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됐다더니 미 기밀유출 용의자 체포에 우리 언론 보도는
국가부채 2326조 원, 오보입니다
한국 부자가 꼽은 유망 투자처는…단기 ‘예적금’·중장기 ‘부동산
"휴전선 너머 상대의 마음을 훔쳐라"… 대통령도 가세한 남북 심리전
윤 대통령님, '살인범'으로부터 국민 지키려 한 게 불법입니까
이태원 참사가 드러낸 ‘피해자 주변주의’의 민낯
수탈이냐 근대화냐, 민족주의자 신용하와 탈민족주의자 이영훈의 논쟁
수학여행비 내역
미국의 헤게모니를 위협하는 미국헤게모니 –최근배
의원 최대 20명 연루? "이정근-윤관석 통화서 '돈봉투 리스트' 실명 열거“
미 기밀 유출한 주방위군 일병 체포…"위조"라던 한국 정부 '머쓱’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2등 국민인가
‘소리 없는 쓰나미’ 지구촌 식량 위기 한국도 덮치나
4월2주 윤 국정수행평가 여론
지방대는 이렇게게 몰락했다
고구마 농장’ 덮친 한동훈 법무부…“농민에 칼 휘두르는 나라”
검언유착’ 제보자, ‘범죄이력 공개’ 조선·동아일보에 1억 청구
엠폭스 확산에 다시 성소수자 낙인찍는 언론
국민 속이는 여론조사" 있다?…尹대통령이 말하는 '여론조사의 문제점'은?
尹 지지율 떨어지면 반복하는 ‘노조 때리기’에 맞장구 치는 언론
러시아 ‘적’으로 돌리는 대통령…살벌한 진영 갈등 한복판으로
우린 개혁 아줌마·아저씨…검찰과 싸워야지, 왜 이재명 흔드나”
글로벌 코리아? 덩치만 커진 ‘아메리칸 코리아’
이승만 ‘아동’포함 좌익 철저진압 지시 뒤 6·25 전후 학살참극 속출
서구 팝은 예술이고 케이팝은 기예인가
위조됐다더니 미 기밀유출 용의자 체포에 우리 언론 보도는
▲ 한국 국가안보실 도·감청 등 내용이 포함된 미국 기밀문건 유출 사건의 용의자인 잭 테세이라. 사진=잭 테세이라 페이스북 갈무리
한국 국가안보실 도·감청 등 내용이 포함된 미국 기밀문건 유출 사건의 용의자가 체포됐다. “상당수 정보가 위조됐다”며 단정적 입장을 냈던 정부는 도·감청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보수언론인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도 체포 소식을 비중 있게 다룬 반면 조선일보는 16면 국제면에서만 관련 사안을 보도해 주요 종합일간지 중 가장 소극적인 보도 태도를 보였다.
러시아 조작설 무게 실었던 조선일보 소극 보도
정보 유출의 범인은 미 매사추세츠주 방위군 소속 정보병 잭 테세이라다. 그는 한국 국가안보실 도청 내용을 포함해 미국이 전세계에서 수집한 기밀을 유출했다.
다수 신문은 이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15일 토요일 신문을 발행한 주요 종합일간지 8곳 중 5곳(동아일보, 한국일보, 경향신문, 국민일보, 세계일보)이 1면에 관련 소식을 다뤘다. 한겨레는 6면에 관련 소식을 다뤘는데 한겨레 토요판 1~5면은 커버스토리 기사를 낸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1면 배치로 볼 수 있다. 중앙일보는 3면에서 다뤘다.
조선일보는 16면 국제면에서만 관련 소식을 다뤘다. 정부의 입장 변화를 지적하는 대목은 없고 정보유출 사건 자체에만 초점을 맞췄다. 조선일보는 지난 10일 “러시아가 선택적으로 문서를 위조해 허위 정보를 역으로 흘렸을 수 있다”며 “미국이 우방을 감청했다는 정보를 흘려 자유 진영을 이간질하려는 러시아 측의 조작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반면 경향신문은 <미 내부 유출 드러나자... 슬그머니 “도청 알 수 없다”는 정부> 기사를 내고 “(정부가) 모든 가능성을 강경하게 일축하던 기존의 입장에서 말을 바꾼 것”이라고 했다. 한겨레도 <‘미 도청 거짓’이라던 정부 “확정 안했다” 한발 빼> 기사를 통해 같은 지적을 했다. /미디어오늘
국가부채 2326조 원, 오보입니다
22년 결산 결과가 나왔다. 대부분 언론이 국가부채가 2326조 원이라는 기사를 쏟아 냈다. 안타깝게도 모두 오보다. 2326조 원은 국가부채가 아니라 재무제표상 부채다. 국가채무(D1)는 약 1100조 원이고, 국가부채(D2)는 약 1200조 원으로 예상된다. 일단 팩트가 틀리다. 그리고 재무제표상 부채를 국가부채로 표현하면 국가의 재정건전성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게 된다.
▲ ‘국가부채’ 관련 온라인 기사.
왜 팩트가 틀린 지부터 알아보자. 국가부채를 파악하기 위한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국가채무(D1), 둘째, 일반정부부채(D2), 셋째, 공공기관부채(D3)다. 그런데 재무제표상 부채는 D1도, D2도 D3도 아니다. 그냥 국가 대차대조표의 부채액의 총합이다. 재무제표상 부채액이 매년 기록되고 갱신됨에도 별도로 D1, D2, D3라는 국가부채 기준을 만들고 활용하는 이유부터 생각해 보자.
모든 기업의 재무건전성은 부채비율로 일원화하여 평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부채비율은 약 40%다. 2022년 코스피 상장사 부채 비율 평균은 100%가 좀 넘는다. 이 정도면 안정적이다. IMF 직전 우리나라 기업 부채비율은 400%가 넘었다. 대우는 무려 1000%가 넘었다. 어떤 기업의 부채비율이 400%를 넘어가면 투자자들은 불안해한다. 그런데 국민은행 부채비율은 얼마일까? 무려 1400%가 넘는다. 그럼 “국민은행 부채비율, IMF 직전 대우보다 높아!… 국민은행 직원 1인당 부채액 280억 원” 이런 기사가 나올 수 있을까? 만약 이런 기사가 전체 언론을 도배하면 국민은행은 실제로 망할 수도 있다. 뱅크런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기사는 자기실현적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안심해도 된다. 국민은행 부채의 대부분은 ‘예수부채’다. 즉, 우리가 국민은행에 맡긴 예금을 부채로 인식해서 계상해놓은 부채다. 상식적으로 우리가 은행에 저축하면 은행입장에서는 언젠가 돌려 줄 돈이니 회계적으로는 부채가 맞다. 즉, 국민은행이 영업을 잘해서 예금이 늘어날수록 예수부채가 증가한다. 회계의 원칙은 부채와 자산을 퉁치지(상계하지) 않고 양쪽 모두에 계상하는 것이다. 국민은행 예수부채는 380조원 이지만, 현금과 대출채권이 400조원 존재한다. 이 정도면 매우 안정적인 재무구조다. 국민은행 부채비율이 높은 이유는 금융회사의 재무적 특징에 불과하다.
그래서 금융회사의 재무안정성을 평가하는 기준은 부채비율이 아니다. 보통 BIS 비율(자기자본 비율)을 쓴다. 전 세계 금융전문가들이 이미 금융회사의 재무건전성을 평가하는 기준인 BIS비율을 만들었다. 실제로 BIS 비율을 통해 금융회사의 재무건전성을 평가해왔다. 국민은행 BIS 비율은 18%다. 안심해도 될 만큼 건전하다. 그래서 굳이 국민은행 재무제표상 부채액을 보고 “국민은행 부채액 사상최초, 사상최대 484조 원!… 우리나라 GDP 40% 초과” 이런 식의 기사는 나오지 않는다. 데스크에서 거르기 때문이다. 물론 데스크에서 거르지 않아도 시장 참여자들은 저런 현혹되기는커녕 저런 기사를 쓴 언론사를 비판한다.
국가의 재무제표상 부채도 마찬가지다. 금융회사의 특징이 있듯이 국가가 가진 특징으로 재무제표상 부채액을 통해 국가의 재정건전성을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전 세계 재정전문가들이 이미 국가의 재정건전성을 평가하는 기준인 국가채무(D1), 일반정부부채(D2)를 만들었다. 실제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모든 나라가 잘 쓰고 있다. 그런데 굳이 재무제표에 있는 부채액인 2326조 원이라는 숫자를 찾아서 우리나라 국가부채가 2326조 원이라는 오보를 내놓는다. 이런 기사는 데스크에서 걸러야 한다. 그러나 이런 개념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도 다른 언론사가 쓰니깐 나도 쓴다. 다른 언론사가 틀렸다고 해도 나도 틀릴 필요는 없다.
왜 재무제표상 부채액으로는 재정 건전성을 파악하기 어렵고 국가간 비교가능성이 없을까? 우리나라 재무제표상 부채액의 절반은 연금충당부채다. 정확히 말하면 공무원 및 군인 연금충당부채다. 그리고 연금충당부채의 대부분은 연금가입자인 공무원이 본인이 낸 기여금이다. 다시 말하지만, 회계의 기본은 자산과 부채를 퉁치지 않는 것이다. 공무원이 자신의 노후를 위해 연금에 많은 돈을 낼수록 연금충당부채가 커지게 된다. 국민은행 예수부채와 비슷한 구조다. 그래서 공무원연금기금 건전성을 위해 중요한 잣대는 연금수지 적자 4조 원이지 공무원연금 충당부채 1000조 원이 아니다. 그런데 연금충당부채 1000조 원을 강조하면 연금수지 적자 4조 원에 대해서는 오히려 무감각 해질 수 있다. 그리고 이미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공무원연금 수익비는 국민연금과 비슷해졌다.
또한, 재무제표상 부채액은 국제 비교 가능성이 거의 없다. 각 국가마다 연금제도 운용 형식이 다르다. 똑같이 은퇴자에 100만 원을 주는 두 나라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를 기금형태로 주면 충당부채 1000조 원이 생긴다. 반면 이를 예산 형태로 주면 충당부채가 인식되지 않는다. 즉, 경제적 실질은 동일해도 법적 형식에 따라 국가부채 규모 수천조원이 추가로 인식될 수 있으니 국가간 비교가능성이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매년 결산 결과를 발표할 때마다 이런 잘못된 기사는 반복되어 왔다. 그런데 올해는 유독 심한 이유는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 매년 정부는 결산 자료를 발표할 때마다 재무제표상 부채의 의미를 나름 상세하게 설명해 왔다. 그런데 올해는 유독 재무제표상 부채를 국가부채로 오독하게끔 보도자료를 작성했다. 그러니 올해 잘못된 기사 책임의 일부는 정부에게도 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미디어오늘
한국 부자가 꼽은 유망 투자처는…단기 ‘예적금’·중장기 ‘부동산
부자 47% “자산운용 최대 위험요인, 금리 인상”
3년간 고수익 예상 투자처 '거주용 외 주택' 43%
'가상자산 투자' 비중 7.8%…70%는 손실 경험
ⓒ 한국금융신문
"휴전선 너머 상대의 마음을 훔쳐라"… 대통령도 가세한 남북 심리전
탈북자 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회원들이 2014년 10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통일동산주차장에서 날린 대북 전단 풍선이 높이 날아가지 못하고 터져 전단 내용물이 남쪽으로 쏟아지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일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언급한 낯선 용어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대응 심리전'이라는 표현이었죠. 심리전은 '적군이나 상대국 국민을 심리적으로 자극하거나 압력을 줘 정치·외교·군사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것'(표준국어대사전)을 뜻하는데요. 우리 국민을 상대로 하라는 대통령의 발언에 "반공 교육을 다시 하겠다는 얘기냐"라는 비판이 나왔죠. 우리 사회에는 트라우마도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사령부가 여론 개입을 위해 벌인 '댓글 사건' 때문이죠.
통일부는 바로 해명했습니다. "최근 간첩사건 등 북한의 불순한 기도에 우리 국민이 현혹되지 않게 통일부가 심리전 대응을 잘해야 한다는 뜻"이라는 건데요. 북한의 대남 심리전 동향이 심상치 않으니 잘 대응하라는 취지였다는 겁니다.
이처럼 물밑에서는 남북의 심리전이 치열합니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앞세워 끝없이 무력시위를 벌이며 도발을 일삼는 것이 전부는 아니죠. 특히 1945년 해방 이후 시작된 심리전은 현대사의 질곡 속에 양태를 바꿔 가며 계속되고 있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직접 맞대고 싸울 수 없으니 심리전으로 휴전선 너머 상대의 마음을 훔치려는 것이죠.
화력전만큼 치열했던 6·25의 '삐라 전쟁'
남북 간 심리전이 본격화한 건 1950년 6·25전쟁 때부터였습니다. 3년간 국군·유엔군 17만여 명, 북한군·중공군 78만여 명이 전사한 지독한 열전이었죠. 전투에서 위력을 뿜은 건 탱크, 전투기, 소총 등 병기만이 아니었습니다. '삐라'(심리 전단지) 전쟁도 치열했죠. 전화 속에 국군과 유엔군은 삐라 25억 장, 북한군과 중공군은 3억 장을 뿌린 것으로 추산됩니다.
포성이 멈춘 뒤에도 심리전은 치열하게 전개됩니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북한이 주도권을 잡았죠.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북한의 경제력이 남한을 앞섰던 시기라 체제 선전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북한이 남쪽으로 날린 삐라에는 '장병들이 월북하면 직업·직장 알선, 고급주택 무상 배정, 1억 원이 넘는 생활보장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우리가 북한으로 날렸던 심리 전단물. 한국일보 자료사진
하지만 우리도 '한강의 기적' 덕에 경제 수준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심리전의 주도권을 빼앗아 왔습니다. 정부는 '물포 작전'(생필품을 담은 풍선을 북한에 띄워 보내는 것)도 벌였죠. 라면, 과자, 사탕 등 먹거리와 담배 등 기호품, 시계 같은 물건을 날려 보낸 겁니다.
체제 대결에서 완벽히 승리한 1990년대 이후 우리의 심리전은 북한에 공포의 대상이 됐습니다. 대북 라디오와 최전방의 확성기·전광판, 전단 등이 '주요 무기'였습니다. "북한이 미군 전략 폭격기보다 우리 확성기를 더 무서워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죠. 탈북민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북한 주민들은 자신의 삶과 외부 세계를 비교할 정보가 없어 극심한 사회 통제와 정치 박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습니다. 순종적인 주민들이 대북 방송 등을 듣고 현실을 자각해 돌변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북한 지도부를 떨게 만든 요인이었죠.
2015년 北 목함 지뢰 도발에 '확성기' 대응…유감 표명 이끌어 내
최근까지도 가장 위력을 발휘한 심리전 도구는 대북 확성기입니다. 고전적 방식이죠. 처음 전방에 설치된 게 1962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성능과 내용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조용한 밤에는 전방에서 20~30㎞ 떨어진 지역까지 소리가 들린다고 합니다. 내보내는 내용도 다양하죠. 북한 체제 비판과 남한의 우월성 홍보뿐 아니라 감미로운 K팝으로 북한 주민의 마음을 사로잡고, 정확한 일기예보로 신뢰를 쌓기도 합니다. 한때는 "북한 접경 지역 농민들이 대북 방송을 듣고 농사를 짓는다"는 얘기가 돌았죠.
2004년 6월 서부전선 무력부대 오두산전망대에서 군인들이 대북 확성기를 철거하는 모습. 연합뉴스
우리 정부는 북한과 대화교류가 이어지던 2004년 대북 확성기 방송과 전광판 운영을 중단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확성 방송은 재개와 중단을 거듭하며 북한 정권을 괴롭혔죠. 예컨대 2015년 북한이 비무장지대(DMZ) 목함 지뢰 도발을 하자 박근혜 정부는 대북 확성기를 다시 켰어요. '철부지 김정은',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해야 할 독재자' 등 수위 높은 표현을 퍼붓자 북한은 "철거하지 않으면 군사행동에 나서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멈추지 않자 북한이 먼저 대화를 제안했고, 이례적으로 공식 유감을 표명하는 대신 우리 측은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기로 했죠.
尹 정부의 '북한 인권' 강조, 심리전으로 볼 여지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판문점 선언을 통해 남북 정상이 상호 작대행위 중지를 약속했고, 이후 남북교류협력법을 개정해 대북 전단 살포 시 처벌 조항을 만들었습니다. 평화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한 조치였는데요. 이 여파로 대북 심리전은 축소됐죠.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심리전이 기지개를 펴는 모양새입니다.
북한 전문가들은 대북 심리전의 1차 타깃은 '장마당 세대'(1980~1990년대생)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린 시절인 1990년대 '고난의 행군'(북한 내 최악의 식량·경제난)과 장마당(시장)을 경험한 세대죠. 사회주의식 배급제보다 시장경제에 익숙했고, 유년 시절에 굶어 죽는 사람들을 여럿 목격해 체제 충성도가 떨어진다는 분석입니다. 지금 군복무 중인 젊은 장교 중 상당수가 장마당 세대이죠.
지난달 3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북한 인권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과 북한 여성 인권 사진 전시회에서 참석자들이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최근 정부가 북한 인권을 강조하는 것도 장마당 세대 등 북한 주민을 겨냥한 심리전으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인권 문제는 김정은 정권이 극도로 예민해하는 '아킬레스건'이죠.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북한 인권 실상과 정치 상황을 우리 국민에 잘 알리고 더 나아가 북한 주민들에게도 정확히 공유할 수 있게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안 센터장은 "북한 주민들에게 '너희가 당하는 인권 탄압은 정상이 아니야'라는 메시지를 보낸다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북한 주민들이 사용하는 휴대전화 수는 약 700만 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 때문에 접경 등을 통해 인권 정보가 유입되면 북한 전역으로 퍼질 수 있다는 것이죠.
통일부는 또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대북 전단 살포를 재개할 수 있는지 법률 검토하고 있습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해 말 북한이 무인기 도발을 해 오자 "다시 도발하면 9·19 군사합의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한 바 있죠.
민간 차원의 대북 심리전도 활발합니다. 탈북민 단체 '북한자유화캠페인'은 지난 9일 대북 전단 12만 장과 이동식저장장치(USB) 3,000개를 대형 풍선 12개에 실어 북한에 실어 보냈다고 밝혔습니다. 또,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재단도 플라스틱 물병에 생필품과 USB를 담아 강물에 띄워 보내는 방식으로 북한에 유입시켰죠. USB에는 '사랑의 불시착', '탑건', '타이타닉' 등 국내외 드라마와 영화 등이 담겼어요. 북한은 남한 콘텐츠 등을 유포하면 강하게 처벌하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2020년 만들었는데요. 장마당 세대 중 상당수는 처벌 가능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 드라마와 음악을 몰래 즐기고 있다고 합니다.
공안당국의 간첩단 수사…정당 간부 국보법 위반 혐의 기소
북한도 대남 심리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체제 우월성을 대놓고 선전하는 방식으로는 우리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기 어려워졌죠. 대신 온라인 공간에서 은연중에 남한을 비난하거나 북한을 살 만한 공간으로 묘사하는 '사이버 심리전'에 주력합니다. 심리전 전문가인 이윤규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북한 정권이 관여하는 대남 선전 사이트가 100개가 넘는다”고 말했습니다.
유튜브도 심리전의 전장이 됐습니다. 북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풍요로운' 평양 일상을 보여주는 채널이 등장했죠. 올해 1월과 6월 각각 개설한 '송아 채널'과 '유미의 공간'이 대표적인데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여성이 무용, 개인 트레이닝(PT)을 배우거나 불고기 '먹방'을 찍고, 호화 워터파크와 유원지에서 노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일부 특권층만 누릴 수 있는 생활을 평양의 일상인 것처럼 선전하는 것이죠. 이 모든 게 김정은 국무위원장 덕분임을 강조합니다.
또, 지하조직을 활용한 대남 공작도 최근 공안당국의 수사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검찰은 최근 제주 지역에서 활동한 한 진보 정당의 전현직 간부 등 3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는데요. 이들은 이적 단체인 'ㅎㄱㅎ'을 조직해 북한 지령에 따라 '전국민중대회' 등 반정부 활동을 선동한 혐의 등을 받고 있죠.
여전히 휴전 상태인 우리에게 대북 심리전은 필요악입니다. 다만 상대방을 과도하게 자극하거나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 할 땐 역효과가 발생했죠. 심리전에 '진심'인 현 정부가 유념해야 할 대목입니다.
유대근 기자 dynamic@hankookilbo.com
윤 대통령님, '살인범'으로부터 국민 지키려 한 게 불법입니까
동해 탈북어민 북송 사건 재판 시작... 무엇이 진짜 정부 역할인지, 합리적 판단 나오길
2019년 10월 동해 바다. 불빛 한 점 없었을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엽기적인 살인이 시작됩니다. 영화 속 이야기라 해도, 보는 이들이 비웃을 상상 이상의 릴레이 살인이었습니다. 살인 장소는 8월 중순 김책항을 출항해 러시아와 북한 해역을 돌며 고기잡이를 하던 배 위였습니다. 길이 16m, 폭 3.7m, 무게 17톤짜리 배 위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
살인자는 모두 3명이었습니다. 피해자는 무려 16명, 두달 가까이 같은 배에서 함께 생활했던 동료들이 이들 3명의 손에 의해 차례로 죽어 나갔습니다. 한창 단잠에 빠져 있던 이들은 교대 근무를 하라는 소리에 일어나 나왔다가 도끼와 망치 등에 의해 차례로 살해당했습니다. 갑자기, 함께 일하던 이들의 손에 죽어나간 이들은 끔찍한 살인의 이유나 알았을까요?
이들은 범죄 후 북한에서도 자강도에 숨어 들자고 계획합니다. 그러나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잠시 머문 김책항에서 공범 중 1명이 북한 당국에 의해 체포되었기 때문입니다.
붙잡힌 공범을 버리고 다시 바다로 도주한 이들의 소식은 우리 대한민국 군의 첩보에도 들어옵니다. 윤석열 정부에 의해 온 국민이 알게 된 소위 SI를 통한 첩보였습니다.
공범의 체포로 인해 가려던 목적지로 갈 수 없게 된 배는 바다 위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듯 했습니다. 그러다 동해 NLL을 넘어와 우리 해군과 조우하게 된 것이 10월 31일의 일입니다. 대한민국 해군과 처음 만난 이들은 구조 신호를 보내지도 않았습니다. 명백한 귀순 의사를 밝히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이들은 NLL 남방 20해리 부근에서 이들은 우리 해군에 의해 붙잡혔습니다. 여기까지가 소위 '동해 탈북어민 북송 사건'의 시작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말 한 마디로 시작된 수사
▲ 북송을 거부하며 몸부림치는 탈북어민 통일부는 지난 2019년 11월 판문점에서 탈북어민 2명을 북한으로 송환하던 당시 촬영한 사진을 12일 공개했다. 당시 정부는 북한 선원 2명이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해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했다. 사진은 탈북어민이 몸부림치며 북송을 거부하는 모습. 2022.7.12ⓒ 통일부 제공
그리고 이 사건은 정부가 바뀌자 갑자기 수사기관의 수사 대상에 올랐습니다. "많은 국민이 의아해하고 문제 제기를 많이 해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 한마디(2022.6.21.)로 시작된 수사였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소환 조사를 받았습니다. 검찰은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의 고위직들을 대거 기소했습니다.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 서훈 전 국정원장,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이 그들입니다.
만약 국내에서 벌어졌다면 온 국민이 한동안 공포에 떨었을, 끔찍한 사건의 범죄자들을 북한으로 추방한 것이 죄가 된다는 이유입니다.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과 관련된 종합적 판단을 법조문을 들이대 단죄할 수 있다는, 참 흔치 않은 사건에 대한 재판이 지난 14일 시작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따져보려 합니다. 당시 안보기관 책임자의 판단이 정말 틀렸던 것일까요?
흉악범죄자 추방이라는 결론에 앞선 문재인 정부의 판단 기준 세 가지
살인자였던 2명은 일반적인 탈북자와 완전히 다른 상황과 과정, 경로로 우리 정부에 의해 체포되었습니다.
일반적인 귀순자들의 경우 귀순 이후 합동신문의 과정을 거칩니다. 귀순의 의사가 진정성이 있는지, 혹 대공 혐의점은 없는지, 즉 간첩이 탈북자로 위장한 것은 아닌지 등을 조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런 보통의 탈북자들과는 다른 조건 속에 들어왔기에 판단이 필요했습니다. 세 가지 질문을 놓고 차분히 하나씩 사실관계를 확인해 나갔습니다.
1. 그 배에 탄 사람들이 그 흉악범들이 맞는가?
2. 그 흉악범들이라면 이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대한민국이 수용할 경우 우리 사회와 국민의 안전에 위험요소가 되지 않겠는가?
3. 이들은 귀순자인가?
1번 질문의 답 'SI 첩보와 일치한 당사자의 증언'
우리 군이 사전에 파악하고 있던 첩보 속 인물이 이들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범행을 부인하던 이들은 2명을 분리 심문하니 범행을 자백했습니다. 사전에 SI로 취득한 첩보와 한 사람 한 사람의 진술 즉, 3개의 정황과 단서가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자고 있던 동료 2명씩을 교대시간이라며 30분 단위로 깨워 불러내 도끼로 무참하게 살해했다.' '그렇게 죽이고 나니 해가 뜨더라.'
그들의 입에서 나온 증언입니다.
2번 질문의 답 '국내법으로 처벌은 사실상 불가능'
▲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왼쪽부터),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윤석열정권정치탄압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및 흉악범죄자 추방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이들을 이탈주민으로 수용할 경우 대한민국 법률로 처벌이 가능한지가 관건이었습니다. 다각도로 검토했지만, 이들을 우리 국민과 격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SI 첩보 내용과 두 사람의 진술은 존재하지만, 이들이 법정에서 진술을 뒤집거나 묵비권을 행사하면 이들을 처벌할 '증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한밤중 망망대해에서 동료들을 죽인 것도 모자라 이들을 바다에 던지고, 핏자국을 씻어내고, 심지어 페인트칠까지 다시 하고 배 번호까지 바꿨습니다.
시체도 없고, 혈흔도 없고, 설사 혈흔을 어찌어찌 찾아낸다 해도, 그 혈흔이 피해자 것인지 가해자 것인지 대조할 DNA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심지어 희생자의 정확한 이름, 주소, 나이, 주민등록번호까지, 아무것도 입증할 수도 없었습니다. 특히 북한이 협조할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면 설사 기소를 한다 해도, 유죄 판결이 내려질 확률은 사실상 0에 가까웠습니다. 그 얘기는 결국 이들이 우리 국민 속으로 들어가 국민과 함께 살게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 상황을 고려한 판단이 필요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의 안전이었기 때문입니다.
3번 질문의 답 '귀순 의사가 있다면 왜 곧바로 오지 않았나?'
합동 신문 과정에서 밝힌 그들의 '귀순 의사'에 대한 판단도 중요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귀순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는 것이 당시의 판단이었습니다.
만약 이들이 범행 직후 자강도행을 고민하지 않고, 김책항에 들러 그동안 잡은 물고기 등을 팔 생각을 하지 않고, 곧바로 남측으로 넘어왔다면 어땠을까요?
우리 당국이 그들의 범죄 행위를 사전에 파악하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들이 스스로 합동 신문 과정에서 자신들의 범죄를 밝히지 않는 한, 다른 일반적인 탈북자들처럼 일반적인 과정을 거쳐 정착지원금과 임대아파트까지 지원받으며 우리 사회로 들어왔을 것입니다.
이들의 범죄 행각을 우리 정부가 알게 된 것은 이들이 애초부터 남한행을 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보를 처음 파악한 것은 북한군이 이들을 추격하기 시작하면서입니다.
윤석열 정부의 검찰은 이들에 대한 조사가 불충분했다고 관계자들을 법정에 세웠습니다. 대체 잔인한 범죄자들이 도주 끝에 남측으로 온, 지극히 단순한 일에 대한 조사가 대체 얼마만큼 벌어졌어야 '합법적'인 것이 됩니까?
북한 당국이 간첩을 내려보내면서, 굳이 16명을 죽이고, 심지어 공범 한 명이 다시 붙잡히는 쇼까지 해서, 탈북자로 위장해 내려보낸다는 말입니까? 우리 국민 위해 흉악범죄자 추방한 것이 '불법'이라면 그 법이 문제 아닙니까
다시, 검찰과 윤석열 정부에 묻습니다.
경계선을 넘기 전부터 이미 극악무도한 범죄 행위를 파악한 북한 흉악범을, 흉악범인 줄 뻔히 알면서 받아들여, 유죄 가능성은 0에 가까운 법정에 굳이 세웠다가, 우리 국민 곁에서 살게 하는 결정을 했어야 그것이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것입니까?
정말 그랬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우리 법률이라면, 그 법률이 문제입니까? 당시 판단이 문제입니까?
3중으로 범죄 혐의가 확실한데도, 대한민국의 법으로는 사회 격리를 할 수 없는 흉악범들, 국제 난민규정도 용납하지 않는 흉악범들을 받아들이는 행위야말로 위헌적이고 무책임하며, 국제법적으로도 야만적인 행위 아닙니까.
오히려 현 정부야말로 전임 정부를 괴롭히겠다는 목적 하나에 눈이 멀어, 안보 관련 정책 판단까지 들쑤셔 정치 보복의 도구로 쓰고 있습니다. 이제 첫발을 뗀 재판에서만이라도 무엇이 진짜 정부의 역할이었는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 오마이뉴스
야훼-이미 살인마라는게 수없이 증명되었는데 아직도 우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무리 증거를 백개천개 보여줘도 팩트를 인정하지 못하는 인지부조화 상태인거임
https://news.v.daum.net/v/20220714194034891
북송어민 2명, 당시 조사 때 '연쇄살인' 인정했었다
저희가 2019년 당시 어민 2명의 '합동 심문' 내용을 파악했습니다. 2명 모두 '연쇄살인'을 인정했습니다. "인생 망칠까 봐 다 죽였다"며 범행 동기를 상세히 털어놨다고 합니다. 국회에 제출된 보고서에도 범행 도구와 순서까지 자세히 적혀 있었습니다.
2019년 11월 2일 북한 어선이 우리 군에 나포된 직후 정부는 북한 어민 2명을 대상으로 합동 심문을 진행했습니다.
합동 심문은 국정원 주도로 군과 경찰이 함께 조사하는 과정입니다.
또, "두 사람을 분리해서 심문했는데도 범행 수법 등을 자세히 진술했고 그 내용이 서로 일치했다"
https://v.daum.net/v/20220725175101142?x_trkm=t
"탈북 어민 북송, UN사 승인 받았다" 한마디에 무너진 국힘..하태경 '당황'
- 탈북 어민 북송 문제 질문 드리겠다. 북송을 하려면 판문점을 통과해야 하고, 그 지역 관할권은 UN사(유엔군사령부)에 있지 않나? 그러면 UN사 승인을 거쳐야 됐던 것 아닌가?
"네, 승인을 거쳐야 들어갈 수 있다."
- 그러면 UN사가 당시 승인을 했나?
"네, 그것은 UN사가 승인한 것으로 저희가 확인했다."
- UN사가 승인을 했다고?
"네, 그렇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답변하자,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집권여당과 다수 보수 언론이 제기한 의혹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이후 하 의원은 권영세 통일부 장관에게도 "민간인을 북으로 보낼 때 UN사의 승인을 얻는 절차를 통일부가 진행하느냐?"라고 물었다. 권 장관은 "네, 그렇다"라며 "군인인 경우에는 국방부가 주도하고, 민간인의 경우에 있어서는 통일부가 주도하게 된다"라고 답했다.
하 의원이 "당시 통일부가 그걸 UN사의 승인을 얻었느냐?"라고 질문하자, 권 장관은 "UN사 승인을 받은 것으로 안다"라고 답했다. "승인을 받았느냐?"라고 되물었으나, 권 장관은 "네, 네"라고 재차 승인 사실을 확인했다.
이태원 참사가 드러낸 ‘피해자 주변주의’의 민낯
<미안해, 기억할게> 36명 희생자 가정 모아보니
참사에 ‘피해자 중심 주의’ 전혀 지켜지지 않아
2022년 10월31일 정부가 국가 애도기간에 설치한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 쪽 분향소에 ‘이태원 사고 사망자’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희생자들의 위패와 영정은 없었다. 공동취재사진
송은지의 아버지 송후봉씨는 참사 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아졌다. 그의 머릿속을 꽉 채우는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
“은지가 왜 참사 뒤 18시간이나 지나서 경기도 평택까지 갔는지, 유가족이 왜 맨땅에 헤딩하듯 여러 병원을 애타게 돌아다녀야 했는지, 참사 후 국가에서 왜 유가족에게 아무런 연락도 없었는지, 55일 활동한 국정조사 결과를 어째서 언론을 통해서만 알아야 하는지….” 은지의 아버지는 정부에, 경찰에 수없이 물었으나 대답을 듣지 못했다.
송후봉씨의 질문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삶을 추모하는 연재기사 <미안해, 기억할게>로 만난 36명 희생자 가정의 문제의식을 압축해 보여준다. 정부는 참사 때마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조하지만, 실상은 피해자들이 재난 수습과 회복의 전 과정에서 주변으로 밀려났다. <미안해, 기억할게>에서 유가족들이 제기한 쟁점을 <한겨레21>이 모으고 취재했다.
1. 거대한 정보격차
“새벽 3시께 원효로체육관에서 신랑을 발견했어요. 경찰이 ‘지금은 데려갈 수 없으니 나중에 연락주겠다’고 해서 일단 집에 왔는데 뉴스 보니까 병원으로 옮겼다는 거예요. 경찰은 어디로 옮긴지도 모르고… 다음날 오후3시까지 신랑을 못 찾았어요.”(최재혁의 아내 김아리씨)
2022년 10월29일 밤은 가족들이 희생자를 찾아 “미친 듯 오갔던” 시간이다. 수많은 희생자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순천향대병원으로, 임시영안소인 원효로체육관으로, 또다시 수도권 40여 개 병원으로 흩어져 이송됐다. 소방당국이 사태 초기에 상황을 오판해 희생자·부상자 80여 명을 순천향대병원으로 대거 이송했다가 병원이 마비되자 다시 수용할 곳을 찾아다니며 우왕좌왕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희생자의 이송 상황을 가족에게 안내하는 컨트롤타워는 없었다. 가족과 친척들은 희생자를 찾기 위해 가까운 병원부터 일일이 들러야 했다.
가족들은 왜 희생자가 이곳저곳을 전전하고 수도권 각지의 병원으로 흩어졌는지 알고자 했다. 그러나 각 기관은 참사 2개월이 되도록 아무런 답변을 않다 2022년 12월29일 국정조사에서야 가족이 아닌 국회의원에게 그 배경을 설명했다. “시신이 길거리에 누운 모습이 시민들에게 트라우마를 일으킬 수 있어 일단 임시안치소(원효로체육관)를 설치했고 상황이 어느 정도 수습되자 영안실로 모셨다”(김의승 서울시 1부시장)는 것이다.
2022년 12월 권진아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책임 연구원 등이 발표한 ‘대규모 사회재난시 피해자 지원체계 개선방안’ 보고서를 보면, 과거 재난 때도 사고 현장으로 뛰어온 피해자 가족들에게 구조 상황을 전달하는, 소위 ‘현장 접수 센터’가 없었다. 소방당국은 지방자치단체에 사상자 수색 경과를 제대로 공유하지 않았고 지자체는 직원들끼리 역할 분담을 하는 데 오랜 시간을 소요했다. 권 연구원은 “지자체 공무원들이 순환보직인데다 재난 경험도 별로 없어 실제 재난 때 우왕좌왕하곤 했다” 고 보고서에서 분석했다.
2. 대답 없는 질문
“의사에게 ‘(딸아이) 심폐소생술은 했냐’고 물었더니 ‘아마 했을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어요. 딸의 검안서에 적힌 사망시각이 2022년 10월30일 자정이어서 ‘이 시각에 숨진 게 맞냐’고 물으니 ‘돌아가신 분들은 일괄적으로 0시로 적었다’고 하더군요.”(김산하의 아버지)
가족들은 희생자 각각의 세부적인 사망 경위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희생자들의 구조 과정이 제각기 달랐음에도 병원들은 사망 장소와 사망 시각을 ‘이태원 해밀톤호텔 앞 노상, 0시 추정(혹은 10시15분 이전 추정)’으로 일괄 작성한 검안서를 발급했다.
사라진 그날 밤의 행적을 가족들이 직접 복원하러 나섰다. 오지연의 어머니는 어렵사리 지연을 옮긴 구급차량의 번호판을 확인해 구급대원과 통화를 시도했다. 은지의 아버지 송후봉씨는 딸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참사 영상을 수십번씩 돌려봤다. 그러나 그날 밤 희생자들이 각각 어떤 경로로 이동했고 어떤 응급조치를 받았는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사상자가 다수인 참사에서 개개인의 인적 정보를 전부 다 알기는 어렵겠지요. 그렇더라도 정부가 유가족의 질문을 듣고 최대한 알아봤어야 합니다. 희생자의 마지막을 얼마나 이해하느냐에 따라 가족들이 평생의 트라우마를 안고 가기도 해요. 이걸 유가족이 직접 알아보도록 두는 건 모두의 상처를 덧나게 하는 일입니다.”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피해자권리위원회의 박성현 활동가가 말했다.
일부 희생자는 옷이 완전히 벗겨진 채 가족을 만나기도 했다. 왜 희생자의 옷이 벗겨져 있었을까. “검시하거나 응급처치를 할 때 통상 변사자를 탈의한다. 검시 종료 뒤 옷을 도로 입히면 2차 손상이 있을 수 있어 도포로 덮은 뒤 유가족에게 인계한다.” 조대희 경찰청 과학수사계장이 3월28일 신현영 의원실이 개최한 ‘피해자 중심 재난대응 체계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패널들에게 설명한 내용이다. 병원에 도착한 희생자의 몸을 검사나 의사가 살펴보는 과정에서 옷을 탈의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참사 후 수개월이 지나도록 이런 사실을 유족에게 제대로 설명한 기관은 없었다. 조 계장은 ‘이런 사실을 유족에게 설명했느냐’라는 송경용 생명안전시민넷 대표의 질문에 “국회에서 다 밝혔다”고 말했다. 송 대표가 “아니, 국회 말고 유족들에게 직접 해달라”고 하자 조 계장은 “필요하다면”이라고 답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회의가 2023년 3월28일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에게 진상규명 서명을 요청하고 있다. 시민대책회의 제공
3. 가해자가 된 공무원
“그날 밤 이태원 가는 지하철이 다 끊겨서 아버지가 경찰에게 응급실 이송을 부탁했는데 거절당했어요. 1:1 매칭 공무원은 제가 직접 전화로 수소문했고 7시간이나 지나서야 연락이 왔어요.”(유연주의 언니 정씨)
참사 이튿날인 10월30일, 윤석열 대통령은 유가족과 공무원을 1:1 매칭해 “필요한 지원을 빈틈없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병원은 희생자를 수습해 집으로 데려가려는 가족들을 반나절씩 대기시켰고 경찰은 진술을 받겠다며 가족들을 경찰서로 수시로 불렀다. 희생자를 먼저 이송한 뒤 인계받는 병원에서 검안서를 발급하거나, 형사가 검시서를 직접 가져다주는 등의 행정 지원을 할 수도 있었지만 이런 조처는 없었다. 각 지자체가 재난안전법에 따라 수립하는 매뉴얼은 공통적으로 장례와 병원 이송, 심리상담기관 연결 등을 유가족 전담 공무원의 몫이라고 규정한다.
이들의 주된 역할은 따로 있었다. 바로 장례비 지원 절차를 안내하는 것이다. “상중에 무슨 구청, 시청 다 전화 와서 ‘장례비 지원해줄 테니 영수증 챙기라’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라’ 그랬다. 그런 전화가 발인하고도 또 왔기에 제가 ‘당신 같으면 지금 그러고 싶겠냐’고 하니까 ‘죄송하다, 행정안전부가 집행을 서두르라고 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오지연의 아버지)
1:1 공무원에게 배포된 교육자료부터 재정 지원 위주로 적혀 있었다. <한겨레21>이 확보한 12장 분량의 서울시의 ‘이태원사고 사망자 유족지원계획 직원 교육자료’를 보면, 1:1 공무원의 주된 업무는 ‘유가족 생활안정금 지급’ ‘장례비 지급’ 등 주로 재정 지원 안내였다. 첨부자료로 덧붙인 ‘이태원사고 관련 FAQ’도 질문의 절반 이상이 장례비 지원 관련이었다. 형식적으론 1:1 공무원의 역할이 ‘유가족과의 소통을 제일 우선해 가족의 요구사항을 수시로 파악하고 신속하게 해결’(직원 교육자료 중)하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금전 지원을 제외한 나머지 지원 업무는 안내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4. ‘혐오’를 조장한 정부
“저희가 잘못했대요. 차라리 그날 저도 (하늘나라로) 갔으면 이런 트라우마도 안 겪었을 텐데….”(참사 생존자가 양희준의 누나 현아씨에게)
정부의 책임 회피는 유가족을 향한 혐오세력의 공격을 부추겼다. ‘이태원 참사’를 ‘이태원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로 부르도록 호칭을 통일했고 “경찰 병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10월30일) 등 책임 회피성 발언이 이어졌다. 이에 가세해 보수 정치인들이 공개적으로 혐오발언을 했고 언론은 이를 제목에 그대로 인용해 실어날랐다. 극우단체인 신자유연대는 분향소 앞에서 유가족을 모욕하는 생방송을 송출하고 후원비를 받았다. 2022년 12월14일, 참사 생존자 이재현군이 숨졌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좀더 굳건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연구팀은 2020년 세월호 참사 관련 언론보도 등을 분석해 펴낸 ‘재난 피해자 혐오표현에 관한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재난 피해자 혐오의 확산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참사 초기엔 인터넷 공간에서 반인륜적 증오 표현으로 시작됐다. 그러다 기존 헤게모니 유지에 위기를 느낀 정치인들이 공식석상에서 혐오표현을 하고 보수단체가 정부 지원을 받아 반대 집회를 개최했다. 언론은 혐오표현을 그대로 인용해 널리 확산시켰다. 무엇보다 재난 피해자를 향한 혐오표현이 중대한 인권 침해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부족했고 이를 규제할 공적 장치도 마련되지 않았다.”
서울에 함박눈이 내린 지난해 12월15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이태원광장에 보수단체 신자유연대가 걸어놓은 펼침막과 스피커를 단 차가 주차되어 있다. 곽진산 기자
5. 사회적 참사에 대한 인식
“예전에는 재난을 자연재해로만 생각해서 재난 수습을 피해자에게 시혜적으로 베푸는 행위로 인식했다. 그 인식이 계속 이어지니 사회적 참사가 더 많아진 지금도 공무원이 재난 피해자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을 잘 못한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사무처장으로 활동한 오지원 변호사(법률사무소 법과치유)의 지적이다. 그는 피해자 권리와 지원 체계를 명시한 ‘생명안전기본법’의 제정을 주장하고 있다. 현행 재난및안전관리기본법이 재난 피해자 권리를 배제한 채 재난 수습만을 주로 다루고 있어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2020년 11월 우원식 의원이 대표발의한 생명안전기본법은 2021년 한 차례 소위원회에서만 논의됐다. 이에 4·16재단 등 시민단체들은 입법을 위한 운동본부를 꾸리고 4월5일부터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할 예정이다.
“지금처럼 피해자 지원체계가 완전히 공백인 상태에서는 재난 때마다 피해자가 (필요한 것을) 직접 요구해야 한다. 이대로 계속 갈 수 없다. 국민이 재난을 겪었을 때 당연히 가지는 권리를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 오 변호사의 말이다.
2023년 4월6일 서울 광장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159일 시민추모대회’에서 세월호 유가족으로 구성된 ‘4·16 세월호 합창단’이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위로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박승화 선임기자
한겨레21 신다은기자
수탈이냐 근대화냐, 민족주의자 신용하와 탈민족주의자 이영훈의 논쟁
누구를 위한 '역사전쟁'인가 (中)
신친일파'들의 주요 논리 가운데 하나가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변화와 개혁의 동력을 잃은 조선 왕조를 쓰러뜨린 일본의 식민 통치를 거치면서 조선이 근대화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연구자들은 (학교가 많이 들어섰다느니, 철로의 길이가 길어졌다느니 하는) 통계 숫자 뒤에 가려진 식민지 근대화의 어두운 그늘을 거듭 지적해왔다. 그래서 이들은 묻는다. "누구를 위한 근대화였는가?"
<반일 종족주의>의 대표필자 이영훈과 고교와 대학(경북고, 서울대 경제학과) 동기인 허수열(전 충남대교수, 토지경제학)도 그런 물음을 던진 연구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오래 전부터 일제의 농업개발을 통한 '식민지 근대화론'을 실증적으로 비판해온 그는 일제 강점기의 개발은 조선인에게 있어서 (그의 책 제목처럼) '개발 없는 개발'이라 못 박는다(1951년생으로 고교와 대학 동기인 이영훈의 이론적 비판자였던 허수열은 올해 초 타계했다).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 기간 동안 조선은 급속한 개발을 경험했다. 그러나 그 개발의 이득은 조선인들에게 거의 귀속되지 않았다. 조선인들의 경제적 처지도 거의 개선되지 않았고 또 개선될 전망도 없었으며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과 그에 따른 민족차별이 구조적으로 확대재생산되고 있었다.](허수열, <개발 없는 개발> 은행나무, 2017, 28쪽).
그는 말한다.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은 한결같이 조선이라는 '지역'을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이런 분석은 의미가 없고 잘못됐다고 여긴다. '지역' 기준보다는 조선인이라는 '민족' 기준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일제 강점기에 조선의 국내총생산(GDP)이 연평균 4.1% 성장했다는 통계자료가 있지만, 이런 통계가 일제의 피지배층인 조선인들에게 실제로 어떤 (긍정적 또는 부정적) 영향을 끼쳤느냐를 돌아보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물음이다.
"연구자의 문제의식이 어떠하냐가 중요"
맞는 말이다. <반일 종족주의>가 주장하듯이 조선이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여러 부문에서 개발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비판적 연구자들도 무조건 부인하지는 않는다. 초점은 '누구를 위한 근대화였느냐'는 것이다. 이를테면, 철로를 놓고 항구를 만들었다면 그 건설 과정에서 땅과 집을 수용당하는 등 누가 희생을 강요당했고,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더 큰 이득이 되었느냐다. 그 개발의 더 큰 이익이 조선인에게가 아니라 한반도에 진출한 일본 이민자들과 일제 지배층에게 돌아갔다면, 결코 긍정적인 의미의 개발이나 '근대화'라 말할 수 없다.
일제 강점기 동안에 만들어진 여러 통계를 보면, 전국적으로 철도역과 항만 부두가 들어서고 학교와 발전소가 세워지는 등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로 일컬어지는 개발이 이뤄졌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와 아울러 일제의 조선 식민지 통치가 일본제국주의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고, 우리 한민족이 받아들일 수 없는 부당한 수탈이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논의의 초점은 지표상의 근대화와 수탈, 이 두 측면 중 어느 것을 강조하느냐다.
결국은 연구자가 어떤 문제의식을 지녔는가에 달려있다. 그가 건강한 민족의식을 지녔다면, 그렇게까지 열을 올려가며 우리 한민족이 일본 통치 덕에 '근대화'를 이룩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신친일파'가 말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뒤집어 보면, 일제 억압통치를 합리화하고 그들이 조선인들에게 저질렀던 전쟁범죄의 기억을 애써 지워주는 논리다. 특히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 극우들의 기분을 맞춰주는 '위안'의 논리란 의심마저 받는다.
▲ 일제 강점기의 가마니 시장 모습. 조선총독부는 효과적인 쌀 수탈을 노려 가마니 짜기를 독려했다.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봇물 이룬 '친일 종족주의' 비판서들
<반일 종족주의>(이영훈 외, 미래사, 2019)와 그 후속작인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이영훈 외, 미래사, 2020), 그 아류 출판물에 대한 비판서나 관련 논문들은 많이 나와 있다. 비판서가 많다는 게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 합리적인 토론이 불가능한 '21세기의 신친일파'를 상대로 한 소모적인 논쟁에 이 땅의 지식인들이 귀한 시간들을 앗기는 게 부정적이고 안타까운 측면이다.
그럼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 무엇일까.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소중히 여겨온 한국 시민들로 한정해서 말한다면, 일제의 전쟁범죄를 비롯한 굴곡진 과거사에 얽힌 문제점들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우리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신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의 야욕과 그에 발을 맞춰주는 한국 '신친일파'의 실체를 새삼 다시 깨닫게 된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21세기 신친일파'에 대한 비판서들 가운데 '종족주의'란 제목을 붙인 것만 꼽아도 여러 권이다. <반일 종족주의> 초판은 2019년 7월에 나왔다. 바로 그해에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비판서들이 서점가에 쏟아졌다. 이를테면, 황태연(동국대교수, 정치학)외 5인 공저인 <일제 종족주의>(넥센미디어, 2019년 10월), 정혜경·하광무·조건·이상호 4인 공저인 <반反대를 론論하다: 반일종족주의의 역사부정을 넘어>(선인, 2019년 12월) 등을 꼽을 수 있다.
해를 넘긴 2020년에도 여러 권의 비판서가 출간됐다. 자유언론인이자 역사저술가인 김종성의 <반일 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위즈덤하우스, 2020년 2월), 일본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호사카 유지(세종대교수, 독도종합연구소장)의 <신친일파>(봄이아트북스, 2020년 3월), 전강수(대구가톨릭대교수, 토지경제학)의 <반일 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한겨레출판, 2020년 7월) 등이다.
굳이 '종족주의'란 듣기 민망한 용어를 쓰지 않은 책들은 더 많다. 정영환(메이지가쿠인대교수, 재일조선인사)의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푸른역사, 2016), 신용하(전 서울대교수, 사회학)의 <일제 조선토지조사사업 수탈성의 진실>(나남, 2019), 한홍구(성공회대교수, 한국현대사)의 <한일 우익근대사 완전정복>(창비, 2020년), 강성현(성공회대교수, 역사사회학)의 <탈진실의 시대, 역사부정을 묻는다>(푸른역사, 2020년) 등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 동북아역사재단에서 펴낸 여러 관련 저술들을 일일이 더하자면 그 목록이 길다.
<반일 종족주의>와 그 아류들에 관련한 비판 논문들도 많이 나왔다. 강성현(성공회대교수, 역사사회학)의「한국 역사수정주의의 현실과 논리」(황해문화 2019 겨울), 양정현(부산대교수 역사교육학)의「반일 종족주의 역사인식과 역사교육에서의 비판적 사고」(역사와 세계, 통권58호, 2020), 김헌주(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의「'반일 종족주의 사태'와 한국사 연구의 탈식민 과제」(백산학보, no.116, 2020), 신운용(안중근평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의「반일 종족주의의 '반'민족주의와 '독도 인식'에 대한 비판적 검토」(고조선단군학 vol.42, 2020), 그밖에 다른 주요 논문들이 많이 있지만, 지면 사정상 이쯤에서 줄인다.
일제의 토지 수탈은 없었다?
논쟁점이 되는 '위안부'나 강제동원 문제에서 '신친일파'들이 주장하는 바는 (이미 지난 글들에서 거듭 살펴보았듯이) 설득력이 떨어진다. 전쟁범죄의 흔적을 지우고 싶어 하는 일본인들을 기쁘게 하는 친일 논리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여기서는 <반일 종족주의>와 그 후속편인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에서 저질러진 역사 왜곡 논리, 특히 일제 강점기 시절의 경제 수탈(收奪) 문제를 이번 주와 다음 주 2회에 걸쳐 좀 더 살펴보려 한다.
먼저, <반일 종족주의>는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으로 조선인의 토지를 수탈하고 산미증식계획으로 쌀을 수탈해갔다고 가르치는 한국사 교과서가 잘못됐다고 주장한다(53-54쪽). 이영훈은 1960년대부터 오랫동안 중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 실려 있던 내용(전국 토지의 40%가 총독부 소유지로 수탈됐다는 내용)이 근거 없는 거짓말이라고 주장한다. 언뜻 맞는 말처럼 들리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가려진 다른 한 면이 있음을 알아채게 된다. 논리학에서 말하는 '뿔' 하나만 잡고 흔들어대는 소피스트들의 수법이나 다름없다.
총독부는 토지조사사업(1910~1918년)을 실시하면서 '신고주의'를 채택했다. 미신고 토지는 동양척식회사와 일본인 이민자에게 불하될 참이었다. 그런데 농민들의 미신고 토지의 비율이 워낙 낮았다. 다시 말해 총독부의 토지조사사업 정책을 못 마땅하게 여긴 조선 농민이 "내가 왜 왜놈들에게 신고를 해?" 하며 신고 자체를 하지 않아 토지를 빼앗긴 경우는 거의 없었다. 40% 토지 수탈설이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은 지난 1980년대 말 우리 국사학계 연구자들의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 이미 밝혀졌다. 그러면서 한국사 교과서에서도 '40% 토지 수탈' 내용은 오래 전에 사라졌다.
이영훈은 <반일 종족주의>에서 '교과서에서도 40% 토지 수탈 내용은 이미 사라졌다'고 한두 문장이나 서너 줄의 글로 매듭짓고 끝냈으면 깔끔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4페이지 분량으로 길게 늘려 썼다. '역사 교실에서 이 대목이 나오면 가르치는 교사도 배우는 학생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고 하면서, 이런 모습을 가리켜 그가 비판하고자 하는 '반일 종족주의 역사의식'이라했다. 이미 오래 전에 역사 교과서에서 없어진 내용을 두고 마치 지금도 문제인양 그렇게 흥분해서 떠들 일은 아니다. 이와 관련, 전강수(대구가톨릭대, 토지경제학)교수의 지적을 들어보자.
[1980년대 말 이후 배영순(전 영남대, 국사학)과 조석곤(상지대, 경제학)교수가 (각기 박사학위 논문에서) 김해 지역 토지대장을 분석하여 토지 수탈을 실증적으로 부정한 이래, 토지수탈설은 역사학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2013년 한국역사연구회 토지대장연구반이 출간한 <일제의 창원군 토지조사사업>이란 책에 따르면, 창원군에서도 신고 유무로 토지 소유권을 박탈한 사례는 없었다. 그 책은 신고주의를 통한 수탈 문제는 실증적으로 검증이 끝났으므로, 재론할 필요가 없다고 못 박고 있다. 이런 입장은 한국 역사학계의 통설이다](전강수, <반일 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 한겨레출판, 2020, 78-79쪽).
그런데도 이영훈은 예전에 쓰이던 국사교과서의 오류를 빌미삼아 이 대목을 읽기가 지루할 만큼 필요 이상으로 길게 쓰고 있다. 전강수의 지적대로라면 '마치 현재 역사학자들이 40% 토지수탈설이라는 무지막지한 거짓말을 선동'한다는 느낌을 독자들에게 심어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전강수, 79쪽). 그런 모습은 이른바 학문적 엄밀성이 요구되는 연구자나 학자로서 취할 태도는 아닐 것이다.
이영훈, '엉터리 학설'이라며 신용하 비판
조선총독부의 토지조사사업은 농경지를 대상으로 했기에, 여기서 말하는 '토지'는 농경지를 뜻한다. 농민들의 미신고 토지가 총독부에 몰수된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이미 위에서 확인했다. 신용하(전 서울대교수, 사회학)의 연구에 따르면, 총독부 미신고로 빼앗긴 농경지는 8,994필지로 전체 필지의 0.005%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조선총독부가 농민이 갖고 있던 농경지 말고 (조선 왕실 소유의) 국유지였던 농경지, 임야, 기타 미개간지 등을 일본의 국유지로 편입한 것을 '토지 약탈'로 볼 경우, 한반도 전체 토지의 50.4%가 일제에 수탈당했다(신용하, <일제 조선토지조사사업 수탈성의 진실>, 나남, 2019, 108-109쪽). 이영훈의 주장대로 토지수탈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50%로 늘어나는 셈이 된다. 따지고 보면, 지난날 한국 교과서에 실렸다가 지금은 없는 40% 토지 수탈설은 전혀 틀린 얘기도 아닌 셈이다.
일제의 토지 수탈과 관련, 이영훈은 <반일 종족주의>에서 신용하가 오래 전에 썼던 <조선토지조사사업연구>(지식산업사, 1982년)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공격했다. 이를테면, 토지조사국에서 나온 일본 관리가 '호신용'으로 허리에 권총을 차고 다닌 것을 두고 신용하는 '한 손에는 피스톨을, 다른 한 손에는 측량기를'이라 썼다. 농민들 눈에는 권총을 찬 토지조사국 직원이 위압적으로 비쳐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영훈은 '신용하는 토지조사사업을 피스톨이 발사되는 폭력적 과정으로 묘사했다'면서 이를 '엉터리 학설'이라 비난했다.
"이상한 책 내면서 내 주장을 왜곡했다"
1937년생인 신용하는 원로 사회학자이자 역사학자로 존경 받는 인물이다. 학부생 때 그의 사회사상사 강의를 들었던 필자의 인상적인 기억 하나. 어느 날 지각하는 바람에 대형 강의실의 맨 뒤편에 앉게 됐다. 특유의 톤이 굵은 선생의 우렁찬 목소리가 마이크 없이도 뒤까지 뚜렷이 들렸다. 그 목소리만큼 선생은 강직한 성품을 지녔다. 박은식, 신채호 등 선각자들의 사회사상을 연구했고, 한국근대사와 민족운동에 관심을 쏟았다.
신용하는 1975년부터 사회학과로 소속을 옮겼으나, 그 앞서 10년 동안은 경제학과 교수(전임강사)로 당시 경제학과 학생이던 이영훈 등을 가르쳤다. 분명히 학창시절의 스승이었을 신용하를 이영훈은 <반일 종족주의>에서 모질게 몰아쳤다. 신용하가 <조선토지조사사업연구>에서 말하려 했던 요점은 '조선총독부가 토지조사를 강압적으로 실시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총독부의 토지조사사업 과정이 순순히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일부 지역에서 소유권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영훈은 일제 강점기의 40% 토지 수탈설이 마치 신용하가 처음 지어낸 학설인 듯이 이렇게 비난했다. "토지조사사업을 이해하기 위해선 조선시대 토지제도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그런데 (신용하는) 그런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사료의 일부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조작'한 '엉터리 학설'이라는 막말마저 퍼부었다(이영훈 외, 38쪽).
그러자 신용하는 곧바로 이영훈의 공격에 맞섰다. <반일 종족주의>가 나온 지 3개월 만에<일제 조선토지조사사업 수탈성의 진실>(나남, 2019)을 출간해 반론을 폈다. 신용하는 <반일 종족주의>가 '일제의 식민지 수탈을 미화하고 옹호하기 위하여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오류의 억지주장'이라 못 박았다.
신용하는 자신의 토지조사사업 연구는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한 실증적 연구이며, '사료의 일부를 조작했다'는 이영훈의 언급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오히려 이영훈 등이 <반일 종족주의>라는 '이상한 책'을 내면서 '필자(신용하)의 주장을 왜곡하고 전혀 사실이 아닌 것을 마치 사료와 실증에 의거한 진실인 것처럼 주장하는 망언'을 했다고 비판했다. 이영훈의 경제학과 후배인 전강수(대구가톨릭대, 토지경제학)교수는 필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신 신용하 선생은 성품이 강직하고 말씀도 많이 안 하시는 선비 같은 분입니다. 그런데 <반일 종족주의>에서 선생을 폄하하는 글을 보고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화가 났으면 80을 넘긴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반일 종족주의>가 나온 지 석 달 남짓 만에 (위에서 인용한) <일제 조선토지조사사업 수탈성의 진실>을 출간했을까요? 이영훈씨가 선생에게 했던 비판은 정확하지도 않을 뿐더러 인간적으로도 도를 넘은 비난이었다고 봅니다"
▲ 일제가 침략전쟁을 위해 공출 명목으로 수탈한 각종 물자 ⓒ연합뉴스
"토지약탈 정책을 어떻게 긍정 미화할 수 있나"
신용하는 신간 <일제 조선토지조사사업 수탈성의 진실>에서 자신이 서울대 사회학과로 옮겨가기 전에 몸담았던 경제학과의 젊은 교수 시절(1965-1974년) 후반기에 이영훈(1970년 입학)을 가르쳤던 일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그때 젊은 학도가 (훗날) 어떻게 일제 토지조사사업처럼 명백한 토지약탈 식민지 정책을 저렇게 긍정하고 미화할 수 있는가 개탄하면서 안타깝게 여겼다"(신용하, 17쪽). 신용하가 말하는 '그때 젊은 학도' 이영훈은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으며 고개를 끄떡이던 진보적 청년이었다.
여기서 물음이 하나 떠오른다. 이영훈은 왜 그렇게 도를 넘는 공격을 학계의 대선배에게 해댔을까(1937년생인 신용하는 이영훈이 사부로 모시는 안병직보다 1살 아래지만, 이영훈보다는 14살 위다). 그 숨은 동기가 무엇인지는 연구자들 사이에 지금도 물음표로 남아있다. 이영훈도 신용하를 비난했던 대목과 관련, 자신이 좀 지나쳤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반일종족주의>의 후속작으로 1년 뒤에 나온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에서 '연구자 사회에선 좀처럼 들을 수 없는, 함부로 해서는 안 될, 강한 어조의 비판'을 했다고 시인하면서, 우회적으로 유감의 뜻을 나타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직설적인 사과는 없었다. 오히려 '신용하는 총독부가 토지조사사업과 임야조사사업을 통해 전국 토지의 50.4%를 약탈했다고 (잘못) 주장하고 있다'면서 신용하에 대한 논박을 거두어들이지 않았다(<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 287쪽 참조). 신용하가 <일제 조선토지조사사업 수탈성의 진실>에서 폈던 반박을 이영훈은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에서 재반박한 셈이다.
민족주의자 vs 자학(自虐)사관 지닌 탈민족주의자
신용하는 독도학회 회장이란 직함을 지니고 있다. 이 직함이 말해주듯,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역사학자이자 사회학자이다. 한편 이영훈은 한민족을 거짓말쟁이 민족이라 비하하며 '종족'이라 규정함으로써 극단적인 자학(自虐)사관을 지녔다는 비판을 받지만, 스스로를 '자유인'이라 부르는 탈민족주의 경제학자이다. 신용하, 이영훈 두 사람 가운데 어느 쪽이 옳은 말을 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다만 이 글 맨 앞부분에 썼듯이, 어떤 문제의식을 지녔는가, 건강한 민족의식을 지녔는가를 판단의 기준점으로 삼는 것이 어떨까 한다. 지나치게 민족주의를 강조함으로써 자칫 국수주의로 빠지는 것은 물론 경계해야 한다. 이즈음처럼 신친일파들이 기세를 올리는 상황을 떠올리면, 건강한 민족의식은 보듬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일각에서는 '일제 강점기'란 용어보다 '대일 항쟁기'란 용어를 쓰자는 움직임이 있다. 좀 더 적극적인 의미를 지녔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음 주 글에서는 일제의 경제 수탈이 지닌 문제점을 독자들과 함께 살펴보려 한다. <반일 종족주의>는 수탈의 개념을 아주 좁게 잡는다. 대가를 주고받았다면 수탈이 아니라는 것이다. ‘좁은 의미의 강제연행’을 내세우며 ‘위안부 납치가 없었다’고 우기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일본인들의 농경지 소유 면적이 크게 늘어난 것은 ‘제도와 정책을 통한 수탈’ 때문이었다. 식민지 조선을 '기회의 땅'으로 여기고 온 자들이 이득을 챙겼다면, 그게 곧 수탈이다.
또한 <반일 종족주의>는 쌀을 비롯해 일제가 침략전쟁 물자로 약탈해갔던 강제 공출(供出)을 가리켜 '수탈이 아니라 수출이었다'는 궤변과 더불어 '조선 농민의 소득 증가에 오히려 크게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조선 민중은 굶주림에 시달렸는데도 말이다. 이렇듯 전범국가 일본의 가혹했던 억압 통치를 애써 변론해주는 '신친일파'에게 또 다시 묻게 된다. "당신들의 정신적 모국은 어디인가요?" (계속)
프레시안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의원 최대 20명 연루? "이정근-윤관석 통화서 '돈봉투 리스트' 실명 열거"
"수감중 李, 검찰에 추가혐의 인정"…민주당 '술렁’
지난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당시, 송영길 당 대표 후보 캠프 인사들이 9000만 원이 넘는 돈을 봉투에 담아 당 소속 의원·대의원 등에게 돌렸다는 의혹의 파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돈봉투를 전달했다는 의원의 육성이 보도된 데 이어, 이번에는 돈을 받았다는 의원들 일부의 실명도 전달자의 육성으로 방송에 보도됐다.
특히 이 사건에 깊이 관여한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은 현재 별건의 범죄 혐의로 수감 중인데, 돈봉투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협조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래저래 민주당의 고심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윤관석, 이정근과 통화에서 돋 받은 의원 실명 언급"
13일 JTBC <뉴스룸>은 전당대회를 앞둔 2021년 4월 28일 민주당 윤관석 의원이 이정근 전 부총장과의 통화에서 '돈봉투'를 받은 의원들의 실명을 거론했다며 해당 대화의 육성파일을 공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윤 의원이 "우리 했던 ○○이나 ○○이나 ○○이나 ○○이나…. 둘은 또 호남이지 않나"라고 말하자 이 전 부총장은 "거기 해야 돼 오빠. 호남은 해야 돼"라고 답한다.
또 윤 의원이 "나는 인천 둘하고 ○○이는 안 주려고 했는데, 얘들이 보더니 '형님 기왕 하는 김에 우리도 주세요' 그래가지고 거기서 세 개 뺏겼어"라고 말하는 육성도 공개됐다.
방송은 실명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윤 의원이 언급한 인물들은 당시 전당대회에서 송 전 대표를 도운 현역의원들"이라고 보도했다.
JTBC는 또 윤 의원이 "5명이 빠졌더라", "안 나와가지고"라고 말한 자신의 육성이 전날 보도된 데 대해 "다른 상황에서 다른 취지로 한 발언을 상황과 관계없이 마치 봉투를 전달한 것처럼 단정해 왜곡했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이날 해명하자, 이를 재반박하는 추가 보도를 내놨다.
방송은 윤 의원이 2021년 4월 28일 '5명이 빠졌다'고 말한 대화의 전후 맥락에 대해 추가로 설명하면서, 이 전 부총장이 윤 의원에게 "똑같이? 어제 그만큼?"이라고 묻자 윤 의원이 "응. 다섯 명이 빠졌더라고. 안 나와가지고. 오늘 빨리, 그래야지 회관 돌아다니면서 만나서 처리하거든"이라고 답한 것이 해당 발언의 앞뒤 내용이었다고 설명했다.
방송은 이에 대해, 대화가 이뤄진 날은 윤 의원이 이 전 부총장으로부터 돈봉투 10개를 전달받은 것으로 지목된 이튿날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즉 27일에 돈봉투 10개를 받은 윤 의원이 이 전 부총장에게 '오늘 빨리', '어제 그만큼 똑같이' 추가로 봉투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고, 그 이유에 대해 '의원회관을 돌아다니면서 만나서 처리하겠다'고 한 정황이라는 것이다.
방송은 또 그로부터 사흘 전인 2021년 4월 25일 강래구 한국감사협회 회장(당시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이 이 전 부총장에게 "관석이 형을 꼭 돈을 달라고 하면 돈 1000만 원 주고…"라고 말한 육성, 이틀 후인 4월 27일 강 회장이 이 전 부총장에게 "저녁먹을 때쯤 전화 오면 10개 줘라"고 하자 이 전 부총장이 "누구한테? 윤한테?"라고 되묻자 다시 강 회장이 "예"라고 답하는 육성도 추가로 공개했다.
이성만 "내일 오전 10시에 돈 주면 안 되나" 육성도 공개
JTBC 방송은 또 '강래구-이정근-윤관석' 루트로 전달된 6000만 원 외에도, 거꾸로 '이성만-이정근-강래구' 순으로 1000만 원이 전달됐고 이 돈으로 강 회장이 2021년 3월말 당내 인사 10여 명에게 100만 원씩 돈봉투를 돌린 것으로 보이는 정황도 보도했다. 검찰 영장에 따르면, 이 1000만 원은 조택상 전 인천부시장 등이 만들어준 것으로 지목됐고 이 의원은 인천지역 현역의원이다.
방송에 공개된 녹취록을 보면, 3월말 당시 강 회장은 이 전 부총장에게 "세 테이블 정도 하면 12명이면 충분하잖나. 사실은 그날 돈 100만 원씩이라도 봉투 하나씩 만들어주면 좋은데"라며 "한 돈 1000만 원만 줘라. 그날 ○○○들 오면 100만 원씩이라도 봉투에 넣어서 조용히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 대화 이후 이 의원이 이 전 부총장에게 "돈, 내가 내일 주면 안 되나? 내일 오전 10시에 갈 테니까"라고 하고, 그 직후 이 전 부총장이 강 회장에게 "이따 이성만이 10시에 만나자더라"고 하자 강 회장이 "왜? 아, 비용 준다고?"라고 되물으면서 "받으면 50만 원씩 정리해서 봉투를 나한테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는 대화 내용도 이날 방송에 공개됐다.
전당대회 후에는 이 전 부총장이 이 의원에게 "고생했다. 우리 팀에 와서 또 수금 전달하고 하느라고"라고 인사를 건네자 이 의원이 "아니 뭐 안사람이 그런 거나 서포트나 해야지"라고 답하는 대화도 보도됐다.
이 의원 측은 "불법적 정치자금을 받은 적도 전달한 사실도 없다", "열심히 득표 활동을 한 것에 대해 수고했다는 의미이지 다르게 해석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방송에 밝혔다.
"이정근, 검찰 조사에서 돈봉투 조성 인정"
JTBC가 보도한 이같은 대화의 출처는 모두 이 전 부총장의 휴대전화에 녹음된 음성파일로 지목된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대화 내용이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혐의를 뚜렷이 드러내지 않는 한, 이 전 부총장과 대화 상대방들이 일관되게 대화의 의미·맥락을 부인한다면 윤 의원 등으로서는 향후 사법 절차에서 이를 다퉈볼 만한 여지도 있다.
문제는 현재 10억 알선수재 혐의로 1심 유죄를 선고받고 수감 중인 이 전 부총장 본인이 돈봉투 조성 사실을 인정하는 등 비교적 협조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전해진 것이다. JTBC는 "검찰 수사에 속도가 붙은 건 이 전 부총장의 진술이 결정적이었다"며 "이 전 부총장은 최근 검찰 조사에서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돈봉투가 조성된 게 맞다'고 인정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또 "나아가 (이 전 부총장은) 여러 관련 인물들과 나눈 대화의 의미와 전후맥락도 자세히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녹음파일에는 이름을 생략하고 성씨만 얘기한 경우도 있는데 누구를 지칭하는지까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날 JTBC에 보도된 녹음파일에는 이 전 부총장이 "누구한테? 윤한테?"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방송은 이 전 부총장이 검찰에서 한 진술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전하지는 않았으나, 이 전 부총장에 대한 검찰 조사의 결과는 지난 12일 집행된 압수수색 영장에 오롯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이날 MBC <뉴스데스크>는 검찰 압수수색 영장을 확보했다며, 전당대회 당시 모두 9500만 원의 자금이 조성됐고 돈이 전달된 경로는 세 갈래였다고 영장에 적시돼 있다고 보도했다. 같은날 SBS <8뉴스>와 <연합뉴스>도 역시 영장을 입수했다며 보도했지만 액수는 9400만 원으로 다소 차이가 났다.
다만 세 매체 모두 보도 내용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 12일 집행한 압수수색 영장에서 윤 의원이 먼저 강 회장에게 돈을 요구했다고 적시했다. 검찰은 윤 의원이 강 회장에게 '국회의원들의 기존 지지세를 유지하기 위해 의원들에게 돈을 뿌릴 필요가 있다'며 돈을 마련해달라는 요구를 한 것으로 봤다.
이에 따라 강 회장은 대전지역 기업인 등을 통해 6000만 원을 만들어 이 전 부총장을 통해 윤 의원에게 전달했고, 이는 300만 원짜리 돈봉투 20개로 바뀌어 국회의원 10명에게 2차례에 걸쳐 전달됐다는 게 검찰이 현재 갖고 있는 관점이다. '돈봉투' 수령자는 중복이 없다면 총 20명인 셈이다. 검찰은 자금 조달자·전달자 등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면 돈봉투를 받은 이들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남은 3400~3500만 원 가운데 1400~1500만 원은 조택상 전 인천부시장 등이 마련해 강 회장, 이 전 부총장을 거쳐 3월 30일 지역본부장 10여 명에게, 4월 11일 지역본부장 7명에게 50만 원씩 쪼개져 건네진 것으로 검찰 영장에 적시됐다고 한다. 나머지 2000만 원은 4월말 강 회장이 마련했고, 이는 50만 원씩 나뉘어져 지역 상황실장 20명에게 두 차례 건네졌다고 검찰은 봤다.
ⓒJTBC <뉴스룸> 방송화면 갈무리
송영길 "이정근 개인 일탈 감독 못해 도의적 책임
전날 윤 의원 본인은 "다른 상황에서 다른 취지로 한 발언"이라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고, 민주당도 당 차원의 입장이라며 "국면 전환용 수사 아닌가"라고 했지만 윤 의언 육성 등이 추가 보도되며 곤란한 상황이 됐다.
민주당은 전날 권칠승 수석대변인이 "(권·이 의원의) 압수수색 관련 당의 정리된 의견"이라며 "현재 녹취파일이 유일한 근거로 제시되고 있는 것 같다. 사실관계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권 수석대변인은 "압수수색 당일인 12일 언론에서 녹취파일이 공개된 것은 검찰이 기획을 했거나 최소한 개입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검찰 수사가 국면 전환용 수사 아닌가 하는 국민적 의혹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 대변인은 "이미 오래 전에 녹취파일을 검찰이 입수했을 것인데 상당 기간이 지난 지금, 대일외교와 여권 지도부의 막말로 여권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는 이때 이런 사건이 나왔다는 게 상당히 의아하다"고 하기도 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방문연구교수를 하고 있는 송영길 전 대표는 이날 현지에서 채널A 방송과 만나 "이 전 부총장의 개인적인 일탈 행위를 감시·감독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당시 당 대표로서 도의적 책임을 느끼고 국민과 당원 여러분께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다.
다만 송 전 대표의 이같은 입장은 이 전 부총장의 '10억 알선수재' 사건에 대한 것이며, 돈봉투 사건 의혹에 대해서는 "상황을 잘 모른다"며 "(정부가) 도청 의혹 사건 등 수세에 몰리니까 국면을 반전시키기 위해 검찰이 정치적 행위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 "모든 녹음파일을 조사했다는데 왜 묵혀놨다가 12일 이정근 1심판결 선고 때 맞춰서 압수수색에 들어가느냐"고 했다. 송 전 대표는 현재 돈봉투 의혹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피의자로 입건된 상태는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방송은 한편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정치자금 회계보고서를 살펴보니 이 전 부총장이 선거에 출마했을 때 40여 명의 의원들이 후원을 했다며 "이 전 부총장은 송 대표가 직접 챙길 정도로 신임을 받았던 터라 의원들이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당 관계자 전언을 보도하기도 했다. 이 전 부총장에게 가장 많은 후원을 한 의원은 공교롭게도 이 전 부총장 관련 불법 정치자금 혐의에 연루된 이성만·노웅래 의원(각 300만 원)이었다고 한다.
프레시안 곽재훈 기자
미 기밀 유출한 주방위군 일병 체포…"위조"라던 한국 정부 '머쓱'
내부과시 목적 추정…"우크라전 터지며 유출 시작" 증언도
미국 기밀 문건 유출 용의자로 미 주방위군 일병이 체포됐다.
미 연방수사국(FBI)는 13일(현지시각) 성명을 내 매사추세츠주 노스다이튼에 있는 한 주택에서 미국 정부 및 군사 기밀 문건 유출에 연루된 혐의로 잭 더글라스 테세이라(21)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FBI는 성명에서 "지난주 후반부터 사건을 적극적으로 추적했다"며 "오늘의 체포는 국가 안보를 위험에 처하게 하고 국가의 신뢰를 배신한 자를 식별하고, 추적하고, 책임을 지도록 하는 우리의 지속적 헌신을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라고 덧붙였다.
이날 메릭 갈랜드 미 법무장관도 성명을 내 "국방 기밀 정보의 무단 보유, 제거, 전송과 연관된 혐의로 테세이라를 체포했다"고 밝히며 "테세이라는 주방위군 공군 소속"이라고 공개했다. 그는 FBI가 이날 오후 사고 없이 테세이라를 체포했고 테세이라가 매사추세츠주 연방지방법원에 첫 출석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 CNN 방송 등은 테세이라의 법원 첫 출석 예정일을 14일로 전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갈랜드 장관이 언급한 혐의가 스파이 방지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 법은 미국에 해를 끼치거나 적대국을 지원할 목적으로 국방 관련 문서를 무단 제거·보유·전송하는 것을 금지한다. 위반 땐 위반 항목 당 최대 10년형이 선고될 수 있다.
CNN은 미 공군 대변인이 테세이라가 매사추세츠주 방위군 102정보비행단 소속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테세이라의 현재 계급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당 부대 소셜미디어(SNS)에 따르면 테세이라는 지난해 7월 일병(airmen first class)으로 승진했다.
첫 기밀 공유 이르면 지난해 2월…기밀 공유하며 온라인서 10대 소년들에게 '추앙'
이날 체포에 앞서 12일 <워싱턴포스트>(WP)는 기밀 문서가 처음으로 유출된 온라인 채팅 플랫폼 디스코드의 총기 및 무기 등 관련 비공개 대화방 '서그 셰이커 센트럴(Thug Shaker Central)' 회원들 인터뷰를 토대로 유출 용의자가 이 초대 전용 대화방 운영자인 활동명 'OG'라는 인물이라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13일 OG가 테세이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두 매체의 취재를 종합하면 테세이라는 적어도 지난해 10월부터 20~30명 가량의 주로 젊은 남성과 10대 소년들이 모인 대화방에 군 기밀을 유출하기 시작했고 자신이 군부대에 근무하는 20대 초중반 남성이라고 회원들에게 밝혔다. 테세이라는 처음엔 기밀을 옮겨 적어 설명하는 식으로 공유했지만 정보의 양의 방대해지자 부대에서 집으로 가져온 문건의 사진을 찍어 올리기 시작했다. 사진에 문건과 함께 찍힌 탁자, 바닥 등의 배경이 체포의 단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유출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화방 회원들은 테세이라가 내부 고발자나 러시아 요원이 아니라고 봤다. 그보다 그는 세계 정세나 실제 전쟁, 정부의 비밀 작전 등에 대해 회원들에게 설명하고 가르치는 것을 즐겼으며 때로 "거물"임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한다.
한 회원은 테세이라가 지난 10월부터 대화방에 올린 원본 추정 문건이 350개에 달한다고 밝혔다. 테세이라가 기밀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한 시기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지난해 2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밝힌 회원도 있었다. 테세이라는 그가 올린 정보에 회원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화를 내기도 했다고 한다.
테세이라는 문건 유출을 통해 회원들에게 존경심과 충성심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 인터뷰에 응한 한 회원은 "그는 신화이자 전설"이고 "모두가 그를 존경했다"고 말했다.
회원 대부분은 테세이라가 올린 정보들을 다른 곳에 공유하지 않기로 했지만 문건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캘리포니아 출신 17살 회원이 이를 2월 말~3월 초 사이 디스코드의 다른 대화방에 올리면서 유출 문건이 온라인을 통해 널리 공유되기 시작했다.
미국 국방부가 사태를 인지한 것은 문건이 대규모로 유포되기 시작한 지난 2~3월에서 1달 이상이 지난 4월 5일이었고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다음날인 6일 첫 보고를 받았다. 이날 <뉴욕타임스>가 관련해 첫 보도를 하며 대중에 유출 사실이 널리 알려졌고 이후 테세이라는 겁에 질려 자신과 관련한 자료를 삭제하라는 메세지를 회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겼다고 한다.
군경력 3년 '일병'의 기밀 접근에 군 관리 부실 지적…국방부 "개인의 범죄 행위"
CNN과 <로이터> 통신을 보면 13일 미 공군은 테세이라의 복무 기록을 공개하고 그가 2019년 9월 매사추세츠 주방위군에 처음으로 입대해 시작해 통신망 관리를 맡는 정보통신(IT) 직군인 사이버 전송 시스템 담당자로 일했다고 밝혔다. 늦어도 지난해 말, 이르면 지난해 초부터 기밀 유출을 시작했다는 디스코드 대화방 회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군 경력이 3년 가량에 불과한 일반 병사가 기밀 문서에 접근할 수 있었던 셈이다.
테세이라에게 실제로 어느 정도의 기밀 접근 권한이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뉴욕타임스>는 국방 관리를 인용해 테세이라가 일급 기밀 접근 인가를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국방부 당국자들이 해당 인가를 가진 이들의 수가 수천 명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비교적 하위직 군인이 기밀 문서에 어렵지 않게 접근한 데 대해 군의 보안 관리에 대한 의구심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뉴욕타임스>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정보 기관에서 테러 예방 목적으로 정부 부처와 더 폭넓은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했다고 짚었다. 미 국가안보국(NSA)의 전 고문이었던 글렌 거스텔은 목적은 이해가 되지만 공유 정도가 도를 넘어섰다고 비판했다.
매체는 정보 기관의 경우 누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지 엄격한 지침을 가지고 있지만 군은 상대적으로 느슨한 규칙을 채택해 사실상 보안 인가를 갖고 있으면 누구나 접근이 가능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매체는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 뒤 정부가 기밀을 전자적 방식으로 빼돌리는 데 대한 규제를 강화했지만 인쇄된 문서를 다시 온라인으로 유출한 이번 사례에서 다시금 허점을 드러냈다고 덧붙였다.
미 국방부는 이번 사태가 군의 기밀 취급 방식 문제라기보다 개인의 "범죄 행위"라는 점을 강조했다. 패트릭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은 13일 브리핑에서 이번 유출 사태 뒤 기밀에 접근할 수 있는 인원 규모를 줄이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는 질문에 국방부는 "기밀과 민감한 정보 보호를 위한 엄격한 지침을 갖고 있다"며 이번 사건은 "고의적 범죄 행위이고 지침을 위반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유출 용의자 체포로 선제적 "위조" 밝힌 한국 정부 '머쓱'
한편 유출 용의자가 체포되면서 당사국인 미국 정부조차 유출 문건의 진위 여부에 말을 아낀 가운데 선제적으로 상당수 문서가 "위조"됐다고 밝힌 한국 정부 입장이 설득력을 잃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를 보면 13일 워싱턴DC 주미대사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정부 고위당국자는 이날 기밀문건 유출 혐의로 주방위군 소속 군인이 체포돼 한미 정부가 밝힌 '문서 위조설'에 설득력이 떨어졌다는 지적에 "많은 부분은 시간이 걸려서 미국이 알아내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유출 기밀문서 중) 한미관계와 관련한 분량이 많지 않지만, 사실관계와 다른 부분이 많고 시간상으로도 꽤 흘러 현재 한미관계와 관계가 없는 주제"라고 설명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13일(현지시각) 기밀문건 첫 유출자로 지목된 비공개 대화방 운영자 잭 테세이라(21)를 체포했다. 사진은 매사추세츠주 방위군 102정보비행단 소속 테세이라 일병과 펜타곤 이미지의 합성.ⓒAFP=연합뉴스
▲미국 정부의 기밀문건을 온라인에 유출한 혐의를 받는 매사추세츠주 방위군 소속 일병 잭 테세이라(21)가 13일(현지시각) 매사추세츠 노스다이튼 자택에서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에게 체포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프레시안 김효진 기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2등 국민인가
최저임금 미만의 삶과 불법을 방치한 정부
얼마 전 경총이 최저임금도 못 주는 곳이 많다며 그렇지 않아도 제자리걸음 중인 최저임금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실제 데이터를 살펴보면 최저임금 미만율은 최근 몇 년간 하락해왔고, 경총은 다시 한 번 엄살의 명수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오늘 <인사이드경제>는 최저임금 미만율이 아니라 실제 위반 사례를 놓고 좀 더 세밀한 분석을 해보고자 한다. 최저임금법을 위반한 사례의 많고 적음도 중요하지만, 위반이 어느 곳에 몰려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향후 최저임금 정책 설계를 위한 근거자료가 되어줄 것이다.
최저임금 위반 적발의 두 가지 유형
최저임금 미만율은 통계청이나 고용노동부가 조사한 일부 샘플을 토대로 전체 수치를 추정하는 방법으로 구하게 되므로 추정치라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위반 건수는 최저임금법이라는 실정법을 위반한 사례들로, 모두 고용노동부의 자료실과 서버에 기록되어 있는 실제 사건들이다.
이런 사건들이 적발되는 경우는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고용노동부가 사업장들에 대한 근로감독을 실시하는 과정에 위반 사례를 찾아내는 경우이고, 나머지 하나는 노동자가 직접 고용노동부에 위반을 신고하여 적발되는 경우이다.
국회 환경노동위 윤건영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이 고용노동부에 요구해 지난 5년간 근로감독 및 신고사건에 따른 최저임금 위반 사례 데이터를 제출받았는데, 특히 사업장 규모별로 위반 사례가 구분되어 있어 분석의 소재로 아주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
최저임금 미만 지급 사례에 집중
본격적인 분석에 앞서 데이터 관련 오해를 피하기 위해 간략한 설명을 덧붙이기로 한다. 우선 최저임금법 위반 사례 대부분은 6조와 11조 위반인데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최저임금 위반, 즉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지급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6조를 위반한 경우이다.
윤건영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데이터에는 최저임금법 6조와 11조 위반 사례 각각과 총 합계가 적시되어 있는데, <인사이드경제>는 최저임금법 위반 사례 중 6조 위반 건수만을 분석에 활용하였다.
▴최저임금법 제6조 위반 : 최저임금 미지급, 종전 임금수준 저하, 도급인 연대책임 등
▴최저임금법 제11조 위반 : 최저임금 주지의무 위반
물론 11조(최저임금 주지의무) 위반도 중요한 문제이긴 하나, 엄살의 달인 경총이 또 위반 사례를 과대 포장했느니 어쩌니 할 논란거리를 굳이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근로감독 결과 : 5~50인 사업장에 집중된 위반 사례
자, 그럼 우선 두 가지 유형 중 근로감독을 통해 적발된 최저임금법 6조 위반 사례부터 분석을 해보도록 하자. 독자들이 보기 편하게 고용노동부가 제출한 자료를 연도별, 사업장 규모별로 아래와 같이 그래프로 나타내 보았다.
딱 보는 순간 통계에 문외한이라도 그래프의 의미가 무엇인지 쉽게 읽어낼 수 있지 않은가. 최저임금 위반 건수가 많았던 2018~2019년을 보면 위반 사례의 2/3 가량이 5~50인 미만 사업장에 몰려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렇다면 최저임금 위반이 가장 많은 쪽은 5~50인 미만 사업장 부문이라고 봐야 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한 가지 의문점을 풀고 가야 한다. 2020~2021년에는 최저임금 위반 사례가 왜 이렇게 줄어든 걸까? 2018~2019년과 비교할 때 너무 큰 차이가 나지 않는가 말이다.
코로나 이유로 근로감독 방치
그 이유는 간단하다. 2020년 초에 대유행이 시작된 코로나19를 이유로 문재인 정부가 근로감독 규모를 대폭 줄였기 때문이다. 근로감독이 줄어드니 당연히 최저임금 위반 적발 사업장 수가 대폭 낮아진 것이다. 최저임금 위반이 줄어든 게 아니라 위반을 봐줬다는 것.
이 사실은 데이터가 잘 말해준다. 윤건영 의원실이 받은 자료에는 고용노동부가 지난 5년간 최저임금 위반 관련 근로감독을 시행한 사업장 규모도 함께 적시되어 있는데, 2020~2021년의 경우 2019~2020년과 비교하면 근로감독 규모가 고작 20~40%에 불과했다.
그런데 최저임금 미만 지급(6조 위반) 사례는 2019~2020년 대비 10~20%로 훨씬 가파르게 줄어들었다. 근로감독 감소폭보다 위반 적발이 2배나 더 컸다는 것이다.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다. 근로감독 규모만 줄어든 게 아니라 감독 자체를 부실하게 했거나, 아니면 실제 최저임금 위반 사례가 많이 줄었거나. 물론 두 가지 모두가 중첩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첫 번째 이유라면 정부의 직무유기가 되고, 두 번째 이유라면 최저임금 미만율이 늘어났다는 경총의 주장은 다시한번 거짓이 된다. 그럼 뭐가 진짜 이유였을까? 진실이 무엇인지는 현장의 노동자들이 직접 알려준다. 신고사건 처리 관련 데이터를 통해서 말이다.
신고사건 결과 : 5인 미만 사업장에 집중된 최저임금 위반
최저임금 위반 적발의 2번째 유형인 신고사건 처리 결과를 보면 근로감독 결과와 너무나도 다른 양상에 놀라게 된다. "아니, 도대체 이거 같은 기간에 나온 결과 맞아?"
우선 근로감독 결과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위반 사례가 몰려 있는 사업장 규모이다. 노동자들이 직접 신고한 사건 처리 과정에서 최저임금 위반을 적발해낸 사례를 보면 압도적으로 5인 미만 사업장에 위반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근로감독 결과와 신고사건 처리결과가 이토록 큰 차이를 보이는 점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감독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는 것, 이거 말고는 설명할 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
근로감독 안 하니 신고로 절규하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사장을 최저임금 위반으로 신고한다? 이건 사장과 ‘헤어질 결심’을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저 신고사건들 대부분이 직장을 그만둔 뒤에 이뤄지는 경우일 것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사장을 신고했다면 곧바로 해고될 것이 너무 뻔하지 않은가.
정부의 근로감독이 5인 미만 사업장을 피해가다보니 최저임금 위반이 이 부문에 집중되었을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근로감독이 해주지 못하는 역할을 노동자들이 직접 해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절규하듯 최저임금 위반을 신고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코로나19에도 줄어들지 않은 신고사건
근로감독 결과와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이 부분만이 아니다. 팬데믹과 함께 위반 적발이 대폭 낮아진 근로감독과 달리, 신고사건의 경우 코로나19와 전혀 무관했다. 아니, 팬데믹 기간 동안 일자리와 고용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노동자들은 오히려 더 자주 최저임금 위반을 신고하고 호소했다.
코로나19를 핑계로 정부는 근로감독을 방기했지만, 이는 사업주에게만 편의를 제공했을 뿐이다. 그 기간 동안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이 모든 부담을 몸으로 떠안았다는 점은,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고용노동부의 데이터를 통해 분명히 입증되는 사실이라 할 것이다.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인사이드경제>가 얘기하고 있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적발된 최저임금 위반 건수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근로감독을 통해 적발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 신고사건에서 적발 비중은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감독에서 적발된 위반 사건 중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20%대에서 반동강이 나며 지난해 11.3%로 줄어들었다. 신고사건을 통해 적발된 위반 사건 중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40%대에서 출발해 지난해에는 전체 위반의 절반이 넘는 54.7%까지 치솟았다.
5인 미만 사업장 위반 비중이 근로감독에서는 5년간 10.3%p 줄어든 반면, 같은 기간 신고사건에서의 비중은 8.5%p 늘어났다. 정부가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감독을 방치한 꼭 그만큼 노동자들은 해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여기 최저임금 위반이라고!"라며 소리치고 절규했다는 말이다.
정부 직무유기와 사업주 엄살 원투펀치
과연 이 사실을 정부 당국이 모르고 있을까? 5인 미만 사업장과 나머지 사업장이 보이는 추세가 분명히 다르다는 점은, 통계 문외한이라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명백하다. 어느 쪽에 불법행위가 집중되고 있는지를 모른다면 그건 직무유기를 넘어 무능력과 무책임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근로기준법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중대재해법마저 적용되지 않는다. 그나마 5인 미만에도 차별 없이 적용되는 게 최저임금법이었는데, 정부는 근로감독을 포기하고 불법을 방치해왔다. 경총은 엄살을 부리며 최저임금 인상을 자제하라며 억지 논리를 펼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장시간노동에 대한 근로감독에서 또다시 작은 사업장에 면죄부를 주겠다고 선언했다. 고용노동부가 얼마 전에 설치한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에 사용자들의 불법행위 신고가 차고 넘치지만, 대통령실은 매일 "노조가 불법"이란 얘기만 떠든다. 이럴 거면 왜 '노사 부조리 센터'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하지만 가장 낮은 곳의 노동자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말하고 있다. 우리 삶은 하나도 나아진 게 없고, 사용자들의 불법 때문에 매일같이 상처받고 있다고. 하지만 체념하지 않고 불법을 신고하면서 내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이다.
마그마가 끓는 모습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터질 때는 예고 없이 화산으로 폭발한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분노가 끓는 모습은 눈에 보이는데도 방치하고 있다. "그건 다 노조 탓"이라는 거짓 선동으로 분노의 폭발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걸 굳이 말로 해줘야 하는 현실이 더 서글프지만.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프레시안
‘소리 없는 쓰나미’ 지구촌 식량 위기 한국도 덮치나
국내에서도 식량위기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간척지 개발, GMO 활용을 확대해 식량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반발하는 주장도 만만치 않아 사회 갈등이 예상된다.
세계 곡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한국에서도 ‘식량 안보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나 전문가는 한국도 식량 안보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대안 찾기에 나섰다. 6월24일,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연구원이 ‘위협받는 식량안보, 대안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개최한 심포지엄도 대안 찾기의 일환이었다. 식량 안보에 대한 최근 관심사를 반영하듯, 이날 심포지엄에는 학계·기업·정부 전문가 300여 명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국제 곡물시장의 최근 흐름을 보면, 심상치 않다. 2005년 이후 밀·옥수수·쌀·대두 등 국제 곡물 가격은 거의 두 배로 뛰었다(오른쪽 아래 표 참조). 바이오 에너지용 곡물 수요가 증가하고, 중국·인도 같은 나라들의 경제가 발전하면서 식량 수요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수요는 늘어났지만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이 잦아지면서 곡물 작황은 부진해졌다. 여기에 투기 자본까지 가세해 곡물 가격 상승을 부채질한다. 농림수산식품부 여인홍 팀장은 “특히 2007년부터의 곡물 가격 급등은 수급 불균형보다는 투기 자본의 영향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분석도 있다”라고 말했다. 시카고 선물거래시장의 곡물 월평균 거래량은 2003~2007년 기간 중 증가했다. 밀과 옥수수는 각각 30%, 콩은 15%가량 거래량이 늘었다. 투기 자본이 가세한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하다 보니, 남미와 아프리카, 아시아 20여 국가에서는 식량 가격 상승에 항의하는 시위와 폭동이 잇따라 발생했다. 인도·아르헨티나·중국 등에서는 자국의 식품 가격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수출세를 부과하고 수출할당제를 실시하는 등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이참에 자국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 태국 등 쌀 수출국 사이에서는 ‘쌀 카르텔 설립’과 같은 논의도 진행 중이다.
게다가 세계 곡물 가격은 앞으로도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대세를 이룬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08~2017년 농업전망 보고서〉에서 주요 곡물 가격은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고, 정점에 도달한 뒤 하락세가 천천히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앞으로 10년 동안의 곡물 평균 가격은 지난 10년간 평균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밀과 옥수수는 명목 가격으로 40~60%, 대두는 60% 이상 높게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용택 박사는 “이 보고서는 종전의 보수적인 전망과 달리 상당한 우려를 표명했다. 보수적이었던 국제기구마저 세계 식량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이 있으며 나라마다 식량 위기에 대한 압박이 커질 것임을 경고한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조셋 시런 사무총장은 현재의 식량 부족은 식량수입국, 개발도상국, 저소득층, 취약 계층에 쓰나미와 같은 심각한 위기를 가져다준다며 ‘소리 없는 쓰나미’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한국은 그동안 곡물 파동에서 비켜서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급격한 ‘애그플레이션’(농업 인플레이션)이 일어났지만, 한국은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주식인 쌀 자급률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은 쌀 자급률이 98%에 달해 국제 쌀값 상승이 국내 쌀값 및 수급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렇다고 곡물 파동을 ‘강 건너 불구경’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한국은 해마다 1400만t을 수입하는 세계 5위의 곡물수입국이다. FAO 통계를 기초로 살펴보면, 인구 4000만명 이상 OECD 국가 가운데 식량자급률이 20%대인 나라는 일본과 한국뿐이다. 선진공업7개국(G7) 중 일본을 빼고는 식량자급률이 100%를 넘지 않는 나라가 없다. 한국의 식량자급률 27%는 그나마 쌀 자급률이 높기 때문이다. 쌀을 빼면 주요 곡물 자급률은 5%에 불과하다. 2006년 기준으로 볼 때 주요 곡물의 자급률은 보리 46%, 밀 0.2%, 옥수수 0.7%, 콩 9.3%로 보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수입에 의존하는 처지다(왼쪽 위 표 참조).
미국 등 4개 국가에 의존한 곡물 수입 구조
게다가 수입국도 몇 개 나라로 한정돼 있다. 수입 곡물의 84%는 미국·중국·호주·캐나다에서 들어온다. 중국은 이미 수출 제한을 시행하고 있고, 호주는 가뭄으로 수출 물량이 크게 줄었다. 미국도 갈수록 곡물의 바이오 연료 수요가 늘어나 수출 물량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소수 국가에 곡물 수입 대부분을 의존하는 한국의 경우는 식량 안보주의가 떠오를 경우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농촌경제연구원과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밀·옥수수·콩 가격이 동시에 100% 상승하면 국내 소비자물가는 약 0.7% 오른다. 한국도 식량 안보와 애그플레이션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서울대에서 열린 식량안보 심포지엄에서 제시된 식량 위기 극복 대안은 국내 생산을 늘리고, 적정량의 재고를 비축해 수입을 안정화시키고, 해외 생산기지를 확대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뜨거운 감자’가 될 만한 대안도 불거져 나왔다. 간척지 개발이나 유전자재조합작물(GMO) 활용 등이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용택 박사는 “한국처럼 경지면적이 좁고 국내 생산비용이 높은 나라에서는 국내 생산 확대에 한계가 있다. 토지 구입비나 임차비가 싸고 인건비가 싼 나라에서 생산하여 이를 현지 판매하거나 수출하고, 일부는 국내로 반입하는 것이 좋다. 해외 농업 개발 방식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농촌공사 나정우 박사는 해외 농업자원 개발은 해당국의 식량 사정이 열악해져 식량 안보를 강화할 경우에는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반박했다. 나 박사가 내놓은 대안은 서·남해안 간척사업 등을 재개하는 것을 포함한 국내 농업 생산기반 확대 정책이다. 그는 “식량 공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농경지를 확대하는 서·남해안 간척사업 등을 재개해 국내 농업 생산기반을 더욱 공고히 다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환경문제에 대한 국민 인식 때문에 간척지 개발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갯벌을 새로이 평가하고 분석해 친환경적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 박선희 박사는 지금 같은 식량 위기 상황에서는 유전자재조합작물이 대안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을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박 박사는 “세계 각국이 앞다투어 GMO를 개발하고, GM 농산물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에서 과학적 불확실성을 이유로 GMO를 거부하기보다는 활용하는 방안을 현실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세계적으로 GMO 생산이 증가하는 추세다. 미국의 경우 2007년도 생산된 콩의 91%, 옥수수의 73%가 GMO다. 아르헨티나·브라질·캐나다 등도 GMO 재배 비율을 늘려가고 있다. GMO 비중이 높아지면서 GMO가 아닌 작물의 경우에는 프리미엄이 붙어 20%가량 비싸다.
박선희 박사는 “GMO가 상업화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안전성 평가에서 승인된 GMO가 인체에 해를 끼쳤다는 보고는 전세계적으로 없다. 식량 자원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서는 GMO 등 다양한 자원의 이용 가능성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곽상수 박사도 “GM 작물은 식량문제뿐 아니라 에너지문제, 환경문제, 보건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라며 “GM 작물은 조만간 우리의 생존에서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연합뉴스
매년 1400만t을 수입하는 세계 5위의 곡물 수입국인 한국도 ‘곡물파동’의 안전지대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식량위기론이 확산되자 정부 관계자들이 먼저 나서서 ‘GMO 활용론’이나 ‘간척개발론’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는 것이다.
GMO도 갯벌 훼손도 OK?
그러나 식량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간척지 개발이나 GMO 활용까지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발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새만금 논쟁에서 보았듯 갯벌을 희생하는 간척사업은 엄청난 사회적 갈등과 진통을 낳을 수밖에 없다. 환경을 훼손하면서 새로운 간척지를 만드는 것보다 도심화가 진행되면서 매년 1만2000ha씩 소실되는 농경지를 지킬 수 있는 정책을 내놓는 편이 낫다는 주장도 있다. 농협경제연구소 전찬익 박사는 “국내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농지 확보가 중요한데, 적정 농지에 대한 논의 없이 농지 규제 완화가 진행되면 국내 생산기반이 위협받고 투기가 극심해질 가능성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GMO에 대한 소비자의 불안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GMO 활용론’도 만만치 않은 반감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지난봄까지만 해도 한국은 GM 옥수수를 사료용으로만 수입했고, 식품용으로는 들여오지 않았다. 그러나 옥수수 가격 급등을 견디지 못한 국내 전분당업체들이 지난 달부터 GM 옥수수를 들여와 전분당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324개 소비자·시민단체가 참여한 ‘GM 옥수수 수입반대 국민연대’가 들고 일어나 GM 옥수수 전분당 관련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어 업체들이 곤혹을 치르는 중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식량 위기가 한국의 목줄을 당기는 상황이 와도 정부가 간척지 개발이나 GMO 활용을 밀어붙이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대다수 국민이 반대해도 끝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한 정부니 말이다.
시사인 안은주 기자 2008.06.30
지방대는 이렇게게 몰락했다
▲ 대학 개강일인 2일 오전 경상도 한 대학에서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 대학은 올해 정시 모집에서 8개 학과가 지원자 0명이었다.ⓒ 연합뉴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많이 낳아 고생 말고 적게 낳아 잘 기르자."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우리나라의 산아제한 정책 표어들이다. 지금은 돈을 줄 테니 제발 낳아달라고 애걸하고 있지만 저런 시절이 있었다. 산아제한 정책은 1996년 공식적으로 폐지되지만 1983년에 이미 인구 대체 마지노선인 2.1명에 들어섰다. 저출생은 예고된 일이었다.
실제로 1996년 교육개혁위원회의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보고서'에서도 2003년부터 대학 입학정원 미달을 예측했다. 그런데도 그해 김영삼 정부는 '대학설립준칙주의'를 도입하고 수도권 정원을 확대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그 결과 1995년 304개였던 대학이 2000년에는 349교가 됐다. 입학정원은 49만 5000명에서 64만 6000명으로 15만 명 증원했다. 당시 교육개혁위원회의 위원이었던 사람이 지금 교육부 장관을 맡고 있으며, 그 장관은 라이즈와 글로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교육부의 대학 행·재정권을 지자체로 이양하고, 30개 지방대학을 육성하겠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는 '구조개혁 선도대학 지원사업'을 만들어 입학정원을 10% 감축하는 대학에 재정을 지원했다. 입학정원이 7만 1천 명 감소하였는데, 지방대에서 6만 명 감소하였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3만 6000명 감축되었고, 지방대에서 2만 8000명 감축됐다. 당시 경영부실대학으로 폐교된 대학은 모두 지방대였고, 재정 지원 제한 대학의 77%, 학자금대출 제한 대학의 87%, 경영부실대학의 85%가 지방대였다.
박근혜 정부 역시 정부 재정지원사업 평가에 정원 감축 계획을 반영했다. 그 결과 입학정원이 6만 1000명 감소했다. 수도권 대학의 감소율은 –7.0%였고 지방대는 -13.6%였다.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의 강압적인 대학 구조조정 정책을 버리고 대학 자율의 '적정규모화 정책'을 시행했는데, 수도권 대학은 22개 대학만이 1953명(12%) 감축을 결정했다.
반면 비수도권의 74개 대학에서 1만 4244명(88%) 감축하기로 했다. 학부 재학생이 1만 5000명이 넘는 수도권의 대형 사립대 12곳은 적정규모화 계획을 제출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의 유일한 성과는, 대학 자율로는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했다는 점이다.
역대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은 대학 평가와 재정 지원을 연계하여 정원 감축을 강제하는 방식이었는데, 취업률과 학생 충원율이 대학 평가의 핵심 지표였다. 그 결과 수도권과 사립대 편중이 심화됐고, 지방대와 전문대의 몰락이 가속화됐다. 정부의 시장 중심적인 고등교육 정책 결과는 대학의 몰락과 학술생태계의 파괴였다.
그리고 지역 소멸과 저출생은 해결 난망한 문제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8이지만 서울은 0.59이다. 흔히 지방대 몰락의 원인으로 학령인구 감소를 말하지만, 실은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의 실패가 그 원인이다.
역대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은 입학정원 규모를 조정하는 것이었다.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한 고등교육 정책은 없었다. 대학 구조개혁의 방향은 국공립대와 사립대의 비율을 조정하여 기형적인 사립대의 비중을 낮추는 것이어야 했다. 대학의 적정 규모를 설정해 입학정원이 1만 5000명이 넘는 대규모 대학의 비중을 낮추는 것이어야 했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지방대 육성이어야 했다.
역대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그러나 역대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은 정확히 그 반대 방향으로 진행됐다. 역대 정부는 시장의 논리를 따라 대학을 구조조정했다. 대학도 이에 편승했다. 새 정부의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극단적 시장주의를 따르고 있다. 30개 지방대에 5년 동안 1000억씩 지원하겠다고 한다. 그럼으로써 공멸을 재촉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공립대를 통합하여 세계적인 대학을 육성하자고 한다. 덩치가 크면 살아남는다? 하버드의 학부생은 6000명이다. 지방대에 재정을 집중 지원하자고 한다. 그런데 출산 장려금을 받기 위해 아이를 낳던가? 지방대에서는 직업교육을 강화하자는 주장도 있다. 지방은 수도권의 식민지인가?
지방대를 평생교육기관으로 전환하자고? 대학 진학이 70%다. 주당 노동시간이 52시간인 나라고 69시간까지 일하도록 하자는 나라다. 지역에 일자리를 창출하자고 한다. 정부가 만들 수 있는 일자리는 공공기관의 단기간 일자리와 중소기업 일자리, 청년몰이며, 이는 모두 학생들이 기피하는 저임금 불안정 노동이다. 여학생들을 위한 일자리는 지방에 없다.
지역의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고용 불안과 사회 불평등,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이다. 고등교육 정책은 저출생과 따로 갈 수 없다. 지역을 살리고 학술생태계를 복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전체 대학의 입학정원을 일률적으로 감축하고 교육과 연구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를 15명으로 낮추고, 전임교원 최대시수제를 도입하여 교수들이 연구와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수들이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지방대를 다닌다는 것, 지역에서 산다는 것, 그것이 패배인 한 지방대 위기 극복은 불가능하다. 저출생 문제는 해결 난망이다. 경쟁 지상주의, 능력주의에서 탈피해야 한다, 교수들 자신부터 그래야 한다.
가장 한심한 부류는 국립대 통합론자들이다. 대학의 덩치를 키워서 자기 대학만이라도 살겠다는 사람들, 그렇게 지방대 몰락을 재촉하는 사람들.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A유형을 만들어서 강사들을 갈라치기 하고 경쟁에 몰아넣은 사람들. 돈 몇 푼 더 쥐여주는 비정년트랙 전임교원 만들어서 연구와 교육을 몰락시킨 사람들.
정작 대학에 필요한 것은 연구자의 저변 확대다. 그러니 선택과 집중으로 지방대를 육성하겠다는 사람들, 선택과 집중으로 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사람들, 이들은 천박한 약육강식의 논리를 따르는 사람들이고, 파탄난 사회진화론자들이고, 대학 공동체를 파괴한 주범들이다. 지방대는 그렇게 몰락했다. 학술생태계는 그렇게 파괴되었다. 여기에는 미래가 없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자신이 사는 나라를 '헬조선'이라 명명했지만, 더 지독한 지옥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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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룡 부산대학교 교양교육원 / 오마이뉴스
고구마 농장’ 덮친 한동훈 법무부…“농민에 칼 휘두르는 나라”
외국인 농업노동자 무차별 단속에 절규
“외국인 없이 농사 불가능한 상황 된 지 오래
합법 쓰고 싶지만 없다, 불법 봐달란 게 아냐”
법무부의 불법 체류 외국인 농업노동자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2일 경기도의 한 농촌 지역 비닐하우스에서 타이(태국) 국적의 농업노동자 2명이 모종용 고구마에 물을 주고 있다. 김기성 기자
들판에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물을 댄 논에도, 씨감자를 묻어야 할 밭이랑에도 사람은 그림자도 안 비치고 뿌연 황사만 자욱했다. 읍내로 나가는 마을 앞 도로에는 늙은 농부가 탄 낡은 경운기만 “탈탈탈탈” 요란한 엔진음을 내며 지나갔다.
지난 12일 찾은 경기도 여주시 가남읍 대신리의 한 농장도 인적이 드물긴 마찬가지였다. 고구마 출하를 앞두고 분주해야 할 농산물 창고에는 적막만 흘렀다. 포장을 위해 쉼 없이 돌아가야 할 고구마 선별작업장의 컨베이어벨트에선 흙먼지만 뽀얗게 묻어났다. 땅콩과 감자를 심어야 할 창고 근처 밭도 잡초들만 수북이 머리를 내밀었고, 고구마 싹을 틔우는 비닐하우스도 사람 하나 없이 썰렁했다.
이곳은 두어달 전만 해도 외국인 농업노동자들로 시끌벅적했던 곳이다. 그러나 최근 법무부의 불법체류 외국인 농업노동자 단속반이 훑고 간 뒤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살던 숙소 곳곳에는 주인 잃은 옷가지와 이불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이날 숙소 주변에서 점퍼 차림의 기자를 맞닥뜨린 한 타이(태국)인 노동자는 후드를 뒤집어쓰고 잰걸음으로 자리를 옮겼다. 말을 걸려고 다가서자 “나 불법 아니에요, 아니에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도둑질하는 것도 아닌데 지금껏 가슴 졸이며 고구마 심고 감자 캐고 그래 왔습니다. 법에는 피도 눈물도 없다지만, 유독 농민들을 향해 이렇게까지 칼을 휘두르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노동자 귀국 비용 쥐여주고, 야산에 올랐다
마을 안 이곳저곳으로 기자를 안내하던 고구마 농장 주인 고석재(57)씨가 분통을 터뜨렸다. 농과대를 졸업하고 객지에서 사업을 하던 고씨는 10여년 전 고향에 돌아와 5만평 남짓한 논밭을 일구며 부농의 꿈을 꿨다. 새 종자도 개발해보고 시설도 늘렸다. 마을에선 ‘토박이 대농’으로 불렸다.
고씨의 꿈은 지난 2월1일 산산조각이 났다. 승합차 2대에 나눠 탄 법무부 직원 10여명이 갑자기 농장에 들이닥쳤다. 이들은 외국인 농업노동자들이 머물던 농장 숙소를 급습했다. 이날 12명의 농업노동자가 불법체류 혐의로 붙들려 갔다. 고씨가 “농번기에 이러면 다 죽는다”고 통사정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붙들린 사람들은 외국인보호소로 보내졌다.
고씨는 엿새 뒤 경기도 화성의 외국인보호소를 찾아갔다. 한여름 땡볕에서 농사를 도와줬던 이들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내게 돼 미안하다”며 한 사람당 70만원씩의 귀국 비용을 쥐여준 뒤 농장으로 돌아왔다.
지난 12일 오후 외국인 농업노동자들이 단속돼 상품으로 출하하지 못한 고구마가 창고에 그대로 쌓여 있다. 김기성 기자
눈물에 탄식만 나왔지만, 벌여놓은 농사를 포기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농장을 돌려야 했기에 알음알음으로 찾아온 외국인들을 다시 고용했다. 단속을 피해 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고구마 선별작업장을 가동했고, 법정공휴일 등 법무부 직원들이 쉬는 날만 골라 ‘숨바꼭질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법무부 단속반은 끈질겼다. 같은 달 22일 고씨의 농장을 새벽에 급습한 법무부 직원들은 3시간 넘게 숙소를 에워싸고 대치하다가 안에 머물던 외국인 노동자 6명을 모두 잡아갔다. 최소 20명이 필요한 농장에서 18명이 단속에 걸려 강제추방 절차를 밟게 됐고, 농장주 고씨는 ‘불법 고용’한 외국인 노동자 한 명당 200만~300만원 안팎의 범칙금을 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어림잡아 5천만원이 넘는 ‘범칙금 폭탄’을 떠안은 것이다.
“별수 있습니까? 유서를 썼죠. 어차피 다 망해 죽어 나자빠지는데 더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더라고요. 마을 야산에 올라가 목숨을 끊으려던 때, 저를 애타게 찾는 마을 방송 소리를 들었습니다. 조금 있으니 가족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도 올라오더라고요.”
농업인력 80~90%가 외국인이지만
고씨가 이날 여러차례 강조한 것은 ‘단속을 해도 상황을 봐가며 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일손이 부족한 농촌 현실을 외면한 무차별 단속으로 농심이 썩어들어가고 있다. 대책도 대안도 없는 농업노동자에 대한 실적 올리기 식 단속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고 했다.
“불법을 봐달라는 게 아닙니다.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겁니다. 농민 목소리에 귀를 열지 않으면 나라의 근간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경기도 여주시 가남읍의 한 농장주인 고석재씨가 일손이 없어 멈춰 선 고구마 상품 선별작업용 컨베이어벨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이 농장에는 외국인 농업노동자 20명이 있었으나, 지난 2월 법무부의 두 차례 단속으로 18명이 강제 출국당했다. 김기성 기자
외국인 노동자 단속으로 날벼락을 맞은 것은 고씨뿐만이 아니다. 여주지역에서 지난 2~3월 단속을 당한 농가는 30곳이 넘는다. 대부분 고구마와 땅콩, 감자 등 밭농사를 짓는 농민들이다. 농기계를 주로 사용하는 논농사에 견줘 상대적으로 수작업이 많이 필요한 일들이다. 고씨는 “품앗이로 돌아가던 농업구조는 완전히 변했다"며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농사가 불가능한 상황이 된 지 오래"라고 했다.
나날이 강도를 더해가는 단속에 대한 공포에 여주지역 농민들은 ‘농업인력수급 여주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여주시농민회를 비롯해 여주시친환경농업인연합회, 여주시고구마연합회, 여주친환경출하회, 여주시인삼연구회 8개 농민·농업단체가 참여했다. 지난달 17일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더는 농민들을 범죄자로 만들지 말고 농번기 단속을 유예하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남정현 여주시 친환경출하회 사무국장은 <한겨레>에 “농업이 100% 기계화·자동화되지 않는 이상, 불법체류 외국인이라도 고용하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 마구잡이식 단속은 농촌을 한층 피폐하게 만들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국내 농업인력의 80~90%가 외국인들로 충원되고 있다. 그러나 취업비자 근로자와 계절근로자 등 합법적인 농업인력은 10% 미만으로 추산된다. 김영준 농업인력수급 여주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계절근로자 등 합법적 경로를 밟는 농업노동자는 상시 근로가 가능한 축산업과 대규모 시설원예 농가에서 주로 일하기 때문에, 농번기에 집약적으로 일할 노동력이 필요한 다수 농가들에겐 합법 노동자를 쓰는 것은 언감생심”이라고 했다.
“텅 빈 들판에서 울고 있는 농민들을 보라.” 지난달 17일 여주시청에서 열린 농민 집회에서 김남익 여주시고구마연합회장이 한 말이다.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검언유착’ 제보자, ‘범죄이력 공개’ 조선·동아일보에 1억 청구
제보자 지씨, 조선·동아일보 기자들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사실적시 명예훼손 등 불법행위로 극심한 스트레스 고통”
MBC에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을 제보했던 제보자가 조선·동아일보 기자들을 상대로 1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들 언론이 자신의 전과와 범죄 사실 및 형량 등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한 데 대해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다.
제보자 지아무개씨는 지난달 29일 조선일보와 소속 기자 2명, 동아일보와 소속 기자 2명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소장을 제출했다.
▲ 조선일보 2020년 4월3일자 1면.
조선일보는 지난 2020년 4월3일자 1면 <친여 브로커 “윤석열 부숴봅시다”… 9일 뒤 MBC ‘檢·言’ 유착 보도>, 12면 <사기전과 MBC 제보자, 뉴스타파·김어준 방송서도 활약> 기사를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지씨에 “횡령, 사기 등으로 복역”했고 “친여 매체에 출연해 현 정권(문재인 정권)을 적극 옹호했다”며 “제보의 순수성이 의심되는 대목”이라고 했다. 지씨는 자신의 전과를 적시한 보도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및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 조선일보 2020년 4월3일자 12면.
지씨는 2020년 4월10일자 동아일보 보도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및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이날 12면 <사기 등 전과 5범 지씨, 이철 대리인이라며 기자에 접근> 기사에서 “지씨는 2015년 12월경 서울남부구치소에 수감됐다”며 “대법원 판결 검색 시스템을 통해 확인한 지씨의 범죄 전력은 M&A 전문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2001년 이후 사기와 배임, 횡령 등 경제 범죄로 유죄가 확정된 것만 5건이었다”고 보도했다. 지씨의 전과 이력을 세세하게 보도한 것이다.
지씨는 “원고의 전과 및 판결에서 확정된 범죄사실을 구체적으로 기사에서 특정할 경우 원고에게 명예훼손이 된다는 것은 더 나아가 살펴볼 것도 없이 명백하다”며 “동아일보 및 소속 기자들은 보도 이후에 수년 동안 몇십 차례 보도를 통해 원고 실명과 전과 사실 등을 공개해 원고 명예를 훼손하고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행위를 했다”고 밝혔다.
지씨는 앞서 언급한 조선일보·동아일보 보도로 인해 “원고와 그 가족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압박감,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피고들은 원고에게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조선일보와 소속 기자 2명이 공동하여 5000만 원, 동아일보와 소속 기자 2명이 공동하여 500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동아일보 2020년 4월10일자 12면.
2020년 3월 MBC 보도로 불거진 ‘검언유착’ 의혹 사건은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비리를 캐기 위해 이동재 채널A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현 법무부장관)이 공모하여 사기죄 등으로 수감 중인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를 협박했다는 의혹이다.
MBC 보도 전 지씨는 이철 전 대표를 대리해 이 전 기자와 세 차례 만났고, 이 전 기자는 지씨와의 만남과 통화에서 “(나는) 검찰 측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등의 발언을 했다. 검찰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이와 같은 발언은 ‘검언유착’ 프레임을 강화했다.
▲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지난 1월19일 재판이 끝난 후 기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윤수현 기자.
하지만 ‘검언유착’을 입증할 만한 근거를 찾지 못한 검찰은 공소장에 한 검사장을 공범으로 적시하지 못했다. 이 전 기자는 지난 2020년 8월 이 전 대표를 상대로 한 강요미수 혐의로 구속 기소됐으나 지난 1월 무죄가 확정됐다. 무죄가 나온 요인으로 대리인 지씨의 메시지 왜곡이 꼽힌다.
1심 판사는 지씨가 이 전 대표 진의를 왜곡한 채 이 전 기자와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봤다. 지씨가 이 전 대표의 대리인이라면, 이 전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 계획이 가장 큰 관심사여야 하는데 정작 지씨는 존재하지 않는 정관계 인사 비리 자료를 빌미로 이 전 기자에게 검찰 관계자와의 연결만 요구했다는 것이다.
1심 판사는 “피고인들(이동재·백승우 채널A 기자)의 메시지가 중간 전달자인 지씨 등을 통해 왜곡돼 피해자(이철)에게 전달된 결과에 따른 것이어서 피고인들에게 강요미수죄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
엠폭스 확산에 다시 성소수자 낙인찍는 언론
머니투데이·YTN·주간조선 등 언론 엠폭스 확산 기사에 ‘양성애자’, ‘성소수자’ 낙인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조차 없는 전문가 발언 인용해 혐오와 낙인 전파해” 비판 이어져
엠폭스 감염의 원인으로 성소수자를 거론하며 ‘문제집단’으로 낙인찍는 언론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외 의료계에서 엠폭스가 동성간 성관계로 확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공인했음에도 기사에 ‘성소수자’, ‘동성애’, ‘양성애’라는 단어를 명시하며 낙인찍는 언론보도가 확산되자 ‘언론이 성소수자에 대한 근거없는 혐오와 낙인을 전파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11월 국내 ‘원숭이두창’ 질병명이 특정 집단·인종·지역에 대한 차별·낙인적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해 ‘엠폭스’(MPOX)로 질병명 변경을 권고했다. 국내 언론은 지난해 5월 해외 발병 사례에 대한 외신을 인용하면서 엠폭스 보도를 시작했는데, 물집 등이 발생한 검은 피부 이미지와 ‘동성 간 성관계’ 키워드를 중심으로 선정적이고 왜곡된 보도를 내놨다.
▲ 엠폭스 관련 UN 홈페이지 갈무리
엠폭스가 동성간 성관계로 확산되지 않았다는 점은 국내외 의료계에서도 공인한 사실이다. WHO는 지난해 5월25일 “엠폭스는 남성과 성관계를 갖는 남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6월30일엔 유엔에이즈계획(UNAIDS)이 “코로나19, HIV, 최근 엠폭스 관련 루머가 인종, 경제적 지위, 성정체성으로 이미 소외된 집단에 대한 낙인과 차별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내에서 엠폭스 확진자가 확산되자 언론은 또다시 제목과 내용에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소수자’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머니투데이는 지난 17일 <“양성애자가 걸리면…” 의사의 경고, 엠폭스 지역사회 확산 우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의 엠폭스 발병 현황을 보면 남성 동성애자 그룹에서 유행하는 게 특징으로, 남성의 정액 같은 체액을 통한 감염이 주된 감염 경로로 보인다”는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의 말을 인용했다.
▲ 머니투데이, 이데일리, 주간조선 기사 제목 갈무리.
기사는 “엄 교수는 엠폭스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남성 성소수자에 대한 감염 확산 방지 전략을 정부가 어떻게 세우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며 “통상적으로 성소수자 같은 성적 취향을 갖고 있지 않다면 일반적인 생활에서 엠폭스를 예방하기 위해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려 하는 것보다는 코로나19·인플루엔자·RSV 같은 호흡기 바이러스를 막기 위한 수칙, 즉 마스크 착용, 손 씻기, 기침 예절을 철저히 실천하는 게 낫다”는 엄 교수의 말도 덧붙였다.
해당 보도는 여러 문제를 담고 있다. 일단 명확한 근거 없이 남성 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을 감염의 원인으로 규정했다. 문제는 이를 근거로 남성 성소수자 중 양성애자들이 감염되면 이를 이성애자들에게 옮길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하는 대목이다. 남성 동성애자가 남성 양성애자를 만나 전염시킨 뒤 남성 양성애자가 여성 이성애자를 만나면 남성 이성애자들도 감염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동안 근거없이 성소수자들을 성적으로 문란한 존재라고 공격했던 논리를 전문가의 입을 통해 확산한 전형적인 소수자 혐오·차별 보도행태다.
YTN도 19일 <“성 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엠폭스 숨은 확진자 ‘경악’>이라는 제목의 보도를 내놨다가 현재 시점에선 <“숨은 엠폭스 환자는...” 커지는 우려>로 제목을 수정했다. YTN은 “동성 간 성접촉 등으로 주로 전파되는 만큼, 낙인 우려에 진단을 안 받는 사람이 많아지면 전파 속도가 빨라지고 유행 규모가 커질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며 “익명 검사를 통해서 이제 그런 부분들을 받을 수 있게 성 소수자 커뮤니티나 이런 부분에 있어서 그런 홍보들을 잘하게 되면 빨리빨리 찾아내는 게 지역사회의 토착화가 되거나 풍토병화 되는 걸 그나마 막는 방법이 되기 때문에…”라고 말하는 신상엽 KMI 한국의학연구소 연구위원의 말을 인용했다.
▲ YTN 보도 갈무리(제목 수정 전)
이밖에도, 이데일리 <“엠폭스, 양성애자 감염되면”…의사의 경고>(2023.4.18), 주간조선 <엠폭스 11일새 11명 확진...전문가들 양성애자 감염 경고>(2023.4.18), 세계일보 <엠폭스 확진자 3명 늘어 총 13명…전문가 “양성애자 감염되면 확산세 위험”>(2023.4.18), 데일리굿뉴스 <엠폭스(원숭이두창) 국내 감염 확산…“남성 동성애 그룹서 유행”>(2023.4.17) 등 성소수자를 엠폭스의 원인처럼 낙인찍는 제목의 보도가 이어졌다.
질병관리청이 지난 13일 언론에 내보낸 보도자료에도 성소수자를 엠폭스의 원인으로 거론하는 문장이 명시되어 있었다. 질병관리청은 엠폭스 위기경보수준을 ‘관심’에서 ‘주의’ 단계로 격상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주요 대응 조치로 ‘(교육・홍보) 의료진, 성소수자 커뮤니티 등 중심으로 예방수칙 안내 및 교육 실시, 의심 증상 발생 시 신고 독려’를 명시했다.
▲ 질병관리청 4월13일 보도자료 갈무리.
이에 HIV/AIDS인권활동네트워크와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지난 18일 성명을 내고 “엠폭스발 성소수자 혐오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머니투데이가 인용한 엄 교수의 발언을 두고 “기사에서 인용된 양성애자가 걸리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의사의 발언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며 “양성애는 성적지향이 남성 또는 여성, 양쪽을 향할 수 있다는 것이지 양성과 동시에 만남을 갖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자 없는 발언이 전문가의 의견으로 인용되어 근거없는 혐오와 낙인을 전파하는 것은 인권보도준칙에도 위배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HIV/AIDS인권활동네트워크와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성명.
아울러 “지금 중요한 것은 정체성과 상관없이 성적으로 활발한 사람들과 감염 가능성에 노출된 사람들이 낙인없이 자신의 건강을 돌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이미 2020년 이태원지역 코로나19 집단감염 등 여러 코로나19 관련 사건들을 통해 감염병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돌봄과 연대, 확진자의 인권 보장이지,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낙인과 혐오가 아님을 배웠다. 3년간의 힘든 시간을 거쳐 얻어낸 소중한 교훈이 또다시 무책임한 언론 기사를 통해 훼손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HIV/AIDS인권활동네트워크는 ‘엠폭스 언론과 미디어 가이드 및 정부의 역할’이라는 가이드라인을 내놓기도 했다. 가이드라인은 “확진자와 밀접접촉자의 개인정보를 노출하는 건 인권을 침해할 뿐”이라며 “동등한 만남과 섹스의 특정 형태를 생활환경으로부터 분리시켜 노골적으로 대중에게 전시하는 것은 의도적으로 혐오를 조장하는 것과 다름없다. 도덕적 질책과 비난은 취약그룹을 음지화해 예방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언론과 방송, 미디어는 특정 집단에 대한 불필요한 묘사와 비난을 멈추고 책임 있는 보도를 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 HIV/AIDS인권활동네트워크가 내놓은 ‘엠폭스 언론과 미디어 가이드 및 정부의 역할’ 가이드라인
정부에도 “방역당국은 성정체성과 특정 행동을 사회병리화하고 질병에 연결시키는 시도들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혐오와 낙인이 예방을 저해할 것이라는 점을 수시로 대중에게 환기시키는 것 또한 당국의 역할”이라며 “올바른 정보에 접근하고 시민들 스스로 예방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가이드와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개인에 대한 정보 노출을 삼가고 차별을 예방하고 구제할 방안을 제공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국기자협회의 인권보도준칙도 성소수자를 특정 질환이나 사회병리현상과 연결짓지 않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준칙은 ‘성적 소수자를 비하하는 표현이나 진실을 왜곡하는 내용, ‘성적 취향’ 등 잘못된 개념의 용어 사용에 주의해야 한다’, ‘성적 소수자의 성 정체성을 정신 질환이나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묘사하는 표현에 주의해야 한다’, ‘에이즈 등 특정 질환이나 성매매, 마약 등 사회병리 현상과 연결 짓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국민 속이는 여론조사" 있다?…尹대통령이 말하는 '여론조사의 문제점'은?
尹대통령 "여론조사 질문은 과학적이어야…그렇지 않다면 국민을 속이는 것"
윤석열 대통령이 "여론조사가 과학적이고 공정하지 않으면 국민을 속이는 행위"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1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모두발언을 통해 "표본 여론조사는 표본 설정 체계가 과학적이고 대표성이 객관화돼야 한다. 나아가 질문 내용과 방식도 과학적이고 공정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결국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가 추진 중인 근로시간 유연화와 관련해 정부는 광범위한 여론 수렴을 1대 1 대면조사, FGI(집단심층면접), 표본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있다"며 "이러한 여론조사 내용도 결과뿐 아니라 내용과 과정도 모두 공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국민께 여론조사 과정과 내용을 소상히 알리고, 이에 따라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론조사에 대한 정부의 민감한 반응은 처음이 아니다. 특히 윤 대통령이 "질문 내용과 방식도 과학적이고 공정해야 한다"고 말한 것과 관련해 최근 정부가 한국갤럽 여론조사 '질문'을 문제삼은 적이 있어 주목된다.
앞서 한국갤럽이 조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찬반 여론조사와 관련해 정부는 "질문 설계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이례적으로 항의했다. 농식품부는 지난 12일 "한국갤럽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조사해 지난 7일 양곡관리법 개정 찬성 60%, 반대 26%라는 결과를 발표했다"며 "하지만 정부는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결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한국갤럽의 질문은 '쌀값 안정화, 농가 소득보장을 위해 찬성', '쌀 공급과잉, 정부 재정부담 늘어 반대'였는데, 이것이 찬성을 유도하는 편향된 질문이라는 주장이다.
또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난 14일 '대통령실은 지지율 하락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여론조사는 어떤 경우에는 참고하고 어떤 경우에는 참고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참고하지 않는 경우엔, 하루에 나온 여론조사가 오차 범위가 넘게 틀리면 어떤 여론조사를 믿어야 하는지 굉장히 의구심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표본 추출이나 질문지 구성이나 과학적 방법인가에 대해 의문점을 갖는 경우가 굉장히 많기 때문에 참고하는 경우도, 참고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프레시안 박세열 기자
尹 지지율 떨어지면 반복하는 ‘노조 때리기’에 맞장구 치는 언론
尹지지율 하락 요인 ‘김건희·외교·불투명성’…대응은 ‘노조 때리기’
지지율 반등 카드로 꺼낸 ‘고용세습’…“노동개혁” 포장하는 보도들
국정 지지율이 떨어지면 대통령이 어김없이 노조를 비판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이를 ‘노동개혁’으로 포장하는 대통령실 주장을 언론이 무비판적으로 받아써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최근 ‘고용세습’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직원 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단체협약을 시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아차 노사를 입건했다는 17일 한국경제 보도가 계기였다. 이날 윤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미래 세대의 기회를 박탈하는 고용 세습을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고 했다. 18일 국무회의에선 “아직도 국내 일부 기업의 단체협약은 직원 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조항을 유지하고 있다”며 “고용세습은 우리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부당한 기득권 세습으로 미래 세대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가 된 기아차 단체협약은 ‘재직 중 질병으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 정년퇴직자 및 장기근속자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는 내용이다. 고용노동부는 기아차 측이 관련 단체협약을 시정하라는 조치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사법조치에 나섰다. 이후 기아차 노조 상급단체인 금속노조는 이미 올해 1월 중앙집행위원회에서 해당 조항 삭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기아차 노사는 이 조항을 근거로 채용된 사례가 없다는 입장이다. 실질적인 ‘고용세습’이 있었거나 이뤄질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고용세습’을 비판하고 나선 배경으로는 지지율이 꼽힌다. 14일 한국갤럽이 공개한 4월2주차(11~13일) 국정 지지율은 약 5개월 만에 30%선이 무너진 27%로 나타났다. 과거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개입 의혹이 높았던 시기(긍정 25%), 문재인 정부의 긍정률 최저치(29%)와 유사한 수준이다. 리얼미터 조사(10~14일)의 경우 5개월 만에 부정평가가 63%까지 올랐다. 자세한 조사 결과는 각 조사기관 홈페이지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갤럽이 4월 11~13일 전국 만18세 이상 10002명 대상으로 진행한 윤석열 대통령 국정 지지율 조사 결과 및 최근 6주간 지지율 추이. 무선전화 RDD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유선전화 RDD 5% 포함)해 전화조사원 인터뷰(CATI) 진행. 표본오차: ±3.1%포인트(95% 신뢰수준), 응답률 8.2%(총 통화 12,251명 중 1,002명 응답 완료), 한국갤럽 자체 조사
▲리얼미터가 4월 10~14일 진행한 윤석열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 결과
이전에도 윤 대통령은 지지율 하락세가 장기화되려 할 때마다 노조 비판에 힘을 줬다. 그러나 실제 지지율을 깎은 요인들은 따로 있었다.
尹지지율 하락 요인 ‘김건희·외교·불투명성’…대응은 ‘노조 때리기’
국정 지지율 보도에 주로 인용되는 한국갤럽, 리얼미터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공통적인 지지율 하락 기점은 지난해 6월 말, 8월 초, 9월 말, 올해 3월 첫주와 4월 첫주로 모인다. 첫 번째 시기는 지난해 6월 29~30일 나토(NATO) 순방에서의 외교결례 및 김건희 여사 비선 동행 의혹이 일었을 때다. 취임 직후 50%에 가까웠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7월 들어선 부정평가에 역전됐다.
8월엔 1일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인터뷰로 촉발된 취학연령 하향조정 논란과 8일 박 부총리 사퇴, 김건희 여사 논문 표절 재조사 결과 논란 등이 이어진 끝에 부정 평가가 60%대 후반에 달했다. 여기에 9월22일 뉴욕 순방 당시 윤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과 여권의 MBC 탄압 사태가 지지율을 한 번 더 끌어내렸다. 한국갤럽 20%, 리얼미터 30% 안팎의 지지율이 장기화한 11월, 윤 대통령은 화물연대 파업을 “불법적인 폭력”으로 규정하고 나섰다.
▲2022년 5월~2023년 4월 한국갤럽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 월별 추이
화물연대가 파업을 끝낸 12월이 지나면서는 지지율이 완만하게 오르는 듯했지만 이내 정체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2월 윤 대통령이 ‘건폭’(건설 현장 폭력)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건설노조를 비판했다. 이후 한국갤럽 30% 중반, 리얼미터 40% 안팎까지 올랐던 지지율은 지난달 16~17일 한일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다시 주저앉았다.
그리고 이달 8일 미국발 도감청 의혹에 대한 대통령실의 불투명한 대응이 도마에 오르면서 4월 2주차 지지율이 최저치 가깝게 내려 앉았다. 이런 맥락 속에서 윤 대통령이 두 달 만에 ‘고용세습’ 키워드를 꺼내든 것이다.
지지율 반등 카드로 꺼낸 ‘고용세습’…“노동개혁” 포장하는 보도
다수 언론도 윤 대통령의 고용세습 척결론을 지지율과 연관해 해석하고 있다. 동시에 이를 ‘노동개혁’으로 표현하는 보도들도 잇따랐다. 일례로 머니투데이는 17일 “윤 대통령이 노조회계 투명화 등에 이어 고용세습에 본격적인 칼날을 대고 있다. 최근 지지율 하락 국면에서 특유의 ‘윤석열다움’으로 정세를 돌파하겠다는 뜻으로도 읽힌다”고 썼다.
한국경제 <‘노동 개혁’ 강조한 尹 대통령 “고용세습 뿌리 뽑아야”>, 뉴스1 <대통령실, 지지율 하락 국면에…노동개혁·엑스포 힘주기>, 국민일보 <노동개혁 다시 꺼낸 尹 “고용세습 뿌리뽑아야”>, 국제신문 <다시 노동개혁 꺼내든 尹, 지지율 하락 국면 돌파> 등을 비롯한 기사에서도 윤 대통령의 언행이 ‘노동개혁’으로 묶였다.
반면 윤 대통령 주장의 사실관계를 판단한 보도를 찾기는 어렵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에서 ‘윤석열’ ‘고용세습’ ‘노동개혁’으로 검색된 17~18일 보도는 50건, 이 가운데 실제 고용세습 사례가 없다고 설명한 기사는 한 건도 없다. “산업현장에서 고용 세습을 없애는 일은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폭력 행위 엄단 등과 함께 윤 대통령이 표방하는 노동개혁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꼽힌다”는 설명 뿐이다. 대통령 발언을 그대로 전하거나 대통령실 입장을 부연하는 관행으로 작성된 기사들이 대통령실 홍보 창구처럼 활용된 것이다.
▲4월 17~18일 다음뉴스 윤석열, 노동개혁, 고용세습 관련 보도 갈무리
기아차 단체협약 조항이 사문화됐다는 반론이 담긴 기사를 찾기 위해 ‘윤석열’ ‘고용세습’ ‘사문화’ 키워드로 추출한 기사는 이틀간 5건(MBC·YTN·조선일보·한겨레)에 불과했다.
김한주 금속노조 언론부장은 20일 “언론이 부도덕한 사건으로 노동조합에 대한 ‘프레이밍’을 키우는 데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그 이면에는 한국의 모든 언론사가 광고에 휘둘리는 지형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며 “노조가 곧 부패세력이라고 선동을 하려는 미디어와 정치권이 같이 가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김 부장은 이어 “지난 보수 정부에서 빠짐없이 등장한 게 ‘노동개혁’이라는 정부 의제”라며 “윤석열 정부가 노동개혁을 꺼낸 와중에 나온 것이 주69시간제였다. 고용노동부는 곧 임금체계 개편안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하반기까지 제도 정비를 하겠다는 계획이다. 취약계층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상대적으로 고임금자를 끌어내리는 방향”이라고 했다. 그는 “정부가 ‘MZ노조’로 띄웠던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마저 정부정책에 반대 입장을 세우고 있다”며 “본질적 문제는 보지 못하고 ‘악선동’에만 매진하다 역풍을 맞는 상황을 정부가 직시해야 한다”고 했다.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러시아 ‘적’으로 돌리는 대통령…살벌한 진영 갈등 한복판으로
러시아 국방부가 19일(현지시각) 초음속 전략폭격기 투폴레프(Tu)-22M3이 동해와 오호츠크해에서 비행하고 있는 모습을 공개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지원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한국이 살벌한 진영 갈등의 ‘한복판’에 내몰리게 됐다. 핵 대국이자 극동에 만만치 않은 전력을 배치해둔 러시아를 ‘적’으로 돌리면, 한국의 안보 환경이 더 위태로워지고, 외교적 운신의 폭이 극단적으로 좁아질 수밖에 없다.
19일 <로이터> 통신 보도를 통해 윤 대통령의 발언이 전해진 뒤 러시아는 한국에 살벌한 경고 메시지를 쏟아냈다. 러시아 외교부는 20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어떤 무기 제공도 반러 적대(hostile) 행위로 간주하겠다”고 했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안전보장회의 부의장은 전날 우리가 “북한에 최신 무기를 제공하면 한국 국민들은 뭐라 말할지 궁금하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쏟아냈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직간접적으로 군사 지원을 결단하면, 한국을 적으로 간주하고 보복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한국은 지난해 2월 말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뒤 미국이 주도한 대러 제재에 참여해 그해 3월7일 러시아의 ‘비우호국’으로 지정됐다. 윤 대통령의 말대로 군사 지원에까지 나서게 되면, 이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적’이 되고 마는 셈이다.
이를 경고하듯 러시아 국방부는 윤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직후인 19일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초음속 전략폭격기 투폴레프(Tu)-22M3 8기를 오호츠크해와 동해 북부에 띄웠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점점 강화되는 미-일 동맹과 한·미·일 3각 군사협력을 견제하기 위해 14일부터 극동에서 “167척의 전함·보급함, 12척의 잠수함, 89기의 항공기·헬리콥터가 참여”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진행 중이다.
세계적으로 보면, 러시아의 침략을 직접적 안보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적극적 군사 지원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2월 말 개전 이후 19일까지 354억달러(약 46조8000억원)의 군사 지원을 쏟아부었고, 독일은 ‘시대전환’을 선언하며 주력 전차인 레오파르트2를, 폴란드·슬로바키아는 옛소련제 전투기인 미그-29까지 지원했다.
하지만 한국과 비슷한 입장인 일본은 올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의장국임을 내세워 화려한 ‘립서비스’를 쏟아내면서도 군사 지원엔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자세는 지난달 21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키이우 ‘깜짝 방문’ 때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회담 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일본은 2022년 이후 총액 71억달러에 달하는 인도·재정 지원을 결정했다”며 “전력·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해 가겠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자료 ‘일본은 우크라이나와 함께 있다’를 봐도 일본은 방탄조끼·방탄헬멧·천막 등 비살상 물품을 보냈을 뿐이다. 시민들 역시 76%가 무기 지원이 “필요하지 않다”(<니혼게이자이신문> 2월 여론조사)는 입장이다. 일본은 전쟁 이후 러시아와 삐걱대면서도 사할린을 통해 액화천연가스(LNG)를 계속 수입 중이다. 일본의 안보와 직접 관련 없는 곳에 무기를 보내 불필요한 마찰을 빚을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군사 지원에 나서 러시아의 적이 되면 여러 곤란한 상황을 감수해야 한다. 향후 유엔 안보리 내의 모든 논의에서 발목이 잡히고, 직접적 군사 위협에 노출될 수도 있다. 2022년판 일본 <방위백서>를 보면, 2019~2022년 상반기까지 중·러는 독도 상공에 전략폭격기를 네번이나 띄우는 연합훈련을 진행했다. 2019년 7월23일엔 깜짝 놀란 한국 공군이 실탄을 쏘아가며 독도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조기 경보통제기를 쫓아냈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우린 개혁 아줌마·아저씨…검찰과 싸워야지, 왜 이재명 흔드나”
‘문자 폭탄’ 민주당 지지자 17명 인터뷰
“내 이름 신문에 써도 돼요. 아니 꼭 밝혀주세요. 기자님께서 제 마음, 우리의 이런 마음을 민주당 의원들한테 제대로 좀 알려주세요. 대구에 살고, 56살입니다. 개딸 아닌 가정주부고, 권영의입니다. 영의정 할 때 영의….” 권씨는 최근 이상민·박용진·김종민·윤영찬·조응천 등 ‘비이재명계 의원’에게 이른바 ‘문자 폭탄’을 보냈다. 그는 정치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전 민주화운동도 안 했어요. 어른이 되고 광주 5·18을 알았고, 군인들이 대구는 봐주고 전라도는 너무 핍박했다는 걸 알게 됐고 미안했죠.” 그는 “전라도 사람이 경상도 출신 노무현·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지난 대선 땐 안동 출신인 이재명을 밀어주는 걸 보고 호남이 정말 민주주의를 생각한다고 생각해서 민주당 지지자가 됐다”고 했다.
권씨는 지난해 3월9일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낙선한 뒤 정치엔 신경을 끊고 살았다. ‘대장동 의혹’도 “이 대표가 뭔가 잘못한 게 있으니 언론이 그렇게 쓴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검찰이 이 대표를 끝도 없이 압수수색하는 걸 보고 “검사독재가 너무 심하다”고 확신해 서울에서 열리는 규탄 집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찰과 싸워야 하는데 이재명 대표를 흔드는 민주당이 너무 실망스러웠고, 특히 2월27일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때 민주당 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지는 걸 보고 치가 떨려 문자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의원 핸드폰에 제 번호가 남는 걸 알면서 문자를 보낸 건 제 이름 걸고, 진심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국민의힘 당원인 남편이 만날 <채널에이> <티브이조선>만 보는데 출근하면 전 그 흔적을 다 지웁니다. 남편은 ‘네가 언제부터 민주당원이었냐’고 말하지만 전 남편과 의견 차이를 무릅쓰고 있어요. 그런데 윤석열 정부, 검찰독재와 싸우지 않고 이 대표를 흔드는 민주당 의원 모습은 전쟁 중에 아군에게 총을 거꾸로 겨누는 것 같아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에요.”
김희성씨는 박용진 의원 지역구인 서울 강북을 권리당원이라고 했다. 호남 출신, 61살 남성이다. “당원 입장에서 민주당의 방침을 따라야지 이재명을 구속해야 한다고 하고, 국민의힘 주장을 따라 하는 게 너무 화가 나서 문자를 보냈어요. 문자를 보낸 게 죄가 된다면 처벌받겠습니다.” 그는 ‘비이재명계 의원들은 이재명 구속을 주장한 게 아니라 당당하게 검찰 수사를 받으라고 한 거 아니냐’고 물으니 “그게 그것 아닌가. 말은 그렇게 해도 윤석열 검사독재 정권에 맞서 당원이 똘똘 뭉쳐야 할 때 그런 말로 당을 분열시키고 자신들이 민주당을 먹으려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김씨는 자신들을 ‘개딸’로 규정하고 이재명 대표에게 ‘개딸과 헤어질 결심을 하라’고 외치는 비이재명계 의원들의 행태에 분노가 치민다고 했다. “그건 바닥 민심을 전혀 모르는 얘깁니다. 내가 61살인데 개딸입니까? 바닥에서 민주당을 걱정하고, ‘폭탄 문자’ 보내고 당원을 가입시키며 움직이는 사람은 나 같은 60~70대라고요. 우린 군사독재 정권을 겪은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검찰독재에 대한 두려움도 잘 알아요. 그래서 나서는 것입니다. 내 딸이 개딸인데 걔들은 우리처럼 절대 안 움직여요. 개딸 어쩌고 하는 건 만날 보수 언론, 보수 종편 채널이 만든 구실인데 의원들이 민주당 열성 지지자들의 밑바닥 정서도 파악 못 하고 헛소리하는 거라고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가까스로 부결된 뒤인 지난 3월3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서 ‘더불어수박깨기운동본부’ 회원들이 ‘수박 깨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27일 민주시민촛불연대 주최로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부결 촉구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체포동의안’ 계기 증폭
지난 20대 대통령 선거 때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적극 지지한 2030 여성을 ‘개혁의 딸’로 불렀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팬덤 ‘노사모’처럼 이 대표에겐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다. 그러나 대선이 끝나고 1년을 넘긴 시점에선 ‘개딸’은 민주당 악성 팬덤, 극렬 지지, 욕설·문자 폭탄, 트럭·상복 시위와 겹쳐지며 혐오의 낱말이 됐다. ‘문자 폭탄’ 방식에 머물던 이들이 오프라인으로 뛰쳐나온 계기는 지난 2월27일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었다. 민주당 의원 30명 이상이 반란표를 던진 것으로 확인되자 민주당 지지자들은 민주당 당사 앞에서 ‘수박 깨기 퍼포먼스’를 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수박’은 겉과 속이 다른 민주당 정치인을 가리키는 멸칭이다. ‘새날’ 등 민주당 지지 성향의 유튜브 채널은 의원들에게 체포동의안 표결 가부를 따져 물으라며 ‘수박 색출’을 독려했고, 많은 이들이 행동에 나섰다. 이른바 ‘수박’으로 의심되는 비명계 의원 지역 사무소와 자택 앞 시위도 이어졌다.
과열 양상을 보이자 이재명 대표는 “단합을 해친다”며 자제를 요청했고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이 대표를 겨냥해 “진심이라면 말로만 경고할 게 아니라 개딸이 폭력적 행위를 거듭하도록 만든 물적 기반을 없애는 조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4선 중진 의원 4명(김상희·안규백·우원식·정성호)은 ‘2023 버스에서 내려와’ 캠페인까지 시작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 때 경찰 버스에 올라가는 등 과격한 행동을 한 이들에게 다수 시민이 “버스에서 내려와”라고 외치며 국민 공감대를 넓혀 탄핵을 끌어낸 것처럼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도 지난 5일 “우리를 하나로 만들 설득과 경청의 힘을 믿는다”며 이 캠페인에 동참했다.
악성 문자 폭탄을 퍼붓고, 오프라인 시위에 나선 이들은 누구인가? ‘개딸’이라고 지칭할 수 있을 정도로 이 대표를 지지하는 젊은 여성들이 주축인가? 실체를 추적하기 위해 주요 표적이 된 이원욱·박용진·윤영찬·김종민 의원 등의 협조를 얻었다. 의원들에게 원색적인 내용의 문자를 보낸 이들의 전화번호를 받았다. “지역민 배신하면 당신도 실업자야.” “어제 과일 먹은 게 체했나 봐요. 수박은 진짜 싫어해요.” 이 정도는 평범한 항의의 내용이다. “수박 ××들 모조리 사료분쇄기에 갈아 악어 우리에 던지고 싶습니다” “천벌 아니면 벼락 맞아 뒤질 것”이라는 등의 욕설과 혐오 문자도 많다. 표적이 된 의원들은 “당원은 의사 표현의 자유가 있다”면서도 “내용을 볼 때 특정 세력이 작전하듯 개입된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도 했다.
문자 폭탄을 보낸 이들과 전화로 접촉을 시작했다. 왜 이런 원색적인 항의를 멈추지 않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연배가 어떻게 되는지 등을 물었다.
전화를 받은 이들은 우선 “어떻게 내 전화번호와 문자를 확보했냐?”고 따졌다. 비명계 의원들이 자신을 공격하라고 기자에게 먹잇감을 던져준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었다. “의원이라고 내 문자와 전화번호를 동의 없이 기자에게 전하는 건 불법 아니냐? 고발하겠다”고 목청을 높이는 이도 있었다. 오랜 기간, 여러 의원에게 반복적으로 문자 폭탄을 보낸 한 휴대전화 소유자는 “나는 여류 시인인데 모임에서 핸드폰을 빌려줬을 뿐이다. 그런 문자가 왜 갔는지 모르는 일”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 권영의·김희성씨처럼 당당했다. 이재명 대표의 거듭된 ‘자제 요청’에도 왜 ‘행동’을 멈출 수 없는지, 그 속내를 털어놨다.
의원 100여명에게 수시로 문자
지난 4일부터 19일까지 보름 동안 통화하고 접촉한 17명은 모두 자신을 ‘개딸’로 통칭하는 것에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개딸은 없다”며, 비명계 의원들이 보수 언론의 ‘개딸 악마화 프레임’을 그대로 복제해 열성 지지자, 정치 고관여층인 자신을 비난하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실제 이들 가운데 ‘개혁 성향 2030 여성’을 의미하는 ‘개딸’은 없었다. 스스로 ‘개혁 아줌마’ ‘개혁 아저씨’라 부르는 5060세대가 대부분이다. ‘개혁 할아버지’를 자처하는 70대도 있었다. 대부분 당비를 내는 민주당 권리당원이었다.
부산에 거주하는 60대 남성 송아무개씨는 열변을 토했다. “개딸이 민주당에서 분탕질 친다고 하는 건 수박들이 씌운 프레임이라고요. 솔직히 내가 60대인데 우리 입장에선 정말 2030 개딸이 있다면 그들이 할 소리 한다, 맞는 일 한다고 얘기할 겁니다. 당하는 의원들 입장에선 화나고 꼴도 보기 싫겠지만 비난 문자 받기 싫으면 국회의원을 잘하든지, 잘할 수 없으면 때려치우면 되는 것 아닙니까? 욕먹을 짓 하니까 그런 문자 받는 건데 왜 개딸을 들먹입니까?” 그는 민주당 의원 180명(2020년 총선 당선자) 휴대전화 번호를 거의 다 알고 있으며 의원 140명에게 수시로 항의 문자를 보낸다고 했다.
인천 계양구에 사는 50대 여성은 “난 개딸 아니고 개아줌마, 개혁의 아줌마”라고 했다. 2020년 총선 때 민주당에 가입한 권리당원이라고 밝힌 그는 “그들이 이재명이 대통령 후보 됐을 때 한 짓이 뭐냐. 돕지도 않고 흔들었다. 그런데 당원 77.7%가 뽑은 당대표를 흔들고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진다? 그런 수박들은 가장에게 총부리를 겨눈 거다. 정치를 몰랐을 땐 가만히 있었지만 이젠 다르다”고 했다. 당원으로서 정당한 권리인 의사 표현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경기 고양시에 사는 50대 여성 유아무개씨는 “권리당원이자 전국 대의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고, 김종민 등 민주당 의원 85명의 휴대전화 번호를 확보하고 문자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난 50대 후반 아줌마입니다. 지역구의 이용우 의원과, ‘버스에서 내려와’ 캠페인을 하는 우원식·김상희 의원에게도 문자를 보냅니다. 민주당은 당원과 지지자의 정당인데, 그들은 의원의 정당인 것처럼 얘기하니 어쩔 수 없어요. 지금 밑바닥엔 20대, 30대는 없어요. 개딸보다 50대 개아줌마, 60~70대 개할아버지가 문자를 보내는 겁니다. 개딸 프레임, 그건 똥파리, 수박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고 만들어낸 게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유씨는 2020년 총선 때 제대로 개혁하라고 민주당에 절대다수의 의석을 몰아줬다며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에게 화살을 돌렸다. “우리는 문재인 정부에서 개혁한다고 의석 달라고 해, 민주당에 180석 깡패의석을 몰아줬을 뿐입니다. 희망고문만 당하고 검찰개혁도 언론개혁도 못 했어요. 그런데 문재인 정부 총리, 180석 깡패의석을 가진 민주당 대표를 한 이낙연씨는 뭘 했나요? 당비 내고 깡패의석까지 만들어줬으면 윤석열하고 싸워야지 왜 당원을 개딸로 몰면서 우리한테 깡패 짓을 합니까?”
지난 14일 ‘버스에서 내려와’ 캠페인의 하나로 민주당사에서 열린 당원들과의 대화. 김상희 의원실 제공
지난 3월24일 이원욱 의원 동탄 지역구 사무실과 자택 앞 시위에는 지역주민 10여명이 모였다. 동탄민주시민연대를 꾸려 시위를 주도한 이는 김한메 ‘사법정의 바로 세우기 시민행동’(사세행) 대표다. 50대 남성인 그는 지난 1년 동안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그리고 이들에 대한 수사를 게을리한 검사 등을 100여차례 고발했다. 자신이 주도한 집회에는 “소위 ‘개딸’로 불리는 2030 여성 당원 및 지지자가 단 한명도 참여한 사실이 없다”며, “개딸에게는 분노도 아깝다”고 한 이원욱 의원과 “개딸과 헤어질 결심을 하라”는 박용진 의원도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고소했다.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모욕 등의 혐의다.
이원욱 의원 집 앞에서 상복을 입고 시위를 한 김원태씨도 “내 나이가 60인데, 난 그저 당비 내는 당원으로 이 의원한테 내 의견, 불만을 표출했을 뿐이다. 그런데 비명계 의원들이 확인도 없이 나를 개딸로 매도하고, 이건 아니지 않나”라고 분노했다. 김씨는 이 의원 지역구민이 아니지만 화성시민, 화성지킴이 사무국장, 민주당 권리당원으로서 당원이 뽑은 이재명 대표를 흔드는 의원에게 반대할 자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나는 화성 동탄민주시민연대 사람들에게 집단시위보다 1인시위가 옳다고 집단행동을 말린 사람입니다. 난 이 의원 집 앞에서 1인시위를 했어요. 상복 입고 30분 정도 하다 혐오감 주고 당에 도움이 안 된다고 해 상복도 벗었는데, 내가 그렇게 나쁜 사람입니까?”
<한겨레>가 접촉한 17명이 문자 폭탄을 보내고 오프라인 시위를 주도하는 민주당 강성 지지층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 공통 정서가 드러난다. 열성 지지자, 당원인 자신들을 ‘개딸’이라는 용어로 악마화하는 보수 언론의 프레임을 민주당 내부에서 활용해 자신들의 입을 막으려 한다는 믿음이다. 실제 지난 14일 민주당 ‘2023, 버스 에서 내려와’ 당원과의 대화에선 한바탕 논쟁이 일었다. 한 참석 당원은 “(원래) ‘개딸과의 대화’를 기획했으나 개딸이 안 보이니 당원과의 대화로 바꿨다”고 주장했다. 우 의원은 “이재명 대표도 버스 에서 내려와에 동참했다”며 “어디서부터 손에 든 칼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이재명 대표를 좋아하는 분들부터 (칼을) 내려놔야 좋지 않겠나”라며 자제를 요구했다. 대화에 참석한 당원들은 반발했다. 당원 임세은씨는 “기득권 가진 분들부터 먼저 입 닫는 게 좋지 않을까? 사법리스크 아닌 검찰리스크다. 당대표 흔들기는 납득이 안 된다”고 퍼부었다. 박예슬씨는 “왜 당원이 내려와야 하나. 국회의원이 당원과 지지자가 못 믿게 하고 사과를 강요하는 거냐”고 맞받았다. 일부 당원들은 ‘3선 이상 의원, 버스 에서 내려와’로 대응하겠다며 우 의원 낙선 운동을 벌이겠다고 압박했다.
“자제하라는 이 대표 입장 이해”
지난 3월15일 전해철·이원욱·윤영찬·강병원 의원 지역 사무실을 돌고 국회 앞에서도 “이재명을 믿는다. 당대표 흔들기 그만하라”는 엘이디(LED) 전광판이 설치된 트럭 시위를 주도한 이는 32살 남성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이재명 갤러리’ 관리자로 ‘칼라르’라는 아이디를 쓰는 그는 이재명 갤러리에서 “민주당에서 유명한 반명 성향 국회의원 사무실로 트럭을 보내겠다”며 모금에 나섰다. “비꼬는 내용을 달아서 화환을 보내는 방식은 수박들이 조용히 내다 버리면 그만이라서 파급효과가 적다”는 게 그가 트럭 시위를 제안한 이유다. 670여만원을 모금해 트럭 시위를 주도한 그는 이재명 대표가 회견을 통해 자제 요청을 하자 “직접적인 부탁이 있었으니 어쩔 수 없다”며 시위를 멈췄다. 칼라르는 지난 5일 건강이 나빠졌다며 이재명 갤러리 관리자에서 물러났다.
이 대표의 자제 요청에 대한 생각은 엇갈린다. 김희성씨는 “이 대표 입장에선 우리더러 자제하라고 말해야지, 뺄셈정치 할 수는 없지 않냐. 그렇지만 우리 같은 사람이 있어야 이 대표도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 그래야 수박들이 더 심하게 하면 제명할 힘도 생기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김씨는 이어 “바닥에선 수박들을 다음 공천에서 배제하기 위해 권리당원을 가입시키고 있다. 나도 이번주 7명을 가입시켰다. 우리 같은 당원들이 있어 다음 총선에서 수박들은 다 물갈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경기 고양시의 권리당원인 유아무개씨는 “지금 나라 살리고 당 살릴 사람은 이재명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대표도 잘못하면 지지를 철회할 것이다. 지금 문자를 보내는 건 수박들도 비판하고, 이재명 대표에게도 자극을 줘서 일을 잘하게 독려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이 대표 리더십에 의문을 나타내는 비명계 의원들을 ‘수박’으로 지칭하며 국민의힘으로 당적을 옮기라고도 주장한다. 윤영찬 의원 등에게 “수박 찍은 내가 창피하다”는 등의 문자를 보낸 70대 남성 김아무개씨는 “내가 죽을 때가 다 됐지만 체포동의안 표결을 보고 너무 분해서 그랬다. 그럴 것이면 국짐당(국민의힘 멸칭)으로 가라”고 말했다. 대전에 거주하는 57살 남성 한아무개씨는 박용진·이상민·김종민 의원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는 “상식선에서 같은 팀, 민주당 의원이면 윤석열과 검찰, 보수 쓰레기 언론이 이재명 죽이기를 하는데 힘을 합쳐 맞서 싸워야지 자기 잇속 차리기 위해 그런 행동 하는 건 국민의힘 2중대라고 생각한다. 욕먹기 싫으면 국민의힘에서 공천받아 출마하라”고 했다.
‘욕설이 포함되는 등 거친 문자 메시지는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선 ‘의원들이 성실히 답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항변했다. 권영의씨는 이상민 의원에게 “이상민은 친일 매국노. 역적 ××야”라는 문자를 보냈다. “처음엔 ‘아군한테 총 겨누지 말고 보수 언론, 검사독재와 싸워주세요. 이재명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세요’라고 의원들에게 문자를 보냈어요. 그런데 아무 답도 없어요. 자극적인 문자를 보내니 그제야 반응이 오더라고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5일 ‘2023, 버스에서 내려와’ 캠페인에 동참을 선언했다. 이재명 대표 페이스북 갈무리
유튜브·커뮤니티에선 ‘수박 색출’ 독려
강성 지지층의 표적이 된 의원들은 이들의 집단적인 항의가 당을 획일화하는 폭력이라고 반발한다. 윤영찬 의원은 “당원의 정당한 의사 표현이라며 협박·욕설 문자와 오프라인 시위까지 정당화하고 진정성을 강조하지만 그런 행동이 이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의원들의 입을 막는다. 이 때문에 실제 많은 의원들이 속마음을 감춘다”며 “민주주의를 말하지만 당내 의견을 획일화하는 가장 위험하고 권위주의적인 행태”라고 비판했다. 박용진 의원도 “유튜브 방송이 ‘수박 색출’ 분위기를 띄우고, 각종 커뮤니티에서 의원 전화번호를 공개하면 누군가 행동에 나선다. 당에서 혐오·욕설 문자 폭탄에 대한 엄정 조처를 약속했지만 한번도 엄정하게 대응한 적이 없어 계속 문제가 되는 것”이라며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한판 대거리를 하면 보수 쪽에서 내 전화번호를 좌표로 찍고 문자 폭탄을 퍼붓는데, 양쪽의 극단이 똑같이 비민주적인 행태를 보인다”고 말했다. 김종민 의원도 “합리적 비판 문자는 소수고, 대부분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이다. 특정 세력이 기계적으로 입막음을 하려는 것 같다”며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개딸로 뭉뚱그려진 열성 지지자와 비명계 의원의 인식이 너무 달라, 당장 화해를 위한 접점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서울 양천을 지역 주민인 60대 남성은 희미한 화해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는 박용진 의원과 지역구 이용선 의원에게 ‘수박 ×× 밤에 보지 말자. 개×××야’라는 험한 문자를 날렸다. “체포동의안 표결 때 30여명 반란표가 나온 걸 보고 지역구 이용선 의원도 수박이라 생각해 문자를 보냈다”는 것이다. 그 뒤 그는 이 의원과 두차례 통화를 했다며 “나는 수박이라고 생각하고 문자를 보냈는데, 이 의원 본인은 아니라고 설명했고 내가 오해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5·18 광주 민주항쟁 때 조선대학교 1학년생이었던 그는 ‘전두환 신군부’에 맞서 카빈총을 든 시민군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민주당 모습이 더 화가 난다”는 그는 “검찰이 이재명을 압수수색한 게 몇번이냐? 정말 징글징글하다. 경선 땐 비판하고, 등지고 싸울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대표와 화합하고 함께 가야 할 때 아니냐. 그게 당원 다수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김한메 사세행 대표 “이재명 수호 아니라 검찰개혁”
김한메 ‘사법정의 바로 세우기 시민행동’(사세행) 대표.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지속적으로 고발하고 있는 김한메 ‘사법정의 바로 세우기 시민행동’(사세행) 대표는 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원욱·박용진 의원과 갈등하고 있다. 이 의원 지역구(경기 화성시을)에서 동탄민주시민연대를 결성해 이 의원 반대 시위 등을 주도한 그는 이 의원 등이 “개딸에 대한 분노조차 아깝다”고 반응하자 시위에 나선 이들을 악마화했다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시위 과정에선 이 의원의 얼굴이 사납게 보이도록 손질한 사진을 사용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왜 논란을 부르는 행동을 지속하는지 지난 13일 통화를 하며 그에게 직접 물었다.
―이원욱 의원 사진을 손질해서 사용한 건 잘못 아닌가요?
“이원욱 의원 눈꼬리·입꼬리를 살짝 올렸어요. 그게 악마화, 조작입니까? 인터넷에서 이 의원 사진을 많이 찾았는데 다 너무 예쁘게 ‘뽀샵’ 했길래 살짝 손댔어요. 사회 통념상 용인되는 수정입니다.”
―이원욱·박용진 의원 고소도 심한 것 아닌가요?
“우리가 이 의원 지역에서 시위할 때 개딸이 있었나요? 제가 50대 남자고, 70대 할아버지 등이 함께했어요. 20~30대 여성, ‘개딸’이 없다는 걸 이 의원도 다 보고받았을 것 아닙니까? 그걸 알면서 조중동이 덮어씌운 악의적 프레임에 부화뇌동했어요. 도대체 어느 정당이 자기 지지자를 극렬로 몰아 헤어지라고 합니까. 집토끼인 우리가 버려야 할 대상인가요?”
―동탄 시민이 아니라는 얘기도 있는데요.
“동탄 주민 맞습니다. 2012년에 이 의원이 초선이 됐는데, 나는 그보다 앞선 2010년부터 동탄에 13년째 거주하고 있어요. 이원욱 의원을 세번 다 뽑아줬어요.”
―이재명 대표도 시위를 그만하라고 했는데요.
“당대표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이해는 해요. 그런데 우리한테 당 화합에 도움 안 되니 자제하라고 하려면 그들에게도 등 뒤에서 동지한테 총질하지 말라고 얘기해야죠. 왜 원인 제공자한테는 아무 말 안 합니까?”
―이 대표를 지지해서 이런 행동 하는 것 아닙니까?
“이재명 편들려고, 이재명 한 사람 수호하려고 이러는 게 아니에요. 검찰개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80석 몰아줬는데 검찰개혁에 실패한 책임을 묻는 겁니다. ‘수박계열’ 의원들은 이재명을 감옥에 집어넣겠다고 인디언 기우제 지내듯 수사하는 검찰 만행을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어요.”
―비명계 의원이 이재명 체포동의안에 찬성했다는 건 억측 아닌가요?
“무기명이니 다 아니라고 하지만 35명 이상이 기권, 찬성했어요. 그러면 그들은 대체 누구입니까? 우리는 수박계열 밀정들이 그런 것으로 봅니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계속 고발하는 이유는 뭔가요?
“두 사람을 100번 넘게 고발했는데, 전 법 앞에 평등하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김건희는 3년 동안 검찰이 소환 한번 안 했어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은 표창장 하나 위조한 문제로 의전원(의학전문대학원)은 물론 학부 합격도 무효가 됐어요. 그런데 한동훈 장관 딸은 어떻게 됐나요?”
이원욱 의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민주당을 위해 바닥에서 열심히 뛴 이들이 180석을 몰아줬는데 검찰개혁조차 못 했다고 비판할 수 있고, 정치가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 책임도 있다”고 했다. 이 의원은 다만 “욕설, 조작 등의 의사 표명 방식은 사회적 병리 현상을 반영한 것이긴 하지만 분명 잘못된 것이다. 당 안에서 지지자의 생각이 점점 양극단으로 치닫는 문제도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글로벌 코리아? 덩치만 커진 ‘아메리칸 코리아’
국익에 반하는 ‘미국 다걸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22일 경기도 오산 미 공군기지에서 방한 일정을 마치고 일본으로 향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배웅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그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당장 우크라이나와 교전 중인 러시아는 한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자국에 대한 적대 행위로 간주해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미 한국은 미국 주도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고, 러시아가 우리나라를 비우호국으로 분류하면서 한-러 관계는 수교 이래 최악의 상황에 빠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강행하면 한-러는 적대 관계로 돌변하고 만다. 경제·외교·안보적 손실과 위험을 떠안으면서 말이다.
윤 대통령이 교전국에 무기 지원을 금지한다는 원칙을 뒤흔든 건, 4월 하순에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한국에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압박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윤석열 정부의 입장이 궁금해 국가안보실 고위관계자들의 대화를 엿듣기도 했다.
러-우 전쟁, 윤 정부의 역주행
미국의 도청 파문은 한국이 미국을 상대로 발언권을 높일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였다. 미국이 동맹국을 상대로 불법적인 결례를 저지른 만큼, 미국의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하면서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은 인도적·재정적 지원에 국한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거꾸로 가고 말았다. 서둘러 미국에 외교적 면죄부를 주면서 도청 파문을 한-미 동맹을 강화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기로 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한국이 성찰해야 할 지점은 이보다 훨씬 넓고도 근본적이다. 우선 최근 유출된 미국 기밀문서에 담긴 내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군의 ‘춘계 대반격’ 성공 가능성을 낮게 봤을 뿐만 아니라 5월께에 우크라이나의 방공망이 붕괴될 우려도 있다고 판단한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미국외교협회의 리처드 하스 회장과 찰스 컵천 조지타운대 교수도 최근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에서 러시아의 고전과 우크라이나의 선전에도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결과는 우크라이나의 완전한 승리가 아니라 피비린내 나는 교착상태”라고 진단했다.
한-미 간 대화의 주제는 바로 이것이 되었어야 한다. 국제사회는 물론이고 미국 조야에서조차 러-우 전쟁의 전망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는 만큼, ‘가능한 최선’이 무엇인지를 놓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했어야 한다.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전쟁의 장기화를 초래하는 것은 아닌지, 이미 국제사회에서 일고 있는 평화협상 중재 움직임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한-미 동맹도 동참하는 것은 어떤지 등을 놓고 얘기를 나눴어야 한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승리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미국식 범위’에 너무나도 쉽게 갇히고 말았다.
윤석열 정부가 무기 지원 불가 입장을 미국에 전달하면, 당장은 미국이 섭섭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도 ‘아, 한국의 기여는 대러 제재 동참과 대우크라이나 인도적·재정적 지원까지구나’라고 인식하게 된다. 실제로 나토 회원국들을 제외한 미국의 여러 동맹국들도 이런 선택을 하고 있다. 반면 한국이 미국의 범위에 갇히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할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양자택일에 몰리고 만다. 무기 지원과 관련해 미국에 여지를 주면 미국은 자꾸 채근하고 윤석열 정부는 꼼수를 생각하게 된다. 올해 3월 정부 및 방산업체가 국산 155㎜ 포탄 50만발을 판매가 아니라 대여 형식으로 미국에 제공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는 보도는 이 와중에 나왔다.
윤석열 정부는 지금이라도 한-미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러-우 전쟁에 관한 의제 방향을 바꿔야 한다. 무기 지원 불가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대화의 수준을 ‘전쟁과 평화’라는 근본 문제로 격상해야 한다. 전쟁 장기화에 따른 최대 피해자는 다름 아닌 우크라이나 주민들이다. 또 에너지와 식량 수급도 불안해지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개발도상국들과 국경을 초월해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가고 있다. 미국 등 서방 진영의 관심이 온통 러-우 전쟁에 쏠리면서 실존적 위협으로 인류 앞에 성큼 다가온 기후위기 대처도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덩치만 커진 ‘아메리칸 코리아’
한국이 미국의 진정한 친구라면 전쟁의 장기화는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러-우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러시아를 규탄하고 제재했던 나라들은 줄어들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 직후인 지난해 3월 유엔 총회 표결에서 대러 규탄에 동의하지 않는 나라는 52개국이었는데, 지난해 11월 표결에선 99개국으로 치솟았다. 반면 미국의 위선과 진의를 묻는 나라는 늘어나고 있다. 미국은 불법적으로 이라크를 침공했는데 20년이 지나도록 사과 한마디 없다. 2020년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전쟁범죄 혐의를 수사하겠다는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재를 가했다. 그러고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선 ‘정의의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미국은 종전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아시아·아프리카·남미의 개발도상국)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미국의 위선과 태도를 문제 삼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미국의 이익에 부합할까? 미국 등 서방이 개발도상국 문제에 무관심한 사이에 중국이 그 틈을 빠르게 치고 들어가고 있는데, 이런 양상이 미-중 경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러-우 전쟁의 장기화에 따른 경제 불안은 미국도 피해 가지 못하고 있는데, 이것이 고립주의의 재부상으로 이어지진 않을까? 인플레이션감축법과 반도체법을 중심으로 동맹국들을 쥐어짜는 방식으로 미국 경제를 재건하려는 시도가 지속가능할까? 친구라면 할 수 있는 질문이다.
그러자면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부터 물어야 한다. 세계에는 미국이나 미국에 동조하는 나라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안의 미국’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윤 정부는 “글로벌 코리아”를 표방하고 있는데, 실상은 ‘아메리칸 코리아’가 아닌지 헷갈릴 정도로 ‘미국에 다걸기(올인)’하고 있다. 반미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경제력 세계 10위, 군사력 세계 6위로 올라설 만큼 근력은 강해졌는데 과연 지적 능력은 어느 수준인지, 잠시라도 멈추고 생각해보자는 취지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이승만 ‘아동’포함 좌익 철저진압 지시 뒤 6·25 전후 학살참극 속출
제주 4·3과 ‘현대사서 가장 아픈 손가락’ 여순사건
여수·순천 10·19 사건(이하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19일 여수 주둔 국방경비대 제14연대가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제주 4·3 사건 진압 출동을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이승만 정부는 10월21일 여수, 순천 일대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토벌 작전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승만 정부는 초기 진압작전에서 봉기군에게 밀리자 여순 지구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동원 가능한 모든 군대는 물론 박격포·장갑차·경비정 등 모든 수단까지 동원해 해당 지역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했다. 이후 14연대는 광양의 백운산과 지리산, 산청 웅석봉 등으로 숨어들어 본격적인 유격 투쟁을 전개했으나 순천은 10월23일에, 여수는 10월27일 군경에 의해 완전 진압되었다.
진압군의 무차별 초토화 작전으로 인해 1949년 1월10일까지 인명 피해는 총 5530명(사망 3392명, 중상 2056명, 행방불명 82명)이고 가옥 피해는 8554호(전소 5242호, 반소 1118호, 소개 2184호)였다<(http://www.grandculture.net/ko/Contents/Index ).
여순 사건 희생자에 대한 ‘즉결처분’, 재판절차 거치지 않은 ‘학살’
희생자의 연령별 분포를 보면, 전체 124명 가운데 10대에서 30대가 117명으로 91.9%를 차지하였다. 성별 분포를 보면, 남자가 93.6%로 희생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는 가장 활동적인 시기의 청년 남성이 민간인 희생의 주요 대상이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여수도심권 사건이 59.6%에 달해, 희생자는 여수 진압작전과 반군 협력자 색출작업이 주로 이뤄진 이 지역에서 피해가 집중되었다. 사건 당시 반군 활동 지역에 거주했던 주민들은 처형 이유가 된 가담혐의의 경우 추정만 있을 뿐, 구체적인 가담 사실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군경의 가해는 자의적인 성격이 강했다.
군경이 작전과정에서 민간인을 살해한 근거는 계엄령에서 비롯된다. 계엄령 아래에서 이루어진 군의 ‘즉결처분권’은 민간인 살해나 처형을 정당화하는 주요한 근거였으나, 법의 일반적 요건이나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었다.
군경당국은 법적 통제를 받지 않고 작전의 편의성이나 효율성만을 고려하여 ‘즉결처분’을 남용하였다. 이에 많은 민간인들이 반군에 협조한 혐의만으로 재판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살됐으며, 이는 ‘즉결처분’이 사실상 학살이었다(https://www.jinsil.go.kr/fnt/nac/selectNoticeDetail.do?bbsId=BBSMSTR_000000000717#).
이승만 정부는 여순사건을 계기로 좌익계와 광복군계를 포함한 모든 반(反) 이승만 성향의 군인들에 대한 대대적 숙군 작업에 착수하였고, 이에 전군의 5%에 달하는 4,750명이 축출되는 결과로 이어졌다(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6460432&cid=43667&categoryId=43667). 박정희는 여순사건과 연루되어 고초를 겪었지만 숙군 작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살아남는다.
사건 발생 당시 정부는 이 사건을 여순반란사건 또는 전남반란사건이라고 불렀으나 1995년부터 국사 교과서에 ‘여수·순천 10·19사건’이라고 명명하였으며, 일반적으로는 여순사건이라 부른다. 여순사건은 제주4·3사건과 직결된 비극으로 그 전말은 여수시가 운영하는 디지털여수문화대전이라는 사이트에 아래와 같이 나와 있다(http://yeosu.grandculture.net/yeosu/search/GC01302160?keyword=%EC%97%AC%EC%88%9C%EC%82%AC%EA%B1%B4&page=1).
국군 제14연대, 제주 4·3사건 진압명령 거부하고 봉기
여수순천반란사건, 여수 14연대 반란사건, 여순봉기, 여순항쟁, 여순군란이라고도 부르는 여순사건은 제주 4·3사건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서 발생한 비극적 사건이다. 1948년 10월19일 여수에 주둔한 국군 제14연대 병사들이 제주 4·3사건 진압명령을 거부하고 단독정부 수립 반대, 미군 철수를 주장하며 여수, 순천 등 전라남도 동부지역을 점령한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승만 정부는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강력한 반공국가를 구축하였다.
1948년 4월3일 제주도에서 시작된 단독선거·단독정부 수립 반대 무장봉기가 진정되지 않자, 국군과 경찰은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제14연대 일부 병력을 제주도로 파견하기로 했다. 이에 1948년 10월19일, 지창수(池昌洙)를 비롯한 제14연대 병사들은 제주도에서 일어난 항쟁을 진압하러 갈 수 없다며, 파병 명령을 거부하고 주둔지인 여수에서 봉기를 일으켰다.
제 14연대가 제주도 출동명령을 받은 직후인 1948년 10월17일 이승만 정부는 제주에서 작전 중이던 제9연대장 송요찬을 통해 강력한 포고령을 발표했다.
“제주 해안선에서 5㎞ 이외에 있는 사람은 이유여하를 불구하고 총살하겠다.”
이 포고령에 따라 제9연대는 제주도의 모든 중산간마을 주민들이 공공연하게 게릴라에게 도움과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는 가정 아래 마을 주민에 대한 대량학살계획을 채택했다. 1948년 12월까지 제9연대가 점령했던 기간 동안 섬 주민에 대한 대부분의 살상이 발생했다.
14연대 봉기는 남로당 중앙은 물론이고 전라남도 도당이나 여수·순천의 지역당도 사전에 알지 못했다. 봉기를 처음 계획한 하사관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14연대 봉기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제주도 파병 반대였지만, 이전부터 쌓여왔던 군과 경찰 간의 갈등도 주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장비가 우세했던 경찰은 경찰 보조병력으로 창설된 국방경비대를 깔보았고, 국방경비대는 경찰을 민족과 국가를 팔아먹은 매국노 친일 집단으로 간주했다.
10월19일 늦은 밤에 시작된 봉기는 다음 날 오전 여수와 순천으로 확대되었다. 순천에서는 경찰관들이 봉기군을 막으려 했지만, 순천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 파견대(홍순석 지휘)가 봉기에 합류하여 저지에 실패하였다. 며칠만에 여순사건은 광양, 구례, 보성(벌교) 등 전라남도 동부지역으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14연대는 여수에 들어온 후 ‘제주도출동거부병사위원회’란 이름으로 「애국 인민에게 호소함」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14연대는 성명서를 통해 “모든 애국 동포들이여! 조선 인민의 아들인 우리는 우리 형제를 죽이는 것을 거부하고 제주도 파병을 거부한다. 우리는 조선 인민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싸우는 진정한 인민의 군대가 되려고 봉기”했다고 밝히고, ‘동족상잔 결사반대’와 ‘미군 즉시 철퇴’ 등을 요구하였다.
10월20일 오후, 여수에서는 수천 명이 참가한 인민대회가 열려 ‘인민위원회의 여수행정 기구 접수’, ‘대한민국 분쇄 맹세’, ‘친일파 민족반역자 경찰관 등을 철저히 소탕’,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실시’ 등을 결의하였다. 여수, 순천에서는 지방 좌익세력과 청년·학생들이 봉기에 참여하면서 대중봉기로 전환하였다.
인민위원회가 재건된 여수에서는 경찰을 체포하고 친일파의 은행예금을 동결하거나 재산을 몰수하는 한편, 식량영단 창고를 개방하여 쌀과 물자를 시민들에게 배급하였다. 여수 외 다른 지역에서는 경찰이나 우익인사에 대한 인민재판을 실시하기도 했다. 순천까지 장악한 14연대는 10월20일 밤 세 그룹으로 군대를 재편했다. 3개 편대 중 첫 번째 부대는 벌교 방면[서쪽], 두 번째 부대는 학구 방면[북쪽 방향], 세 번째 부대는 광양 방면[동쪽]으로 진출하였다.
이승만, ‘아동’ 포함 철저 진압 강조, 수많은 양민 학살 계기 돼
이승만 정부는 여순사건이 발생하자, 처음에는 이 사건이 극우세력과 극좌세력이 합심해서 일으킨 사건이라고 발표했다. 이범석 국무총리는 10월21일, 여순사건은 ‘공산주의자가 극우의 정객들과 결탁’한 ‘반국가적 반란’이라는 이른바 ‘혁명의용군사건’을 발표했다. 그러나 혁명의용군은 조직적 실체도 없는 허상의 군대였고, 이후 재판에서 무력공산혁명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다.
혁명의용군사건에서 가리키는 ‘극우 정객’이란 김구 등의 한독당 세력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구는 극우세력이 관련되었다는 정부 발표에 대해서 곧바로 부정하였다. 김구가 여순사건 관련 주장을 부정하고 일반 여론도 이에 동조하지 않자, 김형원 공보처차장은 말을 바꾸어 “여순사건은 전라남도 현지 좌익분자들이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일부 군대를 선동하여 일으킨 것”이라고 발표했다.
한편, 국방부는 여순사건을 “소련제국주의의 태평양 진출 정책을 대행하려는 공산당 괴뢰정권의 음모”라고 규정하였다. 여순사건을 반도 남쪽의 한 지방에서 이승만 정부에 반항한 사건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소련 지배권을 확대하려는 국제 공산주의운동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철저한 진압 방침을 세웠다. 이승만 대통령은 “모든 지도자 이하로 남녀 아동까지라도 일일이 조사해서 불순분자는 다 제거하고 조직을 엄밀히 해서 반역적 사상이 만연되지 못하게 하며, 앞으로 어떠한 법령이 혹 발포되더라도 전 민중이 절대 복종해서 이런 비행이 다시는 없도록 방위해야 될 것”이라는 강경한 담화를 발표하였다.
이승만은 사태의 원인이 공산주의, 좌익세력에 있다며 ‘아동’까지 포함한 철저한 진압을 강조하면서 진압군이 잔혹하게 민간인을 학살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승만의 무차별적인 동족학살 지시는 6·25 전쟁을 전후해 미군의 직간접적 개입 속에 발생한 보도연맹 학살사건, 거창학살 사건 등 수많은 양민학살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09년 “이 대통령의 경고문이 진압작전 지휘관으로 하여금 민간인을 상대로 무리한 작전을 펼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 수 십 년 전의 학살 사태에 대해 뒤늦었지만 국가원수의 책임을 추궁했다.
▲ 여순사건 등 한국 민간인 집단학살 현장에서 집행은 한국군경이 맡았다. 하지만 미군사고문단 소속원은 한국군 최고지휘부나 대대이상 부대 지휘관과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주요 작전 수행시 동행했다는 것을 원칙으로 행동했다는 점에서 미군이 학살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미군사고문단은 한국 민간인 학살에 대해 반대하거나 이의를 제기한 기록이 없고 맥아더 장군은 학살문제에 대해 외면했다. 사진=여수넷통뉴스 2022년 2월17일 영상 갈무리
군·경의 진압작전과 민간인 희생
반란 소식을 들은 서울의 미 군사고문단 수뇌부는 10월20일 오전에 관계자 회의를 열고, 진압작전을 지휘하기 위해 광주에 반란군토벌전투사령부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이 회의를 주도한 것은 미국 임시군사고문단이었다. 미군은 진압작전을 펼칠 때 미국인 군사고문단 장교를 대동하도록 했다.
10월20일 오후, 서울에서 군 지휘부가 광주에 도착하자 구체적인 진압작전이 수립되었다. 육군총사령부는 10월21일 반란군토벌전투사령부를 광주 제5여단 사령부에 설치하고 총사령관에 송호성 준장을 임명하는 한편, 진압작전에는 작전 가능한 병력을 동원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대전(제2연대), 전주(제3연대), 광주(제4연대), 부산(제5연대), 대구(제6연대), 군산(제12연대), 마산(제15연대)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 가운데 총 11개 대대가 진압에 투입되었다. 이들 병력 중 제2연대·제6연대·제12연대·제15연대는 원용덕이 지휘하는 제2여단으로 소속되었고, 제3연대와 제4연대는 김백일이 지휘하는 제5여단에 소속되었다. 부산의 제5연대는 해안경비대와 함께 여수 앞바다에서 해상작전을 전개했다.
진압군은 순천 북방에서 벌어진 학구전투에서 최초의 승리를 거두었다. 그 뒤 진압군은 순천을 공격했으나 봉기군의 저항에 직면하여 쉽게 순천을 공략하지는 못했다. 봉기군은 진압군의 강력한 화력 앞에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음을 깨닫고 밤을 이용해 순천에서 퇴각하였다. 이후 진압군은 비교적 손쉽게 순천을 점령할 수 있었다.
10월24일부터 시작된 진압군의 여수 공격은 치밀한 작전 계획을 갖고 진행되지 못했기 때문에 봉기군과 지방 좌익세력의 저항에 부딪혀 실패했다. 여수에 대한 초기 진압작전에 실패하자 진압군은 기계화 부대와 해안경비대, 그리고 연락용 비행기까지 동원하여 초토화 진압작전에 나섰다. 여순 진압에서는 군 역사상 최초로 육군과 해군, 공군의 합동작전이 실시되었다. 결국 여수를 방어하던 봉기군과 지방 좌익세력도 더 이상 여수를 지킬 수 없어 인근 지역으로 후퇴했다.
진압군이 여수 공격을 감행 중이던 10월25일, 국무회의는 여순지역계엄령(대통령령 제13호)을 통과시켰다. 계엄법은 일 년이 지난 1949년에야 만들어졌기 때문에, 당시는 계엄법이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을 때였다. 국무회의에서 계엄령이 통과된 다음 날, 호남방면사령관은 여수·순천 지구에 임시계엄을 선포했다.
순천과 여수를 점령한 진압군과 경찰은 우익 청년단원들과 지방 우익세력의 도움을 받아 협력자 색출에 나섰다. 혐의자들에게는 아무런 법적인 변호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채, 우익세력의 ‘손가락 총’에 지목되어 즉석에서 참수, 사형되거나 군법회의에 넘겨졌다.
국군의 여수·순천에 대한 진압작전이 시작되었을 때, 반란을 일으켰던 14연대 정규 병력은 이미 산악지대로 탈출한 상황이었다. 이로 인해 진압군 작전은 정규 반란군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전 시민을 반란군으로 간주하고 이들을 모두 적으로 삼는 무차별적인 공격이 되었다.
진압군은 여수와 순천을 점령하고 전 시민을 학교운동장에 모이게 하여 협력자를 색출했다. 당시 심사의 기준이 된 것은 교전 중인 자, 총을 가지고 있는 자, 손바닥에 총을 쥔 흔적이 있는 자, 흰색 지까다비(일할 때 신는 일본식 운동화)를 신은 자, 미군용 군용팬티를 입은 자, 머리를 짧게 깎은 자였다. 주민들 가운데 흰 고무신을 신고 있는 사람도 봉기군으로 간주되었다.
흰 고무신은 지방 좌익세력에게 처형당한 우익인사 김영준이 운영하는 천일고무공장에서 제조한 것이었는데, 봉기 기간에 인민위원회가 이를 배급했기 때문이었다. 또 국방경비대가 입고 있던 군용 표시가 있는 속옷을 입고 있는 사람도 혐의 대상이었다. 진압된 뒤 겉옷은 버릴 수 있지만 속옷은 갈아입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측에서였다. 이 기준들은 원래 제14연대 반란군을 색출하기 위한 기준이었지만, 진압군은 이런 외모를 봉기군 협력자로 간주하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사용했다.
부역자 색출 과정에서 이 지역의 존경받는 우익인사들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인민재판 배석판사로 참가했다는 누명을 쓴 황두연[순천 갑구 국회의원]은 간신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지만, 박찬길[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 차석 검사]은 진압군에게 총살당했고, ‘민중을 총연합 지휘하는 최고사령관’이라고 잘못 알려진 여수여자중학교 교장 송욱은 행방불명되었다.
진압군의 부역자 색출 과정은 12월 중순까지 약 한 달 반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또한 계엄령하에서 군법재판이 열려 많은 수의 민간인이 회부되었다. 군법회의는 계엄사령부가 있었던 광주와 중앙고등군법회의가 설치된 대전 등지에서 열려, 수천 명의 혐의자들을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빠른 속도로 처리해 갔다.
여순사건이 끝난 뒤 정부는 조사관을 파견하여 여수, 순천, 구례, 곡성, 광양, 고흥, 보성, 화순 등지의 피해 상황을 조사하게 했다. 이에 따르면 1949년 1월10일까지 인명 피해는 총 5530명(사망 3392명, 중상 2056명, 행방불명 82명)이고, 가옥 피해는 8554호(전소 5242호, 반소 1118호, 소개 2184호)였다.
가옥을 비롯한 총 재산 피해 추정액은 99억 1763만 395원에 달했고, 가장 긴급한 구호가 필요한 대상 주택은 1만 3819호로서 그 인원은 6만 7332명이었다. 단 일 주일간의 피해가 이처럼 막대했는데, 이러한 피해의 대부분은 진압군의 강경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 여순사건 등 한국 민간인 집단학살 현장에서 미군사고문단 소속원은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찍어 주한미군 지휘부나 미국 정부에 보낸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집단학살을 주한미군, 미국 정부 차원에서 업무의 일환으로 규정한 것 아니냐 하는 의혹을 사고 있다. 사진=여순사건위원회 출범식 영상 자료
여순사건의 영향
여순사건이 진압된 후 이승만 정부는 내부 치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물리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군대와 경찰을 정비했다. 경찰관을 증원하는 한편 우익 청년단체들은 대한청년단으로 통합하고, 학교에는 군사훈련을 위해 학교별, 지역별로 학도호국단을 창설했다. 군대에서는 좌익세력 색출을 위한 숙군(肅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1949년 7월까지 국군 병력의 약 5%에 이르는 총 4749명이 숙청되었다.
이승만 정부는 또 좌익세력 색출을 위한 강력한 법제를 마련했다. 급속하게 만들어진 국가보안법은 1949년 한 해 동안 전국 교도소 수용자의 70%에 달하는 11만 8천 명에 적용될 만큼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무엇보다 여순사건은 공산주의자를 민족과 국민의 범주로부터 추방함으로써 반공체제를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여순사건을 집중적으로 보도한 언론은 반란군의 잔혹한 학살을 부각시켰고, 진압 후에 현지에 파견된 문인조사반은 ‘잔인무도한 귀축(鬼畜)들’, ‘악의 승리’ ‘인간성 상실’ 등의 용어를 사용하여 봉기군의 만행을 표현했다. 이에 따라 봉기군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잔인한 짐승으로 여겨졌고, ‘절대 악’이었기 때문에 같은 민족이 될 수 없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표현처럼 반란자들은 “한 하늘 아래 두고는 같이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진압군에 의해 전라남도 동부지역은 10월 말에 완전히 장악되었지만, 14연대 반란군은 지리산 등 산악지대로 입산하여 유격투쟁을 계속 전개하였다. 여순사건은 지역적 사건으로 그치지 않고 전국적인 정치적·사회적 관심을 집중시켰고, 이 사건을 계기로 형성된 반공체제는 한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남기게 되었다.
여순사건 특별법 21대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
여수·순천 10·19 사건은 해방 후 혼란과 이념 갈등의 시기에 1948년 10월19일 여수에 주둔 중이던 일부 군인들이 제주 4·3사건에 대한 진압 출동 명령을 거부하면서 발생해 수많은 민간인이 군·경의 진압 작전이나 일부 좌익 세력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됐다.
“현대사서 가장 아픈 손가락”으로 불리던 여순사건이 발생 73년 만에 국회에서 2021년 6월29일 ‘여순사건 특별법'(여수·순천 10·19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되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를 지원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연합뉴스 2021년 6월29일).
여순사건 특별법은 여순사건의 시기적 범위를 14연대가 제주 4·3 진압명령을 거부하고 봉기한 1948년 10월19일부터 지리산 입산금지 조처를 해제한 1955년 4월1일까지로 규정했다. 또 장소적 제한은 여수·순천을 비롯해 전남·북, 경남 일부 지역으로 명시했으며, 역사적 성격은 당시의 혼란과 무력충돌, 이의 진압과정에서 민간인 다수가 희생당한 사건으로 명시했다.
이 특별법은 국가가 희생자에게 의료·생활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는 규정이 포함됐으며 여순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는 위령묘역과 위령탑, 여수·순천 10·19 사건 사료관, 위령공원도 조성할 수 있게 되었다.
여순사건 특별법은 2001년 16대 국회 이후 4차례나 발의됐지만, 번번이 이념 대립 등으로 처리가 무산됐다가 21대 국회 들어 지난해 7월 더불어민주당 소병철 의원 등 152명이 발의해 여야 합의로 법안이 통과됐다. 국가 권력 기구인 군대에서 촉발된 여순사건을 국가 차원에서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의 명예 회복을 위한 첫발을 뗐다는 점에서 특별법 제정은 큰 의미가 있다.
이승만 정권 여순사건 빌미로 국가보안법 제정
한편 한국일보가 2017년 10월 12일 “여순사건, 왜곡된 역사 방치로 피해 주민만 빨갱이 돼”라는 제목으로 한 역사학자를 인터뷰한 기사는 여순사건에 대해 잘 정리해 소개했다.
-- 여순사건은 여순반란사건, 여수 14연대 반란사건, 여순봉기, 여순항쟁, 여순군란 등으로도 불리며 제주 4·3사건과 함께 해방 직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서 발생한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다. 내년이면 여순사건이 발발한 지 70주년을 맞지만 아직까지 사건의 성격과 진실조차 제대로 규명되지 못하고 있다.
여순사건은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지금도 말할 수 없고 꺼내기 힘든 상처와 아픔, 여전한 구조적인 사회 인식 때문에 그 누구도 섣불리 진실을 이야기하기 어려웠다. 목숨을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던 이 사건은 오랜 기간 지속되면서 여수·순천·광양·구례·보성·고흥 등을 비롯한 37개 시·군의 광범위한 지역이 죽음의 연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역사학자 주철희 박사(53)는 “당시 이승만 정권은 여순사건을 빌미로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강력한 반공국가를 구축하면서 사건의 성격을 명확히 규명하지 않은 채 70년간 왜곡된 역사로 방치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펴낸 저서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도서출판 흐름)를 통해 여순사건의 실체적 진실과 발발 배경, 사건의 성격을 규명하고 그 증거자료를 제시해 주목을 끈다. 특히 이 책은 여순사건의 성격을 ‘항쟁’으로 규명한 최초의 연구집이다. 주 박사는 여순사건이 ‘반란’과 ‘항쟁’의 목적이나 행위 자체에 대한 사실을 검증하기 위해 역사적 사건을 추적했다.
지금까지 대부분이 2차 사료나 구전에 의한 증언을 통해 서술하면서 여순사건을 반란으로 규정하거나 혹은 규정을 미루고 단순히 여순사건이라고 명명해 왔다면 이 책에서는 ‘항쟁’과 ‘반란’을 규명하기 위해 1948년 당시의 가공하지 않은 1차 사료를 다각적이고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그는 철저한 검증을 통해 항쟁과 반란을 구별하면서 ‘여순항쟁’이라고 규정했다. 이에 대한 증거자료도 충분히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주 박사는 “반란이 성립되려면 수도 점령이나 정부 전복, 권력자 축출 등의 계획과 새로운 권력 주체가 미리 정해져 있어야 한다. 여수에 주둔했던 제14연대 군인이 주도한 이 사건은 그런 조건들이 하나도 갖춰지지 않았고 이러한 사실은 철저히 무시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건의 주체인 당시 14연대 군인에게 ‘동족을 학살하라’는 제주도 출동 명령이 하달됐다”며 “1980년 5월의 대한민국 군인은 그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출동해 광주에서는 피의 학살이 자행됐지만 1948년 10월의 14연대는 명령에 저항하고 출동을 거부했다. 여순사건은 반란과 전혀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여수 출신의 주철희 박사는 2013년 3월 여순사건에 대한 19가지의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기 위한 저서 ‘불량 국민들’을 발간해 관심을 모았다. ‘일제강점기 여수를 말한다.’ 공저 ‘인물로 본 전라도 역사이야기’ 등의 저서와 ‘여순사건 주도인물에 관한 연구’, ‘한국전쟁 전후 반공문화의 형성과 그 의미’ 등 여순사건 관련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여순사건 대신 ‘여순항쟁’으로 부르기를 제안하며 정명(正名)운동을 본격 추진하고 이번 저서를 3권까지 펴낼 계획이다.
주 박사는 “여순사건이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첫 항쟁의 역사지만 피해주민은 그동안 ‘빨갱이 자식’으로 불렸다”며 “이제 진상규명과 위령사업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 후속작업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
믿어오늘 고승우 민언련 고문·언론사회학 박사
서구 팝은 예술이고 케이팝은 기예인가
'다크사이드 오브 케이팝' 담론의 헤게모니적 작동
▲BTS의 RM이 스페인 매체 <엘 파이스>와 가진 인터뷰는 국내에서 여러 반향을 낳았다. ⓒ<El Pais>
지난 3월 12일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이 스페인 매체 엘 파이스(El Pais)와 가진 인터뷰는 국내외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중에서도 "젊음과 완벽함에 대한 케이팝의 숭배, 그리고 성과를 향한 지나친 노력은 한국의 문화적 특성"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RM의 답은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었다.
"불과 70년 전만 해도 침략당하고 두 동강 나 아무것도 없던 나라가 지금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건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친 듯이 노력했기 때문이다. 수세기동안 타국을 식민 지배했던 나라의 사람들이 와서 '당신들은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우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의 삶은 너무 스트레스가 심해요'라고 말하다니... 그런데 뭔가 해내려면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케이팝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 답변은 제국주의적 가치관에 대한 통쾌한 카운터펀치라는 찬사와 전형적인 '그쪽이야말로주의(Whataboutism)'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이 인터뷰에서 눈길을 끈 것은, 해당 매체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룹의 리더에게 한 질문 중 상당 부분이, 혹독한 트레이닝과 생존 경쟁으로 얼룩진 케이팝의 '비인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시스템에 관한 것들이었다는 점이다.
기자의 질문은 구글에 '다크사이드 오브 케이팝(The Dark Side of K-pop)'이라는 문구를 치면 각종 기사와 동영상, 포스팅, 책을 통해 끝도 없이 흘러나오는 담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케이팝에 대한 가장 큰 선입견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란 질문에 RM이 "공장식(prefabricated)"이라고 바로 답을 내놓은 것도 자신들을 바라보는 이런 종류의 시선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단련되어 온 경험 때문일 것이다.
불공정계약, 미성년자 노동, 외모주의, 극심한 경쟁구조로 인한 비인간적 환경과 그로 인한 아이돌의 취약한 심리 상태, 팬덤 의존형 수익구조 등 케이팝 산업이 가진 문제적 면모는 한둘이 아니며 심지어 비밀도 아니다. 지난 4월 19일에는 그룹 아스트로의 문빈이 스물다섯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등졌다. 어떤 상황 속에서 얼마나 괴롭게 버티고 있었는지 알 길 없으나, 그저 그가 느낀 고통이 자신의 직업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짐작을 해 볼 뿐이다. 그나마 아이돌 표준계약서를 도입하고 심리상담사를 배치하는 등 업계 차원의 개선 노력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고, 과거와는 달리 소속사와 대등한 위치에서 견제의 목소리를 내는 팬덤 위상 변화로 인해 산업의 외부적 관행은 부분적으로 개선되어가고 있지만, 아이돌 산업 내에서 발생하는 기본권과 인권 침해에 대한 정책적 개입이 여전히 시급한 실정이다.
반면 케이팝의 속성과 깊이 연관된 내부적 문제는 좀 더 복잡한 차원에 놓여있다. 케이팝 산업의 가장 독특한 지점은 아이돌과 팬과의 관계성이다. 팬과의 연결감은 아이돌에게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과 노동의 기쁨을 제공하지만, 역으로 외모, 실력, 인성, 살인적 스케줄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아이돌이 과도한 노력과 노동을 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이것은 아이돌 뿐 아니라 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팬도 아이돌을 덕질하는 과정에서 무료노동과 과도한 소비, 감정적 소진을 견뎌내고 있다. 정리하자면, '감정공동체'로서의 아이돌-팬 관계를 원동력으로 하는 케이팝 시스템의 모순과 문제점은, 시스템의 '구조적 압력'과 아이돌과 팬 양측의 '자발적 소진'이 겹쳐진 지점 위에 복잡하게 놓여있다.
스페인 기자가 레퍼런스로 삼은 '다크사이드 오브 케이팝' 담론은 케이팝의 이런 '복잡한 면모'에는 큰 관심이 없다. 철저히 자유주의와 계몽주의의 렌즈를 통해 케이팝 씬을 바라본다. 그 결과 노예계약, 살인적 스케줄, 연애금지조항, 미성년자의 성적대상화 등 아이돌 인권과 노동환경 비판을 한 축으로, 케이팝 가수를 '공장에서 찍어낸 인형'이라 부르며 예술성을 폄하하는 태도를 또 다른 축으로 하는 담론이 등장했다. 그 중에서 이 담론이 케이팝의 예술성을 폄하하는 근거를 한번 들여다보자.
이 담론이 문제시하는 건 연습생 시스템이다. 연습생 시스템이 아이돌의 인권과 기본권에 끼치는 해악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다. 재능 있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아티스트가 되는 게 아니라 기획사가 연습생을 훈련시켜 아티스트로 데뷔시키는 작위적인 시스템이며, 따라서 케이팝은 진정한 예술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여기에는 예술성은 자연스럽게 타고 태어나는 것이지 훈련을 통해 만들어낼 수 없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훈련을 통해 예술성을 만들어낼 수 없다면 예술적 재능은 태어나면서부터 선물처럼 부여되는 것인가? 그러나 예술가의 '천재적 주체'에 의미 부여하는 태도는 동시대적이지도 심지어 현대적이지도 않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시기를 거치면서 예술가의 창조성보다는 예술가의 선택으로, 그리고 예술에 의미 부여하고 향유하는 수용자에게로 예술의 무게 중심이 이동했기 때문이다. 사진의 등장과 함께 예술 작품의 기술적 복제가 가능해졌을 때, 아방가르드 예술가인 마르셀 뒤샹이 상점에서 구입한 변기에 '샘(fountain)'이라는 제목을 붙여 전시했을 때, 컴퓨터그래픽 이미지(CGI)와 혼합현실(MR) 속에서 가상과 실재가 구분되지 않고 뒤섞여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냈을 때, 이런 도약의 계기마다 예술성의 범주는 끊임없이 변하고 확장되어 왔다.
'다크사이드 오브 케이팝' 담론이 생산하는 효과는 명확하다. 연습생이라는 과정을 거쳐 아티스트를 만들어내는 시스템 반대편에 있는 이들을 '진정한 예술가'로 호명하는 것이다. 즉, 서구의 보편적 예술가 시스템을 정상이자 진정한 예술로 옹립하고 자연화한다. 이 담론 안에서 케이팝은 예술이 아니라 희한한 '기예'가 되어 글로벌 음악 산업의 주변부로 밀려난다. RM의 스페인 매체 인터뷰에서처럼, 해외 매체와 인터뷰하는 케이팝 가수들이 개별 음악에 대한 질문보다 케이팝 문화에 대한 질문을 더 많이 접하게 되는 상황은, 케이팝을 기예에 가까운 특이한 장르로 범주화하는 담론의 구동을 확인하는 자리다. BTS의 RM은 케이팝 아티스트로 범주화되지만, 드레이크는 캐나다 래퍼로 범주화되지 않는다. 어떤 대상을 범주화해 스테레오타입을 만들어내는 것은 전형적으로 위계 구도에서 발생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때 '다크사이드 오브 케이팝' 담론은 산업 윤리나 예술미학에 대한 물음이 아니라 글로벌 대중문화 헤게모니를 둘러싼 파워게임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사고와 커뮤니케이션의 상호작용적인 과정과 그에 따른 결과를 함께 의미하는 담론은, 세계의 의미를 구성하고 유지하며 변화시키는 사회적 과정이다. 이 담론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계급적 성격과 권력의 형식이 깃들어있어 늘 헤게모니를 둘러싼 긴장과 경쟁 상황이 존재한다. 케이팝에 대한 서구의 비평적 담론은 늘 '다크사이드 오브 케이팝' 담론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왔다. 남자 아이돌의 메이크업이나 중성적인 의상은 남성성(masculinity)의 결핍으로, 연습생 시스템은 마치 공장처럼 똑같은 것을 찍어내는 '예술성의 부재'로 읽어내며, 케이팝 아이돌의 자살 사건을 다루는 해외 기사에는 '어린 시절부터 혹독하게 연습생 시절을 거쳐야 하는 케이팝 공장 시스템이 만들어낸 비극'이라는 뉘앙스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당연히 이런 비판에 대해 케이팝 업계는 자유롭지 않으며, 반드시 수용하고 성찰할 부분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담론의 헤게모니적 작동에 따른 효과로, 서구 아티스트들의 예술성에 대한 암묵적인 승인과 케이팝의 주변화가 뒤따른다는 점 역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지행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 전임연구원 프레시안
모르는 번호 ‘모바일 청첩장’ 열었다가…‘축의금 7천만원’
게티이미지뱅크
ㄱ씨는 지난 4일 저녁 자신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모바일 청첩장을 받았다. 모르는 번호였지만, 봄철 결혼식 성수기를 맞아 최근 여러 건의 모바일 청첩장을 받았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 없이 청첩장을 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낸 것이었다. 잘못 보낸 것으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다음날 직장에 출근했는데 갑자기 휴대전화가 작동하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수리하러 갔다가, 가입한 이동통신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바뀐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예전 이동통신사로 복원한 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신의 계좌를 확인했다. 아무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날인 지난 6일 자신이 거래하지 않는 인터넷은행으로부터 7천만원 대출이 승인됐다는 전자우편을 받았다. 확인 결과 비대면 대출을 해주는 인터넷은행이 ㄱ씨 명의로 7천만원을 대출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명의를 도용당했다는 것을 직감한 ㄱ씨는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7천만원은 이미 몇 차례 계좌이체를 거쳐서 여러 계좌로 나뉘어 흘러간 이후였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경찰 조사 결과, 모바일 청첩장을 클릭해서 여는 순간 숨겨져 있던 악성코드가 작동해서 휴대전화의 정보를 해킹하는 이른바 ‘스미싱’ 범행에 ㄱ씨가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스미싱 범죄조직은 훔친 정보를 이용해 ㄱ씨 명의의 휴대전화를 개설하고, 인터넷은행이 비대면 대출을 해준다는 점을 악용해 ㄱ씨 명의 휴대전화로 7천만원 대출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남 사천경찰서의 양영두 수사과장은 “대출받은 돈이 흘러간 8개 계좌를 확인해 돈의 흐름을 추적하는 한편, 폐회로텔레비전 영상 등을 분석해 최종적으로 현금을 인출한 사람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최치훈 경남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장은 “스미싱 등 사이버범죄 조직은 대부분 해외에서 활동하고, 수법이 계속 진화하고 있어서 잡기가 쉽지 않다. 모르는 번호의 문자메시지는 누르지 않고 무시하는 것이 피해를 막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이대로는 눈을 감을 수 없소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점령지에서 부역했다는 혐의로 충남 아산 온양 일대의 주민 800여 명이 집단학살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73년 만에 학살 현장에서 피해자 유해 발굴 작업이 시작됐다.
3월28일 제2기 진실화해위가 한국전쟁 당시 부역 혐의로 집단 희생된 아산 지역 주민들의 유해 발굴 현장을 공개했다.ⓒ시사IN 조남진
지난 3월28일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에 자리한 성재산 기슭에서 유해 발굴 작업이 공개됐다. 제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한국전쟁 당시 부역 혐의로 집단 희생된 아산 지역 주민들의 유해를 찾아내기 위해 3월7일부터 20여 일간 진행한 유해 발굴 현장이었다. 한국전쟁 시기 부역 혐의 민간인 희생 사건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유해 발굴 사업을 벌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폭 3m, 길이 14m 방공호를 파내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유골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빽빽한 상태로 매장된 유골들은 대부분 다리가 L자로 구부러진 형태였다. 40여 구에 달하는 두개골 옆에는 예외 없이 파랗게 녹슨 탄피가 2~3개씩 얹혀 있었다. 대부분의 손목뼈에는 가느다란 군용 전화선(삐삐선)이 칭칭 감겨 있었다. 현장에서는 집단학살 도구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소총 탄피와 탄두가 다량 발굴됐다. 단추나 벨트, 신발 같은 유품도 나왔다. 유해들은 대부분 무릎 꿇린 상태에서 두개골에 다발성 총알 관통상을 입고 좁은 방공호에 쓰러져 그대로 암매장된 형상이었다.
“아무 죄도 없이 아버지 3형제를 잃고, 70년 동안 도망치듯 살았습니다.” 이날 유골 발굴 현장에 참석한 아산시 방축동 주민 김광욱씨(78)는 모습을 드러낸 유골 한 구 한 구를 어루만지며 오열했다. 누가 가족의 유해인지 분간할 수 없는 탓에 모두가 아버지와 숙부들의 유골인 것만 같았다.
김씨는 다섯 살 때인 1950년 10월3일, 낯선 청년들이 나타나 아버지와 두 숙부 등 가족 3명을 총구로 위협하며 끌고 가던 순간을 아직까지 잊지 못한다. “그날이 공교롭게도 아버지 생신이었다. 생신 축하 상을 받고 있는데 총을 든 청년들이 나타나 아버지와 숙부들을 끌고 나갔다.” 어린 아들 앞에서 그렇게 사라진 아버지 김갑봉씨는 73년이 흐른 오늘까지 소식이 없다. 사건 직후 이름 모를 폐광에서 학살당했다는 소문만 나돌 뿐 생사를 알려주는 곳도 없었다. 가해 세력은 지역 내에 살고 있던 대한청년단, 태극동맹 등 우익단체 대원이었다. 이들은 1950년 9·28 수복을 전후해 온양 아산 지역 경찰의 비호 아래 치안대를 꾸려 수많은 지역 주민을 부역 혐의자로 지목하며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무차별 총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전쟁 시기 부역 혐의 민간인 희생 사건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유해 발굴 사업을 벌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시사IN 조남진
경찰 비호와 묵인 아래 우익단체가 집단학살
이번에 유해를 발굴한 성재산 일대는 당시 시신을 유기한 곳이다. 1950년 10월4일 온양경찰서 업무가 정상화되면서 좌익 부역 혐의 관련자와 그 가족들을 매일 밤 1~2회에 걸쳐 40~50명씩 트럭에 실어와 학살한 다음 이곳에 유기했다. 1·4 후퇴 시기인 1951년 1월 초에는 군민증을 발급해준다며 배방면사무소 옆 곡물창고 2개와 모산역 부속창고에 좌익 부역 혐의 관련자와 가족들을 구금한 후 수일간 수백 명을 집단학살하고 유기한 지역이기도 하다. 배방면 지역은 9·28 수복 시기 최소 200여 명, 1·4 후퇴 시기 300여 명이 희생된 것으로 밝혀졌다.
6·25 전쟁 당시 온양경찰서 수사계에 근무하던 임 아무개씨는 이렇게 회고했다. “온양경찰서에서 매일 밤 트럭으로 40~50명씩 부역자들을 처형 장소로 이송했다. 주로 성재산 방공호와 세리 폐금광, 온양 배방 사이의 하천변에서 총살했다. 즉결 총살 처분은 상부 지시도 있었지만 대부분 경찰서장과 지서장 재량에 따라 이루어졌기 때문에 민간 치안대원들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아산 지역 희생자들은 부역자 처리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과 우익 청년단체가 주축이 된 치안대에 의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살해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온양읍 청년방위대원이던 박 아무개씨는 이렇게 증언했다. “온양 아산 지역 각 면리에서 여러 개의 우익 치안대가 결성돼 경찰이 들어오기 전에 수복 지구 치안활동을 폈다. 부역자는 대부분 경찰의 처형 지시를 받고 처리했지만 때로는 그냥 처형하기도 했다. 처형 장소에 갈 때는 우리 청년단원들이 부역자들을 끌고 가서 경찰관 한 명이 입회한 가운데 총살했다.”
부역 혐의자란 인민군이 점령하던 시기 점령지 행정과 치안 등을 도운 주민들을 말한다. 그런데 말이 부역자이지 미처 피란 가지 못한 채 인민군 행정체제에 순응하며 살아간 주민들은 기본적으로 부역 혐의를 받았다. 또 부역자 가족을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일가족이 대거 학살당한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노인과 부녀자, 어린아이들까지도 단순히 부역 혐의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살해되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홍사학씨 가족 14명 몰살 사건이다. 1950년 9월 말 아산시 염치면 대동리 주민 홍사학씨와 노인, 부녀자, 어린이를 포함한 일가족 14명은 대한청년단에 의해 속칭 ‘새지기 공동묘지’에 끌려가 집단 총살당했다. 인민군 점령 시기 부역했다는 혐의와 그 가족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로부터 며칠 뒤 염치면 산양리에 살던 문현기씨와 갓난아이를 포함한 일가족 9명도 온양 지역 치안대에 의해 산양리 치안분소에 끌려가 남산말 방공호에서 전원 총살되었다.
배방면 성재산에서 민간인 학살이 많았던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9·28 수복 후 들어온 경찰과 치안대는 인민군 점령기 부역 혐의자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다수의 배방면 주민에게 군민증(현 주민등록증)을 발급해주지 않았다. 이로 인해 몇 달 뒤 1·4 후퇴 시기에 배방면 주민 대다수는 신분 증명을 할 수 없어 피란을 가지 못한 채 발이 묶였다. 그 와중에 우익 치안대에서 군민증을 발급해주겠다며 주민들에게 한 장소에 모이라고 했다.
당시 배방면 세교리 주민 70여 명은 이장 집으로 모였다. 기다리던 우익 청년단원들은 마을 주민이 모두 모이자 지서 옆 창고로 연행 감금한 후 이튿날 성재산 방공호에 싣고 가 총살해버렸다. 세교리 외에도 세출리, 장재리 등 배방면 주민들이 같은 방식으로 유인돼 무차별 학살당했다. 당시 희생자 가운데는 이미 경찰에 의해 부역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가 대전지법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온 주민도 포함돼 있었다.
아비규환의 학살 구덩이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이도 있다. 류정수씨(당시 20세)는 1950년 10월 중순 아산시 탕정면 동산리 자택에 들이닥친 의용경찰대원 9명에게 다짜고짜 납치됐다. “당숙과 함께 끌려갔는데 주민 수십 명이 붙들려와 몽둥이로 구타당하고 있었다. 그날 밤 탕정지서 뒷산으로 끌고 가 미리 파놓은 방공호에 몰아넣고 총을 쏘아댔다. 매장당하는 순간 누군가 나를 도와 구해줬다. 그때 그렇게 탕정지서 뒷산에서 콩 볶는 총소리가 나고 무수히 많은 주민이 죽었다. 수복 시기 유족들이 한밤중에 들어가 시신을 수습하기도 했으나 못 들어가게 막아버리는 바람에 어떤 이는 치안대를 맡았던 청년방위대 간부들에게 논 다섯 마지기를 넘겨주고 시신을 찾아오기도 했다.”
발굴된 유골의 손목뼈에는 가느다란 군용 전화선(삐삐선)이 칭칭 감겨 있었다.ⓒ시사IN 조남진
아산 지역에서 자행된 부역 혐의 주민에 대한 대량학살은 무법천지가 따로 없었다. 9·28 수복 직후 부역자 처벌은 전국적인 현상이었지만, 특히 아산 지역 부역 혐의자 집단학살은 그 잔혹성과 야만성에서 적잖은 사회적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무차별 주민 학살의 원성이 자자하자, 1951년 7월21일 조만진 법무부 장관은 장면 국무총리에게 ‘좌익분자 및 그 가족 살해에 관한 건’이라는 보고서를 올렸다. 아산 지역에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주민을 학살하고, 뇌물을 바치면 풀어주던 일부 경찰 간부들의 죄악상에 관한 보고였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는 관련 범죄 조사나 처벌을 하지 않고 유야무야 덮어버림으로써 ‘공범’이 되는 길을 택했다.
전쟁이 끝난 뒤 피해자들은 당시 가해 혐의자 중 한 명인 아산경찰서 신창지서 주임 유 아무개를 살인, 사형금지 위반, 뇌물죄 등으로 고소했다. 1955년 검찰 수사를 거쳐 유씨는 기소됐다. 1심과 2심에서 류씨에 대한 살인과 사형금지 위반죄가 인정되었다. 하지만 대법원 상고심에서 뒤집혔다. 두 죄목은 무죄를, 뇌물죄에 대해서만 유죄를 선고했다.
전시 계엄 아래서 국민의 기본권이 제한되는 시기였다 하더라도 무장경찰 및 치안대가 단지 부역했다는 혐의, 또는 그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민간인을 적법 절차도 없이 살해한 행위는 명백한 위법이자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와 뒤를 이은 역대 군사정권은 학살 가해자의 범죄를 은폐하거나 두둔했다. 학살 가해자들은 사건 후에도 지역 내에서 득세하며 피해자들과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왔다. 이런 현실에서 피해 유가족은 어디 대놓고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당시 희생자들은 가족 단위로 살해돼 유족이 없는 경우가 많아 유해 수습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부역 혐의자 학살 사건의 특성상 가해자와 피해자 자손들이 사건 뒤에도 어쩔 수 없이 지역공동체 내에서 함께 살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 유해 발굴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들은 역대 군사정부의 삼엄한 감시와 연좌제 탄압 속에 무참히 죽어간 부모 형제의 시신을 찾을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70여 년 세월을 숨죽여 살아왔다. 온양경찰서 정보과장으로 근무했던 윤 아무개씨는 “당시 부역 혐의로 처형된 사람의 유족은 전쟁 후에도 국가에서 지속적으로 감시·관리하여 사회 활동을 통제했다”라고 증언했다.
‘아산 지역 주민 유해 발굴 현장’에서는 신발과 단추, 벨트 같은 유품들도 함께 발견되었다.ⓒ시사IN 조남진
“학살 현장을 후대 위한 인권 교육장으로”
살아남은 유족의 삶은 형극의 길이나 다름없었다. 5세 때 아버지와 삼촌 두 명을 잃은 김광욱씨는 사건 뒤 어머니를 따라 고향 아산을 등진 채 외갓집인 경기도 평택에서 자랐다. 그는 환갑이 넘은 2005년 이후에야 고향과 아버지의 시신을 찾아 헤매다 비슷한 피해자들을 만나 유족회 활동을 시작했다. 부역 혐의자의 가족이라 하여 영문도 모른 채 집단살해된 주민들 중 지옥 같은 처형장에서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배방면 세교리의 전유씨는 어린 나이에 돌봐줄 가족들이 모두 살해되어 혼자 떠돌다 객사했다.
공무원의 꿈을 안고 지원했던 유가족은 본인의 능력과 무관하게 국가의 보이지 않는 폭력 앞에서 좌절해야 했다. 부모와 2·4·12세였던 세 동생을 잃은 아산시 탕정면 김장성씨는 훗날 군 장교 시험에 합격했으나 신원조회에 걸려 임관하지 못했다. 그 후 연좌제 때문에 사회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홍사학씨 일가족 14명 집단학살 사건’의 유족 홍민선씨는 1968년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했으나 연좌제 때문에 3차 시험에서 떨어졌다. 유신체제가 선포되면서 불순세력으로 낙인찍힌 홍씨는 충남대학교 재학 시절 제적당했다. 그 후 간신히 민간기업에 취직했지만 1년6개월 동안 매달 한 번씩 경찰 정보계로부터 사찰을 당해 회사 생활도 접어야 했다. 염치면 산양리 일가족 9명 학살 사건 피해 유족인 문종철씨는 군 생활 도중 방첩대로 발령받았으나 연좌제 때문에 군복을 벗어야 했다. 그 후 직장을 잡기가 어려웠고 이사 가는 곳마다 경찰들이 따라다녔다고 증언했다.
이들 피해 유족은 2000년대 들어서야 억울한 한을 풀 실마리를 잡았다. 노무현 정부 들어 제1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발족하자 아산 지역 유족들이 모인 것이다. 2006년부터 피해 유족이 진실화해위에 사건을 접수하고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요구했다. 진실화해위의 조사 결과, 아산 지역에서 부역 혐의자 처형 사건으로 최소 800여 명의 주민이 집단 희생된 것으로 추산됐다. 가해 주체는 온양경찰서와 치안대(대한청년단, 청년방위대 및 향토방위대, 태극동맹)였다. 희생자를 연행한 것은 주로 치안대가 담당했다. 처형을 집행한 것은 경찰 혹은 경찰의 지시를 받은 치안대였다. 이들은 온양경찰서장의 지휘를 받아 가해행위를 했으므로 온양경찰서장과 충남경찰국에도 지휘감독 책임이 있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최종적으로는 공권력의 불법 행사를 막지 못한 이승만 정부에까지 그 책임이 귀속된다고 보았다.
진실화해위는 국가의 공식 사과와 더불어 유가족들에게 위령사업 지원,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등을 비롯한 명예회복 조치를 적극 강구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피해 유족에게 국가는 아무런 메아리가 없다. 이번 진실화해위의 국가 차원 유골 발굴이 있기 전 2018년 아산시가 자체적으로 유해 발굴에 나서 208구를 수습한 바 있다. 성재산 유해 발굴 현장에서 만난 아산 지역 피해유족회 맹억호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두 번 다시 민족 내부에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 이곳을 후대를 위한 인권 교육장으로 만들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시사인 아산/글 정희상 기자·사진 조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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