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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25년4월 3주 (7~13)

by 이성근 2025. 4. 14.

 

 

졸속 개헌론, 헌정파괴세력은 있고 시민은 없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조기 개헌론을 제기했다. 차기 대통령선거와 헌법 개정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자는 내용이다. 대선은 늦어도 63일에는 치러지게 된다. 앞으로 57일 남았다(47일 기준). 개헌이 성사된다 해도 졸속이 될 가능성이 크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의롭지 못한개헌이 될 것이란 점이다. 5W 1H 원칙에 따라 짚어본다.

누가(Who)?

우 의장의 개헌 제안에 가장 반색한 건 국민의힘이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헌에 동참하고 당 개헌특위에서 (개헌)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헌법의 명령으로 쫓겨난 내란수괴를 출당시키기는커녕 상왕 모시듯 하는 정당이다. 당 안팎의 내란세력과도 절연하지 않고 있다. 사과도 반성도 쇄신도 없다.

지금 존재하는 헌법도 외면하는 정당을 새 헌법 만드는 테이블에 앉힐 수는 없다. 그것은 헌정질서파괴세력에 이대로 가도 된다며 관용을 베푸는 일이다.

언제(When)?

라이브로 친위쿠데타를 일으킨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데 122일이나 걸렸다. 윤석열은 승복하지도, 사과하지도 않고 있다. 서울 한남동 관저조차 비우지 않은 채 지지층 결집 메시지를 내고 상왕 노릇을 하는 터다. 사법 기득권과 극우 개신교·유튜버로 이어지는 카르텔도 여전하다. 헌정질서와 사법정의를 바로 세워야 할 이 때, 개헌 논의는 다른 모든 의제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말 것이다. 지금은 개헌의 타이밍이 아니다.

헌법과 국민투표법에 따르면, 개헌안 발의부터 국민투표까지 최소 38일이 걸린다. 개헌안은 국회 의결 전 대통령이 20일 이상 공고해야 한다. 의결 후 국민투표에 붙이려면, 투표일 18일 전까지 투표일과 투표안이 공고돼야 한다. 이를 역산하면 국회에서 앞으로 19일 안에 개헌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평범한 법률안 하나 통과시키는 데도 빠듯한 시간이다. 일부에선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18일 공고 규정을 축소하자고 하는데, 어불성설이다.

어디서(Where)?

12·3 비상계엄 선포 후 국회 앞으로 달려가 계엄군을 막아선 건 광장의 시민이었다.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을 이끌어낸 것도 광장의 시민이었다. 눈보라 속에서 밤새워 윤석열 체포를 촉구한 키세스 시위대도 광장의 시민이었다.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이끌어낸 이 역시 광장의 시민이었다.

뜬금없는 개헌론은 광장의 승리를 제 것인양 여기고, 시민의 트로피를 가로채겠다는 정치권의 책략일 뿐이다. 개헌 논의가 필요하다면 여의도의 고급 식당이 아니라 전국 곳곳의 광장에서 시작돼야 한다.

무엇을(What)?

헌법은 크게 기본권과 권력구조 두 부분으로 이뤄진다. 우 의장은 대선과 함께 1차 개헌을 해 권력구조부터 바꾸자고 했다. 나머지 개편 과제는 내년 지방선거 때 2차 개헌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앞뒤가 바뀌었다. 권력구조는 기본권이란 내용을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형식일 뿐이다.

우 의장은 권력구조 개편 방향과 관련해 대통령 4년 중임제에 대해 여야 정당간 공감대가 있는 것 같다고 했는데, 누가 여야에 권력구조를 결정할 권한을 줬나. 현재의 5년 단임제는 19876·10 항쟁의 결과물이다. 시민이 피로 쓴 헌법이다.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꾼다고 제왕적 대통령의 부상을 막을 수 있나. 외려 4년간 숨죽였던 대통령이 재선 후 독재로 치달을 가능성은 없을까.

어떻게(How)?

우 의장은 국민주권과 국민통합을 위한 삼권분립의 기둥을 튼튼하게 세우기 위해개헌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개헌의 절차와 과정부터 국민주권에 기반할 일이다. 졸속 개헌은 또 다시 권력 상층부 엘리트들의 짬짜미로 결론 날 가능성이 크다. 주권자인 국민은 소외되고 말 것이다.

개헌을 추진한다면, 지난 넉 달 간 광장에서 울려퍼진 사회대개혁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숙의 민주주의과정이 필수적이다. 연령·성별·지역·직업·계층이 고루 반영된 주권자 그룹을 구성해 전문가들과의 토론을 거쳐 개헌안 초안을 마련해야 옳다.

(Why)?

근본적 질문이다. 윤석열이 파면된 지 사흘 지났다. 파면 이후 가장 시급한 과제가 권력구조를 바꾸는 일인가? 헌법이 잘못돼서 윤석열이 내란을 일으켰나? 잘못됐다면 이전 대통령들은 왜 그러지 않았나?

간신히 일상으로 돌아간 시민들에게 물어보기 바란다. 당장 바라는 게 뭔지. 기업은 트럼프발 관세 전쟁으로, 자영업자들은 최악의 불황으로 고통받고 있다. 청년은 일자리가 부족하고, 고령자는 노후가 불안하다. 노동자와 여성·성소수자·장애인은 구조적 차별에 시달린다.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면 이들의 삶이 나아지는가. 구체적으로 설명해보라.

개헌은 수단일 뿐 목표가 아니다

시민이 정치체제 자체를 제거하지 않고도 통치자를 제재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지배 형태.”

정치이론 연구자인 한스 포어랜더 독일 드레스덴공대 교수는 저서 <민주주의-역사, 형식, 이론>에서 민주주의를 이렇게 정의했다.

44일 오전 1122분 한국 시민은 민주주의의 추상적 정의(定義)를 실체적으로 구현해냈다. 그 기반은 지금의 헌법이었다. 개헌은 보다 민주적이고 정의로우며 번영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개헌 자체가 목표일 수는 없다.

지난해 124일 새벽. 계엄해제 요구안 표결을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 모인 의원들은 우 의장에게 당장 상정하라고 외쳤다.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진입하던 급박한 상황이었다. 우 의장은 의연했다. “절차가 잘못되면 문제라며 의결정족수 확보 여부를 확인한 뒤 차분히 결의안을 가결시켰다. 지금의 우원식은 그날로부터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다.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 경향 2025.04.07.

 

극우를 가두는 원을 그려야 하나

그들은 나를 가두는 원을 그렸다. 이교도, 반역자, 경멸할 자식이라 소리치며. 그러나 나는 사랑과 승리의 정신을 가졌다. 우리는 그들을 받아들이는 원을 그렸다.” 미국 시인 에드윈 마컴의 말이다. 대통령 윤석열 파면이 갖는 의미와 이후 벌어질 일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이 명언을 떠올렸다. 앞으로 전국에 걸쳐 원 그리기게임이 벌어질 거라는 예감과 함께 말이다.

훗날 이 시절을 겪지 않은 사람이 재임 시절 윤석열은 어떤 대통령이었나?”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련다. “엉터리였어.” 누군가 엉터리라는 단어가 풍기는 희극성에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면, 나는 이런 반문을 하고 싶다. “대통령제라는 제도 자체가 코미디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세요?”

미국 작가 존 스타인벡은 우리는 대통령에게 도저히 한 사람이 해낼 수 없는 일과, 도저히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책임과, 도저히 한 사람이 견뎌낼 수 없는 압박을 주고 있다고 했다. 그래놓고선 대통령에 대한 복종을 신앙으로 삼은 사람들이 그의 주변을 둘러싸게 하고 있으니, 이게 도대체 무슨 미친 짓인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간 윤석열의 품성에 대해 많은 말이 나왔지만, 내가 가장 눈여겨본 명언은 한겨레 선임기자 성한용이 지난해 10정치 막전막후에 소개한 윤석열 동갑내기 친구의 말이다. “너는 남의 말을 안 듣잖냐. 그런 사람은 정치하면 안 된다.” 검사 시절 성품이 맑은 어느 술친구가 윤석열에게 너는 정치하지 말라고 충고했는데, 윤석열이 이유를 묻자 내놓은 대답이라고 한다.

윤석열이 남긴 교훈으로 그간 가장 많이 거론된 게 정치 경험이 없는 사람이 곧장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였는데, 나는 이것보다는 남의 말을 안 듣는 사람은 정치하면 안 된다가 더 마음에 든다. 윤석열은 남의 말을 안 듣는 쇠고집 덕분에 스타 검사가 되었고 이게 대통령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지만, 바로 그 쇠고집 때문에 비상계엄 선포라고 하는 자폭을 하고 말았다.

윤석열이 말을 듣는 유일한 사람이 부인인 김건희였지만, 이는 더 큰 문제를 일으켰다. 김건희는 공사 구분 의식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김건희는 집권 초부터 윤석열의 브레인이자 매니저를 자임하면서 계속 문제를 일으켰다. 이를 우려한 지인들이 고언을 하면 윤석열은 관계 단절로 대응했다. 이게 집권세력 내부에 알려지면서 김건희 문제는 절대 성역이 되었고, 결국엔 명태균 게이트의 발판이 되고 말았다. 이 사건이 야당에서 제기한 비상계엄 선포의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모든 게 실소를 자아내게 만드는 엉터리의 연속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윤석열을 극우 현상과 같은 거시적 관점에서 보는 논의가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 논의를 지지한다. 다만 조심해야 할 점도 있다. 극우 연구자 카스 무데는 극우의 특징으로 반민주주의, 권위주의 국가관, 외국인 혐오, 인종주의, 배타적 민족주의를 추출해냈다. 한겨레 기자 이승준은 317일치에 무데의 정의를 수용해 내란이 깨운 극우 880만명그들은 민주주의 자체를 싫어한다는 제목의 좋은 기사를 썼다.

이승준은 비상계엄이야말로 반민주주의’(군을 동원한 헌정질서의 중단)권위주의 국가관’(“계엄은 정당한 통치권 행사”)외국인 혐오’(“중국 간첩의 국정 교란”) 같은 극우의 핵심 성분을 명분과 행동안에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한국 극우‘12·3 계엄에 대한 지지 여부로 판별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그럴 경우 극우의 규모는 유권자의 20%(880만명) 안팎으로 추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윤석열 탄핵에 반대한 이들을 모두 극우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지만, 이건 너무 과하다. 극우에 대한 유비무환의 취지로 그러는 것임을 이해하지만, 극우를 가두는 원을, 그것도 크게 그리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민주주의 역사가 오래된 유럽과는 달리 역사가 짧은 한국형 극우의 순도 문제를 따져보아야 한다. 단지 저쪽이 싫어서하게 된 반작용에 가까운 일련의 언행을 한국의 극심한 승자독식 체제에 대한 고찰 없이 피상적인 외양만 보고 판단해도 괜찮을까?

우리 모두 국회의장 우원식이 윤석열 파면 직후 대국민 담화를 통해 밝힌 다음 메시지에 주목하는 게 좋겠다. “대립과 갈등, 분열을 부추기는 일체의 행위를 중단하자. 극단적 대결의 언어를 추방하자. 지금 대한민국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극단적인 갈등과 분열을 해소하는 것이다.”

강준만 | 전북대 명예교수 | 한겨레 2025.04.07.

 

나의 내란 진압 소감

대한민국 국민은 손바닥에 자를 그린 채 생방송 토론에 나온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득표율 0.7퍼센트 포인트 차이였지만 국민 다수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은 바꿀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게 대통령이 된 윤석열이 심야에 느닷없는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무장 군인을 보내 국회의원을 체포하고 국회를 봉쇄하려 했다. 절대 권력을 장악하려고 벌인 친위 쿠데타였다. 그는 손바닥에 글자만 쓴 게 아니었다. 정말로 왕이 되려고 했다.

 

친위 쿠데타 가담하고 동조한 군경, 국힘, 총리, 판검사

특전사령관·수방사령관·경찰청장 등 국가의 합법적 강제력을 집행하는 군과 경찰의 최고위급 공무원들이 대통령의 위헌 위법한 지시를 이행했다. 국방부장관과 방첩사령관 등은 사전에 공모한 혐의가 짙다. 44일 헌재의 파면 선고가 나온 순간까지 집권당이었던 국민의힘 국회의원 대다수가 계엄령 선포 행위를 옹호했다. 윤석열 탄핵에 반대했으며 탄핵을 기각하라고 헌법재판소에 요구했다. 헌법 파괴 행위를 지지하는 반체제 위헌 정당임을 공공연히 밝힌 것이다.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와 최상목은 국회가 선출한 마은혁 헌법재판관을 끝까지 임명하지 않음으로써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어겼다. 한덕수는 지금도 매순간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고 있다. 그런 자가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 심판 결정을 따르라고 국민을 훈계했다. 국회가 다시 탄핵하지 않는다면 63일까지 권한대행 자리를 지킬 것이다. 헌법을 위반했지만 위반행위가 파면할 정도로 중대하지 않다며 한덕수 탄핵을 기각함으로써, 헌법재판관들은 고위 공직자들에게 헌법을 적당한 선에서 위반해도 된다고 허락했다. 헌법의 효력을 사실상 정지시키고 헌법재판소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스스로 허문 행위였다.

 

윤석열 추종자들은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부지법을 폭력으로 공격했다. 사상 초유의 법원 폭동이었다. 그런데도 지귀연 판사는 마법의 산수로 형사소송법 규정을 위반하면서 윤석열 구속 취소 판결을 내렸다. 검찰총장 심우정은 기다렸다는 듯 형사소송법 절차를 무시하고 윤석열을 풀어주었다. 그렇게 하고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한민국은 판사와 검사는 법을 어겨도 징계나 처벌을 받지 않는 나라임을 우리는 보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을 가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론이 25일 마무리됐다. 지난해 1214일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의결서가 국회를 통과해 헌재에 접수된 뒤 73일만에, 횟수로는 11차례 변론이 진행됐다. 지난달 23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6명의 증인을 불러 17차례 증언을 들었다.첫 줄 왼쪽부터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이진우 전 육군 수도방위사령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둘째 줄 왼쪽부터 김현태 특전사 707특수임무단장,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 박춘섭 대통령실 경제수석,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셋째 줄 왼쪽부터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백종욱 전 국가정보원 3차장, 김용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조태용 국정원장.넷째 줄 왼쪽부터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 한덕수 국무총리, 조지호 경찰청장. 2025.2.25 [연합뉴스 자료·헌법재판소 제공]

 

헌법 짓밟고 국민 배신하는 한국 권력 엘리트의 생얼

지난 대선 때 윤석열의 권력 남용 성향과 폭력성을 정의감의 징표인 양 포장했던 대부분의 신문 방송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동안 정치적 중립을 명분 삼아 내란 옹호세력에게 탄핵 추진세력과 동등한 발언권을 주었다. 어떤 언론사는 내놓고 내란 세력을 편들었다. 자유로운 언론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제도인데도 대다수 언론사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는 데 관심이 없다. 독재정권이라도 자신의 이익만 해치지 않으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태세다. 정치적 독극물 또는 사회적 불량식품을 만들어내는 언론사가 너무 많다. 이런 현실은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미국 사회학자 밀즈(C. W. Mills)는 군사·정치·경제 분야에서 지배적인 지위에 있으면서 의사 결정권을 행사하는 사람들을 권력 엘리트(power elite)’라고 했다. 대통령·국회의원·국무총리·장관·장군·경찰청장·헌법재판관·판사·검찰총장·언론인 등이 다 거기 속한다. 윤석열의 내란을 막아낸 계엄의 밤부터 헌법재판소가 파면을 결정한 탄핵의 아침까지 122일 동안 우리는 한국 권력 엘리트의 생얼을 보았다. 그들은 헌법을 존중하지 않는다. 국민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헌법을 짓밟고 국민을 배신한다. 대한민국은 살얼음판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민주공화국이다. 국민도 권력 엘리트도 다 변변찮다.

 

변변치 않은 우리에게 있는 대단한 그 무엇

그런데도 대한민국은 여기까지 왔다. 일제 강점에서 벗어나자마자 국토와 국가가 남북으로 찢어졌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민족까지 갈라졌다. 독재와 부패가 판치는 세계 최빈국이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폐허에서 출발해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고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코로나19 대유행 때는 세계의 모범이었고 지금은 영상예술과 대중음악으로 세계시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 국민은 윤석열 같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을 정도로 변변찮았고, 권력 엘리트는 비루하게도 헌법보다 자기 이익을 앞세우는데, 어떻게 대한민국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변변치 않은 우리에게 대단한 그 무엇이 있어서다. 수많은 시민들이 계엄의 밤에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온 무장 군인들을 맨몸으로 막아섰다. 시민들만 대단했던 게 아니다. 어떤 지휘관은 자신의 부대가 한강을 건너지 못하게 했다. 어떤 경찰 간부는 계엄사의 정치인 체포조 파견 요청을 거절했다. 그랬기에 야당 국회의원들은 국회의 담을 넘어 본회의장에 들어갈 수 있었고 일부 여당 국회의원들과 함께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신속하게 의결할 수 있었다.

 

헌법재판관들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이 사실을 들어 호소용 비상계엄이었다는 윤석열의 궤변을 단호히 배척했다.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를 결의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으므로, 이는 피청구인의 법 위반에 대한 중대성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때문이 아니라 덕분이었다고 했다. 단순히 인과관계를 밝힌 것이 아니라 가치판단도 한 것이다.

 

헌법에 충성하고 국민 섬기려는 엘리트다운 엘리트들

그렇다, 우리한테는 대단한 면이 있다. 수십 만 시민들이 형형색색 응원봉을 들고 집결한 가운데 국회는 대통령 탄핵안을 처리했다. 검찰과 공수처와 경찰은 국방부 장관과 방첩사령관 등 내란 주요 임무 종사자들에 이어 수괴 윤석열을 구속 기소했다. 어떤 군인은 헌법재판소에서 내란의 실상을 있었던 그대로 증언했다. 어떤 판사는 야당 지도자 이재명에게 터무니없는 논리로 징역형을 선고했던 1심 판결을 뒤집어 완전 무죄를 선고했다. 시민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헌법재판소 근처에 모여 윤석열 파면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헌법재판관들은 완벽한 전원일치 평결로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할 수 있었다.

 

우두머리와 주요 임무 종사자들을 법에 따라 처벌하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공범과 잔당을 마저 찾아내 책임을 묻는 작업이 남아 있지만 내란의 불길이 되살아날 위험은 사실상 사라졌다. 대단하지 않은가. 한국의 권력 엘리트가 모두 시시하고 변변찮은 것은 아니었다. 사명감과 애국심과 결단력과 능력을 가진, 헌법에 충성하고 국민을 섬기려 하는 엘리트다운 엘리트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인했다.

 

온몸으로 친위 쿠데타 막은 국민들은 그렇게 더 멀리 나아갈 것

국민도 그렇다. 아무 국민이나 다 현직 대통령의 쿠데타를 막아내는 건 아니다. 친위 쿠데타가 실패한 경우는 세계 역사에 드물다. 우리 국민은 20225월 잘못 판단해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뽑았고 6월에는 여당에 지방선거 승리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자신이 한 선택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성찰했다. 대통령 직무 수행 지지율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윤석열에게 경고 신호를 보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더 강력한 경고를 했는데도 민심을 무시하자 총선에서 역사상 없었던 참패를 안겨주었다.

 

그것이 마지막 경고였다. 윤석열은 그마저 무시하고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자 시민들은 몸으로 국회를 지켜 계엄해제 요구 의결을 하게 했고 압도적 여론을 표출해 국회의 대통령 탄핵을 끌어냈다. 넉 달 동안 쉬지 않고 모여 행진하면서 헌재의 파면 결정을 압박했다. 우리들 각자는 변변치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용기를 내고 뜻과 힘을 모으면 대단한 일을 해낼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여기까지 왔고, 또 그렇게 해서 앞으로 더 멀리 나아갈 것이다.

 

꼭 전하고 싶은 말 우리 국민은 스스로 자랑스러워 해도 좋다

우리는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과 같은 오류를 앞으로 또 저지를지 모른다. 그러나 그때도 이번처럼 스스로 잘못을 바로잡을 것이다. 나 혼자 한 생각이 아니다. ‘내란성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1859년에 나온 자유론(On Liberty)을 읽고 또 읽었다. 존 스튜어트 밀은 거기에 마치 우리 국민에게 건네는 듯한 말을 써놓았다.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부터 파면까지, 화나고 아프고 어이없는 일들을 견디고 이겨낸 시민들에게, 계엄의 밤 국회에서 계엄군을 막아섰던 사람들에게, 남태령의 기적을 만든 젊은이들에게, 눈보라를 맞으며 헌법재판소 앞에서 밤을 지샜던 남녀노소에게, 무한히 큰 감사의 마음을 얹어 그 말을 전하고 싶다. 밀은 우리 국민들이 인간의 모든 자랑스러운 것의 근원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스스로 자랑스러워 해도 좋다는 것이다.

 

인류가 발전시켜 온 생각과 일상 행동의 역사를 보면, 인간 정신의 어떤 특징 덕분에 우리의 삶은 더 나빠지지 않고 지금 상태로나마 유지될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잘못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이다. 사람은 경험과 토론으로 자신의 과오를 바로잡을 수 있다. 지적(知的) 도덕적 존재인 인간의 자랑스러운 모든 것은 여기에서 나온다.”

유시민 작가 | 시민언론 민들레 2025.04.07.

 

국민의힘 대선주자만 15.

비상계엄 옹호하더니... 국민의힘은 대선후보 낼 자격 있나

내란 사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위험한 본능뿐 아니라 국민의힘 정치인들의 숨은 본능도 노출시켰다. 극우세력에게서나 볼 수 있는 과격하고 극단적인 모습이 여당 의원들에게서 여과 없이 표출됐다.

 

1차 체포영장 집행이 실패한 지 사흘 뒤인 지난 16, 나경원·윤상현·김은혜 의원을 비롯한 44명의 국민의힘 의원들이 윤석열 체포를 저지하겠다며 한남동 대통령관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2차 집행이 있었던 그달 15일에는 의원 35명이 관저 앞에 모여 인간 띠를 형성하며 극렬히 저항했다. 국민의힘 주류세력이 윤석열 및 극우세력과 한배를 탔음을 보여주는 장면들이었다.

 

윤석열 옹호세력의 최일선에 선 윤상현 의원은 15일 대통령 관저 앞 탄핵 반대 집회 때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에게 90도 각도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나흘 뒤에는 대통령관저 인근에서 하얀 헬멧을 쓰고 윤석열 지지 집회를 벌인 반공청년단이 김민전 의원의 주선으로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백골단으로도 불리는 이들은 국회 안에서도 하얀 헬멧을 벗지 않았다.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국민의힘 주류의 모습은 대통령 탄핵심판과 더불어 위헌정당 해산심판도 이뤄졌어야 함을 웅변한다. 탄핵심판이 선고된 44일에 윤석열뿐 아니라 국민의힘도 사()되었어야 마땅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만 아웃되고 하나는 남았으니, 위험이 절반가량은 남은 셈이다.

 

그런데 헌법 제8조 제4항의 위헌정당 해산심판을 감수해야 할 국민의힘 내에서 대권 주자들이 15명이나 거론되고 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과 홍준표 대구시장 등등이다. 이런 집단에서 참회가 아니라 집권을 하겠다며 대통령관저 '입주'를 희망하는 후보군이 대거 형성되는 것은 부조리한 현상이다.

개인적으로 탄핵을 찬성했건 반대했건, 내란 사태 와중에 국민의힘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자기 당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이런 정치인들의 존재로 인해 국민의힘은 한층 더 위험해지고 있다.

 

극우와 결합한 정치세력의 위험성

극우의 폭력성은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만 겨누지 않는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일반 국민들을 겨냥한다. 극우는 만만한 외국이나 소수민족을 겨냥하는 듯이 해서 대중의 관심을 그쪽으로 돌리려 하지만, 이들의 실제 목표는 외국 점령이 아니라 자국 내의 집권, 자국 대중에 대한 지배다.

20세기의 대표적 극우세력인 히틀러와 나치당이 유대인만 박해했던 것은 아니다. 표면상으로는 유대인 탄압이 가장 두드러졌지만, 일차적인 박해 대상은 히틀러가 생각하는 '반국가 세력'이었다. 윤석열이 시도했듯이 나치 역시 반대파를 공산주의자나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 짓밟았다.

 

런던대학 버크벡칼리지가 운영하고, <KL: 나치수용소의 역사(KL: A History of the Nazi Concentration Camps)>의 저자인 니콜라우스 왁스만(Nikolaus Wachsmann) 교수가 집필한 <나치강제수용소 교육 및 학습자료> 사이트는 "유대인이 수용소 내의 유일한 집단은 아니었다"라며 "1942년에 홀로코스트가 수용소를 강타하기 전까지 유대인 수감자는 적은 소수였다"고 한 뒤 이렇게 설명한다.

"초기 수용소(1933~4)의 수감자 대부분은 독일 정치범들이었다. 1930년대 중반부터 강제수용소 인구는 점차 다양해졌다. 여호와의 증인 같은 일부 수감자들은 종교적 이유로 박해를 받았다. 보다 많은 사람들은 사회적 소외자로서 체포됐다. 주요 대상은 범죄자, 아니면 거지나 노숙자 같은 이른바 반사회적 인물들이었다."

 

히틀러는 1933년에 총리가 되고 이듬해에 총통이 됐다. 이 시기부터 그는 '반국가 세력'을 집중 공략했다. 안토니오 시모에스 로드리게스 포르투갈 코임브라대학 교수와 디터 티만 프랑스 투르대학 교수를 비롯한 13명의 비()독일인들이 공저한 <새 유럽의 역사>는 히틀러가 주로 독일인들을 핍박할 때의 상황을 이렇게 정리한다.

"권력을 잡게 되자 나치스는 공갈과 테러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국가 지배권을 확립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어떠한 저항도 폭력과 투옥에 의해서 분쇄되었다. 반대자들은 1933년부터 문을 연 초기의 수용소들에서 고문당하고 살해되었다. 독재는 신속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 누구도 젊은이와 늙은이를 가릴 것 없이 아직까지 그와 유사한 체제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사생활은 통제되었다. 언론의 자유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으며, 인권은 조직적으로 유린되었다."

이처럼 독일인이 아닌 사람들이 볼 때도 유대인 박해 이전의 독일인 박해 역시 매우 심각했다. 일본제국주의의 피해가 한국인·중국인·오키나와인·아이누족과 동남아·태평양인들뿐 아니라 일본 국내의 힘없는 대중들에게도 가해진 것과 같았다. 외국이나 소수민족을 주로 겨냥하는 듯 하는 극우 선전전으로 인해 자국민 피해가 덜 부각됐을 뿐이다.

 

국민의힘에 대한 심판이 우선

윤석열을 비롯한 한국 극우도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혐오를 조장한다. 그런데 윤석열과 한국 극우가 적대시하는 중국인들은 히틀러 통치 당시의 유대인들처럼 자기 나라 국가권력의 보호를 받기 힘든 사람들이 아니다. 중국인들은 도널드 트럼프도 경계하는 강력한 본국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본국을 다른 데도 아닌 한국 바로 옆에 두고 있다.

 

그래서 한국 극우는 그들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만들기 어렵다. 결국 한국 극우의 화풀이 대상은 힘없는 한국인들, 특히 한국 내의 약자나 소수자들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위험성을 가진 한국 극우가 국민의힘과 결합돼 있다. 이 현실은 내란 사태로 인해 한층 강해졌다. 별 죄책감 없이 이런 정당에 몸담았던 정치인들이 6월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위험하다. 윤석열 하나를 파면하고 옥에 가두는 것으로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기약하기 힘들다는 점이 그들의 꿈틀거림에서 확인된다.

 

윤석열의 실패를 목격했으니, 향후 그들이 아무리 다급해도 친위 쿠데타를 꿈꾸지는 않을 거라고 속단할 수는 없다. 오히려 철저하게 비상계엄을 준비할 수도 있다. 국민들에게 계엄선포 사실을 공표하기 전에 국회와 여의도 주변의 서강대교·마포대교·원효대교와 올림픽대로 진출입로부터 통제할 수도 있다.

 

이번 대선은 차기 대통령을 뽑는 장이지만, 내란 사태의 또 다른 당사자인 국민의힘에 대한 심판이기도 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이제는 여당(與黨)이 아니지만, 이 당의 주류는 여전히 윤석열의 당여(黨與)들이다. 당장에 심판을 받아도 모자랄 이런 집단에서 대권 주자들이 우르르 나오는 것은 세상에 대한 도전이자 모독이다.

김종성(qqqkim2000) | 오마이뉴스 2025.04.08.

 

공황과 격변의 판도라 박스가 열리다

공급망이라는 뇌관 건드린 트럼프의 관세 폭탄

"나의 미국인 동지들이여, 오늘은 해방의 날(Liberation Day)입니다. 202542일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오늘은 미국 산업이 부활한 날이며, 미국의 운명을 되찾은 날이며, 우리가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 만들기 시작한 날입니다."(Myfellow Americans, today is Liberation Day. April 2nd, 2025, will forever be remembered as the day America’s industry was reborn, the day we took back our destiny, and the day we began to make America rich again.)

 

'해방의 날'이 아니라 세계 지도 검색의 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 국가를 상대로 이른바 '상호관세'를 발표한 지난 2일은, 인사이드경제 입장에서는 '해방의 날'이 아니라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나라들을 검색하고 공부하는 날이었다. 트럼프가 피켓까지 준비해서 공개한 90여개 국가의 관세율 중 상호관세율 50%로 공동 1위를 기록한 2개의 나라 모두 익숙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레소토(Lesotho), 그리고 생피에르 미클롱(Saint Pierre and Miquelon)이 그 주인공이다. 우선 아프리카 남부에 위치한 '레소토'라는 국가는 남아프리카공화국 국토 안에 둘러싸여 있는 영연방 회원국 중 하나라고 한다. 면적은 경상도 전체를 합한 것과 비슷한 수준이라 하고, 인구는 228만 명 정도다.

 

생피에르 미클롱의 경우 캐나다에 인접한 프랑스령의 작은 섬나라다. 북미에 남아 있는 마지막 프랑스령 섬이라 할 수 있는데, 인접국이 달러화를 사용하는 반면 이 섬들은 유로화를 사용하며, 인구가 6000명에 불과하다.

도대체 이런 나라들이 어째서 트럼프가 '해방의 날'이라고 이름 붙인 42, 가장 높은 상호관세율 50%라는 영예(?)를 안게 되었을까? 이는 미국 정부가 이번에 상호관세 계산을 위해 도입한 초등학교 수학 논리 때문이다.

 

'소수의 나눗셈'-주먹구구로 때려 맞춘 관세율

"상대국 관세는 물론 각종 비관세 무역장벽까지 두루 고려해 국가별 관세율을 산정했다."

 

트럼프의 발표가 있기 전 백악관은 이런 설명자료를 냈으나,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상호관세율 계산법은 아주 간단한 나눗셈이었다. 미국이 각 나라들과의 교역에서 발생하는 무역적자액을 그 나라들이 미국에 수출한 총액으로 나눈 백분율을 계산한 뒤 이를 다시 2로 나누어 상호관세율을 구한 것이다. 구체적인 계산법을 보여주기 위해 미국 정부 홈페이지에서 지난해 기준 몇 개 국가들의 미국의 무역적자와 대미 수출액 수치를 추출한 뒤, 실제로 위 계산식을 적용하여 아래와 같이 표를 만들어봤다.

 

미국의 상호관세율 계산법에 따른 나라 별 관세.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수준이다. 왜 상호관세율 최고치가 50%인지도 너무 쉽게 알 수 있다. 무역적자액은 아무리 커도 대미 수출 총액을 넘을 수가 없다. , 무역적자액을 대미 수출 총액으로 나눈 수치는 아무리 높아도 100%를 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 수치를 2로 나눈 상호관세율은 50%가 최대치가 되는 것이다.

 

중국보다 괘씸한 레소토와 생피에르 미클롱?

레소토와 생피에르 미클롱은 어째서 가장 높은 50%의 관세율이 적용되는 운명이 되었을까? 레소토의 경우 섬유 및 의류 제품과 다이아몬드를 주로 미국에 수출하는데, 대미 수출 총액은 약 1.8억 달러 정도였다. 하지만 레소토는 미국으로부터 수입을 거의 하지 않는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채 1000달러가 되지 않는 곳에서 대체 뭘 수입할 수 있을까?

생피에르 미클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구 6000명의 섬나라에서 지난해 미국에 수출한 것은 대부분 가공갑각류나 연체동물(오징어) 등 어류들이었고 총 수출액은 340만 달러에 불과했다. 마찬가지로 이 나라 역시 미국에서 수입해온 금액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러다 보니 무역적자와 대미 수출액, 즉 분모와 분자 사이에 차이가 거의 없게 되고 따라서 상호관세율 계산을 위해 나눗셈을 해보면 100%에 수렴하게 된다. 이를 나누면 50%가 돼 중국의 34%, 베트남의 46%, 캄보디아의 49%보다 높은 1위 상호관세율 국가에 오르게 된 것이다. , 미국으로부터 뭔가를 수입해올 만큼 소득이 풍족하진 않지만, 미국으로 소액이나마 수출을 하고 있는 나라들이 미국 상대로 무려 2700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한 중국보다 훨씬 높은 관세폭탄을 맞게 된 것이다. 이들 작은 나라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게 과연 미국 산업을 부활시키고 미국을 더 부유하게 만드는 수단이 될 수 있을까?

 

공급망이라는 뇌관을 건드린 트럼프

트럼프의 상호관세정책이 낳을 파괴적인 현실은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다. 단순히 초등학교 수학을 빌려왔기 때문이 아니다. 너무 어처구니없는 논리를 동원해서도 아니다. 이런 방식의 관세정책은 결국 전 세계로 그물망처럼 뻗어 있는 '공급망(Supply Chain)'이란 것을 완전히 교란하기 시작했다.

 

공급망 교란의 효과는 역설적이게도 미국에서 가장 먼저 발생하기 시작했다. 연일 미국 증시가 관세폭탄을 맞아 휘청거리고 있는데, 가장 빠르게 기업가치가 떨어지는 곳이 어디일까? 트럼프가 관세 얘기를 할 때 매번 강조하는 자동차 업종 기업들 주가도 폭락하긴 했지만,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쪽은 애플(Apple)과 나이키(Nike)였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벌어진 미-중 무역전쟁, 이에 대응하기 위해 애플은 중국에 집중되어 있던 생산시설과 공급망 상당수를 베트남 등 동남아로 이전시켰다. 나이키는 오래전부터 베트남·인도네시아 쪽으로 생산시설과 공급망을 집중시켜왔다. 그런데 바로 그 나라들이 '해방의 날'30~40%의 높은 관세를 얻어맞게 된 것이다.

 

세계화와 자유무역 부르짖을 땐 언제고

신자유주의 세계화, 그러니까 모든 나라가 관세장벽을 없애고 자유무역을 실시하면 훨씬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달콤한 거짓말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탄생시킨 건 다름 아닌 미국이었다. 그 세계화를 통해 미국 자본은 중국을 비롯한 세계 모든 나라로 진출하며 저임금 무노조 특혜를 누렸고, 미국 자본주의는 싼값에 수입되는 물품 덕에 인플레이션을 피할 수 있었다.

그 뿐이 아니다. "노조가 양보하지 않으면 생산시설을 중국으로 이전해버릴 거야." 이 논리로 노조 조직률 저하, 노동조합의 끝없는 양보라는 부수입도 짭짤하게 챙겼다. 세계로 뻗어나간 미국 자본의 영향력을 통해 미국 패권주의는 더욱 공고해졌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미국 패권 'Globalization'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 중국이라는 협력자가 무서운 경쟁자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제조업보다 서비스업·IT 산업에 집중하다 보니 미국 자본주의는 변덕스러운 금융위기로 휘청거리게 된다. 급기야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너무 높아진 달러화 가치는, 이제 '도 아니면 모'라는 정치 선동꾼 트럼프를 다시 무대 위로 올려놓았다.

 

도미노처럼 퍼질 공황 바이러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만들어낸 것은 중국이라는 경쟁자, 잦은 금융위기, 높은 달러화 가치만이 아니었다. 작은 신발과 휴대전화 하나 만드는 데에도 전 세계 노동자와 산업이 모두 연결될 정도로 그물망처럼 엮여진 '공급망'이라는 게 생겨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유무역의 이익을 누리다 제 뜻대로 되지 않자 다시 보호무역으로 돌아가면 뜻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의 이치와 운영 원리가 달라져버렸다. 무역과 경제, 산업은 이제 공급망이라는 키워드를 빼고는 돌아가지 않는다.

 

트럼프 관세폭탄은 첫날 나이키와 애플의 주가를 떨어뜨리며 미국 주식시장에 패닉을 불러왔지만, 이 바이러스는 공급망을 타고 이제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밖에 없다. 관세가 미국에 인플레이션을 불러온다면, 조금의 시차를 두고 다른 나라에도 인플레이션이 퍼질 것이다.

높은 관세를 피하기 위해 공장을 이전해야 한다면, 자본 입장에서 엄청난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자본은 그 비용을 노동자의 희생으로 전가하려 할 것이다. 그 과정에 많은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겠지만 또 적지 않은 희생과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결국 노동자들의 계좌는 텅텅 빌 것이고 시장에 팔리지 않는 상품이 늘어나면 디플레이션과 스태그플레이션이 불어닥친다. 가장 먼저 미국 노동자들이 희생양이 될 것이고, 약간의 시차를 두고 그 희생은 공급망을 따라 다른 나라로 퍼져간다. 공급망이 공황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고속도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황과 격변이라는 판도라 박스가 열렸다. 과연 '희망''전망'이라는 요소도 그 박스 안에 들어있을까?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 프레시안 2025.04.08.

 

개헌,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새 정부 출범 전까지 해야 할 일

마침내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결이 나왔다. 재판관 8인 만장일치로 탄핵이 인용됨으로써 12.3 친위쿠데타는 넉 달만에 비로소 진압됐다. 비록 선고가 기대보다 한 달은 더 늦어졌지만, 그래도 내란 우두머리를 대통령직에서 결국 파면했으니 일단은 기뻐해야 할 일이다.

 

게다가 탄핵 인용이라는 결론만큼이나 뜻깊은 성과가 있다. 헌법재판소 판결문에 담긴 민주공화국의 기본 원칙에 대한 재확인이다. 판결문은 12.3 비상계엄이 위헌, 위법인 이유를 추상같이 정리할 뿐만 아니라, 친위쿠데타에 기습당한 대한국민의 공통의 이상과 원칙, 즉 민주주의, 국민주권주의, 정치와 법치 등등을 거의 감동적일 정도로 명쾌하게 제시했다. 앞으로 시민 정치 토론의 필독 문헌으로 널리 읽히고 기억될만하다. 요컨대 우리는 민주공화국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민주공화국의 역사적 현실태인 제6공화국을 반민주적 반역 시도로부터 구했다.

그런데 이러한 탄핵심판 선고가 있고 이틀 뒤에 우원식 국회의장은 제6공화국 헌법의 상당한 개정, '개헌'을 제창하고 나섰다. 급한 대로 원내 정당들이 합의한 만큼 1차 개헌안을 마련해 이에 대한 국민투표를 조기 대선과 동시에 실시하자는 것이다.

 

나는 친위쿠데타 발발 전부터 여러 차례 이 지면을 통해, 7공화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개헌이 필요하다고 역설해왔다. 또한 내란 정국에서도 정치의 복원과 재구성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치 재구성'의 여러 과제 중 하나로 '개헌의 정치'를 제시했다. 그럼에도 나는 우원식 의장의 개헌 제안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반갑기도 하지만, 우려도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개헌하려면 정말 '제대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급해서는 안 된다

우원식 의장의 성명에 깔린 핵심 메시지는 제6공화국 헌정의 대대적 개혁이 내란 진압 이후 필수 과제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야 물론 두 손 들어 환영이다. 그러나 이런 메시지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두 가지 무리한 제안을 함께 내놓았다. 하나는 "이번 대통령 선거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시행하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1차 국민투표로 다룰 개헌안에 "권력구조 개편"을 포함시키자는 것이다.

우선 시기 문제부터 보자. 조기 대선과 함께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자고 하는데, 대선은 지금 불과 두 달 남았다. 8주 안에 개헌안을 정리하고 국회 심의와 합의, 의결을 거치며 국민 전체에게 개헌안을 알리고 국민투표까지 마치자는 것이다. 그것도 대통령선거가 치열하게 전개되는 와중에 말이다.

아무리 봐도 무리다. 의지가 너무 앞서서 현실을 냉정히 고려하지 않은 제안이다. 게다가 이런 조급한 태도는 바람직하지도 않다. 대한민국의 과거 헌법 개정에서 드러난 한계를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고, 새로운 민주공화국이 충족해야 할 21세기 민주주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6공화국 헌법 제정 과정을 돌아보자. 19876월에 민주항쟁이 있었고 7월부터는 노동자대투쟁이 벌어졌지만, 개헌안을 입안한 주체는 당시 국회 안의 주요 정당들이었다. 거리의 시민이나 투쟁하는 노동자의 목소리가 직접 반영될 통로는 없었던 반면에 광주학살 원흉이자 군부독재 집권당인 민주정의당은 원내 제1당으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것은 현 헌법의 뼈아픈 태생적 한계다. 법률적 절차는 하나도 위배하지 않은 개헌 과정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1987년의 정신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말았다.

 

지금 두 달 안에 개헌('1'라는 한정을 달더라도)을 추진한다면, 이 역사적 경험이 고스란히 반복될 것이다. 우원식 의장은 '국회 개헌특위'를 구성하자고 제안했지만 기한이 빠듯할수록 원내 양대 세력,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개헌특위를 일방적으로 이끌 수밖에 없다. 민주항쟁의 타도 대상이었던 민주정의당이 새 헌법 기초자로 이름을 올린 것처럼, 기존 헌정 체제의 문제아로 지목된 양대 정당이 그 헌정 체제를 바꾸자는 개헌마저 다시 좌우하게 된다.

 

게다가 양대 세력 중 한 쪽 축인 국민의힘의 현 상태가 어떠한가? 친위쿠데타 발발 이후 국민의힘은 한 번도 당 차원에서 헌정 유린을 진지하게 반성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극우파의 선동 논리와 음모론, 폭력 시위에 부화뇌동했다. 지금도 한덕수, 최상목에게 위헌, 위법 행위를 이어가라고 훈수하는 정당이 국민의힘이다. 이렇게 '있는 헌법'도 지킬 의사가 없는 정당이 어떻게 '새 헌법'을 만드는 논의에 낄 수 있겠는가.

 

한데 지금으로부터 3년이나 뒤인 2028년에 총선을 새로 치르기 전까지는 어쨌든 국민의힘이 국회 의석 3분의 1 이상을 점한다. 앞으로 3년 동안은, 위헌적 내란 동조 행위를 일삼게 된 거대 정당의 저항과 교란에 맞서며 개헌을 추진해야 하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지한 개헌 추진 세력이라면 일단 국민의힘이 최소한 내란 동조 행위를 반성한다는 당론을 확정하기 전까지는 개헌 논의의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국회보다 더 폭넓은 개헌 논의의 장을 열어 국회 내 교착 상태를 돌파해야 한다.

 

만약 이런 원칙을 고수하지 않고 개헌안을 어떻게든 급조한다면, 내용의 부실함이라는 문제뿐만 아니라 또 다른, 더 심각한 문제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바로 국민투표라는 최종 심판이다. 과거에는 권위주의적 정부가 개헌을 강요하거나 정당 엘리트들끼리 개헌안을 합의하더라도 국민투표 결과를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웬만하면 과반수 찬성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특히 2010년대 이후 어느 나라에서든 시민들은 투표 안건에 반대표를 던질 준비가 돼있다. 정치권 다수가 합의한 안건이라도 국민투표를 통해 쉽게 부결될 수 있는 시대다.

더구나 지금 한국 사회는 내란 사태의 여진에 휩싸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헌 국민투표가 실시된다면, 개헌안 내용 자체에 대한 '판단'보다도 이를 마련하는 데 참여한 특정 정당에 대한 '심판'이 투표의 주된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양대 정당 중 어느 쪽을 지지하든 반대쪽을 심판하려는 의지에 충만한 이들이 급조된 개헌안에 반대표를 던짐으로써 정치적 의지를 표출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렇게 되면, 함께 실시되는 조기 대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개헌 국민투표에서 찬성표가 과반에 못 미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치명적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성급하게 개헌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21세기 민주주의의 기대와 요구에 부합하는 개헌 과정을 세심하게 설계하고 준비해야 한다. 예를 들어 2010년대 이후에 개헌을 추진한 주요국들,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칠레 등은 모두 의회 밖에 시민 참여 숙의기구를 따로 만들어 몇 년에 걸쳐 개헌안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광범한 부분이 논의에 참여했으며, 기존 주요 정당들의 낯익은 주장으로 환원되지 않는 다양한 의견이 등장해 서로 충돌하고 수렴했다.

 

이것은 8주라는 너무나 짧은 시간 안에는 이뤄질 수 없는 실험이다. 내란을 진압하는 데만 4개월 넘게 걸렸다. 그렇다면 새 민주공화국의 기틀을 다지는 데는 적어도 그보다는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한 게 당연하다. 현실적으로, 제대로 된 개헌 과정의 시작은 새 정부 출범 이후를 기약할 수밖에 없다.

 

의제 토론은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다음으로 의제 문제다. 우원식 의장은 조기 대선과 동시에 실시되는 국민투표에서 다룰 1차 개헌안이 '권력구조 개편' 내용을 꼭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개헌을 추진하자는 정치-사회적 합의"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개헌안"에 관해서도 "어느 정도 기반이 형성되었다"는 견해를 달았다.

그럼 "구체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된" '권력구조 개편' 내용은 무엇인가? 성명문에는 나와 있지 않다. 다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우원식 의장은 기자들에게 '대통령 4년 중임제''국회의 국무총리 추천권'을 언급했다고 한다. 둘 다 권력구조 개편과 관련해 정치권에서 자주 이야기되던 방안들이다.

 

그러나 과연 여의도 정치를 넘어 한국 사회 곳곳에 스며들었다고 할 수 있는가? 의회제(내각제), 분권형 대통령-의회제(이원집정부제) 등등에 관해 정말 시민 사이에서 토론이 무르익었다고 할 수 있는가? 누구도 '그렇다'고 답할 수 없을 것이다. 우원식 의장은 이 대목에서 "구체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됐다고 하면서 지나치게 정치 엘리트들만을 염두에 두고 있다. 6공화국 내내 '개헌'을 이야기하며 상층 논의에만 머물던 이들의 한계와 오류에서 역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부터도 기사에 언급된 내용들만으로는 "구체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됐다고 인정하기 힘들다. '국회의 국무총리 추천권'은 국회와 정당의 정치적 책임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의미가 있다고 보지만, '대통령 4년 중임제'는 도대체 어떤 점에서 한국식 대통령제를 개선하는 처방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미국식 대통령제가 본토에서마저 삐걱대는 지금, 왜 한국의 권력구조를 전보다 더 미국에 가깝게 만들어야 하는가? 만약 두 내용이 함께 담긴 개헌안이 국민투표에 부의된다면, 나와 비슷한 의견을 가진 많은 이가 어쩔 수 없이 반대표를 던질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권력구조 개편'은 개헌 논의의 지난한 과정이 도달할 종착점이지 그 시작을 여는 출발점일 수는 없다. 결국은 현 대통령제와 다른 질서를 만들어보자고 개헌 토론에 나서는 것이지만, 이 주제에 관해서는 가까운 미래 안에 한국 사회에서 어떠한 새로운 다수 합의도 쉽게 형성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정치학자 김윤철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가 개헌 관련 토론회에서 지적한 것처럼 "적어도 10년 이상은 내다보고" 토론을 이어가야 할 주제다. 그 와중에 부분적으로 형성되는 합의를 그때그때 제도에 반영하면서 말이다.

 

반면에 이번 내란 사태를 겪으면서 진짜로 "구체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된 다른 의제들이 있다. 가령 '비상계엄' 문제가 있다. 비상계엄제도를 아예 폐지하거나 비상계엄의 이유로 "전시"만을 남기는 것과 같은 개헌을 통해 비상계엄이 다시 친위쿠데타의 근거로 활용될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 또한 한덕수, 최상목 등이 위헌, 위법적 통치를 자행할 수 있게 한 '대통령 권한대행' 조항도 손봐야 하고, 국회가 이미 선출한 헌법재판관에 대해 굳이 대통령의 임명 절차를 덧붙인 대목도 개정해야 한다. 202544일 이후의 한국 사회에서 이런 개헌안을 감히 목소리 높여 반대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개헌 과정은 바로 이런 의제들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러한 의제들은 권력구조 개편에 비하면 지나치게 부분적이고 파편적인 내용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어떤 완결된 새 헌정의 즉각적 실현이 아니라, 헌정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사회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고' 새로운 내용으로 '바꿀 수 있음'을 확인하는 집단적 경험이다. 이것은 지난 30여 년간 한국 사회가 잃어버렸던 감각이고 기억이다. 일단 이 능력을 되살림으로써만 우리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알아차리고' '바꿀' 의지와 용기 또한 갖추게 될 것이다. 일상에서 개헌 수준의 변화에 대한 모색이 줄기차게 계속되도록 만드는 '개헌의 정치'가 어쩌면 '개헌의 문구적 실현' 자체보다 더 중요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 정부 출범 전까지 해야 할 일

그렇다고 우원식 의장의 제안에 담긴 진심마저 의심하지는 않는다. 친위쿠데타를 준엄하게 꾸짖지도 못하면서 '개헌' 운운하던 이른바 원로들과, 123일 밤에 친위쿠데타를 좌절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국회의장의 발언을 동급으로 치부할 수는 없는 법이다. 내란 진압 이후의 과제로 제6공화국 헌정 질서 개혁을 강조하려다 보니 일정과 의제를 무리하게라도 제시한 것이라 본다.

 

사실 그만큼 효과도 있었다. 그 동안 개헌에 관해 입을 다물고 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우원식 의장 발언이 있고 난 다음날 개헌 관련 입장을 처음으로 상세히 내놓았다. 윤석열 정부의 자폭 이후 더욱 가난해진 한국 정치에 꼭 필요한, 바람직한 상호작용이다.

 

지금부터 조기 대선, 그리고 새 정부 출범 전까지 이어져야 할 것이 바로 이런 상호작용이다. 당장의 목표와 최종 방향을 열어둔 채로 개헌에 대해 더 많은 의견을 제출하고 더 활발한 토론을 전개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선 주자들이 책임 있게 개헌에 관한 논쟁을 주고받아야 하고, 그럼으로써 새 정부 출범 이후 본격적으로 착수할 개헌 과정에 대한 일정한 합의를 형성해가야 한다. 이것이 헌법을 정말 '제대로' 바꿔나가기 위해 우리가 앞으로 두 달 동안 해야 할 일이다.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 프레시안 2025.04.08.

 

파면 이후, 다시 문제는 민주주의다

지난해 123일에 시작되어 123일간 지속된 윤석열의 내란극이 마침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대통령 윤석열은 파면되었다. 파렴치, 무사유, 몰상식, 반지성으로 무장한 한 비루한 인간이 펼친 야만의 향연이 끝났다. 그가 권력의 최정점에서 벌이는 추태를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됨에 안도한다.

 

세계 언론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승리를 타전하느라 바쁘다.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인들이 민주화 이후 최초의 계엄 시도를 단호히 거부했다고 전했고, 뉴욕타임스는 쿠데타 시도에 대한 한국의 대응은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윤석열 파면 선고는 한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역사적 결정이라고 상찬했다. 미국 네티즌의 댓글도 재밌다. “한국 법관들 빌려주면 안 되겠냐. 트럼프 탄핵만 하고 바로 돌려줄게.”

 

우리는 분명 위대한 민주주의의 역사를 가진 나라다. 윤석열의 탄핵과 파면은 한국 민주주의 운동사에 새로운 장을 더했다. 19604·19혁명, 19805·18 민주화운동, 19876·10 민주항쟁, 2017년 촛불혁명에 이은 2025빛의 혁명은 한국 민주주의의 찬란한 역사를 확장한다. 그러나 이것이 마냥 자랑스러운 일만은 아니다. 우리의 혁명사는 4·19혁명으로 끝났어야 했다. 위대한 민주주의의 역사란 기실 거듭된 군사반란 역사의 이면이 아닌가. 그렇다면, 왜 우리의 민주주의는 이리도 허약한가.

 

윤석열은 파면되었으나, 윤석열 내란세력은 파면되지 않았다. 그들은 건재하다. 행정부, 입법부, 법조계에 폭넓게 서식하고 있는 이 내란세력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민주주의를 위협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 구조적으로 뿌리내리고 있는 내란세력을 청산하지 않는 한, 한국 민주주의는 상시적 위기 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다시 민주주의다. 헌재 판결의 핵심도 바로 민주주의 문제였다. 윤석열의 죄는 무엇보다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에 헤아릴 수 없는 해악을 가한 데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의 원인을 찾고, 이를 근원적으로 치유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시대적 과제라 할 것이다. 이 나라엔 민주주의의 정착을 가로막고 내란세력을 존속시켜온 뿌리 깊은 세가지 구조가 존재한다.

 

첫째, 파시스트를 키우는 교육 구조다. 한국 교실에서 12년 동안 교육받으면 민주주의자가 되기보다는 파시스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아이들을 무한히 경쟁시키고, 끝없이 우열을 나누며, 우월한 자가 지배하고 열등한 자가 복종하는 질서를 당연시하는 교실은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내면에 파시즘을 새겨넣는다. 경쟁-우열-지배의 논리야말로 파시즘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이기 때문이다.

 

둘째, 수구-보수 과두지배의 정치지형이다. 보수를 참칭하는 수구 정치집단이 거대 양당 체제의 한 축을 독점함으로써 안정적으로 파시스트적 정치를 펼치고, 하시라도 민주주의를 부정할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내란 사태 이후 국민의힘이 보인 태도는 그들이 군사파시즘의 후계 정당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폭로한다.

 

셋째, 정치적 이념보다 지역적 이해에 따르는 지역주의 구조다. 내란 사태 초기에 내란에 동조하는 국민의힘이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에 앞서는 불가사의한 현상은 지역주의가 한국 민주주의의 결정적 장애물임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이처럼 한국의 민주주의호는 파시스트를 키우는 교육제도, 수구 정치집단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주는 정치지형, 정치이념보다 지역감정을 앞세우는 지역주의라는 3중의 암초에 걸려 좌초될 위험 속에 있다. 파시스트적 경쟁교육은 민주적 존엄교육으로, 수구-보수 과두지배는 보수-진보 경쟁체제로, 지역주의 정치지형은 이념중심 정당 체제로 개혁해야 한다.

 

윤석열 파면으로 민주주의가 승리했다. 그러나 어떤 민주주의가 승리했다는 말인가. ‘광장 민주주의의 승리가 일상 민주주의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우리 민주주의가 더욱 확장되고, 심화돼야 한다.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모든 문제는 결국 미완의 민주주의에 근본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의 극단적 보수성은 정치 민주화의 결함에, 한국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특권은 사회 민주화의 결여에, 경제적 불평등과 착취는 경제 민주화의 부재에, 권위주의와 폭력성은 문화 민주화의 결함에 근본 원인이 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는 결국 민주주의의 문제로 귀착된다. 보수적 정치, 차별적 사회, 불평등한 경제, 권위주의적 문화는 이제 정치 민주화, 사회 민주화, 경제 민주화, 문화 민주화를 통해 극복해야 한다.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 | 한겨레 2025.04.08.

 

휴머노이드 혁명의 파도

보스턴 다이내믹스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올해 생산 현장 투입을 앞두고 인공지능(AI) 기반 학습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올해 초 시이에스(CES) 2025 행사에서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로봇의 챗지피티 모멘트가 곧 올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는 챗지피티로 인해 인공지능 기술이 놀라운 성장을 보여줬듯, 로봇 기술이 폭발적 도약 직전에 있음을 뜻한다. 실제로 테슬라, 베엠베(BMW), 아마존, 비야디(BYD) 등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인간의 외형을 닮은 로봇 휴머노이드를 산업 현장에 도입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가정용 휴머노이드 출시 계획까지 발표했다. 모건스탠리는 10년 내 로봇과 휴머노이드 시장 규모가 60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봤다. 이는 전세계 자동차 시장의 20배에 달하며, 스마트폰 혁명을 능가할 혁신으로 평가된다.

 

주요국이 휴머노이드 산업에 집중하는 이유는 노동력 부족과 생산성 한계를 해결하고 차세대 산업의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함이다. 미국 테슬라는 자체 개발한 옵티머스 휴머노이드를 공장에 투입해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중국 역시 정부 주도로 휴머노이드 산업 육성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중국 기업 유비테크 로보틱스의 휴머노이드는 이미 자동차 공장에서 조립과 안전 점검 등 사람을 대신해 활약 중이다. 첨단 인공지능 기술을 앞세운 미국과 제조 인프라로 무장한 중국은 휴머노이드를 둘러싸고 이미 미래 산업의 패권 경쟁에 돌입했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이미 제조와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제조업에서 사용하는 산업용 로봇의 밀도는 세계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자동화 수준이 높다. 현대자동차는 세계적인 로봇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해, 올해 말부터 아틀라스 휴머노이드를 생산 라인에 시험 투입할 예정이다. 삼성전자 역시 로봇 전문기업 레인보우 로보틱스를 인수하고 역량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국내 전반에서 휴머노이드 산업을 바라보는 전략적 시각과 열기는 아직 미흡하다. 산업용 로봇이나 청소, 배달 로봇과 달리, 인간형 로봇인 휴머노이드를 미래의 핵심 사업으로 키우려는 기업은 손에 꼽힌다. 정부 정책 역시 청사진만 있을 뿐 속도감이 떨어진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휴머노이드 등장으로 발생할 사회적 변화와 그 파장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논의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휴머노이드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넘어 사회 전반에 걸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휴머노이드 혁명의 시대를 맞아 우리 사회는 기술 혁신의 혜택을 모든 시민이 함께 누릴 수 있도록 분배 정책과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휴머노이드가 일자리를 대체할 경우 발생할 소득 감소와 사회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봇세와 같은 혁신적 발상도 필요하다. 특히 돌봄 분야에서 휴머노이드가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면 인간적 돌봄의 가치와 복지 형태에 대한 깊은 고민도 뒤따라야 한다.

 

휴머노이드는 경제적 기회인 동시에 노동, 윤리,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도전 과제를 던진다. 규제와 법제 정비는 반드시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기업들도 기술 개발 초기부터 윤리적 책임과 사회적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국민 개개인은 이러한 기술 변화가 자신의 삶과 직결된 문제임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잡고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지 못한다면, 거대한 혁신의 흐름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휴머노이드 혁명의 문턱에서, 한국은 준비됐는지 무겁게 묻고 싶다.

김상균 | 인지과학자·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 한겨레 2025.04.09.

 

탄핵, 다음의 시간

지난해 123일에 대통령이란 자가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시작된 내란의 폭풍우는 가까스로 멈췄다. 지나갔다. 온 국민을 놀라게 하고 분노와 두려움에 떨게 한 그날 밤을 잊을 사람은 없다. 다행히 국회가 바로 계엄령 해제를 의결하여 그가 저지르려고 했던 참혹한 일들을 막았다. 국회로 모여든 시민들 덕분이었다. 그다음 순서는 당연히 탄핵이었다. 그가 집권한 2년 반 넘는 시간을 온 국민은 분노와 절망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그가 먼저 탄핵의 불을 스스로 질렀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도록 압박하려고 바로 그 주말부터 사람들은 서울 여의도 국회 앞으로 모여들었다. 첫 투표가 부결되고 두번째 표결일인 그다음 주 토요일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는지 말 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날 충남 홍성에서 올라온 지인은 나중에 내게 말했다. 그 지역에서 관광버스 두대를 세내어 올라왔는데 집회 현장에 화장실이 부족하다고 들어서 모두 성인용 기저귀를 하고 왔다고 했다. 그 말에 뭉클했다. 다른 남쪽 지역에서 온 많은 분들도 그러했으리라. 그 압박이 결국은 탄핵을 이루어냈을 것이다.

 

계엄일 이후, 일정이 있는 날 한번을 빼놓고 우리 가족은 토요일마다 광장에 나갔다. 첫주와 둘째 주는 여의도로,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에는 헌법재판소를 압박하기 위해 안국역과 경복궁 앞으로, 그 뒤 윤석열의 구속 집행을 위해 한남대로로, 그가 구속된 후에는 다시 광화문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석달만 토요일마다 집회에 나가면 그가 탄핵될 것이라 믿었다. 법학자들은 쟁점이 될 요소는 지난 두번의 탄핵 과정에서 다 정리되었고 이번에는 무장한 계엄군이 국회로 집결하고 국회 유리창을 부수고 난입하는 현장을 모두가 실시간으로 보았기에 증거가 확실하고 범죄 사실이 너무도 명확하므로 선고에 시간이 걸릴 일이 없다고 했다.

기다렸다. 우리가 오직 할 수 있는 것은 지치지 않고 광장에 나가는 일이었다. 토요일마다 광장에 나가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집회 현장에 서면 큰 감동과 함께 깊은 유대감을 느꼈다. 위로를 받고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 시대 가요가 있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 부인을 내놓아라/ 남의 부인을 빼앗아 간 죄가 얼마나 큰가/ 네가 만약 거역하고 내놓지 않으면/ 그물로 잡아 구워 먹으리라.

이 가사는 신라 성덕왕 때 수로 부인이 동해안에서 바다 용에게 끌려 들어가 그 남편이 어찌할 줄 모르고 있을 때 한 노인이 옛말에 뭇사람의 입은 쇠도 녹인다 했는데 백성을 모아 노래를 부르며 막대기로 바닥을 치면 용이 부인을 내놓을 것이라했고 백성들이 그대로 따라 했더니 용이 부인을 모시고 나와 바쳤다는 설화와 함께 나온다.

앞에 나온 가사가 이때 불렀다는 노래다.

뭇사람의 염원은 쇠도 녹인다! 헤아릴 수도 없는 많은 사람이 광장에 모여 탄핵을 간절히 비는데 어찌 탄핵이 이루어지지 않으랴 믿었다. 헌법을 위반한 죄가 헌재로 하여금 위헌이라고 판단하게 할 수밖에 없다는 법적 해석과는 또 다른 민중의 압박이 탄핵을 속히 이루어내리라 믿었다.

 

탄핵 선고는 오래 끌었다. 탄핵소추안 가결 뒤 열번만 더 토요일마다 집회에 참석하면 그가 쫓겨날 줄 알았다. 선고가 지연되면서 보수 쪽 세력은 더욱 결집했다. 선고를 기다리는 중에 판사 하나와 검찰총장의 합작으로 윤석열은 풀려났고 헌재는 더욱 그들의 눈치를 보는 듯했다. 내란이 시작되고 넉달이 넘어서야 선고가 내려졌다. 그 기쁨과 안도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일상도 되찾았다.

 

그러나 아직 해결할 일은 많다. 내란 동조 세력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내란이 제대로 종식될 수 있을까? 대통령이었던 자가 모든 분야에서 망가뜨린 이 나라가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당연한 탄핵 인용이 그토록 시간을 끌었듯이 대선 과정에서 또 어떤 변수가 생기지는 않을까?

이제 시작이다. 탄핵 인용이라는 끝과 함께 우리가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원혜덕 | 평화나무농장 농부 | 한겨레 2025.04.09.

 

 

봄은 그냥 오지 않는다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오랫동안 이 나라에서 겨울에서 봄으로혹은 밤에서 아침으로같은 메타포는 죽어 있었다. ‘억압/해방’, 혹은 시련/회복을 뜻하는 이 메타포는 이미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던 김영삼 대통령 집권기였던 1990년대 중반 무렵 이후 그 수명을 다했다. 더 이상 시적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거의 100년간에 걸친 식민지, 분단, 군사독재의 시절을 마침내 빠져나왔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일주일 전인 44, 헌법재판소 8인의 재판관이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파면 선고를 내린 그날, 그 낡은 메타포가 되살아났다. 기쁜 일인지 슬픈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긴 겨울이 가고 다시 봄이 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동안 숨죽였던 봄 나무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앞다퉈 꽃을 피우고 있다. 봄이 오면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을 갈아 새 씨앗들을 심어야 한다. “4월은 갈아엎는 달이라는 신동엽 시인의 말도 함께 부활한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12·3 비상계엄 선포에서 4·4 헌재 파면에 이르는 윤석열 일당이 일으킨 내란의 전말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상처는 우리의 민주공화정이 생각보다 취약하다는 사실이었다. 대통령 일당의 일탈적 광기에 맞선 시민과 입법부의 기민하고 단호한 대처와 계엄군으로 동원된 군인들의 항명성 부작위로 비상계엄이 단시간에 해제되고 11일 만에 탄핵소추가 성립될 때까지도 이 황당한 사태는 극소수 반란세력에 대한 민주공화정의 압도적 승리로 귀결될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집권 여당의 명백한 내란 동조, 기독교 극우보수세력의 파시즘적 폭동세력화로 말미암아 파면 확정 직전까지도 민주공화정의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유동적 상태가 만들어졌다. 어쩌면 민주화는 환상이었으며 1987 체제란 그저 모래 위에 지어진 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자욱했다. 이 유동성을 어떻게 다시 응고시킬 것인가, 대한민국은 하나의 커다란 숙제를 받아 든 셈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기간에 이루어진 한국 정치지형의 변동이다. 지난 3년 동안 윤석열 집권기에 뉴라이트 세력의 약진 등 우경화가 급격히 진행되었지만 이는 이미 이명박 정권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위태롭고 논쟁적이긴 하지만 어쨌든 제도 정치권 내에서 통제 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내란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내란 주도 세력은 물론 처음엔 비상계엄에 비판적이던 집권 여당까지도 점차 중국 침략설, 부정선거론 등을 내세우는 기독교 극우세력들과 자발적 동일체가 되어 서슴없이 탈제도화, 탈헌정화의 길을 내달았다. 보수를 참칭하던 세력이 극우보수로 이동한 것이다. 이와 함께 종북좌파 프레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던 야당의 대표가 자당의 정체성을 중도보수로 자임하고 나서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번엔 진보를 참칭하던 세력이 중도보수로 이동하겠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떤 정책적 결정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지난 30년 동안의 양당 지배 체제가 동반 보수화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자연적 선택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 이로써 이 양당 지배 체제는 진보-보수 양당 체제라는 위장막을 벗고 사실상 그것이 극우 대 중도보수 양당 체제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선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비로소 정명(正名)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제 한국 정치는 비로소 극우-중도보수-진보(중도좌파-좌파-극좌파)로 구성되는 정상적인 현대적 정치지형의 수립 가능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지금의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중도보수 정치세력으로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집권세력이 되고 나머지 의석을 극우와 진보 세력이 유동적으로 나누어 가지고 각축하는 전형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치지형이 형성될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지금은 비어 있는 진보 정치세력의 공간은 현재의 일부 진보적 지향을 가지는 소수 정당들과 더불어 이번 내란사태의 진압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응원봉 연대를 비롯한 거리의 시민들이 바라던 진정 새로운 나라의 비전을 육화한 전혀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에 의해 채워져야 할 것이다.

 

우리의 민주공화정이 이번처럼 특정한 개인이나 소수 파당의 돌출 행동으로 휘둘리지 않으려면 단지 이번 윤석열 내란을 진압해서 원상 복귀하는 것을 넘어 이처럼 새로운 정치지형의 창출을 통해 안정과 변화가 역동적으로 길항하는 민주공화정으로 거듭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그 이전에 먼저 몇가지 정지 작업이 더 필요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무엇보다 윤석열 집권 기간 민주공화정을 위협하는 고질적 복병임이 만천하에 드러난 정치 검찰 체제의 완벽한 해체와 재구성이 있어야 하며, 국무총리를 비롯하여 불법 비상계엄을 저지하는 대신 자발적 하수인 노릇을 마다하지 않은 타락상을 드러낸 현재 대한민국의 관료세력에도 역시 대대적인 수술이 있어야 한다. 내란 수괴에 대한 최종적 파면 결정으로 기사회생하기는 했지만 헌법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자의적 판결의 가능성이 상존하는 사법 체계에도 역시 근본적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개혁과 변화의 최종 참조 항으로서 다시는 이번과 같은 혼돈을 허락하지 않는 한국형 마그나카르타로서의 제7공화국 헌법의 제정도 역시 적절한 시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긴 겨울이 가고 다시 봄이 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봄은 삼인칭으로 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일인칭으로, 그것도 일인칭 단수가 아니라 일인칭 복수가 맞이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과연 이 봄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큰 이변이 생기고서야 거리로 뛰쳐나가 날밤을 새우며 싸워 나라를 구하는 의병운동적 악전고투는 다시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든 이의 일상과 정치가 선순환하는 진정한 공화제가 실현되어야 한다. 다시는 겨울에서 봄으로라는 낡은 메타포를 돌이키지 않으려면, 마치 숨 쉬듯 자유롭게 이 돌아온 봄을 누릴 수 있으려면, 우리의 삶은 매일매일이 정치적이어야 한다. 삶이 곧 정치인 인간, 그것이 바로 시민이고, 그것이 주권재민의 본뜻이다

김명인 | 문학평론가·인하대 명예교수 | 한겨레 2025.04.10.

 

끝까지 믿어 준 김장하 선.기부보다 어려운 용기

어른 김장하’. 시네마달 제공

탄핵 심판 때 인용 판결문을 읽은 문형배 헌법재판관이 주목받으며 그가 등장했던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가 재개봉하는 등 김장하 선생에 대한 관심까지 다시 불 지펴지고 있다. 김장하 선생은 문형배 재판관이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학비를 지원했다. 2019년 자신의 선행이 알려지기를 질색하는 김장하 선생을 위해 지인들이 몰래 준비한 서프라이즈 생일파티에 찾아온 문형배 판사는 고마움을 전하다 목이 메었다.

 

2022년 말 지역방송(엠비시경남)에서 방영한 작품이 SNS에서 잔잔하게 입소문을 타면서 빨리 기사를 쓸 수 있었다. 다큐를 보면 김장하 선생한테 도움을 받은 사람들과 지원을 받은 단체는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깊게 남은 건 진주신문 후원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지원과 도움과 선의의 문제를 벗어난 믿음에 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1990년대 창간 때 진주신문의 시민 주주이자 이사로 참여했던 김장하 선생은 10년 동안 매달 천만원씩 신문에 지원하며 적자 해소에 힘을 보탰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김장하 선생은 이 신문이 좀 더 강하게 사회의 불의와 싸우지 못하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한번도 지원금을 끊거나 줄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의 그런 마음을 신문 쪽에 전하지 않았다. 부담을 주거나 압력으로 느껴지는 걸 원치 않았을 터이다. 그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타인을 믿는다는 건 때로 수백억 원 자산을 일구는 일이나 그걸 또 남을 위해 쓰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다. 나는 사람을 너무 잘 믿어서 문제라고? 나 역시 기자같지 않게취재원의 아무말 대잔치를 쉽게 믿어온 이력이 상당히 길어 굳이 따지면 사람을 쉽게 믿는 편에 속한다. 그런데 따져보면 내가 의심하거나 거부감 없이 믿은 사람들이나 이야기들은 대체로 나에게 호의적이거나 적어도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의심이라는 건 대체로 마음이 긁히는 순간 일어나게 마련이다. 권력자들 주변에 하나같이 아첨꾼들만 들끓는 이유도 마찬가지 아닌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고 싫은 이야기하는 사람을 곁에 둔 권력자들은 거의 없다. 윤석열이 권력의 정점에 오르게 된 데는 분명 우리 편이라는 진보의 얼토당토않은 믿음이 일부 바탕이 됐고 윤석열이 수직낙하를 하게 된 데는 잘한다 잘한다하이파이브를 하면서 계엄이라는 황당무계 월드로 그를 안내한 이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진주신문과 김장하 선생의 속 깊은 관계는 잘 모르지만 김장하 선생은 성에 차지 않고 아쉬움이 더 큰 이 신문에 대한 믿음을 거두지 않았다. 그 믿음은 저절로 생기는 믿음이 아니라 내 안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믿음이다. 믿을 만해서 믿는 믿음이 아니라 허약하고 불안정하며 미래가 불투명한 사람이나 조직이 든든하게 자라기 위해서 가져야 하는 믿음이다.

 

반항심 많은 사춘기 아이를 키우며 내적으로 가장 부딪히는 단어가 믿음이기도 하다. ‘아이는 믿는 만큼 자란다는 경구가 있지만 자식을 믿는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어른이 보기에는 뽑기도 이런 꽝이 없을 만큼 이상한 선택들을 골라서 하는 아이를 믿음을 가지고 지켜보느니 투잡, 쓰리잡으로 몸을 갈아서 학원비를 버는 게 더 쉬울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경구에 따라 너를 믿는다고 말해봤자 아이는 엄마의 발연기를 금방 알아차려 말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

 

나에게 유리하다거나 호의적이라는 안전판 없이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내 우주를 건 진심과 결단의 문제다. 김장하 선생은 싹수를 본 게 아니라 그런 믿음을 가지고 학생들과 단체들을 지원했을 것이다. 그중에는 사회적 기준으로 이른바 실패자들도 있고 아쉬운 결과도 있겠지만 문형배 재판관 같은 인물들도 탄생했다.

 

아무도 칭찬하지도 말고 나무라지도 말고 그대로 봐주기만 하라고 말하고 싶다.” 김장하 선생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한 말은 아마도 그가 내린 믿음의 정의일 것이다. 또 아이를 키우는 부모나, 직장 부하를 바라보는 상사나 누군가를 내려봐야 하는 위치에 있는 누구에게나 당부하는 이야기일 터다.

김은형 선임기자 | 한겨레 2025.04.10

 

그래도 손을 잡아야 한다, 좋든 싫든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8월에 전후 80주년 담화를 내지 않기로 했다는 지난달 말 일본 언론의 보도를 읽고 미약한 실망감을 느꼈다. 전 대통령 윤석열의 12·3 내란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기 파괴적인 상호관세로 세인들의 관심에서 한참 밀려나 있지만, 올해는 을사조약 120, 해방 80(일본엔 패전 80), -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 겹치는 해다.

 

트럼프의 폭주로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가 사실상 무너지면서,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인 일본과 안정적인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게 한국 외교의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시바 총리가 한국인들이 중시하는 역사 문제에서 진전된 인식을 밝혀준다면, 우리도 흔쾌히 일본과 마음을 터놓는 협력 관계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 것이다.

 

돌이켜 보면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한-일 관계는 여러 굴곡을 거쳐왔다. 첫째는 냉전기였다. 냉전의 거친 조건은 양국에게 협력을 강제했다. 두 나라는 역사 문제를 봉인하고 경제 협력의 길을 연, 이른바 1965년 청구권 협정을 통해 국교를 정상화했다. 그로 인해 한국 경제가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마음 한편엔 민족의 울분을 제대로 풀지 못했다는 깊은 응어리가 남았다.

 

두번째는 탈냉전기였다. 1980년대 후반 냉전이 끝나며 외부의 적이 사라졌다. 이 놀라운 국제 환경의 변화 속에서 양국 관계는 크게 발전했다. 한국은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달성한 어엿한 중견국이 됐고, 일본도 평화헌법을 소중히 하고, 무라야마 담화(1995) 같은 반성적 역사 인식을 내놓을 수 있는 성숙한 국가 틀을 유지하고 있었다. 양국은 199810월 서로를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하는 한-일 파트너십 선언을 내놓게 된다. 양국의 대중문화가 상호 개방되며 일본에선 한류 붐이 불었다.

 

좋았던 옛 시절은 신냉전의 등장과 함께 막을 내린다. 2010년대 들어 지(G)2로 성장한 중국이 동중국해·남중국해 등에서 일방적인 언행을 일삼으며 동아시아의 안보 환경이 급변한 것이다. 일본은 이 위협에 맞서기 위해 미국과 동맹 강화에 나서는 한편, -미 동맹과 미-일 동맹을 한데 묶는 한··3각 동맹 구축을 시도했다. 그와 함께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아베 담화’(전후 70주년 담화)를 내어 아이들에게 계속 사죄의 숙명을 지워선 안 된다고 선언하게 된다. 역사는 그만 잊고, 북한·중국에 맞서 안보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우리가 이 무례한 제안을 받아들일 순 없는 법이었다. 두 나라는 2018~2019년 거세게 충돌했다. -일이 마지못해 악수라도 할 수 있게 된 것은 한국이 20233월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와 관련해 일방적 양보안을 내놓은 뒤다. 굴욕 외교는 우리 마음속에 두번째 응어리를 남겼다. 윤 정부를 거치며 역사에서 안보까지 일본의 희망 사항은 모두 실현됐지만, 한국이 기대했던 반쯤 찬 물컵은 결국 채워지지 않았다.

 

지난 몇달 동안 한국은 이러다 나라가 망하겠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위기를 겪어야 했다. 12·3 내란으로 나라가 공중분해 될 뻔했고, 트럼프의 폭주로 한국의 지난 번영을 가능하게 했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는 사실상 무너져 내렸다. 이제 우리가 대비해야 하는 것은 앞으로 30~50여년은 이어질 것이라 예측해왔던 미·중의 전략 경쟁이 아닐지도 모른다. 미국이 패권국의 책무를 걷어차고 지금처럼 이기적인 횡포를 이어간다면, 불과 몇년 안에 그동안 인류가 만들어온 모든 가치와 국제 규범이 사라진 약육강식의 시대가 도래할지 모른다. 상황이 이렇게 됐을 때 가치를 공유하는·일은 좋든 싫든 서로에게 소중한 비빌 언덕이 된다.

 

옛 갑신정변의 주역이던 서재필은 회고 갑신정변에서 김옥균(1851~1894)이 입에 담았다는 비전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늘 우리에게 말하기를, 일본이 동방의 영국 노릇을 하려 하니, 우리는 우리나라를 아시아의 프랑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시바 총리는 결국 사죄와 반성을 입에 담지 않은 채 우리에게 우호·협력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64일 임기를 시작하게 될 새 대통령은 쉽지 않은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그래도, 저들의 손을 잡기 바란다. 욕을 먹더라도, 이 말만은 꼭 전하고 싶다.

.길윤형 | 논설위원 | 한겨레 2025.04.10.

 

대통령 노릇 잘하려면 탄핵 결정문을 보라

역대 탄핵 결정문들

한국 대통령은 위험한 직업이다.’ 중국의 소셜 미디어에서 떠도는 말이라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국민에 의해 쫓겨났다. 박정희 대통령은 부하의 손에 의해 시해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 이른바 의회 쿠데타로 그 자리에서 밀려날 뻔했다. 그는 살아있는 권력의 박해로 죽음에까지 내몰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상 최초로 탄핵심판을 통해 파면됐다.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도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그 직을 박탈당했다. 그러니 아무리 좋게 봐도 한국의 대통령 자리는 매우 위험한 자리다. 퇴임 후에도 온갖 고초를 겪어야만 하는 극험그 자체다.

 

그런데 왜 다들 대통령이 되고 싶어할까? 권력욕, 사명감, 부추김, 떠밀림 등이 이유로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뭐든 대통령이 그 나라와 국민에게 끼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감안하면 대통령을 해보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많은 건 좋은 일이다. 주권자인 국민으로선 선택지가 넓어지는 것이고, 확률적으론 후보군이 풍성하면 그중에 괜찮은 카드가 끼어있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대통령 자리가 지닌 위험성을 피해 가는 좋은 텍스트가 있다. 바로 헌법이다. 헌법에 정한 대로 하면 된다. 헌법에서 금지한 것을 하지 않으면 되고, 헌법에서 요청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하면 된다. 레퍼런스도 있다. 실패한 대통령 사례에서 배우면 된다. 어떻게 배울지 모르겠다면 헌재의 탄핵 결정문을 읽어보길 권한다. 3번의 탄핵 사례가 있었으니 3건의 탄핵 결정문이 있다. 그 결정문을 찬찬히 밑줄 그으며 읽고 또 읽으면 대통령 노릇 잘하는 법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탄핵 결정문에 이런 대목이 있다. ‘대통령은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로서 자신 스스로가 헌법과 법률을 존중하고 준수해야 함은 물론이고, 다른 국가기관이나 일반 국민의 위헌적 또는 위법적 행위에 대하여 단호하게 나섬으로써 법치국가를 실현하고 궁극적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어쩌면 윤석열 대통령이 다른 국기기관을 국회로, ‘위헌·위법적 행위를 탄핵 남발과 예산 삭감으로, ‘단호하게 나섬을 비상계엄으로 오독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결정문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대통령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고 국정을 성실하게 수행하리라는 믿음이 상실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그에게 국정을 맡길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아야하는 경우의 하나로 대통령이 권한을 남용하여 국회 등 다른 헌법기관의 권한을 침해하는 경우를 적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저지른 불법 계엄을 꼭 집어 말하는 것 같다. 이에 기초해 보면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이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렸지만 헌재로선 파면 결정이 처음부터 불가피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문에도 눈에 띄는,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이 각별히 새겨야 할 지적이 있다. 박 대통령이 최서원(최순실)의 국정 개입을 허용하고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남용하여 최서원 등의 사익 추구를 도와주는 한편 이러한 사실을 철저히 은폐한 것은 대의민주제의 원리와 법치주의의 정신을 훼손한 행위로서 대통령으로서의 공익 실현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것이다.’ 사인의 국정 개입을 허용하면 안 된다, 대통령 권한을 남용해 사익 추구를 도와주고 은폐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은 부인 김건희의 국정 개입 용인을 넘어 아예 의존했다. 대통령의 거부권을 남용하고, 검찰권을 활용해 부인에 대한 온갖 의혹의 소명을 가로막았다. 주가 조작으로 이득을 얻었다는 의혹이 넘쳐나도, 명품백을 대놓고 받아도, 공천에 개입해도 대통령은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부인의 사익 추구를 편들거나 은폐하려 했다. 제도적 부패다. 따라서 헌재로선 파면 외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차례나 탄핵소추 당했다. 그중에서 두번째는 의회 폭동을 선동한 것에 대한 문책 차원이었다. 하원에서 탄핵소추를 의결할 때 10명의 공화당 하원의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초당적 탄핵이란 모양새를 갖춘 셈이었다. 그럼에도 그 탄핵안은 상원에서 최종 부결됐다.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 7명이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으나 3분의 2에 못 미쳐 부결됐다. 만약 미국이 탄핵심판 권한을 우리처럼 헌재에 뒀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근래 미국은 법원마저 정치적 양극화에 적지 않게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별반 다르지 않을 거란 분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100% 정치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우리 헌재처럼 헌법·법률을 중심에 놓고 판단했다면 인용 가능성은 더 컸을 테고, 그랬더라면 트럼프의 2차 집권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민주주의의 보루가 된 헌재의 존재가 참 다행스럽게 다가온다.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또 다른 윤석열의 등장을 막을 차단벽을 하나 더 세우긴 했으나 완벽하진 않다. 세상에 완벽한 제도는 없다. 제도를 우회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진화된 윤석열이 출현하지 않게 하려면 더 촘촘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정당들이 엉터리나 빌런을 걸러내는 게이트 키핑’(gate keeping) 역할을 충실히 해줘야 한다. 또 상대를 존중하고 권력을 자제하는 민주적 규범이 확고하게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성공한, 아니 최소한 실패한 대통령이 되지 않으려면 헌재 결정문에서 배워야 한다. ‘대통령이 헌법의 대통령제와 대의제의 정신에 부합하게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함으로써 직접 국민에게 호소하는 방법을 통하여 직접 민주주의로 도피하려고 하는 행위는 헌법 제72조에 반할 뿐만 아니라 법치국가 이념에도 반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결정문의 한 부분이다.

 

헌법 72조는 대통령이 필요한 경우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도록 규정해 놓은 조항이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행위는 대통령들이 즐겨 사용하는 정치수단이나 무분별하게 사용되면 안 된다. 우리 헌법이 정한 대의제에 정신에 맞게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싫든 좋든, 밥이 되든 죽이 되든 대통령은 국회와 어울리고 야당과 부대끼며 거래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문에선 여길 주목하면 좋겠다. ‘대통령은 그 권한을 헌법과 법률에 따라 합법적으로 행사하여야 함은 물론 그 성질상 보안이 요구되는 직무를 제외한 공무 수행은 투명하게 공개하여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공무 수행의 공개가 없으면 사를 두게 되고 마가 끼기 마련이다. 공개해야 조심하고, 견제와 균형 기제가 실효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의회와 언론 그리고 국민의 감시와 평가가 상시적으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직자로서 자부하는 소명의식과 애국심 때문에 그들은 곧잘 국회나 언론, 시민단체 나아가 국민의 평가를 꺼리고 불편해한다. 이처럼 자신의 둘레에 벽을 쌓기 시작하면서 망조가 든다. 어떤 공격이나 실책에도 흔들림 없이 인기를 누리는 대통령에게 테플론’(Teflon)이란 수식을 붙인다. 테플론 대통령의 대표 사례인 레이건도 공개를 피해 추진한 이란-콘트라 사건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바 있다.

 

하나 더, 윤석열 탄핵 결정문의 한 구절이다. ‘민주주의는 대등한 동료 시민들 간의 존중과 박애에 기초한 자율적이고 협력적인 공적 의사결정을 본질로 한다.’ 민주주의는 힘자랑이 아니고 존중이고 배려라는 얘기다. 민주주의는 동료 시민에 대한 사랑이자 동료 시민과 함께 사는 공존이다.

 

민주주의는 그 누구에게도 등을 돌리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스스로 옳다고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 체제다.” 정치학자 엘머 샤츠슈나이더의 말이다.

.이철희 | 정치평론을 20대 국회의원 | 한겨레 2025.04.11.

 

잘 조준된 분노

44,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 결정문은 그야말로 잘 조절된 분노였다. 문형배 재판관은 내란세력이 지껄인 말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맞지 않음을 담백하게 짚어나갔다. 특히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를 결의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란 대목에서는 오랜 시간 뭉근히 끓인 팥죽의 뜨거움이 느껴졌다.

 

스테판 에셀은 세계에 분노 신드롬을 일으킨 책 분노하라’(2011)에서 사회의 구조적 부정의에 맞서 뜨겁게 분노해야 한다고 선동한다. 그는 나치에 맞서 총을 든 레지스탕스 출신이고, 자신의 따귀를 때리는 자에게 속수무책 뺨을 내어주는 비폭력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폭력을 멈추게 하는 폭력, 반폭력의 폭력또한 인정한다. 123일 불법 계엄령 이후 탄핵 인용까지 123일이 걸렸다. 그사이 폭도로 돌변해 법원을 공격한 일부 윤석열 지지자와 달리, 윤석열 내란에 맞선 시민들은 한 차례도 그런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 생각하기 싫지만 만약 헌재에서 탄핵 기각이나 각하 결정이 나왔다면 어땠을까? ‘폭력을 멈추기 위한 폭력이 실제로 일어났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로 에셀은 이렇게 경고했다. “과도한 분노는 언제나 좋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사실 헌재 발표 이전에도 위험한 순간은 매일 있었다. 그런 점에서 헌재보다 백배 상찬받아 마땅한 이들은 혹한의 날씨, 극우 유튜버의 위협을 견디며 광장을 지켰던 시민들이다. 그들은 짜증과 분노를 눌러 참으며 무례한 타자를 끝까지 동료 시민으로 대했다.

 

한편으로 불공평하게 느껴진다. 왜 윤석열은 마음껏 격노해도 되고, 우리만 분노를 조절해야 하는가? 왜 극우 내란세력과 차별혐오세력은 반대자의 입을 틀어막고 타인의 실존을 부정해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는가? 심지어 대통령 탄핵만 벌써 두번째다.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를 연구한 정치학자 로널드 잉글하트는 시민의 직접 행동이 강해진 나라에서 엘리트 고결성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 시민의 데모가 크게 일어날수록 권력자들이 두려워서 몸을 사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론은 한국엔 통하지 않았다. 국정 농단 대통령을 몰아내니 그보다 더한 자가 나타나 군대를 동원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다른 나라에선 한 세대 한번 나오기도 어려운 대규모 시위가 7~8년마다 일어남에도, 엘리트 카르텔 부정부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하위권이다. 거대한 시민 저항에도 불구하고 사회 개혁, 특히 권력 집단의 질적 개선은 왜 이토록 더딘 것일까?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분노가 잘 조절되긴 했으나, 잘 조준되지 못했던 탓이라고. 비폭력 저항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 개혁이 늘 실패한 건 탄핵으로 의 얼굴만 바꿨을 뿐 선출 방식과 권한은 그대로 뒀기 때문이다.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차별적인 관행과 불평등한 제도를 뜯어고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극우와 혐오가 저렇게 마음껏 활개 칠 수 있었다. 내란 공범 의혹이 있는 자를 헌법재판관으로 기습 지명한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의 행태를 보라. 법의 허점을 파고든 엘리트의 이런 망동이 어디 한두번인가? 이는 개인을 단죄하는 것만으로 결코 예방될 수 없으며 오히려 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8년 전, 박근혜 탄핵 직후 개헌 얘기가 나왔을 때가 떠오른다. 그때 광장의 젊은 세대는 문제가 박근혜·최순실로 환원될 수 없음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일상 곳곳의 박근혜들이 사람답게 행동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고 고발하며 사회의 전면 개혁을 요구했다. 그러나 막상 탄핵에 성공하자 정치인들과 다수 정치 고관여층은 적폐 청산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그 귀결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안다. 이번에 개헌 논의가 나오자 같은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물론 선거에 국한된 정치공학적 개헌에는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그러나 승자독식형 권력구조 해체, 차별금지법, 기후위기 대응 등 사회 전반의 전면 개혁을 담은 7공화국 헌법의 제정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며, 이는 내란세력 처벌과 얼마든지 병행 가능하다. 이번에도 내란세력 척결부터운운하며 이를 회피한다면, 또다시 오류를 반복하는 것이다. 분노는 잘 조준되어야 한다. 사회 대개혁의 그날까지 내란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박권일 | 미디어사회학자 | 한겨레 2025.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