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한겨레-경향
5.9 국민-경향 시사이판
5.8 한겨레-기호
5.8 중앙-기호
5.8 국제-내일
5.8 경향-국민
5.7 한겨레=한국
5.7 한국-중앙
5.7 기호-국제
5.7 경향-국민
5.6 한겨레-국제
5.6 강원도민-프레시안
5.9~5.7 경향 장도리
朴대통령 "세월호 사회분열, 경제에 악영향" 5.9 프레시안
경제위기론으로 '출구전략'…또 빼든 '규제완화' 녹슨 칼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출구전략'에 팔을 걷었다. 박 대통령은 9일 오전 청와대에서 긴급 민생대책회의를 열고 세월호 사고 이후의 소비 위축 조짐에 대한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경제위기론'으로 국면을 전환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산다. 박 대통령은 특히 "경제에 있어서 뭐니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심리"라며 "그런데 사회불안이나 분열을 야기시키는 일들은 국민경제에 전혀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 고통은 국민들에게 돌아오게 된다"고 했다.
세월호 사고에 관한 정부 비판이나 대통령 책임론 등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표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잘못 보도되고 왜곡시킨 정보들이 떠돌아다니고 이런 것에 대해 바로잡고 이해를 시키고 그래서 사회에 다시 희망을 일으킬 수 있도록 힘을 내시고 힘써 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최근 소비가 줄어들고 있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태를 방치하게 되면 서민경제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며 "특히 세월호 사고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과 업종의 대표들로부터 민생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정부가 마련한 대책이 적절한지 점검해 달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거듭 "최근 세월호 사고 여파로 소비심리 위축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경기지표가 나빠진 다음에 뒤늦게 대책을 내놓기보다는 선제적으로 대응해서 심리 위축을 최소화하고 경기회복의 모멘텀을 이어가야 한다"고 했다. 또한 "우리 국민과 기업들이 경건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일상적인 경제활동을 정상적으로 지속해 나가려면 무엇보다 조속한 사고 수습에 정부가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규제완화의 지속적 추진을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을 위한 경제혁신과 규제개혁 노력은 흔들림 없이 지속돼야 한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다만 "규제개혁을 추진하는데 있어 합리적이고 꼭 필요한 규제와 불필요하고 불합리한 규제는 잘 구분돼야 한다"며 "안전이라든가 소비자 보호, 공정 경쟁을 위해 꼭 필요한 좋은 규제는 반드시 유지하고 필요한 경우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하지만 시대에 뒤떨어지고 글로벌스텐다드에 맞지 않아서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가로막는 나쁜 규제는 과감히 고치고 없애야 한다"면서 "공공부문 개혁, 가계부채 축소 등 우리 내부의 위험요인을 줄이기 위한 구조개혁 노력도 흔들림 없이 추진돼야 한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이번 세월호 사고의 유가족들이 겪는 아픔을 국민들도 같이 아파하면서 애도하고 있다"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에선 문제점들을 찾아내서 바로잡고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과 관련 사항을 상세하게 국민에게 밝힐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이 민생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는 동안 청와대 앞에는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연좌농성을 벌였다. 박 대통령은 박준우 정무수석을 보내 유족 대표단을 만나도록 했다.
굵고 짧은 미국 대통령 사과 … 여론 보며 수위 높이는 한국 5.10 중앙
세월호 침몰] 대통령의 책임과 사과
2010년 1월 7일 오후 4시30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스테이트 다이닝룸 벽난로 앞에 섰다. 공식 국빈 만찬장이자 미국 대통령의 주요 연설과 발표가 이뤄지는 장소. 벽난로 위에는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미국 전역에 TV 생중계된 13분 동안의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보름 전인 크리스마스에 발생한 항공기 폭탄테러 미수사건의 조사결과를 설명했다. 이어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데 대해 국민에게 사과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는 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교훈을 얻고 실수를 바로잡아 더욱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최종적인 책임은 내게 있습니다. 대통령으로서 나는 국가와 국민을 보호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시스템이 실패했다면 그것은 내 책임입니다.”
(Moreover, I am less interested in passing out blame than I am in learning from and correcting these mistakes to make us safer. For ultimately, the buck stops with me. As President, I have a solemn responsibility to protect our nation and our people. And when the system fails, it is my responsibility.)
박 대통령 네 차례 사과에도 여론 나빠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네 차례에 걸쳐 사과했다.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사전에 사고를 예방하지 못하고 초동대응과 수습이 미흡했던 데 대해 뭐라 사죄를 드려야 그 아픔과 고통이 잠시라도 위로받을 수 있을지 가슴이 아프다. 이번 사고로 많은 고귀한 생명을 잃게 돼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고 가슴이 무겁다”고 말했다. 참사가 빚어진 지 14일 만이었다. 지난 2일 종교지도자 간담회에선 “대통령으로서 참담한 심정”이라며 “대안을 갖고 앞으로 대국민 사과를 드리겠다”고 했다. 4일 진도 팽목항을 찾아 “사고 발생부터 수습까지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고 했고, 6일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에선 “유가족들께 무엇이라 위로를 드려야 할지 죄송스럽다”고도 했다. 박 대통령은 조만간 대국민 공식사과를 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거듭된 대통령의 사과에도 논란은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사과의 시기와 내용, 형식을 둘러싸고서다.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대통령의 사과는 어떠해야 할까. 백악관 공식 홈페이지의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의 사과연설 전문을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사과와 비교해 보면 뚜렷한 차이점이 있다. ‘대통령의 사과 프로토콜(protocol)’이 명확하다는 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공식 연설장소인 스테이트 다이닝룸을 ‘사과의 장소’로 정했다. 대통령의 주요 발표와 국정연설이 이뤄지는 장소다. ‘사과의 형식’도 달랐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은 전국에 TV로 생중계됐다. TV라는 매체를 이용했지만 사실상 국민을 상대로 직접 사과한 것이다. ‘사과의 언어’ 역시 차이가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대통령의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사용한 표현인 ‘The buck stops with me(최종 책임은 내게 있다)’는 미국 대통령의 수사(修辭)처럼 여겨진다. 제2차 세계대전 도중 루스벨트 대통령의 사망으로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 책상 위 명패에 ‘The buck stops here’라는 문구를 새겨두고 주요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되새겼다고 한다. 사실 이 표현은 은어(隱語)다. 포커 게임에서 딜러의 순번을 결정하기 위해 사용한 사슴뿔 손잡이 칼(buckhorn knife)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잡이가 사슴뿔로 된 칼을 다음 딜러에게 넘겨주는 것(passing the buck)이 ‘책임과 의무를 전가한다’는 관용구로 굳어졌고, 이후부터 수사슴 또는 돈을 의미하던 벅(buck)에 ‘책임’이란 뜻이 더해졌다는 것이다.
미국, 사과 통해 위기 넘고 국면 전환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국민에게 직접 사과하고,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음을 분명히 하는 건 미국에선 전통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사과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국면을 유리한 방향으로 바꿔놨다. 케네디 행정부의 최대 실패로 여겨지는 쿠바 피그스만 침공 사건이 대표적이다. 침공 실패 후 사흘이 지난 1961년 4월 21일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침공을 계획한 것이 미국 정부이며 작전이 실패로 끝났음을 자인한다.
한 기자가 “왜 지난 며칠 동안 국무부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느냐”고 따져 묻자 케네디 대통령은 유명한 답변을 했다. 그는 ‘승리했을 때에는 자기 공이라고 나서는 사람이 100명이지만, 실패했을 땐 나서는 사람이 없다(Victory has a hundred fathers, but defeat is an orphan.)’는 속담을 인용한 뒤 이렇게 말했다.
“추가적인 발표나 구체적 논의를 한다 해서 책임을 피할 순 없습니다. 내가 이 정부의 최종 책임자이기 때문입니다.”(Further statements, detailed discussions, are not to conceal responsibility because I’m the responsible officer of the Government.)
전문가들은 민주주의 선진국일수록 리더의 사과에 대해 국가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한다.
한국대통령학연구소 임동욱(한국교통대 행정학과 교수) 부소장은 “미국은 대통령의 수사(Presidential Rhetoric)가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대통령이 사과할 때에는 공식적인 장소에서 국민들에게 직접 사과하고,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서 끝난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고 말했다. 임 부소장은 이어 “충분한 고민 없이 이뤄진 듯한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는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꿰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효과적으로 사과하는 법』의 저자인 미국의 ‘사과 전문가’ 존 케이더는 중앙SUNDAY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한국, 나아가 아시아의 사과 문화와 미국의 문화는 다르다”라고 전제하면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선출된 국가수반으로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사과해야 하는 것은 상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식의 ‘기관의 사과(institutional apology)’는 개인의 사과와 달리 ‘힘있는 리더의 언어’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사과에 대해 그는 “진정한 사과를 했다기보다는 아쉬움을 표한 정도에 그친 것 같은 레토릭”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박 대통령이 지금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은 방어적 태도를 취하지 않는 것”이라며 “사과의 투명성과 모든 국민 앞에서 솔직해지는 것이 진정성을 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길”이라고 조언했다.
MBC, 실종자 가족 조급증이 잠수사 죽였다? 5.8 프레시안
민실위 "MBC 뉴스에 '분별'은 있는가"
MBC <뉴스데스크>가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을 비판하고 정부를 옹호하는 듯한 논평을 내보내 논란이 일고 있다. MBC <뉴스데스크>는 7일 저녁 박상후 전국부장은 "함께 생각해봅시다. 분노와 슬픔을 넘어서"라는 제목의 뉴스를 통해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해양수산부장관과 해양경찰청장등을 불러 작업이 더디다며 압박했다"며 "조급증에 걸린 우리사회가 왜 잠수부를 빨리 투입하지 않느냐며 그를 떠민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라고 비판했다. 민간 잠수부 사망 원인이 실종자 가족에게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박 부장은 다이빙벨 논란으로 촉발된 해경과 민간 구난 업체 '언딘'의 유착 관계에 대한 설명은 제외하면서 "다이빙벨도 결국은 분노와 증오 그리고 조급증이 빚어낸 해프닝이었다"며 "이웃 일본에서도 다이빙 벨 투입 실패 직후 어처구니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본의 한 인터넷 사이트다. '19세기에 개발된 장비로 20세기에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을 21세기에 사용한다는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한국인이 무섭다', '깊은 수심에 다이빙 벨이라니 야쿠자도 놀랄 상술이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고 지적했다. 일본 전문가도 아닌, 일반 사이트 댓글을 9시 메인 뉴스에서 소개한 것이다.
박 부장은 "사고 초기 일부 실종자 가족들은 현장에 간 총리에게 물을 끼얹고 구조작업이 느리다며 청와대로 행진하자고 외쳤다. 외국의 사례는 어떨까"라며 실종자 가족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어 박 부장은 "쓰촨 대지진 당시 중국에서는 원자바오 총리의 시찰에 크게 고무됐고 대륙전역이 '힘내라 중국', '중국을 사랑한다'는 애국적 구호로 넘쳐났다"고 덧붙였다. '애국적 구호'가 나와야 할 시점에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는 것을 꼬집은 셈이다.
9시 뉴스에서 일본 '혐한' 성향 네티즌 댓글 인용한 MBC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민주방송실천위원회(민실위)는 8일 '민실위 보고서'를 내고 "우리 뉴스에 '분별'이 있는가"라며 이같은 보도 행태를 비판했다. 민실위는 "현장 기자들에 따르면 숨진 잠수사 이 씨는 사고 전날 처음 팽목항에 왔고, 사고 당일 아침 첫 수색작업에 투입됐다. 그리고 사고 당일 MBC <뉴스데스크> 최종 기사에는 빠졌지만, 같은 날 KBS와 SBS 등 타사 메인 뉴스에는 '잠수사 의료 · 안전 지원이 매우 열악했고, 바지선 전문 의료진도 없었고, 범정부대책본부가 사고 직후 뒤늦게 신변 안전 강화 방안을 내놨다'는 내용이 보도됐다"고 지적했다.
민실위는 이어 "이 씨의 사망 원인도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근거와 팩트(fact)로, 잠수사의 사고 원인을 (장관과 청장을 압박한 일부 실종자 가족들의) '조급증에 떠밀려서'라고 연결시킬 수 있을까? '조급증 걸린 사회가 그를 떠민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게 아니라, 취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민실위는 "기사에 인용된 네티즌의 댓글, '19세기에 개발된 장비로 20세기에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을 21세기에 사용한다는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한국인'은, 팩트 자체가 틀렸다"며 "20세기에 들어와서도 미 해군과 정유 산업 종사자 등이 계속 사용해왔다. 사실 관계 확인 없이, 이른바 '기사 야마'를 위해 그냥 인용된 셈"이라고 비판했다.
민실위는 "게다가 이 (일본) 네티즌이 올린 수 백 개의 다른 댓글들을 보면, 한국 비난, 혐한(嫌韓) 내용 일색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중 하나가, '한국은 3류 국가 이전에 독재 국가다. 도마뱀 꼬리자르기로 총리에게 뒤집어 씌워 잘라버리고, 국민을 죽게 하고 피해자, 유족, 추모식까지 이용해 박근혜 대통령이 자기 이익을 우선시하는 행동을 하니 이건 북한 독재자와 다를 바 없다'는 내용이다"라며 "이런 사람 댓글을 인용하며 '이웃 일본에서도 다이빙 벨 투입 실패 직후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일반화'가 가능할까"라고 지적했다.
민실위에 따르면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당일인 4월 16일부터 5월 6일까지 지상파 3사 뉴스에서 정부 재난 대응체계 결함과 해경 등 구조기관의 부실 초동 대처를 비판한 보도는 모두 132건이었다. 그러나 이 중 MBC 보도는 21건에 불과했다. 반면 SBS는 55건, KBS는 56건에 달했다.
MBC 세월호 다큐 제작 중단 지시…PD수첩에도 '취재 중단' 지시
민실위는 세월호 침몰 후 첫 주말인 4월 19일, 20일이 지난 후 "MBC 내부 상황은 갑자기 돌변했다"고 주장했다.
민실위에 따르면 교양제작국장은 월요일인 4월 21일 <다큐스페셜>의 제작 중단'을 지시했다. "세월호 관련 다른 프로그램과의 차별성을 찾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또한 민실위는 제작진이 22일 방송 이후 추가 취재를 통해 아이템을 다루겠다고 의견을 제시했지만 "세월호 관련 사태를 다루는 프로그램은 지금 상황에서는 방송할 수 없다" 취지로 지시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민실위는 "재난 방송의 보도 준칙이나 가이드라인에 나올 수 없는 내용으로 이러한 지시사항은 일종의 '보도지침'"이라며 "방송통신위원회가 4월22일 '세월호 관련 재난상황반 운영'이라는 문건을 만들었고 4월 23일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MBC를 포함한 방송사 사장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지시사항'이 이러한 일련의 흐름 속에 있는 것인지 회사는 분명히 답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속보]“박근혜 퇴진” 외치며 광화문광장서 기습시위 대학생들 전원 연행
세월호 참사]"박근혜 대통령님 만나주세요"…청와대 앞 대치중 5.9 노컷뉴스
9일 새벽 5시 30분 현재 세월호 유가족들이 청와대 인근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경찰과 대치중이다.
"세월호 사망자가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적다"는 김시곤 KBS 보도국장의 발언과 관련해 유가족들은 KBS 측에 사과를 요구하기 위해 서울로 왔는데, KBS 측이 사과 요구를 거부하자 결국 청와대로 발걸음을 돌린 것이다.
전날 밤 11시 30분쯤 유가족 대표 8명과 변호사 6명 등 14명은 유가족들을 대표해 KBS 본관 로비로 들어가 길환영 KBS 사장과 김시곤 국장을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들은 2시간여가 지난 9일 새벽 2시쯤까지도 나타나지 않았고, 유가족들은 결국 이들의 사과를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해 청와대행을 결정했다.
세월호 유가족 대표 대변인을 맡고 있는 유경근 씨는 9일 새벽 2시쯤 KBS 앞에서 "(김 국장 발언에 대해) 사과 하라고 요구를 했지만 KBS 측은 발언에 대한 진위를 파악해 보겠다는 말만 하고 있다"며 "2시간 여를 기다렸지만 나오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에 유가족들은 새벽 2시 30분쯤 청와대 항의방문을 최종 결정하고 버스에 올랐다.
유가족들은 "여기 있으면 KBS가 원하는 대로 될 수 있다"며 "청와대로 가자"며 청와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날 새벽 3시 10분쯤 경복궁 역 인근에 도착한 유가족들은 거리행진을 시작했다.
"우리는 여기에 시위를 하러 온 게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뵈러 왔습니다"고 외치며 청와대 앞으로 이동했다.
유가족들은 양손에 영정사진을 들고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걸었다. 경찰은 유가족들의 청와대 진입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길목마다 4~5겹의 경찰 저지선을 구축한 상태였다. 또 청와대 인근 청운동 동사무소에는 경찰버스가 촘촘하게 주차돼 청와대로의 진입을 막고 있다. 버스 틈 사이에는 경찰이 벽을 만들어 가로막았다. 이에 유가족들은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 앉아 "박근혜 대통령님 정말 만나뵙고 싶습니다. 제발 만나주십시오"라고 간절히 호소했다. 이어 유가족들은 인양된 시신에서 발견된 휴대전화 동영상을 공개했고, 청운동 동사무소 일대는 울음바다가 됐다.
5.9 kbs 주요뉴스
'KBS'라는 얘기에 고개 돌린 유족들…
한 유가족은 청와대를 향해 무릎을 꿇고 "아이들을 잃어버린 우리가 죄인"이라고 오열하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주검이 돼 돌아온 아이들과의 소중했던 추억들을 공유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편, KBS 측은 이날 새벽 자사 홈페이지에 '조문 갔던 보도본부 간부들이 폭행·억류당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유족들과 대비되는 공식입장을 표명했다.
아이들아, 절규하는 엄마를 전문 시위꾼이라 하는구나” 5.8 미디어오늘
학부모들, 카네이션 종이배 청와대 전달 경찰 제지…“아이들 두번 죽인 정부·언론 무릎 꿇고 사죄해야”
어버이날인 8일 오후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 수 없는 학부모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이들은 카네이션 대신 노란 리본을 왼쪽 가슴에 달았다.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무능한 정부, 기만적인 언론에 대한 분노를 마음에 담았다.
아울러 학부모들은 세월호 사고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할 때까지 카네이션을 달지 않겠다고 했다. 세월호로 희생당한 아이들이 제대로 눈 감을 때까지 계속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겠다면서 무능하고 무책임한 박근혜 정권 퇴진을 외쳤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와 ‘엄마의 노란 손수건’ 등 학부모단체 회원들, 시민 200여 명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한 나라에서 아이를 키울 수 없다”며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하기 위해 특검을 실시하고 거짓으로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두 번 죽인 정부와 언론은 국민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라”고 규탄했다.
국정원 대선개입 때 거리 나오지 않았던 미씨USA가 집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5.9 경향
“South Korea Ferry Tragedy. It is no accident, it is a massacre!(세월호 참사. 이것은 사고가 아닙니다, 학살입니다!)”
8일 낮(현지시간) 워싱턴 주미 한국대사관 앞. 검은 옷에 노란 리본을 꽂은 여성들이 큰 플래카드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미주지역 한인 여성들의 생활정보 공유 웹사이트인 ‘미시USA’의 워싱턴 지역 회원들로, 대부분 어린 자녀를 둔 어머니였다. 집회 참석자 20여명 대부분은 그동안 워싱턴에서 벌어진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항의 시위에 나온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평소 정치에 별 관심이 없고 아이들 육아에 전념하며, 집회라고는 나와본 적이 없던 여성들이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같은 어머니로서의 아픔 때문”이라고 한 참석자는 말했다. 부촌으로 알려진 버지니아주 맥클린에 거주하는 한 여성은 “정치라고는 관심 없었던, 배 부르고 등 따신 주부인 나까지 이런 곳에 나와서 정부를 규탄한다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지 않느냐”이달 중순 출산 예정인 마효경씨는 아직은 거동할 수 있기 때문에 나와서 슬픔을 나누고 정부에 항의하겠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30~40분가량 이어진 집회에서 이들은 “아이들을 살려내라, 정부가 살인자다” “침몰하는 대한민국 박근혜가 책임져라” 같은 구호를 외쳤다. 집회 후 대사관 안에 마련된 분향소에 들어가려 하자 대사관의 신고를 받고 대기하던 미국 경찰들이 이들을 제지하려 했다.
하지만 분향소가 일반에 공개돼 있고 이들도 조문 자격이 있기 때문에 대사관도 이들의 출입을 허락했다. 김은경씨는 방명록에 “얘들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침몰하는 대한민국 박근혜 하야하라”라고 썼다고 했다. 이재령씨는 “대사관이 집회 참석자들의 조문에 협조적이었다”고 전했다.
미시USA는 뉴욕타임스에 세월호 광고를 내는 한편 오는 18일 미국 50개 주에서 동시다발적인 집회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박근혜 정권도 침몰했다’라는 문구의 뉴욕타임스 전면광고는 미시USA 회원들이 모금운동을 벌인 지 13시간 만에 5만8000달러가 모여 뉴욕타임스 측에 조만간 전달돼 광고가 게재될 예정이다. 5·18 동시 집회는 현재까지 뉴욕, 워싱턴, 로스앤젤레스, 어바인, 산호세, 샌디에이고, 채플힐, 팰리세이즈팍, 댈러스, 트윈시티, 앤아버, 시카고, 시애틀, 애틀랜타 등 38개 지역에서 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뉴욕타임스, CNN, NBC, 링컨기념관과 같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모이기로 집회신고를 냈다.
이달 중순이 출산예정일인 마효경씨(34)가 8일 워싱턴 주미 한국대사관 앞에서 세월호 참사 정부 대응 규탄 시위에 참가한 모습.| 앤지 김 제공
한편 최근 미시USA 게시판에 세월호 참사 관련해 ‘미시들이 모이자’는 글을 올리기만 하면 삭제되거나 로그인이 안되는 경우가 많아 회원들의 불만이 빗발쳤다. 미시USA 웹사이트 운영자는 8일 공지 글을 올려 최근 게시글들의 삭제나 접속 불량은 해킹에 의한 것으로 의심된다며 보안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김은경씨는 “한국 정부가 미국에서까지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며 “연방수사국(FBI)에 수사 의뢰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틈타 '악재' 다 털어낸 청와대 5.8 노컷tm
청와대가 세월호 침몰 사고를 틈타 정권에 부담을 준 악재들을 다 털어내고 있다. 형식은 검찰과 군에서 진행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청와대의 의중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권 등장 이후 정권과 국정 운영에 부담을 준 악재는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개입, 채동욱 전 검찰총장 찍어내기 사찰, 국정원의 간첩사건 증거조작 사건 등이었다. 이런 악재들을 세월호 침몰 사고와 사고 수습 과정에서 거의 사라지게 했다. 검찰은 7일 세월호 실종자 35명이 여전히 수습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과 청와대 사찰 의혹에 대한 수사 결과를 전격 발표했다.
“채동욱 전 총장의 혼외아들은 맞다”, “청와대는 정상적인 특별감찰을 했다”는 게 검찰의 수사 발표 요지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이 있는지 없는지는 진상을 가리는 수사일 뿐, 채 전 총장의 범법 사실과 관련된 수사가 아닌데도 혼외아들 의혹 문제가 수사의 본질인양 발표했다. 검찰 수사의 본질은 진상규명이 아닌 청와대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물러나게 하기 위해 불법.탈법적 뒷조사를 벌였는지 여부였다. 조오영(55)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행정관과 송 모 국가정보원 정보관이 채동욱 전 총장의 뒷조사를 하고 다닌 것이 개인적 일탈행위라니,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이다.
또한 '채 검찰총장이 혼외아들이 있다'는 내용을 특정 신문에 흘려 채 전 총장을 '나쁜 사람'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아예 수사를 하지도 않았다. 권력이 특정 신문과 짬짜미를 했는지야말로 국민과 언론의 관심이었고 진상규명이 필요한 사안이었으나 검찰은 성역처럼 손도 대지 않았다. 검찰은 세월호 참사에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틈을 타 청와대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며 면죄부를 줬다. 청와대 관계자에 대해선 소환도 않고 서면 조사에 그쳤다.
한 여당 인사는 말한다. “채동욱 전 총장 사건은 아들도 맞고, 청와대가 찍어내기 위해 뒷조사를 한 것 모두 맞다”고. 비리 혐의도 아닌 아들이 있느냐, 없느냐 문제로 전직 검찰총장을 소환하자니 부담스럽고, 청와대를 직접 조사하자니, ‘윗분’의 눈치가 보이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세월호 참사는 검찰엔 더할 나위 없는 탈출구였다.
“검찰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던 김진태 검찰총장의 명예론은 어디로 갔는가? 임명권자의 뜻을 거스른다는 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가를 채동욱 전 총장의 예(例)에서 또렷이 봤을 것이다. 청와대의 권력 운영 측면에서는 검찰총장의 명예보다 정권 안정, 정권 안보가 더 중요했을 테니까. 국방부가 지난달 22일 국군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 댓글 관여 의혹을 받은 연제욱 청와대 국방비서관(55·육사38기)을 인사조치한 것도 세월호 참사 와중에 털어낸 정권의 악재다.
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 댓글 의혹이 폭로된 지 6개월 만이다.
연 국방비서관을 세월호 침몰사고 와중에 교체함으로써 비판 여론을 피해가려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해도 국민은 그런 의도라고 본다. 청와대로 불똥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한 ‘방탄용 교체’라는 지적이 나왔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연 비서관은) 본인 희망에 따라 교육사 부사령관으로 갔다”고 말했으나 교육사 부사령관 직제를 신설해 보낼 만큼 다급했다는 반증이다. 특히 지난 4월 16일 단원고 학생들을 포함해 304명의 희생이라는 전대미문의 대형 참사가 터지면서 국민의 뇌리 속을 떠난 인물이 남재준 국정원장이다.
세월호 참사는 박 대통령이 남재준 국정원장을 재신임한 다음날 일어났다. 야당과 일부 언론은 간첩사건 증거조작의 책임자인 남재준 원장의 해임을 강하게 요구할 예정이었으나 세월호 참사는 남재준 원장의 이름을 삼켜버렸다. 남 원장 개인으로선 세월호 참사가 자신의 자리를 지켜준 호재였으리라. '세월호로 덕을 본 유일한 사람이 남재준 원장'라는 말이 한때 여의도 정치권에 회자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남재준 원장의 책임론이 국민의 의식 속에서 없어진 것은 아니다. 검찰은 이번 주 안에 남북정상회담의 NLL 대화록 유출로 고발된 김무성 의원 등을 무혐의 처분한다는 내용의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를 이미 마쳤으나 발표 시기만을 저울질하다가 이번 주를 D-데이로 잡았다고 한다. 정권으로선 국정운용에 부담을 주는 악재를 한꺼번에 털어버리면 홀가분하다고 판단할 수 있으나 국민은 다 안다. 정권이 악재 처리를 어떻게 했는지를 다 지켜보고 있는 만큼 켜켜이 쌓이면 결정적인 시기에 폭발하고야 만다.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한선교 “재난 허위사실 유포? 최대 징역 5년”5.2경향
새누리당 한선교 의원이 국가적 재난 상황시 인터넷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정부의 정책과 관련한 허위사실을 유포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법안을 발의해 논란이 일고 있다. 4년 전 헌법재판소가 ‘국가기관은 명예훼손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위헌 판결을 내린 법안을 다시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1일 친박계인 한 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새누리당 의원 10명이 동참한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은 “국가사회적 위난이 발생하거나 그 가능성이 긴박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국가의 위난 관리를 방해하거나 위반 발생 여부와 원인, 정부의 정책 또는 위난과 관련된 사망·실종·상해 등의 피해에 관해 허위사실을 유통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처럼 국가 사회적 재난이 발생했을 경우 정부의 정책 등에 관한 허위 내용을 인터넷이나 SNS 등에 생성하거나 유포하면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4년 전 헌재는 전기통신기본법 47조1항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를 이용해 공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 조항에 대해 ‘공익’의 의미가 모호하다며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에 한 의원 등은 위헌 판결의 근거가 된 ‘공익’이란 표현 대신에 ‘국가 재난·위기 상황’이라는 표현을 넣은 셈이다.
법안이 발의된 사실이 알려지자 인터넷과 SNS 상에서는 반대 여론이 커지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무능을 지적하면 처벌하겠다는 것이냐” “박근혜 정부를 비난하지 말라는 것” “사실상의 독재나 다름 없”는 등의 의견을 내놓고 있다. 법안을 공동 발의한 새누리당 의원은 한 의원 외에 강기윤, 김을동, 김현숙, 박인숙, 윤재옥, 이상일, 이우현, 정갑윤, 홍문종 의원 등이다.
서울 광화문, 5000여명 촛불집회 "왜 살리지 못했나요"5.3 뉴시스
서울 도심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3일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는 주최 추산 5000여명(경찰 추산 2800명)의 시민들이 모여 세월호 침몰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날 오후 5시부터는'세월호 참사 시민촛불 원탁회의'가 주최하는 희생자 추모행사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아이들을 살려내라', '박근혜가 책임져라'는 등의 손팻말을 들었으며, 희생자들의 생전 영상이 담긴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특히 교복을 입고 행사에 참석한 학생들은 "박근혜 대통령님, 배에 탄 친구들은 왜 한 명도 살아오지 못했나요?"라고 묻는 팻말을 들어 눈길을 끌었다.
오후 7시부터는 국정원 시국회의가 '세월호 참사 무사 귀환 염원, 희생자 애도와 민주회복을 위한 국민촛불' 집회를 진행했다. 이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이번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사과를 정부에 촉구하는 구호 등을 외쳤다. 또 이날 홍대와 명동 인근에서 세월호 참사 추모 침묵행진을 벌인 청년 100여 명은 오후 8시께 광화문 일민미술관 앞에서 보신각까지 행진하려고 했지만 경찰이 이를 막아나섰다. 행진에 참여한 청년들은 경찰과 1시간 넘게 일민미술관 앞에서 대치하다가 해산했다
“나도 세월호에 있었다면 구조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5.3 미디어오늘
10대 청소년 1000여명, 서울 청계광장에서 단독 추모 집회...“무능하고 거짓말까지, 이런 국가 바꾸고 싶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정부의 미흡한 대처에 대한 책임을 촉구하는 청소년들의 촛불집회가 3일 오후 5시부터 6시까지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렸다. 세월호 침몰 이후 10대 청소년들이 독자적인 집회를 제안해 진행된 것은 처음이다. 청소년단체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 www.hopesewol.net) 주최로 개최된 청소년 촛불집회에는 수도권 지역 1000여명의 청소년들이 참석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 따른 다수의 희생자들이 같은 또래인 10대들인 점에서 집회 참석한 청소년들은 자신의 문제로 여기는 모습들이었다. 집회에 참석한 청소년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사고 실종자들에 대한 구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한명도 구해내지 못한 것은 물론 언론을 통해 알린 구조활동내용도 거짓말으로 나타났었다고 비판했다.
삼촌이 세월호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는 인천 ㅎ고 1학년생인 문 아무개 양은 “아직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바라고 있다”며 “기적이 일어나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왔다”고 말했다. 서울 ㄱ여고 2학년생인 정 아무개양은 “나도 그 배에 타고 있었으면, 구조되지 못했을 것”이라며 “국민을 구해내지 못하는 이런 국가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돼 촛불집회에 참석하게 됐다”고 말했다.
유가족 침묵시위…"특검을 요구한다" 5.3 프레시안
3일 안산 합동 분향소 앞…"정부, 아무것도 안 했다"
“분향하려면 신분증 제시를” 파리 한국대사관 ‘황당’ 요구 5.5 한겨레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 교민들이 지난 1일 ‘노동자의 날’ 집회에 참여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진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일 프랑스 한국대사관은 집회 참 여 뒤 분향소를 찾은 교민들에게 ‘신분증 제시 및 신상 기재’를 요구해, 교민들의 분노를 산 것으로 전해졌다. 파리에 사는 한인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파리꼬빵’에 따르면, 지난 1일 바스티유 광장에서 열린 노동자의 날 집회에 한국 교민 50여명이 참여했다. 행진에는 파리에 사는 한인들 뿐 아니라 보르도, 메츠 등 지역에 사는 한인들도 함께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는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정부의 범죄였습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대한민국은 지금 침몰하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종이 유인물을 참가자들에게 나눠줬다. 프랑스어와 한국어로 함께 쓰인 해당 유인물에서 교민들은 “단 한 명도 살려내지 못하며, 끝없는 거짓발표를 하는 정부, 이를 받아 유포하는 보수언론의 행태가 지속되는 현장에 있던 학부모들이 급기야 대통령을 찾아 나섰으나, 경찰은 이들을 막아섰고,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려달라고 간청하는 이들에게 돌아온 말은 빨갱이, 선동꾼이란 말이었다”고 썼다. “정부는 그들이 발표하는 내용 이외의 정보는 모두 유언비어로 간주하며 엄벌하겠다고 국민을 협박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이들은 또 “세월호가 속한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 유병언은 최근 프랑스에서 대규모 사진전을 한 바 있는 아해(AHAE)와 동일인물”이라고 썼다. ‘세월호는 침몰하는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라며 “이 나라의 선장 노릇을 하고 있는 박근혜는 사고의 책임자들을 엄벌할 것이라고 말하며, 마치 자신은 이 사건과 무관한 심판자인 듯 탈출해 버렸다. 그녀의 태도에서 우린 승객을 남겨두고 가장 먼저 탈출한 선장의 모습을 그대로 보았다. 우린 그녀가 최종 책임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도 했다. 교민들의 집회 참여는 프랑스 언론 ‘미디어파트’에도 보도됐다. 이 언론은 “(세월호 참사는) 규제 완화 만능주의가 부른 침몰사고”라며 “정부가 아무리 거센 파도에 흔들려도 선장, 박근혜 대통령은 언제나 그냥 서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교민들은 집회에 참여한 뒤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가 차려진 한국대사관으로 향했다. 하지만 대사관쪽은 선뜻 문을 열어주지 않고 ‘책임자와 상의를 해야 한다’며 20여분을 길에서 기다리게 했다고 교민들은 전했다. 이 사이, 분향시간으로 공지된 시간이 지나버렸다. 교민들에 따르면, 20분 뒤 문을 열어준 대사관쪽은 “시간이 이미 초과했으나 많이들 오셨으니 특별히 선처를 베풀겠다”며 “신분증을 제시하고 신상을 기재한 뒤 5명씩만 들어가라”고 했다. 대사관의 처사에 분노한 교민들은 “대사관 쪽이 공지한 분향 안내에는 ‘신분증 필참’이란 문구가 없었다. 상식적으로 분향을 하기 위해 신분을 확인 받는 경우는 단 한번도 경험해본 적 없다”고 주장했다. 또 ‘애초 문을 열어주었으면 정상적으로 분향을 마쳤을텐데,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길에서 기다리게 하는 동안 시간이 초과됐는데도 사실을 왜곡하는 대사관 직원들의 행태는 문제가 있다’고도 비판했다.
교민들은 항의 끝에 서류에 신상명세를 쓰고 10명씩 들어가 분향을 하는 것으로 합의가 됐다고 전했다. 교민들은 “분향소 장소가 협소하기 때문에 소수의 인원만 들어갈 수 있다는 (대사관쪽의) 변명과 달리 분향소는 아주 넓기만 했다”며 “이날 70대의 한 교민은 대사관 직원들에게 “공무원들의 이러한 태도가 바로 오늘의 세월호 참사를 만든 것”이라고 꾸짖었다. 해외교민을 위한 봉사라는 본래의 직분을 잊고 오히려 교민을 감시와 훈육의 대상으로 간주하며, 윗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분노를 일으키고 마는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이 말에 대사관 직원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에 비친 박 대통령은 ‘예수 그리스도’? 5.5 한겨레
세월호 침몰사고를 접한 초기에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헌법 제34조)가 있지만, 덮어놓고 대통령부터 탓하는 것은 재난의 원인을 밝히고 향후 재난을 예방하는 데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대통령을 비판하려면 적절한 근거가 있어야 하고,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이틀 뒤 진도로 내려가 실종자 가족들을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우호적인 여론이 상당했다. 하지만 정부의 사고 대응이 연일 혼선과 헛발질에 그치는 데도 박 대통령은 책임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책임질 사람을 엄벌하겠다”며 ‘심판자’ 노릇을 자처하자, 대통령을 바라보는 여론은 싸늘해졌다. 그 이후에도 정홍원 국무총리는 유가족들이 슬픔에 빠져있는 동안 장례식장 비용을 계산해 보상금서 삭감하라고 지시했고, 세모그룹 출신의 해경 국장이 구조작업을 지휘했으며 청해진해운과 계약해 구난을 담당한 민간업체 언딘은 민간잠수사가 발견한 시신을 자신들이 발견했다고 우겼다. 경찰은 사복으로 위장해 실종자 가족들을 감시했다. 배가 침몰하기 전까지 대피할 수 있었던 ‘골든타임’과 그 이후에도 정부는 줄곧 무능했고,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지 못했다. 재난 구조와 뒷수습에 있어 총체적인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조선일보>가 박근혜 대통령을 보도하는 태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신문은 지난달 30일 1면에 박근혜 대통령이 분향소에서 고개 숙이는 사진과 함께 ‘박 대통령 “집권 초에 적폐 못 잡은게 한(恨)” 세월호 참사 사과’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적폐(積弊)란 오랫동안 누적된 폐단이란 의미다. 즉 박 대통령은 ‘잘못은 이전 정권들이 저질렀고, 자신은 그걸 바로잡지 못한 책임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 셈이고, <조선일보>만이 이 발언을 1면 헤드라인으로 실었다.
이날 6면에 실린 기사는 ‘가짜 조문객 동원’ 논란을 자초했다. 박 대통령의 안산 합동분향소 방문을 보도한 이 기사는 “유족으로 보이는 한 노인 여성이 울면서 말을 건네자 박 대통령은 어깨를 감싸 안으며 위로했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유족으로 보이는’으로 기술된 부분은 순전히 기자의 추측일 뿐이고,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즉 <조선일보>가 가짜 조문객 논란을 자초한 것이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자신들의 잘못된 보도에 대해선 일절 바로잡지 않고, 의혹을 제기한 쪽만을 문제 삼았다. 5월3일자 6면 기사를 통해 <노컷뉴스>의 ‘조문객 동원 보도’가 거짓이었다고 보도했다.
박 대통령를 대하는 <조선일보>의 태도는 그들의 지면 편집과 기사의 문체에서도 드러난다. 4월30일자 6면의 머릿기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다뤘다. 하지만 이 기사에 실린 사진은 박 대통령이 사과하는 장면이 아닌, 오히려 유족 중 한명이 분향소를 찾은 박 대통령에게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 이 날엔 박 대통령에게 고함을 지르고 성토를 하는 유족들이 더 많았다. 6면 우측 기사의 문체는 더 볼 만하다. 이 기사는 ‘박 대통령은 유족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울분과 하소연을 들었다. 한 남성 유족이 “할 말이 있다”며 무릎을 꿇자 박 대통령은 위로하며 어깨에 손을 얹었다’고 묘사했다. 마치 성경의 복음서에서 예수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또 ‘박 대통령은 이(유족들의) 말을 들으며 한숨을 쉬었다’고 적었다. 기자는 박 대통령의 한숨조차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묘사했다.
5월2일에 <조선일보>는 박근혜 대통령을 두둔하려다 상당히 민망한 보도를 했다. 이날치 12면에 ‘박 대통령 “국민 세금이라며 장례비 아끼는 유족 생각하면…종이 한장도 함부로 못 써”’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이 보도가 민망한 이유는 같은 날 <경향신문> 1면에 ‘“장례비 무제한 지원 못한다”는 총리, 대통령 조화 ’지킴이‘로 나선 교육부’란 기사가 실렸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세금이라며 장례비를 아끼는 유족을 생각해 재정을 아끼자고 강조했지만, 총리는 유족에게 지원하는 장례비를 삭감하라는 지시를 이미 내린 상태였다.
<조선일보>의 사시(社是)는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는다는 ‘불편부당(不偏不黨) ’이다. 하지만 지금 박 대통령을 향한 그들의 태도는 불편(不偏)이 아닌 그저 불편(不便)할 뿐이다.윤형중 기자
“노란 리본은 종북” 공화당, 대통령과 친인척 관계…5.5 경향
박근혜 대통령의 제부 신동욱씨가 대표로 있는 공화당 창당준비위원회(창준위)가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해 ‘노란 리본 캠페인’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화당 창준위는 5일 보도자료에서 “죄송합니다. 종북을 뿌리 뽑지 못해 또 죄송합니다”라며 서울시의 노란리본 현수막을 비판했다.이들은 “서울시청 앞 합동분향소에 애도와 조문을 뜻하는 검정리본을 제공하는 것이 세계인의 상식인데도 불구하고 불순한 세력이 뒤에서 조문객들에게 정체불명의 노란리본을 달도록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공화당 창준위는 ‘노란리본’이 고 노무현 대통령과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를 떠올리게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서울시청 앞 서울도서관에 ‘미안합니다. 세월호 실종자분들의 무사귀환과 희생자 여러분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노란리본 현수막을 건 박원순 서울시장이 6·4 지방선거 후보에서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일 공화당 창준위는 “정부는 천안함 폭침에도 등장하지 않았던 노란리본을 이용해 사회분열을 조장하고 국가를 전복시키려는 배후세력을 철저히 수사해 종북좌파를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은 “사람이 사망했을 때에는 ‘근조’라는 검정색 리본을 가슴에 다는 것이 상식인데 갑자기 국적이 불분명한 노란 리본이 등장했다”며 “검은색 근조리본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노란 리본을 추모객들에게 달게 만드는 세력은 더 이상 세월호 침몰 희생자를 이용해 정치적 이득과 목적을 달성하려는 가면을 벗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공화당은 오는 9일 고 박정희 대통령의 옛 신당동 사저에서공화당 중앙당창당대회를 개최한다. 신 대표는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과 2008년 결혼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추모 단편영화 ‘신이 된 대통령’을 제작·연출한 이력이 있다. 누리꾼들은 “갑자기 여기서 종북이 왜 나오나? 노란색이면 다 종북인가” “세월호에 ‘이념’을 들이대는 사람들 이해가 안 된다” “추모하는 마음을 저렇게 매도하나…그럼 나도 종북이겠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 침묵시위 “내 아이를 돌려주세요” 5.4 경향
세월호 침몰사고 19일째인 4일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 내 정부 공식합동분향소 앞에서 희생학생 부모 10여명이 이틀째 침묵 속 피켓시위에 나섰다.
유족들은 ‘침묵’을 의미하는 하얀 마스크를 하고 옆으로 나란히 서서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들을 맞고 있다. 두 손에는 ‘제발 마지막 한명까지 찾아주세요’, “내 아이를 돌려주세요”,‘제 아이가 웃을 수 있게 진실규명 바랍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이 들려있다.
유족들은 전날 같은 시간에도 침묵 시위를 했다. 이날 이들은 ‘단원고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일동’ 명의의 유인물을 조문객에게 나눠주고 이번 세월호 사고 진상규명을 위해 특검 도입을 요구했다. 세월호 유가족대책위원회9이하 대책위) 주관으로 진행하는 침묵시위에는 매일 10∼20여명의 유족이 교대로 참가하고 당분간 이를 계속할 예정이다. 대책위 측은 ”여객선 침몰사고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정부의 늑장대응을 비판하기 위해 시위를 시작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에 앞서, 지난 1일에는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유가족들이 정부에 항의 시위를 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과 정부에 전하는 메시지를 적은 피켓 등을 제작해달라는 유가족들의 요청을 정부 장례 지원단이 ‘피켓 등은 집회·시위 용품’이라고 거부한 바 있다.
"세월호 집회 일당 6만 원"주장 정미홍 수사 5.5 노컷뉴스
경찰이 "세월호 추모 집회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일당을 받았다"고 주장한 정미홍씨 수사에 나섰다.
경찰청은 5일 "'제 지인이 자기 아이가 시위에 참가하고 6만 원 일당을 받아왔답니다. 참 기가 막힌 일입니다'라는정미홍 씨 트위터 글 사실관계 확인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허위사실을 SNS 등에 유포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들은 허위사실을 전파하는 행위는 누구든 엄정하게 사법처리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정미홍 씨는 지난 4일 트위터에 "어제 시위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든 국화꽃, 일당으로 받았다는 돈이 다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대한민국 경찰은 이 문제를 수사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등의 글을 올렸다.
이 트위터 글로 파문이 일자 정 씨는 “어젯밤에 올린 트윗은 지인으로부터 들은 것이었지만 다시 한번 구체적으로 확인한 결과 사실이 아니었다”고 허위를 인정했다.
정 씨는 이어 “국민의 큰 슬픔 속에서 이뤄지고 있는 추모의 물결을 욕되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올렸는데 추모 행렬에 참가하신 순수한 시민과 학생들에게까지 누를 끼쳐 죄송한 마음이다”라고 사과했다. 하지만 경찰이 '허위사실 유포 엄단' 방침을 강조하며 수사에 들어간 만큼 정 씨는 사과와는 별개로 형사처벌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정 씨는 김성환 노원구청장과 이재명 성남시장 등 야권 인사들을 상대로 무차별적 '종북' 공세를 펼쳤다가 손해배상소송에서 잇달아 패소했다.
'관피아 공화국'의 부끄러운 민낯 5.2 주간한국
특정분야 안 가리고 관가에 '기생' 낙하산 타고 내려와 업계 '흙탕물'
'산피아' 자원·통상 총괄 공룡 부처 '교피아' 대학 총작직도 나눠먹기
세월호 침몰 참사를 계기로 '관피아(관료+마피아)'와의 전쟁이 선포됐다. 정홍원 총리가 사퇴의 변을 밝히면서 관료사회의 폐단을 지적한 지 불과 이틀 만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관피아나 철밥통을 추방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해피아(해양수산부+마피아) 뿐 아니라 모피아(옛 재무부+마피아), 산피아(산업통상자원부+마피아), 국피아(국토교통부+마피아), 교피아(교육부+마피아), 원전마피아, 철도마피아 등으로 불리던 '관피아 공화국'의 문제가 국가 위기 원인으로 떠오른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간 전직 관료가 공공기관이나 민간 유관기관ㆍ협회 등의 요직을 독점하는 '낙하산 취업'의 폐단을 눈감아 왔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관료사회 개혁에 나섰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전ㆍ현직 관료 사이의 '우리가 남이가' 정서는 방만한 경영, 부실한 관리, 무사안일주의로 이어져 온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번 참사에서 드러나듯이 관가 곳곳에 '암세포'처럼 기생하고 있는 관피아들이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질병을 발생시킨다는 점이다. <주간한국>이 관피아 공화국의 민낯을 살펴보았다.
해피아가 낳은 세월호 참사
'해피아'는 세월호 침몰 참사를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고 초기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 돈에 눈이 먼 선사 청해진해운의 부도덕한 경영에 비난의 화살이 쏠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해양수산부 출신 퇴직 간부들이 해운 민간 기업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며 고착화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특히 청해진해운을 관리ㆍ감독해야 할 해양수산부와 해운조합, 한국선급 조직 사이의 유착관계는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해피아들은 해양수산부를 방패막이 삼아 해운업계의 일을 쥐락펴락해왔다. 현재 해양수산부의 일을 위임받은 선박안전기술공단, 한국해운조합, 한국어촌어항협회 등 수많은 산하기관의 고위직에는 해피아들이 대부분 포진하고 있다. 공직자윤리법(제17조1항)에 따르면 퇴직일로부터 2년, 퇴직 전 5년 동안 속한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민간기업 등에 취업할 수 없지만 유명무실한 조항일 뿐이다. 한국선급은 해운업계의 '갑 중의 갑'으로 불린다. 선박 안전 검사권을 독점하고 있는 까닭에 소형 어선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박은 한국선급의 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세월호도 한국선급의 안전 검사를 통과해야 했는데, 사고 두 달 전 진행한 정기 검사에서 200여 개 항목에서 모두 '만족' 판정을 받았다. 안전검사가 '수박 겉핥기'식으로 진행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한국선급은 관료 출신에게 인기가 높다. 모든 선박을 관리하는 만큼 매출만 1,200억, 직원은 860명에 이르는 거대 조직이다. 역대 11명의 회장 중 8명이 해양수산부 출신이다. 세월호 사고 직후 사표를 던진 전영기 전 회장은 한국선급의 평검사원 출신이다.
한국선급과 해양수산부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한 정황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당장의 안전검사엔 소홀했던 한국선급이 해양수산부 공무원들에게 금품 로비를 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검찰은 한국선급의 모 본부장이 2011년 해양수산부 등 관련 부처 공무원 7, 8명에게 수백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제공한 단서를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또한 한국선급 직원들이 해운회사 등으로부터 선박 검사와 관련된 뒷돈이나 향응을 제공 받았는지 여부도 주요 수사 대상이다.
해피아가 득세하는 또 다른 기관은 한국해운조합이다. 해운조합은 2,100개 해운사를 대표해 세월호와 같은 내항 여객선의 안전운항에 대한 지도 감독 업무를 맡고 있다. 해운사들이 모인 이익단체가 '감독'을 한다는 점에서 '셀프감독'의 한계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당장 세월호가 과다한 화물 선적 등 안전운항에 필요한 규정을 어긴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해운조합은 세월호 출항 때 여객선 승선 인원과 화물 적재량, 화물 고정 여부를 관리ㆍ감독했어야 했다. 해운조합은 1962년 출범 이후 12명의 이사장 가운데 10명이 해양수산부 출신인데, 아예 1977년부터는 38년째 해양수산부 출신이 독차지하고 있다. 해운조합 역시 명절 때마다 해양수산부와 해경 간부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해피아 문제가 불거진 직후 사표를 던진 주성호 전 이사장은 MB정권에서 국토해양부 2차관을 지냈다. 지난해 9월 해운조합 이사장 모집 당시 주 전 이사장 외에 응모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단독 입후보해 이사장직에 오른 셈인데 퇴직 6개월 만의 일이다. 주 전 이사장은 지난해 3월엔 한국선급 이사장직에 출마해 고배를 마신 바 있다. 당시는 국토해양부 2차관 신분이었다. 주 전 이사장을 보좌했던 해운조합의 본부장(상임이사) 3명 가운데 2명도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청 고위간부 출신이다.
해피아 문제는 해양수산부 조직의 특수성과 궤를 같이한다. 해양수산부는 정부 부처 중에서도 조직원들이 서로 끈끈하게 얽혀 전직과 현직이 돕고 챙기는 문화가 강하다. 지난 60년 동안 국토해양부, 농림식품부에 흡수됐다가 분리되기를 반복하면서 자연스럽게 고착화된 문화다. 거기에 '해양수산'이라는 분야의 특수성이 더해지면서 전문가가 아닌 비전문가가 파고들기 어려운 분야가 됐다. '그들만의 리그'로 굳혀지면서 결국 정부의 선박 관리감독 기능이 무력화된 셈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해피아들이 보여준 자세는 실망스럽다. 해운업계 수장들은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 국민에게 슬픔을 안겨 도의적 책임을 진다"고 줄줄이 사표를 던지며 몸을 사리고 있다.
올 들어 모습 감춘 모피아 낙하산
세월호 침몰 참사 직후인 현재, 해피아가 가장 주목을 받고 있지만 본래 관피아의 원조격은 모피아다. 재무부의 영문 약자인 MOF(Ministry of Finance)에 '마피아'가 결합돼 탄생한 모피아는 옛 재무부 출신 관료들을 통칭한다.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이 통합된 재정경제부를 거쳐 현재의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로 맥이 이어진 모피아들은 금융공기업 및 금융기업들의 수장 자리를 오랫동안 독식해왔다. 금융당국과 금융기관 및 금융사와의 유착에 의한 비리, 금융시장 감독 소홀에 따른 시스템 불안 등 모피아들의 폐해는 적지 않다. 실제로 굵직한 금융사건의 경우, 대부분 모피아가 그 원인으로 꼽힐 정도다. 모피아들이 저축은행 오너들과 한통속이 돼 저지른 비리가 촉발한 저축은행 부실사태, 감시 및 감독 소홀이 빚은 동양 사태 및 카드사 개인 정보유출 사태 등 최근 벌어진 금융사고만 해도 벌써 여러 건이다.
금융사고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모피아들은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개혁 대상으로 여겨졌지만 여전히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2008년 출범한 MB정부는 기획재정부의 금융정책국을 분리, 기존의 금융감독위원회와 합쳐 금융위원회를 탄생시키고 민간 출신인 이창용 서울대 교수를 수장으로 임명하는 등 모피아의 힘을 약화하려 했다. 그러나 취임 초기 닥친 광우병 사태와 촛불집회, 글로벌 금융위기 때문에 집권 기반이 흔들리자 결국 모피아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윤진식 청와대 경제수석, 진동수 금융위원장 등 경제분야의 삼두마차가 옛 재무부 출신들로 구성된 이후, 김동수 수출입은행장, 주용식 상호저축은행중앙회 회장, 이성한 국제금융센터 소장, 장영철 자산관리공사 사장, 우주하 코스콤 사장 등 줄잡아 50여 명에 달하는 모피아 낙하산들이 금융공기관들에 내려앉게 됐다. 재정경제원 차관을 지내다 외환위기로 밀려났던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 김석동 금융위원장 등도 대거 복귀하며 다시 모피아의 전성기를 꽃피웠다.
모피아들의 득세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모피아의 대부라 불리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의 계보를 잇는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버티고 있는 덕분이다. KB금융지주와 농협금융지주 회장에는 각각 행정고시 20회, 24회 출신인 임영록, 임종룡 재정경제부 전 차관이 나란히 임명됐다. 민간 금융회사인 KB금융의 회장 자리에 모피아가 임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더욱 눈길을 끌었다. 전국은행연합회는 아예 3대째 모피아의 몫으로 이어져 왔다. 유지창, 신동규 전 회장에 이어 전국은행연합회를 이끌고 있는 박병원 회장도 재정경제부 차관 출신이다. 여신금융협회와 저축은행중앙회는 회장과 부회장 모두 모피아가 차지하고 있다. 손해보험협회의 경우, 문재우 전 회장은 금융감독원 출신이고 현재 회장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장상용 대행도 금융감독원 감사실 국장을 지냈다. 그밖에 김주현 예금보험공사 사장, 최경수 한국거래소 이사장, 홍영만 자산관리공사 사장, 유재훈 예탁결제원장 등 굵직굵직한 자리도 모피아들이 장악한 상태다.
올해 들어서는 모피아들의 영향력이 다소 약화되는 분위기다. 비모피아로는 수출입은행장을 맡게 된 이덕훈 행장이나 내부 출신으로 수장 자리에 오른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김한조 외환은행장, 권선주 기업은행장 등이 속속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침몰 참사 이후 금융당국이 모피아의 낙하산 인사를 전면 금지한 이상, 이 같은 분위기는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인증권력 기반 위에 형성된 산피아
산업통상자원부 출신 관료로 구성된 산피아의 경우 그 수가 다른 관피아들을 압도하는 것이 특징이다. 산업ㆍ자원 및 에너지ㆍ통상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공룡 부처로서 산하 기관들이 많이 집중돼 있고 관련 규제도 가장 많은 데다 산업 진흥을 위한 지원수단이 많아 기업들에 대한 영향력이 막강한 것 등이 산피아들의 육성을 도운 것으로 해석된다. 주의 깊게 봐야 할 부분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니고 있는 '인증권력'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소관 인증기관 19개소를 통해 인증마크 30개를 관리하고 있다. 해당 인증기관의 기관장을 포함한 주요 임원들은 대부분 산피아들이 차지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복잡한 인증규제 해소의 지름길인 인증마크 및 인증기관 통합을 섣불리 시도하지 못하는 이유도 산피아들의 갈 곳을 없애지 않기 위해서라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이유다.
KC, KS, 고효율마크를 책임지는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의 수장인 최형기 원장은 산업통상자원부 기술표준원 국장 출신이다. 최 원장은 산업통상자원부 기간산업기술표준부 및 표준기술지원부에서 부장을 역임했다. 최 원장과 함께 부임한 심상협 부원장도 산업통상자원부 공업연구관을 지냈다. 또한, KC마크 인증을 담당하는 한국의류시험연구원의 임승윤 원장도 산피아다. 임 원장은 산업통상부 무역위원회 실장 출신이다. 국제표준기구(ISO)의 경영시스템 인증을 국내에서 담당하는 한국인정지원센터의 경우 심윤수 이사장과 조기성 센터장이 모두 산업부 출신으로 더욱 눈길을 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의 협회를 이끌고 있는 산피아도 부지기수다.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산업자원부 산업정책본부장 출신이고 김창룡 한국표준협회 회장은 특허청 차장을 경험했다. 한덕수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통상산업부 장관을 거쳐 국무총리까지 역임하는 등 산피아 중에서도 성공적인 행보를 밟아온 인물로 손꼽힌다.
그 밖에 김경원 전자부품연구원 원장, 김무영 대한전기협회 부회장, 고정식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 신동식 울산테크노파크 원장, 심성근 전북테크노파크 원장, 진홍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허경 자동차부품연구원장도 산피아로 분류된다.
실세 상근 부회장 자리 차지
국토교통부 산하의 건설공제조합은 최근 국피아 낙하산 문제로 몸살을 겪었다. 건설공제조합 전무이사 자리에 업무연관성이 전혀 없는 국피아가 내정됐기 때문이다. 논란의 주인공은 국토부 퇴직 관료 출신인 임의택 전 부산지방항공청장이다. 이에 반발한 건설공제조합 노조는 "구시대적인 인사행태"라며 성명서를 내는 등 강력히 대처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문제는 건설공제조합의 국피아 낙하산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건설공제조합을 맡고 있는 정완대 이사장은 국토해양부에서 중앙토지수용위원회 상임위원을 맡은 바 있다. 전임인 최영철 전 이사장은 건설교통부 수송정책실장 출신이며 그보다도 전임인 박동화 전 이사장은 건설교통부 광역교통정책실장을 지낸 바 있다. 이사장 자리가 대대로 국피아로 채워져 왔던 것이다. 국피아 낙하산은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에도 가득하다. 지난해 11월 국토교통위원회 문병호 의원이 국토교통부 소관 14개 공기업이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그중 7개 공기업의 기관장이 국피아로 밝혀졌다. 건설업체를 직접 규제하는 부처 특성을 이용, 국피아로 자리잡은 것으로 해석된다. 해당 기관장들은 여전히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
이재영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이사장은 국토해양부 주택토지실장을 지냈고 정일영 교통안전공단 이사장은 국토해양부 교통정책실장 출신이다.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을 맡고 있는 이재붕 원장은 국토해양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 상임위원을, 장기창 한국시설안전공단 이사장은 원주지방 국토관리청장을 각각 역임한 바 있다.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를 구성하는 협회들의 상근부회장 중에도 국피아가 다수 포진해 있다. 해당 협회들의 경우 얼굴마담 격인 회장은 회원사 대표 중에서 나오지만 실제 업무를 주관, 실세로 분류되는 상근부회장 자리에는 국피아들이 번갈아가며 앉고 있다. 회원수가 가장 많은 대한건설협회는 국토해양부 건설수자원정책실장 출신의 정내삼 부회장이, 대형 건설사들이 소속된 한국주택협회는 국토교통부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장 출신의 유인상 부회장이 맡고 있는 식이다. 해외건설협회의 경우 아예 건설교통부 차관을 역임한 최재덕 회장이 자리잡고 있어 눈에 띈다.
'시한폭탄' 원전마피아
지난해 사상 최악의 전력난을 가져온 원전 비리의 몸통은 원전마피아다. 신고리 1,2호기와 신월성1호기 등 총 3기의 원자력발전소가 위조된 부품 탓에 가동을 멈췄다. 이는 모두 한국수력원자력 출신 인사들이 납품업체에 재취업을 하면서 벌어진 비리였다. 한국수력원자력 출신 관료들이 시험성적서 조작에 앞장서면서 전 국민이 전력난에 시름하게 된 것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마피아 전횡의 근원지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수력원자력 설립 이후 퇴직한 간부 가운데 총 81명이 납품업체 등 유관업체에 재취직했다. 이 자료를 분석한 강동원 의원실에 따르면 한국수력원자력 1급 이상 고위간부급 퇴직자들은 원전건설 및 발전설비, 정비수행, 원전품질보증 자격인증 기업 등 원자력과 매우 밀접한 기업에 재취업했다.
원전마피아는 한국수력원자력을 중심으로 설계-감리-납품 업체의 유착고리가 자연스레 형성돼있다. 원자력이 전문분야인 만큼 관련학과를 보유한 몇몇 대학 출신들이 연공서열을 세우는 만큼 조직의 폐쇄성이 짙다. 이들은 원전 건설부터 유지, 규제까지 담당하는 기관 핵심에 포진해있는데 특정 학교와 유관기관 출신 인사의 '자리 나눠먹기'는 반복되는 문제다. 지난해 원전비리가 불거지자 한국수력원자력은 '일괄 사표'로 사퇴를 진정시키려 했다. 부품 성적서 위조에 가담한 한전기술도 1급 이상 직원과 임원을 상대로 사표를 받았다. 당시 수장이었던 김균선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면직됐는데, 그는 산업자원부 기획관리실장 출신으로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을 지낸 바 있다. 해임된 안승규 전 한전기술 사장은 현대건설 출신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의 다음 수장도 '마피아'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조석 현 사장은 지식경제부 차관 출신이다.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엔 원전 마피아로 불리는 산업통상자원부 관료나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출신을 배제할 거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전문성'을 이유로 다시 지식경제부 출신이 원전 비리 사태 수습에 나서게 됐다.
'셀프개혁'은 오히려 체면을 구기게 됐다. 조 사장은 지난해 연말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인사 교체를 실시하며 쇄신과 혁신을 강조했다. 하지만 '청렴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발탁된 이청구 한국値쩔坪米?부사장이 납품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지난달 15일 전격 구속됐다. 이 부사장은 2009~2019년 경북 경주시 월성원자력본부에서 근무할 당시 부산 기장군 베어링 제조업체로부터 부품 납품청탁과 함께 1,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철도고-철도대 출신이 장악
원전마피아와 가장 유사한 특성을 보이는 집단은 철도마피아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노근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철도시설공단 부장급 이상 퇴직자 185명 가운데 136명이 철도 관련 민간업체에 재취업했다. 문제는 퇴직자들이 철도 관련 민간업체에 재취업해 소속 업체의 공사 입찰을 위해 현직 임원들과 유착고리를 형성하면서 발생한다. 이 의원은 "철도고 철도대학 출신들이 장악한 철도시설공단은 공단 퇴직자들이 재취업한 민간기업과 연결된 거대한 철도마피아 조직"이라고 지적했다.
철도마피아들의 유착 고리도 끈끈하다. 철도공사의 전ㆍ현직 임원들은 대개 철도고등학교과 철도대학 출신이다. 퇴직자들이 철도 관련 민간업체에 재취업해 소속 업체의 공사입찰을 위해 현직 임원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일련의 과정은 해피아, 원전마피아와 매우 유사하다.
역대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 4명은 모두 국토교통부 출신이었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철도 건설만 담당하기 위해 철도청에서 분리시킨 공공기관이지만 국토교통부 출신들이 인사를 독점하고 있다. 초대 정종환 이사장부터 2대 이성권, 3대 조현룡, 4대 김광재 이사장까지 모두 국토교통부 출신이다. 강영일 철도시설공단 현 이사장도 국토교통부 사람이다. 국토부 도로국장, 교통정책실장 등을 역임했다. 2009년 퇴직한 후 한국부동산연구원장을 지냈으며 신분당선 연장선 복선전철 건설 시행사인 새서울철도 대표이사로 재직했다.
실제로 철도마피아들은 철도 관련 공사를 쥐락펴락한다. 이들의 입김은 공단의 발주공사 입찰에 영향을 줘 퇴직자 영입 여부가 업계 순위를 바꾸기도 한다. 이 의원이 공개한 사례를 보면, 민간업체인 A사는 공단의 관리본부장을 역임한 퇴직자를 영입해 2012년 61억 원 규모의 공사 계약에서 2013년 135억 원과 222억 원 규모의 계약을 수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계약의 독점은 결국 '비리'로 이어지기 마련인데 지난해 10월엔 민간업체가 KTX에 1만7,500개의 짝퉁 부품을 납품한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대학 총장직 나눠먹기도
관피아들의 '나눠먹기' 관행은 관료사회 전반에 퍼져있다. 이른바 '교피아'로 통칭되는 교육부 퇴직 공무원들도 지위를 악용하고 있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유기홍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교육청에서 근무하다가 퇴직한 뒤 사립학교에 재취업한 공무원은 전국적으로 80명에 이른다. 퇴직 교육공무원이 가장 선호하는 곳은 '비리 사학'이다. 비리 사학이 운영하는 대학의 총장으로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장관'이 되지 못한 차관급 들의 이름이 많이 눈에 띈다. 김용권 우석대 총장, 김명식 백석문화대 총장. 김정기 위덕대 총장, 설동근 동명대 총장은 모두 교육부 차관 출신이다. 이 외에 김동욱 동감대 총장은 교육부 연수원장, 김은섭 대경대 총장은 학술원사무국장, 최수태 송원대 총장은 교원소청심사위위원회 위원장 출신이다. 교육부 산하 기관장이 되는 경우도 흔하다. 김화진 사학연금공단 이사장은 제주도교육청 부교육?출신이다.
최근엔 퇴직 하루 만에 감사 대상에 취직한 교육 공무원도 있다. 지난 2월에는 교육부 사학감사담당관실에서 명예퇴직한 곽모 사무관은 퇴직과 동시에 부천대학 전임교수로 부임해 전관예우 논란이 일었다. 특히 곽씨가 전국 대학을 대상으로 사학비리 등 감사업무를 수행하던 중 교수 임용절차가 진행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퇴직공직자 취업제한'을 어겼다는 비판이 나왔다. 교피아들은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각종 재정지원사업에 눈독을 들인다. 교육부가 각 대학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대학들의 예산확보 전쟁에서 입김을 발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정부 로비로 '사익'을 챙긴 이후엔 '봐주기 감사'로 비리 사학을 키우는 모순을 반복한다. 부실을 제재하고 재정을 공정하게 배분하는 게 교육부의 역할이지만 '형님'인 퇴직 관료는 부담일 뿐이다.
세월호는 잊어 달라? 기레기보다 ‘칼레기’가 더 문제 5.8미디어오늘
[홍헌호 칼럼] 권력의 비위를 맞추는 저질 논객들이 많아지고 있다
1. 현오석 기획재정부 장관이 6일 세월호 참사로 민간소비가 둔화되는 등 부정적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 지난해 여름에도 현 장관이 일감몰아주기 과세에 딴지를 걸며 경제민주화 형해화(形骸化)에 앞장섰는데요. 이번에도 세월호 잊기 운동의 선두에 서려 하고 있습니다. 능력 있다는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현 장관이 재벌의 방패 역할만큼은 재빠르게 해내고 있는데요. 씁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2. 일부 보수언론들은 세월호 참사 애도 분위기로 인해 소비가 위축되면 서민경제가 어려워진다는 사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 요즘 ‘기레기’라는 말이 유행인데요. ‘기자 쓰레기’를 일컫는 말입니다. 최근 기레기가 많아진 것은 인터넷 언론사의 범람과 과잉경쟁 때문인 것으로 풀이 되는데요. 1990년대 금융규제완화 이후 저질 금융기관이 범람했던 것처럼 최근 정체 불명의 인터넷 언론사들이 범람하면서 기자들의 평균 수준이 낮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레기보다도 ‘칼레기’가 더 문제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요. 칼레기는 칼럼이나 사설을 쓰는 쓰레기를 일컫는 말입니다. 기레기의 범람이 언론환경의 변화에 따른 것인 반면, 칼레기의 범람은 해바라기처럼 권력의 비위를 맞추는 저질 논객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3. 1995년 삼풍백화점 참사를 전후한 시기에 경제지표는 어떠했나요?
⇒ 삼풍백화점 참사는 1995년 6월 29일 일어났는데요. 한국은행에 따르면 그 해 2분기 경제성장률은 9.4%(전년 같은 분기 대비 성장률, 이하 동일)였고, 3분기 성장률은 10%였습니다. 가계소비 부문을 보면 2분기 성장률은 10.6%였고, 3분기 성장률은 11.1%였습니다. 이 지표들은 삼풍백화점 참사를 전후하여 소비에 있어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물론 이번의 경우에는 그 때와 다른 점이 있기는 합니다. 1995년은 호경기였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또 국민들의 슬픔과 분노가 그 때에 비해서 훨씬 더 크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 소비위축 운운하는 정부 관료들과 보수언론의 태도는 지나치게 졸렬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들이 자주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서민경제를 팔아서 자신들의 사익을 최대화하려 하고 있는데요. 현 장관과 보수언론들이 진정으로 서민경제를 걱정했다면, 서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방안을 제시하며 그런 주장을 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4. 진정으로 서민경제를 걱정한다면 서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방안을 고민했어야 한다고 했는데요. 추천할만한 방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MB정부가 수퍼 추경 과정에서 추진했던 서민경제 지원책이 하나 있었는데요. 많이 알려져 있진 않지만 꽤 쓸모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유효기간이 3개월인 재래시장 상품권을 저소득층에게 지급하는 것인데요. 이와 같은 서민경제 지원 방식은 대공황 때 케인즈가 제안했던 유효수요 창출방법 중에서도 가장 나은 형태라 할 수 있습니다. 현 장관과 일부 보수언론들이 진정으로 서민경제를 걱정한다면, 세월호 참사 애도 분위기 때문에 소비가 위축된다며 툴툴거리기보다는 이와 같은 서민경제 지원책을 제시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5.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해양수산부의 낙하산 문제가 불거지면서 관료마피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일각에서는 행정고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는데요.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 행정고시를 폐지하고 다양한 임용방식으로 고위직 공무원들을 충원하자는 주장인데요. 적절한 대안이 아닙니다. 그와 같은 소박한 구상은 현행 대학입시제와 같이 황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지난 십수 년간 정부는 대학입시제도를 개선한다며 입시제도를 엄청나게 복잡하게 만들었는데요. 오히려 교육양극화만 심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행정고시를 폐지하고 복잡한 임용방식을 도입하면 이와 유사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실제로 특채가 많은 외교부의 경우 고위직 공무원 대물림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2014년 4월29일자 30면
6. 관료마피아 문제, 언론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나 요란하게 떠들지만 제대로 된 개혁안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 문제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 여러 가지 정책을 동시에 융단폭격식으로 추진해야 관료마피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첫째, 고위 관료 임용과정에서부터 직렬을 더 세분화하고, 이공계 직렬을 확대해서 비이공계의 전횡을 막아야 합니다. 일본에서는 직렬별로 고위직 공무원을 선발할 때 비이공계 출신과 이공계 출신을 절반씩 채용합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80% 이상을 비이공계로만 채용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기형적인 고위직 공무원 선발방식이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7. 고위 관료들의 취업제한을 선진국 수준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 2008년 일본 정치인들은 관료개혁을 통해 퇴직관료들의 공기업과 사기업 재취업을 1회만 허용하기로 했습니다. 미국은 직위 및 업무 관련성이 큰 기업에 대한 공직자 재취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도 고위 관료에 대해 각각 퇴직 후 3년, 5년의 재취업 제한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영국은 까다로운 공직자 재취업 사전 승인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고위 관료들의 취업제한 수위를 대폭 높여야 할 것입니다.
중앙일보 2014년 5월8일자 33면
8. 일본도 과거에 관료마피아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는데요. 폐해가 심했지요?
⇒ 일본의 경우를 보면 관료마피아들이 ‘잃어버린 20년’의 주범이었습니다. 이들은 1980년대에는 금융규제완화로 부동산 거품을 키웠고,1990년대에는 부자감세로 국가재정을 빚더미로 몰아넣었으며, 역시 1990년대에는 거품 붕괴와 복합 불황 속에서도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기피하여 경제를 파탄지경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결국 일본 정치권은 2000년을 전후하여 ‘잃어버린 10년’의 주범인 대장성을 해체하고, 수상의 권한을 강화하는 정부개혁에 나서게 되었는데요. 당시 정부 개혁은 정치인들과 민간 전문가들이 주도했습니다.
9. ‘잃어버린 10년’의 주범이 대장성이라 했는데요. 1990년대 대장성 관료들은 어떤 행태를 보였나요?
⇒ 1990년대까지 일본 대장성 관료들 사이에는 매우 전근대적인 조직문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대장성 후배 관료들이 퇴직한 선배들을 평생 충성으로 챙기는 독특한 문화였는데요. 이런 전근대적인 조직문화는 선배들이 낙하산으로 내려간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장기간 지연시켜 일본경제를 파탄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결국 금융기관 구조조정은 2001년 정치인들과 민간 전문가들이 주도한 정부 개혁 과정에서 대장성이 해체된 이후에야 금융청에 의해 탄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10. ‘늘공’과 ‘어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늘공은 '늘 공무원'인 사람을 말하고, 어공은 '어쩌다 공무원'이 된 사람을 말하는데요. 역대 정권 하에서 어공은 늘공의 상대가 되지를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 대다수 고위직 늘공들 행태를 보면 정치적 수완이 드라마 ‘정도전’의 ‘이인임급’입니다. 책임 회피와 조직 수호의 달인들인데요. 어공들이 이들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어공들 중에서도 일부가 제법 적응을 하기도 하는데요. 대개 늘공에 잘 영합하는 사람들입니다. 늘공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책임 회피와 조직 수호에 도움이 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11. 늘공들은 어떤 방식으로 책임 회피와 조직 수호를 하고 있나요?
⇒ 자신의 승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는 함구로 일관하고 최대한 정보를 은폐합니다. 반면, 자신의 승진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 앞에서는 있는 지식, 없는 지식 다 동원하고, 달달한 언사로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포장합니다. 문제는 이들을 어떻게 개혁할 것이냐인데요. 가장 실효성 있는 관료 개혁은 노무현식 ‘정보 공개 개혁’과 ‘시민참여형 거버넌스개혁’입니다.
12. ‘정보 공개 개혁’이 중요한 이유가 뭡니까?
⇒ 개혁파가 개혁에 성공하려면 악마에게도 배워야 합니다. 1961년 박정희가 군사쿠데타에 성공한 것은 그의 조카사위였던 김종필이 제공하는 정보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종필은 당시 육군본부 정보참모부 기획과장이었습니다. 1980년 전두환의 군사쿠데타도 그가 보안사령관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정보력은 자금 동원 능력과 함께 가장 ‘강한 권력의 기반’입니다. 노무현식 ‘정보 공개 개혁’은 관료들에게 집중된 정보의 일부를 일반 국민들에게 공개한 것인데요. 이것은 정보력이라는 중요한 권력의 일부를 국민들에게 이전한 것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매우 중요한 진전이었습니다.
13. 노무현 정부 후반기 때는 각 부처로 하여금 국정감사 자료를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했는데요. 지금은 유야무야 된 것 같습니다.
⇒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노무현 정부에 비해서 기득권층의 입지가 강화된 정부인데요. 기득권층들은 원래 투명성이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기득권층들이 국가경제와 서민경제를 축내는 것은 쥐들이 창고의 식량을 축내는 것과 유사한데요. 쥐들이 밝은 곳을 싫어하듯이 기득권층들도 밝은 곳을 싫어합니다.
14. 실효성 있는 관료 개혁을 하려면 ‘시민참여형 거버넌스개혁’이 중요하다고 했는데요.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나요?
⇒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관료개혁은 정치인들과 민간전문가들로 구성된 정부개혁위원회가 추진해야 합니다. 단, 이 때 개혁위원회 위원은 여야 정당과 시민단체들이 추천한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또 평상시에도 분야별로 다양한 전문가참여 위원회와 시민참여 위원회를 구성하여 관료들을 견제해야 합니다. 이 때도 위원들은 여야 정당과 시민단체들이 추천한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전문가참여형· 시민참여형 거버넌스개혁’이 성공한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꿈꾸던 ‘국민이 중심인 나라’가 좀더 빠른 시일 내에 도래할 것입니다.
15. 여야 정당과 시민단체들이 추천한 사람들로 구성되는 전문가참여 위원회와 시민참여 위원회를 확대한다면 어떤 장점이 있습니까?
⇒ 국민들에게 정보가 많이 공개되어 이전될 것이고, 관료들도 과거보다는 정권의 눈치를 덜 보게 될 것이며, 지금보다 여론을 더 많이 살필 것입니다. 또 정당의 역할이 커지면 정당이 강화될 것이고, 시민단체의 역할이 커지면 시민단체도 강화될 것입니다.
16. 야당들은 왜 이 좋은 대안을 추진하지 않는 겁니까?
⇒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관료개혁에 있어서 정보 공개 개혁과 시민참여형 거버넌스개혁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관료개혁과 공기업개혁, 낙하산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질 경우 자신들의 집권했을 때 측근들에게 나눠줄 낙하산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초선 의원들은 전자에 해당할 것이고, 중진 의원들은 아마도 후자에 해당할 것입니다.
17. 관료마피아 문제를 다루다 보면 낙하산 문제를 빼놓을 수 없고 공기업 개혁 문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 공기업(준정부기관 등 공공기관 포함, 이하 동일) 개혁에 진전이 없는 이유는 관료마피아 개혁에 진전이 없는 이유와 정확하게 동일합니다. 공기업 개혁을 하기 위해서도 정보 공개가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관료들과 공기업들은 정보 공개를 하는 흉내만 낼 뿐, 기본적인 정보도 최대한 은폐하려 합니다. 현재 295개 공공 기관 대부분은 예산서, 결산서, 사업계획서 등을 요약본 형태로만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약본 형태의 경영 공시는 공공 기관의 내부 실정을 파악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황당한 것은 국회의원들도 공공 기관으로부터 요약본 형태 이상의 자료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국회는 법령을 개정하여 295개 공공 기관이 지난 10년 이상의 예산서, 결산서, 사업계획서 원본이나 사본을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의무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국회의원들, 언론사들, 그리고 국민들이 공공 기관의 내부 실정을 조금이라도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18. 공기업 개혁에서도 ‘전문가참여형·시민참여형 거버넌스개혁’이 매우 중요한데요. 민간 전문가 출신으로 구성된다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이하 공운위)도 허수아비 위원회로 전락한지 오래되었지요?
⇒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공운위는 정부 관료들이 일회용 컵처럼 이용하는 허수아비 위원회에 불과합니다. 공운위가 얼마나 황당한 들러리 위원회인지는 위원들 위촉 과정에서부터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이 위원회가 거의 유일한 공공 기관 외부 통제 장치임에도 불구하고 위촉 과정에서 '국민 대표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 대표성이라는 것은 노·사·정 위원회처럼 국민 각계로부터 대표를 파견하게 하여 어떤 위원회가 일부 기득권층의 들러리가 되지 않도록 장치를 마련할 때 확보되는 것인데요. 우리나라 공운위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민간위원을 임의로 추천하고 대통령이 위촉하되, 기획재정부 장관 소속 위원회로 운영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19. 공운위가 제 기능을 하게 하려면 이것을 어떻게 바꾸어야 합니까?
⇒ 첫째, 전체 위원 중 민간위원 비율을 현재의 1/2에서 2/3 이상으로 높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 위원의 입김이 지나치게 강해서 국민 대표성이 확보될 수 없습니다. 둘째, 국회가 정당별 의석 비율에 따라 민간위원을 추천하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 공운위를 대통령 직속 위원회로 격상시켜야 합니다. 지금처럼 이 위원회를 기획재정부 장관 소속으로 방치하는 한 제 기능을 할 수 없습니다.
20. 마지막 주문입니다. 지금 이 시기 실효성 있게 서민경제를 살리는 방안과 실효성 있게 관료개혁을 하는 방안에 대해 요약해서 말씀해 주시죠.
⇒ 앞에서도 말했듯이 경제관료들과 보수언론들이 진정으로 서민경제를 걱정한다면, 세월호 참사 애도 분위기 때문에 소비가 위축된다며 툴툴거리기보다는 실효성 있는 서민경제 지원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것은 저소득층에 대한 재래시장 상품권 지원정책을 대폭 확대하는 것입니다. 또 실효성 있는 관료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정보 공개 개혁’과 ‘전문가참여형·시민참여형 거버넌스개혁’이 필수적입니다. 단, 이 개혁이 성공하려면 관료개혁위원회 위원과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전문가와 시민들이 모두 여야 정당과 시민단체들이 추천한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매우 안타까운 것은 야당과 시민단체들이 자신들의 입지를 대폭 강화하면서 동시에 관료개혁과 공기업개혁도 할 수 있는 이 좋은 대안들에 무관심하다는 것입니다.
비상식의 사회]관료사회가 변해야 대한민국이 달라진다 ㅣ주간경향 1075호
관료들의 특정 행위를 금지하는 규제를 만드는 것보다 관료들을 “일반적으로 성심껏 일하게 만드는 것”은 훨씬 어렵다.
무능하고 부패하고 먹통인 대한민국. 이것이 세월호 사건이 우리에게 보여준 부끄러운 현실이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 당장 고쳐나가야 할 우리 사회의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턱하니 새로운 컨트롤타워를 하나 더 장관급보다 높은 곳에 만들면 문제가 해결되겠는가. 아니다. 이번에 무능하고 먹통임이 여실히 드러난 중앙재해대책본부의 실패담을 보면 그 대답은 자명하다. 해답은 훨씬 더 어렵고 근본적인 곳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은 멸공봉사(滅公奉私)와 복지부동(伏地不動)에 젖은 관료를 흔들어 깨우는 것이다.
우선 쉬운 것부터 생각해 보자. 부패한 시스템을 막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그래도 비교적 간단하다. 여기서의 핵심적인 정책 도구는 ‘공직자 윤리법’이다. 현재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이 법을 손질해서 구멍을 메우고 찢어진 곳을 꿰매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법의 핵심적 강제는 퇴직 관료에 대해 ‘원칙적 취업 금지, 예외적 취업 허용’을 적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원칙이 실종되고 예외가 판을 치고 있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그렇다고 전면적 취업 금지를 채택하는 것은 속은 후련할지 모르지만 퇴직 관료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여 아마도 위헌에 해당할 것이다.
필자는 여기에 다른 방법을 추가할 것을 제안한다. 하나는 취업현황 공개이고, 다른 하나는 적색경보 자동발동장치이다.‘햇빛만큼 좋은 방부제는 없다’는 말이 있다. 후에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의 지명에 의해 연방 대법관으로 봉사했던 ‘민중의 변호사’ 브랜다이스 판사의 말이다. 모든 것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것, 그 자체가 현상의 문제점을 바로잡는 효험이 있다는 말이리라. 취업현황 공개란 퇴직 후 일정 기간(예를 들어 5년) 이내의 고위 관료들은 모두 자신이 현재 근무하는 직장을 신고하고,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이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인터넷 게시판에 공개하는 것이다. 그래야 전체적인 현황이 파악되고 사회가 필요한 경우 적절한 통제장치를 개발할 수 있다.
퇴직 관료의 재취업 현황 공개하자
두 번째는 적색경보 자동발동장치이다. 우리가 퇴직 관료의 민간기업 취업을 제한하면서도 완전히 금지하지 않는 이유는 한편으로는 부패를 염려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관료로서의 경험을 잘 발휘하여 민간기업의 발전에 기여하도록 허용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퇴직 관료가 특정 기업의 특정 직위에 연이어 취업하는 경우, 이를 민간기업의 일반적 발전에 기여한다고 보기보다는 해당 기업과 관료 간에 지속적인 결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구체적인 부정이 발생하기 전에 당사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는 없으나, 일단 사회 전체가 그런 상황을 눈여겨 바라볼 필요가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적색경보를 발동하자는 것이다. 적색경보가 발동되면 공직자윤리위원회는 퇴직 관료가 이런 기업에 취업하려고 할 경우 그것이 부당한 결탁과 연계될 가능성은 없는지를 더욱 세밀하게 심사하도록 한다.
이제까지는 부패를 막는 최소한의 장치를 살펴봤다. 그러나 이런 장치는 그 취지가 기본적으로 어떤 행위(이 경우에는 재취업)를 금지하는 것이어서, 어떻게든 이를 회피하려는 적극적인 유인을 발생시킨다. 따라서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별도의 규율장치가 필요하다. 필자는 ‘국가배상법’을 개정하여 관료의 잘못에 의한 국가의 배상책임을 지금보다 훨씬 더 폭넓게 인정할 것을 제안한다. 현재의 국가배상법은 국가의 배상 범위를 지극히 좁게 설정하여 국가배상법이라는 명칭 자체가 무색한 수준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 정도 되면 모를까 동양증권 사태 정도 가지고는 국가의 배상책임을 추궁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시급하게 국가배상법을 개정하여 국가의 책임을 지금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위정자와 관료들이 대형 사고를 방지할 보다 적극적 유인을 가지게 된다.
앞에서는 공공의 이익보다 자신의 사익을 앞세우는 소위 멸공봉사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는 복지부동의 해소, 즉 관료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유인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진정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거론한 체제가 정말 잘 작동한다면 관료들의 복지부동은 더욱 극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배상 책임 범위 훨씬 넓혀야
관료들의 특정 행위를 금지하는 규제를 만드는 것보다 관료들을 ‘일반적으로 성심껏 일하게 만드는 것’은 훨씬 어렵다. 실에 물체가 매달려 있을 때 실을 잡아당겨서 물체를 끌어오기는 쉬워도, 실을 밀어서 그 물체를 밀어내기는 불가능한 것과 유사한 이치다. 여기서의 핵심 키워드는 재량권의 부여와 공정한 인사체계의 정립이다. 관료의 부패를 통제한 이후 가장 중요한 것은 관료들에게 응분의 재량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높으신 분들이 결정할 수 없고, 높으신 분들이 해당 문제의 전문가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무 책임자에게 재량권을 주고 소신껏 일을 처리하도록 여건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이것은 충분조건은 아니어도 적어도 필요조건 정도는 된다.
마지막 과제는 공정한 인사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빈 말이 아니다. 복지부동하는 관료는 퇴출되고, 자신의 직무를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고 소신껏 일하는 관료가 승진할 때 비로소 복지부동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래도 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수준의 관료제도를 가지고 우리 사회를 선진국으로 진입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관료는 한때 우리 사회에서 가장 깨끗하고 효율적인 조직이었지만 지금은 무능하고 부패하고 정작 중요한 일은 안 하는 조직이 되어버렸다. 물론 그들이 아직도 잘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윗사람 입맛을 맞추는 일이다. 또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일이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돌아가게 만들려면 바로 이런 점에 착안하는 수밖에 없다. 즉 윗사람이 먼저 바뀌어야 하고 윗사람이 먼저 관료제도의 개혁을 원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인사를 통해 관료를 통제해야 한다. 이 역시 윗사람의 몫이다. 결국 공은 돌고 돌아서 박 대통령에게로 다시 왔다. 과연 박 대통령은 할 수 있을 것인가.<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대기업보다 센 공무원 월급…월 평균 447만원 받아 5.8 한국경제
올해 전체 공무원의 평균 월 소득이 447만원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행정부는 올해 공무원 전체의 기준소득월액 평균액을 447만원으로 관보에 최근 고시했다고 8일 밝혔다. 기준소득월액은 공무원연금의 보험료와 수령액을 계산하기 위한 기준이 되는 금액으로, 지난해 공무원 전체 급여에 올해 인상률을 반영한 금액을 공무원 전체 숫자로 나눈 수치다. 올해 기준소득월액을 토대로 환산한 공무원의 전체 평균 연봉은 5394만원이다. 기준소득월액에는 각종 가맹점에서 현금처럼 결제가 가능한 복지포인트와 직급보조비 등 과세 대상이 아닌 금액은 제외돼 실제 월 급여는 이보다 많아진다.
이번에 고시된 공무원 평균 월 소득은 기업체 근로자보다 많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종업원 5명 이상 사업체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임금은 304만7000원, 종업원 300명 이상 중견기업이나 대기업 근로자는 432만2000원이다. 이에 대해 안행부 관계자는 “기업 근로자 월평균 임금에는 대표이사나 임원 보수가 반영되지 않지만 공무원 월평균 급여에는 장관 차관 등 고위관료, 판·검사, 국회 사무처 직원, 국공립학교 교원 및 교수 등이 포함돼 높아진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정년이 보장되는 공직 특성상 장기근속자가 많아 민간 기업과 단순 비교하기는 힘들다고 덧붙였다. 한편 공무원 평균 기준소득월액은 2011년 395만원, 2012년 415만원, 2013년 435만원 등 꾸준히 상승했다.
낙수효과는 역시 거짓이었다 ㅣ주간경향 1075호
ㆍ2008년 이후 실질임금 상승률 마이너스… 노동자들이 높은 노동생산성으로 기업에 돈 벌어줬지만 돌아오는 몫은 되레 줄어
“낙수효과 이론이란 자유시장을 바탕으로 경제가 성장하면 세상에 더 큰 정의와 통합을 가져다준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은 사실로 확인된 적이 없다.”
경제학자의 말이 아니다. 경제에 관한 한 ‘비전문가’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이다. ‘낙수효과’는 교황의 눈에 확인되지 않은 ‘가설’에 불과했다. 그 통찰이 틀리지 않았다는 근거는 연이어 나오고 있다.
특히 낙수효과를 거의 신앙처럼 숭상하는 한국에서 그렇다. 낙수효과는커녕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대기업의 곳간은 갈수록 그득해졌다. 낙수효과에 따르면 저소득층으로 소득이 넘쳐흘러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하락한 것이다.낙수효과는 대기업 위주 정책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동원한 포장지에 불과했다.식음료 분야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매장 관리자로 일하고 있는 김미현씨(29)의 월급은 해마다 조금씩 올랐다. 3년차인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3.5%가량 인상된 액수로 계약했다. 하지만 김씨는 월급이 올랐다는 것을 전혀 실감하지 못한다. 오히려 더 가벼워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김씨가 일하는 매장의 가장 싼 파스타 가격은 입사 첫해 1만원이었다. 그게 지금은 1만3000원으로 30% 올랐다.
물가는 날아가는데 월급은 기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김씨는 “이러다가 내 일당으로 내가 일하는 가게의 밥 한 끼 못 사먹는 건 아닌가 하는 농담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김씨의 얼굴에 씁쓸한 웃음이 흘렀다 사라졌다.
기는 월급은 김씨만 그런 게 아니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한국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2.3% 하락했다. 명목임금은 12.4% 올랐지만 이 기간 동안 물가가 14.5%나 뛰었다. 임금인상폭이 물가상승률에도 못미쳐 해가 갈수록 임금이 줄어든 셈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의 박종규 선임연구위원이 쓴 ‘임금 없는 성장의 국제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1997~2002년 19.4%, 2002~2007년 17.6%를 기록하던 한국의 실질임금 상승률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며 마이너스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급 3.5% 오를 때 밥값 30% 올라
주목할 만한 점은 실질노동생산성은 경제위기에도 꺾이지 않고 지속적인 증가율을 보여왔다는 사실이다. 실질노동생산성은 1997~2002년 21%, 2002~2007년 17.4% 상승하며 실질임금 상승률과 동반해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그러나 실질임금 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2007~2012년에도 실질노동생산성은 여전히 9.8% 증가율을 나타냈다. 요컨대 노동자들은 높은 노동생산성으로 기업에 더 많이 벌어줬지만 그만큼의 몫이 돌아오기는커녕 오히려 임금이 깎인 것이다.
박 연구위원은 “한국의 실질임금은 2008년 1분기 이후 계속 정체 중인데 이 기간 중 한국의 실질노동생산성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빠르게 증가했다”면서 “한국의 ‘임금 없는 성장’ 추세는 국제적으로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이 말한 ‘임금 없는 성장’은 낙수효과가 허구임을 보여준다. 낙수효과는 흔히 가장 위에 놓인 그릇부터 물을 채우면 넘쳐난 물이 아래에 놓인 그릇으로 자연히 흘러내려간다는 식으로 비유된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기업에서 가계로, 소득 상위층에서 중·하위층으로 소득이 이전된다는 주장이다.
수출이 잘 돼야 한국 경제도 산다며 수출기업 위주의 정책을 편 것 역시 낙수효과에 기반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도 마찬가지다. 정책결정자들이나 대기업은 끊임없이 낙수효과를 앞세우고 있지만 정작 낙수효과를 뒷받침하는 근거들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있다.
기업소득 증가율과 가계소득 증가율 간의 격차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점도 낙수효과의 허구성을 입증한다. 이명박 정부의 법인세율 감축 등 ‘친기업’을 표방한 정책의 결과는 기업과 가계 간 소득 양극화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8∼2013년 기업의 처분가능소득은 80.4% 늘었지만, 가계와 개인사업자가 속한 개인 부문의 처분가능소득 증가율은 26.5%에 그쳤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노동분배율이 하락하고 자영업 부문이 침체한 것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산업연구원 강두용 동향분석실장은 “기업소득이 호조를 보이면 가계소득은 부진해지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라며 “기업 유인의 확대를 통해 성장 촉진을 도모한다는 논리에 기초해 기업에 유리한 조세정책을 펼친 끝에 가계·노동·자영 부문이 상대적으로 소외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경제의 양극화 정도는 국제적으로 비교해도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의 실질임금 상승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경제규모와 상황을 고려해 비교가 가능한 18개국 가운데 끝에서 4위를 기록했다. 반면 실질노동생산성 상승속도는 가장 높아서 실질임금과 실질노동생산성 사이의 격차는 비교 대상국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가계소득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정도도 한국이 OECD 국가 중 가장 심했다. 연평균 3.8%의 경제성장률을 보이는 동안 가계소득 증가율은 1.9%에 머물러 가장 격차가 극심했다.
한국 ‘임금 없는 성장’ 심각한 수준
나는 물가, 기는 월급은 더 오랜 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르는 물가에 소득수준을 맞추려면 일하는 시간을 늘리는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자동차 부품업계 생산직으로 일하는 심상용씨(37)는 잔업 근무시간을 한 시간이라도 더 채우려는 공장 분위기를 보며 달라진 모습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특히 임금·단체협상이 끝나고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임금인상 소식을 듣는 봄철이면 관리직 직원이 채근할 필요도 없게 너나 없이 야근에 매달리는 모습이 어느 해부턴가 반복되고 있다.
“급여명세서를 보면 임협 지나고 오른 월급 액수가 찍혀 있지만 그만큼 세금 오르지, 보험료 오르지, 이것저것 공제액수도 늘지, 결국 작년이랑 매한가지다.” 일하는 시간을 늘려도 고정적인 지출항목의 액수가 커지면 손쓸 길이 없다. 게다가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교육비 부담도 커진다. 심씨는 “점점 커지는 씀씀이를 감당하려면 결국 금융기관의 대출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교육비와 공적연금·사회보험, 의료·보건비 등 가계가 꼭 지출해야 하는 경직성 지출의 비중은 2003년 26.3%에서 지난해 29.0%로 커졌다. 이 가운데 특히 교육비 관련 가계부채는 지난해 말 28조4000억원에 달해 1년 전보다 12.3% 늘어났다. 전체 가계부채 증가율(6%)의 두 배를 넘는다. 2012년 말 기준 한국 가계의 순자산 대비 부채 비율은 20.2%로 미국 16.1%, 영국 16.9%, 일본 14.5% 등에 비해 훨씬 높다. 빚을 내서라도 교육을 시키는 한국 가계의 특성이 임금과 소득수준의 저하에도 불구하고 반영된 것이다.
“낙수효과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최상위 계층에게는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이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기여한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의 말이다.
미혼 남녀 10명중 4명 "부모가 혼전 성관계 모른척 한다" 5.8 아시아경제
미혼 남녀 10명중 4명 "부모가 혼전 성관계 모른척 한다"
미혼남녀 대다수가 교제 중인 이성과 혼전 성관계를 갖는 것에 대해 부모가 당연시하거나 모르는 척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결혼정보업체 비에나래와 온리-유는 '결혼 전 연인과의 성관계에 대해 부모는 어떤 입장입니까?'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를 7일 발표했다. 이 설문은 지난 1일부터 6일까지 전국의 결혼희망 미혼 남녀 536명(남녀 각 268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이 질문에 대해 남녀 모두 '모르는 척한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남성 응답자의 42.5%, 여성 응답자의 41.4%가 이렇게 답했다.
남성의 경우 △'당연시한다'(33.6%) △'가급적 자제토록 한다'(15.7%) △'결혼을 전제로 허용한다'(8.2%)는 대답이 뒤를 이었다.
여성은 △'가급적 자제토록 한다'(29.1%) △'결혼을 전제로 허용한다'(19.4%) △'당연시한다'(10.1%) 등의 순이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남성의 76.1%와 여성의 51.5%가 부모가 자신의 혼전 성관계에 대해 '모르는 척한다' 또는 '당연시한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결혼을 전제로 (성관계)를 허용한다'고 답한 것까지 고려하면 남성 84.3%, 여성 70.9%가 부모가 자신의 혼전 성관계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달라진 이성관이 엿보인다.
한편 '부모는 이성 교제에 대해 어떤 입장입니까?'라는 질문에서는 남녀 간 의견이 엇갈렸다. 남성의 42.2%가 '가능하면 많이 사귀어 보도록 권장한다'고 답했으며, 여성은 39.2%가 '엄선해 소수만 사귀도록 한다'고 답했다.이어 남녀 모두 '별로 간섭 안 한다'(남 36.6%, 여 34.0%를)는 대답이 그 뒤를 이었다. 그 밖에 남성은 '엄선해 소수만 사귀도록 한다'(16.8%), 여성은 '가능하면 많이 사귀어보도록 권장한다'(16.1%)를 세 번째로 많이 꼽았다. 마지막 4위로는 남녀 모두 '결혼목적으로만 사귀게 한다'(남 4.4%, 여 10.7%)로 답했다.
가난하게 태어나 가난하게 살고 가난하게 죽는다 [2010.03.26 제803호]
[영구 빈곤 보고서 ①]
영구임대아파트에서 만난 한국 빈곤계층의 역사… 6주에 걸친 121가구 방문 조사 보고서
가난한 사람들은 모여 산다. 잘사는 사람들이 그들을 제 곁에서 밀어내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지난 반세기에 걸쳐 서울 청계천 판자촌, 난곡 달동네, 서초동 비닐하우스촌, 가리봉동 쪽방 등을 전전했다. 이에 대한 학계·언론계의 연구·조사도 간간이 이뤄졌다. 그러나 한국 빈곤층 집단 주거지를 대표했던 이들 지역은 옛 모습을 잃었다. 2010년 현재 대부분 재개발이 완료됐거나 진행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또다시 어디론가 떠나갔다.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는 다르다. 가난한 사람들의 오랜 둥지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가난이 중첩한 현장이다. 꼭 20년 전인 1990년, 서울 번동·중계동·면목동 등에 국내 최초의 영구임대아파트 단지가 착공되거나 완공됐다. 정부는 수도권 일대의 영세민·철거민·무허가주택입주민 등을 이곳으로 집단 이주시켰다. 저렴한 임대료만 내면 ‘원할 때까지’ 계속 살 수 있다고 정부는 선전했다. 서울 2만2천여 호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19만 호의 영구임대아파트가 생겼다. 그러나 1992년을 마지막으로 영구임대아파트 건설은 중단됐다. 그리고 그들은 잊혀졌다. 잊혀졌지만 그 곳에서 지난 20년을 가난과 함께 살았다.
<한겨레21>은 2010년을 사는 한국 빈곤층의 현실에 주목했다. 한국 최초의, 그리고 최후가 되어버린 대규모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주민들을 찾아가 만났다. 1990년 무렵에 건설된 서울 강북의 한 단지를 집중 취재했다. 그들의 삶이 지난 20년에 걸친 한국 빈곤계층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남기철 교수 연구팀의 자문과 도움을 받아, 지난 2월부터 총 6주에 걸쳐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2개 동 360가구를 방문해 이 중 121가구와 면담했다. 이 가운데 20가구는 다시 2회 이상 심층면접했다. 그들은 빈곤을 증언하고, 빈곤에 대한 무관심을 증언했다. 그들은 가난하게 태어났으며, 여전히 가난하고, 앞으로도 가난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빈곤의 대표 현장을 세 차례의 기사로 연재하면서, <한겨레21>은 거듭 물어볼 것이다. 그들은 왜 이렇게 살게 되었나?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편집자
*용어설명
사회보험제도: 국가가 법에 따라 강제성을 띠고 실시하는 보험제도를 뜻한다. 노동능력의 상실에 대비한 건강보험과 산업재해보험, 노령으로 인한 노동기회 상실에 대비한 연금보험과 고용보험으로 구분한다.
공공부조제도: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임하에 생활 유지 능력이 없거나 생활이 어려운 국민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립을 지원하는 제도다. 사회보험이 보험료를 기본 재정으로 하는 반면 공공부조는 세금을 재원으로 한다.
사회서비스: 개인 또는 사회 전체의 복지 증진과 삶의 제고를 위해 사회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통칭한다.
공공서비스: 국가나 공공 단체가 공공의 복지를 위해 제공하는 서비스. 교육, 교통, 의료, 경찰 따위를 이른다. 공공서비스는 시장재가 아닌 공공재라는 점을 통칭하고, 사회서비스는 휴먼서비스 분야의 연성서비스에 초점을 둔다
영구임대아파트 121가구 사람들
서울 강북의 한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2개동 121가구의 상황을 요약한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아파트의 정확한 위치를 밝히지 않고, 실제 동·호수와 다른 곳에 각 가구를 표시했다. 편집자
1. 60대 부부가 14살 손녀를 키운다. 아들은 지방에서 일하고 며느리는 집을 나갔다.
2. 70대 부부. 평생 공사판에서 일한 남편은 요즘도 동사무소에 나가 자활근로를 한다.
3.70대 부부. 남편은 청소부 일을 하면서 아들 셋을 키웠다. 둘째아들은 빚 때문에 도망다닌다.
4. 60대 부부. 남편은 손을 다쳐 일을 못한다. 부인이 자활근로를 한다.
5. 60대 부부와 30대 아들이 산다. 남편은 1997년 회사가 부도나면서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아들은 직업이 없다.
6. 다섯 식구가 산다. 30대 딸·아들을 둔 60대 부부가 80대 노모를 모시고 있다. 환갑의 며느리는 정신장애가 있다.
7. 70대 부부. 부인은 식당일을 하고, 남편은 자활근로를 한다.
8. 60대 부부가 30대 아들과 산다. 남편은 공장에서 일하고 부인은 지체장애 1급이다. 아들은 직업이 없다.
9. 50대 어머니와 30대 딸이 산다. 1천만원의 사채를 빌려 한 달 이자만 60만원이다.
10. 공장 일용직으로 일하는 30대 아들이 60대 노모와 산다. 서울 불광동 철거촌에서 쫓겨나 이곳으로 옮겨왔다.
11. 70대 노모와 환청에 시달리는 30대 딸, 그리고 뚜렷한 직업이 없는 30대 아들이 산다.
12. 70대 부부와 30대 아들이 산다. 아버지는 아파트 경비원이고 아들은 직업이 없다.
13. 70대 노모와 40대 아들, 30대 딸이 산다. 대부업을 하는 아들이 돈을 제법 번다.
14. 60대 남편은 판매일을 하고 50대 부인은 일용직으로 일한다.
15. 50대 어머니가 혼자서 아들과 딸을 키운다. 딸이 취직하는 바람에 기초생활수급권자 자격을 잃었다.
16. 당뇨병을 앓는 70대 할머니가 혼자 산다. 무허가 집에 살다가 20년 전 입주했다. 딸 여섯에 아들 하나를 키웠다.
17. 60대 부부. 남편은 30년간 무직이었고 부인은 파출부로 일한다. 딸은 20년간 투병하다 숨졌다.
18. 60대 할아버지가 혼자 산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공장이 부도나 빚을 졌다. 지금도 신용불량자다.
19. 식당일을 하며 자식을 키운 60대 할머니가 혼자 산다. 몸이 아파 일을 못한다. 자녀들에게 한달에 20만원의 용돈을 받는다.
20. 70대 부부. 부인은 위암에 걸렸다. 남편은 경비일을 한다. 따로 사는 아들은 얼마 전 파산 신청을 했다.
21. 60대 부부. 남편은 지체장애 2급이고 부인은 당뇨를 앓고 있다. 부부 모두 버는 돈이 없다.
22. 60대 어머니와 40대 아들이 산다. 어머니는 평생 보따리 장사를 했다.
23. 70대 할머니가 자활근로를 하면서 중학생 손녀 뒷바라지를 한다. 2천만원의 빚이 있다.
24. 70대 할아버지와 성인이 된 2명의 딸과 1명의 아들이 산다. 자녀들은 고교 졸업 뒤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
25. 70대 부부. 서울 약수동 철거촌에서 쫓겨나 서초동 비닐하우스촌에 거주하다 이곳에 옮겨왔다.
26. 70대 노모는 자활근로를 하고, 40대 딸과 30대 아들은 직업이 없다. 초등학생 손자는 얼마 전 학원을 그만두었다.
27. 70대 부부와 30대 아들 둘이 산다. 큰아들은 학원 강사고, 둘째아들은 무직이다.
28. 70대 할머니가 40대 아들과 산다. 무직인 아들은 당뇨를 앓고 있다.
29. 70대 부부. 이곳에 오기 전 무허가 집에 살면서 행상을 했다. 함께 사는 40대 딸이 자활근로로 생계를 꾸린다.
30. 60대 부부와 30대 아들이 산다. 서울 가리봉동 셋방 시절, 불이 나서 아들 넷 중 둘이 화상을 입었다.
31. 60대 아버지와 30대 아들 두 명 모두 직업이 없다. 서울 봉천동 철거촌에서 쫓겨나 이곳에 왔다.
32. 60대 어머니가 공장일을 하며 딸을 키웠다. 함께 사는 사위는 제조공장에서 일한다.
33. 60대 할머니. 자녀가 주는 용돈과 국민연금으로 생활한다.
34. 40대 부부. 주차관리와 청소를 하며 돈을 번다. 학비를 대야 할 10대 딸이 3명이다.
35. 60대 할아버지. 임대료·관리비를 못 냈다. 법원이 강제 퇴거 판결을 내렸다. 지난 1월, 20대 아들이 자살했다.
36. 60대 부부와 40대 아들, 30대 딸이 산다. 부인이 빌딩 청소 일로 돈을 번다. 3천만원의 사채빚이 있다.
37. 60대 부부와 아들이 산다. 뇌병변장애인 남편은 주차관리를 하고, 지체장애인 아내는 가내 부업을 한다.
38. 60대 부부와 40대 아들이 산다. 아들은 늘 몸이 아파 누워 있다. 시집간 딸이 관리비를 내준다.
39. 50대 어머니는 지체장애 1급으로 키가 105cm다. 10대 후반의 큰딸은 얼마 전 가출했다.
40. 자활근로를 하는 70대 노모와 화상 장애를 입은 40대 아들이 산다. 예전엔 산 아래 비닐을 치고 살았다.
41. 60대 노모는 평생 노점을 하며 자식을 키웠다. 30대의 두 아들은 월 100만원씩 번다.
42. 70대 노모와 3명의 아들이 산다. 아들은 모두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한다.
43. 당뇨와 골다공증을 앓는 70대 할머니가 자활근로를 하며 혼자 산다.
44. 청각장애가 있는 60대 노모는 자활근로를 하고 30대 딸·아들은 각각 학원 경리, 어린이 축구교실 교사다.
45. 시각장애 1급인 60대 할아버지가 혼자 산다.
46. 70대 부부. 부인이 식당에서 일하며 딸 7명을 키웠다.
47. 시각장애 1급인 70대 할아버지가 혼자 산다. 14년 동안 기초생활수급비로만 살았다.
48. 70대 노모가 30대 아들과 산다. 아들에게 빚이 있으나 노모는 액수를 모른다.
49. 60대 부부와 20대 아들·딸이 산다. 아버지가 노점상을 한다. 아들·딸은 직업이 없다.
50. 70대 할아버지가 혼자 산다. 40년간 공사현장에서 일하며 자식 셋을 키웠다.
51. 70대 부부. 큰아들은 빚 때문에 숨어다니고, 딸은 이혼했다.
52. 70대 부부. 남편과 부인 모두 지체장애다. 서울 망원동 지하방에 살다가 이곳에 왔다.
53. 60대 부부와 30대 아들이 산다. 어머니가 식당에서 일한다. 아들은 건설현장에서 일한다.
54. 70대 부부. 돈이 없어 허리디스크 수술과 틀니 시술을 계속 미루고 있다.
55. 청각장애가 있는 70대 아버지와 30대 아들 둘이 산다.
56. 60대 노모와 30대 아들이 산다. 어머니는 심장병에 걸려 입원했다. 아들은 병원비를 대느라 몇천만원의 빚을 졌다.
57. 60대 부부와 20대 아들이 산다. 아들은 파킨슨병으로 누워 있다. 직업이 없는 부부는 1억원의 빚이 있다.
58. 60대 부부. 당뇨·천식 등을 앓고 있다. 딸은 휴대전화 제조 공장에서 일하다 옆동 남자와 결혼했다.
59. 70대 부부와 30대 딸이 산다. 남편은 35년째 택시 운전을 한다. 부인은 얼마 전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다.
60. 60대 노모와 40대 아들이 산다. 청원경찰인 아들은 미혼이다.
61. 60대 할아버지가 혼자 산다.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수당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62. 70대 할머니가 혼자 살면서 자활근로로 생계를 잇고 있다.
63. 70대 부부와 40대 아들 둘이 산다.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됐다.
64. 80대 할아버지가 국가유공자 연금을 받아 생활한다. 40대 아들은 직업이 없다.
65. 70대 노모와 두 아들이 산다. 한 명은 공장에서 기계 만지는 일을 하고 다른 한 명은 무직이다.
66. 70대 노모, 무직인 둘째아들, 지체장애인인 막내아들, 그리고 첫째아들이 두고 간 손녀가 함께 산다.
67. 60대 노모와 30대 아들이 산다. 첫째아들은 일용직이다. 둘째아들은 지적장애가 있다.
68. 70대 노모가 알코올중독·게임중독인 30대 아들,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40대 딸과 산다.
69. 50대 부부와 20대 딸 2명이 산다. 아버지는 신체장애, 큰딸은 지적장애를 앓고 있다. 작은딸은 대학생이다.
70. 70대 할머니가 당뇨·협심증·골다공증을 앓으며 혼자 산다.
71. 50대 어머니와 20대 딸, 10대 아들이 산다. 딸은 직업이 없고, 아들은 고등학생이다.
72. 60대 부부와 40대 아들이 산다. 생계를 꾸려온 부인은 얼마 전 자궁암 수술을 받았다.
73. 70대 남편은 보청기를 끼고 자활근로를 한다. 60대 부인은 10년간 청소일을 했다.
74. 다리가 불편한 60대 어머니와 20대 딸이 산다. 모두 무직이다. 친척들의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75. 70대 부부와 30대 아들이 산다. 돈을 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버지는 정신지체 장애가 있다.
76. 60대 노모와 20대 딸이 산다. 둘 다 무직이다. 친척들에게 수백만원의 빚을 졌는데 독촉이 심하다.
77. 70대 아버지와 30대 딸이 산다. 예전엔 서울 삼양동 무허가 집에 살았다. 딸은 지체장애가 있다.
78. 60대 부부. 가건물에 살다 불이 나서 이곳으로 이사왔다. 부인이 분식점을 운영한다.
79. 60대 부부. 부인은 20년 동안 파출부로 일했다. 5천만원의 빚이 있다.
80. 70대 아버지와 30대 아들이 산다. 무직인 아들은 1천만원의 빚을 카드로 돌려막고 있다.
81. 70대 노모와 40대 아들 모두 무직이다. 아들은 지금껏 한 번도 돈을 벌어본 적이 없다.
82. 60대 부부와 30대 딸이 모두 무직이다. 자활근로를 신청했으나 떨어졌다.
83. 60대 부부. 부인은 파출부로 일한다. 지체장애 2급인 남편은 20년 동안 일을 못했다.
84. 60대 할머니가 위장병·고혈압·허리디스크를 앓으며 혼자 산다. 따로 사는 자녀가 관리비를 낸다.
85. 70대 부부. 시각장애가 있는 부인은 4년 전 폐암에 걸렸다. 건축일을 하던 남편은 허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하다. 딸 4명 중 2명이 이혼했다.
86. 70대 부부. 당뇨·고혈압·허리디스크가 있다. 남편이 아파트 기계실에서 일해 한 달에 120만원을 번다. 한 달 의료비만 80만원이 든다.
87. 70대 노모와 30대 자녀 4명이 산다. 노모는 수산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자녀를 키웠다.
88. 70대 노모와 건설 노동일을 하는 40대 아들이 산다. 노모는 신장장애 2급이다.
89. 60대 할머니가 혼자 산다. 수십 년간 식당일을 했지만, 얼마 전 척추를 다친 뒤로는 누워만 있다.
90. 70대 노모는 관절이 아프고, 40대 아들은 허리를 다쳤고, 10대 손자는 지체장애 2급이다.
91. 60대 부부가 30대 딸들과 산다. 두 딸은 유치원 비정규직 교사다.
92. 40대 부부가 10대 아들과 산다. 택배 기사, 택시 운전 등을 전전하던 남편은 얼마 전부터 덤프트럭 운전을 시작했다.
93. 평생 일용직으로 일한 60대 부부와 20대 딸이 산다. 회사원인 딸이 부모의 빚을 갚고 있다.
94. 당뇨가 있는 70대 남편은 평생 일용직 노동을 했다. 60대 아내는 갑상선 질환으로 늘 피곤하다.
95. 60대 부부가 90대 노모를 모시고 산다. 60대의 아들은 공장에서 일하다 손가락을 잃었다.
96. 60대 노모와 30대 아들이 산다. 무직인 아들은 환청이 심해 정신장애 3급이다. 어머니는 3년 전 암수술을 받았다.
97. 60대 부부와 40대 아들 두 명이 산다. 임대료를 계속 못 내고 있는데, 두 아들 모두 직업이 없다.
98. 50대 어머니와 30대 아들 모두 무직이다. 어머니는 의료사고로 손을 못 쓴다.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한다.
99. 70대 할머니가 홀로 산다. 고혈압·당뇨·심장병이 있다.
100. 60대 부부와 30대 아들이 산다. 서울 수유리 철거촌 세입자였다. 어머니는 3년 전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101. 70대 아버지와 30대 아들이 산다. 아버지는 뇌병변 3급 장애가 있고, 1천만원의 빚이 있다.
102. 60대 노모, 딸 2명, 아들 1명, 초등학생 손녀 2명 등 6명이 함께 산다. 큰아들이 퀵서비스 일을 한다.
103. 60대 노모와 30대 딸이 산다. 딸은 무직이고 어머니가 지금껏 청소일을 한다.
104. 70대 아버지와 20대 딸이 산다. 아버지는 오른쪽 손발을 쓰지 못한다. 관리비는 따로 사는 아들이 내준다.
105. 70대 부부와 30대 딸이 산다. 부인은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남편은 당뇨를 앓고 있다.
106. 위장병·당뇨·자궁암 등에 시달리는 70대 부부와 30대 딸이 산다. 모두 무직이다.
107. 70대 할머니와 90대 할머니가 산다. 두 할머니 모두 자녀가 없고 기초생활수급비로 살고 있다.
108. 50대 부부와 30대 딸이 산다. 서울 삼양동 철거촌의 세입자였다.
109. 70대 아버지와 뇌성마비 1급인 40대 딸이 산다. 반지하에 오래 살다가 지난해 입주했다.
110. 70대 부부와 30대 아들이 산다. 서울 금호동 철거 주택의 세입자였다.
111. 60대 부부. 남편은 근무력증, 부인은 당뇨 환자다. 병원비 때문에 몇천만원의 빚을 졌다.
112. 40대 부부가 초등학생 딸 2명과 산다. 일용직인 남편은 카드 돌려막기를 하다 신용불량자가 됐다.
113. 70대 부부. 택시 운전사였던 남편은 교통사고로 다리를 못 쓰게 됐고, 지금은 자활근로를 한다.
114. 60대 노모와 40대 아들 모두 정신장애인이다. 또 다른 30대 아들이 고등학생 때부터 가족을 부양해왔다.
115. 60대 아버지는 건설 일용직으로 일한다. 20대 아들 둘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
116. 70대 부부. 모두 장애가 있다. 사업이 부도난 30대 아들이 함께 산다.
117. 60대 아버지와 20대 아들이 산다. 아버지는 청각장애 2급이다. 아들은 작은 회사에 다닌다.
118. 지체장애 3급인 60대 할아버지가 혼자 산다. 2천만원의 은행빚이 있다.
119. 40대 어머니가 혼자 딸을 키운다. 어머니는 암수술 뒤로 일을 못한다. 고등학생 딸은 급식비가 없어 저녁을 굶은 채 방과후수업을 받는다.
120. 70대 할머니가 가끔 자활근로를 하며 혼자 산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청소일을 하며 육남매를 키웠다.
121. 70대 할머니가 혼자 산다. 무직인 할머니는 알코올중독자가 사는 이웃집과 자주 다툰다. 관리비는 따로 사는 자녀가 낸다.
100만원 미만 소득으로 3명이 생활 [2010.03.26 제803호] [영구 빈곤 보고서 ①]
일일이 방문한 360가구 중 121가구 통계…
무직 48.9%, 장애인 47.1%, 노동력 상실 45.8%, 사실상 ‘영구 빈곤’의 상태
<한겨레21>은 1989~1992년 조성된 전국의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가운데 초창기에 건설된 서울 강북의 한 단지를 조사 대상으로 삼았다. 밀집한 수십 동의 아파트 중에서도 가장 오래전에 지어진 2개동을 골랐다. 입주민의 상당수가 15~20년 동안 이 단지에서 살아왔다. 지난 2월부터 6주에 걸쳐 2개동 360가구를 일일이 방문했다. 이 가운데 121가구의 승낙을 받아 1시간가량씩 면담조사를 했다. 가구현황·이주과정·주거환경·가족배경·사회의식·경제생활·복지현황 등에 대한 54개 항목을 물었다. 적극적으로 응답한 20가구는 다시 심층면접해 생애사를 취재했다.
조사에 응한 가구는 그나마 여유 있는 편
360가구 모두 2회 이상 방문해 조사를 시도했으나, 거절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집에 아픈 사람이 있어 외부인이 들어오면 곤란하다”는 이유가 가장 많았다. 따라서 면담조사에 응한 121가구는 가족 중에 중환자나 장애인이 적고, 생계 해결에 그나마 여유가 있는 경우라고 평가할 수 있다. 조사 결과,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가구 총소득이다. 전체 응답 가구의 72.7%가 한 달 100만원 미만의 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50만원 미만의 소득은 33%였다. 9.9%는 월 20만원 미만의 벌이를 가졌고, “소득이 아예 없다”고 답한 가구도 2.5%에 이르렀다. 이 액수는 기초생활급여, 자활근로 임금, 자식·친지가 주는 용돈 등을 모두 합한 것이다.
121가구의 총가구원(함께 사는 사람) 수는 313명이었다. 가구별로 나눠보면 1가구당 평균 2.59명이 사는 셈이다. 사실상 자식과 함께 거주하면서도 기초생활수급권을 박탈당할까봐 이를 숨기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실제 가구원 수는 1가구당 평균 3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구간별’로 가구 총소득을 물어본 이번 조사에서 1가구 평균소득을 정확히 짚어내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3명이 사는 가구가 한 달 100만원 미만의 돈으로 생활하는 것이 영구임대아파트 주민의 ‘평균치’라고 볼 수 있다. 2010년 현재 정부가 발표한 2인 가구 최저생계비는 85만8747원, 3인 가구는 111만919원이다. 영구임대아파트 주민들은 최저생계비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
한계선에서 살고 있는 이들에게 가장 큰 부담이 되는 것은 주거비였다. 가구당 월 20만~30만원에 이르는 관리비·임대료가 가장 큰 지출 항목이라고 답한 경우가 74.4%였다. 실제 면담조사 과정에서 거의 모든 주민이 “제발 관리비·임대료가 낮아지도록 도와달라”고 하소연했다. 앞으로 개선되길 바라는 사항을 물었는데, 68.6%가 ‘보증금·임대료·관리비의 인하’를 꼽았다. ‘차별적 시선·사회적 소외’(4.1%), ‘범죄 단속’(5.0%), ‘주택 개선’(3.3%) 등에 비해 월등한 수치다.
가구주를 포함해 모든 가구원의 직업을 물었는데, ‘무직’인 경우가 48.9%에 이르렀다. 무응답자가 5.8%였는데 그 가운데 상당수도 뚜렷한 직업이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직업이 있다 해도 단순노무직(10.0%), 단기직 아르바이트(5.4%), 공공·자활근로(6.4%) 등 비정규직이 많았다. 무직, 단순노무직, 단기직, 자활근로 등을 더하면 70%가 넘는다. 한 달 100만원 미만의 소득을 올린다고 답한 조사 결과와 겹친다. 실직이 곧 가난과 연결된 것이다.
가난의 원인은 질병, 절실한 복지는 의료비 보장
가구 총소득 100만원 미만인 88가구 가운데 65살 미만의 성인이 포함된 가구(‘노인+성인 자녀 가구’, ‘성인 부부+자녀 가구’ 등)는 48.9%에 이르렀다. 노동능력이 있는 이들이 안정적·지속적 임금을 받게 된다면 이들의 가난에도 출구가 보일 것이다. 그러나 취업 알선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빈곤층 가구의 특성 때문이다. 조사 대상 121가구 가운데는 ‘노인 단독’(14.9%), ‘노인 부부’(19.0%) 등 65살 이상 노인을 중심으로 가구가 구성된 경우가 많았다. 나이 분포를 봐도 조사 대상 가구원의 50.2%가 60살 이상으로 나타났다. 가구 총소득 100만원 미만인 88가구 가운데 ‘노인 단독’ 또는 ‘노인 부부’인 경우는 30%였다. 사실상 노동능력을 잃어가는 빈곤 노인 가구에 대해선 기초생활급여를 늘리는 것이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장애와 질병은 이들의 발목을 잡는 또 다른 올무다. 가구 구성원 가운데 장애인이 있는 경우가 47.1%였다. 장애 등급별로 보면 중대 장애로 분류되는 1~3급 장애가 전체 장애인의 57.6%를 차지했다. 이들에겐 취업이 아니라 돌봄과 치료가 절실하다. 그러나 면담 과정에서 살펴본 바로는 중증 장애인의 대부분은 사실상 돌봄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상태였다.
‘자주 이용하는 복지시설’을 물었는데, 사회복지관(10.7%), 경로당(5.8%), 동사무소(5.8%), 종교·사회단체(4.1%)를 꼽은 경우보다 “아무 곳도 이용하지 않는다”(37.2%), “관심없다·모르겠다”(33.9%)는 응답이 월등하게 높았다. 현장에서 살펴본 바로는 종교·사회단체, 경로당 등은 무료급식과 반찬 제공 등의 공간이었고, 동사무소는 기초생활급여 수급 등을 상담하는 공간이었다. 장애에 따른 각종 돌봄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사회복지관 이용률이 저조한 것은 빈곤 장애인의 처지를 웅변한다.
거의 모든 가구 구성원이 각종 만성 질병을 앓고 있었는데, 노동력 상실과 직결되는 ‘허리·관절 질환’(31.3%), ‘신체 손상에 따른 거동 불편’(6.5%), ‘암’(5.0%), ‘정신질환’(3.0%) 등이 많았다. 빈곤층의 질병은 평생 지속된 가난의 결과이자, 남은 인생까지 가난하게 살게 될 원인이다. ‘현재 가난의 원인’을 물었더니 34.7%가 “질병과 장애 때문”이라고 답했다.
‘가장 절실한 복지 서비스가 무엇인지’ 물었는데, 25.6%가 ‘의료비 보장’이라고 답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면담 과정에서 살펴본 바로는 빈곤층의 질병은 그냥 방치될 뿐, 치료되지는 않는다. 주거비 등의 부담이 큰 상태에서 아파도 그냥 참는 것이다. 의료비 보장 다음으로 ‘소득지원금’을 절실한 복지 서비스로 꼽은 경우가 14.9%였다. ‘취업 알선’(13.2%)이라고 응답한 것까지 감안하면 이들이 원하는 복지는 안정적 소득을 확보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20년 된 입주자가 59.5%, 빈곤 탈출 실패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빈곤층은 사실상 ‘영구 빈곤’의 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앞으로 잘살 것이라는 희망 없이 자녀 세대까지 빈곤을 대물림하는 구조에 갇혀버린 것이다. 121가구 가운데 59.5%는 영구임대아파트 단지가 조성된 1989~90년에 입주했다. 입주민의 상당수가 빈곤 탈출에 실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부모는 농사를 지었고(‘부모 직업은 농업’ 44.6%), 가난이 싫어 서울로 올라왔으나(‘서울·수도권 외 지방 출신’ 70.2%), 월세방에서 가난하게 살았던(‘입주 직전 월세·사글세 거주’ 66.1%) 이들은 앞으로도 계속 가난할 것이라고(‘미래 빈곤 해결 가능성 전혀·별로 없다’ 39.7%) 스스로 생각한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기대는 곳은 어디일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집단’을 물었더니 정당·언론·기업·지방자치단체·종교기관 등을 제치고 중앙정부(28.1%)를 가장 많이 꼽았다. ‘가난을 해결하려면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물음에 대한 5점 척도 조사에서도 “매우 그렇다”(29.8%), “비교적 그렇다”(39.7%)는 응답이 많았다. 대한민국은 그 대답에 호응할 준비가 돼 있을까.
싣는 순서
1회: 영구 빈곤의 둥지
2회: 무기력의 대물림
3회: 격리당한 아이들의 미래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너무 힘들다” [2010.03.26 제803호]
[영구 빈곤 보고서 ①]
일찍 사별한 배우자, 먼저 보낸 자식, 비극적 사고, 치명적 질병, 오래된 장애…
비슷한 사연 1만여 개가 희뿌옇게 모여 있는 곳
눈을 떴다. 천장이 흐릿하다. 눈을 뜨나 감으나 비슷하다. 박금자(70·가명)씨의 눈앞에서 세상은 항상 희뿌옇다. 박씨는 시력이 희미하게 남은 왼쪽 눈으로 현관에 이르는 길을 본다. 어둡고 좁고 짧다. 누운 자리에서 열 걸음이다. 방과 현관문은 거리랄 게 없이 바싹 붙어 있다. 44.15㎡, 13평형의 직사각형 집에서도 시간은 흐른다. “벌써 밥때구먼.” 혼잣말을 한다. 오전 11시30분이다. 시각장애 4급의 눈으로 더듬더듬 점퍼를 찾아 입는다. “밥 먹고 올게요. 배고프면 밥 먹어요.” 이번엔 혼잣말이 아니다. 방 왼쪽 구석에 낡은 가구처럼 앉아 있는 동갑내기 남편은 아무 표정이 없다.
박씨는 노인정에서 주는 무료급식을 먹으러 가는 길이다. 부부가 함께 가면 좋을 것이다. 한 집에서 2명이나 급식을 찾아 먹는다고 동네 사람들이 이죽거리지 않는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허리와 다리가 아파 거동이 불편한 남편은 시비 당할 일 없이 집에서 혼자 밥을 먹는다. 그 상에 박씨의 밥그릇은 올라가지 않는다. 입 하나라도 줄여야 쌀을 아낀다. 귀퉁이가 녹이 슨 현관문이 삐거덕 열린다. 20년 된 문은 남편의 무릎처럼 뻑뻑하다. 매번 아픈 소리를 낸다. 문 앞에 달려 있어야 할 초인종 단추는 자취가 없다. 떨어져나간 지 5년 됐다.
1. 어둡고 좁고 흐릿한 인생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 작은 활기가 돈다. 묘한 긴장도 흐른다. 박씨를 비롯한 4천여 세대의 영구임대아파트 주민들은 이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 줄을 서야 한다. 단지 안에 있는 사회복지관은 월~토요일 낮 12시에 무료급식을 준다. 고마운 일이다. 고맙지 않은 일도 있다. 점심 무료급식의 정원은 200명뿐이다. 사전에 사회복지관에 등록해 허가를 받은 사람만 무료급식을 먹는다. 그러나 오며 가며 들르는 주민들이 언제나 있다. 밥은 그들에게도 제공된다. 늦게 오면 무료급식을 놓친다. 오전 11시부터 노인정 앞에는 사람의 무리가 줄을 이룬다. 박씨는 매일 그 대열에 동참한다. 언제까지 줄을 설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박씨는 폐암에 걸렸다.일흔 평생 동안 내내 아팠다. 5살 때 홍역을 앓았다. 병원에 가지 못했다. 충남 천안에서 농사짓던 부모는 남의 땅에서 쟁기질을 했다. 초가집 방 한 칸에 다섯 식구가 살았다. 둘째딸은 단칸방 구석에서 끙끙 앓다가 두 눈의 시력까지 잃었다.
가난한 농사꾼 남편을 만나 첫딸을 낳을 때도 아팠다. 산후조리를 잘못해 젖유종을 심하게 앓았다. 가슴에 딱딱한 덩어리 7개가 잡혔다. 매일 밤 그곳이 쑤시고 아팠다. “저승길 가는 고통이었다”고 박씨는 회고한다. 1972년 서울에 올라와 왕십리 철거촌에 살면서 딸 셋을 더 낳았다. 그때마다 저승길 가는 고통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병원은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철거촌, 천막집, 판자촌, 단칸방…
10년 동안 15번 이사한 뒤, 마지막 이사를 20년 전에 했다. 철거촌에서 쫓겨나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 들어왔다. 그때부턴 가슴앓이를 했다. 4명의 딸은 모두 고등학교만 마쳤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도왔다. 하나같이 결혼을 일찍 했지만, 첫째·둘째 딸은 곧 이혼해버렸다. 셋째사위는 직업이 없고, 넷째사위는 몇천만원의 빚을 졌다. 배 아파 낳은 딸 걱정에 어머니는 가슴이 아팠다. 그러다 정말 가슴에 암이 생겼다. 2006년 폐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지지리 못사는 부모 밑에 태어나서, 못사는 남자와 결혼해 죽도록 고생하고, 자식들한테도 고생만 시키다가, 결국은 몹쓸 병에 걸려 죽어간다”고 박씨는 말했다. 그 말을 하면서 손으로 눈가를 훔쳤다. 그 손으로 뺨도 올려붙였다. 얼마 전, 아파트 부녀회에서 각층 12세대 가운데 두 집씩 김치를 무료로 나눠줬다. 박씨는 무료 김치를 받지 못했다. 부녀회장을 찾아가 뺨을 때렸다. 김치를 얻었다. 매일 김치찌개를 끓여 아무 일 안 하는 남편에게 차려준다. 그리고 자신은 무료급식을 찾아 노인정에 간다. 어쨌거나 입으로 들어가는 밥과 반찬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아득바득 살았다. 그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것은 쓸쓸한 사연이 아니다. 4천여 가구에 줄잡아 1만여 명의 빈자가 모여 사는 이곳에서 그것은 너무 흔한 인생이다. 정순자(71·가명)씨의 어머니는 기차간에서 떡을 팔았다. 서울에 올라와 신설동 천막집에 살았다. 김형성(69·가명)씨는 한강 둑방 판자촌에 월세를 주고 살았다. 평생 공사장에서 일했다. 황기백(73·가명)씨는 구두닦이를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30년 동안 서울 용두동에서 보증금 50만원에 월 10만원짜리 단칸방에서 살았다.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는 그런 사연 1만여 개가 희뿌옇게 모여 있다.
2. 빈곤 이주의 궤적
가난의 사연에는 언제나 ‘나쁜 집’이 등장한다. 이희숙(65·가명)씨는 ‘나쁜 집’들을 떠올릴 때마다 눈물이 나려 한다. 1975년 겨울, 이씨 부부는 돌도 지나지 않은 갓난 아들을 품에 안았다. 꼭 안고 길거리로 쫓겨났다. 전 재산 12만원을 주고 방을 얻은 서울 옥수동 다세대주택에 철거반이 들이닥쳤다.
“우리도 보상금을 15만원밖에 못 받았어.” 집주인이 말했다. 이씨 부부를 포함해 여섯 가구가 다세대주택에 세들어 살았다. 그들 모두 쫓겨났다. 집주인은 이주비라며 2만원을 건넸다. 보증금 12만원은 돌려주지 않았다. 나쁜 집주인이었다. 이씨 부부의 생각은 거기서 그쳤다. 재개발을 강행한 관청이 더 나쁘다는 생각을 그때는 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전 재산을 잃은 부부는 이씨의 여동생 집으로 갔다. 여동생은 단칸방에 혼자 살았다. 그 방에서 부부와 세 아들, 그리고 여동생까지 6명이 함께 잤다. 5년이 흘렀다. 빚을 내서 방 하나가 딸린 작은 구멍가게를 얻었다. 비닐하우스촌에 몇 년만 살면 아파트를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1987년, 400만원을 주고 서초동 비닐하우스촌의 집 한 채를 샀다. 100원짜리를 팔아 10원씩 남기며 구멍가게에서 번 돈이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식물은 푸르게 자란다. 사람은 그러지 못한다. 사람을 위한 것이 비닐하우스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비가 오면 그대로 집 바닥에 떨어졌다. 용변은 더러운 공동 화장실에서 해결했다. 몸을 씻으려면 공동 수도에서 물을 길어와야 했다. 아이들을 키울 수 없었다. 우는 아이들의 등을 떠밀어 할머니 집에 보냈다. 이를 악물고 부부만 2년을 살았다. 사람처럼 살지 않은 덕분에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입주 자격을 얻었다. 20년 전의 일이다.
여기 살면 부자가 될 수 없다
“그때 입주하지 말아야 했어.” 이씨는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 들어온 것부터가 인생 실패야.” 서울 강북의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는 ‘나쁜 집’의 종결이 아니었다. 조금 더 돈을 모아 작은 집을 샀다면 평생 가난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이씨는 생각한다. 작은 집을 사서 팔고 다른 집을 또 사서 팔고 그러다 버젓한 내 집을 마련하는 인생을 이씨는 머릿속으로만 상상한다. 부자들은 그렇게 부자가 되었다.
영구임대아파트에 살면 부자가 될 수 없다. 돈을 벌면 입주 자격을 잃어 단지를 떠나야 한다. 어지간한 돈으로는 전셋집도 구할 수 없다. 결국 적게 벌면서 이곳에서 근근이 사는 일에 적응해버린다. 이씨는 영구임대아파트에 발목을 잡혔다고 생각한다. ‘나쁜 집’은 철거촌에서 단칸방으로, 비닐하우스촌에서 영구임대로 변주됐을 뿐이다. 그러나 ‘나쁜 집’의 연쇄고리 가운데 최악은 따로 있다.
3. 죽음에도 불평등이
김종택(62·가명)씨는 13평 방에 혼자 산다. 낡은 장롱 하나, 작은 텔레비전 하나가 있다. 가구의 전부다. 방에는 하루 종일 요가 깔려 있다. 세제가 없어 빨래를 못한 게 한 달이 넘었다. 더러운 요에 남은 검은 핏자국도 지우지 못했다. 한 달 전, 김씨는 부엌칼로 손목을 그었다. 늙은 손에서 흘러나온 피가 요를 적셨다. 이웃집 할아버지가 김씨를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다. 무서운 결심은 물거품이 돼버렸다. 다시 요를 깔고 하루 종일 넋 나간 듯 앉았지만, 이제 뭘 더 할 수 있을지 김씨는 알지 못한다.
지난 1월29일, 서울북부지방법원은 김씨에게 ‘퇴거 판결’을 내렸다. 김씨는 1년 넘게 임대료와 관리비를 내지 못했다. 단지를 관리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가 김씨를 상대로 퇴거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처음 입주할 때 쓰는 계약서에는 ‘3개월 이상 임대료를 내지 못할 경우’ 퇴거 조처를 당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김씨가 규칙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규칙을 지키는 방법을 모른다. 2009년 10월을 기준으로 김씨가 사는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서 임대료·관리비를 체납한 가구는 모두 773세대다. 4천여 세대의 20%다.
3개월 임대료 밀리면 퇴거 조처
임대료와 관리비를 더해 매달 20만~30만원의 고지서가 날아든다. 4천여 세대의 20%는 그 고지서를 받아들고 죽어버릴까 말까 고민한다. 20만원을 마련할 길이 없다. 가구마다 관리비 내역은 비슷하다. 김씨와 같은 동에 사는 황기백(가명)씨는 얼마 전 30만2290원의 2월분 고지서를 받았다. 임대료가 10만9230원, 경비·청소·수선유지 비용을 더한 관리비가 2만8450원, 전기료·난방비 등을 합친 공과금이 16만4610원이다. 황씨는 자활근로를 해서 한 달에 20만원쯤 번다. 아내가 빌딩 청소를 하여 100만원을 받는다. 월수입 120만원 가운데 4분의 1을 임대료·관리비·공과금으로 냈다.
4천여 세대의 20% 가운데 하나인 김씨에겐 그런 방책이 없다. 하는 일이 없다. 노인정이 제공하는 무료 점심 급식 외에는 하루 종일 굶는다. 소싯적의 그는 서울 뚝섬 유원지에서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동네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얻어 가발 공장에 팔기도 했다. 그러나 스무 살이 되면서 엇나갔다. 고향 친구들을 모아 ‘조직’을 만들었다. 팔뚝에 비둘기 문신도 새겼다. “평화롭게 살자”는 뜻이었다고 한다.
문신을 새긴 팔뚝으로 강북 지역의 룸살롱·다방 등에서 돈을 뜯었다. 룸살롱 여급을 아내로 맞았다. 아내는 아이를 낳고 도망갔다. 이후 김씨는 경마에 빠졌다. 2002년에는 술을 잔뜩 먹고 사고를 당해 한쪽 머리가 움푹 파였다. 2004년에는 동네에서 사람을 찔러 2년6개월간 복역했다.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버지를 떠났다.
그는 ‘평화롭게’ 살지 않았다. 죄도 저질렀다. 젊음을 낭비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범죄자가 아니라 ‘무능력자’다. 거리로 내몰면 그는 또 다른 결심을 할 것이다. 가난하고 불우한 이들이 범죄자가 되는가? 그것이 사실이라면 영구임대아파트에서조차 쫓겨난 사람들은 범죄의 유혹과 쉽게 손을 잡을 것이다. 4천여 세대의 20%는 월 30만원을 구하지 못해 가난하고 불우하다.
퇴거 명령서 그리고 아들의 자살
일찌감치 집을 나간 김씨의 아들은 가난이 싫어 먼저 세상을 떴다. 법원의 퇴거 명령서가 날아들던 지난 1월 말, 23살 아들이 목을 매 자살했다. 아들은 지방도시의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었다. 빈궁한 티를 내기 싫었는지 거리에 나서면 부잣집 아들 행세를 했다. 여자를 만났다. 여자는 외제차를 선물해달라고 졸랐다. 해결할 방법이 없는데, 술집에서도 해고됐다. 뭘 더 할 수 있을지 알지 못했던 아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씨는 죽은 아들의 옷을 입고 곧 쫓겨날 방에서 우두커니 앉아만 있다. 저승사자조차 부자와 빈자를 차별한다.
4. 평생의 반려자, 장애와 질병
이곳에서는 일찍 사별한 배우자, 먼저 보낸 자식, 비극적 사고, 치명적 질병, 오래된 장애가 삶의 한 부분이다. 주민들은 분노하거나 억울해하지 않는다. 어쩌면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마땅한 방법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건 영구임대아파트 사람들은 불행을 말할 때 놀랍도록 차분하다. 최성원(70·가명)씨는 25년 전, 서울 가리봉동 셋방에 살았다. 초등학생이던 둘째아들이 촛불 장난을 하다 불을 냈다. 10살이던 셋째아들은 잠을 자고 있었다. 담요에 옮겨붙은 불 때문에 셋째아들은 전신 화상을 입었다. “다 죽게 생긴 놈을 중환자실에 눕혀놓고, 8일간 잠도 안 자고 요구르트를 먹여가며 살렸다”고 최씨는 말했다.
전세금 70만원을 포함해 전 재산을 그때 썼다. 아들이 퇴원한 뒤, 다섯 식구는 동네 공터에 들어선 노인정의 한켠에 얹혀살았다. 성인이 된 셋째아들은 뚜렷한 직업이 없다. 집에서만 지낸다. 공사장에서 석공일을 했던 최씨는 허리가 아프다. 도배를 하며 돈을 벌어온 최씨의 아내는 목이 아파 계속 기침을 한다. 그래도 얼굴부터 발끝까지 뒤틀린 셋째아들 앞에서 노부부는 아픈 티를 내지 않는다.
한국전쟁 때 피난 온 실향민 황기백(가명)씨의 왼쪽 이마에는 흉터가 있다. 술 마시고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지하철 선로에 떨어졌다. 술을 마셔야 할 이유가 있었다. 큰아들이 죽었다. 4년제 대학을 나와 결혼까지 했는데, 교통사고로 죽어버렸다. “그게 7년 전인가, 8년 전인가…. 잘 모르겠네. 뭐 알 필요도 없고….” 황씨는 담담하게 말했다.
이웃에 사는 김형성(가명)씨의 딸은 26살 되던 해에 죽었다. 그 일에 대해 김씨는 “딸을 날려버렸다”고 말했다. 왜 어떻게 죽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자살은 아닌데…. 그게 세상이 잘못되어갖고….” 말을 흐렸지만 김씨 역시 담담했다. 죽고 사는 것, 다치고 병드는 것은 그들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다.
정영숙(53·가명)씨의 목소리는 크고 쾌활하다. 그의 음성만 들어서는 아픈 아들의 그늘을 알아차릴 수 없다. 이제 29살이 된 아들이 처음 쓰러진 것은 중학교 2학년 때다. 방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던 아들이 갑자기 기절했다. 쓰러지는 주기가 갈수록 짧아져 나중에는 한 달에 열 번씩 쓰러졌다. 병원에서는 간질이라고만 했다. 이유 없이 쓰러지며 몸이 굳어가는 아들을 살리려고 여기저기 빚을 얻어 병원을 다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마저 2002년 중풍으로 쓰러졌다.
버는 사람이 없는 집들
남편은 원래 액세서리 공장을 운영했다. 그 시절엔 아들도 건강했고 남편도 돈을 벌었다. 1997년 외환위기가 모든 것을 바꾸었다. 부도가 났다. 빚쟁이들이 매일 찾아왔다. 부부는 중학교에 갓 입학한 아들을 데리고 서울 도봉구 창동의 반지하로 숨어들었다. 아들의 공부를 뒷바라지하는 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랬던 아들이 쓰러지고, 그 아들을 다시 일으켜세울 치료비가 떨어지니, 낙심한 남편마저 쓰러진 것이다. 홀로 우두커니 서서 정씨는 자살을 생각했다. 아들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그 마음을 접었다.
질병과 장애는 가난의 원인이자 결과다. 가난해서 아프고 아파서 가난하다. 지난해 9월, 정씨 부부는 아들의 병명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파킨슨병이었다. 애초부터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었다. 진작 알았다면 정씨 가족의 운명이 조금 달라졌을까. 부부는 이미 신용불량자가 돼 있었다. 4년 전, 남편과 아들의 병수발을 하면서 정씨는 마지막 승부를 걸었다. 돈을 끌어모아 마트 정육 코너를 인수했다.
자살 대신 선택한 길이었지만, 1년 만에 망했다. 그때 진 빚을 신용카드로 ‘돌려막기’ 시작했다. 빚은 1억원을 넘어섰고, 정씨는 끝내 파산했다. 영세민의 처지가 되어 지난 2008년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 발씩 떼던 아들은 이제 일어서지도 못한다. 남편은 계속 누워 있다. 정씨도 더 이상 돈을 벌지 못한다.
식구 중에 돈 버는 사람이 전혀 없다 해도 여기선 흉이 되지 않는다. 권영자(74·가명)씨 부부는 30대 후반의 딸을 데리고 산다. 누구도 돈을 벌지 못한다. 할아버지는 무릎이 아프고, 할머니는 당뇨와 자궁암이 있다. 딸도 여기저기 아프다며 일을 못한다. 임대료를 내지 못해 수백만원의 보증금을 까먹고 있다. 정미숙(57·가명)씨는 직업이 없다. 32살 아들도 직업이 없다. 아들은 몸무게가 100kg이 넘는 거구다. 여러 성인병을 앓고 있다. 정씨는 아픈 손을 치료하다 의료사고로 아예 손을 못 쓰게 됐다. 노영희(72·가명)씨는 40대 아들과 18살 손자와 함께 산다. 모두 경제적 무능력자다. 할머니는 식당일을 하다 관절염을 얻어 누워 있다. 아들은 공사판에서 일하다 허리를 다쳐 누워 있다. 태어날 때부터 아팠던 손자는 지체장애 2급이다.
5. 여자는 남자보다 가난하다
가난은 남녀를 차별한다. 남자가 일하지 않으면 여자가 가난해진다. 여자는 아무리 일해도 여전히 가난하다. 그러다 여자가 일을 놓으면 모든 것이 끝이다. 황지영(48·가명)씨는 2005년 갈빗집에서 서빙을 하다 쓰러졌다. 유방암 수술을 하고 며칠 안 돼 무리하게 일을 나간 탓이었다. 건강이 나쁘다는 사실도 덩달아 알려졌다. 식당 사장은 위로하지 않고 해고했다. 집에 돌아온 황씨는 잠들지 못했다. 엄습하는 불안감을 아이들한테는 티내지 않았다. 속으로만 울었다.
황씨는 2002년 초에 이혼했다. 노름에 빠진 남편에게 매 맞고 산 지 18년 만에 결단을 내렸다. 남편은 운전사였다. 음주운전을 하다 회사에서 해고됐다. 이후 노름을 시작했다. 서울 구로동 반지하방에 아내와 아들을 남겨두고 남편 혼자 노름에 빠졌다. 노름을 말렸더니 피투성이가 되도록 황씨를 때렸다. “아이를 하나 더 낳으면 남편이 정신 차릴 것”이라고 동네 사람들이 말했다. 이제 17살이 된 딸을 그때 낳았다. 남편은 임신했다고 또 황씨를 때렸다.
때리는 남편, 방 안에서만 지내는 아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폭력을 보고 자란 아들은 이제 25살이다. 내성적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문을 닫고 지낸다.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술을 마시며 밤을 새우고 오후 2시에 일어난다. 고등학교는 중퇴했고 하는 일은 없다. 가끔 자해도 한다. 아이의 잘못은 부모가 책임진다. 아이가 클 때까지 그렇다. 그러나 다 자란 아들의 잘못을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황씨는 알지 못한다.
몸이 아파 오래 서 있지도 못하는데 도대체 어디서 일을 구할 수 있을지도 황씨는 알지 못한다. 대신 한 달에 아홉 번 자활근로를 나가 20만원을 벌어온다. 그 돈으론 임대료와 관리비를 내는 것조차 빠듯하다. 나머지 필요한 돈은 친언니에게 조금씩 빌린다. 가슴에선 암세포와 근심이 함께 스멀댄다. 황씨가 가장 슬퍼하는 일은 “고등학생 딸아이한테 저녁 급식비를 못 주는 것”이다. 가장 걱정하는 일은 “아들과 딸이 자립하기 전에 내가 죽는 것”이다.
그래도 고순자(62·가명)씨는 황씨의 중년이 부러울 것이다. 시각장애가 있는 고씨는 환갑이 지난 나이로 5명의 식구를 건사한다. 역시 시각장애인이던 남편은 안마사였다. 오래 살지는 못했다. 1979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부터 고씨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사남매를 데리고 서울 회현동과 명동 일대의 단칸방을 옮겨다녔다.
명동의 쪽방이 허물어진 자리에 최고급 호텔이 들어섰지만, 지난 30년간 식구들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사남매 가운데 3명이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퀵서비스 일을 하는 큰아들은 결혼해 따로 살지만, 나머지 자녀는 늙어버린 고씨의 품에 기댄다. 이혼한 큰딸은 손녀 둘을 박씨에게 맡기고 강원도에 갔다. 미혼인 작은딸은 일자리를 찾고 있다. 막내아들은 공사장에서 일한다며 지방 어딘가로 갔다. 자식들은 아무렇지 않게 집에 들렀다 훌쩍 나간다. 그들이 집에 있어도 걱정, 없어도 걱정이다. 앞을 보지 못하는 할머니는 이제 10살·7살 손녀들의 뒷바라지를 한다. “어쩔 수 없이 산다”고 고씨는 말했다.
6. 알 수 없는 도움
사는 일이 힘든 그들에겐 도움이 필요하다. 체계적으로 돕기 위해 제도가 마련됐다. 그런데 그 제도는 그들을 돕지 않는다. 서초동 비닐하우스촌에 살았던 이희숙(가명)씨는 요즘 걱정이 많다. 이씨 가족은 기초생활수급권자 자격으로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했다. 세대주는 남편이다. 세 아들이 성인이 되자 수급권은 박탈됐다. 몸이 아픈 남편이 죽으면 이씨는 집을 비워야 한다. 기초생활수급권자·장애인·국가유공자 등의 입주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세대주 변경을 아예 못하도록 지난 2006년 법이 바뀌었다. 일을 하는 아들 셋이 있으니, 이씨는 세대주 변경을 신청할 수급권자 자격이 없다. 세 아들이 합쳐 50만원을 용돈으로 주기는 한다. 그러나 부모와 닮은꼴로 가난한 아들들이 이씨의 여생을 책임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남편의 사망과 함께 사라진 입주 자격
김영희(55·가명)씨는 몇 달 전 남편을 여의었다. 남편은 뇌병변 2급 장애인이었다. 장애인 가족의 자격으로 지난 2005년 영구임대아파트에 들어왔다. 그런데 세대주인 남편에게 부여된 입주 자격이 남편의 사망과 함께 사라졌다. 김씨는 이 단지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다. 영구임대아파트는 쉽게 양도하거나 상속할 수 없다. 형편이 어려운 다른 영세민에게 입주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김씨는 자신보다 형편이 더 어려운 가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1천만원의 사채를 빌려, 한 달 이자만 60만원을 내고 있다. 남편 치료비는 필요한데, 은행에선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김씨는 가끔 식당일을 나가 돈을 버는 정도지만,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될 수도 없다. 30대의 딸이 직장에 다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이버대학교를 졸업해 간호사로 일하는 딸은 월 100만원을 겨우 벌 뿐이다. 오랜 식당일에 김씨의 손가락은 굽어 있다. 그 손가락으로 아무리 꼽아보아도 살아갈 방도가 없다.
왼쪽 눈으로 겨우 세상을 보는 폐암 환자 박금자(가명)씨는 암 치료조차 수월치 않다. 항암제인 하얀색 알약은 한 달치 30개에 180만원이나 했다. 1년 동안 약을 먹었더니 네 딸이 모두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박씨는 죽을 각오로 3개월간 약을 끊었다. 병원은 그제야 의료보험 적용이 되는 국산 복제약으로 바꿔주었다. 동사무소에서도 의료급여 혜택을 받게 됐다. 약값이 한 달 몇 만원으로 줄었다.
몇 달 전, 막내사위가 중소기업에 취직했다. 좋은 일이다. 좋지 않은 일도 생겼다. “막내사위가 수입이 있으니 기초생활수급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동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막내딸은 자식이 둘이고 빚까지 있다. 막내사위가 벌어오는 150만원의 월급으론 저희들 살기도 어렵다. 박씨는 동사무소에 가서 울어도 보고 소리도 질러봤다. 간신히 의료급여 혜택을 유지했다.
여태껏 못 본 곱고 귀한 것
앞으로 다른 딸, 다른 사위가 또 직장을 구한다면 몸부림치는 울음으론 부족할 것이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너무 힘들다”고 박씨는 말했다. 그래도 입에 무료 점심을 꾸역꾸역 밀어넣고, 박씨는 삐거덕거리는 현관문을 열어 남편이 홀로 앉은 좁은 방으로 돌아간다. 박씨의 눈앞에서 세상은 항상 희뿌옇다. 눈을 뜨나 감으나 마찬가지다. 방에 누워 바라본 천장은 흐릿하다. 칠십 평생 곱고 귀한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한 눈을 박씨는 그냥 감아버린다.
희망의 절대 빈곤’은 사라졌다 [2010.03.26 제803호]
[영구 빈곤 보고서 ①]
탈빈곤 정책의 실패를 목격하게 한 조사 결과… 사회 통합의 붕괴 양상 직시해야
우리 사회의 빈곤 문제는 이제 과거와 양상이 다르다. 밥을 굶는 극빈의 상황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사회적 격차와 불평등은 더 심해지고 있다. “지금은 가난해도 열심히 일하고 자식 교육을 잘 시켜 나중에는, 혹은 내 자식들은 잘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희망의 절대 빈곤’은 사라졌다. 그 자리에 “나중에도, 혹은 내 자식들도 남들처럼 잘살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절망의 상대 빈곤’이 자리잡고 있다.
‘사회적 배제’의 현장
유럽 국가들은 빈곤을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경제적 결핍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 국가에서는 빈곤층이 주류 사회와 분리돼 사회적 참여를 제한당하면서 살아가는 과정의 문제를 제기한다. 빈곤층의 사회적 고립과 주변화는 그 사회의 기본적 통합성을 해친다. 유럽연합(EU)과 회원국 정부는 이를 핵심 정책 문제로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한국의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는 그런 ‘사회적 배제’의 현장이다. 우리 국민 모두 영구임대아파트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다. 영구임대주택은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약 19만 호가 건설된 뒤 중단됐다. 빈곤층에게 저렴한 주거를 제공하고 적절한 사회복지 안전망과 자활을 도모하겠다는 계획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중요한 복지 증진의 수단으로 보였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는 빈곤층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가? 빈곤 문제에 잘 대처해 정책목표를 달성했는가?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는 평가에 더 무게가 두어진다.
이번 <한겨레21>의 기획은 이런 우려를 현장에서 확인했다. 정부의 빈곤 정책 대상으로 표적화된 지역인 영구임대 단지를 통해 빈곤 문제의 현주소를 가늠해보았다.
최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빈곤 문제에 대한 언론과 학계, 시민단체 등의 접근에 협조적이지 않다. 오히려 적대적인 상황이다. 빈곤층의 특성상 조사 거부율이 높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모든 가구를 2회 이상 접촉하는 ‘전수조사’ 과정을 통해 121 가구에 대한 면접조사, 20여 가구에 대한 심층면접이 이뤄졌다. 공공의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언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인 현장 자료 수집이다.
그만큼 조사 결과는 무거운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조사 결과 밝혀진 점들은 우리나라 빈곤 문제의 심각성, 빈곤 정책의 취약성을 다시 확인해주었다. 이번 조사 결과, 주거비를 부담스러워하고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민들은 사회적·심리적으로 고립되고 있다. 낙인의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단지의 슬럼화도 진행되고 있다. 전 국민의 의료보장 체계가 구축되었다는데도 의료의 문제, 심지어는 사망까지도 계층화 현상을 보인다. 빈곤의 장기화를 막아내기는커녕,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 ‘빈곤 세습화’가 이뤄지고 있다. 이로 인해 무기력하고 절망적인 상태에서 대책 없는 분노를 표현하기도 한다. 심각한 사회적 배제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통합성 위기가 이제 아슬아슬할 지경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복지병을 걱정할 만큼 복지가 있나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우리는 대한민국 탈빈곤 정책의 실패를 목격하게 된다. 영구임대주택 프로그램이 불필요한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다양한 공공임대주택 프로그램은 확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 빈곤 정책의 파편성과 비연속성은 짚어야 한다. 빈곤층에 대한 사회적 배제에 대응하려면 다양한 영역에서 지속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영구임대아파트 사업만 봐도 처음 몇 년간 건립 사업을 진행하다가 내팽개치다시피 중단됐다. 매번 이전 정부와 다른 ‘선전용’ 프로그램을 내놓다 보니 정책의 연속성도 떨어지고 일관성도 없다.
현 정부는 빈곤 문제를 이야기할 때 자주 도덕적 해이나 복지병에 대한 우려를 표한다. 그러나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것은 우리나라 빈곤 현상의 본질을 잘못 파악하는 것이다. 복지 서비스가 나태함을 조장한다는 것도 너무 가벼운 인식이다. 도대체 우리나라가 복지병을 걱정할 만큼의 복지를 국민에게 줘본 적이 있던가. 극히 일부에서 나타나는 복지 의존의 모습을 침소봉대할 것이 아니라 사회 통합의 붕괴 양상에 이르고 있는 빈곤과 사회적 배제의 심각성을 직시해야 한다. 이 무거운 문제를 보는 정부의 책임의식도 더 진중해지기 바란다.(남기철 동덕여대 교수·사회복지학)
무기력은 더 진하게 대물림된다 [2010.04.02 제804호]
[탐사기획-영구 빈곤 보고서 ②]
가난·폭력·방치 속에 자라 직업도 없이 텅 빈 잠에만 빠져드는 영구임대아파트 2세대 청년들
이영호(23·가명)씨가 이불을 뒤집어쓴다. 3평짜리 방의 절반은 책상과 컴퓨터가 차지한다. 나머지 절반의 자리엔 빨지 않아 후줄근한 이불이 깔려 있다. 이씨가 사는 세상이다. 아파트 복도로 향한 창에서 햇볕이 스며든다. 이씨는 한사코 누워 잠만 잔다. “불 켜지 마.” 아버지가 말했었다. 그때 어린 이씨는 잠을 잘 수 없었다. 방구석에 무릎을 쪼그리고 앉았다. 서울 구로구 구로동 반지하방이었다. 그전엔 보광동 판자촌에서 살았다고 어머니가 말해줬다. 그래도 이씨의 기억 속에는 어둠에 잠긴 반지하방이 첫 번째 집이다.
아버지는 택시 운전을 했다. 음주 운전을 하다가 회사에서 쫓겨났다. 그 뒤로 노름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밤을 새우고 아침에 집으로 들어왔다. “불 꺼.” 아버지가 말했다. 반지하방의 형광등 불을 끄면 대낮에도 캄캄했다. 어린 이씨는 캄캄한 방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나가 놀려 해도 아버지가 말렸다. “밖에 나가지 마.”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거역할 수도 없었다. 어린 이씨는 아버지가 무서웠다. 아버지가 잠을 자는 ‘캄캄한 낮’이 무서웠다.
1. 어둠 속으로 파고드는 삶
이씨의 집은 이제 반지하방이 아니다. 그는 방 2칸짜리 13평 영구임대아파트에서 40대 후반의 어머니,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동생과 함께 산다. 어머니를 일삼아 때렸던 아버지는 이제 없다. 멀리 떠나버렸다. 그래도 이씨의 주변은 캄캄하다. 방문을 걸어잠그고 산다. 밤새워 컴퓨터 게임을 한다. 오후 2시에 일어난다. PC방에 간다. 그곳은 대낮에도 어둡다.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온다. 방에서 혼자 술을 마신다.
술을 그만 마시라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귀찮아, 방문 창틀에 맥주와 소주를 올려놓았다. 허름한 냉장고를 뒤지는 일이 사라졌다. 귀찮은 어머니를 마주칠 일도 사라졌다. “울지 마.” 아주 오래전, 어머니가 말했다. 아버지한테 매를 맞은 어머니는 속옷 바람으로 집을 뛰쳐나갔다. 그날 새벽엔 비가 많이 왔다. 한참 있다 어머니가 돌아왔다. “너 때문에 돌아왔다”며 어머니는 울었다. 어린 이씨도 울었다. 이제 이씨는 울지 않는다. 웃지도 않는다.
이씨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입을 열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부터 말이 없었다. 남 앞에 나서는 일이 없었다. 발표도 하지 않았고, 친구도 사귀지 않았다. 3번 마을버스를 타고 수유역 근처에 있는 공업고등학교를 다녔다. 3번 마을버스 운전사는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정거장을 곧잘 지나쳤다. “여기서 내려주세요.” 그렇게 말해야 했다. 그러나 이씨는 한 번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멀리 돌아 내린 뒤 다시 걸어왔다. 어머니가 다그쳤다.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데 어떻게 내려달라고 말해.” 이씨는 도리어 어머니한테 화를 냈다. 3번 마을버스를 타는 일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다.
최초의, 그리고 최후가 되어버린 이씨의 직업은 PC방 아르바이트였다. “나 없을 때 가게 좀 봐라.” 매일 나가던 PC방 사장이 말했다. 그러나 사장은 이씨를 정식으로 고용하진 않았다. 한 달에 몇만원씩 용돈만 줬다. “나 같은 사람을 누가 받아주겠어.” 어디건 이력서라도 내보라는 어머니한테 이씨는 화를 냈다. 말이 없는 이씨는 화를 낼 때 무섭다. 중학교 동창과 잠시 사귀었는데, 오래지 않아 헤어졌다. 그 뒤 이씨는 칼로 자신의 팔과 다리를 그었다. 수십 곳의 상처에서 피가 났다. 어머니는 아들을 둘러업고 병원으로 뛰었다. 퇴원한 이씨는 15층 집에서 뛰어내리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군대에 갔다. 거기서 또 사고를 낼까봐 어머니는 걱정이 많았다. 그래도 무사히 제대했다. 다행이었다.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제대한 뒤부터 1년이 넘도록 이씨는 계속 방에서만 살았다. 어둡고 캄캄한 곳만 찾아다녔다.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다.
“아들이 자고 있으니 옆집으로 갑시다”
4천여 세대, 1만여 명이 모여사는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는 방에만 웅크린 젊은 사람들이 많다. 평생 공사판에서 철근 구부리는 일을 했던 김형성(69·가명)씨의 아들은 낮에는 자고 밤에는 나간다. 밤마다 어디를 가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들이 자고 있으니, 옆집으로 갑시다.” 잔뜩 찌푸린 2월의 어느 날, 김씨는 인터뷰하자는 기자를 옆집으로 이끌었다.
35살의 아들은 직업이 없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자고 있는 아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60대 아버지는 이웃 친구 집에서 기자와 이야기했다. “아드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기자의 물음에 김씨는 손을 내저었다.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한 뒤론 성격이 이상하게 변해서 말이야.”
평생 석공일을 했던 최성원(70·가명)씨 집에도 하루 종일 집에서 지내는 30대 중반의 아들이 있다. “껄렁껄렁한 놈들하고 어울려 당구나 치고, 술에 취해서 비척거리는 사람 있으면 달려들어 지갑을 뺏고, 그 돈으로 여관 가서 자고…. 그러니 강도에 폭력으로 6번이나 구속영장이 떨어졌다고.” 최씨는 얼굴을 쓸며 고등학교를 중퇴한 아들에 대해 말했다. “그놈이 내 신세를 망쳤어.”
자식 때문에 곤혹스런 사람은 김씨와 최씨 말고도 많았다. “우리 아이가 자고 있어요. 집에 사람을 들일 수 없네.” “지금 자는 사람이 집에 있어서…. 나중에 오세요.” 기자의 면담 요청을 거절한 영구임대아파트 사람들은 방에서 자고 있는 누군가를 이유로 들었다. 문을 열어주는 것은 언제나 할아버지 또는 할머니였다. 노부모는 낮잠을 자는 자식을 어려워했다. 그들을 세상에 내보이는 일을 꺼렸다.
2. 배반당한 미래
자식은 미래다. 평생 가난했지만, 내 아들딸은 다를 것이라는 믿음이 가난을 이겨내게 만든다. 그러나 그 믿음이 배반당한다면? 면담 조사한 121가구 가운데 노부모와 성인 자녀가 함께 사는 65가구가 있다. 이들은 독거 노인과 노인 부부만 사는 41가구보다 미래를 더 비관했다(나머지는 한부모 가구 또는 65살 미만의 성인 부부 가구 등이다).
세상에 대해 분노를 느끼는가? ‘노인+성인 자녀 가구’의 23.1%가 ‘그렇다’고 답했다. ‘노인 가구’ 가운데는 14.6%만 ‘그렇다’고 답했다. 노력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노인+성인 자녀 가구’의 58.5%가 ‘그렇다’고 답했다. 같은 응답을 한 ‘노인 가구’는 48.8%였다(그래프 참조). 성인 자녀와 노부모가 함께 사는 집을 지배하는 것은 무능력이 아니라 무기력이었다. 그들의 무기력에는 역사가 있다.
“엄마가 싫어. 엄마랑 이혼해.” 박선영(20·가명)씨가 아빠한테 말했다. 박씨가 5살 때였다. 엄마는 자주 가출했다. 엄마는 재혼해 아빠를 만났다. 전남편의 폭력을 피해 집을 나왔다가 아빠를 만났다고 했다. 그러나 엄마는 재혼에도 적응하지 못했다. 딸 둘을 낳았지만 자꾸 집을 나갔다. 아빠는 결국 이혼했다. 딸 둘을 혼자 키웠다.
아빠는 스웨터를 짜는 공장에서 하루 종일 일했다. 지하방에서 박씨가 여동생을 데리고 지냈다. 10대의 박씨는 속옷을 빨지 않았다. 장롱의 이불 틈에 끼워두었다. 생리혈이 묻은 속옷은 장롱에서 썩어갔다. 여동생은 고등학생이 되도록 이불에 오줌을 쌌다. 그 이불도 그냥 장롱에 처박아두었다. 아무도 자매에게 씻고 갈아입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장롱에 처박아둬 썩어버린 속옷
고등학교를 졸업한 박씨는 카드회사 대리점에 취직했다. 아침 9시까지 출근해야 하는데, 10시까지 잠을 잤다. 회사에 나갈 때도 씻지 않았다. 귀찮았다. 한 달 만에 해고됐다. 얼마 전 대형 할인마트에 다시 취직했다. 역시 매일 지각을 하다가 일주일 만에 해고됐다. 박씨는 요즘도 하루 종일 잠만 잔다. 아빠는 가끔 박씨를 때린다. 엎드려뻗쳐를 시키고 혁대를 풀어 등이며 다리를 때린다. 옷걸이로 때릴 때도 있다. 줄넘기 줄로 때리기도 한다. 박씨는 그런 일이 생기면 집을 나가버린다. “지난 5년 동안 가출을 수십 번은 했을 것”이라고 박씨는 말한다. 한번은 아빠에게 맞고 집을 뛰쳐나가 아동보호센터에서 지내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동생도 덩달아 가출을 시작했다.
20대의 이영호·박선영씨에겐 공통점이 있다. 잠만 잔다.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없다. 뭘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드는 ‘본보기’가 가족 가운데 아무도 없다. 그런 역할 모델은 이웃집에도 없다.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를 통틀어 별로 없다. 그들의 부모는 돈 버느라 바빴다. 하루라도 벌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다. 가끔 자식을 마주칠 때면 때리거나 윽박질렀다.
아이들은 그런 부모를 탓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집집마다 그런 일이 다반사다. 그런 이웃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이제 돈 버는 일조차 심드렁하다. 늙은 부모는 일을 할 수 없는 무능력자가 되고, 젊은 자식은 일을 하기 싫은 무기력자가 된다.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희망 자체를 꿈꿔본 적이 없다. 이것은 무능한 부모 탓일까, 무력한 자식 탓일까.
3. 착하고 성실한 가난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의 모든 젊은이가 똑같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성실하게 살아온 경우가 없진 않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또 다른 추진 로켓이 필요하다. 저녁 6시30분이 되면, 김성철(38·가명)씨가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온다. 68살의 어머니가 혼자 저녁을 먹고 있다. 개다리소반에는 현미가 들어간 밥, 통조림에 담긴 햄, 그리고 작은 간장 종지가 놓여있다. “그렇게 짜게 드시면 안 되는데.” 아들이 말해도 소용이 없다. 냉장고에는 동그랑땡, 참치 그리고 햄이 담긴 통조림만 가득하다. 열무김치도 있지만, 어머니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당장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먹는다.
당뇨와 고혈압이 있는 어머니는 최근 석 달 동안 3번이나 쓰러져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 음식 조절을 해야 하지만, 하루 종일 혼자 지내는 어머니는 스스로 그 일을 못한다. 어머니의 ‘복지카드’에는 ‘지적·정신장애 2급’이라고 적혀 있다. 어머니는 눈동자를 불안하게 굴리며 이빨 없는 잇몸으로 기름기 많은 햄을 씹고, 다시 간장을 쳐서 밥을 먹는다. 3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권투선수 출신이었다. 그리 유명하지는 않았다. 해수욕장에서 탈의실을 운영해 돈을 벌었다. 그나마 벌이가 괜찮았지만,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입원하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서울 청량리 근처 쪽방에서 살았다. 그 뒤로 아버지는 학교 앞에서 문방구를 했다. 문방구가 망하자, 학교 입학식·졸업식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노년에는 언어장애가 왔다. 언어장애가 오기 전, 아버지는 아들 김씨에게 말했다. “기술을 배워.” 배운 기술이 없어 평생 가난했다는 게 아버지의 생각이었다.
김씨는 아버지의 말을 따랐다. 기술을 배웠다. 공고를 다니며 전기·전자 기술 자격증을 땄다. 공부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닥치는 대로 일했다. 신문도 배달하고 자장면도 배달했다. 채소 가게 점원으로도 일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임대료·관리비를 김씨가 벌어서 냈다. 고등학교 졸업 뒤엔 전문대도 들어갔다. 지금까지 10곳 이상의 직장을 옮겼다. 엘리베이터를 고쳤고, 대형 식당 주방기기도 고쳤다. 김씨보다 더 열심히 살아온 이가 또래 중엔 드물 것이다. 그러나 김씨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빚만 500만원 있다.
500만원의 빚은 어머니와 관련이 깊다. 어머니에게는 보살펴줄 사람이 필요하다. 복지기관에서 알려준 ‘간호 서비스’를 받으려면 하루에 3만원을 내야 한다.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으려면 한 달에 160만원을 내야 한다. 가난한 장애인이라고 나라가 우대해주는 게 그 수준이다. 2년 전에는 동사무소에서 실태조사를 다녀갔다. 대책을 마련해줄까 싶었는데, 오히려 기초생활수급 자격을 박탈해버렸다. 결혼해 따로 사는 형이 돈을 번다는 이유였다. 결혼해 서울 창동에 전셋집을 얻은 형은 제 앞가림에 바쁘다. 어머니 간병 문제로 형제끼리 크게 다툰 뒤로는 내왕도 없다. 형이 돈을 얼마나 버는지 김씨는 알지 못한다. 얼마를 벌건 어머니와 자신에게는 조금의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것만 잘 알고 있다. 동사무소는 그런 사정을 헤아리지 않았다.
“20년간 납부한 관리비만 모았어도…
동사무소가 도움을 준 일이 하나 있었다. “주소지를 옮기지 마세요.” 동사무소 직원이 딱하다는 표정으로 말해주었다. 김씨가 어머니와 같이 지내면, 어머니 앞으로 나오는 혜택이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귀띔해주었다. 유일한 간병인이자 보호자인 김씨는 ‘서류상으로는’ 어머니와 따로 살고 있다. 이걸 복지제도라 부를 수 있다면, 김씨가 이용할 수 있는 한국의 복지제도는 아무것도 없다. 김씨는 구청에서 받아온 ‘장애인 복지 서비스’ 리스트를 보여줬다. 그 가운데는 장애인 운전차량에 한해 저렴한 가스충전식으로 개조할 수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웃기는 일이에요. 우리야 면허가 없으니 차를 살 수도 없지만, 막상 사게 되면 승용차 굴릴 정도로 여유가 있다는 이유로 다른 혜택을 끊어버리니까요.”
나라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던 김씨는 혼자 살아나갈 방법을 궁리했다. 출근한다 해도 어머니 때문에 곧잘 집으로 뛰어들어 와야 했으므로, 어머니 곁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길을 찾았다. 주식 투자였다. “위험이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다른 도리가 없었어요.” 김씨가 말했다. 어머니와 함께 지내려는 뜻은 이뤘지만, 돈을 벌지는 못했다. 그대로 손해가 됐고 빚으로 남았다.
30대 후반의 김씨로선 새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지난 6개월 동안 일정한 수입이 없었다. 이런저런 영업직을 전전하면서 월 30만원 정도를 벌었다. 한 달 전, 120만원을 준다는 텔레마케터 자리를 구했다. 출근한 내내 어머니 걱정에 불안하다. “요즘은 지난 20년 동안 꼬박꼬박 냈던 관리비가 생각나요.” 십자가 외에는 아무 장식이 없는 13평 방에 앉아 김씨가 말했다.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매달 어김없이 납부했던 20만원을 20년 동안 모두 모았다면, 지금쯤 전셋집이라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간병인을 구해 어머니 곁에 둘 수 있지 않았을까.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한 뒤, 착하고 성실한 여자를 만나 결혼할 수 있지 않았을까. 김씨는 자꾸 의문이 든다. “그래도 그건 허무한 생각이고, 임대아파트에라도 들어와 있으니 감사한 일이겠지요?” 십자가의 예수님이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4. 따라 배울 수 없는 모범
결혼해 두 사람이 같이 벌면 어떨까. 신미숙(33·가명)씨는 4년 전 결혼했다. 경기 안산 공단의 휴대전화 제조공장에서 일하다가 같은 공장의 운전기사를 만났다. 알고 보니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의 바로 옆 동에 살고 있었다. 신랑과 신부의 부모들은 단지 옆 작은 식당에서 만나 상견례를 했다. 신혼부부는 빚을 얻어 경기 부평에 작은 전세방을 구했다.
결혼한 뒤에도 신씨 부부는 계속 일했다. 함께 벌어야 월 200만원의 수입을 얻는다. 얼마 전 신씨는 유산을 했다. 휴대전화 만드는 일을 10년 넘게 한 것이 유산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만 한다. 그게 사실이라 한들 일을 그만둘 수는 없다. 신씨 부부는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양가 부모에게 단 한 푼의 용돈도 드리지 못한다. 결혼해 함께 벌어도 어느 한 집의 사정이나마 나아진 것이 없다. 신씨 부부에게 결혼은 빈곤의 해결책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난한 식구의 무리가 하나 더 늘어났다.
그런 점에서 서유영(39·가명)씨는 드문 예외다. 그는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서 탈출했다. 서씨는 남편과 함께 맞벌이를 하며 월 300만원을 번다. 지금은 서울 수유리에 있는 아파트에 산다. 그가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혹시 그의 삶에서 영구임대아파트의 젊은이들이 배울 수 있는 것은 없을까?서씨는 어린 시절에 살았던 서울 도봉동 판자촌을 기억한다. 낮은 지붕, 얇은 벽, 공동 화장실, 공동 우물이 있는 동네였다. 어린 서씨는 매일 아침 공동 우물에서 물을 길었다. 술 마시고 어머니를 때리던 아버지는 1985년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3년 동안 백혈병을 앓던 언니도 이듬해 죽었다. 어머니는 식당일과 빌딩 청소일을 번갈아 하며 살아남은 식구들의 생계를 이었다.
상고를 졸업한 서씨는 10곳의 회사에서 면접을 봤다. 모두 떨어졌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취업했다. 한참 뒤에야 제조업체 대리점의 경리로 뽑혔다. 그곳에서 비밀을 알았다. “편모 슬하에서 가난하게 자란 사람을 경리직으로 뽑으려는 회사가 어디 있겠어. 우리도 망설였지.” 인사 담당자가 말했다. 그 무렵 판자촌에서 쫓겨난 식구들이 영구임대아파트에 들어왔다. 화장실에선 물이 콸콸 나왔다. 회사에 다니면서 서씨는 공부를 했다. 2년제 야간대학에 진학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학교에 다녔다.
빈민 봉사 동아리에도 들어갔다.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는 4년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서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동네 학원 강사로 일했다.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3년 전 사이버대학에 입학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다. 현재 그는 강북 지역의 청소년자활복지관에서 일하고 있다. 남편도 다른 지역의 복지기관에서 일한다. 평생 고생한 어머니는 여전히 영구임대아파트에 산다. 빌딩 청소일도 계속 하고 있다. 그래도 같은 단지의 다른 집보단 유복하다. 자리를 잡은 서씨 부부가 있고, 건강하게 자라나는 서씨의 초등학생 아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집엔 그나마 다른 ‘불행’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만큼 산다고 했다.
“꿈을 갖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가난하고 무기력한 사람들만 보고 자랐으니…. 하다못해 영화라도 보여줘요. 그래야 간접적으로라도 다른 삶을 보고 꿈을 가질 테니.” 가난한 아이들을 돕는 서씨가 말했다. 그의 생각은 별로 틀리지 않다. 서씨 스스로 그 길을 따라 가난을 이겨내고 두 발로 섰다.
꿋꿋이 살아내라고 격려만 할 텐가
따라서 어두운 곳만 찾는 이영호씨, 잠만 자는 박선영씨, 착실히 일해도 근심만 늘어가는 김성철씨는 이제 서씨를 좇아 살면 된다. 세상이 차별해도 버텨야 한다. 폭력적인 부모를 만났어도 인내해야 한다. 일찍 삶을 마치는 가족이 있어도 꿋꿋하게 이겨내야 한다. 가난한 부모가 배움의 기회를 주지 못해도 스스로 벌어 학교를 마쳐야 한다.
매일처럼 마주치는 무력한 사람들 말고, 영화건 소설이건 따라 배울 만한 모범을 찾아 자신의 꿈을 키워야 한다. 눈높이를 낮춰 취업해야 하고, 배우자를 만나면 함께 벌어야 한다. 꼭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나라가 베푸는 복지제도에 기대지 말고, 혼자 힘으로 이 과정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적어도 빈민의 낙인을 벗고 서민의 얼굴로 세상의 밝은 햇볕 아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술병이 나뒹구는 좁은 방에서 꾀죄죄한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쓴 23살의 이영호씨를 직접 만난다면, 당신에겐 이런 의문도 들 것이다. 꿋꿋이 살아내라고 격려하는 것조차 이들에겐 너무 가혹한 주문이 아닐까.
‘사회의식’ 설문 결과 분석
부모 세대보다 자포자기·분노 강렬해져
면담 조사한 121가구 가운데 ‘노인 가구’와 ‘노인+성인 자녀 가구’를 구분해보면, 경제적 형편에선 노인+성인 자녀 가구가 조금 더 나았다. 월 100만원 미만의 가구소득을 올리는 경우가 노인 가구 83.0%, 노인+성인 자녀 가구 67.7%였다. 자식과 함께 사는 집이 그래도 조금씩 더 번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회의식 조사 항목에선 다른 결과가 나왔다. 노인+성인 자녀 가구는 현재 형편과 미래 전망에 대해 노인 가구보다 더 비관적이었다. ‘가난의 원인은 내 자신에게 있다’는 질문에서 노인+성인 자녀 가구의 절반 정도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같은 질문에 같은 답을 한 노인 가구의 비율보다 10%포인트 높다.
가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자의식이 문제 해결의 노력으로 이어진다면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포자기 상태가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노력해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보느냐’는 질문에서 노인+성인 자녀 가구의 58.5%가 ‘그렇다’고 답했다. 노인 가구보다 10%포인트 높다.
부자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세상에 대한 분노를 묻는 질문에서도 노인+성인 자녀 가구는 노인 가구보다 강렬하게 응답했다. 노인+성인 자녀 가구의 38.5%는 부자들이 불법·편법으로 돈을 번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에 대한 분노를 느끼는 경우도 23.1%로 나타났다. 각각 노인 가구의 응답보다 10%포인트 높다.
장성한 자식은 노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벅차고, 노부모는 다 큰 자식을 데리고 사는 것이 벅차다. 서로를 짐처럼 여기면서 이들은 무기력을 대물림하고 있다.
좁은 방에서 길을 잃다 [2010.04.09 제805호]
[탐사기획-영구 빈곤 보고서 ③]
어른들의 방치 속에 좌절하고 분노하는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의 10대들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 놀이터가 있다. 미끄럼틀, 시소, 정글짐, 벤치가 있다. 오후가 되면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논다. 초등학생은 미끄럼틀 주변, 중학생은 나무 벤치 주변에서 논다. 고등학생은 놀이터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며 논다. 자기들끼리 수군거린다. “우리, 어린 애들 좀 팰까?”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남자 고등학생이 말했다. 곁에 있던 친구들이 키득거렸다. 실제로 때리지는 않았다. 농 삼은 말이었다. 만약 누군가를 때린다면, 지는 게 뻔한 싸움이 될 것이다. 그들의 편이 돼줄 사람이 없다.
1. 사나운 눈빛으로
“제발 그렇게 하지 마.” 김영주(가명) 사회복지사가 말했다. “돈도 없잖아.” 수신자 부담 전화였다. 김 복지사는 휴대전화 요금을 내지 못하는 형진(16·가명)의 전화를 꼬박꼬박 받았다. “돈이야 삥을 뜯어도 되고, 집을 털어도 되지.” 전화기 너머에서 형진이 말했다. 반말을 해도 김 복지사는 다 받아준다. 형진은 한 달 전, 길 가던 또래를 때렸다. 어울려 다니던 친구 2명과 합세해 때렸다. 돈을 뺏었다. 맞은 아이는 코뼈가 부러졌다. 전치 8주 진단이 나왔다. 부모들이 경찰에 신고했다. 형진은 쫓겨다녔다.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경찰에 붙잡힐까 두려웠다. 형진은 김 복지사한테만 마음을 주었다. “ㄱ시로 갈 거야.” 그 전화를 끝으로 연락이 없다. 형진이 저 멀리 ㄱ시로 도망갔는지, 여전히 놀이터 주변을 어슬렁거리는지 알 수가 없다.
“여기서도 많이 싸워서 만기 연장될 거 같아 그리고 면회 부말(‘주말’의 오기) 받게 않 되 근데 상담 선생님이 특별이 됫다고 했어 내가 여기서 않 싸우고 잘지내고 있을계 잘 있다가 나가면 지금보다 더 잘할꼐.” 형진은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맞춤법도 지키지 않는다. 지난해 겨울, 형진은 분홍색 편지지에 마침표 없는 편지를 썼다. 김 복지사에게 보냈다. 그때 형진은 청소년재활시설에 있었다. 길 가던 아이를 때린 죄로 6개월간 보호 위탁됐다. 더 일찍 나올 수도 있었는데, 그 안에서 또 누군가를 때렸다. “나가면 지금보다 더 잘할꼐”라는 다짐은 잊혀졌다. 형진은 올해 초, 임대아파트로 돌아왔다.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코뼈를 부러뜨렸다. 이번에 붙잡히면 진짜 감옥에 갈 것이다.
형진의 어머니는 키가 작다. 소아마비를 앓았다. 친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형진에겐 없다. 의붓아버지는 술을 많이 마셨다. 알코올중독이었다. 새아버지와 어머니는 형진 옆에서 부부 관계를 했다. 새아버지는 형진과 형진의 누나를 구박했다. 어머니는 아파트 근처에 단칸방을 구했다. 두 남매만 따로 살라고 했다. 형진이 초등학교 5학년, 누나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좁은 방에 아이들만 살았다. 쓰레기가 쌓였다. 바퀴벌레가 기어다녔다. 형진의 친구, 형진 누나의 친구가 이 방에서 놀았다. 학교에 가기 싫은 아이들, 집에 들어가기 싫은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누나의 남자친구가 오토바이를 몰고 왔다. 훔친 오토바이였다. 형진도 그 오토바이를 몰았다. 생전 처음 탄 오토바이가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돈이 필요했다. 부모에겐 돈이 없었다. 영구임대아파트 내 복지관의 도움을 받았다. 김 복지사를 그때 만났다. 형진은 동네 아이들을 때리고, 돈도 뜯고, 집도 털었다. 단지 안에서 유명해졌다. 형진은 이듬해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1학년 때 퇴학당했다. 지금까지 3년 동안 단지 놀이터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형진의 눈빛은 자꾸 사나워졌다. 형진의 편을 들어줄 사람이 이곳에는 없다. 주먹을 들어 때리는 순간부터 형진이 지는 싸움이었다.
“이것도 좀 치워주세요”
폭력은 나쁘다. 절도도 나쁘다. 형진이 그런 짓을 못하도록 누군가 나서야 한다. 그러나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응어리진 것이 분출되지 않으면, 속에서 곪는다. 박성령(가명) 교사는 초인종을 한참 찾았다. 버튼이 떨어져나간 초인종 구멍에 겨우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초인종은 쇳소리를 냈다. 아무 응답이 없었다. 돌아서려는데 문이 열렸다. 냄새가 훅 풍겼다. 해가 졌는데 방에는 전등도 켜져 있지 않았다. 문을 열어준 윤진(16·가명)은 이내 돌아가 방에 누웠다. 박 교사는 윤진의 담임이었다.
윤진이 학교에 나오지 않아 그 집을 찾아나선 길이었다. 걸어서 5분 거리였다. 교복 때문일 것이라고 박 교사는 생각했다. 윤진은 후드 티셔츠 차림으로 학교에 나타났었다. 지난 1년 동안 윤진의 몸무게는 20kg 이상 늘었다. 입학 때 산 교복이 맞지 않았다. 새 교복을 살 돈은 없었다. 윤진은 티셔츠를 입었다. 다른 학생들은 교복을 입었다. 그러다 윤진은 학교 나오는 일을 그만뒀다. 아무 연락 없이 결석했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며칠을 기다리다 찾아간 윤진의 12평 집에는 과자 부스러기, 라면 봉지, 옷가지 등이 어질러져 있었다. 부엌 개수대는 라면, 김치 등 오물로 가득했다. 화장실 쓰레기통에는 휴지가 넘쳤다. 박 교사는 아무 말 없이 청소만 했다. 윤진은 문만 열어주고 아무 말 없이 다시 돌아가 누웠다. 그러다 박 교사에게 다가왔다. 냄비를 가리켰다. “이것도 좀 치워주세요.” 안에는 언제 끓였는지 모를 된장찌개가 심하게 부패해 있었다.
윤진에겐 어머니도 있고 언니도 있다. 어머니는 일본에 있다. 홀로 자매를 키우다 1년 전 일본으로 떠났다. “돈을 벌어오겠다”는 말만 남겼다. 연락은 잘 되지 않는다. 어디서 뭘 하는지 윤진은 알지 못한다. 고등학생인 언니는 좀체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윤진은 밥 대신 과자나 라면을 먹었다. 살이 쪘다. 문 밖에 나가는 일이 귀찮아졌다. 등교 시간이 돼도 혼자 천장을 보며 누워 있었다. 눈을 감으면 일본에 가서 엄마를 만나는 꿈을 꿨다. 박 교사가 썩은 냄비를 설거지한 뒤에도 윤진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2. 굶어가며 공부하다
모두가 무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방법을 알지 못한다. 미영(17·가명)이는 밤늦도록 눕지 않는다. 인터넷을 한다. 미니홈피를 꾸미고 친구를 만난다. 인사도 건넨다. 다만 학교에서는 말하지 않는다. “안녕?” 수없이 연습했지만 누구한테도 이 말을 먼저 건네지 못했다. “고등학교에 가면 그 소극적인 성격 좀 버려.” 중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말했다. 그 말에 미영은 더 움츠러들었다.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인터넷은 다르다. 그곳에 가면 미영의 남자친구가 있다. 짝사랑하고 있다. 인사한 적은 없다. 말도 못 건넸다. 그 남학생의 미니홈피를 구경하며 미영은 새벽을 맞는다.
“몰라요.” 기자가 장래 희망을 물었을 때, 미영이 말했다. “몰라요.”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물었을 때, 미영이 말했다. 모른다고 말할 때 미영은 아기처럼 옹알대며 작게 말한다. “어떤 직업이 또 있는지 모르겠어요.” 미영이 알고 있는 직업은 미싱사뿐이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미싱일을 했다. 미영도 미싱일을 해봤다. 지난 겨울방학 때, ‘미싱 보조’로 일했다. 아버지가 일하는 직물 공장이었다. 공장에는 창문이 없었다. 직물에선 먼지가 계속 나왔다. 눈을 뜰 수 없었다. 손은 금세 더러워졌다. 손을 씻을 곳은 없었다. 일주일 만에 눈병이 났다. 그만뒀다. “넌 공장일에 잘 맞지 않는다.” 아버지가 말했다.
미영의 언니는 얼마 전 카드회사 대리점에 취직해 월급을 받았다. 세금을 떼고 109만원을 받았다. “큰돈을 버는 언니가 부러워요.” 미영이 말했다. 미영은 자신이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100만원 넘게 버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만 확실하다. 돈을 벌면 제 몸을 치장하는 데 쓸 생각이다. 옷도 사고 구두도 살 것이다. 그 이야기를 하는 미영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고등학생 미영은 손톱에 투명한 매니큐어를 발랐다. 그 손톱에는 때가 끼어 있었다. 돈을 벌어 몸을 치장하는 게 꿈이지만, 미영은 세수하고 머리 감는 일이 귀찮다. 100만원 넘게 벌던 언니는 집을 나갔다. “언니… 언제 와?” 미영은 방에 누워 언니에게 문자를 보낸다. 답은 없다.
딸 고교 졸업하면 ‘한부모’ 박탈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면 좋을 것이다. 목표가 있으면 더 열심히 살 수 있다. 그러나 눈치를 봐야 한다. 미숙(17·가명)은 어머니 눈치를 보며 말했다. “모르겠어요.”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묻자, 미숙도 그렇게 말했다. 거짓말이다. 미숙은 학교에서 방과후 수업으로 ‘입시 미술’ 과목을 듣고 있다. 미술 선생님이 어머니를 설득했다. 수업료 10만원을 대신 내주기로 했다. 고등학교 2학년인 미숙은 그림을 잘 그린다. 미술 선생님이 그걸 알아보고 미대 진학을 권했다.
그러나 방과후 수업은 모녀에게 고통이었다. 수업료는 해결했지만, 재료비가 필요했다. 22만원이 필요했다. 어머니는 큰이모에게 빚을 졌다. 빚을 냈는데도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었다. 미숙은 저녁을 굶고 수업을 듣는다. ‘입시 미술’ 수업은 밤 9시에 끝난다. 학교 저녁 급식을 먹으려면 돈을 더 내야 한다. 밤 10시, 미숙은 빈속으로 집에 돌아온다. 허겁지겁 냉장고를 뒤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돈 벌어서 나를 도와야 하지 않겠어요?” 어머니가 말했다. 그 말을 하는 어머니는 힘이 없다. 어머니는 얼마 전 암수술을 받았다. 아버지와는 이혼했다. 어머니 눈치를 보다가 미숙이 말했다. “어차피 대학도 못 갈 텐데 이제 입시 미술은 그만두려고요.” 그렇게 말하는 미숙은 여전히 ‘입시 미술’ 수업을 듣는다. 배고픔을 참으며 듣는다. 냉정한 것은 미숙의 어머니가 아니다. 제도다. 외동딸인 미숙은 어머니와 산다. ‘한부모 가족’이다. 그래서 영구임대아파트에 들어올 수 있었다. 현행법상 ‘한부모 가족’ 지원을 받으려면 편부모 아래 미성년 자녀가 있어야 한다. 미숙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미숙의 가족은 더 이상 ‘한부모 가족’이 아니다. 영구임대아파트 입주도, 어머니의 자활근로도 한부모 가족이기에 가능했다. 이제 자격이 박탈되면 영구임대아파트 보증금마저 거침없이 오를 것이다. 돈이 필요하다. 미숙이가 그 돈을 벌어야 한다.
3. 길을 잃다
“학교라도 고급스럽게 지어야 해요.” 한승원(가명) 교사가 말했다. 한 교사는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근처에 있는 중학교에서 담임을 맡고 있다. “아이들이 밥 먹으러 학교에 와요. 그러니 급식이 맛있을수록 아이들이 학교에 더 애착을 느끼겠죠. 아이들은 놀기 위해서도 학교에 와요. 수업이 끝나면 달리 할 일이 없거든요. 방과후 수업에서 여러 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하면 더 좋겠죠.” 그러나 지난해부터 교육 방침이 바뀌고 있다. “방과후 수업을 교과 학습 위주로 변경하라”는 게 교육부와 교육청의 지침이다. 성적을 끌어올리라는 이야기다. 학업성취도 평가의 후폭풍이 이곳에도 불어닥쳤다. 밥 먹고 어울려 놀고 다른 세상도 경험할 수 있었던 학교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국·영·수 중심의 방과후 교실에서 영구임대아파트 아이들은 이내 지칠 것이다.
한 교사도 힘이 조금 빠졌다. 그는 서울 강남의 이른바 ‘명문’ 고등학교에서 일해봤다. 그곳 학생들은 깍듯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학교와 교사를 업신여겼다. 학원과 강사를 더 신뢰했다. 이곳에선 다르다. 집과 부모보다 학교와 교사에게 더 기댄다. 교사가 노력한 만큼 학생들이 달라진다. “강남 아이들은 교사를 가장 우스운 직업으로 봐요. 부모 직업이 대단하니까요. 반면 이곳 아이들은 교사를 최고의 직업으로 치죠. 부모가 무직자이거나 일용직 노동자이거든요.” 한국 정치의 변화는 이곳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줬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일상의 목표를 새로 전달할 여지를 잃어가고 있다.
남은 길은 스스로 자립하는 것이다. 10대에게 그것은 벅찬 일이다.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승혜(18·가명)는 혼자 힘으로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예술대학을 가거나 실용음악학과가 있는 2년제 대학을 가려 한다. 승혜는 수녀원에서 지낸다. 수녀원이 운영하는 보육원이다. 수녀님들이 노래 학원비도 대준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장 수녀원에 돌아와야 하지만, “지금껏 살면서 요즘이 가장 편한 시간”이라고 승혜는 생각한다.
“과대망상이 있으시니,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의사가 승혜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치료를 거절했다. “하느님을 믿으니까 괜찮아요.” 어머니는 새벽 기도를 가자며 승혜와 승혜 오빠를 깨웠다. 오빠는 그게 싫어 일찌감치 가출했다. 어머니는 화가 나면 승혜를 무릎 꿇게 했다. 3시간은 기본이고 한나절 동안 벌을 세웠다. 학교에도 보내지 않았다. 딸의 끼니도 챙겨주지 않았다. 단지 안 복지관에 가면 토할 때까지 음식을 먹었다.
그래도 “엄마한테 미안하다”
고등학생이 되어 승혜도 집을 나왔다. 스스로 아동학대센터를 찾아갔다. 이후 수녀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승혜의 기억 속에 있는 첫 집은 모자원이다. 어머니 혼자 남매를 데리고 모자원에서 살았다. “모자원 앞에 철길이 있었다”고 승혜는 말했다. 모자원에서 영구임대아파트로, 아동학대센터에서 수녀원으로 옮겨다닌 19살 승혜는 “그래도 내가 도움받은 게 너무 많다”고 말했다. 이만큼 지내게 된 것도 주변의 도움 덕택이라 생각한다. “엄마를 버리고 온 것 같아 미안하다”는 생각도 한다. 언젠가 가수가 되어 돈을 벌면 다시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고에서 일찌감치 대학 진학을 준비한 또래들과는 경쟁하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다. 1년 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승혜는 보육원에서 나와야 한다. 보육원은 18살 미만의 미성년만 지낼 수 있다. 올해가 지나면 승혜가 어디에서 지낼지 알 수가 없다. 대학에 들어간다 해도 생활비는 승혜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런 복잡한 문제를 승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열심히 노력할 뿐이다.
승혜가 학원에서 열심히 배우는 노래가 있다. “가장 잘 부를 수 있는 노래”라고 승혜는 말했다. 실기시험을 치르게 되면 그 노래를 부를 것이다. “잠시 길을 잃었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말 알 수가 없어/ 난 아이인가봐 그저 온종일 울기만 하잖아/ 네가 없인 무엇도 못해/ 어리광 부리며 헤맬 뿐이야/잠시 길을 잃은 거야/ 다시 길을 찾을 거야.”(015B의 <잠시 길을 잃다>)
‘ 자녀 교육 고민 ’ 설문 결과
돈 걱정에 여유 없는 어른들
서울 강북의 한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121세대 중 19가구(15.7%)가 미성년 자녀를 두고 있었다. ‘한부모’ 가정인 경우는 5가구(4.1%), 할머니·할아버지와 손자녀만 사는 경우가 2가구(1.7%)다. 현재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이들을 포함해 자녀를 낳아 길러본 경험이 있는 세대에게 ‘자녀교육에 있어 가장 큰 고민’을 물었다. 단연 학비(36.4%) 문제였다. ‘자녀 교육 고민’을 묻는 문항에 성실히 답한 69명을 기준으로 하면 64%로 압도적이다. 학습능력 부족, 자녀 탈선, 사교육비 등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동시에 “모르겠다”고 응답한 이들도 38.8%였다
좁은 방에서 길을 잃다 [2010.04.09 한겨레21 제805호]
어른들의 방치 속에 좌절하고 분노하는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의 10대들
탐사기획-영구 빈곤 보고서 에필로그]
가난한 노인이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되지 못하고 아픈 사람이 건강보험 혜택 못 받는 사회…
무기력한 한국의 복지제도
“지들 먹고살기 바쁜데, 부모를 챙기겠어? 나는 기대도 안 해.” 자식들한테 용돈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황기백(73·가명)씨를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는 누가 봐도 가난한 노인들이 많았다. 그들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권자가 아니었다. 그들의 자녀 가운데 한두 명은 돈을 번다. 다만 비정규직이다. 부모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지 못한다. 따로 단칸방을 얻어 사는 경우엔 왕래조차 없다. 왜 자녀는 부모를 돌보지 않는가? 왜 국가는 이들을 돕지 않는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는 한국 복지정책의 대표 격이다. 올해로 제도 도입 10년이 됐다. 사람들은 이 제도가 많은 문제를 해결한다고 지레 짐작한다. 그 혜택을 받으려면 까다로운 장벽을 넘어야 한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노인의 경우, 기초생활보장제 혜택을 받으려면 자녀가 사실상 돈을 벌지 않아야 한다. 부양의무자 가구의 최저생계비와 피부양자 가구의 최저생계비를 더해 그 액수의 130% 이상을 부양의무자 가구가 번다면, 피부양자 가구는 기초생활급여를 받을 수 없다고 법에 정해져 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일까?
자녀가 돈 버는 순간 수급권 박탈
가상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면 이렇다. 70살 할머니가 혼자 산다. 결혼한 아들은 따로 살고 있다. 아들·며느리·손자·손녀 등 4명이 한 식구다. 노인 혼자 사는 1인 가구와 아들 식구 4인 가구의 최저생계비를 더하면 월 172만8895원(2008년 기준)이다. 그 액수의 130%는 224만7563원이다. 아들이 한 달에 224만원 이상을 벌면, 혼자 사는 노모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될 수 없다. 노모를 봉양할 만큼 아들이 충분히 벌고 있다고 한국 정부가 판단하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월 224만원을 버는 아들은 노모에게 적어도 월 46만원을 용돈으로 드려야 한다. 1인 최저생계비가 46만3047원(2008년 기준)이기 때문이다. 아들은 나머지 178만원으로 아내 및 두 자녀와 함께 한 달을 생활해야 한다. 만일 아내의 부모 역시 가난하다면 4인 가구의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다. 현행 제도는 노인 빈곤을 장년 빈곤으로 연결하고 있다.
아들 가족만 따로 떼어놓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소득이 4인 가구 기준 최저생계비(약 126만원) 이하로 내려가면 그 부족분만큼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자산 평가 등을 거쳐야 하므로 수월치 않다. 전세금·차량·예금 등 ‘자산’을 갖고 있다면, 정부는 이를 소득으로 환산한다. 예컨대 6천만원짜리 전셋집에 산다면, ‘소득환산율’ 기준에 따라 월 25만원 정도의 소득이 있는 것으로 평가해 현금소득과 합산한다. 차량·예금 등도 마찬가지다. 전셋집을 월세방으로 옮기고, 생계용 차량을 처분하고, 적금을 헐어 어딘가에 탕진해야 기초생활수급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장벽에 가로막힌 ‘사각지대의 빈곤층’이 많다.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는 가구소득 통계를 바탕으로 그 수가 “200만 가구, 410만 명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김수현 세종대 교수는 “2005년 현재 근로빈곤층 227만6천여 명 가운데 63%인 144만4천여 명이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가 추정한 근로빈곤층 144만여 명에 그에 딸린 식구 수를 더하면, 이 교수의 추정치와 거의 일치한다.
어려운 과정을 통과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우산 아래 들어오면 얼마나 받게 될까? 2008년 보건복지부 기준에 따르면, 소득이 전혀 없다고 가정할 때 4인 가족이 84만1312원의 ‘생계급여’와 21만8314원의 ‘주거급여’ 등 105만원 정도를 받는다. 조금이라도 소득이 있다면 그만큼 제하고 남는 돈을 받는다. 복지시설 등에서 생활한다면 주거급여도 삭감된다.
68살 장애 노모 봉양, 잔인한 수렁
2009년 2월 현재 약 86만3390가구, 146만830명(전체 인구의 2.9%)이 기초생활보장제 혜택을 받고 있다. ‘400만 명의 사각지대 빈곤층’에 비해 운이 좋은 경우다. 그러나 한국 사회 평균치와 비교하면 그렇게 평가할 수 없다. 2008년 한국 4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398만원이다. 4인 가구 최저생계비 105만원은 극빈 상태를 유지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남기철 동덕여대 교수는 “현재 기초생활급여는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생존을 유지하게 지원하는 것일 뿐”이라며 “생존 유지만으로는 빈곤에서 탈출하는 활동을 할 수 없으므로, 사회적 참여가 가능한 수준과 내용으로 소득보장을 구축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사회적 부담을 더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영구임대아파트에서 68살 노모를 모시고 사는 김형성(38·가명)씨에 이르러 이 상황은 더 나빠진다. 노모는 지적·정신 장애 2급을 받았다. 혼자서는 아무 일도 못한다. 나라가 인정한 장애인이지만, 노모가 간병인 서비스를 받으려면 하루 3만원을 내야 한다. 주말을 빼더라도 한달이면 60만원이다. 월 150만원을 버는 김씨는 그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다. 노모를 보살피려면 회사를 그만둬야 하고, 회사를 그만두면 노모를 보살필 비용을 마련할 수 없다. 그런데도 김씨의 형이 돈을 번다는 이유로 김씨는 기초생활보장조차 받지 못한다. 뭘 어쩌란 말인가. 김씨는 잔인한 수렁에 빠져 있었다.
2006년 현재, 한국인 전체 빈곤율(중위소득의 50% 이하 계층 비율)은 16.5%이다. 중위소득이란 소득수준이 전체의 한가운데 있는 가구 소득을 말한다. 2009년 기준으로 한국의 2인 이상 가구 중위소득은 월 304만원 정도다. 따라서 16.5%의 빈곤율 수치는 전체 가구의 16.5%가 150만원 미만을 번다는 이야기다. 가난한 사람이 그렇게 많다. 그런데 장애인 가구의 빈곤율은 더하다. 34.6%에 이른다. 전체 빈곤율의 2배가 넘는다.
현행 장애연금은 국민연금 가입자에 한해 지급된다. 가입 중에 발생한 질병 또는 부상으로 장애인이 된 경우에 한해 지급된다.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즉 비정규직이었거나 아예 직업이 없었다면 장애연금을 못 받는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라면 월 2만~7만원 정도를 ‘장애수당’ 으로 받는 길이 있긴 하다. 앞에서 언급한 복잡한 심사 과정을 무사히 통과한다면 그렇다.
그런데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생활비가 더 필요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07년 조사를 보면, 지적·정신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은 수준의 생활을 하려면 교통비·의료비·간병비 등으로 월 105만9607원이 더 든다. 이 때문에 장애인 식구가 있는 빈곤층은 더 깊은 가난을 겪는다. 누군가 돈을 벌어도 장애인 몫의 비용을 제하면 나머지 식구의 생활은 더 열악해진다. 나라로부터 장애수당을 받으려면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가족 가운데 누구도 많은 돈을 벌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여 장애수당을 받는다 해도 기초생계급여에 월 최고 7만원의 돈을 추가로 얹어줄 뿐이다. 한국의 복지제도는 절대로 가난한 사람의 편이 아니다.
꼬박꼬박 연금이 나온다면 이런 문제가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한국에도 국민연금제도가 있긴 하다. 기초생활보장제도와 함께 한국 정부가 마련한 또 하나의 중요한 안전망이다. 2009년 현재 경제활동인구의 93%가 국민연금 또는 공무원·군인연금 등에 가입해 있다. 얼핏 보면 모든 국민이 노후보장을 받을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우선 이 제도는 1999년에야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10년 이상 보험료를 납입해야 은퇴 이후 혜택을 받을 수 있으므로, 현재 60대 이상 노인 세대의 대부분은 국민연금 혜택자가 아니다.
한창 경제활동 중인 현재의 청장년층이라 해도 비정규직의 55%는 국민연금에 가입돼 있지 않다. 98.8%의 가입률을 보이는 정규직과 뚜렷이 비교된다. 비정규직은 ‘저임금-해고-저임금’으로 이어지는 불안정 노동을 거듭한다. 10년 이상 보험료를 납입해야 하는 국민연금제의 특성상 앞으로도 그 혜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막내 사위 취직에 불안한 폐암 할머니
국민연금 문제는 여성 빈곤과 직결된다. 구직 활동을 포기한 ‘비경제활동인구’는 국민연금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여성이다. 몇 달 전 남편을 여읜 김영희(55·가명)씨에게도 국민연금은 그림의 떡이다. 그는 30대 딸이 직장에 다닌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되지 못했다. 남편이 장애인이어서 영구임대아파트에 들어왔지만, 남편이 숨졌으니 조만간 아파트를 떠나야 할 상황이다. 장애인 남편은 제대로 일한 적이 없으므로 연금 수령 자격이 없다. 아내 김씨는 가끔 식당일을 하여 돈을 벌었으므로 역시 연금에 가입돼 있지 않다. 만일 여성 비정규직인 김씨에게도 국민연금의 혜택이 돌아온다면, 김씨네 식구의 근심도 조금 줄어들 것이다.
다만 국민연금 가입자라 해서 빈곤의 덫을 완전히 피해갈 수는 없다. 보험료를 못 내는 사람이 많다. 이태수 교수는 “전체 가입자의 27%에 이르는 468만 명이 실직 등으로 인해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이 가운데 6개월 이상 미납자는 250만 명, 25개월 이상 미납자는 100만 명이다. 다시 취업해 남은 보험료를 채우지 못한다면, 이들 역시 국민연금을 받지 못할 것이다. 남성 정규직 중심으로 설계된 국민연금 제도가 보편적 사회보험 역할을 하기 힘들게 된 것이다. 기초생활보장제·국민연금제 모두 가난 탈출에 별 효력이 없다면, 남는 것은 국민건강보험제도다. 한국 복지제도 가운데 그나마 조기 정착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건 중산층에게만 진실이다. 빈곤층이 체감하는 것은 다르다.
폐암에 걸린 박금자(70·가명)씨는 한 달치 30개 알약을 먹는 데 180만원을 써야 했다. 딸들이 빚더미에 올랐다. 뒤늦게 기초생활수급권자에게 부여되는 의료 혜택을 받아 약값을 낮췄지만, 막내 사위가 취직하면서 다시 위기가 닥쳤다. 기초생활수급권을 박탈하겠다고 동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그렇게 되면 다시 100만원이 넘는 약값을 내야 한다. 그 이름은 ‘국민’건강보험제도지만, 적어도 박씨는 그 제도가 보호하는 국민이 아니다.
현행 국민건강보험제도는 치료비의 상당 부분을 환자에게 떠넘긴다. 2007년 현재,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은 64.3% 수준이다. 나머지는 당사자가 부담한다. 유럽 선진국의 보장성 수준이 85~90%인 것과 비교된다. 본인 부담금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세 번째로 높다. 가난하면 중대 질환에 걸려도 치료를 받을 수 없다.
김철웅 충남대 교수가 2005년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기초생활수급권자는 상위 20% 소득계층보다 식도암은 3.3배, 간암은 2.3배 더 많이 발생했다. 발병 이후 사망에 이르는 비율인 ‘치명률’에서는 하위 20% 소득계층이 상위 20% 소득계층보다 위암은 2.3배, 유방암은 2.1배 더 높게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월소득 100만원 이하 가구의 만성질환 유병률은 46.5%. 300만원 이상 가구의 만성질환 유병률은 19.1%였다. 가난할수록 더 많이 병에 걸리고 더 빨리 죽어버리는 것이다. 박형근 제주대 교수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85% 수준까지 높인다면 암·중풍·심장병 등 중증 질환까지 무상의료를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날이 올 때까지 국민건강보험제도는 ‘질병·사망의 불평등’을 막지 못한다.
아무리 아파도 비바람을 막을 집이 있다면 최악은 면할 것이다. 임대료와 관리비를 내지 못해 퇴거명령을 받은 김종택(62·가명)씨는 최악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김씨가 사는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4천여 세대의 20%가 임대료·관리비를 체납하고 있다. 만나는 주민마다 “제발 관리비를 낮춰 달라”고 호소했다. 공공재정 부족 등이 주된 이유겠지만, 영구임대아파트에 들어오려고 대기중인 사람이 많은 것도 그 배경을 이룬다. 김씨가 나가도 금새 들어올 사람이 수두룩하다. 가난한 사람들이 살만한 집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 발표된 서울시 뉴타운 개발계획을 보면, 2010년 말까지 주택 13만6346호가 사라지고, 6만7134호가 새로 지어진다. 단순 증감만 따져도 7만여 주택이 그냥 사라진다. 새로 지은 주택은 넓고 비싸다. 전용면적 60㎡ 이하인 주택 비율은 뉴타운 사업 전 63%에서 30%로 줄어든다. 사업 이전 83%를 차지한 전세 4천만원 미만 주택은 사업 이후 한 채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
2005년 인구·주택 총조사에서 전체의 13%인 206만여 가구가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마다 기준이 조금씩 다르지만, 미국은 1%, 영국은 2.4%, 일본은 4.4%만이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다. 가난한 이가 기댈 수 있는 것은 공공임대주택이다. 2009년 현재 한국의 공공임대주택은 전체 주택 재고 가운데 3~4% 수준이다. 영구임대주택은 2%에 불과하다. 선진국에선 공공주택 비율이 20~30%에 이른다.
과중채무자는 300만 명, 원인은 생활비
국가가 돌보지 않으므로 빚을 질 수밖에 없다. 남편의 사업이 망하고, 불치병에 걸린 아들을 간호하느라 1억원의 빚을 진 정영숙(53·가명)씨도 그 가운데 하나다. 정씨는 신용불량자 상태에서 다시 빚을 냈다. 갚을 길은 없다. 2005년 현재, 과중채무자는 300만 명에 이른다. 신용회복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과중채무 원인으로 생활비를 꼽은 경우가 29.3%였다. 가난한 사람은 정상적인 은행 거래를 할 수 없으므로, 필요한 돈을 카드로 돌려막거나 사채로 메운다. 이들이 스스로 구제할 유일한 방법은 법원에 파산신청을 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이런 제도의 존재 자체를 잘 모르지만, 알게 된다 해도 다른 문제가 있다. 2006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조사를 보면, 파산신청자의 70%가 변호사 등 법률서비스 기관에 신청 대행료를 냈다. 평균 비용은 150만원이었다. 가난한 사람은 갚을 길 없는 빚을 져도 파산신청할 비용이 없어 구제받지 못한다.
기초생활보장제, 국민연금제, 국민건강보험제 등을 축으로 삼는 한국의 복지제도는 가난의 현장에서 무력하다. 구멍이 숭숭 뚫린 우산이다. 남기철 교수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빈곤을 예방할 수 있는 더 보편적인 소득보장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수 교수도 “직업·소득·성·혼인 여부 등에 상관없이 일정 연령이 되면 일정 금액을 정부가 지급하는 ‘기초연금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우리에겐 낯설지만 서구 대부분의 나라가 이 제도를 택하고 있다. 기초연금제는 현행 기초생활보장제의 사각지대 대부분을 메워줄 것이다. 여기에 경제활동인구 은퇴 이후를 보장하는 현행 국민연금제를 덧붙인다면 빈곤층의 근로 의욕까지 높일 수 있다는 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모든 사람이 기초생활을 보장받고, 일을 한 사람은 추가 급여를 받는 방식이다.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은 ‘사회보호’ 분야의 재정지출이 9.7%에 불과하다. 독일(46.6%), 스웨덴(42.5%), 프랑스(39.3%) 등과 비교된다. 심지어 미국(19.5%)조차 한국보다 낫다.
“기초연금 등 소득보장제 도입 시급”
나라의 예산 구조를 단박에 바꾸는 일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하다. 장차 그런 일이 이뤄지면 좋겠지만, 영구임대아파트 주민들은 코 앞에 닥친 하루를 살아내느라 고단하다. 당장 돈을 줄 수 없다면 마음을 주는 것도 방법이다. 돈을 마련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마음은 지금 당장 꺼내어 표현하면 된다. 성인의 경우엔 복지관, 청소년의 경우엔 학교가 그런 마당이 될 수 있다. 복지관에는 사회복지사가 있고, 학교에는 교사가 있다. 가난한 사람들과 부대끼며 그들의 일상을 돌보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한사코 방에서만 지내며 게임으로 날을 지새는 이영호(23·가명)씨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복지사가 있었다면, 그의 삶은 달라졌을 것이다. 121가구를 대상으로 한 이번 방문조사에서 가장 놀라운 대목이 여기에 있다. 응답자의 37.2%가 ‘어떤 복지시설도 이용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33.9%가 ‘복지시설에 관심없다·모르겠다’고 답했다.
이들이 사는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는 구역별로 사회복지관이 있다. 그러나 주민 가운데 누구도 사회복지관에 신뢰를 보내지 않았다. 복지사와 마주 앉아 상담해본 기억이 있는 주민도 거의 없었다. 복지관은 구청의 예산을 받아 주민을 상대로 각종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복지사들은 담당별로 주민을 상담하는 것을 주된 업무로 삼는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걸까?
바로 옆 단지의 복지관에서 일하는 김영주(가명) 사회복지사는 혼자서 1700여 가구의 모든 중·고등학생을 담당한다. 공부방을 열어 아이들을 모으고 방문상담도 한다. 그는 자기 일에 열성인 복지사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한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른 가족 구성원과 상의해야 하고, 피상담자의 학업·숙식·취미·진로 등을 모두 보살펴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고 김 복지사는 말했다. 사회복지사의 낮은 임금도 문제다. 대부분 월 150만원 정도를 받는다. 이직이 잦다. 담당할 가구가 많으므로 보통 2년은 지나야 주민들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데, 자꾸 복지사가 바뀐다. 실태 파악에 시간이 걸리고, 주민들은 자신의 형편을 몰라주는 복지관을 찾지 않게 된다. 더 많은 복지사를 채용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려면 복지관 예산이 늘어나야 한다. 복지관은 구청에서 예산을 받아 집행한다. 구청 예산은 세금에서 나온다. 마음을 주는 일이 다시 돈 문제로 돌아오는 것이다.
청소년은 이런 상담이 더욱 절실하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동네 아이들을 괴롭히다 끝내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된 형진(16·가명)이의 진짜 문제는 ‘마음의 병’에 있다. 부모에게 학대받고 버림받은 상처가 사춘기를 사납게 할퀸 것이다. 내버려두면 학교와 사회를 등진다. 전국적으로 1년에 6만~7만 명의 초·중·고생들이 자퇴하거나 퇴학당한다. 그 대부분이 빈곤층 자녀다.
그러나 초·중등학교에 배속된 상담교사의 대부분이 계약직이어서 학생들과 지속적으로 사귀는 게 쉽지 않다. 다른 교사들은 입시 교육에 전념한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선 더욱 그렇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 실업계 고등학교에 간다는 것은 옛말이다. 인근 중학교에 근무하는 한승원(가명) 교사는 “요즘엔 중학교 성적이 중위권은 돼야 실업계고에 진학할 수 있고, 하위권은 대학 진학 능력이 없어도 인문계고에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내놓는 청년실업 대책도 대부분 대졸자에 초점을 둔 ‘인턴 제도’이므로,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일자리조차 구할 수 없다. 학교 밖에서 진로를 준비하는 ‘청소년 직업 자활센터’ 등이 유일한 대안인데, 이 또한 예산 문제와 부딪힌다.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가난한 이들의 말벗이 되는 일은 공공 서비스 부문의 일자리 확충과 연결된다. 전병유 한신대 교수는 “공공서비스 부문의 일자리를 만들고 여기에 저임금·고용불안에 노출된 근로빈곤층을 수용하는 노동시장 구조의 개선”을 주문한다. 고용과 복지를 함께 해결하자는 것이다. 2003년 현재 OECD 국가의 사회서비스 부문 고용 비중을 보면 한국은 12.6%로 최하위 수준이다. OECD 평균은 21.7%다. 노르웨이(34.2%), 덴마크(31.3%), 핀란드(27.3%) 등과는 더 차이가 난다. 이들 나라는 공공재정을 투입해 사회서비스 부문의 일자리를 만들고 이들이 다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선순환 구조를 갖고 있다.
빈곤 대물림 끊을 ‘사람’을 투입하라
돈을 주는 게 싫으면 사람을 주면 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가난한 사람들은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이다. 그런 배려와 지혜가 없는 나라에 태어난 죄로 한국의 가난한 사람은 여전히 가난하다. 그들을 만나면 두 가지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그들의 삶에 과연 인간의 존엄이 남아 있나. 그것을 외면하고도 우리 삶은 과연 존엄한가.
참고 문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부동산 개발>(안드레 아우버한트 외·한울),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이상이·밈), <한국의 가난>(김수현 외·한울), <한국 사회의 신빈곤>(한국도시연구소·한울)
빈곤만 고도화된 ‘복지지체’ 세상
정규직 가장 중심의 파편적 사회보장 체계, 비정규 시대에 맥을 못 추네
빈곤 문제는 복합적이다. 이번 <한겨레21> 탐사기획에서 볼 수 있듯 주택, 의료, 노령, 장애, 교육, 가족구조, 지역적 고립과 낙인, 공공보장 체계와의 괴리, 심지어 비극적 사망 등 다양한 요소가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주민들의 빈곤에 얽혀 있다. 그런데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빈곤 상황에 비해 우리의 빈곤 대책은 역동적으로 기능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전통적 복지 모형 안 통하는 ‘신사회위험’
소득·주거·의료 등 각 영역에서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은 왜 이토록 빈약한가? 우리나라의 사회복지는 본격적 역사가 짧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외국 원조와 수용시설을 중심으로 한 긴급구호가 복지의 거의 전부였다. 이후 개발독재 시대에 산업화와 관련된 사회보험제도 등이 도입됐지만 기본적으로는 경제성장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빈곤 탈피는 각자의 근면성에 기초해 개발성장 과정에 동참했을 때 비로소 얻어지는 것으로 간주됐다. 분배 문제나 사회적 안전망은 극히 잔여적 형태로 ‘일부 긍휼에 의한 자선 패러다임’을 유지했다. 당시 만들어지기 시작한 사회복지제도들은 복지가 가장 필요한 계층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공무원·군인 등 정부기관 구성원이나 대기업 종사자 등 정부의 핵심 대리인에게 주로 적용됐다.
1980년대 후반의 정치적 민주화 과정은 우리나라 사회복지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사회복지 서비스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면서 주택·보건의료 등 ‘집합적 소비재’에 대한 공공체계가 구축됐고, 지역사회 복지체계도 등장했다. 빈곤지역에 대한 사회복지관 설립, 영구임대아파트의 건립 등도 이 시기에 이뤄졌다.
국민의 정부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산업화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복지체계와 사회적 안전망을 보강했다. 공공부조제도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시행하고 사회보험 체계를 완비했다. 서구 국가를 기준으로 표현한다면, 이는 전통적 복지국가의 사회보장 시스템에 해당하는 부분이 정비된 과정이었다. 하지만 같은 시기인 1990년대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 복지국가 모형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전면화됐다. 남성이 혼자 생계를 부양하는 핵가족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 사회보장 체계가 도저히 포괄할 수 없는 ‘신사회위험’(New Social Risk)이 광범위하게 나타난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고용의 양과 질이 현저히 나빠졌고, 가구주 한 명이 일해서는 나머지 가족을 부양할 수 없게 됐다. 반면 여성이 일하기에는 보육과 돌봄이 사회화되지 않았다. 교육의 계층화 현상은 빈곤층에게 빈곤 지위가 세습된다는 자괴감을 더욱 증가시켰다. 빈곤층이 다면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참여정부는 사회복지 환경 변화를 감안한 새로운 프로그램의 구축을 시도했다. 근로빈곤층에 초점을 두거나 사회서비스 프로그램을 중심에 두고 정책을 펼친 것은 이런 시도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신자유주의적 경쟁 논리와 불분명하게 혼합되면서 적절한 성과에 이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는 ‘로드맵’ 수준에 머물렀다. 더구나 국민의 정부 시기에 추진된 전통적 복지국가의 사회보장 체계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사회복지 프로그램이 혼란을 가중했다.
이명박 정부 이후에는 시장 논리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빈곤 정책에서도 근로 연계가 강조된다. 빈곤층의 도덕적 해이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서비스 선진화 계획’ 등을 살펴보면 기존의 공공서비스를 시장화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여러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홍보하지만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자원을 실질적으로 확대 투입하지는 않는다. 사회복지 분야의 효율화가 주된 관심이다.
시장경제 체제를 받아들이는 상태에서 경쟁 논리를 폄하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빈곤 문제에 대처하려면 적절한 수준의 공공성이 필요하다.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영역에 전체적으로 시장 논리를 결합시키는 것은 타당하다고 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근로 의욕이 높다.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의 주민 사례를 살펴봐도, 게으르고 일을 하기 싫어서라기보다는 적절한 일자리를 구할 수 없거나 일할 수 없는 제약조건에 갇힌 경우가 많다. 이들이 각자 처한 상황에서 일하게 하여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국가의 임무다. ‘우선 열심히 일해라. 일하면 지원해주겠다’는 현 정부의 입장으로는 일할 기회를 찾지 못하는 우리 사회 빈곤층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빈곤 문제에 대한 사회복지의 역사를 단순화해 표현한다면 세 가지 국면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첫째는 ‘사적 부양’의 시기로 전통적 전근대화 시기에 사적 관계망을 통해 빈곤층에 대응하던 국면이다. 두 번째는 ‘사회적 부양’으로 근대적 산업사회의 시기다. 완전고용과 경제성장을 통해 국민의 소득을 담보하고 이 과정에서 빈곤에 빠지는 실업자와 취약층에 대해서는 국가가 사회보험 등 사회보장 체계를 통해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던 복지국가 단계다. 세 번째는 ‘탈부양’의 단계다. 노동 유연화와 비정규직의 만연, 고령사회 등의 맥락에서 더 이상 정규직 가구부양자 중심의 사회보험이 전 국민적 사회보장 체계로 활용되기 어려워진 시기다. 이 때문에 빈곤층을 ‘부양’하는 게 아니라, 이들의 다양한 사회 참여를 촉진하는 방법이 활용된다. 사회서비스 등을 확대해 사회적 배제를 막으려 한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세 번째 ‘탈부양’ 시기의 요인에 의한 빈곤이 만연하고 있다. 근로자 가운데 빈곤자, 그리고 빈곤자 가운데 근로자 비율이 동시에 확대되고 있다. 가구주의 노동이 가구 전체의 빈곤을 막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빈곤 상황은 ‘구사회위험’에 의한 빈곤과 ‘신사회위험’에 의한 빈곤 문제가 중첩돼 있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체계는 두 번째 ‘사회적 부양’의 단계도 완결하지 못했다. 첫 번째 사적 부양 단계의 비공식적 원조나 자선적 관점도 아직 팽배해 있다. 빈곤 문제의 진전에 비해 사회복지 발전이 지체돼 있는 것이다. 자칫 우리나라의 빈곤층은 봉건적 계급사회에서와 같이 세습적 정체와 고립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들이 사회적으로 격리되지 않도록 하는 사회 통합성 유지는 심각한 과제다.
영구임대의 슬럼화는 정책 고립 탓
문제를 덮어두는 것은 아무런 진전을 가져오지 못한다. 만연한 빈곤과 사회적 배제의 상황을 사실 그대로 펼쳐 보이고 공론화해야 한다. 이번 <한겨레21>의 기획은 우리 사회 영구임대아파트의 상황이 탈빈곤 과정이 아니라 빈곤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절망의 과정임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빈곤과 사회적 배제의 문제에 대응하려면 공공성 확보에 투입되는 자원의 양을 늘려야 한다. 지체된 저발달의 복지체계를 조속히 정상화해야 한다. 기본적 공공성의 확충은 전제조건이다. 특히 강조되어야 할 것은 영역별로 분리된 접근이 아니라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복합적 고립과 빈곤이 만연한 상황에서 지금의 정부 정책과 같은 파편적이고 분리된 프로그램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영구임대주택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주거복지 프로그램이었음에도 다른 사회보장 체계와 연결되지 못해 슬럼과 낙인의 상징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남기철 동덕여대 교수·사회복지학)
음악출처: 다음 블로그 음악과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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