌을 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더 황당한 것은 식당 주인조차 혼합쌀이 뭔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시내에서 한우 전문 식당을 운영하는 한 주인은 기자가 혼합쌀 사용 여부를 묻자 “그게 뭐냐”라고 되물었다. 혼합쌀이 뭔지 설명을 듣고 난 그는 주방에서 직접 쌀 포장지를 들고 나와 라벨 읽는 법을 알려달라고 기자에게 청하기도 했다.
식당 주인이 이럴진대 일반 소비자는 더하다. 한 인터넷 쇼핑몰에는 “배달받고 나서야 수입쌀이 섞인 혼합쌀인 줄 알았다. 속은 것 같아 불쾌하다”라는 항의성 댓글이 달려 있다. 농민은 농민대로 손해를 본다. 농업정책연구소 ‘녀름’의 장경호 부소장은 “2011~2012년의 경우 쌀 자급률 100%가 무너지고 국산쌀 공급량이 큰 폭으로 줄어든 만큼 쌀값이 오르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도 산지 쌀값은 2000년 15만9000원(80㎏ 한 가마)에 비해 거의 오르지 않았다”라며 주된 요인 중 하나가 혼합쌀이라고 지목했다. 혼합쌀로 인해 쌀 시장이 교란되면서 쌀값 상승을 막았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정책을 정부가 적극 주도해왔다는 사실이다. 이호중 녀름 연구기획팀장은 “정부가 사실상 수입쌀을 더 팔아주는 쪽으로 끊임없이 규제를 완화해왔다”라고 말했다. 밥쌀용 쌀을 도입했으나 판매가 부진하자 2006년 노무현 정부는 수입쌀 공매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도·소매 업체의 자격 기준을 ‘매출액 300억원 이상’에서 ‘매출액 50억원 이상’ 업체로 완화했다. 공매 횟수 또한 주 1회에서 2회로 확대됐다.
혼합쌀은 원산지를 표시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작은 라벨로 표시해도 되기 때문에(위) 국산쌀로 오인되곤 한다. ⓒ시사IN 조남진
이명박 정부는 더 적극적이었다. 2009년 10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밀어붙여 국산쌀 외에 수입쌀로도 혼합쌀을 만들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고, 2011년 5월에는 매출액 50억원 이상으로 하향 조정돼 있던 공매업체 자격 기준을 아예 폐지하고 공매 횟수를 주 2회에서 3회로 늘렸다. 그 결과 2006년 43개였던 수입쌀 공매업체는 2012년 600여 개로 늘어났다. 박영오 한국유통협회 부회장은 “혼합쌀 판매는 안 팔리는 수입쌀이 국내에서 판매될 수 있도록 돕는 효과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호중 녀름 연구기획팀장은 “농산물 정책을 물가 안정의 수단으로 삼아온 정부 정책의 한계가 이명박 정부 들어 더 명확하게 드러났던 셈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그렇게라도 쌀값 상승을 막았다면 도시 소비자로서는 잘된 일 아니냐는 반론이 나올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안인숙 행복중심 생협연합회 회장은 “광우병 파동 때 드러났듯이 이미 소비자들의 의식은 성숙돼 있다. 소비자들은 ‘값싼 쌀’보다 ‘믿을 수 있는 쌀’을 원한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근시안적인 산업 논리로 수입쌀을 사실상 장려하면서 ‘안전한 먹을거리’와 ‘식량 안보’라는 중대한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WTO 협상에 따른 쌀 개방 유예 조처 종료 시점이 올해 말로 다가오면서 혼합쌀 문제는 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금도 이렇게 편법적인 방식으로 수입쌀이 우리 밥상을 잠식하고 있는데, 쌀시장이 전면 개방되면 아예 수입쌀이 없어서 못 파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라고 최재관씨는 말했다.
국회 차원에서도 혼합쌀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쌀 이력추적제 등 수입쌀 유통이력제를 도입하고 원산지 표기 방식을 개선하는 방법(배기운 의원 안)과 △수입쌀과 국산쌀의 혼합을 아예 금지하는 방법(이운룡 의원 안, 김선동 전 의원 안)이다. 이에 대해 농림부는 쌀 이력추적제의 경우 도입은 가능하지만 들이는 비용에 비해 쌀 부정 유통을 막는 효과는 크지 않고, 수입쌀과 국산쌀의 혼합 자체를 금지하는 법안은 국제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며 난색을 표한다. ‘국산쌀+국산쌀’ 혼합까지 함께 금지하면 모를까, ‘국산쌀+수입쌀’에 대해서만 이를 금지하면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내국민 대우 조항(한 국가가 다른 나라 국민을 자국민과 차별 없이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조항)’에 어긋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과 소비자 단체 등은 최근 타이완 사례를 주목하고 있다. 타이완 의회는 지난 5월30일 혼합쌀 금지 및 쌀 관리체계 강화를 골자로 한 양식관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산쌀·수입쌀의 혼합 비율을 속이고 원산지를 거짓 표시하는 등 혼합쌀이 사회문제가 되면서다. 6개월 뒤 이 법이 발효되면 혼합쌀 판매 금지 조항을 어겼다가 발각된 업자는 최대 1500만 위안(약 5억원)에 이르는 벌금을 물게 된다. 혼합쌀 문제든 쌀 개방 협상이든 핵심은 정부의 의지, 나아가 이를 압박하는 소비자의 민도에 달려 있다는 것이 이들 단체의 주장이다.
24만원 수입 등산화, 원가는 5만원…유통마진 얼마길래 714 KBS
아웃도어 용품의 가격 거품 논란이 지속하고 있다. 레저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아웃도어 용품 수요가 급증했지만, 높은 가격에 불만을 토로하는 소비자가 여전히 적지 않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외 아웃도어 용품 가격 차이가 크고, 과도한 유통마진으로 인해 판매 가격이 여전히 높게 책정되고 있다.
최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에서 판매되는 동일한 제품 간에도 유통경로별 가격 차이가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오롱인더스트리 '코오롱스포츠', 블랙야크의‘블랙야크', 영원아웃도어의 '노스페이스', K2코리아의 'K2', 밀레의‘밀레' 등 5대 브랜드 일부 제품은 백화점 판매가와 온라인 쇼핑몰(최저가) 가격 차이가 평균 16.9%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블랙야크 제품은 평균 27.4% 차이가 났다. 'U리얼자켓-2'의 경우 블랙야크 쇼핑몰과 백화점에선 19만8000원에 판매됐지만, 인터넷 쇼핑몰에선 불과 10만270원에 판매돼 무려 9만5210원 차이가 났다.
해외 브랜드의 국내 가격 거품도 여전하다. 해외 유명 브랜드인 아크테릭스와 마무트는 해외와 국내 가격 차이가 평균 60%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해외 수입 등산화의 과도한 가격도 논란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수입 등산화는 수입가격의 평균 4.4배 비싸게 팔리고 있다. 가령 A 제품은 수입원가가 5만7055원에 불과하지만, 판매관리비와 유통수수료 등이 붙으면서 판매가가 23만9500원으로 치솟는다.
아웃도어 업계는 비싼 제품 가격에 대해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항변한다. 제품간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원단의 기능성이 달라 가격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고어텍스 원단이 대표적으로 꼽히는데, 일각에선 전문가용이나 일반용 등 여러가지 원단 종류가 있는데도 값비싼 전문가용을 사용해 가격을 올려 받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과도한 마케팅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지난 2009년 2조4300억원에서 작년 6조4000억원까지 치솟았다. 규모가 그만큼 커지다보니 관련사업에 달려드는 업체들이 많아졌고, 결국 마케팅 비용을 많이 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아웃도어 업체 관계자는 "브랜드가 곧 경쟁력이다 보니, 광고 등 마케팅 비용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실제 국내 주요 아웃도어 4개 업체의 5년간 재무재표를 살펴보면, 광고 선전 비율은 4.9%로 일반 제조업체의 7.5배, 섬유·의복제조업체의 12.6배에 달한다. 매출액 대비 광고 및 판촉비 비중은 매년 7.3% 증가한 반면 매출원가 비중은 3.6% 감소했다. 이들 업체가 제품의 품질보다는 광고 선전에 더욱 치중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러한 아웃도어 용품 가격 거품 논란이 계속되지만, 관련 업체들은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유명 외국 브랜드 등을 들여오거나, 일부 사업 부문을 분할해 사업 영역을 확대하기도 한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관계자는 "유명 모델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높인 뒤 수익을 창출하는데 치중하기보다는 국내 아웃도어 환경에 적합한 사양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폭식, 도박, 마약 중독…뇌에선 반응 동일713 과학동아
英 케임브리지대 연구진 “젊어서 치료 못하면 행동장애로 이어질 수도
2010년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세계 정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섹스 중독에 빠졌고 결국 치료를 받아야 했다. 섹스 중독이란 알코올이나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성관계를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상습적으로 원하고 집착하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발레리 분 영국 케임브리지대 정신과 교수팀은 섹스에 중독된 사람의 뇌는 마약에 중독된 사람과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미국 공공과학도서관 학술지 ‘플로스원’ 11일자에 발표했다.연구팀은 섹스 중독 증세를 보이는 남성 19명과 일반 남성 19명을 대상으로 포르노와 스포츠 경기를 보여주며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뇌의 반응을 관찰했다.그 결과, 섹스 중독 환자들은 포르노 영상을 볼 때 일반 남성들과는 달리 성관계를 가지고 싶다는 욕구를 비정상적으로 강하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반응은 마약중독환자가 마약을 갈구할 때 뇌에서 일어나는 반응과 같았다.
연구팀에 따르면 섹스 중독 환자는 뇌의 배측선조체와 배측전대상피질, 편도체가 특히 활발한 반응을 보였다. 배측선조체는 보상과 동기부여를 관장하는 곳이며, 배측전대상피질은 무언가를 갈망하도록 만드는 데 관여하는 부위다. 편도체는 정서적인 평가나 감정을 관장하는 부위다.
연구진은 성관계에 대한 갈망이 커질수록 세 부위의 연결 네트워크 역시 더 강화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반면 섹스 중독 환자들에게 스포츠 영상을 보여주자 이런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팀은 젊은 섹스 중독 환자일수록 뇌 속 반응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했다. 분 교수는 “20대 중반 이후까지 섹스 중독 증세가 지속될 경우 뇌 속에서 불균형이 커져 행동장애 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고 경고했다.
연구팀은 이번 결과가 섹스가 자체적으로 중독을 유발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덧붙이며, 연구내용을 섹스 중독 뿐만 아니라 폭식증, 도박중독 등 중독과 관련된 뇌 활동에 광범위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내가 독일의 월드컵 우승을 바라지 않은 이유 714 오마이뉴스
[해외리포트] 축구 열기에 가려진 브라질과 팔레스타인의 '눈물'- 권은비
▲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격차와 부당한 공권력을 이용해 권력을 지키는 모습. 부조리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어른들인데 가장 큰 피해는 아이들이 받고 있다는 것 역시 비단 브라질만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 권은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2014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가 이기길 바랐습니다. 아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독일 국가대표 축구팀이 월드컵 첫 경기에서 지길 바랐습니다. 아마 이 이야기를 들으면 독일 친구들은 눈이 휘둥그레질 테지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축구팀은 월드컵 내내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리고 우려했던 대로 독일이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어느 6월 아침, 늘 같은 시간에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저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도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차가 막혔습니다. 이유는 바로 월드컵 응원을 위한 도로통제 때문이었습니다. 월드컵 하루 전도 아니고 몇 주 전부터 베를린의 티어가르텐 숲은 철망으로 둘러싸이고 베를린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투어 앞 도로는 차단되었습니다.
그곳은 이미 며칠 전부터 현대자동차 광고로 뒤덮여 있었고 현대자동차의 신차들은 대형 스크린과 함께 곳곳에 설치됐습니다. 덕분에 예정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지만 이것이 제가 독일이 월드컵에서 지길 바랐던 이유는 아닙니다.
독일 경기 있을 때마다 술 마시고 침 뱉고...
제 마음 속에서 그런 생각이 슬며시 피어오르기 시작한 건 독일이 첫 경기를 치르던 그날부터입니다. 베를린은 온통 축구 열기로 가득했지만, 브라질 정부가 국민들을 탄압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한 저는 씁쓸한 마음에 월드컵에 대한 흥미를 전혀 느끼지 못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저를 뒤에서 불러댑니다.
"헤이! 북한사람, 북한사람 정은 김!"
지금껏 독일에서 지내면서 중국사람이냐, 일본사람이냐 심지어 베트남이냐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북한이라니! 뒤를 돌아보니 월드컵 응원을 하러 가는 젊은 남성 5~6명이 저를 보며 낄낄댑니다. 그러더니 이내 "도이칠~란드! 도이칠~란드!(독일, 독일)"를 외쳐대며 월드컵 응원장으로 향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저는 뒤쫓아 갈까, 했다가 그들 손에 술이 들려있는 것을 보고 다시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사실 독일에서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한국이라는 나라는 잘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북한의 인지도가 높지요. 한국의 대통령이 누군지는 몰라도 북한의 지도자가 누군지는 모두 알 정도이니까요.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백인을 보면 미국인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이후에도 저는 월드컵 응원장과 가까운 곳에 집이 있는 관계로 독일경기가 있을 때마다 불가피하게 수백, 수 천 만 명의 독일 사람들과 마주쳐야했습니다.
독일이 미국을 1대 0으로 이긴 날, 응원장과 가장 가까운 전철역인 베를린 중앙역은 난장판이 됐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대부분 병맥주를 마시기 때문에 바닥에 깨진 유리파편들이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한 할아버지가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맥주병들을 모으고 계셨습니다. 베를린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인데, 병들을 모아서 슈퍼에 가면 일정정도의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가 이제 막 맥주를 다 마시고 바닥에 버리려는 청년에게 다가가 "버릴 거면 달라"고 하자 그 청년은 보란 듯이 병을 깨트렸습니다. 그리곤 나팔을 불며 큰소리로 "도이칠란드"를 외치는 무리로 달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댑니다. 다른 빈 병을 주우러 가는 할아버지의 축 쳐진 어깨를 보니 순간 울컥합니다.
▲ 독일 축구 응원군중이 지나간 자리. 깨진 맥주병이 길가에 굴러다닌다. ⓒ 권은비
중앙역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의 응원소리가 쩌렁쩌렁 울립니다. 한데 갑자기 액체가 떨어져 위를 올려다보니 웬 아저씨가 2층에서 침을 뱉고 있습니다. 물론, 월드컵을 응원하는 몇 천 명의 사람들이 모두 이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독일경기가 있을 때마다 이러한 불쾌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말할 수 없을 만큼 쉽게 마주 칠 수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독일을 응원하는 군중들은 저에게 일종의 공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2002년 월드컵 때 '대~한민국'을 외쳐댔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때, 한국에 있던 외국인들, 명확히 말하지만 백인이 아닌, 동아시아의 약소국 사람들에게 붉은악마의 응원이 어떻게 느껴졌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우리는 대체 왜 국가를 그리도 외쳐대는가
그러면서 16강 진출에 실패한 뒤 브라질 월드컵 경기장에서 고개를 숙인 한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스포츠 경기에서 졌다고 국민에게 사과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따지고 보면 그저 스포츠일 뿐인데 왜 한국 축구선수들과 감독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여야 할까요?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사람들은 분명 따로 있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한 가지 더 고백하자면, 저는 이번 월드컵의 한국팀 또한 응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을 외칠 수 없었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국가는 죽었다는 나라를 차마 외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월드컵이 진행되는 내내 왜 우리는 축구에 그토록 열광하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왜 그토록 분노하는지도. 독일과 미국이 경기를 하던 날, 미국 SNS에서는 '나치'라는 단어가 급상승 했다지요. 나라간의 화합을 만들어야 할 스포츠는 온데간데없고 축구 하나 때문에 다른 국가에 대한 비난을 서슴없이 합니다. 가뜩이나 나치를 치욕스럽게 생각하는 독일사람들이 그 내용을 봤다면 어땠을지 상상이 됩니다. 이번 월드컵 내내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던 이유는 국가주의적 사고가 월드컵을 통해 스멀스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한편, 우리가 한일전에 민족의 자존심을 걸며 흥분하듯, 독일도 프랑스와의 경기에 목을 맬 정도입니다. 프랑스와의 경기가 있는 날, 독일 친구들은 다른 나라에게는 져도 프랑스한테는 이겨야 된다며 왜 그래야하는지 일장연설을 펼칩니다. 결국 '전쟁'과 '식민'이라는 역사적 과거가 이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일 테지요.
그리고 7월 4일, 독일과 프랑스의 경기가 어렵게 치러지던 중, 마츠 후멜스(Mats Hummels)가 골을 넣자 집 주변 일대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집니다. 도로 위 차들은 일제히 경적 소리를 내고 사람들은 괴성을 질러댑니다. 심지어 응원 장소가 아니었던 쿠담 거리 도로에 인파가 몰려 순간 통제되기도 했습니다.
TV 중계방송이 브란덴 브루거 투어의 축제분위기 장면을 보여준 후, 바로 뉴스로 넘어갑니다. 첫 소식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소식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모습이 전해집니다. 지구의 한쪽 편에서는 열광하고 다른 한쪽 편에서는 절망이 넘실거립니다. 그나마 독일언론이 축구가 아닌 팔레스타인의 소식을 톱으로 전하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 한 할아버지가 응원하러 가는 사람들에게서 병을 모으고 있는 모습 ⓒ 권은비
그리고 독일 축구팀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트로피를 흔들며 기뻐한 오늘(14일, 한국시각), 독일언론의 대부분 소식은 축구이야기로 뒤덮였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소식은 찾아봐야 할 정도입니다. 그렇게 축구는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진 참혹한 죽음을 덮어버렸습니다.
전두환 정권 때, 정부에 대한 불만을 다른 곳에 돌리기 위해 3S정책(Sports, Sex, Screen)을 썼던 것이 생각납니다. 많은 이들이 축구에 환호하는 동안 팔레스타인의 어린 생명들과 희생자들이 까맣게 잊히는 건 아닌지 애가 탑니다. 아르헨티나와의 결승 경기가 끝난 후부터 현재 이 글을 쓰는 새벽 3시까지 쩌렁쩌렁한 폭죽 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꽝! 파바박! 퍽!"
하늘이 깨질 것 같은 이 파열음. 이것보다 백배 천배, 아니 상상할 수 없는 폭격소리가 팔레스타인의 하늘에 울려 퍼졌겠죠. 독일 국민들이 기뻐한 오늘, 미안하지만 저는 그들의 승리가 아름다워 보이지 않습니다.
독일 우승 상금 355억 수상, 개인당 4억 까지.."한국 월드컵 상금은?"714 한국경제TV
2014 브라질월드컵 결승전에서 독일이 아르헨티나를 어렵게 격파하고 통산 네번째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14일 4시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열린 독일과 아르헨티나의 결승전. 이날 독일은 연장 후반 8분에 터진 마리오 괴체의 천금같은 결승골로 1대0으로 승리했다.
이번 우승으로 인해 독일은 우승상금 3500만 달러(약 355억 원)을 수여받게 됐다. 4년 전 남아공 대회의 3000만 달러(약 304억 원)에서 16.7% 인상된 금액으로, 준우승팀인 아르헨티나도 2500만 달러(약 253억 원)를 수여받게 된다.
독일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이후 24년 만에 다시 우승을 차지했으며, 월드컵 84년 역사상 남미 대륙에서 개최된 대회에서 유럽팀이 우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르헨티나는 1990년 월드컵 결승에 이어 또 한번 독일에게 패배해 2위에 그치고 말았다.
한편 한국은 월드컵 상금으로 950만 달러(약 96억 원)를 수령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 고용 호조세에 숨겨진 ‘시간제 근로자의 불편한 진실’715 월드스트리트저널
최근 미국 정부와 언론이 6월 고용 지표 결과를 과대포장하고 있다. 대다수 미국인은 지난 달 늘어난 28만8,000개의 새 일자리가 정규직일 것이라는 인상을 갖게 되겠지만, 실상은 다르다.
고용 지표를 과대선전하는 오바마 행정부와 언론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정부의 수치가 시간제 일자리와 정규직 일자리를 구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지난 달 정규직 일자리는 52만3,000개나 급감했다. 늘어난 것은 시간제 일자리 뿐이다. 시간제 일자리는 약 80만 개나 늘어나 2,800만 개를 넘어섰다. 미국의 모든 시간제 근로자는 일자리가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겠지만 저임금, 축소된 복지 혜택, 불안한 직업 안정성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7월 2일 오바마 대통령은 민간 부문 고용 지표에 따르면 “6개월 연속 일자리 증가세가 나타났다”고 자축했다. 그는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이 확실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가 언급하지 않은 부분은 미국 성인 인구의 47.7%만이 정규직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실업률이 감소하긴 했지만, 미미한 수준이다. 이같은 상황은 미국인 240만 명이 근로 의욕을 잃고 노동 시장에서 도태되고 있다는 암울한 현실을 반증한다. 모두가 구직을 포기한다면, 실업률이 0%에 도달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달 비자발적인 시간제 근로자의 수가 750만 명을 기록해 2007년의 440만 명에서 급증했다. 너무 많은 성인들이 현재 저임금 시간제 일자리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전에는 보통 청소년들이 종사하던 일자리였다. 올 3월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그처럼 많은 시간제 근로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실업률 지표보다 (실제) 노동 환경이 더 악화되고 있다는 신호”라고 언급한 바 있다. 옐런 의장이 현 상황을 정확히 꿰뚫어 본 것이다.
이처럼 미국이 곤경에 처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특히 경기 ‘회복기’에 나타난 사상 최저 수준의 경제 성장률을 주요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지난해에 미국의 GDP 성장률은 1.9%에 불과했고, 올 1분기에는 연율 기준 -2.9%(계절 조정치)를 기록해 큰 폭으로 하락했다.
그러나 이처럼 고용 지표가 부진한 데는 정치적인 요인도 한 가지 있다. 고용주들이 종업원의 근무 시간을 축소하고 있는데, 이는 ‘오바마케어’로 불리는 의료보험법에 따른 의무 사항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이 법에 따르면 주당 30시간 이상 일하는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고용주는 의무적으로 이들에게 의료 보험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대표 공약이 정규직 근로자의 감소라는 역효과를 불러오고 있다. 많은 사업장에서 한 개의 정규직 일자리가 두 개의 시간제 일자리로 대체되고 있다.
미 인구통계국에 따르면 2007년 중반 이후 미국 인구는 1,720만 명 증가해 왔다. 그러나 2007년 11월에 정점에 도달한 일자리 수는 현재 37만4,000개나 줄어 아직도 1,000만 개가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안타까운 점은 장년층 및 젊은층에서 집중적으로 높은 실업률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기술로 인해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장년층 근로자는 고용 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또 충분한 기술을 갖추지 못한 젊은층은 승진 기회가 있는 신입직 일자리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직장 경력, 인적 네트워크, 새로운 기술을 쌓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잃고 있다.
대다수 미국인은 이같은 상황을 경기 회복이라고 보지 않을 것이다. 물론 2009년 중반부터 미국 경기가 회복세에 진입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서 현재를 경기 후퇴기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2007년 이래로 고임금 일자리 100만 개가 사라졌다. 2010년 2월에 고용률이 바닥을 친 후 저임금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전체 고용 성장률의 44%를 차지하고 있다. 경기 회복기에 저임금 일자리는 380만 개나 늘어나 단연 가장 큰 증가세를 보였다. 사상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는 장기 실업자 수는 6월 기준으로 300만 명을 넘어선 상황이다. 경제활동 참가율은 36년래 최저치인 62.8%를 기록하고 있다. 2008년에는 66%를 기록한 바 있다.
시간제 일자리는 더 이상 청소년의 전유물이 아니다. 한창 일할 나이인 25~54세의 성인이 다수의 시간제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한 미혼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걸까?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오바마케어 때문만은 아니다. 실업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근로자가 생계 유지를 위해 시간제 일자리를 찾을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믿음이 급속히 깨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법이 불공정하고, 기업에만 유리하고 일반인에게 불리하게끔 사회 체계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오늘날 근로자의 몫으로 돌아가는 금전적 보상 비율 등이 60%가 채 되지 않는다. 1980년 이전에는 약 65%를 기록했었다.
노동 생산성 향상이 왜 근로자의 가계 소득 증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을까? 지난 5년간 신규 공장 건설 및 설비 투자에 대한 자본 지출 비율이 매우 저조했다는 점을 원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1960년대에는 실업자가 25~54세 사이의 미국 남성 20 명 중 한 명꼴에 불과했다. 그러나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에 따르면 앞으로 10년 후에는 이 수치가 7명당 1명 꼴로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규직 일자리에 종사하는 ‘가장’이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은 엄청난 재앙이다. 현재, 미국 인구 4,800만 명이 저임금 근로자다. 이들은 경제 성장의 근간이 되는 소비지출을 할 수 없을 것이고, 그 점이 경제 성장을 더 크게 압박할 것이다. 현재 우리는 높은 실업률, 저조한 경제 회복세, 전반적인 임금 정체(최상위 몇 %는 제외)를 겪고 있다.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16세 이상의 인구 약 9,100만 명이 실업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상 최대치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했을 당시 실업자 수는 그보다 약 1,000만 명 정도 적었다.
거대한 미국 고용 시장이 몸살을 앓고 있다. 지금의 경기 반등세는 역사상 가장 느린 속도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앞서 4차례의 경기 후퇴를 겪었지만 그 이후 강력한 성장세를 이룬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미진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역사상 가장 적극적인 통화완화 정책과 2차 대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재정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부진한 성장세를 경험하고 있다.
그같은 이유로 6월에 나타난 고용 지표 호조세는 애석하기 짝이 없다. 경기침체 이후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2,400만 명이 넘는 노동 인구가 (정규직) 일자리를 잡지 못해 비자발적으로 시간제 일자리에 머물거나 취업을 포기하고 있다. 현재 미국 경제는 회복 중이 아니라 난관을 타개해 나가는 중이다. 현재,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는데 청명한 척 포장하는 건 의미가 없다.
대졸자가 첫 직장을 갖기까지 1년 걸려…18%는 '그냥 쉰다'고? 715 국만
취업준비생으로 보이는 여성이 채용정보 게시판을 보고 있다. 국민일보DB
통계청이 15일 발표한 ‘청년층 및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으로 청년층 인구는 950만7000명, 경제활동참가율은 44.3%, 고용률은 40.5%를 기록했다. 비경제활동인구 중 취업시험 준비자는 66만1000명으로 12.5%를 차지했다.
대졸자(3년제 이하 포함)의 평균 졸업 소요기간은 4년1개월, 휴학경험 비율은 42.7%였다.
4년제 대졸자의 평균 졸업 소요기간은 5년2개월로 남자가 6년4개월, 여자는 4년4개월이었다. 평균 휴학기간은 군 복무 등으로 남자는 2년8개월, 여자는 1년4개월로 나타났다.
청년층 인구 중 직업교육 경험자 비율은 16.1%였으며 직업교육을 받은 곳은 사설학원이 62.1%를 차지했다. 취업시험 준비분야는 일반직공무원이 28.0%로 가장 많았고 일반기업체 25.5%, 기능분야 자격증 및 기타가 21.4%로 뒤를 이었다.
첫 취업까지 소요기간은 평균 12개월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개월 늘었다. 이는 2006년 5월 이후 8년 만에 최장기간이다. 1~2년이 소요된 졸업·중퇴생은 11.1%, 2~3년은 5.8%, 3년 이상이 걸리는 경우도 9.3%였다. 미취업자 32.0%는 직업교육이나 취업시험 준비, 15.4%는 구직활동으로 시간을 보냈지만 육아·가사나 그냥 쉬는 사람도 각각 19.3%, 18.5%를 차지했다.
첫 일자리를 그만둔 임금근로자는 62.3%로 이들의 평균 근속기간은 평균 1년3개월이었다. 그만둔 이유는 보수나 근로시간 등 ‘근로여건 불만족’이 47.0%로 가장 많았다. 첫 일자리의 형태는 계약기간을 정하지 않았으나 계속 근무할 수 있는 일자리가 62.1%로 가장 많았다.
산업별 취업 분포를 보면 사업·개인·공공서비스업 41.9%, 도소매·음식숙박업 24.1%, 제조업 17.5% 순이었다.
20대 남자 취준생이 제일 많이 하는 성형수술은? 714 오마이뉴스
[현장 르포] 취업성형의 진화... 업종별 맞춤성형이 대세
취업준비생의 고민은 채용 공고가 없는 시기에도 계속된다. 공고가 뜸한 시기를 이용해 철저하게 준비해 두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모도 스펙이다'는 말은 웬만큼 취업준비를 해둔 취업준비생까지 불안하게 만든다. 면접에서 떨어지면 외모에 대한 고민은 더 커진다. 회사가 능력을 위주로 평가할 거란 믿음은 '외모도 경쟁력이다'라는 말에 흔들린다.
지난 7일 취업 사이트 <인크루트>가 취업준비생 80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는 이러한 고민이 일부의 것만은 아니라고 말해준다. '취업성형'을 고민하고 있느냐고 묻는 설문조사에서 20.8%(167명)가 '성형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 중 절반이 100만~300만 원 정도 투자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취업성형의 실태 파악을 위해 <오마이뉴스> 인턴기자들이 성형외과에서 직접 취업성형 상담을 받아보았다.
[사례①] 면접에서 또렷한 인상 주려면? "일단 눈매부터..."
: 이세정 인턴기자
지난 11일 오후 압구정역 2번 출구 앞, "눈에 띄고 싶니?"라는 도발적인 질문의 홍보문구가 거울과 함께 배치돼 있다. 성형외과 홍보문구 아래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 취업준비생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한 성형외과에 들어섰다. 상담신청서에 희망하는 직종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이 있다. 질문 항목은 서비스업·방송계 등 업종에 따라, 영업직·사무직 등 직무에 따라 상세하게 분류되어 있다. 성형이 취업을 위한 도구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병원 앞에서 코 성형을 생각하고 있는 유지현씨를 만났다. 유씨는 몇 해 전 부드러운 인상을 위해 뒤트임 수술을 받은 적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씨는 "함께 일했던 사장님께서 내가 눈 수술을 한 후에도 차가워 보인다고 하셨다"며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취업 전에 콧대를 깎는 수술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상담실장을 만나 면접에서 자꾸 떨어지는 것이 고민이라고 말했다. "졸리고 피곤해 보이는 인상을 바꾸기 위해 눈매교정술을 받을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거기에 "이마, 턱, 앞 광대 등이 전체적으로 평면적인 것도 문제"란다.
기자가 목돈이 없다는 걸 고려해 "일단 눈부터 해야 효과가 빠를 것"이라고 친절하게 조언해줬다. 그렇게 계산된 견적은 기자의 1학기 대학 등록금에 맞먹는 액수였다. 입이 떡 벌어지지만, 대학 졸업장이 취업을 보장해주지 않는 현실을 고려했을 때 외모에도 그 정도의 투자는 해야 하는 것 아닐까 고민이 된다. 지하철역 성형외과의 간판은 '아름다운 인생을 원한다면!'이라고 답하고 있다.
▲ 지하철 성형외과 광고 "눈에 띄고 싶니?" 면접에서 떨어진 취업준비생들에게 성형외과 홍보문구가 묻고 있다. ⓒ 이세정
[사례 ②] "취업 준비하는 20대 중반 남성이 제일 많이 하는 수술"
: 이겨레 인턴기자
취업난이 여성 취업준비생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듯 취업성형 역시 여성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남성 취업준비생이 가장 많이 하는 수술은 코 수술이다. 단순히 '콧대를 세우는' 정도가 아니라 콧등, 콧방울, 코끝 등 부위를 나눠 수술한다. 여성이 눈과 코를 합쳐 300만 원 정도가 나오는 게 일반적이라면, 남성은 코에만 300만 원 정도가 든다. 지난 11일 신사동 가로수 길에 있는 한 성형외과에 전화를 했다.
"어느 부위 수술을 생각하시나요? 저희가 수술 부위마다 담당선생님이 다르거든요. 원하는 부위 말씀해 주시면 담당선생님 상담 바로 잡아드릴게요." 얼결에 "코"라고 말했다. 20대 남성들이 코 수술을 많이 한다고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성형외과는 가로수 길에 있는 15층 빌딩의 6개 층을 차지하고 있었다. 전면이 유리로 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남자 한 명이 검은색 소파에 앉아 있었다. 성형외과에 온 남자가 나 혼자일까, 두려웠는데 다행이었다. 취업준비를 하고 있어서 코 성형 상담을 받으려고 한다는 말에 상담실장의 간결한 답변이 돌아왔다.
"코 수술은 취업 준비하는 20대 중반, 환자님 또래의 젊은 남성이 제일 많이 하는 수술이에요. 코가 바로 서야 얼굴의 중심이 딱 잡힌 것처럼 보이거든요. 특히 사업을 하는 아저씨들은 아들을 데리고 와 코 수술을 많이 시키시더라고요."
다시 의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환자분 코의 경우, 높이는 있는데 콧대가 울룩불룩하고, 폭이 넓고, 끝이 아래로 쳐져서 오뚝해 보이지 않네요. 매부리(코를 평평히 함), 절골(코의 폭을 줄임)수술과 보형물을 넣는 수술을 병행하면 코가 훨씬 오뚝해질 거예요."
비용을 묻는 질문에 상담실장은 "행사가로 나가면 225만 원까지 가격을 맞춰 드릴게요"라며 환하게 웃는다. 반면 기자는 싸게 해서 225만 원이라는 말에 오히려 우울해졌다. 터벅터벅 성형외과를 걸어 나왔다.
▲ 성형외과 상담실 모습 코 성형을 상담 받기 전 성형외과 상담실의 모습. ⓒ 이세정
[사례③] '내'가 아닌 '방송사'가 원하는 얼굴로... 업종별 맞춤성형
: 송지희 인턴기자
취업성형은 면접에서 좋은 인상을 주게 하는 것 외에도 업종별로 원하는 얼굴로 바꿔주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방송계에 취업을 원하는 이들은 카메라를 잘 받는 얼굴로 성형하길 원한다. 2년째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박수정(23)씨도 꿈을 위해 의학의 힘을 빌렸다.
박씨는 "아나운서의 경우 카메라 테스트가 정말 중요하다"며 "카메라에 비쳤을 때 또렷한 이미지가 나오게 하기 위해 이마와 코를 입체적으로 만들어주는 수술을 받는다"고 말했다. 아나운서뿐 아니라 연예인, 방송기자, 리포터 등을 지망하는 이들이 다른 취업준비생들보다 성형욕구가 큰 것을 감안하면 이들을 위한 성형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방송을 위해 성형수술을 할 때 중요한 건 얼굴이 '평소'에 예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에 비쳤을 때 예쁜 것이다.
이화여대 앞 한 성형외과에서 상담을 받았다. 방송 쪽을 준비한다고 하자 졸려 보이는 인상이니 눈앞을 좀 당기자고 했다. 카메라에 매번 일관된 얼굴을 비쳐야 하니 쌍꺼풀을 확실하게 잡아 줄 수술도 하자고 덧붙였다.
"요즘 방송 쪽 준비하는 애들은 쌍꺼풀 있어도 일부러 한 번 더 수술해요. 수술하면 피곤해도 눈이 잘 풀리지 않거든요. 아, 콧방울은 안 세워도 콧대는 좀 높여야겠네요. 낮아도 너무 낮네."
울적해질 대로 울적해져서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많으냐고 물었다. 상담실장은 "이미 수많은 방송 꿈나무들이 자신의 손을 거쳐 간 건 물론이고 2~3년 정도 주기적으로 리터치를 한다"고 말했다.
가격은 현금으로 결제했을 때 275만 원. 이것도 코와 눈을 세트로 했기 때문에 싸게 해준 가격이라고 선심 쓰듯 얘기했다. 각각 다른 언론사여도 아나운서들을 보면 스타일이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수술대 위에 눕는 친구들의 마음이 이해가기도 한다. 그래도 지금 당장 300만 원이 없고, 내 얼굴이 좋아 수술을 하지 못하는 나는 열정이 부족한 청춘인 걸까.
[사례 ④] 취업 위해 성형하면, '패기와 열정'은 인정받는 건가요?: 정민경 인턴기자
왜 떨어졌는지 알 길 없는 면접, 외모만은 아니길 바라는 마음만 남는다. 문제는 면접이라는 취업의 관문이 꽤나 주관적인 판단으로 이뤄진다는 데 있다. 최근엔 면접이 짧은 시간 내에 끝나는 게 아니라 심층면접으로 진행돼 합숙까지 하는 곳이 많아졌다. 심층적으로 판단되는 면접에서 취업준비생들은 정확히 어떤 요소 때문에 떨어졌거나 붙었는지 알 수 없다. 이러한 불안감 때문에 일단 성형을 해서 일반적인 미의 기준에 부합하고 나면 '외모 때문인가'라는 하나의 의문은 사라지기도 한다. 어느 정도 안심이 된다는 뜻이다.
▲ 압구정 성형거리 압구정 성형거리의 풍경. ⓒ 이세정
의자에 앉기도 전에 의사는 말했다. "눈 때문에?"
찬찬하게 상담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상담은 금방 끝났다. 눈은 쌍꺼풀을 만들고 코는 높이면 된다는 식이었다. "봐, 여기 콧대 쪽이 텅텅 비지?"
의사는 코 모양으로 만들어진 자를 내 코에 대며 말했다. 미의 기준이 존재한다는 건 알았지만 '코 모양 자'는 꽤 충격이었다. 텅 빈 자의 공간만큼 내 외모 스펙이 모자란 듯했다. 토익이 상대평가라지만 990점이라는 만점이 존재하는 것처럼 외모 역시 상대평가겠지만 기준에 부합하는 만점이 존재하는 듯 보였다. 취업 때문에 성형을 한다고 말해봤다. 의사는 웃음을 지으며 "그저 예쁘면 되는 거지"라며 한마디 했다. 취업도, 연애도, 결혼도 잘 풀릴 거란다. 비용은 275만 원. 수술비 250만 원에 수수료 10%가 붙는 금액이었다. 300만 원 돈에 취업도 연애도 결혼도 잘 풀린다고 하니 혹했다.
취업성형은 예쁘기도 해야지만 티가 안 나는 게 중요하단다. 연예인들처럼 화면을 받거나 사진 찍히는 직업이 아닌 이상 웃을 때 자연스러워야 하고 너무 센 인상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꼭 얼굴 때문이 아니라도 취업을 위해 이 정도까지 했다는 패기는 인정받을 것만 같았다. 성형외과를 나오는 길, 평소엔 있는지도 몰랐던 대출광고 명함들이 괜히 눈에 들어왔다. 성형외과에 들렀던 몇몇 취업준비생들은 이 명함을 주웠을지도 모르겠다.
취업성형, 그 심정은 알겠지만...
취업준비생 5명 중 1명이 취업성형을 생각하는 지금, 여전히 인사담당자들은 외모보단 역량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윤혁진(33) 취업컨설턴트는 "인상을 중요시 여기는 면접관은 있다"면서 "그렇지만 요즘 면접 추세는 심층, 역량 면접"이라고 말했다. "첫인상이 좋지 않더라도 면접 과정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사람들이 합격률이 더 높다"는 것이다. 윤씨는 "인상이 험악했던 영업직군 지원자가 '제 인상을 한번 보면 잊기 힘든 것처럼 회사의 물건도 그렇게 팔겠다'고 말해 좋은 평가를 받았던 사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조선일보, 신문사 ‘나쁜 일자리’ 양산 1등 공신 711미디어오늘
간접고용률 27.7% 기록 1위…중앙·문화·동아 순으로 많아
조선일보가 국내 신문 가운데 간접고용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1일 공개한 고용형태공시를 보면, 조선일보의 간접고용률은 27.7%(189명)로 직원 4명 가운데 1명 이상은 하청업체나 파견·용역업체 소속이다. 이 수치는 방송사의 평균 간접고용률(KBS 제외 24.3%)을 상회한다. 고용형태 공시제도는 고용정책기본법에 따라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올해 7월부터 시행됐다.
▲ 주요 신문사 간접고용률 실태 (인포그래픽 : infogr.am)
▲ 주요 신문사 고용 형태 (자료 : 고용노동부 고용형태공시 재가공)
조선일보 다음으로 중앙일보와 문화일보가 15.7%를 기록했다. 중앙일보에서는 86명이, 문화일보에서는60명이 하청·파견·용역업체 근로자였다. 동아일보가 14.7%(122명)로 조선·중앙·문화의 뒤를 이었다. 연합뉴스도 직원 가운데 13.5%(132명)가 간접고용인 것으로 드러나 상위 순위를 차지했다. 한국경제가 11.3%(65명)로 연합뉴스 다음 순위를 차지했다.
조선일보 인사팀 관계자는 11일 높은 간접고용률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내부적인 사안이라 말씀드릴 수 없다”고만 밝혔다. 동아일보 인사팀 관계자는 “주로 사무업무 보조를 담당하거나 건물을 관리하는 분들이 소속 외 근로자에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방송사보다 규모는 작지만 신문사 역시 미화 노동자를 포함한 시설관리 담당 인력을 간접고용 형태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와 머니투데이는 간접고용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한겨레 경우 누락된 부분이 있었다. 한겨레 인사팀 관계자는 “기재 당시 수정 기한을 놓쳐서 수정하지 못했던 측면이 있다”며 “청소, 경비, 수송은 도급 인력을 쓰고 있으며 대략적으로 30여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머니투데이 관계자는 “머니투데이는 건물을 임차한 상태이기에 시설 관리 간접고용을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지옥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714 미디어오늘
요 며칠새 본 뉴스 가운데 내 눈길을 끈 건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기존 주민들이 사회적 배려 대상자가 이 아파트에 이사하는 걸 막기 위해 실력행사에 나섰다는 소식이었다. LH공사가 미분양 상태에 있는 이 아파트 52채를 분양받아 한부모 가정이나 장애인 등 사회적 배려대상자들에게 임대하자 집값이 떨어질 것을 염려해 기존 입주자들이 사회적 배려대상자들의 이사를 저지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인데, 기사를 보는 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하긴 한 아파트 단지나 주상복합 건물 안에서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대우는 이제 신기한 일도 아니다.
얼마 전에는 수도권 도처에서 건설사들이 미분양에 허덕이다 분양가 이하로 아파트를 매각하자 제 분양가를 내고 아파트를 매입한 기존 입주자들이 분양가 이하로 아파트를 매입한 신규 입주자들의 이사를 실력으로 저지하고, 몰래 이사하는 걸 막기 위해 순번을 정해 불침번을 서는가 하면, 방어선을 뚫고 용케 입주한 집 밑에 몰려가 악다구니를 퍼붓는 장면들이 고스란히 방송되기도 했다. 기존 입주자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를 소중한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하곤 했다. 최저임금(1,399만 4,640원)으로 서울에서 아파트 전세를 얻으려면 한 푼도 쓰지 않고 저축해도 22년 5개월이 걸린다는 보도도 있다.
이건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부동산 때문에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지는 사회, 부동산 부자가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다른 사람들이 피땀흘려 생산한 가치들을 펌푸질 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회, 재벌들이 제품의 질이나 디자인, 마케팅에 집중하기보다 땅 투기에 혈안이 된 사회, 청소년들의 장래 희망이 부동산 임대업자인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일리 없다. 그런 사회는 지옥의 다른 이름이다. 부동산 문제는 취업, 결혼, 육아, 교육, 소비, 노후 등 개인의 삶의 모든 영역에 전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오래 전 영국에서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말이 나왔듯이 한국사회에서는 부동산이 사람을 삼키고 있다.
이건 사람의 삶이 아니다. 부동산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없이는 한국사회가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없고, 개인들의 행복도 담보될 수 없다. 부동산 문제는 해결되어야 한다. 참여정부 시기의 부동산 철학과 정책패키지를 발전적으로 지양한다면 부동산 문제의 해결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박정희 정부 이래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별명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경로의존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온 듯도 보인다. 부동산 연관 산업이 지나치게 크고, 부동산 연관 산업에 종사하는 이해관계자들이 너무 많으며, 부동산이 가계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다.
분명한 건 부동산 문제의 해악과 폐해에 대한 계몽과 선전이 부동산에 삶 대부분을 건 시민들 앞에는 완전히 무력하다는 사실이다. 부동산에 삶을 저당 잡힌 시민들의 마음과 생각을 바꿀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시민들로 하여금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와 염원을 단념하고 좋은 부동산 철학과 정책을 지지하도록 하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제공하는 것이 그것이다. 보편적 복지나 기본소득 같은 것이 그 반대급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일종의 사회적 대타협 혹은 메가딜(Mega Deal)인 셈이다. 모름지기 정치가라면 이런 수준의 담대한 제안을 사회에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누가 그런 정치가가 될 것인가?
'상도동계 막내' 30년만에 '집권여당 대표' 등극 714 노컷뉴스
14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에 선출된 김무성 신임 대표는 '상도동계 막내'로 통한다. 그는 동해제강 상무, 삼동산업 대표이사 등 기업인으로 활동하다 1984년 34세의 나이로 정계에 발을 들였다. 전두환 군부독재가 활개를 치던 당시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정치인들이 결성한 민주화추진협의회에 상도동계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이에 앞서 중동고 재학 중이던 69년, 서울 12개 고교와의 '3선개헌 반대' 연합시위를 주도하는 등 '정치 리더'로서의 자질을 보였다. 어린 시절부터 '무대'(무성 대장)라는 별명이 생긴 김 대표는 부산 사나이다운 '보스 기질'을 30년 정치역정 내내 보여줬다고 평가된다.
김 대표는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청와대 민정·사정비서관, 내무부 차관 등을 지냈다. 이어 96년 15대 총선 때 신한국당 공천을 받아 부산 남구을 지역구에서 첫 번째 금배지를 달았다. 같은 지역구에서 내리 4선을 한 뒤 지난해 4월 부산 영도구 지역구 재보선에서 이겨 5선을 기록했다.
2008년 18대 총선 때는 친이계에 의한 '공천학살'에 맞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뒤 '살아 돌아간'(한나라당 복당) 전력이 있다. 친박계가 당을 장악한 2012년 19대 총선 때도 공천을 탈락당했지만 이때는 불출마했다. 김 의원은 7·14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면서 "당에 충성한 동지를 쳐내는 일이 반복돼왔는데, 그 피해자는 바로 나였다. 대표가 되면 공천권은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야인' 시절이던 2012년 대선 때는 중앙선대위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아 선거 승리를 이끌어낸 뒤, '이제 제 역할은 끝났습니다'라는 메모만 남기고 칩거에 들어갔다. 이후 지난해 재보선까지 4개월간은 '백의종군'했다. 김 대표는 '원조 친박'이자 '친박계 좌장'으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세종시 수정안' 찬성과 원내대표 추대 관련 이견 등을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과 관계가 틀어졌다.
2009년 5월 당청은 계파갈등 봉합을 목적으로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를 추진했지만, 박 대통령이 반대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 김 대표는 당시 사석에서 박 대통령에게 서운한 감정을 강하게 표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가운데 몇 개월 뒤인 2010년 초 김 대표가 "잘못된 법은 바꿔야 한다"고 청와대와 친이계가 추진하던 '세종시 수정안'의 찬성을 공개선언하면서 갈등이 확대됐다. 당시 박 대통령은 '세종시 원안' 고수 방침을 유지하고 있었다.
김 대표는 '추대 불발' 1년만인 같은 해 5월 결국 원내대표로 '합의 추대'됐다. 이를 두고 박근혜 당시 의원은 반대 의사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찬성도 하지 않으면서 양측에 패인 골의 깊이를 가늠케 한 바 있다. 반면 원내대표를 지내는 동안에는 원만한 대야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치력을 과시했다. 여야가 대치를 거듭하던 당시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와 콤비를 이뤄 세종시 수정안 표결처리, 집시법 강행처리 철회 등을 주고받는 등 합의를 이끌었다. 두 사람은 각각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출신으로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김 대표는 지난해 재보선으로 국회에 복귀한 직후 '임을 위한 행진곡' 문제를 놓고 야당 편을 들기도 했다. 정부가 5·18기념식에서 이 곡의 제창을 불허하자 최고중진연석회의에 참석해 "나도 민주화 투쟁 시절 하루에 몇 번씩 불렀다. 유가족과 광주시민들이 원하는 대로 5·18 주제가로 선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난해말 '민영화 논란'으로 철도노조가 파업한 때에는 야당과 함께 국회 철도산업발전소위 구성 등을 약속하고 파업 철회를 이끌어 내면서 "정치가 모처럼 제 몫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대표는 전당대회 정견발표 연설에서 혁신을 강조했다. 그는 "새누리당이 혁신해서 분노한 국민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정책을 선도해야 한다"며 "성장과 분배를 함께 책임지는 새로운 새누리당을 만들어야 박근혜정부를 성공시키고 정권재창출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약력
△1951년 부산 출생
△한양대 경영학과 졸업
△부경대 명예정치학 박사
△민주화추진협의회 창립 멤버
△통일민주당 창당발기인·총무국장·기획조정실 부실장·국회행정실장
△민주자유당 의사국장·의원국장
△김영삼 대통령 후보 추대위 총괄국장
△제14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행정실장
△대통령 민정비서관·사정비서관
△내무부 차관
△제15~18대 국회의원(부산 남구을)
△한나라당 사무총장·최고위원·원내대표·비상대책위원장
△제18대 대선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총괄본부장
△제19대 국회의원(부산 영도)
묻지마 범죄…빈곤·소외감이 부른 분노가 원인 715 ytn
모르는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저지르는 폭행을 이른 바 '묻지마 범죄'라고 합니다.
이 묻지마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왜 그랬을까를 비롯해 여러 의문이 들곤하는데요.
검찰이 최근 2년간 일어난 묻지마 범죄를 자세히 분석했습니다.
[기자]
지난 2012년 8월 여의도, 퇴근길에 30대 남성이 전 직장 동료와 행인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4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지난 3월에는 주말 저녁 서울 강남의 한 제과점에서 50대 남자가 모르는 여성을 붙잡고 3시간 가량 인질극을 벌였습니다.
검찰이 최근 2년간 발생한 '묻지마 범죄' 109건을 분석했더니, 일정한 유형이 발견됐습니다. 묻지마 범죄는 수도권의 공공장소에서, 저녁 6시부터 다음 날 새벽 3시 사이에 가장 많이 발생했습니다. 범행 장소를 더 자세히 살펴보면 길거리에서가 가장 많았고 공원이나 도서관, 지하철역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범인은 남성, 대부분 30~40대였고 10명 중 8명은 일정한 직업이 없어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이었습니다. 상습폭력 전과자들과 정신분열이나 망상장애 같은 정신질환을 앓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분석에 따르면 빈곤과 소외로 인한 분노와 자괴감이 주된 범행 동기로 풀이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상담과 교육이 범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됐습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앞으로 묻지마 범죄 예방을위해 복지단체와 보건당국, 경찰서 간의 범정부적 협력체계를 구축해나가기로 했습니다.
박근혜, 이젠 안행부 차관까지 육사출신 발탁…親軍정권인가 715 미디어오늘
돌연 김명수 후보만 지명철회 황우여 깜짝 발탁 왜? “국민과 국회 무시 절대 수용 불가”
안전행정부 차관에 육군사관학교 출신 예비역 장성을 기용하는가 하면, 교육부 장관 후보에 하루 전까지 새누리당 대표였던 현직 의원을 지명하는 등 박근혜 대통령의 예측불허 인사가 재현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소한의 검증조차 누락된 최악의 인사참사로 청와대 인사수석실을 신설한다고 해놓고 박 대통령은 정작 인사수석에는 이명박 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이기에 총대를 멨다는 평가가 나오는 인사를 발탁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김명수 교육부장관 겸 사회부총리 후보자를 지명철회하는 대신 후임에 황우여 전 새누리당 대표(현 새누리 의원·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를 지명했다고 전격 발표했다. 그러나 이번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수많은 거짓말과 위증이 드러나 낙마 1순위로 꼽혔던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후보자와 논문표절·황제복무·역사관 등 자격미달로 평가받은 정종섭 안전행정부장관 후보자에 대해 박 대통령은 국회에 인사청문보고서 재송부를 요청해 사실상 강행의사를 표명했다.
또한 박 대통령은 안전행정부 제2차관에 군사정권 이래 처음으로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예비역 장성을 기용하는 파격인사를 단행했다. 박 대통령은 안행부 2차관에 이명박 정부 시절 합참 작전부장, 3군단장, 합참 군사지원본부장을 역임한 이성호 전 육군중장을 기용했다. 이 전 중장은 육사 33기로, 박근혜 대통령의 동새 박지만씨의 4기수 선배이다.
각종 인사실패를 보완하겠다며 신설한 청와대 인사수석엔 정진철 전 대전복지재단 대표가 지명됐다. 정 대표는 선린상고, 성균관대(행정학), 행정고시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 초기 국가기록원장을 지내면서 대통령기록물 열람 문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맞서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은채 당시 청와대의 대리인 노릇을 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인물이다.
이성호 새 안전행정부 제2차관의 지난 2011녀 합참 군사지원본부장 시절. ⓒ연합뉴스
이 때문에 공평무사와 불편부당의 정신을 갖고 검증해야 할 인사수석에 또다시 ‘권력의 시녀’에 불과한 인사가 기용되는 것은 인사수석실 신설 자체가 국민을 상대로 눈가림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위원회 위원인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수석대변인은 1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오전만 해도 3명 모두 인사청문보고서 송부를 재요청하겠다고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밝혀놓고 돌연 김명수 후보자만 지명철회하겠다고 한 것은 최소한의 절차조차 무시한 태도”라며 “황우여 대표를 깜짝 지명한 것도 황당할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유 대변인은 “무엇보다 정성근 후보자를 강행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정 후보자는 김명수 후보자보다 거듭되는 거짓말과 위증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인물이었는데, 이런 사람을 임명 강행하겠다는 것은 청와대가 국민들의 뜻을 잘 읽지 못하고 절차상 우왕좌왕 하면서 국회와 국민의 뜻을 짓밟겠다는 있을 수 없는 인사”라고 성토했다.
유 대변인은 정종섭 안행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도 “논문표절 뿐 아니라 황제복무, 5·16 찬양 역사관 등 자격이 미달된 인물인데도 강행하려는 것 역시 절대 불가능하다”며 “이 문제만으로도 우리는 심각하게 문제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황우여 전 대표를 교육부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데 대해 유 대변인은 “황 후보자 평가를 논하기에 앞서 국회와 국민이 무시된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왜 인사를 이런 식으로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정진철 인사수석 기용과 관련해 정 후보자가 2008년 국가기록원장 재직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과 대통령기록물 사본의 봉하사저 이관을 두고 마찰을 빚었을 때 앞장섰던 인물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 후보자와 함께 근무했던 임상경 전 대통령기록관장은 1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정 후보자는 국가기록원장 재직시절 이명박 정부 관료들의 지침에 따라 영달을 위해 잘 따른 인물”이라며 “당시 봉하마을에 사본이 간 것에 대해 봉하마을에서는 사본이라고, 이명박 대통령측에서는 원본이라는 주장으로 맞섰을 때 당시 그것이 ‘사본’이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던 국가기록원장으로서 정 후보자는 어떤 말이나 의견은커녕 최소한의 판단조차 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임 전 관장은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수시로 열람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주면 반납하겠다고 했으나 정 후보자는 ‘일단 반환하고 열람문제를 논의하자’는 청와대 입장을 충실히 대리했다”고 지적했다.
2008년 7월 18일 정진철 당시 국가기록원장이 봉하마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상대로 대통령기록물을 회수하겠다고 들어서던 모습. ⓒ연합뉴스
폴리널리스트의 언론복귀, 더 이상은 안 된다 715 미디어오늘
[미디어현장] 이균형 전북기자협회장(전북CBS 기자)
언제부터인가 언론계에는 '폴리널리스트'라는 해괴한 신조어가 등장했다.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교수들을 지칭하는 폴리페서(politics + professor)에 이어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기자들을 꼬집는 말(politics + journalist)이다. 물론 대한민국은 직업 선택과 직장 이동의 자유가 보장돼 있는 나라기에 교수나 기자 모두 학계나 언론계 생활을 하다 때려치우고 정치권으로 자리를 옮길 자유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자리를 옮긴 이들이 다시 “아 옛날이여”를 외치며 강단에 서고 기사작성을 한다는데 있다.
여기에선 기자들 얘기만 하자. 과거부터 최근 6.4 지방선거에 이르기까지 선거철만 되면 전북지역에선 상당수 기자들이 특정 후보 선거캠프에 합류하는 ‘엑소더스’가 벌어지곤 했다. 선거가 끝난 뒤 선거캠프에 합류했던 기자들은 ‘주군’인 입후보자가 당선의 영광을 안으면 해당 자치단체 비서실이나 홍보실 등에 입성한다.
지역기자들의 읍참마속(泣斬馬謖)
안타깝게도 ‘주군’이 낙선하면 다시 기자로 ‘컴백’을 하고 해당 언론사는 이들을 따뜻한 인간미로 품어 준다. 그리고 이들은 또다시 정론직필과 공정성, 신뢰성을 운운하며 기사를 써댄다. 이것이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현실이다. 기자가 특정 후보의 선거캠프에 합류했거나, 선거 이후 홍보라인에서 일한다는 것은 ‘주군’으로 모신 특정인과 정치적, 이념적으로 뜻을 같이하며 ‘누구 사람’임을 대내외적으로 공표함을 뜻한다. 정동영씨가 ‘DJ맨’이고 이동관씨가 ‘MB맨’이며 지금의 민경욱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입’이다. 이들의 선택에 대한 시비는 논외로 하되, 한 가지 교집합이 있다면 이들은 모두 정치권으로 ‘빠-악!’ 자리를 옮기면서 언론계와는 ‘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만약 이들이 다시 언론계로 돌아와 칼럼을 쓰고 앵커를 한다면 그 ‘글’과 그 ‘말’이 과연 어떤 울림을 낼 수 있을까?
그런데 지역에서는 ‘당황하지 않고 다시 기자로 빼-액(back)!’하는 ‘유단자급 기자’들이 상당수다. 그야말로 ‘코미디’다. 물론 중앙무대와 지방이 어찌 같을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각 지역의 자치단체장에 대해 각을 세우고 ‘공정성과 신뢰성’을 무기로 지역발전을 위한 ‘감시견(watchdog)’ 역할을 자임하는 기자 본연의 책무를 대입한다면 이같은 반문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런 아이러니가 비단 전북만의 사례는 아닐 것이며, 그 이면에는 열악한 환경의 지역 언론 현실이 자리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또 좁은 지역사회를 살다보니 이들 ‘폴리널리스트’들은 엊그제까지 선-후배나 동기로 지냈던, 각별한 인연의 줄로 촘촘히 엮여있는 사람들이어서 이들을 매몰차게 내치는 것 또한 인간미가 떨어지는 냉혈한의 작태로 지적받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지역 언론’이라고해서 언제까지 이런 아이러니를 애써 눈감고 묵인해야 할 것인가?
이런 근본적인 물음이 거듭된 끝에 전북기자협회는 최근 운영위원회를 거쳐 선거캠프에 합류했거나 자치단체 홍보라인에서 활동했던 전직 기자들이 다시 기자로 복귀하는 것을 2년간 금지하는 규약을 제정했다. 이 과정에서 협회 10개 회원사 지회장들이 각 사 회원들의 뜻을 물은 뒤 만장일치로 규약제정을 결의했다. 제한 기한을 2년으로 정했지만, 이를 어겼을 경우 해당 언론사에 대한 자격정지 등 징계를 논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어 사실상 다시 언론계와는 인연을 맺지 말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셈이다.
논의 과정 중 해당자들의 항의에 부딪쳐 이같은 규약개정을 차후 선거때부터 적용하려 했으나, 지회장들은 “의미가 퇴색될 수 있어 이번 6.4 선거부터 즉시 적용해야 한다”며 회장의 우유부단함에 결단을 내리도록 하는 쐐기까지 박아줬다. 그만큼 기자 저마다 가슴속에 이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의 흔적이 깊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지금도 이번 선거캠프에 합류했거나 지난 자치단체 홍보라인에 섰던 옛 동료, 선-후배들이 뇌리에 스쳐지나가곤 한다. 그러나 이같은 결정이, 자존심을 먹고 살아간다는 기자들이 최소한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담보해내기 위해 ‘읍참마속’의 인간적인 고뇌 끝에 기자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의미있는 몸짓임을 헤아려 줬으면 한다. 한때 기자였던 선-후배, 동료들께서도 더 이상 지역 언론의 위상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테니까.
'지방 식민지' 독립 투쟁이 필요하다 715 프레시안
[복지국가SOCIETY] 복지국가 운동이 답이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가 6월 22일 자 <한겨레> 칼럼을 통해 '지방 식민지 독립 투쟁'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나섰다. 강 교수는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조차 중앙 권력을 염두에 둔 이슈와 전략이 지배하는 것을 지적했다.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자"는 구호에서부터 "우리 지역 출신 대통령 한번 만들어보자"는 구호까지 나왔다. 지방자치가 20년을 넘어 민선 6기에 접어들었지만, 그는 지방이 여전히 중앙의 식민지임을 통감했다.
'지방 식민지'의 현실
전체 인구의 50%가 수도권에 집중된 나라는 일부 도시 국가를 제외하면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전체 경제 활동의 80%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된 것도 문제다. 지방에는 일자리가 없어 광역시조차도 점차 인구가 줄어드는 실정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 간의 소득 격차, 유명 대학 입학생 중 서울 강남 3구 출신 학생들의 비율이 40%를 넘는 교육 격차, 그리고 각종 문화 향유의 기회를 비롯한 전반적인 삶의 질 격차도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의학과 법학 등 특정 분야를 제외하면, 대부분 학과에서 서울의 마지막 주요 사립대까지 성적 순서대로 정원을 채우고 나서야 지방 국립대 지원이 시작된다는 어느 국립대 입학처장의 자조적인 푸념은 가볍게 넘겨버릴 사안이 아니다. 지역 발전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인데, 지역의 인재들이 모두 서울로 가버리고 지방대 졸업생들조차 기회만 된다면 서울로 가겠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현재 격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이런 현실이 개선될 전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 교수가 지적했듯이 '지잡대', '지방충', '지균충' 등과 같이 사이버상에 떠도는 지방 모독적 단어들은 젊은이들도 중앙-지방 문제에 포획되어 있음을 반영한다. 지방 식민지화가 인정 욕구의 획일화와 서열화의 핵심 원인이라는 지적에 공감이 간다. 실제로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비슷한 성적으로 서울과 지방 대학에 각각 진학했던 같은 고등학교 졸업생들 간의 비교에서 서울의 대학에 간 경우가 10년 또는 20년 후 성공할 확률이 더 높았다. 기회의 차등뿐만 아니라, 내재한 열등감으로 사회적 신분 상승의 차별화와 고착화라는 결과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이안나, 계명대 박사학위 논문, 2014).
심지어는 기본권인 건강권마저 지방에 거주하면 차별을 받는다. 연간 국민건강보험 급여비만 1조 원을 청구하는 거대 병원 5곳이 모두 서울에 있고, 이들 거대 병원과 지방 국립대 병원들 간의 격차는 병원의 규모나 장비의 차이를 넘어 수술 성공률과 각종 질병 사망률의 차이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생명을 지키고 좋은 진료를 받으려고 KTX를 타고 서울까지 다니니, 지방 환자들의 수도권 병원 진료비만 연간 2.11조 원(강기정, 손숙미 의원실, 2011년 국정감사 자료)에 이른다. 또 대형 병원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각종 암 치료율과 뇌 심혈관 질환 생존율, 의료 이용률이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높다는 보고(복지국가소사이어티, 2012)도 있다. 이 정도면 지방이 식민지라는 강 교수의 주장이 그리 과격하다고만 할 수 없을 것이다.
▲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프레시안
참여정부 시기, 대통령 공약으로 행정수도 이전을 천명하고 추진하였지만 '관습 헌법'이라는 생소한 잣대로 위헌 결정이 났다. 일부 정부 부처가 행복 도시로 이전했고 공기업 지방 이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지방 차별 문제는 별로 나아지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에 힘입어 그린벨트 해제가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지방 균형 발전을 위해 설정해 둔 수도권 규제들이 신임 경제부총리를 통해 대폭 완화된다면, 장차 지방의 소외와 차별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강준만 교수가 지적했듯이, 지방에 대한 차별은 정치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지방선거 후보를 공천하는 것에서부터 지방선거 주요 공약의 선정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6번에 이르는 지방선거에서 지방 정부의 독립과 자율성이 공론화된 적은 거의 없었다. 광역 후보들뿐만 아니라 기초지방자치단체 후보들까지 모두 중앙당에서 낙점하니, 지역의 발전을 위해 일하는 사람보다 중앙 정치권에 아부하는 사람들이 공천받을 확률이 항상 더 높았다. 그래서 모두가 중앙당의 눈치를 보면서 줄서기에 열중한다.
이번 7.30 재보궐 선거에서도 중앙당의 당권을 잡은 세력이 후보를 결정하면서 또 한 번 지방 유권자들은 정치적 무시를 당했다. 안철수 의원은 중앙당의 과도한 개입을 막는 길은 중앙당이 기초지자체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 것이라면서 민주당과 합당을 감행했다. 그런데 안철수 의원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스스로 세운 그 원칙마저 포기하면서 중앙당의 전횡을 합리화하더니, 이번에는 역으로 본인이 당 대표로서 중앙당의 권력을 사유화하는 공천을 하고 말았다. 이런 낡은 정치 행태는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신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해결 기미 보이지 않는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문제
새로 당선된 민선 6기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입을 모아 중앙 정부의 과도한 권력을 비판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당선자는 거의 없다. 예산은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비율이 8 대 2인데 업무는 4 대 6이라는 이들의 지적은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대부분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중앙 정부와 자신을 공천한 중앙당에 세원 재배분을 강력하게 요구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 정부로의 권력 이양을 구체화할 실질적인 법률 개정안을 제안하지도 못하고 있다. 오히려 중앙 정부에 잘 보여서 지역 개발 명목의 토목 건설 자금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오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재부 등 중앙 정부의 공무원들이 지방 예산의 낭비와 비효율이 심각하다고 지적하는 것도 사실은 틀린 말이 아니다. 전체 당선자의 25%가 임기를 마치기 전에 구속되었던 민선 4기와 비교해, 민선 5기에서는 전체 기초지방자치단체 중의 약 10%인 25개 지방자치단체의 단체장이 임기 중간에 사법 처리 되어 물러났다. 그래도 이 정도면 많이 좋아졌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지방 정부의 비리와 단체장들의 무능은 아직도 심각한 수준이다.
세수 자체가 중앙 정부에 집중되어 있고, 지방 정부가 징수할 수 있는 세원이 적으니 지방정부의 재정 자립도가 낮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중앙 정부도 지방 정부를 믿지 못하니 각종 교부금이나 분담금 등을 족쇄와 미끼로 사용하여 지방 정부를 통제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시행한 부자 감세 정책으로 지방 정부의 세수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심지어 참여정부 때 지방 정부에 자율권을 부여하기 위해 시행했던 64개 사회복지사업의 지방 이양도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 인력 증가 없이 업무만 지방으로 이전하다 보니 지방 정부의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들이 연이어 자살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또 사회복지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는데, 중앙 정부가 사업을 이양하면서 지방 정부에 넘긴 관련 예산 증가율은 서비스 수요 증가의 50%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받는 사회복지 서비스의 증가는 이전보다 줄어드는 현상이 빚어졌다.
▲ 2013년 3월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사회복지사 자살 방지 및 인권 보장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사회 복지 전담 공무원 고(故) 이민재, 고(故) 강민경, 고(故) 안광남 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이 '사회복지사 근조'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추모사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보육 예산을 두고 서울시와 보건복지부 간에 벌어졌던 대립이 좋은 사례다. 대통령 공약으로 보육을 확대하면서 지방 정부에 대한 지원은 동결해버리니, 결국 지방 정부는 다른 사업을 줄여서 중앙 정부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간의 대립이 벌어졌고, 이런 현상은 이번에 기초연금 지급을 계기로 내년이면 또다시 재연될 전망이다.
2008년부터 지방 정부에 공무원 채용에 대한 자율권을 주는 대신 지방 공무원 정원 총액 예산 제도를 시행했다. 하지만 인건비 총액이 정해지다 보니, 총액 예산 제도는 공무원 숫자 동결이라는 또 하나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지방의 식민지 문제가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에 지방은 점점 쇠락하고, 수도권의 비대화는 지방 거주 국민에 대한 소외와 차별을 넘어, 국토의 균형 발전 저하와 국가 전체의 비효율에 인한 국가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지는 나쁜 구조가 이미 자리를 굳게 잡아가고 있다.
'지방 식민지' 독립 투쟁은 복지국가 운동에서부터
▲ 김성환 노원구청장. ⓒ프레시안(최형락)
그런데 지난 민선 5기에서부터 조그마한 변화들이 지방 정부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중앙 정부만 바라보거나 중앙 정부에서 돈을 따와서 지방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 정부에서부터 스스로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이 하나씩 성과를 맺기 시작했다. 지방 정부의 공무원 정원을 동결한 상태에서 공공 부문 비정규직을 지방 정부에서부터 먼저 정규직이나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하려는 노력들이 나타났다. 일부 구청에서 먼저 실시한 생활 임금 제도는 서울시장의 공약으로 채택되면서 저임금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정책 대안으로 정치·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무상 급식을 계기로 보수 일색이던 교육 행정에 교두보를 구축했던 진보 교육감들은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포진하면서 혁신학교 확대, 특목고의 일반고 전환, 학교 복지사업의 확충 등을 대대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방 정부에서 시행한 통장 중심의 자살 예방 사업(노원구 자살 예방 사업)이 효과를 내면서 보건복지부가 역으로 지방 정부의 프로그램을 배워 전국적으로 보급하기 시작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복지국가 후보'들은 도서관을 단순 설립하는 것을 넘어 지역 주민의 요구에 맞게 다양한 형태의 도서관 확충 사업을 시행하거나, 수백억 원을 들여 종합실내체육관을 건립하기보다는 지역 주민을 위한 생활체육시설을 개선하는 프로그램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등의 정책을 공통 공약으로 채택했다. 이런 조그만 변화들은 전국적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
성남시의 경우 성남 시민을 대상으로 건강관리와 예방 보건 서비스를 보편적으로 제공하는 '100만 시민 주치의' 사업, '공공 산후조리원' 사업,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대통령이 제대로 지키지 못한 4대 중증질환 국가보장 공약을 시장이 지키겠노라"며 중앙 정부를 압박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작은 변화들'이 지방 식민지 독립 투쟁의 희망이 될 것이다.
나는 강준만 교수의 "지방 식민지 독립 투쟁" 주장을 지지한다. 그러나 지방 식민지 독립 투쟁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행정 수도 이전이나 공기업 지방 이전으로 판가름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민주 정부 10년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수도권에 집중된 기업 본사나 고등 교육기관, 거대 의료기관의 지방 이전이 충분조건이 될 수 없음도 명확하다. 지방 정부에 대한 세원 이전이나 자율적인 예산 확보, 지방 공무원 인력 확충, 그리고 법률적 자율성의 확보만으로는 지방의 독립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방 공약이라고 하면 동남권 신공항 건설이나 특정 산업단지 설치, 도로와 철도 개통 등의 개발 공약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 정부에 재정권을 주면, 불필요한 도로나 항만의 건설로 또 한 번 거대한 낭비가 되풀이되고, 지방 주민의 실망이 재연될 것이라는 지적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지방자치를 통해 국민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본 사례들이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지방 정부가 다양한 복지국가 정책을 시행하니 주민들의 구체적인 삶이 나아졌다. 고정적 지출이 경감되면서 실질적인 가처분 소득이 높아지는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각종 복지 정책들을 통해 지방에 살면서도 삶의 질이 더 높아질 수 있고, 다양한 사회 서비스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공공 부분의 고용이 늘어나 지방에서 대학을 나와도 좋은 직장이 보장된다면, 지방주민들이 느끼는 차별감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다양한 복지국가 정책을 통해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가처분 소득이 더 많아진다면 젊은이들이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역 이주를 할 것이다. 지방이 자율성을 가지고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각종 차별도 개선해야 한다. 지방 정부의 역할과 기능도 많이 달라져야 한다. 지방이 중앙의 식민지가 되지 않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복지국가 정책들이 지방에서부터 강력하게 추동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 식민지' 독립 투쟁은 '복지국가 운동'으로 완성될 수 있다.
세월호 보도 ‘꼴등’ MBC, 월드컵 보도에선 ‘압도적’ 우세 714 미디어오늘
6월부터 MBC는 달랑 20건만 세월호…‘충격’ 개막 후 월드컵 뉴스 532건
지난 14일은 세월호 침몰사고 90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3달이 지났지만 실종자 11명이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생존자‧실종자 가족들이 국회 노숙 및 단식농성까지 강행할 정도로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모든 걸 쏟아붓고 있지만, 이를 전하는 지상파 방송사 반응은 냉담하다.
SBS는 14일 <참사 후 90일…이젠 눈물도 말라간다>(5번째), <특별법 처리 불투명…유족 단식농성>(7번째)에서 참사 90일을 맞은 팽목항과 유가족 농성 관련 소식을 정리했다. KBS는 <조사위원회에 수사권 부여 등이 쟁점>(4번째)에서 다루었으나 SBS에 비해 적은 시간을 할애했고, 내용도 부실했다. MBC는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SBS 역시 JTBC 보도에 비하면 양과 질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이날 JTBC는 세월호 관련 소식에 6건을 할애했다.
▲ MBC 14일자 월드컵 보도 (사진=MBC)
14일 보도에서 알 수 있듯, 세월호 관련 소식은 지상파 메인뉴스에서 후순위에 있다. 월드컵 기간과 맞물려 보도가 뒤로 밀리거나 수효가 부족한 현상이 비일비재했다. 월드컵 우승국이 결정된 14일에도 KBS는 2건, MBC는 5건, SBS는 3건을 월드컵 보도에 할애했다. 이들이 월드컵 기간 동안 평균 리포트 5.5건을 보도했던 것과 비교하면, 세월호에 대한 지상파 3사 관심은 실로 보잘것 없다고 평가할 수 있다.
미디어오늘이 6월 1일부터 7월 14일까지(44일간) 지상파 3사와 JTBC 메인뉴스를 조사한 결과, 지상파 3사가 다룬 세월호 관련 보도(유병언 회장 보도 제외)는 통틀어 133건이었다. KBS가 69건으로 가장 많았고 SBS(44건)가 그 다음이었다. MBC는 20건에 불과했다.
KBS와 SBS 경우 하루 평균 1건 정도는 세월호 소식에 할애했지만 SBS 수치는 KBS에 비해 들쭉날쭉이었다. MBC가 가장 부실했다. 하루 평균 0.5개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난달 느닷없이 세월호 특집 다큐멘터리 PD를 교체할 정도로 세월호 관련 소식을 백안시(白眼視)해 온 MBC는 뉴스데스크 보도에서도 이 기조를 고집했다.
▲ 지상파 3사와 JTBC 세월호 보도량 비교 (조사기간 : 6월 1일 ~ 7월 14일, ⓒ미디어오늘)
지상파 3사를 모두 합쳐도 JTBC 보도량에 미치지 못했다. 이 기간 동안 JTBC는 147건을 다루었다. JTBC는 하루 평균 3.3건을 세월호 관련 보도에 쏟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여‧야 공방 속에서 흘러나온 뉴스 전하기만 급급했지만, JTBC는 진도 팽목항 현장 소식, 해경에 대한 의혹 제기, 세월호 사고 국조특위 소식, 유가족 요구 및 주장 등을 꼼꼼하게 리포트에 담았다.
단독에서도 차이가 났다. JTBC는 △세월호 레이더 관제 영상 △해양구조협회로 연결된 해경·언딘 유착 △초계기 촬영 영상 △수색에서 ‘언딘’을 배제한 범대본 소식 △언딘 의혹에 대한 해경의 자체 감찰 등을 단독 보도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물론 같은 기간 KBS가 △세월호 승객의 구조 요청을 외면한 소방본부 △잠수사에게 무리한 입수를 요구한 해경 뉴스 등을 단독으로 다루고, SBS 역시 해경 상황실과 구조대 간 통화 내용 분석 결과를 단독 입수해 보도했으나, 보도 연속성과 그 깊이에서 JTBC를 따라가진 못했다.
JTBC는 또 유경근 세월호 가족대책위 대변인, 전명선 가족대책위 부위원장, 故 박예슬 양 아버지, 민간 잠수사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세월호에 대한 시청자 관심을 제고하려 했다.
▲ 지상파 3사 월드컵 보도량 비교 (조사기간 : 6월 13일 ~ 7월 14일, ⓒ미디어오늘)
반면, 지상파 방송사들은 월드컵 보도에 심취했다. 개막 이후였던 6월 13일부터 7월 14일까지 지상파 3사가 보도한 월드컵 뉴스는 총 532건이었다. 세월호 보도 ‘꼴등’ MBC가 209건으로 단연 압도적이었고, SBS가 185건, KBS가 138건에 달했다. MBC는 하루 평균 6.5건을 월드컵 보도에 쏟는 모습을 보였고, SBS 역시 6건에 달하는 리포트를 브라질 소식 전하기에 썼다. JTBC는 조사기간을 넓혀, 개막 이전인 6월 1일부터 7월 14일까지 수치를 따져 봐도 불과 39건만 월드컵에 할애했을 뿐이다.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14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세월호 침몰사고는 단순 개인 사고가 아닌, 국가 재난 사고다. 국가 시스템의 총체적 무능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에 사안 중대성과 공익성에 비추어 봤을 때, 보도량이 여타 뉴스보다 절대적으로 많아야 한다”며 “그런데도 지상파 방송사 보도량이 적다는 것은 뉴스 선택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이어, 김 교수는 “한국이 계속 월드컵 본선 관문을 통과하는 과정에 있었다면 참고할 부분이 있었겠지만, 다른 나라 월드컵 소식에 지나치게 많은 보도를 할애하고 있는 현재 보도 행태는 한참 잘못된 것”이라며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언론이 앞장서서 일회성 이벤트로 세월호 같은 중요한 뉴스를 덮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전 60년 지나도록…보훈없는 '국민방위군 國民防衛軍 ' 13.7.27 노컷뉴스
김명섭(85) 씨의 복무 및 파견근무가 기록돼있다. 기록에 따르면 1950년 12월 25일 국민방위군 사관학교에 후보생으로 입교해 1951년 2월 12일 교육을 수료하고 국민방위군 보병 소대장으로 1953년 11월 30일까지 복무했다. (사진=김경록 씨 제공)
올해 85세인 김명섭 씨는 일사후퇴 직전 소집된 '국민방위군' 출신이다. 스물두 살이던 1950년 12월, 당시 서울 한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김 씨는 입영통지서도 없이 무작정 소집하라는 국가의 부름을 받고 입대했다. 김 씨는 정전협정이 있던 1953년 7월 27일까지 방위군 소대장으로 복무했고, 이후에도 계속 군에 남아있다가 1967년 제대했다.
하지만 일부 백과사전이나 역사 기록물은 국민방위군 해체 시기를 1951년 5월 12일로 기록하고 있다. 해체 안이 1951년 4월 30일 의결됐다는 것. 이에 대해 김 씨의 아들 경록(51) 씨는 "모두 잘못된 기록"이라고 주장했다. 아들 김 씨는 “공식적으로 해체됐다는 1951년 당시 교관이던 아버지는 울산 서생과 방어진에서 전방으로 보내는 사병을 훈련하고 있었다”며 "방위군 해체는 60년 전 오늘, 정전과 동시에 이뤄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951년 2월 12일 김명섭씨의 국민방위군사관학교 교육 수료증 (사진=김경록 씨 제공)
김 씨는 아버지가 방위군 소속임을 증명하는 훈련 수료증과 당시 사진, 복무 기록이 적힌 일지 등도 꺼내놨다. 노랗게 빛이 바래고 군데군데 찢겨지기도 했지만, 김 씨의 주장을 뒷받침하기에는 충분했다.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도 “1951년에 군 지휘부의 비리로 국민방위군 해체를 선언하긴 했지만 사건 연루자들이 구속되는 등 흐지부지되면서 군은 계속 남아 있었을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당시 소집된 방위군은 공식 집계만으로도 최소 50만 명. 일각에선 100만 명에 이른다는 얘기도 나올 정도로 정확한 건 없다. 전쟁통에 경황없이 급조되다 보니 관련 기록조차 제대로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휴전 직전 찍었다"는 국민방위군 장교단 단체 사진. 김 씨의 증언이 맞다면 1953년에도 국민방위군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사진=김경록 씨 제공)
보훈 여부를 파악해야 할 국방부조차도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기록에 따르면 1951년 1월 방위군 운영에 문제가 생기면서 4월 30일 폐지법이 통과됐고 5월 12일 해체가 공포됐다”고 일단 '1951년 폐지'에 무게를 뒀다.
하지만 곧바로 “1951년 5월 5일 국민방위군 후신으로 예비5군단이 운영된 것으로 기록돼있다”며, 이후에도 유지됐을 가능성을 열어놨다. 국민방위군 내부 문제가 생겨 폐지하기로 했지만 한 번에 해체하진 못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와해되는 수순을 밟은 것으로 보인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방위군이 완전히 폐지된 날짜 등 공식적인 기록은 없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당시 징병됐다 무참히 숨진 수십만 명의 국민방위군들은 국가 보훈 등의 대우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나라와 후손들을 위해 청춘을 바쳤지만, 60년이 지나도록 나라엔 버려지고 후손들에겐 잊혀지고 있는 셈이다.
신성모 국방장관과 사형 당한 5인
'국민방위군 사건'이란…상부 착복으로 30만명 숨져
'국민방위군 사건'은 고위장교들의 부정부패로 100일 사이에 아군 수십만 명이 숨진 희대의 사건이다. 6.25 전쟁 당시 중공군 개입으로 전세가 역전되자, 정부는 만 17세 이상 40세 이하 장정들을 국민방위군에 편입시킨다.전쟁 발발 6개월 뒤인 1950년 12월 16일 국민방위군 설치법이 통과됐다. 며칠 뒤 서울에 소집된 방위군만도 최소 50만 명에 이른다. 당시 국방장관 신성모는 국회에서 "100만 내지 80만 장병을 데리고 내려왔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서울에 집결한 수십만 장정들은 교육대가 있는 통영이나 마산, 심지어 제주까지 혹한의 천리길을 걸어서 돌파해야 했다. 그나마 혹독한 추위를 막을 군복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고, 식사는 하루 세 덩이의 주먹밥과 소금국만 제공됐다.
고위 장교들이 국고금과 물자를 부정처분해 착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숨진 사망자만도 당시 집계로 30만여 명에 이른다. 그러나 이의를 제기하면 가혹한 구타가 돌아오거나, 빨갱이로 몰려 맞아 죽기도 했다. 참혹한 행진을 목격한 야당의원들이 1951년 1월 15일 국회에서 방위군 참상을 지적하며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당시 국민방위군 사령관 김윤근과 국방장관 신성모는 이같은 움직임을 "불순분자와 제5열의 책동"이라고 낙인찍기에 나섰다. 같은 해 3월 말 결국 ‘국민방위군 의혹사건 국회특별 조사위원회’가 결성됐다. 위원회는 조사 한 달만에 방위군 간부들이 당시 돈으로 77억 원 넘게 부정지출했음을 밝혀냈다. 후임 국방장관 이기붕은 전면 재조사를 명했고 같은 해 7월 속개된 군사법정에서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 국민적 공분을 샀다. 사령관 김윤근, 부사령관 윤익헌, 재무실장 강석한, 조달과장 박창언, 보급과장 박기환 등 다섯 명에겐 사형이 선고됐다.
당시 국회는 이들이 착복한 막대자금이 이승만 세력에 흘러들어간 정황 증거를 포착하고 있었지만, 당사자들이 너무 일찍 처형되는 바람에 사건은 의문만 남긴 채 종결됐다
대구 교외 화원(花園)동산에서 집행된 총살형
美경제연구소가 본 '매춘의 역설'
로드아일랜드주 '매춘금지법안' 실수로 누락
23년 뒤 바로 잡은 후 범죄율 등 통계 봤더니
성 산업에 대한 전미경제연구소의 분석이 화제다. 사진은 영화 '테이큰'의 한 장면.
세계 대다수 나라가 그렇지만 미국에서도 매춘은 불법이다. 그런데 미국 동부의 인구 100만이 조금 넘는 작은 주(州)인 로드아일랜드에서 한때 매춘을 불법으로 처벌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1980년 법 개정 때 거리에서의 호객 행위를 금지시키는 과정에서 매춘 자체를 금지한다는 규정을 잘못 뺀 것이다.
그러나 법에 구멍이 뚫린 사실은 23년 뒤에야 알려졌다. 2003년 법원이 실내 호객을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 때부터 로드아일랜드에서 실내 호객에 의한 매춘 산업이 호황을 만난 것은 예상대로였다. 물론 주정부는 2009년 문제가 된 법의 구멍을 없애, 이후부터는 실내 호객도 불법이 됐다.
흥미로운 것은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매춘이 가능한 것으로 공개적으로 알려졌던 2003년 이후부터 매춘이 불가능해진 2009년 전후를 비교한 연구 결과다. 이 연구소가 이 달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4~2009년 로드아일랜드에서 성 관련 산업이 붐을 이루었다.
놀라운 것은 2003년 이전까지 줄곧 큰 폭으로 증가세를 이어가던 강간사건이 30% 이상 대폭 줄어든 것이다. 2003년에 정점을 찍은 강간사건은 2009년에는 1990년대 초 수준으로 감소했고, 다시 실내 매춘이 불법이 된 2009년 이후부터 증가세로 돌아섰다. 다른 범죄의 경우는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 또한 2004년부터 남녀의 성병 발병도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같은 결과가 매춘을 처벌하지 않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에게 커다란 사회학적 혜택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는 경제학자들의 분석을 전했다.
1948년 제주 1980년 광주 그리고… [2014.07.21 제1020호]
고경태의 1968년 그날] (21) 퐁니·퐁넛촌에 재현된 4·3과 5·18… 성폭행당한 응웬티탄은
가슴·팔 잘리고 세상 떴지만 그의 죽음은 2000년에야 알려져
토벌대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모두 끌어내 수룡국민학교 마당에 집결시켰어. 그때 학교 교실을 모두 짓기 이전이어서 마당에는 장작들이 많았지. 토벌대는 큼직한 장작으로 무지막지하게 때렸어. 그러다가 여자고 남자고 할 것 없이 모두 옷을 홀랑 벗겼지. 나는 당시 마흔한 살이었는데 체면이고 뭐고 가릴 여지가 있나. 그냥 속옷 벗으라 하니 벗을 수밖에. 토벌대는 옷을 벗긴 채 또 장작으로 매질을 했어. 토벌대는 그 일에도 싫증이 났던지 얼마 없어서 처녀 한 명과 총각 한 명을 지목해 앞으로 불러내더니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 짓을 하도록 강요했어. 인간들이 아니었지. 두 사람이 어쩔 줄 몰라 머뭇거리자 또 매질이야. 그러다 날이 저물어가자 주민 4명을 끌고 가다가 총을 쏘아버렸지.”(1948년 5월30일, 제주시 한림면 청수2구 좌봉할아버지의 증언, <4·3은 말한다>(제민일보 4·3취재반, 전예원, 1995)
“여기저기 피를 보고 쓰러지고 보다 못해 말리는 노파를 단검으로 찔러 쓰러지게 하고 반알몸이 된 여학생들은 유방까지도 칼로 찔리고 네 살 먹은 어린이까지 그네들이 구둣발에 채여 죽고, 그 자리에서 숨이 끊어진 사람, 반죽음이 된 시민과 학생은 그 무서운 얼룩무늬 트럭에 어디론가 실려 가버리고 온통 거리는 아비규환의 수라장이 된 것입니다.”(1980년 5월26일 광주시민 일동, 5·18 광주민주항쟁 자료집, 도서출판 광주, 1988)
f·g, 가슴 도려진 채 살아 있던 여자
“(1980년 5월19일) 광주역 앞 분수대에서 여학생을 발가벗겨놓고 유방을 도려내어 죽였다는 소문에 시민들이 더욱 흥분(후에 계엄분소 부사령관도 그런 시체가 있다고 시인했지만, 대검으로는 할 수 없는 행위이며 불순분자의 면도칼에 의한 소행이라고 잡아뗌)”(광주항쟁 일지, 5·18 광주민주항쟁 자료집, 도서출판 광주,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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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부대와 시민 간에 접전이 치열했던 19일부터 22일까지는 병원 응급실은 물론 1층 환자 대기실 수납창구와 복도까지 매트리스나 보조침대를 깐 환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공수부대가 처녀의 유방을 대검으로 도려냈다’는 소문과 관련, 대검으로 가슴을 찔린 여자 환자를 치료한 적이 있다. 가슴 부위와 등을 대검에 찔린 최미자(당시 19세)양이 실려온 것은 19일 오후라고 생각된다. 최양이 찔린 정확한 부위는 겨드랑이와 젖가슴 사이로 계엄군이 젖가슴을 목적으로 찔렀는지는 이상 부위만 갖고 쉽게 판단할 수 없다.”(전남대 흉부외과 의사 오봉석의 증언, <광주일보> 1989년 1월14일치 인용)
1948년 제주 4·3 사건으로부터 20년이 흐른 뒤였다. 1980년 5월 광주항쟁을 12년 남겨둔 때였다. 1968년 2월12일의 베트남은 제주와 광주의 중간에 놓였다. 그날 오후 2시께, 꽝남성 디엔반현 디엔안사 퐁니·퐁넛촌에서는 제주 4·3의 시간이 재현되었다. 5월 광주의 시간이 흘렀다. 열아홉 살 처녀 응웬티탄은 옷이 벗겨진 채 논바닥에 쓰러져 신음했다. 두 가슴은 난도질당해 피가 흘렀다. 왼쪽 팔도 마찬가지였다. 20년 전 제주에 들어온 토벌대원들처럼, 12년 뒤 광주에 투입될 공수부대원들처럼, 마을에 들어온 해병대원들은 포악했다. 과거의 토벌대원들과, 미래의 공수부대원들과, 오늘의 해병대원들은 생김새가 닮았고 같은 언어를 썼다. 1948년, 1968년, 1980년. 공격을 당한 마을과 도시엔 공포가 지배했다. 그들은 총을 쏘았고, 칼을 휘둘렀고, 수류탄을 던졌다. 그리고 성폭력. 응웬티탄은 1968년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의 성폭력 피해자 중 한 사람이었다.
처음엔 아무도 그녀의 이름을 몰랐다. (2001년 4월, 한국 기자가 사진을 들고 와 그녀의 이름을 확인하기까지는) 그저 f와 g라는 알파벳 기호로 명명되었을 뿐이다. f와 g 두 장의 사진 속에서 그녀는 이렇게 설명돼 있었다. “가슴이 도려진 채 아직도 살아 있는 여자.” 설명을 적은 이는 미군 상병 번이었다. 그는 그날 키엠루 초소에서 불타는 마을을 바라보다 한국군이 떠난 뒤 미군 소대원, 남베트남 민병대원들과 함께 그곳에 진입했다. 미리 준비한 카메라로 마을 입구에서부터 참혹한 정경을 담다가 논바닥에 쓰러진 그녀와 만났다.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윗옷이 찢겨져 있었고, 두 가슴과 팔에서 피가 흘렀다. 예리한 대검에 의한 것임을 알았다. 숨은 붙어 있었다. 그는 논에 들어가 셔터를 눌렀다. 오른쪽 측면에서 한 번, 앞에서 한 번. 그러곤 소리를 질러 남베트남 민병대원들을 불렀다. “여기 사람이 있다. 빨리 병원에 보내야 한다.”
영영 돌아오지 못한 가족들
응웬티탄은 다낭병원으로 실려갔다. 그날 그녀의 아버지 응웬전(41)은 다낭에서 비보를 들었다. 큰딸 응웬티탄이 크게 다쳤다는 소식만이 아니었다. 부인 팜티깜(40)과 넷째딸 응웬티흐엉(11)은 현장에서 즉사했고, 생후 5개월 된 젖먹이 막내아들 응웬디엔칸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고 했다. 모두 설을 맞아 고향에 내려간 식구들이었다. 그는 응웬티탄과 응웬디엔칸이 함께 입원한 다낭병원으로 먼저 향했다. 응웬티탄의 상태가 더 위중했다. 두 가슴과 왼쪽 팔에 출혈이 컸다. 다낭병원 의료진은 수술을 통해 왼쪽 팔을 잘라냈다. 그날 저녁이 되어서야 응웬전은 창문 밖에서 응웬티탄의 얼굴을 보았다. 얇은 이불을 덮고 있던 딸은 침대에 누워 있다가 창문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응웬티탄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예요?”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다음날 동이 트기 전 응웬티탄은 숨을 거뒀다. 가족 네 명 중 세 명이 죽고, 젖먹이 응웬디엔칸만 살아남았다. 응웬디엔칸은 엉덩이가 날아갔다(응웬디엔칸은 불구로 생활하다 열 살이 못 되어 숨을 거뒀다).
2월12일은 음력으로 1월14일이었다. 하루 뒤면 정월 대보름. 부인 팜티깜이 세 아이를 데리고 자신의 고향이자 시댁이기도 한 퐁넛촌에 내려간 것은 설을 이틀 앞둔 1월28일이었다. 응웬전 가족은 전쟁이 시작된 이후 퐁넛촌이 위험하다고 판단해 일찌감치 아홉 명이나 되는 형제자매를 이끌고 다낭에 올라와 세를 얻어 살았다. 응웬전은 남베트남 정부와 베트콩 중 어느 편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파였다. 총알이 튀고 폭탄이 터지면 민간인만 몹쓸 일을 당한다는 생각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대도시로 옮겨온 것이었다. 퐁넛 집은 응웬전의 아버지 응웬주 부부만이 지켰다. 팜티깜은 본래 설 제사만 지내고 돌아오려고 했다. 그런데 설에 휴전을 하기로 했던 북베트남과 베트콩들이 남베트남 전역에서 남베트남군과 미군, 한국군을 향해 일제 공격을 감행했다. 이른바 구정대공세. 꽝남성도 예외가 아니었다. 베트콩 1개 연대 규모가 호이안을 점령하고 외곽지역을 공격했다. 남베트남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했다. 팜티깜은 돌아가려 해도 교통편이 없었다. 결국 정월 대보름 하루 전까지 계속 퐁넛에 눌러 있다가 화를 당한 셈이었다.
응웬전은 본래 설에도 고향에 내려가지 말자고 주장한 터였다. 목수 일로 가족을 먹여살려야 했다. 다행히도 일감은 밀렸다. 혼자는 감당할 수 없어, 둘째아들 응웬디엔록(15)에게 기술을 가르치며 함께 일했다. 설에 내려가 제사를 지내고 집 청소도 해야 한다는 부인 팜티깜의 고집을 꺾지 못한 것은 평생의 한이 됐다. 청소 일을 돕기 위해 응웬티탄이 따라나섰고, 젖먹이 응웬디엔칸을 돌봐주기 위해 응웬티흐엉도 함께 나서지 않았는가. 두 자매는 엄마와 함께 돌이킬 수 없는 길을 떠나고 말았다. 나머지 다섯 명의 남매가 모두 따라나서지 않은 것은 불행 중 천행이었다.
스트레스 표출? 고도의 전술?
응웬티바(17)는 다낭에 남아 무사한 남매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남매들 중에서 유일하게 아버지 응웬전과 함께 다낭병원을 찾아 언니 응웬티탄의 생전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다. 응웬티탄과는 두 살 터울로 가장 가까운 사이였다. 둘 다 초등학교를 다니다 말고 다낭으로 올라가 돈을 벌었다. 응웬티바는 건설현장에서 시멘트를 섞는 잡부로 일했다. 응웬티탄은 옷 만드는 일을 했다. 언니 응웬티탄은 통통한 몸매에 성격이 유순했다. 병으로 일찍 죽은 오빠 응웬디엔자이를 대신해 집에서 맏이 역할을 했다. 옷 만드는 기술을 지닌 터라 설 때마다 동생들 옷을 많이 만들어주었다. 1968년 설에도 응웬티탄은 응웬티바에게 설빔을 손수 만들어주었다. 하늘색깔 바탕에 꽃무늬가 있는 생활복이었다.
응웬티호아(13)는 아버지 응웬전과 언니 응웬티바를 따라 병원에 가보지 못했다. 줄곧 다낭의 집만 지켰다. 어리다는 이유로 평소에도 집안일만 했다. 학교는 다니지 않았다. 엄마와 언니와 동생들이 죽거나 다쳤다는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듣기만 했다. 언니 응웬티탄의 죽음이 가장 끔찍했다. 대부분 총을 맞았는데, 응웬티탄만 몸에 총상 대신 자상이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응웬티호아는 한국 군인이 언니를 칼로 공격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퐁넛촌의 사건 현장에서 응웬티탄은 무슨 일을 겪었을까. 한국군의 총격을 받고도 살아남은 쩐티투언(9)은 유일한 목격자였다. 쩐티투언은 총을 맞아 쓰러진 무리들 맨 밑에 깔렸다. 살았다. 정신을 차리고 기어나왔을 때 응웬티탄이 한국군들에게 희롱당하는 모습을 보았다. 쩐티투언은 “한국군이 응웬티탄 언니를 성폭행한다”고 생각했다. 응웬티탄의 윗옷은 찢겨져 있었다. 군인들이 손에 쥔 대검도 보았다. 응웬티탄의 집 바로 옆에서였다. 퐁니촌이 끝나고 퐁넛촌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주검이 무더기로 가장 많이 발견된 곳이었다(쩐티투언은 5년 전 세상을 떠났다).
퐁니·퐁넛촌에 진입했던 한국군 해병제2여단 1대대 1중대원들은 왜 그랬을까. 구정대공세 이후 계속된 정글 작전이 가져다준 누적된 피로감과 스트레스의 과잉 표출이었나. 전시에 처절하게 억눌려 있던 병사들의 욕망이 젊은 여성의 육체를 만나 선을 넘어버렸나. 성적 희롱을 넘어 대검으로 여성의 젖가슴을 엽기적으로 난자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젊은 여성의 몸을 유린해 그녀를 구하지 못한 마을의 남성들에게 극도의 모멸감과 수치심을 안기려는 고도의 전술이었나. 한국군에 대한 공포를 최고치로 끌어올려 베트콩의 사기를 꺾으려는 속셈이었나. 제주 4·3 항쟁 진압 과정에서 토벌대인 서북청년단원과 군경이 그랬던 것처럼, 제2차 세계대전 중 중국 난징의 일본군과 폴란드의 독일군이 그랬던 것처럼, 전쟁 또는 준전쟁 상황에서 성폭력은 의례적인 일이었을까.
그리고 광주. 1980년 5월18일. 그날 0시를 기해 대한민국에선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됐다. 광주시 북구 용봉로 전남대학교 정문 앞에서 공수부대원들의 무자비한 구타와 살상이 시작되었다. 공수부대원들은 18일, 19일 미친 듯 광주 거리의 시민들을 향해 곤봉을 내리치고 대검을 찍었다. 특히 19일 광주역 앞 분수대에서 여학생을 발가벗겨놓고 유방을 도려내 죽였다는 소문에 시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이는 훗날 <5월의 노래>라는 노래 가사에도 담겼다.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어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공수부대원들의 만행은 언론에 일절 보도되지 않았다. 그 공수부대의 상당수 장교와 부사관들은 베트남 파병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이들이었다.
사실로 드러난 흉흉한 소문
그보다 12년 전, 1968년 1월31일. 그날 0시를 기해 베트남공화국(남베트남)에선 계엄령이 전국에 선포됐다. 구정대공세를 벌인 북베트남과 베트콩에 대한 한·미·남베트남 연합군의 사상 최대 반격작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수도 사이공엔 24시간 통행금지령까지 떨어졌다. 한국군이 주둔한 호이안 인근 꽝남성에서도 ‘괴룡작전’이라는 이름의 구정대공세 반격작전이 진행됐다. 한국군 해병제2여단 3대대는 베트콩에 점령당한 호이안에 투입되었고, 나머지 대대는 외곽지역을 차단했다. 그리고 한 달 넘게 이 일대에서 무자비한 수색·소탕 작전을 벌였다. 특히 2월12일 퐁넛촌에선 한국군 해병대원들이 젊은 여성을 발가벗겨놓고 유방을 도려내 죽였다는 소문이 퍼져갔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미군 정보기관은 한국군 해병부대원들의 만행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지만, 언론의 접근은 차단됐다. 응웬티탄의 죽음이 한국인들에게 처음 알려진 것은 그로부터 광주항쟁까지 12년이 지나고도 20년이 더 흐른, 32년 뒤인 2000년이었다
노래출처: 광주 지인의 다음 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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