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7 주간경향-513한국
김영란법, '시간당 100만 원 강의료'는 깨끗? 510 프레시안
이준구 교수 "내 평생 그런 강의료 받아본 적 없다" 일침
어버이연합, '개콘' 이상훈 고소···"어버이연합, 가만히 있어도 계좌로 돈"512중앙
어버이연합 '망나니' 비판 평론가 대법원 무죄 확정 512미디어오늘
칼바람 부는 조선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511시사인
정운호 게이트로 드러난 법조계의 민낯 ‘유전무죄’512 시사저널
역사는 너무나 중요하기에 511 한겨레21
‘역사의 대중화’ ‘대중의 역사화’를 넘어 국제 역사학계 화두로 떠오른 ‘공공역사’
연봉 6천만원, 분노했던 당신에게 15.5.27
월세소득 과세 허점, 전세난 부추겼다? 5.17 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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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3·5·10룰', 과연 혹독한가 514 머니워크
‘김영란법 시행령안’ 농업계도 정치권도 절레절레 513 농민신문
"가습기 살균제 인체 무해", 22년 전 언론 보도 보니 513미디어오늘
[기자수첩] 사상 최악의 화학 참사, 언론은 자유롭나… 생각 없이 쓴 보도자료 기사의 해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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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한국-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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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시간당 100만 원 강의료'는 깨끗? 510 프레시안
이준구 교수 "내 평생 그런 강의료 받아본 적 없다" 일침
공익과 관련된 업무 종사자들의 부패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이른바 '김영란법'의 시행령이 입법 예고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내수 위축을 초래하는 비현실적인 법이라는 등 관련업계의 반발과 규제 대상자들의 속앓이 때문이다. 규제 대상자에는 공직자, 언론인, 사립학교·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 등이 포함되어 있다.
오는 9월 28일부터 시행 예정인 시행령에 따르면, 공직자 등이 직무와 관련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3만 원이 넘는 식사 대접을 받으면 과태료를 물게 된다. 또 선물 금액은 5만원 이내로, 경조사비 상한액은 10만 원 이내로 제한했다.
외부 강의에 대한 상한액도 설정했다. 공직자의 경우, 장관급은 원고료를 포함해 시간당 40만 원, 차관급은 30만 원, 4급 이상은 23만 원, 5급 이하는 12만 원을 상한액으로 정했다. 언론인이나 사립학교 교직원의 경우에는 민간인이라는 점을 감안해 직급별 구분 없이 시간당 100만 원까지 사례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규제 대상자들 중 상당수는 이런 규제에 대해 "사람 사는 세상에 어느 정도 오고 가는 정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는데, '부패'를 좋아하는 것이 원래 보수의 모습은 아니다.
▲ 한국농축산연합회, 화훼협회, 과수연합회 소속 농민들이 정부세종청사에서 집회를 열고 이른바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서 농·축산·과실류 및 화훼류를 제외할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느 정도가 '공짜'일 수 있을까
'진정한 보수 경제학자'를 자부해온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10일 김영란법에 대해 불편해하는 규제 대상자들의 의식이 얼마나 부패에 찌든 것인지 질타하는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 화제가 되고 있다. 이 교수는 김영란법 규정 자체가 오히려 너무 느슨하다고까지 질타했다.
이 교수는 '이 세상에 공짜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글을 통해, 재벌그룹이 제공하는 해외연수 초청 명단에 포함됐다는 이유만으로도 (찜찜해서 실제로는 연수 기회를 거절한 교수) 지인이 겪은 일화를 소개했다. 그 지인이 해외연수 기회를 제공한 재벌그룹을 비판하는 글을 쓰자, 이 그룹의 한 임원은 "그 교수 우리 돈으로 해외연수까지 갔다왔으면서 그런 글을 쓰면 어떡하나?"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내 개인적 경험과 더불어 이 에피소드는 나로 하여금 처신에 극도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안겨 줬다"면서 "이 세상에 공짜라는 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내가 받은 만큼 내 발목이 묶인다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먹으면 안 됩니다"라고 당부했다.
또한 이 교수는 시간당 강의료 상한선이 장관은 50만 원이고 교수는 100만 원이라는 김영란법 시행령 규정에 어이없어 했다.
이 교수는 '나는 지금까지 시간당 100만 원을 넘는 강의료는 받아본 적이 없다"면서 "뭐하러 그런 고액의 강의료를 지급하겠습니까? 터무니없이 높은 강의료를 받는다면 그것을 받는 순간 발이 묶이는 걸 자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지금도 "시간당 100만 원 정도 강의료 명목으로 받는 공짜가 왜 없냐"고 생각하는 규제 대상자가 부지기수인 것이 현실인 것 같다.
다음은 이준구 교수의 '이 세상에 공짜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글의 전문이다.
오늘은 내 지인이 경험한 일로 이 세상에 공짜라는 게 있을 수 없다는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상당히 오래된 얘기입니다만, 언젠가 모 재벌그룹이 교수들에게 해외연수 기회를 제공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그룹의 수익성이 아주 좋아 그런 사업을 벌일 생각을 했나 봅니다.
나도 초청대상에 포함되어 두 번이나 해외연수를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재벌이 별 다른 이유 없이 교수들의 여행경비를 대준다는 게 뭔가 찜찜해서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다리를 놓은 분이 내가 가지 않겠다고 말하자 이상한 사람 보듯 쳐다보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런 좋은 기회를 박차 버리다니 이상한 사람이구나라는 표정이요.
내 지인도 초청대상이 되었는데 나와 똑같은 이유로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후 그분이 그 재벌그룹을 비판하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당연히 그 재벌그룹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그 재벌그룹의 임원들 사이에서 그 글에 대한 얘기가 오가는 중에 어떤 임원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 교수 우리 돈으로 해외연수까지 갔다왔으면서 그런 글을 쓰면 어떡하나?"
이건 그 지인에게 직접 들은 얘기인데, 그분도 다른 사람에게 그 말을 전해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 재벌그룹의 총수가 그와 같은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만들었을 때 아무 사심 없이 교수들의 견문을 넓혀 준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혜택을 받은 사람은 자유롭게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말을 한 임원은 혜택을 받고서도 배은망덕한 일을 했다고 비난하고 있었던 거죠.
다행히 내 지인은 그 혜택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초청대상에 포함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임원이 오해를 했던 겁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그 분이 해외연수를 다녀왔다면 망신살이 뻗친 것 아니겠습니까?
내 개인적 경험과 더불어 이 에피소드는 나로 하여금 처신에 극도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안겨 줬습니다.
이 세상에 공짜라는 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내가 받은 만큼 내 발목이 묶인다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먹으면 안 됩니다.
어제 김영란법 관련 기사를 보다가 혼자 실소를 터뜨린 대목이 있습니다.
공무원이 밖에 나가 강의할 때 받는 강의료에 상한선이 설정되어 있다는 대목에서요.
시간당 강의료 상한선이 장관은 50만원이고 교수는 100만원이라나요?
그것이 명예교수인 나에게도 해당되는 규정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시간당 100만원을 넘는 강의료는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다른 고명한 사람들이 시간당 몇 백만원씩 강의료를 받는다는 얘기는 많이 들어봤지만요.
그런데 어디서 시간당 몇 백만원의 강의료를 제의하면 그것도 의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뭐하러 그런 고액의 강의료를 지급하겠습니까?
터무니없이 높은 강의료를 받는다면 그것을 받는 순간 발이 묶이는 걸 자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되었든 나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나처럼 활용가치가 없는 '듣보잡'에게는 그런 제의가 들어올 리 만무하니까요.
어버이연합, '개콘' 이상훈 고소···"어버이연합, 가만히 있어도 계좌로 돈"512중앙
개그맨 이상훈 [사진 유튜브 캡처]
.보수성향 시민단체인 어버이연합이 개그맨 이상훈(34)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서울 남부지검은 어버이연합 추선희 사무총장 명의의 고소장을 접수했다고 12일 밝혔다.
어버이연합 측은 “이상훈은 지난 5월 8일 방영된 KBS ‘개그콘서트’에 출연해 어버이연합의 명예를 훼손하는 대사를 했다”며 “어버이연합 회원들은 방송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어버이연합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피고소인(이상훈)은 대중에게 큰 영향력을 지닌 연예인으로서 어떤 사안에 대해 편견에 치우치지 않고 가치적인 중립을 지켜야 함에도, 어버이연합에 대한 공연한 모독과 조롱으로 부정적 인식을 불특정 다수에게 확산시켰다”고 주장했다.
당시 방송에서 이씨는 KBS 개그콘서트의 ‘1대1’이라는 프로그램 코너에 출연했다. 이씨는 “계좌로 돈을 받기 쉬운 게 무엇이라고 하느냐”는 한 출연자의 질문에 예상 정답인 ‘가상계좌’대신 “어버이연합”이라고 대답했다. 이어 “어버이연합은 가만히 있어도 계좌로 돈을 받는다. 전경련에서 받고도 입을 다물고, 전경련도 입을 다문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씨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했지만, 아직 사건을 배당하진 않았다”고 밝혔다.
어버이연합은 앞서 단체에 대한 풍자 동영상을 제작해 배포한 방송인 유병재(28)씨 지난 11일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 서부지검에 고소했다.
어버이연합 '망나니' 비판 평론가 대법원 무죄 확정 512미디어오늘
이안 “유병재 위해서라도 이겨야겠다 생각했다”… “어버이연합 게이트 수사 속도는 왜 이리 느린가”
2년 전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단식투쟁을 ‘폭식투쟁’으로 조롱했던 어버이연합에 대해 ‘망나니’, ‘탐욕’ 등의 표현으로 비판했다 모욕죄로 기소된 영화평론가 이안(본명 이안젤라)씨가 대법원에서 무죄확정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 제3부(재판장 권순일 대법관)는 12일 오후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이안씨에 대한 검사의 상고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자신을 명예훼손 또는 모욕했다며 비판·풍자한 이들을 상대로 잇달아 고소고발하고 있는 어버이연합의 법적 대응 남발에 제동을 건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안 평론가가 2년 여 동안 검찰 수사와 소송을 벌이게 한 것은 지난 2014년 9월9일 미디어오늘에 ‘죽음에 이르는 첫 번째 큰 죄, 폭식’라는 칼럼 때문이었다.
이 칼럼에 대해 1심(원심) 재판부인 서울남부지법 형사8단독 이영선 판사는 지난해 7월17일 1심 판결에서 검찰의 기소에 대해 “어버이연합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훼손할 만한 모욕적 언사로 볼 수 있으나, 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며 “‘망나니’란 언동이 몹시 막된 사람을 비난조로 이르는 말이고, ‘아귀’란 살아있을 때의 식탐 때문에 죽어서 배고픔과 목마름의 고통을 당하는 중생을 뜻하는 불교 용어이므로, 소위 폭식 투쟁을 비판하는 위 칼럼의 전체적인 주제”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그해 8월 제출한 항소이유서에서 “대다수의 회원이 고령의 노인인 피해자 연합을 상대로 망나니 아귀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동양 유교적 관점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사회적 품위를 잃은 행위”라며 “객관적으로 명백한 모욕적 표현이 기재돼 있다면 양의 다과를 불문하고 사회상규에 반하는 모욕이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주장했다.
▲ 지난 2014년 어버이연합 등이 광화문 광장에서 폭식투쟁을 벌였다. 사진=금준경 기자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남부지법 형사항소1부(재판장 오연정 부장판사)는 지난 1월28일 항소심 판결문에서 “원심(1심)의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고, 거기에 검사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같은 판결 소식에 이안씨는 12일 어버이연합의 고소 남발을 막아야 할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를 하더니 끝내 법의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씨는 이날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최근 어버이연합으로부터 고소를 당한 예능방송작가 유병재씨를 위해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다행스럽다”며 “이 사건은 애초부터 검찰이라는 기관이 기소를 할 사건이 아니었는데 무리하게 검찰이 기소한 사건”이라고 밝혔다.
이씨는 “법치주의 국가에서 올바르게 기소권을 행사하라고 세금내는 것인데 이렇게 어버이연합이 마구잡이 고소를 남발하면 불기소할 건 불기소해야지, 무리하게 기소하더니 1심, 2심에 이어 대법원까지 와서 결국 패소한 것이야말로 검찰이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씨는 “2년 전에 고소당했다고 했을 때 아는 변호사들이 ‘검찰이 그렇게 우스운 조직이 아니다’라며 기소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으나 기소했다”며 “경찰 수사때부터 기소할 것이라는 얘기를 한 것을 보면 어버이연합-경찰-검찰로 이어지는 큰 커넥션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도 든다”고 말했다.
특히 이씨는 자신이 칼럼을 쓴 이후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기까지 2년이 걸릴 만큼 신속히 진행된 것에 비해 최근 어버이연합과 전경련 등의 게이트에 대한 수사는 왜 팔짱만 끼고 있느냐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나는 칼럼 쓴 이후 무죄 확정까지 2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수사하자마자 곧장 기소하고 재판했다”며 “그런데 최근 전경련-어버이연합의 수상한 돈 거래 등의 의혹에 대해 검찰 기소는커녕 전혀 조사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이 굉장히 중요한 하수인 역할이거나 키맨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라고 지적했다.
이씨는 “또한 내가 썼던 칼럼의 주요내용인 세월호 문제에 대해 왜 아직도 진상규명은 고사하고 ‘청해진-언딘-해경-국정원-대통령의 7시간’ 등까지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 있느냐”며 “그러면서 내 사건은 표현의 자유와 언론자유, 공익에 관한 지극히 당연한 문제인데도 말도 안되는 모욕죄를 적용해 기소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런 것을 보면, 어버이연합이 자신이 직접 고소하면 적어도 검찰이 기소한다는 확신을 갖지 않는다면, 나 뿐 아니라 최근 작가 유병재씨를 어떻게 이렇게 쉽게 고소했겠느냐”며 “내 사건이 좋은 선례가 돼 함부로 기소하지 않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칼바람 부는 조선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511시사인
조선·해운업에 대한 구조조정 방침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던 4월 말, 거제와 울산을 찾았다. 사외 협력업체 노동자·사내하청 노동자 수천명이 소리 없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이들의 불안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형광색 조끼를 입은 경비원 세 명이 빈 공장을 지키고 있었다. 맞은편 세진중공업에서 들리는 희미한 용접 소리만이 정적을 깼다. 울산 울주군 온산읍에 위치한 현대중공업 온산공장은 4월부터 가동을 중단했다. 2014년 말부터 해양설비 수주가 한 건도 없어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작업하는 노동자들로 넘쳤던 ‘야드(작업장)’는 자재가 쌓인 부분을 제외하고는 텅 비어 있었다. 저 멀리 펄프공장에서 하얀 수증기가 파란 하늘로 올라갔다. 텅 빈 야드에서 감지되는 유일한 움직임이었다.
“공장 돌아갈 때는 한 800명 이상 있었죠. 지금은 물건 나르는 사람, 경비원 해서 한 20명 남아 있습니다. 물건을 재어놓고 창고처럼 쓰면서 앞으로 뭘 할 건지 구상 중인데, 뭐가 들어올지는 결정된 게 없습니다.” 이곳 정문을 지키고 있던 60대 경비원 이 아무개씨가 말했다. 이씨는 “관리감독하는 사람 빼고는 전부 하청업체에서 와서 일했다. 지금은 하청업체들이 다 나가버렸다”라고 덧붙였다.
ⓒ시사IN 신선영 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의 사외 협력업체들이 모여 있는 거제시 연초면 오비일반산업단지. 일감이 없어 더 이상 운영이 어려워진 1차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공장은 울산 동구 방어동에 위치한 해양플랜트사업본부가 넘치는 물량을 감당하지 못해 추가로 지은 곳이다. 지금은 본부도 위태롭다. 비바람이 치던 4월27일 찾은 꽃바위 일대는 이따금 보이는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 외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듯 을씨년스러웠다. 해양 쪽 노동자들이 많이 모여 사는 해양플랜트사업본부 인근 꽃바위의 원룸은 현재 건물당 공실이 최소 한 곳, 많으면 두세 곳이다. 방 하나에 거실 하나가 딸린 ‘투룸’은 보통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65만~70만원을 받았지만 이제는 40만~45만원까지 떨어졌다. 그런데도 방을 구하려는 사람이 없다. 이 지역에서 5년째 부동산을 운영하는 한 공인중개업자(48)는 “작년까지만 해도 여기 방이 없어서 작업자들이 현대중공업 본사가 있는 전하동에 방을 구해서 출퇴근했다. 전에는 여기서 잘리면 거제로 갔다가 다시 오기도 했는데 이제는 사람이 빠지기만 하고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없다. 손님이 없어서 4월 들어 계약을 한 건도 못하고 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꽃바위 인근에서 만난 해양 부문 직원은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전반적으로 정말 사람이 없다. 안에서 밥 먹을 때도 느껴진다. 점심시간에도 옛날처럼 쏟아져 나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사람이 많아 사내 식당을 3교대로 운영하던 공장이었다. 저녁 시간을 준비하던 본부 인근의 곱창집 주인(51)은 “매출이 엄청나게 줄어 3분의 1밖에 안 된다. 그래도 여기는 해양 사업장이 가까워 좀 나은데 이 밑으로 내려가면 가게들이 다 죽었다. 주인들이 몽땅 바뀌었다. 직원들이 회식을 많이 했는데 요즘은 한 달에 한 번도 올까 말까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 가동이 중단된 울산 울주군 온산읍 현대중공업 온산공장.
현대중공업 구조조정 방침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실업 대란이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조선업계 중심축인 동남권 벨트 현장에서는 이미 사내하청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구조조정이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조직되지 않은 비정규 노동자들이라, 언론에 조명되지 못했을 뿐이다. ‘사라진 노동자’들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에 따르면 2014년 11월 4만1019명이던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는 2015년 12월 3만6338명, 2016년 3월 3만3317명으로 1년4개월 만에 7702명이 줄었다. 같은 기간 정규직 노동자가 2만6841명에서 2만4895명으로 1946명 줄어든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난해 구조조정된 1500명 외에 정년퇴직에 따른 감원이 매년 1000명 수준으로 자연 발생한다는 노조 설명을 감안하면(노조는 이를 ‘상시적 구조조정이나 다름없다’고 표현한다), 정규직은 거의 변동이 없는 셈이다. 특히 수주 절벽이 현실화한 해양 부문은 일터에서 사라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더 많았다. 같은 기간 줄어든 하청 노동자의 68.6%가 해양 부문 소속이다. 조선 부문도 1423명이 줄었다.
하창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장은 “현대중공업이 3000명을 구조조정한다고 언론들이 보도하는데 이미 8000명 가까이 잘려나간 하청 노동자 입장에서는 허탈하다”라고 말했다. 하 지회장은 “원청이 업체들 기성비(원청이 하청에게 주는 공사대금을 일컫는 말)를 깎아 폐업시키고 나가게 하는 것이 마치 개별 업체의 폐업인 것처럼 포장되고 있다. 사내하청 노동자는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았음에도 구조조정이라는 말조차 거론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지회에 따르면 물량이 없는 해양 부문의 직영 대 하청 비율을 1대2 비율로 맞추겠다는 게 회사 계획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8000명 정도가 더 줄어들 것으로 지회는 보고 있다.
벼랑 끝에 선 거제 대우조선해양에서도 이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량 해고 물결이 확인된다. 대우조선 노동조합에 따르면 3월 말 현재 정규직 노동자는 약 1만3000명, 사내하청 노동자는 약 3만5000명이다. 12월 말에 비해 정규직 1000여 명, 사내하청 노동자 3500여 명이 나갔다. 인원도 하청 노동자가 많고, 잘려나가는 것도 하청 노동자가 많다.
실업급여도 못 받는 조선업계의 ‘물량팀’
고용노동부 통영지청 거제고용센터에서 만난 실업급여 담당 공무원은 “월요일 1시30분에서 2시 사이에 실업급여 신청을 받는데, 꾸준히 증가 추세다. 여기 오는 남자분들은 거의 다 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협력업체 출신이라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삼성중공업의 경우 직영 노동자 1만3000여 명, 사내하청 노동자 2만6000여 명을 고용하고 있다. 직영보다는 협력업체가 실업급여 신청이 많으냐는 질문에 담당 공무원은 “그렇다. 직영은 아직 퇴사할 이유가 없으니까, 구조조정 시작 안 했으니까… 앞으로 하겠죠”라고 말했다.
거제고용센터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이곳에서 실업급여를 신청한 인원은 △2013년 2807명 △2014년 2975명 △2015년 3618명이다. 2015년 11월에는 한 달에만 523명이 신청했다. 울산고용센터의 실업급여 신청 건수도 △2013년 1만9878건 △2014년 2만1884건 △2015년 2만4509건으로 증가했다.
그나마 실업급여 수급 요건이 되는 노동자 규모가 이 정도다. 조선업계에서 ‘물량팀’이라 불리는, 물량이 있을 때마다 팀장 밑에서 단기간 일을 하는 임시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 회사를 통해 파악한 통계에서도 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창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장은 “물량팀은 물량이 없으면 그냥 쉬어야 된다. 내일 계약 안 하면 끝이니 자르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요즘은 하청 노동자들도 언제든지 잘라낼 수 있도록 물량팀화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시사IN 신선영 조선사 1차 협력업체였던 (주)장한(위)은 지난해 10월 조선 경기 악화 여파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정부가 대우조선해양에 추가 인력 감축과 임금체계 개편 등을 주문한 4월26일,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남문 앞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점심시간에도 나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 동네에서 아귀찜으로 유명한 ㅊ식당에는 텔레비전에서 조선업 구조조정 관련 자막 뉴스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대우조선 회색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 네 팀 정도가 조용히 밥을 먹고 나갔다. 오후 12시30분이 지나자 20여 개 테이블 대부분이 비어 있었다.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인근에서 근 10년째 식당을 운영해온 주인은 “전에는 점심시간이면 거의 찼는데 작년 말 정도부터 두 테이블 내지 세 테이블만 들어온다. 오늘은 그래도 많이 온 편이다. 사내 식당에서 나오지도 않고, 퇴근해도 회식을 안 한다. 하청도 월급이 제때 안 나와서 식당들 타격이 크다”라고 말했다. 퇴근길 남문 앞에서 담배를 태우던 한 대우조선 조선 부문 사내하청 노동자는 “최근 들어서 ‘대표가 어디 도망갔다’ 이런 소리를 많이 듣는다. 대표가 잠수를 탄다든지 도망간다든지 이래버리면 작업자들은 난감하다”라고 말했다.
조직화된 노동조합 소속 정규직 노동자들은 해고 대란이 예상되면 상경 투쟁도 하고 기자회견도 한다. 하지만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속수무책이다. 하창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장은 “대응이랄 게 거의 없다. 일부는 임금체불로 저항을 하다 타 업체로 이관하는 걸로 마무리하고 또 그 업체에서 못 받았던 걸 다 체당금(기업이 여력이 없어 국가가 대신 한도 내에서 지급하는 임금)으로 신청해놓은 상태다”라고 전했다. 해고당한 노동자들이 그래도 노조에 도움을 청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하 지회장은 “노조 활동을 하면 두 번 다시 조선소 밥 못 먹는다는 공식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미 조선업 몰락의 직격탄을 맞은 곳은 또 있다. 조선소 사외 협력업체들이다. 4월26일 오후에 찾은 거제 연초면 한내공단. (주)장한의 한내공단 내 공장은 사람이 없이 텅 비었다. 이 업체는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의 1차 협력업체로 한때 거제를 대표하는 우량기업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조선 경기 악화 여파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 회사의 2, 3차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임금을 받지 못해 지난해 12월 이곳 장한 앞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도 지금은 자취를 감췄다.
ⓒ시사IN 신선영 4월26일 경남 거제시에 있는 거제고용센터에서 한 노동자가 구인 광고를 보고 있다.
대기업의 위기는 중소기업 위기와 직결된다. 4월26일 한내공단에서 만난 삼성중공업 1차 협력업체 ㄱ기업 이 아무개 생산관리 이사는 “직원이 200명인데 지금부터 한 30%는 인력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대기업이 20%를 구조조정한다고 하면 우린 50%를 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삼성은 전년도 단가를 5% 인하했는데 올해 또 두 자릿수로 단가를 인하한다고 한다. 그럼 그 계획에서 인원을 더 많이 줄여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사내하청과 사외 협력사에서 소리 없이 진행되던 구조조정의 공포는 이제 정규직으로 옮아가고 있다. 4월25일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서 만난 현대중공업 조선 부문 기장급(과장급) 노동자는 “이번에 나도 대상이 될지 모른다”라고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구조조정 대상이 될 거라고 알려진 건 생산직 기감급(차장급)이지만 기장급까지도 안전하지 않다는 소문이 벌써 돌았다. 이미 사내하청 노동자 수천명이 빠져나간 해양사업부의 정규직도 마찬가지다.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의 한 정규직 노동자는 “칼바람이 불고 있으니 누구라 할 거 없이 전부 나일 수도 있겠다 이런 마음에, 조바심을 치며 조용조용히 서로 눈치를 보고 있다”라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공통으로 불안을 말하지만, 한쪽은 이미 현실화한 불안이다. 사외 협력업체 노동자들과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소리 없이 사라진 자리에서, 남은 사람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정운호 게이트로 드러난 법조계의 민낯 ‘유전무죄’512 시사저널
“브로커·검사·판사·전관 출신 변호사들이 관여한 총체적 부패 행위”
검찰은 5월3일 네이처리퍼블릭 정운호 대표의 로비 의혹과 관련해 서울 삼성동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 연합뉴스
“‘정운호발(發) 로비사건’은 전관예우를 이용해 발생한 브로커·검사·판사·전관 출신 변호사들이 관여한 총체적 부패 행위다. 이 사건은 검찰 고위직 출신 전관 변호사와 법원의 부장판사 등이 관련돼 있어 검찰이 수사를 담당한다면 그 공정성을 의심받게 될 것이므로 특별검사가 수사를 맡도록 할 것을 촉구한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를 통해 법조계의 부끄러운 민낯이 낱낱이 공개되고 있다. 법조 3륜(법원·검찰·변호사업계)의 한 축인 대한변호사협회(회장 하창우)는 5월2일 성명을 내고, 전관 비리를 이번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하며 이번 사건과 관련한 현직 판검사를 포함해 법조인 10여 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1997년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과 1999년 대전 법조비리 사건에 이어 2016년 현재 법조계의 ‘흑역사’가 또다시 재연되고 있다.
전관 변호사 나서 경찰·검찰·법원 전 방위 로비
정 대표를 둘러싼 ‘법조 게이트’는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 대표는 수백억 원대의 해외원정 도박 사건으로 경찰수사를 받고, 2014년에는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가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받은 영문문서를 토대로 수사에 착수했지만 모두 ‘혐의 없음’으로 결론이 났다. 경찰·검찰 관계자의 뇌물 수수 여부는 물론 정 대표 측 변호를 맡은 검사장 출신 변호사가 거액을 받고 수사·구형 등 단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의혹은 검경과 전관 변호사에 이어 법원까지 퍼져 나갔다. 정 대표의 항소심 사건을 처음 배당받은 임 아무개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가 2014년 11월 정 대표 측브로커 정 아무개씨와 미국을 함께 여행하면서 편의를 제공받았다는 것이다. 여행경비를 누가 부담했는지와 함께 브로커 정씨와 임 부장판사의 관계 역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임 부장판사는 2014년 12월 서울 강남의 일식집에서 브로커 이 아무개씨를 만나 정 대표 사건을 청탁받았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법원에 대한 로비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 대표는 임 부장판사에 이어 자신의 사건을 맡게 된 장 아무개 부장판사에게도 사건을 청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데, 이를 연결해준 인물로 또 다른 판사인 김 아무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거론되고 있다. 김 부장판사는 이 아무개 성형외과 의사 등을 통해 정 대표 사건의 청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 대표의 사건 청탁 및 로비에 관여한 부장급 판사만도 벌써 3명이나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법조 비리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검찰 역시 로비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검찰은 2015년 해외원정 도박에 대한 수사를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당시 이 사건을 맡았던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정 대표의 도박 혐의를 포착하고 추가 수사를 거쳐 1심에서 징역 3년을 구형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검찰은 2심에서 1심보다 낮은 2년6개월을 구형했다. 이 과정에서 ‘전관예우’라는 법조계의 고질적인 병폐가 또 다시 어른거리고 있다. 대한변협은 성명서를 통해 “정 대표 측 변호인이 검사장 출이라며 “전관 비리가 있었는 지 여부를 면밀히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전관 변호사는 2013년과 2014년 정 대표에 대한 검경 수사가 진행됐을 때 ‘혐의 없음’을 이끌어낸 장본인으로도 지목되고 있다.
‘정운호 리스트’에 누가 올랐나
정 대표의 구명 로비를 펼친 의혹을 받은 인물은 이외에도 상당수 더 있다. 특히 정 대표가 자신의 구명 로비를 도와줬던 8인의 인물을 리스트로 작성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장은 더더욱 커지고 있다. 정운호 게이트는 당초 정 대표를 폭행 혐의로 고소한 정 대표 측 변호인 최 아무개 변호사로부터 출발했다. 정 대표와 최 변호사는 올해 초 보석신청이 기각되면서 수임료를 놓고 다퉜고 결국 폭행시비로까지 비화됐다. 이 과정에서 최 변호사가 정 대표가 작성한 리스트를 공개한 것이다. 이 리스트에는 정 대표와 가깝게 지내온 김 아무개 부장판사, 검사장 출신의 홍 아무개 변호사 등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형외과 의사 이씨와 법조 브로커 이씨 등의 이름도 들어 있다. 정 대표가 이 리스트를 작성한 이유는 ‘로비를 그만두라’는 취지였다고 한다. 실제로 리스트에는 ‘빠져라’라는 정 대표의 육필이 기록돼 있다고 한다. 이는 곧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인물들이 실제로 정 대표 구명 로비를 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문제는 또 있다. 정 대표는 자신의 항소심 변론을 맡은 최 변호사에게 착수금으로 20억원을 지급하고, 성공보수로 은행에 예치한 30억원의 인출권한을 주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대한변협은 “최변호사는 정 대표의 항소심을 준비하면서 20여 명의 변호인단을 구성했다”면서 “이 20여 명이 최 변호사로부터 돈을 분배받고전화청탁 등 로비에 가담했는지 여부도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운호발(發) 게이트가 법조계를 휩쓸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아무렇지 않은 모양새다. 정 대표는 서울지방변호사회에 과다 수임료 수수 문제를 조사해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최 변호사에게 지불한 20억원의 착수금을 돌려받겠다는 것이다. 로비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최 변호사는 정 대표를 상해 혐의로 고소했다. 정 대표가 구치소 접견 도중 자신의 손목을 비틀어 전치 3주의 손목 관절 부상을 입혔다는 것이다. 최 변호사는 성공보수로 30억원을 받기로 했었는데, 지난해 대법원은 형사사건에서 성공보수 계약에 대해 무효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법조계의 민낯이 공개되고 있는 이 상황에서도 당사자들은 ‘이전투구’만을 벌이고 있다.
역사는 너무나 중요하기에 511 한겨레21
‘역사의 대중화’ ‘대중의 역사화’를 넘어 국제 역사학계 화두로 떠오른 ‘공공역사’
“역사는 너무나 중요하기에 역사가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고 말해 유명해진 사람은 미국 천문학자 도널드 오스터브룩(1924∼2007)이었다. 그는 역사학자가 되어 천문학사의 새 지평을 열었다. 그러나 그 전에 이 말을 한 사람은 영국의 좌파 역사가 라파엘 새뮤얼(1934∼96)이었다. 그는 대학의 역사학 교수였지만 ‘아래로부터 역사’ 서술과 대중의 역사쓰기(역사작업장) 운동을 이끌었다.
유사한 어법의 주장이 이어졌다. “역사는 너무나 중요하기에 좌파(left) 역사가들에게만 맡겨둘(left) 수 없다”는 얘기는 보수 진영에서 흘러나왔고, 유럽에서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논객들은 늘 “역사는 너무나 중요하기에 대학교수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고 뻗대었다.
역사 해석에 개입하는 ‘외부자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비하 논란을 불러온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세종대 교수. 연합뉴스
최근 한국 역사학계에 대한 다양한 비전문가들의 공격과 질타도 ‘역사는 너무나 중요하기에’라는 전제로부터 출발했다. 아울러 그 전제는 흔히 또 다른 인식 내지 평가를 전제한다. 특정한 정치적 편향과 인적 고루함이 지배하는 한국 역사학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양한 행위자들이 여러 이유로 대학과 학계의 역사 연구와 서술을 부정하고 의심한다. 물론 박근혜 정부가 국정화를 추진하면서 역사학계를 ‘종북 좌파’로 매도한 것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이른바 ‘재야’의 국수주의적 상고사 주창자들이 한국사학계 전체를 ‘식민사학’이라 비난하면, 아직도 비장한 마음으로 그 말에 공감하며 가슴을 여미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런데 현재 한국 역사학계는 그 반대의 비난도 동시에 받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할머니 비하로 논란이 됐던 박유하 교수의 책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드러났듯이, 일부 지식인들이 보기에는 한국 역사학계가 대부분 편향적 관점, 즉 여기서는 오히려 ‘민족주의’를 벗어나지 못해 심각한 결함을 갖는 것으로 간주됐다. 한국 역사학계는 동시에 서로 다른 종류의 비난을 받고 있는 셈이다.
한국 역사학계가 지닌 이런저런 문제점과 ‘편향’에 대해서는 역사학계 내부에서도 진지하게 토론 중이다. 역사 해석에서 편향과 오류, 연구 대상에서 소홀함과 배제가 있었다면 그것을 수정하고 보충하면 된다. 그런 교정과 확장 또한 학문이 발전하는 보편적 과정의 일부다.
다만 이미 새로운 문제의식과 연구 흐름과 관점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싸잡아서 역사학계 전체의 ‘집단적’ 성격을 규정하고 딱지를 붙이는 것은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지만 그 자체로 매우 비이성적이다.
일부 정치가나 지식인이 사료와 맥락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주제에 대해 무리한 해석을 시도하며 역사학자들의 신중한 접근이나 진중한 작업을 무시하고 의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타 분과 학문이나 사회적 삶의 영역에서도 그런 경우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 전문가들의 오랜 연구와 관찰이 늘 존중받는다.
그런데 역사를 둘러싸고는 상황이 좀 다르고 때로는 너무 격하다. 정치가나 언론인, 문화계 종사자뿐만 아니라 다른 전공의 학자와 아마추어 역사가들이 모두 나서 큰 목소리를 내며 역사 인식과 해석에 직접 개입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역사가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이니!
‘역사의 대중화’에 깔린 부당 전제
그런 상황에 맞서 역사학자들이 대응한 방식은 좀 인습적이었다. 즉, ‘역사(학)의 대중화’였다. ‘역사를 대중화한’다는 말은 전문적 역사연구의 성과를 사회 대중에게 돌려주자는 것이었다. 대중에게 전문 역사학계의 연구와 서술을 전달하려면 다양한 문화매체의 활용은 필수적이고 쉬운 문체와 어법의 글쓰기도 불가피하다. 이 대중화 작업에 전문 역사가들의 참여와 관심이 적극적으로 요구됐다.
그런데 ‘역사의 대중화’는 두 개의 미심쩍은 전제에 기반을 두고 있음이 드러났다. 먼저, 대중은 역사에 대해 무지하고 다만 전문 역사가들만이 항상 ‘올바른 역사’를 알고 있다는 전제이다. 역사가들은 열심히 연구한 끝에 얻은 올바른 역사 지식을 대중에게 전달해 그들을 계몽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전제는 대학이나 학계 바깥에는 독립적인 역사 인식과 서술의 주체가 없는 듯 보는 것이다. 사실 세계 어느 문화권에서든 근대 학문 체계가 발전하기 전, 또는 대학에서 역사 연구와 서술이 이루어지기 전에 이미 그 바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역사를 재현하고 공유하고 전승하는 문화적 전통이 존재했다. 특히 20세기 대중문화의 폭발적 발전으로 대중은 역사 인식과 집단적 기억을 통한 문화 전승에 더욱 다양하게 직접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최근 정보화 사회의 급속한 진전은 대중의 고유한 역사 재현과 해석의 가능성을 더욱 넓혔다.
이런 현실에 직면해 역사가들은 ‘역사의 대중화’가 일방적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되고 될 수도 없음을 인식했다. 앞서 ‘대중의 역사화’ 같은 말이 등장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역사의 대중화’가 학계의 기성 연구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을 지시했다면, ‘대중의 역사화’는 대중의 삶의 현장에 파고들어 그들의 생활세계에 밀착한 역사 서술이나 재현을 말한다. 그것은 유럽과 북미의 ‘아래로부터의 역사’ 전통을 이은 실천적 역사 서술을 지시한다. 이 과정에서 구술사와 생애사와 여성사와 지방사 등이 새로운 역사 서술 분야로 급격히 부상했고 대중은 직접 역사쓰기에 동참했다.
다양한 대중과 만나면서 그들로부터 역사를 일구어내는 전통은 여전히 소중하다. 하지만 역사와 대중의 관계는 그것만으로 포착되지 못하는 차원이 널려 있었다. 대학 바깥에 존재하는 사회 구성원은 매우 이질적이다. 또 사회 구성원들이 역사에 대해 관심 갖는 것이 반드시 자신의 생애사 서술 요구에만 한정되지도 않는다. 세계화와 정보화 사회를 맞이해 역사적 사건과 현상에 대한 사회와 대중의 관심은 더욱 증가했다. 10여 년 전부터 국제 역사학계는 이와 관련된 새로운 개념이 호황을 누리며 관심을 끌고 있다. ‘공공역사’(Public History)다.
미국에서는 이미 1970년대에 ‘공공역사’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당시 그것은 아직 대중의 자기 역사쓰기 맥락에서 이해됐다. 그러나 그 뒤 공공역사는 그것을 넘어서 공공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종류의 역사 재현과 활용을 포괄적으로 지시하는 용어가 되었다.
그것은 민중의 주체적인 자기 생애사 서술 같은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공공역사는 대학이나 연구소 같은 제한된 전문 학술 활동 공간을 넘어 사회의 다양한 공적인 삶에서 수행되는 역사 관련 활동을 지시한다. 다시 말해, 학회나 대학과 연구소의 외부에서 이루어지는 역사 지식의 공적 활용과 재현과 전달과 소통과 매개의 모든 형식을 공공역사로 규정할 수 있다. 이때 ‘공공’은 하나의 단일한 총체가 아니기에 오히려 다양한 행위자를 전제해야 한다.
공공역사의 세부 영역은 다양하다. 먼저, 언론과 미디어매체의 역사 관련 기사와 역사 기획물, 역사 다큐멘터리를 비롯한 역사 관련 프로그램을 꼽을 수 있다. 역사박물관이나 역사 주제 전시관의 역사 전시도 주요한 영역의 일부를 차지한다. 정치나 행정을 위한 역사 자문과 프로젝트 등도 주목받을 만하다.
역사 지식의 공적 활용과 소통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김진수 기자
특히 정치폭력의 가해와 피해와 관련한 과거사 정리 및 사법부를 위한 역사 자문과 외국과의 역사 화해를 비롯한 역사 정책, 기업의 역사 활용 또는 역사 마케팅, 문화재 보호와 전승 작업, 역사재단과 정치교육기관의 역사 강좌와 세미나, 역사답사기행 사업, 기록보관소의 사료와 역사 활용, 지방사와 가족사와 생애사 전문 저술 작업 등도 있다.
특히 현대사와 공공역사는 서술과 재현의 자료 차원에서 깊이 연결되어 있다. 사진과 영상 등 생생한 시청각 자료와 역사 현장의 재구성을 통한 과거의 현재화는 현대사 이해를 보조한다. 시청각 자료와 현장의 사실성에 기초한 역사 전달은 현대사 교육과 소통에 유익하게 활용된다. 그것은 다시 역사 체험과 사실성에 크게 의존하는 공공역사에서 현대사가 특별한 지위를 지닐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공공역사는 ‘역사가 너무나 중요하기에 역사가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는 사회적 인식을 반영한다. 공공역사는 이제 인습적 방식, 즉 학문적 역사 연구의 결과를 손쉽게 가공해 대중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는 공적 요구와 수요에 조응할 수 없음을 드러냈다. 공공역사는 역사에 대한 공적 논의의 새로운 방식이 필요함을 예시한다.
공공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학문적 연구의 결과 자체가 아니라 사회 속에서 소통 가능하고 전승 가능하고 활용 가능한 역사 재현의 형식과 방법이기 때문에 그 고유한 능력과 기술에 대한 숙고와 훈련이 따로 필요하다. 아울러 공공역사의 여러 위험과 난점에도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즉 역사의 공적 활용에는 항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악용, 단순화를 통한 역사 오용 및 경제적 이익 창출에 의거한 상업화 등에 대해서는 비판적 검토와 개입이 필요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전문 역사가들과 시민사회의 다양한 역사 행위자들은 공공영역에서 자신들의 고유한 요구와 관심을 갖고 더 많이 토론하는 것이다. 토론과 소통은 공공역사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그러니 우리는 누군가 공공영역에서 특정 역사상을 일방적으로 관철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해 의심을 거두지 말아야 한다.
특정 역사상의 일방적 관철은 대부분 권력자들에게서 주로 발생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를테면, 한국 사회에서 최근 몇 년간 역사 관련 사회운동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박물관이나 전시관 또는 추모(기념) 조형물을 보면 그것이 유관 운동단체를 넘어 얼마나 많은 공적 토론과 전문가 논의 절차를 거쳤는지 따져물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운동의 긴급성과 운동 주체들의 정치적 정당성에 의거해 ‘건립’ 자체만으로도 큰 역사적 의미가 부여됐다.
그러니 전시 내용이나 조형물의 성격에 대한 검토는 말할 것도 없고 건립 절차나 과정의 개방성과 민주성 문제도 고려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난 수년간 건립된 그리고 현재 건립을 준비 중인 여러 시민역사관과 역사 조형물에 대해서도 여러 차원의 비판적 토론이 더 필요하다. 그것은 더 좋은 공공역사의 장을 갖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대중과 사회의 더 큰 관심과 참여를 이끄는 방식이기도 하다.
위안부 소녀상 건립, 더 많은 토론을
그런 맥락에서 보면, 현재 전국 곳곳에 위안부 소녀상을 건립하는 문제는 더 토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중의 열망과 사회운동의 정당성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역사 조형물 건립의 민주적 원칙과 공공역사 차원의 숙고와 시민사회 내 토론 과정이 더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공공영역에서 역사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더 신중하게 토론하고 숙고해야 할 일이 많아진 것이다. ‘역사는 너무도 중요하기에’ 어떤 경우든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이동기 강릉원주대 사학과 교수
연봉 6천만원, 분노했던 당신에게 15.5.27
당신은 중산층 아닌 ‘고소득층’, 월급쟁이의 실질적 세금 부담은 너무 낮은 것이 ‘사실’… 그럼에도 불안 덜기 위한 복지를 바라나요?
그 시간, 벌써 넉 달이 지났군요. 1월이었으니까요. 정말로 오랜만에 당신의 분노를 보았던 그 자리 이야기입니다.
당신은 불합리한 세제와 무능한 정치, 비겁한 재벌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부조리에 분노한 열혈 대학생을 만난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세금이었습니다. 연말정산을 해보니 300만원을 내놓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는 게 그 시작이었습니다.
저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이 나라에는 근로소득세를 정산해 300만원을 내놓기는커녕, 근로소득세 총액이 300만원을 넘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승리 뒤 꺼내지 못한 이야기
서울 광진구 구의동 지하철 2호선 강변역 앞을 출근하는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건널목 앞에는 ‘세금폭탄’에 반대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한겨레 강재훈 기자
그럼에도 당신과 당신의 동료들은 승리했습니다. 야당은 세금폭탄이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경제부총리는 당황하며 머리 숙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5월12일, 연말정산 보완대책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증세 기준점이 원래 350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올랐습니다. 7천만원 이하 소득자의 세금 부담도 일부 낮췄습니다. 이달 월급날에 당신은 연말정산 방식 변경으로 내놓았던 돈을 일부 다시 돌려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차마 꺼내지 못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신은 나라가 중산층을 괴롭힌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연봉이 6천만원 이상이라면 이번에 연말정산을 한 근로소득자 가운데 상위 16.5%입니다. 6명 중 1명입니다. 당신은 대학에 진학한 자녀를 위해 국가장학금을 신청하려다 깜짝 놀랐을지도 모릅니다. 소득 상위 20%까지의 고소득 가정에는 국가장학금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당신이 울분을 토하게 한 300만원은 물론 큰돈입니다. 이번에 연말정산을 신청한 사람 1600만 명 중 수입이 정확히 가운데 있는 사람은 월 200만원을 못 법니다. 중위 소득이 연 2300만원이니까요.
대략 중위 소득의 150% 이상을 고소득층으로 분류합니다. 그렇다면 연소득 3500만원 이상이면 고소득층입니다. 당신은 중산층이 아닙니다. 압도적인 고소득층입니다. 한국은 대다수 월급쟁이가 저소득자인 나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당신은 월급쟁이 유리지갑을 털어갔다며 목청을 높였습니다. 네, 투명하게 지갑을 내보인 당신의 정직은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연말정산을 모두 마치고 나서 실제로 낸 세금은 253만원, 4.22% 안팎일 것입니다. 연소득 6천만원 월급쟁이의 평균 실효세율이 그러니까요. 실효세율은 지난해보다 0.11%포인트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연봉 3천만원인 사람은 0.41%포인트가 높아졌군요. 게다가 당신의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료는 회사에서 절반을 내줍니다. 그럴듯한 회사를 다니지 못하는 이들은 얻을 수 없는 특권입니다.
이번에 월급쟁이들이 부담한 실효세율은 사실 너무 낮습니다. 연봉 1억원이 넘는 사람은 이 나라 상위 3% 부자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실제로 낸 세금은 1천만원에 미치지 못합니다. 소득 상위 9%인 연봉 7천만원은 실효세율이 5%, 5500만원이라면 3% 중반밖에 되지 않습니다. 자녀 수나 교육비, 의료비 등 공제 항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평균은 이렇습니다. 근로소득세 실효세율이 이래서는 복지 확대가 불가능합니다. 이른바 초고소득 부자에게도 세금을 거둬야겠지만, 그것만으로 복지 재정을 다 메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99%이다’가 망쳤습니다
맞습니다. 당신에게 이번 세제개편은 불리했습니다. 연 6천만원 이상 버는 이는 어쨌든 부담이 늘었습니다. 그런데 이달 월급날이면 늘어난 부담분 가운데 상당 부분을 돌려받을 겁니다. 게다가 이전 다섯 해 동안, 6천만원 이상 버는 당신의 세금 부담은 줄었습니다. 그동안 당신보다 덜 버는 이의 세금 부담은 늘었습니다. 소득세는 계속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물론 불의를 향한 당신의 분노는 정당합니다. 연봉 6천만원인 당신이 10만 년을 일하며 모조리 저축해도 모을 수 없는 돈을 편법 투자와 일감 몰아주기 몇 번으로 쌓은 재벌 3세를 압니다. 이들이 소유한 대기업은 여러 가지 명목으로 법인세를 감면받아 중소기업보다도 낮은 세율을 적용받습니다. 탈세와 조세 회피를 일삼는 이들도 눈에 띕니다. 당연히 바로잡아야 하는 일입니다. 이들의 기득권이 깨지는 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순서로 움직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때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처럼 기세등등하던 ‘월가 점령 운동’은 결국 형체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최상층 1%만을 겨냥한 게 패착이었습니다. ‘우리는 99%이다’라는 구호가 일을 망쳤습니다. 나와 내가 어울리는 가족과 친척과 친구는 변화하지 않아도 되고, 평생 한 번 만나보기조차 어려운 억만장자들만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는 믿음은 애초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20%이다’라는 구호 아래 고소득 직장인들이 먼저 나서서 개혁을 주도했다면 좀 다른 상황이 펼쳐지지 않았을까요?
나는 아무 문제 없으니 나보다 훨씬 강한 이들만 변하면 세상이 바뀐다는 믿음은 세상을 영영 제자리에 붙들어두고 맙니다. 우리 ‘을’도 누군가에게는 다시 ‘갑’이 됩니다. 연봉 6천만원 이상인 당신은 이미 훨씬 많은 이들보다 세상을 바꿀 여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월급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은 주변에 그런 이들만 있게 마련이고, 월급 500만원인 사람은 주변에 그만큼이나 그 이상 버는 이들이 있게 마련이고, 월급 200만원인 사람은 주변에 그만큼 버는 이들만 있게 마련입니다. 아마도 당신은 당신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모를 것입니다. 자신이 버는 돈이 얼마나 되는지 모릅니다. 이웃이 어떻게 먹고살아가는지를 전혀 모릅니다.
연봉 6천만원 받고도 힘든 4인 가구 가장이 있을 겁니다. 당신과 당신의 직장 동료는 다들 그럴 겁니다. 하지만 연봉 2천만원 받아서 식구 먹고살기도 빠듯한 4인 가구 가장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연봉 2천만원으로도 이웃을 위해 기부하고 자원봉사하며 사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월급 150만원 받아서 힘든 60대 어른도 있고, 아르바이트비가 월 100만원 남짓이라 힘든 20대 청년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연봉 2억원 받으면서도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4인 가구 가장을 본 일도 있습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실제로 그는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 해도, 이 나라의 월급쟁이 절반이 월급 230만원 이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장시간 일하면서 일터에서 자존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 이곳에서, 삶은 전쟁입니다. 대기업은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느라 힘듭니다. 자동차 회사는 더 많은 자동차를 팔아야 하고, 전자회사는 더 나은 스마트폰을 먼저 만들어내야 하고, 대형마트는 더 싼 물건을 더 많이 매장에 가져다놓고 팔아야 합니다. 1초라도 빠르고 1원이라도 값싼 제품만이 살아남는다, 나머지는 모두 죽는다는 메시지를 모두가 되뇝니다. 이러니 연봉 6천만원이라도 당연히 힘듭니다.
이 상황을 깰 투자가 필요합니다
지난 1월 국회 직원들이 의원회관 사무실에 연말정산 서류를 제출하고 있다. 정부는 올 초 연말정산 파동이 일자, 연봉 7천만원 이하 소득자의 세금 부담을 일부 낮추는 등의 보완대책을 내놨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협력업체는 더 힘듭니다. 대기업은 자꾸 납기를 당기고 가격을 낮추라 합니다. 경쟁사는 점점 늘어납니다. 직원 월급을 올려주기도 빠듯합니다. 그래서 이제 괜찮은 청년들은 중소기업에서 일자리를 찾지 않습니다. 악순환입니다. 협력업체에 납품하는 2차, 3차 협력업체는 당연히 더 힘듭니다. 대형마트와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하는 슈퍼마켓이나, 영세 납품업체도 비슷합니다.
힘들게 살다보니 사람들도 더 강퍅해집니다. 정규직 노동자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너그럽기 어렵지요. 자기 직장이 늘 불안한 줄 위에서 곡예 중이고 자신의 미래도 불안한데 왜 비정규직 이웃까지 챙겨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 법도 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실업자에게 너그럽기는 더 어려울 것입니다. 동네 슈퍼마켓과 편의점 주인이 점원과 청년 아르바이트생에게 너그럽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인지요.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입니다. 출산율은 최저입니다. 청년들은 삶의 대안을 찾아헤매고 있습니다. 사회적 역할을 잃은 고령자들은 빈곤과 불안에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깨뜨리려면 투자가 필요합니다. 재정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물론 많이 버는 이가 더 많이 내야 합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도 나누어 더 낼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의 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뀌는 게 아니라, 99%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연봉 6천만원을 받는 이들 상당수도 허덕입니다. 하지만 실은 연봉이 적어서가 아니고, 세금이 많아서는 더욱 아닙니다. 자산이 없고 미래가 불안하며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너무 높기 때문입니다. 그 불안이 당신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습니다. 그 불안을 줄이려면 복지를 강화해야 합니다. 그 재원은 같이 내는 세금에서 나옵니다. 누군가는 부담해야 합니다. 무엇인가 요구하려면, 부담하면서 요구하는 게 더욱 힘이 실립니다.
이달 월급봉투로 돌려받을 전리품을, 올바른 일을 하는 시민단체와 정책 대안을 만드는 민간 독립 싱크탱크에 대한 후원금으로 돌려주면 어떨까요? 그렇게 하면 분노도 요구도 더 강한 힘을 발휘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요구하는 겁니다. 엉성한 과세에, 불공정한 세제에, 비효율적인 정부를 바로잡으라고 요구하시지요.
우리 모두가 이기려고만 하면서 결국 누구도 이기지 못하는 이 악마의 게임은, 어쩌면 서로 조금씩 져주는 것으로 시작해 끝낼 수 있지 않을까요?
악마의 게임을 끝낼 방법 하나
물론 져준다는 일은, 힘 있는 사람이나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매듭은 꼭대기에서 먼저 풀어야 합니다. 하지만 조금 돌려 생각하면, 우리 모두는 결국 누군가에게는 더 힘 있는 사람이고 더 가진 사람입니다. 대기업이 협력업체에 조금만 져준다면, 대기업이 조금 더 쳐준 기계값·재료값으로 협력 중소기업은 그 직원이나 2차 협력 중소기업 노동자의 삶의 질을 조금 높여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긴 여유로 노동자는 윤리적이고 성실한 생산자에게 값을 조금 더 쳐주고 사는 소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소비자를 보고, 유통업체는 좋은 납품업체와 지역 중소상인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납품업체에서 일하는 정규직은 미래의 불안에 덜 시달릴 수 있고, 비정규직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청년 실업자에게도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성실하게 세금을 내는 당신, 불공정함을 참지 못하는 당신, 올바른 일을 돕는 당신, 연봉 6천만원의 분노한 당신을 지지합니다. 당신이 움직이면 세상이 바뀝니다. /이원재 희망제작소 소장
월세소득 과세 허점, 전세난 부추겼다? 5.17 주간경향
ㆍ집주인 입장에서는 ‘전세보증금 과세’보다 월세 받고 경비·공제 혜택이 유리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을!’ 이 말은 조세정의의 ‘원칙’일 뿐, 현실에는 구멍들이 숭숭 뚫려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월세 같은 주택임대소득에 대한 세금 부과다. 해마다 임대소득으로 수천만원을 벌어도 제대로 신고하지 않아서 세금은 한 푼도 안 내곤 한다. 다만 전세를 놓은 사람에게는 세금을 어떻게 매겨야 할지 논란이 있다. 나아가 전세보증금에 대한 과세 방침이 월세로의 전환을 부추긴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전세난도 잡고 세수도 늘릴 묘책이 있기는 할까.
월세소득 연간 1000만원 이하는 면세
먼저 국내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가 얼마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지 보자. 이자·배당소득 등으로 연 1500만원 버는 사람이 집을 임대로 놓고 월세 100만원을 받는 경우라면 이렇다. 연간 임대수익 1200만원을 거두는데도 올해까지는 연 2000만원까지는 세금이 없다. 3년의 유예기간이 끝나는 내년 이후에도 연간 2000만원까지는 과세방식을 유리한 쪽으로 고를 수 있다. 임대소득에다 근로소득·이자소득 등을 더해 많을수록 세율이 높아지는 종합소득과세(누진세율 6~38%)가 아니라 ‘분리과세’를 선택해 단일세율(14%)을 적용받을 수 있다.
분리과세를 하면 임대소득의 60%(720만원)는 집수리·유지에 따른 ‘필요경비’로 인정받아 과세대상에서 제외된다. 추가로 400만원은 ‘기본공제’로 과세에서 또 빠진다. 결과적으로 이 경우 임대소득 80만원에 대해서만 분리과세를 적용받아 11만2000원만 내면 된다. 근로소득이든 이자소득이든 임대소득이든 합산해서 ‘종합소득’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게 조세정의 원칙에 부합한다. 그러나 정부가 뒷문을 열어준 격이다.
2015년 9월 전세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서울 송파구 잠실의 한 아파트 상가에서 주민들이 부동산 매물 현황판을 보고 있다. / 이석우 기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2015 한국 인권보고서’를 보면, 국내에 2주택 이상 소유한 다주택자는 총 136만5000명이다. 이 가운데 3주택 이상 보유자는 21만1000명이다. 국세청에 주택임대소득(2013년 귀속분)을 신고한 납세자 수는 10만3000명으로, 다주택자 중 7.5%에 그쳤다. 이들이 신고한 총수입금액도 1조6793억원뿐이다. 전·월세 임대가구 747만 가구에 연평균 600만원 간주임대료를 적용하면 임대소득이 약 45조원에 이른다는 이론적 추산이 가능하다.
이에 정부는 2014년 2월 26일 ‘주택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이라는 전·월세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임대소득만으로 생활하는 노부부의 ‘세금폭탄론’을 앞세운 집주인들 반발 앞에 3월과 6월 두 차례 보완책을 내놨다. 일단 과세시기는 2017년 임대소득분부터 적용키로 3년 늦춰줬다.
결국 임대소득이 연간 1000만원 이하는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 월세로는 83만원 이하(전세는 8억7500만원 이하)에 해당한다. 또 1000만원 초과~2000만원 이하(월세 83만 초과~167만원)는 ‘분리과세’를 적용받을 수 있다. 임대소득이 2000만원을 넘으면 종합소득과세를 적용받는다. 또한 1주택 소유자는 기준시가가 9억원 이하까지는 월세 소득이 얼마이든지 세금을 내지 않는다. 이처럼 특례를 인정해주는 것은 조세정의에 어긋난 것이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세청이 2014년 2월 ‘과세자료의 제출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을 통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아 전·월세 확정일자 자료 141만1396건을 살펴봤더니 전세 83만8809건, 보증부월세 57만2587건을 제외한 월세 임대인이 38만7878명이었다. 월세 임대인 중 96.8%의 월세소득이 월 167만원(연 2000만원) 이하였다. 월세 임대인 대다수가 분리과세를 택할 가능성이 크고 ‘필요경비’와 ‘기본공제’를 받으면 상당수가 과세대상에서 빠질 것으로 보인다.
흔히 부동산에서 얻는 소득에 비판적인 이들은 이를 ‘불로소득’이라고 일컫는다. 여기서 주목하는 임대소득을 보자면, 월세 세입자의 소득 상당수를 임대료로 주면 집주인에게는 소득이 되고 합당한 세금을 매겨야 돈의 선순환이 생긴다. 여기에 이런저런 이유로 신고를 안 하거나 특례를 만들어 제외시켜주면 지하경제가 양성되는 셈이다. 김유찬 경실련 재정세제위원장(홍익대 세무대학원 교수)은 “근로자는 소득을 원천징수하는 반면 임대소득은 과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조세 형평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대신 정부는 편리하게 간접세인 담뱃값 인상을 통해 지난해에만 3조6000억원의 세금을 더 거뒀다. 조세의 역진성이 커진 셈이다.
정부가 임대소득 과세를 제대로 하려면 등록을 의무화하는 등 제도개편이 먼저라는 지적도 있다. 등록도 제대로 하지 않는 데다 정부의 대책은 오히려 절세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도 크다. 실제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임대사업자 등록은 늘어나고 있다. 2014년 말 임대주택사업자는 10만3927명(170만8716가구)으로 2년 전보다 약 2배 늘었다. 민간 임대사업자로 등록해 5년 이상 의무임대하면 취득·재산·양도소득세 등을 면제 또는 감면받을 수 있어서다. 기획재정부 당국자는 “확정일자 신고자료 등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임대사업자가 정확히 몇 명인지 알 수 없고, 신고를 안 하거나, 금액을 적게 적는 경우도 많아서 실제로 어떤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토로했다.
가상의 소득에 대한 이중과세 논란
전·월세 임대소득에 세금을 매기면 집주인의 부담이 커지고, 서민에게 전·월세 비용이 가중되는 식으로 전가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는 특히 새누리당에서 정책을 후퇴시킨 주요 이유였다. 김유찬 위원장은 “부동산처럼 공급이 제한된 재화는 세금을 수요자에게 전가하지 않고 고스란히 공급자가 부담할 가능성이 크다”며 “집주인은 세금을 내든 안 내든 최대한의 임대료를 받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전세와 월세는 과세의 영향이 다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수요가 더 많은 전세는 세금을 매기면 공급을 줄이고 보증금을 올려 세입자에게 부담이 옮겨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임대보증금에 대해 과세를 조문화했다가 2001년 비과세로 바뀐 이유도 이런 점이 감안됐다. 반면 그는 “공급이 늘어난 월세는 세금을 세입자에게 전가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세보증금에 대한 과세는 되짚어볼 부분이 몇 가지 있다. 보증금에 대한 과세는 ‘가상의 소득’에 대한 과세 성격이 있다. 보증금은 돌려줘야 할 ‘빚’이기도 하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집을 한 채 가지고 있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한 채를 상속받은 경우 전세 1억원을 끼고 있어서 사실 빚인데 소득으로 간주해 과세한다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전세보증금 과세는 당초 2·26 대책 때는 2주택자까지 포함시키려 했으나 여론이 나빠 3주택자 이상으로 대상을 줄였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현금으로 장롱에 쌓아두지 않는다면 어떤 형태로든 수익을 얻는다. 은행 예금에 넣었다면 이자, 주식투자로 수익을 얻었다면 배당소득에 세금을 내게 된다. 전세보증금에 일정한 이율을 계산해 임대소득으로 간주해 세금을 매긴다면 이자·배당소득세와 이중과세 문제가 불거진다. 전세의 월세 전환은 기본적으로 저금리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전세보증금 과세라는 정책 방향이 이를 더 부추겼다는 시각도 적잖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월세로 유도해서 임대소득에 대한 조세수입을 늘리려는 계산된 행동으로 의심한다.
지난해 10월 유엔의 '세계 주거의 날(10월 첫째주 월요일)'을 맞아 전국세입자협회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입자의 현실을 풍자한 ‘밑 빠진 독에 월세 붓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주택임대소득은 종합소득세로 과세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올해 2월 ‘주택임대소득 과세의 정상화 연구’ 보고서를 통해 “소유주택 수별 및 고가 여부에 따라 차별적으로 부과되는 간주임대소득 과세는 폐기하고 월세임대소득에 대해서는 신고의무가 수반되는 종합소득세 내 사업소득으로 과세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노영훈 선임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이는 월세 전환을 늦춰 전세가격 안정을 도모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 의원은 “전세보증금은 집주인에게는 세입자에게 빌린 ‘차입금’으로, 보증금의 용도를 모르는 상태에서 월세 상당액을 간주임대료 산정방식으로 추정과세하는 것은 빚에 과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 위원은 또 “반전세나 보증부월세 증가로 전세난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전세보증금에 대해 간주임대소득 과세하는 것은 전세공급만 줄이도록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유찬 위원장은 “부동산 임대소득 과세는 조세정의에 부합하는 것이지만, 전세보증금에 대한 과세 시기를 늦추는 데는 찬성한다”며 “이 경우 집주인이 월세로 전환하지 않고 전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커져 서민에게 도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임대시장만 보면 월세와 전세는 일종의 대체재다. 한 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커지게 된다. ‘빚 내서 집 사라’는 정책의 약효가 떨어졌다면 더 그렇다. 전세보증금 과세 방침으로 월세로 전환이 늘어났다는 게 만약 사실이라면, 진짜 원인은 집주인이 전세 대신에 분리과세 등 빠져나갈 곳이 많은 월세로 피난처를 찾은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월세 전환에 따른 서민 부담을 줄이려면 월세소득에 엄격하게 과세해 전세에 머물게 하는 게 지름길로 평가된다.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박지웅 변호사는 “부동산 임대소득은 ‘사업소득’이 아니라 ‘자산소득’으로 봐야 하며, 폭넓은 필요경비나 기본공제율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자산소득 증가율이 근로소득 증가율보다 빠르면 부의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토마 피케티의 지적을 되새겨야 한다”고 밝혔다.
세수 확충을 노리는 정부로서는 딜레마가 생길 수 있다. 전세를 월세로 많이 전환해야 월세 임대소득에 대한 세수가 늘어난다. 하지만 월세 과세 강화로 집주인의 기대수익이 줄어들면 전세에 남거나 준전세 형태로 돌아설 것이다. 특히 세금을 내지 않는 월 83만원(연간 1000만원) 이하 준전세로 유지할 가능성도 크다. 이런 현실을 보자면, 이번 과세 방침은 ‘월세 83만원까지는 세입자들이 별로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다’고 정부가 판단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세입자들이 동의해줄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맥도날드 알바만큼도 못 버는 고등학교 시간강사들 514 미디어오늘
중·고교 '알바 교사들' 7000여 명 육박… 두 시간 수업하고 하루종일 학교에 있는데 월급은 80만원
“1, 5교시 수업이 있는 날은 다른 정교사처럼 일찍 출근해서 하루 종일 학교에 있어야 한다. 비는 시간엔 수업자료를 만들고 있다. 그래도 두 시간 시급만 받는다. 주 12시간 근무라 주휴수당 혜택도 없다. 중2 영어를 가르치고 1년 계약했다. 이 학교에 나 같은 강사만 7명이다.”
“수업만 담당하면 된다고 시급만 주면서 자질구레한 업무를 많이 시킨다. 나이스(NEIS, 교육행정정보시스템)에 성적 올리거나 시험채점을 시키고 학교 행사에도 다 참여시킨다. 다른 선생님들 쓰실 수 있게 수업 자료 만들라는 지시도 받은 적 있다. 경력 인정도 안 되는 일자린데 의무만 주어진다. 사립중학교에서 한 주에 14시간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작년에 6개월씩 두 번 일했고, 올해는 1년 계약했다.”
“한 주당 15시간 이상 일해서 받는 돈은 65~80만 원이다. 정교사, 기간제와 다르게 식대가 제공되지 않아 8~10만 원 급식비를 따로 내야 한다. 1년 계약했지만 방학 땐 다른 일자리 구하지 못하고 손가락 빨고 있어야 한다. 자원봉사하러 나오는 느낌이다. 학교가 분 단위로 수업시수(수업시간)를 계산해 4대 보험, 주휴수당을 해주지 않는다.”
▲ ⓒiStock
정규직을 기간제로 대체하더니, 이젠 기간제를 시간제로 대체하나
중·고등 시간강사를 두고 ‘필요할 때 싸게 쓰는 알바교사’라는 혹평이 제기되고 있다. 6개월~1년 장기 시간강사 일자리가 늘어남에 따라 기간제 교사 자리마저 시간강사로 대체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한편 불합리한 노동조건 때문에 강사들의 불만도 점점 누적되고 있다. 시간강사들의 시급은 1만7000원부터 시작되는데 실제로 근무하는 시간 기준으로는 최저임금에 못미치는 경우도 많다.
시간강사는 교육과정 운영을 위해 필요할 경우 학교가 정교사·기간제 교사 외에 고용할 수 있는 단기 강사다. 서울 모 중학교에서 일하는 강사 A씨의 예를 들면 2016년 3월부터 2017년 2월까지 주당 14시간씩 시급 1만7000원을 받으며 중2 ‘영어 C반’(수준별 수업 중 최하반) 수업을 나가고 있다. 계약기간은 약 1년이지만 기간제교원이 아닌 강사로 계약된 상태다. 형식만 보면 할당받은 노동시간을 채우고 시급을 받는 ‘시급 아르바이트’와 같다.
2015년 4월1일 교육부 교육통계 기준에 따르면 중학교 시간강사는 4279명, 고등학교 시간강사는 2569명으로 중·고교 시간강사 규모는 약 7000여 명 규모로 추정된다. 전국 시·도 교육청의 ‘계약제교원 운영지침’을 종합한 바에 따르면 시간강사는 △‘1개월 미만’ 정규교원 결원으로 기간제 교원 임용이 불가한 경우 △교육부에서 정해진 교원 수 외 일시적으로 교사가 필요한 경우 △원어민 회화 등 특수교과목 강사가 필요한 경우에 채용된다. ‘수준별교육과정운영지원’ 확대에 따른 수준별 수업 강사 명목도 근거가 된다.
문제는 ‘일시적 필요’와 ‘수준별 강사’ 명분에 근거해 질 낮은 일자리인 시간강사 제도를 남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당수 주요교과목 강사 모집 공고가 주당 12~20시수를 명시하면서 계약 기간을 3개월~1년으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강사를 해봤거나 하고 있는 교사들은 “비용절감을 위해 기간제 자리까지 알바 강사로 대체한다”고 의심한다.
중·고교 개학 시기인 지난 2월24일부터 3월5일까지 서울시교육청 홈페이지 구인란에 한해 강사모집 공고문을 살펴본 결과, 주당 12시수 이상, 계약 기간 3개월 이상을 임용 조건으로 한 학교는 최소 137개교였다. 시수는 12시수에서 20시수, 계약 기간은 3개월에서 1년이었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등 다양한 교과에서 강사를 모집했고, 수준별 수업이 이뤄지는 영어, 수학에서 가장 활발히 이뤄졌다.
▲ 서울시 내 모 중학교 도덕 과목 시간강사 모집 공고.
강사 A씨는 “나 같은 강사가 2명인데 이렇게 뽑을 바에야 정교사나 기간제 1명을 뽑는 게 맞지 않느냐”며 “기간제는 상여금, 호봉, 각종 수당이 드니 차라리 싸게 시간강사 2명으로 쪼개서 뽑는 식”이라고 말했다. 기간제 교사는 호봉에 따른 고정급을 받고 상여금 지급 대상, 4대 보험 당연 가입자에 속한다. 시간강사는 일한 시수만큼 시급만 받는다. A씨는 현재 다니고 있는 학교가 20여 시수를 맡을 교사 자리를 12시수를 맡는 시간강사 둘로 나누어 고용한 것이라 보고 있다.
실제로 현직 교사인 B씨는 “우리 학교는 부장교사의 16시수를 보조해야 할 상황에서 정규직을 뽑지 않고 8시수 씩 나누어 시간강사 2명을 뽑았다”면서 “이 경우엔 정규교원을 뽑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교육의 돌봄 기능을 생각할 때 비정규직 교원에 자꾸 기댈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지적했다.
2시간 수업인데 온 종일 학교에, 부당한 업무 지시 감내할 수밖에 없어
강사들이 더욱 불만을 제기하는 문제는 부당한 노동조건이다. 우선 시간강사 업무는 맡은 시간에 대한 수업에만 국한돼 있는데 실상 학교에 묶이게 된다는 지적이 팽배하다. 시간강사 C씨는 “1, 5, 7교시 수업인 날은 하루 종일 학교에서 근무한다. 일주일에 두세 번 그렇게 일하지만, 시수가 작아 한 달에 쥐는 돈은 겨우 20만 원 남짓”이라고 말했다. A씨도 “수업 준비 시간, 근무 시간, 심지어 이번에 공개수업도 하게 됐는데 이런 준비를 다 따지면 최저임금이 안된다”며 “급식비, 정장, 교통비 등에 드는 돈도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수업 외 업무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사립중학교에서 일하는 강사 D씨는 “계약할 땐 수업만 얘기했는데 점점 여기저기서 다른 업무를 맡기고 (해야 한다는) 눈치를 받게 된다”면서 “시험 문제 출제, 채점, 나이스에 성적 올리기 등은 강사가 아니라 선생님 업무인데 나한테 떨어질 때가 종종 있었다. 부당하다 생각해도 솔직히 약자 입장이라 내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게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 2014년 대구지역에서 강사 일을 했던 E씨는 “교감이 시간강사도 급식지도를 하라고 해서 강사들이 못한다고 단체로 따지니깐 법 들먹이며 근무태만으로 고소할 수 있다고 협박한 적이 있다. 같은 학교 교무부장이 과학의 날 행사 때문에 과학교사들이 수업에 빠지는 것을 시간강사들에게 메꾸라고 통보했는데 수당은 지급하지 않는다고 한 적이 있다”며 “시간강사를 그때그때 자기네들 필요할 때 싸게 써먹는 학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비판했다.
시간강사를 지원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임용고시 준비생이라 이같은 상황이 더 곤혹스럽다는 지적도 있다. 준비생들은 치솟은 임용고시 경쟁률에 시험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경력을 쌓거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시간강사 일을 병행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학교에 하루종일 묶여있어야 하거나 그만큼 수입이 나오지 않아 ‘울며 겨자먹기’로 일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대구에서 시간강사를 하는 F씨는 “15시수가 되면 주휴수당, 4대 보험이 되니 14시수밖에 수업을 주지 않는다. 시간표는 배려없이 짜주기 때문에 하루종일 학교에 묶여있어야 한다”면서 “방과 후 하는 날은 마치면 5시가 된다. 다른 일을 더 구해서 하기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주휴수당 안주려 12시간 배정? “학교 측 편법 쓰지 말라”
시간강사들이 당장 요구하는 것은 ‘학교 측의 배려’다. 시간강사에게 추가업무나 정규 교원들이 기피하는 일을 시키는 것은 금지하거나 시간제 근무 특성에 맞게 수업 시간 배분을 효율적으로 해달라는 것이다. 시간강사들은 수준별 수업에서 ‘최하위반’을 도맡는 경우가 많아 수업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고 시수가 적음에도 종일 근무하거나 주 5일을 학교에 나가야 할 정도로 불합리한 시간표를 배정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강사 제도를 취지에 맞게 운용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됐다. 출장, 휴직 등 1개월 미만으로 현직 교원이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생기며, 업무가 과중한 수석교사의 수업시간 보조나 학생 수 감소에 따른 시수 축소에 따라 10시수 이하의 ‘자투리 시수’를 맡을 교사가 필요한 상황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런 최소한의 상황에서만 시간강사를 채용하고 그 외는 보다 처우가 나은 기간제 교원이나 정규 교원 확충을 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한 특성화고등학교에서 한국사 6시수를 맡은 한 시간강사 F씨는 “한문 과목의 경우 학급 수가 줄어 한문 선생님 1분 수업시수를 제외하고 6시간만 남은 경우가 있다. 이렇게 자투리 시간이 남을 경우는 시간강사가 필요하다”면서도 “교사들이 평균 16~18시간 수업하는 걸 감안할 때 14시수부터는 최소한 기간제를 고용하는 게 필요하다. 지금은 시간강사로 때우고 있는 것”이라 지적했다.
▲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시간강사의 열악한 처우를 토로하는 댓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더욱 열악한 일자리를 만드는 ‘편법’을 철저히 근절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 현직 교사는 교사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영어 수준별 수업 강사를 뽑는데 36시간을 담당할 교사로 18시간 2명을 뽑으면 되겠다 했더니 14시간 넘으면 4대 보험료가 나가서 안된다고 12시간씩 3명을 뽑아야 한다고 했다”면서 “12시간 일하고 시간당 1만7천 원씩 받으면서 학교를 거의 매일 나와야 하는데 … 무슨 굉장한 경제논리에 예산 절감이라며 자랑스러워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이런 동물적 야만이 따로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일부 학교는 교육청이 시간강사비는 지원하지만 15시간 이상 근무자에게 발생하는 주휴수당 및 4대 보험 관련 비용 지원하지 않기에 시간표를 조정해 14시간 이하 시간강사만 뽑기도 한다.
교육청, 개선대책 없고 상황 파악 못 해… 부족한 예산이 근본적 문제라는 말만
이같은 상황에 대해 교육청은 들어본 적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권동흠 서울시교육청 주무관은 10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시간강사 고용을 내걸면서 수개월 넘게 임용하는 사례는 소수일 것이다. 만약 그런 사례가 있으면 파악해보겠다”면서 “충분한 시수를 맡고 1개월 이상 근무할 시엔 강사가 아니라 기간제로 뽑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지적했다. 조찬범 경기도교육청 주무관은 “시간강사 명목으로 수개월을 뽑는 경우는 들어보지 못했다. 강사 측이나 일부의 생각일 수 있다”며 “기간제 교원은 파악하고 있지만, 강사의 경우는 개별 학교에서 일일이 몇 명인지 보고받지 않고 교육청에서도 조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취지에서 벗어난 시간강사를 활용하는 이유로 권 주무관은 “수업시수가 한 사람이 맡기에는 좀 많고 두 사람이 맡기에는 애매한 경우에 정규교원을 두 명 뽑기 힘드니 장기 시간강사를 이용한다고 들었다”면서 “교육부에서 내린 정원이 정해져 있어 우리 마음대로 신규 채용을 할 수 없다. 기간제가 있다고 해도 기간제는 정규교원을 대체하는 경우에만 임용할 수 있어 시간강사를 채용하게 되는 것”이라 말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부족한 예산이라는 지적이다. 애매한 수업시수가 노동조건의 열악함을 설명해주지 않으며 ‘정원 외 기간제 교원’의 경우 학교의 필요에 따라 충분히 채용 가능하기 때문이다. 권 주무관은 “교육부가 필요보다 적은 교사 정원을 책정한다. 정원 외 기간제 교원도 4만 명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마음대로 늘리기 힘들다”면서 “재원 문제가 가장 크다. 기간제 교원은 처우와 복지를 따지면 시간강사보다는 몇 배가 더 들어간다. 정원과 예산이 정해진 상황에서 무한정 정규직과 기간제를 늘리기 어려운 것”이라 지적했다.
총선 공약 살펴보니 유치! 조성! 건립!이 3분의 1 미디어오늘 5.11
[비평] KBS 시사기획 창, 국회의원 공약 탐사보도 눈길… 언제까지 막걸리 먹는 의원만 뽑으실 건가요?
“주말에 지역구에서 (주민들과) 막걸리를 잘 먹어주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많은 것을 함축한 한 국회의원 보좌관의 말이다. 선거 때만 되면 ‘지역 개발 공약’이 쏟아지고 당선이 되면 내세운 공약은 딴 나라 이야기다.
그럼에도 지역 주민 표심 때문에 지역구 관리가 우선순위가 될 수밖에 없으며 지역 개발 공약이 재생산되고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 챙기기 전쟁이 벌어진다. KBS 대표 시사프로그램 ‘시사기획 창’은 지난 10일 “국회의원의 약속” 편에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왜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 되는가?’
▲ KBS 시사기획 창 제작진과 전문가들이 협업해 분석한 19대 국회의원 총선 공약 키워드 맵. 지역 개발 공약에 치우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KBS 영상 갈무리)
KBS 탐사보도팀이 전문가와 협업해 19대 의원들의 공약과 20대 당선자들의 공약을 분석했다.
19대 지역구 국회의원 239명의 공약개수는 8481개(1인당 35개), 20대 지역구 당선자 251명의 공약은 8503개(1인당 34개)로 비슷한 규모였다.
19대 의원들이 많이 냈던 공약 가운데 30.6%는 ‘유치, 조성, 건립’ 등이었고 복지(27.1%), 도로‧철도 등 교통(13.4%)이 뒤를 이었다. ㅜ20대 당선자들 공약 역시 ‘유치, 조성, 건립’이 30.1%를 차지했고 이어 복지(22.6%), 교통(17.7%) 순이었다. 지역구 표심을 의식해 ‘지역 개발’에 초점을 맞춘 공약이었다.
키워드 분석 결과를 보면, 20대 총선 당선자 공약에서 ‘청년’, ‘일자리’가 부각됐지만 19대와 대동소이했다. ‘추진‧지원‧확대‧조성‧사업‧시설‧건립‧센터‧문화’ 등의 키워드는 19대와 20대 당선자 공약의 공통분모였다.
19대 지역구 의원들의 공약을 이행하려면 필요한 재원만 667조 원. 20대 총선 후보자 417명의 공약을 이행하는 데 소요되는 재원만 1017조 원으로 나타났다. 2016년 정부 예산이 387조 원이고 기초연금 등 의무지출 규모가 182조 원이라는 걸 생각하면, 실제 살림살이 규모는 205조 원에 불과하다. 남발한 공약에 비해 쪼들리는 재원은 ‘쪽지 예산’ 논란이 불거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 KBS 시사프로그램 ‘시사기획 창’ 10일자 방송. 19대 의원들과 20대 당선자들의 KTX 관련 공약을 기존 철도 노선에 덧씌운 결과다. (사진=KBS 영상 갈무리)
나라살림연구소는 19대 임기(2013~2016년) 동안 쪽지 예산 규모가 1조 6940억 원이라고 밝혔다. KBS는 일례로 89억 원을 투입한 강원도의 한 ‘숯마을 치유센터’를 방문해 멈춰진 생산 시설을 카메라로 비춘다.
“국회에서의 품위 유지” 등 의원의 의무를 공약으로 내걸거나 당선이 되기 전에 시작됐던 사업을 공약 이행했다고 평가하는 사례 등은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꼬집는다.
KBS는 늦어진 선거구 획정으로 인한 공천 지연 때문에 후보자들이 정책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현실적 한계를 짚고, 지역 개발 이슈에만 관심이 있는 유권자들의 인식 등도 도마 위에 올리며 정치 혐오로 귀결되는 보도들과 궤를 달리했다.
결국 공약(空約)을 공약(公約)으로 만들 주인공은 유권자다. 시사기획 창 제작진은 선진국 영국 정치의 모습을 전달하며 의원들이 정책으로 심판받는 과정을 보여준다.
은퇴한 건축가 로이 히스로프(71)씨는 줄곧 노동당을 지지했지만 지난해 총선에서는 보수당을 선택했다. 보수당이 내놓은 ‘연금 공약’이 노동당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인연금을 최소 2.5%를 올리되, 물가‧소득 상승률을 감안해 더 인상할 수 있다며 상황별 추가 인상 요인까지 공약에 명시한 것. 실제 히스로프씨는 올해 연금이 2.9% 오른다는 통보를 받았다.
▲ 은퇴한 건축가 로이 히스로프(71)씨는 줄곧 노동당을 지지했지만 지난해 총선에서는 보수당을 선택했다. 보수당이 내놓은 ‘연금 공약’이 노동당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KBS 영상 갈무리)
정책을 꼼꼼하게 살펴 정당을 선택하고 정당은 약속으로 보답했다. “시민단체와 정당, 정부 부처가 공약 이행도를 평가하고 공개하는 매니페스토 시스템이 진화한 결과”라는 평가다. 로저 모티모어 킹스컬리지 교수는 “매니페스토엔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재선을 원하는 정치인은 유권자가 자신을 신뢰하길 바라는 한 약속한 걸 지키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현명한 유권자가 공약(空約)을 공약(公約)으로 만든다면, 우리는 얼마나 현명한 유권자인가.
당신들 기준에 ‘불요불급 예산’은 뭡니까? 511 더스쿠퍼
나랏빚 줄이기, 그 위험한 전략
빚을 줄여 나라곳간을 튼실하게 만들겠다는 방침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무작정 지출을 줄이는 게 능사는 아니다. 불요불급不要不急 예산을 줄이고, 꼭 필요한 사업에 필요한 예산은 확보해야 한다. 나라곳간을 정비하는 작업에 ‘정치’와 ‘권력’이 개입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 정부는 지출을 줄여 재정건전성을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다.[사진=뉴시스]
나랏빚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중앙ㆍ지방 정부부채와 공공기관ㆍ공기업 부채까지 모두 합한 전체 나랏빚은 약 1284조원. 국민 1인당 2527만원(국민 5080만명 기준)의 빚을 떠안고 있는 셈이다. 이 가운데 중앙ㆍ지방 정부부채만 약 611조원(5월 3일 기준)이고, 여기에 1364억원의 빚이 매일 쌓이고 있다.
일부에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의 부채비율은 심각한 수준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OECD 국가의 평균 부채비율은 115.2%다. 반면 우리나라의 부채비율은 41.6%(정부부채만으로는 37.9%)로 OECD 평균의 절반도 채 안 된다.
하지만 총 국가부채 중 정부부채 611조원은 만기가 정해져 있어 기간 내에 현금으로 갚아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안심할 상황도 아니다. 게다가 나랏빚이 느는 속도가 무척 가파르다. 2014년 1월 기준으로 국가부채는 1초당 109만원 증가했지만, 5월 현재 기준으로는 1초당 158만원씩 증가하고 있다. 2년여만에 1초당 국가부채 증가액이 50만원가량 늘어난 셈이다. 재정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재정건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기획재정부)가 지난 4월 22일 ‘2016 국가재정전략회의’를 통해 “중장기적 재정 위험에 대비해 국가재정을 함부로 쓸 수 없도록 재정준칙을 정하는 등 선제대응 하겠다”면서 재정건전성 강화 방안들을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현재의 지출구조가 지속되면 2060년 국가채무비율은 60%대로 늘어난다”면서 “인구구조 변화, 잠재성장률 하락, 복지수요 증가 등으로 인해 국가재정도 더 이상 안심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사회보험은 현 제도 유지 시 지속 불가능하다는 인식 하에, 사회보험과 지방재정까지 포괄하는 ‘재정운용의 새 틀’을 마련하기로 했다”면서 “성장동력 확충, 일하는 복지 실천, 페이고(pay-go) 실시, 연금개혁 등으로 재정건전화와 고성장을 함께 이룬 스웨덴 사례를 벤치마킹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정운용의 새 틀’을 마련하기 위한 구체적 추진전략으로는 재정준칙과 페이고, 집행현장조사제 등을 포함하는 재정건전화 특별법 제정을 가장 맨 위에 내걸었다. 더불어 사회보험의 건전한 운영을 위한 관리 강화, 지방재정과 지방교육재정의 책임성 강화와 효율적 운영을 위한 제도 개선 등도 거론했다.
이처럼 정부가 미래에 닥칠 재정을 걱정해 이를 공론화하고, 각종 대책들을 내놨다는 점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이런 정부 정책을 두고 갑론을박이 만만치 않다. 재정건전화는 전 국민이 공감하는 사안임에 틀림없지만, 정부의 재정건전성 강화 주장은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고 있어서다.
지출만 잡으면 끝나나
정부가 재정준칙을 세우겠다는 선언을 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현 정부의 집권 초기인 2013년에도 ‘재정준칙’을 세워 불요불급 예산을 없애겠다고 했다. 하지만 재정준칙 수립 논의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그사이 정부 예산은 갈수록 늘어났다. 2016년 예산도 전년 본예산 대비 3% 늘어난 386조7000억원이다.
산업분야 예산과 사회간접자본(SOC) 분야 예산이 조금씩 내려간 걸 제외하면 모든 분야의 예산이 늘었다. [※참고 : 2007년 18조원이던 SCO 예산은 이명박 정부에서 꾸준히 증가하다가 지난해 26조원을 넘겼고, 올해 겨우 22조원대로 낮아졌다. SOC 예산이 줄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술 더 떠 지난 4월 대부분의 주요 공식석상에서 이런 말들을 내뱉었다. “내년(2017년) 예산은 신산업 지원과 일자리 창출 등에 중점을 둘 것이다. 예산 증가 규모는 내년도 경제전망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확장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재정건전성은커녕 예산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 3년 동안 줄곧 총지출 증가율은 총수입 증가율을 웃돌았다. 증가율 격차도 2013년엔 1.4%, 2014년엔 1.7%, 지난해엔 2.6%로 꾸준히 커졌다. 불요불급 예산을 줄이겠다는 생각은 접어둔 채 수년째 ‘재정준칙’의 수립만 운운하고 있다는 얘기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이상한 행보도 눈여겨봐야 한다. 새누리당은 이번 총선에서 내건 공약의 전반적인 기조는 ‘산업을 살려 일자리를 만들겠다’로 요약된다. 공약을 이행하려면 예산이 늘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총선 당시 일부 새누리당 후보들은 아예 ‘예산폭탄’을 전면에 내걸고 유세를 펼치기도 했다.
정부의 의도를 의심할 만한 이유는 또 있다.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겠다면서 공공기관과 공기업 부채 줄이기는 논의의 대상에서 빠져 있다. 물론 정부는 공공기관과 공기업 개혁을 통해 비용을 많이 줄였다는 자체 평가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전체 국가부채의 절반가량이 공공기관과 공기업 부채라는 걸 감안하면 논의 대상에선 제외하면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문제는 이런 정부가 유독 복지재정 줄이기에만 힘을 쏟고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우리나라 재정은 건전한 편으로 평가받지만, 재정 책임성이 무너지고 복지 포퓰리즘이 확산되면 순식간에 악화될 수 있다”면서 재정건전화 특별법 처리를 주문했다. 재정 책임성을 확보함과 복지재정을 줄이거나 늘리지 않겠다는 거다.
하지만 복지재정엔 쉽게 줄일 수 없는 경직성 예산이 많다. 올해 예산을 기준으로 볼 때 보건복지 분야에 편성된 예산은 약 123조원. 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지출은 공무원연금 등에 지원하는 공적연금 지출(약 32조원)이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기금에 들어가는 돈이 약 14조원이다. 주택구입자금 대출과 임대주택 건설에 들어가는 돈이 12조원, 노인연금과 노인일자리 창출에 약 9조원의 돈이 들어간다. 건강보험에 들어가는 돈도 8조원에 달한다. 123조원 중 약 75조원이 줄일 수 없는 예산인 셈이다. 또한 노인연금이나 건강보험 등은 인구 노령화로 인해 향후 지출 증가가 불가피하다.
▲ 정부가 누리과정 예산을 보육료에 포함하려 하자 지방교육청들이 반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세입 전략 없이 재정건전화 없다
결국 정부가 복지재정을 줄이려면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다. 정부가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을 보육료에 포함하지 않고, 지방교육재정교부금(정부가 지방교육청에 내려주는 예산)에 편성하도록 강제하려 해 물의를 빚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얘기하면서 세입에 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는 점도 진정성을 의심할 만한 대목이다. 사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증세 없는 복지’를 실현하겠다고 호언장담했고, 전문가들은 “수많은 복지정책들을 추진하겠다면서 증세를 하지 않겠다는 건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면서 우려를 나타냈다. 그런데 지금은 정부가 ‘복지 때문에’ 재정지출을 줄여야겠다고 말한다. ‘증세 없는 복지’가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재정건전성을 운운하면서 여전히 세입을 늘리겠다는 얘기는 하지 않고 있다.
김영란법 '3·5·10룰', 과연 혹독한가 514 머니워크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13일 입법 예고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청탁금지법)의 구체적 시행령안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처음으로 추진했던 법안인 탓에 이른바 ‘김영란법’이라고도 불리는 이 법은 앞으로 40일간의 입법예고 기간 동안 각계각층의 의견 수렴을 거쳐 최종안이 확정된다. 공식 시행일은 오는 9월28일이다.
김영란법은 당초 고위공직자에만 초점을 맞췄던 초안과 달리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정작 포함돼야 할 국회의원은 빠지고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과 배우자까지 포함되며 약 400만명으로 적용대상자가 늘었다.
이를 두고 정부·여당과 일부 언론에선 ‘내수경기 위축’, ‘인간관계 단절’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농·축산·화훼업계, 고급식당 등을 중심으로 원칙 없는 적용대상 확대와 낮은 접대비 기준을 조정할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반대론자들의 근거를 들여다보면 몇가지 허점이 보인다. 권익위 시행령안의 골자는 1인당 식사비는 3만원,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 이하로 제한한 것이다. 이에 따라 법이 시행되면 비싼 회, 한우, 레스토랑의 매출이 뚝 떨어지고 농축산업계도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게 반대론자들의 세부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김영란법 시행령안은 권익위가 김영란법의 입법취지,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 나타난 일반국민의 인식수준, 상호부조 성격의 경조문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액을 설정한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이른바 3·5·10 기준에 동의한다는 얘기다.
특히 권익위가 지난해 현대경제연구원에 의뢰해 김영란법의 경제적 효과를 연구한 내용을 보면 선물 수요는 불과 0.86%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5만원이라는 선물 기준이 결코 낮지 않다는 의미다. 실제로 백화점 사이트나 오픈마켓을 살펴보면 4만9000원대 난, 과일세트, 한우세트, 전복세트 등 고급선물세트가 수두룩하다.
청탁과 뇌물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법 때문에 내수가 위축된다는 주장 자체가 터무니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지난 11일 한 라디오 방송을 통해 “공직자들에 대한 지나친 고액 선물을 금지하고 있는 조항 때문에 우리나라 국가경제가 위축된다면 대한민국은 뇌물공화국이란 말과 다름없다”며 “금품수수나 고액 선물은 강력하게 단속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인간관계가 얼어붙을 것이라는 주장도 근거가 빈약하다. 국민적 눈높이에서 보면 권익위의 가액 기준이 결코 낮지 않은 데다 '더치페이'를 하는 게 인간관계에 부정적일 것이라는 주장은 지나친 억측이다.
한 기업 홍보팀 관계자는 “내수경기 위축이나 인간관계가 단절될 것이라는 주장은 권익위 기준치를 초과한 접대를 받았던 이들이 다급해서 하는 너무 나간 이야기”라며 “시행령안의 미비점을 보완해 부정한 청탁을 막는다는 입법 취지를 더욱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권익위 시행령 안에는 상한선만 두고 가액 기준에 대한 횟수 제한이 없다는 구멍이 있다. 이에 따라 한 가게에서 여러번 나눠서 결제하는 ‘쪼개기 결제’, 음식점이나 술집을 자주 옮겨 다니며 결제하는 ‘메뚜기 결제’ 등의 꼼수가 등장할 여지가 있다.
재계 관계자는 “김영란법이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한국사회의 관습으로 자리 잡은 접대문화가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법의 맹점을 이용한 다양한 편법이 동원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란법 시행령안’ 농업계도 정치권도 절레절레 513 농민신문
현실반영안해…농업고사위기·농정방향흔들
전문가들 “농축산물 예외 추진해야” 한목소리
정부·여당 “내수위축우려”…법률 개정 가능성
국민권익위원회가 내놓은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시행령안에 대한 후폭풍이 거세다. 가뜩이나 위축된 내수 경기가 더욱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김영란법에 손을 들어줬던 정치권에서는 부작용이 심각할 것이라며 본격 시행에 앞서 법률 자체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파장은=농업계는 시행령안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현실을 도외시한 획일적인 기준을 꼽았다. 지난해까지 “농업 현실을 고려해 시행령에 위임한 상한선을 높일 수 있다”며 농업계를 달래왔던 권익위는 막상 시행령안을 내놓고는 “특정 품목의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을 바꿨다. 권익위 잣대를 그대로 적용하면 식비는 3만원,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을 초과해서는 안된다.
5만원짜리 선물세트 구성이 불가능한 한우산업은 존립 자체를 걱정할 처지다. 과수산업 역시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시련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배는 연간 유통량의 60~70%를 명절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화훼산업도 고사위기에 처했다. 2003년 공무원 선물 한도를 3만원으로 제한한 이후 1조원에 달하던 화훼 생산액은 7000억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주로 명절 선물용으로 팔리는 전통주·한과·곶감 산업은 전망 자체가 불투명하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상한선 5만원을 맞출 수 있는 선물세트는 식용유·참치·커피·햄 같은 가공식품 정도”라며 “정부가 장려한 농가·마을 단위의 가공업은 기반이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의 농정 방향도 흔들릴 수 있다. 1·2차산업을 기반으로 한 6차산업은 물론 농산물 고품질화 전략이나 친환경농업 정책도 뒷걸음질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해왔던 한식 세계화도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 세계화의 밑바탕인 국내 소비기반이 위축될 게 뻔하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은 김영란법 시행으로 외식산업 연간 매출이 4조1500억원 감소하고, 한정식의 61.3%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정했다.
◆해법은=농축산물이 김영란법을 피하거나 충격을 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크게 4가지다.
우선 시행령안의 식비나 선물 가액 상한선을 올리는 방법이다. 몇몇 품목단체들이 바라고 있다. 권익위는 입법예고 기간에 수렴된 의견과 24일 공청회에서 제시된 견해를 토대로 최종안을 만들 방침이다. 하지만 입법예고 기간에 시행령안이 바뀐 경우가 흔치 않고, 설령 상한선이 조정되더라도 찔끔 오를 게 뻔하다.
선물 규제를 가액에서 포장단위로 바꾸자는 주장도 있다. 예를 들어 사과 10㎏짜리 1상자 정도의 선물은 가액에 관계없이 허용하되 2상자는 규제하는 식이다. ‘김영란법이 농산물 고품질화 정책과 어긋난다’는 비난을 비켜갈 수 있다. 다만 시행령에 담을 포장단위를 얼마로 할 것이냐의 문제는 결국 가액과 똑같은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나머지 2가지는 적용 대상 품목에 농축산물을 예외로 하는 방법, 그리고 대상자를 좁혀 파장을 줄이는 방법이다. 모두 모법(母法)인 김영란법을 손봐야 한다. 법조계는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자가 지나치게 포괄적이란 점을 지적한다. 김영란법은 당초 고위공직자를 겨냥해 논의되다 모든 공직자와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으로 적용 대상을 확대했다. 직접적인 당사자만 200만명이 넘고, 배우자까지 포함하면 400만명에 이른다. 이 때문에 한국기자협회를 비롯한 4개 단체가 ‘평등권을 침해한 과도한 규제’라며 각각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다.
◆정치권 입장은=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김영란법 일부 조항의 발효 시점이 늦춰질 수 있다. 농업계 입장에서는 다소 시간을 벌 수는 있지만 완벽한 대책은 되지 못한다. 따라서 모법에 농축산물을 예외로 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부와 여당은 내수 위축을 우려하며 법률 개정 가능성을 열어뒀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0일 “농수축산업계에서 상당히 우려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며 “한우농가 등이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기 때문에 보완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김광림 정책위의장도 “평소엔 몰라도 설·추석 명절에 농수축산물을 주고받는 것은 미풍양속을 지키는 차원에서 여유를 둬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감정”이라며 “지역 농·수·축협이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도 국회 차원에서 보완책을 마련해주기를 바라는 모습이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박근혜 대통령이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내수 위축을 우려한 것은 시행령 이상의 차원”이라며 “앞으로 국회가 논의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김영란법 문제는 시행령 차원이 아니라 법률 개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다.
야당은 내부 입장이 갈린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시행 이후 부작용이 드러나면 개정을 논의하는 것이 입법부의 자세”라며 ‘선(先)시행 후(後)보완’을 거론했다. 반면 같은 당 소속의 이상민 법제사법위원장은 “법의 적용 대상과 범위가 너무 넓어 위헌 소지가 있다”며 “19대 국회에서 어렵다면 20대 국회에서 개정안을 내겠다”고 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김영란법에 대해 우리 당이 주도적으로 어떤 액션은 취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선 헌재 판단을 기다려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과 40%·배 70% 명절 소비…소득 감소 1600억 달할듯
■ 과일
초미의 관심사인 김영란법 시행령 입법예고 소식에 과수농가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농업 강국과의 연이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은 더 큰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과수산업 치명타=과수농가들은 입법예고안대로 김영란법이 시행될 경우 국내 과수산업에 치명타를 안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국내 대표 과일인 사과·배 생산량의 절대량이 설·추석 등 명절 선물용으로 판매되는 현실에서 이들 품목의 소비가 꽉 막힐 경우 다른 과수에도 연쇄적으로 악영향을 미쳐 전체 과수산업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2014년을 기준으로 농협유통 하나로마트 서울 양재점에서 판매된 과일 매출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설·추석 등 명절이 낀 달의 매출이 크게 높았다. 이 기간 과일 판매실적은 평월에 견줘 각각 208%, 250% 수준으로 나타났다. 과일선물 가격대별 매출구성을 보면 3만원 이하가 18%, 3만~5만원 32%, 5만~8만원 42%, 8만원 이상 8%로, 절반 이상이 5만원 이상이었다.
농업계는 사과의 경우 연간 유통량에서 설·추석 등 명절 판매비중이 40%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배는 이보다 훨씬 비중이 높아 한해 생산량의 최대 70%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김영란법이 원안대로 시행될 경우 사과·배를 비롯한 국내 과일 수급불균형이 극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체 과일 중 최대 생산액을 기록하고 있는 사과를 예로 들면 2014년 기준 생산량은 47만5000t에 달했다. 사과 총 생산액은 9369억원으로, 이 중 19만t(3748억원)이 설과 추석 명절 때 판매되는 셈이다. 선물용 수요가 줄 경우 사과 재고량은 눈덩이처럼 늘어날 수 있다.
명절 쏠림현상이 매우 극심한 배는 사정이 더욱 좋지 않다. 2014년 기준 전체 배 생산량은 30만3000t(2618억원)으로 21만2100t(1833억원)이 명절 대목에 팔려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과수농협연합회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사과·배 소득 감소액이 최대 1583억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두 품목의 직접 피해액일 뿐 간접 피해를 받는 다른 품목까지 합할 경우 그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대부분 선물용으로 판매되는 곶감을 비롯한 임산물과 명절 전후 판매량이 급증하는 다른 과일의 피해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농촌진흥청 조사에 따르면 평상시와 비교해 여름 과일인 포도와 복숭아는 추석 판매량이 평소에 비해 각각 5.2배, 2.9배 늘었다. 겨울·봄철 과일인 감귤과 딸기는 설 대목 동안 2.5배, 2.4배 각각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곶감 주산지인 전북 완주 고산농협 김창우 산지유통센터장은 “곶감은 5만원 이하 상품이 거의 없고 기관이나 기업이 명절 선물용으로 구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명절 판매비중이 90% 이상인 실정에서 선물용 판로가 막힌다면 농가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철선 한국과수농협연합회장은 “사과·배 등을 선물하는 것을 금품수수 행위라고 규정할 경우 엄청난 소비위축으로 수급불균형이 생겨 과수 전 품목의 가격폭락이 불을 보듯 뻔하다”며 “과수농가의 심각한 생존권 위협은 물론 국내 과수산업이 붕괴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입농산물만 살릴 김영란법=과수농가들은 김영란법 시행으로 결국 수입농산물 업체만 배불리는 어리석음을 범할 것이라고 비난한다. 칠레·미국·유럽연합(EU)·중국·베트남 등과의 연이은 FTA 체결로 수입과일이 이미 국내 과수시장을 점령하다시피 한 실정에서 김영란법은 수입과일 판매에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더욱이 수입개방으로 과수 구조조정이 이뤄져 최근 몇년 동안 그나마 값이 좋았던 사과 등의 재배면적이 늘고 있는 실정에서 김영란법 시행은 국내 과수산업 전반에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 실제 2012년 이후 3만㏊ 정도를 유지하던 전국 사과 재배면적은 올해 3만2000㏊까지 늘 것으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전망했다.
배수동 농협품목별전국협의회 회장단 의장은 “포도농가의 경우 지난해 전체 재배면적의 11%가 폐업한 상황”이라며 “수입과일에 대응해 포도과원을 폐원한 상당수 농가들이 포도 대신 그나마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한 사과·복숭아 나무를 심는 경우가 많았는데, 김영란법 시행으로 사과 소비가 위축되면 그 파장은 상상 이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연순 한국과수농협연합회 상무는 “5만원 이상 국내 과일 선물세트 판매에 제동이 걸리면 선물 수요가 상대적으로 값이 낮은 수입과일로 몰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농경연 관계자는 “과수재배 농가들에게 명절은 그야말로 대목”이라며 “농촌에서 그나마 소득작목인 사과·배의 대목이 사라진다면 국내 과수산업 붕괴는 머지않아 현실화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가습기 살균제 인체 무해", 22년 전 언론 보도 보니 513미디어오늘
[기자수첩] 사상 최악의 화학 참사, 언론은 자유롭나… 생각 없이 쓴 보도자료 기사의 해악
민관합동 폐손상조사위원회는 가습기살균제 사용자 수를 80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은 살균제 정보를 어디서 얻었을까. 조금이라도 안전에 의문을 품었던 소비자라면 ‘살균제가 안전하다’는 기사를 보고 구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 대다수 언론이 가습기살균제 관련 비판보도를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2001년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살균제 출시시점 당시 보도는 어땠을지 궁금했다.
놀랍게도 기사를 찾기 힘들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뉴스 검색결과 지난 15년 간 ‘가습기당번’의 안전성을 홍보한 기사는 단 두 건에 불과했다. 경향신문은 2004년 12월1일자 기사에서 건강한 겨울나기를 위해 가습기를 추천하며 “가습기 전용 살균제를 사용하는 것도 가습기를 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한 방법이다”라며 ‘홈크리닉 가습기메이트’(애경)와 ‘가습기당번’(옥시싹싹)을 소개했다.
문화일보는 2002년 10월10일자 기사에서 “애경산업은 가습기의 세균과 곰팡이, 물때를 한꺼번에 제거 하는 ‘홈크리닉 가습기 메이트’를 출시했다”고 소개하며 “가습기 물에 섞어 사용하는 제품으로 천연 솔잎향이 첨가돼 정신적 피로 해소에도 도움 된다”, “영국에서 저독성을 인정받은 항균제를 사용, 인체에 무해하다”고 보도했다.
▲ 동아일보 1994년 12월2일 11면
언론보도를 통해 인체에 유해한 것으로 알려진 ‘가습기당번’(옥시싹싹), ‘가습기메이트’(애경), ‘와이즐렉 가습기살균제’(롯데마트), ‘홈플러스 가습기청정제’(홈플러스), ‘세퓨 가습기 살균제’(버터플라이이펙트), ‘이플러스 가습기살균제’(이마트)를 모두 검색해봤으나 관련 제품의 안전성을 강조하며 소개한 기사는 앞서 언급한 두 건이 전부였다.
포털 검색 결과 가습기살균제 관련 기사는 제품이 출시된 200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간 거의 존재하지 않다가 5년 전인 2011년 9월부터 가습기 살균제가 급성 폐질환을 일으켰다는 보도가 수없이 검색되고 있다. 10년간 가습기살균제 홍보기사가 과연 저것뿐일까. 상식적으로 대부분의 언론사가 가습기살균제 홍보기사를 온라인에서 삭제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대목이다.
▲ 경향신문 2004년 12월1일 온라인판
아마도 가습기살균제와 폐 손상이 직접적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자 언론사들이 자체적으로 과거 기사를 삭제했을 가능성이 있다. 부끄러운 과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오보가 된 기사를 삭제한다고 언론사의 잘못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15년 전 옥시싹싹 출시 당시 안전성에 의심을 품고 지속적으로 문제제기 했던 기자가 단 한명만 있었더라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16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기업 제품 홍보자료를 무비판적으로 받아쓰는 언론도 가습기살균제 참사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언론은 수백 명의 폐가 굳은 다음에서야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혹자는 기자가 검증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사건이라고 반문할지 모르겠으나 이는 참사가 반복될 수 있는 상황에서 직업적 책무를 져버린 궁색한 합리화일 수 있다.
▲ 매일경제 1994년 11월16일 11면
22년 전인 1994년, 유공이 국내 최초로 가습기용 살균제를 개발했을 때부터, 기자들이 참사를 예방할 수 있는 기회는 있었다. 매일경제는 1994년 11월16일자 기사에서 “가습기메이트란 제품으로 판매될 이 살균제의 효력은 약 15일 이상 지속되며 독성실험 결과 인체에 전혀 해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보도했다. 어디 매일경제뿐이었을까. 기자가 의심하지 않는 사회는 이렇듯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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