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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경향 2.3 한겨레
2.3 내일-국제
2.3 경향 2.2 미디어오늘
2.3~2.7 경향 장도리
'러시아의 모든 것' 담아낸 황홀한 소치 개막식
소치 동계올림픽 개막식... 표트르 대제부터 톨스토이까지 '대서사시'
김용판 무죄, 시체와 칼은 있는데 범인이 없다는 격” 27미디어오늘
[뉴스분석] 법조인들 “선거사흘전 허위수사 발표 판단외면…무죄 정해놓고 내린 판결”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허위 수사결과 발표를 지시해 선거개입을 했다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을 무죄로 판결한 법원에 대해 법조인이나 법조계 출신 인사들 사이에서도 “무죄를 정해놓고 끼워맞춘 전형적인 정치적 판결”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선거 사흘전에 허위수사결과를 일방적으로 발표한 사실에 대해 재판부가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아 의도적으로 핵심을 ‘유탈’(遺脫)했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변사체와 칼이 있고, 그 옆에 피의자가 있었다는 사실까지 확인했으면서도 범인이 아니라고 단정한 사건과 같다는 평가도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의 김용판 전 청장 사건 결론은 “검사의 논증이 단순의혹과 추측을 넘어 법관에 합리적 의심이 없도록 유죄 도출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으로 증거가 불충분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판사 출신의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7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범죄 의도와 관련해 여러 사실을 종합한 결과 고의가 인정된다고 그동안 많은 재판에서는 판결해온 것은 사람의 내심(內心)이라는 것은 신이 아닌 이상 알 수 없기 때문”이라며 “이번 판결은 재판부가 마치 김용판 마음 속에 들어가서 그 의도와 의사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결한 것이나 같다”고 평가했다.
촛불인권변호사로 알려진 한웅 변호사도 인터뷰에서 “상식적인 범주에서 표현하자면 ‘변사체와 칼, 그 옆에 피의자는 있는데, 살인범은 없다’는 논리이자 ‘장물은 있는데 절도범은 없다’는 주장과 동일하다”며 “이 때문에 시민들이 흥분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 변호사는 ‘김용판 전 청장이 수서서에 알리지 말라고 한 것은 일반적인 지침이었을 뿐 분석결과를 은폐, 허위 결과를 전달하라는 취지는 아니었다’, ‘분석관들이 분석조건에 맞는 글을 못찾아 있는 그대로 보고했다’는 재판부 판단에 대해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CCTV에 보면 ‘밖으로 흘러가면 안된다’ 등등의 얘기 등이 나오는데, 이런 판단을 한 것은 무죄를 정해놓으려다 보니 이런 것”이라고 지적했다.
선거무효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박훈 변호사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디지털분석팀이 찾아낸 것을 누가 은폐했느냐에 있는데, 김용판 전 청장의 지시없이 알아서 은폐했다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충격적 판결”이라며 “도대체 무슨 판단을 한 것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고 표현했다.
무엇보다 선거 사흘전에 무리하게 허위사실을 발표했는지와 관련해 재판부가 ‘검사가 제출한 간접사실 만으로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김 전 청장이 실체를 은폐 허위수사결과 발표할 의사가 있었다고 인정하기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대목에 대해서는 중대한 판단유탈(遺脫)이라는 평가가 많다. 사건의 핵심을 아예 판단하지 않아버린 것이라는 뜻이다.
박범계 의원은 “이것이 재판의 핵심으로, 왜 경찰이 밤 11시에 보도자료를 내고 다음날 아침 브리핑을 하도록 했는지, 옳은 행위인지 여부에 대한 것”이라며 “판결문에는 이 대목이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수사결과 발표 지시와 승인을 김 전 청장이 했다는 것을 재판부도 인정해놓고 이 행위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았다”며 “이를 치밀하게 했으면 김용판 유죄 피할 길이 없기 때문에 판단하지 않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재판부는 이 대목을 아쉽다고 표현했다. 재판부는 “그 시기와 내용 면에 있어서 최선의 것이었는지 다소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박 의원은 이를 두고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 있었는지 이런 말을 넣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장주영 회장 명의의 논평에서 “한 밤중에 갑작스럽게 수사결과를 발표할 때 ‘추후 계속 수사를 할 것이고, 새로운 증거가 나올 수 있다’는 내용이 빠져 혼란을 야기할 수 있었던 점이 아쉽다는 취지였다”며 “바로 이 ‘아쉬운 기자회견’을 한 의도가 무엇인지가 이 사건의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나 재판부는 이에 대해 아무런 의구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한웅 변호사도 “대선 사흘 앞둔 상황에서 정확한 증거없이 수사결과 발표한 것은 결과적으로 박근혜 후보에 유리하게 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은 채 ‘아쉽다’고 한 것은 재판부가 이 말을 안쓰고는 못견딜 것 같아 자기도 모르게 넣은 인지부조화 현상을 남긴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범계 의원은 이 표현자체에 대해서도 “판결문에 써서는 안되는 표현으로, 법률적으로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이는 결국 중대한 판단유탈이자 판단미비를 낳았으며, 결국 정합성과 완결성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재판부의 판결문을 보면, 핵심사실에 대한 판단 대신 시종일관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발언을 못믿겠다는 데에 대부분의 분량이 채워져있다. 박훈 변호사는 “일종의 내부고발자이자 침묵의 카르텔을 깬 사람이 권 과장”이라며 “확고한 확신에 차지 않으면 고발할 수 없는 사람의 증언을 신빙하지 않고, 법정에 짜맞춰 들어온 경찰들의 앵수새같은 사람의 말만 믿은 것으로, 이는 증거선택을 법관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자유심증주의’를 남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장주영 민변 회장도 논평에서 “서울경찰청 소속 경찰들이 이 사건 당시부터 김용판의 지시를 받거나 김용판과 모의한 것으로 의심하는 것이 타당한 상황이었는데도 아무 의심없이 이들이 일치된 진술을 하고 있다는 점만 들어 권은희 진술을 부정하는 것은 너무도 안일하고 편향돼 있다”고 비판했다. 박범계 의원 역시 “경찰의 진술은 양적으로만 17명이었지 실제론 1명과 동일한 진술일 뿐인데도 양으로만 17대 1로 갈음한 것”이라며 “증언의 질은 따지지 않은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김용판 전 청장이 김하영 국정원 직원의 아이디와 닉네임까지 들어있는 파일메모장 내용을 보고받았으나 그 분석과 방법과 범위에 대해 보고받지 않았다’는 재판부 판단도 도마에 올랐다. 박범계 의원은 “이 말대로라도 김용판이 매우 제한적이고 미진한 보고를 받았다는 뜻으로, 그렇다면 어디까지 보고를 받았다는 것인지 반문했어야 했다”며 “또한 이렇게 미진하게 파악한 상태에서 중간수사결과 발표 지시하고 승인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반문했어야 하나 하지 않았다. 이것 역시 중대한 판단미비, 판단유탈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검색하는 키워드를 수서경찰서가 요청한 100개에서 4개로 줄이는 과정에도 아무런 의도가 없었다’는 재판부 판단에 대해 장주영 민변 회장은 “적극적 수사의지가 있었다면 위법한 증거수집을 피하기 위해 컴퓨터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새로이 발부받으려는 노력을 했어야 하나 그러한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는데도, 재판부는 어떠한 의도도 없었다고 판단하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이 판결에 대해 무죄를 이미 정해놓고 근거를 짜맞춘 결론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박범계 의원은 “무죄라는 결론을 내고, 거기에 맞춰서 쓴 판결문”이라며 “결정적인 의심을 할 수 있는 대목에 대해 재판부는 판단하지 않았으며, 재판부가 아쉽다는 표현을 쓴 것은 유죄심증을 갖고 있으나 정반대로 판결문을 쓴 것이라는 반증”이라고 총평했다.
민변도 “법과 양심에 따라 정당한 판결을 해야 할 법원은 증거법칙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진실을 외면한다면 앞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제도는 무의미해질 것”이라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과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주권재민의 원칙을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반민주행위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지적했다.
한웅 변호사는 “명백히 드러난 사건도 언급을 회피한 판결을 법원이 했다는 것에 대해 같은 법조인으로서 자괴감이 든다”며 “마음이 무거울 뿐이라고 털어놨다.
이 때문에 향후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공판도 자의적이고 기계적 증거를 나열하는데 그칠 경우 더욱 유죄를 판결할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박범계, 박훈)이 나온다. 반대로 댓글과 트위터 글 자체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로 보고 최소한의 유죄판결은 나올 것이라는 전망(한웅)도 있다.
권은희 수사과장 기자회견에 대해 '성질내는' 조선일보 28미디어오늘
[비평] 동아·중앙 ‘다른 기사 끼워팔기’…‘권은희의 항변’, 일간지는 숨기거나 욕하거나
언론들은 지난 1년 내내 국가를 뒤흔든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 그리고 그 중심에 섰던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무죄 그리고 그의 수사 개입 의혹을 폭로한 권은희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의 반박 기자회견,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는데 8일자 조간의 지면은 온통 소치 동계올림픽이다.
8일자 아침신문에서 한겨레는 토요판 헤드라인과 함께 1면에 쌍용차 노동자 153명의 해고 무효 판결, 권은희 수사과장의 반박 기자회견을 보도했다. 경향신문도 마찬가지다. 쌍용차 재판 결과와 권은희 수사과장의 기자회견이 실렸다. 그러나 9개 조간 종합일간지 중 이 둘 뿐이다. 권은희 수사과장을 1면에서 볼 수 있는 곳은.
그래도 다른 언론들은 권은희 수사과장의 기자회견을 별도의 기사로 전했다. 한국일보는 권 과장의 기자회견 요지와 일문일답까지 전했고 내부고발자의 진술 신빙성을 간과했다는, 이번 판결에 대한 법원 내 비판 여론을 전했다. 국민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도 권 과장의 주장을 전했다.
그런데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권 과장에 대한 별도의 기사가 없다. 동아일보는 이날 12면 <“13개 쟁점서 모두 완패” 얼어붙은 검>에서 이번 판결에 대한 검찰 내부의 반응과 함께 ‘한편’ 이후로 권은희 수사과장의 기자회견을 전했다.
중앙일보는 3면 <김용판 무죄 쇼크…민주당, 황교안 해임·특검 총공세> 제하 기사에서 민주당의 반응과 함께 권은희 과장의 기자회견 소식을 전했다. 역시 ‘한편’ 이후다. 재판부로부터 ‘남들과 다른 말을 한다’는 석연찮은 이유로 내부고발의 신빙성을 의심받게 된 당사자가 직접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밝혔음에도 중앙일보는 이 기사를 특정 정치세력과 묶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오히려 권 과장의 기자회견 소식을 별도의 꼭지로 전했다. 조선일보는 10면 <권은희, 구체적 근거 못 대고 재판부만 비난> 기사에서 나름 권 과장의 주장과 법원의 판결을 대조하기도 했다. 권 과장의 기자회견도 검증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나름 눈에 띄는 보도다.
하지만 이민석 사회부 기자가 권은희 과장이 기자회견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경찰 조직이 얼마나 헝클어져 있는지를 다시금 확인했다”고 비판을 가한 것은 문제점이 많다. 다른 기사들이 '조족지혈'로 보일 정도다. 이 기자는 <권은희의 ‘재판 회견’…그냥 지켜만 본 경찰> 제하의 기자수첩에서 권 과장의 주장이 “인상비평 수준”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이 기자는 “경찰 중간 간부가 이런 준비 상태로 ‘인상 비평’ 수준에서 판결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권 과장은 기자회견 전 서울경찰청에 회견을 열겠다는 사실을 ‘보고’했지만, 회견에서 무슨 말을 할지는 알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기자는 “서울청의 한 간부는 ‘어차피 말리지 못할 일’이라고 말했다”며 “자칫 정쟁에 휘말릴 것이 두렵다는 얘기였다”고 덧붙였다.
이 기자는 권 과장이 “질문에 답도 제대로 못했다”고 평가절하 했지만 타 언론에서 그와 같은 보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국일보 보도에 나온 권 과장의 일문일답에 따르면 권 과장은 자신의 권한을 넘어선 질문 이외에 대해서는 답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기자는 “재판이 잘못됐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뭐냐는 말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권 과장은 내부고발자이지 증거를 수집해 재판에 회부하는 검찰이 아니다. 누군가 이 기자에게 “(권 수사과장의 기자회견은) 경찰 조직이 얼마만큼 헝클어져 있는지 확인해줬다”는 말의 증거만 캐묻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기자의 이런 방식의 질문은 막연한 딴죽에 가깝다. 내부고발자로서 권 과장은 이번 기자회견을 통해 “직무를 이용한 범죄의 경우 관련자들의 진술이 나의 진술과 불일치하다는 것은 일반적”이라며 “나의 진술이 다른 사람의 진술과 다르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면 (이런 범죄의 특성이) 재판에서 충분히 검토되었는지 의문”이라고 자신의 입장을 전했다.
중앙일보는 이날 사설 <김용판 무죄, 정치공방의 대상 아니다>에서 “사법은 국민 신뢰 없이 존립할 수 없다”며 “진영논리의 색안경을 쓰고 무죄냐, 유죄냐에만 민감하게 반응하는 습성도 버릴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사법 신뢰가 향상되기 위해서는 채동욱 검찰총장의 낙마도, 윤석렬 검사의 좌천도 없어야 했다.
이날 언론도 사법 불신에 한 몫을 했다. 1심 이후 당사자가 직접 나와 기자회견을 했는데, 이를 다른 기사 깊숙이 숨기거나(동아·중앙), 기자회견 했다는 사실을 두고 왈가왈부(조선) 하면서 이번 재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있다. 법이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원칙이 있는 것처럼, 언론이 불편부당을 지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약자의 편에서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MBN은 ‘권은희 생중계’ 중단 … KBS MBC는 보도 ‘침묵’ 28미디어오늘
[캡처에세이] 권력에 ‘굴종하는’ 대한민국 언론의 현주소
“7일 오전 11시6분, 권은희(40) 서울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송파구 가락동 송파서 소회의실로 들어서자, 수 십대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오늘자(8일) 한겨레 6면에 실린 기사 가운데 일부다. 지난 7일 열린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기자회견 내용을 다루고 있다. 권은희 전 수사과장은 국가정보원 불법 선거개입 사건 수사 등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법원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하자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적극 반박했다.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부분은 “수 십대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는 부분이다. 사실 법원이 김용판 전 경찰청장에게 1심에서 무죄를 선고할 때부터 언론의 관심은 권은희 전 과장 쪽으로 향했다. 이번 재판 결과에 대한 권 전 과장의 입장과 향후 거취문제 등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MBN ‘권은희 생중계 중단’ … KBS MBC ‘보도 침묵’
문제는 기자현장에서의 관심과 실제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서 빚어진 간극이다. 특히 방송사들은 권은희 전 과장 기자회견과 관련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보도태도를 보였다.
7일 오전 권은희 과장이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무죄 판결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시작하기 직전 생중계 영상을 내보냈던 MBN은 막상 권 전 과장이 입장을 표명하려 하자 광고 화면을 내보냈다. 이후 MBN은 권 전 과장 기자회견을 방송하지 않고, 예능프로그램인 <고수의 비법-황금알> 재방송을 내보냈다.
일부 언론보도에 따르면 방송중단과 관련, MBN 측은 “향후 일정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매끄럽지 못한 부분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MBN 일부 기자들은 갑작스런 생중계 중단에 대해 “청와대 외압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그것보다는 시청률이 더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뉴스는 시청률이 안 나오기 때문에 낮시간에는 뉴스 대신 예능 재방으로 바꾸도록 내부방침을 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입장에 대해 타 방송사 기자들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KBS 한 기자는 “생중계 시도조차 하지 않은 KBS 입장에서 이런 얘기하는 게 부끄럽지만 시청률 때문이라는 주장은 솔직히 이해가 안 가는 얘기”라면서 “권 전 과장 기자회견을 사실상 MBN만 시도하려 했는데 만약 생중계를 했으면 관심이 집중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기자는 “예능 재방을 하도록 내부방침을 정했다면 아예 처음부터 예능 재방을 편성했으면 되는데 당시 방송을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기자회견을 시작하려는 찰나 갑자기 광고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면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외압 의혹 제기한 당사자 입장도 보도하지 않는 언론 … ‘외압론’이 불거지는 이유
MBN의 ‘생중계 중단’ 못지않게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은 KBS MBC의 ‘침묵’이다. KBS MBC는 김용판 전 청장과 관련한 1심 법원의 무죄판결을 <뉴스9>와 <뉴스데스크>에서 보도했다. 다른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공정성과 형평성 차원’에서 권 전 과장의 기자회견을 다뤘어야 했다는 얘기다.
김 전 청장의 외압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가 권은희 당시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기 때문이다. 사건의 당사자가 법원 1심 판결에 대해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했는데 KBS MBC 메인뉴스에는 리포트가 아예 없다. 불공정·편파보도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중립성과 기계적 형평성’ 등을 강조한 쪽이 이들 방송사 아니었던가.
하지만 SBS와 JTBC 등을 제외하곤 권은희 전 과장의 기자회견은 전파를 타지 못했다. SBS는 7일 <8뉴스> ‘통화기록 없는 건 내선전화였기 때문’에서 “재판부는 서울청 수사관계자들과 통화기록이 없었다고 했지만, 외압은 휴대전화가 아니라 내부 유선전화를 통해 이뤄졌다고 권 과장은 반박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대선을 사흘 앞둔 늦은 밤 경찰이 서둘러 수사결과를 발표한 부분에 대해 재판부는 아쉽다고만 했는데, 명확하게 따져야 할 대목이라고 비판했다”고 전했다. JTBC 권은희 전 과장의 기자회견과 법원 판결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내용을 <뉴스9>에서 보도했다.
사실 KBS MBC 보도의 ‘이상한 조짐’은 이미 지난 6일 메인뉴스 보도에서부터 감지됐다. “경찰이 중간수사 결과 발표 당시 수사가 확대될 단서를 확보하고도 대선 개입 혐의가 없다고 단정적인 보도자료를 낸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는 1심 법원의 판단을 두고 논란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당일(6일) SBS와 JTBC 등은 1심 법원의 재판결과를 보도하면서 이 부분을 언급했지만 KBS MBC는 ‘법원은 죄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취지의 보도를 내보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을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권은희 전 수사과장의 기자회견 내용 또한 상당 부분 이런 쪽에 초점이 맞춰졌다. 오늘자(8일) 한겨레가 사설에서 언급하기도 했지만 “수사 과정에서 축소·은폐가 있었는지를 따진 뒤 그에 대한 김 전 청장의 책임 유무를 따져야 하는데 판결에는 ‘그 전제에 대한 답변이 누락’”됐다. 언론이라면 이런 부분에 대한 지적이 뒤따라야 하는데 뒤따르기는커녕 오히려 김용판 전 청장의 무죄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보도가 뒤따른다.
재판부, 허위의 수사결과에 대해선 ‘아쉽다’ … 언론의 문제의식은 대체 어디로 갔나
‘해직언론인 복직’ 법원 판결에 대해 리포트 내보내고 광고까지 한 MBC의 ‘편파성’
“권 과장은 재판부가 경찰의 중간수사결과 발표에 ‘아쉬움이 있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비판했다. ‘아쉽다는 말 정도로 (의혹이) 명확하게 해소되긴 어렵다. 중간수사결과 발표의 시기와 내용이 적법했는지, 적절했는지를 보다 명확히 알려야 한다.’ 사건에 의문이 든다면 법률적 논리로 해소했어야 함에도 비(非)법률적 표현으로 넘어가려 한 점을 꼬집은 것이다. 엘리트 경찰관이자 사법시험 출신 법조인인 권 과장의 지적에 재판부가 어떠한 답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오늘자(8일) 경향신문 사설 <‘공익제보자 권은희’의 항변> 가운데 일부다. 사실 이런 지적은 1심 재판 결과가 나온 후 논란이 불거졌을 때 언론이 분석 기사를 통해 짚었어야 할 대목이다. 자체적인 분석기사가 ‘곤란’했다면 권은희 전 과장 기자회견을 통해 우회적으로라도 1심 법원판결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게 온당하다.
하지만 KBS MBC는 논란이 되고 있는 법원 판결의 문제점은 언급조차 하지 않더니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인 권 전 과장의 기자회견도 ‘무시’한다.
지난 2012년 ‘공정방송 회복과 낙하산 사장 반대’를 명분으로 170일 간 벌인 파업으로 회사측으로부터 해고를 당한 MBC 노조원 전원이 MBC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 확인소송에서 승소했을 때 <뉴스데스크>와 신문 광고를 통해 법원 판결을 적극 반박했던 MBC의 ‘전투적 태세’는 어디로 간 걸까. 전파 사유화 논란까지 빚어가며 법원 판결을 비판했던 MBC였지만 그런 기세는 온데 간 데 없다.
언론은 “같은 재판부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까지 맡고 있어 과연 제대로 판결할지 걱정스럽다고 우려하고 있지만, 사실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는 언론이 더 큰 문제인지도 모른다.
아쉬움이 든다"니... 사법부가 할 말 아니다28 오마이뉴스
[주장] 역대급 직무유기 김용판 1심 판결... 경찰 심야 브리핑이 핵심
잠시 지난 대선의 '결정적 순간'인 2012년 12월 16일 밤 11시를 복기해 보자. 지난 대선은 투표를 불과 3일 앞둔 이날 밤에 강행된 경찰의 '서면 브리핑'에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서면 브리핑이 있기 불과 한 시간 전에 끝난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는 '국정원 직원' 사건으로 극한 대립으로 치달았다. TV토론을 시청한 모든 국민이라면 문 후보 주장대로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한 것인지, 박 후보 주장처럼 민주당이 젊은 여성을 '불법감금'한 것인지 몹시 궁금했을 것이다.
경찰이 밤 11시에 진행한 서면 브리핑의 효과는 다음 날 조간신문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조중동 1면 머리기사 제목은 '문재인 후보 비방글 발견 못해' 등이었다. 표심은 출렁거렸다. 경찰의 심야 브리핑은 전날 박근혜 후보의 날이 선 '공격'을 100% 정당화시켜줬다. 18일 새누리당의 선거운동은 문 후보의 '거짓 주장'에 집중됐다.
김용판 1심 '무죄'... 본질을 외면했다
심판관에 해당하는 언론, 그 중에서도 <조선일보>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18일 자 신문을 보면 1면 머리기사와 사설을 포함해 여러 건의 기사를 통해 '국정원 직원' 사건을 부각시켰다. 18일 자 사설 제목이 '야, 국정원 댓글 증거 없으면 깨끗이 사과하라'였다. 밤 11시께 진행된 경찰 브리핑은 보수진영에 '절대반지'를 부여했다.
경찰의 무모한 도전은 박근혜 당선의 '절대공신'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7월 29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가 공개한 지난 대선 여론추이를 보면 이날 경찰 브리핑의 영향을 계량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12월 10일 5% 박근혜 우세에서 15일에는 0.3%의 초박빙으로, 그리고 드디어 16일에는 문재인 후보가 0.5% 역전하는 '골든크로스' 현상이 발생했다. 그리고 17일 다시 박 후보가 역전했다.
선거 막판 문 후보의 상승세를 고려할 때 갑작스런 재반전에는 계기가 필요했다. <리얼미터> 이 대표는 "김용판 청장의 긴급 기자회견은 여론조사 결과에 크게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는 지표가 나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결과적으로 16일 밤 11시 경찰의 서면 브리핑과 다음 날 경찰의 발표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그 때문에 김 전 청장은 기소됐다.
김 전 청장은 '선거법∙경찰공무원법 위반, 직권 남용'으로 기소됐다. 그리고 지난 6일 재판부는 세 가지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언했다. 재판부는 당시 '국정원 직원' 사건의 수사책임자였던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공박함으로써 검찰의 공소 사실을 무력화시켰다
이 판결은 '역대급'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날 밤 11시 서면 브리핑의 핵심 내용은 '허위'로 판명됐다. 국정원 직원은 선거에 개입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금 재판을 받고 있다. 경찰은, 김용판은 얼마 후면 허위로 발표될 사안을 선거를 3일 앞두고 전격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경찰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김용판 재판의 핵심은 '권은희 진술의 진실찾기'가 아니라 김용판은 왜 정확하지 않은 사실을 기초로 밤 11시에 브리핑을 강행했는가에 있다. 김 전 청장은 선거법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됐기 때문이다. 재판부 판결문에는 허위 사실을, 그 늦은 시간에 공개한 '내용과 시기'가 규명되어야 한다. 이번 재판의 본질이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도 이를 고심했다. 재판부는 "(그날 밤 경찰의) 발표 내용과 시기에 아쉬움이 든다. 분석의 범위와 관련된 쟁점을 분명히 부각시켜 이를 기초로 수사가 확대될 여지가 있음을 밝히는 등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피할 수 있었다"고 기술했다.
재판부의 이와 같은 표현은 이 재판의 쟁점을 생각한다면 납득하기 어렵다. 밝혀야 할 사안은 밝히지 않은 채 소회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이는 직무유기 아닌가? 재판부의 아쉬움은 무죄인가, 유죄인가? 그 아쉬움은 재판관 개인의 아쉬움인가? '허위' 발표 이후 언론에 도배된 주장에 이끌려 표심이 흔들린 유권자의 아쉬움을 대변한 것인가?
그리고 '불필요한 오해'는 도대체 무슨 말인가. 당시 경찰은 허위의 사실을 발표해서 선거정국을 뒤흔들어 놓았다. 재판관은 딱딱한 사실의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 '불필요한 오해'는 사실을 논하는 단어가 아니다. 국민들은 이제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한 내용을 알고 있다. '오해'로 언급하고 넘어갈 단계는 지났다.
'국민 정서' 운운은 국민에 대한 모독
김용판 1심 판결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국민정서상 김용판 무죄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그러나 이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재판부가 진실을 명확히 규명했음에도 도저히 수용하기 어려운 경우에나 나올 수 있는 단어이다. 과연 1심 재판부는 진실을 규명했는가?
"아쉬움이 든다"로 피해갔지만 그 의미는 명확하다.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조차 12월 16일 밤 11시, 이튿날인 17일 경찰의 발표 내용과 시점이 잘못 됐음을 외면하지 못한 것이다. 대선판을 뒤흔들어 당선에 영향을 준 점을 고려한다면 준엄하게 꾸짖어야 마땅함에도 개인적 소회로 대체했다.
재판부는 무죄판결의 파장을 우려해 "오로지 증거만을 근거로 법관의 양심에 따라 판결했다"고 밝혔다. 무죄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납득되지 않은 한 가지. 발표 내용과 시점은 잘못됐다. 그런데 김용판은 무죄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에게 그 잘못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경찰이 주도해 밤 11시에 이뤄진 선거개입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정의의 여신 '디케'의 조각상은 세계 각국에 설치돼 있는데 한 손에는 천칭 저울, 다른 한 손에는 검을 들고 서 있다. 특히 대부분은 눈을 가리고 서 있다. 천칭 저울은 치우치지 않는 판결을, 검은 추상 같은 법집행을 상징한다. 눈을 가린 것에는 여러 해석이 있는데 불필요한 것을 보지 않고 바른 판결에 집중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우리나라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만 유독 다르다. 천칭 거울은 들고 있으나, 다른 한 손에는 검 대신 법전이 들려 있다. 추상 같은 법 집행이라는 측면에서 법전을 든 의미가 동일할 것이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우리나라의 '정의의 여신상'은 눈을 뜨고 있다.
'정의의 여신상'에게 묻고 싶다. 김용판 1심 판결은 천칭 저울과 법전의 의미에 충실했는가. 저울은 무겁고, 가볍고를 정확히 잰다. 법전에는 죄의 유무가 명확히 기재돼 있다. '아쉬움'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쉬움'은 사법부에서 사용할 단어가 아니다.
한겨레사설] 거짓과 진실이 뒤바뀐 김용판 무죄 판결 2.6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 결과를 축소·은폐해 선거법과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법원이 6일 무죄를 선고했다. 선거개입 의도가 있었다는 권은희 당시 서울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서울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의 주장은 믿지 않고, 자체 판단으로 “지지 댓글 없다”는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는 다른 경찰들과 김 전 청장 쪽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다.
판결 내용을 살펴보면, ‘합리적 의심’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의 엄밀한 증거를 요구하는 형사법의 대원칙을 내세우고 있으나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 적잖다.
우선,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가 40개의 의심스런 아이디와 닉네임을 사용한 사실을 서울경찰청 디지털증거분석팀이 확인했고, 김 전 청장이 그에 대해 보고받고도 허위의 보도자료 배포를 지시한 사실까지 재판부가 인정해 놓고 “선거에 개입할 의도가 없었다”고 결론지은 것은 상식에 반한다. 김 전 청장이 수사를 맡은 서울수서경찰서에 분석 상황을 알려주지 말라고 지시하는 등 ‘의도’를 의심할 만한 여러 증거들을 고려하면, 재판부가 “아쉬움이 남는다”면서도 굳이 무죄를 선고한 것은 논리 전개상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재판부가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의 노트북 압수수색 영장 보류 과정 등 여러 쟁점들을 거론하면서, 권 과장보다 다른 경찰관들의 주장이 맞다고 판단한 것도 문제다. 나중에 서울경찰청 디지털증거분석팀의 폐회로티브이를 통해 확인됐듯이 이들은 국정원 직원 김씨가 대선 관련 게시글을 ‘추천’하고, 이틀간 오피스텔에서 나오지 않은 채 댓글 흔적을 삭제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경찰은 이런 사실은 덮어둔 채 “비방·지지 게시글이나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해 결국 국민을 속였는데도, 이런 경찰의 말이 맞다고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미 국회 청문회를 통해 권 과장을 제외한 나머지 경찰들이 말을 맞춘 것 같다는 의혹이 제기돼온 것과는 동떨어진 판단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가 지난해 11월 유권자 2000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한 사람 중 9.7%가 ‘당시 경찰이 사실대로 밝혔다면 문재인 후보를 찍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법원의 판단대로라면 허위사실 발표로 대선 당락에 영향을 미치고, 국민을 우롱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것인가.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이범균)는 증거주의를 내세워 거짓과 진실을 뒤바꾼 ‘기교 사법’의 전형이란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박근혜 정권은 이 사건 수사에서 재판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외압과 방해를 가했다. ‘채동욱·윤석열 찍어내기’에 이어 수사검사들까지 지방으로 보내는 등 공소유지까지 훼방놓았다. 권 과장은 승진에서 탈락시켰다. 박 대통령이 ‘젊은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란 태도를 고수한 채 “재판 결과에 따라 조처하겠다”며 법원에 간접적 압박을 가하더니 결국 사법부까지 정권에 굴복한 모양새가 돼버렸다. 상소심까지 그런다면 특검의 재수사를 통해서라도 진실을 되찾는 길밖에 없다.
檢 '김용판 무죄' 굴욕…'보이지 않는 손'이 이겼다
권력의 '의도' 먹혔나?…원세훈 공소유지도 김용판 재탕 우려26 프레시안
檢 '김용판 무죄' 굴욕…'보이지 않는 손'이 이겼다
증거 부족으로 인한 1심 무죄. 징역 4년을 구형했던 검찰의 완패다. 검찰의 실패는 검찰 수뇌부가 수사팀을 누더기로 만들 때부터 예견됐다. 수사를 담당한 핵심 검사들을 줄줄이 찍어내고 낙마시킨 배경에 권력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는 의심도 퍼져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범균)는 6일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며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김 전 청장이 실체를 은폐하고 국정원의 의혹을 해소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거나 허위의 언론 발표를 지시한다는 의사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했다.
또한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유력한 간접증거 중 하나인 권은희의 진술은 객관적 사실과 명백히 어긋날 뿐 아니라 다른 증인들의 공통된 진술과도 배치돼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스스로 수사팀 해체하고 '굴욕' 받아들인 검찰…만회할 수나 있나?
재판부의 이같은 판결은 김용판 전 청장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수사 및 기소 단계에서 끊임없이 작용한 외압 의혹의 예정된 결론이다.
김 전 총장을 기소한 것은 윤석열 검사가 이끌던 국정원 사건 수사팀이었다. 그러나 윤 검사는 지난해 10월 18일 검찰의 국정원 수사 축소 외압 의혹을 제기했었고, 이때문에 수사팀에서 배제됐다. 지금은 정직 3개월의 징계 처분을 받은 상황이다. 수사팀 부팀장을 맡았던 박형철 검사는 국정원 사건의 공소 유지를 담당하던 중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 지난달 28일 평검사 인사를 끝으로 초기 수사팀은 이제 단 한명만 남게 됐다. 국정원 수사팀이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은 것이다.
'채동욱 체제' 검찰은 지난해 6월 김 전 청장 등을 기소할 당시 '구속 의견'을 냈었다. 유죄를 이끌어낼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황교안 법무부 장관 등 정부 측이 나서서 노골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이 신문에 소상히 보도될 정도였다. 법무부가 여론의 부담을 무릅쓴 것이다. 결국 법무부는 '불구속 기소' 의견을 관철시켰다. 국정원 수사, 그 첫번째 외압 의혹이었다.
3개월 후인 9월 초, '채동욱 혼외자' 의혹이 난데없이 제기됐다. 법무부는 감찰관 부재 상황인데도 채 전 총장을 감찰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채 전 총장은 옷을 벗고 나갔다. 문제의 혼외자 의심 학생의 개인 기록을 불법 열람한 '누군가'가 채 전 총장을 찍어내기 위해 정보를 흘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현재 이 사안은 검찰 수사 중이지만 난항을 겪고 있다. 채 전 총장 낙마는 국정원 사건 두 번째 외압 의혹으로 받아들여졌다.
10월에는 곪았던 부분이 터졌다. 윤석열 검사와 조영곤 전 서울지검장이 정면 충돌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윤 검사는 "검사장님 모시고 수사가 어렵겠구나" 생각했다고 밝혔다. 결국 윤 검사도 수사팀에서 배제됐다. 부팀장에 이어 평검사들까지 해체됐다. 사회적으로 파급력이 큰 사건의 공소 유지 책임자와 일선 검사들이 공판이 이어지는 중간에 줄줄이 배제된 셈이다. "이렇게 되면 공소유지가 제대로 될리가 없다"는 우려들이 나왔다.
'증거 부족'은 검찰 입장에서 치욕적인 일이다. 무고한 사람에게 징역 4년을 구형한 셈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조직이라면 수사팀을 다시 복귀시켜 항소심을 진행해야 맞다. 그러나 현재 그럴 가능성은 없다는 게 중론이다.
김 전 청장은 2012년 대선을 나흘 앞둔 12월 15일 서울청 사이버범죄수사대로부터 국정원의 대선개입 정황이 다수 포착됐다는 보고를 받은 후에도 수사를 담당한 수서경찰서에 이를 알리지 말라는 지시를 내린 혐의를 받고 있다. 하루 뒤인 12월 16일 밤, 박근혜·문재인 대선후보의 TV토론회 직후 "증거분석 결과 문재인·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비방 댓글이 발견되지 않음"이라는 내용의 허위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도록 지시했다. 이를 통해 결과적으로 특정 후보의 당선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었다.
이번 '김용판 무죄' 판결은 권력의 수사 개입 의혹은 물론이고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특검 도입의 필요성을 다시 환기시킬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청장과 함께 수사를 받았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도 국민적 눈높이와 다른 재판 결과가 나올 경우 대선개입 사건을 둘러싼 논란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美동해병기법안 역사적 통과 81-15 압도적 표차.. 뉴시스 27
미국에서 동해병기법안이 사상 처음 통과됐다. 미버지니아 주하원은 6일 전체회의에서 동해병기법안(HB 11)을 81-15의 압도적 지지로 통과시켰다.
이로써 법안은 지난달 상원을 통과한 유사한 법안과 조율과정을 거친후 최종안이 주지사 서명을 거치면 발효된다. 이와 관련, 테리 맥컬리프 주지사는 이미 최종안이 나오면 즉시 서명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어 올 가을학기부터는 버지니아 모든 공립학교에서 동해가 병기된 교과서가 배포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의사당엔 한인들이 본회의장은 물론, 복도와 건물 밖에까지 모이는 등 동해병기법안 통과를 위한 뜨거운 열기를 보여주었다. 이날 전체회의에 앞서 하원에서는 ‘동해 법안’에 대한 초당적인 지지가 확산돼 통과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렸다.
공화당의 팀 휴고 의원이 발의한 동해 병기 법안(HB11)의 공동 상정자가 윌리엄 하웰 하원의장을 비롯해 커클랜드 콕스 등 지도부 서열 1~3위가 포함됐고 민주당 대표인 마크 시클스 의원까지 가세하는 등 전체 의원 100명중 19명이 공동상정자로 나서는 일방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러나 ‘미주 한인의 목소리(VOKA 회장 피터김)’ 등 한인단체들은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전날 주요 단체장들의 모임에서 “동해법안 통과가 유력한 상황이지만 일본 정부나 로비스트를 자극하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차분히 대처해 나가자”고 뜻을 모으는 등 신중한 모습이었다.
하원 동해 병기 법안은 지난달 30일 1차 관문인 교육위 소위원회에서 5-4로 극적인 통과 후 3일 상임위원회에서 18-3의 큰 표차로 가결된 바 있다.
이번 법안통과는 일본이 정부차원의 총력대응을 하는 등 강력한 반대로비를 극복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쾌거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버지니아 한인들을 중심으로 미주한인사회가 지난 수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이뤄낸 결실이기도 하다.
미주한인의 목소리 등 한인단체들은 2세, 3세 자녀들이 학교에서 ‘동해’가 ‘일본해’로 표시된 교과서로 공부하는 현실에 울분을 토하고 잃어버린 우리의 바다 이름을 찾기 위해선 동해병기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끈질긴 풀뿌리 로비를 전개했다.
지난 2012년 처음 상정된 동해병기법안은 상원 2차 관문에서 아쉬운 고배를 마셨으나 이후 동해병기의 타당성에 공감하는 의원들이 늘어나면서 올해 다시 법안을 상정하게 됐다. 한인사회는 혹시라도 생길 변수를 막기 위해 주지사의 최종 서명을 받아낼 수 있도록 지속적인 이메일과 전화를 당부하고 있다.
테리 맥컬리프 주지사 사무실 1-804-786-2211, webmaster@governor.virginia.gov, 1111 East Broad Street, Richmond, VA 23219.
정치 철새는 유죄지만 생태계 철새는 무죄다 26 프레시안
[안종주의 '건강 사회'] 철새 먹이 주지 않기, 현명한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던 철새들의 군무가 대한민국에서는 더는 아름다운 장관이 아니다. 닭․오리 농가는 물론이고 국민들 가슴 속에는 철새가 그 이름을 떠올리기조차 싫은 조류 인플루엔자(AI)라는 감염병(전염병)을 퍼트린 흉악범이 됐다. 얼마 전만 해도 잘 보호하고 함께 지내야 할 귀한 손님으로 대접받던 진객(珍客)이 어느 날 갑자기 함께하기 싫은 혐오객이 됐다. 해설가 또는 기자의 감탄이 섞인 말과 함께 석양에 수천수만 마리의 철새 떼가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장면은 최근 텔레비전 화면에서 사라졌다. 대한민국에서는 정치 철새뿐만 아니라 생태계 야생 철새마저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어제(1월 29일) 일부 우려 속에서 철새 먹이 주기 활동을 잘 마쳤습니다. 520킬로그램 햇볍씨를 회원들과 함께 군산시 회현면 금광리 만경강 하구에 뿌려주고 왔습니다. 격려를 많이 받았고 배고픈 철새가 축산 농가를 위협하고 있으며 철새 서식지를 보호하는 것이 AI 확산을 막는 것이라는 저희들 입장을 많이 옹호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먹이 주기 활동을 하던 어제 낮에도 폭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김제시에서의 해프닝으로만 끝난 게 아닌지 군산시에서도 우리 먹이 주기에 대항하기 위해 쏜 건지 정말 비상식적이고 비과학적인 일들이 21세기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씁쓸합니다."
'페친'인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설 연휴 내내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았다. 정부는 지금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는 조류 인플루엔자를 닭과 오리 농가에 퍼트린 진원지가 철새들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이들 철새들에 먹이 주는 것을 금지하고 철새와 사람과의 접촉을 차단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그는 정부의 방역 전략이 잘못됐다고 생각했고 환경 단체가 철새 먹이 주기 활동에 나선 것이었다.
이 처장을 비롯해 환경 단체 회원들은 철새가 조류 인플루엔자를 퍼트린 주범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설혹 철새가 이번에 조류 인플루엔자를 가금류에 퍼트렸다 하더라도, 철새들을 굶겨 죽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새에게 먹이를 풍부하게 줘 철새 도래지 밖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과학적인 사고이며 효과적인 방역 전략이라고 보았다. 먹이 주기는 바로 조류인플루엔자 확산을 막기 위해 나온 활동, 즉 사람 간 전파가 가능한 감염병이 유행할 때 이동을 제한하는 쿼런틴을 새들에 적용해 효과를 거두자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무슨 큰 사건만 터지면 북한 탓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은행 전산망 마비나 전국 곳곳에서 다발적인 대규모 정전 사태가 벌어지자 극우 인사나 일부 보수 정치인들이 북한 짓으로 몰아세웠다. 북한이 실제로 그런 짓을 했는지 그 진상을 알기도 어렵고 북한이 항의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항의해도 깔아뭉개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사건 발생으로 분노한 국민 감정의 화살을 그곳으로 돌릴 수 있다.
어리석은 사회는 일이 터지면 희생양부터 찾아
또 얼마 전에는 '어리석은 사람은 일이 터지면 책임을 따진다'는 말로 국민을 분노케 해 장관 퇴진까지 거론됐다. 카드사 개인 정보 대량 유출 사건으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을 때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 말이다. 개인 정보 유출은 카드 가입자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다. 가입자의 잘못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런데도 현 부총리는 이 사건 발생에 자신의 책임은 없고 국민의 잘못이 매우 큰 것처럼 말했다. 장관 자격은커녕 대한민국의 국민이 될 자격조차 있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큰 사건이 터지면 희생양을 찾거나 만들어내 그곳으로 비난이나 관심이 집중되도록 하는 수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었다. 질병, 특히 감염병의 역사에서는 종종 있었던 일이다. 감염병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거나 공포에 떨게 하는 질병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했다. 멀리는 한센병이나 흑사병에서부터 가까이는 에이즈에 이르기까지, 감염병에 걸려 고통받던 사람들은 '천벌' '천형' '게이병' 등의 낙인이 찍혀 공동체 밖으로 내몰리거나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
15세기 말과 16세기 초에 유럽 등에서 대유행했던 매독은, 고통스럽고 혐오스러운 증상 때문에 죄악과 오염의 징표로 여겼던 나병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리하여 각 국가는, 매독이 다른 나라에서 왔다고 주장했다. 프랑스에서는 이탈리아 병으로, 이탈리아와 독일, 영국에서는 프랑스 병으로 불렀다. 또 네덜란드에서는 에스파냐 병이었고 러시아에서는 폴란드 병, 투르크에서는 기독교 병, 페르시아에서는 터키 병, 일본에서는 포르투갈 병 또는 중국 병으로 불렀다. 매독은 역사상 남에게 미루고 싶은 가장 대표적인 질병이 되었다.
감염병에 대한 이런 두려운 공포심은 우리나라 영화인 <감기>나 외국 영화인 <컨테이전> 등 많은 영화를 통해 증폭되고 확산한다. 또 몇 년 전 구제역 대유행으로 소와 돼지를 산채로 집단 매몰하는 광경을 방송을 통해 목격한 사람들은, 이번에는 조류 인플루엔자 유행으로 오리, 닭 등이 역시 산 채로 매몰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그러면서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의 DNA가 다시 뇌세포에서 살아난다. 동물에 대해 매몰차게 대하고 있는 인간이 이제는 철새를 희생양으로 삼아 먹이조차 주지 못하게 하는, 비과학적이고도 야만적인 생각을 행동에 옮긴다.
비록 상상이기는 하지만 <감기>에서는 공기로 전파되는 엄청난 치사율을 보이는 '괴물 바이러스'가 등장한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확진 판정이 난 사람들을 산 채로 동물처럼 살처분하는 극한 상황까지 보여준다. 물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을 통해서도 질병이나 감염병에 걸린 사람들을 국가나 공동체가 집단 학살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감염병이나 역질에 걸린 사람들을 한군데로 몰아넣어 살게 한 일은 역사에서 많이 있었다.
영화 <벤허>의 주인공은, 어머니와 누이가 한센병(나병 또는 문둥병)에 걸려 로마의 외곽에서 나환자가 집단으로 사는 곳으로 간다. 영화는 그곳에서 환자들끼리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그렸다. 그러나 이들에 대해서도 공동체 구성원들이 내팽개친 것은 아니고 적어도 먹고 마실 먹을거리는 제공해줬다. 나병 환자에게는 방울을 달게 해 나병 환자임을 타인에게 알리도록 했다고 한다. 이런 낙인과 차별은 물론 오늘날에도 있다.
중세 대흑사병, 환자 내팽개치고 가족도 달아나
중세 1374~1351년 거의 유럽 전역을 휩쓴 대흑사병 시기에는, 당시로써는 괴이하기 짝이 없는 이 감염병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했다. 환자가 발생한 집에는 아무도 가지 않고 가족조차 달아나버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또 지금은 선진국에서는 거의 발생하지 않고 세계적으로도 지진 또는 쓰나미 대재앙 뒤나 간혹 후진국에서 발생하는 감염병이 된 콜레라의 경우, 숨진 직후 극도의 탈수 상태에 있던 환자가 근육 경련을 일으킴으로써 주검의 수축이나 떨림 현상이 생기는 수가 있다. 이 때문에 과거 콜레라 대유행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을 때 민간에서는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을 산 채로 파묻는다는 풍문이 떠돌기도 했다.
감염병에 대한 공포는 감염병을 전파시키는 매개체-그것이 쥐와 같은 설치류이든, 이, 벼룩이나 빈대와 같은 절지동물이든, 모기나 파리와 같은 곤충이든-에 대한 극도의 분노로 표출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들을 잡아 죽이기 위한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고 이들을 박멸하기 위한 살충제 개발·살포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감염병 공포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광경 가운데 하나가 감염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환자들을 격리하고 먹을 것조차 제대로 주지 않자 환자들이 탈출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탈출에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들을 버린 공동체를 공격한다. 실제로 역사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1831년 여름 헝가리에서는 많은 농민들이 콜레라로 죽어갔다. 자신들이 성 안의 의사와 장교, 귀족들이 마실 물에 독을 타 죽었다고 여긴 농민들은 성을 포위하고 공격해 이들을 모두 죽였다.
2014년 2월 대한민국에서는 야생 조류를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과 확산의 주범으로 보고 이들을 사람이나 닭․오리 농장과 격리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개체 간 전파가 손쉽게 이루어지는 감염병의 경우 감염원 또는 감염 전파자를 아직 감염되지 개체와 접촉하지 않도록 한다. 이는 중세 흑사병 대유행 시기부터 터득해온 인간의 지혜다. 검역 또는 격리를 뜻하는 쿼런틴(quarantine)은 전염병에 걸린 사람이 전염력이 없어질 때까지 건강한 사람들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떼어놓는 것을 말한다. 쿼런틴은 40을 뜻하는 17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 말 quaranta에서 유래했다. 14세기 크림 반도의 항구 도시 카파에서 흑사병이 유럽 곳곳으로 퍼져나가자 항구에서는 혹 배 안의 감염자가 육지에 내려 감염병을 퍼트릴까 염려해 40일간 선원들을 배에서 내리지 못하도록 했다. 이것이 쿼런틴의 효시라 할 수 있다.
철새 굶기면 오히려 AI 확산
사람이나 사람이 키우는 가축은 격리 또는 이동 제한이 가능하다. 그러나 날개가 있는 야생 조류는 어떨까? 가능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물론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사람이나 가금류 축산 농가와 접촉하지 않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물론 있다. 늪이나 호수 등의 철새도래지와 같은 철새 집단 서식지에 먹이를 충분히 주어 이들이 서식지 밖으로 멀리 날아다니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조류 인플루엔자에 걸린 철새가 축산 농가 인근으로까지 날아가게 되면 이들이 싸는 분변이나 호흡 분비물이 공기 중으로 날려 오리나 닭 등에게로 바이러스가 옮겨갈 수 있다. 그러면 치명적인 조류 인플루엔자를 유발할 수 있다.
먹이가 서식지에서 부족하다면 이들은 생존을 위해 이곳저곳으로, 먹을 것이 풍부한 농가나 축산 농가 인근으로까지 생활 반경을 넓혀갈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조류 인플루엔자는 더욱 빨리 전국으로 확산해나갈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정현 사무처장을 비롯한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의 철새 먹이 주기는 철새도 살리고 조류 인플루엔자 확산을 막는, 좋은 전략이요 행동이다. 그리고 이를 방해하거나 철새 먹이 주기를 금지하는 관청의 행태는 참 나쁜 전략이요 행동이다.
철새도 조류 인플루엔자에 걸려 숨지는 희생자이다. 철새가 밉다고 먹이조차 주지 않는 비정한 인간의 '하나만 보고 둘은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결코 조류 인플루엔자와 같은 감염병의 유행과 확산을 막을 수 없다. 건강한 사고와 행동을 하는 사회에서만 감염병의 유행과 확산을 막을 수 있다. 안종주 건강 디자이너
KBS 기자들 “마지막 자존심을 쓰레기통에 처박은 행위”25한겨레
‘친박 방송’ 메인 앵커 민경욱 석달만에 ‘대통령 입’으로‘6개월내 정치금지’강령 위반…기자들 “즉각 철회” 성명
박근혜 대통령이 5일 공석이던 청와대 대변인에 불과 3개월여 전까지 <한국방송>(KBS)의 간판 뉴스 프로그램 <뉴스9>을 진행한 민경욱(51) 한국방송 문화부장을 임명했다. ‘친박 방송’이라는 오명을 들어온 한국방송, 기자의 직업 윤리에 걸맞지 않은 선택을 한 민 대변인, 청와대가 모두 입길에 올랐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신임 민 대변인은 해외 특파원을 포함해 다년간 방송기자와 뉴스 진행자로서 활동해온 분으로, 풍부한 언론 경험과 경륜을 바탕으로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철학을 국민께 잘 전달할 적임자”라며 발탁 배경을 설명했다. 민 대변인은 인선 발표 직후 “제가 기자 생활을 오래했으니 기자들과 호흡을 같이하면서 국민과 소통을 증진하는 데 일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민 대변인은 1991년 한국방송에 입사해 워싱턴 특파원과 <생방송 심야토론> 진행자, 뉴스 앵커 등 주요 직책을 맡으며 얼굴을 알려왔다.
공영방송 메인 뉴스 프로그램 앵커를 맡았던 이가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된 것은 이례적이다. <문화방송>(MBC) <뉴스데스크> 앵커였던 김은혜씨가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초대 청와대 부대변인으로 간 사례가 있지만, <뉴스데스크> 진행 시점으로부터 8년여 뒤였다. 한국방송 윤리강령에는 “티브이와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의 진행자, 그리고 정치 관련 취재 및 제작 담당자는 해당 직무가 끝난 후 6개월 이내에는 정치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
민 대변인은 2011년 1월부터 2013년 10월까지 <뉴스9> 앵커였고, 대변인 임명 전날인 4일에도 문화부장으로서 <뉴스9>에 출연했다. 그가 뉴스를 진행한 시기에 한국방송은 대선이나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등과 관련해 불공정 보도 논란에 시달렸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등장하는 뉴스의 배치 빈도가 높다는 이유로 ‘땡박뉴스’라는 비판도 나왔다. 민 대변인은 또 2011년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 외교전문에서, 주한 미국대사관 쪽이 2007년 이명박 대선 후보 다큐멘터리 제작 얘기를 그한테서 듣고 “민 기자가 이명박과 그의 동료들에게 완전히 설득당했다”고 평가한 대목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한국방송 내부에서는 뉴스 신뢰도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방송의 한 기자는 “얼마 전까지 앵커였던 사람이 갑자기 청와대 대변인이 됐는데, 앞으로 시청자들이 과연 한국방송 뉴스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입사 14년차 한국방송 기자들은 이날 성명을 내어 “마지막 남은 한국방송 저널리즘의 자존심을 쓰레기통에 처박은 행위”라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변인 선임을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윤리강령 위반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한국방송은 “본인이 방송 이미지를 사적으로 활용한 것이 아니라 임명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윤리강령 위반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LH·한전 등 2017년까지 부채 40조원 더 줄여 2.2 뉴시스
LH, 한전 등 18개 공공기관이 2017년까지 부채증가율을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서 제시된 것보다 30% 이상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방만경영·부채감축대상 38개 기관은 복리후생비 규모를 2013년 보다 약 1600억원(-22.9%) 가량 줄이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2월 확정한 공공기관 정상화대책 후속조치에 따라 38개 중점관리 기관(부채감축기관 18개·방만경영관리기관 20개))이 이같은 내용의 부채감축·방만경영해소 계획을 제출했다고 2일 밝혔다.
◇18개 부채감축기관 2017년까지 39.5조원 감축
부채감축 중점관리기관으로 지목된 LH, 한국수자원공사 등 18개 공공기관은 2017년까지 부채증가규모를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서 제시된 것보다 39조5000억원 더 줄이기로 했다. 당초 계획보다 46.2% 축소한 것이다.
이들 기관은 지난해 9월 발표한 중장기재무관리계획에서 2017년까지 85조4000억원의 부채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정부의 강력한 자구노력 요청에 따라 부채비율을 286%에서 267%로 19%포인트 감축키로 했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 전체 부채비율은 당초 예상 210%에서 200% 수준까지 낮아지게 됐다.
기관별로는 18개 기관중 LH, 한전 등 15개 기관은 정부 가이드라인에 맞춰 2017년까지 부채증가율을 중장기재무관리계획보다 30%이상 감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반면 한국철도시설공단(-14.8%), 예금보험공사(-11.6%)와 한국장학재단(-1.8%)은 가이드라인보다 낮은 개선계획을 제출했다.
기재부는 "예보와 장학재단은 사업성격상 감축에 한계가 있고, 철도시설공단은 선로사용료 체계개편이 없는 한 수익증대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부채감축기관들은 부채관리계획으로 ▲사업조정 ▲자산매각 ▲경영효율화를 중점 제시했다. LH가 8조8000억원 규모의 민간자본, 한전 등이 건설원가 절감·민간자본 유치를 통한 6조2000억원을 줄이겠다고 밝혔다.또한 가스공사는 해외사업 투자 축소 등을 통해 9000억원, 수공은 단지사업 일부 유보로 8000억원, 도공은 신규사업 최소화로 4000억원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제출했다.
철도공사와 한전 등은 알토란 같은 자산을 매각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경영권에 영향이 없는 국내지분과 해외 비핵심사업 지분과 사옥, 직원사택 등 판매가능한 자산을 다 팔겠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특히 자산매각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 광물자원공사 등 에너지공기업은 재무적투자자 유치, 석유공사는 자산유동화, LH·수공·한수원 등은 사옥 매각후 재임대 방안을 전했다.
철도공사, 한전 등은 경영효율화를 통한 부채축소 방안을 제시했다. 철도공사는 간부급 직원의 임금동결과 연가활용 촉진 등 인건비와 경상경비 10% 절감을 통해 3194억원을 줄이기로 했다 도공은 임원임금 축소·경상경비 18% 절감을 통해 2408억원, 한전은 임금 인상분 반납·성과급 50% 반납 등을 통해 2144억원을 줄이기로 했다. 한수원도 유사한 방법으로 860억원, LH는 691억원을 각각 절감하겠다고 통보했다.
◇ 38개기관 복리후생비 1600억원 감축
방만경영·부채감축대상 38개 기관은 복리후생비 규모를 지난해보다 약 1600억원(-22.9%) 가량 줄일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1인당 복리후생비는 2013년에 비해 22%인 144만원가량 감소하게 된다.
특히 방만경영기관으로 지목된 20개 기관의 1인당 복리후생비는 288만원(37.1%) 감축된다.기관별로는 LH와 예탁결제원 등 24개 기관이 순직시 퇴직금 가산 지급 등을 없애겠다고 약속했다. 강원랜드와 인천공항 등 33개 기관은 과도한 경조휴가비를 감축하기로 했다.
또한 지역난방공사 등 23개 기관은 휴직기간중 보수과다지급, 수은 등 21개 기관은 퇴직예정자에게 고가의 기념품을 지급하는 행위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복리후생비 감축 이행 시기와 관련해서는 한국거래소·예탁결제원·조폐공사·무역보험공사가 올 1분기, 마사회·수출입은행·강원랜드·도공이 2분기, 한전·한수원·예보·장학재단이 3분기, 철도공사·철도시설공단·가스공사·석유공사이 4분기를 개선 시기로 제시했다.
◇3분기에 중간평가
기재부는 이번에 제출된 부채감축계획을 정상화지원단의 검토와 정상화협의회 심의후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확정할 계획이다. 정상화지원단은 자구노력 규모의 적정성, 계획의 실행가능성 여부 등을 검토하게 되며 가이드라인에 못미치는 계획을 제시한 철도시설공단, 예보, 장학재단의 경우에는 사실 확인과 함께 보완책을 강구키로 했다.
또한 방만경영개선계획에 대해서는 8대 항목을 중심으로 체크리스트를 활용해 개선 계획을 구체적으로 점검할 예정이다. 개선계획이 충실한 기관은 정상화협의회 심의후 공운위에 우선 보고해 2월중 계획을 확정 발표할 계획이다.
이행상황에 대해서는 3분기말 중간평가가 실시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각 기관이 제출해 확정된 계획대비 이행성적을 엄정 평가해 결과에 따라 기관장 문책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방만경영의 경우 노조 합의 등 개선을 조기에 완료할 경우 중간평가를 앞당겨 실시하는 등 방만경영을 조기에 해소할 계획이다.이에따라 1분기까지 개선을 완료하겠다는 7개 기관에 대해서는 6월중 중간평가가 실시되게 된다. 아울러 중점관리기관 외의 기관에 대해서도 3월말까지 정상화 계획을 제출토록 독려할 계획이다.
1970 박정희부터 선데이서울까지](24) ‘퍼스트레이디’ 육영수 2.2 경향
현재 한국 대통령은 여성이다. ‘박근혜’라는 미혼의 자연인은 젠더로서의 ‘여성성’이 다가(多價)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한국 가부장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여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다. 아직 그가 ‘여성’으로서 발하는 (젠더적) 영향력은 거의 없는 듯하다. 한복이 새 패션코드가 됐다는 소식도 없다.
박근혜 후보가 지난 대선에서 51.6%의 득표율로 당선된 데에는, 국정원과 군의 성실한 몇몇 공무원들의 ‘개인적’ 여론조작 활동 외에도 50~70대 여성들의 몰표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한다. 그들은 못된 며느리(?)를 연상시키는 이정희가 미워서, 또는 ‘엄마아빠 없이 자란 근혜가 불쌍해서’ 같은, 도저히 합리적인 정치적 선택의 근거로는 보기 어려운 이유를 대며 거의 ‘조직적으로’ 몰표를 던졌다 한다. 이정희 후보는 대선 후보 토론에서 ‘재수 없는’ 말빨과 총기(?) 넘치는 눈빛으로 박근혜 후보를 철저히 짓밟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그것은 시종 ‘버벅거린’ 박 후보의 득표에 도움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 세론이었다. 그런데 계급마저 초월한 그들의 ‘묻지마 투표’에는 남성중심사회나 젊은 세대에 대한 분노뿐 아니라 여성의 권리를 향한 열망 같은 것들도 포함돼 있었을 것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에서 소외되고 희생한 세대들이다.
‘영부인’ 활동도 정치임을 보여주다
박근혜가 가진 정치적 자원 중 가장 유력한 것은 물론 ‘박정희 신화’지만, ‘여성 대통령’으로서 박근혜가 가진 정치적 자원 중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분명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과 ‘육영수 코드’일 것이다. 박정희야 언제나 증오와 저주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누구도 육영수를 미워하거나 폄하하기 어렵다.
여기서 꽤 어려운 질문과 마주쳐야 한다. ‘영부인’의 면모나 활동 따위가 과연 해당 정권의 통치성 중 일부가 될 수 있나? 그럴 수도 있음을 보여준 것이 바로 육영수와 그녀가 남긴 것이 아닌가.
결론부터 미리 말하는 셈이 되겠는데 육영수는 박정희식 정치의 냉혹함과 촌스러움을 그 특유의 자애로움과 우아함(또는 그런 이미지)으로 어루만지거나 무마하는, 그리하여 박정희 레짐의 국민주의를 다른 차원에서 구현하는 주체 역할을 했다. 그 이미지는 특히 신사임당 같은 봉건적·역사적 인물과 겹쳤지만(또는 그렇게 조장했지만) 육영수의 역할은 단지 ‘현모양처’ 이상이었다. 아직 이에 대한 연구나 논의는 별로 없다.
육영수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진정한(?) ‘퍼스트레이디’이자 ‘국모’(이런 봉건적인 용어를 인용해야 함을 용서 바란다)로서 박정희 정치를 보족(補足)했다. 육영수의 전임자인 프란체스카와 공덕귀는 매우 제한된 역할만을 수행했을 뿐, 국모 자격은 없었다. 프란체스카는 기본적으로 파란 눈의 외국인이었고 못난 독재자 남편과 함께 비루하게 하와이로 달아나야 했다. 공덕귀 여사는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여유 자체가 없었다.
후임자들과 비교해도 퍼스트레이디로서 육영수는 독보적이다. 예컨대 전두환의 ‘안사람’이며 ‘이대 나온 여자’(중퇴)였던 이순자 여사가 어린이와 심장병 환자들을 위해 나름 애쓴 공로가 없지 않음에도 절대다수 국민들에게 받은 조롱과 미움을 생각해보라. 실제 한국행정학회가 조사한 한 자료에 따르면, 역대 퍼스트레이디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육영수 여사만 긍정적으로 나타났다 한다.
■ 비극적 죽음으로 완성된 이미지
육영수는 1950년 한국전쟁 중 부산에 피란 중일 때 전처소생이 있는 육군 중령 박정희와 결혼했다. 퍼스트레이디가 된 이후 육영수의 활동폭은 넓었다. 세상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게 만든 육영수의 면모는 대략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여성·장애인·아동 등 소외된 자들과 사회적 약자를 위해 벌인 봉사활동이다. 알려진 대로 육영수는 양지회 같은 단체를 통해 소외되고 가난한 여성이나 장애인을 도왔으며 자주 고아원·양로원을 방문·위문하고 복지정책에 관여해 어린이회관·어린이대공원을 만들고 정신지체 아동을 위한 사회사업도 벌였다. 특히 육영수의 ‘봉사 신화’가 만들어진 데는 한센병 환자를 도운 일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듯하다. 육영수는 1971년부터 본격적으로 한센병 환자 복지사업에 나섰다. 그중에서 가장 크게 대중의 이목을 끈 일은 1971년 12월18일 유명한 한센 시인 한하운이 수행하는 가운데 전남 나주의 한센인촌을 방문하고, 이어 1972년 9월3일에도 전북 익산의 한센인촌을 방문한 것이다. 또한 틈틈이 한센인촌에 약품과 종돈 등 구호물자를 ‘하사’했으며, 1973년 10월2일에는 소록도 한센병 환자 자녀들을 청와대에 불러 접견하고 다과를 베풀었다. 한센병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사회적 배제가 여전하던 시절, 직접 환자와 접촉하고 사회적 인식을 다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육영수의 공로는 크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1974년 서거 직후에 전국에 산재한 한센병 환자들이 소록도 등에 육 여사 공덕비를 세웠다. 아마 이런 사정들 때문에 육영수가 소록도 한센인촌을 방문해 일일이 환자들 손을 잡아주었다는 신화도 만들어진 모양이다. 그러나 이는 없는 사실이다. 육 여사는 소록도를 방문한 적이 없다. 2000년 5월 역대 대통령 부인 중 처음으로 소록도를 찾아간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였다. 이 사실은 국립소록도병원사에도 뚜렷이 기록돼 있다.
둘째, 육영수가 여성으로서 겪은 고난이다. 이는 특히 거칠고 독한 유신의 시대상과 박정희식 정치에서 비롯되는 바다.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기는 어렵지만(주로 육영수 자신의 인터뷰에서 비롯된 것임) 육영수는 재야와 일반사회의 여론을 들어 박 대통령에게 직언과 건의를 마다하지 않는 ‘청와대 안의 야당’이었다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은 남편 박정희의 사생활이다. 박정희는 상당히 시끄러운 여성편력의 주체였고 육영수 생전에도 말썽을 일으켰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육박전’을 벌여 박정희에게 맞았다는 둥 소문의 주인공으로서 육영수는 못된 가부장에게 수난당하는 여성이자 조강지처로서의 대중적 이미지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셋째, 그녀의 비극적인 죽음이 그녀의 이미지를 완성했다. 이런 면은 1974년 8월15일 박정희 저격사건에서 육영수가 결국 남편인 박정희 대신 희생된 격이어서 더욱 증폭됐다. 아직 젊고 우아했던 그녀가 총탄에 갑자기 서거함으로써 그 죽음은 진정 비극적이고 애처로운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목련꽃’이라는 이미지도 이렇게 부여된 것일 테다. 8월19일에 열린 국민장이야말로 유신의 역사에서 가장 기억할 만한, 아니 대한민국 현대사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한 장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수한 대중과 특히 많은 여성들이 육영수와 박정희의 가족들을 위해 눈물을 흘린 이날, 박정희식 파시즘적 통치와 반공개발주의는 다른 함의와 후과를 갖게 된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에 남긴 ‘상반된 후광’
육영수는 좋은 의미에서 오지랖이 상당히 넓었던 듯하다. 그녀의 손길은 전태일을 배출하고 1970~1980년대 가장 대표적인 민주노조운동의 산실이 된 청계피복노조에까지 뻗었다. 1973년 육영수는 청계피복 노동자들의 실태에 대해 듣고, 노동자들이 전태일의 뜻을 받들어 노동교실을 설립하자 이를 적극 챙겨 지원했다. 그러나 육영수 사후 1977년 박정희의 공권력은 바로 이 노동교실을 마구 짓밟고 노동자들을 감옥에 처넣었다. 이 에피소드는 상징적이다. 육영수의 온정주의와 박정희의 잔인무도한 노동정책과 통치성이 선명하게 대비되지 않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흥미롭게도 대통령과 퍼스트레이디를 겸하고 있는 셈이다. 부모 양쪽으로부터의 후광을 다 물려받은 그녀의 통치는 잔혹하고 공포스러웠던 아버지 쪽에 기울게 될까, 아니면 자애롭고 따뜻했던 어머니 쪽으로 흐를까? 물론 어느 쪽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불통과 복고 이외에 박근혜 대통령이 새로 보여준 긍정적인 리더십이나 ‘대통령 문화’는 없다. 이제 겨우 1년이 지났을 뿐인데 사람들은 마치 유신시절 몇 년을 보낸 것처럼 답답해하고 있다. 어머니 육영수의 민주적이고 ‘목련꽃’ 같은 이미지는 단지 외양 때문에 얻어진 것만은 아니다. 전태일과 청계피복노조의 후예라 할 만한 민주노총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금 박 대통령 앞에 있다.
난징대학살 없었다”…NHK 경영위원 막말 24한겨레
하쿠타, 도쿄지사 후보 찬조연설
“중국 장제스가 멋대로 선전” 주장
NYT “모미이 회장 방송신뢰 훼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임명한 <엔에이치케이>(NHK) 방송 경영위원(한국의 <한국방송> 이사에 해당)이 난징대학살 등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는 막말에 가까운 발언을 쏟아내 논란을 빚고 있다.
베스트셀러 소설인 <영원의 제로>의 작가로 이름난 하쿠타 나오키(사진) <엔에이치케이> 경영위원이 3일 도쿄 도시사 선거에 출마한 다모가미 도시오 전 항공막료장(한국의 공군참모총장)의 찬조 연설자로 나서 막말에 가까운 발언을 쏟아냈다고 <아사히신문>이 4일 보도했다.
그는 이날 도쿄 아키하바라 등에서 진행된 거리 유세에서 “1938년 장제스가 일본이 난징대학살을 저질렀다며 멋대로 선전을 했지만 세계에선 무시했다. 왜나면 그런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라며, 1937년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이 저지른 난징대학살을 부인했다. 그는 진주만 공격과 관련해서도 “일본이 선전포고를 안 했다고 욕을 먹고 있지만 20세기엔 전쟁 때 선전포고를 한 예가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최근 일본 교과서의 우경화와 관련해선 “전쟁 때 일부 군인들의 잔학행위가 있었다. 그러나 일본만 그런 게 아니다. 이런 것을 의무교육을 받은 아이들에게 가르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난징대학살을 두곤 희생자의 규모 등에서 중-일 간에 이견이 있긴 하지만 학살 자체를 부인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엔에이치케이> 경영위원은 방송법에 따라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하지만, 정치 활동 자체는 허용된다.
한편, 일본 <엔에이치케이>의 보수화가 미국에서도 화제로 떠올랐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3일 <엔에이치케이>의 전임 회장이 진보 성향의 편집 방향 때문에 돌연 사임한 데 이어, 새 회장은 정부 방침을 충실히 추종하겠다는 태도를 보여 방송의 신뢰성이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엔에이치케이>에선 그동안 핵발전소의 위험성, 일본의 전쟁책임 등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도해 온 마쓰모토 마사유키 회장이 재임을 포기하고 사임한 데 이어, 지난달 25일 아베 총리와 성향이 비슷한 모미이 가쓰토 회장이 취임했다. 모미이 회장은 ‘전쟁을 했던 어느 나라에서도 위안부가 있었다’ 등의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뒤 사과했다.
하지만 발언의 내용이 아닌 ‘공적인 장소에서 사견을 얘기했다’고만 사과해 또다른 논란을 낳았다.
영남권, 새누리당은 숟가락만 빠는 줄 아나? 24프레시안
[민심탐방] 野, 해볼만 하다?…'근거 없는 낙관론' 버려야 산다
6.4지방선거의 결정적 '한방'은 어느 지역이 쥐고 있을까. 지방선거 승부처가 크게 수도권과 영남 지역이 될 것이라는 전망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수도권은 언제나 '박빙'이었던데다, 중앙 정치에서 불어온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아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안개속이다. 호남은 결과에 따라 야권에 국한된 정계 개편의 의미 정도를 챙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체 정국을 좌지우지할 만한 소급력은 없는 게 사실이다.
때문에 영남 지역의 중요성은 여느 때 못지 않게 도드라진다. 특히 부산시장 선거의 경우 "야권이 이기면 전체 승패가 결정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들썩이고 있다. 대구 역시 '인물론'에서만큼은 뒤지지 않는 야권의 거물 인사가 버티고 있다.
그러나 야권이 변하면 여권도 변하게 된다. 영남의 선거 구도는 그리 간단치 않다. 부산의 경우 새누리당에서는 '젊은 인물 차출론'이 떠오르고 있다. 만약 60대 야권 후보에 40대 여권 후보가 맞붙게 된다면 부산시장 선거는 어떻게 될까. 대구도 새누리당 안에서 젊은 인물 중심의 경선 구도가 만들어졌다. 새누리당의 움직임 때문에 지역 정가가 모처럼 활력을 되찾고 있다는 평도 나온다. "영남 지역에서도 해볼만 하다"는 근거 없는 낙관론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반론이 나오고 있는 이유도 새누리당의 이런 움직임 때문이다.
부산판 '김두관 모델'? 아직은 '낙관론'
부산 지역의 한 언론인은 "부산 지역 정치권이야 서로 정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내지만, 야권 성향의 오피니언 리더 층에서는 '무소속 시민 후보' 모델이 떠오르고 있다. 이른바 부산판 '김두관 모델'을 만들어보자는 흐름"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현재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의 지지세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 부산 지역, 특히 야권에서는 흥분과 우려의 분위기가 교차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소가 지난달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오 전 장관이 새누리당 유력 후보인 서병수 의원을 오차 범위 내에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 당 관계자들을 바짝 긴장시켰다는 후문도 들린다. 야권에서 1위를 달리는 오 전 장관의 거취는 일단 최우선 관심사로 떠올랐다. 여기에 김영춘 전 의원 등 민주당의 '젊은 피'에 대한 관심도 많다. 안철수 의원이 추진하고 있는 새정치신당 측과 민주당 등 야권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오 전 장관은 오히려 딜레마에 빠져 있는 형국이다. 민주당으로 갈 경우 안철수 의원 지지 세력의 적극적 지원을 기대할수 없게 되고, 새정치신당으로 갈 경우 민주당의 적극적 지원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오 전 장관은 이때문에 '무소속 시민 후보'로 뛰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차례 피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산 지역에서 야권의 선거 전략에 관여하고 있는 오피니언 리더 층에서는 '김두관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범 야권의 지지를 받아 무소속으로 경남도지사 선거에 나서 극적인 승리를 이끌어낸 기억을 부산시장 선거에 적용해볼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 역시 '낙관론'에 근거한 분석이고, 전략이다.
이런 '낙관론' 속에서도 영남 지역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부산 지역은 1991년 3당 합당 이후 (신한국당, 한나라당 등 여당의 '전신'들을 포함해) 새누리당 '1당 지배 체제'가 굳어져 왔다. 지난 대선에서 입증됐듯, 부산 출신 야당 대선 후보 나와 전국적으로 1469만 표, 48%를 득표하는 과정에서도, 부산에서는 39.9%의 득표율을 보이는데 그쳤다.
정희준 동아대 교수는 "부산 경제는 매년 최악이라는 소리가 나오지만, 특히 50대 이상에서는 '새누리당에 매번 표를 줬는데 여태까지 뭐하노'라는 정서와 '그래도 '종북' 민주당에게는 표 주기 싫다'는 정서가 여전한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민심의 흐름이 바뀔만한 계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여권, 야권에서 각각 주목받는 인물들 역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정 교수는 "여론조사만 보면 지금 새누리당에서는 권철현 전 주일대사, 야권에서는 오거돈 전 해수부 장관이 치고 올라오고 있다. 그러나 두 인물 모두 60대 이상이다. 최근 몇 년간 '정당'과 거리가 먼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에 정당 정치에 실망한 부산 시민들로부터 오히려 주목을 받고 있는 이상한 현상의 주인공들"이라고 꼬집으며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오히려 새누리당의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만약 야권에서 오거돈 전 장관이 유력 후보로 떠오른다면, 예를 들어 새누리당에서는 최근 만만치 않은 인지도를 보였던 김세연 의원이나 젊은 이미지의 박민식 의원같은 '젊은 피'로 승부수를 던질 수도 있다. 영남 지역에서 새누리당의 대응력이나 적응력은 다른 정당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고 평했다. 이를테면 오 전 장관이 야권의 유력 후보로 부상하더라도, 새누리당은 그에 대적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얘기다.
문재인 의원이 지난 4월 총선에서 부산 사상에 출마했을 때 문 의원의 당선을 예감한 새누리당이 내놓은 후보가 20대 손수조 후보였다. 정치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무명의 손수조 후보에게 44%의 득표율을 안겨준 1등 공신은 새누리당이었다. 이는 최소한 영남 지역에서 보여줄 수 있는 새누리당의 '저력'이다. 새누리당은 그같은 '전략적 유연성'을 언제라도 구사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는 정당이다. 정 교수는 "2010년 김정길 후보의 44.6% 득표율이 야권의 한계일 수 있다. 정말 획기적인 야권의 혁신이 없으면 부산은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전망했다.
대구, 야권이 바뀐다고? 그렇다면 여당은?
대구시장 선거도 6.4지방선거 최대 이슈 중 하나다. 김범일 대구시장이 3선 도전을 포기하면서 새누리당의 전통적인 '텃밭' 대구가 흔들리고 있다는 말까지 들린다. 특히 야권은 김부겸 전 민주당 최고위원이라는 거물을 보유하게 됐다. 경기도 군포에서 4선을 바라보던 김 전 최고위원이 기득권을 팽개치고 대구에 내려갔을 때만 해도 많은 당원들이 반신반의했지만, 지금 그는 대구에서 야권의 대표 인물로 서게 됐다.
민주당 대구시당의 한 관계자는 "김 전 최고위원은 만약 선거에 출마를 하더라도 민주당 간판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며 "대구도 변화를 원하고 있다. 최근 새누리당에 대한 민심도 흔들리고 있는만큼, 이번 대구시장 선거는 해볼만 하다는 말도 나온다"고 전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12년 총선 때 '대구의 강남'이라고 불리는 수성구에서 40.4%라는 경이적인 득표율을 올렸었다.
이 관계자는 "김 전 최고위원이라는 '인물'에 대한 거부감은 과거에 비해 많이 사라졌다. 다만 관건은 야권이 대구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 그에 맞는 혁신적 모습을 어떻게 얼마나 보여줄수 있느냐 하는 부분"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야권에 달라진 모습이 있는만큼 여권도 변화하고 있다. 김태일 영남대 교수는 "대구 정치권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부분은 새누리당 안에서 대구시장 후보 경선 구도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 부분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대구 정가에서는 새누리당이 변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는 게 김 교수의 전언이다.
특히 18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의 소장 쇄신파 모임인 민본21을 이끌었던 권영진 전 의원 등 '젊은 피'들의 대구시장 경선 출마는 그 자체로 지역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김 교수는 "과거 대구시장은 적당히 윗선에서 내정해 내려보내는 게 관례였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 당원들 사이에서조차 '역동적이지 못하다', '그러니 대구가 발전을 못한다'는 말들이 있었다. 민주당에서 김부겸 전 최고위원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만큼, 새누리당도 대구에서 처음 있을 '실험'을 시도하고 있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영남 지역은 이번 지방선거의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는 '한방'을 가지고 있다. 부산, 대구시장 선거가 주목받는 이유다. 새누리당은 부산 지역에서 '엄살'을 떨고 있고, 대구 지역에서 새로운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은, 영남 민심을 제대로 보고, 그에 대비한 전략을 치밀하게 짜야 한다는 점이다. 야권이 꿈틀거리면 여권도 그에 발맞춰 '진화'한다.
민주당 대구시당 관계자는 "만약 지난 구정 연휴 때 김한길 대표가 전주 등 호남에서 신년 인사를 하지 않고, 대구에 내려와 대구 지역 방송 같은데 출연해 신년 인사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그런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세상 읽기] 위기에 대처하는 두 가지 방법 / 이원재
“결항입니다.” 아메리칸항공의 ‘공지’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같은 비행기에 타려던 240명의 다른 승객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짐을 잔뜩 실어 놓은 채 탑승구 앞에서 기다리던 중이었다. 항공사 직원들끼리는 이미 ‘결항 가능성이 80%’라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질문하면 ‘내게는 답할 권한이 없다. 공지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공지’는 저녁 여섯시이던 원래 출발시간보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나왔다.
그 ‘공지’ 뒤 탑승구 앞은 아수라장이 됐다. 기다리던 승객들은 승무원이 서 있는 입구 앞으로 한꺼번에 몰려갔다. 회사원들은 전화로 미팅 일정을 취소하며 혼란에 빠졌다. 지친 어린이들은 칭얼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직원들은 ‘공지를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했다. 출발시간보다 두 시간이 지나서야 그 무서운 ‘공지’가 나왔다. 모두 다시 짐을 찾아야 하고, 그 짐을 가지고 거꾸로 출국 취소 수속을 해야 하고, 공항 문으로 나가 버스를 타면 근처 호텔로 가게 될 것이니 거기 가서 자라는 내용이었다. 실은 인터넷을 검색하면 바로 알 수 있는 정보를 두 시간 만에 ‘공지’한 것이다.
그 뒤로도 정보는 없었다. 다음날 이른 새벽에 출발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호텔 직원들에게서 알아내야 했다. 그리고 새벽 4시에 예고되지 않은 모닝콜이 울렸다. 바로 짐을 싸서 나오라는 ‘공지’였다. 하지만 비행기는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출발했다. 설명은 없었다.
문득 몇달 전 비슷한 상황에서 경험했던 싱가포르항공의 대조적인 상황대처법이 떠올랐다. 지난해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아시아나항공의 불시착 사고가 있었을 때 나는 이번과 비슷하게 탑승구 앞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모든 항공기가 연착 또는 결항이었다. 탑승구 앞의 승객들은 직원들에게 몰려갔다.
그때 내가 타려던 싱가포르항공에서는 정보를 수시로 공개했다. 우리가 타려고 했던 항공기가 사고 때문에 공항에 내리지 못해 지연되고 있다고 알렸다. 그 항공기가 대신 인근의 다른 공항에 도착했을 때도 알려줬다. 회사의 공식 ‘공지’가 아닌 ‘현장의 판단’이 알려졌다. 두 시간쯤 지나자 기내에 있던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꺼내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8시간을 기다렸지만 불만의 목소리는 터져 나오지 않았다. 새로운 ‘현장의 판단’이 알려질 때마다 승객들은 여기저기 전화를 하며 상황에 대처했고 자리에 앉아 나누어준 샌드위치로 허기를 달랬다.
두 항공사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아메리칸항공은 승객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를 모두 제공했다. 호텔 숙박과 저녁 뷔페도 제공했다. 짧은 시간 동안 수백명의 숙박과 식사를 마련하기 위해 직원들은 동분서주했을 것이다. 회사 쪽은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최소한의 ‘공지’만 했을 것이다.
싱가포르항공이 승객들에게 추가로 제공한 것은 거의 없었다. 샌드위치를 미리 나누어줬을 뿐이다. 대신 ‘정보’를 제공했다. 잘못되면 잘못되는 대로, 불확실하면 불확실한 대로 유연하게 그 사실을 알렸다. 그럴 권한이 현장에 있었다. 아메리칸항공 직원들이 ‘공지를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주민등록번호 13자리의 '끔찍한 진실'2.3 오마이뉴스
[게릴라칼럼] 2차 피해 걱정말라? 주민등록번호 폐지가 정답이다: 강인규(foucault)
너털웃음이 난다. 1억 건 이상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단다. 겨우 5000만 명이 사는 나라에서 말이다. 처음도 아니다. 이번 롯데카드·KB국민카드·NH농협카드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아니어도 지난 5년간 도난당한 개인정보는 1억 건에 달한다. 알려진 사건만 그렇고, 덮이거나 모른 채 넘어간 경우를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많을 것이다.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있기 불과 2년 전 KT에서는 870만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됐고, 2011년 네이트·싸이월드에서는 3500만 건의 개인정보가 새어 나갔다. 또 2008년에는 옥션 해킹으로 1000만 건이 넘는 개인정보가 빠져나갔다.
정부는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부산스레 움직인다. 지난 5년간 가공할 정보유출 사태가 빈번히 일어났어도 누구 한 명 제대로 처벌한 적이 없었으니, 꽤 생소한 모습이라고 할 만하다. 정부가 갑자기 개인정보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일까.
개인정보 유출 대책, 이번이 마지막 기회
그렇다면 반가운 일이지만, 국민 노릇을 한두 해 한 게 아닌 탓에 코앞에 다가온 지방선거가 정부에게는 훨씬 중요한 동기라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어느 경우든 국민으로서는 좋은 일이지만, 이게 마지막 기회라는 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선거를 앞두고 사건이 터진 상황에서 문제를 바로잡지 못한다면, 앞으로 정부가 국민의 정보를 보호하겠다며 팔 걷고 나서는 모습을 보기 어렵게 될 것이다. 게다가 정부와 기업의 정보유출에 대한 여론관리 능력만 교묘해질 가능성이 크다.
정보통신의 발전 속도를 고려할 때도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수밖에 없다. 기업이 개인 정보를 무제한 축적해 활용하는 '클라우드'와 '빅데이터' 환경은 이미 현재가 됐다. 더욱이 한국이 '주민등록번호'라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통합정보체계를 지녔다는 점에서 상황은 매우 시급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주민등록번호를 유지한 채 미래의 정보통신 환경으로 가는 것은 머리를 밖으로 내놓고 로켓을 타는 것처럼 멍청하고 위험한 일이다. 문제는 한국 정부에 이런 짓을 감행할 만큼 어리석은 관료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들이 긴장하고 있다는 점도 이번이 드문 기회임을 말해준다.
한국인으로 사는 것은 눈을 감고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다채로운' 사건들이 터져 나오는 것도 그렇고,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다가 오히려 문제를 키우는 책임당사자들을 볼 때도 그렇다. 이들이 관리하는 롤러코스터에 오르는 것은 꽤 큰 담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골치 아픈 것은, 우리가 원해서 그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미덥지 않은 롤러코스터 위에서 마음을 졸이며 산다. 불과 며칠 전에도 간이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
예컨대 카드사에서 유출된 개인정보가 유통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정부와 카드사는 '유출된 개인정보의 원본과 복사본을 검찰이 모두 회수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입을 모아 '2차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쯤 되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또 하나의 원본'이라는 옛날 복사기 광고를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디지털 정보의 가장 큰 특징은 '원본'과 '복사본'의 구분이 무의미하며, 무제한 복제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텍스트 파일은 편집과 가공이 간편하고 용량까지 작아서 이메일에 첨부해 쉽게 전송할 수 있다.
나는 '복사본을 모두 회수했다'는 당국자 말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이 뉴미디어 학자의 귀에는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모두 생포했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 확신의 근거가 어떤 것인지 들어보자.
정찬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달 24일 "기사에 보도된 유출 정보는 엑셀 파일로 돼 있지만 카드사에서 유출된 정보는 텍스트 파일 형태였다, 법무부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텍스트 파일은 엑셀 파일로 변환이 안 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쯤에서 나는 웃기를 포기하고 울기로 한다.
정보유출 책임을 져야 할 금융위원회나, 수사를 담당한 법무부 모두 이번 범죄 증거물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조차 갖고 있지 못함을 인정한 꼴이다. 교육 차원에서 덧붙이자면, 텍스트 문서는 '변환'할 필요도 없이 엑셀에서 그냥 열면 된다. 엑셀 문서 하나에 가로 1만6384줄, 세로 104만8576줄까지 옮겨올 수 있다. 이 둘을 곱해보면, 문서 하나로 얼마나 방대한 정보를 빼돌릴 수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국민 정보 팔아넘기는 정부
금융위원회나 법무부의 무지가 한심하기는 하나, 이번 사태로 가장 큰 욕을 먹어 마땅한 대상은 안전행정부(그리고 과거 정보통신부)다. 이들이 기업들의 정보수집을 보장하고, 더 나아가 강제하기까지 하면서도 관리책임은 뒷전으로 미뤄왔기 때문이다. 이들이 국민정보에 보인 무지와 무책임한 태도를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장세환 전 민주당 의원이 지난 2011년 9월 국회 행안부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행정안전부(현 안전행정부)는 2008년부터 2011년 8월까지 국가행정전산망에서 주민등록번호 등의 개인정보를 빼내 채권추심회사와 금융회사 등에 민간기업 52곳에 돈을 받고 팔았다. 정보 한 건에 30원씩, 무려 17억8000만 원을 받았으니, 얼마나 많은 정보를 넘겼는지 알 수 있다. 5938만 건이었으니, 사실상 전 국민의 정보를 팔아치운 셈이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개인정보는 최근에 카드사 유출사건과는 상관없는 것'이라는 금융위원회의 해명은 옳을지 모른다. 그 정보는 정부 자신이 팔아먹은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 올 8월부터 주민등록번호 수집이 금지된 상태인데도, 정부는 여기에 '금융사 예외 조항 신설'을 추진 중이다.
정부의 이런 무지와 무책임함으로 인해 지금까지 원시적인 주민등록 번호를 유지해왔고, 그런 이유로 불편하면서 위험하기까지 한 '공인인증제도'를 강제해 온 것이다.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취임 전부터 '공인인증제 폐지'를 내세웠으나, 1년이 다 되도록 구체적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주민등록번호를 토대로 '본인 확인'을 요구하는 정부 공인인증제는 오히려 유출을 돕는 역할을 해왔다. 게다가 주민등록번호가 어떤 번호인가. 나이와 성별은 물론 본적지의 읍·면·동까지 기록되며, 심지어 출생신고 순서까지 뻔히 드러나는 원시적인 부호다. '인터넷'은 고사하고 컴퓨터조차 생소했던 1962년 '간첩 잡는다'며 도입한 신분 확인 수단을 지금까지 유지한 정부의 안일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주민등록번호를 둔 채 '인터넷 강국' '금융 강국'은 없다
한국의 주민등록번호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사례다. 개인의 출생정보까지 한눈에 보여주는 '무식함'만이 아니다. 주민등록번호는 개인의 식별과 본인 확인의 용도뿐 아니라, 그 사람의 신원기록을 검색하는 '열쇠' 기능도 수행한다. 이처럼 한 개인의 모든 정보를 통합한 사례는 그 유례를 찾기 어렵다. 국민에게 고유 식별번호를 부여하는 것은 바코드를 찍는 것 만큼이나 반민주적인 행위다. 그 목적이 감시와 통제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식별번호가 한국처럼 키·혈액형·질병 등의 생물학적 정보나 가족·혼인·경제활동 등의 사회학적 정보의 열쇠가 된다면 위험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에서 영국·독일·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포르투갈 등은 아예 고유 식별번호 자체를 부여하지 않는다.
미국에는 '사회보장번호'(social security number)가 있지만, 이 번호에는 개인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담겨 있지 않다. 필요하면 번호를 바꿀 수도 있다. 미국에서 운전 중 위반을 하면 경찰이 운전면허증을 요구하는데, 여기에 사회보장번호 같은 것은 적혀 있지 않다. 운전자의 벌점 등은 운전면허번호로 완전히 분리해 관리된다. 반면 한국은 주민등록증은 물론 운전면허증과 여권에도 주민등록번호가 적혀있다.
'빅데이터'로 표현되는 소비자 정보의 수집과 활용 기술은 통합된 국민 식별체계가 없는 나라들에게도 큰 불안감을 주고 있다. 개인의 행동패턴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빅데이터'가 주민등록번호와 결합하면 아주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처럼 낙후한 한국의 개인정보 관리체계는 첨단정보통신 환경에서 '호구' 신세로 전락할 것이다.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사실은, 이미 털릴 대로 털려 더 이상 털릴 게 없다는 것 정도일 게다. 하지만 그 이유 때문이라도 더 이상 주민등록 번호를 유지할 이유는 없다.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할 수단? 안 된다
이번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건 후 정부는 '2차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근거도 없이 주장했다. 하지만 디지털 정보가 무서운 것은 '누적 효과' 때문이다. 이제까지 몇 년 동안 유출된 정보들을 누군가에 의해 (물론 엑셀을 이용해서) 차곡차곡 쌓이고 정리됐을 수 있다. 물론 결과가 당장 드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가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상황에서 눈에 보이는 범죄를 일으킬 바보들은 없으니 말이다. 이들은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소액을 노리는 장기전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정보만 유출되면 금전적인 피해로 끝나지만, 주민등록번호의 유출은 금전적 피해는 물론 더 흉악한 범죄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위험하다. 아무리 법으로 금해도 탐욕을 막을 수는 없다. 국민을 보호하려면 모든 정보가 통합된 주민등록번호부터 없애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할 수단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하는 수단을 개발해서는 곤란하다. 통합된 식별체계는 결국 똑같은 문제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회보장·운전면허·건강보험 등 용도에 따라 정보를 분리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국민으로서 해야 할 일은 '까다롭게 구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이 개인정보를 요구할 때마다 '그걸 왜 묻느냐'며 따지고 항의하는 것이다. 그래도 버릇을 못 고치면 업체를 바꾸고, 불매운동을 하고, 낙선운동을 하면 된다. 이번 사건의 책임이 있는 롯데카드·KB국민카드·NH농협카드에 대해서는 '재발급'보다 '탈퇴'가 그들의 버릇을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에 대해서는? 까다로운 유권자가 되면 된다. 다행히 그럴 기회가 가까이 왔다.
주민등록번호 13자리의 '무서운 진실' 11.9.29
[뉴미디어기획 18] 한국 정보통신산업의 장애물, 실명제와 주민등록제
한국 정부는 내게 관심이 많은가 보다. 커피숍에서 무료 인터넷이 된다고 해서 컴퓨터를 켜고 와이파이에 접속한다. 환영 메시지가 나오더니, 이윽고 '네가 너임을 입증하라'는 철학적인 지시문이 뜬다.
국영 찻집이 아닌데도 국가가 제정한 법률에 따라 '본인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터넷의 오묘한 세계를 보여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겁이 덜컥 난다. 그, 그것만은...그리하여 나는 생년월일, 성별, 출생지, 가족관계, 혈액형, 범죄기록 등 내 100여 가지 정보가 관리되는 식별번호를 입력한다. 물론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신비로운 온라인 세상을 보여주는데, 기껏 주민등록번호 하나로 되겠는가. 이제 '추가정보'로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하란다.
다행히 이날 어머니 전화를 빌려가지고 나왔다. 안도의 숨을 내쉰다. 정말 잘했다. 안 그랬으면 휴대전화도 없는 내가 사이버 공간을 들여다볼 꿈이라도 꾸겠는가. 어머니 번호를 입력하고 커피잔을 기울여 타들어 가는 목을 축인다. 아, 드디어 황홀한 인터넷 세계가 열린다.
'본인확인제도'에 담긴 철학 혹은 멍청함
잠깐. 어머니 전화번호를 입력해도 된다면 어떤 번호를 넣어도 되는 게 아닌가. 게다가 누구의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도 '본인'이 될 수 있지 않은가. 아버지, 형, 동생, 조카, 조금 전 나를 기분 나쁘게 한 친구 등 누구라도 말이다. 그리하여 '본인확인'이라는 심오한 철학적 난제의 실마리는 라캉에 있었음을 깨닫는다.
"나는 생각하지 않는 곳에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하지만 상관없다. 인터넷 없이 못 사는 나로서는 '정치성향'이나 '성적 취향'에도 답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게 있다. 정부는 위치정보 수집이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강조해 오지 않았던가. 지난 8월 방송통신위원회는 애플과 구글이 사용자의 위치정보를 수집하고 저장해 온 방식을 문제 삼으며 시정조치를 요구했다.
이처럼 국민들의 권리 보호에 민감한 정부가 왜 인터넷에 접속할 때마다 개인정보를 수집하려 하는 것일까? 단말기 이동경로가 밝혀지는 건 위험하지만 주민등록번호 입력으로 개인의 위치가 포착되는 건 괜찮다는 말인가?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는 창 옆에는 '와이파이를 통한 인터넷 접속은 특성상 보안이 취약하다'는 친절한 안내문까지 떠 있다. 정부는 대체 뭘 알고 싶은 것일까? 내가 어떤 커피숍에서 몇 시간이나 죽치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내가 어떤 음험한 사이트를 돌아다니는지 알고 싶어서?
'본인'이 어디 있는지 본인도 모르는 나라
2010년 4월, 방통위는 전국적으로 와이파이 존을 대폭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2013년까지 무료로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장소를 10만 곳으로 늘려, 세계 1위인 미국을 누르겠다는 것이다. 신나는 일일까? 전국이 와이파이 존으로 덮이고, 접속할 때마다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야 한다면, 정부는 개인의 움직임을 거의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내가 조카의 주민등록번호를 쓰지 않고, 다른 누군가가 네이트 계정에서 빼낸 내 번호를 입력하지 않는 한 말이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나처럼 기구한 팔자가 최소한 3500만 명이 넘으니 말이다. 분실된 '본인'이 전 세계 어디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모르는 한국인들 말이다. 잃어버린 번호가 무료 인터넷 접속 정도로만 쓰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지난 13일 방통위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는 경악할 만하다. 올해 1월부터 7월 사이만도 한국인의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 등 치명적 신상정보가 15개국 7500개 이상의 웹사이트에 노출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제 이론적으로 전 세계 누구라도 '본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최근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로 인해 한국 기업들이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다. 욕먹어 싸고 소송 당해 싸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정부에 물어야 한다. 정부가 자신의 이익과 편의를 위해 국민 개인의 정보 수집을 법으로 요구했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은 이 정보를 허술하게 관리한 책임을 져야 한다.
국제적 조롱거리인 한국 실명제
'세계적 추세' 좋아하는 한국 정부에 한마디 하자. '본인확인' 같은 촌스러운 것 안 하는 게 인터넷 탄생 이래로 쭉 세계적 추세다. 특히 미국 좋아하는 한국 정부 아닌가. 미국 전역의 커피숍, 공공도서관, 공원에 가 보라. 무료 무선 인터넷이 널려 있지만, 어느 곳도 '본인확인'을 요구하지 않는다. 제발 의료 민영화 같은 것 말고 이런 걸 본받자. 지메일이나 핫메일을 이용하면 사용자 실명이나 본인확인 없이 무제한으로 계정을 만들 수 있다. 야후 같은 포털, 유튜브 등의 동영상 사이트, <뉴욕타임스> 같은 언론사 사이트에 의견을 쓰거나 게시물을 올릴 때에도 '실명,' '확인,' '인증' 따위는 필요 없다. 세계 최대 인터넷 상점인 아마존에서 물건을 살 때도 그런 귀찮고 까다로운 절차는 거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인터넷 서비스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길 바라는가? 경쟁력만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본인확인제나 실명제는 세계에서 '해외 토픽'감으로 보도되는 희한한 제도다. 이달 초 <뉴욕타임스>는 실명제라는 '한심한 발상'에 대해 이렇게 보도했다.
"한국의 이 제도는 포털 사이트나 인기 사이트에 글을 남기는 사람에게 익명 대신 실명을 쓰도록 요구한다. 지난달, 대규모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일어난 후, 한국 정부는 실명제를 폐기하겠다고 발표했다. 해커가 인터넷 사용자 3500만 명의 주민등록번호를 훔쳐간 탓이다. 한국 사용자들은 웹사이트 회원 가입 시 본인확인을 위해 의무적으로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이 정보 유출 사건은 소위 '실명제'가 얼마나 한심한 발상인지를 보여준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아랍 세계의 민주화 시위가 보여주었듯, 온라인의 익명성은 정치적으로 반대의견을 표명하는 데 꼭 필요하다. 기업 내의 비리를 폭로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런 이유로 인해 미국 대법원은 익명성이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보호받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 <뉴욕타임스> 9월 4일 "인터넷에서 이름 달기"
한국 정부라고 이 사실을 모르겠는가. '온라인의 익명성이 정치적으로 반대의견을 표명하는 데 꼭 필요'함을 알기에 실명을 요구하는 것이다. 기술이 도입되고 활용되는 방식은 사회문화적 조건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인터넷 실명제가 한국에 도입된 것은, 세계적으로 드문 주민등록번호체계가 한국에 도입된 이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주민등록번호는 시민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마련된 것이었고(국민에게 고유번호를 붙여 관리하는 나라들은 그리 많지 않다) 실명제 역시 온라인상의 발언을 규제하고 차단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따라서 이 온-오프라인의 두 축을 연결하는 한국 사회의 비민주성을 해결하지 않는 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
주민등록번호의 원시성
▲ 1968년 주민등록증을 받아 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 당시에는 주민등록번호에 생년월일이 기록되지 않았다. 현행 주민등록제도는 1960년대보다 퇴보한 셈이다.
'민주국가' 운운할 것도 없다. 도대체 어떤 문명국가에서 한눈에 생년월일, 성별, 본적지가 드러나는 원시적인 식별번호를 부여한단 말인가? 1968년, 한국 정부가 국민들에게 12자리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할 때에도 생년월일은 적혀 있지 않았다(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번호는 '110101-100001'이었다). 1975년부터 13자리로 바뀌면서 앞 6자리를 생년월일로 채웠다. 이유는 뻔하다. 군사독재정부가 국민들을 손쉽게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오래전에 폐기하거나 대폭 손봤어야 할 식별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한심한데, 이 무지막지한 번호를 온라인상에서 수시로 입력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 정부나 기업이 '본인확인'을 요구하고 싶어도 그럴 방법이 없다. 대다수 나라가 '주민등록번호'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사회보장번호(Social Security Number)'가 있지만, 이 번호는 세금이나 신용거래 등 지극히 한정된 목적으로만 사용된다. 미국의 사회보장번호는 개인 정보를 담고 있지 않으며, 신분 증명 목적으로 사용되지도 않는다. 미국에서 운전면허증이 흔히 신분증으로 쓰이는데, 여기에는 사회보장번호가 기록되지 않는다. 여권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사회보장번호는 주민등록번호와 달리, 본인확인용으로 쓰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회보장번호를 신청하면 '막종이'에 인쇄된 카드가 하나 배달된다. 여기에는 사진도, 생년월일도, 주소도 들어 있지 않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증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산 지 10년이 넘었지만, 인터넷에서 사회보장 번호를 입력할 일은 일 년에 딱 한 차례 있을 뿐이다. 세금을 신고할 때다. 온라인으로 신고하지 않는 사람은 이마저도 입력할 필요가 없다.
주민등록제 폐지가 정답이다
최근 네이트/싸이월드와 삼성카드 등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인해 실명제 폐지 여론이 강하게 일고 있고 있다. 정부도 마지못해 실명제를 포기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앞으로 포털이나 게임사이트 등의 회원으로 가입할 때 주민등록번호 등의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이르면 내년부터'('이른' 게 내년이면 늦으면 언제가 될까?)라는 불길한 단서가 붙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기업과 정부가 수집한 개인정보는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이 순간 유출되고 있는 국민들의 신상정보는? 해커들이 정부가 대책을 마련할 때까지 기다려주지는 않을 것 같으니 말이다. 불안한 건 해커만이 아니다. 국정감사 결과, 정부가 국민들의 신상정보를 외부에 팔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가 2008년부터 5000만 건이 넘는 개인정보를 1건당 30원씩 받고 민간기업에 넘겼다는 것이다.
폐지할 것은 실명제만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없애야 할 것은 주민등록제다. 국민들의 온갖 정보가 통합된 주민등록번호가 유지되는 한, 온-오프라인에서 이 '만능번호'를 수집하려는 시도는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과는 언제나 치명적일 것이다. 개인정보가 이윤과 권력의 핵심이 되고, 정보 수집 수단이 날로 첨단화하는 상황에서 주민등록제는 국민들을 손쉬운 먹잇감으로 만들어 왔다.
정부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아이핀(I-PIN)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한 번 포장했을망정, 기본적으로 주민등록번호와 연결된 식별체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일 국정감사에서 아이핀이 단 3분 만에 해킹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것도 행안부 웹사이트에서 말이다. 이렇게 해킹된 정보로 남의 주민등록등본을 떼고 은행 사이트에서 인터넷뱅킹으로 돈까지 빼낼 수 있었다. 공인인증서, 보안카드, 비밀번호는 무용지물이었다.
주민등록제는 어차피 그대로 둘 수 없는 제도다. 이제 더 이상 털릴 것도 없을 만큼 노출된 식별체계를 유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뿐만 아니라, 정부의 국민 보호 의무를 저버리는 심각한 직무유기다. 지난 세기 권위주의 정부가 도입한 식별번호가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현실은, 한국 사회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음을 말해줄 뿐이다.
주민등록증 없이 어떻게 신분을 증명하느냐고? 이런 걱정 자체가 한국이 얼마나 세계적 상식에서 동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주민등록제는 국민들 편익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다. 많은 나라들이 시행하고 있듯, 지방자치정부가 발행하는 신분증으로 충분하다. 식별표시에는 개인의 신변정보가 담겨서는 안 되고, 개인의 여러 정보를 통합하는 용도로 쓰여서도 안 된다.
한국 인터넷 황폐화의 주범
한국 정부와 기업은 소프트웨어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여러 차례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그게 진심이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망가진 인터넷부터 바로잡는 것이다. 이미 여러 차례 강조했듯, 가장 중요한 것은 웹 표준 준수와 실명제 폐지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상식에 따르면 인터넷은 '익명성'과 '탈규제'의 공간이다. 한국은 정반대로, 엄격한 실명과 규제의 공간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본인확인'과 '인증절차'를 사업자와 사용자에게 모두 법으로 강요하고 있다. 이처럼 다른 나라와 완전히 동떨어진 환경 속에서 프로그램을 짜고 서비스를 하는 업체가 국제적 경쟁력을 갖출 수는 없다. 다른 나라보다 낫지는 못하더라도 유사한 인터넷 환경은 경험해야 한국 밖에서도 통할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을 꿈이라도 꿀 게 아닌가. 금칙어 설정법, 블라인드 처리법, 이메일 감청용 소프트웨어 수출이 한국 정보통신산업의 미래가 아니라면 말이다.
웹 표준 문제도 그렇다. '액티브엑스'로 대표되는 비표준 기술 남용은 실명제와 더불어 한국 인터넷을 우물 안 개구리로 전락시킨 주범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3월 '액티브엑스가 악성코드 유포의 주범'이라면서 '대체방안'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 후 상황이 얼마나 나아졌을까? 시험 삼아 방통위 웹사이트의 '통합민원센터'를 파이어폭스, 크롬, 사파리로 접속해 보았다. 화면이 제대로 표시되지 않거나 버튼이 작동하지 않는다. 익스플로러로 접속하니 액티브엑스를 설치하라는 지시가 뜬다. 웹 표준 문제를 앞장서 책임지겠다던 방통위 사이트가 이러니, 다른 정부 기관은 말할 것도 없다.
정부는 아는지 모르지만, 국민들은 지금 경쟁에 치여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만은 참 쉽게 사는 것 같다. 이처럼 경쟁력 없는 집단이 국민들에게 경쟁력을 주문하는 건 아이러니다.
그러니 이제 나에 대한 관심은 꺼 주시는 게 좋겠다. 제 할 일도 못하면서 남의 사생활을 간섭하는 것은 분수에도 맞지 않는다.
'대통령 사퇴 촉구' 시국미사에 보수단체 난입 2.3 오마이뉴스
[현장] 천주교 수도자들의 기도 "박근혜 퇴진"... 밖에선 "종북세력 퇴진"
'부정선거 불법당선 대통령 사퇴' 촉구 시국미사에 보수단체 회원들이 난입을 시도하는 등 충돌이 벌어졌다. 시국미사가 잠시 중단되는 소동이 일어났고, 결국 주최 측은 예배당 출입구를 모두 걸어 잠근 채 시국미사를 진행했다.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강대 예수회센터 성당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문규현 신부 등600여 명의 신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가 봉헌됐다 이날 시국미사는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와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정의평화환경전문위원회가 공동으로 개최했다. 앞서 천주교 마산교구 정의평화사제단(대표 하춘수 신부)도 지난달 27일 경남 거제 고현성당에서 '부정선거 불법당선 대통령 사퇴' 촉구 시국미사를 열었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릴 유일한 방법은 박 대통령 퇴진"
시국미사 주최 측이 이날 발표한 시국선언문은 "불의한 것을 지껄이는 자는 반드시 탄로 나고 징계하는 정의가 그를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는다"는 성서 '지혜 1,8'편으로 시작됐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지난해 8월 국정원의 대선 불법개입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와 올바른 진상규명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했지만, 전혀 귀 기울이지 않는 작금의 사태에 대해 비통한 심정으로 다시 한 번 우리 수도자들은 강력하게 외친다"고 밝혔다.
수도자들은 이어 "진정한 사과와 함께 깊이 회개하고 스스로 대통령 직무수행의 정당성을 찾을 수 있도록 박 대통령에게 정화의 기회를 줬으나 결국 새로운 한해를 맞이했는데도 정화는커녕 오히려 의혹만 불러일으키는 그릇된 태도로 일관했다"며 "고귀한 피로 숭고한 생명을 바쳐가며 이뤄낸 민주주의의 역사적 과업마저 부정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 "사실상 일당독재와 영구집권을 가능케 한 지금의 반민주적인 구조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대통령이라도 우리의 신성한 참정권을 훼손할 수도 짓밟을 수도 없다. 관권 부정선거로 더럽혀진 우리의 거룩한 참정권을 수호하고자 한다"고 선언했다.
이날 시국미사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그러나 미리 예배당에 들어가 있던 한 남성 신도가 미사가 시작된 지 20여 분만에 갑자기 고성을 지르고, 다른 신도가 이 남성을 제지하면서 미사가 잠시 중단되는 소동이 일었다. 제지에 나선 주최 측은 소란이 가라앉지 않자, 이들을 모두 문 밖으로 밀어낸 뒤 입구를 봉쇄하기에 이르렀다.
입구가 봉쇄된 뒤에도 소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입구가 봉쇄되자 성당 외부에서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던 보수단체 회원들과 이를 제지하는 신도들 간에 고성이 오가는 등 실랑이가 벌어진 것. 결국 주최 측이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고, 시국미사는 무사히 마무리 됐다.
특히 집회를 주도한 서석구 변호사는 1980년대 부산의 노무현 변호사와 부림 사건(불법고문 사건)을 조명한 영화 <변호인>을 비판하는 연설로 집회 분위기를 달궜다. 서 변호사는 "부림 사건 당시 재판장이 나"라며 "당시 재판에서 유죄 판결만 내린 게 아닌데, 영화 <변호인>은 엉터리 유죄판결만을 보여 준 허구"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영화에 나온 1980년대 상황을 고려할 때 "북한방송이 그대로 들리던 때"라며 "당시 운동권이 북한 방송의 용어를 그대로 쓰는 것을 계기로 이들의 '종북' 행위에 확신을 가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수모 회원인 최득원(73)씨는 "내가 나이가 들었지만, 종북·좌파 사제단이 대한민국을 뒤엎으려는 것을 볼 수 없어서 춥든 덮든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이들은 서강빌딩 앞에서 행사를 진행하다가 시국미사가 시작되자, 경찰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성당 안으로의 난입을 시도했다
전주지검, '시국미사 강론' 박창신 신부 수사 2.3 오마이뉴스
보수 성향 단체 고발 및 진정 8건 일괄 수사하기로
“박근혜 무관하다” 보수신자 난동에 “어둠의 세력 발악” 2.3 미디어오늘
이날 미사를 주례한 김정대 예수회 신부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정의롭지 못하며, 아무도 정의롭지 못하다고 지적하며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며 “지난 번과 이번 미사에서 미사 방해한 사람을 보면서 황당했는데, 이를 경험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이런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밖에있는 보수 신자들과 같은) 어둠의 세력이 발악을 할 때 평신도 여러분이 잘 내보냈는데, 저런 경험을 할 때 사제로서 정서적으로 피폐해진다. 기를 빼앗기는 기분”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편, 김 신부는 이날 미사의 의미에 대해 “대선에서 민주주의가 무너진 현실을 확인하고, 이를 회복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며 “화해는 올바른 관계가 확립될 때 가능하며, 정의에 입각한 관계가 회복되고,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가 피해에 보상해야 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 신부는 “사회와 정부는 다시는 이런 일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 마련해야 하나 행위 당사자에 대한 조사도, 미래 공동체 건설 위한 대안도 없는 상태를 목도하고 있다”며 “우리의 행동에 대해 보이지 않는 세력에 맞서 힘과 용기를 주도록 기도하자”고 밝혔다. 그는 “기득권 자에게 박해를 받아왔을 때 예수님에 대한 마지막 박해가 십자가에 의한 죽음이었다”며 “묵묵히 견뎌내고 불편한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현철 예수회 신부는 강론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왜 대선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는지에 대해 “당연한 질문이며, 그 답은 권력 쟁취하기 위해서”라며 이들이 권력을 움켜쥐고 있는 소수에 속한 사람도 아니며, 권력에 필요한 것을 기획하고 지시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니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들에 대해 “가장 밑에서 직접 불법적으로 지시받고 이를 수행했던 사람들”이라며 “이들은 그런 짓을 하면서 어떤 마음과 생각이었는가”라고 되물었다. 조 신부는 “대선개입을 위해 국가기관을 동원해 댓글, 트윗, 리트윗을 수행한 이들은 자신을 평범한 공무원으로, 나름 최선을 다한 성실한 인간으로 생각하고 지시를 열심히 수행했을 것”이라며 “그 지시에 어떤 함의가 들어있는지, 세상에 어떤 영향을 줄지 따지는 것은 이들에게 일상의 직무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자발적 순종과 복종을 양산한 현실의 당연한 귀결”이라며 “불법이라 해도 지시가 주어지기만 하면, 거리낌없이 처리하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집단적 양산돼 조직 내 지시라는 명목으로 일상적으로 수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무서운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해 영화 변호인에서 고문하던 경관이 잠시 쉴 때 부인과 아무렇지 않게 전화통화하는 장면을 들어 서 신부는 “고 김근태 의원의 말에 따르면, 고문을 당했을 때 가장 절망스러웠던 것은 그토록 끔찍한 고문을 자행한 이들의 평범한 일상성이었다”며 “고문 자행하면서도 일상적인 가정사를 따뜻하게 나누는 것은 유태계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악의 평범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타파하기 위해 예수가 어떤 일을 했는지도 조명했다. 자신의 몸에 더러운 영이 들어있는 사람에게서 이 영을 쫓아내기 위해 예수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으며 단지 그에게 예수가 찾아오자 어둠이 사라지듯 사라졌다고 서 신부는 전했다. 예수가 빛이었으므로 어둠을 잡아서 없앨 필요가 없었다는 것. 어둠은 빛 앞에서 없어질 수밖에 없다고 서 신부는 평가했다. 서 신부는 “악이 평범함으로 일상화 될 때 그리스도의 방식으로 우리가 현존하면 빛이 되고, 악은 어둠이 된다”고 강론했다
이와 함께 장동훈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총무신부(정의구현사제단 임원)는 이날 미사를 주최한 남녀수도자(수사와 수녀)들이 정권의 박해에 순교하겠다고 선언한 것에 대해 “시련은 우리를 더욱 단련시킬 것이며, 내적으로 우리들을 정화시킬 것”이라며 “죄많은 시대 은총도 많듯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평가했다.
시국미사에 초청된 성염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는 “수도자들이 밖으로 나갈 때 정치와 사회 모두에 성직자는 발언할 권리가 있다”며 “현실의 언로를 조중동이 잡고 있으나 사회교리에 대한 교육은 수녀들이 맡고 있는 만큼 사회교리를 가르쳐야 한다”고 당부했다. 성 전 대사는 보수신자들에 대해 “교황의 사회교리에 정식으로 반대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며 “이는 한국의 두 추기경에게 배운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공공기관, 대학등록금·가족건강검진비 지원 폐지 2.3 뉴시스
과다한 부채나 방만 경영으로 중점 관리대상으로 지목된 38개 공공기관이 지난달 29일 정부에 방만 경영 개선 대책을 제출했다.
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38개 기관은 주로 ▲과도한 경조휴가 ▲학자금 과다 지원 ▲퇴직금 가산제 ▲직원외 가족 건강검진비 지원 ▲유가족 특별채용 등을 개선하겠다고 보고했다.
한국수력원자력, 강원랜드, 수자원공사, 철도공사 등 33개 기관이 과도한 경조휴가를 폐지하거나 개선하기로 했다. 한국전력, 인천공항, 수출입은행 등 32개 기관은 초·중·고 학자금 지원을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또 마사회, 한국거래소, 농수산식품유통공사, 예금보험공사 등 29개 기관은 장기근속자나 퇴직예정자에게 고가품을 지급하는 관행을 개선하고 철도공사, 한국장학재단 등 26개 기관은 퇴직금 가산제(누진제)를 폐지하기로 했다.
기관별로 보면 한국거래소는 업무상 부상·사망이나 업무외 사망시 퇴직금을 가산 지급하던 제도를 폐지하고 연간 최고 400만원까지 지원하던 고교 자녀 학자금을 180만원 수준으로 축소한다. 마사회는 자녀캠프 및 사교육비 지원을 중단하고 1인당 30만원씩 지원하던 직원 및 가족의 건강검진비도 없애기로 했다.
38개 공공기관들이 경영정상화를 통해 오는 2017년까지 부채증가 규모를 46조원으로 억제하기로 했다. 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이들 공공기관들은 지난달 29일 제출한 '공공기관 정상화 계획'을 통해 2017년까지 부채증가 규모를 45조9000억원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노후 책임은 누구에게? 자기 자신, 가족, 정부? 2.3 프레시안
한국 '고령화 사회' 쇼크 준비는 되고 있나
노후 경제적 안정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①자기 자신, ②가족, ③정부.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달 30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이와 같은 질문에 우리나라 사람의 53%는 ①번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이 비율이 조사대상 21개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 2위는 미국(46%), 3위는 독일(41%), 4위는 영국(39%)으로 노후 책임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응답이 전체의 3분의 1 이상인 나라는 4개국 뿐이었고, 그 중에서도 50%가 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반면 러시아(63%), 이스라엘(61%), 케냐(59%), 이탈리아(56%), 스페인·아르헨티나(55%), 이집트(51%)는 절반 이상의 응답자들이 ‘정부’의 책임이라고 답했다. 정부 책임이라고 답한 한국 응답자는 33%.
'가족의 책임'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파키스탄(77%)이 눈에 띄게 높았고, 나이지리아·인도네시아(38%), 멕시코(36%), 일본·프랑스(33%)가 응답자의 3분의 1 이상이 가족에게 책임이 있다고 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이스라엘(8%)에 이어 러시아와 함께 두 번째로 가족 책임(10%) 응답 비율이 낮았다. 우리나라와 함께 고령화 1,2위를 다투는 일본은 노후 책임에 대해 ‘가족 책임’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한국보다 23%포인트 높은 점이 눈에 띈다.
한국인들의 응답 성향은 '자기 자신-가족-정부' 비율이 53%-10%-33%로 독일(41%-12%-38%), 영국(39%-13%-33%)과 비슷했다.
"노후 자신 있다" 43%
이번 조사에서 한국은 일본과 함께 고령화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나라로 나타났다. 고령화가 문제냐는 질문에 일본은 87%가, 한국은 79%가 그렇다고 답했다. 중국도 67%가 답했고, 독일(55%), 스페인(52%)이 뒤를 이었다. 주로 동북아와 유럽에서 고령화를 사회 문제로 인식하는 가운데 미국은 고령화가 문제라는 응답이 26%에 그쳤다.
한국은 고령화 문제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특히 위험해 보이는 지표들도 나타났다. 65세 이상의 고령화 인구 비율은 현재 11.1%로 조사대상 23개국 중 9위 수준이었지만 2050년 예상치는 34.9%로 일본(36.5%)에 이어 2위에 해당되는 수치다. 대부분의 나라 고령인구 증가가 1.5배 수준인데 비해 한국은 3배 이상 늘어나는 셈이다.
'노후 자신감'에 대한 질문에서도 한국은 응답자의 43%만이 '자신 있다'고 답했는데, '매우 자신 있다'는 응답은 7%에 그쳤다. 일본의 '자신 있다'는 응답이 32%('매우 자신 있다' 3%)에 그친 점도 흥미롭다. 높은 노후 자신감을 나타낸 나라는 중국(79%), 브라질(77%), 나이지리아(74%) 등이었는데 퓨리서치센터는 "중국과 같이 최근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나라에서 노후를 긍정적으로 보이고 있다"고 해석했다. 23%만이 '자신 있다'고 응답한 이탈리아는 최근 경제성장률이 1.4%였다.
뜨거운 감자, 연금 재구조화
한국이 직면하게 될 또 다른 고령화 문제는 공적 연금 지출 부담이다. 한국은 GDP 대비 공적 연금 지출 비율은 2010년 기준 1.7%로 조사 대상 18개국 중 14위에 해당된다. 한국보다 비율이 낮은 나라는 멕시코(1.5%), 인도(1.0%), 인도네시아(0.7%), 파키스탄(0.6%) 정도다. 그런데 2050년에는 고령화로 인해 GDP 대비 공적연금 지출 비율이 12.5%로 뛸 것으로 예상됐다. 같은 기간 일본(10.0%→10.7%), 미국(6.8%→8.5%), 독일(10.9%→13.1%), 영국(7.2%→7.7%), 프랑스(14.3%→14.8%) 등 선진국들의 연금 지출 증가율이 소폭 상승에 그치는 것에 비하면 한국은 공적 연금 지출이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퓨리서치센터는 이와 같이 선진국들의 연금 부담 증가율이 높지 않은 이유로 고령화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르지 않고, 연금 재구조화 등을 통해 연금 비용 증가율을 낮췄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연금 재구조화는 연금 수령 연령을 높이거나 연금 수령액을 줄이는, 이른바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추세여서 사회적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급격한 고령화와 연금 비용 증가가 예상되는 한국의 경우 '고령화 사회'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시급해 보인다.이번 조사는 퓨리서치센터가 지난해 3∼4월 세계 21개국 2만2425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이며, 조사 항목별로 자료의 유무에 따라 18~23개국으로 조사 대상 국가의 수가 유동적이다. 자료 원문은 아래 주소의 웹사이트를 방문하면 볼 수 있다.
4대강 공사로 습지 41% 사라졌다2.3 경향
ㆍ환경정책평가연 보고서 “여의도 면적의 17배 넘어”
ㆍ낙동강 유역 피해 가장 커
4대강 사업 후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의 습지가 41% 급감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류와 어류, 저서생물의 생활 터전인 습지가 사라지면서 4대강의 생물다양성도 심각한 위기에 처한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환경평가본부는 ‘4대강 살리기 사업 사후환경영향조사 분석·평가 및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2010년 1억2289만㎡이던 4대강 습지가 2012년 7249만㎡로 2년 새 5040만㎡(41%) 줄어들었다고 2일 밝혔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17배가 넘는 습지가 4대강에서 사라진 것이다. 4대강 사업 후 습지 변화를 조사한 보고서가 나온 것은 처음이다.
낙동강 습지는 2년간 7520만㎡에서 4153만㎡로 3367만㎡(44.8%)가 줄어 감소 면적이 가장 컸다. 한강은 1401만㎡에서 988만㎡로 29.5%가, 금강은 2669만㎡에서 1776만㎡로 33.4%가, 영산강은 697만㎡에서 330만㎡로 52.6%가 각각 줄었다. 4대강 사업 전 습지에서 확인된 맹꽁이·금개구리·흰수마자·미호종개 등은 더 이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전동준 환경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은 “하천변의 습지생물 서식지가 줄면서 날아오는 철새 수가 감소하고 법적보호종이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부산대 생명과학과 연구팀이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 낙동강물환경연구소의 용역을 받아 2008년·2012년 비교·조사한 ‘낙동강 본류 및 주요 지천의 습지 평가’ 보고서에서도 46개 습지 중 12곳의 면적이 감소했다. 녹색연합이 입수·공개한 보고서에서 부산 사상구 삼락습지는 4대강 사업 후 사라졌고, 창녕의 박진교습지는 90.7%, 김해 도요습지는 88% 줄었다. 4대강 사업 중에 새로 만든 대체 습지들은 대부분 제 기능을 못하거나, 조감도에 나와 있는 습지가 실제로는 마른 땅인 사실도 확인됐다. 연구팀은 “(대체 습지들은) 습지라기보다 물을 가둔 형태로 보는 게 적당하고, 식생이 발달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습지로서 역할을 하려면 자연성에 초점을 맞춰 복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부산 덕포동의 삼락습지 25만㎡는 완전히 없어졌고, 칠곡군 낙산리의 낙산습지, 창녕군 남지읍의 박진교습지와 월평습지, 김해시 감노리의 감노습지, 김해시 도요리의 도요습지, 김해시 마사리의 딴섬습지 등 6곳도 면적이 70~90%가량 줄어들었다.
그러나 습지 면적이 급감한 후에도 4대강 사업을 추진한 국토부나 습지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환경부 모두 습지 위치나 면적,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생태 변화 등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4대강 사업을 평가하고, 파괴된 하천 생태계를 복원하는 사업에서 습지 현황을 정밀히 조사하는 작업은 필수적이다.
[한겨레단독] 삼성, 정부에서 직접 받은 돈만 한해 1684억 1위 2.3
대기업으로 흐르는 나랏돈 ② 연구 개발 보조금
정부, 2012년 대기업에 7308억 예산 지원
현대차 883억, 한진 567억 등 순으로 받아
정부가 삼성그룹에 준 직접보조금이 2012년에만 1684억42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조세 감면 등 정부의 간접적인 지원을 제외한 금액으로, 국내 대기업(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기준) 가운데 삼성그룹이 가장 많은 정부 예산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일 <한겨레>가 정보공개청구와 안민석 의원(민주당)을 통해 받은 국회 예산정책처(예정처) 자료를 보면, 삼성·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집단에 예산으로 지원한 직접보조금은 2012년 한해 동안 7308억8300만원에 이른다. 같은 당의 최재천·강창희 의원실을 통해 미래창조과학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연구개발(R&D) 보조금 현황도 확인했다. 예정처는 지난해 미래부·산업부 등 11개 정부기관으로부터 연구개발 예산 및 ‘직접적인 자금이전 효과가 발생’하는 민간이전 항목을 제출받아 직접보조금 실태를 집계했다.
가장 많은 보조금을 받은 대기업집단은 삼성이다. 삼성탈레스가 핵심기술개발 사업과제로 453억원을 지원받는 등 삼성그룹 방위산업 계열사들이 연구개발 국가 예산 1184억원을 받았다. 삼성전자는 부품소재 경쟁력 향상 등의 명목으로 16억1500만원을 국가로부터 지원받았다. 제일모직도 46억9000만원을 받았다.
삼성 다음으로 가장 많은 보조금을 받은 곳은 현대자동차그룹(883억원)이다. 다음으로 한진(567억원)과 한화(465억원), 포스코(442억원)가 뒤를 이었다. 4대 그룹인 엘지(LG·385억원)와 에스케이(SK·227억원) 역시 200억원이 넘는 돈을 정부로부터 받았다.
나랏돈이 재벌 대기업에 직접 흘러드는 주된 통로는 연구개발 자금 지원이다. 예정처 자료를 보면, 대기업에 대한 지원금이 가장 많은 부처는 방위사업청(2759억원)과 산업부(2689억원)다. 방위산업은 그동안 정부의 계열화·전문화 정책을 통해 대기업집단 계열사 위주로 육성돼 연구비가 대기업에 집중됐다. 계열화·전문화 정책은 후발 업체의 성장을 막아 2008년 말 폐지됐지만 방위산업은 여전히 대기업의 독과점 시장이다.
산업부는 주력산업 진흥을 목표로 많은 자금을 대기업에 건넸다. 정부가 대기업에 지원하는 연구개발 자금은 기업의 단기 수익을 높일 뿐 아니라, 기업이 시장에서 이익을 낼 상품을 만드는 데도 중요한 구실을 했다. 대기업은 국가 연구개발 과제를 수행하면서 자금 지원뿐 아니라 정부출연기관의 각종 연구 지원까지 공유했다. 중소업체의 연구개발도 성공적인 과제 수행을 위해서는 대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정부 연구사업 수주를 위해 경쟁할 때 대기업이 끼어 있는 컨소시엄은 수요 확보가 되어 있다고 보고 더 좋은 점수를 받는다”고 했다. 대기업 중심의 ‘보조금 생태계’가 구조화되고 있는 것이다.
나랏돈 ‘연 125조원’ 대기업에 쏠린다
2일 <한겨레>가 미래창조과학부·국세청·조달청 등 정부 각 부처와 케이디비(KDB)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의 자료를 종합해봤더니, 한 해에 대기업으로 흘러가는 나랏돈은 각종 보조금과 공공조달, 비과세 감면 등 예산 지출액 21조원에, 대출과 보증 등 정책금융 지원액을 합치면 126조원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은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국가로부터 많은 혜택과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에 가는 예산은 조건만 맞으면 주는 각종 보조금과 세금을 깎아주는 비과세 감면, 물품과 용역 등을 공급하는 조달로 나뉜다. 가장 덩치가 큰 보조금은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으로 지난해 16조8777억원 규모였는데, 이 가운데 정부출연기관과 대학 등을 뺀 민간기업으로 3조5353억원이 흘러갔다. 이 중 대기업이 주도하는 예산은 약 40%인 1조4397억원에 이른다. 자체 재원으로 연구개발에 투자할 재원이 충분한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굴지의 대기업들조차 나랏돈으로 하는 연구개발 사업 참여에 적극적이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기업이 나랏돈 또는 회삿돈으로 연구개발 투자를 많이 하면 할수록, 법인세를 낼 때 세금을 깎아주는 비과세 감면 혜택이 커진다. 연구개발뿐만 아니라 임시투자(지금의 고용창출투자), 에너지절약시설투자 세액공제 등 대기업이 이런저런 이유로 받고 있는 비과세 감면 혜택은 2012년(신고 기준) 7조1063억원에 이른다. 이는 중소기업을 포함한 전체 기업의 공제감면액(9조4918억원)의 75%에 이른다. 공제감면 혜택이 클수록 대기업이 내야 할 세금은 줄어든다. 특히 삼성과 현대차, 에스케이, 엘지 등 10대 재벌이 받는 공제감면이 전체의 절반에 육박할 만큼, 세금을 깎아주는 조세지출 예산이 소수 대기업에 쏠려 있다.
세금을 주수입으로 하는 정부가 나라 살림살이를 꾸려가는 데 연필에서부터 4대강 댐까지 다양한 물품과 용역이 필요하다. 이를 사들이는 조달 과정 역시 대기업 비중이 높다. 공공조달 시장은 한 해 106조원이 넘는다. 이 가운데 조달청을 통한 전체 조달액 38조3676억원 가운데 약 33%인 12조8359억원이 대기업의 몫이었다. 특히 큰돈이 걸린 조달사업은 민간시장에서 형성된 업계 순위, 즉 기업 규모에 따라 나눠먹는 풍토가 여전히 뿌리깊다.
정부가 소유한 정책금융기관의 지원도 대기업에 집중되고 있다. 지난해 산업은행, 정책금융공사,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들이 대기업에 대출과 투자, 보증을 한 규모는 모두 104조9677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세 기관 전체 금융지원액의 76.18%에 이른다. 정책금융기관들에서는 시중은행에 견줘 장기 저금리로 금융 지원을 받을 수 있고, 대규모 프로젝트 지원도 가능한 등 여러 이점이 있다. 수출을 하는 대기업들은 무역보험공사에서 지난해 183조2779억원의 보험 이용 실적을 보이기도 했다.
대기업 기준은 중소기업기본법에 따른 중소기업을 제외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과 중견기업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 수는 3053개로 사업체 기준으로 전체의 0.09%다.
0.09% 재벌’의 품에…정부의 ‘4종 선물 세트’
누구 말마따나 이제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기업은 정부에 “도와달라”가 아닌 “규제 완화”를 외친다. 국가의 도움은 필요 없으니 간섭이나 하지 말라는 얘기다.
하지만 가만히 놔두면 기업들끼리 경쟁하면서 스스로 잘 알아서 할 수 있다는 삼성과 현대, 에스케이, 엘지, 롯데 등 덩치 큰 기업들이 여전히 국가로부터 엄청난 지원을 받고 있다. 재벌 대기업은 과거 1960~70년대 ‘개발연대’의 최고 수혜자였다. 정부는 해외 차관이나 국민 저축, 세금으로 축적된 자본을 산업정책에 따라 이들 기업에 우선 배분했다. 이제 글로벌 경쟁력까지 갖춘 10대 재벌은 477조원이 넘는 사내 유보금을 쌓아두고 있다. 더이상 국가의 지원이 필요 없어 보이지만, 대기업은 여전히 커다란 빨대를 국가에 꽂고 수십조원의 예산과 수백조원의 금융 자원을 빨아들이고 있다.
소수 대기업에 건설 등 돈 되는 정부의 큰 일감이 몰리고, 정부의 전략적 금융자원 배분이라 할 수 있는 정책자금도 수출 대기업이 중심이다. 조건만 맞으면 반대급부 없이 주는 보조금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 연구개발(R&D)에서도 대기업의 이해와 필요가 중시되고 이들이 가져가는 예산 또한 적지 않다.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한 ‘세금 할인 혜택’(비과세 감면)도 대부분 이들의 차지다.
이뿐 아니다. 수출 제품이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원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고환율 정책 등도 내수 기업과 가계 등 다른 경제 주체에 손해를 끼치면서 정부가 대기업에 주는 특혜라 할 수 있다.
국가는 조세 수입과 지출 등으로 자원을 재분배하면서 국민경제의 균형점을 찾아간다. 정부가 꽤 오래전부터 이런 노력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여전히 소상공인이나 중소·중견 기업이 국가 자원에 접근하는 문턱은 높다. 반면 재벌은 덩치를 무기로 제한된 경쟁을 하거나, 아예 경쟁 없이 더 많은 국가 자원을 할당받는 기득권을 아직도 누리고 있다.
대기업 그것도 소수 재벌 중심의 한국 경제 구조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은 배경엔 민간시장 경쟁에서뿐만 아니라 공적 자원을 놓고 벌이는 쟁탈전에서도 대기업이 우선권을 갖는 요인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공무원 등 3천명 관리…‘눈먼돈’ 위해 로비 또 로비하라
ㄱ그룹의 나랏돈 받기 열전
공무원도 심사위원도 내편
뒷돈 뿌려 590억짜리 공사 수주
나랏돈을 지원받는 데 대기업이 기득권을 누리는 구조엔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킬 수 있는 조직과 돈이 있어서다. 이를 바탕으로 협회나 단체를 꾸려 자신들에게 유리한 논리를 확대 재생산하며 전문가와 언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 때론 편법과 불법을 써가며 국가자원의 배분을 결정하는 정부와 국회를 직접 움직인다. 이처럼 대기업이 나랏돈을 빼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아래의 글은 금호건설, 두산인프라코어에 대한 법원 판결문과 잠수함 탑재 장비 연구개발 관련 짬짜미, 4대강 사업 짬짜미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전원회의 의결서 등 사실을 바탕으로 해 가상의 기업 이야기로 재구성됐다. 또 대기업 임직원, 국회의원 및 보좌관, 기획재정부 공무원 등 다수의 이해관계자의 인터뷰도 반영했다. 이밖에 감사원의 금융공기업 경영관리 실태 보고서, 참여연대의 공직자 재취업 분석도 참고했다.
새벽 6시
“김일엽 교수입니다.”
ㄱ건설 영업팀 상황실의 홍성준 부장에게 전화가 왔다. 미리 6000만원을 건네준 ㅍ시청 공무원은 “김 교수”라고 말했다. ㅍ시청은 기업의 로비를 피한다며 심사 당일 새벽 4시에 ㅍ도시복합커뮤니티센터(공사예산 590억원) 설계적격심의위원회 평가위원을 선정했다. 하지만 돈을 받은 공무원은 선정이 끝나자마자 기업에 평가위원 이름을 알려줬다. 홍 부장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지’라고 혼잣말을 했다. 홍 부장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의 한 아파트 앞에 대기하고 있던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교수가 됐다. 계획대로 해.”
20분 뒤 ㄱ건설 직원은 설계적격심의위에 가기 위해 집에서 나오던 김일엽 교수 앞을 가로막았다. “교수님, 저희 회사에 좋은 점수를 부탁드립니다.” 김 교수에게 100달러짜리 지폐 400장(4만달러·우리돈 약 5000만원)이 든 가방을 건넸다. 이미 안면이 있는 직원이라 김 교수는 가방을 받아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김 교수는 이날 열린 심의위에서 ㄱ건설에 최고점을 줄 것이다. 홍 부장은 수주를 확신했다. “정부 돈은 먼저 먹는 게 임자지….”
오전 10시
사무실로 출근한 박선수 ㄱ건설 상무는 새벽에 ㅍ시청 수주 작업이 잘 진행됐다는 보고를 받았다. 박 상무는 2년 전에 만든 ‘지인관리시스템’이 효과를 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재계 수위권인 ㄱ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ㄱ건설은 2년 전 공사 수주가 급감했다. ㄱ건설은 공공기관에서 발주하는 대형 건설공사를 노리기로 했다. 정부 발주 공사는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발주하는 공사(턴키입찰)가 많다. 대기업은 이 공사를 수주한 뒤 실제 공사는 하청업체에 싼값에 나눠 맡긴다. 이 과정에 대기업이 먹는 이익이 커 정부 예산이 낭비될 우려가 많다고 비판을 많이 받았다. 박 상무도 이를 무마할 논리를 만들어 정부와 언론사에 뿌리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이런 틈에 ㄱ건설은 수주를 위한 ‘작전’을 짰다. 턴키입찰공사의 설계적격평가위원 자격을 가진 대학교수 및 공무원 등 3000여명을 관리하기로 했다. ‘직원 가운데 학연, 지연 등을 고려해 가까운 사람을 담당자로 지정해 관리하라.’ 회사 지시가 떨어지자 직원들은 회사의 지인관리시스템을 통해 로비 활동 내역을 정기적으로 보고했다. 풍부한 인적 네트워크와 자금력이 있는 대기업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박 상무는 홍 부장에게 평가위원 명단을 유출한 공무원에게 2000만원을 더 챙겨주라고 지시했다. 김 교수에겐 연구용역을 주라고 했다. 정부가 기업의 로비를 막으려 최근 심사위원 수를 줄이고 관리를 강화하려고 해, 이들과 더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홍 부장은 사전에 돈을 전달하지 않은 이아무개 대학교수에게도 백화점상품권 10만원권 100장을 만들어 1000만원을 전달하겠다고 했다.
낮 12시
박선수 상무는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점심약속 장소에 조금 늦게 도착했다. 이미 자리엔 ㄱ그룹 대관 담당 부장과 한 국회의원 보좌관이 앉아 있었다. 이 보좌관이 박 상무의 고등학교 후배여서 ㄱ그룹 부장이 함께 자리에 청했다. ㄱ그룹 부장은 최근 그룹 계열사에서 취급하는 ㅅ물품의 관세가 낮아지려 하자 국회에 와서 살다시피 하며 정보를 캐고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보좌관에게 “ㄴ그룹이 우릴 죽이려고 ㅅ물품 관세를 낮추려고 로비하고 있다니까”라고 말했다. ㄱ그룹과 사이가 안 좋은 ㄴ그룹은 최근 ㅅ물품 사업에 뛰어들어 경쟁 구도를 만든다는 소문이 돌았다. 관세를 낮춰 진입장벽부터 없앤다는 것이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밑에서 일하는 보좌관은 가만히 듣다가 “일단 기획재정부가 세제개편안 들고 오는 것을 봐야죠”라고 대꾸했다. 그 말을 들으며 박 상무는 ‘조세에 관한 파워가 기획재정부에서 국회로 넘어갔다’고 말한 한 대학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이미 국회는 기재부 세제실이 빠진 상태에서 여야가 합의해 소득세율을 올린 적도 있다. ‘경제민주화’가 화두가 되었을 때도 기업들은 국회의원의 움직임을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ㄱ그룹 역시 계열사별로 국회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있다. 법안이 비과세 감면과 조달 등 기업의 이익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전에 ‘창구’였던 협회에만 맡겨놓을 수 없다. 국회는 ‘시장’(마켓)이 됐다. 김 상무는 점심 자리가 파할 때쯤 보좌관에게 “이 일 끝나고 우리 회사로 오는 건 어때?”라고 한마디 건넸다. 보좌관은 웃으며 “요즘 많이 가긴 하대요”라고 말했다. 박 상무는 이 보좌관이 더 정보를 가져올 수 있는 게 ‘돈일까 일자리일까’ 생각이 들었다.
오후 5시
국회에서 돌아온 박 상무 사무실로 조현진 상무가 찾아왔다. ㄱ그룹 방위산업체에서 일하는 입사 동기인 조 상무의 얼굴은 어두웠다. ㄱ방위산업체는 경쟁 회사와 함께 2조7000억원 규모의 잠수함 연구개발 사업을 짬짜미했다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됐다. 공정위는 짬짜미에 참여한 4개사에 4억1700만원에서 26억7800만원까지 각각 과징금을 매겼다. 박 상무는 “어떻게 했길래 공정위에 걸렸냐”고 물었다. 조 상무는 “어떻게 하면 좋겠냐”며 털어놨다.
“잠수함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경쟁 회사 임원을 만났어. 그 임원에게 ‘수상함은 너희가 주간사가 되는 것을 인정할 테니 잠수함은 우리가 주간사가 되게 해달라’고 했지.” 무기를 개발해 국가에 납품하는 방산연구개발 사업은 그동안 전문화·계열화 제도가 있어 한 기업의 독점 사업이 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2009년부터 이 제도가 폐지되면서 방산업체들은 경쟁에 직면했다.
“출혈 경쟁이 불가피했어. 그래서 ‘수주 목표를 달성하고, 출혈 경쟁을 지양할 수 있는 협력이 최선의 방안’이라고 보고를 올렸지.” 조 상무는 “우린 그래도 ‘협력’이라 했는데 다른 회사는 ‘상호 독점적인 협력을 체결하여 제3자의 센서 분야 진입을 차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쓴 문건이 공정위 조사에서 나와버렸어.” 기업의 짬짜미는 정부나 국민이 더 많은 돈을 기업에 지급하게 만든다.
박 상무는 조 상무에게 “걱정 마라”며 정부 직접지원금을 유용하다 들통난 다른 회사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회사는 정부 연구개발 보조금 177억6500만원을 받아 이 가운데 77억400만원을 빼돌린 게 검찰에 적발됐다. 유죄를 받았지만 회사는 돈을 유용한 직원들을 감쌌다. 박 상무는 “정부 돈 받아다가 있는 기술 적당히 포장하고 다른 연구에 쓰는 게 관행이었잖아. 회삿돈 아낀 거니까 얼마나 좋아. 그 사람들 나중에 승진까지 했대. 너도 괜찮을 거야”라고 했다. 기업이 원하는 건 도덕이 아니다.
저녁 7시
퇴근 뒤 박 상무는 국책은행에 다니는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었다. 친구는 “요즘 한 대기업에서 감사로 오라고 해서 고민”이라고 했다. 박 상무도 그 기업이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자금줄을 쥔’ 금융기관을 향해 손을 뻗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친구 역시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눈치에 “퇴직 뒤에도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설득하는 기업의 말에 흔들리고 있었다. 헤드헌터 회사의 추천도 이미 내정자가 있는 ‘짜고 치는 고스톱’인 경우가 많다.
대신 친구는 “자리를 만들려면 아무래도 대출을 승인해주는 데 힘을 써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 역시 선배들이 퇴직하기 전에 대출 실적이 없던 업체에 갑자기 1300억~4000억원씩 대출을 승인해 준 사례를 본 바 있다. ‘저래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막상 퇴직 뒤에 그 업체에 안착한 선배 모습을 보며 ‘어쩔 수 없다’고 고개를 젓기도 했다.
박 상무는 씁쓸했다. 자신이 하는 일도 그렇지만, ‘나랏일 하는 게 좋다’던 친구 역시 기업에 의해 흔들리는 게 마음에 걸렸다. ‘좋은’ 친구가 이젠 기업에 ‘좋은’ 친구로 바뀌는 것을 그는 많이 봐왔다. ㄱ그룹 역시 국책은행 출신 임원들이 들어와 있다. 공적자금 지원을 받는 기업들이 늘면서, 경영을 감시한다는 명분으로 기업에 은행 출신 ‘낙하산’이 떨어지는 게 이상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박 상무는 “공직자 윤리규정엔 안 걸리냐”고 걱정했다. 친구는 “요즘은 바로 그 기업에 들어가지 않고 규모가 작은 계열사나 협력업체에 적을 두라고 하거든. 그러면 업무 연관성도 없고 걸릴 염려가 없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박 상무는 “눈먼 돈이 얼마나 많은지, 퇴직 뒤 자리를 찾는 공무원이나 세금을 내는 국민들이 모를 뿐”이라고 생각했다.
기업은 1000억원어치 상품을 팔거나 공사를 수주해 10억원을 남기거나, 법인세 감면이나 보조금을 받아 10억원을 받는 거나 같다. 박 상무는 건배를 청했다. “너도 그동안 봉사 많이 했잖아. 이제 돈도 벌어봐라.”
진흙탕 쇼트트랙과 ‘겨울왕국’의 권력자들 한겨레2.3
[파워엘리트 old & new] 겨울스포츠의 여왕과 왕
쇼트트랙 짬짜미 뒤에 있는 파벌싸움과 독선
그리고 겨울스포츠의 또 다른 권력자 김진선
지난 1월3~5일 경기도 고양시 어울림누리 얼음마루에서 열린 ‘제68회 전국남녀 종합피겨선수권대회’는 3천여 석의 입장권이 예매 시작 15분 만에 매진됐다. 이 대회가 유료 대회로 바뀐 건 불과 1년 전이다.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제67회 대회도 애초 무료 입장이었다. 그런데 김연아 선수가 출전한다는 소식을 접한 팬들로 인해 유료 대회로 바뀌더니 급기야 암표까지 등장했다. 1만5400~1만9900원짜리가 5만원, 심지어 10만원 이상에 거래되기도 했다. 당시 대한빙상경기연맹 관계자들은 “김연아의 팬들이 많이 몰리면 안전 문제에 신경 써야 해서 유료화했는데, 그래도 그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시청률 조사업체인 TNmS에 따르면, 1월4일 방송된 KBS2 중계방송(오후 4시58분~6시10분)은 전국 기준 7.7% 시청률을 기록했다. 특히 김연아 선수가 출전한 3분여 동안(쇼트프로그램은 2분50초)은 전국 기준 10.1%, 수도권 12.9%였다. 최고 1분 시청률은 김연아의 점수가 발표되는 순간으로, 전국 시청률은 무려 11.1%, 수도권에서는 14.4%까지 치솟았다.
김연아는 천부적인 자질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세계 정상에 올랐다. 김연아가 캐나다 밴쿠버 겨울올림픽 때 획득한 228.56점(쇼트프로그램 78.50, 프리스케이팅 150.06)은 사실 상상도 할 수 없던 엄청난 점수였다. 김연아는 은메달을 딴 라이벌 아사다 마오(205.50점)를 무려 23.06점 차로 제쳤다. 미국의 스포츠 전문 격주간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는 2010년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 10걸, 와 선정 ‘올해의 여자 선수’, 그리고 스포츠 아카데미도 올해 최고의 여자 선수로 김연아를 선정했다. 이후 김연아는 상업광고(CF) 등으로 매년 100억원 이상 벌어들여, 돈을 많이 버는 세계 여성 스포츠 스타 10명 안에 꼬박꼬박 들어가고, 한 번에 수억원씩 통 큰 기부도 하고 있다.
‘피겨여왕’ 김연아와 ‘여왕의 엄마’ 박미희
오늘날의 김연아가 있기까지는 8할, 아니 9할 이상이 어머니 박미희씨 덕분이었다. 박미희씨는 1996년 7월 김연아가 만 6살 때 집 근처에 문을 연 과천실내빙상장으로 김연아를 데려갔다. 결혼 전 잠깐 취미로 했던 피겨스케이팅의 기억을 되살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김연아는 과천실내빙상장에서 유종현 코치의 눈에 띄어 본격적으로 피겨를 배우기 시작했고, 신흥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선수생활을 시작해, 이제 올림픽 2연패를 눈앞에 둘 정도로 세계 피겨 역사의 전설적인 선수가 되려 하고 있다. 그동안 박미희씨는 마치 김연아의 그림자처럼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따라붙어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했다. 링크에서는 제2의 코치, 링크 밖에서는 매니저 또는 엄마가 되어야 했고, 때로는 친구가 되기도 했다.
김연아는 2000년대 들어 CF계의 아이콘이었다. 항상 CF 섭외 1순위였고, 김연아를 캐스팅하려는 회사들이 줄을 설 정도였다. 박미희씨는 김연아가 속해 있던 IB스포츠와 계약 기간이 끝난 2010년 5월1일부터 김연아의 매니지먼트를 전담할 주식회사 올댓스포츠(ATsports)를 설립해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김연아는 주주로 참여하도록 했다.
올댓스포츠는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 후배 박소연·김해진·김진서 등과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했다. 그 밖에 봅슬레이연맹, ‘제2의 손연재’라 불리는 천송이, 암벽여제 김자인 등과도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어 피겨 외의 종목에도 시야를 넓혀가고 있다.
1970년대, 피겨는 아니지만 한국 스피드스케이팅계에 깜짝 스타가 나타나기는 했다. 이영하는 1976년 1월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세계주니어 스피드스케이팅대회 남자 3천m와 5천m에서 1위, 1500m에서 2위에 올라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종합 2위에 그친 선수가 4년 뒤인 1980년 미국 레이크플래시드 겨울올림픽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 1천m, 1500m, 5천m 그리고 1만m 금메달을 독차지하면서 5관왕에 올라 동·하계 올림픽 사상 전무후무한 성적을 올린 미국의 에릭 헤이든 선수였다.
당시 이영하 선수의 기록을 보고 북한 선수 8명이 대회 출전을 포기한 채 되돌아갔고, 중국과 일본은 물론 유럽·미국 선수들도 이영하에게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이영하는 성인대회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금방 시들어버리고 말았다. 이영하는 에릭 헤이든이 5종목을 모두 석권한 레이크플래시드 겨울올림픽에 출전해 500m 19위, 1500m는 22위라는 참담한 성적에 머무르고 말았다.
한국의 겨울 스포츠는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 겨울올림픽에서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이 올림픽 정식 종목에 채택되면서 세계 수준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은 400m를 도는 스피드스케이팅에 비해 111.12m라는 좁은 링크를 도는 경기이기 때문에 다리가 길지 않은 아시아권 선수들에게 유리한데다, 당시 편해강 등 걸출한 지도자들이 있어서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들의 짬짜미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은 알베르빌 겨울올림픽에서 김기훈 선수가 남자 1천m와 5천m 단체전에서 2관왕을 차지하면서 한국에 겨울올림픽 첫 금메달을 안겨주었다. 이후 전이경, 안현수, 진선유, 채지훈 그리고 심석희에 이르기까지 세계 정상권 선수를 끊임없이 배출해오고 있다. 또한 한국이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까지 획득한 45개 메달 가운데 39개, 금메달 23개 가운데 20개가 쇼트트랙에서 나왔다.
그러나 올해 러시아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여자 쇼트트랙과 달리 남자 쇼트트랙은 고전을 면치 못할 것 같다. 내분이 문제다. 한국체육대학과 비한국체육대학의 파벌 싸움 때문에 쇼트트랙 사상 최고의 기량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안현수 선수가 러시아로 귀화해서 러시아 대표로 출전한다. 안현수 선수의 아버기 안기원씨는 쇼트트랙을 하는 안현수 선수의 막내동생마저 외국으로 귀화시켜야 하는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쇼트트랙은 세계선수권이나 올림픽에 나가기 위한 국내 선발전이 열릴 때마다 ‘짬짜미 파문’이 일어난다.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남자 1500m 등 2관왕 이정수와 남자 5천m 계주 은메달리스트 곽윤기 선수가 서로 짜고 경기를 치른 이른바 짬짜미로 자격정지를 받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정수·곽윤기 선수의 짬짜미 파문은 그동안 쇼트트랙계의 부조리가 모두 압축돼 있는 완결판이었다.
쇼트트랙에서 국가대표가 되면 겨울아시안게임이나 겨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이나 메달을 따서 남자의 경우 병역 면제 혜택과 평생연금이 보장되고, 여자 선수도 수많은 포상금과 함께 평생연금이 보장됐다. 그래서 국가대표 자리를 놓고 갖가지 불협화음이 일어났다. 툭하면 불거져나온 감독들의 선수 폭행도 이미 오래된 관행처럼 이어졌다. 지도자들이 손바닥과 주먹뿐 아니라 심지어 스케이트날 집, 하키 스틱 등 빙상장에 있는 모든 ‘흉기’를 동원해 10대 제자를 폭행했다. 선수와 지도자, 심지어 학부형까지 서로 패거리를 만들어 상대 패거리에게 온갖 해코지를 하는 것 역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한때 쇼트트랙을 학원 스포츠에서 영구 퇴출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태릉선수촌 입촌을 거부하기도 했다. 심지어 “라이벌 중국 선수들에게는 뒤져도 되지만, 상대 패거리 선수가 뒤에서 치고 나오면 같이 넘어져라”는 코치의 지시가 폭로되기도 했다.
짬짜미는 이정수 선수가 밴쿠버 겨울올림픽 직후 열린 ‘2010 세계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 발목 부상을 이유로 출전하지 않으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그때 이정수는 발목을 다치지 않았고, 코치들이 ‘부상 때문에 출전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사유서를 강제로 쓰게 했다고 폭로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이정수·곽윤기 두 선수와 전재목 코치를 조사한 결과, 밴쿠버 겨울올림픽 국내 선발전에서 짬짜미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정수와 곽윤기가 전재목 코치의 지시 아래 서로 밀어주기 경기를 해서 이정수가 밴쿠버 올림픽에 출전하고, 곽윤기 선수는 이어서 벌어지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대한체육회·문화관광부·대한빙상경기연맹이 함께 구성한 공동조사위원회는 2010년 4월22일 해당 선수에 대한 ‘자격정지 최소 1년 이상’, 쇼트트랙 부문 최고 책임자인 유태욱 부회장을 비롯한 대한빙상경기연맹 집행부의 자진 사퇴 등을 건의했다. 그러나 대한빙상경기연맹 상벌위원회는 선수들에 대한 징계 부분을 ‘자격정지 3년’으로 상향시켰다. 소치 겨울올림픽 대표 선발전에도 나설 수 없어서 사실상 선수 생명을 끊은 것이다.
그런데 두 선수의 징계는 얼마 뒤 ‘6개월 자격정지’로 대폭 완화됐다. 그해 5월 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날아온 전자우편 한 통 때문이었다. IOC는 대한체육회에 짬짜미 내용과 밴쿠버 겨울올림픽의 연관성, 대한체육회의 입장 등을 물어왔다. 대한체육회와 대한빙상경기연맹은 발칵 뒤집혔다. 잘못하면 밴쿠버 올림픽에서 이정수·곽윤기가 올린 성적(금메달 2개, 은메달 2개)을 박탈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2018년 겨울올림픽 유치에도 영향을 받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당시는 평창 겨울올림픽을 유치하기 전이었다).
해결 방법은 이정수·곽윤기 선수가 이의신청을 하고, 두 선수의 징계를 대폭 경감해주는 것밖에 없었다. 두 선수는 대한체육회에 이의신청을 냈고, 대한체육회 법제상벌위원회는 기다렸다는 듯이 2010년 7월20일 두 선수의 자격정지를 3년에서 6개월로 경감했다. 상벌위는 두 선수가 짬짜미를 했지만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국위 선양에 크게 기여했고, 현재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사실상 수개월 동안 선수생활을 하지 못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했다고 밝혔다.
빙상연맹의 미봉책과 성추행 파문
지난 몇 해 동안 쇼트트랙에서는 갖은 불상사가 있었지만 대한체육회와 대한빙상경기연맹은 미봉책으로 일관해왔다. 파벌 싸움과 그로 인한 폐해를 잘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방치해왔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오직 올림픽 금메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여성 선수 성추행 파문은 예고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2012년 여름 자신이 가르치던 소속팀의 한 여제자를 성추행하려 했던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의 A코치가 지난해 4월 국가대표 코치로 선임된 사실이 최근 밝혀져 논란이 일어났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해당 코치를 태릉선수촌에서 퇴촌시키고 상벌위의 진상 조사를 거쳐 처벌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늑장 대처에 나섰다.
이에 대해 장명희 전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 등 빙상계 원로들은 지난 1월14일 기자회견을 열어 “상벌위원회에 문제의 B교수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상벌위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모두 B교수에 속해 있는 사람이다. 상벌위를 백번 해봐야 소용없다. 정당하게 판정할 수 있는 사람을 포함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성토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의 고위 임원이기도 한 B교수가 김재열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이 협회 일에 별로 관여하지 않는 사이 연맹에서 막강한 힘을 행사하고 있으며, 심지어 상벌위에도 입김이 닿기 때문에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B교수는 한국 쇼트트랙 초창기에 알베르빌, 릴레함메르 올림픽 같은 국제대회에서 빛나는 성적을 내는 등 빙상계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도자와 선수 선발 등 갖가지 이해관계가 있을 때마다 독선적인 행동과 투명하지 못한 행정 처리 등으로 빙상인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한국의 겨울 스포츠는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개최로 정점을 찍을 것 같다. 한국은 1948년 제5회 스위스 장크트모리츠 겨울올림픽에 스피드스케이팅의 최용진 감독과 이효창·문동성·이종국 선수가 태극기를 앞세우고 처음으로 출전했다. 이후 1992년 알베르빌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로 사상 처음 종합 10위에 올랐다. 또한 2006년 토리노(7위), 2010년 밴쿠버(5위)에 이어 이번 소치 올림픽까지 세 대회 연속 종합 10위 이내의 성적을 노리고 있다. 홈에서 열리는 평창 올림픽에서는 금·은·동 도합 20개의 메달로 사상 최고의 성적인 종합 4위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겨울 스포츠 또 다른 권력자 김진선
한국은 2011년 7월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IOC 제123차 총회에서 겨울올림픽 개최권을 따냈다. 당시 평창은 첫 번째 투표에서 독일 뮌헨(25표)과 프랑스 안시(7표)를 압도적으로 따돌리고 절반이 넘는 표(총 95표 중 63표)를 얻었다. 한국은 앞선 두 번의 유치전에서 1차 투표 1위를 하고도 2차 투표에서 역전패를 당했다.
평창이 3수에 성공한 요인은 그동안의 실패 사례를 철저히 분석한 덕이었다. 구체적으로는 IOC 위원들을 유형별로 나눠 접촉했다. 위원별 파일을 적게는 3장에서 많게는 10장까지 만들어 맞춤식 접촉을 시도했다. 그들의 취향과 성향 등을 분석해 구체적으로 작업했다. 현장 프레젠테이션도 김연아, 나승연, 토비 도슨 등 맞춤 연사를 배치해 IOC 위원들의 표심을 자극했다.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이후 과연 누가 올림픽 준비위원장이 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평창 겨울올림픽 이후 한국 스포츠계에는 그만큼 큰 이벤트가 없기 때문에 준비위원장에 오른 인물은 향후 한국 스포츠계를 대표할 가능성이 컸다. 1순위 후보로는 정책의 연속성을 고려해 조양호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위원장이 꼽혔다. 2순위에는 2014 인천 아시안게임, 2002 부산 아시안게임 초대 준비위원장이 모두 대한체육회장이었다는 이유로 박용성 당시 대한체육회장이 거론됐다. 3순위로는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위원회 특임대사였던 김진선 전 강원도지사가 올라 있었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조양호 유치위원장이었다. 조 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유치위원장이 조직위원장을 이어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운을 뗐다. 그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을 뿐이라며 한발 뺐지만, 민감한 시기에 공개적으로 언급한 사안이라 파장이 확산됐다. 조 위원장은 또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스포츠 전문가보다는 경영 전문가가 조직위원장에 적합하다”며 “국제 감각을 지닌 기업인이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체육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임명하는 조직위원장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예산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다. 정부와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는 인물이 선정돼야 한다”며 스킨십과 소통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2014 인천 아시안게임과 앞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초대 조직위원장은 모두 김정길, 김운용 당시 대한체육회장이 임명됐다”며 박용성 당시 대한체육회장을 염두에 둔 발언을 했다. 또 다른 대한체육회 관계자도 “올림픽 조직위원장은 IOC와 수시로 접촉해야 하는 자리다. 그런 점에서 국가올림픽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대한체육회 회장이 가장 적합한 인물이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유치위의 한 관계자는 “겨울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 행사가 아니라 국가의 종합행정이다. 전반적인 국가 정책 흐름을 파악하고 수준 높은 국제 감각과 인적 네트워크를 갖춘 인물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급기야 기존 3명 외에 이명박 정부에서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한승수 전 총리의 이름이 새로 등장했다. 한 전 총리는 강원도 출신으로 주미대사와 외교통상부 장관, 국무총리를 역임했으며 2005년에는 2014 평창 동계올림픽유치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들도 잇따라 한 전 총리에 무게를 두는 발언을 했다.
조직위원장 인선과 관련한 주무부처는 문화체육관광부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통령실과 긴밀히 의논하면서 제2차관 산하 체육국을 중심으로 올림픽조직위원회(OOC) 구성을 위한 실무 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결국 조직위원장 자리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최종 낙점했다. 김진선씨였다.
김진선씨는 이후 박근혜 대통령 취임 준비위원장을 지내고 평창 겨울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연임하면서 김연아와 함께 겨울 스포츠의 최고 권력자로 군림하고 있다. 정치인이나 관료 출신 조직위원장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스포츠계도 최고권력자에 의해 위원장이 좌지우지되는 현실이다. 승승장구하는 김진선씨를 보면 박근혜 정권이 이명박 정권의 ‘6년차 정권’이 아니냐는 말이 실감난다.
글 기영노 모든 스포츠를 좋아하다보니 우리나라 최초의 스포츠평론가가 되었고, 아마 평생의 직업이 될 것 같다. 많은 방송에서 전파로 날아간 내 목소리가 너무 허무해 글(책)을 쓰기 시작해서 <재미있는 스포츠 이야기>(가나), <올림픽의 어제와 오늘>(주니어 김영사) 등 25권을 썼다.
I Shall Be Released - Too M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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