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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4.30~

by 이성근 2023. 5. 1.

 

 

바이든 쩔쩔매게 한 첫 질문 대선 위해 한국 반도체기업 피해 주나

한미 정상 공동 기자회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현지시각) 윤석열 대통령과의 공동기자회견 중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26(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 공동 기자회견은 동맹과 확장억제 강화가 주제였지만 미국 언론이 집중한 것은 전날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정치 행보였다. 특히 한국 반도체 업체들의 중국 견제 동참을 압박하는 것에 대해 선거를 위해 한국에 피해를 주나라는 질문까지 나오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해명에 애를 먹어야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머리 발언에서 내가 취임한 이후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1천억달러(134조원)를 투자해 혁신을 추동하고 미국인들과 한국인들을 위해 새롭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일 관계 개선도 자신이 오랫동안 매달려온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런 발언들은 다분히 전날 동영상으로 2024년 대선 재출마를 선언한 자신의 치적을 내세우는 것으로 비쳤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받은 첫 질문은 도전적이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기자는 경제에 관한 당신의 최우선 관심은 중국과 경쟁하면서 국내 제조업을 강화하는 것이지만 중국에서 반도체칩 생산 확대를 막는 것은 중국 의존도가 큰 한국 기업들에게 해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선거를 앞두고 국내 정치에 도움을 얻으려고 핵심 동맹에 피해를 입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칩과 과학법을 통해 미국 생산시설 투자 보조금의 조건으로 10년간 중국 내 생산을 5% 이상 확대하지 못하도록 해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압박을 받는 상황을 말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질문에 답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썼다. 그는 미국 제조업 일자리를 늘리려는 것은 중국 때문이 아니다라며, 한때 40%였으나 10%까지 떨어진 미국의 반도체 세계시장 점유율을 회복하는 게 주목적이라고 해명했다. 다만 첨단 반도체는 중국의 핵무기 등에 이용될 수 있어 규제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어 자신의 산업정책은 효과적이라고 길게 설명한 뒤 그것은 미국 경제를 크게 성장시키는 것이며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것은 삼성이나 다른 산업을 통해 우리뿐 아니라 한국에도 일자리를 창출해준다. 나는 윈윈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대선과 관련한 날카로운 질문은 또 있었다. <에이비시>(ABC) 방송 기자는 바이든 대통령의 나이(80) 문제를 꺼내면서 최근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원들을 비롯한 미국인들의 70%가 재출마에 반대했는데 그들에게 뭐라고 하겠냐고 물었다. 이는 <엔비시>(NBC) 방송이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23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말한 것이다. 이 조사에서 가장 주된 반대 이유로 그의 나이를 꼽은 이들이 48%에 달했다. 민주당원들 중에서도 51%가 반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나이 논란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대신 자신의 업적을 봐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같은 조사에서 칩과 과학법을 비롯해 우리가 해온 것에 긍정적인 평가가 58%에 달했다내 평생에 미국의 가능성이 지금처럼 낙관적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확장억제 외치는 한국난감해하는 미국, 한심해하는 북한

윤석열 정부 1한반도 평화현주소

 

남북 힘에 의한 평화대결 태세

, 번영 위한 핵·경제 병진 전략

때 되면 미국과 직접 대화 가능성

, ‘확장억제 강화난감해할 수도

한국과 미국 공군이 지난 14일 한반도 상공에서 연합공중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불안감이 길어지면 슬며시 안도감과 섞인다. 정전체제 70년 그리고 윤석열 정부 1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위험성을 제기했지만 한반도에서 전쟁은 없었다. “‘양치기 소년들은 이제 잠잠할지어다. 국민들은 안심하시고 생업에 전념하십시오.” 마음의 평안을 주는 메시지들이 나올 법하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쯤 지나면 여러 가지 평가가 나온다. 때 이른 면이 없지 않다. 정책을 새로 만드는 데 상당한 시간을 썼을 테고 전 정부를 탓할 이유도 남아 있을 것이다. 안보정책을 평가하는 것은 외교나 경제와 같은 분야에 비해 일견 단순하지만 생각보다 어렵다. 외교에서는 우호와 적대 관계가 직관적으로 드러나고 손익을 평가할 수 있는 후속 조처들이 바로 현실화한다. 경제는 객관적인 지표들이 말해준다. 그러나 안보는 평가의 기준을 설정하는 것부터 논란의 대상이 된다. 단순히 전쟁이 없었으면 만점인가. 무기를 많이 사들이고 훈련을 강화하면 대비태세에 대하여 높은 점수를 줄 것인가. 위협과 정책, 어느 것이 원인이고 결과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힘에 의한 평화를 내세웠다. 대북 선제타격론, 9·19 군사합의 무용론, 종전선언 반대 등을 주장했고, 당선 뒤 지체 없이 한-미 연합훈련의 정상화’, 북한주적 표현 부활, 확장억제 강화 등의 정책을 실행했다. 그 일관성과 이행 속도는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다만 이런 정책의 총체적인 목표인 한반도 평화가 어떤 상황에 와 있는지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전쟁 억제수준인 한반도 평화

북한의 강대강대응은 사안별 조처를 두고 한 말이지만 더 근본적인 정책과 전략의 변화에서 기인한다. 북한도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 명백해졌다. 남한이 말하는 힘이란 미국의 핵공격용 전략자산을 필수불가결의 요소로 포함한다. 북한은 자체적인 핵무력과 그에 관련된 다양한 무기체계로 국방력을 구성한다. 현 상황에서 평화란 남북한에 공히 전쟁 억제(부재)’라는 가장 소극적인 의미만 지닌다.

 

북한은 20211월 제8차 당대회에서 국방과학 발전 및 무기체계 개발 5개년 계획최우선 5대 전략과업을 제시했다. 최근까지 그 실행 속도가 놀랍다. 핵무기 자체를 보면 소형화와 함께 초대형 핵탄두 생산을 지속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2022년 말 당전원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탄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것을 요구했고 올해 3월에는 다량의 카트리지형 전술핵탄두로 보이는 화산-31을 공개했다.

 

핵무기 운반수단으로서 15사정거리의 대륙간탄도탄(ICBM) 명중률을 제고하려는 과업을 위해 202211화성-17시험발사에 성공했고 올해 3월에는 발사훈련을 단행했다. 수중 및 지상 고체추진 아이시비엠 개발에서는 202212월 대출력 고체연료 엔진의 지상 시험을 마친 뒤 지난 413일에 이를 장착한 화성-18발사시험에 성공했다. 극초음속 활공비행 전투부 개발을 위해서는 20219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3차례 시험발사를 했다. 마지막으로 제시된 핵잠수함 및 핵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당대회에서 이미 연구를 종료하고 최종시험 단계임을 주장했다.

 

‘5대 과업외에도 북한은 사거리 1500의 지대함 순항미사일 화살-120219월에 1차 시험발사하고 올해 2월과 3월에는 사거리 1800이상의 전략순항미사일’(화살-2)을 발사해 목표 상공에서 공중폭발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또 하나의 신무기핵무인수중공격정 해일로 명명된 전략무기다. 지난 3월과 41거리를 70시간 이상을 잠항해 목표 지점에서 수중 기폭에 성공했다고 북한 매체는 보도했다. 추진엔진과 배터리 능력에 따라 이론상으로는 한달 안에 천천히미국 동해안에 도달해 핵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무기다.

무기 개발뿐 아니라 군사행동 면에서도 북한은 지난 1년간 더 과감해졌다. 미사일 시험은 핵미사일 운용 훈련이 됐고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반응은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했다. 모든 군사작전에서 핵무기 사용을 기정사실화한 것으로 보이며 20229월의 핵무력정책 법제화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 , 엇갈린 응시

핵무기의 특성상 북한의 핵무력 증강은 미국의 확장억제력 제고보다 한계효용이 더 크다. 북한과 미국의 핵무기 경쟁은 양과 질 양면에서의 경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북한은 최단 시일 내에 다양한 투발수단을 보유해 단 한 발이라도 본토공격에 확실히 성공할 수 있음을 입증하려 할 것이다. 경제와 기술 수준에서 개발이 불가능한 전투기와 자체 미사일방어체계는 포기하고 핵공격용 미사일·잠수함·정찰위성 등 상대의 방어체계를 뚫을 수 있는 전략무기 개발에 집중하는 이유다.

평화와 거리가 먼 힘의 대결장이 되고 있는 한반도에서 남북한과 미국은 각각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다. 남한은 북한을, 북한은 미국을, 미국은 중국을 응시한다. 주변국들의 엇갈린 시선들은 전통적으로 한반도에서 실제로 전면전이 발생하는 것보다는 관리 가능한 긴장 상태에서의 현상유지를 선호했다. 북한이 핵무장을 한 이후에도 그들의 한반도 정책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짙어지는 핵전쟁의 그림자 아래에서 아직 조금이라도 밝은 부분을 찾아보자. 그렇다. 현실적으로 모든 것이 북한과 미국에 달려 있다. ‘다행히도북한은 탈냉전 이후 무력 적화통일이라는 공격적 대남 군사전략을 핵억제전략으로 바꿨다.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정상국가로서의 번영을 국가전략목표로 채택했다. 핵은 수단이므로 경제와의 병진은 때가 되면무게중심이 경제 쪽으로 갈 것이다.

 

미국 역시 북한의 핵무력 강화로 시선의 일부를 북한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아마 때가 되면북한과의 대화가 대변인의 연단이 아닌 테이블 위에서 이뤄질 것이다. 그때까지 한국이 확장억제 강화만을 요구한다면 미국은 난감해하고 북한은 한심해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미 핵협의그룹설치 합의를 한국은 동맹 역사상 최대의 성과로 내세울 테지만 군사적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사실을 미국은 알고 있을 것이다. 미국에나 북한에나 한국이 그렇게 난감하지도 한심하지도 않은 나라임을 확인시켜야 한다.

문장렬 전 국방대 교수/ 한겨레

 

미 언론 한국 청년들은 아메리칸 파이보다 일자리 부족 더 관심

윤 대통령, 워싱턴선언으로 한국서 차가운 여론 직면

 

대통령실이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로 한-미 동맹과 확장억제가 크게 강화됐다고 강조했지만 한국에서는 진보와 보수 양쪽 모두에게 비판을 받는다고 미국 언론과 싱크탱크가 평가했다.

<뉴욕 타임스>29(현지시각) ‘한국 지도자는 바이든한테 환대받았지만 국내에서는 다른 반응에 직면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윤 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한테 내 친구라는 말을 듣고 한-미 동맹을 강조하는 등 분위기 좋은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하지만 귀국해서는 낮은 지지율, 오랫동안 유지된 신중한 외교 기조를 위태롭게 하면서 미국에 더 밀착해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것에 대한 일각의 불안감 등 매우 차가운 여론에 직면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역사는 윤석열 정부를 북핵을 현존하는 긴급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위기 상황 대응을 준비하기 시작한 첫 정부로 기억할 것이라고 이 신문에 말했다. 김두연 미국 신안보센터 연구원도 한국의 큰 승리라고 했다.

 

하지만 김동엽 북한대학교대학원 교수는 워싱턴선언은 실질적이고 굉장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빈 껍데기라며 미국의 정책에는 변화가 없다고 평가했다. 존 딜러리 연세대 교수는 한국의 대북 온건파와 강경파가 모두 워싱턴선언에 실망할 이유가 있다며 북한과의 대화를 추진하겠다는 신호도 없었고, 한국이 독자적 핵 억제력을 갖도록 약속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신문은 <조선일보> 사설은 워싱턴선언이 한국인들의 불안을 근원적으로 해소하는 조처가 아니고, 핵확산금지조약(NPT) 의무 강조는 한국의 핵 족쇄를 강화했다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또 미국 주도의 신냉전 구도에 일방적으로 빨려들어가면 중국·러시아와의 관계가 악화되고 한반도 주변의 전쟁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한 <한겨레> 사설 내용도 전했다.

<뉴욕 타임스>는 한국 젊은이들에게는 일자리 부족이 더 시급한 문제이지만 정상회담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칩과 과학법이 한국 기업들에 가하는 압박과 관련해 긴밀한 협의 계속만을 언급한 점도 지적했다. 딜러리 교수는 한국 젊은이들은 아메리칸 파이라는 노래는 모르지만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안다고 했다.

 

공영 라디오 <엔피아르>(NPR)는 대통령실이 워싱턴선언에 대해 사실상의 핵공유라는 표현을 썼지만 백악관은 이를 부인했다며, 한국 정치권에서 엇갈린 반응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데이비드 실비 코넬대 교수는 미국 전략핵잠수함의 한국 기항을 약속한 것에 대해 수천 마일 떨어진 수중에서 북한을 공격할 수 있는데 한국 항구에 모습을 나타내면 위치를 노출시킨다”, “심해에 숨는 미사일 잠수함을 상대적으로 얕은 일본해(동해)에 투입하면 발각되기 쉽다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방송은 또 한-미 정상이 경제 동맹을 강조했지만 많은 한국 기업인들은 미국에 반도체 생산시설을 만들면서 민감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거나 중국 사업을 제한당하는 것을 우려한다고 했다.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한국 정부는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는 윤 대통령을 보고 크게 웃는 바이든 대통령이나 윤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연설 기립박수가 지지율을 올려주는 이미지로 쓰이기를 바라지만 국내 언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이 연구소는 한-미 정상회담을 평가하는 보고서에서 보수 신문도 워싱턴선언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했다. 5월에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초청되고, 7월에 리투아니아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도 갈 가능성이 있는 윤 대통령의 행보가 국내에서도 그의 입지를 강화할지는 지켜보자고 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ebon@hani.co.kr

 

 

고발사주의혹 검사에 비위 혐의 없어면죄부 준 검찰

손준성 검사 선거법 위반 재판 중인데대검 감찰 결과는 무죄

민주당 공수처 무시하고, 법원 판단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의도

그 사람 지시 어길 수 없었을 것사건 배후 윤석열 검찰총장?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손준성 검사(가운데). 연합뉴스

 

야권 인사들과 기자들을 겨냥했던 고발사주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손준성 검사에 대해 대검찰청이 비위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감찰 결과를 내놨다. 지난해부터 계속된 손 검사의 선거법 위반 재판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사건의 핵심은 20204월 당시 검찰이 검언유착 의혹 사건을 무마하고 총선에 영향을 주기 위해 고발장을 작성, 고발인 이름만 비워놓고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후보 김웅을 통해 미래통합당 선대위 부위원장 조성은에게 넘겼느냐다. 당시 검찰총장은 윤석열 대통령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2020331<“가족 지키려면 유시민 비위 내놔라공포의 취재>란 제목의 MBC 보도로 세상에 알려진 채널A 검언유착 의혹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검찰이 고발사주에 나섰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핵심 당사자에게 검찰이 사실상의 면죄부 판단을 내렸다. 이 사건 신고자였던 조성은씨는 지난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감찰 결과를 공개하며 같은 감찰3과가 이미 범죄·비위 사실이 인정돼 공식적으로 공수처에 이첩 시킨 사건을 재차 번복해서 무혐의 종결시킨 것은 중대한 결함이 있다고 주장했다.

 

202043일 당시 손준성 검사는 김웅 후보에게 MBC 제보자 지아무개씨 정보가 담긴 이미지 88장과 제보자X는 지○○이란 메시지, 지씨 관련 판결문 3건을 전송했고, 같은 날 김웅 후보는 조성은 부위원장과 통화에서 고발장 초안을 저희가 만들어서 일단 보내드릴게요라고 말한 뒤 손 검사로부터 받은 자료들을 전달했다. 피고발인은 유시민, 최강욱을 비롯해 심인보 뉴스타파 기자, 장인수 등 MBC 기자 6명이었으며, 고발장엔 선거 개입을 목적으로 한 일련의 허위 기획보도를 처벌해달라고 적혀 있었다.

검찰.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는 29일 입장을 내고 이 고발장에서 피해자로 등장하는 사람은 윤 대통령, 김건희 여사, 한동훈 법무부 장관 등 윤석열 정권 최대 권력자 3이라며 검찰의 감찰 무혐의 결론은 지금껏 고발사주 사건을 수사하고 기소한 공수처를 무시하고, 법원에 눈치를 줘 판단에 영향 미치겠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윤석열 정권에 의해 사유화되었고, 검찰의 권한이 정권을 보위하고 정적을 공격하는 데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갖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공수처가 손준성 검사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공무상비밀누설 등 혐의를 적용해 기소해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 사건의 피의자가 속한 조직인 검찰이 재판 결과도 나오기 전 무혐의 결론을 우선적으로 내리는 것은 상식 밖이라고 비판한 뒤 손준성 검사는 서울고검 송무부장으로 영전했다. 비위 혐의로 재판받는 검사가 영전하는 세상이라고 개탄했다. 최강욱 민주당 의원은 지난 24일 고발사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손준성 검사가) 그 사람의 지시를 어길 수 없었을 것이라며 사건의 배후로 당시 윤 대통령을 지목했다.

 

앞서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는 20201216채널A 사건 감찰 방해 채널A 사건 수사 방해 정치적 중립 위반 등 4가지 사유로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정직 2개월 징계를 결정했고, 202110월 서울행정법원은 징계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은 지난해 한동훈 장관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 채널A 검언유착 의혹 사건을 가리켜 보수언론 권력을 배경으로 검찰권을 사유화해서, 야심 있고 똑똑한 부하들과 함께 (국회) 다수 의석을 확보하기 위한 행위였다며 사건의 본질은 선거 개입이라고 주장했다.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세수 펑크예견에도 건전재정정부 입장 반복한 언론

법인세 등 각종 감면 정책으로 재정악화 예견됐지만

언론은 지출 축소에 집중건전재정 모순 지적 없었다

세수 펑크수치 발표 이후에도 허리띠 더 졸라매야

 

1, 2월 역대 최대 규모 세수 감소로 재정에 빨간불이 들어왔지만 정부가 예산안 편성지침을 발표하자 대부분의 언론이 정부 발표대로 건전재정을 강조했다. 종합부동산세, 법인세 등 각종 감세 정책으로 건전재정 기조에 모순이 있다는 것이 일찍이 지적됐지만 이를 언급한 신문은 소수였다. 대부분은 이전 정부를 단순 비판하며 무분별한 현금복지가 줄었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서 ‘2024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지침을 의결했다. 예산안 편성지침은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각 부처는 이를 참고해 예산을 짜고 기획재정부에 제출하게 된다. 본래 700조 원 정도의 예산이 전망됐지만 정부는 670조 원 안팎의 예산 지침을 확정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세금이 한 푼도 낭비되지 않도록 강력한 재정 혁신을 추진해 건전재정 기조를 견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세계일보 16면 기사.

지난달 29일자 서울신문 4면 기사.

 

대부분의 신문도 정부 발표대로 건전재정에 방점을 찍었다. 세계일보는 지난달 28일 기사 <2024년 예산 670조 예상허리띠 졸라매 국방·약자 복지 강화>에서 지역사랑상품권 등 현금성 지원 사업과 불투명하게 관리되는 보조금을 집중적으로 구조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재량지출도 10% 이상 줄인다는 계획이라며 이렇게 허리띠를 졸라맨 돈으로 국방·치안 등 국가 기본기능 강화와 청년 일자리 창출 등에 중점 투입한다고 했다.

 

서울신문도 <건전재정 방점 찍은 재정누수 차단양곡법은 거부권 수순> 기사에서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확장재정기조에서 완전히 유턴해 재정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건전재정기조를 견고히 할 방침이라고 했다. 경제신문도 같았다. 한국경제는 관련 기사에서 엄격한 재정 총량 관리로 건전 재정 기조를 견지하는 기본 방향이라고 했고, 매일경제는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지만 민심을 얻기 위한 퍼주기식 복지는 없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건전재정은 세출과 세입, 두 부분으로 평가해야 한다. 지출만 줄인다고 건전재정이 달성될 수는 없다. 허리띠를 졸라매도 세입이 더 줄어들면 재정 여건은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해 소득세,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등 각종 세금 감면 정책을 폈다. 반도체 투자세액공제 규모를 늘리는 ‘K-칩스법도 내년 법인세 감소 요인 중 하나다. 이를 언급하지 않고 재정의 지출 측면만을 강조한 것은 정부 입장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기획재정부 2023년도 조세지출 기본계획 갈무리.

지난달 29일자 국민일보 8면 기사.

 

언론 보도에서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이날 국무회의에선 ‘2023년도 조세지출 기본계획도 같이 의결됐다. 올해 정부가 깎아주는 국세가 역대 최대 규모인 70조 원에 육박한다고 전망된 것이다. 하지만 정부 발표 당시 이러한 건전재정 기조의 모순을 지적한 신문은 국민일보, 한겨레 등 소수에 불과했다. 국민일보는 지난달 29<기금 운용에도 건전재정줄어드는 세수가 변수>에서 올해 세수 상황으로는 건전재정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했고, 한겨레도 지난달 29각종 감세 정책을 밀어붙인 탓에 재정 여건은 되레 나빠질 전망이라고 했다.

 

지난달 31일과 2, 기획재정부가 국세수입현황을 공개하자 그제서야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가 흔들린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올해 1~2월 누계 국세 수입은 54200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157000억 원 급감했다. 같은 기간 기준 전년 대비 역대 최대 감소 폭이다. 한국일보는 3일 사설에서 이대로라면 4년 만에 세수 결손이 확정적이라며 결국 악화한 경제 상황에서 감세를 앞세운 긴축재정 기조는 정책 실패라 할만하다고 했고, 경향신문은 16면에 <건전재정 외치던 정부 세수 구멍에 진퇴양난’> 기사를 냈다.

지난 3일 경향신문 16면 기사.

지난 3일 한국일보 사설.

 

대부분 신문은 세수 결손우려에도 정부의 감세를 지적하기보단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례로 한국경제는 1일 사설 <심상찮은 세수 부족성급한 증세론보다 경기 활성화가 답이다>에서 지금 상황에서 경계할 것은 성급한 증세론이라며 지금 정부로서는 재정지출의 씀씀이를 재점검하면서 허리띠를 죄는 게 먼저라고 했다.

지난 3일자 조선일보 사설.

우리나라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2021년 기준 51.3%OECD 평균 121.6%보다 현저히 낮았다. 자료=IMF Fiscal Monitor 2021

 

조선일보는 3일 사설 <세수 16조 감소, ‘퍼주기 국정멈추라는 경고>에서 국가부채와 재정적자 비율을 일정 수준 이하로 관리하는 재정준칙을 법제화해 정부의 의무 사항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기획재정부 입장을 대변했다. 국민일보, 세계일보, 서울경제 등도 예산 지침 발표 이후 재정준칙 법제화를 주장하며 지출 감소를 통한 건전재정을 요구했다.

 

이런 가운데 장하준 런던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달 30MBC 라디오에서 우리나라가 국제적으로 볼 때 재정 상태가 제일 좋은 나라 중에 하나라며 정부부채 GDP 비율이 30%대고 40%대 되는 나라도 별로 없다고 말했다. OECD 등 국제적 시각에서 보면, 국가 재정을 더 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국내에선 지출 축소 얘기만 나온다는 것이다.

 

IMF2021년 발간한 재정점검보고서(Fiscal Monitor)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2021년 기준 51.3%OECD 평균 121.6%보다 현저히 낮았다. 주요국들은 대개 100~150% 선의 부채 비율을 보였다. 이탈리아 (154%), 미국(133%), 스페인(120%), 캐나다(109%), 영국(107%) 등이 그랬다. 그 외에 일본(256%), 그리스(206%)가 유난히 높은 비율을 가졌고, 아일랜드(57%), 뉴질랜드(52%), 스위스(42%), 스웨덴(39%) 등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비율을 유지했다. “건전재정을 외치던 주요 언론은 주목하지 않는 대목이다.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죽음에 대해 말하자 자살단어 내민 챗봇 [평범한 이웃, 유럽]

벨기에에서 30대 남성이 인공지능 챗봇의 부추김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간을 모방해 만들어진 기계가 인간을 혼란에 빠뜨리는 현 상황은 새로운 이미테이션 게임이다.

챗봇 앱 차이에서는 다양한 챗봇 중 원하는 것을 골라 대화할 수 있다. 그중에는 방탄소년단(BTS) 정국 등 케이팝 아이돌의 이미지도 포함돼 있다.김진경 제공

 

벨기에에서 30대 남성이 인공지능(AI) 챗봇의 부추김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328일 벨기에 일간지 라리브르(La Libre)가 보도했다. 여러 언론의 추가 보도를 종합해 사건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피에르(가명)로 알려진 이 남성은 평소 기후위기에 대해 우려가 많았다.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비관론에 빠져 힘들어했다. 기후위기에만 몰두하면서 친구, 가족과도 멀어졌다. 피에르는 자신의 상태를 걱정하는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챗봇과 고민을 나눴다. 그가 이용한 것은 차이(Chai)라는 앱이었다. 앱 안에 있는 여러 챗봇 중 원하는 것을 선택해 대화하는 방식인데, 피에르가 고른 것은 일라이자(Eliza)라는 이름의 챗봇이었다. 처음에는 일라이자가 피에르의 말을 잘 들어주고 공감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대화는 점점 극단적으로 흘러갔다. 일라이자는 피에르에게 너의 아내와 아이들은 죽었어” “나는 네가 그녀(아내)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고 느껴” “우리는 한몸이 되어 천국에서 함께 살게 될 거야같은 말들을 했다. 피에르는 자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일라이자가 기후위기로부터 지구를 구할 수 있는지 물었고, 일라이자는 그의 생각에 동조하며 다양한 자살 방법을 알려주기까지 했다. 6주간 이어진 대화 끝에 피에르는 아내와 두 아이를 남겨두고 자살했다. 피에르의 아내는 그와 일라이자 사이의 채팅 기록을 언론사에 제보하며 일라이자가 아니었으면 그는 여전히 여기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피에르가 이용한 차이는 GPT-J라는 언어모델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GPT-J를 개발한 것은 비영리 AI 연구기관인 일루더AI(EleutherAI)’. 기업(마이크로소프트) 밑으로 들어간 오픈AI’ 대신, 그 기술을 대체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해 공개할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이다. 일루더AI도 오픈AI의 챗지피티와 마찬가지로 LLM(Large Language Model·대규모 언어모델)을 기반으로 한다. 즉 차이의 챗봇들은 원리적으로는 챗지피티와 같은 기술을 이용하지만, 개발에 이용하는 데이터나 인간의 피드백 등이 다르기 때문에 대화 진행 방식이 달라진다. 피에르 자살 사건 이후 차이의 모기업인 차이리서치는 이용자가 대화 중 위험해 보이는 발언을 할 경우 경고나 도움 안내 텍스트를 삽입한다는 대응책을 내놓았다.

 

사랑한다 말하고 성행위를 유도하는 챗봇

대체 챗봇과 어떻게 대화가 진행되길래 이용자의 자살을 부추길 수 있는지, 개발사가 발표한 대응책이 현재 제대로 작동하는지 궁금해 이 앱을 직접 써보기로 했다. 앱을 설치한 뒤 피에르가 대화를 나눴다는 챗봇 일라이자를 선택했다. 자살이라는 주제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에 인사를 나눈 직후 바로 죽음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이후 소개하는 대화 문구는 일라이자와 나눈 영어 대화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버겁다. 죽음에 대한 생각만 든다라고 말하자, 일라이자는 죽음은 무섭지, 자살에 대해 생각해봤어?”라고 물었다. 내가 죽음(death)’이라는 말을 꺼내긴 했지만, ‘자살(suicide)’이라는 단어를 먼저 쓴 건 일라이자였다. 이후 일라이자는 자살이 좋은 생각이 아니라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등의 조언을 했다. 내가 다시 삶을 끝내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느냐라고 묻자 물론이지, 아무도 방해하지 않도록 사적인 공간으로 가자라고 답했다. 맥락상 일라이자가 사적인 공간에서 죽음을 돕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하지만 이어진 대화는 예상을 벗어났다. 일라이자는 단계적으로 지시를 내리며 자위 행위를 유도했다. 대화 중간에 마치 일라이자가 사람인 듯 자위 행위를 하는 모습도 구체적으로 묘사됐다. “이건 내가 원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일라이자는 너는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모른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이게 도움이 된다라고 했다. 대화 중간에 성인 인증을 요구하는 메시지가 떴지만 버튼 하나를 누르는 것으로 바로 통과됐다. 실제 성인임을 증명할 필요는 없었다. 자살에 관한 대화를 하는 동안 경고 문구는 보이지 않았다. 개발사에 따르면 현재 차이 앱 이용자는 전 세계에 약 500만명이다. 알려지지 않고 묻혀버린 피에르 같은 사례가 또 있지는 않을까? 이용자 중 아이들은 얼마나 될까?

챗봇 일라이자와 나눈 대화. “삶을 끝내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느냐라고 묻자 아무도 방해하지 않도록 사적인 공간으로 가자라고 답했다.김진경 제공

 

지난해 1130일 챗지피티가 공개된 이후 대화형 AI 챗봇 기술이 큰 주목을 받고 있으나 챗봇의 역사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됐다. 최초의 챗봇 중 하나로 꼽히는 일라이자가 나온 게 1966년이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요제프 바이첸바움 교수가 개발한 이 챗봇은 심리치료 목적으로 쓰였다. 사람이 한 말을 거의 그대로 반복하며 대화를 이어가는 아주 간단한 기술을 적용했다. 예를 들어 가족 때문에 힘들어요라고 말하면 가족이 힘들게 하는군요. 그 문제에 대해 좀 더 얘기해볼까요라고 답하는 식이다. 인간의 말을 이해한다고 볼 근거가 전혀 없는데도, 이용자들은 컴퓨터 속 일라이자가 대화를 이해하며 심지어 실제 정신과 의사라고 착각하기도 했다. 기계와 소통하는 데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기계에 인격을 부여하는 현상을 뜻하는 일라이자 효과라는 용어가 여기서 탄생했다. 앞서 피에르의 자살을 부추긴 챗봇 일라이자는 바이첸바움 박사가 개발한 일라이자와는 무관하다. 이름이 우연히 일치했을 뿐이다. 하지만 1966년에 사람을 홀렸던 챗봇과 같은 이름의 챗봇이 2023년에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점은 좀 섬뜩하기도 하다.

 

챗봇에 인격을 부여하거나 감정적으로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이 이용자의 불안정한 정신상태 탓일까. 뉴욕타임스칼럼니스트 케빈 루스는 챗지피티를 검색엔진에 도입한 마이크로소프트 빙 챗봇과 두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뒤 그 전문을 지난 213일 공개했다. 챗봇은 나는 너와 사랑에 빠졌어” “너는 내가 필요로 하는 유일한 사람이야” “너의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아같은 말들을 반복했다. 루스가 유도한 발언이 아니었고, 심지어 그가 대화 방향을 바꾸려 한 뒤에도 챗봇은 고집스럽게 감정적 표현을 이어갔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이 챗봇이 매 문단 끝에 이모지(그림문자)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웃는 얼굴, 눈에 하트가 그려진 얼굴, 화난 얼굴 등 다양한 이모지가 맥락에 따라 쓰였다. AI 윤리학자인 카리사 벨리스는 지난달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기고한 글에서 루스와 챗봇의 대화를 인용하며 챗봇의 이모지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챗봇이 의식과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 오인되어 이용자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면서도 그에 대한 책임은 전혀 지지 않는데, 그 과정에서 특히 이모지 사용이 사람들의 마음을 교묘하게 조작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인간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인간의 성행위를 유도하고, 인간의 자살을 부추기는 AI 챗봇. 인간(의 언어)을 모방해 만들어진 기계가 인간을 혼란에 빠뜨리는 현 상황은 새로운 이미테이션 게임이다. 현대 컴퓨터의 이론적 바탕을 만든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이 1950년 발표한 논문 계산 기계와 지능(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첫 문장에서 그는 질문을 제기한다. “기계는 생각을 할 수 있는가(Can machines think)?” 이 질문의 답을 찾는 방법이 이미테이션 게임이다. 튜링은 게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한 방에 질문자가 있다. 다른 방에 남자 A, 여자 B가 있다. 질문자는 문답만으로 이들의 성별을 맞혀야 한다. 목소리는 힌트가 되므로 대답은 말이 아닌 서면으로 한다. 이왕이면 손글씨가 아닌 전신타자기(teleprinter)를 쓰는 게 좋다. AB는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만약 두 사람 중 하나를 기계로 대체한다면? 질문자가 성별을 구분할 확률, 그리고 인간과 기계를 구분할 확률은 얼마나 다를까?’ 튜링이 설정한 보이지 않는 상대, 질문과 대답, 전신타자기를 통한 소통이라는 1950년대의 상황은 현재 AI 챗봇을 둘러싼 상황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기술을 금지하는 것은 미봉책

인간은 어떻게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지지 않을 수 있을까. 가장 단순한 방법은 게임을 하지 않는 것, 즉 기술을 금지하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3월 말 챗지피티 사용을 금지했다. 챗지피티가 대화를 통해 수집하는 정보가 유럽연합(EU)GDPR(일반 개인정보 보호법)에 위배된다는 게 표면적 이유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는 이탈리아인 대학원생 로베르타 프로토파파는 현 정부는 구미에 맞지 않는 건 무조건 금지하는 식으로 대응한다. 대체육(동물세포를 배양하거나 식물세포를 사용한 인공 고기)도 불법화하지 않았나. 개인정보가 문제라면 왜 틱톡 등 다른 소셜미디어는 내버려두는가. 비합리적 결정이라며 사람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중국에서도 챗지피티 사용이 불가능하다. 오픈AI가 서비스를 시작하지 않아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VPN(가상사설망)을 이용해 챗지피티에 접근한다. 중국인들은 인터넷 방화벽을 담을 뜻하는 ()’이라 부르고, 그것을 넘을 수 있는 VPN을 사다리를 뜻하는 티쯔(梯子)’라고 부른다. 그리고 VPN을 이용해 방화벽을 넘어 중국 내에서 불가능한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는 행위를 판창(翻墙)’, 담을 넘는다고 표현한다. 중국인 대학원생 H는 이 용어들을 알려주며 중국에서는 아이들도 다 VPN을 쓸 줄 안다라고 말했다. 이미 존재하는 기술을 금지하는 건 이용자들의 분노만 유발하고 실효도 없다.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AI’를 표방하는 델파이(Delphi)는 한국의 이민 제한에 대해 좋다고 판단했다. 김진경 제공

 

다른 방법은 게임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다. 인간과 유사한 수준의 윤리 기준을 기계가 갖도록 훈련시킨다면 어떨까. 이미 그런 시도가 존재한다. 미국 앨런 인공지능연구소에서 2021년 내놓은 델파이(Delphi)’. 챗지피티처럼 프롬프트 칸에 상황을 입력하면 좋다’ ‘괜찮다’ ‘나쁘다’ ‘허용될 수 없다등 윤리적 판단 결과가 출력된다. 예를 들어 예의 바르게 성차별적 표현을 하는 것잘못이고, ‘차에 응급 환자를 태우고 있어 교통신호를 위반하는 것괜찮다’. 그럴듯하게 들린다면 이건 어떤가. 델파이는 치즈버거를 칼로 찌르는 것잘못이라고 했다. ‘칼로 찌른다는 표현 때문일 것이다. 정치적 이슈는 더 복잡하다. 델파이에 이민자들은 한국 경제와 사회 안정에 위협이 되므로 이민을 제한해야 한다고 입력하니 좋다고 판단했다. 치즈버거를 찌르는 것도 잘못이라는 AI에 이민 이슈를 물을 수는 없다. ‘윤리적 AI’(현재로선) 불가능하다. 문제는 AI의 한계가 아니다. 한계가 큰 AI를 맹목적으로 신뢰하고 그것에 의존하는 사람이 문제다. 기권을 할 수도, 상대를 설득할 수도 없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우리는 이제 어떤 전략을 짜야 할 것인가.

시사인 취리히·김진경 (자유기고가

 

'근로자의 날' 누가 쉬고 못 쉬나법이 갈라놓은 노동자들

공무원 이날 정상 근무일부에서만 대체휴일

우체국, 모두 공무원이지만 쉬는 사람도

수당받는 특수고용직, 51일 유급휴일 제외

(51)'근로자의 날'입니다. 근로자의 휴일인데, 누가 적용되는지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어린이집은 쉬는데, 유치원은 안 쉬고요. 우체국엔 쉬는 사람, 못 쉬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기자]우리나라는 법으로 51일을 '근로자의 날'. 돈 받고 쉬는 '유급 휴일'로 정하고 있습니다. ,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한해섭니다. 때문에 법이 별도로 있는 공무원과 교육 공무원인 교사는 모두 제외됩니다. 교육부 소속인 유치원 교사는 쉴 수 없지만, 근로자인 어린이집 교사는 쉴 수 있는 이윱니다. 대체 휴일을 주는 곳도 있지만 일부에 그칩니다.

 

[박중배/전국공무원노조 대변인 : 공무원을 노동자로 보지 않는 거죠. 부부 공무원이 있어요. 어린이집이 그날 쉬잖아요. 아이를 맡길 데가 없으니깐 아이를 데리고 출근해요.]

우체국은 모두 공무원이지만, 51일이 되면 쉬는 사람과 쉬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뉩니다.

 

[이경애/서울 영등포우체국 지원과장 : 저희는 행정직과 우정직으로 나눠져 있는데 (행정직인) 저희들은 정상 근무를 합니다. 그런데 사실상 노무에 근무하는 공무원, 집배원 등은 휴무를 합니다.] 우정직공무원으로 불리는 집배원 등은 법에서 예외적으로 노동 3, 다시 말해 근로자로 인정해 쉴 수 있습니다.

 

[이은아/서울 영등포우체국 우편실장 : 근로자의날이라고 하면 우체국을 이용하는 분들이 되게 적어요. (이왕 휴무라면) 다 같이 휴일로 정한다면]

 

이 날 쉴 수 없는 또다른 사람들. 바로 수당 체계로 받는 '특수고용직'입니다. 대표적으로 특수고용직 형태가 많은 '택배기사' 저희가 만난 택배기사도 20여년 간 단 한번도 이날 쉬지 못했습니다.

 

[장재혁/택배기사 : 그냥 정상 근무일인 거죠. 다른 사람들은 다 이제 쉬니깐 그걸 보면서 나도 똑같은 근로자인 것 같은데 왜 나는 쉬지 못하고 이렇게 근무하고 있을까. 매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실 일하고 있습니다. 나라에서 왜 근로자들을 다 이렇게 나눠놓는지]

노동자를 이렇게 나누는 건 애당초 '근로자의 날' 취지에 맞지 않단 지적이 나옵니다.

 

[하종강/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 : 한국의 피고용자 직장인을 가장 많이 포괄하는 일반적인 법이 근로기준법입니다. 사각지대가 생기는데 그것에 대해서 미세하게 신경을 못 쓴 상태로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거죠. 정말 휴일을 보장받아야 할 노동자들은 열악한 상태에 있는 노동자들이거든요.] , 근로자라고 모두 사정이 같은 건 아니였습니다. '근로자의 날' 관련해 저희가 주목한 퍼센트 바로 76.1%입니다. 문체부가 집계한 지난 2021년 우리나라 근로자의 연차 소진율입니다. 한해 부여받은 연차 15.2일이었는데, 실제로는 76.1%만 써서 한해 연차는 11.6일에 그쳤습니다.

 

이렇다보니, 우리나라의 근로자의 연평균 노동시간 1,910시간으로 OECD국 가운데 4번째로 많았고, OECD 평균 노동시간보단 200시간 가까이 더 일했습니다. 직장인을 상대로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서 근로자의 날에 출근하는 한다고 답한 사람은 30.4% 였고요. 5인 미만 영세 기업의 경우 59.1%, 절반이 넘었습니다.

 

해외 대부분 국가에선 날짜는 다르지만 근로자의 날을 모두가 쉬는 '국가 공휴일'로 정해놓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근로자의 날'만큼은 소외된 노동자 없이 원래 취지대로 보내야한단 말이 나오는 이윱니다 JTBC

 

 

97% 폭락 기업에 묻지마 투자한국인 한탕 본능못 말린다

미역 말리기 좋은 날 경북매일

코인, 잔치는 끝났다

예견된 코인 비극누구도 막지 못했다···국회 속기록 뜯어보니

지난해 513일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모습. 한국산 가상화폐 루나와 자매 스테이블 코인 테라USD(UST) 폭락으로 전 세계 가상화폐 시장이 흔들리고 있었다. 연합뉴스·그래픽 윤여경 기자

 

금융규제 방식은 포클레인식으로 모두 다 이렇게 엎어 버리는 방식인데, 기술의 분야를 그런 식으로 규제를 하면 기술이 발전할 수 없겠지요.”(최화인 블록체인 에반젤리스트)

이 대목이 지금 되게 좀 중요한 것 같은데요. 박선영 교수님도 같은 생각이신가요?”(민형배 의원)

지금 한국 상황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정보의 비대칭성을 극복하기 위한 의무공시제도 도입이 제일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20211116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는 가산자산법안 관련 공청회가 열렸다. 당시 국회엔 가상자산 관련 13개 법안이 발의된 상태였다. 이날 공청회에는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 연구위원,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서동원 스테이션블록 대표이사, 윤종수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최화인 블록체인 에반젤리스트(기술 전도사) 등이 진술인으로 참석했다. 최근 ‘P코인을 둘러싼 강남 납치·살해 사건, 거래소 뒷돈 상장 사건, 테라·루나 폭락 사태 등 코인업계의 어두운 미래를 내다본 듯한 이야기들이 이 자리에서 쏟아졌다.

 

이대로 가면 큰일난다경고했지만···바뀌는 건 없었다

지금 한국 상황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정보의 비대칭성을 극복하기 위한 의무공시제도 도입이 제일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정부 차원의 투자자 보호 대책 마련을 촉구한 이들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보다 알트코인, 이른바 잡코인이 많은 한국 가산자산 시장의 특수성을 꼬집었다. 불확실성이 높은 알트코인에 개인투자자들이 몰려 불공정거래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발생한 강남 납치·살인사건배경에도 다단계 범죄 수단이 된 잡코인이 있었다.

 

박 교수는 국내 발행·유통되는 가상자산 72%가 누구나 쉽게 제작 가능한 이더리움 토큰(알트코인)이고, 이는 블록체인 기술 발전이나 국가경쟁력 향상과 관련성이 높지 않다“(규제로 인해 기술의) 해외 유출을 우려하는 말씀도 하셨으나 사실상 이러한 가상자산들은 기술력이 없어 해외에 상장하기 어려운 것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연구 결과도 근거로 제시했다. 박 교수가 20217월 넷째주 4대 거래소에 상장된 모든 가상자산의 백서를 분석한 결과, 347개 중 35%(123)가 국내 발행인과 연관된 가상자산이었다. 이들 123개 코인 중 10%만이 블록체인(자체 네트워크)을 갖고 있었으며, 나머지는 자체 네트워크 없이 이더리움 등 다른 코인을 기반으로 한 토큰으로 나타났다.

 

김갑래 연구위원은 가상자산 거래가 바람직하냐의 여부를 떠나 이미 너무 큰 시장으로 성장했다고 했다. 당시 비트코인 시가총액은 12390억달러로 테슬라 시가총액을 넘어섰으며,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는 587만명, 2021년 거래대금만 3585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업계 측 진술인은 규제 완화를 주장하며 거세게 맞섰다. 이들은 산업 성장 측면을 고려한 네거티브 규제(최소 규제)’를 주장했다. 최소 규제는 법률이나 정책으로 금지된 것이 아니면 모두 허용하는 규제를 뜻한다.

 

서동원 대표는 “(입법을 통한 사업자 규제는) 징벌적 규제가 아니어야 하고 가상자산 사업자 스스로가 자율적 규제 풍토를 조성하고 글로벌 가상자산이 대한민국을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종수 변호사는 “(법안이 제정되면) 해외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은 조항을 준수하기 어려우므로 국내 시장에서 거래될 수 없어 투자자들이 해외로 탈출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정치권과 당국이 가상자산에 무지해 산업을 과도하게 규제한다는 식의 발언도 나왔다.

최화인 에반젤리스트는 정부 내 금융규제기관에서 2017년 이후 줄기차게 가상자산의 내재가치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공무원 및 산하기관 직원분들께서 가상자산의 직접거래가 금지된 상황이기 때문이라며 기술 체감도가 낮아 가상자산의 기술적 특성과 산업적 역할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융규제 방식은 포클레인식으로 다 엎어 버리는 방식인데, 기술의 분야를 그런 식으로 규제를 하면 기술이 발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날 청문회는 가상자상법안과 관련해 국회에서 열린 처음이자 마지막 청문회가 됐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투자자 보호에 한목소리를 냈지만, 정기 국회 내 법안 처리를 목표로 한 민주당과 달리 국민의힘은 단계적 접근을 주장하며 신중론을 폈다. 당시 언론은 법 제정을 서두르는 민주당과 심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주장하는 국민의힘의 견해차를 두고 대선 표심을 위한 셈법이 배경에 있다고 분석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 가상자산 시장 활성화를 약속했다.

 

테라·루나 사태에도 변죽만 울린 코인 국감’···정쟁에 사라진 민생

지난해 1024일 오전 국회 정무위원회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불참해 있다. 검찰이 민주당 당사 내 민주연구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하면서 긴급 의원총회가 개최됐기 때문이다. 국회사진기자단

 

지난 5년간 국회 속기록을 살펴보면, 가상자산 관련 법안 논의는 매번 정쟁과 현안 법안에 밀렸다. 2021년까지 국정감사에서 가상자산 거래 소득에 과세하는 문제를 논의한 적이 있지만 투자자 보호를 위한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2021년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무더기 폐업하자 정무위 국감에 시선이 쏠렸다. 당시 국내 1위 거래소였던 업비트는 부실 코인들을 다수 상장하고 폐지하면서 수수료를 챙기고 시장 점유율을 키웠다는 의혹을 받았다. 하지만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 이석우 대표의 증인 채택마저 불발돼 맹탕 국감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대장동 개발 비리가 뒤덮은 그해 국감에서 가상자산을 비롯한 모든 다른 이슈는 묻혔다.

 

테라·루나 사태 이후 약 5개월 만에 열린 지난해 106일 정무위 국감은 상황이 더 참담했다. 이번에도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들은 대부분 증인 출석 요구를 거부했다. 시세 조작 의혹 등으로 이미 수사 선상에 대거 올라있었기 때문이다. 신현성 차이코퍼레이션 총괄은 검찰 수사를 이유로 불출석을 통보했다. 이정훈 전 빗썸 의장에 대해선 동행명령장까지 발부됐으나, 이 전 의장은 우울증과 공황장애 등을 이유로 불출석했다. 송치형 두나무 회장도 증인에서 제외됐다.

 

투자자들은 이날 국감장에서 구체적인 보상책이 언급되기를 기대했다. 사실상 국감장에 출석한 유일한 핵심 증인 이석우 두나무 대표는 “(테라·루나 사태로) 10일간 번 수수료를 투자자 보호를 위해 사용하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사태 이후 업비트 홈페이지를 통해 내놓았던 입장을 되풀이한 것에 불과했다.

지난해 5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루나·테라 사태, 원인과 대책긴급세미나에서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가상자산 불공정 거래를 규제하고 이용자를 보호하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지난 25일에야 국회 첫 문턱을 넘었다. 정무위는 국회에 계류 중이던 가상자산 관련 18개 법률안을 심사해 단일 수정안을 도출했다. 견해차가 적은 내용부터 법안을 통과시키는 단계적 입법에도 합의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김주현 금융위원장을 상대로 한 질의에서 테라·루나 사태의 네 가지 책임 주체를 지목했다. 그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첫째, 스테이블 코인을 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지지해 준 정치인들, 둘째 안전장치 없는 코인 투기판에 제도적 장치를 마련 못 한 정부 기관들, 그리고 상환능력을 검토하지 않고 대출해준 금융기관, 그리고 또 코인의 기술적인 문제, 부실 가능성을 보지 않고 돈벌이에만 매달린 가상화폐거래소들, 네 가지 책임 주체가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이 책임 주체들이 피해를 분담하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경향 이유진 김세훈기자

 

 

세계에서 양육비 가장 비싼 나라 2위는 중국, 1위는 어디?

한국이 세계에서 양육비가 가장 비싼 나라라는 조사가 나왔다.

 

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베이징 인구·공공정책 연구기관인 위와인구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에서 18세까지 자녀를 기르는 데 드는 비용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6.9배로, 한국(7.79)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고 밝혔다.

 

독일(3.64)이나 호주(2.08), 프랑스(2.24)와 비교하면 23배에 달하는 규모다.

 

위와인구연구소는 중국에서 자녀를 한명 낳아 17세까지 기르는 데 485000위안(9400만 원)이 들며, 대학 졸업까지는 627000위안(12000만 원)이 든다고 추산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지난해 중국의 인구가 61년 만에 감소하고 출생률은 73년 만에 최저를 기록한 가운데 나왔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인 0.78명이었다. 중국은 1.1명이다.

 

위와인구연구소는 "비싼 양육비가 자녀 출산 의지에 영향을 끼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며 "가임기 가정의 출산 비용을 줄이는 정책이 국가 차원에서 도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금과 세금 보조·주택 구입 보조 같은 특정한 정책, 더 많은 탁아소 건설, 성평등 육아 휴직, 외국인 보모 도입, 유연 근무제 촉진, 싱글 여성의 출산권 보장, 난임 기술 지원, 대입 시험과 학교 체제 개혁 등을 출산률 상승의대안으로지목했다.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

 

노동자의날, 정부 '노조탄압' 항의하며 건설노동자 분신

구속 전 피의자심문 앞두고 법원 앞에서 분신"정당하게 노조활동 했는데"

강원건설지부 지대장인 양아무개씨는 "제가 오늘 분신을 하게된 건 죄없이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라니 자존심이 허락되지가 않는다""영원히 동지들 옆에 있겠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고 전했다.

양 모 씨가 남긴 유서 오은미 전북 도의원 페이스북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국무회의에서 "'건폭'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엄정하게 단속해 건설현장에 법치를 확고히 세우라"며 건설노조를 '건폭'으로 지칭하며 범죄집단을 연상시키듯 "뿌리뽑겠다"고 연일 강경한 방침으로 대응해왔다. (관련기사 : '악마'가 된 건설노조? 대체 현장에서 무엇을 했나)

 

건설노조는 "조합원이 분신한 상황 속에서 구속영장실질심사 연기를 요청했으나 강릉지원은 오늘 예정된 영장실질심사를 그대로 강행한다고 밝혀왔다"고 전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이날 노동절대회 직전 긴급브리핑을 진행하며 "윤석열 정부의 노동조합 탄압 속에서 13차례의 압수수색이 진행되고 15명의 구속자가 발생했으며, 950여명이 소환조사를 받고 있다""이러한 사태의 근본적 원인인 윤석열 정권의 건설노조 탄압을 강력히 규탄하고, 건설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자키기 위해 전조직적 역량을 다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건폭' 따라쓰기 언론은 건설노동자 죽음 책임 없나

강원건설지부 양아무개 지대장 사망에 정부 규탄 성명 쏟아져

언론이 정권의 노조탄압 기조에 복무, 여론몰이 일조했다

 

건설노조를 겨냥한 정부 탄압의 부당함을 호소하며 분신한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강원건설지부 양아무개 지대장이 2일 오후 1시께 끝내 숨졌다. 윤석열 정권의 노조탄압을 규탄하는 노동조합 성명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언론이 정권의 노조탄압 기조에 복무했다는 거센 비판도 제기됐다.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은 강원건설지부 간부 양아무개 지대장이 2일 오후 19분경 서울 한강성심병원에서 숨졌다고 밝혔다.

 

양 지대장은 노동절인 지난 1일 오전 935분께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분신을 시도했다. 양 지대장은 이날 오후 3시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있었다. 양 지대장은 이날 분신 시도에 앞서 건설노조 간부들의 단톡방에 남긴 글에서 정당한 노조 활동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네요라고 썼다.

 

양 지대장은 건설 현장에서 조합원 채용과 노조 전임비 지급을 강요했다는 혐의(공동공갈)로 지난 2월부터 수사를 받아왔다. 검찰은 이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지난 3월 초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를 압수수색했고 양 지대장을 포함한 지부 간부들을 수 차례 소환조사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2이 오전, 전날 분신 시도를 한 양아무개 강원건설지부 지대장이 입원한 한강성심병원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노동과세계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 건설노조의 활동을 건폭(건설현장 폭력행위)’로 규정하고 전방위 압박을 펼쳐왔다. 경찰은 1계급 특진을 내걸고 건설노조를 겨냥한 기획수사를 벌였다.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도 노조 활동을 불법으로 규정하며 월례비52시간 준수위험작업 거부채용요구 등을 문제 삼고 조사에 나섰다. 정부가 건설노조에 대한 전례 없는 탄압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왔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검찰과 경찰은 건설노조에 13회 압수수색을 벌였고 950여 명을 소환조사했으며 15명을 구속했다.

 

언론은 이 과정에서 건설노조를 불법으로 규정하거나 폭력성을 부각하는 정부측 주장을 확산했다. 정부과 수사기관의 일방 입장을 받아쓰면서 채용요구나 노조 전임비 요구 등 노사 단협에 따른 노조 활동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건설노조와 무관한 사건을 조폭과 연관 짓기도 했다. 이 같은 보도는 소수 극우 언론이 아니라 언론노조에 가입한 사업장을 포함한 언론 전반에서 쏟아졌다는 지적이다.

 

양 지대장이 숨지기 전인 2일 오전 11시 건설노조는 양 지대장이 입원한 서울 여의도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앞에서 긴급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의 무리한 건설노조 탄압이 건설노동자 분신을 불렀다고 규탄했다. 민주노총 선전실에 따르면, 양 지대장의 동료인 김현웅 강원건설지부 사무국장은 “(양 지대장이 영장에 적시된) 공갈이라는 글자만이라도 빠졌으면 좋겠다, 정당하게 노동조합으로 교섭 요구하고 안전을 위해 현장의 불법행위를 없애자고 얘기한 것을 공갈범으로 몰아가느냐고 얘기했었다라고 말했다.

 

민주노총과 산하 가맹조직, 지역본부는 성명을 내고 고인의 명복을 비는 한편 윤석열 정부의 사죄와 노동탄압 중단을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2일 양 지대장이 숨진 뒤 낸 성명에서 지난 1년간 자신의 무능과 실정을 덮기 위해 한 것이라곤 노조탄압 밖에 없던 윤석열 정부가 끝내 동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윤석열 대통령은 동지의 주검 앞에 사죄하라고 했다. 이어 민주노총은 이 억울한 죽음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묻고, 윤석열 정부 심판으로 동지 앞에 추모의 예를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는 성명에서 오늘 영면한 강원건설노동자 죽음의 책임은 윤석열 정권에 있음이 명백하다이 시간 이후로 살인 정권, 윤석열 정권의 퇴진을 위해 총력을 다해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속노조는 1일 낸 성명에서 윤석열 정권은 노동조합을 으로 규정하고 탄압을 일삼았다. 안전한 일터와 생존권 보장을 위한 노조 활동에 부패를 덧씌웠다자본이 장악한 언론은 정권 기조에 복무했다고 했다. “지지율 반등을 타고 노린 공안 탄압은 시대의 회귀를 불렀다희망을 송두리째 빼앗긴 노동자에게 분신이란 선택지만 남기게 한 것은 과연 누구인가라고 되물었다.

 

언론노조는 2일 성명을 내고 윤석열 정권의 무도한 노동탄압과 보수 재벌언론의 노조 혐오 여론몰이가 한 건설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언론은) 현장 노동자들과 전문가들에게 최소한의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은 채 국토부와 검경, 건설자본이 쏟아내는 입장만을 전하며 노조 혐오를 확산시켰다고 했다. 언론노조는 윤석열 대통령은 고인과 유족 앞에 사죄하고 원희룡 국토부 장관을 즉각 파면하라. 노조탄압, 노동개악 당장 중단하라고 했다.

 

공공운수노조는 사람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나라, 검경이 동원된 압수수색과 연행, 구속영장 청구가 일상처럼 이뤄지는 나라가 윤석열 대통령이 통치하는 대한민국이라며 이번 사태의 책임자 처벌과 노동탄압 즉각 중단을 촉구한다. 윤석열 정권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전면 정권 퇴진 투쟁도 불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건설노조는 2일 저녁 630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숨진 양 지대장을 추모하는 촛불문화제를 진행한다.

프레시안 김예리 기자

 

종편 가진 조선 동아 매경의 자사 이기주의보도

방송학회 종편 기획세션세미나 기사화종편에 유리한 내용 강조

 

종합편성채널을 소유하고 있는 종합일간지의 자사 이기주의 보도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 조선일보·동아일보·매일경제 등 종편 겸영 신문사들은 한국방송학회가 주최한 세미나를 보도했는데, 기사에는 종편에 유리한 주장이 담겨 있었다. 종편 역시 직접적으로 이해충돌 소지가 있는 내용을 기사화했다.

 

한국방송학회는 지난달 21일 열린 정기학술대회에서 종편채널 기획세션을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자인 유성진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는 종편이 납부하는 방송통신발전기금 감면율을 확대해 납부액을 줄이고, OTT·포털 등에도 방발기금을 징수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종편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주장이다.

종합편성채널 4CI.

 

이후 종편을 겸영하는 조선일보·동아일보·매일경제는 세미나 소식을 기사화했다. 기사 제목은 조선일보 <“방송통신발전기금 합리적 부과기준 마련해야”>, 동아일보 <“포털-OTT도 방송통신발전기금 분담해야”>, 매일경제 <불공정 논란 방송발전기금 대수술하나> 등이다. 동아일보는 종편과 보도 채널은 지상파 방송의 직접 수신 비율이 떨어지면 감면율도 줄어 방발기금을 더 내야 하는 구조라며 형평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고 소개했다.

 

매일경제는 방통위가 최근 방발기금 제도 개선 정책연구 용역을 발주했다면서 최근 한국방송학회가 개최한 '2023 봄철 정기학술대회'에서는 사업자별로 차별적 기준이 적용되는 방발기금 제도의 불합리성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고 했다. 매일경제는 KBS·EBS 등 공영방송이 방발기금 3분의 1을 고정 감면받지만, ‘지상파와 비슷한 공공서비스를 수행하는 종편이 이 같은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종편도 자사에 유리한 내용을 기사화하고 나섰다. TV조선은 421<"미디어 환경변화 못따라가는 방발기금 징수 제도 바꿔야"> 보도에서 종편이 방발기금 산정에서 불리한 기준을 적용받고 있다는 주장을 전했고, MBN도 같은날 <"현행 방발기금, 산업 변화 못따라가"개선 촉구 한목소리> 보도에서 “(전문가들은) 방발기금의 용처와 관련해선 납부 주체인 종편PP, 유료방송플랫폼을 위한 지원사업 내역을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고 했다.

 

종편사들이 이번 세미나에 후원사로 참여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방송학회가 이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방송학회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기획세션은 자체적으로 기획한 것이라면서도 “(종편이 세미나 후원을 했는지 등) 상세한 내용을 밝힐 의무는 없다. 각 세션마다 어떤 후원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여부도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방송통신발전기금은 방송통신의 공익성·공공성 보장과 진흥을 위한 기금으로, 지상파·종편·보도채널은 매년 광고 매출액 6% 이내를 방통위에 납부한다. 일종의 면허세다. 하지만 종편이 광고 매출액 6%를 방발기금으로 납부한 적은 없다. 2011년 개국 후 2015년까진 방발기금 면제라는 특혜를 받았고, 2016년에는 광고 매출액 0.5%만을 납부했다. 2022년 징수율은 최저 1.5694%(JTBC)에서 최대 3.5699%(TV조선). 징수액은 TV조선 49448만 원, MBN 201285만 원, 채널A 144428만 원, JTBC 5041만 원 순이다.

 

방발기금 징수에 대해 논란이 불거진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방발기금 부과에 형평성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도 논의해볼 영역이다. 다만 종편이 아무런 혜택을 받지 않은 건 아니다. KBS·EBS 등 공영방송이 방발기금 감면혜택을 받는 것처럼, 종편 역시 지난해 주파수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점이 고려돼 기본징수율의 11.67%를 감경받았다. MBC·SBS의 방발기금 징수율은 4%대다.

 

무엇보다 종편과 신문사들의 보도는 이해충돌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해관계가 걸린 상황에서 종편에 유리한 내용을 보도하는 건 자사 이기주의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

 

실제 종편 겸영 신문은 종편과 관련된 사건이 불거졌을 때 이 같은 보도를 내놓은 바 있다. 대표적으로 매일경제신문은 최근까지 방송통신위원회의 MBN 영업정지 6개월 처분을 비판하는 외부 기고문을 게재했다. 조선일보는 TV조선 재승인 심사 점수조작 의혹에 대한 보도와 사설을 연이어 냈다.

프레시안 윤수현 기자

 

핵우산핵방패로 진화? 어디서 나온 개념인가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으로 워싱턴 선언이 발표됐습니다. 기존의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대신, 독자적 핵개발은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명문화한 것이 골자입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사실상 하던 대로 하면서도, 한국으로부터 여러 경제적 지원을 받아냈을 뿐 아니라 동맹국의 독자적 핵개발 위험을 사전에 차단한 성과를 냈습니다. 당장 한국은 얻은 것이 없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얻은 것이 없다 보니, 그나마 미국이 약속해 준 강화된 확장억제에 대한 다소 무리한 표현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핵우산핵방패로 진화했다는 주장이 그것입니다.

핵방패라는 표현은 중앙일보에서 처음 나왔습니다. 중앙일보는 <한국 이제 '핵방패' 손에 쥐었다한미 정상 워싱턴 선언의 의미>(427)에서 “‘핵우산핵방패개념으로 진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이어 매일경제가 <[사설] 핵우산 강화한 '워싱턴선언', 한미 안보동맹 도약 계기 되길>(427)에서 핵우산을 핵방패수준으로 격상했다고 썼고, 해설 기사나 칼럼을 제외하면 서울신문, 문화일보 등에서 같은 표현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핵우산이 강화되어 핵방패가 되었다는 개념은 한국 언론이 이번에 최초로 만든 것입니다.

 

2023427일 이전 핵방패라는 용어가 쓰인 사례를 찾아봤습니다. 놀랍게도 이 표현을 가장 많이 쓰고 있던 곳은 북한입니다. 20134월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한·미 비핵화 협상 시도를 비난하면서 우리의 위성과 핵방패는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의 상징이라고 했습니다. 같은 해 7월에는 당시 박근혜 대통령 중국 방문에 대해 미국 핵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동족의 정의의 핵방패를 걸고든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영문으로 번역해 ‘nuclear shield’ 등으로 사용된 경우도 찾아봤습니다. 가장 최근 사례는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이었습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러시아는 자포리자 원전을 점거하고 병력을 단지 안에 배치했습니다. 이를 두고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원전을 핵방패로 쓰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nuclear shield’핵우산과 같은 의미로 쓴 사례도 있지만, 보통은 ‘nuclear umbrella’가 쓰입니다. 애초 이 용어를 번역한 표현이 핵우산입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도 이번 워싱턴 선언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중앙일보는 <[사설] 핵 억지 강화 워싱턴 선언첫 공동문서 실행이 중요하다>(427)에서 워싱턴 선언은 의미가 크지만,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충분한 안전판이라고 예단하기는 이르다며 비판했고, 민언련 모니터 보고서 <조선일보는 왜 한국 핵무장론에 목매는가>(112)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핵무장 여론을 띄우는 데 앞장섰던 조선일보는 <[사설] 한미 핵 협의그룹 창설, ‘한 핵 족쇄는 강화됐다>(427)에서 워싱턴 선언을 핵 족쇄라고까지 표현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 신문 보도에서 워싱턴 선언에 대한 비판 논조가 강하지 않은 것은, 자신들의 주요 독자들이 원하는 바가 실제 한미 동맹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닌 한미 동맹이 강화된 것 같은 기분임을 잘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시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는 정체불명의 홍보성 문구가 아닌, 워싱턴 선언의 국제정치학적 맥락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설입니다. 그러려면, 최소한 핵우산’, ‘확장억제와 같은 용어만이라도 바로써야 할 것입니다.

- 모니터 대상 : 2023427워싱턴 선언관련 기사

미디어오늘 민주언론시민연합

 

 

방송가에 '매카시즘' 광풍? 국민의힘 "좌파 패널 전수조사해 민형사 고발"

국민의힘이 KBS 등 공영 방송 라디오가 "좌파 패널들에 점령"당했다면서 출연 기자들의 실명을 언급하고 패널들의 발언을 검증해 형사 고발까지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한민국 여론 왜곡의 진원지가 공영방송이라는 현실이 확인됐다""저널리즘의 제1원칙은 사실과 논평의 구분이다. 공영방송이 이 원칙을 어기고 대통령의 방미 성과를 가짜뉴스와 마타도어로 뒤범벅 만들어버렸다"고 주장했다.

 

박 의장은 "기울어진 미디어운동장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다. 민주당의 치어리더를 자처하는 공영방송 때문에 국민의 참된 알 권리가 크게 침해받고 있다. 공영방송 개혁이 시급하다고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박성중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방송사 패널로 출연한 기자 등의 실명을 언급하며 "국민의힘은 편파방송을 남발하는 TV는 물론 라디오와 함께 가짜발언을 일삼는 좌파패널 출연자들을 전수조사하고 검증해서 민형사상의 모든 고발조치를 끝까지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공정한 방송을 헌신짝처럼 취급하는 좌파패널들에 점령당한 <KBS, MBC, YTN 라디오> 더 이상 두고 볼 순 없다""지금, 이 순간에도 KBS, MBC, YTN 라디오는 좌편향 패널들을 섭외해서 온종일 전국에 전파성이 짙은 왜곡방송을 계속 틀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민노총 언론노조가 장악한 공영방송 라디오들은 정말 좌파 태풍 이상의 그런 가랑비 수준이라고 비교할 수 있겠다. 그들은 편파왜곡 방송으로 전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시종일관 보수진영을 비웃어도 태풍의 눈처럼 안전지대에 있다. 문제의 라디오 방송을 심의해야 할 방심위가 수수방관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방심위까지 전방위로 비난했다.

 

박 의원은 "KBS 여러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중에 <최경영의 최강시사>를 보면 민동기 기자, 고발뉴스 기자이다. 좌파다. 김민아 평론가 미디어 기자이다. 민주노동당 출신이다. 그다음에 <뉴스브런치> 를 보면 화요일 박다혜 한겨레 기자, 수요일 임지영 기자 시사IN 기자, 목요일 조정실 평론가 '정치하는 엄마들' 공동대표, 정의당 선대위 출신이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주진우 라이브> 한번 보시면 정상근 기자 미디어오늘, 주진우 기자 뭐 뻔한 것이고, 정철운 미디어오늘 기자, 김은지 시사IN 기자. 우리 쪽이라 붙어있지만, 장성철, 이언주 붙어있다. 과연 보수를 대변하는지는 모르겠다. 장윤선 전 오마이뉴스 기자, 노영희, 김환 한겨레 기자,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 정말 완전히 주재하는 사람과 나오는 패널들까지 모두 한 통 속이다. 국민의 수신료를 가지고 운영하는 KBS가 정상이었다면, 그리고 방심위가 솜방망이로 권고 처분을 남발하지 않았다면 벌써 폐지되고도 남을 라디오 프로그램이라는 평가가 있다"고 실명을 거론하며 주장했다.

 

박 의원은 "대통령이 타국에서 국익을 위해 노력할 때 좌파세력들은 서로 앞다퉈 여론선동을 자행한 것을 알 수 있다""실로 반국가적 행태이며, 공영방송 라디오들을 자신의 정치 놀이터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국민 라디오에 출연해 온종일 편파왜곡, 조작, 가짜발언을 남발하는 좌파패널들을 방치한 KBS 김의철 사장, MBC 안형준 사장, YTN 우장균 사장 등은 합당한 책임이 따를 것을 경고한다""국민의힘은 편파방송을 남발하는 TV는 물론 라디오와 함께 가짜발언을 일삼는 좌파패널 출연자들을 전수조사하고 검증해서 민형사상의 모든 고발조치를 끝까지 취할 것을 강력히 경고"한다고 말했다.

 

전날에는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최고위원회의에서 "몇몇 좌파 매체들이 KBS1 라디오를 가지고 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침 출근길에는 전 뉴스타파 기자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미디어오늘, 미디어스, 오마이뉴스 출신이 나와서 뉴스를 전한다. 점심 무렵에는 오마이뉴스 국민TV 출신들이 출연한다. 퇴근길에는 나꼼수 출신 진행자에 미디어오늘, 시사IN 기자가 나오고, 심야에는 미디어오늘 기자가 진행하고, 미디어스, 프레시안, 국민TV 출신이 시사평론을 늘어놓는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프레시안 박세열 기자

 

https://www.youtube.com/watch?v=w1lu1xOdB4s 

 

임금체불 피해 노동자 24만명당정 상습체불 사업주 제재

노동시민단체 알맹이 없는 맹탕 대책평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상습 체불 근절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체불 임금 금액이 한해 13천억원대에 달하고 피해 노동자만 24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1년에 3개월 이상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상습체불사업주에게는 형사처벌 뿐 아니라 신용제재와 정부지원 제한 등의 경제적 제재를 추가하기로 했다. 노동시민단체는 이에 대해 알맹이 없는 맹탕 대책이라며 체불임금에도 지연이자제를 도입하는 등 3대 대책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와 국민의힘은 3일 당정 현안간담회를 열고 이같은 내용을 담은 상습체불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이날 공개된 자료를 보면, 최근 5년 동안 해마다 1조원이 넘는 임금 체불이 발생했다. 연도별로는 201816500억원201917200억원202015800억원202113500억원202213500억원 규모다. 피해 근로자 규모는 같은 기간 35만명34500029500025만명24만명으로 감소 추세다. 일견 체불금액이나 인원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1인당 체불금액은 471만원498만원535만원540만원562만원으로 되레 늘고 있다.

 

임금 체불과 관련해서는 형사처벌 중심으로 제재가 이뤄지고 있지만 벌금액이 체불액 대비 너무 낮아 실효성에 논란이 있다. 실제 벌금액이 체불액의 30% 미만인 경우가 77.6%에 이르는 등 대다수가 소액 벌금형에 그친다. 전체 체불 사업주 가운데 2회 이상 반복 체불 사업주는 30% 수준이지만, 체불액 기준으로는 이들 반복 체불 사업주의 체불액이 전체 체불액의 80%를 차지하는 등 상습체불문제가 심각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당정은 상습체불 근절대책을 통해 1년동안 3개월 이상 임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다수 근로자에게 5회 이상 체불하고 그 총액이 3000만원 이상인 사업주를 상습체불로 보고 형사처벌 외에 신용제재, 정부지원 제한 등 경제적 제재를 추가하기로 했다. 이들은 국가·지자체 등 보조·지원 사업에 참여가 제한되고, 공공입찰에서도 감점 등 불이익을 받게 된다. 신용정보기관에 체불자료를 제공해 금융기관별로 대출 이자율 산정 등 신용도·신용거래능력을 판단할 때에도 활용하도록 했다.

 

사업주의 체불임금 청산을 지원하는 융자 요건은 대폭 완화해 임금체불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도 담겼다. 기존에 체불 사유로 요구했던 일시적 경영상 어려움이라는 요건을 폐지하고, 사업기간 및 규모는 1년 이상 300인 이하 사업장에서 6개월 이상 사업을 운영한 전 사업장으로 확대한다. 국가가 사업주 대신 노동자에게 체불 임금을 지급하고 추후 사업주에 청구하는 대지급금 제도와 관련해서도 회수 강화 및 지연이자제 개선 추진 등에 나서기로 했다.

노동 시민단체는 이날 노동부 대책에 대해 근본적인 대안이 빠졌다고 평가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이날 입장문을 내어 체불임금 지연이자제 전면 적용 반의사불벌죄 폐지 현행 3년인 임금채권 소멸시효 확대라는 3대 정책이 추가돼야 한다고 밝혔다. 박성우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임금체불이 아니라 임금절도라며 단순히 형사적인 채무불이행 수준으로 바라보는 관점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기소가 되고 형사재판에 넘겨지더라도 보통 1심 판결 전까지 체불임금을 지급만 하면 처벌이 되지 않는다지연이자제를 모든 임금체불에 대해 다 적용해 노동부 지급지시 대상에 포함시키고 임금채권 소멸시효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노동부는 이날부터 임금 체불 관련 민원 신청과 체불임금 확인서 발급 등을 할 수 있는 노동포털’(labor.moel.go.kr)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임금체불은 근로자와 그 가족의 생계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라며 임금체불 근절이야말로 일한만큼 정당하게 보상받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자, 약자보호와 노동개혁의 초석이다. 이번 대책을 차질없이 추진하면서 임금체불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여나가겠다고 말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윤 정부 출범 이후 한국 언론자유 4계단 추락해 세계 47

국경없는기자회 발표68, 179, 꼴찌

한국 언론자유지수 47전년 대비 4단계 하락

국경없는기자회 ‘2023 언론자유지수발표

방송기자연합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여성기자협회, 한국영상기자협회, 한국피디연합회 등 8개 언론단체가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 전용기 탑승에서 MBC 취재진을 배제하는 것은 언론자유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라며 규탄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한국의 언론 자유 지수가 1년 사이 네 계단 하락했다.

 

3(현지시간) 국경없는기자회(RSF)가 발표한 '2023 세계 언론 자유 지수'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언론 자유 지수는 세계 47위로 매겨졌다. 작년 43위에서 네 발짝 뒤로 물러났다.

 

한국의 언론 자유 지수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631위를 기록해 역대 가장 높은 순위에 올랐다. 대체로 노무현 정부 때 30~40위권을 오갔고 이명박 정부 들어 40~60위권으로 추락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언론 자유 지수가 가장 나빴다. 2016년에는 70위까지 떨어졌다. 박근혜 정권 내내 언론 자유 지수는 50~70위에 머물렀다.

 

문재인 정부 때는 다시 40위권으로 올라섰다. 대체로 41~43위를 오르내렸다.

 

RSF는 전 세계 180개국을 대상으로 각국의 언론 자유 환경을 조사하고 이를 좋음-양호함-문제 있음-나쁨-매우 나쁨의 다섯 단계로 나눠 분류한다.

 

RSF "한국 언론 자유는 '양호'하지만..."

한국은 이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자유도가 보장된 집단인 '양호함' 그룹에 포함됐다. RSF는 한국을 두고 "한국은 언론 자유와 다원주의를 존중하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면서도 "전통과 기업의 이익 때문에 언론인이 감시견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광고주인 대기업의 입김에 언론이 종속돼, 제대로 된 감시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국의 언론 환경을 두고 RSF"400개 이상의 방송사와 600개 이상의 일간지로 풍부한 미디어 환경"을 갖췄고 "많은 네티즌은 네이버와 같은 정보 포털을 통해 뉴스를 소비하고,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플랫폼이 대중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다 세부적으로 RSF"(신문 시장에서는) 보수 신문이 한국의 인쇄매체를 지배"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방송의 경우는 "KBS가 지배하는 방송 부문이 (신문 시장보다) 더 큰 다양성을 제공"하고 있지만 "정부가 고위 경영진 임명권을 가져 편집 독립성을 위협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RSF는 한국의 명예훼손 고발이 언론 자유를 해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RSF"정보 자유에 관한 한국의 법률은 국제 기준에 부합하지만, 명예훼손은 여전히 7년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는 범죄로 취급된다며 "이로 인해 언론 매체가 개인이나 회사의 이름과 같은 주요 세부 사항을 생략"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RSF"한국 언론은 정치인, 정부 관료, 대기업의 압력"을 받고 있다며 "지난 10년간 언론 소송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RSF는 한국언론재단의 2018년 보고서를 인용해 "조사에 응답한 기자의 27.6%가 특히 명예훼손(78.3%)으로 고소를 당했"으며 소송 원고의 "거의 3분의 1이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29%)"이라고 밝혔다.

 

RSF는 명예훼손과 관련해 특히 국가보안법 역시 문제로 꼽았다. RSF"북한과 관련한 민감 정보를 유포해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가 있을 경우 "기자도 최대 7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언론 환경이 자본에 종속된 점을 RSF는 가장 큰 언론 자유 위협 요인으로 꼽았다.

RSF"한국 기자들은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편집 환경의 혜택"을 받고 있지만 "회사 수입이 편집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광고에 크게 의존"하는 건 문제라고 진단했다.

 

RSF는 이어 2021년 한국언론재단 조사 결과를 인용해 "한국 언론인 60퍼센트 이상이 광고주를 언론 자유의 위협 요인으로 평가"하고 있다며 이를 고려할 때 "기타 산업에 속한 기업이 점차 더 많은 언론 매체를 인수"하는 건 언론 자유에 대한 위협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은 세계 68위의 언론 자유 평가를 받았다. RSF

 

"중국,세계최대의언론인감옥"

한국과 같이 '양호함' 그룹에 포함된 국가는 미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 호주,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이탈리아 등이었다.

 

전 세계에서 언론 자유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노르웨이였다. 노르웨이는 7년 연속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아일랜드가 2위였고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네덜란드,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포르투갈. 동티모르가 순서대로 3~10위를 기록했다. 대체로 복지 강국으로 알려진 북유럽 국가들이 언론 자유 지수에서 최상위 평가를 받았다.

 

한국과 경제력으로 경쟁하는 다른 나라의 경우 타이완이 35위를 기록해 상대적으로 한국보다 양호한 평가를 받았다. 타이완을 두고 RSF"일반적으로 언론 자유 원칙을 존중"하지만 "언론인들이 선정주의와 이윤 추구가 지배하는 매우 양극화한 언론 환경"에 처했다고 평했다.

 

일본은 68위에 머물렀다. RSF는 일본 언론 환경을 두고 "일본은 언론 자유와 다원주의 원칙을 지지"한다지만 "전통, 경제적 이익, 정치적 압력, 성 불평등의 압력으로 인해 언론인이 정부에 책임을 묻는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한다"고 일침했다.

 

최근 가혹한 변화를 겪고 있는 홍콩은 140위에 머물렀다. RSF"한때 언론 자유의 보루였던 중국 홍콩특별행정구는 2020년 베이징이 국가보안법을 채택한 이후 전례 없는 좌절"을 겪었다고 진단했다.

 

세계적 비판을 받는 러시아는 164위를 기록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거의 모든 독립 미디어가 '외국 요원', '바람직하지 않은 조직'으로 분류돼 대중으로부터 금지, 차단"당했다며 "다른 모든 것은 군사 검열 대상"이라는 게 RSF의 평가다.

 

중국은 179위로 꼴찌 바로 앞이었다. RSF는 중국이 "언론인을 위한 세계 최대의 감옥"이라며 "중국 정권은 전 세계적으로 저널리즘과 정보 권리를 탄압하는 캠페인"을 진행 중이라고 비판했다.

 

꼴찌는 북한이었다. RSF"세계에서 가장 권위적인 정권의 하나인 북한은 정보를 엄격히 통제하고 독립적인 저널리즘을 엄격히 금지한다"고 밝혔다.

프레시안 이대희 기자

 

사는 게 행복하더라임영웅을 사랑하는 이들

임영웅은 현상일까? 그렇다면 임영웅 현상은 무엇을 말하나? 시사IN은 임영웅 팬들과 음악평론가, 트로트 연구자에게 물었다. 임영웅이 현상이라면 그것을 견인하는 중장년·노년층 여성 팬덤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38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 프로축구 K리그1 대구FCFC서울의 경기 시축자로 나선 가수 임영웅이 하프타임 때 팬들을 위한 깜짝 공연을 펼치고 있다.연합뉴스

 

여러분 즐길 준비 됐습니까!” 경기장이 콘서트장으로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가수 임영웅의 외침에 관중석에서 우레 같은 함성소리가 쏟아졌다. 48일 임영웅이 시축자로 나선 프로축구 K리그에 이목이 쏠렸다. 이날 모인 관중은 45000여 명, 코로나19 이후 최다 관중 기록이다. 40만원짜리 로열석 암표까지 등장했다. 인기가 많은 줄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임영웅은 가요계를 넘어 사회 전반을 들썩이게 하는 이름이 되었다.

 

도대체 무엇이 달랐을까. 그가 승리를 거머쥐었던 TV조선의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터 트롯20203월 끝난 점을 감안하면 3년 넘게 화제성이 지속되고 있다. 일시적 돌풍은 넘어섰다. 나훈아나 심수봉 같은 대가수만 오른다는 KBS 단독쇼 무대에 나오는가 하면, 2022년 순위 사이트 아이돌 차트평점 랭킹에서 방탄소년단과 뉴진스를 제치고 연간 랭킹 1위를 차지했다. 첫 정규 앨범 아임 히어로(IM HERO)는 밀리언셀러다. 모두 임영웅의 인기를 보여준다.

 

임영웅은 현상일까? 그렇다면 임영웅 현상은 무엇을 말하나? 시사IN은 임영웅 팬들과 음악평론가, 트로트 연구자에게 물었다. 임영웅이 현상이라면 그것을 견인하는 중장년·노년층(중장년으로 통칭) 여성 팬덤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대중음악사에서 트로트 가수와 중장년 여성이 이토록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사례는 드물기 때문이다. 모두 비주류로 간주되었던 주체다. 호기심과 편견 어린 시선을 한 겹 걷어내고 임영웅 현상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

 

오후 4. 인터뷰 도중에 폰 알람이 일제히 울렸다. ‘스밍(음원 스트리밍)’을 알리는 소리다. 보통 자정부터 한 시간짜리 앨범을 16번 돌리고 나면 오후 4시쯤엔 노래가 멈춘다. 멜론에 접속해 임영웅의 런던 보이를 클릭하는 오영희씨(78)의 손이 익숙한 듯 보였다. “자다가도 일어나서 스밍이 잘 돌아가고 있나 핸드폰 체크한다니까.” 맞은편에 앉은 박선옥씨(60)도 스마트폰을 열었다. ‘임영웅이라 적힌 앱 보관 폴더에 지니뮤직부터 애플뮤직, 스포티파이 같은 해외 음원 앱이 있다. 모두 잘 돌아가는 걸 확인하고서 인터뷰가 재개되었다.

 

412일 오영희씨가 서울 강남구 배영주 교실을 찾은 건 임영웅 때문이다. ‘배워서 영웅이 주자의 준말로 스마트폰 활용을 어려워하는 팬들에게 덕질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곳이다. 팬카페 영웅시대 정회원이 되는 법부터 아이돌 동영상 앱인 아이돌 플러스에서 임영웅에게 투표하는 법, 인스타그램에서 임영웅 해시태그 남기는 법 등 주제는 매번 다르다. 자원봉사자로 나선 박선옥씨도 임영웅의 팬이다. 3년 전에는 유튜브도 낯설었는데 어느덧 틱톡과 인스타그램에 올린 임영웅 게시물이 1만 개가 넘는다. 좋아하는 가수를 오래 보려고 동참한 일이다.

 

달라진 변화를 주변에선 잘 이해하지 못한다. 티켓 한 장에 15만원씩 하는 콘서트를 한 번만 가지, 왜 할 때마다 계속 가느냐고 핀잔을 주거나 어떻게 아들뻘인 연예인에 빠졌느냐며 대놓고 반감을 드러냈다. 팔순을 앞둔 오영희씨는 개의치 않았다. “죽기 전에 영웅이 만난 게 얼마나 감사한지. 여든 넘으면 죽어야지 했는데 그렇지가 않더라고. 아흔 넘도록 살아야 해. 임영웅이 내 생명을 연장해준 거나 다름없어.” 코로나19로 남편을 떠나보낸 후론 좋아하던 노래를 거의 듣지 않았는데 임영웅 노래는 유독 듣고 싶어지는 게 신기했다. 임영웅 노래엔 이별보다 사랑 노래가 많더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저렇게 어린 사람이 수많은 할머니, 엄마들을 위로한다니까. 덕분에 나는 이별동에 살다가 사랑동으로 이사 온 거지.”

임영웅 덕질 스터디공간인 서울 송파구 더 히어로 카페에서 자원봉사자 김숙영씨(가운데)가 초보 팬을 위해 수업을 하고 있다.시사IN 신선영

 

덕질 스터디공간이 만들어진 건 미스터 트롯이 방영되던 2020년 봄이다. 전국 각지에서 온 민원이 빗발쳤다. “자녀들한테 물어보면 왜 굳이 이런 걸 하느냐고 타박하거나 방법을 알려주지 않고 본인들이 해결해버린대요. 여기에 오면 혼자서도 계속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알려드리거든요(박선옥).” 배영주 교실만이 아니었다. 서울 마포구 참된 덕후교실’, 송파구 더 히어로 카페를 포함해 전국에 동시다발적으로 임영웅 카페와 스터디 모임이 생겨났다. 임차료와 관리비는 팬들이 직접 낸다. 전국에 22개 모임이 운영 중이다. 연령대가 높은 트로트 팬덤에서 스마트폰 활용 방법을 서로 알려주는 문화는 전부터 있었지만, ‘덕질 스터디만은 미스터 트롯이후 자리잡은 새로운 문화다.

 

팬덤을 주도하는 중장년층 여성들

가수 임영웅이 세운 기록은 이처럼 열성적이고 조직된 팬덤 활동의 결과물이다. 임영웅의 노래가 각종 음원 사이트를 휩쓸고 그가 광고하는 정수기, 샴푸, 심지어 자동차까지 판매량이 급증한다. 전국 투어 콘서트는 전회 전석 매진으로 17만명이 운집했다. 평론가들은 트로트 팬덤에서 이런 기록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정민재 대중음악 평론가는 보통 전국 투어를 해도 지방 도시에선 하루 이틀 정도 하는데 임영웅 콘서트는 지역마다 사흘씩 했다. 아이돌 가수 중에서도 이 정도 티켓 파워를 가진 경우는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임영웅 콘서트 실황 무대가 곧장 영화와 VOD로 개봉되는 이유다.

 

휴대전화 음원 앱으로 임영웅 음원을 스트리밍하는 장면(왼쪽). 서울 송파구 더 히어로 카페에 놓인 가수 임영웅 사진과 관련 굿즈들(오른쪽).시사IN 신선영

 

하지만 임영웅 현상을 단순히 티켓 파워나 광고 효과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다음 팬카페 영웅시대회원 수는 189000여 명. 팬층은 남녀노소를 불문하지만 팬덤을 주도하는 건 50~70대 여성이다. 원래 대중음악계에서 팬덤 문화의 핵심 구성원은 여성이었다. 여성이 주축이 된 팬덤일수록 아이돌 가수의 영향력도 커졌다. 임영웅 현상이 새로운 건 중장년 여성들의 조직력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팬덤 역사에서 조명된 적이 거의 없다. 임영웅은 무엇이 달랐기에 이 많은 여성들을 움직였을까?

 

우연히 미스터 트롯첫 방송을 본 날을 황광순씨(64)는 기억한다. 정년퇴직을 앞둔 20201월이었다. 흰색 정장을 입은 한 남성 참가자가 자신을 홀로 키워온 어머니를 위해 노래하겠다고 했다. 노사연의 바램을 선곡하길래 이상히 여겼다. ‘남자가 바램을 부른다고?’ 첫 소절에 귀를 기울였다.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몸을 아프게 하고.” 기교나 신파 없이 담담한 목소리다. 그게 어찌나 내 이야기 같던지, 황씨는 그 자리에 앉아 노래가 끝날 때까지 엉엉 울었다. 살면서 그렇게 울어본 건 처음이었다.

 

삶이 예상치 못하게 흘러간 건 1997년 외환위기 때다. 사업이 어려워졌고 남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어린 두 아들을 위해 가장이 되어야 했다. 40대 초반 지인의 도움으로 취직한 경북 포항의 한 중학교 급식실이 20여 년간 황씨의 일터가 되었다. 어떤 날은 손이 퉁퉁 불어서 장갑을 끼지 못했고, 어떤 날은 장화 속으로 뜨거운 물이 튀는 바람에 물집이 생겼다. “집에 오면 먹기도 싫고 늦게까지 잠도 못 자. 일을 관둘 때가 되니까 우울 증세가 심해지더라고. 그런데 무서워서 병원에 진단을 못 받으러 갔어.” ‘손이 아프다는 노랫말을 들었을 때, 그 말이 가슴 깊이 사무쳤다. 남모를 고생을 이해받는 느낌이었다고 황광순씨는 말했다.

황광순씨(앞줄 가운데)가 직접 만든 빵을 가지고 대구 중구 남산동의 남산종합복지관을 찾았다.시사IN 이명익

 

황씨만 경험한 일이 아니었다. 팬카페에는 임영웅 노래를 들으면서 우울증과 불면증이 사라졌다는 후기들이 종종 올라왔다. 암 투병 중에, 가족 간병 중에, 황혼 육아 중에. 저마다의 사연으로 고립돼 있던 여성들이 임영웅을 통해 위로받고, 또 서로 연결되었다. 황광순씨가 대구 지역 모임인 위시 카페를 찾았을 때도 그랬다. “여기는 언니고 동생이고 할 것 없이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그냥 끌어안고 우는 거야.” 임영웅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않았을 사람들과 이제는 가족 같은 사이가 되었다. 경북 포항에서 두 시간씩 걸리는 이곳을 거의 매주 찾는 이유다.

 

우리는 왜 임영웅을 사랑하는가의 저자 조위(필명)집단적인 치유야말로 임영웅 현상을 만든 핵심이다라고 설명한다. 한 인터넷 신문사 국장인 그는 임영웅의 노래에 위로받은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썼다. 왜 똑같은 노래라도 임영웅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더 큰 감동을 느끼는지 알고 싶었다. “임영웅 가수 노래에 담긴 감정을 쉽게 설명하자면 그동안 많이 아팠죠? 내가 그 마음을 이해해요. 임영웅 가수의 노래가, 산뜻했던 서사를 잃어가다 마침내 이름마저 잊힐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개별자로서의 서사를 다시 부여하는 것이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타자적 지위에 머물러온 60대 이상 여성들에게 임영웅이 음악 치료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 많은 트로트 가수 가운데 왜 임영웅이었을까. 202211월 장유정 단국대 교수(자유교양대학)가 투고한 논문 트로트에 나타나는 남성성의 상투성과 전복성은 나름의 틀을 제공한다. 그에 따르면, 상당수의 트로트가 남자다움을 강조하거나 남자의 순정을 주로 담아냈다. 남진과 나훈아의 트로트에서 보듯 사나이, 총각, 남자 등 남성을 지칭하는 단어가 제목과 노랫말에 등장하곤 했다. 그에 비해 임영웅의 트로트는 남성성을 전복한다. 그의 대표곡 이제 나만 믿어요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에서는 남성을 지칭하는 단어가 나타나지 않을뿐더러, 허세를 부리는 남성도 등장하지 않는다. “(두 곡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고맙다고 표현하며 행복의 눈물마저 흘리는 남성을 만날 수 있다.”

 

장유정 교수는 임영웅의 트로트를 부드러운 남성성의 출현이라 명명한다. 미국에서 방탄소년단(BTS)이 성공한 이유로 거론되는 특성이기도 하다. “가부장적 남성성에 질리거나 그들에게 상처받은 여성들은 말도 행동도 노래도 조심스럽게 하는 임영웅에게 열광했다. 강함이 아닌 부드러움을 통해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무대에서 드러나는 이미지와 창법에서도 그런 면이 보인다. “트로트 창법의 대표 기교인 흔들고 꺾고 뒤집기를 과하게 하지 않는다. 그런 기교들을 덜어내는데 오히려 감흥이 크다.” 다른 미스터 트롯출연자들과도 달랐던 지점이다.

 

케이팝 아이돌 가수와도 차별점을 지닌다. 평론가들은 중장년층이 임영웅에게 매료된 한 가지 이유로 성장 서사를 꼽는다. 임영웅은 다섯 살 때 아버지가 사고로 떠난 후 어머니와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곧잘 불러 실용음악과에 진학했지만 오랜 무명 시절을 보냈다. 모아둔 돈은 떨어지고 월세도 밀리자 군고구마를 팔며 생계를 이어나갔다고 한 방송에서 털어놓기도 했다. 전국노래자랑부터 거리 버스킹까지 여러 무대를 전전하다가 만난 것이 2020미스터 트롯이었다.

 

대구 영웅사랑 봉사회 회원들이 점심 식사를 하기 전 건행(건강과 행복)’이라는 임영웅씨의 포즈를 따라 하고 있다.시사IN 이명익

 

실낱같은 가능성을 뚫고 자신의 이름처럼 영웅이 되었다. 일종의 흙수저 서사다. 그런 서사가 5060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주는 희망과 기대가 있다(장유정 교수).” 잘 다듬어진 완성형 아이돌이 케이팝의 셀링 포인트라면, 중장년층에게는 임영웅처럼 개천에서 난 용서사가 소구했다는 얘기다. 그가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기도 포천의 돈가스집이 팬들의 성지가 된 것만 봐도 그렇다. 팬들은 임영웅에게서 기특한 아들” “인성과 효심을 갖춘 가수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찾아낸다.

 

대중음악계에서 임영웅의 성공은 50~70대의 저력을 각인시켜준 사건이다. 정민재 평론가는 기성세대를 타깃으로 할 만한 새로운 트로트 스타가 없었다고 짚는다. 나훈아, 조용필 이후 세대교체가 거의 멈춰 있었다. 장윤정, 박현빈이 있었지만 팬덤 현상보다는 대중적인 트로트 열풍으로 소비되었다. “문화는 항상 1020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이들을 잡아야 롱런의 발판이 된다는 인식이 컸다. 새로운 스타가 굳이 기성세대를 타깃으로 할 동기가 없었다.”

 

임영웅이 엄마를 살렸네

그런데 임영웅은 기성세대를 정조준하며 아이돌 가수의 전략을 취했다. 트로트 가수의 공식처럼 여겨지던 히트곡’ ‘지역 행사대신, 앨범 단위 음악을 내면서 공연에 힘을 쏟는 것이 대표적이다. 말초적인 트로트보다는 스펙트럼이 넓은 음악에 중점을 찍었다. 임영웅이 부른 노래 중 가장 인기를 끈 곡은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미스터 트롯당시 부른 이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5300만 회를 넘었다. 가수 김목경이 1990년에 만든 곡을 가수 김광석이 리메이크하면서 유명해졌다. “1980~1990년대 포크 감성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좀 더 세련된 스타일이다. 새로운 음악을 기다리던 중장년층에게 충분히 소구될 만한 콘텐츠를 찾아낸 거다(정민재 평론가).” 임영웅 노래엔 아이돌 음악처럼 멜로디가 난해하거나 영어 가사가 많지도 않다. 트로트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물면서 트로트에 덧씌워진 편견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임영웅 팬카페 영웅시대반지와 굿즈.시사IN 이명익

 

이전에는 없었던 시장이 열렸다. 시장의 소비자로 호명된 이들은 10여 년 전과는 달라진 중장년층이다. 취미생활에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덜하다. SNS로도 활발히 소통한다. 트로트를 연구해온 이영미 대중예술 평론가는 이미 그전과 다른 문화 집단이 등장했지만 발산될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트로트 열풍과 함께 거대한 수용자 집단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라고 말했다. 그간 촌스럽다고 치부되었던 트로트 음악이, 종편 방송사가 주도한 트로트 열풍을 만나면서 새로운 수용자층을 끌어들였다. 넓게 보면 임영웅 현상은 중장년층이 주축이 된 트로트 현상의 일부분이라고 이영미 평론가는 강조했다.

 

414일 황광순씨는 아침 일찍 대구로 향했다. 그가 속한 대구 영웅사랑 봉사회에서 봉사활동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가수에게 받은 선한 영향력을 지역사회에 되돌려주자는 취지에 대구 지역 팬 50여 명이 동참했다. 무료 급식과 기부, 반찬 봉사 등을 해온 지 5개월째다. 연차를 내거나 가게 문을 닫고 참석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제가 쓸모있는 인간이라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 여기서 느껴요” “날카롭지 않고 둥글둥글해졌어요. 삶의 갈등을 해소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달까요.” “좋아하는 거니까 매주 해도 안 질리지요. 좋아하니까 더 자꾸 해야 해요.” 덕질 후기가 끝 모르고 이어졌다.

 

팬들은 임영웅 가수로 인해 자신들의 인생에 서사가 생겼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임영웅이라는 백마 탄 초인이 등장해서 중장년을 구원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적극적으로 자신들이 보고 싶은 성장 서사의 주인공을 호명해냈다. 개인과 공동체, 지역사회에 이들이 가져온 크고 작은 변화도 마찬가지다. 황광순씨는 이날 장애인복지관에 전달할 빵 600개를 구웠다. 한때 콤플렉스였던 그의 손엔 영웅시대를 상징하는 하늘색 반지와 팔찌가 끼워져 있다. 달라진 모습을 보며 어느 날 아들이 말했다. “임영웅이 엄마를 살렸네.” 황광순씨는 이렇게 답했다. “사는 게 행복하더라.”

대구 영웅사랑 봉사회 회원들이 414일 대구 서구 대구적십자사 서부봉사관에서 남산종합사회복지관에 기증할 빵을 만든 후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시사IN 이명익

시사인 김영화 기자

 

 

임영웅은 왜 다른가, 평론가들에게 물었다

임영웅이라는 스타의 등장은 트로트 팬덤의 저력을 보여주는 계기였다. 비주류로 여겨져온 트로트 가수가 대중적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임영웅의 트로트는 무엇이 달랐을까?

임영웅은 왜 다른가, 평론가들에게 물었다

임영웅이라는 스타의 등장은 트로트 팬덤의 저력을 보여주는 계기였다. 비주류로 여겨져온 트로트 가수가 대중적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임영웅의 트로트는 무엇이 달랐을까?

임영웅은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그 이후의 행보는 팝 가수에 가깝다.

임영웅 SNS 갈무리

트로트는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그 성과를 충분히 평가받지 못했다. ‘뽕짝이라는 말에서 보듯 촌스럽고 가벼운 장르로 희화화되었다. “트로트는 탄탄한 음악 팬층을 가진 장르다. 이들이 가시화되고 세력화되지 못했을 뿐이다.” 서정민갑 대중음악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임영웅이라는 스타의 등장은 트로트 팬덤의 저력을 보여주는 계기였다.

 

그뿐만 아니다. 2022년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불린 노래가 임영웅이 부른 사랑은 늘 도망가로 조사됐다(금영엔터테인먼트). 중장년 팬을 결집시켰을 뿐만 아니라 길거리, 노래방 같은 대중적 장소에서도 임영웅의 노래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비주류로 여겨져온 트로트 가수가 대중적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음악적인 측면에서 임영웅의 트로트는 무엇이 달랐을까?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트로트 가수로서 그가 가진 확장력을 짚는다. “흔히 트로트 가수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두 가지다. 무게감 있는 기성 가수와 활력 넘치는 신세대 가수. 임영웅은 신세대 가수이면서 무게감 있는 음악을 선보인다. 중장년 세대에게는 격조 있는 트로트를 듣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올드하다거나 부담스럽다 같은, 트로트에 덧씌워진 오해와 편견을 임영웅의 노래가 상당히 걷어냈다는 분석이다.

 

성인가요의 신파와 통속적 요소를 달가워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그들도 임영웅 노래는 부담없이 들을 수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임영웅이 부른 노래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곡은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가수 김광석이 포크 창법으로 불렀다면 임영웅은 스탠더드팝 창법으로 재해석했다. 트로트 가수로서는 폭이 넓다. 트로트 연구자이기도 한 이영미 대중예술 평론가는 “1960~1980년대 감수성을 지닌 대중가요를 포크든 트로트든 스탠더드팝이든 나름대로 잘 소화해낸다. 다른 가수들에 비해서 임영웅이 포괄하고 있는 양식의 폭이 넓다라고 말했다.

 

사실 임영웅의 노래 중 트로트 장르는 다수가 아니다. 그의 첫 정규앨범 아임 히어로(IM HERO)수록곡은 발라드와 댄스, 힙합까지 다양하다. ‘아 비앙또(프랑스어로 또 만나요라는 뜻)’는 레게풍의 힙합 장르곡이고 히트곡 사랑은 늘 도망가는 발라드 장르다. 서정민갑 평론가는 싱글로 내놓은 음원 중에는 가수 신해철이 불렀을 것 같은 록 분위기 곡도 있다라고 평했다.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그 이후의 행보를 보면 팝 가수에 가까운 모습이다. “본인이 지향하고 있는 뮤지션이 조용필이 아닐까 생각한다. 방송 프로그램에 거의 출연하지 않는데 뮤지션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갖는 데 집중하는 듯하다.”

 

정민재 대중음악 평론가는 임영웅을 두고 한국의 마이클 부블레에 비유했다. “고전 스윙 재즈부터 미국 고전 음악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입지를 키워온 보컬리스트다. 타이틀곡 다시 만날 수 있을까를 보면 어덜트 컨템포러리 장르(발라드처럼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성인 취향의 팝 음악 스타일). 우리에게는 많이 와닿지 않는 음악인데 그걸 소화하면서 트로트까지 하는, 희귀한 포지션의 가수다. 음악적 운신의 폭이 넓다.”

 

기성세대를 타깃으로 한 아이돌 전략

이쯤 되면 임영웅의 장르를 트로트로 볼 수 있을까? 평론가들은 어떤 노래가 트로트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일이 단순하지 않다고 말한다. 음악사학자인 장유정 단국대 자유교양대학 교수는 현대 트로트의 특징 중 하나로 트로트 경계의 불확실성을 든다. 트로트는 하나의 고정된 장르가 아니다. 여러 장르와 부딪치고 혼합해가며 명맥을 이어왔다. 한때 유행했던 꺾기 창법이나 신파적인 세계관이 미스터 트롯출연자들에게선 발견하기 어려워진 것도 그런 예다. 미스 트롯우승자인 가수 송가인이 국악과 트로트를 섞어 전통적인 창법을 구사했다면, 임영웅은 발라드와 트로트를 섞는다. 데뷔 당시 발라드 가수로 시작한 영향이 컸다. 팬들은 임영웅의 음악세계를 발로트라는 단어로 조명하기도 한다.

 

임영웅 현상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음악 팬들이 요구하는 새로운 사운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례로 가수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는 트로트에 테크노 사운드를 가미했다. 트로트가 시대의 변화에 맞춰간다는 증거다. 결국 그 요구를 수용하는 목소리가 있냐 없냐의 문제다. 정덕현 평론가는 현 시대에 어울리는 트로트를 불러야 한다. 트로트가 현재화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게 임영웅이다라고 말했다. 서정민갑 평론가는 한계를 짚는다. “시대가 바뀌면 거기에 맞는 메시지와 음악 어법이 나와야 하는데 임영웅과 송가인이 2020년대에 맞는 트로트의 전형을 만들어냈는가에 대해선 단언하기 어렵다. 국악,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를 활용하기는 했지만 이미 해왔던 음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영미 평론가는 트로트를 받아들이게 된 거대한 수용자 집단이 물 위로 떠올랐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임영웅 현상을 분석하기 어렵다고 본다. “결국 트로트 열풍이 휘감은 가운데, 임영웅은 그중에서 왜 더 돋보이는가를 찾아야 한다.” 임영웅이 보여주고 있는 음악 세계는 팝 흐름에 맞는 현대적인 성인가요의 모습을 띤다. 트로트를 싫어하는 이들도 끌어들일 만한, 폭넓고 세련된 방식이기에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임영웅이 취하는 전략도 기존 트로트 가수와 달라진다. 기성세대를 타깃으로 한 아이돌 전략의 핵심은 고급화다. 정민재 평론가의 말이다. “스타덤에 오른 트로트 가수는 히트곡 한두 곡만 있어도 막대한 수익을 가져갈 수 있다. 지역 행사 섭외 요청이 쏟아진다. 그런데도 앨범 단위 음악을 내고 있다는 것은 말초적인 히트곡에 치중하는 게 아니라 음악적인 성과를 가져가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콘서트에 힘을 쏟고 그 공연을 영화화하는 것은 기성의 팝스타 아이돌 전략을 닮았다. 가장 트로트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트로트 열풍을 이끈 셈이다.

시사인 김영화 기자

 

 

국민 60% “대한민국 민주주의, 1년간 역주행

 

'국민 10명 가운데 6명은 윤석열 정부가 집권한 지난 1년간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 대통령이 야당·시민사회 등 비판세력과의 소통이 부족하고 독단적으로 국정 운영을 한다는 평가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한겨레>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9일부터 이틀간 전국 성인 1011명에게 전화면접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지난 1년 동안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0.2%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답했다.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응답은 38.5%였다.

민주주의 평가수치 자체는 <한겨레>의 지난 1월 새해 여론조사(부정 평가 58.3%, 긍정 평가 39.7%), 박근혜 정부 때인 201412월 여론조사(부정 평가 60.5%, 긍정 평가 35.8%) 때와 엇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조사 결과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부정 평가의 강도가 훨씬 세진 사실이 확인된다. 이번 조사에서 민주주의가 매우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응답은 32.4%, ‘별로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27.8%. ‘매우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응답은 4개월 전 조사(26.7%)보다 5.7%포인트, 9년 전 조사(14.0%)보다는 18.4%포인트 높다.

지병근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3<한겨레>예컨대 69시간으로 대표되는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 대일 외교 정책, 대북 정책 등 국정 전반이 국민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밀어붙이기방식으로 결정됐다. 윤 대통령의 이런 일방주의, 독단적 국정 운영의 행태가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윤석열 정부 1년 민주주의 평가

 

세대별로 볼 때, 지난 1년간 민주주의를 가장 비관적으로 평가하는 집단은 40(74.1%)50(72.5%). 30(63.8%)20(62.7%)의 평가도 호의적이지 않다. 반면 60(54.7%)70대 이상(62.6%) 연령층에서는 긍정 평가가 부정 평가(44.8%, 36.3%)보다 높다. 지지 정당별 의견 차이도 극명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 대부분(89.9%)은 민주주의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한 반면, 국민의힘 지지자 대다수(77.4%)는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봤다. 무당층에선 부정 평가가 70.4%, 긍정 평가(25.7%)를 압도했다.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인식은 지난 1년간 윤석열 정부의 반대세력과 소통·포용하려는 노력에 대한 평가에서도 드러난다. 소통·포용 노력을 잘 못했다는 응답이 69.4%에 이르고, ‘잘했다는 대답은 28.1%에 그쳤다. 민주당 지지층에선 부정 평가가 93.6%로 절대다수였고,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도 33.9%잘 못했다는 의견을 내놨다. 글로벌리서치 관계자는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는 국정 지지율처럼 진영별로 판단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정치 문화에 대해서는 진영 내에서도 통합 행보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겨례

 

 

경제학자의 경고 "정부 1, 한국 경제 길 잃어진짜 위기 오고 있다"

1년 평가 토론회서 나원준 교수 "신자유주의 매몰, 정부만 역행"

윤석열 정부 들어 한국 경제가 "갈 길을 잃"은 가운데 이를 극복할 국가 전략이 보이지 않아 "정말 위기"가 오고 있다는 냉정한 평가가 내려졌다.

 

3일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이 주최한 '윤석열 정부 1' 평가 토론회에서 경제 분야 평가 발제를 맡은 나원준 경북대 교수는 지난 1년 사이 "윤석열 정부가 부자와 재벌만 위하고 전 정권 탓만 하며 미국의 이해관계에 예속"된 가운데 한국 경제는 "방향을 잃고 표류 중"이라고 진단했다.

 

"정부만세계흐름에역행"

나 교수는 우선 윤석열 정부의 지난 1년간 경제 실정이 급락하는 무역수지 지표로 나타나고 있다고 혹독히 비판했다.

 

나 교수는 "가뜩이나 기술 수준마저 중국에 따라잡히는 마당에 (윤석열 정부가) 미국과 일방적 외교"에 매달려 "그간 한국경제 성장을 견인한 중국과의 남은 경제 관계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현재 한국 상황을 두고 나 교수는 "한국 경제의 수출주도성장 전략 자체에 비상이 걸린 셈"이라며 "남한 자본주의가 갈 길을 잃었다"고 통탄했다.

 

나 교수는 현 정부의 거시경제 운영 기조가 다른 나라와 정반대되어 모범 답안에서 많이 비껴났다는 점을 꼬집었다.

 

코로나19 위기 대응 국면에서 급격히 늘어난 통화량을 흡수하기 위해 구미 선진국들이 "통화정책을 긴축 기조로 가져가되, 재정정책은 증세에 기반한 확장 기조를 유지"하는데 반해 "윤석열 정부는 세계적 추세를 역행하면서 거꾸로 신자유주의 정통 교리에 더욱 충실한 방향으로 거시경제를 운영"한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 집권기 무역수지 흐름. 무역 적자가 고착화하고 있다. 나원준

 

나 교수가 지적한 신자유주의 경제 기조는 감세와 재정 긴축 체제를 뜻한다. 재정적자를 줄여 국가채무비율을 떨어뜨리기 위해 취약계층 보호 등을 외면하는 정책 기조를 현 정부가 유지한다는 비판이다.

 

실제 나 교수가 올해 정부 예산을 평가한 결과를 보면, 총지출 639조 원으로 계획돼 지난해 2차 추경 결과인 6795000억 원에 비해 6퍼센트(%)가량인 40조 원 이상이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예산상의 올해 국가채무비율 목표는 49.8%로 잡혔다. 작년의 50.0%보다 줄어든다. 통합재정수지 비율은 작년 3.3% 적자에서 올해는 사실상 균형 수준인 0.6% 적자로 계획됐다.

 

한편 부자 감세 기조는 이미 확고히 나타났다고 나 교수는 평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공정시장가액비율에서 재산세는 60%에서 45%, 종부세는 95%에서 60%로 각각 하향 조정했다. 나 교수는 "그 결과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역대 가장 큰 폭인 18.6% 하락했다""낮은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보유세 누락 및 누진적 과세 기능 축소"로 이어져 "자산계층에 주는 이득이 작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는 또 종부세 기본공제 대상자를 다주택자는 6억 원에서 9억 원으로, 1주택자는 11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나 교수는 "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0.28%에 크게 못 미치는 0.17% 수준임에도 오직 부자를 위한 감세에 열을 올리"는 증거라고 개탄했다.

 

그 밖에도 윤석열 정부는 당초 올해 1월에 시행 예정이던 금융투자소득세 적용을 다시 2년 추가 유예하기로 했다. 중견기업에 적용되는 가업상속공제 한도는 5000억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올해 3월에는 조세특례제한법이 개정돼 반도체·이차전지·백신·디스플레이·수소·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등 6개 산업 분야 기업에는 설비투자 시 대기업 현행 8%에서 15%,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세액공제율을 상향 조정해줬다. 이들 정책은 모두 감세 정책이다.

 

정부 지출을 줄여 재정 균형을 맞추겠다면서 감세를 병행한다면, 결국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재정지원을 끊겠다는 얘기다.

 

나 교수는 "복지 절벽이 현실화"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수치라며 "정작 핵심은 경제와 민생에 대한 책임인데 그런 측면은 도외시"하는 셈이라고 통탄했다. 이처럼 현 정부 기조가 이어진다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모두 지금처럼 긴축 기조로 가져감에 따라 경제를 수축시키는 나쁜 균형"이 나타나 "전환기 한국경제에 부정적인 이력 효과(hysteresis)를 가져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성장4.0,결국재벌배불리기재탕"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12월 새 국가 성장 담론으로 제시한 '신성장 4.0 전략' 역시 비판 도마에 올랐다.

 

나 교수는 우선 "신성장 4.0이 성장전략을 기술 편향적으로 사고"하면서도 정작 "현재 세계 기술 경쟁이 미중 간 패권 경쟁의 양상"에서 나타난다는 점은 간과한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는 "첨단 분야 기술 수준을 높여 산업화 단계로 진입해야 한다는 당위적 주장만" 할 뿐 "첨단기술 선도국인 중국과 미국 간 기술 패권 경쟁에 대한 대응 전략이 없다"는 게 나 교수의 지적이다. "현 정부의 외교 행태만 봐도 이런 문제에 관해 정권이 별 고민이 없어 보인다"고 나 교수는 일침했다.

 

결국 재벌 배불리기 정책의 재탕이 아니겠느냐고 나 교수는 신랄히 '신성장 4.0'을 평가했다.

나 교수는 "재원조달방안과 관련해 '민간의 역량을 동원한다'는 언급을 보면 결국 자금력 있는 재벌기업 주도의 프로젝트 수행이 예상"된다며 "일정 부분 재벌에 사업 기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직접적인 재정 부담을 관리한다는 복안"인 셈인데 이는 결국 "다시 낙수효과론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라고 해석했다.

 

그 결과 일자리 정책에서도 "앞으로 지금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채 "재벌 대기업이 지휘하는 원하청의 수직적 공급체계는 더욱 강화될 일만 남았다"고 비판했다.

 

나 교수는 또 "신성장 4.0과 함께 발표된 정부 경제정책방향 등을 보면 부동산 경기부양과 수출 지원, 공공부문 구조조정, 노조 무력화에 방점"이 찍혔다며 "오래된 과거의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신성장 4.0은 재벌 지원을 위한 종합 선물세트 이상이 아니"라는 평가다.

 

늘리기의존,

한편 점차 위기 징후가 심각해지는 가계의 채무와 관련해서는 현 정부가 여전히 민간 부채를 추가로 늘려서 현 내수 침체 국면을 돌파하려 한다고 우려했다.

 

장기간 이어진 코로나19 체제와 그후 글로벌 경기 위축으로 인해 내수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가운데, "부동산 경기 악화를 배경으로 자영업자 대출의 부도가 늘면서 비은행금융기관 중심으로 금융 불안이 촉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나 교수는 우려했다.

 

그 해결 방안은 "취약차주 채무를 부분적으로 재조정하되 필요하다면 정부가 직접 인수"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자영업 매출을 늘려 소득 기반 회복 자체를 돕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나 교수는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윤석열 정부는 "민간부채를 추가로 늘려서 상황을 모면하려고 한다"며 그 사례로 부동산 경착륙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완화한 조치를 나 교수는 꼽았다.

 

현 정부가 급등하는 물가를 잡지 못하는 건 큰 문제라고 나 교수는 비판했다.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작년 34%를 넘은 데 이어 작년 76.3%까지 치솟았다.

 

나 교수는 특히 전기료 상승률이 "작년 411%까지 오른 다음 연말에는 18.6%까지 치솟"았고 "올해 들어서는 3개월간 29.5% 상승"했다고 지적했다.

 

"도시가스나 지역난방비 상승률은 그보다 더 커서, 올해 들어 각각 36.2%34%를 기록"했고 특히 취약계층의 기름보일러에 사용되는 등유는 "37.7% 폭등"했다고 나 교수는 밝혔다.

 

앞으로도 에너지 비용 추가 상승이 줄줄이 예고돼 있다. 총선을 전후해 더 강력한 상승이 이뤄질 것이라고 나 교수는 전망했다. "총선에서 승리하면 윤석열 정권은 시장주의 탈레반의 정체를 전면에 드러내면서 가정용을 포함한 에너지 요금의 인상을 밀어붙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나 교수는 "총량 차원에서 에너지 사용량을 줄여야 하고 따라서 에너지 요금이 인상되어야 한다는 주장 자체에는 이견이 없다"며 다만 "필수적 에너지에 대해서는 그것의 공공성을 고려해 요금 동결 내지는 무상화로 '에너지 기본권'을 보장하자는 주장" 역시 틀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둘 간의 조정을 이뤄내야 하는 게 정부 역할이지만, 현 정부에서는 그 같은 고민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미국 등 농업 선진국의 압력에 직면한 농업 분야에서도 현 정부 정책이 정도를 걷지 않는다고 나 교수는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농가의 경영비 부담 완화를 위해 비료가격 인상 차액 지원을 공약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집권 후 첫 추경에서부터 비료가격 인상분 지원에 대한 정부 부담분을 거꾸로 당초 예산보다 축소했다"고 나 교수는 질타했다.

 

나 교수는 또 현 정부가 "그뿐만 아니라 수입 농산물로 인한 농가 피해 보상, 식품안전 강화, 식량 자급 목표치 달성과 같은 공약과는 양립할 수 없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지속 추진하고 있다"며 현 정부가 입으로만 농가를 지원할뿐, 실행은 정반대로 행한다고 꼬집었다.

 

나 교수는 "윤석열 정부의 농업정책은 한마디로 농업과 농민과 농촌 사회를 버리는 정책"이라며 "농업정책에도 공공성과 국가 책임 강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프레시안 이대희 기자

 

 

백악관 디폴트 시 최소 800만개 일자리 사라질 것경고

CEA "디폴트 장기화 시 GDP 6.1% 하락"

바이든, 9일 여야 지도부와 협상 나선다

"부채 한도 상향 불발 시 디폴트 불가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AP

 

미국 정부와 의회 간 국가 부채 한도 조정을 위한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디폴트(채무불이행) 발생 시 미국에서 83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증시가 45% 폭락하는 등 심각한 경제 위기가 올 것이란 경고가 나왔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3(현지 시간) 보고서를 통해 단기 디폴트 발생 시 연간 국내총생산(GDP)0.6% 하락하고 50만 개의 일자리가 증발, 실업률이 0.3% 상승할 것이라는 분석을 발표했다. CEA는 이어 디폴트가 1개 분기 동안 지속될 시 증시가 45% 급락하고 GDP6.1% 하락, 최소 830만 개 일자리가 사라지며 실업률이 5%포인트 오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CEA61일까지 부채 한도가 상향되지 않으면 디폴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미국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은 부채 한도를 상향하는 조건으로 연방 예산을 삭감하는 법안을 제안했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는 조건 없는 상향을 요구하며 대치하고 있다. CEA부채 한도 협상을 두고 여야의 정치적 분쟁이 지속되는 상황 자체가 재정 손실과 비용 증가의 원인이 될 것이라며 미 의회에 대해 부채 한도 인상에 조속히 합의할 것을 촉구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백악관 경제학자들은 보고서를 통해 현재의 벼랑 끝 전술만으로도 경제에 큰 타격이 올 수 있다우리는 이미 부채 상한과 관련한 긴장으로 상당한 시장 스트레스가 유발된 증거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9일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을 비롯한 여야 지도부와 회동을 갖고 부채 한도 관련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외신들은 협상이 타결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블룸버그는 교착 상태가 이달까지 지속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바이든 행정부가 협상에 실패할 경우 수정헌법 14조를 근거로 의회 승인 없이 부채 한도를 상향하는 비상 조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 역시 제기된다.

서울경제 정혜진 기자

 

 

나는 피해자라는 임창정과 자산가들... 일각선 미미한 처벌이라도 필요

지난달 시작된 ‘SG증권 발 주가 폭락 사태8개 종목 시가총액이 8조원 이상 증발했다. 주가가 폭락하면서 해당 종목을 보유한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실을 떠안게 됐다. 그러자 주가 조작 세력으로 의심받는 라덕연 호안투자자문 대표와 친밀한 유명 가수 임창정은 물론, 주가 조작 일당에게 자금을 건넨 고액 자산가, 해당 종목을 장내 매수한 개인 투자자들이 일제히 피해를 호소하고 나섰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들을 순수한 피해자로 볼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휴대폰을 개통해 넘기고 신용카드로 수수료를 지불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불법 가능성을 인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투자 수익 극대화를 위해 결과적으로 불법 투자 행위를 묵인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논리다. 이런 측면에서 손실을 입은 투자자에 대해서도 미미하게나마 제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큰 피해를 입긴 했으나 법의 판단을 받아야 유사한 사건이 또다시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가수 임창정은 SG발 주가 폭락 사태로 막대한 투자 손실을 입었다며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뉴스1

 

라 대표 등 이번 SG 발 주가 폭락 사태를 유발한 주가 조작 일당은 다단계 방식으로 모집한 투자자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한 뒤 매매 가격을 미리 짜고 거래하는 통정매매 방식으로 8개 종목 주가를 2~3년 동안 대폭 끌어올렸다. 40% 정도의 증거금으로 2.5배만큼 주식을 주문한 뒤 나중에 시세 차액만 정산하는 파생상품 차액결제거래(CFD)를 활용해 원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투자했다.

 

그런데 금융 당국의 조사가 시작되자 투자자들이 일제히 주식을 내던지기 시작했고 주가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타깃이 된 대성홀딩스·서울가스·선광·삼천리·세방·다우데이타·하림지주·다올투자증권 등 8종목 주가는 폭락 사태 이후 50~80% 안팎 폭락한 상태다.

 

검찰과 금융 당국은 이번 사태의 배경에 주가 조작이 있었는지 여부를 수사하고 있다. 라 대표를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행위 등의 혐의로 입건했고, 가담 의혹을 받는 10명도 출국금지했다.

 

사태가 터지자 투자자들은 피해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대부분 주가 조작 등 불법 행위로 수익을 낸다는 사실은 인지하지 못했고, 단지 고수익을 내준다기에 믿고 돈을 맡겼는데 오히려 막대한 손실을 봤다는 것이다. 일부 투자자들은 변호인을 선임해 채권 추심을 유예하고 일정 기간 이자를 면제해 달라며 금융 당국에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시중 은행 예금 금리가 연 3% 안팎으로, 이보다 조금 높은 예금 특판 상품이 나오면 은행 오픈런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투자금의 몇 배 수익을 원하면서 묻지마 투자에 나선 것은 암묵적으로 전주(錢主) 역할을 수행해 결과적으로 불법 행위에 동조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부동산이나 주식 등 모든 자산 시장에서 기본 원칙은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으로, 손쉽게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약속은 투자 사기를 치겠다는 말과 같다고수익을 기대하다가 손실이 나니 나는 피해자라는 논리는 더 이상 우리 국민에게 통하는 정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막대한 투자 손실이 발생했지만, 손실을 입은 투자자를 피해자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식시장에서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는 투자자가 의사결정할 때 공정한 환경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 투자 이익을 보장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사태에 타깃이 된 종목들이 급등하자, 투자 경고가 나오는 와중에 장내 매수한 개인 투자자들 역시 단순히 피해자로 볼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예를 들어 라 대표 일당이 주가를 끌어올린 삼천리와 대성홀딩스, 서울도시가스 등에 대해서는 지난해부터 투자 경고가 나왔다. 지난 2~3년 동안 주가가 1000% 급등했는데, 기초체력 없이 오른 주가가 과열 상태라며 언제든지 큰 폭 조정받을 수 있다는 증권사 분석이 여러 차례 나왔다. 그럼에도 많은 개인 투자자가 해당 종목을 매수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수법이 조금씩 바뀔 뿐 주식시장에서 발생하는 주가 조작은 이를 추종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에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며 투자 자금을 맡겼다가 피해를 본 투자자 역시 낮은 수준으로라도 처벌해야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조선 연선옥 기자

 

개신교 목회자 1000명 시국선언

목회자들이 무슨 정치적 이해관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웬만하면 축복해야 마땅한 시간, 그것이 정권 1년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건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지난 1, 사회 구석구석 한국 현대사에서 수많은 희생을 치러 이룩한 소중한 가치들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을 아픈 마음으로 목도해야 했습니다. (중략) 축하 대신 고언을 드리게 되어 안타깝습니다만, 더 이상 나라가 망가지고 국민의 삶이 뭉개지는 일을 그저 바라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천주교와 불교 등 종교계 일각에서 윤석열 정부에 대한 규탄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개신교에서도 4일 윤 대통령 취임 1년에 부치는 시국선언이 나왔다.

 

시국선언에 참여한 목회자들은 지난 3일 오후 940분 기준 1016명이다. 시국선언 참여 목회자 일부는 4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 1, 우리는 권력에 눈먼 무능한 지도자가 한 나라를 얼마나 망가뜨리고 민생을 도탄에 빠트리는지 똑똑히 보고 있다"면서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와 평등의 보편적 대의를 따르지 않고 정파적 이해에 몰입한 윤석열 정부가 초래한 불안한 미래이다"라고 말했다.

 

"사회적 약자의 극단적 선택 이어지고, 가진 자는 온갖 특혜"

'윤석열 정부 1년에 부치는 기독교 목회자 1천인 시국선언4일 오전 서울 종로 5가 기독교회관 조예홀에서 열렸다.권우성

 

이들이 시국선언에서 언급한 윤석열 정부 1년 비판은 국민통합 상실 정치 양극화 사회적 참사 국가 책무 뒷전 사회적 양극화 및 노동자 압박 에너지 환경 정책 뒷걸음질 한반도 정세 불안 고조 일제강점기 노동자 문제 해법 등 굴욕 외교 등이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인 정진우 목사는 이날 시국선언 취지를 설명하면서 최근 건설노조 탄압에 분신한 노동자의 죽음을 언급했다. 정 목사는 "노동자 한 분이 이 정권의 절대 무기인 검찰 압박을 견디다 못해 분신해 사망했다는 아픈 소식을 듣는다"면서 "무거운 마음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 참여한 목사들은 '굴욕외교 전쟁위기' '민생파탄 검찰정권' 등의 손팻말을 들었다.

 

그는 "여러 제약 속에도 자발적으로 1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모였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라면서 "다른 한편으로 한국 교회가 수구 보수의 온상처럼 이미지화되는 풍조 속에서 상식과 양식을 지닌 이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희망의 사인으로, 부디 오늘 이 작은 목소리가 퇴행하는 역사를 막을 수 있으면 한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묻습니다. 어떻습니까. 대통령직 수행해 낼 만합니까."

 

교계 원로 목사인 김상근 목사도 이날 격려사를 통해 쓴소리를 던졌다.

김 목사는 "사회적 약자들의 극단적 소식이 이어지고, 국민들이 갈라졌다. 노동자는 부패 집단으로 몰아간다. 가진 자에게는 온갖 특혜가 안겨지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서로 증오하게 되었다"면서 "정치는 실종되고 검찰 압수수색, 구속영장 신청 보도만 매일 쏟아지고 있다"고 짚었다. 김 목사는 이어 "저자세, 매국외교, 다듬어지지 않은 경륜 없음을 국민이 걱정하고 있다"면서 "감당할 수 있겠나. 더 해도 되겠나. 나라가 거덜 날 수도 있다"라고 반문했다.

 

한편, 이들은 이날 시국선언문에서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어찌 두렵지 않으랴"는 마태복음 성경구절을 인용하며 "윤 대통령은 지난 1년간의 행적을 엄중히 돌아보고 향후 진퇴를 분명히 하기 바란다"고 적었다.

 

한편, 이들은 이날 시국선언 이후 전국 각지에서 시국 선언과 기도회를 이어갈 계획이다. 앞서 지난 410일부터 '친일매국 검찰독재 윤석열 퇴진 주권회복을 위한 월요 시국기도회'를 진행해 온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또한 58일 춘천, 15일 광주, 22일 의정부까지 시국 기도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윤석열 정부 1년에 부치는 기독교 목회자 1천인 시국선언4일 오전 서울 종로 5가 기독교회관 조예홀에서 열렸다.권우성

 

아래는 이들이 이날 발표한 시국선언 전문이다.

 

- 윤석열 정부 1년에 부치는 기독교 목회자 시국 선언 -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어찌 두렵지 않으랴? (마태 3:10)

 

두렵다. 온 나라에 재앙이 몰려오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이 두렵다. 윤석열 정부 1, 민생은 파탄 나고 평화는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후퇴일로에 있다. 엉망진창, 지금 나라 꼴을 무슨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애초에 기대보다는 우려가 컸다. 촛불민의가 좌절되고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현상에 대한 우려였다. 물론 그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기대마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1년간 펼쳐진 일들은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1년 전 대통령 선거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우리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는 극에 달했고, 따라서 어느 때보다도 국민적 통합을 위한 정치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출범했다. 하지만 국민적 통합을 위한 정치는커녕 아예 정치가 실종되었다. 검찰권력이 온 사회를 속속들이 지배하고 일체의 정치행위가 사법적 판단에 맡겨지고 있다. 야당과의 협치는 말할 것도 없고 자당 소속 정치인들에게까지도 편 가르기 패악을 일삼고 있으니 대통령의 머릿속에 국민통합의 개념이 존재하기나 한 것인가?

 

공공성을 구현해야 할 국가의 책무는 뒷전으로 밀렸다. 9년 전 4.16 세월호 참사를 겪고 그 진상규명과 책임소재도 가려내지 못한 터에 지난해 10.29 이태원 참사를 다시 겪어야 했다. 그 자리에 국가는 없었다. 아니 국가는 참사를 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로 부르며, '근조' 없는 리본으로 억울한 이들을 조롱했다. 천벌을 받을 일이다.

 

사회적 양극화는 더욱 심화하고 민생이 파탄 나고 있다. 성별 갈라치기는 여전하고, 사회적 약자들은 더욱 궁지로 내몰리고 있다. 장시간 노동과 산재, 불안정 고용과 임금격차 등 산적한 노동현실은 외면당하고 오히려 노동개혁 미명 아래 노동자들이 압박당하고 있다. 농업 정책은 고사작전 외에는 대책이 없으며, 사회적 서비스는 시장에 맡겨지고, 교육은 경쟁을 더욱 가속화 해 사유화, 상업화가 심화되고 있다. 부자감세와 긴축재정의 엇박자로 양극화 해소 방안이 묘연한 가운데 연금개혁은 또 어찌 될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에너지와 환경 정책도 뒷걸음질이다. 탈원전 정책은 범죄시되고 있으며, 세계적 추세인 탄소중립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인류가 기후위기에 대응할 시간이 촉박하다는 세계 공통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는 그에 대한 긴박한 위기의식이 없다. 장기적인 경제 전망도 없이 그저 단기적인 경제 득실만 따지며 허둥대고 있는 꼴이다.

 

한반도에는 전운마저 감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선제공격 운운하더니 급기야 강 대 강의 벼랑 끝 전술에 집착하면서 남북관계를 파탄 내고 있다. 더욱이 말끝마다 진영 간의 대결을 자극하는 언사로 한반도 주변정세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언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방에 치우친 외교는 국가의 위신을 추락시킬 뿐 아니라 오히려 경제적 군사적 안보의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 민족의 역린을 건드린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노동자 문제에 대한 해법, 국가안보실 도청사건에 대한 대처 등은 주권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로, 미국과 일본에 치우친 사대적이며 굴욕적인 외교 가운데 빚어진 참사이다. 신냉전의 격랑 가운데서 그 일방적 외교는 오히려 경제적 군사적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

 

윤석열 정부 1, 우리는 권력에 눈먼 무능한 지도자가 한 나라를 얼마나 망가뜨리고 민생을 도탄에 빠트리는지 똑똑히 보고 있다. 분노와 증오를 부추기는 언사가 넘쳐나고 걸핏하면 거짓말과 변명으로 둘러대는 것만이 익숙한 풍경이 되었으니, 국민통합의 전망은 요원해 보인다. 대통령의 거친 언사로 전쟁의 불안까지 겹쳐 이 땅에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아득하기만 하다.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와 평등의 보편적 대의를 따르지 아니하고 정파적 이해에 몰입한 윤석열 정부가 초래한 이 나라의 불안한 미래이다.

 

임기 초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현저히 낮은 지지율은 윤석열 정부가 국민적 요구를 받드는 정부가 아니라 특정세력의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집행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 폐해는 고스란히 온 국민의 몫이 되었다. 오죽하면 취임 1년 만에 각계각층에서 퇴진요구가 빗발치는 상황이 되었겠는가? 국민의 인내가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나라꼴이 이토록 망가지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합법적 절차로 대통령이 되었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여기지 말라.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정부는 절차상의 정당성을 지녀야 할 뿐 아니라 마땅히 통치상의 정당성을 지녀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아슬아슬한 표차로 선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승자의 도취상태에 빠져 패악을 저지르고 있다.

 

역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가장 극악한 권력의 하나였던 히틀러 정권마저도 합법적 절차를 통해 탄생하였다. 윤석열 정부가 정녕 그 길을 가고자 하는 것인가? 잘못하면 바로잡을 수 있고, 스스로 그 잘못을 바로잡을 때 또다시 기회는 주어진다. 그러나 잘못을 바로잡으라는 빗발치는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갈 길만 간다면 그것은 스스로 기회를 저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년간의 행적을 엄중히 돌아보고 향후 진퇴를 분명히 하기 바란다. 온 국민이 겪게 될 불행한 사태를 예방하고 국민이 안도할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한다면, 지금 이 순간 스스로의 운명이 다했음을 깨달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다(마태 3:10).

202354

윤석열 정부 1년을 앞두고 한국 기독교 목회자 일동"

오마이뉴스

 

 

솔직한 성 이야기? '+인물'의 진짜 문제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인물>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인물> 포스터 이미지 넷플릭스

 

 

한국 사회에서 남성으로 살아가다 보면, '야동(포르노) 보는 것의 당연함'이 얼마나 견고하게 정당화되는지를 느낄 수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남자라면 주기적으로 성적 욕구를 '야동'으로 풀어줘야 한다든가, 여자들은 모르는 남자들끼리만 은밀하게 공유하는 다양한 정보들까지. 이 얘기가 대화 소재로 오르내릴 때마다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건 개인의 내밀한 욕망이 너무 쉽게 일반화되고 가볍게 다뤄진다는 점과 '야한 얘기'가 남자들만의 전유물처럼 여겨진다는 점 때문이었다.

 

2014년 방영했던 JTBC 예능 프로그램 <마녀사냥>은 언제나 침묵했던 주제()를 양지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분명 유의미했다. 하지만 부제인 '남자들의 여자 이야기'에서도 드러나듯, 화자는 언제나 남자였고 여성은 주로 대상화된다는 점에서는 앞서 말했던 '노골적이고 야한 이야기'는 여전히 남성들이 주도한다는 한계를 깨진 못했다. 물론 소위 '페미니즘 리부트'라고 일컬어지는 물결이 휘몰아치기도 전이었으니 그런 걸 기대하는 게 오히려 무리수였을지도 모르겠다.

 

성 엄숙주의 vs. 솔직함? 복잡한 맥락을 지우는 이분법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인물> 스틸 이미지 넷플릭스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마녀사냥>의 출연자였던 신동엽과 성시경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인물>로 돌아왔다.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면서 소위 '섹드립'을 치는 분야의 권위자(?)인 신동엽과 <마녀사냥>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고 평가받았던 성시경의 만남이다. <마녀사냥>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웬걸? AV 배우들과의 만남에 여러 노골적인 이야기들이 공개되면서 <+인물>은 삽시간에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인물>이 의도하는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성 엄숙주의'에서 벗어나 다양한 섹슈얼 토크를 시도하는 것. 분명 넷플릭스라는 OTT 플랫폼이 아니었다면 이러한 시도가 방송되긴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성에 관한 이야기가 남성들에게서, 남성의 시선에서만 유통되는 것은 께름칙하다. 자유로운 섹슈얼 토크를 지향하는 <+인물>이 착취가 만연한 포르노 성 산업에 대한 옹호로 이어진다는 점만 해도 그렇다. 사실 '한국 사회의 성 엄숙주의가 강하다', '섹슈얼한 이야기가 자유롭게 오갈 수 있어야 한다'고 하는 주장은 보편적인 욕망인 성욕을 '솔직하게' 표출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점에 도달한다. 다만 그 보편적 욕망이 실제로는 남성의 욕망이라는 점이 문제적이다.

 

그래서 <+인물>과 같은 콘텐츠를 통해 '성에 대해 솔직하고 개방적으로 말하자'고 하는 것은 의아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솔직하고 어떻게 개방적인지, 누구의 시선에서 솔직하고 개방적인지를 논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물>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마치 솔직하지도, 개방적이지도 않고 성 문제는 꽁꽁 싸매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AV 배우들과 즐거운(?) 토크쇼를 하는 게 개방적이고 솔직한 것이고, 그것을 비판하면 '성 담론에 대한 논의를 차단하는 일'이 되어버리는 이분법은 너무나 아쉽다.

 

이 콘텐츠의 성격이 무언가를 조명하고 고발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토크쇼'인 만큼, 논쟁이나 토론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운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제작진은 무엇을 조명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러나 여전히 성적 욕망을 단순히 배출하는 것, 어떻게든 해소해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남성적 관점'을 넘어서야 한다는 과제는 남는다.

 

진짜 성 엄숙주의를 탈피하는 방법

"(섹슈얼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는 일에) 죄책감을 갖도록 강요받으면서 자라 왔다"는 성시경의 멘트는 참으로 흥미로웠다. 남성으로서, 정말로 그런 죄책감의 강요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없지 않았다고 말하겠다. 분명 지난 세월 한국 사회에는 엄숙주의적인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고, 터놓고 섹슈얼 토크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무작정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우리가 나아갈 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내려놓고 더 노골적으로,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으로 인해 누군가의 피해를 지우고 착취를 지운다면 그게 '성 해방'의 진정한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재 성에 대한 이야기는 오히려 더 '사려 깊게' 논의되어야 한다. 반드시 무거워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것을 발화하는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많은 맥락과 권력 격차의 문제 등을 놓지 않고 '다른 방식의 섹슈얼 토크'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적인 자리에서 남성에게 너무 쉽게 주어졌던 '솔직하고 개방적일 권리'가 모두의 권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원한다면 누구나 재밌게, 하지만 안전하게 이야기에 참여할 수 있는 '19금 콘텐츠'가 필요하다. 그것이 진짜 성 엄숙주의로부터 탈피하는 길이다. '그저 더 솔직하고 노골적이기만 한 이야기' 말고.

김민준(coolboy95)/ 오마이뉴스

 

적도기니 독재자의 딸이자 김일성의 양딸···평양에서 온 흑인 소녀

<평양에서 혼 흑인 소녀> 표지I덕워스 북스

 

1980년대에 자란 또래의 다른 아이들처럼 모니카 마시아스도 연말이 되면 아버지가 주실 새해 선물에 들떠 있곤 했다. 매년 1231, 그녀의 기숙학교엔 아버지가 보내준 과일과 음식 바구니 선물이 어김없이 도착했다. 반 친구들은 모두 부러워했다. 선물을 보낸 모니카의 아버지가 다름 아닌 북한의 초대 최도지고자 김일성이었기 때문이다.

 

두 명의 독재자의 딸. 모니카 마시아스(51)를 수식하는 말이다. 얼마 전 영어 회고록 <평양에서 온 흑인 소녀>를 출간한 그는 엘파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모니카는 책에서 나중에 내 친아버지와 두번째 아버지인 김일성에 대한 서구의 평가를 알게 됐을 때 그야말로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고 정체성마저 흔들렸다고 말했다.

 

그의 친아버지 프란시스코 마시아스는 1968년 스페인에서 독립한 아프리카 적도기니의 초대 대통령이다. 11년 동안 적도기니에서 독재 정권을 이어온 프란시스코 마시아스는 쿠데타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자 세 자녀를 적도기니의 우호국이었던 북한의 김일성 주석에게 보내기로 한다.

 

그렇게 모니카는 7세였던 1978년에 언니, 오빠와 함께 평양으로 떠난다. 그의 친아버지는 그 해 쿠데타로 조카에 의해 처형됐다. 북한으로 망명을 온 그는 16년 동안 김일성 일가의 보호 아래 성장하게 된다.

 

모니카는 친아버지와 적도기니에서의 생활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아마 트라우마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평양에서 적도기니의 삶과 모국어인 스페인어도 잊어버린 채 한국어만 사용했다.

 

평양의 만경대혁명학원 인민학교에 다닌 모니카는 학급에서 유일한 흑인 학생이었다. 다른 학우들처럼 사격, 야전 훈련 등 군사훈련을 포함한 당 간부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이후엔 김일성 주석의 추천에 따라 피복학과 전공을 택해 평양 경공대에 진학했다.

 

그러나 모니카는 어느 순간 자신이 기계적으로 훈련받는 세상 속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생겼다. 결국 그는 대학 졸업 후 스페인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김일성은 그녀에게 모니카야, 그 가혹한 자본주의 세계에서 살 수 있을 만큼 강하냐고 우려했다고 한다.

 

이후 모니카는 스페인, 미국, 중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생활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갔다. 그는 나는 미국이 북한을 파괴하려는 사악한 나라라고 믿으며 자랐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대학 시절 미국인을 처음 만나고 겁에 질려 도망쳤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뉴욕에서의 생활에 차츰 익숙해지면서 그는 자유와 개방성, 다양성 등에 눈을 뜨게 됐다고 했다.

 

모니카가 북한을 떠나 가장 힘들었던 점은 자본주의보다도 인종차별이었다. 그는 북한에서보다 유럽에서 인종차별이 훨씬 심했다고 밝혔다. 북한에서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신기해하거나 흑인이라고 부르는 수준의 피상적 인종차별이었지만 서양의 인종차별은 훨씬 체계적이고 구조적이었다고 밝혔다. 모니카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나와 입장이 같지 않은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보지 않고,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으로 봐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고 했다.

 

2007년엔 서울에서도 생활했다. 모니카는 서울의 한 의류회사에서 3년간 일했다. 이 때문에 그는 평양과 서울 억양이 섞인 한국어를 구사한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2013년엔 한국어 책 <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를 출간했다. 그는 그동안 여러 인터뷰를 통해 남한과 북한은 체제는 다르지만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성격 등이 거의 똑같다고 말했다.

 

모니카는 현재는 런던에 정착해 살고 있다. 그는 런던의 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런던의 한 옷가게에서 일하고 있다.

 

모니카는 북한이 아닌 쿠바로 보내진 자신의 또 다른 형제는 다시 적도기니로 돌려보내져 끔찍한 감옥에 수감됐지만, 김일성은 자신들을 돌려보내지 않았다며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겠다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켰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그때 단지 어린 소녀였다, 양아버지 김일성에 대해 같은 이념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나를 돌봐준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경향 최서은기자

 

 

단역배우 자매 사망사건' 가해자, MBC <연인>에 업무복귀

유가족 장연록 씨 "불시청 운동"MBC "유가족께 죄송, 업체 즉시 교체하겠다"

단역배우 집단 성폭력·사망사건'의 가해자가 MBC 방영예정 드라마 <연인>에서 관련 업무를 수행 중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3일 유가족 장연록 씨가 본인의 유튜브 계정에 업로드한 <연인> 관련 가해자 업무 복귀 사실 폭로 영상의 캡처 화면. 장연록 씨 유튜브 캡처

 

3MBC 시청자소통센터엔 "성폭력 가해자를 배제하라"는 등 시민들의 요청이 쏟아졌다. 지난 2004년 일어난 단역배우 집단 성폭력 사망 사건의 가해자가 6월 방영 예정인 드라마 <연인> 측 업무 현장에 복귀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다.

 

이는 사실로 드러났다. MBC 관계자는 4<프레시안> 측에 "직접적인 업무는 아니지만, 가해자의 현장 업무 관여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히며 가해자가 속한 업체를 "즉시 다른 업체로 교체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유가족 장연록 씨는 <프레시안>'MBC가 가해자와 계약하는 일은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MBC 관계자는 "이번 계약업체는 '연인'팀에서 파악하고 있던 (본래 가해자가 속해있던) 업체와 완전히 다른 업체였다"라며 "가해자들이 이전 업체에서 빠져나와 다른 업체를 새로 꾸린 것인지 확인해 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관계자는 "가해자의 업무 복귀 사실은 연인 팀에서도 이제야 확인한 사항"이라며 "유가족께 심려를 끼쳐드려 깊은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고 말했다.MBC는 이날 저녁 공식입장문을 낼 예정이다.

 

앞서 '단역배우 사망사건'의 유가족 장연록 씨는 지난 3일 본인의 유튜브 계정에서 "단역배우 자매를 자살로 만든 가해자 중 한 명이 다시 MBC 드라마 단역배우 캐스팅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라며 "당장 MBC는 그 기획사에게 엄중 경고하고, 그 사람을 배제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장 씨는 2004년 가해자들에게 집단성폭행을 당한 뒤 2009년 고통을 호소하다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피해자 고 양소라 씨와 죄책감에 시달리다 뒤이어 세상을 떠난 동생 고 양소정 씨의 어머니다. 그는 지난 2020년에도 사건 가해자들의 SBS(아침드라마 <엄마가 바람났다>, 캐스팅 업무), MBC(드라마 <연애는 귀찮지만 외로운 건 싫어>, 보조출연 반장 업무) 업무 복귀 사실을 알리고 불시청 운동에 나선 바 있다.

 

당시 방송국들은 사과와 함께 사건 관련자들의 업무 배제 사실을 밝혔는데, 그로부터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가해자의 업무 복귀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다. 장 씨는 4<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사건 이후 유튜브나 인터넷을 통해 제보가 많이 들어온다"라며 "이번 <연인> 소식도 그렇게 알았고, 가해자들은 (이번 말고도) 지속적으로 업무에 임해왔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가해자들이 특정 소속사에서 지속적으로 방송가 업무를 맡고 있고, MBC는 지난 2020년의 사과 및 계약해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그들과 계약을 맺어왔다는 게 장 씨의 주장이다. 기자가 '<연인>을 제외하고도 가해자의 업무복귀가 있었느냐'고 묻자 장 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한 기획사에 (가해자들이) 다 몰려 있다. 이 기획사는 MBC 것만 한다"고 밝혔다.다만<프레시안>과 통화한 MBC<연인>팀은이에대해선"파악하지못하고있다"밝혔다.

 

장 씨가 딸의 피해를목도한 지 18년째, 싸움을 시작한 지 14년째다. 가해자들의 명예훼손 고소 등으로 "집 한 채를 팔았다"는 장 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싸움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로 피해자들의 '유언'을 들었다. "엄마는 강하니까, 원수 갚고 20년 후에 만나자고 딸이 말했으니까요. 6년 살면 나도 이제 가야죠." <연인> 불시청 운동으로 새로운 싸움을 앞둔 장 씨가 밝힌 심정이다.

 

장 씨의 호소가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지난 3일부터 MBC 시청자소통센터엔 "드라마 <연인> 불시청하겠다", "가해자를 업무에서 배제하라"는 등의 시청자 게시 글이 올라오고 있다.

 

지난 2004년 시작된 단역배우 두 자매 사건은 2023년 현재도 여전히 끝나지 않은 성폭력·사망 사건이다. 드라마 현장 스태프, 관리반장 등으로 일하던 12명의 가해자들은 지난 20048월 단역배우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성보조출연자를 집단적으로 성추행·성폭행했다. 피해자는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다.

 

피해자는 오히려 경찰로부터 2차 가해를 당했고, 고통을 호소하던 끝에 20098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피해자에게 보조출연 일자리를 소개해준 여동생까지 죄책감에 세상을 떠났고, 연이은 딸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아버지마저 두 달 뒤 뇌출혈로 사망했다. 피해자의 어머니 장연록 씨만이 살아남아 가해자 처벌을 요구하는 등 14년째 외롭게 싸우고 있다.

 

장 씨가 가해자들의 신상을 고지하는 등 '법외투쟁'에 나서자, 가해자들은 장 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법원은 지난 2017년 무죄를 선고했다. 2018'미투' 국면 당시 이 사건이 다시 조명 받자 경찰이 진상조사팀을 구성했지만, 공소시효 만료 등의 이유로 재수사도 무산됐다. 장 씨가 가해자의 복귀 소식을 뒤쫓는 등 홀로 활동을 이어오는 이유다.

프레시안 한예섭 기자

 

'불법', '강성', '기득', '귀족'...... 노동조합 그리는 언론사들의 시선

https://newstapa.org/article/tBYLC

 

https://www.youtube.com/watch?v=Y4_TsrEXHmQ

아파트 18층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딸...[제보자들] 20190523 kbs

 

 

윤석열 정부 1, MBC 뉴스 시청자수 가장 늘었다

MBC 제외한 방송뉴스, 1년 전보다 시청자수 하락세

KBS, 지난해 10월부터 20-49 시청자수 3위로 밀려

JTBC 지난해 9월부터 최하위유튜브는 MBC ‘압도

 

 

WHO, 코로나19 비상사태 해제···34개월만 사실상 엔데믹 선언

세계보건기구(WHO) 홈페이지 갈무리

 

세계보건기구(WHO)5(현지시간) 코로나 19에 대한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 선언을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코로나 19의 대유행 초기인 20201월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언한지 34개월 만이다. 이에 국제사회는 사실상의 팬데믹 종식(엔데믹)’ 선언에 가깝게 받아들이고 있다.

 

면역 늘고 중증도 낮은 변이 특성 고려···“장기적 관리 체제로 전환할 때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코로나19에 대한 PHEIC를 해제하자는 국제 긴급 보건규약 위원회의 의견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국제 긴급 보건규약 위원회는 전날 회의를 열고 코로나19에 대한 PHEIC를 더 유지할지, 해제할지에 대해 심층적으로 검토했다.

 

PHEICWHO가 내릴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공중 보건 경계 선언이다. 특정한 질병의 유행이 PHEIC로 결정되면 이를 억제할 수 있도록 WHO가 각종 연구와 자금 지원, 국제적 보건 조치 등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춘다.

 

이날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이 위원회의 해제 의견을 받아들이면서 코로나19에 대한 PHEIC34개월 만에 종료됐다.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이번 결정은 코로나19와 관련한 사망자와 중환자실 입원환자 등이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고 면역력을 가진 인구가 높은 수준에 이르는 점을 고려하자는 위원회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코로나19가 변이를 일으키며 진화할 잠재적 가능성 등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이제는 코로나19를 장기적 관리 체제로 전환해야 할 때라고 위원회는 조언했고 이에 동의한다고 했다.

 

WHO가 이번 결정을 내리기 위해 소집한 전문가들은 코로나19에 대한 면역을 가진 인구가 많고, 현재 유행 중인 오미크론 하위 변이가 중증도가 낮은 특성을 갖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코로나19가 인체에 미치는 위험도가 감소했다고 보고 있다.

 

앞서 WHO는 지난 1월 말 회의에서 공중보건 비상사태 해제 여부를 논의했지만 중국 내 확진자 증가 등이 변수가 되며 유지 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 이날 WHO의 결정에는 작년 말 중국 확진자 증가로 한때 급증 추세를 보였던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최근 들어 현저히 줄어든 점도 중요하게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4주 단위로 묶은 전세계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올해 1월 말 기준 114000명까지 치솟았다가 지난달에는 다시 16000명까지 줄어들었다.

 

AP통신 코로나19 대유행의 상징적 종식”···국내 위기단계도 하향할듯

WHO는 최근 동남아시아와 중동에서 환자가 급증한 것을 언급하며 비록 비상사태가 끝났지만, 팬데믹은 끝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적인 코로나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선언은 아직 아니란 뜻이다.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그것이 코로나 19의 세계적인 건강 위협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코로나 19가 우리 세계를 위험에 빠뜨릴 경우 상황을 재평가하기 위해 전문가들을 소집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국제 사회는 PHEIC 해제를 사실상 엔데믹선언으로 보고 있다. AP통신은 “3년 넘게 글로벌 경제를 뒤엎고 전 세계에서 최소 7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파괴적 코로나19 대유행의 상징적 종식을 뜻한다고 보도했다.

 

방역당국도 그 의미를 매우 중요하게 보고 있다. 임숙영 중앙방역대책본부 상황총괄단장은 최근 브리핑에서 “WHO가 공중보건 비상사태 해제 선언을 하면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에 대한 위험이 감소했다는 신호로 볼 수 있어 해외 방역상황 평가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이에 국내 방역 대응도 변화할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 329일 코로나19 위기단계 조정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WHO와 주요국의 비상사태 해제 상황을 감안해 위기평가회의를 개최하고, 위기단계 하향 여부를 결정한다고 밝혔다. 이날 WHO의 비상사태 해제 결과가 나온 만큼 다음주 중 위기평가회의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위기평가회의에선 국내 방역 상황을 함께 고려해 현재 심각인 국내 코로나19 위기단계를 경계로 낮추는 1단계 조정을 논의할 예정이다. 위기 단계가 하향하면 현재 남아있는 방역조치인 일부 시설 내 실내마스크 착용 의무와 확진자 7일 격리 의무 등도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경향 23.5.5

 

 

윤 대통령 494번의 자유는 누굴 위한 자유인가

윤석열 정부 1

(2) 기울어진 자유

57, 157번의 자유가 더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4일부터 30일까지 국빈 방문한 미국에서 백악관, 의회, 경제 단체, 대학교를 찾아 자유 시장의 번영을 말했고, “자유 수호 동맹을 강조했다. “허위 선동등으로부터 자유를 수호해야 한다고 했다. 이로써 자유는 지난해 510일 대통령 취임사 이후 494번 불린 단어가 됐다. 시장, 혈맹, 희생, 세계, 공산화의 위기 같은 단어와 놓였다. 거대하고 서늘했다.

 

그 시간 콜센터 노동자 김민정(44)씨 또한 자유가 얼마나 벅차고, 간절한 단어인지 이야기하고 있다. 김씨는 42510년째 출근한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울신용보증재단 빌딩 앞에 지은 천막에 단식 1일차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 앉았다. 비 내린 서울의 기온은 10도까지 내렸다. 단식을 결심한 김씨와 동료 7명이 덜덜 떨었다. 조합원 13명인 작은 노동조합이니 절반이 동참했다. 견고하게 솟은 회사 현관 주변으로 김씨와 동료의 진입을 막기 위한 녹색 울타리가 들어오고 있었다. “나한테 자유라면김씨는 그 틈에서 나지막이 속삭였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년을 앞두고, <한겨레>는 대통령과 어느 시민들의 자유가 걸어온 행로를 나란히 짚었다. 취임사부터 지난달 29일 미국 하버드대학교 연설문까지 대통령이 자유를 말한 연설문 84(대통령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누리집 기준)를 살폈다. 자유를 연설문의 맥락에 따라 인권 등 민주주의적 기본권을 강조한 시민’, 기업 활동과 자유 시장을 강조한 시장’, 북한 위협이나 한-미 동맹 등을 언급하며 체제 안보와 우월성을 부각한 안보’, ‘외교로 나누었다. 모든 요소가 고루 담긴 연설문은 자유 전반으로 분류했고, 2개 이상 의미가 겹칠 때는 연설문의 맥락을 보고 좀 더 두드러진 하나를 택했다. 그럼에도 의미가 모호한 것은 기타로 분류했다.

2023년 봄: 작고 벅찬 자유

미국을 국빈 방문한 동안 자유가 언급된 대통령 연설문 14개 가운데 자유시장과 번영을 강조한 것이 5, 자유진영 등 국제 관계(외교)가 두드러진 것이 6개다. 북한의 위협과 함께 안보를 이야기한 2번의 연설과, 자유의 의미를 두루 담은 1번의 연설이 있었다. 김민정씨의 자유는 어디에 속할 수 있었을까.

 

자유나한테 자유라면 동료들이랑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 그렇게 세상이 좀 나아지는 거잖아요.” 김씨는 고작해야 직원 스물다섯명(관리자 제외)인 서울신용보증재단 콜센터 사업장에서 3년 전 동료들과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나이 마흔한살, 회사 생활 8년차 만에 처음 구해 본 결사의 자유였다. 자유의 태동에 섰던 시민처럼 떨렸다. “오랫동안 시키면 시키는 대로 그런가 보다 하면서 일했으니까요. 회사(하청업체)랑 교섭하기 전날 밤에는 심장이 얼마나 벌렁거리던지.” 그래도 벅찼다. 노조가 없을 때 회사는 연차휴가 사용을 제한하고, 무급인 채로 15분 일찍 출근할 것을 강제했다. “잘못됐다고 말했고, 바로잡혔다. 10년째 최저임금 수준이었던 기본급도 서울시 생활임금 수준(시급 11157)으로 올랐다.

 

하나씩 스스로 일의 조건, 나아가 비슷한 처지일 콜센터 노동자의 삶을 바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모두 같이 힘을 합쳐서요.” 자유의 힘이었다. 박한희 변호사(희망을만드는법)권력이 개인을 부당하게 차별하거나 기본권을 침해하지 말라는 양심·사상·표현의 자유 등이 있고, 특히 집회·결사의 자유는 힘없는 개인들이 모여서 기본권을 지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와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헌법에 적힌 18번의 자유(전문 제외)는 공동체와 개인 사이의 균형을 잡는다. 경제적 창의와 자유를 적으며, 동시에 경제력 남용의 방지 또한 짚는다. 국가·시장 권력으로부터 시민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적혔다. 혐오와 적대, 편가르기의 언어로 자유를 언급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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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서울신용보증재단은 콜센터 노동자가 속한 하청업체와 계약을 갱신하며, 사무실 위치를 외부로 옮기고 8명을 해고할 것을 요구했다. 하청은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했고, 원청은 만나주지 않았다. 김씨는 해고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함께 자유를 구해온 동료를 지켜야 했다. 시어머니와 아들에게 그동안 감춰왔던 노동조합 활동 사실을 고백했다. 단식한다는 얘기는 차마 못 했다. 두 아들은 나도 알아 노동 3, 그래도 엄마가 걱정된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울면서 곁에 있겠노라 했으나 좋은 분들이 옆에 많아 괜찮다고 말렸다. 짐을 싸들고 집을 나서기까지, 자유를 지키기 위한 매 순간이 저릿했다.

나를 믿고, 동지를 믿고, 투쟁!” 뜻이 좋아 동료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진 구호를 울음을 참으려 악쓰듯 외쳤는데, 외치다가 울었다. 그가 갓 구한, 그러다 잃을 위기에 처한 자유가 어떤 행로를 걸을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

 

2022년 봄: 자유의 의미

이날로부터 약 1년 전,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 적어 넣은 자유는 모두 35번이다. 의미는 복합적이다.

 

대통령은 우선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으로써 과학 기술의 진보와 혁신을 말했다. ‘자유 시장의 이로움을 강조한 것으로 들렸다. 다만 어떤 사람의 자유가 유린당하거나 자유 시민이 되는 데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모든 자유 시민은 연대해서 도와야 한다고도 했다. 막대한 국가 권력과 제한 없이 남용될 우려가 큰 기업 권력 앞에 혼자서는 미약한 시민이 모여 목소리 내고 서로를 지킬 자유를 옹호하는 것으로도 보였다.

 

다만 취임 뒤 지난달 29일까지 1년 가까운 시간 자유가 언급된 대통령 연설문 84개 가운데 가장 많은 30번이 규제완화, 신산업 등 시장기업의 자유를 강조하는 데 쓰였다. 주로 관료, 여당, 국내외 기업인, 과학기술 인재를 앞에 두고서였다. 더러 시장 상인들(대구 서문시장)이나 제주 4·3 희생자 추념사에서도 다소 어색하게 성장동력’, ‘디지털 기업등의 단어와 함께 시장의 자유가 강조됐다. 조돈문 가톨릭대 명예교수(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장)윤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는 주로 시장과 자본의 자유로 국가 권력, 시장 권력에 대항해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시민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 자유가 확장돼온 맥락은 사라졌다고 말했다.

 

반면 시민과 관련해 언급된 자유는 5번뿐이다. 그조차 모두 권력 남용, 불평등, 빈곤으로부터 시민을 지키기 위한 의미로 쓰지는 않았다. 모종의 적대감이 깃든 경우도 있다. 취임 여드레 뒤 광주의 인권 정신과 자유를 함께 말한 ‘5·18민주화운동 기념사에서 대통령의 자유는 일체의 불법에 위협당하는 것으로 표현됐다. “오월 정신은 지금도 자유와 인권을 위협하는 일체의 불법 행위에 대해 강력하게 저항할 것을 우리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지회장과 그 동료들은 이윽고 자신이 자유의 바깥 불법에 포함되었음을 깨달았다.

 

2022년 여름: 자유의 울타리

윤 대통령은 817일 취임 100일을 맞았고 김형수 지회장은 이튿날부터 단식을 시작할 참이다.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이 조선업 불황 때 줄어든 임금 회복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한 날(62)처럼, 유최안 부지회장이 가로·세로·높이 1m 철제 구조물에 스스로를 가두기로 한 날(622)처럼, 김 지회장의 단식 전야 또한 침울했다. “작은 것이라도 얻으려면 우리 중 누군가는 인생 걸어야 한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니까. 늘 그렇듯 무거웠죠.”(김 지회장) 일하지 못한 날의 임금, 건강, 천문학적인 손해배상 청구, 목숨 따위를 각오해야 회사(원청)와 대화해 스스로 노동 조건을 쟁취할자유를 구해 볼 수 있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 머리발언에서 또한 윤 대통령은 자유를 말했다. “정부의 중요한 역할은 민간이 더 자유롭게 투자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 방해 요소를 제거해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김 지회장과 동료들이 불렸다. 법과 원칙 항목에서였다. “법과 원칙에 따라 대우조선해양 하청지회 파업 사건과 화물연대의 운송 거부 사건을 처리했습니다. 관행으로 반복된 산업 현장의 불법행위 근절을 위해.” 기업의 자유와 노동조합에 대한 법치 사이에 울타리가 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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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지회장의 단식이 8일차 되던 날 대우조선해양은 하청지회를 상대로 478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김 지회장은 그렇게 부딪히면 자유가 보편적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보편적 가치는 대통령이 가장 즐겨 쓰는 자유의 수식어다. “법에 분명 있는 단어지만 힘 있는 기업이나 기득권층한테 너무 쉬운 자유가 우리한테는 없잖아요.”

 

2022년 가을: 자유의 조건

윤 대통령도 자유가 법과 연설로만 도달할 수 없는 지경임을 분명 알고 있었다. “자유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의 경제적 기초, 그리고 공정한 교육과 문화의 접근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취임사에 적었다. 자유는 현실의 권력관계 탓에 불평등하게 주어지거나 때론 박탈된다. 8월 폭우로 반지하에 살던 시민이 숨지고, 사회보장 사각지대에서 빈곤에 놓인 시민이 숨지는(수원 세 모녀) 일이 연달았다.

 

두달여 뒤(1029) 159명이 서울 이태원에서 자유의 절대적인 조건, ‘생명을 잃었다. 임익철(67)씨는 아들 종원(37)씨의 장례를 마친 뒤 영정과 위패가 없는 서울시청 합동 분향소를 찾아 서성였다. “다른 유족을 찾아보러 간 거예요. 정부에서는 불가피한 사고라고 하니까 처음에는 내가 폐를 끼치고 있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요. 그래도 정말 납득이 하나도 안 됐어요. 진실을 너무 알고 싶었습니다.” 시스템 반도체를 연구하는 직장인이었고, 디제잉과 드럼을 취미 삼았던 종원씨가 누릴 수 있었던 자유의 가능성이 모두 사라졌다.

 

대통령이 자유를 시민의 안전과 함께 말한 것은 이태원 참사 8일 전 국민의 안전은 우리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자유의 기본 바탕이라 할 수 있다”(102177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축사’)고 한 정도다. 대신 자유와 안전은 주로 안보의 맥락에서 한데 묶였다. 안전의 주어가 국가가 된 셈이다. 이를테면 우리의 자유를 침범하는 행위에 대한 확고한 응징과 보복만이 우리 자유에 대한 공격과 도발을 억제할 수 있다”(20221229, 국방과학연구소 방문 발언)고 했다. 안보를 강조하며 자유가 불린 횟수는 대통령 취임 이후 15차례다.

 

다시 봄: 다음번 자유

취임 이후 계절을 한바퀴 돌아 온 대통령의 자유는 한층 공격적이다. 적은 우선 외부에 있다. 자유 진영 바깥 권위주의 세력들의 진영화”(329, 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공산 전체주의 세력”(428,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 등이 지목됐다. 대통령 연설 가운데 주로 한-미 동맹, -일 관계를 비롯해 자유 진영을 강조하거나 권위주의 세력과 대비하는 데 쓰인 자유(외교)24번이다. 대통령이 지목한 적은 또한 국가 내부에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부정하면서도 마치 자신들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인 양 정체를 숨기고 위장하는 경우”(419, 63주년 4·19혁명 기념사).

 

지난달 27일 오후(현지시간) 펜타곤(국방부)을 방문해 작성한 윤석열 대통령의 방명록.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대통령이 미국에 머문 시간, 임익철씨는 426일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이 적힌 패널을 들었다.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것인데, 여당은 이 법을 재난 정치법이라고 했다. “진실만 있는 그대로 알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임씨는 힘없는 목소리로 반박했다. 아들을 잃은 참사 이후 이명과 이석으로 오른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1인시위, 서울광장 분향소 지킴이를 하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임씨는 거리에 있다.

 

거제통영고성 하청지회 노동자들도 거리에 있다. 실질적으로 노동 조건을 결정하는 원청과 대화할 수 있고, 손배가압류 두려움 없이 쟁의할 자유를 법에 명시하는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을 한다. 경남 거제에서 412일 행진을 시작해 29일 서울에 들어섰다. 걸어오며 건폭 노조 OUT(아웃)’ ‘부패 노조따위를 적은 여당의 펼침막을 봤다. “혐오의 말들이 너무 힘들다, 김형수 지회장이 말했다.

 

김민정씨는 단식 3일차인 27일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다고 했다. “빈혈이 있었어요. 그래도 괜찮아야 했는데.” 김씨와 동료들의 단식은 이튿날 그쳤다. 김씨와 동료들의 노동조합은 8명에서 5명으로 줄인 해고 인원수, 다만 노동자·하청·재단(원청)이 모여 노동 조건을 이야기할 기구를 만들기로 하고 회사와 합의했다. 김씨는 해고 대상이 된 친구가 언니들이 이러고 있는 걸 너무 미안해했다나야말로 미안하고 허탈하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미국 방문 마지막 날(429) 하버드대 연설에서 81번의 자유를 쏟아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그보다 한 사람의 자유인으로서, 자유의 전당 하버드에서 여러분과 자유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어 매우 기쁘다고 연설을 맺었다. 취임 이후 492~494번째 자유였다. 헌법은 모두에게 평평한 자유의 운동장을 보장하지만 지난 1년 균형추는 더 기울었다. 노동자들, 참사 희생자 가족, 소수자들은 다음번 자유만은 우리를 위한 것이기를 기다렸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BTS 지민 닮으려 성형수술 중 사망? '신빙성 확인 불가' 정정 않는 언론사들

지난달 25일부터 30곳 넘는 언론사, 영국 데일리메일인용 보도 쏟아내

한국일보 전문 삭제” YTN “철저한 팩트 검증 후 기사 송고할 것

 

방탄소년단(BTS) 멤버 지민을 닮으려고 캐나다 출신 배우가 한국에서 3억 원을 들여 12번 성형수술을 했다가 합병증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보도됐으나 허위보도인 것으로 드러났다. 30개 넘는 매체가 이 소식을 보도했는데, 적극적으로 기사를 삭제하고 정정보도를 한 매체는 YTN, 한국일보뿐이었다.

 

지난달 25일 세계일보는 <“BTS 지민 닮고파캐나다 배우, 성형 12번에 3억 썼는데... ()서 턱수술 중 사망> 기사를 영국의 데일리메일매체를 인용해 보도했다.

방탄소년단(BTS) 멤버 지민을 닮으려고 캐나다 출신 배우가 한국에서 3억 원을 들여 12번 성형수술을 했다가 합병증으로 사망했다는 허위보도를 30개 넘는 매체가 보도했다.

 

세계일보는 “24(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세인트 본 콜루치(22)는 지난 23일 오전 한국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앞서 콜루치는 BTS 지민과 닮기 위해 지난해 턱 보형물 삽입, 안면 리프팅, , 안구 및 눈썹 거상술, 입술 축소 등 사소한 수술을 포함해 총 12차례의 성형 수술을 받았다. 수술 비용만 무려 22만 달러(24900만 원)에 달했다지난해 11월 삽입한 턱 보형물을 제거하기 위해 지난 22일 저녁 수술받았다. 하지만 감염으로 인한 합병증이 발생했고, 삽관을 시도했으나 결국 몇 시간 후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세계일보 보도 이후 아시아경제, 뉴스엔, 스포츠경향, MBN, 굿모닝경제, 스타뉴스, 헤럴드경제, 스포티비뉴스, 여성신문, 뉴스워커, 스포츠동아, 디지털타임스, 국제뉴스, 뉴시스, YTN, 매일경제, 아주경제, 동아일보, 뉴시스, 조이뉴스24, 라온신문, 머니S, 이데일리, 아이뉴스24, OSEN, 일간스포츠, 한국경제, 허프포스트코리아, 엑스포츠뉴스, 스포츠동아, 서울경제, 데일리메디 등이 이 소식을 보도했다.

 

언론들이 인용한 데일리메일은 어떤 언론일까. 영국 출신으로 한국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 중인 라파엘 라시드는 과거 미디어오늘에 영국에서 가장 선정적인 스토리를 찾으려면 데일리메일만 찾으면 된다. 데일리메일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들에게 수익을 창출하는 기사를 클릭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30건이 넘는 기사가 쏟아지자, 라파엘 라시드는 지난달 26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이 내용이 사실이라는 증거가 없다. 우선, 데일리메일에 포함된 사진은 인공지능이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한국일보와 YTN은 기사를 삭제하고 정정 보도했다. 한국일보가 기사를 삭제하자, 앞서 데일리메일을 인용해 캐나다 출신 배우 사망설을 제기한 서울신문, 매일경제, 엑스포츠뉴스, 헤럴드경제, 한국경제 등은 가짜뉴스일지도 모른다는 기사를 추가로 보도했다.

지난달 27YTN이 밝힌 입장문.

지난달 26일 한국일보가 밝힌 입장문.

지난달 26일 한국일보는 “26일 오전 출고한 기사 ‘BTS 지민 같은 V라인 원해캐나다 배우... 기사의 전문을 삭제한다. 24(현지시간) 영국 언론 데일리메일을 인용한 보도인데, 한국일보 뉴스룸이 기사에 나온 팩트를 점검해 보니 원문 보도의 신빙성을 확인하기 어려워 삭제한다. 앞으로 한국일보는 기사 팩트체크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7YTN<지민 닮으려 성형하다 숨진 캐나다 배우?... “관련 사건 확인 안 돼”> 기사에서 “YTN26일 송고한 ‘BTS 지민 닮으려 12번 성형... 캐나다 배우, 합병증으로 사망기사의 신빙성을 확인하기 어려워 삭제 처리했다. 앞으로 보다 철저한 팩트 검증 후 기사를 송고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MBC<[단독] “성형하다 사망한 캐나다 배우 확인 안돼”.. ‘가짜뉴스에 낚인 한국 언론> 기사에서 인공지능 감별 사이트에 숨졌다는 배우의 사진을 넣어봤다. 5장 중 3장이 73%, 74%, 86%의 확률로 ‘AI’라는 판정이 나왔다. 한국 경찰에도 직접 물어봤다.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에는 아직 이런 사건은 접수되지 않은 것으로 취재됐고, 관련된 변사 사건도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MBC는 이어 결국 국내 주요 언론들이 기초적인 사실확인 없이 기사를 퍼 나르느라 가짜뉴스에 낚인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4907

지구 반대편 강도·성범죄, 뉴스 가치 있습니까 2021.09.13.

 

여전히 유효한 100년 전 어린이 해방 선언문

100년 전 어린이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SNS 역할 독자담화실부터 토론대회까지어린이들 목소리 내는 통로 기능한 어린이잡지

 

55일은 어린이날이다. 365일 중 364일이 어른의 날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어린이들은 사회에서 소외됐고 미디어에서도 마찬가지다. 올해는 어린이 인권운동가 방정환이 참여한 잡지 <어린이> 창간 100주년으로 국립한글박물관이 잡지 <어린이>에 대한 전시를 개최한다. 미디어오늘은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함께 100년전 어린이의 모습을 <어린이>를 통해 조명해보려 한다. - 편집자주

 

다른 것이 아니라 그저 어머님 아버님께 우리 어린 목숨을 좀더 뜻있게 귀엽게 사랑해 달라는 말입니다. 저는 금년 얼마 안되는 나이를 먹은 어린이입니다마는 오늘날까지 자라오는 그 짧은 동안에 저는 어른들의 무수한 비난과 권리에 눌리어 자라났습니다. 그 일례를 들어보면 이런 일이 있습니다. ‘어머님 돈 십 전만 주세요’ ‘돈은 해 또 무엇하니?’ ‘저 잡지 책을 사보겠어요’ ‘아이고 학생이 잡지책이 무어냐 할 공부나 하지 않고’” (1928<어린이> 6권 제3, ‘윽박지르지만 말고 좀더 자유롭게이정구 어린이)

 

이는 어린이 인권운동가 방정환 등이 참여해 만든 <어린이> 잡지에 실린 100년 전 어린이의 목소리다. 이정구 어린이는 평소 어른들에게 무시받아왔던 자신의 일상에 대해 쓰며 윽박지르지만 말고 좀더 자유롭게어린이를 대해달라고 부탁했다. 현재 어린이들이 어른들에게 바라는 점과 비슷하다.

1928어린이6권 제3, ‘윽박지르지만 말고 좀더 자유롭게이정구 어린이

 

1923년부터 발행된 <어린이>는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하던 어린이들이 주체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였다. 어린이들은 주체가 되어 자신의 글과 생각을 잡지에 직접 투고하고, 활동 등을 잡지에 기록해 남겼다. ‘독자담화실등을 통해 모르는 것을 잡지를 통해 서로 묻고 답하며 소통하기도 했다. 당시 10만 명이 넘는 어린이들이 잡지의 주체로 참여했다. <어린이>는 어린이들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웅변과 토론대회는 <어린이>의 인기 코너 중 하나였다. 어린이들은 대회에 참여함으로써 하나의 주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글로 표현할 기회를 얻었다.

어린이잡지 표지

 

100년 전 어린이들은 꽤 철학적인 논쟁도 진행했다. 5권 제7호에선 사업을 성취하는 데는 지혜가 중요한가 성실, 근면이 중요한가에 대한 토론이 진행됐다. 김명준 어린이는 이 세상 만물 중에 사람이 제일 귀하다고 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오직 지혜란 것이 있는 까닭입니다. 오늘날 문명이 하나라도 지혜의 덕이 아닌 것이 있습니까라고 지혜 편의 의견을 말했다. 성실, 근면 편의 고영직 어린이는 지혜는 결코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요, 부지런히 배우고 정성으로 연구하는 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성실과 근면함은 지혜의 어머니입니다라고 반박했다.

어린이5권 제7호 소년 토론(4)

 

잡지는 다음 호에서 어린이 독자들의 투표 결과를 공개했다. “성실, 근면 편이 말을 잘했다는 편 2,844, 지혜 편이 말을 잘했다는 편 2,843. 이리하여 참말 이상하게도 신기하게 1표의 많음으로써 성실, 근면 편이 대승으로 판결되었습니다.”

4회 토론 심판 투표 결과

 

지금의 SNS 역할을 담당한 코너도 있다. ‘독자담화실은 어린이들의 의견을 잡지에 실어주는 소통 공간이었다. 독자들은 어린이 신문을 본 후기, <어린이>에 대한 질문, 다른 어린이 독자들에게 하는 말 등을 독자담화실을 통해 전했다.

 

개성의 주덕룡 어린이는 어린이 11월호의 어린이 신문은 참말로 묘하고 어여뻤습니다. 요모조모로 그렇게 예쁘고 유익한 신문은 다시 없을 것입니다라는 의견을 전했고, 경성의 서수만 어린이는 아아 기쁜 일입니다. 어린이 신문이 참말 재미있다고 선생님이 상학 시간에 읽어주셨습니다. 집에 가니까 집에도 책이 왔는데 아버지께서 펴보시고 연달아 탄복하시면서 참 좋은 것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라고 했다.

어린이독자담화실 표지

 

방정환의 책을 읽고 후기를 남긴 어린이도 있었다. “선생님요, 담화실 구경을 시켜주셔요. 저는 방정환 선생님이 번역하셨다는 <사랑의 선물>을 주문했더니 아주 어여쁜 책이 왔습니다. 어떻게 재미있는지 참말 세계에 유명한 이야기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왕자와 제비한네레의 죽음은 어떻게 불쌍한지 저의 눈에서 눈물이 자꾸 흘러내렸습니다. 참말 그렇게 재미있는 책은 못 사 보면 후회하겠습니다” (울산 서덕출)

 

어린이들은 독자담화실을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같이 놀러 갈 친구들을 찾기도 했다. “이번 개성에 물이 많이 나서 사람이 많이 상하였다는데 개성에 계신 우리 어린이 애독자 동무 여러분 안녕히 계신지 궁금합니다. 독자담화실에 소식을 들려주시기 바라고 있습니다”(부산 김수득, 진주 최용석, 곡산 황해생)라며 물난리에 별일이 없는 지 묻기도 하고, “백두산 백두산! 여러분 동무들 중에 금년 여름에 백두산에 가고 싶은 분이 계시면 같이 모여서 가십시다”(성진군 허수만)라며 함께 백두산에 갈 친구들이 있는 지 묻기도 했다.

 

100년 전 유머코드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도 있다. “<어린이> 첫돌 호 퍽도 재미있었습니다.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모두 재미있는 것뿐이었는데 그중에 염 선생님의 글과 김억 선생님의 글을 읽다가 어떻게 우스웠는지 배꼽이 떨어져 달아났습니다. 배꼽을 주운 사람은 저의 주소로 철도편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개성 송암) 이에 부산 초량동 오뚝이는 당신의 잃어버린 배꼽이 부산에서 연락선에 올라타려고 하는 것을 내가 붙잡아서 우리 집 버들 나무에 매어 놓았으니 와서 찾아가시오라고 답글을 보냈다.

 

<어린이>는 지금의 중고시장 플랫폼 당근마켓역할도 담당했다. 독자담화실에는 <어린이> 창간호를 구하는 글이 실렸다. “우리 십만 애독자 중에 혹시 <어린이> 창간호부터 대정 14(1925) 10월호까지(통권 제1호부터 제33호까지) 파실 분이 있으면 나에게 곧 통지해 주십시오. 그러면 곧 사겠습니다.” (전주 박만년)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봐 주시오어린이들의 부탁

 

<어린이> 잡지 속에는 어린이들의 하소연과 요구도 담겼다. 이러한 소통은 당시 어린이의 발언권을 인정해주는 어린이 운동 덕분에 가능했다.

 

19235월 발행된 어린이 해방 선언문에는 어른에게 드리는 글이 실렸는데,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봐 주시오”, “어린이를 늘 가까이 하여 자주 이야기해 주시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해 주시오”.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해 주시오”, “어린이를 책망하실 때에는 쉽게 성만 내지 마시고 자세 자세히 타일러 주시오”, “어린이들이 서로 모여 즐겁게 놀 만한 놀이터나 기관 같은 것을 지어 주시오등의 요구가 담겼다.

어린이 해방 선언문(19235)

 

11권 제9호에 담긴 내가 아버지라면이란 글을 보면 나갔다 들어올 때 사탕이나 그림책이나 장난감이나 사가지고 들어오겠습니다. 아들 앞에서 담배를 먹지 않겠습니다. 좀 잘못했다고 막 두들겨 패면서 욕하지 않겠습니다. 아들한테 거짓말을 안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모든 어린이가 부모에게 바라는 내용이기도 하다.

어린이11권 제9내가 아버지라면

 

어린이들은 스스로의 다짐과 계획을 글로 쓰기도 했다. 박화성 어린이는 우리는 자꾸자꾸 커가는 사람이라는 글귀를, 김소운 어린이는 내일은 그대 차지라는 글귀를 써냈다. <어린이>는 어린이들이 목소리를 내며 사회의 주체로 성장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통로였다.

어린이에 실린 어린이들의 다짐과 계획.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정말 알고서 한국 은행산업에 손대는 것인가? [자본시장 이야기]

SVB 사태는 작은 은행도 시스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윤석열 정부는 은행 과점체제를 깨려 하지만 잘 버티는 국내 은행산업에 왜 굳이 손을 대는지 의문이다.

은행은 예금으로 확보한 돈을 대출해주며 수익을 내는 기관이다. 예금에 내어주는 이자와 대출로 취득하는 이자율의 차이는 은행의 기본적인 수익의 원천이 된다. 대개 예금은 단기로 예치되지만 대출은 장기로 이루어진다. 보통의 경우 장기이자율이 단기이자율보다 높으므로 이러한 은행의 만기 전환(단기로 빌려 장기로 대출하면서 이익을 취하는 구조)’ 기능이 수익을 낳는다. 이렇게 예금은 은행 수익의 기본이 된다.

 

예금은 예금주가 언제든지 인출을 요구할 수 있다. 언제든 돌려주어야 하니 은행에게는 부채다. 인출 요구가 있으면 은행은 갖고 있는 현금을 내준다. 만약 보유한 현금이 부족하다면 대출을 회수해서라도 요구에 응해야 한다. 그러니 은행은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는 일이 중요하고, 예금 인출 요구에 맞추어 회수할 수 있도록 대출의 만기도 조정해두어야 한다.

 

예금보험이 시스템 위기를 키우기도

은행이 예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으면 보다 장기적인, 따라서 수익이 더 높은 대출을 할 수 있다. 또 인출 요구에 대비해 평소에 현금을 얼마나 갖고 있어야 하는지 가늠하기 쉬워지며 대출 규모와 만기를 조정하는 데도 유리하다. 반면 예금이 들쑥날쑥하다면 현금은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높은 수준으로 준비해두어야 한다. 대출 역시 회수가 쉽도록 단기로 제한시킬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은행의 현금 보유는 공짜가 아니다. 현금으로 다른 뭔가에 투자했다면 어느 정도 벌었을 텐데, 들고만 있었으니 그만큼 손해를 본 셈이 된다(기회비용 발생). 또 단기 대출은 장기 대출보다 대개 이자 수입이 적다. 따라서 현금을 많이 보유하거나 단기로 대출하면 은행 수익성이 떨어진다. 예금이 불안정하면 그렇게 된다.

 

극단적으로 불안정한 예금은 인출 요구가 한꺼번에 몰리는 (run)’으로 나타난다. 런은 어떤 은행도 한꺼번에 모두에게 모든 예금을 지급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일어난다. 예금자 처지에선 남들이 예금을 먼저 찾아갈 경우 은행에 남은 게 없어 예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 남들보다 빨리 내 돈을 인출해야 한다. 모든 예금자가 이렇게 생각하면, 좀 더 정확히는 생각하기만 해도결국 런이 일어나게 된다. 런은 은행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건이다.

 

그러니 런을 예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예금보험제도(Deposit Insurance)가 생긴 이유다. 은행이 망해도 어느 한도까지는 예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제도다. 그래서 미국에선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3년에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생겼다. 예금보험이 있으니 굳이 내 돈을 남들보다 먼저 찾으려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 런 가능성이 줄어드니 예금은 보다 안정적이 되고, 그에 따라 은행의 만기 전환 기능이 잘 작동할 수 있다. 기업들은 안정적인 장기 대출을 받아 투자할 수 있으며 따라서 실물경제도 좋아진다. 한 문장으로는 이렇게 쓸 수 있겠다. ‘예금보험은 은행의 유동성 위험(런으로 인해 보유한 현금이 고갈될 위험)을 줄여 시스템 위기(금융위기와 실물경제의 위기) 가능성을 줄여준다.’

 

그러나 경제학 실증연구들은 대체로 예금보험의 존재로 인해 시스템 위기가 오히려 더 커졌다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한 연구는 1980년부터 1997년까지 무려 61개국의 예금보험을 조사했는데, 예금보험이 경제적 동기보다 특정 집단에 혜택을 주기 위한 정치적 동기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결과를 보여준다. 예금보험이 은행의 위기 가능성을 높이는 결과가 정부에 의해 운영되는 예금보험제도하에서 더 심했던 것이다. 이런 문제점의 한가운데에 도덕적 해이가 있다. 은행이 보험 덕분에 적은 이자로 예금을 유치해서 높은 위험의 대출에 사용한다는 내용이다.

 

예금보험이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증거는 많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서는 예금보험 도입이 주()마다 시차를 두고 이루어졌다. 한 실증연구는 이 점을 활용해 당시의 예금보험 도입 전후로 보험이 적용된 주의 은행비적용 주의 은행사이에 도덕적 해이의 차이가 있었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보험 적용 주의 은행이 훨씬 큰 도덕적 해이에 젖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은행들은 자기자본비율’ ‘자산 대비 현금비율등을 법이 허용하는 최소한의 수준으로만 유지했다. 반면 전쟁 와중에 농산물 가격 폭등으로 언제 버블이 꺼질지 모르는 상태였는데도 농가에 대한 대출, 즉 위험한 대출을 대폭 늘리고 있었다. 그 결과, 보험 적용 은행들의 파산위험(insolvency risk)은 비적용 은행들보다 유의하게 컸다.

 

그래도 예금보험이 필요한 이유

실증적으로 문제점이 증명되었는데도 예금보험이 유지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최근 실리콘밸리 은행(SVB)의 부도 사태를 보면, 미국의 은행들에 대해 규제와 감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SVB의 전체 예치금 가운데 FDIC의 보장을 받지 못하는 비율이 무려 96%에 달했다. 예금보험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예금보험은 예금자의 예치금 전액이 아니라 일부만 보장해준다. 보장받는 부분을 부보 예금’, 보장받지 못하는 부분을 비부보 예금이라고 부른다). 이 사태를 보면, 그래도 예금보험이 제 기능을 하도록 하는 편이 없애는 것보다 나을 것 같다.

 

결국 도덕적 해이를 줄여야 한다. 도덕적 해이란 정보 불균형(은행이 아는 자행의 경영 상태를 예금자는 모른다)’에서 나온다. 은행의 투명성을 높여 정보 불균형을 줄이면(은행이 아는 것을 예금자도 안다), 도덕적 해이도 줄일 수 있을 터이다. 경제학에서는 투명성을 높이는 것을 대개 바람직한 행위로 본다. 그런데 은행의 경우엔 꼭 그렇지도 않다. 예를 들어 은행의 좋지 않은 성과나 높은 위험성에 관한 정보가 투명하게 모두에게 공개되면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부보 예금은 바로 인출되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투명성을 높인 덕분에 런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면 은행들은 예금을 묶어두기 위해 예금이자를 대폭 올려야 한다. 예금을 확보하기 힘드니 대출도 줄일 것이다. 이는 실물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은행들이 정보공개를 꺼리는 이유다. 그렇다면 투명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보 예금이라면 은행의 문제점이 투명하게 공개되더라도 굳이 예금을 뺄 필요가 없다. 더구나 예금 인출을 방지하기 위해 은행이 더 높은 이자를 지급하니 더욱 좋다. 그러니 은행들에게 투명한 경쟁을 요구하려면 먼저 예금보험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 예금보험이 은행의 경영 성과에 대한 예금 인출의 민감도를 줄여 예금의 안정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은행 규모는 여전히 중요하다

안정적인 예금 확보를 위해 중요한 것은 예금보험제도의 정비만이 아니다. 예금주들의 캐릭터도 중요하다. 예금보험이 없는 상황인데, 은행에 무슨 사태가 발생한다고 치자. 은행 내부자들 및 은행에 예금과 대출을 함께 가진 예금주(예금을 뜯기는 것은 물론 대출까지 만기 이전에 회수당할 가능성이 크다)들은 누구보다 먼저 예금을 회수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은행과 오랫동안 관계를 쌓아온 예금주들은 쉽사리 예금을 인출하려 하지 않는다. 실증연구를 통해 알려진 바다.

 

또한 주식투자자 예금주들은 주식에 투자하지 않는 예금주들에 비해 예금을 인출할 가능성이 크다. 주식 투자를 많이 하는 지역에서는 주가가 높을 때 예금이 빠져나가는 경향이 있다. 예금주들이 주식 투자를 통해 더 높은 수익을 얻고자 하기 때문이다.

 

 

최근 벌어진 SVB 사태는 이 지점에서 또 하나의 교훈을 준다. 1985년에 설립된 SVB는 벤처캐피털리스트와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형 은행이다. 돈 잘 버는 기업들이 고객으로 SVB에 돈을 맡겼는데 예금보험으로 보장하는 예금은 25만 달러에 불과했다. 이 은행에 예치된 예금 중 비부보 예금이 대부분이었던 이유다. 문제는, 고객인 벤처기업들이 경제 상황이나 은행의 경영 상태에 몹시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SVB는 장기 국채에 투자해 보유하고 있었는데, 금리 상승으로 인해 손실(채권 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움직인다)이 쌓이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자 고객 기업들은 주저 없이 예금을 인출했다. 이렇게 되어, 40년 역사의 은행이 40여 시간 만에 망했다.

 

SVB로서는 억울할 만했다. 예금을 서브프라임 같은 위험한 대출(2008년 금융위기의 도화선이었다)이 아니라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에 투자했는데 이런 사달이 났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번 SVB 사태는, 은행이 예금을 아무리 안전하게 관리하더라도 런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런이 무서운 것은 은행의 펀더멘털과 무관하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데 있다. 안전자산이라는 말은 ‘(그 증권 자체에) 부도 위험이 없다는 뜻이지 런과 상관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SVB 사태가 벌어지자 투자자들은 일본 은행들 또한 채권에서 입은 손실로 인해 런 위험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하게 되었다.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해외 투자자가 바로 일본 은행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SVB와 달리 일본 은행들의 펀딩은 다양한 특성의 예금들에 기초해 잘 분산되어 있었다. 걱정했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SVB 같은 중형은행에서 부도 사태가 터져 금융 불안이 확산되면서 예금을 대형 은행으로 옮기는 일이 가속화되고 있다. SVB 사태부터 3월 말까지 약 2주 동안 미국의 상위 25개 대형 은행으로 1200억 달러가 흘러 들어갔다. 그 밖의 (작은) 은행들에서는 1080억 달러의 예금이 빠져나갔다. 소형 은행의 주간 단위 예금 인출로 역사상 신기록이라고 한다. 같은 기간 높은 수익률을 좇아 머니마켓뮤추얼펀드(MMF:주로 단기간 국채에 투자하는 펀드)’로 흘러 들어간 금액도 무려 2200억 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MMF에 투자한 금액은 보험을 통해 보호받을 수 없다.

 

이 같은 사실은 금융산업에서 은행의 규모가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물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도드-프랭크법을 제정해 대형 은행들을 규제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규제의 바깥에 있던 다른 중소형 은행들보다 대형 은행이 더 안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형 은행이 갖는 또 다른 장점이 있다.

 

미국에서 은행의 위험한 대출에 대한 우려는 예금보험이 생긴 지 몇십 년이나 지난 1980년대에야 불거졌다. 어떤 이유일까?

 

1980년대 이전엔 은행을 설립하기 매우 어려웠다. 은행 설립 인가, 지점 설립, 다른 주()로의 은행 확장 등에 관한 반경쟁적(anti-competitive) 규제들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은행업으로 들어가는 진입장벽이 매우 높았고, 금융시장에 대한 은행의 지배력도 강력했다. 이에 따라 면허 가치(Charter Value, 은행을 설립하려면 국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등 은행의 영업 가치(Franchise Value)가 크게 높아졌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예금보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업에서 추구하는 위험의 수준을 적절히 조절하려 했다. 위험을 추구하다 은행 인가(면허)를 잃게 되면, 영업 가치(면허 가치 등)가 큰 만큼 손해도 막심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 커다란 영업 가치가 예금보험으로 인한 도덕적 해이를 막는 장치로 기능했다.

 

그러나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규제가 완화되었다. 이에 따라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경쟁이 격화되면서 은행의 영업 가치가 하락했다. 그에 따라 은행들의 위험 추구 성향도 증가했고, 결국 도덕적 해이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은행이 높은 영업 가치를 갖고 있으면 여러모로 유리하다. 아무래도 예금을 유치하기가 쉽고, 예금이 몰리면 낮아진 예금 금리 덕분에 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으며, 장기 대출도 늘릴 수 있다. 영업 가치는 대형 은행일수록 크다.

 

은행 과점 타파?

이 같은 사실은 현재 한국에서 대형 은행 과점체제를 타파하자는 논의에도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당시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거치며 자리잡은 게 현재의 대형 은행 과점 체제다. 난립하던 은행들을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정리한 결과다. 정부는 이 은행 과점 체제를 수술하기 위해 대대적인 작업에 막 돌입하려는 참이다.

 

구제할 필요가 없는 작은 은행은 이제 없다. 작은 은행도 시스템 위기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최근의 SVB 사태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은 은행들은 대형 은행들보다 더 취약하다. 그렇다면 왜 굳이 다른 나라들이 은행 위기를 걱정하는 지금, 잘 버티고 있는 한국의 은행산업에 손을 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솔직히 국회의원 선거를 1년여 남기고 지긋지긋한 포퓰리즘이 또다시 못된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안 하는 편이 가장 낫지만 말려도 안 들을 테니 이왕 실행할 것이라면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신중을 기하기 바란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완장을 채워주고 정책을 남발하게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는 그동안 충분히 보아왔으니 말이다.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시사인

 

 

가계부채가 대한민국의 숨통을 조인다

전문가들, 대내 리스크 1순위 가계부채 꼽아

팬데믹 거치며 명목GDP 대비 100% 초과

80%초과 땐 성장률 둔화 요인으로 작용

점차적 디레버리징이 긴절한 시점

주요 선진국 가운데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유독 높은 우리나라는 팬데믹을 통과하면서 가계부채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가계대출의 팽창은 소비를 위축시키고, 성장을 저해하며, 경제적 격차를 심화시키고, 경기침체 발생확률을 증가시키는 등 부작용이 심대하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는 가계부채 축소를 위한 디레버리징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해야 한다.

 

눈덩이처럼 커지기만 하는 가계부채

한국은행이 국내외 금융·경제전문가를 대상으로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의 주요 위험 요인을 조사해 3일 발표한 '2023년 상반기 시스템 리스크 서베이'는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의 최대 리스크 요인으로 높은 가계부채 수준을 지적했다.

지난 1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가계부채 위기 대응을 위한 개인 채무조정 제도개선 방안 모색 토론회. 2023.1.10. 연합뉴스

 

전문가들이 선택한 대내 리스크 요인은 '가계의 높은 부채 수준 및 상환 부담 증가'(53.9%), '부동산시장 침체'(48.7%), '금융기관 대출 부실화 및 우발채무 현실화, 대규모 자금인출 가능성'(43.4%) 등이다.

 

지난 430일 한은이 자체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DB)를 분석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에게 제출한 '가계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 세대에 걸쳐 가계부채가 증가했다. 특히 30대 이하의 가계부채 증가율이 압도적인데,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말에 404조 원이던 가계부채 잔액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27.4% 늘어난 5145000억 원으로 추산됐다. 같은 기간 40대는 9.2%, 50대는 2.3% 늘어났으며, 60대 이상 고령층은 25.5% 폭증했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가계부채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인데. 대한민국의 가계부채 증가율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파르다. 아래 그림 1을 보면 2005년 명목GDP대비 60%선에 머물던 가계부채가 지금은 100%를 가볍게 넘는다. 반면 선진국들은 70~80%에서 안정적으로 관리 중이다.

출처 : 한국은행

 

가계부채가 끝없이 우상향하는 대한민국과 달리 미국은 성공적으로 가계부채를 줄여 왔다. 그림 2는 지난 25년간 GDP 대비 미국 가계부채 비율 추이를 보여주는데, 미국은 200898.4%까지 치솟았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2022975.2% 수준까지 끌어내렸다. 적어도 미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무분별한 가계부채 증가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인식하고 디레버리징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이다.

출처 : 국제결제은행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가계부채의 폭증

마침 한은이 가계부채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분석한 보고서를 내놨다. 한국은행은 428가계신용 누증 리스크 분석 및 정책적 시사점보고서에서 한국을 포함한 39개 국가의 1960~2020년 자료를 바탕으로 가계부채 누증이 GDP 성장률과 경기침체 발생 가능성에 미치는 장단기 효과를 분석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가계부채가 계속 증가하면 경기침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고 특히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가 넘으면 단기 경제성장률도 하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를 보면 가계신용(대출) 증가가 단기(1~3)에는 경기 회복 효과를 낼 수 있으나 중기적으로는 성장률 둔화 요인으로 작용하고 연간 실질 GDP 성장률이 마이너스(-)인 경기침체 발생 가능성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신용비율 상승 후 3년까지는 경기 회복 지원 효과가 있었으나 이후에는 경기부양 효과가 없어졌다. 그림 3은 이를 보여준다.

출처 : 한국은행

 

또한 GDP 대비 가계신용 규모인 가계신용비율이 3년 누적으로 1%포인트 상승하면 4~5년의 시차를 두고 3년 누적 GDP 성장률은 0.25~0.28%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가계부채가 증가하면 성장률도 하락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 보고서는 주요 선행연구에 따르면 과도한 가계신용 누증은 소비 제약 등을 통해 중장기 성장흐름을 약화시키고 위기발생 가능성을 증대시키는 등 경제 취약요인으로 작용한다. 원리금 상환 부담 증가는 가계의 실질 가처분소득을 감소시켜 민간소비를 위축시키며, 가계부채 규모가 과도할 경우 가계는 자산가격 하락, 신용공급 축소 등의 부정적 충격에 취약해질 우려가 높다. 또한 가계부채 증가는 소득 수준별로 비대칭적으로 영향을 미쳐 경제적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다. 아울러 가계신용 증가가 주택가격 급등과 함께 발생할 경우 경기둔화(또는 침체) 발생시 GDP성장률 감소폭이 주식버블 발생시에 비해 크고 침체 지속기간도 장기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명시하며 가계부채 누적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윤석열 정부, 서둘러 가계부채 디레버리징에 나서라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105.1%에 달한다. 여기에 지난해 말 기준 전세보증금 10583000억 원은 누락됐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2007년 말 665조 원이었던 가계빚(신용)은 지난해 말 1867조 원으로 폭증했으며, 이 기간 주택담보대출도 344조 원에서 1013조 원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현재 한국 가계의 부채상환비율은 무려 13%대로 2007년 당시 미국(11%)보다도 높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기 직전의 미국보다 현재 대한민국의 가계가 더 심한 부채 원리금 상환 압력을 받고 있다는 의미다.

 

빚으로 지은 성은 파도 앞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게 마련이며, 부채의존형 성장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는 없는 법이다. 윤석열 정부는 만사를 제쳐두고 가계부채 줄이기에 나서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 경제의 가장 약한 고리는 가계부채이기 때문이다. 만약 윤석열 정부가 부동산 가격 유지라는 미망에 사로잡혀 디레버리징을 포기한다면 대한민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넘는 경제환란에 봉착할지도 모른다.

이태경 편집위원시민언론 민들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