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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7.7 경향 장도리
일본의 군사대국화 도와주는 한국? 711 프레시안
[정욱식 칼럼] 지금이 한미일 군사훈련 할 때인가
한미일 3국이 7월 21~22일 제주 남방해상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키로 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미 해군 7함대 소속 항공모함인 조지워싱턴호(9만 7000톤)를 비롯해 세 나라의 함정과 항공기가 참여하는 수색·구조(SAREX: Search and Rescue Exercise) 훈련을 열기로 한 것이다.
한미일 수색·구조 훈련은 2012년부터 매년 실시되고 있다.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훈련은 '인도적 목적'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인도주의의 탈을 쓴 3각 군사동맹 훈련'이라고 본다. 실제로 세월호 참사에서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근거들이 있다.
먼저 이 훈련이 실시되게 된 배경이다. "뼛속까지 친미·친일"이라던 이명박 정부의 출범은 미국과 일본에게 한미일 3각 동맹을 추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간주됐다. 문제는 한일군사협력에 대한 한국인들의 거부감이었다. 그래서 나온 게 바로 인도적 목적이었다. 2009년 4월 한미일 3자 대화에 참석한 다카미자와 노부시게 방위성 국장의 말이다. "재난 구호 및 유엔평화유지 활동 등을 통해 한일 사이의 냉랭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파견 문제를 협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인도적 훈련의 목적이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투입을 염두에 둔 사전 정지 작업이라는 의도를 분명히 한 것이다.(☞관련 기사 보기 : 한미일, 재난 대비하기 위해 함께 훈련한다더니···)
실제로 한미일 3자 군사훈련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에 단계적으로 강화되어왔다. 2010년 한미 훈련에는 일본 자위대 장교가 참관했고 미·일 훈련에 한국군 장교도 참관한 것이 시발점이었다. 2011년에는 해방 이후 최초로 일본 자위대 함정이 부산항에 입항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2년부터는 매년 두 가지 훈련이 실시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수색·구조 훈련이고, 또 하나는 '태평양의 용(Pacific Dragon)'이라는 3자 해상 미사일 방어(MD) 훈련이다.
또한 훈련에 투입되는 군사력과 훈련 내용 자체가 인도적 목적과는 거리가 멀다. 이 훈련에 투입되는 군사력은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과 한미일의 이지스함이 주축이다. 항공모함은 '떠다니는 군사기지'이다. 이지스함은 항모 전단 보호 및 상륙작전 지원, 그리고 해상 MD가 핵심 기능이다. 수색·구조와는 거리가 먼 전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들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 합참 관계자는 "해상기동 및 항공모함 호송작전, 항공기 요격훈련 등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훈련 내용은 적대국의 반접근 전략을 무력화하기 위한 성격이 짙다. 실제로 미·일 동맹의 최근 핵심적인 목표는 중국의 반접근 전략을 뚫는 데에 두고 있다.
훈련 지역도 민감한 곳이다. 제주 남서쪽 해상은 중국 심장부로 가는 관문(choke point)이자 중일간에 영토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동중국해와 가까운 곳이다. '배밭에서 갓끈을 고쳐매지 말라'고 했는데, 중국이 극히 민감하게 여기는 지역에서 한미일 군사훈련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또한 제주 강정마을에 건설되고 있는 해군기지 앞으로 어떻게 사용될지에 대한 암시도 주고 있다. 제주해군기지가 완공되기 전에는 미국이 부산항을 주로 기항지로 사용하지만, 제주기지가 완공되면 강정마을로 기수를 돌릴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이런 훈련이 연례적이고 통상적으로 반복되다보면 한미일 3국이 집단적 자위권을 공유하는 날도 멀지 않게 될 것이다.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일본인 구조를 명분으로 진출하려는 것도 막기 힘들어질 것이다. 훈련을 함께 해놓고 반대한다는 게 극히 어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한심스러운 것이다. 말로는 집단적 자위권에 난색을 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 군국주의의 최대 피해자인 한국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돕고 있는 이 기막힌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중국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 박근혜 정부 7.10 프레시안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시진핑 방한이 남기고 간 'G2시대 생존법'
한바탕 큰 태풍이 지나간 느낌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방한으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더니 이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시진핑 방한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고 갔을까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때다.
이번 시진핑 방한 기간 양 정상은 성숙한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하면서 주로 정치안보 분야와 경제 분야, 인적·문화적 교류 분야에서 구체적 사업들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북핵 문제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 의제 면에 있어서 이번 시진핑 방한은 당초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경제, 인적·문화적 교류 분야에서는 다양하게 수확한 반면, 정치외교 분야에서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고 오히려 서로의 입장 차를 확인하는 실망스런 회담이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 박근혜(오른쪽)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신원롄보(新闻联播)에 나타난 중국의 본심
이번 정상회담이 순탄치 않았다는 것은 무엇보다 양국이 발표한 공동성명 및 그 부속서의 합의 내용, 그리고 양 정상의 공동기자회견 발언 및 중국 관영 언론의 보도 내용 등을 입체적으로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3일 오후 한중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 양국 정상은 청와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을 공동성명의 형식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중국에서는 대표적 관영 언론인 <신원롄보(新闻联播)>가 첫 뉴스로 한중 정상회담 관련 보도를 내보냈다. 그런데 의아했던 것은 이 보도 내용 중에는 공동성명이나 공동 기자회견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원롄보(新闻联播)>는 시진핑 주석이 정상회담 자리에서 양국이 몇 가지 방면에 중점을 두어 노력을 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하면서 그중 하나로 "내년은 세계의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이면서 중국의 항일전쟁승리 및 조선(한)반도의 광복 70주년이기도 하다. 양국은 (공동)기념 활동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언급했음을 밝혔다.
공동성명에는 포함되지 않은 내용이 중국 관영언론에서는 강조됐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공동성명은 양국 정상이 합의한 내용만을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 양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국익의 마지노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반면, 중국에서 관영 언론은 당과 정부의 방침을 따르는 선전도구로서 중국 당국이 강조하고 싶은 내용들이 담기게 된다. 즉, 중국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국에 내년에 항일 기념활동을 공동으로 진행할 것을 제안했지만, 한국이 이를 부담스러워해 결국 공동성명에는 넣지 못했다고 추론할 수 있다. 한국이 무엇을 부담스러워 했을지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문제는 이런 정황이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 곳곳에서 나타났다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의 방한 전부터 민감한 의제가 될 것이라고 점쳐졌던 한국의 아시아기초시설투자은행(AIIB) 가입 문제가 공동성명이나 공동기자회견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지만, 마찬가지로 중국 관영언론에서는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보도됐다. <신원롄보(新闻联播)>는 "중국은 아시아기초시설투자은행(AIIB) 및 아태자유무역지대(FTAAP) 건설 등 방면에서 한국과 협력을 강화하길 원한다", "한국은 중국이 제안한 아시아기초시설투자은행 건설에 대해 높이 평가하며, 중국과 관련 사안에 대해 계속 소통해 나가기를 원했다"라고 공개한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정부가 가장 공을 들였던 북핵문제와 관련해서다. 청와대 및 정부는 공동성명에 담긴 "양측은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개발에 확고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는 내용을 강조하며 사실상 중국이 지금까지 가장 높은 수위로 북핵 반대를 천명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공동기자회견에서 "오늘 회담에서 두 정상은 북한의 비핵화를 반드시 실현하고 핵실험에 결연히 반대한다는데 뜻을 같이 하였습니다"라고 북한을 특정하여 비판했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은 공동기자회견에서 기존대로 "한반도의 비핵화"만을 언급했으며, 6자회담 재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게다가 그날 저녁 중국 관영언론에서는 시진핑 주석이 "중국은 조선(한)반도 문제에 있어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조선(한)반도 비핵화 목표 실현을 위해 견결히 노력할 것이고, 조선(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기 위해 견결히 노력할 것이며,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견결히 노력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즉, 우리 사회 내부에서 시진핑 주석이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하는 것에 대해 흥분하며, 이번 방한 기간 중국이 북핵 문제에 대해 강경한 메시지를 나타낼 수 있다고 잔뜩 기대했지만 결과는 빗나갔다. 이 대목은 우리 사회에 두 가지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나는 우리가 중국의 힘을 빌려 북핵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의존성이 다시 한 번 드러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아직 중국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질의응답 없는 기자회견
이 밖에도 공동성명과 기자회견 내용, 그리고 중국 관영언론의 보도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면 이번 한중 정상회담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는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이 없었던 공동기자회견이 아닐까 싶다.
청와대의 설명에 따르면 정상회담이 길어져서 기자회견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중 사이에 중요 현안이 이렇게 많은데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황당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혹시 민감한 질문에 답변하기가 곤란했던 것은 아닐까? 기자들로부터 북핵문제라든지, 일본 우경화, AIIB 가입 문제 등등 민감한 질문을 받을 것이 예상되었지만 이에 대해 한중간에 뚜렷한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황에서 대답하기가 곤란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흔은 남았지만, 어쨌든 G2시대의 큰 태풍 하나가 지나갔다. 하지만 걱정되는 것은 곧 제2, 제3의 태풍이 다가올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 태풍을 계기로 우리가 무엇을 바로잡아야 할지 숙고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주 외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 '균형', '중립'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나 이론은 쉽지만 실천이 어렵다는 게 문제다. 우리 사회에서 자주나 중립을 주장하면 반미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군부는 미국 쪽으로, 재계는 중국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것도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다. 북한을 실질적인 '적'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미국에 군사적으로 의존해야 하고, 중국의 대북 영향력으로 뭔가 해보려고 망상에 빠져있는 것 아닌가. 북한과의 관계가 멀어질수록 우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더 많은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이번 시진핑 방한이 우리에게 남기고 간 가장 큰 교훈은 "시급한 남북 관계 개선"이 아닐까?
구체화돼 가는 ‘박근혜 파라독스 ’미디어오늘 957호 사설
염치(廉恥)를 모르면 저잣거리에서도 제대로 된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법이다. 하물며 나라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장관이나 고위공직자가 염치를 모르면 시쳇말로 볼 장 다 본 것이다. 지금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사청문회에 나온 박근혜 정부의 고위공직 후보자들은 염치없고 뻔뻔한 사람들만 모아놓은 전시장 같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래서 ‘인사가 만사(萬事)’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실상은 ‘인사가 망사(亡事)’가 된 지 오래다. ‘혹시나’ 했던 이번 고위공직 후보자들의 행적이나 태도를 보면, 이전보다 나아지기는커녕 훨씬 더 심각한 무자격자들뿐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청와대와 집권당이 청문회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집권세력이 문제있는 인사들을 걸러내기 위해 도입한 청문회의 취지를 부정하고, 비리, 부패와 불법행위 등을 은폐, 엄폐하려는데 급급한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누구보다도 박근혜 대통령한테 가장 위험천만한 일이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실패의 길을 가고 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는 셈이다. 박 대통령의 실패는 박근혜 한 사람의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과 후유증을 두고두고 남기게 돼 있다. 국민들이 박 대통령에게서 실낱같은 희망의 끈이라도 발견하려면, 무엇보다 박 대통령이 솔직해져야 하는데, 여러 징후들은 앞뒤가 꽉 막힌 첩첩산중 격이다.
세월은 빠르다. 이대로 가면, 박근혜 대통령은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아무것도 못하고 임기가 끝난다. ‘박근혜의 역설’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정치인 박근혜는 국리민복을 위해 대통령이 되려고 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박근혜의 안중에 국민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많은 국민들이 독재자로 기억하는 아버지 박정희를 ‘신(神)’으로 생각하는 딸의 입장에서 제대로 평가받도록 하기 위해 간난신고를 무릅쓰고 대통령이 되었는데, 박근혜 자신이 실패한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치며 ‘부녀 대통령의 역사적 청산’이 완성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이것이 박근혜의 파라독스다. 문제는 멍청한 제1야당과 지도부다.
박효종, 박근혜 정권 역사쿠데타의 첨병 711 미디어오늘
[언론포커스]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왜곡된 역사인식, 왜 문제인가?
박효종이라는 인물이 지난 6월 신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 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서울대 윤리교육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뉴라이트의 간판 노릇을 하고 가끔 TV토론에 나와 이명박 정권을 편드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2012년 대선 직후 박효종은 갑자기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위 간사라는 중책을 맡았기 때문이다. 급기야 2014년에는 방송통신정책의 중추를 이루는 방심위의 수장 자리를 꿰찬 것이다. 박효종이 3기 방심위 위원장으로 내정되었다는 소식이 처음 알려졌을 때부터 박효종의 정체를 아는 사람들은 ‘이제 방송이 이명박 정권 때보다 더한 막장의 끝을 향해 달려가겠구나.’ 하고 우려했었다.
3기 출범하자마자 편향적 심의
박효종의 3기 방심위는 출범하자마자 ‘KBS의 문창극 보도’에 대해 방송의 공정성을 어겼다며 심의에 들어갔다. 문창극이 누구인가? 일제 식민통치와 분단체제를 “하나님의 뜻”이라는 황당한 논리로 정당화하는 반민족적 언사를 늘어놓다가 국민의 저항에 부딪혀 국무총리 자리에서 스스로 사퇴한 인물로 국민들은 이제 확실하게 알고 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문창극이 국무총리는커녕 국민으로서의 기본 자격이 의심되는 3류 극우 언론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것이 KBS의 ‘문창극 강연 동영상’ 보도였다. 이 보도를 통해 문창극의 민낯을 알게 된 사람들은 KBS가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공영방송의 역할을 했다고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박효종의 3기 방심위는 대다수 국민들의 상식과 어긋나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
결국 박근혜정권이 왜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박효종을 방심위 위원장으로 밀어붙였는지 입증되는 데 채 한 달도 걸리지 않은 셈이 됐다. 지금 박근혜 정권은 오로지 짧게는 친일·독재를 정당화하는 역사쿠데타에, 길게는 그러한 쿠데타를 통한 보수정권 장기집권에만 몰두해 국민들의 의사가 어떤지는 아예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작년 9월부터 논란이 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사태에서 박근혜정권이 교육부를 앞세워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를 준국정 교과서로 밀어붙인 것도 역사쿠데타의 일환이다. 교학사 교과서가 시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사실상 채택률 0%라는 참패를 당하게 되자 부랴부랴 유신체제 아래 역사교육을 정권의 도구로 삼기 위해 도입되었다가 폐지된 국정교과서 제도를 부활시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방송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방심위는 “방송 내용의 공공성 및 공정성을 보장하고 정보통신에서의 건전한 문화를 창달하며 정보통신의 올바른 이용환경 조성을 위하여 독립적으로 사무를 수행하는” 국가기구이다. 방심위의 존재이유는 방송의 공공성 및 공정성을 보장하는 데 있다. 박근혜정권이 입만 열면 강조하는 법에 그렇게 명시되어 있다. 당연히 방심위 위원은 물론이고 특히 위원장은 방송의 ‘공공성 및 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박효종은 그러한 가치와는 무관한, 아니 ‘공공성 및 공정성’을 훼손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그런 인물을 방심위 위원장으로 앉힌 이유는 분명하다. 방심위를 내세워 방송을 장악함으로써 공중파 방송과 종편 방송을 역사쿠데타의 도구로 삼겠다는 것이다. 방심위의 수장이 된 박효종이 지난날 보인 행적이 이를 잘 보여준다.
색깔론으로 무장한 뉴라이트의 핵심… 외눈박이 역사인식 강요
박효종은 교학사 교과서의 배후인 뉴라이트의 핵심 인물이었다. 박효종이 회장으로 있던 교과서포럼은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경제 교과서가 좌편향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색깔론을 내세워 역사교육의 현장을 이념전장으로 만든 단체이다. 실제로 박효종은 친일과 독재를 미화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펴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는 이 책의 후신이라고 할 수 있다. 박효종은 심지어 2005년 한 논문에서 기존의 독립운동사 연구를 ‘편협한 민족주의’에 입각한 것이었다고 비판하고 “일본 육사를 나왔다고 하더라도 나라를 중흥시켰으면 민족주의자”라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음으로써 민족, 민족주의, 독립운동에 대한 전도된 의식을 고취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친일군인이던 박정희에게 민족주의자라는 명예를 얹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5·16 군사쿠데타에 대해서도 혁명으로 볼 수 있다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다. 2012년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5·16군사쿠데타를 “쿠데타이기도 하고 혁명이기도 하다”고 평가한 것이 대표적인 보기이다. “민주주의에도 경제적인 토대가 필요한 데 5·16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두터운 중산층이 출현했고, 이들이 민주주의의 등뼈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박효종이 말하는 5·16혁명론의 핵심이다. 결국 국민을 잘살게 했으니 박정희야말로 민족중흥의 혁명가라는 것이다.
친일·독재세력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박정희를 민족주의 혁명가로 화려하게 복권시키려는 박효종은 박근혜정권의 대표적인 어용학자일 뿐이다. 박효종의 주장이 맞다면 일제에 맞서 독립을 이루려고 한 독립운동세력, 군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려고 민주화운동세력은 모두 졸지에 ‘반민족주의자’가 되고 만다. 현행 헌법에서는 대한민국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했다고 명기되어 있다.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가능하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치학 전공자인 박효종은 뉴라이트에 속한 인물들이 다 그렇듯이 역사에 대해 무지하면서도 외눈박이 역사인식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만용을 저질러 왔다. 따라서 이제 방송심의에도 외눈박이 역사인식이 강요될 것이다. 방송 전파는 특정 개인과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다. 정권 차원에서 방송을 좌지우지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은 친일파와 그 후신인 독재세력을 역사적으로 복권시키겠다는 망상을 갖고 있다. 그리고 박효종은 기꺼이 그러한 망상의 하수인이 되려는 모양이다.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 18호’에서 발췌했습니다
‘공천 파동’ 역풍? 동작을 나경원 지지율 52% 711한겨레
한국일보 여론조사 결과 기동민 22.3%, 노회찬 14.1% 순
양자대결에서도 50% 이상 압도적 지지율로 1위 수성
순천·곡성 이정현 후보 30.5% 지지율로 선전
새정치민주연합이 공천 파동을 겪으며 7.30 접전지역인 서울 동작을에서 새누리당 나경원 후보가 크게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일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관심지역인 서울 동작을에서 나경원 후보가 51.9%를 얻어 새정치 기동민 22.3%, 정의당 노회찬 14.1%를 크게 앞섰다. 나 후보는 양자대결에서도 50% 이상의 지지를 얻어 우세했다.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가 나선 순천·곡성은 이 후보가 30.5%로 새정치 서갑원 42.4%에 뒤지고 있지만 50대 이상에서는 이 후보가 44.0%로 37.1%를 얻은 서 후보를 앞섰다. 이 후보는 또 본인 고향인 곡성에선 64.7%의 높은 지지를 얻었다.
선거 초반 새정치가 공천 홍역을 겪으며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되며, 새정치는 비상이 걸렸다. 당초 재보선 선거 우세를 점친 새정치는 지지층 이탈을 우려하는 분위기이고, 새누리당은 승리 가능지역을 늘려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배지 출신 장관 낙마는 왜 제로인가 주간힌국 711
'가재는 게 편' 의원 출신 28명 전원 통과
'가재는 게 편이요, 초록은 한빛이라.' 형편이 서로 비슷하고 인연이 있는 사람끼리 잘 어울리고, 서로 사정을 봐 주며 감싸 주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요즘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 결과를 보면서 이같이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7일부터 나흘 동안 진행된 박근혜 정부 2기 내각 장관급 후보자 8명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 결과 현역 국회의원인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보고서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통과됐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는 9일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여가위 보고서는 "김 후보자는 주요 경험을 바탕으로 장관으로서 직무수행 능력에 별다른 문제점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도덕성과 관련해 여러 문제들이 지적됐으나 후보자가 사과하고 사후 처리를 약속했으므로 향후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국회 기획재정위도 10일 여야의 다른 의견을 모두 담아 청문 보고서를 채택했다. 이 보고서에서 새누리당은 '적격' 의견을, 야당은 '부적격' 의견을 냈다.
두 후보자의 청문 보고서가 채택됐으므로 박근혜 대통령은 곧바로 두 의원을 장관으로 임명할 수 있다. 8명의 후보자 중 5명의 청문보고서가 채택됐으나 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와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은 사실상 무산됐다. 보고서 채택이 무산된 세 후보자는 모두 국회의원 출신이 아니다.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은 장관 후보자 2~3명의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10일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을 만났을 때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후보자를 재고해 주기 바란다"면서 김명수, 정성근 두 후보자를 구체적으로 거명했다.
국회의원 출신이 아닌 6명 가운데 절반이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가운데 국회의원 출신 2명은 쉽게 허들을 통과하자 '금배지(국회의원) 출신 장관 후보자 전원 통과' 현상이 계속 이어지게 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의원 출신의 불패 신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 인사청문회를 거친 국무위원들 가운데 국회의원 출신은 26명 전원이 통과했다. 김대중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이한동 전 의원을 시작으로 지난 3월 해양수산부 장관에 오른 이주영 새누리당 의원까지 단 한 명도 떨어지지 않았다. 이번에 통과한 최 후보자와 김 후보자까지 합치면 28명이 관문을 통과하게 되는 셈이다.
반면 현재까지 국회의원 출신이 아닌 국무총리·장관 후보자 가운데 14명이 낙마했다. 장상 전 총리 후보자를 시작으로 역사관 논란으로 청문회 전에 사퇴한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까지 낙마자 전원이 국회의원 출신이 아니었다.
그러면 왜 국회의원들은 인사청문회에서 '과락'을 면할까. 이에 대해 정치권 관계자들은 "대다수 국회의원들은 선거에서 1차 검증을 받았기 때문에 장관 부적격 사유가 될 정도의 큰 의혹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번에 논란이 된 김명수, 정성근, 정종섭 후보자들의 의혹이 의원 출신들의 문제점보다 상대적으로 컸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같은 주장은 완전히 틀린 얘기는 아니다. 논문 표절, 연구비 부당 수령(이상 김명수 후보자) 아파트 실거주 문제에 대한 위증 논란, 음주운전(이상 정선근 후보자) 부동산 투기 의혹과 군복무 중 석박사 과정 이수(정종섭 후보자) 등 제기된 의혹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국회의원 도덕성의 '상대적 우위'로만 설명하는 것은 부족하다. 오히려 국회의원들이 여야를 떠나 동료 의원들에 대해 '현관 예우'를 해 줬다고 보는 게 맞는 분석이다. 국회의원 출신이 아닌 각료 후보자들을 겨냥해서는 보통 본인과 가족까지 포함한 엄격한 도덕성 검증의 잣대가 적용되는 것과는 달리 의원 출신 후보자에게는 상대적으로 '솜방망이' 검증을 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실제 김 후보자와 최 후보자는 이미 공개된 의혹 이외에는 강도 높은 도덕성 추궁을 받지 않았다. 과거 보수·진보 정권에서 의원 출신 장관이 모두 패스했던 점을 감안한다면 앞으로도 금배지들의 낙마는 쉽게 볼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권은희 출마가 아름답지 않은 까닭 2014-07-09 CBS노컷뉴스
수도권의 호남 출신들, "권은희, 잘한 공천 아니다"
권은희 전 관악경찰서 여성청소년과장 (자료사진)
국정원의 대선 개입 댓글 사건을 폭로한 권은희 전 관악경찰서 여성청소년과장이 당초 밝혀온 불출마 입장을 바꿔 출마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전략공천을 두고 새 인물의 수혈론과 국정원 선거 폭로 정당성의 훼손이라는 등의 논란이 심하다. 권 전 과장은 지난달 30일 사직하면서 언론사에 "7·30 재보선 출마에 관한 고려는 전혀 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열흘만에 입장을 바꿨다. 새정치민주연합과 주변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한 것이다. 그는 불출마 입장을 번복한 데 대해 "주변에서 이번 결정으로 국정원 사건 외압 의혹의 진실을 밝히려고 한 그동안의 노력과 나의 진정성이 훼손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 역시 고민을 많이 했지만 이런 염려만 하는 게 진실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출마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직 끝나지 않았고 해야 할 일이 남았다는 것, 그리고 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출마를 결심한 결정적 이유"라고 강조했다. 권 전 과장은 "지금껏 걸어온 길로 쭉 걸어가서 진실을 밝히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며 "그 과정에서 나오는 우려나 비판을 피하진 않겠다"고 말했다.
나름의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음을 내비쳤다. 새정치연합의 한 고위 관계자도 "권 전 과장은 수차례의 출마 요청에도 거절할 만큼 정치에 거리를 두려고 했다"며 "권 전 과장을 설득하는데 아주 힘들었다"고 말했다.
권은희 전 과장은 2013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수사 외압을 폭로해 화제가 된 인물이다. 2012년 대선 당시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었던 그는 국정원의 대선개입 수사에 대해 외압이 있었다며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이 수사 축소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김 전 청장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으나 1심에 이어 지난 5일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고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권 전 과장은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2심에서까지 무죄 선고를 받자 심한 갈등을 했고 국정원 댓글 사건의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 김용판 무죄가 권은희를 정치판으로 몰아간 것
결국 이것이 경찰직을 던지고 정치권으로 그를 이끈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그의 출사표처럼 "해야 할 일, (댓글 사건과 김 전 청장의 수사 방해) 진실을 밝히는 일"을 하는 데 국회의원만큼 적격인 직업은 없을 것이다.
그를 지지하는 '권은희와 함께 하는 시민행동' 등 권은희 지지모임은 성명을 내고 7.30 재보궐 선거 출마를 요구했다. 시민행동 측은 "권은희 수사과장은 용기 있게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에 축소, 은폐 압력이 있었다고 양심선언을 한 뒤 무소불위의 국가기관에 맞서 싸웠다" 며 "우리 모두는 권 과장의 정의감에 환호만 했을 뿐 어느 누구도 지켜주려 하지 않았다"며 그녀에 대한 지지를 강조했다.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은 "누가 의인인지, 시민의 직접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며 권 전 과장의 출마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소설가인 공지영과 표창원 교수도 "아름다운 사람 권은희, 영원한 수사과장"이라고 하는 등 여론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유명인들도 권 전 과장의 경찰 사퇴에 대해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부 누리꾼들은 "권 전 과장을 7.30 후보로 모셔야 한다. 국회에서 일하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나타내기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으로서도 권은희 전 과장만큼 지명도가 있고 새 인물이 없기에 권 전 과장의 영입에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권은희 카드는 무소속 출마라는 배수진을 치고 있는 천정배 전 의원을 주저앉히는데 최상의 대안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김한길 대표도 "천정배 전 의원의 무소속 출마가 상당한 부담이었다"고 말했다.
◈ 천정배가 권은희 공천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천 전 의원은 권 전 과장을 전략공천하자, "잘 한 결정으로 축하한다"며 광주 출마를 접었다. 지난 9일 광주일보 여론조사에서도 권 전 과장에 대한 선호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왔다. 광주 광산을에서 예비 후보로 등록하고 표밭을 누볐던 김명진 전 새정치연합 원내대표 비서실장은 권은희 공천에 대한 입장이라는 글을 통해 "권은희 전 과장은 진실을 밝히는 용기와 정의감을 가진 참신한 인물로 광주시민들이 환영할 만한 좋은 후보"라며 박수를 보냈다.
광주시민들의 새 인물에 대한 선호 성향을 정확하게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이번 재보궐 선거가 광주에서만 있는 게 아니고 서울 동작을과 경기도 수원 등 전국 15군데에서 동시에 치러진다.
야당과 진보적인 성향의 유권자들에게는 권은희 과장의 진실 규명을 위한 용기와 정의감에 박수를 보내겠으나 중도 성향이거나 비호남 유권자들 보기엔 권 전 과장의 광주 출마가 별로 좋아 보이질 않는다는 의견도 상당하다. 한 경찰 간부는 "권 전 과장이 야당의 출마 권유를 뿌리치고 댓글 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해 시민단체와 노력한 뒤 2016년 총선에 출마했으면 모양새가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호남 출신인 50대 직장인은 "권은희를 공천해 광주에 출마시키는 것이 동작을과 경기 수원 선거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며 "오히려 그가 호남 출신이니까 김용판 전 청장의 수사 방해를 폭로한 것 밖에 더 되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40대 직장인(광주 출신)은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새정치연합의 지도부가 참으로 한심하다"며 "이렇게 좋은 판을 왜 호남의 굴레 속으로 빨려들어가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오히려 수도권에 사는 호남 출신들이 권 전 과장의 광주 광산을 전략공천에 대해 비판적이다.
균형감각 상실 MBC, 김기춘엔 ‘벌벌’ 권은희엔 ‘맹공’ 711 미디어오늘
[비평] 김 실장 국조특위 발언, 달랑 20초…“재보선에 영향 미치려는 의도”
20초. MBC ‘뉴스데스크’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뉴스에 할애한 시간이다. 김 실장 관련해서 MBC는 지속적으로 소극적인 보도로 일관했다. 여타 언론사가 그의 발언을 따로 뽑아내 분석과 전망하는 기사를 쏟아 낸 것과 비교하면 MBC는 극도로 윗선 눈치를 보고 있다.
10일도 그랬다. 이날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 기관보고에 출석했고, 방송사 메인뉴스는 김 실장의 발언을 주목했다. KBS ‘뉴스9’은 9번째 뉴스 <김 실장 “靑, 재난 컨트롤타워 아니다”>에서 “대통령이 구조를 지금 하는 분은 아니다. 현장에서 구조하시는 분이 가장 효과적으로 해야 된다. 해경이 깨고 들어가서 학생들 나가라 하고 이렇게 해야지 대통령이 구조를 하는 분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한 김 실장 발언을 보도했다.
▲ 주요 방송사 10일자 리포트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KBS, MBC, JTBC, SBS)
SBS ‘8뉴스’는 <김기춘, “靑, 재난 컨트롤타워 아니다”>에서 세월호 참사 컨트롤 타워에 대해 “청와대가 다 지휘하지 않느냐는 뜻에서 그런 말씀이 나온 걸로 봅니다만, 재난 종류 따라서 지휘하고 통제하는 곳은 다르다”고 발언한 김기춘 실장 발언을 보도했고, JTBC ‘뉴스9’ 역시 6번째 뉴스 <“대통령이 구조하는 분은 아니지 않나”>에서 “야당 의원들의 공세는 처음부터 김기춘 비서실장에 집중됐다. 세월호 사고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소재지를 추궁하며 청와대 책임론을 제기한 것”이라고 밝히며 김 실장의 발언을 주목했다.
KBS가 1분 38초, SBS가 1분 47초, JTBC가 1분 49초를 할애해 김 실장 발언과 국조특위 소식을 전했지만 MBC는 관련 뉴스를 달랑 ‘20초’ 보도했다. 이날 국조특위에서 나온 내용은 대통령 비서실이 세월호 침몰사고 국면에서 어떻게 정보를 받고, 전달했는지 파악할 수 있는 매우 중차대한 문제였지만 MBC는 이에 대한 정보를 누락하며, 철저하게 권력을 비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MBC는 3번째 뉴스 <청와대, 세월호 국정조사 보고>에서 “오늘 열린 세월호 국정조사 기관보고에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재난안전관리기본법에 의하면 재난의 최종 지휘본부는 중앙재난대책본부’라고 말했다”며 “김 비서실장은 ‘청와대는 국정의 중심이기 때문에 일반적 의미에서 컨트롤타워라고 할 수 있지만 법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여야 의원의 공방마저 배제한 채 김 실장 발언만 받아쓴 것이다. 20초. 이것이 MBC 뉴스 전부였다.
MBC는 지난 7일에도 “인사가 잘되고, 못되고 하는 책임은 전적으로 인사위원장인 비서실장에게 있다”고 말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뉴스를 30초 단신으로 뉴스 말미(25번째)에 보도한 바 있다. MBC는 대신 새정치민주연합이 광주 광산에 전략공천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과장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했다.
▲ MBC 10일자 권은희 전 과장 관련 보도
MBC는 <권은희 공천 ‘정치적 보상’ 논란>(4번째), <‘외압’ 폭로 법원 “사실 아니다”>(5번째)에서 이 소식을 다루었다. 김 실장을 보도할 때와 다른 강도로 새누리당 의원들의 주장을 인용하며 권 전 과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MBC는 <‘외압’ 폭로 법원 “사실 아니다”>에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2심 재판부의 판결을 전하면서, 국정원 직원 선거개입에 대한 수사와 관련해 “김 전 청장의 외압이 있었다”는 권 전 과장의 주장이 거짓말에 불과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당시 이 법원 판결은 논란의 대상이었다. 법원이 수사 과정에서 축소·은폐가 있었는지 따져 보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았고, 대선 직전 경찰의 수사 발표가 허위였는지 판단을 하지 않은 채 권 과장과 검찰 주장을 배척했다는 비판이 거셌다. 그런데도 MBC 박용찬 앵커는 “그렇다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다는 권은희 전 과장의 주장은 실체가 있는 것일까. 그동안 숱한 논란이 있었는데 1심과 2심 재판부는 권 전 과장의 증언을 신뢰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며 이 리포트를 소개했다.
김동찬 언론연대 기획국장은 11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세월호 관련 김기춘 실장의 발언은 축소하면서 권은희 전 과장에 대한 비판 리포트를 두 꼭지 할애했다는 점은 MBC가 뉴스가치를 잘못 판단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며 “의도적으로 특정 이슈를 키워 7·30 재보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김 국장은 “권은희 전략공천 논란은 언론이 비판적으로 다룰 수 있는 부분”이라면서도 “사회적 논란이 컸던 ‘김용판 재판’ 판결의 맥락과 모순점을 배제한 채, 권 전 과장의 주장을 거짓말이라고 낙인찍는 건 언론이 보여줘야 할 균형성 있는 모습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지상파에서 장관 후보자 검증 보도가 증발했다 7.8 미디어오늘
[비평] JTBC와 차이 보이는 지상파… MBC만 김기춘 발언 단신 처리
지난 7일부터 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를 비롯해 7개 부처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진행되고 있지만, 지상파 3사 메인뉴스의 후보 검증 보도는 여전히 JTBC에 비해 부실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주말이었던 5일부터 7일까지 지상파 3사가 내보낸 청문회 소식은 8건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새롭게 검증한 보도는 1건(KBS)뿐이었다. KBS ‘뉴스9’은 지난 6일 2번째 리포트 <부수입 수천만 원 소득 신고 누락>에서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가 급여 외 소득 가운데 연구비 3천 8백만 원을 국세청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 KBS 6일자 보도 (사진=KBS)
KBS는 “정 후보자가 지난 2011년부터 장관 내정 전까지 사단법인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겸임 연구원을 지내며 매달 백만 원씩 모두 3천 8백만 원을 연구비 명목으로 받았다”며 “하지만 이 소득을 국세청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리포트는 장관 후보자 검증 차원에서 유의미한 것이었지만 지상파 3사의 나머지 보도는 여‧야 공방을 담는 것에 그쳤다.
반면 JTBC는 같은 기간 총 6건을 보도했다. 이 가운데 2건은 단독보도였다. JTBC는 지난 5일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존재하지 않는 ‘유령 논문’을 저명 학술지에 실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가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며, 대외활동으로만 3억 5천만 원에 달하는 수입을 거뒀다고 밝혔다. (기사 링크)
▲ MBC 7일자 보도 (사진=MBC)
지상파 3사 가운데서도 MBC가 가장 소홀했다. MBC는 7일 ‘뉴스데스크’ 톱뉴스에서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와 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 청문회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제목을 <인사청문회 시작부터 험난>이라고 뽑는 등 여권 편향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뿐만 아니다. 7일은 “인사가 잘되고, 못되고 하는 책임은 전적으로 인사위원장인 비서실장에게 있다”고 말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화제였다. KBS와 SBS는 정치 톱뉴스로 다뤘지만, MBC는 관련 소식을 30초 단신으로 뉴스 말미(25번째)에 보도했다.
MBC는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국무총리 후보자의 잇따른 낙마 등 최근 인사 문제와 관련해 ‘책임은 전적으로 인사위원장인 비서실장에게 있다’고 말했다”며 “국회 업무보고에 출석한 김 실장은 인사문제에 대한 야당 의원 질문에 이같이 답하고, 비선라인 존재에 대해서도 ‘누군가 악의적으로 언론에 만든 얘기라면서 실체는 없다’고 일축했다”고만 했다. 다수 언론이 낙마한 국무총리를 포함, 청와대의 부적절 인사 지명에 대해 김 실장의 책임을 강하게 물었지만 MBC는 해당 뉴스를 단신처리하며, 여론을 왜곡하는 추태를 다시 한 번 드러낸 셈이다.
유우성 간첩보도’ TV조선·채널A 법정으로 7.7. 미디어오늘
언론인권센터, 간첩혐의 무죄 받은 유씨 왜곡 보도한 언론사 상대로 3억 6천만 원 청구
언론인권센터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의 피해자 유우성씨를 왜곡보도 한 조선닷컴·동아일보․TV조선·채널A 등 언론사에 정정보도 및 3억 6천 만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언론인권센터는 7일 보도자료를 내고 “유우성씨에게 심각한 2차 피해를 입혔다고 판단해 피해자를 대신해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유우성씨의 간첩혐의는 1심과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은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증거를 조작해 유우성씨가 마치 탈북한 뒤 대한민국에 정착해 중국과 북한을 드나들며 북한 보위부에 탈북자에 관한 정보를 전달했다는 ‘이중 간첩’ 혐의를 씌운 사건이다. 지난해 2월 유우성씨는 구속 기소됐으나 그해 8월 법원은 유씨의 간첩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항소심 과정에서 국정원이 유씨의 중국출입기록을 위조해 법원에 제출한 것이 드러나 증거조작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 4월 항소심 재판부 역시 유씨의 간첩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언론인권센터는 “1심 판결에서 유우성씨에 대한 간첩혐의에 무죄선고가 났음에도 조선일보 외 3개 신문사와 TV조선․채널A는 지속적으로 ‘유씨가 북한에 남한 내 탈북자 정보를 전달하였다’, ‘(전달을 염두에 두고) 남한 내 탈북자 정보를 수집, 관리했다’는 식의 허위 사실을 보도했다”고 주장했다.
▲ 지난 2월 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기자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민변 김용민 변호사(왼쪽)가 탈북자간첩사건 무죄를 선고받은 유우성(가운데)씨 항소심 재판과정에서 증거가 위조된 사실을 폭로했다. ⓒ연합뉴스
언론인권센터는 “1심 판결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마치 검찰에서 간첩혐의를 입증하지 못할 뿐이지 간첩임에 틀림없다는 내용으로 허위보도 한 것은 사법부의 판단마저 무시한 악의적 보도”라고 비판하며 소장을 제출했다. 언론인권센터는 “한국 사회의 ‘분단’이라는 커다란 질곡은 때로는 개인의 삶을 무자비하게 파괴한다. 그러나 이러한 피해에 경각심을 가져야 할 언론이 선정적이고 감정적인 보도로 다시금 원고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7일 제출한 소장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지난 3월 31일자에서 유씨가 “한국에서 북한을 제 집 드나들 듯 했다”고 보도했으나 이 기사가 게재된 시점은 ‘유우성이 북한을 드나든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1심 판결이 선고된 이후였다. 채널A는 3월 4일 뉴스에서 유씨가 어학연수 목적으로 영국에 방문한 것을 마치 수사망을 피해 망명했다는 식으로 보도했으며, 유씨가 영국과 한국에서 생활비를 이중으로 지급받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언론인권센터는 디지털조선(조선닷컴) 외 3개 신문사(동아일보, 문화일보, 세계일보)에 유우성 관련 기사에 대한 정정보도와 함께 각각 2천 5백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했다. TV조선과 채널A에는 뉴스삭제 및 정정보도와 함께 각 5천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했다. 언론인권센터는 유씨의 명예를 훼손한 인터넷매체에도 손배배상청구를 할 계획이다.
고소인측은 이들 언론사가 헌법 제27조 제4항(형사피고인은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을 위반했으며 민법 제750조 제1항(타인의 신체, 자유 또는 명예를 해하거나 기타 정신상의 고통을 가한 자는 재산 이외의 손해에 대하여도 배상할 책임이 있다)에 따라 유씨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은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주홍글씨가 간첩이다. 유씨의 간첩혐의는 항소심에서도 무죄가 나왔는데 왜곡보도가 이어지며 유씨가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며 소송 승리를 자신했다.
이철희 "'동작을 사태', 한국 정치의 후진성" 7.9 프레시안
"절대 안 돼, 이건 안 된다고…."
14년간의 절규가 터져 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 허동준 동작을지역위원장은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의 서울 동작을 출마 선언장에서 "이건 안 된다. 23년 지기 등에 비수를 꽂게 하는 패륜적 행동을 한 김한길 안철수 사퇴해야 한다"며 거칠게 항의했다.
"아쉬움이 있다."
14년 전 동지애가 한숨이 됐다. 노동당 김종철 전 부대표는 정의당 노회찬 전 대표의 서울 동작을 출마 선언 후, 성명서를 통해 "함께 활동해왔던 경험과 진보정당의 재편과 공동 진로 모색 등의 관점에서 볼 때 아쉽다"라고 밝혔다.
▲ 허동준 동작을지역위원장은 8일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오른쪽)의 동작을 출마를 강하게 반발했다. ⓒ연합뉴스
7.30 재보궐선거 동작을 출마를 놓고, 한쪽에서는 친구가 다른 한쪽에서는 선후배가 갈라졌다. 선거 승리에만 목을 맨 정당의 이권 다툼에 우정도, 애정도 한순간에 깨졌다.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는 지난 7일 진행된 방송에서 야권 후보 공천 과정에 대해 '불금(불타는 금요일) 클럽 앞 난동'이라고 일축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새정치민주연합을 보면, 마치 불금에 클럽 앞에서 엉겨붙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도 "'동작을 사태'를 보면, 한국 정치의 후진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며 정당 정치의 파행 모델이라고 비난했다.
기동민 전 부시장과 노회찬 전 대표의 동작을 출마는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 주변의 권유가 결정적이었다. 서울에서 유일한 보궐선거 지역인 동작을이 차기 권력을 염두에 둔 인물 간 대리전의 성격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기동민 전 부시장은 광주 광산을 출마를 희망했으나, 새정치민주연합은 그를 전략적으로 동작을에 배치했다. 이철희 소장은 "내가 아는 기동민은 사나이 중의 사나이"라며 자신의 출마와 관련한 입장 표명이 늦춰진 데는 "혼자만의 결정이 아닌 집단적 결정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진보정치 맏형인 노회찬 전 대표는 당장의 승리보다 두세 걸음 앞선 행보로, 일종의 정치 실험을 할 생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윤철 교수는 "용이 물을 모아가며 때를 기다려 한 번에 승천하려는 구상도 있었"지만 선당후사에 개인의 의지가 묻혔다고 설명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진행된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간판을 단 이계안 후보가 동작을에서 당선됐다. 구(舊) 한나라당 텃밭이었던 동작을에서 구(舊) 민주당 출신 의원이 나온 것이다. 이후 동작을은 사실상 전략 공천 지역으로 분류되며, 거물 정치인의 격전지가 됐다. 18대 선거에서는 '정동영 vs 정몽준', 19대에서는 '이계안 vs 정몽준'이 붙었다.
한편, 이철희 소장은 야권 연대와 관련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 소장은 "야권이 지방선거 전부터 연대의 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다"며 "연대에 대해 너무 소극적이었다"고 평했다. 특히 안철수 대표가 노회찬 전 대표의 지역구인 노원병을 양보받은 만큼 "노 전 대표를 동작을 야권 단일 후보로 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새정치민주연합이 큰 그림을 못 그리고 있다"며 "제1 야당답게 정권 교체를 위한 세력을 모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러나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은 2017년 수권 의지 여부조차 의심받고 있다. 이종훈 스포츠 평론가는 "진보정치인으로 노회찬 전 대표를 보호할 줄 알면 정의당이 아니고, 야권의 큰 그림을 그릴 줄 알면 새정치민주연합이 아니다"라는 말로 정치와 정당이 실종된 현 상황을 비꼬았다.
대법 “밤 12시전 야간시위 무죄”…집회·시위 자유 확대 ‘성큼’ 7.10 한겨레
집시법 10조 관련 야간시위 벌금형 원심사건 파기환송
대법원이 해가 진 후부터 밤 12시까지 발생한 야간 시위를 무죄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지난 3월 헌법재판소가 자정까지 시위는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며 한정위헌 결정한 취지를 받아들인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10일 야간 시위에 참가한 혐의로 기소된 서창호 인권운동연대 사무국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7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씨는 2009년 9월 오후 7시15분부터 9시까지 대구의 한 광장에서 용산참사 문제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등 야간 시위를 주최한 혐의로 기소됐다.1심은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지만 2심은 시위가 비교적 평화로운 방법으로 이뤄졌다며 벌금액을 70만원으로 낮췄다.집시법 10조는 해가 진 후 야간 시위를 금지하고 있고, 이를 어기면 같은 법 23조 벌칙규정에 따라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재판부는 “집시법에 대한 헌재 결정은 사실상 일부 위헌이라는 취지”라며 “이 경우 헌재법 47조에서 정한 위헌 결정으로서 효력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헌재 결정이 한정위헌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사실상 일부 위헌 취지라고 풀이한 것이다. 재판부는 “해가 진 후부터 밤 12시까지 열린 시위를 금지한 부분은 헌재법에 따라 효력을 상실했으므로 해당 조항을 적용해 기소한 사건은 범죄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다만 “법 조항을 특정하게 해석할 경우에만 위헌으로 선언하는 이른바 한정위헌결정이 재판에 적용되는 강제성(기속력)은 없다는 대법원의 기존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한정위헌 결정은 헌재법 47조에서 규정한 위헌 결정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대법원의 그동안 확립된 판례였다.헌재법 47조는 위헌 결정이 난 법 조항은 그날로부터 효력을 상실하도록 정하고있다. 한정위헌은 해당 법률의 효력을 그대로 둔 채 특정하게 해석하는 한 위헌에 해당한다고 선언하는 변형결정이다.이번 판결은 지난 3월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 이후 나온 대법원의 첫 판단이어서 하급심에 계류 중인 유사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재 집시법 10조와 관련해 계류중인 하급심 사건은 모두 375건이다. 이 중 서울중앙지법에만 344건의 사건이 판결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가스 민영화 일본, 가정용 요금이 산업용 2배 7.9 경향
“독점 깨야 값 싸진다” 정부 주장과 정반대 결과
ㆍ공공부문에 시장원리 적용으로 가스업체만 이익
가스산업이 민영화된 일본의 가정용 가스요금이 산업용보다 2배 이상 비싼 것으로 확인됐다. 수익을 내야 하는 민간시장 특성에 따른 것으로 ‘도시가스 민영화를 추진해야 가스요금이 싸진다’는 정부 주장과 상반되는 결과로 보인다. 공공부문이 가스 공급을 책임지고 있는 한국은 가정용과 산업용의 요금 차이가 거의 없다.
사회공공연구원은 8일 ‘사유화의 반면교사, 일본 가스산업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는 지난 4월6일부터 11일까지 일본 경제산업성, 일본가스협회, 도쿄가스, 소비자단체연합회 방문과 전문가 면담을 통해 작성됐다. 보고서를 보면 2011년 기준 국내 도시가스 요금은 가정용이 65달러/㎿h, 산업용이 60.2달러/㎿h였다. 일본은 가정용이 165.3달러/㎿h, 산업용이 70.3달러/㎿h였다. 국내에서는 가정용과 산업용의 요금 차이가 거의 없는 반면 일본에서는 가정용이 산업용보다 2배 이상 비쌌다. 이는 한·일 양국의 천연가스 도입 방식의 차이 때문이라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국내에서는 1983년부터 한국가스공사가 전체 수입량의 95% 이상을 일괄 도입해 지역 도시가스 소매사업자와 발전사업자에 공급하고 있다. 일본은 1990년대 중반부터 가스산업이 민영화된 이후 대기업 4곳 등 9개 기업이 해외에서 천연가스를 수입해 소매사업자에 공급한다 시장원리가 적용된다면 가스요금은 가정용이 산업용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 산업용과 발전용 가스 수요는 연중 일정한 반면 가정 난방용 가스 소비는 겨울에 급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연가스는 석유와 같은 다른 에너지원과 달리 비축이 어려워 소비가 급격하게 늘어날 때 초단기계약 물량이 생긴다. 수익을 내야 하는 일본 가스업계는 계절 간 수요 격차, 배관관리 비용 등을 고려해 가정용 가스요금을 높게 책정한 것이다. 한국에선 가정용 요금의 인상요인을 산업용과 발전용에서 흡수하고 있다.
일본 가스요금은 연료비가 60%, 공급비가 40%이지만 한국에선 연료비가 90%, 공급비가 10%다. 연료비는 해외에서 천연가스를 들여오는 데 필요한 비용이고, 공급비는 도·소매로 각 산업체와 가정으로 가스가 공급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다. 일본 가스업체의 공급비 비중은 한국보다 4배 많고, 업체들은 여기서 더 많은 수익을 내고 있는 것이다.
비싼 요금 때문에 일본의 가정용 도시가스 비중은 전체의 9%에 그치고 있다. 천연가스 수입이 일본보다 14년 늦은 한국의 가정용 도시가스 비중은 30%에 이른다. 송유나 연구위원은 “정부는 가스공사의 천연가스 독점을 깨야 국내 가스 도입가격이 싸진다며 10여년 동안 민영화를 추진해 왔다”며 “그러나 가스산업이 민영화된 일본에선 일부 가스업체의 이익만 늘었을 뿐 가스요금이 싸지도, 에너지 공공성이 지켜지지도 않고 있다”고 말했다.
브라질 마피아, 네이마르 부상 입힌 수니가에 현상금까지? 7.8 머니투데이
[2014 브라질 월드컵] 브라질, 독일에 1-7 참패
브라질의 축구 국가대표팀 네이마르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AFPBBNews = News1
브라질이 독일에 7골을 얻어맞았다. 누리꾼들은 네이마르(22·바르셀로나)의 공백이 크다고 지적하며 네이마르에 부상을 입힌 후안 카밀로 수니가(29·라치오)의 신변을 걱정하고 있다.브라질은 9일 오전 5시(이하 한국시간)부터 브라질 벨루오리존치의 에스타디오 미네이랑에서 벌어진 독일과의 '2014 브라질 월드컵' 4강전에서 무려 7실점을 허용했다.
브라질은 전반 11분 코너킥 상황에서 독일 토마스 뮐러(25·FC 바이에른 뮌헨)에게 선제골을, 전반 23분 미로슬라프 클로제(36·SS 라치오)에게 추가골을 허용했다. 그러나 브라질의 '악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전반 24분과 26분에는 토니 크로스(24·FC 바이에른 뮌헨)가 세 번째 골과 네 번째 골을 연속해서 성공시킨 뒤 3분 뒤인 전반 29분 사미 케디라(27·레알 마드리드)가 다섯 번째 골까지 터트렸다. 이어 안드레 쉬를레도 (24·첼시 FC)후반 24분과 34분 연이어 2골을 성공시켰다.
예상치 못한 대량 실점에 브라질 선수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을 보였다. 브라질 미드필더 페르난지뉴(29·맨체스터 시티 FC)는 머리를 감싸쥐었고 수비수 다비드 루이스(27·파리 생제르맹 FC)는 고개를 숙였다. 브라질의 수문장 훌리오 세자르(35·토론토FC)는 하늘을 보며 침통한 듯 얼굴을 찡그렸다. 자국 선수들의 참패에 에스타디오 미네이랑 관중석 전체는 울음바다가 됐다.
이날 경기를 지켜보는 누리꾼들은 브라질이 참패한 원인으로 네이마르의 부재를 꼽았다. 한 누리꾼은 "브라질이 네이마르에 지나치게 의존해 왔다"고 꼬집었다. 이 외에도 "네이마르의 빈 자리가 확실히 느껴진다", "네이마르가 빠지면서 브라질의 공격과 수비 조직력이 모두 붕괴됐다, "네이마르가 없으니 브라질이 정신을 못 차린다"는 혹평들이 쏟아졌다. 이에 8강전에서 네이마르에게 척추골절 부상을 입힌 콜롬비아 수비수 수니가의 안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누리꾼들은 "수니가 아직 살아 있나", "수니가 땅굴이라도 파고 숨어야 할 것 같다", "살고 싶다면 빨리 도망쳐라"라며 수니가의 신변을 염려했다.
한 매체는 "브라질 최대의 마피아조직 PCC가 수니가에게 보복을 예고했다"며 "그의 목에 상금까지 내 건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사건의 당사자 수니가도 두려움에 떨고 있다. 수니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신이시여, 저를 보호해주소서"라는 글을 남기며 불안감을 드러냈다. 수니가는 현재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콜롬비아로 안전하게 귀국한 상태다. 한편 수니가는 지난 5일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 8강전 후반 43분 네이마르의 허리를 가격해 척추에 골절상을 입혔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수니가의 반칙에 고의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수니가에게 징계를 내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겨레사설] ‘좀비 총리’ ‘죄송 장관’이 국가대개조 이끈다니 7.8
정홍원 국무총리가 8일 오후 갑자기 대국민담화를 발표해 국가개조 추진 구상을 밝혔다. 민간이 참여하는 ‘국가대개조 범국민위원회’를 구성하고, 내년 2월까지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을 만들겠다는 것 등이 주요 내용이다. 예정에 없던 대국민담화를 불쑥 발표한 배경도 의아스럽지만,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계획에 ‘국가대개조’라는 포장을 씌워 호들갑을 떠는 것 같아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참사는 이날 발표된 감사원 감사 결과에서도 확인됐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정부의 총체적 업무 태만과 비리가 집약된 결과다. 정부의 이런 무능과 무책임, 도덕적 해이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 정홍원 총리다. 그래서 그가 사표도 냈던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가 붙잡자 언제 사표를 냈느냐는 듯이 슬그머니 주저앉은 그가 다시 전면에 나서서 국가개조를 하겠다고 나서니, 이것부터가 무책임과 도덕적 해이의 극치다.
정 총리가 국가개조를 위한 공직사회 혁신을 외치고 있는 순간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새 장관 후보자들이 연신 “죄송” “후회” 등의 말을 쏟아내고 있는 것도 국가개조의 민낯을 잘 보여준다. 이병기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 등은 정치공작, 세금탈루, 농지법 위반, 위장전입 등 각종 의혹을 시인했다. 국가개조의 요체는 이 정부가 강조해 왔듯이 과거 관행과 단절하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의 적당주의를 타파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 장관 후보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것은 장관 임명장이 아니라 자신들도 시인한 위법 사실에 대한 검찰 수사 소환장이다. ‘좀비 총리’에다 ‘죄송 장관’들이 이끄는 국가개조라니, 참으로 한편의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정 총리가 정부조직법 개정안 등을 빨리 통과시켜 달라고 국회를 채근한 것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병의 정확한 진단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얼치기 처방부터 먼저 내놓았다. 그러다 보니 해양경찰청 해체를 비롯해 신설될 국가안전처의 위상 등을 놓고 갑론을박이 무성하다. 게다가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등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에마저 성실히 임하지 않고 있다. 특위에서 요구한 269건의 자료 중 청와대가 제출한 게 고작 13건이라니 그 불성실함을 잘 알 수 있다. 세월호 참사의 명확한 진상규명은 외면하면서 몇몇 사람이 밀실에서 얼렁뚱땅 만든 정부조직법 개정안만 무조건 통과시켜 달라고 떼를 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정부가 주창한 국가개조란 말은 이미 빛이 바래고 희화화돼 버렸다. 공직 부적합자들이 공직사회 혁신을 말하는 것도, 의식이 하나도 바뀐 게 없는 사람들이 국민 의식을 개혁하겠다는 것도, 잇따른 인사참사에 새 총리 하나 물색하지 못하는 무능함도 모두 조롱의 대상이 됐다. 이제 이 정부는 국가개조란 공허한 말이라도 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독] 4대그룹 경제력 집중 가속화 고용·생산유발 효과는 적어 7.9 한겨레
서울 서초동 본사 사옥.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30대그룹 자산총액의 69% 차지 나머지 그룹 절반 부실·부실징후
재계 1위 삼성전자의 2분기 실적 둔화를 계기로 ‘삼성 리스크’가 국가경제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경계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 최상위 재벌들의 경제력 집중이 가속화하면서 재벌 안에서도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또 최상위 재벌들이 국가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에 견줘 국민경제에 대한 실질적 기여는 상대적으로 적은 현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한성대 김상조 교수는 한국경제발전학회가 9일 서울 명동 금융연구원에서 ‘한국의 산업생태계와 중소기업’을 주제로 여는 정책토론회에서 발표할 ‘기업집단 규율체계의 새 패러다임 모색’이란 발표자료에서, 2012년 기준 30대 재벌의 자산총액 중에서 삼성이 21%, 범삼성(삼성·씨제이·신세계·한솔)이 25%, 범4대재벌(삼성·현대차·에스케이·엘지와 이들에서 분리된 그룹)이 69%를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또 전체 국가자산(비금융 부문)에서 30대 재벌의 비중은 2007년과 2012년 사이 1.14배 증가한 반면 범4대재벌은 1.22배, 범삼성은 1.34배 증가하는 등 재벌 내부 양극화가 두드러졌다고 밝혔다.
범4대그룹을 제외한 나머지 그룹의 절반이 부실 내지 부실징후를 보이는 것은 심각성을 더한다. 에스티엑스·금호·동양·웅진·대한전선 등 5곳은 이미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중이다. 또 부채비율 200% 초과 및 이자보상배율(이자비용 대비 영업이익의 배율) 1배 미만(연결기준)의 두 조건을 충족하는 부실징후 그룹도 한진·두산·동부·현대·효성·한국지엠·동국제강·코오롱·대성·한라 등 10개다. 부실징후 그룹 수는 2010년 2개, 2011년 5개, 2012년 10개로 매년 빠르게 늘고 있다. 김 교수는 “한국 경제는 4대 가문 소속의 그룹들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재벌정책이 한편으로는 최상위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고, 다른 한편으로 하위 부실그룹의 구조조정이라는 이중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부경대의 홍장표 교수와 하봉찬 교수는 ‘대기업의 국민경제 기여도 분석’에서, 전자·자동차·조선·통신·시스템통합 등 5개 업종에 속한 삼성전자·현대차 등 매출액 상위 15개 대기업은 외형 규모에 비해 국내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생산·고용 유발효과가 미흡하다고 분석했다. 제조업 분야 대기업의 상당수는 국외 자회사 투자 비중이 국내 자회사 투자 비중에 비해 높다. 삼성전자의 경우 2011년도 국내 자회사 투자는 127조원인 데 반해, 국외 자회사 투자는 284조원으로 2.2배다. 에스케이하이닉스는 국외 자회사 투자가 국내 자회사 투자의 48.8배에 이른다. 이는 대기업의 투자가 국내보다 국외에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5개 대기업의 매입액(원재료·부품 등) 가운데 계열사로부터 사들이는 비중도 44%로 절반에 육박하고, 국외 계열사에서 사들이는 비중도 21%로 5분의 1을 넘는다. 제조업 분야 대기업의 경우는 계열사 비중이 48%, 국외 계열사 비중이 24.4%로 더욱 높다. 삼성전자는 2011년도 매입액 69조원 가운데 계열사 매입 비중이 80%에 달했다. 특히 국외 계열사 비중이 55%로, 국내 비중보다 더 높았다. 기아차도 전체 계열사 비중이 62%, 에스케이하이닉스는 국외 계열사 비중이 54%에 이르렀다. 반면 현대차는 국외 계열사 비중이 1.4%에 불과하고, 엘지전자는 중소기업 등 비계열사 비중이 78.5%에 달해 상대적으로 국민경제 기여도가 높았다. 홍장표 교수는 “대기업이 중소기업 등 국내 생산에 기반한 조달구조를 구축하도록 하는 정책적 노력과 함께 (계열사간)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롱에 묵혀둔 양주 삽니다”…주택가 등장 ‘중고 양주’ 트럭 7.8 헤럴드경제
]“장롱에 묵혀둔 양주 삽니다.”
지난 1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 “못 드셔서 처분하고 싶은 양주 삽니다”라는 현수막을 단 트럭 한 대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트럭에는 꼬냑, 위스키, 브랜디 등 고급양주부터 보드카, 럼, 데킬라 등 화이트 양주, 저급 양주까지 모두 매입한다고 써 있었다.
이 트럭의 정체는 주택가를 돌며 마시지 않고 집에 묵혀둔 장롱 양주를 매입하는 일명, ‘중고양주 매입트럭’이다. 금시세 하락으로 금 매매 인기가 떨어지고 주세 인상 전망이 나오면서 최근 등장한 신풍속이다. 양주매입상은 “금값이 높을 때는 금 이빨까지 다 받았는데 이젠 가격이 떨어져 팔려는 사람도 없고 마진도 적다”면서 “대신 중고양주를 매입해서 팔면 병당 5000원~1만원씩 남아 꽤 짭짤한 장사”라고 털어놨다. 그는 “생각보다 팔려는 사람도 많아 하루 20여명정도 문의가 와서 실제 파는 사람도 절반 가량 된다”고 했다.
실제 지난 7일 기준 금 1돈(3.75g) 가격은 16만363원으로 최근 1년새 최고가였던 19만1809원(2013년 8월 28일)에 비해 16% 급락한 상태다. 금값 하락과 함께 정부가 세수확보차 주류세 인상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점도 중고 양주트럭이 등장한 이유로 관측된다.양주 매입상은 “중고 양주의 경우 주류도매 매장이나 인터넷을 통해 알음알음 거래됐는데 최근 수지가 괜찮다는 소문이 나면서 직접 트럭을 몰고 주택가로 나오는 매입상들이 늘었다”며 “장식품처럼 몇 년째 진열만 하고있는 양주를 사줘 고맙다고 하는 사람도 여럿”이라고 귀뜸했다.
이날 발렌타인 30년산과 21년산 각 1병씩과 헤네시 X.O 1병등 총 3병을 판 아파트 주민 박모(65)씨는 현금 33만원을 손에 쥐었다. 각 15만원과 12만원, 6만원으로 평가됐다. 박씨는 “먹을 사람도 없고 팔지도 못해 처치곤란이었는데 애물단지 치우고 돈까지 받으니 기분이 좋다”며 웃었다. 중고양주 가격은 면세점 판매가와 도매주류 시장가가 함께 반영된다. 케이스의 유무와 형태에 따라 가격이 갈린다. 구형보다 신형의 가격이 높고 케이스가 없는 ‘알병’의 경우 가격은 급락한다. 수요가 많거나 절판된 양주는 면세점가보다 높게 쳐주기도 한다. 임페리얼,스카치블루 등 국산 중고양주의 가격은 몇 천원대에 불과하다.
이렇게 매입된 양주는 주로 서울 황학동 벼룩시장이나 남대문 수입상가 등에서 재판매 된다. 양주매입상은 “요즘 단체 등산객이 많이 찾고 평소에는 접대용, 선물용으로 구입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휴가철과 추석명절을 앞두고 중고 양주의 수요는 더욱 늘고 있다는 게 양주 매입상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는 모두 ‘불법’이다. 현행 주류법에 따르면 주류는 허가를 받아야만 제조 및 판매가 가능하다. ‘무면허 주류판매’시 판매자와 매입자ㆍ재판매자 모두 조세범 처벌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국세청 관계자는 “개인 간 양주 거래는 면세범위로 들어 온 술을 여러 병 소지하는 등 세금을 누락할 가능성이 커 금지되고 있다”면서“지하경제 양성화 차원에서도 엄격하게 처벌받는다”고 말했다.
“유방암 의심됩니다” 진단 후 확진은 0.6%뿐… 7.10 한겨레
유방암 조기 검진의 ‘불편한 진실’
한 여성이 병원을 찾아 유방암 검사를 받고 있다. 한림대의료원 제공
건강과 질병의 경계는 어디인가를 둘러싼 의학계의 논란이 뜨겁다. 하지만 일반 시민이 전문적인 의학 지식에 두루 밝기는 어렵다. 무지는 공포를 부른다. 적잖은 이들이 가벼운 증상만 있어도 새로운 첨단 의료기술을 적용해 치료받아야 하는 게 아닌지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전에 없던 질병이라도 걸리면 패닉에 빠지지 않기가 어렵다. ‘공포 마케팅’이 번성할 토양이다. 한국에서도 과잉 진료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무엇이 과잉 진료를 부르는 것일까. ‘공포 마케팅’ 및 과잉 진료와 관련한 반성을 이 기획 연재물에서 담으려 한다. 이 기획 연재물은 어찌어찌하면 건강해진다는 ‘정답’을 제시하려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다만 질병과 건강, 그 흐릿한 경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는 글이고자 한다.
의사 기자 김양중의 ‘쉿, 그거 아세요?’
① 유방암 국가 검진 바람직한가?
국가암검진에 포함된 맘모그래피 검사 정확도 낮아 2천명 중 1명만 확진, 10명은 불필요한 수술받아
한국 여성 사이에 최근 발생이 가장 가파르게 증가하는 암은 갑상선암이다. 보건복지부와 ‘중앙 암 등록센터’의 ‘2011년 국가 암 등록 통계’를 보면, 1999~2011년 갑상선암이 여성의 경우 한해 평균 23.5%씩 증가한다. ‘국가 암 등록 통계’는 한국에서 암에 관해서는 가장 광범위한 자료를 바탕으로 나온 통계이며, 2011년까지 모아진 것이 가장 최근 자료다.
의학계에서는 한해 23.5%씩 갑상선암이 늘어나는 상황이라면 발암 물질이 광범위하게 퍼질 사건이 없고서는 불가능한데, 이런 환경 변화가 없다면 다른 원인을 찾아봐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복지부와 암등록센터에서도 갑상선암을 비롯해 각종 암의 발생이 증가하는 노인 인구가 늘어난 점, 암 진단 기술 발달, 조기검진 활성화 등 암 검사를 감상선암 증가의 한 원인으로 꼽았다. 암 검진 및 검사를 많이 받게 돼 과거에는 찾지 못한 암마저 세세하게 찾아냈다는 것이다.
이에 지난 3월부터 의료계 안에서는 갑상선암의 과잉 검진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의사들이 나오고 있다. 생명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아 내버려둬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작은 크기의 암마저 불필요하게 찾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갑상선암은 영국에선 여성한테 많이 발생하는 암 순위 10위에도 들지 못한다. 미국에선 4위, 일본에선 9위를 기록하고 있다. 여성 인구 10만명당 갑상선암 발생 숫자를 보면 한국이 96.8명으로 일본의 6.5명에 비해 15배나 많다. 검사가 간단해 치료가 불필요한 갑상선암마저 발견해 치료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하지만 작은 크기의 암도 주변 조직에 전이를 일으키는 등 환자의 생명을 해칠 수 있으므로 조기 검진이 꼭 필요하다고 말하는 의사들도 있다.
이런 갑상선암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여성들이 둘째로 많이 걸리는 암인 유방암을 두고도 조기 검진이 필요한가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유방암은 한국에서 1999~2011년 사이 한해 평균 6.1%씩 늘어나 증가율이 빠른 암 가운데 하나다. 유방암의 조기 검진법은 맘모그래피 검사라는 유방촬영술인데, 이는 한국에서는 국가암검진에도 포함돼 있는 검사다.
할리우드 톱스타 앤절리나 졸리는 ‘나의 의학적 선택’이라는 칼럼을 통해 유방절제술을 받았다고 밝혔다. 유방암 투병 끝에 숨진 엄마와 같은 운명을 피하고 싶어 내린 결정이었다. 로이터 뉴스1
유방암 검진이 필요한지를 두고는 세계적으로 근거중심의학으로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코크란 리뷰>가 이런 조언을 하고 있다. 2014년 1월호에 실린 ‘유방암 검진과 맘모그래피’를 보면, 그동안 60만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8개의 연구 결과를 분석한 결과가 나온다. 여성 2000명이 10년 동안 유방암을 조기에 발견하려고 맘모그래피 검사를 받으면 1명이 유방암을 미리 발견해 사망을 면할 수 있다고 한다. 유방암 검진을 하면 그 수가 적기는 하지만 분명 누군가는 이익을 본다는 뜻이다. 하지만 해악이 만만치 않다. 해를 입는 사람의 숫자만 생각하면 이익을 보는 1명보다 크게 많았다. 우선 평소 건강하던 10명은 유방암이 없는데도 맘모그래피 검사와 이후 추가 검사에서 유방암이 있는 것으로 나와 불필요한 수술을 받게 됐다. 이들은 유방의 일부 또는 전체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기도 하며, 심지어 방사선 치료나 항암제까지 투여받았다. 또 2000명 가운데 10%에 속하는 건강한 200명은 맘모그래피에서 가짜 양성이 나와, 추가 검사에서 암이 아니라고 밝혀지기까지 암이라는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그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상당 기간 지속됐다.
맘모그래피로 유방암 검진을 했을 때 이익을 보는 사람이 분명 존재하지만 불필요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사람도 생기고, 검사를 받은 사람들 상당수가 가짜 암으로 상당 기간 고통을 받았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렇다면 ‘검진이 필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잘 고를 수 있다면 모를까 모든 이들을 상대로 검사를 하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라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국의 유방암 검진의 효과는 어떨까? 한국도 국가암검진사업으로 유방암 검진 방법으로 맘모그래피 검사와 의사의 유방촉진검사를 권장하고 있다. 그런데 맘모그래피 검사의 정확도는 어느 정도나 될까? 2011년 5월 보건복지부와 국립암센터 등이 주최한 ‘암정복포럼’에서 발표된 결과를 보면 놀라운 사실이 나타난다. 박은철 연세대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팀이 1999년 국가암검진 사업이 시작된 뒤 암 검진을 받은 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맘모그래피 검사로 유방암이 있다는 판정이 난 이들 가운데 실제 암 환자는 0.6%뿐인 것으로 조사됐다.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가 배우 김현주, 유방암 환우와 함께 유방암 의식 향상 캠페인 화보 촬영을 진행했다.【서울=뉴시스헬스/뉴시스】
실제 암 환자가 아닌 나머지 99.4%는 어떻게 됐을까? <코크란 리뷰>에 나타난 것처럼 드물지만 일부는 유방암이 아닌데도 유방암 수술을 받았을 것이고, 상당수는 암이 아닌 양성 종양 등을 확인하려고 추가 검사를 받아야 했을 것이고, 또 상당수는 추가 검사에서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나올 때까지 암이라는 고통에 떨었을 것이다. 유방암 검진을 위한 의료비 지출도 만만치 않았다. 40살만 되면 전체 여성이 받아야 하는 유방암 검진 사업을 통해 유방암 환자 1명을 발견하려고 한국이 쓴 돈이 1억9200여만원이나 됐다는 추정도 나왔다. 유방암 검진은 다른 암 검진에 견줘서도 그 효과가 분명 떨어졌다. 국가암검진에 포함된 다른 암은 1차 검사에서 암이 의심된다고 나와 최종 암으로 진단된 비율이 유방암보다 높았다. 위암은 3.3%, 간암은 5.7%, 대장암은 1.7%, 자궁경부암은 1.3%로 나타났다.
외국처럼 한국에서도 소수이기는 하지만 분명 그 누군가는 유방암 검진 사업을 통해 이익을 본다. 하지만 피해를 보는 사람도 많다. 전문가들은 유방암 검진의 정확성을 높이지 못하면 이 검진 사업을 통해 오히려 피해를 보는 사람만 더 늘어나고, 이익을 보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가족 가운데 유방암에 걸린 사람이 있어서 유방암 발생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은 이익을 볼 수 있지만, 평생 유방암이 생기지 않을 사람은 불필요한 검사만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유방암 검진이 무조건 좋은 것인가? 유방암 검진 사업을 국가사업으로 할 필요가 있는가?
인도 불교 성지서 ‘땅밟기’…일부 개신교, 무개념 선교 논란7.8 한겨레
지난 7월 4일 불교 성지인 인도 부다가야 마하보디사원에서 일부 개신교인들이 기타를 치며 찬송가를 부르는 ‘땅밟기’를 하고 있다. 사진 법보신문 제공
유네스코 세계유산서 찬송가 부르며 ‘공격적 선교’
항의하는 스님에 “하나님만이 오직 구원” 막말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인도의 한 사원에서 한국의 일부 개신교인들이 찬송가를 부르면서 일명 ‘땅밟기’라는 전도 행사를 진행하는 동영상이 <법보신문> 보도를 통해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 8일 <법보신문> 보도를 보면,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성도 성지인 인도 부다가야 마하보디사원에서 지난 4일 오후 한국인 남성 2명과 여성 1명이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이라며 선교 기도를 하고 기타를 치는 장면을 연출했다. 일명 ‘땅밟기’라는 것으로, 개신교 불모지를 직접 밟으며 타 종교에 대한 공격적인 행태로 전도해 비판받고 있는 선교 방식이다.
신문은 이들 개신교인들이 비상식적 행동을 멈춰달라고 요구한 스님에게 “하나님만이 오직 구원이다”, “구원받지 못한 이들이 불쌍해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라며 자신들의 선교행위를 정당화시켰다고 보도했다. 당시 사원에서 묵언 수행하던 법수 스님은 “오늘 부다가야에서 벌인 일을 한국에 알리겠다고 호통을 치자 그제서야 이들이 자리를 떴다”고 전했다.
이날 벌어진 상식 밖 행동은 사원을 관리하는 인도 스님이 휴대전화로 촬영해 공개했다. 1분 분량의 동영상에는 개신교인들이 “아버지 거룩한 사랑 받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는 모습과 기타 치며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 있다. 마하보디 사원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불교의 4대 성지 중 한 곳으로 성지순례를 위해 스님들과 불교 신도들이 붐비는 곳이다. 지난 2010년에는 서울 봉은사 대웅전에서 일부 개신교인이 개신교식 예배를 보고, 경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땅밟기’ 전도 행사를 열고 기도를 올려 사회적 파문이 인 적이 있다
원로교수 이인호의 마녀사냥 7.6 미디어오늘
[손석춘 칼럼] ‘조중동’의 잘못된 여론몰이에 침묵하는 지식인들
이형. 얼마 전 오랜만에 언론사 수습 동기를 만났습니다. 공영방송의 핵심 간부로 일하고 있는 그와 옹근 30년만의 ‘해후’였지요. 20대의 순수함이 떠올랐습니다. 인사치레였겠지만 교수직에 덕담을 건네기에 저는 현업이 훨씬 마음 편하고 보람 있다고 답했습니다. 진심입니다. 대학에 몸담으면서 젊은 세대가 취업난으로 고통 받는 모습, 진리와 자유를 추구해야 할 시기에 학점과 ‘알바’로 내몰리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제 직업에 정당성을 지니기 힘들더군요. 언론계를 저의 온전한 선택으로 떠난 게 아니었기에 더 그렇겠지요.
아무튼 이형이 언론계에 들어오기 전에 논설위원들에게 지녔던 ‘지적 아우라’가 금가는 경험을 했다면, 학계도 미뤄 판단하면 됩니다. 물론, 모든 언론인이 그렇지 않듯, 모든 교수가 그렇지는 않습니다.다만, 교수로 오래 생활하면 알게 모르게 저도 ‘겸손’을 잃어갈까 슬금슬금 걱정 됩니다. 물론, 그것은 언론인도 ‘거울’ 삼을 덕목이지만, 교수는 자신이 ‘엄청난 지성인’으로 착각하기 더 쉽기 때문입니다. 과대하게 포장된 지적 권위를 대학 안팎에서 누리고 있으니까요.
이형이 지켜보았듯이 지난 15년 칼럼을 써오며 조중동의 사주와 주필들을 실명으로 비판했습니다. 앞으로 틈틈이 교수들의 문제점을 전해드릴까 합니다. 오래전부터 문제점을 인식해왔지만, 최근 서울대 명예교수가 더는 미룰 수 없는 절실성과 절박성을 저에게 깨우쳐주었거든요.
이인호. 서양사학자로 곧 여든을 앞둔 그가 “나는 문창극 강연 보고 감동 받았다”고 나섰습니다. TV조선에 출연해 ‘분노’를 표출한 그는 “(문 후보가) 태도, 눈빛, 강연을 준비한 정도에서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며 문 후보자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겨냥해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 “완전히 비이성적이고 양심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험한 말을 했더군요. 그러면서 ‘지식인론’을 편 뒤 “증거 없이 몰아붙이는 건 마녀사냥”이고 “이 같은 이유로 문 후보자가 낙마해야 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 할 때”라고 부르댔습니다. 문 후보자가 낙마한 지금 “나라를 떠나야 할 때”임을 상기하기 위해 편지를 쓰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이형도 알다시피 이 교수는 김대중 정부에서 주러시아 대사, 이명박 정부에서 국민원로회의 위원을 지냈고, 지금도 박근혜 정부에서 ‘국가 원로’의 한 사람으로 ‘자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창극 살리기’에 나섰던 중앙일보 편집인을 지낸 박보균을 비롯한 숱한 필진들은 접어둡시다. 어찌됐든 그들에게 문창극은 그 중 한 사람의 칼럼에도 나오듯이 “문 선배”이고, 총리 지명 당시 문창극이 ‘정통 보수 언론인’이라고 추어올린 보도에 대한 나름의 ‘일관성’도 있어야 할 테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원로 사학자’소리를 듣는 이인호 명예교수는 달라야겠지요. 참으로 이 교수에게 묻고 싶더군요. 정말 문창극 동영상을 보고 ‘감동’을 느꼈느냐고.
근현대 언론사를 연구한 저는 문창극 강연 곳곳에서 식민사관을 또렷하게 읽었습니다. 만일 이 교수가 정말로 문창극 강연에 감동을 받았다면, 서양사학자로서 이 나라의 역사를 바라보는 자신의 눈이 혹 식민사관에 젖어있지는 않은지 겸손한 성찰을 간곡히 촉구합니다. 진실을 추구하는 학문은 나이가 들어도 지속되어야 마땅하고 후학의 비판에 대해서도 경청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이형. 말이 나온 참에 더할 게요. 저는 ‘조중동’의 잘못된 여론몰이에 단 한마디 하지 않은 채 언론 활동에 나서는 지식인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물론, 조중동에도 훌륭한 기자들, 좋은 기사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진실과 공정과는 거리가 먼 여론몰이를 지속적으로 해나갈 때는 적극 비판해야 옳지 않을까요.
그런데 지금까지 내내 마녀사냥을 해온 신문사가 ‘국회 날치기’로 얻은 종편인 TV조선에 출연해서 문창극 비판자들이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원로 지식인’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서양사에서 마녀사냥은 기득권 세력이 자신들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 고안해냈습니다. 바로 이 교수가 ‘문창극 비판자’들을 겨누어 “양심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라거나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라고 비난을 쏟아낸 일이야말로 ‘마녀사냥’ 아닐까요.
만일 언론계를 퇴직한 문창극 씨가 총리 지명을 수락하지 않았다면 제가 비판할 아무런 개인적 유감이 없었듯이, 이인호 씨가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연구의 길’만 걷는다면 이런 글을 쓸 필요도 전혀 없겠지요. 저도 그만 은둔하고 싶을 때가 무수합니다. 하지만 교수의 권위를 이용해 이 나라의 여론 형성에 적극 개입하고 또 그것이 명백한 잘못일 때는 인내만 하기 어렵더군요. 그들 또한 언론 활동에 나섰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내 조국 대한민국의 내일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이형. 이 나라는 지금 정치만 캄캄하지 않습니다. 형이 몸담고 있는 언론계, 제가 몸담고 있는 학계 모두 어둠이 무장 짙습니다. 힘 내십시오
한국은 큰빗이끼벌레 은어·뱀장어 돌아온 일본 7.7 오마이뉴스
[현장] 일본 아라세댐 철거하자 구다라기천(百濟來川) 금방 살아나
▲ '백제에서 온 천'이라는 뜻의 구다라기 천(百濟來川). 일본 구마모토현 야츠시로시 아라세댐 상류에 위치한 작은 지천이다. ⓒ 심규상
▲ 구다라기 천(百濟來川) 공원 안내문. 구다라기천은 일본 구마모토현 야츠시로시 아라세댐 상류에 위치한 작은 지천이다. ⓒ 심규상
"참 깨끗하죠? 아라세댐 수문이 열리기 전엔 악취를 풍기던 강이였어요"
구다라기 천(百濟來川). 일본 구마모토현 야츠시로시 아라세댐 상류에 위치한 작은 지천이다. '백제에서 온 천'(구다라기 천, 百濟來川)이라는 뜻을 가진 강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지난 1일, 현장을 안내한 환경운동가인 우메다씨는 "약 1000여 년 한국의 백제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정착해 살았던 곳이라고 해 구다라기 천이 됐다는 게 정설"이라며 "인근에서 백제유적이 출토됐다"고 말했다. 간척지를 얻기 위한 공사를 벌이기 이전에는 구다라기 천에 바닷물이 드나들었단다. 한국의 금강에도 금강하굿둑(서천)을 쌓기 이전에는 지금의 부여는 물론 강경포구까지 바닷물이 넘나들었다.
수문 열자마자 찾아온 변화
구다라기 천은 구마강의 지류다. 구마강 본류와 만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300여 미터 쯤 들어서자 구다라기 천 안내문이 보였다. 폭이 20여 미터에 이르는 작은 천이었다. 하지만 몇 달째 이어진 가뭄에도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릴 만큼 수량이 넉넉해 보였다. 물은 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일만큼 맑았다. 손을 담그자 찬 기운이 어깨까지 전해왔다. 우메다씨는 "지금은 깨끗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찌를 만큼 오염이 심했다"며 "아라세댐 수문을 열고부터 물이 맑아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우메다씨가 말한 아라세댐은 구마강 본류를 막아 만든 댐이다. 이 댐은 지난 1954년 3월 준공(구마 하구에서 약 20km 상류 지점, 길이 207m , 높이 25m)됐다. 구다라기 천과 구마강이 만나는 지점을 기준으로 하류로 약 200미터 지점에 댐이 있다. .
▲ 철거중인 아라세댐(작은 붉은 원)과 댐 상류 지천인 구다라기 천(百濟來川). ⓒ 심규상
▲ 댐 기둥 3개가 철거된 아라세댐. 일본 최초의 댐 철거 현장으로 2017년 완전 철거 예정이다. ⓒ 심규상
일본 정부는 댐을 건설하면 관광객이 몰려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댐 건설 후 찾아온 것은 악취와 녹조였다. 댐에 물이 차면서 위쪽에 위치한 지류인 구다라기 천까지 오염된 물이 차올랐다. 산골마을 주민들은 댐의 역습에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일본 지방자치단체도 하천정화 작업을 포기했다. 다른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오랜 싸움 끝에 2010년 아라세댐은 가동을 중단했다. 이어 수문이 활짝 열렸다. 댐을 가동한 지 52년 만의 일이었다. 지난 2013년 9월부터는 댐 철거 공사가 시작됐다. 일본 최초 댐 철거 공사였다. 수문을 연 효과는 지류 중에서는 구다라기 천에서 제일 먼저 감지됐다.
"댐 상류에 고여 있던 물이 빠져 나가면서 구다라기 천이 맑아지기 시작했어요. 그럴수밖에요. 댐 건설로 오염된 물이 더 이상 밀려 올라오지 않으니까요."
철거 공사가 한창인 아라세댐으로 향했다. 지난 해 11월 방문 후 8개월 만이다. 그때와 달리 9개의 댐 기둥 중 3개가 사라졌다. 철거공사는 태풍과 장마를 앞두고 잠시 중단됐다. 댐 바닥에선 진흙 뻘이 쌓여 있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곳곳에 드러난 강변 백사장이 햇볕에 반짝였다.
"지난 해 오셨을 때 댐 건설로 사라진 은어 떼가 돌아왔다고 설명 드렸었죠. 하구 갯벌에도 사라졌던 맛조개, 갯가재, 뱀장어, 학꽁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했잖아요. 어부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양이 더 증가한다고 매우 기뻐하고 있어요"
"수문만 열어도 많은 문제 해결..."
▲ 뻘흙과 토사가 쌓여있던 아라세댐 바닥은 모래와 자갈이 자리잡았다. ⓒ 심규상
▲ 수문을 열기 전 아라세댐 모습(지난 2008년 10월). ⓒ 심규상
댐 철거 공사 이후 관광객의 발걸음도 부쩍 늘었다.
"지난 5월 이곳에서 강변 길을 산책하는 '리버 워크' 행사를 했어요. 한국에서도 (댐 철거 현장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분들이 꽤 있어요."
4대강 사업 이후, 금강에서는 매년 짙은 녹조가 생기고 있다. 우메다씨가 조언했다.
"아라세댐처럼 수문을 여는 것만으로도 많은 문제가 해결됩니다, 당장 철거하기 어렵다면 우선 수문을 열면 됩니다."
지난 2012년 가을, 충남 금강에서는 물고기가 떼죽음 당했다. 하지만 당국은 수문을 열지 않았다. 이 때문에 보름 만에 물고기 약 30만 마리(충남도 추정)가 떼죽음 당했다. 올해부터는 물 흐름이 느린 곳에서 번식하는 외래종인 '큰빗이끼벌레'가 확산되고 있다. 당국은 여전히 수문을 꼭 걸어 잠그고 있다.
4대강사업 완공 3년만에... 낙동강은 시궁창 됐다 7.6 오마이뉴스
환경단체-전문가 현장 조사... 바닥 뻘층 형성, 물 흐름 굉장히 느려
시궁창 같다."
낙동강 창녕함안보(함안보)·합천창녕보(합천보) 직상류의 물 흐름과 바닥 토양을 측정한 박창근 관동대 교수(토목공학)의 말이다. 바닥에서 건져 올린 흙은 '뻘(오니)'의 형태였고, 코를 가까이 갖다 대니 악취가 진동했다.물 흐름도 굉장히 느렸다. 낙동강에 보가 설치되기 전에 물의 흐름(유속)은 평균 초속 50~70cm 정도였는데, 이날 두 곳 측정 결과 평균 6~14cm 정도였다. 물이 빨리 흐르지 않고 정체돼 바닥에는 오염물질을 함유한 퇴적층이 쌓였고, 녹조도 발생했다. 또 함안보 직상류 선착장 부근과 창녕 남지대교(국도25호선) 밑에서는 큰빗이끼벌레가 발견됐는데, 낙동강 하류에서는 처음이다.
유속 굉장히 느려... 바닥은 오염된 뻘층 형성
박창근 교수는 4대강조사단, 4대강범대위, 새정치민주연합 4대강불법비리진상조사위원회의 현장조사단을 이끌고 6일 낙동강에서 현장조사를 벌였다. 이번 현장조사는 10일까지 낙동강, 영산강, 금강, 한강 순서로 진행된다. 첫날 현장조사단은 낙동강 하류에 해당하는 함안보·합천보 일대를 조사했다. 보 직상류의 바닥에 있는 토양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저질토 채취기'와 물 흐름(유속)의 정도를 파악하기 위한 '유속계'가 동원됐고, 한국수자원공사는 보트를 제공했다.
조사 결과, 두 곳의 물 흐름은 굉장히 느렸다. 이날 함안보 직상류 3개 지점을 측정했는데 평균 6~14cm(초속)를 보였다. 또 합천보 직상류의 유속은 함안보보다 더 느려 3~8cm를 보였다. 박창근 교수는 "이전에 보가 설치되지 않았을 때 낙동강은 평균 유속이 초당 50~70cm 정도였다"며 "보로 인해 유속이 느려졌고, 그것으로 인해 수질이 나빠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함안보·합천보 직상류 바닥 흙은 어떤 상태일까. 올해로 낙동강에 보(8개)가 완공된 지 3년째가 됐다. 환경단체가 4대강사업 뒤 낙동강의 바닥 저질토 상태에 대한 측정하기는 이번이 처음이고, 지금까지 국토부 등이 정부측 자료가 공개된 적은 없다. 두 곳 모두 바닥에서 퍼올린 흙을 보니, 검정색 색깔을 띤 뻘의 상태였다. 코를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아본 박창근 교수는 "냄새를 못 맞겠다. 시궁창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실제 냄새를 맡아본 기자들도 같은 반응이었다.
박 교수는 "이전에는 낙동강 하류인 하구언 쪽에서 뻘층이 나타나 정부에서 해마다 수억 원의 돈을 들여 걷어내는 작업을 벌였다"며 "4대강사업 완공 3년 만에 보 상류 바닥에 뻘층이 형성되고 있다, 쉽게 말해 낙동강 바닥 전체에 시궁창 같은 냄새 나는 뻘이 코팅된 것이라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날 장맛비가 내렸는데도 낙동강 곳곳에는 녹조 알갱이가 눈에 띄었다. 이미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은 지난 6월 함안보 일대에 대해 조류경보를 발령한 상태다. 낙동강 하류에 해당하는 구간에서도 큰빗이끼벌레가 발견됐다. 함안보 직상류 선착장 부근과 남지대교(국도25호선) 밑에서 큰빗이끼벌레 덩어리가 발견된 것이다. 큰빗이끼벌레 안에는 지렁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금강에서 큰빗이끼벌레를 처음으로 발견해 보도했던 김종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는 "낙동강 상황을 보니 큰빗이끼벌레가 서식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며 "큰빗이끼벌레는 물이 썩었다는 증거다"고 말했다.
사진출처: 지율스님
4대강으로 8조 빚진 수자원공사 3조 규모 댐건설 추진? 7.7 미디어오늘
댐 건설지 주민·환경단체 “댐 건설은 제2의 4대강, 명분도 실리도 없어”
4대강 사업으로 8조 원의 빚을 진 한국수자원공사가 3조5000억 원 규모의 댐 사업을 검토한다는 소식에 환경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환경단체들은 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14개 댐 사업은 제2의 4대강 사업”이라고 비판했다.
달산, 영양, 지리산, 청양 지천 등 댐 건설이 계획된 지역 주민들과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운동단체들은 “해당 댐들은 홍수예방과 용수확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도 어렵거니와 환경을 파괴하고 문화재를 훼손한다”며 “3조원 이상의 예산만 낭비하는 불필요한 사업인 14개 댐 개발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무엇보다 댐 건설 명분이 없다고 지적했다. 국토부는 홍수예방 등을 명분으로 들고 있지만, 이들은 국토부의 주장이 왜곡·과장됐다는 입장이다. 지리산댐의 경우, 2000년대 들어 함양지역에 지속적인 홍수피해가 발생했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주민들은 “최근 10년 홍수로 인한 인명피해는 2002년 태풍 루사 때가 유일했다”며 “그것도 댐 예정지와는 무관한 ‘서하면’에서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대한민국 역사상 1일 강수량 1위를 기록한 태풍 루사는 한반도 내륙을 관통했고, 이로 인한 사망 혹은 실종은 246명이고 재산피해는 5조원 수준”이라며 “수자원공사의 논리대로라면 전국의 강과 계속에 대형댐을 건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성기 지리산댐반대 함양군대책위원장은 “지리산댐은 2001년말 이미 백지화가 됐는데 갑자기 다시 건설을 추진하는 이유가 뭐냐”고 반발했다.
▲ 달산, 영양, 지리산, 청양 지천 등 댐 건설이 계획된 지역 주민들과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운동단체들이 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앞에서 14개 댐 건설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였다. 사진= 이하늬 기자
▲ 태풍 루사 피해지역과 지리산댐이 건설될 예정지. 그림=환경운동연합 제공
환경운동연합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는 1만 8000여개의 댐과 저수지가 있다. 이 가운데 국제대형댐위원회(ICOLD)의 기준에 따른 높이 15m이상으로 분류되는 대형댐은 1200여개로, 세계 7위 규모이며, 국토 면적 대비 댐 밀도는 세계 1위이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그러나 홍수 피해 규모는 갈수록 늘고 있다”며 “댐이 능사라는 논리를 믿을 사람은 이제 없다”고 말했다.
환경 파괴 문제의 경우도 4대강 사업의 부작용으로 댐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4대강에서는 녹조는 기본이고, 외래종 벌레까지 번식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댐은 하천의 상하류, 좌우를 다 단절시킨다”며 “흐르는 물을 정체시키기 때문에 고유 생태계가 아니라 외래종이 살기에 유리한 곳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염 사무총장은 “댐의 수명이 50년”이라며 “50년이 지나면 무너질 가능성이 많다. 쓸모없는 댐을 만든다면 유지, 폐기에 오히려 비용이 들어간다. 이미 만들어진 댐들 중에도 필요 없는 댐이 많다. 꼭 필요한 곳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4대강 역시 개발에 든 비용보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 복구에 드는 시간과 비용 등이 훨씬 많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7일 “14개 댐의 건설계획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며 “모든 댐 계획에 대해 순차적으로 사전검토협의회의 검토와 지역의견 수렴을 거쳐 타당성조사 등 후속절차 추진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2월 전국에 댐 14개를 건설하는 방안을 담은 ‘댐 건설 장기종합계획’을 내놓았고, 7일 오후 댐 사전검토협의회를 열었다. 협의회에는 수자원공사 관계자, 사회단체 대표 등 10여명이 참석한다.
북한군, 휴전선 넘어 귀순벨 누르고 도주… ‘고성 총기난사’ 이틀 전 .77경향
지난달 19일 북한군이 군사분계선(휴전선)을 넘어 비무장지대 내 전방초소(GP) 사이 설치된 추진철책까지 침투해 귀순벨을 누르고 도주한 것으로 확인됐다. 군의 대비태세에 허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군의 한 관계자는 7일 “지난달 19일 오후 2시20분쯤 무장한 북한군 2~3명으로 추정되는 인원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경기 파주 육군 1사단이 관할하는 비무장지대로 침투한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북한군은 우리 군 GP에서 700m 떨어진 추진철책까지 접근해 귀순자 유도벨을 누르고 귀순 안내 표지판을 뽑아버리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군은 벨 소리를 듣고 귀순자 유도 절차에 나섰지만 북한군은 곧바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됐다. 추진철책은 흔히 전방철책으로 불리는 남방한계선 철책과는 달리 그 이북 비무장지대에 있는 GP 사이에 설치된 철책이다. 휴전선 부근에는 남·북방한계선, 남·북의 추진철책 등 모두 4줄의 철책이 동서로 가로놓여 있다. 그 한가운데의 군사분계선은 철책이 아니라 200m 간격으로 설치된 황색 표지판으로 구분돼 있다.
군 관계자는 “북한군은 녹음이 우거지는 여름철이 되면 담력강화 훈련 차원에서 이런 식의 전방 침투 훈련을 실시한다”며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 행위”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지금 비무장지대 내 작전에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듣고 있다”며 “어느 사단 지역에 귀순유도 인터폰과 깃발을 북괴군들이 전부 집어갔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우리도 공세적 대비 작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한국이 홀대한 세계적 ‘옥수수 박사’, 중국이 냉큼 채갔다 7.7 한겨레
‘옥수수 박사’ 김순권 국제옥수수재단 이사장은 1998년부터 59차례나 북한을 방문해 식량난 해결을 돕고자 옥수수 생산 증대 농법을 전수해왔으나 보수정권 이래 남북교류가 막혀 누구보다 애를 태우고 있다. 사진은 9차 방북 때 평남 마옥 옥수수시험장 현장지도 모습. 사진 국제옥수수재단 제공
중국에 육종 연구 터 마련한 김순권 박사
그는 미국이 55년간 연구해 만들어낸 옥수수 교잡종(하이브리드)을 5년 만에 개발해냈다. 개발도상국에선 개발이 불가능하다던, 그리고 개발한 뒤에도 한국 땅에선 안 된다며 국내 관료들과 수입업자들마저 재배를 반대했던 그의 발명품 ‘수원 19호’는 강원도 옥수수 농사를 완전히 바꿔 놓았고, 아프리카·아시아·중남미에 충격파를 던졌다. 아프리카 농업을 폐농 지경으로 몰아간 악마의 풀 스트라이가(Striga)와 위축바이러스(MSV)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농업혁명’을 일으켰다는 찬사와 함께 노벨평화·생리학상 후보에도 여러 차례 올랐다. 그는 옥수수를 통해 남북관계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으며, 중국 옥수수농업 발전에도 중대한 기여를 했다. 옥수수 육종학의 세계적 권위자 김순권(69·사진) 박사. 국제옥수수재단 이사장이요 한동대 석좌교수, 벤처기업 ‘닥터콘’의 대표인 그는 중국에서 전화를 받았다.
‘수원19호’로 강원도 옥수수 혁명
중 정부가 자립도 높이려 모셔가
1년 대부분 전세계 돌며 육종
“한국, 사료용 옥수수 자급도 0.8%
관료 등 수입 이권 챙기기만 급급”
“동북3성의 지린·창춘·단둥 등에 있는 모두 1만5천평 규모의 육종연구단지들을 둘러보고, 6월 말 개막한 베이징 경제엑스포에도 가봤다. 지난해 처음 중국 곡물 생산량 1위 자리를 옥수수가 차지했다. 연간 8억~9억톤에 이르는 세계 옥수수 생산량의 25%씩을 미국과 중국이 각각 차지하고 있다. 동북3성은 경작지의 80%를 옥수수가 뒤덮고 있다. 나머지는 도로와 마을이 각각 10%씩이다.” 그는 10일 일단 귀국했다가 14일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한달가량 머물 예정이라고 했다. 중국 정부가 그를 외국인 우수과학자로 지정한 덕에 아파트와 연구비, 왕복 비행기삯까지 지원받는다. 중국에는 그가 연구자금 마련을 위해 2005년 설립한 벤처기업 ‘닥터콘’ 현지법인도 있다. “중국엔 옥수수 종자기업들이 6천개나 있다. 웬만한 외국 업체들은 맥도 못 춘다. 닥터콘을 중국 내 5위 안에 올려놓을 자신이 있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열정적이고 힘이 넘쳤다. “1년의 약 3분의 2를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육종을 하고 있다”는 그는 정작 국내에서는 찬밥 신세다.“정부는 내 연구를 딱 3년간 지원해주곤 중단시켰다. 심지어 가축을 건강하게 키우는 기능성 사료용 옥수수의 생체 수량이 수입종보다 30% 이상 높은 육종 연구마저 중단시켰다. 연구에 성공하면 국가적으로 얼마나 큰 이득이 되는지 뻔히 알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는 말했다. “연간 1천만톤의 옥수수를 수입해 70%를 가축 사료로 이용하는 대한민국에서 사료용 옥수수 자급도는 0.8%다. 육종 연구만 잘하면 남아도는 논에 사료용, 바이오 연료용 옥수수를 심어 상당량의 수입 대체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가능한 일이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관피아’를 입에 올리면서, 김 박사는 수입규모 연간 1천만톤, 50억달러로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의 옥수수 수입국인 우리나라 관료와 정치인, 학자들이 그 막대한 옥수수 수입 관련 이권 챙기기에만 골몰하며 나라 전체, 나아가 남북 민족 전체의 이익은 외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옥수수의 최대 수입처가 바로 농협’이고, 교수들마저 거들어 ‘교피아’라는 말도 나온다.
그는 최근 자신과 가족, 그리고 47년째 옥수수 육종 역사를 돌아보는 자서전 <하루하루가 기적이다>(상상나무 펴냄)를 냈다.
그가 3년 남짓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수원 시리즈’ 옥수수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1970년대 중반, 타이 방콕에서 열린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ESCAP)에 참석한 그의 옥수수 관련 발표를 듣고자 당시 중국과 소련, 베트남 등 미수교 사회주의권에서도 대표단을 보냈다. 79년 아프리카로 건너가 17년을 머물 때도 계속 그의 연구에 관심을 쏟았던 중국은 84~85년 그를 특별초청했다. “열흘간 베이징과 난징, 광저우 등 4곳을 돌며 옥수수 세미나를 열고 200종의 원종 하이브리드 종자를 나눠주고 시험재배를 하게 했다. 그때 그들은 내가 농촌진흥청에 있으면서 개발한 신품종 ‘KS-5’를 자신들의 재래종과 교배해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내려 하고 있었는데, 응애가 끼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때 하얼빈 등 동북3성 지역에서는 수수와 조가 주곡이어서 옥수수 생산량이 미미했다.” 지금도 중국은 미국의 65%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자국산 옥수수의 단위 생산량을 높이고자 그의 도움을 바라고 있다. “90% 가까이 끌어올릴 수 있다. 닥터콘은 5천만톤 증산을 목표로 삼고 있다.”
중국은 그의 옥수수 줄기를 이용한 에탄올 생산 연구도 주시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해마다 옥수수 알곡 1억톤을 에탄올 생산에 투입하고 있다. 최근 세계 식량파동이 일어 3년 사이 옥수수 값이 3배나 뛴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 포스코의 지원을 받아 알곡이 아니라 옥수수 줄기(대)를 에탄올 원료로 이용하는 방안을 3년째 연구하고 있다. 알곡과 거의 같은 에탄올 성분을 함유한 줄기를 지닌 옥수수를 개발해 알곡은 알곡대로 거두고 줄기는 에탄올 생산에 이용하는 것인데, 지금 70~80% 정도는 성공했다.”
그는 이미 농약이 필요 없는 찰옥수수와 꿀옥수수 등 신품종들을 상품화했고, 캄보디아 옥수수 농사를 망쳐 온 노균병 문제도 해결했다. 러시아 남부나 몽골, 북에서 잘 자라는 냉해에 강한 품종도 개발 중이다. “특히 북한은 종자와 비료 문제만 해결되면 천혜의 옥수수 천국이 될 수 있다.” 98년부터 59차례나 찾아간 북한과의 교류·협력이 파탄나고 굶주리는 북녘 동포들을 위한 옥수수 협력 또한 막다른 골목에 와 있는 현실을 그는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다
꽃다지 거리 콘서트 ‘침묵은 똥이다’ 7.2 미디어오늘
[서정민갑의 뮤직코드] 노래만큼 좋은 세상을 꿈꾸는 꽃다지의 오늘
거리 콘서트의 제목은 <침묵은 똥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뭐라도 해야 한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SNS에 글이라도 쓰고, 서명도 하고, 시위도 하고, 돈도 내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벌써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두 달이 더 지나가는데도 아직도 승객들을 다 찾지 못했고, 진실도 다 밝히지 못했다. 그래서 더더욱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하지만 뭐든 해야 한다는 당위의 반대편에는 무엇을 하더라도 쉽게 달라지지 않는 현실이 빙벽처럼 버티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백만명이 서명을 해도 움직이지 않는 정부, 비판을 해도 제 갈 길만 가는 박근혜 정부의 뻔뻔함 앞에서 분노 이상의 절망을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 지난 6월 27일 금요일 서울 대한문 앞에서 꽃다지 거리 콘서트 ‘침묵은 똥이다’ 가 열렸다. 사진=박성훈
그래서였을까. 공연에서 꽃다지는 싸워야 한다고, 투쟁을 해야 한다고 강변하지 않았다. 옛 노래와 새 노래를 적절하게 섞은 15곡의 레퍼토리를 통해 꽃다지는 시대의 불의와 모순을 강조하는 대신,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을 냉정하게 보여주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 ‘시대’에서 ‘파이터(Fighter)’처럼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도 정직하게 드러냈다. 꽃다지의 홍소영이 만든 곡 ’보이지 않는 벽‘에서 ’보이지 않는 벽에 갇힌 이 곳은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 진술하고,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물었지 / 앞으로 어떻게 살아 갈 건지 / 어떡해 난 뭐라 할말이 없어 그저 이렇게 살아갈 뿐이라 말했지‘라고 노래한 ’또 친구에게‘를 들려줄 때 객석에 앉은 우리는 무엇 하나 속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절망과 모멸감을 곱씹으며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꽃다지는 그런 우리를 비난하거나 재촉하지 않았다. 정혜윤이 만든 곡 ‘바람이 불어와’는 ‘예전에 있던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듣는 이들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며 위로했고, 꽃다지의 4집에 실린 ‘당부’는 ‘젊음만으로 어쩔 수 없는 / 분노하는 것만으론 어쩔 수 없는 / 생각했던 것보단 더 단단하고 복잡한 세상 앞에서’ 지치고 ‘무너졌’던 ‘우리’를 다독여주었다. 그러면서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음을 일깨워주고 ‘저 평등의 땅’으로 가자고 속삭여주었다. ‘아름다운 그이’, ‘사람’과 함께 가자고, ‘좋은 이들과 함께 한다는 건 /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의 전부’라고, ‘우리 시작도 좋은 이들과 함께 사는 세상 / 그것을 꿈꾸었기 때문’이라고 다시 얘기해줬다. 오래된 명곡들, ‘임을 위한 행진곡’과 ‘노래’, ‘누가 나에게 이 길을’, ‘불나비’, ‘저 평등의 땅에’, ‘아름다운 사람’ 같은 노래들은 노래 자체의 감동만이 아니라 그 노래들과 함께 오랫동안 살아오고 싸워왔던 시간들을 저절로 떠올리게 했다. 노래만 오래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싸움도 오래된 것임을, 우리가 그처럼 오래 이 길에 함께 있음을, 우리 곁에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들이 있음을 일깨워줬다. 그리고 꽃다지가 비교적 최근에 만든 노래들, ’Fighter’, ‘보이지 않는 벽’, ‘하루’, ‘바람이 불어와’, ‘당부’ 같은 노래들 역시 오늘을 회피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그래서 노래를 듣는 동안 참 많은 날들이 스쳐갔고, 더 힘든 날들도 지나왔음을 깨달았고, 새삼 여기서 멈출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노래가 우리를 토닥이고, 노래가 다시 오늘을 살아갈 수 있게 힘을 불어넣어준 것이다.
▲ 지난 6월 27일 금요일 서울 대한문 앞에서 꽃다지 거리 콘서트 ‘침묵은 똥이다’ 가 열렸다. 사진=박성훈
이날 공연은 선곡이 매우 훌륭했는데 감동은 단순히 노래와 노랫말 때문은 아니었다. 3인조 보컬 그룹으로 정비된 꽃다지는 콘서트 내내 다채롭고 세련된 편곡과 인상적인 독창, 합창을 선보이며 마음을 흔들었다. 이미 익숙한 노래들은 꽃다지의 편곡을 통해 노래의 결과 음영이 더욱 선명해졌다. 밴드와 보컬이 함께 직조해낸 사운드 역시 풍성했다. 일렉트릭 기타의 인트로 연주가 돋보였던 ‘Fighter’와 ‘보이지 않는 벽’, 록킹하고 드라마틱한 스케일이 인상적이었던 ‘보이지 않는 벽’, 홍소영의 플룻 연주가 더해지면서 더욱 섬세해진 ‘바람이 불어와’, CCM 풍으로 편곡한 ‘노래’, 해맑은 느낌을 살린 ‘누가 나에게 이 길을’, 비트를 여러번 바꾸며 버라이어티하게 재구성한 ‘불나비’와 ‘아름다운 사람’ 등등 모든 곡들이 변화무쌍했다. 섬세함과 유려함, 박진감이 함께 살아있는 음악은 포크적이면서도 록킹했고, 3명뿐인 보컬 편성에도 불구하고 전혀 상투적이지 않았다. 3명의 보컬과 4명의 연주자의 조합으로 끌어낼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끌어낸 공연은 3명의 보컬이 서로에게 기대 최적화되어 있으며 그들의 에너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사운드를 만드는 가창자로서만이 아니라 창작자로서 꽃다지의 멤버들이 써낸 곡들 또한 훌륭했다. 꽃다지가 20년이 넘게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민중가수로서의 진보적 치열성 때문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음악을 책임지고 음악을 음악답게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추려는 예술적 성실성 때문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 지난 6월 27일 금요일 서울 대한문 앞에서 꽃다지 거리 콘서트 ‘침묵은 똥이다’ 가 열렸다. 사진=박성훈
그 덕분인지 공연이 끝날 무렵 객석의 의자는 꽉 찼고 대한문 앞 곳곳에서 기백명의 관객들이 서거나 앉아 공연을 지켜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거리에서 노래를 나누려는 꽃다지의 마음을 기꺼이 함께 나눈 것이다. 꽃다지는 앞으로 10월까지 최소한 네 번의 거리콘서트를 더 열겠다고 했다. 분노와 모멸감, 패배감으로 얼어붙은 우리의 마음을 다독이려고 이렇게 애쓰고 있는 것이다. 노래만큼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이렇게 애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더 많은 박수를 보내고 지갑은 더 활짝 열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고마운 노래, 고마운 사람들에 대한 예의이자 의리 아니겠는가.
‘중 1’에게 대학 ‘정수론’을…막가는 선행학습 7.7 한겨레
‘사교육 걱정’, 서울 시내 주요 학원들 실태 조사
올 2월 통과된 ‘선행교육 규제법’ 공교육만 금지
‘반쪽 규제’ 비웃듯…학원가 선행학습 더 심해져
지난 2월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된 이후 ‘사교육 과열지구’ 내 주요 학원들의 수학 선행학습이 오히려 심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중학교 1학년에게 대학 2학년 과정의 정수론을 가르칠 정도여서 사설 학원에 대한 선행교육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교육걱정)이 서울 강남·송파·강서·노원 등 4개 구에 있는 주요 학원 10곳의 수학·과학 선행교육 실태를 조사한 결과, 올해 들어 현재까지 평균 4.0년의 선행학습이 이뤄지고 있었다. 2012년과 2013년 평균 3.8년에 비해 0.2년이 늘었다.
특히 올해부터 송파 청어람수학원, 대치 플라즈마, 대치 씨엠에스(CMS) 등 선행학습이 심각한 학원 세 곳을 추가했더니, 선행교육 정도가 13곳 평균 4.2년으로 늘어났다. 조사 대상 학원은 사교육 전문가들의 추천을 받아, 과열지구에서 선행교육 문제가 많은 곳을 선정했다고 사교육걱정은 밝혔다. 선행교육이란 학교 교과과정 범위를 벗어난 내용을 미리 가르치는 것으로, 학원들은 영재학교·과학고·의대 입시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초등학생에게 고교 과정, 중학생에게 대학 과정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사교육걱정 조사 결과, 강서 청산학원은 지난해까지 2년 정도 선행교육을 시키다 올해부터 ‘7년 선행’을 시작했다. 이 학원은 중학교 1·2·3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영재고와 과학고반 강의에서 대학 2·3학년 과정에 해당하는 정수론을 가르친다고 홍보했다. 대치 플라즈마는 초등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올림피아드 대비반을 개설했는데, 초등학생에게 고3 과정인 물리Ⅱ와 화학Ⅱ를 가르친다고 홍보했다. 두 과목은 일반고 3학년 학생들도 어려워서 교과 선택을 기피하는 과목이다. 영재학교나 과학고 입시에서 올림피아드 수상 실적이 반영되지 않는데도 합격 이후를 위해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강좌를 개설한 것으로 보인다.
사교육걱정은 “선행교육 규제법 통과로 선행교육 실태가 호전됐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조사 과정에서 기대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밝혔다. 안상진 부소장은 “사교육 업계는 사교육 규제법 시행으로 공교육에선 선행교육이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들어 학원 선행교육을 홍보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 영어 사교육 문제로 인해 영어 절대평가화 논의가 시작되자 ‘변별력은 수학’이라며 수학 선행교육을 홍보하는 역효과가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사교육걱정은 “사교육기관이 선행교육 상품을 선전·광고하지 못하도록 교육부와 교육청이 적극적인 실태파악 및 행정지도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교육부는 영재학교, 특목고, 자사고 및 대학 입학전형에 상급학교 교육과정이 반영되는 것을 철저히 규제해 이에 대비한 학원 선행교육이 무의미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교육걱정은 선행교육 규제법에서 공교육뿐만 아니라 사교육 기관의 선행교육을 규제하도록 추가적인 입법 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하루 13시간’ 방학 특강에 갇힌 아이들 711 시사인
방학 특강은 방학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맞춰진 값비싼 수업이다. ‘일단 들어두면 다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합리화된 채 강행된다.
한 달 가까웠던 기말고사 대비 기간이 마무리되고 있다. 시험 기간 내내 소진된 기운을 채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가르치는 내가 이러할진대, 학생들이야 말해 무엇할까. 그러나 학원에는 여름방학 특강이 기다리고 있다. 삶은 언제나 섭리의 자갈밭 어디쯤이라는데, 이쯤 되면 죽을 때까지 자갈밭만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우리 학생들, 다른 건 몰라도 인고의 가치 하나만은 잘 배우고 있다.
상상해본다. 계획 1. 아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한 당신 떠나라!’는 단체 문자를 보낸다. 하지만 이건 선동의 증거가 남으니까 취소. 계획 2. 적절한 휴식이 공부에 더 도움이 된다고 학부모를 설득한다. 이 역시 학부모의 교육철학과 부딪칠 수 있으니 취소. 계획 3. 특강의 허구성에 대해 원장님과 다퉈 담판을 짓는다. 너, 학원 그만두고 싶니?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정해져 있다. 바로 계획 4. 여름방학 특강을 격렬하게 준비한다. 왜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왕 하는 것 최대한 도움될 수 있는 방향으로. 특강이 끝나면 또 중간고사 대비가 시작될 거라는 암담한 전망은 잠시 접어둔다.
하지만 정말 주변 상황 때문에 특강을 하는 것일까? 특강에 대해 요구하는 학부모가 없어도, 방학 기간 모자란 부분을 보충하겠다는 학생들이 없어도, 과연 강사들은 특강을 하지 않을까? 아마도 그러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적극적인 자세로 ‘지금이 아니면 늦는다’라든가 ‘역전의 마지막 기회’라면서 특강의 필요성을 홍보하고 있을 것이다. 누구보다 학생들이 놀고 싶어하는 이 시기에, 아이들과 같이 넋을 놓고 있다가는 매주 줄어드는 수강생 숫자에 초조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방학 특강이 언제부터 시작된 전통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역사에 걸맞은 ‘특별 강의’가 진행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3년간 차근차근 배우면 될 지식들 중 그럴듯해 보이는 특정 부분을 도려내 특강으로 편성한다. 수요가 생길 것 같을 때 예정에 없던 수업을 급조하는 경우도 많다. 이 수업의 의미라고는 학교에 가지 않는 시간이 학원에 오는 시간으로 바뀌는 것 정도다. ‘특별한’ 수업이 아니라 방학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맞춰진 값비싼 수업인 것이다. 게다가 어차피 학생들은 지금 들어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함정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수업은 ‘일단 들어두면 다 도움이 된다’는 식으로 합리화된 채 강행된다.
ⓒ박해성 그림
많은 강사들은 말한다. ‘이번 방학이 놀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지만, 따라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고. 하지만 꾸준한 공부가 아니면 효과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사가 모를 리 없다. 단지 돈벌이를 위해 이리저리 말을 바꾸는 학원에 학생들은 휘둘린다.
“방학이니까 놀아”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
며칠 전, ‘수능이 500일도 안 남았다’며 초조해하는 고2 학생들에게 ‘엄청 많이 남았다’며 농담을 던졌더니 이런 반응들이 돌아왔다. “학기 중엔 내신 공부하니까 방학 때 따라잡아야 하는데, 방학 이제 세 번 남았잖아요. 전 끝났어요.” “선생님은 또 방학 때 국어 하라고 그러시겠죠, 수학에서는 수학 하라고 그러고, 영어도 하라 그럴 거고, 방학 때 더 바빠요.” “기말고사 끝났는데 놀 수가 없어요, 이제 과학도 해야 해요. 방학 내내 학원에 13시간씩 있어요. 완전 끔찍해요.”
학생들의 그런 반응을 보며 차마 “방학이니까 놀아”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다른 친구들도 다 하는데 혼자 안 하면 불안한 심정도 이해되고, 함부로 쉬라고 말했다가 저 아이의 인생을 망치면 어떡하나 하는 나의 불안도 있기 때문이다. 특강이 허구인 것을 알고 있지만 ‘들을 필요 없다’는 한마디를 하기가 참 어렵다. 무슨 말을 하려다가도 ‘뭐라도 하면 노는 것보다는 낫겠지’라는 강력한 방어막에 자꾸 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방학 기간에 무료 특강을 진행하겠다는 학원도 종종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양심 있는 학원인 척 행동하는 부류도 보인다. 하지만 그것 역시 수강생 수를 유지하기 위한 서비스 수업임은 마찬가지다. 특강의 문제는 비용의 문제가 아니다. 요점은 방학 특강이 과연 학생들에게 필요하냐는 것이다. 학교가 공식적으로 쉬는 기간을 굳이 공부로 채워넣어야 한다면, 그렇게 3년을 채워도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다면, 이 교육과정이 애초에 아이들에게 무리한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의미일 텐데 말이다
입시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혁신학교? 7.2 시사인
진보 교육감 2기’가 열리면서 ‘혁신학교 2기’도 시작됐다. 2014년 3월 현재 전국의 혁신학교는 모두 578곳. 혁신학교 발상지인 경기가 282곳으로, 이 가운데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혁신학교 2기는 과연 순항할 수 있을까.
혁신학교와 관련해 보수 성향 비판자들이 일차로 문제 삼는 것은 ‘전교조 소굴’이라는 것이다. 전교조 지부장 출신이 8명이나 교육감으로 당선된 마당에 이런 색깔론은 사실상 빛바랜 측면이 있다. 현장의 고민은 오히려 다른 데서 감지된다. “솔직히 전교조 교사들이 모여주면 다행이다. 혁신학교가 잘되려면 교사들의 자발성과 헌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전교조 교사들의 경우 이런 준비가 상대적으로 잘돼 있는 편이기 때문이다”라고 서울의 한 혁신학교 교사는 말했다. 문제는 이런 교사가 극히 적다는 사실이다. 과중한 업무 부담 때문에 혁신학교를 기피하는 교사도 많다.
‘준비된 교사’와 더불어 ‘준비된 관리자’가 부족하다는 것 또한 불안 요소다. “혁신학교에서는 교장이 자기 권한을 일정 정도 교사들에게 위임하면서 수평적 리더십으로 학교를 끌고 가는 것이 필요한데, 수직적 리더십에 익숙한 교장의 경우 교사들과 마찰을 빚는 일이 잦다”라고 광명의 한 교사는 말했다.
혁신학교는 ‘학력’을 넘어 ‘배움’을 강조한다. 위는 경기 양평 조현초등학교. ⓒ시사IN 자료
혁신학교 양극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광명의 또 다른 교사는 “예산 타내기용으로 프로그램을 모방한 ‘무늬만 혁신학교’도 전체의 70%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뿐 아니다. 혁신학교는 본래 농촌이나 도심 변두리에 있는 낙후된 학교를 살리고자 도입됐다. 그런데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이른바 ‘잘나가는 혁신학교’는 중산층 밀집지에 들어선 신설 학교인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인근 부동산 값이 폭등하고, 과밀 학급이 발생하는 부작용도 발생한다.
고교 학부모들이 혁신학교 지정 반대한 까닭
더 큰 걸림돌은 ‘혁신학교=노는 학교’라는 인식이다. 구름산초등학교의 한 학부모는 “고학년에 올라가면 부모들이 정확히 ‘투 트랙’으로 나뉘는 것 같다. 아이들을 SKY(서울대·연세대·고려대)에 보내고 싶어하는 엄마들은 학원 밀집지인 철산동이나 목동 등지로 빠진다”라고 말했다. 상급 학교에 이르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지난해 광명에 개교한 광휘고는 애초 혁신학교 지정을 추진했다. “혁신학교를 하겠다면 학부모들이 100% 찬성할 줄 알았다”라고 이 학교 박형근 교사는 말했다. 착각이었다. ‘혁신학교는 아이들이 공부를 안 한다더라’며 학부모들이 반대해 이들의 구상은 결국 무산됐다. 전국 혁신학교 578곳 중 고등학교는 60곳에 불과하다. 한국외국어대 산학협력단이 지난해 벌인 설문조사에서도 고등학생들의 혁신교육지구 만족도는 39.4%로 초등학교(75.4%)나 중학교(49.8%)에 비해 크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팀은 이를 대학 입시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운산고 홍진호 교사는 혁신학교가 입시에 불리할 것이라는 전제 자체가 편견이라고 말했다. “최근 입시가 수시 중심으로 흐르면서 생활기록부 등의 영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혁신학교 방식으로 창의 체험활동을 강화하면 생활기록부가 훨씬 풍부해진다”라는 것이다. 혁신학교로 지난해 졸업생을 처음 배출한 이 학교의 경우, 중·하위권 성적으로 입학했던 학생들이 이른바 ‘인(in) 서울’ 대학에 진학하는 데 성공하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좀 더 궁극적으로 혁신학교가 순항하기 위해서는 ‘즐거운 학교’를 넘어 ‘배움이 있는 학교’로 무게중심을 옮길 필요가 있다고 김보채 구름산초등학교 교사는 말했다. 혁신학교에서 말하는 배움은 ‘성적’이나 ‘학력’과는 다르다. 혁신학교는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 대신 스스로 사고하고 협업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토론 수업 등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이런 식의 교육이 받아들여지려면 결국 대학 입시를 포함해 모든 줄 세우기식 평가체제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근본 요인이기는 하다. 진보 교육감들이 입시제도 개선을 공동 공약으로 내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혁신학교는 공교육을 통해 이런 미래형 교육과정을 앞당기겠다고 선언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최소한 혁신학교에서는 학부모가 ‘우리 아이 학원 보낼 시간이니까 수업 빨리 끝내주세요’라고 당당하게 말하기 어렵다. 교사·학부모·학생 사이에 ‘학교가 중심’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김보채 교사는 말했다. 학교의 귀환. 이는 어쩌면 혁신학교 2기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일지 모른다.
혁신학교 어디까지 왔니?
교사 홍진호씨는 자칭 타칭 ‘출장 전문 교사’다. 이 학교 저 학교로 출장 다니는 게 일이다. 3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경기도 광명시 운산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평범한 교사였다. 그랬던 그가 어쩌다 광명시내 46개 초·중·고교를 하루가 멀다 하고 드나들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광명이 혁신교육지구라는 데 있다. 2011년 광명이 혁신교육지구로 지정된 이래 광명교육지원청에는 매년 혁신학교 교사 1~2명이 파견 근무를 하고 있다. 혁신학교 교육과정을 일반학교에 전파하고, 혁신학교 또한 지속적으로 변화할 수 있게끔 지원하기 위해서다. 홍씨는 이를 위해 파견된 교사 중 한 사람이다. 혁신학교 출신인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밑거름 삼아 혁신교육 컨설턴트 구실을 하는 셈이다.
혁신교육지구는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이 2010년 경기 지자체를 상대로 먼저 제안한 사업이다. 2009년 시작된 혁신학교가 경기 전역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자 한 걸음 더 나아가 혁신학교의 일반화를 꾀하고자 구상한 모델이다. 핵심은 교육 개혁에 지자체를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교육청과 지자체가 각각 예산을 분담하고 사업을 함께 진행하는 구조를 마련함으로써 더 안정적인 기반 위에서 교육 개혁을 추진하고자 한 것이다(누이 좋고 매부도 좋고 기사 참조).
>ⓒ시사IN 조남진<광명 혁신교육지구에는 협력교사를 둔 학교들이 많다. 광명시의 예산 지원 덕분이다. 협력교사는 수업 진행을 도우며 뒤처진 아이들을 돌본다.
광명 혁신교육지구에는 협력교사를 둔 학교들이 많다. 광명시의 예산 지원 덕분이다. 협력교사는 수업 진행을 도우며 뒤처진 아이들을 돌본다. 광명은 처음부터 교육청의 제안에 적극 응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양기대 광명시장은 취임 직후 시청 산하에 교육지원과를 새로 만들고, 그 사무실을 시장실 바로 곁에 배치하며 교육 문제에 의지를 보여왔다. 광명 학부모 또한 5만4000여 명이 혁신교육지구 청원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열성을 보였다. 그 결과 혁신교육지구 6곳(광명·구리·시흥·안양·오산·의정부) 중 하나로 광명이 최종 선정된 것이다. 그 뒤 광명시는 매년 30억원 안팎에 이르는 예산을 혁신교육지구 사업에 투입해왔다. 경기교육청 지원 예산을 합하면 매년 40억원 가까운 예산이 교육 분야에 집중 투입된 셈이다.
그로부터 4년. 광명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일단 눈에 보이는 뚜렷한 변화는 인구가 늘었다는 것이다. 2009년 말 기준으로 32만명을 밑돌던 광명시 인구는 2011년 최초로 35만명을 넘어섰다. 물론 인구 증가를 교육 효과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KTX 광명역을 중심으로 한 역세권 개발과 서울-세종 간 통근인구 증가 등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보다 직접적 요인은 ‘혁신학교 효과’로 보인다고 광명시는 분석했다.
혁신학교 밀집 지역 인구증가율 24%
혁신학교가 밀집한 소하동 일대를 보면 상관관계는 더 뚜렷하다. 2014년 광명시 혁신학교는 전체 학교(46개교)의 24%인 11개교에 이른다. 그런데 소하동에 7개가 몰려 있다. 그뿐 아니다. 그간 혁신학교 학부모들의 가장 큰 불안 중 하나가 ‘상급학교 진학 시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였는데, 이를 감안해 이 동네에는 초·중·고교로 이어지는 이른바 혁신학교 벨트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 혁신교육지구 지정 직후 한 해 동안 소하동 인구증가율은 24%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 광명시 전체 인구증가율 3.26%를 크게 앞지른 수치다.
인구 35만명이 사는 광명시에는 46개 초·중·고교가 있다. 그중 24%인 11곳이 혁신학교다. 추가로 6개 학교가 혁신학교 전환을 준비 중이다.
소하동 인구는 지난해부터는 감소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이 또한 교육 열풍이 식어서라기보다는 지나치게 폭등한 주거비 부담 때문으로 보인다고 하태화 광명시 교육지원과 교육협력팀장은 말했다. 혁신학교를 찾아 이사하는 가구가 늘면서 전세금 부담이 크게 늘고, 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동네를 떠나는 이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광명 혁신학교 1호’로 꼽히는 구름산초등학교에 아이 둘을 보내는 소하동 주민 김지은씨(가명)는 “올 초 전셋집을 재계약했는데, 집주인이 109㎡(33평) 아파트 전셋값을 2년 만에 1억원이나 올려달라고 해서 당혹스러웠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구름산초 학군으로 불리는 이 아파트 단지의 경우 5월 말 기준으로 109㎡형 전셋값이 3억3000만~3억4000만원에 이른다. 웬만한 서울 지역보다 높은 시세다. 그러다 보니 주소만 소하동에 둔 채 멀리 안양이나 서울 구로·금천 등지에서 통학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김씨는 말했다. 지난해에는 학부모들이 직접 나서서 위장전입 감시단을 꾸렸을 정도다.
또 한 가지 가시적인 변화는 교육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11월 경기교육청 의뢰를 받아 혁신교육지구 6곳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벌인 한국외국어대 산학협력단(책임연구원 김용련 교수)은 교원 79.5%, 학부모 71.5%, 학생 63.3%가 혁신교육지구에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점은 각자 만족한다고 밝힌 부분이 조금씩 달랐다는 점이다. 일단 학부모들이 가장 만족스러워한 것은 협력교사 제도와 도서관 사업 등이었다. 협력교사란 수업을 도와주는 보조교사를 일컫는다. 6월13일 기자가 찾아간 충현중학교 수학 교실에는 교사가 둘이었다. 한 사람은 정규교사, 한 사람은 협력교사였다. 수업을 듣는 2학년 학생들은 모둠별로 ‘학부모가 원하는 직업’과 ‘학생들이 원하는 직업’을 미리 설문 조사해온 뒤 이를 통계로 내는 법을 실습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수업이 진행될수록 모둠 간에 실력 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모둠별로 지급된 태블릿 PC 프로그램을 잘 다루지 못해 헤매는 그룹도 있었다. 이때 협력교사가 진가를 발휘했다. 정규교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틈새를 협력교사가 메워주는 것이었다. “수업시간뿐 아니라 수업을 준비할 때도 협력교사가 큰 도움이 된다. 예전 같으면 창의적이긴 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시도하지 않았을 수업도 과감히 해보게 된다”라고 수학 교사 이은정씨는 말했다. 주미화 광명교육희망네트워크 대표는 “초등학교의 경우 학습이 부진한 아이들을 돌보는 데 협력교사가 큰 도움이 되는 듯하다. 올해 협력교사 관련 예산이 줄면서 학부모들이 아쉬워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충현중에서는 휴대전화 소지를 금지하지 않고 수업 시간에 이를 스스로 활용하게끔 한다.
교사들은 혁신교육지구 사업을 통해 상담교사·사서 등 전문 인력을 지원받고,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을 시도하게 된 것을 특히 만족스러워했다. 충현중 교사 최은상씨는 “혁신학교의 경우 행정실무사가 추가 투입되면서 교사들이 행정 잡무에 시간을 뺏기는 대신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라고 말했다. 적정 인력이 투입될 때 교육의 질 또한 높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인건비 부담이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쟁점이 되었던 것이 혁신학교에 대한 과도한 예산 지원 문제였다. 그러나 혁신교육지구인 광명의 경우 지자체가 예산을 분담하면서 일반학교에까지 이런 지원이 가능해졌다.
토목사업 대신 프로그램 위주로 예산을 지원하는 것 또한 만족도를 높인 요소다. “그 전에도 지자체가 학교에 예산을 지원하기는 했다. 그러나 대부분이 강당이나 체육관을 건립하는 등에 쓰였다. 혁신교육지구가 된 뒤로는 이런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라고 하태화 팀장은 말했다. 일단 우선 지원되는 것은 수업을 혁신하거나 학생들의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런 사업을 위에서 일방적으로 내려보내지 않고, 학교 단위에서 직접 기안해 올려 공모 절차를 밟게 한 것도 과거와 달라진 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일반학교들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사업 초기에는 공모에 응한 학교가 대부분 혁신학교였다. 그러나 갈수록 일반학교 참여가 늘더니 올해는 46개 학교 거의 전부가 공모에 참여했다. 그 바람에 혁신학교들이 후순위로 밀렸다”라고 공모 사업 심사에 학부모 대표로 참여한 윤지영씨는 말했다.
ⓒ시사IN 조남진 충현중 교사들이 수업 연구 모임을 하고 있는 장면.
이 같은 변화를 추동한 힘의 한 축은 학부모였다. 혁신학교나 인근 학교 소문에 자극받은 학부모들은 “왜 우리 학교는 저런 걸 안 하느냐”라며 학교를 압박하고 나섰다. 한 일반학교 교장은 “솔직히 부모님들이 자꾸 다른 학교와 우리 학교를 비교하니까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좀 더 핵심적인 변화는 교사들에게서 비롯됐다. 구름산초 김보채 교사는 “혁신학교에 와서 달라진 점은 학교와 관련된 모든 일을 ‘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일반학교 교무회의는 업무를 지시받고 ‘예, 알겠습니다’ 하면 되는 자리였다. 그런데 혁신학교는 ‘모두의 학교’라는 생각이 강하다 보니 교사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게 되더라는 것이다. 물론 그만큼 책임도 따른다. 한 교사는 “혁신학교 교사라는 이유만으로 긴장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 이대로 나태해지면 안 된다는 무언의 압력 같은 걸 늘 느낀다”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일반학교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새로 생긴 광휘고 교사들은 혁신학교처럼 수업 연구회를 운영하는가 하면, 전체 교사가 모이는 토론회를 상설화하고 있다. 말이 토론이지 처음에는 언성을 높이며 서로 부딪치는 일도 많았다. 특히 교문 지도, 복장 검사 등을 금지하는 문제를 놓고 교사 간에 찬반 격론이 벌어졌다. 서로의 교육관·가치관까지 다 드러낸 논쟁 끝에 내린 결론은 학생들의 자율적인 판단 능력을 존중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이 학교에서는 교문 지도나 복장 검사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 휴대전화 소지도 금지하지 않는다. 벌칙은 텃밭 가꾸기 등으로 대신한다. 담배 피우다 걸리면 담쟁이넝쿨을 심게 하는 식이다. “소통을 강조하면서 소통을 윽박지르는 학교가 많다. 그러나 믿어주고 기다려주면 아이들이 알아서 변한다는 걸 알게 됐다”라고 이 학교 김영조 혁신부장은 말했다. ‘혁신학교보다 더 혁신학교 같은’ 일반학교의 출현이다.
광휘고에서는 전교생이 자기 텃밭을 가꾼다. 독창적 수업 방식 덕분에 ‘혁신학교보다 더 혁신학교 같다’는 얘기를 듣는다. ⓒ시사IN 조남진
이연희 충현중 혁신부장은 “단위 학교를 넘어 지역사회와 교류하는 과정에서 더 성장하게 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혁신교육지구 사업에 참여하는 일반학교와 혁신학교 교사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다 보면 서로 자극받고 배울 점이 생긴다는 것이다.
학교와 주민이 만나는 근사한 교육 현장
그뿐 아니다. 지자체가 결합한 사업 특성상 혁신교육지구 예산을 지원받는 이들 학교 대부분은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한다. 충현중의 경우 지난해 광명 바로알기를 주제로 협력수업을 벌였다. 이를테면 역사 시간에는 광명의 선사시대를 알아보고, 미술 시간에는 이를 토대로 옛 생활상을 복원하는 작품을 만들며, 사회 시간에는 주민 인터뷰를 시도하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의 첫 반응은 냉랭했다. “이 동네에 아파트 말고 뭐가 있어요?”라는 식이었다. 그러나 동네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광명에 가학광산이라는 유서 깊은 탄광이 있었고, 기형도 시인이 살았다는 사실을 하나씩 알아갔다. 동네에서 떡볶이 팔던 아줌마가 알고 보니 가야금의 달인이었다는 식으로, ‘이웃의 재발견’도 이루어졌다. 이렇게 섭외된 주민이 수업 중 교단에 서기도 했다. “한마디로 ‘케미(화학적 상승작용)’가 폭발했다고나 할까. 주민과 학교가 만나면 굉장히 근사한 일들을 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이연희 부장은 말했다.
6·4 선거에서 이른바 진보 교육감 13명이 대거 당선되면서 새삼 주목받는 것이 혁신학교다. 이들 교육감은 혁신학교 확대를 일제히 공약으로 내걸었다. 혁신학교를 맨 먼저 도입한 경기도의 경우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원하는 모든 학교를 혁신학교로 예비 지정하겠다”(이재정 당선자)라며 혁신학교 일반화를 예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처럼 특정 학교에 집중하는 방식으로는 혁신학교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인력이나 예산 모두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광명 모델이 주목을 받는 것은 그래서다.
물론 현행 혁신교육지구 모델에 허점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광명에서 만난 교사와 학부모들은 “혁신교육지구 사업은 당연히 계속돼야 한다”라고 입을 모았다. 단순히 지자체와 교육청이 예산을 분담해서 교육 투자를 늘린다는 차원에서만이 아니다. 지난해 경기교육청 의뢰를 받아 이 사업을 점검한 한국외국어대 산학협력단은 “혁신교육지구 사업이 과거 지역사회의 명문학교 만들기와는 다른 방식으로 지역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고 있다”라고 평가했다(<경기도 혁신교육지구 사업 발전방안 연구>). 성적을 중심으로 학교 간 경쟁을 강조하던 과거와 달리 혁신교육지구에서는 일반학교와 혁신학교가 ‘학교 간 연대와 협력’을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전체 학교를 변화시켜 나가고, 이것이 다시 지역사회 전반을 교육 공동체로 세워내는 기반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에 대한 만족감이 지역사회에 대한 자긍심으로 이어진다는 사실 또한 주목할 만하다. 광명에서만 30년을 살았다는 이연희 교사는 “내가 초등학교 다닐 적만 해도 고학년으로 올라가면 친구들이 좋은 학군을 찾아 서울로 이사를 가곤 했다. 전학 간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한 학년에 두 반이 없어진 일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광명이 오히려 교육 때문에 찾아오는 도시가 되었다. 놀라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구름산초 학부모 김지은씨는 “우리 동네 놀이터에서는 밤 10시까지 뛰어노는 아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본래 그런 부모들이 이곳에 온 건지, 아니면 이곳에서 학교를 보내다 보니 그리 변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을 달달 볶는 엄마가 거의 없다. 이웃끼리 잘 알고 지내기에 남의 아이도 내 아이처럼 봐준다”라고 말했다. 혁신학교에서 시작된 교육 혁신이 겨우 4년여 만에 한 도시를 ‘떠나고 싶은 베드타운’에서 ‘머물고 싶은 교육 공동체’로 바꿔놓은 셈이다. 사업 종료 후 이른바 ‘인력 금단현상’ 내지 ‘예산 금단현상’
대한민국은 아이들을 잊었다
한국의 어린이 놀이터를 보면 현재도 그렇지만 앞으로 이 나라의 상상력이 얼마나 바닥을 헤맬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놀이터에 들어가는 놀이기구는 마치 한 회사에서 만들어 납품하는 것처럼 아무런 차이가 없다.
아이들을 이런 곳에서 놀도록 하면서 창의와 혁신을 부르짖는 대한민국이 안쓰럽다. 교육방송에서 얼마 전 북유럽의 어린이 놀이터를 다뤘다. 놀이운동가로 지낸 세월의 눈으로 <놀이터 프로젝트>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심정은 내내 착잡했다.
그것은 다큐멘터리를 잘못 만들어서도 아니고 관점이 어긋나서도 아니다. 놀이기구는 부서지고 쓰레기가 널려 있고 모래는 오염된 한국의 황폐한 아이들 놀이터와는 너무나 멀고 먼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하는 게 내내 불편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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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우리 계몽은 이제 그만하자. 텔레비전 화면에 보이는 북유럽의 아이들 놀이터는 말하자면 신기루였다. 지금은 한국의 놀이터가 공공의 놀이터 본디 목적과 쓰임에 충실하도록 만들자는 논의가 필요한 때다.
오늘 대한민국 도시 한가운데 있는 놀이터의 모래나 흙의 오염 상태는 자못 심각하다. 아파트 숲 사이사이 자그마한 모래밭이라도 신이 나서 파헤치는 아이들을 보면, 그 모습이 어여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치 않다. 이제라도 동네 분들이 아이들 놀이터 관리를 스스로 맡아 때가 되면 모래와 흙을 갈아주고 부서진 위험한 놀이기구를 손질해주면 좋겠다. 나라에서 안 하면 우리라도 하자.
놀이터에 황토 부어놓고 수도꼭지 달아주면 어떨까
놀이기구를 놀이터에 사 넣는 데만 돈을 쓰지 말고 황토 한 차 부어놓고 수도꼭지 하나 달아주면 어떨까.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터는 이런 놀이터이지 놀이기구가 촘촘히 들어선 놀이터가 아니다. 동네 어린이 놀이터와 학교 운동장이 어떻게 망가지고 있는지 보라. 아파트나 동네 놀이터가 어린이들을 위해 확보된 공간이라는 것은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이런 놀이터에 갑자기 어른들의 체육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보면서도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따지는 어른이 없다.
어른들 체육시설은 따로 공간을 확보해 지어야 마땅한데 이미 있는 동네 어린이 놀이터 땅을 차지하려 든다. 도시 속에 마지막 남은 아이들 놀이 공간마저 야금야금 삼키려는 탐욕은 나를 질리게 한다. 골치 아프기만 한 어린이 놀이터 땅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려는 움직임도 거세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아이들을 잊었다. 대한민국에 아이를 생각하는 어른을 갈수록 찾아보기 힘들다. 초등학교 모래 운동장을 환경호르몬이 그득한 비닐로 덮어버리는 대한민국의 상상력을 보라. 설령 북유럽의 어린이 놀이터를 그대로 옮겨온들 대한민국 아이들이 나와서 놀 수 있을까. 비록 작은 공간이라도 놀이터를 제대로 만들어야 아이들의 상상력이 풍부해진다는 걸 다시금 생각해보자.
우정 없는 교실
소비가 아이들의 놀이가 될 즈음 아이들 사이에서 ‘따돌림’이 새로운 놀이로 자리 잡았다. ‘놀 틈’과 ‘놀 터’와 ‘놀 동무’라는, 놀이에 꼭 있어야 할 세 요소가 무참히 뿌리 뽑힌 아이들이 놀이 대신 하는 것이 ‘왕따 놀이’이고 ‘소비와 쇼핑 놀이’다. 아이들은 서로 괴롭히고 빼앗고 때리고 그것을 잊기 위해 소비하면서 쾌감의 나락에 빠져든다. 한 놈만 칭찬받는 경쟁의 정글 속에서 답답함을 잊으려고 약하거나 눈에 띄는 아이 하나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인데, 괴롭힘의 손맛에 점점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한다. 피해 아이는 마치 사채업자의 빚 독촉에 밤낮으로 시달리고 도망 다니는 어른들과 비슷한 상태에 빠진다.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다.
아이들이 놓인 진짜 현실은 어떤 것일까. 어른들의 어림짐작은 언제나 빗나간다. 어른들은 아이들 삶을 읽지 못한다. 실제는 언제나 더욱 잔혹하다.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들의 잔혹함이 아이들에게 학습된 것이 분명하다. 넬슨 만델라가 말했듯이 한 사회가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만큼 그 사회의 정신을 정확히 보여주는 것도 없다. 먼저 그 고통의 공간을 낱낱이 들여다보자.
그곳은 교실이라 이름 붙여진 닭장이다. 오늘날 공장식 ‘닭장’과 교실은 매우 닮았다. 교실은 어느 선생님 말씀대로 여인숙이 아니라 닭장으로 진화 중이다. 공장식 닭장에서 일어나는 일이 교실에서 벌어진다. 먼저 닭장 우리를 둘러보자. 사방이 막혀 있어 옴쭉달싹할 수 없다. 오로지 닭들이 키워지는 까닭은 달걀과 고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경쟁과 상품으로 아이들이 교실에서 키워지듯 말이다.
이곳에서는 ‘살아남기’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주제가 될 수 없다. 달걀과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닭들의 개성 따위는 무시된다. 잠도 안 재우고 환기도 안 시킨다. 악취와 똥오줌이 머리 위에서 비처럼 내린다. 이 상황을 닭들은 어떻게 버틸까. 그 생존 전략이 바로 ‘여럿이 한 놈 괴롭히기’다. 닭장 속 닭들은 허약한 닭을 부리로 짓이기며 제 고통을 잊는다.
닭장 안에서 조금의 자존감도 느낄 수 없던 닭이 다른 닭을 존중한다는 것은 당치 않은 이야기다. 왕따는 바로 존중받지 못하고 관심받지 못한 아이들이 벌이는 존재의 드러냄이다. 이렇게라도 존재감을 찾으려는 몸부림이다. 이 닭장이 바로 우리의 학교이고 교실이다. 왕따가 왜 아이들 놀이로 환영받고 있는지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보자. ‘왕따’는 타고난 결대로 놀지 못해 더는 견딜 수 없는 아이들이 스스로 살려고 만들어낸 처절한 놀이다. 이러한 사실을 외면한 채 펴는 무성한 왕따 논의는 가망이 없다.
건강한 닭을 만들려면 닭장을 부수고 닭들을 땅에서 뛰어놀게 해야 한다. 닭들의 감옥과 아이들의 감옥을 열어야 한다. 닭장과 교실을 삶터와 놀이터로 만드는 데 관심을 둬야 한다. 아이들이 진정 바라고 왕따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는 닭장 밖으로 나온 아이들끼리 우정을 회복하는 데서 찾아질 것이다. 아이들은 우정을 원하고 있다. 아이들은 우정을 나눌 여유로운 시간을 갖기를 간절히 바란다. 함께 놀아야 우정도 나눌 것이 아닌가. 또래의 아이들은 우정 없이 살 수 없다. 우리도 학창 시설을 우정으로 견뎠지 않는가. 상상해보라. 우정 없이 교실에서 홀로 견디는 아이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말이다. 우정을 나눌 친구는 많이도 필요 없다. 한둘이면 충분하다. 한 교실에서 우정을 나눌 단 한 명의 친구도 만들기 어렵다면 그 교실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아이들을 빼돌린 건 누구일까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고 했더니 부모들이 내게 말한다. “그래 당신 말 알아들었고 당신 말이 맞다. 그런데 밖에 아이들이 나와 놀아야 우리 아이도 나가 놀 것이 아닌가”. 아이들이 없는데 어떻게 놀라는 말인가… 솔직히 말해 나는 이런 의견을 듣고 속내를 드러내는 걸 꽤 자제해왔다. 그러나 이제 편히 이야기하겠다. 어른들이 참 염치를 모른다. 어른들이 비겁해도 너무 비겁하다. 어른들이 끝끝내 자기 아이 생각밖에 하지 않는다.
밖에 나가면 함께 놀 아이들이 없으니까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 손을 잡고 빠져나가면서 자신들의 이어지는 이런저런 ‘아이 빼돌리기’ 행위가 정당하다는 근거로 가져다 쓴다. 그러면서도 동네 아이들이 모두 외국으로 떠나버려 없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이렇게 강변하는 부모들은 곧이어 아이들을 학원으로 돌리고 미디어와 게임기를 손에 쥐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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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에 아이들이 없다는 걸 부모 마음대로 아이들을 이런저런 데로 빼돌리기 위한 핑곗거리로 삼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 어른들의 비겁함과 뻔뻔함은 여기까지 왔다. 동네 마당과 골목에 나가도 아이들이 없게 만드는 일에 나와 당신이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깊숙이 이바지했음을 진정 모른단 말인가. 당신과 나의 이런 태도가 마당과 골목을 없애고 놀이와 아이들을 떼어놓는 일에 단단히 한몫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밖에 나가면 함께 놀 아이가 없다고 항변하지 말고 왜 밖에 나가면 아이가 없는지, 그 많던 아이가 다 어디로 갔는지, 당신의 아이를 그동안 어디로 빼돌렸는지, 이 아이들을 마당과 골목에서 사로잡아 한곳에 모아둔 자들은 누구인지 물어보자. 그것이 나를 비롯한 우리였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만약, 아이들을 놀이터에서 사라지게 한 자들이 우리였음을 안다면 그 우리와 어떻게 싸워 아이들의 놀 터와 놀 틈을 되찾아올 것인지 출발할 수 있다.
왜 아이들이 없는지는 간단하다. 우리가 모두 한목소리로 동네를 돌며 피리를 불어 아이들을 모아 한곳으로 빼돌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말이다. 서울 한복판이라고 할 수 있는 용산 근처 외국인과 한국인이 섞여 사는 곳에 가보면 오후에 놀이터에 나와 노는 아이는 대부분 외국 아이들이다. 그들은 묻는다. 한국 아이들은 이 시간에 다 어디에 있는데 보이지 않느냐고 말이다.
부모들은 한두 번 자기 아이를 밖에 나가 놀게 해보려 했으나 나온 아이들이 없어서 그만둘 수밖에 없다고 자주 말한다. 그러니까 아이가 집에서 게임을 할 수밖에 없고 학원에 보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렇듯 아이를 오래도록 밖에 나가 놀지 못하게 뒷덜미를 틀어잡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막말이다. 밖에 나가면 함께 놀 아이들이 없다고 발을 뺄 것이 아니라 왜 아이들이 없는지, 다 어디 갔는지, 우리 사는 세상에 누가 무슨 짓을 해서 가까이 사는 옆집 아이 하나와도 손을 잡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물어보자.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인 것을 나도 잘 안다. 그래서 쉽게 넘어서기 어렵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면 차선은 상식을 가지고 정직한 태도로 아이를 돌보는 일이다. 그게 부모이다
밥상머리 교육의 참뜻
정갈한 음식을 아이들 앞에 차려낼 수 있어야 부모다. 아이들은 본디 음식 맛을 알 수 있어야 한다. 가공되지 않은 상태의 음식을 밥상에서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 음식을 고를 때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것은 ‘어른인 우리가 어렸을 때도 먹었던 음식인가’다. 아이들이 산과 강과 바다와 들로 나가 자연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 만큼 밥상에서 산과 강과 바다와 들에서 나는 먹을거리를 만나야 한다. 아이들은 지금 자연과 멀어졌을 뿐 아니라 자연이 주는 밥상과도 헤어지는 중이다. 그래서 아이들 건강은 심각하게 위협받는다. 식품첨가물과 설탕 그리고 카페인으로 얼룩진 음식들이 아이들의 과잉 행동을 일으키는 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아이들 교육은 밥상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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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랑 먹느냐다. 유기농이냐 아니냐보다 더 중요하다. 밥 먹는 그 자리에 함께 있어야 부모라는 말이다. 밥 먹을 때 자리에 없던 부모와 아이들은 커서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다. 열 살 앞뒤의 시기를 보내는 아이의 부모가 해야 할 긴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아이들이 평생 쓸 몸을 가꾸는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걸 깨닫는 일이다.
아이들은 이 10년의 시기에 몸과 마음을 만든다. 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이 크려면 잘 자고 잘 놀고 잘 먹을 수 있게 도와야 한다. 그런데 잘 먹는 게 무엇인지 따져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 아이들은 너무 많이 먹거나 아니면 먹지 않기 때문이다. 잘 자고 잘 놀고는 맞지만 잘 먹는다는 것은 바로잡아야 할 것 같다. ‘바르게’ 먹는 것으로 말이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정직하고 건강하게 길러진 음식을 바르게 먹도록 해야 한다. 아이들은 지금 몸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고, 음식을 먹는 습관 또한 이 시기에 자리 잡기 때문이다. 걱정스러운 대목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 스스로 바르게 먹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이다. 아이들은 부모를 따라 먹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아이들은 정갈한 음식을 만나기 어렵기만 하다. 건강은 앞선 부모 세대보다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음식이 사람을 만들고 부모가 먹는 것이 아이들 먹는 것이 된다는 말이다. 부모가 햄·소시지·달걀·고기 위주의 식습관을 가졌고 이에 대해 성찰이 없다면 아이들은 그렇게 먹을 수밖에 없다. 이런 음식 광고들에 어려서부터 길드는 것은 물론이다.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말이 있다. 그 뜻을 밥상머리에서 아이들 버릇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으로 아는 분들이 있다. 밥상머리 교육은 교육이라는 것이 정갈한 상차림에서 시작한다는 뜻이다. 밥상 앞에서 자연을 만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밥상머리 교육이다. 그렇다면 어떤 아이들이 자연을 옮겨온 정갈한 밥상을 받아들고 달게 음식을 먹을까. 하루를 마음껏 뛰논 아이다.
열 살 전 아이들한테 꼭 만나게 해줘야 할 것이 있다. 첫 번째가 배고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이들이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배고픔을 만날 수 없는 교육이라는 것은 가짜다. 그렇다면 어떤 아이가 배고픔을 느낄 수 있을까? 그렇다. 마음껏 뛰논 아이가 배가 꺼지고 배고픔이 무엇인 줄 안다. 두 번째, 피곤함을 알아야 한다. 하루를 뛰놀며 보낸 아이는 늦은 저녁 피곤함과 만난다. 피곤해서 잠에 떨어지는 아이가 아이다. 배고픔과 피곤함이 무엇인지 당신은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가. 아이들이 배고픔과 피곤함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교육과 부모는 아이들을 영영 모른다
강남엄마들 궁금해하는 1% 대안학교 가보니…711 주간한국
학부모 직업 의사, 교수, 법조인 등 다양 연간 드는 금액 2,000만 원 수준
국제·과학·인재의 앞글자를 따서 '국과인학교'라 명명한 만큼 특히 과학 커리큘럼이 남달랐다.(사진=국과인학교 제공)
"전교생 총 18명에 교직원 12명이라 맞춤형 교육이 가능해요. 국어, 영어, 수학을 비롯해 예체능까지 배우는 과목은 다양하고요. 등록금, 기숙사 비 포함해서 연간 1,800만 원 정도 들지만 서울에 있는 기숙형 대안학교라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갈 수도 있고, 학부모들이 언제든 아이가 보고 싶을 때 찾아올 수 있어서 외국으로 보내는 대신 이곳을 선호하시는 거 같아요. 비싸다지만 금액도 유학보다는 저렴하고요. 학부모들은 의사, 교수, 법조계 쪽에 계신 분들이 많아요."
대안학교 중에 연간 드는 금액이 2,000만 원 가까이 된다는 '귀족학교'가 있다는 말을 듣고 9일 서울 종로구 서울국과인학교(이하 국과인학교)를 찾았다. 어찌 된 영문인지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학생들은 미국학교에서 온 교환학생들과 함께 하는 국제실험경연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모두 학교를 빠져나간 상황이었다. 국제·과학·인재의 앞글자를 따서 '국과인학교'라 명명한 만큼 특히 과학 커리큘럼이 남달랐다. 당장 고등학생들이 들어도 될 법한 수준으로 과학수업이 진행되며, 단과대학에 못지않은 연구실 기자재를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한국생명과학연구소(한생연) 부설 학교답게 연구원들이 직접 학생들의 실험을 지도한다. 영어로 수학을 배우는 국제수학, 영어로 과학을 배우는 과학영어 수업이 대안교과 과정으로 있다. 중국어와 일본어는 중학교 1학년 과정부터 필수로 배운다. 교외체험에는 승마, 골프 수업 등이 포함돼 있고, 악기도 별도 수업으로 배운다고 했다.
국과인학교는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베일에 가려진 곳이다. 소수정예로 학생을 뽑고, 그 절차도 까다롭다고 소문이 났다. 서류전형을 통과한 후 1차예비학교와 2차예비학교를 거쳐야 하는데, 3박 4일간의 공동생활을 통해 학생의 인성 및 자립성 등을 판단한다고 한다. 예비학교에서 지원 학생들은 오전 7시에 기상해 1교시부터 8교시까지 실제 학기와 비슷한 커리큘럼을 따라야 하며, 이 과정에서 교사들은 학생들이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한지 여부를 살펴본다. 과외만 해서 자기주도학습이 어렵다거나, 부모의 의존도가 높은 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탈락한다.
"귀족학교요? 사실 학부모 입장에서는 금액이 부담스러울 거 같아요. 처음에 기부금 명목의 발전기금 1,000만 원과 예치금 500만 원을 받아요. 기숙사·수업료 등을 포함해 월 150만 원 정도씩 들죠. 발전기금은 저희 학교뿐 아니라 대부분의 미인가 학교에서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학교 관계자는 '귀족학교'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크게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제공하고 있는 수준의 교육을 꾸준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금액이 필요하다면서 이처럼 설명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초기 대안학교는 인성중심의 학교를 만들고자 하는 데 집중돼 있었지만, 2010년부터 다양성을 추구하며 특색 있는 학교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또 현재 수준의 커리큘럼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미인가 대안학교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고도 밝혔다. 미인가 대안학교라 학력인정이 되지 않아 중학교 3학년 과정에 있는 학생들은 학교에서 따로 검정고시를 준비해준다.
"졸업한 대부분의 학생이 외고, 과학고 등으로 진학해요. 현재 과학고 2학년 과정을 마치고 조기 졸업해 성균관대에 입학한 1기 학생도 있고요. 학부모들의 수요가 있는 한 저희와 비슷한 콘셉트의 대안학교가 계속 생기지 않을까요? 학부모들이 공교육을 불신한다기보다는 아이들에게 좀 더 다양한 체험학습을 시키고 싶어 하는 거 같아요."
대안학교 17년… '귀족학교' 등장까지
공교육 한계 느껴 90년대 중반부터 속속 나타나 '귀족학교'까지 등장하며 양극화 현상 우려
'매일 아침 일곱 시 삼십 분까지/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90년대 중반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를 기억하는 3040세대가 많을 듯싶다. 십 대들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사회적으로도 이슈가 된 '교실이데아'는 당시 공교육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교육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1990년 중반 시작된 대안교육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등장한 새로운 교육실험이었다. 획일적이고 부조리한 공교육 시스템의 '대안'으로 등장해 입시 위주의 교육이 아닌 생생한 현장과 공동체 의식을 중시할 뿐 아니라 내적인 학습동기, 자율적인 통제 등을 목표로 했다.
이런 뜻에서 지난 1997년 국내 대안학교 최초로 산청간디학교가 탄생했다. 경남 산청에 자리한 간디학교는 기존 공교육을 보완하는 차원을 넘어, 기존의 학교와 전혀 다른 새로운 학교를 건설하겠다는 목표 아래 세워졌다. 수업은 지식교육, 감성교육, 노동교육으로 이뤄졌다. 언어, 수학, 역사뿐 아니라 연극, 작문, 요리, 텃밭 바꾸기 등을 배우며 학생들이 폭넓은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커리큘럼으로 진행했다. 이후 이와 비슷한 커리큘럼을 갖춘 대안학교가 속속 설립됐다. 대체로 '학교는 즐겁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을 표방했고, 더 세분되고 특성화된 대안학교들이 늘어났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으로 국내에는 총 260여 개의 대안학교가 설립돼 있다. 학력이 인정되는 인가 대안학교는 30여 곳, 학력 인정이 되지 않는 미인가 대안학교는 230여 곳에 이른다. 처음에 대안학교는 일반학교에서 문제를 겪거나 공교육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가는 곳으로 여겨졌지만 현재 미인가 대안학교 중 일부는 외국 학교 못지않은 커리큘럼을 자랑하며 영재들이 다니는 곳으로 변모했다. 기본 과목은 물론 승마와 골프, 음악과 미술 등을 가르치며 학생들이 더 다양한 스포츠와 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했다지만 일각에서는 대안학교 사이에도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미인가 대안학교 170곳을 분석한 결과 학생들이 연간 부담하는 금액(입학금, 수업료, 기숙사비 포함)은 평균 620만 7,000원이었다. 외국어 등 국제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학교에서는 연간 1,000만 원 이상을 부담하는 곳도 있었다. 다문화가정이나 탈북청소년 등 취약계층을 위한 대안학교는 연간 부담금액이 무료(52개)인 곳도 있었으며, 2,000만 원이 넘는 곳도 5곳인 것으로 집계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평균적으로 서울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연간 부담하는 금액은 175만 원 정도고 인가 대안학교도 이와 비슷하다. 자사고는 600만 원 수준이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대안학교라는 이름을 내걸고 영어교육 등에 치중하며 '고급 입시학원'으로 전락했다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유명 상급 학교나 유학을 가기 위한 편법 과정으로 이용된다는 주장이다. 교육부가 제2의 사교육장으로 변질한 미인가 대안학교를 관리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이에 교육부가 미인가 대안교육시설 등록을 의무화하고,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시설을 폐쇄 조치하겠다고 밝혔으나 대안학교 관련 단체는 반발하고 나서고 있다.
대안교육연대는 "이 같은 조치는 교육부의 통제 아래 대안교육시설을 두겠다는 뜻이고, 교육과정을 간섭하겠다는 의미"라며 "대안교육이 존재하는 이유인 자율성과 민주성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교육부도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제19대 국회에서 발의한 대안교육 관련 법률안에 교육부의 수정안을 추가해 하반기 국회에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학생들, 연어처럼 돌아오는 이유… 산청간디학교 남호섭 교장 인터뷰
대안학교는 혁신학교의 모델 교육 당국 대안학교 다양성 인정해야
남호섭 산청간디학교 교장은 "대안학교가 지난 17년간 공교육에 많은 영감을 줬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벌써 17년째다. 지난 1997년 경남 산청에 국내 최초로 대안학교가 문을 연다고 했을 때 교육계는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교사와 한생 간 수평구조를 지향하고, 회의를 통해 민주적으로 의견을 도출하는 모습은 당시 가히 획기적이었다. 일반학교에서 적응을 어려워한 '문제 학생'이 텃밭을 가꾸며 양손에 흙을 묻힌 채 "학교가 좋다"고 말하던 브라운관 속 모습이 생생하다. 성인으로 성장한 학생들은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한 번쯤은 다시 찾았다. 그중 몇 명은 이곳 교사가 되기도 했다. 남호섭 산청간디학교 교장은 "학생들이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한다"며 "언제나 찾아와도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주류사회 속하지 않아도 괜찮아
- 학생들 자랑 좀 해 달라.
우리 학생들 자랑하자면 끝도 없다. 학생 때부터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훈련을 해서인지, 자신의 일에 후회가 적다. 소위 말하는 주류사회에 속하지 않아도 두려워하지 않는 학생들이 많다. 민주적인 회의문화가 발전해서인지 민주시민의식과 주인의식도 강하고, 모교를 사랑하는 마음도 대단하다. 같이 생활했던 친구와 선생님들도 평생의 지원자로 생각한다.
- 학교가 지향하는 학생의 모습은.
미래가 아닌, 현재의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이다. 우리는 '전인적인 사람, 공동체적인 사람, 자연과 조화로운 사람'으로 학생들을 양성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교과목도 지식교과, 감성교과, 자립교과 등으로 골고루 편성했다. 입시 위주에서 벗어난 명실상부 전인교육을 지향한다. 학생들은 기숙사생활과 농촌활동 등을 통해 더불어 사는 방식을 익힌다. 자발적으로 친환경제품 사용 운동을 하는 모습 등을 보면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한 거 같아 한 편으로 뿌듯하다.
- 어떤 방식으로 교육이 진행되나.
입시 위주에서 벗어난 명실상부한 전인교육을 지향한다. 교과목도 국어, 영어, 수학 등을 배우는 '지식교과'와 음악, 미술, 시 등을 배우는 '감성교과', 농사, 음식만들기 등을 배우는 '자립교과'로 나뉘어 자율적인 인간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골고루 배운다. 성과가 당장 눈에 안 보이도 더디게 나타나도 괜찮다. 학생들이 '사랑'과 '자발성'을 배워 현재에서 행복을 느끼고, 자율적인 어른으로 성장하면 된다.
- 학생, 교사, 학부모가 '학교의 삼주체'라는 부분이 재미있다.
교사나 학부모 어느 한 쪽의 주장에 이끌려가지 않는다. 학생, 학부모, 교사가 '학교의 삼주체'라고 생각하며 모두의 의견을 수렴하고 소통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학교생활과 관련된 일을 결정하는 데도 교사, 교감, 교장, 학생 모두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해 결정한다. 여기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생각하는 있는 힘이 길러지고, 책임의식이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 특히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나.
처음 학교에 왔을 때 혼자서 외톨이로만 지내던 학생이 있었다. 하지만 수업을 통해 조금씩 자기표현을 하는 학생으로 변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펑크음악에 몰두해 밴드활동을 하고, 이후에는 공부에도 흥미를 느껴 손에서 책을 놓지 않더라. 대학에 가서는 데모를 실컷 하는 등 열정적으로 살더니 우리 학교로 돌아와 교사가 됐다. 학생 때부터 엉뚱한 생각으로 주변에 놀라움을 안겼는데, 지금도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내놓아 학교를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 대안학교 출신 교사가 늘어나야 한다고 보나.
그렇다. 앞서 말한 친구처럼 중·고등학교 과정을 대안교육을 받은 교사는 다를 것으로 보인다. 대안학교 시스템을 잘 이해할 수 있고, 일반학교 학생과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는 게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대안학교 출신 교사가 더 늘어나길 바란다.
- 일부 대안학교가 비싼 등록금 등으로 '고급 입시학원'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한다.
사실 미인가 대안학교는 정부에서 학교운영비를 지원받지 못해 등록금이 비쌀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도 그런 곳에 보내려는 학부모가 있고, 자발적으로 미인가를 고집하는 대안학교도 있다. 입시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대부분 학생이 한곳만을 향해 몰려가다가 훗날 행복을 포기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고 탄식하는, 그런 삶을 살게 하지 않으려고 만든 곳이 대안학교다. 비싼 등록금까지 받아가며 '대안 입시학원'처럼 운영하는 건 교육을 파는 듯한 느낌이 든다. 교육의 본질을 되새겨야 할 듯싶다.
- 공교육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대안학교는 지난 17년간 공교육에 많은 영감을 줬다고 생각한다. 최근 등장하는 혁신학교 등의 전신이 사실 대안학교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야 한다. 학벌이나 돈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진보 교육감 시대를 맞아 공교육에서 제기됐던 문제들이 이번에 대폭 개선될 것이라고 희망을 걸어본다.
“인신매매 당한 뒤 매일 밤 울면서 미군을 받았다” 7.8 한겨레
미군 기지촌에는 인신매매되어 오게 된 미성년 여성들도 다수 있었다. 하지만 국가는 이런 상황에 눈을 감았다. ‘미군에게 접대 잘해달라’는 교육만 진행했다. 교육에 나선 공무원들은 기지촌 여성들을 ‘달러를 벌어들이는 산업역군’이라 치켜세웠다. 1970년대 동두천의 기지촌 풍경. 구와바라 시세이(눈빛 아카이브) 제공
기지촌 여성 김정자의 증언
▶ ‘우리가 괜히 나섰다가 일본 우익들만 좋은 일 시키는 거 아닐까?’ 미군 기지촌 여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할 때 가장 큰 고민이 이거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정부가 미군을 위한 위안시설과 여성들을 관리했다고 폭로하고 나섰습니다. 국가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진실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잘 몰랐던 미군 기지촌의 불편한 비밀들. 김정자씨의 증언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김정자(가명)입니다. 올해 예순넷입니다. 큰 지병은 없지만 요즘 무릎관절이 좀 아픕니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오늘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이렇게 인터뷰에 나섰습니다. 저는 미군 위안부였습니다. 기지촌으로 인신매매되어 평생을 미군한테 당하면서 억울하게 살아왔지만 아무도 저와 제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자발적으로 일한 거 아니냐는 색안경만 끼었어요. 우리가 미군한테서 벌어들인 달러로 나라를 이렇게 일으켜 세웠는데, 그때는 우리더러 ‘애국자’라 그러더니 국가는 우리의 존재를 모른 척하고 있어요. 우리는 늙고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저의 언니들(기지촌 동료)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더는 못 보겠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냈습니다.
우리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왜 국가에 이런 싸움을 시작하는지 저의 인생을 통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소송에 참여한 여성 122명이 다 김정자씨와 같은 경험을 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피해의 구조가 비슷한 여성들이 상당하다. 김정자씨의 증언을 대표적으로 살펴보되, 기지촌에서의 경험은 여성마다 다르다는 점을 밝힌다. 미군 기지촌에서 미군과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은 미군 위안부, 기지촌 여성, 특수업태부, 양공주 등으로 불려왔다. 정부는 위안부와 특수업태부를 혼용해 사용해왔다. 1957년 제정된 ‘전염병 예방법 시행령’ 제4조에서 규정한 ‘위안부’는 1969년의 개정 법률에서 그대로 사용되다가 1977년 개정 시 삭제된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까지도 시·군 공무원들은 미군 기지촌 여성들을 한국 남성과 성매매를 하는 윤락여성과 구분해 위안부라고 불렀다.(<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 39쪽)
1950년대 전쟁통에 아버지 잃고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하다
돈을 벌 수 있다는 친구 꾐에
열여섯에 집을 나와 찾아간
그곳에서 지옥은 시작되었다
“그 시절에도 성매매는 불법
미군 기지촌만 합법이었어요
공무원들은 한달에 한번씩
‘미군한테 서비스 잘하라’며
애국자라 치켜세워줬어요”
스무살로 위장시키는 포주…하루 서너명씩 받아
“저는 1950년 1월에 태어났습니다.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모르지만 어렸을 때 천안에서 살았어요. 친아버지는 군인이었는데 전쟁통에 저를 보러 왔다가 탈영병이 되어서 헌병한테 잡혀갔어요. 그냥 맞아서 죽었다는 얘기만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나중에 재혼했어요.제가 열두살 때쯤부터인가 제 의붓아버지는 어머니만 없으면 저를 겁탈했어요. 의붓오빠들도 저를 건드렸어요. 그걸 어머니께 말도 못 하고 꾹 참다가 열여섯살 때(1965년께) 집을 나와버렸어요. 제 초등학교 친구가 있었어요.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거예요. 방직공장이라고 했어요. 걔를 따라 서울역까지 기차 타고 왔어요.
서울역에서 친구 따라 또 어딘가로 갔는데 뭔가 이상한 거예요. 방직공장은 안 보이고 미군들만 길에서 ‘쌀라쌀라’ 거리면서 돌아다니더라고요. 어떤 집으로 들어갔는데 집에 ‘남바’가 붙어 있었어요. 1호실, 2호실, 3호실 이렇게. 저는 여관인 줄 알고 잤어요. 제 친구는 다음날 잠깐 어디 좀 다녀오겠다고 하더니 안 왔어요.
(50대로 보이는) 어떤 아줌마가 나타났어요. 나보고 따라오래요. 공장에 데려다 주려나 보다 싶어 따라갔어요. 그런데 저더러 하는 얘기가 ‘네 친구가 빚을 안 갚고 도망갔으니 네가 갚아라’고 하는 거예요. 얼마인지는 얘기도 안 해주고, 친구 대신 돈을 갚아야 제가 나갈 수 있다고 했어요. 어떻게 돈을 버냐고 물었어요. 밤에 언니들 따라가 보면 안다고 했어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제가 간 곳은 파주 용주골(연풍리)이라는 데였어요. 미군기지 주변에서 여자들이 몸 파는 곳이었어요. 제 친구가 빚을 갚지 못해 저를 팔아넘긴 거였어요.” 김정자씨는 인신매매를 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이해하기에는 김정자씨의 당시 나이가 너무 어렸다. 친구의 행동이 원망스러웠지만 김씨는 하는 수 없이 친구의 빚을 갚기로 결심했다. “아줌마(포주)는 저더러 클럽 나가서 손님(미군) 데려오라고 했어요. 저는 3일인가 있다가 그 포주집에서 도망갔어요. 근데 골목에서 잡혀버렸어요. ‘뒤지게’ 맞았어요. 한번만 더 도망가면 섬으로 끌고 가서 죽여버린다고 했어요.
(포주가) 파스 갖다 붙여주고 세코날(진정제)을 줬어요. 기분 좋게 해주는 거라면서 줬어요. 하나 먹으면 (중독되어서) 두개 먹어야 하고, 세개 먹으면 네개 먹게 돼요. 손님 데리고 오라고 내보내면 제가 무서워서 말을 못 붙였어요. 맨정신으로는 창피해서 손님 못 끌어요. 저는 그 약이 뭔지도 모르고 계속 먹었어요.”
김씨는 나중에 이것이 마약인 것을 알게 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약을 먹어야만 히파리(호객행위)를 하러 나갈 수 있었다. 김씨가 미군을 데리고 올 때까지 집(숙소)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한다. 한두달 일하면 빚을 갚을 줄 알고 김씨는 그냥 눈을 질끈 감고 기지촌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거기서 헤어나올 수가 없는 거예요. 빚은 계속 늘었어요. 방값이랑 화장품·미장원비랑 세코날비랑 내야 하는데 아무리 일해도 못 갚는 거예요. 이자는 계속 붙었어요.”
보통 기지촌에는 위안부 여성들의 자치조직이 있다. 자매회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기지촌에서 일을 하려면 이곳의 회원으로 등록해야 한다. 자매회에서는 뻔히 미성년자인 것을 알면서 회원증을 주고 검진증(성병에 걸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증)을 발급해 주었다는 기지촌 여성들의 증언이 많다. 보통 포주들은 십대 아이들에게 스무살이라고 말하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김정자씨의 삶은 지옥과도 같았다. 보통 기지촌 여성들은 하룻밤에 미군을 서너명씩 받아야 하는 경우가 예사였다.“그러면 거기(음부)가 얼마나 아픈지 몰라요. 긴밤·짧은밤(성매매 시간 단위) 아무리 해도 끝이 없었어요. 긴밤은 제 방에서 밤새 자고 아침에 일찍 가는 거고 10달러 받아요. 짧은밤은 제 방에서 30분에서 1시간 있다 가는 거예요. 돈은 모두 아줌마가 가져가 버려요. 제가 직접 못 받아요. 아줌마는 한달 계산해 준다면서 다 뺏었어요. 1~2개월이면 빚 다 갚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안 돼요.”
기지촌의 10대 아이들은 셈법에 밝지 못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이들이 태반이었다. 포주는 공포의 대상이라, 장부에 무엇이 어떻게 기록되는지 물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렇게 여성들은, 아니 10대의 아이들은, 밤새 울고 밤새 미군의 노리개가 되어 고통의 몸부림을 쳤다.
“도망을 갈 수가 없었어요. 일하러 갈 때 늘 남자(포주집에서 일하는 건달)들을 붙여 감시해요. 목욕을 가면 자기네(포주집)에서 제일 오래 있는 년, 주인한테 아부하는 년이랑 같이 목욕을 보내요.경찰한테 신고할 수도 없어요. 주인집에 경찰이 낮에 놀러 와요. 주인아줌마한테 누나라 그러면서 들어와요. 그러면 아줌마는 담배도 싸서 주고 그래요. 처음에 저는 아줌마 남동생인 줄 알았는데 옆의 언니들이 형사라고 귓속말해주는 거예요. 주인이 다 돈 먹이는 거라고. ‘경찰에 신고해도 내가 못 나가는구나’ 그걸 알게 되는 거죠. 내가 죽어서야 이곳을 나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거죠.”
한국전쟁은 이 땅의 여성들에게도 아물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미군 기지촌 여성들 122명은 국가를 상대로 피해배상 소송을 하기로 했다.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건물 4층에서 열린 소송 기자회견 모습.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왜 그토록 미군과 결혼하려고 했는가
“한번은 그래도 용기를 내어서 도망갔어요. 용주골에 인신매매되고 몇개월 뒤였어요. 파출소로 들어갔어요. 40대쯤 되어 보이는 경찰이 ‘왜 남의 빚 져놓고 도망가냐. 안 갚으면 영창 간다’고 하는 거예요. 포주들이 경찰서에 다 돈을 집어주던 시대였어요. 하는 수 없이 다시 포주집으로 돌아갔지요. 골방에 갇혀 또 뒤지게 맞았어요.”
김정자씨는 죽어서 절대 산에 묻히고 싶지 않다. 그가 산에서 겪은 고통스런 경험 때문이다.
“산에 가서 미군을 받아야 할 때가 제일 무서웠어요. 부대에서 훈련을 나가면 저희도 따라가야 했어요. 밤에 컴컴해지면 담요 하나 들고 아줌마 따라서 가요. 아줌마가 보초 서는 미군이랑 솰라솰라 말해요. 그럼 훈련 장소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총 들고 서 있던 놈들이 막사에 가서 여자들하고 잘 사람 나오라고 말해요. 이식스, 세븐(E-6는 하사, E-7은 중사)들도 다 했어요. 장교들은 특별히 막사 안에서 해요. 일반 병사들은 훈련장 안에 나무 있는 데에 담요 깔아놓고 하거나 구덩이를 파놓고 해요. 미군들이 파놓은 구덩이지요.”
기지촌 여성들은 그렇게 훈련장에까지 불려 가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담요로 삼고’ 미군을 받았다. 제대로 씻을 시간도 없었다. 돈을 벌어서 내려가야만 포주가 혼을 내지 않는다. 어떤 미군은 돈 대신 자신들이 먹는 말라붙은 밥을 던져주어 여성들을 애타게 했다. 여성들은 한번 훈련장에 가면 그곳에서 새벽까지 보내다 돌아왔다고 한다.
안전한 성관계는 기지촌 여성들에게 보장되기 어려웠다. “어떤 미군은 콘돔을 안 끼고 해요. 우리는 거절을 못 해요. 그래서 낙태도 참 많이 했어요. 뗀 애만 열일곱이에요.” 보건소는 포주들이 끌고 갔다. 강제로 낙태시키는 것이다. 창자까지 다 빠져나오는 고통을 견디며 여성들은 낙태 수술을 견뎠다. 낙태 이후에는 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파도 또 일하러 가야 했다. 포주들은 낙태 수술로 상한 몸을 보살필 시간도 주지 않았다. 약과 찬물 한컵 정도 들이켜고 다시 일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하루 그냥 쉬면 빚이 얼마나 늘어날지 알 수 없었다.
“이러고 살아야 하니 죽고 싶은 생각만 들지요. 기지촌에서는 한달이면 두세번은 장례를 치러야 했어요. 철길로도 뛰어들고 연탄불 피워놓고 그 가스도 먹고. 저도 세번 죽으려고 시도했어요. 그런데 무슨 놈의 팔자인지 다 깨어났어요.”김정자씨는 죽으려 해도 죽지 못했다. 공동묘지에서 자살을 기도하면 묘지 관리인이 발견하고, 집에서 동맥을 끊으면 자신을 보러 온 미군이 발견하곤 했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젊은 사람이 왜 죽으려 하느냐’고 묻곤 했다. 김씨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왜 우리들이 미군하고 그렇게 기를 쓰고 결혼하려 했는지 알아요? 그게 아니면 여기를 탈출할 방법이 없었어요. 빚을 갚을 방법이 없어요. 도망가려 해도 경찰 누구도 안 도와주고. 우리에겐 국가가 없었어요.”
아니, 국가는 있었다. 미군한테 성접대 잘하라고 교육하는 국가는 있었다. 자매회 회의가 한달에 한번씩 열리면 여성들은 참석해서 교육받아야 했다. 안 그러면 영업을 못 했다. 회의에 가면 헌병, 시아이디(C.I.D. 미군부대 범죄수사과), 보건소 직원, 경찰서장, 군청 공무원들이 모두 와 있있다. 미군은 슬라이드(필름)를 이용해 성병에 대해 설명했다. 여기까지는 그들의 할 일이라고 이해할 법하다.
파주 용주골에 팔려간 뒤
동두천·군산·평택 전전
40대 중반에 기지촌 빠져나와
도망가고 싶어도 붙잡힐까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미군부대에서 훈련 나가면
저희도 산에 따라가야 했어요
그때가 가장 무서웠어요
산에서 안한다고 반항하다가
죽은 아가씨들도 있어요”
‘토벌’당한 성병 의심자들, 언덕 위 하얀 집으로
하지만 공무원들은 이상한 교육을 더 했다. “나와서 늘 하는 말이 이거예요. ‘아가씨들이 서비스 좀 많이 해주십시오. 미군한테 절대 욕하지 마십시오. 바이 미 드링크(Buy me drink. 술 사주세요) 하세요. 그래야 동두천에 미군들이 많이 옵니다. 우리나라도 부자로 한번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군수는 저희더러 달러 벌어들이는 애국자라고 치켜세웠어요. 그러면 저희는 그래야 되나 보다 하는 거예요.”
일종의 정신교육 같은 것이었다. 여성들은 왜 이런 교육을 받아야 되는가 싶었지만 국가가 노후를 책임져준다고 하니까 그런대로 받아들였다고 한다.“턱걸이(동두천시 광암동 일대)에다가 공장을 짓고 아래층에는 가발공장, 위에는 기숙사로 만든다고 공무원들이 설명했어요. 나이 먹으면 여기에 우리가 살 수 있다고 군수가 그랬어요. 땅을 다 사뒀다고. 그러니 열심히 달러 벌라고. 우리는 늙어도 갈 데가 있구나 하고 그렇게 믿었어요. 하지만 그 약속이 지켜진 건 하나도 없지요. 포주들은 저희가 벌어온 돈으로 집도 사고 땅도 샀는데. 어떤 악명 높은 포주는 나중에 경기도의원이 되더군요.”
경찰은 인신매매되어 팔려온 아이들을 구출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성병에 걸린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잡아가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다. 잡아가는 것도 비인간적이었다. “성병 걸린 미군이 찾아와 칸택(contact·미군 성병환자에게 성병을 감염시켰을 것으로 의심되는 여성을 찍는 것)을 하면 그냥 끌려가요. 찍히면 가는 거예요. 그 미군이 어디서 성병 옮아갖고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는 그걸 토벌당한다고 불렀어요.”‘토벌당해’ 파출소에 끌려가면 유치장에서 머문 뒤 곧바로 낙검자 수용소로 옮겨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성병이 있거나 없거나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고 한다. 성병이 있다 하더라도 그냥 환자일 뿐인데 죄인처럼 다루어졌다.
“하얀 집(동두천시 소요산 아래 낙검자 수용소를 기지촌 여성들은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고 불렀다.) 가면 운동장이 크게 있는데 토벌당한 여자들 실려 오면 (건물 문을) 철커덕 잠그고 꼭 교도소 같았어요. 나갈 수 없어요. 화장실만 갈 수 있게 했어요. 유치장 같은 데서 다섯명씩 자야 해요. 바깥 창문은 쇠창살이 설치돼 있고 면회 와도 쇠창살 사이로 얼굴 보면서 얘기해야 했어요. 아니, 우리가 죄인이에요? 환자를 왜 죄인 취급했는지 이해가 안 돼요.”성병에 걸린 미군에게 무슨 조처를 했는지는 여성들에게 통보되지 않는다. 오로지 국가는 미군을 상대하는 여성의 몸을 깨끗하게 만드는 데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비쳤다.
“우리는 페니실린을 맞았어요. 그거 맞고 쇼크 때문에 죽은 사람도 있어요. 맞으면 걸음을 못 걸어요. 엉덩이 근육이 뭉치고 다리가 끊어져 나가는 거 같아요. 그걸 이틀에 한번 맞아요. 괴로운 언니들은 옥상에 올라가 떨어져 죽거나 반병신 되고 그랬어요. 저는 하얀 집에 (1982년께) 2주 동안 붙잡혀 있다 나왔어요.”김정자씨는 (1965년께) 파주 용주골에 팔려 간 뒤 동두천, 용산, 군산, 평택과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40대 중반(1990년대 중반)에야 기지촌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스물다섯 때(1974년께) 기지촌에서 한번 도망 나왔지만 다시 동두천 기지촌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어디를 도망가더라도 깡패를 보내 저를 잡으러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또 어디 공장에 취직하려면 제 신분증을 제출해야 하는데 제가 동사무소 가서 주민등록증 발급받으면 포주집에 진 빚 때문에 경찰이 저를 잡으러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김씨는 ‘스스로 기지촌에서 살아온 여성들을 피해자라고 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니네들이 좋아서 (기지촌 생활) 했는데 뭐가 불만이냐는 그런 질문을 참 많이 들어요. 한국 정부가 미국 안 끌어들였으면 우리가 이렇게 되었겠어요? 알고 봤더니 그 시절에도 성매매 행위는 법으로 금지돼 있었더라고요. 미군 기지촌만 성매매가 합법이었어요. 박정희 정부가 왜 그런 법을 만든 걸까요. 저는 잘 모르지만 미군 붙잡아 두려고 그렇게 한 거 아니겠어요? 우리더러 달러 벌게 하려고.” 미군 기지촌의 형성 과정에 국가의 어떤 정책이 영향을 미쳤고 그것이 옳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스무살도 안 된 소녀들이 기지촌에 팔려 오고, 그곳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국가가 계속 방치했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 없이 국가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김씨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믿는다.
‘식모 자리’ 알아봐준다고 따라가면 기지촌
“억울해 죽겠어요. 저같이 거기 인신매매되어 간 사람이 너무 많아요. 직업소개소에서 식모 자리 알아봐준다고 해 따라가고, 밥 준다고 따라가고 해서 가 보니 기지촌인 경우들이 너무 많았어요. 미군 위안부로 살 줄 알았다면 누가 거기 따라갔겠어요. 일본군 위안부도 인신매매되어 간 사람이 많다고 들었어요. 일본군 위안부는 피해자로 인정하는데 왜 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국가가 눈감고 있는 건가요. 당한 사람은 있는데 왜 책임지는 사람이 없냐고요. 당신 딸들이 붙잡혀 간 거라면 가만히 있겠어요? 언니들이 늙고 병들어 죽어가고 있어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다가 벌써 세분이나 돌아가셨어요. 저는 사과를 원해요. 늙고 병든 우리 몸뚱어리를 국가에서 책임져주기를 바라요. 그게 국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믿어요.
하늘에 있는 우리 (기지촌) 언니들을 위해서 제가 이렇게 나섰어요. 누군가는 증언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용기를 냈어요. 사람들이 우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었으면 좋겠어요. 제발 잘 좀 보도해 주세요.” 김정자씨는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기까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그의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지난달 20일 약 4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할 때 그는 계속 눈물을 흘렸다. 30분 증언하다 10분 울고, 30분 증언하다 다시 10분 우는 것이 반복됐다. 낙검자 수용소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고백할 때는 구토를 하기도 했다.
인생 전체가 국가가 간섭한 성폭력으로 얼룩져 있던 그에게 이번 인터뷰는 그렇게 힘든 과정이었다. 따라서 인터뷰 때 자세한 내용을 묻지 않고 최소한의 질문만 하려고 노력했다. 대신 김씨와 진행한 인터뷰와 그의 증언록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2013)의 내용을 종합해 이 글을 썼다.김정자씨는 인터뷰 뒤 바닷가로 가 새움터(기지촌 여성 지원 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다음날까지 통곡했다고 한다. 힘든 인터뷰를 결심해준 김씨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김정자씨는 현재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최소한의 생활비를 번다. 그를 부양하는 가족은 없다. 대신 새움터의 도움을 받고 있다.
조국 경제 발전에 기여한 소녀들의 충정은…”
정부는 미군 기지촌과 기지촌 여성들을 직접 관리했다. 낙검자 수용소로 성병에 걸린 여성들을 싣고 와 강제치료도 했다. 동두천시 소요산 입구에 폐허로 방치돼 있는 낙검자 수용소의 외부 모습. 허재현 기자
위안부라는 단어는 옛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인다. 꽃다운 나이에 일본 제국주의 전쟁터 한복판에 성노예로 끌려간 피해 여성들을 가리키는 용어다. 불과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위안부라는 단어는 비단 일본군 위안부만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었다. 글자 그대로 ‘군인을 위안하는 직업을 가진 여성’을 뜻하는 단어였다. 일본군 위안부, 한국군 위안부, 미군 위안부 모두 위안부로 불렸다.
‘미군 위안부’의 존재에 놀라움을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새롭게 우리 앞에 등장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흔히 ‘기지촌 여성’으로 기억하는 바로 그들일 뿐이다. 실재함을 알면서도 애써 드러내지 않던 존재, 바로 그들이다. ‘미군 위안부’라는 용어는 기지촌 여성의 인권 문제를 강조하기 위해 시민단체가 전략적 혹은 은유적으로 사용하는 용어가 아니다. 엄연히 정부와 언론은 기지촌 여성을 위안부 여성으로 지칭해왔다. ‘미군 위안부’는 관행과 제도로서 존재했다. 1961년 경향신문, 1961년 경기도청 공문서, 1973년 의정부시 공문서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들이 있다.
“유엔군 상대 위안부 성병관리사업계획에 따라 등록을 실시, 그 사업치고는 명칭이 요란스러워”(경향신문 1961년 9월15일 1면)
“유엔군 간이특수음식점 영업허가 사무 취급 세부 기준 수립. (중략) 마. 본 영업소는 동지구에 유동하는 위안부를 접대부로 고용하고…(중략)”(1961년 9월15일 경기도청 기안지)
“제1조 (목적) 이 조례는 위안부를 검진하여 낙검자(성병검진을 통과하지 못한 성병 환자를 일컬음)를 격리 수용 치료하기 위한 성병관리소의 설치 및…(중략)”(1973년 6월9일 공포한 의정부시 성병관리소 설치 개정 조례)
미군과 한국쪽 30여명으로 구성된
한미친선위원회는 기지촌 여성들의
정신·위생·영어회화 교육 협의
경기도 당국은 유엔군 특수업소의
시설개선을 인천시에 지시하기도
71~72년 미군의 철군 움직임에
청와대에서는 기지촌 정화사업
국가는 그 여성들을 한미동맹과
외화획득의 전진기지로 생각
장관이 ‘소녀 충정’ 표현할 정도
한국전쟁 때도 ‘군 위안소’ 설치
기지촌 여성들은 왜 지금 국가의 책임을 묻기 시작한 것일까. 그동안 일부 증언을 통해서만 알음알음 알려졌던 국가의 폭력이 기록으로 확인되고 있다. 미군 위안시설의 설치와 관리에 정부가 깊숙이 개입한 자료들이 그것이다. 일본군 위안소는 가장 노골적으로 국가가 개입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 연구의 권위자인 요시미 요시아키 주오대 교수가 쓴 <종군위안부 자료집>(1992)을 보면, 일본군 위안소의 형태는 크게 네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군 직영의 위안소, 둘째는 군이 인가를 내준 위안소, 셋째가 군이 지정한 민간 매춘숙, 넷째가 군인이 이용한 순수 민간 매춘숙이다. 군 위안소의 모습은 도시와 전선의 상황에 따라 양태가 달라졌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 위안소’도 국가가 직접 설치했다. 1951년 여름께 설치돼 1954년 3월 해산됐다. 만 4년 가까이 육군본부가 서울, 강릉, 춘천, 원주 등에 군 위안소를 운영했다. 1956년 육군본부가 편찬한 ‘후방전사’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 채명신 장군의 회고록 <사선을 넘고 넘어>(매일경제신문사, 1994년)에도 군 위안소를 군이 직접 통제하고 관리한 정황이 나온다. 책에는 “우리 육군은 사기 진작을 위해 60여명을 1개 중대로 하는 위안부대를 서너개 운용하고 있었다”고 적혀 있다.
1948년 공창제가 폐지되고 성매매가 금지된 상황에서 국가가 군 위안소를 운영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군은 “국가 시책에 역행하는 모순된 활동”(후방전사 148쪽)이라고 규정하고 1954년 위안소를 폐지했다. 다만, 한국군 위안소는 피해자의 증언이 없고 기록으로만 확인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한국군 위안부의 존재를 인정도 부인도 하지 않는 상태다. 불법성을 인식한 탓인지 미군 위안시설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위안시설의 지역과 구조는 국가가 계획하되 민간 성매매업자들이 정부의 지침에 따라 위안시설을 운영하는 형태를 띠었다.
박정희 정권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1961년 11월9일 윤락행위방지법을 제정했다. 윤락방지법은 1948년 공창제 폐지령에서 나아가 처벌 사항을 상세하게 기재했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박정희 정권은 이듬해 6월 성매매를 사실상 허용하는 특정지구를 전국 104개소에 설치했고, 그중 9개소를 서울에, 61개소를 경기도에 할당했다. 이 특수 지구는 상당수가 미군 기지 인근이었다. 미군 전용 특수 업소는 미군 부대 반경 2㎞ 이내로 제한됐다.
정권의 정당성이 취약했던 박정희 정권은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던 처지였다. 미군 기지 인근에서 성매매를 허용한 것은 미군의 요구사항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1962년 9월10일치 <경향신문> 7면을 보면, 휴 P 해리스 미1군단장과 박창원 경기도지사 등 미군과 한국 쪽 30여명 인사들은 한미친선위원회를 열어 기지촌 여성 대책을 논의했다. 미군과 한국 쪽 인사들은 “윤락여성 전원에게 28시간 정신, 미용, 위생 및 영어회화 등의 교육을 실시한다. 법정검진을 철저히 하고 검진을 필한 자에 한하여 위안부 행위를 허용한다”는 내용을 협의했다.
지방 정부는 구체적으로 위안소 시설의 규격을 마련하기도 했다. 1963년 4월24일치 <인천신문> 3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인천시당국은 유엔군 전용 간이특수업소의 시설을 개선하도록 하라는 경기도당국의 지시에 따라 시내 18개소에 대하여 6월30일까지 시설을 개선하도록 조치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중략) 특수업소당 업태부는 15명이 있어야 하고 거실은 20개인데 1실당 평수는 1평 반 이상으로 미달 시는 6월30일까지 증축하되 건물은 영구건물(가건물 불가)이어야 한다.”
당국은 기지촌 여성들을 위안소에 집단 수용하기를 바랐지만 예산상 문제로 민간에 시설 설립을 맡긴 것으로 보인다. 1961년 9월14일 작성된 경기도청 기안지(유엔군 간이특수음식점 영업허가 사무취급 세부기준 수립)에는, “현지 주둔 유엔군에 대한 위안 또는 사기 앙양 면을 고려하여 위안부들의 집단 수용시설이 시급하나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므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함”이라고 관계 당국의 판단을 적시했다. 인천시는 기지촌 여성들이 위안시설 집단 수용을 거부하면 처벌할 계획도 세웠다.
동두천시 소요산 입구에 폐허로 방치돼 있는 낙검자 수용소의 내부 모습. 허재현 기자
잇단 페니실린 쇼크사에 의사들은 면책
당국은 지역별 주둔 미군 수에 따라 업소(위안소)의 수 조절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1962년 1월25일 경기도청 공문(유엔군용 간이특수음식점 영업위생행정사무취급요령)을 보면 그 흔적이 나온다. 예를 들어, 이 공문에 첨부된 표(부록2. ‘유엔군용 간이특수음식점 허가 정원 대비표)에는 ‘인천시 유엔군 수 8500명, 1일 추산 외출 인원 1700명, 업소 출입자 수 1270명, 필요 업소 평수 1270, 필요 업소 수 16, 기허가 업소 수 14, 대비경감 2’라고 적혀 있다. ‘부대를 외출해 위안(업)소에 갈 미군이 하루에 1270명이라서 필요한 위안소는 16개인 반면 현재 14개 위안소밖에 없으니 2개가 더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런 식의 기록이 면단위별로 촘촘하게 표로 정리돼 있다. 이상의 내용으로 봤을 때 ‘미군 위안부 시설은 일본군 위안소와 설립·운영 방식은 다르지만 그 저변에 깔린 구조는 유사하다’는 것이 이나영 교수(중앙대 사회학과) 등 기지촌 문제를 연구하는 학계의 견해다.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국가의 관리와 통제는 1970년대 박정희 정부가 미군 감축의 위기감을 느끼면서 그 정도가 심해진다. 1969년 7월24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아시아에서 미군을 축소하겠다는 내용의 독트린을 발표한다. 정부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미국의 변경된 정책에 조처를 취해야 했고(<동맹 속의 섹스> 108~109쪽. 1997. 캐서린 문) 결국, 정부가 나서 기지촌 정화운동을 벌였다. 한미합동위원회 한국 쪽 간사로 활동했던 김기조씨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71년과 72년 두번 캠프 험프리를 방문해 한국 쪽 분과위원회 위원장의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하였다. 그 시기에 미군이 철군을 강행하려 하자, 당시 청와대에서는 1억원의 예산을 하사하여 의정부, 동두천 그리고 안정리 등의 기지촌 정화사업을 추진하였다. 당시 캠프 험프리의 사령관은 베스트 대령이었다. 그는 미군들의 휴식과 휴양을 위한 기지촌 서비스 질의 향상을 요구했고, 한국 쪽은 미군의 계속적인 주둔을 요망했기 때문에 그 요구를 거의 그대로 수용하였다.”(햇살사회복지회 소식지 10호. 2011)
정부는 기지촌 여성들의 성병 관리에 직접 나섰다. 여성들의 건강 유지나 공중 보건이 아닌 미군에게 깨끗한 성접대를 하기 위한 목적이 더욱 컸다. 강제적 성병 관리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인권 침해는 극악한 수준이었다. 성병에 걸린 미군이 헌병과 함께 찾아와 성병 감염 의심 위안부를 찍으면 여성은 해명 기회도 없이 연행됐다. 보건소에서 성병 확진 판정을 받은 여성은 낙검자 수용소에 갇혔다.
낙검자 수용소에 갇힌 여성은 과도한 페니실린 주사를 맞았는데 부작용은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했다. <한겨레>가 입수한 1978년 보건사회부가 법무부에 보낸 공문(페니실린 과민성 쇼크 사고 처리에 대한 협조요청)을 보면, 보건사회부는 법무부에 “일부 의사들이 페니실린 과민성 쇼크 사고 발생으로 주사행위를 기피하고 있어 국가 성병 관리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는바, (사고를 낸 의사에 대하여) 면책하여 주실 것을 협조요청한다”고 밝혔다. 당시 법무장관은 이를 받아들여 ‘의사들을 불기소처분 하겠다’는 회신을 보냈다.
낙검자 수용소에 끌려간 여성들은 죽음의 공포 앞에서 수용소를 탈출하려다 다치거나 죽기도 했다고 기지촌 여성들은 증언하고 있다. 국가는 기지촌 여성들을 외화 획득의 전진 기지로 생각했다. 1973년 민관식 문교부 장관은 “조국 경제 발전에 기여해 온 소녀들의 충정은 진실로 칭찬할 만하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1959년 10월 한 국회의원은 “외국 군인들을 만족시키는 매춘 여성이 있어야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말하기도 했다.(<국회 속기록에 나타난 여성정책 시각: 매매춘에 대하여> 87쪽. 조형·장필화) 국가 공무원들은 기지촌 여성들을 한두달에 한번씩 한곳에 모아 ‘위안부는 조국을 위해 외화를 버는 애국자다’라고 교육했다.
기지촌 여성 태반이 미성년자이고 인신매매당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대해 국가는 애써 눈을 감았다. 많은 여성들은 포주의 횡포와 인신매매 피해로 생긴 빚을 피해 기지촌을 탈출하려고 노력했지만 기지촌 인근의 경찰들은 외면했다. 유엔 인신매매금지협약은 “성매매를 목적으로 타인을 합의 여부에 불구하고 소개하거나 유혹 또는 유괴하는 자, 합의 여부에 불구하고 타인의 성매매 행위를 착취하는 자를 처벌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인신매매 피해에 대해, 인신매매 순간부터 그 이후의 과정까지 전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경기도는 미군의 수에 맞추어 지역별 위안업소의 수를 조절하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허재현 기자
기지촌에 원해서 들어갔다는 반론
기지촌에 원해서 들어간 여성들도 많다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국가의 책임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어떻게 군 위안소로 흘러 들어갔는지도 봐야 하지만 여성들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었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반박한다. 이재승 교수(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는 “자발적으로 들어갔건 강제로 들어갔건 여성들이 자유롭게 일을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을 국가가 방조했다면 국가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위안부라는 용어를 기지촌 여성에게 쓰는 것이 적절한지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이들을 위안부라고 설사 불러왔다 하더라도 현재의 ‘종군위안부’라는 개념으로 쓴 것은 아니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전쟁 상태이든 휴전 상태이든 인신매매되어 기지촌에 팔려가고 여성들의 신체 상태가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에서 같은 위안부 피해 구조로 봐야 한다는 재반론도 있다. 이 부분은 우리 사회가 합리적으로 답을 찾아야 할 과제이다.
‘기지촌 위안부 국가배상 소송단’은 피해 내용을 성폭력, 구타, 감금, 성매매 강요, 인신매매, 마약 투여, 강제낙태, 업주와 공무원 유착 비리 등 총 18개 세부항목으로 나누어 국가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장을 지난달 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했다. 피고는 대한민국 정부와 법무부다. 두세달 뒤부터 열리게 될 심리에서 소송단과 국가 양쪽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국회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일부 의원들을 중심으로 ‘위안부 피해 진상규명과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준비한다. 유승희 의원은 “국가 안보상 미군 주둔의 필요성 때문에 미군 기지촌 형성을 국가가 용인한 것이다. 이곳에서 있었던 인권 침해와 국가의 책임이 각종 문서들로 파악되고 있기 때문에 국가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억하고 반성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현재의 일본 우익들이 그러는 것처럼.
김정자, 나는 누구인가
국가책임 물으며 배상소송에 나선 기지촌 여성 출신 할머니의 증언
미군 기지촌 여성들이 지난달 25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 배상 소송을 시작했다. 국가가 미군 기지촌의 형성을 사실상 계획하고 관리한 증거들이 나오고 있고, 기지촌 여성들이 미군에 성폭력을 당할 때 국가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은 것에 책임을 지라는 소송이다. 인신매매되어 기지촌으로 오게 된 어린 여자아이들이 기지촌을 탈출하려고 경찰을 찾아가도 국가는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이들은 증언한다. 또 국가는 ‘미군에 서비스를 잘해야 나라가 잘살게 된다’는 정신교육도 정기적으로 진행했다는 증언도 나온다. 기지촌 여성들은 스스로를 ‘미군 위안부’로 부른다. 실제로 1990년대 초까지 정부와 언론은 이들을 위안부 여성이라고 불렀다. 그 뒤 우리 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면서 위안부라는 용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에 국한해 사용되고 있다. 앞으로 미군 기지촌 여성을 무엇이라 부를지에 대해서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 30여년간 기지촌 여성으로 살아온 김정자(가명)씨가 최근 <한겨레>와 만나 기지촌에서 있었던 여러 국가 폭력의 경험을 증언했다.
미군 성병만 걱정한 정부…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켜라
지붕이 곧 무너질 것 같은 허름한 집에서 머물고 있는 기지촌 여성 출신 조명자 할머니. 그 역시 ‘한국 내 기지촌 미군 위안부 국가손해배상청구소송’에 참여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122명 국가 배상 소송
지난달 25일 오후 1시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건물 4층 기자회견장으로 10여명의 여성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표정은 굳어 있었다. 짧은 곱슬머리 파마를 해 젊게 보이는 이도 있었지만 대체로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여성들이었다. 평범한 동네 할머니 같은 모습이다. 이들에게는 말 못할 아픈 사연들이 숨어 있었다.
기자회견장에 와 있던 취재진은 이들이 미군 기지촌 여성들임을 짐작했지만 사진을 찍지 않았다.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신영숙 새움터 대표가 ‘기자회견장에 나온 것만으로도 큰 용기를 낸 분들이기 때문에 증언자들의 얼굴사진 촬영을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미군 기지촌 여성들의 국가를 상대로 한 피해보상 소송의 대표 변호를 맡은 김진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위원회)가 마이크가 놓인 책상에 앉아 인사말을 시작했다.“육이오가 64년째 되는 날이 오늘입니다. 국가는 오늘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전사자들에 대한 얘기만 합니다. 그러나 전쟁은 이 땅의 여성들에게도 아물 수 없는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전쟁 이후 기지촌을 조성하고 사실상 관리하면서 여성의 인권을 침해했습니다. 윤락행위 방지법과 유엔 인신매매 금지협약(우리나라는 1962년 발효)은 휴지 조각이었습니다. 성폭력과 구타, 감금, 강제 낙태, 성병 강제검진 및 치료, 성매매업소 주인과 경찰 공무원의 유착 비리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운 국가 범죄가 있었습니다. 원고 122명은 국가가 일인당 1천만원씩 보상하라고 오늘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합니다.”
이어 한 여성이 방청석에 앉아 있다 일어났다. 그는 기자들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소송에 참여한 기지촌 여성이 첫 공개 증언을 하는 순간이었다.
성폭력·강제낙태 등 국가범죄
1인당 1천만원씩 보상을 요구
태반이 60~80대 독거노인인 그들
가만있어선 안 된다는 공감대
김정자씨 증언록 발간으로 확산
이번 소송에 참여하며 증언 나선
조명자·최자영·박순이씨
기지촌 여성 대부분은 아직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는 가운데
세 사람을 어렵게 만났다
국가폭력 물증 나오며 소송 준비에 속도
“어릴 때 제 꿈은 국회의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인신매매되어 기지촌으로 팔려온 뒤 꿈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정부는 우리에게 ‘미군에게 서비스를 잘하라’는 교육만 시켰습니다. 위안부 여성들은 가슴을 치면서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달러 버는 기계였습니다. 우리는 윤락행위 방지법은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연세가 많은 위안부들은 지금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면서 은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국가가 대답해야 합니다.”
박수가 터져나왔지만 곧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여성은 자리로 돌아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곳곳에서 콧물을 들이켜는 소리와 흐느낌 소리가 뒤엉켜 새어나왔다. 여성들은 “국가는 한국 내 기지촌 미군 위안부 제도의 역사적 사실과 피해를 명확히 밝히고 사죄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읽은 뒤 기자회견을 마쳤다. 기지촌 여성들의 소송은 2011년부터 준비됐다. 1970~80년대 한창 활동했던 기지촌 여성 대부분이 적게는 60대, 많게는 80대 이상에 접어들고 독거노인으로 쓸쓸하게 살다 하나둘 세상을 뜨자 이대로 가만있어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과거 기지촌 여성들 사이에 퍼졌다.
이번에 <한겨레>와 인터뷰한 기지촌 여성 김정자씨가 증언록을 만들면서 소송 준비가 본격화했다. 지난해 출간된 김씨의 증언록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은 그가 30여년간 일해왔던 기지촌 곳곳을 직접 방문해 그곳에서 당한 각종 폭력의 경험을 사진과 함께 고발한 책이다. 2005년 기지촌 여성 김연자씨가 펴낸 수필집에 이은 생생한 증언이었다. 김씨는 기지촌 여성 인권 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그동안 감추어져 왔던 국가 기록들을 발굴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가 그동안 미군 위안부 시설들을 어떻게 계획하고 직간접적으로 관리했는지와 관련한 것들이다. 단순한 증언을 넘어 국가가 기지촌 여성에게 저지른 폭력의 책임을 입증할 직간접적인 물증들이 나오면서 소송 준비는 속도가 붙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들이 소송을 돕고 기지촌여성인권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새움터 등이 공동으로 소송을 준비했다.
김정자씨뿐 아니라 기지촌 여성 인권 단체와 관련을 맺던 다른 여성들도 증언에 나섰다. 대부분은 아직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지만 <한겨레>는 이번에 소송에 참여한 두명의 여성을 더 만날 수 있었다.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에 거주하는 조명자(75)씨가 그중 한명이다. 지난 2일 조명자씨는 지붕이 곧 무너질 것 같은 허름한 집에서 머물고 있었다. 길가에 난 대문이 곧바로 부엌과 연결되고 부엌에 딸린 방은 겨우 13㎡(4평) 남짓 될까 한 비좁은 집이었다. 월세가 8만원인 이 집은 경제능력이 없는 조씨가 국가에서 주는 기초생활수급비 38만원과 노령연금으로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보금자리다.
“이 집을 곧 허물어야 한다고 주인이 나가라 그러는데 버티고 있어. 평택도 이제 땅값이 많이 올라 이 늙은이가 이사갈 집이 없어.” 치아가 두개밖에 남지 않은 조씨가 힘겹게 말했다. 방에는 창문이 없어 찜통처럼 더웠다. 5년 전부터 척추협착증이 왔고 후유증으로 오른쪽 다리가 마비돼 지팡이 없이는 걷지 못한다. 더워도 이 집에서 그냥 누워 있는 게 조씨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마흔두살 때까지 몸을 팔았지. 동두천 턱걸이(동두천시 광암동 일대)랑 보산리 등등 안 가본 곳이 없어. 중3 때 보성여중을 중퇴했어. 너무 먹고살기 힘들고 아버지가 자꾸 때려서 집을 나왔어. 포주한테 팔려왔지. (포주가) 밥 먹여주고 재워주긴 했는데 빚이 달려 있더라고.”
조씨는 스스로 기지촌에 머물러 있었던 편이지만 그래도 국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서 했든 어쨌든 미군 때문에 달러를 벌었잖아. 우리가 없었다면 어떻게 이 나라가 그때 달러를 벌었겠어. 우리가 미군에게 성병 옮길까봐 강제로 성병 검진하고 (국가가) 온갖 나쁜 짓을 다 했어. 우리는 이제 늙어서 어디 갈 데도 없어. 할머니들이 항문이 다 헐어서 똥을 질질 싸고 있어. 국가가 이렇게 우리를 내팽개쳐도 되나?”
“왜 그렇게 미군들한테 꼼짝 못했죠?”
기지촌 여성들은 태반이 독거노인으로 늙어간다. 자식도 없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한 경우도 드물다. 늙은 몸뚱어리를 편히 누일 수 있는 작은 집이라도 국가가 마련해줬으면 한다. 안정리에 사는 기지촌 여성 최자영(가명·63)씨도 조씨와 같은 생각이다. 그도 독거노인으로 늙어간다. 다만 아직 활동이 가능해 밤에 클럽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푼돈을 번다.
“열여덟에 집을 나와 서울역 근처 직업소개소를 찾아갔어. 미군 클럽에서 일해보라고 하더라고. 미군하고 자야 된다고 말은 해주던데 그 나이에 잔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알았겠어? 잠은 누구나 자는 거니까 ‘일하겠다’고 했지. 직업소개소 아저씨가 ‘기지촌 온 것 후회하지 말라’는 각서도 쓰게 했어. 안정리로 왔는데 잔다는 게 내가 알던 거랑 다른 거야. 그만두겠다고 하니까 포주집에서 엄청 때렸어. 경찰에 신고할 생각을 못했어. 모두 한패라고 생각했거든. 그때 국가가 나서서 우리를 구해줬더라면 내가 이렇게 되진 않지 않았을까. 오로지 미군한테 성병 안 옮기게 그것만 신경 썼다니깐. 이래도 되는 거야?”
박순이(가명·60)씨는 오랜 고심 끝에 지난 1일 기자와 만났다. 박씨도 인신매매 피해자였다. “(1970년) 열여섯살에 집을 나왔어요. 서울역 인근 직업소개소를 갔어요. 일자리를 준다 그래서 따라갔는데 파주 용주골 허름한 집으로 데려가더라고요. 내가 쓸 방이라고 하면서 들어가라는데, 헌 침대랑 탁자 하나 있더군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튿날 어떤 미군이 제 침대에 들어와 앉는 거예요. 난 방구석에 앉아 울기만 했어요. 무서웠어요. 집에 가고 싶다고 하니까 아줌마(포주)가 돈 내고 가라는 거예요. 소개비랑 침대비요.”
어린 박씨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는 없었다. 인신매매로 팔려온 미성년자를 구출하러 오는 이도, 구출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이도 없었다. 기지촌을 벗어나려 할 때마다 돌아오는 건 매타작뿐이었다. “저는 솔직히 이 나라가 미워요. 왜 미군들에게 그렇게 꼼짝을 못한 걸까요. 신경질 나요. 나이 어린 애들을 미군에 몸 대어 주게 만들었던 대통령(박정희)을 저는 우상처럼 생각하면서 자랐다니까요.”
박씨는 지금이라도 국가가 사과해주길 바란다. “일본군 위안부 관련 소식이 텔레비전에 계속 나오면 유심히 지켜봤어요. ‘저분들도 원해서 위안부가 된 게 아니고, 나도 원해서 위안부가 된 게 아닌데 왜 나는 피해 여성이 아닌 거지?’ 이런 생각을 계속했어요.” 박씨는 40대가 되어서야 기지촌을 나왔다. “내 열여섯 꽃다운 나이 어떡하면 좋아요.” 그는 인터뷰 내내 휴지를 꺼내 들어 끊이지 않고 쏟아지는 눈물을 닦았다. 군 성병만 걱정한 정부…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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