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꽃대궐을 이루고 하마 지기 시작한 4월 둘째주 토요일 41차 갈맷길 그린워킹이 가덕도 눌차만 둘레길 걷기가 선창에서 있었다. 완연한 봄빛을 읽을 수 있었던 이날 행사는 걷고싶은부산 단독 행사로 치루어 졌다. 그동안 늘 공동 주최의 한 축이던 부산광역시와 국제신문은 빠졌다. 부산시는 아직 민간단체경상경비보조금 사업신청을 승인하지 않아서고, 국제신문은 지난 3월 이후 사무실 임대차계약해지 통보 이후 더이상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날 행사는 강서구청의 도움과 삼성전자와 삼성자동차의 차량 후원이 있었다. 가덕도 행이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아직 대중교통망과 접근성이 여전히 열악한 상황이다. 참가자는 160명 남짓한 수준이었다. 약 15명 정도의 사전 접수 신청자들이 불참했기 때문이다. 그들로 인해 뒤늦게 신청한 사람들이 마감을 이유로 이번 행사에 참석지 못했다. 불참에 따른 강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기 때문에 오고 안오는 것은 신청자의 도덕성과 의지에 달렸다.
이날도 박경애, 김정옥씨 등이 몸풀기 체조를 지도했다.
선창을 지나 본격적인 걷기에 든 것은 10시 반을 훨씬 넘어서 였다. 가덕도 눌차만둘레길 들머리는 선창에서 시작한다. 선창은 가덕진의 수군함정이 정박했다 하여 지명으로 된 곳이다. 눌차만(동선만)으로 조수가 들고나는 목이다.
천가초등학교 까지는 약 1.5km 가는 길에 유자밭 가장자리에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근도 선생의 흉상이 서 있다. 골목이 시작되는 곳에서부터 대원군의 척화비가 있는 천가초등학교까지는 옛 마을의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척화비는 원래 선창에 있던 것을 옮긴 것이다.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 외세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해 1871년 4월을 기하여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의 요소에 세웠는데 부산에는 대변항과 자성대 등에 원형이 남아 있다. 마을길이 끝나는 곳까지가 성북마을이다. 성북은 가덕진성의 북쪽 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이름한 동네인데, 성의 흔적은 거의 사라지고 없다.
때마침 눌차만이 썰물이었고 드러난 갯벌이 눈을 즐겁게 했다.
41차 갈맷길 그린워킹은 5-2코스 중 가덕도 눌차만을 일주하는 길이다. 전체 거리는 약10km남짓하다. 선창을 기점으로 성북과 천가동 마을 골목탐방과 국내 최대 둠벙지역인 천성들을 지난다. 갯벌이 펼쳐지는 동선세바지로 하여 외눌에서 눌차 국수봉 능선을 경유한다. 마지막 코스인 정거마을을 돌아 항월고개를 넘어서면 다시 선창이다. 마을과 역사문화 그리고 생태를 맛보는 원범회귀 눌차만 둘레길은 봄날 걷기의 압권이다.
사실 가덕의 변화가 유쾌하지 못하다. 지역민이야 뭍처럼 땅값도 오르고 도로도 시원스레 열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지 몰라도 그렇게 열리는 만큼 사라지는 것은 다시는 회복할 수 없다는 것도 발전의 비교대상에 넣었으면 한다. 발전의 개념을 있던 것을 없애고 번듯하게 딱아 세우는 것만으로 인식해선 곤란하다. 지역의 현명한 미래 만들기에 대한 지혜가 요구된다.
고향같다는 골목길을 벗어나 천성들로 향하는 참가자들
일대는 단위 면적당 국내 최대의 둠벙지역이다. 현재 약 50 여개의 둠범(논에 있는 물웅덩이)이 있다. 둠벙은 전국적으로 경지정리며 수로개설로 대부분 사라진 상태임에도 유독 가덕에는 지천에 깔렸다. 둔벙은 논 생태계의 핵심이다. 논이 쌀의 생산 공간이라는 단순한 공간적 개념을 뛰어 넘어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습지로서 자리매김 되고 있고 둠벙은 그 가운데 있다. 모내기를 전후 하여 천성들 둠벙을 찾으면 화학농법과 관개수로 농약의 오용에 따라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던 송사리며, 풍년새우를 비롯하여 다양한 개구리를 만날 수 있다. 뿐 아니다. 갯가이다 보니 도둑게며 말똥게들이 갈밭을 휘젓고 다니니 세상에 이런 데가 다 있다며 반갑기 그지없다.
생교동 입구 소나무 집 못미쳐 길가에서 눌차만을 감상하는 참가자들
복사 꽃 넘어 개벌이 드러나 있다. 눌차로 향하는 새바지 방파제도 눈여겨 볼 친구들이 많다. 새바지란 말은 샛바람에서 나온 말로 샛바람에 낙동강 하류위 모래가 밀려와 쌓인 모래 사구였다. 여름이면 갯메꽃을 비롯하여 갯보리, 밀사초 등의 해안사구 식물들이 만든 녹색띠가 해안을 따라 펼쳐진 곳이었지만 둑이 들어서면서 흐름은 단절되었고 면적도 자연 줄었다. 1959년 사라호 태풍 때 허물어 졌다. 방조제를 경계로 만의 생물상과 열린바다의 생물상은 확연히 달라진다. 놀랍게도 눌차만에서는 낙동강하구에서 거의 자취를 감춘 짱뚱어를 쉽게 볼 수 있다. 물위를 기는듯 걷다 점프하면서 이동한다. 7~8월 알을 낳는데 그들의 산란방은 6천여 개의 반짝이는 금색 알을 붙인 작은 지하금광이라고들 한다. 가족 단위 혹은 지인들과 이곳을 다시 찾아 볼 것을 권했다. 수많은 생멸과의 만남
동선 새바지에서 조금 이른 점심이 있었다. 식후 문화공연과 막걸리가 제공되지 못한 이번 행사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자세히 언급할 수 없어 5월이면 최근의 상황이 정리되지 않겠느냐고 ... 이어진 초대시인 이채영 시인의 시낭송
동행 가덕도에서
이채영
나는 육지인 줄 알았다
저기 떠 있는 섬이 등대를 세워
깜박깜박 신호를 보낼 때까지는
나 또한 섬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뱃길 닿지 않는 섬에 등대를 밝혀
밤배의 길을 밝혀주는 젖은 마음을 파도라고 하면
섬 아닌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만조는 이별의 선례가 되어서
바닥난 체력만으로도 어깨가 기울고
떠나가는 섬이 가뭇가뭇한 수평선에
한 섬이 다가오며 늘 그러하듯이
안개 낀 밤에 종소리를 뚫고 다가와
오래 동행하여 서로 육지가 되었다
2001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엽총을 어디에 두었더라?>
원래 초대시인은 이민아시인도 참석하기로 예정되었으나 원고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실을 수 없었다. 한편 이날 영광도서 시 낭송회 회장이라고 하셨든가. 즉시 시 낭송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배석 시인의 여승이었다. 아 이런 데서 백석의 시를 듣다니 ...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섭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가덕도 또, 눌차만에 오시거든
- 이 민 아
꽃잎이 우표처럼 흩날리는 날
계절의 선창이 마음을 흔들어놓을 때가 있지요
가덕도 선창에 서면 꼭 그런 마음 들킨 듯
유행가도 한 소절 그립고, 추억은 파랑치지요
가덕도 등대가 목덜미처럼 내려놓은 둘레길 따라
동선새바지 느루 걸어 항월고개에 닿으면
정거마을 골목도 환했지요, 달 보는 봄밤이
먼데서도 그리운 이유를 여기 와서 알았지요
눌차만에 차오르는 겹진 파도는 추억의 밑줄
서로 다른 생의 길목을 향하던 정거장 아래로
밀물처럼 당신과 내가 누차 당도했었다는 걸, 바다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기억의 찬장을 열다 들킨 척
가만히 글썽이곤 하는 거지요
천가동 우체국에 발길이 머무는 것도,
그늘의 유랑을 오래 지켜보는 가덕도 등대에
회복의 탄성처럼 불이 밝아오는 순간을 보는 것도,
눌차만이 태풍 후 연잎처럼 반짝이는 눈동자 같아서지요
바로 당신이, 하늘의 둘레를 걸어온 사람들이
만월이 차오르도록 걷고 걸어 돌아와 웃는 까닭이지요
가도 또, 가덕도 눌차만에 오시거든, 그것 때문이지요
2005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07년 동아일보,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현재 부경대학교 입학사정관으로 재직 중
잠시 오르막이다.
눌차 국수봉을 넘어 정거로 향한다. 산자락 밭에는 가덕에서만 볼 수 있는 창고들을 볼 수 있다. 농기계며 양파 따위를 보관하는 곳으로 밭농사 현장의 작업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임시 가옥이다. 한때 양파의 주산지였던 가덕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길은 눌차공동묘지가 있는 골짜기 작은 분지를 지나 삼거리에서 국수봉으로 우회전하면서 비스듬히 오른다. 북서쪽 해안인 녹산공단 앞에 거대한 굴양식장이 펼쳐진다.
복사꽃이 한창이다.
갈맷길 리본의 재질이 다시 바뀌었다. 부산시가 기초지자체에 일제히 달도록 했다.
국수봉 정상부에는 약 120년 전부터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국수당이 있다. 약 0.5km 능선 숲길을 따라 이동한다. 숲은 해병대 초소까지는 곰솔과 팽나무, 동백, 감탕나무, 쥐똥나무, 돈나무, 사스레피 등 상록활엽수를 비롯하여 자금우, 마삭줄 같은 지피식생과 송악등이 혼생중이다. 국수당을 기준으로 남쪽 비탈 능선에 편백과 삼나무가 우점하고 북쪽 능선에는 곰솔이 우점한다. 중간중간 참나무류들이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가끔식 후박나무들도 보인다.
기막힌 사실은 얼마전 국수당에 도둑이 들었다. 거기 놋그릇이며 제기를 몽땅 훔쳐갔다는 것이다. 언 놈인지는 모르겠다만 벌 받을 지어다. 모통이를 돌면 폐쇄된 해병대 초소가 있다. 거기서 내려다보는 낙동강하구의 해안 사주가 진우도를 시작으로 신자도, 도요등이 줄줄이 누워 있다. ‘낙동강하구의 진주’로 알려진 진우도는 정거마을 코앞이다.
숲이 끝나는 곳에 테크가 있고 마을이 시작된다. 정거(釘巨)마을은 파도가 심하고 배가 잘 터진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하여 파도가 잔잔할 때까지 닻을 메어 놓고 기다린다는 뜻을 지녔다. 개발광풍이 몰아치는 가덕에서 조용한 곳을 꼽으라면 외양포와 이곳 정거마을이다. 현재 정거마을은 갈맷길 거점 생태관광 마을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정거주민들은 죄다 일하러 나갔다. 현수막까지는 준비못하더라도 갊냇길 그린워킹 참가자들의 정거마을 방문을 환영한다고 했다.
정거마을 회관에서 볼일도 보고 다리쉼을 하며 막걸리도 한 잔 한다.
아짐들이 고사리 몇 가닥을 두이서이 한줌씩 꺽었고, 그분들을 모아 즉석 몰아주기 게임을 벌였다. 가위, 바위, 보
그리고 기념 촬영 남자분들은 뒷쪽으로 빠졌다.
이렇게 봄이 익어 가는데 ...
정거마을을 빠져 나와 항월 고개로 향한다.
이 바다에도 슬픔이 서려 있다. 일제의 패망이 임박했던 1945년 8월13일 미공군 B29 폭격기가 가덕수로에 나타났다. 닻거리 나루터에서 부산으로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전마선에서 여객선으로 갈아탄 다음 모롱이를 돌 즈음, 폭격기로부터 기관총이 난사됐다. 순식간에 배는 침몰하고 승선자 50여 명이 모두 수중 고혼이 됐다고 한다. 참화가 있은 지 이틀 후 일본은 항복을 했다. 나루터는 징집과 징병으로 끌려갔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얼싸 앉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는 한편 졸지에 폭격으로 사라진 가족을 찾는 유족의 절규가 뒤엉킨 현장이기도 하다.
삼거리에서 항월고개에 있는 눌차분교를 지나 외눌마을을 빠져나오면 선창이다.
내눌 입구 굴까는 간이 작업장에서 호객 행위를 좀 했다. 상추 한 다발 3천원 굴 1kg 만원 참가자들이 우루루 몰려 들어 다 사버렸다. 그래야 한다. 지역산물을 팔아주는 것 그래야 길이 살고 지역이 살고, 더불어 행복해 진다.
눌차만 둘레길은 원점회귀다. 어느 분이 말했다. 역시 제주 올레가 좋다고 ...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분은 이 길의 맛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눌차만 둘레길 동선이 보여주는 다양한 자원들은 사실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이 자원을 어떻게 지키고 가꿀 것인가이다.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물론 시각적으로 너저분한 곳도 있었고 주변 환경과 조화롭지 못한 건축 행위도 보면서 실망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날 나들이는 부족한 것이 많았음에도 모두가 만족했던 걷기였다. 참가자 중에는 걷고싶은부산이 잘 되어야 한다면 '후원금'까지 주신 분도 있다. 그분은 작금의 벌어지고있는 일에 대해 자기일처럼 분해 했다. 미안하고 죄송스러울 따른이다. 다음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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