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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23.4.24~29 다 해무라

by 이성근 2023. 4. 24.

숨어버린 35만 명외신도 놀란 한국 은둔형 외톨이실태 [코리아 리포트]

43주 국정수행 평가

혹시나대박인가 했는데아뿔싸꿈 깨니 허상

살아있는 돼지로 시위? 대구 이슬람 '돼지시위''반차별' 나선다

‘JMS 수련원있는 금산에서 벌어진 일

 

지적재산권 싹 가져가는 넷플릭스 투자, 정말 도움만 될까

일본 무릎오역 아니었다WP, 발언 원문 공개

일본이 파묻은 광화문 왕의 계단’ 100년 만에 세상 밖으로

사도광산 근무 일본인 강제동원은 사실·일 시민이 밝혔다

금융위기 때 윤석열1

양곡법 거부, 대통령이 사상 처음으로 농민을 걷어찼다

미국 우선주의' 직면한 초라한 '한미동맹

넘쳐나는 '포퓰리즘' 언급 보도엔 빨간 딱지만 있고 알맹이가 없다

윤석열정권 심각한 수준 한구 경제 모루거나 오면 ]

김건희 특검법누구를 벨까대통령 거부권 맞물려 총선 화약고

핵우산에 갇힌 한국, ‘실리챙긴 미국

핵우산 넓히고 일방 외교불씨 키운 한·미 정상회담

바이든, 재선 위해 동맹국 피해 주나핵심 찌른 미국 기자

"오크", "X같이 생긴"윤 대통령 인터뷰한 WP 기자에 '혐오테러

윤석열, 미국에 예측 복종을 하고 있다” [정치왜그래?]

미분양 아파트 매입하라던 한국경제, 전세사기 피해 지원은 안 된다?

깡통전세경고 뜰 때 정부는 부자 감세했다

아이 버리고 부끄러움도 버린 한국

"쓸모없는 바위섬 폭파하자"던 김종필도 지켜낸 독도인데

 

대통령 "자유 위협하는 세력은 공동체 안에도 있다"

국빈방문에도 지지도 제자리'일본 무릎' 여파?

2022, 역대 최대 적자는 어느 정부 책임인가

숨어버린 35만 명외신도 놀란 한국 은둔형 외톨이실태 [코리아 리포트]

여성가족부 지원 정책에 관심

생활비 등 월 최대 65만 원 지급

노동력 부족 해결 방편 관점도

일본서 1인 비용 15000만 엔

회복 과정에 오랜 시간 소요돼

단시간 내 사회 진입은 역효과

 

최근 외신은 은둔형 외톨이에게 월 최대 65만 원의 생활비와 치료비 등을 제공하는 한국 여성가족부의 지원정책을 보도했다. 은둔형 외톨이의 삶을 그린 영화 기동전사행진곡의 한 장면. 픽코드필름 제공

 

집 안에만 칩거한 채 가족 이외의 사람과는 인간관계를 맺지 않고 6개월 이상 사회적 접촉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은둔형 외톨이이라고 한다. 한국 여성가족부가 지난 11일 은둔형 외톨이에게 월 최대 65만 원의 생활비와 치료비, 학업 비용 등을 제공해 사회로 다시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책을 발표하자 외국 언론도 이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일부 외신은 은둔형 외톨이 지원 정책이 한국의 인구 감소에 따른 노동력 부족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전문가들은 은둔형 외톨이의 취업을 우선시하는 정책이 오히려 역효과를 부를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35만 명이 수개월간 집콕

외신은 202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통계를 인용하며 한국에 있는 운둔형 외톨이 규모에 놀라워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나 13일 보도에서 한국에서 19세에서 39세까지의 약 3%에 해당하는 약 35만 명이 외로움이나 고립을 경험하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 문서에 따르면 소외된 청소년들은 불리한 환경 속에 있으며 이들의 40%는 청소년기에 쇠퇴적인 삶을 시작한다고 썼다. 가디언은 어떤 청소년은 가정 내 폭력으로 우울증을 겪은 뒤 후퇴적인 삶을 살고, 또 다른 청소년은 가족이 파산하면서 은둔형 외톨이가 됐다고 전했다.

 

외신이 언급한 것처럼 은둔형 외톨이가 증가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취업이 어려워지자 구직 활동을 포기하고 사회와 담을 쌓아버린 청년들이 있는가 하면 학교 또는 가정폭력 여파로 은둔형 외톨이가 된 사례도 흔하다. 특히 가정 폭력은 피해자를 위축시키면서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학교 등 사회에서의 대인 관계도 망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졸업 뒤 취업을 하더라도 동료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자 아예 세상과 단절된 삶을 선택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부산연구원 박주홍 책임연구위원은 부산일보은둔형 외톨이 1명이 청년기에 경제 활동을 단념해버리고 은둔을 장기화하면 복지급여 수급 증가로 이어져 국가 부담이 커진다은둔형 외톨이 1명당 15억 원 정도의 사회적 부담이 생긴다는 계산도 있다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이 언급한 15억 원이라는 사회 비용은 일본에서 도출된 것이다. 일본에서는 청년 한 명이 만 25세부터 65세까지 납세를 하지 않고 사회보장을 받을 경우 15000만 엔(158000만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고 추산했다.

 

몇몇 외신은 한국 정부의 은둔형 외톨이 지원 정책이 노동력 부족 사태를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는 관점도 제시했다. 명지대 신율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 경제 매체 블룸버그에 이 정책은 근본적으로 복지 정책이라며 노동 연령 인구를 늘리기 위해 다양한 접근 방식을 시도하는 것은 좋지만 여기서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기적인 대안으로 보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일본서 악화된 히키코모리 신드롬

히키코모리 신드롬이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은둔형 외톨이 문제는 한국보다도 일본에서 더 심각한 문제였다. 블룸버그는 지난 4일 일본 정부 조사 결과를 인용하면서 “150만 명의 취업 연령 인구가 은둔형 외톨이로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며, 이들 중 20%는 코로나19 탓에 스스로 격리된 삶을 선택했다면서 은둔형 외톨이는 일본의 15~64세 인구 중 2%를 차지한다고 상세히 전달했다.

 

일본에서 은둔형 외톨이 문제가 처음 발견된 지 20~30년가량 흘렀고, 학술적으로도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한국 또한 유사한 문제점이 발생하자 일본의 해결책 등을 참고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현재 일본에서도 은둔형 외톨이 현상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한때 일본의 청소년·청년 세대에서 발견됐던 은둔형 외톨이가 현재는 40~50대의 문제로 악화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박 위원은 “40~50대 중년이 80대 부모가 사망했음에도 연금을 계속 받기 위해 신고하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일본에서 펼쳐왔던 정책들이 효과적이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은둔형 외톨이 현상을 극복하려면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데, 취업 위주로 이들을 빨리 사회에 복귀시키려는 시도는 지양해야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은둔형 외톨이는 취업까지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없는 사람들인데 회복 과정을 무시한 채 취업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고 하는 것은 위험하다면서 은둔형 외톨이들도 일하고 싶어 하지만, 대인 관계에서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를 본인 탓으로 돌리는 특징이 있다. 이들을 위한 지원 정책을 만들 때 이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혹시나대박인가 했는데아뿔싸꿈 깨니 허상

그들은 어떻게 속았나

서울 강남구에서 지난 13일 만난 코인 사기피해자 심미영씨(가명)가 작성한 계약서. 계약서를 담은 봉투에는 착한 개미들이 부자가 되는 그날까지라고 적혀 있다. 양다영 PD

 

지난 22일 오후, 심미영씨(50·가명)가 찾은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 사무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거액을 투자한 가상통화(코인) 발행업체 주소였지만 코인 업체가 입주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사무실 앞에 걸린 파란색 간판에는 낯선 영어만 적혀 있었다. 검색해보니 물류회사라고 나왔다.

 

착잡하네요.” 심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부터 다 거짓말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듣기로는 실제 사무실도 시골에 있는 비닐하우스래요.”

 

심씨가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C코인 피해자라 이름 붙은 온라인 단체대화방에 다른 이가 올린 사진이었다. 허허벌판에 놓인 검은색 비닐하우스 앞에 심씨가 애타게 찾던 업체 간판이 붙어 있었다. 심씨처럼 코인 사기를 당했다며 대화방에 모인 이들은 60명가량이다.

 

2017~2018년 불어닥친 코인 열풍은 강남 일대를 한 차례 휩쓸었다. ‘고수익을 미끼로 장밋빛 미래를 약속한 코인 업자들은 한몫을 챙긴 뒤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그 자리에는 피 같은 재산을 잃은 피해자들의 다급한 발길만 드문드문 이어진다. “5배에서 10배 수익을 보장한다는 유혹에 넘어갔던 이들은 그건 허상이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다단계 방식으로 순식간에 모집

주식 손실 본 사람 불안감 악용

 

옥장판이 된 코인

심씨는 지난해 6월 코인 업자들이 쏟아낸 말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들은 개당 600원 하는 코인이 5배 높은 3000원으로 세계 최대 거래소 바이낸스에 상장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자체 발행한 가상통화로 게임 아이템을 살 수 있고, 현금화도 가능하다고 했다. 이른바 돈 버는 게임(Play To Earn·P2E)’에 가상통화를 연동한 사업모델이었다.

 

평생 게임도, 코인도 모르고 살았던 심씨는 생소하고 어려운 용어들에 두려움이 앞섰다. 한편으로는 정말 돈을 벌 수 있을까?’ 호기심도 생겼다. 업자들은 집요하게 빈틈을 파고들었다. “P2E는 윤석열 대통령도 미는 정책이라며 조금씩 확신을 심었다. 상장에 문제가 생기면 투자금을 반환한다는 내용의 계약서도 내밀었다. 심씨는 네 차례에 걸쳐 총 32000만원을 넣었다.

 

그로부터 석 달, 희망과 절망이 숨 가쁘게 교차했다. 계약 2주 만에 ‘C코인가격이 30%나 오르자 심씨의 마음도 부풀었다. 얼마 후 이름도 생소한 작은 거래소에 상장되자마자 돌연 가격이 곤두박질쳤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바이낸스 상장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 1월 강남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한 심씨는 총판김모씨가 신용불량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책임을 피하려 계약서 문구를 교묘히 적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이때쯤이었다.

 

처음엔 불안해서 도저히 (투자를) 못하겠다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누나 같아서 그런다, 식사는 하셨냐, 한번 들르겠다 하면서 정말 살갑게 다가왔어요. 생각하면 전부 다 의도된 거였어요. 저는완전히 속은 거예요.” 심씨가 참았던 눈물을 보였다.

 

심씨가 겪은 일은 국내 가상통화 시장에서 자주 쓰는 사기 수법이다. 업자들은 인위적으로 거래량을 부풀리는 자전거래로 부실 코인의 가치를 띄운 뒤 고점에서 팔아 피해를 떠넘긴다. 얼마 전 발생한 강남 납치·살인 사건의 배경으로 지목된 ‘P코인도 비슷했다. 코인 발행사(재단), 코인 판매업자, 시세조종 담당자로 업무를 분담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데, 나중에는 서로 피해자라고 주장해 투자자들에게 혼란을 주는 경우가 많다.

 

코인 업자들이 투자자를 끌어모으는 패턴이 있다. 투자 정보를 퍼뜨리는 리딩방을 이용해 코인을 홍보하거나 다단계 판매방식으로 순식간에 투자자를 모은다. 다단계 판매란 물건을 산 소비자가 다시 판매자가 돼 다른 소비자를 끌어오는 피라미드형 판매 방식이다.

 

박성준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은 24과거에 옥장판 가치를 부풀려 다단계로 팔던 방식이 코인 사기에도 적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상통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시민들은 막연하게나마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가상통화는 다단계 사기에 딱 맞는 수단인 셈이라고 했다.

 

 

고수익·실패 땐 투자금 반환 약속

머뭇거리면 집요하게 사탕발림

온몸 명품 두른 업자, 혼을 쏙 빼

허상을 파는 사람들

3년 전 양모씨(35)4억원가량 손해를 본 ‘X코인도 다단계 수법을 활용한 사기 코인이었다. 총판 역할을 한 이모씨는 매월 투자금의 30%를 고정 수익으로 보장하겠다며 사람들을 꾀었다. 지인을 소개해 투자하게 만들면 마케팅 보너스를 지급한다는 조건도 내세웠다. 2~3배 재산을 불리는 건 시간문제로 보였다. “마케팅 보너스가 10%라고 하면, 1000만원 투자자 10명만 모아와도 1000만원이 생기는 거예요. 돈이 돈처럼 보이겠어요?” 양씨가 투자 구조도를 그려 보이면서 말했다.

 

양씨가 투자한 ‘X코인역시 석 달이 지나지 않아 가격이 폭락하고 매도가 제한(록업·lockup)됐다. 국내 대표 거래소인 빗썸에 상장돼 있던 이 코인은 20215월 상장폐지됐다. 현재 서울중앙지검이 수사 중인 이 사건은 양씨를 포함해 고소인만 36명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피해액은 50억원에 달한다. 피해자들은 실제 피해 액수를 모두 합하면 수백억원일 것이라고 말한다.

 

양씨는 코인 업자들이 허상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한다고 했다. “총판이라는 자는 온몸에 명품을 바르고 나타났어요. 비싼 차 타고, 비싼 시계 차고, ‘난 대학도 못 나온 ××이었는데하면서 성공담을 자랑하는 거예요. 가평에 큰 펜션을 빌려 사람들도 초대해 비싼 소고기를 대접하고사람 정신을 쏙 빼놓는 거죠.”

 

코인 업자들은 이미 크게 손실을 본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를 악용하기도 했다. 심씨는 ‘C코인으로 돈을 잃기 전 주식 리딩방에 발을 잘못 들여 이미 5억원 이상 손실을 본 터였다. “번호가 유출됐는지 하루에도 5~10통씩 투자를 권유하는 전화가 쏟아졌어요. 돈을 잃은 상태만 아니었어도 그렇게 올인하진 않았을 거예요.” 그는 투자금을 복구하는 게 너무 간절했다고 말했다.

 

피해자 뭉치지 못하게 만들기도

과거 옥장판 다단계 사기 닮아

사기 피해를 인지했다고 해서 투자자들이 곧장 신고하기도 쉽지 않다. 코인 업자들은 피해자들이 뭉치지 않게 하려 갖은 수법을 동원한다. ‘고소만 하지 않으면 돈을 돌려주겠다며 일부 피해자를 회유하거나 법적 대응을 위해 모인 피해자 단톡방에 프락치’(정보원)를 심기도 한다. 시간을 끌고 집단행동을 방해해 피해자들의 대응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신고한 이후에는 지난한 경찰 수사가 기다린다. 3년 전 ‘B코인3000만원을 넣었다가 사기를 당한 안정호씨(51·가명)경찰이 몇년째 수사를 질질 끄는 사이에 총판은 코인 이름만 바꿔가며 같은 수법으로 사람들을 속였다면서 같은 판매자가 등장하는 코인만 4개이고, 피해자도 수십명이라고 했다.

 

빨리 돈을 불리길 원하거나 계층 상승을 갈망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범죄의 표적이 됐다. 안씨는 막내가 아직 초등학생인데 퇴직할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노년층이 코인 사기에 빠지는 건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압박 때문이라고 했다. 평생 미용실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다는 심씨도 “30년간 일하며 5일 이상 쉬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어렸을 때 너무 가난한 집에서 자랐거든요. 가장 역할을 해야 해서 이를 악물고 살았어요. 서울에서 집 한 채 마련해보려고 돈을 모으고 모았는데.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경향 강은/김송이 기자

 

살아있는 돼지로 시위? 대구 이슬람 '돼지시위''반차별' 나선다

"반차별" 외치는 인권단체들 반대주민들은 "돼지 삶겠다"

공사가 재개된 대구 북구 이슬람사원 공사 현장에서 또 다른 '돼지 시위'가 예고된 가운데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국내 반차별 인권단체들이 "무슬림과 한국인 주민들의 공존"을 위한 연대투쟁에 나섰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장연 사무실에서 '대구 북구 이슬람사원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와 만나 "(이슬람 사원 건립은) 대구 지역만의 의제가 아니라 한국사회 중요한 반차별 투쟁"이라며 '대구 이슬람사원의 평화적 건립과 지역사회 인권·문화다양성 증진을 위한 기부 협약식'을 진행했다.

 

현재 대구 북구에선 공사 인력 부족 등을 문제로 일시 중단됐던 이슬람 사원 건립 공사가 3개월 만에 재개된 상태다. 사원은 이르면 오는 6월 완공 예정이지만, 사원 건립에 반대하고 있는 주민단체 '대현동 이슬람 사원 건립 반대 비대위' 등은 공사 재개를 명령한 지난해 9월의 대법 판결에 불복하며 공사 현장에서 돼지머리, 돼지고기 등을 활용한 '혐오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반대주민들은 공사가 재개된 지난 17일 현장에 업소용 냉장고를 들이며 '돼지머리'를 전시했다. 24<뉴스1> 보도에 따르면 비대위는 살아있는 돼지를 현장 인근에 데려와 또 다른돼지시위를 진행할 것이라 밝히기도 했다. 사원 앞에서 돼지고기를 삶거나 구워시식하는 형태의 시위도 계속될 예정이며, 비대위의 한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건물 완공 이후에도 계속 반대할 것"이라 말했다.

 

대구시와 북구청 등 관계부처에선 '이슬람사원이 완공되고 다면 주민들의 반발이나 갈등이 해결될 것'이라는 입장으로 사태를 방치하고 있다. 사원 측은 대법원 판결 이후 반대주민들이 삼겹살을 구워먹는 등 시위를 벌이자 해당 행위를 제지하고자 대구시와 북구청에 개입을 요청했으나, 북구청은 "돼지머리는 주민들에게 필요한 물건으로 이번 사건은 정부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입장을 발표하는 등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이에 이날 모인 인권단체들은 "이슬람사원 완공 이후에도 해당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무슬림 및 지역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저절로 해소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라며 "협약식을 통해 전달되는 이 기금은 '대구 이슬람사원 건립 지원'뿐만 아니라 건립 이후 '대구 지역사회 내 인권 및 문화다양성 증진'을 위한 활동에 쓰이며, 무슬림 유학생들이 지역사회 내에서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일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협약식에 참여한 박경석 전장연 공동대표는 "(차제연 측이) 전장연이 지하철에서 겪고 있는 차별의 문제와 대구에서 겪고 있는 이 문제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이 자리를 제안주셨다"라며 "기본적인 연대의 고리를 넘어서 서로가 많이 힘이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종걸 차제연 공동대표도 "반차별 투쟁이, 차별의 전선이 한 축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실감한다"라며 "앞으로도 전장연과 대구이슬람사원대책위뿐 아니라 전국 각지 반차별투쟁의 현장에 함께하며 연대의 계기를 만들어 가겠다"고 다짐했다.

 

경북대학교 유학생 무아즈 라작 씨는 최근 장애인 차별철폐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전장연 측에 "우리 모두 다 인생에서 특별한 능력(장애)을 가지게 되는 시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슬람의 관점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이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한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라며 "한국의 상황을 잘 몰라서 장애를 이유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모르지만 잘 극복해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말을 전했다.

 

해당 협약식은 지난 120일 시민 후원을 통해 "장애인권리예산·입법 투쟁을 지지하며 함께 합니다" 신문광고를 추진한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측의 제안으로 이루어졌다. 신문광고 이후 남은 후원액을 전장연과의 논의 끝에 이슬람사원대책위 측에 기부한 것이다. 차제연과 전장연은 "반차별 투쟁 및 반차별 운동의 연대를 가시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이날의 협약식을 기획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성별, 성정체성, 장애, 국적, 인종 등 개인의 정체성을 근거로 한 모든 차별에 반대하며 이를 위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시민사회 연대체다. 이들은 지난 1월에도 대구를 방문해 '대구 북구 이슬람사원 갈등과 혐오차별 방임하는 북구청 규탄 집중행동'에 나선 바 있다.

 

대구 이슬람 사원 건립을 둘러싼 돼지고기 시위 등은 국내에서 '혐오표현'을 활용하는 대표적인 시위로 꼽히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3월 발표한 위원장 명의 성명에서 해당 시위가 "인종과 종교를 이유로 한 소수자에 대한 전형적인 혐오표현"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유엔(UN)은 지난 2019년 혐오표현에 대해 "종교, 민족, 국적, 인종, 피부색, 혈통, 성별과 같은 정체성을 규정하는 요소를 근거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경멸하거나 차별하는 언어를 사용하여 말, , 행동 등으로 공격하는 모든 형태의 표현"이라 규정했다. 한국은 1965년 유엔(UN) 총회에서 채택한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에 지난 1978년 가입한 상태다.

프레시안 한예섭 기자

 

 

‘JMS 수련원있는 금산에서 벌어진 일

충남 금산에 거주하는 JMS 신자들은 대략 3000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을 바라보는 금산군민들의 속내는 다소 복잡하다. JMS는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에 행운인가, 독이 든 성배인가.

충남 금산에 거주하는 이지수씨(가명)는 몇 년 전 껄끄러운 일을 겪었다. 운동 학원 강습 전 몸을 풀던 이씨는 지인과 잡담을 하고 있었다. 대화 주제는 기독교복음선교회(JMS)였다. 한창 JMS 교주 정명석에 대한 비판을 하던 이들 눈에 박수혜씨(가명)의 모습이 들어왔다. 박씨는 대화에 관심이 없는 듯 구석에서 혼자 조용히 몸을 풀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지인이 혹시 종교가 있느냐고 묻자 박수혜씨는 “JMS라고 차갑게 대답했다. 당황한 지인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거니까라고 말하며 얼버무리더니, 이내 JMS 사람들은 정명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박수혜씨가 한마디로 딱 잘라 대답했다. “우리는 (정명석을) 메시아라고 해요.”

 

이지수씨가 겪은 일은 상징적이다. JMS 신자들이 대거 이주한 충남 금산군에서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해프닝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에 따르면, JMS 신자들은 2000년대 중반 무렵부터 금산군에 본격적으로 이주해오기 시작했다. 20년이 지난 현재, 주민들은 금산군에 거주하는 JMS 신자들의 규모를 3000명 내외로 추정한다. 정확한 통계에 근거한 숫자는 아니다. 다만 주민들이 입 모아 말하는 ‘3000이라는 숫자는 그들이 생활에서 체감하는 JMS의 영향력을 뜻한다. 면 단위 인구와 맞먹는 숫자다. 인구가 5만명에 불과한 금산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JMS 신자들이 금산으로 이주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교주인 정명석의 고향이 금산이기 때문이다. 정명석을 메시아라고 생각하는 JMS 교인들에게 금산은 일종의 성지다. JMS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정명석은 1945년 금산군 진산면 석막리에서 태어났다. 정명석이 이곳에 이른바 월명동 자연성전(월명동 수련원)’을 지은 이유이기도 하다. 1999년 성폭행 및 공금횡령 혐의로 수사가 시작되자 정명석은 해외로 도피했지만, ‘성지를 향한 JMS 신자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JMS 신자들은 특히 JMS의 본산으로 여겨지는 금산군 진산면 일대로 대거 이주했다. 월명동 수련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한 진산면 석막리 주민 김태근씨(가명)는 석막리 거주 가구 3분의 1가량이 JMS 신자라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JMS는 석막리 주민이 사망하거나 이주해 빈집이 된 건물을 하나씩 사들였다. 거래가 쉽지 않을 시골 마을의 집을 웃돈까지 얹어서 사주기에 주민들 입장에서는 JMS와 거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김씨는 “JMS 신자들과 석막리 마을 주민들의 관계도 좋다. 마을 행사가 있을 때면 찬조금을 내주고, 마을회관도 지어줬다라고 말했다.

금산군 진산면에 위치한, 정명석의 글씨체로 추정되는 간판이 달린 다세대주택의 모습.

시사IN 박미소

 

실제로 금산군 진산면 일대에는 JMS의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정명석의 글씨체로 추정되는 간판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진산면사무소 인근에서 월명동 수련원 방면으로 향하는 길에 도열한 건물들도 마찬가지다. 표지판에 쓰인 건물 주소 또는 다세대주택 외벽에 쓰인 건물명의 필체가 정명석 글씨체로 추정된다. 이런 건물들은 최근까지도 지어졌다. JMS 신자들의 이주가 근래까지 이어졌음을 추정하게 하는 대목이다.

 

JMS 신자들의 이주 여파는 학교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몇 년 전까지 A 초등학교에서 근무했던 한 교사에 따르면, 당시 학생 중 70% 이상이 JMS 신자의 자녀들이었다. 이 교사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A 초등학교 정교사 절반 이상이 JMS 신자이기도 했다. A 초등학교는 교주 정명석의 출신 학교로 알려진 곳이다. 비단 최근에만 일어난 현상이 아니다. 10년 전 자녀를 A 초등학교에 보낸 한 학부모는 당시 자녀와 같은 학년 학생 18명 중 16명이 JMS 신자의 자녀였다고 말했다.

금산군 진산면에 위치한 JMS ‘월명동 수련원전경.시사IN 박미소

 

JMS 목사가 성폭력상담센터 운영하기도

JMS 신자들의 거주 및 활동 범위가 진산면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금산군 중심지인 금산읍에는 3층짜리 JMS 교회가 세워져 있고, JMS 신자들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점포도 다수다. JMS 교인들이 운영하는 기관 중 공적 성격을 띤 곳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지역아동센터다. 한 현직 지역아동센터 원장에 따르면, 금산군에 위치한 지역아동센터 16곳 중 4곳이 JMS 신자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며, 그중 두 곳은 금산읍에 있다.

 

JMS 목사가 성폭력상담센터를 운영 중인 경우도 있었다. 시사IN취재 결과 금산 B 성폭력상담센터 소장 황 아무개씨는 JMS 목사로 확인됐다. 성범죄 유죄판결을 받은 데다 최근 성폭력 혐의로 다시 구속된 교주를 감싸고, 성폭력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종교단체의 목사가 성폭력 피해자를 상담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사IN은 금산 B 성폭력상담센터 황 아무개 소장에게 JMS 목사가 맞는지, JMS 목사가 맞다면 정명석의 성폭력 혐의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나 황 소장은 성폭력상담센터를 이용하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 보도를 하지 말아달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금산군청에 확인해본 결과, B 성폭력상담센터는 소장 황 아무개씨가 운영하는 개인 시설이었다. 황씨는 B 성폭력상담센터 소장 자격으로 초··고등학교에 성폭력 예방 교육을 다니는 한편, 금산군공무원노조와 양해각서(MOU)를 맺기도 했다.

 

B 성폭력상담센터는 2017년부터 군청에서 예산 지원도 받아왔다. 인건비 등 운영지원 보조금 명목이다. 지난 한 해에만 B 성폭력상담센터가 받은 지원금이 총 12000만원. 군청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황 아무개 소장이 JMS 신자란 이야기는 들었지만 목사인 줄은 몰랐다. 황 소장이 실제 JMS 신자인지 확인을 따로 하진 않았다. 개인 시설이라고 해도 JMS 관련한 일을 하는 게 아니기에 황 소장을 제지할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다라고 말했다.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방영 이후 뜨거워진 비판 여론과 달리, JMS 신자들에 대한 금산군민들의 속내는 다소 복잡하다. JMS 신자들이 금산에 끼치는 실질적 악영향은 사실상 없거나 제한적이다. 오히려 JMS 신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종교를 드러내지 않는다. 과거부터 이단 또는 사이비 취급을 받아왔고, 그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가까운 관계가 아니면 JMS 교회로 전도하려는 경향도 낮다고 주민들은 이야기한다. 한 주민은 나는 신이다가 공개되기 전까지만 해도 JMS 신도들에 대한 안타까운 정서가 있었다. 신자 개인은 잘못한 게 없는데 차별받는다는 이유였다라고 말했다.

 

반면 JMS 신자들이 금산에 가져다주는 이점은 확실하다. 지방 소멸 위기에 처한 금산 입장에서는 유입 인구를 늘리는 것이 절실하다. 특히 지방 소도시에서 귀해진 젊은 사람이 유입된다는 장점이 있다. 지난 20년간 금산에 거주한 최동철씨(가명)는 이렇게 설명한다. “지방에서는 대학을 가기 위해 고향을 떠나고, 졸업 후엔 고향에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데 JMS 신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금산으로 찾아온다. 금산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을 리 없다.”

 

실제로 금산의 인구 감소 및 청년 유출은 심각한 수준이다. 2010년부터 13년간 금산군 인구는 56190명에서 562명으로 약 10.9% 감소했다. 청년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같은 기간 금산군 청년(20~34) 인구는 9515명에서 4978명으로 47.6%나 줄었다. 금산이 소멸 고위험지역이자 ·중년 유출형 인구구조를 갖춘 지역으로 꼽힌 이유다. 지방 농촌 소도시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지방 소멸 위기와 청년 부족 문제는 JMS가 금산에서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배경이 됐다.

33일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JMS 교주 정명석의 성범죄 혐의를 다룬다.넷플릭스 화면 갈무리

 

온라인 커뮤니티따로 만든 이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젊은 대학 졸업자가 필요한 업종에서 JMS 신도들은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됐다. 요양원을 운영하는 임숙자씨(가명)는 최대 8명까지 JMS 신도를 고용한 적이 있다. 금산 지역에서 간호사, 물리치료사는 고급 인력에 속한다. 대학에서 관련 학과를 졸업한 후 금산에 돌아오는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임씨는 우리 요양원에서 고용했던 간호사는 전부 JMS 신자였다. 와서 일도 잘하고, 누구에게 피해를 준 적도 없다. 적어도 나는 JMS 덕을 봤다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대졸자를 구하는 다른 업종에서도 JMS 신자들은 인력수급 최후의 보루로 여겨진다.

 

폐교 위기에 처한 학교 입장에서도 JMS 신도들은 반가운 존재다. 최동철씨는 수년 전 학교 살리기 운동을 한 적이 있었다. 자녀가 다니는 C 초등학교가 폐교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당시 C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은 4명에 불과했는데, 자신의 자녀를 제외하곤 모두 JMS 신자의 자녀였다. 자녀 친구들의 통학까지 책임지며 학교를 살리려 했던 최씨는 아이들의 종교를 알게 되고 찜찜한 마음이 들었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혹시라도 그 아이들이 전학을 가면 학교가 폐교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JMS 신자들의 유입을 반기는 것은 아니다. 교주 정명석을 신격화한 교리와 정명석의 성범죄 전과로 JMS 신자와의 동거를 불편하게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본의 아니게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금산에서 사업을 하는 한 자영업자는 금산에서 처음 보는 업종의 가게가 생기면 금산 사람들은 외부 사람인 JMS 신자가 이주해 개업하지 않았을까 하고 일단 의심하고 경계한다. 혹시 JMS가 아니냐고 전화가 온다. 그 자체로 꽤 피곤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고태영씨(가명)는 지난 3월 한 익명의 JMS 교인으로부터 고소 위협을 받기도 했다. 그가 활동하는 금산 지역 인터넷 카페에 쓴 글 때문이었다. 카페에 JMS를 비판하는 게시글을 올리자 자신을 JMS 교인이라고 소개한 한 카페 회원이 고씨에게 쪽지를 보내왔다. 카페에 올린 JMS 관련 글이 명예훼손에 해당하며, 글을 삭제하지 않을 시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고태영씨가 활동하던 카페는 애초에 JMS 교인들을 피해서 온 대안 커뮤니티였다. JMS 교인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D 카페는 금산 지역 인터넷 커뮤니티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겉보기에는 보통 지역 친목 커뮤니티와 비슷하지만, 단 한 가지 금기가 있다. 바로 정명석 및 JMS에 관한 언급이었다. JMS와 관련한 글을 올리면 여지없이 삭제됐다. 그럼에도 JMS를 비판하는 글을 꾸준히 올리는 회원은 카페에서 강퇴당했다. 이에 반발한 사람들이 대안으로 F 카페를 만들었고, 일종의 피난처처럼 이용해왔다. 그러나 이 F 카페에서도 고씨는 자유롭게 JMS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반대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JMS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과거 JMS 교인이었다고 말하는 박호영씨(가명)장사 목적으로 JMS에 들어오는 사람이 많다라고 말한다. 지인들이 서로 물건을 팔아주듯, JMS에 입교하면 장사가 더 잘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는 것이다. 박씨는 “JMS가 한 가게 팔아주려고 다른 가게 전부에 욕먹는 일을 감수하겠나. 결국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나가는 사람이 많았다라고 말했다. 김선규씨(가명)의 아버지는 땅을 팔고자 JMS에 입교하기도 했다. JMS가 금산 지역 부동산을 사들인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JMS 입교증까지 받았지만, 기대와 달리 JMS 측은 땅을 사주지 않았다. 이에 실망한 아버지가 JMS에 발걸음을 끊었다고 김씨는 말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방영 이후 금산군 일대에 붙은 현수막들. JMS에 대한 지역 내 찬반 여론을 보여준다.시사IN 포토

 

JMS가 유권자인 지역 정치권

금산 지역에 JMS 신도 인구가 늘어나다 보니, 금산 지역 정치권 역시 JMS 측의 눈치를 보게 됐다. 금산 전체 인구는 줄어드는 반면 JMS 신자의 수는 늘어나기 때문이다. 금산 지역 정치에 밝은 한 인사는 시사IN금산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 중에서 JMS와 관계를 맺지 않은 이가 있을까? 지역 정치권 인사들은 JMS 신자들을 하나의 표 묶음으로 보기 때문에 자연스레 이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라고 말했다.

 

JMS 역시 지역 정치 인사들과 접점을 늘려나가려는 노력을 했다. 과거 JMS 홍보실에서 일했던 배 아무개 목사는 금산군배드민턴협회장, 한국문인협회 금산지부장을 동시에 맡으며 지역에서 영향력을 키웠다. 금산중앙신문보도에 따르면, 배 목사는 박범인 금산군수가 2018년 군수 예비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할 때 ‘JMS 목사직함을 내걸고 참석했다. 배 목사는 지역 인터넷 언론사 청솔뉴스의 발행인이기도 했다. 청솔뉴스48일에도 JMS 관계자로 추정되는 기자의 보도를 통해 정명석 비난 여론에 대한 JMS 관계자의 입장을 전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나는 신이다가 공개된 이후 JMS 신도들은 몸을 낮추기 시작했다. 정명석의 글씨체로 걸려 있던 가게 간판들도 평범한 간판으로 교체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반면 JMS를 둘러싼 갈등이 가시화된 경우도 있다. 지난달 금산군기독교연합회는 우리 자녀 걱정된다. 성폭력을 비호하는 JMS 해체하라는 문구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그러자 이번엔 기독교연합회를 비판하는 두 가지 현수막이 내걸렸다(위 사진 참조). 기독교연합회 측의 JMS 비판 현수막은 다수의 민원으로 인해 곧 철거됐다.

 

교주 정명석에게 유죄가 선고될 경우 JMS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금산 주민들은 저마다 다른 예측을 했다. 다만 JMS 신도들이 금산에서 빠져나갈 것이라는 예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만약 JMS 신도들이 한꺼번에 지역에서 빠져나간다면, 그 또한 금산 주민들에게 달갑지 않은 일이 된다.

 

금산 지역사회의 변화와 긴장은 비단 이 지역만의 일은 아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223월 발표한 소멸 위험지역은 전국 228개 시군구 49.6%113곳에 달한다. 이들 지역 대부분이 금산군이 처한 사정과 비슷하다. 청년은 없고, 인프라는 악화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금산은 사회적 공분을 사는 종교단체 구성원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갈 것인가. 지역은 이들의 지속적인 이주를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 JMS와의 공존은 여전히 금산 주민들에게 숙제로 남았다.

시사인 금산/글 주하은 기자·사진 박미소 기자

부자 될 수 있으면 간다"지만 외면받는 농촌...현대차에는 18만명 몰려

농가는 급속하게 줄어들고 늙어가고 있다. 지난해 농가인구 2명 중 1명은 65세 이상의 고령인구다. 숫자도 70대를 제외하면 모든 연령대에서 감소했다. 농업인구 감소를 넘어 농촌 소멸이 현실화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농업인력의 수혈이 불가피하지만, 청년들의 발걸음은 쉽게 농촌을 향하지 않는다. 정부가 지원하는 청년후계농 지원이 지난해 소폭 늘어 1.95:1을 기록하는 동안 현대자동차 생산직 채용에는 18만명이 몰려 500:1에 달하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2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농가는 1023000가구, 농가인구는 2166000명이다. 고령화에 따른 농업 포기와 전업 등의 영향으로 전년보다 농가는 8000가구(0.8%), 농가인구는 5만명(2.3%) 감소했다.

 

인구 구성에서는 60대 이하 모든 연령 구간에서 감소했고, 70대 이상 인구만 4.9% 증가했다. 아직까지 신규 유입으로 활력을 찾기보다, 기존 농가의 노후와 폐업이 지속되는 모습이다.

 

청년들이 농업을 진로로 염두에 두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수익의 불확실성이다. '대기업 사무직 선호'로 여겨졌던 기존의 청년 취업 인식은 이번 전국민적인 호응을 얻었던 현대차 채용에서 크게 뒤집어진 모양새다. 울산, 전북 전주, 충남 아산 등 지방 공장 근무가 필연적이었음에도 약 1억여원의 연봉과 대기업 복지가 청년들의 눈길을 잡아 끌었다.

 

반대로 농가의 수익성은 일반적인 취업길에 비해서도 취약한 수준이다. 농가의 '판매 금액'1000만원 미만인 농가 비율은 전체의 65.1%로 과반을 넘은데다 지난해보다 1.2%p 늘어났다. 1억원 이상인 농가의 비중도 3.8%에 그쳤다.

 

농사를 지을 부지, 종자, 비료, 이외 농기계 등 제반비용 등을 고려할 때 농업은 초기 투입 자본이 높은 산업이다. 정부는 청년농을 대상으로 월 110만원 수준의 정착 지원금과 함께 200억원 규모의 청년농 지원 펀드를 결성하고 있지만, 여전히 진로로서의 위험도는 높은 수준이다.

 

1인 사업체에 가까운 농가 특성상 농산품 시장 상황에 따라 초기 자본이 모두 부채로 바뀔 수도 있다. 2021년 농·축협 조합원에 대한 강제집행 금액은 1106억 원으로 2017615억 원에 비해 1.8배 늘어났다.

귀농, 귀촌가구 소득 /사진=농림축산식품

성공신화처럼 보이는 성공한 청년농이 대부분 기존의 자본을 물려받은 '승계농'이라는 점 역시 청년들의 박탈감을 키우고 있다. 2019년 발표된 한국농수산대학 졸업생 4353명의 경영형태별 농가소득을 분석에서, 승계농의 연간 평균 소득은 11934만원이었지만 창업농은 3730만원 수준이었다.

 

도시에서 통용되는 '수저론'을 농촌에 간다고 피할 수는 없다. 오히려 연차가 쌓일 수록 도시와의 격차가 벌어질 가능성도 크다. 청년들이 기피하는 중소기업에서도 '내일채움공제' 등으로 목돈을 쥘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만, 사업체에 가까운 농가는 3년까지 지원되는 정착지원금을 제외하면 개인의 수완에 수입의 변동성을 맡기는 형태다. 안정적인 생활보다 '3년 안에 사업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모험에 가까운 모양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고려해 수입 안정화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농업재해보험 대상 품목을 올해 70개에서 202780개까지 확대하고 농업직불제를 확대·개편하기로 했다. 농업직불제 관련예산도 2027년까지 5조원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벼농사보다 식량 자급률이 낮은 전략 작물 지원을 확대하고, 해당 농가로의 청년 유입을 늘리겠다는 취지다. 고령농에게 매입한 농지는 청년농에게 최우선 지급하고, 청년농이 초기 소득 불안정을 겪지 않도록 지급하는 영농정착지원금도 지난해 80~100만원에서 올해 90~110만원으로 늘렸다.

chlee1@fnnews.com 이창훈 기자

 

지적재산권 싹 가져가는 넷플릭스 투자, 정말 도움만 될까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4(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영빈관 접견장에서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가 한국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발표한 뒤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24(현지시각)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방문 첫 일정으로 만난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CEO)가 향후 4년간 케이(K)콘텐츠에 25억달러(33375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서랜도스는 이번에 발표한 투자금액이 “2016년 이후 현재까지 한국 창작물에 집행한 투자액(15000억원)의 두배에 달하는 규모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이 방미 일정 중 처음 만난 기업인이 넷플릭스 대표라는 건 나날이 커지는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규모와 높아진 케이콘텐츠의 위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날 발표가 실제로 케이콘텐츠의 도약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을지는 의견이 엇갈린다.

 

일단 윤대통령이 넷플릭스의 파격적인 투자 결정을 환영한다고 말한 투자 규모다. 2016년 한국에 진출한 넷플릭스는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를 시작으로 2019년 드라마 <킹덤>을 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작품 투자를 시작했다. 넷플릭스가 공식적으로 밝힌 2021년 한국작품 투자 규모는 5000억원으로 오리지널 시리즈 15편을 제작했다. 이후 공식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업계는 25편을 내놓은 지난해 투자규모가 8000억원 규모에 이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올해는 28편의 오리지널을 내놓는다. 이미 한 해 8000억원 이상을 한국 작품에 투자하고 있는 터여서, 지난해와 같은 규모로만 4년간 투자해도 총투자액은 32000억원이 되는 셈이다. 넷플릭스가 이처럼 한국 투자를 늘리는 이유는 <오징어 게임> 이후 주요 한국 드라마와 영화들이 글로벌 시청시간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데다 여전히 가성비라는 측면에서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 재주는 제작사가 넘고 돈은 넷플릭스가 가져간다는 비판이 나왔던 콘텐츠 아이피(지적재산권·IP) 문제도 여전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넷플릭스가 제작비 전액을 대는 대신 모든 지적재산권을 넷플릭스가 가져간다. 당장 제작비가 궁한 제작사들은 넷플릭스에 줄을 설 수밖에 없지만 부가적인 수익창출은 기대할 수 없다. 영상물뿐 아니라 책, 캐릭터 사업 등 갈수록 다양해지는 부가사업의 판권도 마찬가지다. 드라마 제작을 병행하는 한 영화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한 작품이 성공하면 출연배우의 전작에 대한 수요가 생기고 이런 것들이 적지 않게 부가수익을 내는데 넷플릭스에 판매하면 이런 장기적인 수익 창출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작은 아씨들>등 주요 인기 드라마들은 케이블 채널에서 선공개 뒤 넷플릭스에 공개하는 식으로 아이피를 유지하기도 했다.

 

넷플릭스 쏠림 현상이 커지면서 티빙, 웨이브 등 국내 토종 오티티(OTT)들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티빙은 매출 2476억원을 거둬 전년보다 갑절 가까이 늘었지만 영업손실도 1192억원으로 전년 762억원에 견줘 50% 가까이 늘었다. 가입자 정체를 겪고 있는 웨이브의 영업손실은 1217억원으로 전년보다 2배가 넘는 적자폭을 기록했다. 두 회사 모두 후발주자로 아직 투자단계라고는 하지만 당장 오리지널 작품 제작 편수가 넷플릭스의 절반에도 이르지 못한다.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는 오티티 공개를 염두에 둔 작품을 준비할 때 넷플릭스 우선 순위 기류가 더 강해졌다. 특히 제작비 규모가 제법 되는 작품을 준비할 때 다른 오티티는 아예 제안도 못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넷플릭스 줄서기가 갈수록 심해질 경우 판매 협상에서 넷플릭스가 슈퍼갑이 되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한 영화제작사 대표는 이전에는 어떤 작품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드는 게 제작사의 결정이었고 이걸 넷플릭스로 가져갈지 개봉작으로 가져갈지도 제작사 몫이었지만 지금처럼 한국영화시장이 어려워지고 넷플릭스 쏠림이 심해지면 제작 방식에 대한 결정에도 넷플릭스가 영향을 미치는 슈퍼갑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일본 무릎오역 아니었다WP, 발언 원문 공개

일본 무릎 꿇으라는 생각 저는못 받아들여

국민의힘 일본이 못 받아들인다는 뜻억지 주장

국민의힘이 지난 24일 공개된 윤석열 대통령의 <워싱턴포스트> 인터뷰 가운데 “100년 전 일을 가지고 (일본에)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 발언을 두고 오역이라고 주장하고 나서자, 인터뷰를 한 해당 기자가 발언 원문을 공개했다.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공개한 녹취에서 윤 대통령은 “100년 전의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이거는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24일 윤 대통령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윤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대일 외교를 두고 지금 유럽에서는 참혹한 전쟁을 겪고도 미래를 위해 전쟁 당사국들이 협력하고 있다“100년 전 일을 가지고 (일본에)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담화를 연상시키는 발언으로, 과거사에 눈감은 채 한-일 관계 개선을 내세워 미래만을 강조하는 윤 대통령의 저자세 일방주의대일 인식이 또다시 드러나면서 파문이 일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결코 해선 안 될 발언”(이재명 당대표) “한반도 100년 이내 역사에서 최악의 대통령”(김용민 민주당 의원) 등의 비판이 나왔다.

국민의힘은 즉각 방어에 나섰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어 윤 대통령은 주어를 생략한 채 해당 문장을 사용했다“(일본에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것은) 일본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상식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25<문화방송>(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인터뷰에서도 “(윤 대통령 발언) 한글 원문을 보면 주어가 빠져 있다.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게 영어 번역이 됐다고 했다.

 

같은 당 김병민 최고위원도 이날 <한국방송>(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진의 있는 그대로 가지고 썼는지에 대해서도 한번 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오역의혹을 제기했다. 해당 인터뷰 원문에서는 ‘I can’t accept the notion’(저는 그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I(저는)’라는 주어가 명시돼 있는데, 국민의힘은 일본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상식적이라며 외신의 오역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국민의힘이 오역주장을 하고 나서자, 윤 대통령을 인터뷰한 <워싱턴포스트> 미셸 예희 리 기자는 이날 오전 자신의 에스엔에스(SNS)오역 논란과 관련해 녹음을 다시 확인했다며 발언 원문을 공개했다. 리 기자가 공개한 원문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100년 전에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이거는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며 저는이라는 주어가 언급됐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일본이 파묻은 광화문 왕의 계단’ 100년 만에 세상 밖으로

광화문 앞 월대 터 발굴일제 전차선로에 훼손

최근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한 광화문 앞 월대 유적 현장을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휘어진 브이(V)자 모양으로 갈라진 일제강점기 부설 전차선로의 자취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선로가 갈라지는 중앙부 지점 바로 아래에 월대의 어도와 남쪽 계단 돌출 부분이 확인된다. 사진도판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 제공

 

왕의 계단이 나타났다.

100년 전 전차 철로에 뭉개진 채 땅속에 파묻혔던 존귀한 계단이 다시 땅 위의 햇살을 받는다.

 

조선왕조를 대표하는 법궁 건축물로 1866년 고종과 흥선대원군이 중건한 경복궁. 이 궁궐의 위엄 어린 존재감을 정문인 광화문 앞쪽 들머리에서 가장 먼저 드러냈던 통로시설물 월대의 어도(임금만이 가는 길)계단과 기단부 등의 옛 자취가 최근 뚜렷한 모습을 드러냈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9월부터 서울 광화문 문루 앞 대로 아래 땅속을 파헤쳐 집중 조사한 끝에 문루 들머리로 진입하는 인공통로 얼개의 구조물인 월대의 주요 자취를 찾아냈다고 25일 발표했다.

 

조사 내용을 보면, 월대 전체 규모는 남북길이 48.7m에 동서 너비 29.7m에 달한다. 유적의 핵심인 어도는 광화문 중앙문과 잇닿는 너비 약 7m의 통로로 밝혀졌다. 비교적 원형이 남은 월대 동쪽 유적을 발굴하면서 고종의 경복궁 중건 당시 월대의 전체 모습 등도 재구성할 수 있게 됐다. 월대 복원을 위한 실물자료를 다량 확보한 게 가장 큰 성과라고 한다.

광화문 앞 월대 유적을 설명하기 위한 합성사진. 누렇게 표시된 부분이 월대 권역이다. 사진도판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 제공

1923년께 찍은 것으로 추정하는 광화문과 그 앞 월대의 풍경. 난간석을 둘렀지만, 남쪽 들머리 왕의 어도는 대부분 경사로로 바뀌었고 서쪽과 동쪽 끝부분에만 계단 얼개를 남겨놓았다. 사진도판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 제공

1917년께 촬영한 광화문과 앞 모습. 월대의 난간석은 있으나 계단은 사라지고 어도와 좌우 계단은 모두 경사로로 바뀌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유리건판 사진이다. 사진도판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 제공

 

1865~186833개월간의 경복궁 중건 공사 과정을 담은 <경복궁 영건일기> 기록과 1890년대 이후 사진자료를 보면, 광화문 월대는 장대석을 다듬어 만든 길쭉한 기단석과 계단석, 난간석을 두르고 내부를 흙으로 채운 건축구조물이었다. 국내에서 궁궐 정문에 난간석을 두르고 기단을 쌓은 사례로는 유일한 것이었다.

 

실제로 발굴 조사한 결과도 기록과 거의 일치했다. 하지만, 월대 터의 세부 구조는 간단치 않았다. 우선 동쪽과 서쪽 외곽에 다듬어진 장대석(길이 120~270, 너비 30~50, 두께 20~40를 써서 2단의 기단을 쌓았다. 기단석 하부에 여러 개의 지대석을 놓고 붉은 점토와 깬돌을 보강해 기초를 다진 뒤 서로 다른 성질의 흙을 번갈아가면서 쌓는 뒷채움 방식으로 주변보다 높게 대를 이룬 시설물을 구축했다. 월대 남쪽에도 장대석을 써서 계단을 만들었다. 어도와 연결되는 중앙부는 소맷돌을 써서 동쪽 서쪽 계단과 분리한 것이 특징적이다.

 

하지만, 어도계단 터는 일제강점 초기인 1923년 전차선로에 의해 훼손되고 파묻혔고 부재들도 흩어졌다. 다행히도 조사과정에서 소맷돌을 받친 지대석이 나와 월대 원형을 복원하는 데 소중한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월대 남쪽 계단터. 어도의 시작인 돌출 계단터가 왼쪽에 일부분 보이는데, 그 위를 일제강점기 부설한 전차 선로의 자취가 덮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도판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 제공

 

월대 남쪽 어도 계단터를 측면에서 본 모습. 사진도판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 제공

 

1860년대 고종 년간에 처음 쌓은 뒤 1920년대 일제에 의해 묻힐 때까지 월대에는 크게 4단계의 변화과정이 있었다는 점도 이번 조사과정에서 명확해졌다.

1단계는 월대 축조 당시의 양상이다. 남쪽에 경계가 나누어진 3개 계단이 있었고 월대를 위에서 내려다본 평면형태는 역철자형()이었다. 2단계에선 중앙의 어도계단 터가 경사진 길로 바뀌었고, 3단계에서는 경사로 범위가 확장되고 계단이 동·서 외곽으로 축소 변형됐으며 처음 외줄 모양의 전차선로가 놓여진다. 4단계는 1920년대 상황으로 전차선로가 겹줄이 되어 월대 시설이 본격적으로 파괴되면서 난간석 등도 철거됐다. 광화문 문루가 경복궁 궁역 동쪽 담장으로 이전할 때 월대의 시설 파편들 또한 근대 도로의 부재로 쓰였다는 추정이 나온다.

광화문 앞 월대 유적을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휘어진 브이(V)자 형으로 전철 선로가 갈라지는 시작 지점 아래에 월대 남쪽 어도 중앙계단의 돌출부가 깔려있는 모습과 북쪽으로 이어지는 어도의 흔적, 남쪽 계단 양옆 동서 계단 부분의 자취가 보인다. 사진도판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 제공

월대 유적을 설명하기 위해 어도계단지, 어도흔적, 동서편 계단지 등 각 구역별로 색을 입힌 합성사진. 사진도판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 제공

광화문 앞 월대가 복원됐을 때 모습을 상상해 그린 예시도. 문 앞에 월대 권역 공간이 생기면서 차량이 다니는 대로는 월대 공간을 비켜나 그 아래로 휘어진 형상을 띠게 된다. 사진도판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 제공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1920년대에 훼손된 뒤 동구릉 등에 옮겨졌던 난간석, 하엽석 등의 월대 부재를 다시 써서 월대를 복원한다는 방침을 세워놓았다. 전통적인 재료와 기법을 쓰는 장인들의 작업을 통해 월대를 진정성 있는 역사 유적으로 되살리겠다고 본부 쪽은 밝혔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도판 문화재청 제공

 

사도광산 근무 일본인 강제동원은 사실·일 시민이 밝혔다

강제동원 공동조사보고서 발간

사도광산 주변에는 80여년 전 조선인 노동자들이 생활했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광산 뒤쪽 빈터에 돌무더기가 쌓인 곳이 있는데, 조선인 노동자들이 매일 밥을 먹던 식당 자리다. 안내판 하나 없이 휑한 모습이다. 사도/김소연 특파원

 

가동 나쁜 자(일을 못하는 이)에게 탄압 정책을 취하고 근로과에 데려와 때리는데 차마 보고 있을 수 없는 폭력이었다.”

 

옛 미쓰비시광업이 운영하던 니가타현 사도시 사도광산의 노무 담당자 스기모토 소지는 1974년 이 광산의 역사를 조사하던 혼마 도라오(1926~2006)에게 편지를 보내온다. 스기모토는 19401월 충청남도 논산에서 조선인 100(실제 광산 도착은 98)집단 모집방식으로 강제동원한 인물이었다.

편지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여부를 놓고 현재 한-일 간에 치열한 줄다리기가 진행 중인 사도광산으로 조선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동원되고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적혀 있다. “그들 입장(조선인 노동자)에서 본다면 강제노동을 당하고 1년 모집이 수년으로 연기돼, 반 정도 자포자기인 상태가 됐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는 사실이었다.”

 

한국 민족문제연구소와 조선인 강제동원과 관련한 역사의 진실을 파헤쳐온 일본 시민단체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가 24일 사도광산의 강제노동 실태를 규명한 한·일 시민 공동조사보고서 사도광산과 조선인 강제동원을 내놨다.

 

·일 시민들은 일본 정부·경찰이 만든 18개의 공문서, 스기모토 등 노무계 직원의 증언, 2004년 설립된 한국 정부의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위원회)에 접수된 피해신고(148명이 피해자로 인정) 내용 등을 종합 검토해 사도광산으로 끌려갔던 조선인 1519명의 강제노동 실태를 종합적으로 규명해냈다. ·일 시민들은 이 가운데 700여명의 명부를 완성했고, 18명의 사망 실태를 확인했다.

미쓰비시 사도광산의 노무 담당자 스기모토 소지가 사도광산의 역사를 조하하던 혼마 도라오에게 1974년 보내온 편지. 조선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광산으로 동원되고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가 적나라하게 적혀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조선인 노동자들은 광산에 말 그대로 강제동원됐다. 스기모토는 모집에 앞서 희망지역·고용기간·직종 등을 적어 조선총독부에 제출했고 희망지역에서 노동자들을 할당받기 위해 총독부·도청·군청 관계자에게 외교전술”(접대를 의미하는 말)을 사용했다. 조선총독부의 행정력은 철저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가동됐다. 군청의 노무 담당자가 면사무소의 노무 담당자를 독촉해 인원을 모으면 경찰이 사상 등 신원조회를 해 탄광으로 보냈다.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유봉철(1916년생·논산)“1940년 사도광산에 동원됐다. 논산의 학교 교정에 모였다. 100명 정도가 논산역에서 부산을 경유해 사도로 끌려갔다고 말했다.

같이 동원됐던 김문국(1913년생·논산)귀국 후 진폐증을 앓게 돼 숨이 가빠 이불을 접어 등에 기대면 겨우 숨을 쉴 수 있는 상태로 몸이 망가졌다. 그는 치료와 생계를 위해 논밭을 팔아야 했고 40대에 숨져 가족에게 거액의 빚을 남겼다.

 

윤종광(1922년생·청양)“1941년 부모,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아내를 남겨두고 동원됐고 처음에는 근무기간 2년이라고 했지만 아무 설명 없이 갱신됐다는 증언을 남겼다.

김수형(1928·청주)가족이 많은 집에서 먼저 징용을 가야 한다며 면서기와 보국대 담당자가 와 동원해 갔다고 말했다. 이런 방식으로 1940646명 등 총 1519명이 광산에 끌려갔다.

노동 환경은 극히 열악했다. 19403월 일본 내무성 경보국 특별고등경찰이 펴낸 <특고월보>를 보면, 논산에서 동원돼 막 광산에 도착한 조선인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217일 쟁의를 일으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인들은 옆에서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구타를 당했고, 견디다 못해 탈출하는 이들도 많았다. 19411215일치 가라후토(현 남사할린)청 경찰공보를 보면 194111월 미쓰비시 사도광업소에서 도망간 4명의 조선인 함연태·조옥동·윤성명·이화실이 수배됐음을 알 수 있다.

위험한 갱도 내 작업은 대개 조선인이 감당했다. 사도광업소가 1943년에 만든 자료 반도 노무관리에 대하여를 보면 그해 5월 현재 위험한 갱내 작업을 담당하던 이 646명 가운데 481(74.5%)이 조선인이었다.

 

미쓰비시광업은 월급을 모두 현금으로 지급하지 않고 여러 이유로 저축·보험 등에 가입시켰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일본이 패전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이 돈을 받지 못했다. 결국 조선인 1140명이 남긴 미지급 임금 23105959전은 10년 공탁 뒤 시효가 만료돼 일본 국고에 편입됐다.

 

·일 시민단체들은 지난 11일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여부를 심사하는 유네스코의 자문기관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에 한국어·영어·일본어로 작성된 보고서와 의견서를 제출했다.

 

·일 시민단체들이 보고서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1970년대부터 이어진 여러 노력이 겹쳤기 때문이었다. 1970년대 혼마 등 향토 사학자들이 축적한 자료를 1990년대 사도시와 니가타현 시민들이 적극 발굴했다. 이들은 1991·1992·1995년 세차례나 한국을 방문해 피해자들을 찾아 나섰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피해자 본인·유족들을 현지에 두번 불러 증언 집회도 열었다.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사도광산 내에 자리한 대표적 유적지인 기타자와 부유선광장의 모습. 일본 최초로 금은광석에서 금·은 등을 채취하는 부유선광법(浮遊選鉱法)이라는 공법을 도입했다. 1938년 완공 뒤엔 한달에 5t의 금은광석을 처리할 수 있는 동양 제일의 시설로 이름을 떨쳤다. 일본 정부가 조선인 강제노동과 둘러싼 논란을 피해가려고 에도시대(1603~1867) 유산 만을 대상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고 있어 대상에서 빠지게 됐다. 1940년 부유선광장의 모습.사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이후 한동안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역사적 진실이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일본 정부의 역사 부정론 때문이었다. 일본 정부는 20214월 조선인 노동자들이 강제연행당했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으며, 당시 조선인들이 국제법에 비춰 강제노동을 당한 게 아니라는 내용을 각의결정(국무회의 의결)했다. 이를 납득할 수 없었던 한·일 시민들은 그동안 축적된 자료를 적극 재발굴하고 한국 국가기록원이 보관하고 있던 피해자들의 신고 내용 등을 열람해 보고서를 완성했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일본의 역사 연구가 다케우치 야스토는 일본 정부는 아베 신조 정권 들어 강제노동을 부인하고 이런 잘못된 역사 인식 아래 단순히 관광을 위한 자원으로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역사 부정론을 극복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도 ·일 시민과 피해자들이 양국 정부의 역사 부정 시도를 극복하고 실체적인 역사를 구체적으로 기록하려 노력한 것이 이번 작업의 의미라고 말했다.

 

보고서가 한·일 사회에 갖는 의미는 뭘까?

김승은 한국에선 1991년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통해 강제동원에 대한 진상 규명과 피해보상 노력이 시작됐다. 이후 위원회가 만들어져 많은 분들이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피해심의 결정통지서를 보면 법 몇조에 의거해 피해자임을 결정합니다라는 한줄뿐이다. 유족들은 여전히 아버지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잘 모른다. 8살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기침을 자주 하시고 평생 아팠던 기억밖에 없다는 것이다. 과연 강제동원의 피해에 대한 진상 규명은 무엇이었나. 이번 조사를 하며 많은 것을 깨달았다.

 

1905년생 정쌍동(1986년 작고)은 전라북도 익산에서 동원됐다. 마을에서 아무도 안 가려 해 제비뽑기를 통해 30대가 넘는 나이에 갔다. 그 아들 정운진은 이 사실만 알지 아버지가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를 받았는지 몰랐다. 그게 자식으로서 너무 큰 부끄러움이었다(정씨는 20~23일 사도섬을 방문했다). 명부 속의 인물들이 조사 과정을 통해 실체로 확인되고 유족들과도 연결됐다. 강제동원 피해가 구체적인 실체로 되살아나는 과정이었다. 이게 이번 보고서와 우리 활동의 가장 큰 의미인 것 같다.”

1995년 니가타시에서 열린 증언집회에 아버지에 대해 증언하고 있는 유족의 모습(왼쪽). 2015년 사도시에서 열린 사도광산 조선인 노동자를 추모하는 집회 모습.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다케우치 일본 내 역사 부정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강제노동이 없었다2021년부터 이에 대한 교과서 기술도 지우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일본 정부의 이런 인식을 전제로 지난달 6일 한국 지원재단이 (일본의 피고기업 대신) 위자료를 대신 부담한다는 안을 내놓았다. 일본 기업은 사죄·배상도 안 하고, 일본 정부도 사죄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전시 동원은 조선인들도 천황의 적자이니 목숨을 바치라는 식민지배의 통치 시스템 아래서 이뤄졌다. 이를 피해로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전쟁 책임에 대한 추궁도, 식민지배에 대한 추궁도 어려워진다.

 

일본 정부는 잘못된 역사 인식 아래서 메이지 산업유산이나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해 손님을 불러 모아 돈을 벌려 한다.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강제노동이 없었다는 역사 부정론을 극복하고 싶다.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일본 사회 내의) 헤이트 스피치(혐오발언)나 헤이트 크라임(혐오범죄)도 극복할 수 없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아시아인들과 일본이 평화를 만들어가는 기초로 삼을 수 있으면 좋겠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양곡법 거부, 대통령이 사상 처음으로 농민을 걷어찼다

양곡관리법 사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징후적이다. 국내 정치사에서 이렇게 노골적으로 농민을 홀대하는 정부·여당은 없었다. 처음으로 쌀을 시장재로 바꾸려는 시도가 벌어졌다.

 

1호와 1호가 충돌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대표가 내놓은 민생 법안 1호 양곡관리법(양곡법) 개정안을 윤석열 대통령이 1호 재의요구권(거부권)으로 맞받아치면서 정국이 요동쳤다. 양곡법이라는, 도시민에게는 생소한 법안 하나가 연일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가을철 수확기도 아닌 봄철, 농업 문제가 국내 정치의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농업 이슈를 최대 쟁점으로 밀어올린 장본인은 윤 대통령이다. 323일 국회가 양곡법 개정안을 통과시키자 44일 거부권을 행사했다. 2016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청문회 활성화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이래 처음이다. 삼권분립 체제에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그 자체로 정국을 경색시킨다. 현 정부 대통령실 관계자가 언론을 향해 거부권이라는 부정적인 용어보다 법적 용어인 재의요구권이라고 해달라고 할 만큼 정부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번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다. 시장의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국민의 막대한 혈세를 들여서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다.”

 

윤 대통령이 포퓰리즘 법’ ‘강제 매수법이라고 표현한 양곡법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쌀이 과잉생산되거나 쌀값이 너무 떨어졌을 경우 정부가 이를 매수해서 쌀값을 안정시키자는 내용이다. ‘개정안에서 달라진 점은 두 가지다. 우선 재량에서 의무로 변했다. 정부가 쌀을 매입하게 할 수 있다라는 재량 조항에서 매입하게 하여야 한다라고 바뀌었다. 여기에 논에 쌀 외 다른 작물을 재배할 경우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조항도 더해졌다.

 

양곡법의 목표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다. 쌀 의무 매입을 통해 쌀값을 안정시키고, 타 작물 재배 지원을 통해 과잉생산을 막고 쌀에 집중된 농업구조를 바꿔보자는 취지다. 쌀의 일시적 과잉은 의무 매입으로, 구조적 과잉은 타 작물 재배 지원으로 잡겠다는 복안이다.

 

쌀값은 폭락, 즉석밥 값은 오르는 현실

어제오늘 문제는 아니다. 식생활 변화로 쌀 소비가 줄면서 남는 쌀과 그로 인한 쌀값 폭락은 2000년대 이후 꾸준히 누적돼왔다. 지난해에는 쌀값이 폭락했는데 즉석밥 값은 오르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CJ제일제당 등 식품업체들은 포장재 비용 및 연료비 상승이 가격 인상의 원인이라고 밝혔다. 즉석밥 가격 산정에 쌀값은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그동안 정부는 쌀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쌀 소득보전직불제(변동직불제), 쌀 생산조정제(논에 작물 재배 지원) 같은 제도를 운용해왔다. 변동직불제를 통해 쌀값이 일정 금액에 못 미치면 정부가 이를 보전해줬고, 생산조정제를 통해 논에 타 작물 재배를 유도함으로써 쌀 과잉생산을 방지하려 했다. 쌀에 관한 한 한국 정부는 사실상 강제적으로 시장에 개입해온 역사가 있다.

 

이번 양곡법 정국의 도화선은 의무화였다. 국민의힘 등 양곡법 개정에 반대하는 이들은 쌀이 남아도는 마당에 정부가 의무적으로 쌀을 매입하면 쌀농사 의존도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염려한다. 반면 민주당 등 법 개정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의무화야말로 가장 강력한 쌀값 안정 조치인 데다, 타 작물 재배 지원 조항을 더한 만큼 생산량 조정에도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실효성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농업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굳이 의무 조항을 넣어서 논란을 키울 필요가 있었느냐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매입할 수 있다라는 현행 양곡법만 정부가 잘 지켜도 쌀값 폭락을 막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양곡법 개정안 논의는 이미 2021년부터 시작됐다. 그해 풍년으로 쌀 생산량이 늘면서 쌀값 폭락이 예상됐다. 하지만 당시 문재인 정부 농림축산식품부(농림부)가 안이하게 대처했다. 초과생산된 쌀을 매입할 수 있다라는 기존 양곡법을 발동하지 않고 좀 더 지켜보기로했다가 일을 키웠다. 이후 쌀값이 평균 20%가량 떨어지면서 45년 만의 대폭락 사태가 불거지자 국회에서 의무 조항을 넣은 양곡법 개정안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양곡법 개정안에 대해 농업계는 환영 일색일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냉소와 체념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의무화만으로 복잡하면서도 고질적인 쌀값 문제가 획기적으로 해결되리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드물다. 무엇보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의무 매입 기준이 느슨해졌다. 당초 초과 생산량의 3% 이상이었던 것이 ‘3~5%’, ‘가격 하락폭 5%’‘5~8%’로 조정됐다. 말하자면 초과 생산량 5%, 쌀값 하락 8%까지는 지켜봐도되는 셈이다.

 

농민의 분노는 대통령과 정부를 향한다. 국회에서 논의가 시작된 지 1년이 넘도록 아무런 해법도 제시하지 못한 채 거부권만 덜컥 내놨기 때문이다. 한덕수 총리와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3월 말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을 뿐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양곡법 사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징후적이다. 우선 국내 정치사에 이렇게 노골적으로 농민을 홀대하는 정부·여당은 없었다. 과거 정부 역시 농업 예산 비중을 계속 줄이고 청와대 농업 담당 비서관을 오랫동안 공석으로 두는 등 농정에 무관심했지만, 적어도 문제가 불거지면 농민 눈치를 봤다.

시사인 이오성 기자

 

한국 배터리 기업들, 미국에 수십억 달러 선물 보따리투자

현대차-SK, 50억 달러 규모 배터리셀 공장 건설

삼성SDI, 30억 달러 투자해 GM과 배터리 공장 추진

국내 배터리·완성차 기업들이 자국 우선주의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미국 현지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합작 공장 건설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그룹과 에스케이(SK)온은 미국 조지아주에 배터리셀 공장을 세우고, 삼성에스디아이(SDI)는 미국 완성차 회사인 제너럴모터스(GM·지엠)와 손을 잡고 배터리 공장을 만들기로 했다. 미 바이든 행정부가 전기차 보조금 규제 등 자국 우선주의정책을 강화 함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미국 현지 대규모 투자가 현실화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5일 오후 정기 이사회에서 에스케이온과의 북미 배터리셀 합작법인 설립 안건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현대차와 에스케이온은 2027년까지 5년 동안 65천억원(50억 달러)를 공동 투자하고 지분은 각 50%씩 보유할 예정이다. 국내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업체가 미국 현지에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장은 미국 조지아주 바토우 카운티에 짓는다. 연간 35기가와트시(GWh) 생산규모로 전기차 약 30만대 분의 배터리 셀을 생산할 수 있다. 미 전기차 보조금 규제 시행에 따라 현대차가 일정을 앞당겨 서둘러 짓고 있는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 공장 등에 공급할 물량이다.

이번 합작공장은 에스케이온의 6번째 미국 생산거점이다. 에스케이온 자체 공장으로 조지아주 1·2 공장(21.5GWh)이 있고, 합작공장으로는 포드와 만든 블루오벌에스케이의 공장 3(테네시, 켄터키)129GWh 규모, 2025년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이날 삼성에스디아이도 지엠과 합작법인 설립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삼성에스디아이는 “2026년 양산을 목표로 약 3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연산 30기가와트시(GWh) 이상 규모의 공장을 설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성능 하이니켈 각형과 원통형 배터리를 생산해 지엠이 생산하는 전기차에 전량 탑재될 예정이다. 30기가와트시는 전기차를 연간 30~50만대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다만 삼성에스디아이는 합작법인의 위치와 인력 규모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배터리 업계에선 이번 투자 발표가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일정에 맞춰 준비됐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앞서 엘지(LG)에너지솔루션도 지난달 2472천억원을 들여 미 애리조나주에 배터리 생산 공장을 건설한다고 밝혔다. 엘지에너지솔루션은 지엠과 합작사를 만들어 오하이오 공장에서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완성차 회사들이 미국 현지에 수십억 달러를 들여 공장을 건설하는 것은 미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인플레이션감축법은 전기차를 북미지역에서 최종조립하고, 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핵심 광물 40% 이상을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나라에서 채굴과 가공하는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보조금 7500달러를 지급한다. 현재 현대차가 미국에서 생산하고 있는 제네시스 지브이(GV)70 전기차 모델은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탈락했다.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현지 공장 건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내놓은 국내 대기업들의 미국 투자 계획이 국내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할 때마다 우리 기업이 미국에 많은 투자 계획을 내놓지만, 우리에게 오는 건 별로 없다며 짚은 뒤 기업의 투자가 더 불균형하게 흐르게 되면 국내 일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미국 우선주의' 직면한 초라한 '한미동맹'

대통령 "획기적이고 역사적인 이정표 만들 것"

한미 정상회담차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24(현지시간) "지금의 한미동맹에서 더 나아가 '미래로 전진하는, 행동하는 동맹'이라는 획기적이고 역사적인 이정표를 만들고자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미국 워싱턴D.C.의 한 호텔에서 열린 동포 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하고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12년 만에, 바이든 행정부 들어 인도·태평양 국가 정상으로서는 처음으로 국빈으로 미국을 방문했다""이는 미국이 올해 70주년을 맞는 한미 동맹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며 양국이 자유와 인권, 법치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며 이를 근간으로 국제사회 연대를 실천해 나가는 최상의 파트너라는 방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작년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이번 국빈 방미를 통해 양국은 첨단기술과 경제안보, 확장억제와 인적교류를 중심으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논의를 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번 방미 의미를 한미 동맹 확대에 맞추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선 확장억제 강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확고한 가치동맹의 토대 위에서 경제, 첨단 기술, 사이버, 안보, 문화콘텐츠 등 다방면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윤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 결과물로 확장억제 방안을 담은 별도의 문건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북한의 위협과 관련해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 공약 강화"를 언급하며 "두 정상은 확장억제 문제를 다룬 성명을 밝힐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유럽 미군기지에 핵무기를 배치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달리 한국에 핵무기를 배치하지는 않지만 한반도 유사시 미국 전술핵에 관한 기획, 실행에 한국의 참여 수위를 높이는 '한국식 핵공유'가 거론된다.

 

독자적 핵보유까지 주장하는 국내 일부 여론을 다독이는 효과가 예상되지만,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가 북핵 위협을 억제하고 실효성 있게 대응할만한 방안은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한미동맹과 가치동맹 재확인에 우선순위를 부여한 윤 대통령의 방미 목적과 달리, 자국 우선주의를 채택한 미국이 한국 산업에 영향을 주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 등에서 얼마나 양보할지는 미지수다.

 

이미 미국 정부는 반도체 보조금 지급 요건으로 기업의 영업 기밀이 담긴 자료 제출과 초과이익 환수 등의 조건을 내걸었고, 중국과 벌이는 패권 경쟁 일환으로 한국에 대()중국 반도체 규제 강화를 요구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중국이 미국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을 제재하면 한국 업체들이 중국에 대한 판매를 늘리지 말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은 패권을 유지하고 이기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공급망의 탈동조화와 단절을 추진했다""심지어 동맹국들까지 중국 견제 캠페인에 동참하도록 강요했다"고 반발했다.

 

러시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문제도 한미 정상회담에서 다뤄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설리번 보좌관은 한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문제가 정상회담에서 논의될지를 묻는 질문에 "정상들의 대화를 언급하지는 않겠다"면서도 "우크라이나는 분명히 대화의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프레시안 임경구 기자

 

넘쳐나는 '포퓰리즘' 언급 보도엔 빨간 딱지만 있고 알맹이가 없다

분석 없이 언론이 공격 양념으로 쓰는 수식어 포퓰리즘

진영 따라 잣대 달라져1000원 아침밥은 생활밀착형 행정?

현 정부 정책에도 포퓰리즘 요소 있어차분한 분석기사 써줘야

재정확대, 복지정책 공론장 닫는 포퓰리즘딱지, 미래 논의 막을 수도

 

총선을 1년 앞두고 재정건전성이 화두가 되면서 언론이 포퓰리즘경고등을 연일 켜고 있다. 4월 한 달에만 수천 건의 보도가 쏟아지며 포퓰리즘은 매일 접해야 하는 단어가 됐지만 대부분은 근거를 설명하기보단 정치적 반대편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쓰이는 실정이다. 정파적으로 수식어 쓰듯 용어 붙이는 관행을 자제하고 언론이 차분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지난 3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식당에서 학생들이 '천원의 아침밥'을 먹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서 포퓰리즘을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25일 기준 4월 한 달동안 54개 매체가 919건에 달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포털 검색으로 매체 기준을 풀면 보도 건수는 수천 개로 늘어난다.

 

포퓰리즘은 흔히 인기영합주의를 의미한다. 본질적 해결책을 찾지 않고 단기적으로 대중 인기를 얻기 위한 정책을 흔히 포퓰리즘이라 비판한다. 자연스럽게 포퓰리즘딱지를 붙이려면 이것이 왜 본질적 해결책이 아닌지,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 설명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정치적 공방의 수단으로 포퓰리즘을 쓰는 데 그치고 있다. 기사의 자극성을 추가하기 위한 양념이 된 느낌이다.

 

지난 1일자 조선일보 사설.

 

지난 5일자 조선일보 사설.

 

빅카인즈에 따르면, 4월 한 달동안 가장 많은 포퓰리즘기사를 낸 곳은 조선일보다. 47건으로 가장 적게 포퓰리즘 용어를 기사에 포함한 한국일보(14)3배가 넘는다. 조선일보는 25일 기준 4월에만 11번 포퓰리즘 관련 사설을 냈는데 여야를 모두 비판한 2~3개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더불어민주당 혹은 문재인 정부를 겨냥해 포퓰리즘 딱지를 붙였다.

 

[관련 기사 : 조선·중앙이 포퓰리즘을 다루는 방식은]

 

단순 대중 정서를 고려한 정책이 포퓰리즘이라면, 윤석열 정부 정책에도 같은 비판이 가능하다. 강한 인플레이션 압박에도 주요 공공요금을 동결하고 유류세 인하를 지속했던 명분은 서민경제였다. 본질적 해결책이 아니고, 한전 등 공기업 부채로 채권시장에 타격을 줄 우려도 있었지만 정부는 밀어붙였다.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종부세, 법인세 등 각종 감세 정책을 펼치는 것도 특정 지지층을 겨냥한 모순이라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다수 신문은 침묵했다.

 

[관련 기사 : ‘세수 펑크예견에도 "건전재정" 정부 입장 반복한 언론]

 

[관련 기사 : 정부 공공요금 동결 포퓰리즘이라더니 정부 동결엔 딴 얘기?]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25일 통화에서 진영에 따라 상대방을 비판하는 용도로 뭉뚱그려 쓰면, 현 정부 정책도 포퓰리즘이라 지적할 수 있다경제성장률 전망치가 계속 낮아지는 상황에서 중장기적으로 국민 후생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취해야 하는데 재정건전성을 주문하면서도 한쪽으로는 감세 정책을, 한쪽으로는 지출 통제를 주문하는 건 정책 간 정합성이 부족한 것이다. 경제 상황이 어렵고 엇박자가 나도 이를 유지하는 것 또한 포퓰리스트적 요소라고 말했다.

 

1000원의 아침밥을 기사로 다룬 동아일보 기사들. 네이버 갈무리

 

지난달 24일자 동아일보 칼럼.

 

‘1000원의 아침밥도 마찬가지다. 장기적 대책이 아닌 단기적 정책이지만, 이에 대한 논쟁은 드물다. ‘단독을 붙여가며 각 학교의 아침밥 현황을 보도하고, ‘1000원의 행복이라며 단순 띄워주는 보도가 다수다. 이진영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지난달 23일 칼럼에서 요즘 대학가에선 든든한 한 끼를 단돈 1000원에 먹을 수 있는 학식이 인기라며 “1000원 행정에 대해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고물가로 힘겨운 이들은 생활 밀착형 행정이라며 반긴다고 평가했다.

 

반면 송현숙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우선 지속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1000원의 아침밥은 학생과 정부가 1000원씩 내고 나머지는 대학이 부담하는 구조라며 지원이 없으면 사업을 시행할 수 없다. 전국 330곳가량의 대학중 시행하는 곳이 10%를 겨우 넘는 이유라고 했다. 이어 등록금, 주거, 채용절벽 등 중요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가운데, 왜 지금, 1000원의 아침밥이 부각되고 있나라고 했다.

 

지난해 1SBS 팩트체크팀 사실은보도 갈무리.

 

포퓰리즘은 경제 정책을 평가하는데 쓰이지만, 완벽한 정치 용어가 된 현실이다. 지난해 1SBS 팩트체크 사실은팀이 분석한 결과,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는 선거철에 집중 거론됐다. SBS쉽게 말해 선거철로만 따져도 '증가 추세'”라며 이번 대선(2022년 대선)2012년 총선 이후 포퓰리즘이 가장 많이 거론되는 선거로 규정 지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후보들의 재정 확대, 복지 정책을 포퓰리즘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함축돼 있다우리가 포퓰리즘의 대푯값으로 소비하고 있는 '인기영합주의' 혹은 '선심성 복지'는 포퓰리즘이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여러 층위 가운데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SBS가 인용한 국회 입법조사처 연구용역보고서는 사실 이 용어(포퓰리즘)는 엄격한 사회과학적 용어로 성립하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인기에 집착하는 것이나 대중에 대해 호소하는 것은 대부분 정치가들의 일상적 활동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 또한 후보 시절 재정 지출 공약을 다수 냈던 만큼, 진영을 막론하고 복지 정책에 대한 사회 공론장은 시대적으로 필수 요소가 됐다. 하지만 언론이 포퓰리즘딱지를 붙여 버리면 그 이상 논의가 이어지기가 힘들다. 강 교수는 경제철학에 따라 사회 문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달라질 수 있어도 이것이 반드시 진영논리에 따라 평가돼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명확하게 현실 경제의 문제점과 정책적 대안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지, ‘나는 옳고 너는 포퓰리즘이라 틀려라고 하는 건 논의의 진전을 막는다어느 한쪽의 일방적 발언을 전달하는 식이 아닌,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담긴 분석기사를 언론이 써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넘쳐나는 '포퓰리즘' 언급 보도엔 빨간 딱지만 있고 알맹이가 없다

분석 없이 언론이 공격 양념으로 쓰는 수식어 포퓰리즘

진영 따라 잣대 달라져1000원 아침밥은 생활밀착형 행정?

현 정부 정책에도 포퓰리즘 요소 있어차분한 분석기사 써줘야

재정확대, 복지정책 공론장 닫는 포퓰리즘딱지, 미래 논의 막을 수도

 

총선을 1년 앞두고 재정건전성이 화두가 되면서 언론이 포퓰리즘경고등을 연일 켜고 있다. 4월 한 달에만 수천 건의 보도가 쏟아지며 포퓰리즘은 매일 접해야 하는 단어가 됐지만 대부분은 근거를 설명하기보단 정치적 반대편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쓰이는 실정이다. 정파적으로 수식어 쓰듯 용어 붙이는 관행을 자제하고 언론이 차분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지난 3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학교 학생식당에서 학생들이 '천원의 아침밥'을 먹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서 포퓰리즘을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25일 기준 4월 한 달동안 54개 매체가 919건에 달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포털 검색으로 매체 기준을 풀면 보도 건수는 수천 개로 늘어난다.

 

포퓰리즘은 흔히 인기영합주의를 의미한다. 본질적 해결책을 찾지 않고 단기적으로 대중 인기를 얻기 위한 정책을 흔히 포퓰리즘이라 비판한다. 자연스럽게 포퓰리즘딱지를 붙이려면 이것이 왜 본질적 해결책이 아닌지,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 설명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정치적 공방의 수단으로 포퓰리즘을 쓰는 데 그치고 있다. 기사의 자극성을 추가하기 위한 양념이 된 느낌이다.

지난 1일자 조선일보 사설.

지난 5일자 조선일보 사설.

 

빅카인즈에 따르면, 4월 한 달동안 가장 많은 포퓰리즘기사를 낸 곳은 조선일보다. 47건으로 가장 적게 포퓰리즘 용어를 기사에 포함한 한국일보(14)3배가 넘는다. 조선일보는 25일 기준 4월에만 11번 포퓰리즘 관련 사설을 냈는데 여야를 모두 비판한 2~3개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더불어민주당 혹은 문재인 정부를 겨냥해 포퓰리즘 딱지를 붙였다.

 

[관련 기사 : 조선·중앙이 포퓰리즘을 다루는 방식은]

 

단순 대중 정서를 고려한 정책이 포퓰리즘이라면, 윤석열 정부 정책에도 같은 비판이 가능하다. 강한 인플레이션 압박에도 주요 공공요금을 동결하고 유류세 인하를 지속했던 명분은 서민경제였다. 본질적 해결책이 아니고, 한전 등 공기업 부채로 채권시장에 타격을 줄 우려도 있었지만 정부는 밀어붙였다.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종부세, 법인세 등 각종 감세 정책을 펼치는 것도 특정 지지층을 겨냥한 모순이라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다수 신문은 침묵했다.

 

[관련 기사 : ‘세수 펑크예견에도 "건전재정" 정부 입장 반복한 언론]

 

[관련 기사 : 정부 공공요금 동결 포퓰리즘이라더니 정부 동결엔 딴 얘기?]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25일 통화에서 진영에 따라 상대방을 비판하는 용도로 뭉뚱그려 쓰면, 현 정부 정책도 포퓰리즘이라 지적할 수 있다경제성장률 전망치가 계속 낮아지는 상황에서 중장기적으로 국민 후생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취해야 하는데 재정건전성을 주문하면서도 한쪽으로는 감세 정책을, 한쪽으로는 지출 통제를 주문하는 건 정책 간 정합성이 부족한 것이다. 경제 상황이 어렵고 엇박자가 나도 이를 유지하는 것 또한 포퓰리스트적 요소라고 말했다.

1000원의 아침밥을 기사로 다룬 동아일보 기사들. 네이버 갈무리

지난달 24일자 동아일보 칼럼.

 

‘1000원의 아침밥도 마찬가지다. 장기적 대책이 아닌 단기적 정책이지만, 이에 대한 논쟁은 드물다. ‘단독을 붙여가며 각 학교의 아침밥 현황을 보도하고, ‘1000원의 행복이라며 단순 띄워주는 보도가 다수다. 이진영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지난달 23일 칼럼에서 요즘 대학가에선 든든한 한 끼를 단돈 1000원에 먹을 수 있는 학식이 인기라며 “1000원 행정에 대해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고물가로 힘겨운 이들은 생활 밀착형 행정이라며 반긴다고 평가했다.

 

반면 송현숙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우선 지속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1000원의 아침밥은 학생과 정부가 1000원씩 내고 나머지는 대학이 부담하는 구조라며 지원이 없으면 사업을 시행할 수 없다. 전국 330곳가량의 대학중 시행하는 곳이 10%를 겨우 넘는 이유라고 했다. 이어 등록금, 주거, 채용절벽 등 중요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가운데, 왜 지금, 1000원의 아침밥이 부각되고 있나라고 했다.

지난해 1SBS 팩트체크팀 사실은보도 갈무리.

 

포퓰리즘은 경제 정책을 평가하는데 쓰이지만, 완벽한 정치 용어가 된 현실이다. 지난해 1SBS 팩트체크 사실은팀이 분석한 결과,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는 선거철에 집중 거론됐다. SBS쉽게 말해 선거철로만 따져도 '증가 추세'”라며 이번 대선(2022년 대선)2012년 총선 이후 포퓰리즘이 가장 많이 거론되는 선거로 규정 지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후보들의 재정 확대, 복지 정책을 포퓰리즘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함축돼 있다우리가 포퓰리즘의 대푯값으로 소비하고 있는 '인기영합주의' 혹은 '선심성 복지'는 포퓰리즘이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여러 층위 가운데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SBS가 인용한 국회 입법조사처 연구용역보고서는 사실 이 용어(포퓰리즘)는 엄격한 사회과학적 용어로 성립하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인기에 집착하는 것이나 대중에 대해 호소하는 것은 대부분 정치가들의 일상적 활동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 또한 후보 시절 재정 지출 공약을 다수 냈던 만큼, 진영을 막론하고 복지 정책에 대한 사회 공론장은 시대적으로 필수 요소가 됐다. 하지만 언론이 포퓰리즘딱지를 붙여 버리면 그 이상 논의가 이어지기가 힘들다. 강 교수는 경제철학에 따라 사회 문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달라질 수 있어도 이것이 반드시 진영논리에 따라 평가돼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명확하게 현실 경제의 문제점과 정책적 대안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지, ‘나는 옳고 너는 포퓰리즘이라 틀려라고 하는 건 논의의 진전을 막는다어느 한쪽의 일방적 발언을 전달하는 식이 아닌,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담긴 분석기사를 언론이 써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김건희 특검법누구를 벨까대통령 거부권 맞물려 총선 화약고

쌍특검법늦어도 12월 본회의 처리 예상

특검 압박에 검찰 수사 속도전도 변수

회가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함께 일컫는 이른바 쌍특검법27일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면서, 최장 240일 동안의 법안 심사가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법안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데다 법안 처리 시한이 내년 총선을 코앞에 둔 12월이어서, 법안 논의부터 본회의 표결까지 정국은 지뢰밭을 건너는 형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기본소득당, 진보당, 야당 성향 무소속 의원 등 야권이 똘똘 뭉쳐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한 법안은 화천대유 50억 클럽 뇌물 의혹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강은미 정의당 의원안)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은주 정의당 의원안)이다.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180일 동안 처리하지 않을 경우 본회의에 바로 올라가게 된다. 본회의에 부의한 뒤 60일 이후엔 자동으로 상정돼, 표결에 부쳐야 한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그간 특검을 반대하고, 이날 신속처리안건 지정 표결에도 응하지 않은 국민의힘이 갑자기 적극적인 법안 심사에 나설 가능성은 적다.

 

이에 대비해, 민주당과 정의당은 법사위 심사 기한까지도 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정의당안을 바탕으로 지난 11일 민주당이 법사위 제1법안소위에서 통과시킨 50억 클럽 특검법 대안을 본회의에 올리기로 했다. 이 법안은 특검 후보 추천권을 비교섭단체인 정의당과 기본소득당에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김건희 여사 특검법은 두 당이 추가로 협의해 본회의에 올릴 수정안을 별도로 마련하기로 했다. 정의당은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에만 집중하자고 주장하는 반면, 민주당은 코바나컨텐츠 기업 협찬 의혹까지 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두 당은 일단 두 법안 모두 정의당안을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해 국민의힘을 압박하는 동시에, 실제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법안 내용은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두 당의 이견을 최대한 조율하겠다는 방침이다.

현재로선 ‘240의 심사 기간이 모두 끝나는 1223일 이후 열리는 첫 본회의에서 야권 공조로 특검법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총선이 넉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쌍특검법이 주요 현안으로 떠오를 수 있는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도 관건이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김 여사를 대상으로 하는 특검을 수용하기 힘들 수도 있다면서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자신들의 범죄 혐의를 끝까지 은폐하려는 살아 있는 권력을 응징하자는 목소리가 커지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쌍특검을 수용하든 수용하지 않든 총선을 앞둔 민주당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다는 계산이다.

 

박영수 전 특검 압수수색,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전 회장 소환 조사 등 최근 부쩍 분주해진 검찰 수사 상황도 변수다. 야당은 쌍특검법이 검찰 수사팀을 압박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의당 원내 관계자는 수사팀이 그사이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낸다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이날 표결에 앞서 반대토론에 나선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은 쌍특검은 총선을 앞둔 야권발 정치 야합의 산물이라며 왜 이제서야 특검 주장을 하는 것인가. 문재인 정부 검찰은 믿고 윤석열 검찰은 못 믿겠다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감소 추세였던 산재사망자 수는 2021년보다 무려 143명이 늘어 2022년에는 2223명을 기록했다. 매일 6명이 넘는 사람이 일하다 죽고 있다.”

 

2006년부터 매년 노동건강연대와 매일노동뉴스, 민주노총이 참여한 산재사망대책마련 공동캠페인단은 하루에 5~6명의 노동자가 일하다가 사망하는 현실을 알리고 기업의 책임과 처벌 강화를 위해 매년 최악의 살인기업을 선정하여 발표하고 있다. 2022년에는 현대건설, 2021년에는 한익스프레스, 2020년에는 대우건설 등이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됐다.

 

노동부, 산재사망 기업 명단 비공개살인기업 옹호하나

 

민주노총과 노동건강연대 등 산재사망대책마련 공동캠페인단이 17년간 해마다 진행한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을 올해는 하지 못했다. 고용노동부가 관련 자료 공개를 거부한 탓이다.

공동캠페인단은 26일 기자회견을 열어 2006년부터 해마다 선정해 발표한 최악의 살인기업 관련 올해는 선정할 수 없음이라고 밝혔다. 공동캠페인단은 “2006년 이래 어느 대통령 하에서도 산재사고사망자료(살인기업명단)에 대한 제출 거부는 없었다올해 노동부는 기업명 등 기타 기본적인 정보 모두를 가린 자료를 제출해 사실상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고 발표했다.

 

공동캠페인단이 공개한 내용을 보면, 노동부는 2021년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에 산재사망사고 보고일, 발생일 ·하청 기업명 공사규모 노동자 수 등 산재 사망사고에 대한 기본정보가 포함된 자료를 제출했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해 1월 시행된 이후엔 원청 및 하청 기업명, 사고현장 주소, 사업장 규모 등을 뺀 자료를 제출하다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을 위한 자료 재요청에 사고 사망자 2명 이상 발생 기업 사망사고 현황을 제출했다. 지난해 최악의 살인기업은 6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현대건설로 2007, 2012, 2015년에 이어 4번째로 선정된 바 있다. 특별상은 현대산업개발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받았다.

 

지난해 419일 강은미 정의당 의원 요구에 고용노동부가 제출한 중대재해 관련 자료 국회 제출 방안자료. 산재사망대책마련 공동캠페인단 제공

 

노동부는 올해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산재사고사망 현황 자료 제출 요청을 거부하고, 2명 이상 사망사고 발생 기업 자료를 제출하면서 원청기업명과 주소, 재해 보고일 등은 뺐다. 공동캠페인단은 가장 많은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기업의 정보는 오직 노동부만 알 수 있다이런 비공개 입장은 최악의 살인기업에 대한 봐주기와 조직적 옹호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2023년 최악의 살인기업 특별상으로는 윤석열 대통령이 선정됐다. 공동캠페인단은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기업 경영 활동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중대재해법 시행령 개정을 시도하고, 법 개정 티에프를 발족하는 등 개악을 추진하고 있다노동자를 과로로 내모는 노동시간 개악, 기업 책임을 완화하고 노동자를 처벌하는 산안법 개악 추진 등 생명 안전 정책이 거듭 후퇴하고 있어 특별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핵우산에 갇힌 한국, ‘실리챙긴 미국

·미 정상회담

핵협의그룹 안보 이익미지수성과는 화려한 의전뿐평가 냉담

IRA·반도체법 뚜렷한 해결책 못 찾고 ·감청 의혹엔 되레 면죄부

방미 성과보다 화려했던 의전 미국을 국빈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밤(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국빈만찬 도중 조 바이든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26(현지시간) 발표한 한·미 정상회담 내용은 확장억제 강화를 위한 핵협의그룹(NCG)’을 명문화하는 데 올인한 결과물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확장억제 강화를 위해서는 경제적 손실은 물론 중국·러시아 반발도 감내할 수 있다는 정부의 외교 방향이 확인됐다. 그러나 NCG가 실질 안보 이익을 가져다 줄지도 미지수라는 점에서 국빈 방미의 확실한 성과는 화려한 의전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윤 대통령은 공동기자회견에서 첫 번째 핵심 성과는 확장억제라며 NCG 구성을 담은 워싱턴 선언을 최대 성과로 내세웠다. 양국이 상설협의체인 NCG를 통해 핵 관련 정책 협의를 하는 것은 소통 강화 측면에서 진전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에 대한 독점적이고 최종 권한을 갖는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NCG 내에서 한국 영향력을 어느 정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뚜렷하지 않아 실질적 행동 조치로 이어지려면 한·미 연합훈련과 작전계획 반영 등 후속 조치가 뒷받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국은 전략핵잠수함(SSBN)의 한국 기항을 언급하면서 한국에 대한 미국 전략자산의 정례적 가시성을 한층 증진시킬 것이라고 했다. 전략자산의 빈번한 전개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억제력을 보여주고 전술핵을 배치하지 않는 데 따른 한국민의 안보 불안을 덜어주겠다는 의미로 보이지만, 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북한과의 전제조건 없는 대화와 외교 추구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대화 모색보다는 강경 대응에 무게를 두고 있어 한반도 정세는 한동안 긴장 고조 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핵공격을 감행하면 정권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고 강력 경고한 점도 북한의 반발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가장 절실한 현안인 경제 분야에서는 성과가 눈에 띄지 않는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지원법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있는 전기차, 반도체 업체를 보호할 구체적 조처를 얻어내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도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반도체법이 미국에서 경제 성장을 만들고 있고 한국에도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면서 삼성과 SK에 윈윈(win-win)”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회담 전날인 25일 재선 도전을 공식 선언했는데 해당 법안을 통한 미국 내 산업 보호와 일자리 창출, 동맹국 관리가 그가 내세우고 있는 대표적 성과다. 이 같은 성과를 뚜렷하게 과시했다는 점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으로 한국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얻었다고 볼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방미 결실로 꼽고 있는 미국 기업 넷플릭스와 코닝의 투자는 해당 기업의 필요성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

 

협상 지렛대로 사용해야 할 미국 정보당국의 동맹국 도·감청 의혹에는 되레 면죄부를 줬다. 윤 대통령은 도·감청 의혹에 대해 미국의 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충분히 소통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재발 방지 약속을 받기는커녕 피해국이 나서서 철통 같은 동맹의 신뢰를 강조한 셈이다.

 

대만해협 문제와 우크라이나 군사적 지원에 대해서는 윤 대통령의 외신 인터뷰 발언보다는 수위가 낮았다. 대통령실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밝혔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지원하고 지지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고 말한 점으로 볼 때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의견 교환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대만해협 문제와 관련해 양국 정상은 역내 안보와 번영의 필수 요소로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고 성명에서 밝혔다. 특히 불법적인 해상 영유권 주장, 매립지역의 군사화 및 강압적 행위를 포함 인도·태평양에서의 그 어떤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도 강력히 반대한다고 했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환으로 담긴 것이지만,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힘에 의한 현상 변경 반대입장을 윤 대통령이 재확인함으로써 중국 반발이 예상된다.

경향 박은경

 

 

핵우산 넓히고 일방 외교불씨 키운 한·미 정상회담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 정상회담을 갖고 워싱턴 선언을 발표했다. 두 정상은 북한의 핵공격 시 압도적 대응을 다짐하며 확장억제 강화를 위해 핵협의그룹을 신설키로 했다. 핵협의그룹은 미국의 핵전력 정보를 공유하고 작전을 공동 기획·실행하기 위해 분기별로 여는 차관보급 협의체로 정해졌다. 정상 차원에서 확장억제 운용에 한국 목소리를 반영하기로 한 건 이전과 달라진 것이다. 하지만 그 의미를 과대평가해선 안 되며 미국에 너무 많은 것을 의존하면서 치를 비용도 생각해야 한다.

 

·미 핵협의그룹은 미국이 냉전 때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만든 협의체를 모델로 했다. 한국에 핵무기가 배치돼 있지 않아 나토 모델과는 다르다. 핵무기가 미국 것이고, 사용 결정도 미국이 하기 때문에 핵공유란 말도 정확하지 않다. 그럼에도 핵전력 운용과 관련해 한국의 발언권이 거의 없었던 과거와 비교해 일부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오판해서 한국을 공격하는 것을 막는 데 기여할 수 있고, 한국 내 핵무장 여론을 낮추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자체 핵무장, 전술핵 재배치라는 더 나쁜 선택지는 피한 것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만사에는 양면성이 있다. 미국의 핵무기가 북한에만 쓰이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두 정상이 공동의 안보에 대한 모든 위협에 맞서 함께할 것이라는, 확고한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전하며라고 한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 입장에서 모든 위협에는 중국·러시아도 포함된다. 그런 점에서 주한미군뿐 아니라 한국군이 미군 전략자산과 함께 한반도 외 지역으로 출격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걱정을 기우로 치부하기 어렵다.

 

실제로 한·미는 회담 곳곳에 중·러가 반발할 여지를 남겼다. 두 정상은 별도의 공동성명에서 대만 문제를 언급하며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그 어떤 일방적 현상변경 시도에도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중국으로선 하나의 중국원칙을 깨는 발언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한국의 우크라이나 살상무기 지원 가능성도 열어뒀다. 바이든 대통령은 윤 대통령의 한·일관계 개선 조치를 대담하다고 환영하며 안보·경제에 관한 한··일 협력 심화를 강조했다. ‘··일 대 북··대결 구도 고착화에 한국이 주요 행위자로 나서는 모습이다.

 

반면 한국이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만들어가려는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워싱턴 선언의 95% 이상이 확장억제에 할애됐고, 한반도 비핵화 언급은 맨 끝에 한 줄 언급됐다. 대화 문을 닫진 않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할 의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회담은 지난 30년의 북핵 외교가 북한 핵무장을 막는 데 실패했다는 점을 한·미가 시인한 자리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한국이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그 일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무엇보다 모든 걸 미국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려가는 것이 우려스럽다. 노무현 정부 이후 지난해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회담까지 15년 이상 한·미 정상회담 때마다 성명에 포함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내용이 처음 빠진 것도 예사롭지 않다. 한국은 외교안보 자율성이 줄어들고, 미국의 어떠한 요구도 쉽게 거절하기 어려운 관계로 변해가고 있다. 윤 대통령은 그런 방향을 선택했지만, 그 방향에 온전히 동의하지 않는 국민도 많음을 명심해야 한다.

경향 사설

 

 

바이든, 재선 위해 동맹국 피해 주나핵심 찌른 미국 기자

LA타임스 중국 반도체 제한에 한국 기업 피해” ABC “한국 도청에 대한 바이든 약속 있었나

 

미국 현지에서 26일 진행된 한미 공동기자회견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동맹국에 피해를 주고 있지 않느냐는 취지의 미국 언론 질문이 집중됐다.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마치고 각자 발언을 한 뒤 20여분간 취재진 질문을 받았다.

 

첫 질문자인 미국 LA타임스 기자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대통령의 최우선 경제 과제는 미국의 제조산업을 성장시켜 중국과 경쟁하는 것이다. 중국에서의 반도체 제조를 제한하는 정책이 중국에 의존하는 한국 기업에 피해를 주고 있다동맹국이 피해를 받게 하면서 국내 정치적 지지를 얻으려 하느냐고 했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법을 통해 제조업을 성장시키려 하고 있고 장기적으로 수십 억달러를 반도체 산업에 투자할 것이다. 미국의 경제를 이를 통해 재건할 것이라며 중국을 견제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반도체를 되살림으로써 미국 전역에서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오하이오주 콜럼버스, 텍사스 아리조나에 공장이 생겨날 것이라며 삼성, SK도 미국 내 투자를 통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한국에도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기에 서로 윈윈’(win-win)”이라고 답했다.

 

미국 현지시간으로 426일 백악관에서 진행된 한미 정상 공동 기자회견 연합뉴스

 

미국 ABC 기자의 경우 여러 차례 추가 질문을 이어갔다. 특히 한미 현안 관련해서는 윤 대통령에게 미국이 한국을 도청했다는 것에 대해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바이든 대통령 측의 약속이나 언질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앞서 ABC 기자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고령으로서 재선에 도전하는 데 부정적인 미국내 여론이 있다면서 바이든 대통령 스스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이길 유일한 후보라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답변에서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조사 결과를 언급했을 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출마를 하지 않더라도 재선에 나서겠느냐고 재차 물었다. 그리고 뒤이어 동맹국 도청 의혹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 대처를 물은 것이다.

 

그러자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약속 여부에 대한 언급 없이 한미 간 소통하고 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해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도 조사가 진행 중이기에 국가 간 관계에서 이런 다양하고 복잡한 변수가 있는 문제에 대해서 시간을 두고 미국의 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충분히 소통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별도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미국 현지시간으로 25일 공개(24일 녹화)NBC ‘나이틀리 뉴스’(Nightly News) 인터뷰에서도 도청 관련 질문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윤 대통령은 미국이 한국을 감시한 것처럼 보인다는 레스터 홀트 앵커 질문에 이 사안은 한미 동맹을 지탱해온 철통 같은 신뢰를 흔들 이유가 없다. 자유와 같은 가치 공유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에 앵커가 친구가 친구를 감시하느냐고 묻자 윤 대통령은 국가 간 금지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라고 했다.

 

한편 한미 공동 기자회견에서 질문 기회를 얻은 한국 취재진 질문은 양국 정상의 선언·성명에 기반했다. 두 정상은 이날 워싱턴 선언에서 확장 억제를 강화하고, 핵 및 전략 기획을 토의하며, 비확산체제에 대한 북한의 위협을 관리하기 위해 새로운 핵협의그룹(NCG·Nuclear Consultative Group) 설립을 선언한다며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Extended Deterrence Strategy and Consultation Group)를 포함해 확장억제에 관해 정부 간 상설협의체를 강화하고 공동기획 노력에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시뮬레이션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 차세대 핵심·신흥기술 대화 출범에 관한 공동성명에선 양국간 바이오 기술과 바이오 제조 배터리·에너지기술 반도체 디지털 경제 양자정보과학기술 등 분야의 협력을 발전시킨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MBN 기자는 한미 핵협의그룹이 구성됐을 때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미 전략자산 운용에 한국이 어떤 식으로 관여하는지물었다. 바이든 대통령에겐 ‘NPT(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핵확산금지조약) 체제를 유지하면서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방식이 한국 국민이 안심할 수준이라고 판단하느냐고 질문했다.

 

윤 대통령은 핵협의그룹에 대해 종전 핵우산에 기초한 확장억제하고는 좀 다른 것이 아니라 많이 다르다. 미국이 핵 자산에 관한 정보와 기획, 그에 대한 대응 실행을 누구와 함께 공유하고 논의한 적이 없기에 새로운 확장억제 방안이고, 그렇기에 더욱 강력하다고 자신한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제가 국군 통수권자로서 미국에서는 핵 전력 무기에 대한 사용 권한을 갖게 된다. 하지만 다른 여러 단계의 모든 노력에 있어서는 우리 동맹국과 파트너들과 함께 그 뜻을 같이 하고 상의할 것이라며 핵 전략 무기를 한반도에 주재시키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파이낸셜뉴스 기자는 윤 대통령에게 첨단기술 동맹이 기업과 국민 개개인에게 단기 또는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줄지질문하는 한편, 바이든 대통령에게 미국의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 때문에 한국 기업이 불안하지 않도록 어떤 메시지로 안심을 시켜 줄 수 있을지물었다.

 

이에 윤 대통령은 우리 국민들께서는 전후방 효과로 나오는 다양한 넓은 산업 생태계 구축으로 많은 투자와 일자리 기회를 가질 것이다. 무엇보다 미래세대에게 도전과 혁신 의지를 불러 일으켜 우리 경제·산업이 더 번영하고 풍요해질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이해관계에 도움이 되는 것만큼이나 한국 기업들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대부분의 한국의 기업들은 분명히 미국이 어떻게든 안 좋은 영향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오크", "X같이 생긴"윤 대통령 인터뷰한 WP 기자에 '혐오테러'

'무릎 발언' 원문 공개한 WP 기자, 지지자에게 혐오표현 테러 당해

'주어 논란'을 낳은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무릎 발언'과 관련해 윤 대통령과의 인터뷰 원문 녹취록을 공개한 <워싱턴포스트(WP)> 기자가 국내 네티즌에 의한 혐오표현 테러에 노출됐다.

 

미셸 리 <WP> 도쿄 지국장은 지난 26일 자신의 SNS 계정에 "My inbox and DMs right now"(지금 내 편지함과 받은 메시지)라는 내용의 글을 올리고 자신이 받은 욕설 메일을 공개했다.

 

공개된 편지에는 "너 낳은 XXX이 빨갱이", "해충이 설친다", "교통사고 나서 X져라"라는 등의 노골적인 욕설이 가득했다. 욕설 중엔 "X같이 생긴 게", "오크(여성 외모를 평가·비하하는 은어)" 등 여성혐오적 혐오표현도 포함돼 있었다.

 

한글로 작성된 해당 편지의 작성자는 한국인 이름의 한 네티즌이다. 그는 리 지국장이 윤 대통령과의 인터뷰 원문 녹취록을 공개한 후인 26일 오후 해당 메일을 전송했다.

26일 미셸 리 <워싱턴포스트> 도쿄지국장이 자신의 SNS 계정에 공개한 욕설 메시지. 해당 메시지는 리 지국장이 윤 대통령의 '무릎' 발언 원문을 공개한 이후인 26일 전송됐다. Michelle Ye Hee Lee 트위터 계정

 

리 지국장은 앞서 지난 25일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100년 전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이거는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말했던 윤 대통령의 24일 인터뷰 원문을 공개한 바 있다.

 

해당 발언은 20일 윤 대통령과의 인터뷰를 진행한 <WP> 기사를 통해 처음 알려졌는데, 이로 인해 국내에선 대통령의 역사관 인식에 대한 논란이 다시 점화됐다.

 

이에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이 24일 오후 논평을 통해 "대통령실이 공개한 한국어 인터뷰를 보면 윤 대통령은 주어를 생략한 채 해당 문장을 사용했다. 해당 문장은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것은 (일본이) 받아들일 수 없다'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국내엔 때 아닌 주어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윤 대통령과의 인터뷰를 진행한 리 국장이 "저는"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인터뷰 발언 원문을 직접 공개하면서 상황이 뒤집혔다.

 

리 국장은 "오디오를 다시 확인해보니 다음과 같다. 말 한 그대로(word-for-word)를 올린다"라며 발언 원문을 게시했는데, 그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정말 100년 전의 일들을 가지고 지금 유럽에서는 전쟁을 몇 번씩 겪고 그 참혹한 전쟁을 겪어도 미래를 위해서 전쟁 당사국들이 협력하고 하는데, 100년 전에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이거는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고 발언했다.

 

이를 확인한 국민의힘 측은 "사실관계 확인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밝혔다. 리 국장의 원문 공개로 유 수석대변인 등 여당 측 '오역' 주장이 크게 힘을 잃은 셈이다.

한편 국내 여성·언론계는 그간 미셸 리 지국장이 받은 것과 같은 혐오메시지들이 "특히 여성기자들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훼손"하고 그로인해 "여성기자들의 언론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정치적·사회적 성향 등을 이유로 행해지는 여성기자 대상 사이버 폭력이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3월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가 발간한 '언론사 내 여성기자 온라인 괴롭힘 사례 연구'에 따르면, 유형·빈도·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국내 "여성기자들 대부분이 괴롭힘을 경험한 적이 있거나 주변에서 괴롭힘을 경험한 사례를 인지"하고 있었다. 욕설, 외모비하, 성희롱, 강간·살해·가족해침 협박, 오프라인 상의 공격까지 테러 사례와 수위는 다양했다.

 

연구에 따르면 특히 사회, 젠더, 사회적 소수자들과 관련된 이슈를 다루는 여성기자들이나 정치·법조 등 정치적 양극화에 따른 악성 댓글에 자주 노출되는 여성기자들이 괴롭힘의 주된 대상이 됐다. '윤 대통령 인터뷰 원문 공개'가 도화선이 된 것으로 보이는 이번 리 지국장테러와도 대동소이한 양상이다.

 

김수진 언론노조 성평등위원장은 지난해 9월 열린 '여성노동자 젠더폭력 대책마련' 기자회견에서 "여성기자는 남성기자가 겪지 않는 외모 비하, 강간 협박과 같은 여성기자들만이 겪는 괴롭힘에 노출되어 있다"라며 이러한 환경이 여성기자들로하여금 "본인의 일과 기자라는 직업 자체에 무력감과 두려움을 가지"게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프레시안 한예섭 기자

 

윤석열, 미국에 예측 복종을 하고 있다” [정치왜그래?]

대담 : 박성민 전 민주당 최고위원,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26(현지시각)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퇴장하고 있다.연합뉴스

 

이게 대한민국 대통령의 입에서 나올 발언인가. 저는 일본 외무상 인터뷰인 줄 알았어요.”

대통령 역사관 자체가 몰역사적이다.”

윤석열 대통령님 역사적 책임에는 끝이 없습니다.”

“‘나는 문재인 정부와 다르게 풀고 있다라는 평판만 얻으려고 한다.”

김건희 여사한테 넷플릭스 투자 보고? 이건 사실상 대통령이 둘이라는 의미다.”

 

진행자 / 57일 일정 한미 정상회담을 시작했는데, 방미 직전 있었던 외신 인터뷰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이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100년 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 일본이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말했는데요.

 

박성민 / 정말 저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이게 대한민국 대통령의 입에서 나올 발언인가. 저는 일본 외무상 인터뷰인 줄 알았어요. 일본에 면죄부를 완벽하게 주는 내용입니다. 도대체 일본을 향한 저자세 외교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리고 일본은 우리 정부가 엄청난 결단을 보여줬는데도 일본 정부는 오히려 뻔뻔해요.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시사 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러시아를 자극했습니다. 대만 문제 언급해서 이제 중국을 완벽하게 적으로 돌리는 ‘3연타를 보여주셨는데, 이러기도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터뷰로 이렇게 국민 속을 뒤집어 놓기도 힘들다는 거죠.

 

장혜영 / 완전히 고장 난 라디오 같은 상태입니다. 워싱턴포스트와 이런 일이 있었던 게 처음이 아니잖아요. 후보 시절 인터뷰에서 나는 페미니스트라는 식으로 발언했던 게 기사가 나가고 당시 한참 안티 페미니즘을 공략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었던 윤 후보로서는 문제가 되니까, 외신이 왜곡한 거라고 주장했죠. 그때도 똑같이 워싱턴포스트에서 심지어 같은 기자가 원문을 공개해 반박이 불가능해진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한민국 대통령이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가 없는 인식을 드러낸 문제가 반복됐고, 그게 똑같은 기자한테 또다시 원문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반박당하는 이런 망신을 당한 셈인데요. 윤석열 대통령의 가장 큰 특징은 잘못을 저질러 놓고 그걸 지적당했을 때 반성하고 사과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국민들하고 싸우는 대통령 특히 역사하고 싸우는 대통령이라고 하는 점인 것 같아요. 대통령 역사관 자체가 몰역사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너무나 대조적으로 윤 대통령의 이 발언이 나오기 전, 419일 독일 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이 폴란드를 방문해서 80년 전에 있었던 유대인에 학살을 사과하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역사적 책임에는 끝이 없다.” 정확하게 이 말을 윤 대통령에게 돌려드리고 싶어요. 윤석열 대통령님 역사적 책임에는 끝이 없습니다.

 

박성민 / 그러니까 이거는 100년 전에 일어난 과거의 일이 아니라, 일본이 제대로 반성하고 제대로 사죄하고 제대로 배상하지 않으면 이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현재의 일을 가지고 100년 전에 일어난 일이라고 사안을 가볍게 보는 듯한 또는 마치 남의 나라 일로 보는 듯한 인식이 저는 정말 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제일 무섭습니다.

 

진행자 / 대체 이런 미국과 일본 편향 외교로 얻을 수 있는 국익이 뭐길래 이렇게 하는 걸까요?

 

장혜영 / 미국에 대한 예측 복종을 너무 심각한 수준에서 하고 있어요.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 교수가 쓴 폭정에 나오는 개념인 예측 복종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데, 미국의 가려운 곳을 알아서 긁어주면, 미국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줄 것이라는 신앙적인 믿음이 아니고서야 도대체 이런 폭탄 발언들 사이에 어떤 일관성을 찾을 수 있을까요?

 

박성민 / 저는 윤석열 대통령의 이 모든 문제의 근간은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고 싶은 조급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이 조급증이 모든 걸 망치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지리적 특성과 경제적 특성 그리고 안보적 특성을 살펴봤을 때 외교적으로 전략적 모호성을 계속해서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거든요.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너무나 조급하게 너무나 빠르게 무언가 자신의 성과를 포장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번에 한일 관계를 보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이 결단을 굉장히 강조하잖아요.

 

장혜영 / 대통령이 확실히 둥둥 떠다니고 있다고 밖에 평가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윤석열 정부가 추구하는 외교 실리가 무엇인지 혹시 아시는 분 계시면 제보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댓글로 달아주셔도 좋은데요. 제가 보기엔 없어요. 그냥 나는 문재인 정부와 다르게 풀고 있다라는 평판만 얻으려고 하는 거죠. 이런 평판을 자기가 얻고 싶은 건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의 실리는 사라졌어요.

 

진행자 / 우크라이나에 살상 목적의 무기 지원 같은 경우는 국회 동의가 필요하지 않나요?

 

장혜영 / 국회에서 동의가 필요하죠. 법률적인 근거가 없다고 정부에서 무식한 소리를 했지만 그게 무식한 소리라고 하는 것을 언론에서 여러모로 취재했고, 또 국회 차원에서도 확인을 한 바가 있습니다.

 

김건희 여사가 424(현지시각) 백악관 영빈관 접견장에서 열린 글로벌기업 최고 경영진 접견에서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와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진행자 / 제가 또 하나 오늘 좀 놀랐던 것 중의 하나가 넷플릭스의 한국 투자 확정에 대해 콘텐츠와 관련해 관심이 많았던 영부인에게 보고드렸다는 점이에요. 김건희 여사는 선출한 권력이 아니잖아요.

 

박성민 / 이상해요. 아니 어떻게 국가와 국가 간의 투자 계약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가는데,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영부인에게 국가 중요한 사안을 보고하느냐는 거죠. 영부인이 어디 현장을 가거나 관계자와 미팅하면 사전 자료처럼 제공할 수 있어요. 이번 대통령실의 브리핑은 완전히 결이 달라요. 어떻게 보면 김건희 여사가 중간 과정에 개입하고 이 사안을 보고받는 주체였다고 인정한 건데 이건 사실상 대통령이 둘이라는 거죠.

 

장혜영 / 김건희 여사는 윤석열 후보 시절에 자신의 의혹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 기자회견을 했고, 오직 아내로서 조용한 내조만 하겠다고 스스로 발표했다. 조금씩 공개 활동을 늘리더니, 이제는 공식적인 국가 간의 투자 문제까지 중간에 보고받았다. 이것은 분명히 국가 권력의 사유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밖에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시사인 고제규 기자

 

미국 너만 잘났냐

☑️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더욱 견제하는 가운데, 전통적인 미국의 우방 국가들이 미국과 입장을 달리하며 '독자 노선'을 강조하고 나섰다.

 

☑️ 프랑스 대통령은 대만 문제를 두고 유럽이 미국 장단에 맞춰선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각국의 비판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이를 번복하지 않았다.

 

☑️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도 오랜 우방 미국과 거리를 두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원유 증산 요청을 거부하고 감산을 결정한 게 대표적이다.

 

☑️ 브라질 대통령은 중국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만나 미국 1강 체제 거부와 다자주의 강화를 선언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반러시아체제를 공고히 하려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전략에 미묘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11(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유엔 총회 투표 성향, 러시아 제재 이행 여부,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 정도 등을 종합해 분석한 결과 무려 127개국이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 국가로 나타났다. 친서방 국가로 분류되더라도 결속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덧붙였다.

 

미국으로선 전통적인 우방이라고 여겼던 국가들의 변심이 뼈아프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최근 독자 노선을 강조하며 바이든 대통령의 속을 긁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과의 접점을 넓혀가고 있는데, 대부분 외신과 전문가들은 이 같은 친중 행보를 실용 외교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에너지 대란 등에 대응하기 위해 전 세계 경제의 큰손인 중국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들이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바로 대륙의 지도자자리를 꿈꾼다는 설명이다. 세 사람의 최근 발언을 보면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서 탈피해 각 지역의 맹주가 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여기에 프랑스와 사우디, 브라질 모두 극심한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거나 경제·사회 시스템 변혁기에 놓여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미국과 각을 세워 내부 갈등을 정리하겠다는 의중이 읽힌다.

 

연이은 폭탄 발언 프랑스 마크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9일 중국 방문을 마치고 프랑스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진행된 폴리티코 등과의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를 언급하며 최악의 상황은 유럽이 추종자가 돼 미국의 장단과 중국의 과잉 대응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두 초강대국 사이에 긴장이 고조된다면 우리는 전략적 자율성을 구축할 시간이나 재원을 마련하지 못한 채 미국에 종속되고 말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에마뉘엘 마크롱(오른쪽)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7(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시 주석 아버지 시중쉰이 머물렀던 광둥성 총독 관저 정원을 둘러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과 유럽 각국의 비판이 쏟아졌지만, 12일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해서도 마크롱 대통령은 동맹이 곧 속국이 되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며 소신 발언을 이어갔다. 이에 미 CNN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은 자신을 유럽연합(EU) 지도자로 내세우려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앞서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호주에 핵잠수함 기술을 이전키로 한 거액의 계약을 미국에 뺏긴 것도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의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도록 한 요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마크롱 대통령의 측근을 인용해 그는 영향력에 대한 야망이 없다면 지금의 프랑스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 믿고 있다고 전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불안한 국내 입지가 깜짝 발언을 부추겼다는 시각도 있다. 그가 이끄는 중도연합은 지난해 6월 총선에서 과반 확보에 실패했고,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연장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연금 개혁안 강행 처리 후폭풍도 거센 상황이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그의 중국 방문과 일련의 발언에 대해 떨어지는 인기와 연금 개혁 반대 시위에 대응하는 차원이라면서도 이 모험은 프랑스의 전형적인 외교 정책을 뛰어넘는 도박이라고 지적했다.

 

중동 역학 재구성 노리는 사우디 빈살만

무함마드 왕세자의 광폭 행보는 더욱더 놀랍다. 지난달 중국의 중재로 앙숙이란과 관계 정상화에 시동을 걸었고, 2011년 내전으로 아랍연맹(AL)에서 퇴출당한 시리아 복귀에 앞장서고 있다. 예멘 분쟁 해결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반면 오랜 우방인 미국엔 냉랭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에너지 가격 대응을 위한 바이든 대통령의 증산 요청을 계속 거부하고 오히려 감산을 결정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지난해 1115(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모습. AP연합뉴스

미 워싱턴포스트(WP)매우 느린 외교로 악명 높은 사우디의 놀라운 진전이라며 미국의 미래가 불확실한 시기에 사우디의 맹렬한 외교 노력이 중동 지역의 역학을 재구성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외신들은 이란이 수개월 동안 계속된 반정부 시위와 서방 제재로 흔들린 틈을 이용해 무함마드 왕세자가 중동·아랍 리더로서의 지위를 확실히 매김하려 한다고 본다.

 

석유 등 에너지 일변도의 산업 구조 재편에 나서며 내부 개혁을 추진 중인 빈살만 왕세자가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란·시리아 등과 손을 잡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WP국내 개혁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선 해외에서 안정을 추구해야 한다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군사적 얽힘을 빈살만 왕세자는 풀고 싶어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브라질 룰라남미 리더존재감 과시

룰라 대통령 또한 미국 때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그는 지난 14일 중국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만나 미국 1강 체제 거부와 다자주의 강화를 천명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도 미국 등 서구 열강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해 분쟁을 연장하고 있다는 등 날 선 발언을 쏟아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왼쪽) 브라질 대통령이 지난 14(현지시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WP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시절 약해진 브라질의 남미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한 전략의 일부라고 진단했다. 남미를 뒷마당 취급한 미국에 맞서 남미 지도자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 또한 룰라 대통령이 조만간 아프리카를 방문할 예정이라며 그곳에서도 브라질의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그는 지난 1월 취임하며 남미판 EU로 불리는 우나수르(Unasur) 재건을 외교 정책 1순위로 꼽았다. 2008년 남미 12개국이 참여해 출범한 우나수르는 현재 사실상 기능이 정지된 상태다. 룰라 대통령은 지난 16일 마리오 압도 베니테스 파라과이 대통령과 함께 브라질 남부 포스두이구아수 수력발전소를 찾아 우나수르를 다시 일으켜 남미의 번영과 안정을 위한 계획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파라과이 등과 함께 하는 무역공동체 메르코수르(남미경제공동체)의 단합도 언급했다. 그는 국제사회에서 남미의 더 큰 협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룰라 대통령은 남미 화폐 통합을 추진하겠다는 뜻도 내비친 상태다.

경향 손우성 기자

 

미분양 아파트 매입하라던 한국경제, 전세사기 피해 지원은 안 된다?

417일 전세사기 피해자의 사망 소식이 또다시 전해졌습니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피해 규모도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모양새입니다. 뒤늦게 정부·여당에선 피해자 지원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피해자의 요구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채 지원 문턱이 지나치게 높거나 소극적인 지원에 머물러 확실한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론도 정부 대책의 세금 투입을 염려하며 과잉대책을 경계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요. 올해 초 부동산 경기를 걱정하며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라고 정부에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요구하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입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건설 경기 불황엔 앞장섰지만, 서민 피해에는 신중함을 요구하는 언론 보도를 살펴봤습니다.

 

LH 미분양 주택 매입, ‘혈세로 건설사 살렸다비판

지난해 12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 칸타빌 수유팰리스’ 36가구를 794950만 원에 매입했습니다. 매일경제 <7조 들여 건설사 살리기?LH, 악성 미분양 아파트 매입>(118일 이가람 기자)은 부동산 시장 침체로 부동산 적체 물량이 해소되지 않자정부가 공공기관의 주택도시기금까지 투입해 미분양 아파트를샀는데, “국민 혈세로 건설사 살리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고 보도했습니다.

 

<연합뉴스>(130)에 보도에 따르면, LH는 최초 분양가 기준 약 15%가 할인된 금액으로 평균 분양가보다 12% 낮은 금액에 매입했다고 항변했지만,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내 돈이었으면 이 가격에는 안 산다며 세금으로 건설사의 이익을 보장해 주고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꼴이라고 일침을 가했는데요. 참여연대 역시 수차례 미분양된 주택을 LH공사가 추가 할인 없이 매입하는 것은 건설사의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는 조치라고 지적했습니다.

 

한국경제, 미분양 해소 선제적 조치 주장하더니

하지만, 당시 한국경제는 부동산 경기와 건설업계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미분양 아파트 매입을 요구했습니다. <사설-국토부 주택기금으로 미분양 매입도덕적 해이 조장은 금물>(117)“‘부실 건설사 특혜 구제라는 비판이 제기되지만, 한국 경제 연착륙을 위해 주택시장 안정이 필수라는 점에서 나무랄 수만 없는 선택이라며 집값 추락은 금융시장과 경제 전반에 큰 후폭풍을 부를 휘발성 큰 이슈라는 점에서 가용 정책 수단의 총동원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건설업계의 자구 노력이 선행돼야하고, “도덕적 해이 예방은 기본이라면서도 가계부채와 부동산경기 급락이 우리 경제의 뇌관인 만큼 더 신중하고 정교한 정책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는데요. 한국경제의 미분양 아파트 매입 주장은 이후에도 계속됐습니다.

 

<“LH가 미분양 아파트 사줬으면 하는데건설사 날벼락>(36일 김진수 기자)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미분양 아파트 매입이 평균 분양가 대비 12% 할인된 가격이었지만,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한마디 하면서 미분양 해결의 돌파구가 될 수 있는 매입 임대 시장이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지난해 이후 전국 미분양 주택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LH준공을 앞둔 아파트 단지 위주로 매입에 나서는 게 미분양 해결책이 될 수 있지만, 정부의 고가 매입 논란과 관련된 엄포” “LH가 지나치게 위축돼매입 임대 사업에 소극적으로 될까 걱정하는 업계의 우려를 전했습니다.

 

<미분양 해소 위해 한시적 거래세감소 카드 나오나>(313일 김진수 기자)에서는 전국 미분양 아파트가 단기에 급증하면서 건설사의 부담이 커진다며 미분양 주택 해소를 위해 한시적으로 거래세 감면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진다고 보도했습니다. 더 나아가 미분양이 위험수위를 넘어 건설사가 한계 상황으로 내몰린다고까지 주장했는데요. “취득세와 양도소득세 감면 등 거래세를 한시적으로 감면하는 선제적 대처와 다양한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업계의 주장을 거듭 부각했습니다. <“미분양 줄이려면 취득세·양도세 감면해야”>(410일 심은지 기자)에서도 안정적인 주택 공급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맞춤형 세제 완화가 필요하적극 행정이 필요하다는 업계 관계자들의 주장을 또다시 인용했습니다. 건설사 이익을 위해서는 수차례 같은 주장을 반복 보도하고 있습니다.

 

전세사기엔 피해자 관점만 봐선 곤란하다’?

반면, 한국경제는 전세사기 피해 대책에는 피해자가 아닌 재원 문제를 우선시하며 형평성 문제를 살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설-임대시장 초토화 전세 사기극날림·과잉대책 모두 경계한다>(421)전세 사기파장이 일파만파로 커지며 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라면서도 야당들은 공공에서 임차인 보증금 우선 반환’ ‘공공 매입등 재원 문제는 감안하지도 않은 설익은 지원 방안을 요구하며 혼선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피해자 희생을 언급했지만, 재원 문제를 우선한 것인데요. “지난해 하반기 이후 네 차례의 전세사기 피해 관련 대책이 나왔음에도 비극적 사태가 이어진 사실을 정부는 엄중히 봐야 한다당장 피해자 구제와 긴급 지원, 유사 상황 방지 다 중요하다고 했지만, “정부가 여론에 쫓기며 모든 것을 피해자 관점에서만 봐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했습니다.

422, 정부에 전세사기 피해 대책의 신중을 경고한 한국경제

 

더불어 세입자 우선매수권이나 세입자 채무상환 유예 등대책이 구체적으로 거론되지만, “누가 어떤 돈을 댈지부터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며, “전세금 미상환을 모두 해결해 줄 수는 없지 않냐고 강변했는데요. 건설경기를 위해 미분양 물건을 세금으로 지원하고, 맞춤형 세제 완화까지 주장하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입니다.

 

한국경제 기업 지분율 약 92%, 건설사 다수

전국언론노동조합 <보도자료-91.5%기업이 가진 한국경제신문 지분>(20221129)에 따르면, “국내 52개 기업이 한국경제신문 지분을 91.483%나 가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국경제 지분을 가진 기업 중 동아건설산업, 호반건설, 경남기업, 삼부토건, 동양, 금호건설등 건설기업도 다수 보이는데요. 한국경제가 기업의 입장에서 보도하고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보도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은 <민언련 보고서>에서 여러 차례 지적된 새롭지 않은 문제입니다. 하지만, 건설사의 어려움은 선제적 조치를 주장하던 한국경제가 전세사기 피해 희생자가 계속되는 상황인데도 피해자 관점으로만 봐서 곤란하다며 신중론을 주문하는 걸 보니, 기업만이 한국경제의 독자인지 개탄스럽습니다.

423, 전세사기피해자대책위원회 안상미 위원장을 인터뷰한 KBS 보도

 

KBS <피해자들이 보는 정부 대책은?>(423)는 전세사기피해자전국대책위원회 안상미 위원장을 인터뷰했습니다. 보증금을 혈세로 직접 지원하는 방식국가 대납은 안되며, 그것은 포퓰리즘이라고 주장한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의 발언에 안상미 위원장은 은행의 부실채권, 정부가 세금으로 다 사고 있, “건설사 미분양 아파트 정부가 세금으로지원하는데, 대기업이나 금융권에는 정부가 세금을 적극적으로 투입하면서 왜 이 피해자들에게세금이 들어가면 안되느냐고 되물었는데요. 안 위원장은 제도적으로 잘못된 정책으로 피해가 발생했는데도 정부가 책임이 없다는 전제하에 대책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습니다. 안 위원장은 전세 사기범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부실 대출을 눈감은 은행권과 잘못된 정책을 방관한 정부의 책임도 있는 만큼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피해자들에게 적합한 대책이 나올 수 있도록 원활한 소통을 요청했습니다.

 

미흡한 정부 대책, 왜 피해자에게 세금 지원 안 되나?

정부는 427<범부처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연합뉴스 <전세사기 피해자에 우선매수권 주고 경매자금 전액 대출>(427일 박초롱 기자)야권과 피해자들이 요구한 '선 보상 후 구상권 청구' 등 보증금 직접 지원 방안은 배제됐으며 집값 하락으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깡통전세 피해자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셈이라고 짚었습니다. 한겨레 <전세사기 피해자들 지원대상 걸러내는 특별법보여주기식반발>(427일 곽진산 기자)는 소극적인 정부 대책에 실망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보도했는데요.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시민사회대책위원회(대책위)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법안이 아니라 피해자를 걸러내기 위한 법안이라 지적하고 채권매입방안이 빠졌으며 추상적인 기준 때문에 피해자에게 혼선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전세제도나 도시주택공사(HUG)전세보증금반환보증상품도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지만, 어렵게 마련한 전세 자금을 잃고 낙담한 채 생사를 오가고 있는 국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서서 도울 수 있는 것도, 도와야만 하는 것도 정부입니다. 언론은 모든 것을 피해자 관점에서만 봐서는 곤란하다라고 말하기 전에 더 이상 안타까운 희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가 적극 구제에 나서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언론이 국민을 위해 앞장설 때 언론의 효용성도 높아질 것입니다.

 

- 모니터 대상 : 202311~425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에서 전세사기, 미분양 관련 보도

 

미디어오늘 민주언론시민연합

 

깡통전세경고 뜰 때 정부는 부자 감세했다

전세사기 뒷북대책, 지원 대상 인정 폭 좁아

사회적 재난 인식, 현실적 정책 필요

417일 오전 전세사기 피해 사망자가 거주한 인천시 미추홀구 한 아파트 현관문 앞에 추모 조화가 놓여 있다. / 연합뉴스

 

그럼 내가 죽을까요? 또 죽어야 법이 바뀌나요?”

지난 424일 더불어민주당이 개최한 전세사기 피해자 간담회장. 피해자 A씨가 발언을 이어가다 결국 울분을 토해냈다. 그는 인천 미추홀구에서 발생한 일명 건축왕전세사기 사건의 피해자 중 한명이다. 전세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면서 2억원이 넘는 대출금을 고스란히 날릴 위기에 놓였다고 했다. 임대업자와 실소유주인 건축업자, 그리고 이들로부터 수당을 받아챙긴 공인중개사와 컨설팅업체까지 동원된 이 대규모 사기극의 피해 규모는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밝혀진 피해자만 480여명, 피해금액은 380억원대에 달한다. 피해자들이 추산하는 피해금액은 1400억원대로 이보다 훨씬 크다.

 

A씨가 죽음까지 언급한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 228일부터 417일까지 한 달여간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3명이 연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명 모두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에서 함께 활동하던 사람들이다. 남은 피해자들에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미추홀구 문제만이 아니다. 이보다 앞서 유사한 형태의 빌라왕사건으로만 1500여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수도권에서는 화성과 구리 등으로 전세사기 피해가 확산되고 있고, 지방에선 부산에서도 전세사기 의심사례가 나왔다. 현재까지 얼마나 피해가 발생했는지, 앞으로 또 얼마나 피해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전세사기를 특정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사회적 재난으로 인식하고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사기꾼 다음엔 경매꾼, ‘미추홀의 비극

건축왕 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인 B씨가 전세사기를 직감한 건 지난해 2월이었다. 은행에서 통지서가 날아왔다. 집이 곧 경매에 들어간다는 내용이었다. 임대인에게 전화했더니 절대 경매에 넘어갈 일 없으니 걱정말라는 답이 돌아왔다. 집을 소개해준 공인중개사도 같은 대답을 했다. 임대인이 명의만 빌려준 바지 임대업자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실소유주인 건축업자를 알아내 전화를 하자 왜 이런 일로 전화를 하냐며 대뜸 화를 냈다.

 

B씨의 집은 결국 경매로 넘어갔다. 집이 낙찰되자 퇴거 통보가 날아왔다. 보증금 5600만원을 한 푼도 못 받고 쫓겨나듯 집을 나왔다. B씨는 그나마 나중에 보증금 최우선변제를 받을 수 있어 형편이 나은 편이다. 최우선변제 대상이 아닌 그의 지인은 7000만원이 넘는 보증금을 떼이고 신용불량자가 돼 개인회생절차를 밟고 있다. “집이 경매에 넘어가는 순간 끝이라고 보면 됩니다. 앞이 안 보입니다”. B씨가 말했다. 자살을 택한 피해자들 역시 최우선변제를 받지 못하거나, 집이 경매에 넘어가 벼랑 끝에 몰린 사례였다.

 

피해자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건 세간의 시선이다. 피해자들을 향해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나 댓글 등에서는 신축을 선호하다 근저당이 잡힌 집에 들어간 것이 잘못”, “무지의 소치등의 조롱이 쏟아졌다. 미추홀구를 비롯해 전국의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문제에 대해선 혈세 낭비라는 비난이 이어졌다.

 

전세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피해자를 제외한 임대인, 공인중개사 등 관련자들 모두가 작정하고사기를 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건축왕 사건의 경우 피해자들이 계약 전 근저당 문제를 염려하면 이들은 실거래가가 훨씬 높아 문제없다”, “곧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할 거다”, “집주인이 재력가다등의 말로 안심시켰다. 피해자 C씨의 경우 근저당이 해소된 것을 확인한 뒤 계약했는데도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 주범인 건축업자가 거액의 국세를 체납 중인 사실을 까맣게 몰랐기 때문이다. 이들 일당은 지난해 초부터 집이 하나둘씩 경매에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를 감춘 채 세입자들에게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해 추가로 돈을 뜯어낼 정도로 악랄하고 뻔뻔했다.

 

서울 용산의 한 공인중개사는 보통 임차인, 특히 사회경험이 적은 20~30대의 경우 임대차계약 체결 과정에서 공인중개사에게 상당부분 의존하는 게 현실이라며 공인중개사까지 작정하고 사기에 가담했다면 계약의 불법성이나 위험성을 임차인이 알기 어렵기 때문에 사태의 책임을 피해자 개인에게만 돌려선 안 된다고 말했다.

 

미추홀구 사건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2400 조직전세사기 사건도 수법은 비슷했다. 이들은 2018년부터 전국의 오피스텔과 빌라 등 3400가구를 보유한 채 전세사기를 벌이다 붙잡혔다. 사건의 피해자 중 한명은 “2020년 전세계약을 하면서 근저당도 확인했고, 국가에서 지원하는 전세대출도 무사히 나와 나라가 보기에도, 은행이 보기에도 전세금을 돌려받는 데는 문제가 없는가 보다 하고 기뻐했다나중에 알고 보니 공인중개사는 깡통전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고, 감정평가사는 감정가를 부풀려 대출을 받게끔 유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빌라왕사건도 세입자들이 피해를 예상할 수 없었거나 알아도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최초 집주인(임대인)은 주택 가액에서 근저당 금액을 제외한 가격으로 전세를 내준 뒤 미리 포섭해둔 바지 임대인에게 소유권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보증금 반환 의무를 벗어났다.

깡통전세경고 뜰 때 정부는 부자 감세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이번 전세사기 사태의 근본적인 배경에는 정부의 빚내서 집 사라 정책’, 무분별한 전세대출 확대 정책으로 인한 집값·전셋값의 폭등, 묻지마 보증 방치, 등록임대주택 관리 및 보증보험 관리 부실 등 정부의 책임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전세사기단이 휩쓸고 지나간 미추홀구엔 경매꾼들이 몰려들었다. 경매로 나온 집을 저렴하게 낙찰받은 뒤 이를 되팔아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었다. B씨가 살던 집도 그가 퇴거를 마치자마자 집 창문에 매매합니다안내문이 붙었다. 낙찰을 받게 되면 한 달 내 잔금을 치러야 한다. 경매꾼들은 감정가의 60~70%로 낙찰받은 집을 수천만원가량 비싸게 되팔아 잔금을 내고 이익도 챙겼다. 어떤 경매꾼은 낙찰받은 집을 담보로 돈을 대출받아 또 다른 경매에 나서기도 했다.

 

미추홀 사건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3명의 피해자는 모두 20~30대다. 하나같이 젊고,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살았다. 전세사기로 사람이 죽고, 길거리로 내쫓기는 현장에서 누군가는 손쉽게 돈을 벌어갔다. 미추홀에서 벌어진 비극이다.

 

깡통전세 대란 예고됐는데 정부는 뭘 했나

전세금 미반환이든 전세사기든 주택가격이 임대보증금 수준에 못 미치는 깡통전세상황에서 주로 발생한다. 전세사기의 경우 집이 경매로 넘어가더라도 주택가격이 유지되고 있으면 보증금을 일정부분 회수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깡통전세는 특히 집값의 급등·급락이 이어진 시기에 위험성이 더 높아진다. 급등 시기에 높게 형성된 전세계약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집값이 급락하면 깡통전세로 이어진다. 이 같은 집값의 급등락이 대표적으로 나타난 곳이 인천이다. 인천 아파트의 경우 매매가 기준 2021년에 34.5% 상승해 전국 1위였지만, 2022년에는 21.9% 하락해 이 역시 전국 1위였다. 인천 미추홀, 계양 등지에서 대형 전세사기 사건이 터진 배경 중 하나다.

 

부동산시장에서 깡통전세의 경고음이 본격화된 건 2021년 하반기부터다. 전세가격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황에서 주택가격 상승이 둔화되고, 금리 인상 등의 여파로 거래가 급감하기 시작했다. 20223월 한국도시연구소와 주거권네트워크는 ‘2021년 실거래가 분석을 통해 본 주거 정책의 과제보고서를 통해 전북·경북 등지의 아파트 전세가율이 평균 102.7%100%를 초과한 상태임을 분석한 뒤 세입자 보호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대선 후인 같은해 4월 인수위원회에서 임대차 3법을 축소 내지는 폐지하겠다고 밝혔을 때도 임대차법 폐지와 같은 퇴행적 방법이 아니라 임차인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참여연대), “세입자가 무법지대와 다름없는 임대차시장에 무방비 상태로 놓인 채 보증금을 떼이고 있다”(민달팽이유니온) 등 세입자 보호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 시기는 이미 빌라왕’, ‘건축왕등의 대형 전세사기 사건의 피해가 구체화되던 시점이기도 하다.

 

지표상으로도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집주인 대신 세입자에게 변제한 보증금 규모가 20204682억원에서 20221조원을 넘어섰지만, 윤석열 정부에 깡통전세 문제나 세입자 보호 대책 마련은 뒷전이었다. 윤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정부는 종합부동산세 완화 등 부동산 보유세를 감면하는 데 부동산 정책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여기에는 임대사업자 및 다주택자 규제 완화 등도 포함됐다. 보유세 완화 혜택은 부유층에 집중돼 부자 감세논란이 일었다. 이강훈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변호사)기준 금리 인상 가능성에 따른 주택 수요 위축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과도한 주택공급 목표를 낮춰 민간 공급 위축을 감안한 공공주택의 공급 확대, 전세 피해 지원 대책 마련 등을 통한 주택시장 안정화를 추진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전세사기 대책을 처음 마련한 건 지난해 9월이다. 정부는 임차인 재산보호와 주거안정 지원을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지만, 대책 대부분이 피해 예방이나 전세사기 단속 강화 등에 집중돼 이미 피해를 입은 세입자들을 보호하거나 지원하지 못했다. 예컨대 당시 대책에서 나온 최우선 변제금액 상향의 경우 근저당권 설정일을 기준으로 최우선 변제대상 여부를 가리게 된다. 이에 따라 대책 이전에 전세계약을 한 피해자들 상당수가 변제대상에서 빠졌다. 11월에 나온 전세사기 등 방지를 위한 임대차 제도개선방안도 체납사실확인 청구권 신설 등 주로 예방책이었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전세사기범 소탕을 중심으로 보고 애초에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 회원들이 420일 오후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가해자 일당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죽어서야 주목받은 피해자들

정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지난해 12빌라왕사건이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된 뒤였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의 피해자 대면 간담회도 이때야 열렸다. 윤 정부 출범 후 국토부는 전세사기관련 대책 등이 담긴 보도자료를 모두 21(국토부 홈페이지 기준) 배포했다. 이중 18건이 지난해 12월 이후 나왔다.

 

정부가 피해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구제방안을 마련한 건 올해 2월 초다. 피해자들에 대한 대출완화 등 금융지원과 긴급거처 지원, 원스톱 법률서비스 지원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 구제방안 역시 이미 집이 경매에 넘어간 피해자들에겐 무용지물이었다. 세상을 등진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3명 모두 이 대책 발표 이후 나왔다. 첫 사망자인 D씨는 휴대전화에 남긴 유서에서 정부 대책이 굉장히 실망스럽고 더는 버티기 힘들다. 저의 이런 결정으로 이 문제를 꼭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범정부 차원의 대응팀이 생긴 것도, 2년 전부터 발의된 나쁜 임대인 공개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도 피해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뒤였다. 피해자와 정의당 등이 지난해부터 요구해온 경매 중단, 경매 시 피해자에게 우선매수권 부여,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통한 공공매입지원 등의 방안도 최근 들어 구체화됐다.

 

야당 등 정치권서도 뒤늦게 전세사기를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하고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준비 중이다. 정부는 지난 427일 특별법 제정 등을 포함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 방안을 발표했다. 특별법을 만들어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된 임차인들에게 해당 주택 우선매입을 위한 특례를 지원하고, 계속 거주 희망 시 공공 매입 후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방안, 피해자에게 긴급 자금 및 복지지원을 하는 방안 등이 골자다. 특별법은 2년간 한시 적용된다. 특별법 시행 직전 2년 내 경·공매가 종료된 피해자에 한해선 소급적용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정부 방안은 그러나 국토부 내 설치될 전세사기 피해지원위원회가 인정한 피해자에 한해 특별법 적용을 받도록 하고 있다.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선 주택이 반드시 경·공매에 들어가야 하고,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 등 6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이는 피해자들에 대한 폭넓은 지원을 바라는 야당과 시민단체 등의 요구에 미치지 못하는 내용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예컨대 빌라왕사건의 경우 바지 임대인이 잇달아 사망하면서 경매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사례가 많다. 공공기관의 보증금반환증권 인수를 통한 피해자 보증금 회수 지원 방안은 이번 대책에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는 피해자의 개별 보증금을 정부가 지급할 순 없다는 논리를 반복 중이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은행권에서 부동산PF 부실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가 나서서 매입해주겠다고 해놓곤 전세사기 피해자에겐 지원을 못 한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향후 피해를 막기 위해 전세가율(주택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을 일정수준 이하로 제한하는 등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경향 송진식 기자

 

아이 버리고 부끄러움도 버린 한국

국외 입양인 5명의 팔린 삶

 

2차 대전 이후 국제 입양된 아동 45, 그중 25만명이 한국인

백인 비싸고 흑인 싫어 아시안 구매학대·트라우마 지속된 일상

우리는 범죄 피해자2025년 아동 송출 멈추겠다는 정부 비판

국외 입양 70주년을 맞아 한국을 찾은 입양 예술인들이 지난 20일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서울 종로구 관훈동 마루아트센터에서 <한겨레>와 집담회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 정부가 2025년까지 헤이그 국제 아동입양 협약을 비준하겠다고 한 보도를 봤다. 우리는 당신들이 그걸 비준하고 새로운 시간을 시작하기를 기대하면서 35(1988년 서울올림픽 기준)을 기다렸다. 지금도 학대받는 아이들이 있다. 당장 그런 행동을 멈추게 해야 한다. 왜 우리가 이런 낡은 시스템이 2년이나 더 지속되는 걸 두고 봐야 하고, 왜 아이들이 2년이나 더 짓눌려야 하나? 한국 정부는 최대한 빨리 협정을 비준해야 한다.”

 

메리는 눈물을 글썽이며 호소했다. 한국 정부는 1988년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1996년까지 국외 입양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강국이 됐다고 자부하지만 여전히 아동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떠안고 있다. 지금도 한 해 200명 이상의 아이들이 국외로 입양된다. 정부는 아이가 태어난 나라에서 자랄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고, 불가피하게 나라 밖으로 보낼 경우 이를 국가가 책임지도록 한 헤이그 국제 아동입양 협약을 오는 2025년까지 비준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국외 입양 중단까지 2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대한민국이 국외 입양을 시작한 지 70년을 맞았다. 박찬호 해외입양인들과 함께하는 문화예술협회’(KADU·카두) 대표는 학자들은 관련 서류가 남아 있는 입양인 18만명, 서류 확인이 안 된 이들까지 한국 아동 25만명이 국외 입양된 것으로 추산한다. 2차 세계대전 뒤 전세계에서 생겨난 45만명의 입양인 가운데 절반이 넘는 규모라고 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국땅으로 송출된 입양인 상당수는 차별과 학대를 당했다. 성장한 입양인들은 이제 정부에 진상 조사를 요구한다. 2022년 국외 입양인 372명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자신의 입양 과정 등에 관련해 인권침해 여부를 조사해달라고 했다. 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이들 가운데 34명에 대한 조사 개시를 결정했다.

 

국외 입양 70년을 맞아 카두가 주최한 대동제에 많은 입양인이 참여했다. 카두의 협조를 얻어 이들 가운데 5명을 한자리에 모았다.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관훈동 마루아트센터. 자신의 작품이 걸린 전시장에서 숙(네덜란드·연극 제작자), 기무라 별(벨기에·페미니스트 예술가), 정 린 스트란스키(미국·비디오 예술가) 예술가 3명과 메리 바워스(미국·먹기대회 선수), 은혜 김(미국·침술사)은 입양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되짚었다. 한국말을 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대화에선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가 느껴졌다.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위로했다. 우리에게 뼈아픈 말도 남겼다.

해외입양인들과 함께하는 문화예술협회가 지난 22일 서울 삼성동 민속극장 풍류에서 연 대동예술제에서 입양인들과 시민들이 촛불을 켜고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싸고 빠른 비행기 아이들

세계 최대 입양아 송출국, 대한민국이 보낸 싸고 빠른 비행기 아이들은 머나먼 이국땅에서 차별과 학대에 부닥쳤다.

메리 길을 갈 때 눈 흘김, 입양아라는 수군거림을 날마다 듣고 살았다. 영어를 잘 못하는 어린 시절엔 놀이터에서 신체적 괴롭힘을 당했다. 아주 비열했다. 어른이 될 때까지 멈춰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기무라 “1980년대 벨기에에 한국계 입양인은 거의 없었다. 일자리를 찾으러 가면 아시아 사람은 원하지 않는다. 차이니즈 레스토랑에 가 보라고 했다. 허드렛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모욕하고 싶을 때는 중국어로, 칭찬할 땐 일본어로 나를 대했다.”

기무라는 일본계 혼혈이다. 그는 벨기에에서 한국인 입양인 단체를 조직해 입양인 권익을 위해 싸워왔다. 현재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퀴어와 페미니스트 예술가로 활동한다. 숙은 더 처절한 경험을 털어놨다.

 

1970년대 네덜란드로 입양됐는데, 그곳에선 앞선 입양 부모들이 입양인 아이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편지로 적어 전해 주는 게 일종의 프로토콜이었다. 편지엔 한국 성은 제거하고, 쌀밥도 주지 마라. 한국어로 말하면 벌을 주라고 썼다. 양부모는 나를 백인으로 만드는 게 올바른 길이라고 믿었다. 수술로 내 눈동자가 파란색이 되게 하려고 애썼다. 백인처럼 피부가 하얗게 보이도록 박박 문질러 씻겼다. 이건 사적인 특별한 상황이 아니다. 프로토콜이었다. 수많은 이들이 이런 일을 겪었고, 나보다 더 심한 경우도 많았다.”

 

메리 내 양부모 가족들은 자신이 인종주의자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런 (인종주의적) 행동을 지속했다. 내 양부모에게 그게 선한 것이고, 그렇게 다뤄야 한다고 조언하는 시스템이 더 문제였다. 난 그런 걸 막을 수 없었다.”

 

메리가 말한 것처럼 그들은 자신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애는 이렇게 다뤄야 해’, ‘잡고 발로 차 버려이런 식으로 말을 퍼뜨리고, 그게 커뮤니티의 상식이 된다. 그건 정말 무서운 일이다.”

 

기무라 우리가 겪는 걸 정확히 이해하려면 일제 식민지에 사는 조선인을 생각하면 된다. 난 양부모를 기분 좋게 하려고 당신은 우리를 위해서 희생했어요. 당신이 날 구해줬고, 당신이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양부모에게 보답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내 의무였다.”

 

정은 미국 시카고에서 자랐다. 지금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산다.

그들(입양기관 관계자와 양부모)은 항상 넌 양부모에게 감사해야 해. 안 그러면 넌 지금 한국에서 훨씬 나쁜 상황에서 살고 있을 것이라고 반복해 말했다. 그런데 나를 위해 그렇게 (입양)했다는 건 거짓말이다. 그들은 나에게서 부모, 가족을 빼앗아 갔다. 그들은 의사가 내 생부모에겐 내가 죽었다고 말했다고 했고, 나에겐 생부모가 나를 버리고 떠났다고 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내 삶 전체가 사기당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입양인의 삶을 이야기하는 집담회에 참석한 기무라 별(왼쪽부터), 정 린 스트란스키, , 은혜 김, 메리 바워스.

 

정체성 혼란과 성적 학대

정체성 혼란은 일반적이다.

고등학교 때 나에게 아시아 여자는 매력이 없다는 얘기를 계속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 정작 내가 아시아인이라는 것도 몰랐다. 주변이 다 백인들인데 그들은 넌 어떻게 그렇게 하얗니?’라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백인 혼혈인 줄 알고 살았다.”

괴롭히고 놀리는 말조차 자신이 속한 집단의 다수를 점한 인종적 특성을 인정하는 말로 착각했다는 것이다.

대학에 갔는데 흑인 친구들이 너는 백인이 아니야라고 정확히 알려줬다. 내가 변화의 길로 나아간 건, 그 친구들 덕분이다. 그들은 넌 괜찮아. 우리가 우리 인종을 자랑스러워하듯 너도 네가 속한 인종을 자랑스러워해야 해라고 말했다. 아시아인으로 정체성을 알게 해준 그 친구들이 정말 고맙다.”

 

은혜 나는 내가 백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을 때, 그 잔혹함과 싸워야 했지만 좋았다. 내 현실에 대해 더 많은 걸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메리 흑인과 백인 혼혈인 입양인 친구가 있었는데, 그 역시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트라우마 극복에 아주 도움이 됐다. 살아오면서 많은 정체성 혼란이 있었는데 여전히 계속되는 것 같다. 어릴 땐 환경의 변화와 감정 등에서 정체성 혼돈을 경험했다면, 성인이 되면서 과도하게 동양인으로 성적 대상이 됐다는 걸 알았다. 그건 정말 두렵고, 공포스럽다.”

성적 학대에 직면했던 경험을 토로하자 모두 격하게 공감했다.

 

어릴 땐 성적 학대가 너무 많았는데, 아시아 여자아이에겐 그게 일상이었다. 공포 그 자체였다. 성인 남자들은 길거리에서 중국 소녀 이리 좀 와 봐’ ‘좀 더 가까이 와 보라니까이런 식으로 희롱했다. 정말 무서웠다.”

 

왜 항상 우리는 중국 여자애로 불렸는지, 나도 정말 혼란스러웠다.”

내 또래 백인 네덜란드 아이들에게 그런 성적 학대가 일어나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한텐 너무 정상적인 일이었다.”

 

예쁜 여자애 샀는데넌 추해졌어

참석자들은,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자 입양을 선택한 양부모 대부분이 백인 아이를 입양하고 싶지만 비용이 많이 들어 어쩔 수 없이 아시아인, 그 가운데 한국인을 택한다며, 양부모의 열패감과 분노에 노출된 자신들의 현실도 속속들이 드러냈다.

내 양부모는 나에게 항상 우리 아이를 낳으려 10년 이상 노력했는데 아이가 생기지 않아 너를 입양했다고 말했다. 그 말에 엄청난 상처를 받으며 살았다. 그래서 당신들이 날 선택할 권리가 있냐?’고 되묻곤 했다. 내 양부모는 흑인은 입양하기 싫고, 백인을 입양할 여유는 없고, 그래서 아시아인인 나를 선택했다고 했다.”

 

숙은 더 깊은 상처를 공개했다.

내 양부모는 자신이 매우 영리했고 그래서 나를 샀다고 했는데, 그들에게 난 파손된 상품 같았다. 양부모는 나에게 우리는 예쁜 여자애를 원했고, 예쁜 여자애가 좋아서 샀는데, 넌 추해졌다고 말하곤 했다. 가장 최악은 우리는 너를 돌려보내 환불하고 싶은데 그건 허락되지 않는다며 그런 현실에 매우 흥분한 것이다. ‘우리는 너한테 갇혔어. 넌 추하고, 병들었어. 우린 이러려고 널 산 게 아니야. 매우 비싼 돈을 내고 널 샀으니까 너는 그만큼 일을 해야 된다고 자주 말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일했다. 하녀처럼 다른 가족을 챙겼고, 모든 잡일을 다했고, 난 지저분한 곳에서 살았다.”

 

정은 자신의 경험을 보탰다.

그들은 백인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항상 (백인을 입양하는) 그런 상상을 하고 산다. 내 양아버지는 가끔 넌 나한테 빚을 졌다고 말했고, 날 산 게 암묵적인 거래라고 했다. 나에게 이 정도 돈을 들였다며 양아버지는 자기 인생에서 나에게 투자한 만큼 회수하는 걸 기대하곤 했다.”

 

기무라 그들은 베트남 아이를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 너무 말이 없고, 걔들은 베트남 전쟁 때 너무 잔혹했다고 말한다. 한국이 입양에 성공적인 건 그들이 한국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아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도 원하는 아이를 가질 (경제적) 능력이 안 된다는 것에 절망하고 스스로 분노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최선의 선택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에겐 공식 같은 게 있다. 아시아 애들은 총명하고 공손하고 순종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순종적이라는 게 그들을 안심시키는 요인이다.”

무형문화재 이수자인 김혜경씨와 입양인들이 22일 민속극장 풍류에서 대동굿을 하고 있다.

 

불확실함 해소하려 뿌리찾지만

입양인은 어느 순간부터 뿌리를 찾기 시작한다. 그러나 성도 이름도, 생년월일도 정확하지 않다. 그래서 더 힘겹다. 그들은 생물학적 부모를 찾아야만 자신의 이런 불확실함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뿌리 찾기에 더 절실하게 매달린다.

은혜는 2001년 입양기관의 모든 자료를 검토한 끝에 가족을 찾았다. 기무라도 1991년에 생물학적 가족을 만났다. 정이 이번에 한국에 온 건 어머니와 만남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디엔에이(DNA) 테스트 웹사이트를 통해 미국에 이민 온 사촌을 찾았고, 결국 엄마와 연락이 닿았다. 뿌리 찾기에 성공한 그를 축하하는 이들에게 그는 기대와 불안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엄마 마음이 변하지 않기만을 바란다. 엄마가 내 요청에 결국 답한 것이지만, 모든 상황이 가능하다.”

 

427일 현재까지 그는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다. 지난 23일 만남이 약속돼 있었지만, 88살 할머니가 위중하다며 만남을 미뤘다고 했다. 정은 할머니가 입원한 병원으로 자신을 초대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는 카두 박찬호 대표에게 할머니 이름과 병원 이름을 가지고 있어요. 엄마 허락 없이 할머니를 찾을까 생각 중이에요. 한국인으로서 당신은 그것이 괜찮다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끔찍한 생각인가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수십년의 세월을 찾아 헤맨 엄마와 만남은 이뤄질 수 있을까? 메리와 숙도 여전히 뿌리를 찾고 있다.

 

메리 나는 맞는 게 하나도 없다. 엄마를 찾기 위해 실종자 찾기까지 하고 있는데, 내 기록은 이상한 점이 너무 많다. 입양기관을 알아냈고, 자료를 봤는데 내 성이 네개다. 미국 이민국 파일은 출생일 세개를 알려줬다. 그래서 더 어렵다. 나한테도 디엔에이 테스트가 유일한 희망이다.”

그는 울먹였다. 다른 이들도 한국인들이 디엔에이 데이터베이스 등록에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고 호소했다.

 

어제(19) 경찰에 가서 디엔에이 등록을 위한 절차를 밟고 왔다. 한국인들도 디엔에이 샘플을 등록해달라. 입양기관들은 너무 힘이 세 생부·생모로부터 아이를 찾는다는 편지를 받아도 입양인에게 자료 제공을 거부하고, 그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돈을 요구한다고 들었다. 우리에게, 또 우리를 찾는 부모 면전에서 거짓말하며 돈을 뜯어낸다고 한다. ‘당신 부모는 죽었다’, ‘당신 애들은 죽었다고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부모나 자식을 찾을 수 있겠나? 그들은 나에게도 그런 거짓말을 했다.”

 

숙도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자신의 휴대전화로 한국 정부가 운영하는 디엔에이로 가족을 찾아주는 누리집(325KAMRA)을 보여주며 기사를 통해 널리 알려달라고 여러 차례 당부했다.

앤세스트리 닷컴(ancestry.com) 같은 상업적인 디엔에이 테스트 웹에도 가족의 디엔에이 정보를 업로드해달라고 해야 한다.”

 

이들은 이런 디엔에이 정보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입양인이 사기 피해를 보지 않고, 수고로움을 줄이며 뿌리를 찾을 수 있는 희망이라고 역설했다.

한 방문객이 20일 관훈동 마루아트센터에 전시 중인 입양 예술인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입양 70한국의 위선

입양 70, 한국인에게 쓴소리도 했다.

기무라 우리 모두 한국 사회에서 리젝트(거부)당했고, 양부모한테도 리젝트됐다는 걸 느낀다. 외국으로 송출되는 건 우리가 선택한 게 아니다. 우린 버려져선 안 됐다.”

 

메리 우리는 정의를 구현해야 할 범죄의 피해자다.”

외국으로 입양돼 자상한 양부모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으며 성장했다는 사례는 소수의 신화일 뿐이라고 이들은 지적한다.

 

신화 같은 믿음이 있다. ‘못사는 나라에서 부자 나라로 보냈으니 넌 행운아다. 부모 잘 만나 학교도 다니고 공주 왕자처럼 살지 않았냐고 믿는다. 내 현실은 전혀 행운아가 아니다. 유럽 신문에선 아이가 길을 잃으면 불쌍하다고 대서특필한다. 우린 신문에 난 길 잃은 아이와 같은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한국인들도 우리를 그렇게 생각해달라.”

은혜에겐 여권을 만드는 것조차 공포스러운 도전이었다. 생년월일, 이름까지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은혜 시민권 문제로 많은 입양인이 강제 추방됐기 때문에, 한국에 오기 위해 여권을 만드는 것조차 한동안 망설여졌고, 용기가 필요했다. 양부모에게 필요한 서류를 부탁해도 즉시 해주지 않았다. 이런 불확실한 상태가 지속되면 추방당한다. 다행히 입양 때 이름으로 여권을 만들었지만, 난 지금도 이중국적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난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는 상태다.”

메리 단지 이건 내가 뭘 믿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행정적으로 악몽 같은 것이다. 그걸 바로잡는 건 정말 악몽처럼 어렵다.”

 

그는 눈물을 흘렸다. 정이 메리에게 다가가 안아주고 위로했다. 메리는 항의하듯 말했다.

메리 솔직히 묻고 싶다. 이게 내 책임인가? 이런 얘긴 정말 호러픽하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단지 함께 분노해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내가 분노하는 게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난 내 생일이라도 정확히 알고 싶을 뿐이다.”

 

한국인의 외면과 위선도 직격했다.

여러분은 우리가 입양기관, 가족, 의사의 속임수에 의해 밀반출된 것이라고 생각하나? 이건 시스템, 전체 시스템이 한 것이다. 나이 든 한국 사람들은 우리가 애들을 팔았다고 루머처럼 얘기한다. 그걸 숨기려 하지 않고 얘기한다. (입양에) 너무 많은 플레이어가 있고, 모든 사람이 그걸 알고 있다는 게 나를 정말 좌절하게 한다.”

 

기무라 그들은 우리를 너무 먼 곳으로 보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한국 사람 전체의 멘털리티라고 생각한다. 아예 돌아올 수 없을 만큼 먼 곳에 보내고, 우리가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존재가 한국 사회의 치부라는 것, 한국이 수치스러워해야 한다는 것도 함께 제거해버린 것 같다. 한국은 평판을 중시한다. 그런 그들이 20만명이 넘은 아이들을 외국으로 입양 보냈다. 그래놓고 도대체 뭘 그렇게 평판에 집착하나? 난 한국 사람들이 우리한테 동정심을 갖길 바라지 않는다. 한국인 스스로 자신한테 동정심을 느껴야 한다. 나는 그런 변화를 원한다. 입양은 나에게서 부모를 빼앗아 간 것이다. 난 자발적으로 그런 선택을 한 적이 없다. 그건 (당신들이) 아이를 유기한 것이다.”

글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쓸모없는 바위섬 폭파하자"던 김종필도 지켜낸 독도인데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17] 누구를 위한 '역사전쟁'인가 ()

독도에 대해 쓰려니 축구선수 박종우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는 지난 2012년 런던 올림픽 축구 3,4위 전에서 한국이 일본을 2 0으로 이긴 뒤 '독도는 우리 땅'이라 적힌 피켓을 들고 축구장을 돌았다. 그 때문에 FIFA로부터 징계를 받고 동메달 시상식에도 오르지 못했다. "올림픽 시설이나 경기장 등에서 정치적 선전 활동을 금지하는 올림픽 헌장을 어겼다"는 이유에서였다.

 

다행히 6개월 뒤 동메달을 전해받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독도는 우리 땅'인데 그게 그렇게 문제가 되느냐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일본에선 크게 반발했다. 축구에 져서 분한데 박종우 선수가 화를 돋우었다고 여겼다. 여기서 한 가지 새삼스런 사실이 드러났다. 독도는 한일 간의 민감한 정치적 사안일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의 눈에는 독도가 국제분쟁지역의 하나로 비친다는 것이다.

 

일본이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한 것이 1905년이니 경술국치(한일병합) 5년 전이다. 우리 민족이 일본에 첫 번째로 빼앗긴 영토가 독도다. 1945년 패전 뒤 잠시 숨죽이던 일본은 곧'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라 우기기 시작했다. 그런 억지는 21세기 넘어와서도 이어진다.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는 '다케시마(독도)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보더라도, 국제법상으로도 분명히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못 박고 있다. 이 글에서 살펴보겠지만, 역사적 사실로나 국제법으로나 일본은 독도를 일본의 고유영토라 우길 수 없다. 억지로 채워진 일방 논리일 뿐이다.

 

문제는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고 일본의 주장에 동조하는 듯한 (그렇다고 '독도는 일본땅'이라 자신들의 속내를 확 드러낼 용기는 없는) '신친일파'의 해괴한 논조다. 한국 '신친일파'가 생각하는 독도는 한국의 보통사람들 마음 속 독도와는 크게 다른 이미지다. 일본 우파들과 손을 잡은 '신친일파'는 한국이 독도를 실효 지배하는 상황을 못 마땅하게 여긴다. <반일 종족주의>(이영훈 외, 미래사, 2019)의 독도 편(151-174)은 책의 다른 부분들보다 읽기가 더 불편한 괴변과 언어의 희롱으로 채워져 있다.

2012810일 런던올림픽 3-4위전에서 박종우가 일본에 승리한 뒤 '독도는 우리 땅' 플래카드를 펼쳐보이는 모습. 연합뉴스

 

일본 원로 사학자, "학문으로 포장해 역사 왜곡 말라"

나가하라 게이지(전 히토쓰바시대교수, 역사학)는 지난 2004년에 타계한 일본의 원로 역사학자다. 일본중세사 연구의 권위자로 일본 역사학계에선 '거목'으로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타계 1년 전에 낸 <20세기 일본의 역사학>이란 책에서 역사가의 가치관이 아무리 다양하더라도 그것을 '학문'이라 부를 수 있는 조건에 대해 말한 바 있다.

 

그 조건이란, 역사가가 제멋대로 사실 자체를 왜곡하거나 '학문 외적인 계기'에 따라 사실을 자의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나가하라 교수의 이 말은 일본의 우파 역사학자들이 극우 정치집단과 손을 잡고 과거사를 왜곡하는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이른바 수정주의 사관(또는 자유주의 사관)의 목소리가 점점 커가는 상황을 경고한 것이기도 하다.

 

나가하라의 지적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월이 흘러 동시대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면서 '특정 의도를 갖고 (홀로코스트나 난징대학살 같은) 사실을 왜곡하면서 '역사의 수정'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나가하라는 역사가가 (많은 사람들의 잘못된) '집단 기억'에 편승하여 그 기억을 왜곡하고 역사를 감히 수정하려드는 것은 '비학문적 행위'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난징 학살의 경우, 도쿄전범재판에서는 20만 명, 중국에선 30만 명이 희생됐다고 말한다. 일본의 극우파는 난징 학살 따윈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나가하라의 비판.

"난징대학살에서 몇 사람이 희생이 되었는가를 확정하는 일은 분명히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 확정하기 어렵다는 점에 편승하여, 그렇기 때문에 사건 자체마저 의심스럽다고 말한다면 명백히 '역사의 왜곡'이다"(나가하라 게이지, <20세기 일본의 역사학> 삼천리, 2011, 297).

 

문제는 나가하라가 이런 지적을 하고 타계한 지 20년이 다 되는 동안, 일본의 우경화 흐름 속에 역사의 왜곡이 일반화됐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은 국가주의와 애국심을 강조하며 지난날의 침략전쟁과 그에 따른 전쟁범죄 등 과거사를 말하려 하지 않는다. 일본의 우파 역사학자들, 그리고 이들과 손잡은 한국의 '신친일파'는 일반 대중에게 인기가 없는 과거사 연구를 외면하거나 축소 왜곡한 것을 '학술 연구'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해 내놓는다. <반일 종족주의> 같은 악서(惡書)가 하나의 보기다.

 

'세계인'인가, '뼛속까지 일본인'인가

일본의 우경화 흐름 속에서 일본 교과서는 침략전쟁을 부정하고 전쟁범죄를 축소하는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다. '다케시마(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억지주장이 초등학교 교과서에까지 버젓이 실려 있는 것이 오늘의 일본이다. <반일 종족주의>는 독도를 일본쪽 입맛에 맞게 다루고 있다. "한국이 독도 영유권을 내세우는 것은 '반일 종족주의의 가장 치열한 상징'이다"(151). "1904(정확히는 1905)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에 편입할 때 대한제국은 분쟁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한국은 독도(다케시마)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로 가져가자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는 처지이다"(169). 그러면서 슬며시 글 곳곳에서 한국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의문을 던져 일본인들을 기쁘게 한다.

 

<반일 종족주의>의 대표필자이자 독도 편을 쓴 이영훈이 하는 말들은 번지르르 하다. 자신은 '대중의 인기에 신경을 써야 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지식인'이라 자부한다. '대중의 눈치를 보며 할 말을 않거나 글의 논조를 바꾼다면, 그 사람은 지식인이라 할 수 없다'고 했다. 말 자체로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국수주의적 주장이나 편협한 민족주의와 과도한 민족감정을 지녔다면 '참된' 지식인이라기보다는 '위험한' 또는 '모자란' 지식인이라 하겠다.

 

하지만 그는 뜬금없이 '참된 지식인은 세계인'이란 말을 한다. 독도와 관련해 그 자신이 하고 싶은 궤변을 펼치기 위한 '심리적 보호 장치'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독도의 한국 영유권을 부정하는 글을 대놓고 쓴다는 게 우리 국민정서에 맞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했을 게 뻔하다. 그의 언어희롱은 이렇게 이어진다. "(참된 지식인은) 세계인의 관점에서 자신이 속한 국가의 이해관계조차 공평하게 바라보아야 한다"라고(152).

 

말을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영훈은 솔직하게 스스로를 '뼛속까지 일본인'이라고 차마 고백하지 못하고 '세계인'으로 위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오늘의 주제인 독도와 관련해선 특히 그런 의심을 받는다. 이영훈이 말하듯 독도는 '한국의 이해관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뉜 불행한 과거사를 지닌 한일관계'에 해당되는 것이다. 독도가 일본 영토로 편입된 20세기 초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힘의 불균형을 이용한 강탈이었음은 누구라도 알 수 있다. 여기에 이런저런 궤변을 늘어놓는 것은 역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앞에서 살펴본 일본 역사학자 나가하라 게이지의 지적, 다시 말해 '(학자는) 학문 외적인 계기에 따라 사실을 자의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지적을 떠올린다면, 이영훈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그는 <반일 종족주의>에서 한국인들에게 이런 요구를 했다. '도발적인 시설이나 관광도 철수하고, 길게 침묵해야 한다'(173). 일본에 대해선 너그럽게도 아무런 요구도 없다. 여기서 답이 나온다. 이영훈은 그런 자신의 궤변을 거두어들이고 이제 그만 펜을 놓고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아울러, 그의 궤변에 마음이 상한 독자들에게 늦게나마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독도는 조선 땅' 증언하는 숱한 사료들

<반일 종족주의>에서 이영훈은 "솔직히 말해 한국 정부가 역사적으로 (독도가) 그의 고유영토임을 증명하기 위해 국제사회에 제시할 증거는 하나도 없다"고 주장한다(169). 과연 그럴까. 독도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면서 한국의 영유권을 부정하는 것은 억지나 다름없다. 독도의 과거사를 잘 모르는 어린 아이라면 모를까, 대다수 독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기 마련이다.

 

DJ DOC이 불렀던 '독도는 우리땅'이란 노랫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독도가 도대체 누구 땅이냐 묻거나 따지는 것은 소모적이다. 그러나 '신친일파'의 목소리가 워낙 드센 실정이라 못 본 체 하기도 어렵게 됐다. 독자들에게 익숙한 내용이지만, 요점 정리 차원에서 역사의 기록들을 잠시 들여다보자. 먼저 독도문제에 관한 여러 편의 책과 논문을 펴낸 신용하(서울대명예교수, 사회학, 독도학회 초대회장)의 글이다.

 

[독도는 울릉도와 함께 옛 우산국의 땅이었다. 서기 512년에 우산국이 신라에 귀속됨으로써 울릉도와 독도가 한국의 고유영토로 확정됐다. 이 사실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13년조에 실려 있다. 1808(조선 순조 임금의 명을 받아) 편찬된 <만기요람(萬機要覽)> 군정편에도 울릉도와 우산도(독도)는 모두 우산국 땅이라고 정의돼 있다](신용하, <한국의 독도영유권 연구> 경인문화사, 2006, 385).

 

한편 근세·근대에 이르러 독도가 처음 등장하는 한국문헌은 '독도는 우리땅'이란 노랫말에도 나오는 세종실록 지리지(地理志). 1454(단종 2) 지리지 강원도 울진현조에 '우산과 무릉 두 섬이 현의 정 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아니하여 날씨 가 맑으면 가히 볼 수 있다'고 쓰여 있다. 여기서 '무릉'은 울릉도를, '우산'은 독도를 가리킨다.

 

신용하 교수에 따르면, 일본에서 처음으로 독도가 울릉도와 함께 기록으로 나타난 것은 1667<은주시청합기(隱州視廳合記)>란 문헌을 통해서였다. 도쿠가와 막부(幕府) 시절에 지방 관리가 현지 조사 끝에 작성한 이 문헌에는 울릉도와 독도(일본쪽 표기는 송도와 죽도)는 일본 영토가 아니고 조선 영토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바로 그 무렵 기록에 나오는 안용복 같은 인물도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님을 말해준다. <숙종실록>에 따르면, 부산 동래 출신의 노군(櫓軍, 노를 젓는 군사)이었던 안용복은 1693년 울릉도 쪽으로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그곳에서 일본어민들에게 납치돼 일본으로 끌려갔었다. 담대하고 건강한 민족의식을 지녔던 안용복은 그곳 돗토리번()의 지도자를 설득해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섬들임을 인정하는 서계(書契)를 받아냈다. 안용복에 대해선 송병기(단국대명예교수)<울릉도와 독도, 그 역사적 검증>(역사공간, 2010, 277-298) 참조 바람.

독도가 조선영토임을 보여주는 세종실록 지리지(1454).

 

"대마도를 우리 땅이라 우겨도 되는가"

일본 정부의 공문서에도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확인한 것들이 있다. 일본을 250년 동안 지배해온 도쿠가와 막부를 밀어낸 이른바 메이지 유신(1868) 뒤인 1876, 일본 내무성은 일본 전국의 땅을 조사하고 지도를 만들고자 했다. 그때 시마네현()'울릉도와 독도를 지적 조사와 지도에 포함시킬 것인가'를 내무성에 물었고, 내무성은 정부의 최상급자인 태정관(太政官, 총리대신)에게 물었다. 돌아온 답신(태정관 지령)'본방(本邦, 일본)은 관계가 없다'였다. 일본 영토가 아니라는 답신이었다(송병기, 299-303).

 

그 무렵의 조선정부 쪽 근거 자료도 있다. 1900년 대한제국 정부는 '칙령 제41'로 울릉도를 울릉군으로 승격시키면서, 그 관할 구역에 독도가 들어간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에 대해선 대구한의대 안용복연구소가 학술총서로 펴낸 <동아시아의 바다와 섬을 둘러싼 갈등과 투쟁의 역사>(지성인, 2013) 속 김호동(영남대 독도연구소 연구교수)의 글조선시대~개항기까지의 울릉도 독도에 대한 정부의 인식과 정책(398-406)을 참조 바람.

 

일본의 일부 사학자들은 오래 전에 만들어진 일본의 고지도를 내밀며 '독도는 옛부터 일본땅'이라 주장한다. 한국의 비판적 연구자들은 '그런 지도들은 나중에 누군가가 손을 보탠 것들'이라 말한다. 검증을 거친 고지도 원본들은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1785년 당대의 으뜸가는 일본 지리학자 하야시 시헤이가 만든 '삼국접양지도'의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본토의 땅 색깔과 같은 노란 색이다(임덕순,독도의 기능, 공간가치와 소속<독도·울릉도 연구> 동북아재단, 2010, 267-268).

 

어떤 일본인들을 이렇게 묻는다. "일본 민간인이 옛날에 그린 지도를 보니까 독도가 일본 영토로 그려져 있으니 일본 땅이 맞는 게 아니냐". 이에 대해 신용하 교수는 "그런 식이라면 우리는 대마도를 우리 영토로 표기한 지도를 근거로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 주장해도 되겠는가"라고 되묻는다. 독도가 역사적으로 한국의 고유영토라는 사실은 증거들은 차고 넘친다. 지면 관계상 이쯤에서 줄인다.

 

<대한매일신보>, 독도 침탈 소식에 '아연실색'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한 것은 20세기 초였다. 190428일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전쟁이 터지자, 일본군은 울릉도와 독도에 러시아 군함을 감시하는 해상 망루를 설치했다. 일본 해군은 일찍부터 독도를 중요한 전략 거점으로 찍었다. 그러면서 독도를 탐내게 된 일본 정부는 1905128일 내각회의에서 일본 영토에 편입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런 사실을 대한제국에겐 알리지도 않았다. 이걸 두고 이영훈은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에 편입할 때 대한제국은 분쟁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썼다. 도둑질처럼 몰래 훔쳐갔는데 어떻게 대응할 수 있으랴.

 

뒤늦게 대한제국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년쯤 지나서인 19063월 말이다. 일본 시마네현 관리들이 울릉도를 조사차 둘러보면서 울릉군수에게 '독도가 일본땅이 됐다'는 사실을 처음 알렸고, 놀란 군수는 이 사실을 중앙에 황급히 보고했다. 그때는 이미 을사5조약(1905)으로 외교권을 빼앗기고 일제 통감부가 들어선 상태였다. 힘으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당시 조선 여론은 들끓었다. <대한매일신보>(190651일자) 기사를 보면 '독도가 일본의 속지(屬地)라 운운하는 것은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이니, 지금 보고받은 바가 아연실색할 일이다'라고 돼있다. <황성신문>도 일본의 독도 도둑 강탈에 놀라움과 더불어 분노를 나타냈다. 이에 대해선 곽진오(동북아역사재단 책임연구위원)고문헌에 나타나는 한국·일본의 독도인식(<일본학보> Vol.125, 한국일본학회, 2020) 참조하기 바람.

 

한국이 독도를 일본으로부터 돌려받은 것은 그로부터 40년 뒤 패전국 일본을 접수한 맥아더 연합국최고사령관의 지령에 따라서였다. 이에 따라 우리 어민들도 일본 눈치를 안 보고 독도 주변 어장에서 강치 등을 잡게 되었다. 독도와 관련된 연합국최고사령부의 지령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945927일 미국 제5함대 사령관각서 제80호는 일본의 어로제한선을 설정하여 독도를 한국령에 귀속시켰다. 19461월 연합국총사령부의 지령 SCAPIN 677호는 독도를 일본의 행정구역에서 분리했다. 또한 19466SCAPIN 1033호는 독도를 한국의 어업구역으로 정하고 일본 어선들의 출입과 조업을 금지했다](최장근, <독도문제의 본질과 일본의 영토분쟁 정치학> 제이앤씨, 2009, 241)

 

독도 분쟁의 씨앗 뿌린 샌프란시스코 조약

<반일 종족주의>의 대표필자 이영훈은 '이승만학당 교장'이란 직함을 내걸고 '이승만 띄우기'에 매우 열심이다. 4.19혁명으로 쫓겨난 독재자 이승만의 정치적 복권을 위한 전도사 역할을 맡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서 하나 궁금한 게 있다. 무덤 속의 이승만은 독도를 넌지시 일본 영토인양 말하는 이영훈을 어떻게 생각할까.

 

6.25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118, 이승만 대통령은 평화선(平和線)을 선포했다. 정식명칭이 '대한민국 인접 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 선언'인 이 선언으로 '이승만 라인'이 그어졌다. 한국 해안에서부터 평균 60마일(97)에 이르는 해역에 '평화선'을 긋고 그 안에 포함된 광물과 수산자원을 보존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 평화선 안엔 물론 독도가 포함됐다.

 

이승만이 서둘러 평화선을 그은 것은 나름 이유가 있었다. 19519월 일본이 미국 등 연합국가들과 맺은 샌프란시코강화조약에서 일본이 당연히 포기해야할 한국 영토 가운데 '독도'가 빠져 있었다. 여기에는 독도에 대한 미 국무부의 부족한 이해 미국의 일본정치 고문관 윌리암 제이 시볼드의 친일적 입장 일본의 집요한 로비 한국 외무부의 미숙한 대응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졌기 때문이었다. 다른 무엇보다 미국이 (한일 양국 사이의 분쟁이 될 것을 내다보면서도) 독도 영유권을 분명히 하지 못하고 조약을 끝냈다는 점에서, 미국의 책임이 크다. 이에 대해선 이석우(인하대교수, 법학)의 논문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독도의 영토처리 과정의 연구(<북방사논총> 7, 동북아역사재단, 2005) 참조 바람.

 

이승만이 무덤에서 나와 이영훈 만난다면...

일본과의 어업분쟁이 일어날 것으로 내다본 이승만은 샌프란시코조약 발효(19524) 전에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다름 아닌 '맥아더 라인'을 대체하는 '이승만 라인'으로 알려진 '평화선' 설정이다.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확인해주는 조치였다. 일본인들이 평화선을 넘어 독도 근처에 얼씬거린다면? 이승만 정부는 말로만 그치지 않고 단호히 대응했다. 1957년까지 평화선을 넘어온 일본어선 152척과 거기에 탔던 어민과 선원 합쳐 2025명을 붙잡았다. 이런 이승만이었으니 그가 무덤에서 나와 이영훈을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할까. "내 이름을 걸어 학당을 운영하며 생계에 보탬이 된다니 좋은 일이겠지만, 자네의 독도 얘기는 선을 넘어도 한참을 넘었어!"라고 꾸짖을 게 뻔하다.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승만은 8.15 해방정국에서 한민당을 비롯한 친일세력의 지원을 받아 정권을 잡았고, 친일파 처단을 위한 반민족행위자처벌특위(약칭 反民特委)를 해산하는 등의 잘못이 있었다. 지난날 일제에 아부하며 사리사욕을 채웠던 민족반역자들을 청산은커녕 정부 요직에 기용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하지만 독도 영유권을 넘보려는 일본에 대해서만큼은 결연한 의지로 맞섰다.

 

이승만의 뒤를 이은 역대정권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국민 정서와 선거를 의식해서라도) 독도를 지켜왔다. 계산 빠른 사업가 기질을 지닌 이명박 전 대통령도 임기 말인 2012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814일 헬기를 타고 독도로 날아가 일본을 심드렁하게 만들었다. 박정희 정권에서 2인자 소릴 듣던 김종필은 1965년 한일협상 과정에서 "독도는 갈매기 똥이나 쌓이는 쓸모없는 바위섬이니 폭파해버리면 어떠냐"는 농담을 했다가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도 독도를 지켜냈다.

독도. 연합뉴스

 

일본의 전략,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라"

독도가 한국의 고유영토라는 사실이 분명한데도 일본과 한국의 '신친일파'는 왜 그렇게 시비를 거는 것일까. 그들의 독도 전략은 '독도를 지구촌의 분쟁지역 가운데 하나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협상을 거쳐 한국이 독도를 기점으로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선포하지 못하도록 막고, 나아가 독도를 한일 '공동영역'으로 만들어 그 일대의 풍부한 자원(수자원, 가스 하이드레이트)을 챙기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그런 야무진 꿈을 이루려고 독도 문제를 네델란드 헤이그의 국제사법재판소(ICJ) 법정으로 끌고 가고 싶어 한다. 실제로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다녀온 사흘 뒤(2012817), 일본 정부는 각료회의에서 ICJ 제소 방침을 확정짓고 그 사실을 한국 정부에 알려왔다. 1954년과 1962년 이후 50년 만의 제소 시도였다. 그만큼 이명박의 독도 방문에 일본이 열을 받았다는 얘기가 된다. 일본이 ICJ 제소를 하려할 때마다 한국 정부는 '대응할 가치가 없다'며 묵살했고, 막상 ICJ에서의 재판도 열리지 않았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일본은 한국뿐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과도 영토분쟁을 벌이는 중이다. 러시아가 실효 지배하는 남쿠릴열도 4개섬(홋카이도 북쪽의 이투루프, 쿠나시르, 시코탄, 하보마이 등 이른바 '북방영토'), 중국과 다투는 가운데 일본이 실효 지배하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의 영유권 다툼이다. 독도와 남쿠릴열도 4개섬은 일본이 실효지배를 하지 못하는 곳이라 일본이 '못 먹더라도 찔러나 본다'는 생각으로 ICJ에 제소하려 들지만, 중국은 입장이 다르다.

 

중국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을 놓고 일본을 상대로 ICJ에 제소하려들다가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싸고 분쟁중인 동남아시아 국가들(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ICJ에서 얼굴을 맞대는 것을 피해왔다. 만일 중국이 일본을 상대로 센카쿠열도 문제를 ICJ에 끌고가면, 동남아 국가들과의 ICJ 재판을 피할 명분이 없어진다. 중국은 그런 뒤엉킨 싸움을 피하고 싶기에 일본을 상대로 센카쿠열도 문제를 ICJ에 제소하진 않았다.

 

이승만 정부를 비롯해 역대 한국 정부는 독도에 관한 한 일관된 태도를 보여왔다. ICJ로 가서 해결하자는 일본의 제의도 거부해왔다. <반일 종족주의>에 쓰여 있는 대로 '1904(정확히는 1905)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에 편입할 때 대한제국은 분쟁을 제기하지 않았다'는 약점 탓에 한국이 ICJ를 회피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한국 정부의 입장은 "독도는 사법적 다툼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ICJ도 독도에 대한 '재판 관할권'으로 한일 양국 정부의 소송 대표자를 헤이그로 불러 모을 뜻은 없어 보인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 하나. 일본이 ICJ에서 이 문제를 다투려는 것은 일본이 그만큼 한국을 만만하게 보는데다, 일단 싸움을 걸면 한국내 '신친일파'라는 지원군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신친일파'는 유엔 인권이사회 등 국제기구에서 일제의 인권침해를 논의하는 자리에 자신이 한국 국적임을 밝히며 일본에 유리한 발언들을 서슴지 않아왔다. 이들이 해외를 오가며 드는 경비가 실제로 어디서 나오는지는 묻거나 따져볼 필요도 없다.

 

와다 하루키, "일본은 독도 주권 주장 접어야"

독도 문제는 어떻게 푸는 것이 바람직할까.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의 한 사람인 와다 하루키(전 도쿄대교수, 역사학)가 생각하는 독도 해법은 무엇일까. 그는 일본이 지난날 조선 식민지 지배를 반성한다면, 다케시마(독도)'일본의 고유영토'라고 주장하면서 한국의 '다케시마 불법 점거'를 비판하는 것은 '도의(道義)라고는 전혀 없는 행동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와다 교수의 독도 해법은 단순 명쾌하다. '일본이 독도를 단념하는 것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실효지배는 해방 직후부터의 영유권 주장에 근거한다. 그 주장의 핵심은 19051월 일본의 다케시마(독도) 영유는, 조선 침략을 시작하면서 5년 후 강압적인 한국 병합의 전조로 행해졌다는 점에 있다. 일본에서 이 주장을 논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 주장에 따른 독도 지배는 한민족이 존재하는 한,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절대 철회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국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와다 하루키, <동북아시아 영토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사계절, 2012, 264).

 

"(독도문제를 놓고) 한국인과 대화를 해보면 답이 저절로 나올 것이다. 한국이 실효 지배하는 다케시마(독도)에 대한 주권 주장을 일본이 단념하는 것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이 결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이룰 전망이 없는 주장을 계속해서 한일관계, 일본인과 한국인의 감정을 점점 더 악화시키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이다"(와다 하루키, 265)

 

1938년 생으로 올해 85세인 원로학자 와다 하루키의 지혜로운 독도 해법이 곧 이 글을 쓰는 필자의 결론이기도 하다. 또한 한반도 평화를 소중히 여기는 독자들이 생각하는 해법이자 결론일 것이다. 쓰다 보니 글이 또 길어졌다. 지난날 전쟁범죄를 축소·왜곡·부정하는 일본의 우경화 흐름 속 교과서 왜곡을 둘러싼 역사전쟁의 문제는 다음 주 글에서 살펴보려 한다. (계속)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프레시안

 

 

대통령 "자유 위협하는 세력은 공동체 안에도 있다"

하버드대 연설서도 "거짓 선동·가짜뉴스가 자유 위협"

미국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28(현지시간) "다른 나라의 자유를 무시하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는 국제사회가 용기 있고 결연한 연대로서 대응해야 한다"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맞선 국제 연대를 강조했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8(현지시간) 보스턴 인근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에서 '자유를 향한 새로운 여정'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정상회담 등 워싱턴 일정을 마치고 보스턴으로 이동한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진행한 '자유를 향한 새로운 여정'을 주제로 한 연설에서 이같이 말하고 "이런 시도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입증시키고 앞으로 이런 시도를 꿈꿀 수 없게 해야 한다"며 러시아에 대한 강한 대응을 촉구했다.

 

윤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는 이를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한다""국제법을 위반한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자유와 인권이 무참히 짓밟혔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자유 수호를 위한 인도적, 재정적 지원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무기 지원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이어 윤 대통령은 "지금 전 세계를 돌아보면 우리가 땀과 희생으로 지켜온 자유와 민주주의가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고, 위기에 처해 있다"면서 "다른 사람의 자유를 무시하는 독재적이고 전체주의적인 태도는, 바로 그 결정판을 북한에서 볼 수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의 불법적인 핵무기 개발과 핵 협박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주변국, 나아가 세계의 평화와 자유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이러한 전체주의적 태도는 필연적으로 북한 내 참혹한 집단적 인권 유린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정부가 출간한 '북한 인권 실상 보고서'를 언급하며 "국제사회의 폭넓은 인식과 각성이 상황의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윤 대통령은 "조직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흔들고 위협하는 세력이 있다. 바로 독재와 전체주의 세력"이라며 "이들 편에 서서 이익을 취하려는 세력도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거듭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은 공동체 안에도 있다"면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이들은 민주 세력, 인권운동가 등으로 위장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거짓 선동과 가짜뉴스라는 반지성주의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위기에 빠뜨린다"면서 "허위 선동과 거짓 뉴스가 디지털, 모바일과 결합해서 진실과 여론을 왜곡하는 일이 다반사가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들에 맞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려면 용기와 연대가 필요하다""자유의 열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강력한 연대, 국제적 연대도 필요하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그 '국제적 연대'의 사례로 한미동맹을 제시했다. 그는 "한미동맹은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번영을 일구어 온 중심축이었다""뿐만 아니라 세계시민의 자유 수호를 위한 안전판의 상징이었다"고 했다.

 

특히 "한미동맹은 단순히 이익에 따라 만나고 헤어지는 편의적 계약관계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가치동맹"이라고 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자유를 침해하는 디지털 기술의 악용은 전 세계 자유시민이 연대해 이를 막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프레시안 임경구 기자

 

"이런 건 처음 봐방명록에 '대한민국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라고 적더라"

 

국빈방문에도 지지도 제자리'일본 무릎' 여파?

민주당은 '송영길 사태' 와중 오히려 정당지지율 상승

갤럽이 언론사 의뢰 없이 자체 시행한 이번 조사

 

2022, 역대 최대 적자는 어느 정부 책임인가

대한민국 국가 재정관련 온라인 기사.

 

1번 문제 : 역대 최대 재정적자 117조 원 vs. 역대 최대 나랏빚 1000조 원, 둘 중 합당한 기사는 무엇일까?

정답 : ‘역대 최대 재정적자라는 표현은 가능하다. 그러나 역대 최대 나랏빚’, ‘나랏빚, 최초로 1000조 원 돌파란 표현은 잘못된 표현이다. 국가부채는 매년 쌓이는 누적(stock) 개념이다. 그래서 역대 최대라는 표현은 쓰면 안 된다. 다만, 재정적자는 매년 달라지는 수치다. 흑자와 적자를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적자 규모가 역대 최대라는 말은 쓸 수 있는 표현이다. 조금 더 설명을 해보자. 작년 국가부채가 처음으로 1000조 원을 초과했다는 것은 작년 발행 국채가 1000조 원이란 뜻이 아니다. 작년에 발행한 국채, 재작년에 발행한 국채 10년 전, 20년 전 발행한 국채가 켜켜이 쌓여서 1000조 원이 된 것이다. 그래서 국채 규모는 매년 늘어나는 것은 정상이다. 이는 마치 올해는 최초로 2023년이 되었다는 말처럼 어색하다.

 

다만, 재정적자는 누적되지 않는 유량(flow) 개념이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적자 폭과 흑자 폭의 한계가 늘어날 수는 있다. 그래도 어떤 해는 수입이 지출보다 많아서 흑자를 기록하기도 하고 어떤 해는 적자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작년 적자 규모가 역대 최대라는 표현은 가능하다.

 

2번 문제 : 재정적자가 117조 원이면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빼면 117조 원 적자가 생겼다는 의미일까?

정답 : 아니다. 작년 총수입은 618조 원, 총지출은 682조 원이다. 그 차액은 -64조 원이다. -117조 원이 아니다. 그런데 왜 언론들은 적자 규모를 64조 원이라고 하지 않고 117조 원이라고 말할까? 이는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 (-64.6조 원)을 말하지 않고 사회보장성기금에 적립되는 금액을 제외하고 추산한 관리재정수지(-117조 원)을 언급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국민연금기금 등에 저축해 놓는 돈이 꽤 많다. 우리나라 국가부채가 약 1천조 원이지만 국민연금 기금에 저축해 놓은 돈도 약 1천조 원에 달한다. , 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 기금(국민연금, 사학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에 저축해 놓는 돈을 빼고 기획재정부가 재정수지를 관리하기 위한 목적에 따른 재정수지가 바로 관리재정수지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제공

 

3번 문제 : 그럼 언론은 항상 우리나라 적자 규모를 통합재정수지가 아니라 관리재정수지로 보도해 왔을까?

정답 : 아니다. 지난 문재인정부는 관리재정수지보다 통합재정수지를 선호했다. 그때 언론은 통합재정수지와 관리재정수지를 동시에 다뤘다. 윤석열정부는 관리재정수지를 선호한다. 현재 언론보도는 관리재정수지로 거의 일원화되었다. 통합재정수지는 우리나라 재정수지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실질 현금흐름에 부합한다. 문재인정부가 선호한 이유다. 다만, 국채발행규모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관리재정수지는 예산 당국이 재량지출을 관리하기에 실용적이다. 다만, 국제 비교가능성은 없다. 기재부가 자체적으로 만든 개념이니 국제 비교가능성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4번 문제 : 관리재정수지가 더 좋을까? 통합재정수지가 더 좋을까?

이 문제를 풀기 전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낸 문제를 풀어보자. “22t의 향고래가 0.5t의 대왕오징어를 먹고 1.5t의 알을 낳으면 몸무게는?” 21t은 아니다. 향고래는 알을 낳지 않는다가 정답이다.

 

마찬가지다. 통합재정수지와 관리재정수지 중에 하나를 선택 할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 기재부 방식으로 국가재정규모를 파악하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대한민국이 거의 유일하다. 관리재정수지가 기재부가 발명한 독특한 방법일 뿐만 아니라 통합재정수지도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는 우리나라 총지출에는 융자금 전액이 포함된다. 1조원을 빌려주고 이자를 쳐서 다시 받는 행동과 1조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을 동일하게 인식하는 갈라파고스 방법론을 택한다.

 

물론 기재부는 국제기준으로도 우리나라 재정수지를 작성해서 IMF 등에 제출한다. IMF 통계(Fiscal monitor, Apr. 2023)를 보면 우리나라 재정수지는 2021년에 0%, 2022년에는 GDP 대비 -0.9%. , 2021년에는 적자재정이 아니라 균형재정을 펼쳤다. 2022년에는 재정수지 비율은 기재부 주장대로 GDP 대비 -5.4%가 아니라 -0.9%에 불과하다. 참고로 선진국 평균 재정수지 비율은 2021GDP 대비 -7.5%, 2022-4.3%. 경제적 실질에 부합하고 국제비교가 가능한 국제통계기준(GFS) 수치를 IMF에 이미 제출하면서 국제기준을 쓰지 않고 통합재정수지와 관리재정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슬픈 현실이 안타깝다

 

마지막 문제는 서술형이다. “문정부 퍼주기에 나라살림 117조원 구멍, 윤정부 긴축재정도 무색이라는 제목을 평가하시오.

일단, 2022년도는 기재부 기준으로도, 국제기준으로도 2021년보다 재정수지가 악화한 역대 최악을 기록했다. 그런데 2022년도 본예산과 1차추경은 문정부 책임이지만, 2차추경은 윤정부가 편성했다. 윤정부가 편성한 2차추경안 규모는 52조 원이다. 만약 윤정부가 2차 추경에서 52조 원의 추가지출을 편성하지 않았다면, 통합재정수지 규모는 -64조 원이 아니라 -12조 원에 불과했을 것이다. 국제기준으로는 흑자재정이다. 그래서 문재인정부는 확장재정, 윤석열정부는 긴축재정이라는 언론의 설명이 의아해 진다.

 

자 정리해보자. 문재인정부 100% 책임인 2021년도 재정수지는 0%, 균형재정이다. 2022년도 재정수지는 -0.9% 적자재정이다. 그러나 이는 윤석열정부의 역대 최대 규모(52조 원)2차추경 지출에 따른 적자다. 실제로 나를 비롯해 많은 자영업자는 윤정부의 2차 추경에서 손실보상금을 현금으로 600만 원을 받았다. 문정부에게는 재난지원금을 찔끔 받고 윤정부에서는 손실보상금을 600만 원을 받은 이상 내 감정에선 윤정부가 국가 재정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는 정부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프레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