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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의 이런 보도가 손석희를 떠나게 한 것” 1.19 한겨레
‘파업 정당’ 판결 비난한 ‘뉴스데스크’에 누리꾼 성토 이어져
‘승소’ 노조원들 반응 다룬 곳도 ‘뉴스데스크’가 아닌 ‘뉴스 9’
이외수 “해고 단행한 분들 부끄러움 통감하고 자진 사퇴해야”
<문화방송>(MBC) 파업 노조원들에 대한 해고·징계가 무효라는 법원 판결에 대해 <문화방송>의 ‘뉴스데스크’와 <제이티비씨>의 ‘뉴스 9’이 보여준 상반된 보도 태도가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SNS에서는 동료 직원들의 승소 판결을 부정적으로 보도한 문화방송을 비판하고 이번 판결의 의미를 비중있게 보도한 제이티비씨 보도를 높이 평가하는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14부(재판장 박인식)는 지난 17일 정영하 문화방송 전 노조위원장 등 노조원 4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정직 처분 무효 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방송사의 공정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는 경영진을 상대로 벌인 노조의 파업은 근로 조건과 연관되기 때문에, 파업의 정당성이 인정된다는 것이 판결의 취지였다.
이 판결을 두고 <문화방송>과 <제이티비씨>는 17일 밤 엇갈린 보도를 내보냈다. 먼저 <문화방송>은 ‘뉴스데스크’에서 이번 판결이 현행법을 과도하게 확대 해석했다는 점에 무게를 뒀다. “노동부도 여러 차례 국회 답변에서 문화방송 파업은 쟁의 행위가 아닌 불법 파업이라고 규정지었다”고 강조했고, “전문가들은 전례가 없는 해석이라고 지적했다”며 이번 판결에 비판적인 전문가들의 견해만 보도에 반영한 것이다.
반면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 9’은 “방송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벌인 언론사 파업의 정당성을 법원이 인정했다”며, 이번 판결이 갖는 의미에 비중을 뒀다. 특히, ‘뉴스 9’은 “일반 기업과 달리 방송사 등 언론 매체의 경우, 방송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회사가 인사권을 남용하는 등 방송의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이를 막기 위한 파업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는 이명철 남부지법 공보판사의 설명을 자세히 보도했다. 2년 전 파업으로 해직 등 중징계를 받은 노조원들의 반응을 다룬 곳도 ‘뉴스데스크’가 아닌 ‘뉴스 9’이었다.
이를 두고 SNS에는 자사 동료들이 승소한 재판 결과를 <문화방송> 현직 기자들이 부정적으로 보도한 ‘뉴스 데스크’를 비난하는 글이 넘쳐나고 있다. “MBC 파업 정당…노조 징계 무효”라는 자막이 내걸린의 ‘뉴스 9’의 보도와 “공정성 내걸면 합법?”이라는 자막을 내보낸 문화방송 보도 내용을 나란히 갈무리한 캡처 화면도 트위터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상당수 트위터리안들은 “같은 내용을 보도하는 (두 방송사의) 엄청난 차이”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트위터리언(@hi*******)은 “자기들의 예전 동료가 승소한 재판 결과를 비난하는 현 직원들의 태도를 보면서 참 착잡하다.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지만, 사람이 이렇게 살아야하는 걸까?”라고 꼬집었다. 아이디 @je******를 쓰는 또다른 트위터리언은 “어찌된게 MBC를 떠난 손석희 앵커가 후배를 챙기고, 동료들이 이렇게 보도하나”라고 비판했다. 또 아이디 @ac*******를 쓰는 트위터리안은 “(문화방송의 이런 보도 내용이) 손석희 앵커가 MBC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정론의 저널리즘을 마지막으로 펼쳐보이기 위해!”라고 지적했다. 작가 이외수씨도 트위터에서 “법원이 MBC 사측이 파업 참가 노조원들에게 내린 해고 등의 징계는 모두 무효라고 판결했다. 해고를 단행했던 분들이 부끄러움을 통감하고 자진 사퇴해야 마땅하지 않은가”라고 언급했다.
"위안부 문제, 정치화 아닌 여성인권차원 접근 필요"118 한국
日 운동가 "피해자 도외시한 채 국가 위신 거는 측면" 우려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일본 정부에 맞서온 일본 시민운동가가 '위안부 문제의 정치화'를 우려하며 '여성 인권'의 시각에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의 와타나베 미나(渡邊美奈) 사무국장은 18일자 도쿄신문 인터뷰에서 한일 간의 위안부 문제 공방에 대해 "본래 정치문제가 아닌 인권 문제이지만 위안부 문제는 어떤 것이든 다툼의 불씨가 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일본과 한국 모두 피해자는 도외시한 채 국가의 위신을 거는 측면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와타나베 국장은 이어 위안부 관련 기록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려는 한국 여성가족부의 방침에 대해 "피해자의 정확한 기록을 후세에 남기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면서도 "제대로 된 과정을 거쳐 등록 신청 자료를 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번 한국 정부의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록 신청 방침이 '정치 퍼포먼스'가 되지 않고, 의미가 있게 하려면 대만과 필리핀 등 한국 이외의 피해자도 시야에 넣고 여성의 인권 문제라는 넓은 시점을 어느 정도 가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게 아닐까"라고 강조했다.
와타나베 국장은 '군과 관헌에 의한 위안부 강제연행 증거가 없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집권 1기 시절의 각의(국무회의) 결정(2007년)을 비판하며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해왔다.
유골 800여구 뒤엉켜…80년전 일제 만행 그대로 한겨레117
부둥켜 안거나, 아기를 품거나,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한껏 턱을 벌린….
어둠 속에 뒤엉켜 반듯하게 눕지 못한 800여구의 유골이 80여년 전 추석에 벌어진 학살을 그대로 전하고 있었다. 17일 중국 랴오닝성 ‘푸순 핑딩산 학살 기념관’ 유골관에는 유골 800여구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유골의 바다’가 200m 넘게 이어졌다. 중국 동북지방의 교통·광물 요지 푸순을 점령한 일본군은 1935년 9월15일 중국 항일유격대의 습격을 받자 그 보복이라며 이튿날 핑딩산 주민 3천여명을 모아 학살했다. 정오부터 시작된 학살은 기관총까지 동원돼 오후 4시께나 돼서야 끝이 났다. 일본군은 학살 뒤 시신에 기름을 부어 주검을 모두 불태웠다. 마을은 사건 뒤 아예 사라졌다.
그날이 추석이라 발굴 현장에는 새까맣게 탄 월병이 총알, 휘발유통과 함께 발굴됐다. 아기의 장수를 바라는 ‘세백명장(歲百命長)’이란 글자가 적힌 목걸이도 나왔다. 1919년 한국의 경기도 제암리에서 벌어진 학살 사건을 연상케 하는 사건이다. 마을은 100여명의 생존자가 없었다면 역사에서도 깡그리 사라질 뻔 했다. 생존자들은 이후 내외신에 핑딩산 학살을 증언했다. 전후 핑딩산 학살을 주도한 7명의 일본군 장교들은 전범 재판에서 사형을 통해 단죄됐다.박물관 마지막 전시실엔 ‘전사불망 후사지사(前事不忘 後事之師·과거를 잊지말고 미래의 스승으로 삼자)’는 글이 걸려있었다. 저우쉐량 기념관장은 “역사를 직시하고 교훈을 얻어야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장 방문 행사를 주관한 중국 외교부 산하 외국신문기자센터(IPC)와 랴오닝성 외사판공실은 학살 기념관 방문 뒤 중국이 인도주의적으로 2차 대전 일본군 전범 1000여명을 관리한 전범 관리소를 소개했다. 일제의 만행과 중국의 관용을 극명하게 대조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한 일정이다. 영화 <마지막 황제>의 첫 장면에서 나오는 푸이의 교도소 장면의 배경이 바로 이 곳 전범 관리소다. 관리소엔 푸의가 수감된 방과 치료를 받았다는 침대 등도 전시돼 있다.
이 곳은 목욕탕과 이발소, 의무실, 제빵실 등을 갖췄다. 관리소 쪽은 체육, 오락 활동과 정신 교화로 전범들을 교화시켜 ‘푸순의 기적’으로 불린다고 했다. 수용소 들머리엔 “세계 모든 인류를 해방시켜야 비로소 무산계급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다”는 수용소의 정신 개조 정책을 담은 글이 씌여져 있다. 저우언라이 전 총리는 “푸순 수용소가 모범적으로 전범들의 정치 교정 공작업무를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시관엔 당시 전범들이 운동회와 예술 행사를 벌이는데 사용한 축구공과 정구채, 체스판, 북과 깃발 아코디언 등이 놓여져 있었다. 의무실 앞엔 당시 뇌질환을 일으킨 일본 군 고위 간부를를 4년여나 돌보며 욕창 하나나지 않게 간호했다는 설명도 사진과 함께 붙어 있었다. 일부 전범들한테는 의족까지 맞춰 줬다는 기록도 있었다.
전범들은 새벽 5시에 기상해 8시에 아침을 먹은 뒤 11시30분까지 반제국주의, 중국 혁명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오후엔 다시 각각 2시간의 운동과 교육을 받은 뒤 저녁을 먹고 2시간의 오락 활동 뒤 8시에 취침을 했다. 전날 일제가 운영하며 연합군 포로들을 빽빽한 나무 침대에 칼잠을 재우고 일부에겐 생체 실험을 하기도 했다는 연합군 포로 수용소와는 자연스레 대비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 곳에 수감된 대부분의 전범들은 전후 일본으로 돌아갔다. 전시관 맨 마지막엔 전 일본인 전범 중국귀환자 연합회가 보낸 ‘중국인의 관용정책에 감사한다’고 적힌 글이 걸려 있었다.
중국 외교부와 랴오닝성 외사판공실은 16일과 17일 이어진 외신기자 초청행사를 주도 면밀하게 진행했다. 치밀한 방문 장소와 순서 배치를 통해 일제의 침략( 9·18 역사 박물관 방문)→잔혹 행위(일제 연합군 포로 수용소, 핑딩산 기념관)→중국의 관용(푸순 일제 전범 관리소)이란 줄거리를 연결해 냈다. 중국 쪽은 ‘잔인하고 반성없는 군국주의’ 일본과 피해자이지만 화해와 용서를 베푸는 ‘대국’ 중국을 대조해 부각하려 공을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분명한 의도 만큼이나 빈틈없이 짜여진 행사였다.
한·일, 워싱턴서 ‘총성 없는 전쟁’ 중 1.16 경향
미국 워싱턴에서는 요즘 한국·중국과 일본 사이에 과거사를 둘러싼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지난달 말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외교전은 더 노골화되고 있다. 중·일 간 외교전이 주미대사의 기고와 반박, 당국자를 상대로 한 설득전 등 주로 정부 차원에서 이뤄지는 반면, 미국의 두 동맹국인 한·일 간 외교전은 주로 양국 언론과 교민단체, 로비단체 등의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버지니아 주의회의 공립학교 교과서 일본해·동해 병기 논쟁이다. 버지니아주는 한인단체들의 로비로 몇 년 전부터 교과서에 동해를 병기하는 법안을 상정해왔다. 번번이 통과되지 못했지만 올해는 공립교육소위를 통과했고, 교육위 통과 가능성도 높다. 이에 일본 정부가 고용한 로비회사 직원이 주의회 토론에 방청객으로 참여해 반대 의견을 말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주미 한국총영사관 직원도 참석했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미국의 이해를 구하는 것을 놓고도 다툼이 벌어졌다. 아베 총리의 동생 기시 노부오(岸信夫) 외무차관이 미국을 방문해 스티브 샤벳 하원 동아·태소위 위원장에게서 “이해한다”는 발언을 이끌어냈다. 이에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15일(현지시간) 샤벳 위원장을 만난 뒤 샤벳 위원장이 “그 발언은 번역 오류이며 나는 일본의 입장을 동조하는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지난 7일 국무부에서 윤병세 외교장관과 존 케리 국무장관이 회담 후 기자회견을 할 때는 일본 기자들도 높은 취재 열기를 보였다. 백악관 청원 사이트 ‘위 더 피플(We the People)’에 올라온 청원 중에는 위안부 소녀상·기림비 철거, 동해·일본해 병기, 독도 영유권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요청 등 한·일 누리꾼들이 올린 청원들도 상당수 눈에 띈다.
일본계 이민 3세인 마이클 혼다 하원의원(캘리포니아주)의 중간선거 당내 예비선거도 한·일 갈등의 맥락에서 해석되고 있다. 혼다 의원은 오는 11월 있을 중간선거에서 8선에 도전하지만 당내에서 로 칸나라는 젊은 경쟁자에게 밀려 예비선거를 통과하지 못할 위기에 놓였다. 로 칸나는 인도계 이민자이지만 혼다 의원을 낙선시키려는 일본계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한·일의 과거사 전쟁터가 된 것은 둘 다 미국의 강한 영향권 아래에 있는 미국의 동맹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전후처리를 주도하면서 분명하게 처리하지 못한 문제들이 과거사 분쟁의 씨앗이 된 측면도 있다.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15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세미나에서 “(아베의 야스쿠니 참배는) 미국 외교정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중·일 간뿐만 아니라 미국의 두 우방인 한·일 간에도 긴장이 높아진 상태”라며 “수십년간 평화와 화합을 이뤄온 두 민주국가가 어려운 역사적 이슈들을 극복하고 미래에 좀 더 초점을 맞출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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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일본 극우 빼닮은 한국 극우의 '역사 도발'
"가해자인 일본과 피해자인 한국을 동일하게 취급한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교육부 대변인)
정부가 <뉴욕타임스>에 발끈했다. 정부를 화나게 한 건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역사 교과서 관련 정책이 닮았음을 지적한 <뉴욕타임스> 사설이다. 교과서 문제를 담당하는 교육부뿐만 아니라 외교부도 나섰다. 외교부는 "강한 유감"을 표명하면서 "<뉴욕타임스> 쪽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 지적대로, 한국과 일본은 다르다. 당연한 이야기다. 한일 관계사를 하나하나 되짚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사항이다. 그러나 일본이 가해자였고 한국이 그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박근혜 정부의 퇴행을 옹호하는 방패막이가 되리라 기대한다면, 그건 무리다. 그러기엔 한국과 일본, 두 나라 극우의 행태는 너무나 닮았다. 빼다 박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본에서 역사 교과서 퇴행의 선봉에 선 건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었다. 새역모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에서 이뤄진 역사 교육을 '자학 사관'으로 몰아붙였다. 자랑스러운 일본의 역사를 자학(스스로 학대)했다는 주장이었다. 군국주의 침략 전쟁 및 그 과정에서 자행한 민간인 학살을 반성하는 정당한 움직임을 일본이라는 국가의 정당성을 훼손한 일로 몰아세운 강변이었다.무시무시한 궤변과 함께 달콤한 사탕도 내밀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역사를 가르쳐서야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성공한 역사,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르쳐야 사회가 바로 서지 않겠느냐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그건 독이 든 사과였다. 저들이 내미는 '성공한 역사', '자랑스러운 역사'에 '종군 위안부', 난징 대학살 등 일본의 전쟁 범죄가 설 곳은 없었다. 전쟁 범죄 자체를 부인하거나, 그게 불가능한 사안에 대해선 왜곡하고 감추는 것이 '자학 사관'을 극복하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전범에 대한 재평가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전쟁 범죄를 자행한 부끄러운 조상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자랑스러운 일본인이라는 논리다.
저들은 역사의 진실과 인류의 보편적인 양심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이런 주장을 퍼뜨리는 데 온 힘을 다했다. 정치권과도 연계했다. 아베 신조 총리도 그중 하나였다. 아베 신조 총리는 자민당 의원이던 1993년, 새역모의 모태로 꼽히는 역사검토위원회를 만든 사람 중 하나다.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일회성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일본 극우는 이러한 자신들의 주장을 담은 교과서를 만들었다. 후쇼사 교과서다. 일본의 양심적 세력은 물론 한국 등 주변국에서도 이 교과서의 위험성을 비판했다. 그러나 후쇼사 교과서는 정치권의 지원에 힘입어 제도권에 진입했다. 초기 채택률은 낮았지만,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후쇼사 교과서 등장을 계기로 일본의 교과서 서술 지형이 오른쪽으로 이동했다는 점에서다. 후쇼사 교과서를 매개로 일본 극우가 역사 교육 지형을 서서히 바꿔갔다는 말이다.
일본 극우의 역사 왜곡 빼닮은 한국 극우의 '역사 도발'
한국 극우가 1990년대 이후 한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1995년 <조선일보>는 국민들 손에 쫓겨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추앙하는 기획을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이승만 살리기, 박정희 띄우기'가 확산됐고 2000년대 들어 뉴라이트가 그것에 앞장섰다. 이들의 주요 표적은 분단과 독재에 맞서 한 걸음씩 민주주의로 나아간 역사였고, 그 논리는 일본 극우의 '자학 사관' 궤변과 다르지 않았다.
핵심은 이승만·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성공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승만 정권 당시 수십 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이나 박정희 정권 때 이뤄진 숱한 인권 침해 같은 역사의 진실에 주목하는 것은 이들에게 '좌편향 사관'일 뿐이었다. 침략 전쟁을 통해 수많은 사람을 학살했던 자국의 과거를 감추는 일본 극우를 빼다 박은 모습이다. 군산복합체의 나라 미국이 이라크 전쟁 등을 통해 수많은 민간인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이를 '부수적 피해'로 간주하는 것과도 닮은꼴이다.
일본 극우가 후쇼사 교과서를 만든 것처럼, 한국 극우도 이러한 자신들의 논리를 바탕으로 한 교과서를 선보였다. 친일·독재 미화 논란을 불러일으킨 교학사 교과서다. 전형적인 지배자(일제 때는 일제, 이승만·박정희 정권 때는 이승만·박정희) 관점으로 서술됐을 뿐만 아니라, 북한을 끌어들이지 않으면 주요 사안을 설명하지 못하는 '종북 사관'이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건 분단과 독재가 아니라 그것을 한 걸음씩 극복해온 역사이며, 그걸 이뤄낸 힘은 대다수의 평범한 한국인들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은 이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위험하고 허술하고 부실하기 짝이 없다'며 각계에서 교학사 교과서를 우려한 이유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극우 교과서 구하기 작전'이 전개됐다. 교육부는 교학사 교과서를 구하기 위해 비정상적인 행보를 이어간다는 비판을 자초할 결정을 거듭 내렸다. 2008년 뉴라이트 단체인 교과서포럼에서 <대안 교과서>를 내자 "이제 걱정을 덜게 됐다"며 찬사를 보냈던 박근혜 대통령이 이끄는 교육부다운 행보다.
새누리당 의원들도 전면에 나섰다. 김무성 의원은 7종 교과서를 "부정적 사관에 의한 교과서"로 매도하고, 교학사 교과서야말로 "긍정적 사관에 의한 교과서"라고 치켜세웠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7종 교과서를 "좌편향 일색"으로 몰아가면서 "학생들이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자라도 시원치 않은 마당에 부정의 역사로 가득한 역사를 가르쳐서야 되겠느냐"고 주장했다. 이에 더해 7종 교과서를 "상한 음식"(염동열 새누리당 의원)에 비유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남로당식 사관"이라며 기존 역사 교육에 빨간딱지를 붙인 <조선일보>의 논리 그대로다. 또한 일본 극우와 논리는 물론 표현까지 빼닮은 강변이다. 새누리당이 당 차원에서 꾸리겠다는 '바른 역사 교과서 만들기 추진단'이 한국판 새역모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박근혜 정부, <뉴욕타임스> 지적에 발끈할 때 아니다
남북한의 극단주의 세력이 적대적 공존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 극우와 한국 극우는 이처럼 닮은꼴 행태를 보이며 공존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아베와 닮았다'는 지적에 발끈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일본의 군국주의 망령 부활 움직임을 비판할 자격이 한국인들에게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와 정반대다. 그건 한국인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일본 내 양심적인 세력과 손잡고 진행해야 할 사안이다. 문제는 일본 극우를 빼닮은 한국 극우와 박근혜 정부의 행보가 한국인들의 정당한 비판의 힘을 약화시킨다는 데 있다. 시쳇말로 일본 극우가 '한국 지배층, 너희들도 우리랑 똑같은 모습을 보이면서 우리한테 화살을 돌리냐'는 식으로 반박할 길을 열어준다는 말이다.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한국인들의 비판이 더 큰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이런 모순부터 해소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가 비판을 받는 건 일본군 출신 독재자(박정희)의 딸 혹은 A급 전범(기시 노부스케)의 손자여서가 아니다. 이른바 '백두 혈통'이라는 걸 내세우는 북한의 궤변이 우스운 것과 마찬가지로, 혈통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박 대통령도, 아베 총리도 잘못된 과거를 성찰하기는커녕 오히려 드높이려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교학사 교과서 문제가 터진 후 거리에서 이를 비판해야 했다. 그에 더해 교학사 교과서 배포 금지 소송까지 내야 했다. 전쟁 범죄를 감추려는 일본 정부와 고령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거리와 법정에 서게 만든 한국 정부, 그 거리는 얼마나 될까. 야스쿠니 참배를 당연하게 여기는 아베 신조 총리를 향해 "마이동풍"이라고 비판한 박근혜 정부가 자신들의 모습은 어떠한지를 깊이 생각하길 권한다.
朴대통령 "日,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반대" 1.15 머니투대이
인도 DDTV인터뷰… 中도 '일본 제외돼야 다른나라 진출 동의' 입장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개혁과 관련, 상임이사국 자리 증설보다는 비상임이사국 증설이 더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는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리고 있는 일본과 인도 등에 대해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어서 주목된다.
박 대통령은 이날부터 국빈방문하는 인도의 국영 두르다르샨(DD) TV와의 인터뷰에서 유엔 안보리 개혁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안보리 개혁은 책임성, 민주성, 대표성, 효율성이 동시에 되는 게 바람직하다"며 "한 번의 선거로 영구히 (상임이사국) 지위를 갖게 되는 상임이사국 자리를 증설하는 것보다 정기적인 선거를 통해서 변화하는 국제환경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식의 비상임이사국을 증설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한국 정부는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박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과거사 왜곡 등으로 문제를 빚고 있는 일본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일본이 현재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을 비롯한 인도와 독일, 브라질 등 4개국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이 논의되고 있다.
한국은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하며 '상임이사국 증설 반대 중견국가 그룹(UfC)'에 참여하고 있다. UfC는 한국과 멕시코·이탈리아·스페인·아르헨티나 등이 주도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와 함께 일본과 과거사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 역시 '일본'이 빠지면 나머지 국가들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동의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묻힐 뻔한 고위층 성접대 의혹 실체, 법정서 가려진다 1,18 미디어오늘
별장스캔들 리스트 리트윗 시민 27명에 무더기 벌금 “정식재판 청구…동영상공개 요구할 것”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의 성접대 의혹 사건과 관련해 문제의 동영상 속에 나오는 인물의 명단을 리트윗한 시민들이 무더기 벌금형에 처해지자 당사자들이 앞다퉈 정식재판을 청구하고 나서 주목된다. 이들은 모두 법정에서 성접대 의혹의 진상과 동영상 공개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김 전 차관을 비롯해 의혹을 받았던 인물들이 모두 무혐의 처분돼 용두사미 수사로 끝난 이른바 별장 성접대 의혹의 진상이 되레 엉뚱한 곳에서 가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사건은 지난해 3월 경찰이 건설업자 윤아무개(52)씨의 성 접대 의혹 사건 내사 착수 이후 유력 인사 10여 명의 이름이 담긴 ‘별장스캔들 동영상 속 리스트’를 55명의 트위터 이용자들이 리트윗하자 해당 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이 포함된 이철규 전 경기경찰청장이 이들 모두를 고소하면서 벌어졌다. 법원은 이달 들어 이들 가운데 27명에게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각각 30만 원부터 300만 원까지 벌금형에 처했다.
단지 리트윗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무더기 벌금을 내린 것은 흔지 않은 일로, 벌금형을 받은 시민들은 일제히 정식재판에 청구하겠다고 나섰다. 벌금 300만 원을 받은 원정스님(정정희)와, 유아무개씨(벌금 50만 원) 등 4명은 지난 17일 이미 정식재판 청구서를 법원에 냈다. 이밖에도 27명 대부분은 현재 민변과 한웅 변호사 등 변호인단을 구성해 정식재판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들 사건을 대리하고 있는 한웅 변호사는 1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단순히 트윗글에다 ‘알티(RT)라고 쓴 사람들과 리트윗을 누른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아무리 법적인 평가를 한다해도 이들의 행위를 자기 의견의 표명이라고 간주할 수 있겠느냐. 최초 작성자를 처벌하는 것은 따져봐야겠으나 단순히 리트윗 한 사람들을 처벌하겠다는 것 자체가 그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 변호사는 “리트윗 한 것을 두고 자기 의사를 고의로 드러낸 것으로 간주하고자 하는 것은 형법상 위험한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김문수 서울시의원의 경우 뉴타운 관련 리트윗을 했다가 500만 원 벌금형을 받았으나 정식재판을 청구해 1심에서는 유죄를 받았다가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이 나왔다고 그는 전했다. 한 변호사는 “이 사건은 죄형 법정주의 원칙상 무죄가 돼야 한다”며 “27명 거의 대부분은 정식재판 청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이들의 무더기 정식재판 청구에 따라 지난해 박근혜 정부 초기 인사문제 폐해의 상징적 사례였다가 이후 수사과정에서 흐지부지됐던 이른바 ‘김학의 성접대 의혹’ 사건의 실체가 다시 법정에서 다시 수면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 변호사는 “의혹을 받았던 사람들이 현장에 있었는지를 밝히기 위해 동영상에 나와있는 사람이 당사자가 맞는지 여부, 피해를 입었다는 여성의 증인 재청취, 특히 이를 위해서는 동영상 공개요구가 불가피하다”며 “동영상 속 인물이 김학의 등이 아니라는 것을 검찰 스스로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 변호사는 “검찰의 무리한 기소로 인해 검찰 스스로 코너에 몰려서 김학의 성접대 의혹의 진상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DJ가 간첩이라던 ‘채널A’, 한가히 놔두는 방통위 116 미디어오늘
[김창룡 칼럼] “前대통령이 간첩이면 그를 선택한 한국 국민은 뭔가?”
종합편성채널 출범부터 ‘강호동 야쿠자’논란으로 물의를 빚던 '채널A'의 위험한 폭주가 거칠 것이 없다. 방송심의위원회가 2014년 1월 뒤늦게 ‘김대중 전대통령은 김일성이 고용한 간첩’이라는 발언을 여과없이 내보낸 채널A에 대해 징계를 전제로 ‘의견진술’을 듣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채널A의 <이언경의 직언직설>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지난해 5월 2일자 방송에서 탈북자가 일방적으로 주장한 내용을 이제야 징계에 나서겠다는 것이고 그 징계 수위는 앞으로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늑장 대처에 할 말이 없지않겠지만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면, 방송통신위원회의 직무유기도 지적돼야 할 것 같다.
채널A는 탈북자를 출연시켜, “당시에 한국에 김대중이 대통령이 됐다. 김일성이 고용한 간첩이 대통령을 하는데, 어떻게 북한에 파견한 간첩들의 명단이 안 올수 있겠는가”라고 언급했다. 여기에 더해 이언경 앵커는 “믿을만한 얘기라는 말씀이신 것”, “남한의 누군가가 그 명단을 넘겼다는 게 지금 아버님의 주장이신 거죠?”라며 적극 호응한 것으로 보도됐다.
방송진행자와 탈북 출연자가 입을 모아 김대중 전대통령을 ‘김일성이 고용한 간첩’으로 몰아갔다. 근거는 없고 주장만 있었다. 방송내용대로라면, 그를 선택한 대한민국 국민은 ‘빨갱이’를 뽑았다는 말인가. 이런 위험하고도 놀라운 주장을 여과없이 내보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방송진행자, PD가 무지했다면, 자격을 박탈해야 하고, 일부러 그렇게 ‘노이즈 마켓팅’을 했다면 법적으로 처벌대상이다.
방송윤리강령을 이야기할 것도 없이 왜 법적으로 처벌 대상인지 세가지 이유만 정리하겠다.
첫째, 방송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 주장을 근거없이 내보내는 것을 금하고 있다. 방송법 제9조의 공정성 조항을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방송에서 어느 한쪽의 일방적 주장을 하지못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반론권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다. 방송에서 반대쪽 주장을 어떤 형태로든 내보내지 않았다면 공정성 위반에 해당된다. 특히 전대통령이 간첩이라는 위험천만한 주장은 대통령 개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그를 선택한 유권자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에 반대편 주장이 반드시 필요했다.
두 번째, 김대중 전대통령을 김일성이 고용한 간첩이라는 주장은 본인은 물론, 유가족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죄에 해당된다. 이는 형사법이 규정한 명예훼손죄,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죄에 해당되기 때문에 형사처벌감이다. 방송심의규정 제20조에도 명예훼손 금지를 명시해놓고 있다. 특정인에 대해 근거없이 간첩이니 사기꾼, 종북, 빨갱이 운운 하는 주장을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채널A는 김대중 대통령 유가족들이 명예훼손 소송을 못할 것을 알고 방송을 내보냈을 수도 있다. 소송을 하게 되면 오히려 이를 반기며 다시 ‘노이즈 마켓팅’에 활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번째, 방송진행자를 포함한 출연진, 책임 PD 모두에 해당되는데, 방송법 제7조 방송의 공적책임과 제14조 객관성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방송진행자는 이런 위험한 주장에 대해 즉각 그 자리에서 제지하지않았다는 점이다. 아니면 최소한 근거를 따져 물었어야 했다. 방송진행자는 최후의 데스크, 최종 편집국장이란 말은 그런 권한과 함께 책임이 주어졌다는 뜻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편집을 했어야 하고 즉각 사과방송을 내보내야 했다.
미국 CNN은 1998년 6월 월남전 당시 미군이 사린가스를 사용했다는 일방적 주장을 내보냈다. 나름의 근거를 제시했지만 이 뉴스는 한달 후 오보로 판명났다. 정정·사과는 물론이고 한국 언론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책임을 물었다. 오보의 주책임 프로듀서 에이프릴 올리버와 잭 스미스를 해고 조치했다. 군사평론가 페리 스미스도 해고당했다. 이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유명 사회자 피터 아넷도 처음에는 견책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피터 아넷 마저도 사실상 해고당했다. 이 후속 조치로 CNN은 기사의 정확성과 공정성, 책임성을 심사하고 평가하는 기구를 별도로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채널A가 종합편성채널 방송사로 존재하고 싶다면 방송윤리강령, 방송법 등 법과 제도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이를 반복적으로 어길 경우 방송통신위원회는 승인을 취소해야 한다. 법치사회에서 법을 반복적으로 심대하게 위반한다는 것은 고의성이 다분하며 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스스로 방기하며 시청률에 함몰됐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전 대통령조차 탈북자의 입을 빌어 간첩’이라고 방송을 내보내고 국민MC 강호동을 ‘야쿠자 커넥션’으로 엮는 채널A. 언제 한 개인을 ‘종북’ ‘빨갱이’ ‘간첩’으로 몰아세울지 두렵다. 채널A 방송여파로 인터넷에서는 ‘전 대통령을 간첩 맞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여기저기 보인다. 이념대결이 끝난 지구상에 남한에서 유독 종합편성채널들이 이념대결을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미디어오늘 사설] 어떤 기자이기를 선택할 것인지 묻는 두 사건 1.15
최근 두 여기자가 언론계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한 기자는 MBN의 김 아무개 기자이고, 또 다른 한 기자는 본지의 조수경 기자이다. 두 사람의 대비되는 행동과 상황은 언론계에 종사하는 모든 기자들에게 ‘당신은 어떤 기자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기자는 힘센 취재원의 품에 안겼고, 다른 한 기자는 힘센 취재원에게서 쫒겨났다.
먼저 MBN 김 아무개 기자. 지난 1월 6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가진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 기자실에 들러 청와대 출입 기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김 기자는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과 마주했다. 그는 대통령에게 “너무 안고 싶었어요”라며 안아 줄 것을 먼저 요청했다. 이 발언에 박 대통령은 환하게 웃으며, “남자 분들이 차별한다고 그래요”라며 농담을 던지며, 김 기자를 안아주었다.
김 기자는 박 대통령과 대선후보 시절부터 잘 알고 있던 관계였다고 한다. 후보시절 담당기자였다는 것이다. 다른 MBN기자에 따르면, 박대통령이 대선후보시절, 김 기자의 결혼식에도 직접 왔었다고 한다. 박대통령의 이 같은 살뜰한 ‘챙김’을 받았기에 인간적으로 “안아 달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을지 모르겠다.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항변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 날 김 기자는 인간 박근혜의 지인 김 아무개가 아닌 언론사 MBN을 대표한 김 기자로 대통령 박근혜를 만난 자리에 있었다. “안아달라”는 소리를 해선 안 될 자리였다. 미디어오늘이 김 기자가 쓴 기사들을 찾아보니 <박 대통령, 태릉선수촌 방문..“소치 대박”>, <박 대통령 “3개년 계획으로 국민소득 4만 달러 달성”> 등 박 대통령 홍보 기사가 많았다. 권력의 감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기자라는 지적이 가능했다. 김 기자는 그 행위로 한 번 더 인간적으로 박대통령의 호감을 사는 데 성공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변명의 여지없이 ‘권력의 품에 안긴 기자’라는 오명은 달게 받아야 할 처지도 함께 돼버렸다. 본인의 선택에 따른 결과인 것이다.
김 기자의 행동이 더 가혹한 비판을 받은 근본적 배경에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권력감시기능을 외면하고 있다는 국민들의 비판의식이 깔려 있다. 그날 대통령의 신년기자 회견은 조율된 각본대로 진행됐고, 다수의 기자들은 그 각본의 연기에 충실한 연기자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김 기자에게 쏟아진 ‘권력의 품에 안긴 기자’라는 비판이 스스로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지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
다음은 본지 조수경 기자 사건이다. 지난 1월 9일 검찰은 조수경 기자를 벌금형 100만원에 약식 기소했다. 조 기자는 미디어오늘의 미디어문화부의 MBC담당 출입기자로 2012년 6월 24일 취재차 보도국장실을 방문했다가 김장겸 보도국장과 MBC로부터 현주건조물침입 및 업무방해 혐의로 형사고소를 당한 바 있다. 조 기자는 당시 MBC노동조합이 자사 뉴스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담은 민주언론실천위원회 보고서를 발간하자, 이에 대한 김장겸 보도국장의 의견을 묻기 위해 서울 여의도 MBC 5층 보도국장실을 직접 찾아갔다. 조수경 기자가 소속과 이름을 밝히자 김장겸 보도국장은 “어디를 들어오냐”, “경비를 부르겠다”고 말했고, 이내 다른 직원이 들어와 조 기자의 양팔을 잡고 끌어냈다. 조 기자는 끌려 나오면서도 “미디어오늘 기자는 언론사 편집국에 들어가 취재한다”며 자신이 취재중임을 분명히 밝혔다.
조수경 기자는 MBC출입 기자로서 MBC뉴스의 불공정성과 보도국 운영의 문제 등을 지속적으로 지적, 비판하는 기사를 써왔다. MBC의 보도는 권력의 품에 안긴 모습을 보여 왔으며, 그 맨 앞에 김장겸 국장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국장에게 미디어오늘 조 기자는 불편한 존재였을 것이다. 조 기자에게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취재원의 방을 찾아가 비판적 질문을 던지는 것이 심리적으로 편안한 일은 못된다. 그러나 기자라면 누구나 불편한 장소에 불편한 대상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조 기자는 ‘기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다.
두 사건은 한국 언론계에 종사하는 모든 기자들에게 어떤 기자노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권력에 안아달라는 김 기자의 길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쫓겨나더라도 취재원에게 불편한 질문을 하는 ‘기자’의 길을 선택할 것인지.
NLL대화록 유출의혹 김무성 무혐의? “찌라시 같은 결론” 1.15 미디어오늘
야당 “검찰 짜맞추기 수사․국민 눈치 보기 행태…즉각 특검해야” 반발 확산
2007년 남북회담 대화록(서해북방한계선;NLL 대화록) 불법 유출 의혹과 관련, 불공정 수사 논란을 빚었던 김무성․서상기․정문헌 새누리당 의원과 권영세 주중대사,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등 관련자 9명 전원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짜맞추기 면죄부 발급용’ 수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15일 문화일보는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최성남 부장)가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NLL 대화록을 불법 열람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무성 의원 등을 조사한 결과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검찰은 또 서 의원과 남 원장에 대해서는 국정원이 절차에 따라 NLL 대화록을 공개, 열람했기 때문에 법 위반은 아니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김정현 민주당 부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보도가 사실이라면 검찰이 관련자에게 면죄부를 줄 요량으로 짜맞추기 각본에 따라 수사를 진행하고 국민들에게 쉬쉬하면서 눈치를 보며 발표할 시기만을 잡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정상회담 대화록을 ‘찌라시’ 수준으로 격하시켜 국격을 땅에 떨어지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김 부대변인은 이어 “NLL 대화록 유출사건은 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든 국기문란사건으로 전원 무죄 결론이 내려진다면 국가기관이 앞장서 민주주의 뿌리부터 뒤흔드는 꼴”이라며 “검찰은 면죄부 발급용 정상회담 대화록 유출사건 수사를 당장 중단하고 국민이 납득할 만한 수사 결과를 내 놓으라”고 비판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변인도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은 불법 대화록 공개 사건을 이렇게 간단하게 결론 내릴 수 있는 검찰의 용기가 감탄스러울 따름”이라며 “‘찌라시’에 근거한 ‘찌라시’ 발언에 ‘찌라시’ 같은 결론”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변인은 “모든 대선 불법 개입에 대해 더 이상 검찰수사에 맡길 수 없음이 다시 확인됐다”며 “대선 개입과 수사 방해를 포함한 총체적 불법행위를 밝힐 수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즉각 특검을 수용하라”고 촉구했다.
'기초공천 폐지 찬성' 49% '기초공천 유지' 25% 117 뉴시스
시·군·구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회 선거 정당공천 폐지에 찬성하는 의견이 절반에 육박하는 것으로 17일 확인됐다.
한국갤럽이 지난 13~16일 전국 성인 1208명 대상 자체조사에서 '기초단체장, 기초의원 후보에 대해 현행대로 정당공천하는 것이 좋다고 보냐, 공천하지 낳는 것이 좋다고 보냐'고 물은 결과 49%는 '정당 공천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답한 반면 25%는 '공천하는 것이 좋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응답은 26%였다.
'특별시와 광역시의 구의회를 폐지하고 시의회가 그 역할까지 함께 하도록 하자'는 의견에 대해 '찬성하냐 반대하냐'는 질문에는 53%가 찬성의견을 내놨다. 26%는 폐지에 반대했고 21%는 응답하지 않았다. '교육자치와 전문성을 위해 시도 교육감 직선제가 도입됐지만 최근 비리 문제로 폐지 논란이 있다. 시도 교육감 직선제를 유지해야한다고 생각하냐 폐지해야한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49%가 폐지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직선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34%, 무응답은 17%였다. '교육감직선제를 대신해 시도지사와 시도교육감이 동반출마하는 러닝메이트제도를 도입하자는 의견이 있는데 시도지사와 교육감 러닝메이트제에 찬성하냐 반대하냐'는 질문에는 '도입 찬성'이 43%, '도입 반대'가 34%였다. 무응답은 23%였다.
한국갤럽 관계자는 "논란이 되고 있는 기존 제도 폐지에는 우리 국민 절반가량이 찬성했고 시도지사-교육감 러닝메이트제 도입에도 전향적 태도가 나타났다"면서 "세부 찬반 양상은 다르지만 유권자 다수는 기존 선거 제도의 간소화와 효율화를 바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8%포인트였다. 총 통화 7720명 중 1208명이 응답해 응답률은 16%였다. 표본추출 방법은 휴대전화 RDD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이다. 응답방식은 전화조사원 인터뷰다.
표본 중 남성은 599명, 여성은 610명이었다. 19~29세가 216명, 30대가 234명, 40대가 267명, 50대가 235명, 60세 이상이 256명이었다
국민과의 약속은 하늘이 무너져도 지킨다”더니…117 경향
ㆍ박 대통령 스스로 무너뜨린 ‘신뢰와 원칙’
박근혜 대통령은 ‘신뢰와 원칙의 정치인’이란 이미지가 강하다. 1998년 대구 달성 국회의원 보궐선거로 정치에 입문한 이후 박 대통령은 수시로 이를 강조했다.
2007년 6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종합토론회에서 “저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았고, 한 번 약속한 것은 하늘이 무너져도 지켰다”고 말했다. 이후 경선에서 석패했지만 깨끗이 승복하면서 신뢰의 이미지를 쌓았다.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자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원안 고수로 맞서 관철시켰다.
지난 대선에서는 이 같은 정치적 자산을 극대화해 선거에 활용했다. 2012년 7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국민과 약속을 지키는 일에는 정치생명을 걸고 싸워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12월 대선 후보 첫 TV토론에선 “대통령이 된다면 첫째로 약속을 지키는 정치를 하겠다”며 1순위 약속으로 ‘공약 실천’을 내세웠다. 대통령 당선인이던 지난해 1월 대통령직인수위 위원들과 가진 국정과제 토론회에서 “제가 약속하면 여러분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며 엄포를 놓았다. 2월 대통령 취임사에선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씻어내고 신뢰의 자본을 쌓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취임 후 이 약속들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의 지난해 11월 국회 시정연설과 지난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공약’이라는 단어가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았다. ‘약속’과 ‘실천’은 신년 회견에서만 단 한 차례, 공약과 무관하게 등장했다. “북한이 국제사회와 약속을 지키고”,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3대 추진 전략을 중심으로 실천할 것”이었다. ‘신뢰’라는 단어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남북신뢰’ 등 대북 관계에서 주로 쓰였다.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소치 올림픽 1.15 프레시안
스포츠의 세계는 순수하지 않습니다. 권력과 자본이 정치적,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하기 때문이죠. 앞으로 한 달 뒤, 2월 8일부터 2월 24일까지 17일간 열릴 소치 동계올림픽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다수 한국인에겐 김연아 선수가 올림픽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할까, 얼마나 우아하고 멋지게 피겨 여왕의 모습을 보여줄지가 초미의 관심사겠죠.
하지만 소치 올림픽은 "세상이 다 그렇지, 뭐"라고 눈감아 버리기에는 '불편한 진실'이 너무나 많은 대회입니다. 지금 소치 올림픽을 둘러싸고 러시아 내에서는 '동상이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현대판 차르'로 불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소치 올림픽을 자국과 자신의 위상을 선전할 축제로 만들려고 엄청 공을 들여왔습니다. 반면, 분리 독립을 외쳐온 러시아 내의 자치공화국들은 소치 올림픽을 망치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입장을 세계에 알릴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역사상 올림픽을 자국 체제의 우수성을 과시하기 위해 노골적인 '정치 이벤트'로 활용한 가장 유명한 사례는 1936년 베를린 하계올림픽입니다. 당시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는 올림픽을 통해 나치 체제를 세계에 과시했죠. 2014년 소치 올림픽은 '제2의 베를린 올림픽'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계올림픽으로 가장 정치적인 행사였던 것이 베를린 올림픽이라면, 동계올림픽 사상 가장 정치적인 행사가 될 것이라는 말들이 나옵니다. 게다가 소치 올림픽은 매우 위협적이기도 합니다. 분리 독립 반군들이 소치 올림픽을 '테러의 제물'로 삼겠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죠. 이미 지난해 말 이틀 연속 소치로 들어가는 교통 요지인 볼고그라드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34명이 사망하고 60여 명이 다쳤습니다.
소치 올림픽은 자칫하면 '테러 공포'와 인권 문제 등으로 개막식에 서방국 정상들이 거의 참석하지 않는 '반쪽 개막식'으로 시작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1980년 모스크바 하계올림픽은 미국과 서방이 당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 불참하면서 반쪽 대회로 치러졌었죠. 러시아는 소치 올림픽까지 개최하면서 하계와 동계 올림픽을 개최한 일곱 번째 나라가 됩니다. 하지만 소치 올림픽도 엉망이 돼 "하계와 동계 올림픽을 모두 '반쪽 행사'로 개최한 나라"라는 굴욕적인 기록을 세우게 될지도 모릅니다.
너무나 정치적인 개최지 결정
'평화의 축제'라는 올림픽 개최지로 소치가 선정된 것 자체가 얼마나 정치적으로 개최지가 결정된 것인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얼마나 정치적인 조직인지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2014년 신년사 메시지가 여실히 보여줍니다. 푸틴은 신년사에서 "테러리스트들과 끝까지 싸우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볼고그라드에서 연쇄 폭탄 테러가 발생하는 테러 위협이 고조되자 강경 대응 의지를 밝힌 것이죠. 푸틴은 "볼고그라드 테러 희생자들 앞에 머리를 숙인다. 우리는 테러리스트들이 전멸할 때까지 맹렬하고 끈질기게 싸울 것"이라면서 "볼고그라드 테러와 극동 지역의 자연재해 등 엄청난 시련을 겪었지만 러시아는 어려운 시기일수록 똘똘 뭉쳐 이겨냈다"고 역설했습니다.
도대체 올림픽을 개최하는 국가에서 대회를 두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테러가 빈발하고,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테러리스트 박멸"을 외치는 살벌한 곳이 '평화의 제전'을 개최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요? 러시아에서 올림픽이 개최될 경우 이렇게 테러 위협에 시달릴지 IOC 위원들이 몰랐을까요? 2007년 7월 과테말라시티에서 열린 IOC 총회 1차 투표에서 큰 표로 소치를 눌렀던 평창은 급히 현지에 날아온 푸틴 대통령의 '로비력'에 밀렸습니다. 당시 2차 투표에서 승부가 극적으로 뒤집혔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51대 47, 네 표 차이로 소치는 평창을 누르고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됐죠.
푸틴은 평창과는 상대가 안 되는 120억 달러의 자금을 투입하겠다는 약속으로 IOC 위원들의 지지를 끌어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500억 달러로 예산이 불어났다고 합니다. 물론 그중 200억 달러 이상은 푸틴의 측근들이 사실상 '횡령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소문도 무성합니다. 어쨌든 소치 올림픽에 투입된 예산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많습니다. 역대 동계올림픽 최대 예산은 1998년 나가노 올림픽의 175억 달러입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420억 달러의 예산을 들였다지만, 경기 종목 수가 3배가 넘는 하계올림픽이라는 점에서 역시 소치 올림픽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사상 최악의 올림픽이 될 가능성"
이렇게 돈을 물 쓰듯이 쓴다고 해서 소치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치러질지는 미지수입니다. 푸틴 정권이 '테러 위협'을 통제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기 때문이죠. 지난 연말 연쇄 폭탄 테러 용의자는 러시아 남부 코카서스 지방 북부에 있는 다게스탄공화국 이슬람 반군 소속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소치가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되자마자 많은 전문가들은 러시아로부터 분리 독립을 추구하는 반군세력이 자신들의 위상을 전 세계에 드러내 보일 좋은 기회로 삼아 개최일이 다가올수록 테러 공격이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연말의 연쇄 테러로 이런 경고는 현실이 됐습니다. 그뿐이 아니죠. 러시아의 드넓은 땅에서 올림픽 개최지인 소치만 철통 보안을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주변 곳곳에서 테러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는 사실상 힘들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특히 지난 20여 년 동안 피비린내 나는 분리 독립 투쟁을 벌여왔던 체첸공화국 이슬람 반군들은 '피의 보복'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알카에다', '러시아의 빈 라덴'이라고 불리는 체첸의 이슬람 무장 단체 '카프카즈 에미리트'와 지도자 도쿠 우마로프는 지난해 7월 "러시아가 '무슬림의 유골' 위에 올림픽을 개최하려 한다"면서 "우리는 전능하신 알라가 허락한 모든 수단을 이용해 저지할 의무가 있다"고 성전을 촉구했습니다.
우마로프는 소련 붕괴 후 분리 독립을 위한 투쟁을 주도하고 지난 2006~2007년 체첸의 5대 대통령을 지내기도 했으나, 지금은 미국과 러시아로부터 '테러리스트'로 수배된 인물입니다. 2009년 네프스키 고속철 폭탄 테러(28명 사망), 2010년 모스크바 지하철 폭탄 테러(40명 사망), 2011년 모스크바 공항 테러(36명 사망) 등도 우마로프가 이끄는 '카프카즈 에미리트'의 소행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때문에 소치 올림픽 기간 중 비극이 벌어질 경우 푸틴과 IOC의 무책임한 '스포츠 정치'가 참사를 초래했다는 책임론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러시아 전문 언론인 데이비드 새터는 볼고그라드 연쇄 테러 직후, CNN 방송 기고문에서 "소치 올림픽이 올림픽 역사상 최악의 재앙이 될 가능성을 보여준 불길한 조짐"이라고 경고했습니다.
(☞ Attacks show Sochi Olympics under grave threat)
새터는 "소치 올림픽을 찾을 12만 명 중 많은 사람들은 사실상 전쟁터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서 "소치로 들어가는 교통 요지인 볼고그라드에서 테러를 막지 못했다는 것은 러시아 당국의 무능력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출처: 경향신문
IOC가 소치를 택한 배경
새터는 "푸틴이 2007년 IOC 위원들이 소치를 선택하도록 설득할 때, IOC는 거절할 충분한 이유가 이미 있었다"면서 "러시아 대표단은 러시아가 '젊은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정치적 반대자들은 탄압받고 심층 보도를 하던 언론인들은 살해되는 상황이었다. 동시에 이슬람 반군은 소치와 근접한 코카서스 북부에서 세력을 키워가고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새터는 "IOC가 소치를 개최지로 선택한 것은 푸틴의 로비와 다른 경쟁 도시 두 곳이 제시한 예산의 두 배에 달한 120억 달러 예산 덕이었다"면서 테러 위협이 높아진 러시아의 소치를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한 IOC의 무책임한 결정을 비판했습니다.
새터에 따르면, 체첸의 상황은 심각합니다. 2005년 체첸의 분리 독립 지도자 아슬란 마스하도프를 러시아군이 살해한 이후 도쿠 우마로프가 반군 지도자로 급부상했고, 우마로프는 '흑해에서 카스피해에 이르는 이슬람 국가 건설'을 위한 성전을 선포하면서 테러 공격을 주도해왔다는 것이죠. 그래서 새터는 "소치 올림픽 방문객들은 IOC가 다른 개최지를 선택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위험에 직면하게 됐다"고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새터는 이 위험을 반군의 공격에서만 찾지 않았습니다. "러시아 치안군이 제기하는 위험"도 있다는 겁니다. 사실 러시아군은 인질 테러 사건이 벌어지면 인질의 생명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진압 작전으로 악명이 높죠.
지난 2002년 모스크바 극장 인질 사건 당시 러시아군은 수천 명의 인질이 있는 상황에서 독가스를 살포한 진압 작전을 감행해 순식간에 129명이 사망했었죠. 2004년 베슬란 초등학교 체육관 인질 사건 때는 수류탄과 화염방사기를 동원한 진압 작전으로 수백 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334명의 인질이 사망했습니다. 새터는 "1994년 당시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체첸 진압 작전을 벌여 '짧은 승리'를 거뒀지만, 이후 19년 동안 수많은 희생자를 낸 갈등을 촉발했다"면서 "IOC가 선전 이벤트를 개최하려는 푸틴의 욕망에 영합하는 무책임한 결정으로, 이제 더 많은 희생자가 초래될 무대가 마련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미 올림픽에 참가하려는 선수들 중에는 최소한 개막식만큼은 참석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미국 스노보드 올림픽 메달리스트 세스 웨스콧 같은 유명 선수도 "과격 단체들이 개막식을 가장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기회로 볼 것"이라면서 "정말 걱정된다"고 토로했습니다.
푸틴, 막판 '사면 카드'까지 동원
푸틴이 소치 올림픽으로 국제적 이미지를 높이려는 기대 때문에 러시아가 '인권 탄압 국가'로 낙인찍힐 것을 피하려고 좌충우돌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외국인까지 적용된다는 '동성애 반대법'을 공포했던 푸틴은 국제 사회의 비판이 거세자 "동성애 선수들의 참가를 환영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혹시 소치 올림픽 방문객으로 러시아에 갔다가 "최고"라는 의미로 엄지를 치켜세우지 말아야 한다죠? 러시아에서는 이 동작이 "나는 동성애자"라는 표시라고 하니, 봉변을 당하지 않으려면 알아두어야 할 여행 정보가 되겠네요. 지난달 푸틴은 자신에게 도전해 10년간 감옥살이를 했던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전 유코스 회장을 갑자기 석방하고, 푸틴을 비판한 죄로 투옥된 여성 밴드 '푸시 라이엇', 그리고 러시아의 북극해 유전 개발에 반대하다 체포된 그린피스 회원도 잇달아 풀어줬습니다. 소치 올림픽 기간에 해당 지역에서 집회 및 시위를 전면 금지하려던 방안도 돌연 철회했습니다 하지만 올림픽 개막일을 앞두고 속 보이는 이런 조치들로 푸틴의 '차르' 이미지가 개선되거나 소치 올림픽의 테러 위협이 줄어들어 성공적인 대회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이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나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 등 서방의 정상들이 "소치 올림픽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호주는 아예 자국의 선수들을 소치 올림픽에 보내지 않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도 들립니다.
법원 “MBC 파업은 정당”… 해고자 전원 복직 판결 117 미디어오늘
재판부, 파업 정당성 인정 “방송공정성은 기초적인 근로조건”…해고 언론인 6명 복직 문 열렸다
지난 2012년 '공정방송 회복과 낙하산 사장 반대'를 명분으로 170일 간 벌인 파업으로 회사측으로부터 해고를 당한 MBC 노조원 전원이 MBC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 확인소송에서 승소했다. 재판부는 MBC 파업에 대해 방송 공정성을 회복하기 위한 정당한 파업이라고 판결했다. 이로써 정영하 전 본부장, 이용마 기자, 강지웅 PD, 박성제 기자, 박성호 기자, 최승호 PD 등 6인 노조원들의 복직의 문이 열렸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17일 오전 “일반적인 기업에 있어선 임금·근로 시간·복지·해고 기타 등 대우 등 근로조건 분쟁에 한해서만 쟁의행위 목적 정당성 인정된다”면서 “그러나 일반 기업과 달리 언론매체 경우 민주적 기본질서를 유지 발전에 필수적인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 보장, 올바른 여론 형성을 위해서 방송 객관성과 공정성을 유지할 의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와 같은 의무는 헌법 및 방송법 등 관련 규정에 의해 인정되는 원칙”이라면서 “따라서 방송사 공정방송의무는 노사 양측 요구되는 의무임과 동시에 공정성 보장 요구는 근로관계의 기초를 형성하는 근로조건에 해당한다”고 했다.
남부지법은 “따라서 사용자가 관련 법규를 위반해 인사권을 남용하고 방송법상 규정된 방송 공정성을 훼손하거나 이를 훼손할 가능성 있는 경우에는 이를 근로조건 저해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방송법 등 관련 규정이 인정한 공정방송 의무를 위반한 위법행위에 해당한다”고 규정했다. 남부지법은 “다만 일부 파업 참가자들이 과정에서 경영진에게 물리력을 행사하고 구성원 명예훼손 등은 일부 징계 사유 인정되지만 일부 징계에서의 절차상 하자가 인정되고 주된 징계 사유인 파업 참가의 정당성이 인정되는 한편 MBC의 조속한 정상화 염원과 내부 구성원 갈등 해소 등의 요청을 감안, 사용자가 원고에 대한 징계 재량권을 일탈하고 남용했다고 본다. 따라서 원고에 대한 징계 처분은 무효”라고 했다.
5조4천억원 부산 에코델타시티 사업 철회 검토 1.18 경향
ㆍ4대강 빚 갚으려 시작… 국토부 “분양 성공 여부 재검토”
국토교통부가 5조4000억원이 투입되는 부산 에코델타시티 사업 철회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에코델타 사업은 대규모 수변 개발사업으로 사실상 8조원에 이르는 한국수자원공사의 4대강 빚을 갚기 위해 시작됐다. 주택 2만9000가구를 공급하는 이 사업은 시작부터 사업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17일 국토부와 업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국토부는 지난해 말 에코델타시티 사업에 대한 사업성 재평가 용역을 국토연구원에 발주하고 오는 3월 결과를 받는다. 이번 용역은 민간 개발사업자가 직접 사업성을 평가하도록 해 실제 분양 성공 가능성을 따져보기로 했다. 만약 사업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사업을 취소하거나 축소하기로 했다. 에코델타시티는 수공이 진행 중인 3개 수변 사업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수공은 사업비의 80%인 4조3000억원을 부담하는데 2018년 사업이 끝나면 분양을 통해 6000억원의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투자와 수익 회수의 시기가 맞지 않는 데다 사업성마저 점차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2017년까지 공공기관 부채를 대폭 축소하겠다고 밝혔지만 현 상태로라면 수공의 부채는 그즈음 절정에 이른다. 분양도 최대 10년에 걸쳐 수익을 회수하기 때문에 재무제표가 크게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철새를 지키려는 지역 환경단체의 요구가 거세 친환경 건설에 따른 공사비가 당초보다 많이 들고 건물증축에 제한을 받는 등 수익성도 떨어지고 있다.
국토부가 사업 철회 카드를 꺼내든 이유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에코델타시티는 토지 100%를 주민으로부터 매입해야 하는데 지난해까지 토지보상은 전체 면적 대비 28%에 그쳤다. 수공이 쓴 자금도 4100억원에 그치는 만큼 지금 사업을 그만두더라도 매몰비용(사업포기로 버려지는 투자금)은 견딜 만하다는 얘기다. 수공은 “앞으로 에코델타시티 사업으로 늘어날 4조원의 빚은 추후 공공기관 경영평가 시 부채에서 빼달라”고 국토부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수공은 4대강 사업으로 떠안게 된 8조원의 빚을 경영평가에서 제외시키는 특혜를 받았다.
오는 6월 부산시장 선거도 변수다. 사업을 주도했던 3선의 허남식 시장이 물러나면 다음 시장이 부산도시공사를 통해 1조원이 넘는 돈을 투자하는 데 부담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국토부 관계자는 “에코델타시티 분양이 저조할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프레시안 단독] 끝나지 않은 'BBK사건'…"다스에 140억 요구"117
옵셔널벤처스 측, 김경준-다스 상대로 한 美 소송에서 승소
옵셔널벤처스(옵셔널) 주식 사기 사건 피해자들이 주식회사 다스 '140억 송금'을 놓고 미국에서 벌인 재판이 15일(현지시간) 옵셔널의 승리로 귀결됐다. 옵셔널캐피탈(옵셔널벤처스의 후신) 장용훈 대표는 16일 <프레시안>과 한 인터뷰에서 "승소 판결문을 근거로 주식회사 다스 측에 140억 원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사건은 미국 연방법원이 "극도로 복잡한 사건"이라고 했을 정도로 난마(亂麻)와 같다. 이 소송은 지난 2010년 말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미국 연방법원은 옵셔널캐피탈 피해자들이 김경준 씨 측과, 알렉산드리아 인베스트먼트 회사, 스위스 알렉산드리아 계좌 등을 상대로 낸 '371억 원을 횡령 사건'에서 김경준 씨 등의 횡령이 맞다는 판결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미 연방 검찰은 김경준 씨 측으로부터 압류해 보관 중이던 140억 원에 대해 옵셔널, 다스, 김경준 측 등 3자가 소유권을 결정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김경준 씨 측은 다른 민사소송을 근거로 미 연방법원의 관할권 하에 있던 스위스 알렉산드리아 계좌에서 140억 원을 빼내 다스 측에 송금을 해버렸다.
'횡령 피해자'인 옵셔널 측은 140억 원에 대한 처분권의 우선순위는 자신들에게 있다며 이같은 방식의 송금이 부적절하다고 소송을 냈지만, '소송관련 행위에 자유를 보장하는 특별법'에 따라 미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김 씨 측이 옵셔널이 아닌 다스를 선택해 송금한 것이 '소송의 특권'에 따른 적절한 행위였다는 취지다.
그러나 옵셔널 측은 곧바로 항소했다. 이에 대해 항소법원이 "김경준의 크레딧스위스뱅크 계좌에 있던 돈은 옵셔널에서 횡령한 돈으로 이미 입증됐기때문에 140억 원 송금은 사기성 이체로 이는 '소송특권법'에 따른 특권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1심 판결을 사실상 뒤집은 것이다.
미국 연방 법원은 2심제로, 이는 최종 판결에 해당한다는 것이 장용훈 대표의 설명이다. 장 대표는 이번 판결의 의미에 대해 "140억 원을 다스로부터 돌려받을 수 있는 강력한 근거를 확보한 것"이라며 "먼저 다스 측에 이 판결을 근거로 140억 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것이고, 돌려주지 않겠다면 '추가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스 측이 이 요구를 거부할 경우, 옵셔널 측은 이 판결을 근거로 다스 미국 자산 등에 대한 동결 조치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또 "문제가 됐던 스위스 계좌에서 어떻게 돈이 송금됐는지, 다시 한번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의 뿌리는 BBK사건과 닿아 있다. BBK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에리카김 씨의 동생 김경준 씨가 함께 설립한 투자회사다. BBK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 실소유주 의혹을 받고 있는 주식회사 다스가 190억 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과 김 씨는 결별하게 되고, 김 씨는 BBK의 사실상 후신인 옵셔널벤처스의 회사 돈을 횡령해 미국으로 도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피해자가 발생하게 된다. 옵셔널 측과 다스 측이 모두 '피해자'가 된 셈이다. 그러나 김경준 씨는 미국에서 벌어진 소송을 통해 옵셔널 측 피해자가 아닌 다스 측에 140억 원을 송금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권력과의 이면합의' 의혹 등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번 판결로 '140억 송금 사건'의 진실과 함께, 다스의 '실소유주'에 대한 의혹의 실마리가 드러나게 될지 주목된다.
복지 사라져도 박근혜 지지율 하락하지 않은 이유는? 프레시안 117
[김윤태 칼럼] 복지 태도와 정당 전략의 중요성
최근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에서 ‘복지국가’가 사라졌다. 그러나 대통령의 지지율은 크게 하락하지 않았다. 1년 만에 대선공약이 완전히 실종되어도 유권자들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일부 정치평론가는 작년부터 ‘안보 프레임’으로 보수층이 강력하게 결집하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다른 전문가는 경제위기가 계속되면서 사람들의 ‘복지확대’에 대한 기대를 약화되었다고 분석한다. 과연 그런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아직도 국민 가운데 3분의2 이상이 ‘복지확대’를 원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라는 방법의 문제이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10명 중 6명이 대통령이 말한 ‘증세 없는 복지’는 신뢰하지 않는다. 하지만 ‘복지 위한 증세’를 지지하는 사람은 10명 중 3명도 되지 않는다. 이런 모순적 태도의 숨겨진 논리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인구집단별 응답을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놀랄만한 일은 복지혜택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서민층이 증세에 대해 반대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서민층이 복지국가를 외면하는 이유는?
사회학에서는 국민의 복지에 대한 반응이나 견해를 ‘복지태도(welfare attitude)’라고 부른다. 서구의 학자들은 사람들의 계급 위치에 따라 복지태도가 달라진다고 분석한다. 대표적으로 스웨덴 사회학자 스테판 스발포르스는 스웨덴의 노동계급이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성향이 강한 반면에 부유층은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경향이 약하다고 분석했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계급이 복지태도에 미치는 효과는 미약하다. 저소득층이 복지 확대를 지지하는 ‘탈계급성’의 성향이 강하다. 복지 태도의 탈계급성은 전체적으로 국가 복지에 대해서는 관념적 지지를 보이면서 복지에 필요한 증세와 사회보험 기여금의 인상에는 소극적 태도를 만든다.
김영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낮은 수준의 복지 인식은 대중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정당과 노동조합 등 이익집단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사회적 환경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한다. 실제로 1987년 이후 한국 정당은 지역주의 기반을 토대로 성장했으며, 복지와 재분배를 둘러싼 ‘계급정치’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다. 정당은 지역구 유권자를 유혹하는 지역개발 공약만 되풀이한다. 다른 한편 기업별 노동조합은 임금인상과 후생복지에 주로 관심을 가진다. 이로 인해 건강보험, 연금, 주택, 교육은 중요한 선거 쟁점이 되지 못했다. 이 문제를 조금이라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인정할 것이다.
중산층이 되면 보수화된다고?
정치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은 자신의 계급적 위치와 다르게 투표하는 성향을 ‘계급배반투표’라고 부르는데, 이에 관한 논쟁은 오랜 역사를 가진다. 1959년 미국 사회학자 세이머 마틴 립셋과 레너드 벤딕스는 <산업사회의 사회이동>에서 미국과 유럽에서 상향 사회이동을 경험한 사람들이 더 보수적 성향을 가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이 지향하는 계급과 동일시하는 열망이 ‘과잉동일시’와 ‘과잉순응’의 태도를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계급에서 중간계급으로 이동한 사람들이 더 보수적일 가능성이 크며, 노동계급 출신 중간계급 유권자는 자신의 부모가 지지했던 진보정당이 아니라 보수정당을 지지할 가능성이 많다. 상향 사회이동을 경험한 사람들이 더욱 보수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가정은 한국과 같이 급속한 경제성장과 중간계급의 확대를 경험한 사회는 자동적으로 보수화될 것이라는 주장을 지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관한 경험적 연구는 충분하지 않아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그러면 반대로 부모 세대보다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보일까? 최근 한국에서 스스로 ‘서민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이 점점 증가하여 50퍼센트 수준에 도달하였지만, 곧 바로 복지태도의 변화를 유발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노동시장의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사회경제적 격차가 커지면서 사회의 공정성에 대한 저소득층의 불만은 커지고 있지만, 복지 확대와 증세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복지가 기업에 부담을 주고 경제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보수적 이데올로기와 담론의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하다. 새누리당과 민주당과 같은 거대 정당도 겉으로는 복지확대를 지지하지만 (그들의 진심은 의심스럽지만) 증세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계급정치는 사라졌는가?
1960년대 후반 서유럽과 미국의 정치에서 계급정치가 지속적으로 쇠퇴했다는 이론적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계급이 더 이상 투표 행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통계분석의 정교한 방법이 등장하면서 ‘무경향적 변동(trendless fluctuation)’을 주장하는 관점이 제기되었다. 대표적으로 미국 정치학자 마이클 하우트는 계급의 중요성이 약화된 것이 아니라 계급이 유동하고 있다고 본다. 정당을 지지하는 사회적 토대의 변화보다 정당의 전략에 따라 계급투표가 변화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미국 정치에서 초계급적 호소와 인종주의의 호소가 투표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유럽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하우트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정치에서 계급이 계속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만, 공화당을 지지하는 숙련 노동자들이 ‘비일관적’ 투표 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들은 정치에 관심이 많지만, 조세, 복지 재정 등 공공정책보다 정치적 스캔들의 영향을 받는다. 최근 미국 역사학자 토마스 프랭크는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에서 가난한 노동자들은 인종주의와 종교적 가치에 영향을 받아 오히려 자신의 사회경제적 이익과 반대로 복지 삭감과 감세를 주장하는 보수정당을 지지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복지가 주로 흑인을 돕는다는 인종적 편견이 미국에서 복지국가의 발전을 막는다고 보았다.
오마이뉴스
정치적 기회가 없다면 계급정치는 없다
나는 한국인의 복지태도의 변화에는 한국 정치의 구조적 조건과 정당의 선거 전략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시민의 목소리는 정치적 과정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보면, 대중의 불만, 조직적 의식, 자원이 충분하지 못하고 ‘정치적 기회(political opportunity)’를 갖지 못하는 조건에서는 사회운동이 성공하기 어렵다. 정치적 기회란, 1998년 <운동의 권력>을 출간한 미국 정치학자 시드니 태로우에 따르면, “사람들이 논쟁적 정치에 참여하도록 격려하는 정치투쟁의 지속적 차원”이다. 정치적 투쟁은 반드시 국회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라 시민사회의 캠페인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정치적 기회를 갖지 못하는 대중은 자신들의 불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며 정치적 변화를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한국의 경우에도 대기업의 정규직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사갈등이 빈발하게 발생하는 현상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발견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조합이 없거나 너무 미약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정치적 기회가 없다면 계급정치는 없다. 정치적 기회의 관점은 정치 과정을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이해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유권자의 태도에 영향을 주는 정치적 차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념 성향의 효과가 나타나는가?
나는 2009년 이후 3년간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여론조사 자료를 토대로 복지태도의 변동을 분석하였다. 고려대 한국학연구소 <한국학연구>(2013년 9월호)에 발표한 이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의 복지 태도가 비일관성과 모순성을 가진다는 (2010년 복지패널 자료를 활용한) 과거의 분석과 다르게 복지태도가 소득 수준과 일정한 상관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무상급식과 복지공약이 전면적으로 부상되면서 사회적 균열과 정치적 기회가 변화하였으며, 결과적으로 복지태도의 차이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저소득층과 여성의 복지와 증세에 대한 지지율이 증가하면서 복지 태도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주었다.
이 분석 결과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진보 성향을 가진 응답자가 복지와 증세에 관한 긍정적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는 복지와 세금을 이념적 차원으로 인식하면서 정책 선호와 선택에서 일관성이 커질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정치적 기회의 변화가 이념 성향과 지지 정당의 변화를 일으키면서 복지 태도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런 점에서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가 최대 이슈로 부각되면서 복지확대와 증세에 대한 지지도가 증가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정당 전략이 중요하다
한국에서 복지 의제보다 지역 개발에 초점을 맞추는 지역주의 정치구조가 강고하며, 사회경제적 의제가 부각될 수 있는 비례대표제의 확대도 어려운 과제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제도적 제약이 반드시 비관적 전망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이 경우에도 정치적 의지에 따라 복지제도의 점차적, 누적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최근 미국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사회 불평등을 강조하면서 최저임금 인상을 정치적 의제로 부각시키는 전략으로 지지층을 결집하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러지 못하는가?
안타깝게도 지금 민주당, 정의당, 안철수 의원 등 한국의 진보세력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의제 설정(agenda-setting)의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국정원 댓글’과 ‘북한 인권’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한국 유권자의 가슴에 불을 붙이지는 못할 것이다. 복지국가야말로 진보세력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이다. 이는 또한 서민층과 중산층의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최근 복지공약이 사라져도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지 않는 것은 진보세력이 대안 전략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해를 대변하지 않는 정당에 유권자가 관심을 가지겠는가? 결국 중요한 문제는 정당의 전략이다.
노무현의 어떤 말에 미국은 고개를 저었나 116 한겨레
게이츠의 “약간 정신나갔다”에 앞서 라이스 “이해하기 어려운 대통령”
버시바우 “올바른 일을 그른 명분으로 시행”…모두 부시 밑에서 근무
노무현의 ‘한국, 미국-중국 균형자 역할론’이 ‘반미’ 인식 심어준 듯
2006~2011년 미국 국방 장관을 지낸 로버트 게이츠 전 장관이 14일(현지시각) 발간한 회고록 <임무>(Duty)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약간 정신나갔다(crazy)”고 평가해 논란이 일고 있지만, 전직 미국 고위당국자들이 회고록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을 폄훼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들은 미국 일방주의와 네오콘적 성향을 보였던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밑에서 근무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선,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지낸 콘돌리자 라이스는 2011년 11월1일(현지시각) 시판된 회고록 <최고의 영예, 워싱턴 시절의 회고>에서 노 전 대통령을 두고 “이해하기 어려운 대통령”이라고 묘사했다. 라이스는 “(노 전 대통령이) 나에게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균형자로서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을 하며 강의를 하는 등 반미적 모습을 시사하는 발언을 때때로 했다”고 전했다. 라이스는 2004년 7월 부시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 자격으로 노 대통령을 예방했는데, 이 자리에서의 노 전 대통령 발언을 거론한 것이다.
라이스의 발언을 보면, 부시 행정부에서 근무했던 외교안보 당국자들이 노 전 대통령을 싫어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는 것에 대해, 미국은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고 중국과 가까이 지내려는 의도로 받아들였다. 이는 곧 ‘효순·미선 촛불시위‘에 나타났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선입관과 합쳐져 ‘노무현 대통령은 반미’라는 공식으로 굳어졌다. 게다가 ‘평화·번영을 통한 남북관계의 구심력 확보’라는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이 ‘북한 정권 교체’에 집착했던 부시 행정부와 충돌했던 점도 미 당국자들에게 부정적 인식을 심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라이스의 회고록 내용이 알려지자 노무현재단은 논평을 통해 “노 전 대통령과 라이스 전 장관의 (2004년) 면담은 허심탄회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며 “한국의 대통령이 미·중 관계에 대해 언급한 것 자체가 탐탁치 않았거나 미·중 관계가 좋게 발전하기를 희망하는 바람이 라이스 전 장관의 일방주의 사고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냐”며 비판한 바 있다.
또한 2010년 4월 한국어판으로 발행된 한-미 전직 대사 12명의 회고록 <대사관 순간의 기록>에서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 미국대사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올바른 일을 그른 명분으로 시행하곤 했다”며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문제를 한국의 주권 회복이라고 잘못 규정했다”고 주장했다. 버시바우 전 대사는 노무현 정권 때인 2005년 부임해 이명박 정권 출범 직후인 2008년 이임했다. 그의 말을 뜯어보면 전작권 이양은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하지만, 한국이 주권 회복이란 명분을 내세운 것은 거슬린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버시바우 전 대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선 “한국은 대북 정책에 있어 미국과 좀 더 조화를 이루면서 북한 정권의 잔인성을 잘 파악하고 있는 지도자를 갖게 됐다”며 후한 평가를 내렸다. 토머스 허버드 전 주한 미국 대사도 같은 책에서 “2003년 2월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조지 부시 대통령과의 유일한 공통점은 나이(1946년생)와 국제 경험이 거의 없다는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노 전 대통령을 깎아내렸다.
이처럼 부시 행정부의 인사들이 겉으로는 노 전 대통령을 탐탁치 않게 여겼지만, 속으로는 노 전 대통령의 제안을 반기며 실리를 챙기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게이츠의 전임자인 도널드 럼즈펠드 전 미국 국방장관이 2011년 2월8일(현지시각) 내놓은 회고록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Known and Unknown)’을 보면 이 같은 사실을 엿볼 수 있다. 럼즈펠드 장관은 2002년 12월 23일 더글러스 페이스 국방부 정책차관에게 보낸 문서에서 “한국 대통령 당선자(노 전 대통령)가 한·미 관계를 검토하길 원한다고 언급해 왔다. 우리가 먼저 제안했다면 한반도 불안을 일으킨다고 비난받았을 거지만, 그가 먼저 제안한 것”이라며 “이제 양국관계를 재조정해 한국인들에게 부담을 넘겨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으로부터 상대적 독립성을 더 확보하려는 한국 정부의 전략을, 미국은 무기 판매 확대 등에 활용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셈이다.
세계적 희귀새 황새, 백령도 폐염전에 최대 규모 찾아와117 한겨레
한두마리 보기도 힘든 황새가 17마리 큰 무리 이뤄 월동
인적 드문 폐염전서 물고기 등 먹어…부근서 농수로 공사, 보호대책 절실
황새 7마리는 우리나라에서 월동하는 무리 중 적은 수가 아니다.
겨울철에 천수만과 금강하구, 해남, 제주도에 불규칙하게 5~10 마리가 찾아오는 것이 전부이다. 지난해 환경부의 겨울철새 동시 센서스에서는 간월 호 등 전국 6곳에서 모두 9마리가 관찰됐을 뿐이다. 직접 확인하고 싶어 이튿날 바로 백령도로 향했다. 2008년 점박이물범 조사 차 15박16일을 백령도에서 생태조사를 한 적이 있어 지리는 익숙하다.
6년 만에 다시 가는 먼 바닷길이다. 인천항에서 약 220㎞ 떨어진 서해 최북단의 이 섬에가려면 쾌속선으로도 네댓 시간이 걸린다. 어둠이 깔린 오후 6시께 백령도에 도착해 여장을 풀고 아침을 기다렸다. 다음 날 갯골을 막아 백령도 주민의 자급자족의 농경지확보와 담수를 확보하기위해 만든 백령호수(약991,735 미방미터)로 향했다. 백령호수는 대가을리, 장촌리, 진촌리 중심에 있다. 날씨가 흐리고 을씨년스러운 호수엔 안개가 서려있다. 백령 호를 우선 둘러보기로 했다. 호수 가장자리에 황새 한 마리가 눈에 띤다. 그냥 지나쳐왔다. 무리를 보기 위해서다.
호수 건너편 갈대숲에 어렴풋이 하얀 물체가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니 황새들이 모여 있다. 마음이 설렌다. 생전 처음 황새 17마리가 있는 큰 무리를 관찰하는 기회를 가졌다. 황새는 겨울철에 천수만과 금강하구, 해남, 제주도에 불규칙하게 2~10마리의 무리가 찾아오는 것이 전부이다. 백령도에서 17마리의 황새가 관찰된 것은 처음 있는 일 같다.
백령호수를 떠난 황새가 옆에 자리한 하동염전으로 자리를 옮긴다. 80%가 폐염전이고 일부가 염전 구실을 하고 있다. 폐염전에는 민물이 고여 갈대가 무성하고 조류들의 먹이가 풍부해 서식처로 제격이다. 하지만 염전에서는 농수로 개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모처럼 큰 무리를 이룬 황새가 그 공사 때문에 방해를 받을지 불안했다. 하지만 인적이 드문 백령도여서 다행이다. 황새의 새로운 도래지가 망가지지 않도록 당국이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아주 먼 거리에서도 황새는 곁을 주지 않았다. 아무래도 공사 때문에 경계심과 불안감이 높아서인 것 같다. 황새는 아주 예민한 새다. 몇 년 전 러시아에서 황새 둥지를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까마귀가 집요하게 알을 훔쳐가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까마귀뿐 아니라 맹금류가 어린새끼를 잡아가는 일도 허다하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경계심은 필수적인 조건 일 수 있다.
황새는 황해도와 충청북도 부근에서 8·15 광복 전까지 흔히 번식하던 텃새의 하나였다. 예로부터 길조로 여겨져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왔으며, 따라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개체수가 대폭 줄어든 데다 1960년을 전후해 밀렵 등으로 모두 희생되었고, 마지막 번식지였던 충청북도 음성의 한 쌍마저도 1971년 4월 밀렵으로 수컷이 사살되었고 암컷이 홀로 남아 해마다 무정란을 낳았다. 우리나라 마지막 토종 황새는 1971년 '과부 황새'가 되었고 농약에 중독돼 1983년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진 뒤 1994년까지 살았다. 몸은 흰색 가슴털이 길고 날개깃은 검은색이며 날개 가장자리는 회색이다. 검은 부리는 길고 두터우며 크고 매우 강하게 보인다. 힘센 부리는 철판이라도 뚫을 기세다.
몸집에 비해 가늘어 보이는 주홍색 다리는 허약한 인상을 준다. 움직이지만 움직이지 않는 듯 정적인 몸짓, 한 걸음 한 걸음 살포시 내딛는 조심스런 발걸음은 느림의 미학을 보는 듯하다. 회색의 고혹적인 눈, 눈 둘레 붉은 피부의 무늬는 화장을 한 듯 이국적인 모습이다. 정중하고 묵직하고 여유로워 보이지만 동시에 주변의 모든 상황을 예리하게 눈동자 속에 담고 있다. 몸매를 두루 살펴볼 때 균형이 맞지 않는 듯 보이지만 그런 역동성 덕분에 은밀하고 실수가 없는 매우 정확한 사냥꾼이 된 것은 아닐까 생각되었다. 황새는 몸길이 100~115㎝, 편 날개 길이 190~195㎝로 꽤 큰 편이다. 날개를 펴면 날개 윗면에 검은색과 흰색이 번갈아 나열된 굵은 무늬가 파이프오르간을 연상케 하며 흑백의 미를 더한다. 몸무게가 4.4~5㎏로 제법 무거운데도 발돋음 없이 사뿐히 날아오른다. 어미 새라도 울대나 울대 근육이 없어 다른 새들처럼 울지 못하고 목을 뒤로 젖혔다가 앞으로 숙이면서 부리를 부딪쳐 둔탁한 소리를 낸다. 즐거워도 슬퍼도 울지 못하고 원초적인 몸짓 언어로 내면의 세계를 소통하고 표현하는 동물이다. 황새는 겉보기에 다른 새들에 견줘 완벽한 느낌을 주지 못하고 부족한 듯 어수룩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 속에 감춰져 있는 완벽함이야말로 자연의 경이로움 아닐까.
황새는 4년이 돼야 어른이 된다. 사람 나이로 12살 정도라야 번식을 하는 늦게 성숙하는 새이다. 5월~6월 2~6개의 흰 알을 낳아 32~35일 품으며 새끼를 53∼55일간 기른다. 번식지인 시베리아, 아무르 강, 연해주 남부 등에서는 알을 도둑맞는 일도 흔한데, 특히 까마귀가 집요하게 알을 훔쳐간다. 황새의 먹이는 물고기, 개구리, 무척추동물, 곤충, 쥐, 뱀, 다른 조류의 새끼, 식물성 먹이 등 잡식성이지만 이곳 백령도에서 황새가 즐겨 찾는 곳은 폐염전의 민물이 고인 곳이다.
그곳엔 어류가 풍부하고 옆엔 백령 호가 잠자리를 마련하고 주변에 평야와 습지가 있어 자유롭게 오가며 물고기와 작은 동물, 식물성 먹이를 먹는다. 황새는 지구상에 2500마리 이하가 생존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이다. 이들은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인접한 아무르와 우수리강변에서 번식을 한다. 월동을 마치고 4월에 번식지에 도착하여 나무 위에 새 둥지를 짓거나 옛 것을 수리하여 사용한다. 유럽황새는 부리와 다리가 모두 검붉은 색인 데 비해 한국의 황새는 다리만 붉은색이고 부리는 검다. 온몸이 흰색이지만 일부 날개깃은 검은색이다.
황새가 한국에서 예로부터 흔한 새였다는 것은 소나무 위에 앉아 있는 황새를 그림과 자수 등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서구의 황새는 신화나 우화에서 행복과 끈기, 그리고 인내를 상징하는 새로 묘사되어 왔다. 황새는 국제 자연보호연맹의 적색 목록에 제26번으로 등록되어 있는 국제 보호조로서 현재 러시아 시베리아의 시호테알린 자연 보호구에 약 650마리의 황새 무리가 번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선 1968년 5월 30일 천연기념물 제199호로 지정되었고, 2012년 5월 31일 환경부에서 멸종위기야생동식물 1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따라서 황새를 밀렵하다 적발되는 사람에게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고, 상습범은 7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는다. 백령도/글·사진 윤순영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박물관 전쟁’ 벌어지는 제주도 1.15 월스트,리트저널 한국판
.그림 같은 제주도를 방문한 여행객들은 감귤 농장을 따라 올라가 휴화산에서 하이킹을 하거나 해녀들이 조개 따는 모습을 구경한다. 그리고 구미가 당길 경우 세계성문화박물관에 갈 수도 있다. 이 박물관은 제주에 있는 성 박물관 세 곳 중 하나다. 여행객들은 초콜릿 박물관 두 곳, 테디베어 박물관 세 곳에도 방문할 수 있고, 상어 입에 먹히거나 노출이 과한 여성 5명과 술을 마시는 듯 포즈를 취할 수 있는 ‘트릭 아트’ 박물관 일곱 곳을 방문할 수도 있다.
미국 로드 아일랜드 크기의 절반에 불과한 제주도에는 박물관이 무려 100개 이상 있다. 대부분은 지난 몇 년 사이 개장한 것이다.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박물관 관장들 사이에 분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들은 모방을 하거나 형편없는 박물관을 운영한다고 다른 박물관을 비난하거나 돈을 잘 쓰는 중국인 관광객들을 버스로 실어나르는 여행사들과 계약이 끊긴 것을 상대방의 책임으로 돌리기도 한다.
테디베어 모나리자최근 성 박물관 중 하나인 러브랜드 뮤지엄의 소유주는 길 건너에 있는 시크릿 테마파크가 전시 내용을 유리에서 성으로 바꿨다고 비난했다. 러브랜드의 이성형 팀장은 “그쪽 전시품의 90%가 성에 관한 것”이라며 “도청에 이 문제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그 이후 상대측이 “문제가 되는 전시품을 없앴다”고 그는 덧붙였다. 시크릿 테마파크 경영진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제주도는 한국 남해에 위치하며 중국과는 483km, 일본과는 177km 떨어져 있다. 이전에는 한국인 신혼여행지로 각광받았으나 이제는 주요 관광지로 변모했다. 방문객 수는 10년 전에는 400만 명이 채 되지 않았지만 올해에는 1,000만 명으로 늘었다. 인구 60만의 제주도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장소 중 하나다. 덕분에 중국 본토 관광객들이 빠르고 저렴하게 제주도를 왔다가는 경우가 늘었다. 한국 정부는 버스 여러 대를 타고 움직이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구경할 수 있는 곳을 늘리기 위해 박물관 건설비를 지원하고 소유주들에게는 세금 혜택을 제공했다.
이에 따라 개발업자들이 쉽게 현금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박물관을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이 나왔다. 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자연사 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정세호 이사는 “사람들이 매우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기 때문에 박물관을 연다”며 “그렇게 많은 박물관중에 진짜 우리가 볼수 있는 순수박물관은 7개 밖에 없다. 나머지는 관광지적박물관”이라고 지적했다.
조잡한 박물관은 어느 관광지에나 있다. 비오는 날 가족들이 방문하기 좋고 관광버스들이 들르기도 쉽다. 하지만 제주도는 도가 좀 지나치다. 명연숙씨는 “몇몇 사람들은 한 달만에 전시용 물건들을 사 모으고 박물관을 짓는다”고 말한다. 그녀는 2011년 세계조가비박물관을 짓기 위해 230만 달러를 썼다. 그녀가 40년 간 모은 산호와 조개 예술 작품을 보관하기 위해서다. 제주도에는 그녀의 박물관 말고도 조개 박물관이 하나 더 있다.
박물관 붐이 일기 한첨 전의 제주도는 바위 투성이의 해안선이 유명하고, 말을 타고 말고기를 먹는 거친 섬사람들이 살던 곳이었다. 700년 전 몽골의 지배를 받으면서 정착한 문화다. 주름진 얼굴의 해녀들이 차가운 물 속으로 들어가 전복과 소라를 따오는 곳이기도 하다.
정부 문서에 따르면 제주에서 정부가 인정하는 1급 박물관이 되기 위해서는 전시품 100개 이상과 저장 공간, 사무 공간, 도난방지 시스템, 온도조절장치만 갖추면 된다. 아프리카 박물관의 한성빈 부관장은 “사람들이 세금을 덜 내기 위해 ‘박물관’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2004년 한씨의 가족이 세운 이 박물관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 된 박물관 중 하나다. 건축가이자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로 활동한 그의 아버지는 아시아 최대의 아프리카 예술품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박물관 건물은 세계 최대 진흙벽돌 건물인 말리의 젠네 모스크를 따라 지었으며 한씨 가족이 약간 변형했다. 입구 위 지붕선 근처에 십자가를 추가한 것이다. 그는 “우리 가족은 5세대를 이어내려온 기독교 집안”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제주의 테디베어 박물관을 특히 좋아한다고 한다. 건물 외형이 독특한 조안베어뮤지엄에는 설립자 조안 오가 손으로 만든 곰인형이 왕족, 발레리나, 유명인의 옷을 입고 전시돼 있다. 황금색 모헤어로 만든 버락 오바마 곰인형이 대통령 연설대에 서 있고 중국인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장난스레 포즈를 취한다.
오씨는 관광버스를 불러들이기 위해 따로 수수료는 지불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방문객의 95%는 중국인이며 오직 곰인형을 보기 위해서 찾아온다고 그녀는 설명했다.조각상과 착시 그림을 갖춘 그리스신화박물관전선권(59) 그리스신화박물관 관장은 그 방문객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는 “어떻게 그런 것을 박물관이라고 부를 수 있나”라고 묻는다.
그렇다면 한국에 왜 그리스 박물관이 있는 걸까?
그는 자신의 박물관을 지키고 있는 두 개의 켄타우로스 조각상 앞에 서서 “그리스 신과 제주의 신이 만나면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리스 정교로 개종한 그는 고속도로 근처의 우거진 초원 쪽으로 손을 흔들며 “산토리니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산토리니는 에게 해에 위치한 유명 화산섬이다. 그는 회반죽을 바른 그리스식 풍차와 작은 교회를 지었으며, 비닐 바닥이 깔려 있고 덜컹거리는 에어컨 소리가 나는, 산업시설 같은 건물 두 채를 지었다.
검은색 토가를 입은 매표소 직원이 그리스 신을 나타낸 벽화와 아테네 사진 앞을 지나는 방문객을 맞이한다. 신들의 전당에는 헤라클레스, 제우스, 헤라의 조각상과 페르세포네를 납치하는 하데스의 조각상이 있다. 일부는 그리스에서 구입했고 일부는 중국에서 온 것이다. 전씨는 “중국이 훨씬 싸다”고 설명했다.
트로이 목마를 지나면 방문객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익살스러운 착시 그림 컬렉션이 등장한다. 지난해 수익이 두 배로 늘었지만 전씨는 제주 방문객들의 선택권에 대해 우려한다. 그는 성 박물관을 가리키며 “자극적인 테마”로 박물관들 수준이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성 박물관에는 성 테마의 조각, 모형, 비디오 등이 전시되어 있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또다른 신화 테마의 박물관이 생길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건설작업이 곧 시작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 세대는 끝났다. 다음 세대도 '실패'하겠지만…"1.14
[인터뷰] '이것이 진짜 마르크스다' 강신준 교수
프레시안 : 여기서 아까 못했던 얘기를 더 해보죠. 아까 <자본> 완역 이후에 나온 문제 제기 중 하나를 한국 사회에서 현재 마르크스가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가와 관련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프레시안>에서 진행하는 강연 이름도 '이것이 진짜 마르크스다'입니다.
강신준 : 과거의 마르크스와 미래의 마르크스 중에서 전자의 유산이 제대로 정리가 안 된 상황이죠. 개인적인 경험부터 얘기합시다. 제가 대학에 입학했을(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 74학번) 때만 하더라도, 마르크스는 대개 일본어판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우노 고조(1897~1977년)를 좌장으로 하는 우노 학파를 중심으로 1930~40년대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쓴 것이었죠. 그런데 그들은 스탈린주의로부터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죠. 당시 일본 공산당이 코민테른 하에 있었기 때문에,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소련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죠. 그들이 쓴 마르크스 해설서를 가지고 공부를 한 우리로서는 그것이 마치 마르크스의 모든 것인 양 이해했죠. 저 역시 다르지 않았고요.
그리고 그런 학문 풍토는 1987년 마르크스 연구가 해금된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아까 얘기했듯이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에는 그 상태에서 정체되었고요. 그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은 또 다른 문제도 있었죠. 1991년 동아대학교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가르치다보니 자연스럽게 영남 지역의 노동 운동가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분들이 자신들이 당면한 현장의 문제들을 가지고 와서 상의를 구하는 경우가 잦아졌고, 그러다 보니 주로 영남 지역에 사업장이 집중되어 있는 민주노총 산하의 금속노동조합과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과 교류를 하면서 이상한 현상을 보았죠. 당시 노동 운동 조직의 위원장 등이 제일 무서워했던 말이 뭔지 압니까? '수정주의', '개량주의' 이런 딱지가 붙는 게 제일 무서웠대요. 물론 그렇게 딱지를 붙이는 사람이나, 또 비판을 받는 사람이나 도대체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죠. 그냥 그런 딱지를 붙이는 게 노동 운동에서 흔히 벌어지던 일이었던 겁니다. 딱지 붙이기에 능한 이들이 자신이야말로 '진짜' 마르크스주의라고 자처했던 것이죠.
프레시안 : 그러고 보니, 김성구 선생님(당인리대안정책발전소 소장)도 <미디어오늘>에 쓴 칼럼에서 선생님의 <경향신문> <자본> 지상 강의를 '수정주의'라고 딱지를 붙였죠. (웃음)
강신준 : 그랬죠. (웃음) 더 나아가 "무조건 머리박고 싸우는" 것만이 마르크스가 원래 얘기했던 것이라고 강변하기도 했고요. 노동 운동이 발전하려면, 노동자를 조직하고 그렇게 조직된 노동자에게 미래 비전을 줄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정반대의 소모적이고 퇴행적인 모습이 마르크스의 노동 운동이라니요? 이렇게 노동 운동 현장의 비전을 가로막는 것이 마르크스라면, 그런 마르크스는 없어져야 마땅했죠. 그런데 제가 어렴풋이 알고 있던 진짜 마르크스는 절대 이런 모습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과거의 마르크스와 미래의 마르크스의 차이가 무엇인지 들여다보기 시작했죠. 특히 1997년 외환 위기 이후에 노동 운동이 힘들어지고 나서부터는 더욱더 절실해졌죠. 과거의 마르크스가 지배하는 노동 운동으로는 절대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할 게 뻔했으니까. 그런데 정작 노동 운동에 미래의 마르크스를 적용해 보려는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어요. 마르크스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작업한 대표적인 작업이 임금 체계 개편이었습니다. 그것은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에게는 대기업, 중소기업, 정규직, 비정규직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동일한 임금을 적용하는 '직무급 임금 체계'였죠.
이것은 기업별 구조인 우리 노동 운동을 초기업적인 구조로 바꾸기 위한 기초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초반에는 어느 정도 호응을 얻었지만 안타깝게도 1997년 외환 위기로 인한 고용 문제에 밀려 이 작업은 결국 사장되고 말았습니다.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 이후 우리 노동계가 오랫동안 추진해 온 산업별 노동조합 운동이 현재 좌초해 있는 것은 이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답니다. 그래서 2000년대 이후부터는 미래의 마르크스를 노동자, 시민에게 직접 소개하는 강의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강의를 하면서 청중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과거의 마르크스가 남긴 유산이 생각보다 훨씬 뿌리가 깊다는 생각이 들었죠. 예를 들어, 이런 질문이 그렇죠. '그렇게 마르크스가 우리에게 큰 힘이 된다면, 왜 그 마르크스에 기반을 둔 사회는 망했냐?'
프레시안 : 마르크스의 비전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유토피아일 뿐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지배적이죠.
강신준 : 1991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과거의 마르크스에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거였죠. 이런 분위기가 아까 앞에서 얘기했던 스탈린주의에 오염된 과거의 마르크스 또 노동 운동을 질식시키는 과거의 마르크스의 모습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 거죠.
자본주의 이후를 준비하는 두 가지 열쇳말
프레시안 : 그럼, 선생님께서 새롭게 조명할 미래의 마르크스는 과거의 마르크스와 결정적으로 무엇이 다른가요?
강신준 : 저는 미래의 마르크스와 과거의 마르크스, 그러니까 스탈린주의에 오염된 이른바 '마르크스 레닌주의' 사이에 두 가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생산력', 또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죠. 우선 생산력부터 살펴보죠. 마르크스는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가능했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생산력을 꼽습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에서 그 이후의 체제로 이행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생산력이겠죠. 마르크스는 생산력이 자본주의보다 더 나은 체제를 통해서만 비로소 자본주의 이후로 이행할 수 있다고 봤죠. 거꾸로 자본주의가 바로 이런 생산력의 한계에 봉착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망하지 않겠죠. 그런데 이렇게 생산력이 이행되는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가 있습니다. 생산력은 항상 그에 조응(correspond)하는 상부 구조가 있죠. 자본주의는 봉건제에서 고립되어 생산 활동을 수행하던 수공업자와 같은 독립적 생산자를 묶어서 (공장에서) 사회적으로 조직하죠. 다시 말해 자본주의 생산력의 본질은 '사회적 생산력'인 것이죠. 그런데 자본주의에서 자본가는 노동자를 사회적으로 조직해서 생산력을 발전시키지만, 그 생산력의 성과를 혼자서 독차지합니다. 이를 위해서 자본가는 노동자들이 생산의 의사 결정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그 의사 결정을 혼자서 독점하려 합니다. 소위 독재적 방식이고 우리나라 재벌들에서 흔히 보는 제왕적 경영 행태가 바로 그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본주의는 생산력의 한계에 봉착하죠.
사회적 생산력은 생산자들의 자발적 참여와 협력을 통해서 더욱 발전할 수 있는데, 이런 독재 방식은 바로 그 참여와 협력을 가로막아 버리거든요. 바로 이 지점이 자본주의 생산력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는 한계가 되는 것이지요. 자본주의적 생산력이라는 토대는 그것의 독재적 방식이라는 상부 구조와 모순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본주의 생산력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사회적 생산력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자본주의 독재 방식을 민주주의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마르크스 식으로 자본주의 이후 체제로의 이행을 꿈꾸는 이들은 사회적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이를 위해서 상부 구조에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확대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죠.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생산 체제로의 이행은 이처럼 보다 높은 생산력과 민주주의라는 두 가지 요소가 긴밀하게 결합해야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사실 이런 마르크스의 핵심 사상은 인류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정당의 이름에 그대로 녹아 있어요. 인류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정당은 1869년 독일의 마르크스주의자 아우구스트 베벨 등이 주동해서 만든 독일 사회민주당이죠. 왜 자기 정당의 이름을 사회민주당이라고 했겠어요? 자본주의 독재를 타파하고,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사실을 당명으로 명확하게 밝힌 것이죠.
반면에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조건은 이런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과는 참으로 거리가 멀었죠. 봉건제 수준의 수공업에 익숙한 노동자와 농촌에 파편적으로 편재해 있는 다수의 소농 등 사회적 생산력이 매우 낮은 조건에서 억지로 사회주의로 이행을 하려다 보니, 민주주의는 언감생심 독재로 귀결되고 말았죠. 독재를 하니 사회적 생산에 기반을 둔 생산력은 더욱더 낮아지고, 생산력이 낮으니 더 독재를 하게 되고….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레닌이나 스탈린이 볼셰비키 혁명의 정당성을 강변하려 내세운 방법이 반대파에게 '배신자'니 '배교자'니 '수정주의자'니 '개량주의자'니 하고 딱지를 붙이는 거였죠. 그리고 마르크스 사회 변혁 사상의 출발점이었던 1848년 <공산당 선언>의 그 '공산당'을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대항해 자신의 정통성을 세우는 수단으로 전유하죠. 그러니 우리가 알았던 과거의 마르크스주의(마르크스 레닌주의)는 소련의 볼셰비키들이 자신과 진짜 마르크스와의 불일치를 메우고자 했던 매우 유치한 변명과 왜곡의 집대성일 뿐입니다.
프레시안 : 방금 미래의 마르크스의 핵심을 사회적 생산으로 대표되는 생산력과 그에 대응하는 민주주의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점을 염두에 뒀을 때 지금 세계 자본주의는 어떤 상황인가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당장 자본주의가 몰락하기라도 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기도 했습니다만, 여전히 자본주의의 자기 갱신 능력은 탁월해 보입니다.
강신준 : 공황이 뭡니까? 공황은 토지 자원 기계 같은 생산 수단이 남아돌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도 남아도는데 정작 대다수 사람에게 필요한 재화가 공급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말합니다. 창고에는 먹을 게 쌓여서 썩고 있는데, 대다수 사람은 그것을 못 먹고 굶주리는 상황이죠. 그렇다면, 이런 공황은 왜 발생할까요? 바로 토지 자원 기계 같은 생산 수단을 극소수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산 수단을 가진 극소수는 자신에게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자신의 생산 수단을 노동력과 결합해 재화를 생산하는 일을 포기하게 되죠. 공황은 이런 현상이 극도로 팽창하여 나타난 현상입니다. 그러니 자본주의의 주기적인 병리 현상인 이 공황을 극복하려면 극소수가 독점한 생산 수단을 민주화해야 합니다. 이게 바로 마르크스의 통찰이었죠. 그런데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 우리는 참으로 낯 뜨거운 모습을 보았죠. 공황 발발 이전에는 자본가나 주류 경제학자들이 입에 달던 주문이 '국가는 물러가라'였었죠. 자본의 독재를 공공연하게 주장한 것이었죠. 그런데 막상 공황이 발발하자 이젠 국가보고 나서라고 합니다. 공황의 책임을 국가가 중심이 되어 사회 전체가 같이 지자는 것이지요. 그래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구하는 모습에서도 우리는 또 한 번 마르크스의 예지를 볼 수밖에 없는 거죠.
프레시안 :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보면, 중국 또 북한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아직도 자본주의로 이행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나라가 있습니다. 실제로 아시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세계 여러 곳에서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세기 영국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자본-임노동 관계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죠. 또 이미 조지프 슘페터가 얘기했듯이 자본주의의 '창조적 파괴'를 가능케 하는 자본가의 혁신이 과학기술의 발전과 맞물려서 자본주의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하는 것도 사실이고요. 만약 마르크스가 이런 상황을 본다면, 여전히 자본주의 이행을 전망하기에는 섣부르다고 명토박지 않았을까요?
강신준 : 그렇죠. 자본주의는 처음 영국 맨체스터에서부터 점차 그 착취 영역을 넓히면서 세계로 확장되었습니다. 지금도 자본은 중국, 인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로 계속해서 그 착취 영역을 넓히면서 끊임없이 부를 축적하고 있죠. 방금 지적한 대로 자본가는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자본 축적 전략을 끊임없이 고안하고 있고요.
그러니 지금 당장 자본주의가 망할 거라고 믿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미국, 유럽과 같은 지역에서 공황이 발생하고 있죠. 그리고 앞에서 얘기했듯이 그 해결 수단이 사회화 외에는 없기 때문에, 그곳에서 자본주의 이후 체제의 단초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본주의의 대안을 마련하는데 긍정적인 자극을 줄 거예요. 단적으로 독일이나 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들이 한 예죠. 이들 북유럽 국가들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 중에서도 생산의 사회화와 또 그것의 민주화가 비교적 앞선 나라들입니다. 이들 나라의 노동 시간이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훨씬 짧으면서도 임금과 사회적 복지가 오히려 더 두터운 것은 바로 그런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실패에 또 실패를 거듭하겠지만…
프레시안 :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미국 또 유럽에서는 국가가 주도하는 생산의 사회화로 위기를 타개하는 모습이 나타났죠. 이 대목에서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부활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강신준 : 사실 국가를 내세워서 생산의 사회화를 조정하는 방법은 이미 20세기에 파산했죠. 사회주의를 자처했던 소련에서는 국가(관료)가 결국 또 다른 '자본가'가 되어서 자본주의 자본가 못지않은 패악을 부렸어요. 반면에 1929년 공황 극복을 위해서 케인스가 국가를 중재자로 끌어들여서 자본주의 모순을 일시적으로 해결하는데 성공했죠.
하지만 결국 케인스 식의 국가가 주도하는 사회화도 한계에 봉착하고 결국 1970년대 신자유주의의 공격을 방어하지 못합니다. 마르크스는 생산자 개개인의 참여가 전제되는 민주주의 없이는 생산의 사회화가 결코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없으리라고 보았어요. 그런 점에서 국가가 주도하는 20세기 사회화 실험이 실패하리라는 걸 마르크스는 이미 예견했던 것이죠. 국가가 주도하는 사회 체제는 관료가 일종의 독재를 행사하는 체제에 다름이 아니고 따라서 생산자에 의한 진정한 민주주의(혹은 사회화)와는 거리가 먼 것이지요.
프레시안 :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 다시 케인스주의를 통해서 자본주의를 구하려는 시도가 별반 효과가 없으리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강신준 : 그렇습니다. 케인스주의는 이미 1970년대에 그 자체의 약효가 떨어져서 몰락했어요. 그러니 신자유주의가 몰락했다고 해서, 그 자체로 이미 한계가 드러난 케인스주의를 다시 불러들이는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성공적으로 되살릴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건 난망한 일이죠. 케인스는 기본적으로 공황의 핵심이 소비 부족에 있다고 보았죠. (마르크스는 이와 반대로 생산의 과잉에 원인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공공 사업 심지어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유효 수요가 창출되면 공황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보았죠. 케인스가 새로운 경제 주체로 국가를 호출한 것도 이 때문이죠. 화폐를 찍어낼 수 있는 국가는 소비 팽창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주체였으니까요.
하지만 생산 과잉이라는 본질적인 원인을 그대로 둔 채 소비만을 팽창시키려 마구 찍어낸 화폐가 1970년대에 결국 소비 팽창을 유도하기는커녕 물가 상승만을 야기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발생시킵니다. 물론 지금 케인스를 얘기하는 학자들은 이런 스태그플레이션의 문제를 새로운 경제 이론으로 극복할 가능성을 모색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마르크스와 반대로 생산을 문제의 원인에서 제외시킨 케인스의 처방으로는 결코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 : 또 다른 방향의 사회화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으로 대표되는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 운동이 세계 곳곳에서 유력한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강신준 : 아까 얘기했듯이 마르크스는 생산자 개개인의 참여가 전제되는 민주주의가 생산의 사회화의 전제 조건이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자본주의 이후 체제의 전제 조건이라고 여겼죠. 그런 점에서 협동조합과 같은 어소시에이션 운동이 자본주의에서 다음 체제로 가는 이행기에 꼭 필요한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협동조합은 생산자 또 소비자가 연대했을 때 자본주의 기업에서는 볼 수 없는 생산력이 가능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런 시도가 사회 전체로 확산될수록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여럿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죠. 이런 흐름이 조직화된 마르크스주의 정치 세력과 연대하면 사회 변혁의 단초가 될 수 있겠죠.
프레시안 : 어떤 이들은 협동조합이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란 자본주의에 기름칠을 하는 역할 정도라고 비아냥거리죠. 그래서 '개량주의'라고 딱지를 붙이기도 하고요. (웃음)
강신준 : 그렇게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은 실천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들이죠. 조금이라도 현장에서 실천을 해본 사람은 그런 얘기를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협동조합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지 그 한 방향을 적시하는 운동이죠. 사적 독재 때문에 발생한 자본주의의 문제를 공동 소유로 극복하는 식으로요. 그리고 그게 자본주의 이후로 가는 길이죠. 물론 그들의 지적처럼 협동조합이 궁극적으로 자본주의를 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 전략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변혁은 예수의 기적처럼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얼핏 보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무수히 많은 실천들이 조금씩 쌓여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의 수많은 기업 중에서 자본주의 기업 논리뿐만 아니라 협동조합과 같은 다른 논리가 적용되는 기업이 많을수록 새로운 희망의 단초가 나타날 가능성이 더 커지지 않을까요? <프레시안>의 협동조합 전환에 맞춰서 이런 강연을 자처한 것도 그런 가능성 때문이고요.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이번 강연에 어떤 분들이 왔으면 좋겠습니까?
강신준 : '우리 세대는 끝났다' 이런 생각을 한 지 몇 년 되었습니다. 1970년대 반독재 운동, 1980년대 민주화 운동 또 민주 노조 운동에 참여했던 우리 세대는 이제 끝났습니다. 지금보다 나은 한국 사회를 만드는데, 우리 세대가 앞으로 어떤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지 굉장히 회의적입니다. 그래서 이번 강연은 다음 세대를 위한 것입니다. 좀 더 나은 미래의 한국 사회를 꿈꾸는 20대 대학생, 또 30대의 직장 초년생이 와서 그분들이 만들어갈 미래에 대한 좌표를 마르크스에게서 단 하나라도 얻어갈 수 있으면 딱 그만큼 한국 사회의 미래가 밝아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거창한 기대입니까? (웃음)
프레시안 : 그런 후배 세대가 이번 강연에서 어떤 희망을 얻어가길 바랍니까?
강신준 : 마르크스에 대한 오해가 있죠. 마르크스가 알려준 사회 변혁은 당장 촛불 들고, 시위하고, 파업하는 것만으로는 곧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선동하는 이들에게 마르크스는 100년 걸릴 변혁을 준비하고 시작하자고 권할 거예요. 실제로 독일에서는 지금과 같은 비교적 돋보이는 사회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사회 경제가 마련되는 데 150년이 걸렸죠.
지금 젊은 세대는 한국 사회에서 바로 이런 변혁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변혁은 독일의 예에서 보듯이 고작 활동 기간이 20년 정도에 불과한 한 세대로서는 눈에 띠는 성과를 거 둘 수 없는 운동이죠. 그러니까 당장의 승리를 목표로 하는 변혁 운동이 아니라 일시적으로는 패배까지도 각오하는 운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다만 그런 패배를 반복하면서도 그 패배의 성과들이 조금씩 쌓여 결국 성공을 이루게 되는 것이지요. 전투에는 지더라도 전쟁에서는 이기는 방법이 바로 이것이고 사회는 그렇게 변혁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파악한 마르크스의 변혁론입니다. 이 강연을 통해서 후배 세대에게 당장의 눈부신 성공의 희망을 준다고 약속하진 못하겠어요. 다만, 비록 당장에는 성공이 보이지 않고 실패만 보인다 하더라도 그 실패의 너머에서 결국 희망의 혁명이 어떻게 달성되는지 설파했던 마르크스의 메시지는 최선을 다해서 전해볼 생각입니다. 실패할 줄 알면서도,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인간적이지 않습니까?
한겨레 곽병찬 칼럼] 염 추기경이 가야 할, 로메로의 길 115
염수정 대주교가 추기경에 지명된 날, 서울 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의 논평은 당황스러웠다. ‘우리나라 전체의 큰 축복!’ 그것이 왜 우리에게 축복일까.
종교나 신앙의 차이로 말미암은 비틀림이 아니다. 이웃의 작은 경사에도 함께 기뻐하고 축복하는 우리의 미풍과 이웃 종교의 축일이나 경사에 함께 기쁨을 나누는 종교계의 양속을 외면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종교인의 직위란 닭벼슬만도 못한 것. 종교인은 오로지 빛과 소금이 되는 행실로써 평가받고 존경받을 뿐이다. 직위 때문에 존경하는 건 또 다른 우상숭배요 물신주의다. 염 추기경이 ‘두렵고 떨린다’고 한 말에 오히려 위로받는 건 그런 까닭이다.
작고한 김수환 추기경은 아름다운 사표로 남아 있다. 그가 한국 가톨릭을 대표했던 건 시대의 축복이었다. 그가 추기경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억압받는 약자들에겐 형제가 되었고 억압하는 자들에겐 두려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청주 교구장 시절 정치적 사형수의 봉성체를 기피하고, 살기 위해 남일당 건물 옥상에 올라갔다가 불에 탄 주검으로 돌아온 이들을 외면한 또 다른 추기경은 결코 시대의 축복일 수 없었다.
많은 이들이 엘살바도르의 오스카르 로메로 대주교를 떠올리며, 염 추기경이 그와 같은 길을 걷기를 기도하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애초 로메로 주교는 해방신학을 ‘증오에 찬 그리스도론’으로 비난했고, 약자들 편에 선 신부들을 과격분자 혹은 파괴주의자로 의심했다. 그러나 벗 그란데 신부가 극우 민병대에 암살당하자, 그란데가 사랑했던 가난한 이들 곁으로 다가갔다. 거기서 전체 인구의 90%에 이르는 약자들의 고통과 신음을 들었고, 더 많은 부와 권력을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의 탐욕과 폭력을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한다. “저는 아름답고도 어려운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현실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모든 폭력의 근원은 극심한 빈부 격차입니다.” “교회는 자유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 안에서 실현됩니다.”
동료 사제들까지 잇따라 살해당하자, 일부 사제들은 총을 든다. 그리고 ‘이 길밖에 달리 선택할 게 무엇입니까’라고 호소한다. 그러자 로메로는 단호하게 반문한다. “신부님은 사랑의 힘을 믿지 못하시는가요.” 그가 단호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순교를 예감했고, 각오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나를 죽일 때 나는 엘살바도르 사람들의 가슴에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제가 흘린 피는 자유의 씨앗이 되고 희망이 곧 실현되리라는 신호가 될 것입니다. 사제는 죽을지라도 하느님의 교회인 민중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
염 추기경은 임명축하식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고 시대의 징표를 탐구하는 교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미 권고문 ‘복음의 기쁨’, 세계평화의 날 메시지 등에서 그 징표를 분명히 했다. “극소수 가진 자와 절대다수 사람들의 격차가 날로 커지고 있다. … 시장만능주의의 이데올로기가 관철된 결과이며, 그로 말미암아 무자비한 새로운 독재체제가 만들어졌다.” “이웃에 대한 우애의 의무를 저버린 것이 불의의 뿌리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렇게 권고했다. “안온한 성전 안에만 머무는 고립된 교회가 아니라, 거리로 뛰쳐나가 멍들고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를 원한다.”
염 추기경 말대로 화해와 공존, 분열과 갈등의 치유는 중요하다. 지학순 주교는 이런 내용의 옥중 편지를 남겼다. “화해는 공동선과의 화해이어야 하며, 독선에 반대하고 관용을 베푸는 아량이어야 하며, 전횡을 일삼아온 강자가 억압에 찌든 약자에게 청해야 하는 것이다.” 억압하고 군림하는 자들의 참회가 선행돼야 한다.
로메로의 신앙과 고백은 이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구현되고 있다. “주님은 우리를 자유로이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위엄을 지니고 살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정의를 위해 싸울 힘을 주셨나이다.” 염 추기경은 순교자 집안이다. 선조는 이웃의 자유와 존엄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희생당했다. 그것이야말로 남은 이들에게 축복이었다.
영호남 잇는 경전선, 하루 1편도 손님 없어 '텅텅'…1.16 조선
연 1000억 적자 최악 ‘돈 먹는 하마’
경남 창원시 의창구 의창대로변에 있는 창원역. 지난 1월 7일 아침 7시45분, 창원역 5번 플랫폼으로 경전선 열차(무궁화호 1951편)가 들어왔다. 기관차·발전차 각 1량과 객차 3량으로 구성된 미니열차다.(경부선 KTX는 20량을 달고 다닌다.) 부산 부전역(부산진구)에서 출발한 열차다. 삼랑진역(경남 밀양)에서 경전선에 진입한 이 열차는 창원역을 지나 경전선의 서쪽 끝인 광주송정역, 그리고 호남선의 최종역인 목포역(전남 목포)까지 갈 예정이다.
기자는 2호차 20번 통로석에 앉았다. 객차 내부를 보니, 자리가 절반 이상 차 있었다. 노인들과 중고생들이 많았다. 화요일 아침이다. 열차가 출발했다. 마산, 진주를 거치며 1시간이 지났다. 승객의 절반이 내렸다. 열차가 썰렁하다. 주변 경치를 보기 위해 15번 창가 자리로 옮겼다. 승객들이 없으니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다녔다. 천천히 가는 열차 속에서 지루했기 때문이다. 2시간쯤 뒤 광양과 순천을 통과하자 텅텅 비어 버려, 객차 제일 뒷열 70번 자리로 옮겼다. 빈자리가 워낙 많아 간이역마다 간간이 1~2명씩 들어오는 승객도 지정된 좌석대로 앉지는 않는 듯했다. 마치 전세열차 같았다. 창원역에서 출발해 4시간45분 만인 낮 12시30분경 광주송정역에 진입할 즈음, 화장실을 다녀와 열차 뒤쪽 1호차로 옮겨 탔다. 1호차는 2호차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72명 정원의 1호차의 승객은 채 10명이 안 돼 보였다.
경상(남)도와 전라(남)도를 잇는 경전선(慶全線, 289㎞)은 ‘8대 보조금 노선(PSO)’ 중 대표적인 노선이다. 보조금 지급노선은 철도산업발전기본법에 따라 공공서비스 제공을 위해 정부가 철도운송사업자에게 정부보조금을 지원하는 노선이다. 8대 보조금 노선은 경전선을 비롯 경북선(김천~영주), 영동선(영주~강릉), 정선선(민둥산~아우라지), 태백선(제천~백산), 동해남부선(부산진~포항), 진해선(창원~통해), 대구선(가천~영천)이다. 코레일의 영업성적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8대 보조금 지급노선에서 발생한 영업적자는 모두 3331억원. 이 중 경전선에서 가장 많은 994억원의 영업적자가 발생했다.
두 지역 간 감정처럼 이용객이 저조해 경전선은 코레일이 운영하는 일반철도 중 가장 많은 적자에 시달린다. 경전선은 비슷한 노선을 평행해 달리는 남해고속도로와의 경쟁도 포기한 지 오래다. 경전선을 이용해 창원에서 광주광역시까지 가는 열차는 고작 하루에 1편 있다. 이마저도 창원 출발시간대는 이른 아침이다. 창원시 관내 창원종합터미널과 마산고속터미널에서 광주광역시 방면으로 향하는 시외버스와 고속버스는 시간대별로 7편과 12편에 달했다.
경전선은 남해고속도로를 달리는 고속버스와의 속도경쟁도 포기한 지 오래다. 창원과 마산에서 광주까지 남해고속도로를 이용해 가는 고속버스의 소요시간은 각각 2시간 30분과 3시간이다. 반면 창원역에서 광주송정역까지는 코레일 열차시각표 기준으로 무려 4시간 31분이 소요된다. 이마저도 26개 중간역(마산~서광주)에서 가다서다를 반복해 연착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경전선이 가격 경쟁력을 갖춘 것도 아니다. 일반고속을 이용할 경우 창원시 관내 창원종합터미널에서 광주까지 1만3900원, 마산고속터미널에서 광주까지는 1만3300원이 든다. 창원역에서 광주송정역까지 가는 경전선은 1만5300원으로 2000원가량 더 비싸다. 서비스가 좋은 것도 아니다. 창원시 관내 마산고속터미널에서는 1만9400원을 내고 광주행 우등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전선 무궁화호 열차에는 고속버스의 우등에 해당하는 특실 자체가 없다. “공기업(코레일)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민간기업에 비해 당연히 저렴할 것”이란 일반적 인식이 경전선 구간에서 깨졌다. 오히려 창원~광주, 마산~광주 노선의 시외버스 민간사업자인 금호고속이 더 빠르고(속도), 편리한(편수), 고급서비스(우등)를 낮은 가격(운임)에 제공하는 셈이다.
대개 교통수단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면 속도를 높이고 가격을 낮춰야 한다. 경전선의 직접 경쟁노선인 남해고속도로는 그간 지속적인 선형 개량과 확장을 통해 계속 속도를 높여왔다. 하지만 경전선은 광복 후에도 시설투자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정차역 수를 줄여 역간 거리를 늘리는 식으로 열차의 표정속도(지점에서 지점 사이 평균속도)를 높이는 시도도 거의 없었다.
최고시속 300㎞로 달리는 KTX도 경전선에 진입하면 졸지에 완행열차로 돌변한다. 대표적 구간은 경전선의 동쪽 초입인 창원 구간이다. KTX가 투입되는 경전선 창원구간에는 무려 3곳의 KTX 정차역(창원중앙, 창원, 마산)이 있다. KTX로 창원중앙역과 창원역 간 거리는 7분. 창원역과 마산역 간 거리는 4분이다. 이 정도 거리면 수도권에서는 일반전철을 투입한다. KTX 정차역이 3곳인 도시는 인구 1000만의 수도 서울(서울, 용산, 영등포)을 제외하면 인구 110만의 창원이 유일하다.
정차역을 줄이면 표정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고, 역사 유지관리에 드는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창원시 관내 역사를 3곳이나 운영함에 따라 역사 운영과 인건비 등 비용이 곱절로 든다. 수요예측도 실패했다. 창원역 대합실(맞이방)에서 코레일유통 소속 편의점 스토리웨이를 운영하는 관계자에 따르면, 경전선과 진해선의 분기점인 과거 창원역은 알짜역이었지만, 지금은 애물단지역으로 변해 버렸다. 지난 2010년 경전선 창원 구간의 복선전철화와 함께 창원중앙역이 신설되며 상황이 바뀌었다. 열차승객들이 경남도청과 통합창원시청 등 관공서나 각종 대기업 생산공장들과 인접한 창원중앙역으로 몰린 것. 스토리웨이 관계자는 “코레일 철도파업 때 창원중앙역은 놔두고 창원역 열차들만 줄줄이 취소됐다”고 말했다.
창원역의 절반 정도 규모로 지어진 창원중앙역도 예상수요를 엉터리로 예측했기는 마찬가지다. 경전선 열차를 타기 전날인 지난 1월 6일 밤, 창원중앙역에서 만난 한 개인택시 기사에 따르면, KTX 정차시간이면 창원중앙역 앞과 주변 도로는 대기택시들의 불법 주정차로 몸살을 앓는다고 했다. 창원역은 수요를 과대평가, 창원중앙역은 수요를 과소평가한 셈. KTX의 시간대별 교대정차에 관내 택시들도 헷갈린다. 이 택시기사는 “개인택시 기사들은 KTX 시간을 꿰고 있지만, 회사택시는 KTX 시간표를 붙이고 다닌다”고 했다.
코레일도 이런 문제를 알고 있다. 코레일 측에서는 경전선에 투입되는 KTX의 최소 역간거리 유지를 위해 창원역 KTX 무정차를 기본방침으로 세웠다. 하지만 창원역을 지역구로 둔 권경석 전 의원(새누리당)이 창원역 KTX 정차를 강력 요구했고, 이를 경찰청장 출신의 허준영 당시 코레일 사장이 받아들이면서 꼬여버렸다. 정치권 민원과 낙하산 사장이 만든 작품인 셈이다.
경전선 창원구간을 지나 처음 나오는 함안역도 같은 경우다. 함안역은 KTX가 군(郡)지역에 서는 몇 안 되는 정차역이다. 오전 8시5분경, 기자가 탄 경전선 열차가 함안역에 진입했을 때 역 주위로는 논두렁만 보였다. 하지만 역사는 20량 KTX를 위한 장대 플랫폼을 갖추고 있었다. 객차 3량을 단 무궁화호 미니열차가 초라해 보일 지경이었다. 함안역에 KTX가 정차하게 된 것은 함안 출신 조현룡 의원(새누리당)의 역할이 주효했다. 조 의원은 코레일과 함께 철도 부채의 양대 주역인 한국철도시설공단 사장을 지냈다. 2012년 국회에 입성한 조 의원은 감사원 사무총장 출신의 정창영 당시 코레일 사장을 설득해 함안역 KTX 정차를 성사시켰다. 당시 조 의원은 ‘철(鐵)의 남자, 함안에 KTX를 세우다’는 보도자료를 돌리며 자화자찬했다.
익명을 요구한 코레일 서울지역본부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인구 6만7000명의 함안역에 KTX를 세울 때 경전선 진영역 KTX 정차보다 더한 조치라는 반발이 나왔다고 한다. “함안역에 KTX를 세우면 모든 군 지역마다 다 세워야 할 판”이란 것이다. 경전선 진영역 KTX 정차 때도 그 정도 반대는 없었다고 했다. 진영역 KTX 정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성사됐지만, 진영역은 인구 52만명의 ‘(김해)시’ 유일역이란 명분이라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조현룡 의원은 ‘함안 정차 불가론’을 ‘성장 가능성’ 논리로 눌러 버렸다.
함안에 KTX가 정차하면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인구 34만명의 진주다. 함안역과 진주역은 18분 거리다. 원래 진주역은 경전선상에서 마산역과 함께 ‘관리역’으로 지정된 중점 역사지만, 경전선 열차가 가다서다 반복하면서 서울과 더욱 멀어져 버렸다. 덕분에 진주발 서울행 고속버스(우등 기준)는 운임 2만3000원과 소요시간(3시간50분)을 무기로, KTX(5만6600원, 3시간30분)와 경쟁을 벌이고 있다. KTX가 고속버스와 소요시간은 동일하나 가격은 두 배 이상 비싼 것이다. 고속도로를 최고 110㎞로 달리는 고속버스가 코레일과 경전선상 도시에서 유효경쟁을 벌일 수 있는 것은 코레일의 경전선로(線路) 독점이 초래한 결과다. 코레일은 옛 철도청 시절부터 수십 년째 경전선 선로를 독점 운영하며, 경전선에서 ‘배짱 영업’을 해왔다. 경쟁자 없이 선로를 독점했기에 모든 역에서 열차를 다 세워도 어쩔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돌아온 것은 지역주민들의 경전선 외면과 남해고속도로를 뛰는 고속버스 선택이었다. 결국 경전선이 정부보조금으로 연명하는 적자노선으로 변한 것.
오전 9시25분경 경전선 무궁화호는 경남과 전남의 경계인 섬진강철교를 건넜다. 단선 철로였다. 그간 선로투자가 되지 않아 경전선 진주에서 전남 광양까지 구간은 단선으로 운행된다. 오전 9시35분 전남 옥곡역에서 정차했을 때 선로와 나란히 달리는 남해고속도로 위로는 버스와 트럭이 질주하고 있었다. 4시간45분을 달려 광주송정역에 도착한 시각은 낮 12시30분경. 코레일이 밝힌 원래 도착 예정시각은 12시16분이었지만, 열차는 광주송정역 목전인 동송정분기점에서 열차간격을 조정한다고 선로에 15분을 대기하며 연착했다. 기관사는 “제 시간보다 늦어서 미안하다”는 사과방송만 내보냈다. 같은 구간을 3시간 내에 주파한다는 고속버스에 비해 1시간45분이 더 걸리고, 운임도 1만5300원으로 고속버스(1만3900원)에 비해 1400원 비쌌다.
창원역에서부터 광주송정역까지 4시간45분을 지정좌석(2번차 20번 통로)이 아닌 자리에 앉아왔지만, 단 한 차례의 검표 요구도 받지 않았다. 경전선은 그간 적자를 견디지 못해 전남 구간을 지나는 상당수 역사를 무인화했다. 말 그대로 역사에서 표를 판매하는 역무원이 없다. 대신 해당구간의 열차승객들은 열차에 올라탄 뒤 열차승무원들에게 운임을 지불하는 구조다. 코레일은 막대한 돈을 들여 설치한 자동개집표기 오작동이 속출하자 ‘자율 검표’란 명목으로 검표 방식을 바꿨다. 무인역 구간은 다른 노선에 비해 차내 검표가 더 엄격해야 무임승차를 방지할 수 있다. 더욱이 경전선은 고령 승객들이 많다 보니 지정좌석제가 유명무실해졌고, 열차승무원이 좌석정보가 든 PDA단말기를 휴대하고 다녀봤자 무용지물이었다. 사실상 무임승차가 용인되는 무상철도로 전락한 셈이다.
코레일 측에 적자보전 의지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기자가 탄 경전선 열차에는 KTX나 수도권 광역전철에서 볼 수 있는 영상광고는 고사하고, 고속버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머리받이 광고도 없었다. 대개 차내 광고는 공공교통 수단에서 적자보전을 위한 수단이다. 객차에서 접한 광고는 객차 앞뒤의 액자광고 2개로, 이마저도 ‘코레일유통’이 내건 ‘광고 문의’ 광고였다. ‘벽오지 노선 유지’를 경전선에 대한 보조금 지급의 이유로 거론한다. 하지만 경전선의 동쪽 구간인 경남은 전국의 시도 중 수위의 경제력을 자랑한다. 8대 보조금노선 중 강원산간을 통과하는 정선선, 동해선 등과 달리 겨울철 폭설 걱정도 없다. 폭설 시 철도는 도로에 비해 탁월한 경쟁력을 자랑하지만, 4시간45분간 느릿느릿 달려온 경전선 차창 너머로는 잔설(殘雪)조차 찾기 힘들었다. 코레일에서는 경전선을 살릴 묘책으로 지난해 9월 ‘남도해양관광열차(S-트레인)’를 꺼내들었지만, 성공 여부는 미지수다. 해양관광열차라지만 경전선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구간은 전무하다. 급기야 코레일은 당초 마산~광주로 설정했던 ‘S-트레인’ 노선을 1월 11일부터 서대전~광주송정 구간으로 변경했다. 원래 지난해 12월 13일자로 변경하려 했으나 철도파업(12월 9일)으로 한 달여 지연됐다. 권혁진 코레일 관광사업처장은 “마산~광주 이용객 저조도 있지만, 수도권 이용객을 잡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경전선 종착인 광주송정역에서는 호남고속선 신설에 맞춘 역사 증축이 한창이었다. 2015년 2월까지 광주송정역을 연면적 4858㎡ 의 지상 4층 역사로 증축하는 공사였다. 경전선과 호남선이 교차하는 광주송정역은 지하철, 광주공항과도 연계돼 경부선 동대구역 정도의 허브화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이 봤던 역사다. 하지만 차로 20분 거리의 광주역을 존치시켜 이도저도 아닌 고만고만한 통과역이 돼버렸다. 사실 광주광역시 시내에 있는 광주역도 경전선 실패의 산물이다. 광주역은 삼랑진에서 광주송정역까지 가는 중간역이었다. 하지만 경전선의 광주시내 구간(광주역~효천역) 10.8㎞가 폐선되며 경전선 기능을 상실했다. 지금은 호남선의 광주지선(支線·광주송정~광주역) 기능만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지선임에도 광주역에는 지역구 의원인 강기정 의원(민주당)의 요구로 KTX 열차가 투입된다. 결국 광주도 광주송정역과 광주역 두 곳의 KTX 정차역을 가진, ‘1시(市)1역(驛)’의 KTX 정차 원칙을 위배해 타지역 주민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었다. 가장 피해 보는 것은 나주와 목포 등 전남 남부 주민들이다. 평일 21회 투입되는 호남선 KTX 중 9회가 광주역으로 발길을 돌려서다. 열차이용객도 ‘광주송정’과 ‘광주’를 헷갈려 해 코레일은 광주송정 역명에 ‘광주시내’를 괄호를 쳐 병기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경전선의 사실상 동쪽과 서쪽 시종착점인 창원역과 광주송정역이 똑같이 철도역 이원화의 전철을 밟고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한 피해는 타지역 주민들에게 돌아온다. 철도역 이원화에 따른 역사건설 중복투자는 한국철도시설공단의 철도 부채로 잡힌다. 코레일은 이에 따른 선로사용료와 유지보수비를 철도시설공단에 꼬박꼬박 납부해 가면서 철도 부채를 키우고 있었다. 국토교통부 철도운영과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경전선을 비롯한 보조금 노선에는 모두 2300억원의 보조금이 투입됐다. 국토교통부 철도운영과 천재민 사무관은 “경전선 일부 구간은 보조금을 지급하기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어서 지난해 3분기부터는 단선 비전철 구간(진주~광주송정)만 보조금 노선으로 지정하고, 대신 충북선을 보조금 노선으로 새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 역간 거리를 늘리고 표정속도를 높이는 시도로 시간 줄여봤자 단선철도에 여전히 고속도로에 밀리는건 마찬가집니다. 서부경전선은 구간수요를 대상으로 하는 노선입니다. 그마저도 잃고 싶다면 그리 해야겠지요. KTX 정차역 설정은 1차적으로 정치권에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 상식적으로 손님이 있어야 광고주를 유치하지요. 코레일은 광고를 안받고 싶어한답니까. 노선 경쟁력이 없는걸 어찌합니까. 전국에 고속도로를 거미줄처럼 깔아오는 동안 일제강점기를 벗어나지 못한 서부경전선에는 정부가 어떤 투자를 했는지 궁금하네요.
- 창원중앙역과 창원역은 코레일이 수요예측하고 만든게 아니라 한국철도시설공단의 작품입니다만. 확실히 해두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코레일은 그저 운영만 할 뿐.
-기사내용 중 코레일은 이에 따른 선로사용료와 유지보수비를 철도시설공단에 꼬박꼬박 납부해 가면서 철도 부채를 키우고 있었다. 는 사실과 다른 것 같습니다.
코레일이 철도시설공단에 선로사용료를 납부하는 것은 맞는데 유지보수비는 반대 아닌가요
철도시설공단은 코레일로부터 선로사용료를 받고 유지보수비는 철도시설공단이 코레일에 위탁비로 매년 약1,000억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헤럴드경제 “현대건설 폐수 불법방류” 기사 삭제 왜? 1 17미디어오늘
17일자 석간신문 사회면 톱기사로 실었다 현대건설 전화 받고 온라인에서 삭제 논란
헤럴드경제가 현대건설이 경인아라뱃길 주변에 아울렛 건물을 지으면서 시멘트가 섞인 것으로 추정되는 오탁수를 불법적으로 흘려보냈다고 17일 보도했으나 이내 온라인에서 이 기사를 삭제했다. 헤럴드경제는 ‘팩트가 틀리지는 않았지만 공식 조사가 진행돼 삭제했다’고 설명하지만 헤럴드경제는 현대건설의 연락을 받은 뒤 기사를 삭제했다.
헤럴드경제(석간)는 17일자 <대형건설사, 아라뱃길에 시멘트(?)폐수 ‘콸콸’ 무단방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H건설이 경인아라뱃길 인근에 프리미엄 아울렛을 건설하면서 “시멘트가 섞인 것으로 추정되는 ‘고농도 오탁수(汚濁水)’를 정상적인 정화 처리를 거치지 않고 공공수역인 경인아라뱃길에 무단으로 방류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지난 16일 오후 1시께 경기 김포 고촌읍 소재 경인아라뱃길 하나교 밑 신곡리 방면 둔치에 있는 가로2.5m 세로 2.0m 배수구에서 시멘트 냄새를 풍기는 짙은 회색 빗깔의 오탁수가 대량으로 경인아라뱃길에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헤럴드경제 취재진은 이 사실을 수자원공사에 알렸고, 공사와 김포시청은 조사를 시작했다.
특히 수자원공사와 김포시청은 ‘오탁수’ 존재를 확인했다. 헤럴드경제는 “수자원공사 조사에 따르면 오탁수는 프리미엄 아울렛 김포점 신축공사 현장에서 발생해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공사 현장은 해당 배수구와 직선거리로 6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공사와 김포시청은 현대건설에서 오탁수가 흘러나왔다고 보고 있다. 공사 유인선 시설관리팀 차장은 “‘그라우팅(grouting)’ 작업 중 발생한 뻘 같은 토사와 시멘트가 뒤섞였는데 이게 정상적으로 정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스란히 하천에 유입됐다”고 말했다. 이 작업은 공사 초기 지반 침하를 막기 위해 땅에 구멍을 내고 막대 형태로 시멘트를 주입하는 공정이다.
김포시청 하재현 환경보존과 폐수 담당자는 “H건설 측은 ‘깨끗한 물이 나온다’며 주장하고 있지만 공사 현장에서 오탁수가 나오는 것을 직접 확인했다”며 “정화 처리가 안 된다는 걸 알고도 무단 방류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고 헤럴드경제는 보도했다.
이 기사는 포털사이트 등에 전송됐지만 오후 3시께 삭제됐다. 현재 블로그 등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기사 삭제 과정에서 취재기자는 배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윗선에서 기사를 삭제했다는 이야기다. 16, 17일 현장을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한 이지웅 기자는 오후 4시 반께 “나도 지금 기사가 내려간 걸 알았다”며 “그 이유는 구체적으로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데스크들은 오탁수가 흘러나왔다는 팩트에는 문제가 없으나 이 오탁수의 성분을 조사 중이라 기사를 삭제했다고 해명했다. 김영상 사회부장은 “제목에 ‘시멘트’라고 했는데 공사와 김포시청이 (시멘트가 포함됐는지) 확인 중이라 (삭제했다)”고 말했다. 권용국 편집국장은 “팩트가 틀린 건 아니고 더 조사할 게 있어 삭제했다고 보고 받았다”고 말했다.
이 기사가 삭제된 과정에서 현대건설 측은 헤럴드경제 사회부에 적극적으로 해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대건설 홍보팀 김태화 부장은 “기사 내용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어 해당부서에 해명했다”며 “우리는 오탁수가 나오는 모든 곳에 정화시설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그는 ‘삭제 압력을 가한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가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변호인> 9백만 돌파, <조선>의 어거지 인터뷰 1.13 오마이뉴스
담당검사 고영주 인터뷰하며 '엉터리' 강조... "용공조작은 거짓" 주장도
<조선> "왜 이런 영화가 만들어졌다고 보시나요."
고영주 변호사 "한마디로 대한민국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하고, 친노 세력의 결집을 위한 목적이겠죠… (중략) 우리나라는 완전히 국가 자체를 부정하는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위한 목적으로 영화를 만듭니다. 정말 악랄하죠."
영화 안 본 사람에게 영화를 묻는 조선
영화 <변호인>이 최단 기간 9백만 관객을 돌파한 12일, <조선닷컴>의 머리기사 역시 이 영화에 대한 것이었다. 개봉 25일 만에 9백만을 돌파한 <아바타>의 기록보다 7일 빠른 속도다. 2014년 첫 천만 돌파는 거의 확실해 보이고, 이 추세대로라면 영화사를 새롭게 쓸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관객의 힘'으로 입증받은 영화인데 이를 다루는 <조선닷컴>의 보도 내용이 이상하다.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부림사건'의 수사검사였던 고영주씨와 가진 인터뷰를 게재했다. <조선>은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영화의 '제작 목적'을 묻고 있다. 감독도 아니고 평론가도 아니고 심지어는 영화를 보지도 않았다고 답변한 사람에게 묻는 질문치고는 어색하다.
질문을 받은 과거의 검사는 영화가 "친노 세력의 결집과 국가 자체를 부정할" 목적으로 제작됐다고 답했다. 나아가 고씨는 "영화는 엉터리"이며 "노 대통령은 공산주의를 변호한 것 밖에 안 된다"고 주장했다. '영화는 봤느냐'는 질문에 고씨는 "어차피 자기들 입맛대로 짜깁기 해서 만든 영화인데 내가 봐서 관람객 숫자를 늘려줄 필요가 있느냐"고 답했다.
<조선> 기자는 당시 검사에게 <변호인> 장면에 대해 꼬치꼬치 물었다. 영화와 같이 판사가 변호사를 윽박지르는 게 가능한지, 실제 노무현 변호사가 재판 시작 전 피고인들의 포승줄을 풀어달라고 했는지, 변호인 아들에게 국가기관이 전화로 신변을 협박했는지, 차 경감이 증인으로 나와 변호인에게 큰 소리치는 장면과 영화 초반 판사가 검찰과 변호인에게 형량 합의를 권유하는 장면 등에 대해 물었다.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하지 않은가! 영화를 본 사람이 9백만 명이고 그 중 법조인도 많을 텐데 보지 않은 사람을 상대로 영화 속 장면을 설명해 가면서까지 관련 내용을 질문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안타까움 함께 인터뷰의 의도성까지 생각하게 된다.
피해자에겐 30년 동안 잊지 못한 고통, 주임검사의 대답은
인터뷰에서 기자는 '부림사건'의 실체에 대해 물었다. 당시 검사는 "의식화 사건으로 뿌리내린 좌경사상이 결국 전 대학가를 점령하였고, 오늘날 종북(從北) 세력의 뿌리도 거기에서 출발한다"고 대답했다. 이어 <조선> 측은 "영화에서는 시종일관 부림사건이 경찰과 검찰의 고문 수사로 조작된 것이라고 나온다"며 고문에 대해 물었다. 당시를 잘 기억한다고 대답한 고씨는 "(부림사건 피의자들은) 검사와 변호사에게 자신들의 생각을 전파하려고 했던 사람들"이라며 "이것이 고문을 받고 겁에 질린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이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특이하게도 인터뷰에서 기자는 부림사건 당시의 '고문'에 대해 집요할 정도로 질문을 던진다. '고문을 당했다'는 주장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물었다. 실제 조사과정에서 고문이 있었을 경우 재판에 미치는 영향을 물었다. 영화처럼 한 달 동안 감금된 채 고문 받는 관행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조선>은 고문과 관련해 비슷한 질문을 반복해서 던졌고, 다양한 질문에 당시 검사는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답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시계를 3년 전으로 돌려 2011년 4월로 돌아가면 '30년 만에 고문 경찰관 2명 고소한 부림사건 피해자 14명' 뉴스가 기다리고 있다(관련기사 보기). 1981년에 겪었던 두 달 간의 끔찍했던 사건을 잊지 못하던, 이제는 피해자가 된 당시의 피의자들은 30년이 지난 시점에 '차동영(고문경찰)'을 찾아 고소한 것이다. 그들은 "공소시효가 지나 피고소인들이 처벌받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고문사실만큼은 밝혀 달라"고 평생 잊지 못한 억울함을 호소했다.
<조선>의 질문, 부림은 용공조작인가?
인터뷰가 마무리되어갈 무렵 나온 <조선>의 질문. 이 질문이 정말 묻고 싶었던 본질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조선> "부림사건이 '용공조작'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고영주 변호사 "(전략) 부림사건이 용공조작이라면 어떻게 그 후 전 대학이 주체사상으로 붉게 물들 수 있었겠는가. 오늘날 종북세력이 하늘에서 떨어졌겠냐, 땅에서 솟아났겠는가."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당시 검사는 용공조작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단호함까지 느껴졌다. 그는 대학생 등이 김일성을 존경하고, 공산주의를 동경하는 발언과 모임을 한 것이 사건의 실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것이 현 종북세력의 뿌리라고도 해석했다. 이 발언에 대해 질문을 던진 <조선> 기자는 추가 질문이나 반론을 펴지 않았다 그러나 시계를 4년 반으로 돌려 2009년 8월의 <조선일보>를 찾아보면, 전혀 다른 내용이 보도됐다. 재심을 청구한 부림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부산지법의 판결을 보도한 5문단의 기사다. 이 기사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신군부가 5·18 민주항쟁 이후 용공사건으로 조작한 부림사건에 대한 재심에서 법원이 일부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변호인>은 실재했던 인물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영화는 매일매일 흥행 신기록을 돌파하며 한국 영화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이 신문과 대립 관계였던 노무현 대통령이다. 그렇다고 해도 3년 반 전에 '용공조작' 사건이라고 스스로 보도했으면서, 사건의 주임검사에게 '용공조작으로 보는가'를 묻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허구입니다'
영화를 관람한 9백만 명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허구'라고 못 박고 시작한다. 관객들은 영화 속 모든 내용을 '다큐멘터리'라고 믿지 않는다. 같은 공간에서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정말 저러한 고문을 당했을까'라고 놀라워했다. 일부는 '현재와 무관한 일들일까'라고도 걱정했다. 그러나 영화와 실재를 분간하려 애쓰는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2009년 8월 <조선일보>는 부림사건을 '용공조작 사건'으로 보도했다. 12일 게재된 인터뷰를 진행한 <조선> 기자와 당시 검사였던 고영주씨는 해당 <조선일보> 기사를 보았을까.
다시 거리로 나온 민주화 세대…1만인 시국선언 1.12 경향
민주화 세대가 ‘안녕들 하십니까’ 물음에 응답했다. 1960~1980년대 군사정부에 맞섰던 민주화 세대의 중장년층 시민들이 시국대회를 열고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는 새해 첫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민주화세대 시국선언준비모임은 11일 오후 3시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갑오년 새해, 민주주의를 구하라’는 이름으로 시국대회를 열었다. 서울지역대학민주동문회협의회, 4월 혁명회, 민청학련계승사업회 등 7개 단체·협의회로 구성된 이 모임은 시국대회에서 “정부와 여당에 부정과 불통, 무능을 극복하고 안녕한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어가자”고 촉구했다. 이철 전 코레일 사장, 원혜영 민주당 의원 등 유신시절 민주화 운동 경험이 있는 인사들과 서울대·연세대·영남대 등 전국 20여개 대학 민주동문회 회원 등 총 500명이 참가했다.
양춘승 서울대 민주동문회 고문은 “젊은 친구들이 기성세대에게 ‘안녕들 하십니까’란 질문을 던지고 있다”며 “이 자리는 그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고 소개했다. 집회에는 경희대 재학생들의 노래 및 율동공연과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쓴 대학생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이들은 서소문을 거쳐 서울광장까지 행진, 오후 5시 국정원 시국회의가 주최하는 촛불집회에 합류해 1만3451명의 이름이 담긴 ‘민주화세대 1만인 성명’을 낭독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수많은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로 지켜왔던 민주 정통성이 위태로운 상황”이라며 “6개월 이상 광장에서 촛불을 밝혀온 시민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기 위해 일어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관권부정선거 및 수사방해와 우리 사회 제반 문제를 독선과 불통, 이념공세와 편 가르기, 절제되지 않은 공권력 동원을 통해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유신독재정권의 망령이 되살아난 듯한 착각마저 든다”고 밝혔다.
이들은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규명을 위한 특검도입, 국정원 등 정보기관 개혁, 철도민영화 등 일방정 정책 중지, 경제민주화·복지 관련 공약 이행 등을 요구하며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정권퇴진운동까지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민주화 세대의 이름으로 시국선언 및 집회가 벌어진 것은 처음이다. 1987년 직후 각 대학에서 결성된 민주동문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이번 모임이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마다 있는 민주동문회는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숨진 열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1991년에는 이들 민주동문회의 연합체인 전국대학민주동문회협의회가 결성됐다. 199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민주동문회의 활동은 뜸해졌다. 회원들은 주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회원들의 안부를 주고받는 정도였다.
민주동문회는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국면을 거치며 다시 활발해졌다. 고려대, 단국대, 이화여대, 한양대 민주동문회 등이 지난해 7월부터 적극적으로 촛불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타 대학 민주동문회에도 확산됐다. 이창희 서울지역대학민주동문협의회 사무국장은 “최근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면서 민주동문회에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글이 올라오는 등 움직임이 활발해졌다”며 “이 땅의 민주주의와 민생의 희망을 위하여 더 크게, 더 넓게 조직적으로 행동하고 실천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촛불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2000여명(경찰 추산 900여명)의 시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참가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청소년회의’ 회원들도 시국선언문을 발표해 “박근혜 정부는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진상 규명을 위해 특검을 도입하고 남재준 국정원장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파면하라”고 촉구했다. 시국집회에는 경희대 학생들의 공연 및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쓴 대학생 발언도 있었다.
민주주의 수호와 관권선거부정 진실규명을 위한 민주화세대 시국 선언
우리나라의 앞날을 짊어질 젊은이들이 “안녕들 하시냐?”고 묻고 있다. 사회 곳곳에 유신독재를 연상시키는 권력의 일방통행과 불통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상태에서,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던 예비역 육군대위가 “박근혜 사퇴, 특검실시”를 외치며 분신·항거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고 있다. 현 시점 우리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출범 1년도 채 되지 않은 박근혜 정권이 쉴 새 없이 저지르고 있는 민주파괴, 공약파기, 민생파탄의 만행에 의해 처절하게 유린당하고 있다.
어떻게 형성해 온 이 땅의 민주주의였던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전 민족적으로 궐기한 3·1운동과 3·15부정선거를 자행한 이승만 독재정권을 타도한 4·19혁명의 정신을 계승하여, 지난 군사독재 시절 실로 수많은 국민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지켜왔던 대한민국의 민주정통성은 이제 바람앞의 촛불처럼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의 만행에 맞서 무자비한 고문, 투옥과 해직을 두려워하지 않고 민주주의 수호 투쟁에 앞장섰고, 부마항쟁과 5·18광주항쟁, 그리고 이어진 반독재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전두환 일당의 군사독재정권에 죽음을 무릅쓰고 맞섰던 우리들 민주화운동 세대 사람들은, 오늘의 이 참담한 민주파괴 현실에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지난 6개월 이상 광장에서 촛불을 밝혀 온 민주시민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기 위해 다시 한 번 떨쳐 일어서기로 하였다.
검찰수사를 통해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국가정보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 보훈처, 행정안전부 등 국가기관이 직접 나서 자행한 관권부정선거의 범죄사실이 일부라도 밝혀졌다. 그리고 수사기관인 경찰이 부정선거의 범죄사실을 밝혀내고도 이를 정반대로 뒤집어 국민들에게 거짓보고하고 범인을 은닉한 범죄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은 관권부정선거와 범인은닉의 범죄를 확인하고도 의법 처단하기는 커녕 권력의 힘을 이용해 그 범죄의 진상을 은폐하고 축소조작하기에 급급하였다. 나아가 남북정상회담의 회의록을 불법으로 공개하여 유출시키면서 물타기와 국면전환 공작을 서슴지 않는가 하면, 법대로 수사하려는 검찰총장과 검찰 특별수사팀장을 치졸한 수법으로 찍어내면서 집요한 수사방해 공작을 자행하였다.
주권자인 국민들은 작년 6월부터 촛불광장을 지켜 오면서 관권선거부정 범죄에 대한 성역없는 철저한 수사를 통해 범죄자와 그 배후 책임자를 낱낱이 찾아내어 엄중 처벌할 것을 요구해 왔다. 그리고 국민을 상대로 한 심리전 공작을 자행한 국정원 등 비밀정보기관을 해체수준으로 전면적인 개혁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국정책임자이면서 국가기관들이 벌인 위법한 범죄행위의 수혜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처음에는 자신은 모르는 일이고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하다가 범죄사실이 속속 밝혀지자 자신은 이익을 받은 바도 없다고 발뺌하는가 하면, 나아가 대선불복이 아니냐며 고압적인 자세로 국민을 겁박하고 야당을 몰아세우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가기관, 특히 비밀 정보기관이 선거에서 특정 후보의 당선을 위해 정치공작한 것은 공정한 선거에 바탕을 둔 민주헌정질서를 문란케 한 중대범죄이므로, 국민이 이런 범죄행위의 의법처단을 요구하고 민주주의 회복을 요구하는 것은 주권자의 정당한 권리이고, 또한 이를 끝내 거부하고 있는 박정권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주권자의 명령임이 분명하다.
또한 밀양송전탑 공사강행, 전교조와 공무원노조에 대한 부당한 탄압과 민주노총 침탈 등 노동기본권 유린, 공영방송 등 언론을 권력의 주구, 정권의 시녀로 만들어 여론조작을 서슴지 않는 작태를 보면서, 또 기초노인연금과 4대 중증질환 100%보장 등과 같은 대선공약을 파기하면서도 공약이행을 하고 있다고 우기는 상황을 보면서, 그리고 수서발 KTX주식회사 설립을 강행하면서도 철도민영화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 우리 사회가 직면한 제반 문제를 대화와 타협,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해결하는 대신, 독선과 불통, 이념공세와 편 가르기, 절제되지 않은 공권력 동원을 통해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은 마치 유신독재정권의 망령이 되살아난 듯한 착각마저 들 지경이다.
우리는 이런 ‘민주주의 위기 상황’에서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은 지난 대선시기 국가기관에 의한 총체적 관권선거부정 범죄와 범죄 진상의 축소은폐 공작을 철저히 수사하고 관련 책임자를 엄중 처벌하기 위한 독립적 특별검사 도입을 수용하라.
하나.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은 국정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 등 비밀정보기관을 해체수준으로 전면 개혁하라.
하나. 철도민영화, 의료시장화, 밀양송전탑공사 등 국민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일방적·강압적 정책을 즉각 중지하고, 공공부문의 사회공공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라!
하나. 박근혜 정권은 국민과 약속한 경제민주화, 노인·의료·영유아 관련 민생·복지 공약을 즉각 이행하라.
만일 박근혜 정권이 독립적 특검도입을 통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요구를 계속 거부하고 또 수사방해 책동을 계속한다면, 우리는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바쳤던 선열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임을 천명한다.
2014년 1월 11일
민주화를 위해 젊음을 바친 민주화 세대 일동
노래출처: 아름다운 음악여행
Simon and Garfunk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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