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삼포세대 절반, 자본주의 지지 안한다 429 한겨레
미국판 삼포세대인 ‘밀레니얼 세대’ 절반가량은 미국이 꽃피운 ‘자본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밀레니얼 세대는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 전후에 태어난 이들로, 미국 인구의 25%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하버드대 공공정책대학원 산하 정치연구소(IOP)가 미국 전역 18~29살 학생·일반인 318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응답자 51%는 ‘자본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자본주의뿐 아니라 사회주의나 진보주의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선을 드러냈다. 반면, 애국심·페미니즘·사회정의를 위한 행동주의에 대해서는 ‘지지한다’는 의견이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보다 많았다.
응답자 절반가량은 ‘미국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오늘날의 정치는 미국이 겪고 있는 시련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 청년들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은 대선 주자는 버니 샌더스가 유일했다. 샌더스에 호감이 있다고 한 응답자는 54%에 달했다. 이번 조사를 담당한 존 델라 볼프는 “미국의 젊은 세대가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며 “미래에 대한 관심이 깊지만, 현재 정치나 제도가 여러 난제들을 해결하기엔 충분하지 않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1만원’ 꼭 필요한 다섯 가지 이유 430한겨레
1일 세계노동절 126주년을 맞아 노동계는 “최저임금 1만원으로 인상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4·13 총선으로 제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20대 국회가 끝나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공약했고, 정의당도 같은 입장이다. 새누리당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가계소득 순위의 하위 25%까지로 높이겠다며 금액 인상보다는 근로장려세제 확대를 통해 “9000원까지 올라가는 효과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국민의당은 ‘1만원’을 공약했다가 “인상폭에 대해서는 협의를 통해 정할 것”이라고 한발 물러섰고, 아직 정리된 입장은 나오지 않았다.
선거 때 뜨거운 감자로 등장했던 최저임금 인상 논쟁은 최저임금위원회가 최저임금안을 결정하는 6월 말까지 계속될 것이다. <한겨레>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에서 28일 공개한 2017년 최저임금 1만원 동영상을 토대로 우리가 최저임금에 대해 알아야 할 다섯 장면을 꼽아봤다.
1. 낮아도 너무 낮은 최저임금
알바당 혜리가 “이런 시급”이라고 외치는 2016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6030원이다. 하루 8시간씩 주 40시간 일하는 노동자의 월급으로 환산하면 월 126만270원이 된다. 재계는 지난해 최저임금 협상 당시 이것도 2015년 최저임금 5580원, 2014년 5210원에 견줘 ‘과하다’고 반대했다. 시급 6030원은 과한 것일까? 취업포털 ‘사람인’이 최근 직장인 47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직장인들의 평균 점심값은 6300원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 시급보다 270원 높다. 또 다른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해 6월 조사한 결과는 이보다 높게 나왔다. 직장인 2319명의 평균 점심값은 6566원으로, 최저임금 시급보다 536원 더 나간다. 최저임금 시급 6030원은 직장인들의 평균 점심값에도 못 미치는 수치인 것이다. 선진국들과 비교해봐도 한국의 최저임금은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노동부가 발간한 책자를 보면, 한국의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은 35.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5개 나라 가운데 18위에 그쳤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에서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자 비율은 14.7%로, 오이시디 회원국 가운데 1위다. (오이시디 ‘고용전망 2015’ 보고서)
2. 최저임금 1만원=월급 209만원
2인 이상 노동자 가구의 월평균 생계비는 274만4183원.
매해 최저임금안을 결정해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제출하는 최저임금위원회의 보고서 내용이다. 이는 한국통계학회가 최저임금위원회의 용역을 받아 지난해 5월 제출한 ‘미혼 단신근로자 생계비 분석 연구 용역’ 최종보고서의 일부다. 보고서엔 3인 노동자 가구의 생계비는 336만3173원이라고 나와있다. 민주노총이 인용한 통계청 자료의 경우, 2인 가구의 한 달 생계비는 220만원, 3인 가족의 한 달 평균 생계비는 330만원으로 나타났다. 2~3명 가족이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돈은 대략 220~336만원선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최저임금 시간당 1만원을 주 40시간을 일하는 노동자의 월급으로 환산하면 월 209만원이 된다. 정부 산하 최저임금위원회 보고서와 통계청이 집계한 2~3인 가구의 월평균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이에 더해 통계청은 지난해 4월 현재 ‘한국 전체 임금노동자의 48.3%가 한 달 200만원 미만을 받고 있다’는 자료를 내놨다. 최저임금 노동자뿐 아니라 한국 노동자의 절반가량이 평균적인 2~3인 가구 생계비를 받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최저임금 1만원은 현실을 간과한 ‘이상’이 아니라 현실을 반영한 금액이다.
3. 최저임금, 소수 일부의 얘기가 아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매해 최저임금에 영향을 받는 노동자를 나타내는 최저임금 영향률을 보면 2001년 초 2.1%에 불과했던 것이 2016년에는 18.6%로 껑충 뛰었다. 최저임금 영향률이 높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가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민주노총은 현재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가 약 600만명에 달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반면 고용노동부 산하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해 기준 342만명이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다고 집계했다. 여기에 통계청이 지난 3월 발표한 ‘한국의 사회 지표’에 나타난 국내 평균 가구원 수 2.7명을 곱하면,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사람은 적게는 923만4000여명, 많게는 1620만여명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오상봉 노동정책분석실장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 10명 중 8명 이상이 가구의 핵심 소득원이라고 분석했다. 최저임금이 우리 사회 소수 일부에게만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없는 근거들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최저임금위원회가 최저임금을 정할 때 적용하는 기준은 미혼 독신 노동자의 생계비다. 노동계는 이 기준을 2~3인 노동자 가구 생계비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4. 최저임금을 둘러싼 오해?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전통적 논쟁은 고용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이다. ‘최저임금 상승은 고용 감소로 이어진다’는 주류경제학의 논리는 오랫동안 정설로 받아들여져 왔다. 하지만 반박도 만만치 않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저임금을 점진적으로 올린 영국과 같은 나라들에서 아직까지는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눈에 띄는 악영향을 끼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경제학자들의 견해가 흔들리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처음으로 최저임금제(시급 8.5유로)를 도입한 독일에서도 처음에는 실업률 증가를 우려했지만, 최저임금 도입 뒤 오히려 실업률이 지속적으로 떨어졌으며 현재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앨런 매닝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과 고용의 상관관계가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오이시디도 2015 고용전망 보고서에서 “합리적인 수준의 최저임금은 고용 상실을 크게 유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난 2월 주요 20개국 회의에 낸 보고서에서도 국제통화기금(IMF)는 ‘최저임금이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고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감소 영향은 다소 과장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비숙련 비정규직 노동자의 일자리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계속 되고 있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중소기업 및 자영업자들이 타격을 입는지 여부도 논쟁거리다. 민주노총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을 위협하는 것은 납품단가를 후려치고 기술을 약탈하며 골목상권까지 싹쓸이하는 대기업들이라고 맞서고 있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인상은 노동자 가구의 생계유지뿐 아니라 경기 부양에도 필요한 조처라고 주장한다.
5. 세계는 지금 최저임금 대폭 인상 중
최저임금 인상은 세계적 화두로 떠올랐다. 영국은 4월부터 최저임금 제도를 생활임금 제도로 대체해, 실질적으로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는 실험을 시작했다. 25살 이상 노동자 기준으로 2020년까지 생활임금을 시간당 9파운드(약 1만5000원)까지 올리겠다는 목표다. 일본도 지난해 최저임금을 시간당 798엔(9576원)에서 해마다 3%씩 올려 1000엔(약 1만2000원)까지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브라질은 올해 최저임금을 11.6% 인상했으며, 터키는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폭을 일부 부담하기로 했다. 러시아도 오는 7월부터 최저임금을 20%가량 인상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최저임금 인상 바람이 거센 것은 대선을 앞둔 미국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연방 최저임금을 15달러(약 1만7000원)으로 올리겠다고 하자, 이에 질세라 힐러리 클린턴 후보도 12달러(약 1만3600원)로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앞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월 국정연설에서 “정말 1만5000달러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어디 한번 해보라”며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뉴욕과 캘리포니아가 최저임금을 시간당 15달러 인상하기로 하는 등 미국 내 최저임금 15달러 인상 운동은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국의 연방 최저임금은 현재 7.25달러다.
5·1 노동절 126년]“교과서 속 노동, 분량 적고 나열 수준…노동권 제대로 못 가르쳐” 429경향
ㆍ교실서 드라마 ‘송곳’ 보여줬다고 강제전보 당한 김현수 교사
지난해 12월 서울 동국대사대부고 김현수 교사(52·사진)는 기말고사가 끝나고 학생들에게 JTBC 드라마 <송곳>을 보여줬다. 시험이 끝나면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근로자의 권리’ ‘노동조합 관계법’을 설명하고 있는 드라마를 보기로 학생들과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때 복도를 지나가던 교장은 뒷문을 열고 들어와 “뭐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김 교사가 “수업과 관계된 동영상”이라고 답하자 교장은 “무슨 수업과 관련이 있느냐”고 다시 물었고, 김 교사는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내용이 교과서에 나온다”고 답했다. 교장은 “교과서에 그런 것이 나오느냐”며 믿지 않았고 ‘노동자’라고 말한 것도 문제 삼았다.
교장은 수업이 끝난 뒤 교장실로 오라고 했지만 김 교사는 응하지 않았다. 수업권 침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튿날 김 교사는 서면경고를 받았고 올 2월 동대부중으로 전보됐다. 김 교사는 “징계성 전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인사위원회 회의록에도 ‘(<송곳> 상영으로) 경고장을 받았기 때문에 전보한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고 말했다. 당시 김 교사에게 학교장이 발송한 서면경고문에는 “허락 없이 비교육적이고도 고1 학생들에게 불필요한 노동 투쟁 관련 <송곳>이라는 드라마를 상영했기에 면담하고자 3차례 호출했으나 불응했다”고 기술됐다.
김 교사를 지난 22일 동대부중에서 만났다. 김 교사는 “<송곳>은 학생들에게 교과서에서 너무 간략하게만 소개된 노동에 대한 권리를 좀 더 잘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며 “꼭 <송곳>을 보여줘야겠다는 목적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 ‘노동’에 대한 교육을 이렇게까지 취급하는 학교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사회 교과서 속 노동 서술은 양이 너무 적다. 3쪽에 걸쳐 ‘근로자의 권리’ ‘노동3권’을 정리해놓았지만 그저 노동조합법, 근로기준법을 나열하는 수준”이라며 “노조에는 어떻게 가입하고 노동자가 어떤 권리 행사를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노동자 중심으로 서술돼 있지 않고 ‘노동’과 ‘근로’도 혼용해 놓았다”고 말했다.
학교에서는 어떤 노동교육을 해야 할까. “저는 아이들에게 ‘너희들 90% 이상이 교과서에 나오는 노동자의 삶을 살 것’이라고 말합니다. 교사도 노동자라고 가르쳐요. 그런 삶을 살면서 자신의 삶을 배반하는 생각을 지녀서는 안된다고요. 또 노동자의 권리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사회에서 제대로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아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몰라서 정당한 주장도 못하며 살지 않게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외환위기 원인이 ‘과소비 탓’? 친기업·반노동 가르친 교과서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외환위기)로 우리 국민들은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많은 기업들이 부도가 났으며, 많은 아버지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비정규직이 양산된 것도 이때부터다.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진 것도 이 시기부터이며 그 여파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구직난에 허덕이는 현재의 20~30대들은 외환위기가 무엇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을까? 적어도 초등학교 시절엔 ‘국민들의 과소비’ 때문이라고 이들은 배웠다.
2004년까지 사용된 초등 5-2 사회과 탐구 교과서 22쪽에는 외환위기의 원인에 대한 주부의 인터뷰가 나온다. “과소비를 많이 했던 것 같다”,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고…”, “유명 상표의 옷만 샀고 외국 제품을 많이 사용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한 교사용 지도서는 ‘경제적 시련을 겪은 까닭’이 ‘국민들의 과소비’ 때문이라고 가르치도록 안내하고 있다.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이나 ‘무분별한 기업 대출’ 같은 원인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장롱 속 돌반지까지 모아가며 사태를 해결한 주역이자 피해자인 국민이 졸지에 경제위기의 원흉이 된 것이다.
해당 내용은 지금 쓰이는 교과서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현행 교과서에도 노동자의 입장보다는 기업 중심의 서술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최저임금제에 대한 서술이 대표적이다. ㄱ출판사의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 131쪽에서는 “저임금 근로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시행된 정부의 최저임금제가 오히려 일자리만 감소시키는 경우, ~의 경우는 정부 실패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고 돼 있고, ㄴ출판사 경제 교과서도 비슷한 이유로 최저가격제의 부작용의 예로 최저임금제를 들었다.
ㄷ출판사는 236쪽에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실업 대책은 정부가 기업을 운영하기 좋은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다”라며 기업 입장에서 아전인수격 서술을 하고 있다.
신성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실장은 “노동교육을 제대로 해야 할 경제나 사회 과목에서 오히려 노동 관련 내용이 친기업·반노동자적 시각으로 다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2) 노동교육, 초·중·고 수업 1만시간 중 고작 5시간뿐
노동 관련 교육과 관련된 초·중·고교의 사회, 경제 등 교과서들이 29일 서울 중구 서울교육연구정보원 문헌정보실 서고에 진열돼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
한국 학생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살인적인 학습량’에 시달리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서 필수적인 노동교육은 정규 과정에서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 현재 정규 교육 과정상의 노동교육은 극히 미미하다. 학생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노동문제에 대해 2~5시간 정도를 배울 뿐이다. 정부는 2018년부터 정규 교과의 노동교육을 강화하기로 했지만 노동의 가치나 권리를 제대로 가르치기에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고, 부족한 교육 내용조차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노동교육은 최대 5시간?
초등학교 3학년부터 배우게 되는 초등 사회 교과서에서는 노동문제가 다뤄지지 않는다. 중학교 사회 과목에 처음으로 관련 내용이 등장한다. 그러나 노동의 가치나 노동권이 아닌 실업 문제를 다루고 있다. ‘실업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바람직한 노사관계’를 이해하고 탐구하는 게 해당 단원의 목표이다. 분량도 총 170시간 중 2시간 분량에 불과하다.
노동자 권리에 관한 내용은 고등학교 1학년 사회 교과 과정에서야 등장한다.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로조건’과 ‘근로자에게 필요한 권리’를 찾아보는 게 단원의 목표다. 하지만 47개 소단원 중 1개 소단원으로 전체 85시간 중 1.8시간 정도의 분량이다. 그나마 현재 고1 사회는 선택과목이다. 과목을 선택하지 않은 학생들은 이조차도 배울 기회가 없다.
고등학교 2~3학년의 경우 노동문제가 다뤄지는 과목은 2가지다. ‘사회문화’ 교과서에 ‘산업화에 따른 노동의 변화’가, ‘법과 정치’에는 ‘노동법과 근로자의 권리보호’가 다뤄진다. 그러나 분량은 두 교과서 모두 2~3쪽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모두 일반계 고등학교의 인문사회 과정 학생만 선택하는 과목이다.
결국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고등학교를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관련 교과를 모두 선택한 학생이라 해도 1만시간이 넘는 수업 시간 중 노동교육은 5시간 정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그나마 관련 교과를 선택하지 않을 경우 2시간 남짓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노동교육 강화된다지만…
2015개정 교육과정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필수과목에 노동교육 관련 내용을 추가했다. 중학교 사회에 ‘헌법에 보장된 근로자의 권리를 이해하고, 노동권 침해 사례와 구제 방법을 조사한다’는 성취 기준이 들어갔고, 고등학교 ‘통합사회’에는 ‘청소년의 노동권 등 국내 인권 문제’가 다뤄지게 됐다. 중·고등학교의 공통과정에 노동권 교육이 들어갔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는 변화다. 하지만 수업 시수로 따져보면 중학교 사회 과목의 경우 2.2시간 정도, 고교 통합사회는 1개 중단원 4.7시간 정도지만 소수자 차별 문제 외에 노동권 학습 분량은 2.3시간 정도다. 고등학교 ‘정치와 법’에도 근로자의 권리와 법이 다뤄지지만 선택과목이다.
반면 기업 입장의 서술은 그 이상으로 강화됐다. 초·중·고의 사회과 공통과목과 선택과목 모두에 ‘기업가 정신 교육’이 반영됐다. 이에 따라 2020년부터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기업가 정신 교육’이 실시된다. 실제 교육을 담당할 교사들의 노동인권감수성 강화 방안이 없다는 점도 한계다. 교사들이 변하지 않고는 노동교육 강화를 체감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반시장’ 지적 넘어 직접 교과서 만든 전경련의 집요함
최근 역사교과서 국정화 과정에서 총대를 멨던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0년 전부터 경제 교과서 개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2007년 이른바 ‘전경련 교과서 파문’을 일으킨 ‘차세대 경제’라는 일종의 대안 교과서 개발이 그 출발이었다. 전경련은 당시 기존 교과서들이 학생들에게 경제를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이념적으로 편향돼 있다며 직접 대안 교재 개발에 나섰고, 고등학교와 중학교용 ‘차세대 경제’를 발간했다. 2005년 말 일부 검인정 교과서의 내용들이 재벌과 기업인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준다며 446건의 내용을 지적했던 전경련이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고 직접 교과서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차세대경제교과서는 당시 재정경제부가 한국개발연구원(KDI) 등과 함께 교육부에 요청해 한국경제교육학회와 전경련이 공동 개발했다.
‘차세대 경제’ 교과서는 기존 교과서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기존 교과서가 시장경제의 부작용과 분배의 중요성을 강조한 데 반해 ‘차세대 경제’ 교과서는 시장경제의 장점과 성장의 중요성을 우선시했다. 기업의 본질 역시 ‘사회봉사’나 ‘이익의 사회 환원’ 보다는 ‘이윤 극대화’로 규정했다. 노동, 토지, 자본의 3대 생산요소를 결합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기업가 정신’이라며 ‘기업가 정신’을 생산요소의 개념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시장경제의 장점을 역설한 ‘차세대 경제’는 학교는 물론 학원, 군대에도 배포됐다.
기존 교과서의 내용도 점차 변해갔다. 2011년 고교 정규교육과정에서 ‘시장 기능의 한계와 정부의 개입’ 단원이 통째로 사라졌다. 대신 이듬해 ‘기업가 정신 교육’이 고등학교 사회 교과에 처음으로 도입됐다. 교과서에 기업의 입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전경련은 2011년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대해서도 ‘노동운동가 전태일’에 비해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다룬 내용이 빈약하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전경련 산하 자유경제원은 지난해 일부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가 시장경제보다는 정부개입주의를 정당화한다고 주장했다
앉아서 일하는 것 어떤가요?… “건방져 보인다” 428 경향
청소년들의 몰이해
현재 초등학교 6학년이 배우는 초등 6-2 사회교과서 54쪽에는 마트에서 계산을 하고 있는 계산원에 관한 두 가지의 그림(사진)이 실려 있다. 하나는 마트 계산원이 의자에 앉아서, 또 하나는 서서 계산을 하는 그림이다. 서 있는 마트 계산원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렇다면 앉아서 일하는 마트 계산원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은 어떨까? 한 교사가 아이들의 생각을 물었다. 학생들 상당수가 “건방져 보인다” “예의 없어 보인다”고 답했다. ‘힘들게 일하는 계산원들을 위한 당연한 배려’와 같은 답을 예상했던 교사는 무척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노동인권을 생각해보라는 취지로 삽입된 내용이지만, 상당수 학생들이 ‘노동자가 아닌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한 것이다. 해당 교사는 “‘건방져 보인다’는 답을 한 학생들 대부분이 지극히 모범적인 학생이어서 더 의외였다”며 “손님은 왕이라는 생각이 학생들에게 체화된 것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노동자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 사회 전반의 문제 등이 결합된 것 같아 안타까웠다”고 했다.
또 다른 고교 사회교사도 비슷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해당 교사는 2년 전 학생들에게 조를 짜 기업체를 운영해보게 하는 수행평가를 실시했다. 5개 학급에서 6명씩 30개조가 이 수업에 참여했다. 그런데 30개조 가운데 단 한 개조를 빼놓고는 모두 직원들의 임금을 최저임금으로 설정했다.
이 교사는 “수익이나 최대 이윤만 염두에 둘 뿐 그 최저임금으로 노동자가 어떻게 생활을 꾸릴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던 셈”이라며 씁쓸해했다. 학생들은 노동문제를 노동자의 입장이 아닌 소비자나 경영자의 입장에서만 바라보고 있었다.
■학생 대부분 노동자가 되지만…
학생들은 본인들이 노동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지만, 실상 대다수는 사용자가 아닌 노동자로 살아가게 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2015 학교진로교육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학생들 70%가량이 관리직이나 전문직 등을 희망하며 평범한 노동자로서의 미래는 생각조차 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20% 정도만 그 같은 직업을 갖는 것이 현실이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의 실제 취업자 비율을 살펴보면 관리직은 1.5%에 불과했고, 전문직은 19.8%에 그쳤다. 대신, 마트 계산원 등 판매직이 10.7%, 장치·기계조작직 11.9%, 서비스직 10.3% 등 학생들의 희망 직종과는 거리가 먼 직종이 실제 취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의자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계산원들이 바쁘게 일하고 있다. 학생들 대다수가 노동자가 되는 현실에서 학생들은 노동의 가치나 권리는 배우지 못한 채, 노동자보다는 사용자나 소비자의 입장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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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아이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노동에 관한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노동자로 살아가야 할 학생들이 노동의 소중함이나 가치, 또 노동자로서의 권리 등을 제대로 알아야 성인이 된 뒤 자신의 직업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고, 노동자로서의 행복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의 가치·권리 배운 적 없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진로진학 상담교사는 대부분의 중·고등학교에 배치되어 있고(95.3%, 5298개교), 진로와 직업 교과 채택률도 95%가량에 이른다. 이미 진로교육은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아이들은 실제 상황에서 절실한 노동의 가치나 노동자의 권리는 배우지 못하고 있다.
송태수 고용노동연수원 교수가 2013년 전국의 중학생 및 고등학생 53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년 노동의식 및 노동교육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동의 가치,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교육이 충분히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동의’하거나 ‘매우 동의’한다고 응답한 학생은 5.5%에 불과했다. 반면 부족하다고 응답한 학생은 61.1%에 달했다. 임금체불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충분히 배우고 있다는 응답은 15.1%, 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의 의미, 사회적 연대 등의 가치에 대해 충분히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는 응답은 19.2%에 불과했다.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노동시장이나 노사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응답은 8.5%에 불과했다.
영국의 교육·고용부 장관실 향상교육진흥위원회의 자문그룹 보고서에는 영국의 필수과목인 ‘시민교육’의 모토가 잘 나타나 있다. 보고서는 시민을 “공동체 구성원이고 소비자이며 가족 구성원이고 평생학습자이면서 납세자이고 유권자이고 노동자”라고 규정하며, 이 중 어떤 한 역할도 빠져선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노동이 부끄러워요?](1) “노동 생각하면 노예 떠올라…내 꿈은 노동자가 아니에요”
아이들이 그린 ‘노동자 부모의 손’ 지난 25일 서울 강북구 삼양초등학교 6학년5반 학생들이 주말 자율 과제였던 ‘직접 그린 부모님 손 그림’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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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노동자일까, 아닐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서울 삼양초 6학년5반의 ‘노동인권 수업’은 “노동은 어떤 것일까”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옮겨갔다. 배성호 담임교사는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이라는 이야기를 하면 ‘육체노동’을 생각한다”며 질문을 던졌다. “교사는 노동자일까요”라는 물음에 강우진군(12)은 “노동자가 아닌 사람은 자유가 있는데 선생님은 교육부가 내린 지시사항을 따라야 하니 노동자예요”라고 답했다.
■최저임금? “처음 들어봤어요” “교과서에 없어요”
수업은 노동의 좀 더 세밀한 영역까지 밀고 들어갔다. 배 교사는 “미국에서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파업하는 배우들을 응원한다는 말을 공개 석상에서 하기도 합니다. 메이저리그에는 노동조합도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최저임금은 들어봤나요”라고 묻자 한 학생이 대답했다. “처음 들어봤어요. 교과서에도 없잖아요.” 들어봤다는 한 학생은 “TV 광고에서 봤어요. 6050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1만원은 받아야죠. 너무 적어요”라고 했다. 본인의 장래희망이 노동자인 것 같으냐고 묻자 학생 절반 이상은 “아닌 것 같다”는 답변에 손을 들었다. 이도현군(12)은 “게임하고 돈 버는 것은 노동자가 아니잖아요”라고 말했다.
배 교사는 “유럽에서는 의사와 청소부의 임금 차이가 크지 않아요. 사회마다 일하는 가치에 대해 다르게 생각합니다. 2학기에는 더 넓은 세상, 다른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독일, 프랑스 같은 다른 나라 친구들이 어떻게 노동에 대해 배우는지 이야기해줄게요”라며 수업을 마쳤다.
■노동은 강제, 괴롭고 싫은 것…63%가 부정적 인식
경향신문이 서울 성북·강북·송파 지역 3개 학교 5개 학급 110명의 초등학생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노동’이라는 말을 듣고 긍정적인 단어를 떠올린 학생은 12명(10.9%)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 부정적인 단어를 떠올린 학생은 69명(62.7%)에 달했다. ‘노동’이라는 말을 듣고 떠오른 단어 1위는 ‘힘듦·힘든 일’(53명, 48.1%)이었다. ‘노예/천민’을 떠올린 학생도 7명(6.3%)이나 됐다. 그 밖에 ‘돈·월급’(11명), ‘공사장’(3명), ‘공장’(2명), ‘하기 싫다’(2명), ‘아프리카’(2명) 등의 답변이 나왔다. 비정규직에 대해 안다고 답변한 학생은 56명(50.9%), 최저임금에 대해 아는 학생은 51명(46.3%)으로 집계됐다. 노동조합에 대해 모르는 학생은 56명으로, 안다고 답한 학생(28명)의 2배(무응답 26명)로 나타났다.
학생들의 주관식 답변은 우리 사회의 노동에 대한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학생들은 “일은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 노동은 강제로 하는 것” “자신의 직업을 즐겁게 하면 노동이 아닌 보람이고 자신의 직업을 괴롭고 싫다 생각하면 노동”이라고 적었다.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언제 퇴직할지 모르는 사람’ ‘회사 면접에서 합격한 것이 아니고 몇 개월 정도 일하고 나가는 사람’, 최저임금에 대해서는 ‘노동을 하고 받는 돈의 액수 중 가장 적게 줄 수 있는 것’ ‘알바를 할 때 돈을 조금 주고 일을 시키는 것’과 같은 답변이 나왔다.
배 교사는 “어린 학생들도 실제 삶과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현실을 접하며 우리 사회에서 노동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자’ 하면 떠오르는 직업 1순위 ‘아파트 경비원’
초등학생들은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직업 1위로 아파트 경비원(81명), 2위로 마트 계산원(74명), 3위로 은행 직원(37명)을 골랐다. 이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가 중·고등학생 181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27일 발표한 ‘서울대교구 주일학교 청소년들의 노동인식 및 아르바이트 실태조사 결과’와도 비슷하다. 중·고교생들도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직업으로 아파트 경비원(1279명), 농부(1251명), 마트 계산원(1248명) 순으로 답했다. 중·고교생들이 희망하는 직업 1위는 교사였고 의사, 과학자 순이었다.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희망 직종이 대체로 ‘노동자가 아니다’라고 응답했다.
이수정 노무사는 “‘청소년은 노동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판단하고 그칠 일이 아니다”라며 “청소년 알바, 비정규직 등 현재의 노동 현실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관심을 기울이는 게 먼저이고 변화에 대한 관심은 노동인권 감수성을 키우는 교육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협찬 안 해? 조져, 그럼 나온다” 430 미디어오늘
한국 언론 혁신과 생존④ 컨퍼런스·포럼 빙자한 협찬 장사…행사 땡기고, VIP 의전에 기사작성까지
상상 이상이었다. 미디어오늘은 조선일보·중앙일보·매일경제·조선비즈가 최근 5년간(2011.3.1.~2016.2.29.) 주최 또는 후원했던 컨퍼런스 및 포럼을 무작정 찾아봤다. 컨퍼런스와 포럼이란 이름으로 신문사가 벌어들이는 협찬수입이 상당하다는 주장이 많아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4개 매체에서 확인한 컨퍼런스와 포럼 등 행사는 248건이었다. 매달 4건씩, 산술적으로 언론사 1곳당 매달 한번 꼴로 행사를 열고 협찬을 받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표본으로 조사한 4사 중 행사 수는 매일경제가 압도적이었다. 매일경제는 5년간 무려 132건의 컨퍼런스와 포럼을 주최 또는 후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언젠가부터 협찬이 신문사의 대세 수익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협찬은 지면광고와 달리 신문사가 티 나지 않게 광고주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는 효과적 방법이다. 광고주 입장에서도 한 언론사에 광고를 하면 다른 언론사들이 광고를 요구하기 때문에 지면광고보다는 협찬을 선호한다.
협찬은 크게 광고기사를 쓰고 받는 협찬과 컨퍼런스와 포럼 등 이벤트 홍보기사를 쓴 뒤 받는 협찬으로 나눌 수 있다. 협찬은 물품이나 정기구독 같은 방식으로 회계 처리하는 경우도 있어 정확한 협찬 규모는 내부 관계자 가운데서도 소수만 확인할 수 있다.
컨퍼런스와 포럼은 신문업계가 새로운 수익사업으로 찾아낸 영역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데이터 분석서비스 ‘빅카인즈’에 따르면 ‘컨퍼런스’로 검색되는 기사는 2015년 4342건을 기록했는데, 2007년부터 검색 건수가 급증해 2013년 한해만 5309건으로 정점을 찍었다. 2006년만 해도 컨퍼런스가 포함된 기사는 892건에 불과했다.
‘포럼’으로 검색된 기사 역시 2007년부터 급증해 2008년 2만4534건을 기록했으며 지난해는 2만4406건으로 나왔다. 신문사가 자사 주최·후원 컨퍼런스·포럼을 기사로 소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각 신문사의 행사가 늘어나고 있다고 추론해 볼 수 있는 유의미한 증가세다. 해당 분석 서비스는 빅카인즈에 디지털뉴스콘텐츠를 공급하는 33곳 신문기사가 기반으로 일간신문이 171곳, 인터넷신문이 2332곳(2015 한국언론연감 기준)인 점을 감안하면 실제 뉴스수용자들이 접하는 포럼·컨퍼런스 홍보 기사는 수백 배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행사는 경제지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5개월 간 ‘포럼’에 대한 매체별 언급비중 분석 결과 파이낸셜뉴스, 헤럴드경제, 매일경제, 서울경제 순으로 나타났다는 점이 일례다. 조선일보의 경우 자회사 경제지인 조선비즈를 통해 각종 행사를 개최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한국광고주협회(KAA)가 2013년 200여 회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협찬 요청이 가장 많은 매체는 경제지라는 응답이 60.7%로 나타났다. 연간 15개 이상 행사를 협찬하고 있다는 응답이 42.5%로 가장 높았으며, 10~15개라는 응답이 30%로 뒤를 이었다. 회당 협찬 금액은 1000만~3000만원 내외가 50%, 500만~1000만원 내외가 27.1%로 나타났다. 신문은 후원 또는 주관 형태로 기획기사를 써주고 돈을 벌고 있다.
컨퍼런스·포럼은 늘어난 만큼 소재도 다양하다. ‘베이비붐 세대를 위한 부동산 재테크 포럼’(2011년 10월 조선비즈), ‘한국 전기자동차 및 배터리 컨퍼런스’(2012년 4월 조선비즈), ‘100세 시대 시니어 경제포럼’(매일경제)부터 ‘주니어 글로벌 리더스 포럼’(2011년 8월 중앙일보), ‘지방병원 위기 극복 포럼’(2012년 9월 중앙일보) 등 분야는 예상보다 넓었다.
주제는 유통·금융·에너지·헬스케어·창업·빅데이터·글로벌·북한·통일·중소기업·기술과 같은 키워드가 중심이었다. 대부분 협찬금을 대는 기업과 연관된 주제들이다. ‘한국형 이민 모델 정책포럼’(매일경제 2013년 7월)이나 ‘일본 대지진과 아시아 경제의 미래’(조선비즈 2011년 6월)처럼 주제는 무한대로 확장하고 있다.
신문사 포럼은 점차 체계적으로 기획되고 있다. 중앙일보는 삼성전자·두산·SK·현대제철·지식경제부 등에 소속된 전문가 16명이 참여하는 중앙일보 경제연구소를 2011년 3월 발족시킨 뒤 정기적으로 에너지 포럼을 개최하고 있다. 중앙일보 경제연구소는 하나금융연구소와 공동주최로 금융 포럼을 2개월 단위로 열기도 했다.
이처럼 언론사가 컨퍼런스·포럼을 많이 열 수 있는 건 ‘펜’의 힘 덕분이다. 이런 행사에 참가비를 지불하고 참석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 언론사들은 출입처 시스템을 이용해 인원을 ‘동원’하고 속된 말로 협찬을 땡긴다.
경제지 A 기자는 “내 출입처에서 VIP로 얼마나 높은 사람이 오는지와 몇 명이나 오느냐가 중요하다”며 “행사 내용이 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A 기자는 “돈이 중요하고 얼마나 품격 있게 진행되느냐가 중요하고 인원 동원이 얼마나 많이 돼서 북적북적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제지 B 기자는 “기자들은 회사와 출입처의 창구 역할이다. 사소하게는 행사 당일 출입처 사람들 의전도 담당해야 하고 행사 기사도 쓴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자들이 관여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기자들이 쓰는 출입처 기사는 협찬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간부들에게 기자들의 존재는 기업이 협찬을 주지 않을 때 절실해진다. 경제지 부장급 C 기자는 “협찬을 안 하는 경우 기자들에게 속된 말로 조지라고 한다. 그러면 돈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협찬이 오면 추가 취재를 중단하거나 협찬 금액이 많을 경우에는 기자들과 협의하지 않고 기사를 날려버린다”고 말했다.
이같은 반 저널리즘 관행은 종합일간지보다 경제지에서 더 심각한 수준이다. 이와 관련 2013년 4월 일진그룹의 홍보담당 상무는 사표를 제출하며 “사옥 이전 협찬금을 안 냈다고 악의적인 기사로 보복을 당했다”며 한 경제지를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C 기자는 차장급 이상부터는 협찬에 대한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행사를 주관하는 부서가 있고 그 부서 부장을 중심으로 협찬을 유치하는데 이것이 부장의 성과나 업무평가 기준으로 연결된다는 설명이었다. B 기자 또한 “차장급으로 올라가면 협찬 부담이 상당해서 기사보다는 여기 매달리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2013년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MBN ‘경제부 협찬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MBN 경제부는 그해 MBN포럼으로 17억7000만원의 협찬금을 확보했다. 은행 등 금융권이 16억7000만원을 협찬했다. 금융투자협회나 주택금융공사 등에서도 수천만 원의 협찬금을 받았다. MBN 경제부는 보고서에서 “내년 금융기관의 경영환경도 어려운 것으로 전망되나, 다양한 캠페인과 행사를 통해 협찬 실적을 배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경제부나 산업부에서는 매년 협찬 목표를 명시하고 있었다. 산업부의 2014년 목표액은 50억 원이었다. 기자들이 벌어 와야 하는 금액이다. 업계에선 이 같은 상황이 비단 MBN만의 일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문제는 이 같은 협찬 관행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란 사실이다. 언론사 입장에선 협찬 이외에 달리 수익을 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B 기자는 “(협찬 영업으로) 피로감이 상당하지만 이게 우리 월급이고 돈줄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고백했다. 지면이 없는 온라인매체의 경우 온라인광고 수익이 적기 때문에 상당한 수익원인 컨퍼런스나 포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한 온라인 경제지 관계자는 “수익의 90퍼센트 가까이가 협찬 형식으로 끌어들이는 돈”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 대기업 홍보 담당 임원은 “광고 집행 금액 대비 협찬·후원 금액이 70%에 육박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구독료 수입이 줄고 지면광고 수입마저 감소세를 겪으며 대다수 신문사는 사업 다각화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언론진흥재단 연구팀이 지난해 31개사 신문사 경영 담당자(전국지 12개, 지방지 19개)를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전국지의 91.7%는 수익 다각화를 위해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있다고 답했다. 지방지의 경우 컨퍼런스 개최를 하고 있는 곳이 설문 대상의 47.4%였다. 2015년 신문 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선일보의 2013년 사업수입은 138억5800여만 원이었으나 2014년 사업수입은 233억1400여만 원으로 증가했다. 대부분의 언론사가 사업수입을 늘리려는 추세다.
컨퍼런스와 포럼 같은 이벤트를 통한 신문사의 수익 다각화는 한국만의 상황이 아닌 세계적 추세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서도 구독료와 광고매출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신문사가 이벤트를 새 수익사업으로 개발하는데 적극적이다. 여기서 이벤트는 정책 컨퍼런스, 토론회, 유명인사 연설, 상업 박람회, 각종 경연대회 등 다양하다.
2015년 10월 발행된 언론진흥재단 연구보고서 ‘신문사 다각 경영 혁신 전략 연구’에 따르면 언론의 이벤트는 언론의 인지도와 권위, 지면을 통해 이벤트를 홍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경쟁사인 일반 이벤트 회사보다 유리하다. 이벤트는 정기적으로 지속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안정적인 수입원이 되기도 한다. 미국 텍사스트리뷴의 발행인 에반 스미스는 “이벤트도 저널리즘”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벤트 사업에는 전제가 필요하다. 언론진흥재단 연구보고서는 “신문사의 이벤트가 성공하려면 네이티브 광고와 마찬가지로 협찬사와의 관계를 투명하게 해야 하고, 기사와 이벤트와의 상호 분리, 즉 신문사의 이벤트 개최가 기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영향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의 컨퍼런스 사업은 연 2000만 달러 규모로, 2015년의 경우 9번의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2012년 딜북(DealBook) 컨퍼런스는 미국 대기업 인수합병을 주제로 한 컨퍼런스였는데 입장권은 1500달러였다. 당시 JP모건, 골드만삭스, 구글 등 대기업의 협찬을 받았다. 주제나 협찬 대상이 한국과 유사하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이벤트 사업이 신문의 신뢰도나 공정성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로 컨퍼런스의 모든 금전 거래 내용을 공개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속칭 ‘아사리판’이다. 한국은 이벤트가 기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직간접적 영향을 주는 상황이다. 일례가 있다. 한국경제는 2015년 3월19일자 사설 ‘어느 언론사의 걱정스런 영업 관행’에서 “보도와 기사를 광고나 협찬의 도구로 삼거나 카메라 렌즈를 영업수단으로 동원한다면 이는 언론이기를 포기한 것과 같다”며 매일경제를 직접 비판하고 나섰다. 그해 6월 추진 중이던 한국경제 골프대회에서 비씨카드가 5억 원 가량의 후원 협찬에 나설 것으로 알려지자 매일경제가 비씨카드에 비판적인 기사를 내보냈다는 이야기가 업계에서 흘러나오던 시기였다.
신문광고 시장이 더 이상 성장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업계는 점차 협찬에 집착하고 있다. 포럼과 컨퍼런스는 2013년 정점을 찍은 뒤 사별로 소폭 감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조선비즈는 2013년 14건에서 2014년 7건으로, 매일경제는 2013년 31건에서 2014년 24건으로 줄었다. 수많은 매체가 이벤트 협찬 시장에 뛰어든 결과로 보인다. 광고주를 대변하는 반론보도닷컴 2013년 기사에 따르면 한 광고주는 “지난 6월 한 달간 들어온 협찬 요청이 스무 건이 넘는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Katia Cardena-Brazos De Sol (태양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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