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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MBC, 대구MBC에 외부세력 보도 요청했다" 721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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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성주 배치 반대” 외친 사회자가 욕 먹은 까닭 719 시사인
'외부세력 조심' 움츠러든 성주 민심 7.21 오마이뉴수
국정교과서 시대, 반공영화의 귀환 721 한겨레
-170억 제작비 <인천상륙작전> 언론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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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 꼬막, 주꾸미, 꽃게…사라지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721한겨레
고등어 제친 연어 ‘식탁 반란’ 721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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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공화국’ 뒤로 비친 지자체장들의 ‘땅 사랑’ 719 시사저널
‘위안부’, 잘 알지도 못하면서 720 한겨레21
-<제국의 위안부> 둘러싼 ‘박유하 신드롬’이 놓치고 있는 것
제국의 위안부, 왜 피억압자의 말로 피억압자를 공격하나 720미디어오늘
정부, ‘위안부 재단’ 발족식 숨긴채 피해할머니 참석 독려 724한겨레
‘조물주 위에 건물주’ 부동산 불로소득 연간 400조원 726 주간경향
"고령의 이건희 혼자서 성매매 준비했겠나" 722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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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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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배치 기뻐하라" 보수단체 성주 방문 예고 616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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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 빙자한 사실상의 포르노 723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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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2중부-내일
722중앙-기호
722한국-721
721한겨레-민중
721매일 대구 -내일
721금강-국민
721경향-한국
720한겨레-중부
720중앙-민중
720매일대구-내일
720금강-국민
720경향-강원도민
719한국-한겨레
719주간경향-민중
719 미디어오늘-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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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국민-경향
719강원도민-718한국
718한겨레-중앙
718민중-매일 대구
718내일-경향
718 강원 도민-717국민
717매일 대구-국민
7.18~22 경향 장도리
"사드집회 참석 중고생 전원 무단결과·결석 처리" 718 경북
경북도교육청, 성주지역 학생 680여명 해당…학부모들 반발 예상
황교안 국무총리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배치 관련 주민설명회를 위해 경북 성주군청을 방문한 15일 오전 성주군민들이 사드배치를 반대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유홍근기자 hgyu@kyongbuk.com
온 나라가 사드 후폭풍, ‘외부세력’이 어딨나 718미디어오늘
또 나왔다 '외부세력' 색깔론 프레임,동북아 군비경쟁 촉발 본질 희석, 님비로 몰아 고립 전략
또 ‘외부세력’ 타령이다. 언론이 성주 군민들에게 ‘폭력시위’낙인을 찍은 데 이어 ‘외부세력’이 개입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그러나 아직까지 외부세력이 개입했다거나, 폭력을 유도했다는 증거는 없다. 근본적으로 사드문제에 “외부세력이 개입해선 안 된다”는 프레임부터 잘못됐다.
지난 17일 연합뉴스는 “폭력사태에는 외부인이 개입한 것도 한 원인”이라며 “외부인은 오지 말라고 했지만 소위 시위꾼이 붙어 순수한 농민의 군중심리를 이용한 점이 있다”는 '성주 사드배치 저지 투쟁위원회' 이재복 공동위원장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이후 TV조선, MBC, YTN,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언론이 관련 보도를 쏟아냈다. 특히 조선일보는 “좌파 진영 단체들은 이번에도 반정부 시위 등을 개최하며 개입하고 있다”면서 색깔론까지 제기했다.
이재복 위원장의 발언을 투쟁위원회가 부정했지만, 언론이 논란을 만들고 수사당국과 정치권이 확대재생산하는 모양새다. 경찰은 “관련 정황이 있어 수사 중”이라며 언론 보도에 힘을 실었다. 18일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외부세력 개입으로 일부 폭력이 있었다고 한다. 직업적 전문 시위꾼들의 폭력행위는 엄단해야 한다”며 외부세력 개입을 기정사실화하고 정치공세에 활용하고 있다.
▲ MBC, TV조선, YTN 보도화면 갈무리.
돌이켜보면 언론은 저항의 힘이 커질 때마다 '외부세력 개입'을 주장해왔다. 2008년 미국산 소고기 반대 촛불집회,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투쟁, 세월호 참사 유가족 농성, 심지어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집회에도 어김없이 ‘외부세력 개입’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외부세력 개입 프레임은 집회 참가자를 ‘순수한 당사자’와 ‘불순한 외부세력’으로 나눈다. 그러나 사드가 한반도에 배치되는 이상 외부세력은 없다. 지역문제와 전자파 피해 문제로 접근하면 지역사람들이 당사자이지만, 사드는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기 때문에 국민 누구나 ‘외부세력’이 아닌 당사자다. 조선일보는 '좌파단체'의 개입을 비판하지만 한반도 평화를 주장해온 단체가 사드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 같은 프레임은 사드문제의 본질을 희석시킨다는 점에서 문제다. 사드가 논란인 이유는 전자파가 인근지역에 미치는 영향 뿐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는 중국과의 관계설정, 안보 측면에서는 동북아 군비경쟁 촉진 등 다양한 문제가 중첩돼 있다. “성주사람만 집회해야 한다”는 논리는 복잡한 이슈를 단순한 지역이기주의로만 몰고, 성주군민을 향한 시민사회의 연대를 끊고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 프레임은 철저히 ‘기획됐을’ 가능성이 크다. 황교안 총리가 성주를 방문하기 전인 지난 15일 중앙일보는 “성주 군수 ‘사드 반대하지만 외부 시위꾼 개입 용납 안 해’” 기사를 썼다. 내용을 살펴보면 “외부의 전문적인 시위꾼들이 접촉해 왔나”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군수의 답변을 제목으로 만든 것이다. ‘외부세력 개입’이라는 덫을 일찌감치 준비했음을 알수 있는 대목이다.
분개한 성주 군민들, "누가 외부세력이란 말이냐?" 719 오마이뉴스
일부 언론 '황 총리 감금" 보도와 이재복 위원장의 '외부세력 개입' 주장에 황당
▲ 정부가 한반도 사드배치를 성주군으로 확정한 후 15일 경북 성주군 성주군청을 찾은 황교안 국무총리가 사드배치를 설명하던 도중 성주군민들이 투척한 계란과 물병을 피해 버스에 들어가자 주민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 이희훈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후보지로 결정된 경북 성주군에 지난 15일 황교안 총리일행이 다녀간 후 일부 언론과 일부 인사가 외부세력이 주도했다고 발언한 데 대해 성주군민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이재복 투쟁위원장은 위원장직에서 쫓겨났다.
황 총리와 한민구 국방장관 등은 이날 오전 사드 배치에 대한 설명회를 시작했지만 분노한 주민들은 달걀과 물병, 소금 등을 던지며 강하게 항의했다. 결국 황 총리 일행은 설명회를 마치지 못하고 버스 안에서 6시간 이상 주민들과 대치하다가 서울로 돌아갔다.
이후 일부 언론 등을 통해 외부세력이 황 총리 일행을 감금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이재복 '성주 사드배치 저지 투쟁위원회' 공동위원장은 17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황교안 통리가 성주를 방문한 날 폭력사태가 발생한 점에 대해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외부세력이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인터뷰에서 "폭력사태는 외부인이 개입한 것도 한 원인"이라며 "외부인은 오지 말라고 했지만 소위 시위꾼들이 붙어 순수한 농민의 군중심리를 이용한 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군민은 절대로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하지만 이 위원장이 어떤 근거로 그런 발언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위원장은 현재 전화를 받지 않고 잠적한 상태이다.
'황당' 성주 군민... "외부세력이라 할 만한 사람들 못 봐"
▲ 14일 오후 성주군청 앞마당에서 열린 사드배치 반대 촛불집회에 참가한 여학생들이 '사드배치 결사반대'가 쓰여진 현수막 천을 들어보이고 있다. ⓒ 조정훈
이 위원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성주 군민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주민들은 성주군의회로 몰려와 "누가 외부세력이란 말이냐"며 근거를 댈 것을 따져 물었고 일부 주민은 억울하다며 눈물까지 흘렸다.
노광희 군의원(투쟁위 홍보단장)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른다"며 "내가 군의원이고 주민들의 얼굴을 아는데 외부세력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외부세력이라면 경찰들이 오히려 외부세력 아니냐"고 말했다. 노 의원은 이어 "이재복 위원장의 발언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투쟁위가 이 위원장에게 위원장직에서 물러나도록 했다"며 "이 위원장의 발언은 투쟁위의 공식적인 내용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투쟁위는 또 '황교안 총리 방문 시 폭력시위와 관련한 입장문'을 통해 이재복 위원장의 외부세력 개입설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투쟁위는 "투쟁위원회를 통해 원활한 설명회를 준비했으나 갑작스럽게 폭력시위로 변질된 점과 기존의 촛불집회나 국방부 항의 방문 시에도 질서를 유지했던 점을 생각할 때 6시간 30분 동안의 총리 일행과 군민들의 대치상황은 투쟁위원회의 당초 방향과 상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언론에서 말하는 외부세력은 확인할 수도 없으며 알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결국 외부세력은 일부 언론과 이재복 위원장의 근거 없는 발언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게 성주군민들의 주장이다.
한편 '사드성주배치 반대 범군민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6일 200여 명이 참여하는 '사드배치저지 투쟁위원회'로 확대개편하고 촛불집회와 상경집회 등의 다양한 대책 마련과 함께 법적 투쟁에도 나서기로 했다.
보수언론, 또 외부세력 들먹이며 ‘성주 고립 작전’719한겨레
성주에 들이댄 ‘외부세력’ 프레임, 세월호·매향리·용산참사때와 ‘판박이’
지긋지긋한 ‘외부세력’론이 또 나타났습니다. 이번 무대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부대 배치 지역으로 결정된 경북 성주입니다. 이번엔 “성주에서 태어났어도 외부에 살면 외부세력”(강신명 경찰청장)이라는 엄격한 기준까지 제시됐습니다. 국가의 강제 토지수용 대상 지역이나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가 일어난 곳에서 시민들의 저항이 있을라치면 어김없이 이 ‘외부세력’론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국가와 수구세력이 불온하게 그려대는 ‘외부세력’은 실체가 있다기보다는 특정 이슈의 물꼬를 돌리려는 목적에서 잉태된 ‘프레임 전쟁’에 가깝습니다.
새누리당과 조·중·동 및 경제매체 등 보수 세력이 걸핏하면 ‘외부세력’론을 제기하는 목적은 간단합니다. 시민들 간의 자유로운 연대를 막음으로써 해당 지역주민들을 고립시켜 저항을 약화하고 국가의 의도를 관철하기 위함입니다. 단결권을 옥죈다는 이유로 노동계와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은 노조법상 ‘제3자 개입금지’ 조항도 10년 전 법에서 지워졌지만 그 정신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그런 면에서 제3자와 외부세력은 쌍둥이입니다. 보수 세력이 외부세력론으로 시민들의 저항에 물타기를 시도한 장면 5개를 추려봤습니다.
7월15일 경북 성주군청에서 사드 배치 관련 설명을 하던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달걀이 날아들자 경호요원들이 우산으로 막고 있다. <매일신문> 제공
1. 발빠른 외부세력, 성주에 침투?
이번에도 프레임 설정에 총대를 메고 나선 건 조·중·동이었습니다. <중앙일보>가 15일 “사드 반대하지만 외부 시위꾼 개입 용납 안 해”라는 김항곤 성주군수의 인터뷰 보도를 내면서입니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성주를 찾았다 계란과 물병 세례를 받은 직후부터 외부세력론은 급격히 팽창합니다. <조선일보>는 18일치 3면에 ‘성주 사드저지투쟁위 위원장 “15일 폭력사태에 외부인 개입”’, ‘성주 투쟁위 “시위꾼들이 마이크 잡고 선동… 주민 뜻 왜곡했다”’는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동아일보>도 같은 날 1면에 ‘사드 투쟁위 “총리 감금 때 외지인 가세”’ 보도 등으로 외부세력론에 군불을 땠습니다. <조선일보>는 옛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이 개입했다는 보도를 내면서도 근거는 대지 않았습니다.
성주 외부세력론이 불붙은 배경에는 “폭력사태에는 외부인이 개입한 것도 한 원인인 것 같다”는 성주사드배치저지투쟁위원회 이재복 공동위원장의 언론 인터뷰도 한몫했습니다. 하지만 투쟁위는 기자회견에서 “본뜻이 와전된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 제기하는 외부세력의 실체는 확인할 수도 알 수도 없다”며 군민들의 뜻을 왜곡하려는 시도에 분노를 표시했습니다. 이 공동위원장도 “외부세력이란 사드 설명회 당시 투쟁위에 속하지 않고 상관없이 움직인 성주군민과 타 지역민 등을 지칭한다”고 해명했습니다.
조·중·동의 칼춤에 경찰도 용춤을 추고 나섰습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성주군민 외에 타지에서 그날 행사에 참석한 사람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신원특정 중인 단계”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지역 사람이 성주에 가는 게 불법이거나 처벌해야 하는 죄는 아닙니다. 보수 세력이 얘기하는 대로 ‘자유 대한민국’이니까요.
사드 배치는 성주 만의 일이 아닙니다. 당장 사드의 타격 목표인 미사일을 보유한 북한은 물론 중국·러시아 등 한반도를 둘러싼 강국들과의 군사·외교적 갈등이 첨예한 사안입니다. 향후 상황 전개에 따라 국민의 안전과도 직결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드 배치는 성주군민뿐만 아니라 한반도에 사는 주민들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입니다. 외부세력 운운하는 논리는 한가하기 그지없습니다.
세월호 침몰 참사 닷새째인 2014년 4월20일 아침 전남 진도군 군내면 진도대교를 앞둔 도로에서 이날 새벽 실내체육관에서 청와대 항의 방문에 나선 실종자 가족들이 경찰에 막혀 있다. 진도/김태형 기자
2. 성주군 농민회장 “세월호 때 그분들이 이렇게 당했구나”
외부세력론은 세월호 참사 때도 어김없이 제기됐습니다. <채널에이(A)> 보도가 시작점이었습니다. 4월20일 100여명의 실종자 가족들이 진도 실내체육관을 나서 청와대를 향해 수백 킬로미터 도보 행진에 나섰다 경찰에 저지당한 직후입니다. <채널에이>는 한 실종자 가족 인터뷰를 인용해 “진도대교 도보 행진은 외부인이 부추겨 벌어진 일”이라며 “실종자 가족도 아니고 단원고 학생도 아닌 학생들이 선두에 서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행진은 부모회의에서 결정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런데도 당시 <동아일보>는 23일치 사설에서 “국가적, 국민적 참사마저 반정부 선동과 갈등에 악용하려는 일부 세력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허위 사실 유포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함께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주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은 지난해 4월에도 보수 세력의 외부세력론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조선일보>는 ‘이번엔 세월호 유족 옆에 나타난 광우병 선동 세력들’이란 제목의 사설을 썼습니다. <중앙일보>는 ‘세월호 추모와 폭력시위는 구분해야 한다’, <동아일보>는 ‘시위꾼 집결장 된 세월호 추모제, 내년에도 이럴 건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시민사회의 연대를 불온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가감없이 드러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18일 “(사드 배치 성주에도) 정부의 결정에 대한 집단적 반발 움직임에 대해, 전문(직업) 시위꾼들이 개입한 결과라 폄훼하는 보도가 어김없이 등장했다”며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등장한 프레임으로, 투쟁 그 자체와 투쟁에 있어서의 연대를 폄훼하고, ‘폭력사태’를 부각하는 한편, 투쟁에 나선 이들을 ‘평범한 일반 시민’과 분리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재동 성주군 농민회장도 18일 정의당 지도부와의 간담회에서 “‘세월호 때 그분들이 이렇게 당했구나’라며 언론에 대한 분노도 많이 있다”며 “지상파 3사 등 주요언론에서 관련 내용들을 보도하고 있는데 현장의 목소리와 전혀 다르게 뭔가 의도된 듯이 나오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등 시민단체 회원들과 매향리 주민들이 2008년 1월 낮 경기 화성 매향리에서 농성 미군 사격장의 불발탄 방치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환경 치유를 위한 한-미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3. 군사기지 문제에 등장한 외부세력론
외부세력론이 유령처럼 배회하는 주요 지역은 주한미군과 관련된 곳입니다. 미군이 필요로하는 폭격장이나 사격연습장, 주둔지, 항구와 연관된 곳엔 어김없이 등장했습니다. 50년 가까이 미군의 폭격장으로 사용되면서 주민들의 극심한 스트레스, 오폭 및 불발탄으로 인한 주민 사망과 신체 절단 등의 문제가 불거진 경기 화성군 매향리 사건 때도 외부세력론이 제기됐습니다. 2000년 당시 이광길 국방부 군수국장은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나도 매향리 주민으로부터 ‘우리 문제인데 외부인들이 와서 될 일도 안 된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가장 우려되는 점이 바로 이것”이라고 발언했습니다.
6년 뒤 주한미군 기지 이전 대상지로 지목된 경기 평택 대추리 사태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2000년 3월17일치 <문화일보>는 ‘평택 제2 부안이 돼선 안 된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반미단체나 환경단체들이 이런 분쟁의 현장에 직접 개입하는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국책사업의 현장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반미단체와 환경단체들이 실은 무책임한 불청객이라는 부안의 경험이 대추리에도 빨리 알려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어 “국가는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함으로써 제3자가 개입할 여지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2007년부터 본격화한 제주 해군기지 사건 때도 보수 세력은 외부세력을 문제 삼았습니다. <한국경제신문>은 7월17일치 ‘미군기지 평택 이전, 반대 시위로 42개월 지체…제주 해군기지, 외부세력 개입으로 14개월 표류’ 기사에서 “평화와 환경 이름을 앞세운 외부세력이 개입하면서 강정마을 민심은 갈렸다. 공사는 14개월이 지연돼 지난 2월 준공식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2006년 11월 군인들이 경기도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예정지에서 철조망 추가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국방부는 세 차례의 행정대집행이 실패로 돌아가자 군병력을 투입해 대추리를 외부로부터 고립시켰다. 박종식 기자
4. 토지수용 현장에도 등장
2009년 5명의 철거민과 1명의 경찰관이 경찰 진압 과정에서 불에 타 숨졌습니다. 용산참사입니다. 1월에 참사가 난 뒤 1달여 지난 2월 조진형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제3자 개입금지’를 부활시키겠다고 발언해 논란을 빚었습니다. 당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조 의원은 “뉴타운, 재개발 등 형식은 다르지만, 내용은 도시재생사업으로 양에서 질 위주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며 “모든 것은 조합장이 하는 것인데, 저렇게 폭력이 난무하는 집단들이 개입을 하면 큰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고압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한전과 극심한 갈등을 빚은 경남 밀양 사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매일경제>는 2013년 5월20일치 ‘밀양 송전탑 이제 건설 강행이 답이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주민대책위는 송전선을 땅에 묻는 ‘지중화’만이 유일한 해결 방안이라고 고집했다. 지중화에는 2조원이 필요하고 건설 기간도 10년이나 걸려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한국전력 측 설명이다. 반대 측이 이를 알고 그런 주장을 한다면 이는 외부세력에 의한 ‘원전 반대’라는 이념싸움이다”라고 단언했습니다.
<매일경제>는 ‘사라져야 할 외부세력의 주술’이란 제목의 최근 18일치 기자 칼럼에서 “한국 사회에서 유사 갈등이 발생할 때 정치색을 띤 제3자의 개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우리는 그간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밀양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숱하게 지켜봤다”며 “당사자 간 ‘토론’은 사라지고 감당하기 힘든 ‘사회적 기회비용’만 늘리는 파괴적 결과 말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국가와 공공기관이 주민 뜻을 무시한 채 무리한 공사를 강행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소수인 지역주민과 연대한 시민사회 세력이 문제라는 사고방식입니다.
밀양 송전탑 투쟁 1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린 17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부북면대책위원장인 이남우 할배가 지난 투쟁을 회고하던 중 복받치는 울분에 벌떡 일어나 발언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5. 노동현장의 좀비 ‘제3자 개입금지’
이른바 외부세력론이 법제화한 계기는 1979년 12·12 군사쿠데타로 등장한 전두환 정부의 국가보위입법회의입니다. 1980년 노조법에 ‘제3자 개입금지’ 논리가 처음 등장했습니다. 기업별 노조 형태가 강한 상황에서 특정 기업의 노사 분쟁에 해당 사업장의 노동자와 사용자가 아닌 이들은 개입하지 말라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해당 조항은 노동자나 사용자 모두 결사의 자유를 제한없이 누려야 한다는 국제노동기구(IL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유엔 등 국제기구들한테서 “독소조항”이라며 폐지를 요구받았습니다.
노동자의 단결권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법률이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권 변호사 시절인 1987년 의문의 죽음을 당한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씨의 사인을 규명하려다 ‘제3자 개입금지’를 위반한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 대표적인 일화입니다. 해당 조항은 노무현 정부 후반기인 2006년 노동법 개정 때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 피를 이어받은 좀비는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비롯해 노동사건을 다루는 사법부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맞서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벌인 크레인 고공농성에서 시작된 ‘희망버스’ 물결 때 경총은 이런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사내하청노조의 불법투쟁 배후세력으로 사노위(사회주의 노동자정당건설공동추진위원회), 노건투(혁명적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현장투쟁위원회), 비없세(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다함께(노동자연대 다함께) 등이 추정된다. 특히 현재 외부세력이 주도하고 있는 ‘비정규직 희망버스’는 법원으로부터 퇴거명령까지 받은 불법고공농성장을 방문해 불법행위를 응원하고 조장하는 것으로서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민들의 자유로운 연대를 가로막는 외부세력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더 이상 외부세력이 개입했냐 아니냐는 보수 세력의 프레임에 말리기보단, 고립을 강요당하는 주민들을 위해 연대의 손을 내미는 게 ‘휴머니즘’이요, 민주시민의 덕목이라는 반격에 나서야 할 때가 아닐까요?
서울MBC vs 지역MBC, 상반된 보도 왜? 718미디어오늘
대구·경북 신문,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 영남일보, 수도권 언론에 "원인 제대로 따져본 뒤 보도하라“
수도권 신문과 방송들이 사드 성주배치에 반발하는 주민들을 ‘총리를 감금한 폭력 시위대’로 몰아가거나 지역이기주의로 치부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이 가운데 평소 보수적인 논조를 보여온 대구경북지역 언론들이 정부와 언론의 ‘여론몰이’를 비판하며 각을 세웠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15일 성주를 방문해 물병과 계란세례를 받은 이후 언론은 주민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15일 서울MBC 뉴스데스크는 “(사드)배치 철회만을 주장하던 시위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흥분했다.” “시위대는 욕설과 함께 물병·계란 등을 던졌다”면서 주민들을 ‘시위대'’라 표현하고 과격성을 부각시켰다.
▲ 지난 14~18일 서울MBC와 대구MBC 보도화면 갈무리.
반면 15일 같은 소식을 다룬 대구MBC의 보도는 상반됐다. 대구MBC는 “(성주가) 사드배치 지역으로 결정 나면서 성난 민심으로 들끓고 있다”면서 주민들이 항의하는 이유부터 조명했다. 이어 서울MBC가 보도하지 않은 “성원1리 마을 주민들은 박 대통령 걸개사진을 떼 창고에 나뒀다”는 소식도 덧붙였다.
앞선 14일 사드 안전성 논란에 대한 두 MBC의 보도도 대조적이다. 서울MBC는 “레이더는 필연적으로 인체에 영향을 주는 전자파가 나오기 마련”이라며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는 게 국방부 설명”이라는 정부입장을 전했다. 반면 대구MBC는 “정부에서는 전자파가 안전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객관적인 데이터나 검증은 전혀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평소 보수적인 논조를 보인 대구경북지역 신문 일부 역시 정부의 여론몰이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매일신문은 18일 1면 머리기사로 “‘우린 폭도가 아니다’ 성주군민들의 피맺힌 절규”를 게재했다. 매일신문은 “(정부가) 엄중 처벌 등의 방침을 쏟아내며 사드라는 대못이 박힌 성주 사람들의 가슴에 또 다시 폭도라는 못을 박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구신문 역시 18일 “성주군민을 공권력을 마비시킨 폭도로까지 표현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의도한 기획인지 모르나 문제의 본질이 사드배치 결정 및 해결에서 공권력을 마비시킨 성주군민 및 일부세력의 국정농단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 대구경북지역 신문 15~18일 보도.
근본적으로 정부의 불통이 성주군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대구신문은 18일 1면 “총리 방문으로 더 악화된 사드갈등”에서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한 군민들의 참담한 심정을 예고없이 시도한 한번의 설명회로 잠재우는 것 자체가 무리“라며 ”엄격한 법 적용이 자칫 불 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구경북지역 언론은 서울지역 언론의 보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영남일보는 16일 사설에서 수도권 언론을 가리켜 “사드 괴담은 지역에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가 거짓말과 말 바꾸기를 일삼는 바람에 생겨난 것”이라며 “원인을 제대로 알아보고 따져본 뒤에 보도를 하기 바란다”고 비판했다.
대구 MBC는 15일 “상당수 수도권 언론들은 님비현상으로 왜곡시키고 있다”면서 “SNS와 종편 등에서도 정확한 정보와 설명조차 없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성주군민과 대구경북 지역민의 행동을 폄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구신문 역시 18일 “지역이기주의로 몰고 가는 서울지역 일부 언론의 보도행태가 성주군민의 반대 의지를 왜곡시키고 있다”며 반발했다.
경북일보에 따르면 지난 15일 성주 주민들이 수도권 언론 기자들에게 물을 뿌리는 등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한 주민은 경북일보와 인터뷰에서 “언론을 다 믿어서는 안 된다. 나오지 않은 이야기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춰 보도하고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대통령 뜻” 내세워 내놓고 협박…최경환까지 공천전횡 드러나 718한겨레
왼쪽부터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 윤상현 의원. 한겨레 자료사진
최경환 “무리하게 살면 되는 일 없잖아”
윤상현 “대통령 뜻 얘기해준 것 아니냐”
김성회 “너무 심한 겁박 아니냐”
최 “싸울 필요 없으니 옮기면 좋지 않겠냐는 권유였다” 해명
18일 공개된 최경환·윤상현 의원의 녹취록은 박근혜 대통령을 팔아 공천에 노골적으로 개입한 새누리당 친박 핵심들의 오만한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최·윤 두 의원은 상대방을 겁박하고, 모멸감을 주면서 공천권을 손에 쥔 듯 행동했다. “평의원 신분이라 공천에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던 두 의원의 말은 거짓으로 밝혀졌다.
최·윤 의원은 친박계 ‘맏형’인 서청원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 화성갑에 예비후보 등록을 신청한 김성회 전 의원을 무시하는 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최 의원은 김 전 의원에게 지역구를 옮기라면서 “사람이 세상을 무리하게 살면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잖아. 자꾸 (서청원 의원과) 붙을라고 하고 음해하면 ○○○도 가만히 못 있지”라고 핀잔을 줬다. 그는 “감이 그렇게 떨어지면 어떻게 정치를 하냐”는 말도 했다. 윤 의원 역시 김 전 의원을 향해 “까불면 안 된다니까. 내가 형에 대해 별의별 것 다 가지고 있다”며 상대의 약점을 자극하는 협박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이 “너무 심한 겁박을 하는 것 아니냐”는 말로 불쾌감을 표시할 정도였다.
두 의원은 ‘대통령의 뜻’을 앞세워 호가호위하는 행태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최 의원은 ‘(지역구를 옮기라는 것이) 브이아이피(VIP·대통령)의 뜻이 확실하냐’는 예비 후보자의 물음에 “그럼, 그럼”이라고 답했다. 윤 의원도 “뒤에 대통령이 있다니까. 대통령 사람이기 때문에 (피해서) 가야 한다니까”, “대통령의 뜻을 이야기해준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월 총선 뒤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 간담회에서 “제가 친박을 만든 적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경제부총리와 대통령 정무특보를 지낸 최측근들의 전횡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알고도 모른 척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최·윤 두 의원에게 당의 공식 기구인 공천관리위원회는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최 의원은 지역구를 옮기면 공천을 보장해주겠느냐는 물음에 “옆(지역구)에 보내려고 하는 건 우리가 그렇게 도와주겠다는 것이고. 그건 ○○○도 보장을 하겠다는 것 아니냐”라며 자신들이 임의로 공천 신청지역을 옮겨 줄 수 있다고 암시했다. 윤 의원 역시 “○○지역은 당연히 보장하지”라고 했다. 공천 당시 “친박계가 공천을 좌우하고 경선 지역도 편의에 따라 정한다”는 이야기가 뜬소문이 아니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윤 의원은 ‘친박’이면 무조건 당선될 것이란 오만한 인식도 보여줬다. 그는 “‘경선을 하라’고 해도 우리가 다 (당신을 후보로) 만들지. 친박 브랜드로. ‘친박이다, 대통령 사람이다’”라고 했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몇몇 사람이 당의 공천 시스템을 완전히 형해화했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부끄럽다”고 말했다. 윤 의원이 먼저 전화로 1차 회유를 하고 곧이어 최경환 의원이 확약을 하는 ‘공조’ 체계도 보여줬다.
최 의원은 지난 6일 8·9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총선 기간 동안 공관위 구성과 공천 절차에 아무런 관여도 할 수 없었던 평의원 신분이었다. 마치 제가 공천을 다 한 것처럼 매도당할 때에는 억울함을 풀어볼까 생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말했지만 거짓말로 드러났다. 최 의원은 이날 녹취록이 공개된 뒤에도 “우리끼리 같은 지역구에서 싸울 필요 있느냐는 차원에서 이야기한 거다. 화성병이라는 지역구가 생겼으니 거기 가면 좋지 않겠느냐는 권유였다”고 해명했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17일 나온 총선 패배 백서가 친박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지 않은 채 두루뭉술 넘어가려고 하자 이런 일이 터지는 것”이라며 “이런 일이 더 터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사드 성주 배치 반대” 외친 사회자가 욕 먹은 까닭 719 시사인
경북 성주는 지금 전쟁 중이다. 사드 배치 예정지로 발표된 이후 성주 민심은 하루가 다르게 폭발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텃밭이었던 이곳에서 정부·여당을 규탄하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7월14일 오전 경북 성주군 성원1리 마을회관. 성원1리는 사드 기지가 들어서는 성산리에 인접한 마을이다. 사드 기지(예정)에서 북쪽으로 2㎞ 정도 떨어져 있다. 이곳은 박근혜 대통령의 선영(고조부터 8대 조상들 묘역)이 있는 곳으로 고령 박씨가 25가구가량 살고 있다.
성원1리 마을회관에는 할머니 12명이 오전 참외 농사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다들 고령 박씨 집안에 시집온 며느리라고 했다. 거실에는 가로·세로 2m 정도 되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 걸개가 한쪽 벽면을 덮고 있었다. 기자가 사드 배치에 대해 묻자 할머니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올해 여든 가까이 되었다는 이 아무개 할머니는 “여기 다 참외로 먹고사는데 사드를 놓으면 어떻게 하나. 어제 처음으로 데모하러 나가봤는데 이제 계속 나갈 거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대화 도중 마을회관에 강 아무개 할머니가 도착했다. 강 할머니는 “박근혜가 (사드 배치를) 허락했단다”라고 씩씩대며 벽면에 붙어 있던 박 대통령 사진을 뜯어내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강 할머니가 오면서 택시 기사를 만났는데 박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승낙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할머니들은 박 대통령 사진을 돌돌 말아 현관 한구석으로 치워버렸다.
ⓒ시사IN 조남진 7월14일 경북 성주군 성원1리 마을회관에서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강 아무개 할머니가 벽면에 붙어 있던 박근혜 대통령 사진을 뜯어냈다.
강 할머니는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 사업을 어렵게 하셨고, 육영수 여사는 안타깝게 가시지 않았나. 그 후손이라서 (대통령을) 시켜준 건데 이게 뭐냐. 군수고, 이완영(지역구 국회의원)이고 다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라고 울분을 토해냈다. 성원1리 주민들이 박 대통령 사진을 뗀 사건은 이날 오후부터 언론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의 선영이 있는 지역에서 대통령의 ‘존영’이 수난을 겪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경북 성주는 지금 전쟁 중이다. 급작스러운 ‘사드 폭격’을 맞은 이후 성주 민심은 하루가 다르게 폭발하고 있다. 수십 년간 새누리당의 텃밭이었던 이곳에서 정부·여당을 규탄하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7월12일 집회가 열린 첫날 이후 구호 강도가 세지고 있다. 단지 성주군에 사드를 배치하지 말라는 주장이 아니다.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사드 성주 배치 반대에서 ‘성주’를 빼라”
7월15일 군민 집회에서 사회를 맡은 범군민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석현철 사무국장이 ‘사드 성주 배치 반대’ 구호를 선창하자 주민 일부가 격렬하게 반발했다. 성주에서 두 자녀를 키우는 주부 배정하씨는 사회자에게 “사드 성주 배치 반대에서 성주를 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사드가) 대한민국에 들어오는 걸 반대하는 겁니다. 왜 모여 있는 우리들을 모욕합니까. 그렇게 말하면 성주 군민은 또다시 욕만 먹습니다.” 주민들 사이에서 “옳소”라는 소리와 함께 환호가 터져 나왔다. 몇몇은 사회자와 군수가 있는 군청 현관으로 뛰어들려다 저지당했다.
ⓒ시사IN 조남진 7월14일 성주군민 2000여 명이 군청 앞에서 촛불을 들고 ‘사드 배치 반대’ 구호를 외쳤다.
사드의 성주 배치에는 반대하면서도 사드 도입 필요성은 인정하는 김항곤 성주군수와 지역 주민 사이에도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사드가 성주 지역에 배치되는 것만 반대해서는 지역 이기주의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는 주장이 주민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군청 공무원들 역시 주민 여론이 사드 자체에 대한 반대로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자, 향후 대응 방안을 놓고 고심하는 분위기다.
시위 양상도 하루가 다르게 ‘반정부’ 성격을 띠어가고 있다. 7월14일 군청 앞에서 진행된 사드 배치 반대 삭발식에서 첫 번째로 머리를 깍은 손호택 성원2리 이장은 “어제 국방부에 갔더니 대책은 없고 주민을 설득해달라는 말만 하더라. 한국에는 사드가 필요 없다. 이것은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섯 번째로 머리를 깎은 성산리 주민 이기영씨는 “사드 기지가 들어설 성산포대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에 산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삭발 전 이씨는 마이크를 잡고 군청 현관에서 단식농성 중인 김항곤 군수에게 “이 사태가 누구 책임이냐”라고 물었다. 김 군수가 “국방부 장관”이라고 답하자 이씨는 “박근혜는 물러가라”고 소리를 쳤다. 난데없는 호통에 주민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손호택 성원2리 이장은 나중에 기자와 따로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평생 1번만 찍어온 사람이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가 아니라 문재인이 (대통령) 됐으면 사드는 안 들어왔을 건데… 그때 얼마 차이 안 나게 졌잖아. 그런데 박근혜를 찍어가지고”라며 한숨을 쉬었다.
실제로 사드가 성주의 정치 민심을 확 바꿔놓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김삼곤 성주농민회 부회장은 “하루가 다르게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보수 성향이 짙은 우리 지역에서 농민회는 왕따 비슷한 신세였다. 그런데 사드 배치가 확정된 이후 뉴스 등을 통해 사드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사람들 생각이 바뀌고 있다. 이곳은 새누리당 공천받으면 무조건 당선되는 지역이었지만 다음에는 다를 거다”라고 말했다.
성주가 사드 배치 지역으로 확정됐다는 보도가 나온 건 7월12일이었다. 김삼곤 성주농민회 부회장은 “정말 황당했다. 바로 전날까지도 전혀 생각을 못했다. 너무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니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말했다. 김항곤 성주군수를 비롯해 이재복 비대위 위원장 등 도·군 관계자 11명이 이날 오후 6시10분부터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그날 밤부터 성주 읍내 곳곳에 ‘사드 배치 반대’ 플래카드가 나붙었다.
ⓒ시사IN 조남진 7월13일, 사드가 배치될 성주읍 성산리의 군부대 측은 외부인의 접근을 막고 있다.
이튿날인 7월13일 오전 찌는 듯한 더위 속에 열린 ‘사드 배치 반대 범군민 궐기대회’에는 성주군민 5000여 명이 참가했다. 궐기대회는 국기에 대한 경례로 시작했다. ‘사드 결사반대’라고 쓰인 빨간 띠를 두른 사람들이 가슴 위에 오른손을 얹었다.
집회에 참석한 노연우씨는 19개월 된 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왔다. 노씨는 군청과 비대위의 입장과 달리 사드 자체를 반대한다고 했다. “수도권 방어도 안 되고, 결국 미국이나 일본을 위한 건데 왜 찬성합니까.” 노씨는 눈물을 글썽이며 어젯밤에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 “혹시나 사드 배치가 취소됐다는 기사가 나올까 해서 밤새 인터넷을 봤어요. 댓글 보면 너무 마음이 아파요. 어떤 사람들은 사드 배치로 선물을 받을 거라지만, 나는 정부 정책 찬성한 적도 없고요. 무고한 아이만 고통받을 걸 생각하면….”
궐기대회는 사드 배치의 원인을 제공한 북한 무수단 미사일 모형을 불태우는 퍼포먼스로 끝났다. 김 군수와 비대위 그리고 성주 주민들은 궐기대회에서 쓴 ‘사드 성주 배치 결사반대’ 혈서를 들고 서울 용산 국방부로 향했다.
이날 오후 3시 국방부는 공식적으로 성주에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터미널 앞을 지나다 뉴스를 본 박 아무개씨는 “성주는 이제 망했다”라고 중얼거렸다. 박씨는 “성주 검색해보면 사드 참외, 전자파 참외 이런 거 나와요. 이사 가려고 집을 내놓아도 팔리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임신 2개월인데, 레이더에서 나온다는 전자파가 너무 걱정된다. 사드 기지가 성주읍에서 1.5㎞밖에 안 된다. 성산포대에서 밤에 불을 켜면 성주읍에서 다 보인다”라고 탄식했다.
7월은 막바지 참외 출하 시기다. 참외밭에서 만난 김화성씨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성주가 고향인 김씨는 3년 전 귀농했다. 대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며 모은 돈과 농협 대출을 받아 참외 비닐하우스 12동을 지었다. 비닐하우스 한 동 설치에는 최소한 1000만원이 든다. 김씨는 “올해만 해도 7000만원 대출을 받았다. 5~6년 해야 그때부터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레이더 전자파가 안전하다고 해도 사람들 인식이 한번 나빠지면 성주 참외 안 산다. 대구에 있는 아내마저 이제 참외 못 먹겠다고 하더라. 참외를 수확해야 하는데 의욕이 하나도 없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 사드 배치가 결정된 성주는 참외 특산지로 유명하다. 7월14일 성주읍 대황리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주민들이 참외를 수확하고 있다.
미국 육군 교본엔 ‘반경 3.6㎞까지 접근 금지’
사드 기지가 들어설 성산포대는 성산(해발 389m)에 있다. 성주 주민들이 앞산이라고 부를 만큼 읍내에서 가깝다. 반경 3.6㎞ 이내에 성주군청, 성주버스터미널, 성주여중·고교, 성주초등학교, 성주중앙초등학교, 성주체육관 등 주요 시설이 대부분 들어간다. 2012년 작성된 미국 육군 교본은 사드 레이더 반경 3.6㎞까지 ‘허가받지 않은 사람’의 접근을 금지하고 있다. 전자파의 위해성 때문이다. 성주군청에서 출발해 굽은 산길을 10여 분 달리자 현재 호크 미사일 기지로 쓰이는 성산포대가 나왔다. 취재진을 발견한 군은 경고방송을 시작했다 “군사보호구역으로 촬영은 불허돼 있습니다. 즉각 돌아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곧바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파도처럼 넘실대는 참외 비닐하우스 단지 한가운데 섬처럼 박혀 있는 성주읍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사드 레이더 기지 예정지와 성주읍내는 짐작보다 훨씬 가까웠다. 7월14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전자파 유해성에 대해 직접 해명했다. 박 대통령은 “레이더는 마을보다 400m 높은 곳에 위치하고 전자파는 5° 각도 위로 발사가 되기 때문에 지상 약 700m 위로 전자파가 지나가게 된다. 그 아래 지역은 우려할 것이 없는 안전지역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 가운데 이 말을 믿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다음 날인 7월15일 오전 11시 황교안 국무총리가 성주군청을 찾았다. 황 총리가 마이크를 잡자 경북 성주군청 앞에 모인 주민 3000여 명이 한목소리로 “결사반대”를 외쳤다. “주민 여러분들께서 아무런 걱정 없이 생업에 종사하실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는 황 총리의 말에 고성과 야유가 쏟아졌다. 주민들 사이에서 물병과 날달걀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황교안 총리와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급하게 버스에 올라탔지만 성난 주민들에게 가로막혔다. 주차장으로 이동한 주민 300여 명은 “사드 배치 철회하고 가라”며 버스 앞에 주저앉았다. 나중에는 트랙터까지 동원해 버스를 막았다. 황 총리 일행은 결국 이날 저녁 6시에야 군청 주차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국무총리와 국방부 장관이 주민들에 의해 6시간 넘게 포위됐다가 ‘탈출’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이날 밤 8시 성주군청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 분위기는 또 달랐다. 30~40대 학부모 위주로 모였던 지난 촛불집회와 달리 노인들도 상당수 자리를 지켰다. 현 정권에 대한 비판의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이날 집회 현장에선 황당한 소식 하나가 알려졌다. 2시간 전 군청 주차장을 빠져나간 황교안 총리의 차량이 어린이들까지 탄 한 성주 주민의 차량을 들이받고 도망쳤다는 것이다. 이 주민은 황 총리의 차가 사드 기지 예정지인 성산포대로 향한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차로 포대 진입로를 막고 있었다. 국무총리의 성주 방문이 성주군민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되었다.
ⓒ시사IN 조남진 7월15일 성주군청을 찾은 황교안 총리가 발언할 때 주민들이 물병과 달걀을 던지며 항의했다.
'외부세력 조심' 움츠러든 성주 민심 7.21 오마이뉴수
[현장] 성주 주민 2천여 명 사드 반대 서울역 집회
▲ 상경한 성주 군민들 "사드 배치 철회하라" 상경한 성주 군민들이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평화를 위한 사드 배치 철회 성주군민 결의대회'에서 정부의 일방적인 사드 배치 결정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유성호
▲ '나쁜 대통령·새누리당·언론' 상경한 성주 군민들이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평화를 위한 사드 배치 철회 성주군민 결의대회'에서 정부의 일방적인 사드 배치 결정을 규탄하고 있다.ⓒ 유성호
사드 (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에 반발하는 성난 성주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가 서울 한복판에서 울려 퍼졌다. 주최 측은 '외부세력' 차단에 신경을 쓴 모습이었지만, 이들에게 쏠린 국내외 관심은 이 문제가 성주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21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평화를 위한 사드배치 철회 성주군민 결의대회'에 참여한 성주 주민 2천여 명(집회 측 추산, 경찰 추산 1200명)은 우선 정부의 일방적 사드 배치 결정을 강하게 규탄했다. 이날 집회에는 정치인들도 다수 참석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김현권 의원과 박주민 의원이 현장을 찾았고, 국민의당은 송기석, 채이배, 최경환 의원이 참석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도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사드 배치에 찬성 입장을 내세우고 있는 새누리당에서는 이 지역구 국회의원인 이완영 의원만이 홀로 자리를 지켰다.투쟁위는 이들 국회의원을 간단히 소개만 했을 뿐 따로 발언을 듣지는 않았다. 이른바 '외부세력'을 차단해 불필요한 구설수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는 곳곳에서 감지됐다.
성주지역 해병대전우회를 중심으로 꾸린 자체 질서유지단은 사전에 참가자들에게 나눠준 파란색 리본이나 명찰, 머리띠 등을 하지 않은 일반 시민들의 집회 현장 진입을 차단했다. 이 과정에서 통행을 가로막는다고 항의하는 일부 시민들과 가벼운 언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주민들이 가장 우려했던 사드 찬성 단체와의 마찰을 막기 위해 경찰은 폴리스라인을 설치하고 주변으로 병력을 집중 배치했다. 이날 성주 주민들의 집회 장소 뒤편으로는 30여 명의 사드 배치 찬성 단체 회원들이 맞불 집회를 벌였지만 양쪽의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눈에 띤 외신들의 취재 열기 "아시아 전반의 안보 우려"
성주군민들은 외부세력 논란에 몸을 사렸지만 외신들의 관심은 한반도 사드 배치가 성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이날 집회 현장에서는 중국과 일본에서 온 외신들이 취재 경쟁을 벌였다.
일본 TBS의 이다 시게토시 서울지국장은 "(사드의) 각도를 조금만 바꾸면 중국도 커버가 되기 때문에 아시아 전반의 안보가 우려되고 있다"면서 "한반도 내에서 찬반 목소리를 다루고, 일본 국민에게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을 공평하게 전달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날 연대사를 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이부영 전 의원은 주민들에게 일부 언론이 제기하는 '외부세력' 공세에 당당해질 것을 주문했다. 이 전 의원은 성주 주민들에게 "여러분들은 남들이 뭐라고 이야기하던 대한민국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기본권에 맞춰서 행동하고 있는 것"이라며 "의사 표현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하는 한 누구도 여러분의 당당한 주장을 막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전 의원은 "일방주의적으로 정부가 취하는 행정조치가 여러분들 앞서서 수없이 많이 있었다"면서 "그럴 때마다 항의하는 사람들을 마치 폭도처럼, 종북주의자 처럼 몰아세웠던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라고도 전했다.
한편 집회의 마지막 순서에는 김항곤 군수와 배재만 군의회의장이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의미로 삭발을 했다. 이후 김 군수를 비롯한 투쟁위 대표단은 국회와 청와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각 정당에는 사드 배치 계획 철회를 당론으로 채택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국정교과서 시대, 반공영화의 귀환 721 한겨레
170억 제작비 <인천상륙작전> 언론 공개
리엄 니슨·이정재 등으로 기대 모았으나
구시대적 반공영화에 맥빠진 드라마 혹평
전쟁영웅 만들어내기 위해 역사왜곡 논란도
과거에서 온 편지가 도착했다. 20일 언론배급시사를 통해 공개된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의 판세를 뒤바꿔놓은 작전이라는 소재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도, 주제도, 배우들의 연기조차도 반세기 전으로 되돌아간 듯하다. 총제작비 170억원, 할리우드 액션 스타 리엄 니슨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영화는 애초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이 우세하다.
■ 리엄 니슨은 왜 인천에 왔을까?가장 먼저 나온 질문은 왜 굳이 리엄 니슨에게 맥아더 장군 역을 맡겨야 했느냐는 것이다. 영화가 공개되기 전엔 유대인들을 구하는 독일인(<쉰들러 리스트>), 딸을 구하는 아버지(<테이큰>)로 한국 관객들에게도 익숙한 그에게 한국전쟁의 운명에 결정적 구실을 하는 맥아더 역을 맡긴 것은 신의 한 수처럼 보였다. 그러나 영화 상영시간 111분 중 맥아더가 등장하는 시간은 16분. 그마저도 대부분을 유엔군사령부에 앉아 “이상을 좇아야 영혼이 주름지지 않는다” 같은 말을 읊조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왜 굳이 리엄 니슨이 그 역을 연기해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그의 배역과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았기에 미 군함이 태풍을 헤치고 인천 앞바다로 올 때 그가 “이 전쟁은 나의 마지막 전쟁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일부 관객들은 실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이 영화를 위해 맥아더 장군을 연구하고 그의 작은 습관까지 완벽하게 표현하려고 했다는 배우의 잘못은 아니다. 감정이입하기 어려운 일방적 영웅으로만 그려진 배우 이정재, 유일하게 비중 있는 여성으로 나오지만 아무런 무게감도 없는 한채선, 특별출연한 김선아, 추성훈, 김영애 등 화려한 카메오들의 잘못도 아니다. 인천과 유엔군사령부 두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를 하나로 엮기엔 설득력이 부족한 서사, 맥아더와 인천이 결부돼 있음을 보여주지 못한 긴박감 떨어지는 편집, 평면적인 캐릭터 등 제작진의 총체적인 작전 실패로 보아야 한다.
첩보 액션물을 표방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액션 장면.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인천상륙작전>에서 인민군 인천방어사령관 림계진(이범수)은 마구잡이로 총질을 해대고 민간인 목숨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거둬가는 무모한 악당으로 묘사된다.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 왜 작전을 바꿨을까?맥아더가 영화 속에 하나로 섞여들기 어려웠던 이유는 <인천상륙작전>의 주 내용이 작전 직전 북한군이 점령한 인천을 무대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이재한 감독이 전작 <포화 속으로>에서 그려냈던 전쟁 장면은 이 영화에선 5분가량 등장할 뿐 대부분은 적진에 침투해 기밀정보를 빼돌리려는 국군 정보장교 장학수(이정재)와 대원들의 활동이다. 감독의 장기마저 포기하는 선택을 하면서 영화는 대신 장학수와 인민군 방어사령관 림계진(이범수)의 이념과 액션 대결에 상당 시간을 할애한다.
그러나 영화 <암살>의 세트장을 재현한 듯한 술집에서 벌어지는 첫번째 대결부터 길거리 총격, 병원 탈출, 마지막 대결까지 여러 번을 싸우지만 단 한 번도 긴장감을 일으키진 못한다. 인민군이 국군 정보대를 추격하는 도중 갑자기 목재 운반차가 나타나서 이를 가로막고 총알도 장학수는 피해 가는 식의 영화는 액션물이라고 부르기에도 부족했다. 림계진을 마구잡이로 총질을 해대고 민간인의 목숨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거둬가는 무모한 악당으로 묘사하는 등 남과 북을 선과 악으로 절대화함으로써 1990년대 이후 <간첩 리철진> <웰컴 투 동막골> <공동경비구역 제이에스에이(JSA)> 등에서 조금씩 진전돼온 분단을 바라보는 영화적 시선의 균형감을 다시금 일거에 무너뜨렸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영화평론가 정지욱은 “전쟁, 액션에 이어 가족물과 신파 요소들을 조금씩 넣고 비볐지만 어떤 맛도 내지 못한 엉성한 비빔밥이 됐다”고 평했다.
이런 과거회귀적인 영화의 탄생 배경을 두고도 여러 말이 나온다.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쪽은 “영화 투자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며 선을 긋고 있지만, 일각에선 오는 광복절 ‘특사’를 희망하고 있는 씨제이그룹 오너의 거취와 연관시키는 시각도 있다. 영화평론가 이용철은 “이 영화는 그동안 씨제이엔터테인먼트가 내놓았던 ‘국뽕’ 영화 중에서도 최악”이라며 “우리 영화산업에서 가장 큰 영화기업이 특정 정권 때문에 시즌마다 이런 영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 비극”이라고 말했다.
실제 첩보부대 활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영웅 이야기를 위해 전쟁의 역사를 극화하면서 역사 왜곡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주인공(가운데·이정재)과 첩보대원들.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 그들은 왜 역사를 편집했을까? 왜 성공한 작전을 그린 <인천상륙작전>은 누구의 마음도 명쾌하게 하지 못했을까? “미국의 압도적인 물량 공세 덕분에 성공한 것만으로 ‘잘못’ 알려진 인천상륙작전의 역사를 바로잡아 한국전쟁 영웅들의 숨은 노력을 밝혀내겠다”는 제작의도를 밝혔던 영화는 무리수를 감행한다. 영화에선 인천을 점령한 인민군의 막강한 화력을 강조하며 불가능한 작전이었다는 주장을 편다. 하지만 당시 인천 주둔 전체 인민군은 2000명, 주요 전투가 벌어진 월미도 지역 등의 전선엔 2개 중대 인원만 있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261척의 함정과 7만5천명의 대원을 끌고 온 국군과 연합군은 안전한 상륙을 위해 작전 3일 전부터 월미도와 인천항에 폭격을 퍼부었으며 민간인 사망자가 다수 발생했다. 국방부 <전사보고서>에도 이 지역은 상륙 전 이미 “앙상하게 변해버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상륙작전 한 달 전부터 영흥도, 덕적도 등에서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는 주장이 있어왔다. 영화에선 이들 전투와 작전은 삭제됐으며, 잘못은 모두 인민군이 저질렀던 일들로 바뀌었다. 인천지역 민간인 학살 문제를 조사해온 월미도원주민귀향대책위원장 한인덕(71)씨, 이희환 <황해문화> 편집위원 등은 “영화에서 민간인 피해는 물론 인천 시가지 상황, 전쟁 전개 등 상당 부분이 왜곡됐다”고 밝혔다. 피해자와 유가족이 엄연히 기억하고 있는 참혹한 역사를 영화가 임의로 조작, 편집했다는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무수한 비난·저항 받아, 내가 흔들리면 나라 불안" 721 오마이뉴스
강경한 박근혜 대통령, 사드 배치 반발에 "불순세력 가려내야“
"요즘 저도 무수한 비난과 저항을 받고 있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가 불안해집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10시30분 탄도미사일 발사 등 최근 북한의 도발 위협과 관련한 안보상황 점검을 위해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제공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THAAD) 배치 재검토는 없다고 못 박았다. 사드 배치 부지로 결정된 경북 성주군민 2000명이 이날 오후 서울역에서 '사드 반대' 평화집회를 여는 등 반대 여론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정면 돌파' 의지를 재차 밝힌 것이다.
박 대통령은 "사드 배치에 대해 이것이 정쟁화되고 이것을 재검토하자는 것까지 몰고 가서는 안 된다"며 "저는 대통령으로서 그동안 대한민국과 국민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고심과 번민을 거듭해왔다"고도 강조했다. 특히 사드 배치 예정지 주민들의 반발을 '외부세력 개입'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도 드러냈다. 박 대통령은 "모든 문제에 불순세력들이 가담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면서 "배치가 결정된 지역의 여러분도 대화와 소통으로 최선의 해결 방책을 찾을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우리가 분열하면 바로 북한이 원하는 장으로 가는 것"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최근 북한의 미사일 타격 훈련을 거론하면서 이러한 입장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우리가 사드 배치 문제를 논의하면서 예측한 대로 북한은 우리나라 남부의 부산, 울산, 포항, 대구, 김해 등을 목표로 미사일 타격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정부가 사드 배치를 결단하게 된 것도 북한의 이런 위협으로부터 우리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 판단해서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의 계속되는 공격 압박 속에서도 지금 일부 정치권과 일각에서 사드 배치를 취소하라는 주장을 하는데 사드 배치 외에 북한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우리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부디 제시해 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즉,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는 야당이 '대안 없는 반대'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앞에서 단결해야 한다면서 야권과 경북 성주군의 사드 배치 반대 주장은 '북한이 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박 대통령은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것은 대통령과 정부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정치권과 국민들께서 나라를 지키고 우리 가정과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힘을 모아주셔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지금 북한은 북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자위적 방어조치인 우리의 사드 배치 결정을 적반하장격으로 왜곡, 비난하고 반정부 투쟁을 선동하면서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며 "우리가 분열하고 사회 혼란이 가중된다면 그것이 바로 북한이 원하는 장으로 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은 "과거 월터 샤프 주한미군 사령관이 '조국을 지키겠다는 투철한 정신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무기와 막강한 경제력을 보유해도 전쟁에서 패망한다'며 우리 국민들에게 북한의 위협을 경고했던 말이 기억난다"고 언급하면서 사드 배치와 관련된 반발을 사실상 '안보의식 부재'로 규정짓기도 했다.
내각을 향해서는 '흔들리지 마라'고 주문했다. 박 대통령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비난에도 굴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라며 "비난이 무섭다고 피해가지 말고,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국민들에게 소상히 말씀드려서 협조와 힘을 모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어,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군 최고책임자의 역할을 다해 나갈 것이고 앞으로도 국민들을 지켜내기 위해 해야 할 것은 최선을 다해 지켜낼 것"이라며 "여기 계신 여러분도 소명의 시간까지 의로운 일에는 비난을 피해가지 마시고 고난을 벗 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켜 가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경향사설]시민과 맞서 싸우겠다는 대통령의 독선 721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비난에도 굴하지 않아야 한다. 요즘 저도 무수한 비난과 저항을 받고 있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가 불안해진다”고 말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와 관련, 비판 여론에 개의치 않고 밀어붙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은 참모들에게도 “소명의 시간까지 의로운 일에는 비난을 피해가지 말고, 고난을 벗 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켜가기 바란다”고 말했다. 야권은 물론 여당 일부도 사퇴하라는 우병우 민정수석을 감싸고 ‘재신임’한 것이다.
박 대통령 발언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본다. 첫째, 민주공화국 지도자로서의 인식 결여다. 사드 배치와 우 수석 비리 의혹은 국가적 관심사다. 반대와 비판을 포함해 다양한 견해가 백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민의 합리적 의심을 무분별한 비난으로 몰고, 대통령 흔들기로까지 해석하는 것은 독선이다. 대통령이 사드를 들여오기로 결정하면 군말 없이 따라야 하고, 고위공직자가 비리 의혹에 휘말려도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니 봐줘야 한다는 말인가. 대통령은 민주공화국의 기본원칙인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원리를 모독하고 있다.
둘째, 통합에 앞장서야 할 대통령이 분열과 갈등을 부추겼다. 박 대통령은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에 대해서 사회 혼란이 가중된다면, 북한이 원하는 장으로 가는 것”이라며 “모든 문제에 불순세력이 가담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과 보수언론이 유포한 ‘외부세력론’의 연장선상에 있는 발언이다. 사드 반대파를 불순세력으로 몰아 공안정국을 조성할 수도 있다는 위협으로 들린다.
셋째, 국가안보를 정략에 이용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4일 NSC에서 “정쟁이 나서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잃어버린다면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 19일에는 청와대 관계자가 우 수석 의혹과 관련해 “안보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통령과 정부가 총력을 다하는 상황에서 국정 흔들기는 자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또다시 대통령이 ‘정부를 비판하면 나라가 불안해진다’는 취지의 안보위기론을 이어갔다. 대통령이 참모 한 사람 구하겠다고 국가안보까지 동원하다니 부끄럽다.
박 대통령 발언은 시민과 맞서 싸우겠다는 선언이나 매한가지다. 그러나 불통과 폭주, 독단과 전횡, 비타협적 대결정치로는 레임덕(권력누수)의 속도만 빨라질 것이다. 민심을 이기는 지도자는 없다.
'사드 찬성' 엄마부대 "모자 쓴 정체불명의 여인, 간첩아냐?" 720 노컷뉴스
20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엄마부대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사드배치 지지와 성주 외부세력 개입 수사' 등을 주장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는 지난 15일 성주에서 있었던 한 여성의 발언을 문제 삼으며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MBC, 대구MBC에 외부세력 보도 요청했다" 721미디어오늘
"외부세력 프레임으로 성주 고립시키려는 언론보도"…성주군민 "언론보도가 성주를 가두고 있다"
세월호와 제주 강정마을, 그리고 사드가 배치된 성주에는 공통점이 있다. 정부의 책임을 물어야 할 만큼 큰 이슈가 터졌는데도 언론들이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외부세력’의 개입 결과라고 억지 논리를 펴거나 괴담과 음모론으로만 치부하는 물타기를 했다는 점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21일 오전 사드배치 논란 언론보도 긴급토론회를 열고 각 언론이 어떻게 사드 관련 사안을 왜곡보도하고 있는지에 대해 지적했다. 이날 자리에는 매일신문과 대구MBC 등 지역 언론 관계자와 성주군 농민회장, 성주군민 등이 함께 참석해 중앙 언론에서는 보이지 않는 현장의 목소리와 언론의 왜곡 보도 실태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는 최근 대구MBC와 서울MBC의 보도 방향이 달랐던 배경에 특정 내용으로의 서울MBC의 보도 협조요청이 있었지만 대구MBC가 이를 거절한 결과라는 증언이 나왔다.
▲ 전국언론노동조합에서 주최한 사드배치 논란 언론보도 긴급토론회. 사진=언론노조.
도건협 전국언론노동조합 대구MBC지부장에 의하면 지난 16일 황교안 총리가 성주에 방문했던 날 지역 MBC 관리부서인 ‘전국부’에서 리포트를 제작해달라는 요청이 대구MBC에 들어왔다. 도 지부장은 “리포트에서 성주군민의 폭력을 앞세우고 이에 대해 경찰이 엄단하기 위한 전담반을 구성했다는 내용을 붙이고, 그 뒤에 성주군민의 집회 내용을 언급해달라고 요청이 왔다. 거부했더니 서울MBC에서 관련 내용을 자체적으로 리포트를 작성했다”고 전했다.
다음날인 17일에는 성주 투쟁위원회의 한 공동위원장이 외부세력이 개입했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는 한 언론보도 내용을 확인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대구MBC에서 취재한 결과 투쟁위의 다른 관계자에 의하면 외부인은 없었고, 해당 발언을 했던 공동위원장의 말은 공식적 발언이 아니라 개인적인 통화 내용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알렸더니 서울MBC에서 해당 내용을 보도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또한 도 지부장에 의하면 지난 19일에는 지난 15일 사드 반대 시위 당시에 외부 세력이 참여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작성할 것을 대구MBC 측에 요청했으나, 대구MBC 측은 해당 인사가 성주에서 오래전부터 살았던 사람이라는 점에서 외부인사가 아니라며 기사 작성을 거절했다는 것이다. 해당 보도는 19일 서울 MBC에서 방송됐다.
7월17일 MBC 뉴스데스크에서 방송된 '경찰, 사드 반대 시위 황 총리 '달걀투척' 수사 착수' 보도(위), 7월19일 MBC 뉴스데스크에서 방송된 '성주 사드 배치 반대시위에 외부인사 참여 확인' 보도(아래)
이런 상황들이 현재 대구MBC와 서울MBC의 보도 내용이 크게 갈린 결과로 드러났다. 도 지부장은 “이런 결과는 공영방송을 정권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당시에도 목포MBC 기자가 현장에서 전원 구조 소식은 오보라고 보고했는데도 하루종일 전원구조 보도가 나갔다. 현장 취재결과는 무시하고 정권 입맛에 맞는 보도를 했던 행태들이 이번 사드 보도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지역MBC가 (서울MBC에 비해) 그나마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을 보도에서 아예 배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배제하면 방송 제작 인력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라면서도 “지역 MBC 역시 사장 선임 구조 등을 공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왜곡 보도의 사례는 비단 MBC만의 일은 아니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지난 8일부터 19일까지의 신문과 방송 뉴스, 8일부터 14일까지의 종편 시사토크쇼의 사드 배치 관련 보도를 모니터한 결과를 발표했다. 신문은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가 대상이었고 방송 보도는 각 방송사의 저녁 뉴스 등 메인 뉴스 프로그램을 살폈다. 이외에도 TV조선과 채널A, MBN의 시사토크쇼도 모니터 대상에 포함시켰다.
김 사무처장은 사드 관련 언론 모니터 결과를 통해 일부 언론들이 정부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확대 재생산 하는 데에 급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드 배치로 인해 불거질 전자파 유해성 논란, 사드의 군사적 효용성, 주변국과의 외교 갈등 등에 대한 검증보다는 ‘괴담’, ‘유언비어’ 등으로 반대 목소리를 일축하고만 있다는 지적이다. 반대 움직임을 ‘외부세력의 개입’으로 몰아세우는 보도도 빠지지 않았다.
주요 언론들의 경우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전하는 편파적 보도가 문제로 지적됐다. 민언련의 분석 결과 KBS는 사드 관련 보도 27.5건 중 무려 18건(65.5%)을 정부 입장을 그대로 전달만 했다. 또한 MBC 역시 전체 관련 뉴스 30건 중 절반 이상인 16건이 정부 입장을 전달한 보도였다. TV조선과 MBN은 각각 27건과 35건의 사드 관련 소식을 전달하면서도 검증 보도는 각각 4건씩에 그치는 정도에 머물렀다.
또한 사드의 전자파 유해성 논란은 ‘비과학적 선동’이라고 몰아세우는 보도도 눈에 띄었다. 중앙일보의 지난 13일 “이철호의 시시각각/과학과 정면 충돌하는 사드 괴담”에서는 “광우병·메르스에 이은 괴담 시즌2”가 이어지고 있다며 “좌파의 괴담은 카메라로 사진 찍히면 영혼을 빼앗긴다고 믿었던 아프리카 토인들과 닮았다”고 전했다.
7월18일. 중앙일보 '이철호의 시시각각/ 과학과 정면 충돌하는 사드 괴담' 기사.
지난 14일 조선일보는 사설인 “‘전자파 진실 밝히라’ 사드 괴담 확산에 가세한 진박 의원들”에서 “세간에는 전자파에 대해 ‘인체에 치명적이다’, ‘농산물이 오염된다’는 얘기들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고 있다”며 “전자파는 반경 100m를 벗어나면 전혀 문제가 없고 세계보건기구의 유해성 기준에도 부합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라고 전했다. 이어 “과학적 근거가 없는 괴담을 제조·생산하고 유통시키는 데 앞장서는 사람들이 정치인”이라고 지적했다.
사드 배치를 성주군만의 문제로 만드려는 프레임은 일부 보수 언론과 종편 등의 단골 소재였다. 성주 주민이 아닌 이들이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면 ‘전문 시위꾼’이거나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다. 사드 배치를 성주 지역만의 문제로 국한시키면서 성주군민을 고립시키고 반대 여론의 확산을 차단하려는 보도 의도가 있다는 해석이다.
지난 18일 “성주투쟁위원장 ‘총리 붙잡은 건 지나쳐…외부인 개입한 듯’”이라는 중앙일보 기사에서는 이재복 성주 사드 배치 저지 투쟁위원회 공동위원장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폭력을 사용하지 말자고 계속 말했기 때문에 총리가 오셨는데 우리 주민이 그럴 일(폭력시위) 없다”며 “지난 15일 서울에서 성주 사람(성주가 고향이라는 의미)이라며 젊은이가 나에게 찾아와 현수막이 제대로 안 걸려있다며 감독하듯 말했다”며 “내가 이번 폭력사태에 외부인이 개입했다고 추정한 이유”라고 발언한 것을 소개했다.
여기서 더 나아간 기사도 있었다. 동아일보의 지난 19일 “3野 찾은 사드대책회의…8명 중 성주 주민은 2명뿐”이라는 기사는 “사드 체계 한국 배치 반대 전국대책회의 8명 가운데 6명은 진보단체 소속으로 확인됐다”며 “정작 경북 성주군 주민은 단 2명만 참석해 외부세력 개입 논란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해당 대책회의는 처음부터 성주 주민만의 회의가 아니라 전국 사드 대책회의이며 야당 관계자와 전국 51개 시민사회 단체가 주축이 돼 모인 것이다.
7월19일 동아일보 '3야 찾은 사드대책회의…8명 중 성주 주민은 2명뿐' 기사
이러한 보도 프레임은 세월호 사건과 제주 강정마을 등 당사자들의 반발이 크게 불거져 나왔던 사회 이슈에서 항상 볼 수 있었다. 특히 최근 일부 언론에서는 세월호 사건과 제주 강정마을 관련 보도처럼 성주군민의 반발을 ‘보상을 기대한 속물적 행동’로 몰아가는 모습도 보인다.
지난 8일 채널A의 ‘김승련의 뉴스TOP10’에서는 당시 후보지로 거론되던 칠곡과 평택 주민들의 반발을 전하며 “아마 저렇게(반대) 하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우리 칠곡에 금전적으로 지원해달라’는 걸 깔고 하시는 것 같다”며 “이미 그런 거 없이 경기도와 강원도에 있는 많은 지역들이 (사드배치)용지로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이재동 성주군 농민회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성주군민의 입장에서 언론의 왜곡 보도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이재동 회장은 “황교안 총리가 성주에 내려왔을 때 여섯시간 반 동안 총리가 대화를 거부했다. 그러다 한 시간 정도 대화를 한건데 총리감금, 폭력, 외부불순세력 개입 등 프레임대로 보도가 나왔다”며 “외부세력 관련해서도 찾아보면 다 성주에서 평생 산 사람들이다”며 “(언론 보도가) 성주를 자꾸 가두고 있다. 이렇게 당하는구나 싶었다”고 토로했다.
이재동 회장은 “이러한 보도 행태들 때문에 우리 투쟁위원회에서도 언론 인터뷰 지침을 만들었다. 인터뷰 녹음을 한 뒤 이 말을 그대로 실어주면 인터뷰를 하겠다는 조건”이라며 “말꼬리 잡는 일부 언론과는 왠만하면 인터뷰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한 “정직하게 보도하는 곳은 좌파언론으로 치부하고 거짓말로 오도하고 소설쓰는 언론들이 국민 화합과는 동떨어진 권력 유지 수단으로 역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함께 참석한 성주군민 배윤호씨도 “언론이 외부세력이 개입했다고 말했지만 외부세력은 결국 없다는게 드러났다. 진짜 있었으면 경찰 등에서 진작 언론플레이하고 나섰을 것이다. 결국 찾아보다 없으니까 이 정도인 것”이라고 전했다.
낙지, 꼬막, 주꾸미, 꽃게…사라지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721한겨레
보호구역에서도 어업은 그대로 허용한 남획 결과 아닐까
미국 해양보호구역 사례 주목…채취 규제 뒤 주변에 흘러넘쳐
»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기도 한 전남 무안의 갯벌. 풍요로웠던 이곳에서도 낙지가 잡히지 않는 등 이상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갯벌은 이제 살아있지 않다. 전남도
간만의 휴식, 목적 없이 이리저리 텔레지번 채널을 돌리다 익숙하고 반가운 풍경을 만났다. 전라남도 무안의 너른 갯벌에서 동네 노인이 삽을 들고 낙지잡이를 하는 모습이었다.
평화로운 모습, 하지만 막상 뉴스가 전하려는 내용은 갯벌의 풍광처럼 여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화면 속 노인은 보통사람이라면 채 한걸음도 옮기기 어려운 뻘에서 벌써 3시간 넘게 낙지를 찾고 있었고, 낙지잡이 달인이라는 노인의 수확통에는 달랑 낙지 3마리만이 담겨 있을 뿐이었다.
뒤이어 노인을 따라 갯벌을 헤매던 기자는 각종 수치를 언급하며 ‘남도의 갯벌에서 낙지와 꼬막이 사라져가는 현실’을 격앙된 목소리로 알리고 있었다.1)
» 갯벌에서 평생 낙지를 잡아온 달인이라도 텅 빈 갯벌에서 건질 것은 별로 없다.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갯벌에서 한 노인이 낙지를 잡고 있다. 강재훈 기자
무안 갯벌, 이곳은 우리나라 갯벌 중 최초의 습지보호지역으로, 개인적으로는 나의 첫 연구과제 대상 지역이기도 하다. 갈대와 노을, 흑두루미로 유명한 순천만 갯벌보다 2년 먼저 보호구역이 된 무안 갯벌에서 저렇게 대표생물인 낙지가 줄어들고 있다니….
뉴스에서는 여자만을 사이에 두고 순천만과 붙어있는 벌교에서도 꼬막이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을 함께 전했다. 사실 낙지와 꼬막이 풍부한 남도에서 그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바다에 관한 일은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심심치 않게 우려되던 비밀 아닌 비밀이기도 하다. 실제 수산정보포털의 어업생산통계2)를 보면, 생산지가 비교적 갯벌로 제한되는 꼬막의 생산량은 2009년 이후 뚜렷하게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1 꼬막 생산량 변화 추이 자료: 수산정보포털(http://www.fips.go.kr_2016.6.30. 접속)
비록 2007년 천해양식에서 평년의 두 배 이상 늘어난 꼬막 생산량을 예외로 하면(일반적인 생산량보다 과도하게 높아 그 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지만), 2003년에서 2006년의 생산량이 약 만 톤 내외였던 것에 비해 2010년 이후에는 좀처럼 5000톤 이상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점은 2015년 작년에는 양식에서 불과 96톤밖에 생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 전남 강진만에서 참꼬막을 잡는 어부들. 연합뉴스
과거 패류양식을 통한 꼬막의 생산량이 적어도 수천 톤에 달하던 것과 비교해보면 매우 심각한 감소라고밖에 볼 수 없다. 반면 전체적인 생산량이 줄어드는 경향 속에서도 마을 공동체가 관리하는 마을어장에서 생산된 꼬막은 연간 1000톤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점과 대비된다.
이렇게 꼬막의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산지의 생산가격은 크게 상승했다. 생산량과 생산액을 통해 얻은 꼬막의 단가 변화를 보면, 2000년대 초반 ㎏당 2000원 내외였던 꼬막의 가격은 이후 꾸준히 상승해 2010년에는 거의 5000원 대까지 이르렀고, 작년에는 7000원대까지 치솟았다.
적어도 10년 전에 비해 꼬막의 생산가격이 2~3배 이상 올라갔다고 할 수 있다. 아마 유통과정을 거쳐 우리 식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적어도 ㎏당 만 원 이상을 줘야 꼬막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림2 꼬막 단가의 변화
자료: 수산정보포털 자료 재정리 (http://www.fips.go.kr_2016.6.30. 접속)
낙지, 꼬막과 더불어 전 국민이 좋아하는 주꾸미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그 중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알 밴 주꾸미는 봄과 함께 온다. 따뜻한 봄기운이 느껴질 때쯤이면, 노량진 수산시장 1층 노점에서 알이 꽉 찬 주꾸미를 ㎏에 만원 남짓 주면, 근처 식당에서 샤브샤브를 즐길 수 있었다. 5~6년 전 얘기다. 하지만 지난 봄 주꾸미는 ㎏당 4만원을 호가했다. 이제 주꾸미는 큰맘을 한번 먹어야 겨우 먹을 수 있는 어종이 되었다.
» 소라 껍질을 이용해 주꾸미를 잡는 충남 서천의 한 어선이 주꾸미를 잡는 모습. 박미향 기자
꼬막의 경우 종패를 뿌리기는 하지만 낙지나 주꾸미처럼 성장과정에 사람이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이들은 갯벌의 환경상태에 민감해 수온이나 기온의 급격한 변화나 일조량의 차이에 큰 영향을 받기도 한다. 따라서 이들의 자원량이 급격히 늘거나 줄었다고 해서 그 원인이 무엇인지 섣불리 말하기 어렵다. 또한 이런 환경변화에 우리가 대응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하지만 필자의 고민은 이 부분이 아니다. 혹시 갯벌에서 나는 이들 수산물의 생산량이 급락한 이유가 다른 데에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우리가 너무 많이 잡아 먹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해마다 지구 550바뀌 감는 그물
찰스 클로버는 지난 20년 동안 영국에서 환경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전 세계 바다에서 벌어지는 수산물의 과잉 채취, 즉 남획의 문제를 조사해 왔다. 그는 <텅 빈 바다>(원저: The End Of The Line)라는 책을 통해 “생선의 멸종”을 얘기하며 수산자원의 붕괴를 우려했다.
» 조류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페르시아 만의 전통 그물. 요즘 기계화하고 대형화한 그물은 이런 지속가능한 어획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그에 따르면 1년에 바다에 던져지는 그물의 길이는 1억 4000㎞로 이는 지구를 550번 감을 수 있는 길이에 해당한다고 한다. 더욱 심각한건 지역해 별로 있는 수산기구가 직접 조업을 통제하는 바다에서조차 참치나 대구, 명태처럼 그동안 우리가 손쉽게 이용해왔던 수산생물들이 거의 멸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참치로 알고 있는 참다랑어는 이미 1950년대 북대서양 해역에서 사라졌다. 이른바 ‘지역적 멸종’ 상태인 것이다. 찰스 클로버는 이는 분명히 인간의 과도한 어획 때문이지 기후나 환경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 하루 종일 잡은 꽃게가 이 모양이다. 갈수록 어획량이 줄어 연평도 꽃게 잡이 어민의 근심이 깊다. 연평도/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우리 바다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서해 5도의 꽃게 자원량이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이 과연 환경의 변화나 꽃게 개체군의 내재적 변동에만 의한 것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최근 중국 어선이 엔엘엘(NLL)을 파고들어와 마구잡이로 꽃게를 잡아가기도 하지만, 혹시 우리 역시 지금까지 너무 많이 이들을 잡은 것은 아닐까? 단지 꽃게뿐만 아니라 낙지나 꼬막도, 그리고 알 밴 주꾸미도. 우리가 너무 많이 먹어서, 또는 먹으려는 욕심에서 문제가 시작된 것은 아닐까?
바다에서 얻는 수산자원은 본질적으로 변동성이 매우 크고, 그 변화가 넓은 바다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수산자원의 상태를 확인하고 변화를 예측하기 역시 매우 어렵다. 그래서 수산자원은 쉽게 관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또한 어민은 매일 같이 수산자원을 이용하고 있다. 정부는 수산자원을 관리하기 위해 어민의 조업권에 연계하여 잡을 수 있는 어종이나 수확량, 조업일, 그물의 형태나 크기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규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수단들 외에 우리가 아직 잘 활용하지 않는 수산자원 관리 수단이 있다. 바로 앞서 무안갯벌에서 잠시 언급했던 보호구역이다.
그물에는 눈도 발도 없다. 걸리는 건 모두 뱃전에 올릴 뿐
보호구역이란 공간을 정해 그 안에서 일정한 행위를 규제하는 구역을 말한다. 이런 종류의 보호구역은 도시 주변부에 설정된 개발제한구역처럼 지역민의 반발이 심하다. 마찬가지로 바다에 설정된 보호구역 역시 어민들 대부분이 호의적이지 않다. 그러나 공간에 대한 관리는 사실 가장 기본적인 생태계 관리 수단이며 수산자원 관리의 궁극적인 방법으로, 수산생물이 사는 곳, 그들이 새끼를 낳는 공간 자체를 보호하지 않고 단순히 잡는 방법이나 조업 일수만 관리해서는 해당 자원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할 수 없다.
아무리 그물의 크기와 끄는 방식을 관리한다고 해도 그물에는 눈도 없고 발도 없다. 그물에 걸리는 모든 것들은 뱃전으로 올라갈 뿐이고, 뱃전의 선원들에게는 당장 더 많은 어획고가 필요하다. 그래서 바다의 일정한 공간에서 채취활동을 규제하는 해양보호구역은 단지 해양의 생물다양성을 보호한다는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산자원에 대한 관리 수단으로서도 매우 강력한 효과가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엄격하게 보호되는 해양보호구역으로 미국 플로리다 주에 ‘메릿섬 국립야생보호구역(The Merritt Island National Wildlife Refuge)’을 들 수 있다. 이 야생보호구역은 대서양에 인접한 플로리다 하구의 습지대에 설정되어 있는데, 그 한 가운데에 과거 아폴로 우주 왕복선 등이 발사된 케네디 우주 센터가 있다.
이 우주센터의 보안 유지를 위해 설정된 이 야생보호구역에는 수산물의 채취는 물론 사람의 출입도 엄격히 금지한다. 사실상 군사시설 보호구역인 셈이다.3)
2001년 캘럼 로버츠(Callum Roberts)는 동료학자와 함께 이 곳 매릿 섬 야생보호구에서 나타난 생물량 증가 효과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1962년 이 해역에 대한 출입이 통제된 이후 보호구역 내에서의 단위노력 당 어획량이 보호구역이 아닌 곳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어종에 따라 최대 13배 가까이 어획량이 늘었다.
보호구역에서 잡힌 물고기의 크기 역시 커졌는데, 야생보호구역이 플로리다 전체 해역의 13%에 불과한데도 최대 체장의 물고기가 보호구역에서 발견되는 비율이 플로리다 전체의 50% 이상이 될 정도로, 크기가 큰 개체가 보호구역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었다.
이 논문에서는 또한 그림처럼 보호구역의 효과가 언제부터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데, 어종에 따라 짧게는 10년에서 길게는 30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 그들은 보호구역의 효과가 시간을 두고 달리 나타나는 이유를 어종별로 다른 수명 때문으로 설명했다.
» 70살까지 자라는 흑민어. 해양보호구역 지정 덕분에 급증했다. Schwarzer Trommler, 위키미디어 코먼스
예를 들어 가장 늦게 보호구역의 효과가 나타난 흑민어(Pogonias cromis)는 수명이 70살에 가까울 정도로 길고 성장이 더딘 반면, 수명이 15년 정도인 송어류는 비교적 빨리 큰 개체가 발견되며 보호구역의 효과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또한 보호구역의 생물량 증가의 효과는 구역 안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보호구역 밖에까지 영향을 주는 “넘침 효과(spill-over effect)"가 존재한다.4)
말 그대로 일정한 곳이 가득 차 주변에 넘쳐흐르는 효과인 넘침 효과는 보호구역에서 늘어난 생물이 주변해역으로 바로 이동하거나, 보호구역에서 더 많이 산란하여 늘어난 개체들이 주변해역으로 확산하는 걸 말한다. 결국 보호구역이 일종의 생물 공급기지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림3 플로리다 메릿 섬 야생보호구역 인근 최대어종 발견 기록 추이
설명: 1962년 해역에 대한 접근이 금지된 이후 흑민어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적민어는 1980년대 후반 이후, 송어는 1970년대 초반 이후 최대 체장의 발견 비율이 급격히 높아져 플로리다 전체와 비교해 야생보호구역에서 발견되는 최대 체장의 어류의 비율이 매우 커짐. (검은 점은 플로리다 전체에서 최대체장 기록이며, 빈 점은 야생보호구역 인근에서 발견된 최대 체장의 기록임) 자료: Roberts et al.(2001)
그림4 넘침 효과의 개요 자료: Lester et al.(2009)
이처럼 해외에서는 보호구역 전체나 구역의 일부를 정해 사람들의 접근을 금지하거나 수산물 채취를 금지하며 엄격하게 관리한다. 이런 구역은 바다에서 생물다양성 거점이 되어 더 다양하고 많은 생물들이 서식할 수 있게 되는데,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 해양보호구역은 아직 이 단계까지 발전했다고 보기 어렵다.
채취금지와 같은 행위제한과 관련하여, 우리나라 보호구역의 하나인 습지보호지역의 근거법률인 습지보전법을 살펴보면, 법률 제13조에 행위제한 5가지 사항이 규정되어 있다.5)
이 중에는 ‘동식물을 인위적으로 들여오거나 경작·포획 또는 채취하는 행위’를 금지하는데, 문제는 1년 이상 생계를 위해 포획·채취한 경우는 채취금지의 예외로 한다는 단서조항이다.
따라서 습지보호지역을 지정했다고 하더라도 해당 해역에서 이루어져 왔던 어업활동을 규제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불가하다. 어업활동의 규제가 습지보호지역을 지정하기 어렵게 만드는 걸림돌이 될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해당 해역에서 이루어지는 조업행위를 관리하지 않고서는 보호구역 지정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쉽지 않다. 수산자원 역시 생물다양성의 일부이기 때문에 수산생물을 그대로 채취하도록 하는 상태에서 해당 생태계의 온전성을 유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2008년 무안갯벌을 관리하는 보전계획을 수립하는 과제를 맡았을 때의 답답함이 다시 밀려온다. 습지보호지역이라고 해도 갯벌에서 수산물을 채취하는 행위를 규제할 수 없는 우리나라 해양보호구역의 문제와 한계가 지금도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수산물은 낙지나 꼬막, 주꾸미뿐만이 아닐 것이다. 지금 상태라면 바다생물이 성장하고 산란을 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한 채 잡아들이기에만 급급하고 바다는 점점 황폐화되어 가는 악순환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넓은 바다는 몰라도 적어도 마을 사람들이 한 눈에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갯벌에서는 일정한 기간이나 구역을 정해 생물 채취를 금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무안의 어르신이 잡으러 다니던 뻘낙지의 수명은 기껏해야 1년 반에 불과하다. 조금만 잡지 않고 기다려주면 그들이 갖고 있는 생명력처럼 갯벌 생태계는 금방 회복될 수 있다. 더욱이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라면 새로운 관리방식에 대해 지역사회가 논의하고 합의된 의견을 낼 가능성이 크다. 물론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도 새로운 관리방식을 위해 체계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갯벌에 대한 관리 방식이 근본적이고 과감하게 바뀌지 않는다면, 과거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다큐멘터리, ‘갯벌은 살아있다’6) 대신 ‘갯벌은 죽어간다’가 방영될 지도 모른다. 부디 우리 갯벌이 ‘공유지의 비극’의 공간이 되지 않기를, 갯벌에 의지해 살아가는 ‘갯살림’도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본다. / 육근형(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부연구위원)
1) 해당 기사는 2016년 6월 19일 KBS 뉴스의 취재파일K의 기사로 확인되었다.
2) 갯벌에서 이루어지는 어업은 지역의 공동체에 의해 주로 호미 등을 들고 갯벌에 나가 채취를 하는 맨손어업 방식의 마을어장(해면어업)이 있고, 또는 일정 구역에 어업권을 받아 패류를 양식하는 패류양식업이 있다. 또한 수협 등을 통해 거래가 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나누어 계통판매와 비계통판매 등이 있어 수산물 생산량에 대한 정확한 통계를 확보하기가 아직은 어려운 형편이다.
3) Roberts, CM, James A. Bohnsack, Fiona Gell, Julie P. Hawkins, Renata Goodridge (2001) Effects of Marine Reserves on Adjacent Fisheries. Science 294:1920-1923.
4) Lester SE, Halpern BS, Grorud-Colvert K, Lubchenco J and others (2009) Biological effects within no-take marine reserves: a global synthesis. Mar Ecol Prog Ser 384:33-46.
5) 1. 건축물이나 그 밖의 인공구조물의 신축 또는 증축(증축으로 인하여 해당 건축물이나 그 밖의 인공구조물의 연면적이 기존 연면적의 두 배 이상이 되는 경우만 해당한다) 및 토지의 형질변경 2. 습지의 수위 또는 수량이 증가하거나 감소하게 되는 행위 3. 흙·모래·자갈 또는 돌 등을 채취하는 행위 4. 광물을 채굴하는 행위 5. 동식물을 인위적으로 들여오거나 경작·포획 또는 채취하는 행위(해당 지역주민이 공동부령으로 정하는 기간(1년) 이상 생계수단 또는 여가활동 등의 목적으로 계속하여 경작·포획하거나 채취한 경우는 제외한다)
6) 1994년 문화방송이 제작·방송한 갯벌에 관한 다큐멘터리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간간하고 쫄깃하고 배릿한” 남도 조개 삼형제 15.12.1 한겨레 물 바람 숲
꼬막과 새꼬막은 껍데기 골의 수로 구분, 피조개는 붉은 피로
찬바람 불면서 맛 들어, 소금기 남도록 살짝 삶는 것이 요령
» 찬바람이 불면서 맛이 드는 꼬막. 조가비 골의 수로 새꼬막, 피조개와 구분한다. 사진=ProjectManhattan. cc by-sa 3.0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대표적 대하소설로 꼽히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에는 “간간하고 쫄깃쫄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한 그 맛은 술안주로도 제격이제.”라고 꼬막을 묘사했다.
대학시절 마음 조리며 가슴 치며 읽던 이 소설에 등장한 정하섭과 소화, 외서댁과 염상구 그리고 무당 월녀가 벌교 꼬막을 이야기한 장면이 아련하다. 그래서 이 소설의 배경을 찾아 남해안 갯벌 바닷가를 걷다 보면, 어민들이 뻘배 또는 널배라 부르는 널빤지를 타고 한발로 힘차게 펄을 차며 나가면서 무슨 조개를 캐는 광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널배를 타고 갯벌을 미끄러지며 꼬막을 채취하는 고흥의 어민. 사진=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고흥 쪽 해변에서도 보성만 일대에서도 꼬막은 난다. 그러나 벌교 꼬막에는 그 맛이 미치지 못해 옛날부터 타지 사람들이 먼저 알고 차등을 매겼다고 한다. 벌교에서 물 인심 다음으로 후한 것이 꼬막 인심이었고, 벌교 오일장을 넘나드는 보따리 장꾼들은 장터거리 차일 밑에서 막걸리 한 사발에 꼬막 한 됫박 까먹는 것을 큰 낙으로 즐겼다.
꼬막 조개껍데기 겉면에는 밭고랑 같은 골이 나있는데, 언뜻 보면 다 같은 종류 같지만 이 방사륵의 수에 따라 꼬막, 새꼬막, 피조개 등으로 구분이 된다. 방사륵이 꼬막(Tegillarca granosa)에는 17∼18줄, 새꼬막(Scapharca subcrenata)에는 30∼34줄, 피조개(Scapharca broughtonii)에는 42∼43줄이 나있다.
꼬막은 흔히 참꼬막이라고 하며, 제사상에 올린다고 해서 제사꼬막이라고도 부른다. 이 꼬막의 영명은 그래눌라 아크(Granular ark)이고, 일본어로는 하이가이(ハイガイ)이다.
» 충남도가 시험 양식에 성공한 새꼬막. 사진=충남도
새꼬막은 껍데기의 골이 꼬막보다 가늘게 패인 것으로 제사 때 쓰지 못한다고 해서 똥꼬막으로도 부르는데, 사실은 참꼬막보다는 속이 알차고 짠맛이 덜하여 먹기에 제격이다. 조금 더 깊은 펄 바닥에 사는 피조개는 꼬막이나 새꼬막보다 더 크고, 조개껍질을 까보면 속에서 피가 흐른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꼬막을 일컬어 ‘크기는 밤만 하고 껍질은 조개를 닮아 둥글다. 빛깔은 하얗고 무늬가 세로로 열을 지어 늘어서 있으며 줄과 줄 사이에는 도랑이 있어 기와지붕과 같다. 두 껍질의 들쑥날쑥한 면이 서로 엇갈려 맞추어져 있다. 고기 살은 노랗고 맛이 달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더욱이 새꼬막은 ‘꼬막과 유사하나 기왓골 모양의 도랑무늬가 더 가늘고 기름기가 있다.’라고 꼬막과 구분하여 뛰어난 관찰력을 보이고 있다.
» 꼬막의 확대한 모습. 사진=류우종 기자
꼬막은 가을 찬바람이 불면서부터 맛이 들기 시작해서 여름철 알을 품기 전까지가 가장 맛이 좋다. 꽃게와 같은 갑각류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꼬막은 달이 찬 보름 무렵에 잡은 것보다는 달이 없는 그믐에 캔 것이 살이 알차다고 한다. 꼬막은 시금치 데쳐내듯 핏기는 가시고 소금기는 남아있게 살짝 삶아내야 한다. 알맞게 삶아진 꼬막은 조갯살이 줄어들지 않고 물기가 촉촉이 돈다.
» 꼬막 요리. 사진=박미향 기자
꼬막은 소화 흡수가 잘 될 뿐 아니라 고단백, 저지방 알칼리성 식품으로 병후 회복에 좋다. 꼬막에는 철분과 각종 무기질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빈혈에 좋고, 조혈강장제로 효험이 좋다.
일반적으로 조개류의 피는 헤모시아닌을 함유하고 있어 녹색을 띤다. 그러나 피조개만은 붉은 피를 가지고 있는데, 산소를 운반하는 호흡색소인 헤모글로빈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조개란 이름이 붙었고, 영어로도 블러디 클램(Bloody clam), 일본에서도 아카가이(アカガイ, 赤貝)라고 하여 붉은 피를 표현하는 이름을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영어권에서는 피조개를 아크 쉘(Ark shell)이라고도 부른다.
» 피조개. 사진=M. Taru
» 헤모글로빈 때문에 붉은 빛을 띠는 피조개의 안쪽 모습. 사진=국립중앙과학관
바로 창세기에 150일간 천지를 진동시킨 노아 홍수 때 노아 가족과 금수만을 방주(方舟, ark)로 옮겨 생존케 하였다는 기록에서 유래한다. 인간의 생명을 구했다는 방주를 피조개의 이름으로 붙였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피조개가 바로 인간과 같은 적혈구를 가진 조개라는 의미에서 붙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피는 바로 생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출혈은 항상 불안과 공포의 대상인가 하면 혈액순환을 하는 심장의 운동이 정지되면 바로 죽음을 뜻한다. 피조개 피의 비중이 사람의 혈액 비중과 거의 같을 정도로 진하다고 하니 옛사람들의 혜안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황선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
고등어 제친 연어 ‘식탁 반란’ 721 한국
수산물 판매 순위서 5위로 껑충 / 노르웨이산 수입량 사상 최대
건강 도움 슈퍼푸드로 인기 /국민 생선 반열에 오를 기세
수요 급증에 가격 상승 전망도
선홍색 살의 연어가 ‘국민 생선’ 고등어의 지위를 위협하고 잇다. 21일 대형 유통업체 A마트에 따르면 지난 3~6월 수산물 판매 순위에서 연어가 갈치, 오징어, 새우, 굴비에 이은 5위에 올랐다.
2년 전만 해도 10위권 밖에 머무르던 연어가 생고등어(7위)와 자반고등어(8위)보다 많이 팔린 것이다. B마트에서도 연어는 지난 1~6월 6번째로 인기 있는 생선으로 집계됐다. 갈치, 오징어, 고등어와 함께 4대 대중 선어(냉장 생선)로 꼽히는 삼치(42억원)보다 2배 웃도는 매출(100억원)을 올렸다. 같은 기간 고등어 매출은 120억원으로, 연어와 큰 차가 없었다.
세계 최대 연어 생산국인 노르웨이의 수산물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량은 1만3,285톤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년(9,325톤) 대비 증가율은 42.4%에 달했다. 올 상반기에도 8,054톤이 수입됐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수입량은 1만6,000톤 안팎으로 또 다시 기록을 갈아치울 전망이다. 국내 냉장 연어의 99.2%가 노르웨이산이다.
이처럼 연어가 어느 새 우리 식탁의 한 구석을 차지하는 친숙한 생선이 된 계기는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가 단초를 제공했다. 유럽연합(EU)이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에 나서자 러시아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연어 등의 수입을 중단했다. 이에 국제 연어 시세는 20% 가까이 떨어졌다. 주요 시장이던 러시아 수출이 막히자 노르웨이는 그 동안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한국 시장 등에 눈길을 돌렸다. 당시 달러화에 비해 노르웨이 화폐인 크로네화 가치가 떨어진 것도 국내 소비자의 부담을 줄여 줬다.
연어는 생선을 날로 먹는 우리 식문화와도 잘 맞아 떨어졌다. 특히 건강 식품,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각광받으면서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연어는 오메가3를 다량 함유하고 있어 혈관 질환 예방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산화 영양소인 비타민A와 E, 아스타잔틴 등 피부에 좋은 영양소도 들어 있고, 칼로리도 높지 않다. 처음에는 회나 초밥, 샐러드로 많이 먹었지만 점차 스테이크나 연어볶음 등 다양한 조리법도 소개되고 있다. B마트 관계자는 “연어는 이제 일반적인 식재료 중 하나가 됐다”며 “조리방법이 다양, 앞으로 우리 식탁에 오르는 일이 점점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고등어는 최근 미세먼지의 주범이란 오해를 받으며 소비를 꺼리는 분위기가 없지 않은 상황이다. 누명은 벗었지만 예전의 인기는 아직 회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수요가 늘면서 공급이 딸리면 연어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점은 연어가 ‘국민 생선’이 되는 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노르웨이 수산물위원회 관계자는 “양식장 허가를 받기가 까다로워 현재 생산량은 한정적인데 수요가 계속 늘고 있어 가격이 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닷물이 따뜻해지는 엘니뇨 현상 등 영향도 겹치며 실제 올해 연어 국제 시세는 지난해보다 30~40% 높아졌다
실험용 쥐가 먹고 죽은 GMO (옥수수) 한 해 100만 톤 이상 수입한다 720시사저널
빵·과자·올리고당 등 거의 모든 가공식품 원료로 사용… 정부 “유전자는 위산에 녹으므로 건강에 무해” 주장
우리는 매일 유전자변형식품(GMO)을 먹고 있다. 간장·된장·고추장·식용유·카놀라유·올리고당·과자·빵 등 거의 모든 가공식품에 GM 콩·옥수수가 원료로 쓰인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한 GMO는 1024만 톤이다. 이 가운데 사료용을 제외한 식용은 220만 톤이다. 산술적으로 1인당 한 해 약 40kg의 GMO를 소비한 셈이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 약 62kg과 비교해보면 그 양이 얼마인지 알 수 있다. 우리는 1996년부터 GMO를 먹기 시작했다. 당시는 세계적인 미국 농약·종자 기업인 몬산토와 노바티스가 GM 콩과 GM 옥수수를 상업화한 때다. 콩과 옥수수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소비되는 농산물이다. 식량 자급률이 낮은 한국은 쌀을 제외한 대부분의 농산물을 수입에 의존한다. 특히 콩과 옥수수 자급률은 각각 10%와 1% 미만이다. 수입하는 콩의 75%와 옥수수의 50%는 GMO다.
방울토마토, 씨 없는 수박, 통일벼 등은 우성 형질만 골라 재배(육종)한 결과물이다. 이에 비해 GMO는 인위적으로 유전자를 변형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동물·식물·세균·바이러스 등 모든 생명체에서 필요한 유전자를 뽑아내 변형시켜 다른 생명에 넣는다. 동물의 유전자가 식물에 이전되기도 한다. 유장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명예연구원은 “종교적으로는 문제가 될지 몰라도 과학적으로 유전자 자체는 차이가 없어서 생명체끼리 이동해도 무방하다”며 “엄마의 초유에는 부패를 방지하는 단백질이 있는데 이를 과일에 이전하면 신선도가 길어진다”고 설명했다.
식약처 “유전자는 위산에 녹는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생명체를 만들어낸 것이어서 안전성을 우려하는 사람이 많다. 이 같은 우려는 1999년 한국소비자원의 발표로 증폭됐다. 두부 22개 제품 중 18개 제품에서 GM 콩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산 콩을 사용했다고 표시된 제품에서도 GM 콩 성분을 발견했다. 이후 GM 콩은 두부에 사용하지 않지만 간장·고추장·된장 등 장류는 물론 두유·이유식·환자회복식·소시지·햄·맛살 등 가공식품에 원료로 쓰인다. GM 옥수수는 감미료(과당·물엿·올리고당 등)와 빵·과자·음료·빙과·소스·유제품·팝콘·시리얼 등의 원재료다.
시사저널은 일반인들에게 GMO와 관련해 우려하는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대부분 “식품 속 변형된 유전자가 사람의 유전자에 이상을 일으켜 건강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까”를 걱정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국민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식품안전정보포털에는 “GMO를 먹어도 사람의 유전자는 변형되지 않는다. GMO를 포함한 모든 식품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며 식품 속 유전자는 우리 몸속의 소화 효소 및 강산성인 위액에 의해 분해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GM 유전자가 위산에 녹기 때문에 인체에 해가 없다는 설명에 전문가들은 혀를 내두른다. 한 대학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유전자가 위산에 녹는다는 비(非)과학적인 설명으로 국민을 설득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우영 식약처 신소재식품과 연구관은 “일반 옥수수처럼 GM 옥수수 유전자도 소화 과정에서 분해돼 몸으로 흡수된다는 의미이며 구조적으로 이 유전자가 사람의 유전자와 결합할 수 없으므로 사람의 유전자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식약처는 GMO 수입 승인 전에 해당 농산물을 인공 위액에 넣어 안전성을 파악하는 등의 평가를 거친다. 이동호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소화라는 게 입속부터 위를 거쳐 소장·대장까지 이르는 과정인데 위산에 유전자가 녹는다는 실험결과로 GMO의 안전성을 설명하기에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더 광범위한 연구를 과학자와 의학자가 장기적으로 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해충에 강한 GM 농산물이 있다. 여기에는 해충을 죽이는 단백질(Bt단백질)이 들어 있다. 이 단백질에 대해서도 식약처는 “Bt단백질은 특정 해충만 죽이도록 만들어진 것이며, 사람이 먹으면 강산성인 위액에 의해 분해되므로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2011년 캐나다에서는 반대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 대형병원에서 임신부 30명의 혈액에서 GMO에 있는 Bt단백질 독성을 검출했다고 발표했다. 이 독성이 태아에게 전달되고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임학태 강원대 의생명과학대 교수는 “원핵생물·식물·동물의 유전자 발현 체계는 서로 달라서 어떤 돌연변이가 생길지 모르는 게 두려운 점”이라며 “임신부가 감마선 등에 노출되면 염색체에 변이가 생겨 기형아를 낳을 수 있는 것처럼, 외부의 유전자가 사람에게 들어가면 유전자 배열이 불안정해져 새로운 독이 생길 수 있다. GMO를 먹은 사람이 안전하다고 확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2012년 프랑스 칸대학의 질 에릭 세랄리니 교수는 2년 동안 쥐 200마리에게 GM 옥수수(NK603)를 먹였더니 대부분 암에 걸렸다고 발표했다. 이 GM 옥수수를 먹은 쥐의 최대 80%에서 종양이 생겼다. 정상적인 먹이를 먹은 쥐는 30%만 암에 걸렸다. 또 완전히 성장하기도 전에 쥐의 70%가 죽어서 정상 쥐(20%)보다 조기 사망률이 높았다. 그 외에도 간·신장이 손상됐다. 세랄리니 교수는 “GM 옥수수와 라운드업(몬산토가 개발한 제초제)이 생화학적·물리학적 경로로 호르몬 불균형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 냈다. 파장은 상당했다. 프랑스 정부는 “이번 결과를 검토해 유럽연합(EU)에 사람 및 동물 건강 보호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처를 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에서 NK603은 수입은 가능하나 재배는 금지된 품목이다. 반론도 나왔다. 앤서니 트레와바스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는 “쥐 200마리는 의미 있는 결론을 도출하기에 부족한 수”라며 “연구를 지휘한 세랄리니 교수는 GMO를 반대해온 운동가”라고 말했다. 쥐 실험에 사용한 NK603은 몬산토가 제초제에 강하도록 유전자를 변형한 GM 옥수수로, 한국은 2002년부터 수입해서 먹고 있다.
GMO 연구자들은 20년 동안 쥐가 50~60세대를 거쳤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항변한다. 또 미국 인구 3억 명이 20년 동안 GMO를 먹어왔지만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보고는 없다는 점도 GMO 안전성의 근거로 제시한다. 유장렬 명예연구원은 “GMO의 안전성은 의심할 바 없다는 게 GMO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일치된 시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GMO 반대론자는 신체나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장기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윤철한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팀장은 “사람에게서 한 세대도 지나지 않은 GMO를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다”며 “대를 이어 악영향이 나타날 수도 있으므로 GMO 기술보다 안전성을 먼저 확보하는 게 순서”라고 주장했다.
2년 동안 GM 옥수수를 먹고 복부 부위에 암이 생긴 실험용 쥐를 연구원이 들어 보이고 있다.
농민 “농가 소득보다 생태계 안전이 더 중요”
현재까지 개발한 GMO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다. 제초제에 죽지 않는 것과 해충에 강한 작물이다. 농산물을 재배할 때 잡초를 없애기 위해 제초제를 뿌린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제초제 성분은 글리포세이트이며 이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발암물질이다. 몬산토는 1974년 이 물질로 제초제(제품명 라운드업)를 개발했는데 잡초뿐만 아니라 농작물까지 죽이는 이른바 ‘식물 전멸제’로 악명이 높다. 몬산토는 이 농약에 죽지 않는 GM 콩 종자(라운드업레디)를 개발했다. 라운드업을 뿌리면 모든 잡초는 죽고 GM 콩만 살아남는다. 몬산토는 농약을 덜 사용하므로 GMO가 농가 소득 증대에 도움을 준다고 주장한다.
경기도 양평에서 17년째 유기농을 하는 농민 서규섭씨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다. 농약에는 알코올 성분이 있어서 피부에 닿으면 시원한 느낌이 난다. 더운 여름에 마스크나 복장을 갖추고 농약을 주는 농민은 거의 없다. 당장 병이 생기지는 않아도 수십 년 동안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 또 농약 내성을 가진 잡초가 생기고 더 강한 제초제를 써야 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농업은 경제논리로 보면 안 된다. 사람에게 안전한 농법이 생태계에도 좋다”고 말했다.
실제로 세계적으로 제초제에 죽지 않는 ‘슈퍼 잡초’ 38종이 나타났다. 몬산토의 주장과 반대로 더 강한 농약을 사용하게 된 셈이다. 미국 유기농센터는 1996~2008년 슈퍼 잡초로 GMO 경작지의 농약 사용량이 1억kg 이상 증가했다고 밝힌 바 있다. 옥수수는 조명나방이나 뿌리벌레 등의 해충에 약하다. 이런 해충에 강한 GM 옥수수가 나온 후 살충제 사용이 감소했다. 그러나 살충제에 내성을 가진 슈퍼 버그가 등장하면 더 독한 살충제가 필요하게 된다.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는 2007년 GMO 유전자 이동에 관한 보고서를 통해 생태계에서 종(種)의 다양성이 GMO 유전자의 이동 때문에 위협받을 수 있고, 생물 다양성을 잃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GMO 연구자들은 미국에서 20년 동안 GMO가 주변 작물을 파괴한 사례는 없고, 설사 GMO가 농지에 떨어져도 다른 농작물과의 경쟁에서 도태돼 살아남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2013년 미국 오리건주에서 한 사건이 터졌다. 한 농부가 밀을 없애려고 제초제를 뿌렸지만 일부 죽지 않는 밀이 발견됐다. GM 밀이었다. 10년 전 몬산토가 제초제에 강한 GM 밀을 개발하면서 시험 재배를 했지만 상업성이 없어 포기했다. 시험 재배하던 GM 밀을 없앴지만 일부가 살아남은 것이다. 유기농가에서 GM 밀이 발견되자 유기농 인증은 취소됐다. 미국 환경단체(음식과 물 감시)는 GMO가 다른 경작지로 침투해 일어난 경제적 손실을 분석했다. 17개 주의 유기농 농부 268명 중 80%는 유기농 경작지에 GMO가 들어와서 유기농을 망칠 것을 우려했다. 이 오염을 막기 위해 재배지 간 거리를 두거나 파종 시기를 늦춰 수확에 손실이 생긴다. 이 환경단체는 농민 1인당 경제적 손실이 연간 6500~8500달러(700만~900만원)라고 집계했다.
“GMO 재배는 몬산토의 노예가 되는 길”
이른바 ‘GMO 오염’ 문제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정부는 GMO를 시험 재배하고 있지만 몇 군데서 어떻게 하는지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윤철한 팀장은 “국내에서도 트럭으로 운반하던 GMO 종자가 바람에 달려 일반 농지로 떨어져 자라기도 하는데 국내 29곳에서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농촌진흥청이 GM 벼를 시험 재배하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관리가 허술해지면 GM 벼가 다른 농지로 번질 것은 뻔한 일”이라고 우려했다.
1997년 미국에서 유기농으로 카놀라(유채)를 재배하는 농장에 GM 카놀라 종자가 태풍을 타고 날아와 자랐다. GM 카놀라의 특허를 보유한 몬산토는 그 농장을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벌였다. 재판부는 몬산토의 손을 들어줬다. GMO 재배의 또 다른 문제는 한 나라의 식량 주권과 연관된 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몬산토는 GMO 종자를 농가에 싸게 판매한다. 대신 계약서를 요구한다. 임학태 교수는 “계약서에는 몬산토의 종자와 제초제만 사용할 것, 어떠한 소송도 하지 않을 것 등의 내용이 있다”며 “우리가 GM 벼를 개발하고 있지만 특허권자인 몬산토의 허락 없이는 파종도 못한다. GMO 재배는 곧 몬산토의 노예가 되는 길”이라고 경고했다. GMO 상업화 20년 동안 EU(유럽연합)가 민감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럽식품안전청은 GMO가 안전하다고 했지만 EU 국가 상당수는 GMO 수입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한국은 GMO 수입량을 매년 늘리고 있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의 규정에 맞춰 GMO 수입 여부를 결정한다. 나름대로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GMO는 누가 수입하고 어떤 유통과정을 거쳐 소비자의 식탁에 오를까?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는 2015년 식약처에 GMO 수입업체 등의 정보를 공개하라고 청구했지만 식약처는 거부했다.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는 소송을 냈고, 그해 8월 1심에서 재판부는 정보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해당 정보는 소비자에게 투명하게 공개돼야 하고 이는 업체의 정당한 이익을 해하지 않는다”며 “소비자가 가지고 있는 GMO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정부가 적극적인 안전성 검증과 투명한 정보 제공으로 해결해야지, 정보 자체를 비공개함으로써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식약처는 올 4월 항소했지만 5월 기각 판결을 받았고 곧장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식약처 측은 “위해 식품이라면 정보를 공개해야 하지만 GMO는 위해 식품이 아니다”며 “안전성도 검토했고 GMO 수입업체도 법을 준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지 소비자 알 권리를 위해 공개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상고 이유를 설명했다.
‘세계 몬산토 반대의 날’인 2013년 5월24일 서울 종로구 몬산토코리아 본사 앞에서 GMO 반대자들이 시위하고 있다.
몬산토는 어떤 기업인가?
1901년 미국에서 사카린 생산 업체로 설립됐다. 1920년대 산업용 화학물질 개발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1945년부터는 농업용 화학물질을 개발했다. 이때 개발한 물질이 베트남전에서 사용한 고엽제의 주원료다. 1972년 사카린 생산을 중단하고 1976년부터 제초제 ‘라운드업’을 생산했다. 1994년 우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소의 유전자를 변형했다. 1996년 제초제에 강한 유전자변형 콩과 면화 종자를 만들었다. 2014년 160억 달러(약 18조원)의 매출을 발표했다. 미국에서 생산하는 콩의 93%, 옥수수의 80%가 몬산토의 종자이며 미국 농지의 40%에 몬산토 종자가 뿌려지고 있다. 몬산토 이사진은 주로 미국환경보호청(EPA), 미국농업연구청(USDA), 대통령 자문위원회, 국제무역위원회, 대학, 과학단체 출신으로, 정·관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식품업체, GMO 쓰고도 국산처럼 소비자 현혹
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가 2015년 성인 6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9%는 식품에 GMO 표기를 해야 한다고 답했다. 현행법상 GMO를 식품에 표기하도록 돼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식약처에 따르면, GMO 등을 원재료로 제조·가공한 식품이나 식품첨가물 등 최종 제품에 유전자변형 DNA 또는 단백질 성분이 없으면 GMO 표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GMO를 가공하면 유전자나 단백질 확인이 매우 힘들기 때문에 GMO로 만든 가공식품에 GMO 표기는 없다.
EU·중국·대만 등은 유전자변형 DNA나 단백질 잔류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가공식품에 GMO를 표기하도록 한다. 러시아는 아예 GMO 수입을 금하고 있다. GMO 표기를 하지 않던 미국에서도 표기 바람이 불고 있다. 버몬트주는 7월부터 모든 식품에 GMO 표기를 의무화했다. 버몬트주 데이비드 주커먼 상원의원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소비자는 실험용 기니피그와 다르지 않다. GMO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은진 원광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GMO를 재배하는 국가가 처음에는 늘어나더니 7~8년 전부터는 30개국 미만으로 정체된 상태”라며 “GMO의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에 재배하는 국가가 더 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느슨한 GMO 표기 규정의 틈을 타고 식품업체들은 GMO를 원료로 사용한 제품에 ‘국내에서 직접 만든 기름’이라는 문구를 넣고 있다. 마치 국산 농산물을 사용하는 것처럼 소비자들을 현혹하는 것이다. 할인점에서 판매하는 한 식용유에는 ‘콩 100%로 국내에서 직접 만든 콩기름’이라고 적혀 있지만 성분표를 보면 ‘콩 100%(수입산)’라고 표기돼 있다. GM 콩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소비자는 국내산으로 오인할 수 있다. 국회를 중심을 GMO 표기에 대한 법을 손볼 움직임이 감지된다. 이에 대해 유장렬 명예연구원은 “표시제 등 GMO 수입 장벽을 높여 몬산토를 견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라며 “어차피 몬산토는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차라리 장벽을 낮춰 작은 기업도 GMO 개발과 유통에 뛰어들게 해야 몬산토의 독과점에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GMO의 안전성 논란은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는 농가에 이로운 GMO를 개발했다면 앞으로는 소비자의 시선을 끄는 GMO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가격이 싸거나, 맛이 월등하거나, 비만을 줄여주는 등의 기능성 GMO가 판매되면 GMO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 이미 트랜스 지방이 생기지 않는 기름을 만들 수 있는 콩과 튀길 때 독성물질이 잘 생기지 않는 감자가 탄생했다. 공기 중에 놔둬도 색이 변하지 않는 사과도 나왔다. 성장 속도가 빠르고 기존 연어보다 큰 슈퍼 연어도 판매 승인을 기다리는 중이다. 김은진 교수는 “안전성도 확인되지 않은 GMO에 농업 전문가들이 매달릴 게 아니라 농민이 농사를 지어 제값을 받고 더 안전한 농산물을 재배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며 “한 번 GMO에 짓밟히면 식량주권·생태계·건강을 되돌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GMO는?
10명 중 1명만 긍정 인식…3명 “정보 부족해”
시사저널은 일반인 50명(남 33명, 여 17명)에게 GMO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식량 문제 해결 등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10%, 건강 문제 등으로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58%로 나타났다.
남성 가운데 GMO에 대한 긍정적 시각과 부정적 시각의 비율은 9%와 54%로 나타났고, 여성에서는 그 비율이 11%와 64%로 파악됐다. 대체로 GMO에 대해 불안해하며 남성보다 여성이 불안감에 더 민감한 것으로 보인다. 박아무개씨(여·51)는 “최근 지인들과 GMO에 대해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대부분 불안하다고 했다. 나는 연구를 통해 바람직한 방향을 찾을 것으로 생각한다. 기아로 죽기보다는 불안하더라도 살아남는 게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유인영씨(여·24)는 “최종 제품에 들어간 GMO의 양을 알 수 없으니 정부의 안전하다는 주장에 의심이 간다. 요즘 추위에 강한 농산물을 재배하려고 심해에 사는 넙치 유전자를 나물에 삽입한다. 이종 간 유전자 이식이 사람에게 괜찮은 것인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번 설문에서 GMO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어떤 판단을 할 수 없다며 대답을 유보한 사람도 32%로 집계됐다. 한국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도 지난해 국민 600명을 대상으로 인식조사를 벌였다. 전체의 대다수(83.5%)는 GMO라는 용어를 들어봤으나, GMO의 생산 과정이나 활용 분야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는 대답이 56.9%를 차지했다. 잘 안다는 대답은 2.8%, 약간 안다는 응답이 40.3%였다. 직장인 주영래씨(41)는 “GMO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정부가 정보를 공개해서 국민이 선택하게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눈에 보는 GMO 상업화 20년
한 해 1000만 톤 수입…70% 이상 미국·브라질産
그동안 연구 수준이던 유전자변형식품(GMO)은 1987년 세계적인 농약·종자 기업인 몬산토와 칼젠, 듀폰 등이 바이러스나 제초제에 강한 토마토를 시험 재배하면서 상업화가 가속됐다. 10년 만에 몬산토는 GM 콩을, 스위스의 노바티스는 GM 옥수수를 재배하고 1996년 상업화에 성공했다. 이 시기부터 우리 밥상에 GMO가 본격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또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후 20년 동안 GMO는 생산성을 강조하며 농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예컨대 같은 면적의 농지에서 더 많은 수확량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미래 인구 증가로 부족한 식량난을 해결하는 대안으로 GMO가 조명을 받았다. 이후 GMO 재배는 크게 늘었다. 세계적으로 재배되는 콩의 79%, 옥수수의 32%, 캐놀라(유채)의 24%, 면화의 70%는 GMO다. 모든 GMO 가운데 40%는 미국이 생산한다. 미국에서 재배하는 콩의 94%, 옥수수의 89%, 면화의 91%가 GMO다. 아르헨티나에서 재배하는 옥수수·대두·면화는 100% GMO다.
한국은 세계 2~3위의 GMO 수입국이다. 2014년부터 한 해 GMO 수입량이 1000만 톤을 넘어섰다. 수입하는 GMO의 73%는 미국과 브라질산이다. GM 옥수수·콩은 주로 가공식품의 원료로 사용된다. 그러나 가공식품에는 GMO 표시가 없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20년 동안 GMO를 먹어온 것이다.
“GMO가 내 삶과 무슨 상관 있나”
20년간 갑론을박 ‘뜨거운 감자’ GMO, 찬반 논란 속 대다수 대중들은 잘 몰라
식품 분야에서 이만큼 ‘뜨거운 감자’가 또 있을까? 1996년 처음 상업화된 GM(유전자변형) 농산물은 20년간 식품·농학·생명공학 분야에서 가장 격한 찬반 논란을 불렀다. 친(親)GMO와 반(反)GMO 진영의 대립, 미국과 EU(유럽연합)의 무역전쟁 등 정치·사회·경제·무역 분야에서 엄청난 소용돌이를 일으킨 이슈 메이커였다.
GMO 논쟁에서 늘 핫(hot)한 것은 안전성 여부다. 20년간 GMO의 안전성을 놓고 양 진영이 갑론을박을 벌여왔지만 여전히 결론은 나지 않았다. 영국의 목장주인 존 험프리스는 저서인 《위험한 식탁(The great food gamble)》에서 ‘GMO로 건강상 피해를 본 것이 있으면 신고하라’고 채근했다. GMO 반대 진영은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는 없지만 무해하다는 것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느냐’고 되받는다.
GM 작물의 일종인 ‘골든 라이스(Golden rice·비타민A를 강화한 쌀)’를 놓고도 찬반양론이 뜨겁다. GMO 반대 진영인 ‘그린피스(Green Peace)’는 “‘골든 라이스’의 장점으로 거론되는 것은 과장이며, 환경에 엄청난 부담을 줄 뿐 아니라 사람의 건강을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100명 이상의 노벨상 수상자들은 최근 “‘골든 라이스’가 비타민A 결핍을 막아준다”며 “비타민A 결핍은 전 세계에서 해마다 50만 명 이상의 실명(失明), 최대 200만 명의 사망을 부른다”고 반박했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 하느냐”며 그린피스를 몰아붙였다.
GMO 종자 20년간 100배 이상 성장
GMO의 상업화 이후 20년간 가장 첨예하게 의견 대립을 보인 나라는 미국과 EU다.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이 문제를 놓고 8년 이상 싸웠다. 미국이 이겼지만 지난해 EU 28개 회원국 중 19개국이 GMO 작물 재배를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하이브리드 옥수수(교잡종)의 첫 상업화가 이뤄진 것은 1921년이다. GMO 기술로 제조한 최초의 GM 옥수수가 시장에 등장한 것은 1996년이다. 이후 20년간 GMO는 호불호와 상관없이 세계인의 삶과 경제·과학·농업·무역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안전성·표시제 논란에도 불구하고 현재 GMO는 30개국에서 재배하고 70개국 국민이 먹고 있다. GMO 종자는 세계 종자 시장의 35%를 차지한다. 20년간 100배 이상 성장했다. GM 작물을 테마로 해 전 세계에서 수행된 연구 147건을 메타(meta·기존 문헌을 분석해 평가하는 작업) 분석한 결과, 20년간 GMO 기술은 작물 생산량을 22%, 농부의 이익을 68% 높였다.
약 20년간(1996〜2013년) GM 작물 재배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량이 차량 1240만 대를 운행 정지시킨 효과와 같다는 연구논문도 나왔다. GMO 기술이 기상변화·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알려진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를 돕는 것은 농장에서 경운기 사용이 크게 줄어든 덕분으로 알려져 있다.
GM 작물을 재배하는 농법은 기본적으로 밭을 갈지 않고 잡초를 제거하는 무경운(無耕耘) 농업이다. 1996〜2012년 GM 작물 재배에 따른 제초제 등 농약 사용량 감소는 전 세계적으로 55만 톤에 달한다. 이로 인해 농약 살포 감소→농기계 사용 감소→석유 등 화석연료 사용량 감소→토양 중 이산화탄소의 대기 방출 감소로 이어지는 선(善)순환 구조를 이루게 됐다는 것이 친(親)GMO 진영의 주장이다.
유전자 오염, 생태계 파괴 우려
GMO 기술은 세계의 농업 규모 순위도 크게 바꿔놓았다. GM 면화를 재배 중인 인도는 세계 최대의 면화 생산국으로 떠올랐다. 인도에서 생산되는 면화의 95%는 GM 면화다. GM 작물 생산에 우호적인 브라질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농산물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중국 국유기업인 중국화공그룹(中國化工集團)은 지난 2월 스위스의 세계적 GMO 종자 회사인 ‘신젠타’를 M&A(인수합병)하기 위해 430억 달러(약 52조) 이상의 인수자금을 제시했다. 신젠타는 지금까지 중국 기업이 인수한 외국 기업 중 최대 규모 회사다.
중국의 신젠타 인수는 미국 의회의 제동으로 일단 주춤한 상태다. 미국 의회가 중국의 신젠타 인수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거래가 성사될 경우 1000억 달러(약 117조원) 규모의 글로벌 종자시장에서 중국의 점유율이 대폭 늘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GMO 농산물의 재배 면적은 지난 20년간 100배나 확대됐다. 현재 전 세계의 농지 약 2억ha(헥타르·1ha=약 3000평)에 GMO 종자가 뿌려진다. GM 작물을 매년 재배하는 국가는 28개국에 달한다. 이 중 8개국은 미국 등 선진국이다. 20개국은 인도·중국 등 개발도상국이다. 전체 GMO 농지에서 남미·아시아·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54%로 절반을 넘어섰다. 선진국의 46%보다 많다(2015년 통계). 개발도상국 우위는 4년째 지속되고 있다.
GM 작물은 이미 심을 만큼 심어져 재배 면적이 더 늘어날 여지는 그리 크지 않다는 분석도 나왔다. 2014년 GM 작물의 전 세계 재배 면적이 1억8150만ha로 정점을 찍고, 2015년(1억7970만ha)에는 약간 줄었다. 농산물 가격 하락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어 더 두고 봐야 한다.
세계적으로 반GMO 운동이 한창이던 2013년 벨기에 사람들이 독성 화학물질과 GMO를 만든 기업 몬산토에 대해 항의 시위를 벌였다.
GMO의 수용 여부, GMO 표시제도에 대한 입장 등 GMO에 대해 찬반 어느 쪽에 서느냐는 미국 대선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치적으로 보수진영은 대체로 GMO 찬성, 진보진영은 GMO 반대로 갈린다. 이번 미국 대선의 민주·공화 양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는 둘 다 친(pro)GMO 입장을 보인다. 진보색이 가장 짙었던 민주당 경선주자 버니 샌더스 후보(버몬트주 상원의원)가 유일하게 반(con)GMO 편에 섰다.
샌더스 후보의 출신 지역인 버몬트주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GMO를 유통시킬 때 포장지에 ‘GMO 원료로 만들었다’고 의무 표기하도록 하는 법을 2014년 5월 주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올해 7월 시행된다.
GMO는 한 생물(예 콩)에 다른 생물의 유전자를 삽입해 ‘장점이 많은 콩’을 얻는 기술이다. GM 작물의 상업화가 시작된 지 20년이 흘렀지만 GMO에 대한 우려와 배척도 범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GM 작물과 식품, 그리고 GMO 신기술이 개도국에 큰 재난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주류를 이룬다. GMO 확산이 해당 지역의 토착 식물상의 유전자 오염과 생태계 파괴로 이어질 뿐 아니라 경제를 핍박하는 원인이 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러나 대다수의 대중은 아직 GMO에 대해 자세히 모른다. 실제로 GMO를 자세히 들여다보려는 사람도 드물다. 대부분 부정적 인식을 막연하게 갖고 있다. 교사 하성숙씨(40)는 “GMO가 내 삶과 무슨 상관이 있나. GMO가 아니어도 먹을 것이 천지인데…”라며 “GM 콩에 유전자가 들어 있다고? 유전자가 함유됐다면 문제 아닌가”라고 물었다. 여기서 유전자는 DNA다. 인간이든 콩이든 유전자가 없는 생물은 없다. GM 콩은 물론 일반 콩에도 유전자가 들어 있다.
박태균고려대생명과학부연구교수
‘부동산 공화국’ 뒤로 비친 지자체장들의 ‘땅 사랑’ 719 시사저널
1970년 어느 날,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은 당시 서울시 도시계획과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과장이 서울 강남 지역을 둘러본 뒤 “이 곳이 좋겠다”고 말하자 뱉은 짧은 한 마디였다. 과장은 이후 서울시장에게 "제일은행 전무실에 가면 돈을 줄 테니 받아와서 우선 그 돈으로 땅을 사 모으라"는 지시를 듣는다. 이 때 지시로 23만여 평을 샀다. 이 투자의 목적은 ‘대통령 선거에 대비해서 박정희 대통령이 쓸 목돈을 좀 마련하겠다’ 였다고 한다.
고(故)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의 저서 《서울도시계획이야기》는 1970년대 강남 개발을 주도하며 청와대 인사가 스스로 투기에도 참여했다고 말한다. 그 다음은 모두가 아는 결말. 강남은 ‘금싸라기 땅’이 됐고, 청와대 인사는 목돈마련에 성공했다. ‘땅 짚고 헤엄치기’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까.
앞선 사례를 보면 1970년대 이후 주기적으로 몰아친 ‘부동산 투기 붐’에서 누가 이겼을지도 가늠해볼 수 있다. 대체로 투기 정보에 가장 앞선 자들은 정책 입안자인 권력자다. 이들은 무수한 개발 정책을 내놓는 만큼이나 투기에도 발 빨랐던 듯하다. “권력이 투자하는 곳에 투자하면 실패하지 않는다”는 부동산업계의 ‘권력 불패’ 속설이 바로 그것이다.
권력자의 부동산 투기 논란은 오늘날까지 끊이지 않고 되풀이 되고 있다. 최근《뉴스타파》의 조사는 부동산 투기에서 ‘권력 불패’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뉴스타파》가 최근 6개월 간 243개 지방자치단체의 시장, 군수 소유의 부동산에 대한 전수 조사와 현장 취재를 진행한 결과는 놀라왔다.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지자체장이 자신의 관할에 보유한 부동산 평가액의 상승률(6.8%, 공시지가 기준)은 평균치(2.4%, 한국감정원 기준)보다 세배나 높았다.
특히 일부 지자체장들은 재임 기간 ‘신묘한’ 부동산 재테크 능력을 뽐냈다. 최근 6년 간 보유 땅값 상승률 상위 10명의 평가차익은 65.5%였다. 이밖에 조사 대상의 절반이 넘는 이들이 자신의 관할 지역에 부동산을 가지고 있었고, 10억원을 넘는 ‘부동산 부자’도 4분의 1인 40명에 달했다.
몇몇 지자체장의 보유 부동산 상승률은 가파르다. 이현준 예천군수의 부동산은 6년 전과 비교해 74.7%가 올랐다. 뉴스타파의 취재에 따르면, 이 군수는 군내에 25억 원이 넘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데 최근 6년 사이 이 부동산의 신고액이 10억 원 이상이 올랐다고 한다.
뉴스타파, 《‘내 땅값은 내가 올린다’…지자체장 부동산 전수조사》
이 군수가 보유한 부동산은 예천군 대심리에 있는 시외버스터미널 부지. 역사 바로 앞에 위치해 있어 대심리 일대에서는 가장 좋은 땅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인근 부동산업자에 따르면, 지난 2014년 대심리로 군청 신청사 이전이 추진되면서 일대의 부동산 시세는 천정부지로 올랐다.
이 군수는 보류돼 있던 신청사 이전을 추진한 당사자다. 예천군은 20년 전 대심리에 신청사 부지를 매입해 놓고 있었다. 하지만 군청을 이전하게 되면 구청사가 위치한 예천읍의 상권이 침체될 것이라는 주민들의 우려로 인해 그간 이전 사업이 보류돼 왔다.
예천읍 일대의 상인들은 취재진과 만나 “이 군수가 치적을 위해 빚까지 내가며 청사 이전을 강행하고 있다”, “수억 원의 예산을 들여 리모델링한 구청사를 놔두고 갑자기 청사를 이전하겠다는 이유를 알 수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노동운동가 손낙구씨는《부동산 계급사회》에서 이런 지적을 했다. “부동산 가격은 저절로 오르는 게 아니라 뚜렷한 목적을 갖고 가격을 끌어올리는 집단이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장치와 시스템이 작동한 결과다.” 가파르게 뛰는 집값으로 고민이 많은 서민들과 달리 일부 지자체들의 부동산은 그들의 개발사업으로 가파르게 가치가 상승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위안부’, 잘 알지도 못하면서 720 한겨레21
<제국의 위안부> 둘러싼 ‘박유하 신드롬’이 놓치고 있는 것
박유하 교수가 7월11일 서울 종로구 대한출판문화회관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저서 <제국의 위안부> 일본어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2013년 8월 출간된 <제국의 위안부>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아편을) 군인과 함께 사용한 경우는 오히려 즐기기 위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등 ‘자발적 매춘’을 암시하는 내용으로 논란이 되어왔다. 결국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그를 형사고소했고 검찰은 명예훼손 혐의로 그를 기소하기에 이르렀다. 최근엔 재판 진행 중인 그가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지난 7월11일 그는, 자신의 책을 비판한 정영환 일본 메이지가쿠인대학 교수의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푸른역사 펴냄)을 재반박하는 자리를 열었다. 하지만 그의 재반박은 ‘학문적 반박’이라기보다는 ‘모호하고 감정적인’ 답변에 가까웠다. 그의 입에선 ‘오독’ ‘몰이해’ 같은 단어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한편에선 박유하 지지 모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섬세한 논쟁 대신 ‘박유하의 입장 vs 기존 역사학계의 입장’이라는 프레임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프레임은 합당한가, 아니면 단지 박유하 교수의 ‘피해자 코스프레’로 만들어진 신기루에 불과한가.
비판서와 지지자 모임 모두 등장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연구 결과는 비판받아야 한다. 학자는 실증 가능한 자료와 설득 가능한 논리를 바탕으로 연구 성과를 발표한다. 논문이건 단행본이건 출간되는 순간, 학문적 검토와 비판을 감당해야 한다. 반박이 있을 경우 연구자는 학문적 성과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면 그만이다. 새로운 논문을 쓸 수도 있고 새로운 책을 쓸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모든 학문은 성장하며 과정이 누적되면 특정 문제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뀔 수도 있다.
박유하는 <제국의 위안부>를 통해 ‘일본군 군대 위안부’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했다. <제국의 위안부>는 결코 읽기 어려운 책이 아니다. 체계적이며 종합적인 학술서적이라기보다는 누구나 읽기 편한 비평서에 가깝다. 담담하고 간명하게 자신의 주장을 써내려가고 있다. 하지만 담고 있는 내용이 기존 통념, 기존 연구 결과와 상당히 달랐기 때문에 논란이 된 것이다.
박유하는 위안부 문제를 ‘일본 제국주의’ 때문임을 인정하면서도 ‘일본의 책임’보다 ‘제국주의의 일반적인 문제’로 규정한다. 박유하는 위안부의 일상이 우리의 통념과 전혀 다름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일본 정부나 군부에 대한 비판보다는 ‘민간업자’의 문제를 지적하며 통상 생각하는 10대 중반 여성이 아닌 ‘20대 여성’이 위안부의 대부분이었다고 서술한다. ‘위안부’와 ‘일본군’인들 사이가 좋았으며 연애하는 등 상당한 유착관계를 보였다고도 서술한다.
하지만 학계의 반응은 상당히 미온적이었다. 적극적으로 학문적 논의를 하기엔 그의 주장에 애매모호한 구석이 많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제국의 위안부>는 같은 자료를 여러 차례 반복해 인용하고 기존 연구 결과에 대한 비판 또는 재해석이 없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연구서라고 보기 어렵다. 책의 내용 상당 부분은 이미 학계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특별한 관심을 받을 이유도 없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역사학계는 대중적인 관심·분노·질타에 뒤늦게 끌려가며 몇몇 학술지를 통해 책 서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수준에서 사태 대응에 나설 뿐이었다.
<제국의 위안부> 논란 일지
2013년 8월 <제국의 위안부> 출간
2015년 2월 법원, <제국의 위안부> 판매금지 가처분 일부 인용(34곳 서술 문제 인정)
2015년 6월 <제국의 위안부> 34곳 삭제판 출간
2015년 11월 검찰, 위안부 피해자 명예훼손 혐의로 저자 박유하 교수 불구속 기소(형사재판 진행 중)
2016년 1월 법원, ‘박유하 교수, 위안부 피해자 9명에게 1천만원씩 배상하라’ 판결
2016년 7월 재일 역사학자 정영환 교수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 출간
학계에서는 너무나 진부한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첫 위안부 피해 증언은 일본의 역사학자 요시미 요시아키에게 큰 충격을 준다. 그리고 요시미 요시아키는 일본 방위성 문서를 뒤져 ‘일본 정부의 조직적 개입’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찾아낸다. 1931년 상하이사변 당시 일본 해군이 위안소를 설치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본의 대륙 침략이 본격화하면서 조직적으로 위안부가 동원됐음을 입증했다.
러일전쟁, 시베리아 출병 등 대규모 일본군 동원이 이루어진 현장에선 언제나 성병이 문제로 등장했다. 병사의 인권이나 휴가제도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일본은 군인의 스트레스를 ‘억눌린 성욕’ 차원의 문제로 인식했고, 성병을 막기 위해 성병 보균자가 아닌 여성, 즉 일반 여성을 대규모로 동원하는 계획에 착수한다.
위안부 동원을 확인할 수 있는 문서 ‘군위안소 종업부 등 모집에 관한 건’(육군성 부관통첩, 1938년 3월4일)은 당시 우메즈 일본 육군 차관이 결재했다. 위안소 설치 관련 문서를 통해 이에 관여한 것으로 확인된 오카무라, 오카베 같은 인물들도 모두 군부의 고위 인사였다.
20세기 초반 전세계적으로 공창제는 폐지되는 흐름이었고 일본 현에서도 단계적으로 철폐되던 상황이었다. 연합국은 휴가제도를 적절하게 운영했고 나치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강제 동원 수는 일본군이 자행한 위안부 동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었다.
요시미 요시아키는 1990년대 중반에 그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19세기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세계의 보편적 구조가 제국주의였다는 것은 ‘정설’이다. 하지만 위안부 강제 동원은 ‘제국주의의 일반적 성격’을 넘어 ‘일본 제국주의’의 특징이었으며, 1938년 이후 일본이 전쟁을 수행하면서 구체화된 일본식 조선인 착취, 여성 착취 제도였다. 뒤늦게 쓰인 <제국의 위안부> 초반부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제국주의 일반의 현상’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턱없이 부실한 이유다.
박유하가 끊임없이 강조한 민간업자들의 문제 역시 전혀 새로운 주제가 아니다. 1930년대 이후 일본에서 정부와 군부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만주사변(1931), 5·15 사건(1932), 2·26 사건(1936) 등을 통해 사실상 군부는 정부를 장악한다. 극우 분위기 일색인 가운데 일본 정부를 이끈 인물들은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군인이었다.
설령 일본군과 위안부가 사랑해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2014년 7월 <제국의 위안부> ‘도서출판 등 금지 및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 사건 재판에 참석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일본 정부는 위안부 동원에 대한 조직적인 계획을 수립했고, 민간업자를 동원했고, 여성들을 끌어모았다. 어느 날 군인들이 갑자기 쳐들어와서 가족이 보는 앞에서 여자들을 끌고 나가는 이미지는 대중에게 각인된 드라마틱한 환상이다. 오히려 강제 동원의 현실은 사기, 위장 취업 등이 대부분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솔깃한 제안을 받고 아버지의 폭력, 교육에서의 배제 같은 가부장적인 분위기와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던 수많은 여성들이 걸려든 것이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유명숙의 연구(<조선인 군위안부와 일본군 위안소제도>, 이학사)나 수많은 위안부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위안부 문제만이 아니라 당시 벌어진 징용, 징병 역시 대부분 같은 방식이었다.
박유하가 일본군과 위안부의 유착관계를 다루는 장면 역시 통념상 충격적일 수 있지만, 평면적이다 못해 작위적이다. 군인들이 위안부에게 친절하게 굴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전투에서 지친 몸을 끌고 그나마 허락된 개인적 향락의 시간이니 얼마나 소중한가. 위안부 역시 전혀 낯선 공간에서 끝없이 강요되는 상황을 끊임없이 고통스러워하기만 하며 버틸 수 없는 노릇 아닌가. 현실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일본군과 위안부 간에 일종의 유착관계가 발생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박유하의 묘사를 훌쩍 넘어선다. 13사단장 우치야마 중장의 보고를 보면, 조선인 위안부를 사랑했지만 ‘니가타에 아내가 있던’ 어느 병사는 억지로 위안부에게 동반자살을 권유한다. 위안부가 거절하자 병사는 권총을 발사해 위안부에게 중상을 입힌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또 다른 위안부의 증언을 보면 평소 알고 지내던 일본군 병사에게 동반자살을 강요당해 옆구리를 찔린다. 콘돔 사용을 요구했다가 발로 걷어차이기도 하고 자살을 시도하거나 마약을 하면서 고통을 견디는 경우도 많았다.
박유하는 수많은 분량을 할애하면서 일본군과 위안부의 유착관계를 강조하지만 이는 위안부의 생활세계에서 일어났던 여러 모습 중 하나에 불과하다. 박유하가 위안부의 생활세계를 재구성하려 했다는 점에선 참신하다고 평가받을 수도 있지만 이를 지극히 단순화했다는 비판에선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일본군과 위안부가 열렬한 사랑에 빠진다 하더라도 강제 동원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동시에 위안부가 일본군과의 유착관계를 통해 일시적인 심리적 만족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위안부가 경험하는 생활세계의 기만적인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취업을 목적으로 온 여성들은 오자마자 성폭행을 당하고, 시설사용료 등을 이유로 강제로 빚을 떠안고 제대로 된 월급도 받지 못하며 끝없는 성적 폭력의 굴레에 빠져든다. 박유하 스스로 그토록 강조했듯 민간업자는 폭력과 억압으로 끊임없이 위안부를 통제했다. 일본군이 그런 민간업자와 함께 위안소를 철저히 감시했다는 것 역시 위안부 증언집을 통해 드러났다. 그런 상황에서 위안부가 느꼈을 최소한의 정서적·심리적 만족을 논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울림 없는 연구였을 뿐
박유하가 제시하는 ‘화해’의 방식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재일 역사학자가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같은 책을 내며 강력하게 비판하는 것 역시 있을 법한 과정이다. 하지만 박유하를 논쟁의 희생자로 볼 이유는 전혀 없다. 그는 학문적으로 매도된 적이 없다. 단지 그의 연구가 김학순의 증언이나 요시미 요시아키의 연구만큼 깊은 충격이나 울림을 주지 못했을 뿐이다. 그를 둘러싼 팬덤 역시 마찬가지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박유하 신드롬인가. 여전히 의미 있는 것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일 뿐이다.
제국의 위안부, 왜 피억압자의 말로 피억압자를 공격하나 720미디어오늘
[기고] 취업사기와 강제연행의 부적절한 대비… 강간과 성매매의 폭력적 등치, 이 책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
‘서브알턴은 말할 수 있는가?’ 사회적으로 억압당하고 사회 주류적인 사고방식에서 배제되기 때문에 자신의 처지와 입장을 이야기할 언어조차 없는 피억압자들의 존재를 폭로하는 가야트리 스피박의 이 유명한 질문은 피억압 집단에 대한 기존의 모든 재현들을, 특히 거시적 사회구조에 대한 ‘거대서사’들을 시험대에 올린다. (서브알턴이란 안토니오 그람시가 차별받는 대중을 지칭해 부른 말인데 포스트 식민주의 인도 학자들에 의해 서브알턴 연구라는 용어로 발전했다. 차위나 하위를 의미하는 서브알턴은 서구인들이 모는 아시아인이나 제3세계인들 또는 남성들이 모는 여성들을 의미한다. 편집자주. '퓨전시대의 새로운 문화읽기'에서 인용)
우리가 ‘민중’, ‘인민’, ‘민족’ 등의 단어에서 떠올리는 이미지들에 여성, 소수민족, 유색인, 성소수자, 아동 등의 소수자 집단들은 들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누구의 삶, 누구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인가? 이 이야기를 누가 썼는가? 이해관계와 입장의 제약에서 벗어난 투명한 주체인가? 서브알턴 자신인가? 아니면 서브알턴을 외부에서 보고 있는 다수자인가? 그는 무엇을 목적으로 이야기를 썼는가? 전인류의 해방의 서사처럼 보이는 것이 기실 다수자의 관심과 이익에 맞게 재구성된 일부만의 이야기는 아닌가? 획일적인 접근과 사고틀을 고수하고 다양한 권력관계와 차이를 간과하는 데서 오는 인식의 공백을 메꾸고 왜곡을 바로잡는 데 이러한 질문은 강력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거대서사의 해체가 서브알턴의 입장에서 정말로 언제나 해방적인가? 거대서사를 작성하는 사람들의 위치가 투명하지 않다면, 그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위치는 어떤가? 해체주의자는 언제나 피억압자의 편인가? 모든 거대서사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다수자들이 만들어낸 산물에 불과하며, 이에 맞서 ‘개인’의 ‘이야기들’을 발굴하는 것이 서브알턴이 주체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인가? 그렇지 않다면, 서브알턴이 말할 수 있는 가능조건은 도대체 무엇인가?
▲ '위안부' 피해생존자가 그린 그림
'제국의 위안부'는 위안부 피해자의 경험에 근거해 위안부 피해자 지원 운동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서브알턴의 재현과 해석에 관한 상당히 중요한 사례를 제시한다. 이 글에서는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를 어떤 식으로 재현하고 있으며 이것이 저자가 주장하는 법적 책임에 관한 주장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특히 증언의 활용에 초점을 맞추어서 분석하고 비판할 것이다. 시간과 지면의 한계상 한일협정 등 종전 이후의 역사에 관한 부분은 생략하고 위안부에 대한 재현을 다루고 있는 1부로 분석의 대상을 한정하였다.
솔직히 말해서 이것은 별로 지적 고양감을 주는 작업이 아니었다. '제국의 위안부'는 격을 갖춘 학술서로 대우하기에는 현상의 서술에 균형이 없으며 추론의 비약에 서슴이 없고 가치판단과 비난에 절제가 없다. 선행연구를 검토하고 자신이 여기에 무엇을 더하고자 하는지를 정확하게 밝혀 적는 것이 아니라 이미 기존의 연구에 존재했던 관점과 담론들을 자신이 처음 제시한 것인 양 찬탈하고 있으며, 사료 하나하나의 맥락과 신뢰성을 신중히 평가하기는커녕 이미 정해진 결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료의 핵심 맥락을 사상하거나 왜곡하기에 바쁘고 종종 신뢰성이 의심스러운 사료들을 핵심적 근거로 가져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담론들이 현실적으로 대중의 인식과 여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슬픈 일들은 우리가 노력하는 만큼만 줄어드는 법이다. 지식인이 서브알턴의 발화를 활용하는 현실적, 구체적 방식들에 대해 대중들 사이에 비판적 사고와 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지지 않으면 서브알턴은 말해도 말할 수 없는 존재로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를 상세하게 분석하고 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은 이 책이 ‘서브알턴의 발화’라는 명분이 서브알턴의 의지를 기꺼워하지 않는 지식인의 손에서 어떻게 변형되고, 급기야는 발화자에 반하여 활용될 수 있는지를 그만큼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박유하나 그녀를 지지하는 일부 논자들은 이 책이 불러일으킨 분노를 이견에 대한 불관용이나 오독, 심지어 기득권층의 분노 탓으로 돌리며, 박유하를 국가주의 정서의 무고한 희생자로 대우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과 달리 이 책은 이미 학술적이고 정제된 비판들을 많이 받았다. 문제는 박유하가 이런 비판들을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고 모두 오독이라고 일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를 고수하는 사람과 진지한 학술적인 토론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박유하 세종대 교수. 사진=ⓒ연합뉴스
더구나 이 책의 내용은 성폭력, 국가폭력의 피해생존자이자 증언자들에 대한 명백한 2차 가해를 포함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폭력까지 포괄하지 않는다. 학술 담론을 자처하는 표현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일부 누리꾼들이 박유하에게 퍼부은 인신공격이나 언어폭력은 물론 잘못되었지만, '제국의 위안부'가 사회적 비난과 법적 제재의 대상이 되는 것 자체는 사회적 폭력에 대한 2차 가해가 마땅히 받아야 할 취급을 받는 것일 따름이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심각하고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서브알턴의 경험과 언어를 찬탈하여 서브알턴 자신의 발화와 투쟁을 부당하고 비합리적이고 거짓된 것으로 매도하는 데 역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감히 말하건대, 이것은 지식인이 지식 권력을 사용해 서브알턴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폭력이다.
마르크스는 비판에 관해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비판의 본질적인 파토스는 분노이며 비판의 본질적인 임무는 탄핵이다.” 이것은 어떤 종류의 비판에 대해서만 타당하다. 통상적 비판은 상호 존중을 전제로 하여, 서로의 의견을 수정하고 보완함으로써 더 나은 인식에 이르기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어떤 논변들은 정말로 철저하게 인간에 대한 인간의 억압을 위해 복무하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완전히 부당한 논리 구조를 구축한다. 그것이 공론장에 올라 논의되는 상태 자체가 인간 존엄을 부정하고 모욕하는, 인간의 고통에 대한 공분을 놓아버리지 않고는 도저히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종류의 논변들도 세상에는 존재한다. 정말로 해서는 안 될 말들이, 써서는 안 될 글들이 세상에는 있다. 어떤 논변들은 정말로 탄핵되어야만 한다. 나는 지금 탄핵을 위해 글을 쓴다.
1. 부적절한 대비: 취업사기와 강제연행, 업주와 일본군
'제국의 위안부'의 핵심 논지 가운데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위안부는 군대에게 강제로 끌려간 것이 아니라 업주들에게 속아 취업을 하러 간 것이다’라는 지적이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취직을 시켜준다는 사람이 있으니 일본으로 같이 가자고 하였다. 조선에 있으나 일본에 있으나 고생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또 조선에서보다 살기가 좋다고 하길래 그 길로 살던 집을 나왔다.” (증언1집 : 62쪽; 박유하 2013 : 24에서 재인용)
하루는 애기를 재워놓고 그 동네 식모들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조선인 남자 한 명과 일본인 남자 한 명이 다가왔다. 남자들은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나이는 젊어 보였다. 그들이 다가와 “광주에서 얼마 받느냐”고 물었다. “월급도 안 받고 밥 먹고 옷이나 얻어 입는다”고 대답했더니, “아이고 조선 사람들, 도둑놈들”이라고 하면서 자기들을 따라 일본 오사카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했다. 돈에 욕심이 나서 무슨 일인지 묻지도 않고 따라나섰다.(증언1집 : 110 ; 박유하 2013 : 24에서 재인용)
이것이 단순히 ‘물리력을 동원한 강제연행’이 다수가 아니었다는 지적에 그친다면, 별로 중요한 쟁점은 아니겠지만 타당한 지적일 것이다. 그러나 박유하는 여기서 갑자기 강제성 자체에 대한 논의로 도약한다.
사실, 몇 권의 증언집 속에서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갔다고 말하는 위안부는 오히려 소수다. 증언자의 대다수가 이런 식의 유혹을 받고 집을 떠났다고 말한다.
물론 ... ‘군’이 직접 업자에게 위안부 모집을 의뢰한 경우는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기나 유인까지 해가면서 마구잡이로 끌어오라고 지시했다는 증거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마구잡이로 모집하는 것을 금지한 자료라면 존재한다. (박유하 2013 : 25)
타지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오랫동안 전쟁을 벌임으로써 거대한 수요를 만들어냈다는 점만으로도 일본은 이 문제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첫 번째 주체이다. 더구나 규제를 했다고는 하지만 불법적인 모집이 횡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집 자체를 중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일본군의 책임은 크다. ...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군의 수요를 자신의 돈벌이에 이용하고 자국의 여성들을 지배자의 요구에 호응해 머나먼 타국으로 데려다놓는 일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이들의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 ‘위안부 문제’를 ‘범죄행위’로 규탄하는 이들의 표현에 따른다면, 업자들이야말로 ‘범죄’를 저지른 자들로서 ‘법적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었다. ... 당시에는 ‘죄’로 의식되지 않았던 행위와 이미 법적으로 규제되던 ‘범죄’를 구별해서 함께 생각할 필요가 있다. (박유하 2013 : 25-27)
여기서 박유하가 주장하려는 바가 ‘위안부 모집에는 강제가 없었다’는 것인지 ‘강제로 모집이 이루어진 것은 맞지만 주체가 일본군이 아니었다’는 것인지는 모호하다. 어느 쪽이든 지지할 수 없는 주장임은 마찬가지다.
첫째, 우선 사실관계부터가 의심스럽다. 니시노 루미코(2014a : 55)의 증언 분석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이 증언한 연행 방법을 보면 사기·감언에 의한 것이 52명 중 33명이지만 납치와 유사한 것도 11명이나 되며 인신매매도 8건 있었다. 납치에 해당하는 11건 중 8건에서는 군인·경찰이 납치에 가담하였다. 박유하가 인용하는 센다의 책에서도 “농촌에 주재하는 순사들이 ... 군의 어용매춘업자들의 압력기관으로서 칼소리를 내며 따라갔”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센다 가코千田夏光 1973 : 102; 박유하, 2013 : 40에서 재인용)
물론 전면에서 과정을 주도한 것이 업주였을 수는 있으나, 적어도 강제가 없었다거나 군인, 경찰은 개입하지 않은 순전한 조선인 업주 책임이었다는 주장은 수십 명의 피해자들의 증언을 혼란, 과장, 거짓말로 취급하지 않고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 책의 뒷부분에서 박유하는 ‘위안부 강제연행설은 정신대와 위안부를 혼동한 결과’라며 사실상 이러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정신대와 위안부는 분명히 다른 존재다. ... 앞서의 기자나 재일교포 학자, 그리고 요시다에 이르기까지 강조된 강제연행은 우선은 정신대에 관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박유하 2013 : 48)
정신대에서는 대대적인 강제동원이 이루어졌던 반면 위안부의 경우 취업사기가 많았기 때문에 이러한 추론까지는 타당하다 할 수 있다. 여기서도 문제는 사실이 아니라 박유하가 여기서 끌어내는 매우 무리한 결론이다.
“강제연행이 있었다면, 국가정책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국가정책처럼 보이도록 만들어 데려간 일반인이 한 행위로 보아야 한다.”(박유하 2013 : 48-49.)
정신대가 강제연행을 했다고 해서 정신대가 아닌 위안부는 강제연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초보적인 논리의 오류다. 게다가 박유하 자신도 인정하듯이, “위안부들의 증언에는 정신대로 갔다가 위안부가 된 경우도 있”(박유하 2013 : 46)다. 그렇다면 결국 박유하의 서술만을 모두 사실로 인정하더라도 강제연행으로 끌려가 위안부가 된 사람들은 있는 것이 아닌가. 애초에 위안부가 아니라 노동력으로 쓰려고 끌고 갔다가 마음을 바꾸어 위안부로 썼다면 법적 책임이 감해지기라도 하는 것인가. 정신대로 징발되었든 위안부로 징발되었든 끌려간 사람의 입장에서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가? 박유하는 피해의 성격이나 책임소재와는 관련이 없는 ‘정보’를 들고 나와서 관련이 있는 것처럼 논리를 꼬아놓음으로써, 엄연히 실재하는 강제연행 피해자들의 증언을 무화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럴 의사가 전혀 없었는데도 억지로 위안부 일을 하게 되었다’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상황을 논의하는 데서는 강제연행과 취업사기를 대비해야 할 이유가 그다지 없다는 것이다. 손목을 잡혀 질질 끌려간 것이 아니라 성노예가 아닌 직장이라고 생각해서 따라나섰다고 해서 여성들에게 모종의 자발성이 생기는가?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오히려 속임에 넘어가 날벼락같은 일을 당했다고 보는 것이 정상적인 사고가 아닌가
무엇보다, 박유하의 주장대로 여성들을 직접 끌고 가 넘긴 이가 모두 업주였다고 하더라도 이 사정을 알면서 여성들을 인수하여 성노예로 삼은 것은 일본군이기 때문에 이것을 가지고 ‘현실적 강제성’은 업주의 책임이며 일본군은 잘못된 구조를 만들었을 뿐이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일본군의 책임을 면해주기 위한 완전한 아전인수다. 이재승(2014)은 당시 형법을 기준으로 보아도 약취와 유괴와 인신매매, 즉 강제연행과 사기·기만은 동일하게 처벌받기 때문에 이것을 두고 법적 책임이 덜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다.
게다가 박유하의 주장대로 위안부 모집의 직접 행위자가 전부 조선인 업주였다 하더라도 일본군은 범죄피해자를 인수한 방조범이기 때문에 분명히 법적으로 범죄자이다. 위안부의 대다수가 납치가 아닌 취업사기 피해자였다고 해서 박유하가 주장하는 것처럼 일본군에게 범죄 책임은 없고 ‘수요를 창출한’ 죄만 있게 되는 것이 아니다.
노예무역 시기 백인들이 흑인 노예들을 사냥하는 과정에서도 현지 흑인들을 매수하여 앞장세우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그렇다고 해서 ‘노예사냥은 흑인에 의한 범죄이며 백인 노예주들에게는 구조적, 도의적 죄만 있었다’고 말하면 얼마나 웃음거리가 되겠는가?
물론 박유하는 “마구잡이로 모집하는 것을 금지한 자료”가 있다며, “강제로 끌어간 군인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공적으로 허용된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에 관해서 이재승(2014)은 조선총독부가 명목상으로는 약취유괴를 금지하면서 사실상 직업소개법을 소략하게 만들어 약취유괴가 있어도 단속할 수 없게 하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실 문제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위해 입으로는 폭력에 반대하면서 실제로는 묵인하거나 심지어 조장하는 정도의 겉치장은 지배 기법으로서는 드문 것이 아니다.
2000년 일본군성노예전범 국제법정(이하 2000년법정)에서 남북한공동기소단에 참여했던 양현아(2009 : 186)는 “이러한 황당한 취업 사기와 납치, 유괴가 10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수만을 헤아리는 어린 여성들에게 자행될 수 있었던 사회적·정치적 상황도 주목된다. 만약 이러한 사기행각이 순순히 민간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가정할지라도, 이러한 대대적인 여성 동원이 행정적, 법적 제재도 받지 않고 은폐되고, 조장되고, 지속되었다는 점에서 국가의 협조, 명령 내지 공모를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속거나 납치당해 끌려온 피해자들을 인수하여 강간했으며 이 행위를 군에서 관리하였다는 사실 자체가 일본군이 납치·유괴·사기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명제와는 어떻게 해도 양립할 수 없다.
요컨대 실제 위안부 피해자들 중에는 강제연행을 증언하는 사람이 상당수 있으며 사실 위안부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취업사기든 강제연행이든 마찬가지로 ‘강제적’이다. 그리고 위안부에서 벌어진 범죄에서 가장 핵심적인 강제, 추상적인 구조적 강제가 아니라 감금과 강간이라는 아주 물리적이고 현실적인 강제에서 업주와 일본군은 공범 관계이지, 한 쪽은 범죄자이고 한 쪽은 수동적인 수요자인 것이 아니다.
박유하가 여기에서 피해자들의 증언을 사용하고 있는 방식은 증언 자체의 맥락을 살리기보다는 일본의 법적인 책임을 감면하는 것 이외에는 도무지 의미없는 구분선을 그어놓고 본인의 마음에 드는 증언만 골라 선의 한 쪽으로 밀어넣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가장 중요한 경험맥락, 즉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종군 및 군인과의 성관계를 강요당하는 데서 오는 고통이라는 핵심적 피해사실은 박유하가 그어놓은 선을 따라 사정없이 절단나고 만다.
2. 위안부= 가라유키? 강간과 성매매의 폭력적 등치
'제국의 위안부'의 두 번째 주요한 주장은 위안부가 이전부터 존재했던 ‘가라유키’의 후신이며 ‘가라유키’와 마찬가지로 위안부의 경험 역시 매춘인지 강간인지 구분하기 애매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선인들도 가라유키에게 성을 샀다는 점을 고려하면 책임은 가라유키나 위안부를 이용한 남성들이 아니라 빈곤, 가부장제, 국가주의에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근대 초기부터, 어린 소녀들을 유괴하다시피 데려가 외국으로 팔아넘기는 일이 적지 않았다. ... 그들은 현해탄을 넘어 한국과 중국 각지에 만들어진 공창 – 국가의 허가를 받은 매춘시설 – 으로 팔려나갔고, 동남아시아와 인도로까지 떠돌았다. ... 그 결과로, 1920년대엔 이미, 한국과 중국 그리고 시베리아 지역에서는 일본의 가난한 처녀들이 하녀로 일하거나 매춘시설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원래는 ‘해외로 돈 벌로 가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던 ‘가라유키상’은, 나중에는 바다 건너로 팔려간 여자들을 칭하는 말이 되었다. 또 팔려간 여자들이 유곽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들처럼 성을 제공해야 했던 전쟁터의 위안부도 이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 그런 의미에서는 훗날의 ‘조선인 위안부’의 전신은 ‘가라유키상’, 즉 일본인 여성들이었다. 그들 역시 가난한 시골처녀들이었고, 감언이설에 속거나 부모의 뜻에 따라 팔려간 이들이었다. 말하자면 ‘일본인 위안부’ 역시 가부장제와 국가의, ‘가난한 여성’ -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이 만들어낸 존재였다.
이들이 러일전쟁 때 이미 일본군을 ‘위안’했다는 것은, 일본군이 1930년대에 처음 만든 것처럼 알려진 위안소들이 실은 일찍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 시발점에는 일본인 여성들이 있었고, 민간인이 경영하는 시설이 그 중심에 있었다.“(박유하 2013:27-30)
이들은 주로 한국으로 건너온 일본인들을 상대했지만, 조선인 노동자들을 상대하기로 했다. ... 철도 연변에서 유곽을 운영하던 사람 중에는 조선인도 있었다. ... 이렇게 일본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에는 근대 초기부터 조선인들도 깊이 관여했다. ... 물론 이런 사실들을 직시하는 일은 불편한 일이지만, ‘위안부’의 본질을 보기 위해서는 ‘조선인 위안부’의 고통이 일본인 창기의 고통과 기본적으로는 다르지 않다는 점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 그 안에서 차별이 존재한 것은 사실이지만, 위안부의 불행을 만든 것은 민족 요인보다도 먼저, 가난과 남성우월주의적 가부장제와 국가주의였다. 그리고 ‘조선인 위안부’라는 존재가 생기게 된 것은 이들의 위치를 조선인 여성들이 대체한 결과였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한국의 식민지화와 식민지로 이식된 공창제도가 있었고, 중간매개자들은 그런 과정에서 생겨난 존재였다. (박유하 2013 : 32-34)
말하자면 ‘위안부’로서 증언한 이들 중에는 군인이 중심이 된 곳에서 단순히 ‘성적 위안’만 제공한 이들 이외에도 매춘을 겸하는 요릿집 등에서 당시의 표현으로 하자면 ‘작부’나 ‘예기’로 일한 사람도 적지 않은 듯하다. ... 국가의 영업허가를 받은 매춘시설인 ‘공창’뿐 아니라 허가를 받지 못한 ‘사창’도 존재했다. ... 90년대 이후 ‘위안소’로 알려진 곳들은, 그렇게 이전부터 존재했던 유곽까지 포함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군인들이 그 존재는 파악하면서도 공적으로는 이용하지 않았던 사창까지 포함된 것일 수도 있다. ... 말하자면 아시아 각지에 존재했던 매춘시설이 모두 ‘일본군 위안소’였던 것은 아니다. 여러 종류의 ‘공창’이나 ‘사창’이 존재했고, ‘일본군’이 관리하고 공식적으로 병사들이 이용한 것은 기본적으로는 군이 허가한 ‘공창’뿐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 그렇게 다른 상황에 처해 있었던 여성들을 똑같이 ‘위안부’라고는 말할 수 없다. ... 일반적인 ‘위안부’의 대다수는 ‘가라유키상’ 같은 이중성을 지닌 존재로 보아야 한다. ... ‘현지 처녀들이 공창에 합류’했다는 사실은 모든 위안부가 똑같이 일본군에게 ‘유괴’나 ‘사기’를 당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말해준다. (박유하, 2013 : 35-38)
즉, 러일전쟁 시부터 이미 사회 최하층의 빈민이나 속아서 끌려온 여성들이 성매매를 하고 특히 군인을 상대로 ‘위안부’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었으며 위안부는 이들의 연장선에 있었다는 것이 박유하의 논리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타당한 지적이다. 외견상 자발적인 ‘성매매’와 납치·유괴를 동원한 성노예 범죄의 기저에 같은 권력관계와 사회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우리는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난 폭력만을 문제삼을 뿐 비가시화된 폭력을 시야에서 놓치게 될 것이며, 또한 구조적 폭력에 의해 성매매의 길로 나서게 된 여성들의 피해를 드러내고 정의를 회복하는 데까지 이르지 못하고 이들을 배제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가라유키= 반쯤은 자발적인 성매매 여성 = 조선인 위안부’라는 도식을 세워놓고 이를 근거로 조선인 위안부에게도 모종의 자발성이 있었던 것처럼 암시하는 것은 뻔뻔스러운 억지 주장이다.
첫째, 박유하 자신의 서술에 따르더라도 ‘가라유키’를 곧 ‘자발적 성판매 여성’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매춘적 강간’이니 ‘강간적 매춘’ 따위의 신조어를 들고 오려면 상황이 강제성을 입증하기 곤란해야 할 텐데, 상술했듯이 취업사기로 여성을 유괴하거나 인신매매범에게 인수하는 행위도(주체가 가족이든 납치한 범죄자이든) 강제적 납치와 마찬가지로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성관계를 강요하는 행위임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둘째, 위안부 피해자들이 가라유키와 같은 처지라는 주장에 아무런 타당한 근거가 없다. 이 주장을 하고 있는 문단은 핵심 문장이 온통 근거를 알 수 없는 추정(‘~은 듯하다’, ‘~일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일 수도 있다’)으로 점철되어 있다. 여기서 제시된 유일한 구체적인 근거는 ‘허가’를 받아 ‘간판’을 내걸었으며 민간인도 이용했던 위안소에서 생활했다는 증언 사례가 하나(그 많은 피해자 중에 단 하나!) 있었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박유하는 이것을 근거없이 “일반적인 위안부의 대다수”의 경우라고 확장해버린다.
설령 위안부의 많은 수가 군 부속시설이 아니라 공창이나 사창에서 생활했다 하더라도, 이것은 의사에 반해 성노예가 된 사람들이 당한 성적 유린의 성격이나 심각성을 따지는 데서 전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설령 자발적으로 위안부를 자처한 사람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나중에 자기 의사로 그만두지 못하게 되었다면 그들 역시 감금, 강간의 피해자다. 캐더린 베리의 정의를 빌려오자면, 성노예는 “여성이나 소녀들이 자신의 존재의 직접적 조건(immediate condition)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한 모든 상황에 존재한다. 그것은 그들이 그 조건에 어떻게 들어갔느냐에 상관없이, 빠져나올 수 없을 때에, 그리고 그들이 성폭력과 착취의 대상이 되고 있을 때에 존재한다.”(Barry, 1979 : 33; 양현아, 2014: 190에서 재인용)
물론 위안부 피해자들이 자기 발로 찾아와 군인과 성관계를 맺었고 원한다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었다고 해도 그들은 여전히 여성 억압과 군국주의, 계급착취의 피해자이며 멸시나 비난을 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러나 성판매 여성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존재가 아니라고 해서 강간을 성매매로 바꿔치기하는 짓거리를 해도 괜찮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동의를 서술에 구겨넣음으로써 피해자의 경험맥락을 왜곡하는 폭거이기 때문이다. ‘강간’도 ‘화간’이 되면 문제가 없다는 성폭력에 대한 끔찍한 사회적 통념에 편승하여 피해자를 침묵시키는 행위라는 점에서 이것은 ‘2차 가해’의 일종이기도 하다.
박유하가 ‘성매매와 성노예의 배후에 모두 공통의 구조가 있다’는 말을 하다가 슬쩍 ‘성매매와 성노예는 공통적이다’는 식으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에, 글을 따라가며 읽다 보면 어느 새 결론이 굉장히 말이 되는 새로운 관점처럼 보인다. 이것은 구조에 대한 논의를 악용할 수 있는 쉬운 방식 중 하나다. 즉 같은 구조 하에서도 분명히 다른 양상의 억압과 피해들이 발생하며, 그 각각은 다른 종류의 책임을 발생시킨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동일한 구조로 인한 문제이므로 모두 구조의 책임으로 환원된다는 식으로 논의를 비약시키는 것이다.
박유하에게는 안타까운 일이겠으나, 그 어떤 문명 국가의 법정도 성범죄가 여성 억압적 구조의 산물이라는 이유로 성범죄자의 가해 책임을 면제하지는 않는다. 똑같이 여성 억압과 군국주의, 자본주의가 낳은 인권침해라 해도 성매매보다는 성노예가 훨씬 직접적인 강제와 폭력을 수반하며, 따라서 도덕적·법적 책임도 당연히 다르다. 박유하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경험에서 강제성을 사상하려고 그렇게 무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2000년법정에서 남북한공동기소단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경험을 ‘체계적 강간’과 ‘성노예제 범죄’로 언어화했는데, 당시 기소단으로 참여했던 양현아의 평가처럼 이것은 “자발적 매춘과의 불분명한 경계를 명확히” 해주었다. ‘체계적 강간’이란 목표 집단에 대한 광범위하거나 정책에 기반을 둔 공격으로, 이러한 경우에는 높은 수준의 폭력과 강요적 상황에서는 피해자의 부동의가 무의미하다는 것이 추정 가능하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동의, 부동의를 문제삼지 않고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다.
이는 위안소에 갇혀서 탈출이 불가능했던 피해생존자들로서는 저항해봐야 의미가 없어 항거불능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던 것, 따라서 박유하가 말하는 ‘적대국 여성에 대한 강간’과 같은 식의 강간은 위안소에서는 애초에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의사에 반하는 강요된 성관계였다는 본질이 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명확하게 해준다.
또한 2000년 법정은 강제매춘이라는 단어가 어떤 정도의 자발성을 시사함으로써 범죄의 중대성을 흐리고 피해생존자에게 낙인을 찍는다는 점을 고려하여 성노예라는 명칭을 채택했는데, 이는 박유하가 ‘강간적 매춘’ ‘매춘적 강간’이라는 말을 쓰며 애써 무력화하려 하는 자발적 매춘과의 구분을 이미 법적으로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양현아 2014 :177, 192)
3. ‘소녀’는 허상이다? 서사의 해체는 무엇을 남기는가
‘소녀’로서 위안부의 이미지를 논하는 부분은 박유하가 당사자들의 증언을 다루는 또 하나의 특징적인 방식을 선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상론할 가치가 있다. 박유하에 따르면 위안부의 대부분은 성인이었고, 소녀는 소수의 예외사례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정작 어린 소녀가 위안소에 되었을 때는 “어떤 군인이 몇 살이냐고 해서 열네 살이라고 대답했더니 ‘젖이나 더 먹고 오지, 부모형제 보고 싶어서 어떻게 왔느냐’”(《강제2》, 51쪽)고 했다는 이야기는, 그녀의 나이가 결코 평균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박유하 2013 : 51)
그러나 다시 니시다 루미코(2014a : 55)의 조사를 보면 총 52명의 증언자 중 45명이 미성년자로서 위안소에 끌려간 것으로 나온다. 위안소의 평균 나이가 몇이었건, 이 증언들을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의 증언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라는 말로 줄기차게 기존의 서사를 공격하면서도, 박유하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부합하는 증언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전체로 일반화한다. 바로 다음 단락에서 본인도 인정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증언한 ‘위안부’들의 대부분이 십대에 강간당하거나 위안부 생활을 시작해야 했으니 일본군이 ‘어린 소녀까지도’ 상대했다는 것은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박유하 2013 : 51)
그럼에도 이 사실이 우리의 박유하가 ‘소녀’의 이미지에 대해 가지고 있는 반감을 누그러뜨리지는 못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소녀 위안부’가 위안부의 평균적인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보는 일은 중요하다.(박유하 2013 : 51)
이재승(2014)의 표현을 빌리자면, 양심적인 일본인의 마음을 위로하는 데는 중요할 수도 있겠다. ‘소녀’가 아니라 ‘어른’으로 위안부를 표상할 경우, 최소한 성인보다 사회적으로도 약하고 신체적, 정신적 성장이 덜 끝난 미성년자를 표적으로 삼았던 비열함은 가려질 테니까. 다시 말하면 박유하는 일본군에 대한 비난을 감해주기 위해 피해자들이 당한 겹겹의 폭력에서 어떻게든 한 층위라도 지워버리려 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미성년자인 상태에서 피해를 당했다는 것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피해 맥락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하므로 굳이 ‘소녀’ 이미지의 대표성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위안부의 현실을 보여주는 데 ‘소녀’보다 더 나은 이미지가 있을 수도 있고,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들을 활용하는 것이 일괄적으로 ‘소녀’를 내세우는 것보다 효과적일 수도 있다. 사실 관점에 따라서는 ‘소녀’의 이미지를 내세우는 것이 위안부 피해자들이 ‘보호할 가치가 있는 순결한 여성’이었음을 호소함으로써 성녀-창녀 이분법에 편승하는 전략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제국의 위안부'에서 박유하가 시도하는 것은 대안적인 이미지를 찾거나 이미지를 다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소녀’의 이미지를 파괴하는 것뿐이다. 거기에서는 ‘소녀’의 이미지가 불러일으키는 정서적인 공감을 희석시킴으로써 문제를 상기시키는 작업을 방해하는 것 이외의 어떤 정치적인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것은 ‘하나의 이야기’를 해체한다는 작업 뒤에 숨겨질 수 있는 가장 악랄하고 억압적인 저의를 보여준다. 하나의 이야기, 특히 대중의 정서에 부합하는 이야기는 분명히 당사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제한하고, 도식에 맞지 않는 경험을 시야 외부로 밀어버리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사안에 대한 선명하고 통일적인 인식을 가능하게 하고, 많은 사람의 폭넓은 공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사회적인 지지를 결집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모든 언어는 기본적으로 어떤 목적에 복무하면서 그 목적에 맞지 않는 부분을 부차화하거나 누락시키는 양가성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언제나 불완전하다. ‘유린당한 소녀’라는 서사 역시 그러하다. 그것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경험을 사회에 직관적이고 대중적인 형태로 전달하는 방식이고, 또 그들의 경험에 꽤나 부합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 한계를 지적하고 끊임없이 극복을 시도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것을 꼬투리삼아 이야기를 해체하는 데만 열을 올리는 것은 서브알턴에게서 목소리를 빼앗으려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의 상처와 치유를 다룬 영화 <귀향>의 한 장면
4. 위안부와 일본군은 동지적 관계였나: ‘친밀성’과 ‘폭력성’의 성별주의적 이분법
2장 <풍화되는 기억- 위안소에서>는 당사자의 육성이 가장 많이 사용된 부분이고, 그만큼 책에서 가장 큰 호소력을 발휘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바로 그만큼 전체 논지와 가장 무관하고, 피해자들의 언어를 가장 많이 왜곡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부분에서 박유하는 직접적 폭행과 괴롭힘은 주로 업자들이 했고 병사들과 위안부는 오히려 동지적 관계였다고 주장한다. 업자들의 행동이 비난받을 만한 것임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고, 박유하에게는 안됐지만 그 사실이 문제의 핵심인 체계적 강간과 성노예범죄에 관한 일본군의 법적 책임을 조금이라도 감하는 것은 아니므로, 여기서는 후자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록 하겠다. 이 장에서 박유하가 인용하는 증언의 논조는 대체로 아래와 같다.
오랜 주둔생활 기간에 같은 위안부들과 지내다 보면 부인 같은 느낌이 되는지 군인들도 그렇게 허겁지겁 욕망을 채우려 하지만은 않게 됩니다. ... 또 장식품이라고나 할까, 위안부가 없는 주둔부대는 과자를 갖고 있지 않은 아이처럼 폼이 안 난달까, 그런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군인들은 그녀들을 소중하게 다루었습니다.
위안부들도 그에 부응해서 휴일에 군인들이 있는 곳으로 선물을 가지고 와서 빨래를 해주거나 진지 옆에서 기관총을 손질하는 군인 옆에서 턱을 괴고 바라보고 있거나 꽃을 꺾거나 하기도 했는데, 하늘에서는 종달새가 노래하니 평화로운 풍경이기도 했습니다. (센다 가코千田夏光 1973:65-66; 박유하 2013 : p.56-57에서 재인용.)
간호원도 배운다고 배왔지. 미국 사람이 뭐시가(비행기가) 오는 것 같으면 총도 맞추면 이것 배우고.(증언집 5 : 139; 박유하 2013 : 57에서 재인용.)
전투를 하러 나가는 사람들은 다소 온순하고, 이제 자기는 필요없다고 잔돈 부스러기를 놓아두고 가기도 했다. 전투에 나가면서 무섭다고 우는 군인들도 있었다. 그럴 때 나는 꼭 살아서 돌아오라고 위로해주기도 했다. 정말 살아서 다시 오면 반가워하고 기뻐했다. 이러는 중에 단골로 오는 군인들도 꽤 되었다. “사랑한다”, “결혼하자”는 말도 들었다. (증언집 5 : .53, 박유하 2013 : 65에서 재인용.)
거기에 내 애인이 있었어. 좋아하는 사람이. ... 그때만 해도 반갑드라고 아주. 허허. “오도록 부탁을 많이 했다, 오라고 부탁을 많이 했다”고 그래. (증언집 5 : 110; 박유하 2013 : 66에서 재인용.)
그 사람들은 뭐 저거 쌍시런 그런 거 취해서 오는 기 아니라 서로 얘기하고 놀고 그럴라고 저그 마음 위로하고 할라고 오지. ... 고향의 처자들 고향의 마누라들 생각나는지 얼마나 그런지 앉아 운당께. (증언집 5 : 36; 박유하 2013 : 69에서 재인용)
내가 울면 저희도 울고 먹던 것도 주고 그랬다. 고주부대 부대장은 나보고 고생한다면서 안쓰러워했고 중외도 내게 잘해주었다. (증언집 2 : 36; 박유하 2013 : 66에서 재인용)
박유하가 인용하는 증언과 사료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다음과 같다. 조선인 위안부는 성관계 이외에 간호나 전투 보조도 했다. 또한 적군의 여성처럼 무작정 강간당하고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온정적인 대우를 받는 경우도 있었으며, 때로는 일본군 병사와 연애관계도 있었다. 일본군 병사 중에도 위안부를 동정해서 잘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박유하 자신의 말대로 부대나 상대에 따라 차이가 컸으니 이런 경우도 있기는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굳이 부인할 필요는 굳이 없다. 문제는 이 사실 자체가 아니라 박유하가 여기에서 도출하려는 정치적인 주장이기 때문이다.
먼저, 박유하는 위안부가 일본군과 적이 아니라 동지적 관계에 있었으며 적극적으로 이러한 역할을 내면화하고 긍정했다고 주장한다.
국가가 일본인을 비롯한 ‘제국의 위안부’에게 맡긴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성적 착취를 당하면서도 죽음을 앞둔 군인을 ‘후방의 인간’을 대표하여 ‘전방’에서 ‘위안’하고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역할. 말하자면 ‘위안부’에게는 신체적 ‘위안’뿐 아니라 정신적 ‘위안’까지도 요구되고 있었다. ... 그것은 국가가 멋대로 부과한 역할이었지만, 그러한 정신적 ‘위안’자로서의 역할-자기 존재에 대한 (다소 무리한) 긍지가 그녀들이 처한 가혹한 생활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될 수도 있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박유하 2013 : 61)
굳이 이렇게 ‘상상’해야 할 이유가 뭔지는 아무리 읽어도 알 수가 없다. 첨예한 폭력과 갈등의 역사 따위는 묻어버리고 화해만을 노래하고 싶은 사람들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꼭 일본을 미워하기만 했던 건 아닐 거야’라고 ‘상상’하고 싶을 수 있겠다. 그렇게 ‘상상’하면서 자기만족을 얻는 것이야 당신들의 자유지만, 그것이 얼마나 비열하고 뻔뻔한 일인지는 직시하고서 상상하시고, 제발 피해자들에게 그 ‘상상’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지는 마시길.
제국주의에 의해 성노예가 된 여성들을, 군인들의 간호와 빨래를 해주고 살아돌아오라고 빌어줬다고 해서 졸지에 긍지 있는 제국의 부역자로 만들다니 자기중심성도 정도가 있는 것이다. 일부 위안부 여성이 군인에게 돌봄노동을 해준 것은 얼굴을 알고 같이 시간 보낸 사람에게 정이 붙은 결과일 수도, 인간적 연민의 표현일 수도, 군인들에게 밉보여서는 살기 힘들어지는 상황에서 택한 생존을 위한 전략일 수도 있다. 수없이 많은 가능한 추측들 중에 어떤 것이 제일 현실에 근접할지 나는 모르지만, 적어도 ‘제국의 일원으로서 느끼는 긍지’가 가장 무리한 추측에 속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 제국의 위안부
이 책에 제시된 증언 중에서 이렇게 해석될 수 있는 유일한 예는 ‘멋지게 죽어달라’는 한 위안부 여성의 발언인데, 이 여성은 일본인이었던 데다가 심지어 그 증언의 출처는 그 여성 자신이 아니라 위안소를 이용한 일본인 병사이다. 이것을 ‘조선인 위안부의 기억’이랍시고 갖다대는 것은 그야말로 해석자의 욕망을 투사하는 것에 불과하다.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박유하는 증언에 대한 해석을 빙자해 원래 증언의 맥락에서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자기의 주장을 증언에 억지로 덧씌우고 있다.
그곳에 이런 식의 사랑과 평화가 가능했던 것은 사실이고, 그것은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가 기본적으로는 동지적인 관계였기 때문이었다. (박유하 2013 : 63)
일본군 병사와 위안부의 관계를 ‘사랑과 평화’로 묘사하다니, 헤아리기도 힘든 아전인수 가운데서도 그야말로 절정이 아닌가!
온정이 있다고 사랑이 아니고, 가시적 폭력이 없다고 평화가 아니다. 납치·유괴된 여성들을 날마다 돌아가며 강간하던 병사들 일부가 여성들에게 동정을 베풀었다고 해서 그들 간의 관계가 모종의 동료 관계로 전환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감금된 여성들이 항거를 포기해서 물리적 강제가 덜 필요해졌다고 해서 그 짓거리가 강간이 아니게 되지도 않는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친밀감이 있는 것은 모순이다’라는 사회적 통념은 오늘날까지도 이 사회에서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통합적으로 발화하지 못하고 상처받은 피해자와 화목한 파트너의 이분법에 맞게 자신을 잘라내고 재단하도록 만드는 강력한 억압의 기제이기 때문에(이 이분법에 맞게 행동하지 않는 여성들은 ‘물리적 강제가 없었는데 강간이라고 할 수 있느냐’, ‘성폭력이 있었는데 가해자와 그렇게 친밀하게 굴 수 있었느냐’, ‘정말로 상처를 입었다면 왜 가해자를 떠나지 않았느냐’ 같은 의심들에 시달리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상론할 필요가 있다.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폭력 관계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친밀감을 보이는 경우는 자주 있으며, 그 이유는 극히 이해할 만하다. 같은 공간에서 살을 맞대고 같이 생활하는 인간이 한결같은 증오와 적대로 일관하기란 어떤 원수관계라도 어려운 일이다. 특히 성폭력, 가정폭력 등 여성에 대한 폭력은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양상이 아주 보편적이고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그러한 친밀감을 허위의식이나 병리적 심리로 단정짓는 것은 맞지 않으며, ‘가해를 단죄한다’는 목적에 맞게 피해자의 경험맥락을 가위질하는 것은 ‘피해자의 상’에 맞지 않는 피해자들에 대한 사회적인 의심을 부채질하고 ‘수동적으로 고통받기만 하는 피해자’라는 정형화된 이미지를 강화함으로써 피해자의 행위성(agency)을 박탈할 수 있다. 많은 피해 여성의 경험에서 친밀성과 폭력성은 실제로 공존하며 심지어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강간이나 폭행을 당했다 하여 가해자에 대한 애착이나 친밀감이 꼭 ‘스톡홀름 신드롬’이 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감정은 어떤 상황에서는 심지어 피해자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자기보호의 전략일 수도 있다.
역으로 말해,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애정과 유대가 존재했다고 해서 상황의 폭력성이나 강제성이 감해진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그러한 애정과 유대 자체가 피해자의 고통과 모욕을 더 깊게 하는 피해 사실의 뗄 수 없는 일부일 수도 있다. 폭력성(다시 한 번 말하건대, 추상적 구조적 폭력성이 아니라 아주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성)과 친밀함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 한 쪽의 진실성이 다른 쪽을 거짓이나 과장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여성에 대한 폭력에서 여성의 경험을 독해하기 위해서 가장 핵심적인 인식이다. 이 인식을 전제하지 않으면, ‘친밀성’을 발굴하는 작업은 ‘폭력성’에 대한 고발을 침묵시키는 작업이 되고 만다.
이것은 일견 폭력의 기준을 혼란스럽고 비일관적으로 만드는 딜레마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딜레마는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해 일말의 여지없이 적대적이고 상황에 대해 수동적이기만 해야 한다’는 잘못된 통념의 산물이며, 우리는 오히려 거기에서 벗어날 때 폭력을 보다 적절하게 규정하고 이해할 수 있다. 반성폭력 운동 진영은 ‘동의냐 부동의냐’ ‘친밀감이냐 적대냐’의 이분법을 넘어서 여성이 이 상황에서 자신의 몸의 통합성과 자율성, 행위성을 얼마나 어떻게 유지하고 행사할 수 있었느냐를 중심으로 상황을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해왔다.(변혜정, 2004)
위안소 경험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던져야 할 질문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완전히 끔찍해했는지 부분적으로는 적응하고 받아들였는지, 군인들이 항상 적대적이고 폭력적이기만 했는지 아니면 종종 온정적이었는지가 아니다. 피해자들이 자신의 성과 신체에 대한 자율성과 통제권을 얼마나 행사할 수 있었는지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가 알고 있다. ‘온 세계가 경악할 정도의 성적 침해와 훼손이 있었으며 피해자들은 항거 불능에 빠질 만큼 압도적인 강제 하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위안부 피해의 본질이며, 피해생존자들의 증언의 핵심이다. 이것이 위안부 투쟁에 대한 전국적인, 심지어 범세계적인 지지와 연대가 가능했던 이유이다. 이것이 군국주의의 비인간성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서 위안부에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위안부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은 사실’을 다루겠다는 박유하는 막상 이 부분을 아주 철저하게 비가시화하고 삭제한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집단적, 반복적 강간에 대한 끔찍한 증언들은 위안소를 다루는 장 전체에서 단 한 줄도 인용되지 않는다. 그 결과 박유하가 그려놓는 위안소의 풍경은, “설사 보살핌을 받고 사랑하고 마음을 허한 존재가 있었다고 해도, 위안부들에게 위안소란 벗어나고 싶은 곳일 수밖에 없”(박유하 2013 : 67)다는 식의 추상적인 언명들을 제외하면 꽤나 목가적이고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한다. 박유하가 그렇게 처리함으로써 사실상 ‘소거’한 증언들을 같이 놓고 보면 이 그림은 아주 달라질 것이다.
일요일에는 군인들이 아침 아홉시부터 저녁 여섯시까지 쉴 새 없이 달려들었다.
하루에 20명, 30명, 40명 ……, 그걸 누가 다 세는가.(증언1집 : 78; 양현아 2009 : 180에서 재인용)
하루에 열댓 명이서 그렇게 겪는가 봐. 아유, 그런 어리니 무리하게 당했으니까 피가 그냥 이렇게 막 흘러갖고 며칠 아파갖고 오줌도 못 눴어. 막 그냥 울고, 밥도 못 먹겄고, 얼마나 참말로 죽겄던고. (황순이의 증언(증언3집 : 226, 양현아 2009 : p. 181에서 재인용)
배가 아프고 막 어째 몸이 고단하고 밥도 못 먹고 그랬어. 거 육군 병원인가 어딘가 난 몰라, 나를 데리고 가서 진찰을 해보더니, 애기라고, 배를, 이렇게 갈랐어. 이렇게 배를 갈라서 애기를 빼냈나벼, 난 몰러. 내가 가만 생각하면 그놈들이 잘못한 거 같아. 애기라고 피 긁어내고 배 째고.(김복동의 증언증언4집; 양현아 2009 : p. 181에서 재인용))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위안소는 군인들이 여자들과 담소를 나누며 연애를 하라고 만들어놓은 장소가 아니라 하루 수십 명씩 돌아가며 여성을 강간하라고 만들어놓은 장소였다. 그러나 박유하는 이런 사실 앞에서 ‘이게 다가 아니야’라는 한 마디로 ‘다양성’으로 도망쳐버린다. 그러면서 본인도 ‘부수적’이라고 주장하는 측면에만 돋보기를 들이댄다. 과연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은 어느 쪽인가?
“운동회 이후 일주일 동안”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 빵따먹기 경주에서 빵이 얼마나 맛있었는지를 말했다”는 ‘위안부’들의 순수한 기쁨의 기억을 외부자들이 소거할 권리는 없다. (박유하 2013 : 2)
박유하는 이런 소소한 즐거움의 기억들이 그간 한국 사회에서 침묵당하고 은폐당해 왔다며, 이것이 “그녀의 기억들이 ‘피해자로서의 조선’에 균열을 일으킬 것을 두려워하는 무의식적 양해사항” (박유하 2013 : 68)이라고 단정짓는다. 그리고 이것들을 ‘피해의 기억’과 대비되는 ‘화해의 기억’으로 내세운다. 마치 이런 기억이 그네들의 피해자성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처럼, 마치 이런 기억이 피해의 경험만큼 널리 회자되고 의미부여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처럼. 가해자 중심주의도 정도가 있지. 사람을 끌고 가서 성노예로 삼아서는 하루에 수십 명씩 윤간을 했는데, 운동회에서 상품으로 빵 좀 줬다고 그게 사회적으로 널리널리 회자되면 도대체가 그것이 정상적인 사회인가?
다시 한 번 노예제도에 비유를 해보자면, 흑인 노예와 백인 노예주 사이도 전적으로 적대적이기만 하지는 않았다. 특히 유모나 하인 등의 가내 노예는 노예주와 유사 가족적 관계를 형성하고 제법 온정적인 대우를 받는 경우도 많았다. 극소수의 운 좋은 노예들은 심지어 백인 주인 밑에서 돈을 벌어 부자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피해자로서의 흑인이라는 정체성에 균열을 일으킨다’는 명분으로 노예제를 미화하거나 이러한 기억들을 재조명함으로써 인종 간의 화해를 도모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박유하가 이런 헛소리를 할 수 있는 까닭은 노예제도와 달리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과 억압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여전히 은폐되고 있으며, 여전히 부정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예가 주인에게 저항하지 않았거나 적극적으로 충성했다고 노예를 노예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강간 피해 여성은 극렬하게 저항하지 않거나 가해자에게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면 강간 경험이 연애의 일종으로 취급받는 끔찍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른바 ‘화간’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강간당한 뒤에 가해자에게 무언가를 받으면 대가를 받았으니 성매매가 된다. 피해자의 순응이, 가해자의 온정이, 강간에서만큼은 아직도 가피해를 흐리고 화해를 설파할 근거가 된다.
물론 이런 인식은 하도 흔해서 진보주의자를 자임하는 사람들도 무의식중에 이런 인식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거기에 대해서는 약간의 인내심을 발휘할 여지가 있으며, 비난하고 화를 내기보다는 토론하고 설득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것도 아닌 여성주의의 표상을 활용해서 이따위 설교를 하는 것은 인내하고 설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 어떤 페미니즘도 ‘화간’과 ‘성매매’ 신화에 편승하여 강간범의 가해 사실을 희석하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설파하지 않는다. 이것은 ‘다른 페미니즘’이 아니라 페미니즘의 찬탈이고 능욕이다. 진보 운동의 그 어디에도 이런 담론에 내어줄 자리는 없다.
5. ‘화해를 위하여’ - 해석자 박유하의 위치성
이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박유하는 도대체 왜 이런 무리를 하는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취사선택해 들어”옴으로써 “우리가 폭력적으로 소거시켜온 ”위안부의 모습을 복원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은폐되어온 서브알턴의 대변자’이자, ‘하나의 이야기’로부터 ‘다양한 개인들’을 구출해내려는 탐구자로서 자신을 위치지으며 논의를 이끌어간다. 그는 책 곳곳에서 집요하게 자신이 “정치적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진실을 직시”하고 문제를 “총체적으로 보는” 주체임을 스스로 어필한다. 그리하여 박유하는, 우선 “‘위안부’가 누구인지에 대한 이해”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한다.(박유하, 2013 : 6)
‘해결’해야 하는 하나의 문제가 있을 때 그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래야만 상황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 아닌가. 하지만 그 정보에는 때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까지 섞여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20년은 그중에서 듣고 싶은 이야기만 취사 선택해서 들어왔고 그에 바탕해 위안부에 관한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온 세월이기도 했다. (박유하, 2013 : 6)
박유하는 심지어 기존의 서사가 “표면적인 피해 인식 외의 모든 기억을 말살시키려 한다”(박유하 213 : 134)고까지 비판한다. 통탄스럽고저! 민족주의가 서브알턴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침묵을 강요하고 제 욕망에 맞게 기억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위안부 피해자들은 그 자신의 사회운동을 통해서조차 결코 말할 수 없는 실어증 환자로서, 해석하는 주체의 입맛에 맞게 조리되는 철저히 수동적인 텍스트로서 슬프게 거기에 누워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결코 “취사선택” 따위는 하지 않는 “총체적”이고 “복잡한” 진실의 대변자로서 지식인 박유하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강림한다. 그간에 민족주의자와 “진보좌파”들이 “말살”해왔던, 조명되지 않았던 사실들을 재조명함으로써 위안부의 “복잡한 구조”를 해명하고 “우리가 폭력적으로 소거시켜온 그녀들의 기억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 말이다.
‘가능한 한 많은 정보’는 박유하가 자신을 “화해를 지향”하는, “정치적 욕망에서 자유로운”, 전체를 보는 주체로 위치짓기 위해 끌고 오는 핵심적인 논거이다. 즉 단순히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작업은 사태 해결을 위한 순수한 선의인 것이지 어떤 정치적 함의를 가진 것은 아닌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녀는 자신이 위안부에 대해 여러 가지 “정보”(그런데 사실 이 ‘정보’의 많은 부분은 심지어 해석이나 추측이다. 순진한 실증주의자라는 명칭조차 박유하에게는 과분하다.)들을 쏟아붓는 것을, 그리고 그리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이끌어낸 ‘일본 정부는 법적 책임이 없다’는 결론까지를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타당하며 어떠한 당파성 없는 보편적인 사유로 보이도록 자연스럽게 포석을 놓는다.
그러나 ‘가능한 한 많은 정보’는 정말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가치인가? 지난해 세월호 유가족들을 중심으로 참사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던 때, 세월호 유가족들이 대리기사와 시비가 붙어 폭행이 일어나자 언론은 이를 앞다투어 대서특필했다.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단식을 하면서 국민들의 동정과 분노가 높아지자, 그가 아내와 이혼했고 아이와 따로 살고 있었다거나 양육비를 보내지 않았다는 등의 ‘정보’가 유포되면서 그가 보상금을 노리고 떼를 쓴다는 보수언론과 우익의 프레임을 뒷받침했다.
여기서 세월호 유가족들의 대리기사 폭행이나 김영오 씨의 가정사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상세하게 알아내서 유포하는 것은 중립적 작업이며, 이러한 정보들을 접함으로써 생기는 인식은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가? 이것은 어쨌거나 ‘더 많은 정보’였으며, ‘선하고 흠결없는 피해자 대 악의 화신인 가해자’나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이 참사로 인해 돌연히 붕괴되었다’는 대중적인 서사- “하나의 이야기”- 에 ‘균열을 내고’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듣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균열’은 도대체 무엇을 파괴하고, 그래서 누구를 도우며 누구를 해치는 것인가?
혹은 좀더 비근한 예로, 성폭력이나 가정폭력 사건의 법적 책임을 논함에 있어 피해자가 평소 외도를 하고 있었다거나 가해자가 성실한 사람이었고 평상시 피해자에게 잘해주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는 정보를 길게 늘어놓음으로써(가해자측의 변호인들은 실제로 이렇게 한다.) ‘결사적 저항을 무릅썼는데 완전히 적대적인 관계였던 가해자에게 강제로 변을 당한 순결한 피해자’라는 “하나의 이야기”에 “균열을 내는”것은 어떤가? 그러한 정보들이 유도하는 판단은 올바른가? 여기에는 정치적 방향성이 들어있지 않은가?
사실 박유하야말로 누구보다 강한 “정치적 욕망”에서 글을 쓰고 있다. 위안부를 “‘해결’해야 하는 하나의 문제”라고 규정하는 것부터가 이미 고도로 정치적인 언술이다. 위안부 피해자들 및 지원자들과 일본 정부 간 이해와 입장의 대립을 ‘분열’이라 부를지 ‘투쟁’이라 부를지, 이것이 ‘극복’되어야 할 문제인지 ‘심판’되어야 할 문제인지는 명백하고 철저하게 정치적인 문제다.
그는 서문에서부터 이를 아주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갈등을 조장하는 담론들”을 팔짱 끼고 보고 있을 수 없어, “양국의 이해를 위해, 나아가 동아시아의 상호 신뢰회복을 위해” “우리 안의 분열들, 동아시아의 분열을 극복하기”(박유하 2013 : 8-9) 위해서 책을 썼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즉, 그는 위안부 문제를 무엇보다도 ‘분열’로 규정하고 이것을 ‘해결’함으로써 한일간에 더 이상 이 문제로 마찰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주체이다. 이것은 피해자들을 위한 정의나 전쟁범죄의 재발 방지보다 한일관계가 빨리 원활해지는 것을 더 갈망하는 많은 사람들의 소망이지만, 중립적이고 이해관계를 초극해 있는 소망은 결코 아니다.
모든 인간집단이 그렇듯 위안부의 모습 또한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천차만별 다양하고 복잡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언어와 인식은 그 다양성과 복잡성을 영원히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모든 인식은 현상에서 한 면을 추출해내는 추상의 과정이고, 추상의 과정은 곧 추상되는 면 이외의 다른 면들을 시야에서 밀어내는 사상의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말한다는 것은 언제나 무언가를 말하지 않기로 한다는 것이다.
박유하 자신도 공언과 달리 위안부의 ‘모든 모습’을 재현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위안부의 강제성과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고 중간자의 존재를 부각시키며, 국가에 의한 동원과 감금이라는 질적 차이를 지우고 자발적 성매매와 일본군 성노예의 공통점을 강조하며, 위안소에서 매일같이 일어났던 집단 강간을 지워버리고 그 자리에 군인들과의 유대감과 포주의 착취를 채워넣는다.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이 끝날 때까지 떠들어도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완전히 하나마나한 비판이다. 문제는 오히려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는가, 누가 누구를 위해 그렇게 하는가이다. 박유하는 도대체 왜 하필이면 이런 모습을 부각시켜 위안부를 재현하기를 요구하는가? 단순히 박유하가 마주친 자료들이 그런 모습을 많이 나타냈기 때문인가? 그렇다기에는 박유하 자신도 이런 사례는 소수에 불과함을 스스로 시인하고 있다. 그렇다면 박유하는 왜 하필이면 이 특정한 그림에 보편적 진리(그녀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복잡성” “총체성”)의 왕관을 씌워주고 싶어하는가?
왜냐하면 그것은 “피해의 기억”과 대비되는 “화해의 기억”(박유하 2013 : 122)이기 때문이다. 박유하는 정대협을 비롯한 지원 단체들이 ‘일본 사회를 자기들의 뜻대로 개혁하려는 정치적 욕망 때문에’ 일본 정부에서 반감을 살 만한 무리한 주장을 하고 있고, ‘일본군에 강제연행되어 강간당한 순결한 소녀’라는 서사가 이 주장을 정치적으로 뒷받침한다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따라서 박유하가 이 서사를 해체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정대협과 지원단체들(그리고 사실 그들이 지원하고 있는 서브알턴들 본인)의 “정치적” 요구를 무력화하기 위한 일종의 사전작업이라 할 수 있다.
'제국의 위안부'는 단순히 여태 알려지지 않았던 위안부의 새로운 면모들을 탐색해 보고자 쓴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일본의 법적 책임에 대한 명백히 당파적인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위안부에 대한 서사를 수정하고 있다. 즉, 박유하가 새로운 서사를 통해 뒷받침하고자 하는 결론은 “위안부를 대상으로 한 강간이나 폭력이 공식적으로는 금지되고 있었으니 ‘국가’가 그 범죄를 저질렀다고는 말하기 어렵다”(박유하 2013 : 217)는 것 다시 말해 일본은 법적으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식적 사죄와 법적 보상이라는 정대협과 일부 위안부 피해자들의 주장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요구”일 뿐만 아니라 “근거도 충분치 않”게 된다.(박유하 2013 : 220) 왜냐하면 일본 정부는 적어도 조선에서는 “강제연행”을 한 사실이 없으며, 일본의 법적 배상 책임은 1965년 한일협정의 청구권조항으로 완전히 끝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일협정 당시에 위안부 문제는 테이블에서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했고, 일본측은 위안소를 운영한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앞으로 일본측의 불법행위사실이 드러난다면 배상하겠다”고 공언했다. 더구나 위안부 문제는 “조직적이고 인도에 반하는 전쟁범죄”이며 “인간을 성적 노예화하는 ‘인간성 파괴행위’라는 중대한 인권침해이므로 조약의 충분한 동의의 본질이며, 근본적 사정변경을 발생”하는 바, 이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새롭게 발견되었는데 한일협정의 기존 조항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은 일본 정부만의 일방적인 입장이라고 보아야 한다.(이장희 2001 : 107, 117)
2011년 헌법재판소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해결을 위해 정부가 외교적으로 노력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함으로써, 한국 정부가 이런 해석에 반대하는 입장임은 명확해졌다. 물론 정대협을 한국의 담론질서를 좌우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권력으로 생각하는 박유하는 이것 역시 사정을 제대로 모른 채 지원단체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판결이라 비판하고 있다.(박유하 2013 : 238-239)
법적 책임 대신에, 박유하는 일본 정부에 ‘죄’ 즉 도의적, 구조적 책임이 있다는 관점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기금”은, 일본 정부의 책임의 층위와 상응하는 매우 의미있는 조치가 된다. 이것이 정부의 공식적 책임 인정이라는 요구와 상충된다는 비판에 대해 박유하는 “전후배상에 관한 조약 때문에 직접적인 국가보상이 불가능했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말 그대로 ‘민간기금의 거죽옷을’ 입혀서, ‘간접보상’을 하려 했던 일본 정부의 궁여지책이었다”는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해석으로 반론하고 있다. 비록 피해당사자들과 한국 정부가 한일협정을 그러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데 반대하고 있다는 사소한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한일협정은 일본 정부가 국가 보상을 할 수 없도록 막아버림은 분명하므로, 선의에 찬 일본 정부는 실질적 국가 보상을 하기 위해서 국민기금이라는 형태로 위장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2000년 당시 국민기금 부이사장이 “배상의 의미가 아니라 공적개발원조(ODA)와 마찬가지로 인도적 견지에서 일정의 지원협력”이라고 분명히 이야기한 등의 사실관계에도 어긋나거니와(니시노 루미코 2014b : 167), 철저히 일본 정부와 국민기금의 노력과 성의만을 확대해석하고 전면화하는 동시에 피해자 본인들의 의사는 오해나 억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깎아내리는 가해자 중심의 시각이다.
사실 상술한 법논리 자체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으며, 일본 우파 논객들이나 정부가 그간 표방해온 입장을 거의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제국의 위안부'를 그토록 논쟁적으로 만든 것은 이 책이 이러한 법적 입장을 피해자의 증언을 근거로, 즉 ‘서브알턴 본인의 이야기’라는 표상을 빌어 정당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브알턴은 말할 수 있는가?’ '제국의 위안부' 논쟁에 부쳐, 이 질문을 몇 번이고 다시 던져야 하는 까닭이다.
6. 큰 이야기, 작은 이야기, 그리고 서브알턴의 자기주체화와 당파성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의 경험을 획일화하는 거대서사가 이들을 지배하고 있어 다양한 목소리들은 드러나지 못했고 특히 약자들의 목소리는 억압되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거대서사의 허구성을 깨닫고 자기 나름대로의 작은 이야기들을 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자유로워지고 평등해졌다.’
‘큰 이야기를 “해체”하는 작은 이야기들’이라는 프레임은 사실 이런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이야기’를 기반에 깔고 있다. 위안부의 ‘기쁨’이나 위안부와 일본군 사이의 ‘사랑과 연민’을 이야기함으로써 위안부들을 “운동으로부터 해방”시키겠다는(박유하 2013 : 257) 박유하의 야심찬 기획 역시 이러한 ‘서사’의 한 버전이다.
기실 그 이야기야말로, 아마도 오늘날 존재하는 그 어떤 거대서사보다도 허구적일 것이다. 인식은 본질적으로 취사선택이며, ‘전체적 인식’이란 다른 말로 하면 ‘물자체’를 파악하는 것과 같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과제이다. ‘큰 이야기’가 전체의 일부에 불과하며 현실을 포착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 ‘작은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역사적 사회적 사건들에 의해 빚어진 삶의 조건들은 사회와 시대를 말하지 않으면 전혀 이해할 수가 없게 된다. 동원을 위탁받은 업주들을 직접 여성들을 만나서 데려간 주체라는 이유로 동원의 주 책임자로 지목하고, 위안소에서 군인과 위안부 피해자 여성 사이에 종종 존재했던 온정적인 관계를 일반화하여 마치 그들이 기본적으로 동지적 관계였던 것처럼 비약하는 식의 말놀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 거시적 맥락의 사상과 삭제다.
서사가 거시적으로 쓰인다고 해서 서브알턴이 말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은 너무 단순한 인식이다. 언어의 당파성을 좌우하는 것은 서사의 층위가 아니라 사회적 권력이다. 누구의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영향력을 발휘하는가? 더 많은 자원과 권력을 가진 이들의 목소리가 그렇게 된다. 누구의 목소리가 침묵당하고 배제되는가?
권력에 억눌려 있어 말을 하려면 보복을 감수해야 하는 이들, 자기 자신의 언어와 이데올로기를 사회에 퍼뜨릴 자원이 없는 이들,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 체제에 의해 착취당하거나 주변화되어 있기에 자신의 이익과 열망을 표현하는 순간 사회의 질서를 거스르게 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그렇게 된다. 사회는 이들이 남의 판단에 따라 자신의 말과 실천을 조직하는 것을 일상적으로 순간순간 계속함으로써만 유지될 수 있으며, 그들이 그러기를 멈추고 자신의 머리로 세계를 판단하고 자신의 판단을 말하기 시작하면 현존 질서는 뿌리부터 흔들리기 때문이다. 한 페미니스트는 “한 여성이 자신의 이야기를 온전히 하게 된다면 세상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라고 말한 적 있다.
역으로 말해, 세계의 질서가 서브알턴의 희생 위에서만 지탱되는 한 서브알턴은 그 질서를 흔들지 않고서는 말을 할 수 없다. 어떤 세련된 방법론을 가져오든, 선량한 지식인들이 서브알턴의 언어를 통역하는 방식으로 서브알턴이 말할 수 있으리라 믿는 것은 헛된 기대다.
다시 한 번 마르크스 - “비판의 무기는 무기의 비판을 대신할 수 없다. 물질적 힘은 물질적 힘에 의해 전복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론 또한 대중을 사로잡자마자 물질적 힘으로 된다. 이론은 대인적으로 증명되자마자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으며, 그것이 근본적으로 되자마자 대인적으로 증명된다.” 기존의 담론에 균열을 내는 서브알턴의 발화는 그 질서에 균열을 내고 다른 질서를 창조하는 투쟁과 분리될 수 없다. 이러한 대담한 시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거대한 세상을 감히 파악하고 감히 우리의 의지대로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앎과 언어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그것이 서브알턴의 해방에 있어서 거대 서사만이 할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역할이다.
물론 거대서사에 우리의 언어를 가둘 필요는 없다. 인간의 삶은 본시 구조에 대한 몇 가지 도식으로 환원될 수 없다. 인간의 삶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관념들이 인간의 삶을 역으로 재단하게 되면 도식에 맞지 않는 경험들은 잘려나가고 만다. 더구나 거대 서사도 실은 하나가 아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서는 ‘민족’이나 ‘성별’, ‘계급’과 같은 여러 가지 거대서사들이 교차하고 있다. 모든 것을 ‘민족’ ‘성별’ ‘계급’ 등 하나의 요소로만 환원하려고 드는 것은 다른 층위의 억압들을 사상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렇게 되었을 때 피해를 보는 것은 기존의 ‘도식’에 자신의 입장을 반영하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하나가 아닌 여러 층위에서 동시에 억압받고 있는 사람들 – 다시 말해 약자와 소수자들이다. 해방을 위한 거대서사가 또다른 억압으로 기능할 수 있는 위험이 여기에 있다. 숱하게 다양한 ‘작은 이야기들’을 발굴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정치적으로 소중하고 필요한 작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서사 없는 해방의 기획은 불가능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거대서사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도구들이 그렇듯 위험을 인지하면서 조심스럽게,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사실 거대서사를 거부하는 선택지 자체가 애초에 없다. 사회구조든 담론이든, 세계는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다. 서브알턴의 거대서사가 서지 못한 자리는 지배계급, 지배집단의 거대서사가 독점하게 된다. 그 자신 ‘가해자 일본과 싸우는 민족의 투사 위안부’라는 이미지를 해체하고 ‘한일 화해와 동북아 공동체의 형성’이라는 또다른 거대서사를 그 자리에 집어넣고 있는 박유하는 이 사실을 아주 노골적으로 보여주지만, 사실 박유하 자신이 그 작업을 하지 않더라도 사태는 마찬가지다. 일단 서브알턴의 서사가 해체되고 나면 지배집단의 그 누구든 그 작업은 손쉽게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화해’와 ‘협력’, ‘상호신뢰’! 피지배자의 권리 주장을 ‘사회 갈등’으로 몰아붙이고 불평등한 사회질서가 마찰 없이 작동하도록 관리하려는 지배자의 욕망을 포장하는 실로 한결같은 수사. 이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거대 담론. 식민지배의 피해에 항거하는 피해당사자들에게 이런 식으로 가해지는 ‘민족주의 비판’은 조금 더 아름다운 제국주의 논리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사회의 지배질서가 더욱 공고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노자(2015)의 지적처럼, 일본 ‘황군’의 명예회복과 전쟁범죄의 축소 은폐는 지금 일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보통국가”화와 공세적인 군사 정책을 더욱 용이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을 것이며 이는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의 상위파트너인 미국의 힘을 더욱 강화하게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문제는 서사의 층위가 아니라 사회적 권력이고, 사회적 권력관계를 바꾸는 투쟁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 투쟁의 주체인가? 현존 사회 질서의 문제를 누가 가장 자세하게,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 누가 그것을 변화시키는 데 가장 큰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누가 서브알턴의 열망을 대리하거나 서브알턴을 시혜의 대상으로 전락시키지 않으면서 서브알턴의 해방을 위해 싸울 수 있는가?
물론 서브알턴 그 자신이다! 더 이상 ‘서브알턴’이 되기를 거부하고 말하고 행동하기 시작한 ‘서브알턴’, 영원한 인류의 미래, 자기해방을 위해 스스로 투쟁하는 인민 대중. 박유하는 ‘투사’의 이미지가 위안부의 다양한 욕망과 경험을 획일화하고 ‘투사답지 않은’ 모습을 억압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투사’로서의 피해생존자의 이미지는 무엇보다 자신의 존엄을 되찾기 위해 투쟁하는 피해생존자의 주체성과 긍지의 표현이며, 이에 대한 존경과 연대의 표현이다. 현존 질서에 대한 도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정서들이다.
물론 모든 운동은 잘못될 수도 있고 또다른 억압으로 전화할 수도 있다. 또 설령 완벽하게 올바른 운동이 있다 해도 한 사람의 삶과 정체성이 오로지 운동으로만 환원될 수는 없으며 만약 그런 환원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그에 대한 폭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서브알턴의 해방에 진지한 관심이 있는 누구도 그러한 위험을 구실삼아 모든 운동을 억압으로 딱지붙이고 해체하려 들지는 않는다. 우리에게 가능한 유일한 해방의 방식은 자기해방이며, 서브알턴의 자기해방이 무력화되었을 때 아무리 대단한 지식인이 아무리 많은 온정을 베풀어도 이 체제가 강요하는 거대한 억압은 끄덕없이, 공고하게 존속될 뿐이므로.
그것은 우리에게는 악몽이지만, 지배집단에게는 영원한 열망이다. 사회적 지위와 특권을 유지하고 약자에게 시혜를 베푸는 주체로서 도덕적 우위도 누리고 해석하고 발언할 수 있는 권력도 계속 독점하고 싶은 지식인에게도 마찬가지고. ‘거대서사의 해체를 통한 미시서사의 해방’이라는 서사는, 그것이 ‘누구를 위한 누구의 서사인가’를 먼저 묻지 않으면 그들의 훌륭한 도구가 된다. '제국의 위안부' 현상이 보여주는 핵심적인 교훈은 거기에 있다.
위안부를 ‘일본 민족 전체’ 대 ‘한국 민족 전체’의 문제로 생각하는 인식이 사회에서 여전히 영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체계적 강간’과 ‘성노예’ 등의 단어만으로 위안부를 설명하는 데는 조선인 여성을 동원한 위안소 운영이 적군에 대한 공격의 일종이라기보다 일본 군 시스템의 일부였음을 포착하지 못한다는 허점이 있으므로 이 부분에서도 보완이 필요하다. 범죄 고발에 중점을 둔 언어가 그러한 목적에 맞지 않는 피해자들의 맥락을 사상하게 될 위험도 있다. (양현아 2009 : 199-200)
그러나 이러한 허점들은 민족주의를 버리거나 범죄 고발을 포기하지 않는 한 수정될 수 없는 근본적인 오류라기보다 당면한 목적에 맞게 언어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한계이며 앞으로 제국주의 시스템 하에서 식민지인들의 피해에 대한 인식을 세밀화하고 젠더의 관점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연대를 더 폭넓게 조직해 나가면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위안부 운동이 이미 20년 전부터 전쟁범죄로서 위안부 문제의 보편성을 강조하고 민족, 국가를 넘어선 연대를 실천해왔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모은 네 번째 증언집은 ‘범죄 피해자’라는 호칭에 다 담길 수 없는 개인의 생애를 기록하는 데 노력을 쏟고 있으며 (증언4집 :17)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을 다룬 생애사 연구들도 많이 나오는 등 학계에서도 위안부에 관한 서사를 다양화하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손영미 2008, 최현실 2010 등)
박유하가 지적하는 ‘가라유키’를 비롯, 위안소가 아닌 공창이나 사창에서 이루어진 성매매와의 공통성에 천착하여 여기에서 공통으로 침해되었던 권리가 무엇인지 언어화하고 이를 회복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작업 역시 성노예 범죄와 형식상 자발적인 성매매의 차이를 흐리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고 또 이루어져야 한다. ‘순결성’을 호소하지 않고도 피해를 발화하고 대중적으로 지지를 받을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이는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이 말하고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더욱 넓혀줄 수 있다.
그러나 이 작업에 위안부 피해자들의 경험을 축소·왜곡하고 그들의 투쟁을 외부세력의 조종에 의한 것으로 폄하하며 가해자들과의 화해를 설교하는 지식인이 끼어들 구석은 한 치도 없다.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의 투쟁은 지식인들이 책상에 둘러앉아 평화롭게 고담준론을 나눔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피억압 당사자들과 그 연대주체들이 자신들을 위해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과정이다. 그 과정은 피해생존자들 자신의 주도 하에, 그들의 발화와 실천을 중심으로, 그들의 경험과 상황에 맞는 권리의 언어들과 요구를 더욱 풍부하게 발달시킴으로써만 – 요컨대 피해생존자들을 계속해서 임파워링(empowering)하는 방식으로만 성공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서브알턴의 발화의 가능조건이자 그것이 복무하는 과정, 이 개념을 둘러싼 모든 고민들이 궁극적으로 갈구하는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 성취될 수 있는 유일한 현실적인 기반은 스스로 일어서는 서브알턴의 투쟁이다. 그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우리는 아주 큰 이야기와 아주 작은 이야기들을 넘나들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고, 여기엔 딜레마도 모순도 없다. 정확하고 풍부한 인식을 위해 우리가 가진 다양한 도구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는 고민만이 있을 뿐이다. 진정으로 택일을 요구하는 질문은 ‘일부의 이야기냐 모든 이야기냐’ ‘큰 이야기냐 작은 이야기들이냐’가 아니다. 그것은 ‘억압의 질서 위에서 말할 것인가, 피억압자들의 투쟁 속에서 말할 것인가’이다. / 류한수진·다른세상을향한연대
정부, ‘위안부 재단’ 발족식 숨긴채 피해할머니 참석 독려 724한겨레
20일 낮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24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제10차 이화글로벌임파워먼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아시아·아프리카 여성 엔지오(NGO) 리더들 등 참석자들이 다양한 손팻말을 들고 위안부 문제 합의를 규탄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정대협 “점심대접, 돈 빌미로 할머니들 참석 동원”
여가부·외교부 “발족식 안내 및 사전설명 성격일뿐”
정부가 이번주 출범하는 ‘일본군 위안부 재단’ 발족식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개별접촉을 통해 발족식을 안내하며 참석을 독려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점심 대접’을 빌미로 할머니들의 참석를 동원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화해와 치유 재단’이란 이름의 이 민간재단은 지난해 12월 한·일 양국 정부가 체결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에 따라 설립되는 재단으로 28일에 발족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 따르면, 20일부터 22일 사이에 10여분의 피해자 할머니가 외교부로부터 정확한 행사의 목적이나 취지를 고지받지 못한 채 ‘다음주 수요일 식사를 대접할테니 자리에 나와달라’는 요청을 받거나 여성가족부로부터 ‘28일에 돈이 나오니 받으러 발족식에 나오시라’는 등의 말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대협에 전화를 받은 사실을 알려온 일부 할머니는 “몸이 아파서 나갈 수 없다. 그냥 통장으로 넣어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했지만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본인이 오셔야 한다. 아프면 모시러 가겠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정대협은 주장했다.
이에 대해 여성가족부는 “발족식을 안내하고 참여를 독려하는 과정에서 내용이 와전된 것 같다. 참석을 해야 돈을 준다는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재단 설립 전에 할머니들께 재단 설립 취지 등에 대한 설명을 드리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했는데, 많은 할머니들이 노출을 꺼려하시기 때문에 비공개로 오찬을 진행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류지형 정대협 간사는 “(할머니들이) 이야기를 전하는 과정에서 일부 표현이 달라졌을 수는 있지만, 비슷한 내용이 복수의 할머니들에게서 들려오는 만큼 단순한 와전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윤미향 정대협 대표는 “(발족식에 나오셔야 돈을 준다는)그런 말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할머니가 왜 ‘통장으로 넣어주면 되지 않느냐’는 말씀을 하셨겠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피해자 지원 단체는 이번 사태가 ‘정부의 말이 와전된 것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피해 당사자가 원치 않는 방식으로 화해를 강요하는 정부의 일방통행이 본질이라고 지적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 부동산 불로소득 연간 400조원 726 주간경향
ㆍ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장 ‘부동산 소득과 소득 불평등’ 보고서 발표
“제가 오죽하면 농담으로 조물주보다 위대한 게 건물주라고 그러겠나.”
2년 전 MBC PD수첩에 출연한 한 재무설계사가 한 말이다. 최근에는 건물주가 신의 반열에 올라섰다는 뜻으로 ‘갓물주’라는 말도 쓰인다. ‘갓물주’들이 부동산을 통해 벌어들이는 소득이 1년에 400조원에 달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
지난 6월 말,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장은 모든 건물주들이 부동산을 통해 1년간 벌어들이는 매매차익과 임대료를 합치면 2014년의 경우 약 422조원일 것으로 봤다. ‘부동산 소득과 소득 불평등’ 보고서에서 남 소장은 건물주들의 부동산 소득을 ‘불로소득’으로 규정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부동산 매매차익 소득은 2007년 GDP(국내총생산) 대비 42.1%인 273조8000여억원에 달했다가 부동산 경기침체 등의 여파로 점차 비율이 낮아지고 있다. 하지만 2014년에도 매매차익 소득은 GDP의 28.4% 수준인 175조2000여억원으로 나온다.
지난 6월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아파트단지 인근 부동산에서 한 시민이 시세를 보고 있다. / 연합뉴스
국세청이 발표한 양도차익과 3배 차이
기존에는 부동산 ‘소유’의 불평등에 초점을 맞춘 연구가 많았다. 정부에서도 통계를 발표할 때, 자가 주택을 소유한 비율이 얼마나 되며, 상위 10% 부자들은 전국 토지의 몇 %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발표했다. 부동산 ‘소득’을 분석할 때는 임대소득만이 주된 분석 대상이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매매차익의 전체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연간 부동산 매매차익의 전체 규모를 파악하는 공식 자체는 어렵지 않다. 특정 해의 모든 부동산 양도가액에서 과거 시점의 취득가액을 빼기만 하면 된다. 공식으로 표현하면 ‘현재 시점의 양도가액-과거 시점의 취득가액=부동산 매매차익’이다. 이런 방법으로 국세청은 매년 양도차익 통계를 발표하고 있다. 차익을 정확히 알아야 과세를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을 보면 2011년의 전체 양도차익은 약 51조800여억원이었고, 지난해는 58조5320여억원이었다. 국세청은 이 양도차익에서 장기보유 특별공제를 뺀 값을 ‘양도소득’이라 명명하고 있다. 지난해 양도차익의 경우 연간 국내총생산액인 1463조6000여억원과 비교하면 4%가 채 안 된다. 남 소장은 국세청이 발표한 양도차익만 가지고는 전체 부동산 매매차익을 알 수 없다고 봤다. 1가구 1주택자의 경우 양도소득세 비과세 대상이며, 1가구 2주택자 중에서도 부모를 모시고 사는 등의 이유로 잠시 2주택이 됐다는 이유로 비과세 대상이 되는 경우가 여러 가지 있다. 또한 1가구 1주택자가 전체 주택 자가소유자 중 80%를 넘기 때문에, 1가구 1주택자들이 거두는 매매차익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또 다른 문제는 각 개인의 ‘과거 시점의 취득가액’을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남 소장은 취득세를 통해 부동산 평균 보유기간을 역추산하는 방식으로 과거 취득가액의 ‘평균값’을 구했다. 행정자치부의 지방세정연감 등을 통해 취득세 현황을 알 수 있고, 취득세율을 통해 역추산하면 그해 거래된 부동산가액의 총액을 알 수 있다. 국세청 통계에서 ‘양도가액’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2015년 전체 부동산의 가격이 500조원인데, 그 중 50조원이 거래된 것이라면, 그해 매매된 부동산들은 평균적으로 10년의 보유기간을 가졌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남 소장의 연구 결과 주택은 평균 약 7년, 일반 건축물은 18년, 토지는 5년의 보유기간을 가진 뒤 거래된다. 2015년에 매매된 부동산은 평균적으로 2008년에 취득한 것으로 보고 매매차익을 구한 것이다. 이렇게 구해진 부동산 매매차익 추정치는 국세청이 발표한 양도차익과 3배 이상 높은 수치를 보인다.
한 부동산학과 전공교수는 남 소장의 연구서에 대해 “그 분은 정치학자 아니냐”며 “보고서를 보긴 했지만 학회에서 정식으로 발표한 논문이 아니라 학문적 의미는 거의 없다. 신문에 칼럼을 쓰듯이 자신의 주장을 밝힌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남 박사와 같은 방식으로 매매차익을 연구한다는 말도 들어본 바 없다”고 덧붙였다.
부동산이 매매되기까지 보유기간을 추정해서 매매차익을 구하는 방식은 과거에도 있었다.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는 경제통상학부 교수 시절인 1991년 ‘한국의 부, 자본 이득과 소득 불평등’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이 명예교수는 국토개발연구원(현 국토연구원)의 보고서를 통해 한 해의 토지거래 규모를 구했다. 1년에 전체 토지의 10%가 거래됐다면 해당 토지는 10년에 한 번 거래됐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이 명예교수는 1989년 토지를 통한 자본이득(매매차익)이 당시 국민총생산(GNP)을 상회하는 53조5000억원일 것으로 봤다.
임대료 소득에 관해서는 기존 부동산 학자들도 많이 연구를 했다. 남 소장은 귀속임대료를 통해 건물주들의 전체 임대료 규모를 추산했다. 귀속임대료는 ‘묵시적 소득’이라고도 불린다. 묵시적 소득은 1968년 유엔 국민경제체계에서 언급된 이후 학자들의 연구주제가 됐다. 한국에서는 2009년 정의철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가 묵시적 소득이 소득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바 있다. 묵시적 소득은 자가 부동산 소유자가 임대료를 내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상대적인 이득을 말한다. 묵시적 소득을 고려하지 않았을 경우 주택 소유자가 실제로 살고 있는 집의 임대료가 계산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모든 부동산’의 잠정적 임대료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묵시적 소득이라는 개념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묵시적 소득은 임대료를 부동산이 발생시킨 불로소득으로 보는 관점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인구의 1%인 50만명이 토지의 55% 소유
정의철 교수팀은 주택의 경우 주택 가격에서 대출금을 뺀 가격에서 3년 만기 회사채 수익인 4.73%를 곱해 가구당 약 321만원의 묵시적 소득이 발생했다고 추정했다. 남 소장은 주택의 경우 4%, 일반 건축물은 5%, 농지는 1.5%의 연간 임대료를 받는다고 가정했다. 연구 결과 2007년 165.7조원이었던 귀속임대료는 매년 올라가 2014년에는 246.8조원에 달했다.
묵시적 소득을 두고 두 학자가 비슷한 연구를 했고, 두 사람 모두 부동산 소득으로 인한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결론에도 도달했다. 다만 정 교수는 매매차익을 제외한 부동산 소득은 총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최대 3.7%에 불과하다며 소득 불평등의 주된 원인은 근로소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정 교수는 “부동산 매매차익은 소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소득은 한 달, 1년의 기간을 정한 유량(flow)의 개념인 데 비해 자산은 저량(stock)의 개념이다. 매매차익은 자산을 팔아서 생긴 이득인데, 이것을 합쳐서 계산하는 게 학문적으로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동산 학자 ㄱ씨는 통계의 한계를 지적했다. ㄱ교수는 “아무리 남 소장이 계산을 했다 한들 데이터를 가지고 한 것이 아니라 추정일 뿐이다. 국세청에서는 모든 사람이 언제 부동산을 사고 팔았는지 모든 자료를 갖고 있는데, 그 정보가 학자들에게 오픈되지 않는 한 매매차익을 가지고 연구를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양도차익에 대해서도 차익이 발생한 다양한 요인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소득’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지 학문적인 검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영운 충북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부동산이 ‘온전한 사유물’이라는 인식 자체가 변해야 한다고 봤다. 반 교수는 “건물의 경우 개인의 재산권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토지는 공적인 자산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 교수의 주장을 정리하면 이렇다. 토지는 일반적인 상품과 다르게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낡고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위치 등 사회적 여건에 따라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상승하기도 한다. 아무리 주택을 많이 공급해도 가격이 잡히지 않고 부동산 투기 흐름이 잘 잡히지 않는 이유도 이런 토지의 특성에서 비롯한다.
토지가 공공재라는 인식이 아예 없다 보니 일부 상위계층이 토지를 독점하는 현상도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 2013년 11월 발표된 국토교통부의 최신 토지 소유 현황에 따르면 전체 국민의 27.9%만이 토지를 소유하고 있으며, 인구의 약 1%인 50만명이 전체 토지의 55.2%를 갖고 있다. 전체 토지 소유 가구인 총 1200만 세대 중 상위 1%는 면적 기준으로 약 31.3%, 상위 10%는 약 76.7%를 소유한 것으로 나온다. 반 교수는 “토지 독점 때문에 토지비가 높아져 생산 의욕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는 등 국가적인 낭비가 심하다. 토지는 공적 자산이라는 인식 하에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등 토지에 대한 보유세를 강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남 소장의 부동산 불평등 해소방안도 반 교수와 일맥상통한다. 남 소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종합부동산세가 조세저항에 부딪혀 유명무실화된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보유세 강화를 통한 세수 증대가 국민들에게 직접 혜택을 줘야 한다고 봤다. 이런 차원에서 남 소장은 “인공지능의 발달 등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기본소득 도입이 필요하고, 부동산 불로소득을 제대로만 회수한다면 기본소득 재원 마련은 생각보다 쉬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종부세는 지방교부금의 형태로 돌아갔기에 시민들의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실제 주머니에 들어가는 돈이기에 체감효과가 크다”고 덧붙였다. 또한 부동산 불평등 해소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부동산 경기침체로 인한 충격을 완화시키는 데에도 기본소득이 좋은 대안이 될 것으로 봤다. 전국민의 가처분소득이 늘어나기 때문에 경기둔화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남기업 소장 “부동산 소득이 불평등 만드는 중요한 원인”
토지+자유연구소의 남기업 소장(46·사진) 전공은 경제학이 아닌 정치학이다. 정치학으로 학위를 받았다고 해서 부동산 문제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법은 없다. 2005년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남 소장의 학위논문은 토지 공공성을 강화하자는 주장을 펼친 헨리 조지에 관한 것이었다.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남 소장은 토지정의시민연대에서 활동하면서 공정한 토지제도에 대한 연구를 이어 왔다. 남 소장으로부터 부동산 매매차익에 관한 연구를 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부동산 매매차익 연구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부동산의 소유 편중도가 굉장히 심하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 부동산이 없는 사람은 손해를 보고 부동산을 많이 가진 사람들은 엄청난 이익을 본다. 이것을 소득 불평등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은 전부터 해왔다. 보다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해 12월 장하성 교수가 쓴 <왜 분노해야 하는가>라는 책이다. 그 책에서 장 교수는 재산 불평등이 심각한 것은 인정하지만, 재산에서 발생하는 소득이 얼마 안 되기 때문에 재산 불평등이 소득 불평등의 중요한 원인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물론 장 교수의 책에서 많은 지식을 얻기도 했지만 저나 토지+자유연구소에서 관심을 가져 왔던 토지, 부동산 문제가 이렇게 소홀하게 취급되어도 되는지, 실제로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소득이 얼마 안되는 것인지 직접 계산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동산으로 인한 소득이 연간 400조원이 넘는다는데,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저 역시 처음에는 수치가 너무 높게 나와서 과대계산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엑셀로 여러 차례 계산을 다시 해봤지만 결과는 같았다. 사실 저는 굉장히 보수적인 방식으로 계산했다. 귀속임대료의 경우 제가 연구한 바에 주택의 통상적인 연간 임대료는 부동산 가격의 4~7%다. 농지의 경우 연간 임대료가 2% 정도다. 저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잡아서 주택의 경우 4%, 농지의 경우 1.5%의 연간 임대료를 받는다고 가정하고 계산한 것이다.”
기존 부동산 연구자들은 매매차익과 소득 불평등 문제를 잘 연결짓지 않는 것 같은데.
“이론이 생명력을 가지려면 현실을 잘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부동산과 관련한 소득 연구에서는 매매차익이 거의 제외돼 있다. 그러다 보니 현실의 모순이 축소돼 보이고, 결과적으로 부동산 관련 정책 수립에 장애를 초래한다. 주택만 봐도 연평균 100조원 이상의 매매차익이 발생하는데, 이 과정에서 무주택자들은 집값 상승으로 피해를 보고 다주택 소유자들은 엄청난 혜택을 누리고 있다. 부동산 소득이 불평등을 만드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부동산 소득 불평등이 다른 소득 불평등과 차이점이 있다면.
“노동소득의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사이에 액수 차이는 있지만 다들 임금을 받기는 한다. 하지만 부동산 소득의 경우 부동산이 없는 사람들은 아예 배제된다. 상위 10%가 토지의 절반 가까이를 갖고 있고, 서울의 경우 자가 주택을 가진 비율이 41%밖에 안 된다. 자기 집이 없는 사람은 실업자나 마찬가지인 셈인데,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실업자인 현상을 당연히 연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어떤 학자들은 학회에서 정식으로 발표하지 않은 보고서는 학문적 가치가 없다고도 하는데.
“저는 이전에도 한국공간환경학회 등에서 논문 발표를 했다. 이번에 낸 보고서 내용 중에도 보완할 부분은 있을 것이다. 고칠 곳은 고쳐서 논문 형식으로 학회를 통해 정식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고령의 이건희 혼자서 성매매 준비했겠나" 722 프레시안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성매매 의혹이 거센 후폭풍을 낳고 있다. 지난 21일 <뉴스타파>에 따르면, 이 회장은 2011년부터 2013년 사이 5차례에 걸쳐 성매매를 한 정황이 있다.
삼성 현직 사장 명의로 성매매 장소 전세 냈다
성매매는 그 자체로 불법 행위다. 더 큰 문제는 이 회장 개인의 불법 행위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매매 의혹이 불거진 현장 가운데 한 곳이 서울 논현동의 고급 빌라다. 그런데 이 빌라는 김인 삼성SDS 고문 명의로 전세 계약이 돼 있었다. 김 고문은 과거 삼성 비서실에서 오래 일했었다. 이 회장의 최측근이다.
이 회장이 성매매를 했다고 보이는 시기, 김 고문은 삼성라이온즈 대표이사(사장)를 맡고 있었다. 삼성 계열사의 현직 사장 명의가 전세 계약에 사용된 것이다. 삼성그룹이 이 회장의 성매매를 지원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성매매 범죄에 삼성이 동원됐는지 여부, 철저히 수사해야"
참여연대가 22일 논평을 통해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삼성계열사 임직원 관여 여부 철저히 수사해야"라는 논평에서, 참여연대는 "성매매 범행에 비서실(미래전략실)이나 계열회사의 임직원이나 자금이 동원되었는지 여부를 밝히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 성매매 의혹이 제기된 현장에 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뉴스타파
"고령의 이건희 회장 혼자서 4~5명 여성과 성매수 준비했다는 건 경험칙에 반해"
참여연대는 "고령의 이건희 회장 혼자서 성매매 장소를 전세 내고, 한번에 4~5명에 이르는 여성과의 은밀한 성매수를 5차례나 계획하고 준비했다는 것은 객관적인 경험칙에 반한다"라고 밝혔다. 삼성그룹의 인력과 자금이 동원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만약 그렇다면, 현행법을 다수 위반한 셈이다. 김 고문이 전세 낸 빌라를 성매매 장소로 제공했다면,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이 금지하는 "성매매의 장소를 제공하는 행위"를 했다는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또 삼성그룹의 인력과 자금을 이 회장 개인의 성매매를 위해 동원했다면, 이는 횡령 및 배임이 될 수 있다. 김 고문의 명의를 삼성 미래전략실 등이 빌려 썼다면, 이는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을 어긴 셈이다.
"총수 개인 성욕 채우려 계열사 자산 유용"
참여연대는 "재벌의 계열사라고 하더라도 그 자산과 인력은 계열사의 업무에 사용되어야 한다"며 "재벌 총수의 채홍사 노릇에 소모되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총수의 개인적인 성욕을 채우기 위해 계열기업의 자산과 인력을 유용한 것"이라는 설명도 뒤따랐다.
삼성그룹의 인력과 자금이 이 회장의 성매매에 쓰였다면, 이는 법을 어긴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참여연대는 "총수 일가의 '과도한 사적 편익 편취'라는 비민주적 재벌 지배구조의 맨얼굴을 여실히 보여 주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참여연대는 "총수 일가가 계열기업의 자산과 인력을 사적으로 유용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적 예방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는 "총수 일가로부터 독립적인 이사나 감사가 선임될 수 있도록 하는 상법 개정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연합뉴스
이건희 '성매매 의혹' 영상 KBS는 재생, 조중동은 침묵 722오마이뉴스
KBS, <뉴스타파> 인용 보도했다가 30분만에 삭제... 이후 다른 기사로 보도
인터넷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성매매 의혹 동영상을 보도해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뉴스타파는 21일 오후 10시 '삼성 이건희 회장 성매매 의혹… 그룹 차원 개입?'이라는 제목의 영상 기사를 올렸습니다.
이 영상에는 이건희 회장으로 보이는 남성이 여성들에게 돈을 주면서 "네가 오늘 수고했어, 네 키스 때문에 오늘 XX 했어"라는 등 성관계를 암시하는 듯한 대화 장면이 나옵니다. 동영상은 2011년부터 2013년 6월까지 성매매 여성들이 촬영한 것으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과 논현동 빌라에서 촬영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뉴스타파>의 보도가 나오자 사람들은 '이건희 회장 성매매 의혹'에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삼성에 민감한 기사를 주류 언론사들이 인용해서 보도할 것이냐에도 주목했습니다.
KBS, 이건희 회장 성매매 의혹 인용 기사 삭제 후 재보도
▲ KBS는 <뉴스타파>가 보도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성매매 의혹과 관련해 인용 보도를 했다가 얼마 후 기사를 삭제했다. ⓒ 국민TV
KBS는 <뉴스타파>가 보도한 지 두 시간여 뒤인 7월 22일 0시 20분께 <뉴스타파, "이건희 회장 성매매 의혹"…"공식 입장 아직 없다">는 제목으로 <뉴스타파>를 인용한 기사를 올립니다. 그러나 불과 30분 뒤인 7월 22일 0시 50분께 해당 기사는 삭제됐습니다. 구글의 검색 기능을 통해 기사를 검색하면 제목은 남아 있지만, 클릭을 해도 '삭제된 기사'라는 안내만 나옵니다.
KBS는 다음날인 22일 오전 11시에 다시 <이건희 회장 '성매매 의혹' 동영상 공개…삼성 "당혹, 사생활로 할말 없어">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출처를 <뉴스타파>로 밝히지 않고 '한 인터넷 매체'라고 지칭했습니다. KBS가 다시 올린 해당 기사는 <뉴스타파>를 갈무리한 이미지 3장과 총 5줄의 기사로 구성돼 있습니다. 총 5줄의 기사 중, 돈을 요구하는 부분과 삼성 측의 해명만 담고 있어 이것을 제대로 보도한 기사라고 봐야 하는지는 의문스러웠습니다.
보도 이후 기사를 보강하거나 오류에 대한 안내나 사과는 할 수 있지만, 발행된 기사를 삭제하는 행위는 언론으로서의 책무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사 삭제는 외압에 의해 벌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KBS는 <오마이뉴스> 기사가 나간 뒤, <뉴스타파>의 보도가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삭제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말이나 새누리당의 주장을 검증 없이 보도해왔던 KBS의 관행에 본다면 그리 설득력은 없을 듯합니다.
조중동은 아직 이건희 성매매 의혹에 침묵
▲ KBS는 뉴스타파의 이건희 회장 성매매 의혹 관련 기사를 올렸다가 삭제했다. ⓒ 임병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성매매 의혹 보도가 나오면서 일부 언론들이 <뉴스타파>의 기사를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조중동 등 주류 언론사들은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 <오마이뉴스>만 이건희 회장 성매매 의혹 기사가 보도됐습니다.
보통 '성매매' 사건이 터지면 관련 기사가 수백, 수천 개씩 올라옵니다. 대다수 언론사들이 온라인팀 명의를 이용해 계속 관련 기사를 쏟아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의혹 관련 기사의 양은 다른 뉴스에 비해 현저히 적었습니다.
7월 22일 오전 7시 현재 일부 스포츠 신문 등이 기사를 올리고 있으니 지켜볼 필요는 있지만, 성매매 관련 사건 소식에 재빠르게 기사를 올렸던 모습과 비교하면 한참 느린 상황입니다.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의혹이 사실이라도 실제로 이 회장을 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언론에 모습을 비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이런 사건들을 언론이 제대로 검증하거나 보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 네이버에 올라온 이건희 회장 성매매 의혹 관련 뉴스. 다른 성매매 사건이 발생했을 때와 비교했을 때 기사 양이 현저히 적다. ⓒ 임병도
경제 논리와 '배꼽 아래 세 치에는 인격이 없다'(臍下三寸に人格なし)는 박정희식 일제 잔재 퇴폐 문화로 넘어가서는 결코 안 됩니다(박정희가 시망할 당시 여 가수, 여대생과 있었던 사실이 알려졌을 때도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는 육영수 여사를 떠나보내고 남자라서 외로워서 그랬다는 동정론이 일기도 했다).
많은 언론들이 재벌이 사라지면 한국이 무너진다고 보도합니다. 정부는 재벌이 흔들리면 세금으로 그들을 지켜주고 법으로 수익을 보장해줍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는 수조 원의 광고비를 쓰는 재벌과 언론의 유착 관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조중동을 포함한 한국 언론사들이 이건희 회장 성매매 의혹 사건에 대해 끝까지 침묵을 지킬지, 어떤 방식으로 보도할지, 계속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국민사설] ‘공무원이 꿈’인 젊은이들의 안타까운 현실 6.22
공무원이 되겠다는 젊은이들이 25만명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통계청이 21일 발표한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및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층(15∼29세) 비경제활동인구 중 취업시험 준비자는 65만명으로 이 중 39.4%인 25만7000명이 일반직 공무원시험(공시)을 준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6년 이후 가장 많은 것이다. 민간 기업 취업 준비를 하는 14만명 선의 배에 근접한 규모다.
직업으로서의 공무원에 대한 선호도가 폭발적으로 높아졌다. ‘공무원이 꿈’인 나라가 되고 있다. 공시 경쟁률이 평균 수십대 1에 이른 지는 이미 제법 됐다. 변호사가 9급 공무원에 지원하고, 응시생이 공시 합격자 명단을 조작하는 사건이 벌어질 정도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는 고교생들의 장래희망 1위에 공무원이 꼽혔다.
직업 선택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청년 다수가 공무원에 목을 매는 세태는 안타깝다. 왜곡된 고용 구조, 불안한 고용 실태라는 현실이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도전보다는 고용과 수입 안정성이 보장되는 공무원에 몰리는 사회는 내일에의 희망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이들을 나무랄 수는 없다. 기성세대들이 반성해야 한다. 갈수록 벌어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 비정규직의 확산 같은 엄혹한 취업시장과 수저계급론, 천민자본주의로 상징되는 일그러진 자화상은 젊은이의 가슴에 냉소를 심었다. ‘어차피 안 될 텐데’라는 좌절과 ‘재기 불가’의 우려는 투지를 꺾었다.
정부가 할 일은 수십조원을 쏟아부어 일회성 청년 취업대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자포자기하지 않고 공정한 경쟁을 벌일 수 있도록 취업생태계를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창의력과 의지가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런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1%’가 사는 법 722경향
부(富)를 기준으로 대한민국에서 ‘상위 1%’가 되려면 얼마를 가져야 할까. 김낙년 동국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상위 1%의 평균 자산은 24억3700만원(2013년 기준)이고, 최소 9억9100만원은 돼야 상위 1%에 해당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임금근로자의 평균 연봉은 3281만원(2015년 기준), 자영업자의 연평균 소득은 2072만원(2013년 기준)이다. 직장인은 30년, 자영업자는 48년간 수입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상위 1%에 턱걸이로 들어갈 수 있다.
99%의 사람들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재산에다 학벌, 사회적 지위까지 두루 갖춘 상위 1%들이 각종 의혹의 주인공으로 활약 중이다. 1000억원대 부동산, 100억원대 주식 대박 등 스케일도 남다르다. 주로 연예인들이 단골로 등장했던 성(性) 스캔들에는 대한민국 최고 부자까지 이름을 올렸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들이 연일 실제 상황으로 보도되고 있다.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법조계 고위공직자 중 최고 부자라는 진경준 검사장. 그가 공개한 재산 156억원 가운데 120억원은 넥슨 비상장주식을 팔아 얻은 돈이다. 넥슨은 진 검사장의 ‘친구’인 김정주 NXC(넥슨 지주사) 회장이 창업한 게임회사다. 주식은 자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김 회장이 준 4억2500만원으로 샀다. 이 돈을 종잣돈으로 진 검사장은 넥슨 비상장주식 1만주를 샀다가 1년 뒤 넥슨에 10억여원을 받고 팔았다. 100%가 넘는 수익률이다. 이후 진 검사장은 다시 넥슨재팬 주식을 샀다. 그런데 이 주식이 ‘때마침’ 일본 증시에 상장하면서 120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뒀다. ‘친구’는 진 검사장에게 제네시스 승용차도 줬다. 진 검사장과 김 회장은 서울대 86학번 동기로 대학 때부터 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상위 1%의 세계에선 이 정도 금전은 오가야 우정이라 할 수 있나보다.
재산이 400억원 가까이 되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은 건설사, 골프장 등을 소유한 재력가 장인을 뒀다. 2008년 장인이 사망한 뒤 부과된 상속세가 1000억원이 넘었는데, 상속 재산 대부분이 부동산이라 현금이 부족했단다. 이에 장인에게 상속받은 1300억원대 부동산을 매물로 내놨고, 2년간 잘 팔리지 않던 이 땅을 ‘후배’의 친구 회사인 넥슨이 선뜻 사주면서 가산세 등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우 수석의 서울대 법대 2년 후배인 진 검사장은 지난해 승진 당시 넥슨 주식을 88억원어치 갖고 있었지만 인사검증 책임자였던 우 수석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우 수석의 아들은 의무경찰로 군 복무 중인데, 부대 전입 80일 만에 ‘꽃보직’으로 통하는 운전병으로 자리를 옮겼다. 99%들에게는 이런 행운이 한 번이라도 일어날 수 있을까. 검사들에게 뒤질세라 회장님들도 가세했다. 횡령과 탈세 혐의로 재판을 받던 이재현 CJ회장은 손과 발이 굽어 있고, 앙상한 종아리를 찍은 사진을 언론에 공개한 뒤 재상고를 포기하고 곧바로 형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8·15 특별사면을 단행하겠다는 뜻을 밝힌 후다. 특사 대상에 포함되려면 형이 확정돼야 하는데, 이 회장은 이번에 재상고를 포기함에 따라 2년6월의 징역형이 확정됐다. 인터넷언론 뉴스타파가 공개한 성매매 의혹 동영상에 등장하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얼굴은 차라리 외면하고 싶다.
대한민국의 상위 1%는 이렇게 살고 있었다. 금력에 탐닉하고 천민 자본주의에 압도되고 윤리가 실종된 상류사회의 타락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막강한 재력과 인맥을 바탕으로 세상을 마음껏 주무르는 1%를 바라보는 99%의 시선은 공분을 넘어 소외, 허탈, 무력감으로 이어진다. 그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와 책임)를 기대하는 건 헛된 일일지도 모른다. 법과 제도가 해결할 문제다. 힘없고 ‘빽’없는 사람들에게만 엄격한 법은 1%와 99%의 간극을 더욱 벌려놓을 뿐이다 /이주영 기자
한겨레사설] 충격적인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의혹’ 722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성매매 의혹’을 담은 동영상이 공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탐사보도 전문매체 <뉴스타파>는 21일 밤 동영상과 함께 이 회장이 2011년 12월부터 2013년 6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과 논현동 고급빌라에서 성매매를 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동영상에는 이 회장과 여성들이 성관계를 암시하는 대화를 나누는 장면, 이 회장이 여성들에게 돈봉투를 건네는 장면 등이 나온다. 뉴스타파는 “매번 20~30대 여성들이 3~5명씩 등장하며, 이들에게는 한 명당 500만원가량 지급된 것 같다”고 전했다. 이 동영상은 현장에 간 여성들 중 한 명이 찍은 것으로 추정되며, 이 여성과 다른 공모자들이 동영상을 미끼로 삼성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이 매체는 보도했다.
나향욱의 “민중은 개돼지” 망언, ‘진경준-김정주 게이트’, ‘우병우 스캔들’에 이어 국내 최대 재벌 회장의 고액 성매매 의혹까지 터져 나오면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분노와 좌절감이 가히 폭발 지경에 이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 <내부자들>이 현실 속에서 한 장면, 한 장면씩 재현되고 있다고 개탄한다. 영화를 보면서 ‘설마 저 정도까지 타락했을까’ 하며 고개를 갸웃했던 자신의 순진함을 책망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 상위 1%의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행태를 눈으로 확인하는 참담한 심정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의혹 동영상에 대해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과 관련해 물의가 빚어진 데 대해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공식 사과를 했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몇 문장의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신빙성이 상당히 큰 동영상을 통해 성매매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성매매는 처벌이 따르는 불법행위다. 또 성매매 과정에 삼성그룹 계열사 임원이 관여한 정황도 나왔다. 이 회장이나 삼성그룹 모두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이 회장이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2년 넘게 의식불명 상태라는 사정을 참작하더라도, 수사당국의 신속하고 철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서는 벌써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 “이번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자”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대한민국 0.1%의 민낯…영화를 따라잡은 현실722한겨레
이건희 삼성 회장의 ‘성매매 의혹’ 동영상을 인터넷 독립언론 가 공개해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 사옥 앞에서 민주노총 산하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원들이 재벌개혁 투쟁 결의대회를 열자 경찰이 경비를 서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청와대 민정수석 의혹 까발려지고
이건희 ‘안가 성매매’ 동영상까지 폭로
영화 <내부자들>을 다큐멘터리로 만든 사회권력층
무엇을 상상해도 현실이 되고 있다. 영화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버리는 대한민국 0.1%들의 민낯이 연일 까발려지고 있다. 한줌 윤리마저 벗어버린 재벌과 권력자들의 행태에, 시민들은 분노를 넘어 우리 사회와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이들의 수준에 대한 허탈감마저 느낀다고 했다.
22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과거 서울 강남의 자택과 고급빌라에서 여성들과 성매매를 한 것으로 추정되는 몰래카메라 동영상이 공개되자 나머지 99.9%의 현실이 들끓기 시작했다. “영화 <내부자들> 실사판이 바로 지금 여기”라는 글들이 모바일 세상을 달궜다.
<한겨레> 누리집에 연재된 웹툰이 원작인 영화 <내부자들>은 재벌, 정치인, 청와대 민정수석, 검사, 언론인, 깡패가 한데 얽힌, 돈과 권력을 향한 욕망의 이전투구를 가감 없이 그렸다. 특히 스폰서 기업인과 권력자들이 비밀 별장에서 벌이는 섹스파티와 이를 몰래카메라로 찍는 영화 속 설정에 관객들은 “그래도 설마…”라며 우리 사회 주류라는 이들의 수준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남겨뒀었다. 그러나 누군가 돈을 뜯어내려는 목적으로 찍은 이 회장의 안가 성매매 동영상이 공개되자 “영화가 현실이었다”며 허탈해하는 이들이 속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공적 권한을 사적으로 남용하거나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데 쓰는 영화 속 청와대 민정수석과 검사가 현실에서는 각종 의혹에 휩싸인 우병우 민정수석과 진경준 검사장이 대역 없이 직접 출연한 셈이 됐다. “어차피 대중은 개돼지”라는 영화 속 0.1%의 대사는 ‘엘리트 고위 관료’였던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찰지게 내뱉으며 현실로 만들었다. 한 누리꾼은 “연예인들의 성폭력·성매매 사건은 대문짝만하게 보도하던 언론들이 거대 기업 회장의 성매매는 보도조차 하지 않는다”며 <내부자들>에서 권력과 유착한 ‘조국일보’의 행태를 현실에서 읽어냈다.
여기에 4·13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 정무수석과 친박근혜계 실세 정치인들이 대통령 뜻을 내세우며 협박에 가까운 공천 뒷거래를 하는 음성 녹음파일이 공개되고, 전관예우 변호를 통해 100채가 넘는 부동산을 사들인 전직 검사(홍만표 변호사)의 실상까지, 영화로도 도저히 따라잡지 못할 초현실적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시민과 누리꾼들은 “0.1% 한국 지배세력이 나머지 99.9% 개돼지보다 나은 게 뭐냐”고 따졌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보수정부 들어 부정부패가 잦아지면서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도덕적 기준도 낮아졌다”며 부패와 분노의 만성화를 지적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잇따라 터져나오는 사회권력층의 비리 의혹을 보면서 국민들이 느끼는 무기력과 냉소주의가 강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황제 경영’ 이건희 결정적인 흑역사 네 가지 장면 723한겨레
2008년 4월22일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 경영쇄신안을 발표한 뒤 생각에 잠겨있다. 연합뉴스
이건희(74) 삼성전자 회장이 자택과 고급빌라에서 불법 성매매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돈과 힘을 쥐었던 0.1% 권력자의 ‘낯 뜨거운 민낯’입니다. 1993년 이건희 회장은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이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이른바 ‘신경영 선언’ 을 합니다. 이러한 회장님 말씀을 받들어, 삼성은 20년간 눈부신 성장을 일구었습니다. 삼성의 성공 요인으로 거론되는 이건희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은, 광범위한 정관계 인사 관리·경영권 편법 승계 등 법 위에 군림하던 ‘황제 경영’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를 여전히 2류로 머물게 한 이건희 회장의 ‘황제 경영’ 흑역사를 짚어 보았습니다.
1. 2005년 삼성 엑스(X)파일 사건
에버랜드 편법 증여와 ‘엑스파일’ 사건 등이 불거진 2006년 2월7일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에서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맨 왼쪽)과 임원들이 국민에게 사과문을 발표하기에 앞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종근 기자
2005년 7월 <엠비시>(MBC) 이상호 기자의 보도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가 불법도청을 한 테이프, 이른바 ‘삼성 엑스파일’이 세상에 드러납니다. 이 파일에는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삼성그룹 2인자 이학수 비서실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이 대선 후보자와 검찰 고위 간부들 누구에게 금품을 얼마나 줄 것인지 논의하는 대화가 담겨 있습니다. 삼성이 정·관계 인사들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그해 8월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전현직 검찰 최고위 간부 7명의 실명과 녹취록을 공개했습니다.
2015년 12월 서울중앙지검은 횡령과 뇌물공여 혐의로 고발된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삼성 관계자들을 불기소 처분합니다. 금품을 줄 대상으로 거론된 전·현직 검사나 정치인에 대해서도 처분이 이루어지지 않았지요. 반면, 이상호 기자와 노회찬 의원에 대해선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했고, 이들의 혐의는 유죄가 확정됩니다. 엑스파일 사건을 총괄했던 당시 황교안 서울중앙지방검찰청 2차장은 법무부 장관을 거쳐 지난해 6월 국무총리가 됩니다.
▶바로가기: “불법도청 내용, 공익기준에 못미쳐”…대법, 안기부 엑스파일 보도 ‘유죄’ 판결
▶바로가기: ‘떡값 검사’ 폭로한 노회찬은 유죄, 로비 덮은 황교안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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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07년 김용철 변호사 양심선언
김용철 변호사(오른쪽 세번째)와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 신부들이 2008년4월23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성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삼성 특검의 수사 결과와 삼성이 발표한 경영 쇄신안을 비판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엑스파일 사건 당시 검찰은, 삼성의 불법 비자금 의혹에 대해선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07년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을 지냈던 김용철 변호사는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삼성이 비자금을 조성해 임직원 명의의 차명주식 형태로 숨기고,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잡음을 방지하기 위해 검찰이나 국세청 등 권력기관에 로비를 해왔다는 충격적인 내용의 양심선언을 합니다.
▶바로가기: “내 계좌에 삼성 비자금 50억 이상 있었다”
검찰이 삼성으로부터 정기적으로 떡값을 받았다는 의혹이 또다시 제기되면서, 2007년 11월 ‘삼성 비자금 의혹 관련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삼성특검법)’이 국회에서 통과됩니다. 공안검사 출신인 조준웅 변호사가 특별검사로 임명돼 이건희 회장 일가의 비리 의혹을 수사했지요. 2008년 4월 특별검사팀은 이건희 회장이 불법적 경영권 승계 과정에 개입하고, 4조5000억원에 달하는 차명자산을 보유하면서 세금 1128억원을 포탈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을 비롯한 전·현직 임원들을 배임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합니다.
▶바로가기: 삼성특검 수사결과 발표문 전문 요약
▶바로가기: 99일 특검수사 결국 ‘삼성에 면죄부’
▶바로가기: ‘특검 SDS 기소’에 낯뜨거워진 검찰
당시, 특검팀은 삼성의 불법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해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모두 내사 종결이나 무혐의 처분을 했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사제단)과 김용철 변호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삼성특검이 삼성그룹과 우리 사회가 새롭게 출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렸다”며 비판합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12년 뜻밖의 사실이 드러납니다. 삼성 비자금 관련 특별검사였던 조준웅 변호사 아들이 2010년 1월 삼성전자 과장으로 입사했다는 겁니다.
▶바로가기: 조준웅 삼성특검 아들, 비자금 재판 뒤 특채로 삼성 입사
3. 경영권 편법 승계
2014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주최로 열린 ‘삼성 경영권 승계’ 관련 토론회 모습(왼쪽)과 2011년 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함께 걸어가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3남매. 박종식 기자
특검수사가 끝난 뒤 이건희 회장은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및 삼성에스디에스(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을 통한 경영권 불법승계(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의 배임) 혐의, 양도소득세 포탈 혐의로 법정에 섭니다. 이건희 회장은 이미 1990년대에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삼성그룹 경영권을 넘겨주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는데요. 대표적인 사례가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입니다.
▶바로가기: 이재용 삼남매, 에버랜드·SDS로만 12조원 벌어
1996년 에버랜드는 99억여원 규모의 무보증 전환사채를 1주당 7700원의 전환가격에 발행했습니다. 주식 시세가 1주당 7700원이 넘으면 주식으로 전환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채로 보유해 만기 때 이자와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었는데요. 당시 에버랜드 주식 실거래가에 견줘 1주당 7700원이라는 전환가격은 현저히 낮았기 때문에 ‘대박’이 보장된 사채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삼성그룹 계열사이거나 계열사였던 제일모직, 중앙일보, 삼성물산 등 에버랜드의 주요 주주들이 전환사채 인수를 포기한 거죠. 결국 전체 전환사채 물량 중 97%는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세 딸에게 3:1:1:1 비율로 배정됩니다. 이재용 부회장은 그해 12월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바꿨고, 단숨에 에버랜드 최대주주가 됐습니다. 그리고 2014년 에버랜드가 상장되면서 이재용 남매는 막대한 차익을 챙깁니다. 그러나 2009년 5월 대법원은 이건희 회장이 아들에게 세금 없이 경영권을 넘겨주면서 에버랜드에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에 대해 5(유죄):6(무죄)로 무죄를 선고합니다.
▶바로가기: 이 대법원장이 1심 변론때 폈던 논리대로 ‘무죄’
▶바로가기: [카드뉴스] 나는 에버랜드 전환사채였습니다
그런데 3년 뒤 2012년 민사 재판에서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옵니다. 2006년 제일모직 주주 3명이 이건희 회장 등 제일모직 전·현직 임원을 상대로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포기해 손해를 입었다며 137억여원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소송을 제기했었는데요. 2012년 2심 재판부인 대구고법 민사3부는 “에버랜드 전환사채는 장남 등에게 조세를 회피하면서 에버랜드의 지배권을 넘겨주기 위해 이건희 회장 등의 주도로 이뤄졌고,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 제일모직에 전환사채 인수를 포기하도록 한 것은 업무상 배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면서 2심 판결이 최종 확정됩니다. 앞서 2008년 조준웅 특별검사팀은 제일모직 등에 대한 이 회장의 배임 혐의에 대해선 기소를 하지 않았습니다.
▶바로가기: 이건희, 에버랜드CB소송 상고포기…제일모직에 130억 배상 확정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과는 다르게, 삼성에스디에스 신주인수권부사채(BW·일정 기간이 지나면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신주인수권’이 부여된 채권) 헐값 발행으로 인한 배임 및 조사포탈 혐의에 대해선 이건희 회장의 유죄가 확정됩니다. 그런데 유죄 선고 4개월 만인 2009년말 이명박 대통령은 ‘이건희 회장 단 한 사람’을 특별사면시킵니다. 경제인 1명을 대상으로 한 사면은 헌정사상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2010년 3월, 이건희 회장은 23개월 만에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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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반도체 노동자 백혈병 산재
삼상 반도체에 다니다 백혈병에 걸려 숨진 황유미씨.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2인1조를 꾸려 함께 일하던 짝궁도 같이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숨졌다. 속초/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2007년 3월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기흥공장에서 2년간 일하던 황유미씨가 스물셋 나이에 백혈병으로 숨집니다. 아버지 황상기씨는 언론사와 시민사회단체를 찾아다니며 “딸이 산업재해로 억울하게 죽었다”고 호소했습니다. 같은 해 11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가 결성됐고, 비슷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모이게 되면서 삼성 직업병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2009년 근로복지공단은 황유미씨 등 5명에 대해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고, 가족들은 이러한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삼성은 이들의 발병이 산재가 아니라고 주장했고요. 2014년 8월 2심 재판부는 1심 선고와 마찬가지로 고 황유미씨, 고 이숙영 씨의 백혈병이 산재라고 판결했고 근로복지공단이 상고를 포기합니다.
▶바로가기: 돈으로 죽음을 덮으려는 삼성
▶바로가기: 2심서도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백혈병 일부는 산재”
2014년 5월14일, 삼성전자는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이 난치병 발병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해결 의지를 밝힙니다. 집단 백혈병 발병에 대한 진상 규명 요구가 시작된 지 무려 7년만에 이뤄진 일입니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사과가 있기 불과 며칠 전인 5월10일 이건희 회장은 쓰러집니다.
그해 11월 삼성전자, 반올림, 가족대책위원회(반올림과 입장이 다른 피해자 가족들이 꾸린 단체) 등 세 주체가 ‘삼성전자 사업장의 백혈병 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를 구성해 보상·사과·예방 등 3대 의제를 논의했고, 조정위는 2015년 7월 첫번째 조정권고안을 제시했습니다. 삼성전자가 1000억원을 기부해 독립된 공익법인을 설립하자는 내용이 뼈대였습니다. 그러나 삼성은 공익재단 설립을 거부하고, 독자적 보상위원회를 꾸려 보상 절차에 들어갑니다. 올해 1월 삼성전자, 반올림, 가족대책위는 재해예방을 위한 외부 독립기구를 설치하기로 합의했지만 아직 사태가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닙니다. 삼성은 직업병 문제 관련 3대 의제 논의가 모두 마무리됐다는 입장인 반면, 반올림은 ‘재해예방대책’ 부분에 대해서만 해결책을 마련했다며 직업병 책임을 인정하는 차별없는 보상과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바로가기: 삼성은 백혈병 개별보상중…그런데 뭔가 씁쓸하다
*참고 도서: <위기의 삼성과 한국 사회의 선택>(2014·후마니타스), <기울어진 저울-대법원 개혁과 좌절의 역사>(2013·한겨레출판)
여름방학 시작됐지만…'놀 시간이 없다' 723
19일 국내 한 출판사가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540명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녀의 방학 중 하루 학습 평균 시간은 학기 중보다 늘었다. 학기 중에는 '1시간~2시간'이라고 답한 비율이 45%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2시간~3시간(23.4%)', '3시간~4시간(7.6%)'이 그 뒤를 이었다. '1시간 미만'이라고 답한 비율도 20% 가까이 됐다. 그러나 방학 중에는 전반적으로 학기 중보다 학습 시간이 늘어나는 양상을 보였다.
'1시간~2시간'이라고 답한 비율은 33%로 줄어든 데 반해, '2시간~3시간' 해당자는 33%로 약 10% 가량 늘어났다. 더욱이 '3시간~4시간', '4시간 이상' 학습을 한다는 비율은 약 2배 가량 늘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학부모 가운데 58.1%는 '방학 중 사교육(예체능 제외)을 할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사교육 시간은 '학기중과 똑같거나 비슷하다'고 답한 의견이 72%를 차지했다.
방학에도 사교육을 받는 이유로는 57.6%가 '계속 해오던 것이라 학습 패턴 유지를 위해'를 꼽았으며, '방학이 부족한 과목을 공부하기 가장 좋을 때'라는 의견과 '방학에만 할 수 있는 프로그램 참여를 위해'라는 의견이 각각 24.7%, 8.2%로 그 뒤를 이었다.
출판사 관계자는 "학습 리듬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한 목적에서 방학에도 자녀들이 기본적인 학습량을 지키길 바라는 부모들의 바람이 나타난 결과로 해석된다"며 "초등학생은 아직 부모의 지도가 필요한 때로, 부모 자녀 간 의견을 잘 조율해 방학 학습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친구 없다"…한국인, 사회적 관계 OECD 꼴찌 724 프레시안
나이 들면서 사회적 관계 끊어지는 경향 뚜렷
"만약 당신이 곤경에 처해 도움받기를 원할 때 의존할 가족이나 친구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을 조사했다. 한국은 그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았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24일 발표한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입법조사처는 2015년 OECD 사회통합지표를 분석한 결과, 한국은 '사회적 관계(사회적 지원 네트워크)' 부문에서 10점 만점 중 0.2점을 받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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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관계는 그 사회 구성원들의 상호 지지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곤경에 처했을 때 기댈 가족·친구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긍정적인 답변을 한 사람의 비율을 따져 산출된다. 한국인은 72.4%가 긍정적인 답변을 했고 27.6%가 곤경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을 가족·친구가 없다고 답했다. 이러한 수치는 조사 대상인 36개 국가(OECD 34개 회원국에 브라질과 러시아 포함) 중 가장 낮은 수치로 전체 평균 88.0%보다 15.6% 낮았다.
스위스(95.8%), 덴마크(95.0%), 독일(93.6%), 미국(90.0%), 일본(88.5%) 등은 평균보다 높았고 정치적으로 불안한 터키(86.1%)나 칠레(85.0%), 멕시코(76.7%) 같은 중남미 국가도 한국보다 높았다.
이 보고서는 15~29세, 30~49세, 50세 이상 등 3가지 연령대로 구분해서 분석한 결과도 소개했다. 15~29세의 긍정적 답변율은 93.26%로 전체 회원국 평균(93.16%)보다 높았지만 50세 이상 답변율은 60.91%(전체 평균 87.20%)로 조사 대상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두 연령대 사이 긍정적 답변율의 격차가 조사 대상 중 가장 컸다. 30~49세 연령대의 긍정적 답변율(78.38%)도 터키(74.45%)를 제외하고는 가장 낮았다. 나이가 들면서 사회적 관계가 끊어지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뜻이다.
OECD의 사회통합지표는 11개 영역에 대해 0~10점을 부여하는데 한국은 전체 평균 5.0점으로 OECD 평균보다 약간 낮은 '중간 수준 국가'로 분류됐다. 평균 점수가 높은 국가로 노르웨이(8.0점), 덴마크(7.9점), 스웨덴(7.7점) 등 북유럽 국가가 있었고 멕시코(3.4점), 터키(3.8점), 칠레(4.5점)는 최하위권이었다.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사교육 1번지’ 목동 622시사인
서울 목동은 사교육 1번지로 꼽힌다. 학군 따라 이사 온 학생들은 학창 시절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내지만 지역에 대한 애정이 없다.
“합격하고 목동 쪽으로는 머리도 안 두고 자잖아요.” 대학 새내기가 된 아이들이 깔깔대며 말했다. 서울 대치동과 함께 ‘사교육 1번지’로 꼽히는 목동 입시학원에서 만났던 아이들이다. 고등학교 내내 목동에서 살았던 친구들이지만, 지역에 대한 애정은 눈곱만큼도 없다.
목동 학생들은 대개 원주민이 없다. 그곳 학부모 대부분이 좋은 학군의 중학교를 배정받기 위해 아이가 12~13세 무렵 목동으로 이사를 온다. 초등학교 6학년 교실의 한 반에 7~8명이 전학생이라고 한다. 늦어도 중학교 3학년 가을 전에는 목동으로 이주해 정착한다. 목동 지역 안에서도 단지를 옮겨 이사한다. 특목고 진학 실패에 대비해 원하는 학교에 배정받기 위해서다. 자신의 교육을 위해 온 가족이 이사 왔으니, 공부를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목동 학원가를 벗어난 해방감과 새로 시작한 대학 생활에 대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목동 하면 월드타워밖에 생각이 안 나.” “나는 프라자. 어릴 때는 그 건물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았어.”
아이들이 말한 두 건물은 목동의 대표적인 학원 건물이다. 한 건물에 학원 수십 개가 입주해 있고, 그런 건물이 몇 채씩 연달아 있는 목동의 중심 학원가다. 아이들 말대로 여기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길게는 8년, 짧게는 3년 정도의 시간을 보낸다. 학기 시작 전에는 건물 엘리베이터 앞에 엄마 손을 잡고 서서 “엄마 없어도 혼자 잘할 수 있지?” “혼자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야 하니까 잘 기억해야 해” 따위 당부를 듣는 초등학생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박해성 그림
학원가에 들어온 10대 초반 아이들은 특목고 진학을 준비한다. 실제로 2015년도 서울시 25개 구별 특목고 진학 실적에서 목동이 속한 양천구는 190명(8.7%)으로 서울 시내 2위(1위 강남구 235명)를 기록했다. 서부권에서는 독보적인 수치다. 목동에서 특목고 대비 학원들의 확장 속도는 눈에 뜨일 정도다. 특목고를 준비하지 않는 아이들은 대입을 준비하기 위해 수학 선행학습 학원에 다닌다.
현장에선 실효성 낮은 선행학습 금지법
중·고등 선행학습의 효과에 대해서는 말이 많지만, 아이가 따라가는 데 크게 무리가 되지 않는다면 시키는 분위기다. “중학교 때는 시간이 남으니까” 시킨다고 학부모들은 말한다. 목동에서 선행학습을 하지 않는 학원은 찾아보기 어렵다. 보통 초등학교 5학년 1학기에 6학년 1학기 과정을 배우는 선행학습이, 중학생 때는 고교 과정을 배우는 식으로 속도가 붙는다.
한 여학생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수학 과목 선행학습을 시작했다. ‘네 바퀴를 돌리고(네 번이나 선행학습을 반복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고 한다. 아이는 “이렇게 안 하면 대학 못 왔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목동으로 이사 왔던 한 남학생은 정반대로 말했다. “어릴 때부터 너무 선행, 선행 해서 스트레스 많이 받았어요. 왜 하는지도 모르겠고… 결과적으로 별 도움도 안 됐고요.”
최근에는 선행학습 금지법이 생겼지만 광고 문구에 대한 규제로 그친다. 현장에선 실효성이 낮다. 학원들은 보통 선행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심화반’ 혹은 ‘특목 대비반’ 따위 말을 쓴다. 하지만 수업 내용에는 고등 수학 과정의 구체적인 단원명이 적혀 있다. 영어 과목 시간에도 텝스, 토플, 수능을 섞어서 가르친다고 떡하니 공지한다.
목동으로 들어오고자 하는 학부모들은 아파트 전세를 알아본다. 전셋값은 최소 4억~5억원. 비싼 집값을 감당하며, 8년이 넘는 시간 사교육비를 감당하는 것이 목동에 거주하는 어른들의 삶이다. 한 학부모는 “어떻게 생각하면 목동의 비싼 전셋값 덕분에 우리 아이 인생이 달라진 거죠”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다른 학부모는 “고등학교에 가면 초·중학교를 목동에서 보낸 보람이 있을 거예요”라고 기대한다.
그런데 또 다른 학부모는 말한다. “대학 보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학원 정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고, 너무 많이 알 필요는 없더라고요.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과도한 선행학습은 절대로 시키지 않을 거예요.”
청소년 유해 환경이 없고 학원이 많은 목동은 학생들을 끌어모은다. 학생들은 수능이 끝나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그들에게 목동은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먹방 빙자한 사실상의 포르노 723시사저널
식색(食色)의 동물적 본능에 가장 충실한 《잘 먹는 소녀들》“시청자는 개·돼지가 아니다” 반감 불러
본격 걸그룹 ‘먹방’ 대결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됐다. JTBC의 《잘 먹는 소녀들》이다. 지난 6월29일 첫 방영된 이 프로그램에서는 걸그룹 멤버들이 짜장면·탕수육·닭튀김 등 음식을 누가 더 먹음직스럽게 먹는가를 놓고 먹방 대결을 펼쳤다. MC들은 마치 격투기 경기처럼 중계했고, 연예인 패널들과 방청객들은 소녀들이 먹는 모습에 집중하며 찬탄을 연발했다. 8강 승리자가 4강전에서 또 먹고, 거기에서 이긴 사람이 결승에서 또 먹는 구조였다.
최근 JTBC 예능은 다소 주춤한 상황이다. 한때 tvN은 ‘신드라마왕국’, JTBC는 ‘신예능왕국’으로 비지상파계의 원투펀치로 자리매김할 듯한 기세였지만, JTBC의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난국을 타개할 한 방이 필요했는데, 이에 걸그룹 먹방 토너먼트라는 회심의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먹방은 원래 방송국들이 사랑하는 포맷이었고, 최근 들어선 그 인기가 더욱 커졌다. 여기에 걸그룹까지 추가하면 더더욱 시청자를 자극할 수 있을 법하다. 또 제작진은 요즘 음악경연 프로그램이 인기인 점에 착안, 경연의 구조에 음악 대신 음식을 집어넣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요즘 잘나가는 먹방·걸그룹·경연 소재를 총출동시켜 《잘 먹는 소녀들》이라는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먹방은 ‘허가받은 포르노’ ‘푸드포르노’
결과는 ‘재난’이다.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그나마 시청률이라도 좋으면 최악은 면했을 텐데, 1%에도 못 미쳤다. 스타급 연예인을 스무 명 가까이 투입하고 받은 성적표다. 실익도 없이 욕만 먹은 것이다. 결국 먹방 토너먼트는 폐지됐다. 프로그램 자체가 폐지되는 것은 아니고, 형식만 폐기한 채 새로운 형식을 모색한다고 한다. 먹방·걸그룹·경연 중에서 경연을 빼고 먹방과 걸그룹을 결합시킨 음식 토크쇼 형식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투유프로젝트-슈가맨》도 첫 방송 당시 혹평이 쏟아졌고, 새로운 형식으로 개편한 후 순항한 바 있다. 이번 《잘 먹는 소녀들》의 형식 개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최근 영화 《내부자들》의 “개·돼지” 대사가 큰 화제가 됐다. 한 교육부 고위관료가 “민중은 개·돼지” 운운했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는 개·돼지가 아니다”라는 대중의 질타가 쏟아졌다. 《잘 먹는 소녀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발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잘 먹는 소녀들》은 그야말로 본능에 충실한 기획이었다. 일단 먹방 자체가 본능이다. 인간은 자기보존과 종족보존이라는 본능적 욕구를 가진다. 자기보존을 위해선 먹어야 하고, 종족보존을 위해선 성행위를 해야 한다. 그래서 음식과 섹스, 즉 식색(食色)은 예로부터 수행자를 가장 유혹하는 욕망의 두 근원이었다. 먹방은 이 중에서 음식에 대한 욕망을 대리만족시켜준다. 그래서 인간은 먹방을 보면 무엇에라도 홀린 듯이 빠져든다. 섹스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먹는 것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괜찮기 때문에 먹방은 ‘허가받은 포르노’라고 할 수 있다. 과거부터 먹방은 제작비 대비 시청률 효율이 가장 좋은 포맷으로 방송가에 정평이 났었다.
그래도 방송사들이 먹방 그 자체만 내세우진 않았다. 여행과 결합시킨다든지, 육아와 결합시킨다든지, 혹은 전문가의 음식문화 해설이나 맛집 탐방 등 스토리텔링이 깔린 상태에서 먹방을 적절히 배합하는 나름 ‘인간의 얼굴을 한 먹방’이었다. 《잘 먹는 소녀들》은 그러한 복잡한 요소들을 모두 걷어내고, 밑도 끝도 없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먹는 모습 그 자체에만 집중한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동물적 본능에 가장 충실한 기획이었다. 이른바 ‘푸드포르노’였던 셈이다.
여기에 소녀들을 집어넣고 주로 남성들로 이루어진 방청객들이 소녀의 입에 집중하는 구도를 만들었다. 예로부터 먹는다는 말은 음식과 성에 공통적으로 쓰였는데, 주로 남성들이 중의적으로 썼다. 또 여성이 입을 벌려 무언가를 먹는 모습은 남성들에게 성적인 이미지로 많이 소비돼왔다. 이 프로그램은 걸그룹 소녀들이 입을 벌리고, 집어넣고, 삼키는 모습을 클로즈업 고속촬영(슬로모션)으로 부각시켰다. 성적인 느낌이 강할 수밖에 없다. 노골적인 먹방에 성적인 소녀 코드까지 더해 포르노적 본능 자극성이 더 강해졌다.
시청자가 동물적 수준이라면 그저 빠져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우리는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라며 봉기했다. 실제로 《잘 먹는 소녀들》의 너무나 노골적인 내용은 강한 불편함을 초래했다. 개인적으로 소비하는 인터넷 방송이라면 이런 포르노적 내용도 낄낄대며 즐길 수 있겠지만, 버젓한 방송 프로그램이 그렇게 나오자 시청자들 내부에서 ‘이건 아니다’라는 경종이 울렸다.
걸그룹은 방송가에서 다양하게 소비된다. 섹시한 요부, 순수한 소녀, 최근엔 카리스마 넘치는 여전사 이미지까지 여러 캐릭터를 소화해야 한다. 예능에선 일종의 예쁜 꽃처럼 외모로 소비되거나, 출연자들의 성적 욕망의 대상 혹은 로맨스 판타지의 대상으로 소비된다. 그런 역할에 맞추기 위해 항상 이미지를 가꿔야 한다. 걸그룹이 지켜야 할 본분을 알아본다는 《본분 금메달》(KBS2)에선 언제나 귀여운 미소를 짓는 얼굴과 몸무게를 정직하게 밝히는 걸 걸그룹의 본분이라고 제시했었다. 몸무게를 밝히라는 건 항상 다이어트 관리에 만전을 기하라는 얘기다. 실제로 걸그룹의 몸이 조금만 불어나도 네티즌은 질타한다.
그런데 또 한편으론 리얼버라이어티 먹방 때 내숭 떨지 않고 먹성 좋게 먹어대는 모습을 선보여야 한다. 몸이 불어나도 욕을 먹지만 음식 앞에서 몸을 사려도 욕을 먹는다. 급기야 《잘 먹는 소녀들》에선 걸그룹에게 먹방 대결까지 요구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먹어대기만 하는 방송이다. 이렇게 먹다 살이 찌면 몸관리에 불성실했다며 대중들은 돌아설 것이다.
이것은 걸그룹 멤버를 인격이 아닌 시청자의 욕망을 해소해주는 인형 정도로 소비하는 현상이다. 그때그때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 즉 순수·섹시·날씬·털털 등 다양한 옵션이 바로바로 구현되는 존재로 소비되는 것이다. 연예인으로 성공하기 위해서 걸그룹은 기꺼이 이 구조 속에 몸을 던져야 한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하다 말고 불어터진 짜장면과 눅눅해진 치킨을 카메라 앞에서 탐식하는 연기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잘 먹는 소녀들》은 이런 구조의 일단을 적나라하게 보여줬기 때문에 더더욱 시청자를 불편하게 했다. 아무리 본능을 자극해도 시청자는 이런 불편함을 인지하는 존재였다.
Franck Pourcel / Adoro
ㄴ출처: 다음 블로그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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