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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25.3.17~22 다시는 대통령이 총칼을 들지 못하게

by 이성근 2025. 3. 24.

1. 언제까지 대입 미신에 빠져 있을 것인가 2. 어지러운 군주와 어지러운 나라 3. 내전과 공존 4. 하느님 보우하사, 저 법비들을 벌하소서 5. 자살률이 걱정이라면, 그래선 안 된다 6. 광장에서 우는 이들에 보내는 위로 7. 김구는 '킬러 집단 두목', 5·18은 북한 지령받은 폭도들의 내란? 8. 누가 스카이데일리에 광고를 몰아주었나 9. 다시는 대통령이 총칼을 들지 못하게 10. 삼중고에 빠진 한국 경제

11. 트럼프의 공화당, 윤석열의 국민의힘 12. 왜 우리는 연대하며 싸우는 것일까? 13. 투기 부추겨 공급 늘리려 했나오세훈의 만용 14. 박근혜 파면' 헌재, '탄핵' 망설이나 15. 윤석열 지금도 '복수'의 칼을 갈며 김치찌개를 끓이고 있을 것이다

 

언제까지 대입 미신에 빠져 있을 것인가

바람직한 대입제도는 무엇인가? 내신성적 반영률을 높이고, 대입시험(수능) 비중을 낮추고, 학생에 대한 교사의 정성적 서술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은 우물 안 개구리의 것이다. 대표적인 반례가 세계 최고의 교육 선진국으로 알려진 핀란드이다. 핀란드는 내신성적을 반영하지 않는다. 대학은 전공별 지원자들 가운데 합격자를 순전히 대입시험 성적순으로 가려낸다. 경쟁이 상당히 치열해서 응시 첫해 대학에 진학하는 지원자는 절반이 안 된다.

 

핀란드의 대입시험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공인시험이다. 고교 졸업자격시험 역할을 겸하지만, 통과 여부만 평가하지 않고 등급을 매겨 대입에 활용한다. 그래서 핀란드 사람들도 이를 입시(영어 번역으로 matriculation exam)라고 부른다. 문항은 유럽 대부분의 나라처럼 논술형이다. 예를 들어 영어 시험에서 어느 지역에 대한 정보를 준 뒤 이곳을 알리는 홍보문을 작성하라는 문항이 출제된다. 이와 별도로 대학별 본고사가 있다. 참고로 선진국 중 본고사가 광범위하게 치러지는 나라는 핀란드와 일본밖에 없다. 핀란드 본고사 형식은 논문을 읽고 토론하라는 주문에서 객관식 문항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핀란드는 2020년 대입개혁 이후 모집정원의 40%는 본고사로, 60%는 공인시험으로 선발한다. 이 대입개혁 이전에도 내신성적은 반영하지 않았다.

 

내신성적에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 선진국 대입제도를 들여다보면, 대입시험과 내신성적을 동시에 반영하는 나라가 많다. 미국·독일·네덜란드·스페인·호주 등이 그렇다. 내신성적으로 장기적인 성취도 추세를 알아볼 수도 있고, 과제 연구나 수행평가 등을 반영할 수 있으므로 일회성 시험보다 폭넓은 역량을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내신성적을 반영하지 않는 나라도 여럿 있다. 핀란드·영국·일본·싱가포르 등이다. 내신성적에는 뚜렷한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교사별·지역별로 편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프랑스도 원래 내신성적을 반영하지 않았다. 올랑드 대통령 시절에 내신성적을 반영하려다 학생들의 반발로 실패했다. 반대 이유는 담당 교사가 누구인지에 따라 대학 진학 여부가 달라지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마크롱에 의해 2021년부터 내신이 대입에 10% 반영되게 되었다. 종종 40% 반영된다고 잘못 소개되곤 하는데, 그 성적은 담당 교사가 아닌 외부 출제에 의해 주어지므로 우리가 생각하는 내신성적이 아니다.

 

내신 단점 뚜렷미반영 국가 여럿

참고로 대입시험이 아예 없고 내신성적 위주로 선발하는 나라도 있다. 캐나다와 노르웨이가 그렇다. 그러면 내신성적의 약점, 즉 학교별·교사별 편차를 어떻게 할까? 캐나다는 내신 편차를 줄이기 위해 주정부가 시행하는 성취도평가 성적을 일정 비율 반영하도록 한다. 대학에서 비밀리에 지원자의 내신성적을 보정하기도 한다. 노르웨이는 일부 과목에서 학교 간 비교평가를 실시하여 학교에 피드백을 준다. 참고로 한국의 경우 내신성적이 상대평가이므로 어느 학교를 다니느냐에 따라 큰 편차가 존재하게 된다. 내신 상대평가는 동료 간의 경쟁을 유발하고 객관적 성취도와 무관하게 주어지므로 다른 선진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내신 상대평가가 비수도권, 비강남에 유리해지는 효과가 있고 오래전부터 써와서 익숙하다는 이유로 유지되고 있다.

 

대입시험과 내신성적을 활용하는 가장 흥미로운 경우는 덴마크다. 덴마크 대입제도는 얼핏 보면 내신성적만으로 선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덴마크는 고교별로 일부 학급을 선정하여 표준화 시험(이를 덴마크에서는 대입시험이라고 부른다)을 치른다. 고교별 학력 차이를 계산하고, 이를 통해 내신성적을 보정한다. 내신성적이 후하게 매겨진 경우는 낮추고, 박하게 매겨진 경우는 높이는 것이다. 내신은 내신이되 표준화 시험을 통해 보정된 내신이므로 일반적인 내신과 다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례는 스웨덴인데, 학과별로 정원의 일부는 내신성적만으로 선발하고, 일부는 대입시험만으로 선발한다. 대입시험과 내신성적의 장단점을 모두 수용하되, 합산하지 않고 두 가지 문을 따로 열어놓은 것이다. 어느 쪽으로 지원할지는 학생 자율이다. 한국의 수시, 정시와 비슷해 보이지만 시기가 서로 다르지 않고 동시에 치른다. 참고로 수시, 정시 식으로 두 번에 걸쳐 전형을 하는 선진국은 미국과 한국밖에 없다.

 

프랑스는 대학이 평준화되어 있다거나 독일에는 입시가 없다는 말도 유의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프랑스는 바칼로레아 시험 점수(내신 10% 포함)가 과목별 20점 만점에 10점이 넘으면 대학에서 무조건 입학시키고, 2000년대 이후 지원자가 넘치는 경우엔 추첨을 한다. 하지만 대학 외에 그랑제콜이라 불리는 분야별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기관들이 별도로 있다. 다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을 가지만 일부는 그랑제콜 준비학교(이른바 프레파’)2년 거친 후 그랑제콜에 진학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프레파 이후 재수를 해도 그랑제콜에 가지 못하면 대학 3학년에 편입시켜 준다. 사정이 이러하니 프랑스에 의외로 학벌주의가 강하다. 공부를 잘하면 대부분 그랑제콜을 노릴 것 같다. 하지만 인기 직업인 의사가 되려면 대학에 가야 한다. 그랑제콜은 그런 평범한(!) 직업인을 양성하지 않는다. 다만 의대에 가면 2학년 진급률이 20% 미만일 정도로 치열한 경쟁이 기다린다.

 

AI로 논술 채점기술적 문제 해결

독일은 그랑제콜과 같은 기관이 없으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프랑스보다 더 제대로 된 평준화다. 독일의 비직업계 고등학교에서는 공인시험 3분의 1, 내신성적 3분의 2의 비중으로 합산한 점수가 일정 수준이 되면 고졸 학위증(아비투어)을 준다. 독일의 모든 대학 학과들의 60%가량은 이 학위증만 있으면 입학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때의 공인시험을 입시가 아니다라고 주장할 근거가 생긴다. 일종의 자격시험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40%에 해당하는 인기 학과들은 정원 제한(numerus clausus) 학과로 불리며 핀란드처럼 상당한 입학 경쟁이 존재한다. 여기서 학생을 선발할 때 절대적으로 중요한 전형요소가 성적이다. 이런 의미로 보면 독일에는 입시가 있다. 고교 교사가 출제하지 않은 외부 시험(external exam)으로서 대입에 활용되는 것은 입시라고 부르는 것이 상식이다.

 

독일에는 대기입학제라는 독특한 제도가 있다. 정원 제한 학과 정원의 20%는 대기 입학자 중에 받아들이는데, 대기자로 등록해 놓고 기다리면 몇년 뒤에든 입학 기회를 주는 것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다시 공부하거나 전공을 바꿀 목적으로 활용한다. 이런 식으로 예를 들어 간호사를 하다가 의대에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것은 독일에서 재수가 법적으로 금지돼 있기 때문에 생긴 고육지책이다. 일생 동안 아비투어 성적을 변경할 기회가 없으니 위헌적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대기입학제를 만든 것이다. 그나마 의대는 2020년에 대기입학제를 폐지했다. 그 대신 정원의 10%를 적성고사(수학·과학·추론 등)로 선발하며 그중 일부는 농촌 지역에 10년간 근무하도록 했다.

 

정성평가 요소를 반영하는 것도 보편적이지 않다. 정성평가 요소로서 세계적으로 가장 주요하게 활용되는 것은 자기소개서인데, 선진국 가운데 지원자들에게 보편적으로 자기소개서를 요구하는 나라는 미국, 영국, 아일랜드 정도이고 그 밖에 캐나다, 싱가포르의 경우 일부 대학에서 요구한다. 나머지 나라들은 자기소개서를 외국인에 한하여 요구한다. 한국은 자기소개서를 최근 폐지했지만, 여전히 전 세계에서 가장 번잡한 학교생활기록부를 활용해 교사들을 괴롭히고 있다.

 

수능은 악이고, 내신은 선이며, 성적순은 나쁜 것이고, 정성평가는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한국 주류 교육계의 통념이다. 보수와 진보, 이주호와 김상곤이 교집합을 이루는 지점이다. 하지만 다른 선진국들과 견줘 보면 이러한 믿음은 매우 독특한 것이며 보편화될 수 없다. 물론 한국 수능에는 문제가 있다. 한국은 선진국 중에서 객관식 대입시험의 영향력이 가장 강한 나라다. 그런데 그게 문제라면 미국의 수능(SAT·ACT)처럼 고교 교육으로부터 분리하거나, 유럽 주요 국가들처럼 논술형 시험으로 대체할 생각을 해야 한다. 인공지능으로 논술형 채점이 가능해진 상황이므로 기술적 문제는 해결된 셈이다.

이범 교육평론가 경향 입력 : 2025.03.17

 

 

어지러운 군주와 어지러운 나라

모든 게 멈췄다. 민생도, 의료도, 외교도, 교육도, 기술경쟁력도, 어디 하나 막히지 않은 곳이 없다. 그동안 얼마나 애써서 싹틔워 보듬고 키워온 것들인데, 이렇게 동시에 총체적으로 주저앉혀지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일부는 저성장 고령화로 접어들며 어느 정도 예견된 위기이고 책임을 특정할 수 없는 복합적인 난제들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하나하나 조심스레 풀어나가야 하는 시점이었다. 그러나 독선과 아집에 가득 찬 통치자가 마치 그 모든 일의 선악과 시비를 쾌도난마로 가를 수 있기라도 한 듯이 계엄이라는 황당무계한 카드를 내던진 순간, 그나마 해결 가능성조차 모조리 막혀 버리고 대한민국은 동맥경화의 마비 상태가 되고 말았다.

 

겸청제명(兼聽齊明)해야 모든 일이 막히지 않고 적시에 잘 처리된다고 했다. 여러 의견을 치우침 없이 두루 듣고 전체의 사정에 공평하게 밝아야 함을 강조한 말이다. 군주가 그런 덕목을 갖춘다면 보지 않아도 보이고 듣지 않아도 들리며 생각하지 않아도 알고 움직이지 않아도 이루어, 그저 우두커니 홀로 앉아 있기만 해도 천하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따르는 경지에 이른다. 순자(荀子)가 그린 최고의 정치다.

 

2000여년 전의 책에서 오늘의 해법을 찾는다는 건 무모한 일이다. 그럼에도 민주공화국의 법과 제도가 뿌리부터 유린되고 있는 오늘 다시, “난군(亂君)은 있어도 난국(亂國)은 없고 치인(治人)은 있어도 치법(治法)은 없다라는 말의 의미를 곱씹는다.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군주가 있을 뿐이지 저절로 어지러워지는 나라는 없으며, 나라를 안정시키는 것은 유능한 사람에게 달려 있지 법이 갖추어졌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순자는 이 전제에서 출발하여 인재 등용과 자원 활용을 통해 민생을 개선하는 현실적 대안을 논하였다.

 

헌법재판소 결정을 앞두고 사회 구성원 간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 불화의 골을 복구하려면 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갈지, 매우 우려스럽다. 그러나 살아내기 위해서라도 기본과 원칙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매여 계속해서 분열을 조장한다면 공멸에 이르고 말 것이다. 동맥경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골든 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경향 : 2025.03.18.

 

내전과 공존

지난달 말 윤동주 시인 80주기를 맞아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의 일행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새벽에 공항 가는 택시를 탔는데, 기사분이 느닷없이 된소리로 쭝국 가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더니,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우리나라 선관위 직원 대부분이 중국 사람이라는 주장부터 특정 정치인들은 사라져야 한다며 열변을 토했다.

이럴 때 그와 생각이 다른 승객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해야 할까. 무시하며 자는 척해야 할까. 이견을 제시하고 설득해야 할까나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고문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태, 그런 상황을 우리는 폭력이라고 부른다. 나는 폭력 상황에 노출되었고 동시에 공모했다.

 

12·3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기획이 불과 두세 달 만에 내전(內戰) 상태로 변화했다고 본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다.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한국 사회에 내전은 없다고 진단한다(경향신문 314일자). 아직 30% 이상의 두꺼운 중도층이 있고, 인종적 갈등에 기댄 종족주의형 정체성의 정치가 출현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물리적 폭력을 국가가 독점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정부의 공공 서비스와 행정의 질이 우수하다는 것이 그의 근거다.

 

나도 동의하는 바이지만 상부구조의 측면, 이를테면 반북, 반중, 반여성 이데올로기에다 종교의 감정화 등 정치적 정동(情動·affection)의 면에서, 대한민국은 현재 내전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헌재가 어떤 판단을 내리든 간에 어느 쪽도 승복하지 않으리라는 예상과 염려도 이러한 정서적 내전상태 때문이리라. 모두 헌재의 판단 이후가 더 문제라는 데 이견이 없는 것 같다.

 

전 세계적인 우익의 출현은 후기 식민(냉전) 체제와 신자유주의 통치의 산물이다. 독립을 해도 제국주의 지배의 후과(後果)로 자국민들끼리 이념적으로 혹은 인종적으로 분열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아프리카의 르완다이다. 르완다 내전의 배경은 식민 지배자였던 벨기에의 분할 통치다. 1959년에서 1996년까지 르완다와 부룬디에서 일어난, 다수지만 피지배 계급인 후투족과 소수인 지배 계급 투치족의 부족 간 갈등으로 인한 르완다 내전은 학살, 질병, 기아로 수백만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특히 19944월부터 7월까지 단 100일 만에 50~80만명이 학살되는 참사가 벌어진 르완다 사태는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이 역사는 테리 조지 감독의 2006년 영화 <호텔 르완다>에 잘 묘사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간헐적 충돌과 희생은 많았지만, 한반도는 지난 70여년간 평화로웠다.’ 지금 한반도의 상태도 미·소 냉전 체제의 유산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일명 태극기 부대인데, 실제로는 태극기만이 아니라 성조기와 영국기와 이스라엘기까지 등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극우에 대한 단호한 대처?

시민운동가인 지인과 현재 한국의 극우 상황에 대해 의견을 나누다가 그의 말에 놀랐다. 그는 극우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호한 대처의 구체적 방도가 있는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대화가 불가능한 상대에 대해 단호한 대처라는 발상에 당황했다. 이것은 정말 싸우자는 이야기다. 그러지 않아도 지금 양쪽은 맨손으로 백병전이라도 할 기세다. 아니, 이미 법원 습격이라는 폭력 사태가 발생했고, 폭력의 연쇄는 앞으로도 예상되는 일이다. ‘그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생각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존재에 대한 우리의 바람직한 태도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이런 경우 단호한 대처는 진짜 내전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폭력의 반대말은,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지금 한국 상황에서 최선은 공존에의 의지라고 생각한다. 공존은 타인에 대한 배려나 공감이 아니다. 스스로 극도의 인내와 긴장을 동반하는 신경증적 상황의 지속이다. ‘를 없애겠다는 이들, ‘의 죽음을 기도하겠다는 이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들과 같이 살아가겠다는 각오는 평화가 얼마나 지옥 같은 전쟁 상태와 같은 것인가를 일깨워준다.

 

극우와의 공존은 그들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방의 존재를 존중한다는 의미다.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으며 그들의 생각이 어떻든 간에 존재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1992~2018)라는 시민단체에서 오랫동안 일한 지인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많은 이가 우리 단체 이름을 미군근절운동본부라고 불러요. 어떻게 살아 있는 사람을 근절합니까. 미군은 철수해야 할 대상이고, 우리가 근절하려는 것은 미군이 저지르는 범죄지요.” 그는 미군 근절이라는 말에 두려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여성주의도 마찬가지다. 여성과 남성 모두 가부장제 사회 밖에서 살 수 없다. 삶은 가부장제와 협상과 저항을 반복하며 종속적인 주체(subject)로 살아가는, 구조와 개인이 모두 조금씩 변형되는 일이다. “가부장제 타파, 근절구호는, 구호일 뿐 실현할 수 없는 관념이다. 우리는 평소 근절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지만, 근절되는 세상사는 없다. 나쁜 통치는 형식을 달리할 뿐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매번 달라지는 그 통치 형식(항시적 비상사태)을 이해하는 것이다.

 

언젠가 류승완 영화감독은 유명한 만화 <톰과 제리>가 주는 공포와 긴장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이 애니메이션은 우둔한 고양이 과 영리한 쥐 제리의 공존에 관한 이야기다. 이러한 상황이 실제라면, 제리의 삶은 공포와 견딤 그 자체다. 대개 생태계를 먹고 먹히는 관계로만 이해하지만, 공존의 관계도 있고 천적과의 균형도 중요한 요소다. 문제는 그리고 우리의 고민은, 공존과 균형이 약자의 몫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극우의 반대말은 공존

내가 생각하는 사회운동은 공존을 위한 지혜를 모으는 일이다. 생각하는 사람인 호모 사피엔스가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를 해치고(극우), “단호히 대처”(진보)하고자 한다면 대립은 영원할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의 극우 현상을 분석한 202533~9주간경향’ 1618호의 표제는 극우가 됐다. 저쪽이 싫어서이다. 이 커버 스토리는 우리 사회의 극우가 진보의 다른 모습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극우가 된 이유가 그만큼 민주당, 진보 진영 등 범야권에 대한 기대의 반증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극우가 진보의 안티테제로 등장했다면, 결국 누가 잘해야 할까.’ 나는 다른 나라 극우의 인종주의적 성향과 달리, 이러한 상황이 다소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범야권의 발상의 전환과 각성에 따라 변화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극우에 단호히 대처해서는 안 된다. 상호 인정, 공존만이 모두가 살 길이다. 당연히 극우는 공존을 수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극우다. 극우가 공존을 수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가 극우처럼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진보)는 양보했는데, 상대(극우)는 그렇지 않다는 피해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다.

 

역설적이지만, 공존은 한쪽의 의지만으로도 가능하다. 어차피 극우의 사고는 누군가의 설득으로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가 한 대 때리면 나는 두 대 때린다. 혹은 상대가 먼저 때릴 것 같으므로내가 먼저 공격한다는 선제타격론을 논리적으로 반박한다고 설복되겠는가? 극우는 설득 대상도 투쟁의 대상도, 더구나 사라져야 할 이들도 아니다. 사람의 생각은 비판해도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다.

 

글의 서두에 등장한 택시 기사와의 동승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그는 택시 기사로서는 친절했고, 그의 주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떠도는 얘기들일 뿐이었다. 그가 극우가 된 경로, 과학기술의 발달은 발전주의적 진보가 염원했던 일이기도 하다. 근대 이후 인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발전주의를 추구해왔다. 한국 사회의 진보 세력 역시 서구의 후발 주자로서 발전(progress)주의적 진보와 도구적 합리화를 최우선의 가치로 삼아왔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민주주의가 배제 없는 사회라면, 공존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평화는 갈등 없는 상태가 아니라 극심한 갈등 상황을 견디는 힘이다. 새로운 말의 가능성을 믿으면서, 새로운 인간성의 출현을 희망하면서 말이다.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편집장 경향 : 2025.03.18.

 

하느님 보우하사, 저 법비들을 벌하소서

숨넘어간다는 이 많다. 떨려서 뉴스 못 보고, 열불 나서 잠 못 든다는 전화도 잦다. 대통령이 12·3 친위쿠데타 도발한 지 105일째, 그 윤석열을 탄핵소추한 지 94일째, 세상의 눈과 귀는 헌법재판소에 꽂혀 있다. 선고는 오늘도 임박한 징후뿐이다. 짓밟힌 헌법·민심·국격을 보면 당연지사 ‘8 0 파면인데, 침이 마른다.

 

법비(法匪)는 불리하다 싶으면 순간 법추(法鰍)가 된다.” 201612월 당시 조국(서울대 교수)이 종적 감춘 우병우(민정수석)를 쏘아붙인 말이다. 법비는 법을 악용하는 도적, 법추는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법기술자를 뜻한다. 중국말 법비는 1990년대 이 땅에 등장했다. 해방정국 경찰, 박정희·전두환 시대 중정(안기부방첩사(보안사) 지나 사정권력을 검찰이 쥐었을 때다. 민주화 산물이자 수혜자, 그 검찰에서 내란 수괴가 나왔다.

 

석 달 반, 모두 지켜봤다. 군경을 앞세운 국회·선관위 침탈은 헌법상 내란이다. 법제처 <헌법주석서>만 봤어도, 공직자 탄핵과 예산 삭감은 비상사태로 삼을 수 없다. 윤석열은 그걸 통치행위라 했다. 법비다. 그러곤 급했는지 법추로 살았다. “의원들 끌어내라” “싹 다 잡아들여한 적 없단다. 암 투병 중 다 실토한 경찰청장에게 섬망 증세를 캐묻는 대리인의 무례를 말리지 않았다. 그 후 헌재 법정에선 숱한 증언자 바보 취급하며 내란을 재구성한 궤변을 쏟아냈다. 그의 말대로, 아무 일도 없었는가. 특전사는 국회 지하 1층 불까지 껐고, 소방청에 하달된 언론사 단전·단수는 윤석열 지시를 전한 이상민(행안부 장관)이 입 닫고 있을 뿐이다. 노상원 수첩 속 ‘500여명 수거계획, 150벌 준비한 인민군복, 명태균 황금폰 촉발설, 김건희 간여 의혹까지 밝힐 것 천지다. 내란은 2시간짜리도 경고용도 설렁설렁도 아니었다. 실패한 것일 뿐, 그 얼개와 속살은 위험천만했다.

 

그 관성으로, 오늘도 최상목은 내란 수괴 방패로 산다. 윤석열의 체포영장 저항을 먼 산 보듯 하더니, 내란·김건희·명태균 특검법은 족족 거부했다. 위헌 결정에도,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은 19일째 묵묵부답이다. 여당과 합의하라며 어깃장 놓고, 그는 거부권 권한대행이 됐다. 그도 모를 리 없다. ‘법대 선배윤석열을 위해, 헌법·형사소송법·헌재법을 오독하고 뒤튼 최상목은 법비였다.

 

심우정 검찰은 그 이상이다. 구속기간을 아닌 로 처음 계산해, 판사가 구속 취소한 윤석열을 하루 만에 풀어줬다. 그러면서, 일선엔 형사소송법과 관행에 따라 을 기준으로 하라고 했다. 대법도 권한 즉시항고는 포기하고, 사법 혼란은 방치한 채, 윤석열만 특혜 준 독단이었다. 농반진반으로, 범털·잡범들이 말하는 ‘3가 있다. ‘123’, 도망가고 부인하고 뒷배 찾으란 말이다. 윤석열도 그랬다. 차벽·인간벽 세워 체포를 피했고, 다 아니라 했다. 그 뒷배는 최상목·심우정, 아스팔트·기독교 극우가 세 축이겠지 싶다.

 

자타 공히, 검찰은 이다. 그 칼로 정권 초 죽은 권력 쳤고, 산 권력은 임기 말에 베고, 그들을 겨누는 권력은 언제고 물어뜯었다. 생존 3도 윤석열 내란에서 깨졌다. 칼은 내란 주범윤석열까지 편들고, 김건희 앞에서 멈추고, 조직에 몰려올 치명타까지 감수했다. 다들 본 대로, 윤석열과 심우정 검찰은 운명공동체다. 고쳐쓰기 힘든 이 독단은 검찰은 영원하다는 오만에서 나온다. 이제 국민의 칼(기소청)로 바꿔야 한다.

 

() 흐르듯 가라는() 게 법()이다. 하나, 내란의 단죄가 더디다. 실체 규명은 굴곡진다. 법비들 탓이다. 그런다고 생중계된 내란의 본질이 달라질 건 없다. 백척간두에, 100일 넘게 나라가 서 있다. 쉬는 청년 120만이고, 자영업자 넷 중 셋(900)이 월 100만원을 못 번다. 미국의 민감국가된 걸 두 달 지나 알고, ‘자유민주주의국가 지위도 흔들렸다. 시민에겐, 꽃샘추위 끝이 아닌 일상 복귀가 봄이다. 그때 민생의 피, 외교의 숨도 다시 돌 수 있다.

 

내란은 진보·보수 문제가 아니다. 그 밤엔 시민이 막고 국회가 해제했다. 이제 헌재가 끝내야 한다. 내란 수괴 탄핵심판은 대대로 교훈 삼을 역사의 법정이다. 헌법의 존엄을 세우고, K민주주의 법통을 잇고, 진실이 법기술을 이기고, 국운을 일으키는 최고 헌법기관의 권위와 권능을 보여주길 기도한다. 참 오랜만이다. 애국가 읊조리다 눈이 젖는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1987년 개헌으로 태어난 헌재의 헌법 수호자들이여. 하느님이 보우하사, 저 법비들을 내리치고 벌하소서. 정의의 이름으로, 무혈 시민혁명의 마지막 획을 그어주소서.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경향 : 2025.03.18.

 

 

자살률이 걱정이라면, 그래선 안 된다

자살률 국가비상사태, '두 번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자살하려는 기질은, 없다

"한국자살률, 공중보건 국가비상사태"

2024년도 자살률 잠정치를 보도한 한 언론의 기사 제목은 자살이라는 사회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번에 드러냈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 28.3명은, 202225.2명에서 202327.3명으로 증가한 흐름이 이어지는 추세라 매우 걱정스러운 수치다. 하루 4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 불안한 기세를 꺾지 못하면 최고치였던 2011년의 31.7명도 돌파하지 않겠는가.

이 통계가 비슷한 생활세계를 구축한 나라들에서 대등하게 나타난다면,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질문으로 접근할 문제일 거다. 어디 그러한가. 한국 사람이 더 죽는다. 성별, 연령별로 따져보면 한국 사람 중 누가 더 죽는지가 드러나지만 그건 한국에서의 차이일 뿐이다. 남성의 자살률이 여성보다 훨씬 높은데, 그 여성의 자살률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노인의 자살률이 청소년보다 훨씬 높은데, 그 청소년들의 자살률도 세계에선 상위권이다. 그러니 한국은 20년 넘게 OECD 국가들 중 자살률 1위인 거다. OECD 국가 자살률 평균이 10~11명이니, 한국 아니었다면 평균은 한 자릿수 아니겠는가. 한국 때문에 평균만 높아진 꼴이다. 노골적으로 말해, 한국은 전혀 선진국이 아니다.

 

설마 그런 기질을 타고났기 때문이겠는가. 주요 국가들의 2000년과 2021년의 자살률을 보면 독일(13.29.7), 스위스(19.210.8), 오스트리아(20.111.0), 프랑스(18.8 12.5)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런 기질을 제어했다(통계청, <국민의 삶의 질 보고서(2024)>, 37p) 애초에 기질 문제가 아니었으니 가능한 변화였을 거다. 특히나 '의리 자살'이라면서 사무라이 문화와 연결되어 분석되곤 했던 일본도 23.015.6명으로 큰 변화를 이뤄냈다. 포르투갈(5.28.5), 네덜란드(9.610.2), 미국(1114) 등 증가한 나라도 있지만 한국(17.524.3)과 비교해 수치의 심각성이 다르다. 한국이 가는 방향도, 그 속도도 더 걱정스럽다.

 

놀라운 건, 2000년에서 딱 10년 전의 한국의 자살률이 7.6(1990)이었다는 사실이다. 통계를 집계한 1983년부터(8.7) 1994년까지(9.5) 한국은 자살률이 10명 미만인 나라였다. 그때, 우리는 자살을 어떻게 해석했는가. 자살률이 한국의 3~4배였던 핀란드나(1990-30.6) 덴마크(25.0) 사례를 언급하며 복지가 과해서 나타나는 증상으로 배우지 않았는가. 사람들이 할 일이 없고 목표의식이 없으니 삶의 의지를 놓아버린다는 식의 설명을 정확한 분석 없이 누구나 하던 시절이었다. 이후 두 나라는 어떻게 되었는가. 핀란드는 30.6(1990)22.4(2000)13.2(2021)으로, 덴마크는 25.0(1990)13.9(2000)8.5(2021)으로 수치는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복지국가이길 포기해서일까? 아니면 자살 문제를 공중보건 국가비상사태로 정확히 인지하고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일까?

 

자살을 우습게 분석했던 풍토야말로 그 시절의 적나라한 수준일 거다. 그러니 그때의 자살률을 언급하며 '힘들었지만 서로 다정은 했다'는 식으로 분석하는 건 참으로 위험하다. 당시에는 중고등학교 입시에도 체력장이 있었고 직장인들도 아침마다 국민체조를 했기에 모두의 몸과 마음이 튼튼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도 돌아다니는데 큰일 날 소리다. 당시 국민들의 정신건강이 말짱했겠는가. 아픈 걸 몰랐을 뿐이다. 그 결과가 지금의 압도적인 노인 남성의 자살률로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2023년 기준 70대 남성의 자살률은 63.9명이다. 80대 남성은 더 끔찍하다. 무려 115.8명이다. 이들은 사회가 자살에 무지했던 시절을 관통하며 노인이 되었다. 그땐, 그저 버텼다는 거다.

 

뭘 그런 거로 병원을 가냐

자살률은 199713.2명에서 199818.6명으로 급증하는데, 이건 외환위기의 영향이지만 정확히는 그 위기를 '견딜'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아서 발생한 일이다. 서구사회와 이웃 나라 일본이 자살률이 높아 전전긍긍할 때, 한국은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그저 한국의 따뜻한 가족문화 타령하기 바빴다. 가족문화가 깨질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이 가족문화를 깨트리는가를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전자는 개인의 정신건강에 관한 관심이 높아져야 함을, 후자는 고삐 없이 질주하는 자본주의 욕망을 사회적으로 제어해야 함을 뜻한다. 그러했는가. 이미 어그러진 신호는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자살률이 조금씩 오르면서 드러나는 중이었다. 그 상황에서 IMF 사태가 터졌을 뿐이다.

 

1983~2023 자살률 추이 (통계청 지표누리-국민 삶의 질 지표). 통계청

 

외환위기는 어떻게 극복되었을까? 당시 한국의 구조조정 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IMF가 걱정할 정도였으니, 어떤 상황이었겠는가. 성장 일변도의 접근이 한국에 외환위기가 발생한 이유인데, 한국은 그보다 더 강한 성장의 정신으로 똘똘 뭉쳐가며 위기를 빠른 시간에 극복했다. 사람들이 쓰러지는 거야 당연했다.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자살률은 가파르게 증가한다. 이 시기 유행어는 '부자 되세요'였고, 서점에서 자기계발서들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가파르게 증가했다. 힘든 게 인생이라는 말이 무슨 철학이라도 되는 것처럼 부유했고 미치지 않고선 성공할 순 없다는 이야기가 교훈이랍시고 넘쳐났다. 성공 아니면 실패 정도가 아니라, 성공 아니면 죽어야 하는 세상이었던 거다.

 

극기, 인내, 노력만이 진리였던 시기에 누가 '마음이 불안하다'면서 도움을 청하겠는가. 단적인 예로 나는 여러 대학을 돌아다니는 시간강사 생활을 12년간 하면서 병원 진단서를 첨부한 유고결석계를 매 학기 수백 장 받았는데, 단 한 번도 정신과 질환이 적힌 의료기록을 본 적이 없다. 없어서였겠는가? 밝힌들 소용이 없으니, 드러내지 않는 거다. 우울증은 골절하곤 다른 취급을 받았으니 말이다. 우리는 상대의 병을 알면 '어쩌다가?'라는 추임새를 습관적으로 뱉는다. 다리가 부러졌을 때 이 물음은 운동하다가 등등으로 이어져 자연스러운 대화를 보장한다. 하지만 우울증은 끊긴다. 애써 이유를 설명한들 그것도 병이냐, 누군 안 힘드냐, 그러면 대한민국 사람 다 우울증 걸리겠네 등등의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러니 아파도 말하지 않는다. 우울증은 극기, 인내, 노력 앞에서 너무나도 납작한 증상이기 때문이다.

 

OECD 자살률 1위 국가가 되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사회는 움직였다. 연예인들의 연이은 자살은,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켰고 국가 차원에서의 관심은 보다 전문적으로 변했다. 정신과 의사들은 강연과 저술로 대중과의 간격을 좁혔다. 그들은 정신건강 돌봄의 중요성을 부단히 강조했고 그 덕에 사람들은 용기 내서 병원을 찾았다. 이 별 거 아닌 게, 그전까지는 ', 그런 걸로 병원을 가냐'는 식의 빈정거림과 마주해야 했으니 엄청난 변화였다. 자기계발에 너무 집착하면 차별과 혐오에 둔감한 괴물이 된다는 논의도 등장했다. 개인의 정신적 아픔을 차분한 논조로 솔직하게 고백하는 책들이 힐링서로 주목받곤 했다. 편견이 조금씩 깨지니,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자살률은 조금이나마 나아졌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 이후 야속하게도 자살률의 흐름은 약간의 굴곡도 있지만 우샹향이다.

 

자살률이 걱정이라면, 그래선 안 된다

왜일까. 두 번째 질문이 풍성하지 못하기 때문일 거다. 누가 자살하는지에 대한 첫 번째 질문은 정신건강을 돌보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연료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이제는 학교에서도 검사가 많다. 치료과정도 체계적이다. 학교 상담사를 만나고, 외부 상담기관을 소개받고, 병원을 가는 결심에 이르는 과정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위기관리 매뉴얼이 작동되고 있다는 거다.

 

하지만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되었을까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낯설다. 우울증의 원인을 찾아 몇 단계만 거슬러 올라가면,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자살이 '사회적 타살'이라는 말을 다들 이해는 하는데, 그 사회가 구체적으로 언급되면 듣는 둥 마는 둥이다. 많은 이들이 '우울증 환자가 늘어났다'는 걸 사회적 설명의 전부로 이해한다. 요인을 찾아가면 표정은 굳어진다. 경쟁, 능력주의, 승자독식, 엘리트주의, 양극화 등의 말들이 끼어들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저런 가치를 신봉하고 사는 거야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자살률이 걱정이라면, 그래선 안 된다. 사회비판 학문이 대학에서 사라지는 걸 찬성하는 거야 자유다. 하지만 자살률이 걱정이라면, 그래선 안 된다. 언론이 불평등에 예민한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자살률이 걱정이라면, 그래선 안 된다. 워라밸 챙기다가 이도 저도 안 된다고 말하는 거야 자유다. 하지만 자살률이 걱정이라면, 그래선 안 된다. 아무리 정신건강 돌봄 매뉴얼이 좋아졌단 한들, 자살위험군 분모가 커지면 감당할 수가 없다.

 

나는 강연에서 영화 <기생충>'한국이 왜 자살공화국인지 그 이유를 말해주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는데, '세상을 좀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좋겠다'는 충고를 들었다. 방송에서 초등학생이 의대준비반에 들어가는 시험을 '미쳤다'고 표현했더니,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을 폄하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기도 했다. 두 번째 질문(그 사람이 왜 그렇게 되었을까)을 어떻게든 막겠다는 세상에서, 자살률은 절대 줄지 않을 거다.

 

자살을 공중보건 국가비상사태의 영역에서 다룬다는 것은 그 원인과 해결책을 사회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찾겠다는 뜻이다. '사회적 타살'이란 말에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그 사회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개인에게 얽혀있는 복잡한 사회적 실타래를 조금도 축소하지 않아야 한다. 이는 ''의 무한반복으로 가능할 거다. 왜 자살하는가? 이런저런 이유가 있다면 그건 또 왜인가. 이런 접근을 지긋지긋하게 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도대체 어떠한지를 따지고 또 따져야지만 자살률은 유의미한 방향으로 향할 것이다.

오찬호 작가 | 프레시안 2025.03.19.

 

광장에서 우는 이들에 보내는 위로

3월에 내린 폭설로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장관을 보면서 뜬금없게도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를 떠올렸다.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2연은 국어교육을 받은 대다수 국민이라면 쉽게 읊조리는 구절이다. 이어서 유장하게 펼쳐지는 전체 11연은 아름다운 모국어의 향연이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4)

 

시의 해석을 찾아보니 지금은 남의 땅인 식민지의 울분을 잊기 위해 몽상의 상태로 들어가 국토의 아름다움을 절절히 느끼다가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을 담았다. 그러고 보니 나의 연상도 맥락이 닿는다. 봄의 설경은 도시에서조차 자연의 장엄함을 일깨웠다. 41중 추돌 교통사고나 기후변화 같은 현실을 잊은 채, 막 새싹을 틔우기 시작한 나뭇가지에 얹힌 탐스러운 눈송이에 홀린 셈이다. 자연은 인간의 눈에 비정상으로 보일 때마저 위로를 주며 깊은 감정을 끌어낸다. 더구나 지금은 정치적 입장이 어쨌든, 모든 이들의 가슴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삭막하고 지루한 시간 아닌가.

 

12·3 계엄 선포 이후 헌재 탄핵심판 결정이 임박한 지금까지 수많은 고비를 넘기며 광장의 대립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해방 80주년을 맞는 지금, 많은 이들이 해방공간의 극심한 좌우대립을 연상하며 두렵다고 한다. 트럼프와 푸틴은 정치 비즈니스를 위해 악수하는데 우리는 철 지난 반공과 자유민주주의를 논한다. 갈등의 뿌리에는 역사 바로 세우기과거사 진상 규명으로도 정리되지 않은 불화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있다. 누구에게는 미진하고 누구에게는 혹독한 청산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친위쿠데타는 은밀하고 교묘해서 잘잘못을 따지는 데 다시 기나긴 시간이 필요하다.

 

민주주의가 백척간두인데 한가한 소리인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건 화합을 향한 노력이다. 전두환 시대에 어른이 된 나는 진보이고, 어린 시절에 겪은 6·25도 끔찍한데 월남전까지 다녀온 외삼촌은 보수이다. 집안마다 사정은 비슷하다. 이런 우리는 한 핏줄이고 같은 언어를 쓰며 좁은 땅을 나눠 쓴다. 정치지도자 누구이든 링컨처럼, 만델라처럼 더는 쪼개지지 말고 하나가 되자고 말해주면 좋겠다. 그 이유는 상대에게 잘못이 없거나 밉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러다가 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생명이 한순간에 꺼지는 것처럼 사회와 국가의 체력도 단기간에 고갈될 가능성이 크다.

 

문명사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대변동: 위기, 선택, 변화>에서 핀란드·미국·일본 등 7개국이 국가적 위기 앞에서 어떻게 대응해 흥하거나 망했는지 분석했다. 예컨대 1970년대 핀란드는 옛 소련의 군사적·정치적 무자비함 앞에서 굴종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했는데 여기에는 약소국이면서도 자주권을 내세우다 1939년 소련의 침공을 당했을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뼈저린 경험이 있다. 이 책의 핵심은 국가의 위기관리 방법이 개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문제를 인정하고 규정하며, 핵심가치를 살피고 자원을 점검해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석열의 하이브리드형 쿠데타

국가를 개인의 연장이라거나 유기체라고 하면 자칫 파시즘적 사고로 비판받을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이든 국가든, 나아가 지구든 우주든 똑같은 순간이 절대 반복되지 않는 일회적 과정이라는 점은 마찬가지다. 현재의 선택이 미래를 좌우하며 현재의 선택은 머릿속의 큰 그림 또는 이념이 아니라 현재의 실존을 좌우하는 감각에 기반할 때 가장 정확하다.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로지 영원한 것은 저 생명의 나무라고 했던 말은 그런 의미일 것이다. 이론에 앞서는 게 생명이며 이는 개인의 삶에도, 사회적 삶에도 적용된다. 생명은 강인하지만 연약하기에 늘 조심하고 살펴야 한다. 지금 상황이 두렵다면 위험의 전조다.

 

며칠 전 어떤 속 깊은 분과의 대화 속에서 지금 미국과 한국의 정치를 보면 최소한의 멜랑콜리도 없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는데 여운이 길었다. 멜랑콜리가 뭐였지? 그냥 우울과 비애가 아니다. “세상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아는 사람은 우울증 환자”(문화비평가 수전 손태그)라는 말처럼 가라앉음으로써 예민하고 기민해진 사람이다. 눈물 흘리는 사람이다(김상욱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주목받는 건 그가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우는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지금 필요한 정치지도자의 미덕은 쪼개진 사람들의 슬픔을 들어주고 달래는 길이어야 할 것이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 경향 2025.03.19.

 

 

김구는 '킬러 집단 두목', 5·18은 북한 지령받은 폭도들의 내란?

가짜뉴스, 극우 광기에 빠뜨리는 마약

<스카이데일리>는 평생 대한독립을 위해 헌신해 온 김구 선생을 잔인한 킬러 집단의 두목 정도로 폄훼했다. 이뿐만 아니라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북한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령을 받고 투입된 폭도들이 일으킨 내란'이라는 내용의 연속보도를 냈다. 극우 성향의 음모론을 생산유포하는 진원지 또는 허브 구실을 충실하게 해왔다. 최근 내란 국면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체포 영장을 '반란 영장'이라고 부르는 등 윤석열의 비상계엄 자체를 옹호하는 보도도 마구 쏟아냈다. 또 부정선거론을 반박하는 이른바 조중동 등 보수언론을 가리켜 '민주노총 등 좌파에 신문사 내부가 잠식당했다.'는 주장을 담은 칼럼을 싣기도 했다. 이러한 내용은 조정진의 칼럼에서도 스스로 인정한 바 있다.

 

조정진은 자신들이 보도한 중국 간첩 체포 관련 가짜뉴스가 들통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은 듯하다. 아니면 조회 수가 오르고 신문 주목도가 올라가며 극우 집단에서 영웅 매체로 대접받는 것에 도취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말이 있듯이 가짜뉴스의 생산유통 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캡틴 코리아' 안병희, 극우와 극우 유튜버들의 민낯을 알려

가짜뉴스의 출처였던 '캡틴 아메리카' 코스프레를 한 자칭 '캡틴 코리아' 안병희가 중국대사관 무단 침입을 시도하고 경찰서 기물을 부수는 등 기괴하고 폭력적인 언행을 하다가 붙잡혀 구속됐기 때문이다. 그가 <스카이데일리>의 문제 기사를 쓴 기자와 나눈, 조작 사실이 담긴 음성통화 내역 등이 자세하게 알려지면서 <스카이데일리>는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또 설상가상으로 그가 구속되기 전 <추적60> <피디수첩> 등 심층 추적방송 프로그램의 피디에게 털어놓은 내용은 가히 <스카이데일리>를 사이비 언론사라고 비판하고도 모자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안 씨의 삶 자체가 가짜였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극우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망가지지는 않을 터인 데라는 생각을 떠올릴 정도였다. 미 국방부 정보요원, 미국 중앙정보국 요원, 이스라엘 모사드 요원, 미국 군인 주장 모두 가짜였다. 신분증도 약간의 돈만 주면 만들 수 있는 코스프레용으로 조악했다. 미국을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순수 대한민국 육군 병장 출신이었다.

 

모든 것이 한 점의 의혹도 없이 드러났음에도 조정진은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윤석열과 김용현, 그리고 극우 집단에 동조하는 국민의 힘 일부 의원, 극우 광신도, 부정선거 음모론 광신자들과 궤를 같이하는 태도다. <스카이데일리> 조정진 대표의 다음과 같은 발언이 이를 증명한다.

"다른 언론들이 우리를 가짜뉴스로 몰아가는데, 곧 진실이 드러날 거다. 다른 언론들 도대체 나중에 어쩌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안쓰럽다. 윤 대통령이 죄가 없이 구속됐으니 균형감을 맞추기 위해서다. 우리가 진실을 보도하니까 요즘 감당이 어려울 정도로 구독 문의가 들어온다. (스카이데일리 보도가 오보로 확인되면) 사과 정도가 아니라 책임을 지고 저는 언론계를 떠나겠다."고 말했다.

 

"책임지고 언론계 떠나겠다."라는 조정진, "안 떠나겠다."라는 말과 동의어

이는 언론계를 떠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한국 언론 역사상 이보다 더 확실하게 오보가 확인된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떠날 생각이 정말 있었다면,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의 심층 탐사 프로그램을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그날 바로 수치심으로 언론계를 떴을 것이다. 이런 유형의 인간은 한 달, 두 달, 6개월, 일 년 아니면 언젠가 역사는 우리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줄 것이라는, 변명 같지 않은 변명을 해대며 얼굴에 철판을 두껍게 깔고 계속 가짜뉴스를 만드는데 열을 올릴 것이다. 수치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전형적 사이비 언론인의 행태다.

지금까지는 조연들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 주목해야 할 주연과 그들이 펼치는 이야기는 따로 있다. 이 가짜뉴스를 토대로 영화를 만든다면 주연은 황교안 전 대통령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와 민경욱 전 국민의힘(새누리당) 의원이자 <KBS 뉴스 9> 앵커가 맡아야 한다.

 

이 둘은 공통점이 있다. 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서울 종로와 인천 연수구에서 나란히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함께 낙선했다. 그 뒤 그 선거가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며 선거소송을 벌여 이 또한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 판결을 함께 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황교안은 공안검사로, 법무부장관, 총리를 지내면서, 민경욱은 KBS 기자, 특파원, 앵커, 청와대 대변인, 국회의원으로서 각각 국민의 돈을 듬뿍 받은 바 있다. 물론 <스카이데일리>도 정부, 특히 윤석열 정부 때 공익광고 명목으로 국민의 호주머니 돈을 상당히 받았다.

 

자기모순에 빠진 황교안, "친중 세력이 결탁하여 부정선거와 내란 조작"

황교안은 마침내 극우 유튜브 방송 내용과 <스카이데일리> 기사 등을 밑거름으로 해 214일 프레스센터에서 부정선거 관련 외신기자회견을 자청해 연다. 이 자리에는 민경욱 전 의원과 안병희도 캡틴 아메리카 복장을 한 채 민경욱의 어깨 부위를 열심히 마사지하면서 황교안의 발언을 경청했다.

"김일성 장학생과 주사파 그리고 중국 통일전선공작부 사주를 받은 친중 세력이 결탁하여 부정선거와 내란 조작으로 대한민국을 극심한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이런 가짜뉴스로 외신기자들에게 말하는 것은 한마디로 매국 행위이며 국격을 떨어트리고 국민 갈라치기를 통해 사회 혼란을 부추기려는 반국가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이렇게 해야 맞다.

"윤석열 추종 친윤 국회의원과 탄핵 심판 피청구인 변호인단, 비상계엄 지지파 그리고 전광훈과 극우 매체유튜브의 사주를 받은 극우세력이 결탁하여 부정선거 관련해 조작한 가짜뉴스로 대한민국을 극심한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황교안은 또 최근 가짜뉴스가 확산하고 있다고 KBS 피디가 질문을 던지자 "가짜뉴스는 확산하면 안 되죠. 가짜뉴스가 나오면 철저히 조사해서 엄벌해야 합니다. 나는 <스카이데일리> 쪽에 확인을 했어요. '이거는 확인이 된 거다'라고 얘기했어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말을 하고 있다. 자신이 '손 편지' '유튜브' 커뮤니티를 통해 가짜뉴스를 퍼트리고 다니면서 "철저히 조사해서 엄벌해야 한다."라면 형용모순과 뭐가 다른가. 자신부터 가짜뉴스인지 아닌지 철저히 조사해야 하지 않을까. 검사 시절 죄를 저지른 피고인이 거짓말로 둘러대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무죄로 석방했는가?

황교안의 이런 말은 최상목 대통령권한대행이 18일 마은혁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18일 윤석열 탄핵 심판 결정을 앞두고 헌재 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도긴개긴이다. 윤석열은 유독 말과 행위가 일치하지 않은 인물만 중용하거나 자신 곁에 두고 있다.

 

최상목과 황교안의 언행 불일치 도긴개긴 경쟁

그가 외신기자회견을 한 다음 날 디시인사이드 '국민의힘 갤러리'에는 '황교안이 유튜브에서 언급한 99중국인'이란 제목으로 "황교안이 유튜브 커뮤니티에서 99중국인 언급했고 윤통 변호인단에 합류할 만큼 이번 사태에 대해선 측근이라는 말인데. 99중국인도 윤 통해서 들은 게 있어서 그런 말 한 거 아닐까?"란 글이 실렸다. 황교안은 박근혜 정부에서 한때 많은 것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했고 미래통합당 대표로 있으면서 202021대 국회의원 선거도 최고책임자로서 진두지휘한 적이 있어 언행을 함부로 하면 안 되는데 너무나 가볍게 처신한다는 비판을 받기 충분하다.

 

사실 중국인 간첩 99명이 한꺼번에 선관위 연수원에서 연수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허무맹랑하다. 한 명도 아닌, 두 명도 아닌 99명이나 되는 엄청난 수의 간첩이 한자리에, 그것도 대한민국 헌법기관 연수원에 있었다는 것은 소설을 잘 쓰는 사람도 그런 설정은 절대 하지 않는다. 중국이란 나라가 그렇게 허술하게 간첩을 관리한다는 말인가. 또 그들이 체포돼 미국으로 송환됐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실이라면 엄청난 미중 간 외교 분쟁이 생길 터인데 왜 두 나라는 조용한가.

 

가짜뉴스의 설계자인 '캡틴 코리아' 안병희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민경욱, 황교안뿐만 아니라 정보기관 사람까지 속이는 데 성공했다"라며 조롱하듯 떠벌렸다. 여론 조작까지 성공한 자신을 "거짓말로 모두를 속인 능력자"라고 자찬하며 우쭐댔다. 황교안한테 엉뚱한 일에 시간 허비하지 말고 최근 KBS '추적60-극단주의와 그 추종자들: 계엄의 기원 2' 방송에서 안병희가 긴 시간 동안 한 말을 한 번이라도 들어볼 것을 권고한다.

 

<스카이데일리> 등 가짜뉴스 양산 매체, 존재 자체가 백해무익

'중국 간첩 99명 체포' 등 일련의 가짜뉴스를 줄곧 보도해 온 <스카이데일리>에 대해 한국신문윤리위원회는 지난달 12일 자사 홈페이지 게재 경고를 결정했다. 이에 <스카이데일리> 쪽은 신문윤리위 제재 조치를 따르지 않겠다며 버티고 있다. 막가겠다는 것이다. 이어 인터넷신문윤리위도 123<스카이데일리>의 부정선거 음모론 기사 4건에 대해 경고 제재를 결정했다. 이런 태어나서도 안 될, 존재 자체가 백해무익한 가짜언론, 가짜언론인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황교안이 직접 참석해 축사한 지난해 <스카이데일리> 송년 및 후원의 밤 행사에 내건 펼침막에는 '시대의 금기를 깨는 정론 종합일간 신문'이란 글귀가 적혀 있었다. 가짜뉴스 척결은 이 시대의 과제임은 틀림없다. 윤석열도 강조했다. 윤석열이 입버릇처럼 말한 거짓말 가운데 하나라도 맞으려면, 가짜뉴스 척결을 위해서라도 이 신문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가짜뉴스를 숭배하는 사이비 언론 종합일간 신문'이라고 해야 할 것을 이날 글귀를 잘못 쓴 게 아닐까싶다.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말이 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한테는 강력한 수단을 써야 한다는 말로 읽힌다. 마약보다 더 중독이 심한 아스팔트 태극기에 중독된 이들, 극우 유튜버, 극우 매체 사이비 언론인한테는 사실 검증(팩트 체크), 설득, 토론, 포용, 관용이 아무짝에도 소용없다. 스스로 달콤한 가짜 중독에서 헤어날 결심을 하지 않는 이상.

 

<워싱턴포스트> '흑인 소년 마약' 보도로 워터게이트 명성 추락시켜

언론의 역사에서 오보와 가짜뉴스는 종종 있었다. 대형 사건도 있었다. 언론학 교과서에 나오는 첫 페이지는 늘 1980928<워싱턴포스트>에 실렸던 특집기사 '지미의 세계'가 등장한다. 그 해 퓰리처상을 받은 이 기사는 유명해지고 싶었던 20대 한 풋내기 기자가 쓴 완전 소설인데도 아무도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지미는 워싱턴시에 사는 소년이다. 마약에 찌든 여덟 살 흑인 어린이가 주인공으로 그려졌다. 기사에 따르면 다섯 살 때부터 마약에 손을 댔다. 미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워싱턴시장의 특별명령으로 경찰을 총동원해 6개월간 그가 거주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을 뒤졌으나 허사였다. 가공의 인물, 유령이었기 때문에 찾아낼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취재원 보호를 이유로 기사를 쓴 기자는 경찰 협조를 거부했다.

 

이때부터 신문사 일각에서는 기사의 진실에 의구심을 가졌으나 회사 쪽이 기자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면서 그냥 지나갔다. 그는 마침내 퓰리처상을 탔고 언론계의 신데렐라가 됐다. 그 기자에 대한 조명이 쏟아졌다. 그가 이전에 잠시 있었던 신문사 동료들은 언론에 소개된 그의 경력이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과 달라 <워싱턴 포스트>에 이를 알렸다. 본격 추궁한 결과 학력이 가짜였다. 입사 원서에 프랑스어 능통이라고 적었으나 프랑스말은 한마디도 할 줄 몰랐다. 기사에 대해 추궁했다. 그가 쓴 기사는 논픽션이 아니라 픽션이었다. 기사에 등장하는 지미는 물론이고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어디 사는지도 알지 못했다.

상을 받은 지 이틀 뒤 <워싱턴포스트> 발행인은 기자회견을 열어 '지미의 세계'가 가짜 기사임을 인정한 뒤 다음 날 1면 사설로 공개 사과를 했다. 기자는 그날 바로 회사를 관뒀고 상을 반납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세상에 알려 명성을 쌓은 <워싱턴포스트>가 날조 보도로 무너져 내렸다.

'소설' 또는 '날조 기사'라는 점에서 보면 '중국 간첩 99명 체포''지미의 세계'는 샴쌍둥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중국 간첩 99명 체포'와 같은 날조 보도가 있었다. 199112월 여성전문잡지 <웅진여성>10월 창간호에 이어 세 번째 잡지를 펴냈다. 창간호에 뜨거운 반응을 보였던 독자들의 관심을 이어가기 위해 이 잡지의 기자는 무리수를 두었다.

 

<웅진여성> '에이즈 여성 복수극' 날조 보도로 폐간, 사법 처리

<웅진여성>12월호에서 'AIDS 발병 후 2년 동안 관계한 장관국회의원기업인변호사의사교수대학생 등 40명 명단, 비밀일기 최초 공개'라는 제목의 특종기사를 내보냈다. 대중의 호기심을 한껏 불러올 수 있으며 매우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후천성면역결핍증에 걸린 20대 배우 겸 모델이 세상 모든 남자에게 복수하겠다며 수십 명과 성관계를 맺고 그 내막을 낱낱이 기록했다는 일기장을 입수했다는 것이다. 대문짝만한 기사 아래에는 한 여인 사진이 눈만 가린 채 실려 있었다. 이것은 실제 그런 여성이 있는 것처럼 독자들의 사리 판단을 흩트려 놓는 교묘한 장치였다.

하지만 이 기사 또한 '지미의 세계'처럼 세인의 관심을 너무나 크게 받는 바람에 날조임이 드러나게 된다. 기사 내용의 근거가 된 이 일기장은 한 르포작가가 제공한 것이다. 그는 비슷한 내용을 다른 잡지에 기고해온 데다 일기장에 기록된 날씨가 실제와는 완전 딴판으로 드러나면서 꼬리를 밟히게 된다. 그리고 이 기사에 실린 여성은 20대 모델 겸 배우가 아니라 실은 결혼해서 잘살고 있는 엉뚱한 사람이었음이 드러나면서 사기극은 막을 내렸다.

 

특종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우리 언론의 속성을 간파한 한 르포작가가 <웅진여성> 기자와 편집장에게 접근해 사기를 친 것인데 잡지사가 앞뒤 살피지 않아 결과적으로 그에게 놀아난 것이다. 아니면 <웅진여성> 쪽이 어느 정도 거짓일 가능성을 눈치채면서도 판매 부수를 늘리기 위해 속은 척했을 수도 있다. 앞길이 탄탄할 것 같았던 <웅진여성>은 폐간을 선언했고 르포작가와 기자, 편집장은 줄줄이 입건됐다.

 

<스카이데일리><웅진여성>처럼 처리해 독을 뿌리 뽑아야

'지미의 세계''에이즈 여성 고위층 보복 성관계' 기사는 '중국 간첩 99명 체포' 기사와 많은 부분이 닮았다. 하지만 그 후속 해결 과정은 완전히 다르다. <워싱턴포스트>는 기사가 가짜임이 드러나자마자 즉각 퓰리처상 반납과 1면 공개 사과를 한 것과 다르게 <스카이데일리>는 자신들이 보도한 내용이 완전 가짜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명명백백하게 드러났음에도 아직도 눈감고 모르쇠를 하고 있다. 물론 <워싱턴포스트>와 같은 선상에 <스카이데일리>를 놓고 비교하는 것이 그리 적절치 않다고는 생각한다. <스카이데일리>를 너무 대접해 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소한 <웅진여성>처럼은 해야 하지 않을까. 신문사를 자진 폐간토록 하고 사법부가 제보자 안병희와 이를 보도한 기자, 관련 부서장, 조정진 발행편집인 정도는 모두 입건하고 사법부는 가장 강력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 마땅하다. <웅진여성>'에이즈 복수극'보다 '중국 간첩 99명 체포'가 우리 사회에 끼친 해악이 수백 배, 수천 배 더 심각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거짓말, 가짜뉴스, 음모론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대중에게 독을 뿌리는 일을 뿌리 뽑아야 한다.

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장 | 프레시안 2025.03.20.

 

누가 스카이데일리에 광고를 몰아주었나

한국언론진흥재단(이하 언론재단)의 정부광고지표 조작 의혹이 혐의 없음으로 종결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 특정 언론에 정부광고 단가를 올려주기 위해서 열독률 등의 지표를 조작했다는 혐의를 제기했던 것인데, 경찰 조사를 통해서 아무런 혐의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뒤늦게나마 무고함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현 정부가 감사원과 수사기관을 앞세워서 얼마나 집요하게 괴롭혔으며 그 과정에서 무고한 이들이 얼마나 심한 고초를 겪었는지를 생각하면 그저 없던 일로 넘어갈 수는 없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과거 방송통신위원회의 티브이조선재승인 심사에 대해서도 역시 점수 조작 의혹이 제기되었고 감사원과 수사기관을 동원하여 당시 한상혁 위원장을 비롯한 많은 관련자를 수사하고 지금까지도 일부는 기나긴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정부 들어서 두 기관에 대해 조작 의혹이 제기되고 거친 수사 압박이 가해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두 기관에 대한 압박은 모두 이사장이나 위원장이 윤석열 정부의 사퇴 요구에 순응하지 않던 상황 속에서 진행되었고, 그 이면에는 전 정부 시절 정부광고 단가나 재승인 심사에 대해 일부 보수 언론사들이 갖고 있던 불만이 숨어 있을 수 있다.

 

과거 정부의 정부광고 집행 기준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아무런 혐의를 찾지 못했던 것과 달리, 정작 현 정부의 정부광고 집행에서는 미심쩍은 부분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스카이데일리의 정부·지자체·공기업 등 광고 수주 건수가 윤 정부 출범 이후 2배가 넘게 늘어난 것이다. ‘중국인 간첩 99명 체포라는 오보를 통해서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언론사에 정부·지자체 등의 광고를 한해에 200건이 넘게 몰아줬다고 한다. 스카이데일리와 함께 부정선거론을 제기했던 다른 생소한 몇몇 인터넷 뉴스 미디어들에도 정부광고비의 집행이 늘어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광고비를 집행하는 언론재단이나 방송사업자 인허가를 책임지는 방통위가 가장 먼저 자리를 빼앗아야 하는 최우선의 전리품이 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계엄까지 불러들인 부정선거론의 불씨가 우리의 세금인 정부광고비를 들여서 키워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정부광고비가 누군가에 의해서 마치 주머닛돈이 쌈짓돈인 것처럼 자의적으로 가벼이 쓰이고, 그 후과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재앙으로 돌아온 셈이다.

 

정부와 언론 간에 불공정한 유착이 발생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권의 도덕성과 관계된 문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행정부의 자의적 결정권이 과도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현재의 규제와 진흥 체계가 여지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진단도 필요하다. 2019년 정부광고법(정부기관 및 공공법인 등의 광고 시행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 현재의 정부광고는 언론재단이 독점적으로 수탁하여 집행하게 되어 있다. 민간기업이 아닌 공기관인 언론재단이 정부광고를 독점 수탁하도록 한 것은 무엇보다 집행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보장하고 이를 통해 발생하는 수수료의 수익을 공익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헌법재판소는 2023년 언론재단의 정부광고 독점 수탁에 대해서 합헌 판정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 스카이데일리에 정부광고를 무더기로 지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당시 소수의견으로 제시된 단일 수탁기관인 언론진흥재단이 이념적 편향성을 가지고 특정 정치성향을 가진 매체에 광고를 몰아주는 등의 행태를 보일 경우, 정부광고의 투명성이 현저하게 낮아질 위험도 있다는 지적이 더 현실감 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정작 정부에 대한 정당한 감시와 견제에 충실한 언론들에 대해서는 고소·고발을 남발하면서, 언론 챙기겠다고 기자들 불러 모아서 김치찌개 끓여주고 해외연수 많이 보내주겠다고 선심을 쓰는 정도의 언론관을 갖고 있던 이 정부의 수준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이미 망해버린 현 정부가 우리에게 남겨놓은 숙제는 다시는 이러한 저급한 수준의 정부에도 쉽게 휘둘리지 않는 시스템을 어떻게 갖출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현재와 같은 국가 독점적 행정 체계를 벗어나 협력적 규제 진흥 체계를 만들기 위한 섬세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홍원식 | 동덕여대 ARETE 교양대학 교수 | 경향 2025.03.20.

 

 

다시는 대통령이 총칼을 들지 못하게

마치 봄날을 기다리는 것 같다. 봄꽃이 막 시작할 무렵, 갑자기 큰 눈이 내렸다. 봄은 올 듯 말 듯 영 쉽지 않았다. 내란 사태를 극복하는 일도 그랬다. 해괴한 셈법을 동원해 내란 우두머리를 석방했고, 탄핵심판은 늘어졌다. 헌법재판소는 결정이 왜 길어지는지 설명조차 없었다.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조차 없었다. 국민의 노심초사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란 세력의 반발을 염려해 결정문을 다듬고 또 다듬으며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지만, 막연한 추정일 뿐이다. 국가기관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기본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이제 꽃샘추위도 물러나고 봄은 성큼 다가왔지만, 헌법재판소에서 들려올 봄소식은 아직이다. 답답한 나날이다. 그래도 머지않았을 거다. 결과야 알 수 없지만, 헌법과 법률대로라면 파면이 분명하다. 우리는 이렇게 또 한고비를 넘게 될 거다.

문제는 앞으로다. 박근혜 탄핵 이후 우리의 민주주의는 굳건하다고 여겼다. 적어도 퇴행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는 삐걱거렸고 윤석열 정권 출범이라는 결정적 오점으로 이어졌다. 윤석열 정권의 패악질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퇴행은 50년 가까운 세월조차 훌쩍 건너뛰었다.

 

윤석열은 한동안 멀쩡해 보였던 사람이었다. 그가 내란을 일으킬 거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그게 핵심이다. 지금과 같은 토대라면, 2의 윤석열이 나오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어떻게 해야 윤석열 같은 괴물을 막을 수 있을까?

오랫동안 정치를 했던 이들은 개헌을 이야기한다. 개헌이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것처럼 주장한다.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중임으로 고치면 제왕적 대통령을 비롯해 어떤 문제든 단박에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한다. 뭘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근거 제시도 없이 구호만 요란하게 외친다. 실제로는 내각제를 꿈꾸는 일부 개헌론자들에게 우리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문제의 핵심은 대통령이 권력기관을 한 손에 틀어쥐고 맘대로 쓰는 데 있다. 경찰, 검찰, 국가정보원, 군대 등 권력기관은 오로지 국민만을 위해 존재해야 하지만, 대통령에게만 충성하는 이상한 조직이 됐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변질했다.

대통령은 인사권과 징계권, 당근과 채찍을 갖고 권력기관 종사자들을 장악하고 제 맘대로 움직인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권력기관에 대한 대통령의 장악력이 느슨해지기도 하지만, 윤석열 같은 사람이 등장하면 권력기관이 친위쿠데타에 동원되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대통령의 눈에 들면 성범죄로 쫓겨났거나 능력 부족으로 일찌감치 승진을 포기한 퇴역 장군도 한자리를 차지하는 부푼 기대를 가질 수 있다. 충암고 출신들이 그랬듯, 대통령과 통하면 만사형통이다. 그렇다고 행정부 소속 기관들을 대통령이 아닌 누군가에게 맡겨둘 수도 없다.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선출한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잘못하면 내란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대통령이 있었기에 권력기관 개혁도 가능했다.

답은 민주주의에 있다. 권력기관에도 민주주의 일반 원리를 적용하는 거다. 권력기관에도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적용하고 민주적 통제와 감시를 받게 하는 거다. 이를 위해 국민권익위원회나 국가인권위원회를 설치했다. 하지만 권력 감시를 위해 호민관 역할을 해야 할 기관들은 민망한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고쳐 쓰는 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망가졌다.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는 늘 현직 대통령의 일탈을 통해 반복적으로 훼손됐다. 내란 세력은 늘 집권 세력이었다. 그래서 대통령의 힘을 빼는 게 중요하다. 이건 대통령이 된 사람의 선의나 약속을 믿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권력기관을 감시하는 역할을 국회에 맡기면 실효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 국회는 기본적으로 행정부 감시 역할을 수행하지만, 겨우 손발 없는 머리 역할뿐이다. 국회에 옴부즈만을 설치해 권력기관의 불법을 조사하고 관련 공무원을 징계할 권한을 주는 거다. 국회 옴부즈만 조사 결과에 따라 징계를 당할 수 있다면, 대통령의 위법부당한 지시에 따를 공무원은 한 명도 없을 거다. 대통령으로서는 총칼을 내려놓는 것이겠지만, 대통령이 국민이나 정치적 반대자를 향해 총칼을 휘두르는 일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 국민은 걱정을 덜어서 좋고, 대통령은 뭐든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지 않게 할 수 있어서 좋다. 이제 대통령도 총칼을 내려놓을 때가 됐다.

오창익인권연대 사무국장 | 경향 2025.03.20.

 

삼중고에 빠진 한국 경제

국내 2위 철강업체인 현대제철이 지난 14일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임원 급여를 20% 삭감하고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포항 2공장을 축소 운영해왔다. 국내 내수 경기 부진에 따라 철강 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 중국산 철강재가 밀려들어 오며 점유율을 잠식하고 있는 탓이다. 이에 더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12일부터 철강 제품에 관세 25%를 물리면서 수출 경쟁력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내수 침체, 트럼프 관세 전쟁에 따른 수출 타격, 중국과의 경쟁은 비단 현대제철뿐 아니라 한국 경제 전반이 직면해 있는 삼중고다.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내수 침체는 좀처럼 회복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소비동향을 보여주는 소매판매는 지난해 2.2% 감소해 카드대란 사태가 벌어진 2003(-3.2%) 이후 21년 만에 감소 폭이 가장 컸다. 건설투자 역시 4.9% 줄었다. 지난 1월에도 소비와 건설투자 부진은 이어졌다.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0.6%, 건설투자는 4.3% 감소했다. 느닷없는 내란 사태는 그렇지 않아도 가라앉던 소비심리를 더욱 끌어내렸다. 자영업자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폐업하는 자영업자가 늘어나면서 전체 취업자 수에서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9.8%를 기록해 사상 처음으로 20% 아래로 떨어졌다.

 

내수가 부진한 와중에 경제를 떠받쳤던 수출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둔화세로 접어들었다. 지난 1~2월의 수출 실적은 전년 대비 4.7% 감소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전쟁까지 본격화하면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는 직격탄으로 작용할 것이다. 지난 12일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25%의 관세가 부과되기 시작했고, 다음달 2일에는 상호관세가 시행될 예정이다. 우리나라의 대미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와 자동차도 주요 타깃이다. 트럼프 관세 전쟁은 단순히 우리 수출품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수출 감소로 이어지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관세 부담을 이기지 못한 우리 기업들이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생산 기지를 옮기게 되면 국내 제조업의 공동화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이는 국내 일자리 감소와 지역 경제 피폐화로 귀결될 것이다. 당장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 신공장의 연간 생산 능력을 30만대에서 50만대로 늘리기로 했다.

 

중국 기업들의 굴기는 한국 산업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 11일 한국은행 베이징사무소는 중국의 조선·해운업 동향 및 향후 전망보고서에서 중국의 조선업은 수주 실적과 선종, 밸류 체인 측면에서의 경쟁력 등을 감안할 때 세계 톱클래스 수준인 것으로 평가된다고 분석했다. 과거 중국 조선업이 벌크선 같은 저가 선박 위주였다면 최근에는 컨테이너선, 엘엔지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도 많아지면서 한국 조선업과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조선업뿐만이 아니다. 철강, 석유화학, 태양광, 디스플레이, 전기차, 2차 전지 등 국내 제조업의 주요 업종이 모두 중국 제품과의 경쟁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의 기술 격차도 점차 좁혀지고 있다. 지난달 한국의 반도체 수출액은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공세 탓에 전년 대비 3% 감소했다. 2000년대 초반 저부가가치 산업을 중심으로 값싼 중국산 제품이 세계 시장을 휩쓸었던 시기를 차이나 쇼크 1.0’ 시대라고 한다면, 지금은 고부가가치 첨단 분야에서까지 중국이 세계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나가고 있는 차이나 쇼크 2.0’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선고가 조만간 이루어지면, 두달 뒤에는 새로운 정부가 탄생할 것이다. 차기 정부는 추락한 국격을 회복하고 후퇴한 민주주의를 바로 세워야 할 중차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 이와 함께 삼중고에 시달리는 경제의 돌파구를 찾고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과제 역시 요구받고 있다. 이를 위해 적극적 재정정책으로 내수 부진을 타파하고 경기를 진작해야 한다. 과감한 재분배 정책으로 서민들의 가처분소득과 구매력을 높여 소비를 활성화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와의 주도면밀한 협상을 통해 수출 피해를 최소화할 묘책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산업정책을 추진해 신성장산업을 육성하고, 첨단기술 확보를 위한 인재 양성과 연구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치밀하면서도 담대한 정책으로 한국 경제가 정점을 지나 내리막으로 접어들었다는 피크 코리아론을 잠재워야 한다.

안선희 논설위원 | 경향 2025.03.20.

트럼프의 공화당, 윤석열의 국민의힘

 

 

왜 우리는 연대하며 싸우는 것일까?

뿌리깊은 민주주의와 공평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연대하고 투쟁해야 한다. 지배세력은 시대를 초월하여 협력하며 공고한 방어벽을 쌓고 기득권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촛불 항쟁의 성과에 대한 실망으로 좀처럼 살아나지 않던 불이 이번에도 발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왜 우리는 실망하고도 또다시 연대하며 싸울 수 있는 것일까?

100여 년 전 한반도에서 처음 만들어진 전국 단위 자율 노동단체가 새로운 시민으로 등장한 노동자에게 강조한 '덕목'이 우리의 무의식 속에 새겨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최초 전국 자율 노동단체 '조선노동공제회' 창립

조선노동공제회는 31운동 다음 해인 19204월에 노동자를 포함한 언론인, 교육자, 변호사 등에 의해 창립되었다. 창립을 주도한 그들은 1907년 설립된 신민회(新民會) 계열로서 1909년에 조직된 합법적 청년단체인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와 비합법적 청년단체인 대동청년단(大東靑年團)의 회원이었다. 대동청년단은 국권 회복을 목표로 활동했는데, 1911년 신민회 사건 등으로 활동이 크게 위축된 상태였다.

 

그러나 그들은 31운동 직후부터 비공식 집회를 계속 개최하여 '노동문제연구회(勞動問題硏究會)'를 조직하였다. 이 연구회가 조선노동공제회의 기반이 되었다. 조선노동공제회 활동은 창립 당시에는 지식층과 경성에 있는 본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노동자를 중심으로 조직된 전국 각지의 기존 노동단체 또는 새로운 단체가 지부로 가입하기 시작한 뒤에는 노동자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활동으로 조선노동공제회 회원 수가 해산 직전인 1922년에 15,000명에 이르렀다.

조선노동공제회 기관지 <공제(共濟)>는 한글 한자 병용이고, 창간호(19209, 170), 2(192010, 134), 7(19214, 94), 8(19216, 128)만 현재 남아있다. 3호부터 제6호까지는 총독부가 검열하여 발행을 금지했다.1) 하지만 남아있는 <공제>의 내용만 살펴봐도, 우리나라 최초 전국 노동자 자율단체의 주장과 활동 취지를 상당 부분 알 수 있다.

 

'노동멸시'관 비판

조선노동공제회는 '인격주의(人格主義)'를 이론적 기반으로 삼았으며, 노동문제를 중심에 두고 당대 사회 개혁을 모색했다. 이들은 조선의 근본적인 노동문제가 '일한다는 것' 그 자체, 특히 육체노동을 경시하는 사회적 인식에 있다고 판단하고, 이러한 노동멸시관을 강하게 질타했다. "빈곤하다 하되 회사직공 노릇을 하는 이가 얼마나 되며 고학생(苦學生)이라 하되 지게를 지는 이가 그 얼마나 되는고"2)라는 지적은 이를 잘 보여준다.

또한 "노동을 천()히 할 뿐만 아니라 노동하는 이의 인격까지 천()히 여기었다".3) "문화가치의 창조자를 존시(尊視)하고 물질 가치의 창조자를 천시(賤視)하는 것은 현 사회의 일반적 경향이며 도덕(道德)"4)이라며, 당시 노동하는 사람의 인격이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조선노동공제회는 노동을 멸시하는 당시의 세태를 직시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동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다음과 같이 제시, 강조했다.

 

'공제' 창간호, 조선노동공제회, 1920. 9

 

조선인노동자의 덕목(ethos)

1. 노동존중

첫째, 그들은 노동은 '()스러운 행위'이기에 스스로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노동공제회는 "평등(平等)의 광명(光明)을 통찰한 자는 반드시 노동(勞動)의 신성(神聖)을 말해야 하니, 이것이 어찌 오늘날의 새로운 말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국제노동문제가 창도(唱導)된 이후로, 노동의 신성에 대한 인식은 과거에는 일부 소수와 국부적인 것이었으나, 이제는 일반적이며 세계적으로 확산하였고, 이상적으로만 여겨지던 것이 이제는 사실적으로 현실(顯實)화하였도다."5)라며 노동신성주의(勞動神聖主義)의 세계적 확산을 전했다.

노동자는 스스로 깨어나야 하며, 이것이야말로 노동자가 나아가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조선노동공제회는 지적한다. 그들은 힘이 있는 곳에 생명이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도 인간의 권리를 주장하고 실천하며, 노동자의 의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지혜(智慧)''()'을 함양하고 기능을 숙련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자는 '노동은 신성하다'라는 진리를 깨닫게 되며, 더 나아가 '평등하고 밝은 사회'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또한 노력하고 분투(奮闘)하면 노동자의 '인권''지위'가 회복되고, 노동의 대가도 공정하게 분배될 것이나 만약 노동자가 깨어나지 못하고 행동이 느슨해진다면, 고통은 두 배로 커지고 불안은 극도로 심해져, 단 한 순간도 삶의 안정과 평온을 누릴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고 주의를 환기했다.6) 즉 신성한 행위인 노동을 통해 행복을 누릴 수 있고, 사회의 한 구성원의 지위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강조점이었다.

 

2. 자립

둘째, 그들은 노동은 '스스로 독립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조선노동공제회는 설립취지서에서 자녀를 교육하지 못하고 직업을 보장하지 못하며, 병이나 재난을 구제하지 못한 채, 다만 남을 위해 부림을 당하고 천대를 받으며, 남을 위해 누에를 치고, 남을 위해 돌을 다루는 일을 해왔다고 지적했다.7) 한편 노동자들은 서로 이해가 일치하고 지위도 같으니, 스스로 가슴을 치며 깊이 생각해 보면, 남을 원망하기보다는 스스로를 책망하지 않을 수 없을 뿐이라며 그동안의 상황을 냉철히 언급했다.

그러나 이제는 스스로 돕고(自助), 스스로 살아가고(自存), 스스로 깨닫고(自覺), 스스로 발전하는 것(自高)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자신이 노력하여 얻은 결과를 남에게 빼앗기지 않으며, 자신의 의식주와 행복을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구하여, 마침내 하늘의 뜻에 따르는 바른길이 열렸으니, 노동자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고 그들은 강조했다.

 

3. 사회적 헌신

셋째, 그들은 노동을 '사회적 의무를 수행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조선노동공제회는 '개인적 사람'만 노동하는 사회는 오히려 해롭고, 개인적 사람의 상태에서 벗어나 '사회적 사람'의 상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사람으로 전환하려면 '강대한 자극''유력한 원조'가 필요한데, 그것은 노동자의 심중(心中)"사회적 헌신(Social service)"의 관념을 환기하는 것이었다. 8)

그들은 "노동자문제"라고 하는 것이 "물질상의 문제"가 아니라, "인격 가치의 인식과 인격 가치의 유지, 말하자면 경제적 조건과 정신적 조건이 배합되어야 처음으로 완전"하게 되고, "쌍방이 일치"되어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노동공제회는 '노동자문제' 해결을 위한 전제로 경제적 조건의 충족을 주장하면서도,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인격'을 자각하고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몸속에 지닌 '사회적 헌신' DNA

조선노동공제회는 새로운 시민으로 등장한 노동자가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고 사회적 의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사회 개혁의 덕목을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노동은 신성한 행위이므로 노동자 스스로 존중해야 하며, 동시에 '사회적 헌신 행위'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또한 노동자는 노동을 통해 진정한 '자립'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자립'이란 자신이 사회를 구성하는 한 인격체라는 것을 자각하고 '인격을 유지하기 위한 능력을 갖춘 상태'를 뜻하는 것이었다.

역사가 전진과 후퇴를 반복할 때 역사 주체인 우리는 몸속에 축적된 역사적 경험에 기초하여 행동한다. 촛불과 응원봉이 함께한 이번 연대는 3.1 운동 이후 이어져 온 민주주의와 공정한 사회에 대한 열망이 우리 내면에 자리한 DNA를 다시 깨우면서 형성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선재원 민교협 상임공동의장·평택대 교수 | 프레시안 2025.03.21.

 

 

투기 부추겨 공급 늘리려 했나오세훈의 만용

지난 212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른바 대청잠삼’ 4개 동(강남구 대치·청담·삼성동, 송파구 잠실동)의 아파트 291곳에 대해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했다. 시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그동안 미진했던 많은 재건축, 재개발 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하면서 향후 부동산 시장에도 활력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각종 규제완화 일변도의 정책으로 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겠다는 오세훈 시장의 공약이 부동산 시장 침체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자 부동산 투기를 부추겨 시장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하기에 이른 것이다. 해제 당시 많은 전문가와 시민사회는 그동안 오세훈 시장의 각종 규제 완화에 토지거래허가구역까지 해제하면 다시 투기가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었다. 그럼에도 최근의 금리 인하와 함께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강행하자 서울 강남 3구에서 거래가 늘면서 집값이 크게 오르고, 수개월간 하락세를 보였던 서울의 다른 지역으로 상승세가 확산했다. 갭 투기도 다시 크게 늘었다. 우려했던 대로 부동산 투기가 불사조처럼 다시 살아난 것이다.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성급한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거세게 비판하자 서울시와 정부는 319일 서울 강남·서초·송파·용산구 소재 전체 아파트에 대해 324일부터 6개월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다시 확대 지정했다. 오락가락 행정의 전형이다.

 

토지거래허가제도는 토지 투기가 극성이던 1979년에 도입되었다. 이후 국가 경제와 부동산시장 사정을 고려해 지정과 해제를 반복해왔다. 토지거래허가제도는 토지를 합리적으로 이용하고 적정하게 거래함으로써 토지거래 질서가 문란해지는 것을 방지하고, 토지 이용의 유용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일종의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이다. 주거용 토지는 매수자가 토지이용계획서와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하여 자기 거주용임을 입증해야 토지 거래를 허가한다.

 

토지거래허가제도가 과도한 재산권 침해, 사적 자치의 원칙 침해, 과잉금지 원칙 위반을 사유로 위헌이라는 주장이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시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왜 전 구역을 해제하지 않고 일부 지역만 해제했었는지, 그리고 왜 다시 확대 지정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더욱이 그의 생각과 다르게 헌법재판소는 1989년에 이어 1997년에도 토지거래허가제도가 사유재산 제도를 부정하지 않고 투기적 거래의 억제를 위해 토지의 처분을 제한하는 데 그치고 있어 헌법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반면 토지거래허가제도가 지가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는 거의 없다는 실증연구가 많지만, 투기적 거래를 억제하는 효과는 거두고 있다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이번 오세훈 시장의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와 확대 재지정 사태는 곧 토지거래허가제도의 긍정적인 효과를 인정한 셈이다. 규제는 불가피할 때 최소한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오세훈 시장도 결국 독점이나 투기 등으로 시장이 왜곡되기 쉬운 분야에서는 정부의 개입이 필요함을 깨달은 모양이다. 오세훈 시장은 투기를 부추겨 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성과를 바탕으로 향후 대선에서 지지율 상승을 노렸다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정책 실패를 범하고도 그 실패에서 배우는 겸허하고 지혜로운 자세를 보이기는커녕 토지거래허가제를 여전히 반시장적 규제라고 주장하는 어처구니없는 모순적 행태를 보였다.

 

민간은 집값이 오를 때만 주택을 공급하려고 한다. 오세훈 시장은 민간 주도로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부동산 시장의 활성화를 꾀했다. 그러나 부동산 투기는 언제든지 여건만 되면 활활 타오를 수 있는 꺼지지 않는 불씨다. 극심한 지역 양극화로 부동산 투기의 성지가 된 서울 강남의 아파트는 두말할 것도 없다. 시장 침체기에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서는 그동안 전 정부에서 추진했던 공공 재개발, 공공 재건축, 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 등 공공의 역할을 더 확대했어야 했다. 정치적으로 전 정부의 정책은 무시하고 자신의 정책만 빛나게 하려다 혼란을 자초한 셈이다. 마치 제2의 무상급식 사태를 보는 듯하다. 정치적 혼돈에 경제적 혼돈과 정책적 혼돈까지 겹쳐 우리 사회의 앞날이 어둡기만 하다. 경박한 정책으로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고 주거권을 보장하라는 헌법 가치를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임재만 |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 | 프레시안 2025.03.21.

 

'박근혜 파면' 헌재, '탄핵' 망설이나

'내란 수괴' 복귀하면 헌법은 무사할까?

8년 전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결정문에서 "피청구인의 위헌·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고 보아야 한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 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또한 "피청구인은 대국민담화에서 진상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하였으나 정작 검찰과 특별검사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거부하였다. (중략) 피청구인의 일련의 언행을 보면 법 위배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여야 할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파면의 이유를 밝혔다.

 

이를 지금의 상황과 대입해 보면 사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피청구인 윤석열은 첫째, 헌법 제77조 제1항의 규정인 '전시, 사변,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고 명시된 비상계엄의 요건을 정면으로 위반했다.또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라는 조항과도 합치하지 않는다. 계엄은 이러한 헌법 조항을 정면으로 위배했다. 야당의 '탄핵 남발', '입법독재', '예산삭감'을 국가비상사태로 봤다는 궤변이 헌재에 의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제로다.

 

둘째, 설령 비상계엄이 정당한 이유에 의해 실행되었다고 해도, 헌법 제77조 제3항과 계엄법에는 '정부와 법원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특별한 조치'의 대상이 아닌 국회에 병력을 투입하여 국회의 표결을 방해할 목적이 인정되므로 이 역시 명백한 헌법 위반이다.

 

셋째, 포고령 1호 역시 '국회와 정당 등의 정치활동을 정지한다'고 되어 있으므로 명백한 위헌·불법이다. 그 밖에 정치인 체포 지시와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군 투입, 국무회의 심의 생략 등 헌법과 법률 위반이 명백하다. 탄핵 반대자들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에 대한 다른 주장을 하고 있지만 헌재심판과 형사재판은 별개의 사법영역임은 불문가지다.

 

문제는 이러한 위헌·위법 행위가 대통령직을 물러나게 할 정도로 중대하고 심각한 것이냐일 것이다. 그러나 비상계엄 이후 소비가 극도로 위축되고 투자는 냉각됐다. 가뜩이나 얼어붙은 경기는 회생 불가능할 정도로 타격을 받고 있다. 국격 손상은 말 할 나위가 없고, 극우세력의 극단적 발언과 갈라치기는 국가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국민의 희생과 피로 일군 민주주의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정치와 경제는 물론 온 국민을 갈라치기 하고, 불안과 혼란으로 밀어넣었다. 사실상의 심리적 내전 상황으로 내몬 장본인이 바로 윤 대통령 아닌가. 이 엄청난 카오스를 국민 전체가 떠안고 있고, 시민들의 불안도 극에 달하고 있다.

 

이런 사태를 초래한 사람을 파면하지 않고 다시 대통령직에 복귀시킨다는 게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인가. 이러고도 위헌·위법 행위가 중대하지 않고, 국민을 '계몽'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탄핵은 기각·각하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어느 나라의 정치인이며 백성들인가. 단군 이래 이러한 궤변을 잘 알지 못한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음모론, 색깔론과 극단적이고 선동적 발언 들은 도를 넘은지 오래다. 과연 이들이 헌법기관을 자임할 수 있는가.

 

다시 법리로 돌아와 보자. 박 전 대통령 탄핵결정문을 기준으로 본다면 윤 대통령은 체포영장 집행을 거부한 것은 물론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소환에도 응하지 않았다. 정당한 사법기관의 법 집행에 응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8년 전 탄핵결정문의 '헌법수호 의지' 부재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피청구인 윤석열 파면이 국가이익과 헌법수호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사실은 박 전 대통령의 탄핵결정문의 기준으로 볼 때 자명한 일이다.

 

오늘도 헌재의 종국선고가 없다. 헌재가 탄핵 반대자들이 내세우는 각종 절차상 쟁점들에 대해 완벽을 기하기 위해 선고기일이 늦춰진다는 분석과 재판관 사이의 이견이 조율되지 않는다는 '' 등 각종 억측과 '지라시'가 난무하면서 광장의 목소리는 점차 폭력성을 띠기 시작했다. 야당 대표의 말도 거칠어지고 양측의 대립이 일촉즉발이다.

 

경제는 물론, 외교와 안보상의 불이익은 차치하고 탄핵 찬반 대립이 이미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헌재 선고 기일이 미뤄지는 이유를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헌재는 더 이상 선고를 미뤄선 안 된다. 헌법과 법리에 따른 정확한 판단과 함께 선고를 서둘러야 한다. 헌재는 더 이상 좌고우면해선 안 된다.

다음 주 후반이나 그 이후로 선고가 미뤄진다면 선고 이전에 어떠한 불상사가 날지 모른다. 너무도 명백하고 중대한 위헌·위법적 계엄을 실행하고도 대통령직에 복귀한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헌재는 역사와 국민을 대면해서 숙고해야 한다. 헌재의 명징하고 신속한 선고를 촉구한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 프레시안 2025.03.21.

 

윤석열 지금도 '복수'의 칼을 갈며 김치찌개를 끓이고 있을 것이다

광기에 휩싸인 리어왕의 최후

탄핵 심판을 앞둔 윤석열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라고 묻는다면 '그는 복수를 다짐하고 있다'고 답하겠다.

 

"총 쏠 수 없나?" 자신을 체포하러 온 공권력을 향해 '기꺼이 반란군이 되거라'고 명령하며 경호원을 사병처럼 부리던 윤석열이 감옥에서 나온 후 제일 먼저 착수한 일은, 공화국에 반기를 들라는 명을 거부한 경호처 간부 자르기였다. 일시적 자유를 획득하자마자 복수에 나선 것이다. 섬뜩한 일이지만, 윤석열은 그런 사람이다.

 

윤석열 정부는 분노와 냉소를 달고 우연에 의해 태어났다. 공화국의 왕은 항상 화가 나 있었다. 스스로 불러온 화를 주체하지 못해 결국 체제를 부숴버리기로 결심했다. 손바닥에 임금 자를 새긴 그는 묵시록에 등장하는 파괴의 신이 되어 스스로 계엄을 내리고 세상 모든 걸 ''로 환원해 순수한 진공상태를 만들려는 꿈을 꿨다. 하지만 그가 잊고 있었던 건 그가 두 다리로 지상에 몸을 지탱하고 있는 한낱 인간일 뿐이었다는 사실. 인간이 신의 흉내를 내면 우스꽝스러워진다. 이카루스는 밀랍으로 날개를 붙여 태양에 도달하려 했지만 결국 추락했다.

 

윤석열은 대중의 분노 위에 올라타 대통령이 된 자다. 그는 '비전'형 정치인도 아니고, '구원'형 정치인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에 적개심을 보이는 세력이 가진 '원형의 분노'에 주목했고, "무식한 3류 바보들""버르장머리 없는 이재명 민주당 썩은 패거리들"에 복수를 다짐하며 "대선도 필요없다. 곱게 정권 내놓고 물러가라"고 일갈했다.

 

이 증오의 구호는 윤석열을 대통령의 자리에 가까스로 앉힐 수 있었지만,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진 못했다. "대통령 임기 5년이 뭐가 대단하다고, 너무 겁이 없어요. 하는 거 보면은"이라며 복수를 다짐했으나, 이 말은 윤석열의 미래를 예언한 명언으로 박제되고 만다.

 

한때 윤석열을 도왔던 한 인사는 윤석열을 평가하며 "보수의 차도살인(남의 칼을 빌려 적을 친다)"이라고 말했다. 지난 3년간 윤석열 정치는 '격노의 정치', '복수의 정치', 그리고 '자해의 정치'였다. 이 셋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순환 구조를 이루며 인과 관계를 만들어 낸다. 반면교사로 삼기에도 부족한 이 유아기적 본능의 정치가 이 사회에 큰 해악을 끼쳐 왔다는 사실은 숱한 사례로 증명된다.

 

윤석열은 수시로 격노했고, 그 격노는 대개 복수로 이어졌다. 민망하도록 좀스러운 권력의 사적 유용이었다.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를 집요하게 쫓아냈고, 용산 구중궁궐엔 여권 정치인과 김건희의 '악연'과 관련된 고약한 소문들이 나돌았다. 숨진 해병대원 수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격노'한 그는 자신의 명을 어긴 박정훈 대령을 '항명 수괴'로 몰았고, '바이든-날리면'을 보도한 MBC 기자는 전용기에 태우지 않는 것으로 보복을 완성했다.

 

복수 정치의 최종 단계는 비상 계엄 선포라는 '자해 정치'로 귀결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에 따르면 체포 리스트에 오른 14명은 윤석열이 평소 부정적으로 평가한 인물들이었고, 윤석열은 군 수뇌부 앞에서 그 싫어하는 이유를 상세히 설명했다고 한다.

 

체포 대상에 한동훈이 올라와 있는 건 특히 충격이었다. 윤석열 부부의 복수심 앞에서 30년지기의 인간적 인연은 사치일 뿐이다. 한 군 간부는 검사가 '야권의 한동훈 암살 주장이 현실성 있나'라고 묻자 "만약 문상호 사령관이 '한동훈 사살'을 명령했다면 HID 부대원들은 그 지시를 따랐을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박정희, 전두환도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싫어하는 정치인을 체포해 수거하라는 지시는 내리지 않았다. 윤석열의 복수심은 박정희와 전두환마저 능멸하는 수준이다.

 

내란죄 혐의를 받고 구속된 와중에도, 윤석열 부부는 복수를 다짐하고 있었다. 근신하고 있을 줄 알았던 윤석열의 '분신' 김건희는 "난 조선일보 폐간에 목숨 걸었어"라고 말했다. 윤석열 부부에게 지금 가장 우호적인 보도를 하고 있는 신문조차 그들의 눈에는 '복수'의 대상일 뿐이다.

김건희는 윤석열 체포를 앞두고 경호처 직원들 앞에서 "총을 갖고 다니면 뭐하냐. 그런 걸 막으라고 가지고 다니는 건데", "마음 같아서는 이재명 대표를 쏘고 나도 죽고 싶다"는 말을 뱉었다고 한다. 깜짝 놀란 경호처 직원이 이 말을 상관에게 보고한 내용이 경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만약 총을 쐈다면 그건 반역이자 살인이다. 어쩜 이런 끔찍한 말들이 그렇게 함부로 튀어나오는가.

 

지난 8일 윤석열이 석방된 후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윤석열 2차 체포 영장 집행 때 간부회의에서 '영장 집행을 막는 것은 위법 소지가 크다'고 반대한 간부를 해임한 것은 그들이 '복수'에 진심이라는 걸 방증해 준다. 해임은 공직자에게 '사형 선고'.

 

이 모든 정황은 윤석열 탄핵이 기각됐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하게 해 준다. 그들에게 '회개'를 기대할 수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윤석열은 자신을 비판하고 홀대하고 자신에게 등을 돌린 모든 이들을 향해 보복을 기도할 것이다. 그는 지금도 '복수'를 상상하며 김치찌개를 끓이고 체포 수거 리스트를 마음 속으로 하나하나 꼽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복수심에 불타는 초라한 인간의 말로가 어떤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는 지금 광야를 헤매는 리어왕이다. 왕좌를 스스로 던진 리어의 심리는 윤석열의 그것과 닮아 있다. 리어는 모두가 자신을 왕으로 여겨주고 대접해 주길 바란다. 하지만 리어는 자신의 손발이 되어 아첨을 가장 많이 해 왔던 두 딸 리건과 고네릴(검찰)이 자신에게 등을 돌릴 것이란 예상을 하지 못한다.

 

그러다 리어는 불현듯 현실을 깨닿는다. 더 이상 사람들이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려 한다는 걸. 그리고 "이상하고 부자연스러운" 격노에 빠져든다. 그것은 광기다. 상상 속에서 복수를 상상하는 리어는 "붉게 타는 쇠꼬챙이를 든 악마 1000명이 휙휙 날아서 그것들을 덮쳤으면!"이라고 외친다. 하지만 부질없는 분노다. "총을 들면 뭐하냐", "조선일보 폐간에 목숨 걸었어"라는 말처럼.

리어왕의 최후는 그나마 교훈적이다. 스스로 불러온 광기 속에서 헤매다 제정신이 든 그는 권력도 복수도 승리도 부질없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리어는 말한다.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자 감옥으로 가자꾸나."

박세열 기자 | 프레시안 2025.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