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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1.26~20 이러면 안되는 거잖아요 -변한 기 없다

by 이성근 2014. 1. 26.

 

 1.24 한겨레-내일

 1/24 국민-경향

 

1/24 한국 -주간경향 1/28 

 

 

 

 

 1/23 경향 -한겨레

 

1/23 국제-내일  

 

1/23-22 한국 

 

1/22 경향-한겨레  

1/22 내일-한국  

1/22 국제-한국  

1/21내일 -국제 

1/21 한겨레-경향 

 

1/21 주간경향 2판4판  1/20 경향

 

1/20 한겨레-국민 

 

1/24~25 경향 장도리

 

장병윤 칼럼] '1%를 위한 역사'의 실패 125 국제

 

만약에 '교학사 한국사'가 다수 채택됐더라면 어땠을까. 그랬어도 집권세력이나 보수우익들이 한국사 교과서 검정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을까.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선택 결과를 놓고 그들이 보여준 반응은 어처구니없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연일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외치고, 교육부는 화답이라도 하듯이 편수조직 부활이란 꼼수를 내놨다. 자신들이 그토록 밀어붙이던 교학사 교과서가 교육 현장에서 외면당하자 평소 경원해마지 않던 '떼쓰기'의 진수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교학사 한국사를 선택한 학교가 1800곳 중 단 한 곳에 그쳐 0.06%의 채택률을 기록한 것은 그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동안 범우익 세력이 총궐기하다시피하며 기존의 한국사 교과서를 좌편향으로 몰아붙이고, 정부는 교학사 교과서를 신주단지 모시듯 감싸고 돌았는데 허무하게 무너지다니…. 보수언론까지 무더기로 나서 색깔공세도 마다않았는데 현장에서 처절하게 외면당할 수가. 그야말로 '멘붕의 충격'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국민들의 상식이 결코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역사교육을 허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우리 국민들은 친일과 독재에 대한 역사적 잣대만큼은 엄격하다. 이러한 국민들의 정서에 전쟁을 선포하고 나선 것부터 불경이었던 셈이다.

그들은 교학사 교과서가 등장한 뒤 다른 교과서에 대해 친일과 독재의 어두운 역사를 기록했다며 자학사관이라고 폄하했고, 심지어는 북한체제와 김일성을 찬양했다며 있지도 않은 사실을 들먹이며 좌편향 딱지 붙이기를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사 교과서들은 학계가 객관적 시각으로 축적해온 엄정한 역사기록이다. 결코 스스로를 업신여기는 자학사관이 될 수는 없다. 일제강점 36년의 질곡, 분단과 독재의 그늘을 딛고서 경제적 정치적 성취, 이 땅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빛나는 역사를 누가 부끄럽게 여기겠는가. 허리띠를 졸라맨 성실과 근면 위에 교육을 동력 삼은 민족적 역량이 비약적 경제발전을 이루고 민주화까지 쟁취한 사실은 자랑스러운 역사다. 일제에 빌붙어 부귀영화를 누렸던 친일세력이나 국민을 억압하고 기만했던 독재집단이나 덮고 싶은 불편한 과거가 아닐까.

우리에게 역사란 무엇이고, 또 역사를 통해 무엇을 배울 것인가. 지난 시간의 잘못을 되새기고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가 역사기술의 정신이고 역사교육의 역할이다. 과거의 잘못을 미화하거나 감추려는 것은 역사를 속이는 일이며 다시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자는 거나 다를 바 없다. 우리가 일본의 우익 역사교과서를 비판하고 경계하는 이유 또한 그렇다. 침략의 역사를 부인하는 것도 모자라 정당화하는 그들의 역사왜곡에 분개하면서 친일을 합리화하기 위해 일제침략까지 근대화로 바라보는 빗나간 시각은 대체 무엇인가. 어렵사리 정립한 우리 근현대사에 딱지를 놓고 폄훼하는 행태의 이면에 도사린 속셈은 무엇일까. 해방 뒤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 주류로 온갖 부와 권력을 누려온 기득권 세력, 이른바 1%를 위해 잘못된 과거를 치장하고 왜곡시키려는 것 아닌가.

한국사 교과서 채택 결과를 놓고 여당과 정부, 기득권층은 자성해야 한다. 앞뒤 안 가리고 밀어붙였던 우익 교과서가 왜 교실에서 거부당했는지를 살피는 일이 먼저다. 기본틀조차 갖추지 못한 왜곡과 부실투성이 교과서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다고 무리하게 교육현장에 투입하려 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어쨌든 지난해 9월 여당 중진 김무성 의원이 '역사교실'이라는 모임을 만들고 좌파와의 역사전쟁을 선포하면서 매카시적 공세가 판쳤다. 교과부는 함량 미달의 우익 교과서를 구하기 위해 다른 교과서에도 물타기 수정을 요구하고, 온갖 특혜를 제공했지만 국민들로부터 외면 당했다. 그게 역사교과서 사태의 본질이다. 그런 점에서 여당의 교과서 국정화 주장이나 교육부의 편수조직 부활은 게임에 지자 판을 뒤엎겠다는 심보와 다를 바 없다. 국민들의 심판 결과를 무시하고 패자가 멋대로 심판을 바꾸겠다는 것은 참으로 낯 두꺼운 일이다. 이번 역사전쟁의 결과를 살아 있는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마땅하다.

 

 

 

벌써부터 안철수에 소리치는 언론들 “야권연대 하지마” 1.22미디어오늘

[비평] 야권연대는 ‘절대악’인가?…정치의 본질적 문제 외면하고, ‘보수승리’만 바라봐

 

 

21일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제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월 신당 창당을 공식 선언하면서 다가온 6월 지방선거에서 안 의원 측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역시 그 관심의 대상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2010년의 사례처럼 야권이 선거연대를 이룰 것이냐에 맞춰있다.

22일 주요 일간지들은 안철수 신당이 가시화 된 소식을 내보냈다. 그런데 이날 일간지 가운데 사설과 칼럼 등으로 안철수 신당에 조언 혹은 충고, 나아가 경고를 하는 일간지가 있어 주목된다. 조선일보·동아일보·세계일보가 사설을 썼고, 중앙일보는 김진 논설위원이 칼럼을 썼다.

해당 신문사의 공식 입장인 사설을 통해 특정 정치세력을 언급하는 일이 드문 일은 아니나 대체로 ‘발생한 사건’에 대한 비판 혹은 격려 정도지 향후 방향에 대한 훈수를 두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이들 신문사들의 입장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야권 연대를 하지 마라”

동아일보의 사설이 그렇다. 동아일보는 22일자 <안철수 신당 미래 결정할 6·4 지방선거> 사설에서 “정당의 존재 목적은 다양한 공직에 구성원들을 진출시켜 자신들이 추구하는 비전과 이념을 실현하는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안 의원 측이 6월 지방선거에서 17개 광역단체장 후보를 내겠다고 천명한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이어 “공천을 하기도 전에 ‘이번에는 우리가 양보 받을 차례’라며 특정 지역에서 민주당의 양보를 거론하거나 야권과의 연대를 기대한다면 존립 기반을 허무는 자충수”라며 “야권연대 같은 정치 공학에 의존해서는 안철수 현상을 극복하기 어렵다”고 충고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20일 자사가 보도한 안철수 의원의 ‘박원순 양보론’을 두고 안 의원 측을 비판하는 칼럼을 썼다. 그러나 이에 대해 새정치 추진위원회 금태섭 대변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실제로 (박원순 시장이든 누구든 안 의원이) 양보하라고 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는 22일 <‘안철수 신당’ 무대 첫 공연이 안·박 ‘양보’ 기싸움인가>에서 “많은 사람들의 눈길은 안 의원이 박원순 서울시장과 벌이고 있는 ‘양보’ 기 싸움에 더 쏠려있다”며 “두 사람이 서로 양보하라면서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을 보면 그런 ‘정치 드라마’라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정당이 정강과 정책을 세우고 정상적인 과정을 통해 후보자를 공천해 유권자의 심판을 받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라며 “아름다운 듯했던 안·박 두 사람의 갈등을 보면서 정치의 기본을 벗어나는 행동은 어떤 대중적 ‘감동’으로 포장하더라도 정도가 아닌 사도라는 평범한 진실을 다시 확인한다”고 주장했다.

어조의 차이는 있지만 두 신문은 분명 안철수 신당을 향해 야권연대를 하지 말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이 정치의 기본이고, 야권연대를 이루는 것은 ‘한국정치의 병폐’이며 ‘정치공학’이라고 주장이다.

정치의 기본은 공약의 이행인데, 이들 언론이 자꾸 대통령에게 공약 이행을 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것은 둘째 치고, 정치적 연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주로 내각제를 채택한 국가에서 연정이 이어지고 있지만 지난 2010년 야권의 입장에서 지방선거 연대는 비교적 성공적인 사례였다.

물론 그 평가는 다를 수 있고 유권자들의 선택도 다를 수 있다. 2012년 총선에서도 일부 야권연대가 이뤄졌지만 유권자들은 새누리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2012년 대선도 마찬가지다. 각 정치세력은 각자의 판단에 맞춰 선거전략을 꾸리면 된다. 이를 선택하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그런데 아직 선거전이 돌입되기도 전에 야권연대에 대해 일방적 비난을 퍼부으면서 안철수 의원 측을 향해 비판을 혹을 훈수를 두는 것은 뭔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두 언론의 주장의 근거가 새누리당의 주장과 일치한다는 점은 ‘기분 탓’이라고 해도, 마치 야권연대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겁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이날 <양보라니, 정치가 라면인가> 칼럼에서 “단일화는 원칙적으로 편법이자 정치왜곡”이라고 말한다. 이유는 “후보를 안내기 때문”이다. 묻지마 야권연대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정치적 연대라는 말이 이렇게 맹비난을 받을 만 한 단어인지는 의문이다.

김진 위원은 “선거연대는 정치적 선택의 문제라는 주장도 많다”며 “이는 정당정치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어 “국고를 받으면 정당은 자유로운 민간 결사체가 아니라 공동체의 의무를 지켜야 하는 공공의 존재가 된다”고 말한다. 선거연대가 ‘공동체의 의무’를 해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정당이 선거 승리를 위해 목을 매는 것은 한국정치 구조가 ‘승자독식’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30%의 지지만 받아도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면 70%의 의사가 무시되는 선거제도가 한국정치의 진정한 병폐다. 그런데 이들 언론들은 그런 지적 없이 ‘야권연대’가 병폐라고 한다.

이들 언론들은 현재 선거제도에 대해 관심이 없다. 보수세력의 장기집권에 현행 선거제도가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야권연대가 ‘국민을 기만한다’고 주장한다. 1+1 수준의 현재 야권연대가 보기 껄끄러울 수 있지만 사실은 야권연대가 아닌, 야권의 승리에 더 겁이 나는 것 아닐까.

 

 

회복되지 않는 박정희 씨의 명예 14.1.21 프레시안

[오홍근의 ‘그레샴법칙의 나라’] <94> 박근혜 대통령의 오산(誤算)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측근 한 사람이 2012년 대선 전, “박근혜 후보가 정치에 입문한 것은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였다”고 실토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사실 여부를 놓고 말들도 있었으나, 그간의 대통령 행적을 살펴보면 ‘그건 맞는 말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 개인 생각으로는 ‘좋은 5·16 쿠데타’나 ‘좋은 유신’이나 ‘좋은 긴급조치’는 아닐지라도, 아버지는 ‘온 몸을 바쳐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사신 분’이라고 온 국민들에게 외치고 싶을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의 불명예를 씻어내고 싶을 것이다. 물론 사적(私的)인 권력욕에 사로잡힌 독재자였다고는 절대 동의하지 않을 듯싶다. 그 때문에도 그녀는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런 조짐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부터 엿보였다. 그렇게 판을 짜 갔다. ‘박정희 신봉자’인 윤창중 씨를 기용하더니, 유신헌법을 기초하고, 아버지와 공안통치에 손발을 맞추던 김기춘 씨를 비서실장에 앉혔다.

 

아버지의 부하였던 4성장군의 아들을 장관에 임명했고, 역사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승만 씨와 박정희 씨에 대한 ‘보는 시각’을 확실히 ‘손질’할 수 있는 인사를 국사편찬위원장에 등용했다. 난데없는 새마을 예산이 등장하더니, '경제혁신' 3개년 계획까지 나왔다. 박정희 씨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연상시키는 조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지 세력들이 10년 동안의 민주정부 기간을 ‘종북좌빨 통치기간’이라 나팔을 불어댔다. 박정희 씨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보탬이 된다고들 생각한 것 같다. 대통령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사정없이 거꾸로 돌렸다. “1970년대 유신시대로 가는 거 아니냐”는 투덜거림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으스스하다”는 소리에 이어 “안녕들하십니까”라는 절실한 문안 인사가 사회에 만연되기 시작했다.

 

‘박정희 식 통치방식’이 고개를 들었다. ‘문제’가 생기면 억눌러 해결하고자 했다. 술수까지 동원했다. 심각한 양상으로 떠오른 대선 부정사건도 NLL 논란을 일으켜 덮어보려 하다가, 검찰총장 목 자르고 수사검사 찍어내기로 호도해 갔다. 소통은 애당초 있지도 않았다. 불통 일변도 속에 장관들은 지시를 수첩에 받아 적기에 정신이 없다고 했다. 그런 비정상 속에서, “정상화 하자”는 공허한 목소리가 나온 데 대해서도 정상과 비정상을 분간 못하는 정권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대통령은 길을 잘못 접어든 것 같다. 우리가 보기에 지금 가는 길은 아버지의 명예회복과는 거의 상관이 없는 길임이 분명하다. 오히려 박정희 씨의 불명예를 구체적으로 부각시키며 명예를 훼손하는 길로 보인다. 첫 단추부터 그랬다. 사람들은 일찍 알아 차렸다. 윤창중 씨와 김기춘 씨의 임명을 보면서 사람들은 쿠데타와 유신과 긴급조치와 인혁당 사건을 떠올렸다. 다 박정희 씨의 불명예였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전인 2010년 9월 5·16 쿠데타와 유신과 인혁당 사건 등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까지 했던 터였다. 국사편찬위원장과 국정교과서 문제도 그렇게 고집스럽게 밀어 붙일 일이 아니었다. 박정희 씨의 친일 행적, 특히 혈서를 쓰면서까지 일왕에게 충성 맹세를 했던 사실과, 그렇게 일본군대에 입대했던 일본군 장교 다카키 마사오 이야기를 찾아내 네티즌들은 SNS를 통해 부지런히 퍼 날랐다. 그의 과오를 덮기 위해 역사 교과서 물 타기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부각시켰다.

 

교학사 국사교과서를 채택한 학교가 전국에 단 한군데도 없다는 사실도, 박정희 씨의 친일 행적을 덮어 보려는 이 정권의 역사적 사실 ‘왜곡시도’에 대한 반발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정부 여당은 시민단체 등의 ‘외압’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지만 사실은 그게 움직일 수 없는 도도한 민심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른바 종북좌빨 논란도 박정희 씨에게는 엄청난 ‘명예 실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공약으로 4대국 보장론을 역설한다. 미국·일본·중국·소련 등 4대국으로 하여금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케 하자는 탁월한 논리였다. 김 후보의 인기는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후보를 간발의 차이로 추격하고 있었다. 이때에 박정희 후보가 하나의 카드를 꺼내든다. 김대중 후보를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는 “빨갱이”로 몰아대기 시작했다.

 

중국과 소련의 도움을 받는 발상은 빨갱이가 아니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논리였다. 그때부터 DJ는 죽는 날까지 빨갱이가 되었다. 유명을 달리한 지금도 DJ는 일부 계층 인사들에게는 빨갱이로 남아있다. 그러나 1971년 DJ의 4대국 보장론은 40년이 지난 오늘날 남북한까지 합석하는 6자회담이 되어 우리 앞에 자리 잡고 있다.

 

진짜 ‘빨갱이’는 박정희 씨였다. 박정희 씨는 해방 직후 남로당의 군부 책임자였다. 육군 소령으로 체포돼 군사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분명한 적색분자’가 그의 전력이었다. 체포된 뒤 남로당에 가입한 동료들의 명단을 밀고하며 전향한 대가로 형 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복직도 되었다.

 

그런 그가 사상문제로 체포된 적도 없고, 유죄판결 받은 적도, 따라서 전향한 적도 없는 DJ를 빨갱이로 밀어 붙이는 파렴치한 종북몰이를 했다. 그는 집권기간 중 그 누구도 자신의 과거에 대해 입도 뻥끗하지 못하게 했다. 1970년대 초 〈크리스쳔 사이언스 모니터〉지의 엘리자베스 폰드(Elizabeth Pond) 특파원은 박정희 씨의 과거를 언급한 ‘죄’로 남한 입국을 금지 당하기도 했다.

 

그가 원조가 된 종북좌빨 타령에 신물이 난 사람들 중 누군가 어느 날 박정희 씨가 빨갱이였음을 증명하는 귀중한 기록을 찾아내 세상에 까발렸다. 1963년 대통령 선거 이틀 전인 10월13일 민정당 윤보선 후보 측이 폭로한 내용을 보도한 동아일보 호외 사진이었다. 문제의 호외는 발행되자마자 당시 군부에 의해 압수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호외에는 1949년 2월18일 군법회의에서 박정희 씨가 무기징역을 언도받은 내용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과도한 종북몰이가 부메랑이 되어 대문짝만한 사진과 함께 세상에 알려졌다. 지금이야 그 호외 사진 보도 못하게 할 수도 없다. 구체적인 사실이 부각된 참혹한 명예훼손이었다. 요컨대 박정희 씨의 명예는 회복되지 않았다. 진실이 감춰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며칠 전 이번에는 바다 건너 미국에서 박정희 씨 부녀의 명예가 미국인들에게도 훼손돼 강조되는 사실보도가 나왔다. 유력일간지 <뉴욕타임즈>가 ‘정치인과 교과서’라는 사설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뒤틀린 역사관’을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 <뉴욕타임즈>는 우선 아베 총리에 대해 “위안부 문제를 교과서에서 지우길 원하고 난징 대학살도 축소해 기술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친일파 인사들의 친일 행각이 물 타기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했다. 곁들여 오늘날 한국사회의 주류인사들은 다수가 일제 때 친일하던 사람들의 후예라고 강조한 <뉴욕타임즈>는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씨가 식민통치 기간 중 일본군의 장교였으며, 1962년부터 1979년까지 한국의 독재자였다”고 보도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적 사실 축소 기술’ 희망이 아버지 때문임을 짙게 암시했다.

 

사설은 “교과서를 개정하기위한 두 나라 정상의 위태로운 시도는 역사의 교훈을 훼손하려는 위협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통령과 대통령 아버지에 대한 비판인 만큼 정부는 발끈했다. 이례적으로 외교부와 교육부 등 복수의 정부부처가 나서 “사실과 다르다”고 목청을 높였다. 여당의 실세 의원까지 해당 언론을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 땅의 기자들은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고 있는데도, 남의 나라 언론이 예리하게 분석해 냈다고 말들을 한다.

대통령은 아버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그토록 노심초사하고 있는데도, 오히려 훼손돼 가고 있는 까닭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진실은 덮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명예회복’이라는 ‘의도’에 맞게 역사 교과서 내용까지 어찌어찌 해보려하는 지 모르지만, 이념에 맞도록 진실을 조작해서는 안 될 일이다. 무리한 명예회복 시도는 과욕일 뿐이다. 부작용이 나오게 되어있다.

 

대통령에게는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제 와서 박정희 씨가 일본군 장교 출신이었고, 적색분자였으며, 독재자였다는 역사적 진실이 바뀔 수는 없다. 이제부터라도 박근혜 대통령은 생각을 고쳐먹어야 한다. 힘들겠지만 정치인 박정희 씨와는 작별을 하는 게 좋다. 지금 주변에 짙게 드리워져 있는 박정희 씨의 냄새도 과감히 제거하는 게 옳다. 뒤돌아보는 정치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멀리 미래를 보는 당당한 정치에 매달려야 한다.

 

 

 

한국사회의 5가지 폐단, 비정규직을 만들다 122 프레시안

[조성복의 '독일에서 살아보니'] 사회정의란 무엇인가 ④

 

제50회 한국보도사진전 시사스토리 부문 최우수상 - 둘 중 한명은 비정규직, 누구일까요

 

두 노동자가 나란히 섰다. 비슷한 복장에 같은 자세다. 이 가운데 한 명은 정규직이고 다른 한 명은 비정규직 노동자다. 시민의 눈은 누가 정규직이고, 누가 비정규직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 외모나 체격, 실력이나 학력차, 뒷배 따위가 정규직과 사내하청의 운명을 가른 게 아니기 때문이다. 소임도, 능력도, 나이도 비슷한 탓이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아닌 자를 말한다. '아닐 비(非)'의 함의는 크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거나 짧은 시간만 일하거나 특정 기간만 쓰이고 버려지는 게 비정규직 노동자의 운명이다. 이런 삶을 살아내야 하는 노동자가 전체(1800만여명)의 절반에 육박하는 895만명(49%)에 이르는 것으로 노동계는 파악한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비정규직은 인간적 숙명이라기보다는, 고도화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신자유주의가 깊숙이 침투하는 과정에서 생긴 상처일 뿐이다.  (한겨레 박종식 사진기자 )

자본과 노동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기업들의 국제적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경쟁력의 강화 차원에서 언제든지 해고가 가능한 노동 시장의 유연화를 요구해 왔고, 그것이 관철된 결과가 바로 비정규직의 증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주로 노조에 의해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나 신규로 노동 시장에 진입하려는 사람들이 해당한다. 국가도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이를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일정 부분 이를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간단히 말해 기업은 정규직이 아닌 노동자들의 값싼 노동력과 그들에 대한 손쉬운 고용과 해고를 통해 경쟁력을 유지하겠다는 발상인데, 바로 이것을 바꾸는 것이 비정규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핵심 과제라고 생각한다.

독일에서는 기업들이 경기 침체 등으로 어려움이 닥쳐왔을 때 먼저 종업원을 해고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 혁신이나 단축 조업 등을 통해 그 난관을 뚫고 나간다. 그래서 경영인들은 대체로 존경을 받는 편이다. 반면, 우리의 기업들은 어려움이 닥치면 우선적으로 구조조정 등을 통해서 종업원을 대량 해고하는 것으로 위기를 극복해 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것은 경영자가 종업원에게 자신의 책임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행동이다.

1990년대 초반 한 유통 업체에서의 경험은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당시 24시간 편의점 사업이 막 시작되는 시점이었는데, 회사는 이를 위해 많은 사람을 뽑았다. 그런데 회사가 이 체인화 사업을 직접 경영하는 것이 여의치 않게 되자, 회사가 취한 행동은 그 인원들을 정리 해고하는 것이었다. 그 일을 처리한 부장은 일거에 상무로 승진하여 미국으로 1년간 연수를 떠났다고 들었던 것 같다.

우리 사회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은 이유는 그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서 고치려고 하지 않고, 매번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에 대해서만 단순히 임시처방으로 때우고 넘어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어느 특정 그룹만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사용자, 정규직, 정부, 비정규직 등 우리 모두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동일노동, 대우만 달라…비정규직 차별, 사용자와 정규직의 담합

첫째, 현재의 경제 활동에서 충분한 이익을 얻고 있는 사용자들이 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하면서, 동시에 비정규직의 열악한 상황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버리는 정책의 결과가 비정규직 문제이다. 다시 말해 비정규직의 노동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몫을 착취하여 그중 일부를 정규직에게 나누어 주고 나머지는 자신들의 이익으로 챙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평가가 가능한 이유는 비정규직은 점점 더 살기 힘들어지는 반면, 사용자와 정규직은 점점 더 풍요로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는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현실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으며, 오히려 자신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그것을 불가피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들이 말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일반적으로 업무 능력이나 직무에 따른 차별 대우는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야 사람들이 능력 향상을 위해 노력을 하고, 조직이나 기업이 발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따라서 차별을 하는 것은 누구도 공감하기 어려운 일이다. 특히 하는 일이 같거나 차이가 없을 때 또는 모순되게도 더 어렵거나 힘든 일을 하면서도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열악한 대우를 받는 것은 더욱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따라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대우는 사용자와 정규직 노동자의 명백한 횡포이자 보이지 않는 담합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우리 정부는 비정규직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매우 무책임하게 기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라는 미명 아래 자신의 국민들이 차별을 당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독일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를 방해하기 위해서 파견 노동자의 임금을 현지 노동자와 동일하게 하도록 하는 법을 만드는 것일까? 기업들이 다수 사회 구성원들의 희생을 담보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을 모른 체하는 일은 사회정의의 차원에서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이러한 문제는 수치로도 증명이 가능한데, 우리 정부의 노동 시장에 대한 공공지출은 2008년 기준 GDP의 0.49%로 OECD 국가들의 평균인 1.37%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였다. 이는 재정 배분의 우선 순위가 크게 잘못된 것으로 정부가 그 책임을 제대로 다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기업에서의 비정규직 존재도 문제이지만, 국가 기관의 공무원, 초중고 학교의 교사, 대학의 교수 등 사회적 공공성을 띠는 곳에서 비정규직을 만들어 차별하는 것은 훨씬 더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 차별에서 오는 피해는 그 서비스를 받는 모두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기 때문이다. 또한 기업처럼 직접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에서, 동일한 일을 하는 데 서로 차별을 둔다는 것은 여러모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국가인권위원회가 일부는 정규직으로, 그 상담원들은 비정규직으로 구분하여 운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똑같은 학생들에게 똑같이 수업하는데 기간제 교사와 일반 교사를 구분하는 것, 마찬가지로 대학에서 같은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는데 교수와 강사를 차별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폭주하는 양극화…비정규직 노동자의 정치세력 필요

셋째, 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 의식 결여도 문제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화하면서 기존의 노사 갈등은 점차 노노 갈등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러한 불공정한 상황을 전체 노동자의 관점에서 개선하려고 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확대에만 우선적으로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의 직장’이니 ‘귀족 노조’라는 말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그러한 시각을 바꾸지 않고 동일한 일을 하는데 임금을 차별하는 한, 또 노사 협상이나 노사정 협상의 자리에 비정규직이 참여하는 것을 계속해서 거부하는 한, 노노 갈등을 포함한 사회적 갈등은 앞으로 점점 더 커질 것이 확실하다.

넷째, 비정규직에 속하는 사람들의 연대 정신 부족도 이 문제를 지속시키는 한 가지 이유가 될 것이다. 많은 비정규직이 서로 협력과 연대를 통해 차별을 시정하고 자신들의 지위를 개선하려는, 즉 현재의 시스템을 바꾸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자신만 정규직으로 넘어가면 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들 각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를 조직적으로 해결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것이 훨씬 더 크고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조금만 참으면 정규직으로 바꿔주겠다"는 사용자 측의 달콤한 유혹이나 "당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 비정규직인 것이다" 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능력 있는 사람은 성공한다"는, 언론들의 잘못된 이데올로기 유포도 한몫한다. 이것이 비정규직의 단결을 저해하는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3번의 끼니를 때운다. 부자라고 해서 더 많은 끼니를 먹는 것은 아니다. 한 끼를 아무리 잘 먹더라도 다음 끼니를 거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점에서는 누구나 동일하다. 다만 빈부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그 한 끼 식사의 품질이 다르다는 정도이다. 한편에서는 한 끼에 3000원짜리 밥을 먹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3만 원짜리 밥을 먹는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최소한 누구나 끼니를 거르지는 않도록 국가나 사회가 보장할 수 있어야 흔히 말하는 ‘공동체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은 이것조차도 부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난한 사람들 또는 사회적 약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3만 원짜리 식사를 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3000원짜리 식사지만 좀 더 안정적으로 하고 싶다는 것인데, 3만 원짜리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안정적인 식사를 위하여 3000원의 식사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비정규직 문제라고 생각한다. 과연 이러한 사회가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을까?

우리사회에서 사회정의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이제 비정규직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나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이 문제들을 그대로 방치하여 양극화가 점점 더 심화될 경우, 우리 모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훨씬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다가서고 있지만, 그것들은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처럼 사회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어려운 까닭은 현 체제에서 혜택을 보고 있는 기득권층의 적극적인 저항에서부터 소극적인 외면이나 무관심 등이 그 주요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기존의 체제 내 경쟁에서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막대한 보상이 주어지지만, 그러한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하려는 사람에게는 자원이나 보상이 거의 주어지지 않는 점도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큰 문제이다. 여기에는 주로 기득권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대다수 언론의 책임도 크다.

또 다른 이유는 사회적 의견을 취합하는 정당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을 대변하고자 하는 정치 세력이 부재한 상황이다. 따라서 그러한 정치 세력의 등장을 막고 있는 기존의 선거 제도를 시급히 바꿔야 한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어떻게 해서든지 그 힘을 조직화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 세력을 반드시 만들어내야 한다.

 

 

교황, 다보스 참석자들에게 “부의 불평등 문제 해결” 촉구 1.22한겨레

다보스 포럼’에 편지 전달…“가난한 사람들 고통에서 구해내야”

“평등에 대한 요구는 성장보다 중요하며 인류 최상의 비전” 강조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계경제포럼(WEF)인 다보스 포럼에 참석한 2500명 이상의 세계 기업 지도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전세계적인 “부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21일(현지 시각) 인터넷 매체 가톨릭 온라인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편지에서 “인간은 부를 창조해야 하지만 부에 의해 지배돼서는 안 된다”며 “부의 불평등으로 고통받는 가난한 사람들을 구해내야 한다”고 밝혔다. 교황의 편지는 이날 저녁 정의와 평화를 위한 교황청 위원회 회장인 피터 터크손 추기경이 대신 읽었다.

교황은 이어 “평등에 대한 요구는 경제 성장보다 더 중요하며, 인류 최상의 비전”이며 “더 평등한 분배, 더 나은 고용과 복지를 실현하기 위한 결의, 체계와 과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전세계적으로 소득 불균형에 따른 사회적 불안감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WEF는 개회에 앞서 발행한 ‘글로벌 리스크 2014’ 보고서에서 이 문제를 가장 비중있게 다룬 것으로 전해졌다. 사회적 불평등은 1980년대 이후 급속히 확대됐지만, 세계 지도자들이 논의해야 할 안건으로 처음 제시됐던 시기는 금융위기가 시작됐던 2008년부터이다.

2010년대 들어서서 일자리 부족 등 ‘희망 없는 사회’ 속에서 좌절을 경험한 젊은 세대들의 반발이 지속됐고, 태국과 브라질 등 전세계 곳곳에서 반정부 시위가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다.

한편 영국의 국제 빈민구호단체 옥스팜은 지난 20일 보고서를 통해 세계 갑부 85명의 재산 규모가 전세계 인구 절반인 35억 명의 재산과 비슷한 등 빈부 격차 문제가 매우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부자 85명의 재산, 세계 인구 절반의 재산과 동일1.22한겨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85명이 전세계 70억 인구의 절반가량에 해당하는 가난한 사람들과 맞먹는 부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개발도상국 주민들의 삶과 공정무역 거래, 의료와 교육을 돕는 국제구호단체인 옥스팜은 21일(현지 시각) 세계경제포럼 제44차 연차총회를 위해 스위스 다보스에 온 파워엘리트를 겨냥한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의 불평등 심화에 대처하고, 부자만이 최고의 교육과 의료체계에 접근할 수 있는 미래를 막아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보고서는 또 세계의 1% 안에 드는 부유층의 재산은 110조 달러(약 11경 7천183조여 원)으로 35억 명의 전 세계 가난한 계층보다 65배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다며 이런 경제적 자원 집중은 정치 안정을 불안하게 하고 사회 긴장을 조성한다고 지적했다.

옥스팜의 위니 바니아 총장은 “21세기에 전세계 인구의 절반이 열차 객실 하나에 다 앉을 정도의 소수 사람들이 가진 것 정도의 재산밖에 없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라며 “선진국에서의 부의 불평등은 민주주의를 저해하고 후진국에서는 부패를 조장한다”고 말했다.

옥스팜의 보고서는 아울러 세계경제포럼에 참석자들에게 세금 회피를 하지 않고 자신의 재산을 이용해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개인적 서약을 하라고 촉구했다.

대기업은 왕, 국민은 봉…기막힌 공공요금 인상1.21 노컷뉴스

공공요금 인상 뒤의 비정상적인 먹이사슬

박근혜 정부가 새해 들어 공기업 개혁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각 부처 장관들이 산하 공기업 사장들을 불러모아놓고 호통 치는 모습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흡사 부처(장관)는 포청천, 공기업(사장)은 죄인 같다. 그러나 공기업은 정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수족과도 같은 존재였다. 공기업이 망가진 것은 상당부분 정부 정책의 실패 때문이라는 주장이 그래서 나온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말이 있다. 뇌사 상태인 환자의 손발만 수술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공기업 수술이 성공하려면 진단부터 옳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기업 개혁은 산으로 갈 수 밖에 없다. CBS노컷뉴스는 공기업 개혁의 올바른 방향과 방식을 제시하는 기획보도를 진행한다. [편집자 주]

 

삼성전자는 재작년 23조 8,000억 원의 당기 순이익을 냈으면서도 전기료 1,500억 원을 감면받았다.

정부가 ‘산업용고압’ 전기 요금을 원가보다 낮게 책정한 덕에 일본의 기업들이 내는 수준의 56%를 할인받은 것이다.

이런 식으로 최근 3년간 대기업 20곳이 할인받은 전기요금은 2조 731억 원. 반면 한전은 7조 3,00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해 전기요금을 5.4% 올린 데 이어 추가 인상을 검토 중이다. 정부가 대기업에 혜택을 주느라 많은 희생을 유발시킨 것이다.

가천대 홍준희 교수는 “우리나라 대기업은 전기를 OECD 평균의 절반가격에 제공받고 있으면서 이로 인해 공기업인 한전의 재정적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며 “이것은 다시 국가 재정을 어렵게 만들고 가계 부분에도 어려움을 주면서 최종적으로 기업에게도 내수 축소라는 부작용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기요금은 지난 정부에서 물가를 억제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동결한 측면도 컸기 때문에 올리는 것 자체는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전기사용량 가운데 주택용은 13.6%에 불과한 반면 산업용은 50.4%에 이르기 때문에 가정용 전기요금은 올려봐야 큰 도움이 안 된다.

이에 대해 홍 교수는 “가정용 전기요금 체계는 마른 수건이라면 산업용 전기요금 체계는 젖은 수건 상태”라며 “수건을 짤 때 마른 수건 보다는 흥건히 젖은 수건을 짜야 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철도요금도 문제다.

화물노선의 경우 운송료가 적정원가의 60%에도 못 미친다. 철도 전체노선 평균 원가 78.8%보다 훨씬 낮다. 수출물류기업, 정유사, 시멘트 회사 등 화물노선의 주요 고객인 대기업들을 도와주기 위해 정부가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코레일의 영업손실을 보면 물류철도에서 4,305억 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코레일의 영업적자 규모가 매년 4,000억 원~7,000억 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적자의 대부분이 이 곳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이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는 다른 철도 운임을 인상해야 한다. 코레일도 올해 철도 요금 5% 인상을 내부 목표로 정해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기업 때문에 생긴 적자를 일반승객에게 전가하려는 속셈이다.

고속도로 요금도 그렇다.

경인고속도로의 경우 68년 건설돼 통행료를 징수할 수 있는 30년이 이미 경과한 데다 투자비의 2배가 넘는 통행료를 회수한 상태라 통행료를 받는 것이 옳지 않다. 그러나 한국도로공사는 한 해 평균 300억 원 정도의 통행료를 거두고 있는 경인고속도로의 무료화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도로공사의 만성적인 경영난 때문이다. 도로공사는 무리하게 도로 건설 사업을 벌이다 이명박 정부 5년간 금융부채만 7.6조 원이 증가해 이 기간 5.7조 원의 이자비용을 날렸다. 정부가 건설경기 부양을 위한 투자 확대의 목적으로 무리하게 도로를 건설한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최근 10년간 준공된 도로 이용률이 예측 대비 39.4%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여기에 민자고속도로 정책도 공사 경영에 타격을 줬다.

한국도로공사 관계자는 “비수익 노선은 국민의 이동권 보장과 국토 균형발전을 위해 건설하니까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 쳐도 수익노선을 민자에게 몰아주는 것은 문제다. 지난 10년의 도로 정책은 돈 되는 건 모두 민자에게 주는 것이었다. 도로공사의 재무구조가 안 좋아질 수밖에 없는 또 다른 구조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최근 취임한 김학송 사장은 “고속도로 통행료를 인상해 부채를 해결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도로공사 역시 통행료의 원가 보상률이 낮아 요금을 현실화 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그러나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우지 않고 국민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해서는 곤란하다. 공공요금 인상을 검토하기 전에 국가 재정정책을 바꿔야한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사회공공연구소 김철 연구위원은 “공공요금 인상이 국민 부담으로 직결되는 부분을 최소화하려면 원가보다 낮게 책정돼서 그동안 이득 얻었던 사람이 뱉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 일괄적으로 공공요금을 인상할 것이 아니라 각 분야마다 어떤 쪽에서 원가보상으로 혜택을 봤는지 먼저 따져본 뒤 거기에 맞게 요금을 현실화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기업 '복지잔치'는 끝났다…모든 혜택 축소하거나 폐지

앞으로 공공기관의 장기근속 휴가와 포상, 사내근로복지기금 무상지원, 양육수당 등 모든 복지 혜택이 대폭 축소되거나 폐지된다. 공공기관에 대한 강도높은 자구(自救) 노력을 요구하고 나선 정부는 최근 '공공기관 방만경영 정상화계획 운용 지침'을 295개 공공기관에 내려보냈다. 정부가 마련한 '공공기관 방만경영 정상화계획 운용지침'에는 퇴직금과 교육, 보육비, 의료비, 경조사비, 기념품, 휴가·휴직, 복무행태 등 9개 분야에서 40개가 넘는 가이드라인이 자세히 명시돼 있다.

정부는 이 지침에서 '공공기관의 과도한 복리후생 여부는 일차적으로 국가 공무원의 복리후생 수준을 기준으로 판단한다'고 못박았다. 공공기관 복리 후생 수준을 국가 공무원 수준으로 맞추라는 얘기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은 의무교육 대상인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비, 방과후 학교비는 물론 자녀 영어캠프비용, 학원비 등 임직원 자녀들의 사교육비를 지원할 수 없다.

자녀 대학입학 축하금 지급과 대학생 학자금 무상지원도 없애야 한다. 영·유아 보육료 또는 양육수당도 공공기관 예산으로 일절 지원할 수 없게 된다. 창립기념일이나 근로자의 날에 상품권, 선불카드처럼 사실상 현금과 같은 물품도 기념품으로 줄 수 없다.

장기 근속자에 대한 기념품 지급과 포상, 안식휴가도 없어진다. 퇴직예정자에게는 기념품을 줄 수 있지만 순금, 건강검진권, 전자제품 등은 안 된다. 병가는 공무원처럼 연간 60일(업무상 질병·부상은 연 180일)로 제한된다. 체육행사나 문화·체육의 날은 원칙적으로 근무시간이 아닐 때 해야 한다. 직원과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단체 상해·화재보험도 별도 예산이 아닌 직원들에게 지급되는 복지포인트로 들어야 한다.

직원의 개인 연금 비용을 보태줘서도 안 된다. 사내근로복지기금의 무상지원 역시 안 된다. 주택자금, 생활안정자금의 무이자 융자가 금지되며 시중금리 수준의 이자를 받아야 한다. 업무상 재해로 인한 사망, 정년퇴직 등 이유를 불문하고 직원 가족을 특별채용하는 것 또한 금지된다. 가족 및 전직 직원 자녀에 대한 가산점 부여 등 우대 제도도 없어진다.

공공기관들은 이 같은 지침을 반영해 올해 말까지 방만경영을 해소하는 분기별 실행계획을 3월 말까지 모두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이에 따라 석유공사는 방만경영의 대표사례로 꼽힌 자사고·특목고 자녀에 대한 수업료 전액 지원을 없애기로 했다. 한국전력도 공무원보다 1~2일 긴 경조사 휴가일수도 줄일 계획이다. 다른 공기업도 이에 준하는 자구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디어오늘 비평 노무현’이 미워 ‘변호인’의 흥행 이해 못하는 조선·동아 1.23

칼럼 통해 “노무현은 공산주의 변호”, “성공한 대통령 아니었다” 강조 …

‘1차원적 전제’ 아쉽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영화 <변호인>의 흥행에 적잖이 당황한 것 같다. 개봉 당시에는 흥행여부를 관망하다 <변호인>이 천만 관객을 모으고 역대 한국개봉영화흥행 순위권에 오르자 간부들이 직접 영화비평에 나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여론과 군사독재에 대한 비판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의도로 보이는데 근거가 빈약하다.

조선일보 김창균 부국장은 22일 칼럼 <부림 사건의 두 가지 얼굴>에서 극 중 송우석 변호사(송강호 분)의 실제 모델인 노무현 변호사가 부림사건 피고인들이 권유한 서적을 읽었다며 “피고인들이 담당 변호사를 의식화하는 데 성공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속물 변호사가 피고인들에게 휘둘렸다는 뉘앙스를 주기 위해 ‘의식화’란 단어를 고른 것이다.

고문으로 위축된 국밥집 아들 진우(임시완 분)를 두고는 “부림사건 피고인들은 재판정에서 사회주의 이념을 당당하게 설파했다”고 주장하며 “영화는 왜 이렇게 피고인들을 왜소하게 그려냈을까. 피고인들에 대한 연민을 이끌어내는 한편 경찰·검찰·판사가 합작으로 용공 혐의를 조작한 것처럼 만들어 분노의 스파크를 일으키자는 계산을 했음직하다”고 주장했다.

김창균 부국장은 영화 속 노무현의 ‘존재감’에 대해서도 “부림사건 변론팀에서 보조적 역할을 맡았을 뿐이어서 당시 수사 검사였던 사람들은 노 변호사의 존재 자체를 기억하고 있지 못하다”라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는 이어 “영화 속 이야기가 100% 진실인 양 선전 공세에 활용하는 것도 안 될 일”이라며 “영화는 영화로 놔두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영화를 영화로 놔두지 않는 것은 김 부국장 자신이다. 이날 칼럼은 부림사건 판·검사의 주장을 담은 20일자 <사실 비틀고 미화…부림사건 판·검사 영화 ‘변호인’을 반박하다> 기사와 이하원 조선일보 정치부 차장이 “좌파 담론이 주류인 문화예술계”를 비판한 같은 날 칼럼 <보수가 주목해야 할 ‘변호인’>에 이은 공세의 연장이다.

동아일보도 변호인 공세에 가세했다. 배인준 동아일보 주필은 22일자 칼럼 <노무현 아닌 송강호>에서 “부림사건 피의자들이 변호사 노무현을 좌경의식화 시켰고, 그것이 노무현 정치의 뿌리를 형성했다”고 밝히며 고영주 당시 부림사건 수사검사 말을 인용해 “노무현은 인권변호사가 아니라 공산주의를 변호한 것밖에 안 된다”고 주장했다.

부림사건은 1981년 공안당국이 사회과학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교사·회사원 등 22명을 영장 없이 체포해 불법 감금하고 고문해 혐의를 조작한 사건으로 훗날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조선·동아는 역사적 사건의 가해자라 할 수 있는 수사검사의 입을 빌려 30년이 넘은 사건을 또 다시 왜곡하며 민주주의를 유린한 군사독재의 만행을 사실상 옹호했다.

동아일보는 “이 영화(<변호인>)는 전형적인 상업영화다. 선은 극단적으로 선하게, 악은 극단적으로 악하게 그린다. 이런 신파 구도는 복잡한 진실과 인과를 담을 수 없다. 제작사는 허구라고 밝혔지만 형식적인 발뺌의 장치일 뿐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잘 짜인 상업영화에 미화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상품으로 잘 팔렸다는 뜻이다.

이는 배 주필이 “진짜 노무현은 영화 속에 있지 않다. 노무현은 2009년 5월 29일 부엉이바위의 비극에 이르기까지 국민과 세계가 현실 속에서 보아온 그 인물”이라며 영화관을 나온 관객들이 노무현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하는 부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결코 동원으로 이뤄낼 수 없는 천만 관객이란 숫자 앞에서, ‘노무현’이란 상품이 잘 포장됐다고 인정해야만 지금껏 노무현에 대한 비판·비난을 퍼부어온 자사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보수언론의 안타까운 모습이다.

보수언론의 이 같은 방어적 칼럼은 영화를 본 관객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옹호할 것이라는 전제에 기초한다. 그러나 이는 관객들을 무시하는 단편적 시선이다. <변호인>의 흥행은 시대의 정서에 비춰봐야 한다. 국가기관이 대통령선거에 불법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고, 주류언론이 대통령에게 찬양일색의 보도를 하는 상황에서 1981년은 2013년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역설적으로 위로가 되었다.

영화는 ‘다시 노무현이 살아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낭만적 바람이 아니라, ‘우리는 왜 1981년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했는가’라는 성찰적 물음을 남긴다. 영화의 흥행은 지난해 12월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던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노무현이 나온 영화가 흥행하면 노무현에게 유리하다’는 1차원적 전제에 머무르니 칼럼에 발전이 없다. 이와 관련 한겨레신문은 21일자 사설에서 <변호인>에 대한 보수언론의 칼럼을 두고 “영화 속 진실조차 두려운 자들의 비겁한 변명”이라 비판하기도 했다.

그런데 비겁한 변명의 ‘수준’마저 안타깝다.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주간은 23일 칼럼 <‘변호인’의 요트와 고문>에서 “요트를 즐기는 장면까지 담았더라면 영화적 재미를 살리는 데 더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적었으며 “영화에서 꽤 길게 이어지는 잔혹한 고문 장면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고문 사실은 맞지만, 고문장면이 길게 이어지는 것이 불만이라는 투였다.

 

황호택 논설주간은 이어 “나는 노 변호사가 자루에 담을 정도로 돈을 벌고, 나중에는 인권변호사로서 이름을 높인 성공한 변호인이었을지는 몰라도 성공한 대통령이었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이 영화를 이용해 노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쪽이 정치적인 힘을 결집하려 든다면 영화 속 사실과 허구를 분명하게 가려줄 필요가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그런데 황호택 주간의 생각과 달리 영화를 본 그 누구도 노무현을 추억하며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변호인>을 두고 조선·동아가 보여준 일련의 칼럼은 독일 나치당의 선전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가 2차 대전 당시 거리마다 붙였던 다음의 구호를 떠올리게 한다.

“복수는 우리의 미덕, 증오는 우리의 의무.”

 

 

자영업,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다 121 주간경향

ㆍ월 평균 영업이익 187만원 불과… 절반 이상은 가처분소득 100만원도 안 돼

 

최인규씨(가명·39)는 불과 3주 전까지만 해도 한 가게의 사장이었다. 하지만 2013년이 저물 무렵 2년간 운영해온 커피전문점도 함께 정리했다. 일자리 없이 새해를 맞은 최씨는 창업 이전 전공을 살려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의 단기계약직으로라도 들어가려고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에서 자영업자를 거쳐 비정규직까지, 평균소득이 낮은 쪽으로 연이어 미끄러지는 중이다.

임금노동자 가구와 소득격차 더 벌어져

최씨는 꼭 10년을 IT업계 소프트웨어 개발분야에서 일했다. 그는 회사를 그만둘 때 동료들이 농담 섞어 건넨 말들을 잊지 못한다. “공대 나와서 눈 빠지게 (컴퓨터 프로그램) 코딩하면서 10년 야근한 뒤엔 결국 사장된다고, 치킨집 사장.

이런 얘기 많이 했는데, 내가 회사 나올 때도 동료들이 ‘그래도 치킨집은 아니네’ 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젠 치킨집이건 커피숍이건 자영업자로 사는 것보다 어디라도 직장에 들어가 있어야 돈을 더 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최씨의 소득은 2년 전 퇴직 무렵을 정점으로 커피전문점을 연 지난 2년 동안 끝없이 미끄러져 내렸다.

노동자보다 자영업자의 벌이가 못하다는 건 최씨만 겪는 현상은 아니다.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국민계정 통계자료에 따르면 가장 최근인 2012년 자료 기준 노동자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437만원인 데 비해 자영업자 가구는 357만원으로 큰 격차를 보였다. 소득 기준으로 하위 40% 이하에 해당하는 월평균 소득이 217만원 이하인 ‘생계형 자영업’ 가구는 145만 가구에 이르고 있다.

중소기업청의 조사 결과에서도 자영업자의 저소득 추세는 재차 확인됐다. 전국의 자영업자 1만49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의 2013년 월평균 매출액은 877만원으로 3년 전인 2010년보다 113만원(11.4%) 감소했다. 전체 매출액 877만원 가운데서 임대료와 인건비, 재료비 등을 빼고 남은 영업이익은 187만원에 불과했다.

자영업자의 절반 이상은 이마저도 벌지 못하고 월평균 가처분소득이 100만원도 안 된다는 자료도 나왔다. 2012년 국세청에 소득을 신고한 개인사업자 395만명 가운데 56%인 221만명이 월평균 소득 100만원 미만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 조사의 응답자 중 82.6%가 창업 이유를 생계유지를 위해서라고 들었지만, 실제 소득과의 괴리는 더욱 커지고 있는 셈이다.

소득은 계속 줄고 빚은 점점 늘어나

자영업 가구의 소득이 노동자 가구보다 낮아진 것은 지난 10년간 자영업 소득이 지속적으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소득은 소폭이나마 상승했지만 같은 기간 자영업 소득의 경우 오히려 하락한 것이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5년간 자영업자들의 연평균 실질소득 증감률은 -1.7%였고,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1.5%를 기록했다. 이에 비해 같은 기간 노동자 가구의 평균소득은 각각 4.3%, 3.4% 증가해 양쪽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됐다. 자영업자의 소득 감소는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에는 -6.8%, 2009년에도 -2.2%를 기록하며 위기로 인한 타격을 고스란히 입은 양상을 보였다.

자영업자들의 소득은 지속적으로 줄어든 대신 전체 가계부채에서 자영업자의 대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늘어나는 추세다. 쉽게 말해 줄어든 소득을 메우기 위해 빚으로 사업장을 운영하고 가계를 꾸리는 것이다. 최씨 역시 2년 만에 커피전문점 영업을 포기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는 빚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처음 가게를 열 때는 퇴직금 등 목돈이 충분해서 대출 없이 개업할 수 있었다. 때문에 월 매출이 적더라도 매출규모에 맞춰 살자는 생각이었는데,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임대료와 인건비에 비해 매출이 턱없이 못미치니까 늘어나는 적자를 메우려면 어쩔 수 없이 빚으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최씨는 영업 마지막달에 와서 한 달 매출보다 그 달의 대출이자와 상환액이 더 큰 것을 보고서야 문을 닫을 결심을 했다.

전체 가계부채 가운데 자영업자 대출의 비중은 2010년 36%에서 2011년 38%, 2012년 39%로 꾸준히 높아져 왔다.

자영업자의 1인당 대출액은 지난해 3월 말 평균 1억2000만원으로, 임금노동자 1인당 대출액 4000만원의 3배에 달했다. 국내 4대 시중은행에서 자영업자에 대출한 대출총액은 2013년 말 현재 105조6000억원으로, 1년 전에 비해 8조3000억원(8.5%)이 증가했다.

빚의 규모뿐만 아니라 부실 위험성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영업자의 빚 가운데 부실위험이 있는 잠재위험 부채는 60조7000억원에 달해 전체 가계부채의 6%를 넘어섰다.

상환방식 등 대출의 성격도 자영업자의 대출이 임금노동자에 비해 위험성이 높았다. 자영업자는 만기가 오면 한꺼번에 갚는 일시상환 방식의 대출 비중이 39.3%로 임금노동자(21.3%)보다 월등히 높았다.

가처분소득에서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율 역시 2012년 기준 26.3%로 1년 전에 비해 3.2%포인트 상승했다. 정규직 노동자의 17.2%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다. 이에 따라 연체율 역시 높아지는 불안한 양상이다. 은행을 포함해 제2금융권까지 2곳 이상의 기관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 자영업자의 연체율은 2010년 말 0.84% 수준에서 지난해 3월 말 1.34%로 크게 높아졌다.

자영업의 위기는 가계대출의 부실위험을 높이는 결과 외에도 장기적으로는 비정규직과 같은 서민계층의 동반 몰락까지 가져올 수 있다. 2013년 8월 기준 최저임금에 못미치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전체의 11.4%인 209만명에 달하는 현실은 이들 가운데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정규직 고용 영세사업장의 영업환경이 큰 몫을 하기 때문이다.

경기도 부천시에서 의류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강호석씨(51)는 새해 인상된 최저임금에 따라 직원들에게 급여를 주는 게 적지않은 부담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이 법으로 정해져 있으니까 그만큼이라도 주는 건데, 솔직히 최저임금이 내가 줄 수 있는 최고임금이다. 시급을 더 쳐주고 싶어도 영업이 안 되는 상황이라 매년 최저임금에 묶일 수밖에 없다.”

강씨는 두 명의 직원에게 정확히 최저임금 액수만을 지급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지난해에 비해 350원 오른 5210원으로 적용하면서 강씨의 인건비 부담은 임금인상률인 7.2%만큼 오른 셈이 됐다.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강씨가 인건비와 임대료, 유지비 등을 제하고 매달 집으로 가져가는 돈은 300만원 안팎이다.

때문에 강씨는 자신의 노동시간과 급여를 받지 않고 일하는 아내의 노동시간을 더해 계산하면 최저임금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하소연을 할 정도다. “대기업들보다는 우리 같은 영세업자들이 최저임금과 더 관련 있지 않나. 최저임금 지킬 수 있게 나라에서 장사할 여건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3년 이내 폐업률 46.9%나

자영업의 위기는 결국 장기간 지속돼 왔던 자영업자 증가세를 꺾었다. 2013년 11월 기준 전국의 자영업자는 566만7000명으로 1년 전보다 3만6000명 줄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같은 기간 고용률이 59.7%에서 60.4%로 상승하며 전체 취업자가 58만8000명 늘어난 것과는 대비되는 상황이다. 전체 취업자 가운데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2009년 말 30%에서 2013년 27.2%로 줄었다.

 

5인 미만 사업장의 비율이 높은 한국 자영업계의 특성상 자영업자의 감소는 사업장 폐업으로 직결된다. KB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1년 이내 폐업한 자영업 사업장이 18.5%, 3년 이내 폐업한 곳이 46.9%를 차지했다.

특히 생계형 자영업자의 비중이 높은 음식점의 폐업률은 3년 이내 폐업이 52.2%를 차지할 정도였다. 유정완 KB금융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내수경기 부진에 따라 소득여건이 악화되면서 자영업자의 비중이 감소하고 있다”며 “반면 자영업자의 대출은 늘어나고 있어 자영업 가구의 금융 안정성에 대해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영세 자영업자들의 경우 사업장을 닫은 이후의 소득을 보장할 방안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2011년 실업상태일 경우 급여를 지급하는 고용보험에 자영업자도 가입할 수 있게 법제가 마련됐지만 가입률은 매우 저조하다.

2011년 기준 5인 미만 자영업 사업주의 국민연금 사업장 가입 비율은 7.1%, 건강보험 사업장 가입 비율은 7.2%, 고용보험 가입 비율은 5.9%, 피고용자가 있는 사업장의 산재보험 가입 비율은 24.7%에 그쳤다. 특히 고용보험은 자영업자 스스로 자진폐업할 경우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부실한 영세 자영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자영업 보호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더불어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을 갖추는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김병권 부원장은 “2000년대 들어 자영업자 영업이익은 고작 1.5%밖에 늘지 않았고 기업은 10.2%가 늘었으니 당연히 기업과 자영업 가계의 소득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 부원장은 “자영업 고용보험은 1년 이상의 최소가입규정, 자진폐업 시 실업급여 혜택이 없는 점 등이 현실적 제약 요건이 되고 있으므로 자영업의 현실적 조건에 맞게 이런 제약 요건들을 완화하고 고용보험 비용도 정부의 보조를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울 과잉시대의 사회적대책 결핍128 주간경향 1061호

ㆍ감정을 상업화하면서 ‘상품’들만 쏟아져… 우울증에 취약한 빈곤층 치료는 소홀

 

한국 사회에서 우울증 환자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증가추세도 가파르다. 2012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등록된 요양기관의 진료건수는 2007년 248만건에서 2011년 334만건으로 5년 동안 38.9%나 증가했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학과 교수는 그의 책 <자살론>에서 “이 같은 통계는 한국에서도‘우울증 패러다임’이 확장됨으로써 정신과 병원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로 하자가 없다”고 말하며 “또한 ‘우울’이 이 시대의 정념이라든가 ‘자아’들의 감성적 상황을 나타내는 가장 강력한 표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료”라고 말했다.

현대사회에서 ‘우울’은 두 가지 맥락으로 쓰인다. 의학적 질병으로서의 ‘우울’과 일상적 감정으로서의 ‘우울’이다. 이 두 개의 맥락은 뚜렷이 구별되기보다는 혼재돼 있다. 천 교수는 이러한 상황을 ‘우울증 패러다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우울증 패러다임’에는 양면이 있는데 실제로 의학적 진단 기준에 따라 우울증이라는 정신질환이 증가하는 상황이 우리 사회에 실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실체에 ‘담론’이나 ‘패러다임’이 가미가 되면서 현상이 더 커지게 된 것이 또 다른 단면이다”라고 말했다. 심각한 사회문제로서 의학적 질병인 우울증이 증가하면서, 동시에 이와 함께 ‘우울’이라는 코드가 일상에서 과도하게 사용되는 측면 또한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울증이라는 ‘실체’와 우울이라는 감정의 ‘코드’가 혼재하면서 ‘우울’에 대한 사회적 대응이 엇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질병으로서의 ‘우울증’에 대한 적극적 대응책은 마련되지 못한 채 ‘우울’이라는 감정 코드를 겨냥한 ‘상품’들만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울’이 상업화·상품화되면서 한국 사회가 우울증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보여지는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2000년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돼 왔던, 공인되지 않은 기관에서 우후죽순격으로 심리상담 자격증을 남발하는 것은 이러한 상업화의 한 단면이다. 미술심리치료, 음악심리치료 등 각종 심리치료가 유망 직종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도 이러한 흐름을 보여준다.

질병의 우울과 감정의 우울이 혼재

<감정자본주의>를 쓴 에반 일루이즈는 서구사회에서 우울증을 극복하고 사회적 성공을 약속하는 심리치료가 이미 거대한 산업이 되어 있다고 말했다. 에반 일루이즈가 말한 ‘감정자본주의 사회’는 자아를 병적인 대상으로 인식하게 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를 치유하고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받기를 강요하는 사회다.

독일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학의 한병철 교수는 그의 책 <피로사회>에서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어떤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성과 주체는 자기 자신과 전쟁상태에 있다. 우울증 환자는 이러한 내면화된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군인이다. 우울증은 긍정성의 과잉에 시달리는 사회의 질병으로서,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인간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서 우울을 극복하게 해준다는 각종 치유산업이나 테라피산업은 블루오션 시장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비단 서구의 상황만은 아니다.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학과 교수는 “‘우울하다’는 감정은 상품화된다. 거기에 대한 해결책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상태 자체를 상품화시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대개의 상품들은 일종의 심리의 테크닉을 이야기해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심리학이 철학의 자리를 대체했던 것이 미국인데, 한국은 미국을 그대로 따라간다. 심리치료는 심리학의 방법론이라고 볼 수 있는데, 심리치료가 대중화되면서 세속적인 버전으로 한국에 들어온 것이 자기계발과 힐링이다”라고 말했다.

현대인들이 ‘우울’이라고 부르는 감정이 과연 우울이라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우울’이라는 단어로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환원하면서 모든 감정을 긍정적으로 전환시켜야 되는 대상으로서만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서동진 계원예술대학 교수는 ‘우울’이라는 단어의 역사적 기원을 짚으며, 부정적인 감정 모두를 ‘우울’로 환원하는 것은 감정의 실체를 가릴 수 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사실 ‘우울’은 19세기 말, 20세기 초반에 사치스러운 중산층이 가지고 있었던 감정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무한한 권태라든가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무력감 같은 것들을 가리켰다”고 말했다. 그는 “우울이 유럽의 중산층이 가지고 있었던 감정적 태도라면 지금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세계 안에서 우울은 거의 희박해져버리는, 소멸해버리는 감정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이 느끼는 감정은 그 시대의 상황 및 구조와 연루되어 빚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울’이 번영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사라진 시대에 현대인들이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우울’로 환원시키면서 대처방향 또한 빗나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서동진 교수는 “우리가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 감정을 헤아려보지 않은 채, 그저 유사한 것인 ‘우울’로 감정을 환원시켜버리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그러다 보니 그저 긍정적 감정의 상태를 만들기 위한 대중적 프로그램만 대처방법으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서동진 교수는 “현대인들이 우울하다고 말하는 감정들 중에서는 의학화되어 의사들의 조언이나 처방을 통해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아님에도 그렇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저 심리산업에 맡겨 긍정적인 감정으로 전환시켜야 할 감정들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전환시켜야 하는 감정임에도 그런 방법들이 전혀 모색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인들이 느끼는 우울, 진짜인가

개인이 느끼는 감정이 그 시대의 상황 및 구조와 연루되어 있다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우울증’ 또한 구조적인 문제다. 구조적인 원인을 포착해서 우울에 가장 취약한 계층을 먼저 살펴야 한다. 우울증은 저소득층에서 유병률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국민기초생활보장자는 의료급여 등의 혜택을 받고 있지만, 차상위계층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각종 통계는 우울이 개인적인 차원의 질병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차원과 더 깊이 연루돼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사회 취약계층인 빈곤층·노인층·여성에게 우울 증상이 더 높게 나타난다는 것은 구조적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한국빈곤문제연구소 서병수 소장은 “상담을 통해 빈곤층을 접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울 증상을 보이고 있다. 극단의 상황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며, 해가 지날수록 우울증을 앓는 빈곤층들이 점점 더 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빈곤율은 1993년부터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며, 해가 갈수록 빈곤층이 누적되고 장기화되면서 빈곤층에서 우울 증세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서 소장은 빈곤층의 우울증 심화는 “필연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빈곤층이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정신과를 찾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는 “빈곤층 우울증에 대한 대처가 방치돼 있는 수준이다. 사회가 문제가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으면서 정신보건센터 하나 설치해놓고 손을 놓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빈곤층의 우울은 정신보건센터에서 한두 차례 상담을 받는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빈곤층 자살시도율 국민평균의 4배

건강세상네트워크가 동자동사랑방, 사랑방마을공제협동조합,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과 함께 발표한 ‘동자동 쪽방 주민 건강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빈곤층의 자살 시도율은 국민 평균에 비해 4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단체가 2012년 실시해 발표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한 달 동안 낙심하고 우울했던 빈도를 묻는 질문에 ‘항상 그랬다’는 응답이 21.5%, ‘자주 그랬다’는 응답이 26.5%에 달했다. 또한 최근 한 달 동안 심리적으로 우울하고 불안해서 평소보다 일이나 활동에 집중을 못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항상 그랬다’는 응답자가 27.5%, ‘자주 그랬다’가 23%로 빈곤층 절반의 우울감이 항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최근 1년 동안 자살 생각을 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1.5%가 ‘있다’고 대답했으며, 이 중 21.9%가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2011년 실시한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자살 생각자의 자살 시도율 5.7%보다 4배 이상 높은 수치다.

서병수 소장은 “지금 캐나다 같은 경우는 우울증 치료를 위해 국가 규모의 큰 병원까지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는 정신보건센터라고 해서 각 지역에 있기는 한데, 인력이나 예산지원이 적절치 않아서 접수받고 한 번 면담하는 정도에 그치지 그 이상 진전이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신과 병원을 찾아가야 하는데 면담료만 한 시간에 8만~10만원 정도라 빈곤층에게는 어림없는 가격이다. 실제로 찾아가는 사람은 극소수다. 우리도 우울증만 전담해서 소득의 여부를 불문하고 적극적으로 저렴하게 서비스를 하는 공적 병원 시스템이 필요하다.”

서 소장은 “지금 많은 사람들이 방치되어 있는 상태다. 치매의 경우 정부가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편이지만, 우울증에 대해서는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상식의 사회]인간을 자원으로 여기면 결국은 ‘펑크 ’128 주간경향

근로자를 언제든지 갈아 끼울 수 있는 부품으로 본 사측의 대응이 40여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타이어 결함을 만들어 낸 것이다.

2000년 7월 미국의 대표적인 타이어 제조업체인 파이어스톤사는 타이어 650만개를 리콜한다고 발표했다. 타이어 펑크를 야기할 수 있는 접지면 이탈현상을 초래하는 구조상 결함 때문이었다. 이어 전국고속도로 교통안전협회는 고속도로 교통사고 217건과 총 800명 이상의 사상자와 관련하여 파이어스톤사를 조사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세계 최대 타이어 제조사이던 천하의 파이어스톤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타이어 펑크 사고의 장본인이 되었을까?

 

당국의 조사에 의하면 원인은 노사분규였다. 리콜의 대상이 된 타이어는 대부분 일리노이주의 디케이터 공장에서 1994년에서 1996년 사이에 제조된 것들이었다. 파이어스톤사에 급격한 변화가 있었던 시기다.

코레일 대체인력 투입, 철도 안전성 의문

1994년 초 파이어스톤은 기존 8시간 근무제를 12시간으로 바꾸고 주야 교대제를 도입하면서 공장을 24시간 가동체제로 바꾸려고 시도했다. 또한 이 회사는 신규 근로자들의 임금을 30%가량 낮추고 수당과 연금을 대폭 축소하려 했다.

이에 디케이터 공장의 근로자 4200명은 파업에 돌입했다. 사측의 대응은 파업 참가자 대신 훨씬 임금이 낮은 대체 근로자들을 투입한 것이다. 사측은 더욱 강경하게 나섰다. 앞으로도 삭감된 임금으로 재고용한다는 방침으로 대응했던 것이다. 결과는 8개월간의 파업 후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사측의 제안을 받아들여 공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근로자들은 열악한 근무환경과 낮은 임금에 고통받아야 했다. 이들에게 세계 최대 타이어회사에서 최고의 타이어를 만든다는 자부심과 목표의식은 기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근로자를 언제든지 갈아 끼울 수 있는 부품으로 본 사측의 대응이 40여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타이어 결함을 만들어낸 것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광경이다.

철도파업이 철회됐지만 코레일의 민영화를 두고 벌어진 노조의 파업과 사측의 대응을 보면서 답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특히 노조의 파업에 대해 코레일 사측이 대체인력 채용으로 대처하는 것을 보며 세계 최대 타이어 제조사였던 파이어스톤의 몰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코레일은 국가 기간교통망인 철도를 관리·운영하는 곳이다. 평균 근속 19년인 인력이 파업에 들어갔는데, 경영진은 이들을 파업이 끝날 때까지만 계약을 맺은 일용근로계약자로 대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앞으로 기차를 맘 놓고 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비슷한 사례로 자동차를 구입할 때 피하는 것 중 하나가 파업기간에 제조된 차량이라는 속설도 있다.

서강대 경영대학원의 최동석 교수는 <다시 쓰는 경영학>에서 이러한 기업들의 행태에 대해 “인간은 자원이 아니다”라고 일갈한 바 있다. 인간을 자원으로 보는 미국식 경영, 특히 월스트리트 경영방식이 그 한계에 다다랐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당근과 채찍으로 쥐어짜는 말몰이식 경영, 승자독식 경영, 피라미드식 계층구조, 측정과 통제에 의한 경영시스템 때문에 대부분의 조직구성원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많은 기업들이 인사 관련 부서 이름을 HR(인적자원·Human Resource)이라고 부르고 있다.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인적자원의 관리를 위해 MBO(목표관리법·Management By Objective)니 BSC(균형성과평가제·Balanced Score Card)와 같은 평가방법론과 KPI(핵심측정지표·Key Performance Indicator) 등의 지표들로 무장된 인사시스템을 거액의 컨설팅 비용과 구축 비용을 치러가며 갖추고 있다.

이를 통해 인간은 숫자와 등급으로 표현된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입사 19년차로 그동안 20가지 종류의 기차를 운행해 왔으며, 각 기관차의 장단점을 속속들이 알고 장애발생 시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숙련된 기관사 홍길동’이 아니다.

대신 ‘연봉 6200만원에 KTX의 운행직무를 담당하는 2013년 평가 B등급의 기관사’로 기재된다. 당연히 그 기관사는 언제든지 대체가능하고 경영실적을 위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는 교체를 할 수 있는 자원으로 취급되는 것이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 여전히 고통받아

기업의 성과는 단기간의 이익액으로 표현된다. 기업은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다양한 숫자들을 만들어냈다. 그 속에 인간은 그저 일개 부품과 자원으로만 들어가 있다. 경영진은 직원들을 효율을 위해 교체할 수 있고, 성과급과 같은 물질을 투입하면 효율이 향상된다고 믿는 것이다.

실제로 인간은 물질만으로 움직이는 존재일까.

국내 최고의 직장으로 꼽히는 삼성전자를 보면 알 수 있다. 삼성전자는 최고의 인재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주고 거액의 성과급을 매년 지급하는 걸로 유명하다. 그런데, 삼성전자의 성과급은 정말 인재들에게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는 걸까.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삼성그룹에는 삼성전자와 삼성후자가 있고 삼성전자 내에도 휴대폰과 비휴대폰이 있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 들린다. 어떤 해 실적이 저조해 성과급이 줄어들자 좋은 인재들이 줄줄이 퇴사해 팀장들의 인사평가 항목에 팀원의 이직이 반영되었다는 소리도 들었다. 거액의 성과급이 생산성의 향상으로 항상 귀결되지는 않는다는 방증이다.

그런 잘못된 경영상식이 만들어낸 결과물들은 처참하다. 파이어스톤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잘못된 기업의 경영으로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가 만들어진다. 철저히 숫자로 실적을 체크하고 거액의 성과급으로 선망의 대상이었던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은 2008년 리먼사태로 심각한 경제위기를 불러왔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상황은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평생직장은 사라지고 고용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자살문제는 아직도 진행 중이고,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로 고통받는 근로자들은 증가하고 있다. 외부적으로는 성분과 함량을 속이는 식품들이 나오고, 대리점과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에 대한 횡포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

이제는 이러한 것을 과학적이라고 맹신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인간을 인간으로 보고 다 함께 행복해지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행히 좋은 사례들도 있다.

최고의 근무환경과 파격적인 복리후생으로 유명한 제니퍼소프트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높은 이익을 내고 있다. 일본의 미라이공업은 서류를 선풍기에 날려 가장 멀리 날아가는 서류에 기재된 사람을 승진시키는 비과학적인 경영에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일반 기업들이 제니퍼소프트나 미라이공업과 같은 파격을 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인간을 자원으로만 보고 쥐어짜기 위한 경영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은 시작했으면 한다.-윤원철 KINX 경영지원실장

비상식의 사회]행동하는 시민들의 고통 분배 121 주간경향 1060호

깨어 행동하는 건강한 시민은 우리 안에서 잠자고 있는 새로운 상식을 일깨워내고 있다.

 

22일간의 철도노조 파업이 끝나면서 국민은 철도 민영화의 부당함을 잘 알게 됐지만, 철도노조는 많은 탄압 속에서 씻을 수 없는 피해를 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철도노조는 오히려 잘 싸우고 있다. 500명 이상의 해고 위협과 수백억원의 손배 가압류로 노조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철도노조는 잘 버티고 있다. 무슨 힘이 철도노조를 버티게 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이번 파업을 준비하면서 철도노조가 가장 신경 썼던 것은, 어떻게 하면 조합원 모두가 함께하는가였다. 철도는 필수유지업무 부분이 있어 조합원 모두가 파업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업무에 남을 인원과 파업에 참여할 인원을 조합원의 동의를 얻어 결정해서 관리해야 한다.

이번 파업에는 지난 2009년 파업에 참가해 징계를 받은 조합원은 필수유지업무로 돌려 파업에 참가시키지 않고, 그때 남았던 조합원을 중심으로 파업 참가 대오를 짰다. 조합원들도 흔쾌히 따랐다. 철도노조원이 일단 파업에 참가하면 징계를 당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파업 기간에는 무노동 무임금이 적용돼 경제적 손실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파업이 끝나면 노조는 파업 참가자와 불참자가 파업 참가로 생긴 경제적 손실을 같이 나눈다는 것이다. 엄청난 계산과 많은 업무량을 감당하며 계획을 세우고 집행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조합원 누구도 불평 없이 여기에 흔쾌히 동의하고 따른다는 것이 놀랍다.

이렇게 이익과 손해를 골고루 나누는 사례는 성과상여금의 균등 배분에서도 엿볼 수 있다. 회사에서는 상여금을 주면서 경쟁을 시키기 위해 남의 봉투에서 돈을 빼서 내 봉투에 넣어주는 차등성과급 제도를 시행한다. 노조는 그걸 다 모아 균등하게 나누어 지급한다.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흔쾌히 따른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쉬운 일 같지만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만약 회사의 이런 성과급 시책에 말려들면, 결국 노동자들은 동료와 무한경쟁을 벌이게 되고, 비인간화될 수밖에 없다.

비인간적인 차등 성과급제도

이런 사례는 다른 민주노조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전교조의 성과상여금 균등 분배도 그 좋은 예이다. 교육이라는 전문직 교사에게 성과급을 차등지급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정부는 전교조를 중심으로 한 교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비현실적인 잣대로 교사를 평가해 차등으로 성과급을 지급하고 있다.

이에 항의해서 전교조 교사들은 처음에는 지급된 성과상여금을 모두 모아 교육청에 반납하는 투쟁을 벌였다. 받지 않으려는 교육청의 마당에 돈다발을 던져 넣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반납이 불가능해지자 전교조는 그 돈을 장학금 기금으로 쓰기도 하다가, 학교 단위로 균등 분배를 하고, 그 중 일부는 학생들을 위해 더 좋은 일에 쓰기도 한다.

전교조가 박근혜 정권의 법외노조화 시도를 막아내며 굳건히 살아남는 힘도 이런 데서 나온다. 전교조는 결성과 함께 1500명 이상이 한꺼번에 해고되는 탄압을 받았다. 그때는 법외노조였기에 조합원을 공개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전교조는 비공개 조합원과 후원회원의 힘으로 1500명 이상이나 되는 해고조합원을 복직할 때까지 5~10년을 먹여 살렸다. 그랬기에 해고된 교사가 거의 이탈 없이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고, 복직한 교사는 전교조 활동에 더 열심히 참여해 오늘 같은 전교조를 만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남을 이겨야 하는 경쟁이 상식처럼 되어 있다. 자본주의가 낳은 폐해다. 특히 자본주의의 말종인 신자유주의는 효율이라는 미명 아래 인간의 경쟁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그 속에서 인간은 피폐해지고 양극화는 극단화될 수밖에 없다. 잘못 형성된 비상식의 상식을 자본이 교묘하게 이용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거짓 상식에서 깨어나 올바른 상식을 되찾아야 한다. 경쟁이 아니라 협력과 나눔을 통한 평등이 상식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 본성을 찾아야 한다. 그러한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을 통해 우리 사회를 바꿔나가야 한다.

새해 들면서 그런 조짐을 볼 수 있게 됐다.

먼저 교학사 역사 교과서 파동이다. 역사를 뒤로 돌리려는 박근혜 정부에 빌붙은 뉴라이트 등 일부 보수세력에 의해 만들어진 교학사의 근현대 국사 교과서는 왜곡과 오류의 극치였다. 보통 시민들의 상식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도 발간을 막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에 대한 무력감과 절망감이 커갔다. 모두가 싸움에 졌다고 생각했다.

 

왜곡과 오류의 교과서 거부 당해

그런데 놀랍게도 각 학교의 채택 과정에서 반전이 시작됐다. 우선 그 학교의 교사들이 양심에 따라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았다. 건강한 상식이다. 그런데 일부 보수적인 교장이나 재단 등이 절차도 무시하고 압력을 가해 교학사 교과서의 채택을 시도했다.

SNS를 중심으로 깨어 있는 건강한 시민의 감시의 눈을 피하기는 어려웠고, 이 시민들은 그 학교가 있는 지역의 시민단체와 학부모·학생들에게 연락하는 한편, 직접 학교에 전화를 걸거나 SNS를 이용해 압박을 가했다. 그에 힘입어 시민단체들이 발 빠르게 나서고, 학부모와 학생들도 뒤따라 일어나기 시작했다.

가장 무서운 것은 학생들이다. 졸업생들은 학교를 방문해 1인시위를 벌였고, 재학생들은 대자보도 붙이고 선생님들을 직접 찾아가 호소도 하며 매달리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러한 전방위적인 압력에 배길 수 있는 학교는 없었다.

결국 대부분의 학교가 채택을 포기하거나 이미 채택한 학교도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깨어 행동하는 시민의 건강한 상식을 우리 사회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결국 교학사의 엉터리 역사 교과서는 채택률 0%에 만족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새해 벽두 우리 모두에게 큰 물음을 던지며 숙제를 주고 산화해간 이남종 열사의 장례 과정에서도 새로운 상식의 시민을 만날 수 있었다. 이남종 열사는 스스로 유서에서 밝힌 것처럼, 안녕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을 대신해 모든 고통과 괴로움을 대신 지고 산화해 갔다. 이 소식이 단신으로 전해지자, 이 비보는 SNS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병원으로 가장 먼저 달려간 사람들은 건강한 상식의 깨어 있는 행동하는 시민들이었다. 소식은 급속히 전파되고 병원 앞의 촛불은 급속도로 불어났다. 외면하던 주요 언론들도 달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경찰은 왜곡하거나 축소에 급급했고, 보수언론은 무관심하거나 폄하에 몰두했다.

하지만 SNS와 직접 행동을 이길 수는 없었다. 장례를 통해 열사의 정신을 잘 구현해내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진가가 발휘됐다. 자발적인 시민대책위가 꾸려지고 장례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정당이나 이름 있는 시민단체 등은 할 일이 없었다.

특히 필요한 경비를 모금하는 일에 새로운 시민정신은 더욱 빛났다. SNS를 통한 호소에 국민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고, 단시간에 1억2000만원 이상이 모였다. 시민대책위는 그 돈으로 장례를 치르고도 5000만원을 남겨 유족에게 전달했다.

깨어 행동하는 건강한 시민은 우리 안에서 잠자고 있는 새로운 상식을 일깨워내고 있다.

<이수호 한국갈등해결센터 상임고문

비상식의 사회]‘부동산 불패신화’의 배반 114 주간경향 1059호

물가가 하락하는 경제에서 빚내서 집 사라고 북치고 장구치고 있는 이 정부는 상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장님일 뿐이다. 한때 ‘애정남’이라는 개그 코너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군에 입대한 개그맨 최효종씨가 진행하던 코너였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애매한 상황(문법적으로는 아마도 ‘모호한 상황’이 더 맞는 표현일 듯한데, 그게 핵심은 아니다)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상식적인 것인지를 딱 부러지게 정해주는 코너였다. 그 내용이 인간사의 핵심을 건드렸기에 이 코너는 공전의 히트를 했다.

 

‘애정남’의 인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규칙을 정할 필요가 생긴다.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지극히 당연하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을 예로 들어 보자. 통행이 뜸할 때는 규칙이 필요 없다. 그러나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해지면 규칙을 정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혼잡한 길에서 좌충우돌해 봐야 스트레스만 쌓일 뿐, 목적지로 나아가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질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를 들어 ‘우측통행’이라는 약속을 정하고 모두가 이를 따르면 훨씬 질서정연하게 통행할 수 있다.

이런 약속은 사회 속에서 여러 형태로 우리와 만난다.

가장 공식적인 것으로는 법과 규제가 있고, 중간에는 자치규약이 있고, 가장 비공식적인 영역에는 도덕과 관습, 그리고 상식이 있다. 물론 이런 다양한 약속의 형태들 간에는 조금씩 차별성이 존재한다.

사회가 공식적으로 부여한 강제력이 강할수록 법과 규제의 형태가 되고, ‘알아서 지키는’ 약속의 성격이 강할수록 도덕이나 관습, 상식의 영역으로 내려오게 된다. 비공식의 영역 내에서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약속에 대해 그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조금 입히면 도덕에 가까워지고, ‘과거부터 죽 그래 왔었다’는 점을 당위의 근거로 강조하면 관습에 가까워진다.

상식은 변한다

그렇다면 상식이란 어떤 것인가. ‘남들이 다 그렇게 하는 것’ 정도가 아닐까?

할머니나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도덕이고, 설날에 떡국을 먹고 덕담을 나누는 것은 관습이다. 그러나 상갓집에 갈 때 검정색 옷을 입고 가는 것은 상식이다. ‘남들이 다 검정색 옷을 입으니까’ 나도 그렇게 입는 것이다.

상식이 도덕이나 관습과 구별되는 또 다른 특징은 상식이 훨씬 쉽게 변모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아니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긴데, 상식이 변화한다는 게 말이 되나?”라고 의문을 표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상식이 계속 변모한다는 것이야말로 상식의 가장 큰 특징이다. 즉 상식은 사실 잘 뜯어보면 결코 상식적이지 않은 것이다. 변화한 상식의 예를 찾는 것은 조금도 어렵지 않다. 지금은 우측통행이 굳어졌지만 필자가 국민학교(오늘날의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차는 우측통행, 사람은 좌측통행’이 상식이었다. 지금은 조문할 때 거의 검은 옷을 입지만, 옛날 동양에서는 흰 옷을 입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가의 상식도 변했다. 지금은 여자 후배가 남자 선배에게 정답게 ‘오빠’라고 부르지만, 옛날에는 무조건 ‘형’이었다. 오빠라고 부르면 그것은 둘이 연인사이라는 뜻이었다.

교수와 학생 간의 상식도 변했다. 옛날에 근면한 교수들은 중간고사나 학기말 고사가 끝나면 해당 과목의 모든 수강생 성적을 자기 연구실 방문에 게시했던 적이 있었다.(물론 필자는 게을러서 한 번도 이런 상식을 따른 적이 없다) 그러나 요새 이런 작태를 하면 당장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한 사례로 문책감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런 행동은 중대한 위법이다.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니까.

그럼 상식은 왜 이렇게 자주 변화하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남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나도 그들을 추종한다”는 상식의 특징을 조금 더 천착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것은 단순한 의견조율의 차원에 머무르는 것일 수도 있다. 좌측통행을 할 것인가, 우측통행을 할 것인가가 바로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때로는 보다 깊숙한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 남들이 심사숙고하여 도달한 결론에 무임승차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 말은 꼭 내가 게으르다거나 바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미 다른 사람이 어떤 문제를 열심히 고민하고 그 해법을 찾아냈다면 내가 구태여 또 그런 고민을 할 필요 없이 그냥 그 사람의 선택을 따라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행동일 수 있다는 뜻이다.(경제학에서는 이를 ‘거래비용의 절감’이라는 유식한 표현으로 설명한다) 사회주의 국가 시절의 러시아에서 사람들이 어떤 상점 앞에 길게 줄을 서 있으면 나도 무턱대고 덩달아서 줄을 서는 것이 ‘상식’인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개발의 시절 부동산 투자는 상식

무임승차적 특징에서 연유하는 상식은 자주 변화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회경제적 여건이 바뀌면 그에 합당한 합리적인 선택도 달라질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다른 사람들의 행동도 바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멀리 갈 것도 없이 부동산 투자를 보면 딱이다. 개발 연대 시절에 부동산은 가장 안전하고 수익성도 짭짤한 투자대상이었다. ‘부동산 불패신화’니 ‘누구 땅을 밟지 않고서는 길을 갈 수 없다’는 말은 모두 땅에 대한 성공신화를 집약하는 표현들이다.그래서 우리도 그렇게 했다. 돈이 생기면 아파트를 사 두는 것이 상식이었고, 심지어는 빚을 내서라도 아파트를 샀다. 남들이 다 그렇게 해서 돈을 벌었으니까 나도 골치 아프게 경제원론 배울 필요 없이 그냥 그 현명한 선택에 무임승차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상식이 되었다.

이제 그 상식이 우리를 배반하고 있다. 하우스푸어가 바로 그것이다.

인플레이션 시절에 실물자산을 가지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고, 명목금리보다 실질금리가 한참 낮기 때문에 빚을 내는 것도 현명한 선택이다. 따라서 빚을 내서 아파트를 사는 것은 인플레이션 시절의 상식이다. 그러나 디플레이션이 오면 상식은 ‘쥐약’이 된다. 물가가 하락하는 경제에서는 현금이 가장 우수한 투자자산이고 빚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빚내서 집 사라고 북치고 장구치고 있는 이 정부는 상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장님일 뿐이다.

상식은 양날의 칼이다.

그 사회의 상식을 잘 따라가는 것은 때로는 거래비용을 절감하는 합리적 행동이 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자신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사회는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선각자, 모난 사람, 별난 사람, 괴짜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는 대개 좋은 사회지만 ‘상식만이 지배하는 사회’는 언제나 매우 위험한 사회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비상식의 사회]언제까지 ‘힐링’만 할 것인가14.1.7 주간경향 1058호

요즘 유행하는 힐링이란 것이 자칫 어떤 사회적인 모순들을 개인에게 돌리려는 방편이 되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2013년의 화두는 ‘힐링’인가 보다. 도처에 힐링이라는 말이 난무하고, 서점가에서도 여전히 힐링에 관한 책들이 강세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베스트셀러에 이어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가 수많은 독자들을 힐링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스님들의 책들도 수많은 중생을 힐링하고 있다.

 

산중에 들어와 살면서 속절없이 넓은 마당에 닭을 길렀다. 수탉 한 마리에 암탉 여남은 마리를 길렀는데, 주변을 맴도는 족제비와 너구리가 걱정이 되어 예비로 수탉 한 마리를 더 사다 넣었다. 두 마리의 수탉은 눈만 마주치면 싸워댔다. 싸움에 진 수탉은 꽁지가 빠졌다.

꽁지 빠진 닭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무참히 꽁지 털을 뽑힌 수탉은 졸지에 외로운 처지가 되었다. 모이를 먹지도 못하고, 암탉들 주변을 어정거려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왕따가 되어 겉도는 이 볼품없는 닭을 불쌍히 여긴 아내가 따로 불러 모이를 주었다. 그 뒤로 꽁지 빠진 수탉은 아내의 뒤만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다녔다.

어느 날, 손님들이 놀러왔다. 마당에 노는 닭들을 보며 한 마리 잡자고 청했다. 나는 아내에게 닭을 한 마리 잡자고 부탁했다. 아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닭의 목을 비틀어 밥상에 올렸다. 그날 밥상에 올라온 것은 아내가 그동안 불쌍히 여겨 따로 모이를 주던 ‘꽁지 빠진 수탉’이었다.

어떤 권리도 동정으로 얻어지지 않아

많은 기업들이 한솥밥을 강조하며 직원들과 한 가족임을 즐겨 말한다. ‘노사화합’이라는 문구를 공장 벽에 즐비하니 붙여 놓기도 한다. 그러나 부동산 투기와 방만한 운영으로 외환위기를 맞은 수많은 기업들은 곧바로 ‘한솥밥을 먹던 가족’들의 목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비틀어댔다. 거리로 내몰린 수천의 노동자들은 자신이 믿었던 고마운 손에 목이 비틀려 가정이 파탄 나고, 심지어 노숙인이 되기도 했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볼 때, 모든 권리의 이면에는 처절한 피와 눈물이 깃들어 있다. 결코 어떤 권리도 동정으로 얻어진 것은 없다. IMF사태 때 노숙인이 되었다는 기업주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오로지 죄라면 가정마저 팽개치고 날마다 야근과 철야에 충성했던 수많은 노동자들만이 영문도 모른 채 거리로 내몰렸다. 노숙인들을 위한 인문학이나 글쓰기 모임에서 그런 분들을 적지 않게 만났다. 그런데 그런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적지 않은 분들이 그런 처지를 자신의 무능함이나 운 나쁜 결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그분들에게 차마 힐링을 말할 수 없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도 성황을 맞는 업종이 둘이 있다. 하나는 아웃도어점이고, 하나는 간판가게라 한다. 기업들이 이윤을 높이기 위해 열 사람이 일하던 것을 다섯 사람에게 시키고 다섯 사람의 목을 잘라냈다. 한창 일할 수 있으며, 일해야 하는 40~50대의 퇴직자들은 퇴직금에 빚을 얹어 자영업에 뛰어든다. 골목마다 노래방, 김밥가게, 당구장, 식당들이 즐비하다. OECD 11개국의 평균 자영업 비율이 13%인 데 비해 우리의 자영업은 34%를 상회한다. 그런 판이니 아홉이 망해야 겨우 하나가 살아남을 수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돈이 된다 싶으면 피자 장사부터 동네 마트까지 대기업들이 문어발을 들이밀고 있다. 새벽 두 시에도 통닭을 배달하고, 24시간 잠을 자지 않고 뛰어도 한 해를 버티지 못한다. 골목의 가게들은 수시로 주인이 바뀌고, 그때마다 간판을 새로 바꿔 달아야 한다.

가게를 차릴 만한 형편도 못되는 퇴직자들은 하릴없이 산으로, 산으로 몰린다. 전철마다 등산복을 입은 중년들이 가득하다. 세계의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들은 때아닌 호황을 맞은 한국으로 총집결했다. 빈손으로 산을 오르내리기 맥 빠진 이들이 산에 떨어진 밤이며 도토리를 주워 오는 바람에 다람쥐들이 아사 직전에 몰리고 있다.

망한 아홉의 자영업자들은 빚에 몰려 고시원과 PC방을 전전하다가 노숙인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막상 이런 이들도 그것을 자신이 잠을 너무 많이 잤다거나, 김밥을 맛있게 말지 못한 탓으로 돌린다. 그것마저 궁하면 팔자타령을 하곤 한다.

시대의 아픔이 개인 잘못이란 말인가

청년들의 사정은 더욱 암담하다.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청년들의 암울한 미래는 승자라 일컬어지는 서울대생들마저 아프게 한다. 불안과 과도한 경쟁 앞에서 아파하는 그들에게 “아프냐, 청춘 때는 너만 아픈 게 아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힐링이 던져진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고 위로한다. 그렇다면 삼성의 이건희 회장 아들이나 고관대작의 자식들도 청춘 때는 아팠을까. 그들도 천 번을 흔들렸을까.

서울의 전철역마다 방호창에 시들이 걸려 있다. ‘보랏빛 노을이 물든 강가에서 영혼의 램프를 닦는다’처럼 감상적인 시들이 많이 눈에 띈다. 그런 감미로운 시들로 이 시대의 아픔이 힐링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군부독재 시절에 조세희 소설가가 외롭게 쏘아올린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불편한 의미를 다시금 새겨보게 된다. 진정한 힐링이란 우리의 상처를 마취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통해 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을 직시하고, 분노하게 하는 힘이 아닐까.

요즘 유행하는 힐링이란 것이 자칫 어떤 사회적인 모순들을 개인에게 돌리려는 방편이 되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엄동설한의 거리에서 천 일을 넘게 절규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스물네 명이 목숨을 잃은 쌍용차의 해고노동자들, 알바나 시간제 계약직으로 살아야 하는 젊은이들의 아픔이 과연 개인의 잘못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관에서 잘못한 수로공사로 물에 집이 잠긴 이에게 면벽수도를 권한다면 과연 그 아픔이 치유될 수 있을까. 주먹을 휘두른 자가 아파하는 이에게 힐링을 말하는 이 비상식적인 짓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할까. 천 번쯤 흔들리면 아프지 않게 될 수 있을까. 아프면 분노해야 하는 것이 상식적인 반응이 아닐까. 힐링의 부드러운 손이 우리의 목을 비틀기 전에. 이제 힘을 지닌 이들은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외치는 그 물음에 응답해야 할 것이다.-이시백 소설가

 

 

대통령님, 당신은 '예수'가 아닙니다 124 오마이뉴스

[2014년 박근혜 정부 전망-보건의료] 재정확충 없이 보장성 확대?

"출산은 국민, 보육은 국가에서, 4대 중증질환은 무료 진료!"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 공약 캐치프레이즈다. 성별, 나이, 소득 수준에 상관 없이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 공약은 상당히 매력적이었고 당선에도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중 대표적 공약은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공약과 어르신 임플란트 등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시작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의료 부분의 핵심 공약은 거의 파기되거나 국고 예산 반영 없는 생색내기 수준이다. 대표적 공약이었던 4대 중증질환 보장은 계속 진행되었던 희귀난치성질환 보장성 확대를 계속 유지하는 정도다.

 

 

 

공약 속에 숨겨진 '민영화'라는 폭탄

박근혜 정부는 하지 않겠다던 민영화를 최우선 추진 과제로 삼고 있다. 지금까지 의료산업 활성화 정책으로 추진했던 의료민영화 과제들을 이름만 바꿔서 재추진하는 것이다. 더 위험한 것은 이명박 정부에 비해 박근혜 정부의 추진 의지가 훨씬 강력하다는 것과 이를 막을 수 있는 사회적 제어 장치가 더 허술하다는 점이다.

보장성과 공공성 강화를 통해 더 좋은 의료를 더 저렴하게 공급함으로써 국민 건강증진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튼튼한 재정과 합리적 의료공급체계가 필요하다. 그러나 의료민영화 정책은 합리적 보건의료공급체계를 완전히 무너트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공약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는 이미 충분히 영리화되어 있으며, 그 결과 불필요한 의료 이용으로 의료비 폭증과 필수 의료 부족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그 원인은 시장화된 의료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또 새로운 시장을 찾고 있다. 국민건강증진이 아닌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경제성장을 표방하지만 그 배경에는 대기업이 있다. 삼성을 필두로 한 대기업들은 새로운 IT, 전자 등의 뒤를 이을 효자산업으로 하나 같이 헬스케어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이를 위한 발판을 깔아주는 것이 정부의 투자활성화 대책이다. 복지부는 이러한 정부의 대책에 대해 당연지정제 폐지 등 건강보험을 직접 약화 시키는 내용이 빠졌기 때문에 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사실상 민영화와 다름없다.

민영화가 진행되면, 의료비가 비싸지므로 취약계층은 건강보험료를 감당할 수 없게 되고 건강보험 역시 보장성을 계속 늘릴 수 없다. 그 틈새를 민영보험회사가 파고드는 것이다. 현재 건강보험에 속해 있는 것이 부유층과 고급 병의원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당연지정제와 의무가입이 유지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나가는 것이 유리해지면 건강보험제도는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다.

오병이어의 기적, 재정확충 없이 보장성 늘리는 마술

박근혜 정부의 재정확충 없는 건강보장성 확대 계획을 보면 5개의 떡과 2마리 물고기로 수백 명을 먹이셨다는 예수님의 기적이라도 행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정부는 적절하게 기획된 관리시스템이나 예산 확충 없이, 시장 경쟁에 의료를 완전히 맡기면서 동시에 보장성 확대도 하겠다고 한다. 여기에는 건강보험 흑자의 비밀이 숨어 있다.

정부에서는 정책시행에 있어서 5년간 9조 원 정도의 금액이 소요되고 그 중 국고 보조 금액을 2억 원 규모(의무보조 금액 20% 내외에서 약간 상향)로 기획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재원 마련을 철저히 건강보험 흑자분으로 하겠다는 계산이다. 실제 건강보험은 몇 년째 흑자를 내고 있다. 2013년 3사분기까지 건강보험은 사상 유례없는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누적적자는 9조 원에 육박하며 현물자산 등을 모두 포함할 경우 11조 원이 넘는다.

건강보험에서의 흑자는 예상치에 비해 의료이용률이 적을 때 발생한다. 쉽게 생각해서 걷은 돈에 비해 해당년도 의료 이용이 많으면 적자, 의료 이용이 적으면 흑자가 되는 것이다. 그동안 의료 이용은 물가상승률, 소득증가율, 경제성장률보다 훨씬 높았으며 건강보험요율 역시 10년 동안 평균 4.123% 증가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가 침체되면서 건강보험 흑자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흑자 폭은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건강보험 흑자의 원인은 간명하다. 의료비 부담으로 의료 이용을 줄이고 있는 것이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의료수요가 높은 노인층이 증가하고 만성질환 등이 빠르게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의료기관 이용을 크게 줄이고 있다. 본인 부담이 40% 넘어가는 재정적 부담이 제1 원인이다. 비정규직 등 노동조건이 불안정해 제때 병의원을 갈 수 없는 사람들의 비율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보장성 문제를 국민들이 주로 납부하는 건강보험에만 맡겨 온 셈이다.

의료비 부담을 증가시키는 범인은 기업

우리나라 건강보험 재원조달에서 문제는 일반 국민, 특히 서민층이 내는 금액이 너무 크다는 점이다. 바꿔 말해 국가나 기업, 고소득층이 부담하는 비율은 낮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의료보장 재원조달에 있어서 사회보험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사회보험방식에서 중요한 점은 ① 사회보험재원에서 기업, 노동자, 자영업자, 농민 등 각 경제주체가 각각 얼마만큼 분담하는가 ② 국고지원의 규모와 내용은 어떠한가 하는 점이다.

사회보험재원에서 기업은 건강보험 가입자 중 직장가입자의 경우 보험료의 절반을 부담한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에 비해 특별히 낮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국민 의료비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규모는 매우 낮다. 그 비밀은 국고보조와 비정규직에 있다. 건강보험을 비롯해 4대보험에 기업이 50%를 공동 부담하는 대상은 정규직에 해당할 뿐이다. 그 결과 전체 의료비에서 기업이 부담하는 비율은 크게 줄어든다.

다음으로는 세금을 덜 내는 방식이 있다. 우리나라는 세금, 그 중에서도 기업과 부유층이 내는 세금이 매우 적다. 따라서 건강보험에 국고가 지원하는 비율이 대략 14.8% 가량으로 매우 낮다. 다른 나라의 경우 기업이 해당 노동자의 건강보험료를 대부분 담당하거나(프랑스, 미국 사례), 기업, 부유층 부담이 큰 세금을 통해 대부분의 의료비를 부담하는 반면(영국 등), 우리나라는 정규직을 최소화하고 부자감세를 계속하면서 기업의 노동자 건강에 대한 책임을 줄여왔다.

이 메커니즘이 건강보험료는 계속 오르면서도 의료 이용할 때 직접 내야하는 본인부담금이 계속 증가하는 이유이며, 민간보험에 필수적으로 가입해야 안심할 수 있는 이유이다.

 

 

 

2014년엔 안녕할 수 있을까

박근혜 정부 2년을 전망해본 결과, 공약은 대부분 파기된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도 국민들이 부담한 남은 건강보험료로 재정을 충당함으로써, 실질적인 비급여는 손도 대지 못함으로 인해 4대중증질환자들의 의료비 경감 수준은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인 임플란트 등은 대대적으로 홍보하겠으나 임플란트를 계속할 수 있는 고소득 노인에게 진료비를 할인해 주는 효과 정도일 것이며 실질적인 필요가 높은 노인틀니는 75세 이상에게 그나마 50% 밖에 할인을 해주지 않는다. 또한 간병비와 요양비용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가계에서는 노인 돌봄 문제가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흑자를 기록중인 건강보험 흑자규모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한 비급여 부담과 취약한 생활여건은 병원 문턱을 높게만 할 것이다. 한편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저소득층 의료예산은 대폭 삭감되었다. 몇몇 생색내기 공약 이외에 잘 드러나지 않는 취약계층 의료 예산을 줄인 것이다.

반면 정부는 대기업 헬스산업을 위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으며, 역량을 의료민영화에 집중시키고 있다. 당장 2월 국회에서 영리자회사 설립과 법인약국, 원격의료, 민영보험 활성화 등을 위한 법률개정을 추진할 전망이다. 대통령은 국민의 강력한 반대를 조직되지 못하게 하면서 총력을 다해 넘어서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현재 계획된 민영화 정책이 추진되면 의료비를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이 사라진다. 의약품과 기기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를 전망이며 의료기관에서 불필요한 검진, 시술, 처치, 입원 등을 조절할 유인도 없어진다. 병원에 가면 내야하는 기본 금액이 오르게 되면 서민층에게 병원 문턱은 더욱 높아진다. 필수 의료를 받지 못하는 계층이 더 증가하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정부는 국민이 의료비 부담 없이 필수의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뿐 아니라 예방·건강증진, 만성질환 관리 등 일차의료, 응급의료, 재활 및 요양서비스 등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서비스를 공적으로 확대 공급해야 한다. 불필요한 고가 비급여 의료 상품 등은 합리적 기준을 두어 관리해야 하고 의료 기관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필수 인력을 확보하고 보건의료 노동자들에 대한 충분한 노동조건을 보장해야 한다.

또한 이런 전망이 현실화되지 못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힘이 필요하다. 이미 충분히 영리화 되어있고 그 피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에서 이를 더욱 촉진시킬 민영화정책은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구상하는 시장화된 의료체계가 완전히 구축되는 기간이 되지 않으려면 의료 보장성 강화와 일차의료, 공공의료 확대, 의료체계 개혁을 빨리 시작해야 한다. 이미 시간이 많지 않다.

 

 

한센인에게 먼저 다가가 볼 비비고 입을 맞추세요 126 한겨레

 

백발의 신부가 뒤에서 할머니를 꼭 껴안고, 눈을 가렸다.

“누구게?” “누구긴요. 신부님이지.” “신부님 아닌데, 할머니 아들인데요.” “아이고 참, 우리 신부님.”

푸른 눈에 하얀 턱수염이 풍성한 유의배(루이스 마리아 우리베·68) 신부는 검은색 수도복을 입고서 할머니들에게 장난스레 인사를 건넸다. 이일분(85) 할머니는 그런 유 신부를 반갑게 맞았다.

“신부님, 축하드립니다.” “축하는요. 부끄럽습니다.” “신부님, 오래 사셔야 합니다. 나 죽을 때까지 죽으면 안 돼요.”

“걱정 마이소. 오래 살 겁니다. 백살까지 살 거예요.”

대화를 하는 유 신부와 이 할머니 옆에는 올해로 아흔살인 정삼례 할머니가 서 있었다. 두 눈이 어두워 앞을 잘 보지 못하는 정 할머니는 유 신부의 인기척을 느끼고는 뭉툭한 두 손으로 박수를 쳤다. 유 신부는 정 할머니에게 다가가 두 볼을 어루만지며 이마에 입을 맞췄다. 두 사람은 마주 보며 활짝 웃었다. 얼굴에 깊은 주름이 꽃처럼 활짝 피었다.

지난 14일 오후, 경상남도 산청군에 있는 한센인 복지시설 성심원에선 ‘축하 인사’가 넘쳐났다. 하루 전날인 13일, 유의배 신부가 제3회 이태석봉사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에서 병원과 학교를 세우며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고 이태석 신부를 기리기 위한 이 상은 성심원에서 34년간 지내온 스페인 출신의 유 신부에게 돌아갔다. 이태석기념사업회 쪽은 “오랜 기간 동안 성심원에 머물며 한센인들과 가족처럼 지내온 점을 높게 평가했다”고 수상의 이유를 설명했다.

유 신부를 지난 14일 경남 산청의 성심원에서 만났다. 성심원의 주임신부인 유 신부는 1980년부터 한센인과 함께 살고 있다. 한때 한센인이 500명 넘게 살던 이곳에는 현재 평균연령 76살인 한센인 130여명과 지체장애인 10여명이 머물고 있다. 성심원은 전국에 9개인 한센인 민간복지시설 가운데 하나로 천주교 프란치스코회에서 운영하고 있다. 유 신부는 이틀 동안 인터뷰에 응했고, 그가 일을 하거나 돌아다닐 땐 동행하며 취재했다. 자유롭게 한국말을 구사했지만, 말투에 외국인 특유의 억양이 다소 남아 있었다.

“말이 아닌 삶 자체로 귀감 되는 분”

-제3회 이태석봉사상을 수상했다. 생전에 이태석 신부를 알았나?

“이태석 신부님을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돌아가시기 전에 천주교 잡지에서 소개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아프리카 수단에서 의사로, 사제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참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이런 상을 받아서 부끄럽다.”

-유 신부도 이국땅에 와서 한센인들과 함께 34년을 함께 지냈고, 특히 아픈 사람들을 정성껏 돌보지 않았나?

“나는 이태석 신부처럼 아픈 사람을 치료하거나,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나는 그냥 여기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왔을 뿐이다.”

-한센인 어르신들을 만날 때, 얼굴을 어루만지거나 볼에 입을 맞추는 등 남다르게 인사를 한다.

“한센인 중엔 앞을 보지 못하거나 귀가 잘 안 들리는 분들이 꽤 있다. 한국식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하면 그분들은 못 보고 지나친다. 그래서 스페인에서 하던 대로 안고 볼에 입을 맞추며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국식 인사가 아니라 싫어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어르신들이 좋아했다. 그 이후로 이렇게 스킨십을 하며 인사를 하게 됐다.”

유 신부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뒤 양해를 얻어 녹음기를 켰다. 어눌한 말투에 불규칙한 억양이 섞여 발언 중 일부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유 신부는 달변이 아니었다. 한센인들에게 농담을 건네거나 장난을 칠 정도로 한국어를 구사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조리있게 말하는 데에는 능숙하지 못했다. 엄삼용 성심원 부원장수사는 “사실 유 신부님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미사에서 설교에 해당되는 ‘강론’이다. 회의 때도 말씀이 거의 없다. 하지만 유 신부님은 말이 아닌 삶, 그 자체로서 귀감이 되는 분이다”고 말했다.

유 신부의 입을 빌리지 않아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많았다. 성심원의 직원, 봉사자, 거주하는 한센인들은 그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유 신부가 어떤 사람인지’를 질문하면 쉴 새 없이 증언들이 터져 나왔다. 스물두살에 한센병이 발병한 안병채(82) 할머니는 유 신부와의 첫 만남을 기억했다.

 

“1985년에 성심원에 들어와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그 당시 한센병이 심해져 얼굴이 다 문드러지고 피부가 다 상한 분이 있었는데요. 한센병을 앓았던 제가 봐도 얼굴 형태가 심하게 변형돼 보기가 안 좋았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은 매일 그 사람을 찾아가 무릎 꿇어 앉고서 얼굴을 매만지고, 볼에 입을 맞추더군요. 그걸 보고 ‘우째 저런 사람이 있노’ 하며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돌이켜 보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신부님은 한결같습니다. 지금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픈 사람 집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가죠.”

성심원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곽경희씨는 유 신부를 ‘성심원의 엄마’라고 표현했다.

“신부님이 여기 계신 어르신들보다 나이는 젊은 편이지만 엄마 같은 존재예요. 얼마 전에 신부님과 진주에 있는 병원에 다녀온 적이 있어요. 신부님은 예나 지금이나 아픈 분들에게 매일 찾아가요. 요즘은 많이 아프면 진주에 있는 병원에 입원을 하는데요. 입원한 어르신을 위해 신부님이 귤을 사갔어요. 귤을 까서 입에 넣어줬는데, 어르신이 시다고 하니까 그 귤을 다시 꺼내서 본인이 먹더군요. 마치 아이가 입에 넣었던 음식을 엄마가 먹는 것처럼 말이죠. 신부님은 성심원에 있는 어르신들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실질적으로 ‘부모’ 역할을 해왔어요.”

극히 희박하지만, 전염되더라도 운명이라 생각

오랜 기간 편견에 시달리며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해온 한센인들에게 피부를 비비며 다가오는 외국인 신부는 낯선 존재였다. 곽씨는 “편견으로 인해 한센인들과 옷깃만 스쳐도 거부반응을 보이고, 심지어 한동네에 사는 것도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신부님은 이분들을 가족처럼 대한다”고 말했다. ‘성심원에 유 신부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느냐’고 묻자, 안병채 할머니는 “누가 싫어하겠나. 다가와서 맨날 보듬어 안고 그러는데”라고 대답했다.

한센병에 대한 편견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그들과 접촉하면 병이 쉽게 전염될 수 있을 거란 우려다. 하지만 한센병은 전염력이 매우 낮은 병에 속한다. 한센병을 옮기는 한센균은 공기 중에서 3초 안에 죽기 때문에 전염되기 어렵고, 체내에 들어가도 대부분의 사람은 면역력이 있어 자연치유된다. 주로 발병하는 곳은 위생환경이 열악하거나 더운 지역이다. 예전엔 주로 나병이라고 불렸고, 가난한 지역에서 주로 걸린다고 해서 ‘가난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최근 신규 발병자가 급격히 줄어 2012년엔 5명에 불과했다. 신규 발병자보다 사망자가 많아 2003년 1만7255명에 이르던 한센인은 2011년 1만3039명으로 감소했다. 한센병은 잠복기가 5~20년으로 길고, 유전되지 않는다. 또한 약물로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한센인들은 한센균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은 완치자들이다. 성심원에 있는 한센인들도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비록 피부와 눈, 귀 등의 말초신경에 병이 남긴 흔적이 있지만, 몸 안에 한센균은 사라진 상태다. 그럼에도 이들은 사회로 나가 사람들과 섞이기 어렵다. 유 신부에게 스킨십에 대해 더 물었다.

-한센인들과 스킨십이 잦은데, 혹시 전염될 수 있단 생각은 하지 않는지?

“한센병에 대한 오해가 아직도 많다. 심지어 성심원에 봉사하러 왔던 분 중에서 작별인사를 할 때 나와 악수하는 걸 거절한 분도 있다. 왜 그러냐고 묻자, 그분이 ‘신부님이 아까 그 사람들 만졌잖아요’라고 했다. 이런 편견으로 인해 많은 한센인들이 오히려 먼저 사람들을 피한다. 내가 처음 그들에게 스킨십을 하려고 다가갔을 땐, 먼저 피하고 꺼리기도 했다. 그럴 땐 오히려 더 다가가서 ‘당신이 나에게 아무런 해악을 주지 않는다’고 안심을 시킨다. 물론 극히 희박한 확률로 한센병이 재발하고, 전염될 가능성도 있다. 그것도 운명이라 생각한다. 1981년 스페인 나병연구소에서 간호사 수련을 받을 때, 브라질에서 온 한 신부님이 찾아온 적이 있다. 이분은 겉은 멀쩡했는데 수도복을 걷어 올리니 팔뚝에 한센병의 흔적이 있었다. 그분은 너무나 태연하게 치료를 받고, 다시 브라질의 한센인 마을로 돌아갔다. 그분의 태도에서 느낀 점이 많았고,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단 생각을 했다.”

-한센인들을 위해 운전을 배웠다고 들었다.

“스페인에서 원래 운전면허가 있었는데, 한국에서 다시 운전을 배웠다. 처음엔 미사를 드리러 경남 진주의 성당을 오가기 위해서 운전을 했다. 하지만 점점 한센인들을 태우고 진주 시내와 인근에 있는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지금은 편견이 많이 사라졌지만, 예전엔 버스 기사들도 한센인을 잘 태우지 않았다. 식당에 가도 ‘당신네들에겐 밥을 팔지 않으니 나가라’는 소리를 듣기 일쑤였다. 그래서 내가 그들을 태우고 다녔다.”

-1997년부터 한센인들이 돌아가시면 손수 염(입관하기 전에 시체를 닦고 수의를 입히는 작업)을 한다고 들었다. 지금까지 총 300명의 염을 하셨다던데, 직접 염을 하는 이유가 있나?

“처음엔 할 사람이 없어서 했다. 그 전까지 염을 하던 장의사가 일을 그만뒀고, 한센인이라 누구도 나서서 염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줄곧 옆에서 임종을 지켰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염을 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지금까지 하고 있다. 염을 하면서 돌아가신 분과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살아 있을 땐 손이나 얼굴 정도 볼 수 있는데, 씻기기 위해 옷을 벗겨보면 여기저기 상처가 있거나 앙상하게 마른 것을 볼 때가 있다. 그러면 ‘그동안 얼마나 아팠을까’ ‘잘 돌봐주지 못해 미안해요’라고 말하며 염을 한다. 아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내려왔을 때의 모습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유 신부는 임종을 앞둔 분들을 특별히 보살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위독한 환자가 생기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가 손을 잡고 위로한다. 유 신부가 34년간 장례미사를 치른 사람은 총 529명, 이를 옆에서 지켜본 한센인들은 신부님이 오래 살기를 바랄 뿐이다. 안병채 할머니도 같은 마음이다.

“임종 맞는 분 옆에서 신부님이 하는 것을 보면 부러워요. 신부님이 저렇게 해주면 나도 편하게 죽을 수 있을 것 같죠. 신부님 때문에 가기 싫어도 천국 가야 해요. 그래서 여기 있는 사람들은 자기보다 신부님이 먼저 죽으면 안 된다는 마음이에요. 미안하지만 신부님은 꼭 오래 사셔야 합니다.”

14일 오후 3시께, 한센인들이 머무는 요양원 2, 3층을 한바퀴 돌면서 유 신부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도 ‘신부님 오래 사셔야 합니다’였다. 한 할머니는 유 신부에게 “나도 안아주소”라고 팔을 벌렸고, 다른 할머니는 보여줄 게 있다며 자기 방으로 유 신부를 이끌었다. 방에 도착하자 이 할머니는 서랍에서 잡지 하나를 주섬주섬 꺼냈다. 그 잡지엔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의 외국인이 활짝 웃고 있었다. 유 신부는 “아이고 할머니, 이거 나 닮았다고 보관하는 거요? 그러고 보니 좀 닮았네”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잡지를 가리키며 “여기 신부님 있다”는 말을 연신 반복했다. 지체장애인들이 모여 있는 300호로 들어가자, 10대 소녀 세명이 뛰어나왔다. 유 신부가 이들을 반기자, 한 소녀는 덥수룩한 수염을 잡아당겼다. 유 신부는 인상 한번 찌푸리지 않고 아이의 장난을 미소로 받았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유 신부와 마주 앉았다.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동생들을 돌보다

-독일 나치의 폭격으로 도시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한 스페인 게르니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게르니카의 학살에 대해 들은 적이 있나?

“태어나기 9년 전인 1937년에 게르니카 폭격 사건이 발생했다. 독일 나치가 스페인의 파시스트 정권인 프랑코를 지원하기 위해 무차별 폭격을 가한 끔찍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우리 집도 폭격을 맞아 다 부서졌다. 가족들은 지하실에 대피해 겨우 살았지만, 그동안 일궈놓은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어렸을 때 도시 곳곳에는 폭격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한국은 어떻게 알게 됐나?

“어릴 때 아버지가 집에서 라디오를 자주 켜놨다. 한창 한국전쟁이 벌어지던 시기였다. 그때 ‘코리아도 게르니카처럼 폭격을 맞고, 우리랑 비슷하게 살고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연스레 관심을 가졌다.”

-신부가 되겠단 생각은 언제 했나?

“친척 중에 신부가 여럿 있어서 사제가 친숙했고, 그들이 하는 일이 좋아 보였다. 열살 때 바로 소(小)신학교에 입학하려 했으나, 갑자기 아버지가 위독해졌다. 다행히 아버지는 죽을 위기를 넘겼지만, 집안 형편이 더 어려워졌다. 남동생, 여동생이 하나씩 있었는데, 부모가 우리 삼남매를 돌보기 어려웠다. 우린 고아원으로 보내졌고, 나는 신학교 입학을 한해 미루고 고아원에서 동생들을 돌봤다. 고아원 생활은 너무나 힘들었지만, 아버지가 ‘잘 지내냐’고 묻는 편지가 오면 늘 ‘기쁘게 잘 살고 있다’고 답장을 보냈다. 1년 뒤 동생들은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아란차수 신학교에 입학했다. 같이 입학한 동기들은 신학교가 감옥 같다며 투덜댔지만, 나에겐 고아원에 비해 천국 같은 곳이었다.”

-한센인에 대해 언제부터 관심을 가졌나?

“신학교를 졸업한 1970년 사제 서품을 받고서 3년 뒤에 파라과이에 있는 한센인 마을에 부임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그래서 스페인에 있는 한센인 마을에서 봉사를 하며 준비를 했다. 처음 한센인 마을에 갔을 땐, 많이 놀랐다. 한국엔 신경 쪽 환자가 많은 데 비해, 스페인엔 피부 쪽 환자가 많았다. 그분들은 성심원 분들보다 외모가 훨씬 두드러진다. 솔직히 처음 봤을 땐 무섭기도 했다. 그곳에서 수녀님과 신부님이 헌신적으로 한센인들을 돌보는 것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수녀님은 한센인들을 안으며 회개한다고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도 나중에 한센인들과 함께 살고 싶단 생각을 했다.”

-첫 해외 부임지가 파라과이가 아닌 볼리비아였다.

“예정됐던 파라과이 한센인 마을이 아니라서 실망했다. 볼리비아에선 안데스산맥 해발 4000m 높이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 근처에 살았다. 거기서 인디언과 어울리며 살았지만, 늘 한국에 가고 싶단 생각이 있었다. 이후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했더니, 군사정권이 독재를 하고 있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국가이기 때문에 젊은 사제를 보내기는 위험하다며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1975년 아일랜드로 가서 영어를 배웠다. 어차피 한국어를 배우려면 영어를 익혀야 했다. 당시 한국에는 스페인어로 한국말을 가르치는 곳이 없었다. 아일랜드에서 머문 뒤 1976년 서울에 왔다. 정동 프란치스코 수도원에 있는 한국어학교 명도원에 입학해 2년 과정을 수료했다. 그 이후 경남 진주로 부임했다.”

-성심원은 언제 알았나?

“서울에서 한국어를 배우면서 종종 대전에 내려가 어린이 보호시설에서 봉사를 했다. 그곳은 당시 미감아(未感兒)로 불리던 한센인 자녀들을 보호하는 시설이었다. 그 아이들이 너무 귀여웠고 예뻤다. 그러던 중 1977년 4월 아는 신부님의 소개로 한달간 성심원에서 머물렀다. 거기서 대전에서 만났던 아이들을 재회했다. 그 아이들의 부모가 성심원에 있는 줄은 그때 처음 알았다. 그 이후 계속 성심원으로 부임하고 싶었으나, 바로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강원도 주문진성당, 제주도성당을 거쳐 1980년 성심원으로 올 수 있었다.”

 

“신부님 없었으면 엇나갔을 거예요”

-1980년대 초기 성심원은 어땠나?

“많이 열악했다. 수도자들과 봉사자,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성당과 병원 등 여러 시설을 만들 수 있었지만, 지금과는 차이가 있다. 한센인들은 초가집에 살았다. 사실 성심원은 자리를 잡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1959년 성심원이 처음 세워지던 당시 처음 고려했던 부지는 읍내와 가까웠던 산청의 원지마을이었다. 진주에 있는 스물다섯명의 한센인이 정착촌을 만들려 하자, 마을 주민들이 곡괭이, 삽 등을 들고와 내쫓았다. 결국 이들이 선택한 곳이 지금 성심원이 있는 산청 내리 지역이다. 여기는 앞으로 물살이 센 경호강이 흐르고, 뒤로는 산세가 험한 웅석봉이 있다. 쫓아내려는 주민도 강 건너편에서 위협을 했고, 쉽게 강을 건너지 못했다. 초기 한센인들은 낮에는 주민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산으로 대피했고, 밤이면 마을로 내려와 불을 피우고 밥을 지어 먹었다. 한동안 강을 건너려면 배를 타야 했고, 성심원과 강 건너편을 연결하는 다리가 생긴 시기는 1972년이다.”

14일 오후 내내 대화를 하고서 유 신부와 구내식당으로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식당에서 봉사하는 김점악(66)씨는 한센인이었던 남편을 따라 성심원에 들어온 비나자(非癩者·한센인을 배우자로 두고 있는 사람)였다. 김씨는 남편이 사망한 뒤 성심원에 장기봉사자로 남았다. 그런 김씨는 아들 부부의 사정으로 손자 3명을 3년간 성심원에서 키웠다. 김씨는 유 신부 덕분에 아이를 잘 키웠다고 했다.

“아이들 앞에선 신부님이 그냥 아이가 돼요. 아이들이 신부님의 볼과 수염을 잡아당기고, 수도복 안에 들어가서 숨바꼭질을 하고 놀아요. 어떤 장난을 쳐도 신부님은 화를 내는 법이 없죠. 학교에서 운동회 등 행사가 있으면 학부모 대신 신부님이 참석해요. 부모보다 더 큰 사랑으로 아이들을 키우는데, 성심원 아이들이 엇나가지 않고 잘 자라는 것엔 신부님 역할이 커요.”

성심원에서 태어나 현재 부산에서 살고 있는 손인수(가명·32)씨도 비슷한 증언을 했다.

“부모가 모두 한센인이었어요. 어머니는 한쪽 다리를 잃었고, 아버지는 시력을 잃었죠. 어렸을 때 부모가 같이 놀아주지 못하니까, 늘 신부님과 놀았어요. 학교를 다닐 땐, 아이들에게 정말 놀림을 많이 받았어요. 성심원 출신이라고 따돌림당하고, 친구들이 밥도 같이 먹지 않았죠. 사춘기 때는 평범하게 살 수 없는 내 상황이 억울하고 절망스러웠어요. 그때 신부님이 없었으면 정말 엇나갔을 거예요. 신부님이 많은 말을 하진 않았지만, 늘 옆에 있어주고 관심을 가져주셨죠. 지금은 여자친구에게도 부모님과 신부님을 소개해요. 성심원 출신이라는 것도 숨기지 않고요. 이런 마음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신부님 덕분이에요.”

15일 아침 7시, 유 신부는 초록색 제의를 입고서 미사를 집전했다. 성당을 채운 한센인들 중 일부는 문드러진 손을 모으고서 기도했다. 미사를 마치고 유 신부와 아침식사를 하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수도자들은 대개 2, 3년에 한번씩 부임지를 옮기는데, 어떻게 34년간 한곳에 있었나?

“여기 계신 분들은 버림받았다는 정서를 많이 가지고 있다. 가족, 형제, 친구, 이웃에게서 버려진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나는 당신들 버리지 않는다’ ‘여기 있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가능한 한 여기에 있으려고 한다. 교구에서 내게 종종 희망 부임지를 묻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여기 있고 싶다’고 답한다.”

-앞으로도 계속 성심원에 있을 건가?

“수도자는 교회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수도자가 지켜야 할 3가지 원칙 중의 하나가 순명이다. 내게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면 순종하고 가야 한다. 하지만 내가 먼저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하진 않을 거다.” -산청/윤형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