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펄 끓는 지구’…올해도 더 강해진 ‘초강력 태풍’ 온다
푸드 마일리지’ 줄이면...환경부담도 줄어든다?
니콜라스 압델카데르(Nicolas Abdelkader) 포토몽타주 'the urgency to slow 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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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펄 끓는 지구’…올해도 더 강해진 ‘초강력 태풍’ 온다
기상청 “평년보다 높은 수온에 최대풍속 초속 54m 태풍 발생 가능성 상당”
17호 태풍 ‘타파’가 북상하면서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앞바다에서 거대한 파도가 강풍과 함께 해안으로 몰아치고 있다. 부산/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지난해 8월 초강력 태풍 '레끼마'로 중국이 초토화됐다. 사망·실종자만 70여 명에 이재민은 1천300만명에 이르렀으며, 막대한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이어 같은 해 10월 초강력 태풍 '하기비스'가 휩쓸고 간 일본 역시 그야말로 '쑥대밭'이 돼 치명적인 상흔을 입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작년 '레끼마'와 '하기비스' 같은 초강력 태풍이 상륙하지 않았지만. 이런 행운을 항상 기대하기는 어렵다.
시속 223㎞ 강풍·한라산에 하루 1182㎜ 폭우 기록
기상청 국가태풍센터에 따르면 기상청 관측 이래 태풍으로 인한 최대순간풍속 최고치는 2018년 8월 23일 태풍 '솔릭' 때 관측됐다. 당시 한라산 진달래밭에서 최대순간풍속 초속 62m가 기록됐다. 시속으로 계산하면 223㎞가 넘는 엄청난 세기의 바람이다.
이는 태풍 '매미' 때의 기록을 넘어선 최대순간풍속이다. 태풍 '매미'가 내습했던 2003년 9월 12일에는 제주 서쪽 끝 고산에서 최대순간풍속 초속 60m에 달하는 강풍이 관측됐다. 태풍 '루사'가 제주를 비롯한 한반도에 영향을 준 2002년 8월 31일과 '차바'가 우리나라에 상륙한 2018년 10월 5일에도 고산에서 각각 초속 56m가 넘는 최대순간풍속이 기록됐다. 특히나 제주는 태풍이 한반도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하면서 태풍이 가장 강력한 바람을 몰고 올 때 이를 맞이해왔다.
1937년부터 지난해까지 우리나라를 지나간 태풍 가운데 제주에서 최대순간풍속을 기록한 태풍은 1위 솔릭(제주·62m/s), 2위 매미(제주·60m/s), 4위 루사(고산·56.7m/s), 5위 차바(고산·56.5m/s) 등 10위권 중 절반 가까이에 달했다.
태풍은 강력한 바람과 함께 엄청나게 많은 비를 뿌린다. '나리'가 상륙한 2007년 9월 16일 제주에서는 하루 420㎜의 물 폭탄이 쏟아지면서 일일강수량 역대 1위를 기록했다. 2018년 10월 5일에는 태풍 '콩레이'가 내습하면서 제주지점(제주시 건입동 제주지방기상청)에 하루 310㎜의 비를 퍼부어 일일강수량 역대 2위를 갈아치웠다. 2014년에는 태풍 '나크리' 영향으로 8월 2일 하루 한라산 윗세오름(해발 1천700m)에 1천182㎜의 비가 내렸다. 이는 한라산 고지대에 무인 자동기상관측장비(AWS)가 설치된 2002년 이후 최대 기록이다. 이듬해(2015년)에는 태풍 '찬홈' 영향으로 7월 11일부터 13일 오전 6시까지 윗세오름에 1천432.5㎜라는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기도 했다.
‘펄펄 끓는 지구’ 태풍이 강해진다
세력이 강한 태풍은 최근 들어 발생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 또한 한반도에 상륙하는 태풍의 강도 역시 세지는 추세다. 기상청은 지난달 기존 태풍의 강도 등급을 기존 최고등급 '매우 강'보다 한단계위인 '초강력' 등급을 신설하고 기존 '약' 등급은 삭제했다. 2011년부터 최근 10년간 '매우 강' 등급의 태풍이 전체 발생 태풍 중 5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기상청은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초강력'은 최근 10년간 발생한 태풍의 강도 중 상위 10%에 해당하며, 중심 부근최대풍속 초속 54m 이상인 태풍이다.
미국 합동태풍경보센터(JTWC)에서 정의한 '슈퍼태풍'도 우리나라에서는 초강력 태풍에 포함된다. 슈퍼태풍은 최대풍속이 초속 65m 이상인 태풍을 말한다. 이 같은 초강력 태풍은 과거 태풍을 기준으로 2003년 '매미'와 2012년 '산바'가해당한다. 매미는 당시 중심 최대 풍속이 초속 65m, 산바는 초속 56m를 보였다.
기상청 국가태풍센터는 최근 들어 강도가 센 태풍 발생 빈도가 잦아지는 이유로태풍이 주로 발생하는 해역의 해표면 수온이 지구온난화 등으로 인해 상승하고 있기때문으로인 것으로 분석했다.또 전 지구적으로 이상기온에 따른 수온 상승이 진행되면서 태풍이 세력을 유지해 올라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 제주를 비롯한 한반도까지 강력한 세기를 유지해 북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올해는 어떨까. 기상청 국가태풍센터는 올해 최대풍속 초속 54m 이상의 초강력 태풍이 올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센터 관계자는 "전 지구의 평균 온도가 지난 4월부터 기록적으로 상승하고 있고, 특히 한반도 인근 북서 태평양과 적도 서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현재 평년보다 높게 유지되고 있다"며 "이러한 경향은 이달부터 8월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태풍의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열에너지가 증가하면서 초강력 태풍이 올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며 "다만 얼마나 강한 태풍이, 몇차례나 우리나라에 영향을 줄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센터는 아울러 올해 여름철 태풍이 평년(11.1개)과 비슷한 9∼12개가 발생하며 이 중 2∼3개가 우리나라에 직접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연합뉴스
콜롬버스부터 핵폭탄까지...인류세에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선
최병두 대구대 명예교수 "자본주의 한계 극복하고 생태적 녹색 전환해야"
코로나19 대유행이 지구 체제를 뿌리부터 흔드는 가운데, 더 근본적 위협인 기후위기가 차차 현실화하고 있다. 대전환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종전에는 급진적 주장으로만 치부된 ‘그린 뉴딜’이라는 이름으로 현실 정치에 등장하고, 기본소득 논의까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더 근본적으로 현 체제를 인류세(anthropocene)로 규정한 후, 인류의 사회와 자연을 이분화해 인간의 자연 지배를 정당화한 서구적 근대론을 버리고, 생태론적 체제로 전환을 전 인류가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6일 서울 서초구 재단법인 숲과나눔 강당에서 열린 ‘코로나19, 전환, 그리고 생명자유공동체’ 공개 포럼에서 인류세의 의미를 짚은 최병두 대구대학교 명예교수는 녹색 전환(최 교수는 그린 뉴딜 개념 대신 녹색 전환 개념을 강조했다)의 필요성을 역설한 후, 현 지구 체제의 중심인 "자본주의적 사회경제체제에 내재한 심각한 한계"를 극복하는 데 인류가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 체제를 보완하는 수준의 '그린 딜'로는 현 지구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지적으로 풀이된다.
강연은 숲과나눔이 주최하고 포럼 생명자유공동체가 주관했다. 생명자유공동체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모든 생명이 자유로운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연구 공동체다. 이번 공개 포럼은 생명자유공동체가 다섯 번째로 마련한 대중과의 대화 장이다. 올해 들어서는 처음 열렸다.
▲기후위기는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근본적 위기다. 인류가 지금의 위기를 낳았다. 그 위기의 핵심은 자본주의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극복하지 않는 한 기후위기 극복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pikist.com
인류가 인류 위협하는 시대
코로나19 사태가 크게 보아 기후위기의 한 형태라는 점에서는 대체로 세계의 시각이 일치한다. 인류의 서식지가 커지면서, 종전에는 어느 정도 뚜렷이 구분되던 인간 서식지와 자연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이를 통해 기존에는 인류를 위협하지 않던 바이러스가 퍼진 사태가 코로나19라는 지적이다.
이 같은 시각을 확장하면, 이번 위기의 본질은 자연이 아닌 인류에 있음을 확인 가능하다. 인류가 자연을 침공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 생겨났다는 인식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인류가 인류를 위협'하는 사태가 코로나19의 본질이라는 시각으로 환원 가능하다.
인류의 인류를 향한 위협이 더 근본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이 기후위기라는 본질로도 가닿을 수 있다. 이미 과학자들의 모임인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가 진단했듯, 지구 기온은 산업혁명 이후 약 200여 년간 종전보다 섭씨 1도 상승했으며, 0.5도가 더 오른다면 기후의 이상성은 되돌릴 수 없게 된다. 인류가 자연을 강력하게 통제함에 따라 오히려 인류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상황이 초래됐다는 얘기다.
최병두 교수는 이 같은 관점에서 지금은 인류세를 재인식하고, 인류세를 새롭게 만들어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현재 지질학적으로 인류는 홀로세(holocene, 현세)에 살고 있다. 약 1만 년 전 지구가 빙하기를 끝내고 고온기를 맞이하면서 기후가 온화해지고, 그에 따라 신석기 혁명이 일어나면서 현 인류 문명이 이뤄졌다.
인류세 개념은 지질학적 변화와 관계없이, 2000년 대기 화학자 파울 크뤼천(Paul Jozef Crutzen)이 제안한 가설적 개념이다. 인류가 자연을 바꿀 정도로 힘이 강해진 현대는 종전 홀로세와 구분해 불러야 한다는 뜻에서 제시한 단어다. 인류세가 지질학적으로 엄정한 용어가 아닌 만큼, 인류세의 시작점은 학자에 따라 멀게는 콜럼버스가 북미에 가닿은 1492년부터 증기기관을 본격적으로 사용해 지구 기온을 끌어올린 산업혁명기 등으로 설명된다. 가깝게는 핵에너지가 이전과 이후를 나눈 1950년대 이후를 인류세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시작점에 관한 논쟁과 관계없이, 홀로세와 인류세를 나누는 가장 결정적 기준은 결국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급격히 치솟고, 그로 인해 지구 기후가 본격적으로 변화하는 시대가 된다. 즉, 인류세 개념을 통칭하는 이들에 따르면 우리는 현재 인류세를 살아가고 있다.
최병두 교수는 인류세에 들어 "인간이 지구 시스템 변화의 지배적 추동자가 됐다"며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생태위기는 지구 시스템으로 인해 일어나는 게 아닌, 인류가 '지질학적 수준'으로 일으킨 사회경제적 힘에 의해 일어났다"고 강조했다.
▲26일 서울 서초구 숲과나눔 강당에서 열린 최병두 교수의 강연. ⓒ프레시안(이대희)
자본주의가 위기 근본 원인
최 교수는 인류세의 핵심 원인으로 자본주의적 산업화 과정을 꼽았다. 콜럼버스로부터 핵에너지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변화의 원동력은 결국 자본주의 체제로 설명 가능하다.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긍정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이전과 전혀 다른 수준의 대규모 자원 소비의 동력이 됐고, 대량 소비 매커니즘을 만들었다. 이 매커니즘은 기술 발달에 따라 이제 지구적으로 진행된다. 코로나19 사태가 특히 인류에 큰 타격을 입힌 부분은 지구적 자본주의 매커니즘을 공격했다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공장이 멈추고, 비행기가 멈춰 지구적 관광 산업이 붕괴한 현실을 전 인류가 수 개월 째 경험하고 있다.
결국 자본주의 매커니즘이 인류세를 낳았고, 그 결과 인류세가 인류가 인류를 위협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지적이다.
"생산-소비를 공통 축으로 전개되는 지구생태계의 순환과 사회경제체계의 순환은 통합적으로 사회-자연 체계를 구성한다. 이러한 통합적 체계 구성에서 어느 한 순환체계는 다른 순환체계에 영향을 미치며 공진화(coevolution)한다. 즉, 한 순환체계의 위기는 다른 순환체계의 위기를 초래한다. 따라서 인간이 자연을 대상화하여 정복하는 것은 자연뿐 아니라, 인간을 대상화하고 지배하려는 것이며, 이는 결국 사회와 자연의 공멸을 의미한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필히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이어진다. “자본주의 사회경제체제에서 전개되는 생산과 소비 활동은 자연생태계가 허용하는 범위를 벗어나 지구적 생태위기를 심화한다. (...)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경제체제에 대한 관리와 조정 없이 당면한 지구적 생태위기를 기술적으로 극복하기란 불가능하다."
생태적 녹색 전환 외에 대안 없다
최 교수는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은 결국 녹색 전환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 전환에 성공해 인류가 지금의 위기를 극복한다면, 인류세의 정의도 새롭게 이해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인류세가 인간의 힘으로 자연을 지질학적 수준으로 바꿔 만들어진 시기라면, 그 위협을 극복하는 시대도 인류세로 명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의 위기에 압도되지 말고,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인류세는 지구적 생태위기에 처한 인류가 이미 진입한 지질시대라기보다는, 앞으로 인간이 지구상에 만들어내야 할 새로운 생태문명의 대안적 세계를 상징하는 수사 또는 메타포로 이해될 수 있다. 즉, 인류세란 이미 도래했다기보다는, 현재 도래하고 있는, 또는 앞으로 도래할 지질시대다. 이 지질시대의 특성은 현재 인류가 당면한 지구적 생태 위기를 어떻게 성찰하고 이에 대처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인류세를 '인간이 만들어갈 새로운 생태 문명 시기'로 만들기 위해 중요한 건, 결국 인류세의 위기를 촉발한 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최 교수가 강조한 배경이다.
"위기에 처한 지구 생태환경에 대한 직접적 처방도 필요하지만, 더 긴요한 것은 이 위기를 초래한 인간의 의식과 (서구 근대성과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사회 구조, 즉 자연과 사회를 구분하는 이원론과 이에 바탕한 자연 지배 의식, 그리고 무한한 성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경제체제에 내재한 심각한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다."
최 교수는 따라서 작금의 그린 뉴딜로 수사되는 전환이 근본적 녹색 전환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시각에서 현 정부의 뉴딜에는 문제가 많다고 최 교수는 지적했다. 최 교수는 우선 디지털 전환을 중심으로 한 정부의 한국형 뉴딜을 두고 "(생태위기라는) 위기 근원의 해소와는 무관"한 정책으로 "오히려 비대면의 고착화를 전제한 비생태적 방안"이라고 비판했다.
한국 정부 발 그린 뉴딜을 두고도 최 교수는 "그린 뉴딜의 진정한 의미는 기후위기에 대응해 탈탄소 에너지 전환과 이를 통한 불평등 해소"에 있어야 하나, 정부 발 그린 뉴딜은 "과거 정부의 녹색성장에서 대규모 토목사업만 뺀 수준"으로 읽힌다고 개탄했다/ 이대희 기자/ 프레시안
푸드 마일리지’ 줄이면...환경부담도 줄어든다?
당신이 먹은 음식, 어디서 와서 무엇이 되어 내게로 왔을까
식재료 수입 늘면서 푸드마일리지 꾸준히 늘어났던 한국
대량 생산, 긴 운송 과정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지난 5월, 농림축산식품부가 공모 절차를 거쳐 8개 지자체를 선정했다. 지역에서 수립한 먹거리 종합전략(지역 푸드플랜)이 원활하게 실행되어 조기에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관련 농림사업을 포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공모 절차였다.
지역푸드플랜은 먹거리의 지역 내 생산과 소비 연계 강화를 기반으로 취약계층 먹거리 복지 제고, 먹거리 안전 관리 및 환경부담 완화 등 지역 먹거리 문제를 통합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 전략 중에는 ‘푸드마일리지 감축’이 포함되어 있다. 당시 농림축산식품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푸드마일리지 감축에 대해 “사회적 가치 실현”이라고 설명했다.
마일리지(mileage)의 사전적 의미는 고정 고객 확보를 위한 기업의 판매 촉진 프로그램이다. 비행기를 자주 타거나 긴 거리를 타면 횟수와 거리 등에 따라 마일리지를 적립해주는 등 소비자들에게도 익숙하 개념이다. 그러하면 푸드 마일리지는 뭘 의미할까.
◇ 당신이 먹은 음식, 어디서 와서 무엇이 되어 내게로 왔을까
환경부에서 제공하는 환경용어사전에 따르면 ‘푸드 마일’은 먹거리가 생산지에서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이동 거리를 의미한다. 푸드 마일리지는 식재료가 생산, 운송 과정을 거쳐 소비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부담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활용한다.
푸드 마일리지는 지난 1994년 영국 환경운동가 팀 랭이 창안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곡물, 유량종자(oil seed), 축산물, 수산물, 야채·과실, 설탕류, 커피·차·코코아, 음료, 기타 등 9개 품목을 대상으로 산정한다. 계산법은 쉽다. 생산지에서 소비지까지 식품 수송량(톤)에 수송 거리(킬로미터)를 곱해 계산한다. 간단한 공식이지만 식재료의 양과 이동 거리를 직관적으로 나타낸다. 푸드 마일리지가 클수록 먼 지역에서 수입한 식품을 더 많이 먹고 있다는 의미다.
푸드마일리지가 늘어나는 것은 여러 가지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먼 거리를 이동하는 식재료는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살충제나 방부제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정해진 규정과 제도에 따라 효율적으로 관리되겠지만, 거리가 멀어질수록 안정성 등의 측면에서는 리스크가 생길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식재료를 장거리 운송하려면 그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돼 환경에 부담을 줄 우려도 있다.
◇ 식재료 수입 늘면서 푸드마일리지 꾸준히 늘어났던 한국
과거에도 이 문제가 화제였던 적이 있다. 지난 2012년 국립환경원과학원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10년 기준 한국, 일본, 영국, 프랑스 4개국의 푸드마일리지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확인해보니 우리나라 푸드마일리지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4개국 중 1위를 기록했고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한 바 있다. 과거 ‘국민학교’ 시절에는 한국이 농업국가라고 배웠지만, 초등학교로 바뀐지 오래인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다르다.
당시 조사에 따르면 2010년 기준 한국의 1인당 식품수입량은 468㎏으로 2001년의 410㎏보다 14% 늘었다. 이는 영국(411㎏), 프랑스(403㎏), 일본(370㎏) 등 나머지 조사대상국보다 많은 숫자다.
한국의 1인당 푸드마일리지는 7085t·㎞로 2001년의 5172t·㎞ 보다 37% 증가했다. 특히 곡물에서 1000t·㎞ 이상 증가했다. 이 같은 푸드마일리지는 조사대상국 중 1위로, 1인당 739t·㎞인 프랑스의 약 10배 수준이었다.
먹거리를 많이 수입하느라 식재료의 이동거리가 늘면서 탄소배출도 늘었던 것으로 당시 조사됐다. 조사 당시 한국의 식품 수입에 의한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42㎏CO2로 2001년 대비 34% 늘었으며, 역시 조사 대상국 중 역시 1위였다. 이에 비해 일본은 123㎏CO2, 프랑스는 96㎏CO2, 영국 95㎏CO2이었다. 식재료 수입이 늘어난데 따른 결과로 해석된다.
불과 10년 사이에 한국의 푸드 마일리지가 많이 증가한 이유로는 전체 푸드 마일리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곡물 품목 가운데 상대적으로 원거리에서 오는 미국산 곡물 수입량이 2001년 약 480만 톤에서 2010년 884만 톤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점이 꼽힌다.
역사 속 시대라면 ‘수입품은 비싸다’는 인식이 있겠지만 대량 생산과 빠른 운송이 가능한 요즘은 외국에서 들여왔다고 반드시 비싼 건 아니다. 농축수산물 수입 자유화와 FTA 체결 등으로 먼 거리에서 수송되는 수입 식품의 가격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는 점도 이런 경향을 가속화했다.
한국동서발전은 본사 1층 로비에 무인 로컬푸드 직매장을 확대해 지역 농산물 소비 촉진에 나서고 있다. (한국동서발전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대량 생산, 긴 운송 과정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푸드마일리지를 줄이고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재료를 소비하자는 운동 역시 꾸준히 있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2018년 블로그를 통해 푸드마일리지 개념을 소개하면서 ‘로컬푸드’ 운동을 함께 소개했다. 로컬푸드는 작게는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구입하자는 운동부터, 지역에서 먹거리가 유통되어 판매되는 체계를 꼼꼼하게 다지자는 운동 등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 전북 완주가 로컬푸드 운동을 지자체 단위로 시행했다. 이후 세종시와 하동 제주 등에서도 로컬푸드 운동이 이어졌다. 당시 공사에서는 지자체에서 생산된 농산품과 공산품 등을 판매하고 매장에 페인트칠을 하지 않아 친환경적으로 운영되는 고양시의 한 로컬푸드 매장 사례도 함께 소개했다. 최근에는 한국동서발전이 본사 1층 로비에 무인 로컬푸드 직매장을 설치해 지역 농산물 소비 촉진에 나서기도 했다.
로컬푸드와 푸드마일리지는 셰프 등 요리관련 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다. 요리전문 에디터 출신으로 현재 푸드스튜디오를 운영중인 한 관계자는 “폭넓은 환경 관련 관심보다는 재료의 신선도 이슈 때문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셰프들 사이에서 관련 개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푸드마일리지라는 용어를 몰라도 관련 개념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있다. 분당에 거주하는 소비자 김모씨는 “아무래도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식재료가 몸에도 더 좋을 것 같다는 기대가 있다”고 말하면서 “푸드마일리지라는 단어는 몰랐지만 어릴 때 들었던 ‘신토불이’나 한동안 유행했던 ‘지역농산물’ 개념과 비슷한 것 같다. 여기에 환경적인 고려까지 더해진다니 확실히 괜찮은 것 같다”고 밝혔다.
인류가 무엇을 생산하든 그 과정에서 에너지를 사용하고 탄소가 배출된다. 그것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캘리포니아에서 날아온 호두를 먹고 브라질에서 생산된 커피를 매일 마실 수 있는 시대이며, 대량으로 생산해 운송되는 과정에서 가격도 부담 없는 시대다. 하지만 생산된 식재료가 식탁에 오기까지의 과정이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도 따져야 한다./그린포스트코리아
니콜라스 압델카데르(Nicolas Abdelkader) 포토몽타주 'the urgency to slow down'
"시민 참여하는 새로운 공원 모델 만들어야"
이성근 부산그린트러스트 상임이사
부산그린트러스트는 2009년 설립돼 올 9월이면 창립 11주년을 맞는 부산의 공원 전문 환경단체다. 이성근(58) 부산그린트러스트 상임이사는 “부산시 공원 정책에 시민과 전문가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민관협치 조직으로 출발했지만 차차 협치와 더불어 민간 영역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단체로 자리매김했다”고 지난 10여 년을 요약했다.
서울과 수원에도 그린트러스트가 있다. 2003년 가장 먼저 출범한 서울그린트러스트는 서울숲 조성 운동에 이어 수탁관리자 공모를 통해 2016년부터 서울숲을 전면 운영하고 있다.
11돌 맞는 민관 협치 환경단체
노거수 보전 등 민간 참여 이끌어
“일몰 공원 보존 위해 적극 감시”
부산에서도 기대함직한 모델이지만 서울과 부산의 여건이 다른 만큼 부산그린트러스트는 민관협치뿐 아니라 민간 영역에서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면서 시민사회에서 좀더 목소리를 내는 쪽이다.
지난해 8월 각계각층 시민 70여 명을 모집해 부산시와 함께 공원 정책 방향과 비전을 논의한 공원녹지 시민계획단은 대표적인 민관협치 활동이다. 2011년부터 APEC나루공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다목적 공간 ‘그린큐브’는 규모는 작지만 민간이 참여하는 공원 관리 모델이다.
시민과 함께하는 다양한 공모·기획 사업도 운영한다. 공원활동가를 양성하는 공원문화학교, 시민 가드너 심화양성 프로그램 ‘마을과 도시의 정원사’와 개인이나 단체·기관이 다양한 공원 활동에 참여하면 봉사 1시간당 1만 원이 공원에 기부되는 ‘공원의 친구들’ 등이다.
2014년부터 계속하고 있는 부산 노거수 보전 활동은 특히 보람이 있었던 일이다. 마을의 터줏대감나무과 초·중·고·대학 교내의 ‘학교짱나무’를 발굴해 지켰고, 지난해에는 사상구 재개발 지역의 500년 된 회화나무를 계기로 관련 조례 제정도 이끌어냈다.
도시공원일몰제 대응은 시민사회 분야의 대표적인 활동이다. 이 이사는 지정 해제를 앞둔 미집행 도시공원을 지키기 위한 부산시민행동 집행위원장을 맡아 전면에 나섰다. 민간공원 조성 특례사업 라운드테이블에서 사업이 공공성을 중심에 두고 진행되도록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와 같은 부산그린트러스트의 전방위 활동은 이 이사의 이력과도 잇닿아있다. 그는 부산환경운동연합에 오래 몸담았고, (사)걷고싶은부산을 거쳐 2012년 부산그린트러스트에 사무처장으로 합류했다. 부산 환경단체 연대체인 부산환경회의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금정산 국립공원 지정을 위한 활동에도, 재선충과 생태교란 외래식물을 고발하는 현장에도 부산그린트러스트가 빠지지않는 이유다.
활동 10년을 넘긴 중견 단체로서 목표는 민관협치 역할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 시민이 참여하는 새로운 공원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공원녹지 시민계획단을 비롯한 다양한 통로로 일몰제 이후 공원을 보존하고 민간공원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감시할 계획이다. 부산시민공원에만 있는 방문자센터를 다른 공원으로 확대하고, APCE나루공원에 ‘영화인의 숲’을 조성하는 등 다양한 구상도 적극 제안할 예정이다.
이 이사는 “기후 위기 시대 공원녹지의 기능은 지금 도시민의 삶의 질뿐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해서도 갈수록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면서 “부산그린트러스트가 지속 가능한 건강한 조직으로 계속 활동할 수 있도록 시민들도 좀더 관심을 갖고 참여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공원 하나 못 지키면서 정치 어떻게 하겠나"…부동산 투기 차단나선 박원순
박원순 서울시장이 29일 시청 브리핑실에서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실효제 대응방안에 대한 기자설명회를 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박원순 서울시장이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일몰제에 따라 공원 지정 효력이 사라지게 되는 땅을 '도시자연공원구역 지정'으로 지정했다. 박 시장은 29일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일몰제 대응방안을 발표하고서 "한 평의 공원 녹지도 줄일 수 없다는 각오로 과감한 재정투자와 도시계획적 관리방안을 총동원해 한 뼘도 포기하지 않고 지켰다"고 밝혔다.
그는 "(공원 매입비용은) 서울시 채무로 늘어나지만 시민의 편익을 생각하면 하나도 아깝지 않다"며 "공원 하나 지키지 못하면서 제가 어찌 시장이라고 할 수 있고 정치를 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시장으로 있는 동안 '토지의 90%를 기부할 테니 10%를 개발하게 해 달라'는 요구가 특히 강남에서 많았다"며 "그 개발이익이 엄청나서 (허용하면) 어마어마한 특혜가 된다. 그런 특혜를 줄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도시공원 일몰제는 사유지를 도시계획시설상 공원으로 지정한 뒤 20년간 사업이 시행되지 않으면 지정 효력이 사라지게 한 제도다. 헌법재판소가 "개인 소유 땅을 도시계획시설로 결정하고 이를 장기간 집행하지 않으면 소유자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1999년 결정한 뒤 2000년 시행됐고 20년이 지난 올해 7월 1일 첫 효력 상실을 앞두고 있다.
서울시가 도시계획시설상 도시공원으로 지정해두고 20년 넘게 공원으로 만들지 않은 땅은 132곳에 걸쳐 118.5㎢다. 시는 이 가운데 68곳, 69.2㎢를 도시관리계획상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용도구역을 변경했다. 도시자연공원구역에 해당하는 땅은 대부분 기존 용도구역이 자연녹지지역 등이었다. 서울에는 그동안 도시자연공원구역이 없었는데 이번에 처음 도입했다.
도시자연공원구역은 신축이나 기존 건축물 용도변경을 함부로 할 수 없다. 이 지정으로 사용이나 수익 창출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토지의 소유자는 지자체에 토지를 매수해달라고 청구할 수 있다. 이때 매수가격은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토지의 위치나 이용 상황 등을 고려해 정한다.
시는 도시자연공원구역 관리 방향, 실행 전략, 토지 매수 관련 재정투입 방안 등은 아직 마련하지 않았다. 박 시장은 "도시자연공원구역 지정은 합법적 요건과 절차에 따라 진행한다"며 "지자체가 매수할 의무는 없다. 그럼에도 개인 토지이므로 일정한 보상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예산을 확보해서 보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모든 재산권은 보장되는데 동시에 공공의 이익 때문에 제한할 수 있다"며 "개인 소유권과 공공의 이익 사이에 어떻게 선을 그을지 고민했고 그 결론이 오늘 말한 방법이다. 장기적으로 사례별로 조치하겠다"고 덧붙였다.
매입한 땅도 있다. 서울시는 2000년 이후 지난해까지 2조9356억원을 투입해 84곳, 6.93㎢를 매입했고 올해 연말까지 3050억원을 들여 79곳, 0.51㎢를 사들일 계획이다. 17.44㎢는 시유지·구유지 등으로, 매입한 땅과 함께 도시계획시설상 공원으로 유지한다. 나머지 24.8㎢는 북한산 일대로, 환경부가 '국립공원'으로 관리한다.박상길기자 sweatsk@dt.co.kr
전주시 "일몰제로 사라질 위기 '도시공원' 전부 지키겠다"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일몰제 앞두고 강력의지 밝혀
2025년까지 15개 공원 매입→'도시자연공원' 지정
전북 전주시가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매입에 나선다. 전주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위치도. /뉴스1
전북 전주시가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일몰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도시공원 매입에 나선다. 전주시는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일몰제가 7월1일 시행되는 가운데 2025년까지 15개 도시공원(13.1㎢, 전체 공원의 79.4%)을 매입하는 도시공원사업 실시계획인가를 고시하고 토지 매입에 착수한다고 30일 밝혔다.
토지 매입 대상에는 국토교통부가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공급촉진지구로 지정한 가련산공원도 포함돼 있다. 일몰제 대상 모든 도시공원을 지켜내기 위한 방침이라고 전주시는 강조했다.
전주시는 1단계로 2025년까지 총 1450억원을 투입해 전주시 도시계획 조례에 따라 표고 75m, 경사도 15도 미만 등 개발 제한이 없는 사유지 2.0㎢를 우선 매입하기로 했다.
2단계인 2025년 이후에는 국·공유지를 제외한 개발 불가능 지역 7.4㎢를 도시자연공원 구역으로의 지정하고 토지 소유자들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전주시는 사유지 매입의 경우 Δ종전부터 산책로 등 공원시설로 사용되는 토지 Δ공원시설 설치 예정지로서 공원조성 효과가 높은 토지 Δ접근성이 양호한 주택가 및 도로 주변 등 개발 가능성이 높은 토지 Δ공원 외 목적으로 종전부터 사용되고 있는 토지 등의 순으로 매입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2024년까지 지방채 1230억원과 시비 220억원을 확보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올해분 지방채 230억원 발행을 완료했다.
'2020 도시공원일몰제 대응 전북행동'이 30일 전북 전주시청 앞에서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관리방안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2020.6.30 /뉴스1 © News1 김춘상 기자
이와 별도로 공원 내 국·공유지 무상양여와 국비 보조가 이뤄질 수 있도록 환경단체, 전국시·도지사협의회 등과 함께 정부에 공원녹지법 관련 규정 개정을 건의할 계획이다. 전주시는 이에 앞서 시민, 환경단체 관계자, 전문가 등과 함께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대책협의회를 꾸려 도시공원 관리방안과 도시공원 내 토지별 적정성 등을 검토해왔다. 전북환경운동연합, 시민행동21, 전북지속가능발전협의회 등 10여개 단체로 꾸려진 전북행동은 이날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20년 7월1일, 내일은 도시공원일몰제 시행으로 미집행된 16%의 도시공원이 사라지는 날"이라며 "전주시는 도시공원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 민관이 함께 마련한 도시공원 관리방안을 신속히 추진하라"고 촉구했다. 김대현 전주시 천만그루정원도시과장은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일몰제를 계기로 토지매입 추진 동력을 확보한 만큼 산림청, 전북도와 긴밀하게 협의해 도시숲과 도시정원 조성사업을 적극 추진해나갈 것"이라며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지속가능한 생태도시로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mellotron@news1.kr
김춘상 기자
어느날 내가 즐겨찾던 산과 공원이 사라진다면…
7월 1일이면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실효제가 시행됩니다.
어려운 말 같지만 한 마디로 국가가 개인소유의 땅을 ‘공원으로 조성하겠다’며 공원부지로 묶어버리고 20년 이상 방치하고 있었다면 공원부지 지정을 해제하고 개인이 임의로 처분할 수 있도록 권리를 되돌려주는 것을 말합니다.
대부분은 ‘아니, 애초에 왜 개인재산인 땅을 왜 국가가 마음대로 공원부지로 묶느냐’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땅은 일방적으로 ‘내 땅’이라고 소유권을 일방적으로 주장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땅에 자기 마음대로 무언가를 짓고, 마음대로 부술 수 있다면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망가질 우려도 있습니다. 학교 앞에 유흥시설을 설치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라던가, 건물의 고도제한을 두는 경우 등도 개인 사유지에 제한을 둔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1999년 10월 21일 헌법재판소가 “개인 소유 땅을 도시계획시설로 결정하고 이를 장기간 집행하지 않으면 땅 소유자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렸지만 이는 ‘20년’이라는 긴 시간이 과도한 재산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했을 뿐 국가가 공공의 목적과 이익을 위해 사유지에 제한을 두는 경우 자체가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바로 토지재산권의 사회적 구속성 때문입니다.
당시 헌재 결정문 일부를 인용해보겠습니다.
“토지는 국민경제의 관점에서나 그 사회적 기능에 있어서 다른 재산권과 같게 다루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다른 재산권에 비해 보다 강하게 공동체의 이익을 관철할 것이 요구된다.”
아마 공원일몰제를 앞두고 여러 언론보도를 접했을 것입니다. 특히 서울 도심부 중심에 위치한 장기 미집행 공원부지에 대해 서울시가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용도지정을 한 것을 놓고 “지나친 사유재산 침해”라는 지적을 하는 보도도 꽤 보셨을 것입니다. ‘20년 이상 참았는데 더 참으라는 이야기냐!’라는 말이 안 나올 수도 없겠죠.
여기서 ‘사적 개발이익 존중’의 문제와 ‘공공의 이익’이라는 가치관이 충돌합니다.
많은 분들이 저녁 식사 후 집 주변 공원을 산책하거나, 주말이면 등산을 즐기실 겁니다. 그런데 그 땅들이 알고보면 장기미집행된 도시공원이라면 어떨까요. 대부분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죠.
그런데 도시공원 일몰제가 시행되면 해당 공원과 산들이 일제히 개인에게 처분권이 넘어갑니다. 그러면 공원을 밀고 아파트를 지어도 되고, 주차장을 만들어도 됩니다. 주택가 밀집지역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공원에 갑자기 건물이 들어설 수도 있습니다.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권리’는 알고보면 꽤나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권리입니다. 국민이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게 하고, 푸른 나무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국가는 ‘권력’을 이용해 사유지를 공원으로 묶고 주민들에게 이 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합니다. 여기에는 분명 해당 토지 소유권자의 재산권 침해가 이뤄집니다.
서울시는 29일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실효제 시행에 앞서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132곳 118.5㎢를 지켜냈다”고 밝혔습니다. 오는 7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던 도시공원 실효제에 앞서 서울시가 공원부지 가운데 68곳 69.2㎢를 도시관리계획변경 결정고시를 통해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지정했고, 24.5㎢는 이미 매입했거나 매입예정이며, 나머지 24.8㎢는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환경부가 관리하기로 함에 따라 서울지역에 해제되는 도시공원은 단 한 뼘도 없게 됐다는 말입니다.
지방도시의 경우 도시공원 일몰제 시행을 앞두고 공원부지의 70%는 그대로 공원으로 유지하되 30%만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기부체납’ 방식으로 민간의 공원개발을 허용한 사례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지방은 인구밀도가 낮고, 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문제인 곳도 많습니다. 개발을 할 수 있다면 하는 게 나은 곳도 있는 셈입니다. 무엇보다 지방도시는 서울과 달리 재정적으로 공원부지를 매입할 예산이 없습니다. 국가(국토부)가 지자체에 매입자금 지원을 해주지 않는 한 서울과 같은 형태의 공원부지 매입은 불가능합니다.
서울시는 그러나 지방도시와 같은 기부체납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기부체납을 원하는 공원부지 대부분이 남산, 관악산 등 서울시민은 당연히 국가소유의 공원, 산으로 알고 있는 곳들이다. 이런 곳에 아파트가 들어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공원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에 대한 시민들의 거부감 역시 크다.”
“서울에서도 토지의 90%를 기부할테니 10%를 개발하게 해달라는 곳이 있다. 그게 어디냐면 주로 강남지역이 많은데 그러면 그 자체가 특혜가 된다. 10%만으로도 개발이익이 엄청나게 커지기 때문이다. 서울은 사실 이미 너무 많은 개발이 됐다. 시민들은 더 많은 공원과 녹지를 원한다. 그런 측면에서는 서울시가 더 사들여서 공원을 조성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부체납과 같은 방식은) 하나도 허용하지 않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9일 언론 브리핑에서 “서울시내 모든 장기미집행 공원을 지켜내기까지의 과정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고도 말했습니다.
‘맑고 푸른 자연환경’은 알고 보면 비싼 대가를 내고 지켜낸 결과물입니다. 서울시는 여기에 지난해까지 2조9356억원을 투입했습니다. 장기미집행 공원부지를 서울시가 직접 사들인 값입니다. 서울시가 돈을 들여 사들인 이 땅들은 앞으로도 시민들이 불편없이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공원으로 유지됩니다. 올해 연말까지 3050억원을 추가로 투입해 79개 공원 0.51㎢가 그대로 보존될 예정입니다.
시민들이 서울 반포 서래섬을 산책하는 모습. 이준헌 기자
여전히 서울시의 이번 조치는 앞으로 많은 갈등을 빚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헌법재판소의 1999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개발이익을 노리고 해당 공원부지를 매입한 사람들의 경우 이번 조치에 크게 반발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공원일몰제가 시행돼도 개발을 목적으로 공원부지를 사들였던 사람들은 이번 서울시 조치로 서울시 및 자치구에 해당 토지에 대한 ‘매수청구권’을 행사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발을 딪고 살아가는 ‘땅’을 둘러싼 ‘공공의 이익 보장’과 ‘개인의 재산권 행사’.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다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이런 씨벌놈을 봤나..~
그래 공원 지켜 근데 정당하게 돈을 주고 공원을 지켜야지.. 국민 재산을 강제로 삥뜯어서 국민을 위한다는게 말이 되는 소리냐? 어디서 인터넷에 기사쓰고 기사 명함 달면 다 기자인가보지?
-그래 뭐, 니땅 니맘대로 해. 다만... 산과 들과 강이 니땅이 아닌 이상 경치 좀 가리지 말어라. 땅파고 밑으로 기어들어가든지... 왜 높게 지어 다 가려놓고 너만 혼자 올라가서 경치 구경하냐? 니가 산과 들과 강도 샀냐? 날...강도같은...
-그땅들 산넘들 재산 다 100억넘는 부자들뿐일텐데 영원히 공원으로 묶고 보상금이나 주고 냅두면되지
한반도 산림 ‘10년 기록’…멸종 시계 빨라졌다
기후변화 멸종의 위기, 빙하기 식물을 찾아서]
①한라산 돌매화나무
‘기후변화 속 식물변화’ 첫 보고서
전국 38곳서 256종 1266개체 분석
개화·단풍 등 생태 질서 흔들려
고산식물, 공룡 이후 멸종 우려
한라산·설악산 등 찾아 대책 모색
세계에서 가장 키가 작은 꼬마 나무인 돌매화나무 군락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한라산 고지대 절벽에 살고 있 다. 지구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세계적 희귀종인 이 식물은 국내에선 유일하게 한라산 정상 부근 암벽에서만 자란다. 제주도/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도시 빈민이 옥탑에 살듯, 기후변화로 멸종 위기에 놓인 극지고산식물은 하늘과 가까운 절벽 아래 숨어 있었다. 지난 4일 <한겨레> 취재진은 국내에선 유일하게 한라산에서만 자라는 극지고산식물, 돌매화나무를 찾아 둘러봤다. 춥고 척박한 환경에서 피어난 돌매화나무를 직접 보려면 산 정상 부근 암벽까지 힘겹게 올라야 했다. 태양과 인간을 피해 꽃을 피운 돌매화나무는 기후변화가 진행되면 국내 유일의 피난처인 한라산 정상 부근에서도 더는 살 수 없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가 심화되면 도망칠 곳 없는 식물부터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공룡 이후 여섯번째 멸종이 식물, 그중에서도 극지와 고산지대에 사는 식물(빙하기 식물)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실제로 중국 티베트 고원은 지난 50년 동안 2000m 이하 지역보다 4000m 이상 고산지대에서 기온 상승 속도가 7.5% 빨랐다.
식물의 변화는 일종의 ‘신호탄’이다. 식물을 시작으로 곤충·조류 등 먹이사슬을 기반으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생태계 질서에 혼란을 주기 때문이다. 28일 <한겨레>가 입수한 산림청 국립수목원의 ‘기후변화와 한국 산림의 식물계절 지난 10년간의 기록’ 보고서를 보면, 지난 10년간 한반도 식물의 생태시계가 얼마나 빨라졌는지 알 수 있다. 잎눈 파열, 개엽(잎이 다 남), 개화(꽃이 다 남), 비산(꽃가루 날림) 시기 등 봄철 변화는 빨라졌고, 가을에 찾아오는 단풍·낙엽 시기는 늦춰진 것으로 분석됐다. 식물의 생장 시점이 달라지면 생태계 질서가 유지되기 어려워 그 후유증이 적지 않다.
특히 진달래·생강나무·산철쭉 등 낙엽활엽수의 변화가 두드러졌다. 개엽일은 10년에 걸쳐 전국 평균 13.4일, 개화 9.4일, 낙화 10.3일 빨라졌다. 단풍은 4.2일 늦어졌다. 식물이 생장을 시작하는 개엽은 빨라지고 낙엽이 늦어지면서, 관측 지역 중 83%에서 식물의 생장기간도 18일가량 늘었다. 특히 3~5월 평균기온이 1도 오를 때 개엽은 약 4.13일 빨라졌다.
이번 보고서는 국토 면적의 64%를 차지하는 산림의 변화를 분석한 최초의 자료다. 국공립 수목원 10곳이 참여한 ‘한국생물계절관측네트워크’는 2009~2018년 전국 38개 지역 50개 관측지점에서 총 256종 1266개체의 잎과 꽃, 열매의 시작과 종결 시점 8만2천여건을 기록했다. 이 중 5년 이상 10개 지역 이상에서 관측한 낙엽활엽수 20종, 상록침엽수 7종, 초본류 12종을 분석했다.
<한겨레>는 한라산을 시작으로 설악산·지리산·강원도 홍천 등의 극지식물을 찾아 현황과 보존 대책을 짚어볼 계획이다. 생물지리학을 전공한 공우석 경희대 교수와 국립수목원 산하 디엠제트(DMZ)자생식물원이 함께 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멸종위기식물 ‘으름난초’를 아시나요
태안 안면도 자연휴양림에 12촉 만개
멸종위기종인 으름난초가 29일 충남 태안 안면도 자연휴양림에서 꽃을 활짝 피웠다. 충남도 제공
충남 태안 안면도 자연휴양림에 ‘으름난초’가 꽃을 피웠다.
충남도 산림자연연구소 태안사무소는 29일 안면도 자연휴양림에서 보호하고 있는 으름난초 12촉이 모두 만개했다고 밝혔다. ‘개천마’로도 불리는 으름난초는 숲 속에 사는 다년생 난초과 식물이다. 환경부는 으름난초를 ‘멸종위기야생동식물 Ⅱ급’으로 지정했고,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국가적색목록 취약 등급’ 식물로 지정했다.
으름난초는 일본·중국에도 분포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충남 태안과 전북 진안, 전남 보성, 영암군, 제주도 일원 등 10곳 미만에만 자생지가 있는 보기 어려운 식물이다. 주로 빛이 잘 들지 않고 습한 숲 속에 살고, 최대 1∼1.5m까지 키가 자란다. 여러 개의 황갈색 꽃이 길게 늘어져 한 데 달리고, 7∼8월이면 타원형의 붉은 열매도 달린다.
지난 5월 충남 태안 안면도 자연휴양림에서 발견된 으름난초 12촉 모습. 충남도 제공
안면도 자연휴양림은 지난 5월 휴양림 안에서 으름난초 12촉을 우연히 발견했다. 발견 뒤 자연휴양림 쪽은 으름난초 보호용 나무 울타리까지 설치했고, 한 달여 뒤 12촉 모두 꽃을 피웠다.
그러나 다음 해에도 이곳에서 으름난초를 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다년생이지만 매년 같은 장소에 피진 않기 때문이다. 으름난초는 한 해 땅속에서 나와 꽃을 피웠다가 다음 해는 종적을 감추고 몇 년 뒤에 다시 그 자리에 올라오는 식으로 자생한다.
안규원 충남도 산림자연연구소 태안사무소장은 “안면도 자연휴양림에서 10촉 이상의 으름난초가 한꺼번에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며 “으름난초 발견 소식이 알려진 뒤 사진 동호회 등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으름난초 자생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계속해 관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전남 해남군 솔라시도에 국내 최대 태양광 발전소 가동된다
한양, 한국남부발전과 손잡고 준공
국내 최대 98㎿급 발전설비 갖춰
‘태양의 정원’ 조성해 관광명소 기대감
전남 해남군 솔라시도 태양광 발전소. 한양 제공
중견 건설사 ㈜한양이 전라남도 해남군 구성지구 솔라시도 일대에 국내 최대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를 준공했다고 29일 밝혔다. 한양은 최근 보성그룹이 스마트시티로 개발 중인 해남군 솔라시도(2089만㎡) 일대에 한국남부발전, 케이비(KB)자산운용·에너지인프라자산운용 등과 함께 부지 면적만 약 158만㎡에 이르는 국내 최대 규모 태양광 발전소를 완공했다. 이 태양광 발전소는 한양이 부지 조성에서부터 설계·조달·시공(EPC), 관리·운영까지 사업 모든 과정을 직접 맡는다.
솔라시도 태양광 발전소는 국내 최대 규모인 98㎿급의 태양광 발전설비를 갖춰 약 2만7천여 가구가 1년 동안(가구당 월 400㎾h 이용 기준) 이용할 수 있는 연간 129GWh의 전력을 생산하게 된다. 또 발전소 중앙부 15만㎡ 터에 다양한 꽃과 나무를 심어 조성된 태양의 정원 ‘썬가든(Sun Garden)’은 관광명소로도 각광받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양은 솔라시도 태양광 발전소 준공과 운영을 시작으로 앞으로 수상 태양광, 육상 풍력 등 다양한 신재생에너지 분야 사업에 본격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한양 관계자는 “솔라시도 태양광 발전소는 한양이 에너지개발 사업에 진출한 이후 거둔 첫 성과물이자 신재생 에너지 사업으로의 확대를 위한 교두보가 될 것”이라며 “건설을 넘어 에너지·주택개발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최종훈 기자 cjhoon@hani.co.kr
북극이 더워지니 빙하 늑대거미는 '베이비 붐'
한 번 낳던 알 두 번…기러기 허둥지둥, 식물 웃자라고
툰드라의 짧은 여름 동안 늑대거미는 두 차례나 번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키 작은 식물이 키 큰 식물에 밀려나고 있기도 하다.
한겨울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는 세계에서 가장 추운 곳의 하나인 러시아 베르호얀스크가 20일 38도까지 올라 관측 이래 최고 온도를 기록했다. 일시적인 이상 기상으로만 볼 수 없는 게 북극 지역의 온난화는 지구 평균보다 2배 빨리 진행하고 있다. 급속한 온난화로 인한 생태계 교란도 최근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토흐 호이 덴마크 오르후스대 생물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과학저널 ‘왕립학회보 비’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북극에 서식하는 늑대거미를 장기 관찰한 결과 일부 암컷이 짧은 여름 동안 두 차례나 번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빙하 늑대거미. 그린란드 특산종으로 최상위 무척추동물 포식자이다. 외르그 함멜 제공. 안느 비요르크만 제공
연구자들은 그린란드 북동부에 있는 자켄베르크 연구소에서 20년 가까이 현장 조사를 해 이런 결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곳에 서식하는 빙하 늑대거미는 작은 토양동물인 톡톡이 등을 잡아먹고 사는 북극 툰드라 무척추동물의 최상위 포식자이다.
호이는 “눈이 일찍 녹는 곳일수록 더 많은 늑대거미가 두 번째 알주머니를 만들었다”며 “전례 없는 이런 생활사 변화는 북극의 곤충과 거미 생태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늑대거미는 보통 한 해에 알 주머니를 하나씩 만들지만, 온대지방에서는 한 해에 두 차례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번식 횟수 증가로 개체군이 늘어나지는 않았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두 번째 알 주머니 알이 얼마나 살아남는지 모르고, 또 늑대거미 밀도가 높아지면서 개체 사이의 경쟁이 격화된 영향일 수도 있다고 연구자들은 덧붙였다.
중간에 북극 봄 알고 쉬지도 못해
북극의 여름이 일러지면서 북극에서 번식하는 철새들도 혼란에 빠지고 있다. 유럽 온대지역에서 월동하는 흰뺨기러기는 북극까지 3000㎞를 날아가 알을 낳는데, 언제 북극의 얼음이 녹을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막판에 허둥대는 것으로 밝혀졌다.
흰뺨기러기는 번식지의 기상을 알지 못한 채 이동한다. 캄캄한 밤중에 뛰는 셈이다. 토머스 라메리스, 니우 크나우 제공
토머스 라메리스 네덜란드 생태연구소 연구원 등 국제 연구진은 2018년 7월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린 논문에서 이런 사실을 밝히면서 “북극에 일찍 도착하지만 중간 기착지에서 쉬지도 못하고 서두르느라 북극에서 알을 낳기 전 회복기가 필요해 새끼가 깨어날 때는 먹이가 한창 많을 때와 맞지 않게 된다”고 연구소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이처럼 허둥대는 이유는 처음 온대지역에서는 극지방의 계절 변화를 짐작할 단서가 전혀 없고, 번식지로 가면서 차츰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연구에 참여한 이 연구소 바르트 놀렛은 “북극의 온도 상승이 훨씬 크기 때문에 새들은 이동의 절반쯤 가서야 환경 단서로부터 극지에 벌써 봄이 왔을 것을 알고 속도를 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키 큰 식물이 영구동토 해빙 가속
북극 툰드라의 식물은 키가 커지고 있다. 이 지역의 식물은 키 작은 관목과 초본으로 키는 기껏 수 ㎝로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추위를 이긴다.
북극의 봄. 키작은 관목과 초본이 대부분이다. 토케 호이 제공
그러나 북극 온난화와 함께 남쪽에 분포하던 키 큰 식물이 차츰 툰드라 식물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독일 통합생물다양성 연구센터 등 국제 연구진은 2018년 9월 26일 ‘네이처’에 실린 방대한 연구에서 이런 사실을 밝혔다.
이들은 캐나다와 알래스카, 시베리아, 아이슬란드, 스칸디나비아에 걸친 북극 툰드라 지역의 식물을 30년 동안 조사한 결과를 종합해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에 참여한 비요르크만 독일 통합생물다양성 연구센터 연구원은 “현재 속도로 키 큰 식물이 툰드라에 확산한다면 금세기 말까지 식물의 키는 20∼60% 커질 것”이라고 이 센터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유럽의 저지대에서 흔히 보는 벼과의 초본 향기풀이 이제는 아이슬란드와 스웨덴의 툰드라에서 발견된다. 크리스천 피셔 제공
툰드라 식물 키가 커지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온실가스 방출량을 늘리기 때문이다. 동토 지대 밑에는 지구 토양 탄소의 3분의 1에서 절반이 묻혀 있다. 영구동토가 녹으면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 뿜어나온다. 키 큰 식물은 겨울 동안 눈을 더 많이 붙든다. 식물이 고정한 눈은 단열재 구실을 해 토양이 깊게 어느 것을 막아 준다. 따라서 키 큰 식물이 늘면 토양이 녹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
인용 저널: Proceeding of Royal Society B, DOI: 10.1098/rspb.2020.0982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시행 하루 앞둔 '도시공원 일몰제'…여의도 19배 면적 해제
장기 미집행 도시공원에 대한 일몰제(이하 일몰제)가 7월 1일 시행됩니다. 일몰제는 지방자치단체가 도시공원 계획을 고시한 후 20년 동안 사업을 시행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공원 용지에서 해제되는 제도입니다. 일몰제에 대응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입장은 제각각입니다. 일부는 도시공원 개발을 전면 봉쇄하고, 일부는 아파트와 친환경생태공원을 포함한 개발 계획을 추진하면서 주민 갈등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오는 1일 일몰제가 시행되면 전국적으로 158.5㎢가 도시공원에서 해제됩니다. 이는 여의도 면적 약 19배 규모입니다. 서울시내 장기 미집행 도시공원은 132곳에 걸쳐 총 118.5㎢에 이릅니다. 시는 2000년 이후 지난해까지 2조9천356억 원을 투입해 84곳, 6.93㎢를 매입했고, 올해 안에 3천50억 원을 들여 79곳, 0.51㎢도 사들일 방침입니다. 68곳, 69.2㎢는 도시관리계획상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용도구역을 변경했습니다. 도시자연공원구역은 신축이나 기존 건축물 용도변경을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서울에는 그간 도시자연공원구역이 없었는데 이번에 공원을 지켜내기 위해 처음 도입했습니다.
노란색으로 표시한 도시자연공원구역 [서울시 제공.)
대전시는 일몰제 대상 공원 26곳 가운데 난개발이 우려되는 12곳을 매입합니다. 숲을 복원하거나 공원내에 음악당·공연시설 등을 설치해 주민 문화시설로 조성합니다. 6곳은 시에서 직접 공원을 조성하고, 3곳은 민간개발 특례사업으로 개발합니다. 애초 13.22㎢이던 공원 면적은 7.63㎢로 줄어든습니다. 시는 3천972억 원을 들여 사유지를 매입할 방침입니다.
광주시내 전체 도시공원 19.94㎢ 가운데 일몰제 대상 공원은 25곳, 11.00㎢로 55%가량을 차지합니다. 시는 이 가운데 지난해 12월 공원 용지에서 해제한 광목공원을 제외한 장기 미집행 24개 공원을 조성하는 실시계획을 마무리했습니다. 9개 민간공원의 9.7%인 76만㎡에는 아파트 등 비공원 시설이 들어섭니다.
대구시는 2023년까지 지방채 4천400억 원을 포함한 총 4천800억 원을 들여 주요 도시공원 20곳의 사유지 340만㎡ 전체를 매입합니다.
부산시의 경우 일몰제 영향을 받는 시 지정 시설은 150곳(76.55㎢)입니다. 일몰제 대상 중 공원(50.42㎢)이 65.9%로 가장 많습니다.
공원 녹지 보존에 가장 적극적인 지방자치단체는 서울시입니다. 서울시는 민간 개발을 피하고자 '도시자연공원구역 지정'이라는 방안으로 대응했습니다. 법적으로는 일몰제 대상인 '도시계획시설상 공원'을 '용도구역상 공원'으로 바꿔 일몰제 적용을 피하는 것입니다.
일부 자치단체에서는 환경단체와 갈등, 업체와 소송전, 주민 투표 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전시는 한 업체에 매봉공원 민간 특례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우선 지위를 부여해 놓고서 다시 이를 뒤집어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이미 상당 부분 사업 절차가 진행됐던 것으로 보이고, 공익성보다는 업체가 받게 되는 이익 침해가 더 크다"며 업체 손을 들어줬습니다. 현재 2심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매봉공원과 함께 월평공원 갈마지구 민간 특례사업도 추진 도중 취소됐습니다. 월평공원 갈마지구 우선 제안자도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충남 천안에서는 일봉산 민간공원개발 특례사업(아파트 개발) 추진 찬반을 높고 주민투표까지 했습니다. 참여인 수 미달로 투표가 무산되면서 천안시가 제시한 도시공원 내 아파트 개발이 탄력을 받게 됐습니다.
광주시는 민간공원 특례사업 업체 선정을 놓고 검찰 수사 등 잡음, 아파트 등 비공원 시설의 위치를 놓고 환경단체와 갈등을 보였습니다. 앞으로 토지 보상 과정에서는 소유주와 갈등도 예상됩니다.
대구 수성구 범어공원은 도시공원 일몰제 시행을 앞두고 지주와 주민 간 갈등을 빚었습니다. 시민·환경단체는 도시공원을 지켜내 녹지를 확보하려면 중앙 정부 예산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합니다. 토지주의 희생이 필요한 만큼 이들을 위한 보상 수단을 마련해야 하고, 지자체의 열악한 재정 여건상 토지를 사들여 공원을 만들려면 지방채를 발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구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지자체가 대규모 지방채를 발행하며 도시공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토부를 비롯한 중앙정부 인식은 제자리걸음"이라며 "중앙정부가 지정한 도시공원이 다수를 차지하는 만큼 도시공원 부지 매입비 역시 사업비의 50% 이상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2020 도시공원일몰제 대응 전북행동'은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지자체 재정으로 토지를 매입해 공원으로 조성해야 하는데, 예산이 없으면 도시공원은 다시 실효된다"며 정부의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남극점 온난화 속도, 지구 평균보다 3배 빠르다
20세기말 1도↓, 21세기 들어 1.8도↑
전지구 평균 온난화 속도의 3배
열대 태평양 열 이동이 원인 분석
온실가스와 자연적 변동성 동시 영향
미국 항공우주국 위성이 촬영한 남극대륙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지구의 최남단 남극점의 온난화 속도가 지구 평균보다 3배 빠른 것으로 분석됐다.
남극대륙 평원은 평균기온이 겨울에는 영하 60도, 한여름에는 영하 20도에 이른다. 남극 기후는 지구에서 연간 온도 진폭이 가장 큰 곳이다. 하지만 남극대륙 서부 등지도 지구온난화 영향을 받아 20세기 후반 따뜻해지고 빙상이 녹아내렸다. 반면 대륙 안쪽에 위치한 남극점 지역은 1980년대까지 냉각 상태가 유지됐다. 하지만 뉴질랜드 빅토리아대 연구팀은 <네이처 기후변화> 29일(현지시각)치에 게재한 논문에서 “지난 30년 동안 남극점의 온난화가 지구 평균의 3배 속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20세기 후반 남극 반도의 온난화로 빙하 얼음들이 녹아내릴 때 남빙양을 에워싼 강한 서풍이 남극점 기후를 고립시키고 남극 고원을 냉각시켰다. 남극대륙 서부에서도 온난화가 상당히 진행돼 많은 얼음이 녹았지만 남극대륙 전체의 해빙은 다소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서면서 새로운 변화가 생겨났다. 남극대륙 서부 해안의 빙상 두께는 극적으로 얇아졌다. 해빙 면적의 변동폭이 커져 2014년에는 기록적으로 커졌다 2016년에는 반대로 유례없이 작아졌다. 남극 반도와 남극대륙 서부의 온난화는 약해지는 추세를 보였다.
위도상으로나 고도상으로나 가장 먼 곳인 남극점은 달랐다. 냉각기에 접어들었던 남극점에서 21세기 들어 빨라진 온난화가 이전의 냉각을 원점으로 돌려놓고도 한참을 더 나아갔다. 1980년대 1도가 낮아졌던 남극점의 평균기온은 최근 30년 만에 1.8도가 높아졌다.
연구팀은 지구 최남단에 위치한 아문센-스콧과학기지의 기상 관측 자료를 토대로 분석했다. 남극 기상 관측으로는 가장 오래된 이곳 기록은 1957년부터 시작됐다. 그동안 연중 온도 변동폭이나 연도별 변동폭이 크지 않았으나 1980년부터 변동성이 커졌다. 1983년 기록적인 냉각화가 기록되고 나서도 몇차례 냉각 현상이 반복됐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 완전히 역전돼 1989∼2018년 사이에는 10년 주기로 0.6도씩 상승했다. 10년 주기 0.2도인 세계 평균기온 상승의 3배에 이른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연구팀은 일차 원인을 열대의 해양과 기후 변동성 곧 ‘10년 주기 태평양 진동’(IPO)에서 찾았다. IPO는 1980년대 초에는 음에서 양으로 바뀌었다가 21세기 들어서서는 다시 음으로 바뀌었다. IPO가 음의 상태일 때 열대 서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올라가고 이것이 대기의 대류를 활발하게 발달시키면 고기압과 저기압 기단이 번갈아가며 고위도 쪽으로 이동한다. 연구팀은 이런 과정이 남극대륙을 에워싸고 강하게 불고 있는 서풍의 경향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남반구 기후 변동성의 주요 현상인 남반구 극진동(SAM)도 양의 상태를 보이고 있다. IPO와 SAM의 결합이 남대서양 고위도 지역(웨델해)의 저기압 활성을 증대시키고, 이 저기압이 남대서양의 고온다습한 공기를 고위도의 남극 내륙까지 이동시킨다는 것이 연구팀의 해석이다.
하지만 연구팀 분석 결과 자연적인 기후변화만으로 남극점의 온난화 추세가 설명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기후모델 시뮬레이션 작업을 통해 열대의 기후 작용과 인류 기원의 온난화 효과가 두발자전거처럼 동시에 작동했다고 결론내렸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미국 콜로라도대의 섀런 스태멀전은 <네이처 기후변화>에 실은 연구팀 논문 관련 ‘뉴스와 전망’에서 “연구팀의 분석은 남극점에서 가장 따뜻한 해(1981∼2010년 평균보다 2.4도 높았다)인 2018년에서 끝났지만 2019년 2월 남극 평원 동부에서 남반구 극진동 극값이 기록되고 10월에 다시 경신됐다”며 “물론 2019년 10월 현상이 일시적 자연변동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기후변화에 ‘청정한’ 곳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기후변화의 증인들②사철 검푸르던 지리산의 ‘회색 탈모’…그 자리를 활엽수들이 차지
지리산 임걸령으로 가는 길에서 발견한 구상나무 고사목들. 뿌리가 통째로 뽑힌 채 죽어 있거나(왼쪽 사진), 선 채로 고사해 회백색으로 변해 있다. 국립공원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해 지리산 반야봉·영신봉·천왕봉의 구상나무 고사목이 최근 10여년간 2~5배 이상 증가했다. 산을 어쩌다가 찾는 이들에게 5월 초의 지리산은 썩 건강해 보인다. 밝은 연두색부터 탁한 풀색까지, 세상의 모든 초록이 지리산에 있는 것 같다.
지리산국립공원 산청분소 직원인 민병태씨(64)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의 기억 속 지리산의 색깔은, 더 짙었다. “저기가 옛날에는 시커맸는데…. 시커맸어요, 침엽수 때문에. 사시사철 ‘푸른’ 게 아니고, 사시사철 ‘검은’색이었죠.”
이곳의 직원이 되기 전 그는 30년간 지리산 치밭목대피소의 산장관리인이었다. 지리산 해발 1425m에 위치한 이 대피소는 지리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천왕봉(1916m)과 500m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높고 외딴 곳에 있다. 그는 치밭목대피소가 ‘대피소’라는 이름을 갖기도 전부터 그곳에 살며 등산객들을 돌봤다. 공단이 노후한 산장을 철거하고, 새로 짓기로 하면서 3년 전에야 비로소 ‘하산’했다. 수십년간 산 한가운데서 살았던 그는 지리산, 그중에서도 인간의 접근이 쉽지 않은 아고산대 생태계 변화를 가까이서 목격한 몇 안 되는 증인이다. 그와 지난달 초 지리산에서 만났다.
지리산 아고산대 침엽수인 구상나무 집단 고사 가속
30년 산장관리인 출신 “어느날 풍경이 낯설게 보였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국립공원 경남사무소 산청분소 직원인 민병태씨가 지난 5월7일 지리산 임걸령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공단 직원으로 일 하기 전 수십년 간 지리산 치밭목대피소의 산장 관리인으로 일했다. 최유진PD
아고산대는 따뜻한 곳에서 자라는 활엽수들이 있는 온대림과, 나무가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는 고산지대 사이에 위치한 식생대다. 이곳의 연평균 기온은 4~5도 이하로 춥고, 비와 눈이 많이 내리며, 바람이 많이 분다. 아고산대는 민씨가 기억하는 ‘사철 푸르다 못해 검었던’ 상록침엽수의 주 서식지이기도 하다. 상록침엽수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지리산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것은 구상나무(Abies Koreana)다. 지리산 아고산대의 침엽수 분포 면적은 총 41.88㎢인데, 이 중 99.84%가 구상나무의 서식지다. 지금까지는 그렇다.
산의 색은 그 색을 채우던 것들이 줄어들면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산에 살았던 민씨도 산의 색깔이 ‘옅게’ 변하는 것을 눈치채는 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전문 지식도 없고, 또 계속 보던 것(풍경)이다 보니 오히려 변화의 심각함을 잘 못 느꼈어요. ‘뭔가 이상한데’ 싶으면서도 감이 잘 안 왔던 거죠.” 그러다 문득 매일 보던 풍경이 낯설게 느껴진 날이 있었다. “겨울에 숲의 푸른색이 없어졌어요. 회색지대로 변한 겁니다. ‘어? 뭐지?’ 했어요.” 그가 반야봉 능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예전엔 숲이 시커멀 정도로 전체가 다 침엽수였는데, 지금은 활엽수들이 치고 올라와서…. 탈모현상처럼 보여요. 다 녹색이 됐어요.”
그와 해발 1320m의 임걸령까지 가는 길에 구상나무 고사목들이 모여있는 곳이 나왔다. 한때 소규모로나마 군락을 이뤘던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들은 다양한 형태로 죽어있었다. 누군가 나무를 손가락으로 집어 땅에서 쏙 뽑아낸 것처럼 뿌리가 통째로 뽑힌 채 죽은 나무가 있는가 하면, 어떤 나무는 뿌리는 박혀 있으나 중간이 뚝 부러져 있었다. 똑바로 선 채로 죽어 색깔만 옅은 회색으로 변해 있는 나무 옆에는, 마치 종이가 찢어진 것처럼 몸통이 세로로 길게 찢어진 채 죽어있는 나무도 있었다. 민씨가 찢어져 죽은 나무 옆에 섰다. 땅에서 산 시간보다 산에서 산 시간이 더 긴 그는 나무를 ‘친구’라고 불렀다. “전문용어로는 잘 모르겠고, 그냥 약해요. 싱싱한 친구들은 탄력이 좋아서 바람에 움직였다가도 다시 돌아오죠. 그런데 탄력이 없는 친구들은 그냥 갈라집니다. 통째로 찢어져요. 한쪽은 이렇게 서 있고, 한쪽이 (찢어져) 쓰러져 버리면, 남아있는 부분도 결국은…(죽는 거죠).”
강설량 줄고 고온건조해진 봄에 생육시기 수분 부족
한국에서만 자생하지만 국내선 멸종위기종 분류 안 돼
녹색연합 자연생태팀 서재철 전문위원. 최유진PD
26년차 환경운동가인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의 서재철 전문위원도 지리산 구상나무의 고사 현장을 목격한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는 2010년 백두대간 생태조사를 하던 과정에서 처음 침엽수 고사 현장을 봤다. “(보자마자) ‘아, 죽어간다’ 했어요. 그런데 그 뒤로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거예요. 2012년, 2013년에는 더 많이 보였어요.” 그러다 2014년 지리산 천왕봉 인근에서 대형 산사태가 발생했다. 그는 산림청 요청으로 산사태 현장을 모니터링하는 헬기에 탔다. “카메라 셔터스피드를 500분의 1로 놓고 훑듯이 죽 찍었어요. 나중에 사진 판독을 하는데 깜짝 놀란 거예요. 반야봉 쪽에서 떼로 죽어있는 게 나오더라고요. 이 정도인가, 심각하다(고 생각했죠.)” 지리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인 반야봉의 해발고도는 1732m다. 그는 사진에 찍힌 현장을 직접 찾아갔다. 사진에서 봤던 그대로 집단 고사한 구상나무들을 발견했다. 그는 그때부터 아고산대 침엽수 고사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고, 2년 뒤인 2016년 식목일에 이 문제를 대대적으로 제기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정보기술(IT) 회사에서 일하는 박진성씨(38)는 2018년 내내 서 위원과 함께 전국의 산을 함께 다니며 침엽수 고사 현장을 조사했다. 그는 민병태씨 같은 산악인도, 서 위원과 같은 환경운동가도 아닌, 휴일마다 ‘백패킹’하는 것이 취미인 직장인이다. 녹색연합에서 침엽수 생태조사를 함께할 일반인들을 모집하는 것을 우연히 보고 지원했다. 그는 1년간 고산지대 고사목의 높이와 너비를 재고, 색이 변한 잎사귀들을 체크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처음엔 어떤 것이 구상나무 고사목인지 구분하기조차 쉽지 않아 온종일 10~20그루를 찾는 것도 힘들었는데, 나중엔 하루에 40~50그루는 쉽게 찾아냈고, 속도가 더 붙은 뒤엔 하루 조사로는 다 기록할 수 없을 만큼 고사목 수가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못 찾아서 안 보였던 것일 뿐, 보이게 되니까 조사할 것들이 너무 많았어요.”
올해 2월 발간된 국립공원연구원의 ‘지리산 아고산대 침엽수 고사개체 공간정보 구축 및 입지환경 분석’ 보고서에는 세 사람의 증언이 통계로 기록돼 있다. 지리산 반야봉·영신봉·천왕봉의 구상나무 고사 현황을 조사한 이 보고서는 “세 지역 모두 최근 10여년간 고사목 개체수가 2~5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히고 있다. 또 구상나무에 대해 “기후변화에 따른 수분 공급량 부족, 증발산량 증가, 광합성-호흡량 불균형 등에 따른 생리적 스트레스 가중으로 자생지 소멸 위험성이 점차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연구에 참여한 국립공원연구원 이나연 연구위원은 “전 세계적으로 고지대에 살고 있는 구상나무 같은 ‘바늘잎’ 나무들이 많이 죽어가고 있다”면서 “지구의 기후변화를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했다.
녹색연합 ‘그린 백패커’로 활동하며 고산 침엽수 생태조사에 참여했던 시민 박진성씨.최유진PD
사실 나무는 여러 원인으로 고사할 수 있다. 태풍이나 강풍에 꺾일 수도 있고, 자연적으로 수명이 다할 수도 있다. 최근 10여년간 가속화되고 있는 구상나무 고사의 주된 원인이 ‘기후변화’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이 연구위원은 ‘온도 상승’을 들었다. 이 연구위원에 따르면 전라북도 남원의 연평균 기온은 2012년 11.9도였는데, 2019년 13.3도로 1.3도가 올랐다. 같은 기간, 고지대인 지리산 반야봉 지역의 연평균 기온은 4.2도에서 7.7도로 상승했다.
민병태씨는 그것을 피부로 느꼈다. 겨울철 내리는 눈의 양이 줄었고, 봄은 고온건조해졌다. 그는 “1980년대 초반만 해도 5월 말~6월 초까진 비탈진 계곡이나 응달 쪽에는 잔설이랑 얼음이 남아있었는데 지금은 2월 말쯤 되면 잔설이 없다”면서 “작년 겨울엔 측심할 눈도 없었다. 한 번 폭설이 왔는데 온도가 높다보니 2~3일 사이에 다 내려앉아 버렸다”고 했다.
제주의 해녀들이 기후변화로 바다 수온이 높아져 더 이상 예전만큼 두꺼운 잠수복을 입지 않게 된 것처럼, 민씨의 겨울산행용 보호장비 역시 간소해졌다. “장갑 하나만 있어도 어지간히 버티고, 신발도 완벽한 동계화가 아니더라도 다니는 데 불편함이 없어요.”
이러한 변화들은 복합적인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나무의 떼죽음을 야기하고 있다. 이 연구위원은 “겨울철 눈 녹은 물이 토양으로 흡수되면서 나무의 생육을 활성화시키는데, (눈의 양이 줄면서) 나무들이 한창 생육을 해야 할 시기에 수분이 부족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동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태풍의 빈도나 강도가 높아진 것도 지리산 나무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구상나무는 뿌리를 수직으로 깊게 박아내리는 대신 얇은 뿌리를 수평으로 퍼뜨리며 자라난다. 토양의 깊이가 얕고, 암반지대가 많은 아고산대 환경에 버틸 수 있게 발달한 뿌리다. 하지만 따뜻하고 건조해진 환경에서 이런 뿌리는 쉽게 뽑혀 버리고 만다.
세계자연보전연맹(ICUN)이 ‘위기종(Endangered)’으로 지정한 구상나무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에서밖에 자생하지 않지만 아직 국내에선 멸종위기종으로 분류조차 돼 있지 않다. 사실 아고산대는 거의 사람이 찾지 않는 곳이어서 구상나무가 없어졌다고 당장 ‘인간의 생활’에 타격을 줄 것 같진 않다. 구상나무가 사라진 땅이 황무지로 남는 것도 아니다. 쇠약해진 구상나무가 고사한 자리엔 따뜻한 곳에서 잘 자라는 낙엽활엽수가 들어서고 있다. 구상나무가 외국에서 ‘크리스마스트리’로 인기가 있다고는 하나, 그게 구상나무 고사를 우려해야 하는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구상나무의 죽음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이 연구위원은 “식물의 변화는 수백년, 수천년에 걸쳐 일어나는데, 현재의 변화는 인간의 ‘인위적인’ 활동으로 인해 (지구) 온도가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타난 것이라 자연이 스스로 변화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행기’를 비유로 들었다. “비행기를 생태계라고 한다면 부품 한두 개가 빠져도 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중요한 부품이 사라지거나 고장나면 날 수 없잖아요. 아고산 생태계가 사라지는 것도 그런 위험성이 있는 거죠. 구상나무의 고사는 단순히 침엽수에서 낙엽활엽수로 ‘세대교체’가 되는 게 아니라, 생태계 자체가 유지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부분으로 봐야 합니다.”
지리산국립공원 전남사무소의 신창근 계장은 ‘팔각’의 예를 들었다. “신종플루의 치료약, 타미플루의 원재료가 되는 나무가 ‘팔각’인 거 아세요? 과거엔 중국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 정도로 쓰였지만, 지금은 위상이 달라졌잖아요. 구상나무도 지금은 몰라요. 한 종 한 종의 가치는 현재 일부만 밝혀져 있을 뿐이죠. 지금으로선 가치 평가를 할 수 없어요.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니까, 우리로서는 한 종이라도 더 갖고 있는 게 유리한 거죠.”
마지막으로 민씨는 잠시 생각에 잠긴 끝에 이런 말을 남겼다. “온도가 갑자기 이렇게 올라가 버리는 것은 (구상나무에는) 천재지변이에요. 여기서 붙박이로 살고 있는 친구들은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거잖아요. 가끔 산에 오는 등산객 중에는 (심각성을) 못 느끼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그런데 전 심각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인류도 (지구의) 전체 틀에 한 구성원이잖아요. (자연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잖아요. 서로 이용하는 관계잖아요. 그래서 저는…, 전 인류의 회의가 필요한 것 같아요.”/글 김한솔 기자·사진 최유진 PD
부산환경단체 '공원 일몰제 난개발 방지대책 촉구'
이른바 '도시공원 일몰제'가 오늘(1일)부터 시행되는데 맞춰, 부산의 시민환경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녹지 보전을 위한 정부와 부산시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습니다.
이들은 도시공원 해제가 2025년까지 앞으로 순차적으로 도래해오지만, 정치권이 약속한 관련 입법은 이뤄지지 않았고 부산시의 대응도 역부족이라며, 21대 국회에서 법안을 조속히 마련하고, 부산시도 전담인력을 확충해 녹지 난개발을 막기 위한 전방위적 대응에 나서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편 오늘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도시공원 일몰제'에 따라 부산에선 5천만㎡가 공원부지에서 해제됩니다/ 조재형 cjh@busanmbc.co.kr
자연시사다큐멘터리 - 욕망의 곤충, 장수하늘소
국립과천과학관의 손 모 연구사와 서울의 한 직업전문학교 손 모 교수는 지난해 7월 사슴벌레를 채집하기 위해 강원도 춘천의 한 야산에 올랐다가 길이 10cm가 넘는 애벌레 7마리를 발견했다. 이중 4마리는 오항리 버드나무에서, 나머지 3마리는 버드나무로부터 700여 미터 떨어진 행정구역상으로는 추전리에 있는 한 참나무에서 각각 발견했다.
▲ 2019년 7월, 춘천에서 발견됐다고 발표된 장수하늘소 애벌레
손 연구사는 애벌레들을 국립과천과학관으로 옮겨왔고, 천연기념물 제 218호이자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인 장수하늘소의 유충으로 확인되자 문화재청에 발견 사실을 신고했다. 문화재청은 한 달여 뒤 손 연구사 등과 함께 공동조사단을 꾸려 현지 조사를 벌였고, 장수하늘소가 강원도 춘천에서 발견된 것이 맞다고 공인했다.
장수하늘소는 딱정벌레목 하늘소과로 딱정벌레 중 크기가 가장 큰 곤충이다. 과거 아시아와 남미대륙이 육지로 이어져 있었다는 대륙이동설을 뒷받침하는 생물 분류 및 분포학적 가치가 매우 크다.
▲ 장수하늘소 어른벌레
문헌상으로는 서울 북한산과 강원도 양구, 춘천, 강릉 등에서 장수하늘소가 발견된 것으로 기록돼 있으나 현재는 경기도 포천의 광릉숲에서만 발견됐다. 언론들은 장수하늘소가 46년 만에 춘천에서 다시 발견됐다며 대서특필했다. 장수하늘소 애벌레가 변태를 거쳐 어른벌레가 되고, 산란하는 과정까지 후속 보도가 이어졌다.
하지만 춘천에서 장수하늘소가 발견된 것은 46년보다 훨씬 오래됐다. 문화재청이 말한 46년의 기준은 춘천의 장수하늘소 발생지가 소양강댐 건설로 수몰된 1973년을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고, 장수하늘소가 마지막으로 발견된 기록은 1937년이기 때문에 기록상으로는 82년만에 발견된 것이다.
장수하늘소 유충을 발견하는 것은 성충을 발견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왜냐면 어미 장수하늘소는 나무 껍질 사이에 산란관을 꽂아 알을 낳는데, 부화한 애벌레는 스스로 나무 속으로 파고 들어가 성충이 되기 전까지 4~5년 간 밖으로 나오지 않는 특성 때문이다. 뉴스타파는 춘천의 장수하늘소 유충이 아주 우연히 발견된 과정을 검증했다.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한 둘이 아니었다.
의문 1. 침엽수림 지대에서 발견된 장수하늘소 유충
첫번째 의문은 장수하늘소가 발견된 숲의 상태다. 장수하늘소 유충은 커다란 활엽수에 4~5년을 살며 나무의 섬유소를 먹고 자란다. 특히 몸통이 굵은 활엽수에서 사는 이유는 성충이 되기 전까지 10cm가 넘게 크는 특성상 수년 간 한 나무 안에서 먹이 활동을 하려면 충분한 공간이 확보돼야 하기 때문이다. 서어나무와 신갈나무 등이 있는 숲이 잘 보존된 경기도 포천의 국립수목원에서 장수하늘소가 최근 7년 동안 연속해서 발견된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런데 춘천의 유충이 발견된 장소는 장수하늘소가 서식하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다. 장수하늘소 유충 4마리가 발견된 춘천 오항리의 숲은 한국전쟁 당시 완전히 파괴돼 1950년대만 해도 거의 민둥산이었다.
▲ 1954년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일대 항공사진 (출처 - 국토지리정보원)
70년이 지난 현재 나무가 우거지긴 했지만 여전히 이곳은 장수하늘소가 서식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산림청 산하 춘천국유림관리소에 따르면 오항리 숲은 1976년에 침엽수인 ‘스트로브잣나무’ 로 조림됐다. 2018년 산림청 조사 결과 이 숲은 ‘스트로브잣나무’가 80%, 계곡 일부에 활엽수가 20%를 차지하고 있는 침엽수림 지대다. 20%를 구성하는 활엽수의 나이는 평균 16년, 직경은 최소 6cm에서 최대 20cm인 작은 나무로 조사됐다.
반면 국립수목원에서 올해 초 장수하늘소 유충이 발견된 졸참나무의 직경은 약 80cm였다. 물론 침엽수림 지대에서도 장수하늘소가 서식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국립수목원의 한 연구진은 “장수하늘소 이동반경 내 살아갈 수 있는 활엽수가 있다면 침엽수림 지대에서 장수하늘소가 서식하는게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의문 2. ‘탈출공’이 없다?
뉴스타파는 2012년 세계 최초로 장수하늘소 인공 증식에 성공한 이대암 영월곤충박물관장과 함께 춘천 장수하늘소 유충 4마리가 발견된 오항리 현장을 찾았다. 하지만 현장에서 어미 장수하늘소의 ‘탈출공’을 확인할 수 없었다.
▲ 2019년 7월 장수하늘소 유충 4마리가 발견됐다고 발표된 강원도 춘천시 오항리 현장
장수하늘소처럼 유충이 나무 안에 들어가 나무의 섬유소를 파먹으며 사는 곤충을 천공성 곤충이라고 한다. 애벌레는 나무속에서 고치를 만들고 성충으로 변태한 뒤 나무를 뚫고 나온다. 이 과정에서 생긴 구멍을 ‘탈출공’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장수하늘소가 실제 살았는지 조사할 때 가장 먼저 파악하는 것이 탈출공이다.
▲ 나무 한 가운데 뻥 뚫린 구멍이 탈출공이다.
장수하늘소 유충 4마리가 발견됐다면 주변에 어미 장수하늘소의 흔적이 있어야 하는 게 일반적이다. 2019년 8월 현지조사 당시 동행한 국립수목원 전문가들은 탈출공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산 전체를 샅샅이 수색한 것이 아니어서 탈출공을 확인하지 못한 것이 오항리 숲에 장수하늘소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의문3. 나무에 ‘식흔’이 없다?
장수하늘소 애벌레가 사는 나무에는 식흔이 발생한다. 식흔은 애벌레가 나무를 갉아먹으면서 생긴 갱도와 나무의 섬유소를 소화한 뒤 배설한 흔적을 가리키는 말이다.
▲ 2020년 국립수목원 졸참나무에서 발견된 유충의 먹이활동 흔적
오항리 숲의 버드나무에서 발견된 장수하늘소 유충 4마리는 모두 10cm가 넘는 크기였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말부터 12월 사이 성충으로 변태했다. 이를 감안하면 최소 3~4년 이상 이 버드나무 안에서 먹이활동을 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손 연구사와 손 교수를 제외한 다른 공동조사단은 식흔을 확인하지 못했다. 현지 조사 당시 유충이 발견됐다는 나무 밑동이 완전히 훼손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뉴스타파는 공동조사단이 당시 촬영한 사진을 토대로 장수하늘소 유충이 발견된 버드나무를 찾아냈다. 이 나무는 그루터기에서 1m 지점까지는 나무 몸통의 속살이 파이고 훼손이 심각했지만 윗부분은 멀쩡한 상태였다. 문화재청 천연기념물과에 해당 나무를 절단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훼손되지 않은 나무의 1m지점을 절단해봤다. 장수하늘소는 물론 다른 어떤 곤충의 식흔도 확인할 수 없었다.
▲ 지난해 7월 장수하늘소 유충이 발견됐다고 발표된 나무를 절단해 봤더니 직경이 20cm가 채 되지 않았다.
장수하늘소 유충 4마리가 10센치가 넘게 클 때까지 수년 간 안에서 먹이활동을 했다면 유충이 발견된 밑동 뿐 아니라 나무 몸통 전체에 식흔이 나와야 한다.
취재진은 현장에서 촬영한 나무의 절단면을 국립수목원 관계자들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구했다. 전문가들은 “장수하늘소 유충이 살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면서도 “애벌레가 나무 안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유충이 없었다고 확언하긴 어렵다”고 밝혔다.
뉴스타파는 한 가지 실험을 해봤다. 나무에 유충을 넣어서 관찰해 보기로 했다. 나무는 유충 4마리가 발견된 버드나무와 거의 동일한 조건인 직경 20cm짜리 버드나무 고사목을 현장에서 구했고, 영월곤충박물관의 도움을 얻어 8cm 크기의 장수하늘소 유충을 넣었다.
▲ 영월곤충박물관의 도움을 받아 장수하늘소 유충이 한 달 간 얼마나 먹이활동을 하는지 실험해봤다.
한 달 뒤 나무를 쪼개보니 선명한 식흔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충은 한 달 만에 38cm를 이동했다.
▲ 장수하늘소 유충을 버드나무에 넣은 뒤 한달이 지나고 나무를 쪼개보니 약 40cm 이동한 것이 확인했다.
의문4. 유충 발견자의 엇갈린 기억?
장수하늘소의 먹이식물인 활엽수가 울창한 숲이 아니라 침엽수림 지대에서 유충이 발견됐고, 나무에서 식흔을 찾아볼 수 없는데다 인근 숲에서 어미 장수하늘소의 탈출공을 찾지 못했다는 것은 춘천의 장수하늘소 유충이 자연상태에서 발견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점을 가리킨다. 물론 조작이라고 딱 잘라서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자연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초 발견자의 기억마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서울의 한 직업전문학교의 손 모 교수와 국립과천과학관의 손 모 연구사가 유충을 처음 발견 한 건 지난해 7월 12일. 현장에는 둘 뿐이었다. 두 사람은 발견 당일에 장수하늘소 유충 7마리를 포획해 국립과천과학관으로 가져왔다.
천연기념물 제218호로 지정된 장수하늘소를 포획하거나 상태가 바뀌었을 경우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현상변경’이라는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발견자 둘은 문화재청에 현상변경 신청을 하지 않고 무단으로 포획했다.
▲ 지난해 7월 춘천에서 발견된 장수하늘소 유충
발견자인 국립과천과학관의 손 모 연구사는 뒤늦게 문화재청에 현상변경 신청을 하고 문화재청은 8월 21일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현장에는 최초 발견자와 문화재청 관계자, 국립수목원 전문가가 동행했다.
그런데 뉴스타파가 유충을 최초로 발견한 두 발견자를 찾아 장수하늘소 애벌레를 직접 발견한 것이 맞는지 물었는데 둘의 대답이 엇갈렸다. 손 연구사는 유충 4마리가 발견된 오항리 버드나무 사진을 본 뒤 이 나무에서 유충 4마리가 아닌 2마리가 나왔다고 답했다. 그는 또 다른 2마리는 같은 숲에 있던 다른 나무에서 나왔지만 현재 그 나무는 없어졌다고 주장했다.
서울의 한 직업전문학교의 손 모 교수에게도 같은 사진을 보여줬다. 손 교수는 해당 나무에서 유충이 아예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유충이 발견되지도 않은 나무를 촬영한 이유를 묻자 손 교수는 “그냥 현지조사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찍은 것”이라고 답했다.
▲ 지난해 8월, 현장에 문화재청, 국립수목원 관계자들이 춘천 장수하늘소 유충이 발견된 현장을 조사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현지조사 당시 동행한 문화재청과 국립수목원 관계자들은 사진에 찍힌 버드나무에서 유충 4마리가 발견됐다고 직접 설명을 들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해당 사진이 유충이 발견된 나무사진이라고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실에 제출하기도 했다.
손 교수 실험실 내부 관계자, “장수하늘소 유충 수백 마리 갖고 있었다”
뉴스타파는 취재도중 경기도의 모 대학 파주 캠퍼스에 있는 손 교수의 실험실에서 일했던 내부 관계자를 어렵사리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관계자는 “손 교수의 실험실에 장수하늘소가 300마리 넘게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10cm가 넘는 종령의 유충도 최소 10마리 정도 있었다고 말했다. 종령이란 성충이 되기 직전의 유충시대 마지막 령을 뜻한다.
▲ 장수하늘소 유충이 보관됐다고 추정되는 손 모 교수의 실험실 공간
이 관계자는 자신을 포함해 실험실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공동으로 장수하늘소를 사육했다며 증거 사진을 보여줬다. 각 병에는 숫자와 날짜가 적혀있다. 2019년 4월 20일이 적힌 병이 다수 확인되고 날짜가 2018년으로 적혀있는 병도 있다. 이 관계자는 “병에 적힌 날짜가 장수하늘소 유충을 병 속에 넣은 일자”라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또 “손 교수가 적어도 2019년 6월까지는 장수하늘소를 사육했다”며 “손 교수는 이같은 사실을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고 내부 단속을 철저히 했다”고 덧붙였다.
천연기념물인 장수하늘소를 허가 받지 않고 사육할 경우 문화재보호법 제99조에 따라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당시 국내에서 장수하늘소를 사육할 수 있는 곳은 국립수목원과 영월곤충박물관 두 곳 뿐이었다. 그러나 손 교수는 장수하늘소를 몰래 사육하고 있었냐는 뉴스타파 취재진의 질문에 부인했다.
“손 교수, 장수하늘소복원센터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손 교수 실험실 내부 관계자는 “손 교수가 실험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국립과천과학관의 손 모 연구사와 함께 장수하늘소 복원센터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말을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또 “춘천에서 장수하늘소 유충을 발견하기 수 개월 전에 손 교수가 실험실에 고사목을 가져와 그 안에 장수하늘소 유충을 집어넣는 것을 목격했고, 흔적을 만들기 위해 두세 달 정도 묵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 춘천에서 장수하늘소 유충이 발견됐다고 주장하는 당시 사진
취재진은 손 교수에게 춘천에서 장수하늘소를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꾸민 게 아니냐고 물었다. 손 교수는 모든 내용을 부인했다.
장수하늘소를 발견한 공로로 손 교수는 학교의 위상을 드높였다며 학내에서 상을 받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의 표창도 받았다. 국립과천과학관에는 ‘장수하늘소 생태복원 연구실’이 신설됐고 손 연구사는 장수하늘소를 사육하는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문화재청의 졸속 행정처리… 의문의 근본 원인
뉴스타파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춘천의 장수하늘소 유충이 자연상태에서 발견됐다는 객관적인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천연기념물인 장수하늘소가 강원도 춘천에서 다시 발견됐다고 이미 공인했다. 공인 과정은 졸속으로 진행됐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천연기념물인 장수하늘소를 발견한 뒤 이를 옮기려면 문화재청으로부터 ‘현상변경’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춘천에서 유충이 발견됐을 때는 손 연구사 등은 임의로 유충을 포획했다. 한 달여 뒤 문화재청의 현지조사가 끝난 뒤 현상변경 승인이 사후에 이뤄졌다.
▲ 2019년 9월 공개된 춘천에서 발견한 장수하늘소 유충
현상변경 승인은 현지조사 당시 동행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현지조사에 동행한 국립수목원 전문가는 실제 유충을 보지도 못했다. 또 유충 4마리가 발견됐다는 오항리 숲은 조사를 했지만, 3마리가 발견된 추전리 숲은 아예 조사를 하지도 않았다.
문화재청은 장수하늘소 유충을 현장에서 확인하지도 못했고, 유충이 발견된 지역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채 ‘천연기념물이 발견됐다’고 공인한 셈이다.
문화재청의 졸속 행정은 이뿐만이 아니다.
국립과천과학관은 춘천에서 발견했다는 유충 암수 한쌍을 사육했고, 이 유충은 성충이 돼 번식에 성공했다. 과천과학관이 사육한 장수하늘소 암컷은 51개체의 알을 낳았는데 여기서 부화한 애벌레 20마리를 손 교수에게 위탁 사육시켰다.
장수하늘소 유충을 위탁 사육하려면 문화재청으로부터 반드시 현상변경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상변경 신청은 없었다.
뉴스타파가 춘천 장수하늘소 문제를 취재하자 문화재청은 지난 6월 25일 손 교수에게 사육하고 있던 유충 20마리를 국립과천과학관에 다시 옮겨놓도록 조치했다. 문화재청 천연기념물과 신 모 주무관은 “현상변경을 하지 않은 채 손 교수가 유충 20마리를 위탁사육 하고 있는 사실을 몰랐다가 제보를 받아서 반환 조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국립과천과학관의 손 모 연구사는 “손 교수에게 위탁하는 시점에 문화재청의 신 모 주무관에게 구두로 이같은 내용을 전달했다”며 “현상변경 신청없이 위탁사육한 사실을 문화재청이 몰랐을 리가 없다”고 반박했다./뉴스타파 /신동윤
철문에 가로막힌 백양산 길…‘통행로 vs 재산권’ 갈등
부산진구 당감동 부산국제고 옆에 있는 백양산 등산로가 폐쇄되어 있다. 이곳 소유주는 사유지 보호를 이유로 펜스를 설치해 등산객의 출입을 통제했다. 정상채 시의원 제공
“부산진구 주민의 등산로를 돌려 달라!” “사유 재산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
백양산 등산로 폐쇄를 두고 지주와 주민 간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3년 가까이 잡음을 일으켜 왔던 이 문제를 놓고 급기야 시의원이 지주를 관할 경찰서에 고발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2일 부산시의회와 부산진구에 따르면 정상채 시의원(부산진구2·더불어민주당)은 부산진구 당감동 동일스위트아파트 일대 등산로를 막은 임야 소유주 A 씨를 부산진경찰서에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토지 소유권자라 할지라도 사적인 영리를 목적으로 수십 년간 사용하던 등산로를 폐쇄하는 것은 형법 제185조 위반과 토지 공개념의 취지를 일탈한 범법 행위라는 게 고발장의 주된 내용이다.
지주“재산권 보호 위해 폐쇄 불가피
구청에 매수 요청 협상 결렬”
주민“수십 년 등산로 알면서 매수 교통방해 혐의로 경찰 고발”
문제가 된 임야는 개발행위가 금지된 자연녹지다. A 씨는 주민들이 이전부터 백양산을 오르는 통행로로 사용되어 왔던 이 땅을 2015년 공매로 불하받았다. 그러다 2017년부터 ‘사유지 보호’를 이유로 등산로 입구에 펜스를 설치하고 자물쇠를 걸어두면서 민원이 시작됐다. 백양로 등산로로 애용되던 이 임야는 이후 개방과 폐쇄를 거듭했고, A 씨와 주민 간의 갈등도 이어져 왔다.
부산진구청은 A 씨와 여러 차례 협의를 시도하였으나 협상이 결렬됐다. A 씨는 본인 소유의 임야를 부산진구청에서 매수하거나 다른 토지로 대토해 줄 것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부산진구청은 ‘지목이 임야에 해당하고, 여러 가지 조건이 부당하다’며 이를 거절했다.
정 의원은 A 씨 소유 이전부터 있던 등산로는 그대로 사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A 씨가 임야를 매입할 당시 등산로의 존재를 알았고, 이 등산로에 따라 땅값도 달라졌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민원을 받고 현장에 가 보니 소유주가 등산로 입구에 펜스를 쳐 주민들이 아예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부산진구가 우회로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산골짜기로 둘러가야 해 주민 불편이 예상된다. 소유주는 2017년 임야 매입 당시 통행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므로 통행로는 관행대로 허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임야 소유자인 A 씨는 ‘재산권 침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내가 그 땅을 산 지 5년이 됐는데 그동안 배드민턴 치러 오는 사람, 등산 오는 사람 다 놔뒀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그걸 내버려 둘 수는 없는 게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구청이 이 근방 내 땅에 전봇대를 말도 없이 박은 적도 있다. 자꾸 등산로를 달라고 하길래 ‘차라리 등산로를 사라’고 했는데 그것도 돈이 없어서 안 된단다. 그럼 그저 공짜로 쓰겠다는 말 아닌가. 그래서 내가 협상을 하지 말자고 했다. 구청에서 대체 등산로를 낸다니 차라리 잘됐다”고 밝혔다.
부산진구청은 A 씨의 해당 임야를 다 사 줄 수도 없고, 이런 선례를 남겨서도 안 된다고 못 박았다. A 씨의 임야를 대신해 당감동 동일스위트아파트 110동 뒤 계곡 위로 목교 27m를 개설해 오는 10일 대체 등산로로 개방할 예정이다. 부산진구 공원녹지과 측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 땅을 무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어서 ‘벽 쪽으로 붙은 길만 내주면 펜스를 쳐서 임야 침입을 못하게 하겠다’고 제의를 했지만 결국 협의가 안 됐다. 비록 돌아가는 모양새가 됐지만 주민들에게 대체 등산로를 이용하라고 안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김해신공항이 생태계 다 망친다…환경부 지적 문제만 29개
국토부 환경평가에 대한 의견
- 평강천 매립해 활주로 건설 땐
- 수질 악화로 하천기능 잃을 수도
- 조류 충돌 위험성 평가도 부실
- 소음 노출 세대수 등 명시 안해
- 국토부 “확정 뒤에 보완” 말만
국토교통부의 김해신공항안(김해공항 확장)이 ‘안전’ 문제뿐 아니라 환경적 측면에서도 하자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무총리실 검증위원회의 검증이 막바지에 이른 가운데 ‘환경’ 문제가 검증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2일 국제신문이 국토부가 작성한 ‘김해신공항안 전략환경영향평가서(이하 평가서)’ 초안에 대한 환경부의 검토의견서(이하 의견서)를 입수해 확인한 결과 ‘재검토’ 또는 ‘보완 ’ 항목이 29개에 달했다. 국토부의 김해신공항안이 심각한 환경 훼손을 유발하고 생활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환경부는 입지 타당성 측면에서 ▷자연환경의 보전 ▷생활환경의 안정성 ▷사회·경제 환경과의 조화성 등 세 가지로 나눠 조목조목 문제를 지적했다.
국토부의 김해신공항안에 대해 환경부가 하자를 지적한 의견서를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김해신공항안에 따라 매립이 예정된 부산 강서구 평강천 일대의 모습. 이원준 프리랜서
■활주로에 하천 포함 말라
환경부는 평강천을 매립해 활주로를 추가 건설하려는 김해신공항안에 대해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냈다. 환경부는 의견서에서 ‘활주로가 하천 구역에 포함되지 않거나 일부 구간을 복개하는 방안과 다른 대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수환경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토지이용계획을 수립·제시하라’고 요구했다.
환경부는 다른 항목과 달리 두 차례 직접 ‘우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등 문제 의식을 드러냈다. 평강천 유로를 변경하면 하류의 9㎞ 이상 구간의 단절이 불가피하며 이로 인해 유량이 감소해 하류 수질이 악화되고 생태계가 훼손돼 하천기능을 잃을 수 있다는 게 환경부의 설명이다.
환경부는 김해신공항에서 발생할 하수 처리와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고 지적했다. 국토부는 김해신공항 발생 하수(약 4222㎥/일)를 부산 에코델타시티 하수처리시설로 연계하거나 자체 시설로 처리한 이후 해양 방류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하지만 에코델타시티 하수처리장의 여유 용량이 없어 자체 처리방안을 수립·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환경부는 조류 충돌에 따른 위험성 평가도 재검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공항 입지에 적용하는 평가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환경부는 ▷최근 3년간 조류 퇴치 현황 ▷위험조류 현황 ▷신공항 예정지에 대한 항공기-야생동물(조류 및 포유류) 충돌 위험성 평가 결과 등을 제시해 현재 김해공항에서의 항공기-조류 충돌 위험성 평가 현황 분석 결과와 비교·검토하라고 지적했다.
■졸속 처리된 소음 평가
생활환경의 안정성 부문에서는 ‘소음·진동’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국토부가 실시한 소음·진동 평가에서 제외된 항목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부가 졸속으로 소음 평가를 처리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환경부는 ▷항공기 소음영향지역 노출 세대수 및 인구수 정보 포함 ▷민항기, 군용기, 민항기+군용기 구분에 따른 항공기 소음 영향 기여도 분석 ▷군용기 소음 예측결과 등에 대한 국방부와의 협의 결과 명시 ▷지역주민 등 대상으로 항공기소음 예측결과 등에 대한 의견 수렴과 반영결과 명시 등을 보완하라고 지적했다.
대기질과 관련해서도 소음예측에 적용한 항공기 기종, 운행횟수 등을 토대로 기존 공항의 누적 영향 등을 고려해 예측하고 결과를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이같은 내용을 담은 환경부의 의견서가 전달됐지만, 국토부는 묵묵부답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국토부는 김해신공항안이 확정되면 관련 보완책을 준비한다는 이유로 환경부의 지적을 회피하고 있다”면서 “총리실의 검증에서는 안전 문제뿐 아니라 환경 문제도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신문 김해정 기자
지리산서 멸종위기 ‘나도승마’ 서식지 발견
문헌 자료 실체 첫 확인
지리산 국립공원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나도승마’ 서식지가 처음 발견됐다.
지리산 국립공원에서 발견된 나도승마 서식지.
지리산국립공원 경남사무소(이하 사무소)는 지리산국립공원 중지대에서 나도승마 서식지를 발견했다고 2일 밝혔다. 발견된 나도승마 서식지는 주변에 바위가 일부 둘러싸인 깊은 골짜기로 10㎡ 이며, 1개 개체군에 23개의 줄기가 자생하고 있다. 식물의 키는 약 1.5m로 잎이 큰 것은 너비 30cm, 높이 23cm가 넘을 정도로 생육상태가 우수하고, 줄기마다 꽃대를 형성하고 있어 매우 건강한 상태로 조사됐다. 나도승마는 그간 문헌 자료에 지리산에 자생한다고 기록돼 있으나 실체를 확인하지 못했다.
사무소는 자체 야생생물보호단을 중심으로 지난 5월부터 집중 조사를 펼쳐 국립공원 내 최초 서식지를 확인했다. 조두행 자원보전과장은 “나도승마가 국립공원 내에서 처음 확인된 만큼 서식지 보전에 최선을 다하고자 관련 전문가와 협력해 보호 방안 검토 등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나도승마는 해발 800m의 산간 지대에서 자라는 우리나라 고유종으로, 학술적으로 유전자원으로서 가치가 매우 높다. 줄기에 털이 많고 단면은 육각형이다. 잎은 둥글고 가장자리가 얕게 갈라지고 뾰족한 톱니가 있다. 옅은 노란색 꽃이 7~9월에 핀다.
미나리아재비과의 승마 종류와 잎이 비슷하게 생겨 나도승마라 하며, 1935년 일제강점기에 한 일본 식물학자에 의해 신종으로 발표됐다. 또 나도승마는 자신의 꽃가루를 자기 암술머리에 붙여 종자를 퍼트리는 등으로 결실률이 낮고 관상식물 가치에 따른 무분별한 채취로 1993년부터 멸종위기야생식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국제신문 김인수 기자 iskim@kookje.co.kr
중앙은행들, 기후변화에 립서비스만?
오일프라이스
코로나19 팬데믹에 글로벌 경제가 비틀거리면서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50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긍정적인 것을 찾기 어렵다. 미 의회 보고서를 보면 코로나19 팬데믹에 올해 글로벌 경제 규모는 약 6% 위축될 전망이다. 국제 경제와 무역, 나라간 정치적 관계가 어긋나면서 장기적 피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국 에너지전문매체 '오일프라이스'는 1일 "에너지업계는 다른 부문보다 더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며 "석유와 가스 수요는 급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전의 수준으로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한다"고 전했다.
한 줄기 희망이 있긴 하다. 녹색에너지다. 과거 여러 차례 신재생에너지의 시대가 온다는 예언이 있었지만, 들어맞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녹색에너지가 주류로 등장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로 일부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가 지연되고 있지만, 대안에너지 소비는 화석연료보다 호황을 누리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로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이 가속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 주요 중앙은행장들이 한목소리로 기후변화의 위험성에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제롬 파월 의장은 올 1월 "연준이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는 데 역할을 할 것"이라며 "각국은 기후변화의 위험에 맞서 회복탄력적이고 왕성한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중앙은행(ECB)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도 "기후변화 대처를 우선순위에 놓겠다"고 공언했다. 영국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마크 카니는 "기후변화로 인한 금융적 위협에 대처하려면 새로운 금융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녹색에너지의 증시 실적은 좋지 않았다. 투자자들이 신재생에너지를 도덕적 의무와 연계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주요 투자처로 삼은 건 아니었다. 화석연료의 저렴한 비용이 주는 매력이 여전했다.
하지만 몇년 전부터 상황이 크게 변했다. 신재생에너지 기술이 발전해 비용을 크게 절감시키고 있다. 이젠 보조금 없이 화석연료와 대등하게 경쟁할 수준에 이르렀다.
2010~2017년 태양광, 풍력 발전 비용은 각각 81%, 62% 감소했다. 천연가스와 석탄 비용과 동급이다. 공장의 경제적 기대수명과 건설비용 등을 고려한 '균등화발전비용'(LCOE)을 따지면 태양광과 육상 풍력이 석탄과 천연가스보다 더 저렴한 실정이다.
결과적으로 신재생에너지는 전력을 어떤 방법으로 생산하는지를 나타내는 비율인 '에너지 믹스'(Energy Mix)에서 점차 큰 역할을 맡고 있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새롭게 보태진 발전용량 중 태양광과 풍력, 수력, 지열, 바이오에너지 등 신재생에너지가 72%를 차지했다.
석유 수요가 거의 30% 하락한 현재, 신재생에너지는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에너지 시장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 올해 1분기 신재생에너지의 글로벌 사용량은 전년 동기 대비 1.5% 늘었다. 글로벌 에너지 믹스에서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2019년 말 기준 28%로, 전년 동기 26%에서 상승했다. 대신 석탄과 천연가스 비중이 그만큼 줄었다.
투자자들은 이제 신재생에너지 분야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30개 거대 유틸리티(수도·전기·가스 등 공익사업)와 녹색에너지 주식을 추종하는 'S&P글로벌 클린에너지 인덱스'는 지난 2년 동안 배당금을 포함해 37% 수익률을 보였다. 같은 기간 S&P500 지수 수익률은 18%였다. 또 미국내 등록된 친환경에너지 기업들을 중심으로 취합한 'SPDR S&P켄쇼 클린파워 ETF'(CNRG)는 2018년 10월 출시된 이래 현재까지 70% 수익률을 냈다. 한편 태양광 관련 글로벌 주식을 골라 담은 '인베스코 솔라 ETF'(TAN)은 올 1월부터 현재까지 13.4%, 2019년 1월 기점으로는 80% 수익률을 냈다.
태양광과 풍력은 이제 성숙 단계 기술로 예측가능한 장기적 수익을 제공한다는 평가다. 현재 가장 핫한 부문은 배터리 저장 부문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에서 운영중인 유틸리티급 배터리 저장 능력은 2014년 214메가와트에서 2019년 3월 899메가와트로 4배 이상 늘었다. EIA는 유틸리티 규모 배터리 저장 능력이 2023년 180% 늘어 2500메가와트를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스위스 UBS은행은 미국 에너지 저장 시장이 향후 10년 동안 426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연준을 비롯한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기후변화에 대처하겠다는 공언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수백억달러를 들여 석유와 가스 기업들을 구제하고 있다.
연준의 자산은 올해 3조달러 늘었다. 기업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회사채 등을 지속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영국 소재 싱크탱크 '인플루언스 맵'은 연준이 미국 석유, 가스 부문 채권을 약 200억달러 사들이게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ECB의 채권매입 프로그램은 연준보다는 녹색을 띤다.
하지만 그린피스 보고서에 따르면 ECB 역시 화석연료에 76억파운드를 투입했다. 그동안 회사채 매입액 300억파운드의 1/4 규모다. 오일프라이스는 "생존에 성공한 화석연료 기업들은 결국 기후변화 목표와 갈등을 빚을 것은 뻔하다"며 "결국 납세자의 돈은 또 다시 기후변화 대처에 투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중앙은행들은 자신이 '행동주의'로 보이는 것을 경계하며 몸을 사리고 있다"며 "적절한 법제화가 이뤄져 중앙은행이 직접 기후변화 대처에 나설 수 있도록 임무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기후변화 대처와 관련해 계속 립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그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나비는 어떻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볼링공’ 같은 빗방울 충격 피하나
표면의 나노 왁스층과 미세 둔덕이 빗방울 잘게 쪼개 충격 완화
빗방울은 나방의 날개에 떨어지자마자 표면의 미세구조 덕분에 잘게 부서져 충격량이 절반 이상 줄어든다. 코넬대 제공
나비에게 빗방울은 상대적인 무게로 비유한다면 하늘에서 쉴새 없이 볼링공이 떨어져 내리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비가 쏟아진 뒤 숲 속에 곤충 사체가 널브러져 있는 일은 없다. 그 비밀은 곤충 피부의 미세구조에 숨겨져 있다.
곤충 피부의 미세구조가 빗방울 충격을 완화하는 메커니즘이 밝혀졌다. 곤충뿐 아니라 새와 식물 등도 이런 방식으로 빗방울로 인한 기계적 충격과 저체온 영향을 막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승호 박사 등 미국 코넬대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미 국립학술원 회보(PNAS)’ 6월 8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처음으로 실제 자연계의 빗방울 속도로 실험한 결과 생물 표면의 미세한 둔덕과 나노 규모의 왁스층이 빗방울을 분쇄해 퍼뜨림으로써 손상을 최소화한다”고 밝혔다.
나비 날개에 떨어진 빗방울의 첫 1000분의 7초 동안 모습. 왼쪽부터 날개에 떨어진 물방울, 나노구조 비늘에 의해 퍼져 나가는 모습, 미세 굴곡 때문에 곳곳에서 풍선처럼 부풀어오르는 모습, 터져 작은 물방울로 부서진 모습. 김승호 외 (2020) ‘PNAS’ 제공
교신저자인 정승환 코넬대 생물 및 환경공학과 교수는 “곤충 같은 작은 동물에게 빗방울에 얻어맞는 것은 가장 위험한 일”이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그러나 이런 위험을 극복했기 때문에 곤충은 오늘날 지구에서 가장 종 다양성이 풍부한 생물로 진화했다.
연구자들은 나비와 새 깃털, 나뭇잎 등을 바닥에 놓고 2m 위에서 지름 1∼2㎜의 빗방울이 자연적인 빗방울 속도인 초속 0.7∼6.6m로 내리치는 모습을 초당 수천 프레임의 초고속 촬영을 해 분석했다.
빗방울이 생물 표면에 충돌하면 충격파와 함께 표면으로 퍼져 나간다. 표면의 나노 규모의 왁스층은 물을 밀어내고, 이보다 조금 큰 미세한 둔덕은 퍼져 나가는 빗방울이 빠질 수많은 구멍을 형성한다.
정 교수는 “미세한 둔덕은 풍선을 찌르는 바늘 구실을 한다”고 설명했다. 미세 구멍을 중심으로 형성된 물 표면의 ‘풍선’ 구조가 갑자기 파열하면서 작은 물방울로 나뉘어 퍼져 나간다.
나비 날개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김승호 외 (2020) ‘PNAS’ 제공
떨어진 빗방울이 표면의 미세구조에 의해 잘게 부서진 모습. 김승호 외 (2020) ‘PNAS’ 제공
연구자들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물방울과 생물 표면이 만나는 접촉 시간이 70% 이상 준다고 밝혔다. 이는 물방울 충돌로 인한 충격량이 줄어 나비 날개나 잎사귀 같은 연약한 구조를 지키는 데 도움을 준다. 또 차가운 물방울과 접촉하는 시간이 줄어 열 손실로 인한 저체온 현상을 막아 주기도 한다. 예컨대 근육이 식으면 곤충은 잘 날지 못하고, 굶주린 포식자의 쉬운 먹거리가 될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이와 함께 물방울을 잘게 부서뜨림으로써 무거운 물방울을 가능한 한 빨리 털어내는 효과도 있다고 밝혔다. 비행하는 새나 곤충, 그리고 나무 잎사귀 모두에 무게를 줄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연구자들은 생물 표면의 이런 미세구조가 세탁이 필요 없는 옷이나 신발을 위한 방습 스프레이, 비행기 날개의 결빙 방지 코팅 등 새로운 제품 개발에 쓰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모기에 3㎜ 지름의 빗방울이 부닥치는 모습. 빗방울의 무게는 모기의 최고 50배에 이른다. 앤드루 디커슨 외, PNAS 제공
앞서 날아가는 모기는 빗방울에 부닥치더라도 워낙 체중이 가벼워 충격량이 적기 때문에 곧 빗방울에서 벗어나 살아남는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빗방울 ‘폭탄’에 모기가 맞는다면?).
인용 저널: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DOI: 10.1073/pnas.200292411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전국에 '득실득실'…매미나방 도심까지 파고든다
여름이면 다 자라서 산과 들에서 만나게 되는 해충이죠,
이 매미나방이 올해는 전보다 일찍, 그것도 엄청난 숫자로 떼 지어 다니고 있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도심으로 이동할 거라고 하는데요. 올여름, 나방을 상대로 한 방역 전쟁이 예상됩니다.
리포트 -나무 사이로 흰색 나방들이 날아오릅니다. 등산로와 나무, 공원 시설 가릴 것 없이 나방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습니다. 한 달 전 애벌레가 매미나방 성충이 된 겁니다.
[원용희/강원도 원주시]
"나방도 많지. 이른 봄에 송충이도 많지. 그러니까 우리가 다니는데 불편하고 안 좋지."
[김용섭/강원도 원주시]
"작년에는 (매미나방) 못 봤어요.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어요. 올해 좀 많이 심했어요."
벌써 알을 낳는 매미나방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손길이 쉽게 닿지 않는 등산로 난간 구석과 공원 시설 지붕 밑은 누런 매미나방 알집이 가득합니다. 번데기에서 깨어난 매미나방의 평균 수명은 일주일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기간동안 암컷 한 마리가 낳는 알의 수는 500개가 넘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 서식하는 매미나방은 보통 7월 둘째 주가 지나야 성충이 되는데 올해는 2주 정도 앞당겨졌습니다.
[전혜나/치악산국립공원사무소 주임]
"올해 이번 겨울이 상대적으로 따뜻했던 탓에 알집에서 유충들이 많이 부화해서 이번에 조금 대발생을 한 것 같습니다."
매미나방 개체 수가 급증하면서 유충이 집단 폐사하는 이상 현상도 포착됐습니다. 지난 5월, 매미나방 애벌레가 뒤덮은 북한산은 번데기에서 나온 나방과 함께 말라죽은 애벌레 사체가 발견됐습니다.
국립공원공단 측은 나방 수가 급증하면서 기생벌 같은 천적도 많이 늘어났고, 나방들이 일종의 '거리두기'에 실패하면서 매미나방에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돼 집단 폐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한태만/국립공원공단 국립공원연구원 박사]
"핵다각체 바이러스를 확인했죠. 코로나 바이러스하고도 유사한데요. 주변에 개체밀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경우에는 감염 확산이 매우 쉬운 상황이 되는…"
지금까지 파악된 매미나방 유충이 발생한 지역은 전국 100개 시군구, 축구장 8,600개 크기에 달합니다. 북한산과 치악산 등 4개 국립공원에서도 확인됐습니다. 이 상태라면 매미나방 절반 이상이 이번 주 안에 성충으로 변하는데, 불빛을 쫓는 습성으로 나방이 도심으로 날아드는 피해도 예상됩니다.
MBC뉴스 김미희입니다.
제비가 둥지재료로 논흙을 고집하는 이유
» 둥지를 짓기 위한 지푸라기를 야무지게 물고 있는 제비.
제비는 해마다 봄을 물고 온다. 음력 3월 초사흘, 삼월 삼짇날은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날이라 하여 제비집을 손질하고 꽃잎을 따서 전을 부쳐 먹으며 춤추고 노는 화전놀이의 풍습이 있었다. 귀소성이 강한 제비는 여러 해 동안 같은 곳으로 돌아온다.
옛 둥지를 찾아와 수리해 쓰기도 하고 추녀 밑에 둥지를 새로 짓기도 한다. 삼짇날 무렵이면 날씨도 온화해 산과 들에 꽃이 피기 시작하고 각종 벌레 등 먹잇감이 넘쳐난다. 번식 채비를 하기에 적합한 시기다.
» 옛 둥지 아래에 넓은 새 둥지를 지어두었다.
» 사람의 생활 속 풍경 가까이 자리잡은 제비 둥지 모습. 나무판자로 정성스럽게 달아준 배설물 받이도 보인다.
예전엔 그렇게 흔하던 제비가 어느 땐가부터 보기 쉽지 않은 새가 되었다. 이제 제비란 이름은 귀에는 익지만 눈에는 설다. 제비는 사람이 사는 생활 가까이에 스며든다. 어느 집이나 지나다 보면 둥지를 짓거나 새끼를 낳아 먹이를 물고 드나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흥부와 놀부 이야기처럼 우리 삶과 문화에 친숙하다. 사람의 공간에 다가와 더불어 살아가면서 천적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는 깜냥도 지혜롭다.
» 튼튼한 둥지 속에서 제비 5형제가 자라난다.
» 어미가 다가오자 입을 쩍 벌리고 보챈다.
» 어미는 차례대로 먹이를 줄 것이다.
집이나 대문 처마 등 둥지를 짓는 곳마다 사람과 제비의 실랑이도 벌어진다. 신문지를 붙여놓거나 둥지를 허물어뜨리기도 하지만 결국은 제비의 끈질김에 사람이 두 손을 든다. 새끼가 태어나면 바닥으로 떨어지는 배설물을 막기 위해 배설물받이를 설치해 주곤 한다. 새와 사람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제비는 미끈하게 빠진 18㎝의 작은 몸, 단아한 자태가 곱다.
» 사람이 설치해 준 배설물받이에 내려앉은 새끼 제비들.
» 물에 비친 제 모습이 멋진 모양이다. 물끄러미 쳐다본다. 깃털이 푸른 비늘처럼 빛난다.
1970년대 무분별한 농약 살포 이후 전통 농사기법이었던 4월의 논갈이가 5월로 늦춰지고 건물에서 처마가 사라지자 흔한 여름 철새였던 제비는 최근 도심에서는 거의 볼 수 없고 농촌에서도 보기 드문 추억 속의 새가 되었다.
그런 제비가 근래 들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친환경 농약 사용과 친환경 농법으로 다양한 곤충들이 살아나며 먹잇감이 풍부해졌다. 둥지를 틀기 좋은 전통 한옥과 초가집은 거의 사라졌지만, 제비는 현대식 건물에도 적응해 집짓기 ‘기술’을 익혔다. 또한 둥지를 짓는 재료도 새로 ‘개발’했다.
둥지를 짓기에 알맞은, 쟁기질한 논의 흙과 지푸라기가 없어도 물이 고인 곳의 황토나 접착력이 좋은 흙, 마른 풀잎을 이용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하지만 제비는 되도록 논흙을 사용하려고 한다.
논흙이 최상의 재료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비는 논흙을 개어 입에 물고 볏짚 지푸라기와 혼합해 물고 가 둥지를 짓는다. 지푸라기를 사용하는 이유는 짚의 섬유질이 흙과 흙을 잘 잡아주기 때문이다. 특히 논흙은 습도 조절 능력이 있고 작은 미립자로 이뤄져 공기를 순환시키는 환풍기 역할도 하여 새끼를 기르는 데 필요한 쾌적한 환경을 둥지에 조성한다. 이렇게 둥지를 수없이 오가야 우리가 아는 제비둥지의 모습이 갖춰진다.
제비는 흙으로 둥지를 짓기 위해 땅에 내려앉는 것 외에는 거의 내려오지 않고, 먹이를 먹을 때도 날면서 잡아먹는다. 새끼한테 먹이를 줄 때는 둥지 앞에서 정지 비행으로 건네주고 재빨리 사냥에 나선다. 먹이를 넘겨줄 때 떨어뜨리거나 새끼가 먹다 떨어뜨린 먹이는 절대로 다시 주워서 먹이지 않는다.
제비는 공중에서 높이 날다가 땅 위를 스치듯 자유자재로 비행한다. 제비가 물 위를 날며 아래로 쏜살같이 내려가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발로 물을 힘껏 박차고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일컬어 ‘물 찬 제비 같다'고 한다.
급강하와 급선회를 반복하면서 원을 그리듯이 날아오를 때도 있다. 번식이 끝난 6월부터 10월 상순까지 평지 갈대밭에서 잠을 잔다. 윗면은 푸른빛이 도는 검은색이고 이마와 멱은 어두운 붉은 갈색이며, 아랫면은 크림색을 띤 흰색이다. 검은 정장을 입은 멋진 신사를 연상케 한다.
수컷이 암컷보다 바깥꽁지깃이 더 길다. 꽁지깃에는 흰색 얼룩무늬가 있다. 어린 새는 어른 새보다 꼬리가 짧다. 4월 하순~7월 하순에 3∼5개의 알을 낳아 13∼15일 동안 품고 부화한 지 20∼23일이면 둥지를 떠난다. 잠자리, 벌, 나방, 파리, 딱정벌레, 매미 등 날아다니는 곤충을 잡아먹는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번식하고 겨울에는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겨울을 난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강남 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오는 이유
질병 들끓는 열대서 면역체계 유지보다 번식기 온대 이동 유리
여름 철새, 온대 텃새와 비슷한 면역체계…힘든 번식기 부담 덜어
해마다 때가 되면 수십억 마리의 동물이 장거리 이동을 감행한다. 누, 흰긴수염고래, 도요새, 연어, 제왕나비, 된장잠자리 등 포유류에서 곤충까지 다양한 동물이 지구 전체를 이동한다. 이 가운데 새들의 이동은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생태 신호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기러기가 오면 가을이 깊었음을 알고 제비가 날면 여름이 다가왔음을 깨닫는다.
이처럼 동물의 이동은 광범한 현상이지만 그 원인이 무언지 딱 부러진 결론은 없는 상태이다. 먹이 부족을 피하거나 적절한 기후를 찾아 떠나는 것이 흔한 이유이지만 일반화하기는 힘들다. 겨울 철새는 추위를 피해 찾아와 겨울을 난 뒤 봄에 번식지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여름 철새는 왜 열대지역을 떠나 온대지역으로 오는 걸까. 떠나는 곳에 겨울이 오는 것도 아니고 먹이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기러기가 오는 건 이해가 가는데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건 왜일까.
» 봄·가을 우리나라를 지나 대규모로 이동하는 도요새와 물떼새 무리. 김태형 기자
이런 궁금증을 풀 단서를 제공하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에밀리 오코너 스웨덴 룬드대 생물학자 등 이 대학 연구진은 과학저널 ‘네이처 생태학 및 진화’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여름 철새는 질병을 피해 이동한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연구자들은 참새목의 조류 1311종의 계통 유전학 자료를 분석해 면역체계가 새들의 이동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을 펼쳤다.
연구자들은 온대인 유럽의 텃새와 사하라사막 이남의 적도 아프리카 텃새, 그리고 적도 아프리카에서 온대 유럽으로 이동해 번식하는 여름 철새의 면역체계를 비교했더니, 아프리카 텃새의 면역체계가 가장 다양하고 포괄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에 참여한 헬레나 웨스터달은 “깜짝 놀란 것은 여름 철새의 면역체계가 유럽 텃새만큼 단순하다는 점이었다. 철새는 유럽과 아프리카의 병원체 모두를 견뎌야 하는데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질병을 옮기는 병원체는 적도로 갈수록 다양하고 많아진다. 아프리카 텃새가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다양한 면역체계를 갖추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여름 철새의 면역체계가 온대지역 텃새만큼 단순하다는 것은 면역체계를 갖추는 것이 그만큼 부담이 많이 가는 일임을 보여준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 인천 연평도 인근 무인도에서 번식한 저어새. 번식기는 어미나 새끼에게 매우 힘든 시기로 병원체 위협이 적은 곳이 번식에 유리하다. 김봉규 기자
특히 번식기에 그 부담은 크다. 어미 새는 번식기 때 생리적 부담이 극한에 이르기 때문에 질병에 대처할 에너지가 거의 없다. 어린 새도 일생 중 이때 병원체에 대한 저항력이 가장 약하다. 따라서 비용이 많이 드는 면역체계를 회피한 채 번식을 병원체가 적은 곳에서 하는 것은 진화적으로 일리가 있다.
이번 연구는 유럽과 아프리카의 텃새와 철새를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아시아와 동남아 사이에서도 비슷한 관계가 나타날지는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다.
제비 둥지와 들머리에 구멍을 뚫은 형태인 귀제비 둥지. 사진=김정수 선임기자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Emily A. O’Connor et al, The evolution of immunity in relation to colonization and migration, Nature ecology & evolution, https://doi.org/10.1038/s41559-018-0509-3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내게 다가온 제비, 우리는 흥부일까 놀부일까
배설물 지저분하다고 둥지 떼어내고 이물질로 막는 놀부
떨어진 새끼 올려주고, 무너진 집 새로 지어주는 흥부도 많아
» 제비는 더 무서운 천적을 피해 사람 주거지로 다가온 야생동물이다. 우리는 이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우리에게 무척 친숙한 새가 있다. 전래동화 <흥부와 놀부>에서 자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넨 착한 흥부에게는 복이 가득 담긴 박씨를, 욕심이 지나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놀부에게는 도깨비가 나오는 박씨를 물어다 주는 제비가 그 주인공이다.
제비는 습성이 특이하다. 보통 야생동물이라면 자신의 천적이나 다름없는 사람 거주지 가까이에서 살아가기를 꺼린다. 그러나 제비는 정반대로 우리와 가까이, 그것도 놀랄 만큼 가까이에서 살아간다.
이런 제비의 습성은 번식기에 두드러진다. 과거에 비해 제비가 많이 줄어들었다곤 해도 요즘에도 전통시장이나 시골집 처마 밑에서 제비둥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이 사는 곳에 녀석들도 떡하니 거주지를 마련하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둥지 아래에서 소란스럽게 떠들고 돌아다녀도 녀석들은 무던하게 새끼를 길러낸다.
제비가 사람의 거주지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유는 분명하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위협이 될 수 있지만 그럴 가능성이 다소 낮다고 보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로 더 위험한 다른 천적의 접근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사람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다른 야생동물이 제비를 잡아먹으려고 사람 거주지 주변에 머물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일종의 생존전략이다.
제비는 하늘이나 습지, 수면 위를 날아다니며 날벌레를 잡아먹는다. 사람의 거주지 주변과 농경지가 즐비한 시골에는 이러한 날벌레가 많아 먹이자원 확보의 이점도 있을 것이다.
» 제비는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에서.
하지만 오늘날을 살아가는 제비에게 큰 위험이 드리운 것은 분명하다. 도시화, 산업화를 거치면서 주택의 구조와 토지를 이용하는 방식의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멋들어지게 늘어진 처마가 있던 과거의 주택은 네모반듯한 아파트와 빌딩으로 변했다. 둥지를 짓기 위해 진흙을 물어 나르던 웅덩이와 습지는 어느새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였다. 이제 도심에서 제비를 만나기란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함께 살아가길 원하던 제비의 바람은 우리의 급속하고 일방적인 변화로 빛이 바래가지만, 그래도 제비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길 포기하지 않았다. 여전히 시골집과 전통시장의 처마에 녀석들의 삶이 머물고 있다.
하지만 이곳의 제비 역시 그리 순탄한 삶을 살아간다고 말하긴 어렵다. 거주지와 농경지 부근의 날벌레를 잡아먹는 습성 때문에 농약에 쉽게 노출되곤 한다. 축적된 농약에 중독되거나 번식 장애로 이어지는 경우도 왕왕 관찰된다. 게다가 함께 살아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람에 의해 번식에 실패하는 경우도 쉽게 목격된다.
» 둥지 안에 이물질을 넣어 번식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런 일이 벌어지곤 한다. 자신이 살아가는 거주지에 제비의 배설물이나 흔적이 남는 것이 불편하거나 지저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둥지를 짓는 제비를 내쫓거나 방해하기도 하고, 애써 지어놓은 둥지를 임의로 떼어내기도 한다. 제비가 둥지를 틀면 대게 4~5개의 알을 낳는다. 부화한 새끼는 약 3주 정도가 지나면 둥지를 떠나는데, 여름 내 한 둥지에서 2번의 번식을 진행하기도 한다. 만약 그렇다면, 최대 2달 정도 부근에서 제비가 머문다는 뜻이 된다.
» 누군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제비의 둥지를 떼어냈다.그 안에는 다섯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제비가 머물면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둥지 아래로 떨어지면서 바닥에 배설물이 쌓이거나 녀석들이 물고 온 먹이의 흔적이나 빠진 깃털 등이 주변을 지저분하게 한다. 그런 이유로 제비의 번식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역시 안타깝지만, 그러지 말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제비의 둥지 아래 배설물 받침대를 설치한 모습. 쉽고도 어려운, 함께 살아가기 위한 노력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쉽다. 제비의 존재 자체가 싫고 혐오스러운 것이 아니라면, 번식을 방해하는 것 말고도 제비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다른 방법을 충분히 고민해볼 수 있는데 말이다.
배설물이 떨어지는 것이 싫다면, 둥지 아래에 받침대를 설치하고 번식이 끝나면 제거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제비는 수백 번 진흙과 지푸라기를 물어 날라 겨우 작디작은 둥지를 만들어 새끼를 길러낸다. 이런 노력에 견줘 제비가 남기는 흔적이 그리 중요할까.
» 제비는 수백 번 진흙과 지푸라기를 날라다 작디작은 둥지를 만든다.그리고 그 안에서 소중한 생명이 탄생한다.
물론, 필자가 그동안 만난 사람들은 다수가 제비를 위하며 함께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둥지에서 새끼가 떨어지거나, 둥지 자체가 무너져 내려 위기에 처한 제비 가족을 도와달라는 연락도 수차례 받았다. 연락을 받고 현장에 나가 만난 이들은 진심으로 제비를 걱정하고,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다.
단순히 새끼가 떨어진 것이라면, 떨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한 외상이나 자세에 이상이 없는지 등을 충분히 관찰한 후 이상이 있다면 구조센터로, 이상이 없다면 다시 둥지로 넣어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대개 제비 둥지는 그리 높지 않은 곳에 위치하기에 주변에서 쉽게 구하거나 빌릴 수 있는 사다리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둥지로 복귀시킬 수 있다.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 테라스에 있던 제비의 둥지가 무너졌다.재빨리 새끼들을 구조해 바구니에 넣어 주었다.덕분에 새끼들은 흩어져 사라지지도, 천적에게 공격당하지도, 어미를 잃지도 않았다.
가끔 둥지 자체가 우수수 무너져 내리는 상황도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다치지 않았더라도, 둥지가 사라졌기 때문에 계속해서 어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하기가 어려울 거라 단정 짓는 경우가 많은데, 꼭 그렇지도 않다. 둥지를 새로 달아주면 된다.
야생동물에 대해 널리 알려진 정보 중 많은 이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다. 새끼 동물을 사람이 만지면 냄새가 배어 어미가 더는 돌보지 않는다는 속설이 그것이다. 이는 사실상 거짓에 가깝다.
둥지에서 떨어져 사람이 다시 올려주는 정도의 접촉이라면 어미가 새끼를 돌보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물론, 떨어진 후 시간이 오래 흘렀다면 어미가 이미 번식을 포기했을 수는 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조류는 둥지가 조금 변했다고 번식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는다. 위치가 심하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훼손된 둥지를 교체해 주는 것 정도로 번식을 포기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 마음씨 좋은 카페 사장님 덕분에 제비 가족이 다시 정상적인 삶을 이어가게 되었다. 아마도 박씨를 물어다주지 않을까? 행복이 그득 담긴 박씨 말이다.
제비가 가장 선호하는 진흙을 이용해, 마치 그들이 만든 것처럼 정교하게 둥지를 만들어 줄 필요는 없다. 우리 주변에게 쉽게 구할 수 있는 바구니나 플라스틱 용기처럼 가운데가 움푹 파여 있어 둥지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면 상관없다.
둥지가 있던 장소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비슷한 위치에 준비한 용기를 붙인 후 새끼를 넣어두면 끝이다. 그 전에 빗물이 고이는 것을 방지할 수 있도록 용기 바닥에 배수 구멍을 작게 내주는 것이 좋고, 그 위에 적당한 수준으로 수건, 낙엽, 진흙 등의 바닥재를 깔아주면 보온이나 완충, 미끄러짐 방지에 효과적이다.
너무 무거워서 다시 떨어질 위험이 있거나, 내구성이 너무 약한 용기와 너무 깊거나 재질이 지나치게 미끄러워 새끼들의 움직임을 제한할 수 있는 용기는 피하는 것이 좋다. 물론 교체된 둥지에서도 어미가 계속해서 새끼를 돌보는지 꼭 확인해야 한다.
» 사람이 새끼를 만졌어도, 낯선 둥지가 생겨났어도 어미는 새끼를 쉽게 버리지 않는다
전래동화에 나오는 제비는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 중 하나를 일깨워줬다.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나와 다른 존재를 배려하며 살아가자는 교훈 말이다. 이제는 그 가치를 사소한 것이라도 나부터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면 어떨까?
실천이 그리 어려울 것도 없다. 우리 집, 가게 처마 밑에 제비의 배설물이 쌓이는 것을 이해하고, 떨어진 새끼 제비를 둥지에 올려주고, 둥지가 떨어졌다면 바구니나 그릇을 이용해 둥지를 만들어주는 노력 정도면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살아 가자고 내민 제비의 손을 잡아줄 따뜻한 마음이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 함께 살아가자고 내민 제비의 손을 잡아줄 따뜻한 마음이 늘었났으면 좋겠다.
글·사진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한겨레
로런스 베이커, 토착의 힘으로 생태건축 꽃피우다
로런스 베이커(1917~2007년)
‘건축의 간디’ 별명 인도 건축가
전통 기법과 주변 재료만으로
평생 인도 빈민 위한 집 지어
저비용 친환경에 아름다움까지
로런스 베이커. 다큐멘터리 <로리 베이커: 상식을 넘어서> 화면 갈무리
건축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절로 눈물이 흐를 정도로 감동한 것은 2017년 9월 건축영화제에서 <로리 베이커: 상식을 넘어서>를 우연히 보고서였다. 그러나 그 영화를 같이 본 사람이 몇명 되지 않았듯이 건축가들에게 그에 대해 물어보아도 아는 사람이 없었고, 그에 대한 정보도 쉽게 구할 수 없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보아도 그에 대한 한글 자료는 여전히 볼 수 없다.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꽤 많이 나오는 시절인데도 그는 우리에게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영국인인 그가 인도에서 활동한 탓일까? 집이 없거나 가난한 인도 사람들을 위한 싼 집만을 평생 지은 탓일까? 1만채 넘게 빈민들을 위한 집을 지으면서도 대부분 무료나 최소한의 실비만을 받은 탓일까? 이집트에서 흙벽돌 마을을 세운 하산 파트히가 이집트보다 서양에서 주로 활동해 1970년대부터 서양에서 널리 알려지고 그의 책이 2000년에 우리에게도 소개된 것과 달리, 서양인인 베이커는 서양이 아니라 인도에서 활동한 탓일까? 그러나 베이커는 파트히와 함께 생태건축의 양대 산맥으로 1970년대부터 널리 알려졌다.
인도 정착한 영국인 양심적 병역거부자
베이커는 훌륭한 건축가이기 이전에 그 인격으로, 그 소박한 삶으로 나에게 감동을 준다. 1917년 영국 버밍엄에서 태어난 그는 10대에 기성종교에 대한 회의에서 자발적으로 퀘이커교도가 되었고, 건축을 공부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집총을 거부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앰뷸런스 부대에 근무하면서 중국과 일본의 전선에서 민간인 사상자, 특히 한센병 환자를 치료했다. 환자 치료로 인해 건강이 나빠진 탓에 영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인도 뭄바이에서 배를 기다리다가 친구를 통해 간디를 만났다. 당시 간디는 영국은 인도에서 완전히 떠나라는 독립운동을 했지만, 인도의 독립에 찬성하는 서양인들을 배척하기는커녕 환영했다. 특히 한센병에 관심이 컸던 간디가 8킬로미터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재료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한 점에 베이커는 공감하고, 인도에 머물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2007년 90살로 죽을 때까지 64년간 인도의 시골에서 살았다.
1945년부터 베이커는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선교 아슈람(인도의 전통적인 암자) 건설을 위해 일하면서 서양인들이 사는 과시적인 방갈로, 그들의 화려한 사교 모임과 수많은 인도인들을 하인으로 부리는 생활을 거부하고 인도인들과 함께 살았다. 그는 양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센병 전문 의사와 결혼했다. 베이커 부부는 신혼여행차 우연히 들른 히말라야의 외딴 마을에서 그들을 찾은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버스 종점에서 80킬로미터나 떨어진 산속 골짜기의 황무지 언덕 비탈에 집과 병원을 짓고 16년을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며 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석공과 목수들을 통해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져온 전통 건축을 보면서 건축에 대해 다시 새롭게 배웠다. 그래서 서양식 건축, 특히 당시 범세계적이었던 모더니즘 건축운동이 인도에는 전혀 맞지 않고, 인도 토착의 건축만이 자신에게 맞는다는 것을 알았다.
겸허하게도 베이커는 그러한 앎, 발견이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일 뿐이지 보편적인 지식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는 언제나 지역의 장인정신, 전통 기법 및 재료를 채택했지만,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현대적인 디자인 원리와 기술을 결합하기도 했다. 그러나 에너지가 가장 많이 드는 건축 자재 중 하나인 시멘트를 주성분으로 하는 철근 콘크리트의 사용은 최소한으로 제한했다. 이러한 현대 기술의 신중한 채택은 지역 건축이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무엇보다도 그가 강조한 지역 재료의 사용은 비용을 낮게 유지하게 했다. 또한 건축물의 건설과 벽돌 등 건축자재 제조에 모두 지역 노동력을 사용함으로써 지역경제를 되살렸다. 베이커는 언덕에 몇개의 학교와 예배당, 병원을 지었다. 저비용 건축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사람이 그를 찾았다. 대부분 가난하거나 병든 사람들이었다. 특히 주변 환경을 개선해 환자들을 편하게 하는 것이 치료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의료진이 그를 찾아왔다.
로런스 베이커가 티루바난타푸람에 지은 커피하우스. 위키피디아
그가 세운 건물들은 대부분 복잡한 빛과 그림자의 패턴을 만들면서 건물 내부를 냉각시키기 위해 자연의 공기 흐름을 유도하는 구멍 뚫린 벽돌 벽으로 되어 있다. 지붕 위의 불규칙하고 피라미드 같은 구조물의 한쪽이 열린 채 바람을 받아들이게 되어 있는 것도 특징적이다. 또 전통적인 인도의 경사진 지붕과 흙으로 구운 기와가 뜨거운 공기가 빠져나갈 수 있게 하고, 곡선의 벽은 직선 벽보다 낮은 재료비로 더 많은 공간을 둘러싸게 한다. 벽돌의 맨표면을 좋아했고 석고나 다른 장식들을 불필요한 것으로 여긴 베이커는 적절한 건축 자재, 문, 창틀을 찾아 쓰레기 무더기를 뒤지기도 했다.
베이커는 즉흥적인 건축 과정으로도 유명하다. 이는 그의 건축이 무엇보다도 건축가, 고객 및 장인 간의 상호 신뢰에 기반을 둔 때문이기도 했지만, 자연 조건이나 생활 조건에 따라 건축은 항상 변한다는 믿음에 근거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의 설계도면은 최종의 시공과 이상적인 연계만 있을 뿐이고 대부분의 세부 건축은 즉흥적으로 현장에서 힌트를 얻어 이루어졌다. 가령 건축 도중에 작은 창문이 부엌에서 아름다운 나무를 볼 수 있게 한다고 믿게 되면 바로 창문을 새로 내는 식이었다. 그러므로 사전에 그려진 디자인이나 사전에 계산된 견적을 엄격하게 준수하여 세부적인 도면 세트를 현장에서 기계적으로 구현하는 전형적인 방식을 기피했다.
원래 지형을 살리는 건축
내면의 신성을 중시하는 퀘이커교도로서 그는 자연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원래의 지형을 손상하거나 나무를 뿌리째 뽑는 것은 자연보호라는 점에서만이 아니라 경비 절감이라는 점에서도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부지를 평평하게 만드는 것은 낭비라고 주장하는 그는 대부분의 첨단기술도 거부하고 자연친화적인 기술을 추구했다. 가령 공기 압력 차이를 이용하여 건물을 통해 시원한 공기를 끌어들이기 위해 연못 근처에 높은 벽돌 벽을 배치해 냉각 시스템을 만들었다. 재활용 재료를 사용하고 디자인을 검소하게 만드는 그의 건축은 생태건축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그의 건축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소박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특히 다양한 패턴으로 구멍 뚫린 벽돌 벽은 레이스 문양을 연상시킬 정도로 아름답고, 나선형으로 이어지는 경사진 내부구조는 신비롭고 기념비적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전통적인 인도의 망고 패턴에 매료되어 수많은 문양의 아름다운 디자인을 남겼다. 그의 건물은 코코넛이나 대나무로 항상 덮여 있다. 대한민국을 뒤덮고 있는 아파트 콘크리트는 물론 안도 다다오식 콘크리트 건물의 유행에 절망하는 나는 베이커가 지은 소박한 에콜로지 집들이 더욱 그립다.
1969년부터 인도 남쪽 끝, 사회주의가 강한 케랄라주의 주도인 트리반드룸(새로운 이름은 티루바난타푸람)에 정착한 그는 죽기 직전까지 그의 집 안팎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 계속 일했다. 그가 평생 손댄 1만채가 넘는 건물은 대부분 공공기관의 요청에 의해 빈민용으로 지어졌고, 설계부터 시공까지 직접 일한 베이커는 대부분 무료로 일하거나 저렴한 수고료만 받았다. 화석연료를 과잉으로 사용하는 반생태의 현대 건축이 아닌 자연 속에서 모든 사람이 살 수 있는 집들로 마을을 형성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본질적인 것이라고 믿은 그가 ‘건축의 간디’로 불린 것은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명예이자 최대의 영예였다.
▶ 박홍규 : 영남대 명예교수/ 한겨레
기후변화 심해지면 물고기 60% 삶터 잃는다”
독일 연구팀 어류 700종 온도 내성 분석
배아·산란기 성어 온도 변화에 가장 취약
21C말 1.5도 상승으로 막아도 10% 영향
5도 오르면 60% 기존 산란지서 못 살아
미지뱅크 제공
기후변화가 심해지면 21세기 말에 어류의 60%가 서식지에서 살 수 없게 될 것으로 추정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기후변화가 심각해져 21세기 말에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혁명 이전 대비 4~5도 올라가면 어류의 60%는 자신의 활동 영역에서 사라질 것으로 예측됐다.
독일 헬름홀츠 극지해양연구센터의 알프레드 베게너연구소 연구팀은 3일(한국시각)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물고기들이 맞고 있는 위험은 이전 분석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며 “물고기 생애주기 중 산란기 때 온도 내성이 가장 낮아 기후변화가 지금처럼 진행되면 어류의 60%가 기존 산란지에서 더 이상 번식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바다물고기뿐만 아니라 강이나 호수 등의 민물고기도 마찬가지다.
유기체들은 몸체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도록 호흡을 해야 한다. 인간이나 물고기나 똑같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에너지 수요는 온도에 달려 있다. 기온이 올라가면 에너지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이와 함께 필요 산소량도 늘어난다. 이런 원리로 유기체들은 몸체에 더 많은 산소를 공급함으로써 당장의 온도 상승에 적응할 수 있다. 하지만 적응력이 떨어지는 종들은 일정 한계가 넘으면 심혈관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런 이론을 바탕으로 열에 민감한 민물고기와 바다물고기를 조사했다. 어류 694종의 온도 내성에 대한 과학적 데이터를 작성하고 물고기들이 산란기, 배아기, 치어기, 산란기가 아닌 성어기별로 생존할 수 있는 온도 영역을 조사했다.
논문 제1저자인 플레밍 달케는 “성어기나 치어기에 비해 배아기와 산란기에 온도에 훨씬 민감하다는 것을 발견했다”며 “예를 들어 평균적으로 산란기가 아닌 성어기의 물고기는 산란기나 배아기보다 10도 이상 따뜻한 물에서도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 연구팀이 어류 700여종에 대해 배아기, 치어기, 산란기, 성어기 등 생애주기별 온도 내성을 분석한 그림. A는 최고온도, B는 최저온도, C는 온도 범위를 나타낸다. 가령 남극암치아목(notothenioidei)의 경우 성어와 치어는 20도의 수온에서도 견디지만 배아와 산란기 성어는 수온이 10도만 돼도 위험하다. <사이언스> 제공
물고기들의 온도 내성이 다양한 것은 물고기 신체구조 때문이다. 물고기 배아는 더 많은 산소를 흡입할 아가미가 없다. 또 산란을 하거나 정액 분비를 할 준비가 된 물고기는 더 많은 산소 공급이 필요하다. 이는 왜 이들 물고기의 심혈관계가 낮은 온도에서도 스트레스에 약한지를 설명해준다.
연구팀은 다음 단계로 연구 대상 물고기들이 산란하는 지역의 현재 온도와 향후 기후변화에 따라 수온이 얼마나 올라갈지를 조사했다. 분석에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작성중인 제6차 보고서에서 사용할 새로운 기후변화 시나리오 ‘공유사회경제시나리오’(SSPs)를 사용했다.
대구 배아들. 온도가 올라가면 산소가 더 필요해져 물고기들은 아가미로 숨을 더 많이 쉬지만 배아는 아가미가 없어 온난화에 훨씬 취약하다. <사이언스> 제공
논문 공저자인 한스오토 푀르트네르는 “21세기까지 1.5도로 지구온난화를 제한하는 데 성공하면 10%의 어류만이 기존 산란지를 떠날 것”이라며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이 증가하거나 급증하면(SSP 5-8.5) 어류의 60% 이상이 위험에 놓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공유사회경제경로 5-8.5는 21세기말까지 세계 평균기온이 산업혁명 이전 대비 5도 이상 상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후변화 영향을 받는 물고기들이 생물학적 진화를 통해 적응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물고기들은 다른 시기에 산란을 하거나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전략을 채택할 수 있다. 일부 어류는 이런 도전에 성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물고기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특정한 서식지에서 산란활동을 하고 그곳의 해류와 먹이 환경에 맞춰 산란 주기를 형성해온 것을 고려하면 산란지를 떠나야 한다는 것은 물고기들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강이나 호수에 사는 민물고기는 서식지 크기나 지리적인 한계로 물속 깊이 삶터를 옮기거나 저온지역으로 이동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플레밍 달케는 “21세기 말께면 대서양대구가 산란을 하는 북해의 수온이 너무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며 “대서양대구 한 종이 생태계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서양대구는 중요한 포식자이기 때문에 종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고려하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클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연구팀의 분석은 기후변화 영향을 최소한으로 잡은 것”이라며 “해양 산성화같이 해양생물에 영향을 끼치는 다른 기후위기 요소들은 고려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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