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경향 -한겨레
그 기자는 왜 빨아주는 기사를 썼을까요? 731 오마이뉴스
[김영란법과 언론인④] 취재윤리가 무너진 기자사회
신세계 돈으로 미국 가고 보험협회 돈으로 유럽 간 기자들
[김영란법과 언론인③] 공짜 해외취재 후 홍보성 기사 쏟아내는 나쁜 관행은 계속될까
기사 주고 광고 받고, 김영란법 없이 끊을 수 있나?
[김영란법과 언론인①] 언론 윤리 눈감은 채 '반대'만 외치는 언론
기업 홍보·대외협력부서, 김영란법에 대응 전략 짜느라 고민중 731한겨레
‘킬로미터 빌딩’ 시대 성큼…도시가 구름 위로 솟는다 8.1 한겨레
A4용지도 떨어져, 유가족들이 출장 기차표 끊어주기도 731미디어오늘
외부세력’ 차단하고 ‘착한 국민’ 프레임으로 고립 유도 731미디어오늘
연봉 1억 넘는 근로자 1400여명 ‘소득세 0원’··· 1년 새 27배 731경향
경향사설]경기침체 속 집값만 오르는 기형적 한국경제 731
왜곡된 통계는 나쁜 권력이다 8.1 더 스쿠퍼
한국 소비자들만 여전히 '봉' 8.2 조선
차 유리에 붙이는 태양전지판 개발 8.2
백합이 썩을 때 8.3 경향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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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중국, 한국 연예인 방송금지” 보도는 오보
석유공사, 카자흐스탄 잠빌 광구 '2700억' 손해 보고 헐값 매각 8.4 뉴시스
'운동권' 배제한 이대생들, 그들의 특이한 승리 8.4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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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건적·냉전적 상상력 대신 민주적인 상상력을 8. 9주간경향
제주는 지금 ‘러시아워’ 8.4 한겨레21
8.10 주간경향 -한국
8.5 기호 -8.4 한겨레
8.4한국-경향
8.4 미디어오늘 -내일
8.4 금강-8.3한겨레
8.3한국-민중
8.3내일-금강
8.3 경향-8.2한국
8.3 기호-8.2한겨레
8.2 경향-금강
8.2 기호-내일
8.2 민중-8.1한국
8.1 한겨레-민중
8.1 매일 대구-경향
8.1금강-내일
8.1 시사인-7.31민중
8.1~8.5 경향 장도리
그 기자는 왜 빨아주는 기사를 썼을까요? 731 오마이뉴스
[김영란법과 언론인④] 취재윤리가 무너진 기자사회
언론은 김영란법의 언론인 적용 여부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하지만 언론도 부패와 청탁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여론이 왜 크게 일어났는지 자성하는 언론을 찾기 어렵다. 많은 언론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언론 윤리를 저버리고 있다. <오마이뉴스>도 여기에서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김영란법이라는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있어야 언론이 바뀔 수 있을까. <오마이뉴스>는 언론의 자성을 기대하며 언론의 민낯을 공개한다. - 기자말
'빨아주는 기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노골적으로 누군가를 띄워주는 기사를 뜻합니다. 기자들 사이에서 쓰는 말입니다. 다소 저속해 보이는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은 경멸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기자와 쓰레기를 합친 '기레기'라는 단어가 널리 퍼진 것도, 이러한 기사들 때문이겠죠.
기업 광고가 수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우리나라 언론은 경제 권력에 취약합니다. <오마이뉴스>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겠지요.
이런 상황 탓에 언론계에는 기업 띄워주는 기사를 써야하는 기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이라고 이런 기사를 쓰고 싶겠습니까. 아마 다들 스스로 부끄럽다고 느낄 겁니다. 기자들은 자존심이 셉니다. 많은 기자들은 정치·경제 권력을 감시하는 기자가 되겠다는 초심을 잊지 않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 생각은 얼마 전 여지없이 깨졌습니다. 한 언론사 A기자와 통화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중견기자인 그의 말이 아직도 뇌리에 울립니다.
"기업들 돈으로 해외출장 다녀왔는데, 비판 기사 쓰라고? 말도 안 되는 얘기지."
'기레기'라는 말은 사라질 수 있을까요?
▲ 자료사진. ⓒ pixabay
제가 A기자에게 전화한 건 신세계그룹이 후원한 해외취재에 대해 물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신세계는 지난달 21~26일 63개 매체의 기자들을 데리고 미국 플로리다에 다녀왔습니다. 기자들은 이곳에서 미국 유통업체 터브먼이 운영하는 쇼핑몰 4곳을 둘러봤습니다. 신세계와 터브먼이 왕복항공권과 숙박비를 비롯해 모든 비용을 댔습니다. 해외 취재를 다녀온 뒤, 이곳 쇼핑몰 홍보성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기사에는 터브먼과 신세계그룹이 손을 잡고 오는 9월 문을 여는 국내 최대 규모의 쇼핑몰도 소개됐습니다. 신세계는 기자들의 해외취재 비용을 지원한 대가로 막대한 홍보효과를 거둔 셈입니다.
A기자도 이번 해외취재를 다녀왔습니다. 그에게 이번 취재의 사실관계를 물었습니다. 그는 "다른 업계 해외취재를 가면 놀러 가는데, 이번에는 국립공원 한 군데밖에 안 갔다", "진짜 재미없었다. 다시는 유통업계 해외출장을 가지 않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놀랐습니다. 공짜 해외취재에 대한 그의 생각은 여느 기자들과 많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5월 손해보험협회 기자단이 협회 후원으로 외유성 유럽 취재에 다녀온 것을 비판하는 기사를 썼습니다. 이곳 기자단 간사는 외유성 취재를 인정하면서도 "열심히 취재했다는 점을 감안해 달라"고 했습니다. 반면, A기자는 "이번 해외취재는 외유가 아니었다"면서 짜증을 냈습니다.
A기자에게 돌직구 질문을 던졌습니다. "기업 후원으로 해외취재를 가서, 기업이 원하는 홍보성 기사를 쓴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의 답변입니다.
"언론사가 (비용을) 부담했다면, 나도 안 갔다. 내가 왜 가나. 그런 식으로 하면 해외출장은 아무도 안 간다. 업체 빨아주는 기사를 쓰는데, 언론사가 왜 비용을 내고 (해외취재를) 가나. 말도 안 되는 얘기지."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사가 아닌 기업 홍보성 기사를 써야 하는 해외취재라면, 가지 않는 게 맞겠지요. 기업이 해외취재 비용을 댄다고 해서, 여기에 응하는 건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는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A기자와 15분가량 통화했습니다. 저는 해외취재를 다녀온 후 홍보성 기사를 쓴 것을 두고 취재윤리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고 여러 차례 물었습니다. A기자는 "내가 잘못 갔다는 뉘앙스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서 버럭 화를 냈습니다. 제게 모욕적인 말도 했습니다. 대화는 더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씁쓸했습니다. 기자들이 "기레기" 소리를 듣고 언론이 "찌라시"라 불리는 세태와 맞물려,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28일 헌법재판소가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적용 대상에 언론인을 포함시킨 것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결정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겠죠.
한 경제지 기자는 제게 "이러한 잘못된 관행에 문제제기하는 목소리가 최근에는 없었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A기자는 자신과 전화통화한 내용을 기사로 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이 기자들의 자성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 일부를 공개했습니다. 그에 따른 비판이 나온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기자 사회가 조금이라도 바뀌길 기대해 봅니다.
신세계 돈으로 미국 가고 보험협회 돈으로 유럽 간 기자들
[김영란법과 언론인③] 공짜 해외취재 후 홍보성 기사 쏟아내는 나쁜 관행은 계속될까
▲ 지난달 29일 미국 플로리다 주 사라소타에 있는 쇼핑몰 ‘더 몰 앳 유니버시티 타운 센터’(UTC 몰)를 소개한 한 일간지 기사. 63개 매체 기자들은 같은 달 21일부터 5박 6일 일정의 플로리다 취재를 다녀온 후, 홍보기사를 썼다. 취재비용은 신세계그룹과 미국 유통업체 터브먼이 댔다. ⓒ 해당 일간지 홈페이지 갈무리
'강렬한 햇살과 40도를 웃도는 불볕 더위 탓에 찜통과 같은 외부와 달리 쇼핑몰 안은 여유롭고 쾌적했다. (중략) 한 번 들어오면 떠나기 싫은 곳이었다.'
미국 플로리다 주 사라소타에 있는 쇼핑몰 '더 몰 앳 유니버시티 타운 센터'(UTC 몰)를 소개한 한 일간지 기사의 한 대목이다. 미국 유통업체 터브먼(Taubman)이 운영하는 UTC 몰에 다녀온 기자가 지난달 28일에 보도한 이 기사에는 이곳 쇼핑몰의 장점이 대거 부각됐다.
'자연 채광 덕에 낮엔 별도 조명이 없이도 밝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대형 냉방시설에선 시원한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에스컬레이터 옆에 마련된 어린이 놀이터도 가족 단위 고객들에게 유용해 보였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기사 말미에는 터브먼이 올 9월 신세계그룹과 손잡고 한국에 세울 대규모 쇼핑센터가 소개됐다.
이날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쏟아졌다. 기자들이 신세계와 터브먼이 댄 돈으로 해외취재에 다녀온 뒤, 홍보 기사를 쓴 것이다. 이를 두고 언론 윤리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한 '공직자와 언론인들이 1회에 100만 원, 매 회계연도에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취지와도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세계 돈으로 공짜 해외취재 간 기자들
<오마이뉴스>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신세계는 유통업계를 출입하는 언론사에 5박 6일의 미국 팸 투어(Familiarization Tour) 일정을 알렸고 63개 언론사가 신청했다. 팸 투어는 사전 답사 여행을 뜻한다. 기자 63명은 지난달 21일 미국으로 떠났다.
팸 투어의 주요 일정은 터브먼이 플로리다 주에서 운영하는 쇼핑몰 4곳을 둘러보는 것이다. 기자들은 22일 마이애미에 있는 '돌핀 몰', 23일 네이플스 소재 '워터사이드 샵', 템파 소재 '인터내셔널 플라자', 24일 사라소타의 UTC 몰을 둘러봤다. UTC 몰에서는 터브먼의 로버트 터브먼 회장이 기자간담회를 열고 기자들에게 쇼핑몰을 소개했다.
기자들은 취재와 상관없는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에도 다녀왔다. 플로리다 해변에서 시간을 보낸 기자들도 있었다. 팸 투어 비용은 모두 신세계와 터브먼이 댔다. 왕복항공권, 현지 이동 차량 대여, 4성급 호텔에서의 1인 1실 숙박, 식사 등의 비용을 합하면, 기자 한 사람 당 수백만 원의 비용이 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그룹 홍보팀 관계자는 "팸 투어는 모두 취재 일정으로 짰다"면서 "국립공원에 다녀온 것은 현지 문화를 이해하자는 차원으로 취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신세계가 해외취재 비용 지원으로 언론 보도에 영향력을 미치려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드릴 말씀이 없다"면서 말을 아꼈다.
휴지 조각된 언론 윤리
기자들이 기업이 대준 돈으로 해외취재를 다녀온 후 홍보성 기사를 쓰는 것을 두고, 취재윤리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은 '회원은 취재원으로부터 제공되는 일체의 금품, 특혜, 향응을 받아서는 안 되며, 무료여행, 접대골프도 이에 해당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주요 신문이 준수하고 있는 신문윤리실천요강은 '언론사와 언론인은 취재, 보도, 평론, 편집에 관련하여 이해당사자로부터 금품, 향응, 무료여행 초대, 취재여행의 경비, 제품 및 상품권, 고가의 기념품 등 경제적 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기업이 비용을 지불하고 연수나 팸 투어 형식의 해외취재를 제안할 때 언론인이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윤리적으로 맞지 않다. 독립적이고 공정한 보도에 위해를 가할 수 있다"면서 "미국에서도 언론의 독립성이라는 가치 때문에 아무리 호의라고 해도 언론인들이 경제적인 지원을 받지 않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만약 김영란법이 시행된 이후 이러한 해외취재가 진행됐다면, 기자들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영란법 8조(금품 등의 수수 금지)를 어기는 공직자나 언론인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해외취재 항공권, 숙박비 등을 합치면 모두 100만 원이 넘는 금품에 해당될 수 있다. 공짜 해외 취재도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나쁜 관행을 스스로 끊지 못하는 언론
▲ 손해보험협회 후원으로 진행된 5월 12~20일 보험협회 출입기자단의 유럽 취재 공식 일정은 ▲유럽 보험사기 세미나 참석 ▲독일보험협회 방문·취재 ▲현지 세미나 ▲프랑스 도로안전협회 및 악사 프리벤션 방문·취재 등으로 짜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일정 대부분이 관광·쇼핑이었다. ⓒ 선대식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지난달 손해보험협회에 출입하는 16개 매체 기자들이 지난 5월 8박 9일의 일정으로 유럽 취재에 다녀온 사실을 보도했다. 손해보험협회가 비용을 모두 댔고, 기자들은 귀국한 뒤 손해보험협회에 유리한 기사를 썼다. 특히 손해보험협회 기자단의 이번 해외취재 일정은 대부분 관광·쇼핑으로 채워졌다. 해외취재에 참가한 한 기자는 "해외취재가 아니라 공짜여행 아니었느냐"는 질문에 "반론을 할 여지가 없고, 그에 대해선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보험협회 기자단의 해외취재는 매년 두 차례씩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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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 돈으로 출장 간 기자들 일정 대부분이 '관광·쇼핑'
보험협회는 왜 기자단 해외 취재에 돈을 댔을까
▲ 손해보험협회·생명보험협회 출입기자단은 손해보험협회 후원으로 지난 5월 유럽 취재를 다녀온 후, 보험사기의 심각성과 독일의 보험사기 대처 방안 등을 다룬 언론 보도를 내놓았다. ⓒ 네이버 화면 갈무리
▲ 손해보험협회·생명보험협회 출입기자단은 지난해 6월 미국 취재를 다녀온 후,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언론 보도를 내놓았다. ⓒ 네이버 화면 갈무리
기자들 사이에서도 잘못된 관행을 끊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경제지 기자는 "업계는 해외취재 지원을 비용 대비 효과가 큰 홍보 방법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언론사는 업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장기적으로 광고를 유치할 수 있고, 소속 기자들에게 해외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어 해외취재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면서 "이러한 나쁜 관행이 지속되면서, 기자들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지금까지 공짜 해외 취재를 비롯한 비용을 취재원에게 전가하는 나쁜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언론은 공정한 보도를 하지않으면 국민이 피해를 받고 있다"면서 "언론이 먼저 자정작업에 나섰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김영란법이 통과됐다. 이런 관행들을 끊는 혁명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기사 주고 광고 받고, 김영란법 없이 끊을 수 있나?
[김영란법과 언론인①] 언론 윤리 눈감은 채 '반대'만 외치는 언론
▲ '김영란법' 국회 본회의 통과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이 2015년 3월 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의원 247명 가운데 찬성 226표, 반대 4표, 기권 17표로 통과됐다. 여야 의원들의 표결 결과가 본회의장 전광판에 찬성은 초록색, 반대는 붉은색, 기권은 노란색으로 표시되고 있다. ⓒ 남소연
156건.
지난 5월 한 달 동안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신문윤리·신문광고윤리강령과 그 실천요강을 위반한 기사와 광고의 숫자다. 언론 윤리 위반 판정을 받은 기사의 대부분은 홍보성 기사다. 대표적으로 대학교 3곳과 특정 시계 브랜드를 홍보한 <조선일보>의 특집 기사를 꼽을 수 있다. 이들 대학교와 시계 브랜드는 이 신문에 광고를 싣기도 했다.
신문윤리위원회는 이 기사와 광고를 두고, '어떠한 경제세력의 부당한 압력, 또는 금전적 유혹이나 청탁을 거부해야 한다'고 명시한 신문윤리실천요강 1조 2항을 위반했다고 봤다. <조선일보>의 보도 태도에 대한 위원회의 평가는 혹독했다.
"이러한 신문 제작 태도는 자사와 특정 대학 또는 특정 기업의 영리를 위해 기사의 정확성·객관성·공정성 원칙을 저버렸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더욱이 특정 대학이나 기업에 유리한 편향된 정보를 독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면서 해당광고까지 싣는 것은 신문의 신뢰성과 공신력을 크게 훼손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보도 태도가 언론에 넓게 퍼진 관행이라는 것이다. 매달 100건이 넘는 언론 윤리 위반 기사가 쏟아지고 있지만, 관행은 계속되고 있다. 28일 오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김영란법)의 일부 조항 위헌 여부를 다루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앞두고, 언론 윤리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언론인에게 김영란법을 적용한 것은 '기레기'로 상징되는 언론 불신이 확산되는 등 언론 윤리가 땅에 떨어진 상황 때문이었다. 여전히 언론이 부패와 청탁에서 얼마나 자유로운지 의혹의 시선을 보내는 국민이 많다. 언론인을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서 빼야 한다는 언론의 목소리를 두고, 이제는 국민에게 신뢰받는 언론이 됐느냐는 질문이 제기된다. 국민의 대답은 '아니오'다. 지상파 방송사, 보수언론·경제신문과 이들의 자회사인 종합편성채널 등이 보여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성매매 의혹 보도 태도는 왜 언론이 국민에게 신뢰받지 못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1년 6개월의 시간... 자정 기회 스스로 차버린 언론
2015년 3월 국회에서 통과된 김영란법은 법 시행까지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뒀다. 언론 입장에서는 취재원으로부터 기사의 공정성에 영향을 미치는 각종 접대, 향응, 광고 등을 받는 관행을 끊고, 언론 불신을 떨쳐낼 기회를 얻은 셈이다. 하지만 언론의 첫 일성은 국민의 기대와는 멀었다.
한국기자협회는 김영란법의 국회 통과 사흘 뒤 대한변호사협회를 통해 헌법소원심판을 제기했다. 이들은 당초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김영란법에 언론인이 들어간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현재의 법이 시행되면, 언론 자유가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는 논리를 폈다.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김영란법 공개 변론에서 최대권 서울대 법과대학 명예교수는 언론의 자정능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김영란법의 언론인 적용은 헌법적으로 정당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기자협회를 대리한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한국)언론의 부패지수가 세계에서 밑바닥 수준인가, 그런 증거가 어디 있나", "언론의 부패지수는 낮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세월호 참사 이후 김영란법이 급물살을 탔다는 의견과 관련해, "세월호 참사가 언론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라고 따졌다. 개별 언론 역시 언론 윤리를 지키자고 주장하기보다는 김영란법 흔들기에 나섰다. 특히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경제와 농수축산업이 위축된다는 논리로 김영란법을 비판했다. 언론의 자유가 훼손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기업 홍보·대외협력부서, 김영란법에 대응 전략 짜느라 고민중 731한겨레
‘부정정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일명 김영란법)이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을 받아 원안 그대로 9월28일부터 시행되는 것으로 확정되자, 기업들이 혼란에 빠졌다. “법이 시행되니 당연히 따라야 한다”면서도 “그렇다고 업무를 안할 수도 없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홍보나 대관업무 부서 임직원들은 예산과 인력 감소까지 우려하며 고민에 빠지는 모습이다. 당장 9월 중순에 돌아오는 추석 선물을 보낼지 말지를 놓고도 서로 눈치를 보고 있다.
우선 “법을 지켜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4대 그룹의 한 홍보담당 임원은 “계열사 모든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위법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는 내용의 교육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그룹의 홍보임원은 “내부 지침에 따라 이미 9월부터는 골프와 저녁 약속을 잡지 않고 있다”며 “다른 그룹 쪽 얘기를 들어보니, 다들 시범 케이스로 걸리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고민은 “그렇다고 홍보·대관 업무를 소홀히 할 수는 없고, 김영란법이 면피가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이런 고민은 이른바 ‘오너 리스크’가 큰 기업일수록 크다. 오너가 치는 ‘사고’로 언론을 자주 찾는 한 대기업 홍보담당자는 “언론사 출입기자나 데스크들과 스킨십을 하는 이유가 뭐겠냐. 회장님과 관련해 부정적인 기사가 났을 때, 기사를 줄여달라거나 회장님 이름을 빼달라거나 우리 쪽 해명을 더 담아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 아니냐. 그런데 김영란법 시행으로 술 한잔 마음놓고 못하게 생겼으니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기업들은 “김영란법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비판도 쏟아낸다. 4대 그룹의 한 홍보임원은 “보통 사람들은 식사비 상한 3만원, 선물값 상한 5만원, 경조사비 상한 10만원도 많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3만원으로는 한정식집·일식집·소고기집은 꿈도 못꾸고, 삼겹살집에 가도 2인분에 소주나 맥주 2~3병 곁들이면 초과한다. 출입기자나 데스크들의 승진 인사 때 축하 뜻으로 보내던 난도 못보낸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웃지못할 상황도 연출되고 있다. 올해 송년회를 사실상 9월로 당기는 촌극이 대표적이다. 한 대기업 홍보실장은 “출입기자 대상 송년회를 9월 중순쯤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 통신업체 홍보담당자는 “말복 행사를 열어 올해 출입기자들과 함께 하는 송년회를 대신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4대 그룹 계열사 홍보임원은 “일단 김영란법 시행 전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9월 중순까지 매주 토·일요일마다 골프 약속이 차 있다”고 말했다.
‘킬로미터 빌딩’ 시대 성큼…도시가 구름 위로 솟는다 8.1 한겨레
올해는 인류 건축사에서 새로운 장이 시작된 해이다. 300미터 이상 건물은 세자릿수, 200미터 이상 건물은 네자릿수 시대로 진입했다. 세계초고층도시건축학회(CTBUH)는 높이 300미터 이상을 초고층 건물로 부른다. 300미터는 가장 낮은 구름층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7월 현재 106개를 기록중이다. 이 가운데 절반이 신축 건물이다. 5년 사이에 2배가 늘었다. 초고층 1호인 크라이슬러 빌딩(319.4미터) 이후 50번째 건물이 들어설 때까지 80년이 걸렸다. 반면, 이후 50개는 불과 5년(2010~2015) 사이에 들어섰다. 강부성 한국초고층도시건축학회 회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동안 뜸했던 초고층빌딩 붐이 다시 일고 있다”고 말한다. 놀라운 건 앞으로 예정돼 있는 것들이 더 많다는 점이다. 전세계에 걸쳐 100여개의 초고층빌딩 건설 공사가 진행중이다. 이대로라면 2020년 200개에 이른다.
도시의 고층화 현상 한편엔 세계 최고층 경쟁이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다. 높이가 828미터이다. 2010년 이후 6년째 왕좌를 지키고 있다. 그 이전까지 10여년간 세계 최고 자리는 아시아 몫이었다. 1998년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타워에 이어 2003년 대만의 101타워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 이전 1세기 동안 세계 최고의 마천루는 모두 미국에 있었다.
▲구름 위로 솟아 있는 두바이 초고층 빌딩들. 가운데 솟아 있는 건물이 부르즈 칼리파다. 유튜브 갈무리
영원한 강자는 없다. 부르즈 칼리파 역시 머지않아 1위 자리를 내줘야 한다. 2019년 말 완공 예정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 타워는 높이가 1000미터를 넘는다. 정확한 높이는 비밀에 부쳐져 있다. 빌딩 높이에 ‘㎞’ 단위를 쓰는 사상 첫 건물이 된다. 7월 현재 44층까지 올라간 상태다. 건축학계는 세계의 스카이라인이 한 차원 높아진 것을 반영해 극초고층빌딩(Megatall)이란 신조어도 만들었다. 높이 600미터 이상인 건물을 가리킨다. 현재 3개에 불과한 극초고층빌딩도 5년 안에 7개로 늘어난다.
아시아와 중동이 세계 최고층 경쟁을 벌이는 동안, 마천루 원산지인 미국 뉴욕의 맨해튼은 초고층 숲으로 변해가고 있다. 2004년 이전 맨해튼에서 높이 700피트(213미터) 이상인 초고층빌딩은 28개였다. 이후 10여년간 13개가 늘었다. 그런데 앞으로 34개가 더 들어선다. 15개는 이미 공사가 진행중이다. 뉴욕의 상징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 졸지에 왜소한 건물로 전락할 처지다. 이제 맨해튼 거리의 보행자들은 구름 한 점 없는 대낮에도 햇빛을 쬐기 어려울 전망이다.
1천억원대 주택이 있는 곳
초고층 붐 뒤엔 인구 증가와 도시 비대화가 있다. 유엔은 현재 40억인 세계 도시 인구가 20년 안에 60억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인구 1000만이 넘는 메가시티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현재 28곳인 메가시티는 2030년엔 41곳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사람과 함께 돈이 몰려들면서 도심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도심의 금싸라기 땅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법은 높이 짓는 것이다. 건물 안에서 생활과 일에 필요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면 자원 효율성도 높아지고 입주자를 찾기도 수월해진다. 강부성 회장은 “과거의 초고층빌딩은 사무용이었으나 효율성을 중시하면서 요즘엔 대부분 사무와 주거, 엔터테인먼트를 겸한 복합용도로 짓고 있다”고 말했다.
초고층 붐의 또 다른 추진축은 부의 편중이다. 초고층 건물을 짓는 데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다. 롯데월드타워를 건설하는 데는 4조원이 들어갔다. 분양가도 그만큼 비싸다. 이는 초고층빌딩을 새로운 상류층 구역으로 만드는 요인이다. 초고층 세자리수 시대를 연 100번째 건물이 뉴욕의 96층 아파트 ‘432 파크 애비뉴’(425.5미터)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아파트 펜트하우스의 분양가는 9500만달러(약 1천억원)이다. 가장 작은 평형도 700만달러(약 80억원)였다. 인근 ‘원57’(306미터)의 펜트하우스는 1억달러를 넘겼다. 이 건물들이 들어선 뉴욕 57번가는 그래서 ‘억만장자의 거리’로 불린다.
▲연말 완공을 앞둔 롯데월드타워. 롯데물산 제공
▲사상 최초로 빌딩 높이를 킬로미터 단위로 끌어올릴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타워.
▲미래 도쿄 설계의 하나로 제안된 ‘스카이마일 타워’. 해수면 상승을 비롯한 자연재해 안전지대로 설계했다.
뉴욕에는 2020년까지 이런 아파트가 무려 14개가 들어선다. 센트럴파크의 조명 위로, 작은 공중도시가 생기는 셈이다. 초호화 주택의 소유주는 그냥 부자가 아니다. 중동의 석유부자나 개발도상국의 신흥재벌 같은 슈퍼부자들이다. 실제로 ‘432 파크 애비뉴’ 펜트하우스 구입자는 중국의 억만장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이미 세계 상위 1%의 재산은 나머지 99%의 재산을 합친 것보다 많아졌다. 최상위 62명의 재산은 하위 50%(36억명)의 재산과 맞먹는다. 초고층빌딩 붐은 21세기 ‘1% 대 99%’ 사회가 연출하는 새로운 도시 풍경이 돼가고 있다.
지구온난화도 초고층빌딩 건축에 대한 유혹을 불러일으킨다. 상하이, 도쿄, 뉴욕, 뭄바이 등 주요 대도시 상당수는 바다를 끼고 있다.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1미터 가까이 상승할 경우 이 도시들이 물에 잠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초고층빌딩은 이에 대비한 대안의 하나다. 올해 초 미래의 도쿄로 제안된 ‘스카이 마일 타워’가 그 사례다. 2045년 도쿄 프로젝트의 하나로 높이 1.7㎞ 빌딩을 짓자는 내용이다. 해수면 상승으로부터 안전한 지대를 만들자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주민 5만5000명의 거주시설과 쇼핑몰, 음식점, 호텔, 체육관, 의료기관 등을 입주시켜 최대 50만명을 수용한다.
지상에서 수백미터 높이 솟아 있는 공간은 지상과 단절된 공간이다. 지표면의 도시 소음은 모두 증발해버리고, 눈에 보이는 것들은 전부 다 납작하게 보인다. 한 거주자는 <뉴욕타임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커다란 투명 유리구슬 안에 있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초고층빌딩은 그러나 저층에 사는 사람들의 일조권과 조망권을 빼앗아 버린다. 뉴욕에서는 이미 초고층빌딩들 때문에 센트럴파크에서 일광욕을 즐길 수 없다는 불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초고층빌딩은 특히 새들에겐 치명적 침입자이다. 빌딩의 환한 조명과 유리에 반사된 빛은 새들의 방향 감각을 마비시킨다. 뉴욕에서만 한 해 10만마리 이상이 초고층 유리벽에 부딪혀 희생된다고 한다.
▲2030년의 뉴욕 스카이라인 예상도. ‘억만장자의 거리’로 불리는 뉴욕 57번가는 왼쪽에 있다. 출처 비주얼 하우스 웹사이트
모든 게 해결되는 수직도시
인구증가, 도시화, 온난화가 도시를 수직으로 확장시키지만
빌딩 그림자가 뒤덮은 거리엔 높이에서 낙오된 서민들만…
뉴욕에서만 한 해 10만마리 이상이 초고층 유리벽에 부딪혀 희생된다고 한다.
미래 예측 보고서들은 초고층빌딩 붐이 결국 공중도시로 이어질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21세기 말까지 이어질 인구의 증가와 도시화, 그에 따른 땅값 상승, 자원 부족 같은 것들이 빌딩의 높이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말 이라크의 에이엠비에스(AMBS)건축이 내놓은 건축 계획은 그런 시대가 머지않았음을 시사한다. ‘걸프의 신부’라는 이름의 이 건물 예정지는 이라크 남부 바스라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이 있던 곳이다. 높이 1152미터, 지상 230층짜리 이 건물은 제다 타워보다도 훨씬 높다. 하지만 그것이 목적이 아니다.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수직도시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사무실, 호텔, 아파트뿐 아니라 자체 교통 시스템과 학교 병원, 스포츠 및 엔터테인먼트 시설 등이 모두 들어서도록 할 계획이다. 더 이상의 도시 팽창 없이 인구 과밀화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목표인 2025년 프로젝트에 제안된 대안이다. 이미 세계 건축계에선 엑스-시드 4000(4000미터, 도쿄), 얼티마 타워(3218미터, 미국), 두바이 시티 타워(2400미터, 아랍에미리트연합) 등 높이 2000미터가 넘는 빌딩 제안서가 7개나 나와 있다. 인구 100억 시대를 대비한 설계들이다.
삼성의 해외 자회사가 지난해 영국인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100년 후 현실이 될 것 같은 도시 풍경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인 적이 있다. 그 결과 ‘도시 전체를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마천루의 출현’이 톱10 중 8위로 꼽혔다. 값싸고 강력한 신소재 발명을 전제로 한 것이지만, 초고층빌딩은 그만큼 친숙한 대응 방식이라는 걸 뜻한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그러한 높이에 이르렀을 때 과연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게 될지 예견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더욱이 땅에서 멀어지는 초고층빌딩은 심리적 한계가 뚜렷한 방식일 수도 있다.
한국이 초고층빌딩 시대를 연 건 최근이지만, 사실 한국은 이미 세계적인 고층빌딩국가 반열에 올라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구밀도와 도시화가 원동력이라 할 만하다. 높이 200미터(50층) 이상 건물이 50개가 넘는다. 세계 네번째다. 초고층빌딩 붐은 그래서 먼 미래나 남의 일 같지 않다. 초고층빌딩은 과연 지속가능한 도시의 미래 대안으로 진화해갈 수 있을까? 아니면 극심한 부의 편중을 상징하는 21세기 도시 기념물에 그치고 말까?
새 마천루는 경제위기의 신호?
마천루는 하늘을 긁는 누각이란 뜻이다. 그 원조는 구약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바벨탑이다. 바벨탑은 더 높은 곳에 오르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 지나친 욕망은 신의 노여움을 샀지만,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마천루를 아무나, 아무 때나 지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세계 최고층 기록이 미국에서 아시아를 거쳐 중동으로 넘어간 밑바탕엔 도도한 돈의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
1999년 독일계 투자은행의 자산분석가였던 앤드루 로런스는 그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 1800년대 이후 세계 최고층 빌딩과 경기 사이클을 비교했다. 그 결과 양자 간에 불편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알아냈다. 핵심은 새로운 세계 최고층 빌딩 건축은 경기 침체의 전조라는 것. 그에 따르면 경기 호황이 끝나고 불황으로 돌아설 즈음 건축 투자가 최고점을 찍는다. 즉 통화당국이 돈을 푸는 시기에 건설이 시작돼, 경기가 과열되는 시기에 공사가 진행되고, 불황이 임박해질 때쯤 건물이 완공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마천루 지수’로 명명했다.
세계 최고층 건물의 완공 시기는 그의 주장을 어느 정도 뒷받침한다. 9·11 테러로 사라진 뉴욕 세계무역센터의 두 건물(1972~1973, 417m·415m)과 윌리스타워(옛 시어스타워, 1974, 442m)가 들어선 때는 미국이 실업과 인플레라는 스태그플레이션 진창에 빠졌을 때였다.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타워(452미터) 쌍둥이 건물이 세계 1위로 올라선 1998년은 아시아 외환위기 직후였다.
루트비히폰미제스협회의 선임연구원 마크 손턴은 마천루지수 모델을 원용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한 바 있다. 그는 2007년 8월 “두바이에 새로운 마천루(부르즈 칼리파) 기록이 세워지고 있다. 마천루지수에 따르면 마천루의 완공을 앞두고 경기 침체 또는 주식시장 붕괴가 일어난다”고 진단했다. 이때는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막 시작될 때였다. 2009년 11월 아랍에미리트연합의 국영개발업체 두바이 월드는 건물 완공을 앞둔 시점에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부르즈 칼리파가 공사를 시작한 때는 세계 경제가 거품을 향해 치닫던 2005년 1월이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의 크라이슬러빌딩(1930년, 319m)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1931년, 381m)이 미 대공황 직후에 완공됐다.
공사가 한창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타워를 마천루지수와 연관시켜 보는 시각도 있다. 영국 바클레이스 투자은행 전문가들은 지난해 “다음 마천루 쇼크는 동쪽에서부터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타워, 중국 후난성 창사의 스카이시티(838m), 인도 뭄바이의 세계 최고층 아파트 월드원(442m) 등을 근거로 들었다. 이들은 지나치게 비정상적으로 높은 빌딩의 건축은 그 나라의 금융자원이 비합리적으로 쓰인다는 걸 나타내는 신호라고 말했다. 이는 결국 거품경기를 만들고, 거품은 어느 순간 터지고 만다는 것. 사우디는 장기간 저유가로 지난해 막대한 재정적자가 난 상태다. 제다타워는 새로운 위기의 신호일까?
그러나 마천루지수의 효용성을 부정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 럿거스대 연구진은 역대 세계 최고층 빌딩 14개의 건축 발표일과 완공일을 분석한 결과 마천루지수에 들어맞는 사례는 절반인 7개뿐이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초고층 빌딩 시장에 심리적, 자존적 동기가 존재하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체계적인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경기 사이클을 거치면서 건물 높이가 올라간다는 사실은 건물 높이가 대체로 소득 증가에 합리적으로 반응한 결과라는 걸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A4용지도 떨어져, 유가족들이 출장 기차표 끊어주기도 731미디어오늘
예산 지원 끊긴 세월호 특조위, 조사관들 갹출할 상황 “선체 조사는 하게 해준다고? 강제 해산시켜놓고?”
“기자님 죄송한데 패널 사례비는 못 드릴 것 같습니다. 예산이 안 나오고 있어서…”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가 주최하는 토론회의 패널로 나와달라는 섭외 전화를 받았을 때 특조위 측으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특조위 조사관들은 최근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정부가 특조위의 조사기간이 끝났다며 예산을 배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월호 특조위의 별정직 공무원, 조사관들은 무급노동을 하고 있다. 최근 그만둔 4명을 제외한 54명의 별정직 공무원들이 돈을 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다. 특조위의 한 관계자는 25일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오늘이 월급날인데 월급이 안 들어왔다. (정부가 예산을 안 줬으니) 안 들어오는 게 당연하다”며 “파견직 공무원들은 원래 근무지에서 나오지만 별정직들은 월급은 물론 출장비도 못 받고 있다”고 전했다.
‘0원’이 된 특조위 예산, 카트리지 살 돈도 없어
특조위는 지난달 중순 2016년 하반기 예산으로 104억 원을 요청했다. 104억 원은 지난해 상반기를 기준으로 한 예산 규모다. 특조위는 지난해 8월 89억 원의 예산을 배정받았다. 159억 원을 요청했지만 44%를 삭감 당했다. 특조위 관계자는 “조사활동비 관련해 조사국, 안전사회국, 피해자지원국에서 요청한 예산을 80~90% 깎았다. 아무리 필요하다고 해도 깎을 것이라 생각해서 작년 전반기 예산편성을 근거로 더 깎을 게 없도록 89억 원을 잡아두고 선체조사비 23억 원을 더해 104억 원을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7월 1일 오전 서울 중구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사무실의 책상 곳곳이 파견 직원들의 근무 종료로 텅 비어 있다. ⓒ포커스뉴스
하지만 돌아온 예산은 ‘0원’이다. 기획재정부가 “특조위의 조사활동 기간이 끝났다”며 예산 배정을 거부한 것이다. 세월호특별법에 따르면 특조위의 활동 기간은 위원회가 구성을 마친 날로부터 ‘1년+6개월 연장가능’이다. 정부는 ‘위원회가 구성을 마친 날’을 특별법이 시행된 2015년 1월 1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르면 특조위 조사기간은 올해 6월에 끝난다.
하지만 정부의 주장에는 어폐가 있다. 정부는 2015년 8월이 되어서야 특조위에 89억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별정직 공무원들의 첫 출근 날은 7월27일이다. 예산도 직원도 없었던 기간을 조사기간에 포함시켜 버린 것이다. 이런 이유로 특조위와 세월호 유가족들은 예산이 배정된 2015년 8월4일 혹은 공무원들이 출근을 시작한 7월27일 등을 조사 개시 시점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남아 있는 예산마저도 조사를 위한 사업비로 집행해선 안 된다고 통보했다. 인건비와 기본 경비 역시 종합보고서, 백서 발간을 위해서만 쓰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종합보고서, 백서 발간을 위한 예산을 따로 편성하지도 않았다. 남아 있는 돈 중에 알아서 목적에 맞게 쓰고 한 푼이라도 목적에 어긋나면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은 셈이다.
특조위 관계자는 “정부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는데 100원이라도 잘못 쓰면 법적인 조치를 당할 수 있다. 그래서 6월30일자로 아예 예산을 쓰지 않는다”며 “한 5억 원 정도 예산이 남아있는데, 조사관들이 조사업무를 하기로 한 상황에서 그 돈도 쓸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특조위 위원장과 상임위원들도 월급이 끊겼다. 장관급인 위원장과 차관급인 상임위원들에게 나오는 판공비, 차량까지 모두 반납했다.
예산은 0원이지만 사실상 ‘마이너스’다. 교통비부터 식대 등 출근해서 일하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개인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대료 등 사무실 운영비도 문제다. 사무실은 기재부 소속 한국자산공사, 즉 정부 소유 건물이라 당장 임대료를 지급하지 못해도 사무실을 비워야할 처지는 아니다. 각종 물품 및 소모품은 미리 사둔 것을 사용하고 있다. 한 사무관은 “물품을 다 써서 새로 사야할 상황이 되면 상황이 더 안 좋아질 것이다. 전기료 안 냈다고 전기라도 끊어버린다면 이 여름에 그냥 죽는 거다”라고 토로했다.
소모품이 떨어져서 ‘갹출’ 해야 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권영빈 특조위 진상규명소위원장은 지난 13일 브리핑에서 “사무실 내 복합기 카트리지를 교체해야하는 데 예산이 없어서 그냥 두고만 있다. 복사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라며 “150만 원 정도 하는 카트리지를 사기 위해 조사관들이 각출하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전했다.
유가족이 끊어주는 기차표, 용역비용 깎아서 토론회
비용을 각출하자는 말이 나올 정도로 54명의 별정직 공무원들은 ‘마이너스’인 상황을 감안하고 조사업무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 없으면 조사가 어렵다는 것이다. 특조위 관계자는 “카트리지나 복사용지가 없다는 건 사실 상징적인 이야기인데, 더 중요한 것은 조사비가 전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출장비가 없으니 조사업무의 연장인 각종 출장을 개인 돈으로 감당해야 한다. 특조위 관계자는 “정부가 선체 인양을 시작한다고 해서 특조위도 (선체)조사를 준비하기 시작했고 전문가를 만나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야 했다. 개인 돈을 써야 되나 했는데 사정을 안 세월호 유가족들이 기차표를 끊어줬다”고 말했다. 정부가 예산을 깎아버린 상황에서 유가족들이 특조위 조사를 돕고 있는 실정이다.
▲ 1일 오전 서울 중구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서 이석태 위원장이 유가족의 격려를 받으며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사업무는 ‘조사보고서’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이 결과물을 알리려면 토론회와 세미나를 열어야 한다. 하지만 토론회 패널들에게 사례비조차 줄 수가 없다. 다행히 오는 27일 열릴 토론회는 세월호 특조위 사무실에서 열릴 예정이라 토론회 패널들에게만 양해를 구하면 추가적인 비용이 들지 않는다. 한 특조위 조사관은 “발제자에게 책을 우편으로 보내야 하는데 우편비가 부담돼 오신 김에 가져가라고 했다. 참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토론회나 세미나를 외부에서 진행하면 장소 대관료 걱정을 해야 한다. 지난 20일 오후 백범김구기념관에서 ‘피해자지원 실태조사 결과발표회’가 열렸다. 이 날 토론회 비용은 원래 집행했어야 할 용역비를 깎아서 충당했다.
또 다른 특조위 조사관은 “예산과 시한이 부족해서 제대로 된 보고서를 만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조사관들의 말에 따르면 정부는 특조위에 예산을 ‘수시배정’한다. 요청한 조사활동비 등의 예산을 분기별로 나눠 조금씩 주는 것이다. 한 가지 프로젝트나 연구를 완결성 있게 계획하지도 진행하지도 못한다. 이 조사관은 “예산을 적게 주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예산을 제대로 쓸 수 없게 주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껏 조사하려고 해도 조사 대상자들은 조사에 불응하기 일쑤다. 한 특조위 사무관은 “6월 말에 한 정부기관 관계자를 조사하려고 불렀더니 7월에 가겠다면서 안 나왔다. 그러나 7월이 되자 ‘활동 끝난 거 아닌가’라며 불출석했다”며 “이런 사례가 몇 건 있다. ‘이제 조사기간도 끝나서 권한도 없는데 왜 오라고 하느냐’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특조위 관계자는 “조사관들 사기가 많이 떨어진 건 사실이다.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을 못한다는 점에서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지만 위원회 활동을 이어가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며 “하지만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위치의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정당성 가지고만 버티라고 하는 것은 폭력적이다. 당위성, 정당성만 가지고 끝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 장담은 못하겠다”고 밝혔다.
특조위는 아직 조사할 것이 많다
이대로 끝내기엔 아직 조사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 7월 말 완료 예정이라던 세월호 선체 인양 작업은 시작도 못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의 가장 직접적인 증거물을 보지도 못한 채 특조위의 조사기간은 종료됐다. 이런 상황을 의식했는지 해수부는 선체정리 작업에 특조위 참여를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해수부는 6월21일 보도자료에서 세월호 선체가 육상에 거치되면 특조위가 선체조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특조위가 선체조사도 못 하고 끝난다는 여론의 반발 뒤에 나온 발표였다.
하지만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다. 정부 말대로라면 조사기간이 종료돼 조사 권한도 없는 특조위가 무슨 권한으로 선체 조사에 참여한다는 걸까. 특조위 관계자는 “9월 안에 목포항에 거치시킨다고 하는데 선체정리하고 청소하고 소독하는 기간 합치면 9월이 넘어간다. 지금 세월호 특조위는 보고서 작성기간이지만 9월 이후에는 아예 해산된다”며 “공무원 몇 명 남아서 집기, 임대료 정산하는 과정만 남은 상황인데 그 때 선체조사에 참여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설사 조사한다고 해도 위원장도 없고 위원회 자체가 해산됐는데 누구한테 보고하고 누가 책임을 지나”라고 지적했다.
미디어오늘이 보도한 ‘철근 400톤 의혹’도 특조위의 조사 대상이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6월16일 세월호 침몰 당일 제주해군기지로 향하는 철근 400톤이 세월호에 선적되어 있었다고 단독보도했다. 그간 세월호 침몰의 주요 원인으로 과적이 지목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세월호가 제주해군기지 공사 기일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출항한 것은 아니었는지 규명해야 한다.
▲ 1일 오전 서울 중구 나라키움저동빌딩 앞에서 열린 '세월호 특조위 성역없는 진상규명 조사 지속 지지 기자회견'에 참석한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 회원들이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포커스뉴스
세월호 참사 직후 트위터 상에서 인위적으로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에 반대하고 유가족들을 폄훼하는 게시 글이 늘어난 사실도 조사 대상이다. 세월호 참사의 중요한 국면마다 1~2개의 ‘조장’ 계정이 글을 올리면 수십 개의 ‘조원’ 계정이 이를 리트윗하며 퍼트리는 방식의 여론조작 정황이 세월호 특조위 용역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손금주 국민의당 수석대변인은 25일 브리핑에서 “정부는 이런 조직적인 여론조작을 하려 했는지 철저한 조사를 할 수 있도록 세월호 특조위에 충분한 활동기간을 보장하고 특조위 조사활동에 적극 지원해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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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키는 국회에
정부가 조사 종료를 통보한 상황에서 유일한 해법은 국회의 손에 달려 있다. 야당 의원들은 20대 국회 들어 세월호 특조위의 조사기간을 보장하는 내용의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을 4건 발의했으나 정부·여당의 반대와 여러 현안에 묻혀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특조위 관계자는 “제일 우려되는 상황은 한 9월 쯤 가서 여야가 ‘올해 12월까지 하자’고 절충하듯 합의해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예산이 배정되지 않는 7월부터 9월까지 사실상 활동을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다 선심 쓰듯 3개월을 보장받으면 어떤 조사도 마무리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나버린다는 뜻이다. 이 관계자는 “이런 이도저도 아닌 상황은 특조위를 진짜 세금도둑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부세력’ 차단하고 ‘착한 국민’ 프레임으로 고립 유도 731미디어오늘
[비평] 사드 배치 중앙·지역언론 보도의 온도차…‘님비’ 벗어나면 불순? 논란은 묵살, 색깔론까지 가세
“갑작스러운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정부의 ‘모르쇠’ 대응에 성주 군민들은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나쁜 국민’이 됐다.”
지난 8일 한반도의 사드 배치가 결정된 이후 대구 경북 지역지들은 지역민들의 분노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사드라는 군사시설이 평생 살아온 성주에 배치되는 중대한 결정이 내려졌는데도 어떤 협의의 과정도 없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런 과한 표현들이 지역지에 쏟아지는 것이 일면 이해가 갈 정도다. 반면 일부 중앙지들은 수도권 중심의 방어 효용성을 따지거나 성주 지역의 반발에 외부세력이 개입했는지 여부에만 몰두하는 모습이었다.
대구경북 지역지들도 곧 ‘외부세력 없다’거나 ‘평화’적인 반대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을 보였다. 대구신문의 지난 15일 보도에서 볼 수 있듯이 “나쁜 국민”이 아니라는 점을 항변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드 배치 이슈의 진행은 크게 네 시점으로 나눠볼 수 있다. 지난 8일 한반도에 사드 배치가 결정됐던 시점, 지난 13일 성주에 사드가 배치되기로 결정됐던 날, 지난 15일 황교안 총리의 성주 방문과 ‘6시간 감금’ 논란, 그리고 지난 21일 성주군민들의 서울 상경 집회다. 처음에는 성주지역 주민의 입장에서 강경한 반대 논리를 펼치던 지역지들이 점차 중앙지들의 ‘외부세력’, ‘폭력’ 프레임에 발목잡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드배치 결정에 중앙지 “북 방어 필요” vs 지역지 “칠곡 안 돼”
지난 8일 한·미 양국은 북한의 핵 미사일 등의 위협에 대응해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하겠다고 결정했다. 당시 가장 유력한 후보지는 경북 칠곡이었다.
발표 당시 중앙지들은 대체로 사드 배치가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다뤘다. 한겨레와 경향 등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사드 배치를 지적한 반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은 사드 배치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한반도를 보호할 수단이라는 군사적 효용성을 들어 배치가 불가피한 것임을 역설했다.
반면 대구 지역 지역지들은 발표 직후 지역민의 반대 목소리를 크게 실었다. 사드 배치 결정 전 영남권은 이미 신공항 건설 대신 김해공항 증설로 결정된 것에 대해 불만이 가득한 상황이었다. 특히 신공항 건설 무산 이외에도 대구와 경북 지역에는 원전과 같은 기피 시설만 몰아주는 것 아니냐는 지역민의 피해의식도 반영됐다. 대구신문 역시 지난 11일 1면 기사에서 “지역의 오랜 숙원사업인 신공항을 백지화 한 박근혜 정부가 대구·경북에 원전 등 기피시설만 떠안기려 한다는 비판적 분위기도 팽배하다”며 “지난 4월 총선 당시 ‘정부가 대구·경북에 선물을 준다는 것이 신공항이 아닌 사드였다’며 노골적인 반감마저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반도에 사드가 배치될 것이라는 것 까지만 발표된 상황에서는 지역지의 보도는 대체로 신공항 무산으로 인한 박탈감과 ‘우리 지역에는 사드 안된다’는 논조 이상으로 나아가진 않았다. 중앙지 역시 후보지로 거론된 지역의 반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가 이후 관건이라는 지점을 짚었다는 점에서 여기까지는 크게 논점이 엇갈린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앙지 “사드 안 위험”vs 지역지 “성주에 폭탄”
중앙지와 지역지의 보도 방향이 본격적으로 엇갈리기 시작한 시점은 배치 지역이 성주로 사실상 결정된 시점인 지난 13일 이후부터다. 여전히 정부로부터는 사드 배치가 진짜 대북 공격 방어에 효과적인지, 그리고 사드 전자파가 무해한지 납득할만한 해명은 나오지 않아 논란이 확산되던 상황이었다. 당시 중앙지들의 경우 특히 수도권 방어 효용성을 검증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지난 13일 세계일보는 사드가 성주에 배치되면 서울로 날아오는 탄도미사일 탐지는 가능하지만 방어는 불가능하다고 짚었고 이 때문에 정작 ‘한미 동맹 군사력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 조치’라는 군 당국의 사드 배치 명분이 약해진다고 분석했다.
반면 같은 날 조선일보는 수도권이 사드 방어 범위에 벗어난다는 지적에 대한 국방부의 입장을 전하며 “수도권 지역에 패트리엇(PAC-3) 미사일을 증강 배치해 방어력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 해당 기사에서는 수도권 방어는 PAC-3로, 한반도 이남 지역의 방어는 사드 배치로 가능하다고 전했다.
이 시점부터 대구 경북 지역지들은 한층 강경하고 절절한 지역민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13일 오전 열린 성주 사드 배치 범군민 궐기대회에서 지역 지자체장을 비롯한 성주군민 5000여명이 참석해 성난 민심을 한가득 쏟아냈고 이에 대한 보도들이 지역지를 중심으로 이어졌다. 영남일보의 지난 14일 보도에 따르면 당시 김항곤 성주군수는 “정부가 일방적인 밀실행정으로 성주군의 희생을 바라는 현실에 군민들이 분노하고 있다”며 “사드 배치에 어떠한 것도 허락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 높이기도 했다. 또한 이날 오후 성주군수를 비롯해 200여명의 성주군민들이 국방부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누가 전자레인지에 돌린 참외를 먹겠냐”며 강하게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이러한 사실은 한국일보 외에 중앙지 보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 성주군민의 반발에 '외부세력', '폭력'을 부각한 일부 중앙지의 보도.
‘황 총리 감금’ 논란에 중앙지 “외부세력”vs 지역지 “폭도몰지마라”
사실 성주 배치 결정전부터 조금씩 방송을 포함해 신문 등 중앙 중심 일부 언론에서는 지역민의 반발을 일축하거나 폄하하는 식의 보도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지난 8일 TV조선은 ‘김승련의 뉴스TOP10’에서 “아마 저렇게(반대)하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우리 칠곡에 금전적으로 지원을 해달라’는 걸 깔고 하시는 것 같은데, 이미 그런 것 없이 경기도와 강원도에 있는 많은 지역들이 (사드배치) 용지로 내놓고 있고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보상을 언급한 사실이 있는지 자체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을뿐만아니라 보상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지역의 이기심’에 기댄 주장이라는 프레임이 이미 일부 언론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외부세력’ 프레임은 성주 배치 결정 이후 더욱 명확하게 드러났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일부 언론의 프레임에 따르면 사드 배치는 성주만의 문제이기 때문에 성주군민 이외에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사람은 ‘과격 선동’을 하는 ‘외부세력’인 셈이다. 또한 성주 군민들이 국가안보라는 관점에서 결국은 사드 배치를 수용해야 하기 때문에 성주에서 사드 배치로 인한 보상을 언급하는 것은 ‘순수’하지 못한 행동이라는 프레임이다. 이때부터 지역지들도 지역 주민들의 ‘순수성’을 증명해야 한다는 프레임에 빠지기 시작했다.
일부 수도권 중심 언론들이 사드 배치를 성주만의 문제로 국한시키려 했던 결정적인 사건은 지난 15일 황교안 총리의 성주 방문과 ‘6시간 감금’ 논란에서 불거졌다.
황 총리는 지난 15일 성주 사드 배치 주민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니버스를 타고 이동하려 했으나 주민들이 버스를 둘러싸고 거세게 항의를 이어간 탓에 약 6시간 동안 버스에서 내리지 못했다. 또한 이날 군청에서 황 총리가 주민이 던진 계란에 맞는 사건도 발생했다. 일부 언론은 총리가 공격당하는 초유의 사태라며 ‘폭력’을 일삼는 ‘외부세력’의 개입 의혹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동아일보는 지난 18일 “사드 투쟁위 ‘총리 감금 때 외지인 가세’”라는 기사를 통해 “사드 체계 배치 반대 집회에 외지인들이 참가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며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성주 사드 배치 저지 투쟁위원회 관계자의 발언을 빌려 “다른 지역 사투리를 쓰는 외지인들이 개별적으로 현장에 오는 것을 봤다는 주민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더욱 구체적으로 특정 정당을 언급하며 ‘외부인’의 존재를 부각했다. 지난 18일 “성주 사드저지투쟁委 위원장 15일 폭력사태에 외부인 개입”이라는 기사에서는 “지난 15일 성주를 방문한 황 총리의 발을 6시간 이상 묶는 등 사실상 ‘감금’하고, 계란과 물병을 투척했던 격렬 시위 때 헌재 결정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후신(後身)으로 불리는 민중연합당 조직원들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특히 조선일보의 보도는 이재복 성주 사드배치 저지 투쟁위원회 대표 위원장의 발언에 근거한 것으로 보이는데, 정작 당사자는 지역지에서 “해당 보도는 와전된 것”이라고 부인했다. 지난 18일 영남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재복 위원장은 “그날은 분명 성주군민의 분노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일부 언론에서 그날 시위꾼 등 외부세력의 개입을 (내가) 인정하듯이 보도했는데 이는 와전됐다. 외부 개입은 확인한 바도 확인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당시 지역지에서는 외부세력의 개입이라는 프레임에 적극적으로 반박하는 동시에 더 나아가 경찰이 “의도적으로 경호를 허술하게 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내놓았다. 지난 18일 영남일보의 “경찰 ‘트랙터 관련자 입건 방침’ 군민 ‘폭력 경찰도 수사해야’” 기사에서는 “성주군민의 감정이 가장 격앙돼있고 격렬한 반발이 예상되는 시점에 국무총리 등이 성주 방문을 하면서도 ‘대통령급’ 경호를 하지 않은 것은 정부의 ‘다른 의도’가 숨어있었기 때문”이라며 “화가 난 성주군민 등의 과격한 모습을 외부에 노출시켜 군민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 위한 계산적 행동이 아니었냐는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부터는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라며 억울한 군민의 모습들이 지역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평화적으로 주장한 것”이라는 항변인데, 사실 그 자체가 일부 중앙 언론이 깔아놓은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또한 지역지들의 논조가 성주 사드 배치 결정 직전과 달리 한층 누그러진 모습도 보인다.
대구신문의 지난 20일 1면 기사인 “‘누가 우릴 폭도로 모는가’ 억울한 군민들”에서는 “수도권 일부 언론이 집회의 폭력성을 부각하고 ‘외부세력 개입설’ 까지 횡행하면서 사드 성주배치 반대 운동 자체가 이념 논쟁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며 주민들과 사드 배치 반대하는 주민들 사이에서 ‘외부세력’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냈다.
매일신문은 실제로 외부 세력이 반대집회를 열고 있다는 프레임에 부합하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역시 지난 20일 “성주 군민들 두 번 죽이는 외부 세력 집회, 서울 두 단체 ‘찬성 거리 행진·기념 촬영’”이라는 기사에서 “성주 사드 배치를 두고 ‘성주 사드 배치 철회 투쟁위원회’가 주최하는 집회가 아닌 외부 단체가 주도하는 사드 찬반 집회가 잇따라 열리면서 성주 군민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기사가 반대집회를 연 외부 단체로 지목한 곳은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도연맹’이다.
또한 조선일보가 지난 19일 윤금순 전 통합진보당 국회의원이 성주 사드 배치 저지 투쟁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보도를 내놓데 이어 영남일보는 지난 21일 “투쟁위는 윤 전 의원과 공식적으로 함께 활동하고 있지 않다고 부인했다”면서도 “성주군 농민회를 중심으로 ‘성주 사드 반대가 아니라 대한민국 사드 반대를 외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전국 여성농민회 총연합회장을 지낸 윤 전 의원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분석”도 함께 전달했다.
▲ 성주군민의 목소리를 담은 대구경북지역 신문 보도.
파란 리본으로 외부세력 배제? “시민들도 나눠줬다”
지역지 뿐만아니라 성주군민들 역시 이런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은 지난 21일 상경집회때 볼 수 있었다. 독자 수가 지역지보다 훨씬 많은 수도권 중심 언론들이 사드 배치 반대집회에는 모두 ‘외부세력’, ‘폭력’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워놓은 상황에서 조금의 충돌이라도 발생할 경우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것 자체가 이념적 논쟁으로 흐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성주군민들은 상경집회 당시 옷에 단 ‘파란리본’을 통해 집회의 평화적 이미지를 보여주려 노력했다.
이러한 의도와 달리 일부 중앙지는 처음부터 이 집회에 대해 외부세력이 개입했는지, ‘폭력’없이 평화롭게 마무리됐는지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추는 모습이었다. 한국일보는 지난 22일 “‘성주 군민만 모여라’ 파란리본 달고 상경 평화집회”기사에서 “참석자들은 왼쪽 가슴에 파란색 나비모양 리본을 부착하고 목에는 거주지·이름이 적힌 목걸이형 명찰을 달아 성주군민 ‘순수 행사’임을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22일 동아일보 역시 “이 자리에 어김없이 나타난 옛 통합진보당 관련 단체인 민중연합당과 흙수저당 당원 150여 명은 폴리스라인을 넘지 못했다”며 “성주 군민 무리 속으로 들어가려는 외부 세력을 차단하는 과정에서 일부 세력이 폴리스라인을 무너뜨리는 등 물리적 충돌도 있었지만 집회는 평화적으로 끝났다”고 전했다.
지역지들의 이날 상경집회 보도역시 ‘평화’와 ‘비폭력’에 초점이 맞춰졌다. 성주신문은 지난 26일 보도에서 “질서정연하게 진행된 평화적 시위는 성주군민의 결연한 의지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고 보도했다. 매일신문역시 지난 22일 “비폭력 평화 시위를 통해 중앙정부와 수도권 시도민들에게 큰 울림을 전달했다”고 평가했다. 성주신문은 26일 보도에서 “군민들은 평화시위에 동참하고자 하는 시민들에게도 파란 리본을 나눠줬다”며 파란리본이 단순히 성주군민과 ‘외부세력’을 구분짓기 위한 표시가 아니라는 점도 짚었다. 동아일보가 지난 22일 보도에서 “외부 세력을 구별하기 위해 가슴에 파란 리본을 달았다”고 한 것과는 다른 사실관계다.
“우린 착한 국민” 중앙언론이 만들고 성주군민이 빠진 함정
대구 경북 지역 언론들이 단지 프레임에 사로잡힌 보도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일련의 사드 이슈 진행 동안 사드 배치 지역이 고분군이 자리잡은 문화재 지정 구역이며 성주 군민에게 미칠 환경영향, 그리고 일부 수도권 언론의 과도한 여론몰이로 큰 피해를 겪고 있다는 지역지 다운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정작 수도권 언론들이 깔아놓은 ‘외부세력’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탓에 사드 배치 이슈 자체를 성주만의 문제로 국한해버리고 정치권의 움직임을 기다리는 상황을 자초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26일 이후 지역지의 보도는 행정소송을 통해 정부의 절차상 하자를 짚는 방법이나 사드 배치의 국회 비준 동의 절차에 대한 분석 기사가 중심이 되고 있다.
반대로 이는 일부 중앙 언론들이 지역지보다 더 큰 영향력을 이용해 효과적으로 성주군민을 ‘착한 국민’ 프레임에 가두는데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성주군민들이 평생 전자파 유해성 논란에 휩싸인 사드를 머리맡에 두고 살아야 하는데도 사전에 논의조차 할 수 없었고, 당연하게 받아야 할 보상도 언급하지 못하는데다가, 분노조차 마음대로 터트리지 못하게 만든 것은 수도권 중심 언론들의 효과적인 프레임 전략이 그대로 먹혀들어간 덕분이다. 결국 ‘폭력’과 ‘평화’라는 수단적 논의를 넘어선, 사드로 인한 지역 주민들의 분노와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더 이상 수도권 지역에는 들리지 않게됐다. 이렇게 중앙언론들은 지역의 입을 닫았다.
권성훈 전국언론노동조합 매일신문 지부장은 지난 21일 “성주군민, 언론에게 묻는다” 토론회에 참석해 “사드 관련해서 중앙 언론들은 중앙집권적 사고로 지방을 매도하고 있다”며 “사드배치 논란에서 국민의 생존권과 안전, 정부 절차의 적합성을 따져 물어야 하는데 전자파 논란과 외부세력만 거론하고 있다. 이는 판사가 살인범 용의자를 잡아서 살해 사실에 대해 물어야 하는데 마트 절도와 음주 경력을 시비 삼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연봉 1억 넘는 근로자 1400여명 ‘소득세 0원’··· 1년 새 27배 731경향
한국의 근로소득자 중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면세자가 절반에 육박하며 다른 주요 국가들에 비해 월등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봉 1억원 이상 근로소득자 중에도 면세자가 1400명이 넘는다. 소득이 있는데도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조세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 과세 기반이 취약해지면서 세수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31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발간한 ‘재정포럼 7월호’에 실린 현안분석 보고서를 보면 근로소득자의 면세자 비율은 2014년(귀속분 기준)에 48.1%로 집계됐다. 면세자 비율은 2006년 47.6%에서 2010년 39.2%, 2011년 36.2%, 2012년 33.2%, 2013년 32.4% 등 하락세를 이어오다 2014년에 급등했다. 이는 정부가 2013년 말 소득세법을 개정하면서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전환돼 면세 기준 한도가 높아지면서 지난해 초 ‘연말정산 파동’이 발생하자 다시 세금을 깎아주는 공제제도를 대폭 확대했기 때문이다.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중산층과 고소득층의 면세자도 급등했다. 총급여 1500만~4000만원 노동자 중 2014년 면세자는 243만명(36.7%)으로 2013년 78만명(12.7%)보다 165만명(24.0%포인트) 늘어났다. 특히 총급여 4000만~5000만원 구간의 면세자는 2014년 23만5144명(17.8%)으로 2013년 1만8475명(1.5%)에 비해 12배 이상 증가했다. 심지어 연봉 1억원 이상을 받은 이들 중 면세자는 2013년 53명(0.01%)에서 2014년 1441명(0.27%)으로 27배나 급증했다.
한국의 이 같은 면세자 비율은 주요 국가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미국 노동자의 면세자 비율은 2013년 기준 35.8%이다. 미국은 면세자 비율이 2009년 41.7%, 2010년 40.9%, 2011년 36.9%, 2012년 35.8% 등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캐나다도 2013년 기준 33.5%로 전반적으로 면세자 비율이 떨어지는 추세다. 호주의 면세자 비율은 2009~2010년 26.9%에서 2013~2014년 25.1%로 떨어졌다. 면세자 비율 산정기준이 다르기는 하지만 영국에서 세금을 내지 않는 이들의 비율은 2014~2015년 기준 2.9%이다.
김재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근로자 비율이 48.1%나 되는 것은 조세 원칙은 물론 헌법에 명시된 국민개세주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부가 최근 발표한 세법개정안에도 근로소득세 면세자의 비중을 감소시키기 위한 대책은 없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서민부담을 줄이면서 면세자 축소 방법을 찾기 위해 용역을 맡겨둔 상태”라며 “이번 세법개정안에 반영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경향사설]경기침체 속 집값만 오르는 기형적 한국경제 731
한국경제는 ‘회복→확장→후퇴→수축’을 반복하는 통상의 경기 순환이 사라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수년째 제자리 성장을 하면서 장기 저성장 국면이 본격화하고 있다. 2010년 6.5%였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12년 이후 3%도 힘겨워진 상황이다. 정부는 2013년 1분기를 저점으로 한국경제가 회복세를 보인다고 분석하지만, 실제 회복 여부는 불투명하다. 올해 1분기 제조업 평균가동률 73.2%는 정부가 저점이라고 했던 2013년 1분기(77.0%)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한국경제는 V자형 반등이 아닌 L자형 횡보를 거듭할 뿐이다.
침체한 한국경제에서 유일하게 활황세를 보이는 것은 부동산이다. 금리를 내리고 유동성 공급을 확대해 투자와 소비를 늘려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정부 경제정책이 집값만 상승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실물경제가 위축된 상황에서 집값만 오르는 것은 전형적인 거품경제의 모습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잃어버린 20년’을 겪었던 일본의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일본은 1980년대 중반 투자확대와 경제회복을 위해 시중에 자금을 대거 풀었지만 부동산에만 돈이 몰려 거품을 키웠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신고 자료를 부동산114가 분석한 결과 올해 상반기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5억734만원으로 2010년 하반기 이후 5년 만에 5억원을 다시 넘어섰다. 국민은행 부동산통계를 보면 2014년 1.5% 상승에 그쳤던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지난해 6.8% 뛰었고, 올해 들어 6개월 만에 7.3% 폭등했다. 수출과 투자, 소비가 모두 부진한데 부동산만 호황인 것은 기형적이다. 한국경제의 근간인 제조업을 살리고, 고용 효과가 큰 서비스산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또 중소·벤처 기업을 육성하는 등 정부의 균형 잡힌 성장 대책이 필요하다.
부동산으로 경기를 살리겠다던 정부 정책은 실패했다. 부동산 호황은 관련 세수를 늘릴 수 있겠지만 타 산업 파급효과가 적어 전반적인 경제활성화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 고가 부동산을 소유한 일부 부자의 부만 늘리고, 집 없는 서민의 박탈감만 더할 뿐이다. 부자의 관점에서 보면 집은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상품이자 투자수단이다. 하지만 많은 서민에게 집은 안락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주거공간이다. 집값 상승을 조장한 정부가 서민의 집 구매 기회를 사실상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왜곡된 통계는 나쁜 권력이다 8.1 e 스쿠퍼
현실보다 낮게 나오는 통계수치가 있다. 실업률, 지니계수, 비정규직 수치 등이다. 반면 높게 나오는 건 고용률, 복지예산, 법인세, 정규직 수치 등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 집권 정당과 정부가 표를 얻는 데 유리한 수치는 높고, 불리한 수치는 낮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수치가 왜곡된 통계는 일종의 권력”이라고 꼬집었다.
통계의 영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통계는 일종의 권력이다. 통계에 명시되지 않는 대상이 있거나 수치가 왜곡돼 있다면 정책에서도 소외받을 수 있다. 여성 관련 통계가 제대로 나오지 않거나 중요한 사안이 왜곡돼 있다면 여성을 배제하거나 차별을 정당화하는 정책들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 통계가 왜곡되면 나라경제는 물론 지역경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
“당연하다. 지역경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지역내총생산(GRDPㆍ일정 기간 각 지역에서 생산한 상품과 서비스의 산업별 부가가치를 나타내는 지표)은 국내총생산(GDP)과 일치하지 않는다. 지역경제의 상태를 파악하는 기초적인 단계에서 오류가 있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올바른 지역경제 발전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잘못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 나올 가능성이 더 높다.”
✚ 통계와 현실의 괴리가 커질수록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는 건가.
“그렇다. 현실 인식의 오류는 정치실패와 정책실패를 부른다. 국민이 현실 인식을 잘못하면 정치적 선택에 오류가 생긴다. 정치실패는 실제 현실과 맞지 않는 정책수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정책실패의 가능성을 높인다.”
✚ 우리 정부가 발표하는 통계 가운데 가장 오류가 많은 통계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잘못된 통계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딱 꼬집어서 말하기 쉽지 않다.”
✚ 그래도 중요성에 무게를 둬서 보자면.
“국민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실업률 통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마 대부분의 국민이 ‘실업률 3%대’라는 통계에 강한 불신을 갖고 있을 거다. 그만큼 왜곡이 심하다는 얘기다.”
실업률 통계 오류 가장 심각해
✚ 무엇이 어떻게 왜곡돼 있다는 건가.
“실업자의 규정부터 잘못됐다. 현재 기준으로 보면 ‘생산가능인구’에서 ‘노동력을 제공할 의사나 능력이 있는 사람’을 ‘경제활동인구’로 구분하고, ‘경제활동인구’ 중에서도 ‘구직활동을 계속함으로써 취업할 의사가 있지만 일을 구하지 못한 사람’이 실업자로 구분된다. ‘경제활동인구’를 구분하면서 ‘비경제활동인구(2015년 기준 약 1600만명)’가 몽땅 빠진다. 그러니 체감 실업률보다 수치가 낮게 나올 수밖에 없다.”
✚ 한국보다 유럽 선진국의 실업률이 더 높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나.
“그렇다. 전 국민 실업대책을 수립해 우리보다 월등한 70~80%대의 고용률을 보이는 선진국들의 실업률이 10%대로 높게 나타난다.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단순한 제도상의 차이라기보다는 우리 실업률 통계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거다. 공공부문 고용률도 마찬가지다. 국제노동기구(ILO)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취업자’를 기준으로 고용률을 파악하는 것과 달리 우리는 ‘일자리’를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니 정부가 해마다 일자리 창출목표와 효과를 선전함에도 일반국민은 체감하지 못한다.”
현재 실업률 통계에서 ‘비경제활동인구’, 다시 말해 ‘현재 일을 하고 있지 않으면서 직장을 구할 의사가 없거나 일할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은 실업자로 잡히지 않는다. 학생ㆍ노인ㆍ장애인을 비롯해 일을 할 의지와 능력은 있지만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서 일정 기간 구직활동을 하지 않은 ‘구직단념자’, 복직을 못한 전업주부까지 모두 실업률 통계에서 제외된다.
✚ 통계의 오류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통계는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기준점이 달라지면 수치가 달라지는 게 통계다. 그래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통계의 한계를 지적한다. 중요한 건 ‘오류를 줄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한 통계인가’ 하는 거다.”
✚ 우리나라는 어떤가.
“OECD 통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허술하다.”
✚ 어떤 부분이 특히 그런가.
“공공부분 통계가 대표적이다. 가령 공무원 수의 경우, OECD 회원국은 한국과 다른 기준을 사용한다. OECD 회원국은 공공부문 고용률을 산정할 때, 중앙ㆍ지방정부뿐만 아니라 비영리 공공기관, 비정규직, 군인 등을 모두 포함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중앙ㆍ지방정부 공무원 숫자만 산정한다. OECD는 인건비를 국가가 부담하는가를 공무원의 기준으로 삼지만, 한국은 공무원법에 의한 신분을 근거로 삼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나라 공무원 수가 102만명이라는 수치는 실제보다 축소된 거다. 공공부문 고용률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를 OECD와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 우리 정부는 ‘아직 통계 개발을 추진하는 초기 단계’라서 간극이 있다고 말하는데.
“한국이 OECD에 가입한 지 벌써 20년이 넘은 국가가 할 말은 아니라고 본다.”
✚ 통계와 현실의 괴리를 막을 방법은 없나.
“통계가 괴리를 보이는 이유는 통계가 변화한 시대의 사회구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가통계 같은 것도 주된 소비 품목이 바뀌거나 1인 경제 시대의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하면 물가상승률을 제대로 집계할 수 없다.”
새로운 통계 근거 만들어야
▲ 정 소장 “실업자 기준이 다르니 OECD와 한국의 실업률을 단순 비교할 수 없다
✚ 시대가 바뀌면 기초데이터의 기준도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는 건가.
“그렇다. 비정규직이 많아져서 노동의 형태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면 새로운 근거로 통계를 산출해야 한다. 그래야 현실과의 괴리를 줄일 수 있다.”
✚ 통계 개혁이 필요하다는 건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 청취는 기본이고, 집단지성의 시대에 맞춰 일반국민의 체감 통계를 반영하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지역별 특색에 맞는 통계를 직접 생산해내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000년 통계직공무원 직렬을 없앤 것은 상당히 아쉬운 일이다. 무엇보다 정부에서 통계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부서를 넘어서는 적극적인 개혁의지가 필요하다. 현대국가의 도량형 통일은 ‘통계의 통일과 재정립’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숫자의 민낯➊ 2948만원 vs 1976만원, 이상한 간극
GDP는 신뢰할 만큼 정확한가
국내총생산(GDP)은 한 나라의 경제규모와 국민 소득수준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가늠자다. 이 때문에 정부 경제정책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GDP가 누구나 신뢰할 만큼 정확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나라 GDP 수치는 오류가 많다. 옛날 집계방식을 고수하는 탓이 크다.
“GDP 신뢰성이 점점 떨어지는 것 같다.” 지난 5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한 말이다. 이 총재는 “GDP 통계가 가진 한계점들은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함께 더 확대될 것”이라면서 “한국은행은 앞으로 GDP 통계의 한계점을 보완하고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GDP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취지에서 나온 발언인데, 사실 새삼스럽지는 않다. 김중수 전 한은총재도 ‘GDP 갭’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실제 GDP’와 ‘잠재 GDP’ 간에 간극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국회예산정책처도 경제동향 보고서를 통해 “생산지표로서의 GDP는 과거 제조업 중심의 경제규모를 파악하는 데 적합했지만, 서비스업 비중이 큰 오늘날의 경제활동 추계에서는 다양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GDP의 한계가 뚜렷하다는 주장이다.
김광수 김광수경제연구소 소장도 같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김 소장은 “최근 기업 투명성이 많이 개선됐지만 선진국에 비하면 여전히 기업의 탈세로 인해 누락된 자료가 많아 생산 관련 통계자료와 통계표본의 신뢰도가 떨어진다”면서 “선진국에서는 연쇄가격 방식(전년도 기준 추정방식)에 의해 실질GDP성장률과 디플레이터를 추정하는 반면, 한국은행은 여전히 불변가격(2000년도 기준 추정방식) 방식을 쓰고 있어 비교시점이 기준 연도에서 멀어질수록 실질GDP성장률이 과대평가되고 디플레이터는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학자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GDP의 한계를 실감할 수 있는 사례는 많다. 지표경기와 체감경기가 늘 달라서다. 일례로 우리나라 1인당 GDP(2016년 4월 기준)는 2만5990달러(약 2948만원)로 세계 28위다. 하지만 참여연대가 국세청 납세 자료를 토대로 만든 통계(2014년 기준)에 따르면 임금노동자 연봉의 중간값은 1976만원에 불과하다. 더구나 GDP 성장률 전망치는 내놓는 기관마다 다르다. 올해의 경우 GDP 전망치를 기획재정부는 3.1%, 한국은행은 3.2%로 제시했다. 하지만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을 비롯해 민간 싱크탱크들은 모두 2% 후반대로 전망했다. 그러니 제대로 된 경제정책이 나올 리 없다. 김익성 동덕여대(EU통상) 교수는 “정부와 모든 기관들이 GDP 성장률 전망치를 수정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면서 “예상을 제대로 못하는데 어떻게 현실에 맞는 정책을 펴겠는가”라고 꼬집었다.
숫자의 민낯➋ 실업률 3.6%, 한 집 건너 실업자인데 …
정부 발표 실업률은 왜 체감치보다 낮은가
잉여·인구론(인문계 90%가 논다)·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캥거루족(부모의 경제적 도움에 기대 살아가는 20~30대). 취준생의 아픈 현실을 풍자한 신조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만큼 ‘취업문’이 굳게 닫혀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도 정부의 실업률 통계는 현실과 크게 다르다. 지난해부터 평균 3~4%대를 오르내린다. 사실일까.
지난 6월 국내 실업률은 3.6%(통계청 기준). 한국 국민 100명(15세 이상) 중 3~4명이 실업자라는 얘기다. 더구나 유례없는 불황을 뚫고 실업률이 떨어지고 있다. 3.6%는 1년 전인 지난해 6월보다 0.3%포인트 떨어진 수치다. 실업자 수도 줄었다. 올 6월 실업자는 100만4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4.4% 감소했다. 숫자만 보면 한국은 ‘완전 고용’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 실업률 통계, 사실일까.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6월 발표한 체감 실업률에 따르면 실업률은 낮아지지 않았다. 지난해 8월 기준 한국의 청년 체감 실업률은 34.2%, 청년 체감 실업자는 179만2000명에 이른다. 같은 기간 당시 통계청이 발표한 청년 실업률은 8.0%, 공식 실업자는 34만5000명이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실업자 수가 통계청의 약 4배에 이르는 셈이다.
이런 간극의 이유는 간단하다. 통계청이 취업준비생 등을 실업자에 포함하지 않아서다. 우리나라가 따르고 있는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 의하면 실업자는 ‘지난 1주 동안 일을 하지 않았고(Without work), 일이 주어지면 일을 할 수 있으며(Availability for work), 지난 4주간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수행한(Seeking work) 사람’이다. 이에 따라 아르바이트생, 대학교 비정규직 조교, 부모 가게에서 하루 몇시간씩 일을 도와주는 무급가족봉사자 등 사실상 실직상태인 사람들이 취업자로 분류된다.
비경제활동인구를 실업자에 넣지 않는 것도 문제다. 비경제활동인구는 경제활동 참여 의사가 없다고 판단해 국가가 실업자 조사대상에서 제외한 사람들을 말한다. 경력단절여성(가정주부)·구직단념자·취업준생·고시생 등이 포함된다. 구직단념자는 취업하려는 의지는 있으나 취업에 어려움을 겪어 구직활동을 중단한 사람이다. 비경제활동인구는 현재 약 1600만명이고, 그중 일할 의사가 있는 잠재경제활동인구는 162만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들은 통계청 자료에서 실업자로 분류되지 않는다.
반면 현대경제연구원은 아르바이트생을 비롯한 시간제 노동자·취업준비생·일할 생각이 있는 주부 등 비경제활동인구·비자발적 비정규직(45만8000명)·그냥 쉬고 있는 청년(19만7000명)을 포함해 실업률을 계산했다. 분석에 참여한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전 연구위원은 “정부가 고용정책을 구체화하려면 고용보조지표를 개선해 다양한 형태의 체감 실업자를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숫자의 민낯➌ 북유럽보다 좋다? 1%도 비웃는다
세전 지니계수의 불편한 진실
정부는 한국의 소득불평등이 조금씩 완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종종 드는 기준이 ‘세전稅前 지니계수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세전 지니계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상당히 양호한 편이다. 하지만 서민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다르다. 양극화의 수준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걸까.
소득불균형 상태를 확인할 때 가장 많이 활용하는 지수는 ‘지니계수’다. 이는 소득 분포와 인구의 상관관계를 말한다. 지니계수의 결과는 숫자 ‘0~1’에서 나타난다. 0은 모든 사람의 소득이 같은 상태, 1은 한 사람이 소득을 독식한 상태다. 부유층의 소득 점유율이 높을수록 숫자가 커지고, 불평등이 심하다는 의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세전稅前 지니계수는 평균 0.476(이하 2013년 기준)이다. 영국과 미국은 각각 0.527, 0.513으로 가장 높은 편에 속하고, 핀란드(0.495)와 덴마크(0.442)도 상위권이다. 한국은 0.336밖에 되지 않는다.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편이다. 수치만 놓고 보면 한국의 소득 비중은 OECD 국가 중 제법 균등하게 분포한 경우라고 평가할 수 있다. 정부도 이를 근거로 한국의 양극화 문제는 과장됐다는 논리를 편다. 아울러 법인세나 소득세 인상도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속을 뜯어보면 실상은 전혀 다르다.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국내 양극화는 심각하지 않다’는 주장의 주요 근거는 OECD의 세전지니계수다. 하지만 세후稅後 지니계수와 소득재분배율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OECD 자료에 따르면 핀란드의 세전 지니계수는 0.495지만, 세후 지니계수는 0.262에 불과하다. 그만큼 세금을 많이 뗀다는 얘기다. 덕분에 핀란드의 소득재분배 효과는 47.0%로 OECD 국가 중 가장 우수하다. 대표적인 복지국가 덴마크의 세전·세후지니계수도 0.442, 0.254로 차이가 크다. 소득재분배율은 42.5%로 상위권이다. 앞선 국가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소득불평등이 큰 것으로 평가되는 영국과 미국도 각각 32.0%, 22.8%의 소득재분배율을 보였다.
한국은 정반대다. 세전·세후지니계수 모두 0.336·0.302로 OECD 평균(0.476· 0.314)보다 낮지만, 소득재분배 효과는 10.1%에 불과하다. OECD 평균 소득재분배율(34.0%)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치로,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소득재분배율이 높은 핀란드(47.0%)와는 36.9%포인트, 상대적으로 소득재분배율이 낮은 미국(22.8%)과도 12.7%포인트 차이가 난다. 국내 조세제도와 재정지출이 양극화 해소에 적절하지 않다는 얘기다. 정택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간사는 “정부는 세전 지니계수를 홍보할 게 아니라 세후 지니계수와 소득재분배율을 면밀히 분석해 양극화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숫자의 민낯❹ ‘무늬만 복지’ 엉뚱한 곳에 펑펑 누구를 위한 복지예산인가
123조3981억원. 올해 우리나라 복지예산으로 책정된 금액이다. 2014년 처음으로 100조를 넘어선 이후 우리는 줄곧 복지예산 100조원 시대에 살고 있다. 전체 예산(약 386조원)의 34.2%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하지만 삶의 수준이 나아졌다는 국민은 없다. 어찌된 걸까. 답은 ‘무늬만 복지예산’에 있다.
바야흐로 복지예산 100조원 시대. 이를 순수하게 국민의 복지를 위해 쓴다면 어떻게 될까. 단순 계산으로 우리나라 인구 약 5000만명 가운데 20%에 해당하는 1000만명에게 연 1000만원씩 줄 수 있다. 이만한 돈이면 굳이 국가가 복잡한 복지정책을 집행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중산층 이하 최하위계층 가계에 매년 순서대로 복지비를 주면 가계부채가 줄고 소비가 늘어날 공산이 크다. 복지와 경제 두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그렇지 않다. 복지예산은 증가했다는데, 복지가 향상됐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복지예산이 ‘진짜 복지’에 쓰이는 경우가 희박해서다. 먼저 전체 복지예산 약 123조원 중 지출이 가장 큰 분야는 공적연금으로 34.6%(약 43조원)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12%(약 18조원)는 486만명의 국민연금 급여, 7.2%(약 14조원)는 공무원연금 급여, 4.5%(약 3조원)는 군인연금 급여, 3.2%는 사학연금 급여에 지출된다.
물론 복지정책에서 공적연금은 중요한 축이다. 문제는 이 가운데 공무원연금의 적자 보전액이 약 14조원에 달하고, 그 액수가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거다. 더구나 일반 국민이 가입된 국민연금의 평균 수령액은 다른 연금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복지예산이 늘었음에도 일반 국민 중 혜택을 봤다는 이들이 많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복지예산에서 공적연금 다음으로 규모가 큰 주택부문 예산(복지예산의 15.7%)도 논란거리다. 이 예산의 51.4%(약 10조원)는 공공임대주택 건설(임대주택리츠 포함)에, 48.6%(약 9조원)는 주택구입이나 전세자금 대출에 쓰인다.
주택부문 예산은 서민용 주택을 저렴하게 공급한다는 기능이 있다. 하지만 이 금액의 상당액은 정부가 다시 거둬들인다. 주택부문 예산에서 국민이 갚는 원리금을 뺀 나머지 금액만 순수 복지예산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더구나 전세금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최하위계층에는 직접적인 혜택이 가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조명래 단국대(도시지역계획학) 교수는 “전셋집조차 장만할 수 없는 이들에게 주택 구입비나 임대료를 대출해주는 정책은 ‘그림의 떡’”이라면서 “최하위계층도 누리지 못하는 복지를 진짜 복지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꼬집었다. 정부의 복지예산 성격을 현실에 맞게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숫자의 민낯❼ 323만4000원, 평균월급 맞습니까? 평균임금보다 적은 근로자 수두룩
정부가 발표하는 평균임금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한다. 매달 월급 통장에는 찍히는 숫자는 평균에 한참 못 미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평균이하의 존재인가”하는 자괴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내 월급은 그대로인데 평균은 왜 자꾸 오르기만 하는 걸까.
‘323만4000원’. 올 4월 상용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에서 전체근로자(상용+임시ㆍ일용)가 받은 평균 임금(명목임금)이다. 1년 전에 받았던 312만2000원보다 3.6%(11만2000원) 늘었다. 상용직의 임금이 임시ㆍ일용직보다 조금 더 올랐다 임시ㆍ일용직의 월 평균 임금이 1.3% 오른데 반해 상용직은 3.4%나 증가했다. 초과급여(연장 및 휴일근로 수당)와 특별급여(상여금ㆍ성과급 등)가 각각 6.0%, 2.0% 오른 덕이다.
임금 격차는 임금상승률보다 더 컸다. 상용근로자의 월 임금이 341만6000원으로, 임시ㆍ일용직 144만3000원보다 197만3000원이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임시ㆍ일용직의 임금 수준을 재검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상용직 근로자의 임금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이를 두곤 ‘우리나라의 진짜 평균’이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평균 임금이 341만6000원보다 훨씬 적은 상용직 근로자가 수없이 많아서다.
‘숫자’에 괴리를 느끼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고용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 조사’에서 빠지는 근로자들이 많아서다. 일단 5인 이상 사업체로 하다 보니 200만개 이상의 영세사업체가 통계에서 빠진다. 상용직 근로자도 고용계약기간이 1년 이상이어야 한다. 건설업체에 고용되지 않고 최종 하도급자에게 소속된 근로자는 아예 조사에서 빠진다. 농ㆍ어업 가구에 소속된 근로자, 창업 준비 중이거나 장기 휴업 중인 사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들 역시 통계에 반영되지 않는다.
이영면 동국대(경영학) 교수는 “어떤 통계를 쓰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면서 이렇게 꼬집었다. “우리나라 평균임금 조사는 편의상 표본조사를 한다. 그 안에는 안정적이고 평균치가 높은 통계를 써서 ‘살 만하고 괜찮은 나라’처럼 보이고 싶은 정부의 의도가 숨어 있다.”
실제로 통계의 기준만 살짝 바꾸면 평균 임금이 크게 달라진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임금이 많은 상용근로자라 해도 5~300인 미만 사업체의 근로자는 월평균 292만2000원을 받았고, 300인 이상 사업체 근로자는 447만9000원을 받았다. 산업별로도 차이가 커 금융ㆍ보험업이 522만3000원을 받은 반면 숙박ㆍ음식점업은 185만1000원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평균임금’에 도달하지 못하는 ‘평균이하’ 임금근로자들이 정부의 통계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숫자의 민낯❾ 서민 주머니 털어 ‘곳간’ 채우려나 증세의 거짓말
나라 재정이 적자라는 뉴스가 연일 나온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전히 “증세 없는 복지”를 고집한다. ‘부자증세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속을 뜯어보면 그렇지 않다. 정부는 다른 명목으로 서민의 얇은 호주머니를 탈탈 털고 있다. 바로 ‘징벌적 과세수입’을 통해서다.
“무조건 증세부터 얘기할 게 아니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탈세를 뿌리 뽑아야 한다. 세출 구조조정으로 필요 없는 사업을 줄이고 낭비되는 세금을 꼼꼼히 점검하는 노력이 먼저다.” 현 정부의 국정 기조는 ‘증세없는 복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나라살림의 적자폭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관리재정수지는 38조원 적자를 봤다. 적자 규모가 1년 새 8조5000억원 늘었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에서 미래 세대를 위해 쌓아둬야 하는 국민연금ㆍ고용보험 등 사회보장성기금의 흑자를 뺀 수치다. 정부 살림살이를 파악할 수 있는 대표적 지표다. 이 수치는 2008년부터 8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경제성장과 고용증대와 같은 달콤한 성과를 내지도 못했으니, 명백한 재정관리 정책의 실패다.
한편에선 부자증세를 통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증세는 없다’는 기조를 고집하고 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7월 1일 국회 경제 분야 대정부 질의에서 “세금을 올리는 대신 비과세ㆍ감면의 정상화 등을 통해 세수기반을 확대하는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재원 부족을 이유로 대다수 국민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정부는 세외수입인 징벌적 과세를 대폭 늘리면서 ‘사실상 증세’를 꾀하고 있다. 고소득층 대신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몰래 증세’를 실시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기획재정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4년 벌금 및 과태료, 과징금, 가산금 등 징벌적 세외수입은 4조773억원. 1년 전보다 14.5% 늘었다. 특히 과징금은 1년만에 징수액이 무려 1795%나 폭증했다. 이를 주도한 기관은 대 국민 상대 빈도가 높은 국세청ㆍ경찰청ㆍ공정위ㆍ방통위ㆍ국토부 등이다. 이들 기관의 징벌적 세외수입 징수액은 2조3254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23.3%(4387억원) 급증했고, 이 액수는 전 부처 증가액의 85.2%를 차지했다.
정부가 국민들의 홀쭉한 호주머니만 자꾸 털어간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윤철한 경실련 국책사업 감시팀장은 “겉으로는 증세 없는 복지를 외치면서 뒤로는 서민부담을 가중시키는 정부의 이중적인 행태”라며 “세원을 면밀히 파악해 형평성에 어긋난 조세체계를 바로잡는 것이 먼저”라고 꼬집었다.
한국 소비자들만 여전히 '봉' 8. 2 조선
한국에서만 유독 비싸다
스타벅스 커피.
2015년 1월 기준 각국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가격 (기준 단위 : 원)
2015년 소비자시민모임이 조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값은 전 세계 13개국 주요 도시 중 한국이 가장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환율을 감안하면 스페인에서는 3,000원, 대만 2,913원, 독일 2,660원, 캐나다 2,530원, 미국은 2,477원에 팔리는데 한국은 4,100원으로 스타벅스가 없는 이탈리아를 제외한 나머지 11개 도시 평균가격 3,207원보다 28%가량 비쌌다.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기획실장은 "스타벅스가 유독 한국 시장에서 고가 마케팅 전략을 펼치고 있다"면서 "브랜드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주로 시내 중심가 등 임대료가 비싼 지역에만 입점하는 등 부가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스타벅스 매장 중 절반가량이 임대료가 비싼 서울에 몰려 있으며, 매년 스타벅스가 임차료로 지출하는 비용은 1,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사 더보기
수입 화장품 .
2015년 11월 기준 수입화장품의 국내 가격 대비 해외 가격
2015년 11월 한국 소비자연맹은 국내에서 판매되는 수입 화장품 가격이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 5개국 평균 판매 가격의 최대 2.46배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내에서 많이 판매되는 화장품과 같은 제품의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 판매 가격을 2015년 7월 비교·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라로슈포제, 버츠비, 바이오더마 등 54개 제품의 백화점 가격은 이 5개국의 평균 가격의 1.02~1.56배에 달했다.
백화점 판매 제품 가운데 국내외 가격 차가 큰 제품은 비오템 옴므 폼 쉐이버(200mL)로 국내 평균 판매가는 3만6000원이지만, 외국 평균 가격은 2만3089원에 불과했다. 소비자연맹 강정화 회장은 "관세청에서 공개하는 수입 원가와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판매 가격을 비교한 결과 국내에서 판매되는 수입 화장품은 수입 원가의 최대 9배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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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스마트폰과 TV
국내 판매 가격이 비싸게 책정되는 일은 우리나라 기업이라고 다르지 않다. 삼성에서 출시한 스마트폰 모델 갤럭시 시리즈는 2~3년 전 국내 가격을 해외보다 더 높게 책정했다.
2012년 소비자시민모임의 조사에 따르면 삼성전자에서 내놓은 스마트폰 갤럭시S3의 우리나라 판매 가격은 전 세계에서 둘째로 높았다. 당시 소비자시민모임은 "2012년 7~8월 미국, 일본, 영국 등 전 세계 18개국 주요 도시에서 스마트폰 판매 가격을 조사한 결과 삼성의 갤럭시S3 국내 판매 가격이 평균 99만4,400원으로 일본(102만8,833원)에 이어 둘째로 높았다"고 밝혔다. 가장 싼 미국(73만6,650원)에 비해 국내 판매 가격은 1.35배 수준이었다. 유럽 평균 판매 가격인 87만4,980원과 비교해봐도 국내 판매 가격은 12만원가량 높았다.
갤럭시노트는 국내 판매 가격이 93만3900원으로 18개 도시 가운데 넷째로 높았다. 반면 애플 아이폰4S의 국내 판매 가격은 94만6,000원으로 12위로 나타났다. 소시모는 "삼성이 자국 소비자로부터 지나친 이익을 얻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사 더보기
이렇게 미국으로 수출되는 우리 제품의 가격이 훨씬 저렴한 점을 이용해 미국에서 우리 브랜드의 제품을 직접 구매하는 국내 소비자들도 늘고 있다. 미국의 가격이 더 낮게 책정돼 있는데다 할인 폭이 커지는 블랙 프라이데이까지 겹치면 같은 모델의 제품의 가격이 국내보다 많게는 100만원이나 저렴해지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서만 유독 뻔뻔하다
폴크스바겐.
배기가스 장치 조작 사건 이후 한국과 미국에서 상반된 폴크스바겐의 자세
지난해 전세계 배기가스 장치를 조작한 폴크스바겐이 보상문제에 대해서 나라마다 다른 기준을 제시해 국내 소비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디젤 차량 배출 가스 조작으로 피해를 본 미국 소비자들에게 배상금 153억3,300만달러(약 17조8,000억원)를 내놓겠다고 28일 공식 발표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배상금 대책 없이 "100억원 규모의 사회 공헌 기금에 관한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 지방법원에서 공개된 합의서에 따르면 폴크스바겐과 아우디 2.0L 디젤 차량 소유자들은 조작 건이 불거지기 직전인 지난해 9월 기준 중고차 가격으로 차를 되팔거나 배출 가스 장치 개선을 위해 무료 수리를 받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이와 별도로 폴크스바겐그룹이 이 차량 소유주 47만5,000명 전원에게 배상금을 1인당 5,100~1만달러(약 591만~1,160만원) 지급한다.
폴크스바겐은 그러나 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에선 미국과 상황이 다르다는 이유로 배상 계획이 없음을 거듭 확인했다. 폴크스바겐코리아 관계자는 "금전적 배상을 하려면 위법 사실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문제가 된 차량은 임의 설정 (배출 가스 조작 장치 설치) 금지 법규가 생기기 이전에 한국 정부 인증을 받아 팔린 것으로 법률상 문제가 없다"면서 "다만 도의적 책임을 느껴 100억원 규모의 사회 공헌 기금 계획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기사 더보기
이케아.
이케아도 폴크스바겐도 미국에선 굽신굽신, 한국에선…
/AFP 연합뉴스,조선DB
북미 지역에서 앞으로 넘어지는 사고로 지금까지 어린이 6명을 숨지게 한 이케아 서랍장 3,560만개가 리콜된다. 세계적인 조립식 가구 업체 이케아의 미국 법인은 3~6단짜리 '말름(MALM)' 브랜드 서랍장 800만개 등 서랍장 2,900만개를 리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케아 캐나다도 넘어질 위험이 있는 서랍장 660만개의 리콜을 발표했다. 리콜 대상에는 한국에서 인기리에 판매된 3~6단 말름 시리즈 서랍장도 포함됐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 등 다른 대부분 국가는 리콜 대상에서 빠졌다.
국내에서는 '한국 소비자를 차별한다'는 비난이 들끓고 국가기술표준원까지 나서 '국내 판매량과 리콜 계획 등을 제출하라' 압박했지만, 공개적인 리콜 대신 '요청하는 고객에게 환불'이라는 카드를 내놓았다. 이케아코리아 관계자는 "서랍장을 벽에 고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미리 고지했으며 제품에 하자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옥시
'가습기 살균제'로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제조 회사 옥시레킷벤키저는 2011년부터 문제가 되어온 이 사건에 대한 책임과 언급을 피해왔다. 그러다 올해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사건 발생 5년만에 '면피용 사과'를 해 소비자와 피해자들을 오히려 더 분노에 빠뜨렸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사과가 사건 발생 후 5년이나 걸린 것에 대해서는 "충분하고 완전한 보상안을 마련할 때 까지 때를 기다린 것"이라고 말했지만, 보상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본사의 책임 부분에서도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 2년 전 한국지사 대표로 부임한 사프달 대표는 이번 공식 사과의 주최가 한국인지 영국 본사인지 묻는 질문에 "레킷벤키지 영국 본사와 한국 법인 양측 모두 사과를 전하는 바"라고 말했다. 하지만 피해 규모와 진상 조사와 관련된 측면에서는 "본사는 이 사태와 관련해 어떠한 개입도 하고 있지 않다"고 말해 책임 소재를 모호하게 했다.
자동차 에어백 .
/2009년 기준 에어백 종류 및 국내 적용 차량
2009년 자동차 회사들이 내수용 차량과 수출용 차량의 안전장치를 다르게 달아 판매한 사건도 앞의 사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북미권에 수출하는 차량에는 에어백을 비롯한 안전장치를 기본으로 탑재했지만 국내에서 판매되는 차량에는 고가의 옵션 형태로 팔아 비판 여론이 일었다. 2009년 현대·기아·GM대우의 자동차는 설치된 에어백의 사양 면에서도 차이가 났다. 미국 수출용 차량에는 최신형 에어백(air bag)을, 국내 판매용 차량에는 구형 에어백을 장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완성차 회사들은 미국에 수출하는 차량에는 충돌 사고시 탑승자 보호능력이 뛰어난 최신형 '어드밴스드(Advanced) 에어백'을 장착하는 반면, 내수용 차량에는 이러한 기능이 전혀 없는 구형 디파워드(Depowered) 에어백이나 스마트(Smart) 에어백을 장착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기아·GM대우가 미국에서 파는 차는 모두 어드밴스드 에어백을 장착하고 있다. 어드밴스드 에어백은 충돌사고 때 운전자의 크기·위치·무게 등을 미리 파악, 에어백이 터지는 강도를 조절, 운전자가 에어백으로 2차 상해를 입는 것을 줄여주는 첨단 에어백이다.
그러나 내수차량에는 운전자 조건과 상관없이 일정 압력으로 터지는 일반 에어백이 사용하고 있었다. 당시 이런 에어백 관련 차량 안전에 관한 문제가 불거지자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생명 역시 옵션이어야 하냐며 비판 여론이 일었다. ▶기사 더보기
한국에서는 소위 "비싸야 더 잘 팔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치재일수록 가격이 높게 책정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해외에서 들여온 제품은 구체적인 효과와는 무관하게 가격이 비싸진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런 점을 악용해 고급화 전략을 쓰기도 한다. 이들은 대체로 눈 앞의 이익만을 생각해 현상을 부추길 뿐 제품이 끼치는 사회적 영향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한편 소비자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기준과 제도는 미비한 실정이다. 제품의 성분이나 안전성에 대한 명확하고 엄격한 기준이 없을 뿐 아니라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 역시 다른 나라에 비해 갖춰지지 못했다. 폴크스바겐 사태에서 미국 소비자는 집단소송제를 통해 소를 제기하지 않아도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 소비자들은 그렇지 못한다. 2009년 문제가 되었던 자동차 에어백에 대한 안전 기준도 다른 나라에 비해 느슨한 편이었다. 개인의 올바르고 합리적인 소비습관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 마련도 절실하다.
차 유리에 붙이는 태양전지판 개발 8.2 중앙
KAIST 유승협 교수와 성균관대 박남규 교수 공동 연구팀이 열을 차단하는 동시에 전기도 생산할 수 있는 반투명 태양전지 기술을 개발했다고 1일 밝혔다. 이 기술을 차 유리에 적용하면 선팅 효과는 물론 엔진 정지 상태에서 에어컨을 가동할 수 있다.
에너지 분야 학술지 ‘어드밴스드 에너지 머티리얼즈 ’ 7월 20일자 표지에 소개된 반투명 태양전지판.
백합이 썩을 때 8.3 경향
절집에서는 밥을 공양이라고 말한다. 오래전 일이지만, 왜 그렇게 부르는지 꽤 궁금했다. 어떤 사람은 “자연과 뭇 중생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보살로서 살겠다는 의지와 깨달음을 얻겠다는 의식”이 공양이라는 말 속에 들어 있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즉 ‘발우공양’을 줄인 말이 공양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밥을 공양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내가 확실히 납득한 것은 그게 공희(供犧)와 같은 말이라는 것, 그리고 공희란 산스크리트어 야즈나(yajna)의 번역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였다.
‘야즈나’는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기타> 전체를 통해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 고대 이래 인도의 성자들은 생명·삶의 원리는 무엇인가의 끊임없는 희생으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었고, 그것을 ‘야즈나’라는 말로 설명해왔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의 생명·삶은 누군가가 내게 바치는 희생 없이는, 그리고 동시에 내가 누군가에게 바치는 희생 없이는 한순간도 영위될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하다.
간단히 밥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밥을 못 먹으면 생명을 부지할 수 없고 삶을 영위할 수 없다. 그런데 밥은 쌀로 짓지만, 쌀은 땅과 하늘, 바람과 구름과 비의 ‘자기희생’, 농부와 그 가족의 헌신적인 땀, 그리고 그들의 이웃과 공동체의 노고와 협력이 없으면 단 한 톨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어 있고, 밥 한 그릇을 알면 만사(萬事)를 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한국말을 쓰는 우리는 때때로 밥이라는 말을 ‘희생물’이라는 뜻으로 노골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넌 내 밥이야” 혹은 “내가 당신의 밥이란 말이냐”라고 우리는 종종 말할 때가 있는데, 그때 밥이란 제물(희생물) 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문제는 “내가 당신의 밥이 되어줄게”라고 말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지만, 여하튼 한국어 어법 자체에 벌써 밥=희생물이라는 생명사상이 명확히 내포돼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우리는 대개 우리 자신이 남의 밥=제물이 되는 것은 별로 내켜하지 않지만, 무의식중에나마 ‘희생’이 얼마나 고귀한 가치인가는 잘 알고 있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의 이야기는 수많은 민담·전설 속에서 끝없이 되풀이돼온 전형적인 미담일 것이다. 그리고 비근하게는 가령 야구시합에서도 늘 큰 박수를 받는 선수는 ‘희생번트’로 자기는 죽고 그 대신 앞선 주자를 살리는 선수이다.
그런데 인도의 고대사상에서 ‘야즈나’를 만물의 존재 원리로 파악한 것은 ‘희생’이 반드시 생명·삶의 손실을 뜻하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희생하는 존재 자신에게 이득이 되어 돌아온다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누군가의 밥이 된다는 것은 돌고 돌아서 결국 누군가가 내 밥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 세상 만물이 이런 생명·삶의 사슬로 엮어져 있음을 이천식천(以天食天)이라는 매우 시적인 언어로 갈파한 분이 바로 동학의 두 번째 지도자 해월 선생이었다. 동학의 세계관에 따르면, 이 세상 만물은 전부 ‘한울님’이다. 그러므로 모든 ‘한울님’은 다른 ‘한울님’들을 먹여살리는 밥이자, 동시에 다른 ‘한울님’을 밥으로 삼아 살아간다. 그래서 이천식천인 것이다.
해월 선생의 이 간명한 은유는 뛰어나게 심오한 생명사상의 표현이다. 피상적인 눈으로 본다면, 이 세상 속 생명붙이들의 관계는 서로서로를 잡아먹는 극히 살벌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해월 선생은 그것을 오히려 생명체 상호간의 상호부양과 공여(供與)의 관계로 파악한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평소에 새들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가 감옥에서 쓴 어떤 편지 속에는 철새들의 이동에 관한 몹시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북유럽에서 추운 계절이 다가오면 철새들은 아프리카의 나일강 쪽으로 대거 이동을 하는데, 그 먼 하늘을 날아가는 것은 독수리 등 맹금류들에게도 심히 힘든 여정이다. 그래서 새들은 목적지에 도착하면 완전히 탈진하여 모래밭에 며칠이나 쓰러져 누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토록 맹금류들에게도 험한 고행길인데 노래하는 작은 새들은 어떻게 그 먼 길을 가는가? 과학자들의 발견에 따르면, 철새가 이동하는 계절에는 하늘에서 잠시 ‘휴전’이 성립한다. 즉 작은 새들은 큰 맹금류의 등에 업힌 채 머나먼 길을 간다는 것이다. 오래전, 로자의 서간집을 읽다가 이 대목에서 내가 얼마나 놀랐던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하기는 이 모든 것은 불가(佛家)에서는 원래 극히 낯익은 상식이었다. “천지는 한 뿌리요, 만물은 한 몸(天地同根萬物一體)”이라든지 “세상은 순환하며 뭇 중생을 살린다(空界循環濟有情)” 등의 표현은 모두 그러한 근원적인 생명사상·세계관에서 나온 것이다. 그 사상적 뿌리에서 밥을 공양이라고 부르는 언어습관이 생겨났을 테지만, 어쨌든 공양이라는 말로써 한국불교는 우리가 매일 습관적으로 먹는 밥이지만 그때마다 이것이 얼마나 거룩한 희생의 산물인지를 우리가 기억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런 전통을 세우고 계승해온 것만으로도 나는 한국불교의 공로가 크다고 생각한다. 불교는 적어도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일개 종교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삶의 근본이치를 가르치고, 그 근본이치에 따라 사람이 겸허한 마음으로 단순·소박하게 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치는 실천적 지식·사상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절집이 이상하게 변해버렸다. 나는 산중 사찰들에 즐비한 자동차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척 편치 않다. 게다가 한국불교의 기둥이랄 수 있는 조계종에서는 선거 때마다 금품이 난무한다는 소문이고, 동국대에서는 비리 혐의를 받는 총장(스님)이 외려 문제를 제기한 학생들과 교수를 탄압하는 기이한 사태가 벌어졌다. 며칠 전에는 미국인 출가자 현각 스님이 한국과 인연을 끊기로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돈을 너무 밝히고 권력자에게 굴종적인” 한국 사람들에게 질린 모양이다. 범부들이라 할지라도 재물에 집착하는 것은 정신적 빈곤을 드러내는 증상이다. 하물며 출가 수행자들이 돈과 권력의 굴레에 얽매여 있다는 것은 너무나 서글픈,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백합이 썩을 때 그 냄새는 잡초보다 훨씬 더 고약하다.”(셰익스피어) /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한국 드라마 틀지 마라’, 중국의 보복 시작됐나 84 미디어오늘
사드 배치 확정 이후 “중국 방송 편성 취소, 계약 미뤄져” 사례 증가… 반한 감정 강화, 한류 거부 움직임도
중국의 보복이 시작된 것일까. 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중국의 반발이 한류 콘텐츠 제재로 나타나는 모양새다. 중국에 진출한 콘텐츠 사업자는 물론 지방자치단체 사업, 정부 교류·협력까지 난항에 빠졌다. G20이라는 외교적 이벤트가 남아있는 상황이지만, 이를 계기로 상황이 개선되기를 기대하기에도 난망하다.
사드 배치 결정 이후 방송 콘텐츠 제작자들 사이에서 고조되던 긴장이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한 건 ‘찌라시’였다. 중국의 신문·방송·영화 등 미디어를 총괄하는 정부기관인 광전총국이 사드 배치에 반발하며 중국 방송 사업자에게 한류 콘텐츠 방영을 중단하도록 전화로 지시하고, 한국 연예인 출연을 금지시키라는 지침을 내렸다는 내용이다. 일부 언론들이 이 내용을 바탕으로 기사화를 시작하면서 중국에 진출한 사업자들은 불안에 떨었다.
찌라시의 진위 여부는 밝혀진 바 없다. 아직 광전총국 홈페이지에서도 공식적으로 해당 지침이 있다는 공지를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사실상 중국 정부의 지침이 있을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정황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정부 관계자가 중국 방문을 거절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28일 김재홍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이 한류콘텐츠 교류를 위해 장쑤성에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현지에서 방문을 거부당했다. 중국 출발 직전까지 일정을 확인했음에도, 중국 측이 돌연 일정 이틀 전 “베이징에 중요한 회의가 생겼다”며 일정을 취소한 것. 대표단에 따르면 중국 방문 일정 내내 중국 측 반응은 냉랭했다.
김재홍 부위원장도 1일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 현지에서 한국 고위공직자 접촉을 노출하는 걸 꺼려하는 분위기를 감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지에서 만난 중국 기업인들은 현재 상황에서 한국에 대한 투자를 비롯한 경제교류에서 신규 사업을 시작할 수 없으며, 이미 벌여놓은 사업도 제대로 추진해나갈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크게 걱정하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김재홍 부위원장의 말은 실제로 한국에서 중국 교류를 담당하는 콘텐츠 업계에서 느끼고 있는 현실이 요약돼 있다. 업계에서는 사드 배치 결정 이후 동시다발적으로 중국과의 콘텐츠 교류 및 수출 계약들이 연기되거나 중단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중국 방송사와 공동제작 교류를 이어왔던 한 한국 방송 콘텐츠 제작사는 ‘사드 때문에’ 프로그램의 중국 방영이 미뤄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해당 제작사의 한 관계자는 “합작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했었고 제작 스케줄을 잡아야 해서 구체적 계약 시점을 (중국 방송사 측에) 물어보자, ‘사드 때문에 방송 편성이 지연될 것 같다. 한국 쪽과 합작하는게 지금은 힘들다. 분위기를 좀 봐야 한다’고 전해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우리 뿐 아니라 주변에 이런 식으로 계약이 지연되거나 아예 중지가 된 사례가 몇 곳 있다. 그 제작사들은 물론 사드 때문이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이런 분위기가 있는 건 사실”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사드 배치 이후 계약 파기까지는 아니지만 (제작 협약) 계약서가 오가고 최종 사인을 하는 단계나 송금 등의 절차들이 이유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늦춰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지자체 차원의 교류도 중단되고 있다. ‘태양의 후예’ 세트장이 위치한 강원도는 중국CCTV7과 교류를 통해 원주, 속초 등 여행지를 홍보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할 계획이었으나, 최근 중국 측의 요구로 잠정 연기됐다. 강원도는 또 중국 파워 블로거, 한류 스타와의 만남을 통해 홍보영상을 제작하기로 했지만 이 또한 중국 측이 취소했다. 중국 칭다오시는 대구 치맥 페스티벌에 불참을 통보하기도 했다.
정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비공식 루트로 중국 각 성 내에 지침이 전달된 것으로 안다. (이러한 상황이) 사실상 기정사실화 된 것 같다”며 “사드 배치 보복이 구체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한류 콘텐츠를 제재하게 되면 논란이 불거질 수 있으니 비공식적인 방법을 통해 제재를 하달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공식발표는 없었지만 일부 언론에서는 관련지침 내용이 보도되기도 했다.
중국 차원에서 직접적으로 한국 콘텐츠를 거부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이라기보다는, 중국 방송제작사 차원에서 중국 정부 눈치를 보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방통위 관계자는 “광전총국 지침으로 중국 내에서 방영되는 해외프로그램 편성 규제를 내린 내용은 있지만 이후에 비공식적으로 나오는 이야기는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 출연을 금지하거나 편성을 막는다는 등의 내용은 금시초문”이라고 말했다.
중국 상황에 밝은 또 다른 방송사 관계자 역시 “중국 제작사들이 (사드 반대에 강경한) 중국 정부의 입장에 맞춰 자세를 낮추려는 분위기가 있다”고 밝혔다.
김재홍 부위원장도 “중국의 중앙정부가 일률적인 지침을 낸 것 같지는 않고 각급 지방정부나 민간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알아서 분위기를 살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김재홍 부위원장이 장쑤성에서는 ‘홀대’를 받았지만, 원저우TV 방문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된 점 역시 중국 정부의 일관된 지침이 없다는 점을 드러낸다. 김재홍 부위원장은 “다만 베이징 중앙정부 차원의 검토가 진행 중이며 단계적으로 제한하는 조치를 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는 있다”고 말했다. 당장 제재가 있지 않아도, 정부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언제까지 이어질까. 한국 정부 측은 일단 다음 달에 열릴 G20 정상회의를 분위기 전환 계기로 보고 있다. 김재홍 부위원장 역시 원저우TV 방문 자리에서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양국의 긴장관계가 완화될 수 있지 않겠냐는 뜻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사업자들이 중국 중앙정부의 눈치를 볼 가능성이 큰 만큼, 양국 관계에 문제가 없다는 제스처가 나오면 보류됐던 사업들이 다시 추진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만 중국 관영언론에서 꾸준히 한류 콘텐츠를 포함한 경제 분야 보복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찌라시’에 드러난 지침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와는 별개로 이후에도 중국의 ‘반한’ 움직임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부터 이미 중국 내부에서는 한국식 예능보다 중국식의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분위기가 있어왔다. 한국 방송 제작자들과 협업하는 과정에서 문화적 차이로 인한 의견 충돌과 한국 제작자들 특유의 ‘고자세’ 때문에 ‘한국팀과 같이 일하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더욱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또한 중국 정부 역시 지난 6월20일 외국 방송으로부터 판권을 사들인 프로그램의 황금시간대 편성을 제한하고 자체 제작 프로그램을 늘리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외국과 공동제작을 할 경우 중국 측이 지식재산권을 확보해야 하고 각 위성채널이 수입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매년 1편으로 제한한다는 규정도 포함됐다. 이처럼 중국은 꾸준히 자국 제작 역량을 키우기 위한 방침이라며 중국 콘텐츠를 보호하고 해외 콘텐츠에 대한 규제를 늘리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한류 거부’ 움직임이 최근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악화된 여론에 힘입어 더욱 빠른 속도로 한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사드 배치 결정 직후부터 중국 내 반한 감정이 커지고 있다. 악화된 중국 여론은 화장품과 관광, 방송 콘텐츠 등 한류 전반에 직접적 타격을 줄 수 있다.
중국 베이징의 한 제작사 관계자는 “(사드 배치와 무관하게 방송 콘텐츠 제작 시장에서) 이미 한국과의 합작 분위기는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면서 “특히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 바이두(포털 사이트) 게시판 등을 보면 한국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댓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2~3년 전 한국의 한 게이머가 반칙을 했다는 한 영상을 지금 다시 돌려보면서 ‘한국 왜 이러냐’는 부정적 반응을 쏟아내기도 한다.
이 관계자는 “중국 정부 차원의 제재가 있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들어본 적은 없지만 중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일부 지방에서 소비자들이 직접 반대운동을 하고 나설 수도 있다. 미국에 대한 반감이 커질 때 애플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하는 일부 지방 도시들이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한국과의 방송 교류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안은 없을까. 현장에서는 사실상 ‘답이 없다’며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중국 정부에서 대놓고 ‘한국’이라고 명시한 제재 정책을 내놓지는 못할 것 같다. 만약 진짜 그렇게 중국 정부가 한국을 콕 집어서 제재하겠다고 말하면 양국 업계 관계자들 간의 문제가 아닌 외교문제로 불거지는 것 아니겠나. 그때는 업계관계자들이 대응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서게 된다”고 의견을 말했다.
중국과 방송 교류 협업을 하고 있는 한 제작사 관계자는 “아직까지 피해가 현실화됐다고 보기는 이르다. 아직은 합작 예정 중이었던 네 개 작품 중 하나만 중단된 상황인데, 나머지 준비 작품들도 모두 계약 없이 올해를 넘기면 그때부턴 피해가 돌아온다”며 “제작사 관계자들끼리 서로 연락하면서 상황 공유는 하고 있지만 이후엔 딱히 대응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단독? “중국, 한국 연예인 방송금지” 보도는 오보
"중국 정부 9월부터 한류 제재" 누리꾼이 만든 '합성 이미지'에 속았다… 사드 배치 반발 없는 건 아니지만…
중국 정부가 한국 예능프로그램 방영과 한국 연예인의 출연을 중단시키라는 지침을 발표했다는 보도는 명백한 '오보'다.
서울경제, 노컷뉴스, 매일경제는 4일 오전 중국의 언론을 총괄하는 기관인 광전총국이 9월1일부터 한국 연예인의 TV출연 및 오락프로그램 방영을 금지한다는 지침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서울경제는 '단독'을 달고 "중국 CCTV '광전총국, 9월1일부터 한류제재 명문규정 발표'"기사를 내보냈다.
이들 언론은 중국이 내린 지침의 근거로 CCTV 뉴스 캡쳐화면을 제시했다. 캡쳐화면 자막에는 “중국 광전총국에서 한국예능 방송금지” “광전총국이 발표한 최신명문규정에 9월1일부터 각 위성TV에서 한국연예인 출연을 제한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이들 언론이 근거로 제시한 뉴스화면은 중국 누리꾼이 뉴스 캡쳐 사진에 자막을 합성한 것이다. 해당 사진은 4일 오전 '찌라시'처럼 국내에 퍼지기 시작했는데, 사실확인을 하지 않고 캡쳐를 그대로 받아 쓴 결과 오보를 낸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오늘이 확인한 결과 광전총국 홈페이지에는 관련 지침이 발표되지 않았다. 해당일자 방영된 CCTV 뉴스영상에는 지난 2일 관련 보도가 없을뿐더러 앵커가 다른 인물이다.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환구시보는 물론 중국 포털인 바이두에서 검색한 결과 관련 내용은 어디에도 보도되지 않았다.
▲ 지난 2일 CCTV 보도 캡쳐화면으로 알려진 사진(위)은 아래 사진에 글자를 바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드배치에 따른 중국의 반발이 없는 건 아니다. 정부 차원에서 직접적으로 지시를 내리지 않았어도 지방정부나 사업자들이 눈치를 보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김재홍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의 중국 장쑤성 방문이 현지에서 무산되고, 지난달 예정된 CCTV의 강원도 촬영이 잠정보류됐다.
중국 방송사와 공동제작 교류를 이어왔던 한 한국 방송 콘텐츠 제작사 관계자는 “계약 시점을 (중국 방송사 측에) 물어보자, ‘사드 때문에 방송 편성이 지연될 것 같다. 한국 쪽과 합작하는게 지금은 힘들다. 분위기를 좀 봐야 한다’고 전해왔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제작 협약) 계약서가 오가고 최종 사인을 하는 단계나 송금 등의 절차들이 이유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늦춰지고 있다”고 말했다.
석유공사, 카자흐스탄 잠빌 광구 '2700억' 손해 보고 헐값 매각 8.4 뉴시스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카자흐스탄 잠빌 광구가 결국 헐값에 매각된다.
카자흐스탄 정부의 최종 승인을 남겨놓고 있지만, 현지 매수자와 석유공사측이 사실상 500만 달러(한화 55억원)에 매각키로 의견접근을 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2억5000만 달러(한화 2787억원)가 투입됐던 카자흐스탄 잠빌 광구는 결국 매입 8년 만에 막대한 손해를 보고 되팔리게 됐다. 즉 2억5000만 달러를 투자해 500만 달러만 건지는 만큼 손실액이 무려 2억4500만달러(한화 2731억원)에 달하는 셈이다.
4일 석유공사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석유공사 이사회는 잠빌 광구 탐사권 한국 지분 27%와 현지 운영사 잔여자재, 현금성 자산을 500만 달러에 매각키로 의견을 모았다. 앞서 정부는 2008년 카자흐스탄 국영석유회사(KMG)가 소유한 잠빌 광구의 지분 27%를 8500만 달러에 인수했다. 애초 인수 합의 금액은 7500만 달러였지만 계약 과정에서 유가 상승으로 인해 13.3% 오른 금액을 지불했다.
잠빌 광구는 이명박 정부가 공들였던 사업이었다. 지분가격문제로 협상이 지지부진함에 따라 한승수 국무총리가 카자흐스탄을 방문, 극적으로 타결됐다. 이 사업에 석유공사와 KMG, SK이노베이션, LG상사, 현대하이스코, 대성, 대우조선해양, 삼성물산 등이 참여했다. 민간 기업들은 정부로부터 696억원의 성공불 융자사업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정부는 카스피해 북서쪽에 위치한 잠빌 광구에 우리나라 1년 원유 수입량보다 많은 16억 배럴의 원유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 시추 결과 원유 매장량은 1억 배럴도 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이후, 투자한 돈은 약 1억7000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석유공사는 철수를 결정하고 매각을 추진했다. 매각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3월 말, 석유공사가 추진했던 계약 조건은 지금의 매각 금액보다 4배 가량이나 많은 2100만 달러였다.
그러나 매각 협상이 진행되면서 계약 대금은 500만 달러로 주저 앉았다. 카자흐스탄 매수자 측에서 지분매매계약 조건 변경을 요구한 것이다. 계약 보증도 계약 발효일로부터 5년 동안, 최대 500만 달러까지 부담해야 한다. 이와 함께 현지 운영사의 5~7월 운영비도 최대 50만 달러 한국에서 부담키로 했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현지 매수인과 매각에 의견 접근을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컨소시엄으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카자흐스탄 정부의 최종 승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운동권' 배제한 이대생들, 그들의 특이한 승리 8.4 오마이뉴스
'낙인찍기'에 대한 두려움, 운동권에 대한 불신이 가져온 새로운 형태의 투쟁
▲ 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설립에 반대하는 이화여대 졸업생과 재학생 100여 명이 2일 오후 5시경부터 이화여대 정문부근에서 졸업증서를 학교측에 반납한다는 의미로 졸업증서 사본을 벽에 붙이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최윤석
이화여대 학생들이 이겼다. 그간 많은 대학에서 구조조정과 독선적인 사업 추진이 있었고 학생들은 늘 피해를 봤다. 물론 저항도 있었다. 교내에 대자보를 붙이는가 하면, 전체학생총회를 열기도 했고, 심지어 고공농성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학교 측의 불도저식 사업 추진으로 끝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화여대 학생들의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반대운동 결과 학교측이 사업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은 짜릿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여타 학내운동과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면서, 기묘하다는 인상도 함께 받았다. 이번 이화여대 학생들의 반대운동 양상은 기존 운동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폐쇄적인 방식을 고수했기 때문이었다. 이화여대에 경찰 병력 1600명이 투입됐던 지난 7월 31일 이후 부산대학교를 시작으로 한양대, 고려대, KAIST 학부, UNIST 총학생회를 비롯해 전국 각 대학에서 규탄 성명서가 발표됐다.
이를 계기로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에서 전국 각 대학 학생회장들과 연락해 경찰투입을 규탄하고 이화여대 학생들을 지지한다는 기자회견을 진행하려 했지만, 이화여대 학생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각 대학에서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연대의 개념으로 늘 해왔던 지지성명과 기자회견조차 못하게 된 것이다.
그곳에 운동권은 없었다
▲ 지난 30일 이화여대 본관에서 경찰과 학생들이 대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제보 사진
심지어 학내에선 '운동권'으로 알려진 학생들의 농성장 출입을 제한한다거나, 대외적으로 '의도가 있는 정치세력들의 개입을 차단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학내 최고 학생 자치기구인 총학생회가 주도하는 시위도 아니었다.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인 학생들이 시위의 주체였고, 언론 대응도 그들이 직접 했다. 그간 대학가에서 볼 수 없었던 특이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여태까지 다양한 학내 운동에 있어 이렇게 폐쇄적인 전략을 구사하고도 승리한 싸움은 없었다. 단일 공동체의 구성원만으로 싸우기엔 학교는 강압적이었다. 이를 중재하는 교육기관은 뒷짐만 지고 있다보니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형태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부당한 일을 겪고 있다고 대중에게 알리면서, 학생회를 중심으로 뭉치는 형태를 취했다. 학생회는 전체학생총회를 개최한다거나, 학내 궐기대회를 열면서 학교와의 협상테이블을 준비했다. 그리고 판이 커지면 타 대학 학생회에서 이를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형태였다. 이 과정에서 '운동권'으로 불리는 학생들이 나름대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 이화여대 학생들의 시위는 '전복', 그 자체라 말할 수 있었다.
이 배경에는 운동권에 대한 불신과 권력기관의 낙인찍기에 대한 공포감, 그리고 청년세대의 박탈감이 큰 요소로 작동했다. 이화여대 총장이 8월 1일, 학생들의 점거사건과 관련한 기자간담회에서 "정치권이 개입하고, 사회단체들이 개입하지 않았냐?"며 '순수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기득권들은 대체로 시민들이 저항의 목소리를 내면 낙인찍기를 통해 그들의 권리와 요구를 짓밟아 왔다. 당연히 이화여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뭉쳤던 학생들에게도 '낙인찍기'의 공포가 작용했을 것이다.
'운동권'에 대한 불신도 한몫 작용했을 것이다. 정치적, 사회적 사안에서 목소리를 내지만 정작 가까운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가지지 못했던 학내 운동권들이 개입하는 게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대학에서 '운동권' 소리를 듣는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의 간극은 크다. 평소에 만날 시간도 없고, 강의실보다는 학교 안과 밖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달갑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나의 삶과 가깝지 않은 사람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으니 그것이 옳은 말일지라도 거리를 두고 싶을 수밖에 없을 거다. 더군다나 많은 대학의 '운동권'이 점점 위축되면서 외연이 좁아졌다. 이러니 학생들과의 접점은 멀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누적된 불신이 결국 이번 사건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겠다.
권력자의 낙인찍기와, 이에 대항하는 운동권에 대한 불신 사이에서 하나의 이슈에 대한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주도한 이 싸움은 비록 폐쇄적일지라도 결과적으로는 승리했다. 하지만 모든 운동이 이렇게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학생이 제 목소리를 내며 싸웠다는 쾌감 속에서, 이번 이화여대 학생들의 투쟁은 많은 고민거리들을 안겨준다. '동지는 간데없고, 승리의 깃발은 나부낀다.' 딱 그런 상황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댓글들
n****추천59 반대53
과거의 영광은 잊기 힘들죠. 운동권 배제에 대한 섭섭함과, 불편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기사였습니다. 그냥....시대가 변했다...고 생각을 바꾸어 볼 수는 없을까요? 시대가 변했다는게 이 사회에 문제가 없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과거보다 더 본질적이고 난해한 문제들이 쌓인 사회죠. 다만...지금 이 사회에서 소위 `운동권`이란게 뭔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새로운 사회에 맞게, 변한 환경에 맞게 운동을 하는 운동권 인가요? 아님 아직도 기본적으로 80년대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운동권인가요? [낙인찍기에 대한 공포감]이 아닙니다. 운동권이 하는 소리는 옳지만, 그들과 가깝지 않아서도 아닙니다. 일반 학생, 이시대의 청년이 보기에 소위 운동권은 너무너무 이상하고 시대착오적인 집단입니다.
Dongsung Na 추천13반대5 그냥 학벌이기주의자와 학위장사꾼이 싸운거 나하고 하등 관계 없다 . 모든 점거농성의 승리가 ,집단행동의 승리가 마치 정의의 승리인 것처럼 오버하지 마라 ! 진보논객들 비겁하다.입진보라는 말도 아깝다. 이대 졸업생들이 합이 권력순위에서 총장보다 높았을뿐
0..0(0,,0)추천16 반대10
.80년대와 과거 수많은 소위 운동권들 죽어가고 감옥갈 때 열심히 공부해서 검사하고 판사질 하며 잘나가는 것들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너무 잘나가서 문제지만. 솔직히 운동권 욕하는 사람들 원하는 대로 진짜 학생운동권이 없는 세상이 만들어 졌다. 그런데도 또 계속 없어진 운동권 욕이냐?ㅋㅋ...과거에는 학생들이 그 욕처먹는 운동권들이신림동과 빈민촌에서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자신들이 받은 교육혜택을 나눠줬다. 이른바 야학이다. 지금은 정부에서 지원까지 해주는 야학을 학생들이 없앤 것인데....생각 할 줄 모르고 현상만 보는 모지리들이 난리다.ㅋㅋ....그냥 배움의 기회를 없앤 거야...개뿔...한심한 것들.
0..0(0,,0) 추천7 반대6
.결국 삼십대 사회인 여성에 대한 배제와 추방을 운동권이 관여한다면 그냥 흔한 소위 어용운동권이나 꼴통종교학생회의 작품이다. 이런 소동의 본질도 파악 못하고 무조건 도우려 했다니진짜 수능보고 대학생이 됐는지 기여금으로 돈으로 학교에 들어가서 운동권 흉내 내는지 궁금하다. 나중에 정치인 되려고.ㅋㅋ..그런데 소위 순혈주의나 고립주의는 소멸의 신호다. 생태계와 인간사회에 공통적 소멸신호는 변화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것이다. 변화는 지들끼리만 뭉치는 근친주의와 상반된 것이다. 이해를 못하겠지만. 장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견디는 것은 일억이 넘는 다양성이다. 기껏 몇십명 여성사회인도 품지 못하고 쫒아내는 집단에게 미래란 없다. 근친은 기형아를 낳을 뿐. 집단이기주의 승리다. 그래서 뭐?
0..0(0,,0)추천12반대9
.그냥 집단이기주의 승리다. 이미 대학은 취업조차 보장 못하는 사양길로 접어들었고 인구감소와 함께 학생수도 감소 중이다. 학교가 수익창출이 줄어들자 삼십대 이상 여성사회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해서 돈을 벌자는 시도가 저지된 것이다. 그냥 자기 학교에 장애인 학급을 막거나 자기 동네에 공공임대아파트 건설을 막아낸 강남아줌마 현상이다. 혹시라도 관련 사진을 보면 모든 참가자들이 얼굴을 철저히 가린다. 다행히? 약간의 양심은 있다는 걸까? 내부 게시판은 참담할 지경이다. 삼십대 여성 사회인들이 미혼모니 쓰레기니 비하발언 일색이란다. 그런데 뭐 이런 졸업장 희소성 지키기 순혈주의..ㅋㅋ..소동을 학생들의 승리니 새로운 방식이니 칭송하니 황당하다. 일단 이기면 장땡인가? 개싸움인가?ㅋㅋ..
Lotus.추천10반대4
.새로운 운동의 방식이 요구된 사례라고 본다. 자신과 친밀된 삶을 떠난 운동은 이젠 퇴출되는 신호탄을 알리는 경적이다. 과거 거대담론을 논하던 운동권들이 지금 다 어디있나... 국회들어가서 운동을 팔아 또 다른 갑질을 하고 있잖은가...더이상 속지 않는다...국민들은..그런것보다. 나 자신의 우리들 삶의 소소한 변화를 기대하는 것이다.
쟝밥티스트.추천20반대7
.운동권은 없다. 양심적인 지식인이 되려고 하는 피끓는 청춘이 있었을 뿐
큐사랑염색방추천14반대4
.상아탑이라고 했지요~학생이 바로서야 나라가 섭니다~
게이너-추천37 반대8
.기사 보면서 씁슬하네요~기득권세력은 국정원, 국세청, 검찰, 경찰등 똘똘 뭉쳐 있는데 이런 카르텔에 일엽편주마냥 모든 저항이 파편화 된다면 과연 그 싸움은 어떻게 될까요? 불을 보듯 뻔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기득권세력들이 저항하는 사람들이 연대하지 못하도록 종북,전문시위꾼, 좌파 등등 색깔칠하기에 몰구하고 있는 것이고~이미 우리 모두에게 내재적으로 스며 들어있는 자기검열은 차치하고라고 이 벽을 깨지 않으면 영원히 이 구도대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을듯 합니다. 이번 이대투쟁은 욕망을 건드렸기 때문에 자발적 단결과 저항이 가능했다라는 판단입니다. 그 욕망은 일류여대라는~~
댓글 n****08-04 16:49:05
.솔직히....운동권...다들 싫어 합니다. 더 적절하고 솔직한 표현을 찾자면 요즘애들은 운동권을 혐오해요. 기득권 세력이 뭐든 간에...그들이 똘똘 뭉쳐 있다고 해서 운동권과 `연대`씩이나 하고픈 사람들(의식화 안된 일반인)이 몇이나 될까요? 이 사회에서...어떤 사안에 대해 대립과 갈등이 생겨 집단행동을 할때..운동권이 끼어들면 1000% 원래의 취지는 어물쩡 사라지고, 지도부?는 운동권이 점령하고, 철저하게 정치화 됩니다. 나이 많으신 시골 어르신들이야 이런 간악한 운동권,시위로 먹고사는 자들에게 이용 당할 수 있겠으나, 젊은 사람들이야 어디 당하겠어요?
adso(convergence)-추천36 반대5
.한번의 어쩌다 승리는 가능하더라도 연대가 없으면 결국 백번중 99번은 지겠죠. 낙인찍히기에 대한 두려움 이해합니다. 인터넷이 개판된 이유도 이런 인간들이 들끓으면서부터였죠(일베뿐만 아니라 오유 뽐뿌충도 마찬가지). 일단 운동권 애들이 그동안 얼마나 개판을 치고 다녔길래 이렇게 되었나 반성 좀 하시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만, 과연 그럴 지...)그러나 결국 연대없는 투쟁은 결국 거대한 주류들에게 언제나 질 수 밖에 없다는 것 명심하세요
댓글 n****08-04 16:50:57
.연대는 좋으나, 운동권은 싫다는걸 어쩌겠어요? 싫은 넘들에게 저항하기 위해..더 싫은 넘들과 `연대`씩이나 해야만 합니까? 운동권 아닌 사람들과 연대하면 되잖아요?
San N-.추천15 반대2
.어느대학이든 전통과 명예라는게 있겠죠 학교은 학생들이 있어야 존재가치가 있겠죠.학교는 있고 학생이 없다면 의미를 잃어버리겠죠 교육부 사학재단의 일방적인 행정이 부른 그 동안의 대학구조정에 심각한 문제점을 보여주었다고 봐야하겠죠 보이지 않는 재단의 정치적인 결정에 의한 행정을 중립이란 결정으로 무력화 시킨것 아닐까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써 학생분들과 동문님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민주적 이성적인 판단과 결정으로 원만한 해결을 응원합니다 불미스러운 일에 대한 처리는 훈방조치가 좋지 않을까요.동지는 간곳없고 승리의 깃발만 나부껴 동지는지금에 문제를 걱정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지 않을까요.
시민정치 이후 시민사회의 ‘새싹’ 8.9 주간경향
ㆍ과거 386운동권 세대 활동방식과 달리 정치적 과잉 벗어나 시민과의 소통 넓혀
대낮에 형광등이 켜져 있는데도 살짝 어두침침하다. 벽면 나무책장 가득히 진열되어 있는 옥시 상품들. 위로 구호가 적힌 펼침막이 걸려 있다. ‘제2의 옥시를 막자’, ‘Oxy Out’, ‘스프레이 제품이 위험하다!’ 7월 27일 <경향신문> 인근 건물에 자리하고 있는 환경보건시민센터를 찾았을 때 안쪽 사무실에 앉아 있던 최예용 소장(51)이 나와 반갑게 인사한다. 에어컨이 있지만 틀진 않는다. 선풍기를 들고 나온 최 소장과 마주앉았다. 개인적으론 이렇게 1대 1 대면으로 만난 건 2007년 4월 이후 처음이다. 9년이 지났지만 한결같다. 달라진 게 없다. 그를 처음 만난 건 훨씬 전이다. 근 20년 가까이 됐다.
최 소장은 누구보다 오래 ‘이 판’에 있었던 인물이다. 환경운동연합 전신인 공해추방운동연합(1988년 창립)이 만들어지기 전부터다. 그가 대학(서울대 산업공학과) 2학년 때인 1986년부터 청년반공해단체인 공해추방운동청년협의회(공청협) 활동을 시작했으니 올해로 30년째다. 예전 일-서울대 공대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던 김세진(미생물학과)·이재호(정치학과) 열사의 신림동 사거리 분신-에 대해 물었다. “사실 어리바리한 상태였는데 개인적으로 충격적인 사건인 것은 맞습니다. 제가 계속 활동가로서 삶을 사는 데 막연하지만 배경으로 자리잡은 사건이에요. 매년 4월 28일이면 추모제를 하는데, 어느덧 까먹고 지내다가 20주년이 지나고, 다시 얼마 전에 그때로부터 30년이 흘렀다고 하니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을 알고 있었느냐는 물음에 “학번으로는 제가 후배급이라-그는 삼수 후 대학에 들어갔다-저는 옛날 말로 ‘패밀리’에 무관한 일반 학생이었고….”
패밀리. 요즘에는, 아니 안 쓰인 지 거의 20년은 된 운동권 은어(隱語)다. 그가 시민운동판에 들어온 지 몇 년 뒤부터 민주화운동을 하던 386그룹 인사들의 ‘러시’가 일어났다. 1989년 경실련 창립, 다시 1994년 참여연대 설립으로 대거 존재 이전을 했던 이 ‘386운동권’ 인사들은 다시 몇 차례의 계기를 거쳐 설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리고 지금 그는 ‘희귀종’이 됐다. 이른바 메이저 시민운동판에 남아있는 몇 명 안 되는 386세대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진상규명 활동을 주도적으로 하고 있는 환경보건시민센터의 서울 서대문구 피어선빌딩 사무실. 문제를 일으킨 옥시 제품들의 불매를 호소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정용인 기자
시민운동판에 남은 ‘마지막 386세대들’
2000년대 중반 무렵부터 각 시민사회단체의 사무처장급 인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참여연대의 김기식·김민영·이태호, 환경단체 쪽의 서왕진·오성규, 경실련의 박병옥 등이 주요 멤버였다. 현재 이들의 길은 모두 달라졌다. 여전히 ‘시민운동’에 남아있는 인사는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뿐이다. 최 소장은 이 386인사들의 모임에 참여하지 않았다. “원래 그런 모임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 외톨이가 된 측면이 없지 않네요.”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사단법인 등록도 하지 않았다. 상근자는 그와 임흥규 팀장 딱 두 사람이다. 더 늘릴 계획도 없다. 사단법인 등록을 하지 않는 건 프로젝트에 휘둘리다 보면 해야 할 발언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로 화려한 주목을 받고 있는 요즘이 시쳇말로 ‘리즈시절’(전성기를 뜻하는 인터넷 용어)이다. 그렇다고 딱히 살림이 편 것도 아니다. “주위에서 ‘분위기가 이렇게 떠 있으니 회원 가입 많이 하죠?’라고 덕담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밖에서 보면 한 200~300명쯤은 신규 회원이 들어왔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데, 사실 그 후 관심을 보인 사람을 다 더하면 20~30명 정도?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해요.” 과거 그는 운동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스칼라 액티비스트’를 지향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굳이 번역한다면 ‘전문성을 가진 활동가’ 정도의 비전 제시다. “이전에 박사논문을 준비하면서 뼈저리게 깨달은 것인데, 활동가가 갖는 주제와 학위 주제가 일치하지 않고서는 논문을 쓰는 게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NGO 활동은 아무래도 호흡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시민운동 활동가의 위치가 그대로 두면 애매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과 전문가의 딱 중간 정도? 언론이 필요로 하는 정도는 알지만 그 이상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는 한계가 옵니다. 굳이 박사학위가 아니라도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하나의 주제를 잡고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 이쪽에서는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사회의 위기담론이 처음 나온 것은 2000년 총선시민연대 활동 직후였다. 그 후 16년. 위기를 넘어서 황폐화되었다. 이미경 환경재단 사무총장은 “지난 8년간 벌어진 보수정권의 끈질긴 탄압과 방해도 한 원인이지만 사람들의 의식과 욕망이 바뀌었는데도 따라가지 못하는 기존의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고답적인 태도도 주요한 이유”라고 말한다. 그리고 대안처럼 나온 것이 ‘시민정치’였다. 시민운동 활동가들 사이에서 ‘시민정치’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2009년 ‘희망과 대안’이라는 토의모임이 만들어진 때가 처음이었다. 시민정치는 거버넌스에 대한 이야기다. 시민사회가 GO, 그러니까 정부와 지자체나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협치’를 하는 것이 보다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참여민주주의의 이상에 부합한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원론이다. 현실은?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존재 이전이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빅텐트론’이라는 연합정치를 주장하던 김기식은 당시 <주간경향> 인터뷰에서 ‘스스로 권력의지가 부족하다’며 정계진출을 부인했다. 하지만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된 후 그는 ‘진보 집권플랜B’와 관련한 인터뷰에서 “시민정치 영역에서 운동하는 것이 당시 목표였는데, 통합을 주장한 책임론 때문에 정치권에 들어왔다”고 주장했다.(<주간경향> 978호 인터뷰 참조) 당시 ‘플랜B’를 꺼내든 것은 역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변화된 정치권의 상황 때문이었다. 그해 총선에서 야권은 다수당이 되는 데 실패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통합진보당 분당사태가 일어났다.
3월 3일 총선시민네트워크 소속 시민단체 대표들이 참여연대 회의실에서 공천 부적격자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김정근 기자
2012년, 그리고 2016년의 ‘플랜B’
2016년, 또 다른 ‘플랜B’ 논란이 한창이다. 플랜B는 시민공익활동 플랫폼의 이름이다. ‘대나무숲’과 같은 익명의 온라인공간 형식을 빌려 현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하는 활동가들의 운동에 대한 생각과 조직문화 등에 대한 치열한 토론이다. 지난 7월 중순, 강정모 시민교육콘텐츠연구소 소장이 이 ‘플랜B’에 투고한 글이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시민단체의 상근활동가는 상근회원이다’라는 명제를 제시하며 영리조직의 ‘직원’은 급여만큼 일하지만 조직의 가치에 동의한 회원이 아니기 때문에 가치와 비전에 대한 동의에 기반한 상근활동가는 ‘직원’과 다른 정체성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글에 대해 ‘2030 현업 시민활동가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단적인 반박이 이것이다. “시민단체에서 월급을 받는 사람과 일반기업에서 월급을 받는 사람의 노동윤리는 근본적으로 달라야 하는가.”(‘활동가를 향한 정신 승리의 파산을 바라보며’ 명의의 글)
사실 현재의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2030대 활동가는 이른바 ‘386운동권의 존재 이전’으로 형성된 과거의 시민사회 활동가와 참여경로나 비전, 목표하는 바가 다를 수밖에 없다. 앞의 ‘플랜B’ 논쟁에 댓글을 남긴 조원영씨(36)는 2009년부터 ‘1인 시민활동가’를 표방하고 있다. 대학원에서 북한학을 전공하고 “2007년부터 평화네트워크 활동을 시작으로 1년을 꽉 채우고 나왔다”는 조씨는 “나부터 이해할 수 있는 운동을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내 또래나 나보다 어린 사람들은 어떤 이슈가 자신과 맞닿아 있지 않으면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재미가 없어도 움직이는 윗세대의 느낌과는 확연히 다르다. 재미와 의미를 함께 추구하는 운동을 하고 싶다.” ‘시민활동가는 이래야 한다’는 전형을 깨고 싶어 1인 시민활동가를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사회에 공헌하고 싶고,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작게라도 자기 자리에서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을 돕는 운동방식이다. 그가 요즘 꿈꾸는 것은 새로운 형식의 강의를 조직하는 것이다. “서로 일면식도 없지만 합치면 묘한 케미가 만들어지는 두 사람의 강사를, 딱 10명의 청중만 초대해서 이뤄지는 그런 모임을 만들고 싶어요. 이야기만 듣고 가는 것이 아니라 다들 가깝게 만나고 끝나면 좋은 관계가 계속 이어지는.” 기존 시민사회의 전형적인 활동방식과는 확실히 다른 ‘꿈’이다.
“압축성장 비판하며 압축성장 닮아갔다”
“어떻게 보면 K팝 붐과 비슷한 것 같다. 실제 일본에 가서 보면 ‘K팝은 이제 죽은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확실히 붐이 꺼진 것은 맞다. 다만 K팝 차트나 팬텀 같은 것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아가는 것이다.” 이재현 NPO스쿨 대표의 말이다. 그동안 정치적으로 과잉 대표화되었던 시민사회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과정이 최소 10년은 걸릴, 앞으로도 오래갈 과제라고 전망했다. “과거처럼 사회적 영향력이 있었다면 본인의 타이틀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 ‘잘 나가는’ 시민단체 간사였다면 웬만한 국회의원 부럽지 않았다. 관료들 뿐 아니라 국회의원 보좌관도 앞에서 설설 기지 않았나. 그런 영향력이 있을 때는 정치권에 있든, 시민사회에 있든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과거에도 전망을 찾지 못했던 것은 똑같다. 자기 전망을 못 찾아도 ‘어떻게 되겠지’라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을 뿐이다.” 현실을 되돌아보는 냉혹한 시기를 맞이하여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현재의 시민사회가 그럼에도 여전히 옛날 방식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이며, 내부 갈등은 거기에서 벌어진다고 말했다. “시민사회가 압축성장을 비판하면서 성장했는데, 돌이켜보면 자신도 그런 압축성장 방식을 닮아 있었다. 결국은 여기서도 시민과의 소통이 아니라 성과 창출이라는 효율성을 추구하다 보니 시민과의 괴리가 확대된 것이다. 총선시민연대 활동이 비판을 받는 지점도 평상시 생활의제와 관련해 지역을 방치하다가 선거철에만 정치인을 심판하자고 나오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공감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가 아니었을까.”
지난해 7월 창립한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은 시민사회 내의 다양한 세대와 단체를 네트워킹해 소통하고 협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바꿈 제공
지난해 7월 창립한 단체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이하 ‘바꿈’)은 그런 시민사회 내 세대 갈등을 풀어내자고 만든 단체라고 이 단체의 전진한 상임이사는 말한다. “사실 모든 영역에서 경계가 애매해졌다. 운동이냐 아니냐를 단순히 나누는 것도 애매해졌고, 제도권이냐 비제도권이냐를 따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바꿈’의 경우 폭로를 주요 활동방식으로 하는 과거의 시민운동 방식을 지양하고 주로 사람을 만나 조직하게 해주고 도와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옛날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게 뭐하는 것이냐, 이게 목적은 무엇이냐고 물어보곤 한다. 우리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힘을 실어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풀뿌리 차원에서는 다이내믹하게 변하고 있는데 그 변화를 수용하는 틀이나 방법론에 대한 논의는 없고, 그런 밑바닥으로부터의 변화를 한국의 시민사회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공석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의 말이다. 곧 출간될 저서 <한국 시민사회를 그리다>를 준비하면서 전국의 풀뿌리 지역단체에 대한 현장조사를 하면서 공 교수는 그런 사례를 많이 봤다고 했다. 공 교수는 핵심적인 문제로 ‘순환형 로테이션의 부재’를 거론했다. “마틴 코라고 말레이시아 소비자운동 출신의 국제적으로 유명한 시민단체 활동가가 있다. 영국 유학파 출신의 엘리트이긴 한데, 유엔을 무대로 활동하면서 위로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제3세계 네트워크’라는 조직을 만들어내 계속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은 이런 시민사회 활동가가 없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환경석학인 레스터 브라운 지구정책연구소 소장도 마찬가지다. 월드워치를 1970년대 창립한 데 이어 다시 FAO(유엔식량농업기구)에 들어가 인도에 가서 현장경험을 쌓은 뒤 다시 시민사회 영역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염태영 경기도 수원시장이 환경운동 출신인데, 그런 사람들이 풍부한 시정 경험을 쌓고 다시 시민사회 영역에 돌아와 활동할 수 있으면 그런 것이 시민사회뿐 아니라 정부 관료 쪽에도 큰 자산이 되는 것이 아니냐.” 간단히 말해 시민사회에서 공직, 연구기관 등을 거쳐 다시 시민사회로 돌아올 수 있는 순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 교수는 덧붙였다. “지금은 시민사회가 하나의 정거장, 보다 위로 올라갈 레버리지쯤으로 작용한다. 그러기 때문에 결국 시민사회는 황폐화될 수밖에 없다. 떠나는 사람만 있고, 돌아오는 사람은 없는.”
국회의원 경력을 마치고 환경단체 팀장이라는 직책을 택한 장하나 전 의원의 사례는 그러기 때문에 종전에 없는 주목을 받고 있다고 시민사회 내·외부 인사들은 입을 모은다(인터뷰 참조). 공 교수는 “장 전 의원이 하나의 전형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면 시민사회나 정부 관료 어느 쪽으로든 유익한 결과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민사회-공직 순환모델’ 만들어질 수 있을까
시민사회에서 공직으로 ‘존재 이전’을 한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하승창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아이쿱협동조합지원센터 사외이사를 역임하다가 올해 1월 서울시로 들어갔다. 하 부시장은 공직에 들어가기 전에 더 체인지, 씽크카페 등 기존의 시민운동 방식을 탈피한 새로운 형태의 시민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창했다. ‘시민정치 이후의 시민사회’가 어떻게 될 것 같으냐는 물음에 대해 하 부시장은 “이전에 책 등을 통해 주장했던 것처럼 시민사회가 약해진 것이 아니라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과 같은 형태로 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은 오히려 풍부해졌다”며 “다만 이들의 활동이 눈에 안 띄는 것은 참여연대나 경실련처럼 이들을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조직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남는 질문.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염태영 시장 이후의 시민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예를 들어 박원순 시장은 장하나 전 의원처럼 임기를 마치면 시정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시민사회로 복귀할 수 있을까. 당장 박 시장을 따라 들어갔다가 서울시에서 나온 시민사회 인사들의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하 부시장은 “변화된 상황에서 나 자신도 2011년 서울시 재·보궐선거, 2012년 대선, 그리고 다시 2014년 선거에 참여하고 다시 시민사회로 돌아갔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에서 나온 분들의 경우 시민사회든 정치권이든 자기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 있을 것이고, 그것은 그분들 스스로의 의사를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환경운동연합 생활환경TF 팀장을 맡은 장하나 전 의원 “애엄마가 되니 생활환경 문제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환경운동연합 생활환경TF팀장을 맡은 장하나 전 의원. / 정지윤 기자
“오늘은 선글라스를 끼고 멋지게 나타나셨네요.”
그가 나타나자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이 덕담을 건넨다. 19대 국회의원에서 환경운동연합 생활환경TF 팀장으로 최근 변신한 장하나 전 의원이다.
“저기 커피잔 하나 놓인 빈 자리, 제가 차지했습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느라 비상근 활동가로 시작합니다. 첫 사업인 ‘생활화학제품 팩트체크’에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7월 9일 장 팀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환경운동연합에서 새로운 일을 맡게 됐다고 주변에 알렸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새출발’에 성원을 보냈다. 7월 19일,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서 장 팀장을 만났다.
어쩌다 환경단체에 들어와 일할 생각을 하게 된 겁니까.
“사실 19대 국회 때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깊게 관련이 되어 있었어요. 20대로 넘어왔지만 이 사건이 끝난 것은 아니잖아요. 생활환경의 연장선상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외에도 가습기살균제 참사 전국네트워크에서도 대외협력위원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어요. 시민사회와 국회가 긴밀히 소통하는 데도 제가 메신저 역할을 해야겠죠.”
국회의원을 하다가 임기를 마치고 시민단체에, 그것도 현역 팀장으로 들어간 건 아마도 최초 사례인 듯 싶습니다.
“그런가요? 보통 국회의원을 하신 분이 계속 정치에 뜻을 두고 활동할 때는 관행적으로 사단법인 같은 것을 만들어 대표를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해보라는 이야기를 동료·선배 의원들에게 듣기는 했는데….”
주변 권유를 따르지 않은 이유는.
“다른 분들은 단체를 잘 꾸려 나갈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활동력이나 기대할 수 있는 성과라고 할까, 이런 면에서 제가 이렇게 기존에 활동하는 단체에 들어와서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생활환경TF를 맡으셨나요.
“처음부터 이 일(생활환경TF)을 하겠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환경연합을 통해 제 역량도 더 키우고 일도 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논의드렸는데, 같이 의논하다가 나온 것이 생활환경TF예요. 생활화학 제품과 관련한 부서가 있기는 했는데, 활성화되지 않았으니 이번에 한 번 잘해 보자고 의기투합한 거죠.”
비상근 팀장인데, 월급은 나옵니까.
“비상근을 선택한 것은 육아 때문이에요. 사실 애 낳고 1년 이상 역할을 못했어요. 국회의원은 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출산휴가 두 달을 겨우 썼는데, 사실 지금은 엄마 역할에 저도 푹 빠져 있어요. 당분간은 일과 육아를 병행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제가 비상근을 하겠다고 했고, 염형철 총장님이 보수 이야기는 안 하시네요.(웃음)”
국회의원과 시민단체 활동가로서의 역할은 아무래도 조금 다를 텐데요.
“그렇죠. 국회가 못할, 시민사회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회가 아무래도 정부를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국회에서 경력이 오래다 보면 공무원들과의 관계도 ‘좋은 게 좋은’, 그런 관계가 되고, 그게 유능함의 지표가 되곤 했어요. 의원을 할 때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처럼 타협을 안 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민주주의가 유지되려면 삼권분립 이외에도 시민사회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사회가 감시를 못하면 썩은 권력이 되는 것이에요. 시민사회단체 없이 스스로 자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거꾸로 정부나 국회도 파트너로 인정해야지요. 단체들도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단체들이 많은데, 어느 정도 독립성을 기르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요.”
생활환경TF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게 되는 겁니까.
“말 그대로 팩트체크를 하는 거예요. 가습기살균제 사건 이후에 다른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우려도 많고, 국가나 관련 법에 대한 불신도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국민들이 스스로 직접 화학물질이 안전한지 자료도 찾아보고, 국가의 스크린 시스템을 불신하는 상황이에요. 피해가 나타나면 그 피해는 그대로 국민의 몫이고요. 이것을 바로 잡아야겠다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런 활동도 환경단체 혼자서는 할 수 없다고 냉정하게 판단했고, 그래서 국민들께 이런 팩트체크 프로젝트가 있으니 같이 하자고 제안하는 겁니다. 곧 SNS페이지도 만들고, 활동이 시작될 겁니다.”
아이를 낳아 보니,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던가요.
“계획하지 않았던 임신과 출산을 하고 나니 ‘엄마가 돼 바라보는 세상’은 정말 다른 세상, 다른 세계였습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영화 있잖아요? 그 영화 제목을 빌려 말하면 ‘엄마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정치’를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어요. 진짜로. 20대 때 일을 못하는 것은 정말 아쉽기는 한데, 청년도 그렇고 엄마도 진짜로 그 처지가 되어보지 못하면 정책을 만들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조금씩 변하겠죠. 정치제도도 바뀌면 국민들을 만족시킬 의정활동을 하는 정치인들도 늘어날 것이고.”
토건적·냉전적 상상력 대신 민주적인 상상력을 8. 9주간경향
토건적 상상력과 냉전적 상상력의 전횡으로 한국 사회는 반생태적이고 비인간적이며 비민주적인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어둠이 깊어질수록 새벽은 가깝다. 미약한 목소리지만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주는 움직임이 조금씩 꿈틀대고 있다.
낡아빠진 두 개의 상상력이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옥죄고 있다. 토건적 상상력과 냉전적 상상력이다. 토건적 상상력은 토건사업을 통해 지역 발전과 경제성장을 도모하겠다는 발상이다. 전쟁 직후의 가난하고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우리나라에서 토건사업을 통한 지역 발전이라는 처방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지역에서는 중앙으로부터 대규모 토건사업을 잘 따오는 정치인을 국회의원으로 뽑아주었다. 이런 추세가 오래되자 지역에서는 토건사업을 중심으로 이른바 성장연합을 형성하였다. 토건사업자들, 정치인들, 관료들, 그리고 (주로 토건사업자들이 세운) 지역 언론들을 중심으로 긴밀하게 패거리를 형성한 것이다. 이들은 토건사업을 통한 경제성장의 과실을 서로 나눠가졌다. 하지만 토건사업이 환경을 파괴시키거나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경우 발생하는 고통과 피해는 성장연합에 속하지 않은 평범한 지역 주민들이 감내해야만 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왼쪽 세 번째)와 박창근 교수(왼쪽 두 번째) 등 4대강 조사위원들이 7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4대강 실태조사 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여야를 가리지 않는 토건사업 집착
토건사업에 대한 집착은 여야를 가리지도 않는다. 지난 6월 말, MB의 남자였던 이재오 전 의원이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서 여전히 4대강 사업은 잘한 사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고, 녹조 발생은 4대강 사업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강물 바닥에 산소가 없어지면서 강이 죽어가고 있다고 전문가들이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데도 4대강 사업을 잘한 사업이라고 평가하는 건 대체 무슨 신앙인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추미애 의원은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둘러싼 갈등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전북에 새만금 신공항 건설을 하겠다는 공약을 들고 나왔다. 우리나라 지방공항들의 적자 상황, 그리고 바로 옆의 무안공항이나 청주공항과의 중복 문제가 뻔히 눈에 보이는데도 왜 공항 건설에 집착할까? 약 30조원이 들어간 4대강 사업 이후 토건업자들에게 그 정도 규모의 대규모 토건사업이 필요했고, 공항이 새로운 사업 아이템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공항담론이다. 세계로 향한 관문인 공항을 우리 지역에 만들어야 지역이 발전한다는 담론이다. 물론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내용이지만, 지역주민들의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이용하여 크게 한몫 잡으려는 토건세력들의 부추김이 뒤에 도사리고 있고, 이를 정치인들이 이용하는 것이다. 신기루 쫓기와 다름없을 뿐만 아니라 지역의 생태와 공동체를 파괴시키는 토건사업에 여전히 집착하도록 만드는 토건적 상상력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갉아먹고 있다.
냉전적 상상력 역시 우리 사회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냉전시대의 산물인 분단 체제가 남한 사회의 인권과 평화,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제약해 왔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불행한 역사다. 국시(國是)를 반공으로 하고 체제에 대한 비판과 이견은 모두 빨갱이로 몰아붙여서 억압하였다. 비단 정치적 견해만이 아니다. 냉전구도에서 강요되었던 흑백논리와 진영논리는 사회의 모든 분야에 만연하여 나의 생각이나 견해와 다른 것들을 차별하거나 적대시하게 하였으며, 다양한 삶의 방식과 가치관, 소수자의 인권이나 목소리를 폭력적으로 차단하고 억압하는 사회를 만들었다.
중요한 권리들에 대한 관심 확대
잠시 ‘국민의 정부’의 햇볕정책, ‘참여정부’의 동북아시아 조정자론이라는 평화적 해법을 통해 분단체제가 완화되는 듯도 했다. 그러나 1970년대 수준의 안보의식과 판단력을 소유한 현 정권이 편집증적으로 북핵문제와 대북제재에 매달리고, 사회적 합의나 토론 없이 독단적으로 개성공단 폐쇄, 사드배치 결정 등을 내림으로써 우리의 삶 자체는 한없이 불안정해지고 위험해졌다. 지난 7월 24~25일 개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사드 배치 결정과 관련해 “한국의 최근 행위가 신뢰를 훼손시켜 유감”이라는 말까지 했다. 그동안 친한(親韓) 노선을 유지했던 중국이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과의 경제적 협력관계를 축소시키거나 제재할 경우 우리 경제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사드 배치를 통해 남한의 지배층이 얻는 이익이 무엇인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그러나 적어도 북한 지배층을 도와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북한은 겉으로는 격렬하게 사드 배치에 반대하고 있지만 핵 보유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였고, 사드 배치를 계기로 중국·러시아와의 공조관계를 통해 김정은 체제를 공고화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마련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드 후보지로 결정된 성주군은 투쟁에 나섰지만, 현재 진행되는 상황으로 봐서는 승리를 낙관하기 어려워 보인다. 과거와 비슷한 시나리오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총리가 적당히 방패막이를 하고, 이를 구실로 외부세력 개입설, 폭력 시위와 지역이기주의 비난, 괴담 유포 엄벌 등의 여론몰이를 통해 성주군의 투쟁을 고립시키고, 사드 배치에 따른 핵심적인 문제점(안보 위협과 비민주적 결정과정)을 흐릴 것이 분명하다. 용산참사가 그랬고, 밀양 송전탑 투쟁이 그랬으며, 강정 해군기지 투쟁이 그랬고, 세월호 참사가 그러했다. 이런 사회에서 모든 구성원이 자율적으로 좋은 사회를 만드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덕목과 가치는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대신 99%의 구성원들을 개·돼지 취급하는 귀족적이고 반민주적인 사고가 독버섯처럼 자라게 된다.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 사회적 연대를 위한 노력, 바람직하고 인간적이며 민주적인 사회에 대한 상상력 자체가 차단되는 것이다.
결국 토건적 상상력과 냉전적 상상력의 전횡으로 한국 사회는 반생태적이고 비인간적이며 비민주적인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어둠이 깊어질수록 새벽은 가깝다. 미약한 목소리지만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주는 움직임이 조금씩 꿈틀대고 있다.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고, 탈성장이라는 과감한 목표를 제안하는 흐름도 있으며, 탈핵과 에너지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소수자들의 인권 보장에 대한 요구와 더불어 주거권, 도시권, 동물권 등 중요하지만 간과되었던 권리들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확대되고 있다.
토건적 상상력과 냉전적 상상력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국가에, 정확하게는 지배층의 이해관계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국익, 국가안보, 지역경제 발전이라는 집단주의적 목표에 개인이 동원되는 것을 정당화해온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상상력은 독립적이고 책임 있는 개인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기획하고, 사회에서 발생하는 편익을 고르게 나눠가질 수 있는 사회를 꿈꾸게 한다. 따지고 보면 사회에서 생산되는 집단활동의 결과물은 사회적 공동 자산을 활용한 것인데, 왜 특정 집단이 그 편익을 독차지 하는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허버트 사이먼도 개인이 이루는 성과의 90% 이상은 축적된 과학지식이나 사회제도와 같은 사회 자본에 의존하기 때문에 70%의 소득세를 과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기본소득을 시민배당이라고 부르는 것도 쉽게 이해된다. 공유자원의 활용이라는 집단활동의 결과물을 개인들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인 것이다. 단순히 소비자로서 시스템이 만들어놓은 허위의식과 욕망을 쫓아서 맹목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정치적 주체로서 살아가는 자유로운 개인들이 등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이 함께 모여 더 좋은 사회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또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이것을 우리는 생태적이면서도 민주적인 상상력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바로 이 상상력이 필요하다.<이상헌 한신대학교 교수·녹색전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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