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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25년4월 3주 13~20

by 이성근 2025. 4. 20.

 

민주주의가 아니라 정치가 위기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는 이들이 많다. 동의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전성기다. 세계사적으로 지금처럼 민주주의가 번성한 적 없다. 굳이 위기를 말한다면, 정치가 위기이지 민주주의는 아니다.

인류 역사 대부분은 소수가 다수를 혈통과 계급, 종교와 돈의 힘으로 지배한 과두정 체제였다. 아테네 민주정과 로마 공화정 같은 자유의 시간은 짧았고, 그때에도 피의 정변은 잦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27년 지속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패한 뒤 들어선 ‘30인 참주시대에만 1500명이 처형됐다.

현재 민주주의, 한쪽 옳음만 강요

로마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후에도 부모가 아이를 재우면서 하던 절박한 기도는 전쟁과 굶주림, 질병으로부터 저희를 구하소서였다. 근대 이후 종교전쟁과 내전, 노예무역의 현장은 그야말로 인간 도살장이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존엄하다거나, 자유와 평등을 불가침의 권리로 정부를 세운다는 생각에 인류가 동의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전 세계 국가의 절반 가까이가 민주주의 체제로 분류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한 세기 전 파시즘이나 공산주의처럼, 민주주의에 도전하는 강력한 이념이 지금은 없다는 사실도 놀랍다. 명실상부하게 정당성을 인정받고 있는 체제는 민주주의가 유일하다.

어떤 사물의 본성을 깨닫게 되는 때는 그 사물의 전성기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애벌레가 성충이 되고 씨앗이 자라 꽃을 피울 때라야 우리는 그것들이 어떤 목적을 실현하려 했는지, 그것이 무엇에 유익하고 무엇에 유해한지를 알 수 있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가 귀할 때와 민주주의가 흔할 때의 민주주의는 같지 않다.

투쟁해야 할 민주화 운동의 시대와 민주주의가 지배적인 이념이 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시대의 민주주의는 다르다. 지금은 민주주의가 활짝 꽃핀 시대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가진 본성, 즉 그것이 가진 장단점을 볼 수 있는 시대다. 동시에 민주주의가 오용될 때의 문제 또한 경험하는 시대다.

이를 잘 보여주는 두 가지 역설이 있다. 첫째는 민주주의의 글로벌 전성기가 곧 포퓰리즘 폭발의 시대, 정치 양극화의 시대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민주주의가 세계적 대세가 되자마자 곧 민주주의 선진국인 미국과 영국에서부터 위기론이 대두되고, 이제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민주주의 위기론이 터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 유일 이념 시대는 유일신만 강요되는 사회와 유사한 문제를 낳는다. 핵심은 순수하고 순결한 열망을 제어하기 어렵다는 것에 있다. 다른 것은 쉽게 이단이 되고 이적시된다. 이게 문제다. 잘 알다시피 민주주의의 순수 원리는 인민 주권다수 지배. 다수 인민의 명령, 일반 당원의 뜻이 모든 것을 지배해야 한다는 배타적 열정이야말로 순수 민주주의의 전형적 모습이다.

다원 민주주의 위한 정치복원을

우리의 경우 민주주의의 순수 열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팬덤 포퓰리즘이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순수 민주주의를 말한다. 한쪽에서는 청년들의 미래가 걱정이라며 반국가 세력과 싸우는 민주주의를 말한다. 다른 쪽에서는 수박 박멸과 내란 동조 세력 척결을 위한 민주주의를 말한다. 양쪽 모두 자신만의 순수 시민들로 거리를 채울 동원 능력을 갖췄다. 동시에 정치는 사라졌다.

팬덤 시민은 민주적인 척하는 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진짜로 민주주의자다. 순수한 민주주의를 소망한다. 친북 세력이 청산된 순수 민주주의, 독재 세력이 발붙일 수 없는 순수 민주주의는 거짓 열망이 아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국가도, 사회도, 국민도 개조하고 싶어 한다. 자신이 열망하는 변화를 약속하는 정당이 번성하길 바란다. 그 밖의 다른 정당은 어떤 이유를 붙여서라도 혐오하는 그들은 진정한 일당제 민주주의자. 학자들이 말하는 정치 양극화란 간단히 말해, 양 진영으로 나뉜 두 일당주의의 싸움이다. 다른 목소리는 적전 분열이요, 상대를 돕는 간첩질이며, 민주주의의 적이다.

정치는 다원 민주주의에서만 제 역할을 한다. 정치적으로 옳은 것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고, 그런 정치적 생각사이의 경쟁이 사회를 더 풍요롭게 한다는 것은 다원 민주주의의 굳은 믿음이다. “토론이 필요한 이유는, 진리란 찬반의 어느 한편보다는 그 사이에 있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라는 존 스튜어트 밀의 주장이 공유되어야 정치가 산다.

지금 우리는 하나의 옳음만 강요되는 순수·팬덤 민주주의의 전성기를 보고 있다. 다원 민주주의의 길은 보이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전체주의적 민주주의의 도래를 걱정하는 위기론이라면 동의할 수 있다. 그래도 정치 위기를 더 말하고 정치 복원을 더 강조해야 한다. 그래야 다원 민주주의의 건강한 미래를 꿈꿀 수 있다. 정치가 위기다. 아주 심각한 위기다.

박상훈 정치학자 | 경향 2025.04.13.

 

내란 대통령기록물 봉인되나

대통령 파면 이후 대통령실 비서진은 혼란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본인이 작성한 기록물이 어떤 파장을 낳을지 고민하면서 흔적도 없이 폐기 및 은닉할 방법을 모색할 것이다. 그 작업은 탄핵과 동시에 대통령실 홈페이지를 닫는 것부터 시작됐다.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기록물을 어떤 시스템에 의해 생산·관리하는지 알리지 않았다. 각종 회의에서 1시간 중 59분을 대통령 혼자 발언했다는 말씀 기록은 존재할지 궁금하다. 국정에 불법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는 김건희 여사에 대한 기록물도 초미의 관심사다.

대통령기록물을 훼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파기·은닉했다고 생각했던 기록이 대통령실 캐비닛과 강남 영포빌딩에서 부활해서 나타났다. 누군가의 직업의식과 제보 덕분이었다. 이런 일이 많아서 대통령기록물법에는 회수 및 추가이관 조항까지 신설했다.

대통령기록물법은 대통령이 궐위(파면)되면 기록물을 차기 정부 출범 전까지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통상 이관은 임기종료 1년 전부터 준비하는데, 파면 정국인 현재는 두 달도 남지 않았다.

시민들의 관심사는 12·3 내란기록물이다. 이 기록들은 국방부, 합참의장실에 산적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보도에 따르면 국회 계엄 해제 의결 직후 124일 새벽, 합참 결심실에서 대통령은 계엄 핵심 참모들을 불러 회의를 했다. 이 회의에서 어떤 내용이 논의됐는지 기록돼 있다면 2차 계엄 등을 계획했는지 입증할 수 있는 중요한 대통령기록물이다.

더욱 주목해야 할 곳이 있다. ‘대통령경호처이다. 이곳의 비화폰 서버 및 불출대장 등은 내란 사태를 입증할 수 있는 핵심적인 증거이다. 그동안 경호처 기록물은 업무의 특징상 계속 필요하다는 이유로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하지 않고, 경호처에 관리하는 관례가 있었다. 이번 경우 경호처가 내란 사태의 핵심이라 예외 없이 이관해야 한다.

기록을 없애지 못한다면 비공개 전환 시도가 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파면 이후 황교안 권한대행은 205000건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봉인했고 최대 15~30년까지 비공개됐다.

한덕수 권한대행은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해야 한다. 예상하건대,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기록물을 최대한 많이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봉인할 가능성이 높다. 내란 관련 기록물도 국방, 안보상 조항을 근거로 지정할 것이다. 권한대행이 지정을 할 수 있는지 법에는 명시적으로 없지만, 전례라는 방패가 있다. 헌법재판관도 2명이나 지명했다. 기고만장하고 거침이 없다. 용혜인 의원은 지난 7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기록물 지정 행위가 일종의 이해 충돌임을 인식하고 기록물 지정 행위를 스스로 중단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내란기록 은폐 방지법이라는 법안도 제출했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은 기록이 있어야 알권리가 있다는 취지로 노무현 정부에서 만든 제도이다. 기록을 충실히 생산해 역사에 남기자는 좋은 뜻이었다. 좋은 취지는 왜곡되기 마련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부터 대통령지정기록물은 기록을 숨기고, 은폐하는 용도로 전락하고 있다. 특히 현직 대통령 재임 시절 제기된 정보공개소송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도 뼈아프다.

대통령은 탄핵당했으나 12·3 내란 사태 진상규명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그것은 대통령기록물을 온전히 보존하고, 이를 시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할 때 가능하다. 대통령기록관은 탄핵 이후 대통령기록물 생산기관에 대하여 대통령기록물의 이동이나 재분류 등의 금지를 요청하고 현장 점검을 요구할 수 있다.

법에 명시된 대통령기록관의 권한이다. 대통령기록관은 현장 점검을 형식적으로 하지 말고, 내밀한 대통령기록물을 찾는 데 주력하길 바란다. 역사적 사명이라는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다.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 | 경향 2025.04.13.

 

21대 대통령 선거의 시대정신

윤석열 친위 쿠데타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혁명 이후 반혁명의 악몽이 이어진다는 사실은 역사책에서 배웠지만, 여진이라기엔 충격이 너무 큰 사건들이 연발하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권한대행의 역할은 소극적이어야 한다는 말을 스스로 깨고 대통령 몫으로 남겨진 헌법재판관 두 명을 지명했다. 이제 50여일 후면 새 대통령이 들어설 텐데, 월권을 넘어 위법이라는 비판이 잇달았다. 게다가 지명된 두 후보의 면면을 살펴보면, 내란에 동조했으리라는 혐의로 경찰의 수사 대상에 오른 인물과 야박하기 그지없는 판결로 법조인의 품격을 기대하기 어려울 듯한 판사 출신이다. 탄핵 인용으로 국민의 신임을 받고 있는 헌재 흔들기라고밖에 볼 수 없다.

 

파면된 전 대통령 윤석열의 행태 역시 이해 불가한 수준이다. 지난주 금요일 오후 한남동 관저를 떠나 그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철저한 각본에 따른 행사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5차선 도로를 전면 차단하고 손을 흔들며 마이크까지 찾는 영상은 그의 내란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실감케 했다. 영상을 보던 시민들은 정신승리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그럼에도 21대 대통령 선거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이 선거의 화두는 단연 정권 교체일 것이다. 검찰 권력을 무기로 삼은 2년 반의 통치와 결국 군대까지 동원한 윤석열 정부의 실정이 초래한 국가적 폐해를 해소하고 국민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는 의지와 역량을 가진 정부를 선택하는 시간이다. 이제는 여당의 지위를 잃은 국민의힘은 정권 유지를 통해 과오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읍소하겠지만, 그들의 호소가 강성 지지자 집단 밖으로 얼마나 전파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42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탄핵안 인용 판결이 잘된 일이라는 평가는 69%, 국민 10명 중 7명이 탄핵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대구·경북에서조차 잘된 일이라는 평가가 50%(잘못된 일 36%)를 차지했다. 정당 지지도에서는 민주당 41%, 국민의힘 30%로 격차가 크고 이재명 전 대표의 지지율은 37%까지 올랐다. 계속되는 내란이 가져온 결과다.

 

앞으로 50여일 동안 권력 쟁취를 위한 정치인들의 욕망은 뜨겁게 타오를 것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열차를 타고 질주하는 경주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한국갤럽 조사에서 국민들은 경제 회복·활성화(48%), 국민 통합·갈등 해소(13%), 민생 문제 해결·생활 안정(9%), 계엄 세력 척결(8%), 외교·국제관계(7%), 검찰 개혁(6%), 국가 안정화(6%), 정치 개혁·여야 협치(5%), 저출생 대책(5%) 등의 답변을 내놓았다. 그동안 망가진 경제를 살리고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며 계엄의 진상규명과 가담자 처벌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 과제들을 자신의 정치적 임무로 삼고 실행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이가 국민의 마음을 얻을 것이다.

 

21대 대통령 선거가 이전의 선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국민의 의사 표명이 그 어느 때보다도 분명해졌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정치적 주체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집단이 훨씬 더 확장됐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여의도에서 남태령으로, 한강진과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광장에서 그동안 비주류로 배제됐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성, 청년, 농민, 장애인, 성소수자와 각양각색의 깃발을 들고 나온 수많은 개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지닌 정치적 주체(Speaking Subjects)로서 각성하는 시공간이 열렸다.

 

그들은 투쟁이라는 말로 인사를 나누며, 민주주의를 공부하는 모임을 열고, 서울과 지역을 오가며 집회에 참여한다. 응원봉 연대. ‘다시 만난 세계’ ‘그대에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모두 따라 부를 수 있는 젠더와 세대, 장애와 계층과 지역을 아우르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연대가 시작됐다. 그들은 햇빛이 비치는 낮의 광장에서 민주주의의 회복을 외치고 달빛이 내리는 밤의 광장에서 응원봉으로 어둠을 밝혀 왔다.

 

윤석열의 내란이 한국 사회에 기여한 바가 있다면, 지배 권력 카르텔의 실체를 명징하게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그것에 저항하는 비주류의 연대가 형성되고 있다. 21대 대선은 비주류의 연대를 튼튼히 하고 평범한 시민들의 요구를 자신의 정치적 사명으로 실현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기회를 열어줄 것이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 경향 2025.04.13.

 

시민정치가 계속 필요한 이유

윤석열의 내란을 저지한 가장 큰 힘은 시민정치였다. 헌법재판소도 대통령 파면을 선고하면서 그런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시민 모두가 함께 힘을 모아 민주공화국을 지켰다는 지적은 옳다. 성별, 지역, 계층을 넘어 공화국의 시민들이 나섰고, 심지어 제복 입은 시민들까지 계엄을 멈추는 데 한몫했다. 내란 세력을 제압하고, 윤석열을 탄핵한 것도 시민의 힘으로 이룬 쾌거였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윤석열은 파면됐고 내란죄로 재판을 받고 있으며 다음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시작되고 있는 즈음 시민정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민정치는 이 역사의 현장에서 계속 자리를 지켜야 한다.

 

첫째, 상황의 반전을 획책하는 헌정 파괴 세력의 모략이 끊이질 않기 때문이다. 내란 전모가 다 밝혀지지 않았는데 그 우두머리는 감옥에서 나와 의기양양 지지자들을 선동하고 있다. 국가체제 구석구석에 똬리를 튼 내란 동조 세력들은 진실을 호도하기 위해 수시로 발호하고 있다. 이들은 법과 제도를 악용하여 헌정 수호 세력들에게 역습을 서슴지 않는다. 이미 여러 차례 그런 시도가 있었고 그럴 때마다 시민정치의 힘이 앞장서 그것을 막아냈다. 앞으로도 그래야 할 것 같다. 내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둘째, 내란을 실질적으로 종식하고 사회대개혁을 제대로 추진하려면 헌정 수호 세력이 압도적 힘의 우위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헌정 수호 세력은 대통령 선거에서 크게 승리해야 한다. 그러자면 민주당을 비롯한 여러 원내외 정당들이 힘을 합쳐야 하며, 비상계엄을 저지하고 내란을 막아냈던 시민들이 선거에서도 모두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탄핵연합은 민주 진보 개혁 성향의 시민들은 물론 중도와 합리적 보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시민들의 연대였다. 이 시민들이 모두 함께해야 의미 있는 선거연합을 형성할 수 있다. 전통적 진영 세력만으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이른바 중도, 혹은 합리적 보수 성향의 시민들까지 함께하는 시민정치가 작동해야 선거에서 충분한 다수 연합을 이룰 수 있다. 그런데 걱정스러운 것은 민주당 혼자의 힘으로도 잘해 나갈 수 있다고 하는 이른바 민주당 자강론이다. 그런 위험한 자신감을 불식시킬 힘도 시민정치에서 나온다.

 

셋째, 사회대개혁을 철저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시민정치가 국정연합에서도 계속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 권력 교체가 빛의 혁명을 추구한 시민정치의 최종 목표는 아니다. 시민들은 당면한 탄핵과 내란 종식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모순, 전환기적 과제를 해결하자고 외쳤다. 그동안 시민들은 촛불혁명으로 권력은 바꾸었는데 내 삶의 변화는 왜 일어나지 않았는가?”라는 따가운 질문을 했다. 촛불혁명 후 개혁이 부진했던 데 대한 솔직한 성찰을 요구한 것이다. 이제 곧 등장할 새로운 권력이 사회대개혁 과제를 철저하게 이행하도록 하려면 시민정치가 계속 작동해야 한다는 것을 시민들은 알고 있다.

 

넷째, 대통령 선거 승리와 사회대개혁은 정당 간 연합만으로 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정당과 시민의 연합도 중요한데 이것은 정당의 선의만 바라보고 기다릴 일이 아니다. 시민들의 뜻을 잘 헤아리며 그것을 정당과 연결하는 시민정치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 310일 민주당을 포함한 6개 야당과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탄핵 광장에서 나온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아 다음과 같은 실천 과제를 발표했다. “내란 세력 심판과 재집권 저지, 차별과 혐오의 정치 배격, 다양성을 존중하고 민의를 반영하는 정치 구현, 민주주의 회복과 평화 실현, 사회대개혁.” 이것은 광장의 시민과 정당을 연결하는 연합정치의 최소강령이라 해도 좋겠다. 광장 시민들의 요구와 정당의 판단이 의제의 우선순위에서 어긋날 수도 있는데 이런 차이를 조율하는 것도 시민정치의 몫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민정치는 내란 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위한 연합정치의 적절한 촉진자이다. 일반적으로 연합정치는 대항연합(opposing coalition), 선거연합(electoral coalition), 통치연합(governing coalition)으로 구분한다. 이 개념을 우리 상황에 적용하면 탄핵연합, 대선연합, 국정연합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탄핵연합을 마무리했고, 이제 대선연합과 국정연합을 통해 내란 종식, 사회대개혁을 해야 한다. 민주 헌정 수호 세력은 내란 종식과 사회대개혁을 위한 충분한 다수연합을 형성해야 하는데 시민정치가 그 연합정치에 필요한 동력을 만들 것이다.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 경향 2025.04.13.

 

 

숲이 없는 미래는 없다

미래를 다루는 공상과학 영화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나무가 있는 미래와 그렇지 않은 미래. 2100년 이후에도 인류가 아름다운 환경에서 살아남아 있는 밝은 미래를 그리는 영화 대부분은 나무, , 곤충, 동물이 공존하는 식생이 가득한 초록색 숲 배경을 바탕으로 한다. 이뿐만 아니라 화성을 탐사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영화에서도 결국 인간의 생존을 결정짓는 것은 식물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맞이하고 싶지 않은 척박한 미래를 그리는 영화들은 대부분 어두운 색의 배경에 숲은 고사하고 단 한 그루의 나무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 지금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숲이 없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현실은 어떤가. 스스로 미래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되물어야 할 상황이다.

2025년이 시작되자마자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중심으로 전 세계의 숲은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에서 늘 나던 산불이지만 이번은 달랐다. 도심의 주택을 모두 태우고 백사장까지 불길이 내려와 상상도 못할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나름 산불에 대비한 LA지만 정말 속수무책이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20253월 경북 의성을 중심으로 발생한 산불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심각한 산불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두 산불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기후변화로 인해 산불이 크게 확산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시작은 둘 다 인간에 의한 것이지만 인간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불이 커진 이유는 바로 온난화로 대기, 식생, 토양이 건조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에 비해 더 큰불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이번 경북 산불의 경우 넓은 면적의 산림 소실, 소방관을 포함한 많은 인명피해, 주택과 시설과 문화재 소실 등 다양한 부문에서 피해가 발생해 경제적 손실만 1조원 이상이고 피해 복구 비용은 2조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의성군의 2025년 예산이 약 7200억원이고 경북 전체 예산이 약 13조원인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큰 경제적 피해를 본 것이다.

 

산불의 피해는 이렇게 눈으로 보이고 경제적으로 산정할 수 있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열심히 불을 껐다고 해서 그 불이 꺼진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2021년 강원도 산불이 크게 났을 때도 이 칼럼을 통해 기후변화의 영향과 그 무서운 피해를 경고한 적이 있다. 그때도 기록상으로는 역대 최악의 산불이라고 했지만, 기후변화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더 큰 산불이 발생할 것이라 경고했다. 하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으니 한 번 더 왜 우리가 산불에 더 집중해야 하는지 얘기하려 한다.

 

기후와 식생 상호작용으로 큰 피해

산불이 발생하면 제일 처음 강력한 화력으로 인한 온도 증가와 여러 산림 부산물의 불완전 연소로 인한 대기질의 악화가 즉각적으로 발생한다. 뜨거운 화력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가 될 것이다. 반경 수백떨어진 곳에서도 열기가 느껴질 정도이니 말이다. 대기오염 물질은 평상시의 수십배에 달할 정도로 높아진다. 예를 들어 이번 의성 산불 때 주변 지역에서 검출된 초미세먼지는 평소의 60, 두통이나 구토를 유발하는 오염 물질인 일산화탄소는 평소의 10, 이산화황은 평소보다 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악화한 대기질은 산불의 영향 반경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에 순간적으로 영향을 끼치겠지만, 인체 피해는 장기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의학자들은 경고하고 있다. 연기가 순간적으로 사라진다고 해서 그 피해가 순간적으로 끝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이번 LA 산불을 계기로 10년간 약 400억원을 투입해 산불로 인한 장기적인 인체 피해를 밝히는 연구를 시작했다. 산불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인체 피해에 대한 다양한 질문에 답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날로 심각해지는 한국의 산불 양상을 보면 우리도 이제 이러한 연구를 당연히 시작해야 할 것이다.

 

산불은 산림을 태우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수질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산불로 탄 식물과 토양이 빗물에 씻겨 하천에 유입되면 하천의 유기물 증가로 유해 부산물이 늘어나거나 세균과 조류 증가로 적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산불 이후 쌓여 있는 유기물이 빗물에 쓸려나가 저수지에 축적되거나 지하수로 유입된다면 불이 꺼진 순간이 아니라 꽤 시간이 지난 후에 수질이 악화할 수 있다. 이러면 식수원의 오염을 통한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결국 산불이 꺼지고 비가 내린 이후 오염물질의 거동 양상에 따라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흔히 우리는 이것을 학문적으로 기후와 식생의 상호작용이라고 표현하는데 아직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유일한 탄소 흡수원 잃을 수도

산불 발생에 따른 기후와 식생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피해 중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산사태와 홍수이다. 산불이 끝나고 여름이 다가오는 이 시점에 우리가 당장 살펴봐야 할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현재 경북 지역의 토양수분 및 지하수 양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만약 올여름 매우 강한 집중호우가 그 지역에 내린다면 물순환의 완충장치 역할을 하는 숲이 없어서 산사태나 홍수의 발생 확률이 매우 높을 것이라 예상된다. 이뿐만 아니라 산불에 타들어 간 숲은 대부분 검은색으로 변해버렸기에 태양에서 들어오는 에너지를 더 많이 흡수해 온도가 올라 더 빠른 속도로 토양을 마르게 한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다양한 분석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화재의 피해는 복구되지 않은 것이다. 수자원 분야(환경부), 도시숲 및 산불관리 분야(산림청), 재난 분야(행정안전부), 계절 예측 분야(기상청) 등의 국가기관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깊이 고민해야 할 부분은 탄소이다. 한국은 국토 면적의 약 63%가 산림으로 덮여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보아도 국토의 산림 면적 비율은 10위 내에 들어갈 정도로 높은 수치다. 절대적인 국토 면적이 좁기에 비율은 높아도 실제 산림 면적이 크지 않아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소중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기후위기 시대 전 세계인의 난제인 탄소중립과 관련해 한국의 산림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주는 거의 유일한 국내 자원이다. 현재 국가 배출량의 약 5~6%를 흡수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산불이 계속 강해진다면 우리는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흡수원을 잃는 셈이다. 즉 배출량을 줄이는 더 강력한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많은 이들이 CCUS(탄소 포집 및 저장), DAC(직접 공기 포집) 같은 미래 기술에 대한 더 많은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기술들이 미래 탄소 배출량을 줄여줄 것이라 기대하고 막대한 연구비를 쏟아붓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가진 유일한 흡수원인 산림에 대한 투자는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을까? 아마 엄청난 차이로 적을 것이다. 이게 얼마나 모순적인가. 언제나 항상 숲이 우리 곁에 머물 것으로 여기는 것은 정말 안일한 생각이다. 게다가 숲도 나이가 들면 탄소 흡수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우리 동네 숲이 평생 똑같은 양의 탄소를 흡수해 줄 것이라는 생각은 큰 착각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지난 주말 흐리고 쌀쌀했지만, 많은 이들이 흘러가는 봄이 아쉬워 산으로 들로 도심의 공원으로 나가 꽃구경한다는 소식이 뉴스에 나왔다. 그런 것 같다. 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연을 사랑하며 그 안에서 휴식을 취하려고 한다. 그게 진짜 숲이 가진 중요한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탄소를 흡수하고 물을 맑게 하며, 재난을 방지하고, 공기를 맑게 하는 숲은 인류의 동반자이자 미래이다. 그래서 우리가 좀 더 가꾸고 보살피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을 수밖에 없다. 산불로 그을린 숲을 한 번 더 돌아보고, 지금이라도 거리에 피어있는 꽃과 나무들에 고마움을 전하는 여유를 가지면 좋겠다. 그들이 없다면 우리도 없다는 마음으로.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 경향 2025.04.14.

 

싱크홀, 땅 밑에서 울린 질문들

독일의 한 대형 유튜버는 2060년이면 한국이 사라질 수도 있다며 그 원인으로 저출생을 지목했다. 충격적인 발언이지만, 낯설지 않다. 이미 도처에 암울한 전망이 넘쳐난다.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만끽할 여유도 없다. 어디서 어떤 일이 터질지 알 수 없는 시기다. 법 위에 군림하는 엘리트 집단의 무책임한 대범함(?)이 또 다른 불안을 초래하고 있지 않는가.

 

그 와중에, 2025414일 경기 광명시의 신안산선 지하터널 공사장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해 1명이 실종됐다. 이는 서울 강동구 한복판에서 거대한 싱크홀로 1명이 사망한 지 채 3주도 지나지 않아 일어난 일이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서울시가 그동안 집값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싱크홀 위험 지역 지도를 비공개해 왔다는 사실이다. “사람 목숨보다 집값이 더 중요하다는 게 서울시의 입장인가요?” 이 질문은 단지 분노의 수사가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정확히 지적하는 말이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서울시에서만 122건의 싱크홀이 발생했다. 다음은 어디일까. 우리는 언제까지 불안 속에 살아야 하는가.

 

 

그러나 싱크홀은 단순한 도시 재난이 아니다. 또 하나의 기삿거리로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싱크홀 사태를 통해, 땅 아래에서 울려 퍼진 질문들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적어도 네 가지다.

 

첫째, 싱크홀은 원인이 발생한 장소와 실제로 붕괴가 일어나는 장소가 다르다. 지하수가 흘러들고 토사가 빠져나간 지점은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위치에서 땅이 꺼진다. , 싱크홀은 예측 불가능성 그 자체다. 어디서 터질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원인은 인간의 개입과 점검으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문제는 이처럼 인과가 비가시적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우리가 관리하는 구역은 괜찮다며 위험을 외면하거나 남의 일로 간주한다. 이러한 방심이 바로 재난을 일상에 침투시키는 첫 번째 균열이다.

 

둘째, 우리는 이러한 충격적인 사건조차 너무 쉽게 잊는다.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과잉된 정보의 소음 속에서 정작 중요한 위험을 식별하지 못한다. , 이미 정보의 싱크홀에 빠져 있는 셈이다. 이 망각은 개인의 책임을 넘어선다. 정보의 선택과 배열은 사회적 메커니즘이며, 위험의 감각은 정치적으로 조율된다. 우리는 구조적으로 망각하도록 설계된 시스템 안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진정 중요한 것은 지금 눈앞의 싱크홀이 아니라 그것을 반복적으로 초래한 사건들과 제도들 간의 관계성이다. 토목 공사, 부동산 정책, 정보 비공개, 행정 판단, 재난 관리, 공공성의 실종 등이 어떻게 맞물려 또 다른 침하를 만드는지 주목해야 한다.

 

셋째, 싱크홀은 지반 아래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한국 사회는 삶의 기반자체가 불안정해지고 있다. 노화, 질병, 돌봄의 공백, 실직, 가족 해체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사회적 싱크홀이다. 특히 치매와 같은 노인성 질환은 개인만이 아니라 가족 전체를 심리적·경제적 침하로 몰아넣는다. 그런 틈새를 이용해 누군가는 보험을 팔고, 누군가는 장례 서비스를 홍보한다. 누군가의 붕괴가 또 다른 이의 수익이 되는 사회.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싱크홀은 우리가 그동안 잊고 살아온 지하의 존재를 환기시킨다. 우리는 지상의 인간을 떠받치고 있던 수많은 기술들과 그 위태로움을 망각해 왔다. 과학철학자 베르나르 스티글러의 말처럼, 우리는 기술 망각’(the forgetting of technics) 상태에 빠져 있었다. 어쩌면 도시에 인간이 가장 큰 싱크홀일지 모른다. 나아가 지구의 입장에서도 인간이 그럴 수 있다. 기술의 맹목적인 진보와 개발이 초래한 결과를 얼마나 더 마주해야 그러한 망각의 늪에서 벗어날 것인가.

 

결론은 분명하다. 도시의 지반만 보수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것은 붕괴되지 않는 관계를 어떻게 다시 구성할 것인가다. 기술이 인간의 기억을 대신하고, 정치는 위험을 외주화하는 시대. 우리는 공동의 기억과 윤리의 기반을 다시 세워야 한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진짜 싱크홀은 단지 땅 밑의 구덩이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를 지탱해 온 신뢰와 책임, 공공성과 연대라는 토대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다. 지난 4개월간 우리가 목격한 현실이 그 증거다.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 경향 2025.04.14.

 

윤석열 치하언론계는 늘 계엄이었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선포 당시 계엄사령부가 발표한 포고령에는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 선동을 금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왠지 귀에 익지 않은가. 그렇다. ‘내란 수괴윤석열 전 대통령이 틈만 나면 내뱉었던 말들이다.

 

가짜뉴스와 허위 조작 선동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202310, 재향군인회 창설 71주년 기념식 축사)

가짜뉴스에 기반한 허위 선동과 사이비 논리는 자유 사회를 교란시키는 무서운 흉기다.”(20248, 광복절 경축사)

 

윤 전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되뇐 가짜뉴스와 선동이 뭘 의미하는지는 자명하다. 자신과 아내에 대한 비판이다. 그가 깃발을 치켜든 가짜뉴스와의 전쟁은 철저하게 비판 언론 때려잡기로 귀결됐다. 애초 좌표가 그렇게 설정돼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 선포 당일 문화방송(MBC), 제이티비시(JTBC), 경향신문, 한겨레를 콕 집어 봉쇄와 단전·단수를 지시한 것도 그리 놀랍지 않다.

 

이걸로는 성이 안 찼을까. 포고령에는 권력의 치부를 끊임없이 들추는 언론을 향한 적개심이 깊게 배어 있다. 모든 언론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아야 하며 포고령 위반자는 처단한다고 했다. 애완견처럼 굴지 않으면 치도곤을 당할 줄 알라는 겁박으로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언론계, 특히 권력이 불편해할 만한 보도를 해온 언론사들에게 윤석열 치하 1000은 늘 비상계엄 상태였다. 검찰과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이 계엄군 노릇을 대신했을 뿐이다.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투입된 군인들은 소극적인 임무 수행”(헌법재판소 결정문)으로 부당한 지시에 저항했지만, 검찰과 방통위 등 문민 계엄군은 수괴의 지시를 충성스럽게 이행했다.

 

언론을 겨냥한 비상조치는 두 갈래로 이뤄졌다. 권력 비판 보도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과 공영방송 장악이다. 검경의 수사, 방송심의를 빙자한 사실상의 보도 검열, 인사권 등이 비판 언론의 손목을 비트는 무기로 십분 활용됐다.

 

검찰은 2022년 대선 당시 나온 윤석열 후보 검증보도를 대선개입 여론조작 사건으로 몰아 언론사 다섯곳을 1년 가까이 탈탈 털었다. ‘대통령 심기 경호 수사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 밖에 김건희 여사의 대통령 관저 이전 개입 의혹 등 윤 전 대통령 부부의 심기를 건드리는 보도가 나올 때마다 언론 입틀막수사가 이어졌다. 기자 사무실과 주거지 압수수색도 다반사였다. 대선 전인 202111, 김 여사가 비판적인 언론을 거론하며 했다는 내가 정권 잡으면 거긴 무사하지 못할 거야라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방심위는 계엄사 포고령에도 언급된 언론 통제의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윤 전 대통령의 바이든-날리면비속어 발언 등 정권 비판 보도에 전례 없는 최고 수위의 법정제재를 잇따라 내렸다. 방심위가 꾸린 선거방송심의위원회도 역대급 법정제재를 쏟아냈다. 보수 언론마저 우려 목소리를 낼 정도였다. 방심위와 선방위가 내린 터무니없는 법정제재는 법원에서 연전연패를 기록하는 중이다.

 

공영방송 장악 과정에는 검찰, 감사원, 방통위, 국민권익위원회 등 국가기관이 총동원됐다. 수신료 통합징수 폐지, 민영화, 지원금 중단 등 재원과 소유구조를 흔드는 치졸하고 극악스러운 수단을 쓰기도 했다. ‘대통령의 술친구박민과 파우치 앵커박장범이 사장 자리를 잇달아 꿰차는 사이 한국방송(KBS)정권 나팔수로 전락했다. 문화방송이 법원의 제동 덕에 정권 수중에 떨어지지 않은 게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그게 못내 아쉬웠을까. 윤 전 대통령은 계엄 당일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문화방송을 접수하라고 지시했다.

 

내란 수괴가 파면됐으니 이제 다 괜찮아진 걸까. 그렇지 않다. 지난 3년간의 적폐가 너무 뿌리 깊다. 이진숙 방통위와 류희림 방심위는 합의제 기구의 본분을 몰각한 채 내란 수괴가 임명한 위원들끼리 파행 운영을 지속하는 중이다. 앞으로도 어떤 농단을 부릴지 알 수 없다. 박장범의 한국방송은 내란 세력의 눈치를 보느라 바쁘다. 이들이 있는 한 언론 자유는 여전히 위태롭다.

 

내란 수괴가 쫓겨난 뒤, 언론 탄압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반민주 세력이 다시는 언론 자유를 농단하지 못하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일이다. 지난 3년간 허술한 제도의 폐해를 충분히 봤지 않는가. 곧 대선이다. 공영방송 지배구조와 방송통신 심의 제도 등 미디어 거버넌스 개혁에 나서도록 시민사회가 정치권을 압박해야 한다.

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 | 한겨레 2025.04.14.

 

보수의 공백민중은 바람보다 먼저 눕기도 하지만, 결국 바람보다 먼저 일어섰다. 이번 내란 사태에서도 어김없이 이 땅의 풀들이 일어났다.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지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주었다. 물론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오물처럼, 내란 이후 열린 사회의 적들이 정체를 드러냈다. 민주화 이후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민주적 통제의 사각지대가 여전하다. 민주주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가야 할 길이 멀다.

 

한국 민주주의의 결정적 결함은 보수의 공백이다. 헌법을 부정하고 민주주의를 부수려 한 세력을 어떻게 보수라고 부르겠는가? 보수의 자리를 차지한 극단 세력은 야당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닫으며, 국가를 사적 이익의 수단으로 삼았다. 한마디로 애국심이 없다. 그리고 결국 무능이 드러나자, 나라를 지키는 군대를 정권 유지를 위해 불법적으로 동원했다. 시대가 변한 줄도 모르고 말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주의 규범을 수용하는 보수를 찾기가 어렵다. 전후의 세계사에서 분단과 전쟁을 겪은 한반도와 중립화 통일을 이룬 오스트리아 사례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일까? 바로 합리적 보수의 존재 유무다. 전후 오스트리아는 좌우의 온건파들이 협력해서 극단 세력을 제어하고 이념 갈등을 막았다. 국내의 단합으로 강대국을 설득할 수 있었다. 언제나 국내 정치와 외교의 공통점은 협상의 능력이다.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는 정부가 외교를 잘할 수 없다. 대한제국의 붕괴와 해방 후의 분단까지 국내의 분열이 외세의 개입을 부르고, 그것이 식민지와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 땅 비극의 역사는 분열의 결과이고, 그것은 보수의 공백 때문이다.

 

여전히 독재의 역사를 찬양하고 쿠데타를 옹호하는 세력이 보수의 자리를 차지하는 한,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어렵다. 민주주의 광장에 들어오려면 최소한 물리적 폭력은 포기해야 한다. 정치권이 저출산·고령화나 기후변화와 같은 시대적 과제를 논의해야 하는데,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데 너무 많은 정치력을 소비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다시 초당적 대화로 시대의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그게 가능하겠는가? 선진국의 초당적 대화는 이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이 모여서 한다. 대화는 서로 주고받는 것인데,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사람들과 토론이 가능하겠는가? 극단 세력이 보수를 대신하는 한, 중도의 지혜란 불가능하다.

 

다시 세계적으로 극우의 물결이 퍼진다. 극우주의는 무너진 중산층의 불안과 공포를 자극해서 세력을 키운다. 일상의 삶이 어려워진 사람들이 이성에 지치고 성찰을 멈추자, 증오와 편견 그리고 미신이 그 틈을 파고들었다. 반이민의 광기 너머에는 세계화로 더욱 벌어진 양극화의 그늘이 존재한다. 세계는 파시즘이 등장했던 시대적 환경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는 다행스럽게 시민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성, 그리고 국회의 신속성으로 위기를 넘겼지만, 윤석열이라는 괴물을 탄생시킨 위기의 구조는 그대로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극우주의가 번지는 유럽에서 독일의 기독민주당과 같은 보수정당이 민주주의의 문지기 구실을 했음을 주목해야 한다. 독일에서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이 이념적 격차를 넘어서 대연정을 하는 이유는 바로 극우 세력을 배제하기 위해서다. 물론 극우 정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방화벽 원칙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알 수 없다. 광기의 시대에 이성의 연합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세계가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보고 있다. 폭력으로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던 시도가 실패했고, 시민이 정치의 주체로 등장했으며,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시민의 힘으로 만든 민주주의의 불꽃이 제도화 과정에서 차갑게 식은 과거의 실패를 기억한다. 교훈은 분명하다. 민주주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연대의 정치가 필요하다. 파시즘은 비타협적인 급진파와 무능한 보수파의 분열 틈에서 탄생했다. 과거 한국 대선의 역사를 돌아봐도 민주주의 진영이 연대하면 승리했고, 분열하면 패배했다.

 

김구 선생은 19482월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할 때, 논어의 작은 것을 참지 못하면 큰일을 그르치게 된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내부 투쟁을 중지하자고 호소했다. 광복 80년을 맞으며, 우리는 중요한 역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무엇보다 극단주의 세력의 재집권을 막아야 한다. 무너진 민생과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한 정책 경쟁은 치열해야 하지만, 민주주의 규범 연합이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과 연대의 정치

김연철 | 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 | 한겨레 2025.04.14.

 

인공지능과 손잡은 과학혁신, 좋기만 할까

노벨상의 시간에 2024년은 인공지능의 해로 기록될 만하다. 인공지능 기반 기술에 전환점을 마련한 제프리 힌턴과 존 홉필드 교수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고, 노벨 화학상 수상자에는 인공지능을 통해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분석한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 존 점퍼 수석연구원과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가 선정됐다. 특히 화학상은 수상 업적의 주역인 인공지능이 이제 과학 연구의 한복판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지난해 11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보고서 미래 인공지능의 위험과 이익은 첫번째 이익으로 인공지능이 과학 진보를 가속화한다는 점을 꼽았다. 보고서는 현재 인공지능이 단백질 구조 분석, 약물 후보 탐색, 로봇공학 같은 분야에서 큰 진전을 이루고 있지만, 앞으로 수십년 안에 훨씬 다양한 분야에서 과학 연구 활동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학 연구에서 인공지능 활용이 급증하면서, 근래에는 과학 지식 생산이 인공지능에 무분별하게 의지할 때 뜻하지 않게 인식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와 경고도 부쩍 늘었다.

 

지난해 3네이처에 실린 과학의 인공지능 활용과 이해의 착각제목의 논문을 보면, 인공지능은 점차 과학 연구의 전 과정에서 중요하게 쓰이고 있다. 연구 초기에 인공지능은 선행 연구를 조사하고 요약하며 새로운 가설을 세우는 일을 돕는다. 연구는 자연 세계와 인간 사회를 시뮬레이션한 인공지능 모델 안에서 이뤄지기도 하며, 또한 인공지능은 빅데이터를 분류, 분석하고 해석해준다. 마지막 단계에서 인공지능은 논문 작성을 돕고, 심지어 논문 심사를 자동화하는 과정에 활용되기 시작했다. 생산적인 연구 파트너처럼 인식되는 인공지능은 잘못 쓰일 때 연구자를 오류와 곤경에 빠트린다.

 

더 큰 문제는 인공지능 기반 연구가 점점 늘어나 과학 지식 생산을 지배하는 지경에 이르면, 지식의 방법과 도구가 다양성을 잃고 인공지능에 맞춤한 것으로 위축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저자들은 이런 상황을 농업의 단일재배에 비유했다. 인공지능에 맞춰 질문과 과제를 우선해 찾고 인공지능의 답과 관점을 우선해 받아들일 때, 지식 생산에는 단일재배와 같은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농업의 단일재배가 해충과 질병에 취약하듯이, 과학의 단일재배는 오류와 기회 손실에 취약해질 수 있다.

 

최근 미국 프린스턴대학 연구자들이 네이처에 발표한 인공지능 과잉 의존이 과학에 해로운 이유라는 글은 인공지능 모델 안의 세상에 인식이 갇힐 때 과학 진보가 저해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예컨대 코페르니쿠스 혁명 이전의 천동설 천문학으로 훈련된 인공지능 모델이 있다면 어떨까? 인공지능은 중세 천문학의 패러다임 안에서 예측 정확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주겠지만 과연 열린 패러다임과 다른 세계의 발견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지적 권위에 그저 순응하지 않으며 열린 가능성에 눈을 돌리고 혁신하는 게 과학 정신이라고들 말한다. 인공지능 기반 연구가 늘어나는 요즘에는 이런 과학 정신을 위해서 인공지능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를 묻는 물음이 필요해 보인다.

오철우 | 한밭대 강사(과학기술학) | 한겨레 2025.04.15.

 

관세 전쟁에 승자 없고, 보호주의에 길이 없다

최근 미국은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모든 무역 파트너에 상호 관세보편 관세를 부과했다. 각국은 이에 대해 우려와 불만을 표명하고 있으며, 자유무역체제의 가장 어두운 시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이에 대해 몇가지 견해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째, 미국은 자체 기준에 따라 이론적 근거, 데이터 적용 및 정책 집행 측면에서 모두 심각한 결함이 있는 이른바 상호 관세 계산 공식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전혀 이치에 맞지 않고 대등하지도 않다. 미국 쪽은 한국이 미국 제품에 평균 50%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주장하며 한국에 25% 상호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는데, 한국 내에서 이에 대해 영문을 모르겠다는 견해가 많은 것에 주목한다. 한국의 많은 지인들이 한·미 양국은 높은 수준의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여 양국 간 실제 평균 관세율이 0.79% 수준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둘째, 미국은 오랫동안 국제 무역에서 많은 이익을 얻었다. 현재 미국의 대외 무역 구조는 미국 내 산업 구조와 시장 경제 법칙이 작용한 결과이며, 무역 적자는 곧 손해 보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미국은 상품 무역에서 적자를 낼 뿐이며, 서비스 무역의 흑자 규모는 매우 커서 2024년에는 2950억달러로 사상 최대치에 근접했다. 미국은 중국에도 서비스 무역에서 최대 적자를 안긴 나라다. 한때 세계 자유무역의 창설자였던 미국이 미국 제일주의미국 예외주의를 추구하기 위해 국제 경제·무역 규칙을 무시하고 이른바 상호성공정성을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무분별하게 관세 부과를 강행하여 전세계 각국의 정당한 이익을 희생시켜 미국의 패권 이익에 도움이 되도록 했다. 이는 전형적인 일방주의, 보호주의이자 경제적 패권 행위로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미국의 추가 관세 부과는 오히려 미국 쪽에 해가 되고 세계 경제 회복을 심각하게 저해할 것이다.

 

셋째, -미 경제·무역 관계의 본질은 호혜와 상생이다. -미 수교 46년 동안 양국 간 무역액은 25억달러 미만에서 2024년에는 약 6883억달러로 급증하여 양국과 양국 국민 모두 큰 이익을 얻었다. 최근 몇년간 미국은 무역 적자를 이유로 중국에 지속적으로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한편, 중국의 발전을 억제하기 위해 첨단 기술 제품의 대중국 수출을 제한하고 다른 국가들이 관련 분야에서 중국과 협력하는 것을 방해하여 중-미 및 중국과 타국 간의 정상적인 경제·무역 협력을 심각하게 방해하고 있다. 무역 전쟁에는 승자가 없고, 보호주의에는 길이 없다.

 

중국은 무역 전쟁을 원치 않지만, 중국 인민의 정당한 권익이 침해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 중국은 중-미 간의 경제·무역 관련 문제에 대해 미국과 협상할 용의가 있으나, 대화는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평등한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 만약 미국이 경제·무역 제한 조치를 더욱 강화하길 고집한다면, 중국은 확고한 의지와 충분한 수단으로 단호히 반격하고 끝까지 대응할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자국의 주권, 안보와 발전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국제 무역 규칙과 공정성, 정의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세계 경제의 바다는 각자 고립된 작은 호수나 강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일방주의와 보호주의의 역류가 아무리 거세게 솟구치더라도 개방과 협력은 변함없이 대세의 흐름이고 호혜·상생은 여전히 민심이 지향하는 바이며, 경제 글로벌화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 중국은 다자주의를 확고히 수호하고 높은 수준의 대외 개방을 적극 추진하며 중국식 현대화 발전의 기회를 세계 각국과 공유하면서 호혜·상생을 더욱 잘 실현할 것이다.

 

자유무역과 경제 글로벌화의 지지자, 제창자이자 수혜자인 중국과 한국은 최근 서울에서 경제 통상 장관 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다자주의를 수호하는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양국이 소통과 조율을 강화하고 자유무역체제를 공동으로 수호하며 보편적으로 혜택이 미치는 포용적인 경제 글로벌화를 추진하길 희망한다. 중국은 올해 한국이 아펙(APEC) 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것을 지지하며, 한국과 함께 아펙의 핵심 가치를 수호하고 자유롭고 개방적인 무역과 투자를 보호한다는 초심을 굳게 지키며 지역 경제 통합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길 바란다.

다이빙 | 주한중국대사 | 한겨레 2025.04.15.

 

모두 이재명을 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가 14일 서울 강남구 퓨리오사AI에서 퓨리오사AI NPU칩을 들어보이고 있다. 2025.04.14 국회사진기자단

 

늦게 핀 벚꽃이 바로 졌다. 긴 꽃샘추위로, 매화·목련·벚꽃이 함께 핀 ‘4월의 요지경도 잠시, 며칠 몰아친 비·돌풍··우박에 후두둑 다 떨어졌다. 그새 윤석열은 대통령직에서 파면됐다. “주권자인 국민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한죄였다. 3년 못간 윤석열 정권과 1주일 화려했다 사그라진 저 벚꽃이 닮았다.

 

윤석열은 철면피다. 관저 나오며 새 길을 찾겠다했고, 사저 들어가면서는 다 이기고 돌아왔다고 했다. 이런 정신승리가 없다. 아직 다 무너지지 않았다는 자기최면일 게다. 막후정치 해보겠다는 복심일 게다. 그러고보면 기는 꺾였어도, 한때의 집권당 친윤 지도부도, 쌍권(권영세·권성동) 위 쌍전(전광훈·전한길)’의 극우집회도, 그를 탈옥시켜준 형사 재판부와 심우정 검찰도 그대로다. 한덕수가 윤석열의 집사 변호사이완규를 대통령몫 헌법재판관에 지명한 평지풍파도 일어났다. 내란의 잔불은 꺼지지 않았다.

 

보수의 대선이 진창에 빠졌다. 첫 컷오프 전, 오세훈·유승민이 물러났다. 첫 결선투표 도입도, 한동훈 길을 막겠다는 거란다. 대선은 윤심 팔고 쌍전 눈치보는 탄핵 반대파일색이다. 8년 만에 다시 탄핵의 강에 갇힌 것이다. 그 강에 띄운 잠룡이 힘 받을 리 없다. 아니나 다를까. 의원 54명이 한덕수를 러브콜했다. 한덕수는 관세 협상끝나면 결단하려는 속내를 비췄다. 마지노선은 공직자 사퇴 시한(54)일 게다. 있을지 없을지 모를 단일화 이벤트까지, 당 경선은 김빠진 맥주가 됐다. 친윤계가 띄우는 한덕수 대망론이 가당한가. 윤석열을 탄핵한 시민을 바보로 아는 것이다. 그는 내란을 막지 못한 국무총리다. 김건희 국정농단과 이태원·오송·잼버리·엑스포 참사, 의료대란 터진 윤석열 3년에 한덕수는 어딨었는가. 김문수가 뉴라이트’, 홍준표가 명태균’, 한동훈이 검사정치라면, 한덕수가 가세한 대선엔 윤석열 국정굴레가 얹어진다. 누굴 탓하겠는가. 윤석열·극우 품고, 반성·쇄신 없이 대선으로 넘어가려 했을 때부터 당이 각오했어야 할 업보다.

 

해서, 6·3 대선은 1극이다. 이재명이다. 대선 지지율은 홀로 40%를 넘고, 양자대결은 50%를 찍는다. 언론만 변수로 둘 뿐, 여론조사표의 20% 전후 무당층도 큰 의미 없다. 늘 추적하면, 기권표 비율과 거기서 거기다. 내일 뽑으면, 이재명이 된다는 뜻이다. 숫자 뿐인가. 윤석열 파면 후 이재명 상승세는 여러 이유다. 내란 극복의 선봉이고, 사법리스크가 풀렸고, 좌에서 중도보수까지 이념·연대 영토를 넓혔다. 그의 기치 회복과 성장’, ‘AI 기본사회’, ‘민주주의·문화·과학기술 강국도 다 윤석열을 넘자는 것이다.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먼 앞의 이재명을 쫓는 대선이 됐다.

 

정작, 이재명이 넘을 정치 허들은 따로 있다. ‘제왕의 공포. 189석 이끄는 이재명이 대통령 되면, 행정·입법권을 쥐고 사법부 인사 몫도 크다. 국정원·검찰·경찰·국세청·감사원·방통위도 관장한다. 무엇도 할 수 있고, 못하게 할 수도 있는 자리다. 보수에선 앞질러 정치보복할 거라 공격한다. 시민이면, 물을 수 있는 말이다.

 

인수위 없이 국정 시작할 대선에서 이재명은 답해야 한다. 나라를 위해서, 이재명을 위해서, 약속대로 분권형 개헌 로드맵을 구속력있게 내놔야 한다. 다시 세울 정의는 내란·김건희·명태균·채해병 특검이면 족할 듯하다. 외과수술처럼 윤석열들을 싹 도려내고, 그걸 덮은 검경과 감사원은 단죄해야 한다. 어설픈 정치적 봉합이 통합은 아니다. 하나, 정치보복 소리 커진 2017년식 부처 적폐청산위 2탄은 없기 바란다. 그리고 또 하나 묻는다. 3년 전 임명직을 맡지 않겠다던 ‘7인회식 선언은 이제 없어진 건가.

 

202258일이다. 이재명은 계양산을 못잊을 게다. 대선 지고 60일째, 현관문을 4번째 나왔다는 그가 나는 죄인이라 했다. 그리고 말했다. “잘하기 경쟁을 하고 싶다.” 정치 복귀의 꿈과 이유로 삼은 열 글자다. 검찰의 집요한 칼끝과 윤석열의 영수회담 거절이 한스럽겠지만, 그도 되새길 말이다. 정치인은 초심 삼는 말이 있다. 내가 기억하고픈 이재명의 초심은 잘하기 경쟁이다. 그런 나라에선 여당복·야당복을 국민이 누리게 된다. 이재명은 호미질(성남시장쟁기질(경기지사)했고, 트랙터(대통령)를 몰고 싶다고 했다. 대선 목전, 5당이 내놓은 교섭단체 요건 완화·결선투표제 공약은 좋았다. 다당제 정치개혁을 당길 것이다. 1등 주자 말은 무겁다. 약속은 담게 된다. ‘큰 정부기치 든 이재명, 이제 큰 정치도 많아져야 한다.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 경향 2025.04.16

 

 

극우 정치와 지구위기

민주주의가 나의 무지나 너의 지식이나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오해되는 풍토가 퍼질 때, 결국 득을 보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가장 큰 목소리일 뿐이다.” 20세기를 살다 간 미국 과학자이자 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말이다. 이 말은 2025년 현재를 뚜렷하게 관통한다.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위기라는 절체절명의 난제 앞에 지성과 이성은 아무렇지 않게 조롱당하고 공격받는다. 세계 곳곳에서 극우 포퓰리즘은 반지성주의를 부추기고, 현실의 위기를 부정하거나 과학적 경고를 쉼 없이 깎아내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후위기를 중국이 날조한 사기극이라고 말한다. 풍력발전이 암을 유발한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과학 부정과 반지성주의 풍토는 결국 멸종위기종 보호법 완화나 국립공원 내 석유 시추 허용 등 생물다양성을 뒤흔드는 정책들로 연결된다. 최근에는 산업시설에서 탄소 배출량을 보고했던 의무를 폐지하기로 했다. 지구상 두 번째로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미국에서 기업에 대한 최소한의 감시수단을 없앤 것이다. 정책 결정의 자리까지 차지한 극우는 환경정책을 이념전쟁의 볼모로 만들어버렸다.

 

 

유럽도 심각하다. 폴란드와 헝가리 등을 필두로 동유럽 민족주의 정부들은 유럽연합(EU)2050 탄소중립 목표에 노골적인 반대를 표하며 합의를 한때 좌초시켰다. 프랑스의 마린 르펜 등 서유럽 극우 지도자들도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비난하며 자국 우선 논리를 편다. 극우 정치세력은 유럽 전역에서 포퓰리즘과 영합해 환경정책을 공격하고 있다. 독일에선 극우 정당 AfD가 탄소중립 정책을 엘리트의 강요라 선동하며 파리협정 탈퇴까지 주장한다. 심지어 EU 의회에선 극우 의원들이 미국의 특정 싱크탱크와 손잡고 자연복원 법안 같은 핵심 환경정책을 무산시키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극우 정치의 선동은 기후행동에 대한 시민들의 피로와 환멸을 부추겨 녹색정책에 대한 지지를 잠식하고 있다. 실제로 202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녹색당 의석이 줄고 기후회의론을 앞세운 세력이 약진하며 EU 핵심 환경 전략인 그린 딜의 향방도 불투명해졌다.

 

이성이 사라지고 과학적 경고가 무시되는 것은 욕설과 혐오가 난무하는 우리나라 극우 광장도 마찬가지다. 유튜브가 진실의 통로로 환호받고, 혐오의 언어가 토론의 언어를 대신하는 사이 반지성이 전부인 극우 정치는 힘을 더했다. 거기에 사회적 약자와 후발 세대 목소리는 설 자리가 없다. 극우 정치는 경제 불평등과 사회 위기의 심화 속에 기존 정치 질서에 대한 불신을 자산으로 삼는다. 유럽에서는 난민·이민자 문제를 계기로 혐오와 공포를 조장하는 극우 정당이 제도권으로 진입했고, 우리나라에서는 반공, 반페미니즘, 지역주의 등을 동원해 젊은 남성층과 기존 보수층을 극우 세력으로 결집시켰다. 극우는 보수의 연장이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반지성, 반다원주의적 흐름이다. 그야말로 민주주의의 적인 것이다.

 

지구위기는 인류 공통의 위기다. 우리에겐 선동과 혐오가 아닌 지성과 토론이 필요하다. 그렇게 인류 공멸을 부추기는 반지성의 극우 정치를 끝내야 한다. 그렇다면 유권자의 몫 아닌가. 이제 모든 건 당신과 나의 선택에 달렸다.

정규석 녹색연합 사무처장 | 경향 2025.04.16.

 

총성 없는 내전몰아넣은 윤석열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이 211개월로 짧았으나 한국 사회 곳곳을 1980년대로 후퇴시켰다.

 

이는 필자의 자의적 판단이 아니다. 국제적으로 신망을 받고 있는 스웨덴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는 올해 3월 발표한 ‘2025 민주주의 보고서에서 한국을 자유민주주의에서 선거민주주의로 한 단계 강등시켰다. 선거 같은 민주주의 제도는 갖추고 있으나 민주주의 기본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자유민주주의로 분류되기 위해선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균형, 법 앞의 평등, 시민적 자유 존중, 입법부·사법부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 연구소는 각 나라를 폐쇄적 독재-선거독재-선거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 4단계로 분류한다.

 

한국은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 선거독재에서 1987년 민주화에 힘입어 선거민주주의로 올라섰으며, 1993년 문민정부 출범으로 자유민주주의 단계에 진입했다. 우리가 선거민주주의 단계로 퇴보한 것은 32년 만에 처음이다. 입만 열면 자유를 외치던 대통령이 집권했는데, 정작 정치체제에서 자유가 떼어진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사상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를 이렇게 단기간에 퇴보시킨 지도자는 여태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윤석열의 검사통치는 예외적이었다. 윤석열이 남긴 가장 큰 폐해는 나라를 사실상 총성 없는 내전상태로 몰아넣었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정치 양극화 현상이 심각했는데, 윤석열은 이를 극단적 수준으로까지 악화시켰다. 12·3 사태 이후 4개월간 탄핵 정국에서 벌어진 분열 양상은 이념적 적대감으로 정치 테러가 난무했던 해방 공간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이 아닐까 싶다. 2016~2017년 박근혜 탄핵 때도 태극기 부대가 극성을 부렸으나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때와 다른 건 대통령이 고의적인 허위정보와 음모론을 유포해 극우세력을 선동하고, 여기에 집권여당이 동조하고 나선 점이다. 게다가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검찰·관료·종교·언론·법원·학계 내 수구세력이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는 집단적 공모현상까지 벌어졌다.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 장치가 마련돼 있어서 웬만해서는 내부적으로 무너지지 않으나, 이렇게 최고권력자와 집권세력이 의도적으로 파괴하면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윤석열은 지금까지 해온 것도 모자란지 아직도 분열 책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훼손된 민주주의를 다시 세워야 한다. 여러 과제가 있지만 극단적 정치 분열과 허위정보·음모론 유포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는 현대 사회에서 정치 양극화와 허위정보가 극심해지면 독재화가 진행된다고 진단했다. 헝가리·인도·페루 등 독재화한 나라들이 이런 패턴을 보였다. 한국도 이런 이유로 2년 연속 독재화 진행국으로 분류됐다.

 

남미의 칠레와 브라질에서 배워야 한다. 칠레는 20세기 중반까지 남미의 영국으로 불릴 만큼 유서 깊은 민주주의 나라였다. ‘칠레 와인 한병으로 해결될 수 없는 논쟁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타협의 정치가 이뤄졌다. 그러나 1960년대 냉전과 경제 불황 여파로 좌우파 정당 간 극단적 정치 분열 현상이 나타났다. 좌파는 우파를 파시스트라 하고, 우파는 좌파를 전체주의라 비난하는 지경이었다. 정국 불안의 틈을 타 1973년 군부 쿠데타가 발생해 150년 역사의 칠레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말았다.

 

17년 이어진 군부독재를 겪고서야 정치인들은 정신을 차렸다. 기독민주당·사회당 등 20개 정당이 민주주의 연합을 구성했다. 이 연합은 독재를 물리치고, 이후 20년간 공동정권을 운영했다. 또한 합의 민주주의라 불리는 협력 규범을 마련했는데, 예컨대 대통령은 법안을 의회에 제출하기 전 모든 정당의 지도자를 만나 협의를 해야 한다는 식이다. 이 연합은 칠레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회복시킨 것으로 평가받는다.

 

브라질의 경우, 극우 유튜버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 집권 시절 정권 차원에서 허위정보와 음모론을 유포해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2022년 대선 전후로 사법부와 선거관리위원회 중심으로 대대적인 허위정보와의 전쟁을 벌였다. 최근 브라질이 민주주의로 유턴한 데는 허위정보에 대한 적극 대응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칠레와 브라질은 혹독한 독재 트라우마를 겪고 깨달음을 얻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이번 내란 사태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윤석열보다 더 센 독재자가 출현해 훨씬 더 파괴적인 현실을 마주할 수 있다. 김용현·노상원 등 군 장성 출신들의 행태를 봤을 때 또 다른 쿠데타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안심할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정치인들이 정신 차려야 한다.

박현 ㅣ논설위원| 한겨레 2025.04.16.

 

딥스테이트는 있다

요즘 세계 곳곳에서 득세하는 극우파 담론의 대부분은 막연한 의심과 망상적 서사가 결합한 음모론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음모론과 사회과학적 분석의 경계선에 선 주장이 있다. 요즘 미국에서 유행하는 딥스테이트(심층국가)’론이 그것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선거에 의해 권력이 바뀌는 것처럼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실제 국가를 움직이는 것은 선거와 별개로 늘 권력을 쥐고 있는 딥스테이트 세력이다.

 

여기에서 (deep)’은 주로 국가기구 안에 깊숙이 숨어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며, 이로 인해 딥스테이트론은 유치하거나 근거 없는 음모론 중 하나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국가기구 내부의 비민주적 세력은 굳이 그렇게 어두운 구석에 은밀히 숨어 있을 필요가 없다. ‘딥스테이트론이 현실에 더 부합하려면, ‘은 오히려 국가기구에 깊이 뿌리박혀 있음을 뜻해야 한다. 국가 안에 워낙 깊고 단단하게 뿌리 내린 탓에 공공연히 비민주적 행위를 자행하더라도 두려울 게 없다는 의미로 말이다.

 

지난 넉달간 내란을 진압하면서 우리는 한국 사회에도 이런 의미의 딥스테이트가 똬리를 틀고 있음을 확인했다. 내란범 수사와 재판을 맡은 검찰청과 법원이 기괴한 분업을 통해 내란 우두머리의 구속 취소라는 공동 작품을 만들어냈다. 덕분에 시민들은 혹시나 내란 진압이 실패할지 모른다는 의심과 걱정에 가슴을 졸이며 헌법재판소 판결을 기다려야 했다. 시민들의 따가운 눈초리쯤이야 아랑곳없는 사법 엘리트, 검찰 엘리트의 실상이 다시 한번 선명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들만이 아니었다. 이 익숙한 등장인물들보다 훨씬 더 막강한 영향력을 훨씬 더 뻔뻔하게 구사한 이들이 있다. 바로 한덕수 국무총리와 최상목 경제부총리다. 이들은 국회가 추천한 헌법재판관에 대한 임명 절차를 거부하는 위헌 행위를 저질렀고, 지금도 헌법재판소 구성에 정략적으로 개입해 보려고 헌법이 정한 권한의 한계선을 주저 없이 넘나든다. 자신들이 그간 대한민국 국가기구에 박아놓은 거대한 뿌리가 헌법 따위에 흔들릴 일은 없다고 믿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행태다

 

한덕수 총리, 최상목 부총리 모두 경제부처 관료 출신이다. 한덕수는 유신독재 시절부터 경제기획원과 상공부에서 잔뼈가 굵었고, 최상목은 민주화 이후 재무부에서 재정경제부를 거쳐 기획재정부로 이름을 바꾼 재정 담당 부처의 역사와 함께했다.

 

이번에 두 사람이 드러낸 생각과 행동은 이들이 속한 경제부처 관료 집단이 지금껏 어떤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으로 움직여왔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나라 경제가 휘청거릴 때도 이들은 대자본의 이해를 가장 먼저 알뜰히 챙겼고, 서민 복지 확대가 더욱더 절실히 필요해지는데도 부자 감세 정책만 거듭했다. 대한민국 헌법보다 더 강력한 이들만의 헌법이라도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중대한 정책 결정이 이뤄질 때마다 공교롭게도 이들의 부동산 역시 값이 뛰었다.

 

그간 관료기구 가운데 개혁 대상으로 유독 주목받은 것은 검찰이었고, 검찰의 문제점은 내란 사태 와중에도 분명히 드러났다. 하지만 이제는 검찰뿐만 아니라 고위 경제 관료를 비롯한 한국형 딥스테이트 전반으로 비판과 감시의 시야를 넓혀야 한다. 친위 쿠데타의 지반이 된 제6공화국 질서의 한계를 넘어 국가기구의 민주화를 개혁 의제에 올려야 한다. 그것만이 한덕수, 최상목 같은 부류가 더는 행세하지 못하게 하는 길이다.

장석준 |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 한겨레 2025.04.16.

 

극우 보수화어찌 멈출까 묻는다면

가장 부지런하고 성실하다고 알려진 노동조합 간부가 있다. 새벽에 출근하는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많아서 새벽 5시에 교육을 해야 하는 일이 잦다. 최근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채 국회에 들어가다가 제지당했다. 입구에서부터 경찰들이 어디 가냐? 약속은 된 거냐?” 꼬치꼬치 캐물어서 윤석열 내란도 막지 못한 것들이 선량한 시민한테 무슨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이냐?”고 호통을 치며 따지고 싶었으나, 실제로는 공손하게 설명하고 들어갔다고 한다.

 

지방에 있는 비교적 규모가 큰 기업에 노조를 설립하느라고 며칠 내려가 머문 적이 있다. 발기인 몇 사람이 모여 노조 설립총회를 치르면서 일이 잘못되면 마지막에는 우리들만 남을 수도 있다고 비장한 각오를 했다. 설립보고대회를 치르고 조합원들의 가입을 받았다. 기업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어서 현장의 호응은 뜨거웠다.

 

점심시간에 노조 조끼를 처음 착용하기로 결의했지만 회사 관리자의 눈치를 보느라고 거의 입지 못했다. 몇명 안 되는 여성 조합원들 중 두 사람이 노조 조끼를 입고 식당에 들어섰다. 한 남성 조합원이 그 모습을 찍어 노조 누리집 게시판에 올리면서 조합원님들, 뭐 느껴지시는 거 없습니까?”라고 간단하게 적었다. 그날 저녁, 노조가 마련한 조끼가 모자랐다. 그 노동조합에 천명 넘는 조합원이 가입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에 올랐다.

 

최규석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송곳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대형 마트에 노조를 설립하고 처음 조끼를 착용하기로 한 날, 한 계산원은 가방에 꽁꽁 감춰 들여온 조끼를 계산대 밑에 숨어서 몰래 입는다. 눈을 꼭 감은 채 용기를 내 겨우 일어선 뒤 실눈을 뜨고 주변을 살피자, 조합원들이 저마다 조끼를 입고 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면서 감개무량해 눈물짓는다. 아들의 노동조합 활동을 말리던 몸이 아픈 엄마와 그 아들도 조끼를 입은 채 서로 마주 본다. 노동조합이 설립될 때마다 벌어지는 일들이다.

 

정보통신 기업에 노동조합을 설립하면서 조끼를 입을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했다. ‘단결’ ‘투쟁등의 구호가 적힌 조끼가 민주노조의 상징이긴 하지만, 직원들의 정서를 고려하면 노동조합에 쉽게 다가서기 어렵게 만드는 저해 요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조끼 대신 모자가 달린 후드 티셔츠를 입기로 했다. 조합원을 한명이라도 더 가입시키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반영된 선택이다. 그 결정을 전해 들으며 서양 사람들이 볼 때는 후드 티셔츠가 우리나라 조끼와 비슷한 느낌의 옷이야. 영화에 보면 뒷골목 범죄자들이 그런 옷을 많이 입고 나오잖아라는 농담을 하며 서로 웃었다. 그게 뭐라고. 우리 사회의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감은 그렇게나 크다. 다른 나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이상한 현상이다.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의 양상이 응원봉의 물결로 바뀌고 나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노조 조끼를 입고 식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계산하려고 했더니 다른 사람이 이미 내 몫까지 계산했다고 한다.”, “노조 조끼를 입고 지하철을 탔는데 어떤 남자가 자리를 양보했다. 마다했는데도 내가 꼭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런다면서 굳이 나를 자기 자리에 앉혔다. 앉아서 오는데, 울음이 나오려고 했다.”

 

불과 몇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2016~2017년 박근혜 퇴진 요구 촛불집회에서는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노동단체의 깃발조차 못 들게 했다. 사회자가 마이크로 거기 깃발 내리세요!”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노동단체의 깃발이나 구호가 마치 집회의 순수성을 침해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회가 점차 극우 보수화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크다. 얼마 전, 한 고등학교에서 청소년의 미래를 준비하는 인문학, 노동인권이라는 제목의 강의를 마친 뒤, 한 학생이 질문했다.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안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청년들의 극우 보수화가 매우 심각합니다. 언제쯤 돼야 우리 사회가 다시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기 시작할까요?” 내가 어쭙잖게 답했다. “언제쯤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어느 쪽으로 노력해야 하는지, 그 방향은 변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약자의 권리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노동자들의 권리가 더 많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원칙은 어떤 상황에서도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집회 현장에서 민주노총 머리띠와 응원봉을 바꾸자고 제안하기도 하는 청년들이 우리 사회 희망의 약속이다.

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 한겨레 2025.04.16.

 

다양성은 죄가 없다

 

지난 1일 미국 시카고에서 숙련된 건설업 여성을 양성하고 유지하는 일을 하는 비영리단체 시카고 우먼 인 트레이드건물 입구에 여성 건설노동자를 그린 벽화가 전시돼 있다. 시카고/AP 연합뉴스

지난달 중순 뉴욕타임스 여론면에는 기업 디이아이(DEI: Diversity·Equity·Inclusion, 다양성·형평성·포용성) 운동은 실패할 운명이었다는 제목의 에세이가 실렸다. 회사가 디이아이 정책을 고려해 다양한 성별과 인종 채용 등을 회사의 전략과 연계해 연간 성과 목표를 수립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는 주장이었다. 기업 문화나 사명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화된 교육으로 동일한 진보적 목표만을 추구했기 때문에 역효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열흘 뒤 또 다른 논객은 디이아이는 없애는 게 아니라 개선해야 하는 것이라는 반박 글을 내놓았다. 그는 기업에 디이아이 담당 부서가 없다면, 다양성은 의도적으로 줄이게 되고 많은 이점을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양성·형평성·포용성가치에 대한 질문은 한국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500명가량 속해 있는 이에스지(ESG, 환경·사회·거버넌스를 지향하는 경영) 뉴스 공유용 익명의 단체 메신저 방에서는 최근 며칠 동안 격론이 이어졌다. 각 기업 이에스지 담당자가 많이 참여하고 있는 이곳에서도 디이아이를 강요하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을 제거해야 한다” “급진적 강요가 백래시를 불렀다” “이에스지는 지속가능함이며 특정 이념의 강요가 아니다” “성비를 기계적으로 맞추는 것은 기회의 평등을 제한한다등 날것의 주장들이 쏟아졌다. 생각이 다른 이들은 누가 억지로 성비를 맞추라고 하나” “기업 컨설팅을 하면서, 역차별을 감행하면서까지 다양성과 포용성을 강요받는 기업은 본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쏘아 올린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감이 디이아이로 대표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포용 능력을 맹렬히 공격하고 있다. 세계를 상대로 힘을 과시하는 것은 관세뿐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의 파급력을 무시할 수 없다. 미국과 거래하는 독일계 한 통신 기업은 미국 정부 눈치를 보고 디이아이를 폐기한다는 서약을 맺었고, 미국 정부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랑스 대기업은 미국 정부로부터 디이아이 정책을 폐기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미국을 자유의 나라라고 부르게 한 안전망, 종교와 언론·출판·집회의 자유와 청원의 권리를 담은 수정헌법 1까지 부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흐름이 이해될 정도다.

 

정치권력이 과도하게 커지고 사회의 공기와도 같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깨지면 개인은 위태로워진다. 거대한 과제를 해결하느라 여러 영역의 사회 진보가 유보되거나 후퇴하기 때문이다. 서둘러 두개의 전쟁(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가자 전쟁)을 끝내겠다던 트럼프 대통령은 전세계를 상대로 미국 우선주의를 실현하느라 이를 마무리 짓지 않고 있다. 또 당장의 성과가 나기 어려운 의료·과학 기술, 대학 교육 지원과 기후위기 대응, 사회·경제·신체적 약자에 대한 보호 등에 대해 최강대국의 영향력을 서서히 내려놓으려 한다.

 

세계 경찰국가를 자신하던 미국의 그늘이 너무 짙었던 것일까. 각자도생하는 세계는 또 다른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일종의 기회를 맞은 걸까. 분명한 것은 격변기일수록 작은 목소리들이 너무 쉽게 묻혀버린다는 점이다. 오늘의 디이아이 정책처럼.

최우리 | 국제뉴스팀 기자

 

윤석열의 폐허에 내리비치는 빛

이바라기 노리코(1926~2006)라는 일본 시인이 있었다. 32세 때 20대를 회고하며 쓴 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에서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변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쟁이가 될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고발했다. 그리하여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난 몹시도 불행했고/ 난 몹시도 엉뚱했고/ 난 무척이나 쓸쓸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가능하면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 매우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프랑스의 루오 영감님처럼 말이지.”

 

도쿄경제대 교수였던 서경식(1951~2023)은 노리코의 이 작품에 대해 피해자 의식에 사로잡힌 한탄의 노래는 아니다. 봉건제와 군국주의의 멍에에서 해방돼 자립하려는 여성의 눈부심이라며, 어딘가 폐허에 내리비치는 빛과 같은 시라고 평했다.

 

쇼와의 언어도단에 거무칙칙한 웃음 피 토한 시인

작가 노리코가 50세 될 즈음(197510), 쇼와 천황이 미국을 방문하고 귀국하면서 공항에서 기자회견 하는 걸 보았다. 한 기자로부터 자신의 전쟁책임에 대한 질문을 받자, 쇼와는 그런 언어의 기교에 대해서는, 나는 문학 방면에 관해서는 제대로 연구한 바가 없어서, 대답하기 어렵습니다라 말(?)했다.

 

쇼와(昭和) 천황(1901~1989)이 누구인가? 그는 124대 천황(재위: 1926~1989)으로, 당시 일본 제국의 절대 권력자로 전쟁의 최고사령관을 했다. 일본 사회에서는 그가 사실상 신()으로 통했는데, ‘현인신(現人神)’이라는 것! 그랬던 자가 국내외의 무수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전쟁책임에 대해선 언어의 기교문학 방면’, ‘제대로 연구한 바가 없어라는, 말 같지 않은 말(?)로써 사회적 책임을 교묘히 피해나갔다. 한마디로, 세상을 속인 것! 아니, 세상 이전에 자신을 속였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발언에 대해 거의 모든 언론이, 그리고 지식인들조차 별로 문제 삼지 않았던 점이다. 이바라기 노리코가 예외였다.

 

노리코는 사해파정’(四海波靜)이란 시에서 당시 피 끓는심정을 토로했다. “전쟁책임에 대해 묻자/ 그 사람은 말했다/ 그런 언어의 기교에 대해/ 문학적 방면은 별로 연구하지 않아서/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와/ 거무칙칙한 웃음 피를 토하듯/ 뻗쳐올랐다가, 멈추고, 다시 뻗쳐오른다.”

 

사해파정’(四海波靜)이란 말은 천하의 풍파가 진정되어 태평해진 상태를 뜻한다. ‘현인신으로 불리는 자가 아시아-태평양 전쟁으로 온 세상에 풍파를 일으켜놓고 전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냉정한 모습, 게다가 일본 사회 전반이 그런 태도를 상당히 공유하고 있는 상태, 그리하여 힘없는 시인 하나라도 악을 쓰면서 그런 현실을 고발해야 할 것 같은 느낌, 바로 그 모든 현실이 작가에게는 도무지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 전범 당사자가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을 회피하면서 언어의 기교문학적 방면은 특별히 연구하지 않아말할 수 없다고 한 대목은, ‘느낌-마음-언어로써 삶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시인에게는 한마디로 언어도단(言語道斷)’이었다.

 

2025년 한국에 재현된 권력자의 언어도단

그런데 바로 그 언어도단의 현실을 2025년 대한민국에서 우리 모두 경험하고 있다. 202412·3 쿠데타를 일으킨 윤석열은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했다. 야당 의원들과 시민 저항으로 채 6시간도 안 되어 국회에서 계엄해제 결의가 되자, 윤석열은 계엄 해제를 말하면서도 거듭되는 탄핵과 입법 농단, 예산 농단으로 국가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무도한 행위는 즉각 중지해줄 것을 국회에 요청한다고 했다. 3일 뒤 국민에게 사과를 한답시고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면서, “저는 이번 계엄 선포와 관련하여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습니다라 하고선 지금까지 책임성 있는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말이라도 했다면 기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의 모습을 보면 마치 혁명 영웅으로 보인다. 2025115일 힘겨운 시간 끝에 구속 조치된 윤석열에 대해 50여 일 지나 지귀연 판사가 사실상 탈옥을 돕는 결정을 내렸다. 38일 윤석열이 서울구치소에서 나올 때 그는 거의 개선 장군이었다. 그리고 44일 헌재는 8:0 전원 일치로 파면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진심어린 사과나 사회적 책임감은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411일 대통령 관저에서 퇴거할 때까지 마치 승리 파티라도 하는 듯 보였다.

 

퇴거하는 당일도 내란 수괴가 아닌 혁명 영웅의 은퇴 행차처럼 보일 정도로 경찰과 경호원들이 넓은 도로를 완전 차단하고 에스코트했다.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에 도착했을 때, 윤석열은 환영 나온 입주민과 지지자들에게 다 이기고 돌아온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라 했다. 한 지지자가 너무 가슴 아파요라 하자 그는 어차피 뭐 (대통령을) 5년 하나 3년 하나라며 웃었다. 장기 집권 욕망의 내란 수괴가 아닌, 선정을 베푼 성공 대통령이 겸허히 3년만 하고 물러난 것처럼 자기 기만한 것!

 

심지어, 414내란 혐의첫 형사재판에서 저는 군인에게 실탄 지급을 하지 않고 민간인과의 충돌을 절대 피하라고 지시했다대국민 메시지를 위한 계엄이지, 이것이 단기간이든 장기간이든 군정을 목표로 한 게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고 했다. 이미 김선호 국방장관 직무대리는 2월 국회 국방위 질의·답변에서 동원된 실탄이 18만 발로 확인돼 보고한 바 있다했다. 5천만 국민을 공포에 떨게 해 놓고 이제 와서 대국민 메시지를 위한 계엄”, 계몽령에 불과했기에 별 것 아니란 투다. 이 부분에서 나는 차라리 쇼와가 나았다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쇼와는 양심이 있었던지 대답하기 어렵다고 자백했기 때문! 이렇게 윤석열은 언어도단을 넘어 정치도단’, ‘헌법도단을 일삼는다. 아직까지 본인이 무슨 짓을 했는지 전혀 모른다!

 

윤석열 김건희 뿐인가, 최상목 심우정 한덕수

그러나 윤석열은 결코 단독범이 아니다. 윤석열을 닮은 제2, 3의 윤석열이 너무도 많다. 김건희만이 아니다. 우선, 최상목은 한국 경제를 책임지는 자리(경제부총리)에 앉아 원화가치가 하락할수록, 즉 한국 경제가 나빠질수록 이득을 보는 미국 국채를 매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327일 공직자 재산공개 현황에 따르면, 최상목은 환율이 급등하던 2024년에 ‘30년 만기 미국 국채2억 원가량 투자했다. 나라살림 책임자가 나라가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사적인 돈벌이에 정신이 팔려 있다는 것. 이게 무슨 짓인가? ‘언어도단아닌 경제도단이라 해야 할까? 한편, 최상목은 2024년에 국가부채가 146조나 불어나 무려 2586조 원이 되었는데도, ‘펑크난 살림과 미래 세대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도 없이 국가 총부채비율이 7년만에 감소했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이게 말인가, 방군가? ‘언어도단이나 경제도단을 넘어, ‘영혼도단수준이다.

 

검찰총장 심우정 역시 38내란 수괴윤석열의 탈옥 직후 법원에 즉시 항고하지 않음으로써 내란 수괴가 맘대로 다니게 협조했다. 대전지검 임은정 부장검사가 심우정 총장과 김주현 민정수석(대통령실)은 확실한 상명하복의 관계이기 때문에 심우정 총장이 김주현 민정수석한테 대들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 논리상 어쩔 수 없이 (즉시 항고를) 하는 척이라도할 것이라 확실히 생각했는데, 확신했던 바가 틀려 너무 당황스러웠다고 했을 정도다. 이제 심우정 검찰총장은 윤석열과 내란 공범임이 확실시됐다. 오죽하면 임 검사는 검찰 장례식을 치르는 기분이라 했을까? 한편, 심우정은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검찰의 수장인데, 그 딸이 외교부 공무직 연구원 채용 과정에서 아빠 찬스를 활용했다는 의혹이 크다. 무엇보다 심 총장 딸은 서류전형 3등이었는데 면접에서 1등으로 합격했다. 반면, 서류 1등이었던 다른 지원자는 면접에서 3등이 되는 바람에 탈락했다. 윤석열이 그토록 강조하던 공정과 상식은 어디로 가고, 검찰총장마저 공정도단에 앞장서다니!

 

한덕수는 어떤가? 그는 대통령 권한 대행임에도 스스로 대통령이 된 듯 착각한다. 그는 48일 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다. 미국이 57개국에 부과하겠다고 공언한 고율의 상호관세 발효 하루 전이었다. 국무총리실 발표로는 한 대행이 약 28분간 통화했는데, ·미 동맹 강화, 무역균형 등 경제협력, 북핵 문제 등 양국 현안을 논의했다 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통화 직후 자신의 SNS한국의 대통령 권한대행과 훌륭한 통화를 했다거대하고 지속불가능한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 관세, 조선, 미국산 LNG의 대량 구매, 알래스카 가스관 합작 사업, 그리고 우리가 한국에 제공한 대규모 군사적 보호에 대한 지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한국의 최상급 협상팀이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고, 상황(‘원스톱 쇼핑’) 은 매우 긍정적이라 했다. 그럴 듯한 말의 성찬을 그만두고 골자만 추리면, ‘한국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겠다는 것이다. 이미 그게 현실인가 싶을 정도다.

 

내란당에서 쏟아져 나온 후안무치 대통령 후보들

그 와중에 내란당인 국힘당에서 어찌 그리도 많은 대선 후보들이 나올 수 있는가? 그동안 참느라고 허덜시리 욕 봤다!’ 그러나 그 잘 난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내란 사태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거나 진지한 사과를 하지 않는다. 하기야 그런 걸 안다면 아직도 내란당을 해체하지 않고 버티겠는가? ‘언어도단을 넘어 후안무치(厚顔無恥)’ 내지 인면수심(人面獸心)’의 경지다.

 

사회심리학적으로, 범죄자가 범죄를 자백하거나 인정하지 않기 위해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기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듯 처신할 필요가 있다. 일종의 자기방어 기제로, 이인증(離人症, Depersonalization)이라 한다. 우리에겐 유체이탈화법이 더 익숙하다. 이미 박근혜 시절에 많이 경험한 덕분! 이인증 내지 이인화란 자신이 신체와 심리로부터 분리되어 있거나, 또는 스스로 자신에 대한 관찰자가 되는 듯한 증상을 느끼는 것이다.

 

실제로, 20144·16 세월호 참사로 304명의 소중한 생명이 사라졌을 때다. 유가족들이 국가의 책임을 외치며 단식 투쟁에 나섰다. 그 해 8, 로마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해, 세월호 유가족들을 깊이 위로했다. 반면, 박근혜는 남의 일처럼 구경만 했다. 그러고선 교황과 독대했을 때 박근혜는 지난 4월 세월호 침몰 사고의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데 감사드립니다라 했다. ‘언어도단이자 정치도단이었다.

 

광기극복 위한 인간적, 민주적, 생태적 연대 절실한 시점

이바라기 노리코는 만년에 조선말을 독학했다. 이어 노리코는 윤동주(1917~1945) 등 조선 시인들을 일본 독자들에게 적극 알렸다. 당시 일본 사회의 급격한 우경화도 개탄했다. 편협한 민족과 국가의 분단선을 넘어 인간적, 민주적, 생태적 연대가 절실한 시점이다. 그런 연대가 공고히 형성될 때 비로소 우리는 언어도단, 정치도단, 헌법도단의 광기를 제대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노리코가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아무도 내게 다정한 선물을 주지 않았다/ 남자들은 거수경례밖에 몰랐고/ 순수한 눈짓만을 남기고 다들 떠나버렸다며 서글퍼하던 그런 시간들을 더 이상 겪지 않을 수 있으리!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내란 세력에서 보듯 거수경례밖에 모르거나 성공과 출세욕망에 사로잡힌, 짐승 같은 자들이 우글대는 세상에 산다.

 

1999년 이바라기 노리코는 73살의 나이에 <기대지 말고>란 시집을 출간했다. 당시는 일본에서 히노마루(일장기기미가요(국가)’의 법제화가 강행되고 있었다. ‘기대지 말고라는 시는 이런 속마음을 얘기한다. “더 이상 야합하는 사상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야합하는 종교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야합하는 학문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어떤 권위에도 기대고 싶지 않다/ 오래 살면서 마음속 깊이 배운 건 이 정도/ 네 눈 귀 내 두 다리만으로 선들/ 무슨 불편 있으랴/ 기댄다고 한다면 그저/ 의자 등받이뿐.”

20062월 어느 날, 서경식은 이바라기 노리코의 편지를 받았다. “이번에 나는 2006217, 지주막하출혈로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됐습니다. 이것은 생전에 써 둔 것입니다.”

 

과연 폐허에 내리비치는 빛과 같은 시, 편지, 삶이다. 쇼와나 윤석열 류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말과 글, 인생이다,

 

지난 4개월 간 도처에서 만난 폐허에 내리비치는 빛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는 그 폐허에 내리비치는 빛들을 12·3 계엄 세력과 싸우는 4개월 여 과정에서, 국회와 길거리에서, 남태령과 광화문에서, 청계천과 안국역에서 무수히 만났다. 특히 나는 2030세대 청년들(그 중 여성들)의 눈부신 활약이 희망의 토대라 본다. 이들은 응원봉 집회에서만이 아니라 전봉준 투쟁단깃발을 든 농민(전농)이나 노동자 희망깃발의 민주노총과의 연대, 나아가 녹색병원을 이을 전태일의료센터와의 연대(전태일병원 건립기금 후원)에서도 놀라운 태도를 보여 주었다. 일례로, 남태령 대첩에서 전태일병원 건립계획을 듣고선 특히 2030여성들이 대거 후원 물결을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총 27000여 후원자들 중 16000명 이상(60%)202412월 이후에 결합한 이들이라 한다. 현재 50억 모금 목표 중 80% 이상이 달성된 상태다. 한 역사학자는 이런 현상을 두고 전봉준 정신이 전태일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고 했다. 어찌 보면, 이런 모습들이 우리 사회가 가장 예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는, 아름다운 시로 감동을 준 이바라기 노리코만큼 오래 살지 않은 지금도 꽤 행복하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다는 한강 작가의 말처럼, ‘제대로 산 자가 죽던 자도 살린다는 말 역시 가능하지 않을까?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 전 마을이장| 시민언론 민들레 2025.04.17.

 

윤석열 파면에도 장관들이 사표내지 않는 이유

윤석열이 대통령에서 파면됐는데도 스스로 사임한 장관이 아무도 없는 데 대한 비판이 거세다. 내란 종결과 수습을 위해서는 거국내각을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내란에 동조하거나 적어도 방조한 내각이 국정을 책임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12.3 불법 비상계엄에 대해 책임지고 스스로 사표를 낸 윤석열 정부의 장관은 한 명도 없다. 박근혜 파면 이후에는 여러 장관이 책임을 지겠다며 사표를 제출했다. 왜 그럴까? 박근혜 정부의 장관들이 윤석열 정부 장관들보다 양심적이어서? 그럴 리가 없다. 국민과 국가가 안중에 없고 자신들의 안위만을 챙기기는 두 정부 장관들 모두 매한가지다.

 

자신들이 모시던 대통령의 파면 이후 두 정부 장관들의 행태가 다른 이유는 파면의 원인이 다르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쫓겨났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를 구성한 장관들은 부차적인 책임을 지면 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윤석열의 장관들은 내란의 공범 신세다. 중요임무에 종사했느냐 아니냐의 차이에 따라 처벌의 무게가 다를 뿐, 무거운 벌을 받을 가능성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윤석열은 12.3 불법 비상계엄이라는 내란을 일으켰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파면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윤석열을 옹호해 온 국민의힘은 형사재판이 안 끝났으니 내란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12.3 비상계엄을 위헌위법이라고 결정했고, 검찰은 윤석열을 내란 우두머리로 기소했다. 그러니 당연히 국민 대다수가 윤석열의 난이라고 인식하고, 공정한 언론은 '내란'이라고 쓴다.

 

윤석열 정부에서 12.3 내란 이후 사표를 낸 장관은 김용현 국방, 이상민 행안, 김문수 노동 등 3명뿐이다. 김용현은 쿠데타가 실패한 직후인 지난해 124일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를 표명했고, 윤석열은 그를 면직시켰다. 내란 사태의 중요임무 종사자로 지목된 김용현은 국회 국방위의 긴급 현안 질의를 앞두고 이를 피하려 부랴부랴 사표를 낸 것이다. 이상민 역시 국회에서 자신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발의되자 이를 피하려 다음날 사표를 냈다. 김문수는 대선 출마를 위해 사퇴했다. 결론적으로 불법 계엄, 내란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난 국무위원은 아무도 없다. 책임은커녕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국정을 농단하기 일쑤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헌재의 탄핵소추 기각으로 복귀한 뒤 여전한 거부권 행사 버릇을 그대로 부렸다. 하다하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해서는 안 되는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지명을 강행했다. 그것도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고 있는 이완규 법제처장을 지명했다. 명백한 헌법 위반이다. 이에 헌재가 8일 만에 효력정지를 결정했다. 한덕수는 막판까지 자신은 헌법재판관을 지명한 게 아니라 발표했을 뿐이라는 해괴망측한 변명을 내놓았다.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를 각하시키려는 눈속임이었다.

 

최상목 부총리가 12.3 내란 이후 보인 법꾸라지행각은 이미 세간에 많이 알려져 있다. 대통령에게서 받은 지시 메모 용지를 쪽지라며 읽어보지도 않고 직원에게 건네주었다고 했다. 어떻게든 윤석열의 내란동조 혐의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또한 헌재가 분명하게 위헌이라고 한 마은혁 재판관 임명을 미루고 미루다 한덕수가 대행으로 복귀하자 그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새로운 버전의 뻔뻔함도 드러냈다. 16일 열린 자신에 대한 국회 법사위 탄핵사건 청문회에서 김용민 의원이 비상계엄 이후 핸드폰을 바꾸거나 유심을 교체한 일이 없느냐고 묻자 단호하게 교체한 적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비루한 거짓말은 정청래 법사위원장의 통신사 제출자료 공개로 바로 들통났다.

 

윤석열 정부에서 장관급 방송통신위원장을 지낸 이동관과 김홍일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발의되자, 본회의 의결을 앞두고 자진 사퇴했다. 헌재에서 파면이라는 징계를 피하기 위한 목적이었다지만 외견상으로는 자신이 책임지고 물러난 모양새다. 윤석열의 장관들은 왜 현재 자리를 지키기 위해 위헌, 위법, 양심불량까지도 마다하지 않을까?

 

현직을 지키고 있는 게 추후 내란죄 처벌을 피해가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불법 비상계엄 선포를 전후한 자신들의 행각을 지우기 위해서 현재 자리에 있어야만 한다. 특히 대선관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장관들은 더욱 그렇다.

 

한덕수 대행의 이완규 후보 지명을 놓고 윤석열에 대한 충성심 또는 명령에 따른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한덕수는 그렇게 의리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를 중용했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한 이후 그의 처신이 이를 방증한다. 이완규 처장을 헌재재판관에 지명한 것은 자신이 재탄핵되거나 국민의힘 정당해산청구 등에 대비해 헌재의 구성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놓겠다는 속셈으로 봐야 한다.

 

최상목 부총리의 핸드폰 교체 관련 새빨간 거짓말도 내란죄 회피용의 냄새가 짙다. 정청래 위원장이 말한대로 내란 공범혐의자들은 공통적으로 핸드폰을 교체했다. 그러니 계산 빠른 최 부총리가 핸드폰 교체 그룹에 끼고 싶지 않아서 한 치 앞도 살피지 않고 허위 증언을 한 것이다. 거짓말로 허위 증언의 처벌을 받더라도, 내란죄 중요임무종사는 피하려는 꼼수다.

 

이처럼 윤석열 정부의 장관들은 필사적으로 내란죄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여기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은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다. 63일에 치러지는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이기면 자신들이 자유로워지고, 나아가 더욱 승승장구할 것으로 믿는다. 자신들이 몸담은 정부의 최고 수장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해 파면됐는데도 그들이 뻔뻔하게 자리를 지키려는 이유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들에게 대통령선거 관리를 맡겨서는 안 된다. 목숨 걸만큼 절실한 그들이 무슨 짓을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유상규 에디터 시민언론 민들레 2025.04.17.

 

내란 재판을 알 권리, 기억할 권리

요즘은 하루가 한 계절처럼 흘러가는 시국이어서 벌써 꽤 지난 얘기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바로 얼마 전까지 구속되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거짓말처럼 풀려나오고 계몽령같은 온갖 궤변을 쏟아낼 때는 만나는 사람들마다의 눈빛과 숨결에서 불안과 혼돈이 가득했었다. 그때 느낀 답답함과 무기력함은 앞으로도 한참 동안 잊히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그 불안과 암담함 속에서도 끝까지 믿고 있었던 것은 123일 계엄의 밤에 국회에 들이닥친 계엄군들과 이를 막아서며 국회 앞을 가득 채웠던 시민들 모습을 우리 모두가 목격했다는 사실이었다. 이른바 윤 측들이 갖가지 술수와 억견으로 기억을 마사지하고 뒤틀려 하지만, 방송 채널을 통해서 창문을 깨고 들어가는 계엄군, 국회에 내려앉는 헬기, 그리고 초조하게 계엄해제안을 의결하는 의원들 같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이 우리의 집합적 기억으로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은 결국 모든 혼란이 순리대로 흘러갈 것이라는 기대이자 버팀목이었던 것 같다. 이 모든 장면들이 방송으로 중계되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 모두의 123일 계엄 모습으로 기억되지 못했다면, 과연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지금처럼 나오고 서슬 퍼렇던 윤석열 부부가 관저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었을까?

 

지난 14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내란 공판이 개시되었다. 123일 이후 모두의 일상을 무너뜨린 피고인에 대한 공판인 만큼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다. 공판은 이름 그 자체로 공개된 재판을 의미하며, 로마 시대 공연장(arena)에서 재판이 열린 이후로 모든 재판은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는 것은 법의 가장 기본적 관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지귀연 재판부는 이번 내란 재판에 참석하는 피고인에 대해서 지하 주차장으로 출입을 허용하고 법정 촬영까지도 이례적으로 불허하였다. 과거 내란죄로 기소된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물론이고,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법정 촬영이 허용되었던 것과 비교하면 윤 전 대통령의 첫번째 재판에서 촬영 불허 결정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공개의 원칙이란 판결의 당사자뿐만 아니라 재판정의 일반인 참여를 허용하는 직접적인 공개성과 언론을 통한 다수의 공중에 대한 간접적인 공개까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공개의 원칙이 소송 당사자들의 인격권이나 사생활 보호 같은 기본권 또는 영업기밀의 보호와 다른 법률적 원칙들과 충돌할 때 공개를 통한 이익 형량을 따져볼 수도 있겠지만, 개인 윤석열이 아닌 내란죄 혐의자인 공적 인물 윤석열을 대상으로 하고 사실상 우리 국민 모두가 내란 재판의 직접적 피해 당사자의 성격을 갖고 있는 이번 재판에서 이익 형량의 저울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지는 굳이 따져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리 헌법 109조는 재판의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는 것을 명시하며, 한편으로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안녕질서를 방해하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할 염려가 있을 때는 법원의 결정으로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예외적 상황을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내란 재판의 공개가 국가의 안전과 질서를 방해하는 것일까? 첫번째 내란 공판 이후 언론들은 피고 윤석열이 90분이 넘도록 일장연설을 했음에도 재판부의 제지도 받지 않았으며, 검사 쪽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전하고 있다. 해당 언론 기사를 접하는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구속취소 결정을 내려서 못 미더운 재판부와 공정성이 의심받고 있는 검찰이 과연 진심으로 재판을 대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것이 당연할 듯하다. 바로 재판을 공개하는 이유가 이러한 의구심을 방지하고자 여론의 감시를 허용하여 법적 절차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법과 제도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 민주공화국에서 국가의 안녕 보장이란 어불성설일 뿐이다.

 

법정에서 수의를 입은 채 뒷손을 맞잡은 전두환과 노태우, 휘청이듯 벽을 짚으며 법정을 향하는 이명박, 수인번호를 붙이고 법정에 출두한 박근혜. 이는 누구에게라도 법적 정의가 작동하고 있음을 믿게 하는 공공의 기억이고 우리가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음을 확인해주는 국가 신뢰의 자산이다. 지귀연 재판부가 21일 두번째 재판에서나마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는 윤 전 대통령의 법정 촬영을 허가한 것을 늦었지만 다행으로 여기는 이유다.

홍원식 | 동덕여대 ARETE 교양대학 교수 | 한겨레 2025.04.17.

 

 

가짜뉴스와 혐오가 만든 1931년 중국인 습격 사건

 

동아일보 193176일치로 경성, 인천 등지의 중국인 거리가 습격당한 모습을 보도하고 있다. 사진은 경성의 중국인 거리에 모여든 군중과 피신한 중국인의 모습이다.

 

12·3 내란사태가 발생한 이후, 난데없는 중국인들에 의한 선거부정이라는 가짜뉴스가 떠돌았다. 전혀 근거가 없는 허무맹랑한 설이었다. 그런데도 상당수의 사람이 이 설을 믿고 주위에 유포했으며, 이 과정에서 이들의 혐중의식이 상당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런 이들은 아직은 소수지만, 결코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역사가 그것을 말해준다.

 

193173일 밤 인천의 조선인들은 군중을 이루어 시내에 있던 중국인 호떡집, 이발소, 음식점 등 10여곳을 습격했다. 이튿날 밤에도 수천명의 조선인 군중은 중국인 거리에 있던 중국인 가옥과 상점을 습격하였다. 그 결과 5일 새벽 1시까지 중국인 집 58호가 파괴되었다.

 

평양에서도 74일 밤 10시께부터 조선인들이 군중을 형성하여 신창리에 있던 중국요리점 동승루를 습격했다. 이튿날 저녁 8시께도 군중 수백명이 동승루를 다시 습격했으며, 이어서 종로통으로 가서 중국인 상점과 가옥을 습격했다. 이들은 밤 9시께 소석리와 기림리의 중국인 가옥에 불을 질러 40여호를 불태웠다. 이들은 6일 새벽 3시까지 방화와 습격을 계속했다. 6일 낮 1시 반 군중 5천명이 다시 평양 시내 중국인들의 집을 습격했다.

 

그 밖에도 경성, 원산, 사리원, 개성, 공주 등 중국인이 많이 사는 도시에서는 며칠 동안 중국인에 대한 습격이 계속되었다. 훗날 리턴 보고서에 따르면, 이 사건으로 인한 중국인 사망자는 127명이었고, 부상자는 393명에 이르렀으며, 재산 피해액은 250만원이었다고 한다. 사건 발생 직후 조선에 살던 중국인 10만명 가운데 약 1만명이 중국으로 피신하였다.

 

이 사건 관련자로 체포된 조선인은 713일까지 경기도에서 490, 평안남도에서 750, 기타 지방에서 600명 등 모두 1840명이나 되었다. 이 사건 공판이 종료된 19329월까지 1천명에 가까운 조선인이 벌금형이나 징역형을 받았다.

 

이 사건은 과거에는 만주에서 있었던 만보산 지역의 한-중 농민 갈등 사건과 합하여 만보산 사건이라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국내 사건을 중심으로 배화(화교 배척) 사건이나 중국인 습격 사건으로 불린다.

 

이 사건은 왜 일어난 것일까. 19314월 만주 창춘 부근의 만보산이라는 지역에서 중국인 중개인 하오융더가 중국인 지주로부터 넓은 토지를 빌렸고, 이를 다시 조선인들에게 빌려주었다. 조선인들은 이 토지에 물을 끌어들여 논농사를 짓고자 했다. 이를 위해 이퉁강에서 물을 끌어들이는 수로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수로가 중국인 41명의 농지를 가로지르게 되었다. 이에 중국인들은 지방 당국에 항의하였고, 당국은 경찰을 현장에 파견하여 조선인들에게 당장 수로 개착을 중지하고, 불법으로 전대한 해당 토지에서도 퇴거하라고 명하였다. 이에 창춘 주재 일본 영사는 조선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영사관 경찰을 파견하였다. ·일 양쪽은 협상을 개시했으나 결렬되었고, 조선인들은 영사관 경찰의 비호 아래 용수로 개착을 다시 하였다. 이에 71일 중국인 농민단체가 농기구 등을 들고 와 조선인들을 공사 현장에서 내쫓고 용수로를 막아버렸다. 72일에는 중국인 수백명이 다시 몰려와 조선인들이 만든 수로와 제방을 파괴하였다.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었지만, 중국인과 조선인 농민들이 물리적 충돌까지 간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조선일보 창춘지국장이었던 김이삼 기자는 중국인과 조선인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고, 그 결과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기사를 경성 본사에 전송했다. 그는 왜 이런 기사를 보냈을까. 일본영사관 쪽이 고의로 허위 정보를 제공했다는 설이 있으나 근거가 확실치는 않다. 조선일보 본사는 김이삼 기자가 보내온 기사를 그대로 믿고, 73일 호외와 4일 본보에서 중국 관민 800여명과 동포 200여명이 충돌하여 조선 농민 다수가 살상되었으며, 이에 일본 군대가 출동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다. 과장된 가짜뉴스였다. 만주의 조선인 동포 가운데 희생자가 났다는 보도가 있자, 인천이나 평양, 경성의 조선인들은 동포 의식에서 흥분하여 앞서 본 것처럼 중국인들에게 보복을 했던 것이다. 여기에 더해 평양에서는 평양의 중국인들이 조선인들을 학살했다는 유언비어까지 떠돌았다고 한다.

 

조선일보 193177일치로 평양에서의 유혈 참사과 중국인 상가 습격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사진은 평양의 중국인 상점들이 습격당한 모습이다.

 

당시 중국인들을 습격한 이들은 주로 노동자, 농민, 상인들이었는데, 특히 노동자가 많았다. 노동자들은 1920년대 이후 중국인 노동자들이 조선에 대거 몰려와 값싼 임금으로 일자리를 빼앗기 시작하자 이들에 대해 경계심과 혐오감을 갖게 되었다. 또 경성·평양 등 도시 근교의 조선 농민들은 중국인들이 중국 노동자를 데리고 와서 농장을 경영하며 조선인들의 근교 농업을 위협하자 역시 위기감과 혐오감을 가졌다. 또 중국 상인들은 일찍부터 인천 등 개항장이나 서울, 평양 등 도시에 자리 잡고 중국으로부터 비단, 삼베, 모시 등을 수입하여 판매하면서, 포목전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따라서 조선 상인들은 이들에게 경쟁의식과 혐오감을 가졌다. ‘혐오감은 특정 대상을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감정이다. 당시 대중의 혐중 의식은 언론의 중국인에 대한 선정적인 보도로 조장된 측면도 있었다. 결국 가짜뉴스와 유언비어는 조선인들의 혐중 의식, 동포 의식 등을 자극하여 그들을 살인, 방화, 약탈, 파괴를 저지르는 과격한 군중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 사건 이후 만주와 중국 관내에 있던 조선인들은 난처한 처지에 놓였다. 다행히도 중국의 지도층은 중국인의 조선인에 대한 감정을 누그러뜨리면서, 이 사태의 책임을 일본 쪽에 돌리고 있었다. 중국 국민당 요인들은 만보산 사건이 만주에서 군사행동을 하기 위한 일본 쪽의 음모에서 나온 것으로 의심하였다. 조선에서도 언론과 사회단체들이 나서서 사태를 진정시키고 피해를 당한 중국인들을 도왔다. 사태는 그렇게 수습되어 갔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보자. 중국인에 대한 혐오와 가짜뉴스가 점점 확대되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대중에게 영향력이 큰 한·중 양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상대에 대한 발언을 항상 신중히 해야 한다. 언론도 대중을 자극하는 과장된 뉴스,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일을 절대 경계해야 한다.

박찬승 | 한양대 사학과 명예교수 | 한겨레 2025.04.18.

 

내란 수괴의 반인권 알박기인사 두고 볼 텐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윤석열이 지난 11일 관저를 떠나 서초동 자기 집에 도착하자마자 주민들 앞에서 허세를 떨며 던진 말이 세상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그는 아크로비스타 주민 들과 악수하며 다 이기고 돌아온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한다. 이때 한 주민이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위로를 전하자 그는 어차피 뭐 5년 하나 3년 하나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대통령직에서 쫒겨난 그가 일말의 반성은 고사하고 대선 당시 하던 정치적 어퍼컷 쇼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니 세간에선 윤석열과 비교해 보니 박근혜 전 대통령은 참 선량한 파면 대통령이었다는 말도 회자 된다. 윤석열처럼 관저를 나오기 전, 자기 측근들을 불러 환송 만찬을 하는 뻔뻔함도 보이지 않았고, 또 적어도 이기고 돌아왔다는 말 따위의 허세는 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대통령이 누구를 이기고 돌아왔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주장이다. 헌법이 부여한 임기 5년도 버거워 다 채우지 못한 주제에 그걸 주민들 앞에서 웃으며 말하는 그 허세가 그야말로 해괴하기 짝이 없다.

 

모범적 인권국가가 윤석열 3년 만에 최악 국가로 전락 위기

문제는 내란 수괴윤석열 파면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떠났지만 그가 임명한 정부 내 인권기구의 인사 적폐가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5년을 하나, 3년을 하나똑 같다고 했는데 정말 그의 대통령 재임 3년 동안 대한민국 인권 현실은 치유가 쉽지 않을 만큼 완전히 망가졌다. 정부 기구 본연의 업무 기능이 상실되었다고 표현해도 전혀 과하지 않다

먼저 국가인권위원회부터 그렇다. 국가인권위원장 안창호는 사회적 약자 인권 보호라는 본연의 역할 대신 내란 수괴윤석열과 그 수하 김용현 등의 법적 보호를 위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방어권을 추진하여 국민을 경악케 하였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차관급 상임위원이며 군인권 보호관겸임인 김용원은 군 유족의 권리를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군 유족을 고소하는가 하면 군인권단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의 보호 요청은 각하 처리하고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면 헌법재판소를 부숴 없애야 한다는 글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결국 안창호와 김용원의 문제는 국제적 나라 망신으로 이어졌다.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 이하 간리’)로부터 우리나라 국가인권위원회2001년 설립 이후 처음으로 특별심사 대상에 선정된 것이다. 이를 위해 간리측은 윤석열의 계엄 선포와 관련된 인권 침해 및 고 윤승주 일병 유족과 군인권단체 활동가를 수사 의뢰한 사건 자료의 제출을 요청했다. 또한 회의 부재로 인한 진정 처리 지연 및 인권위 직원들의 불이익 등에 대한 자료도 요청했다.

 

간리측은 이를 심사한 후 2004년 이후 줄곧 A등급을 유지해 온 우리나라 인권위 등급을 하향 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 국가로부터 모범적인 인권국가로 손꼽히던 우리나라 인권위원회를 윤석열은 단 3년 만에 최악으로 추락시킨 것이다.

 

내란 직후 임명한 극우 성향 인사가 똬리 튼 진화위

진실화해를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는 또 어떤가.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512월 출범하여 국가폭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 침해와 한국전쟁 전후한 시기의 민간인 학살 피해자와 유족의 한을 풀어준 진화위를 이명박 정부가 해산시켰다. 이를 다시 출범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애를 쓰고 노력했는지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마침내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는 박근혜 정부가 외면했던 진화위의 재출범을 문재인 정부가 공약했기에 어렵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당시 야당인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이 국회에서 발목을 잡았다.

 

그때 20대 국회 마지막 날,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피해자인 최승우 씨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고공 농성에 들어간다. 15살에 강제수용시설인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가 고통을 겪었던 최승우 씨는 국회 정문 앞에서 이 법안의 제정을 요구하며 3년간 천막 농성을 해 왔다. 그런데 아무런 성과없이 20대 회기가 끝나가자 그는 목숨을 걸고무기한 단식 점거농성에 나선 것이다. 그런 최 씨의 절박한 사연 앞에 여야 국회의원들도 정쟁을 계속할 수 없었고 법안 개정안 처리가 이뤄질 수 있었다. 그렇게 최승우라는 형제복지원 사건피해자가 목숨을 걸고 얻어낸 것이 진실화해를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인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 진화위의 지금 위원장은 박선영이란 인물이다. 그는 20235월쯤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박정희의 5.16 군사 쿠데타를 혁명이라 칭하며,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 반대한 국민이 없었다고 주장한 극우성향의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박정희 유신독재 권력에 의해 목숨을 잃거나 고문을 당한 사람, 그리고 중앙정보부의 공작에 의해 사형당하거나 감옥 간 사람들의 진상을 규명하는 기구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부적절의 크기가 산처럼 높고, 강물처럼 깊다.

당연히 그가 위원장으로 있는 진화위에서는 황당한 소식이 매일 같이 들려온다. 전 대통령 윤석열이 내란을 선포하고 3일 후에 장관급 위원장으로 박선영 씨를 임명한 것도 부적절한데, 그렇게 임명된 박선영 씨는 국회에 출석하여 마스크를 벗지 않아 논란이 된 국정원 출신황인수 국장에게 성과급으로 최고 등급을 줬다고 한다. 전 국민에게 위원회 망신을 시킨 황 국장에게 벌이 아닌 상을 내린 것이다. 지난해에 이어 무려 1500만원의 성과급을 받게 된 황 국장의 이야기는 과거사 위원회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큰 상실감을 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야말로 윤석열이 남긴 정부 인권기구 인사 적폐의 상징이다.

 

인권기구 내 적폐 세력 청산 없이 내란 사태 종식 없다

국가인권위원장 안창호나 군인권보호관 김용원, 그리고 진화위원장 박선영과 같은 이들을 그대로 두고 윤석열 내란 사태가 해결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더구나 진화위는 오는 526일 조사 기간의 만료를 앞두고 유족의 염원이라며조직의 활동 기간 연장을 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난해 12월 취임한 박선영 씨가 자신의 2년 위원장 임기를 채우려 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국가인권위진화위가 그런 인사들에 대한 내란 수괴의 알박기 용자리로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 사회적 약자와 인권 피해자들의 마지막 보루인 이 인권기구들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처절히 싸웠는지를 안다면 더욱 그렇다. 양심이 있다면 그들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 사회 공동체의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나는 주장한다. 윤석열 내란 사태의 완전한 종식을 위해서도 정부 내 인권기구의 인사 적폐는 절대 방치되어선 안 된다

고상만 인권운동가(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사무국장) | 시민언론 민들레 2025.04.18.

 

 

불탄 산의 주인들, 침묵하는 사회

산이 탄다는 것은 멀리서 보이는 봉우리 몇 개와 능선과 그 아래 계곡 하나하나가 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깃들여 사는 숱한 삶들이 지독한 고통 속에서 재만 남기고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끝없이 이어진 화선(火線)을 보며 속이 타들어가는 경험을 한다면, 그 산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다. 산과 연결이 되어본 사람이다.

 

언론이 이 거대한 재난을 다루는 방식은 당연하게도 인간의 이해에 맞춰진다. 사람이 몇 다치고 죽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더 소외된 자들도 있다. 간혹 재난 상황에 처한 동물을 다루는 기사는 농장에서 기르는 동물이 얼마어치죽었는지, 집에서 예뻐하기 위해서나 초인종으로 쓰기 위해 묶어둔 개나 고양이가 얼마나 죽고 다쳤는지에 대해 보도한다. 어떤 목적으로든 가두어 기르는 동물들은 인간에 예속되기 때문에 사회가 재난 상황에서 이 동물을 챙겨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끔찍한 경험에서도 교훈이 있기를 바란다.

 

불이 난 산을 이루는 것은 사람이나 사람이 기르는 동물이 전부가 아니다. 산에는 야생동물이 산다. 까맣고 반질거리게 화상을 입은 산을 보면서 그 산에 살던 동물은 불길 속에 어떤 경험을 했을지, 결국 어떻게 됐을지 마음이 쓰리다. 산의 일부이자 산의 주인으로 살던 야생동물들은 우리 사회에서 산불의 구체적 피해자로 인식되지 않는다.

 

야생동물은 몇이나 죽었는지 셀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알지 못한다는 무관심과 통제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 때문에 야생동물은 사회의 관심 밖에 있다. 국가가 지리산에 옮겨놓은 반달가슴곰 정도가 동물로 인식되어 언론에 어쩌나정도의 걱정거리로 등장한다. 너구리나 다람쥐처럼 작고 흔한 동물들, 개구리나 딱정벌레처럼 사람과 다르게 생긴 동물들은 산불의 희생자로 계산하지 않는다. 당연히 재난 상황에서 대피시킬 대상도 안 된다.

 

사실 그들은 인간이 초래한 재난에 일상적으로 몰리는 중이다. 교통사고나 인간의 외래종 도입 같은 직접적 요인도 알려져 있지만, 삶의 터전 자체가 사라지는 재난이 급속히 진행 중이다. 산불도 그중 하나다. 발화 원인은 대체로 사람의 행위다. 성묘를 하든 쓰레기를 태우든 산 곁에 불을 피우는 바람에 시작된다. 고릿적부터 인간은 불을 썼지만 요즘과 같은 강도와 빈도로 산불이 일지 않았다. 이 심각한 산불은 산업화 시대가 초래한 기후변화의 결과로 보고 있다. 기온이 오르면서 대기와 땅이 건조해지고 불이 잘 붙게 되었다. 산림청의 무식한 소나무 조림 사업 따위가 산에 장작을 쌓아두는 결과까지 가져왔다.

 

아직 이 나라는 야생동물은커녕 사람들을 빈털터리로 만들고 불에 타죽게 하는 나라다. 산불 상황을 제대로 알리지도 못하는 시스템이다. 굳이 희미한 희망을 찾아보자면, 그 산줄기들을 이루던 아무개들은 불길을 견디고 재기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마치 극우 정치와 썩은 관료제가 불어대는 불길을 견디는 남태령 트랙터처럼.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이토록 빠듯하게 싸우며 살 수밖에 없다. 부디 여러분이 이 글을 읽을 때쯤에는 불길이 잡혔기를 바란다. 다시 불이 붙을 때 어떻게 할지 사회가 준비하기를 바란다.

최태규 (수의사·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활동가) | 시사인 2025.04.20.

 

 

산불에 소나무는 죄가 있다?없다?

이달 초 산림청에 숲가꾸기 사업으로 벌채된 목재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벌채목을 모아 합판이나 톱밥, 펄프를 만드는지, 바이오매스(목재 연료)나 장작으로 쓰는지 처리 방법을 물었다. 닷새 만에 돌아온 답변은 정보 부존재였다. 산림청 본청에서는 관련 정보를 생산·접수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화로 이유를 물으니 우리가 모든 데이터를 갖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순환논법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지난달 영남권 산불이 괴물처럼 번지자 원인을 둘러싼 분석이 쏟아졌다. 고온, 건조, 강풍을 부른 기후변화, 부족한 진화 장비와 인력, 그리고 어김없이 소나무 송진이 소환됐다. ‘무턱대고 심은 소나무(침엽수)가 불쏘시개 구실을 했다, 지금 우리 산림은 너무 빽빽해서 문제다, 소방차가 진입하고 목재도 수확할 수 있게 임도를 늘리자.’ , 나무는 심는 것만 아니라 잘 베는 것도 중요하구나 고개를 끄덕이다 보면 또 한쪽에서 소나무는 죄가 없다, 엉터리 숲가꾸기와 근거 없는 임도 확대가 오히려 문제다란 반론이 나온다.

 

20년 넘게 반복되는 레퍼토리다. 어느 시점의 기사든 날짜와 장소만 바꾸면 감쪽같이 재활용할 수 있을 정도다. 2005년 양양 산불, 2019년 고성 산불, 2022년 울진 산불 때도 그랬다. 너도나도 산림관리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며 메스를 들지만, 시간이 흘러 관심이 줄면 개복을 하다 말고 수술은 중단된다. 상처가 곪듯 불신과 의심은 깊어 간다.

 

한 전문가는 통화에서 숲가꾸기로 솎아낸 나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아느냐면서 큰 나무는 놔두고 작은 나무만 벤다. 벤 나무는 산 밑으로 가져와야 하는데 처리비가 많이 드니까 그 자리에 두고 온다고 했다. 애초부터 목재 수확이나 산불 예방이 아니라 예산을 따내는 게 이 사업의 진짜 목적이라는 것이다. 산림청에 정보공개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음모론 같은 주장에서 사실 여부를 조금이라도 가려보고 싶었지만, 정보는 없었다. 벌채목의 처리 방법은 물론 몇년생, 어떤 나무(나이 등급과 수종)를 베었는가에 대한 현황도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숲가꾸기는 임목 밀도를 조절해 산림의 가치를 높이고, 산불 위험도 낮추자는 취지다. 아이엠에프(IMF) 때 공공일자리 창출 사업으로 출발해 지금은 산림청 예산 톱3에 드는 대형 사업이 됐다. 객식구가 안방마님이 된 셈이다. 26100억원의 산림청 총예산 중 약 10%가 숲가꾸기에 들어간다. 그러나 벌채 면적을 제외하면 몇년생, 무슨 나무를 베어 어떻게 활용했는지는 각 국유림 관리소 담당자만 알 뿐이다. 사업 효능에 대한 의문은 해소되지 않은 채 부패한 관피아뭣 모르는 환경론자의 싸움이라는 구도만 남는다.

 

산림청에서 가장 많은 돈을 쓰는 임도 건설도 마찬가지다. 국내 임도 부족의 근거로 등장하는 단골 사례가 일본이다. 그런데 산림청의 2020년 예산·기금 운용계획 사업설명자료에 13m/라는 일본 임도 밀도가 2024년 자료엔 23.5m/로 껑충 뛴다. 연도별 우리나라 임도 신설 실적도 널뛰기다. 같은 해 실적을 두고도 어떤 해에는 827라고 했다가 이듬해 자료에는 773로 바뀌어 있다. 이유야 있겠지만 외부인은 알 수 없다.

 

왜 굳이 임도를 깔아야 하는가란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늘 산불 대비와 목재 수확을 위해서인데 국산 목재는 여전히 땔감(바이오매스)이나 저가재로 팔리고, 새로 심는 나무는 67%가 침엽수다. 산림 정책에 대한 불신은 산불 방조 의심으로까지 이어진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산불이 잠잠해지는 계절이 오면 세간에서 잊힐지 모른다. 최악의 산불을 겪고도 그러하다면, 다음엔 또 무엇을 잃어야 도돌이표 논쟁을 끝낼 수 있을까.

윤지로 | 에너지·기후정책 싱크탱크 넥스트 미디어총괄 | 한겨레 2025.04.20.

 

캐나디아노와 동맹 그리고 탈미국

미국은 캐나다를 두번 침략했다. 북아메리카 동부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퀘벡에도 그 흔적이 남았다. 미국은 1775년 독립전쟁을 벌이면서 퀘벡을 침공했다. 유럽풍의 성벽은 방어 요새였다. 37년 뒤 미국이 재차 공격했지만 캐나다가 다시 막아냈다.

 

20세기 두 나라 간 국경이 사실상 없어지고 공항에서는 미국인과 캐나다인 구분 없이 같은 입국 심사대를 통과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미국은 캐나다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었다.

 

트럼프의 재등장으로 절대 깨질 것 같지 않던 두 나라의 신뢰에 크게 금이 갔다. 한때 서로 총칼을 겨눴던 200년 전 역사마저 소환된다. 트럼프는 캐나다를 향해 미국의 51번째 주라 모욕하고, 관세가 없다시피 한 캐나다산 물품에 25%의 관세를 매겼다.

 

대포와 총알은 아니지만 갑작스레 높은 관세 장벽을 세우고 캐나다 주권마저 무시하는 듯한 트럼프의 도발에 캐나다도 맞받아쳤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미국이 더는 신뢰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며 관계가 끝났다고 말했다. 캐나다인 넷 가운데 하나는 미국을 적대국으로 본다는 조사도 나왔다. 캐나다 카페 메뉴판에 아메리카노를 지우고 캐나디아노를 파는 곳이 늘었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던 때가 있었던 것처럼 2차 세계대전 뒤 모든 길은 미국으로 통했다. 세계화는 기실 미국화를 뜻했다. 미국식 가치와 기준의 확산이었다. 줄긴 했지만 미국은 여전히 세계 총생산 4분의 1과 국방비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압도적 힘을 바탕으로 전후 자국 중심 세계 질서를 설계했던 미국이 이제 거대한 지각변동을 일으키면서 스스로 탈미국화를 재촉한다.

 

트럼프는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있는 동맹국에 비용을 더 지불하라고 압박한다. 국방비 증액도 요구했다. 서구와 러시아의 대리전 성격을 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에서는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원조를 중단했다. 동맹국에 에누리 없이 관세전쟁을 선포하고 정책을 변덕스럽게 바꿔가면서 미국은 신뢰를 잃었다.

 

미국으로부터 원심력이 커지면서 유럽은 자주 노선 강화를 꾀한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총리는 미국이 우리 편에 머물길 원하지만, 그렇지 않은 때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도 비슷한 분위기다. 곧 독일 총리가 될 프리드리히 메르츠는 가능한 한 빨리 유럽을 강하게 해 단계적으로 미국으로부터 진정한 독립을 이루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유럽의 결연함은 재무장 움직임을 가속하고 있다. 대서양 동맹의 균열이 다시 봉합되더라도, 미국이 필요 없거나 존재감이 크게 준 때를 앞당길 수 있다.

 

어쩌면 트럼프에게 동맹이란 더 많은 것을 얻어내는 쉬운 거래 상대로 보일 수 있다. 그는 종종 적보다 우방이 더 나쁘다고 말한다. 심지어 동맹이 미국을 착취한다고 본다. 100년 만에 가장 높이 세워진 관세 장벽을 정당화한 논리다.

 

하지만 정작 동맹의 정의와 가치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미국이다. 힘의 절대적 우위를 등지고 동맹마저 부당하게 대우한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존 볼턴은 트럼프가 가장 가까운 우방국과 관세전쟁을 벌이면서 되레 이들을 소외시키고 있다고 지적할 정도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을 피하려 한국과 일본, 대만의 거대 자본과 정부가 앞다퉈 수백조원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지만, 예외는 없었다. 특히 미국의 환심을 사려 제일 먼저 대규모 대미 투자를 약속한 일본의 배신감이 크다.

 

한국을 향해서도 25%의 높은 관세를 매겼고 하루아침에 자유무역협정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다. 지난 몇년 동안 한국 기업이 엄청난 대미 투자를 약속했거나 이미 공장을 짓고 있지만, 방위비 추가 분담 요구와 연계한 관세 협상에 미국이 원하는 선물 보따리를 더 준비해야 할 판이다.

 

현금 자판기라고 부를 만큼 한국을 만만한 상대로 보는 트럼프와 90일 관세 유예란 시간표에 쫓겨 협상해서는 안 된다. 40일 남짓 남은 한덕수 대행 체제가 섣불리 매듭을 짓기보다, 새 정부에 그 권한과 책임을 넘겨야 한다. 다음 정부는 미국의 신뢰가 크게 약해지면서 동시에 커지는 탈미국화 흐름도 읽어가면서 전략을 짜야 한다. 지금 세계정세와도 전혀 맞지 않는 윤석열 정부의 가치동맹 외교란 이름 아래 펴온 미국 일변도 정책의 재편도 필요하다. 마크롱 총리의 말을 빌리면, 미국 의존도를 낮추면서 미국이 우리 편이 아닐 때도 대비해야 한다.

 

냉혹한 국제정치에서 영원한 적도 없지만 영원한 동맹도 없다.

류이근 | 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 한겨레 2025.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