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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23.4.10~4.15 윤석열 굴욕외교 이후 하루 한 번꼴 '시국선언

by 이성근 2023. 4. 10.

일본군 성노예가 '상업'이라는 '신친일파', 이들 조국은 어디인가

한일 남녀 키 비교 그래프

"국내 농산물, 외국산보다 비싸도 국내서 생산해야" 65%

슈퍼리치 자산평균액 323일반인보다 ESTJ 비중 3

지각변동이 진행 중인 국제금융 시장, 당장 파국이 도래해도 이상하지 않은 한국

`마스크 분리공포증후군` 한국인들, 자유가 불편

최승호PD “원칙 지켜야 진보도 비판할 수 있다최민희 추천에 일갈

“1석이라도 지면 이재명 끝장친명·비명계 수도권 생존경쟁

안방도청 당하고도 저자세항의도 않는 대통령실

참을 수 없는 '삼성 본색' 언론의 가벼움, 그들이 몰랐던 진실의 무거움

"내 기억속 교생 선생님은..." 김건희 옛 제자가 편지 보낸 사연

교생 김건희 사진으로 의혹반박 ? 핵심 잘못짚은 언론

중국과 손잡는 나라들, 미국만 쳐다보는 한국

제주 4·3 75주년, “살암시난 살앗주

잠들지 못하는 4·3 영령들

4·3 명예교사의 첫 수업, 첫 고백

윤석열 정부 다룬 사설 키워드, 조선일보는 '문재인' 한겨레는 '우려

지방 거주자 절반 "머지않아, 내가 사는 지역 소멸

'도청''도청'이라 말하지 않는 언론

"상당수 극비""상당수 위조

윤석열 굴욕외교 이후 하루 한 번꼴 '시국선언

·일에 집착하다 뒤통수 맞은 윤석열 정부실익 다 빼앗겨

금융시장 공포조장자들은 걸러내자

'감청 의혹'"한국에 대한 헌신 철통"문건 진위엔 말 아껴

미국의 도청 의혹윤석열과 박정희 정부의 닮은꼴 대응

해외거점 두고 노동·시민단체까지 은밀한 침투일상 파고든 간첩

윤국정수행 및 정당지지 여론조사

"김용현·한동훈에 천공 탄원서 전달묵살됐다

천공 보도뉴스토마토 기자, 10주째 대통령실 출입 못해

법원이 공개한 이정근 범죄표 봤더니... 공소사실 50건 중 47건 유죄

전국미분양주택 그래프

야당 대표 안 만나는 윤 대통령, 339일째 갈등 쌓는 불통

윤석열 검찰특활비 공개된다대법원 정보공개해야

폴란드 총리 "한국과 우크라 포탄 인도 관련 대화 나눠미국 개입해야

주키니 호박 거래 재개에도 농민들 시름

돈 없고 늙는 한국유럽 PIGS 닮는다

"도둑질 당하고 '선의'라니"도청 덮은 대통령실 규탄

 

일본군 성노예가 '상업'이라는 '신친일파', 이들 조국은 어디인가

누구를 위한 '역사전쟁'인가 ()

2019년 출간된 문제의 책 <반일 종족주의>(미래사)는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 특히 많이 읽혔다. 한때는 '아마존 재팬'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 뒤로도 꾸준히 팔렸다. 구독자의 연령대는 한국과 일본 똑같이 다수가 '60대 이상'이라 한다. 2020년엔 그 후속편인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도 나왔다. 이 책들을 펴낸 출판사는 '대한민국 국민이 꼭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선전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고대병법의 대가 손자의 가르침을 겸허히 받든다면, <반일 종족주의>에서 늘어놓는 괴변과 사실 왜곡, 억지 주장을 격파하기 위해선 (읽어내려 가기가 힘들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읽어볼 만하다.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의 사부(師父), 안병직

혹시 독자 분들이 병법가 손자와 같은 마음으로 <반일 종족주의>를 읽어보시려면, 공공도서관에서 빌려 보시길 권한다. 굳이 돈 내고 사볼 것까진 없다는 뜻이다. 고백하자면, 몇 해 전에 <반일 종족주의>를 읽다가 "이런 책을 쓴 자들은 한국인이 맞나? 일본 극우가 쓴 책을 번역한 게 아닐까?"라는 의문이 문득 떠올랐다. 그럴 무렵 어느 선배를 만나 책 얘길 했더니, 늘 웃는 상이던 얼굴을 찌푸리며 대뜸 이렇게 말했다. "그 얘긴 더 이상 하지말자. 내 정신건강을 위해 폐지 재활용함에다 내다버렸어!"

 

그 선배와는 대학 다닐 때 안병직(1936년생, 전 서울대교수, 경제사)의 경제사 강의를 함께 들었던 인연이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전반기만 해도 안병직은 후진국 또는 개발도상국의 민족경제를 갉아먹는 매판(買辦)자본을 지적하는 등 나름의 비판적 시각으로 학생들의 관심을 끌었다. <전환시대의 논리>를 쓴 리영희(1929-2010, 전 한양대 교수, 신문방송학)가 학생들에게 끼쳤던 묵직한 무게감에는 못 미치겠지만, 안 교수의 영향을 받아 필자를 포함한 여러 학생들이 부전공으로 경제학 과목을 선택할까 고민했을 정도였다.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이던 1970년대에 '서울대 운동권의 대부'(?)라는 말까지 듣기도 했던 안병직에겐 이런 일화도 전해진다. 1971년 당시 서울대 경제학과 학생 이영훈(1951년생, 전 서울대교수, 경제사, <반일 종족주의>6인 저자 가운데 대표필자, 현 이승만학당 교장)이 박정희 정권의 주요 정책 가운데 하나인 교련(학교군사훈련)을 거부하는 바람에 제적당하자, "노동운동을 해보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당시 안병직은 이영훈 말고도 여러 학생에게 직업적인 노동운동가가 되길 권했다고 알려진다.

31년 넘게 일본군의 성노예제를 비판해온 수요집회. 문제의 책 <일제 종족주의>는 수요집회를 열어온 인권운동가들이 직업적 일거리를 잇기 위해위안부 할머니들을 앞세워 시위를 벌여왔다는 막말을 하고 있다. 김재명

 

비판적 지식인에서 '신친일'로 전향, ?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안병직의 이념노선이 바뀌었다. 뉴라이트재단 이사장과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이사장을 지낸 그의 이력이 말해주듯, 보수 우파로 돌아섰다. 그 전까지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을 펼치던 안병직의 학문적 입장이 (일제의 식민통치가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식민지근대화론 쪽으로 기울었다.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같은 일이 왜 그에게 일어났을까.

 

1990년대 초 소련 공산권이 무너지면서 지식인들의 이념적 지형에 큰 충격이 주어진 것이 1차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한때는 일부 사람들에게 '사회주의 모국'으로 여겨지기도 했던 소련의 붕괴와 이에 따른 북한 경제의 어려움을 목격하면서, 이론적 구심점을 잃은 운동권 출신들이 잇따라 보수 우파로 전향하는 흐름이 생겨났다. 안병직의 변신은 그들보다 빠른 1980년대 후반에 시작됐지만, 큰 그림으로 보면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안병직은 1980년대부터 일본을 왔다 갔다 하면서, 그곳 우파 지식인들과의 잦은 접촉이 이념적 변신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지금의 안병직은? 이영훈을 비롯한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들이 사부로 여기는 인물이다. 30~40년 전만 해도 자신이 '21세기 신친일파' 계보에서 꼭지를 차지할 것이란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반일 종족주의>6인 저자 가운데 핵심인 이영훈(이승만학당 교장), 김낙년(낙성대연구소장), 주익종(이승만학당 교사)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서울대 경제학과를 다니며 안병직 교수에게 배우던 시절엔 사회변혁을 꿈꾸었던 진보적 청년들이었다.

 

'신친일파'로 전향한 뒤 안병직이 가끔씩 던진 파문은 지금도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그는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MBC 뉴스현장 인터뷰(2006126)에서 "일제시대 공공연한 토지수탈은 없었다"고 부인하더니, 이어 "위안부를 강제동원했다는 객관적인 자료는 하나도 없다"고 주장해 논란을 불렀다. 많은 연구자들은 안병직의 위 발언이 '학문적 양심을 버린 터무니없는 친일적 주장'이라 여겼다. 같은 보수 우파에 속하는 사람들도 그의 친일적발언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 분노했음은 물론이다.

 

"극단적 자학사관이자 혐한(嫌韓) 종족주의"

안병직의 제자들도 논란을 부르기는 마찬가지였다. <반일 종족주의>6인 저자 가운데 대표필자인 이용훈(이승만학당 교장)은 지난 20049MBC 100분 토론에서 "일본군 성노예가 '사실상 상업적 목적을 지닌 공창 형태'였다"고 말했다가 거센 국민적 비난을 받았다. 급기야 나흘 뒤 '나눔의 집' 수련관에 들어서자말자 7명의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무릎 꿇고 큰 절로 사과를 했었다. 할머니들은 끝내 사과를 거부하며, 이용훈에게 이렇게 호통쳤다.

 

"근본에 문제가 있다. 일본인 아니냐? 당장 호적등본 떼 와라!"(이옥선 할머니),

"학자는 무슨 학자냐? 자격이 없다. 뚫린 입이라고 막말을 하느냐?"(김군자 할머니).

 

그 자리에서 이영훈은 "할머니들이 일제 강점기 성노예자라는 역사인식에 동의하며 철저한 역사청산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사과하는 모습은 그때뿐이었다. <반일 종족주의>에서 펼쳐진 그의 궤변과 왜곡은 15년 전 그날의 방문과 사과가 국민적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시간을 벌기 위한 꼼수에 지나지 않았다고 보여진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이용훈은 주변 사람들에게 그날의 일을 변명하면서 "무릎 꿇으려고 간 것은 아니었는데, 엉겁결에 그렇게 됐다"고 얼버무린다고 한다.

 

이영훈, 주익종과 함께 서울대 경제학과를 다니며 안병직 교수에게 배웠던 전강수(대구가톨릭대교수, 토지경제학) 같은 이는 <반일 종족주의>의 대표 필자 이영훈에게 매우 비판적이다. 한국을 혐오하고 일본에게 너그러운 '극단적인 자학사관'(自虐史觀)이자, '혐한(嫌韓) 종족주의'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관련 부문을 줄여 옮겨본다.

 

[‘반일 종족주의론은 일본 제국주의자들도 감히 펼치지 못한 극단적인 자학사관이다. 이영훈은 한국인의 반일 종족주의를 개탄하지만, 실상은 자신이 혐한 종족주의에 빠져 있다. 혐한 종족주의는 책 전반에 걸쳐 드러난다. 한국 사람의 오류에는 하나라도 놓칠세라 눈을 부라리는 반면,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수탈과 악행에는 한없이 관대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그 증거다. 나머지 다섯 명의 필자도 이영훈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뜻이겠다.](전강수, <반일 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 한겨레출판, 2020, 39-40).

일본 군수공장에서 실탄을 제조하고 있는 근로정신대 여성들. 썸앤썸 제공

 

'역사왜곡, 황당한 판결'이라며 한국 대법원 비난

문제의 <반일 종족주의>는 어떤 주장들을 펼치며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드는가. 위에서 썼듯이, 그 책을 읽다가 폐지 재활용함에 던져 버렸다는 선배가 혹시 이 글을 본다면, 혈압이 또 오를 게 뻔하다. 일상에 바쁜 독자들의 시간도 절약할 겸 눈에 띄는 사항만 몇 개 꼽자면, 다음과 같다.

 

식민지 조선의 쌀을 수탈해간 것이나 아니라 대가를 지불하고 수입해간 것이고 농민의 소득 증가에 오히려 기여했고(44-51),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으로 조선인의 토지를 수탈하고 산미증식계획으로 쌀을 수탈해갔다고 가르치는 한국사 교과서가 잘못됐다(53-54).

일제 강점기 말기의 강제동원은 허구이자 신화이며 따라서 한국의 교과서가 역사를 왜곡한다. 피해자들이 주장하듯 노예노동은 없었다. 강제동원 피해자에 배상하라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20181030)명백한 역사왜곡에 근거한 황당한 판결이다(67-69).

당시에는 강제연행이나 강제징용이란 말조차 없었고, ‘조선인 청년들에게 일본은 하나의 로망이었다. 징용 조선인들 가운데 도망자가 많았던 것은 근로 조건이 더 좋은 곳으로의 도망이었다(69). 따라서 한국의 교과서는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71-76).

1965년 한일협정 때 한국 쪽은 애당초 청구할 게 없었고한일협정으로 일체의 청구권이 완전히 정리되었다(115).

한국이 독도 영유권을 내세우는 것은 반일 종족주의의 가장 치열한 상징이다(151).

조선이 외교권을 박탈당한 1905년 을사조약을 체결한 것은 기회주의자고종(高宗) 임금이다.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 5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 옳지 않다(204-210).

위안부제도는 원래 있던 공창제가 군사적으로 동원 편성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위안부들은 고수익을 챙겼고, 피해자들이 주장하는 강제연행은 없었다. 위안부 숫자를 과장해선 곤란하다(301-304).

 

위안부제를 일본군의 전쟁범죄라는 인식에 동조하지 않는다. 정대협(지금의 정의기억연대)는 직업적 일거리를 잇기 위해 위안부들을 앞세운 시위를 줄기차게도 벌여왔다(337).

 

"일일이 논박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소모적"

줄인다고 줄인 것이 위와 같이 길다. 위 궤변들 말고도 또 여러 항목들이 있지만, 무시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반일 종족주의>에 대한 한국 주류학계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줄이면, "일일이 대응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의 강제동원과 관련해 여러 연구 보고서와 책자를 펴내온 정혜경 연구위원(ARGO인문사회연구소)은 그가 공저자로 참여한 책의 소제목을 일일이 논박할 가치가 없으나로 잡았다. 그 이유를 들어보자.

 

[(반일 종족주의의) 집필자는 자신이 잘못 알고 있는 내용을 오히려 학계의 역사왜곡이라고 규정하며, 강제동원의 역사를 부정하는 근거로 삼았습니다. 또한 학계나 사회단체가 의도적으로 왜곡을 확산하는 듯이 표현했습니다.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주장만 난무하며, 이미 공개된 다양한 자료를 확인하지 않고 억측과 궤변으로 대신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해 일일이 논박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소모적입니다.] (정혜경·허광무·조건·이상호, <대를 론하다: 반일종족주의의 역사부정을 넘어> 선인, 2019, 152).

 

<반일종족주의> 저자들은 일제 강점기 말기의 강제동원 문제에서 독자들을 화나게 만든다. 강제동원은 허구이자 신화이며 따라서 한국의 교과서가 역사를 왜곡한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아울러 많은 피해자들이 한결같이 주장해온 '노예노동'은 없었다고 우긴다. 더구나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판결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20181030)명백한 역사왜곡에 근거한 황당한 판결이라 조롱한다.

일본 신일본제철 본사 앞에서 강제동원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시위(1998630). 오랫동안 일본이 버티는 가운데 올해 3월 한국 정부의 제3자 변제안이 나와 피해 당사자들의 반발을 불렀다.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위서'(親日僞書) 필자들, 어느 나라 사람?

특히 이영훈은 '위안부' 강제연행은 없었고. 그 숫자는 3600명쯤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지난 글에서 살펴봤듯이 우리 학계에선 3~5만 명 사이로 본다. 이영훈은 숫자를 부풀려서 말하면 '곤란하다'고 했다. 누구에게 곤란하다는 말인가? 일본인들에게? 궁금증을 자아내는 표현이다. 그는 '위안부들이 일본군과 함께 죽기를 강요당하기도 했다''위안부'들이 겪었던 참상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은 전쟁 자체의 참혹함이었다'고 핵심을 비껴간다(304).

 

그리고는 6.25 한국전쟁 때 있었던 '한국군 위안부''미군 위안부', 그리고 '민간 위안부'란 이름으로 한국사회의 성매매를 필요 이상 길게 언급한다. 정작 논란이 되는 '위안부 성노예'의 핵심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여기서 또 다시 사람들은 묻게 된다. "도대체 이런 논리를 펴는 자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요?” “그렇기에 친일위서’(親日僞書)란 따가운 눈총을 받는 것 아닌가요?”

 

논리학개론을 읽다보면, "뿔을 둘 다 잡아야, 논리적으로 말이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소머리의 뿔 두 개를 다 잡아야지, 하나만 잡고선 둘 다 잡았다고 우기면 '논리적 오류'에 빠지기 마련이다. <반일 종족주의>를 보면 이른바 실증주의를 내세우면서 필요에 따라선 각종 통계를 근거 자료로 인용함으로써 그들의 주장이 마치 진실인 양포장돼 있다. 얼핏 보면 그럴싸하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논리학에서 지적하는 뿔 하나만 잡는 오류를 밥 먹듯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를테면, 자신들에게 유리한 통계 숫자만 골라내고 다른 각도로 낸 통계를 의도적으로 빠뜨리곤 한다. 통계 숫자뿐 아니다. 서술방식에서도 결론을 정해놓고 거기에 뚜드려 맞추는 억지와 궤변, 왜곡 투성이다.

 

"길에서 헌병에 붙잡혀 위안부 됐다"는 증언 왜곡

증언자의 녹취록도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것만 쏙 빼, 증언자가 말하고자 했던 핵심을 흐리고 엉뚱한 결론으로 왜곡한다. 이를테면, '위안부' 할머니 문옥주(1924-1996)의 경우가 그러하다. "나는 일본군 '위안부'였다"였다는 김학순 할머니의 최초 증언(1991814) 넉달 뒤인 1991122일 두 번째로 나섰던 문옥주 할머니가 생전에 남긴 증언을 들어보자.

 

"16세가 되는 1940년 가을, 어느 저녁에 친구네 집에서 놀다 집에 돌아가는 데 일본인 군복을 입은 사람이 끌고 갔다. 헌병대 앞이라고 생각했다. 먼저 (잡혀)와 있던 여자도 있었다. 거기 사무실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대구역에서 평복을 입은 일본인 남자와 조선인 남 자에게 넘겨주었다. '아카츠키'라는 기차를 탔다"(여성가족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구술자료 재정리 자료집> 2016).

 

<반일 종족주의>의 이영훈은 '문옥주가 헌병에 잡혀갔다고 하지만 그대로 믿어선 곤란하다'면서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 '어머니나 오빠의 승낙 아래 주선업자에게 끌려간 것을 그렇게 둘러댔을 뿐'이라고 우긴다(321-322). 그러면서 문옥주가 동남아시아에서 '위안부'로 일하면서 가족에게 돈을 보냈다는 점을 내세워 성노예로 착취당한 '위안부의 본질을 흩뜨리려 들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보자. 이영훈의 주장대로 가족이 업자에게 팔아넘겼다면, 문옥주가 그런 지옥 같은 삶을 살면서 모은 돈을 어떻게 자신을 성노예로 만든 가족에게 보내려 할 수 있을까.

 

문옥주가 가족에게 보냈다는 돈의 가치도 거금이 아니었다. 전쟁 중인 동남아 지역에서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천문학적 인플레에 따른 환율을 고려한다면, 적은 돈이었다. 그럼에도 이영훈은 송금 사실을 들어 문옥주가 성노예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다. 논리학에 말하는 ''을 하나만 잡고 그럴싸하게 독자들을 현혹시키는 서술 방식이다. 길거리의 야바위꾼들이 행인들의 주머니를 털려고 의도적으로 눈을 혼란시키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  20049월 오전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 관련 발언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서울대 경제학부 이영훈 교수가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질타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토착왜구' '부왜노'(附倭奴) '친일 종족주의자'

<반일 종족주의> 출간 이전에도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지금부터 10년 전 "위안부는 일본군과는 동지적 관계이자 식민지인으로서 (전쟁)협력자이다" "위안부는 매춘의 틀 안에 있는 여성"이라며 일본 극우파의 입맛에 딱 맞게 쓰인 책이 나와 파문을 일으켰다. 박유하(세종대교수, 일문학)<제국의 위안부>(뿌리와이파리, 2013)가 문제의 책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법정 소송 끝에 34곳의 내용이 삭제된 2판이 2015년에 나오긴 했지만, 개운치 못한 여운은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박유하는 2018<제국의 위안부, 지식인을 말한다><제국의 위안부, 법정에서 1460>을 펴냈다. 국민적 비난에 아랑곳없는 오만한 태도가 인상적이라고 해야 할까.

 

<제국의 위안부>가 작은 파문이라 친다면, 6년 뒤인 2019년에 나온 <반일 종족주의>는 거센 후폭풍을 낳았다. "구역질난다"는 비난 속에 '토착왜구' '부왜노'(附倭奴)란 돌팔매가 빗발쳤다. "당신들이야말로 친일 종족주의자가 아니고 뭐냐는 따가운 비판이 쏟아졌다.

 

침략과 전쟁범죄로 얼룩진 일본의 과거 역사를 부정하기에 역사수정주의자또는 역사부정론자라는 지적을 받는 (정작 당사자들은 자유주의 사관을 지녔다고 말하는) 지금의 일본 극우들이 펼치는 억지 주장들과 거의 똑같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호적을 일본으로 파가라"는 비난마저 받는가.

 

이제 글을 마무리해야 되겠다. 문제의 책 <반일 종족주의>와 그 후속작인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은 일제의 식민지 통치가 한민족을 노예상태로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근대화에 도움이 됐다는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을 펼치고, ‘위안부가 성노예였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그럼으로써 지난날 전쟁범죄의 기억을 지우고 싶어 하는 일본인들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위안하고 (아울러 많은 한국인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있다.

 

이들 신친일파'는 그들의 '정신적 모국'인 일본에 자주 들락거리면서 챙기는 강연료, 일본어 번역판 인세, 연구지원금 등으로 '생계형 친일'을 하는것이냐는 의심마저 받는다. 특히 이 책의 논리에 따르면, 독도를 무조건 한국 땅이라 여겨서도 안 된다. 이렇듯 역사전쟁은 과거사에 머물지 않고 현재진행형이다. 다음 주 글에선 <반일 종족주의>를 중심으로 신친일파가 펼치는 주장들을 좀 더 들여다볼 참이다. 한국 연구자들의 비판적 저술을 바탕으로, 신친일파의 주장 가운데 특히 무엇이 잘못 됐는지, 그 궤변적 논리의 허구와 문제점을 살펴보려 한다. (계속)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국내 농산물, 외국산보다 비싸도 국내서 생산해야" 65%

글로벌 식량안보 위협, 대한민국이 갈 길은

 

기후변화와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식량 보호주의 경향이 심화하면서 식량안보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 식량과 비료에 대한 수출제한조치는 전 세계적으로 57건에 달하며,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서 발표하는 식량가격지수(FAO Food Price Index)2020년 평균 98.1에서 2022년 평균 143.72년 만에 1.4배 이상 급상승했다. 식량안보 위협의 현실 속에서 우리나라의 식량 공급 상황은 녹록지 않다. 농림축산식품부 발표에 따르면, 2021년 전체 식량자급률은 44.4%, 곡물자급률은 20.9%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며, 세계식량안보지수(Global Food Security Index) 또한 전체 국가 중 39(2022)201628위에서 11계단 하락했다. 수입의존도가 높은 밀(22년 자급률 1.1%)의 경우, 톤당 국내 수입가격이 202012263달러에서 202312466달러로 급상승했다.

 

이러한 식량안보 위협 속에서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 팀은 지난 224 ~ 27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식량안보 인식과 대응방안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식량안보 강화를 위한 정책과 방향성뿐만 아니라, 먹거리에 대한 인식도 함께 물었다.

 

글로벌 식량위기라지만, 우리나라 국민의 먹거리 접근성 높아

그래픽=김문중 기자

 

글로벌 식량위기라 불리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나라 국민의 먹거리 접근성은 높은 수준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때면 언제든 먹거리를 얻을 수 있다는 응답이 73%, ‘나는 내 주변에서 먹거리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 72%로 먹거리에 대한 접근성이 높은 가운데, ‘나는 필요한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있다’ 62%, ‘나는 질 좋은 먹거리를 섭취하고 있다’ 55%로 나타났다.

 

먹거리 접근성은 높지만 농산물 가격 상승에 대한 부담은 컸다. 최근의 농산물 가격 상승을 체감한다(크게+약간)’는 응답은 93% 수준으로 거의 모든 국민이 농산물 가격 상승을 체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 중 농산물 가격 상승을 크게 체감한다는 응답은 68%에 달했다. 농산물 가격 상승은 먹거리 비용 부담으로 이어졌다. 먹거리 섭취에 대한 비용적인 부담이 크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 국민의 79% 수준이며 월평균 가구소득이 낮을수록 부담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농산물 가격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곡물 생산 감소(61%)’를 가장 높게 뽑았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했을 때 글로벌 식량안보 위협의 여파가 우리 국민 먹거리 수급을 제한하기보다는 먹거리 비용 부담을 확대시킨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식량안보 위기 요인에 잘못 대응하고 있다' 58%

식량안보 위기 요인으로부터 우리나라의 식량 조달 체계가 잘 대응하고 있다는 응답은 35% 수준으로, ‘잘못 대응하고 있다(58%)’에 비해 낮게 나타났다. 식량안보 위협 요인별 위협이 매우 크다는 응답은 국내 농업의 노동력 부족’ 40%,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 분쟁’ 32%, ‘국내 농지의 지속적 감소’ 30%, ‘주요 농산물의 과도한 수입 의존’ 28% 등의 순이었다.

 

식량안보 강화의 정책 방향성을 확인하기 위해 각 정책이 식량안보 강화에 도움이 되는가를 질문했다. 식량안보 강화의 큰 축인 식량자급률 확보와 공급망 확대를 아우르는 6개 정책 중 5개 정책에 대해 도움이 된다는 응답이 70% 이상으로 높게 나타난 가운데, ‘매우 도움이 된다는 응답은 농지 보호 정책 강화’ 29%, ‘식량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국가 간 협력체계 구축’ 27%, ‘농산물 가격지지 정책 강화’ 23%, ‘·밀 등 주요 곡물 비축량 확대’ 23% 등의 순이었다.

 

국민 대다수는 식량자급률 제고와 해외 공급망 확보 모두 필요하지만 국내 식량자급률 제고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이 원하는 정책 방향성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국내 식량자급률 제고 정책해외 식량공급망 확보 정책중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질문한 결과 국내 식량자급률 제고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응답이 80%로 압도적으로 높았으며 해외 식량공급망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는 응답은 13% 수준이었다.

국민 10명 중 9명 식량 무기화될 수 있다고 생각해

식량자급률 제고 정책을 우선해야 한다는 의견의 배경에는 식량 무기화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국민의 87%식량은 주요 생산국에 의해 무기화될 수 있다에 동의했으며 매우 그렇다는 응답도 46%에 달했다. 반면 식량자급률이 떨어진다고 해도 식량 수입이 원활하다면 큰 문제없다’ 44%, ‘우리나라에서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보다 외국에서 수입해 오는 것이 경제적이다’ 38% 등 수입을 통해 국내 생산을 대체할 수 있는 생각은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더불어 식량은 수입해 오기보다 자국 내에서 스스로 생산해야 한다에 대한 동의 정도가 80%로 높고, 특히 국내산이 외국산보다 비싸더라도,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이 좋다는 응답은 65%로 나타나, 가격 차이가 있는 경우에도 국내 생산을 선호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작물별로 자급률 제고의 중요성을 질문했을 때, , 채소류, 육류, , 콩 모두 중요하다는 응답이 80% 이상으로 높은 가운데, ‘매우 중요하다는 응답은 쌀이 53%로 가장 높았다. 이어 육류 40%, 채소류 38%, 34%, 33% 등의 순이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매년 발표하는 중장기 식량안보 강화방안에는 식량자급률을 제고하고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 목표가 가득하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자급률 제고 목표는 모두 제대로 달성되지 못한 채 묻혔고 그러는 사이 대내외적 식량 안보상황은 악화했다. 기후변화와 코로나19, 전쟁과 같은 식량안보 위협 요인들로부터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먹거리를 지켜낼 수 있을까? 정부와 의회, 그리고 밥상의 주인인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전재민 한국리서치 책임연구원 한국일보

 

슈퍼리치 자산평균액 323일반인보다 ESTJ 비중 3

CBS노컷뉴스

 

지각변동이 진행 중인 국제금융 시장, 당장 파국이 도래해도 이상하지 않은 한국

https://www.youtube.com/watch?v=vpoUzQDADK4

`마스크 분리공포증후군` 한국인들, 자유가 불편

지하철 버스 승객 90% 이상 마스크 착용

공기 질 좋은 공원에서도 절반 이상 착용

감염 위험 감소했는데 착용은 비이성적

주어진 자유가 오히려 불편하다고 생각

책임 따르는 자유 회피하면 발전은 요원

"한국인들은 마스크 분리공포증후군에 걸렸다." 최근 한국을 찾은 캐나다 지인의 말이다. 외국인(일부 아시아 국가를 제외하고)이 한국에 와 보고 놀라는 일 중 하나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이다. 코로나19 엔데믹으로 접어든 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온통 마스크, 마스크, 마스크다.

 

지난 320일 실질적으로 마지막 남은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 마스크 착용 의무까지 해제됐으나 여전히 시민 80~90% 이상이 마스크를 착용 중이다. 의무 해제 이후 3월 말 짙은 미세먼지 농도로 인해 마스크 착용 필요성은 있었으나 공기 질이 좋았던 이달 4, 5, 6일도 대중교통 차량 내에서 대다수 시민들은 마스크를 쓴 모습이었다. 심지어 야외에서도 마스크를 쓴 비율이 절반이 넘는다.

 

이유는 있다. 여전히 감염 위험이 있다는 걱정 때문에 계속 착용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감염위험이 현저히 감소한 것은 객관적 사실이고, 이 때문에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마스크 착용을 계속 고집하는 비이성적 모습을 보인다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지난 3년 가까이 써왔으니 단순 습관적 관성 탓으로 돌리는 것이 낫다. 또 남이 쓰니까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쓰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절대 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하나같이 같은 행동패턴을 보이는 것은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그래서 사회심리학적 접근을 한다.

 

자유보다 속박에서 더 편안함 느껴

자유와 자율이 주어졌는데도 이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사회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eedom)에서 자유 속에서보다 구속당할 때 편안함을 느끼는 심리로 해석한다. 자유를 구속보다 더 두려워해 도피하려는 경향을 띨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인간에겐 선택의 폭이 확대됐을 때 오히려 불안을 경험하는 경향이 있다고 상정한다. 이 아이디어는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후에도 다수의 사람들이 계속 마스크를 착용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적용될 수 있다.

 

고대 이후 중세, 근대를 거쳐 인간은 자유를 위해 투쟁해왔다. 그러나 막상 자유가 주어지니 불안하다. 20세기 들어 나치즘이나 파시즘 등에 의탁하는 증상을 보였다. 마스크 탈피를 못하는 현상이 나치즘 같은 전체주의에 의탁하는 것과는 분명 다르겠지만, 현대 한국인들에게도 자유를 부담스러워 하는 성향이 아주 없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프롬의 시각으로 현대 한국인들이 왜 '마스크 분리공포증후군'에 걸려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지 추적해 볼 필요가 있다.

 

정치·사회·심리학적 관점

프롬은 민주 사회의 개인은 자율성에 따르는 선택과 책임에 압도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펴는데, 개인도 마스크를 벗었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어쩌나 하는 책임의 중압감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마스크 의무 해제는 자신의 결정이 아닌 당국의 결정으로 받아들여져 올바른 선택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불안과 또는 규제에 대한 욕구로 이어진다. 차라리 마스크를 계속 착용하는 것이 속편하다고 생각하는 데에 이르게 된다.

 

사회적 규범과 압력도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프롬의 견지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팬데믹 기간 동안 마스크 착용은 많은 사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졌고 예의바르고 바람직한 행동이었다. 마스크를 계속 착용하면서 자신이 사회 집단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고 느끼게 해줬다. 때문에 동질감 또는 동화감이 마스크를 계속 쓰게 만드는 것일 수 있다. 또 가능성은 낮지만 계속 마스크를 착용하는 행위가 바이러스에 취약한 우리 사회 노약자에 대한 연대 또는 배려의 표시일 수도 있다. 일종의 착한아이 신드롬이다.

 

결론적으로 자유가 주어졌을 때 개인의 심리에 뿌리 깊게 자리한 불안감이 다시 고개를 든다는 프롬의 설명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자유에 직면해 선택의 고민과 책임의 중압감을 벗어나 기존 속박에 안주하는 순응적 인간형이 되는 것이다.

 

주어진 자유보다는 쟁취한 자유

전반적으로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해제된 후에도 마스크를 계속 착용하는 행동은 정치적, 사회적, 심리적 요인의 복합적 상호 작용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일 수 있다. 프롬에 따르면 불안과 자기만족이 개인으로 하여금 지침이나 규제, 심지어 구속을 찾게 만든다. 세계에서 한국인이 유독 마스크 착용을 고집하는 이유는 한국인의 집단주의적 유전형질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지만, 그 어느 사회보다도 경쟁과 변화가 극심한 상황에서 리스크를 최소화 하려는 본능의 발현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마스크 분리공포증후군'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자유와 자율, 개성을 외려 피하려는 집단 심리는 일찍이 20세기 전반에 권위주의 파시즘과 나치즘, 공산주의를 낳은 사실을 다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규제와 속박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과 선택의 고민을 대신해주는 전체주의 독재에서 느끼는 '탈책임'은 결국 같은 것이다. 그래서 자유는 밖에서 주어질 때보다 투쟁해 쟁취할 때 더 짜릿하고 값지다. 책임이 따르는 자유를 회피하면 사회와 국가 발전은 더디 온다.디지털타임스 이규화 논설실장

 

최승호PD “원칙 지켜야 진보도 비판할 수 있다최민희 추천에 일갈

MBC 사장 지낸 최승호 뉴스타파 PD

정파적 정치인 추천에도 진보진영 침묵

방통위 여야 격전장 이상의 변화 기대 어려워

최민희 방통위원 직무 공정·중립 원칙 지킬 것

 

MBC 사장을 지낸 해직 언론인 출신최승호 뉴스타파 PD가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에 최민희 전 의원을 추천한 더불어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정파로부터 독립이 요구되는 자리인데도 민주당 스피커역할을 했던 정치인을 추천한 것에 대한 일성이다.

 

PD민주당이 최 전 의원을 방통위원에 추천한 것은 상당히 문제가 크다최 전 의원은 독재 시절 언론운동 주역이었고 언론 시민운동 발전에도 큰 역할을 했지만 정치인이 된 뒤에는 그냥 정파적 정치인이었다. 방송에 나와 주로 민주당 스피커 역할을 해온 분이라고 혹평했다.

 

PD방통위는 방송·통신 정책을 담당하는 만큼 정파를 초월해 독립적 역할을 할 위원들이 필요한데 최 전 의원이 그런 역할에 적합하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민주당은 지난번에도 김현 전 의원을 위원으로 추천하더니 또 이런 식이라고 꼬집었다.

 

PD는 민주당 행태에 진보 진영이 침묵하고 있다며 위선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어떻게 된 일인지 진보 진영에서는 비판적 기사나 성명을 발견하기도 어렵다아마도 윤석열 정부의 공영방송에 대한 탄압이 극심한 요즘 최민희 정도 되는 싸움꾼이 들어가야 막아낼 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해서 다들 입을 다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면서 최 의원이 들어간다고 방통위가 여야의 직접적인 격전장이 되는 것 이상의 어떤 근본적 변화가 가능할까라고 반문했다.

최승호 뉴스타파 PD(왼쪽)와 최민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미디어오늘.

 

PD이런 식이면 윤석열 대통령이 자기네 방통위원에 지독한 정치인을 임명하고 공영방송을 정치적으로 좌지우지하는 데 대해 어떤 비판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결국 비판 대상과 수준이 똑같아지는 것밖에 소득이 없을 것이다. 원칙을 지켜야 비판할 수 있고 진보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PD 글에 민주당 지지자들 반발이 이어졌다. 댓글 다수는 국민의힘은 더한 인사를 추천하는데 우리(민주당)가 약하게 해서 되겠느냐는 취지. PD문재인 정부 시절 민주당이 그렇게 한 결과가 지금 윤석열 정권이라며 국민들, 특히 중도적 위치에 있는 국민들이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도덕적 차이를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일들이 바로 그런 논리로 저질러졌다고 비판했다.

 

PD는 이어 댓글을 통해 최 전 의원에 대해 민주언론시민연합 출신으로 정치에 나가서 언론운동이 정치화되는 데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 분이라며 민언련 출신으로서 언론운동에 대한 진정성이 남아 있다면 (방통위 상임위원은) 스스로 회피해야 할 직무였다고 썼다. 민언련 사무총장, 상임대표 등 최 전 의원의 언론운동가 이력을 꺼내 비판한 것이다.

 

PD민주당 2중대라는 평가를 받는 언론운동은 언론운동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한다언론운동 진영은 정치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최 전 의원을 방통위원으로 내세우는 민주당을 비판하지 못하는 걸 보면 얼마나 문제가 심각한지 알 수 있다고 꼬집었다.

 

최 전 의원은 10일 통화에서 최 PD 비판에 방통위원이 되기 위해서는 당적이 없어야 한다. 방통위원이 되는 순간부터는 방송 독립과 공정성, 방송·통신 산업 발전을 위해 공정하게 직을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 전 의원은 참여정부 시절에도 방통위 설치 등을 두고 정부 기조와 맞선 바 있다정파적 추천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대도, 일 만큼은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해야 한다는 게 내 원칙이다. 원칙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2006~2008년 방통위 전신인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최 전 의원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친명계 주류를 대변하는 스피커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민주당은 지난달 30일 최 전 의원의 방통위 상임위원 추천안을 국민의힘 항의 속에 단독으로 처리했다. 임명권자인 윤석열 대통령은 임명 거부를 검토하고 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10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최민희 방통위원 후보 추천을 철회하는 것이 마땅하다. 철회하지 않는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 거부할 것을 건의한다고 했다.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

 

“1석이라도 지면 이재명 끝장친명·비명계 수도권 생존경쟁

22대 총선 1년 앞

원내 1당 사수앞세운 민주당

일러스트 하재욱

 

10일로 내년 4·10 총선이 정확히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윤석열 정부 출범 3년차에 치러지는 내년 총선은 정부·여당에 대한 중간평가이자 169석 거대야당에 대한 결산 성격을 띤다. 특히 다음 총선은 정당 간 대결 못지 않게 공천을 둘러싼 각 당 내부의 계파갈등도 어느 때보다 깊다. <한겨레>는 총선 1년을 앞두고 여야 각 당의 내부를 들여다 봤다.

 

시스템 공천? 그걸 누가 믿나? 총선 막바지 가면 지도부 하고 싶은 대로 할 텐데.”

지난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더불어민주당의 한 비이재명계 의원이 냉소 섞인 푸념을 내뱉으며 차를 들이켰다. 총선을 1년 앞두고 공천제도 티에프(TF)를 꾸린 당이 2020년 총선 당시 이해찬 지도부가 구축한 시스템 공천 체계를 대부분 유지하기로 했지만, 그걸로 충분치 않다는 뜻이었다. “내년 총선에서 우리 당의 관건은 공천 갈등을 얼마나 최소화하느냐가 될 거다. 선거가 치열해지면 원래 대표의 측근들이 불출마를 선언하며 혁신 의지를 보여주곤 했는데, 과연 친명(친이재명계)들이 그럴 수 있을까?”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민주당에는 다양한 출신의 총선 출마 희망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배출한 169명의 현역 국회의원 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에서 공직을 지낸 장·차관급 인사와 청와대 참모진 출신들이 출마를 벼르고 있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대패한 뒤 재기를 노리는 광역·기초단체장 출신들도 다수다. 여기에 이재명 대표의 대선을 도와 친명을 자처하는 원외 인사들도 수두룩하다. 총선에 나서려면 치열한 당내 경쟁부터 통과해야 하는 셈이다. 친명계와 비명계가 빚는 갈등의 본질도 선거를 앞둔 생존 경쟁의 성격이 짙다는 게 당내 평가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 우리 당을 지배하는 정서는 증오나 적개심이 아니다. 공포다. 친명은 이재명 대표가 없으면 차기를 노리기 어렵단 공포, 비명은 이 대표에게 학살당할 것이라는 공포를 갖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이 121개 지역 중에 103곳을 석권한 수도권은 친명계와 비명계의 대표적인 전장이다. 뚜렷한 연고지가 없는 이들 대부분이 수도권 출마를 노리고 있어서다. 지난 총선에서 대거 당선된 수도권 초선의원들은 당시 코로나19 유행 탓에 변변한 선거유세조차 해 본적이 없다. 당내에서는 코돌이라는 조롱이 있을 정도다. 이는 과거보다 지역구 장악력이 약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친명을 자처하는 비례대표나 원외 인사들이 일찌감치 비명계 의원들의 지역구에 깃발을 꽂고 있다. 비례대표인 양이원영 의원은 친낙계(친이낙연계)인 양기대 의원이 있는 경기 광명을에 지역 사무실을 열었고, 대선 때 이재명 캠프 대변인을 지낸 현근택 변호사도 친낙계인 윤영찬 의원이 현역인 성남 중원 출마를 노리고 있다.

 

공천이 곧 당선을 의미하는 호남지역도 긴장이 높다. 호남 사정에 밝은 한 민주당 당직자는 호남은 물갈이 여론이 높은 지역인데다 대부분 초선이라 주류에 충성도를 증명하고 당원들에게도 자기를 알려야 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친낙계인 윤재갑 의원(전남 해남·완도·진도)은 최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문제에 반대하며 삭발을 감행했고, 역시 친낙계로 분류되는 윤준병 의원(전북 정읍·고창)성남에프시(FC) 후원금의혹으로 수사를 받던 이 대표의 전 비서실장이 숨지자 정치검찰은 야당 대표를 잡으려고 추는 칼춤을 멈춰야 한다는 글을 에스엔에스(SNS)에 올렸다.

 

당 지도부는 원내 1당 사수가 총선의 제1 목표다. 지도부 핵심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1당을 빼앗기면 이재명 책임론이 세게 불 거고, 여당은 파죽지세로 몰아붙일 거다. 1석이라도 지면 정치인생이 끝난다는 걸 이 대표가 잘 알고 있다.” 이 대표가 당 대표를 넘어 차기 대선 후보를 목표로 하는 이상, 총선 승리를 위해선 친소관계보다 본선 경쟁력을 최우선 잣대로 삼을 수밖에 없단 것이다.

 

수성의 기준점은 서울이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은 서울 49석 가운데 41석을 얻었다. 그러나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는 서울 25개 구청장 가운데 은평·강북·성북·노원 등 텃밭 8곳을 간신히 지켜내는데 그쳤다. 5%포인트 차이 안에서 당락이 좌우되는 수도권 선거는 결국 바람이 지배하는 만큼 민주당은 성적을 기대하고 있다. 지도부 핵심 관계자는 여당이 1년 안에 대통령의 국정철학 방향을 보여주는 데 실기했다민생·경제를 꾸준히 이야기하며 의석수를 활용해 국민에게 구체적인 혜택이 있는 입법으로 완성하면 우리 당에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안방도청 당하고도 저자세항의도 않는 대통령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국가안보실 도·감청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10일 미국 정부에 항의하거나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대통령실은 도·감청 내용 조작 가능성을 언급하며 사실관계 파악이 가장 우선이라며 파문을 줄이려 했다. 미국을 향한 대통령실의 저자세에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 회의와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 회동이라는 공식 발언 기회가 있었지만, 발언은 노사 법치 확립과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조에 그쳤다.

 

대통령실은 도청 내용의 진위 파악이 우선이라고 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에게 미국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은 확정된 사실이 아니다. 미국 국방부도 법무부에 조사를 요청한 만큼, 사실관계 파악이 가장 우선이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내용 조작 가능성도 제기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에서 유출됐다고 주장하는 자료 대부분이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전쟁 관련 내용이다. 미국에서는 유출 자료 일부가 수정되거나 조작됐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특정 세력의 의도가 개입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이번 사건을 과장하거나 왜곡해 동맹을 흔들려는 세력이 있다면 많은 국민에게 저항을 받게 될 것이라며 비판 목소리를 견제했다.

 

특히, 대통령실은 미국에 대한 합당한 조처 요구는 조건부 뒷순위로 미뤘다. 이 관계자는 양국의 상황 파악이 끝나면, 우리는 필요한 경우 미국 쪽에 합당한 조치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했다.

 

대통령실의 극도로 신중한 저자세는 보름 앞으로 다가온 윤 대통령의 국빈 방미와 오는 26일 한-미 정상회담과 무관하지 않다. 방미를 통해 한-미 동맹 강화라는 외교·안보 성과를 부각하려는 대통령실은 도청 사태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기류가 역력하다. 윤 대통령은 취임 뒤 한··3각 공조를 바탕으로 한 미국의 중국 견제 전략에 적극 동참했다. 일본 정부 사과나 전범 가해 기업의 참여 없는 3자 변제안을 밀어붙인 배경도 한-미 안보 강화였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미 관계를 훼손할 내용이 아니다. -미 관계는 생각보다 굉장히 돈독하다미국 쪽에서 양국 신뢰 관계를 재확인하는 조치를 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태도는 과거 미국에 감청 피해를 본 다른 나라와 견줘 차이가 크다. 독일, 프랑스, 브라질 등은 201310월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감청 행태가 폭로된 뒤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강하게 항의했다. 특히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는 2013년 벨기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친구 사이에 도청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공개 항의했다.

대통령실의 태도를 두고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즉각 미국 정부에 해당 보도의 진위와 기밀문건에 대한 명확한 정보를 요구하라고 말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미국 눈치보기부터 한 모양새다. 즉각 미국 정부를 향해 사실 규명과 사과, 재발 방지를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에서도 한심하고 비굴하기 짝이 없다”(9일 유승민 전 의원), “미국 정부에 강력히 항의하고 사과도 요구해야 한다”(하태경 의원)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편, 대통령실은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한-미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11일부터 15일까지 방미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참을 수 없는 '삼성 본색' 언론의 가벼움, 그들이 몰랐던 진실의 무거움

베트남 메탄올 사고에 애꿎은 삼성전자 불똥직접 관련 없는 업체” (조선비즈)

삼성전자 베트남 2차 협력사 납품사기 당했는데시민단체는 '삼성 탓' (데일리안)

베트남 2차 협력사 '가짜 에탄올' 피해삼성전자는 무슨 죄일까 (뉴스1)

 

지난 329일 주요 언론들이 내놓은 기사들의 제목입니다. 제목만 다를 뿐 동일한 내용을 다루는 기사가 20여 건에 이릅니다. 제목만 훑으면 삼성이 애먼 죄를 뒤집어쓴 피해자로 보입니다.

 

기사 내용은 한결같습니다. 삼성은 납품 사기를 당한 피해자다, 삼성에게 2차 협력사의 문제까지 책임을 묻는 것은 무리다, 삼성은 유해 물질 관리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등 이른바 '업계 관계자'의 말을 빌려 삼성의 입장을 전하고 있습니다.

 

기사를 꼼꼼히 읽어도 정작 중요한 내용은 알기 힘듭니다. 시민단체들이 어떤 이유로 삼성을 규탄하는지, 베트남에서 발생했다는 사건의 원인은 무엇인지 전후 맥락이 빠져 있습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문제를 제대로 알아보기도 전에 '삼성은 죄가 없다'라는 해명부터 듣고 있어야 하는 꼴입니다.

 

이 기사들이 전하지 않은 행간은 뉴스타파의 연속보도 '글로벌 삼성의 위험한 공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언론들이 말하지 않은 사건의 맥락을 마저 채워서 살펴보면 '피해자'라는 삼성의 모습은 딴판으로 달라집니다.

 

피해자로 둔갑한 책임자

지난 3월 초 베트남 박닌시에 있는 삼성전자 베트남의 한 협력사 공장에서 메탄올 중독 사건이 발생해 노동자 1명이 사망하고 36명이 실명 등의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기사들에서 언급된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은 베트남 박닌에서 발생한 이 메탄올 중독 사건에 대한 삼성의 책임을 규탄하는 것입니다.

지난 329일 반올림 등의 시민단체가 주최한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 협력업체 메탄올 중독 사망 사고 규탄' 기자회견.

 

삼성이 납품 사기의 피해자라는 언론의 보도는 마치 이 사건이 어쩌다 발생한 일회적인 사건처럼 보이게 합니다. 하지만 뉴스타파의 취재에 따르면, 삼성의 베트남 협력사들이 메탄올과 같이 금지된 유해 물질을 취급하다 적발되는 일은 최근까지도 비일비재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삼성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매년 발행하는 자신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을 통해 완벽에 가까운 공급망 유해 물질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꾸며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어쩌다 삼성이 피해를 입어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사실은 장기간 방치되어온 삼성의 관리 부실이 참사를 낳은 구조적 원인인 셈입니다.

 

더구나 삼성전자는 이미 2016년 국내 협력사에서 발생한 메탄올 실명 사건으로 인해 사회적 지탄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금속 가공 공정에서 냉각과 세척 목적으로 메탄올을 사용하다가 제대로 된 보호장구를 갖추지 못한 노동자들이 실명과 같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는 점은 시간과 공간의 터울을 두고 판박이처럼 같습니다.

 

삼성에게 2, 3차 협력업체의 관리 책임을 묻는 것은 무리라는 '업계 관계자'의 반문은 7년 전 국내 사건 때도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도 공급망 관리의 최종 책임을 갖고 있는 원청 삼성이 제도적 허점을 악용해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더구나 이번에 사건이 발생한 베트남 협력사의 경우, 삼성의 1차 협력사의 공장 안에 2차 협력사가 있는 특수한 경우라 언론의 지적은 꼭 들어맞지 않습니다.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확인되는 내용입니다.

 

7년 전 국내 사건 당시, 삼성은 국내외 협력사들에서 메탄올 등의 유해 물질을 관리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이재용 삼성 회장은 국정 농단 국회 청문회장에 나서 이 사안 등에 대해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라고 발언하기도 했습니다. 삼성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을 통해 해외 협력사 공급망의 유해 물질을 직접 관리하고 책임지고 있다고 스스로 언급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입니다.

 

앞서 뉴스타파는 취재 과정에서 삼성에 협력사 유해 물질 관리 문제에 대한 질의서를 보낸 바 있습니다. 구체적 사실 관계를 묻는 취재진에게 삼성은 '환경안전 관련 법규와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라는 원론적인 답변만을 해왔습니다.

일련의 문제에 답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직접 입장을 밝히는 게 아니라 언론과 '업계 관계자'의 발언을 통해 간접적으로 말을 흘리는 삼성의 의중이 궁금합니다. 독자들이 이번 메탄올 중독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다면, 자신의 말이 궁해진다는 점을 삼성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존립 기반' 신뢰가 무너지는데, 언론은 아직도 '삼성 본색'

이러한 삼성의 속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언론은 삼성의 일이라면 일단 두둔하며 나서고 있습니다. 이번에 나온 이른바 '삼성 피해자 프레임'도 어쩐지 낯설지가 않습니다. 당장 여러 장면이 떠오릅니다.

2015년 오너 일가의 이익을 위해 추진됐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때가 대표적입니다. 막대한 주주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문제의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 삼성은 언론 보도에서 돌연 해외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는 피해자로 둔갑했습니다. 합병안에 찬성표를 던진 국민연금을 두둔하던 언론도 많았습니다. 수년 뒤 삼성과 권력의 비선이 손을 잡고 국민의 돈인 국민연금 운용자산에 큰 피해를 입힌 불법 행위였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당시 보도를 두고 사과한 언론은 아직 없습니다.

 

2021년 이재용 삼성 회장의 가석방을 앞두고 나온 낯 뜨거운 언론 보도도 생각납니다. 권력 비선과의 거래를 통해 적극적으로 오너 일가의 이익을 취했던 삼성의 오너는 어느새 정치 권력에 겁박당해 헌금할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로 둔갑했습니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구원투수 역할을 할 재벌 오너가 반재벌 정서로 인해 부당한 옥살이를 산다는 목소리가 언론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이러한 우리 언론의 모습을 익히 봐온 뉴스타파는 삼성 베트남 공장의 환경안전 문제를 다루는 보도 말미에 이런 말을 보탰습니다.

 

저희가 오늘 보도를 결정한 또 한 가지 이유는, 한국 언론 최대의 광고주인 삼성을 제대로 감시할 수 있는 것은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언론뿐이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오늘 보도한 삼성 베트남 공장의 환경 파괴 실상을 어느 언론이 따라서 보도하는지 지켜봐 주십시오.

혹시 언론들이 이른바 '반도체 전쟁'의 일선에 있는 삼성전자에 힘을 싣기 위해 어떤 판단을 한 것은 아닐까요? 언론들이 무엇이 진짜 국익인지 헷갈릴 수도 있다는 노파심에 이런 말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누군가는 오늘 저희의 보도 내용에 대해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 해외에서 저지른 잘못을 폭로하는 것이 과연 국익에 부합하는 보도인가. 뉴스타파 영상 맨 마지막에 나오는 고 리영희 선생의 말씀처럼 저희는 저널리즘의 본질이 국익이 아니라 진실을 추구하는 데 있다고 믿습니다. 허위나 은폐에 의지해야 지켜지는 국익이라면 진짜 국익이 아니라 결국 특정한 누군가의 이익이며, 종국에는 국민 모두에게 해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지난 320, 국제 유해물질 반대 네트워크 IPEN은 뉴스타파의 보도를 인용한 성명을 발표했다.

 

안타깝게도, 이 같은 뉴스타파의 조언을 귀담아들은 언론은 없었습니다. 국제 단체 IPEN의 성명과 해외보도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인용보도에 나선 언론도 없었습니다.

앞서 국내 언론들이 '삼성 본색'의 오명을 떨쳐낼 수 있었던 기회가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안타깝습니다. 언론과 삼성의 밀월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뉴스타파의 '장충기 문자' 보도가 대표적입니다. 언론의 존재 기반인 독자의 신뢰가 땅에 떨어지는 와중에도 언론은 여전히 교훈을 얻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국내 언론들이 몰랐던 진실의 무거움

새삼스럽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글로 운을 뗀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그들이 외면하거나 때론 왜곡한 사건의 진실이 어떤 것인지 일러주고 싶었습니다.

이번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과 그 협력사들의 환경안전 실태를 취재하며 베트남 현지의 많은 시민, 언론인들을 접촉했습니다. 그 중 상당수는 뉴스타파의 취재 요청을 피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치 학습된 것처럼 삼성과 그 협력사 공장이 안전하다는 말을 읊조렸고, 또 어떤 사람은 취재진과 접촉한 사실이 알려졌을 때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이 크다고 손사래쳤습니다. 취재진도 베트남 현지를 취재하는 동안 공안과 삼성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진실에 다가서기 쉽지 않았습니다.

 

이들과 다른 태도를 보이는 베트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뉴스타파의 취재 내용을 접하고 침묵과 은폐로 대응하는 삼성, 그리고 그러한 삼성을 또 다른 침묵과 은폐로 대하는 베트남 정부에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느낀 분노를 표출할 창구를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언론과 기관에 문제 사실을 알리고 공론화를 촉구했지만 행동에 나서는 곳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문제를 알리려는 시민과 시민단체는 사찰과 경제적 압박을 받았고, 분노하던 이들 중 일부는 태도를 바꿔 침묵의 대열에 몸을 섞었습니다. 불과 40년 전쯤 우리도 겪었던, 민주화 이전의 한국 사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고군분투하는 베트남 현지의 시민, 언론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언젠가 베트남에서도 언로가 열리고, 인권과 환경 문제가 사회적 의제가 되는 날이 오리라 믿고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삼성의 문제를 계속 감시하고, 국제 사회에 연대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취재진에게 전해진 목소리 몇 개를 정리했습니다.

삼성 공장의 문제는 처음 듣는 게 아닙니다. 이전에도 베트남인 내부고발자가 나와 사실을 알린 적 있지만, 정부는 이 사실을 듣고도 침묵했습니다. 당시 문제 제기를 했던 사람은 다시 삼성의 관계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나서려고 하지 않습니다. 베트남의 시민 의식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베트남도 이런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베트남 현지 시민

 

베트남 언론이 정부의 검열 때문에 지나쳤던 이야기를 게재해서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베트남 언론인들 사이에서도 뉴스룸(대부분 관영 언론)이 삼성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불만이 커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문제와 관련해 정말 무엇인가 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기사 링크를 국제 신문에 보내려고 합니다. 내 임무는 최선을 다해 그 사실이 그냥 잊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베트남 현지 언론인

 

척박한 환경에서도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의 결연한 자세에 숙연해집니다. 기사를 쓰는 동안에도 베트남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에 미치지 못할까, 무거운 마음이 따라다녔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침묵을 하거나 책임자를 피해자로 포장하는데 일조하는 일부 언론의 행태를 보며 마음이 더욱 불편했습니다. 그들의 기사가 삼성을 돕기는 커녕, 글로벌 기업답게 발전할 기회를 앗아가고 있다는 점도 안타까운 대목입니다.

 

새삼스럽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결국 국내 최대 광고주 삼성의 영향력 아래 언론은 자유롭지 못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너무도 쉽게 누군가의 간절함을 배신하는 언론의 가벼운 행태에, 오래전 쓰인 소설의 제목이 자꾸 생각납니다.

뉴스타파 오대양

 

"내 기억속 교생 선생님은..." 김건희 옛 제자가 편지 보낸 사연

김건희 여사의 교생 시절 제자가 대통령실로 옛 사진과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10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사진을 보낸 제자 A씨는 1998년 서울 광남중학교를 다니던 학생이다. 당시 김 여사는 이 학교에 교생으로 실습을 나왔다. 김 여사는 당시 경기대 회화과를 졸업한 후 숙명여대 미술교육 석사과정 중에 교생 실습을 했다.

김건희 여사가 교생실습시절 사생대회에서 학생들과 찍은 사진. 대통령실

 

김 여사는 학생들과 교생실습 중이던 19984월 어린이대공원에 열린 사생대회에 동행했으며 현장에서 학생들과 사진을 찍었다. 해당 학생은 김 여사가 당시 담임 교사 이상으로 학생들에 정성을 쏟았다고 했다.

 

제자 A씨가 대통령실로 편지를 보낸 데는 김 여사가 각종 음해성 구설에 오르자 마음이 아팠다는 뜻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라 한다. A씨는 편지에서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며 눈물을 펑펑 흘리시던 교생 선생님을 같은 반 친구들 상당수가 현재까지 기억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대선과정 중 교생 선생님이 각종 음해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 아파하는 친구들이 많았다고 적었다

김건희 여사가 교생실습을 마치고 학생들에게 사진 뒷면에 써서 준 편지글. 대통령실

 

A씨가 보낸 사진은 뒷면에 김 여사가 직접 쓴 편지가 있었다. 김 여사는 편지에 헤어지는 순간이 다가와 선생님도 너무 아쉽다. 이제야 서로를 알 수 있는 시간이 온 것 같은데라고 적혀 있다. 편지 마지막에는 교생 김명신(김 여사 개명 전 이름)’이라고 남겼다.

 

A씨에 따르면 김 여사는 미술 과목 교생업무 외에 방과 후에도 별도로 시간을 내 전교 합창대회 연습시간에 참여해 학생들을 격려하고 소통했다고 한다.

 

A씨가 보낸 사진은 뒷면에 김 여사가 직접 쓴 편지가 있었다. 김 여사는 편지에 헤어지는 순간이 다가와 선생님도 너무 아쉽다. 이제야 서로를 알 수 있는 시간이 온 것 같은데라고 적혀 있다. 편지 마지막에는 교생 김명신(김 여사 개명 전 이름)’이라고 남겼다.

 

A씨에 따르면 김 여사는 미술 과목 교생업무 외에 방과 후에도 별도로 시간을 내 전교 합창대회 연습시간에 참여해 학생들을 격려하고 소통했다고 한다

중앙일보 배재성기자

 

교생 김건희 사진으로 의혹반박 ? 핵심 잘못짚은 언론

과거 사진 공개하며 교생 경력 사실 강조 .. 진짜문제는 교생경험> 근무 경력 바꿔치기

김건희씨가 2004년 초 서일대에 낸 이력서. 교생실습을 한 서울광남중에 근무했다고 기재했다.강민정의원실

 

10일 일부 언론이 대통령실에서 제공한 한 장의 사진을 일제히 보도했다. 김건희 여사가 19984월 교육실습을 나간 학교인 서울 광남중 학생들과 찍은 사진이었다.

 

문제는 이 사진을 보도한 언론 가운데 일부가 '김 여사의 교생 경력이 사실인데도, 김 여사가 음해를 당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는 점이다.

 

이날 <문화일보>"(최근 대통령실로 해당 사진과 편지를 보낸) A씨는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교생 선생님(김 여사)이 각종 음해에 시달리는 모습에 마음 아파한 친구들이 많았다'고 했다"면서 "김 여사의 교생 경력이 사실인데도 허위 의혹에 휩싸였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월간조선>'사진 같이 찍고 손 편지 써준 선생님(김건희 여사)이 가짜라니... 눈물 흘린 친구도 많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문화일보>와 거의 비슷한 내용을 보도했다. <이데일리>도 마찬가지였다.

 

의혹 핵심은 '교생 경험''근무 경력'으로 바꾼 것

문화일보 410일자 인터넷 기사.문화일보

 

하지만 대선을 앞둔 2021년 말 허위 의혹에 휩싸였던 핵심 내용은 김 여사의 '교생 경험'이 아니라 '교생 경험''근무 경력'으로 바꿔 적어놓은 김 여사의 이력서였다.

 

김 여사는 지난 2004년 서일대 시간강사 지원을 위한 이력서의 '지난 강의 경력' 란에 "1998 서울광남중학교 근무"라고 적어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1107일 보도자료에서 "교육실습을 해당 학교 근무경력으로 포함시킬 수는 당연히 없다"면서 "교원자격검증령 제8조 교육경력의 범위를 보면, 초중등교육법 상의 학교에서 교원으로서 전임으로 근무한 경력만 인정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앞서, <오마이뉴스>20211220일자 기사 <김건희 교생 보낸 숙대, 학교에 비용 지급... 국민의힘 헛발질>(https://omn.kr/1wh4x)에서 "김 여사를 교육실습 보냈던 숙명여대 교육대학원은 20216월에 실습 학교에 학생 1명당 10만 원씩을 송금해왔다. 여느 교육대학원처럼 숙명여대 교육대학원도 교생실습생을 보낸 학교에 실습비를 지급해온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근무를 했다면 대가를 받아야 하는데, 교육실습생의 경우 오히려 실습비를 내고 교생을 했다는 의미다.

 

<오마이뉴스>는 이 보도에서, 대학교원과 현직 중등학교 교감의 말을 빌려 "돈을 내면서 참가한 교육실습을 근무라고 주장하는 것은 난센스", "교육실습은 근무가 아니기 때문에 교직경력으로 인정되지 않고, 호봉승급에도 반영되지 않는다. 만약 일부에서 주장하는 대로 교육실습을 근무로 인정한다면 전국 45만 교원 전체가 호봉승급이 1개월씩 빨라지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 오마이뉴스

 

중국과 손잡는 나라들, 미국만 쳐다보는 한국

윤석열 정부, 국가 전략이 있기는 한가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96%가량 줄어든 것으로 발표된 7일 오전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딜라이트샵 갤럭시 광고 앞으로 시민이 지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날 연결 기준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6천억원을 기록해 지난해 동기보다 95.75% 감소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7일 공시했다. 삼성전자의 분기 영업이익이 1조원대 이하를 기록한 것은 20091분기(5900억원) 이후 14년 만이다. 2023.4.7 연합뉴스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6천억 원으로 작년 1분기의 141214억 원보다 95.75%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영업이익의 60~70% 가량을 차지하며 실적 버팀목 역할을 해온 반도체 부문이 메모리 반도체 업황 악화에 대규모 적자를 낸 여파라 한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감산을 공식화했다.

 

한편 한국 경제 무역수지는 13개월째 적자 행진에 작년 무역수지 적자 폭은 무려 4254200만 달러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칩과 과학법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미국에 투자하고 보조금을 받더라도 큰 이익이 없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더욱이 이런 조치가 사실상 중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더는 운영하기 어렵게 하기 때문에 삼성전자와 한국이 안아야 할 위험과 부담은 더더욱 크다. 따라서 이 문제는 반도체 관련 기업들만의 문제도 아니고 기업들만 나서서 풀 수 있는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한마디로 국가 전략에 기초한 종합적이고 일관된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 경제와 외교에 대한 적신호가 이처럼 심각한데 보수 언론과 경제 언론의 반응은 한가롭기만 하다. 문재인 정부 때 나온 수치가 이랬다면 어떤 식으로든 말을 이어붙여 '좌파 정책 망국론'을 만들어봤을 법한데 말이다. 현 정부 들어와 무역수지나 영업이익 악화 등의 부정적인 수치는 '업황 악화''대외여건 악화'와 같은 말로 간단하게 정당화된다.

 

다중 위기의 시대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세계 위기 보고서 2023>(Global Risks Report 2023)에 따르면 향후 2년간 전 세계가 심각한 민생고(cost-of-living crisis)를 겪을 것이라고 한다. 이 위기는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야기한 에너지난과 식량난의 지속, 공급 위기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박 등으로 세계적으로 민생고에 불을 붙여 사회 불안을 야기할 것이다.

 

또 코로나 위기 이후 세계 경제의 정상화를 위한 기지개는 탄소 배출을 늘리고 이 기후 위기 대응 실패로 이어져 장기적인 세계 위기를 야기할 것으로 전망한다.

 

세계경제포럼은 세계가 직면한 다층위와 다양한 영역의 위기가 상호연결되고 서로 꼬리를 물고 있다는 데 주목한다. 그리고 이런 복합적인 관계에서 나온 위기를 설명하기 위해 "다중위기(Polycrisis)"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다중위기는 "복합 영향력(compounding effects)을 가진 세계 위기"이며 복합 영향력은 "각기 영역에서의 위기 영향력의 총합보다 크다." 세계경제포럼은 "현재와 미래의 위기들이 상호작용하여 '다중위기'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한다.

 

다중위기는 현재 세계와 한국이 직면한 여러 전환과 위기, 이 위기들이 상호연결되어 작동하고 있는 메커니즘을 설명하기에 매우 유용하다. 지금의 시대는 세계질서의 대전환으로 인한 다중위기로 규정될 수 있다. 국제 질서는 신냉전 및 블록화로 재편되고 있고, 2대 전환으로는 에너지 전환과 디지털 전환을 꼽을 수 있을 것이며, 세계 곳곳에서 지적되는 공통적인 위기로는 인구 위기·경제불평등 위기·기후 위기가 거론되고 있다.

 

정치의 역할을 중시하는 필자의 관점에서 하나 더 위기를 덧붙이자면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무력한 '제도 위기'가 추가되어 4대 위기가 될 것이다.

 

, 다중위기란 세계 인류가 피할 수 없는 구조적 전환(에너지와 디지털)과 미·중 패권 경쟁을 중심으로 안보와 경제를 포함한 세계 질서의 대전환(신냉전과 블록화)이 국내·외 정치경제적 상황과 연결되어 인구·경제불평등·제도 등 위기와 긴밀히 연결된 것을 의미한다. 이런 다중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국가와 지역, 세계는 전략을 수립하고 협력과 상생의 길을 도모해야 할 시점이다.

 

5년 주기로 국가안보 전략을 발표해 온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과 독일,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들 역시 앞다퉈 국가(안보)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불투명한 미래와 긴박한 경쟁 그리고 다중위기 시대에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세계사적 전환과 변화하는 세계 질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전환 시기 국가 전략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이런 국가전략은 차치하고 윤석열 정부가 세계질서 변화와 세계사적 전환에 대한 이해가 있느냐이다. 69시간 근무제 개편 발표로 혼란을 자초하고 민심을 이반시키더니, 315일 윤석열 대통령은 "300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민간 투자를 바탕으로 수도권에 세계 최대 규모의 신규 '첨단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런 계획은 이미 수년간 언론에 수 차례 나왔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69시간"으로 혼란에 빠진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급하게 수를 찾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그러더니 바로 다음인 316~17일에 한일정상회담을 통해 굴욕 외교의 끝판왕을 보여줬다.

 

윤석열 정부의 전략 부재에 대한 의심은 지난주 이슈가 되었던 4대강 보 문제에서도 일어난다. 지난주 보수 언론과 경제 언론의 정치적 공세 중 하나는 문재인 정부가 4대강 보를 모두 허문 정책을 고수한 결과 호남을 비롯한 남부 지방에 심각한 가뭄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특히 <조선일보>는 주중 며칠 동안이나 해당 이슈를 1면에 다뤘다.

 

가뭄은 농가에 큰 피해가 되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이며 당연히 대응해야 한다. 그런데 대책을 세우기는커녕 가뭄의 원인을 4대강보에 있다며 문재인 정부 공격에만 공을 들인다. 대일 굴종 외교로 지지율이 급락한 시점에 문재인 정부 공격을 하니 국면 전환용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지난 28(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위스콘신주 디포레스트 소재 북미 노동자연맹(LIUNA) 훈련센터에서 경제 상황과 관련한 연설을 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의 입법으로 창출된 제조업 일자리 등에 관해 언급했다. 연합뉴스

 

더 심각한 전략 부재는 최근 가장 중요한 이슈인 반도체 문제에서 드러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이나 반도체칩과 과학법과 같은 당면한 실무 협상에조차 무관심해 보인다. '자유주의 진영의 연대'를 말하며 '가치 외교'를 선언해서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그 반대 급부로 미국에서라도 충분한 경제적 유인을 얻어내는 협상을 해야 하는데, 정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도통 모르겠다.

 

무역수지 악화와 삼성전자의 영업 이익 악화가 순전히 대외 여건 탓인지 아니면 정부의 '과격한 수사'에 대한 중국 측의 '조용한 대응'(한국에 불리한 방식으로의 디커플링 가속화)의 영향력이 상당 부분 있는 것인지에 대해 우리가 확언하기는 어렵다. 다만 현 정부는 경제 분야에서 최선은커녕 적정 수준의 노력이나 협상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이 반도체칩과 과학법 보조금을 빌미로 한국 반도체 산업에 사실상의 기밀을 요구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심지어 '개별 기업이 알아서 협상할 일'이란 태도로 방관하고 있다. 워싱턴 조야에선 반도체 산업과 배터리 산업에서 한국 산업의 위상을 토대로 협상할 수 있는 것들이 상당 부분 있을 텐데도 한국 정부가 반도체와 배터리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평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다.

 

마부바니의 10가지 질문

앞서 말했듯 국제질서가 신냉전과 블록화의 추세로 흘러가는 이유는 전적으로 미·중 패권 경쟁의 심화 때문이다. ·중 패권 경쟁은 안보, 경제, 문화, 사상, 기술 등 전면적인 경쟁이며 경쟁 과정과 결과는 국제 질서와 세계 경제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중 패권 경쟁은 한국의 현재와 미래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2대 전환과 4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미·중 패권 경쟁과 이로 인한 신냉전과 블록화에 대한 이해와 대응 전략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서 미·중 패권 경쟁의 성격과 향방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정확한 질문부터 해야 한다. 세계적인 외교전략 전문가인 키쇼어 마부바니 싱가포르국립대 리콴유공공정책대학원장의 <전략적 질문 10>(The Big Ten)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마부바니는 그의 최근 저서 <중국이 승리했나?>(Has China Won?)에서 다음과 같이 미·중 패권 경쟁에 대한 전략적 질문 10개를 던진다.

미국과 중국의 대결 pixabay

 

1. 미국은 앞으로도 계속 세계 경제 패권 국가의 지위 유지가 가능할까? 만약 30년 안에 미국의 GDP가 중국보다 작아진다면, 세계 경제 패권을 상실한 미국의 정책 변화는 무엇일까?

2. 미국의 최우선 과제는 33천만 미국 국민의 삶의 개선인가 아니면 세계 패권인가? 이 둘이 충돌할 경우 우선 순위는 어떻게 되나?

3. 미국은 막대한 국방비 지출을 계속해야 할까? 국방비 지출과 해외 전쟁 개입 대신 미국 내부의 인프라 재건과 사회 서비스 개선에 투자하면 어떻게 될까? 중국은 미국의 국방비 확대를 원할까 아니면 축소를 원할까?

4. 미국 우선주의 모습을 한 미국이 중국을 이길 수 있을까?

5. 미국이 우방과 경쟁 국가에 대해 가지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군사력이 아니라 달러가 아닐까?

6. 미국의 일방주의가 소프트파워를 훼손하는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7. ·중 경쟁은 '열린 자유 사회 vs 닫힌 권위주의 체제'의 투쟁으로 표현되는데, 세계의 모든 열린 자유 사회가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을까?

8. 미국은 중국 문제에 대해 감정적일까 아니면 이성적일까?

9. 미국은 중국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미국은 중국 공산당의 본질을 무엇으로 볼까? 중국 공산당을 '중국 공산주의'를 중심으로 보는 게 옳을까 아니면 '중국 문명'을 중심으로 보는 게 옳을까?

 

10. 미국은 최근 중국의 두 장기 전략 저지에 실패했다. 하나는 오바마 정부 당시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 대한 동맹국들의 참여를 저지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트럼프 정부 당시 중국의 일대일로에 동맹국들의 참여를 저지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장기 전략을 상대할 인내심이나 체력이 있을까?

 

한국 정부는 급변하는 세계 질서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갖고 있는가? 한국 정부는 대전환기에 국가 전략을 제시하고 국민들과 합의하는 과정을 가질 준비를 하고 있는가?

 

우리 이익 중심의 국가 전략 세워야

마부바니가 <중국이 승리했나?>(Has China Won?)에서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미·중 패권 경쟁의 향방을 잘 보고 예측·대비해야 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미·중 패권 경쟁의 승패가 동아시아에 걸려있다는 점이다.

 

, 누가 동아시아와 경제적 협력 관계를 잘 구축하느냐가 성패를 가를 것이다. 실제로 20221월에 중국 주도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이 발효되자, 이에 맞서듯 미국이 주도해서 20226월에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IPEF)을 출범시켰다.

 

마부바니가 세계를 향해 던지는 질문은 명쾌하다.

"(군사력)을 선택할 것인가, (경제적 협력)을 선택할 것인가?"

 

마부바니는 이 질문을 가지고 미국과 중국의 대외 전략과 그 결과를 분석한 결과 미국이 중동에서 불필요한 전쟁에 6조 달러를 낭비하는 사이에 중국은 아세안과 아프리카, 남미 등 세계와 경제 협력을 통해 강대국으로 부상했다고 분석한다.

 

실례로 2000년에 미국은 중국보다 경제 규모가 8배 컸으며, 미국과 아세안의 무역이 1340억 달러인 반면 중국은 410억 달러에 불과했으나, 2020년에는 역전해서 중국 6410억 달러인 반면 미국은 3000억 달러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2020년 미국과 중국의 경제 규모 차이는 불과 1.6배로 좁혀졌다. 뒤집어 말하면 그간 미국이 제3세계에 경제적 협력과 유인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면 중국에는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격차가 좁혀지는 사이에 대미 관계보다 대중 관계가 더 활발해지는 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회조사국(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에 따르면 2002~2019년 사이 남미·카리브해 지역과 중국의 무역 규모는 180억 달러에서 3150억 달러로 확대했으며, 2021년엔 4480억 달러로 급증했다. 이 수치는 미국과 남미 무역의 절반에 못 미치지만, 미국과 남미 무역의 71%가 집중하고 있는 멕시코를 제외하면 남미 지역의 대중국 무역은 730억 달러로 미국을 앞선다.

 

특히 남미 최대 경제 대국인 브라질과 중국의 무역 성장은 매우 놀랍다. 2000년 브라질의 중국 수출은 10억 달러에 불과했는데, 현재는 4일마다 10억 달러 상당의 상품과 서비스를 수출하고 있다. 이런 성장은 시진핑 주석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매우 가까웠던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 재임 기간에 일어났다.

 

아프리카도 중국과 관계가 계속 깊어지고 있다. 아프리카의 개발경제학자 안제체 웨레(Anzetse Were)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중국의 아프리카 투자는 매년 25%씩 증가했고, 2017~2020년 중국 투자는 다른 나라의 투자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으며, 아프리카로 유입된 자본의 20%를 차지했다.

 

그리고 서방의 비난과 달리 중국 기업들은 아프리카에 진출한 중국 기업 전체 인력의 70~95%를 아프리카인으로 고용했다. 반면 미국의 외국직접투자는 중국의 절반에 불과하며 미국과 서방의 개발 원조 대부분은 자국의 컨설턴트와 기업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언론인 하워드 프렌치(Howard French)의 지적처럼 미국은 개발원조에 대해 "점점 더 인색하고 경멸적"인데 반해, 중국은 "세계 공공재에 더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친강 중국 외교부장(가운데), 호세인 아미르 압둘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왼쪽), 파이살 빈 파르한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외교장관(오른쪽)6일 베이징에서 함께 손을 모으고 있다. 이번 회동은 지난달 10일 사우디와 이란이 단교 7년 만에 외교 정상화에 합의한 데 따른 후속 조치를 논의하기 위한 것으로 전해졌다. 2023.04.06. 신화=연합뉴스

 

중동에서도 심상치 않다. 지난 328일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상하이협력기구(SCO)'대화 파트너'로 참가하기로 정식 결정하는 한편 중국 중재 아래 이란과 국교 정상화에 나섰다. 이날 아랍에미리트는 액화천연가스(LNG) 65t을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에 판매하면서 위안화로 결제해 미국의 달러 패권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동아시아와 북반구 저위도나 남반구에 위치한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개발도상국을 포함하는 '글로벌 사우스'는 최근 미·중 관계 사이에서 자국의 이익을 중심에 놓고 다자주의에 입각한 자유로운 행보를 하고 있다.

 

, 한쪽에 줄 서는 편승 전략보다 자국의 이익을 중심에 두고 초월 외교전략과 경제협력을 통한 성장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마디로 미국이 군사적 대결과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사이에 세계 곳곳에서 미국의 일방주의와 거리를 두고 자국의 이익을 위한 국가 전략을 강화해왔다. 그 결과가 현상적으로 미국-중국·러시아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와 경제협력 강화로 나타나고 있다.

 

마부바니는 또 다른 최근 저서 <아시아의 시대인 21세기>(The Asian 21st Century)에서 19~20세기가 미국과 서구의 시대라면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특히 동아시아)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중국과 인도가 어디까지 성장할지, 역내 인구가 7억 명에 가까운 아세안이 얼마나 빨리 성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이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지역 역시 중국과 인도 그리고 아세안에 걸친 동아시아 지역이다.

 

실제로 중국과 인도 인구에 아세안 인구를 합치면 약 35억 명의 거대한 시장이다. 여기에 '글로벌 사우스'까지 확대하면 사실 미국과 유럽을 제외한 거의 전 세계 인구와 시장을 아우르게 된다. 중국은 물론 인도와 아세안 지역을 발판으로 삼으면 글로벌 사우스까지 진출하기가 매우 용이할 것이다.

 

·중 균형 외교와 경제 발전을 위해서 한국이 강조해야 할 원칙과 길은 경제 협력과 자유 무역이다. 블록화나 보호주의 대신 세계적 차원의 가치 사슬과 자유 무역을 지지하는 세계 여론을 조성하고 주도하기 위해 외교력을 모아야 하며, 이 과정은 한국의 경제적 규모에 걸맞게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경제 협력과 자유 무역의 원칙을 들고 한국은 아세안과 글로벌 사우스와 적극적인 경제 협력과 무역 확대를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처럼 미·중 사이에 끼여 있는 독일 등 유럽 국가들과 적극적인 협력을 통한 기술 협력과 경제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 이런 협력은 역내에 대결적 군사 정책으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본과의 차별화를 통해 한국의 위상을 높이게 될 것이며 세계와 경제 협력에 중요한 지렛대가 될 것이다.

 

국가 전략 제시하는 정부를 기대한다

한국의 국가 전략의 시작은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 정책을 계승·발전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용이할 것이다. 신남방 정책은 인도와 아세안 등 신남방 국가들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안보 등 전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강화해 공동 번영과 평화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아세안 국가들의 호응 역시 높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만든 공든 탑을 내팽개치고 있다. 그 결과는 한국 경제의 위상 하락을 넘어 국민 삶의 불안으로 이어질 것이며 종국에는 윤석열 정권의 안정적 토대마저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군사안보동맹 강화 일변도로 나아가 한반도와 주변의 높아지는 긴장 국면에 우리 스스로 기름을 안고 불 속으로 들어가서는 안된다. 지금이야말로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공동 번영과 평화 전략을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펼칠 때이다.

 

격변하는 세계 속에서 우리의 안녕과 이익을 지켜주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의 정확한 전략과 적극적이고 단합된 힘에 있다. 그 출발은 국가 전략에 있으며, 국가 전략 수립을 위해 당파를 뛰어넘어 힘을 쏟을 때이다. 정부의 실수나 좌충우돌은 더는 안 된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사실이 바뀌면, 나는 생각을 바꾼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라고 했다. "세상이 바뀌고 있고 우리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어떻게 하겠는가?"

송현석(maro2002) 오마이뉴스

 

제주 4·3 75주년, “살암시난 살앗주

4·3 75주년을 앞둔 제주가 4·3을 왜곡하는 현수막으로 뒤덮였다. 제주 출생으로 30년 넘게 4·3의 진실과 역사적 의미에 몰두한 허호준 한겨레기자를 만나 75주년의 의미와 과제를 물었다.

제주국제공항에서 제주4·3평화공원까지 차로 30여 분 걸린다. 시내를 지나는 동안 곳곳에 현수막이 보였다. ‘제주4·3 사건은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하여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다.’ 서늘한 문장을 지나 중산간 지역에 접어들자 풍경이 바뀌었다. 서울보다 앞서 벚꽃이 흐드러진 길가에 이런 현수막도 있었다. ‘4·3 망언 태영호는 즉각 사퇴하라.’ 4·3 75주년을 앞둔 제주는 현수막 전쟁중이었다.

324일 제주시청 앞에 제주4·3 왜곡 현수막이 걸려 있다. 시사IN 이명익

 

평일 오전, 4·3평화기념관은 교복 차림의 단체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4·3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마련된 야외의 위패봉안실에는 위패 14000여 개가 마을별로, 가나다순으로 정렬되어 있다. 길은 행방불명인 표석으로 이어졌다. 이곳에서 만난 최상욱씨 가족은 서울에서 여행 겸 들른 참이었다. 부부는 두 아이가 어려서 잘 이해하지 못해도 정서는 기억될 거라고 말했다. 분홍색 패딩을 입은 아이가 위패를 보며 눈물 흘리는 엄마의 얼굴을 살폈다. 최씨도 제주도 여행을 하며 현수막을 보았다. “화도 나고 놀라기도 했다. 찾아보고서야 사정을 알게 되었다. 떼지 못하게 하니 어떤 현수막은 찢겨 있더라.”

 

제주도 전역에 현수막 80여 개가 붙었다. 앞서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제주4·3 사건은 명백히 북한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라고 말했다.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4·3 흔들기. 제주도선거관리위원회는 문제의 현수막이 정당 명의라 통상적인 정당 활동에 해당한다고 해석했다. 제주4·3 단체들은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어디에도 북한 지령설이나 공산 폭동이라는 내용이 없다며 규탄했다. 결국 시 당국이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특별법)상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불법 현수막으로 판단해 추념식 하루 전날 철거를 결정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4·3 추념식에 불참하기로 했다.

 

4·3평화기념관 4층에는 제주4·3연구소가 있다. 1989년 개소한 이후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천착해온 민간 연구단체다. 허호준 한겨레기자를 그곳에서 만났다. 제주 출생인 그는 1989년 기자가 된 뒤 운명적으로’ 4·3을 만났다. 입사 바로 전해가 4·3 40주년이었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나오던 시기다. 30여 년 동안 4·3의 진실과 역사적 의미를 밝히는 데 몰두했다. 취재와 연구를 병행했다. 제주 지역 대학에서 4·3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첫 연구자이기도 하다. 지난해 14·3언론상을 수상했다.

최근 4·3을 다룬 책 4·3, 19470301-19540921을 펴낸 허호준 한겨레기자. 시사IN 이명익

 

최근 그는 4·3 생존 희생자, 유족들 100여 명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4·3을 다룬 책 4·3, 19470301-19540921을 출간했다. 숫자는 4·3의 시작일과 끝나는 날을 의미한다. 400여 쪽 분량으로 통사를 다루되 미국, 여성, 북촌, 4·3 디아스포라 등 4·3의 주요 포인트를 짚었다. 5년 전 한겨레에 연재했던 내용을 담으려다가 결국 대부분 새로 썼다. 4·3의 배경과 오늘날까지의 역사, 그 시간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 제주 곳곳에 남은 흔적까지 30년 취재의 집약이라고 할 수 있다. 소감이 남다를 만도 한데 기자 생활 중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75주년 4·3 기획에 온 신경이 쏠려 있었다.

 

책은 해방 직후 제주도 상황에 대한 기술로 시작한다. 일본은 물러갔지만 해방군으로 여겼던 미군이 친일 경찰과 손잡았다. 최악의 흉작에 콜레라까지 겹쳤다. 일제강점기 일본 등으로 떠났던 이들이 고향에 돌아와 인구는 늘었으나 일자리가 없었다. 이 가운데 1947313·1절 행사 후 거리 행진에서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차여 아이가 넘어졌다. 항의하는 도민들에게 경찰이 총을 발포해 6명이 숨졌다. 성난 민심이 동요했다.

 

미국, 시작부터 끝까지 다 알았다

이날의 발포는 민관 총파업 사태로 이어졌다. 타지에서 응원경찰과 서북청년회(서청)가 들어왔고 제주에 붉은색이 덧입혀졌다. 1년이 되지 않아 2500여 명이 경찰에 검거되었다. 허 기자는 제3세계 해방운동에 영향을 끼친 알제리 민족해방운동의 선구자 프란츠 파농의 말을 빌린다. “민중의 무장투쟁에는 돌이킬 수 없는 시점이 있다.” 1948년 제주에 돌이킬 수 없는 시점이 오고 있었다. 경찰의 검거와 고문, 우익단체의 테러, 남로당의 와해 위기 등이 배경이다. 194843일 남로당 제주도당을 중심으로 무장대가 봉기했다. 군경, 서청 단원으로 이루어진 토벌대가 추적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고 그사이 들어선 이승만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해 학살을 정당화했다.

4·3 당시 시신을 찾지 못한 행방불명인 비석 4000여 기가 제주4·3평화공원에 마련되어 있다. 시사IN 이명익

 

허호준 기자는 겨울이 되면 눈 덮인 한라산을 보며 1948~49년을 생각한다. 몇 개월 사이 학살이 집중적으로 자행됐다. 해안마을 주민들은 무장대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죽고 산속 피난민들은 굶거나 얼어 죽었다. 산으로 떠난 가족이 있는 집안에서는 누군가 대신 죽었다. 그해 겨울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토벌대를 피해 중산간 동굴에 지내다 밤이 되어 나오면 눈에 다리가 푹 빠질 정도였다. “우리 삼촌(어른을 친근하게 부르는 제주어 명칭)들은 저 추운 데서 어떻게 살았을까. 나였으면 어떻게 할까.” 4·3 특별법에 따르면 4·3“194731일을 기점으로 194843일 발생한 소요 사태 및 19549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희생자는 25000~3만명으로 추정한다. 한국전쟁 다음으로 큰 규모다.

 

20214·3 미국에 묻다를 쓰기도 했던 허 기자는 이번 책에서도 미군정의 책임을 강조한다. “4·3(해방 이후) 미군정 시기에 일어났다는 건 다 아는 일이다. 진상규명 활동가들도 미국의 책임을 이야기하지만 실질적으로 미국이 어떻게 개입했는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의 미국 문서를 찾고 발췌해 연구하며 4·3이 미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걸 알았다. 단언컨대 미국은 4·3에 대해 시작부터 끝까지 다 알고 있었다.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

 

4·3을 겪은 당사자들도 미국에 대한 이야기는 낯설어한다. 총 든 미군을 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남한 최초의 단독 총선거(5·10 선거)를 성사시키는 데 몰입했던 미군정은 여론을 의식해 직접 개입하는 대신 경비대를 동원해 진압했다. 제주에서 5·10 선거가 투표 과반수 미달로 실패한 뒤에는 로스웰 브라운 대령을 직접 파견했다. 그가 지휘한 경비대 11연대는 중산간 지역에서 수천 명을 검거했다. 허 기자가 확인한 각종 문서와 기록에도 미국 개입의 증거가 남아 있다.

 

4·3을 세계사 속에서 보려는 시도도 있다. 그가 보기에 4·3은 지역 단위 사건이 아니다. 냉전체제 형성기에 일어난 일이다. 2차 세계대전 시기 나치 독일은 그리스 점령 이후 산간 지역 마을을 저항 세력의 근거지로 지목해 초토화했다. “그리스 내전과 4·3은 대단히 유사한 사건이다. 그리스가 독일에서 해방된 이후 미국 등 외세가 개입해 학살이 일어난다. 그리스인이 좌우익의 희생양이 됐다. 4·3의 시작인 3·1 사건처럼 그리스에서도 집회 후 평화행진을 벌이는 중에 경찰의 발포로 사건이 확대된다.” 남한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반공의 전초 기지가 되었다. 유럽 남동부에 그리스 내전이 있었다면 동북아의 변방에 4·3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민관 총파업 등을 계기로 타지에서 온 경찰과 서청은 제주도민을 같은 민족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제주어가 그만큼 낯설어 통역이 필요할 정도였다. 오히려 일본어로 하니까 통하더라는 기록도 있다. “동족이 아니라 이민족을 대상으로 할 때 학살의 죄의식이 옅어진다고 제노사이드 이론에도 나온다. 한국어가 안 통하는데 한국 사람으로 봤겠나. 제주도 출신이어도 노인들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들을 때가 있다. 70년 전 상황에서라면 더욱 그랬을 것이다.”

1949117일 민간인 300여 명이 학살당한 제주 북촌리 일대. 시사IN 이명익

 

4·377개월 동안 벌어진 일이었고 가해와 피해가 자로 잰 듯 선명하지 않다. 토벌대는 물론이고 무장대도 주민을 학살했다. 어느 사건에서 민보단(경찰의 협조 단체) 단원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였다. 허 기자는 일본군 위안부문제처럼 가해자 피해자가 확실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군과 경찰을 앞세웠던 국가폭력이 정당화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남로당원이었다가 고문을 받고 전향해 경찰이 되었던 분이 한 말이다. 폭도(무장대)가 법 없이 사람을 죽여도, 국가는 법 없이 죽이면 안 된다고, 그런데 그때는 함부로 죽였고 그게 폭력이라는 거다.”

 

4·3은 반세기 가까이 언급조차 금기였다. 희생자는 폭도나 빨갱이로 몰렸고 유족도 연좌제로 취업 등에 제한을 받았다. 민간 영역에서 4·3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건 일본에서였다. 당시 제주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밀항선을 탔고 일본에 건너간 그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4·3을 정리했다. 1987년이 되어서야 김대중 당시 평화민주당 후보가 정치인 최초로 4·3 진상규명 공약을 제시했고 그가 대통령이던 2000년에는 4·3특별법이 제정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국가권력의 잘못을 공식적으로 사과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도 4·3을 국가폭력으로 규정하며 임기 중 세 차례 추념식에 참석했다. 이 과정에서 기억 아래 묻어뒀던 참혹한 실상이 하나둘 밖으로 나왔다.

 

30여 년 동안 허호준 기자가 만난 4·3 피해자만 1000명이 넘는다. 인터뷰를 하며 숱하게 울기도 했다는 그는 이 말을 전하며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큰오빠가 사라진 뒤 도피자 가족으로 몰려 온 가족이 죽음을 당한 김평순씨네도 그중 하나다. 아버지는 총에 맞아 죽은 뒤에도 두 번 더 칼에 찔렸다. 어머니와 오빠도 죽자 김씨는 산으로 갔다. 토벌대가 쫓아와 동굴로, 나무 사이로 계속 숨을 자리를 옮겼다. 등에 업고 있던 동생이 김씨 대신 죽었다. 그는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서툰 글씨로 자식들에게 기록을 남겼다. 4·3 때 외가 식구 11명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고, 자신이 죽더라도 4·3 위령제에 가야 한다고 당부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만난 피해자들은 본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3자의 이야기인 것처럼 말했다. 기자 생활을 한 지 10년쯤 지났을 때 만난 주민도 잊히지 않는다. 194811월 초토화 작전 때 제주도 서귀포시 영남마을에 살던 분이었다. 그가 기자에게 물었다. 어머니가 자식의 머리를 감고 가는 걸 상상해봤느냐고.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군인이 참수를 한 뒤 그 머리를 어머니에게 주면서 갖고 가라고 했다는 의미였다.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에서 만난 생존 피해자들은 특히 이야기를 꺼렸다. 한국에 대한 불신이 강해서 다른 사람이 겪은 일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들 중 일부는 한국 정부를 신뢰하지 않지만 자신을 제주도 사람으로 여겼다.

 

살암시난 살앗주

내가 글을 알면 소설책 한 권은 쓸 거야.” 가족을 잃고 배움의 기회를 놓친 피해 생존 여성들이 말했다. ‘주운글이라고 했다. 간판을 보며 단어째 한글 모양을 익혔다. 잿더미가 된 가정을 일으키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은 여성의 노동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나무로 집을 짓고 물질을 하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4·3을 겪은 여성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살암시난 살앗주.” 허 기자도 이 말을 가족에게 들은 적이 있다. “외삼촌이 4·3 당시 형무소에 들어가 76개월을 살다 나왔다. 외숙모에게 외삼촌이 들어갔을 때 어땠느냐고 물으니 그거 생각하면 못 살지, 잊어버려야지 하면서 살암시난 살앗주하더라. ‘살아야 하니까 살았다. 살다 보니 살아졌다이런 말인데 생존의 열망 같은 것도 읽힌다.”

 

제주4·3평화기념관에는 전시물 백비가 있다. ‘어떤 까닭이 있어 글을 새기지 못한 비석을 일컫는다. 봉기, 항쟁, 폭동, 사태, 사건 등으로 불려온 제주4·3이 아직 정식 이름을 갖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비석이다. 4·340여 년간 폭동으로 규정됐다. 무장봉기의 발발 원인에 무게를 둔 이들은 항쟁이라 부르자고 한다. 항쟁적 측면이 존재하지만 무장대의 살상 등 사건이라고 부르자는 쪽도 있다. 사건과 항쟁 그 어디 중간쯤에 있지 않나 하는 게 허호준 기자의 생각이다. “무장대에 의한 학살도 학살이다. 그렇지만 전개 과정에서 항쟁적 측면이 있다는 데 동의한다. 사건과 항쟁 그 어디 한 지점에 있지 않을까.” 동학난이 동학농민혁명이 되기까지도 100년 걸렸다. 4·3정명운동은 오랜 연구와 성찰 끝에 사회적 합의에 이를 때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정명 운동 말고도 남은 과제가 많다. 4·3 수형인에 대한 재심은 현재진행형이다. 2주일에 한 번 제주지방법원 203호 법정에서 재심이 열린다. 허 기자의 표현에 따르면 이때의 법정은 기억 투쟁의 장이다. 4·3 당시 행방불명된 희생자들의 가족이 70여 년 전 자행된 불법적인 재판과 4·3의 진실을 법정으로 소환한다. 올해 1월까지 무죄를 받은 4·3 수형 희생자들이 1200여 명에 이른다. 전체 수형 희생자들의 절반 정도다.

 

가해에 대한 기록을 찾는 일도 남은 과제라고 허호준 기자는 말한다. 처벌을 떠나 누가 가해자인지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희생자는 저렇게 많은데 가해자는 국가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져 있다. 하루에 300여 명이 학살당한 북촌리의 경우도 중대장, 대대장 이름은 알지만 누가 총을 쐈는지 모른다. 또 무장봉기 주도 세력이라는 이유로 4·3 희생자 선정에서 탈락한 희생자와 유족들이 있다. “특별법이 규정하는 희생자는 희생된 모든 주민을 포함하는데 그 사람들은 제외되는 거다. 그렇다면 반대로 가해 세력들은 어떻게 해야 되나. 송요찬(4·3 당시 제주도경비사령부 부사령관)은 훈장을 다 반납해야 하나. 특별법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화해와 상생을 위한 것이라면 지금 시대에는 배제자까지 포용할 수 있어야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맞지 않나 생각한다.” 이번 현수막 논란처럼 4·3의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고 왜곡하는 세력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바른 길을 찾는 운동 역시 필요하다는 견해다.

지금은 관광객 사이에서 이름난 함덕해수욕장 인근에서도 민간인 학살이 자행됐다.

시사IN 이명익

 

허호준 기자는 제주에서 나고 자랐고 정년인 올해까지 평생 제주에서 일했다. 어쩌다 육지에 가 호남고속도로를 타면 야트막한 산맥이 펼쳐지는데 답답한 기분이 든다. 매일 보는 바다가 안 보여서다. 엊그제도 4·3을 경험한 할머니를 만났다. 어떻게 사셨냐고 묻자 바다 때문에 살았다고 답했다. 바다를 보면 좋고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고. 제주에서 4·3을 피하고서는 기자 생활을 할 수 없다는 면에서 그에게 4·3은 운명이었다. 하다 보니 깊숙이 발을 담갔다. 48년 만에 유해 11구가 발견된 다랑쉬굴 발굴 사건은 그에게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4·3특별법 제정이나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발간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누구보다 먼저 꿈을 꾸었다는 이유로 제주는 처참한 죽음과 마주했다라고 말할 때는 감동받았다. 4·3 당시 계엄령이 불법이었다는 기사를 써서 보수단체에 고발당해 서울까지 가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정년을 앞둔 지금 좀 더 열심히 해서 4·3 진상규명에 일조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든다. 그는 곧 한겨레에 발행될 ‘4·3 기획기사를 잘 쓰고 싶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의미 있게 잘 하고 싶은데 시간은 촉박하고 아이디어는 안 나온다.” 30여 년으로는 부족했던 셈이다.

 

허호준 기자와 헤어져 그의 책에도 나오는 북촌마을 너븐숭이 애기무덤을 찾았다. 117일 단 하루 북촌리 학살사건 희생자는 300여 명이다. 아이들이 묻힌 무덤 앞에는 천으로 만든 꽃 한 송이가 놓여 있었다. 반인륜적 학살이 이루어져 차마 책에 그 내용을 담을 수 없었다는 장소는 북촌리에서 멀지 않은 함덕해수욕장 근처다. 아직 쌀쌀한데도 해변과 카페 앞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제주를 오갈 때 여전히 남아 있는 4·3의 흔적을 잠시라도 떠올려주기를 바란다는 책 속 글귀가 떠올랐다.

시사인 제주 / 글 임지영 기자·사진 이명익 기자

 

잠들지 못하는 4·3 영령들

김흥구 우리가 캐내고 싶은 것은 어떤 삶의 흔적도, 추억도 추모도 아니다. 정말 캐묻고 싶은 것은 참혹한 사라짐이다. 이유도 묻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야만 하는 슬픔이다. 제주 서귀포시 돈내코 유원지 인근에 쌓인 망자를 위로하던 동자석과 비석들.

김흥구

정뜨르 비행장으로 불리던 제주국제공항은 4·3 당시 대규모 양민 학살이 이뤄진 곳이다. 양민 약 500~800여 명이 군경에 의해 총살되어 비행장과 그 주변에 암매장되었다. 제주국제공항 상공에서 내려다본 제주도의 밤.

김흥구 희생자 14232명 중 14117명의 위패가 모셔진 제주4·3평화공원 위패봉안실.

유족들이 애도하고 있다.

 

국가에서 공식 인정한 희생자 수만 14232명이다. 가족이 몰살되고 마을이 사라졌다. 섬은 핏빛으로 물들었다. 생과 사가 갈린 채 70년이 흘렀다.

김흥구 북촌리 학살 사건으로 시아버지와 남편, 남편의 형제를 잃은 홍순씨(1919년생·가운데)가 어린 증손자들과 함께 희생자들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다.

 

김흥구 신상보씨(1946년생)는 동복리 학살 사건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잃었다.

김흥구 동복리 학살 사건으로 일가족 4명을 잃고 후유장애를 앓고 있는 정병하씨(1921년생)가 자신이 이은 긴 염주를 세고 있다.

 

200여 호의 작은 마을이었던 동복리는 1949117일 군경 토벌대에 의해 90여 명이 무차별 총살당했다.

김흥구

종달리 ‘4·3에서 대창에 찔려 창상을 입고 후유장애를 앓고 있는 김석봉씨(1923년생)그날의 악몽을 증언하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토벌대는 강경 진압작전의 일환으로 1948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4·3을 축조했다.

김흥구 마을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겼던 무등이왓의 신목에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어린아이 형상의 종이 인형이 걸려 있다. 주민 100여 명이 학살된 곳이다.

김흥구 4·3 70주년은 4·3을 직접 체험한 세대들의 마지막 10년 주기라고 한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은 201466주년 추념식에서 한 유족이 깊은 슬픔에 잠겨 있다.

 

시사인 변진경 기자 2018.04.02

 

 

4·3 명예교사의 첫 수업, 첫 고백

4·3평화인권교육 명예교사로 제주 신성여중을 찾은 강상옥씨의 첫 수업을 참관했다. 강씨는 재심을 통해 명예를 회복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안녕하세요.” 몇 걸음 떼기도 전에 아이들이 또다시 인사를 했다. 제주 신성여자중학교 학생들이었다. 교문에서 정문까지 수차례 인사를 받는 외부인중에 머리가 희끗한 70대 어르신도 있었다. 324, 4·3평화인권교육 명예교사로 학교를 찾은 참이었다. 제주도는 4·3의 진실을 알리고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 ‘4·3평화·인권교육주간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 수업은 그 일환이다. 4·3을 겪은 이들이 학생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명예교사 7명이 수업을 앞두고 긴장했다. 경험 있는 이들이 수업 노하우를 나눴다. 관건은 시간 엄수. 일찍 시작해서도, 무엇보다 늦게 끝나서도 안 된다. 그래야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양성홍씨는 다른 학교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 가족 이야기를 한참 들려줬더니 한 학생이 물었다. 4·3이 왜 일어났습니까? 그것부터 이야기를 해줘야 하겠더라고.” 연좌제로 마음고생을 한 그는 재심을 통해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이룬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324, 4·3평화인권교육 명예교사로 제주 신성여자중학교를 찾은 강상옥씨. 시사IN 이명익

 

1949년생 강상옥씨는 이번이 첫 수업이다. 그의 아버지도 지난해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강씨가 1학년 4반 강단에 섰다. 가족사를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건 처음이다. 무죄를 받고 난 다음에야 결심이 섰다. 길고 긴 이야기를 40여 분 안에 하느라 마음이 급했다. 4·3 당시 제주시 월평동에서 살던 그의 부모는 집이 불타자 산으로 올라갔다. 귀순을 권유받고 내려온 뒤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그의 부모처럼 4·3 당시 한라산 기슭에 피신했다가 1949년 봄, 소위 귀순공작 때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주정공장 창고에 수용되었다. 노인, 어린이, 여성도 있었다. 그중에는 그의 어머니처럼 임신부도 있었다. 이들은 군법회의에 회부되었지만 법이 정한 절차나 판결문이 없었다. 내란죄, 국방경비법 위반죄 등 혐의 대부분은 증거가 없었다. 어떤 이들은 주정공장이나 부두에 선 채로 경찰이나 군인으로부터 형기를 통보받았다. 1~2차 군법회의로 다른 지역 형무소에서 수감 생활을 한 제주도민이 알려진 것만 2500여 명이다. 4·3 수형인이라 부른다. 이들 대부분은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다.

 

강씨는 75년 전 주정공장 수용소에서 태어났다. “그 아기가 접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26세인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고 얼마 안 되어 무기형을 받았다. 그는 어머니, 누나와 함께 석방되었다. 아버지는 배를 타고 목포로 가 열차를 갈아탄 뒤 마포형무소에 수감된 뒤 무기수 생할을 했다. 끝이 아니었다. 수감 생활 중 인민군이 들이닥쳤다. 한국전쟁이었다. 이들은 조국 통일을 위해 싸워야 한다면서 군복을 입혔다. 북한군이 된 것이다. 전선에서 싸우며 낙동강까지 내려왔는데 보급이 끊겼다. 지리산으로 도망쳐 땅굴 생활을 하다가 귀순하라는 삐라를 보고 자수하기로 결심한다. 두 번째 귀순이었다. 머슴살이를 하다 훗날 국군을 모집한다는 말에 육군에 입대해 3년 만에 제대했다. 제주도 출신 청년이 무기수가 되어 서울에 갔다가 하루아침에 인민군이, 그다음엔 국군이 된 사연이다.

 

이런 얘기를 처음 여러분 앞에서 했다

아버지는 제대한 뒤에도 한참 동안 제주에 오지 못했다. 강상옥씨는 7세 즈음 아버지와 만났다. 단칸방에 사는데 어떤 군인 아저씨가 20여 일 동안 창문을 닫은 채 집에만 있다 떠났다. 아버지는 다시 돌아왔지만 2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41세의 나이였다. 생전 아버지는 관공서를 피해 다니고 경찰만 보이면 돌아서 갔다. 4·3에서 시작된 기구한 운명이 짧은 생애, 아버지를 떠돌이로 만들었다.

 

아버지의 삶을 간략하게 요약한 그가 학생들을 보며 말했다. “이런 얘기를 처음 여러분 앞에서 했다. 평생 오늘을 잊지 못할 것이다.” 이날 명예교사의 수업을 들은 1학년 이지유양은 외할아버지가 4·3을 겪었다고 들었는데 평소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잘 몰랐다. 고생한 이야기를 들으니 안타깝고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강상옥씨가 태어났던 주정공장 수용소 옛터가 지난 3134·3역사관으로 바뀌어 문을 열었다. 시사IN 이명익

 

강상옥씨가 태어난 주정공장 수용소 옛터가 지난 3134·3역사관으로 바뀌어 문을 열었다. 일제 말기 산업시설로 만들어졌다가 4·3 때 민간인을 가두는 최대 수용소로 이용되었다. 수용소 바깥 조형물은 어디론가 끌려가는 사람들의 형상이다. 건물 안에는 수형인 명부가 보관되어 있다. 강씨 아버지의 이름이 있을지도 모른다. 수형인들의 편지도 보관되어 있다. 그중 한 대목이다. ‘당신에게 가족을 맡기게 되어 미안하오.’

시사인 제주 / 글 임지영 기자·

 

조선 최초 일본 국비 유학생

윤석열 정부 다룬 사설 키워드, 조선일보는 '문재인' 한겨레는 '우려

전 정권 비교하며 정부 칭찬한 조선-우호적 사설 한 건도 없는 한겨레극명한 논조 차

 

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 동안 나온 조선일보·한겨레 사설을 비교 분석한 결과 매체 정파성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조선일보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윤석열 정부를 칭찬했고, 한겨레는 윤석열 정부에 우호적인 사설을 단 한건도 작성하지 않았다.

 

문철수 한신대 미디어영상광고홍보학부 교수는 올해 2월 한국소통학보에 게재한 <윤석열 정부의 국가정책에 대한 언론의 시각 분석> 논문을 통해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윤석열 정부 관련 사설 논조를 분석했다. 조선일보·한겨레 사설의 논조 차이가 극명하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사설 분석을 통해 이 같은 가설을 입증해냈다는 것이 이번 논문의 의의다.

조선일보, 한겨레 지면. 사진=윤수현 기자.

 

윤석열 정부 관련 사설 건수는 조선일보 233, 한겨레 219건이다.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공통적으로 관심을 보인 분야는 여야·국회·선거 인사정책 민생경제 외교대응 노조대응 등이다. 국방·안보정책 관련 사설의 경우 조선일보(6.4%)가 한겨레(1.8%)보다 더 많은 관심을 보였으며, 한겨레는 인사정책에 대한 사설을 38(17.3%) 작성했다. 인사청책에 대한 조선일보 사설은 20(8.6%)에 그쳤다.

 

두 신문사의 논조 차이는 극명했다. 기사 논조를 우호적·중립적·비판적으로 분류한 결과, 조선일보 사설은 우호적 논조 44.6%, 중립적 논조 43.4%, 비판적 논조 12.0% 순이다. 한겨레 전체 사설 중 비판적 논조는 53.0%, 중립적 논조는 47.0%였다. 한겨레는 윤석열 정부에 우호적인 사설을 단 한 건도 작성하지 않았다.

 

문철수 교수는 문재인 정부 초기의 조사와는 매우 다른 양상이다. 정파성이 잘 드러난 결과라며 “5년 만에 보수정권으로 회귀한 상황에서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극렬하게 나타났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문재인 정부 초기 비판적 논조 사설을 다수 작성(82.9%)했으나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그 숫자가 줄었다.

 

조선일보는 문재인 정부·더불어민주당을 비판하는 형식으로 윤석열 정부를 우호적으로 평가했다. 전 정권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현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이 같은 사설은 전체 우호적 논조 사설의 70.2%에 달한다. 한겨레는 윤석열 대통령의 인사정책과 영부인인 김건희 씨에 대한 직설적 비판을 내놨다.

조선일보와 한겨레 사설에 등장한 주요 단어 모음. 사진=한국소통학보 논문.

 

키워드 연관성을 분석한 결과 조선일보는 윤석열 정부를 다루는 사설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을 자주 언급했다. 문철수 교수는 지난 정부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이라는 단어와 야당이라는 단어가 밀접하게 연결됐다. 조선일보가 대통령과 대립하는 야당의 모습을 비중있게 다뤘기 때문이다. 또 조선일보는 문재인이라는 단어와 정권, 정부, 범죄, 수사, 강행이라는 단어를 주로 연결했다.

 

한겨레 사설의 경우 정부우려가 가장 밀접하게 연결됐다. 사설에서 주로 언급되는 키워드는 정부, 문제, 상황,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 우려 등이다. 한겨레에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논조의 사실이 많았음을 보여주는 것.

 

문철수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보수, 진보언론의 극단적 정파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물론 언론의 정파성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언론의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나타나는 보도가 문제인데, 이로 인해 올바른 여론 형성을 저해하는 폐단은 개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미디어 오늘 윤수현 기자

 

 

지방 거주자 절반 "머지않아, 내가 사는 지역 소멸

전경련, '지역경제 현황 및 전망' 국민인식 조사 발표

지방민 10명 중 7(71.2%), 올해 지역경제 작년보다 악화 전망

올해 지역경제 전년82.5%, 지역 일자리도 전년82.5% 불과

지방민 절반(49.4%) "우리 지역 사라질 것"...20년 이내 소멸 64%

지방민 41% "수도권 이주 희망"...20(64%) 30(41%)

정책과제...지역 일자리 개선, 생활인프라 구축, 보육지원 확대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11"수도권 외 지역에 거주하는 국민(이하 지방민)의 다수는 올해 거주지 경기 수준이 지난해에 비해 악화될 것으로 전망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또한 지방민의 상당수는 "머지않아 '우리 지역이 사라질 것'"이라며 "수도권으로의 이주를 희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전경련은 덧붙였다.

전경련은 "여론조사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수도권 외 지역 거주 만 18세 이상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지역경제 현황 및 전망'을 조사한 결과 지방민의 71.2%는 올해 지역경제가 작년보다 나빠질 것이라고 응답했다"면서 "올해 체감경기 수준은 작년의 82.5% 수준에 그쳤다"고 강조했다.

 

전경련에 따르면 지역별로는, 모든 지역에서 경기 악화를 전망했다. 특히, 광주(전년비 77.8%), 전북(전년비 78.2%), 충북(전년비 79.8%), 부산(전년비 80.4%), 전남(전년비 80.5%), 제주(전년비 80.7%), 대구(전년비 81.4%), 경북(전년비 82.2%)은 전체 평균(82.5%)보다 낮았다.

 

또한 지방민의 72.0%는 올해 지역 일자리가 작년보다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체감일자리 수준은 작년의 82.5%에 불과했다.

 

지역별로는, 모든 지역에서 일자리 감소를 전망했다. 특히, 전북(전년비 75.8%), 광주(전년비 77.7%), 부산(전년비 78.0%), 전남(전년비 79.0%), 충북(전년비 80.3%), 대구(전년비 80.6%), 제주(전년비 81.6%), 경북(전년비 81.6%)은 전체 평균(82.5%)보다 더 줄어들 것으로 조사됐다.

 

자료=전국경제인연합회

 

그런가 하면, 지방민의 49.4%는 향후 '거주지역이 소멸될 것'이라고 전망했고, 이 중 64.0%'20년 이내에 소멸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서 지역소멸이란 경제위축, 일자리 감소, 저출산고령화 등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교육, 경찰, 소방 등의 행정기능을 포함한 지역기능이 상실되는 것을 의미한다.

 

지역별로, 지역소멸 가능성에 대한 응답은 엇갈렸다. 6개 시도(경북 66.7%, 전북 64.8%, 울산 60.0%, 전남 58.5%, 강원 54.2%, 대구 50.9%)에서는 지역이 소멸될 수 있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 반면, 8개 시도(부산 48.6%, 제주 45.5%, 대전 44.4%, 충북 43.1%, 경남 42.5%, 충남 41.3%, 광주 37.7%, 세종 20.0%)에서는 지역소멸 가능성을 상대적으로 낮게 보았다.

 

지역소멸 시점에 대해서는, 10년 초과 20년 이내(32.2%), 5년 초과 10년 이내(25.7%) 순으로 높았다.

이런 가운데 지방민의 41.1%는 미래에 거주지를 떠나 수도권으로의 이주를 희망한다고 응답했다.

 

세대별로는 20(64.4%), 30(41.7%), 40(39.2%), 50(36.1%), 60대 이상(28.3%) 순으로, 수도권 전입을 희망한다고 응답했다. 수도권 이주 희망 비율은 20대가 60대 이상보다 약 2.3배 높았다.

 

수도권으로 이주를 희망하는 주요 이유로는, 열악한 일자리 여건(47.4%)을 가장 많이 꼽았고, 문화 및 휴식시설의 부족(20.9%), 보건·의료시설 접근성 미흡(20.4%) 등이 뒤를 이었다.

 

전경련은 "이러한 조사결과를 토대로, 젊은 세대일수록 일자리와 사회 인프라가 풍부한 수도권으로의 이주 열망이 높아 지방 인구의 고령화 현상은 시간이 갈수록 심화될 개연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지방민들은 지역경제 위축의 원인으로, 지역산업 위축(27.0%), 지역소비 부진(26.1%), 지역재정 악화(16.6%)를 꼽았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과제로는, 지역산업 활성화 등 지역 일자리 여건 개선(53.5%), 쇼핑-병원 등 생활 인프라 구축(19.3%) 등을 지적했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산업본부장은 "지방의 청년인구 유출을 막기 위해서는 지역경제의 활성화로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면서 "관광산업 활성화와 함께 지역의 성장동력 발굴 및 육성 노력이 긴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초이스 경제 최미림 기자

 

'도청''도청'이라 말하지 않는 언론

보수 언론이 헛다리 짚은 다섯 가지

미국은 원래 그래! 하필 이때 터져서!

국빈방문 앞이니 쉿! 안보 취약 모르쇠

미국 정보기관의 한국 대통령실 도청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2의 한일 굴종 외교'라고 할 정도로 극도의 저자세다. 그러나 이를 질타하고 비판해야 할 한국 언론은 도청이 아닌 감청사건으로 명명하는 것에서부터 나라 간의 정보전와중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로 규정하는 등 사태를 호도하고 있다.

 

언론이 짚어야 할, 그러나 제대로 짚지 않는 점을 5가지로 나눠 따져본다.

1. 감청이 아닌 도청이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대한민국 대통령실에 대한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 의혹에 대해 도감청이라는 용어 대신 도청을 사용하기로 했다. 이는 다수의 언론이 이를 감청이라고 표현하는 것과는 다른 용어 사용이다. 한국의 주요 언론들이 도청과 감청 간의 근본적인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 텐데 굳이 이에 대해 도청이 아닌 감청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분명한 의도가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도청(盜聽)은 글자 그대로 범죄행위다. 이에 반해 국내법상 감청(監聽, monitoring)’은 수사기관이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서 할 수 있는 행위다. 국가 간에 적법한 행위로서의 감청이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모두 ·감청도 아닌 감청으로 규정했다. 대통령실도 미국의 감청정황이라고 해 감청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대통령실과 언론 어느 쪽이 먼저인지 따져보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상호간에 잘못된 용어 사용을 전파시키고 있다. 조선 중앙 동아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논조를 펼치는 한국일보도 감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는 마찬가지다. 감청이라는 용어로 이들은 미국의 불법 행위를 사실상 합법화시켜 주고 있다.

 

도청이라는 용어를 쓰는 곳은 한겨레와 경향신문 정도뿐이다. 잘못된 명명에서부터 이번 사건에 대한 대응이 길을 잃고 있다.

 

2. 미국은 원래 도청을 한다?

미국은 늘 도청한다.” 거의 모든 언론이 이를 기정사실로 전제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11일자 1면에 외교안보 원로라는 이들의 말을 빌어 정보전엔 피아 따로 없어라는 제목으로 우방끼리 첩보전을 펴는 건 공공연한 비밀로 흥분할 일이 아니다라고 썼다. 사설에서는 뜬금없이 우리의 첩보 능력을 키우자자강론을 꺼내고 있다.

 

그러나 세계 최강대국으로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이라고 해서 늘, 상대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도청하는 것은 아니다. 늘 도청하는 것이 아니라 늘 도청하려 하지만 어떤 상황이냐, 어떤 상대냐에 따라 도청을 실행하기도 하고 실행하지 못하기도 하며 극도로 자제하기도 한다. 나라와 나라 간의 관계는 일방적인 힘의 논리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며 국제조약과 규범들에 의해, 또 도청이 들켰을 때 지게 될 위신의 추락과 상대국에 지게 될 부담에 따라 도청 의지도청 실행으로 옮길지 여부를 결정짓는 것이다. 감청이라는 용어도 그렇지만 미국은 늘 다른 나라를 도청하는 나라라는 주장은 이번 사태를 호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실제와도 다른 설명이다.

 

3. 한미동맹 훼손 안 되게 하려면 흥분하지 말아야 한다?

동맹국 간의 관계가 종속적 일방적이냐 대등 수평한 관계냐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대등한 관계에서 대등한 행동이 나오는 게 아니라 대등하게 행동하면 좀 더 대등한 관계로 나아가게 된다. 과거 미국으로부터 이번과 같은 도청 피해를 입었던 다른 나라들, 독일 프랑스 브라질 등은 201310월 미국 국가안보국의 도청이 폭로됐을 때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대통령실의 대응은 한미 동맹을 흔들 만한 사안은 아니다라며 사태를 진화하려는 발언부터 내놓았다. 미국에 따지기는커녕 미국 측을 감싸고 변호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중앙일보는 이를 한미관계, 특히 이달 말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돌발 악재가 터졌다고 보도했다. “그간 미국이 동맹국을 대상으로도 도감청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문제는 노출 시점이다라고 했다. 노출 시점이 미국 방문을 앞둔 시점만 아니라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인가. ‘악재정도의 사안인가. 심지어 11일자에선 일각에선 러시아가 이번 사건의 배후일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러시아 배후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중앙일보에 이번 사건은 도청 사건인가, 아니면 폭로되지만 않았으면 도청해도 문제가 안 되는 한미 동맹인데 도청이 드러나서 문제인 노출 사건인가.

 

4. 미국 국빈방문 어떻게 할 것인가

이번 사건에 대한 대응의 수위를 어떻게 잡든 미국 측에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면서 그 출발이다. 공동 조사 요청까지도 검토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미국과 협의하겠다는 입장만 내놓고 있다. 도청당한 쪽에서 협의하겠다 하니 도청한 쪽에서 협력하겠다고 마치 이를 허락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언론들은 이 같은 저자세에 대한 질타는 없이 국빈방문에 미치는 영향만 걱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빈방문 신중론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어서 방문을 위한 선행 조건의 요구, 선 조사와 조치 후 방문, 무기한 연기 등의 방안이 제시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언론들은 그렇다면 동맹국 방문을 하지 말자는 것이냐는 극단론을 주장하는 것으로 규정해버리고 만다. 방미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동맹국 간의 정상외교다운 여건을 조성하고, 그래야 방미 성과도 제대로 올릴 수 있다는 주장을 극단적인 방문 포기론으로 과장 해석하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무조건적인 방미냐 방문 철회냐, 극단적인 두 개의 상황 사이에 여러 해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는 언론을 찾아보기 힘들다.

 

5. ‘대통령실 용산 이전 안보 공백’, 국기를 흔드는 일 아닌가?

한나라 정부의 심장부가 뚫렸다는 것은 조선일보나 국힘당이나 윤 정부가 입버릇처럼 쓰는 말을 빌자면 국기(國基)’를 뒤흔드는 일이다. 그러나 이 같은 안보 취약점이 드러난 것에 대해 언론은 별다른 지적을 하지 않고 있다. 언론 스스로가 국기를 흔드는 일 아닌가.

이명재 에디터 시민언론 민들레

 

"상당수 극비""상당수 위조"

희한한 윤 정부미국 입장 대변, 그나마 엉터리

정부 "상당수 위조됐다" "도청 자체도 거짓"

방미 김태효 "위조된 것이라 미측에 전달할 입장없다"

"고도의 기밀·민감 정보몇몇 변형 사례"

국가안보실 최고위 당국자들의 대화가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에 노출됐음에도 대통령실은 11일에도 동문서답으로 일관했다. 국민의 알권리에 응답하기는커녕 미국 행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데 급급했다. 정확한 대변도 아니었다.

마이클 커비 미국 국가안보실 전략소통관이 10일 백악관 제임스 브래들리 브리핑룸에서 누출 문건과 관련한 언론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3.4.10. EPA 연합뉴스

 

대통령실은 이날 '미 정부의 도감청 의혹'과 관련해 이른바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첫 문장에서부터 사안을 축소, 왜곡하려는 의도가 뚜렷했다. 입장문에 따르면 "양국 국방장관은 '해당 문건의 상당수가 위조됐다'는 사실에 견해가 일치했다." 그러나 10(현지시간) 미국 백악관과 국방부, 국무부 브리핑을 아무리 뒤져봐도 없는 내용이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최소한 몇몇 경우에(at least in some cases)' 온라인에 유포됐던 정보가 자신들이 생각하는 '원정보에서 변형됐다(altered from original source)'고 밝혔다. 현재까지 100여 건에 달하는 누출 정보문건 중 일부가 변형됐다는 말이 어떻게 '상당수 위조'로 탈바꿈했는지 의아할 뿐이다.

 

미국은 국방부 장관이 외국 국방부 장관과 통화를 하면 홈페이지에 간략하게 내용을 소개한다. 그러나 기밀문건 누출 사건이 불거진 지난 주 이후 홈페이지에 게시한 것은 이스라엘 국방 장관(8), 브라질 국방 장관(6)과 통화내용뿐이었다.

 

미국은 변형된 것이 거짓정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위조''어떤 물건을 속일 목적으로 꾸며 진짜처럼 만듦'이라는 뜻이다. '변형됐다'는 미국측 발표와 뉘앙스가 다른 정도가 아니라, 성격 자체가 다른 말이다. 크리스 미거 국방부 공보담당 차관보 역시 사진화된 정보문건의 "일부 이미지가 변형됐다(Some of these images appear to have been altered)"라고 말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도 이날 인천공항 약식 기자회견에서 "공개된 정보의 상당수가 위조라는 평가에 양국의 견해가 일치했다"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미국 측에 우리 정부는 어떤 입장을 전달할 것이냐'는 언론의 질문에 "할 게 없다. 누군가 위조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거짓 정보'라는 전제하에 미국에 전달할 입장 자체가 없다는 말이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수석비서관회의 발언 등 현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3.4.10. 연합뉴스

 

미거 차관보는 "누출된 정보들이 고도의 기밀이고 민감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라면서 "그렇기에 구체적인 언급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누출된 정보들은 (미 행정부 내)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업무와 관련해 사용한 것들"이라고 확인했다. 미 행정부는 누출된 정보의 상당수가 특급비밀이기에 누출 경로 및 누출 범위, 미국 국가안보에 입힐 타격 및 대응방안을 놓고 국방부를 주무부처로 매일 회의를 한 뒤 지난 7일부터 매일 국방부 장관에 직접 보고하고 있다. 기밀누출의 책임자 색출 및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 법무부가 이를 형사사건으로 분류, 수사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대통령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용산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은 터무니없는 거짓 의혹임을 명백히 밝힌다"고 공표했다. 도청을 당했다는 사실 자체가 '터무니없는 거짓'이라는 것이다. 도청 자체가 되지 않았다면 대체 무엇을, 왜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사안을 축소, 왜곡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안 자체를 부인하는 대통령실의 입장문이야말로 가짜뉴스이자 '자해행위'이고 '국익침해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보이지 않는 오만한 입장문이 아닐 수 없다.

 

정보전쟁엔 국경이 없다?

대통령실이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입장'을 국민이 믿기를 바란다면, '누출 정보의 상당수'가 조작된 것이라는 말이 담긴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과 이종섭 국방장관의 통화 내용을 공개해야 마땅할 것이다. '특급 비밀(TS)'로 표시된 지난 31일 대화록에 나온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외교비서관, 임기훈 국방비서관을 국회 청문회라도 출석시켜 진실을 공개할 일이다.

시민언론 민들레가 입수한 문제의 누출 문건. 앞부분에 미국 정보기관이 사용하는 약호가 있으며 마지막에 문건 일련번호도 있다. 2023.4.10. 시민언론 민들레

 

더욱 가관인 것은 대통령실 입장문에 뜬금없이 삽입된 "'정보 전쟁'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은 마치 미국 정보기관의 대통령실 도청이 일상적인 행동이라는 인상을 준다. 어느 나라건, 그게 동맹이건, 적국이건 '정보전쟁'에는 국경이 없으므로 미국 정보기관의 대통령실 도청이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라는 뉘앙스가 아니라면 대체 이 말로 무슨 뜻을 전하려 한 것일까. 동맹국 지도자의 사무실에서 이뤄진 대화가 미측 정보문건에 고스란히 담겼는데 정보전쟁에 국경이 없다는 말을 내놓는 사고의 경로가 궁금하다. 104년 전 일제의 침략이 "우리가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과거"라는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의 한 대목을 연상시키는, 그야말로 엉뚱한 '내 탓이오' 사고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한국에 무엇을 설명했나

국무부 브리핑에서는 대한민국 대통령실 도청 파문 및 윤 대통령의 임박한 방미에 미칠 영향과 관련한 언론의 질문이 있었다. 베단트 파텔 부대변인은 "누출 문건에 관계된 국가의 고위층(at high levels)을 상대로 미국이 정보보호 약속을 확인시키는 한편, 안보 파트너십의 충실성을 설명하고 있다"는 생뚱맞은 답을 내놓았다. 윤 대통령의 국빈방문에 미칠 영향을 묻는 질문에도 "한국에 대한 우리의 (방위)확약은 강철같다"는 답변 아닌, 답변을 내놓았다. 우방 및 동맹국을 상대로 한미 행정부 당국자들의 설명은 지난 주말 시작됐으며, 계속 이어지고 있다.

 

국방부 브리핑에서는 이번 사안과 관련해 우방 및 동맹국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가 엿보였다. 미거 차관보는 우방·동맹을 상대로 한 대화에 "사과가 포함됐느냐"는 로이터통신 기자의 질문에 "일반적으로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말 외에 대화의 성격을 특징짓지 않겠다"며 얼버무렸다. 사과는 없었다는 말로 들린다.

김진호 에디터

 

윤석열 굴욕외교 이후 하루 한 번꼴 '시국선언

36~41137일 동안 총 41건 발표

윤 정권 시국선언 기사 58% 굴욕외교 국면서 나와

교수 12, 퇴직교사 10건 교육계 시국선언 주도

202336일부터 411일까지 네이버 포털에서 시국선언으로 검색한 기사 1065건 전수조사 결과. 2023.4.11. 김성진 기자

 

시국선언은 당면한 국내·국제 정세에 대해 학계나 종교계, 문화계 등 재야 인사들이 견해를 표명하고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사의 중요 변곡마다 지식인들의 시국선언은 변화의 기폭제가 됐다.

 

19604·19 직후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이승만 하야로 이어졌고, 1987년 전두환의 호헌 조치에 대한 교수와 종교인, 사회단체 시국선언은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당시 대학가에서는 시국선언이 줄을 이었고 이듬해 박근혜 탄핵을 이끌었다.

 

윤석열 정권에 들어서는 지난달 대일 굴종외교 사태 이후, 하루가 멀다하고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11일 부산대에서는 교수·연구자 280명이 윤석열 정부의 대일 굴욕외교를 규탄하는 시국선언을 했다. 전국 대학 가운데 가장 큰 규모였다.

 

규모가 컸던 만큼 부산대 교수 시국선언은 이날 언론의 주목을 받아 관련 기사들이 포털 한 면을 장식했다. 하지만 지방 시민단체나 퇴직교사 등의 시국선언 관련 소식은 찾아보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뉴스 포털에 드러나지 않은 민의의 실제 양상은 어떨까.

 

<시민언론 민들레>가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이 공개된 지난 36일부터 부산대 교수 시국선언이 발표된 이날 411일까지 네이버에서 시국선언으로 검색되는 기사 1065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37일 동안 총 41건의 시국선언이 발표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1건 이상(1.1) 시국선언이 이뤄진 셈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데이터 시스템 빅카인즈에 따르면 지난해 510일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부터 411일까지 시국선언으로 검색되는 기사는 총 295건으로, 이 가운데 140(58.1%)이 굴종외교 사태가 벌어진 올해 3~4월에 생산됐다. 2023.4.11. 김성진 기자

 

아울러 윤석열 정권에 대한 시국선언 가운데 절반 이상은 강제동원 해법 발표 이후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빅데이터 시스템인 빅카인즈에 따르면 윤석열 정권이 출범한 지난해 510일부터 올해 411일까지 시국선언으로 검색되는 기사는 총 295건으로, 이 가운데 140(58.1%)이 굴종외교 사태가 벌어진 올해 3~4월에 생산됐다.

굴종외교 사태 뒤 언론에서 시국선언으로 분류하고 있는 41건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분야별로는 교수와 연구자 등이 참여한 학계의 시국선언이 12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 퇴직교사 10시민사회 6종교 5대학생 4정당 2문화예술 1노동 1건 등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수도권이 16(서울 10, 경기 3, 인천 3)으로 가장 많았으며, ··경 지역이 7(부산 4, 울산 1, 경남 2)으로 뒤를 이었다. 호남은 6(광주 2, 전남 1, 전북 3),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대구·경북은 5(대구 2, 경북 3), 충청권은 4(대전1, 충북 2, 세종 1), 강원은 1(춘천)이었다. 이 밖에 전국 단위로 2건이 이뤄졌다.

 

단일 시국선언으로는 지난달 7일 국회에서 열린 강제동원 정부 해법 강행규탄 긴급 시국선언이 규모가 가장 컸다. 개인 9020, 단체 1464곳이 이름을 올렸다. 당시 시국선언에는 강제징용의 피해자인 양금덕·김성주 할머니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등 야당 의원들을 비롯해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정의기억연대,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민족문제연구소 등 시민 사회가 동참했었다.

 

시국선언 내용은 3·1절 기념사와 강제동원 해법, 한일 정상회담 결과, 구걸외교, 굴종외교, 한반도 전쟁 위기 조장 등에 대한 규탄이 주를 이뤘으며 검찰독재, 민생파탄, 노동탄압, 민주주의 후퇴 등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지역의 경우 해당 지역의 사정이 반영되기도 했다. 춘천공동행동 1000명 시국선언에서는 김진태 도지사에 대한 규탄이 함께 이뤄졌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7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강제동원 정부해법 강행 규탄 및 일본의 사죄배상 촉구 긴급 시국선언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3.7 연합뉴스

 

부산대 교수·연구자들도 이날 공동 성명서를 통해 대일 외교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이들은 윤 대통령을 향해 "몰역사적이고 반민족적이며, 비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제3자 변제방식을 철회하라"면서 "굴욕적이고 망국적인 한일정상회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외교부 장관을 해임하고 외교안보라인을 전면 쇄신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 의견을 듣고 새롭고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 개선안을 다시 마련하라""요구를 수행하지 않는다면 우리 부산대학교 교수 연구자 일동은 분노의 목소리를 표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윤석열 정부의 퇴진 운동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이번 조사는 국내 포털 뉴스 점유율이 가장 높은 네이버에서 시국선언으로 검색되는 기사 1065건을 대상으로 했으며, 시국선언 형식은 아니지만 언론에서 시국선언으로 언급한 서울대·고려대·한양대·동국대·인하대·한신대 교수 등의 비판 성명 발표는 시국선언으로 포함했다.

 

다만 대일 굴종외교 사태와 관련 없는 전국교육대학생연합, 여성노동자 단체의 시국선언 2건은 제외했다. 윤석열 퇴진·타도·탄핵·규탄 등의 검색어도 조사에 포함하지 않았다. 따라서 실제 시국선언 성격의 발표는 이보다 많다.

시민언론 민들레 김성진 기자

 

 

·일에 집착하다 뒤통수 맞은 윤석열 정부실익 다 빼앗겨

윤석열 정부 외교, 1년 만에 총체적 난관

 

-미 동맹과 한··일 협력 강화를 앞세운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이 취임 1년도 안 돼 난국을 맞고 있다. 일본 정부는 11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 계승을 빼고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은 외교청서를 내놨고, 미국은 정보기관이 한국 국가안보실을 도·감청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닷새째 남북 정기 통화에 불응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날 공개한 외교청서에서 과거사와 관련해 일본 정부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내용을 담지 않았다.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 계승이란 199810월 발표된 한-일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일본 정부가 계승한다는 것으로, 이 선언에는 일본의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가 담겨 있다. 외교청서는 대신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이름)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봐도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한 일본 고유의 영토라며 독도 영유권을 주장했다.

 

일본 정부의 태도는 윤 대통령의 예측과는 반대다. 윤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 뒤 비판이 들끓자 회담 닷새 뒤인 지난달 21일 국무회의에서 -일 관계는 한쪽이 더 얻으면 다른 쪽이 그만큼 더 많이 잃는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라며 한국이 선제적으로 걸림돌을 제거해 나간다면 분명 일본도 호응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며, 이를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는 성명을 내고, 구마가이 나오키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그러나 역사 인식 계승이 누락된 것에는 “(일제 강제동원) 해법이 발표된 지 한달 지난 상태고, 지금까지 일본 쪽에서도 성의 있는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며 별다른 항의를 하지 않았다. 앞서 일본 문부과학성은 지난달 28일 일제의 징용과 징병 강제성을 희석하고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내용의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미 관계는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 문제가 불거지며 난관에 봉착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미 국방장관이 ‘(도청) 해당 문건의 상당수가 위조됐다는 사실에 견해가 일치했다고 발표했다. -미 동맹에 영향이 없다는 점을 부각한 것이다.

 

그러나 -미 동맹 강화를 사실상의 제1 외교원칙으로 내세우며 국제관계에서 미국과 적극 보조를 맞춰온 상황에서 드러난 도청 정황은 정부로선 당혹스러운 결과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캄보디아에서 발표한 한··일 프놈펜 성명에서 북한 핵·미사일 위협 규탄과 함께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 재확인 인도·태평양 지역 현상 변경 시도 반대 남중국해 항행 자유 보장 등에 합의하며 중국 견제에 초점을 맞춘 미국의 대외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앞서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 지원법을 제정하며 자국 우선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두 법은 동맹인 한국 기업에 타격을 주는 법이었다. 윤 대통령은 취임 뒤 1년 가까이 미·일에 다걸기(올인) 하다시피 한 외교 정책을 추진했지만,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해 1113(현지시각)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 계기로 만나 한··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프놈펜/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남북 관계는 악화 일로다. 북한은 이날까지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와 동·서해 군 통신선의 정기 통화에 불응했다. 지난 7일 이후 닷새째 불통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뒤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진정성 있게 나서면 여러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내용의 담대한 구상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에 북한이 냉담한 반응으로 일관하고, -미 동맹과 한··일 협력 강화 기조 속에 군사훈련을 확대하면서 긴장은 고조됐다. 특히 윤 대통령은 지난달 현 정부에서 처음 공개한 북한인권보고서를 언급하며 북한 주민의 처참한 인권 유린의 실상이 국제사회에 낱낱이 드러나야 한다”, “핵개발을 추진하는 상황에서는 단돈 1원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 일변도의 외교에서 탈피하고, 프랑스가 미국의 대중견제 노선에 거리를 두며 국익 외교를 펴는 상황에서 한국이 한··일 협력에 집착하면 외교무대에서 뒤처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은 미국이나 일본과 협력을 하더라도 철저하게 따지고 우리가 챙길 것은 챙겨야 한다그런데 지금은 기울어진 협력하에서 실익을 모두 빼앗기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최종건 전 외교부 1차관은 ··일 협력의 정의를 우리 스스로 세우지 않은 채 뛰어든 것 같다그런 상황에서 무조건 한··일 협력이라고 하면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이야기하고 있으니 이리저리 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금융시장 공포조장자들은 걸러내자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이후 금융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같지는 않을 듯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는 애매한 상황이랄까. 정말 누가 알겠나 싶다. SVB에서 지난 39일 하루 동안 약 55조원이 인출되었다는데 이런 건 예측하기도, 감당하기도 힘들 것이다. 사전적으로 맞히면 닥터 둠으로 등극하는 거고, 틀리면 주기적으로 언론에 소환되어 욕먹는 건데 이런 모험을 감행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생산적인 일은 공포조장을 걸러내는 것이다.

 

미국 유력 종합일간지 중에 하나는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이 SVB 전액 예금자보호에 나선 것에 대해 은행에 대한 시장 규율의 종말이라는 제목으로 강한 비판을 했다. 정부 정책은 시장의 기대를 만들어내는데 전액 예금자보호를 해주면 향후 시장에서 은행 경영진, 예금자, 투자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남발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직관적으로 맞는 말 같지만 좀 따져봐야 한다. 사실 미국에서 은행의 대마불사, 구제금융, 도덕적 해이 등과 같은 문제는 오래된 주제이다. 그중 핵심은 경영에 실패했는데 정부가 구해주면 은행 경영진이 평소에 과도하게 위험 추구를 한다거나 위험 관리에 충실하지 않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구해준다는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SVB는 이미 파산했으니 예금자보호만 집중해서 살펴보자. 부분 보호냐 전액 보호냐가 시장 규율의 종말을 언급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인지 말이다.

 

우선 예금을 전액보호하지 말고 보호한도를 철저하게 지켜야 예금자들이 은행을 꼼꼼하게 잘 따져 분산 예치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전액 보호가 없었던 상황에 이미 SVB의 예금 90% 이상이 예금자보호 대상이 아니었고 주요 예금자는 스타트업, 벤처캐피털(VC), 헤지펀드, 로펌 등 이른바 선수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선수들은 왜 예금자보호 한도가 없는 SVB에 거액을 집중 예치했는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워낙 선수들이어서 정부의 전액 보호를 예측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SVB가 트럼프 행정부 당시 시스템적 중요은행(SIB)의 범위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시스템적 중요은행은 명과 암이 있어서 평시에는 강한 규제를 받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정부의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의 끈이 된다. 또 미국 금융시장에서 SVB와 같은 중규모 은행에 대해 닥치고 예금자보호를 예상했다는 실증적인 근거를 찾기도 어렵다. 무조건적인 예금자보호를 예상했는데 광속의 뱅크런은 왜 일어났을까?

 

더욱 중요한 건 이번 사태의 핵심인 경영진의 위험관리이다. 백번양보해서 전액 예금자보호가 기대되는 돈이 대거 SVB에 예치되었다고 치자. 이게 SVB 경영진을 해이하게 만들어 파산에 이른 건가? 경영진의 인센티브에 중요한 것은 기업의 파산 여부, 파산 시 개인 주식·연봉의 손실, 그리고 파산 이후의 커리어 등이다. 파산 시 전액 또는 부분 보호냐가 종말을 부르는 핵폭탄은 아니다. 원래 예금자들은 보호와 상관없이 경영진에게 잔소리하지 않는다.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규율하는 건 행동하는 주주, 내부자, 규제당국 등이다. 예금자는 언제나 조용하다. 실리콘밸리 주변에 있는 선수들이 예금자였으니 SVB 경영진과 어떤 사교모임에서 만났을 수는 있겠다. 그러나 비싼 와인과 함께 정보와 덕담을 주고받고 헤어졌을 것이다.

 

금융시장에 불이 났는데도 이런 주장을 해야 직성이 풀리나 보지만 문제의 본질을 비켜가는 공포 조장일 뿐이다. 차라리 반복되는 은행 위기를 논의하려면 기업의 파산이 해당 경영진에게 얼마나 피해를 주는가를 따져보는 게 더 낫다. 한 실증연구에 따르면 대기업 파산에 책임이 있는 최고경영자(CEO) 3분의 1이 살아남고 연봉도 크게 깎이지 않았다. 생각해보자.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에 규제당국의 관대한 규율이 영향을 미칠까, 예금자보호가 더 영향을 미칠까?

 

한 가상자산 전문가는 SVB 사태 이후 미국의 구제금융 때문에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달러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비트코인을 사라고 한다. 이분에게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에도 달러 가치가 하락했다가 빠른 속도로 회복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맞히면 투자의 신으로 등극하고, 틀려도 그만인 게다. , 그러고 보니 공포조장자들의 공통점이 있다. 경제가 괜찮을 때는 규제에 대해 혐오적인 발언을 쏟아내다가 어려울 때는 정부에 손을 내민다. 경제를 진흙탕으로 만드는 데 공포조장자들의 기여가 상당한 셈이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향

 

'감청 의혹'"한국에 대한 헌신 철통"문건 진위엔 말 아껴

한국 정부 "일부 문건 위조" 밝혀이스라엘·프랑스는 내용 반박 뿐 진위 여부 언급 꺼려

유출된 미국 기밀문건에서 한국을 도·감청한 정황이 드러난 데 대해 미 국무부가 "한국에 대한 헌신"을 강조하며 동맹국들과 최고위급 접촉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백악관을 비롯한 미 당국은 유출문건 일부가"조작"됐다면서도진위여부를언급하는것은꺼렸다.

10(현지시각) 베단트 파텔 미 국무부 수석부대변인은 언론 브리핑에서 미 정보 기관이 한국 외교·안보 담당자를 도·감청한 것이 사실이라면 한미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냐는 질문에 대해 "한국에 대한 우리의 헌신은 철통같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미 당국자들이 동맹 및 파트너들과 가장 고위급에서 접촉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화를 나눈 동맹국이 어느 국가인지 특정하진 않았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도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미 당국자들이 지난 며칠 간, 주말 내내 관련 국가 및 동맹, 파트너들과 이 사안에 관련해 매우 높은 급에서 소통했다"고 말했다. 그는 소통한 국가에 한국과 이스라엘이 포함되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다만 11일 한국 대통령실은 한미 국방장관이 통화했다고 밝혔고 외교부 당국자도 한미 간 외교채널을 통해 필요한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미 국무부는 동맹국 도청에 대해서 한국 내 비난 여론이 일고 있는 것과 관련해 "한국이 역내 가장 중요한 파트너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파텔 부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리는 한국과 많은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문건 유출이 2주 뒤로 다가 온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문에 영향을 미칠 것이냐는 질문에 파텔 부대변인은 "우리와 한국의 관계는 매우 깊다""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퍼스트 레이디(바이든 대통령의 배우자 질 바이든)가 국빈 방문 기간 한국의 상대방을 맞이하길 고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출 문건에서 도청 정황이 포착된 미국의 다른 동맹국인 이스라엘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서도 파텔 부대변인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안보에 대한 우리의 헌신은 철통 같다. 이스라엘 파트너들과 자주 소통한다"고 답했다.

 

백악관,문건일부 "조작"됐지만"가짜라고말한건 아니다"

미 정부는 유출 문건 일부가 "조작"됐다면서도 문건의 진위 여부를 단정하진 않았다. 커비 조정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적어도 몇몇 경우에 온라인에 게시된 정보가 원본과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유출 문건이 "가짜 문서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문건의) 유효성을 평가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건의 일부가 조작됐다면 나머지는 진짜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일부가 조작된 것은 알고 있다. 문건의 유효성에 대해선 말하지 않을 것"이라며 언급을 꺼렸다.

 

미 국무부도 브리핑에서 유출 문건이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을 보여준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면서도 문건의 진위 여부에 대한 질문에는 "국방부 등이 유효성을 평가 중"이라고만 답했다.

 

반면한국정부는 유출 문건일부가"위조"라고표현해당국 및 다른 유출 피해국보다강한어조로발언해 이목을 끌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11인천국제공항에서 방미 출국 전 기자들을 만나·감청의혹관련미국쪽에입장을전달할계획이냐는질문에"(전달)할 게 없다. 왜냐면 누군가가 위조를 한 것이니까"라고답했다.이날대통령실도공식 입장을 내 한미 국방장관 통화를 통해 "문건의 상당수가 위조됐다는 사실에 견해가 일치했다"밝혔다.

 

유출 문건에 언급된 다른 국가인 이스라엘과프랑스의경우주말께 자국관련내용이 거짓이라고 반박했지만문서의진위여부에대해선 말을 아꼈다.

 

백악관, 유출 한 달 뒤에야사건 인지문건 추가 공개가능성 "모른다"

유출 문건은 적어도 3월 초, 영국 탐사보도 매체 <벨링캣>에 따르면 일부 문건은 1월부터 온라인에 유포됐지만 백악관과 미 국방부는 이를 지난주에 인지했다고 밝혔다. 커비 조정관은 10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유출 문건에 대해 처음 보고 받은 시기가 지난주 후반이라고 말했다. 미 국방부도 이날 브리핑에서 문건이 온라인에 공유되기 시작한 지 적어도 한 달 이상이 지난 6일 관련해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첫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커비 조정관은 브리핑에서 아직 알려지지 않은 더 많은 유출 문건이 있을 수 있냐는 질문에 "모른다"고 답해 추가 문건 공개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남기기도 했다.

 

유출 문건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세부 정보가 담긴 탓에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계획에 변경이 생겼냐는 질문에 커비 조정관은 10일 브리핑에서 "아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계속해서 지원하고 그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방부는 유출 경위 및 유포 방법 등에 대해 아직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유출 범위가 방대하고 미국 내 기관만 다룰 수 있는 정보가 포함돼 있는 만큼 미국 내부인의 소행이라는 추측과 우크라이나 전쟁 사상자 관련 정보가 러시아 쪽에 유리하게 조작된 정황을 두고 러시아가 개입했다는 주장 등 각종 추측이 난무하는 상황이다.

 

<로이터> 통신은 미 당국자를 인용해 유출 문건에 해당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매우 민감한 정보가 담겼음에도 일부 문건은 미국과 동맹국 정부의 보안 인가를 받은 수천 명이 접근 가능한 상태였다고 보도했다.

프레시안 김효진 기자

 

 

미국의 도청 의혹윤석열과 박정희 정부의 닮은꼴 대응

최근 유출된 미 정보기관의 기밀자료 더미에 한국 대통령실 산하 국가안보실을 도청한 것으로 추정되는 문건이 나왔으나 대통령실은 '위조 문건'이라는 취지의 입장을 내고 사안을 뭉개려는 모양새다. 미국에 입장 요청을 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지난 70년대에 미국 중앙정보국 CIA가 박정희 청와대를 도청한 사실이 드러나자 한국정부가 미국 측에 항의하기는커녕 도청 사실을 공식 부인해달라고 미국에 요청했던 비굴한 모습과 겹쳐진다.

 

대통령실은 오늘(411) 미국의 도감청 의혹과 관련해 "'미 정부의 도감청 의혹'에 대하여 양국 국방장관은 '해당 문건의 상당 수가 위조됐다'는 사실에 견해가 일치했다. 앞으로 굳건한 '한미 정보 동맹'을 통해 양국의 신뢰와 협력체계를 보다 강화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문을 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도 11일 인천공항에서 방미 전 기자들과 만나 "오늘 아침에 양국 국방장관이 통화를 했고 공개된 정보 상당수가 위조됐다는 데 대해서 한미의 평가가 일치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문서 유출이 한미 관계에 변수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변수가 될 수 없다. 미국은 세계 최강의 정보국"이라며 "미국의 능력과 역량을 함께 얻고 활동한다는 것은 큰 자산이고 이번 기회에 양국 신뢰가 더 강화될 것으로 생각한다"는 답변을 내놨다.

김 차장은 '미국 측에 어떤 입장을 전달할 계획이냐'는 물음에 "(전달)할 게 없다""왜냐하면 누군가가 위조를 한 것이니까. 따라서 자체 조사가 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답했다.

대통령실과 김태효 차장의 발언을 종합하면 윤석열 정부는 미국의 도감청 의혹 관련해 미국 정부의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상당수 문건이 위조라는 결론을 내리고 미국 측에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기밀 문서의 진본 여부에 대해 미국보다 더 강한 부정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달 말로 예정돼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전까지 논란을 조기 진화하고자 하는 눈치다.

 

미국은 "가짜 문서는 아니다"라는데...한국은 '위조' 강조

하지만 미국 법무부 등은 기밀문서 유출 경위 등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미국 정부는 CIA 등 여러 정보기관에서 취합한 국방부 기밀 문서가 다량 유출됐고, 이는 국가안보와 정보 문제와 직결된다고 보고 있다. 다만 미국 국방부는 유출 문서 관련 언론 회견에서 일부 문서가 수정(some of these images appear to have been altered)됐거나, 변조(some slides have been doctored)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출 문건은 대부분 기밀 정보가 담긴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출력해 촬영한 형태로 보인다. 수정 또는 변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문서는 지난 31일자로 작성한 우크라이나 전쟁 전황도이다. 러시아군 사상자 규모가 공식 발표 수치와 다르다는 점에서 수정 또는 변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나 아직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10(현지 시간) 브리핑에서 "이런 문서가 공개된 것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매우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문서의 진본 여부에 대해서는 "모든 문서의 진위여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말할 수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유출된 문서가) 가짜 문서(spurious documents)라고 말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퍼진 우크라이나전쟁 31일자 전황도 이미지. 러시아(16,000~17,500)와 우크라이나(61,000~71,500) 전사자를 나타내는 숫자가 변조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출처: 트위터)

위 전황도의 원본으로 추측되는 이미지에 나오는 전사자 수. 러시아 35,500~43,500. 우크라이나 16,000~17,500. (출처: 트위터)

 

유출 문건 속 '김성한-이문희 대화 내용'

앞서 지난 6(미국 현지 시간) 미국의 기밀 문서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됐다는 내용이 뉴욕타임스 등 현지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유출 문건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31일 한국 이문희 전 대통령실 외교비서관과 김성한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 나눈 NCS(국가안전보장회의) 관련 대화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다. NSC는 한국 정부의 외교안보 컨트롤 타워다.

 

미국이 파악한 이들의 우크라이나 포탄 제공 관련 대화 내용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NSC는 한국이 미국의 요청에 응해 (우크라이나에: 편집자 추가) 포탄을 제공할 경우, 미국이 최종 사용자(end user)가 아닌 게 될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지 않을까 우려도 있다. 이 이슈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세우지 않고서는, 정상간 통화를 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한국은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어길 수 없으며, 공식적으로 정책을 바꾸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지다. 임기훈 국방비서관이 32일까지 최종 입장을 결정한다고 약속했다. -이문희 전 비서관

 

이 이슈가 국내에서 어떻게 인식될지 우려된다. 윤 대통령의 방미 일정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 변경과 함께 발표되면, 대중들은 이 두 사안이 맞교환됐다고 생각할 것이다. -김성한 전 실장

 

김 전 실장은 이어 폴란드를 경유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우크라이나에 빨리 포탄이 지원되는 것이니, 155mm 포탄 33만 발을 폴란드에 판매하는 방안이 있다. -김성한 전 실장

 

폴란드가 포탄의 '최종 사용자'가 되는 것을 받아들이고,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보낼 수 있다. 무기수출과 관련해 선진국을 최종 사용자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 초안이 준비되고 있지만, 폴란드가 어떻게 할지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문희 전 비서관

 

미국이 한국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대화 내용을 어디에서 어떻게 확보했는지는 유출된 기밀 문서에 적혀있지 않다. 이들의 대화가 어디에서 이루어졌는지, 회의 내용이었는지 아니면 통화 내용이었는지 등도 문건 내용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이 문건에는 "TS//SI-G//OC/NF"라는 분류 코드가 적혀 있다. 'TS'Top Secret(1급 기밀), 'SI-G'SI-Gamma, 'OC'Originator Controlled(문서의 생산자가 배포 및 추출을 통제), 'NF'Not releasable to Foreign nationals(외국() 공유 불가)를 의미한다.

SI-G'SI'Special Intelligence(특수 정보)를 의미한다. 특수 정보는 통상 통신 감청 혹은 SIGINT(Signals Intelligence·신호 정보)를 이용해 획득하는 정보를 뜻한다. 'Gamma'는 통신 정보(COMINT)의 하위 개념으로, 매우 민감한 통신 감청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석열 정부의 대응은 박정희 정권의 미국 도청 대응 방식과 닮은꼴

윤석열 정부가 이번 국가안보실 도감청 의혹에 대응하는 태도는 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 미 정보기관 CIA의 청와대 도청 사건과 관련해 당시 한국 정부가 보였던 비굴한 자세를 연상하게 만든다.

 

지난 19761015일자 워싱턴포스트는 박동선의 대미 로비 사건(코리아게이트)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미국이 한국 정부 최고위층 등 극도로 민감한 정보원과 도청 및 전자감시를 통해 박동선의 미국 의회 의원 매수 관련 정보를 수집했다고 폭로했다. 미 정보기관의 한국 도청 의혹이 언론 보도를 통해 처음으로 제기된 것이다.

1977619일자 뉴욕타임스 1(출처: 뉴욕타임스 아카이브)

 

이듬해인 1977619일자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한국 대통령을 도청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CIA의 청와대 도청설을 훨씬 자세하게 보도했다. 미국 정보기관이 전파 빔(radio wave beam)을 쏴서 청와대 내부 음성을 전자적으로 탐지하는 기술을 이용해 청와대 내부를 도청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이 기술이 도청 장비를 목표 시설 내부에 심을 필요가 없이 외부에서 원격으로 내부 대화 음성 등을 도청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의 보도 이후 한미 양국 외교라인에서는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재미 언론인 안치용 기자가 쓴 박정희 대미 로비 X파일에 따르면 1976112일 당시 주한미국대사 리처드 스나이더가 본국에 보낸 비밀 전문에서 당시 한국 외무부장관 박동진이 자신을 불러 "제발 미국 정부가 청와대 도청설이 사실이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부인해달라"라고 강력하게 요청했다고 밝혔다.

 

미 유력지가 CIA의 청와대 도청 의혹을 보도했으나 한국 정부는 미국에 항의하기는커녕 물밑에서 오히려 없는 일로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까지 주한미국대사를 지낸 윌리엄 포터도 1978년 미국 CBS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청와대를 도청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보기관의 한국 도청 의혹은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지난 2013년 미 국가안보국 NSA와 미 중앙정보국 CIA에서 일한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 문서 수천 건을 언론에 폭로했다. 당시 스노든에게서 문건을 입수해 보도한 가디언 기자 글렌 그린왈드는 뉴스타파 취재진과 만나 NSA가 한국도 도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2016년에는 기밀문서 폭로 전문사이트인 위키리크스가 당시 유엔사무총장 반기문과 독일 총리 메르켈 등 세계 각국 정상 대화 등을 무차별 도청했다고 폭로했다

뉴스타파 강혜인

 

해외거점 두고 노동·시민단체까지 은밀한 침투일상 파고든 간첩

What - 암약하는 간첩단

동남아서 공작원 접선·회합

온라인 교신으로 비밀성 유지

 

문정부 평화무드 속 방첩 뒷전

2017~2020년 적발 3건 불과

제주·창원간첩단 등 세력 확산

 

국정원 대공수사권 유지시키며

경찰·국군방첩사령부 협업 필요

해외대공망 없이는 검거 불가

 

새해 벽두부터 터진 제주간첩단, 민주노총 침투 간첩단, 창원간첩단 등 일련의 간첩단 사건이 봇물 터지듯 확산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평화구상 기간 간첩사건 수사 발표가 줄면서 국민들은 간첩이 사라진 줄 알았는데 엄청난 착각이었다. 간첩망이 줄어들기는커녕 국회와 정당을 비롯해 노동계, 시민조직 등 도처에 침투해 암약하는 등 간첩천국대한민국 실상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압수수색 등을 통해 언론에 보도된 국가보안법 위반간첩단 사건인 제주간첩단 ㅎㄱㅎ’, 경남 창원시가 거점인 전국 규모 지하조직 자주통일 민중전위(자통)’,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들이 연루된 전국 규모 노동계 침투 지하조직등을 분석하면 몇 가지 공통점이 두드러진다.

 

먼저 코로나19 활성화와 겹친 문 정부 기간 간첩 활동의 공통된 특징은 하나같이 수차례 동남아시아에 나가 북한 공작원을 접선·회합하고 돌아와 지하망을 구축하고 암약해왔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2011년 적발된 청주간첩단(자주통일 충북동지회), 2015년 목사간첩망, 2016년 일명 PC방 간첩망과 올해 적발된 ㅎㄱㅎ’, 민주노총 침투 간첩망, 창원간첩망도 베트남·캄보디아·중국·말레이시아 등 주로 동남아 지역에서 북한 공작조를 접선·회합한 것으로 드러났다.

 

제주간첩단의 경우 총책 격인 K2017729일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북한 간첩공작부서인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 김명성을 접선하고 귀국 후 지하조직 ㅎㄱㅎ을 결성하고 각종 지령사항을 수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민주노총 침투 간첩단의 행적을 보면 총책 격인 S20168월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북한 공작조를 접선한 이래 간첩망 전원이 시차를 두고 20201월까지 무려 10회에 걸쳐 베트남 하노이, 캄보디아 프놈펜 및 중국 베이징·광저우(廣州다롄(大連) 등에서 접선·회합한 것으로 밝혀졌다. 창원간첩단도 해외에서 공작원과 접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둘째 이들 지하조직은 문 정부 시절 급속히 세를 불린 것으로 나타났다. 문 정부 출범 전후 사회 혼란기인 20162017년쯤 결성돼 급속히 세를 키웠다. 방첩 당국은 관련 사실을 인지하고도 압수수색 등 본격적 수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내사만 해왔다.

 

특히 문 정부 기간 국가정보원은 물론 군·검찰·경찰의 대북 첩보 수집과 수사 기능이 크게 약화된 결과 2011201626건이었던 간첩 적발 건수는 문 정부 시절인 20172020년에는 3건에 불과했다. 20218월 북한 지령을 받고 대통령 선거는 물론 총선거에 개입해오던 청주간첩단을 수사했지만 그나마 축소 수사 논란이 일었다.

국가정보원이 올해 11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 압수수색을 마친 후 압수물이 든 상자를 들고 나가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국정원이 지난해 1219일 제주시 소재 진보당 제주도당 위원장 자택을 압수수색 하는 모습. 연합뉴스 뉴시스

 

ㅎㄱㅎ은 총책 K 씨가 2017729일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문화교류국 소속 대남공작원 김명성을 접선하고 귀국 후 북한과 수차례 교신 끝에 2022924일 산하 노동부문 지하조직 한길회를 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ㅎㄱㅎ은 노동부문(한길회) 외에 농업부문, 진보정당 및 여성부문으로 편재된다. 노동부문은 P 책임지도성원 아래 2명의 지도성원을, 농업부문은 G 책임 아래 3명의 지도성원을, 진보정당 부문에는 K 총책이 직접 책임지도를 맡아 7명을 배치했다. 또 여성부문에는 2명의 지도성원을 배치했다. 제주간첩단은 확인된 것만 17명 규모이나, 이들 지도성원이 다시 포섭한 하위 조직원들을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자통노동계 침투 지하조직역시 문 정부 기간 전국 조직 지하망으로 세를 급속히 불렸다.

 

셋째 조선노동당 대남공작조직 문화교류국 공작원들이 해외에서 경쟁적으로 남한 노동계·시민단체·정당 등 인사들의 포섭 활동을 벌인 점도 두드러진다. 지령문을 보내거나 간첩단을 포섭·조직한 주체가 대남공작 조직 중 정찰총국이 아니라 조선노동당 직속 대남공작 조직인 북한 문화교류국으로 드러났다. 문화교류국 내 서로 다른 부처가 해외에서 경쟁적으로 국내 지하조직을 결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문화교류국 외에 또 다른 대남공작 조직인 정찰총국, 비밀경찰인 국가보위성까지 나서 노동단체, 정당, 시민단체 인사들을 포섭 대상으로 삼았다. 최근 적발된 창원 자통을 거점으로 한 제주 ㅎㄱㅎ등 전국 조직 간첩망은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 김명성 등이 관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 침투 지하조직은 북한 부부장(차관보)급인 리광진 공작조가 결성했다. ‘리광진 공작조는 배성룡·김일진·전지선과 이름이 특정되지 않은 ‘40대 공작원5명으로 구성됐다. 김명성과 같은 문화교류국 소속이지만 관할 부처가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교류국은 북한 정권 수립 초기부터 대외연락부, 사회문화부, 225국 등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간첩 남파 등의 임무를 수행해왔다. 1992년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1994년 구국전위, 1999년 민족민주혁명당, 2006년 일심회, 2011년 왕재산 등 각종 간첩 사건을 주도했다.

 

마지막으로 간첩 직접 침투가 아닌 해외 조직망을 활용하는 등 글로벌 간첩으로 진화한 점도 눈에 띈다. 북한의 스파이 작전도 글로벌화됐기 때문에 북에서 바로 들어오는 간첩을 앉아서 잡는시대는 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따라서 앞으로 간첩 조직을 잡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 정보기관과 정보 교환이 필수적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북한의 대남 공작 조직 활동 구조의 변천을 네 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첫째 분단 후 남한에 자생하는 간첩 조직을 활용하는 것. 둘째는 북한 간첩이 남한에 내려와 요인을 만나고 포섭하는 방식. 셋째 2010년대 들어서는 해외에 거점을 둔 북한 간첩조직이 남한 인사들을 해외로 불러 포섭하고 지령을 내리는 방식으로 글로벌화했다는 것이다.

 

이번 간첩단 사건은 세 번째에 해당한다. 중국과 동남아(베트남,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는 문화교류국 공작원들이 남한 인사들을 불러내 충성맹세를 하게 하고, 공작금을 지급하는 등 글로벌화한 공통점이 발견된다는 것이 첩보 당국의 분석이다.

 

국가정보원 등 첩보 당국은 해외 대공망 없이는 북한 간첩의 검거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유 원장은 내년부터 대공수사권을 단독 행사하는 경찰에 의존하는 것은 북한의 간첩공작에 비단길을 깔아 주는 격이라며 경찰도 국내 간첩수사 역량이 풍부하지만 해외 연계 간첩수사는 매우 열악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북한의 간첩 활동을 제대로 차단하기 위해서는 해외 대공망 구축이 시급하지만 단기간에 역량을 갖추기는 어렵다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유지시켜 경찰 및 국군방첩사령부 3개 안보수사기관이 경쟁 또는 협업하면서 북한의 간접공작을 차단하는 역량을 강화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충신 정치부 선임기자 csjung@munhwa.com

 

"김용현·한동훈에 천공 탄원서 전달묵살됐다"

전직 정법시대 간부 등 '천공 문란한 사생활 및 위법 자료' 탄원서 작성

"김용현에겐 문자로 탄원서 보내한동훈 장관, 윤 대통령 측에도 전달"

천공, 대외적 조명 이전부터 잇단 경고음'대통령실, 천공에 경고조차 없어

김용현 대통령실 경호처장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등에게 무속인 천공의 실체를 알리는 내용의 탄원서가 일찍이 전달됐지만 묵살됐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전부터 천공에 대한 경고음이 울렸지만 소용이 없었다는 주장입니다. 해당 주장이 사실일 경우 '천공을 전혀 모른다'는 김용현 처장의 해명은 거짓이 되는 셈입니다.

 

앞서 본지 단독보도로 천공이 지난해 3월 대통령실 관저를 선정하는 과정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제기됐습니다. 후속보도로 천공 측이 그해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을 접촉해 '난민 프로젝트' 문건을 전달했고 이를 대통령실에 보고하려고 한 카카오톡 메시지도 공개됐습니다. 해당 메시지를 제보한 전직 정법재단 간부는 이를 '2의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천공의 국정개입 의혹을 '가짜뉴스'로 치부하는 동시에 "김용현 처장과 천공은 일면식도 없다"는 주장만 반복했습니다. 김 처장은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들 통해서도 같은 입장을 밝혔습니다. 심지어 대통령실은 천공이 대통령 부부에 대한 영향력을 사칭하고 다녀도 아무런 경고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해당 의혹을 제기한 본지 기자들을 형사 고발했습니다.

 

전직 정법시대 간부 등 '천공 문란한 사생활과 위법 자료' 탄원서 작성

<뉴스토마토>는 최근 전직 정법시대 간부 A, 천공의 측근으로 활동했던 B, 10여년 전 천공과 만난 뒤 줄곧 그 실체를 추적한 C씨와 D씨 등을 계속해서 접촉했습니다. 이들은 수년에 걸쳐 천공의 사생활과 위법 행위 등에 관한 자료를 치밀하게 모았습니다.

129일 강원도 고성군에서 열린 정법시대 강연회에서 천공이 강연을 마치고 행사장을 나가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수집한 자료는 천공이 정법시대 신도들의 회비를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내역 천공이 경남 함양군 일대 땅을 차명계좌로 산 정황과 구입한 땅의 주소지 천공 관련 단체들 조직도 천공이 여신도들과 문란한 성관계를 맺고 혼외자를 뒀다는 의혹 천공이 윤 대통령 내외와의 인연을 강조하며 혹세무민 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요약됩니다. 천공이 횡령한 신도들의 회비는 수십억원, 비자금은 수백억대에 달한다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A씨는 취재팀과 만나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재직시 천공을 자주 만나 용채를 줬고, 당선된 후로도 천공과 통화하는 등 소통을 이어갔다"면서 "천공은 신도들이 낸 공금을 횡령하고 유용해 100억대 자금을 확보했는데 돈 문제가 엉망진창이고, 천공과 신경애는 '부부 사기꾼'이며 그 조직은 범죄집단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A씨 등 4명은 "천공이 윤 대통령 내외와의 관계를 팔아 혹세무민 한다. 천공을 경계하고, 후일 윤 대통령과 천공의 관계가 '2의 국정농단'으로 번지기 전에 천공을 사법처리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30쪽 분량의 탄원서를 작성했습니다. 이들은 탄원서를 김용현 경호처장과 한동훈 장관, 윤 대통령 측에 전달했다고도 했습니다. 김 처장에게는 탄원서 내용을 문자 메시지로 적어 보냈습니다. 한 장관에게는 비서실을 통해, 윤 대통령에게도 측근 인사를 통해 탄원서를 전달했다고 합니다.

전직 정법시대 간부 A, 천공의 측근으로 활동한 B, 10여년 전 천공과 만난 뒤 그가 거짓 무속인이라는 걸 깨닫고 줄곧 그 실체를 추적한 C, D씨 등은 각자 직간접적으로 천공과 인연을 맺은 경력을 활용해 수년에 걸쳐 천공의 사생활과 위법 행위 등에 대한 자료를 모았습니다. 그리고 이 자료로 30쪽 분량의 탄원서를 만들었습니다. 탄원서 제목은 <정법시대 이천공 문란한 사생활 및 위법 자료>입니다. 이 탄원서는 김용현 대통령실 경호처장, 한동훈 법무부 장관, 윤석열 대통령 측근 인사들에게 전달됐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사진/뉴스토마토

 

"김용현에겐 문자로 탄원서 보내한동훈 장관·윤 대통령 측에도 전달"

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탄원서를 받은 사람은 한 장관입니다. C씨는 202136~7일 사이 충북 진천으로 갔습니다. 당시 법무연수원에 좌천돼 있던 한 장관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이때는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사퇴한 날(34)로부터 2~3일 뒤이기도 합니다. 윤 대통령과 천공과의 관계가 본격 조명된 것은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등판한 202110월부터였습니다. C씨는 그보다도 훨씬 이른 시기에 '친윤(친윤석열)' 인사에게 '천공을 조심해야 한다'라고 경고한 셈입니다.

 

C씨는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그만둘 때 '산에 가서 한 석달 공부를 하고 오겠다'고 말했다 하는데, 그 이야기를 딱 듣는 순간 '천공한테 가는구나'라고 생각했다"면서 "그걸 막으려고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에서 사퇴한 직후 바로 진천으로 가서 한 장관(당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을 만나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 당시만 해도 한 장관이 윤 대통령과 천공의 관계를 알게 되면 윤 대통령으로부터 천공을 떼어놓을 사람, '우리 편'이라고 생각했다""한 장관에게 준 탄원서엔 '천공은 간통 등 이런저런 위법행위를 했다. 국가를 전복하려고 계획한 사람이다'는 내용을 적었다"고 했습니다. 다만 "한 장관을 만나진 못했고 탄원서도 직접 전달하지는 못했다""비서가 와서 받아갔다"고 전했습니다.

 

D씨는 "한 장관에게 탄원서를 주고 이틀 뒤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동기로, 친분이 매우 두텁다는 모 변호사를 만났다""윤 대통령한테 빨리 탄원서를 주고 '천공을 조심해야 한다'고 꼭 일러달라고 부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D씨는 "나중에 그 변호사를 다시 만나서 '탄원서를 윤 대통령에게 줬느냐'고 물었는데, 그는 '윤 대통령의 모든 법률 문제를 관리하는 친구에게 넘겼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말했습니다.

 

2022620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김용현 경호처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C씨와 D씨는 202239일 윤 대통령이 20대 대선에서 당선된 뒤엔 김용현 경호처장과도 접촉했습니다. C씨는 "김 처장은 몇몇 장성으로부터 소개를 받아 20대 대선 전부터 안면이 있었고 몇 번 식사를 한 적도 있다""김 처장한테는 '천공이 대통령 근처에 오지도 못하게 해라. 천공은 위험한 사람이고, 빨리 정리하지 않으면 나라가 잘못된다'는 내용의 문자를 6~7차례 정도 보냈다"고 했습니다. D씨는 "김 처장은 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청와대이전태스크포스(TF) 팀장을 했는데, 이때만 해도 천공에 관한 문자를 보내면 '감사합니다'라고 짧은 답장을 보냈다"면서 "윤 대통령이 취임한 후 경호처장이 된 이후로는 답장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A씨와 D씨는 각각의 인맥과 경로를 통해 탄원서를 윤 대통령의 다른 측근들에게도 전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A씨는 "정치권 인사는 아니지만 윤 대통령과 호형호제하는 분께도 탄원서를 보내드렸다"고 했습니다. D씨는 "윤 대통령의 여동생과 제일 친한 사람한테 가서도 '천공을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했다"라고 전했습니다.

 

잇단 '천공 경고'에도 묵살"김건희 '천공은 우리가 도움 받는 분'"

하지만 천공에 대한 연이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실은 요지부동이었던 모양입니다. 천공을 조심하고 사법처리해야 한다는 경고가 수차례 전달됐지만 번번히 묵살됐습니다. 여기엔 김건희 여사의 뒷배가 작용했다는 주장도 이어졌습니다. A씨는 "대통령 측 인사에 따르면, 지난해 11MBC '스트레이트'에서 천공을 지적하는 방송을 했는데 윤 대통령이 이걸 보고 '천공 조사해야지'라고 했었다""그런데 김 여사가 '천공은 우리가 도움을 많이 받은 분인데'라며 윤 대통령을 말렸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했습니다.

 

<뉴스토마토>는 김 처장과 한 장관에게 사실관계 확인과 함께 반론요청서를 보냈습니다. 경호처는 반론요청서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법무부는 "답변을 보내지 않기로 정리했다"면서 "'답변이 없다'로 하겠다"고 전해왔습니다

뉴스토마토 탐사보도부 유연석·최병호·배덕훈·신태현 기자

 

 

천공 보도뉴스토마토 기자, 10주째 대통령실 출입 못해

대통령실이 수개월 째 뉴스토마토의 출입기자 교체 신청을 처리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을 출입할 뉴스토마토 기자가 역술인(천공)이 대통령 관저 이전에 개입한 의혹을 보도했다는 점에서 대통령실이 불편한 보도를 한 언론을 길들이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뉴스토마토는 올해 초 인사에 맞춰 기존 대통령실 출입기자를 타 부서로 발령하고, 신규 출입기자 등록을 신청했다. 대통령실 출입을 맡게 된 A기자는 지난 126일 대통령실에 출입 등록을 신청했고 131일까지 관련 서류를 보완해 제출했다.

 

통상 대통령실 출입 매체가 기자 교체를 신청하면 대통령경호처의 신원 조회 기간까지 3주가량 걸린다. 뉴스토마토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10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뉴스토마토 기자 교체를 처리하지 않으면서 대통령실 경호처에서 신원 조회 중이라는 입장을 반복했다.

412일자 뉴스토마토 칼럼

최신형 부장은 “A기자는 202110월부터 20225월 초까지 청와대에 출입했다. 정부는 다르지만 신원조회라는 절차를 거쳤던 기자다. 나도 청와대 출입을 했는데 3~4주 정도면 출입 등록하는 데 문제가 없다거칠게 이야기하면 일종의 언론 통제, 공권력을 통한 일종의 검열이나 편집권 침해로도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이다. 윤석열 정부가 이런 식으로 공권력을 활용해서 기자들의 취재 활동을 제한한다면 5공 때 보도지침과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가라고 비판했다.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도 대통령실이 특정 보도에 대한 불만을 출입기자 교체 거부로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다. 대통령실 취재를 담당하는 기자들은 뉴스토마토 사례에 관해 천공 보도 때문 아니겠나라거나 경호처 신원 조회 때문이라는 이유는 말이 안 된다고 전해왔다. 대통령실이 지난해부터 미디어오늘의 출입기자 교체 신청을 묵살해온 것과 맞물려 안 받아주는 매체가 미디어오늘이나 뉴스토마토 밖에 없지 않느냐는 반응도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출입기자들이 공개적으로 입을 모아 대통령실을 비판하는 모습은 찾기 어렵다. 지난해 MBC에 대한 대통령실의 비속어 보도 관련 압박과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 윤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 중단 등이 이어지면서 대통령실과의 대립이 취재 기회 제약으로 이어진다는 학습 효과가 발동한 것으로 보인다. MBC나 뉴스토마토 사례 등이 해당 매체와 대통령실의 문제일 뿐이라는 일부 시각도 공동 대응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최 부장 역시 전체적으로 움직이기에 조심스러운 부분도 분명 있을 테고 이해는 한다면서도 언론인들의 연대가 필요한 시점인데 그게 없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아쉽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대통령실 출입기자 관리를 담당하는 대외협력비서관실 측은 뉴스토마토 등 출입기자 교체가 지연되는 사유에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노지민 기자 미디어오늘

 

법원이 공개한 이정근 범죄표 봤더니... 공소사실 50건 중 47건 유죄

알선수재 등 혐의로 기소된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에게 법원이 징역 4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지난 달 23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검찰이 징역 3년형을 구형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김옥곤 부장판사, 배석판사 류의준·이종욱)는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위반(알선수재) 혐의에 대해 징역 3,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16개월을 선고했다. 또한 재판부는 이 전 부총장에게 98600만원의 추징금도 부과했다. 앞서 검찰이 요청한 추징금은 98000만원이었다. 법원이 검찰보다도 이 전 부총장의 혐의를 더 중대하게 판단한 셈이다(관련 기사: '10억 수수' 이정근, 46개월 실형... 구형보다 센 이례적 판결 https://omn.kr/23hkn).

 

이는 이날 1심 선고와 함께 법원이 언론에 배포한 '2022고합○○○ 특정경제법위반(알선수재) 등 사건 재판부 설명자료'를 통해 잘 드러난다. 특히 14페이지에 이르는 설명자료 중 6페이지가 '통합 범죄일람표'. 범죄일람표상 이 전 부총장에 대한 혐의 항목은 검찰의 공소사실 목차 기준 50건에 이른다. 법원은 이들 각각에 대해 유죄 또는 무죄 판단을 구분해 명기했다. 역시 이례적인 경우다. 그만큼 법원 또한 이 전 부총장 판결이 사회적으로 미칠 영향을 의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정근 전 부총장 '범죄일람표'... 50건 중 47건 유죄

청탁 대가 명목으로 사업가로부터 거액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이 202293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연합뉴스

 

법원은 범죄일람표를 통해 이 전 부총장에 대한 혐의 50건 중 47건에 대해 유죄라고 판단했다. 검찰의 공소사실을 거의 대부분 인정했다는 뜻이다. 혐의별로 보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등에 관한 법률 위반(알선수재) 혐의 37(변호사법 위반 포함) 중 단 3건만을 무죄로 판단했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9, 4건의 변호사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피고인은 금품 수수 과정에서 정·관계 인맥을 과시하면서 공무원 및 공공기관의 임직원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알선의 대상을 특정하여 장래의 구체적인 처분 내용까지 적시하였으며, 일부 알선 행위의 실행에까지 나아가기도 하였습니다." (법원 설명자료 중)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법원이 이 전 부총장이 금품 수수 과정에서 어떤 명목으로 알선수재, 즉 직무 관련 사항을 주선하여 금품이나 이익을 수수·요구·약속했는지를 명확하게 밝혔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성윤모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을 이 전 부총장이 내세운 경우가 각각 얼마나 되는지도 확인이 가능했다.

 

자료에 따르면, 이 전 부총장이 박 전 장관과의 관계를 내세운 경우는 S투자파트너스에 대한 중기부 자금 배정 등 알선 M파트너스에 대한 중기부 모태펀드 출자사업 선정 알선 등으로, 관련 혐의 항목 5건 중 4건에 대해 법원은 유죄로 판단했다. 또한 법원은 성 전 장관의 관계를 명목으로 이 전 부총장이 H사 정부지원금 배정을 알선했다고 판단했는데 관련 혐의 8건 중 7건이 유죄였다. 한국남동발전 수력발전설비 납품이나 인사 알선 등으로 이 의원이 명목이 된 경우는 5건으로 역시 모두 유죄였다.

 

이 전 부총장이 노 전 비서실장과의 관계를 명목으로 알선수재한 경우는 포스코건설의 구룡마을 우선 수익권 인수 알선 용인 스마트 물류단지 실수요검증 절차 알선 한국남동발전 수력발전 설비 납품 알선 등으로 관련 혐의 항목은 11건에 이르렀다. 법원은 관련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법원, 대통령 비서실장 직무행위도 자세히 설명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왼쪽부터),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202210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윤석열정권정치탄압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및 흉악범죄자 추방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남소연

 

특히 이중 구룡마을 건에 대해 법원은 '대통령 비서실장의 직무에 속한 사항 해당 여부'라는 제목과 함께 "대통령은 정부의 수반으로서 보건복지부를 통할하며,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한다"고 전제하면서 다음과 같이 별도 설명을 덧붙였다.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공단의 주무기관입니다. 포스코홀딩스의 최대주주는 2007. 1. 30.부터 2022. 3. 31. 까지 국민연금공단이고, 국민연금공단 외에 포스코홀딩스에 대하여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주 또는 그 집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로써 대통령 비서실장은 포스코홀딩스 및 그 계열사에 대하여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포스코건설의 구룡마을에 대한 우선수익권 인수는 대통령 비서실장이 법령상 관장하는 직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행위 또는 관례상이나 사실상 관여하는 직무행위에 해당한다고 봐야 합니다."

 

앞서 공판 과정에서 이 전 부총장이 구룡마을 관련 알선 혐의에 "대통령 비서실장 직무에 속하지 않은 일이니 알선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바에 대해, 법원이 이를 어떻게 판단했는지를 명확하게 밝힌 셈이다.

 

현재까지 검찰은 이들 사건에 대해 이 전 부총장 외에는 수사를 확장하지 않는 모양새다. 박 전 장관, 성 전 장관, 이 의원 등도 역시 이 전 부총장에게 청탁을 받은 적이 없다거나 만난 적도 없다는 등의 입장을 강하게 밝힌 바 있다. 노 전 비서실장의 경우는 이들 사건과 별도로 이 전 부총장이 한국복합물류 상근 고문으로 취업하는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이와 관련 두 사람 사이에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 내용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판도라의 상자' 열리나... 후폭풍은 이제부터?

법원이 12일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 1심 선고와 함께 설명자료를 통해 공개한 '범죄일람표'서울중앙지법

 

이 전 부총장 사건이 '판도라의 상자'로 불리는 이유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김영철 부장검사)가 작년 102차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이 전 부총장이 과거에 사용하던 휴대전화 때문이다. 알려진 바로는 검찰이 이 휴대전화에서 추출한 녹음파일이 3만개에 달한다고 한다.

 

12일 법원이 배포한 설명자료에서 직접적 언급은 없었지만, 이 전 부총장 측 주장을 배척하는 과정에서도 이 휴대전화는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이 사건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피고인과 박○○ 사이의 수많은 대화 및 통화에 관한 녹음 파일과 그 녹취서, 문자 메시지 내역, 카카오톡 메시지 내역, 텔레그램 메시지 내역, 금전 거래에 관한 계좌 내역 등 객관적 증거가 존재합니다."

 

작년 이 전 부총장에 대한 구속기한 연장이나 변호인 제외 접견 제한 조치, 그리고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노웅래 의원에 대한 강제 수사에 돌입한 일 등이 모두 반부패수사2부가 해당 휴대전화를 확보한 후 이뤄졌다. 노 전 의원에 대한 수사는 검찰이 이 전 부총장에게 정치자금이나 각종 알선 등을 목적으로 금품을 공여한 박○○씨와의 통화 내역 등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촉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박○○씨를 노 의원에게도 돈을 전달한 당사자로 보고 있다.

 

앞서 지난 2월부터, 한국복합물류 특혜 취업 과정에 관여했다는 혐의로 반부패수사2부가 3선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한 강제수사에 돌입한 상황까지 감안하면 '판도라의 상자' 후폭풍이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하기 힘든 상태다. 이 수사 역시 이 전 부총장의 취업 청탁에 노 전 비서실장이 개입했다는 의혹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 최근 6명 검사 충원

검찰의 '판도라 상자' 수사에는 앞으로 더욱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을 거의 대부분 인정했다는 것을, 법원이 이날 이 전 부총장에 대한 범죄 일람표 공개를 통해 매우 구체적으로 밝혔다는 것은 검찰 입장에서는 상징적이다.

 

이 전 부총장에 대한 1심 선고가 이뤄진 이날, 반부패수사2부가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에 대해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을 실시한 것 역시 검찰의 자신감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검찰은 강래구 전 한국공공기관감사협회장이 20215월 민주당 전당대회 당시 이 전 부총장을 통해 윤 의원 측에 불법 자금을 전달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한다. 이 전 부총장의 휴대전화가 역시 '출처'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에 따라 당 차원의 수사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가 수사력을 끌어 모으고 있는 상황도 이 전 부총장의 휴대전화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최근 반부패수사2부에는 같은 청 검사 1명과 타 지역 청 검사 5명 등 모두 6명의 검사가 충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경우 역시 더 잦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오마이뉴스

 

야당 대표 안 만나는 윤 대통령, 339일째 갈등 쌓는 불통

사실상 국정운영 협치거부직선제 부활 이후 최장 기록

당선 뒤 여당 지도부 만남 빈번내 편만 끌어안기비판

 

윤석열 대통령과 야당 지도부 회동이 이뤄지지 않은 지 12일로 취임 후 338일째를 맞았다. 이틀 뒤인 오는 14일이면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 중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양자 회동까지 걸린 최장 시간을 넘어선다. 여야 대표와의 회동, 야당 대표들을 함께 만난 회동 기준으로는 이미 최장기 불통기록을 경신했다. 야당과의 소통이 전무한 상태가 이어지며 불명예 기록만 계속 갈아치우는 모습이다. 당선 당시부터 강조한 협치 약속이 사실상 폐기됐다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윤 대통령 취임 338일째인 이날까지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양자 회동은 이뤄지지 않았다. 당분간도 회동 가능성이 희박해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이후 노태우 정부부터 현 정부까지 최근 8개 정부 중 가장 늦어질 것이 확실시된다.

 

취임 당일 상견례성 인사를 제외하면 현재까지 대통령이 제1야당 대표와 의제를 가지고 만난 개별 회동 중 가장 늦게 이뤄진 것은 문재인 정부 때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2018413일 처음으로 청와대에서 일대일로 만났다. 당시 홍 대표는 일대일 회동을 요구하며 수차례 이어진 다자 형식 회동에 불참하다가 20183월 여야 5당 대표 회동 때 처음 청와대를 찾고 그해 4월 대통령과 일대일 회동을 했다. 대통령 취임 339일째로 윤 대통령은 곧 이 기록을 넘어서게 된다.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단독 회동은 국정운영 파트너로서 상호 존중을 확인하면서 굵직한 난제들을 푸는 역할을 해왔다. 인사 난맥상에 직접 대통령이 사과를 전하며 내각 구성 협조를 요청하거나 안보 상황을 공유하며 초당적 협력을 당부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여소야대인 현 국회 구성을 고려하면 제1야당과의 소통과 설득 없이 입법을 통한 국정과제 실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근 윤 대통령의 양곡관리법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등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지는 데도 이 같은 불통상황이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1야당 대표들이 다자 형식이 아닌 일대일 회동을 요청하면서 회담 성사까지 장기간이 걸리는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취임 6개월 정도에는 단독 회동이 이뤄졌다. 정부 출범일 기준으로 노태우 정부는 189, 김영삼 정부 111, 김대중 정부 3, 노무현 정부 21, 박근혜 정부 47일째에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단독 회동을 했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여러 정당 지도자들과의 다자 형식 회동 역시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대통령의 대야당 소통이 진공상태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당선 직후 현직 대통령과 당선인의 회동도 형식과 의제 등을 두고 갈등을 빚다 대선 19일 만에 성사됐다. 이 역시 역대 정부 중 가장 늦은 만남이었다.

 

역대 가장 늦은 대야당 소통 기록을 갈아치워 나가는 동안 여당과의 만남은 빈번하게 있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이준석 대표 등 당시 지도부와 오찬 회동을 한 데 이어 국민의힘 연찬회와 전당대회에도 참석했다. 당 특별위원회 소속 의원이나 원외 당협위원장과의 간담회 등으로 접촉 범위를 확대했고, 용산 대통령실 청사를 비롯해 관저에서도 따로 지도부와 만찬하는 등 소통의 폭을 넓혔다. 김기현 대표 체제 출범 이후에는 지난달 13일 신임 지도부 초청 만찬, 같은 달 21일 청와대 영빈관 오찬 등이 이뤄졌다.

결국 윤 대통령의 협치 약속이 폐기됐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윤 대통령은 당선 직후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다고 밝혔고, 지난해 516일 국회 시정연설에선 처칠과 애틀리의 파트너십을 들며 진영이나 정파를 초월한 초당적 협력을 강조했다./경향

윤석열 검찰특활비 공개된다대법원 정보공개해야

 

대검찰청.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시민단체가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을 상대로 특수활동비·특정업무경비 지출 기록을 공개하라며 낸 행정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이로써 대검찰청은 201711일부터 2019930일까지 지출한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경비 집행 정보와 증빙서류, 업무추진비 지출 증빙서류를 공개해야 한다. 다만 집행 정보는 집행 일자와 금액, 장소 등에 한정되고 내용이나 사용자 이름, 참석자 숫자 등은 공개 대상에서 제외된다. 당시 검찰총장은 김수남·문무일·윤석열 총장이었다.

 

대법원 2(주심 이동원 대법관)13일 시민단체 세금도둑잡아라' 하승수 공동대표가 검찰총장·서울중앙지검장에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했다. 심리불속행은 원심 판결에서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대법원이 별도로 결정 이유를 알리지 않고 원심을 그대로 확정하고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하 대표가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이 지출한 특수활동비·특정업무경비·업무추진비 집행 내용과 지출 증빙서류 등의 정보공개를 청구했다가 업무추진비를 제외하고 공개 거부를 통보받자 2019년 소송을 제기하면서 재판은 시작됐다. 특수활동비 등은 기밀유지가 필요한 수사, 정보 수집, 국정 수행 등에 쓰이는 경비인데 현금으로 받고, 어디에 얼마를 썼는지 증빙하지 않아도 돼 불투명한 예산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예산은 대통령실·국회·국가정보원·검찰 등에 할당된다.

 

1·2심은 모두 하 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검찰은 특수활동비 집행 정보가 공개되면 수사기밀이 유지되지 않아 수사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1·2심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수활동비의 집행 일자와 집행 금액을 공개한다고 하더라도 수사의 구체적인 내용과 규모를 예측하기 어렵고 수사 업무의 공정하고 효율적인 수행이 장애를 준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특수활동비 집행 내용과 수령인의 이름은 검찰의 수사 대상, 정보 활동, 활동 주체 등이 노출되므로 비공개 정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대검의 특수활동비 등 지출 기록을 대부분 공개하고 서울중앙지검의 지출 기록은 일부만 공개하도록 했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폴란드 총리 "한국과 우크라 포탄 인도 관련 대화 나눠미국 개입해야"

NYT 인터뷰서 밝혀국방부, 적극 부인 안해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가 한국산 포탄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미국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포탄 인도와 관련해 이미 한국과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가 11(현지시각) 워싱턴DC의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집무실에서 회담에 앞서 연설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워싱턴을 방문 중인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뉴욕타임스>(NYT)12(현지시각) 보도된 인터뷰에서 그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보다 훨씬 더 많은 포탄을 비축하고 있고 매달 전장에서 훨씬 더 많은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며, 막대한 양의 포탄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기 및 포탄 (우크라이나) 인도에 관해 한국과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뉴욕타임스>는 관련해 한국 대사관 당국자에게 논평을 요청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13일 전하규 한국 국방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정부가 무기 및 탄약 인도와 관련해 폴란드와 대화를 나눈 것이 사실이냐는 질문에 "확인해 드리거나 드릴 말씀이 없다"며 부인하지 않았다.대변인은다만 이와 관련해"정부입장이변화된것은없다"설명했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이어"한국은 러시아와 중국의 반응을 두려워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가 포탄을 우크라이나로 보내는 것을 승인하는 것이 "미국의 개입 없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개입한다면 기쁠 것"이라며 중국과 러시아의 한국에 대한 공격적 반응 가능성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에 일종의 안전 보장을 제공하며 개입하지 않는다면 그 일(한국의 우크라이나 포탄 지원)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는폴란드가 한국으로부터 많은 무기를 구입했지만 한국과 합의 없이 무기를 인도하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주 <뉴욕타임스> 보도로 널리 알려진 미 국방부 유출 문건엔 김성한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이 미국이 한국에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압박할 수 있다는 우려 속 폴란드를 통한 우회 지원을 논의했다는 내용이담겨 파문이 일었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이날 인터뷰에서 서유럽의 "부유한 국가들""더 빨리, 더 많은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인도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승리하길 원한다""러시아가 승리한다면,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침공할 수 있다면, 왜 중국이 러시아의 지원을받아 같은 수법을 사용하지 않겠는가? 이는 세계 역사에 중요한 순간"이라고 강조했다.

프레시안 김효진 기자

주키니 호박 거래 재개에도 농민들 시름

지난 3일 농가 484곳 중 467곳 출하

재개 후 가격 지난달 절반 수준

공급 물량 급증·소비 위축 영향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농수산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주키니 호박의 12일 평균 가격은 상품(도매가) 기준 1012660원으로 형성돼 있다. 출하가 재개된 지난 3일 평균가격인 19500원에서 매일 가격이 떨어지면서 9일 동안 7000원 넘게 하락한 것이다.

지난달 10일 평균가인 27500원과 비교해보면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같은 기간 평년가격과 비교해봐도 2536원으로 1만원가량 낮았다. 특히 32일에는 37140원까지 평균 가격이 형성되기도 했다.

 

진주에서 주키니 호박을 재배하는 한 농민은 농사 지은 이래로 올해 호박 가격이 가장 잘 나와서 이번에는 숨통이 좀 틔일까 생각했는데 갑자기 이런 사태가 발생해 난감하다농가들이 잘못한 게 아닌데 이 정도로 가격이 떨어지니 허탈할 뿐이다고 말했다.

 

특히 경남지역 주키니 호박 재배 농가는 303곳으로 전체 농가의 약 61%를 차지하는 만큼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농민들은 지금은 그렇다 치더라도 향후에도 이같은 흐름이 이어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김열 진주 금곡면 호박작목회장은 내년, 내후년에도 계속해서 농사를 지을 건데, 우리에게는 생계가 달린 문제다피해보상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주키니 호박이 예전처럼 활발하게 유통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홍보하고 소비 촉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토로했다.한유진 기자 jinny@knnews.co.kr

 

 

돈 없고 늙는 한국유럽 PIGS 닮는다

국가별 고령화율 추이

한국이 2010년대 남유럽 경제위기를 겪은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PIGS 국가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경고가 확산되고 있다. 고령화 속도를 비롯한 한국 인구구조의 변화, 이에 연동되는 재정구조 변화가 경제위기 직전의 PIGS와 같은 경로를 따르고 있다는 분석에서 비롯된 경고다. 더욱이 한국의 고령화와 재정 악화 추세는 PIGS보다 빠르게 진행 중이다. 인구구조발 경제위기 우려를 키우는 악재다.

 

미국 인구조사국의 2020년 조사를 보면 한국은 이때까지 PIGS보다 젊은 국가였다. 한국의 고령화율은 202024%로 포르투갈 35%, 이탈리아 34%, 그리스 36%, 스페인 30%보다 낮다. 하지만 한국의 고령화율이 56%로 상승하는 2040년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때 남유럽국의 고령화율은 포르투갈이 53%, 이탈리아 56%, 그리스 54%, 스페인 50%로 추산된다. 한국의 고령화율이 PIGS 고령화율을 추월하는 것이다.

 

통계청의 장례인구추계와 유엔의 세계인구전망(2022)을 봐도 한국의 고령화가 PIGS보다 늦게 출발했지만 빨리빨리진행돼 추월차선을 타는 모습이 보인다. 한국은 2018년에 65세 인구 비율이 14%인 고령사회, 2025년에 노인인구 비율이 20%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뒤 2035년에 노인인구 비율 30%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PIGS 국가별로 노인인구 비율이 30%에 도달하는 시기는 포르투갈 2038, 이탈리아 2033, 그리스와 스페인 2039년이다. 이탈리아를 빼면 모두 한국보다 늦게 고령인구 증가가 진행되는 것이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사회복지지출은 증가한다. 1980년대 출산율 급감을 겪은 PIGS는 실제 고령화사회복지지출 증가재정악화재정위기를 겪은 선례를 보여 주었다.

 

4개국 중 이탈리아를 보면 고령화율이 13.9%였던 1990년에 30.1%였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지출 비율이 고령화율이 30.1%가 된 2021년엔 146.6%로 급증했고 이것이 재정위기의 신호탄이 됐다.

 

LG경제연구원은 생산가능인구 감소 시대의 경제성장과 노동시장보고서를 통해 고령화와 재정 악화가 성장률을 갉아먹고 경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음을 낸 바 있다. 이를테면 이탈리아는 1992, 포르투갈은 2008, 스페인은 2009, 그리스는 2013년 생산가능인구 감소 국면에 접어들었는데, 이 시점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특히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생산가능인구 감소 이후 5년간 마이너스 성장을 겪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PIGS2001~2011년 고령화 등으로 인해 정부 지출 규모가 두 배로 확대돼 경상 GDP 증가율을 상회했고 국가 부채가 급증하며 재정 위기를 맞게 됐던 것이다.

 

한국에서도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사회복지지출 및 국가채무 증가세가 이미 가시화하고 있다. 한국의 공공사회지출 비율은 19902.6%에서 202114.8%, 국가채무 비율은 12.24%에서 45.33%로 증가했다. 공공사회지출 비율 증가, 국가채무 증가는 모두 국가재정 악화를 부르는 직접적인 요소다.

 

인구구조 변화에 더해 글로벌 반도체 불황, 중국의 성장둔화가 겹치며 당장 올해 한국 재정은 흔들리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13일 발표한 재정동향에 따르면 올해 1~2월 국세수입은 542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57000억원 덜 걷혔다. 세외·기금 수입 등을 모두 더한 총수입은 90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1000억원 줄었다.

 

총지출 규모는 1146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66000억원 감소했으나, 쓴 돈보다 거둬들인 돈이 훨씬 적다 보니 국가 살림살이 상황을 보여 주는 관리재정수지는 309000억원 적자를 기록하며 적자폭이 109000억원 확대됐다. 이 적자 규모는 정부가 제시한 올해 연간 관리재정수지 적자 전망치 582000억원의 53.1%에 달하는 규모다. 올해 들어 단 두 달 만에 나라살림 적자가 정부 예상치의 절반을 넘어선 것이다.

 

나아가 향후 국내 재정 악화 추세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2022년 재정수입 및 보건지출에 대한 2040년까지의 장기 전망을 발표했는데, 향후 20년간 한국의 연평균 총보건지출 증가율은 4%GDP 증가율 1% 초반대를 훨씬 상회한다. OECD 주요국 중 가장 빠른 추세로, 주요국 평균 증가율인 2.7%보다 높다.

 

김성수 한국외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회에 제출한 재정건전성과 인구구조 및 복지지출보고서에서 복지지출과 재정건전성의 관계에서 한국은 복지지출 증가에 따른 국가채무율과 국민부담률의 증가 수준이 높은 편이라며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돼 복지지출에 따른 국가채무율 증가폭은 남유럽 국가군과 유사하게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은 스웨덴식 성공모델에서 배울지 고민해 왔지만 실은 이탈리아나 그리스를 답습하지는 않는 쪽으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이탈리아의 경우 정권이 자주 바뀔 때마다 만든 제도와 규정이 켜켜이 쌓였지만 관행은 관행대로 남아 있어 골병 든 사회가 됐는데 한국이 그런 징조가 많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서울신문 박기석·이영준 기자

"도둑질 당하고 '선의'라니"도청 덮은 대통령실 규탄

4월혁명회, 80대 노구 이끌고 윤석열 퇴진외쳐

세월호 9주기 맞아 기억의 힘이 세상을 바꾸는 힘

울산 기적최덕종 의원 촛불이 횃불 돼 대선 승리

15일 서울 시청앞 일대에서 열린 제35차 촛불대행진에 참석한 시민들. 2023.4.15. 사진작가 이호

미국 정보기관의 대통령실 도청 의혹이 불거졌는데도 당한 적 없다”, “위조였다며 사건을 덮기 급급했던 대통령실의 대응에 대한 촛불 시민들의 분노가 쏟아졌다. 15일 서울 혜화역과 시청 인근에서 열린 제35차 촛불대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은 한국 포탄 내주고 한미회담 구걸한 윤석열은 퇴진하라”, “도청범죄 비호하는 윤석열은 퇴진하라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민들은 또 4·19혁명 63주년을 며칠 앞둔 이날 집회에서 “4·19 정신 계승하여 촛불혁명 완수하자는 구호도 외쳤다.

 

이날 오후 3시 혜화역에서 집결한 시민 5000여 명(주최 측 추산)은 오후 330분부터 행진을 시작해 종로를 거쳐 본 집회 장소인 숭례문~시청앞 도로에 집결했다. 전국집중집회로 열린 본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2만 명(오후 630분 기준)이 참석했다. 같은 시각에 18000여 명의 시민들은 온라인을 통해 집회를 시청했다. 행진 과정에서 종로 4가에서 열린 보수단체 집회와 마주쳤지만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집회 첫 발언자로는 불교 쪽의 사대매국 윤석열 검사독재정권 퇴진 시국법회 준비위원회박종린 집행위원장이 무대 위에 섰다. 박 위원장은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불교 시국 법회를 준비했다면서 다시는 윤석열 같은 어리석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지 않도록 여러분들이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시국법회 준비위원회는 다음 달 20일 서울 시청~숭례문 일대에서 불교 시국법회를 열 예정이다.

 

다음엔 하루 앞으로 다가온 세월호 9주기를 맞아 노란 리본을 만드는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던 김현성 광화문 노란리본공장소 시민 봉사자의 발언이 이어졌다. 김 씨는 혹시라도 9년이나 되었으니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스스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느냐면서 그렇다면 우리는 또다시 우리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정권을 계속해서 다시 만나고 우리 주변 누군가가, 또는 나 스스로가 또 다른 참사의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노란리본공작소에서 제작한 기억 물품을 가져가셔서 가방에 달아 기억의 힘을 보여달라면서 행동하는 시민들의 기억의 힘은 무한 동력이 되어 우리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5 재보선에서 전북 전주을에 출마해 10.14%를 득표했던 안해욱 후보는 선거 기간 전국에서 찾아와 지지해 주시고 해외 언론에서도 보도할 정도로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한다라면서 학연, 지연, 혈연 하나도 없는 제가 윤석열 정권을 타도하자는 기치 하나로 윤 정권의 실체를 알리는 데 성공했다라고 말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텃밭인 울산 남구에서 기초의원으로 당선된 최덕종 울산 남구 의원은 국민의힘은 김기현 대표가 두 번 찾아오고 국회의원 5명과 시의원, 구의원 등 80명이 골목마다 누비고 다녔지만, 민주당이 승리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승리는 작은 촛불이었지만 내년에 횃불이 돼 촛불 시민의 염원으로 대선까지 승리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후 연단에 오른 김민웅 촛불행동 상임대표는 도둑이 들어와 비밀 금고를 훔쳐 갔는데 착한 도둑이라고 하고 선의가 있다고 한다면서 다 한통속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자기들이 도둑질해 놓고 도리어 도둑질을 당한 것이라고 팔팔 뛴다면서 한국은 주권 침해를 당해도 싼 나라, 글로벌 호구가 됐다고 비판했다.

15일 서울 시청앞 일대에서 열린 제35차 촛불대행진에 참석한 4월혁명회 관계자들이 4·19혁명 63주년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2023.4.15. 사진작가 이호

 

전국비상시국회의 조성우 대표도 발언자로 나서 윤석열 정권은 주권자들이 똘똘 뭉쳐 화산처럼 폭발하는 것을 가장 무서워한다라면서 중요한 것은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집회의 대미는 4월혁명회 회원들이 장식했다. 이들은 쌀쌀한 날씨에도 80대의 노구를 이끌고 윤석열 퇴진을 외쳤다. 특히 올해 90세인 정희일 선생이 직접 4월 혁명 63주년 선언문을 낭독했다.

 

전용덕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은 “63년 전 이승만 독재를 무너뜨리기 위해 시청 앞, 태평로, 경무대 앞에서 독재의 총탄에 쓰러져 간 동지들의 4월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전 의장은 외교 무대에서는 참사를 일으키고 국내에서는 입만 벌리면 실언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4월혁명회 노인들은 윤석열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데 여러분과 함께 앞장서겠다죽을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 주 36차 촛불대행진은 22일 토요일 오후 5시에 시청앞~숭례문 앞 도로에서 열린다. 다음 전국집중 촛불대행진은 다음 달 20일에 열릴 예정이다.

시민언론 민들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