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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생태환경 뉴스

7.6~7.10 과거 이루지 못한 개혁을 감행할 시간”

by 이성근 2020. 7. 5.

일찍 피고 늦게 지고식물이 먼저 느낀 기후변화 경고음

코로나 시대에 짚는 제주 제2공항 문제

로드킬 4년 사이 50% 늘어최대의 희생동물은 고라니

유발 하라리 코로나 이후과거 이루지 못한 개혁을 감행할 시간

코로나가 가져온 기적, 자고 나니 프랑스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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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도시공원이 더욱 절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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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옹호 - 당신을 있게 한 농업을 당신들이 자꾸 멸시한다

판다를 보호할 가치는 얼마일까

 

일찍 피고 늦게 지고식물이 먼저 느낀 기후변화 경고음

낙엽활엽수 20종 분석해보니

개나리 12.7일 진달래 15.1

개화시기 점점 빨라지는데

가을 단풍·낙엽 시기는 늦어져

휴면기 줄어들어 기후변화에 취약

 

10년간1.96도 오른 한반도의 봄

100년 전보다는 2~3도 올라

1도 오를수록 개엽 3.86일 당겨져

도시 열섬 현상도 생장에 악영향

“10년으론 부족장기적 연구 필요

지난 10년 간 한반도 식물의 생태시계가 빨라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잎이 나고 꽃이 피는 시기가 빨라지고, 단풍이 드는 시기는 늦어지는 경향이 확인됐다. 봄이 빨리 시작되고 겨울이 짧아지는 기후변화가 식물에게서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한겨레>는 산림청 산하 국립수목원의 기후변화와 한국 산림의 식물계절 지난 10년간의 기록보고서를 입수했다. 도시 중심이 아닌 국토 면적 64%를 차지하는 산림의 변화를 분석한 최초의 자료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을 포함한 국·공립 수목원 10(강원도립화목원·국립수목원·물향기수목원·미동산수목원·금강수목원·대아수목원·대구수목원·경상남도수목원·완도수목원·한라수목원)이 참여하는 한국생물계절관측네트워크2009~2018년 전국 38개 지역 50개 관측지점에서 총 2561266개체의 잎과 꽃, 열매의 시작과 종결 시점 82천여건을 기록했다. 이중 5년 이상·10개 지역 이상에서 관측한 낙엽활엽수 20·상록침엽수 7·초본류 12종을 분석했다

그 결과 잎눈 파열, 개엽(잎이 다 남), 꽃눈 파열, 개화 시작, 개화(꽃이 다 남), 비산(꽃가루 날림), 낙화, 열매생성 시기 등 봄·여름철 변화는 빨라졌고, 가을에 찾아오는 단풍·낙엽 시기는 늦춰진 것으로 분석됐다. 식물의 생장 시점이 달라지면 생태계 질서가 유지되기 어려워 그 후유증이 적지 않다.

 

특히 진달래·생강나무·산철쭉 등 낙엽활엽수의 변화가 두드러졌다. 개엽일은 10년에 걸쳐 전국 평균 13.4, 개화 9.4, 낙화 10.3일 빨라졌다. 단풍은 4.2일 늦어졌다. 식물이 생장을 시작하는 개엽은 빨라지고 낙엽이 늦어지면서, 관측 지역 중 83%에서 식물의 생장기간도 18일가량 늘었다. 특히 3~5월 평균기온이 1도 오를 때 개엽은 약 4.13일 빨라졌다.

 

한반도 식물, ‘생태시계빨라졌다

<한겨레>는 국립수목원으로부터 생장 시점의 변화가 뚜렷했던 낙엽활엽수 20종에 대한 자료를 추가로 받아 종별로 분석했다. 국립수목원 식물자원연구과 손성원 박사와 서울대 환경대학원 기후융합과학연구실 김종호 연구원의 도움을 받았다. 전국에 분포된 나무 수백 그루의 생장 시점을 매년 조사한 결과값을 묶어 10년간의 추세’(회귀곡선 기울기)를 확인한 결과, 변화의 방향은 선명했다.

 

봄의 전령인 진달래는 10년에 걸쳐 잎눈이 조직을 뚫고 나오는(잎눈 파열) 날이 15.7일 앞당겨졌다. 온전한 잎이 열리는 건(개엽) 13.5일 빨라졌다. 예를 들어 10년 중 진달래의 개엽일이 가장 늦었던 날짜는 2010430일 무렵이었다. 그러나 2014년에는 이보다 보름이 당겨진 416일께 벌써 잎이 났다. 꽃눈이 나는 시기도 17.3일 앞당겨졌고 꽃이 만개하는 개화기도 15.1일 먼저 찾아왔다. 열매 맺고, 그 열매가 익는 시간도 각각 18.7, 6.4일 일러졌다. 2010년엔 53일 열매가 열렸지만 2014년에는 415일에 이미 열매가 열렸다. 반면 단풍은 2일 늦어졌고 낙엽도 1.5일 늦어졌다.

 

진달래처럼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개나리도 10년 동안 꽃눈이 달린(꽃눈 파열) 시기와 꽃이 만개한(개화) 시기가 각각 16.4, 12.7일 빨라졌다. 2009년에는 47일께 꽃이 피었지만, 2014년에는 열흘 빠른 327일에 꽃이 피었다. 평균 10.9일 빨리 잎눈을 틔웠고 12.3일 빨리 잎이 완성됐다. 잎이 가장 늦게 난 해는 2012419일이었는데, 가장 빨랐던 2014년에는 47일에 잎이 다 피었다. 열매 맺는 날짜는 22.2일 당겨졌는데 2009517일이었던 날짜가 2015년엔 421일이 됐다. 반면 가을을 상징하는 단풍은 14.2일 늦어졌고 잎이 떨어지는 시기도 9.3일 늦어졌다

 

국내 꿀 생산의 약 75%를 차지하는 아까시나무는 13.6일 일찍 잎눈이 달렸고 7.7일 일찍 잎이 났다. 22.9일 일찍 꽃망울이 맺혔고 19.3일 일찍 꽃이 피기 시작했다. 잎눈이 처음 난 날짜는 2009423, 201447일로 보름 가까이 차이가 났다. 꽃눈이 처음 나온 날짜도 2009524, 201754일로 20일쯤 차이가 났다.

산수유와 꽃이 비슷해 지나치기 쉬운 생강나무는 꽃이 활짝 피는 시점이 17.8일 앞당겨졌고 열매가 익는 시기도 16.8일 일찍 진행됐다. 진달래와 꽃 모양이 비슷하나 진달래와 달리 잎이 꽃보다 먼저 나는 산철쭉은 이르면 418(2018), 늦으면 54(2010)에 잎이 다 났다. 꽃눈이 막 터져나온 건 48일 무렵(2018)419일 무렵(2010)으로 열흘 넘게 차이가 났다. 제주와 남부지역에만 자라는 단풍나무와 달리 국내 전역에 자생하는 토종당단풍나무의 개엽일은 425(2016)58(2010)로 변화 폭을 보였고, 개화는 425(2009)부터 511(2011)로 달랐다.

이런 변화를 확인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정수종 교수는 기후변화는 식물의 생장 기간을 늘려 우리가 푸른 숲을 볼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늘었지만, 식물의 휴면기가 줄기 때문에 (그만큼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취약해져) 폭염과 가뭄 같은 이상기후에 피해를 볼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경고했다.

 

낙엽활엽수뿐 아니라 침엽수(구상나무·소나무·잣나무·전나무 등 7)도 잎눈 파열, 개엽, 비산(꽃가루 날림) 등 봄철 변화가 모든 지역에서 점점 빨리 진행됐다. 초본류(깽깽이풀·꽃창포·원추리·노랑무늬붓꽃 등 풀 12)는 나무보다 일사량, 온습도, 강수량 같은 다른 조건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 유의미한 결과를 확인할 수 없었다.

 

특히 도시 지역의 열섬 현상이 식물 생장에 기후변화 효과와 유사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도심 지역에 있는 경기도 오산의 물향기수목원 전시원에서 관측된 개나리·미선나무는 다른 지역보다 낙엽이 늦게 시작돼 식물 생장 기간이 길었다. 손성원 박사는 산림 지역에 있는 다른 수목원과는 다른 결과라며 위도보다는 주변 환경이 미치는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식물의 생태시계가 빨라진 것이 최근 한반도의 기온이 올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기상청 기후정보 포털을 보면 남한 6개 도시(서울·강릉·인천·대구·부산·목포)2011~2019년 기준 평균기온 변화 경향은 최근 10년 동안 1.19도 오르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봄철 기온은 10년당 1.96도가량 크게 오르는 경향을 보여 연평균기온을 끌어올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100년 전인 1910년대보다 연평균기온이 1.8도 높아진 결과다. 특히 3~5월 기온은 100년 전보다 2~3도나 올랐다. 이번 연구는 10개 수목원에서 직접 식물 생장이 달라지는 날짜를 기록한 뒤, 관측지점에서 가까운 곳에 설치된 기상청 자동기상관측망의 일평균기온을 적용해 통계적으로 분석했다.

 

기온이 지금보다 더 오를 경우 이런 변화는 가속화될 수 있다. 관측 결과 낙엽활엽수 20종은 봄철 평균기온이 1도가 오르면 잎눈 파열 3.65, 개엽 3.86, 꽃눈 파열 4.67일 빨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잎이 나는 시기의 변화가 가장 잘 나타나는데, 1도가 오르면 노각나무 6.82, 진달래는 5.34일 빨라졌다. 개화일도 진달래 6.19, 철쭉 6.16, 생강나무와 졸참나무는 2~3일씩 빨라졌다. 침엽수인 소나무도 잎눈이 처음 나는 시기가 3.33일 빨라졌고, 전나무는 3.16일 빨라졌다. 꽃가루 날림(비산) 시기도 빨라졌는데, 잣나무는 4.66·소나무는 3.71일 빨라졌다. 낙엽은 진달래와 개나리가 3일씩 늦어졌다. 기온 변화에 따른 개엽·개화일의 변화가 컸던 진달래는 전체 식물 38종 중 가장 기후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손 박사는 식물 계절 변화를 바탕으로 기후변화를 진단하기에 10년의 기록은 매우 짧을 수 있다. 그러나 10년 동안 우리나라 산림의 봄은 일찍 시작하는 경향을 보여줬는데, 한반도의 기온 상승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변화가 생태계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장기적·지속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코로나 시대에 짚는 제주 제2공항 문제

공항 건설의 세 가지 쟁점코로나 시대 이후 쟁점화할 것은 제주도의 환경수용력

제주 제2공항 예정지. 김수오 제공

 

코로나19가 세계화·장기화하며 두 가지 명명법이 생겼다. 코로나 팬데믹과 코로나 시대. 이번 사태의 전지구성과 장기지속성을 각각 뜻한다. 코로나19는 국지적·일시적인 재난에 그치지 않고 인류의 생활 조건을 바꿔놓고 있다. 그 배경에는 지속적이고 지구적인 동인이 자리한다.

 

인간의 개발로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이 인간과 접촉할 확률이 늘어나 인수공통전염병 발생 가능성이 커졌다. 병원균이 지구온난화에 적응해 진화함으로써 인간의 비교적 높은 체온이 방어막 구실을 하기 어려워졌고, 전염병은 세계 전역으로 퍼진다. 인류가 운명공동체이고 그 운명이 위기에 처했는데 그 주범이 인류 자신임을 알려준다. 각자의 일상이 심각해지고 잦아지고 길어지는 재난의 조건을 배양했다. 따라서 이번 사태를 극복해 각자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그 일상을 모두를 위해 저마다 바꿔나가야 함을 코로나 시대는 요구한다.

 

기본계획 고시 절차 남은 제2공항

그렇다면 지금 자신의 삶터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제주에서 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이곳에선 제2공항 문제가 기로에 놓여 있다. 2015년 국토교통부가 제2공항 건설 계획을 발표한 이후 사전타당성조사,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쳐 이제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환경부가 동의한다면 기본계획 고시 절차만이 남은 상태다.

 

이런 가운데 제주도민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72일부터 한 달간 매주 2공항 쟁점 해소를 위한 공개 연속토론회가 열리고, 이후 공항 건설의 향방을 정할 것이다. 토론회의 쟁점은 이것이다. 첫째, 항공 수요 증가에 따라 공항을 확충해야 하는가. 둘째, 기존 공항의 효율적 활용만으로는 부족하니 공항을 새로 지어야 하는가. 셋째, 그렇다면 성산이 신공항의 최적 입지인가.

 

셋째 쟁점부터 살펴보자. 20151110, 국토부는 성산 지역을 제2공항 예정부지로 고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군과 공역(空域)이 중첩되지 않고, 기상 조건이 좋고, 환경 훼손이 타 지역에 비해 덜하며, 소음 피해 지역 거주민 수가 상대적으로 적다.” 이후 네 가지 이유가 모두 허위였음이 드러났다. 성산의 예정부지는 군 공역과 중첩된다. 타 후보지와 달리 성산만이 안개 일수가 축소돼 기상 평가에서 만점을 받았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성산은 오름의 보고라서 공항을 지으면 대대적인 자연 파괴가 따른다. 이곳에는 여러 법정보호종이 살고 철새 도래지도 있다. 끝으로 성산의 소음 피해 지역은 실제보다 대폭 축소돼 평가됐고, 환경부가 이를 문제로 지적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도 국토부가 환경부에 제출한 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서 개발 기본계획에 대해 입지적 타당성이 매우 낮은 계획이라고 검토의견을 냈다.

 

코로나 이전에도 수용예측치 줄어

둘째 쟁점인 기존 공항 활용 가능성과 관련된 일이 이른바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 보고서 은폐 사건이다. 2015년 국토부는 제주공항 인프라 확충 사전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ADPi에 기존 공항의 활용 방안에 관한 용역을 맡겼는데, 정작 그 결과를 제주공항 인프라 확충 사전 타당성 검토 용역 최종보고서에 담지 않았다. 2019년에야 정보공개 요구에 못 이겨 국토부가 공개한 이 보고서에는 기존 공항 개선으로 늘어나는 항공 수요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더욱이 또 공항을 짓는다면 토지수용과 주민 강제이주가 불가피하고, 공항 건설과 연계도로 건설·확장에 따른 환경 훼손, 복수의 공항 운영에 따른 경제적 비효율성이 초래된다. 이미 2012년 국토연구원이 수행한 제주공항 개발구상연구복수 공항은 제주 현실에 부적합하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그런데도 코로나 시대에 공항을 더 짓겠다고 산을 깎고 땅을 파헤치고 농토를 밀어내는 데 수조원의 세금을 써야 하는가.

 

코로나 시대에 짚어야 할 가장 중요한 쟁점은 제2공항 문제의 발단이 된 공항 인프라 확충 필요성이다. 국토부는 항공 수요가 앞으로 4500만 명을 넘어서리라는 자체 예측치를 바탕으로 지금껏 제2공항 건설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현 제주공항 이용자 수는 현저히 줄었고, 항공업계와 관광업계의 장기 전망은 몹시 어둡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국책사업 절차가 진행될 때마다 국토부는 2045년 기준 수요예측을 4557만 명(사전타당성조사), 4043만 명(예비타당성조사), 3891만 명(기본계획)으로 줄였다. 애초 항공 수요를 과도하게 부풀려 사업을 시작했음을 국토부 스스로 인정한 꼴이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에 진정 쟁점화해야 할 것은 항공 수요가 늘어날 것인가보다 늘어나도 되는가이다. 대량 관광을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이 개발하고, 더 많은 비행기가 성층권으로 날아올라 배기가스를 뿜어도 되는가. 현재 제주는 하수 처리 능력이 포화상태로 일부 하수를 그대로 바다로 방류하고 있다. 쓰레기 처리 능력도 한계에 달해 압축 쓰레기를 몰래 필리핀으로 보냈다가 반입을 금지당했다. 지금보다 훨씬 많은 관광객이 들어온다면 얼마나 많은 막개발이 이어질 것인가.

 

2019년 공개토론회에서 국토부 전진 사무관은 시민들의 추궁에 못 이겨 이렇게 실토했다. “항공 수요를 추정할 때 제주도의 환경수용력은 고려하지 않았다.”

 

수요 추정에 환경수용력은 고려하지 않아

이미 총체적인 부실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일단 시작된 국책사업은 자기 정당화 논리에 따라 진행 중이다. 대체 무엇이 제2공항 추진 이유로 남아 있단 말인가. 설마 국토부는 코로나 시대이니 국책사업을 통한 건설 경기 부양과 지역경제 회복을 강변할 셈인가.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세계는 다를 것이다.” 요즘 이 말을 자주 듣는다. 분명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어떤 방향으로 달라지는가다. 진정 코로나 시대로 들어섰다면, 시대가 바뀌었다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도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이 물음이 중요하다. “코로나 시대에 과연 ○○을 해야 하는가.” 특히 편익을 부풀린 사업타당성조사 위에서 추진해온 근시안적 개발사업을 되물어야 하지 않는가. 제주에서는 제2공항만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 시대에 과연 곶자왈을 파헤쳐 동물원을 만들고(선흘 동물테마파크), 산을 깎아 카지노와 호텔을 지어야 하는가(송악산 뉴오션타운). 제주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도 아니다.

코로나 시대에는 자신의 삶터에서 생태환경을 지키는 노력이 모두의 안전을 지키는 실천일 수 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 코로나 시대에 진정 중요한 함의다./윤여일 제주대 학술연구교수 / 한겨레21

 

로드킬 4년 사이 50% 늘어최대의 희생동물은 고라니

충청권에서 가장 많이 발생

사고다발 50곳 울타리 설치

 

국도에서 발생하는 동물의 찻길 사고(로드킬) 건수가 4년 사이 50% 넘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지역은 충청권이었고, 로드킬로 가장 많이 죽는 동물은 고라니였다.

 

5일 환경부에 따르면, 로드킬로 가장 많이 사고를 당한 동물은 고라니다. 지난 5년간 로드킬을 당한 전체 71999마리 동물 중 고라니는 42748건의 사고를 당했다. 고양이(15717), 너구리(5617), (3737) 등이 뒤를 이었다.

 

국도의 로드킬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1511633건이던 로드킬은 201612460, 201715221건으로 계속 늘었다. 지난해 통계를 살펴보면 사고는 4~6월에 가장 많이 발생했다. 3월까지 907건이던 로드킬 사고는 41609건으로 늘었고, 52827, 62448건 등으로 많아졌다. 날씨가 본격적으로 따뜻해지면서 동물들의 활동이 늘고 고라니의 새끼가 독립해 이동하기 때문이다.

 

국립생태원이 2018년 개발한 로드킬 조사 애플리케이션인 굿로드등을 이용해 분석한 결과, 사고가 많이 나는 상위 50개 구간은 모두 국도였다. 사고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권역은 충청권이었다. 2015~2019년 충청권에서만 33004건의 로드킬이 발생했다. 두 번째로 사고가 많이 난 경상도(15991)의 두 배 수준이다.

 

환경부는 상위 50개의 사고 다발 구간에 고라니 등 동물의 도로 진입을 막기 위한 유도 울타리를 설치하고, 울타리 세우기가 어려운 지역에는 야간에도 인식할 수 있는 발광다이오드(LED) 동물 찻길 사고 주의 표지판을 설치하기로 했다. 또 매년 4~6월과 10월을 로드킬 다발 기간으로 지정하고, 도로 전광판에도 주의 문구를 노출시키기로 했다./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유발 하라리 코로나 이후과거 이루지 못한 개혁을 감행할 시간

코로나19의 시대를 다각도로 조망하는 ‘7인의 석학에게 지속 가능한 미래를 묻다오늘부터의 세계인터뷰가 막을 내린다. 마지막 회인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씨의 에필로그는 코로나19가 만든 세계에 대한 진지한 탐색에 들어간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 역사학 교수의 고언을 담았다. 하라리 교수는 현재 모든 인터뷰를 중단하고 연구에 들어갔다. 그는 인터뷰 요청에 대한 짧은 답글에서 우리가 역사적인 웜홀에 들어섰다면서 불의한 (세계의) 구조를 바로잡을 수 있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유발 하라리 홈페이지

 

21세기 역병의 창궐을 맞으며

7인의 석학과 함께 생각해봤다

생태계 파괴가 부른 문명의 위기와

개발·이윤 중심의 경제 위기에서

그린뉴딜과 지역 중심 세계화를

 

‘7인의 석학에게 지속 가능한 미래를 묻다오늘부터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한 때는 3월 하순이다. 세계 곳곳에서 번지는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의 불길을 차단하고자 거의 모든 대륙에서 봉쇄를 선언했다. 바이러스 위기는 경제위기로 치닫고, 혐오는 윤리위기로까지 번져갔으며 정치 지도력은 시험대에 올려졌다. 허둥거리는 정책, 갈팡거리는 방역 속에서 왜 우리는 21세기에 역병의 창궐을 맞이했는가하는 질문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원인 규명과 동시에 떠오른 인물이 제러미 리프킨과 반다나 시바였다.

 

2014년 인터뷰에서 리프킨은 기후변화로 지구 물순환이 바뀌고 생태계 교란으로 나아가기에, 인간 문명은 빈번한 재앙을 맞을 것이라 경고했다. 반다나 시바 역시 2017년 인터뷰에서 지구 생물의 3분의 1이 사라진 오늘, 인간은 지구의 몸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권력에 상관없이 평등한 고통을 경험하는 지독한 시간을 겪을 수 있음을 알렸다. 리프킨은 코로나19를 가리켜 기후변화로 인해 서식지가 파괴된 모든 생물이 대대적인 이주를 하고 있는 증거라고 했다. 바이러스 또한 동물의 몸을 타고 인간에게 왔다는 설명이다. 반다나 시바 역시 지난 30년 동안 300여개의 전염병이 숲에서 나왔다는, 거부할 수 없는 과학적 진실을 지적했다. 생태계 파괴가 부른 인간 문명의 위기다. 바로 개발과 이윤으로 치닫는 경제 질서가 초래한 위기며, 이 질서를 뒷받침하는 화석연료 문명의 부작용인 것이다.

 

코로나19 위기는 경제를 폭풍처럼 뒤흔들어 놓았다. 새로운 경제 질서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부상했다. 지난 10년 동안 유럽과 중국의 중앙정부를 비롯해 한국을 포함한 세계 곳곳의 시민사회와 지방정부에서 구체적인 대안으로 자리 잡은 그린뉴딜을 우리의 정책 논의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고 여겼다. 리프킨과 인터뷰를 한 또 다른 이유였고, 그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산업 인프라 건설 방안인 3차 산업혁명을 역설했다.

 

그 속에서 위기 대응에 취약한 세계화 경제 구조가 지역 중심으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역 중심 세계화(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다. 식량위기까지 가늠해보고자 인터뷰를 요청한 농업경제학자 원톄쥔 역시 지역화 중심 경제를 제시했다. 리프킨과는 차별되는, 자본과 노동, 자원이 대륙 안에서 통합되는 지역 중심 세계화로 북미, 유럽, 아시아가 세계 경제의 축이 되는 삼각형 경제 구도로의 전환이다. 그리고 여기에 반다나 시바는 지속 가능한 정치 개념으로 지구민주주의를 제시한다. 모든 생명이 살아갈 권리를 확보하고 공동체 스스로 결정하는 생태 중심 정치체제이다.

 

뉴 노멀의 시대엔 답이 없다지만

불평등이 정상이 된 사회를 바꾸고

모두의 건강을 위한 보건을 하려면

경제·사회적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

 

그렇다면 당장 한국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의 문제를 중심으로 외부에서 밀려드는 압력을 함께 보고자 했다. 장하준 교수는 같은 압박 속에서도 복지가 잘된 나라의 고통 총량이 다르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수많은 묵은 의제들이 정책 테이블에 올려진 지금이 신자유주의가 문화가 되어버려 모두의 사고가 자본 중심으로 자리 잡힌, 불평등이 노멀(정상)이 된 사회를 치료할 기회임을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19는 이 사회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 선명히 드러내주었음을 알렸다. 바로 사회가 돌아가도록 최전선에서 저임금으로 노동하는 이들이다. 그는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모든 사람이 기본권을 누리며 굶지 않고, 병원에 갈 수 있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회, 태어난 계급이나 성별·지역에 상관없이 노력으로 올라가는 부분을 최대한 보장하는 제도를 세우는 것이다.

 

위기 대응 속에서 논쟁으로 부상한 개인의 자유와 공공 안전 사이의 균형, 그리고 물리적 위협으로 작동하는 혐오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찾았던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 교수는 말했다. “모두가 인간으로서 품격을 누리는 삶의 기본을 보장받는다면, 세상의 두려움은 줄어들 것이다. 두려움이 줄면 혐오도 줄어든다.” 우리는 취약할 때, 그 탓을 타인에게 돌리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사회안전망을 강화하자는 요구는 공공보건 전문가인 케이트 피켓 역시 강조한 부분이다. 그는 우리가 시행해야 할 공공보건 정책의 핵심은 모두의 건강을 지키는 것임을 알렸다. 지금 바이러스에 대해 밝혀진 단 하나의 진실은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취약하다는 점,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앓는 질환들이 바로 코로나19로 인한 치사율을 높이고 있다는 점, 그리고 병원은 오직 치료를 하는 곳일 뿐이라는 점을 인지시켰다. 공공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경제·사회적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

 

코로나19로 모든 의제가 수렴되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에게 존재하는 또 다른 대재앙을 부를 위험요소로 시선을 확장하고자 옥스퍼드대 인류미래연구소 소장인 닉 보스트롬 교수를 찾았다. 그는 핵무기, 기후변화 그리고 이윤추구로 가속화하는 과학 연구 속에 대재앙을 부를 실체적 위협이 도사리고 있음을 제시했다. 그러하기에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지구적 조절 능력을 키우는 글로벌 거버넌스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 노멀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다. 무엇이 새로운 표준이 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팽배하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광야에서 버선발로 달려와 우리를 구원할 초인도, 벼락같이 내리꽂히는 번영의 새 질서도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과연 오늘 인류가 집단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이 모든 사건들로부터 어떤 미래가 펼쳐질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에 대한 답을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교수에게 들었다. 기획 초기부터 인터뷰 요청을 했다. 인간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을 해왔고, 인류의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해석해온 그이기에 10여개의 문항을 담아 연락했다. 그는 5월부터 모든 언론 인터뷰를 중지하고 연구에 들어간다고 밝히며, 보낸 질문과 관련된 짧은 답을 보내왔다. 324일 코로나19 속에서 작성한 글이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조언처럼

기본소득·온라인 시스템 전환 등

실험의 성공 여부와는 상관없이

사회·경제 구조가 변화한다는 것

어쩌면 코로나 이후의 세상

이미 우리 안에 도래해 있다

 

코비드19(코로나19) 위기는 우리 시대의 결정적인 순간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습니다. 이 위기는 모든 순간을 낚아채 정의하듯 결정적으로 만들고 있어요. 역사는 가속도가 붙어 질주합니다. 오래된 규칙은 산산조각 나고, 새로운 규칙은 아직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코비드19 이후의 세상은 어떠할 것인지 예측하기란 불가능해졌습니다. 확실성은 이제 바닥을 쳤어요. 선택의 자유는 최고치에 다달았습니다. 한 달 전만 해도 완전히 비현실적으로 보였던 것들이 갑자기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수십억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대미문의 사회적 실험을 강요받고 있으며, 날것의 제안들이 권력의 회랑 안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근무하는 대학교에서는 몇 개의 온라인 과정을 개설하는 안건에 대해 수년간 토론해 왔는데요. 하지만 많은 문제점과 반대가 있어 대학에서는 이를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열흘 전 이스라엘 정부는 모든 대학교 캠퍼스를 폐쇄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단 일주일 안에 우리 대학교는 모든 과목을 온라인으로 옮기는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어제 저는 세 과목을 온라인으로 수업했어요. 꽤 잘 운영되었습니다. 이 위기가 지나가도 저는 우리 대학이 보름 전 상태로 돌아가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예로, 최근 몇 년 동안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모든 시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안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정치인 대부분은 이를 이상주의자의 순진함이라고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소규모로 실험해보자는 제안조차 물리쳤습니다. 지금은 심지어 강경한 보수주의 정부인 미국마저 모든 미국 시민에게 위기 기간 동안 기본소득을 지급합니다. 실험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아무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곧 배울 겁니다. 바로 온 세상의 사회·경제 구조가 영구히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요.

 

저는 이 실험들 가운데 무엇이 성공할 것이며, 정확히 어떤 영향력을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해 예측하려 들지 않을 겁니다. 대신, 저는 우리가 역사적인 웜홀(wormhole·우주 공간에서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연결하는 통로를 의미하는 가상의 개념으로, 시공간의 다른 지점을 연결하는 고차원적인 구멍을 뜻한다)에 들어섰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역사의 정상적인 법칙들은 중단됐어요. 몇 주 만에 불가능이 평범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편으로 이는 우리가 반드시 더욱 조심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는 폭군들이 민주주의 안에서 권력에 다다르고, 그리하여 디스토피아가 도래해 우리를 짓누를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반드시 스스로에게 꿈을 갖도록 허락해야 합니다. 이는 한참 전에 해야 했던 개혁들을 감행할 수 있는 시간이며, 불의한 구조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시간입니다. 올해 말이면, 우리는 새로운 세상 속에서 살 겁니다. 저는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유발 하라리 교수의 답변을 받고 3년 전 타계한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이 떠올랐다. 2014년 인터뷰에서 그는 그람시의 말을 인용하며, “왕은 죽었고, 새 왕은 오지 않았다며 빠른 세상 흐름 속에서 불안에 휩싸인 우리가 사는 시간을 인터레그넘(interregnum), 궐위의 시간이라고 했다. 역사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궐위의 시간을 맞이했다. 그 시간들 가운데는 역사의 분기점으로 작용했던 파괴의 순간, 혹은 변혁의 순간이 있었다. 어떤 시간 속에서 역사는 진전했고, 어떤 시간 속에서 역사는 퇴행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맞은 아직 쓰이지 않은 이 시간도 숱하게 흘려보낸 과거의 궐위의 시간들위에 있는 것일 수 있다. 반복하여 놓쳐버린 새로 쓰여질 역사가 될 기회이다.

 

나는 역사를 밀고 가는 주인공은 무수한 개인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수많은 개인이 선택한 집합 속에 내일 우리가 살아갈 밑그림이 펼쳐지고 있다고 여긴다. 내일은 오늘의 생각과 선택 속에 이미 와 있다. 그러니 우리의 미래는 여기 우리의 치열함 속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에게 행운을!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이미 우리 안에 도래해 있다.

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경향

 

코로나가 가져온 기적, 자고 나니 프랑스가 달라졌다

녹색으로 덮인 프랑스 지방선거, 마크롱과 극우의 몰락

낭트시의 도심 텃밭 코로나 시기에 어려움을 겪는 시민들을 위하여 낭트시가 시작한 25000도심 텃밭. 여기서 수확한 작물들은 무상으로 어려운 시민들에게 제공된다. ville de Nantes

 

지난달 28(현지 시각) 치러진 지방 선거 결과, 10개 대도시에서 생태주의자 시장이 탄생했다. 파리·마르세유·리옹·스트라스부르그·보르도·안시·푸아티에·투르·브장송·그르노블, 우리로 치면 서울·부산·인천·대전·울산·대구·광주·세종·강릉 등에 녹색당 시장이 당선된 셈이다. 파리 시장의 경우 사회당 소속이지만 지난 6년간 저돌적인 생태주의 정책을 주도해 왔고, 한층 더 강화된 환경 공약으로 재선해 에콜로지를 시대적 과제로 천명한 주인공이다. 나머지 당선자들은 모두 녹색당이다.

 

'이제 차는 차고에 모셔두고, 풀만 먹고 살자는 거야?' 하는 농담이 나돌 만큼 부지불식간에 밤사이 성큼 찾아온 변화다. 이전까지 인구 10만 명 이상의 도시 가운데 녹색당 시장은 그르노블 한 곳뿐이었다. 특히 72년간 우파가 권력을 전유하던 부르주아 도시 보르도, 전통적으로 보수적 우파 도시의 색깔을 지녀온 리옹, 안시에서의 녹색당 승리는 누구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사건이다.

 

315일의 1차 선거 이후 무려 3개월 만에 치러진 결선투표였다. 1주일 뒤에 치러졌어야 할 결선투표가 급격히 확산되던 코로나19로 연기되면서 녹색 기적이 만들어졌다. 3개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녹색 다이아몬드를 찾아서' 선거 후 이틀째 되던날 <리베라시옹>1면이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시대적 핵심 과제가 된 녹색의제를 찾아 마크롱과 그의 총리가 태세를 전환해야 할 상황이 된 것을 숲 속에서 밀담 나누는 두 사람의 사진으로 묘사하며 "녹색 다이아몬드를 찾아서"라는 제목을 달았다. liberation

 

3개월간의 녹색 연금술

41.7%를 기록한 역대 최악의 낮은 투표율을 보인 선거이기도 했다. 물론 코로나19가 여기서도 큰 역할을 했다. 바이러스 감염이 무서워 선거장에 나오지 않았다기보단, 역병 앞에서 무력하고 무능했던 정치권에 대한 실망이 우파 유권자들을 집에 머물게 했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10인 이상의 회합이 금지되고, 집회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활발한 선거운동은 가능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3개월 가까이 집에 갇힌 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들을 돌아볼 수 있었고,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닥쳤으며, 이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마침내 사고할 수 있었다. 지난 3개월은 곤경에 빠진 이웃을 구하고자 하는 자발적 시민연대 활동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텃밭을 일구기 시작했고, 창가에서 새소리를 들었다. 그 조용한 자각이 미래를 위한 선택으로 사람들을 자석처럼 녹색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르몽드>"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인 동시에 "많은 시민들에게 생태주의의 중요성에 불을 밝혀준 희망이 된 선거"라고 평했다. 50대 도시 중 단 한 곳에서만 승리한 집권당인 LREM(전진하는 공화국)의 몰락, 같은 결과를 얻은 극우 정당 RN도 이러한 시대정신의 철저한 외면을 받았다.

 

결선 투표에서 녹색당과 연대한 사회당 후보들도 좋은 성적을 내며 사회당의 부활을 알렸다. 우파 공화당과 연대했던 집권당이 최악의 결과를 낸 것과 대조적인 상황이다. 녹색당과 사회당의 연대로 2년 뒤 대권 탈환도 가능하다는 시나리오가 성급히 튀어나오기도 했다. 코로나와 기후 위기가 세상을 얼얼하게 강타하며 당분간, 에콜로지가 정치 의제를 주도할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2년간 각 대도시를 지휘할 녹색 시장들이 또렷한 성과를 내준다면 말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선거 결과에 대한 자신의 소견을 밝히지 않았다. 마치 오늘의 악몽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선거 결과가 나온 다음날 <리베라시옹>1면에는 총리와 대통령 두 사람이 숲속에서 밀담을 나누는 장면을 배경으로 "녹색 다이아몬드를 찾아"라는 제목이 달렸다. 이제 집권 세력은 자신들의 실패를 인정해야 하며, 다시 권력을 얻으려면 국정 과제를 에콜로지에 초점을 맞춰 전환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희화적으로 그려냈다.

파리시장 후보인 사회당 앤 이달고가 녹색당 후보와 함께 지난 2일 파리 시내 선거 캠페인 중 취재진을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2020.6.2 EPA/연합뉴스

 

여성 시장들의 약진

전체 시장 당선자 중 17%가 여성이다. 특히 10대 도시 가운데 5(파리·마르세유·낭트·스트라스부르그·)에서 여성이 시장 자리에 올랐다. 이들은 생태주의자이거나 생태주의 정책을 강력하게 구사해온 시장이라는 공통점도 가진다.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지난 6년간 그 어떤 저항에도 굴하지 않고 환경을 지키는 여전사 역할을 해와 보건·기후 위기에 직면한 시점에서 파리 시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당선을 확정지으며 그녀는 "여러분은 숨 쉬는 파리를 선택하셨다"고 소감을 밝혔다.

 

프랑스 제2도시 마르세유의 시장으로 당선된 미셸 루비롤라(Michèle Rubirola)도 놀라운 승리의 주인공이다. 25년간 우파가 점유하던 권력을 뺏는데 성공한 그녀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중적으로 전혀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다. 이탈리아 이민 3세로, 마르세유 서민 동네에서 태어나, 줄곧 거기서 예방의학 전문의로 살아왔다.

 

10대 때부터 에콜로지의 가치에 동참한 생태주의자, 낙태권 운동에 소리 높였던 열혈 페미니스트로, 2003년 녹색당에 가입했고, 최근엔 녹색당 시의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항구도시답게 "맑은 공기, 깨끗한 바다"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대중교통 확대, 모든 녹지파괴 계획 중지, 에너지 전환 공사, 도시농업 확대, 100여 개의 녹지공간 신설 등의 환경 프로젝트뿐 아니라 빈민가의 낙후된 교육 시설들을 대대적으로 개선하여 공교육 환경을 향상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알자스 지방의 수도인 스트라스부르그에서 당선된 쟌 바르세기앙(39, Jeanne barseghian)은 아르메니아 이민 2세로 법률가이자 오랜 환경운동가, 채식주의자다. 2013년부터 녹색당원이 되어 야생동물보호, 낭비하는 음식물과 쓰레기 줄이기 등의 운동에 적극 가담해 왔다. 모든 시민이 사는 곳에, 걸어서 5분 거리에 반드시 녹지공간이 있도록 녹지를 확대한다는 야심찬 공약과 함께, 차는 가급적 차고에 두고, 자전거·버스·트램으로만 이동할 수 있도록 자전거 도로 확충, 25세 이하에겐 대중교통 무료, 연간 8천 가구에 에너지 전환 공사 시행, 노숙자 5백 명 수용할 수 있는 독립된 아파트형 시설 마련을 우선 실천 과제로 꼽고 있다.

 

푸아티에에서 3선에 도전하는 72세의 시장을 꺾고 당선된 30세의 레오노르 몽콩디(Léonore Moncond'huy)도 세상을 놀라게 한 여성 에콜로지스트 시장의 대열에 합류했다. 어린 시절 걸스카우트 생활을 통해 자연에 대한 감각과 자립심, 대중교육의 의미를 경험한 그녀는 파리정치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 내려와 녹색당 도의원으로 2015년에 당선됐다. 도시 전체에서 진행될 생태적 에너지 전환,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교육, 모든 아이들을 위한 바캉스, 대중교통과 자전거 도로의 확대, 시민자치연대 활동에 대한 지원 강화 등을 우선 과제로 꼽고 있다.

푸아티에 시장 당선자 레오노르 몽콩디 서른 살의 에콜로지스트 레오노르 몽콩디가 푸아티에 시장으로 당선됐다. ville de Poitiers

 

낭트 시장으로 당선된 조안나 롤랑(Joanna Rollan)은 이달고 파리 시장처럼 사회당이나, 녹색 정책을 대대적으로 실시하며 에콜로지 물결에 합류해 재선에 성공한 사례다. 낭트시는 코로나19 창궐로 어려움에 처한 시민들을 돕고, 건강한 먹거리 공급 차원에서 시내 유휴 공간을 활용해 약 25000에 달하는 대규모 텃밭 사업을 했다. 여기서 수확된 야채들은 1천여 저소득층 가구에 무상으로 공급한다.

 

고용된 250명의 정원사들이 텃밭을 조성하되 시민 단체와 자발적인 가족 단위의 시민들이 함께 농지를 가꿔 곳곳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텃밭을 일구도록 독려하는 정책이기도 하다. 조안나 롤랑의 공약은 이와 같은 에콜로지 실험으로 가득할 낭트시를 전망하게 해준다. 앞으로 모든 건설 사업은 공동 정원 계획을 포함해야 한다. 급식 식당 내에서 플라스틱 퇴출, 75%의 유기농 식재료 사용, 150개의 도심 녹지 조성, 텀블러 사용 독려를 위해 도심 곳곳에 식수대 설치, 25천 가구에 대한 에너지 전환 공사, 3개의 트램 노선 건설 등 에콜로지를 시정의 핵심에 둔 모습이 또렷하다.

 

당장 이번 주부터 시정에 착수하는 생태주의 시장들이 향후 6년 임기 동안, 프랑스 곳곳에 녹색 융단을 깔지, 녹색이라는 시대적 코드에 몸을 실은 기회주의자들일 뿐일지는 곧 드러날 것이다. 자연은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대상이라는 시민들의 자각만이 마지막 보루다/목수정(anouck) / 오마이뉴스

 

알프스가 분홍색 솜사탕으로 변했어요, ? 큰일났다고요?

눈이 분홍색으로 바뀌는 현상

전문가들 "지구온난화 때문"

 

알프스 산에 쌓인 눈이 분홍빛으로 바뀌고 있다. 솜사탕을 연상케 하는 색이 아름답다는 인상을 주지만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알프스가 녹고 있다는 최악의 징후라고 우려하고 있다.

4(현지 시각) 알프스 프레세나 빙하의 눈이 분홍색으로 변해 있다. /AFP 연합뉴스

 

알프스에 나타난 분홍색 빙하는 기후변화 속도를 빠르게 만드는 조류(藻類) 때문인 것으로 이탈리아 국립연구위원회 연구 결과 드러났다. 연구팀은 이탈리아 북부 트렌티노에 있는 해발 2700~3000m 프레세나 빙하에서 분홍색 눈이 발견했으며 그 원인으로 조류를 지목했다고 가디언이 6(현지 시각) 보도했다. 연구팀은 조류는 봄과 여름에 중위도는 물론 극지방에서도 나타나는 자연 현상이라며 조류 자체가 위험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알프스에 나타난 조류는 그린랜드에서 눈을 검게 물들인 것과 같은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이 조류가 눈을 검은색으로 만들어 눈이 흡수하는 태양 열에너지를 늘린다는 데에 있다. 보통 눈은 태양 복사열의 80%를 반사한다. 그런데 조류가 나타나 눈이 까맣게 변하면 눈이 더 많은 복사열을 흡수하게 되고 온도가 올라가 결국 눈이 녹아 없어지게 된다.

 

연구팀은 지구 온도를 높이는 인간 활동 외에 다른 영향이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며 알프스에 들어선 스키 리프트와 이곳을 찾는 등산객들이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고 시사했다.

 

이번에 조류가 발견된 프레세나 빙하는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1993년 관측 이래 3분의 1 이상이 이미 녹아 내렸다./chosun김윤주 기자

뱀도 지렁이도 아닌무족영원서 독니 발견

땅속 먹이 사냥에 사용뱀보다 먼저 독니 진화

무족영원의 머리 모양. 심해 상어나 공상과학 영화의 외계 괴물을 떠올리지만, 땅속에 사는 양서류이다. 카를로스 자헤지 제공

 

무족영원은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신비로운 동물의 하나다. 개구리·도롱뇽과 함께 양서류이지만 뱀처럼 다리가 없고, 지렁이처럼 땅속에 산다. 전 세계 열대우림에 214종이 분포하지만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아 생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무족영원이 뱀보다 훨씬 이전에 독니를 진화시켰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카를로스 자헤지 브라질 부탄탄 연구소 생물학자 등은 과학저널 아이 사이언스’ 3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무족영원은 진화 역사의 초기부터 이빨로 독물을 주입하는 능력을 갖추었다아마도 입으로 독물을 주입하는 최초의 육상 동물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밝혔다.

무족영원은 땅속 생활에 적응해 눈이 거의 퇴화했으며 머리에서 분비하는 점액을 윤활제 삼아 땅속에 터널을 만들며 이동한다. 카를로스 자헤지 제공

 

무족영원은 몸길이가 10부터 1.5m까지 다양하지만 땅속 생활에 적응해 하나같이 시력이 거의 없고 얼굴의 촉수와 점액을 이용해 흙 속에 터널을 만들며 재빨리 이동하면서 주로 지렁이와 토양 무척추동물을 잡아먹고 기회가 닿으면 개구리, 도마뱀, 뱀 등도 사냥한다. 갓 알에서 깬 새끼에게 어미가 자신의 피부를 먹여 양육하는 특이한 습성도 있다.

알에서 깬 새끼들에게 지방이 풍부한 피부와 총배설강에서 분비한 액체를 먹여 기르는 무족영원. 카를로스 자헤지 제공

 

주 저자인 자헤지 박사는 무족영원은 두 가지를 분비한다머리에서는 흙을 뚫고 나가는 데 필요한 점액을 분비하고 꼬리에서는 추격하는 포식자를 단념하게 할 독을 분비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꼬리뿐 아니라 머리에서도 독샘이 발견됐다. 게다가 머리의 독샘은 독사 등 파충류와 마찬가지로 이빨과 연결돼 있었다. 연구에 참여한 페드로 루이스 마일루-폰타나 이 연구소 박사 후 연구자는 점액 샘을 조사하다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일련의 분비샘이 이빨 근처에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고 말했다.

무족영원은 위턱에 2, 아래턱에 1열의 뾰족한 이가 나 있는데, 일련의 작은 분비샘이 이빨과 연결돼 있었고 잇몸에는 긴 배관이 나 있어 이를 통해 독액이 흘러드는 구조였다.

무족영원의 이와 여기에 연결된 독 분비샘. 마일루-폰타나 외 (2020) ‘아이 사이언스제공

 

마일루-폰타나 박사는 꼬리의 독샘은 피부에서 형성된 것이지만 머리의 독샘은 치아 조직이 발달한 것으로 파충류의 독샘 기원과 마찬가지라며 양서류에서 이런 독샘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무족영원이 독액을 주입하게 된 까닭은 다리가 없이 입이 유일한 사냥도구이기 때문이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무족영원의 독은 먹이를 즉사하게 할 치명적 독성은 없지만 왕지렁이 등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연구자들은 설명했다. 독액을 화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독사나 말벌 등의 독에서 발견되는 효소가 활성화돼 있었다. 연구자들은 이 분비물이 실제로 독성을 띠는지 확인하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새끼 생쥐를 공격하는 무족영원. 입에서 타액처럼 독액을 분비하는 모습이 보인다(화살표). 마일루-폰타나 외 (2020) ‘아이 사이언스제공

 

이번 연구결과는 진화생물학적으로도 흥미롭다. 무족영원은 고생대 말인 25000만년 전 남아메리카, 호주, 아프리카, 남극이 한 데 붙은 곤드와나 초대륙에서 기원했다. 뱀은 그보다 훨씬 뒤인 중생대 말인 1억년 전에 출현했다.

 

자헤지 박사는 독사의 독샘은 크지만 적은 수인데 견줘 무족영원은 작고 많다무족영원이 독샘 진화의 더 원시적 형태일 것이라고 말했다. 양서류 가운데 개구리나 도룡뇽에 독샘이 없는 이유는 뭘까. 연구자들은 땅속 생활 때문으로 추정했다. “팔다리가 없이 오로지 머리로 길을 내고 먹이를 찾고 싸우고 죽여야 하는 처지에서 독니가 진화했다.”

 

자헤지 박사팀은 브라질 열대림에서 독개구리를 발견하기도 했지만(박치기로 맹독 주입 신종 개구리 발견) 독니가 아닌 피부로 독물을 주입한다.

인용 저널: iScience, DOI: 10.1016/j.isci.2020.101234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올빼미·부엉이·소쩍새네 이름은 뭐니?

맹금류 구별하는 법

여름철새 소쩍새는 남쪽으로 떠나고

겨울철새 칡부엉이·쇠부엉이 오는 계절

비슷한 올빼밋과 새들 구별하는 방법은?

수리부엉이는 몸을 돌리지 않고 고개를 270도까지 돌릴 수 있다. 눈에 둥지 앞 숲이 비친다. 김진수 <한겨레21> 기자 jsk@hani.co.kr

 

지난 4일 충남 아산 가정집 마당에서 아기 새 소쩍새 한 마리가 구조되었다. 이소 연습(새가 둥지에서 독립하기 위한 연습) 도중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기사 `우리집 앞마당에 아기 소쩍새 출현!’).

 

소쩍새를 발견한 최나실씨(22)는 자신이 발견한 새가 소쩍새라는 사실을 도감을 찾아보며 알게 됐다고 말했다. 부리부리한 눈, 평면적인 얼굴,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이 닮은 부엉이, 올빼미, 소쩍새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우선 부엉이, 올빼미, 소쩍새는 같은 부류의 새다. 생물 분류 단계에서 올빼미목 올빼밋과의 맹금류 새들이다. 맹금류는 쥐, 작은 새, 토끼, , 곤충 등을 잡아먹는 육식성 조류다. 주로 밤에 활동하고 소리 없이 비행해 발톱의 강한 악력으로 먹이를 낚아챈다. 한밤중에 낮고 음산한 소리를 내며 울어 주로 불길한 새로 인식됐다. 그렇지만 사실은 귀한 손님들이다.

 

올빼밋과 새들은 한반도에 고루 서식하고 있지만, 국내 서식하는 10종 중 7종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만큼 개체 수가 줄어든 상태다. 각 종별로 부엉이, 올빼미, 소쩍새 등으로 불리고 있다.

 

흔히 부엉이의 얼굴은 모양이고 올빼미의 얼굴은 모양이니, 얼굴을 보고 구별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주로 부엉이는 머리에 뿔처럼 생긴 깃털인 우각이 도드라지기 때문에 우각의 존재 여부로 올빼미와 부엉이를 구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정확한 구분법이 아니다.

충남 예산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 보호 중인 소쩍새. 예산/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이를테면, 여름철새인 솔부엉이는 부엉이지만, 우각이 보이지 않는다. 한편 소쩍새나 큰소쩍새의 머리엔 우각이 있다. 영어권에서는 올빼미와 부엉이를 모두 ‘owl’이라고 부른다.

 

국내에서는 세세하게 올빼미, 부엉이, 소쩍새를 구별하는데, 8일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김봉균 재활관리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올빼미, 부엉이, 소쩍새 이름은 우리나라에 생물분류학 개념이 정착되기 이전에 생겼다. 따라서 각 새의 이름이 과학적인 분류에 따라 생겼다고 보기 어렵다. 그보다는 사투리와 같이 마을 단위의 사람들이 부르던 이름이 정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올빼미·부엉이·소쩍새를 엄밀히 구분 짓는 것은 큰 의미가 있지는 않다.”

어린 긴점박이올빼미. 김진수 <한겨레21> 기자 jsk@hani.co.kr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올빼밋과 새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여름철새인 소쩍새는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가을이 되면 동남아시아 등 남쪽으로 떠난다. 내년 봄을 기약하며 인사를 해야 할 때다. 그리고 반가운 겨울철새들이 온다. 칡부엉이, 쇠부엉이, 큰소쩍새 등을 곧 만날 수 있다. 올빼미와 수리부엉이는 텃새라 사계절 내내 국내에 머무른다. 하지만 올빼밋과 새들은 대부분 야행성에 도심에서 떨어진 산림지형에 자리 잡기 때문에 쉽게 눈에 띄진 않는다.

박지슬 교육연수생 sb02208@naver.com, 신소윤 기자

 

코로나 시대, 도시공원이 더욱 절박해졌다

도시공원을 일몰로부터 온전히 지키기 위해

답 없이 꼬여있는 퍼즐 같았던 도시공원 일몰제 문제를 풀기 위해 2017년부터 쉴 새 없이 달려왔다. 전국의 4451개 공원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기회를 잡기 위해 전국을 다녔다. 여당, 야당을 가리지 않고 국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처음에는 환경단체와의 대화를 어색해하던 많은 보수 야당 의원실조차도 지역구에서 공원이 사라지는데 변변히 자료조차 구할 수 없는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결국 공원을 살리기 위한 주요 법안들에 대해서 국회 내 반발은 없었지만,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의 높을 벽을 넘지 못했다. 국공유지 일몰 유예나 지방채 이자 지원 등 이런저런 성과도 있었지만, 여전히 공원 일몰제는 남아있는 과제가 더 많다.

서울의 한 도시공원. 함께사는길(이성수)

 

국공유지와 대지 외 부지는 일몰에서 제외해야

가장 먼저 공원 일몰에서 국공유지와 지목 상 '대지(건물을 지을 수 있는 용도의 땅)' 등의 부지를 제외하는 일이다. 사실 헌법재판소는 애초부터 국공유지와 대지를 일몰 대상에 포함시키라고 판결한 적이 없다. 1999년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을 다시보자. 먼저 재판부는 "도시계획시설로 지정된 토지가 나대지인 경우, 토지소유자는 더 이상 그 토지를 종래 허용된 용도(건축)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됨으로써 토지의 매도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고 경제적으로 의미 있는 이용가능성이 배제된다"고 지적하며 이를 "헌법상의 재산권 보장에 위배된다"고 봤다. , 대지의 경우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용도가 정해진 땅인데 도시계획시설 부지로 정해놓고 장기간 집행하지 않은 것은 사적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바꿔서 말하면, 사적 재산권 침해 소지가 없는 국공유지와 대지 외 부지는 처음부터 대상이 아니었다.

 

미집행공원은 전국적으로 447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 이중 헌법재판소에서 언급한 '대지'26제곱킬로미터로 전체 미집행공원의 6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다. 당장 7월에 실효 예정인 공원부지는 364제곱킬로미터이며, 이중 94제곱킬로미터는 국공유지다. 전체 실효대상 공원부지의 25퍼센트에 해당한다. 또한 도시공원으로 지정된 부지는 대부분이 임야다. 헌법재판소는 지목(토지의 이용목적)이 산(임야)이나 논밭(전답)인 토지의 경우는 어차피 건물을 지을 수 있는 지목이 아니기 때문에 공원으로 지정되더라도 산, , 밭으로 유지될 수 있다면, 원래의 목적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재산적 손실이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고 명확하게 판시했다. 국공유지와 지목이 대지가 아닌 부지는 원칙적으로 일몰 대상에서 제외해야 하는 것이 맞다.

 

국공유지 실효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지난해 5월 국토부는 국공유지에 한해 실효를 10년 유예하겠다고 발표했고, 이어 국회 국토위는 도시공원 일몰 부지 중 국공유지에 대한 실효기간을 10년 연장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국공유지는 어느 한 부처만의, 한 공기업만의 소유 자산이 아니다. 국가의 것이고, 시민들은 함께 누릴 권리가 있다. 국가 재산과 관련하여 '국유재산법'이 존재한다. 국유재산법 제7(국유재산의 보호) 2항에는 '행정재산은 민법 제245조에도 불구하고 시효취득(일정 기간 계속해 사실상 행사하는 자에게 그 권리를 취득하게 하는 제도)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같은 법 제3장제27조 처분의 제한 제1항에 따르면 '행정재산은 처분하지 못한다. 다만, 교환하거나 양여할 수 있는 조건이 있다'.

 

, 지금처럼 모든 관계부처가 실효 시점만 지나면 자신들의 땅을 해제하겠다고 호시탐탐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소한 국공유지만큼은 국유재산법만으로도 보전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부가 부동산 투자에 앞장서서야 되겠는가?

경기도 분당 중앙공원(율곡공원). 함께사는길

 

보전녹지와 도시자연공원구역 제도 활용해야

두 번째 과제는 보전녹지와 도시자연공원구역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도시자연공원구역은 공원 일몰제로 실효되는 공원부지의 난개발 등을 방지하기 위해 2005년 도입된 용도구역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및 동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토지소유자가 지자체장에게 도시자연공원구역 내 토지를 매수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매수판정 기준을 완화하고, 관련 행위 제한을 완화하는 등 제도의 적극적인 활용을 유도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지난 429일에는 민간공원특례사업을 중단시킬 수 있는 훈령을 발표했다. 장기 미집행 공원 중 민간공원특례사업으로 조성이 추진되는 도시공원의 경우 도시공원 실효 60일 전까지 가시적인 절차가 진행되지 않으면 해당 도시공원 부지를 보전녹지, 도시자연공원구역, 경관지구로 지정하거나 성장관리방안을 마련하도록 했다. , 민간공원특례사업 사업자로 선정돼 지자체와 협약을 맺었더라도 사업 추진 과정에서 환경영향평가 합의가 완료되지 않았거나, 공원조성계획 (변경) 결정 고시가 이행되지 않으면 각 지자체장의 권한으로 민간공원특례사업을 중단시키고 해당 부지는 녹지로 계속 보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민간공원특례사업이 추진 중인 78곳 중 재정공원으로 전환되거나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13곳을 제외하면 이 훈령에 영향을 받아 보전녹지로 지정받을 수 있는 곳은 현재 65개소다.

 

보전녹지나 도시자연공원구역도 사실상 난개발이 가능하고, 기존 도시공원과 달리 세제 혜택의 차이가 나타나는 등 대책으로서는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두 제도를 활용하면 무엇보다도 민간공원특례사업으로 개발 위기에 몰렸던 도시공원이 한 숨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제주 오등봉공원의 창꼼소, 민간공원 특혜사업이 진행 중이다. 제주환경운동연합

 

함께 만든 공원 일몰 위기

이 역시 일몰제에 대한 온전한 해법은 아니며 여전히 일몰제로 위기에 처한 도시공원들이 전국에 산재해 있다. 하지만 실효가 목 밑까지 다가온 이 시점까지도 어느 지역의 어떤 공원이 해제되는지, 면적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데이터가 없다. 중앙정부, 지방정부가 발표하는 보도자료는 저마다 그 면적이 다르다. 심지어 정부가 작성한 일몰 대상지 면적 자료에는 단순 사칙연산 검산조차 불완전한 경우도 있다. 도시공원에 대한 인식과 일몰제로부터 도시공원을 구할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자체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가을 국감에 국토부가 제출한 실효대상공원 자료를 보면, 여전히 공원 이름조차 붙어있지 않고 1-55호 등 숫자로 호칭하는 공원들도 많다. 20년 동안 공원이름도 없이 '1-55', '근린공원1' 등으로 불러왔다는 것은 말 그대로 지자체가 '아무것도' 안 한 증거다. 이러한 공원들은 지자체에서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쥐도 새도 모르게 해제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름조차 없는 서류상의 공원을 사용 못 하게 되어 빗발치는 시민들의 민원은 온전히 지방정부의 실책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국회도 책임이 있다. 20대 국회는 도시공원 지키기에 실패했다. 시민사회는 도시공원 일몰제로부터 도시공원을 구하기 위한 법제도 개선과 입법을 지속적으로 제안해왔다. 일부 개선이 있었지만 도시공원을 지키기 위한 법 제도 상당수가 여전히 잠들어 있다. 통과되지 못한 법은 중앙정부의 지방정부에 대한 예산 지원과 토지 소유자에 대한 세제 혜택 지방채 상환 기간 연장 공원 일몰제 시행 시점 3년 연기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 부처도 한몫했다. 국회에서 입법안을 통과시키기 전에 정부 부처에 의견 회람을 요청하는데, 이 과정에서 기획재정부가 추가 예산 투입에 반대하자, 국토교통부도 함께 입법안을 반대한 결과다. 이번 재난기본소득 사태에서도 보았듯이 나라의 곳간 열쇠를 쥐고 있는 관료들이 엄청난 권력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21대 국회 역시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번 21대 총선 지역구 당선인들의 공약을 분석해보면 개발제한구역/상수원보호구역의 합리적인 재조정, 국도/고속도로 연장 등의 공약이 최소 한 항목 이상 빠짐없이 들어가 있다. 우리 사회는 입으로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부르짖으면서도, 정작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의 지속가능성에는 그만큼 둔감하고 마이너스 감수성을 보이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도시공원 필요성에 대해서는 명확히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연합이 21대 총선을 앞두고 21대 총선에 나온 후보자들에게 도시공원에 대한 공개질의를 한 결과, 후보자들 92퍼센트는 본인이 출마한 선거구에 공원이 부족하다고 응답했으며 민간공원특례사업에 대해선 62.7퍼센트가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도시공원 일몰제를 앞두고 일부 공원에 개인 사유지임을 알리며 통행에도 제한을 두는 곳이 생겼다. 함께사는길

 

시민들의 소중한 일상의 공간, 공원을 지켜야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자연과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 필요성에 더더욱 절박해졌다. 구글이 지난 4월 발표한 '공동체 이동 보고서'에 따르면 327일부터 29일까지 한국인의 공원 방문은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된 13일부터 26일까지의 평균치보다 약 51퍼센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에서 시민들이 마음 편히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공원임을 새삼 확인한 것이다.

 

도시공원 일몰제는 202071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202071일은 가장 오래된 미집행 공원들이 해제되는 것이고, 그 뒤로도 미집행 도시공원들이 도미노처럼 실효 예정되어있다. 이 도미노를 멈춰야 한다. 기본적으로 시민들에게 제공되는 정보의 개방성, 투명성, 민주성을 다시 신발 끈 동여매고 목소리 높여 요구할 때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국회가 되어야 한다. 친구들과 봄볕을 쬐는 일상에 대한 아쉬움이 높아진 만큼 21대 국회는 이를 외면하면 안 될 것이다.

신재은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국 국장/[함께 사는 길]

 

[김종철 선생을 기리며] 인간이 '하늘'을 더럽히고 있다는 두려움 때문

김종철 선생은, 김수영 시인의 말을 빌리면 '제 정신을 갖고 산 사람'이었다. 제 정신으로 살기 위해 분투한 사람이었다. 제 정신으로 살기 위해 분투하던 그에게는 근대 산업사회의 앞날이 명확하게 보였다. 2002년에 쓴 '땅의 옹호'라는 글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산업주의 문화는 이러한 겸손의 자세를 조롱하고 비웃으면서 성장해왔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산업인간은 도덕적, 정신적으로 극히 왜소한 미숙아가 되어버렸다. 산업의 세계에서 만물의 척도는 인간의 한계를 모르는 자기 확대의 욕망이다. 그리하여, 자본과 기술의 힘으로 얼마든지 자연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교만심이 분별없이 확대되어 왔고, 그 결과로 지금 우리는 스스로의 생존의 발판을 제거하는 데 열중하고 있는, 인류 역사상 가장 난폭하고 어리석은 시대에 살게 된 것이다."

 

코로나19라는 현재의 전 세계적 위기는 근대 자본주의 문명의 본질에 대한 그의 통찰이 전적으로 옳았음을 웅변한다. "자본과 기술의 힘으로 얼마든지 자연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교만심이" "스스로의 생존의 발판을 제거"해 왔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가 지향했던 것은 공생공락(共生共樂)의 삶이었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고, 인간과 인간이 우애롭게 지내며, 각 개인이 내면의 평화를 누리는 그런 삶이었다. 그는 공생공락을 위한 이상적인 사회로 농()의 세계와 촌락 자치를 주장했지만 이는 결코 복고 취미가 아니었다. 공생공락을 위한 세계 각지의 여러 움직임들을 끊임없이 탐색하고 연구하면서 이끌어낸 통찰이었다.

 

신문잡지의 칼럼을 모아 2016년 발간한 <발언 1,2>의 머리말에서 그는 "칼럼을 쓰는 동안 매일매일 발간되는 국내외 신문, 뉴스 매체들을 훑어보는 일이 어느덧 내 생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왜냐하면 '발언'을 위해서는 우선 세상 돌아가는 형편에 주목('경청')하는 게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상사에 대해서 끊임없이 귀를 열어 경청한다는 것은 '발언'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 윤리"이며 "농민, 노동자, 생활인들의 '현장'이 논밭과 공장 혹은 시장인 것처럼, 지식인에게 가장 중요한 '현장'은 뉴스매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끼니를 거르는 일은 있어도, 신문이나 뉴스매체를 거르고 지나가는 날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왔다. 그리하여 일정하게 구독하는 몇몇 국내 신문들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인터넷을 통해서 외국 언론매체들의 주요 기사, 논평들을 읽는 데 골몰하다 보면 오전 몇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만다."

 

실제로 그는 하루 4시간 이상 인터넷을 들여다보고, 자신이 한국에서 최초 또는 유일한 정기구독자인 외국 간행물이 여럿 된다고 자랑(?) 삼아 얘기한 적이 있는데, 이는 그가 탁월한 생태사상가인 동시에 뛰어난 저널리스트였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처럼 폭넓은 탐색과 치열한 고민 끝에 지역화폐, 기본소득, 시민의회에 이르기까지 에콜로지와 민주주의에 관한 현실적 대안들을 제시했다. 나아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한국 최초의 녹색당 창립에 참여하는 등 그는 근래 보기 드문 전 방위적 지식인이자 실천적 사상가였다.

 

사실 김종철 선생이 걸은 길은 외로운 길이었다. 하지만 뜻을 같이하는 벗들이 있었다. 1999년 펴낸 <간디의 물레> 머리말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 8년간 <녹색평론>을 엮어내는 일은 무엇보다 내게는 개인적인 구원이었다. 아마 그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미치거나 깊이 병들었을지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녹색평론>의 편집에 열중하는 과정에서 나와 비슷한 당혹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나라 안팎에 걸쳐 의의로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였고, 그러한 사람들과 깊은 유대 또는 우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러한 유대감이나 우정을 통한 새로운 정치적 공동체의 형성에 새로운 삶의 희망이 달려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또한 2008년 펴낸 <땅의 옹호>에서는 2004년 대학 교수직을 떠난 이후 4년간 계속된 '이반 일리치 읽기모임'을 통해 "대학생활에서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진정한 '우정'의 의미를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면서 "'우정'이야말로 지금 세계를 황폐화하는 자본과 국가의 논리에 맞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인지도 모른다"고 토로했다. "아무리 암울한 시대일지라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 필수적인 '희망'을 제공하는 원천이 바로 '우정'"이라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자본주의 문명이 막바지에 이른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김종철의 사상과 통찰이 절실한 이때, 그는 돌연 세상을 떠났다. 이제 살아남은 자의 몫은 그가 말한 우정의 의미를 되새기며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사회, 새로운 삶의 원리는 무엇이며 어떻게 이를 실천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일 것이다.

 

김종철 선생의 저서 <간디의 물레-에콜로지와 문화에 관한 에세이> <땅의 옹호-共生共樂의 삶의 위하여> <발언 1,2>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에콜로지와 민주주의에 관한 에세이> 중에서 9편의 글을 추려 소개한다. 편집자

 

연재 순서

1. '시대를 바꾸고자 한 예언자이자 실천적 사상가, 김종철' (박승옥 글)

2. 왜 녹색평론을 시작하였는가(1995, <간디의 물레-에콜로지와 문화에 관한 에세이>)

3. 거짓언어와 '성장'논리 속에서-나의 한국 현대사(2012, <발언 1>)

4. 땅의 옹호(2002, <땅의 옹호-共生共樂의 삶의 위하여>)

5. 필요한 것은 '진보'가 아니라 開眼이다(2006, <땅의 옹호>)

6. 지역통화-삶과 공동체를 살리는 기술(1998, <간디의 물레>)

7.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책머리에(2019)

8. 협동적 자치의 공동체를 향하여(2008,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9. 촛불시위와 시민권력(2017,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10. 태어남과 삶과 죽음의 순환(1998, <간디의 물레>)

 

<녹색평론>을 시작하였는가

<녹색평론>이라는 격월간 잡지를 내놓기 시작한 지 어느새 4년이 지났다. 세상물정도 모르고 평생 학교에서만 살아온 꽁생원이 시내에 사무실을 빌려 몇몇 젊은이들과 함께 난생 처음으로 잡지를 만들어내기 시작하면서도 나는 왜 내가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내가 특별히 에콜로지 문제에 식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다른 체험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잡지 창간 이후에, 문학전공자가 어떻게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적어도 환경 분야에 관한 한 무자격자임을 절감하면서, 굳이 <녹색평론>은 환경잡지가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이것은 나로서는 또 다른 형태의 인문적인 노력이라고 답변했다. 물론 이것은 전혀 틀린 대답은 아니겠지만 오늘날 사회적으로 시급한 대책을 요구하는 환경문제에 대한 대응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녹색평론>의 처지를 궁색하게 인정하는 셈이었다. 그러나 환경문제를 다루기에 적합한 능력과 식견이 없으면서도, 그리고 학교 연구실에서 계속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으면서도, 거의 강박적으로 내가 이 일에 붙들리게 된 것은 근원이 불확실한 충동 때문이었다.

 

지금 체코 대통령이자 극작가인 바츨라프 하벨은 어떤 글에서 시골에서 학교엘 다니던 소년시절에 겪은 중요한 경험을 회고한 바 있다. 늘 들판을 가로질러 걸어서 학교에 다녀야 했던 소년시절의 어느 날, 아마 전시에 급조된 것임에 분명한 큰 공장의 높은 굴뚝에서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모습을 처음 보는 순간 그는 형언키 어려운 깊은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 두려움은 인간이 '하늘'을 더럽히는 불경(不敬)을 저지르고 있다는 느낌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인간성이 유지되고 있는 한 소년 하벨이 지니고 있었던 생태적 감수성은 사람 누구에게나 깊이 내재하는 보편적인 본능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오늘날 산업문화의 압력 밑에서 이러한 감수성이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것은 매우 어렵게 되었고, 그 결과 우리는 자연의 엄연한 일부로서의 인간의 생존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결여한 채 다만 경제논리에 매달려버렸다는 사실이다.

김종철 <녹색평론> 편집인 겸 발행인. 프레시안

 

반드시 하벨의 소년시절의 경험과 같은 것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내가 <녹색평론>을 구상하게 된 데에는 그 비슷한 계기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91년 늦가을에 잡지의 창간호가 나왔는데, 그해에 유명한 낙동강 페놀방류사건이 있었다. 지금은 오히려 이런 문제에 사람들이 둔해져버렸지만, 그때만 해도 이것은 굉장한 환경사고로 인식되었다. 그래서였는지 <녹색평론>에 호의를 보여준 몇몇 신문기자들도 이 잡지가 페놀사건에 충격을 받아 나온 국내 최초의 환경잡지라고 소개하였다. 그러나 페놀사건이 물론 중요한 것은 틀림없지만, 실은 그것보다 내게는 더욱 심각한 사건이 그해 초여름에 이 나라의 농촌 여러 곳에서 빈발하였다. 겨우내 자라서 수확을 앞둔 보리를 거두지 않고 농민들 자신이 밭째로 불태워버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나라에서 사회적 약자와 자연을 끊임없이 망가뜨리면서 이룩해온 경제개발의 유일한 합법적 근거는 가난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논리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에게 가난이라면 곧 보릿고개를 뜻하였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다 자란 보리밭을 통째로 불태워버리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인 행위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도달한 것이다. 건전한 인간이성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런 미친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절망을 느꼈을 것이다. 그 절망은 아마 우리의 삶이 철저한 불경(不敬)에 기초해 있음을 똑똑히 목도한 데서 오는 것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보리를 태운 농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의 산업문화 전체의 본질적 문제이다. 인간성의 소멸을 대가로 하는 경제성장이니 진보니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해 초여름 이후 나는 내내 이러한 물음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했다.

 

민주회복이 무엇보다 핵심적인 과제였던 시대가 우여곡절 끝에 서서히 물러나면서 지금까지의 정치적 투쟁보다도 훨씬 더 근원적인 투쟁 생명과 인간성을 수호하기 위한 투쟁의 필요성이 절박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미 늦어버린 싸움인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포기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아이들의 삶터가 걷잡을 수 없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모든 에너지와 열정을 야만적인 소득의 경쟁에 쏟아 붓도록 강요하는 산업체제의 논리에 순응한다는 것은 자존심 있는 인간이라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나는 <녹색평론>이 산업경제의 논리를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도 구태의연한 성장경제와 경쟁의 이데올로기에 거의 완전히 지배되어 있는 이 나라의 주류언론, 교육, 문화체제 속에서 갈수록 절망과 소외를 느끼는 사람들에게 <녹색평론>이 작은 위안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잡지를 시작하였고, 아직 여기에 붙들려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1995)

출처 <간디의 물레에콜로지와 문화에 관한 에세이>(개정판), 녹색평론사, 2010309~311

 

김종철 <녹색평론> 편집인 겸 발행인 | / 프레시안

 

기후변화의 증인들]따뜻한 겨울 탓 배·꿀 흉작이상기후, 더 자주 더 세져 더 암울

이상기후 시대의 농사

나주에서 배 농사를 짓는 노봉주씨가 냉해로 인해 크기가 골프공보다 작고 모양이 찌그러진 기형 배들을 보여주고 있다(위 사진). 노봉주씨가 자신의 배밭에서 냉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유진PD yujincho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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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라진 개화기에 꽃샘추위, 배꽃 고사로 착과 안 되고 기형 많아

꽃이 피었는데 꿀벌 굶어 죽는 건 처음저온 탓 꿀 생산량 급감

농업 재해 세계적 현상농작물값 폭등 땐 국내 식량 안보 타격

사후 복구식 위기관리 한계, 사전경보 등 예방 패러다임 전환을

 

한때 농사는 단순하고 정직한 일이었다. 베테랑 농부든, 초보 농부든 계절의 변화에 맞춰 매 달 해야 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땅 고르기와 비료 주기 같은 그 티 나지 않는 일들을 얼마나 성실하게 했느냐에 따라 결과도 달라졌다. ‘땀 흘린 만큼 결과가 나오는’, 정직한 원리가 여전히 작동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눈이 한 차례도 내리지 않는 따뜻한 겨울과, 초여름 날씨를 방불케 하는 고온건조한 봄, 한 해에 태풍이 갑자기 7번이나 몰아치는 기후변화의 시대에 농사는 더 이상 단순한 일도, 땀 흘린 만큼 결과가 돌아오는 일도 아니다. 농사는 복잡하고, 또 운에 기대야만 하는 일이 되었다.

 

26년차 배 농부 노봉주씨(55)도 올해 누구보다 많은 땀을 흘렸다. 하지만 농사는 크게 망쳤다. 그는 전라남도 나주에서 배 농사를 짓고 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5월 중순, 노씨의 배 밭에서 그를 만났다.

 

그의 밭에는 골프공보다 작은 크기의 열매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질척이는 땅에 처박혀 있었다. 푸릇푸릇한 배나무에는 나뭇잎만 무성했다. 처음엔 그렇게 보였다. 배나무에 달려있는 열매의 크기가 워낙 작아, 나뭇잎에 다 가려졌기 때문이다. 나무에 달려있는 열매의 크기도 바닥에 떨어진 것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떤 가지에는 검게 말라 비틀어진, 언뜻 보면 얇은 나뭇가지 같은 배꽃도 붙어 있었다. 나씨는 밭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배나무 가지에 달려있는 열매를 툭 땄다. “이런 배들은이렇게 (모양이) 비틀어진 것들은 돈이 안 돼요.” 그는 가지의 나뭇잎들을 들추며 말했다. “원래는 이런 꼭지 하나하나에 배(열매)5, 6개씩 달려있어야 해요.” 그가 가리킨 곳에는 열매가 3, 4개씩밖에 없었는데, 그마저도 모양이 찌그러진 것들이 많았다. 나씨가 아직 새파란 열매 하나를 이리저리 돌리며 살피다 자신의 엄지 손가락에 갖다댔다. “이때쯤이면 이것보다 열매 크기가 1.5, 2배는 돼야 하는데. 제 엄지손가락 정도는 돼야 해요.”

배꽃이 말라죽은 채로 가지에 매달려 있다. 올해 개화기에도 꽃샘추위가 몰아쳐 얼어붙은 암술 씨방이 까맣게 고사하는 저온 피해를 입었다. 최유진PD

 

노씨의 배밭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올해는 유독 무엇이 빨리 시작됐다는 소식이 많았다. 123일 지리산국립공원 구룡계곡에 사는 북방산개구리가 산란을 했다. 봄에 산란을 하는 북방산개구리가 1월에 산란한 것은 관찰을 시작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유독 따뜻했던 겨울 기온 때문이다. 지난겨울(201912~20202) 전국의 평균기온은 3.1, 특히 북방산개구리가 이른 산란을 한 1월은 전국에 고온 현상이 나타났다. 1월의 평균기온은 2.8, 한파 일수는 0일로,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높았다. 2월에 짧은 추위가 있었지만 대부분 기간은 평년보다 기온이 높았다. 그런 날들이 계속 이어졌다. 3월의 전국 평균기온은 7.9도를 기록했고, 42일에는 소백산국립공원의 박새가 산란을 했다. 9년 만에 가장 빠른 산란이었다. 나씨 배밭의 배꽃들도 이때 일제히 피었다. 원래 4월 중순쯤에 피어야 하는 꽃들이었다.

 

“411일쯤에 꽃이 피어야 하는데 43~4, (빠르게는) 1일에 꽃이 피어버린 거예요.” 그는 배꽃의 개화가 그전부터 조금씩 빨라지고 있는 걸 느끼고 있었다. “통상적으로 나주의 신고배 꽃의 만개일은 415일이라고 했는데, 몇년 전부터 나주는 410일 정도에 피었어요. 올해 같은 경우는 생각지도 않게 기온이 너무 높았죠. 그래서 1주일 이상 빨리 피었어요.” 그런데 꽃이 피자마자 내내 따뜻하던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졌다. “45~6일에 기온이 영하 4, 5도로 내려가서 배 꽃눈이 고사했어요. 그 이후에도 날씨가 안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했는데, 70~80%는 배가 안 달렸고, 배가 달렸다고 해도 상품으로 쓸 수 있는 배가 아니에요.” 노씨는 배의 개수를 배 한 알을 포장하는 데 드는 종이 장수로 말했다. “(이 밭에선) 33000장 정도 싸요. 올해는 1000장은 쌀는지 모르겠어요. 싸 봤자 시중에는 가공품으로 나가요.” 배숙 같은 것으로 가공해야만 팔 수 있는 배는 그냥 과일로 파는 배보다 값이 훨씬 싸다. “가공배는 사각상자 하나에 45~50개 들어가는데, 그 가격이 ‘1만원이에요.”

 

전국적으로도 올해 4월은 추웠다. 4월 전국 평균기온은 10.9도로, 평년(12.2)보다 낮았고, 강수량은 40.3로 평년(51.1~89.8)보다 적었다. 설상가상으로 기온이 떨어진 다음에는 강풍이 불었다. 4월 말 전국에 태풍 수준의 강풍이 불면서 안 그래도 적게 달린 배 열매들이 그대로 바람에 날려 떨어졌다. 노씨는 내년을 위해 배밭에 간단하게 약만 쳤다. 그리고 냉해 대책을 촉구하는 비상대책위원회 활동에 돌입했다. 현행 농작물 재해보험의 냉해 보상률은 50%에 불과하다.

꽃에 꿀이 사라진 탓에 말라버린 판 형태의 벌집 위에 꿀벌들이 앉아 있다(위 사진). 국립농업과학원 연구원들이 꿀 작황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최유진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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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가 밭에서 땀 흘리는 일을 멈추고 정부에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무렵, 강원도 철원에 사는 양봉업자 임송빈씨(64)는 벌 110군을 이끌고 아카시아 꽃을 따라 전국을 돌고 있었다. 그는 이동양봉을 한다. 이동양봉은 아카시아 꽃이 피는 지역을 따라 순차적으로 이동하며 꿀을 따는 것이다. 보통 58일쯤 꽃이 가장 먼저 피는 남부지방에서 1차 채밀을 시작한 후 5월 중순쯤 중부지방에서 2, 5월 말 북부지방에서 3차 채밀을 한다. 한 지역에만 머물며 채밀을 해서는 소득을 얻기 어렵기 때문에 많은 양봉농가들이 이런 식으로 이동하면서 양봉을 한다. 이런 작업 형태에는 조건이 필요하다. 꽃이 정해진 개화시기에 맞춰 남부지방에서부터 북부지방으로 올라오면서 필 것, 비가 내리지 않을 것. 올해는 그 조건이 모두 갖춰지지 않았고, 임씨도 노씨처럼 한 해 농사를 크게 망쳤다.

 

양봉업 경력 40여년의 임씨가 올해 6월 말까지 딴 아카시아 꿀은 2드럼에 불과하다. 그는 보통 5월 말쯤이면 아카시아 꿀만 20~30드럼씩 땄었다. “(올해 딴 꿀은) 그것도 좋은 꿀이 아니라, 수분이 많이 함유된 물꿀이에요.” 그는 올해 1차지로 경상북도 구미, 2차지로 세종시 조치원을 찾았고, 3차지로 자신이 양봉을 하는 강원도 철원으로 돌아왔다. 모든 지역에서 꿀이 부족했다. “(과거엔) 경상도 지역에서 날씨가 나빠도 충청도에 가면 꿀이 있고, 또 거기서 안 되면 강원도로 오면 됐고 그랬는데, 올해는 어느 지역에 가도 꿀이 나오는 곳이 없었어요.”

꿀이 말라버린 아카시아꽃에 벌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올해 4월 급격한 저온 현상으로 아카시아 나무 꽃대 발육이 예년 대비 50% 수준에 그쳤다. 최유진PD

 

아카시아 꽃은 국내 양봉농가의 주 밀원이다. “원래 아까시(아카시아)는 기적 같은 나무예요. 큰 나무들은 한 나무에서도 꿀이 많게는 3(54)이 나온다고 그래요.” 한국양봉농업협동조합의 ‘2020년 벌꿀 생산 흉작 원인 분석 및 작황과 지원방안보고서에는 이 기적 같은 나무에 일어난 일이 구체적으로 담겨있다. 보고서는 올해 흉작의 원인으로 4월에 발생한 급격한 저온 현상을 꼽았다.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이 아카시아 나무 꽃대 생성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지난해 연달아 몰아친 태풍으로 많이 부러지고 잎이 떨어진 아카시아 나무들의 발육은 이미 저조한 상태로, 꽃송이 숫자 자체도 줄었다. 이동양봉이 시작되는 5월에는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결국 그나마 있던 꽃송이에서 나온 꿀도 물이 잔뜩 섞인 물꿀이 됐다. 보고서는 아카시아 나무 꽃대 발육이 예년 대비 50% 수준이라며 최근 지구온난화 등 이상기후로 인해 벌꿀 생산을 예측하기 힘든 불규칙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고, 앞으로 이러한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임씨는 양봉을 시작한 이래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5월 아카시아 철이 지나면 잡화꿀과 밤꿀의 채밀시기가 돌아온다. 그는 딴 해는 아카시아가 (꿀이) 안 나와도 잡화, 찔레도 있고 때죽도 있었는데, 아카시아에서만 안 나오는 게 아니라 모든 꽃에서 꿀이 분비가 안 되는 상태라며 양봉을 40년 했는데, 2004년 외국에서 벌레가 들어와 아카시아 나무가 병들었을 때 빼고 이건 처음 보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잡화꿀과 밤꿀을 합해서 겨우 반 드럼을 채웠다.

 

올해처럼 모든 지역에서, 모든 종류의 꿀이 안 나는 흉년이 오면 복구를 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황협주 한국양봉협회장은 꽃이 피었는데도 벌이 굶어 죽는 것은 처음 봤다고 했다. 그는 꽃밭에서 벌이 아사하는 것은 극히 드물다면서 벌에게 먹이는 설탕을 긴급히 구해서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양봉농가의 흉년은 2018년에도 있었지만, 올해는 그때와 비교해도 더 상황이 좋지 않다. 황 회장은 그때는 안동, 예천, 이런 내륙지방은 괜찮았어요. 그래도 꿀이 한 3t 이상은 생산됐는데, 올해가 사상 유례없는 해라고 했다.

사실 노씨와 임씨의 농사는 배꽃과 아카시아 꽃이 원래 피던 때에만 피었어도, 망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국립농업과학원 기후변화생태과의 심교문 연구관은 겨울철이 따뜻하다보니 월동작물과 과수의 생육시기가 빨라졌는데, 그 뒤 4월쯤 온도가 떨어졌다평상시 같았으면 개화기가 아니어서 피해를 보지 않을 상황에서 피해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10년간 국내에서는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한 이상기후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났다. 심 연구관은 폭염이 매년 발생하고 있는데, 최근에 그 강도가 강화되고 빈도가 증가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반대로 2000년 초반에는 길고 강한 한파가 발생했다. 강수량도, 단기간에 지역적 집중호우가 빈번해지고 있지만, 2015~2017년에는 장기적인 가뭄이 발생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런 이상기후 현상이 국내에서만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3월 브라질 남동부에서는 폭우로 80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고, 일본 도쿄에서는 32년 만에 1이상의 눈이 왔다. 국내 농가들이 냉해를 입었던 지난 4, 중국 북동부에서는 37년 만에 최대 폭설이 내렸고, 기온이 하루에 20도씩 하강했다. 심 연구관은 한국은 곡물 자급률이 24%에 불과한 세계 10위권의 식량 수입국이기 때문에 식량안보가 대외적 생산여건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이상기후를 동반한 기후변화가 전 세계적인 애그플레이션(농작물 가격의 폭등으로 일반 물가도 상승하는 것)을 발생시키고 식량부족 현상을 심화시켜서 식량 수입가격이 폭등하게 되면, 국내 식량안보에도 많은 어려움이 초래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기후 현상은 앞으로도 더 자주, 더 큰 폭으로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심 연구관은 농업 부문의 재해관리도 사후복구 중심의 위기관리에서 사전 예방으로 피해를 줄이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조기경보를 통해 개별 농장 작물의 생육 상황을 관리하고, 재해 위험 여부를 사전에 판정할 수 있는 기상예보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25년간 오직 배만키웠다는 노씨는 이번 농사를 끝으로 사실상 배를 포기했다. 한달 반째 정부에 냉해 대책을 호소하고 있는 그는 대규모 집회 개최도 준비하고 있다. “저는 오직 배만 했거든요. 그런데 배는 희망이 안 보여요. 작년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샤인 머스캣을 해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늦었다해도, 가능성이 좀 있어서.”

글 김한솔 기자·영상 최유진 PD hansol@kyunghyang.com

 

 

미국 원전기술자들도 걱정하는 한울 3∙4호기 위험[ 기고 ]

본 원고는 2020613일 보도된 한울3·4호기 원전이 위태로운 이유후속기사입니다.

 

흔히 보는 원전(핵발전소) 현장의 거대한 기둥형 격납건물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우라늄을 태우는 원자로와, 그로부터 뜨거운 물을 받아 증기를 발생시켜 터빈을 돌리는 힘을 전달하는 증기발생기, 이 둘이 나란히 들어있다. 핵심시설이자 위험시설이다.

 

이중 원자로는 설계수명이 삼사십년 이상으로서 도중에 교체될 수 없는 시설이지만 증기발생기는 때때로 교체된다. 증기발생기 내부에 열을 전달하는 가느다란 전열관들이 다발로 들어 있는데, 그게 마모가 되면 부득이하게 교체하게 된다. 마모를 방치하면 폭발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증기발생기 교체기술은 엔지니어링 산업의 꽃

그 마모의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원자로에서 끓여진 물을 받아 증기로 바꾸고 식히는 흐름을 반복하다 보니 그로 인해 진동이 발생하는 유체유발진동이 있다. 또 하나는 21미터 높이의 거대금속용기가 뜨거워졌다가 식기를 반복하면서 팽창과 수축을 하는 바람에 생기는 피로진동이 있다. 문제는 후자다. 전자는 입력조건에 따라 예측이 가능한 데 비해 후자는 현장에 따라 다르다. 소형의 증기발생기라면 매달아두는 타입으로 해서 팽창과 수축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지만 대개는 바닥에 지지대를 받쳐서 고정하는 모델이 일반적이다. 미국 컨버스천 엔지니어링(CE)사의 이름을 딴 CE타입이 그렇다.

 

그래서 지지대에 걸리는 용기의 팽창과 수축에 대해 신축성있게 유연한 작동이 가능하도록 장치하는 일이 과제로 된다. 과거 지지대 재질이 주강이었을 때는 그런 문제가 없었지만 재질이 일반강으로 바뀌면서 열변형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를 커버하는 장치가 CE타입의 미국원전에 있는 앵커볼트다. 대표사례가 Palo Verde 원전이다. 한국표준형원전의 모델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한국표준형에는 그 앵커볼트가 없다.

사진 1)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Palo Verde 원전(1986년부터 가동). 한울 3·4호기 등 한국표준형원전과 유사한 CE형 타입이다. 사진 출처=위키피디아

 

증기발생기는 교체를 하게 되면 일이 많다. 설계부터 시작해서 배관을 잘라서 새 기기를 제대로 설치한 후, 용접까지 해야 하는 고도의 공정을 거쳐야 한다. 예산도 천문학적이다. 사람 몸으로 치면 생명까지 걸어야 할 큰 수술이다.

 

베테랑 엔지니어 Mo Palmowski 의 경고

한국표준형원전의 효시는 CE67형이다. 1967년도에 개발한 CE67이 오리지널 CE 모델이다. 이 모델로 1998년에 최초로 증기발생기 교체를 하였을 때(Saint Luice 1호기), 교체시공기술 자문을 한 업체가 BDS(Black Diamond Service)사 였다. 1960년도에 기업이 설립되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으니 60년이 넘은 기업이다. 엔지니어들도 벡텔, AREVA, 웨스팅하우스 출신으로 구성된 대단한 기업이다. 기술력뿐만 아니라, DB도 탁월하게 구축되어 있다.

 

2012년 가을, 문인득 기술사는 자신이 발견한 슬라이딩 베이스 변형에 대해 BDS에 유사사례가 있는지를 문의하였다. 미국에서는 그런 사례가 없었다고 회신이 왔다. 관련 정밀측정회사도 그런 사례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미국은 안전관리가 철저하다. 위험이 생기면, 공사를 중단하고 그에 대한 설계개선부터 한다. 미국 기준으로 보면 있을 수 없는 위험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사진 2) 증기발생기 슬라이딩베이스의 볼트 홀(Bolt Hole)중심선이 쏠려있는 상태. 이 자체가 운전상의 문제를 드러내주고 있다. 사진=문인득 기술사 제공

 

2012년 이 BDS사에서 한국으로 엔지니어링 부문의 인허가를 지원하는 업무를 위해 파견된 이가 Mo Palmowski (모어 팔모스키)씨다. 그는 1955년생으로서 미국 클락슨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후 30년넘게 원전 현장에서 시공과 설계 및 엔지니어링 업무를 해온 베테랑이다. 그는 까다로운 증기발생기 교체공사에 대해 한수원이 진행하는 인허가업무에 기술지원서비스(TAS)를 맡았다. ‘과묵한 편이고 질문이 있기 전에도 상황을 판단해서 조언을 했던엔지니어였다. 한수원 설비개선팀을 기술지원하는 역할이어서 두산중공업과 직접 수행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던 그해 늦가을, 울진의 원전현장에는 긴급회의가 소집되었다. 증기발생기의 상황이 위태롭다는 이유로 한수원과 두산중공업의 18인의 베테랑 원전기술자들이 급히 모인 것이다. 하지만 Mo Palmowski 씨는 무슨 이유인지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 이유가 지금도 의문스럽다. 그런 그가 한국을 떠나는 자리에서 이 문제의 당사자인 문인득기술사에게 증기발생기가 기울어져 있으면, 원자로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미스터 문이 잘 처리해줄 것으로 믿겠다라고 조언을 했다.

 

프로젝트 매니저 Michael D. Pacholke의 걱정

BDS사의 프로젝트 매니저(PM) Michael D. Pacholke(마이클 퍼호키)씨는 2012년부터 1년반 동안 TAS 지원을 총괄한 엔지니어였다. 그는 증기발생기 하부지지대의 변형에 관한 내용을 알았던지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1985년에 작성된 영광 한빛 34호기 OPR 1000의 기술보고서를 문기술사에게 보내 주었다. 그 보고서에 시운전중 증기발생기 거동상태를 통해 설계의 적절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정보가 있다고 했다.

 

기실 2011년에 한빛원전 1호기 관련 증기발생기 수실의 붕산수에 의한 부식사고 에피소드가 있었다. 한국원자력안전위원회 조차도 몰랐던 내용이, 미국 NRC(원자력규제위원회)에 한빛원전 1호기 사고에 소상히 공개된 것이다. 그리하여 NRC안전에 중대한 이슈가 한국에 있었지만, 전 미국 발전사업자에게 유사사례가 있는지를 조사하여 보고하라고 조치한 것이었다. 과연 타산지석으로 활용하는 모범적인 대응과정이다.

 

마이클 퍼호키씨로부터 받은 기술보고서를 문기술사가 보고 나니 한울원전 증기발생기 교체공사가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느꼈다고 한다. ‘큰 수술이 실패하는 것이다. BDSPMMo Palmowski씨의 조언은 실로 중대한 것을 지적하고, 야기될 문제를 판단해서 관련 자료를 제공해 준 것이다.

 

문제의 실체를 알고 있던 Mr. Smith의 도움

이 사건 이전에 한울 4호기 증기발생기 교체 당시에 두산중공업에 해외기술자문으로 참여한 Mr. Smith도 중요인물이다. 20136월경에 문기술사는 Palo Verde 고온기능시험 자료를 검토하다가, 주급수 배관의 재질이 한국표준형원전과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고, 기계시공 기술자 Mr. Smith에게 한국원전과 다른 부분이 있어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그의 자료에는 슬라이딩베이스 재질이 Casting(주강)으로 명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Palo Verde 원전에서는 STEEL()으로 되어 있었다. 문기술사는 소재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추적하였으나 정보를 획득할 수가 없었다. Mr. SmithPM에게 그 질문을 전달했던지. 바로 회신을 보내 왔다. 단 한 단어였다. ‘FAC’(부식현상의 한 종류로, Flow Acceleration Corrosion의 약어다).

 

문기술사는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2014년 두산중공업 원자력서비스에서는 새로운 먹거리를 찾고 있어서 ‘FAC’관련하여 배관 재질 개선 사업 아이템에 대한 제안서를 만들어 준 적이 있다. 미국에서는 2003년도부터 재질 개선을 했었는데 한국은 여전히 옛날 방식을 답습하고 있었던 것이다. , 2014년에 회사측에 조언을 했음에도 간과했던 일이, 2017년경 정기검사보고서에서는 울진 2발전소 증기발생기에 발생한 많은 량의 슬러지의 존재로 확인된 것.

사진 3) 정밀측정전문가 Gunn씨가 슬라이드베이스의 변형을 측정해서 그림으로 그려서 두산중공업에 전달한 것. 사진=문인득 기술사 제공

 

정밀측정 전문가 Mike Guun씨가 접한 지지대 변형

두산중공업과 2011년부터 정밀측정 용역을 맺은 미국 3-SPACE사의 Mike Guun(마이크 군)은 업무성격상 매년 수시로 한국에 왔다. 측정할 일이 있을 때마다 온 것이다. 한울 4호기 증기발생기 교체작업의 첫 단계는 군씨가 수행하는 정밀측정 작업이다. 증기발생기 하부지지대의 원자로 배관을 절단하였을 때 5mm가 움직였다. 수직밸런스를 잡아야 하는 엄밀한 환경에서의 5mm 이동은 중대한 사건이다. 하부지지대가 변형되었음을 말한다. 이를 두고 군씨는 십여 사례의 컨버스턴 엔지니어링(CE)의 원설계모델 원전에서는 증기발생기 하부지지대의 변형이 없었다고 했다.

잔류하중의 증거인 ‘5mm가 움직여진 상태에서는 공사 대책을 세울 때까지 중단했어야 했다. 마치 외과의가 수술하는 도중 문제가 생긴 것처럼. 그는 그 변형된 수치를 엑셀 프로그램으로 그려낸 이미지를 <사진3>과 같이 기록으로 남겼다. BDS사의 PM 퍼호키씨도 군씨의 데이터를 보고는 이와 유사한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고 한다.

사진 4) 미국 Palo Vrede 2·3호기 증기발생기 슬라이딩베이스와 내진설계된 앵커볼트(노란테이프)가 있다. 반면에 한국형원전에는 이것이 누락된 설계를 적용했다. 사진=문인득 기술사 제공

사진5) 신고리 3호기 APR 1400 슬라이딩베이스 구조, 앵커볼트가 누락된 설계적용. 이 지지대는 201211월 조사했을 때 울진3호기 보다 더 심한 변형이 있었다. 사진=문인득 기술사 제공

 

증기발생기 문제로 12조원을 배상한 미쓰비시중공업

세계적인 사례가 있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은 미국 SONGS 2,3호기 교체 증기발생기를 공급하면서 증기발생기 내부구조를 CE67의 오리지널 형태를 변경한 것에 대한 안전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이유로 인해 2개의 발전소가 영구폐로 중에 있다. 발전사업자인 APS사는 그에 대한 배상청구를 하여, 20176월경에 12조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났다.

 

한울 3·4기와 동일한 구조인 신고리 3·4호기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지진이 왔을 때 수직지지대 하부는 설계여유도가 8%밖에 없다(신고리 3·4호기 최종안정성분석보고서). 반면 앵커 볼트가 있는 Palo Verde 원전은 300%이상 여유도가 있다.

 

그 잔류하중과 진동피로로 인해 한울 3·4호기는 지진에도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다. 지난 2016년 경주 지진때 한국에 온 일본의 히로세 다카시씨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원전의 내진설계 기준(0.3g)이 턱없이 낮다고 하면서, “경주 지진은 내륙형 직하지진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지진을 계기로 원전 내진 기준을 최대 2.34g로 높였다. 최근 재가동에 들어간 센다이 원전은 내진 성능을 0.63g로 강화했지만, 4월 구마모토 지진의 진원에서 기록된 최대지반가속도 1.43g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구마모토 지진은 내륙형 직하지진이었다. 최대지반가속도가 1g를 넘으면 지상의 물체는 허공에 떠버린다.” 라고 했다.

 

지난 이명박 정권때 제기된 한울 3·4호기 위험은 지난 정권을 거쳐 이 정부까지 9년째가 되도록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마치 폭탄 돌리기게임 같다. 이런 불성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랍다.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한가? 미국의 전문가들도 걱정하고 있다. 관련정부기관은 무얼 하고 있나? 요즘의 K방역과는 천양지차다.

 

원전 위험은 잠재적인 핵폭탄이다.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위가 걸린 문제다. 그리고 지구촌 안위의 문제다. 당장이라도 투명하게 조사해야 하고 그 내용을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이원영 수원대 교수·원전위험공익제보센터() 위원 / 미디어오늘

 

UN “새로 창궐하는 전염병 75% 동물서 유래”… 자연의 복수
“자연파괴로 야생동물 터전 축소… 인간과의 접점 늘어”

새로이 창궐하는 전염병의 75%, 이미 알려진 전염병의 60%가 동물로부터 유래됐다는 국제연합(UN) 보고서가 나왔다. 인류의 무분별한 자연 파괴 행위로 야생동물들이 살아갈 터전이 축소됐고, 그 어느 때보다 양측의 거리가 좁아지고 접점이 늘어나면서 인수공통전염병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영국 BBC방송은 6일(현지시간) 유엔환경계획(UNEP)과 국제축산연구소(ILRI)의 공동 발간 보고서 ‘팬데믹 예방: 동물성 질병과 전염병 사이의 고리를 끊어내는 법’을 인용해 “인류가 야생동물을 계속 착취하며 생태계를 파괴한다면 코로나19 같은 전염병들이 동물에서 인간으로 끊임없이 확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류는 코로나19 충격 이전에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에볼라,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등 다양한 인수공통전염병으로 피해를 입어왔다. 20세기에만 최소 6종류의 신형 코로나바이러스가 발생했고, 근 20년간 동물 유래 질병은 총 1000억 달러(약 119조원)의 경제적 피해를 입혔다. 코로나19는 향후 2년간 9조 달러(약 1만730조원)의 경제적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저소득 국가를 중심으로 매년 200만명이 동물 유래 질병 탓에 목숨을 잃고 있다.

 

보고서는 인수공통전염병의 급증 원인으로 인류의 무분별한 자연 파괴 행위를 손꼽았다. 불과 50년만에 인류의 육류 생산량은 260% 증가했는데 이를 충족하기 위해 축산업 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야생동물의 터전이 희생됐다. 지속불가능한 농업 관행도 문제로 지목됐다. 공장식 농장을 만들기 위해 산림 벌채 등 난개발이 이뤄진 것도 동물들이 살아갈 자연 공간을 크게 축소시켰다는 것이다. 환경 파괴에 따른 기후 변화도 병원균 확산을 부추기고 있다.

 

잉에르 아네르센 UNEP 이사는 “인간에 전파되는 전염병의 25%는 댐, 관개시설, 공장식 농장 건설과 연관돼있다”며 “이 같은 흐름의 최종 결과는 그 어느 때보다 인간의 공간과 야생동물의 공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연 파괴로 인간과 야생동물의 접점이 늘어나면서 인수공통전염병의 창궐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역시 박쥐 등 야생동물에서 유래됐다는 게 중론이다.

 

보고서는 또 다른 팬데믹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지속가능한 토지 관리를 유도하는 보상 체계를 구축하고, 생태계 다양성을 지키며 관련 연구에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제언했다./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경남에 민간정원 잇따라 문열어…도내 8곳 운영

그레이스정원. 경남도 제공

집안의 뜰이나 꽃밭을 가꾸는 정원산업이 경남에서 활성되고 있다. 산과 바다가 많고 자연환경이 수려한 경남지역의 특성을 활용한 정원산업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경남도에 따르면 올해 6월 도내에 3곳의 민간정원이 등록을 마치고 영업을 시작했다고 7일 밝혔다. 민간정원은 개인이 연면적 5000㎡ 이상의 규모로 정원을 가꿔 유료로 운영하는 곳이다. 이번에 새로 생겨난 3곳은 고성군 상리면에 위치한 그레이스정원(대표 조행연), 거제시 둔덕에 소재한 옥동힐링가든(대표 김정이), 고성군 거류면에 주소를 둔 만화방초(대표 정종조) 등이다.

 

그레이스정원은 15년동안 에메랄드골드, 수국 등 120종의 식물을 가꾼 상태다. 또 옥동힐링가든은 허브식물 등 152종의 서양식 정원과 수생정원이 특징이다. 만화방초는 수국과 꽃무릇 등 30종 식물이 다양한 볼거리를 연출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올해 3회째 수국전시회를 열고 있다.

옥동힐링가든. 경남도 제공 옥동힐링가든. 경남도 제공

이로인해 2015년 경남 1호 민간정원으로 등록된 섬이정원(대표 차명호, 남해군 남면)을 비롯해 해솔찬정원(대표 김종태, 통영시 도산면), 남해토피아랜드(대표 하석진, 남해군 창선면), 물빛소리정원(대표 박정숙, 통영시 도산면), 춘화의정원(대표 최춘화, 통영시 도산면) 등 5곳이 영업중인 상태에서 이번에 3곳이 생겨났다.

만화방초. 경남도 제공 만화방초. 경남도 제공

정원은 민간이 운영하는 민간정원과 국가에서 운영비를 지원하는 국가정원,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지방정원으로 구분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가정원으로는 전남 순천만정원과 울산 태화강정원이 있다. 경남도내 첫 지방정원은 하동군내 동정호토지정원으로 올해 말 개원할 예정이다. 경남도내 민간정원 1호인 섬이정원은 연간 6만 명의 관람객이 찾는 새로운 관광명소로 발돋움한 상태다.

 

유재원 경남도 산림녹지과장은 “정원문화산업이 새로운 산업동력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에 맞춰 ‘경남도 정원문화산업 육성·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시행중에 있다. 3천~6천 원의 입장료가 있지만 특색있는 정원을 감상하고 힐링하는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경남도는 생활 속 정원문화 확산과 정원분야 산업화를 위한 기초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올해 말까지 ‘경남도 아름다운 100대 정원’ 발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김길수 기자 kks66@busan.com

 

나의 한국 현대사, 거짓 언어에 지배당한 우리-김종철 녹색평론

고전적인 교양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서 괴테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매일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으로 몇 가지를 꼽았다. 날마다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시 한 편을 읽고, 훌륭한 그림을 하나 보고,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치에 맞는 말 몇 마디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젊었을 적에 이 구절을 처음 대했을 때, '이치에 맞는 말 몇 마디'라는 표현에 한참 시선이 머물러 있었던 기억이 난다. '가능하다면'이라는 단서까지 붙이면서 괴테가 이런 말을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게는 18세기 독일사회의 '후진성'이라는 현실 속에서 괴테가 느꼈을 좌절, 고통, 외로움을 짐작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적어도 내게는 괴테의 그 표현은 위선적이고, 기만적이며, 기회주의적인 거짓언어가 넘치는 사회 속에서 오랫동안 고통을 느껴온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것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괴테는 나의 동시대인이었다.

 

되돌아보면, 우리 세대가 영위해온 삶은 거짓언어의 숲 속에서 끝없이 헤매는 파행의 연속이었다. 6·25 전란 직후 먼지가 풀풀 나는 황량한 길바닥이었지만, 거기서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다니며 놀던 철없는 어린 시절은 그런대로 행복했다. 그러나 중학교 1학년이 끝나가던 3월 어느 날(당시는 4월에 새 학년이 시작되었다), 이 행복의 시간은 결정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날 종례시간에 담임선생님은 우리에게 신신당부 간곡히 말씀하셨다. “어느 정부든 자기 국민에게 나쁜 짓을 하는 정부가 있을 리 없다. 내일 투표는 OOO에게 찍도록 부모님들께 잘 말씀드려라.” 그리고 이튿날 오후부터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저녁 무렵 성난 사람들이 파출소를 불태우고, 엄청난 시위대가 거리를 뒤덮었다. 밤이 되자 어둠 속에서 총탄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전쟁 이후 정부가 자신의 국민을 향하여 최초로 총격을 가한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1960315, 자유당 정부가 저지른 대규모 부정선거에 항의하여 궐기한 내 고향 마산 사람들이 겪은 일이다.

 

이상하게도, 3·15에 대한 내 기억 속에 언제나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그때 담임선생님이 하셨던 거짓말이다. 물론 선생님은 자신이 원해서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평범한 교사가 상부의 지시를 고분고분 따르지 않을 도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제자들 앞에서 교활한 논리로 거짓말을 실제로 함으로써 선생님은 결국 신용을 잃었고, 우리들은 벌써 어린 나이에 스승을 존경할 수 없는 불쌍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가장 끔찍한 것은 그러한 거짓말의 궁극적인 결과였다. , 우리들 중에서 그 이후 자신의 인생행로에서 거짓언어의 일상화를 당연지사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더 끔찍한 장면에 마주쳤다. 초여름 어느 날 가뭄 때문에 고생하는 농촌을 돕기 위해서 우리들은 각자 양동이 따위를 들고 교외로 대열을 지어서 가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난데없이 출현한 군용 지프차에서 내린 뚱뚱한 육군 장교가 우리들 곁에서 걷고 계시던 선생님을 불러 세워 놓고는 느닷없이 지휘봉으로 마구 구타를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듣기로는, 학생들의 어지러운 대열이 그의 비위에 거슬렸다는 것이다. 그 군인은 5·16 쿠데타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시절, 지역 계엄사령부 최고 책임자였다.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의 명분은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제자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스승을 구타하는 방법으로, "나라에 청신한 기풍을 진작시키고자" 하였다.

 

이 일로 해서 나는 그 이후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군사정권이 하는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군인들에 의한 통치는 기본적으로 몰상식, 무교양, 극단적인 무례에 토대를 둔 것임을 그들 자신이 명확히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군사통치하에서 내게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그 강압적 통치방식 이외에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몰상식한 짓들을 보고 살아야 하는 데서 오는 고통스러움이었다. 예를 들어, 1970년대 초 나는 공군 장교로 사관학교에서 교관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졸업식 때마다 오로지 대통령의 눈을 즐겁게 하려는 목적으로 봄도 되기 전에 길가의 개나리꽃들을 활짝 피우기 위해서 꽃나무들과 병사들을 행사 몇 달 전부터 끊임없이 괴롭히는 장면을 반복해서 보아야 했다. 그런가 하면 지방 도시에서는 전국체육대회라도 열리게 되면, 그날 대통령이 지나가기로 되어 있는 길가에는 새벽부터 뿌리 없는 생나무들이 급히 심어졌다가 며칠 후에는 대개 말라 죽어버렸다. 이런 종류의 거짓행동과 어리석은 짓은 전국 어디서나, 어떤 학교, 어떤 직장에서나 일상다반사였다.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이른바 장발단속이었다. 멀쩡한 젊은이들의 머리칼이 국가기관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길거리에서 함부로 잘리는, 터무니없는 만행이 장기간 계속되었다. 장발단속은 어떠한 법률에 의거한 것도 아니었다. 단순히 최고 권력자의 개인적인 취향에 거슬린다는 게 이유의 전부였다.

 

내가 1970년대 중반 어느 지방 대학에 일자리를 얻어 근무하던 때, 학생들의 부탁으로 저명한 작가 한 분을 초청하여 강연회를 개최한 적이 있었다. 그는 내가 대학시절부터 흠모해왔던 이 나라 최고의 작가 중 한 사람이었다. 두어 시간 동안 문학과 역사와 정치에 관한 강연을 들으면서 학생들과 나는 모처럼 진지한 사색의 즐거움을 누렸다. 그런 강연회 끝에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시내로 나와 같이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분이 보이지 않았다. 살펴보니 길 건너편에서 경찰의 장발단속에 걸려들어 그분이 닭장에 막 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그분은 몇해 동안 미국에 머물다가 막 귀국한 때였다. 그래서 그런지 당시 세계적인 유행대로 장발이었고, 얼핏 보면 젊은 학생과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 돌발적인 사태에 당황하여 다급히 경찰관들에게 쫓아가 이분이 어떤 분인지, 무슨 일로 여기에 왔는지를 설명하고, 제발 풀어달라고 애걸하였다. 그리하여 그분을 경찰서로 끌려가는 위급상황에서 가까스로 구출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그분과 나는 근처의 음식점으로 들어가기는 했으나 밥을 먹지 못했다. 작가는 창백한 얼굴로 침묵하고 있었으나, 말할 수 없는 모욕감과 수치심으로 온몸을 떨고 있었다.

 

박정희시대는 참으로 누추하고 야만적인 시대였다. 작가는 불온한 글로 인해 탄압을 받거나 감옥에 갈 수도 있다. 그것은 작가로서 명예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전제적 권력은 그렇게 탄압함으로써 자신도 모르게 그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나라 최고 수준의 작가가 장발단속에 걸려 닭장차에 실린다는 것은 실로 기막힌 코미디이자 누추하기 짝이 없는, 그리고 가장 야만적인 형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날 내가 경험한 일은 일선 경찰에 의해 별생각 없이 자행된 사소한 사건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 일은 박정희시대의 본질을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극히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박정희시대란, 적어도 내가 이해하는 한, 비극적인 시대는 결코 아니었다. 비극이란 원래 위대한 정신의 위대한 몰락에 관계하여 일어나는 인간적 드라마이다. 박정희시대는 '위대성'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치졸하고 천박한 정신이 지배하는 시대였다. 박정희 정권은 농촌 사람들을 전부 바보 취급하면서 '잘살아보세'라는 유치한 노래를 밤낮으로 틀어놓고 듣기를 강요했고, '새마을운동'으로 농촌을 살린다면서 토착적 민중문화를 가차 없이 파괴하고, 민중의 지속가능한 삶의 근본 토대인 공동체들을 급속히 해체시켰다.

 

그리고 이 농민문화의 파괴와 공동체의 해체는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경제성장'이라고 하면 모든 것이 허용되는 사회, '경제성장'이라는 명분 앞에서는 역사도 문화도 전통도 헌신짝처럼 내던질 준비가 되어 있는 사회, 그리하여 깊이도 영혼도 없는 사회, 다시 말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한국사회의 기본성격이 박정희시대를 통해서 굳건히 정립된 것이다.

197910월 어느 새벽, 잠에서 덜 깬 상태에서 대통령이 죽었다는 소식을 이웃집에 사는 방송국 기자 가족에게서 들었다. 순간적이지만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결국 죽음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구나 하는 허망한 느낌에 돌연히 휩싸였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우리들의 선생님이 군인으로부터 구타당하던 것을 본 이후, 학생, 군인, 교원으로 쭉 살아오면서 나는 한순간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군대생활을 하는 동안은 말할 것도 없지만, 대학의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에서 헤어날 수 없었고, 글을 쓸 때도, 글이 발표되고 나서도 늘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 그런 '비굴한' 자신이 말할 수 없이 혐오스러운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제는 해방이다"독재자 박정희의 사망 소식을 들은 날, 나는 종일 들뜬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19805월 이후, 절망의 날들이 계속되었다. 군사 깡패들에 의한 야만적인 통치하에서 기꺼이 감옥으로, 공장으로, 야학교사의 길로 가는 학생들을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나는 무엇이 어디서부터 근본적으로 뒤틀리기 시작했는가를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한동안 어렵게 구한 외국 서적과 잡지들을 들여다보다가 아무래도 책들을 좀 자유롭게 볼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미국 뉴욕주립대학 대학원의 입학허가를 얻었다. 그런데 미국에 도착하여 공부하기 시작한 지 몇 달도 안 되었을 때, 나는 뜻밖에 어떤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

 

그것은 따지고 보면 매우 단순한 경험이었다. 내가 입학하여 공부하기 시작한 그 대학에는 교수와 대학원생을 위한 여러 개의 훌륭한 도서관이 있었는데 대개 내가 이용한 도서관은 인문·사회 분야 도서들이 집중되어 있는 중앙도서관이었다. 그 도서관의 규칙에 의하면 대학원생에 대한 도서 대여기한은 6개월이었다. 나는 도서관에 따라 규칙이 다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한번은 법과대학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별로 읽지도 않고 가지고 있다가 어느 날 문득 살펴보니 대여기한이 한 달밖에 안되고, 그 규정에 따르면 이미 내가 열흘 이상 기한을 넘겼다는 것을 발견했다. 더욱 놀란 것은 기한이 넘으면 하루 10달러씩 벌금을 부과하기로 돼 있다는 규정이었다.

 

부랴부랴 법과대학 도서관에 반납을 하러 가서 설명을 했다. 처음 이 대학에 와서 공부하기 시작한 학생인지라 이 도서관의 규칙이 중앙도서관과 다른 것을 몰랐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은 내 잘못이지만, 이런 실수로 학생신분으로 100달러가 넘는 벌금을 물어야 하는 것은 좀 과하다고 생각한다고 얘기를 했다. 얘기를 듣고 있던 젊은 여자 직원이 잠시 기다리라 하고는 뒤에 앉아 있는 할머니 사서(司書)에게로 가서 내 얘기를 하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할머니가 내게로 와서는 방금 젊은 직원에게 한 얘기를 다시 자기에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얘기를 들은 그 할머니 사서는, 설명을 들으니 일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규칙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니 자기 재량으로 벌금을 하루 10달러가 아니라 하루 1달러로 계산하여 모두 10달러로 하여 받겠으니 괜찮겠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그러겠다고, 고맙다고 말하고 벌금을 그 자리에서 물고 나왔다.

 

도서관에서 나와서 곰곰 생각해보았다. 만일 한국의 대학에서라면 이런 경우 어떤 장면이 벌어졌을까. 나는 그동안 내가 재직했던 대학들과 그 도서관 풍경들을 머리에 그려보았다. 그리고 내가 얻은 결론은 한국에서는 이런 모습이 절대로 재현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는 대학이든 어디든 실무자에게 주어진 재량권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규정을 곧이곧대로 지키든가 아니면 서류조작 따위를 통해서 처음부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것처럼 거짓을 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아마 변함없는 현실일 것이다.

 

공공기관이든 사기업이든 한국의 조직에서는 현장에 가장 가까이 있는 실무자에게 현장의 구체적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모든 결정은 고위층, 상층부에서 이루어지고 실무자급에게는 이 결정을 합리화하기 위한 기술적 보완 책무가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말도 안 되는 온갖 짓들이 국책사업이니 뭐니 하면서 횡행하는데도 불구하고, ·하위직 공무원, 관련 분야 연구자나 학자들은 이의제기를 하지 못하고, 다만 그 말도 안되는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억지논리를 개발하는 데 고통스럽게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철저한 상명하복의 위계구조에 의해 움직이는 군대조직의 논리가 식민지시대와 군사정권 시절을 통해서 이 사회의 온갖 영역에 침투해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고도 경제성장기의 한국사회에서 가장 중시된 덕목은 효율성·생산성이었고, 그러한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는 것만큼 공공조직이나 기업 어느 쪽을 막론하고 제일의 원리로 확고하게 굳어진 것은 군대식 논리였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자주적·자발적 사고와 판단으로 행동하는 '자유인'의 논리가 아니라 노예의 논리가 이 사회의 지배 원리가 되어온 것이다. 그러나 노예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그때 필요한 기술은 끊임없는 거짓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진실을 찾으려는 힘은 퇴화하고,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고립되고 조소를 당하며, 때로는 냉소 혹은 저주의 대상이 될 뿐이다.

 

나는 지금도 그날 미국 대학의 도서관에서 그 할머니 사서가 보여준 당당한 모습, '자유로운' 모습 앞에서 내가 한 사람의 한국인으로 내심 기가 죽었던 것을 가끔 회상하며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곤 한다. 돌이켜 보면, 한국이라는 땅에서 우리들이 살아온 삶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진실 속에서' 산다는 느낌과는 거리가 너무도 먼 것이었다. 언제나 거짓언어, 상투적인 언어, 화석화된 공식적언어 속에서 우리의 삶은 영위되어왔다. , 우리는 늘 '노예'로 살아왔을 뿐, '자유시민다운' 발언을 하고 당당한 자세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아이들이 맘껏 놀지 못하고, 건강한 성장기를 박탈당하면서 '교육지옥'에 갇힌 채 살아야 하는 사회, 청년들이 활기를 잃고 기껏해야 7급 공무원이나 '정규직'을 몽상할 수 있을 뿐인 사회는 미래가 없는 사회이다. 그럼에도, 이 사회는 여전히 왜 그동안의 엄청난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암담한 사회가 돼버렸는지 그 뿌리를 찾아보려는 근본적인 탐구가 없이 늘 피상적인 증상들을 어떻게 하면 완화시킬 수 있을지 임시처방을 궁리하는 데만 급급하고 있다.

 

그리하여 전혀 '이치에 맞지도 않는' 말들이 이 나라의 언술공간을 늘 횡행하고 있다.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된 게 아니라, '경제성장' 바로 그것이 근본적 문제라는 사실을 정직하게 대면하는 게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석유시대가 끝나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기후변화라는 가공할 사태가 현실화되고 있는 이 시대에 아직도 경제성장이 계속될 수 있고, 계속되어야 한다는 시대착오적인 망상에 계속해서 빠져 있는 한,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지금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경제성장을 넘은 세상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이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의 삶을 속속들이 지배하고 있는 거짓언어, 타성적인 언어습관, 상투적인 사고의 틀을 걷어내는 일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2012)

출처 발언Ⅰ》, 녹색평론사, 2016, 12~22쪽호) | / 프레시안

 

경남 창원 국도변 왕대 1000그루서 대나무꽃 활짝

 

경남 창원시 2번 국도변 왕대나무림(사진 중앙 갈색 부분)에서 확인된 대나무꽃 전경. 산림과학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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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지난 3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봉암리 2번 국도변에서 대나무 왕대 1000그루가 일생에 한 번 보기 어렵다는 대나무 꽃을 일제히 피운 것을 확인했다고 8일 밝혔다.

 

산림과학원은 국내에는 518종의 대나무종이 면적 22000에 분포하지만 대나무의 꽃을 보는 것은 매우 어려워 신비의 꽃이라고 불린다고 설명했다. 산림과학원은 대나무 꽃은 특성과 발생이 신비롭고 희귀해 예로부터 대나무에 꽃이 피면 국가에 좋은 일이 발생할 징조라고 해 희망을 상징한다고 덧붙였다.

 

산림과학원은 지금까지 대나무 꽃이 핀 사례는 1937년 경남 하동 왕대림, 2007년 경북 칠곡 솜대림, 2008년 경남 거제 칠전도 맹종죽림, 2012년 경남 진주~사천휴게소 도로변 왕대림, 2017년 경남 창원 솜대림, 2019년 전북 정읍, 순창, 강원 영동의 대나무림 등이라고 밝혔다.

 

경남 창원시 2번 국도변 왕대나무림에서 핀 대나무꽃. 산림과학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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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는 꽃이 피기 시작하면 기존에 자라고 있던 대나무 줄기와 지하로 뻗은 뿌리가 완전히 죽게 된다. 이후 뿌리에서 숨은 눈이 자라면서 다시 재생되지만, 꽃이 피기 전과 같은 상태로 대나무 숲이 회복되는데 10여년 이상이 걸린다.

산림과학원은 대나무 개화의 원인이 명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관련 학설로 60120년 만에 핀다는 주기설, 특정한 영양분이 소진돼 발생한다는 영양설 등이 있다고 소개했다.

 

손영모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바이오소재연구소장은 씨앗이 아닌 땅속뿌리로 번식하는 대나무가 꽃이 핀 것은 매우 희귀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김정훈 기자 jhkim@kyunghyang.com

 

 

“2050년까지 서울시내 모든 차량 전기·수소차로

2022년까지 26천억원 들여 서울판 그린뉴딜추진

박원순 서울시장이 8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기자설명회에서 “2020 그린뉴딜 서울이라고 적힌 티켓 모형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가 2050년까지 서울에서 운행하는 모든 차량을 친환경 전기·수소차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8일 오전 시청사에서 기자설명회를 열어 이와 같은 내용이 포함된 서울판 그린뉴딜'을 발표했다. 시는 2022년까지 26천억원을 들여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정책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시는 2035년부터는 전기·수소차 같은 친환경 차량만 서울에 등록할 수 있도록 하고, 서울 도심 사대문 안에는 내연기관차의 진입을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2050년에는 내연기관차 운행 제한 지역이 시 전체로 확대될 수 있도록, 정부에 관련 법 개정을 건의하기로 했다.

 

또한 시는 경로당어린이집보건소 등 취약계층이 이용하는 노후 공공건물 241곳을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구조를 변경한다. 내년부터는 건물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건물온실가스총량제'를 시 소유 공공건물에 도입해 시범운영한 뒤 민간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한편, 시는 상하수도시설, 도시철도시설, 공공건물 등 가능한 모든 공공시설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해 신재생에너지 생산량을 늘리는 등의 방안도 추진한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사람과 살기 위해 불곰은 야근을 택했다

여름철 불루베리 등 각종 장과류는 불곰이 칼로리를 섭취하는 주요 먹이이다. 그러나 도시 환경은 불곰의 주행성 습성을 바꾸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여름철 불곰의 최고 식량은 라즈베리, 블루베리 등 장과류이다. 칼로리 높은 이 열매를 하루 1415시간씩 먹어야 겨울을 날 지방층을 비축할 수 있다. 이처럼 낮에 활동하는 대표적 포식자인 불곰이 야행성으로 바뀌고 있다. 인간이 바꾼 환경에서 사람을 피해 새로운 먹이를 찾기 위해 적응한 결과이다.

 

클레이턴 램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박사후연구원 등 캐나다 연구자들은 지난 41(19792019) 동안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서 남한 면적의 4배 가까운 지역에 서식하는 불곰 2669마리의 개체수 변화, 서식지 이용, 사망률, 이동 등을 연구했다.

 

더 위험한 도시에 몰리는 이유

연구자들은 7일 미 국립학술원 회보(PNAS)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 결과 인간이 지배하는 지역에서 불곰의 사망률이 높지만, 사람과 불곰의 공존은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공존이 가능한 원인은 불곰이 주행성에서 야행성으로 습성을 바꿨고 도시와 연결된 야생지역에서 새로운 불곰이 공급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인간의 영향이 자연 구석구석까지 미침으로써 이제 대형 포식자에게 남겨진 공간은 도시, 고속도로, 농촌, 조각난 자연 서식지가 뒤섞인 곳이 대부분이다. 포식자는 새로운 인간 세상에 적응하든가 지역적으로 절멸하든가의 갈림길에 섰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의 교란된 불곰 서식지. 연결된 야생 서식지가 멀리 보인다. 클레이턴 램 제공

 

연구자들은 사람이 사는 곳이 더 위험한데도 불곰이 몰려드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의 교란이 심한 곳일수록 불곰의 사망률은 높았고, 특히 경험 없는 청소년 불곰의 사망률은 성체보다 75배나 높았다. 교란 정도가 중간인 농촌에서 불곰 30마리 가운데 한 마리만 14살까지 살았다. 야생에서는 4마리가 그 정도 산다.

불곰이 도시로 몰려드는 이유는 풍부한 음식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벌채로 먹이 식물인 초본이 늘어나고, 고속도로변에 찻길 사고로 죽은 동물 사체가 많으며, 과수, 가축, 음식물쓰레기 등이 야생에서 볼 수 없는 먹이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나이 먹을수록 야행성으로

불곰들은 달라진 서식지에 적응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주행성이던 습성을 야행성으로 바꿔나가는 것이다. 야생에서도 연어 소상철이나 엘크 새끼가 집중적으로 태어나는 철 등에는 불곰도 야간 사냥을 한다. 그러나 불곰은 기본적으로 잡식성이고, 에너지의 90%를 장과류 등 식물에서 얻는다. 열매, 뿌리, , 잎 등을 낮 동안 찾아다니고 밤엔 잔다.

야행성으로의 전환은 생존을 가른다. 그러나 3살 이상의 불곰만이 이런 적응을 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 인간에 의해 교란된 지역일수록 야행성으로 바뀌는 불곰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습성은 3살 이상의 성체에서만 나타났는데, 나이를 한 살 더 먹을수록 밤에 활동하는 비율은 23% 늘어났고, 비슷한 비율 만큼 생존율도 커졌다. 위성추적장치를 이용한 조사 결과 낮보다 밤에 활동하는 불곰일수록 사람과 갈등을 빚을 확률도 연간 71%까지 낮았다.

 

다 자란 수컷의 평균 몸무게가 217에 이르는 불곰은 야생에서 천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사람이 이용하는 공간을 적극적으로 회피하지 않는다. 문제는 어미로부터 독립한 새끼는 수컷이 42, 암컷은 14떨어진 곳으로 퍼져나가면서 인간 영역으로 접어든다는 데 있다. 젊은 불곰은 새 영역에서 야행성으로 습성을 바꿔 살아남거나, 아니면 쓰레기나 정원을 뒤지다 사살되거나 로드킬로 죽는다. 연구자들은 인간 영향 지역에서 암컷 성체는 대부분 야행성으로 습성을 바꿔 성공적으로 번식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사망률은 집단 밀도를 유지하기에 너무 높다.

캐나다 재스퍼 국립공원의 불곰. 도시 지역 불곰에 새로운 개체를 공급하는 저수지 구실을 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야생지역에서 새 피공급돼야

인간 영향 지역에서 불곰의 지역적 절멸을 막아주는 건 야생지역으로부터의 수혈이다. 연구자들은 야생에서 확산하는 청년 불곰들이 도시 근처 불곰 서식지의 높은 사망률을 상쇄해 준다고 밝혔다. 교란 지역이라도 잘 보전된 야생지역과 연결돼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야생동물 쪽 적응만으로 포식자와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포식자를 더욱 관용하는 사회적 태도의 변화도 북아메리카 서부의 많은 교란 지역에서 불곰이 재도입되고 존속하며 일부 지역에서는 늘어나는 데 기여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인간 환경에 적응한 불곰의 형질은 유전될까. 연구자들은 교란 지역의 사망률이 워낙 높아 야생지역에서의 공급이 단절되면 1020년 안에 지역적 절멸이 일어난다불곰의 공존형 형질이 진화할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대신 어미에서 자식으로 교육을 통한 적응 행동의 문화적 전수는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불곰은 유라시아와 북아메리카 북부 전역에 서식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불곰은 스칸디나비아부터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북한 등 동북아를 거쳐 북아메리카에까지 고위도에 널리 분포하는 포식자이다. 최근 최상위 포식자가 생태계 건강성을 지켜주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지만 최근 개발과 함께 인간과 갈등을 자주 빚는다. 불곰은 대표적 갈등 유발 동물이다. 가축을 해치거나 음식쓰레기를 찾아 마을에 침입하다 사살되거나 자동차에 치여 죽는 개체가 속출하고 있다.

인용 저널: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DOI: 10.1073/pnas.192209711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충격적인 실험... 처참한 대한민국 아파트

발암물질과 유독물질로 제조되는 '콘크리트 혼화제'

오늘도 사방에 새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다. 새집증후군 대책은 마련된 것일까? 최병성

 

2019813일 경인지방통계청이 발표한 '경기도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경기도에 거주하는 청소년 중에 2018년 알레르기 질환으로 진단을 받은 비율은 알레르기비염 39.7%, 아토피 피부염 25.7%, 천식 9.1%이다. 이는 청소년 2.5명 중 한 명은 알레르기 비염, 4명 중 1명은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통 받는 심각한 현실을 보여준다.

 

삼성서울병원 아토피 환경보건센터가 조사하고 환경부가 발행한 <아토피 질환 예방관리 총람>(2012.1)에 따르면 아토피 피부염, 천식, 알레르기 비염 질환자 수가 2010년 현재 879만 명이고, 연간 치료비가 6611억 원에 이른다. 센터 측은 아토피질환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아토피 피부염, 천식, 알레르기 비염 등 아토피 질환의 발병 원인에는 유전 요인보다 환경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다. 환경부의 <아토피 질환 예방관리 총람>(2012.1)에서는 아토피 질환 발생 증가가 유전 요인보다 환경 요인이라며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아토피 질환의 유병률 조사를 위해 어린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1995, 2000, 2010년에 3회에 걸친 전국적인 역학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결과에 따르면 지난 15년간 천식, 알레르기비염, 아토피피부염 등의 질환 유병률이 증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아토피 질환의 증가 원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나, 아토피 질환의 발생에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관여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지난 20년간 급격한 유전자 변화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으므로 아마도 환경적 변화가 아토피 질환의 발생 증가에 주로 기여했으리라 추정된다. 이러한 사실은 앞으로 아토피 질환을 줄이기 위해서는 관련 환경요인을 규명하고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새집증후군

시골집으로 내려가면 아토피 질환 증세가 사라졌다가도 새 아파트로 돌아오면 다시 발병한다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아토피 질환에 끼치는 환경 요인 중 오늘날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이 바로 새 아파트(새집증후군).

 

포름알데히드, 나프탈렌, 아크릴아미드, 메틸알코올, 시클로헥산, 아크릴로니트릴, 황산.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발암 물질들과 시력을 멀게 하고 중추신경 장애 등을 유발하는 유독 물질들이다. 이런 발암물질과 유독물질들이 새 아파트 건설에 사용되고 있다. 새 아파트로 인한 아토피 질환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자 정부는 화학물질을 내뿜는 가구·장판·벽지·소파 등을 국민들에게 조심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런데 가구와 장판과 벽지와 소파 등이 아토피 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의 전부일까? 아토피 질환 유발 물질인데도 정부 대책에서 빠진 중요한 물질이 있다. 새집의 근원 물질인 시멘트와 콘크리트를 혼합할 때 사용하는 화학물질인 '콘크리트 혼화제'.

 

시멘트 문제는 그동안 여러 번 지적한 바 있다. 국내 모든 시멘트 공장들은 시멘트의 원료인 석회석에 소각재, 분진, 하수 찌꺼기, 공장의 오니, 반도체공장의 찌꺼기, 폐타이어, 폐고무, 폐비닐, 폐유 등 온갖 산업 쓰레기를 혼합해 태운다. 산업 쓰레기에서 나오는 유독물질이 100% 사라진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시멘트에는 인체에 유해한 발암 물질과 유해중금속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쓰레기시멘트에 모래와 자갈과 화학물질을 혼합하여 만든 콘크리트를 운반하기 위해 모여있는 레미콘 공장의 모습. 최병성

 

'쓰레기' 시멘트보다 더 심각한 아토피 질환 유발 물질은 콘크리트 혼화제다. 콘크리트는 시멘트에 모래와 자갈을 혼합해 만든다. 이때 물과 함께 콘크리트 혼화제라는 화학물질이 첨가된다. 물로만 혼합하면 레미콘공장에서 아파트 건축현장까지 이동하는 중에 굳어버리기 때문이다.

 

콘크리트가 쉽게 굳어버리는 것을 조절해주고, 질기를 고르게 하고, 콘크리트 안의 철근 부식을 억제하고, 겨울철 공사 때 내동해성을 향상시키고, 콘크리트 안에 기포를 발생시켜 시멘트 사용량을 줄여주는 등의 다양한 기능을 하는 화학물질을 콘크리트 혼화제라고 한다.

 

콘크리트 혼화제의 성분

국내 콘크리트 혼화제 생산 1위 기업인 S사가 2013년 자신들이 사용하는 30여 가지의 화학물질 중에 환경부에 신고한 화학물질 배출 목록에 따르면 포름알데히드, 나프탈렌, 아크릴아미드, 메틸알코올, 시클로헥산, 황산 등이 포함되어 있다. 포름알데히드와 나프탈렌과 아크릴아미드는 발암물질이다. 특히 포름알데히드는 새집증후군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물질이다.

 

콘크리트 혼화제의 주요 용매제로 사용하는 메틸알코올은 눈이나 피부에 심한 손상을 일으키고, 장기간 반복 노출되면 중추신경계와 소화기계 장애, 시신경 손상 등을 유발하는 유독 물질이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시력을 잃어 충격을 주기도 했다.

 

메틸알코올은 자동차 유리 세정제의 원료로도 쓰인다. 메틸알코올이 운전자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지적이 일자 환경부는 20174월 인체에 흡수될 경우 실명 위험이 있는 메틸알코올을 이용한 자동차 워셔액을 '위해 우려제품'으로 지정했다. 또 산업통상자원부 기술표준원은 201782일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을 개정해 2018년부터 메틸알코올이 들어간 워셔액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이렇듯 자동차 운전자의 건강을 우려해 사용 금지된 메틸알코올이 우리 가족이 살아가는 새 아파트를 지을 때 콘크리트 혼화제의 주요 원료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S사가 사용하는 30여가지의 화학물질 중에 환경부에 신고한 포름알데히드와 나프탈렌과 메틸알콜 등 2013년 자료 환경부

 

이뿐만이 아니다. 콘크리트 혼화제의 주요 용매제 중 하나인 아크릴아미드(acrylamide)는 말초신경, 시신경, 중추신경의 손상을 가져오고, 알레르기 피부반응을 일으키며, 눈에 심한 자극을 일으키는 발암 물질이다. 시클로헥산(Cyclohexane) 역시 중추신경 마비, 피부 자극을 일으키는 유독 물질이다.

 

아직 도배 장판을 시공하지 않은 새 건축물에 들어가면 눈과 목이 따갑고 가려운 이유가 콘크리트 혼화제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는 이 사실을 간과해왔다.

 

S사는 자신들은 혼화제 제조에 포름알데히드를 사용하지 않는다며 2015년 필자를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발하고 42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내가 포름알데히드 문제를 지적하기 바로 두 달 전인 201410월 포름알데히드 혼화제 제조 장비를 다른 업체에 팔았기에 내 말이 허위라는 것이었다.

 

경찰서와 검찰에 오랜 시간 불려 다니며 조사를 받았다. 그런데, 고소인의 연구소 연구원이 2016년 검찰에 출두해 검사의 추궁에 '포름알데히드 혼화제 제조 장비를 판매해 직접 만들지는 않지만, 포름알데히드 혼화제를 구입하여 사용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는 2017년 재판 증인으로 나왔을 때도 위와 같이 말했다.

S사 연구원이 검찰에서 포름알데히드를 이용한 제품을 만들지는 않으나 구입해서 팔고 있다고 말한 진술서. 검찰 진술서

 

'만들지는 않지만, 사용하고 있다.' 결국 포름알데히드 발암물질로 만든 콘크리트 혼화제가 지금도 여전히 새 아파트 건축 현장에 사용하고 있음은 달라진 것이 없다.

 

혼화제를 플라스틱에 보관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연구원은 혼화제는 비누나 샴푸같은 계면활성제로 플라스틱 통에 보관 가능할 만큼 안전하다고 답을 했다. 이들의 주장처럼 혼화제가 정말 샴푸처럼 위험이 적은 물질일까?

 

다양한 콘크리트 혼화제 샘플을 구입하여 집에 보관했다. 얼마 뒤 베란다 사물함을 열어보는 순간 평생 처음 보는 끔찍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혼화제 중 터널 공사 등에 사용되는 액상급결제 통이 완전히 삭았다. 두 회사 제품을 보관 중이었는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우리 가족이 살아가는 아파트 건축에 사용되는 혼화제는 안전할까? 샘플 통에 가득 채워놓았는데 텅텅 비었다. 샘플통을 들어 보았다. 밑바닥을 삭이고 그 틈으로 모두 사라졌다. 플라스틱 통을 삭이고 증발하는 유독성 화학물질로 만든 혼화제가 새 아파트에서는 과연 안전할까?

 

샘플을 담아둔 플라스틱 통을 완전히 삭게하고 박살난 터널공사용 혼화제인 액상급결제(사진 위)와 통 바닥을 삭인 후 사라져 버린 새아파트 건축용 혼화제 (사진 아래) 최병성

 

일본의 5배인 새집증후군 유발물질

 

20053KBS 환경스폐셜 '콘크리트 생명을 위협하다'에서 콘크리트 건축물의 위험성이 방송되었다. 그동안 우리는 새집증후군의 원인을 가구나 벽지 등에서 찾았다. 그러나 가구나 벽지 등이 없는 콘크리트만으로 만들어진 실험동에서 휘발성유기물질이 일본보다 무려 5배 이상 검출되었다고 방송은 지적했다.

 

레미콘 업계 관계자는 방송 인터뷰에서 '콘크리트 혼화제는 화학물질 기준이 없고, KS규정에 발암물질 기준이 없다'고 시인했다. 현재도 관련 규정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아파트 값이 날로 치솟는 아파트공화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요즘 편의점에서 0.5리터짜리 작은 생수 하나가 900원에 판매된다. 그런데 다양한 화학물질로 만들었다는 '콘크리트 혼화제'라는 제품의 가격은 1리터에 400원에서 1200원에 불과하다. 콘크리트 혼화제를 유독물질인 값싼 화학물질들과 종이 및 석유화학 제조과정에서 발생하는 액상 쓰레기로 만들기 때문이다.

 

아파트 건축 시 콘크리트 혼화제는 시멘트 사용량의 0.5%에서 최대 1% 미만의 비율로 사용된다. 레미콘 공장에 문의한 결과 32평 아파트 건축에 필요한 콘크리트 혼화제 비용은 많아야 20만 원이 되지 않는다.

 

32평 아파트 건축에 들어가는 총 시멘트 비용은 150만 원~200만 원에 불과하다. 아파트 매매가가 최하 3억 원이라 할 때 아파트 건축에 들어간 시멘트 값 150만 원은 아파트 매매 비용 3억 원 중 0.5%에 불과하다.

 

32평 아파트에 시멘트 값 150만 원과 콘크리트 혼화제 20만 원을 합하면 총 170만 원 정도가 된다. 우리는 비싼 아파트 비용을 지불하고도 1%도 되지 않는 쓰레기 시멘트와 발암 물질로 만든 콘크리트 혼화제로 인해 아토피와 새집증후군으로 고통 받고 있다.

 

그동안 수출하는 자동차에는 에틸알코올 워셔액을 제공했지만 국내에서는 메틸알코올 워셔액을 썼다. 국내엔 메틸알코올 규제 기준이 없었고, 자동차 워셔액을 메틸알코올에서 에틸알코올로 만들려면 비용이 비싸 불가능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여론에 밀려 메틸알코올 워셔액 제조를 금지하자 지금은 에틸알코올 워셔액이 메틸알코올 워셔액만큼 저렴해졌다.

 

에틸 알코올 워셔액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는 가격이 비쌌으나 지금은 메틸 알코올은 사라졌고, 에틸 알코올로 제조한 워셔액이 메틸 알코올 워셔액만큼 저렴해졌다. 최병성

 

150만 원의 시멘트 값 중 20~30%30~50만 원만 추가하면 쓰레기를 넣지 않은 건강한 시멘트를 만들 수 있다. 32평에 고작 20만 원에 불과한 발암 물질과 유독 물질로 만들어지는 콘크리트 혼화제 역시 조금만 더 비용을 지불하면 안전한 화학물질로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정부의 관리 부재다. 정부가 관리 기준을 만들면 기업은 따라오게 되어 있다.

최병성(cbs5012) / 오마이뉴스

 

낙동강 경남 칠서지점 조류경보 경계로 상향 발령

낙동강유역환경청은 9일 낙동강 하류인 경남 창녕·함안보 칠서 지점에서 유해남조류 개체수 기준이 2회 연속 1만개를 초과해 조류경보를 경계단계로 상향했다고 밝혔다.

 

환경청은 칠서 지점의 채수 결과 지난달 2959228개에 이어 지난 614298개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환경청은 6월 이후 수온이 26도 이상을 유지하고, 총인 농도가 0.063까지 증가해 남조류가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경남 창녕함안보. 경향신문 자료사진

 

환경청은 경보 단계가 격상됨에 따라 애초 주 1회 하던 조류 감시를 주 2회로 늘릴 예정이다. 또 낙동강 본류 구간의 녹조 지역 순찰을 평일에서 주말까지 확대하고, 오염 물질 수계 유입을 막을 방침이다./김정훈 기자 jhkim@kyunghyang.com

 

이낙연발 투기 광풍과 세곡동 맹꽁이의 운명

그린벨트 해제 논란과 민주당의 딜레마

더불어민주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와 당 대표가 그린벨트를 풀자고 나섰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한국 보수의 정신적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박정희가 그린벨트를 만들었고, 이걸 풀기 시작한 흐름이 생겨난 것은 외환위기(IMF) 이후 DJ 시절이었다. '개발제한구역 제도 개선안'을 통해서 완화시키는 흐름을 만들었다.

 

도시 생태라는 관점에서 진보는 그린벨트 보존, 보수는 그린벨트 해제, 그런 구도는 사람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실제로는 민주당이 그린벨트를 열심히 풀었다.

 

그러니 역사적 흐름으로만 보면 민주당 당대표와 유력 대선 주자가 그린벨트 풀자고 하는 건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금 환경부 장관인 조명래나 LH 공사 사장인 변창흠도 그린벨트나 토건 문제에서는 그렇게 진보적인 입장은 아니다. 시민단체 시절에도 그린벨트 적당히 푸는 것에 찬성했고, 기업도시 때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찬성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들은 '온건 개발주의' 정도지, 환경단체의 입장과는 좀 거리가 있다.

 

이해찬과 이낙연의 딜레마

국가안보전략 세미나 참석한 이낙연 당권 도전을 선언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코로나19 시대 동북아 질서와 국가안보전략" 학술 세미나에 참석, 축사를 위해 발언대로 향하고 있다. 남소연

 

그렇지만 민주당의 또 다른 정신적 뿌리가 노무현 시절에 생겨난다. 그게 행정수도 이전으로부터 시작된 '균형 발전'의 논리다. 세종시 만들고, 수도권에 있던 공기업을 전국으로 흩어서 내보낸 것은 지금 민주당과 집권 세력의 정신적 뿌리다.

 

그냥 서울에 집을 많이 지으면 해결된다는 아파트 공급론자에 대해서 민주당이 반대 입장을 가진 것은, 그들이 탈토건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환경 논리가 강해져서 그런 게 아니라 수도권과 서울을 키우면 지방이 몰락하게 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책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균형 발전은 민주화 만큼이나 강력한 정책 틀이다.

 

이해찬과 이낙연의 딜레마는 뿌리가 깊다. 지금 부동산 문제에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면 정권이 날아갈 것이다. 그렇다고 서울의 그린벨트를 풀면? 수많은 행정 비용을 들여서 공기업 지방 이전은 뭐 하러 했고, 수많은 혁신도시들은 왜 만들었느냐는 딜레마에 빠진다. 그냥 공사하고 싶어서 한, '토건식 공사주의'라는 비판을 만나게 된다. 공공기관과 공기업들은 내려 보내고 서울에 집은 또 짓고, 그런 일을 지금 하자는 것이다.

 

물론 그린벨트 중에서 실효성이 사라진 곳의 일부를 풀자는 말이 아주 허황되지만은 않다. 잘 관리되지 않고 명분만 그린벨트인 곳도 있다. 그러나 이건 논리적 명분일 뿐이다. 장기적으로는 가뜩이나 어려운 지방 도시들의 쇠락을 만들어내게 된다.

 

경제적 효과만 보면, 지금 민주당이 양해를 구해야 하는 것은 박원순 서울시장만이 아니라 충청도를 비롯한 비수도권 거주민들이다. 서울을 축소해서 지역을 살리는 것, 이게 노무현 정신 아니었던가?

 

그린벨트 해제, 그 최소한의 요건

정부가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다주택자와 단기간 투기성 매매자에 대한 세금을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사진은 5일 오전 경기도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모습. 연합뉴스

 

그린벨트를 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먼저 보존의 가치가 현저히 떨어지는 곳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흔히 환경 활동가들이 '개도맹'이라고 부르는 개구리·도롱뇽·맹꽁이, 이런 게 살고 있으면 모든 절차는 일단 정지다. 개발자들의 눈에는 별 거 아니라고 하는 곳에도 이런 개도맹이 종종 출현한다.

 

또 다른 요건은 공익성이다. 20년 이상 장기 거주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임대주택의 비율과 공익성이 중요하다. MB가 북한산에 은평 뉴타운 개발할 때에는 임대주택 사업이라고 예비타당성 조사도 슬쩍 넘어갔다. 전례가 있으니까 절차는 속여서 넘어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게 진짜로 공익적인 것인지 과감하면서도 섬세한 논의가 필요하다.

 

최소한 오세훈의 강남 개발보다는 더 공적이어야 한다. 지금 한참 논의되는 토지임대부 아파트, 즉 건물에 대해서만 소유권을 주고 토지 자체는 공적으로 보유하는 정도는 기본이다. 여기에 원가 공개는 물론이고 전량 후분양 등 가능한 한 모든 공익성 정책 패키지를 다 동원한다는 정도는 해야 그린벨트 해제에 대한 최소한의 명분을 가질 수 있다.

 

이해찬이든 이낙연이든, 박원순에게 그린벨트 풀라고 하기 전에 최소한 국토교통부 장관 해임안 정도는 들고 가는 게 예의다. 사태를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장관은 물론이고 경제 부총리, 청와대 정책실장, 이런 사람들에게 책임도 묻지 않고 그린벨트부터 풀자고 하는 건 노무현의 균형발전 정신에 중대한 결함을 만든다. 분노한 청년들 앞에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이제부터는 잘 하겠습니다'는 태도는 아니라고 본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데 대해서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지금 아파트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김헌동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본부장을 국토부 장관으로 추천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공익성 개발은 그가 제일 내실 있게 추진할 수 있을 것 같다. 조명래, 변창흠, 이런 온건 개발주의자들이 안을 만들 것은 아니라고 본다. 흑묘백묘라고 했다. 자기 편만 가지고는 지금 사태를 해결하지 못 한다.

 

이미 시작된 투기

세곡동·내곡동, 어제부터 투기가 이미 시작되었다. 유력한 대선주자인 이낙연이 하자고 했으니,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분명 다음 정권 때에는 풀릴 것이라는 게 투기꾼들의 예측이다. 몇 사람 자리에서 내려오고 정말 공익적인 방식으로 할 것이라는 분명한 시그널을 시장에 주지 않으면 이낙연발 투기 광풍이 불 것이다. 그 사람들은 세곡동이든 내곡동이든 맹꽁이가 살 만한 조그만 물웅덩이도 다 콘크리트로 몰래 메워버릴 사람들이다.

 

영화 <타짜>에서 "손은 눈보다 빠르다"고 했다. 현실 세계에서 투기는 정책보다 빠르다. 내년 봄에도 서울 그린벨트 안에 '개도맹'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환경영향평가 들어가기 전에 대학살극이 벌어질 것이다. 투기가 원래 그렇다.

우석훈 박사/ 오마이뉴스

 

서울 한강난지캠핑장 12년만에 싹 바뀐다불멍하러 가볼까

서울시, 리모델링 착수연말 완공해 내년 4월 재개장

캠핑면수 축소해 공간 넓혀나무 18천그루 심고 물놀이용 실개천도 조성

한강공원 난지캠핑장 조감도. 서울시 제공

 

서울시민의 가까운 캠핑 공간으로 사랑받아왔지만 낡은 시설과 비좁은 공간으로 이용자들의 불만도 적지 않았던 한강난지캠핑장이 12년 만에 싹 바뀐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는 노후한 한강난지캠핑장 일대 27를 전면 리모델링해 다양한 캠핑문화를 즐길 수 있는 캠핑장으로 탈바꿈시킨다고 9일 밝혔다.

이번 공사를 위해 기존 캠핑장 운영을 지난달 28일 종료했으며, 이달 7일부터 공사에 들어가 올해 안에 완공할 계획이다. 재개장은 내년 4월로 예정돼 있다.

 

대중적이지만 불편도 컸던 난지캠핑장

난지캠핑장은 도심 내 뛰어난 접근성으로 연평균 약 16만명이 찾는 휴식공간이지만, 조성된 지 12년이 지나 시설이 노후하고 사시사철 설치된 텐트의 위생 문제, 텐트 간 좁은 공간과 밀도 등 여러 문제가 제기돼 왔다고 시는 설명했다.

이에 시는 시민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난지캠핑장을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핵심 목표는 쾌적한 공간 조성 다양한 캠핑문화 도입 다채로운 즐길거리 풍부한 녹지 확보다.

 

한강공원 난지캠핑장 리모델링 사업 계획안. 서울시 제공

 

난지캠핑장 어떻게 달라지나캠핑 면수 172124

밀집도를 낮춰 쾌적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캠핑면 수를 기존의 172면에서 124면으로 줄여 한 면당 면적을 38%가량 넓힌다. 캠핑의 묘미인 바비큐를 해 먹을 수 있는 공간은 26개 화덕이 있는 '바비큐존'으로 따로 마련된다. 기존에는 캠핑장 어디서든 고기를 구울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캠핑장 이용객은 본인이 대여한 텐트 앞에서 가능하고 바비큐만 즐기러 오는 방문객들은 바비큐존을 이용해야 한다. 시는 바비큐존이 분리돼 고기 굽는 냄새가 줄고 캠핑장 내 혼잡도도 낮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캠핑문화의 다양화를 위해서는 텐트부터 침대, 식기세트 등 캠핑 도구가 구비돼 있어 일일이 챙겨가지 않아도 되는 '글램핑존'(5)이 신설된다. 또 지정된 자리에서 캠핑을 즐기는 '일반캠핑존'(83)과 잔디밭에 자유롭게 텐트를 설치할 수 있는 '프리캠핑존'(36)으로 구역이 나뉜다.

최근 캠핑족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불멍'(장작불을 보며 멍하니 있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캠프파이어존'도 새롭게 마련된다.

자연성 회복을 위해 총 17987그루의 나무를 심고,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실개천'도 조성한다. 장미향 가득한 '향기정원'과 공연이 가능한 '야외무대'도 생긴다.

화장실과 식수대 등 기본 편의시설도 보수·개선한다.

신용목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장은 "공사로 인해 올 하반기 난지캠핑장을 운영하지 못하게 된 점에 대해 시민 여러분의 깊은 양해를 구한다""도심 속 쾌적한 휴식공간으로 재탄생할 난지캠핑장이 캠핑문화를 선도하는 명소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감사원, ‘월성1호기 폐쇄 잘못결론 몰아 강압 조사

감사원 조사 받고 온 한수원 사외이사들

 

보수야당의 탈원전 정치쟁점화 속

감사원 강압적 조사논란 불거져

안전성·지역수용성도 고려했는데

경제성만 예 아니요식 답변 압박

여기가 어딘지 아냐며 위압적 태도

감사원쪽 결론 내고 감사한적 없다

경북 경주시 양남면에 있는 월성원전 1호기. 경주/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월성 1호기 폐쇄 결정 과정을 감사 중인 감사원이 폐쇄 결정이 부당했다는 결론으로 몰아가기 위해 폐쇄에 찬성한 한수원 사외이사들에게 강압적 조사를 벌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탈원전으로 상징되는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을 보수 야당이 정치 쟁점화 하는 가운데 불거진 일이어서 논란이 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말 감사원에 출석해 조사받은 복수의 한수원 사외이사들은 8<한겨레>월성 1호기 폐쇄 결정은 경제성만이 아니라 안전성, 지역 수용성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것인데도 감사관들이 경제성만을 기준으로 예스 아니면 노식으로 답변하도록 몰아갔다고 밝혔다. 한 사외이사는 감사관들이 처음부터 똑바로 앉으라’ ‘여기가 어딘지 아느냐며 위압적 분위기를 조성했고, 유도성 질문에 반박하면 말이 많으시네’ ‘참 질기네같은 말로 모욕감을 줬다고 했다. 앞서 조사를 받은 또 다른 사외이사는 조사 뒤 작성 기록을 보니 내가 반박한 얘기는 없고 폐쇄 결정이 잘못됐다는 프레임에 맞추려는 인상이 강했다조사받은 이야기를 바깥에서 하면 처벌받을 것이란 말까지 들었다고 했다.

 

당시 조사는 영상 녹화 없이 이뤄졌는데, 감사관들은 피조사자들에게 영상 녹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미리 알리지도 않았다. 감사원 한 관계자는 영상 녹화는 감사 규칙상 의무는 아니지만, 피조사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통상적으로 이뤄져왔다고 말했다.

 

20186월 한수원 이사회는 월성 1호기를 한차례 연장된 수명(202211)보다 앞당겨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감사원의 감사는 이사회 결정을 두고 당시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월성 1호기의 경제성을 과소평가해 폐쇄를 결정했다고 주장하며 발의한 감사 요구안이 지난해 9월 국회를 통과하면서 시작됐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총선 직전인 지난 4월 야당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감사 결과를 확정하려 했으나, 감사위원들의 반대에 부딪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 원장은 그 뒤 철저한 추가 조사를 지시하며 새 감사팀을 투입해 감사를 이어오고 있다. ‘강압적 조사를 받았다고 증언한 일부 사외이사를 포함해, 한수원 이사진 가운데 모두 10명이 출석 조사를 받았다.

 

월성 1호기 폐쇄 결정은 단계적 원전 축소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에서 출발했다. 정부는 201710에너지전환(탈원전) 로드맵을 통해 노후 원전의 단계적 감축 과정에서 발생할 매몰비용을 보전해줄 계획도 밝혔다. 당시 한수원 이사회 회의록에는 원전 1호기 폐쇄 결정이 정부 정책과 경제적 불확실성, 안전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뤄졌음이 드러나 있다. 그런데도 감사원이 탈원전을 흔들려는 야당의 의도대로 경제성 문제에 촛점을 맞춘 고강도 감사를 이어가자 여권은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사외이사들의 주장에 대해 감사원 쪽은 미리 의도한 결론을 내기 위해 감사하는 경우는 없다. 다만 감사 과정에서 긴장이 형성되는 상황에 대해 감사관과 진술인이 서로 인식을 달리할 수 있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해보겠다고 밝혔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죽여도 죽지않은 불로초가 마당과 들에 널려있다

고진하 목사시인의 불편당 일기 3

야생초 지혜: 쇠비름

고진하 목사시인의 원주의 집 불편당 마당

 

불편당은 온통 여름풀로 뒤덮였다. 앞마당과 뒤란, 장독대 뒤편으로 무성히 자란 잡초 일색이다. 누가 와서 보면 호랑이가 새끼 치겠다고 하겠구나. 하지만 우리는 여름풀을 아껴 베어내지 못하고 있다. 여름풀은 우리의 식량이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이 낡은 한옥으로 솔가했지만 처음부터 잡초를 식재료로 사용했던 건 아니다. 귀촌에 대한 갈망이 커 고집을 부려 이사할 때만 해도 가족들은 잡초로 무성한 마당을 보며 한숨을 내쉬곤 했다. 당연히 가족들에게 잡초는 뽑아버려야 할 원수였다. 봄부터 가을까지 잡초와 전쟁을 치렀다.

 

그런 어느 날 마당에서 잡초를 뽑던 나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는 잡초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홀대받는 얘들에게도 조물주의 뜻이 있지 않겠는가.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식물의 가갸거겨……를 배우기 위해 두툼한 식물도감을 구해 읽기 시작했다. 집 주위에 자라는 대부분의 잡초들이 식용 가능할 뿐 아니라 약성도 뛰어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잡초로 해놓은 요리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마트에서 파는 채소에 평생 길들여진 터라 낯선 풀로 만든 음식을 먹는 일은 두려웠다.

 

하지만 설마 죽기야 하겠어? 가족들은 서로 용기를 불어넣으며 토끼풀로 샐러드를, 개망초로 된장무침을, 괭이밥으로 새콤달콤한 물김치를 담가 먹었다. 그렇게 수십 종류의 풀들로 요리해 먹기를 일 년여, 야생의 풀들이 향도 그윽하고 건강에도 좋다는 걸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가족은 잡초 없는 식탁을 생각할 수 없는 잡초 마니아가 되었던 것이다.

 

사실 우리 조상들은 오래 전부터 야생의 풀들을 식용 혹은 약용으로 활용해왔다. 내가 사는 마을의 나이 든 농부들도 작물과 함께 자라는 밭의 잡초들이 먹을 수 있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배추나 무, 고추, 마늘, 들깨 등의 작물을 키우기 위해 잡초들을 다 뽑아버리거나 제조제를 살포해 죽인다. 며칠 전에도 막 동트는 새벽에 마을길을 한 바퀴 휘돌아오는데, 혼자 사는 충주댁이 고추밭 고랑에 돋아난 쇠비름을 뽑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한 후 나는 충주댁이 뽑아놓은 싱싱하게 자란 쇠비름 한 포기를 손에 들고 물었다.

아주머니, 이거 요리 잘 해놓으면 먹을 만한데요?”

충주댁이 나를 보고 벙긋 웃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몇 번 삶아 먹어보려 했는데 비려서 못 먹겠데유.”

먹어보려 했다는 대꾸가 고마워 대화를 이어갔다. 쇠비름 전도사인 나는 쇠비름의 영양가와 뛰어난 약성에 대해 한바탕 썰을 풀었다.

 

문득 며칠 전에 읽은 책의 강렬한 귀띰도 살풋 떠올랐다. <사피엔스>를 쓴 이스라엘 사상가 유발 하라리는 농업 혁명 얘기를 하면서, 수렵채집 시대에 살던 고대인들이 야생에서 채취해 먹던 식물이 농업 혁명 이후 사람 손을 타고 자란 농산물보다 더 영양가가 풍부하다는 것. 그러니까 밭에 기른 농작물보다 충주댁이 뽑아서 버리는 잡초들이 더 좋은 영양과 약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 예컨대 조그만 야생사과 한 알이 온갖 농약과 화학비료를 주어 키운 큼지막한 사과 열 알보다 영양가가 훨씬 높다는 것, 한참 동안 이런저런 썰을 풀었지만 충주댁에게 내 말은 쇠귀에 경 읽기일 뿐이었을까.

그렇게 좋아하시믄 가져가 잡수세유.”

고마워요, 아주머니.”

새벽부터 이게 웬 횡재냐 싶어 싱싱한 쇠비름을 두 팔 가득 안고 돌아왔다.

시골 농부들은 쇠비름을 아주 싫어한다. 뿌리까지 뽑아 밭둑에 내던져도 비만 조금 내리면 다시 살아나 뿌리를 내리니까. 쨍쨍한 폭염에도 타죽지 않고, 사납게 제초제를 뿌려대도 잘 죽지 않는다. 바랭이, 달개비와 함께 농부들이 가장 싫어하는 풀. 쇠비름은 유난히 여름철의 뜨거운 햇볕을 좋아하는 식물이다. 햇볕이 강할수록 오히려 더 생기가 나며, 잎과 줄기에 수분을 많이 저장하고 있어서 아무리 가물어도 말라죽지 않는다. 쇠비름의 이런 성질을 잘 보여주는 전설도 있다.

 

옛날, 중국에서는 하늘에 태양이 10개가 나타나서 모든 강과 시냇물이 마르고, 강한 햇볕에 땅이 거북등처럼 갈라졌으며, 곡식과 나무와 풀들이 모두 누렇게 말라 죽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하늘을 원망하면서 산속에 있는 동굴에 숨어 살았다. 이 때 후예라고 하는 몹시 힘이 센 장수가 나타났다. 그는 백성들을 강한 뙤약볕으로부터 구해 내기 위해 활 쏘는 법을 익혔다. 마침내 활 쏘는 법을 완전히 터득한 그는 태양을 향해 활을 쏘아 하나씩 떨어뜨렸다. 아홉 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리자 마지막 하나 남은 태양은 두려워서 급히 쇠비름의 줄기와 잎 뒤에 내려와 숨었다. 이렇게 해서 태양은 후예의 화살을 피할 수 있었다.

 

그 후 태양은 쇠비름에게 은혜를 갚기 위하여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도 말라죽지 않게 하였다. 그 덕분에 한여름 강한 햇볕에 다른 식물들이 모두 축 늘어져 있지만 쇠비름은 저 혼자서 싱싱하게 살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 전설은 쇠비름의 강한 생명력을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잘 풀어내고 있는데, 나는 지상의 어떤 풀보다 강한 생명력을 지닌 쇠비름을, ‘식물계의 변강쇠라 부른다. 식물의 생태를 인간 습속에 빗대어 말하는 것이 좀 민망하지만, 쇠비름이 지닌 강한 힘에 매혹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권력, 재력 등 인간의 힘을 숭상하지 않지만 식물의 강한 힘은 숭상하고 싶다. 그 강한 힘은 자기 외의 남을 무찌르는 힘이 아니라 남을 살리는 힘이 아니던가.

 

옛날 우리 조상들도 쇠비름의 이런 생태적 특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쇠비름을 장명채(長命菜)라 불렀다. 오래 먹으면 장수했고. 늙어도 머리칼이 희어지지 않았으니까. 쇠비름을 오행초(五行草)라고도 부르는데 제 몸에 다섯 가지 색깔, 즉 음양오행설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 기운을 다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잎은 푸르고, 줄기는 붉으며, 꽃은 노랗고, 뿌리는 희고, 씨앗은 까맣다. 이 다섯 가지 색깔은 우리 오장에 좋다고 한다. 잎의 푸른색은 간장에 좋고, 줄기의 붉은색은 심장에 좋고, 꽃의 노란색은 위장에 좋으며, 뿌리의 흰색은 폐장에 좋고, 씨앗의 검은색은 신장에 좋다니, 하늘이 인간에게 선사한 참 특별한 보물이 아닐 수 없다.

 

쇠비름은 추운 극지방을 제외하고 지구에 널리 퍼져 있는 세계 8대 식물이다. 언젠가 그리스 여행을 다녀온 친구에게 들었다. 식물에 관심이 많은 친구였다. <희랍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고향인 그리스의 크레타 섬에도 쇠비름이 많이 자라더라고. 그래서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크레타 섬 사람들은 심장병이나 관상동맥질환으로 죽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그 연유는 쇠비름으로 만든 샐러드를 자주 먹기 때문이라고.

원주 자신의 집 불편당 앞에 선 필자 고진하 목사 시인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쇠비름에는 사람의 몸에 가장 유익한 기름 성분이 많이 들어 있었다. 쇠비름의 잎이나 줄기가 매끄럽고 윤이 반짝반짝 나는 것은 그 속에 들어 있는 기름 성분 때문인데, 이 성분이 곧 오메가-3. 오메가-3라고 하는 지방산은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콜레스테롤이나 중성 지방질 같은 몸 안에 있는 노폐물을 몸 밖으로 내보내며, 혈압을 낮추어 주는 작용을 한다고 한다. 지상에 자라는 식물 가운데서 쇠비름만큼 오메가-3가 많이 들어 있는 식물이 없다.

 

쇠비름은 또 다른 중요한 약성을 지니고 있는데, 갖가지 악창(惡瘡)과 종기를 치료하는 데 놀랄 만한 효험이 있는 약초다. 쇠비름을 솥에 넣고 오래 달여 고약처럼 만들어 옴, 습진, 종기 등에 바르면 신기하다고 할 만큼 잘 낫는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내 어릴 적에 약국에서도 팔던 이명래 고약이라고 있었는데, 그 고약의 원료가 바로 쇠비름이었다고.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쇠비름으로 술을 담가 여름철에 벌레에 물렸을 때 바르는데, 매우 효험이 좋다.

 

쇠비름은 이처럼 놀라운 약성을 지니고 있지만, 문제는 그걸 어떻게 먹느냐 하는 것이다. 쇠비름 특유의 미끈거림과 역한 냄새 때문에 먹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 미끈거림과 역한 냄새를 잡을 요리법이 필요하다. 우리 집에서는 몇 가지 쇠비름 요리를 개발해 먹고 있다. 여름철에 시원한 국물을 내어 먹을 수 있는 쇠비름 냉채’, 황설탕으로 담근 쇠비름 효소’, 밀가루를 버무려 만든 쇠비름 전’, 간장에 넣어 만든 쇠비름 장아찌’, 끓는 물에 삶아서 말린 쇠비름 묵나물. 특히 묵나물은 여름철에 만들어 두었다가 가을이나 겨울철에 갖가지 양념을 넣어 요리하면 고사리보다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쇠비름은 인류가 가장 먼저 먹기 시작한 식물 가운데 하나인지도 모른다. 16천 년 전 그리스의 한 구석기 시대의 동굴에서 쇠비름 씨가 발견되었다고 하니까 말이다. 쇠비름은 너무 흔한 풀이라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이런 흔한 풀이 가장 좋은 약초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불로초는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죽여 없애려고 애를 써도 결코 죽지 않는 쇠비름이야말로 진정한 불로초가 아닐까.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어찌하여 이 불로초를 뽑아 없애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일까. 뽑아 없애려고 애면글면하지 말고 이 야생의 보물을 채취해 먹고, 또 씨앗을 받아 공터나 밭에 열심히 한 번 심어 가꿔보자.

고진하 목사시인/ 한겨레

 

 

땅의 옹호 - 당신을 있게 한 농업을 당신들이 자꾸 멸시한다

공생공락의 삶을 위하여

세계의 가장 원시적인 인간들은 소유하고 있는 것이 거의 없지만, 결코 가난하지 않다. 가난은 적은 양의 재화도, 단순한 수단과 목적 사이의 관계도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사람 사이의 관계이다. 가난은 문명의 산물이다.

마셜 살린즈 석기시대의 경제학

 

나는 그다지 여행을 즐기는 체질이 아니다. 이것은 타고난 성격으로 인한 것인지, 혹은 오랫동안 건강문제를 가진 채 살아오면서 굳어진 습관에 기인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하여튼 무슨 나들이를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반갑기보다도 먼저 부담스럽다는 느낌이 앞서는 것을 보면, 이건 확실히 뿌리깊이 체질화된 반응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도 포함해서 많은 한국인들이 차례차례 자동차 운전을 배우고, 자유로이 이곳저곳을 다니며 새롭고 낯선 풍물에 접하는 경험을 통해서, 말하자면 풍요로운삶을 구가하기 시작하던 무렵과 그 이후에도, 내가 자동차를 아예 거들떠보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따져보면, 내게 남달리 예민한 환경의식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자동차를 타고 여기저기 다녀야 할 필요도, 그런 생활스타일을 즐기고 싶은 심리적인 욕구도 내게는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동차 운전을 배우러 다니고 어쩌고 한다는 게 나로서는 지극히 성가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나는 내가 정말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나 자신의 정신건강을 지키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자기보호 본능이 작용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때가 종종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나도 사회적인 삶이 있기 때문에 때때로 자동차를 타고 낯선 도시나 농촌을 방문해야 할 경우가 있고, 그때마다 반드시 마주치는 파괴와 오염의 풍경 앞에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상하기 때문이다.

 

일단 길을 떠나면, 아무리 단단히 마음을 다잡아도 허사다. 수십년이 넘게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되어온 개발이라는 이름의 이 광란의 잔치 어머니 대지(大地)의 젖가슴을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짓밟고 파헤치는 패륜행위가 걷잡을 수 없이 자행되고 있는 현장은 내가 어디를 향해 가든 한반도 남쪽 구석구석에 널려 있는 것이다.

 

둘러보면, 이 땅에는 손상되지 않은 산과 구릉, 오염되지 않은 강과 호수가 이제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기후풍토에 맞지도 않는 골프장이니 스키장이니 하는 것들을 위해서 오로지 돈이 된다는 이유 때문에 아까운 삼림이 없어지고, 산과 계곡이 기형화되고 있는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볼 때마다 사람의 마음을 갈갈이 찢어놓는다. 소중한 농토가 고속철도와 도로와 아파트와 공장부지를 위하여 멋대로 잘려 콘크리트가 무지하게 퍼부어졌거나 퍼부어지고 있는 것도 참을 수 없는 광경이다. 그럴 듯한 이름과 괴상한 몰골로 주변의 경관을 일그러뜨리고 있는 무수한 러브호텔들과 '가든'. 그런가 하면, 여름날 시골길을 달리는 자동차의 창을 열어놓을 수가 없을 지경으로 풍겨오는 농약냄새, 썰렁한 농촌마을의 분위기, 게다가, 곳곳에서 마주치는 폐교 조처된 시골학교의 황량한 모습들 .

 

그 가운데서도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지금 남한 천지에서 도로건설과 도로확장이라는 명분으로 벌어지고 있는 엄청난 토지훼손과 환경파괴 행위이다. 간교하게도, 대대적인 파괴 행위가 벌어지고 있는 공사 현장일수록 "우리는 환경친화적 도로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따위의 터무니없는 슬로건이 유행처럼 팻말에 크게 적혀 있다. '환경'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다니 고마워해야 할 것인가. 주의해서 살펴보면, 지금 진행되고 있는 대부분의 도로공사는 실제로 불필요한 공사일 뿐만 아니라 심히 자원낭비적인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미 한반도 남쪽은 자동차로 접근 불가능한 오지(奧地)라고 할 만한 곳은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게 되었을 만큼 도로망은 조밀하게 건설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까운 땅을 대규모로 망가뜨리는 도로공사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공사를 위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현실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자동차 관련 산업과 건설관계 이해당사자들의 이익을 위하여 중앙 내지는 지방정부들이 은밀히 협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증거로서밖에 이러한 공사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하기는 도로공사뿐이겠는가. 예를 들어, 무수한 생명의 서식지이자 건강한 생태계의 유지에 관건적인 구실을 하는 거대한 갯벌을 가차없이 죽이는 새만금 방조제 공사는 어떤가. 북한산 관통도로 공사는? 무지와 만용에 뿌리를 둔 이러한 극단적인 야만주의는 언제, 어떻게 중지될 수 있을까? 아마도 이 역동적인경제가 이 모양대로 간다면 이러한 기세는 꺾이지 않을 것이 틀림없고, 그 결과 이 산천은 죄다 콘크리트로 뒤덮여버리고 말 것이다. 그래서, 비통한 심정으로 나는 종종 마음속으로 기도를 한다. 하루빨리 이 경제가 망하게 하소서.

 

땅을 망가뜨리고,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의 근본토대를 파괴하는 이 범죄적인 행위가 버젓이 경제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이토록 기막힌 사태는, 말할 것도 없이, 자본과 국가의 책임이지만,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자본과 국가체제에 반대하고, 심지어 환경보호 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있는 활동가들까지도 포함한 이 나라의 수많은 지식인들의 책임이기도 하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과연 지금 이 나라의 지식인 사회에서 단순한 환경보호 차원을 넘어서, 인간생존의 자연적 토대가 급속히 파괴, 오염되어 가는 사태에 직면하여, 이 문제를 무엇보다도 농경문화의 쇠퇴라는 비극적 재난에 결부하여 이해하려는 지적, 도덕적 노력을 얼마나 볼 수 있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오늘날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적 입장에 관계없이, 거의 모든 지식인들은 근대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농경의 의미를 단순히 산업의 일부로 파악하는 데 길들여져 있고, 그 결과 언론, 교육, 문화, 과학, 종교, 의학, 예술을 포함한 거의 모든 지적, 도덕적 체계는 사실상 우리의 삶을 근원적으로 파괴하는 데 유효한 수단으로 동원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지식사회에 만연한 농업 및 농촌사회에 대한 뿌리깊은 몰이해와 무관심을 설명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지식인들이 환경문제에 대해서, 혹은 근대주의를 넘어서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른바 탈근대론이라는 것도 근본적으로 근대주의라는 토대를 더욱더 강화하는 기능 이외에 좀더 근원적인 도전으로 나아갈 수 있는 내재적인 힘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지고 보면, 탈근대론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근대주의라는 토양에서 태어나고 그것을 자양분으로 하여 자랄 수밖에 없는 논리라고도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근대주의와 함께 명백히 도시 중심의 감수성과 세계관을 뿌리깊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적어도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탈근대론이, 지금 갈수록 생태적, 사회적 위기가 심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오히려 퇴조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그것은 관념적인 지식인의 담론 세계를 넘어서 참으로 현실적인 힘이 되기에는 뿌리가 허약한 논리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환경문제에 대해서 지식인들이 보여주는 관심도 뿌리가 허약하기는 마찬가지다. 가령, 지금 환경운동에 헌신하고 있다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왜 우리가 땅을 지키고, 농민과 농촌공동체를 되살리는 것이 긴급하고 중대한 문제인지에 대하여 명확한 인식을 보여주는 사람들은 실제로 예외적일 만큼 드물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사실이다. 예를 들어, 지난 봄 대구 근교의 어느 대학에서 열린 대규모 환경관계 토론모임에서, 하루종일 수십명이 발표를 하고 토론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오늘날 농민과 농촌이 멸종될 위기에 처한 현실에 대해서 언급하는 지식인이나 환경운동가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 모임의 결과로 수백쪽이 넘는 두툼한 자료집이 나왔지만, 그 속에서 농촌문제를 심각하게 거론하고 있는 글은 단 한편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면에서는 꽤 비판적인 의식의 개진을 보여주곤 하는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 그룹에서도 마찬가지다. 몇년 전 <창작과 비평>에 기고한 한 사회과학 전공자는 앞으로 농업은 농민이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었는데, 그는 그것을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고 있음이 분명한 어조를 숨기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까, 일찍이 맑스가 농촌 사람들에 언급하여 촌뜨기들의 어리석음(rural idiocy)’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던 그 맥락에 따라서 농민은 역사적으로 시대착오적인 존재라는 관념이 진보적경향의 지식인들의 마음속에 뿌리깊이 박혀있는지 모른다.

 

일반적으로, 농민과 농촌문제 혹은 좀더 근원적으로 인간생존의 토대에 대하여 지식인들의 편견 혹은 무관심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가를 암시하는 조그마한 에피소드가 있다. 몇해 전 나는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주최한 한 문학 심포지엄에 발제자의 하나로 초대받아 간단한 발표를 하고 토론자들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심포지엄은 '문학과 환경'이라는 큰 주제 밑에서, 여러 사람이 발제와 토론에 참가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중 한 부분의 발제용으로왜 땅을 지켜야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내가 미리 쓴 간단한 글도 당일 행사장에서 배포된 자료집에 실려 있었다. 그런데, 정작 자료집을 펴보니 그 글의 제목은 왜 이 땅을 지켜야 하는가라고 고쳐져 있었다. 심포지엄을 주관하고 있던 작가회의의 실무진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고쳤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실제로 두 제목 사이에는 미묘하나마 의미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제목이 고쳐진 것이다. 아마도 그때 작가회의 담당자의 감수성으로는 좀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정치적 의미를 내포한 듯한 '이 땅'이 아니라 굳이 그냥 이라고 할 때의 막연하고 싱거운 어감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오늘날 인류사회가 직면한 근본적인 위기가 본질적으로 국방의 개념이 아니라 문명의 개념으로서 땅을 대하는 방식에 직결되어 있는 문제라는 것에 대해서 현재 이 사회의 많은 다른 지식인들과 다름없는 이해력의 결핍을 드러냈다고 말해도 좋을지 모른다.

 

이 조그마한 에피소드가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예외적인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이야기는 아마 오늘날 비교적 사회의식이 예민하다고 알려진 대부분의 작가와 시인, 문필가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벌써 오래된 일이지만, 한때 문단에서 크게 주목을 받고 있던 '노동자 시인' 박노해의 작품경향에 관련해서 어떤 평론가가 썼던 용어를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는 그 무렵까지의 박노해의 문학적 성과를 논하는 평문의 한 대목에서 이 시인의 작품에 드러나는 몇가지 약점 내지는 한계를 지적하면서, 그 한계는 부분적으로 '농경적 상상력'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이미 농경시대는 지나갔고, 농경은 이제 기껏해야 주변적 문제에 지나지 않게 된 시대에 농경사회에 뿌리를 둔 상상력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발언이었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흥미롭게도, 최근에 나는 이와 흡사한 발언에 또다시 마주치는 경험을 하였다. 최근에 한겨레신문의 한 짧은 시사 논평에서 어느 문학평론가는 신동엽의 유명한 시 껍데기는 가라의 일부를 인용하면서 "때 지난 농경적 상상력"에도 불구하고, 그 시가 지금 상황에서 감동을 준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내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농적(農的) 세계를 본질적으로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보는 관점이 당연한 것으로 얘기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는 신동엽의 시가 '농경적 상상력' 때문이 아니라, '농경적 상상력'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가치가 있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농사 또는 농촌적 가치에 대한 이러한 지식인들의 편견은, 말할 것도 없이, 세계적인 현상이다. 모더니즘은 단순한 문학적 경향이나 예술적 유파라기보다 현대세계에서 교육받은 지식인들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기본적 교양인지 모른다. 결국 같은 이야기지만,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관계없이, 그동안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근대적 제도와 관습의 확립을 통해서 비로소 문명화된 삶이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나마 가능해졌다는 것을 믿도록 교육받아왔다. 실제로, 근대적 문화와 예술이 성립하고 발전하는 데 필요한 여러 전제조건은 본질적으로 산업사회와 도시의 발달이라는 보다 큰 테두리 속에서 가능해진 것들이기도 했다. 따라서, 근대 자본주의와 산업문명이 진전됨에 따라 가차없이 붕괴, 해체될 수밖에 없었던 농민과 농촌의 의미가 주변적인 것으로 비쳐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초현대식 교통수단이 발달해 있다 하더라도 인간의 이동수단으로서 가장 초보적이고 가장 근본적인 수단, 즉 자신의 두 다리로 걸어다닌다고 하는 보행의 중요성이 조금도 줄어들 수 없듯이, 아무리 컴퓨터와 생명공학의 시대라 하더라도 인간사회에서 농경의 중요성은 결코 줄어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농사나 농경은, 구석기 시대의 상황을 제외하고, 인간이 이 지상에서 비폭력적인 평화의 삶을 지속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형태의 삶의 방식으로서 오랜 세월을 통해서 충분히 검증되어온 방식이다. 흔히 근대주의 프로젝트에 마음을 빼앗긴 지식인들은 이러한 기초적인 사실을 망각한 채, 역사를 직선적인 진보의 흐름으로 파악하는 데 순응해왔고, 그 결과 쉽사리 농민과 농사의 세계가 갖는 중심적인 가치에 둔감하거나 때로는 노골적으로 폄하하는 자세를 취하게 되는 것인지 모른다. 아마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문학비평가 중의 한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F. R. 리비스는 가령 T. S. 엘리어트와 같은 동시대의 뛰어난 모더니스트 시인에게서 옛 영국의 농민들을 은근히 내려다보는 듯한 어조가 있음을 주목하고, 그러한 태도가 얼마나 근거 없는 편견의 소산인가를 신랄하게 지적한 바 있다. 리비스에 의하면, 엘리어트가 은근한 경멸감을 품고 대하는 그 촌뜨기들이야말로 바로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문학이 태어날 수 있는 언어적 토양을 근원적으로 일구어온 사람들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아무리 땅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삶에 익숙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진정한 문화와 예술과 철학의 근본 전제는 언제나 농경문화였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전통사회에서 대부분의 예술가들과 철학자들에게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자명한 사실이었다. 실제로, 역사의 어느 시기에서나 조금이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문학이나 예술의 창조는 반드시 흙의 문화에 뿌리를 둔 감수성과 세계관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우리가 조금만 주의해서 보면, 우리가 쓰는 일상어뿐만 아니라 수많은 시적 은유와 상징과 수사들이 거의 대부분 농경사회에서 성장해온 말들이라는 것은 누구든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도 여전히 인간다운 삶에 필수적인 것으로서 옹호하거나 옹호하려고 하는 가치들은 본질적으로 거의 예외 없이 농경문화라는 근본 토양에 뿌리박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생명에 대한 본능적인 사랑, 평등한 관계와 민주주의에 대한 강렬한 욕구, 노동의 존엄성과 인권에 대한 의식, 개인적 자율성, 자치와 자립, 비폭력주의, 협동과 연대, 상호부조와 보살핌 등등, 아무리 인간정신이 경멸을 당하는 짐승스러운 상황에서도 우리가 끝끝내 옹호하고자 하는 이러한 윤리적 덕목들은, 따지고 보면, 신석기 시대가 시작된 이후 형성되고 확립되어온 마을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싹트고 강화되어온 가치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의 문명비평가 루이스 멈포드의 발언은 특히 경청할 만하다. 그는 일찍이 촌락공동체야말로 인류사회에서 가장 영속적인 가치들을 배태한 원천이었음을 되풀이하여 강조하였던 것이다. <기계의 신화> 등 방대한 저술을 통해서 인류사에 있어서 기술적 진보가 갖는 의미를, 생태학적 관점에 근거하여, 집요하게, 또 깊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성찰하는 데 생애의 대부분을 바쳤던 멈포드가 만년에 이르러, 인간사회가 건전하게 돌아가려면 전체 인구의 적어도 80%가 농경 혹은 농경에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있어야 한다는 흥미로운 견해를 토로한 것도 마을문화의 핵심적인 의의에 대한 그 자신의 이러한 확신 때문이었다.

 

한 사회의 장기적인 생존과 번영이라는 문제에 관련하여, 농민 내지 농촌공동체가 갖는 중심적인 중요성에 관한 성찰은, 실은 문명이 시작된 이래, 비록 소수이지만 좀더 근원적이고 철저한 사고의 궤적을 보여주는 사상가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이루어져왔다. 그러한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주류 문화의 두터운 장벽 때문에 이들의 발언에 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이러한 예외적인 정신들의 존재로 해서 우리는 오늘의 문명이 어디에서 근본적으로 뒤틀려버렸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그리스 문화를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는 빅터 데이비스 핸슨 교수도 그러한 사람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본래 캘리포니아의 한 골짜기에서 수세대에 걸쳐 건포도 농사를 해온 농가의 태생으로, 그 자신 좀더 젊었을 때는 직접 농사일을 하면서 살았고, 지금도 그 농장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오늘날 대학교수로 대변되는 이른바 현대적인 학자들의 세계가 도덕적, 정신적으로 얼마나 공허하고 불모적(不毛的)인 세계인가를 묘사하는 어떤 글에서, 자신의 한 동료교수가 건포도 나무라는 게 있는지 진지한 어조로 물어보던 일이 있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러한 근본적인 무지 혹은 상식의 결핍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뿌리 없는 지식과 추상적인 관념의 세계는 계속하여 번영을 누리고 있는 반면에 농민계층과 농촌사회가 사실상 소멸 직전에 처한 최근의 상황에 대하여 깊이 유감스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고전학 교수로서 데이비스 핸슨의 아마도 가장 중요한 업적은 고전 그리스 문화에 대한 그의 독창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서구세계에서 늘 모범적인 정치형태로서 기념되어온 희랍의 민주주의와 그 터전인 폴리스의 존재는 폴리스의 시민들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고, 그 시민들은 근본적으로 독립적 자영 농민들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에 의하면, 대략 기원전 8세기에서 4세기까지 그리스의 민주주의가 건재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원천은 주로 이 시기의 희랍의 농민시민들의 활력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전 희랍의 문화적 번성기의 철학자, 또는 소포클레스를 위시한 비극작가들에게 있어서 농사 혹은 농민의 존재가 갖는 핵심적인 중요성은 자명한것이었다. 희랍의 민주주의에서 시작된 서구의 핵심적인 정치적 이념, 예를 들어, 개인적 자율성과 평등, 자립과 자치, 사유재산 개념 등은 따져보면 자신의 손으로 땅을 일구면서 자립적인 삶을 영위하고, 그런 삶에 대하여 깊이 자부심을 느끼고 있던 희랍의 농민시민들의 세계관과 가치들에서 유래된 것이었음을 핸슨 교수는 그의 저서 <또다른 희랍인들 가족농과 서구문명의 농경적 뿌리> 속에서 풍부한 인용과 자료를 동원하여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그리스의 '폴리스'의 기원과 쇠퇴는 농업에 달려있었다. 그리스 도시국가 네트워크를 만들어낸 물질적 번영은 소규모 집약농경, 식량을 생산하고 토지를 소유하는 새로운 방식, 그리고 그에 따른 새로운 종류의 인간의 출현에 말미암은 것이었다. 이 새로운 인간에게 농사일은 단순히 생존이나 이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실용주의와 절제와 균형의 추구가 근원적인 가치로 여겨지는 도덕적 수월성(秀越性)이 단련되는 도가니였다.

 

하기는, 독립적인 자작농의 존재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가 가능하기 위한 불가결한 기초라는 생각은 미국 민주주의의 초석을 닦은 것으로 알려진 제퍼슨에 의해서, 그리고 제퍼슨식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여러 정치사상가, 지식인들에 의해서 계속적으로 토로되어왔다. 실제로, 미국의 자본주의와 산업화가 엄청난 규모로 발달함에 따라서 사실상 미국사회는 갈수록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와는 거리가 먼 사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로 오늘날 세계평화와 인류의 생태적 미래에 가장 큰 위협적인 세력이 된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일이지만 이처럼 미국이 그 자신의 원래의 이념을 배반하게 되는 과정은 무엇보다도 자영 농민들의 존재가 미국사회에서 위축, 소멸되어온 과정에 정확히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제퍼슨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기초로서 옹호했던 자영농민들이 사라지고, 그 대신 소수의 자본가, 기술관료 및 전문가들에게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됨으로써 미국사회는 형식적인 민주주의적 제도와 절차에도 불구하고 풀뿌리 민중에 의한 통치라는 것은 공허한 수사일 뿐 사실상 특권적 지배세력에 의한 독과점적 통치체제로 굳어져온 것이다.

 

자급자족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단순소박한 순환형 생활방식과 상호부조와 협동을 통한 공생공락(共生共樂)의 삶을 실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사회적으로 건전하고,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세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생태적 위기에 대하여 골똘히 고민을 해본 사람이라면 거의 예외없이 공감하는 견해이다. 그러니까, 미국에 있어서 농민계층이 되살아나 새로이 활력있는 사회세력이 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미국 민주주의의 장래를 위해서나 인류사회 전체의 운명을 위해서나 관건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농업 및 농민문제는 결코 역사에서 사라져 가는 주변적 계층에 관한 문제도 아니고, 산업문명의 압력 밑에서 소멸될 운명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적 관심이라는 수준에서 처리될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인류사회가 전지구 규모로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생태적 위기에 관련하여 인간과 생태계의 사활이 걸린 중대한 문제이다. 농민이 사라지면 땅을 보호할 사람도 없어지고, 민주주의의 가능성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농지에 광범위하게 적용된 화학 및 기계농법은 그동안 녹색혁명이라는 이름 밑에서 기록적인 식량증산에 이바지해온 것으로 평가받고, 많은 농업전문가들에 의해서 지구상의 폭발적인 인구증가에 대비한 가장 효과적인 농법이라고 찬양되어왔다. 그러나, 실제로 세계의 굶주림의 문제는 단순히 수확량의 문제가 아니라 분배의 문제, 즉 사회적 평등과 부의 비집중화를 통해서만 실제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는 많은 증거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녹색혁명이후 세계적인 다국적기업들의 주도 밑에서 세계 전역에 걸쳐 수십년간 시행되어온 화학비료와 각종 농약 및 농기계들에 의한 거의 전적으로 석유에 의존하는 집약적 산업영농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의 근본토대인 토양이 급속하게 고갈, 오염되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는 것이야말로 아마도 가장 비극적인 재난일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지금까지 미국에서 전체 농경지 토양의 4분의 1이 사라졌다는 통계만 보더라도 현대적 산업영농이라는 방식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인가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실은, 미국뿐만 아니다. 세계 전역에 걸쳐 지금 농경지는 대규모로 도시화, 산업화를 위해 급속히 전용되고, 곳곳에서 화학물질과 기계의 남용으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생명체의 생육과 서식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인 땅과 흙이 이처럼 급속히 고갈, 축소되고, 또 질적으로 열화(劣化)되고 있는 사태보다도 더 불길한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러니까, 재생불가능한 석유에 철저히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토양의 상실과 오염이라는 문제까지 고려한다면, 대기업과 농업관련 전문가들의 이해관계에 봉사할 뿐인 산업적 영농은 하루빨리 폐기해야 할 방법이지 식량증산 운운하며 더이상 장려할 방법이 결코 아닌 것이다.

 

그러나,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지만, 사태는 심히 비관적이다. 농사에 관련해서도 지금 이 세계에는 허위의 논리가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을 뿐이다. 아직도 농업전문가들 중에는 유기농법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그들과 의견을 같이하는 자본과 국가의 논리는 계속하여 영농규모를 확대하여 농업생산의 효율화를 보다 철저히 함으로써 농업이 경쟁력있는 산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농업문제는 간단히 농가소득의 문제로 환원되고, 농가소득의 증대는 농가를 줄이는 방법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다는 합리적인 논리가 활개를 치는 것이다. 결국, 농업전문가들이나 정부나 기업의 사고방식 가운데는 독립적인 자영 농민 소농, 가족농 을 보호하고 되살려내야 한다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들어있지 않음이 확실하다. 그러니까, 그들의 눈에는 기업농을 보다 효과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농지의 대형화와 효율성의 제고가 중요할 뿐이지, 민주주의의 초석이면서 생태적으로 건전한 삶의 토대인 농민과 농촌은 성가신 존재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결과 그렇지 않아도 지난 수십년간 급속히 진행된 이농현상 끝에 이제 고령층 농민들로만 겨우 잔존하고 있는 농촌공동체는 자본과 국가와 전문가들의 협동적인 공작에 의해서, 그리고 많은 지식인들과 도시인들의 무관심 속에서, 바야흐로 괴멸 직전에 이르렀다.

 

아마도 지금은 문명이 시작된 이래 인간으로서 가장 근원적이고 심각한 질문을 해야 할 상황인지도 모른다. , 농민과 마을이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에게 계속해서 인간적으로 의미있는 삶이 가능할 것인가. 아마도 당분간은 농민과 마을이 없어도 산업으로서의 농업은 지속될 수 있을지 모른다. 기업농이나 영농회사들에 의해서 보다 본격적으로 과학적 영농이 이루어지고, 소수나마 여전히 농촌에 잔류해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농기업에 예속된 농업노동자들로서 연명하거나 도시빈민으로 전락하는 비참한 운명을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이미 세계적인 다국적기업들은 21세기의 가장 유망한 산업으로서 식품, 의약 부문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하였다. 몬산토를 비롯한 거대 생명공학 기업들은 지금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세계 전역으로 퍼뜨림으로써, 인류사회가 식량문제에 관한 한 자신들에게 거의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데 부심하고 있다. 더욱이, 지금 경제의 세계화라는 이름 밑에서 막무가내로 진행되고 있는 무역자유화와,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는 기후, 풍토, 지리, 역사, 문화적 조건에 따른 지역적 차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오로지 시장경쟁력이라는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생산방식과 소비주의를 세계 전역에 획일적으로 강제함으로써 다국적기업들의 세계 지배를 돕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지난 25년간 지구상에서 100만종 이상의 생물종이 멸종되는 것과 함께 문화적 다양성도 심각하게 훼손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현상인지 모른다. 영어 제국주의가 어디서나 기승을 부리고 있는 오늘날, 세계 전역에서 아직 살아있는 6,000종의 언어들 중 절반은 이미 아이들에게 가르쳐지지 않고 있으며, 21세기 말에 이르면 세계의 언어는 500종으로 감소할지도 모른다는 가공할 예측도 나오고 있다.

 

언어가 사라지고, 토착 내지 전통문화가 위축되고, 그 결과 문화적 다양성이 소멸되어 간다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인간공동체에 전승되어온 삶의 지혜와 자연세계에 대한 이해와 지식, 그리고 우주의 의미에 대한 직관이 상실되어 간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따져보면 엄청난 위험을 자초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생태적 위기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는 지금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긴요한 이러한 지혜와 지식이 사라짐으로써 인류사회가 일상적으로 직면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돌이킬 수 없는 감퇴를 강요당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압력 밑에서 지역경제와 지역문화가 붕괴되고 있다는 것은 결국 인간다운 삶의 가능성이 하루하루 축소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역자유화와 시장만능주의가 이대로 계속되는 한 지구생태계와 인간의 삶은 나날이 더 취약해지고, 소생의 희망은 더 멀어져 갈 것이다.

 

그러나, 말할 것도 없이, 무역자유화의 논리에 의한 농산물 시장개방 요구와 거기에 대한 자발적 협력 내지 순응주의는 결국 오랫동안 일관되게 계속되어온 농민 및 농촌적 가치에 대한 천시(賤視)의 연장이며, 근대주의적 오만과 편견과 무지의 확대된 국면일 뿐이다. 최근 중국산 마늘 수입 문제를 둘러싼 논란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자본과 국가와 전문가들이 숭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윤이지, 생명의 보전이 아니다. 지금 경제성장과 수출입국, 그리하여 이른바 선진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열망이 팽배한 사회에서, 국내의 마늘농사를 보호함으로써 얻는 이익 1,500만 달러를 위해서, 마늘을 포기하고 핸드폰을 수출함으로써 생기는 이익 5억 달러를 포기하자는 데 동의할 사람이 이 나라의 권력 엘리트와 지식인들과 유권자들 사이에서 과연 얼마나 있을 것인가.

 

그러니까, 마늘문제는 궁극적으로 정부의 외교력의 문제나 몇몇 관료의 직무유기와 무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한 인간집단으로서 어떤 사회를 바라는가, 라는 좀더 근원적인 의미의 정치적, 철학적 선택에 관계되어 있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좀 가난하더라도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도 인간다운 생존이 가능한 농적(農的) 순환사회를 지금부터라도 회복시키는 데 진력할 것이냐, 아니면 지금까지 해온 대로 대외의존적 수출산업을 통한 경제성장의 추구라는 미래가 없는 길을 계속 가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지금 이른바 세계의 산업국가 중에서 홍콩, 싱가포르, 대만을 제외하고는 한국처럼 25% 정도의 식량자급률을 확보하고 있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유럽과 북미국가는 오랜 공업 선진국들이면서도 전부 150% 안팎의 수준, 심지어 프랑스의 경우는 200%를 넘는 식량자급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반드시 주목해야 할 현실이다. 아시아의 신흥 공업사회들인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은 식량자급도가 형편없다는 공통점 이외에 환경문제가 심각하고, 이른바 엘리트들의 대부분이 자기 자식들을 미국과 캐나다나 그밖의 선진국으로 유학 내지는 이민을 보내는 데 열중해 있다는 점에서도 괄목할 만한 공통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니까, 사회의 장기적인 생존가능성이라는 근본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하면서, 단기적인 경제적 이득의 추구에 혈안이 되어있는 사회일수록 그 사회의 엘리트들은 내심으로는 자기 사회에서 언젠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돈이 좋다고 하더라도 다음 세대들도 살아가야 하는 생존의 토대를 파괴하는 행위를 이토록 장려 내지는 방치하고 있는 현실을 도무지 설명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농산물은 해외로부터 사들여와서 먹으면 된다고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적지 않고, 그들이 대부분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마음을 심히 암담하게 만든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그러한 사람들이 흔히 농사의 원리와 산업의 원리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잊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지금 농민의 운명과 농촌의 생존가능성에 대하여 고민을 하는 것은 물론 일차적으로는 식량의 안정적 공급에 대한 염려(지금 미국산 쌀값이 싼 것은 그나마 우리의 쌀 생산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지 국내의 쌀 경작지가 현저히 축소되는 날 주로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서 생산되고 있는 미국산 쌀 가격이 천정부지로 폭등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리고 농업의 환경보전적 기능 기후의 안정화에 대한 기여, 홍수조절, 지하수 함양, 경관의 유지 등등 이 중단되는 사태가 불러일으킬 경악할 만한 환경재난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농경문화가 갖는 근원적인 미덕, 그리고 그 미덕의 실천이야말로 사회적 분열과 인간소외가 극에 달한 오늘날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시급히 필요하다는 신념 때문이다.

 

그 미덕이란, 간단히 말해서, 사람으로 하여금 늘 겸손한 마음을 갖고 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농사의 원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농사는 사람이 짓는 일이지만, 사람의 힘만으로는 농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철저히 터득한 사람만이 제대로 된 농사꾼이 되게 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농경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 속에서 차지하는 인간의 위치와 한계를 끊임없이 의식하게 만든다. 아무리 사람의 재간이 뛰어나고, 기술이 정교하다 하더라도 별과 달의 운행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기후를 통제하고, 흙의 성질을 마음대로 바꾸고, 벌레와 새와 짐승이 오가는 것을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혹독한 가뭄이 들어도 궁극적으로 인간에게는 가뭄을 견디는 일 이외에 다른 해결책이 존재할 수 없다. 저수지를 만들고, 수리시설을 정비하는 등의 일은 어디까지나 부분적이고 지엽적인 노력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과 참을성의 습득을 통해서 인간은 대지(大地) 위에서 겸손해지고, 자기보다 더 큰 존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운명에 대한 수동적인 굴복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적인 반핵운동가이자 생태철학자인 다카기 진자부로(高木仁三郞)가 그의 저서 핵의 세기말속에서 명석한 언어로 설명하고 있듯이, 세계의 토착민 또는 전통적인 농민사회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되는 그러한 겸손의 자세는 결코 숙명적인 수동의 태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수용(受容)할 줄 아는 큰 마음에 관계되어 있는 것이다. 다카기는 자연을 단지 정복과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여기는 세계관에서 나온 전형적인 현대기술로서 원자핵 에너지가 갖는 근본문제를 언급하면서, 이와 대조적으로 비서구 세계의 민중생활 속에서 광범위하게 살아있었던 수용적 마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들은 마구잡이로 자연과 사물의 움직임에 개입하는 게 아니라, 자연과 인간 간의 상호관계를 중시하고, 스스로 자연과 화합하며, 공생하면서 보다 훌륭한 삶을 영위해 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문화를 발효시킨다. 그러한 문화의 존재방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많은 면에서 좀더 고도의 삶의 기술과 현명함을 몸에 붙이고, 좀더 유연한 감성과 좀더 고도의 지성과 신체를 획득한다.

 

산업주의 문화는 이러한 겸손의 자세를 조롱하고 비웃으면서 성장해왔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산업인간은 도덕적, 정신적으로 극히 왜소한 미숙아가 되어버렸다. 산업의 세계에서 만물의 척도는 인간의 한계를 모르는 자기 확대의 욕망이다. 그리하여, 자본과 기술의 힘으로 얼마든지 자연적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교만심이 분별없이 확대되어왔고, 그 결과로 지금 우리는 스스로의 생존의 발판을 제거하는 데 열중하고 있는, 인류 역사상 가장 난폭하고 어리석은 시대에 살게 된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단 한순간도 사회적 약자를 괴롭히고, 자연세계에 훼손을 가하지 않고는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근원적으로 폭력에 기초한 삶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면서 살아가고 있다. 일찍이 간디는 독립을 쟁취한 이후 인도가 가야 할 장래에 대한 비젼을 말하는 자리에서 진리와 비폭력을 실천하는 삶은 우리가 도시가 아니라 촌락에서, 궁전이 아니라 오두막에서 살 때만 실현될 수 있다라고 말하였다. 도시 중심의 뿌리없는 소비주의 문화가 걷잡을 수 없는 전염병처럼 창궐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이것은 시대착오적인 헛소리로 들리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사람다운 삶을 생각한다면, 간디의 말에 담긴 심오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맹목적인 성장과 발전의 논리에 대하여 아니오라고 단호하게 거부하고, ()의 세계의 근원적인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지혜와 용기가 없다면, 우리가 인간의 위엄과 품위에 대하여 계속해서 얘기한다는 것은 공허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2002)

출처 땅의 옹호共生共樂의 삶을 위하여, 녹색평론사, 2008, 34~51

김종철 <녹색평론> 편집인 겸 발행인/ 프레시안

 

판다를 보호할 가치는 얼마일까

대왕판다와 시틱 플라자, 종이에 수채, 76x57cm, 2015

 

대왕판다: 멸종 취약 단계

시틱 플라자: 390.2m, 광저우, 중국

 

만약 우리가 자연 세계와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지구가 그 작동을 멈춘다면 결국 우리는 어디로 간단 말인가? 달인가? 달의 모습을 보니 언젠가 그곳에서도 우리가 살았던 모양이다. -마이클 J. 코헨

보고 있자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독특하고 귀여운 외모의 판다는 대왕판다, 자이언트 판다, 왕판다로 불린다. 중국을 상징하는 동물이자 국보로 여겨지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마스코트 징징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주로 중국에 서식하는 판다의 존재는 사냥꾼에게 가죽을 받은 프랑스 선교사에 의해 1869년 서양에 처음 알려졌다. 1930년대에는 시카고 동물원과 런던에 반입되었다. 1961년 창립한 세계야생동물기금은 런던 동물원 판다 치치로부터 영감을 얻어 로고를 제작했다.

 

판다는 큰 머리에 강한 턱 근육을 가졌다. 어금니도 평평하고 넓다. 가끔 육류를 섭취하지만 99% 대나무가 주식이다. 튀어나온 앞발의 발목뼈 하나를 엄지처럼 사용해 대나무를 붙잡는다. 대나무 10~18kg을 먹는다. 나무를 물어뜯은 자국이 지문처럼 각기 달라서 개체 수 파악에 활용된다.

 

몸길이는 150~190cm, 몸무게는 수컷이 85~125kg, 암컷이 70~100kg 정도다. 육중한 몸집이지만 나무를 굉장히 잘 탄다. 번식기를 제외하면 거의 단독생활을 하고 동면은 없다. 대신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피해 낮은 고도로 이동한다.

대왕판다, 종이에 연필, 2015

 

보통 한 마리의 새끼를 낳지만 쌍둥이가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 어미가 강한 새끼에게 젖을 물리기 때문에 약한 새끼는 죽는다. 갓 태어난 새끼는 어미 크기의 900분의 1에 불과하다. 3개월이 지나야 겨우 걸을 만큼 연약한 유아기를 거친다. 대략 5~6년 지나면 성숙한 판다가 되고 수명은 야생에서 14~30년 정도다.

 

과거 중국 남부와 동부, 베트남과 미얀마 북부 지역에 널리 분포했던 판다는 현재 중국의 쓰촨, 산시, 간쑤 지방의 대나무 숲에 제한적으로 서식한다. 서식지가 있는 지역 사회는 막대한 생태 관광 수입을 얻는다. 세상의 큰 관심과 사랑에도 불구하고 판다는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인구 증가와 산림 파괴로 인한 서식지 감소가 가장 큰 위협 요인이다.

 

낮은 번식률과 사냥도 문제다. 판다 밀렵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다른 동물을 사냥하던 사냥꾼이 뜻하지 않게 판다를 죽이는 불상사가 끊이지 않는다. 1970년대 후반 야생 판다 개체 수는 1000여 마리에 불과했다.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보호 정책으로 20141864마리로 증가했고 현재 2000여 마리가 남아 있다.

 

<우리 문명의 마지막 시간들>의 저자 톰 하트만은 어떤 사람과 환경문제에 관해 토론한 일화를 들려준다. 그 사람은 점박이 올빼미나 게으름뱅이 가마우지 같은 게 왜 필요하냐고 물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직업과 경제 안정, 깨끗한 도로와 안전한 도시며 동식물의 가치는 인간의 필요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대로 인간의 필요가 동물의 생명보다 소중할까. 자연의 가치를 경제적 관점에서 환산하고 판단할 수 있을까. 막대한 보존 비용이 드는 판다의 경우, 과연 그 비용을 치러야 할 만큼 판다가 가치 있느냐는 한 영국 학자의 문제 제기가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다른 야생 동물에 비해 판다는 그나마 처지가 나은 편이다. 사랑스러운 외모가 아니었다면 멸종위기 동물의 상징적 존재가 될 수도 제대로 보호받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우주 프로젝트에는 천문학적인 자금과 지원이 필요하다. 판다 보존 비용과 달리 가치 논란도 없다. 인류가 이룬 과학적 성과는 놀랍고 자랑스럽지만 한편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지구는 무엇보다 소중한 우리 별이다. 지구의 환경 문제는 날로 심각해지고 수많은 생명이 삶의 터전을 잃고 기아와 질병의 고통 속에 죽어간다.

우주 비행도 가능한 첨단기술의 시대에 우리는 왜 자연과 생명을 지키지 못할까? 지키려 하지 않는 건 아닐까? 지구의 자원과 인간의 기술이 모든 생명체를 위해 사용되길, 멸종을 향해 한 계단씩 내려오고 있는 판다가 더는 낮은 곳으로 향하지 않길 바란다. /장노아 화가/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