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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5.3~4.28 거대한 은폐와 축소의 그림자

by 이성근 2014. 5. 3.

 

 5.2 내일  5.6 주간경향

 

 

 5.2 경향 5.3 중앙

 

 

 5.2 중앙-한국

 

 

 5.1 경향-국민

 

 

 5.1 국제-내일

 

 

 5.1 중앙-한겨레

 

 

 5.1 한국-4.30 한국

 

 

 5.2 한겨레 -430경향

 

 

 430 중앙-국민

 

 

 430 국제-내일

 

 

 430 한겨레-미디어오늘

 

 

 429한겨레-한국

 

 

 429 중부=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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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9 경향-428 한국

 

 

 428경향-강원도민

 

 428 국민-국제

 

 428 내일-한겨레

 

 

 427 뉴데일리 421 시사인

 

 

 5.2~428 경향 장도리

 

세월호 참사 17일째, 거대한 은폐와 축소의 그림자 5.2 프레시안

[민교협 정치시평] 세월호 사건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것들-정재원 국민대 교수

세월호 사건으로 나라 전체가 슬픔과 분노에 쌓여 있다. 불과 보름도 안 되는 시간 동안에 거의 모든 단위에서 국가의 거의 모든 문제가 총체적으로 터져 나왔다. 도저히 열거하기조차 힘들만큼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비리와 결탁, 거짓과 추태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왔다. 중요한 것은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터져 나온 국가의 무능력과 현장에서의 혼란도 심각한 문제지만, 그것은 이제 사태의 본질이 아니라는 사실이 철저하게 밝혀지면서 상황은 질적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형 선박사고 발생 시 충격 상쇄용 아이템을 개발하고, 여론과 주의를 분산시킬 대체 기사도 개발해야 한다는 해양수산부의 노골적인 언론 대응 지침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 할 정도로 정부의 무능력과 거짓의 탑들이 곳곳에서 무너져 내렸다. 교신 자체가 없다던 해경의 말 바꾸기와 교신 기록 편집 및 삭제 의혹, 지상 최대의 작전이라는 말과는 정반대인 사고 초기 구조 상황에 대한 폭로로 인해 이제 심지어 남은 사람들을 일부러 구조하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갖게 할 정도로 극심한 불신을 낳고 있다.

 

특히 구조 첫날 언딘 때문에 해경이 민간잠수부들, UDT(특수전전단), SSU(해난구조대) 등의 활동을 막았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드러난 해수부와 해경, 청해진해운, '언딘'과의 수상한 관계에 대한 의문은 해수부와 한국해운조합, 한국선급과의 관계에 대한 비판, 그리고 점차로 사회 전반에 만연한 관료 지배 집단에 대한 문제 제기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이러한 소위 '관피아' 혁파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여론과 무관하게 혹은 이를 오히려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변화시키려는 움직임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과거의 그 어떤 대형 재난 사고 시에도 보여주지 않았던 정부, 나아가 지배집단의 대처 방식의 이유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항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의도적' 망언들, 그리고 국가의 위협 행위

국가의 총체적 무능력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언제나 그랬듯,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에서 멀어지는가 싶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정부 스스로도 이번 사건이 단순한 무능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고, 따라서 향후 폭로될 수도 있는 문제들이 가져 올 심각한 파국을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SNS의 발달로 인해 총체적인 은폐와 축소, 거짓이 대중에게 쉽게 통하지 않았다. 선장과 선원들의 행태를 폭로하고 청해진해운과 세모 그룹과 회장 등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는 등 여론 진화를 위한 수습에 나서고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박근혜 정부는 과거의 그 어떤 재난 상황과 비교해도 괴이할 정도로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엉망진창이었던 사고 수습과정과는 달리, 여론을 호도하고 단속하는 데에 있어서는 국가 기관들이 놀라울 정도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초기 진화에 실패해 점차로 진도 사고 현장을 넘어 분노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정부는 사고 수습보다는 국민을 위협하거나 불안을 외부로 돌리는 일에 더 적극적이었다. 4월 22일 정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임박설을 대대로 선전했지만, 당일 날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묻는 공개 질문장과 세월호 참사 조의 등을 보내는 등 전혀 비상상황이 아닌 태도를 보였다. 현지에서는 너무나도 정당한 유족들의 항의를 막기 위해 상당수의 사복경찰을 배치하고, 시위로 진화하자 막아서서 채증까지 감행했다. 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당연한 현장과 온라인상의 문제제기에 '유언비어 유포죄' 등으로 사법처리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정부는 교수들과 전문가들이 인터뷰를 하는 데 부담을 느끼도록 직간접적인 제약을 가하고 있다.

 

군 의문사와 선거 개입 등에 대해 그렇게 미적거려왔던 국방부는 사고 초기에 미군 잠수함 충돌설 등과 같은 유언비어에 고소 고발할 것을 강조했고, 경찰과 검찰 역시 민간잠수사를 자처한 한 리플리 증후군 환자와 한 묶음으로 묶어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행위에 대해 엄단하겠다고 엄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교육부에서도 일선 학교와 학부모들에게까지 유언비어 유포에 대한 책임이 있을 것이라는 협박을 가했다. 정부 부처가 전방위로 방송사를 비롯한 언론을 통제하는 정황도 밝혀졌는데, 방송사 인허가 권한이 있는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과 인터넷 오보를 모니터링하여 이를 기준으로 방송을 통제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방송정책국의 주요 임무로 '방송사 조정통제'를 부여했다. 해경 등이 참가하는 범정부 사고대책본부에서 방통위는 '여론 환기' 역할을 맡았을 뿐 아니라, 방통위가 수사를 의뢰하면 경찰은 철저히 수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방통심의위의 문건에 따르면, 이 두 기관은 삭제, 접속차단, 시정요구, 수사 등을 실제로 실행하는 등 언론과 시민들의 의혹 제기를 강력하게 규제, 통제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지침 때문인지 자기검열인지는 모르겠으나 언론들은 현장의 진실을 보도하지 않아 유족들이 외신하고만 인터뷰를 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곤 했다.

 

이뿐 만이 아니다. 추모 분위기가 불편했던 정부는 천암함 사건 때와는 정반대로 분향소를 전국에 설치하라는 국민들의 요구에 마지못해 26일에야 분향소 설치를 명했는데, 안행부는 분향소 설치 장소를 '실내(청사)'로 제한하고 기초자치단체(시, 군, 구)에는 설치하지 말라는 지침뿐만 아니라 분향소 설치 비용은 지자체의 예비비로 해결하라는 황당한 지침을 내렸다. 국민들의 항의로 현재에는 이 방침이 무력화된 것이나 다름없지만, 천안함 때의 340 개소와 비교해 볼 때, 17 개소로 제한한 의미는 너무나도 명확하다.  추모 분위기의 진화를 막으려는 국가의 법제도적 제약과 함께 전개된 전략은 바로 '종북 좌파'와 '시위 선동꾼'론을 통해 기존의 수구 집단 뿐 아니라, 중간에 동요하는 집단들을 확보해서 향후 항의집회와 시위가 확대될 경우 대중들의 분열을 노리는 전략이었다. 집회와 시위를 조직하는 이들에 대한 '낙인찍기' 전략은 '순수한' 추모와 '불순한' 저항으로 구별지어 추모를 넘어 대중적 저항으로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좌파단체와 좌파 사이버 테러리스트들이 정부 전복 작전을 전개할 것이라는 새누리당의 최고위원이라는 한기호의 망언을 시작으로 보수진영의 망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다. 이어 권은희 의원은 실종자 어머니를 선동꾼이라며 모욕했고, 송영선 의원은 꼭 불행인 것만은 아니며 좋은 공부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망언을 자행했다. 이어 보수 논객 지만원은 '제 2의 5.18 폭동', '시체 장사' 운운하면서 유족들을 욕보였고, 피플뉴스 편집장인 서승만은 '북한의 사주를 받아 선전선동하는 종북 좌파의 연극'이라면서 '죽은 학생의 부모 중에 종북좌파가 있다면 애도도 할 필요가 없다'며 공수부대를 동원하고 수천만 죽여서라도 국가를 지켜야 된다고 떠벌이고, 심지어 자신은 죽은 아이들에 대해 슬퍼하지 않는다는 등 천인공로할 망언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정규재 한국경제 논설위원 실장은 국민의 분노에 대해 '분노조절이 불가능하거나 슬픔을 내면화하여 누그러뜨리지 못 하는 감정조절 장애에 함몰되어 있다'고 비아냥댔다.

이러한 망언들이 일사불란하게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망언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목적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두 말 할 나위도 없다. 우리네 지배집단들은 다소의 편차만 있을 뿐 공통적으로 전 국민적 슬픔과 분노가 이어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 짜증만 날 뿐이다. 걱정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일 뿐이기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고전적인 수법도 써 보았지만, 쉽게 먹히지 않는다. 주목할 만한 점은 설사 그러한 목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감히 전 국민이 함께 아파하고 있는 유족들에게까지 정관계 인사가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현상은 분명 과거에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관료지배 권력

여객선의 사용연한을 20년으로 제한하고 5년 범위 이내에서 연장할 수 있도록 한 '해상운송사업법' 조항을 MB정부가 30년까지 운행 가능하도록 완화한 것은 수많은 사고를 이미 예비한 거나 다름없다. 20년이나 된 노후화된 배의 수명을 연장시킨 것도 모자라 객실과 화물칸 등을 증축하는 등 용도를 바꿀 수 있게 허가하고, 그리고 화물과 차량 적재를 더 허용한 것 등은 안전 불감증 이전에 안전에는 관심 없는 자본의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경영이 바로 이번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국가와 자본 간의 관계나 자본 권력에 대해서는 매우 날카로운 분석을 하곤 하지만, 자본과 결탁한 관료 지배의 문제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무감각하다.

집권 정당 교체와 무관하게 이어지고 있는 이러한 우리 사회의 진정한 지배 블록은 정당 정치를 마비시키고 있다. 지배 블록의 범위는 언론과 각종 정치 엘리트, 관료들, 전문가들, 그리고 이들과 여러 인맥으로 얽혀 있는 각종 사회 기득권 집단으로까지 확장되어 국가는 철저하게 이들에 의해 포획되어 왔다. 국가를 포획,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들 과두지배세력들 중 중요한 집단인 관료지배집단은 정당 정치가 잘 작동하기만 하면 정책이 잘 작동할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면서 자신들의 지배를 철저하게 위장하고 있다. 특히 민주화 이후 국가의 공적 기능은 현저하게 약화되면서, 다양한 특권집단들의 이익을 보장해 주는 도구로 전락했다. 이들은 소위 민주정부로 일컬어지는 정권 교체 매커니즘과는 상관없이 혹은 별도로 독자적인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구조를 공고화해 왔다.

 

바로 이러한 구조가 이번 참사의 중요한 원인들 중 하나였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보수 언론들까지 갑자기 관료지배집단의 문제, 소위 '관피아'의 전횡을 대대적으로 문제시 삼고 있다는 점인데, 이들은 심지어 이러한 문제제기조차 자신들의 의도에 부합하도록 조작하고 있다. '관피아'의 문제를 단순히 퇴직 고위 관료에 대한 '전관예우'의 문제인 것으로 축소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아주 자주 공직사회의 비리나 철밥통 문제까지 뒤섞어 가며 공공성의 문제를 관료주의의 문제로, 정당한 규제의 문제를 관료주의적 규제의 문제로 왜곡시켜가며 이 순간에조차 자본의 이윤 극대화 논리와 맞닿을 수 있도록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독점이 기업과 관료 간의 결탁과 비리를 낳았다며 그에 대한 대안으로 여객선 노선의 독점권을 폐지하고 시장과 경쟁 논리를 도입하겠다는 정부의 안은 결국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 현실에서는 어떤 결과를 낳을지 너무나 명확하다.

 

초기에 구조작업을 진두지휘했던 해경 수사과장이 세모 그룹의 장학금으로 공부하고 5년간 근무했다는 사실은 그러한 구조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현재 한국선급 전·현직 임직원들이 선박검사 권한을 이용해 선박설계업체와 해운회사로부터 금품을 받아 수십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고 일부가 정관계로 흘러들어갔다는 의혹을 받고 검찰로부터 수사를 받고 있는데, 이러한 구조는 비단 해수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저들의 저항은 매우 집요하다. 지난해 원전비리 사건이 터졌을 때도 원자력발전산업계 구조적 유착관계를 근절하고, 비리를 저지르는 경우 처벌의 2분의 1까지 가중처벌 할 수 있도록 하고, 관리 사각지대가 없도록 정부의 실태조사와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원전 마피아 근절법'을 발의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는 상황이다. 또한 지난 1월 발의된 '원자력발전사업자 등의 관리·감독에 관한 법률안'은 2월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 상정된 후 지금까지 의결되지 않았다. 또 다른 의원이 발의한 '원전비리 방지를 위한 원자력 발전 사업자 등의 건설·운영에 관한 관리·감독법안'도 4월 국회에 상정돼 법안소위에 계류되어 있다.

 

'관피아'의 폐해 중 퇴직자들의 관련 기관 취업을 막겠다는 공직자윤리법의 취업 제한 제도 역시 곳곳에 빠져 나갈 구멍들을 대거로 만들어 놓았다. 업무 관련성이 있는 기관들에 재취업하는 것을 막는 취업 제한 기한은 2년에 불과하며, 퇴직 전 5년 간 업무와 관련 있는 업체로의 취업 제한 규정을 피하기 위해 각 기관들은 업무 관련성 심사에 걸리지 않도록 유관 기관으로 빼 주는 등 소위 '커리어 관리'를 해 준다. 업무 관련성을 심사하는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실제로 취업을 제한한 경우는 전체 요건의 5~8% 정도에 불과하며, 취업 심사를 받지 않고 재취업할 경우에도 과태료 처분은 대상자의 62%만 해당되었을 뿐 아니라, 부과된 과태료 금액은 최대 500 만원에 불과하다. 게다가 변호사나 회계사 등 자격증이 있을 경우엔 해당 업체 취업 시 심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

 

세월호 사건으로 나라가 한창 들썩이던 지난 4월 28일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는 소위 '세월호 방지법'이라는 이름으로 선박 안전과 관련한 법안들을 대거 통과시켰는데, 그 중에는 안전을 이유로 제한됐던 항구 내에서의 선박 수리를 원칙적으로 허용하게 하는 등 규제 완화 내용들이 그대로 포함되어 있다. 이 와중에 현재 선박 회사가 국내에서 선박을 발주하면 선박 건조 자금 대출 이자 중 3% 금리에 해당하는 이자, 약 500 억 원을 지원하고 있는데, 해양수산부는 이것을 두 배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선박회사가 외국에서 선령 10년 미만의 중고 선박을 사 올 때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몇 가지의 예만 보더라도 현재 저들이 선전하는 관피아 혁파론이 어떠한 결말로 나아갈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실들이 계속 터져 나와 추악한 고리의 끝이 어딘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시간이 지나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차로 사라지게 되면 대안적 정책은 누더기가 되거나 상정도 집행되지도 않을 것이고, 입안되더라도 구멍과 퇴로는 곳곳에 있을 것이며, 본질적인 탐욕과 비리로 점철된 지배동맹구조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결론을 대신하여

이번 사태를 겪으며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일베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젊은 반사회적 범죄자 집단들의 만행이다. 여성과 장애인, 호남사람들과 이주노동자와 같은 약자 혹은 소수자들, 그리고 민주화 투쟁에 헌신한 사람들에 대한 폭력과 차별을 자행하고, 그들의 고통을 희롱하는 일베는 이번에도 희생자 가족을 '유족충'이라고 칭하며, 심지어 죽은 여성에 대해 성적 모욕까지 가한 글에 낄낄거리며 댓글들을 달았다. 최근에는 청와대 사이트에까지 국민들이 항의 글을 올리자, 그 곳에까지 가서 여론을 호도하는 분탕질까지 하고 있기도 하다. 국민이 미개하다고 했던 정몽준의 아들의 망언은 극우나 보수라는 개념으로 설명되어서는 안 되는 반사회적 범죄자들이 자행하고 있는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 서민들에 대한 공격 행위를 반영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이렇게 함부로 날뛰게 하는 것은 바로 수구보수 정당과 국가 관료 그 자신들이다.

 

교육부 장관이 의전용 의자에 앉아 라면을 먹은 것, 교육부 수행원이 유족들에게 '교육부 장관님 오십니다'라고 한 것, 안행부 국장이 기념사진 촬영하자고 한 말, 복지부 직원들이 구급차를 출퇴근용으로 이용한 일, 목포 해경 간부가 80명 구했으면 대단하다고 한 말, 유한식 세종시장과 홍순승 새누리당 교육감 예비 후보 등이 폭탄주를 마신 일 등은 단순한 말 실수나 관례에 따른 실수일 수는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데에는 우리 사회의 지배집단의 감성 저 밑바탕에는 인간의 생명에 대한 무관심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들 대부분은 힘없고 가난한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 등 서민들이었다. 권력과 부를 가진 상류 계급의 아들과 딸들이 300명이나 실종된 상태였다면 관례나 언행도 훨씬 조심했을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청와대는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고 다시 한 번 강조를 하고 있으며, 대통령은 제 3자의 입장에서 평론을 하다가 돌연 국무위원들 앞에서 사과를 했다. 대통령의 진도 방문 시 유족들의 항의는 화면에 나오지 않고, 박수치는 장면만 나온 기막힌 편집술은 최근에도 청와대가 '부탁'한 일반 조문객을 향한 연출된 위로의 사진은 멋있게 일간지들의 일면을 장식할 때도 발휘되었다. 진정으로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이런 유체이탈화법이나 조작을 방조할 것이 아니다. 얼마나 '빽'이 대단한지 이러한 상황에서도 사망자 명단에서조차 빠져 있던 비정규직 청년들의 장례비를 지원하지 않는 청해진해운의 행태가 보이지 않는가! 지금 이 상황에서도 쉽게 벌어지고 있는 이 사회의 비정상적 상황을 진정으로 뜯어 고치지 않는 한 그 어떤 약속도 다 거짓이다.

 

“국가가 가장 기본적인 임무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분노하며,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됐습니다.”

 

대통령이 과거에 했던 말이다. 머나먼 아프가니스탄의 알 수도 없는 지역에서 살해된 1명의 국민을 국가가 구하지 못 한 것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면, 바로 대한민국 진도 앞바다에서 그 수 백 배에 달하는 국민을 구하지 못 한 상황에서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리고 대통령은 진도에서 유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에 지금 오늘 여러분들과 얘기한 게 지켜지지 않으면 여기 있는 사람 다 책임지고 물러나야 됩니다.” 약속을 지키길 바란다.

 

 

 

김용옥 “국민들이여, 거리로 뛰쳐나와라!”5.2 한겨레

 

더이상 애도만 하지 말라! 정의로운 발언을 서슴지 말라!

조선의 창공이 원혼의 피눈물로 물들어

잿빛 같은 암흑을 드리우고

온생명의 분노가 열화같이 치솟아

암흑의 장막을 불태울 때

원망조차 잊어버린 순결한 여린 혼령들은

신단수의 하늘에서 소리친다

엄마 아빠

홍익인간의 천부인은

어디로 사라졌나요

 

 

 

 

대전으로 도망친 이승만, 국민들에겐 “나도 서울을 지키고 있다”

1950년 6월25일, 국민 전체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었던 이승만은 새벽부터 전쟁 발발의 소식을 듣고 우선 자기 혼자 도망갈 생각부터 했다. 26일 아침 8시 신성모 국방장관이 방송에 나와 “국군이 인민군을 물리치고 북진중에 있다”는 담화를 발표한다. 그런데 27일 새벽부터 비상국무회의가 열렸지만 이승만은 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고 열차편으로 이미 몰래 서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대전 도피에 관해 각료는 물론, 국회의원, 하물며 육군본부에까지도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승만은 대전에 도착하자마자 곧 특별담화를 녹음한다. 27일 밤 9시부터 서울중앙방송국에서 전파를 타고 전국민에게 전달되었다: “우리 국군이 용감하게 적을 물리치고 있습니다. 국민과 공무원은 정부 발표를 믿고 동요하지 마십시오. 나 대통령 본인도 서울을 떠나지 않고 국민과 함께 서울을 지키고 있습니다.” 생거짓말이었다.

 

이날 정훈국장교의 말만 믿은 모윤숙은 밤늦게까지 가두선전방송을 하고 다녔다. 이승만의 파렴치한 만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8일 새벽 2시30분 아무 예고도 없이 한강대교를 폭파시켜 버렸다. 사전 통보나 통제가 없었기에 50대 이상의 차량이 물에 빠지고 그 다리를 건너가던 시민 500여명이 폭사하였다. 군사전략적으로 볼 때도 이것은 터무니없는 실수였다. 서부전선에 배치되었던 우리 국군이 퇴로를 차단당하고 와해, 희생된 것이다. 이승만은 7월1일 대전에서 또다시 도망갈 때도 목포로 가서 부산으로 배를 타고 갔다. 경부가도가 이미 위험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승만은 전 서울 시민을 서울에 가두어놓고 자기 혼자만 살 생각을 했다. 그리고 9·28 서울수복을 했을 때 서울에 남아 고생한 뭇 시민들을 부역했다고 죽이고 고문하고 연좌제로 묶어놓았다. 우리는 이러한 이승만을 성스러운 통치자로 모시는 기나긴 정치사적 이념의 굴레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역사의 비극적 상황이란 모든 함수가 최악의 길을 재촉하도록 협동을 한 필연·우연의 사태이기 때문에 그 인과를 단선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사태의 해결이나 반성에 크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수많은 인과계열 중에서도 움직일 수 없는 명백한 사실들이 있다.

 

자기만 먼저 탈출한 선장, 승객들에겐 “동요 말고 제자리를 지켜라”

우선 배에 관하여 정확한 구조적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끝까지 남아서 승객의 안위를 책임지어야 할 선박직 승무원 15명 전원이 먼저 탈출하여 쌩쌩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가장 비극적인 사실은 이준석 선장과 일등항해사가 탈출하면서도 학생들에게 동요하지 말고 객실 속에서 제자리를 지킬 것을 명령하였고 그것을 계속 강요하였다는 가슴 아픈 일련의 사태에 내재한다. 모든 비극은 이 하나의 움직일 수 없는 명백한 사실로부터 연역되는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 동물이다. 위기상황에 누구든지 나 먼저 살고보자는 본능적 움직임은 충분히 요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승만과 이준석의 경우 도덕적 양심을 운운치 않더라도 이러한 생존본능의 논리조차 적용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승만의 서울 탈출이나 이준석의 세월호 탈출은 전혀 시민, 승객의 탈출과 충돌을 일으키는 사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서울을 빠져나오면서도 서울시민들에게 탈출을 권고할 수 있었고, 이준석은 세월호를 빠져나오면서도 승객들에게 같이 탈출하자는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아니 해야만 했다. 자신의 탈출이 학생들의 탈출로 인하여 저지되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본 도호쿠지진 때 미야기농고의 학생들은 다급한 상황에서도 소·돼지 축사의 문을 열어주고 피신했다. 하물며 인간이랴! 이것은 이승만과 이준석의 디엔에이 심층구조 속에까지 사람은 존엄과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통제와 관리의 수단일 뿐이라고 하는 비인성적 무책임한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전제하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다. 이들이 생각하는 코스모스는 다중의 죽음이다. 죽음의 질서인 것이다. 이것은 우발적인 사태가 아니라 우리 민족사의 구조적인 사태인 것이다.

 

의주로 도망간 선조, 임진강변 건물과 배 다 태워버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도 선조는 대책 없이 먼저 도망쳤다. 사실 왜군은 이순신에게 해로를 차단당해 보급이 끊겼기 때문에 식량이 없었고 지쳐 있었다. 서울은 한강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다. 그리고 당시 서울에는 화약이 2만7천 근이나 저장되어 있었다. 한강의 대형 수송배들과 지형을 활용하고 강북 강변에 군사를 배치하여 대처했더라면 왜군의 도강을 쉽사리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선조는 가마를 메어줄 사람도 없어 우중에 말을 타고 쫄쫄 비 맞고 굶으면서 북상에 북상을 거듭했다. 그러면서 이승만처럼 자기가 건넌 임진강변의 건물과 배는 다 태워버렸다. 한번 생각해보라! 그가 의주까지 도망갈 때, 그의 말을 이끌었던 말단 관리 이마와 임란을 승리로 이끈 불세출의 영웅 이순신 장군 두 사람의 공훈을 평가할 때, 누굴 더 높게 평점했을까? 왜란이 끝나고 전체 훈공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선조는 이순신이 일적추(一賊酋)의 목도 베지 못했고, 일적진(一賊陳)도 함락시키지 못했다고 생거짓말을 하면서, 왜란을 토평한 것은 오로지 자기가 의주에서 요청하여 온 천병(天兵) 덕분이라고 말한다. 선조의 의식 속에서는 이순신이나 왜적과 피 흘리며 싸운 의병들보다 자기 말몰이꾼이 더 위대한 것이다.(<호성선무청난삼공신도감의궤>)

 

지금 전국민의 애간장을 끓게 만드는 것은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한 최초의 시각으로부터 적게는 20분, 넉넉하게는 2시간 정도, 충분히 사태 해결을 위한 구명결단의 여백이 있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이 최초 절명의 황금시간에 아무런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 언론은 부정확한 보도로 사태를 흐리게 했을 뿐 아니라, 모든 관련된 국가행정부서의 사람들은 혼선을 빚기만 하는 다양한 대책본부를 꾸리기만 하면서 황금시간을 허송했고, 또 거짓말만 남발했으며, 그 사건 현장에 당도한 그 어느 누구도 학생들이 애처롭게 죽어간다는 것을 목도하면서 주체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이순신이 좌수사로서 당시 세태의 관행에 역행하여 임란 직전에 수군과 화포와 전술과 전함을 정렬해놓았다는 이 사실은 오로지 그의 독자적 판단에 의거한 것이다. 이러한 이순신에게 선조는 원균의 모함을 빌미로 종적죄를 씌워 서울로 끌어올리자마자 심한 고문을 가했다. 삼도수군통제사로서 5년 동안 나라를 구한 명장을 함부로 나국한 것이다.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할 때까지도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렸다. 우리 역사는 구조적으로 책임을 질 줄 아는 결단의 인물을 키우지 않았다. 호걸이란 성군문왕의 다스림이 없이도 태어난다고 맹자가 말한 그 리더십의 주인공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았다. 오로지 민중의 직감적 판단 속에서만 우리 사회의 정의는 지켜져 내려온 것이다.

 

 

이 시대 총체적 부실의 주체는 다름 아닌 박근혜 정부이다

이러한 사태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역사가 총체적 부실 속에서 결정권자가 부재한 상태로 표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 총체적 부실의 주체는 다름 아닌 박근혜 정부이다. 그리고 이 박근혜 정부의 구조적 죄악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모두 박근혜 본인에게 돌아간다. 세월호 참변의 전과정을 직접적으로 총괄한 사람은 박근혜 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의 정부의 사람과 이념, 그 모든 것이 박근혜가 창조한 것이다. 그만큼 통치의 정점은 국가의 안위에 막중한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진심어린 전면적인 사과의 한마디도 없었다. 과거의 황제인 한(漢)나라의 문제(文帝)조차 불상사가 일어날 때마다 거느리고 있는 신하를 탓하지 않고 자기가 국민 앞에 직접 사죄했다. 맹자는 통치자가 진정 생도(生道)의 원리를 가지고 다스리면 죽는 사람도 죽음을 원망치는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현 정부는 사도(死道)의 원리로써 생사람까지 죽이고 있다. 이 불상사는 99.99%의 대중을 희생시켜 0.01%의 부귀권세가들을 봉양하려는 이명박 정부 이래의 줄기찬 신자유주의적인 정책기조가 교육·경제·정치·행정·법률·문화 전반에 끼친 영향이 만들어낸 것이다. 세월호의 실소유주 유병언은 이윤 극대화를 위하여 승객을 짐짝화한 것이다.

 

이 사회의 주류 언론들이 이 기회에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소재가 있는 모든 행정조직, 또 세모-청해진과 같은 음흉한 범죄기관을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과격한 주장을 펴지만 이것은 사태의 본질적 해결이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박근혜에게 무소불위의 과거 독재자가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을 부여해주는 것이다. 박근혜와 그 주변의 사람들은 이러한 사태를 활용하여 도덕적 제스처의 칼자루를 휘두르기만 하면 목전의 선거에서 승리를 구가할 수 있다는 계산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시대의 민족지도자가 되길 원한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선교사 김선일 사건 때에 박근혜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그건 국가가 아니며 국민 한 사람을 못 지켜낸 그러한 정부에 대하여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되었다는 논조의 말을 한 적이 있다. 나 도올은 선포한다: “박근혜, 그대의 대통령의 자격이야말로 근본적인 회의의 대상이다.” 그대가 설사 대통령의 직책을 맡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허명이다. 그대의 대통령이라는 명분은 오로지 선거라는 합법적인 절차에 의하여 정당화되는 것인데, 그 정당화의 법률적 근거인 선거 자체가 불법선거였다는 것은 이미 명백한 사실로서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다. 이 땅의 종교지도자들이 이미 그대에게 대통령 사직의 권고를 한 바 있다. 트위터상에 올라오는 어린 학생들의 문구 속에도 항변의 언사들이 많다.

 

 

국민들이여! 더 이상 애도만 하지 말라! 의기소침하여 경건한 몸가짐만에 머물지 말라! 국민들이여! 분노하라! 거리로 뛰쳐나와라! 정의로운 발언을 서슴지 말라! 박근혜여! 그대가 진실로 이 시대의 민족지도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차마 여의치 못하다고 한다면, 정책의 근원적인 기조를 바꾸고 거국적 내각을 새롭게 구성하여 그대의 허명화된 카리스마를 축소하고 개방적 권력형태를 만들며, 주변의 어리석은 유신잔당들을 척결해야 한다. 그들은 통치능력이 부재한 과거의 유물이라는 사실이 이미 명백히 드러났다. 그대의 양신(良臣)은 민적(民賊)이다.

 

규제를 왜 푸는가? 그대의 규제풀음은 가진 자를 위한 것이다. 그대가 풀어야 할 규제는 사상통제의 규제이며, 언론의 규제이다. 유통을 장악하고 골목상권까지 독점하는 모든 대자본에 대하여 규제를 강화하라! 중소자영업의 생활세계를 보호하라! 그것이 민중의 갈망이다! 언론을 바로 세워라! 그대는 “국가개조”를 말했다. 그러나 그대가 중심이 된 국가개조는 악순환만 초래한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의 근원적 변화는 그대의 시녀가 되어버린 검찰이나 행정체계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원칙에 따른 국민적 합의가 창출한 새로운 기관에 의하여, 다시 말해서 국민이 주체가 되어 국민 스스로의 미래를 개혁해 나가는 과정을 그대가 적극 도와주는 그런 변화이어야 한다.

 

이제마는 말했다. 투현질능(妬賢疾能) 이상의 대환(大患)이 없고 호현낙선(好賢樂善) 이상의 대약(大藥)이 없다. 맹자는 호선(好善)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천하를 다스리기에 넉넉함이 있다 했다. 호선이란 낙문고언(樂聞苦言)이다. 쓴 말을 듣기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를 애타게 챙겨주며 질서를 지킨 단원의 학생들, 그들을 보호하며 목숨을 던진 선생님들, 선박직이 아닌 헌신적 승무원들, 그리고 책임을 통감하고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까”라는 유서를 남기고 떠난 강민규 교감님, 우리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 민족의 도덕성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 민족 구원의 빛줄기는 있다. 세월호 희생자 302명은 살아 있다.

 

 

'사상 초유' 지하철 추돌 240명 부상…승객들 스스로 문열고 대피 5.3 뉴시스

지난 2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전동차 2대가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해 중상자 3명을 포함해 240명이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 사고로 기관사와 승객 등 240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3명은 어깨와 쇄골 골절, 뇌출혈 등 중상을 입었고, 59명은 서울지역 9개 병원에 입원했다.사고가 발생한 두 열차에는 1000여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낮 시간대여서 노약자와 학생들이 많았다.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에도 승객들은 좌석 밑에 있는 수동 개폐장치를 열고 대피했다. 일부 승객들은 세월호 침몰 사고를 떠올려 안내방송에 따르지 않았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인 승객들은 10여 분 뒤 전원 승강장으로 대피할 수 있었다.

 

 

“아침부터 차량 14만대 서울 탈출”… 고속도로 교통상황은 명절 수준 5.3 국민

5월 첫 주말의 ‘황금연휴’를 시작한 3일 오전 고속도로 곳곳에서 정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오전 9시 현재 서울을 출발한 차량의 요금소 기준 예상 소요시간은 ▲부산 7시간40분 ▲대전 4시간40분 ▲광주 6시20분 ▲강릉 6시간10분 ▲목포 7시간20분이다. 오전 9시30분을 기준으로 14만대의 차량이 서울을 빠져나갔다. 하루 동안 44만대의 차량이 서울을 빠져나갈 것으로 도로공사는 전망했다

 

 

안산 제일장례식장 대표 “이 돈은 내 돈 아니다” 수익금 기부 5.2

안산에서 제일장례식장을 운영하는 박일도(59) 대표가 2일 단원고등학교에 장례식장 운영 수익금 5000만원을 기탁했다. 박 대표는 이날 오전 지난달 결산을 한 뒤 평소보다 늘어난 이익금 5000만원을 아이들이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데 써달라며 단원고에 기부했다. 박 대표는 "지난 3년간 장례식장을 운영하면서 부모잃고 우는 상주는 많이 봤지만 이번엔 자식잃고 오열하는 어머니와 숨어서 우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봤다"며 "사업이 망해도 좋으니 이런 장례는 치르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온국민이 아파하는데 수익이 난 것을 보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며 "작은 보탬이나마 아이들이 안전한 나라가 되는데 쓰였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상주 입장에서 장례를 치르자는 것이 사업신조라는 박 대표는 이번 사고를 겪으면서 유난히 공무원들과 마찰을 빚었다고 한다.

 

공화당 “웬 노란리본? 배후세력 수사하라” 5.2 한겨레

신동욱 공화당 창당준비위원회 대표가 2일 “정부는 천안함 폭침에도 등장하지 않았던 노란리본을 이용해 사회분열을 조장하고 국가를 전복시키려는 배후세력을 철저히 수사해 종북좌파를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제부인 신 대표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사람이 사망했을 때에는 ‘근조’라는 검정색 리본을 가슴에 다는 것이 상식인데 갑자기 국적이 불분명한 노란 리본이 등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관습법과 전통장례문화를 비정상화시키려는 의도로 대한민국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며 서울광장에 ‘세월호 노란리본 정원 조성’을 허가한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난했다. 신 대표는 “검은색 근조리본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노란 리본을 추모객들에게 달게 만드는 세력은 더 이상 세월호 침몰 희생자를 이용해 정치적 이득과 목적을 달성하려는 가면을 벗기 바란다”고 밝혔다. 공화당은 5월 중순 고 박정희 대통령의 옛 신당동 사저에서 중앙당 창당대회를 열고 지방선거 후보를 낼 계획이다. 신 대표는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60)과 2008년 결혼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추모 단편영화 <신이 된 대통령>을 제작·연출해 지난해 12월 유튜브를 통해 공개하는 등 ‘박정희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처형인 박 대통령을 허위비방한 혐의로 구속 수감되기도 하는 등 현재 대통령과는 절연상태다.

 

 

한국정부가 학생들을 죽게 놔둬" 외국인들도 분노...한국이 부끄럽다 5.2 오마이뉴스

[해외리포트] BBC, 인디펜던트 등 주요보도...영국인들 비판 댓글

 

너무 비참해서 기사를 더 읽을 수가 없네요."   "불쌍한 학생들..."

 

영국 언론들이 보도한 세월호 관련 기사 아래 달린 독자들의 댓글이다. 사실 영국 언론에 대한민국의 이슈가 보도되는 일은 다른 아시아국가에 비해 드물다. 역사적으로 한국과 영국이 큰 인연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가끔 한반도에 관한 뉴스가 등장하지만, 대부분 북핵이나 장성택 처형 등 북한 관련이거나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을 때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후 영국 언론들은 며칠 동안 앞 다퉈 관련 소식을 전했다.

 

 

4월 29일 영국 방송 <BBC>는 '한국대통령 페리참사에 대해 사과'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는 이번 참사와 관련한 국민들의 분노와 비판 중에 나온 것"이라며 "박 대통령은 빈소에도 갔었지만 분노한 유가족들이 야유를 퍼부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같은날 일간지 <가디언>도 '페리참사 : 한국 대통령 정부실패에 대해 사과'라는 기사에서 "박근혜 정부의 부패와 느슨한 안전기준이 이번 참사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존이라는 이름의 영국 시민은 이 기사에 대해 "한국 국민들은 정부로부터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며 "(한국 국민들이) 정부의 잘못을 고칠 수 없다면 정부를 제거 할 필요가 있다"는 댓글을 남겨 눈길을 끌었다.

 

지난 4월 27일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임 소식을 보도했다. '[한국 페리 참사] 수 백 명을 사망하게 한 '뿌리 깊은 악'에 대해 책임지고 정홍원 총리 사임'이란 제목의 이 기사는 정부가 느린 대응과 실수로 유가족들의 격렬한 비판을 받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특히 "사망자 신원을 잘못 확인하여 사망자 가족이 아닌 다른 가족에게 시신을 인계하는 모습도 보였다"고 보도했다. 또 정 총리가 참사 후 실종자 가족들을 찾았다가 야유를 받았고, 물병까지 맞았다고 전했다.

이 기사를 접한 영국 시민들은 "사임해야 할 사람은 총리가 아니라 대통령 아닌가요?"라며 "어차피 한국의 총리는 형식적 권한만 있고 실제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는데 총리 사임이 별 의미가 있나요?"라고 피력했다.   같은 날 <스카이뉴스>도 '페리 참사로 한국총리 사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스카이뉴스>는 이 기사에서 "(한국에서) 실제권한은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에 정 총리의 사임의사는 상징적인 것에 불과하다"며 "정부의 느린 구조와 빈번한 말 바꾸기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 영국 독자는 이 기사에 대해 "한국정부는 그냥 앉아서 구경만 하는가?"라며 "배가 해안가에서 저렇게 가까운데도, 정부는 그냥 불쌍한 학생들이 배안에서 죽은 것을 지켜보고 있다!"라고 분노했다.

 

"참사 대응은 달팽이처럼, 가족 행진 진압은 번개처럼"

하루 전날인 4월 26일 <BBC>는 '한국의 페리 참사 : 세월호 선원 전부 구속'을 주요뉴스로 꼽았다. <BBC>는 한국정부 구조책임자의 "시신수습이 얼마나 걸릴지 전혀 알 수 없다"는 말을 인용하며 정부의 늑장 대응에 분노한 유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 영국시민은 "한국은 뭐든 '빨리 빨리'하는 나라로 소문이 나있는데 왜 이번 참사 수습은 이렇게 늦는지 이해 할 수 없네요"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4월 26일 '한국의 침몰된 페리, 바다에서 실종'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번 참사의 대응과정에서 정부 부처 사이의 조율이 부족하다는 것을 드러냈다"고 꼬집었다. 특히 "참사 대응유닛을 구성하는데 거의 한 시간이 걸렸고 첫 번째 시신을 회수하는 데 무려 3일이나 걸린 점"을 언급했다. 반면 정부의 늑장 대응에 분노한 가족들이 400km나 떨어진 서울의 청와대로 행진을 하겠다고 나선 것을 경찰이 제지한 일에 대해 "정부가 과도하게 대응했고 (결국) 가족들의 분노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진단했다.   이 기사에 대해 한 독자는 "어차피 피해자 가족들이 행진해서 서울까지 400km를 걸어갈 수도 없다"며 "정부가 참사대응은 달팽이처럼, 가족들의 행진진압은 번개처럼 하는지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다"고 밝혔다.

 

4월 25일 <BBC>는 '한국 페리참사: 분노한 유가족들 정부 관리들과 대치'란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이 기사에는 분노한 유가족들과 해양수산부장관/해양경찰청장이 밤샘 난상 토론하는 내용을 담았다. <BBC>는 "생존가능성이 줄어들면서 가족들은 느린 정부의 구조작전에 점점 더 분노하기 시작했다"며 "해수부장관과 해양경찰청장의 밤샘 난상토론에 이어, 정부의 고위관리(최상환 해양경찰청 차장)는 지난 4월 24일 구조작전에 대하여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분노한 가족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영국 언론들, 유병언 전 회장에 대해서도 집중 보도

<스카이뉴스>는 4월 24일 '한국 페리참사: 희생자가족들 해양경찰청 공격'이라는 제목으로 최상환 차장이 유가족들에게 봉변을 당하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기사는 "희생자 가족들은 해양경찰청 임시사무실에 진입하여 최상환 해양경찰청 차장을 공격했다"며 "분노한 가족들은 최 차장이 구출작전의 규모를 과장해서 발표했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이 직접 구출현장에서 목격한 장면과 최 차장이 발표한 규모가 전혀 맞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고 보도했다.  또 "20여 명의 가족들이 최 차장을 밖으로 끌고 나와 최 차장의 뺨을 때렸다"며 "사망한 학생들의 부모들 중엔 정부의 구출작전이 너무 늦어서 학생들이 사망했다며 사망한 자녀들의 시신을 부검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마이크라는 이름의 독자는 이 기사에 이런 댓글을 남겼다.

"학생들을 구조하는데 이렇게 늑장대응 하는 것은 전혀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한국은 위성을 이용해서 수백만 마일 떨어진 화성의 물체도 맞힐 수 있는 나라 아닌가? 한국은 침몰한 배에 들어가서 죽어가는 학생들을 구할 수 있는 충분한 과학기술을 갖춘 나라가 아닌가? 결국 돈 몇 푼 아끼자고 학생들을 죽게 놔두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4월 24일 <데일리메일>은 '세월호 주인 별명 '얼굴 없는 백만장자', 3배 용량 초과선적으로 경찰조사'에서 청해진해운의 실질적 소유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에 대해 다루었다. 또 세월호 뱃짐이 권장 용량의 3배를 초과한 점과 청해진해운의 선원훈련에 단지 521달러만 사용한 것을 부각했다.

 

<인디펜던트>도 4월 23일 '한국 페리 참사: 조사관들 페리회사 설립자 유병언씨 집 조사, 사망 110명'을 통해 유 전 회장의 부패혐의를 집중 보도했다. 특히 유 전 회장의 세금문제와 불법으로 외화를 빼돌린 혐의에 대해 다루었다. 또한 유씨가 1990년 초 사기죄로 수감 된 적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보도했다. 이 기사에 대하여 독자들은 "이 참사의 원인은 부패군요", "이윤이 안전보다 앞설 때 지옥을 경험 할 수밖에 없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4월 23일자 <파이낸셜타임스>는 '잘못된 문화가 아니라 부적절한 정책이 원인'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세월호 참사는 성장제일주의에 국민의 삶의 질이 희생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또 "성장을 우선해온 가치를 조정하고 적절한 안전과 위기관리 정책을 강화하는 것이 이번 참사에 대처하는 올바른 접근법이 될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박 대통령, 유가족들 앞에서 머리 숙여 사죄해야 한다

<데일리미러>는 4월 22일 '구해주세요! 세월호 첫 구조 전화 한 학생'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이 기사는 "전통적으로 수직적인 계급사회"라고 한국 사회 문화를 분석했다. 이어 "그래서 많은 어린 학생들은 기성세대나 어른들의 지시에 질문하지 않고 복종한다"며 "그 복종의 대가로 많은 학생들이 생명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는 왜 학생들이 침몰하는 배에서 본능적으로 탈출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라'는 선원의 지시에 묵묵히 순종해 생명을 잃었는지 '문화적' 이유를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4월 22일 <데일리메일>은 '세월호에서 첫 구조요청 전화 한 학생에 이어 20여명 학생도 구조요청전화'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학생들의 적극적 역할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에게는 '배안에 그대로 있으라'고 지시 한 후 선장과 다수 선원들이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22세의 여성 박지영 선원은 탈출하지 않고 침몰하는 배에서 학생들의 탈출을 돕다가 사망했다고 전했다.

 

<파이낸셜 타임스> 4월 21일자는 '경찰대응, 전복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분노 더하게 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정부의 과잉대응을 보도했다. 특히 "분노한 유가족들의 청와대 행진 시도를 경찰이 과잉 진압해 정부에 대한 비판이 증가하고 있다"며 "행진 중인 유가족들을 촬영하고 원천적으로 차단한 것은 과잉진압"이라고 피력했다.

이 기사에 대하여 앤드류라는 독자가 남긴 댓글이 눈길을 끌었다.

 

"한국에서는 합법적인 시위에 대해서도 경찰이 과잉진압하고 있다.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건설을 반대하는 합법적인 시위자들은 매일 수많은 경찰력에 의해 강제 진압되고, 체포, 구금되어 벌금형을 받기도 한다.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로 지금 박근혜 정권은 과거 독재시대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다. 그가 세월호 선장을 살인자라 부르고 선원들을 유죄라고 비난하며 이들에게 중죄를 내리겠다고 하는 것은, 바로 자기가 잘못 다루고 있는 재난상황에 대하여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는 문명사회와 민주주의 선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법치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모욕하고 멸시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최근 며칠 동안 영국 언론에 실린 세월호 관련 기사를 접하며, 박근혜 정부의 무능함에 분노와 부끄러움을 느꼈다. 정부는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준에서 이 참사의 원인을 명백하고 상세하게 밝혀야 한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 자리에서가 아닌, 실종자와 사망자, 유가족들 앞에서 머리 숙여 사죄해야 한다.

 

외국 언론들이 바라본 세월호 참사..."한국 민주주의의 시험대"430경향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어떨까. 희생자들에겐 애도를 보내지만, 어린 생명들을 수장시킨 선박 승무원들과 무능한 구조당국, 한국 정부의 대응에 대한 세계의 평가는 싸늘하다.

 

 

■커져가는 비판과 대통령의 사과

세월호 참사를 시시각각 보도해온 외국 언론들은 29일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에 대해서도 일제히 보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박대통령이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아 애도한 것과 국민들 앞에 사과한 사실을 전하며 “군부 독재자(military strongman)의 딸인 박(근혜)에게는 치욕적인 순간(humbling moment)‘이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박대통령이 지난해 2월 집권한 이래로 북한의 위협 등에 맞서 강철같은 리더십을 보인 것으로 유명하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CNN방송도 박대통령의 사과발언을 전하며 “페리호 침몰에 대한 비판이 갈수록 커지자 대통령도 결국 분노(heat)의 일부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평했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박대통령이 분향소를 찾아가자 “몇몇 분노한 유족들이 소리를 지르며 사과를 요구했고, 박대통령은 10분 동안 유족들의 이야기를 들은 뒤 떠났다”고 전했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한국 정부에 대한 압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정홍원 총리의 사퇴선언도 “정부의 위기관리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사고 대응을 2005년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악명 높은 허리케인 카트리나 대응에 비유했다. “한국은 빌딩 붕괴에서 항공기 추락까지 재난의 역사를 지닌 나라이지만 이번에 여객선이 서서히 침몰한 사건은 ‘카트리나 모멘트(Katrina moment)’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문은 “발전과 성공의 강박증에 걸린 이 나라가 능력시험에서 떨어진 것”이라면서 “수십년의 개발로 서구식 생활수준에 도달했지만 세월호 사건이라는 ‘제3세계’의 징후를 가진 재난이 일어났다”고 꼬집었다.

 

■한국 민주주의의 시험대

이번 사건의 배후에 있는 한국의 구조적 문제점에 대한 해외 언론들의 비판은 더욱 신랄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9일 “세월호 참사로 한국의 안전미비가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배에 탔던 학생들의 침몰 직전 동영상 내용을 소개한 뒤 승무원들의 무책임을 지적했다. 동시에 사고 초기 선장 등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살인 같은 행위’라고 단죄하듯 발언함으로써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위협하는 듯한 행동을 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기초적인 안전훈련도 받지 않은 승무원들이라면 그런 행동을 한 게 놀라울 것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라고 소개했다.

 

FT는 지난 27일에는 “한국 민주주의의 힘이 엄중한 시험에 부딪쳤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 신문은 세월호 사망·실종자 가족들의 청와대행 행진을 당국이 막은 것과, 비슷한 시기에 장애인 시위대에 경찰이 최루액을 쏜 사건을 언급했다. 신문은 “이 두 사건은 한국의 민주제도의 힘에 대한 광범위한 우려를 낳게 한다”고 보도했다.

FT는 한국이 27년전까지 군사독재정권하에 있었던 나라라며 그 독재체제를 구축한 인물이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임을 상기시켰다. 신문은 “박정희에 대한 향수는 박근혜의 집권에 도움이 됐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야당은 박정희 시절의 인권침해를 들며 박근혜 대통령도 권위주의자라 비난하고 있다면서, “박근혜 정부의 몇몇 조치는 권위주의라는 비판에 기름을 부을 만 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대선 당시 국정원의 소셜미디어(SNS) 여론조작 사건을 그런 예로 거론했다.

 

 

■경쟁에 내몰린 ‘안전’

앞서 지난 23일에는 FT에 “나쁜 문화가 아니라 나쁜 정책이 페리 참사를 불렀다”는 칼럼이 실렸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킬링은 “과도한 성적경쟁(educational rat race), 높은 자살율, 성장과 이윤 중심의 경제모델, 시민복지보다는 ‘주식회사 한국(Korea Inc)’을 우선시하는 것, 특히 학생들을 ‘복종’으로 몰아간 위계질서에 대한 집착” 등을 한국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그는 한국의 안전 기록이 개발된 나라들 중에서는 터키 다음으로 나쁜 수준이라며 “한국은 원전에도 위조 부품이 사용됐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한국사회의 병폐를 기존 서구학자들의 시각처럼 유교 문화 등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하며 개발 중심의 정책들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앞서 22일 사설에서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한국의 안전 불감증을 짚으며 “효율과 이익을 우선시하며 자만하지 않았는지, 성장과 경쟁 논리 때문에 안전대책을 뒷전으로 미룬 것은 아닌지” 물었다. 로이터통신도 같은 날 “학생들 대다수는 객실에서 기다리라는 방송을 그대로 따랐다가 희생됐다”면서 “위계적인 한국사회에서 자란 그들은 복종의 대가로 목숨을 지불했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통신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은 앞서 21일자 칼럼에서 “위기 때 정부가 삼류라면 경제가 일류인 것은 의미가 없다”며 “박대통령이 자주 거론한 안전, 원칙, 책임이 이번 위기에선 모두 대단히 모자랐던 것같다”고 썼다.

 

■노란빛 추모 물결

한국 사회의 추모 물결도 외신을 타고 전파됐다. CNN방송은 ‘노란 색이 된 나라(Nation in yellow)’라며 오랜 기다림의 의미를 지닌 노란 리본이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람들의 희망과 애도를 담은 상징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방송은 진도와 안산 거리를 장식한 노란 리본들과 추모 물결을 전하며 “세계에서 가장 정보화된 나라답게 노란 리본 운동도 온라인에서 먼저 시작됐다”고 소개했다.

 

 

정치의 품격 : 사회적 망각과의 투쟁

[김민웅의 인문정신] 이인임 그리고 키케로의 품격

“힘없는 자의 용기만큼 공허한 것도 없지요. 세상을 바꾸려거든 힘부터 기르세요. 고작 당신 정도가 떼를 쓴다고 바뀔 세상이었으면, 난세라고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고려 말 이인임이 정도전에게 하는 말이다. 그는 또 이렇게 입을 연다. “전장에서는 적을 만나면 칼을 뽑아야하지만, 조정에서 적을 만나면 웃으세요. 정치하는 사람의 칼은 칼집이 아니라 웃음 속에 숨기는 것입니다.”

 

인기를 끈 드라마 <정도전>에서 유명해진 이인임의 대사다. 이것이 사실(史實)인지는 모르나, 그는 고품격 사대부의 격조를 갖추고 음모와 책략의 지휘자로 군림한다. 그렇지만 그의 정치는 오로지 자신의 특권을 지켜내기 위한 것이었다. 이인임의 품격은 흉심(凶心)을 감추기 위한 위장일 뿐이었다. 정도전의 토지개혁 구상은 이인임에게 가장 경계할 수밖에 없는 정치였다. 그런데 이인임이 지키려 했던 고려는 귀족들의 토지독점이 낳은 모순으로 끝내 붕괴하고 만다. 그렇게 되기 전 그는 제 꾀에 저가 넘어가는 자충수로 몰락한다.  적 앞에서 짓는 이인임의 격조 있는 미소 뒤에는 고려 백성들의 고통을 아랑곳 하지 않는 권세가의 탐욕이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었던 것이다. 정적에게조차 매력을 풍겼다는 그의 모습은, 그 밑에 짓밟힌 이들에게는 악령의 실체였다.

 

로마의 키케로는 뛰어난 웅변가에 공화정을 철저하게 방어한 사상가였다. 집정관 선거에서 경쟁자였던 카탈리니가 선거에서 떨어진 이후 원로원에 대한 쿠데타 음모로 탄핵대상이 되었을 때, 키케로는 현란한 연설로 사태를 주도한다. 이 사건으로 그는 영광의 도시 로마의 수호자로 자신의 입지를 세우는데 성공, 이후 국부(Pater Patriae)로 불리게 된다. 키케로는 카틸리니를 공격하고 난 뒤 이렇게 말한다. “우리 조국의 이익은 내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냈다. 나의 용기, 지혜, 그리고 통찰력이 우리 국가를 위기의 무덤에서부터 구해냈다.” 탁월한 인물이라는 그의, 자만에 가득 찬 자기미화다.

 

카틸리니의 음모는 이후 조작이라는 논란이 그치지 않았다. 그가 썼다고 하는 편지가 원로원에서 낭독된 후 카틸리니는 “국가의 공적(公敵)”으로 선언되고 탄핵대상으로 전락했다. 이 편지를 공개한 자는 보수 세력의 맹장 퀸투스 카툴루스였다. 이때 키케로는 이렇게 말한다. “보라,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범죄의 뒤에는 카틸리니가 있다. 로마의 그 어떤 범죄자들을 붙잡고 물어보라. 카틸리니와 친하지 않은 자가 있는가를. 살인이 있는 곳에 살인자가 있게 마련이다. 그가 바로 카틸리니다.” 키케로가 카틸리니와 관련된 자들이라고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마녀사냥을 벌인 것은 물론이다.

 

카틸리니는 무엇을 주장한 정치가였던가? 그는 민중들이 지고 있는 채무를 청산해주고 토지재분배를 정책으로 내세웠다.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그 흐름 속에 있는 마리우스의 노선에 이은 개혁정치의 지도자였다. 카틸리니의 인기는 원로원이라는 기득권 세력에게 위협이었던 것이다. 훗날 카이사르가 암살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카이사르가 제왕이 되려한다는 이유로 공화정 수호를 명분으로 내세운 암살모의는, 사실상 민중의 인기를 모은 카이사르에 대한 귀족들의 역습이었다. 카이사르 역시 채무의 청산과 토지재분배, 그리고 귀족들의 특권 일부의 해체를 시도하려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민중파 지도자 마리우스는 카이사르의 숙부였다.  키케로가 그토록 지켜 내려 한 공화정과, 그 정치기구인 원로원은 특권의 집합체였고 그의 품격과 지식, 연설의 능력은 모두 이 특권을 방어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던 것이다. 도대체 그렇다면 그토록 명성이 높은 키케로의 품격과 지식의 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민생 정치”의 허구

정치가 사람들에게 하도 환멸을 가져오니까 품격 있는 정치를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도 그런 현실의 반영이다. 그런데 그것은 격조 있는 언어와 자세를 구사하는 정치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관점과 내용이 격을 갖추지 못하면, 그건 빛 좋은 개살구가 된다. 또는 본질을 비켜가거나 그것을 획득하기 위한 의미 있는 싸움을 회피하는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정치의 품격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그래서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현실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에 답하기 전에 현재 한국 정치는 어떤 모습인지부터 보자. 한 마디로 민주주의의 실종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국민대중이 무엇을 고통스러워하는지를 토로하고 그에 대해 듣고 논의할 수 있는 정치의 장이 펼쳐져 있지 않다. 그것은 단지 경제적 현실에 대한 개선요구만이 아니다. 정치의 올바름, 정의로운 법 집행, 정책의 공정성, 민주주의의 위기 등에 대한 논의를 모두 포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안들은 “민생”이라는 말 앞에서 무력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민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들의 삶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권리의 확보가 그 우선적 전제다. 그렇지 못하면 자신의 존엄한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는 힘을 갖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정치권력이 문제제기의 권리를 박탈하고 있는 상황에서의 민생이란, 그 권력이 시혜적으로 베푸는 정책에 만족하는 것 외에는 다른 말은 하지 말라는 식이 되어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가 훼손되면 국민 대중은 거대 자본이 가져가고 남은 것 가운데서 개평이나 나눠 갖는 남루한 신세가 되고 말 뿐이다.  그 결과 사회적 갈등은 심화되고 이걸 해결하는 능력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역사발전의 다음 단계로 진입하는 데 어려움을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정치적 소통의 구조는 대단히 폐쇄적이고 배타적이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이런 현실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이어지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는 중이다.

 

이를 본질적으로 파헤쳐보자면, 사실상 파시즘 정치의 요소를 갖추고 있다. 『파시즘의 해부』(The Anatomy of Fascism)을 쓴 로버트 팩스턴은 파시즘은 “대중정치 시대의 발명품”이라면서 국민을 국가의 권위에 충성하도록 하는 가운데 개인의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키며 운용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나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기원』(The Origin of Totalitarianism)에서 밝힌 바 있듯이, 인간을 국가의 지침이라는 커다란 틀 속에 종속시키는 동시에 사회적 연대로부터 절연된 “개인의 원자화”를 만들어내는 방식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원자화된 개인은 현실 비판의식을 가지고 정치적 억압이나 경제적 착취에 맞서기에는 무력하다. 이런 개인이 많아질수록 권력의지는 더욱 용이하게 관철되고, 개인은 동원과 조정의 대상으로 전락해가며 소통의 주체성은 찾기 어렵게 된다. 또한 국가 지침의 실행에 방해가 될 만한 문제제기의 공간은 닫혀 진다. 권력은 정책 추진이 잘 되지 않을 때에는 홍보 부족이라고 생각하고,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서 프로파간다라고 볼 수밖에 없는 선전활동에 집중한다. 비판적 담론과 합리적 논의는 이러는 가운데 사라진다.

 

선거는 “자본의 사제”를 뽑는 제의인가?

한국 정치의 현실을 탐구하는 데 빠져서는 안 될 또 하나의 대목이 ‘자본이 지휘하는 정치’라는 점이다. 이는 사실상 한국 정치의 척추를 이루는 사안이다. 1999년 IMF 관리체제 이후 한국이 혹독하게 경험한 것은 자본이 국가를 통솔하고 국가의 기능을 동원해서 그 이해관계를 노동 배제적으로 실현한다는 사실이다. 부자 감세, 전임노조 임금지급 제한 등으로 상징되는 노조에 대한 정책적 압박, 용산참사에서 목격했듯이 재개발 지역민들에 대한 불공정 정책, 4대강 사업에 따른 사회복지 예산 부족, 주요 공기업에 대한 민간자본 지배구조 만들기 등 모두 한국 자본주의 체제에서 정치가 무엇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인문 지리학자이자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자인 데이비드 하비는 『신자유주의: 간략한 역사』(A Brief History of Neoliberalism)에서 신자유주의 정치의 본질은 “계급 권력의 복원”(the restoration of class power)이라고 단언했다. 이는 자본에 대한 국가적·사회적·문화적 제동장치를 해체하는 것이며, 국가가 자본의 수하기관이 되어 노동을 통제하고 자본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정책을 추진해나가는 것이다. 하비의 표현대로 공적 자원과 세제를 기반으로 “기업 복지가 인민의 복지를 대체해버린

상황”(Corporate welfare substituted for people welfare)이 되었다.

 

신자유주의 정치는 칼 폴라니가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에서 지적했듯이 “사회가 시장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사회를 지배하면서 빈곤이 창출되는 구조” 속에 더 깊이 빠져드는 길이다. 물론 신자유주의 정치가 걷잡을 수 없이 세력을 키우며 한국 정치의 중심을 완벽하게 장악한 것은 아직 아니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자본의 자유를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겉으로는 서민정책을 내거는 권력집단에게도 정치적 부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들은 자본이 약속해주는 욕망에 압도되고 있으며, 자본주의 안에서의 성공을 선망하는 까닭에 자본주의 모순에 대한 이해는 깊지 못하고, 이를 정치적 주제로 삼아 해결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자유주의 정치가 단지 계급권력의 복원을 통해 이해관계를 관철해나간다는 점을 넘어서서, 우리 사회의 공동자산을 법적, 제도적 장치를 통해 독점하고 약탈해가고 있다는 사실이 폭로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에 대한 청산의 정치가 가능하다. 이른바 “민영화”는 기본적으로 “공적 자산에 대한 거대 자본의 사유화(privatization)”이다. 공적 자산이 거대자본에게 넘어가는 것은 민주주의의 심화된 논의 체계 속에서는 거의 불가능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과 동맹을 맺은 국가는 대중의 시선이 차단된 공간에서, 거대자본에게 이 자산을 넘긴다. 그것은 국가의 허가 아래 이루어지는 명백한 불법거래다. 이런 상황을 막지 못하면, 마르크스가 우려했듯이 “국가가 자본의 운영위원회가 되는 상황”이 지속될 뿐이다. 국가론에 대한 정치사회학적 분석과 견해를 탁월하게 제시한 니코스 풀란차스의 견해는 그런 각도에서 중요하다. 그는 대중의 출현으로 인해 국가가 자본의 기본적인 헤게모니를 인정하는 장기적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 해도, 국가는 자본에 일방적으로 장악당한 기구가 아니라 “계급투쟁의 장”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즉 국가가 자본으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가지고 있는 부분을 파고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대중의 지지와 신뢰라는 항목과 자본의 이해라는 항목이 서로 충돌할 때, 권력은 저울질을 한다는 것이다. 선거체제가 작동하는 한 이는 당연하다. 대중의 지지와 신뢰가 동요하면 자신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자본에 일정한 손해를 끼치더라도 자본의 단기적 이해를 압박하는 변화를 보일 수도 있다고 본다.

 

이는 국가와 자본의 일체화 현상에 대한 “대중의 저항운동”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일깨운다. 그런 운동이 확산되어갈 때, 국가는 자본의 지휘권에 일정한 제동을 걸고, 그런 공간에서 자본의 헤게모니를 넘어 정치·경제적 선택이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정치를 자본의 거대한 성채 앞에 헌납하는 일상을 반복하게 되고, 선거는 ‘자본의 제사장’을 뽑는 정치적 제의가 되고 만다. 자본주의 정치에 대한 대안이 없다고 저항을 포기하는 순간, 대안을 논의할 공간마저 사라진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사회적 망각과의 투쟁

그렇다면 이러한 현재를 극복하고 격조 있는 정치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많은 노력과 대안들이 제시될 수 있다. 그런데 하나만 핵심으로 뽑아 말하자면, “사회적 망각과의 투쟁”이 가장 절실하다. 우리 사회는 아무리 충격적인 사건을 겪어도 시간이 흐르면 어느새 그 일에 대해 깨끗이 잊고 산다. 권력은 이걸 이용해서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서 버틴다. 그 사이에 희생되는 이들의 처지는 극도로 취약해진다. 한편 사람들은 사건과 사건의 고리를 짜임새 있게 연결시켜 하나의 큰 그림으로 읽어내지 않고 사건 자체의 화제성에만 몰두하고, 시간이 좀 지나면 이내 시들해져버린다. 사유의 깊이가 얕고 가벼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의 내적 변화에 대한 성찰도 깊게 다져지지 않는다. 무엇이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했는지, 무엇이 우리를 일으켜 세웠는지 또 무엇이 우리에게 절망과 희망을 주었는지 기억하지 못한 채 뭔가에 쫓기듯 줄곧 앞만 보고 달리기만 한다. 이런 곳에서 역사의식은 기대할 수 없다.

 

그러기에, 당장 필요하고 실용적인 것은 뭐냐, 라는 질문에 대해 조급히 답하기에 바쁘다. ‘본질적 가치’에 대한 논의와 대화를 할 수 있는 겨를은 좀체 없다. 그런 곳에서 정치는 망각을 밥으로 삼아 기만을 일삼는다. 망각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진실을 왜곡되게 재구성하는 토대가 된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약자를 위한 공동체의 책임과 연대를 구축해갈 정치는 뿌리를 내릴 토양이 없게 되는 것이다. 현상의 본질 또는 진실에 대한 접근은 차단된다. 권력이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주장만이 합법적이고 그밖에는 불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억을 끊임없이 새롭게 불러들이는 일은 모든 정치행위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원인도 모르고 책임도 불분명해지며 가야 할 목표도 헷갈리게 된다. 되돌아본다는 것은 ‘지나고 보니 전체가 보인다.’라는 깨달음과 맞닿아 있다. 현재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그 좌표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국정원의 대선 불법 공작사건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제목록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것은 이러한 상황을 반면교사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실례다.

 

결국, 쉽게 망각하는 공동체는 현재에 대해서도, 앞으로 가는 길에 대해서도 무지해진다. 현실을 세심하게 기록하고 그 안에 담긴 본질을 응시하는 일은 우리 자신을 아는 일이다. 자신을 빼놓고 모든 것을 안다고 말하는 이는 정작 아무것도 모르는 자다. 그런 이가 많은 사회에서 정치는 권력이 정한 방향으로 눈이 먼 채 질주하게 마련이다.

저널리즘과 역사학이 한 몸이 되어서 새로운 질문에 지속적으로 마주하는 일은 정치의 질적 발전을 위해 반드시 요구된다. 오늘날 한국의 저널리즘은 빠른 속도로 과거의 망각 위에 새로운 뉴스를 포화상태로 만들고, 역사학은 현재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이걸 넘어서야 한다.

 

“사회적 망각과의 투쟁”은 정치의 격을 무너뜨리는 독선적 권력에 대한 가장 중요한 철학적 사유의 출발점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전적 정치철학의 모든 출발점은 지난 시기의 역사에 대한 기록과 성찰에서 비롯되었다. 한 시대가 겪은 사건에 대한 기억이 말소되지 않도록 지켜갈 때 비로소 내용이 갖춰진, 품격 있는 정치가 가능해진다. 격조 있는 정치는 정치 공학적 발상에서 나온 기만과 술책을 거부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모멸적 정책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강자를 위한 계급권력의 복원에 저항한다. 지나온 역사를 돌아보면, 답이 나온다. 역사를 스승으로 모시지 않는 정치는 망각의 늪에 빠진, 뇌가 없는 정치가 된다. 그런 정치가 생각의 변화를 가져올 능력이 있을 턱이 없다.

 

생각이 바뀌지 않고는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나갈 방법은 없다.

 

‘청와대 글’ 원작자 “대통령 안바뀌면…”428 한겨레

‘당신이 대통령이어선 안 되는 이유’ 쓴 박성미씨

“대통령 그대로 가면 위험도 그대로 안고 가는 것”

 

박성미 감독

“(언론이) 저에게 너무 주목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실종자와 가족분들에게 필요한 취재에 더 집중해주세요.”

‘당신이 대통령이어선 안 되는 이유…’ 라는 제목의 글로 온라인에서 큰 화제를 모은 글의 원작자는 박성미(35)씨인 것으로 확인됐다. 박씨는 28일 오후 <한겨레>와의 전화 통화에서 “내가 쓴 글이 맞다”며 “오늘(28일) 저녁,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직접 글을 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에서 영화 공부를 하고 2007년부터 단편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현재도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박씨가 25일 본인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글은, SNS에서 퍼지다가 27일 오전 한 누리꾼이 청와대 자유게시판에 ‘당신이 대통령이어선 안 되는 이유…’ 라는 제목으로 옮겨 게시하면서 온라인 공간을 뜨겁게 달궜다.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 내용이었다. 해당 글은 28일 오전까지 청와대 게시판에서만 조회수 50만회를 돌파했으며, 접속자가 몰리면서 한때 게시판 자체가 먹통이 되기도 했다. 해당 글은 이날 오전 게시판에서 삭제됐고, 청와대 쪽은 “글을 올린 이가 삭제를 원해서 방법을 안내했다”고 설명했다.

 

‘입장 바꿔 생각하기’가 글의 출발점이 됐다고 한다. 박씨는 “사고가 나고 처음 며칠 간은 구조 방법에 대해서만 찾아헤맸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죄책감만 들고 너무 미안했다. 슬픔은 분노로 바뀌었다. 정부가 다양한 구조 제안들을 거절하는 걸 보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 같아서…. 그러다가 문득, ‘내가 해경이었으면 어땠을까, 내가 관리자였으면 어땠을까, 내가 구조대책본부장이었으면 어땠을까, 구조하는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리더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됐다. 대책본부가 10개나 된다. 각자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조치가 있었다면, ‘내가 책임지고 애들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라도 했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고 말했다.

 

‘리더의 철학’도 중요하다고 봤다. 그는 “아무리 리더가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말한다 하더라도, 아랫사람들은 윗사람의 말 자체보다 리더가 평소 어떤 걸 더 원해왔는지를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각종 ‘유언비어’를 통제하고 정부 비판을 막으려 애쓰는 것은 아랫사람들의 눈치보기에서 비롯됐고, 이 때문에 구조 작업에 제대로 힘을 쏟지 못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박씨는 “대통령 하야 요구는 정치적일 수도 있어서 조심스럽긴 하지만…”이라면서도 “대통령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대통령 하야 요구는) 분노나 복수의 차원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대통령이 그대로 가면 내각이 바뀌어봤자, 바뀐 사람들도 윗사람 눈치를 우선해서 볼 거다. 대통령을 그대로 안고 가면 위험을 그대로 안고 가는 것이며 같은 위험을 방치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전 장비 하나 더 만들고, 법률·제도를 새로 만들어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며, “사람 하나하나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한겨레>와의 인터뷰 내내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글이 주인공이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동의를 받지 않고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린 누리꾼에게 “글의 내용을 공유하는 데 목적이 있었으니까 괜찮다”고 했다. 그는 “<한겨레>는 실종자와 가족들을 위한 취재에 집중해달라”고도 거듭 당부했다.박씨는 자신의 글이 청와대 자유게시판에 올려졌다는 소식을 듣고 이날 오전 직접 자유게시판에 들어가 자신의 글 아래 쓰인 댓글 180여건을 따로 저장했다. “고마워서”다. “시민들이 쓴 댓글 중에 주옥 같은 글이 많았어요. 사실 대통령은 (일을 잘 못한 사람들을) 다 엄벌에 처한다고 했는데, 대통령은 위에는 국민뿐입니다. 국민들이 이렇게 청와대에 자신의 요구를 밝히는 건 당연한 일인데도 다들 조심스러워하잖아요. 그래서 (게시판에) 당당하게 할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더 감사했습니다.”

 

 

다음은 박성미 감독이 작성한 글의 전문이다.

'이런 대통령 필요없다'

숱한 사회 운동을 지지했으나 솔직히, 대통령을 비판해본적은 거의 없다. 그러나 처음으로 이번만큼은 분명히 그 잘못을 요목 조목 따져 묻겠다.

지금 대통령이 더 이상 대통령이어서는 안 되는 분명한 이유를. 대통령이란 직책, 어려운 거 안다. 아무나 대통령 하라 그러면 쉽게 못 한다. 그래서 대통령을 쉬이 비판할 수 없는 이유도 있었다. 그리고 대통령 물러나라 라는 구호는 너무 쉽고, 공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가 아무리 무능해도 시민들이 정신만 차리면 그 사회를 바꿔 나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임무를 수행 해야할 아주 중요한 몇 가지를 놓쳤다.

 

첫째, 대통령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뭔지도 몰랐다.

대통령이 구조방법 고민 할 필요 없다. 리더의 역할은 적절한 곳에 책임을 분배하고, 밑의 사람들이 그 안에서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고, 밑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을 지는 것이 기본이다. 특히 아래 사람들끼리 서로 조율이 안 되고 우왕좌왕한다면 무엇보다 무슨 수를 쓰든 이에 질서를 부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안행부 책임 하에서 잘못을 했다면 안행부가 책임지면 된다. 해수부가 잘못했으면 해수부가 책임지면 된다. 그런데 각 행정부처, 군, 경이 모여있는 상황에서 가 책임소관을 따지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면, 그건 리더가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한 거다. 나는 군 최고 통수권자이자 모든 행정부를 통솔할 권한이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딱 한 명 밖에 모른다.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했어야 할 일은 현장에 달려가 상처 받은 생존자를 위로한답시고 만나고 그런 일이 아니다. 그런 건 일반인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구조 왜 못하냐, 최선을 다해 구조해라' 그런 말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잘 못하면 책임자 엄벌에 처한다' 그런 호통은 누구나 칠 수 있다. 대통령이 할 일은 그게 아니다. '중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왜 쇼핑을 못 한답니까?' 그런 말 하라고 있는 자리 아니다. 공인인증서 폐기하라고, 현장에 씨씨티비 설치하라고, 그러라고 있는 자리 아니다. 일반인들이 하지 못하는 막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대통령에 책임이 있는 거다. 대통령? 세세한 거 할 필요 없다. 대통령은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일이 안 되는 핵심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점을 찾는 일, 뭐가 필요하냐 묻는 일. 그냥 해도 될 일과 최선을 다할 일을 구분하고 최선을 다해도 안 되면 포기할 일과 안 돼도 되게 해야 할 일을 구분해주고, 최우선 의제를 설정하고 밑의 사람들이 다른 데 에너지를 쏟지 않을 수 있도록 자유롭게 해주는 일, 비용 걱정 하지 않도록 제반 책임을 맡아 주는 일, 영화 현장의 스탭들은 감독이나 피디의 분명한 요청만 있다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안 돼는 일도 되게 한다.. 단, 조건이 있다. 어려운 일을 되게 하려면 당연히 비용이 오버 된다. 이 오버된 제반 비용에 대한 책임. 그것만 누군가 책임을 져 주면, 스탭들은, 한다.

 

리더라면 어떤 어려운 일이 '안 돼도 되게 하려면' 밑의 사람들이 비용 때문에 망설일 수 있다는 것쯤은 안다. 그것이 구조 작업이던 뭐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면 무조건 돈이 든다. 엄청난 돈이. 만약 사람들이 비용 때문에 망설일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면' 그건 대통령이 정말로 누군가의 말단 직원인 적도 없었고 비용 때문에 고민해 본 적도 없다는 얘기다. 웬만한 중소기업 사장도 다 아는 사실이다. 만약 리더가 너 이거 죽을 각오로 해라. 해내지 못하면 엄벌에 처하겠다 라고 협박만 하고 비용도 책임져주지도 않고, 안 될 경우 자신은 책임을 피한다면, 그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을 구하는데 돈이 문제냐 하지만, 실제 그 행동자가 되면 달라진다. 유속의 흐름을 늦추게 유조선을 데려온다? 하고 싶어도 일개 관리자가 그 비용을 책임질 수 있을까? 그러나 누군가 그런 문제들을 책임져주면 달라진다

 

"비용 문제는 추후에 생각한다. 만약 정 비용이 많이 발생하면 내가 책임진다." 그건 어떤 민간인도 관리자도 국무총리도 쉬이 할 수 없는 일이다. 힘 없는 시민들조차 죄책감을 느꼈다. 할 수 있었으나 하지 못한 일, 그리고 전혀 남 일인 것 같은 사람들조차 작게나마 뭘 할 수 있었을지를 고민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을 지휘하고 이끌 수 있었던, 문제점을 파악하고 직접 시정할 수 있었던, 해외 원조 요청을 하건 인력을 모으건 해양관련 재벌 회장들에게 뭐든 요청하건, 일반인들은 할 수 없는, 그 많은 걸 할 수 있었던 대통령은 구조를 위해 무슨 일을 고민했는가?

 

둘째, 사람을 살리는 데 아무짝에 쓸모 없는 정부는 필요 없다

대통령은 분명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 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왜 지휘자들은 '구조에 최선을 다하지' 안았을까? 그것이 한 두 번의 명령으로 될까? 날씨 좋던 첫째날 가이드라인 세 개밖에 설치를 못했다면, 이러면 애들 다 죽는다. 절대 못 구한다 판단하고 밤새 과감히 방법을 바꾸는 걸 고민하는 사람이 이 리더 밑에는 왜 한 사람도 없었는가? 목숨걸고 물 속에서 작업했던 잠수사들, 직접 뛰어든 말단 해경들 외에, 이 지휘부에는 왜 구조에 그토록 적극적인 사람이 없었는가? 밑의 사람들은 평소에 리더가 가진 가치관에 영향을 받는다. 급한 상황에서는 평소에 리더가 원하던 성향에 따라 행동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평소 리더가 어떨 때 칭찬했고 어떨 때 호통쳤으며, 어떨 때 심기가 불편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리더가 평소에 사람과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두었던 사람이라면 밑의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던 말 하지 않아도 그것을 최우선으로 두고 행동한다. 쌍용차 사태의 희생자들이 분향소를 차렸을 때 박근혜에게 충성하겠다 한 중구청장은 그들을 싹 쫓아냈고 대학생들이 등록금 때문에 죽어가도 아무도 그걸, 긴급하게 여긴 적이 없고 모두 살기보다 일부만 사는 게 효율에서 좋고.  자살자가 늘어나도 복지는 포퓰리즘일 뿐이고.  세 모녀의 죽음을 부른 제도를 폐지하는 데에 아직도 대통령이 이끄는 당은 그토록 망설인다. 죽음을 겪은 사람들을 '징징대는' 정도로 취급하고 죽겠다 함께 살자는 사람들에게 물대포를 뿌렸다.  이곳에선 한번도 사람이, 사람의 생명이 우선이었던 적은 없었다. 아직도 이들에겐 사람이 죽는 것보다 중요한 게 많고, 대의가 더 많다. '사람은 함부로 해도 된다' 는 이 시스템의 암묵적 의제였다.

 

평소의 시스템의 방향이 이렇게 움직이고 있던 상황에서 이럴 때 대통령이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 라고 지시를 하면, 밑의 사람들은 대통령이 진심으로 아이들의 생명이 걱정되어서 그런 지시를 내린 건지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보여줘라 라는 뜻인지, 정부의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구조를 하라는 건지, 여론이 나빠지지 않게 잘 구조를 하라는 얘긴지, 헷갈리게 된다.  대책본부실에서 누가 장관에게 전했다.  "대통령께서 심히 염려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이 말이 '아이들의 안위와 유가족들의 아픔을 염려하고 있다는' 건지, '민심이 많이 나빠지고 있어 자리가 위태로워질 걸 염려한다는' 건지, 밑의 사람들은 헷갈린다. 대신 지시가 없어도 척척 움직인 건 구조 활동을 멈추고 의전에 최선을 다한 사람들, 재빨리 대통령이 아이를 위로하는 장면을 세팅한 사람들, 대통령은 잘했다 다른 사람들이 문제다 라고 사설을 쓸 줄 알았던 사람들. 재빨리 불리한 소식들을 유언비어라 통제할 줄 알았던 사람들. 구조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애를 쓴 사람들. 선장과 기업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방향으로 여론몰이를 한 사람들과 순식간에 부르자마자 행진을 가로막고 쫙 깔린 진압 경찰들이다. 이것은 이들의 평소 매뉴얼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소 리더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지 알고 있었고 그것을 위해 움직였을 뿐이다. 그리고, 거기에 에너지를 쏟느라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쳤다.

내가 선거 때 박근혜를 뽑지 않았던 이유는 분명히 있다.

 

그가 친일파라서도 보수당이어서도 독재자의 딸이어서도 아니었다.  그녀가 남일당 사태 때 보여준 반응, 자신의 부친 때문에 8명의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거기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도 안타까움도 갖지 않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에 대해 그토록 가벼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대통령으로 뽑아선 안 된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리더의 잘못은 여기에 있다.  밑의 사람들에게 평소 사람의 생명이 최우선이 아니라는 잘못된 의제를 설정한 책임.

 

셋째, 책임을 지지 않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책임이 무겁기 때문이다. 막대한 권한과 비싼 월급, 고급 식사와 자가 비행기와 경호원과 그 모든 대우는 그것이 [책임에 대한 대가] 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조직에선 어떤 일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리더가 책임지지 않는 곳에서 누가 어떻게 책임지는 법을 알겠는가? 자신이 해야할 일을 일일이 알려줘야 하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사람을 살리는 데 아무짝에 쓸모 없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결정적으로, 책임을 질 줄 모르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덧붙임.

세월호 선장들과 선원들이 갖고 있다던 종교의 특징은 단 한 번의 회개로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아무리 잘못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 이라 한다. 이거, 굉장히 위험한 거다. 죄책감을 느끼지도 못하는 대통령, 이들과 결코 다르지 않다. 사람에 대해 아파할 줄도 모르는 대통령은 더더욱 필요 없다. 진심으로 대통령의 하야를 원한다. (오마이뉴스에서)

 

 

<한겨레21> 여론조사…74% “정부 발표 믿지 못한다”

“참사 현장은 ‘재난 영화’인데 정부 대응은 ‘풍자 영화’’

“공직자들 진도에서 천냥 빚 갚기는커녕 만냥 빚 졌다”

 

 

그날, ‘국가’라는 계약은 파기됐다. 전남 진도에서, 대학생 최진우(24·가명)씨는 눈을 비비고 자신의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다시 보았다. 아이의 생사도 알지 못해 피를 토하고 우는 부모와, 그 울음을 듣지 못하는 정부 관료의 틈바구니에서 그도 함께 물었다. “이게 진짜 나라인가.” 세월호 침몰 사고 닷새째를 맞은 지난 4월20일 새벽, 진도대교 위에 그가 알던 ‘대한민국’은 없었다.

 

총리의 꾸벅꾸벅 졸던 모습 

중간고사를 앞두고 2박3일의 시간을 낸 건 그 나름대로 큰 결심이었다. 공부에 바빠 학생회 활동을 해본 적도, 봉사활동을 나서본 적도 없었다. 생존자 구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노가다라도 하자’는 생각이었다. 진전 없는 구조 소식에, 그가 혼자 무작정 길을 나선 것은 지난 4월19일이다. 이틀 동안 고작 3시간을 자며 일했지만, 서울로 돌아온 그에게 남은 것은 뿌듯함이 아닌 절망감이다.

 

4월20일 새벽, 최씨는 청와대로 향하는 실종자 가족들의 뒤를 따랐다. 어떤 상황인지도 잘 몰랐다. 곧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운 어머니들을 부축하려 했다. 이내 국무총리가 도착하고, 경찰이 행진을 막았다. 가족들은 “우리 자식이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 제발 길을 열어달라”고 호소했지만 정홍원 총리는 “내가 여기 여러분들의 요청으로 온 이유는…”과 같은 정치의 언어를 뱉어냈다. 총리가 그마저도 이내 포기하고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차로 돌아가는 것을 최씨는 보았다. 2시간여 가족들에 둘러싸인 채 그가 차 안에서 꾸벅꾸벅 졸던 모습도 보았다. “한 나라의 2인자가 그런 행동이 말이나 됩니까? 진짜 절망밖에 안 느껴집니다.”

일상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는 진도의 후유증을 겪고 있다. “너무 분노가 차오르고, 아무것도 못했다는 절망감과 무력감 때문에 몇 번이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서울에 도착해서도, 가만히 서 있는 경찰관한테까지 멱살 잡고 욕하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으며 집에 돌아왔다”고 그는 말했다. 처참한 국가의 민낯을 눈앞에서 맞닥뜨린 청년은 5천만 국민이 그러하듯 절망과 분노의 나선 구조 안에서 스스로를 다잡는 중이었다.

 

재난 현장은 때로 희망과 연대의 공간이 된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레베카 솔닛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를 입은 뉴올리언스를 비롯한 몇 개의 재난 현장을 심층 취재한 뒤 출간한 책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재난은 지옥을 통과해 도달하는 낙원”이라고 적었다. 폐허 속에서 비로소 이타주의와 연대의식이 싹트기 때문이라고 그는 분석했다. 솔닛의 분석이 아니라도 살신성인한 의인, 자원봉사자들은 세계 곳곳에서 ‘재난 공동체’의 희망을 보여주곤 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는 다르다. 감히 희망을 말할 수 없는 심연 속에 갇혀 있다. 몰려든 자원봉사자들은 진도에서 희망 대신 절망과 분노를 느꼈노라고 입을 모은다. 김홍중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이 사고를 일컬어 “건국 이후 가장 처참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너무나 깊고 큰 피해여서 말이나 글로도 아직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아직 피어보지도 못한 꽃들이 무수히 졌기 때문에, 가라앉는 배 안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잘못된 지침을 받고도 침착하게 그를 지켰기 때문에, 가라앉는 아이들을 두고 어른들이 도망쳤기 때문에, 눈앞에서 침몰하는 배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았기 때문에, 그 모든 참극이 생중계되었기 때문에…. 세월호 침몰 사고가 전대미문의 참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무엇보다 재난의 실체를 파악해내기도 전에 그 위에 켜켜이 쌓여버린 ‘또 다른 재난’의 영향이 크다.

“너무 분노가 차오르고, 아무것도 못했다는 절망감과 무력감 때문에 몇 번이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서울에 도착해서도, 가만히 서 있는 경찰관한테까지 멱살 잡고 욕하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으며 집에 돌아왔다.” -최진우씨 

 

보도되는 말, 보도되지 않는 말

누구보다 실종자 가족들이, 정부가 야기하고 언론이 보조한 또 다른 재난의 가장 큰 피해자다. “우리만 아는 진실 앞에 점점 더 슬퍼집니다.” 지난 4월19일 사촌동생 김빛나라(17)양의 구조를 기다리며 진도 현장을 지킨 한아무개(28)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적었다. “진전 없는 구조 작업을 기다리기 지쳐서 마지막으로 온전한 시신이라도 한번 안아보려” 크레인 작업을 요청한 가족들에게 정부는 인양만을 고집했다.

 

한 가닥 진실을 요구한 가족들 앞에 놓인 건, 언제나 회피 또는 거짓이었다. 가족들의 ‘말’은 보도되지 않았고 정부 관계자들의 ‘말’은 즉각 전파를 탔다. 뉴스에선 “정부가 열심히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도대체 어디에 함정 192척, 항공기 33대, 잠수부 555명이 있는지” 한씨는 보지 못했다. “누구도 어떠한 상황도 믿을 수 없다”고 그는 밝혔다. 기다림 끝에 일부 가족들이 항의하면 기자들은 몸싸움을 편집해 보도했다. 보도가 나가면 ‘선동세력’ ‘미개한 국민’ ‘유족충’… 입에 담지도 못할 짐승의 언어들이, 보호받아야 할 가족들을 할퀴고 지났다.  생존 가능한 ‘골든타임’을 날려버린 정부는 주검으로 돌아온 아이들을 가족에게 인도할 때까지도 실수를 거듭했다. “아직 많은 사람이 눈물 훔치며 기다리고 있는 이곳을 떠나면서 솔직히 나는 이제 이 일의 진실이 뭔지 더는 알고 싶지도 않을 만큼 지긋지긋하다.” 한씨는 다시는 함께 웃을 수 없는 동생 김양의 차가운 몸을 거둬 진도체육관을 나서며 돌이켰다.  

 

다수의 시민들이 실종자 가족과 견해를 같이한다. <한겨레21>이 설문조사전문기관 ‘두잇서베이’와 함께 3856명에게 물었더니, 응답자의 73.8%가 ‘세월호 사고와 관련한 정부 발표를 신뢰할 수 없다’고 답했다. 69.2%는 ‘사고와 관련한 언론 보도도 신뢰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74.1%는 ‘사고와 관련한 정보들이 투명하게 공개돼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메디웰병원 안주연 원장(정신과 전문의)은 “사실 확인이 안 된 채 ‘전원 구조’라는 말이 함부로 나오면서 불신이 팽배했고, 재난 앞에 우왕좌왕하는 우리나라의 현주소를 여실하게 보여주면서 불신이 폭발했다. 기존 사회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투사되면서 ‘우리는 뭘 해도 못하겠다’ 결정지어버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와 언론을 믿지 못하는 이들은, 직접 진실을 구하고 나선다. “다들 좀비 같다. 이익이 되는 일에만 달려드는. 이곳은 생명 구조의 의지도 진실 보도의 의지도 없다. 절망적이다. 대한민국 조난자들의 현주소는 공동묘지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직장인 조정훈(43)씨가 지난 4월19일 초등학생인 딸을 데리고 진도 팽목항에서 쓴 글이다. 그는 팽목항이 “외계 항구 같았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끝없이 진실을 구하고 있었고, 언론과 경찰은 그들을 외면하는 것처럼 보였다. 조씨는 직접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진도의 실상을 알리기로 했다. “정말 올려주실 거예요? 정말 이 사실을 알려주실 거예요?” 아이를 잃은 한 여성이 그에게 고맙다며 울먹였다. 지상파 방송과 중앙일간지를 거부하는 실종자 가족들이 SNS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을 그는 이해하면서도, 여전히 납득하기 어려웠다.

 

“정부의 대응은 한 편의 풍자영화”

생업 때문에 하루 만에 진도에서 돌아왔지만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줄곧 현지 소식을 전하고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뉴스를 보며 울고 있지만, 참담함 속에서 스스로 해야 할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공군 하사관 출신인 그는 “내가 아파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존중하며 지냈던, 애국과 애족의 기준이 무너져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너무나 많은 공직자들이 (진도에서) 천냥 빚을 갚는 것이 아니라 만냥 빚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부채로 그들의 시스템이 부도가 나는 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조차 이번에는 통하지 않는다. 많은 시민들은 ‘소 잃어도 외양간은 안 고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설문조사에서 ‘이런 재난이 우리 사회에서 또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한 사람은 4.4%에 지나지 않았고, 84.7%는 ‘그렇다’고 답했다. ‘만약 당신이 재난 상황에 처한다면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선 64.4%가 ‘그렇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직장인 김보나(30)씨는 “세월호 사고를 지켜보며 정부가 나를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이 겪고 있는 현장은 재난영화인데, “정부의 대응은 한 편의 풍자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초등학교 때 삼풍백화점 사고와 성수대교 사고를 겪었어요. 어릴 때 일이라 몰랐는데 그때도 이 정도였나 싶어요. 이 나라에는 국민을 위한 시스템이 아예 없다는 걸 새삼 확인했어요.”

 

그러니 지하철 지연 운행조차 새삼스런 공포로 다가온다. 대학생 김성준(25)씨는 “과연 이게 나만의 호들갑이겠느냐”고 물었다. 세월호 사고 이튿날인 4월17일 오후 김씨가 서울지하철 1호선을 타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남영역에서 열차 운행이 지연되고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마침 스마트폰으로 세월호 사고 뉴스를 읽고 있었다. 김씨가 말했다. “순간적으로 기다려달라는 말이 소름 끼치더라고요. 아, 기다렸다가 아이들이 죽었다는데 하는 생각이 나면서.” 다행히 사고 열차는 20분 만에 운행이 재개됐지만, 한국 사회의 신뢰 프로세스가 복구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막지 못할 재난 뒤엔 감정을 추스를 수 있지만, 막을 수 있었던 재난 뒤엔 분노를 잠재우기 어렵다.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일하는 김영숙(47)씨는 세월호 사고를 보면서 요즘 “무기력증과 우울증과 화병을 동시에 앓고 있다”고 말했다. “이만한 극한 상황이 앞으로 있을 수 있나요? 이보다 지독한 상황이 생길 것 같아요?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 및 간첩 증거 조작), 이런 이슈를 보며 정부가 부도덕하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용서될 일이 아니잖아요. 근본적인 부분들이 다 무너져버린 상황이니….”

“아직 많은 사람이 눈물 훔치며 기다리고 있는 이곳을 떠나면서 솔직히 나는 이제 이 일의 진실이 뭔지 더는 알고 싶지도 않을 만큼 지긋지긋하다.” -한아무개씨

 

두 개의 길, 불신과 거부 

권경우 문화사회연구소장은 지금의 국민적 공황 상태에 ‘연속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조각조각 나뉘어져 있던 정부, 또는 국가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한꺼번에 집약돼 나타난 것입니다. 이런 불신의 문제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가 향후 한국 사회의 체제에 큰 영향을 줄 것입니다.” 무너진 신뢰 앞에는 두 갈래의 길이 놓여 있다. 신자유주의적 경쟁과 이기심이 강화되거나,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대안을 찾거나. 드러난 양상이 어떻든 “두 개의 길 모두 본질은 국가에 대한 불신과 거부”라고 권 소장은 덧붙였다.

 

친구를 잃은 아이들마저 ‘정부’와 ‘조국’을 부정한다. “정부가 무능하다. 정부에 화가 난다”고 말하는 아이들의 목소리엔 어른의 흉내가 없었다. 스스로 느끼고 생각해낸 말임이 분명했다. 지난 4월23일 안산 합동분향소 앞에서 만난 이아무개(17)군은 “선장이 도망치는 걸 보고 너무나 슬펐지만 진도에서 라면을 먹던 (서남수) 장관에 대해서도 화가 났다”고 말했다. “안타까워요. 살아 있을 가능성이 많았는데 결국 구조가 안 됐잖아요. (정부가) 능력이 없어요.” 정부가 무엇인지도 죽음이 무엇인지도 몰랐을 아이들은, 며칠 새 스스로 웃자란 듯 보였다.

 

가라앉는 배를 보며 아이들이 배운 것은 ‘어른들을 믿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극한 슬픔 앞에서 어른들은 아이만도 못해 보였다. 실종 상태인 친구를 그리며 분향소를 찾은 유아무개(17)군과 친구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실종자 명단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진도체육관에서 라면을 먹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대표라는 게 어이없어요. 그 사람들은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장관은 성적으로 뽑는 게 아니라 인성으로 뽑아야 해요.” 또래의 비극을 공감하는 것은 아이들의 몫이었다. “같은 고등학생이라 더 슬퍼요. 공부만 하다가 죽었다는 게 억울해요.”

 

김선업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기성세대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성세대가 역사적으로 성취해온 것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고, 미래 세대에 대한 배려와 의무는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번 사고에서 무엇보다 기성세대가 탈출하고, 미래 세대가 규칙을 지키며 희생당한 것이 분노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세대 관계에 대한 부분도 반성이 뒤따르게 될 것 같습니다.”

 

“조국이 우릴 배신했어요”

“조국이 우릴 배신했어요.” 김아무개(18)·박아무개(18)군은 꾹꾹 울음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 “정부가 이번 사건에서 서로 미루는 걸 보고 배신감이 들었어요. 와서 몇 마디만 하고 가면 대통령이에요? (참사 현장에서) 오바마는 유가족들한테 직접 다가가고 그러던데 왜 우리 대통령은 그렇게 안 해요?” 두 소년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를 꼭 실어달라고 부탁했다. “사랑하는 친구들아. 물속에서 고통받느라 고생했다. 하늘나라에서만큼은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사랑하는 친구가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어른들은 한 일이 없다. 공부만 하다가 아이들이 떠날 때까지, 어른들은 해준 것이 없다. 침몰하는 배를 구경할 때가 아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성난 눈으로 이 폐허를 응시해야 한다.

 

 

여왕님’을 위한 심기보도에 열 올리는 언론들 미디어오늘 429

[기고] 윤재석 방송인·시사평론가

세월호 참사 열사흘 째인 28일 정성훈이라는 네티즌이 ‘당신이 대통령이어서는 안 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박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글을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렸다 삭제했다. 하지만 이미 50여만 건의 찬반 댓글(물론 공감하는 쪽이 압도적)이 올라와 한 때 청와대 홈페이지가 마비되기도 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은 작성자만이 삭제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그 진위는 일단 접어두자.

 

오후 6시 쯤 정 씨가 올렸던 글의 원 작성자라는 박성미 씨가 글을 다시 올렸다. 역시 열화와 같은 찬반 댓글이 폭주했다. 그런 이변은 29일 오후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이른바 대부분의 주요언론은 이 사안에 대해 침묵하거나 축소보도 할 뿐이다. 28일 지상파 3사의 저녁 뉴스와 밤 뉴스에선 이와 관련된 뉴스를 찾아 볼 수 없었다. 시청자가 가장 많이 찾는 3개 방송이 약속이나 한 듯 이 빅뉴스를 외면한 것이다. 29일자 조중동은 또 어떤가! 중앙에선 아예 찾아볼 수 없고, 조선은 A12면 하단에 3단기사로 가볍게(?) 취급했다. 그나마 동아가 A12면이기는 하지만 톱 박스로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사진과 함께 게재해 눈길을 끈다.이 판에 신이 난 건 종편 채널이었다. 가뜩이나 돈 드는 콘텐츠 만들기에 벅차 허덕이던 차에 세월호 참사로 ‘대목’을 맞은 종편은 상당히 자세하게 이 사안을 거듭 내보냈다.

 

언론매체에서 뉴스를 다루는 것은 물론 당해 매체의 고유 권한이다. 뉴스밸류는 상식선에서 재는 게 상례다. 원 작성자라는 이가 다시 올린 글에 달린 댓글을 포함해 이미 1백만 건을 초과할 정도로 일파만파의 국민적 관심사가 되어버린 뉴스를 ‘킬’해 버린다면 그건 언론의 ABC를 저버린 무책임한 소치에 다름 아니다. 작성자의 이념적 성향이 어떻든 간에 글은 상당히 논리적이고 따끔하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은 물론, 대부분의 국민이 공감할 내용이다. ‘일베’로 추정되는 이들의 비난 댓글은 그렇다 치고, 도대체 대한민국 주요언론은 무슨 생각으로 뉴스를 만드는 걸까?

 

그러고 보니 28일자 미디어오늘 온라인에 뜬 기사가 다시금 관심을 끈다. ‘박근혜 정부, 세월호 보도통제 문건 만들었다’ 제하의 기사는 방송통신위원회 내부문건 <“세월호” 관련 재난상황반 운영계획>에 따르면 “정부 부처가 전 방위로 언론의 세월호 관련 의혹을 통제하고 방송사를 조정통제하는 등 사실상 언론을 통제하는 정황이 담긴 정부 내부 문건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http://www.mediatoday.co.kr [단독] 「박근혜 정부, 세월호 ‘보도통제’ 문건 만들었다」참조

 

기사는 “방송사 인허가 권한이 있는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가 방송사를 ‘조정통제’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만)는 모니터링을 강화하면서 사업자에게 ‘삭제’를 신고하는 등 전방위로 세월호 관련 보도와 의혹제기를 통제한다는 내용”이라고 이어간다. ㅡ1987년 대한민국 민초들의 항쟁에 힘입어 우리는 언론자유를 얻었다. 언론 스스로가 아닌 민중의 힘에 의해서였다. 건전한 언론이라면, 정권엔 건설적 비판자가 되어야 하고, 국민에겐 정부가 못해주는 ‘민성(民聲) 전달’에 충실해야 한다.

21세기 대명천지에 또다시 보도지침이 생겼다. 그렇다면 이른바 메이저 언론의 눈치보기 행태(이번 사안에서 동아는 빼고)는 또 뭔가!

 

 

JTBC ‘NEWS9’, MBC ‘뉴스데스크’와 시청률 격차 0.29% 429미디어오늘

세월호 참사 이후 ‘손석희 NEWS9’ 가파른 상승세…28일 방송 5% 돌파

 

 

세월호 참사이후 종합편성채널 JTBC 메인뉴스 <NEWS9>의 시청률 상승세가 눈에 띈다. 지난 28일 시청률에선 MBC <뉴스데스크>와 유사한 시청률을 나타내며 지상파 메인뉴스를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다.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이 진행하는 <NEWS9>은 방송사 가운데 세월호 관련 보도를 가장 공정하게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청률조사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진도 팽목항 현지에서 진행된 <NEWS9> 28일 방송은 5.06%의 시청률(유료방송가구 기준)을 기록했다. <NEWS9>이 시청률 5%를 넘긴 것은 손석희 사장이 지난해 9월 16일 <NEWS9>을 진행한 이래로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채널A <종합뉴스>는 1.74%, MBN <뉴스8>은 1.33%, TV조선 <뉴스쇼 판>은 1.77%를 기록했다. 이들 종편 3사는 28일 합산시청률이 4.84%로 <NEWS9>에 못 미쳤다.

 

주목할 점은 지상파 메인뉴스와의 격차다. 같은 날 MBC <뉴스데스크>는 5.6%, SBS <8뉴스>는 6%시청률을 기록했다. 이 수치는 전국13개 지역 기준이어서 종편 시청률 집계방식과 단순 비교할 순 없다. 이에 미디어오늘은 4월 28일 방송된 JTBC <NEWS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의 동일가구 시청률자료를 확보했다. 닐슨코리아 기준 수도권 유료가구 시청률(광고 포함)은 표본이 같아 정확한 비교가 가능하다. 표본은 1100여명 수준으로 알려졌다

 

JTBC <NEWS9>은 28일 5.47%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같은 날 MBC <뉴스데스크>는 5.76%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SBS <8뉴스>는 5.99%를 나타냈다. 이 수치만 놓고 보면 JTBC와 MBC 메인뉴스 격차는 0.29%로,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수도권에서 KT 스카이라이프 등 유료방송서비스에 가입한 집들이 8시에 MBC뉴스를 보는 비중과 9시에 JTBC뉴스를 보는 비중이 비슷해졌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2011년 12월 개국한 종편 메인뉴스가 3년 만에 지상파 메인뉴스 시청습관에 근접했기 때문이다.

 

<NEWS9>은 지난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해경․해수부․중대본 등 정부 측의 재난대응실패를 지속적으로 보도하며 세월호 사고 원인과 ‘언딘’의 문제점, 해경․민간잠수부 간 갈등, 다이빙벨 등 이슈에 집중했다. 또한 실종자 가족의 목소리를 타사보다 비중 있게 담아내며 호평을 받았다. 지난 25일부터는 손석희 앵커가 팽목항 현지에서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27일에는 세월호 사고 실종자인 단원고 2학년 이승현 군의 아버지 인터뷰를 내보내며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불안한' 엄마들, 아기 안고 세월호 추모행진430 오마이뉴스

[현장] 육아 커뮤니티 회원 100여 명 참여... "안전한 세상 만들어 달라"

30일 낮 서울 강남역 앞. 검정 옷차림에 노란 리본을 단 엄마들이 줄지어 섰다.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거나 힙시트로 아이를 멘 엄마 100여 명은 각자 만들어 온 피켓을 들고 두 줄로 나란히 도보를 걸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슬픔과 분노를 잊지 않겠습니다"라 적힌 피켓들이었다.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 애도와 실종자 구조를 촉구하기 위해 아기 엄마들이 거리로 나왔다. '마담방배' 등 육아 커뮤니티에서 모인 엄마들은 강남역 10번 출구 앞 도보를 왕복하며 추모행진을 벌였다. 걸으면서도 수시로 아이를 살펴보는 엄마들은 별다른 구호를 외치지 않고 조용히 걷는 모습이었다.

이날 추모행진을 주도한 전주영(30)씨는 생후 20개월 아기를 둔 엄마다. 전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로 슬픔과 분노 때문에 밤잠을 못 이룬다는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주 올라오곤 한다"며 "온라인에서만 슬퍼하고 분노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다른 엄마들에게 추모행진을 제안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부 향해 "엄마의 마음으로 실종자 찾아달라"

 

 

한국 산재 사망자 10만명당 18명으로 세계 최고 430 한겨레

월28일은 세계 산업재해 사망자 추모의 날이고, 5월1일은 노동절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 노동자의 어려운 현실을 통계로 알아본다.

 

 

■ 일하다가 목숨 잃는 노동자들

한국은 긴 노동시간과 함께 산재가 많은 나라라는 오명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1964년 산재보험 도입 이후 2012년까지 산재 통계를 보면 산재 발생률은 꾸준히 줄었지만 산재 사망자는 잘 줄지 않는다는 걸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아래 산재 발생률과 1만명당 산재 사망자 변화를 보면 기울기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그래프의 기울기는 감소 또는 증가율) 이런 격차는 1990년대에 특히 두드러진다. 2012년 한해에만 일하다가 사고로 숨진 노동자수가 2165명에 달한다

 

산재 발생률과 산재 사망자 추이의 괴리 현상은 국제 비교를 해보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국제노동기구가 집계한 2008년 산재 통계를 보면 한국은 10만명당 사망자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산재 부상자로만 보면 중간 정도다. (통계 자료 중 노동 시간 기준으로 산재 통계를 발표한 나라들은 그래프에서 제외.)

 

이렇게 산재 발생과 산재 사망의 격차가 심한 것은 대부분의 노동 현장은 안전이 많이 개선됐으나 위험 사업장은 보호 조처가 미흡한 탓이 아닐까 추측해볼 수 있다. 하지만 노동계 일부에서는 산재 보고가 제대로 안된 채 은폐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스위스,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 같은 유럽 국가들이 산재 사망자는 아주 적은 반면 산재 부상자는 세계 최고 수준인 것을 볼 때, 산재 부상자 건수는 사고를 얼마나 정확하게 보고하고 절차대로 처리하느냐 여부에 크게 좌우될 여지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차별받는 노동자들

산재 사고만 한국 노동 현장의 문제는 아니다. 목숨을 잃진 않더라도 소외되고 차별받는 노동자들이 널려있다. 대표적인 집단이 여성 노동자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 임금의 60%를 받는 게 한국 여성의 평균적인 현실이다. 소외되고 차별받는 또 다른 노동자는 비정규직이다. 전체 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부와 노동계의 시각 차이가 큰 부분이다. 정부는 계약 기간을 정하지 않고 계속 일할 수 있는 이들(무기 계약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분류하는 반면, 노동계는 기한이 정해진 근로계약을 맺지 않은 상태일지라도 임시직과 일용직이면 비정규직으로 분류한다. 이 때문에 두쪽이 발표하는 비정규직의 비율이 20%포인트 가까이 차이 난다.

 

비정규직 노동자 대다수가 노조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지만, 정규직 가운데서도 대다수는 노조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노조로 뭉쳐 자신들을 지키지 못하는 노동자들도 또 다른 의미의 소외되는 노동자들이다.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 한국의 노조 가입률은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잠깐 조직률이 상승했던 것이 거의 유일한 예외다.

 

 

 

■ 노동에서 배제되는 이들

소외당하고 차별받는 게 아니라 아예 배제되는 이들도 있다. 바로 실업자들이다. (실업률 통계 또한 논란이 많은 부분이다. 한국은 전세계적으로 실업률이 아주 낮은 나라에 속하지만, 노동계에서는 정부의 통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실업 가운데서도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은 청년 실업이다. 세계에서 경제 규모가 가장 큰 선진 7개국과 한국의 15-24살 청년 실업 비교는, 한국의 실업이 결코 낮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한국은 대학진학률이 아주 높고 군 입대자도 많기 때문에 15-24살 청년이 실업자 곧 “일자리를 원하지만 얻지 못하는 사람”으로 분류될 가능성은 아주 적다. 그럼에도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 청년 실업률이 일본보다 꾸준히 높고 2010년부터는 독일보다도 높다.(선의 기울기는 증감률)

 

 

■ 나라마다 제각각인 전세계 상황의 단면도

마지막으로 전세계 각국 노동자들의 상황을 엿보기 위해 국제노동기구가 제공하는 실질 임금 상승률(임금 상승분에서 물가 상승분을 뺀 순수한 상승분) 자료를 바탕으로 세계 지도를 그렸다. 가장 최신 자료(나라에 따라 2009-2011년)로 비교해보면, 중국과 옛 소련연합 소속 일부 국가 노동자의 실질 임금은 꽤 상승한 반면 북미나 유럽, 아시아 주요 국가 노동자들의 형편은 거의 정체 상태로 나타난다. (물론 몇년간의 추세를 보면 이와 전혀 다른 양상일 수 있다. 이 지도는 그저 특정 순간의 단면도와 같은 것이다.)

 

 

돌아눕고 귀 막아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한겨레21 14.03.24 제1003호]

[레드 기획] 취약계층 타깃 삼아 광고 폭탄 퍼붓는 보험·대출 업체

캐릭터·로고송 각인 효과로 경계심 무장해제

거리에서 사람들이 “청년에게 일자리를, 노인에게 복지를” 목 놓아 외친다. 간절한 목소리는 전달될 회로를 찾지 못하고 흩어진다. 그 시간에 안방으로 통하는 촘촘한 회로를 확보한 텔레비전은 속삭인다. “청년에게 대출을, 노인에게 보험을.” 공공성의 가면을 쓴 공중파 광고와 달리 규제가 덜한 종합편성채널(종편)과 케이블채널은 사회의 숨겨진 무의식을 드러낸다. 불안정 노동을 마친 청년이 집으로 돌아온 저녁, 황혼의 부부가 쓸쓸한 시간을 보내는 오후, 종편과 케이블에선 끝없이 보험광고와 대출광고가 나온다. 이제는 전파를 타지 않지만 아직도 목소리가 생생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갓난아이도 들으면 고개를 돌리는 산와대부(산와머니) 광고의 로고송 “산와~ 산와~ 산와머니~ 걱정 마세요~”. 단언컨대, 러시앤캐시(A&P파이낸셜대부)의 무대리는 지난 10년 동안, 좋건 싫건 가장 기억에 남는 광고 캐릭터가 됐다.

 

청년에게 대출을, 노인에게 보험을

나라도 하지 못한 위로를 광고가 대신한다. 단, 먼저 위협을 해야 위로의 효과가 더한다. ‘직진’ 이순재씨가 묻는다. “대한민국 사망 원인 1위, 2위, 3위 어르신들은 대비해두셨습니까?” 옆에 뜨는 자막은 ‘1위 암, 2위 뇌혈관질환, 3위 심장질환’. 라디오 방송 스튜디오에 앉은 순재씨가 앉아서 문답한다. 그는 “안타깝지만 3대 큰 병 환자의 절반 이상이 60세 이상인 어르신”이라고 친절하게 ‘팩트’를 확인시켜준다. 암보험 광고는 이토록 친절하다. 건강 고민을 토로할 상대가 없는 노인과 대화도 나눈다. 이번엔 무대를 옮겨 이순재씨가 강연을 한다. 방청자 중 경상도 억양의 어르신이 질문한다. “여기서는 가입될 것처럼 이야기해놓고 나중에 전화를 허면은 다른 소리를 하는 거 아입니까?” 이순재 멘토가 답한다. “그럴 리가요. 어른들이 드시는 보험 아닙니까. 병이 있어도 가입할 수 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상담원 여성이 받아서 답한다. “네, 맞습니다. 무진단·무심사로 가입시켜드리고, 가입 2년 후 사망시 보험금을 일시금으로 지급해드립니다.” 통계의 공포로 시작해 보험의 대안으로 끝나는 전형적인 형식의 암보험·실버보험 광고다. 이런 형식에 대해 안주아 동신대 교수(언론광고학)는 “위험이 개인마다 다른데 천편일률적인 통계를 통해 위험을 과대 지각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무진단·무심사’ 실버보험은 이름도 불러준다. “병이 있으신 69세 김현순 할머님, 약을 드시고 계신 78세 김종부 할아버님, 수술을 받으신 적이 있는 89세 서인숙 할머님, 이분들 모두 쉽게 실버보험에 가입되셨습니다.” 그렇게 이름을 불러주자 외로운 고객님, 어느새 꽃이 된다. 이번엔 AIA생명 차례다. 역시나 공신력 ‘돋는’ 토크쇼 무대다. 손범수 아나운서가 “나는 꼭 암에 걸릴 거 같다 하시는 분?” 하고 묻는다. 청중이 조용한 가운데 그는 “하지만 우리가 평생 암에 걸릴 확률은 36%”라고 역시나 친절히 알려준다. 형식의 진화는 고부간 갈등으로 이어진다. 광고는 얄미운 며느리 면박도 준다. 중·장년에게 익숙한 방송인 송도순씨가 며느리 역할의 인물과 대화를 나눈다. 며느리가 선수를 친다. “저희 어머니는 암보험을 아는 사람 말만 믿고 들으시려는 거예요.” 송도순 어머니가 반박한다. “암보험이라고 뭐가 다르니. 어른들은 딱 보면 딱 알아. 저렇게 아는 체를 해.” 이렇게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공방이 오간 다음, 손범수 아나운서가 등장해 어머니의 손을 들어준다. 그런 보험 “있습니다”라고. “보험료 오르지 않고 낸 보험료 다 돌려받는” 암보험이 있단다.

 

통계로 어르고 상담으로 구슬리고

어디선가 보았던 풍경의 데자뷔. 노인의 설움과 가족의 갈등과 건강의 위기를 보살피고 중재하고 위로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끝없이 갈등을 확대재생산하는 종편과 꼭 닮았다. 보험광고는 불안산업이자 위로산업이다. 윤용찬 보험금숨은그림찾기 교육센터 센터장은 “건강보험의 보장성과 복지 수준이 떨어지는 현실에서 공포 마케팅을 하는 보험광고는 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보험에 가입하지 말라는 말로 불안심리를 설득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불완전한 건강보험과 복지체계가 가져온 구조적 산물이란 것이다. 이런 불안산업의 수혜자도 있다. 노인을 대변하는 이미지를 가진 연예인이나 공신력이 있다고 믿어지는 아나운서다. 그들에게 보험광고 모델은 블루오션이다. 윤용찬 센터장은 “방송이 곧 공신력이라고 믿고 살아온 고령층은 보험광고의 취약계층”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암 걸려서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면 어쩌나’ 하는 한국 부모들의 걱정이 더해진다”고 덧붙였다. 실제 광고에서 이순재씨는 “보험도 없이 온갖 치료 다 받다보면 자식한테까지 손 벌리고 딱한 노릇 아닙니까?”라고 부모의 마음을 대변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지만, 노인을 위한 보험은 있다. 광고가 타전하는 메시지다.

 

“대출, 묻지도 따지지도 못하고 거절된 적 있습니까?” ‘이번엔 러시앤캐시’ 광고의 무과장이 묻는다. 강의를 하던 무과장, 칠판에 “누구나 무상담 100만원이요. 계약직, 휴직자 다 된다는 말이쥬”라고 역시 친절하게 대출할 그대를 부른다. 혁혁한 광고 효과를 인정받아 무대리에서 무과장으로 승진한 이 캐릭터는 웬만한 어린이도 알 만큼 유명하다. 지난해 11월 금융정의연대는 서울 지역 4~6학년 초등학생 361명을 대상으로 대부업 광고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응답한 어린이들이 ‘대출광고 중 기억되는 장면’으로 꼽은 1위는 무과장(196명), 2위는 산와머니(92명)였다. 이 조사에서 ‘대부업 광고를 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어린이 비율은 94.7%에 이른다. 광고를 접한 매체는 TV(79.2%)가 압도적이었다. 2007년 이후 대부업 광고는 종편과 케이블에서만 방영되는데도 이렇게 유명하다.

 

물량 공세의 결과다. ‘러시앤캐시’의 A&P파이낸셜 등 상위 10개 대부업체가 지난해 쏟아부은 광고액만 500여억원으로 추정된다. 이학영 민주당 의원실 조사를 보면, A&P파이낸셜대부(러시앤캐시)의 광고는 지난해 1~10월 12만2188회 방영됐다. 하루 평균 402회의 광고가 나간 것이다. 산와대부(산와머니) 광고도 하루 평균 72번 방송됐다. 전체 케이블 광고 중에 대부업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은 10% 이상이다. 얼마나 자주 나오는지 어린이가 증명한다. 금융정의연대 조사에 응답한 어린이 중 ‘하루에 10회 이상 대부업 광고를 보았다’는 비율만 12.2%(44명)에 달했다. 제윤경 사회적 기업 에듀머니 대표는 대부업 광고의 위험성에 대해 “화면에 화폐라는 자극적인 도구가 등장해 더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강연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가짜 돈을 보여줘도 흥분한다”며 “화폐 자체가 소유 심리를 자극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대출의 위험성을 알리는 문구가 광고 시간의 5분의 1 이상 노출되지만, 숨겨진 1인치 같은 활자를 제대로 보기란 쉽지 않다. 귀여운 무대리의 러시앤캐시, “걱정 마세요”라고 시름을 덜어주는 산와머니, 유쾌한 봉식이의 리드코프가 챙기는 이자율이 37~39%(2012년 12월 기준)인지는 광고를 봐도 잘 모른다.

 

광고 물량 공세… 초딩도 외운다

초기에 ‘무담보’를 외치던 대부업 광고는 이제 청년의 친구처럼 다가온다. 도전하는 여성 신입사원이 나오는 러시앤캐시의 기업 이미지 광고는 물론이고, 젊은 남녀의 대화를 통해 ‘빠르고 간편한 서비스’를 강조한 광고도 그렇다. “버스랑 지하철만 탈 수 있나. 바쁠 땐 택시도 타고.” 대출을 했다고 하자 이자율 걱정을 하는 그녀에게 그가 하는 말이다. 이 광고는 “조금 비싼 대신” “음… 편하고 안심되는 거?”라는 대화로 이어진다. 이렇게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광고의 약발은 만만치 않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2012년 말 비은행 금융기관에서 신용대출을 받은 청년층(15~19살)의 48.3%가 이자율 30% 이상의 대부업체·저축은행에서 돈을 빌렸다. 30살 이상 중·장년층의 19.6%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나아가 광고는 대출로 이어진다. 에듀머니가 2013년 10월 조사한 자료에 바탕하면, 서울에 살거나 직장을 다니는 대부업 이용 경험자들이 대출을 알게 된 계기로는 TV 광고(26.5%)가 가장 많았다.

 

 

여성을 향한 광고도 유난히 많다. 러시앤캐시는 여성 전용 대출 계열사 미즈사랑을 따로 두고 있다. 미즈사랑은 ‘여우식당’을 통해 친근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미즈사랑을 상징하는 주인이 손님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시리즈다. 제주 해녀들이 단체 미팅을 나가야 하는데 옷이 없으면 “걱정 맙서” 하면서 검은 해녀복에 색을 입히는 붓을 들고 나서고, 전주에서 손님이 “전라도 여자가 카레 하나 못 맹근다고 대판 했어야” 하면 주인이 “뭐여 카레가 별거여?” 하면서 ‘1분 카레’를 내놓는 식이다. 쉽고 빠른 대출이란 것이다. 최근엔 방송인 브로닌이 등장한 광고도 전파를 타고 있다. 산와머니도 대출을 받은 주부가 “산와머니 덕분에 즐거워졌어요”라고 말하는 경험담 형식의 광고를 내보냈다. 이런 여성 대상 광고에 대해 제윤경 대표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대출 회수율이 좋고 추심이 쉽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리하여 가계부채 1천조원 시대, 지난해 대부업 이용자는 250만 명이었고 시장 규모는 8조원에 달했다. 금융정의연대 설문에서 아이들에게 대출광고 중 기억되는 장면을 쓰라고 했더니 “무과장 사랑해요” “‘산와~ 산와~ 산와머니~’ 노래를 부르는 장면” 등이 나왔다. 심지어 “단박대출” “3초면 가능합니다” 같은 구체적 광고문구를 언급하기도 했다. 보험광고의 약발도 살아 있다. 특정 보험 광고만 나오면 아기가 갑자기 텔레비전에 집중한다는 엄마들의 경험담이 인터넷에 떠돈다. 보험광고는 친숙한 모델을 통해 노인들의 손을 잡아주는 이미지를 얻었고, 빅모델이 출연을 꺼리는 대부업 광고는 일관된 캐릭터와 로고송을 통해 인지도를 쌓았다.

 

대부업 광고 반대운동 벌이는 시민단체

이런 현실을 바꾸려는 노력도 있다. 금융정의연대·에듀머니 등이 참여한 금융소비자네트워크는 지난해 11월부터 대부업 광고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정치권도 나섰다. 이학영 민주당 의원은 대부업체의 텔레비전 광고를 금하는 대부업법 관련 개정안을 내놓았고,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은 아동·청소년 시청 시간대에 대부업 광고를 금지하는 안을 내놓았다. 이 개정안은 오는 4월 국회에서 논의된다. 제윤경 대표는 “광고에 취약한 계층일수록 방송을 보는 시간이 길다”고 서글픈 현실을 다시 짚었다.

 

 

불륜, 강남 부자의 속살을 드러내다 [한겨레21 14.04.28 제1008호]

[레드 기획]정성주·안판석의 <아내의 자격> <밀회>가 까발린 속물적이고 염증 부르는 우아한 세계

 

홍보는 이것으로 하지만 사실은 저것을 말하고 싶은, 영화와 드라마는 많다. JTBC 월·화 미니시리즈 <밀회>는 ‘불륜’으로 홍보됐다. 마흔 살 여자와 스무 살 남자의 ‘불륜’, 시청자를 텔레비전 앞으로 일단 불러야 하니까 그렇다. 물론 거짓은 아니다. 엄연히 불륜이 있다. 음악대학을 운영하는 서한예술재단 오혜원(김희애) 실장은 천재적 재능을 가진 가난한 피아니스트 이선재(유아인)를 만나 치명적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정성주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것만이 아니다. 농밀한 제목과 달리, 드라마는 ‘사랑밖엔 난 몰라’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들을 둘러싼 인물들, 사랑을 부르는 조건이 중요하다. 스무 살 차이의 강렬한 불륜은 여주인공 자신이 속한 세계에 대한 염증이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그 염증을 부르는 세계는, 당연히 부자의 세계다. 정성주 작가와 안판석 PD는 전작인 <아내의 자격>에서도 <밀회>와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했다.

 

 

우리 시대 부자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

‘김희애들’은 외부에서 이식된 존재다. 그들은 서민/중산층 출신으로 애초 여기에 속한 이들이 아니다. 가난한 방송작가 출신인 <아내의 자격>의 윤서래, 부자 친구에 ‘묻어서’ 유학을 가야 했던 예술고 출신 오혜원. 김희애가 연기한 역할들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팔자가 아니다. 손주를 국제학교에 보내고 싶은 시가와 남편에 의해 서울 대치동으로 이주를 강권당한 엄마였고, 오직 성공을 위해 부자 친구 시중을 평생 들며 살아온 “우아한 노비”다. 그들은 고군분투한다. 그 세계가 그곳에서 시작하지 않은 그들을 호락호락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태어나지 않으면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 계급의 유전이 두 세대를 넘어버려 계급의 사다리가 이제는 끊긴 한국 사회에 대한 냉정한 묘사다. 그래서 그들은 부자로 태어나 부자로 살다가 부자로 죽을 애들이 보지 못할 것을 본다. 이웃집 남자와 바람이 나든, 연하의 남자와 불륜에 빠지든, <밀회>와 <아내의 자격>은 우리 시대 부자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다. 정성주 작가가 시청자에게 제출하는 보고서 양식의 항목은 분류하면 아래와 같다.

 

먼저 그들은 물건을 던지고 사람을 해친다. 오혜원 이마에 붙은 반창고 하나로 그들은 간단히 손찌검이나 하는 것들이 된다. “30년 우정”의 친구는 ‘뻑하면’ 마작패를, 서류판을 던진다. “야, 오혜원!” 하면서 얼굴에 대고 마구 던진다. 그 폭력은 무죄다.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손찌검하는 서영우(김혜은)의 아버지가 예술재단의 실소유주요, 목격자들의 밥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폭력은 강자와 약자 사이를 넘어 모든 관계의 본질에 있다. <밀회>는 우아한 여자화장실의 은밀한 폭력으로 이 세계의 문을 열었다. 한성숙(심혜진)은 호스티스 출신인 자신의 과거를 들추는 서영우의 머리채를 잡아서 변기에 처박는다. 저래도 되나 싶게 한참을 박는다. 그런데 이들은 서류상 모녀다. 예술재단 이사장인 한성숙이 예술센터 대표인 서영우의 계모다. ‘자, 여러분 여기는 이런 세계예요’, 드라마는 선포했다. 여기에 겹치는 신이 있다. <아내의 자격>에서 시누이가 ‘언니’(오빠의 부인)의 머리채를 잡고 사정없이 내동댕이치는 장면이다. 어쩌면 사소한 폭력인데 그 폭력의 효과는 매우 잔인하다.

 

<밀회>에서 정보는 권력의 핵심이요, 폭력의 수단이다. 예술재단, 입시비리, 자리를 둘러싸고 끝없는 정보 전쟁이 벌어진다. 여기는 재단을, 자리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서로를 눌러야 하는 세계다. 서한그룹 회장 서필원(김용건), 서영우, 한성숙 사이에서 오혜원은 “삼중 스파이”로 살아왔다. 그것은 건초염으로 피아니스트 인생을 잃은 그녀가 선택한 생존법이다. 비밀 장부를 만들고, 불법 도청을 하고, 감시 카메라를 돌리고…. 정보를 독점하고 약점을 캐내야 사는 세계에서 혜원은 내외부자다. 권력의 정점에 오르는 내부자가 되지는 못하지만, “네가 모르는 게 있니?” 소리를 듣는다. 그만큼 중요하고 그만큼 위험하다. 그녀는 그렇게 “어디서나 주로 서 있고 때로는 구두를 신고 자는” 인생을 살아왔다. 억대 연봉을 지키려면 맞는 굴욕도 참아야 한다. 물론 “집이나 차나 심지어 가정부도 네 것인 게 하나도 없는” 인생이지만 말이다. “너 나랑 따로 구좌 트자”는 서 회장의 위험한 제안도 “해야죠”라는 다짐으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파멸을 예감해도 거부하지 못하는 인생을 혜원은 산다. 엄마의 정보력이 곧 아이의 성적이 되는 대치동 전투 <아내의 자격>도 원리가 다르지 않았다.

 

회생이 불가능한 속물들의 퍼레이드

‘작업’은 여자들이 한다. 정성주 작가가 묘사하는 세계에서 주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여자다. <아내의 자격>에서 어떻게든 자식을 국제학교에 보내려고 정보 전쟁을 벌이는 엄마도 여자였고, <밀회>에서 예술재단 꼭대기를 차지하려고 싸움을 벌이는 이들도 여자다. 이런 이전투구의 주체는 여자다. 불륜의 주체도 여자다. 이것이 정성주식 페미니즘이다. 여자들은 전투하지만, 남자들은 심판한다. 때로 남성권력 검찰이 끼어들어 전투의 변수가 된다. 이런 위기와 곡절을 겪지만, 결국은 남편과 회장이 운명을 결정한다. 이것이 정성주가 ‘까발리는’ 가부장제다. 여자들을 이전투구로 내몰고, 남자들은 먼발치의 꼭대기에서 전투를 지켜본다. 하지만 여자들은 남자들의 명령을 거부하는 주체로 선다.

 

 

부자 남자들은 냄새나는 할아버지, 찌질한 남편이다. <아내의 자격> <밀회>의 남편들이 하는 말을 줄이면 “당신이 좀 해봐”. 욕망은 원대하나 능력은 치졸한 남편들은 끝없이 갈등한다. 아내의 외도를 알고도 아내를 잃으면 현재의 위치도 잃을까 두려운 혜원의 남편 강준형(박혁권) 교수가 그렇다. 교수나 기자, 허울은 좋지만 능력은 바닥인 이들은 정성주 작가가 <아줌마>에서부터 그려온 찌질한 남편의 모습이다. 아버지의 뒤에서 아버지의 아버지는 말한다. “아니, 그렇게밖에 못하냐.” <아내의 자격>에서 법조인 출신의 시아버지가 그랬고, <밀회>의 서 회장이 그렇다. 아들에게 말하는 척하지만, 실은 며느리가 들으라고 하는 말이다. 결국 근본을 탓하며 며느리(혹은 자식 같은 혜원)를 내치는 이들은 자기보다 큰 권력에는 굽실굽실 전전긍긍하는 자들이다. <아내의 자격>의 시아버지는 대형 로펌 대표인 사돈에게 비굴하다. 권력의 정점인 사돈어른은 ‘핏줄’을 지독히 따진다. 며느리가 낳은 손녀보다 아들이 두집 살림해서 낳은 손자가 그에겐 소중하다. <밀회>의 서 회장도 마찬가지다. 남들 앞에선 새로 들인 부인을 위하는 척하지만, 내심은 딸에게 가 있다. 그들은 회생이 불가능한 속물이다. 이렇게 산업화 세대의 성공한 남자들은 약자를 집어삼키며 살았고, 민주화 세대의 남자들은 아내마저 이용하고 무시하는 치졸한 어른이 되었다. 이것이 개발주의 시대에 대한 작가의 태도다.

 

심지어 이들은 점쟁이나 믿는 것들이다. <밀회>에선 무속인 백 선생이 백발백중의 투자 컨설턴트로 나온다. 혜원의 남편 서 교수는 선재가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이란 점쟁이의 말이 귀에 맴돌아 아내와 선재의 관계를 알고도 참으려 애쓴다. 이런 치졸한 부자들 대척점에 건강한 서민의 세계가 있다. 두 개의 세계는 여주인공을 통해 연결된다. 혜원의 애인인 선재는 퀵서비스를, 서래의 동생은 반찬가게를 했다. 정성주 작가의 ‘밥 먹이는 일’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모택동 주석이 대문호 루쉰을 기리기 위해 세운 학교에 다녔고, 만인민이 평등하다 배웠고, 내가 내 주인이다 그렇게 배웠소.” 서 회장이 쫓아다니는 중국동포 아주머니가 독주를 앞에 놓고 혜원에게 하는 말이다. 그런 자신에게 “다시는 (회장을) 만나지 않겠다는 말을 해달라”는 혜원의 얼굴에 아주머니는 물을 끼얹는다. 어떤 모욕도 참던 혜원이 가장 슬프게 보이는 순간이다. 자기 몸을 굴려 자기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 당한 굴욕이라 뼈아프다. 그 아주머니도 식당일을 했다. <밀회>와 <아내의 자격>에서 가난한 사람 누구도 자존을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작업장에서 얻은 생생한 정보로 극의 흐름을 바꾼다. <아내의 자격>에서 서래의 동생은 도우미 아주머니들을 통해 들은 정보로 언니를 돕는다. 선재의 여자친구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겨주며 흘려들은 얘기를 통해 자신에게 닥친 불길한 현실을 예감한다.

 

종편 속 부르주아와의 밀회

<밀회>와 <아내의 자격>은 성숙한 여인이 낯선 세계에 던져진 미성숙한 남자/아이를 보호하는 이야기다. “더러운 건 내가 상대해. 그게 내 전공이거든.” 혜원이 선재에게 보낸 편지에 나온 말이다. 선생이 없는 아이는 아이가 없는 선생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선생인 혜원이 선재와 만남을 통해 욕망하는 것은 사랑만이 아니다. 혜원은 희망을 욕망한다. 선재의 순수한 재능을 발견하고 지켜주면서 자신의 죄를 스스로 사하고 싶은 것이다. <아내의 자격>도 따지고 보면, 대치동이라는 무한경쟁의 낯선 세계에 던져진 아들을 지켜주고 싶은 엄마의 고군분투였다. 지켜주고 싶은 존재가 아들이든 아들 같은 천재이든, 지켜주고 싶은 마음은 다르지 않다. 자신이 속한 세계의 실패를 돌이킬 수 없다고 느끼는 인간은, 다음 세대의 나에게 마지막 희망을 건다. 이것은 혜원과 서래에게 투영된 작가의 욕망이자 모성이다.

안판석의 치밀한 연출은 보는 사람을 몰입의 세계로 이끈다. 그의 연출을 통해 우리는 부자의 세계를 구경하고 그것에 압도당한다. 김희애의 물광 피부와 완벽한 라인에서 비롯된 이 세계는 우아한 미용실, 화려한 사무실 같은 공간으로 확장된다. 밀폐된 부르주아의 세계는 그렇게 우리 앞에 현현한다. 그들의 ‘독살스러운’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그들의 우아한 공간이 필요한 역설이 빚어진다. 이것은 다시 부자를 고발하는 드라마를 종편을 통해 봐야 하는 역설적 현실로 이어진다. 그렇게 우리는 부르주아의 세계와 밀회한다. 이것이 정성주 극본, 안판석 연출의 ‘강남 부르주아 시리즈’의 역설이다. 여기서 강남은 단순한 지리적 배경을 넘어선 이름이다.

 

빌게이츠,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은 모기’ 코리아헤럴드

빌 게이츠가 최근 자신의 블로그 ‘게이츠 노트’에 공개한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동물’이란 제목의 인포그래픽이 해외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해마다 가장 많은 피해를 입힌 순으로 숫자를 집계한 이 도표는 압도적인 1위로 모기를 꼽았다. 모기는 해마다 총 72만 5,000명의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며 말라리아, 뎅기열, 황열병, 뇌염 등 모기가 옮기는 질병으로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고 한다. 스페인어로 ‘작은 파리’라는 뜻을 가진 모기 (mosquito)는 이름에 맞지 않게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입히는 질병을 옮긴다. 또한 모기는 2,500 종이 넘으며 남극을 제외한 모든 곳에 서식 하고있다고 한다.

 

게이츠는 말라리아는 인류의 절반을 위협하고 있으며 해마다 수조 달러의 생산피해를 입힌다며 이렇게 위협적인 동물에 대한 특집방송은 없느냐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그래서 이번 한 주 동안 모기특집을 진행하려 한다”며 앞으로 게재될 글의 주제를 예고하기도 했다.보통 무서운 동물, 위험한 동물을 꼽으라 하면 사자, 악어, 상어 등을 꼽지만 게이츠가 제시한 순위에 의하면 모기에 이어 2위는 인간 (475,000명)이 뽑혀 씁쓸함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어 3위에 뱀 (50,000명), 4위에 개 (25,000명), 5위에 체체파리 (10,000명) 순으로 순위가 나타났다.  게이츠는 말라리아를 옮기는 가장 큰 원인인 모기에 대한 경고를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이런 글을 게재한 것으로 “빌과 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말라리아를 퇴치하기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