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생태체험 1차 행사가 5월12일로 연기된 가운데, 부산일보 윤여진 기자와 Week Joy 커버스토리 스케치를 위해 현장을 방문했다. 5월9일엔 월간 '함께사는 길'이 취재를 올 예정이다. 예정대로였다면 4월27~28일 양일간 실시될 예정이었는데, 참가 주축이 서울.경기지역 환경단체 교육담당자들로서 고리와 밀양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연기를 요청해 왔기 때문이었다.
집을 나서면서 적어도 10여 년 정도 수집했던 부산연안의 저서생물 표본을 들고 나왔다. 앞으로 정거 마을회관을 이용할 사람들에게 볼거리도 제공할 겸 체험방문자들의 학습효과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해양관련 책자들을 비롯하여 시집 등도 챙겼다. 사실 이 물품들은 약 400여개에 가까운 생태환경 비디오 테잎과 함께 부산환경교육센터가 자체 건물을 가지게 될 때 기증할려고 했던 것이다. 환경교육센터가 아닌 정거마을로 주인이 바뀌게 된 이유는 우리집 내부 사정에 기초 한다. 안 그래도 집이 비좁은데 쌓이기만 하는 책과 화분, 그리고 벽에 주렁주렁 달린 이런 표본에 대해 치워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한 마누라 때문이었다. 그래서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지만 결과는 나의 완패였다. 화분은 죄다 옥상으로 옮겨졌고 책들은 책꽂이가 수용하는 선에서만 정리되었다. 분통이 터지는 노릇이지만 그렇게 일단락 되었다.
윤기자에게 마을 집행부(추진위)를 소개하고, 주민들이 이 사업에 참여하게 된 배경에 대해 이철희통장과 주경덕 개발위원장을 통해 듣고 있다. 이 통장은 환경부 평가간담회를 다녀온 이후 더욱 열의를 보태고 있다. 최근에는 수백만원의 마을기금을 들여 체험방문자들이 기거할 마을회관에 소용되는 이불이며 필요 용품을 구입했다. 마을부녀회가 국제시장에 물건을 사 놓고 빠뜨리고 오는 황당한 에피소드를 연출하기도 했다.
주민들은 부산 강서구에 적을 두고 있지만 생활 필수품이나 어획 수산물은 창원 진해구 용원수협을 통해 처리한다. 그리고 거기서 생활용품을 구해서 돌아 온다.
인터뷰는 작업바지에서 이루어졌다. 주민들은 어구를 손질하거나 배를 타고 온 구입해 온 고추모종을 챙기고 있다.
인터뷰가 끝난 뒤 개발위원장 부부가 조업을 나간다. 형제섬 근처까지 나간다고 했다. 예전에는 그렇게 멀리까지 나가지 않았다고 했다. 한마디로 마을 앞 바다가 문전옥답이었다. 정거마을은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부촌이었다. 가구당 연 소득이 1억원이 보통이었다. 그렇지만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녹산앞바다가 매립되고 부산신항이 들어서면서 황금어장은 시들해졌다. 보상이 있긴 했지만 그 돈은 이후 주민의 삶을 전과 같이 돌려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턱없이 적었다고 한다.
마을 안으로 들어 선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시내버스 58번(배차 간격33분)과 급행 1008 (김해공항 경유 40분 간격) 강서구 마을버스 1번이 선창까지 들어 온다. 선창에서 마을입구까지는 약2km 정도되는데 외눌> 눌차분교(폐교) > 성불암으로 이어 진다. 마을골목길과 눌차 왜성터 에서 오솔길을 걷는데 펼쳐진 풍광이며 조붓한 구릉길이 맛이 있다.
현재 정거마을은 갈맷길 5-2코스에 생태체험마을로 표기되어 있다. 갈맷길 거점 마을로서 또 환경부 지정 생태체험마을으로서의 기본 자격은 획득한 샘이다. 골목은 마을이 외부와 소통하는 통로이자 주민들의 생활길이다.
아래 그림은 2005년 4월 헬기를 타고 하구 일대를 돌 때 찍었던 정거마을을 정경이다.
마을의 끝집인 박선장네 집 옆으로 테크계단이 연결되어 갈맷길과 연결되어 있다. 우측 옆 파란 물통이 있는 동굴은 일제가 파다가 중단된 인공동굴이다. 정거에는 이런 동굴이 서너개 있다.
그리고 길은 이곳에 주둔해 있던 해병들이 드나들던 순찰통로였다.
길가 작은 물웅덩이가 있다. 도룡뇽의 새끼들이 살고 있다. 국수봉 동남쪽 사면에 깃들어 사는 야생동물들의 보물이다. 새들과 고라니가 목을 축이는 곳이다. 미나리아재비가 작은 군락을 이루고있다. 길 옆 숲에는 가막살나무가 활짝피었다. 얼핏보면 덜꿩나무와 혼동하기 쉽다. 덜꿩나무의 잎은 마주나면서 달걀모양인데 가막살나무에 비해 성모가 빽빽히 자란다. 그리고 잎이 좀더 뾰쭉하다. 가막살나무의 경우 턱잎이 없다. 열매도 덜꿩나무에 비해 작다.
폐쇄된 해병초소까지는 평지를 걷듯 비스듬히 오르다 국수봉으로 향하는 지점에서 경사도가 조금 생긴다. 거기서 바라 본 진우도 동쪽 끝지점과 낙동강하구의 모습, 해변족으로 띠밭이 있고 안으로 갈 수록 억새와 갈대가 혼생한 가운데 소나무들이 영역을 넓히고 있다.
진우도의 경우 남과 북의 해변이 성질이 다르다. 북쪽은 갯벌인 반면 남쪽은 사구를 이루고 있다. 위성에서 보듯 무인도지만 사람에 의해 경작된 흔적을 가지고 있다. 마을 출입이 빈번해지면서 알게된 사실 중의 하나가 진우도를 비롯 현재의 정거마을 집뒤 언덕이 다 논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섬 안쪽에는 한 때 신호리 사람들의 공동묘지가 있었다고 한다. 그 시절 해무가 낀 새벽에 섬을 배회하던 흰 유령같은 존재에 대해 무서워 했다고도 했다.
위 사진 역시 2005년 4월 헬기에서 찍은 진우도 서편과 남쪽 해상이다. 물속에 새로운 등이 출현하고 있었다.
헌데 아래의 위성 지도가 최근의 것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진우도 동쪽 곰솔군락의 확산이 국수봉 중턱에서 바라 본 것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결론은 최근 것이 아니다. 다음이나 네이브 등 국내 주요 포탈사이트 운영자가 귀기울일 대목이다.
수평선 죄측이 다대포 몰운대와 서도 그리고 가운데가 목섬 그리고 우측 조금 솟아 오른 곳이 남북형제 섬이다. 부산의 최남단섬이다. 개발위원장 부부가 조업을 나간 지점이다. 그들 부부가 부러웠다. 변덕스러운 해상의 날씨는 너울과 파랑을 일으켜 위험천만한 지경에 노출되기도 하겠지만 그 순간에도 믿고 의할 사람은 두 사람 뿐이다. 부부 금실이 난바다에서도 꽃을 피울 것 같다. 그 험한 뱃일에도 서로를 챙겨주는데 ...굳어 있던 마누라의 얼굴이 스친다.
정거말과 국수봉 오르는 길, 해안은 해식애를 이루며 작은 역빈과 해식동을 만들어 놨다.
길을 따라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식재되어 있고 그 사이 가덕 본섬의 강금봉과 기도원 가는 해안길이 보인다.
오동나무 한 그루 꽃을 피웠다. 그 향이 매혹적이다. 헬기장 공터 주변 포플러 두어 그루가 사나브로 가족을 이루었다.
포플러와 관련한 서양쪽에 재미난 전설이 하나 있다. 예컨데 "무지개여신이 애지중지하던 보석(을 넣어둔) 항아리을 도둑맞았다. 도둑은 들킬 것을 걱정하다 키고 크고 우람한 포플러 나무 가지에다 보물항아리를 숨겼다. 그때까지만 하덜도 포플러는 다른 나무들처럼 긴 가지를 옆으로 펼친 수형이 꽤나 볼륨있는 나무였다. 아무튼 도둑은 아무도 못 볼거라 여겼지만 지나던 올뻬미가 보았다. 무지개 여신이 신들의 왕을 찾아가 하소연했다.
왕이 노발대발했고 그때 왕의 어깨 위로 올빼미가 내려 앉아 도둑이 항아리 숨기는 것을 본 것 같다며 이야기 했다. 하지만 도둑에 대한 인상착의가 불분명했다. 신이 짜증을 내며 역성을 냈다. "대관절 니가 뭘 봤다는 기 뭐냐? 거냐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라며 다그치자 올빼미가 "그게 햇빛이 너무 밝아 정확히 보지는 못했고, 설령 봤다고하더라도 나무 이름을 기억하는게 어두워서 ... 다만 크고 우람한 나무였다"고 하자 왕은 신하들을 보내 나무들을 수색하게 했다.
신하들은 나무를 보면 크게 호통을 쳤다. "이놈 손을 들어라. 팔을 번쩍 들어 숨긴 게 없음을 보여라. 어서!"
마침내 포플러 차례가 되었다. 쭈삣거렸으나 어쩔 수 없이 손을 들자 툭! 하고 보석항아리가 떨어 졌다.
왕이 대노하여 포플러에게 꾸짖었다 . "네 이놈. 너는 이제 손을 내리지 마라 . 영원히 손을 들고 네가 한 짓을 반성토록 하라 "
포플러는 수천개의 잎을 부석거리며 억울함을 하소연했지만 소용없었다. 이후로 포플러는 지금까지 속이 타고 애가 마른 채 손을 들고 벌을 서고 있다. 잎자루가 긴 포플러의 특징을 잘 표현했다. 우리 산야엔 사시나무가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어 "사시나무 떨듯이 한다"는 말이 있다. 전래동요엔 '덜덜 떨어 사시나무, 바람솔솔 소나무, 불 밝혀라 등나무, 십리절반 오라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칼로베어 피나무, 죽어도 살구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나무, 방기뀌어 뽕나무, 그렇다 치자 치자나무, 거짓없다 참나무 ..."
다시 뒤돌아 보니 다대포와 몰운대를 배경으로 낙동강하구가 몰려 온다. 신자도와 도요등이 남해와 더불어 누워 있다.
국수봉 오르는 길에는 두 곳 정도 벤치가 설치되어 있어 다리쉼하며 주변을 조망할 수가 있다. 동선항과 연대봉이 보인다.
국수봉 정상에는 마을의 안녕을 고하는 할매당인 국수당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올해는 정월에 도둑이 들어 제기들을 싸그리 훔쳐 갔다. 돌담에 어울리게 기와를 엊어보자는 제안을 한 바 있다.
옛 사람들은 자연에 대해 외경심을 갖고 있었다. 특히 자기가 사는 마을 근처의 산과 강, 언덕에는 마을을 지켜주는 신령스러운 힘이 있다고 믿고 그 신령을 숭배하고 제사 지냈던 장소가 바로 당산이다. 애초에 당산신은 여성신격(할매)이었지만, 가부장제를 중시하는 유교문화가 습합된 이후 남성신격(할배)도 숭배의 대상이 됐다고 한다. 부산의 경우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지리적 특성으로 산신이나 바다신에 대한 숭배 의식이 다른 지역과는 유달랐다.
대한경신연합회 부산시본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재 부산 지역에는 모두 288곳의 당산이 있다고 한다. 가장 많은 곳은 기장군으로 기장읍에 27곳, 장안읍에 23곳, 일광면에 19곳, 정관면에 12곳, 철마면에 13곳 등 모두 94곳의 당산이 있다. 다음으로는 강서구에 53곳이 현존하고 있으며, 금정구, 해운대구, 북구, 사하구 등의 순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제사는 대부분 음력 정월 14일 또는 15일에 치러진다.
'생생지생(生生之生 )화해동심(和解同心) 해원상생(解寃相生)하라는 정신의 발현이 구체화 되는 행위가 당산제다. 당산제는 공동체 모두가 참여하는 의식이다. 의식에 앞서 제주(祭主)는 몸과 마음을 청결히 하고 일정기간 부부관계도 멀리한다. 정거마을은 통장과 마을총무가 집전한다고 했다.
그나저나 그 도둑놈은 어찌될까. 다른 것도 아니고 ... 옛날에는 급살맞을 일이었다.
갈맷길 안내리본이 걸려 있는 능선길 소나무와 참나무류가 우점한다.
길에서 걷기 위한 목적이 아닌 산나물 채취에 나선 사람들과 마주쳤다. 겸사겸사 나왔겠지만 그들이 숲을 흝고 가면 남는 게 없다. 고약한 일이다. 시방은 참나물이 제법 많다. 두릅은 아예 싹쓰리다. 마을주민들도 어디를 언제가면 두릅을 딸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도시 약탈자들 때문에 그려려니 할 뿐이지만 내심 불편하고 불만이 많다. 문득 이 도시가 가진 생태적 빈곤에 대해 생각한다. 하루종일 부지른을 떨어도 새소리며, 바람소리 더불어 이 봄날 녹색의 향연과는 거리가 먼 자들. 새로운 약탈자들은 그렇게라도 위안을 얻고 싶어 한다. 딱한 노릇이다. 그들이 그 길에서 얻는 것이 고작 그뿐이라면 ...
숲을 빠져나오면 눌차 공동묘지 숲 앞 내눌과 정거를 어어주는 고개마루에 밭이 있다. 고맙게도 올해는 보리를 심었다.
보리밭 너머 신호 녹산 갯벌의 굴 종패밭이 열려 있다.
그 길 가장자리 바닥에 물기가 베인 곳에 큰꽃으아리와 쥐오줌풀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꽃길이다. 괴불주머니와 봄맞이, 봄마리, 콩제비꽃이 한데 어울려 있다. 팥배나무도 꽃을 달기 시작했다.
팽나무가 잎을 달기 시작했다.
흘쩍 뛰어넘어 성북으로 무대를 바꾸어 본다. 성북의 골목은 언제봐도 정겹다.
그리고 이곳의 유명한 중국집 장춘반점. 부산일보 최학림기자가 소개했던 글을 기억하고 지난 2009년 처음 맛 봤다. 이후 기회가 되면 장춘반점을 이용하게 되는데, 여름이면 천가초등학교 은행나무 벤치 아래로 배달해 줄 것을 주문한다. 그 맛이라니 ...
2010년부터 리모델링에 들었던 천가초등학교는 이제 거의 공사가 마무리 된듯하다. 거기 척화비며 은행나무도 여전하다.
이곳에서 자가용으로 이동하기 위해선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가기 위한 탁월한? 운전실력이 필요하다. 가덕기도원으로 빠져나가는 골목에서 상당수의 차량들이 벽에 긁히며 찰과상(?)을 입기도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마을 골목이 넓혀질까 아니 진짜 도로가 될까봐 걱정된다. 천가, 성북, 눌차, 동선, 정거를 보기 위함이라면 차는 선창에 두고 왔으면 한다. 정거는 마을입구까지 차가 들어 갈 수 있지만 성북, 동선으로 가기 위해서라면 마을 입구에 주차를 부탁한다. 주차한 곳으로부터 짧게는 300m 동선항까지도 길어 봤자 1.5km불과하기 때문이다. 눌차만의 아름다운 골목과 해안을 보전하가 위해서라면 ...
천성들 입구에서 마늘쫑을 다듬고 있는 1921년 생 박세금 할머니와 스무살 적 민락동에서 이곳으로 시집와서 살아 온 이야기를 듣는다. 지나온 세월을 자세히 듣고 싶어 집을 알아 두고 다음을 기약했다. 이곳의 산 역사이기 때문이다. 길은 이런 분의 살아 온 세월을 풀어내는 장치다.
천성들에도 못자리가 깔리기 시작했다. 하마 개구리들이 울기 시작했고 올챙이들은 논바닥에 꼬물꼬물 단합대회를 열고 있다.
아래 그림들은 최근 2~3년간 눌차만과 천성들 주변의 변화를 위성으로 분석해보기 위해 준비했다.
2007년 겨을이다. 거가대교 공사도 없었고 천성들은 큰 변화가 없다. 마을초입에 펜션같은 이질적인 집들도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박세금 할머니에 의하면 천성들 앞 갈밭도 예전에는 논이었다고 한다.
변화는 2008년 겨울부터 시작됐다. 갈미봉과 구곡산 가장자리 사면을 도로개설을 위한 공사가 이루어지고 웅주봉 자락에 터널공사가 천성저수지 쪽으로 연결되는 일련의 공사가 시작됐다. 비슷한 시기 장항과 율리가 부산신항 남쪽 컨테이너 부두 매립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아니 먼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길어야 불과 4~5년 사이에 일대의 변화는 급물살 타듯 이루어졌다. 개발론자의 시각은 이 변화가 당연한 현상일 수 있지만 나로서는 수용하기 힘들다. 발전의 등식은 늘 이런 식이어야만 하는가. 솔직히 그 어디에 비견해도 견줄 수 없는 눌차만 고유자원이 제대로 꽃 피워 보지도 못한 채 사라질까 두렵고 안타까을 따름이다.
천성들에도 자운영이 피었다.
비가 잦은 이 봄날 천성들을 적시는 산간 계류가 마을 거치며 작은 시내가 되어 눌차만으로 흘러 들고 있다. 기막힌 사실은 이 물길이 해수와 담수를 이어주는 특이한 흐름이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100m 남짓한 거리를 두고 산쪽 시내에서는 가재가 살고 눌차만 갯가쪽에는 그 일가뻘인 길게와 칠게 등이 물 대에 맞추어 바글바글 먹이 활동을 한다.
강금봉의 줄기가 동산새바지로 미끌어지듯 내리뻗다 정거말과 마주보고 있다. 멀리 다대포의 아미산 응봉이 희미하게 배경으로 섰다.
눌차만의 물빛은 탁하지만 수많은 생명의 터전이다. 죽도 너머 외눌과 잘록한 항월고개가 보인다.
주마간산격으로 휘 둘러보고 다시 성북으로 향한다.
골짝에 만개한 오동나무 한 그루, 사방에 그 향기가 진동한다.
마을입구로 와서 건너다 본 천거들 방면, 갈밭을 밀어내고 새로 조성된 부지에 자가용들이 서 있다.
왔던 길을 다시 걸어 눌차만과 정거 스케치를 끝낸다.
특별한 눌차만의 봄 하루였다.
아래 사진은 4웗18일 환경부 습지사업단에서 있었던 전국 5개 지역 생태체험시범마을 평가 간담회 자리다. 낙동강하구 정거마을은 전체 참가자의 호평 속에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 4월24일 추진협의회 회의가 있던 저녁, 주민들은 숭어며 갑오징어 등을 준비했다. 이날 5월 체험과 관련하여 기본 프로그램에 대한 역할 분담과 일정이 논의 되었다. KNN의 박기양감독과 정혜연 작가가 마을변화의 기록을 위한 다큐전담팀으로 합류했고, CI 디자이너 전은진양도 추진위 협력팀으로 같이 하기로 했다.
귀가는 밤11시 가까운 시각에 이루어 졌다.
정거의 변화, 이제 연결고리가 하나 둘 엮어지는 참이다. 기대해 볼일이다.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 송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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