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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23. 5.8~13 윤석열 1년, 안에서는 누르고 밖에서는 저질렀다

by 이성근 2023. 5. 7.

[뒤로 간 1-시행령 통치]귀 막은 불통 정부의 검수원복한 길

월급 빼고 다 오른 2023, 최저임금 1만원 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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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간 1-시행령 통치]귀 막은 불통 정부의 검수원복한 길

거대야당과 협의 않고 국회 우회용 활용

헌재 법률 유효결정에 아랑곳 안 해

출범 1년을 맞은 윤석열 정부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시행령 통치. 시행령(대통령령)은 법률의 하위법령이다. 법률이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해 위임한 사항이나, 법률 집행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 시행령은 국회의 입법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된다. 이런 행정입법을 통한 국정운영은 국회의 여소야대 구조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가 야당과 소통·협의를 회피하고 국회를 우회하는 수단으로 시행령을 이용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나아가 시행령의 내용이 법률 조문의 취지와 동떨어진다는 평가까지 받으면서 논란은 증폭되고 있다.

검찰 관계자들이 2022119일 국회 본청에 있는 당시 정진상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무조정실장 사무실에서 압수물품이 든 박스를 들고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검수원복(검찰수사권 복원)’ 시행령이다. 법무부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범위를 대폭 늘렸다. 검찰이 활발히 수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해당 시행령이 법률인 검찰수사권 축소법’(검찰청법 등)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 “정부가 검수원복 등 시행령 통치를 통해 법치주의를 파괴한다”(장유식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센터소장)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3월 검찰수사권 축소법이 유효하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논란이 정리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법무부가 시행령 유지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이 형사재판 과정에서 시행령의 위헌·위법 여부를 판단할 수도 있으나, 법원 판단의 효력은 해당 사건에만 미친다. 형사사법체계 전반을 논의하는 국회 특별위원회가 구성돼 있지만 제대로 가동될지를 두고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검찰이 여러 대형 수사를 벌이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앞으로도 논란과 혼선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시행령 개정으로 수사 범위 확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추진하면서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축소하는 내용의 입법을 두 차례 진행했다. 첫 번째는 20201월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이다. 이를 검경수사권 조정이라 부르기도 한다. 검찰청법에 아예 검찰이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를 6개로 못 박았다.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이다. 기존에는 제한이 없었다. 항목별로 구체적인 범죄유형은 시행령을 제정해 규정했다. 이 시행령이 현재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이다. 20211월부터 시행됐다.

 

두 번째 입법은 20224~5월에 완료됐다. 검찰청법 등을 개정해 검찰의 수사 범위를 더욱 축소해 부패·경제 2개로 국한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임기 만료 직전에 국무회의를 통과해 공포됐다. 개정 검찰청법 등은 20229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법무부는 20228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개정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개정 검찰청법 시행에 맞춰 시행령도 정비할 필요가 있기는 했다. 문제는 법무부가 내놓은 시행령 개정안이 검찰의 수사 범위를 축소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점이다. 부패·경제범죄에 포함되는 범죄유형을 대거 확대했다. 예를 들어 직권남용죄는 앞서 공직자범죄로 분류됐지만, 시행령 개정안은 부패범죄에 넣었다. 기존에 검찰이 수사할 수 없었던 범죄를 추가하기도 했다. 마약유통, 범죄단체조직, 방문판매, 보험사기 등이다. 법무부는 현행 대통령령은 합리적 기준 없이 과도하게 수사 개시 범위를 제한했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정비한 것이라며 하나의 범죄가 여러 유형에 해당하는 경우도 있어 기존에는 공직자범죄 등에 포함되더라도 부패·경제범죄에도 해당하는 범죄가 있다고 밝혔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2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또 무고 등 사법질서 저해범죄등을 중요 범죄로 별도로 분류해 수사가 가능토록 했다. 이는 법조문 해석에 따른 것이라고 법무부는 밝혔다. 검찰청법 조문을 살펴보면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는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라고 나와 있다. 법무부는 부패범죄, 경제범죄는 예시를 열거한 것뿐이지 이들 범죄로 한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라는 문구는 중요 범죄의 구체적인 범위를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어서 법무부가 자체적으로 중요 범죄를 설정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법무부는 상위법의 위임 범위 내에서 법체계에 맞게 하위법령을 정비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직접 나서 브리핑을 했다.

 

검찰수사권 축소법을 입안했던 민주당과 시민사회는 즉각 반발했다. 법무부가 법조문의 취지를 무시하고 왜곡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에서는 시행령 쿠데타”, “한동훈의 기고만장한 폭주등 날선 발언까지 나왔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 175명은 위헌·위법하며 입법이 이뤄지더라도 무효라는 내용 등이 담긴 의견서도 법무부에 제출했다. 이들은 한 장관의 주장처럼 해석하면 검찰청법이 중요범죄의 범위를 시행령에 백지위임했다는 뜻인데 헌법재판소는 백지위임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수차례 판시했다고도 했다. 백지위임은 헌법상 포괄위임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 법률이 위임하는 사항과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고 행정부에 포괄적으로 위임하는 것은 금지된다.

 

시행령 개정안은 그러나 입법예고와 법제처 심사를 거쳐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20229월부터 개정 검찰청법과 함께 시행됐다.

 

헌재 검찰청법 등 유효결정했지만 시행령 개정에 앞서 법무부는 20226월 헌법재판소에 검찰 수사권 축소법을 두고 권한쟁의심판 등을 청구했다. 해당 법률이 검찰의 수사권한을 침해했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취지다. 청구인에는 한동훈 장관과 현직 검사 6명이 이름을 올렸다. 헌재는 국민의힘이 20224월 제기한 권한쟁의심판 등 사건도 병합해 심리했다.

 

헌재가 지난 323일 내린 결론은 검찰수사권 축소법은 유효하다는 것이다. 헌재는 우선 국민의힘이 주장한 권한침해를 일부 인용했지만 무효 확인은 기각했다. 국회의 법안 심사 과정에서 위장 탈당등을 통해 국민의힘 측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되긴 했지만, 법률을 무효로 볼 순 없다고 판시했다.

 

법무부와 검사들이 제기한 사건은 아예 각하 결정했다. 각하는 본안 내용을 판단하지 않고 종결 처리하는 처분이다. 헌재는 한동훈 장관은 심판을 청구할 자격조차 없다고 봤다. 또 검사들은 청구 자격이 있지만 권한이 침해당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쟁점은 검찰의 수사권이 법률상 권한인지, ‘헌법상 권한인지 여부였다. 법률에 근거해 주어진 권한은 국회의 입법행위에 따른 결과물이기 때문에 국회의 입법행위로 법률상 권한이 침해됐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다. 헌법에 근거한 권한이어야 해당 권한의 침해 가능성을 심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헌재는 수사와 소추는 행정부에 주어진 헌법상 권한이라고 전제했다. 그러나 수사권이 검찰 등 정부의 특정한 기관에만 전속적으로 부여됐다고 해석할 근거는 헌법에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의 수사권은 국회가 개별 법률을 통해 부여한 법률상 권한이지 헌법상 권한은 아니라는 얘기다.

 

헌재는 검사의 영장신청 권한이 헌법에 명시됐기 때문에 수사권도 헌법상 권한이라는 검찰 측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검찰이 지난해 검찰수사권 축소법의 국회 입법 과정에서 줄곧 강조한 내용이기도 하다.

 

헌법재판과 9명 가운데 5명이 이런 의견을 냈다. 반면 4명은 법무부 장관과 검사의 권한 침해를 인정했다. 그러면서 검찰수사권 축소법은 취소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이들은 검찰청법상 검사헌법상 검사에 해당한다며, 검사가 헌법에 따라 영장을 신청하는 것도 헌법상 수사권행사에 해당한다고 봤다.

2022422일 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과 더불어민주당 박홍근(왼쪽 두 번째),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왼쪽 네 번째)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검찰 수사권 축소 법안' 관련 국회의장 중재안에 합의한 후 합의문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법원, 시행령 위법 여부 판단 가능성 헌재의 결정이 나오면 검찰수사권 축소법과 시행령을 둘러싼 논란이 어느 정도 수습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대립은 계속됐다. 헌재가 해당 법률이 유효하고 검사의 권한 침해를 배척한 만큼 법무부가 시행령을 법률의 취지에 맞게 재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동훈 장관은 이를 일축했다. 한 장관은 국회에 출석하거나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문제가 많은 결정이라고 했다.

 

시행령 논란을 가라앉히는 위해 법원이 시행령의 위헌·위법 여부를 판단하는 방법도 있다. 시행령에 근거해 검찰의 직접 수사를 받아 기소된 피고인이 재판 과정에서 위법한 시행령에 근거해 수사를 받아 기소됐다며 공소기각을 주장할 수 있다. 헌법에 따르면 법원은 명령·규칙 등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지를 심사할 수 있다. 다만 사건이 대법원까지 올라가면 길게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

 

또 법원이 시행령의 위법성을 인정하더라도 해당 시행령 자체가 무효나 취소되는 효력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판례다. 해당 재판 사건에 국한해 시행령의 적용을 배제하게 된다. 공소기각 판결은 일사부재리(한번 재판이 확정되면 다시 다루지 않음) 원칙이 적용되지도 않는다. 즉 경찰 등 다른 수사기관이 다시 수사를 진행한 뒤 검찰이 기소해 또 재판이 진행될 수도 있는 것이다. 피고인 입장에선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국회 형사사법체계개혁 특별위원회를 재가동해 형사사법체계 전반을 손보는 과정에서 시행령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특위 구성은 20224월 국회의 검찰수사권 축소법안 논의 과정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합의한 중재안에 포함된 내용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중재안에 반대하면서 그해 5월 민주당이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그해 7월 위원 구성을 여야 동수로 하고, 안건을 여야 합의를 통해 처리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해 출범했다. 한 달 뒤 첫 전체회의에서 여야 간사를 선임했지만 이후 휴업 상태다.

 

헌재 결정 이후인 지난 44일 민주당 위원들만 참석해 회의를 개최했다. 민주당 소속 정성호 위원장은 여당에서는 헌재 선고 이후 특위를 개의해 안건을 논의하기로 여러 차례 구두로 약속했지만 합의가 안 됐다라며 유감을 표했다. 국민의힘이 앞으로도 특위 논의에 참여할지는 미지수다. 국민의힘은 헌재 결정에 반발하는 분위기다. 헌재가 민주당의 위장 탈당등이 위헌·위법이라고 판단한 점을 내세우고 있다.

 

법무부가 인사검증 담당 20226월 법무부에 신설한 인사정보관리단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과거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맡았던 인사검증의 기능을 담당하는 부서다. 인사정보관리단은 공직 후보자의 범죄, 학력, 금융, 납세 등의 정보를 이용해 1차 검증을 맡게 됐다. 법무부는 이를 추진하면서 법률이 아닌 시행령을 개정했다. 정부조직법상 법무부의 사무에는 공직자의 인사 관련 사안이 없다. 지난 2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정순신 전 검사(변호사)가 임명됐지만, 아들의 학교폭력 논란이 불거져 임명이 취소되자 법무부를 향한 거센 비판이 일기도 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월급 빼고 다 오른 2023, 최저임금 1만원 넘을까

민주노총 서울본부 조합원들이 45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 2일 첫 전원회의로 첫발을 내디뎠다. 첫 회의부터 노·사는 노동계의 최저임금 12000안을 두고 마찰을 빚었다. 노동계는 저임금노동자의 생활안정, 격차 해소를 위해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영계는 현실을 도외시한 과도한 주장이라며 팽팽히 맞섰다.

2차 전원회의는 오는 25일 열린다. 시작부터 첨예한 대립을 맞은 논의가 순탄치 않아 보인다. 2024년치 최저임금 관련 핵심 쟁점을 정리해봤다.

 

최저임금, 왜 매년 올리냐구요?

최저임금제는 노동자들이 먹고살 수 있는 최소한의 임금 수준을 정해주는 제도다. 노동 조건이 열악할수록 노동자의 요구보단 사업주에 의해 일방적으로 임금이 결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 최저수준을 국가가 법적으로 강제해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취지다. 최저임금법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해 최저임금을 정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노동계는 실질임금이 하락하지 않게, 최소한 물가상승률 이상으로는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적어도 물가가 오르는 만큼이라도 내가 버는 임금이 따라 올라야 지난해와 같은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지난해 소비자물가는 5.1% 올랐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4년 만에 최대 상승 폭이다. 전기·가스·수도 물가는 12.6% 올라 2010년 이후 최고치를 보였다. 외식 가격도 8.2%가량 올랐는데, 자장면은 11.7%, 김밥은 11.5% 올랐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1년 전엔 6000원 내고 먹던 자장면은 6600원 이상, 3000원짜리 김밥은 3300원 이상이 된 것이다.

 

여기에 국가 경제는 낮은 수준이라도 조금씩 성장한다. 이 성장에는 기업 몫도 있지만 노동자 기여분도 작지 않다. 이런 부분까지 고려해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한다는 게 노동계의 시각이다.

 

최저월급 기준이 209시간인 이유?

올해 최저임금은 시급 9620원에 209시간을 곱한 201580원 최저월급이다. 40시간제에서 왜 한 달 노동시간은 209시간일까? 계산 식이 복잡하진 않다. 주휴수당 개념만 유념하면 된다. 근로기준법은 1주일 동안 노동자와 사용자가 합의한 노동시간을 채우는 때 하루치 일당을 더 주도록 한다. 하루 8시간씩 닷새를 일해 40시간을 채우는 때 하루치(8시간) 임금을 더 줘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1주일 40시간 근무하면 임금은 주휴일을 반영해 48시간을 기준으로 계산된다.

 

이제 1달이 평균 몇 주인지를 계산하면 된다. 365일을 12개월로 나누면 30.42일이 나온다. 1주일은 7일이므로 30.42÷7=4.345주가 나온다. 주휴일을 반영한 48시간에 평균 4.345를 곱한 값은 208.57시간이다. 여기서 소수점 이하 버림을 하게 되면 0.56시간만큼 임금체불이 되므로, 올림을 해서 최저월급을 정하는 월 노동시간은 209시간이 된다. 시급이 9620원일 때 월급이 201580원이란 결론은 이렇게 도출된다.

 

최저임금 1만원 시대 오나?

올해 최저임금 심의에서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1만원돌파 여부다. 2019년부터 최근 5년간 최저임금 인상률은 10.9%2.87%1.5%5.05%5%였다. 올해 9620원인 최저임금 시급은 3.95%(380)만 올리면 내년에 1만원대에 들어선다. 2000년 이후 인상률이 3.95% 미만인 때는 22년간 3(2010, 2020, 2021)뿐이다.

 

경영계는 난색을 보인다. 영세한 상공인들은 자꾸 오르는 최저임금을 감당할 여력이 없고 임금을 올리면 물가도 따라서 오른다며 인상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게 경영계 쪽의 기본적인 태도다. 2일 열린 1차 전원회의에서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는 어떻게 보면 최저임금 동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여러 경제 상황이나 제반 여건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진작에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24.74% 인상한 12000원으로 정하자고 공식 요구했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2508000원이다. 노동계가 대폭 인상을 주장하는 배경엔 물가상승률, 경제성장률 같은 근원적인 요소 말고도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라는 변수가 자리한다. 산입범위란 최저임금 위반을 판단할 때 급여 항목 가운데 기본급을 비롯한 식대, 교통비, 각종 수당 가운데 어디까지 최저임금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월급명세서에 있는 지급내역가운데 최저임금에 포함하는 항목이 있고 그렇지 않은 항목이 있는 셈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부터 최저임금 위반을 판단하는 산입범위에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가 단계적으로 포함되는 등 산입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임금을 올리지 않아도 산입범위 확대만으로도 최저임금 기준을 맞출 수 있는 것이다. 노동계는 최저임금의 실질인상 효과가 줄어든 만큼, 이번엔 대폭 인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계는 “2022년 공식 물가상승률은 5.1%이지만, 2023년 적용 최저임금 인상률은 5%”라며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임금인상으로 실질임금이 하락하고 있으며, 최저임금이 곧 자신의 임금이 되는 저임금노동자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경영계는 공공요금 인상과 소비심리 위축으로 인해 경영 상황이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지난 2일 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최저임금은 중소 소상공인과 근로자의 문제라며 높은 최저임금으로 기업이 문을 닫는다면 사업주와 근로자 모두에게 해가 된다고 말했다.

연도별 최저임금 결정현황. 최저임금위원회 누리집

 

최저임금 계산 방식은 그대로?

최저임금은 형식적으론 근로자위원 9, 사용자위원 9, 공익위원 9명이 모여 합의하는 방식으로 결정하는 구조이나, 실제로는 노동자 쪽과 사용자 쪽의 팽팽한 대립 속에 합의에 이른 적이 거의 없다. 결국 심판 격에 해당하는 공익위원이 제시한 가격을 표결에 붙여 결정하는 게 관행이 됐다. 최근 의결된 공익위원안은 정부·한국은행·한국개발연구원이 각각 전망한 지난해 경제지표 평균값을 조합해 계산했다는 게 최저임금위원회의 설명이다. 경제성장률(2.7%)에 물가인상률(4.5%)을 더한 뒤 취업자증가율(2.2%)을 빼서 5.0%라는 인상률이 나오는 식이다.

 

·사 모두 공익위원의 산식에 불만을 갖고 있다. 노동계는 법적 근거도 불명확한 계산식으로, 최저임금위원회의 역할이 무시되고 있다이런 기준이 올해에도 여과없이 적용된다면 사회적 대화기구라는 최저임금위원회의 근본 취지가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는 최저임금법의 제4조에 제시된 결정 기준 중 하나인 근로자의 생계비가 매년 최임위 심의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최저임금 제도의 근본 취지에 맞도록 노동자의 가구원 수 분포, 국제기구의 권고, 최임위 제도개선위원회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구생계비가 최저임금 핵심결정 기준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사용자 쪽도 지난해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산식을 일관성 있게 적용해온 것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해왔다며 수용이 어렵다고 밝혔다.

 

업종별·지역별 차등적용 될까?

업종별·지역별 차등적용도 올해 주요 쟁점 중 하나다. 이는 경영계의 단골 주장으로, 하나의 시급만 정할 게 아니라 여력이 되는 업종은 최저임금을 올리고 그렇지 않은 일부 업종은 낮게 정하는 등 여러 개의 최저임금 시급을 정하자는 것이다. 사용자의 지급능력 차이를 고려해 업종에 따라 최저임금을 다르게 해야 한다는 취지다.

 

최저임금 제도 시행 첫해인 1988년을 제외하면 한 번도 차등적용은 이뤄진 적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최저임금의 업종별·지역별 구분이 필요하다는 언급을 여러 차례 했다. 공익위원들이 지난해 6월 정부에 권고한 업종별 구분적용과 생계비에 관한 연구 결과가 지난 331일 최임위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사용자위원들은 올해도 차등적용을 강조했다. 류기정 경총 전무는 2일 전원회의에서 위원회 하면서 여러 논쟁이 있었고 주장이 있었지만 한번도 유의미한 결정을 해본 적이 없다올해는 정부 용역 통해서 여러 검토가 있었으니 최저임금 미만율이 높은 업종 중심으로 할 수 있도록 심도 깊은 논의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업종별 구분 적용은) 최저임금 취지에 위배되며, 업종이 다르다고 필요한 생활비가 다르지 않다며 최저임금법의 관련 근거 조항을 아예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안정이라는 최저임금 제도의 취지에 비춰볼 때 사업의 종류별로 최저임금을 달리하는 것은 위헌·위법하며, 구분 적용이 되면 해당 업종에 대한 낙인 효과가 우려되는 점에서 삭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418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최저임금위원회 제1차 전원회의가 파행, 근로자위원 등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계는 이밖에도 최저임금 적용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형태고용노동자,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 노동자 등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방안이나 장애인 노동자나 수습 기간 노동자 등 최저임금 사각지대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저임금법엔 고용노동부 장관이 이듬해 최저임금을 매년 85일까지 결정해 고시해야 한다고 정한다. 이의제기 기간 등을 역산하면 최저임금위원회는 629일까지 결정해 이정식 노동부 장관한테 보내야 한다. 하지만 법정 시한이 지켜진 적은 거의 없다. 올해도 지난달 18일로 예정된 첫 회의가 권순원 공익위원 간사의 자질 논란으로 파행을 빚는 등 시작부터 순탄치 않은 모양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베끼기 유발자들

지난달 25~26수원 여중생 마약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여중생 2명이 평일 저녁 번화가를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다가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임의동행, 마약 간이 검사 결과 2명 중 1명이 '양성'이 나왔다는 내용이다.

 

지역신문 경기일보가 첫 보도를 했고, 그 이후 전국의 신문·방송 보도가 뒤따랐다. 조선일보, 세계일보, 국민일보, 매일경제, 동아일보, 중앙일보, 파이낸셜뉴스, 한국일보, 서울경제, 머니투데이, 한국경제 등이 이틀간 1건에서 많게는 3건까지 기사를 내보냈다. ‘여중생마약을 키워드로 뉴스가 급속도로 확산됐지만 기사 대부분은 별 차이가 없었다. 경찰에 직접 확인하지 않고 베껴 쓴 것으로 추정되는 기사도 보인다.

 

마약 간이 검사 결과가 부정확할 수 있다는 경찰 요청에 따라 최초 보도한 경기일보는 기사에서 양성이라는 말을 빼고 내사 착수로 고쳤지만 후속 보도한 매체 중 끝까지 양성을 고집한 곳도 적지 않다. ‘간이 검사 양성이라고 했으니 고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있었을 수 있다. 이 사안을 직접 취재해 쓰지 않았다면 기사를 고쳐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최근 경찰에 통보한 정밀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그간 기사들을 보니 보도량은 많았는데 그 내용이 대부분 엇비슷했다. 이른바 사회부 경찰 담당 또는 전국부 지역 주재가 아닌 이른바 '온라인 대응팀'이 기사를 쓴 것이 눈에 들어왔다.

중학생들이 마약 간이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고 잘못 보도한 매체들

 

A사의 B기자는 수원 여중생 마약 기사를 쓴 날 모두 13건의 기사를 썼다. 이날 하루 기업, IT, 정치, 사회 분야를 고루 다뤘다. 4월 한 달 중 기사 출고량이 가장 많았던 날이 두 번 있었는데 각각 16건의 기명 기사가 올라와 있다. 점심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8시간을 근무했다고 가정하면 한 시간에 두 건의 기사를 취재하고 쓴 셈이다. 최근 한 달 동안 B기자의 기사가 올라오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다. 주말과 휴일에도 쉼 없이 일하는 것으로 보인다. CD기자는 수원 여중생 기사를 쓰던 날 총 17건의 기사를 올렸다. 인테리어, 건강식품, 프랜차이즈, 외신, 법원, 날씨 관련 기사를 썼다.

 

이 두 기자는 광범위한 분야의 뉴스를 짧은 시간에 취재하고 기사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또 소속 회사의 매출액이 동종업계 TOP10에 포함돼 있고 포털과 콘텐츠제휴(CP) 계약을 맺고 있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처럼 대형 매체 가운데 포털을 이용한 유·무형의 수익 극대화를 위해 기사를 무리하게 쏟아내게 하는 조직을 운영하는 곳이 여럿이다. ‘지역성 구현’, ‘서울중심주의 타파등을 강조하며 포털 CP 계약에 성공한 지역신문들도 별 고민 없이 수원 여중생 마약 기사 보도 행렬에 올라탄 것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꼈다.

 

베끼기 기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생산된다. 주로 타사 기사 또는 보도자료의 전체 또는 일부를 무단으로 가져다 쓰거나 그대로 옮겨 쓰는 행태를 뜻한다. 더 넓게 보면 받아쓰기 보도’, ‘따옴표 저널리즘도 베끼기 기사의 범주에 속한다. 이런 기사를 대량으로 찍어 내 포털과 SNS에 유통시키는 매체가 주로 대형 신문사라는 점은 모순적이다. 지면에서는 게이트 키핑을 엄격하게 적용하면서도 포털에 보낼 때는 선별 기준을 대폭 완화하거나 아예 못 본 척하는 이중적 태도 때문이다. ‘이게 같은 매체에서 나온 기사가 맞는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일 때도 있다. 온라인 대응팀 기자 처우를 다른 기자들과 다르게 적용하는 곳도 있다. 임금 등 근로조건의 차이가 있는 이중 고용구조 형태로 운영되는 것이다.

 

안타까운 건 기자를 꿈꾸는 청년이 계약직, 인턴 형식으로 온라인 대응팀에서 경력을 들어갈 때다. 여기저기 있는 것을 가져다 짜깁기 해 만든 기사로 자신의 언론 경력을 시작한 기자들. 어찌 보면 언론사들은 기자를 꿈꾸는 청년이 훈련된 기자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착취하고, ‘진정한 기자가 되기를 바라는 욕망을 제거하는 대가로 조회수와 포털 전재료를 거둬들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신문의 날은 신문의 사회적 책임을 환기하는 목적으로 제정됐지만 정작 당사자들에게도 큰 관심을 얻지 못하는 비운의 기념일이다. 매년 선정된 신문의 날 표어를 보면 독자(또는 수용자)가 신문에 바라는 게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올해 67회 신문의 날 표어는 나를 움직인 진실, 세상을 움직일 신문이고, 지난 해에는 신문 읽기 사이에는 생각하는 자리가 있습니다이었다. 포털이 신문 유통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한 이후 독자가 신문에게 바라는 건 빠른 속보가 아니었다. ‘시대가 빨라질 때, 신문은 깊어진다’(2014)라고 믿음과 신문이 말하는 진실은 검색창보다 깊(어야 한)’(2021)는 제안이었다.

 

베끼기 기사로는 이런 독자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 ‘취재 없는 기사만 없애도 언론 불신의 상당 정도는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역신문 단독 기사로 시작된 수원 여중생 마약 보도가 확산된 과정을 되짚어 보면서 신문 산업 내부에 베끼기 유발자들이 적대적 공존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심을 갖게 됐다. 지면이 아닌 포털과 SNS로 뉴스를 접한 세대는 신문을 어떻게 생각할까. 베끼기 기사를 아무렇지 않게 내보내는 관행을 멈추지 않으면 그 어떤 조치가 이뤄진다 해도 언론 불신 회복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김명래 경인일보 인천본사 기획취재팀장 / 미디어오늘

 

현충원 참배한 기시다 일본 총리의 옷깃에서 포착된 푸른 리본의 정체 :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를 상징하고 있었다

12일간의 일정으로 방한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 현충탑을 참배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방한해 첫 일정으로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습니다. 일본 현직 총리가 현충원을 방문한 것은 201110월 노다 요시히코 총리 이후 약 12년 만이라고 합니다. 기시다 총리가 헌화하고 분향을 하는데 양복 재킷 오른쪽 깃에 달린 푸른색 리본 배지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지난 3월 한-일 정상회담 당시에도 착용하고 있던 배지입니다.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한 전국협의회 누리집 갈무리. 전국협의회 누리집

 

지난 3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고 손을 잡고 있다. 기시다 총리 옷깃에 푸른 리본 배지가 있다. 연합뉴스

 

일본인 납북 피해자 문제상징

일본에서 이 배지는 장기 미해결 과제인 일본인 납치 피해자문제를 상징합니다.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한 전국협의회에서 만든 것으로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들의 석방과 구출을 촉구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푸른색은 납치 피해자와 가족, 일본인들이 일본과 북한 사이의 바다를 바라보며 재회를 기다린다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전임인 스가 요시히데 총리, 아베 신조 총리도 공식 석상에서 블루 리본을 달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보였습니다. 일본에서는 정치인들에게 블루 리본 착용을 독려하는 캠페인도 꾸준히 있어왔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아베 일본 전 총리가 201697일 오후(현지시각) 라오스 비엔티안 국립컨벤션센터(NCC)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납북 피해자 문제는?

문제는 1970년대 중후반에 바닷가에서 일본인이 잇따라 실종되는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에는 이들의 실종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987년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으로 조사과정에서 이들이 북한에 납치됐다는 정황이 드러납니다. 북한이 일본어와 일본 문화를 공작원에게 교육하기 위해 납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일본은 1991년부터 북한에 납북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17명이 납치된 것으로 파악하는데 이 가운데 2002년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 계기로 5명이 귀국합니다. 북한은 13명 납치를 인정하고 돌려보낸 5명 외에 8명은 사망했다며 문제가 종결됐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납북된 일본인이 12명 더 있으며, 이들의 생사를 알 수 없다고 보고 북한과 갈등해 왔습니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 20219월 도쿄에서 코로나19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재킷에 푸른 리본 배지를 달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의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

일본의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의 전제 조건 중 하나가 납북 피해자 문제 해결입니다. 기시다 총리는 202110월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조건 없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날 각오가 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푸른 리본을 두고 일본 내부에서는 정치인들이 리본만 달고 납치 문제 해결에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아베-스가-기시다 총리는 푸른 리본을 꾸준히 달았습니다.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 어렵지만 일본이 가해자로 지목된 과거 전쟁 범죄를 대하는 태도와 사뭇 다르게 느껴집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선진국일꾼들의 스산한 노후저복지가 방치한 어두운 그늘

한국 소득수준 통과한 선진 22개국

해당 연도 복지 비중 GDP20.6%

우리나라는 14.8%로 복지지출 적어

노령부문 지출은 선진국 1/2 수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경제 규모에 비춰 우리나라의 복지비 지출은 꼴찌 수준으로 특히 노인 복지 지출은 두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서울 마포의 길거리에서 한 노인이 폐지를 줍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우리나라를 더는 개발도상국이나 중진국이라 부르지 않는다. 1990년대부터 시작해 거의 모든 국제기구에서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간주한다. 특히 2년 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분류하면서부터 자칭 선진국으로 일컫는데도 어색함이 사라졌다. 1인당 국민소득은 이미 2017년부터 3만 달러 선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는 자치령이나 소도시 국가를 빼면 상위 스물네 번째 소득 수준이다. 국민소득 지표는 여러 한계가 있지만 경제 사회적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적 지수 가운데 하나로 쓰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복지 수준과 이를 지탱하기 위한 복지 예산은 선진국에 걸맞은 수준일까? 답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선진국 가운데 바닥권인 삶의 만족도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경제 규모에 비춰 우리나라의 복지비 지출은 현재 꼴찌 수준이다.

 

현재 우리나라 소득 수준을 통과할 당시 선진국들의 복지 지출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노인 복지 쪽은 두배나 많았다. 이는 나라마다 다른 사회경제적 여건 특히 소득 조건을 고려했을 때 복지 지출이 인색한 현실을 말해준다.

 

7<한겨레>가 오이시디와 아이엠에프의 과거 데이터를 분석해봤더니 오이시디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의 지난해 기준 1인당 국민소득 32250달러(이하 소득은 IMF 기준)를 넘어설 당시 22개 나라의 해당 연도 공적사회지출(이하 복지 지출)은 국내총생산 (GDP) 대비 평균 20.6%로 나타났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지난해 14.8%에 그쳤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2개 나라 가운데 18개 나라가 우리나라보다 복지 지출 비중이 높았다. 낮은 나라는 4개다. 스웨덴과 프랑스는 지금의 우리나라 소득 수준일 때 이미 복지 지출 비중이 2배나 높은 수준이었다. 비교 가능한 선진국의 현재 우리나라 소득 수준 통과 연도는 조금씩 다른데 스위스는 1980년대 후반, 미국 ·일본·스웨덴·노르웨이·룩셈부르크·아이슬란드 등은 1990년대, 나머지 국가들은 2000년대 이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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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복지 지출 가운데 특히 노령 부문이 다른 선진국에 견줘 크게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교 대상국들이 현재 우리나라 소득 구간을 통과할 때 노령 부문 지출은 지디피의 평균 6.5%로 나타났다. 반면 우리나라는 3.4%로 절반 수준에 그쳤다. 우리나라는 전체 복지 지출이 상대적으로 적은 가운데 노령 부문은 더 적은 특징을 보였다.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비교 대상 선진국들의 노령 부문 지출은 지디피 평균 8% 수준으로 늘어난다. 오이시디는 복지 지출을 9개 범주로 나누는데 그 가운데 은퇴자에 대한 노령연금 제공을 비롯한 소득보장과 돌봄 등 노인서비스를 포함하는 노령 부문이 전체 지출의 약 3분의 1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다.

 

아직 우리나라는 저부담 저복지 국가다. 서서히 중부담 중복지 국가로 이행 중이다. 지금껏 상대적으로 적은 복지 지출은 자연스럽게 오이시디 회원국 가운데 꼴찌 수준의 소득 분배 개선 효과로 나타나고 있다.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동네마다 폐지 줍는 노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대략 15천 명이 넘는 노인들이 펼치는 팍팍한 삶의 풍경은 선진국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낸다. 저복지 국가에서 특히나 상대적으로 더 적은 노령 부문의 지출은 곧바로 노인의 낮은 수준의 삶의 질과 맞닿아 있다.

 

우리나라 66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40.4%(2020년 오이시디 기준)에 이른다. 전체 인구를 소득순으로 줄 세웠을 때 한가운데 위치한 사람의 소득(중위소득)의 절반 이하 즉 빈곤선 아래에 있는 사람의 비중이 노인 10명 가운데 4명이 넘는다는 말이다. 노인 열 명 가운데 네 명은 매달 125만원을 벌지 못한다는 얘기다.

 

반면에 비교 대상 선진 22개국 가운데 오이시디에서 동일한 통계 접근이 가능한 영국 ·캐나다·이탈리아·뉴질랜드 등 7개국 평균 노인 빈곤율은 현재 우리나라 소득 수준을 통과할 당시 15.2%로 나타났다. 이들 나라를 포함한 22개국의 가장 최근 노인 빈곤율은 더욱 낮아져 평균 11%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의 4분의 1 수준이다.

게티이미지뱅크

 

1인당 국민소득이 비슷한 수준일 때 선진국 노인의 삶은 우리나라 노인들에 견줘 훨씬 풍요로웠다. 반대로 노인들에게 우리나라는 아직 선진국이라고 보기 어려운 현실이다. 우리나라보다 소득 수준이 낮은 나라들을 포함해 오이시디가 제공하는 가장 최근 노인 빈곤율을 보면 우리나라는 비교 대상 37개국 가운데 꼴찌다.

 

독특한 점은 유독 우리나라에서 전체 빈곤율(15%)과 노인 빈곤율 격차가 두 배를 훨씬 웃돌 만큼 크다는 사실이다. 반면 오이시디 회원국 평균 노인 빈곤율은 13.1%로 전체 빈곤율(11.3%)과 비교해 차이가 거의 없다. 우리나라는 전체 빈곤율도 오이시디 평균보다 다소 높은 편이다.

 

물론 낮은 노령 부문의 복지 지출과 높은 노인 빈곤율은 짧은 연금의 역사와 맞물려 있다. 1988년 국민연금이 도입되고 2014년 기초연금이 도입되었지만 아직 노후 소득보장 체계는 미약한 수준이다. 그렇다고 연금이 성숙 되길 마냥 기다리기에는 노인 빈곤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 또 상당한 시간이 흘러 연금이 성숙 된다고 하더라도 현재 연금 체계로는 소득 대체율(은퇴 전 소득 대비 연금 비율)이 선진국에 견줘 낮은 편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국민연금 성숙 전 노인 복지 지출을 조기에 늘려야 하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기초연금을 확대하는 것"이라며 "기초연금의 소득 대체율은 오이시디 평균 19%에 이르지만 우리나라는 그 절반도 안 되는 7.8%로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지난해 4월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윤석열 정부의 복지국가 개혁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비단 우리나라는 노령 부문뿐만 아니라 기타 사회정책을 뺀 모든 부문의 복지 지출에서 선진국들이 과거 우리나라 소득 수준을 통과할 때 보였던 평균에 미치지 못했다. 이는 비슷한 소득 조건 아래 우리나라가 보건, 근로 무능력, 적극적 노동시장, 실업, 가족, 주거, 유족 등 전반적으로 사회복지 수준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령 부문을 빼고서 복지 지출을 비교해봤더니 우리나라 소득 수준일 때 비교 대상 선진국들의 복지 지출은 14.1%로 우리나라의 11.4%보다 높았다.

 

특히 장애로 노동시장에 완전 또는 부분적으로 참여할 수 없는 이들에게 혜택을 주는 근로 무능력 부문의 지출이 적다. 우리나라는 그 비중이 0 .8%로 비교 대상국 평균 2.4%3분의 1에 불과했다. 우리나라가 근로 능력이 떨어지는 노인이나 근로 능력을 상실한 장애인들에게는 불행한 선진국인 셈이다.

 

비교 대상 선진 22개국은 대부분 우리나라 소득 구간을 통과한 뒤 소득의 증가와 함께 복지 지출 또한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그 결과 소득은 평균 84% 증가한 62171달러, 복지 지출은 평균 20% 늘어난 지디피 대비 23.6%에 이른다. 다만 아일랜드·네덜란드·뉴질랜드·노르웨이 등 일부 국가에서 복지 지출이 다소 줄었다. 네덜란드를 뺀 이들 나라에서 복지 지출은 어느 순간 정점을 찍고 소폭 줄어드는 모양새를 띄었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사회복지학)단순히 복지 지출을 양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식이 아니라 불평등과 빈곤을 줄이기 위해 누구를 대상으로 어떻게 지출을 늘려야 할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그 과정에서 지금처럼 사회보험에 비정규직과 불안정 고용자들이 소외되는 방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류이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ryuyigeun@hani.co.kr 민수빈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보조연구원

 

 

저부담 저예산 저복지 악순환작은 정부 벗어나야

GDP 대비 정부지출 비중 26%

주요 선진 22개국 46%보다 적어

국가부채비율 50%대로 재정 여력

빈곤사회연대 민달팽이유니온 등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단' 참여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2023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이 열린 지난해 10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공공 임대주택 예산 삭감, 의료.복지 예산 축소 등 정부의 반복지 예산안을 비판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나라 살림살이의 주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는 소득분배다. 경제 안정 및 성장, 자원배분과 함께 재정의 3대 기능으로 꼽히는 소득분배는 누진적 소득세나 저소득층 지원 등을 통해 작동한다.

우리나라 전체 예산 가운데 복지비는 3분의 1을 웃돈다. 주요 선진국은 그 비중이 거의 절반에 이른다. 이는 경제 규모를 고려한 우리나라의 공적 사회지출(복지지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은 원인 가운데 하나다. 또 다른 원인은 우리나라의 예산 규모다. 우리나라는 작은 정부라 할 만큼 살림살이 규모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작은 편이다. 주요 선진국들의 예산 규모는 지디피의 거의 절반에 육박하지만 우리나라는 4분의 1수준이다 . 이와 맞물려 우리나라는 조세와 국민 부담률도 상대적으로 낮다. 경제 규모에 견줘 예산의 덩어리도 작고 예산에서 복지가 차지하는 비중도 적은 일종의 이중효과 탓에 지디피 대비 복지지출 비중도 적은 것이다. 이런 것들이 서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저복지 국가를 이룬다.

반면 다른 선진국에 견줘 우리나라 재정 여력은 나은 편에 속한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가부채비율은 54.3%(IMF 기준).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32250달러)을 넘어설 당시 비교 대상 선진 22개국 국가부채비율 평균(52.7%)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국가부채비율이 우리보다 높은 나라가 11, 낮은 나라도 11개로 같았다. 코로나 19 팬더믹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국가부채비율이 최근 빠르게 늘어났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재정수지 또한 양호한 편이다. 코로나 19 팬더믹 이전 8년 동안 지디피 대비 평균 1.26% 수준의 적자(관리재정수지 기준)를 기록했다. 다만 코로나를 맞아 재정적자 폭이 지디피의 4~5%로 커졌다. 이는 다른 선진국의 같은 기간 적자 폭보다 훨씬 작은 수치이긴 하다.

 

비교 대상 선진 22개국의 현재 시점 국가부채 비율은 지디피 대비 평균 84.5%로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 이들 나라는 우리나라의 지난해 국민소득 수준을 통과한 뒤에도 부채비율이 평균 93%(31.8%포인트) 늘었다. 부채가 늘어난 이유는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세계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코로나 19 팬더믹 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복지를 확충한 탓이 크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오이시디 회원국들과 비교하면 아직 우리나라 재정의 역할이 소득불평등도를 개선하는데 충분하지 않다우리나라는 시장소득 불평등도는 양호한 편이지만 재정의 역할에 따른 처분가능소득의 불평등도 개선 정도는 가장 적은 국가에 속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작은 부담이 적은 혜택으로 이어지는 복지 구조다. 복지 수준을 높여 분배를 개선하려면 현재 지출 수준을 유지하면서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크다. 사회적 합의를 거쳐 조세 및 국민 부담률을 높여 나가면서 재정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류이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민수빈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보조연구원

 

윤석열 비용청구서가 쌓인다 [윤석열 정부 1]

510일이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꼭 1년이 된다. ‘검사 윤석열에서 대통령 윤석열로 직진한 그와 함께한 지난 시간 동안 우리 공동체가 치른 비용은 무엇일까.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 때부터 많은 기록을 세웠다. 0.73%포인트(24만여 표) 차이라는 '역대급 신승'만이 아니라, 최초의 검사 출신 대통령이자 최초의 0선 출신 대통령이다. 의회 경험만이 아니라 정치 경험 자체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정치 참여를 선언한 날로부터 255일 만에 대권을 거머쥐었다. 정치인으로 변신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수반 자리에 올랐다. 논쟁적이고 까다롭고 때로는 예측이 불가능한 사안까지도 최종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역할을 맡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310일 당선이 확정되고 이렇게 밝혔다. “위대한 국민의 승리.” 감사 인사였다. 동시에 대통령 윤석열이라는 선택은, 그를 뽑지 않은 이를 포함한 국민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1.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510일 취임 이후 또 다른 기록을 세워가고 있다. 보통 집권 초에 나타나는 고공 지지율이 없다. 취임 두 달째부터 긍정 평가보다 부정 평가가 더 컸다. 그때부터 지지율은 20~30%대를 오가는 중이다. 국정 철학 실현을 위한 동력이 부족한 셈이다. 배우자의 활동이 대통령 부정 평가의 요소로 여론조사에서 이렇게 많이 오른 적도 처음 있는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실 이전을 임기 시작과 동시에 실행했다. 이승만 대통령 때부터 사용하던 청와대를 나갔다(이승만 대통령 당시 명칭은 경무대였고 윤보선 대통령 때부터 청와대로 개명). 제왕적 대통령제를 탈피하기 위해 청와대에 단 하루도 머물지 않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광화문 시대였지만 실제로는 용산 시대가 열렸다. 성급하고 준비되지 않은 이전의 후과가 드러나는 중이다.

 

검찰총장에서 대통령 자리로 사실상 직진한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 주요 자리에 검찰 인사를 앉혔다. 금융감독원은 설립 이래 첫 검사 출신 수장을 맞이했다. 교육부 장관 정책보좌관, 서울대병원 감사 등도 검찰 출신이다. 특히 윤석열 사단이라는 이름표가 달린 검사들은 법무부와 검찰의 요직을 차지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당연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49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노련한 정치력이 있는 사람을 다 제치고 정치력 없는 대통령을 뽑았다. 그렇게 뽑아놓고 왜 탓을 하나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이왕 뽑았으니 도와주고 밀어줘서 대통령이 스스로 잘하도록 만들면 된다라고 주장했다. 여러모로 새로운 스타일의 대통령과 함께한 지난 시간은 우리에게 어떤 비용이었다는 뜻이다. ‘윤석열 비용을 정산해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남은 4년을 위해서다.

 

윤석열 비용청구서가 쌓인다 [윤석열 정부 1]

510일이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꼭 1년이 된다. ‘검사 윤석열에서 대통령 윤석열로 직진한 그와 함께한 지난 시간 동안 우리 공동체가 치른 비용은 무엇일까.

 

424일 오후(현지 시각) 워싱턴 DC에 도착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57일의 미국 순방 일정을 시작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 때부터 많은 기록을 세웠다. 0.73%포인트(24만여 표) 차이라는 '역대급 신승'만이 아니라, 최초의 검사 출신 대통령이자 최초의 0선 출신 대통령이다. 의회 경험만이 아니라 정치 경험 자체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정치 참여를 선언한 날로부터 255일 만에 대권을 거머쥐었다. 정치인으로 변신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수반 자리에 올랐다. 논쟁적이고 까다롭고 때로는 예측이 불가능한 사안까지도 최종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역할을 맡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310일 당선이 확정되고 이렇게 밝혔다. “위대한 국민의 승리.” 감사 인사였다. 동시에 대통령 윤석열이라는 선택은, 그를 뽑지 않은 이를 포함한 국민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1.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510일 취임 이후 또 다른 기록을 세워가고 있다. 보통 집권 초에 나타나는 고공 지지율이 없다. 취임 두 달째부터 긍정 평가보다 부정 평가가 더 컸다. 그때부터 지지율은 20~30%대를 오가는 중이다. 국정 철학 실현을 위한 동력이 부족한 셈이다. 배우자의 활동이 대통령 부정 평가의 요소로 여론조사에서 이렇게 많이 오른 적도 처음 있는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실 이전을 임기 시작과 동시에 실행했다. 이승만 대통령 때부터 사용하던 청와대를 나갔다(이승만 대통령 당시 명칭은 경무대였고 윤보선 대통령 때부터 청와대로 개명). 제왕적 대통령제를 탈피하기 위해 청와대에 단 하루도 머물지 않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광화문 시대였지만 실제로는 용산 시대가 열렸다. 성급하고 준비되지 않은 이전의 후과가 드러나는 중이다.

 

검찰총장에서 대통령 자리로 사실상 직진한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 주요 자리에 검찰 인사를 앉혔다. 금융감독원은 설립 이래 첫 검사 출신 수장을 맞이했다. 교육부 장관 정책보좌관, 서울대병원 감사 등도 검찰 출신이다. 특히 윤석열 사단이라는 이름표가 달린 검사들은 법무부와 검찰의 요직을 차지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당연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49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노련한 정치력이 있는 사람을 다 제치고 정치력 없는 대통령을 뽑았다. 그렇게 뽑아놓고 왜 탓을 하나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이왕 뽑았으니 도와주고 밀어줘서 대통령이 스스로 잘하도록 만들면 된다라고 주장했다. 여러모로 새로운 스타일의 대통령과 함께한 지난 시간은 우리에게 어떤 비용이었다는 뜻이다. ‘윤석열 비용을 정산해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남은 4년을 위해서다.

38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어퍼컷 세리머니를 선보였다.시사IN 이명익

 

지난 1년 동안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를 해석하는 데에는 검사라는 키워드가 곧잘 등장했다. 설명이 필요한 순간 대통령보다는 검사라는 단어를 넣고 보면 더 잘 읽힌다는 것이다. 국내정치와 국제정치 무대 모두에서 그렇다.

 

윤석열 정부 이후 당 상황을 설명하는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국힘동일체원칙이라는 조어를 곁들였다. ‘검사동일체원칙에 빗댄 것이다.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검사들은 한 몸이라는, 검찰 조직 내 상명하복을 담은 말이다. 실제 검찰청법에도 명시되어 있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법상에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검찰 문화로 존재한다.

 

윤석열이라는 정치 신인과 함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5년 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한 국민의힘도 지난 1년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준석 전 대표 '축출'윤심(윤석열 대통령의 의중)’ 논란 끝에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한 나경원 전 의원, 당원 100% 룰 개정 후 꾸려진 지도부 등의 이슈를 국힘동일체원칙이라는 단어와 함께 살피면 된다는 의미다. 이 관계자는 검사동일체원칙에 익숙한 윤석열 대통령이 당내 이견을 못 견딘다고 설명했다.

 

비용은 큰 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1년 임기 내 최저 지지율(한국갤럽 기준 지난해 8월 첫째 주 24%, 이하 모든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은 이준석 전 대표와의 갈등 국면에서 처음 드러났다. 같은 주에 국민의힘 지지율도 데드크로스를 겪었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줄곧 더불어민주당(민주당)에 비해 우위를 차지하던 지지율이 역전됐다. 지난해 7월 넷째 주 동일하던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지율(36%)은 한 주 사이 5%포인트 차이로 벌어졌다(국민의힘 34%, 민주당 39%).

 

38일 전당대회에서 새롭게 뽑힌 국민의힘 최고위원들의 실언이 계속되고 있다. 김재원 수석 최고위원의 전광훈 목사 관련 발언부터 조수진 최고위원의 '쌀 소비를 위한 밥 한 공기 다 비우기' 제안, 태영호 최고위원의 역사 왜곡 주장 등이 이어졌다. 국민의힘의 또 다른 관계자는 당원 100% 룰 개정의 대가라고 표현했다. 민심과 유리된 최고위원들이 당선될 수 있게 전당대회가 설계됐고, 그에 따른 결과라는 얘기다.

 

이런 리스크가 내년 총선에서 청구될 어음이라는 걱정이 나온다. 수도권 출마를 준비 중인 한 국민의힘 인사는 이렇게 가면 수도권 선거는 폭망(폭삭 망한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국민의힘은 소수 여당이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계속 윤석열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내년 총선이 중요하다. 수도권에서 이겨야 한다. 수도권 승리에 지금 지도부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우리 당 입장에서 현재로서 믿을 건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다.”

 

무슨 말일까. 당내 개혁이 어려운 상황에서,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 대한 비토를 최대한 모아 승부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야당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 저공비행을 지켜보며 총선 승리를 기대하는 민주당 의원들이 여럿이다. “아무리 민주당이 미워도, 총선은 결국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심판론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면 지금만큼의 규모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1당은 지킬 수 있다.” 중도층에 영향을 크게 받는 수도권 지역 민주당 의원들에게서 자주 들을 수 있는 공통된 반응이다.

 

허약한 윤석열 체제가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을 더욱 부추기는 모양새가 됐다. 윤석열 정부에 실망한 이들에게 기대는 민주당과 그러한 민주당의 잘못에 편승하는 국민의힘이라는 악순환 속에서 무당층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정치권 전체가 반사이익 그 이상을 추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불거졌다.

 

8단계 떨어진 2022년 한국 민주주의 지수

지난 2월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산하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발표는 이를 뒷받침한다. 2022년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는 2021년에 비해 8단계 떨어졌다. 전체 167개국 중 24위를 기록했다. 항목별 평가 중 정치 문화부문이 전체 순위 하락을 이끌었다. “정치인들이 합의를 모색하고 시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정적(rival politicians) 제거에 정치적 에너지를 집중한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현재 이러한 대결 구도를 완화하는 데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지 않은 듯하다. 0.73%포인트 차이라는 초접전으로 당선될 당시와는 다른 모습이다. 당선 직후 첫 공식 일정으로 방문한 국립현충원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위대한 국민과 함께 통합과 번영의 나라 만들겠습니다라고 방명록에 썼다.

 

집권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야당과 회담을 하지 않았다. ‘피의자로 여긴다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만이 아니다. 윤호중·박지현·우상호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당 원내 지도부와도 공식 만남을 가지지 않았다. 정의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63주년 4·19혁명 기념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와 인사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조선일보와 한 신년 인터뷰에서 앞으로도 야당과 직접 대화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잘 지내야 하는데 서로 간에 생각이 너무 다르다. 대화가 참 어렵다. (중략) 일단 여당이 야당과 자주 대화를 하도록 하고 국회 의장단과의 소통을 통해 국회 문제를 풀어나가려고 한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국회 몫으로 넘겼다.

 

대신 야당에 대한 불편한 마음은 감추지 않았다. 63주년 4·19혁명 기념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격한 말을 쏟아냈다. “4·19혁명 열사가 피로써 지켜낸 자유와 민주주의가 사기꾼에 농락당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다” “우리가 피와 땀으로 지켜온 민주주의는 늘 위기와 도전을 받고 있다. 독재와 폭력과 돈에 의한 매수로 도전을 받을 수도 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이재명 대표 등 야당을 겨냥한 발언이라는 뒷말을 낳았다.

 

국민의힘 한 원로는 윤석열 대통령의 검사식 세계관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검사는 상대를 피의자와 피의자가 아닌 자로 나눠 대하는 훈련을 받은 직업이다. ‘검사 윤석열에서 대통령 윤석열모드 전환이 덜 되었다는 비판이다. 27년을 검사로 살아온 윤석열 대통령의 사고 패턴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최고 정치인 자리에 있는 대통령은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흑백이나 선악으로 일도양단해서 세상을 바라보면 위험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대화와 타협으로 지금에 이르렀다.

 

국제정치에서도 검사식 세계관이 발현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3월 한·일 정상회담, 4월 한·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윤석열 대통령은 ··vs ··구도에 적극 편입하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자유주의 진영의 세력화가 강해지는 건 사실이지만,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자유주의 진영에 속하는 나라들도 일방적으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조차도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대해서는 유보적 태도를 보인다. 321일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손을 부여잡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 기금을 통해 3000만 달러의 살상 능력 없는 장비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무기 지원에 대해서는 모호한 입장을 표했다.

 

반면 419일 공개된 윤석열 대통령의 영국 로이터 통신 인터뷰는 당장 러시아의 반발을 불러왔다. “만약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라든지, 국제사회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대량학살이라든지, 전쟁법을 중대하게 위반하는 사안이 발생할 때는 인도적 지원이나 재정지원에 머물러 이것만을 고집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한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시사하는 최고 결정권자의 발언이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연방안전보장회의 부의장은 우리가 그들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북한에 최신 무기를 제공한다면 한국 국민들이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다라고 받아쳤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도모하는 일은 대통령의 최우선 책무다.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는국제정세 흐름에서 적과 친구라는 이분법으로만 상대를 인식할 경우 치르게 될 비용은 명확하다. 익명을 전제로 한 정치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백번 양보해서 윤석열 대통령의 국내정치 행보에 대한 비용은 자기 지지율을 깎아먹는 것이라고 치자. 윤 대통령이 외교무대에서 하는 말과 행동은 차원이 다르다. 국가 전체의 코스트(비용)로 돌아온다. 너무 위험하다.” 나라 안팎으로 윤석열 비용의 청구서가 쌓이고 있다는 뜻이다.

시사인 김은지 기자

 

지표로 본 윤삭열 정부 1년 경제성적표

"이번 선거 결과는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더 잘 챙기라는 국민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중략) 윤석열 정부는 첫째도 경제, 둘째도 경제, 셋째도 경제라는 자세로 민생 안정에 모든 힘을 쏟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62일 내놓은 메시지다. 취임 한 달 만에 치른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승리한 직후였다. 취임 1년 동안 경제 살리기에 '올인'하겠다고 천명해 온 윤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전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을 폐기하고 정상화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공언과는 달리, 한국 경제는 점점 더 힘을 잃어가는 모양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4월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경기를 보면, 성장세 둔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한국의 경제 전망은 어둡다.

 

여기 세 개의 그래프가 있다.

실질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한 나라의 경제 성과를 보여주는 가장 기본적인 지표로서, 경제성장률을 의미한다. 국내총생산은 한 나라에서 일정기간 새롭게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를 합산한 것이다. 경기선행지수는 앞으로의 경제 흐름을 보여주는 지표다. 국제비교를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기선행지수가 사용된다.

하향 조정 거듭하는 경제성장률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실질국내총생산(GDP·계절조정·전기 대비) 성장률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제는 20224/4분기 역성장(0.4%)을 기록했다. 경기침체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컸다. 1/4분기는 민간소비 덕에 0.3% 성장으로 가까스로 역성장을 피했지만, 수출 부진 등으로 앞으로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주요 기관의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20228월 올해 한국 경제가 2.1%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그해 11월과 올해 2월 전망치를 각각 1.7%1.6%로 연달아 낮췄다. 향후 더욱 낮출 것으로 예상된다. 이창용 총재는 지난 4"(올해 경제성장률은) 지난 2월 전망치 1.6%를 소폭 하회할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밝혔다.

 

국제통화기금(IMF)20227월 내놓은 전망치 2.1%3차례에 걸쳐 하향 조정해서, 지난 4월엔 1.5%로 전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202262.5% 성장으로 전망했지만, 이후 4번 연속 전망치를 낮췄다. 지난 3월에 내놓은 전망치는 1.6%.

 

하락 폭 점점 커지는 한국의 OECD 경기선행지수

OECD 경기선행지수봉주영

 

한국 경제의 성장률 축소는 대외적인 요인 탓도 있지만,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OECD 경기선행지수(CLI)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주요국과 비교해도 상황이 좋지 않다. 경기선행지수는 여러 경제지표를 종합해 6~9개월 뒤의 경기흐름을 예측하는 지표다. 100을 웃돌면 경기가 상승세를, 100을 밑돌면 하락세를 보인다고 해석한다.

 

한국의 경기선행지수는 20215102.83을 기록한 이후 20226월에는 100 이하로 떨어졌다. 지난 3월까지 23개월 연속 하락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다른 나라들이 저점을 거쳐 반등하거나 하락 폭이 축소되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의 하락 폭은 여전히 크다는 점이다.(230.06포인트 하락)

 

한국이 포함된 G20 국가 평균은 최근 하락 폭이 크게 축소되면서(230.01포인트 하락) 반등 가능성이 커졌다. 개별 국가별로 살펴보면, 중국은 지난 3월 저점(98.11)을 통과해 반등하고 있고, 일본도 하락 폭이 크게 축소됐다(230.01포인트 하락). 미국도 내림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지수 자체로만 보면 한국보다는 나은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 일관성 떨어져"

과도한 인플레이션을 잡는 과정에서 성장률의 축소는 흔히 나타나는 일이고, 경제가 안정된 뒤엔 부양책 등을 통해 경기 회복과 성장률 확대를 꾀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는 점이다. 이는 경제 주체들의 예측 가능성을 현저히 떨어뜨려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물가 안정과 경기 부양 사이에서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없거나 일관성이 없다는 점이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의 큰 문제"라면서 "한국은행이 물가 안정을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는데, 정부는 경기가 안 좋아질 것 같으니 금리를 낮추라고 개입을 하는 경우가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정부로서는 일관된 기조 아래) 물가 안정을 위해 단기적으로 어렵지만 견뎌야 한다거나, 아니면 적극적으로 경기부양에 나서겠다고 해야 한다"면서 "(윤석열 정부는) 지지율에 굉장히 민감해서, 기본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경제를 운영하겠다는 기조가 보이지 않고 결국 우파 포퓰리즘이라는 일관성만 가지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는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면서도 감세 정책을 내놓아 재정적자를 심화시키고 있는데, 그 자체로 모순된다"면서 "감세를 하면 투자가 늘어 경제가 좋아진다는 정책은 이제는 거의 작동되지 않는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선대식 /오마이뉴스

 

임창정이 부른 주식 포비아?투자는 그래도 부동산’”

직방, 자사 앱 사용자 대상 투자계획 설문조사

투자수단 부동산 보유 36%투자예정 40.8%

주식 투자는 16.1% 그쳐

투자 상품 기존 아파트’ 47.5%, 분양권 2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이 재테크 및 투자수단으로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거나, 부동산에 투자할 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 연령층 중 2030세대의 부동산 투자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때 투자의 대세를 이루던 주식 투자가 최근 SG증권발 폭락 사태로 투자 피해가 높아지자 장기적으로 투자성이 높은 부동산의 선호도가 보다 높아진 것도 이런 조사 결과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주식 투자는 응답자의 16.1%에 불과했다. 올해 투자에서 가장 주목할 변수로는 기준금리 변동이 꼽혔다.

 

8일 부동산 플랫폼 직방이 자사 애플리케이션 사용자 726명을 대상으로 올해 투자계획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36%가 재테크, 투자수단으로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었고 40.8%가 현재 부동산은 없지만 투자 예정이라고 답했다

 

부동산을 투자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지 않으며 계획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23.3%였다.

연령별로 20~30대에서 현재는 재테크, 투자수단으로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비율이 19.6%로 낮았지만 향후 부동산에 투자 예정이라고 응답한 비율(54.5%)이 절반이 넘었다.

 

[직방 제공]

현재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다는 응답자 중 가장 많이 투자하고 있는 상품은 기존 아파트47.5%로 가장 많았다. 이어 아파트 분양권, 입주권(20.7%) 상가, 오피스(7.7%) 오피스텔, 토지(각각 6.1%) 재건축, 재개발 정비구역(4.6%)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지금은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지 않지만 투자 예정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고려하는 상품도 기존 아파트45.9%1위였다. 그 다음으로는 신규 아파트 청약(23.3%) 아파트 분양권, 입주권(12.5%)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재테크, 투자수단으로 부동산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답한 응답자가 꼽은 이유로는 투자 자금이 부족해서’(52.1%)가 절반 이상이었다. 이어 부동산 경기가 안 좋아서(16.6%) 과거보다 대출 이자 부담이 커져서(11.8%) 부동산 정보가 부족해서(8.3%) 등의 순으로 응답했다.

 

2023년 투자를 계획한다면 투자 비중을 늘릴 상품을 묻는 질문에는 부동산39.9%로 가장 응답률이 높았다. 그 다음으로는 예금, 적금(19.8%) 주식(16.1%) 그대로 유지(12.4%) (5.0%) 등의 순서로 나타났다.

 

올해 투자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이슈로는 기준금리 변동39.4%로 단연 가장 높았다. 이어 국내 경기 침체(23.3%) 부동산 거래 부진 및 청약시장 위축(12.4%) 부동산PF, 2금융권 건전성 악화(7.4%)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 대외 상황(6.3%) 등의 순이었다.

[헤럴드경제=신혜원 기자]

 

갱단이 국토 대부분을 장악하며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빠진 아이티에 갱단원 십수명이 대낮에 거리에서 불태워져 살해되는 등 폭력 사태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아이티는 영역다툼을 하는 갱단 간의 무력충돌로 지난달 14일부터 일주일간 70명이 사망했고 갱단의 무장폭력과 잔혹한 테러로 집 밖을 나설 수 없는 상황입니다.

갱단 화형사건은 2021년 모이즈 대통령 암살 이후 수도 포르토프랭스 60%를 장악한 갱단의 무법 테러에 대한 군중들의 분노로 보입니다.

#특파원보고 세계는지금

 

정부 부동산 정책 1, '부자 감세''대출 규제 완화'만 빛났다

참여연대서 지난 한해 정책 평가 좌담회 열려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을 맞아 각계에서 지난 한 해를 평가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와중에, 주거 복지와 부동산 정책 부문에서는 날선 비판이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쏟아졌다.

 

9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한국도시연구소는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윤석열 정부 1년 주거부동산 정책 평가 좌담회'를 열어 윤석열 정부의 주택 및 주거 정책 등을 분야별로 평가한 결과를 이 같이 밝혔다.

 

이강훈 변호사(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위원장)가 주택 공급 정책을,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가 부동산 금융 정책을,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가 부동산 세제를,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이 주거 복지와 세입자 정책 부문을 각각 나눠 발제를 맡았다.

 

시장하락하는데주택공급량늘리겠다는'엇박자'

주택 공급의 경우 시장 상황과 맞지 않는 대량 공급 정책을 유지하는 한편 주택 관련 규제를 대규모로 풀어 시대 정신에 오히려 역행하는 한 해였다는 비판이 나왔다.

 

윤석열 정부는 앞으로 5년간 총 270만호에 육박하는 규모의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생애최초 주택구입 시 적용하는 주택담보비율(LTV)을 종전의 60퍼센트(%)에서 최종 80%까지 끌어올렸다(9억 원 이하). 서울 인근을 제외한 4개 지역을 제외한 전국을 규제지역에서 해제했고 부동산 보유세는 2020년 수준으로 완화했다.

 

이강훈 변호사는 "윤석열 정부의 주택 대량 공급론(임기 내 270만호 인허가), 주택 시장 규제 완화론(민간 시장 기능 회복 통한 공급 확대론), 부동산 금융 완화대책(생애 최초 LTV 80% 완화), 대대적인 부동산 조세 감세 기조 등은 주택 수요가 초과함을 전제로 이를 충족하기 위한 주택 공급 확대를 최우선 목표로 삼았기에 나온 잘못된 정책 과제"라며 이 같은 정책은 "현재 경제 상황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미 2021년부터 주택 거래량이 줄어드는 등 부동산 시장이 하향 안정화하는 상황이었기에 "과도한 주택 공급 목표를 낮추고 민간 대신 공공주택 공급을 확대"했어야 한다고 이 변호사는 밝혔다.

 

한편 윤석열 정부는 재건축 관련 규제 완화도 추진했다. 재건축부담금 면제 금액을 종전 3000만 원에서 1억 원으로 상향했고, 1주택 보유자의 경우는 재건축 부담금을 감면해줬다. 재건축 진단 기준도 완화했다. 구조안정성 점수 비중은 30%로 낮추고 대신 주거환경과 설비노후 점수 비중을 각 30%로 높였다. 안전 문제를 재건축의 시행 여부 최우선 대상에서 뺐다.

 

이 변호사는 "기후 위기 시대에 탄소 배출을 줄이고 환경을 보전"해야 한다는 시대정신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내용"이라고 일갈했다. 아울러 이 같은 재건축 규제 완화 등이 앞으로 "다시 주택 경기가 활성화할 경우 상당한 부작용을 낳을 것"으로 이 변호사는 우려했다.

 

부동산대출규제완화일변… 다주택자에혜택집중

부동산 금융, 곧 부동산 관련 대출 정책은 지난 한 해 완화 일변도를 이어갔다. 이에 윤 대통령 취임 당시인 지난해 3분기부터 작년 말까지 전체 가계대출은 감소세를 보였다. 작년 3분기에는 전월 대비 3000억 원, 4분기에는 75000억 원이 각각 감소했다. 하지만 주택담보대출은 오히려 3분기 65000억 원, 4분기 47000억 원 증가했다. 윤석열 정부의 주택 대출 관련 규제 완화가 작용한 결과라고밖에 볼 수 없는 대목이다. 이 시기 기준금리가 계속 치솟는 등 전반적인 대출 여건은 악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LTV 규제 완화에 더해 규제지역에서 주택담보대출 시 기존주택 처분 기한을 6개월에서 2년으로 완화했다. 신규주택 전입 의무는 폐지했다. 생활안정자금 목적의 주택담보대출 한도는 1억 원에서 2억 원으로 완화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배제되는 긴급생계용도 주택담보대출 한도는 종전 1억 원에서 15000만 원으로 확대했다.

 

특히 다주택자가 혜택을 봤다. 윤석열 정부는 다주택자가 규제지역 내의 주택을 구입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허용하지 않던 기존 대책을 완화해 주택담보대출(30%)을 적용해 줬다. 다주택자가 서울 등 주택가격 상승 가능성이 큰 지역에서 주택을 구입할 때도 주담대를 끼는 게 가능해졌다.

 

주담대 차주의 이자 부담은 완화됐다. 정부는 은행이나 제2금융권으로부터 대출받은 변동금리 및 준고정금리 주담대(만기 5년 이내)는 저금리의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는 우대형 안심전환대출에 25조 원을 공급했다. 부부합산소득 7000만 원 이하 1주택자가 대상이며 대상 주택은 시세 4억 원 이하 주택이다.

 

오는 817일부터는 부부합산소득 7000만 원 이하 무주택자와 시세 6억 원 이하 1주택자의 보금자리론 금리를 최대 0.35% 인하하기로 했다.

 

임재만 교수는 이 같은 조치가 "가계와 주택 금융화를 심화"하고 "경제 여건이 호전될 경우 다시 주택 투기를 일으켜 거품 형성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이 같은 대출 완화 조치가 "다주택자에게는 규제 완화" 혜택이 되는 반면 여전히 취약계층은 금융 접근권이 제약되는 현실과 맞물려 "자산 불평등을 심화한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이에 "무분별한 주담대와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을 축소하고, 전세대출은 폐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최소한 다주택자를 대상으로 하는 대출 규제 완화는 반드시 전세가 상한 규제와 연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로는 주담대로부터 이익을 올리는 은행 시스템을 구조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임 교수는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독일이나 스위스 등의 사례처럼 주주 중심의 은행 시스템을 이해관계자 중심 시스템으로 개혁하자고 그는 주창했다. 또한 토지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 공공토지임대제, 사회주택제 등을 도입해 주가 안정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임 교수는 강조했다.

 

프레시안 이대희 기문재인정부반대'선명했던부동산세제개편

윤석열 정부는 특히 부동산 세제 분야에서 이전 문재인 정부와 차별성을 강조했다. 보유세와 거래세를 완화해 '문재인 정부 이전'으로 돌리고자 하는 목적을 뚜렷이 했다.

 

구체적으로 윤석열 정부는 재산세 적용 기준연도를 2022년에서 2021년으로 변경하고 종합부동산세 역시 2021년 주택 가격을 기준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고령자와 주택 장기보유자의 종부세 납부가 유예됐고, 일시적 2주택자 역시 1주택자와 마찬가지로 종부세 특례 적용 대상이 됐다. 종부세 적용 대상은 현행 6억 원 이상에서 9억 원 이상 주택자로 완화됐다. 일시적 2주택자의 취득세 중과배제 인정기한은 1년에서 2년으로 확대했고 다주택자의 양도세 중과는 완화했다.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은 재검토하기로 해 사실상 공시가격 현실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뚜렷이 했다. 이에 따라 고가주택일수록 더 큰 감세 혜택을 받게 됐다.

 

이 같은 조치는 "결국 고가주택 보유자와 다주택자에게 유리한 정책"이었다고 정세은 교수는 촌평했다.

대대적인 부동산 세제 감세안은 세수 감소로 이어졌다. 정 교수는 "지난해 세목별 세수를 2021년과 비교하면, 종합소득세와 법인세는 50% 가까이 늘었지만 양도소득세, 상속증여세, 증권거래세는 오히려 줄었고, 특히 종합부동산세는 10.9% 늘어나는 데 그쳤다""지난해 공시가격이 높아서 집주인들 세부담이 클 것이라는 기사가 쏟아져 나온 것을 상기해 보면, 증가폭이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같은 기간 근로소득세수는 21.6% 늘어난 점이 명확히 대비된다. 간단히 말해 자산에 따른 세제는 증가하지 않았지만 소득에 매기는 세제만 늘어났다. 정 교수는 "윤석열 정부 집권 이후 종부세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100%에서 60%로 낮추고, 다주택자의 양도세 중과를 배제하는 등 자산과 관련된 세부담 완화 조치들이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친" 결과라며 "지난 몇 년간 자산가격이 폭등해왔음을 감안하면, 근로소득세의 세수 증가폭보다 자산세수의 증가폭이 낮다는 점은 조세정의와 형평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결론내릴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 우선 공정시장가액비율 폐지가 거론된다. 현행 종부세와 재산세 과세표준은 공시가격 합산 금액에서 일부 상황별 금액을 공제한 공정시장가액비율이 적용된 금액이다. 이는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해야 하는 조세법률주의와 어긋난다. 정부가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월권을 행사한다는 뜻이다.

 

정 교수는 "정부의 역할은 시장에서 형성되는 시가(時價) 또는 시가에 가장 근접한 가격을 정확하게 조사하여 발표하는 것"에 머물러야 한다며 "국회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적정한 세부담을 검토하여 세율을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공정시장가액비율 제도를 즉시 폐지하자고 정 교수는 주장했다.

 

부동산 공시가격은 시급히 현실화하는 종전 로드맵을 복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간 공시가격과 적정 시가의 괴리가 큰 점은 한국 부동산 관련 조세의 큰 맹점으로 여러 차례 지적됐다. 사실상 공시가 대비 시가가 큰 고가주택 보유자가 더 큰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공시가격 제도가 사실상 항상적인 부자 감세 제도로 작동한 셈이다.

 

올해 아파트, 다세대주택 등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작년보다 평균 18.63% 내린 수준으로 확정됐다. 이는 역대 가장 큰 폭의 하락이다.윤석열 정부의 감세 기조결과다.

 

정 교수는 "그간 부동산 공시가격이 부동산공시법이 정의한 적정가격에 한참 미치지 못해 제대로 된 세부담이 이뤄지지 않아 조세정의를 왜곡"했고 "자산불평등 심화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따라서 공시가격 현실화를 통해 특히 고가주택자를 대상으로 증세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그러나 "공시가격 현실화로 인한 세부담 확대는 조세 원칙에 부합하는 당연한 결과인데도 윤석열 정부는 세부담 완화가 시대정의인양 왜곡""잘못된 납세인식을 확산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종부세 등 보유세 역시 더 강화하진 않더라도 최소 윤석열 정부 이전 수준으로 복구할 필요가 있다고 정 교수는 강조했다.

정 교수는 "한국은 상위 10%가 전체 자산의 58.5%, 상위 1%가 전체 자산의 25.4%를 소유해 자산 불평등이 매우 심각한 사회"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보유세 강화가 절실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자산불평등은 교육, 취업 기회의 균등 및 공정성을 해쳐 서민들의 삶을 좌절시키는 주요 원인"임에도 그간 한국은 "2019년 부동산 보유세 실효세율이 0.17%, 0.3%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5개국 평균 보유세 실효세율의 절반에 불과"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현 정부 들어 " 보유세 제도가 다시 후퇴하고 무력화해 자산불평등을 완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이는 향후 금리가 인하되는 시기에 이르면 다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원인을 제공할 위험 요인"이라고 정 교수는 우려했다.

 

주택공공성강화는'몰라라'

주택 공공성 제고에 윤석열 정부는 인색했다는 촌평이 나왔다. 당초 윤석열 정부는 출범 당시부터 문재인 정부보다 주거 공공성 해소에 소극적으로 나서겠다고 공약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연간 13만 호 수준이던 공공임대주택 공급량을 윤석열 정부는 연 10만 호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밝힌 바 있다.

 

최은영 소장은 "공공임대주택 공급 계획 물량이 줄어드는 것 그 자체가 문제"라며 "공공임대주택 범위에 10년 임대후 분양주택까지 포함한 것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공급되는 공공임대주택은 연 10만호에도 못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의주택공공성관련정책으로 꼽을 수 있는 건 나눔형 분양주택 수준이다.나눔형 분양주택(시세 70% 이하, 5년 의무 거주, 공공환매시 시세 차익 70% 보장), 선택형 분양주택(입주시 분양가와 분양시 감정가를 평균한 가격으로 6년 후 분양 여부 선택), 일반형 분양주택(분양가상한제 적용해 시세 80% 이하로 공급) 등은 최초 분양 당첨자가 시세 차익을 누리는 방향으로 설계돼 이른바 '로또'를 양산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지속 공급이 불가능한 대책으로 평가됐다.

 

이강훈 변호사는 이처럼 공공주택 공급에 힘쓰지 않는 현 정부 기조상 "앞으로도 무주택 서민과 청년, 신혼부부의 주거권이 크게 개선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최근 전국적 문제가 된 이른바 '깡통 전세' 사건, 혹은 전세사기 사건과 관련한 윤석열 정부의 전세 규제 관련 대책 역시 문제의 핵심에 닿지 않는다고 이 변호사는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특별법을 제정해 임차인에 우선매수권을 부여하고 대출을 지원하며, 임차인이 요청할 경우 공공매입 후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방안 등의 대책을 발표했다. 이 변호사는 이에 관해 "깡통전세 피해자는 제외해 피해자 범위가 너무 축소"됐으며 "피해자들이 희망하는 채권 매입 방안" 등도 제외돼 충분한 피해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대책이었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 1년간 주택과 관련해 두 건의 상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그 중 하나는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큰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전세사기 사건이다. 그 전 지난해 8월에는 집중호우로 인해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던 서민들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벌어졌다.

 

최은영 소장은 주거 관련 통계를 들어 한국의 주거빈곤 수준이 심각함을 강조했다. 통계청 집계 기준 2020년 현재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주택에 거주하는 가구가 176만 가구에 달한다. 이는 반지하와 옥탑,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주택, 고시원, 비닐하우스처럼 주택 이외의 거처를 총괄한 수치다.

 

지난해와 올해 주거급여 정책 수준은 2015년 이후 가장 적게 떨어졌다. 최 소장은 "윤석열 정부는 코로나19 이후 물가 폭등에도 불구하고 2023년 주거급여 기준임대료를 1급지(서울) 1인가구 기준 327000원에서 33만 원으로 3000원 인상하는 데 그쳤다""이는 2015년 맞춤형 급여로의 개편 이후 증가폭이 가장 작은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윤석열 정부는 지난 1년간 청년 주거비 지원 강화, 관리비를 주거급여에 포함하는 방안 등 출범 당시 제시한 공약도 지키지 않은 것은 물론, 아예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고 최 소장은 질타했다.

 

한편 현 정부가 문재인 정부 시기 임차인 권리 보호를 위해 도입된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인상률 상한제, 임대차 신고제 등 이른바 임대차 3법 개정안을 무력화하거나 폐지하려 하는 점도 문제라고 최 소장은 지적했다.

 

최 소장은 "윤석열 정부는 임대차 3법으로 인한 부작용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임대인 혜택 강화 대책을 내놨""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해 629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임대차 3법의 폐지 수준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지적했다.

 

최근 전국에서 일어나는 깡통전세, 전세사기 사건과 관련해서는 근본적으로 지난 수년 간 '빚내서 집 사라'는 신호를 준 정부가 근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최 소장은 지적했다. '보증보험 가입을 신청했다'는 서류만 있으면 민간임대주택 등록이 가능한 허술한 임대차 행정을 그간 이어와 시장 위험을 키웠다고 최 소장은 지적했다.

프레시안 이대희 기자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9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윤석열 정부 1년을 평가하는 퍼포먼스를 하며 '노동존중' 영역에 F 학점을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김건희 ‘Yuji 논문학술지 A등급KCI 자격 유지

김건희 대국민 사과 YTN 방송 갈무리, 2021.12.26 YTN

 

김건희 여사의 ‘member Yuji’ 논문을 게재한 학술지가 한국연구재단 평가 결과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등재지 자격을 유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9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제출받은 ‘2022년 학술지 실태점검 결과를 보면, 김 여사의 논문을 실은 학술지 <한국디자인포럼>은 총점 96(A등급)을 얻어 KCI 등재학술지 자격을 유지했다.

 

연구재단은 매년 등재학술지의 10%가량을 무작위로 선정해 실태점검을 하는데, 디자인포럼은 지난해 처음으로 점검 대상에 포함됐다. 연구재단은 지난 327<디자인포럼>을 발간하는 한국디자인트렌드학회에 점검 결과를 최종 통보했다.

 

<디자인포럼>이 지난 2007년 게재한 김 여사의 논문 온라인 운세 콘텐츠의 이용자들의 이용 만족과 불만족에 따른 회원 유지와 탈퇴에 대한 연구는 본문에 회원 유지를 가리켜 ‘member yuji’로 표기하며 부실·표절 의혹이 제기됐던 터라 이번 실태점검 결과에도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연구재단의 학술지 실태점검은 논문 심사서류를 규정대로 보유하고 있는지 논문 심사의견을 충실하게 달았는지 등 학술지 운영 및 형식적인 절차와 관련된 것만 살펴보게 돼 있어 김 여사의 논문 수준을 둘러싼 질적인 부분은 평가에 반영되지 않았다.

 

조 의원은 연구재단의 실태점검은 논문의 내용을 직접 점검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부실 논문이 KCI에 등재돼도 이를 바로 잡을 장치가 없는 상황이라며 최소한 문제가 된 논문들은 KCI 수준을 높이기 위해 재단에서 직접 내용까지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2007년 한국디자인트렌드학회가 발간하는 KCI 등재 학술지 한국디자인포럼에 게재한 논문.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

 

 

스팸문자 왜 오나 했더니통신사 연간 수백억 원 수익

 

자 기와 까치구멍 집>틈만 나면 날아와 쌓이는 스팸 광고 문자메시지, 귀찮은 건 물론, 일상업무에도 큰 방해가 된다는 분들도 많습니다. 대출을 해주겠다, 카드 만들어라 이런 광고 문자가 대부분이죠?왜 이런 광고가 끊임없이 오는 건지 살펴봤더니, 이유가 있었습니다.

 

리포트: 임없이 휴대전화로 오는 광고문자는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신사 이름의 발신 문자도 내용은 역시 광고입니다. 리를 싸게 해준다는 대출 광고부터, 인터넷 쇼핑 할인 광고, 유튜브 서비스 할인까지 다양한 내용이 통신사 이름으로 발송됩니다.

 

[박 모 씨/직장인]"통신사랑 상관없는 대출이나 보험 그런 금융적인 것도 많이 오게 되거든요.

통신사들은 2년마다 광고 수신 여부를 확인하도록 법에 명시돼 있습니다. 지만 이를 지키는 통신사는 없습니다.

 

[이 모 씨/직장인]"처음 (가입할 때)뿐이지 그 후로 주기적으로 제가 동의를 해준다거나 그런 적 없었던 것 같아요." 통신사가 가입 2년 된 고객에게 보낸 문자입니다.

"광고성 정보 수신에 동의 여부를 알려드린다"며 고객이 과거 광고 수신에 동의했는지 알리는 게 전부입니다.

2년을 연장해 광고를 더 받는데 동의를 구한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단순 안내 문자가 '확인 절차'로 둔갑한 겁니다.

 

[박순장/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처장] 처음에 개인정보 동의를 해 준 게 계속적으로 연장이 됐다고 판단 내리는 거는 (고객이) 철회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편법이고"

 

통신사들이 이렇게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고객의 동의를 유도하는 건 광고 수신을 허용한 고객 수가 곧바로 통신사들의 돈벌이와 연결됐기 때문입니다.

 

[SNS광고 업계 관계자]

"통신사에서는 광고를 통해서 보내주는데 그렇게 되면 (통신사가 받는) 비용이 100원 이상이에요. 자기 고객들한테 광고 문자를 보낼 때에는 20, 다섯 배 높은 이익이 생기니까"

통신사마다 이런 정보를 이용해 매년 수백억 원의 광고수익을 내고 있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이통 3사는 "인터넷 진흥원의 지침을 따랐을 뿐 불법이 아니"라고 해명했고, 인터넷진흥원도 "법에 재동의를 받으라고는 명시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인터넷진흥원은 "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만큼 업체들이 개인 정보 활용에 좀 더 신중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해명했습니다.

MBC뉴스 박진준입니다.

 

명문고' 만들면 '지방'이 살아날까?

교육은 '백년지대계'라지만, 우리나라에선 정권의 성향이나 정치적 사건에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현 정부는 고교 운영, 대학 입시와 관련해 전 정부와 상당히 다른 방향을 제시합니다. 때문에 지난 정부에서 넘어온 정책과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요. 현재까지 발표된 주요 방향과 제기되는 문제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다음날인 지난해 1118일 서울 세종대학교 컨벤션홀에서 열린 종로학원 입시설명회에서 학부모들이 설명을 듣고 있다. 김창길 기자

 

1. 더욱 다양한 명문고를 만들겠다

지난 정부는 자사고·외고·국제고 등을 2025년에 일반고로 전환할 계획이었습니다. 고교 서열화를 해소하는 방안이었어요. 현 정부는 완전히 반대 방향의 계획을 세웁니다. 자사고·외고·국제고는 그대로 유지하고, 여기에 더해 일반고를 더 세분화해 지역 '명문고'를 많이 만든다는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교육자유특구를 지정하기로 했습니다. 규제를 풀고 지역에 명문고를 만들 수 있게 해 준다는 취지예요. 미국의 '차터 스쿨'을 모델로 한 '협약형 공립고'도 내년부터 시범 운영합니다. 예산은 정부가 지원하고 민간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거예요.

교육부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고교 교육력 제고방안'을 다음 달쯤 발표할 예정입니다.

정부는 '좋은 학교를 많이 만들어 공교육의 질을 끌어올리겠다'라고 말하지만, 이 방향이 이미 심각한 고교 서열화를 더욱 심화시킨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2. 정시 '40% '은 유지한다

대입 정시 비중은 2019학년도까지 점점 줄고 있었습니다. 수능 성적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게 불합리하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이뤄진 변화입니다. 곧 전면 시행되는 고교학점제 또한 정시보다 수시와 잘 맞아떨어지는 제도입니다. 학생이 과목을 직접 선택하고, 성적은 절대평가로 받는 게 핵심이거든요.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입시 비리 사건을 계기로 수시 공정성이 도마 위에 오르자, 문재인 정부는 대입 제도 공정성을 강화할 방안으로 정시 비중 확대를 제시했습니다. 문 정부 교육정책 방향과 들어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추진했습니다.

그 결과 2017학년도 입시에서 29.4%에 그쳤던 정시모집 정원 비율은 현재 서울 주요 대학에서 40%까지 올라왔습니다.

윤석열 후보도 '부모찬스 없는 공정한 대입제도를 만들겠다'며 정시 확대를 대선 공약으로 걸었습니다. 하지만 사교육을 늘린다는 등 이유로 실제로 확대까지 추진하지는 않았습니다.

현재 서울 16개 대학은 정시 비중을 40% 이상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이주호 교육부장관 겸 사회부총리는 "대입제도에 크게 손을 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전 정부에서 넘어온 대입 정시 비중은 대입제도가 바뀌는 2028학년도 이전까지는 유지될 것으로 보입니다.

 

 

3. 골치아픈 대입제도 개편안

정부는 지금 대입제도 개편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내후년인 2025년부터 고교학점제가 전면 실시되기 때문에, 이에 부합하도록 입시제도를 손보는 게 관건이에요. 현행 대학입시의 두 축은 수능과 학교생활기록부입니다. 고교학점제를 시행하게 되면 기존에 상대평가 중심이던 내신에 절대평가가 도입되는 것이어서, 입시 제도에도 변화가 필요해요.

교육부는 올해 상반기에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 시안을 내놓습니다. 내년 2월에 확정해서 2028학년도부터 적용합니다. 문제풀기 중심인 수능은 창의적인 인재를 키우자는 고교학점제의 취지와 맞지 않기 때문에, 수능을 폐지하거나 논술형 평가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나왔지만, 이번 개편에 반영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2022학년도부터 시작된 문이과 통합형수능 이후 이과생들이 대거 문과로 지원하고 재수생이 늘어나는 등 부작용이 있어, 이 부분도 보완이 필요합니다.

 

정부는 더 많은 '명문고'를 만들어 교육의 질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합니다. 이 방향성이 그동안 이미 심각해진 고교 서열화를 더욱 부추길 거란 우려가 나옵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고교 다양화 정책'을 둘러싼 맥락을 살펴볼게요. 이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독자님들께 여쭤봤더니 다양한 의견이 나왔어요.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지난해 1116일 서울 이화여고에서 수험생이 수험표를 확인하고 있다.

 

1. 우수한 인재가 먼저 아닌가?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독자님들께서는 인재 양성이 중요하고, 미래의 인재가 차별화된 교육을 받을 기회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내주셨습니다.

 

부정적 의견을 밝힌 분들께서는 일부 학교에 자원을 집중시키고 줄세우기를 부추길 게 아니라, 전반적인 교육의 질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둘 다 중요한 이야기 같습니다. 실제 정책으로 추진했을 때 둘이 충돌하는 지점이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른바 일반고 황폐화문제입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잠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요.

 

이명박 정부 시절 교육과학기술부는 고교다양화300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이전까지 유지되던 고교평준화 체제가 이때 크게 흔들렸어요.

 

고등학교 체계가 특목고·자율고·일반계고·특성화고로 정비됐습니다. 학생 우선 선발권을 가진 학교가 많이 생겨나면서 영재고, 과학고, 전국 단위의 자사고, 외고·국제고와 광역단위 자사고, 일반고, 특성화고로 이어지는 고교 서열이 고착됐습니다.

 

교육 정책을 취재해온 남지원 기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사고는 학생을 일반고보다 먼저 선발할 수 있어요. 때문에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 단계에서부터 자사고로 빠져나가게 되고, 일반고에는 '선발되지 못한 학생들이 모여 있다'는 낙인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픽 : 김규연 디자이너

 

양질의 교육이 보장되는 소수 '명문 학교'를 제외한 나머지 일반고는 이른바 '비선호 학교'가 되어 학생과 학부모에게 소외감을 불러일으켰어요. 이 현상은 자사고 절반이 몰려있던 서울에서 가장 뚜렷했고, 지난 10년간 축적돼 '일반고 황폐화'로까지 불리게 된 것입니다."

 

이는 이주호 현 교육부장관 겸 사회부총리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이주호 장관은 이명박 정부 당시에 고교다양화300 정책을 설계한 장본인인데요. 현 정부에서 다시 교육부장관으로 지명된 그는 지난해 인사청문회에서 고교다양화 정책이 서열화로 이어지는 부작용이 있었다라고 인정한 바 있습니다.

 

자율형사립고는 처음에는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데 방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사고들은 다양성을 명분으로 자율성을 획득한 후 입시에만 집중했습니다. 일반고보다 국··수 교과에 많은 시간을 배분했어요.

 

전국의 자사고는 35곳으로, 1055개 학급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장애 학생을 위한 특수학급은 단 한 곳 뿐인 것으로 조사됐어요. 2373곳 일반고 절반 가까이에 특수학급이 설치돼 있는 것과 뚜렷이 대조됩니다.

 

 

2. 끝을 모르고 늘어나는 사교육비

자사고는 국공립 학교보다 먼저 학생을 선발했기 때문에, 잘 가르치기에 앞서 잘 뽑는데 집중하면서 사교육을 부추기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올해 나온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역대급'이에요. 정부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데, 아직 대책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초··고 학부모들이 지출한 사교육비 총액은 26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어요. 올해 교육부의 유··중등 부문 예산 총액이 81조원이니 학부모들이 지출하는 학원비 규모가 국가 교육예산의 3분의 1에 달합니다. 학생 수는 줄고 있는데도 말이에요.

 

지난달에는 중국 한 연구소가 양육비가 가장 높은 나라로 한국을 꼽기도 했습니다. 이 연구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에서 자녀를 18세까지 양육하는 데 드는 비용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7.79배에 달한다고 하네요. 중국은 6.9, 독일은 3.64, 호주 2.08, 프랑스 2.24배였습니다.

 

사교육비 증가는 고교 다양화 정책과 상관관계가 뚜렷해 보입니다. 좋은 고등학교에 가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고 보고, 학부모들은 일찍부터 선행학습에 많은 돈을 씁니다.

 

자사고 진학 희망 학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지출이 일반고 희망 학생보다 1.7배 많다는 분석도 있어요. 과학고와 외고·국제고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도 일반고 지망 학생보다 월 평균 사교육비가 1.6, 1.5배 많았습니다.

그래픽 : 김규연 디자이너

 

시험으로 학생들을 줄 세워야하다 보니 수능 시험 난이도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어요. 몇 년 동안 불수능릴레이가 계속되었는데, 최근엔 심지어 로스쿨 지망생도, 행정고시 준비생도 수능 시험으로 공부한다는 보도까지 나왔습니다. 학교 선생님들도 내신 변별력을 위해 학생들이 풀지 못할 문제를 쥐어짜고 있고요.

 

경쟁이 심화해 학생도, 학부모도, 교육자도 개미지옥으로 내몰린 한국사회의 한 단면이 아닐까 합니다.

 

3. 고교학점제와 상충하는 정책들

직전 정부에서는 이런 문제를 개선하겠다며 고교학점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학생이 주도적으로 과목을 선택하고, 적성에 맞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였어요. 이미 절반이 훌쩍 넘는 학교에서 시행 중입니다. 내후년부터는 모든 학교에서 실시될 것이어서, 교육청과 학교, 학원들은 고교학점제 준비가 최대 현안입니다. 학생에게 여러 선택지를 제시해야 하니, 할 일이 많을 수 밖에요.

 

그런데 지금 역설적으로, 고교 서열화를 가속화하는 데 이 제도가 기여할 거란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직접 선택하고, 절대평가로 성적을 받는 게 핵심입니다. 석차등급 없이 성취도로만 성적을 받게 돼요.

 

그동안 자사고와 외고는 좋은 내신 성적을 받기 어렵다는 이유로 일반고를 선호하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학교에서 절대평가로 성적을 받게 되면 자사고와 외고 학생들이 내신 부담을 크게 덜게 돼요. 내신에도 '불리함'이 없어지면 이들 학교에 대한 선호만 더 높아질 거란 우려가 그래서 나오고 있어요.

 

현 정부에서 교원 수를 크게 줄이기로 한 것도 고교학점제의 성공적인 안착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요즘 이과생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인데, 정작 과학 선생님은 구하기 어렵다는 기사도 보이는데요. 다양한 선택과목을 개설해야 하는 상황에서 교사를 줄이겠다고 하니 교육계의 반발이 커요.

 

새 입시제도는 내년 2월까지 정비될 예정인데요. 시행은 2028학년도부터여서, 2023~2024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학교 수업은 새로 도입된 고교학점제에 맞춰서 듣고, 대학 입시는 기존 입시제도에 맞춰 준비해야 하는 혼란을 피할 수 없을 듯 합니다.

 

 

4. 잠깐, 정시가 더 공정한 것 아닌가요?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하는 고교학점제는 대입 전형 중에서는 수시와 더 잘 맞는 제도입니다. 그래서 현 정부에서 정시 40%을 계속 가져가기로 한 점도 우려를 빚고 있어요. 혹시, 시험에 집중하는 정시가 더 공정할 거라고 생각하는 구독자님 계신가요?

 

저도 막연히 수능 하나만 준비하면 되니 덜 번거롭고, 사교육비를 덜 써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요. 통계를 보면서 생각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어떤 이들이 이른바 '상위권' 대학에 정시로 입학하고 있을까요. 최근 4년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정시모집 합격자 자료를 보면 다소 충격적입니다.

 

일단, 합격자 중 이미 졸업하고 여러 차례 시험을 본 N수생이 무려 61.2%였어요. 2016~2018년엔 이 비율이 53.7%였는데, 7.5%포인트나 늘었습니다. 합격자들은 어느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나왔을까요. 전체 합격자의 42.1%가 서울의 고등학교 출신, 29.5%가 경기 지역 고등학교 출신이었습니다.N수생도 아니고,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지도 않은 지방 소재 고등학교 3학년 재학생은 7.9% 뿐이었어요.

 

대학 서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의대는 어떨까요? 최근 4년간 정시로 의대에 합격한 신입생(4373) 자료를 분석했더니, 비수도권 소재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은 100명 중 7명이 채 안 됐습니다. 처음에 눈을 의심했어요. 비수도권 지역 고등학생이 전체의 절반을 훌쩍 넘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그래픽 : 김규연 디자이너

 

일단 합격한 고3 학생 비율 자체가 매우 낮습니다. N수생이 무려 77%거든요. 22%의 재학생 가운데 68%가 수도권 출신, 32%가 수도권 외 지역 출신이었습니다. 합격생 비율이 N수생(77%) > 수도권 고3(15%) > 지방 고3(7%)이었던 거예요. 이쯤 되면 정시란 재수나 삼수를 시도할 여력이 있는 사람에게 유리한 제도로 봐야 할 것 같아요.

 

최근 4년 동안 서울대와 전국 의대에 정시로 입학한 학생 5명 중 1명은 서울 강남 3(강남·서초·송파구) 출신이라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집에 화장실이 몇 개인지 알면 SAT 점수를 짐작할 수 있다'는 미국의 연구 결과를 떠올리게 됩니다.

 

이명박 정부 때 시행한 고교다양화300 정책은 일반고를 슬럼화하고 고교서열화를 고착화했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고교 서열화는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집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고교학점제를 도입했지만, 대입에선 고교학점제와 맞지 않은 정시 제도를 확대하는 모순적 결정을 내립니다.

공정성이 명분이었지만, 대입 결과를 보면 수능 위주의 정시가 N수생 또는 수도권 학생에게 유리한 제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1. 지역 격차 크니 명문고를 만들자?

국정 비전으로 지방시대를 제시한 현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캐치프레이즈는 이것입니다. “어디 살든 균등한 기회.” 정부는 지방 소멸을 막을 중요한 수단으로 교육자유특구를 내세우고 있어요. ‘교육보다는 지역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도 볼 수 있는 정책입니다.

 

우동기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국가 정책에서 해결 못 하는 교육 문제가 사교육 문제와 지방에서 서울로 인재가 유출되는 문제이며, 이를 교육자유특구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수도권과 지역의 격차는 앞서 살펴본 수능 정시 합격 비율에서도 확연히 드러납니다. 하지만 이 문제가 교육자유특구 지정으로 해결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역 일반고에 다니는 학생들은 어떻게 되는 거냐.’ 당장 이런 질문부터 나와요. 많은 전문가가 교육자유특구 지정이 특목고나 자사고 확대로 이어지고, 지방 일반고를 더 소외시킬 거라고 우려해요.

 

정부는 교육자유특구의 세부안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입법부터 추진했습니다. 교육부의 올해 업무보고 내용을 보면, 취지는 이렇습니다. “학교설립에서 운영까지 교육 관련 규제를 완화해 정형적 모델이 아닌 지역별 맞춤형 공교육을 선도한다.”

 

당장 교육계 반발이 만만치 않아요. 전국 시도교육감들도 지역 단위의 명문고가 부활하면 지역 내에서 학교 서열화가 이뤄질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어요.

 

정부가 미국의 차터 스쿨을 본떠 추진 중인 협약형 공립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재남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정책과장은 협약형 공립고를 도입하게 되면 지자체가 지역 학생의 성장보다 명문대 진학률을 중시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역 언론 동향을 살펴보니 반기는 분위기도 일부 감지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역에 명문고가 생기는 게 지역 학생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좋은 일일까요?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을 살리는 기회가 될 수 있는 걸까요?

 

2. 어떤 선의의 정책도 '입시' 앞에 소용없다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 때 시작된 '고교 다양화' 이후 교육 정책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간략히 살펴봤습니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명분으로 이뤄진 많은 시도가 결국 '줄세우기 경쟁'으로 수렴하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정답 맞히기'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는 논의는 계속 진행되어 왔지만, 정부에 따라 교육정책이 뒤집히고 공정성논란에 발목이 잡히면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입시제도를 바꿔야 교육도 바뀐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당장 2028학년도 입시제도를 빨리 내놓아야 해서, 크게 바뀌는 게 없을 가능성이 커요. 이주호 총리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시사했습니다.

 

이쯤에서 한번 다시 물어봐야 합니다. 고교 서열화와 일반고 황폐화는 정말 자사고나 특목고 때문에 벌어진 일일까요?

'아니다'라고 말하는 소수 의견도 소개할게요. 이범 교육평론가는 진짜 개선해야 할 문제가 따로 있다고 말합니다. 그가 보기에, 가장 큰 문제는 애초에 모든 학생이 대학에 가서 공부하도록 획일적인 인문계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것 그 자체입니다. 대부분의 학생이 적성에 맞지도 않은 인문계 교육을 받고 사회로 나가는데, 사회에는 정작 애써 받은 교육에 걸맞은 일자리가 없습니다.

 

이범 평론가는 지금 '명문고'를 늘릴 게 아니라, 되려 고교 서열의 맨 아래에 있는 특성화고·마이스터고 등 직업계고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괜찮은 일자리가 될 수 있는 영역들을 적극적으로 키워야 한다고요.

 

실제로 한국은 공부와 직업의 '미스매치'가 가장 심각한 나라로 꼽힌 적도 있어요. 2015년에 OECD가 분석한 결과를 보면, 한국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전문대졸 이상) 중 전공과 상관 없는 직업을 가진 사람 비율이 50%였습니다. OECD 최고 수준이에요. (참여국가 전체 평균은 39.1%)

 

3. ''만 있고 ''은 빠진 중등교육

사회에 나와 자립하기까지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런데 교육 정책을 논할 땐 온통 입시얘기뿐입니다. 지금까지 정부가 발표한 교육정책을 보면 중등교육의 목표를 오로지 인재 양성으로만 두는 것 같아요.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겠다를 조금 달리 말하면 '아이들을 많이 공부해서 많이 일하는 사람으로 키우겠다'는 것 같습니다.

 

현병호 교육매체 민들레발행인은 학교가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현장이라고 말합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먹고 사는 방편을 갖추는 동시에, 살아가는 일 자체도 배워야 해요. '인재가 될 준비 만큼'이나 '노동자로서 스스로를 보호할 방법'에 대한 준비도 중요하지만, 교육부는 이런 내용은 덜어내는 방향으로 교육과정을 개정한 바 있습니다.

 

정치권의 셈법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교육 정책은 학생뿐만 아니라 전 세대에 영향을 미칩니다. 넘치는 사교육비는 저출생과도 무관하지 않고요.‘공부로 대표되는 학생들의 뿐만 아니라 에 방점을 찍은 정책도 더 많이 논의되기를 바라며 점선면을 마무리할게요.

 

교육자유특구를 지정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교육보다는 지역발전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전국 시도교육감들은 지역 명문고가 부활하고 학교 서열화가 심해질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어요.

 

교육제도가 바뀌려면 입시제도가 바뀌어야 하지만, 올해 정부가 발표할 2028학년도 입시제도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경쟁과 인재양성만 목표로 할 것이 아니라, 어떤 교육을 제공해야 아이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가지고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방향의 정책적 논의가 절실합니다./경향

 

최재천 교수 현 교육시스템 깨부수고 학생들에게 자유를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205290822001/?utm_source=article&utm_medium=newsletter&utm_campaign=khan

 

‘SAT 폐지미국 정시 확대한국···같은 문제, 반대 해법 왜?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211271709011/?utm_source=article&utm_medium=newsletter&utm_campaign=khan

 

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 윤석열의 부자감세는 '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반하는 정책들

윤 정부의 재정정책 기조는 소득주도성장과 포용적 복지국가의 실현을 위해 '적극적 행위자로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와 대비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재정을 다소 보수적으로 운용한 결과 재정 여력이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였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총부채와 순부채(총부채-금융자산)는 각각 GDP 대비 51.3%20.9%로 선진국 평균 117.9%86.2%를 크게 밑돌고 있다.

 

하지만 윤 정부 출범 이후 2022년의 추가경정예산과 세제개편, 2023년의 세수 결손과 반도체산업에 대한 투자세액공제 등으로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226월부터 20232월까지 9개월 만에 통합재정수지와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각각 40.3조 원과 76.7조 원 발생했고, 중앙정부 채무는 42.5조 원 늘어났다.

 

윤석열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62조 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고, 이명박 정부 이래 가장 큰 규모의 감세 정책을 추진했다. 2022년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향후 5년간 기준 년도 대비 총 60.2조 원(누적법), 전년도 대비 13.1조 원(순액법)의 세수가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지독한 부자 감세라는 점이다. 서민·중산층과 중소·중견기업에 귀속되는 감세 규모는 4.6조 원에 불과한 반면, 고소득자와 대기업의 감세 규모는 5.3조 원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서민·중산층과 중소·중견기업 세금을 6.5조 원 줄여주고 고소득자·대기업 세금을 8.2조 원 늘린 것과 대조적이다.

 

올해 들어 세수 결손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부자 감세 기조가 유지될 경우,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는 더욱 큰 폭으로 증가할 것이다. 올해 3월까지 국세의 세수결손은 24조 원에 달하고 있다.

한편 윤 정부는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하여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높이고 임시투자세액공제를 1년간 한시적으로 도입하여 약 3.3조 원에 달하는 감세 혜택을 추가로 제공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은 이미 통합투자세액공제 등으로 적지 않은 세제 혜택을 보고 있다. 더욱이 이들 기업의 사내유보금(자본잉여금+이익잉여금)2022년에 각각 208.8조 원과 58조 원에 달한다.

 

재정의 안정화 기능을 위한 구조개혁 부재

투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복지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의 빈소가 2022826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유성호

 

윤석열 정부는 20228'2022~2026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재정 운용의 기본방향을 건전재정 기조의 확립, 서민·사회적 약자에 대한 민생지원, 강력한 재정혁신으로 정하고, 재정수입과 재정지출의 연평균 증가율을 각각 6.6%4.6% 수준으로 관리하도록 했다. 2017~2021년 결산기준 연평균 증가율(7.5%9.4%)과 비교할 때, 지출 통제가 재정정책의 주요 대상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세계 경제의 위축과 금리상승 등으로 성장세가 하락함에 따라 정부는 20231월 비상경제장관회의를 개최하여 재정을 상반기에 신속히 집행하기로 했다. 경기침체 국면에서는 마땅히 재정을 확장적으로 운용해야 하지만, 우리나라 재정의 취약한 자동안정화 기능을 고려할 때, 재정의 경기대응력을 높이는 제도 개혁이 병행되어야 한다.

 

재정의 자동안정화장치(automatic stabilizers)는 추가경정예산이나 예산의 조기 집행 등과 같은 정부의 재량적 개입이 없어도 실업급여처럼 경기변동에 따라 수입과 지출이 자동으로 늘거나 줄어들면서 경기를 안정시키는 제도다. 사회안전망이 촘촘하고 조세체계가 누진적일수록 잘 작동한다.

 

누진적인 조세체계에서는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세율이 점점 높아져 세제의 재분배 효과가 커진다. 재정의 경기대응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재량적 재정정책이 견고한 자동안정화장치에 의해서 보완되어야 한다.

 

양극화와 불평등 확대에 대한 우려

지난해 우리나라의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 비중은 14.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21.1%를 크게 밑돌고 있다. 재정의 재분배기능은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취약하며, 조세보다는 공적 이전소득의 재분배기능이 더 취약하다.

 

민간 주도 성장을 뒷받침하는 재정, 부자 감세와 재정건전성, 재정의 취약한 안정화기능을 특징으로 하는 윤 정부의 재정정책 기조가 유지될 경우, 사회복지지출 비중의 축소와 가계부채의 증가로 양극화와 불평등은 확대될 것이다. 특히 정부가 재정 총량 규제에 집착할 경우, 분배구조는 더욱 악화할 수 있다. 20223분기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가계부채는 GDP 대비 105.3%로 한국을 제외한 42개국 평균 56.4%를 크게 웃돌고 있다.

 

사회복지·보건 분야의 예산은 2018~2022년 기간에 연평균 증가율 11.0%를 기록했지만, 2023년 예산에서는 3.8%로 낮아졌다. 더욱이 정부는 근로장려금과 월세액에 대한 세액공제, 무주택 근로자에 대한 주택자금 특별공제 등 서민을 대상으로 한 조세지출제도를 2023년 조세특례 임의심층평가 과제로 선정했다. 임의심층평가는 의무심층평가 대상은 아니지만, 조세지출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심층평가가 필요한 조세특례로서, 평가 결과에 따라 사회복지 분야의 지출이 더욱 축소될 수 있다.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을 위하여

자원의 효율적 배분, 소득의 공평한 분배, 국민경제의 안정과 성장은 재정정책의 주요 과제이다.

 

한국경제의 성장률 전망치가 하향 조정되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가 한편으로는 대규모의 추가경정예산과 예산의 조기 집행을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자 감세와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는 정책조합의 엇박자를 초래하고 있다.

 

재정이 건전성의 틀에 갇혀 경직적으로 운용되면 단기의 경기 안정은 물론 미래의 성장잠재력도 약해져 궁극적으로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유지되기 어렵다. 국가채무와 가계부채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재정의 총량을 엄격히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내수기반과 재정의 안정화 기능이 취약한 한국경제에서는 경기변동에 대응하여 재정을 탄력적으로 운용하고, 재정지출도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편되어야 한다.

 

특히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발생하는 시기에는 재정을 확장적으로 운용하되, 부자 감세가 아니라 고소득자와 고액자산가, 대기업이 더 많이 부담하는 방식의 세수 확충으로 적자재정을 충당해야 한다. 그래야만 물가상승의 압력을 완화하면서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다.

 

윤 정부는 부자 감세와 건정재정 기조를 철회하고, 양호한 재정 여력을 활용하여 대전환기의 경제사회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재정의 지속가능성도 유지할 수 있다. / 포럼 사의제 경제팀 / 오마이뉴스

 

 

마녀사냥 도우미'로 변신한 운동권 출신들

조선일보 구미에 맞게 대신 침 뱉어주는 역할

김경율민경우한지원이수봉'내부 고발'로 포장

마녀사냥 측면지원, 옛 동료들 등에 칼 꽂기 앞장

수구극우편에서 진보적 사회운동 공격을 정당화

"조국과 윤미향 때문"? 설득력 없는 핑계 우려먹기

정치적 포지션 자체를 바꿔 윤석열 정권 지지 나서

최근에 미국 <폭스뉴스>가 악의적 허위 보도 때문에 어마어마한 배상금을 지불하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 사람들은 <조선일보>를 떠올렸을 것이다. 트럼프 같은 우익 정치인들을 도우면서 사회적 약자들을 공격하며 각종 선정적이고 무책임한 가짜뉴스를 유포해온 <폭스뉴스>의 행태를 '미국판 조선일보'라고 비교하는 주장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악의적 가짜뉴스와 보도 행태를 막기 위해서 언론개혁 지지자들이 '언론중재법'을 추진했을 때 '언론의 자유'를 말하며 앞장서 막아선 것이 <조선일보>였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번 <폭스뉴스>의 경우는 악의적 허위 보도에 대해 막대한 손해배상금을 부과하자는 언론중재법의 취지와 매우 유사하다.

 

그런데 <폭스뉴스> 사례를 보도하며 <조선일보>는 원래처럼 '언론의 자유 침해'라고 비판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 사례를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한 공격거리로 포장한 다음에 준엄하게 "한국처럼 가짜뉴스가 횡행하는 나라는 드물 것"이라는 논평들을 내놓았다. 놀라운 유체이탈 화법이었다.

 

이처럼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는 <조선일보>를 꾸준히 보다 보면 몇 가지 패턴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출신 인사들의 입을 빌려서 함께하던 곳에 침을 뱉고 공격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에 '운동권'이었지만, 지금은 그곳을 욕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은 높은 몸값을 매겨서 모셔간다.

 

최근 몇 년간에도 참여연대 공동집행위원장 출신의 김경율 씨,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 출신인 민경우 씨,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이었던 한지원 씨 등의 사례가 있었다. 요즘에는 주로 주말 특집으로 그런 사람의 인터뷰를 싣고 있는 패턴이 발견된다.

그래서 주말이 다가오면 이번 주말에는 누가 등장할 것인가가 괜시리 궁금해지는데, 최근 <조선일보>의 이러한 주말 '특집'에 얼굴을 내민 것은 이수봉 씨였다. 이수봉 씨는 좀 세월이 지나긴 했지만 민주노총에서 대변인, 정책연구원 원장, 사무부총장까지 했으니 <조선일보>로서는 꽤 만족스러운 기획이었을 것이다.

 

이수봉 씨가 안철수당으로 가더니, 민생당을 거쳐서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해 다른 군소 후보들과 TV토론을 하는 장면을 애잔한 마음으로 지켜본 과거 동료들은 이제 <조선일보>에 등장해 민주노총을 욕하는 이수봉 씨를 보면서 여러 복잡한 감정이 들었을 것이다. 인터뷰 내용은 딱 <조선일보>가 듣고 싶은 이야기들만 고른 것 같았다.

 

"간첩단 사건은 팩트다. 북한의 구체적 지침을 받았다" "지금도 주사파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민주당과 결탁했다. 서로 적당히 눈감아 주면서 이해를 채웠다" "북한의 대남 의식화 사업이 먹힌 것이다" "[총파업은] 북한의 핵무기와 똑같다" "민노총이 괴물이 돼 버렸다" "노동자가 주인이면 기업주는 노예가 된다"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근거한 노동운동" "이대로면 기업도, 나라도 망한다."

 

이런 주장들은 마치 고장난 라디오처럼 뻔한 레퍼토리여서 새롭지는 않았다. 진보좌파 출신이면서 등을 돌려 족벌언론들과 인터뷰에 나서는 사람들이 돌려보는 대본집이 따로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렇게 지겨울 정도로 식상하지만, <조선일보> 등이 이런 기획을 끝없이 우려먹는 것에는 알다시피 이유가 있다.

 

'내부에서 함께 하던 사람들도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이 사회정의와 인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위선적 사기꾼과 간첩들의 모임이라고 말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예컨대 김경율 씨의 인터뷰를 실으면서 <조선일보>는 그가 '젊은 시절 화염병을 던졌고, 참여연대에 있었고, 삼성재벌과 싸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용기 있는 양심적 내부고발'이라고 포장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프레임은 어처구니가 없다. 보통, 막강한 힘과 권력이 있는 집단의 내부에서 박해와 불이익을 무릅쓰고 목소리를 낼 때 '양심적 내부고발'로 볼 수 있다. 예컨대 검찰 내부에서 끝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임은정 검사의 경우다. 반면에 민주노총과 진보단체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윤석열 정부, 족벌언론들, 공안기관의 표적이 돼 있다.

 

이들에 대한 권력의 탄압과 공격을 도와주면서 기회나 자리를 얻는 것은 '양심적 내부고발'과 아무 관련이 없다. 그냥 사회적 강자에 대한 비양심적인 동조, 마녀사냥에 대한 측면지원, 과거 동료들의 등에 칼 꽂기라고 할 수 있다. 힘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진보적 사회운동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꼭 필요한 말들을 대신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국정원, 검찰, 족벌언론 기자가 하는 것보다 진보단체나 민주노총의 간부였던 사람이 하는 것이 훨씬 더 잘 먹힌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민경우 씨다. 민경우 씨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를 "유사(類似) 주사파"라고, '한국진보연대'"주사파가 만든 통일 전선 조직"이라고 낙인찍었고, "주사파 활동가들이 노동운동을 하겠다며 택배 기사로 위장 취업한 뒤 노조 핵심 간부가 됐다"고 민주노총을 '고발'했다.

이것은 '범민련' 간부 출신이라는 그의 전력 때문에 더욱 신빙성을 얻는다. 더구나 <조선일보> 등에게 더 반가운 것은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다. '민주노총과 진보단체들이 사실은 주사파와 간첩들의 소굴이고 내부에서 이런 부조리들이 저질러지고 있다'는 인터뷰를 실은 다음에 문제가 되면, 우리는 저 사람이 한 말을 믿고 실었을 뿐이라고 빠져나가면 된다. '아니면 말고''카더라'를 자연스럽게 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방식이다.

 

궁금해지는 것은 왜 이처럼 시민운동이나 노동운동에서 활동하다가 그 정반대 편으로 넘어가서 옛 동료들을 공격하는 사람이 계속 나타나는가인데, 요즘의 당사자들은 대부분 '조국과 윤미향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들의 비리와 위선을 보면서 충격과 환멸을 느껴서 진보좌파의 내부 문제들을 고발하기 시작했다'는 논리인데 설득력 없는 핑계로 들릴 뿐이다.

 

몇 년이 지나도록 계속 '조국과 윤미향' 타령을 우려먹는 것도 어색하지만, 이들이 문제 삼는 두 사람의 문제점이나 혐의들은 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에서도 상당부분 사실무근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렇게 변신한 사람들은 단지 진보좌파 진영의 이중성과 부족함을 비판하고 지적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들의 정치적 포지션 자체를 보수우파적 입장으로 변화시켰다.

 

이들이 문재인 정부를 "한국 역사상 최악의 정권"(민경우) "포퓰리즘의 끝을 보여준 문재인 정부"(한지원)라고 하면서 주되게 비판하는 이유도 최저임금 인상, 검찰 개혁, 부동산 규제와 과세, 탈원전 정책, 대북 화해 정책 등에 있다. 전형적으로 보수우파들이 문재인 정부를 반대하던 이유들이고, 결국 이들은 진보좌파 진영에서 등을 돌리고, <조선일보>와 인터뷰하고, 윤석열 정권을 지지하는 쪽으로 이동했다.

예컨대 한지원 씨는 '마르크스주의 좌파'를 자처하다가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와 "각론 차이를 접어두고 정권교체를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고 나섰고, 이것을 "포퓰리즘을 막기 위한 제2의 국공합작, 반포퓰리즘 연대"라고 불렀다. 심지어 최근 윤석열 정부의 '69시간 노동제''강제동원 피해자 외면 한일 야합'에도 불구하고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며 변호해주고 있는 상황이다.

 

동시에, 한지원 씨는 "[윤석열]의 자유민주주의가 이재명의 리바이어던보다 한국 사회에서 차라리 낫다는 점 하나는 분명해 보인다"거나,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가 "현실 세계에서 작동 가능한 유일한 질서"라고 주장한다. , '친북 주사파 운동권들과 그 영향을 받는 민주당보다는 차라리 자유민주주의와 한미동맹을 지키려는 보수우파가 낫다'는 논리를 보여준다.

 

이것은 과거 냉전 시대에 미국과 서유럽에서 소련식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여기던 좌파들이 그 환상이 깨지면서 180도 방향을 바꾸어 냉전우파로 변신하며 매카시즘에 동참하고 공화당으로 유입되던 과정과 유사한 점이 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춥고 배고프던 곳에서 따뜻하고 배부른 곳으로 가는 것'이라며 그런 변신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말이다.

 

물론 진보적 사회운동 내부의 어떤 문제점들이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돌아서서 선을 넘게 만들었는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 자존감과 자기 확신이 지나치게 강할수록,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자신의 가치가 기대만큼 인정받지 못할 때 쉽게 등을 돌리는 경향이 있다. 이 과정에서 과도한 비판과 상처받은 자존심과 고립감은 등을 떠미는 효과를 낸다. 아무튼, 다음번에는 또 어떤 사람이 <조선일보>의 지면에 깜짝 등장할 것인지 그만 걱정하고 싶다.

전지윤 편집위원 시민언론 민들레

'박원순 다큐' 감독 "박 전 시장, 일방 주장에 성희롱범 낙인 찍혀"

감독 "박원순 위한 첫 변론"김재련 "끝난 주장 재탕 삼탕하며 피해자 괴롭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을 부정하는 내용이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 <첫 변론>의 감독이 박 전 시장의 성폭력 사실을 직접 부정하고 나섰다. 피해자 측의 호소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둘러싼 2차 가해 논란에 대해서도 전면 부정했다.

 

김대현 다큐멘터리 감독은 11일 오전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그동안 어떻게 보면 (박 전 시장은) 일방적인 주장에 의해서 성희롱범으로 낙인이 찍혀 있었다"라며 본인의 영화 제작 목적이 "(박 전 시장에 대한) 방어권을 행사하는 의미"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 2일 영화 제작위원회(박원순을믿는사람들)가 영화의 예고편을 공개하자 해당 영화가 '박 전시장의 성추행을 부인하고 옹호하는 내용이 아니냐'는 논란이 인 바 있다. 이날 인터뷰는 영화의 제작 목적 자체가 '성추행 부인'이었다는 점을 감독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방어권 없었다", "혐의 대부분 거짓" 김 감독 주장 사실일까?

김 감독은 특히 박 전 시장과 관련해 "(피해자 측이) 지목한 혐의는 12가지였는데, 국가인권위원회가 그중 두 가지 혐의를 인정했다"라며 "그런데 이걸 달리 말하면 이건 김재련 변호사 등이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대부분의 혐의가 인정받지 못했다. 즉 거짓이었다"라는 주장을 펼쳤다. 피해자 측이 주장한 피해사례 중 인권위가 인정하지 않은 부분이 있으니 사례 전체가 거짓이라는 식의 주장이다.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캡처

 

그러나 인권위의 2021'전 서울시장 성희롱 등 직권조사'에서 핵심은 '몇 개의 혐의가 인정되느냐'가 아닌 '박 전 시장의 언동이 성희롱에 해당하는가'였다. 인권위는 당해 1월 발표한 직권조사 결과에서 서울시의 비서운용 관행 박시장 언동 성희롱 해당 여부 성희롱에 대한 서울시의 묵인·방조 여부 피해자 보호조치 미흡 피소사실 유출 등 5가지 사안을 조사의 쟁점으로 밝혔다.

 

조사 당시 인권위가 박시장이 늦은 밤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 이모티콘을 보낸 일 집무실에서 네일아트한 손톱과 손을 만진 일 등 2개 사례만을 '객관적 판단이 가능한 사실'로 인정한 것은 맞다.

 

다만 인권위는 당해 1월 결과발표에서 "성희롱의 인정 여부는 성적 언동의 수위나 빈도가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의 업무관련성 및 성적 언동이 있었는지 여부가 관건"이라며 "이 사건의 경우 위 인정사실만으로도 성희롱으로 판단하기에 충분하다"고 밝혔다.

 

애초에 '피해자의 모든 주장을 객관적 사실이라 판단할 수 있는가'가 주요한 질문이 아니라는 셈이다.

 

박 전 시장은 자신의 성폭력 피소 사실이 알려진 지난 20207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로써 피소 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된 바 있다. 김 감독은 이날 인터뷰에서 조사 당시 이미 사망한 박 전 시장의 '방어권'이 인권위 직권조사에서 "보장받지 못했다"고도 주장했다.

 

본인의 사망으로 조사 과정에서 방어권을 행사하지 못했고, 결국 "일방적인 주장에 의해서 성희롱범으로 낙인이 찍"혀 버렸다는 게 김 감독의 지적이다. 그러나 인권위는 조사 당시 "피조사자의 진술을 청취하기 어렵고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을 고려했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피조사자의 진술 청취가 불가능해 "일반적 성희롱 사건보다 사실관계를 좀 더 엄격하게 인정"한 결과 피해자 진술 이외 입증 증거가 없는 모든 혐의는 사실로 인정되지 않았다. 애초 '열두 개 혐의 중 두 가지 혐의만' 사실로 인정된 것이 그 때문이다. 즉 인권위가 피해자의 직접 진술 등 "일방적인 주장"만을 조사에 활용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고 박원순 전 시장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첫 변론>의 포스터.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

피해자 측 고통 호소 이어지는데 "2차 가해 아니라 토론"?

 

박 전 시장의 사망으로 피해자의 고소 건이 별도의 판단 없이 종결되면서, 당초 박 전 시장의 가해행위에 대한 공적 판단은 인권위 직권조사에서만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직권조사 결과 박 전 시장의 성희롱 행위가 인정되자 박 전 시장의 배우자 강난희 씨가 이에 대한 행정소송을 냈고, 이로 인해 지금은 해당 행위에 대한 법원의 판단 또한 확인할 수 있는 상태다.

 

법원은 지난해 11월 인권위의 판단을 이어 박 전 시장의 행위를 성희롱으로 인정했다. 강 씨가 즉시 항소하면서 현재는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영화를 둘러싼 2차 가해 논란에 대해 김 감독은 이날 해당 2심 재판을 근거로 "법원의 판단이 완결이 된 게 아니"라며 "그래서 여러 얘기를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영화가 일방적으로 박원순 시장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그런 영화가 아니"라며 "한번 영화를 보시고 그런 부분들을 같이 판단하자는 의미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측의 영화 상영 중단 가처분 소송 가능성에 대해서도 그는 "여성계가 기자회견을 하는 것에 대해서 저희가 그걸 말린 적이 있나" 되물으며 "영화 상영 자체를 막는다는 것은 굉장히 저는 비합리적인 그런 행위"라고 말했다.

 

그러나지지자들로 인한 2차 가해가 전부터 만연한 상황에 해당 영화의 개봉은 그 자체로 피해자에게 일종의 쐐기를 박는 행위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피해자 측 소송대리인 김재련 변호사는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물에서 "(박 전 시장의) 무수한 지지자들이 2, 3, 4... 순서를 기다리며 피해자와의 싸움을 준비한다"라며 "이런 광경을 보고 누가 위력 성폭력 피해를 드러낼 수 있겠는가"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이날 김 감독의 인터뷰 직후에도 글을 올리고 "가해자의 지지자들은 인권위에서 조사를 할 당시 이미 주장했던 내용을 재탕, 삼탕하면서 피해자에게 심대한 정신적 고통을 가하고 있다"라며 "(이는) 여성폭력방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전형적, 조직적, 지속적 2차 가해 행위"라고 강조했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제3조는 "수사·재판·보호·진료·언론보도 등 여성폭력 사건처리 및 회복의 전 과정에서 입는 정신적·신체적·경제적 피해"'2차 피해'의 개념으로 규정하고 있다. 동법의 18조는 2차 피해의 예방 및 2차 피해 발생시의 피해 최소화 의무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게 부여한다.

 

이날 같은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한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논란 때문에 생산되는 인터뷰나 각종 콘텐츠의 존재 자체만으로 피해자에게 다시 더 큰 스트레스를 가져다 줄 것"이라며 "이런 2차 가해가 자행될 게 뻔했기 때문에 피해자는 최소한의 법적 판단이라도 받아 둬야 했던 것이고, 그래서 나온 게 지금 (2021) 국가인권위의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박 전 시장 유족 측 대리인 정철승 변호사는 지난해 10월에도 "(인권위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새로운 증거"라며 피해자와 박 전 시장 사이 텔레그램 메시지를 공개해 2차 가해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유족 측은 피해자의 호의 섞인 메시지를 공개하며 박 전 시장의 행위가 성희롱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이후 여성계가 낸 반박 자료에선 해당 메시지들이 이미 인권위 직권조사 과정에서 피해자가 직접 제출한 것임이 밝혀졌다.

 

법원 또한 이후 11월 행정소송 판결에서 해당 메시지를 두고 "망인이 피해자에게 대답이 곤란한 성적인 언동을 하자 이를 회피하고 대화를 종결하기 위한 수동적 표현", "망인에게 밉보이지 않고 망인을 달래기 위하여 피해자가 어쩔 수 없이 한 말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는 등의 판단을 내렸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 등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를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 등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렛안 한예섭 기자

 

북한이 싫어서 목숨걸고 월남?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길 위에서 읽는 한국전쟁4] 백화점까지 있었던 월남 루트 도시 고랑포

38선 쉼터 풍경(2020년 늦여름 촬영) 윤태옥

 

폐허가 흉하게만 보이는 건 아니다. 폐허의 미학이 작동하여 사진기를 꺼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기 고향도 아니지만 뭔지 모를 회고감을 끌어내기도 한다. 소양호 조망이 참 좋은 곳에 있는, 지금은 폐업한 38선쉼터(춘천시 북산면 소양호로 650)도 그렇다. 소양호로는 소양강댐의 북안을 따라 꼬불꼬불 흘러가는 길이다. 예전에는 춘천에서 양구로 가는 외길이었으니 이 휴게소는 장사가 괜찮았을 것이다.

 

그러나 2006년 수인터널이 개통되면서 통행량이 거의 없어졌고 38선쉼터는 폐업을 지나 폐허가 되어 있다. 나의 휴전선 답사여행에 동반했던 화가 윤지원은 이곳 풍광에 자신을 얹은 <38선쉼터>(130cm×89cm)라는 작품을 전시회에 출품했다. 한국전쟁이란 현대사를 밟아보는 자신을 그린 것 같다.

38선 쉼터에서 본 소양호 전망. 윤태옥

 

38선쉼터는 소양호 전망은 아주 좋지만 교통은 좋지 않다. 멀리 둘러싸고 있는 첩첩의 능선과 발 아래의 급경사를 보면 쉽게 짐작이 간다. 한국전쟁 이전 시기는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깊은 산과 강에도 38선은 어김없이 그어졌다. 누군가는 숨 가쁘게 산길을 오르고 숨 고르며 강물을 건넜다. 그걸 월남이나 월북이라 했다.

 

월남이란 말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잊힌 말이 아닐까 싶다. 경로는 달라졌지만 북에서 남으로 당국의 허가없이 자의적으로 이동하는 것으로는 탈북이란 말이 있을 뿐이다. 반대 방향으로 가는 월북은 군사분계선을 넘어간 사람을 둘러싼 뉴스와 논란 때문에 기억이 되는 말이다.

 

남쪽으로 가는 아홉개의 길

아홉 개의 월남 루트 봉주영

 

한국전쟁 이전의 월남 루트는 동서에 걸쳐 아홉 개가 있었다. 해상루트는 동해와 서해에 하나씩 있었고, 철도(해주선, 경의선, 경원선, 동해북부선)를 따라가는 네 개의 루트, 그리고 철도노선 사이로 세 개의 루트가 있었다.

 

서해에서는 황해도 북부와 평안도에서 배를 타고 연안(황해도)이나 인천 또는 한강하구에 하선했다. 동해에서는 원산 등지에서 주문진, 묵호, 포항, 방어진(울산), 부산으로 연결되었다. 철도를 따라 이동하는 루트 가운데 경의선은 북쪽의 금교역과 남쪽의 토성 구간을 걸어서 통과했다. 해주선을 이용할 때에는 학현역까지 와서는 청단까지의 산길 20km를 건너기도 했다. 경원선은 북에서는 복계역(철원역의 북쪽 세 번째 역)까지만 운행했기 때문에 복계역부터 걸어서 포천, 동두천 또는 고랑포구(연천)로 남하했다. 동해북부선의 종착역이었던 양양과 남쪽의 주문진 사이 28km 구간을 걸어서 월남하기도 했다.

 

철도노선이 아닌 루트는, 해주선과 경의선 중간의 산길을 거쳐 연안에 이르는 루트와, 경원선의 서부 산간 지역을 통과하여 이천(강원도), 고랑포, 장단, 개성으로 이어지는 루트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경원선 동부 지역으로 북쪽의 준양(강원도)을 경유해 춘천으로 연결하는 경로가 있었다. 이 루트가 바로 폐허가 된 38선쉼터가 있는 지역으로 북한강 건넌 다음에 다시 소양강을 건너야 했다.

백화점이 있을 정도로 번화했던 1930년대 고랑포. 윤태옥

고랑포 모습(2022년 봄 촬영). 윤태옥

 

월남 루트라고는 하지만 이미 누구나 이동하고 어떤 물자든 운송이 되는 기존의 교통망이었다. 다만 38선에서는 소련군과 북한 내무기관(남한의 경찰에 해당)의 초소를 피하기 위해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의 안내가 필요했다.

 

이로 인해 직업적인 월남 안내인과 짐꾼이 생겨났으니 이들이 월남루트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안내비는 300~500원 정도, 당시 북한의 노동자 월급이 1천원 수준이었으니 상당히 짭짤한 돈벌이였다. 짐꾼의 보수는 더 컸다. 북한에서는 38경비대 38보안대 자위대와 소련군이 월경을 통제했지만 월남 시도는 대부분 성공했다. 강원도 인제군의 경우 한국전쟁 이전에 노동당원 288명이 월남을 시도했는데 체포된 당원은 4명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례가 당시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38선이란 남북의 인위적인 구분선은 1945년 일제가 패망하고 소련과 미국이 합의하여 우리도 모르게 그어졌다. 당장은 눈에 보이는 것도 없었다. 그러나 소련군이 진주하고 그해 8월 하순 38선에서 열차 운행을 차단하면서 행동의 제약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곧이어 미군이 들어왔고 미군과 소련군이 만나 곳곳에 38선 초소를 세우면서 지리적인 구분선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이제 월남과 월북이란 특별한 용어가 사람들의 이동에 크고 작은 제약을 주기 시작했다.

 

미군이든 소련군이든 처음부터 엄격하게 통제하지는 않았다. 중국의 내지나 만주 또는 소련의 연해주 등에서 귀국하거나, 북한 지역에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많았다. 재산을 포기하고 맨몸으로 귀국하는 일본인도 적지 않았다. "모든 월남자는 즉각 ○○ 경찰에게 신고하여야 한다."38선의 남쪽 도로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일본어, 영어, 한글 순으로 쓰여 있었다. 많은 일본인이 귀국하기 위해 월남했음을 보여준다. 1946년 여름의 한 통계에는 47일간 38선을 통과한 사람 가운데 조선인 177명에 일본인 214명이었다.

 

1946년 초에는 미군과 소련군이 '수송력이 허락하는 한도'에서의 왕래를 허용한다는 원칙에 합의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실행 방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점차 봉쇄국면으로 기울어갔다. 19463월 북한에서 토지개혁이 시행되자 북한을 탈출하는 망명이라 할 수 있는 정치적 월남이 급증했다. 334,670, 450,450명이었다. 이것은 한국전쟁 이전의 월별 월남인 숫자로는 1, 3위에 해당한다.

월남 루트 중 하나인 고랑포구에서 본 북녘. 윤태옥

 

월남하려다가 체포되면 군인이나 군속은 소련군에게 인계되고, 그 외에는 구호소에 수용되었다. 북한은 내무기관의 지침으로 월경 행위를 처벌했다. 그러나 정치적 상황이 악화되면서 19465월 미군정은 무허가 월경을 금지했다. 그해 6~8월 콜레라가 전국에 퍼지자 북조선인민위원회는 38선의 육상해상 교통을 차단한다고 발표했다. 질병마저도 38선을 점점 더 얼어붙게 했던 것이다. 1947년에도 월남은 갈수록 어려워졌으나 월남 시도는 계속됐다. 그해 여름에는 북한의 식량난으로 인해, 12월에는 북한 화폐개혁으로 월남인이 일시적으로 급증하기도 했다.

 

19489월 북한이 공화국 수립을 선포한 후에는 아예 형법에 불법월경죄가 명시됐다. 직업적으로 월경을 돕거나, 공무원이 월경을 도운 것도 처벌대상이었다. 남북이 제각각 정부를 수립하자 점령 지역 구분선을 넘어 적대국 국경이 되었다. 월남은 본인은 물론이요 가족의 안위가 걸린 결단이 되고 말았다.

 

남한과 미군은 북한과 소련군의 월경 통제에 비해 관대한 편이었다. 당시의 '삐라'에는 "국군 정방 50m까지 와서 무기를 내려놓고 '이승만 박사' 만세를 외치면 귀순으로 인정해 보호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건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허술했으나 무작정 금지하기보다는 월남인들을 수용하는 태도이다.

 

그렇다고 파란불에 횡단보도 건너듯 월남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남쪽에는 38선을 따라 황해도의 청단, 경기도의 토성, 개성, 동두천, 의정부, 강원도의 주문진과 춘천에 수용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서울에도 수용소가 하나 있었다. 수용소의 위치는 위에 나열한 월남 루트와 조응한다. 월남자들은 일단 수용소에서 개인별 심문을 거쳐야 했다.

 

정치적 월남보다 많았던 경제적 월남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임을 알리는 표지판. 윤태옥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넘어왔을까. 학계의 추정치는 월남 150, 월북 30~35만이다. 19476~7월에 개성 수용소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조사대상 31,859명 가운데 생활난(20,73165.1%)과 귀향(9,40029.5%)이 많았다. 구직과 진학이 각각 82(0.3%), 892(2.8%)이었고 상행위가 252(0.8%), 가장 많을 것 같은 사상적 이유는 502(1.6%)에 지나지 않았다. 정치적 사상적 이유가 있어도 굳이 발설하지 않은 월남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 월남은 조사에서는 소수지만 영향력은 강력했다. 북한에서 인민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민주개혁과 토지개혁으로 친일 그룹과 지주층을 궁지로 내몰았다. 남한으로 와서는 군대 경찰 서북청년단 등 강렬한 반북한 조직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에게는 이미 원한과 복수라는 데칼코마니가 강렬하게 새겨져 있었다.

 

북한의 우익은 남으로, 남한의 좌익은 북으로 이동했다. 서울과 평양의 두 권력은 강력한 구심력과 원심력을 휘둘렀다. 자기편이 강화되면서 동시에 자신의 반대편도 강력해지는 역설적인 과정이 계속됐다. 월남과 월북을 통해서 남한의 우익은 극우로, 북한의 좌익은 극좌로 치달았다.

 

통계로 잡힌 정치적 월남은 상대적으로 소수였고 생활난으로 월남한 빈농층이 가장 큰 비중을 점했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38선을 가장 많이 넘나든 것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 전문 38꾼들, 곧 밀무역 상인과 월경 안내인이었을 것이다.

 

상인들은 월경 안내와 짐꾼을 겸하기도 했다. 하나의 경제공동체였던 조선을 남북으로 분리하자 물자의 수요공급에 큰 문제가 발생했다. 작게는 38선으로 집과 논밭이 갈리기도 하고 시장이 38선 건너편에서 열리기도 했다. 크게는 남한에서는 중공업 화학제품이나 전기가 부족했고 북한에서는 경공업 생필품이 부족했다. 수요와 공급의 차이는 곧 이윤이었고, 이윤이 커질수록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은 늘어갔다.

 

전쟁 전이라지만 처벌 가능성이 상존하는 38선 지역에서도 생업이 활발했다는 게 어색하게 느껴지는가. 일제가 패망하고 38선으로 느닷없이 갈라진 후에도 백성들은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야 했다. 반면 38선을 긋거나 그것에 기댄 상하좌우의 권력은 (미국이든 소련이든, 남한이든 북한이든) 시국을 폭발의 임계점으로 밀어가고 있었다.

 

월남이라는 격렬한 인구이동은 국가로서나 개인으로서나 핏물이 배어나오는 살벌한 현실이었다. 그 서사는 오랫동안 반공 웅변대회의 주된 소재가 되었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부터 젊은 역사학자들이 한국전쟁을 포함한 현대사를 역사학의 연구주제로 삼아 세밀하게 사실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상당한 연구 결과가 쌓여왔으나 대중적으로는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쌓여온 반공을 위한 반공교육 덕분인지 넓고 두꺼운 공포심이 무의식까지 적시고 있다.

 

그런데 남한과 미군은 월남자를 수용하는 입장이었지만 북한은 월북을 반겼을까. 다음 편에서는 대개 이념을 찾아 간 것으로 생각하는 월북자들의 발자국이 남은 곳을 찾아가려고 한다.

 

무심히 강물이 흐르는 고랑포구. 윤태옥

오마이뉴스 윤태옥

 

 

미국이 슈퍼갑인 불평등한미동맹, 필리핀·일본과 큰 차이

] 한미동맹 남북한 거주 한민족 상생과 평화통일에 역행

 

미국의 한국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 한국의 대일 굴욕외교 참사 속에서 강조된 한미동맹의 실체는 무엇인가? 한국 대통령 등이 강조하고 칭송하는 것처럼 한미동맹은 공산주의 침략으로부터 한국을 지키고 오늘날과 같은 번영과 발전의 원동력이 된 것인가? 아니면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극동전략의 추진 과정에서 한국전쟁 참전과 한미동맹 체결이 이뤄진 것인가?

 

한미동맹이라는 하나의 현상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이나 설명은 제 나름대로의 타당성과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역사에 기록된 사실관계에 입각한 객관적 분석을 통해 그 핵심을 살피면 한미동맹은 미국익 추진 과정이었고 오늘날도 현재 진행형이다.

 

한미동맹의 수혜자는 한국인가?

한국의 일보 수구 세력이 미국 구세주라는 식의 칭송을 하는 것은 미국의 한반도 정책 추진 과정에서 파생된 떡고물에 감지덕지 하거나 분단기생에 따른 이익 챙기기에 함몰된 결과라 하겠다. 미국은 한반도 지역이나 그 주민에 대한 사랑’ ‘애정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것은 1905년 일본의 한반도 강탈을 방조한 미국과 일본의 비밀협약 가스라-테프트 밀약이래 1백 여 년간 일관되게 확인되는 현상일 뿐이다.

 

미국은 태평양전쟁 종전 후 일본을 대소 방어진지 구축 차원에서 남한에 점령군을 보내 군정을 실시했고 남한 단독정부 추진을 강행했으며 중국이 공산화되자 남한을 미국의 극동 방어선에서 제외했다. 그에 따라 소련, 중국, 북한의 오판이나 자국 이해관계에 따른 6·25전쟁이 시작되자 미국은 한반도 적화 시 일본 공산화 위험 증대라는 판단에 따라 유엔을 통해 다국적군을 만들어 참전했다.

 

당시 소련이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했을 경우 유엔 깃발을 든 다국적군의 한반도 참전은 어려웠을 것이라는 역사적 가정이 성립하는데 그에 대한 해답은 지금껏 공식적으로 나온 바 없다. 단지 김일성이 남한 적화에 대해 결과적으로 오판을 한 것이라는 비판이 추출되는 부분이다.

 

미국은 1953년 정전협정 직후 미군이 한국에 주군 특권이 보장되고 미국의 자체 판단에 의해 북한 선제공격이 가능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이승만과 체결해 발효시켰다. 미국은 이 조약을 통해 평화협정 추진을 제도적으로 저지하면서 정전상태를 지속하기 위해 핵무기를 남한에 다수 배치해 소련, 중국, 북한을 압박했다. 미국이 한미동맹을 추진한 것은 북한을 빌미로 핵을 보유한 소련과 신흥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견제가 목적이었고 이를 위해 정전체제를 평화협정으로 전환치 않는 정책을 강행한 것이다.

1953727일 정전협정 조인식장의 모습. 왼쪽은 유엔군 총사령관을 대신해 윌리엄 해리슨 미군 중장이고, 오른쪽은 북한·중국군을 대표해 남일 북한 대장이다. 사진=위키피디아

 

오늘날 한미 두 정부가 침이 마르게 칭송하는 한미동맹은 핵심 체제는 주한미군사령관이 유엔군 사령관, 한미연합사령관 등 3개 직함을 가지고 한국에서 막강한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상징된다. 미군장성이 3개 역할을 하는 것인데 이는 한반도에서 정전체제가 파괴되어 현상 변경 사태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하는 미국의 치밀한 사전 포석이라 할 수 있다.

 

주한미군 사령관

미국 대통령의 지휘통솔을 받고 있는 주한미군 사령관 휘하의 주한미군은 한국 주둔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권리로 보장되어 있어 미국의 모든 군사력이 미국 맘먹은 대로 남한을 들락거릴 수가 있다. 이뿐 아니다. 미국은 그 권리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군부대의 환경오염문제에 전혀 책임을 지지 않게 S0FA로 보장받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오염논란 속에 어린이 공원으로 개장된 용산미군기지 반환부지에 대해 한국 정부는 미군이 유발한 오염문제에 대한 책임, 원상회복 요구를 하지 않은 채 오염범벅인 땅위에 흙을 덮고 안전하다고 외치고 있다.

 

이는 한국 미래 세대의 안위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미국, 군사주권이 미국에 있다는 현실을 국민에게 밝히지 않은 채 주권국가 흉내를 내려는 한국 정부의 정책으로 빚어진 비극이라 하겠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포함한 해외 파병의 원칙을 평화와 안전보다 미 국익을 최우선하는 것으로 정해놓고 필요하면 언제든 철수를 결정할 수 있는데도 한국 정부 일각에서는 미국이 주한미군을 통해 한국을 모든 수단을 다 해 보호해줄 것처럼 오해하기 쉬운 언행을 늘어놓고 있다.

 

주한미군의 권리는 한국이 주한미군의 주둔비를 부담하는 하는 협정으로 확대되어 2021년의 경우 그 액수가 11833억 원에 달한다. 트럼프는 몇 년 전 한국의 미군 주둔비를 5배 인상하라고 요구하면서 주한미군철수를 검토했었다.

 

한국 정부가 국민의 혈세로 주한미군 주둔비 일부를 대주거나 세계 최대 미군기지인 평택기지 건설비용을 부담했지만 미국은 그 주둔비 사용처를 한국 정부에 밝히지 않고 있다. 그뿐 아니라 미군은 주한미군이 쓰고 남은 주둔비 불용액이 2조 억 원이 넘지만 그 조차 한국에 돌려주지 않고 있다. 미국이 권리를 행사하는 법리해석에 따라 이뤄지는 현상이다.

 

하지만 한미 두 정부가 불평등한 동맹에 대해 침묵하면서 한국민은 그 실상에 대한 정보를 파악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딱한 것은 한국의 이른바 진보정당, 진보언론, 진보 지식인들이 한미관계의 실상을 외면한 채 주변부 사실만을 부각시키는 짓을 하고 있고 미국은 이를 즐기고 있는 형국이다.

 

유엔군 사령관

평택 미군기지안에 본부를 두고 있는 유엔사는 미국 정부의 지휘를 받고 있는, 유엔기를 사용하고 있는 군사조직이다. 유엔사는 일본에 유엔사 후방기지 7곳을 운영하면서 향후 제26.25와 같은 사태 발생 시 다국적군을 조직해 한반도에 파병할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은 유엔사 후방기지에 독일, 영국군함을 기항시키면서 공해상에서 북한 선박을 검색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와 함께 유엔사는 한국정부가 육상을 통한 대북 교류협력사업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력을 행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미연합사령관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권을 장악하고 있는 미군사령관은 대북 정찰과 같은 핵심적 군 기능을 미군이 담당하고 한국군은 그에 의존토록 만드는 방식 등으로 한국군을 통제하고 있다. 한국군이 세계 6위라 하지만 핵심적인 전력을 미군에 의존하거나 미국 무기를 한국이 다량 구입케 만들고 있고 북한 핵에 대해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식의 상황을 지속시켜 주한미군의 권리속 주둔을 보장받는 요건을 유지, 강화하고 있다.

 

주한미군 또는 한미연합사령관이 한국군의 평시 및 전시작전권을 장악하고 있을 때는 이승만의 북진통일 주장을 억제하거나 박정희, 전두환의 쿠데타를 통한 정치개입에 대해서도 미국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만들었다.

 

주한미군이 누리는 특권 세계 유일-군사식민지 오명 자초?

이상에서 주한미군 사령관의 막강한 군권을 살펴보았는데 21세기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런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주한미군은 권리를 행사하면서 환경오염이나 주둔비 분담 등에서도 외교관의 치외 법권적 특혜를 훨씬 뛰어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이는 국제법 취지에 따른 법치라 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한미 두 나라 정부나 관리 등이 그런 점에는 함구한다는 점이다. 이는 떳떳치 못하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기만책을 쓰고 있다는 비판을 자초한다. 현재의 한미동맹은 대등한 주권국가의 관계가 아닌 것이다. 외국군이 영구 주둔 체제로 특권을 행사하는 것은 군사주권 문제를 넘어 군사 식민지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필리핀과 미국의 군사협력 관계는 미군이 한시적으로 필리핀 군부대 내에서 주둔하면서 필리핀 국내법의 적용을 받게 되어 있다. 한국의 일부 세력들이 한미동맹을 통해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시혜를 받은 것인 양 찬양하는 소리가 높지만 미국은 미 국익을 우선한 한미동맹을 추진했을 뿐이다. 과공은 비례라는 말처럼 더도 말고 덜도 말게 역사를 평가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미국 정부의 법치는 국익 최우선이다. 한국 대통령실 도감청이나 용산 미군기지 오염문제에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미국식 법치다. 미국내법이 동맹국 도감청을 불법으로 규정치 않고 있고 용산기지에서 미군의 권리행사 과정에서 발생한 오염에 책임지는 것은 미국의 법치에 반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의 도감청이 문제없다 하고 유해물질 오염으로 죽음의 땅이 된 용산 미군기지에 공원을 만든 것은 그 의미가 심각하다. 특히 용산공원에서 내일의 한민족 주인공들이 병들고 허약해질 우려에 대해 윤 대통령은 미국은 안심하시라. 제가 알아서 합니다라는 식의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를 미국의 법치는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또한 윤 대통령이 굴욕외교를 감수하거나 세계가 우려하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처리 문제에 면죄부를 주려 하면서 한일군사관계 증진에 앞장서는 것은 미국의 한미일 군사 협력 체제를 통한 신냉전 추진 전략에 동참하려는 몸부림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날선 발언을 지속하자 세계가 미국의 아바타 아니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한미일 군사협력 체제에 열을 올리는 것은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한 대응책으로 보인다. 이는 이념은 민족에 비해 유한한 것이고 북한 지역에는 일천만 이산가족의 이웃사촌이 있고 언젠가 남북이 재통합을 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특히 다른 나라가 볼 때 같은 한민족의 반쪽에 대한 대응책으로 주변국가에 저토록 열중하는 이유는 무언가라는 식의 비아냥이 나올 것 같아 낯이 붉어진다. 같은 민족인데 이념이 다르다 해서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외국과 무분별한 군사관계 증진을 서두르는 것을 100~200년 후의 미래 세대가 어떻게 판단할지를 깊이 헤아려 볼 일이다.

 

미국 정부가 중국과의 패권경쟁을 이유로 신냉전을 부추기는 것은 평화로운 지구촌이라는 비전에 역행하는 측면이 강하다. 일본 정부도 태평양전쟁 범죄 부인은 물론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교육시키고 있는데 이는 미래의 한일간 전쟁을 예비하는 화근이 될 수 있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426(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성과와 관련해 미국의 핵우산 보장 강화는 한미동맹의 격상이라는 표현이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반도체와 배터리에서 취하고 있는 자국 우선주의를 주시할 경우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어떻게 변할지 속단키 어렵다. 예를 들어 미국이 필요하다고 자체 판단할 경우 자체 국내법체계에 따라 한국 정부와 사전 협의 없이 북한을 선제타격 할 수도 있고 남한이 핵공격을 받았을 때 미 본토의 피해를 계산해 핵 반격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미국이 대북 핵전략으로 내놓은 북한 핵 사용 시 정권 궤멸이라는 표현에는 한반도 전면전쟁과 남한의 천문학적 인명 피해 가능성이 함축되어 있다는 점도 살펴야 할 일이다. 미국은 자국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동맹국에 대해서도 도감청을 하거나 적대국 요인 암살도 서슴치 않는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박정희, 김대중, 문재인 정부가 대북 교류협력을 시도한 큰 이유의 하나는 전쟁 억제라는 목표가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 항목이었기 때문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평화협정 저지용으로 만들어져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전쟁직후인 1953101일 워싱턴에서 맺어진 뒤 1년 후 발효되었으며 전문과 6개의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조약은 이승만이, 미군이 한국의 국방을 담당해야 한국이 살아남을 수 있다며 미국에게 강권했고 미국은 주한미군이 동북아에서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챙길 것으로 보아 이승만의 요구에 응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정전협정 체결 직후 북한과 그 동맹군을 가상 적으로 하여 체결된 조약이다. 또한 그것은 이승만 정권이 휴전회담에 반대하며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해 북진통일과 독재정권 유지를 이뤄보고자 미국에 간청하여 체결한 조약이다. 그 결과 현행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정전협정에 위배되고 '방어적 조약'이라는 이름에도 걸맞지 않게 북한에 대해서 지극히 대결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조약에 따르면 미국은 자국 군대를 일방적으로 한국 어느 곳에나 배치하고 또 전력을 배치하도록 되어 있으며(조약 4),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해 일방적으로 판단하도록 되어 있다(2). 이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고 단지 어느 당사국이든지 타당사국에 통고한 후 1년 후에 본 조약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이 조약은 폐기되지 않는 한 미국이 우월한 위치에서 미군의 무기한 주둔이 가능하다. 이 조약을 바탕으로 주한미군사령관은 한미연합사령관, 유엔군사령관의 모자를 쓰고 있어 한국의 영토 내와 그 주변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할 경우 미국은 국제연합의 토의와 결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개입할 수 있으며 사후에 보고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

 

한미동맹의 핵 한미상호방위조약 그 문제점

한미상호방위조약은 1953년 한국전쟁 이후 이승만 대통령의 북진통일론과 연계되고 미국의 아시아 패권주의 강화 전략 목적으로 체결되어 교류협력 활성화 등 남북관계의 변화, 80년대 이래 남북한 재래식 군사력의 역전현상, 미국의 일방주의 강화 추세 등으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다. 미국의 군사력 배치가 권리로 규정되어 있어 군사력 외부 도입을 규정한 정전협정이 위배되고 90년대 남북기본합의서와도 배치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국의 대북군사전략을 다각도로 추진할 수 있는 기초적 여건을 제공하는 요건중의 하나라는 측면도 살펴야 한다. 이 조약에 의해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전략, 한반도 전면전을 대비한 다양한 군사전략을 만들어놓고 정기적인 한미합동군사훈련을 통해 그것을 과시하고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고 있다. 미국은 유엔사와 전시작전통제권을 통해서도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1953101일 워싱턴 D.C.에서 대한민국의 외무부장관 변영태와 미국의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위키미디어

 

미국이 한반도 뿐 아니라 동북아에서 심대한 군사적 이익을 챙길 수 있게 만들어진 이 조약은 모두 6개 조항으로, 이 가운데 자동 군사개입 여부 대상 지역 주한미군 주둔 근거 유효 기간 적용 범위 등 미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이 포함돼 있으며 아래와 같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1, 3조는 한미 두 나라가 태평양지역의 평화를 위해 집단안보를 추구하게 되어 있는데 외국의 경우처럼 자국영토와 가까운 지역에 국한해야지 자칫 한국이 동북아지역 분쟁에 주한미군의 발진기지가 될 우려가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는 한반도에 무력충돌이 발생하고 한미 등이 개입할 경우 그 이후 국제연합에 보고할 의무 등이 없다. 이는 미국이 일본과 필리핀과 맺은 상호안보조약의 경우 무력충돌이 발생할 경우 군사적 개입은 국제연합의 토의와 결정을 거치게 되어 있는 것과 차이가 있어 개정이 되어야 한다. 미국이 이라크, 리비아의 경우처럼 침략 성격의 군사행동을 하는 경우도 상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약 2조는 위협에 대한 판단을 미국 일방적으로 할 수 있고 또 단독으로 무력공격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즉 군사력 증강)을 지속, 강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 이는 4조가 주한미군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병력과 무기를 반입, 배치, 증강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것과 함께 주목되는 부분이다. 즉 미국은 한국의 의사와 무관하게 얼마든지 자신의 정치적, 군사적 판단과 요구에 따라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거나 군사행동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최근 미국이 한반도를 전쟁위기로 몰아가면서 주한미군의 대규모적인 전력증강을 우리 정부와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하는 것이나 주한미군을 대북한 선제공격에 적합한 구조로 재편하고 그 재배치를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바로 이 같은 독소조항을 악용한 것이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 위협을 확실하게 막고 또 미국의 일방적인 군사적 개입과 행동을 제어할 수 있는, 즉 방위 목적에 엄격히 한정되고 주한미군에 대한 우리 주권의 통제가 가능한 신조약으로의 대체가 이뤄져야 한다. 대북 선제공격과 북한 점령을 내용으로 하는 '작전계획 5027'이나 전쟁 시 증원되는 미군에 대한 거의 무제한적인 지원을 규정한 전시지원협정도 모두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그 법적 근거를 두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에 의해 미군이 군사력을 한국에 배치하는 것이 권리(right)로 규정되어 미국이 통보하면 한국은 허용할 수 밖에 없다. 미국이 원하는 미군 군사력을 한국에 배치하는 결과를 초래해 주권국의 군사적 자주권 문제, 국토의 효율적 이용 문제를 초래하고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 초래 등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위태롭게 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편 미국과 필리핀의 상호방위조약은 필리핀 군 기지 내에 미군기지가 들어설 수 있게 국한하는 등 그 조건을 필리핀이 주도권을 갖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일본의 경우도 미군의 일본 영토내 배치가 한국과 같은 미국의 권리(right)로 규정되어 있지는 않다. 한국도 미국의 필리핀과 일본상호방위조약처럼 합리적으로 미군사력 배치나 그에 대한 기지 제공 규정 등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의 부속협정 성격인 한미주둔군협정인 SOFA도 그 모법의 불평등 취지에 맞춰 한국에 심각하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고 있다.

 

SOFA에는 군사훈련에 관하여 아무런 규정도 두고 있지 않아, 여중생 사건에서 본 것처럼 아무런 사전통보나 안전조치도 없이 행해지는 미군의 군사훈련으로 인해 공공의 안전과 지역주민의 생명과 재산에 상당한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빈발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기동연습 및 기타 훈련에 의한 토지의 손상을 방지하고 공공안전 및 공공위생에 대한 위해를 막기 위해, 기동연습 계획을 독일당국에 통고 협의하며 일정한 경우 토지사용을 중단하도록 하는 일련의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현행 SOFA상으로는 연합토지관리계획(LPP)협정에 따라 앞으로 반환될 기지가 미군에 의한 환경오염 사실이 드러나더라도 미국 측에 원상복구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가 없다. SOFA는 상위법이 위임한 범위 내에서만 존재의미가 있다는 법리적 측면에서 SOFA에 담긴 미군 관련 한미간 제반협정 등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원활한 이행을 위한 취지의 틀 안에서 만들어졌을 뿐이다. 이런 불리한 조항으로 인해 주한미군기지 오염문제 등에 대한 합당하고 상식적인 원상회복 조치 등이 미군에 의해 이행되지 않고 있다.

 

SOFA의 예외 규정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도 미국의 요구가 일방적이고 한국의 과도한 부담이 당연시 되고 있어 논란이 심화되고 있다. SOFASMA가 지닌 문제점은 그 상위법 성격인 한미상호방위조약 조약 4조에 규정된 미국의 권리(right)가 원인인 것으로 지적되면서 이 조약의 정상화 없이 SOFASMA의 문제점이 시정되지 않을 것이란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6조는 이 조약이 무기한 유효하다고 되어있지만 미국과 필리핀, 일본의 상호방위조약의 경우 그 기한이 10년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기한 만료를 기해 재협상 등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만들어진 1953년의 특수상황이나 오늘날에도 한국이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가진 북한과 대치하고 있다 해도 한국은 경제력이 세계 10 위권이고 세계에서 무기 수입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 조약의 개폐가 필요하다.

 

필리핀, 일본의 경우 미국과 상호방위조약 이행 등에 대해 수시로 협의할 수 있게 되어있으나 한미상호방위조약에는 그런 조항이 없는 것이 문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국이 일본, 필리핀과 맺은 상호방위조약에 비해 미국이 지나칠 정도의 특권을 한국에서 누리고 있다는 점은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표출되는 군사적 주권이 미약한 것에 대한 국제적 수치와 미국의 주한미군기지 오염 문제 등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 미군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과도한 경제적 지원과 비용 감수 등이 큰 문제다. 이 조약은 주권국가 한국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가()조인식을 지켜보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뒷줄 가운데)과 가조인식에 서명하는 변영태 한국 외무부 장관(왼쪽), 존 포스터 덜레스 미국 국무부 장관(오른쪽). 사진=나무위키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의 파생법 SOFASMA

 

한미상호방위조약 가운데 미국에 일방적인 특혜를 부여하는 조항인 4조가 특히 문제로 자세히 살피면 아래와 같다. 이 조항은 "상호합의에 의하여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 ; The Republic of Korea grants,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ccepts, the right to dispose United States land, air and sea forces in and about the territory of the Republic of Korea as determined by mutual agreement.“로 되어 있다. 이 조항 가운데 권리(right)는 법률적으로 어떤 일을 행하거나 타인에 대하여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힘이나 자격을 말하고 grantaccept는 무상으로 주고받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군사력을 한국에 배치할 때 갑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자격이 이 조항에서 보장되고 있는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에서 파생된 하위법체계인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소파),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은 미국의 우월한 지위를 인정하는 형식으로 주한미군에 대한 시설, 구역, 경비를 한국이 부담하게 만들고 있다. 4조의 첫 부분 상호합의에 의하여SOFA에 의한 합의를 가리킨다. 소파의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과 아메리카 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이다.

 

방위비분담협정은 SOFA 5(주한미군에 대한 시설과 구역은 한국이 제공하고 주둔 경비는 미국이 부담하는 내용)의 적용과 관련한 예외적 특별 조치를 담았다. SOFA가 주한미군의 주둔 경비를 미국이 부담하게 만들어졌는데도 SOFA 5조의 예외적 협정인 SMA를 별도로 만든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주한미군에 부여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정부가 정치, 경제, 사회적 편리를 제공한다. 당연히 미국은 한국에서 슈퍼 갑에 걸 맞는 권리를 행사하기 때문에 주한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환경오염 등에 대한 합당한 의무조차 지지 않는 것이다.

 

논란이 된 사드의 한국 배치도 사실 미국이 이 조약 4조에 따른 권리를 행사하는 과정이었고 한국은 허여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한미 간에 사드배치를 놓고 줄다리기를 했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옹 하는 식의 기만적 언사에 불과하다. 남한이 SOFA에 규정된 환경영향평가를 내세웠으나 이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권리가 잘 집행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한다는 제한적인 취지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한미동맹의 실상을 알고 있을 법 한데도 사드에 대해 미국이 아닌 한국에 보복조치를 취했던 것은 강대국들의 횡포가 어떤 형태인지를 드러내주고 있다.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50년대 말부터 전술핵무기를 남한에 배치하는 등 맘먹은 무기는 다 남한에 들여왔다 빼가는 일을 되풀이 하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군이 2017년 상반기 최근 군산비행장에 배치한 무인폭격기 등이 그런 예다. 이 조약이 유지되는 한 제2, 3의 사드 배치 사태는 불가피하다. 또한 미군기지 오염에 대해서도 한국이 미국에 그 원상회복 등을 요구할 근거를 갖지 못한다.

 

SOFA는 한국이 시설과 부지를 무상으로 미국에 제공하고 미국은 주한미군 유지에 따르는 모든 경비를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한미는 1991년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만들어 미국이 부담해야 할 주한미군 유지비용의 일부를 한국이 부담토록 해왔다. 방위비 분담금은 주한미군 주둔 비용 중 한국이 분담하는 몫을 말한다. 주한미군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 각종 미군기지 내 건설비용, 군수 지원비 등의 명목으로 쓰인다.

 

SMA 6, 7조는 한미가 문제를 협의하면서 서면합의로 개정, 수정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어 미국에 매우 유리하게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도 거의 매년 증액하는 형식으로 천문학적인 액수로 한국이 부담하고 있다.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이 주한미군 방위비를 5배 더 부담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바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한 SMA를 언급한 것으로 추정되어 이런 특혜의 원천이 되고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현재와 같이 방치해서는 안 된다. SOFA, SMA 외에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LPP), 공동환경평가절차(JEAP) 등이 불평등하다는 비판을 받는 원인도 이 조약 4조 때문으로 추정된다.

 

한국과 미국은 1966년 환경 관련 규정이 전무한 SOFA을 맺은 뒤 지금껏 명확한 환경오염 정화 기준을 마련하지 못했고 미군은 단 한 차례도 기지 안 오염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치유에 나선 적이 없다(수원시민신문 2017717). SOFA의 양해각서인 환경조항에는 '주한미군은 대한민국 정부의 환경법령 및 기준을 존중한다'고만 돼 있어 주한미군에 오염 문제 해결을 강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JTBC 2017711).

 

미군 부대에서 발생한 하나의 사례를 살펴보면 한미간의 불평등한 현실이 그대로 들어난다. 서울지하철 녹사평역 주변 오염이 근처의 용산 미군기지에서 유출됐다며 법원이 200718억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을 때 그 배상금 18억여 원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특별법에 따라 미국이 아닌 한국 정부가 서울시에 지급했다(JTBC 2014118). 국민의 혈세가 미군기지 오염 제거 등에 지출된 것이다.

 

또한 한미 두 나라가 2009년 합의한 공동환경평가절차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반환 미군기지 환경조사 기간을 20~150일로 한정하고 미군 합의 없이 관련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 이 절차 때문에서 한국 정부는 일부 미군 기지에서 확인된 환경 문제에 대해 미군이 합의해 주지 않아 공개하지 못했다. 이는 주권 국가인 한국이 미군기지로 사용된 부지의 환경오염, 그 원상회복 문제에 대해 합당한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국민들에게 심각한 불명예와 피해를 감수케 하고 있다.

 

용산미군기지 부지 75%113년 만에 2017년 서울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게 됐지만 이 기지의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 외교부는 201912월 서울 용산 미군기지 일부를 포함해 반환받는 12개 주한미군 기지의 환경오염 책임 문제를 두고 미국이 오염 정화 의무가 없다는 주장을 고수하자, 환경 치유 비용 협의가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을 경우 미국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한미가 기지 12곳 반환에 합의했다고 밝히며, 환경 치유 비용을 먼저 보전한 뒤 미국 측에 책임을 지우겠다고 했다(한국일보 20201218).

 

미국이 서울지하철 녹사평역 주변 오염 비용을 거부했던 사례에 비춰 주한미군이 부지로 사용한 뒤 발생한 용산 기지 등의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을 경우 정화비용을 고스란히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할 가능성이 크다. 오염 상태에 대한 정확한 점검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약 1조원 전후가 들어갈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면 미군이 새로 옮겨가는, 단일미군기지로는 세계 최대라는 평택미군기지의 환경오염문제는 어떻게 되는가? 현재의 한미동맹 관계가 개선되지 않으면 용산 미군기지의 경우와 동일할 것으로 추정된다.

20076월 세계 최대 규모 미군기지로 손꼽히는 평택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에 완공된 워터파크의 모습. SOFA 규정에 의해 한국은 주한미군에 기지와 시설을 제공해야 한다. 이는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의 권리규정에 따른 것이어서 주한미군은 그 기지 사용 시 발생하는 환경 오염 등에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용산 미군기지 오염 문제 등 때문에 SOFA를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SOFA의 상위법인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가 존재하는 한 그 실현은 어렵다. 트럼프가 주한미군 주둔 비를 5배 인상한다고 했을 때 그 근거는 역시 이 4조의 권리규정에 의한 유권해석의 결과로 추정되고 있다. 주한미군에 대한 특권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존재하는 한 유지될 것이기 때문 이런 불합리를 합리화 하는 방법은 이 조약 6조를 발동하는 수 밖에 없다. 사진=위키미디어

 

한편 외교부가 2021년 제11SMA의 협상 결과를 밝혀 논란이 일었다. 그에 따르면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비, 즉 방위비분담금으로 2021104500만달러(11833억원, 13.9%인상)를 주고, 앞으로 국방예산 인상률을 자동 적용해 5년 뒤에는 무려 50%를 올려주기로 해 향후 6년 동안 70억 달러(79000억원)를 부담하게 된다는 것이다. 방위비분담금 중 미국이 쓰지 않고 남긴 돈은 2020년 현재 2조원이고, 그 중 9700억원은 현금으로 미국 은행에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은 방위비분담금 말고도 미국에 막대한 비용의 주한미군 경비를 지원하고 있다(통일뉴스 2021311).

 

6·15남측위원회는 SOFA에 따라 주둔비를 미측이 전액 부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을 맺고 있는 것이 문제라면서 오늘날 주한미군의 활동 범위는 대중국 압박으로 날로 확대되고 있으며, 사드 배치를 비롯한 주한미군의 대중국 압박정책에 따른 중국의 반발이 고스란히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대북적대, 대중압박의 발진기지로 한반도를 사용하겠다는 미국의 정책에 왜 우리가 호응하여 국민의 혈세를 바쳐야 하는가라고 질타했다.

 

한미군사동맹이 얼마나 불평등한 것인가 하는 점은 필리핀과 미국의 군사동맹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필리핀은 1898~1946년까지 미국의 식민 지배를 받다가 독립했다. 필리핀은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1951년 체결해 외부의 침략을 받을 경우 서로의 영토를 지키는데 합의했다. 이 조약에 따라 미국은 필리핀 내 몇 곳에 미군 기지를 유지했는데 필리핀 의회가 1992년 클라크 미군기지 유지 연장을 불허하는 결정을 하면서 미군이 철수했다.

 

당시 필리핀 의회는 미군기지 유지 시한을 정하고 핵무기 반입의 불가를 요구했지만 미국은 이를 거절했다. 그러다가 두 나라는 1998년에 방문 군 협정(VFA)에 합의해 상호 동등한 입장에서 자국 군대의 상대국 방문 규정 등을 성문화했다.

 

필리핀과 미국의 군사동맹, 한미동맹과는 하늘과 땅 차이

필리핀과 미국 두 나라는 그 후 VFA에 의해 연례 군사훈련을 해왔다. 그러나 작전의 범위가 동남아 주변까지 확대되면서 필리핀에서 미국의 계속 주둔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아졌다. 그러다가 태풍 발생 등에 대한 재난 구호와 위기 대응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필리핀과 미국은 2014년 방위협력강화협정(ECDA)을 체결했다.

 

ECDA에 따라 미국은 필리핀에 영구적인 군 주재나 군사기지를 만들 수 없고 핵무기의 필리핀 진입은 금지된다. 미군은 이 협정에 따라 필리핀 정부의 초청을 받고 필리핀군에 의해 소유, 통제되는 지역과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미군이 필리핀 기지에 건설한 군시설은 미군 철수시 필리핀 정부에 귀속된다.

 

이 협정은 두 나라가 태평양지역에서 외부로부터 무력 공격을 받을 경우 두 나라 외무장관이 이 조약의 적용문제 등을 협의한다. 무력을 동원한 공격 등이 두 나라에 의해 취해졌을 경우 이를 유엔 안보리에 즉각 보고한다. 이 협정은 10년이 시한이며 어느 한 쪽이 종료의 의사를 통보한 뒤 1년이 지난 뒤 폐기될 때까지 유효하다.

 

필리핀은 20192월 미국에 일방적으로 VFA 종료를 통보해 180일간의 경과 기간이 끝나는 8월에 이 협정이 공식 종료될 예정이었으나, 20206월 종료 절차를 6개월간 중단한다고 통보한 뒤 최근 또다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초기인 2021년 상반기까지 유지할 방침을 밝혔다(연합뉴스20201111).

 

필리핀의 VFA 종료 통보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강력하게 추진하는 '마약과의 전쟁'을 지휘한 전 경찰청장의 미국 비자가 취소된 것에 대한 반발에서 이뤄졌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위협이 커지고 있어 바이든 대통령 정부 출범 뒤 두 나라는 관계 개선을 모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협정 내용은

https://en.wikipedia.org/wiki/Enhanced_Defense_Cooperation_Agreement 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국가 간 조약이나 협정은 필요할 경우 필리핀과 같은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는 점을 한국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이나 시민 통일 운동권 등이 불평등한 한미동맹에 대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또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인양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거나 핵심을 비껴간 주변부를 건드리는 식으로 자기 할 일 다 했다는 자기만족에 빠지는 경우는 이제 그만 해야 한다.

 

미일상호안보조약, 조약 내용 수시 협의, 유효기간 10

미일상호안보조약은 1960년 체결되었고 양측은 이 조약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각국의 헌법적 허용 범위 안에서 상호 협의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 양측은 일본의 안보나 동북아에서의 평화와 안정이 위협받을 경우 이 조약의 적용에 대해 수시로 협의한다. 이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없는 내용이다.

 

미국은 이 조약에 따라 일본에 있는 육해공군 시설이나 지역을 활용할 수 있도록 양허를 받는다(미일상호안보조약 6-For the purpose of contributing to the security of Japan and the maintenance of international peace and security in the Far East,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is granted the use by its land, air and naval forces of facilities and areas in Japan.).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관련 조항은 미국이 권리를 수용하고 한국이 양허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조약은 유엔헌장이나 유엔의 평화와 안전 유지에 대한 책임에 따른 각 국가의 권리와 의무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다. 이 조약의 유효기간은 10년으로 어느 한 쪽이 이 조약의 폐기를 통보할 경우 1년 후에 폐기된다. 이 조약은 https://en.wikisource.org/wiki/Treaty_of_Mutual_Cooperation_and_Security_between_Japan_and_the_United_States_of_America에서 참조할 수 있다.

고승우 민언련 고문·언론사회학 박사 / 프레시안

 

윤석열 1, 안에서는 누르고 밖에서는 저질렀다

외교 안보가 취임 1년 최대 치적?

윤석열 대통령은 그동안 대부분의 대통령들이 해왔던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이나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지난 9일 국무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일방적으로 취임 1주년에 대한 소회를 밝혔는데요, 38백자 가운데 34백 자를 외교 안보 분야의 성과를 설명하는 데 할애했습니다. "1년 전 이맘때를 생각하면 외교 안보만큼 큰 변화가 이루어진 분야도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역시"윤석열 정부의 최대 치적은 한미동맹의 복원과 한일외교의 정상화"라고 논평했죠. 정부와 여당이 지난 1년 동안 한 일 중에 외교 안보 분야의 성과를 가장 내세울만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실제로도 윤석열 정부의 외교 안보 정책은 지난 수십년 동안 이어져 온 기조를 급격히 변화시켰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과연 국제 무대에서 한국의 입지를 강화하고 그 결과 시민들의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있는가' 일텐데 많은 전문가들은 그 반대일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한미일 동맹에 '풀 배팅'한 윤 정부, 그 대가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임박해있습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은 서로 충돌합니다. 미중 두 나라의 거시 전략이 겹치는 한 가운데 한국이 있습니다. 미국과는 전통적 안보 동맹을, 중국과는 경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은 입장을 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지난 정부까지는 '균형 외교'의 입장을 선택해왔습니다.

반면 윤석열 정부의 외교 안보는 급격하게 한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이를 '한미 관계 격상'이라고 표현하며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의 대가는 없을까요?

 

우선 미국과의 관계를 우선시 하는 과정에서 '한미일 동맹'이 따라왔습니다. 이를 위해 한국은 한일 간의 첨예한 쟁점이었던 강제 징용 문제에 '백기 투항'해야 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에는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스스로 앞장서서 마치 냉전 시대와 같은 구도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은 냉전 시대의 소련과 전혀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걱정입니다.

 

중국은 지금 산업 제조 능력이라든지, 글로벌 공급망이나 이런 게 사실상 세계 1위예요. 그 당시(냉전 체제의)의 소련과는 중국은 완전히 다르다는 거죠. 세계 제일의 공급망, 제조업을 가진 국가가 러시아와 이란으로부터, 사우디로부터 계속 안정적인 자원을 확보하고 브릭스라든지 유라시아 국가들로 시장을 확대시켜 나간다고 했을 때 한국이 냉전적 접근을 해서 미국 편에 서서 이 게임을 벌인다고 했을 때 과연 얼마큼 승산이 있는지정재흥/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여기에 북한이라는 변수까지 고려하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집니다. 한미일 동맹에 맞서 북중러 동맹이 공고해졌을 때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은 바로 한국이기 때문입니다.

 

자유 민주주의 강조하면서 언론 자유는?

윤석열 대통령이 외교 무대에서 가장 즐겨 사용하는 단어는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이에 기반한 가치 동맹입니다.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미국 상하원 합동 의회 연설에서도 자유의 가치를 수차례 강조했었죠.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좋아하는 자유와 민주주의에서 가장 핵심적인 가치는 미국 수정헌법 1조에 등장하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지난 1년 윤석열 정부가 언론에 대해 보여온 태도를 보면 과연 윤석열 대통령이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 약속했던 소통하는 대통령은 온데 간데 없고 질문 받기 싫어하는 대통령, 일방적 홍보만을 앞세우는 대통령, 맘에 들지 않는 언론을 콕 찍어 따돌리고 탄압하는 대통령만 남았습니다.

 

한상혁 방통위원장 수사... MB 시절 정연주 찍어내기의 재현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권력 기관을 앞세워 공영 방송 장악을 위한 포석을 깔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을 겨냥한 수사 얘기입니다.

시작은 윤석열 대통령이 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취임 한 달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지난해 6월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과 전현희 권익위원장을 콕 찍어 "국무회의에 들어올 필요가 없다"며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임기제 기관장들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습니다. 그로보터 약 보름 뒤 감사원은 방송통신위원회에 대한 특별 감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리고 감사가 한창이던 9월에는 "TV 조선 재승인 심사 당시 심사위원들이 고의로 점수를 낮게 주도록 한상혁 위원장이 개입했다"는 혐의로 감사원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는 사실을, 사건의 당사자인 TV 조선이 단독 보도합니다.

 

사건을 이어받은 검찰은 방송통신위원회를 네 차례 압수수색했고 30명이 넘는 공무원을 조사했습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대학 교수와 2명의 현직 공무원을 구속시켰습니다. 방통위 조직은 초토화됐습니다. 지난 3월 말 검찰은 수사의 클라이맥스로 한상혁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습니다. 그러자 검찰은 지난 52일 한상혁 위원장을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인사혁신처는 일주일만에 검찰 기소를 이유로 면직 절차에 착수했습니다.

그런데 뉴스타파가 한상혁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서와 기소 당시 보도자료를 확인해보니, 보수 언론을 통해 떠들썩하게 중계된 것에 비해 검찰 수사 결과는 너무나 부실했습니다. 검찰이 애초에 얘기했던 혐의들은 모두 후퇴했습니다. 결정적으로 검찰 수사는 "심사위원의 평가 점수는 방통위 결정의 주요 참고사항 가운데 하나였을 뿐 결국 여야 방통위 위원들의 토론을 통해 조건부 재승인 결정이 내려졌다"는 근본적인 방어 논리도 뚫어내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번 수사는 실체도 뚜렷하지 않은 사건에 검찰의 수사력을 총동원해 방송통신위원회의 공정성과 정치적 독립을 돌이킬 수 없이 훼손시켰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내년 총선 전에 방송통신위워장을 갈아치운 뒤 자연스럽게 KBSMBC 등 공영방송의 경영진을 교체하고 싶은 대통령의 조바심이 아니라면 설명하기 어려운 결과입니다. MB 시절 '정연주 KBS 사장 찍어내기'의 재현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언론을 권력 장악의 도구로 보는 언론관

한상혁 방통위원장에 대한 수사 뿐만이 아닙니다. 지난해 9월 미국 순방 당시 비속어 발언 보도에 따른 특정 언론사에 대한 따돌리기, YTN 지분 매각과 민영화 추진, 도어스테핑 취소, 보수 단체에 팩트 체크 예산을 지원하는 이른바 '가짜 뉴스와의 전쟁', KBS 수신료 분리 징수 추진 등 윤석열 정부의 언론관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지난 1년 사이 많이 있었습니다. 일련의 사건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윤석열 정부의 언론관은 언론을 그저 '권력 장악의 도구'로만 보는 언론관입니다.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은 알 바 아니고, 권력에 편승하는 언론은 키워주고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은 탄압하갰다는 노골적인 MB식 언론관입니다.

 

대통령은 특수부 검사가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인

외교와 언론 분야를 포함해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1년간 국정 운영은 과연 특수부 검사 출신 대통령다웠습니다.

항상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법을 해석하고 이용하는 점, 국내 정치에서든 국제 무대에서든 적과 아군을 명확히 구분한 뒤 적에게는 마치 피의자에게 하듯 모든 수단을 동원해 타격을 주기 위해 시도하는 점, 일단 한 가지 방향으로 확신이 들면 더 이상 성찰이나 반성은 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여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점, 감시와 견제라는 본연의 역할보다는 홍보와 여론전의 수단으로만 언론을 바라본다는 점, 무엇보다 가진 자와 힘있는 자의 편에서 기득권을 옹호하고 나머지 시민들은 통제나 시혜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https://newstapa.org/article/C1VLd

 

 

대세 거부하고 디지털 마이웨이를 걷는 두 미디어

대세(大勢)를 따르는 것은 흔한 일이다. 시대 변화에 발맞춘다는 인상을 주면서 시쳇말로 폭망할 리스크를 낮춘다. 그래서 개인이든 기업이든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명분 하에 어찌 보면 안정적 선택지라 할 수 있는 시류에 편승하는 경우가 많다.

 

언론계도 마찬가지다. 사회의 다양한 이슈를 조명하는 업이지만 미디어 산업관점에선 대세 쏠림 현상이 극명하다. 뉴스() 혁신을 논하며 요즘 대세 중의 대세인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이 빠지지 않고, 디지털 전략에선 페이월(paywall)로 대변되는 온라인 유료화에 온통 관심이 집중된다. 관련 콘텐츠도 연일 쏟아진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남다른 행보를 보인 미디어 기업들이 있다.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 확대에 나선 독일 미디어그룹 악셀 스프링거(Axel Springer)와 창간 100주년을 기념하며 페이월 폐지를 발표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다. 두 미디어가 대세를 따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AI와 페이월 키워드에 매몰되지 않고 각자의 위치에서 마이웨이를 선언한 것 자체만으로 일단 신선하다.

블록체인 네트워크 킬트(KILT)와 협력해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 확대에 나선 독일 미디어그룹 악셀 스프링거(Axel Springer) 알림 기사 갈무리.

 

악셀 스프링거는 지난 4월 초 블록체인 기반 로그인 서비스 개발 소식을 알렸다. 이용자가 탈중앙화 지갑을 생성해 악셀 스프링거 산하 매체에 접속할 수 있도록 했다. 100% 자체 역량에 의한 건 아니고 블록체인 네트워크 킬트(KILT)와 협력했다. 악셀 스프링거 측은 탈중앙화된 신원이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라며 도입 배경을 밝혔다.

 

개인정보 및 프라이버시 보호가 점점 더 강조되는 디지털 환경에서 암호화된 블록체인은 보안성 문제의 많은 부분을 해결하는 차세대 기술로 평가받는다. 또 탈중앙화라는 블록체인 특징은 소수의 대기업에 데이터서비스가 집중되는 비즈니스 구조를 흔든다. 이런 연유로 블록체인은 웹 2.0으로 표현되는 현재의 인터넷 다음 단계인 웹 3.0으로 이야기되기도 한다.

 

디지털 전환기를 거치며 빅테크 플랫폼에 뉴스 유통의 주도권도, 광고 집행의 우선권도 모두 빼앗긴 언론 입장에서도 블록체인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블록체인이 열어젖힐 새로운 생태계에 대한 기대감은 언론계를 휘감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블록체인 담론은 물론, 블록체인 기술로 만들어지는 NFT(Non-Fungible Token, 대체불가토큰)가 미디어 산업을 관통하며 유행처럼 번졌다.

 

그러다 챗GPT 등장과 함께 기승전AI’로 분위기가 달라진 와중에 유럽 최대 미디어 그룹이 다시 한번 블록체인 가능성에 주목하며 미디어 비즈니스의 미래와 연결 지은 것이다. 악셀 스프링거는 표면적인 웹3 프로젝트 진행뿐 아니라 업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브레인 조직도 정비했다. 악셀 스프링거 컨설팅 그룹 hy는 지난해 말 웹3 및 메타버스 사업부를 출범하며 모회사가 그리는 그림에 선제적으로 부응했다.

 

타임은 디지털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십수년 간 가다듬어 온 페이월을 없앤다고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오는 61일부터 타임 온라인 홈페이지(time.com) 콘텐츠 및 100년 디지털 아카이브를 무료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한다. 페이월 폐지와 관련해 신뢰할 수 있는 저널리즘을 전 세계에서 무료 엑세스할 수 있도록한다는 이유를 내세웠는데, 이는 전 세계 독자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가이드를 제공한다는 자사 미션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페이월 폐지를 알리는 타임지의 알림 기사

 

광고 시장조차 디지털 퍼스트(Digital First)’로 재편되면서 전통매체가 가져가는 몫은 꾸준히, 그러면서도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수익성 악화로 인한 매체 경영난을 해소하는 대표 방안이 디지털 유료구독확대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전후로 경기 침체 그림자가 짙어지면서 광고 기반 무료 매체들조차 디지털 유료화에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는데 타임은 외려 반대 노선을 걷기로 했다.

 

타임의 디지털 유료화 노력은 2011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웹사이트에 게시되는 모든 잡지 콘텐츠에 대해 하드 페이월(hard paywall, 비용 결제 없인 콘텐츠 접근 불가능)을 처음 적용한 뒤, 미터드 페이월(metered paywall, 한 달 무료로 볼 수 있는 기사 건수 제한) 등 다양한 유형의 유료화 모델을 실험했다.

 

악시오스(Axios) 보도에 따르면 현재 타임은 130만명의 인쇄판 구독자와 25만명의 디지털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디지털 전용 연간 구독료(10.45달러 합산액 50% 할인)에 근거해 단순 계산하면 한화로 200억원이 넘는 연수익을 포기하고, 더 많은 독자에게 타임 브랜드와 저널리즘 가치를 노출함으로써 미래 비즈니스를 창출하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타임 또한 악셀 스프링거와 마찬가지로 웹 3.0 흐름에 뛰어들어 타임피스(TIMEPieces)라는 NFT 커뮤니티 구축에 공을 들이는 중이다.

 

이들 두 언론이 실제로 어떤 성과를 어느 정도 거둘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호기롭게 다른 길에 접어들었지만 여정이 순탄치 않을 수 있다. 예상보다 좋지 않은 흐름이라면 다시 과거 방식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미디어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지금과 같은 대전환기에 부지런히 움직이며 비전을 재설정했다는 것, 각자의 스타일대로 로드맵을 제시했다는 점, 그리고 전사 차원에서 이를 끌고 가는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측면에서 뉴스조직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게 된다.

미디어오늘 강미혜 퍼블리시뉴스와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

 

 

마약사범 검거 보도, 질병명과 성적지향 정보는 필요할까

마약사범 검거 보도에 성소수자’, ‘에이즈 감염강조해 혐오 조장한 KNN

마약과의 전쟁 선포에 쏟아지는 마약 보도혐오 조장 범죄보도 근절돼야해

 

KNN <환각파티 60명 검거, 모두 에이즈 감염>, <에이즈에 감염된 채 모텔서 집단 마약파티한 마약사범 60명 무더기 검거>

부산일보 <마약 판매·투약 60여 명 무더기 검거>, SBS <필로폰 직접 만들어 판매·투약한 마약사범 등 61명 검거>

 

부산경찰청 마약수사대가 지난 20일 마약사범 총 61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부산경남지역민영방송사 KNN은 당일 홈페이지와 유튜브에서 연속으로 두 개의 보도 영상을 내놨다. <환각파티 60명 검거, 모두 에이즈 감염>, <[적발 현장] 에이즈에 감염된 채 모텔서 집단 마약파티한 마약사범 60명 무더기 검거>란 제목의 기사에서 KNN에이즈란 정보를 밝혔다. “마약투약자는 모두 성소수자 남성들이라는 자막에서 이들이 모두 성소수자라는 성정체성까지 밝혔다.

2023420KNN 보도 갈무리.

 

사안의 핵심은 마약사범 검거 사실이다. 마약이란 범죄의 원인이 에이즈 감염이나 특정 성적지향이 아님에도, KNN에이즈 감염상태’, ‘성소수자라는 불필요한 정보를 앞세워 성소수자들은 마약을 하고 에이즈를 퍼뜨리는 문란한 사람들이라는 혐오와 편견을 보도에 담아내 에이즈 감염인과 성소수자 등에 대한 혐오를 조장했다.

 

선정적 썸네일부터 댓글모음 영상까지, 혐오 만들어 재확산하는 보도패턴

KNN 보도를 뜯어보면 자극적인 요소들이 더 발견된다.

유튜브에 올라온 보도 영상의 썸네일과 자막에서도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고 있다. <환각파티 60명 무더기 검거>란 영상의 썸네일은 절반 이상이 붉은 색이고 자막으로 클럽 집단 마약 파티 남성 60명 모두 에이즈라고 썼다. ‘클럽’, ‘마약 파티’, ‘남성 60’, ‘에이즈라는 단어를 열거하며 보도를 보는 독자들로 하여금 마약보다 에이즈’, ‘성소수자에 주목하게 만든 보도다. 실제 댓글에도 마약범죄보다 에이즈 감염 사실이 더 충격적이라거나 성소수자를 비난하는 혐오 내용이 상당수다.

2023420KNN 유튜브 영상 갈무리.

 

KNN 기사에서 사건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은 점도 문제다. ‘환각파티’, ‘마약’, ‘에이즈’, ‘성소수자’, ‘60명 전원 남성 검거등을 맥락을 삭제하고 나열해 마치 60명의 성소수자들이 환각파티 현장에서 검거됐다는 뜻으로 오해할 소지가 충분하다. 실제 검거된 61명은 한 장소에서 약물을 하고 감염된 것이 아니고, 경찰은 몇 년에 걸쳐 이들을 개별적으로 검거했다. 댓글을 보면 마약보다 에이즈가 더 큰 문제이며 이들 마약범죄자 60명이 클럽에서 불특정다수를 감염시켰을지 모른다는 등 60여명이 클럽에서 한 번에 검거된 상황으로 시청자들은 이해하고 있었다.

2023420KNN 유튜브 영상 갈무리.

 

유튜브 영상에는 ‘#에이즈’, ‘#성소수자라는 해시태그까지 게시했다. 해시태그로 인해 유튜브에 에이즈’, ‘성소수자를 검색하면 KNN의 보도가 나타나는 것이다. KNN이 마약사건과 무관한 정보를 공개한 순서를 보면 첫 리포트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는데, 이후 유튜브 영상을 통해 게재한 [적발현장] 영상에서는 자막과 해시태그에서 성소수자를 명시했다. 공식 기사에서 다루지 않은 정보를 유튜브 등 다른 채널을 통해 공개하는 것은 책임있는 보도 자세라고 보기 어렵다. 마약 관련 보도에 부적절한 해시태그를 달았기 때문에 에이즈나 성소수자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려던 이들은 다시 혐오 보도에 노출된다.

2023420KNN 유튜브 영상 갈무리. 해시태그로 성소수자를 명시하고 있다.

 

KNN 기사 자체에 혐오표현이 없을지 모르지만 이러한 보도는 시청자들에게 혐오를 선동한다는 점에서 문제다. KNN의 보도에는 성소수자와 에이즈 감염인들에 대한 수많은 혐오 댓글이 달렸는데, KNN은 혐오 댓글을 다시 댓글뉴스라는 영상으로 만들어 내보냈다. KNN은 영상을 통해 ‘60명 마약사범 검거보다 60명 전원 에이즈 감염이라는 게 더 충격이다’, ‘모두 에이즈 기가찰 노릇이다등 혐오댓글을 중계했다. 자신들이 유발시킨 혐오 표현들을 재생산한 꼴이다. 해당 영상 댓글에는 또다시 에이즈 감염인과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댓글이 달렸다. 혐오를 만들어내고, 재확산하는 보도패턴이다.

2023423KNN 유튜브 영상 갈무리.

 

범죄보도는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면서 범죄피해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KNN 보도는 선정적이고 과장, 왜곡된 보도로 인해 예방의 효과가 아닌 불안감 내지 분노를 조성하고 있다. 선정성을 이용해 시민들을 마약이라는 범죄가 아닌, 자극적인 소수자 혐오 자체에 집중하게 했다. 마약범죄 사건 원인과 무관한 이들의 성적지향이나 병명 정보를 공개해 클릭수를 늘리는 전형적인 선정적 범죄보도의 사례다.

 

KNN 인용해 혐오보도 함께한 언론혐오 조장하며 여론 왜곡해

타 매체들 또한 KNN 보도를 인용하면서 혐오보도를 함께했다.

여성조선 <집단 마약환각 파티60명 전원 에이즈코레일 직원도 포함>, 쿠키뉴스 <집단 환각파티 남성 60명 검거모두 에이즈 감염자>, MBN <‘집단 마약환각 파티벌인 60에이즈 감염자도>, 이투데이 <‘집단 환각파티벌인 60, 모두 에이즈 감염자>(2023.4.21)등 매체들은 집단 환각 파티를 벌인 남성 60명이 경찰에 검거될 당시 모두 에이즈에 감염된 상태였다는 보도가 나왔다KNN 보도를 인용했다. 제목에도 KNN처럼 모두 에이즈 감염을 명시했다.

2023421MBN, 이투데이, 여성조선 보도 제목 갈무리.

 

반면, 부산일보와 SBS, YTN 등은 같은 사안에 대해 마약 범죄와 관련한 정보 위주로 보도했다.

 

부산일보는 지난 20일 기사에서 부산경찰청 마약수사대는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마약 사범 61(제조사범 2·판매사범 25·투약자 34)을 검거해 30A 씨 등 17명을 구속 송치하고 나머지 44명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앞서 경찰은 20217월 경북 주택가 원룸에서 필로폰을 제조한 마약사범 B씨를 붙잡았으며, 이후 A 씨가 공범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추가 수사를 벌여왔다고 설명했다.

2023421일 부산일보 지면 기사 갈무리.

 

지난 20YTN 기사 <모텔 화장실에서 필로폰 제조클럽에서 집단 투약>, SBS 기사 <필로폰 직접 만들어 판매·투약한 마약사범 등 61명 검거>에도 에이즈 감염성소수자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마약사범 검거 사건을 전달하기에 이 정도 수준의 정보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2023420SBS 보도 갈무리.

 

하지만 앞선 선정적인 보도 때문에 마약범죄 관련 정보전달에 충실한 기사에도 오히려 혐오를 조장하는 댓글이 달렸다. ‘에이즈 환자라는 사실은 왜 기사에서 쏙 빼냐며 지적하는 댓글을 보면 KNN의 보도와 파생된 다른 매체들의 보도가 오히려 혐오를 조장하는 방식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약과의 전쟁 선포에 쏟아지는 마약 보도혐오 조장 범죄보도 근절돼야해

최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마약 검거의 중요성 강조하면서 언론은 한 장관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마약범죄에 대한 경각심과 관심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언론의 마약 검거 보도는 더 신중해야하는데, 오히려 이러한 분위기와 소수자 혐오를 이용해 언론사가 클릭 장사를 해선 안 된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HIV·에이즈 감염인 등 사회적 차별을 받는 소수자도 입장을 냈다.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지난 23일 성명을 내고 언론이 성소수자과 HIV감염인을 겨냥하여 악의적으로 보도하고 있다윤석열 정부가 최근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자 언론도 부화뇌동 중인가. 게다가 이들은 사건을 하나같이 자극적으로 과장하고 성소수자와 HIV감염인 혐오로 연결한다. ‘검거당시 단체 에이즈 감염이라니, 검거당시에 HIV테스트라도 했단 말인가. KNN 뉴스는 책임질 수 있는 보도인가라고 반문했다.

2023420KNN 유튜브 영상 갈무리.

 

아울러 검거한 이들의 HIV감염사실을 밝힌 까닭은 무엇인가. 기사는 약물에 HIV감염을 가져다 붙이면서 환각파티라고 부른다.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지 않는 질병사실과 약물사용을 애써 이어붙이면서 문란하고 위험한 이들로 과잉 묘사하는 것이라며 여기에 적발된 이들의 직종을 하나하나 열거하면서 위험한 이들이 당신 곁에 있는 이웃이라는 점을 굳이 밝히는 전형적인 레토릭은 공포를 조장하는 의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사건을 어떻게든 선정적으로 연출하는 언론은 위기를 예방하고 불식하기보다 위기를 조장하고 위기에 취약한 이들을 사회에서 고립시킬 뿐이라고 비판했다.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는 지난 2006년 언론인을 위한 에이즈 길라잡이를 발표하고 업데이트 중이다. 감염인을 범죄자로 취급하는 용어 자극적이고 위협적인 용어 공포감을 조성하거나 에이즈와 관련 없는 혐오적 이미지 감염인의 감염 경로 성 정체성 사생활 보도 등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지난 20201월 한국기자협회·국가인권위원회 등 10개 단체가 만든 혐오표현 미디어 반대 실천선언은 “‘동성애가 에이즈를 유발한다거나 난민때문에 범죄가 늘어난다는 식의 보도는 사회적 소수자 때문에 다수 국민이 손해를 보고 고통을 받게 되므로 이들을 사회에서 배제 또는 추방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며 소수자를 열등한 존재로 규정해 이들에 대한 편견을 확산시키거나 이들이 위험을 야기할 것이란 공포를 부추기는 표현에 대해 비판했다.

 

소성욱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알 활동가는 25일 미디어오늘에 이 뉴스들은 성소수자, HIV 감염인들을 욕하고, 비난하고, 헐뜯으며 혐오를 부추기는 용도로만 사용되고 있어 당사자인 감염인 동료들이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어하고 있다어떤 질병이나 약물에 취약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성소수자든 아니든 그 취약함을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게 사회의 역할이지, 비난하는 것이 언론과 사회의 역할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카더라'와 음모론의 막장 조합, '조국 흑서'

문재인 정부 뒷담화 모음집독자 기만 마케팅

정경심 블라인드펀드, '투자처 몰랐다면 거짓말'?

권경애가 믿었던 공소장의 '웰스씨앤티', 허위였다

치밀하고 치졸했던 검찰의 블라인드펀드 말장난

변호사 본분도 잊고 '공소장 기술'에 낚인 권경애

'블루펀드 통해 WFM 투자', 김경율 허황한 음모론

 

[조국 사태의 재구성] 16. ‘카더라와 음모론의 막장 조합, ‘조국흑서

조국 펀드관련의 허위, 과장 주장들을 이어가던 권경애와 김경율의 폭주는 20208월에 출간된 소위 조국흑서에서 정점을 이룬다. ‘조국백서’(“검찰개혁과 촛불시민”)에 맞서겠다며 강양구, 권경애, 김경율, 서민, 진중권 등 5인이 출간한 책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였다.

 

그런데 조국흑서라는 가칭이 당황스럽게도, 많지도 않은 총 337페이지의 분량 중에서 정작 조국사태를 다룬 부분은 고작 70 페이지 정도에 불과하고, 그 내용도 사모펀드 관련 내용에 국한되었다. 그마저도 진위 여부를 떠나 매우 부실한 뒷담화 수준에 그쳤다. 가칭이라고 해도 이 책을 조국흑서라고 부르며 마케팅 했던 것은 심각한 독자 기만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조국흑서라는 기만적인 가칭으로 널리 알려지고도 제대로 된 문제 제기조차 없었던 것은, 책의 내용에 높이 평가해줄 만한 부분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실상 공범인 주류 언론들이 앞다퉈 소개 기사들을 쏟아내 가려주고 미화해준 덕분이었다.

 

조국 흑서아닌 문 정부 뒷담화’, 그나마도 재탕

실제 이 조국흑서라는 책의 내용은 문재인 정부와 ‘386 운동권비판 등의 정치 비평이 대부분이고, 그 역시도 전문적인 분석이나 객관적 자료 제시 하나 없는 뒷담화 수준 사견들의 말잔치다. 스스로도 밝혔듯이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라는 책의 제목부터가 조국 전 장관을 겨냥한 것이 아닌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 발언을 비꼰 것이다.

 

특히 사모펀드 관련 주장을 기록한 70여 페이지를 제외한 나머지 분량은 강양구, 서민, 진중권 3인이 대부분을 채웠는데, 문재인 정부 비난에 열을 올린 이들 3인은 정치나 공직을 전혀 경험해보지도 않았고, 관련된 연구를 해본 경험도 없다. 아시다시피 강 기자는 과학전문 기자이고, 서 교수는 기생충학 교수, 진 교수는 미학 전문이다. 요컨대 내놓은 의견들이 비전문적일 뿐만 아니라 내용을 봐도 그리 진지하다고 보기조차 어렵다.

가칭 조국흑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이들이 정치나 공직 비전문가이고 뒷담화의 수준이 낮다는 사실만으로 이 책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조국 전 장관을 비판하는 조국흑서로서 기획된 책에서 엉뚱하게도 편향적인 정치 비평들을 압도적으로 더 많이 펼칠 것이면, 최소한 그런 문재인 정부 비판들이 조국 전 장관을 비난해야 할 정도의 상당한 개연성과 객관성, 합리성 정도는 보여줬어야 했지 않은가.

 

오히려, 문재인 정부 비판이라는 주제라면 이 책을 열렬히 띄워줬던 조중동 스스로의 사설들이 이 책 내용보다는 한참 더 볼만 할 정도였다. 천재들이 바보를 입을 모아 대단하다고 찬양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는 느낌과 비슷할 것 같다.

 

또 진중권이 질문하고 권경애, 김경율이 답하는 대담 내용을 기록한 사모펀드 의혹 관련 70페이지 역시도, 이들의 2019년 당시 주장으로부터 그다지 나아가지도 못했다. 책으로까지 엮을 가치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달라진 부분이라면 검찰의 공소장 내용들을 몇 부분에서 인용한 정도였는데, 공소장 자체도 검찰이 이미 언론에 대부분 흘려놓았던 내용들에 디테일을 더한 정도에 불과해서 딱히 새로운 주장이나 사실도 없었다.

 

더욱이 사모펀드 관련 외에 다른 의혹들, 예를 들면 표창장 등 입시 관련 의혹, 웅동학원 관련 의혹, 민정수석 당시 직권남용 등의 의혹, 선거개입 관련 의혹, 장학금 의혹 등등에 대해서는 이들은 아예 최소한의 언급조차 하지 못했다.

 

조국흑서출판사의 대표 선완규 씨의 중앙일보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그는 20199월에 진중권에게서 동양대 표창장이 위조된 것 같다라는 말을 듣고 이 책을 기획했다고 했다. 표창장 위조 같다는 진중권 전화에 조국흑서 기획 즉 표창장 위조혐의가 조국흑서의 시발점이었다는 것이다.

진중권의 표창장 위조추측 발언이 조국흑서의 계기였다는 선완규 대표 (중앙일보)

 

그런데 조국흑서의 출발점이자 표창장 혐의의 진실을 잘 아는 듯 내세웠던 진중권은, 실제 조국흑서대담에서는 표창장 위조 혐의에 대해서는 거의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사실 진중권은 조국사태 당시 정경심 교수의 동양대 동료 교수이기는 했으나 같은 학부도 아니고 2012~2013년 당시 함께 근무한 것도 아니어서 그에게는 표창장 위조 여부에 대해 합리적인 판단을 할 근거가 전혀 없었다.

 

이런 이유로 진중권의 표창장 주장이 시발점이었던 조국흑서, 정작 진중권의 표창장 관련 주장들은 전혀 실리지 않았고, 권경애 김경율의 사모펀드 주장들만 일부 실린 것이다. 그런데 앞서 15회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권경애, 김경율의 주장들도 (사실이든 허위든) 체계적이거나 근거로 뒷받침 되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의 주장만으로 책 한 권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널리 조국흑서라고 홍보했던 책이 실제로는 문 정부 뒷담화 모음집이 되어버린 경위다.

 

요컨대, 소위 조국흑서라고 알려진 이 책은 조국흑서라는 가칭 자체가 매우 기만적인 상품이었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유명 언론사 기자들이 입을 모아 이번에 잘 나온 한우 세트라고 소개하길래 믿고 구입했다. 그런데 막상 화려한 포장을 뜯고 보니 내용물 대부분이 돼지고기, 닭고기였고, 소고기는 1/5밖에 안되는데다 한우도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걸 잘 나온 한우 세트라고 열렬히 홍보해줬던 것이 조중동 등 주류 언론들이었다.

 

그러면 그 나머지라도 제대로 된, 먹을 만한 소고기였을까. 이제부터 살펴보겠지만, 얼마 안되는 나머지조차도 등외품에 변질된 불량 고기였다.

 

블라인드펀드, ‘투자처 몰랐다면 거짓말’?

예상할 수 있듯이, 권경애와 김경율이 지면을 채운 사모펀드 부분 70 페이지 대부분은 20199월 이후 이들이 주장하던 내용들의 반복이 대부분이었다.

 

아래 발언은 진중권의 블라인드펀드질문에 대해 권경애가 대답한 내용으로, ‘블루펀드가 블라인드펀드라는 해명은 거짓이었다라는 취지다. 그런데 권경애가 그 근거로 댄 내용이 가관이다.

 

권경애 : “설령 투자 당시에는 사모펀드 투자처를 몰랐다고 해도, 사모펀드는 자산운용보고서를 작성해서 3개월에 1회 이상 투자자에게 교부해야 해요. 20199월 기자간담회까지도 몰랐다고 주장하는 건 거짓말이죠.”

 

요컨대 코링크PE에게 교부 의무가 있으니 정 교수는 보고서를 받아봤다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코링크PE20198월 조국 후보자 지명 전까지 분기 보고서를 한 번도 교부하지 않았고, 그 사실이 이미 20199월 초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다.

 

진지하게 변호사권경애에게 묻고 싶다. 코링크PE의 법적 의무를 정경심 교수가 몰랐다면 거짓말이라는 논리는 도대체 어떻게 성립하는가? 이런 묻지마식 논리로 도대체 의뢰인 변호는 어떻게 하는가?

 

블라인드펀드여부의 진실은, ‘조국흑서가 출간되기보다 두 달 전에 나온 조범동 판결과 몇 달 후 나온 정경심 판결문에서 나열된 여러 증거에서 확인된다.

 

두 판결문에서 검토한 증거들, 즉 조범동과 정경심 교수 사이에 주고받은 대화와 문서 자료들에서, ‘웰스씨앤티의 이름은 단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았고 일관되게 “W로만 지칭되었다. 즉 조범동은 정 교수에게 블루펀드의 투자처 회사의 실명을 알려준 적이 없었고 따라서 정경심 교수가 웰스씨앤티라는 회사 이름을 알지 못했던 것이 실제 진실이었던 것이다.

 

특히 정경심 교수의 1심 판결문에는 ‘W라는 표현이 무려 18차례나 등장한다. 재판부가 증거들에서 ‘W가 언급된 부분을 정확히 주목한 것이다. 또한 판결문에서 웰스씨앤티언급은 조범동과 정 교수 사이에 주고받은 대화나 서류가 아닌, 조범동과 코링크PE 관련 범죄에 대한 판단 과정에서만 나타난다. 즉 재판부가 정 교수와 관련해 웰스씨앤티라는 회사명이 언급된 적이 없다는 점을 제대로 주목한 것이다.

 

조범동 1심 판결의 경우는 정 교수 1심 판결보다는 적지만 20177월 블루펀드 가입 제안 당시 조범동이 정 교수에게 소개한 투자 요지 설명에서 ‘W로만 지칭한 사실이 확인된다. 즉 권경애는 조국흑서출간 전에 나온 조범동 판결문만 살펴봤더라도 자신의 주장이 어불성설이 된 사실을 모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권경애가 덮어놓고 믿었던 공소장의 '웰스씨앤티', 허위였다

설상가상으로, 위와 같은 주장에 바로 이어지는 권경애의 다음 발언은 변호사라는 그의 정체성마저 의심하게 만든다.

 

권경애 :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심지어 정경심 교수가 투자처에 대한 설명을 다 듣고 블루펀드에 가입했다는 거잖아요.”

 

여기서 일단 도대체 공소장이란 것이 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공소장은 형사재판에서 검사의 일방적인 주장을 정리한 서류로서, 실제로도 오직 형사재판 법정 내에서만 의미가 있다. 그런데 권경애는 검찰이 정경심은 투자처에 대해 들었다라고 주장했으니 그게 그대로 사실이라는 것이다.

 

검찰의 공소장이 그대로 진실이라면, 변호인이 공소장 수령 후 제출하는 공소장의견서는 무가치한 휴지조각이란 말인가? 직업 변호사로서 권경애 본인도 수없이 제출했을 의견서 아닌가?

 

그러면, 여기서 권경애가 이토록 신뢰하는 검찰의 공소장에서 해당 부분의 기술이 어땠는지 살펴보자.

 

피고인은 (중략) 2017. 7. 초순경 코링크PE 사무실에 찾아가 조범동으로부터 (중략) 웰스씨앤티(이하 웰스씨앤티'라고 함)에 유상증자로 투자를 하고, 웰스씨앤티에서 익성(이하 익성'이라고 함)의 음극재 사업에 투자하며, 이후 익성이 상장될 경우 웰스씨앤티의 주식과 상장된 익성의 주식을 스왑하여 상장사 주식을 매도함으로써 많은 수익을 취득할 수 있다는 투자 설명을 받고, 관련 설명 자료도 제공받았다.

 

요컨대 정경심은 블루펀드 투자 당시 조범동으로부터 웰스씨앤티에 대해 설명을 듣고 관련 자료를 받았다라는 식이다.

 

그런데 위 공소장 부분을 가만히 뜯어보면, 검찰이 정경심은 웰스씨앤티라는 회사명을 알고 있었다라고 찍어서 표현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에 검찰의 기막힌 꼼수가 숨어 있다.

 

정경심 1심 판결문에는 이 공소장 부분에 해당하는 판시 부분이 있다.

) 피고인은 같은 해 7. 12. 경 조범동으로부터 블루펀드가 익성의 관계사인 W사를 유상증자 형태로 인수하고 W사에서 익성의 배터리 사업에 낮은 주식 가치로 투자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피고인은 같은 날 조범동으로부터 음극재배터리 로드맵_20170501.pdf', '음극제 보도자료.docx', 'SiOx음극재배터리 양산계획_20170501.pdf' 라는 제목의 각 파일을 전송받았다.

 

보다시피, 검찰이 공소장에서 웰스씨앤티라고 써놓았던 부분을 재판부는 모두 ‘W로 바꿔놓았다. 공소장에서 웰스씨앤티를 운운했던 검찰이 실제로 법정에 제출한 증거들, 2017년 당시 정경심-조범동의 대화에는 웰스씨앤티가 아닌 ‘W라고만 지칭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공소장에 ‘W라고 대화했던 내역들을 임의로 웰스씨앤티라고 바꿔서 기재했다. 또 검찰이 구체적 설명 없이 관련 설명 자료라고 지칭한 것들 역시 웰스씨앤티 관련 자료가 아닌 익성의 자료들이었다. 검찰이 마치 정 교수가 웰스씨앤티라는 회사명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도록 의도적으로 공소장 문구를 허위로 꾸민 것이다.

 

그런데, 정경심 판결문에는 이처럼 관련 사실관계가 증거들로 확인이 되는데도 결론으로서의 판단은 전혀 적시 되지 않았다. 검찰이 웰스씨앤티라는 회사 실명을 허위로 썼다는 판단은 물론이고 블라인드펀드의 사실 여부에 대한 판단도 판결문에 실리지 않았다. 그런 판단 적시를 회피하는 검찰의 고도의 공소장 말장난이 있었기 때문이다.

 

치밀하고 치졸했던 검찰의 블라인드펀드 말장난

놀랍게도, ‘웰스씨앤티라는 사실과 다른 실명을 써넣은 위 공소장 부분은, 블라인드펀드 논란과 아무 관련이 없는 자본시장법상 거짓변경보고혐의 부분의 공소사실이다.

 

20199월부터 벌어진 블라인드펀드문제와 관련해 검찰이 기소한 혐의는 증거위조교사혐의였다. 그런데 정작 검찰은 공소장의 이 혐의 관련 공소사실에서는 웰스씨앤티‘W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문제의 증거위조교사혐의 공소사실에서 검찰의 구체적인 주장은 이랬다.

"‘블루펀드는 블라인드 펀드여서 출자자는 투자처를 모른다는 취지 등의 해명을 하라고 하고"

 

한편, 증거위조교사혐의에서 검찰은 이 블라인드펀드문제 외에 조범동이 실소유주은폐 문제도 문제 삼았는데, 이 두 문구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청문회준비단에 코링크PE의 실사주는 조범동이 아니고, 출자자들 중에 피고인 관계자가 없다는 허위 해명을 하게 하고

 

보다시피, 검찰은 블라인드펀드문제에 대해서는 그냥 해명이라고 쓰고, ‘조범동 실소유주문제에 대해서는 허위 해명이라고 썼다. 이건 당연히 단순 표현의 차이가 아니다. 이런 문구 꾸미기가 주업인 것이 검사들이다. 검찰은 정 교수 기소 당시 블라인드펀드주장이 허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이 부분에 대해선 허위 해명이 아닌 해명이라고만 쓴 것이다.

 

또 같은 이유로 검찰이 블라인드펀드 해명을 문제 삼으면서도 공소장의 이 부분에 정작 웰스씨앤티‘W도 쓰지 못한 것이다. (정 교수에 대한 판결에서 재판부는 블라인드펀드부분과 조범동 실소유주양쪽 모두에 대해 무죄 판단을 내렸다. ‘블라인드펀드관련 서술은 정 교수의 요청이 아닌 코링크PE 자체적인 결정이었고, ‘조범동 실소유주사실을 숨기라고 지시한 것은 정 교수가 아닌 직접 당사자 조범동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검찰이 웰스씨앤티라는 실명을 써넣은 거짓변경보고혐의는 투자자에 불과한 정 교수가 블루펀드 변경 사항을 정부 부처인 금융위에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투자 대상 회사의 이름이 알려졌든 말았든 아무 상관이 없다. (이 혐의 역시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즉 검찰은, ‘거짓변경보고혐의 제기와 무관한 배경설명을 뜬금 없이 집어넣고 거기다가 사실과 다른 웰스씨앤티라는 회사명을 써넣은 것이다.

코링크PE2017년부터 블루펀드를 블라인드펀드로 소개하고 있었다. (한국경제신문)

 

본분도 잊고 아낌없이 낚인 권경애

여기에 검찰이 발휘한 고도의 공소장 기술이 있다. 만약 검찰이 블라인드펀드문제를 제기한 증거위조교사혐의에 허위의 웰스씨앤티라는 실명을 써넣었다면, 재판부는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판결문에 적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검찰이 허위의 웰스씨앤티실명을 써넣은 것이 그와 전혀 무관한 거짓변경보고혐의였기 때문에, 재판부는 단지 무시하고 넘어갈 뿐 그에 대해 검토도 판단도 적시도 할 이유가 없다.

 

결과적으로 검찰은 공소장에 거짓으로 마치 정 교수가 웰스씨앤티라는 회사명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쓰고도, 판결문에서는 거짓 주장이라는 지적을 받지 않을 수 있게 된다.

 

검찰이 블라인드펀드관련 증거위조교사공소사실에 허위 해명이 아닌 해명이라고만 쓴 것도 같은 이유다. 검찰이 허위 해명이라고 주장했더라면 재판부로선 허위가 아니다라고 판시했겠지만, 그냥 해명이라고 썼기 때문에 재판부로선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정 교수가 블라인드펀드라는 문구를 써넣으라는 지시를 했느냐 여부만 판단하게 된 것이다.

 

검찰이 공소장에서 이렇게 거짓변경보고혐의에 공소사실과 전혀 무관한 배경설명을 집어넣으면서 허위의 웰스씨앤티회사명을 써넣은 의도는, 당연히 공소장의 원래 목적과는 무관하다. 공소장만 보고 유죄라며 일제히 복창해줄 법조기자들과 권경애, 김경율 같은 이들을 낚는목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고, 곧 엄중한 공문서인 공소장이 대국민 기망 행위의 도구가 된 것이다.

 

정리하자면 검찰은 권경애가 잘못 이해한 것과 달리 공소장에서 정경심은 웰스씨앤티라는 회사명을 알고 있었다라고 적시하지도 않았고, 문제의 블라인드펀드관련 혐의에서는 웰스씨앤티언급과 허위 해명이란 표현을 피했으며, 혐의와 전혀 무관한 엉뚱한 문맥에다 웰스씨앤티회사명을 끼워넣었다.

 

이 정도면 경력 변호사라면 직감적으로 의심스러워야 정상 아닌가?

필자 같은 비전문가라면 몰라도, 또 검찰 가라사대를 무턱대고 받아쓰는 게 직업 일상이 되어버린 법조기자들이라면 몰라도, 그간 검사들과 법정 다툼을 수없이 해오며 검사들의 말장난을 전혀 모를 수 없는 오랜 경력의 현업 변호사가, 검사들에게 낚인 정도를 넘어 낚시 바늘을 위장 깊숙이까지 삼켜버린 것은 너무도 실망스럽다.

 

권경애가 변호사로서 공소장은 검찰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한 것이라는 근본적인 대전제를 가볍게 무시하지 않았더라면, 검찰의 이런 기가 막히는 고도의 공소장 말장난도 전혀 통할 리가 없었다. 결국 권경애는 기꺼이 검찰에게 낚일 준비가 되어 있었던 셈이고, 검찰은 그걸 마음껏 이용한 것이다.

아니, 필자가 권경애에게 너무 지나친 것을 기대한 것인가?

전무후무한 재판 3회 연속 불출석으로 의뢰인을 패소시킨 권경애 변호사 (MBC)

 

블루펀드 통해 WFM 투자’, 허황된 음모론

김경율은 조국흑서에서 블라인드펀드는 거짓이라는 주장에서 멈추지 않고 그걸 바탕으로 더 황당무계한 시나리오도 창안해 마구 던진다. 그야말로 김경율 단독음모론이다.

 

블루펀드에 들어갔던 14억 원은 웰스씨앤티에 투자되었다가 뺑 돌아서 WFM에 투자되거든요. 사모펀드라는 가림막을 쓰고 있으니 간접투자라고 주장할 수 있었던 건데, 사실상 직접투자처럼 운용된 거죠. 블라인드펀드도 아니었고요.”

 

이런 김경율의 말을 재정리하자면 블루펀드 자금이 돌고 돌아 WFM 주식이 되었다는 것으로, 즉 정 교수가 블라인드펀드라고 하고는 실제로는 블루펀드를 통해 WFM에 사실상의 직접투자를 했다는 주장이다.

 

물론 조범동 판결에서 밝혀진 진실은 이런 김경율의 웅대한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블루펀드 자금이 웰스씨앤티를 거쳐 IFM에 입금되기까지는 정상적인 회계 처리가 되었다. 하지만 두 달 만에 웰스씨앤티에서 대표이사 가지급금같은 거짓 명목으로 출금되어 코링크PE 계좌로 들어갔다. 코링크PE 계좌로 돌아온것이 아니다. 별개의 법인인 블루펀드 계좌가 아니라 코링크PE 법인 계좌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즉 이 시점부터 이 자금은 블루펀드와의 연결점이 사라진 것이고, 정 교수가 권리를 주장할 방법이 없어진 것이다. 그런 후 코링크PE는 이 횡령된 자금을 WFM 주식 인수 대금의 일부로 우국환에게 지불했는데, 해당 주식은 블루펀드의 명의도 정 교수의 명의도 아닌 코링크PE의 명의로 인수했다.

 

공인회계사김경율에게 묻는다. 이렇게 원 투자자 정 교수 소유라는 꼬리표를 완전히 떼어버린 채로 횡령되어 코링크PEWFM 주식 보유분 일부가 된 후에, 과연 정 교수가 이 투자금을 회수할 방법이 있는가?

WFM 인수 자금 대부분이 사채였고, 이로 인해 인수 완료 선언 시점에 실제 보유 지분은 0이었다 (SBS뉴스)

 

더 나아가면 김경율의 주장은 아예 아연실색 수준이다. 코링크PE가 외형상으로 WFM 인수 완료를 선언했던 2018124일 시점 기준으로, 코링크PE가 순차적으로 인수했던 모든 WFM 지분들은 실제로는 단 한 주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조범동이 WFM 지분들을 순차적으로 인수하는 과정에서 사채로 돌려막으면서, 인수 완료 선언 시점에는 실제론 코링크PE가 보유한 WFM 주식은 전혀 없었다. 전부 사채업자에게 매각 또는 담보로 제공한 것이다.

 

더욱이 20181월 인수 완료 선언 시점에서는 사채업자에게 완전히 넘긴 것이 아닌 담보로 맡긴 지분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20184월에 장부 상으로 226만 주 전량을 장외매도로 처리하면서 사채업자들에게 완전히 넘어갔다. 블루펀드 횡령 자금으로 인수한 지분을 포함한 코링크PEWFM 지분 전량이 허공으로 사라진 것이다.

 

‘WFM 인수 완료공시 자체가 변명의 여지 1도 없는 허위 공시였던 것이고, 이후 우국환이 무상 증여한 110만 주가 코링크PE의 유일한 WFM 지분이었다. 여기까지가 조범동, 익성, 우국환 3자간의 경영권 양수도 사기극의 전말 개요다. 김경율은 이 무상증여 110만 주, 장부상 53억 원에 대해서도 조국 운운하고 있는데, 보다시피 그 역시 황당무계한 음모론이다.

(이런 블루펀드 자금 횡령 과정 전반에 대해서는 앞서 11, 12회에서 자세히 살펴본 바 있다.)

 

다시 공인회계사김경율에게 묻는다. 이렇게 사채업자들에게 돌리다가 허공으로 사라져버린 자금을 정 교수가 돌려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이렇게 돈을 허무하게 증발시켜버리는 것도 블라인드펀드를 가장한 직접투자의 한 방법인가? 김경율은 없어진 돈을 다시 만들어 회수할 수 있는 기막힌 묘수라도 있는가?

 

기만적 프레임, ‘조국의 돈으로 세워진 회사

한편, 권경애와 김경율은 이 책에서도 정경심 교수가 조범동에게 빌려준 5억 원이 코링크PE 설립 자금이라며 조국의 돈으로 세워진 회사라는 애매하면서도 의심을 조장하는 표현을 반복하고 있다. 근거가 전혀 없어 조국 부부가 코링크PE의 소유자라고 직격할 수도 없으면서 그렇게 들리도록 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코링크PE 설립 자금이라는 2015125억 원 대여금에 대해서는 이 조국흑서출간 전에 나온 조범동 1심 판결문에 꽤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조범동은 20161, 2월 두 차례에 걸쳐 웰스씨앤티로 85백만 원(5천만, 35백만)을 송금하고 20162, 3월에 코링크PE 설립에 1, 유상증자에 15천만 원을 썼으며, 나머지 165백만 원은 조범동이 개인 빚을 갚는 등으로 개인적으로 썼다.

 

정리하자면 5억 원 중 절반인 25천만 원이 코링크PE와 무관한 곳에 쓰인 것이다. 165백만 원은 아예 조범동이 개인적으로 썼고, 웰스씨앤티에 보낸 85백만 원은 코링크PE 설립 이전이라는 점에서 코링크PE와 연결이 되지 않는다. 태어나기도 전에 주고받은 돈에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더욱이 웰스씨앤티에 보낸 85백만 원에 대해 정경심 1심 재판부는 익성이 공공 와이파이 사업 투자를 위해 웰스씨앤티에 보낸 1억 원 이상의 자금과 연계해 해석했다. 더 구체적인 판단으로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정황상 익성의 와이파이 사업 투자와 관련된 송금이라고 본 것이다. (조범동이 익성의 웰스씨앤티 투자에 편승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납득하지 못하겠다면, 여러 판결들에서 정 교수 남매가 코링크PE의 경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에 대해서는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조범동 1: “정경심, 정ㅇㅇ(정경심 동생)가 코링크PE의 사업에 관여하였다거나,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려고 했다는 정황은 기록상 나타나 있지 않다.”

조범동 2: “정ㅇㅇ가 코링크PE 주주명부에 주주로 등재되기는 했으나, 실제 주주로서 권리를 행사한 사실이 전혀 없는 점

 

조범동 재판의 대법원 판결에서도 이대로 확정됐다. 이는 역시 대법원 판결로 확정된 정경심 교수의 재판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정경심 재판부들은 억지스럽게 투자라고 표현했지만 그 관점에서조차 소유나 지배와는 무관한 순수한 재무적 투자’(FI)였다는 의미다.

 

이는 가장 최근의 관련 판결인 조국 1심 판결도 마찬가지다. 조국 부부는 어떤 식으로든 코링크PE의 경영에 관여한 바가 없었다는 점이 두 차례의 1, 2, 3심 판결로 확정되고 또다시 조국 1심에서 재확인 된 것이다.

조범동 1심 판결, ‘5+5억 원은 투자가 아닌 대여금, 컨설팅비는 횡령 아닌 대여금 이자’ (MBC)

 

또 김경율은 이자 연 11%”라는 이자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고금리라고도 단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판결문은 이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반박한다. (문언상 11%로 되어 있지만 재판부는 계산 결과 실제로는 10%에 상당한다고 판단했다.)

 

약 연 10%의 이자율이 예금금리에 비하여 고율이기는 하지만 자금사정이 어려운 회사가 유치하는 자금에 대한 이자율에 비추어 현저히 높은 이율이라고 할 수 없는 점”.

 

실제 코링크PE는 회사의 기본 운영자금도 없어 허덕이고 있던 중이었다. 그래서 2차 대여금 5억 원의 경우 직원 급여, 보험료, 관리비, 사무실 보증금 등 회사 운영자금으로 모두 사용했다.

 

김경율에게 한 가지만 물어보자. 201910월에 라디오 생방송 중에 자신있게 장담했던 충분한 증거들은 도대체 어디다 꽁꽁 숨겨놓고 이런 황당한 음모론들만 내놓았는가? ‘조국흑서에서 공개하기에도 너무나 아까운 소중한 증거들인가? 설마 필자가 반박한 이런 음모론들을 가지고 충분한 증거라고 지칭했던 것인가?

김경율 회계사가 201910월에 장담했던 충분한 증거” (채널A)

 

지난 15회에서도 썼듯이, 필자는 이 같은 비판에 대해 공인회계사 김경율과 변호사 권경애의 진지한 반박을 기다리고 있다. 글이나 영상, 대면 토론 어떤 방식이든 환영하며, 특히 공개 대면 토론을 가장 기대한다.

박지훈 IT 전문가 시민언론 민들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