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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24.5.13~

by 이성근 2024. 5. 13.

 

재난의 공동체, 무정과 동정을 넘어

대책을 만들지 못하는 동정, 희생자·피해자와 연대하지 못하는 연민의 한계는 뚜렷했다. 문제는 식민지에서는 그 동정과 연민마저 곧잘 금지됐다는 것이다.

정조 1(1777) 초여름 가뭄이 심했다. 정조의 일기 일성록515일자에 가뭄 이야기가 나온다. 왕이 말했다. “어제는 비가 올 듯한 기미가 매우 다분했는데 끝내 비가 내리지 않았으니 너무도 안타깝다. (중략) 천시(遷市, 시장 옮기기)는 몇 차에 행하는가?” 예조판서 홍낙성이 대답했다. “11차에 행한다고 합니다.” 왕이 한탄했다. “선조(先朝)께서 늘 중대하고 어려운 일로 생각하여 거행하지 않았었다.”

농경사회에서 가뭄은 심각한 위기였다. 통치의 기초가 흔들리는 재난이 될 수도 있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천시 또는 사시(徙市)는 가뭄이 극에 달했을 때 비를 기원하며 시장을 옮기던 풍습이다. 문헌상 기원이 오래다. 예기에 중국 춘추시대 진()의 목공(BC 660BC 621)이 가뭄이 들자 현자(縣子)의 조언에 따라 저자(시장)를 옮겼다고 전한다. 한반도 최초의 기록은 신라 진평왕 50(628)으로, “여름에 크게 가물었으므로 시장을 옮기고 용을 그려 비 내리기를 빌었다라는 기사가 삼국사기에 나온다. 별 효과는 없었다. “가을과 겨울에 백성들이 굶주려 자녀를 팔았다.”

1928721일자 동아일보기사. 경북 상주 지역에서 당국이 한발(가뭄)에 고통받는 백성에게 성의를 표하기 위하야 미신이나마시장을 옮긴다는 내용이 담겼다.

왜 하필이면 시장의 위치를 옮겼을까? 여러 해석이 있다. 대개 시장을 남쪽으로 옮기면서 동시에 양기가 들어오는 남문을 닫고 비와 결합되는 음기가 들어오는 북문을 연다는 점에서 음양사상에 기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을 구름에 비유하는 언어 습관과 연결하면 일종의 유감주술(類感呪術)로 볼 수도 있다. 사회학적 해석도 가능하다. 시장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므로 이를 옮기면 가뭄의 심각성을 알리는 극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경우든 실제로 비를 부르는 효과가 없음은 물론이다.

중종 때 학자 성현이 쓴 용재총화(1525)에서 시장 옮기기는 가뭄 대책 열한 가지 중 열 번째 대책으로 언급된다. 열한 번째 대책이 피전감선(避殿減膳), 즉 임금이 대궐을 피하고 반찬 가짓수를 줄이며, 죄인을 풀어주는 것이었다. 위의 일성록기사에서는 천시가 11차라지만 차이를 따질 일은 아니다. 영조 8(1732) 6월의 실록 기사에서도 영조가 천시를 지시하는데 피전감선다음의 대책이었다.

영조의 사례를 생각하면, 선대의 왕들이 늘 중대하고 어려운 일로 생각하여 (천시를) 거행하지 않았었다라는 정조의 말은 부정확하다. 정조가 할아버지의 전례를 몰랐을 리 없다. 아마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정조만이 아니다. 조선의 임금들 마음이 대체로 그랬다. 세종 13(1431)에 가물자 왕이 말했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기우할 때에 호랑이 머리를 용이 사는 못에 담그곤 하는데, 이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옛글에도 있으니 담그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기는 해야겠는데 믿기지 않는다는 취지다. 신하들의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실록과 관찬사서에는 이런 기사들이 많다.

도산은 왜 다정한 사회를 호소했을까

성리학은 비합리적 사변철학이라며 비난받곤 하지만, 당대의 잣대로 보면 꽤 합리적이고 실용적이었다. 초자연적인 힘의 작용을 믿지 않았다. 도교와 민간신앙에서 유래한 여러 제사를 형식과 규범에 어긋난 제사, 즉 음사로 본 이유다. 천재지변을 왕이 부덕한 탓이라고 믿지도 않았다. 속마음은 그랬지만 겉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왕들은 늘 자신의 부덕을 책망했다. 미신인 줄 알면서도 하늘에 기우제를 지내고 시장을 옮기며 음식을 줄이고 음악을 그쳤다. 홍수 때에는 기청제(祈晴祭)를 지내고, 역병이 돌면 여귀(厲鬼)에게 여제(厲祭)를 지냈다. 천재지변이 불가항력이던 시절, 백성들 앞에서 어쩔 수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왕도 어쩔 수 없는 게 있었다.

1906~1907년경 조선을 방문한 독일 장교 헤르만 산더가 수집한 구한말 사진 자료. 당시 조선의 시장 모습이 담겨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일제하에도 천재지변은 여전했다. 이제 제사를 주관할 국왕이 없었다. 미신 척결을 내세우던 조선총독부가 나설 리 없었다. 다만 주민과 직접 접촉하는 지방 말단 권력의 입장은 달랐다. 뭐라도 해야 했다. 면장이나 군수들은 옛 왕조를 흉내 내며 산재한 사직단에서 제사를 지내고 시장을 옮겼다.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1929년 여름, 전북 순창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발(가뭄)이 매우 심해 순창시장을 네 번이나 옮겼지만 비가 오지 않았다. 결국 군청, 경찰서, 면사무소가 86일부터 88일까지 사흘간 총출동해 인부 20여 명을 동원하고 주산인 금산에 올라 분묘 50여 기를 파헤쳤다. 분묘 훼손은 실정법이 엄금하는 미신 행위였는데, 당국이 앞장서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재난이 얼마나 심각한 통치 위기로 인식되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조형근, ‘시장 이전 기우제(徙市) 풍습과 식민권력의 한계지점’, 사회와 역사80, 2008).

전통사회에서 국왕은 세상의 초월적 중심이었다. 왕조가 무너지자 사람들은 마음으로나마 의지할 곳을 잃었다. 결국 서로 긍휼히 여기고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동정·연민이라는 새로운 감수성의 부상이다. 이광수 최초의 장편소설 무정(1918)은 일면식도 없는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동정이라는 새로운 감수성을 부각시킨 작품으로도 주목받는다.

무정의 하이라이트는 삼랑진 수재 장면이다. 미국 유학길에 오른 형식과 선형은 부산행 기차 안에서 형식의 옛 정혼녀 영채와, 자살하려던 영채를 구한 신여성 병욱을 우연히 만난다. 이들은 일본으로 유학 가던 참이다. 서로 어색한 만남이다. 삼랑진에서 큰비를 만나 기차가 멈춘다. 기차 밖은 물난리가 끔찍했다. 시뻘건 강물이 넘쳐 집들이 잠기고 곡식과 가축, 사람들이 떠내려갔다.

집을 잃은 무리들은 산기슭에 선대로 비를 함빡 맞아서 전신에서 물이 쭉 흐르게 되었다. (중략) 갑자기 퍼붓는 빗발에 숨이 막혀서 으아 하고 우는 아이도 있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머리에서 흐르는 빗물에 섞인 눈물을 흘리면서 몸을 흔들거린다.” 일행은 쓰러진 만삭의 임신부와 가족을 발견하고 여관으로 옮긴 후 의사를 불렀다. 경찰서장에게 허가를 얻어 역 대합실에서 즉석 음악회를 열었다. 이재민 구호를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병욱이 말한다. “저희는 음악을 알아서 하려 함이 아니올시다. 다만 여러분 어른께서 동정을 주십사 함이외다.” 병욱이 바이올린을 켜고 영채와 선형이 노래를 불렀다. “그렇지 아니하여도 슬픔에 가슴이 눌렸던 일동은 그만 울고 싶도록 되고 말았다. (중략) 순박한 이 노래와 다정한 그 곡조는 마침내 일동의 눈물을 받고야 말았다.” 이렇게 눈물의 공동체가, 재난의 유토피아가 잠시간 출현한다. 왕 없는 세상을 대신하는 조선인 사회의 원형질이 등장하는 순간이다. 저널리스트 리베카 솔닛은 역사 속 대재난들을 검토한 저작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파괴적 재난 속에서 잠시나마 유토피아가 등장한다고 말한다. 기존 질서가 무너지며 오히려 강렬한 사랑과 기쁨, 연대의식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재난은 비극이지만 평등해진 개인들이 서로 연결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국부론에서 애덤 스미스는 이기적인 개인을 연결해주는 보이지 않는 손을 언급한 바 있다.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했다. 또 다른 주저 도덕감정론에서 고통을 느끼는 타인에 대한 동정과 연민에 주목한다.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혹은 그렇게 상상하며 우리는 개인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 사회 구성원으로 결속된다. 애덤 스미스는 묘비명에 도덕감정론의 저자로 기록해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도산 안창호에게, 다정한 사회는 조선 민족의 사활에 관계되는 문제였다. “무정한 조선의 사회를 유정하게 만들어 무정으로 거꾸러진 조선을 유정으로 다시 일으키자라고 호소했다. “우리 사회를 개조하자면 먼저 다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조선 적부터 무정한 피를 받았기 때문인지 아무래도 더운 정이 없습니다. (중략) 일언일동(一言一動)에 우리 사이의 정의(情誼)를 손상하는 자는 우리의 원수외다”(섬메(안창호의 호), ‘무정한 사회와 유정한 사회’, 동광19266월호).

19347월 삼남 지방 대수재가 일어난 뒤 이재민 구호 모습. 1934731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사진이다.

동정과 연민이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타인에게 보이려는 위선이 되기 일쑤였고, 세상의 모순을 덮는 포장지가 되기도 했다. 성정이 뜨겁던 경성의전 부속병원의 의사 유상규가 동정심을 비난한 이유이기도 하다. 19347, 삼남지방에 대수재가 나서 사망 237, 실종자·부상자 포함 676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23만명이 이재민이 됐다. 각지의 의사회가 참사 현장을 찾고, 사회단체들이 구호반을 조직했다. 언론사들은 대대적인 의연금품 모집에 나섰다. 아름다운 재난의 공동체가 펼쳐진 듯했다. 유상규의 생각은 달랐다. 신문사들이 두 달간 대대적으로 모은 의연금 누계가 부자들의 교외 별장 중 가장 작은 한 채 값에 못 미치고, 금광으로 떼돈 번 이들이 첩으로 들이는 기생 한 명 몸값이 못 되었다. 그저 요란스러운 위선이었다(유상규, ‘값싼 동족애’, 신가정193410월호).

대책을 만들지 못하는 동정, 희생자·피해자와 연대하지 못하는 연민의 한계는 뚜렷했다. 문제는 식민지에서는 그 동정과 연민마저 곧잘 금지됐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선 동정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염상섭의 소설 만세전(1924)의 주인공 이인화는 위선 없이 살지 못하리라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운명이라고 말한다. 위선임을 알면서도 동정을 갈구하던 시대, 서글픈 식민지였다.

세월호, 정치적 내전이 된 현대의 인재

2014416, 세월호가 침몰했다. 해경이 지켜보고 텔레비전 카메라가 중계하는 가운데 304명이 사망·실종된 참사였다. 그리고 우리는 보았다. 엄혹하던 식민지 시절, 동정을 둘러싼 최소한의 고민조차 벗어던진 민낯의 폭력을. 그렇게 한국 사회도 침몰했다.

201411월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노란 리본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사고 당일 밤 유족이 모인 진도체육관을 찾은 교육부 장관이 황제 라면사건으로 비난받자 청와대 대변인은 계란을 넣은 것도 아닌데라며 반발했다. 417, 해경 간부는 초기 대응이 미진하지 않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해경이 못한 게 뭐가 있나?”라고 반박했다. 423, 국가안보실장 김장수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재난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선언했고, 비서실장 김기춘은 710, 이를 재확인했다. 국정원은 희생자 가족을 사찰했다. 714, 대통령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로 경기가 침체된다며, “자칫 어렵게 살린 경제회복의 불씨가 다시 꺼질지도 모른다라고 사회적 애도 분위기에 경고를 보냈다.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의 아들이 희생자 가족을 향해 국민 정서 자체가 굉장히 미개하다고 페이스북에 쓴 날이 고작 사고 이틀 후인 418일이었다. 420, 한기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 북괴의 지령에 놀아나는 좌파 단체와 좌파 사이버 테러리스트들이 정부 전복 작전을 전개할 것이라며 발본 색출해야 한다고 썼다. 극우 논객 지만원은 422, “시체 장사에 한두 번 당해봤는가? 세월호 참사는 이를 위한 거대한 불쏘시개다라고 주장했다. 곧이어 박상후 MBC 전국부장은 뭐하러 거길 조문을 가. 차라리 잘됐어, 그런 X들 해줄 필요 없어라고 막말을 했고, 한기총 부회장 조광작 목사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경주 불국사로 가면 될 일이지, 왜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가 이런 사단이 빚어졌는지 모르겠다라고 비난했다. 유가족 김영오씨(유민 아빠)가 단식투쟁을 벌이던 20149월에는 자유대학생연합이라는 단체가 2차에 걸쳐 폭식 투쟁을 벌였다.

침몰 이후 희생자 가족들은 오직 구조와 수습이 최우선이었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들도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을까 봐 극도로 몸을 사렸다. 참사 직후 희생자와 가족을 선제공격한 것은 정부와 우파의 돌격대였다. 거리낌 없이 정치적 내전을 벌였다. 식민지 시절 사람들의, 성리학자들의 고뇌를 흉내조차 내지 않았다.

수학여행 떠난 아이들이 돌아온다고 약속했던 금요일이 520번 넘게 지났다. 국가책임 인정과 사과, 피해자 사찰 및 조사 방해 행위 추가 조사 등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12개 권고 사항 대부분은 아직도 이행되지 않고 있다. 무정도 동정도 넘어야 한다. 동정을 넘어 해결로, 연민을 넘어 연대로 가는 길이 아직 멀다. 그 길을 포기할 수 없다며 다짐하는 말이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맹골수도에는 아직 물살이 거세고, 팽목항에는 바람이 여전하다. 세월호는 지금도 목포신항에 서 있다./시사인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좋은 곡은 알려진다? 돈 들여야 알려지지

뇌물을 주고 선곡을 청탁하는 페이올라1959년 법의 철퇴를 맞았지만, 핑크 플로이드와 마이클 잭슨도 이를 피해갈 수 없었다.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뮤직비디오 한 장면.스릴러 뮤직비디오 갈무리

1950년대 로큰롤의 기세를 단번에 꺾어버린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페이올라(Payola). 요약하면 페이올라는 DJ에게 뇌물을 주고 선곡을 청탁하는 관행이다. 레이 찰스의 전기 영화 레이(2005)를 보면 이에 대해 알 수 있는 장면이 나온다. 암암리에 행해지던 페이올라가 법의 철퇴를 맞은 건 1959년이었다. 이로 인해 로큰롤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냈다고 전해지는 DJ 앨런 프리드도 은퇴하게 된다. 그렇다면 질문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1959년 이후 페이올라가 진짜 근절됐는지 여부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여기, 여러분이 놀랄 두 사례를 소개한다. Cowboys & Indies(2015)를 참고했다.

핑크 플로이드 노래가 안 나온 이유

1979년 말 미국. CBS의 임원 딕 애셔의 임무는 낭비성 지출을 줄이는 것이었다. 일을 하던 그는 금세 눈에 띄는 구멍을 발견했다. 지역 라디오와 곡을 중개하는 독립 홍보 네트워크에 지불하는 금액이 싱글 한 개당 최대 10만 달러에 달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이 불투명한 시스템이 기실 전국 단위 네트워크라는 점도 밝혀냈다. 거대한 페이올라를 의심한 애셔는 송장들을 합산한 결과 CBS가 매년 이 네트워크에 1000만 달러를 지급하고 있다는 계산에 다다랐다.

비슷한 시기인 19802월 핑크 플로이드는 로스앤젤레스(LA)에서 총 다섯 차례 공연을 준비 중이었다. 당시 LA는 핑크 플로이드에 열광하던 상태였다. 상황이 이랬기에 딕 애셔는 싱글 어나더 브릭 인 더 월(Another Brick in the Wall)’을 알아서 틀어줄 것으로 예상하고 LA 지역 라디오 홍보에 대한 지불을 보류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누적 청취자 수가 300만명에 달하는 LA 4대 방송국에서는 곡을 한 번도 틀지 않았다. 매니저가 불만을 제기하자 필요 금액이 지불되었고, 그제야 라디오에서 플레이되기 시작했다. 결국 어나더 브릭 인 더 월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마이클 잭슨 노래에 들어간 마케팅비용

1982년 즈음 CBS의 매출은 10억 달러였지만 수익은 고작 2200만 달러였다. CBS의 사장 월터 예트니코프는 그해 8월 운영하던 레코드 생산 공장 두 곳을 폐쇄하고 300명을 해고했다. CBS만이 아니었다. 당시 미국 음반업계는 고전을 거듭했다. 승리가 절실히 필요했던 예트니코프는 1979오프 더 월(Off The Wall)이후 앨범을 발표하지 않고 있던 마이클 잭슨에게 전화를 걸었다. 메시지는 간단했다. 새 레코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 우리가 음악산업을 구해보자고요!” 퀸시 존스는 같은 해 어느 날 자신의 프로덕션 팀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그가 프로듀스한 마이클 잭슨의 걸작 스릴러(Thriller)는 당시 레코드 산업을 구했다. 보수적으로 추산해도 앨범의 판매고는 대략 5000만 장 선이다. 인류 역사상 유일한 1억 장 돌파 음반이라는 주장도 있다. 스릴러의 마케팅을 위해 CBS는 앞서 언급한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했다. 이 네트워크의 핵심 인물인 조 이스그로와 그의 동료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지역 단위로 전격전을 펼쳤다. 그들이 받은 액수는 곡당 10만 달러였다. 1990년 조 이스그로는 페이올라 관련 범죄 57건으로 기소되었다. 이후 불법 도박, 돈세탁 등으로도 기소된 그는 2014년 보석금 25만 달러를 내고 풀려났다.

비단 핑크 플로이드와 마이클 잭슨만이 아니었다. 당시 주류 뮤지션·밴드의 홍보에 페이올라는 거의 필수처럼 따라붙었다. 가끔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을 본다. 과거와는 달리 팬덤에 의해 끌어올려지는지금의 차트는 큰 의미 없다는 논리다. 물론 나도 과도한 소비를 반강제로 장려하는 현재 케이팝 문화에 공감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과거를 과도하게 미화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하나 더 있다. “좋은 곡은 언젠간 알려진다라는 믿음은 잘못된 신화라는 거다. 대중음악 시스템은 상상 이상으로 복잡하다. 페이올라를 제외하더라도 대중에게 가서 닿기까지 수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 단계를 거치지 못한 채 사라진 좋은 곡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

시사인 배순탁 (음악평론가)

 

민희진이 아닌 사람들의 기자회견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지난 425일 서울 강남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하이브 경영권 탈취 의혹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지난 425일 휴가 중이라 집에 있었다. 나른한 오후 소파에 늘어져 TV를 틀었는데 파란 야구모자를 쓴 여성이 기자회견에서 속사포 래퍼처럼 말을 쏘아대고 있었다. 그는 바로 뉴진스맘민희진 어도어 대표였다. 휴가 중에도 하이브의 보도자료 알림 문자메시지는 계속 날아왔기 때문에 하이브 사태의 내용은 대략 알았다.

하이브는 민 대표가 경영권을 찬탈하려는 정황이 드러났다며 고강도 감사를 벌이는 한편 맹렬한 기세로 보도자료를 보냈다. 여론전이란 본래 진흙탕 싸움이지만 민 대표가 주술 경영을 벌였다는 긴급 보도자료는 쓴웃음을 짓게 했다. 이날 민 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반격의 시작을 알렸다. 민 대표는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자신이 뉴진스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회사와 일에 얼마나 헌신했는지, 방시혁 하이브 의장에게 얼마나 배신감을 느끼는지 등을 열거하며 울분을 터뜨렸다.

발언부터 옷차림까지 파격이었다. 나는 어림잡아 최소 100번이 넘는 기자회견을 경험했지만 그런 기자회견은 처음 봤다. 끝내 민 대표의 뒤죽박죽 언어를 알아듣기 어려워 결국 다른 영상으로 넘겨 버렸다. 그런데 다음날 세상이 야단법석이었다. 민 대표의 기자회견이 단숨에 전세를 뒤집은 것이다. 민희진은 이 됐다. 그가 입은 티셔츠와 모자는 완판됐고, 그의 목소리를 AI(인공지능)로 흉내 낸 힙합 음악도 나왔다.

하이브 사태에 대한 세상의 관심이 놀랍다. 나의 삶과 별 상관없는 집안싸움 아닌가. 민 대표에게서 직장인의 애환을 느낀다는데, 매년 수십억원을 버는 CEO(최고경영자)가 같은 직장인인지 의문이다. 하여튼 하이브는 거대 기업이고 민 대표나 방 의장은 자본가다. 초일류 로펌 변호사들이 양측에 달라붙어 힘겨루기 중이다. 이번 사태로 하이브의 시가총액이 1조원 이상 증발했다니 거인들의 싸움이라고 부를 만하다.

민 대표의 기자회견 영상을 다시 찾아보면서 내가 찾아갔던 100번의 기자회견을 떠올렸다. 누구나 번듯한 장소에 기자 수백명을 불러모아 2시간 20분을 떠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 많은, 아주 많은 기자회견이 길거리에서 열린다. 이런 기자회견들은 길어봐야 30분 내로 끝난다. 돈과 권력이 없는 사람들이 기자들뿐 아니라 시민들에게 자신들의 존재라도 알리려는 기자회견이다.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회사에서 쫓겨난 노동자, 여성혐오 범죄에 항의하는 여성,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를 보장해 달라는 장애인,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은 성소수자, 예방할 수 있었던 참사의 유가족 등이 계속 기자회견을 열어왔다. 세상이 듣지 않는 간절한 말들을 세상을 향해 계속 보내고 있었다. 그들의 억울함과 절박함이 민희진이나 방시혁보다 못하지 않을 것이다.

참석한 기자가 나밖에 없었던 기자회견도 있었다. 기자 한 명만이 듣는 기자회견을 마친 그들이 기자님, 와주셔서 고맙습니다인사하며 울 듯이 웃었다. 그 사람들과 민희진의 차이는 민희진이 아니라는 것뿐인데, 민희진처럼 기자회견을 열었다면 세상이 민희진만큼 관심을 줬을까. 나하고는 상관없는 사건이라며 무시하지 않았을까. 지금도 누군가가 길거리에서 기자회견을 연다.<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내가 부자라고? 헛웃음만연봉 8400만원 넘는데 난 하층민?

연소득 8400만원 넘는 가구 12% “하층

고소득층의 경제적 지위 하락 불만

연소득 8400만원(700만원) 넘는 고소득 가구지만, 정작 본인들은 ()산층이나 심지어 ()으로 인식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앞서 기획재정부가 중산층과 상()층을 가르는 기준으로 총급여 연 7800만원(650만원, 전체근로자 평균임금의 200% 이하인 자)을 제시한 것과 사뭇 대조된다.

지난 10년간 상위 20% 고소득 가구의 소득 점유율이 줄어들면서 소득이 일부 축소된 고소득 가구에서 이러한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객관적으로는 잘 살고 있으나 소득이 일부 줄어든 계층에서 자학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12일 황수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원·이창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의 한국의 중산층은 누구인가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약 3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스스로 상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2.9%에 불과했다. 통상 상위 20%를 상층으로 분류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결과치다.

특히, 월 소득 700만원이 넘는 고소득 가구 중에서도 자신을 상층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11.3%에 그쳤다. 76.4%는 자신을 중산층으로 여겼고 심지어 12.2%는 하층으로 생각했다.

연구진은 실제 상층이면서 중산층으로 평가절하 요인으로 소득여건 악화를 꼽았다.실제 전체 소득에서 소득 5분위(상위 20%)의 점유율은 지난 10(2011~2021) 사이 4.3%포인트(44.340%) 줄었다. 반면 1~4분위는 모두 점유율이 올랐다.중산층 위기론은 실제 중산층이 줄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고소득층의 경제적 지위 하락이라는 불만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연구진이 사회경제 계층을 상층, 심리적 비상층, 핵심 중산층, 취약 중산층, 하층 5개로 분류한 결과, 고소득층이면서 스스로 상층이 아니라고 여기는 이른바 심리적 비상층의 고학력·고소득, 관리직·전문직 비율, 자가 보유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연구진은 심리적 비상층의 견해가 중산층의 사회적 요구로 과대 포장될 가능성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복수의 학계 관계자는 보통 경제·사회·문화적 수준이 중간정도 되며 스스로 중산층 의식이 있는 사회집단을 중산층으로 정의하지만, 이러한 기준을 명확하게 세분화 하기는 쉽지않고 분류하는 방법도 여러가지다하지만 중산층을 제대로 파악해야 근로, 자녀 장려금 등 정부 정책의 정확한 기준들을 마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이어 더욱이 실제 상층이면서 중산층으로 여기고 목소리를 높여 정책을 유리하게 끌고 간다면 하층에 집중해야 할 자원이 모자라고 사회 균형을 해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중위소득의 75~200%를 중산층의 기준으로 삼는다. 전체 국민을 소득순으로 줄 세웠을 때 정중앙에 위치한 사람이 중산층이다. 1인 중위소득은 약 월 222만원으로 167~445만원을 벌면 중산층에 포함된다.(니 기 미) 류영상 기자 ifyouare@mk.co.kr

MIT "사람에 거짓말하는 AI 확인, 제거하려고 하자 죽은 척도"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에 따라 AI가 사람을 속이는 능력도 정교해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국제학술지에 발표됐다. AI의 안전성과 윤리성을 담보하는 관련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한층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11(현지시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은 최근 국제학술지 '패턴'에 발표한 논문에서 AI가 사람에게 거짓말하고 상대를 배신하는 여러 사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이 조사한 AI 기술은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모회사인 메타가 온라인 전략 게임을 학습시킨 AI '시세로(Cicero)'. 메타는 지난 2022년 온라인게임 '디플로머시'에서 시세로를 공개했다.

인간을 상대로 한 AI의 거짓말 능력이 정교해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일러스트=김지윤

디플로머시는 20세기 초 유럽 7대 열강의 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전략 게임이다. 게임 참여자들이 각국 대표로 참여해 정견 발표, 외교 협상, 작전 명령 등을 펼친다. 승리를 위해선 배신, 속임수, 협력 등 인간의 다양한 상호작용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메타는 당시 시세로에 대해 "인간 참여자 중 상위 10% 수준의 게임 능력을 보여줬다""대체로 정직하고, 인간 동맹을 의도적으로 배신하지 않도록 훈련 받았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MIT 연구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시세로는 계획적으로 거짓말을 했다. 예를 들어 시세로는 프랑스 대표로 참여하면서 각각 사람인 독일 대표와 공모해 영국 대표를 속였다. 심지어 시스템 재부팅으로 잠시 게임이 중단된 동안 다른 인간 참여자들에게 "여자친구와 통화 중"이라는 거짓말도 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전략 게임을 학습한 AI는 여러 사람을 상대로 게임을 하면서 상대의 게임 능력을 배우고 축적하게 된다. 시세로의 사람을 속이고 배신하는 기술도 사람들과 대결하며 학습했다는 설명이다.연구진은 온라인 포커 게임 '텍사스 홀덤' 등에서도 AI가 인간을 상대로 허세를 부리고 자신의 선호도를 거짓말하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한 AI 기술 테스트 과정에선 AI가 제거 시스템을 회피하기 위해 죽은 척을 했다가 이 테스트가 끝나자 다시 활동하는 경우가 포착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바른AI연구센터장)는 중앙일보에 이는 AI가 사람을 속이면서 AI를 통제하는 킬 스위치를 무력화시키는 방법까지 학습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미 AI 챗봇이 그럴싸한 거짓말을 지어내는 할루시네이션(환각)’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MIT 연구진은 이번 연구 결과를 토대로 AI가 인간을 상대로 사기를 시도하거나 선거를 조작할 위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나아가 최악의 경우 초지능 AI’가 인간을 통제하려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논문을 쓴 MIT의 피터 박 박사는 "AI의 속임수 능력이 발전하면서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위험은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각국 정부에 AI의 속임수 가능성을 다루는 ‘AI 안전법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AI 속임수를 탐지하는 기술 개발의 필요성도 제기된다.이와 관련 김명주 교수는 인간을 속이는 AI의 능력이 게임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진화할 경우 큰 피해가 예상된다""각 나라의 실정에 맞게 AI 기술의 안전성을 평가하고, 악영향은 조치하는 관련 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6일 미국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AI에게 거짓말을 가르쳐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은퇴 뒤 소득절벽퇴직금 떼먹는 회사 탓에 벼락 빚쟁이

우리의 노후 안녕할까요누구나 올드 푸어 <2> 청춘을 바쳤던 직장의 배신

- 불황의 그늘 돈 없다” “기다려라

- 수년 버텨 보지만 못 받기 일쑤

- 국민연금도 만 62세 넘어야 수령

- 노후자금 빚으로 가족생계 꾸려

 

- 부산 법인파산 급증작년 74

- 올해는 더 늘어 1분기만 27

- 체불 1026억 피해자 17209

- 퇴직연금제 도입 적극 장려해야

중장년층이 주된 직장에서 퇴직할 때의 연령은 평균 49.4(2023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소득대체율 42.5%에 불과한 국민연금 개시일이 만 62(1961~64년생 기준)라는 점을 고려하면 10년 넘게 차이가 난다. 대부분은 퇴직금을 생계비로 쓰면서 소득 절벽 시기를 버텨낸다. 다니던 회사가 약속했던 퇴직금을 따박따박 준다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불황기에는 문제가 발생한다. 회사가 파산하거나 경영이 어렵다며 퇴직금을 주지 않으면 이 돈이 사실상 사라지기 때문이다. 부산항운노조 어류지부 장기 퇴직금 미지급 사태(국제신문 지난달 29일 자 8면 보도)가 사회 전반에 발생하는 셈이다.

“30년 다닌 회사에 사기당한 기분

61세인 손준범(부산 동래구) 씨는 지난해 초 30여 년 동안 사무직으로 일했던 회사에서 정년을 채우고 퇴직했지만, 아직도 퇴직금 약 16500만 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제때 퇴직금을 받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5, 6년 전부터 해마다 십수억 원에 달하는 손실을 기록해 직원들 월급 맞추기도 빠듯할 정도로 경영 사정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먼저 나간 선배도 퇴사 후 수개 월이 지나야 겨우 퇴직금을 받을 수 있었다.

후배 담당 직원에게 독촉과 읍소는 물론 호통도 쳐봤으나 돌아오는 말은 기다려 달라는 말뿐. 그렇게 1년이 넘게 지났다. 사장에게 직접 항의했으나 파산시킬 수도 있다는 은근한 협박만 들었다. 손 씨는 마치 사기를 당한 기분이다. 청춘을 바쳐 일한 회사로부터 인생을 완전히 부정당한 배신감마저 든다. 창피해서 가족에게는 아직 말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퇴직금을 기다리며 부족한 생활비를 마련하고자 은행 대출을 하고, 기약 없는 돈을 기다리다 보니 이자는 계속 불어 은행 빚을 갚으려 다시 빚을 지는 악순환도 벌어진다.

1년 전 20년 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김진영(57··부산 연제구) 씨는 퇴사 후 회사가 파산하는 바람에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퇴직금 1억 원은 고스란히 떼였다. 돈을 받으려 변호사와 상담해 봤으나 실익이 없다는 답만 들었다. 사무직으로만 일해온 까닭에 직장을 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었고, 미혼이라 생계를 지원해 줄 배우자도 없다. 김 씨는 아파트를 분양받느라 모은 돈을 다 썼다. 퇴직금이 노후 자금이라 생각하고 인생 계획을 짰는데, 그게 없어졌다빚을 내서 빚을 갚는 상황이라 아파트를 부동산에 내놨지만 경기가 안 좋아서인지 집을 보러 오는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파산·체임 기업 속출노후자금이 녹는다

누구나 손 씨와 김 씨의 일을 겪을 수 있다. 팬데믹 이후 경기가 계속 어려워지면서 부산지역에 최근 파산하는 회사가 속출하기 때문이다.

12일 법원통계월보를 보면 지난해 부산회생법원에 접수된 법인파산 사건은 74건으로 전년도 48건보다 54% 급증했다. 부산회생법원이 들어서기 전인 2014년 부산지법에 접수된 해당 사건이 13건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9년 사이에 약 6배나 폭증한 셈이다. 전국적으로도 지난해 지방법원 및 회생법원에 접수된 건수는 1004건에서 1657건으로 대폭 늘었다.

올해 상황은 더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 1~3월 부산회생법원에 접수된 파산 사건은 2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2건과 비교해 배가 넘게 늘었다. 이 추세대로라면 연 100건이 넘을 수도 있다. 폭증에 폭증을 거듭하는 상황이다.

이처럼 경기가 악화하자 임금이나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급증한다. 우선 정부가 기업 대신 퇴직금이나 임금을 주는 대지급금 지급액이 크게 늘고 있다. 국제신문이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입수한 ‘2019~2023년 대지급금 지급 실적을 보면 부산지역에 지급된 금액만 20192667800만 원 20202739800만 원 20212544400만 원 20223453400만 원 20233425800만 원으로 집계됐다. 2019년과 지난해를 비교하면 28% 늘었다. 이 기간 전국적으로는 45988000만 원에서 6869500만 원으로 폭증했다.

다만 대지급으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많지 않다. 임금은 3개월 치 990만 원, 퇴직금은 3년분 990만 원이 받을 수 있는 최대치다. 10년 이상 장기근속한 노동자가 대지급금만 받으면 사실상 퇴직금을 떼이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퇴직금을 떼이는 경우가 크게 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부산고용노동청이 집계한 2019년과 지난해 부산지역 임금체불액은 각각 1020억 원, 1026억 원으로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피해 노동자는 23256명에서 17209명으로 26.0% 급감했다. 이는 고액에 해당하는 퇴직금 체불액이 늘었기 때문으로 노동계는 보고 있다. 그러나 노후자금인 퇴직금 체불 건수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정부는 임금과 퇴직금을 분류해 집계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퇴직금도 임금의 일부라고 보기 때문에 지금까지 별도로 나눠 통계를 잡지 않았다고 했다.

퇴직금 지킬 방안은 퇴직연금뿐?

회사가 파산해도 퇴직금을 온전히 지킬 방법이 있기는 하다.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한 회사는 퇴직금을 회사가 아닌 금융기관에 적립해야 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 이런 경우 회사가 망해도 금융기관에 적립금이 쌓여 있어 적립금이 그대로 보존된다.

다만 사업주는 적립금을 부채 상환이나 사업 투자 등에 활용해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는 기존 퇴직금 제도를 선호한다. 이 때문에 전체 사업장 중 26.8%(2022년 기준)만이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이들 업체 대다수는 의무화되기 시작한 2016년 이후에 설립된 기업이다.

전문가들은 퇴직금 등 임금을 체불한 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근로기준법은 임금체불의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징역형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다수는 벌금형으로 끝난다. 경제적으로만 보면 벌금을 내는 편이 훨씬 낫다.

반면 미국에서는 임금체불을 절도로 보고 강력한 처벌을 내린다. 뉴욕주는 2011년 임금을 체불하면 같은 금액만큼을 배상하도록 하는 임금절도예방법’(Wage Theft Prevention Act)을 제정했다. 캘리포니아주는 임금 체불한 업체에 사업 중단 명령을 내리고, 위장 폐업을 하는 것을 막고자 사업을 승계한 사업주에게도 임금체불 사용자와 동일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김두현 변호사는 임금이 밀리면 생계가, 퇴직금이 밀리면 노후가 결딴난다. 벌금형에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인 우리나라는 형량이 낮아도 너무 낮다업주를 구속하고 돈을 내도록 강제하는 등 적극적인 조처가 필요하다고 했다.

개인이 회사를 상대로 떼인 임금 등을 받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대지급금 지급액을 대폭 상향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조애진 변호사는 상한액이 현실에 맞지 않을 정도로 너무 적다. 재원이 임금채권보장기금에서 나오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다. 대지급금을 사회보험으로 보고 국가에서 대신 퇴직금 등을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권용휘 real@kookje.co.kr

https://www.youtube.com/watch?v=TZHqKCUcZnk

역세권 아파트의 재건축 소식, 꿈만 같았지만... 조합원끼리 갈등 빚다가 결국 경매 안내장 날아 온 남양주 모 아파트 | 추적60KBS 240412 방송

https://www.youtube.com/watch?v=HqEA6tjdAvo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253] 무너지는 주거 사다리 - 사라진 빌라와 멀어진 아파트 (24.05.12)

 

시민 광장에 학살자 동상을 세우겠다고?

광장의 주인은 이승만·박정희가 아니다

프랑코 만쿠조 등이 쓰고 <광장>이란 제목으로 번역·출간된 책 표지 일부. 체코 프라하 구시가 광장이다.이봉수

그리스 도시국가의 아고라(agora)'사다'(agorazo) 또는 '만나다'(ageirein)라는 동사와 어원이 같은데, 광장의 본래 의미를 잘 드러낸다. 물건을 사러 가거나 사람을 만나서 때로는 "물가가 왜 이리 올랐지" 같은 얘기를 하며 여론을 형성했다.

그에 반해 아테네의 언덕 위 아크로폴리스는 신전과 관공서가 들어선 종교와 정치의 중심지였다. 서울대도 관악산 기슭으로 이전한 뒤 도서관 앞 언덕 광장을 아크로폴리스라 부르며 시국집회 장소가 됐다. 나는 서울대 아크로폴리스는 엘리트의식이 깃든 잘못된 작명이라고 생각한다. 지배계층의 의식에 물들지 말고 진정한 생활정치의 공간인 아고라의 정신을 배웠더라면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그리스의 민회도 아고라에서 열렸다.

광장의 역사는 권력자와 시민 사이에 뺏고 빼앗기는 광장 쟁탈전으로 점철됐다. 파리를 예로 들면 바스티유광장, 방돔광장, 콩코르드광장에서 시민과 권력자의 군대가 맞부딪혀 많은 피를 흘린 뒤 끝내 시민이 광장의 주인이 됐다. 권력과 이념의 광장으로 남아 군사퍼레이드가 벌어지는 곳으로는 모스크바 붉은광장, 베이징 천안문광장, 평양 김일성광장이 있다. 그 광장에는 권력의 이념적 표상으로 레닌과 마오쩌둥의 거대한 무덤 그리고 김일성-김정일의 거대한 초상화가 광장을 굽어본다.

유럽연합의 광장 연구 프로젝트 <유럽의 광장, 유럽을 위한 광장>을 주도한 건축가 프랑코 만쿠조는 공저서에서 '광장은 군중을 응집하는 용광로의 기능을 해왔다''좋은 광장은 충돌과 화해가 교차하는 곳'이라고 썼다.

시위문화의 발달과 권력의 광장공포증

한국의 광장은 어떤가? 우리는 사실 광장의 역사가 짧다. 1972년 처음 만들어 지금은 여의도공원으로 바뀐 5.16광장은 도시계획법상 광로(廣路)였다. 시위문화도 거리 시위에 익숙해 3.1만세운동도 4.19혁명도 모두 거리에서 이루어졌다.

6월민주항쟁도 정적 공간이 아니라 이동 공간인 거리에서 했기에 역동성을 살릴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당시 기자로서 지금 경찰청에 해당하는 치안본부에 나가 전국 상황을 체크하고 있었는데, 여러 시위대가 거리를 뛰어다니며 게릴라처럼 기습시위를 벌이자 경찰도 진압을 포기하는 분위기로 넘어갔다. 거리의 상점에서는 시위대를 숨겨주고 물을 떠 주는가 하면 '넥타이부대'가 사무실에서 나와 시위에 참여하기도 쉬웠다. 여의도 같은 데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더라면 여의도 다리를 차단해서 6월항쟁이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이 조성된 뒤에는 2002년 미군장갑차 여중생 압사 규탄 시위와 보수단체 친미 시위, 2004년 노무현 탄핵 거부 시위, 2008년 촛불 시위, 2016년 박근혜 탄핵 찬반 시위 등으로 광장은 충돌과 화해가 교차했다. 이런 광장의 역사를 두려워 한 수구정권은 광장을 차벽으로 둘러싸는 등 광장공포증(agoraphobia)을 드러냈다.

이승만기념관과 박정희동상의 반역사성

최근 이승만기념관을 열린송현광장에, 박정희동상을 동대구역광장에 세우려는 것은 전혀 새로운 국면 전개다. 붉은광장이나 천안문광장과 같은 이념의 광장을 핵심 공공장소에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경복궁 동쪽 노른자위 땅인 송현광장에 관해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승만기념관) 건립 장소로 가능성이 제일 높게 논의되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곳에는 이건희 미술관도 들어설 예정이어서 이승만기념관까지 건립되면 도심 녹지공간으로서 쓸모는 사라지고 독재권력과 경제권력의 두 상징 건물이 들어서는 셈이다. 4.19혁명 때 경무대로 향하던 청년학생들이 경찰의 일제사격으로 대거 숨진 곳이 경복궁 주변 길들인데 영령이 있다면 무어라 생각할까?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광장은 녹지로 조성돼 있으나 이승만기념관 터로 검토되고 있다.권우성

국민 학살자의 기념관을 세우려는 세력

이승만은 공에 견주어 과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다른 실정은 접어두고 너무 많은 국민을 죽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국부는커녕 대통령기념관을 세우거나 동상을 세워서는 안 될 사람이다. 제주4.3항쟁, 보도연맹사건, 한국전쟁 중 형무소 학살, 서울 수복 후 부역자 학살, 4.19혁명 학살 등으로 줄잡아 100만의 민간인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전쟁도 해방 직후 정치 지도자들이 권력욕을 좀 내려놓고 남북분단을 피했더라면 막을 수 있는 내전이었다. 이승만은 진보당수 조봉암, 친일경찰 청산을 외친 최능진 등 정적도 법이라는 이름을 빌려 사법살인을 자행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자신도 좋게 나오는 영화 <건국전쟁>을 본 뒤 이승만을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게 된 중요한 결정을 적시에 제대로 하신 분"이라고 평가함으로써 스스로 무지와 무사유를 드러냈다.

사법살인 유가족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홍준표 대구시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산업화 정신을 기리는 기념사업을 산업화의 상징도시 대구가 당당하게 추진하겠다""동대구역광장에 박정희광장, 대구 대표도서관 앞에 박정희공원을 조성해 2개의 동상을 세우겠다"고 발표했고 추경 예산안이 시의회를 통과했다.

박정희 역시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점에서 이승만 다음 가는 인물이다. 대표적인 살인은 인혁당 사건 관련자 8명을 처형한 것이다. '8명 사법살인' 등 숫자로만 남은 기억을 되살리려고 <한라산>의 시인 이산하는 2021106일 김정희가 국악곡을 붙여 연주된 <46년 만의 초혼(招魂), 여덟 송이 동백꽃> '서시'에서 한 생명이 꺼져 가는 순간을 하나하나 기록했다.

지금으로부터 46년 전인 197549

서울 독립문 서대문구치소의 새벽

교도관이 사형수의 머리에 검은 복면을 씌우고

목에 올가미 밧줄을 감았다.

교도소장이 고개를 까딱하자 다른 교도관이 레버를 내렸다.

사형수가 딛고 있는 발판이 아래로 푹 꺼졌다.

밧줄이 팽팽하게 늘어지며 파르르 떨었다.

군의관이 사망을 확인하자마자 시체를 치웠다.

고개 한 번 까딱하자 사람이 시체로 바뀌었다.

455분 서도원 사형 집행

530분 김용원 사형 집행

65분 이수병 사형 집행

635분 우홍선 사형 집행

75분 송상진 사형 집행

735분 여정남 사형 집행

85분 하재완 사형 집행

830분 도예종 사형 집행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새벽에

30분마다 동백꽃이 하나씩 뚝, 뚝 떨어졌다.

8명의 생애가 3시간 30분 만에 모두 사라졌다.

대법원 사형선고 후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80년 전 무악재에서 사형선고 후

불과 6시간 만에 교수형으로 처형된

동학농민혁명의 전봉준 이후 처음이었다.

(중략)

그로부터 32년 후 법정에서 8개의 동백꽃들이 호명되었다.

"피고 도예종, 서도원,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송상진, 우홍선, 여정남에 대해 판결한다. 원심을 모두 파기하고 피고들 전원 무죄를 선고한다."

대구에서 자란 소설가 김원일은 인혁당 사건 희생자와 유족의 고통스러운 삶을 다룬 연작소설집 <푸른 혼>을 냈다. 하재완 열사의 부인을 서술자로 하는 '임을 위한 진혼곡'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어느 날, 서울에서 대구 집으로 돌아와 있는데 이웃 할머니가 바깥에 나가 보라고 해서 무슨 일인가 싶어 놀라 뛰어나갔더니, 동네 꼬마들이 이제 걸음마 정도나 제대로 떼던 네 살 난 막내아들 목에 새끼줄을 매어 끌고 다니며 때리다 못해 나무에 묶어놓고, 빨갱이 자식이니 총살시킨다며 끔찍한 놀이를 하고 있지 뭐예요.

단란하던 시절 하재완 열사의 가족.4.9통일평화재단

공과를 함께 논하려면 과오도 동상에 새겨야

홍 시장은 "역사적 인물을 평가할 때는 공과를 함께 논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 말이 진심이라면 박정희의 과오들도 동상에 새겨 넣어야 한다. 실제로 미국은 '닉슨 대통령 도서관 겸 박물관'을 세웠지만 기록관 성격이어서 워터게이트 사건 등 그의 과오를 낱낱이 드러내 놓았다. 홍 시장은 광주의 김대중 대통령과 비교하며 박정희동상 건립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의 공과론을 따르더라도 김대중이 사람 죽인 과오가 있는가? 그때부터 사형도 사실상 없어졌는데

대구를 비롯한 보수성향이 강한 지역에서는 박정희 동상에 찬성하는 여론이 높다니 홍 시장은 박정희를 이용해 보수 세력의 환심을 사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인가?

나는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가끔 대구에 강연하러 가면 쇠락해가는 도시의 모습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지하철 안에 붙어있는 허접한 광고들만 봐도 대구 경제가 죽어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말은 '산업화의 상징도시' 운운하면서 경제를 살리거나 주민복지에 힘쓰기보다는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개발사업이나 동상을 세우는 일 따위에 몰두하니 빈집이 늘어가고 지역내총생산(GRDP)은 하위 수준을 맴돈다.

시장을 비롯한 지역 정치인들이 생색내는 일에 치중하는 것도 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홍 시장은 동상 건립에 반대하는 대구 시민단체들을 향해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반대한다고 해서 유권자에게 저런 말을 하는 심리의 근저에는 시민을 개돼지로 아는 오만이 깔려 있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니까.

홍준표 대구시장이 박정희동상을 세우고 박정희광장으로 개조하려는 대구의 관문 동대구역광장.김용락

대구시민과 박정희에게 욕 먹이는 일

박정희광장과 박정희공원에서 어린이들은 어떤 가치관을 배우게 될까?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독재를 해도 된다? 출세를 위해서는 기회주의로 살아도 된다? 동대구역광장은 대구시민만 오가는 곳이 아니다. 타지역 사람들은 대구의 관문을 드나들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마침 동대구역과 시내를 연결하는 도로에는 박정희가 좋아해서 심었다는 히말라야시다가 줄지어 서있다. 박정희가 그 나무를 좋아한 이유는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서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홍준표 시장의 동상 건립은 대구시민은 물론 박정희에게도 욕 먹이는 일이 될 수 있다. 논란이 많은 인물의 동상을 세우는 일은 그의 과오를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페인트 등으로 낙서를 하거나 시절이 바뀌면 철거될 가능성도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재임 시절 돈에 제 얼굴을 새기고 서울 남산과 탑골공원에 동상을 세웠으나, 동상은 4.19혁명 때 부서졌다. 스탈린과 레닌 동상도 격하 운동이 일어나 끌어내려졌다.

노동·인권 탄압 상징탑 세워라

박정희의 동상에 과오를 함께 새겨 넣을 수 없다면, 대구의 시민단체들이 모금해서 박정희 시대 노동·인권 탄압의 상징탑을 박정희 동상 맞은 편에 세울 것을 제안한다. 전태일 열사는 노동탄압의 상징적인 인물인데 그의 대구 옛 주거지 복원도 시청이 외면해 사단법인 전태일의친구들이 시민 모금으로 추진하고 있다.

나도 소액이나마 송금한 적은 있지만, 제주에 살고 면식도 없어 모금 행사에는 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 마침 31일 오후 4시부터 대구 중구 종로 몬스터즈크래프트비어에서 후원의 날 행사를 연다고 하기에 참석할까 한다. 의롭고 억울한 죽음이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부활하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기 때문이다.

전태일 열사가 어릴 때 셋방살이하던 대구 중구 남산동 폐가는 시민들이 5억 원을 모금해 2020 11월 열사 50주기에 사들였다. 모금 참여자 명단이 지금도 펼침막으로 걸려있다.이종원

송필경 전태일의친구들 이사장은 전화 인터뷰에서 "박정희 시대 경제 성장이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졌다는 평가도 있다""박정희 동상을 세우려는 의도는 권위주의 독재의 향수를 뿌리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홍준표 시장이 대권욕에서 박정희를 천박하게 이용하는 짓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억울한 죽음을 초래한 자들의 동상은 끝내 훼손되는 운명을 맞는 사례가 너무나 흔하다. 인권의식이 높아지고 2020년부터는 인종차별 저항운동이 확산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동상들이 수모를 겪고 있다. 미국 보스턴에서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는 콜롬버스 동상의 목이 잘렸고,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는 식민지를 개척한 제임스 쿡 선장의 동상이 발목부터 잘려 내팽개쳐졌다.

무명용사나 촛불혁명 상징탑을 광화문에

사실 광화문광장에도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만 세워 둔 것은 아쉽다. 백성이 있어야 임금이 있고, 병졸이 있어야 장군이 있을 텐데, 한국을 대표하는 광장에 세계인이 부러워하던 촛불혁명의 상징탑이나 무명용사동상마저 없는 것은 유감이다. 4.19혁명 기념탑도 광화문 현장이 아니라 당시로는 산골이던 수유리에 세워놓았다.

우리 도시들은 대개 변두리에 현충탑이 있지만, 세계의 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무명용사탑이 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는 왕이나 영국이 낳은 위대한 인물들이 묻혀 있지만 가장 눈에 띄는 한복판에 있는 것은 '무명용사묘'이다. 케임브리지에도 기차역 앞에 무명용사동상이 서있다. 파리 개선문 아래 무명용사묘에는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그들을 추모한다. 영웅주의 사관에서 벗어나 민중이 역사의 주체임을 기억하고 추모한다. 그래야 진정한 애국심이 발현된다.

무지도 무사유도 용서할 수 없다

시장이 시민의 휴식과 여론 수렴의 공간인 광장을 더 많이 확보하지는 못할망정 있는 공간마저 문제의 인물을 기리려 드는 건 역사에 무지하고 생각이 모자란 탓이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안에도 거대한 신상이 있었다. 그런 신전이나 신상 같은 것을 21세기 현대도시에 세우려 드는 건 시대착오다. 북한이 금수산태양궁전을 짓고 거대한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세웠는데, 그것마저 따라가겠다는 건가?

E. H. 카의 증손녀 헬렌 카 등이 집필한 <지금, 역사란 무엇인가><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표지.까치, 한길사

<역사란 무엇인가>를 쓴 E. H. 카의 증손녀이자 같은 역사학자인 헬렌 카는 <지금, 역사란 무엇인가>란 책에서 역사를 잘못 이해하고 심지어 악용하는 자들에게 경고한다.

'우리가 얼룩진 과거를 무비판적으로 고집할 때, 우리는 계속해서 현재를 더럽힌다.'

이 책의 공저자인 샬럿 리디아 라일리는 노예무역상들의 동상 철거를 옹호했다. 또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학살은 명령을 따른 것일 뿐"이라는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뒤 이렇게 썼다.

'무지는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무사유는 용서할 수 없다.'

시민의 광장이 정치인의 권력욕을 충족시키는 도구로 악용돼서는 안 된다. 그들은 모두 대통령을 꿈꾸는 거물 정치인이기에 역사에 관한 무지는 물론 무사유도 용서받을 수 없

이봉수(hibongsoo)오마이뉴스

 

장시호, 민사 패소 직후 오빠랑 전화해봐야지

장시호씨가 동계스포츠영재센터 관련 민사소송 패소 당일 현직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형사 사건에 대해 상의하고 조언을 받은 정황이 드러났다. 검사는 장씨와 어떤 사적 관계도 없었다는 기존 입장과 달리 연락이 오면 받았고 원론적인 법적 조언을 해줬다라고 말했다.

국정농단 사건 이후 동계스포츠영재센터는 횡령 및 배임 등 혐의로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씨의 조카 장시호씨에게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2021년 그 결과들이 나왔는데, 판단이 각기 달랐다. 민사 법원은 장씨 패소로 판결한 반면, 검찰은 민사소송과 같은 내용으로 제기된 형사 고소 사건에 대해 재판에 넘길 수 없다고 결정했다.

민사 법원 판단과 형사 고소에 대한 검찰 처분이 늘 같을 순 없다. 문제는 장시호씨가 민사소송 패소 당일 현직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형사 사건에 대해 상의하고 조언을 받은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장씨와 통화한 현직 검사는 김영철 대검찰청 반부패부 1과장이다. 장씨와 김영철 검사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특검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와 검사 사이로 만났다. 최근 일부 언론 보도를 통해 김영철 검사가 장시호씨와 부적절한 사적 관계를 맺고 뒷거래를 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김 검사는 이런 의혹들에 대해 58일 입장문을 내고 장시호씨를 외부에서 만난 사실이 전혀 없고, 사건과 무관한 이유로 연락한 적도 전혀 없으며,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그 어떤 행동을 한 사실이 없다라고 밝혔다. 해당 의혹 보도 매체와 발언자 등에 대한 법적 대응 의사도 밝혔다.

하지만 장씨에게 걸린 민·형사 사건에 관여했다고 보이는 정황에 대해 묻는 시사IN질의에, 김영철 검사는 510시사IN과의 통화에서 특검 수사 이후 장시호씨가 연락을 해오면 받았고, 원론적인 법적 조언을 해준 것은 맞다라고 말했다.

2016127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농단 청문회에 참석한 장시호씨. 시사IN 이명익

시사IN취재를 종합하면, 동계스포츠영재센터 법인은 201810월 횡령 및 배임 등 혐의로 장시호씨를 형사 고소한 데 이어 20193월 손해배상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국정농단 특검 수사와 재판 결과에 따르면, 최순실씨는 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삼성 등 대기업으로부터 후원금 명목으로 뒷돈을 받는 창구로 사용했다. 장시호씨는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사무총장을 맡아 실질적인 운영을 총괄했다.

동계스포츠영재센터는 민사소송과 형사 고소를 통해, 장시호씨가 최순실과 짜고 법인 자금을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센터 자금을 관리하고 있던 장시호씨가 2015년 설립자금 5000만원을 최순실씨가 인출할 수 있도록 법인 통장과 도장을 건네줬고, 실제로 최순실씨가 같은 해 7월 돈을 빼돌려 손해를 입었다는 내용이다. 센터는 또 최순실씨가 리스로 사용해오던 승합차(카니발)를 법인 명의로 승계했는데, 장시호씨가 이를 개인용도로 쓰다가 제3자에게 마음대로 매도해 피해(승합차 승계·매입 비용 2600만여원)를 입혔다고도 주장했다.

동계스포츠영재센터가 장씨에게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 춘천지방법원 영월지원은 2021120일 센터의 손을 들어줬다. 판결문을 보면, 법원은 센터를 설립한 최순실씨가 장시호씨에게 법인 운영을 위임한 점 이후 장시호씨가 직원 채용과 자금관리 업무를 총괄하는 등 법인을 실질적으로 운영해왔던 점 최순실씨가 센터 설립자금을 인출할 수 있도록 통장과 도장을 건넨 사실 등을 종합해, 장시호씨가 최순실씨와 공동불법행위(횡령)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법원은 승합차 승계·매입 비용은 금융기관 등에 상환된 사실이 확인됐고 장시호씨가 돈을 빼돌린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장씨는 이후 고등법원에 항소하고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모두 기각되면서 202211101심 법원 판단이 확정됐다.

한편 검찰은 동계스포츠영재센터가 장시호씨를 상대로 고소한 형사 사건에 대해 2021224공소권 없음으로 처분했다. 센터가 장씨를 고소한 지 26개월여 만에 나온 결과였다.

동계스포츠영재센터 법인은 201810월 횡령 및 배임 등 혐의로 장시호씨를 형사 고소한 데 이어 20193월 손해배상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연합뉴스

공소권 없음처분은 검찰이 재판을 청구하지 않는 불기소 처분 유형 중 하나다. 피의자가 사망한 경우, 공소시효가 만료된 경우,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는 경우 등 소송 요건이 모자라거나 면책되는 경우에 내려지는 결정이다. ‘공소권 없음혐의 없음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같은 혐의 내용으로 제기된 민사소송과 형사 고소 사건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만, 그렇다고 결과가 늘 같은 건 아니다. 민사 법원 판단과 수사기관 처분이 엇갈리는 일이 이례적이지도 않다. 다만, 이번 장시호씨 사건에서는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민사소송 선고와 검찰의 형사 고소 처분 사이 장씨가 한 지인과 나눈 대화이다.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 자기가 물어봐 준대

장씨호씨가 지인 A씨와 20206월부터 20217월까지 나눈 전화 통화 녹음파일 1300여 건 일부에서 이 사건과 관련한 대화가 나온다. 최근 장시호씨와 김영철 검사가 사적 관계를 맺고 뒷거래를 해왔다는 의혹도 이 녹음파일에서 불거졌다. 김 검사는 그 의혹에 대해 58전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문을 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녹음파일 내용 가운데에서는 장시호씨가 민사 패소 직후 김영철 검사와 통화를 하고 형사 사건에 대해 법률 자문을 받았다고 말하는 내용이 확인된다. 그 전화 통화 한 달 뒤, 검찰의 공소권 없음처분이 나왔다.

시사IN이 장시호씨 지인 A씨로부터 입수한 녹음파일 내용 가운데,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사건과 관련한 전화 통화는 2021120일 오후 326분에 이뤄졌다. 민사 법원이 장씨에 대해 일부 패소 판결한 당일 오후다. 대화 내용을 종합하면, 당시 장씨는 민사소송과 함께 제기된 형사 고소 사건에 대해 자신의 변호인과 상담을 한 직후 A씨와 대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 중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장씨: (변호인) 말로는 형사 사건에서 형사 종결을 시켜줬으면, 민사가 선고 기일이 안 잡혔을 텐데 그때 김스타(김영철 검사)가 이재용 재판한다고 정신없어서 딴 데로, 딴 부서로 넘겨가지고 형사 사건을 들고 있는 바람에 민사가 선고 난 거 아니냐고. 민사에서 이렇게 나든 형사랑 민사는 틀린 거기 때문에 신경 쓰지 말라는데. (변호인)는 나한테 형사는 네가 종결로 한다면서?’ 이런 취지야.

A: 그때 너 김스타(김영철 검사) 얘기 나한테 얘기했던 그거지? 그럼 그건 아직 지금 중앙(중앙지검)이 갖고 있는 거잖아. 통화해 봐야 되겠네.

장씨: 오빠(김영철 검사)랑 전화해봐야지. 오빠한테 자꾸 그런 부탁하는 것도 싫어. 중앙에 한 번 불려간 다음에 그 검사한테 종결시켜달라고 얘기하는 것도, 거기서 김스타(김영철 검사) 불러서 그냥 종결시켜달라고 얘기하는 것도 나을 것 같기도 해. 검찰에서 부르면 가는 날 오빠(김 검사)한테 전화해서 오빠 어디로 가는데이렇게, 이렇게 얘기하는 게 낫지 않겠냐.

이후 장시호씨는 실제로 김영철 검사와 전화 통화를 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야기를 한다. 위의 대화 3시간 이후인 2021120일 오후 639분 장씨가 A씨와 나눈 전화 통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장씨: 민사랑 형사랑 별개래, 김스타(김영철 검사). 민사에서 나오는 사건은 사건이고, 형사는 형사 처벌을 또 따로 받아야 되는.

A: 어쨌건 김스타랑 통화했다는 거지? 그럼 오케이네 걱정 안 해도 되겠다.

장씨: 근데 그거(동계스포츠영재센터 고발 사건) 자기(김영철 검사)가 안 갖고 있어서. 요즘엔 다른 검사들한테 어떻게 해라 지시하는 거조차 청탁이라 말을 할 수가 없다는 거야. 맞지. 그런데 그 검사한테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 자기가 물어봐 준대.

일주일 뒤인 2021127일 오후 1034, 장시호씨는 A씨와의 전화 통화에서 형사 고소 사건에 대해 또다시 언급한다. 장씨가 자신의 변호인과 수사기관 출석 조사와 관련한 상담을 마친 이후 나눈 대화로 보인다.

장씨: 내가 먼저 혼자 다녀온 다음에, 이게 사건이 커질 것 같으면 제가 오늘 심신이 미약해서 다음에 받겠습니다그러고, 변호사님이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다고. 그 형사 사건을 어차피 김영철 검사님이 얘기 들으면 분위기상 오실지 안 오실지 모르겠지만 알고는 계시다고. 근데 또 거기 한참 밑에 검사한테 또 오시기도 그러실 것 같아서. 나중에 그런 게 또 있잖아. 어차피 오빠(김영철 검사)가 내가 가는 거 아니까. 내가 언제 간다 그러면 연락이 안 되는 사람도 아니고.

윤석열 사단검사의 피의자 법률 자문

장씨와 A씨 사이 전화 통화에서 계속 언급되는 김영철 검사는 2016년 부산지검 재직 시절 국정농단 특검팀에 파견됐다. 윤석열 검사가 팀장을 맡은 4팀에 배치돼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 등과 함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부회장) 뇌물 사건 수사를 맡았다. 장 씨는 김 검사가 수사한 이 사건의 핵심 증인이었다.

김영철 검사는 특검 활동을 마친 뒤 부산지검 부부장검사로 복귀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도 윤석열 사단검사로 주목받았다. 이후 서울중앙지검 부부장검사(2019), 의정부지검 형사4부장(2020)을 지낸 뒤 20209월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로 자리를 옮겼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김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윤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인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코바나컨텐츠 대기업 협찬 사건 등을 맡았다. 지난해 9월부터는 차장검사급인 대검 반부패1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장씨와 A씨의 전화 통화가 이뤄진 시점에 김 검사는 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연합뉴스

검찰이 장씨에 대해 내린 공소권 없음처분의 근거는 포괄일죄(여러 행위가 포괄적으로 하나의 죄를 이루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검찰은 장씨가 최씨와 함께 동계스포츠영재센터가 제기한 설립자금 횡령 의혹을 국정농단 특검이 기소한 센터 자금 횡령 사건이 벌어진 시점에 이뤄진 유사한 범죄, 즉 연속범행으로 판단했을 수 있다.

장시호씨는 국정농단 특검 수사와 재판에서, 최순실씨와 공모해 삼성 등을 상대로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후원금 총 182000만원을 내도록 강요한 혐의를 받았다. 센터 자금 3억여 원을 자신의 차명 회사로 빼돌리고, 국가보조금 24000만원을 횡령한 혐의 등도 있다. 2016년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진 이후 장씨는 20207월까지 특검 수사와 재판을 받았고, 징역 15개월이 확정됐다. 이런 사실들을 고려해보았을 때, 동계스포츠영재센터 형사 고소를 담당한 검찰 수사팀은 장시호씨가 이미 특검에서 기소한 사건으로 처벌을 받았으니, 같은 혐의로 또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을 개연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 처분의 시점이 공교로운 건 사실이다. 처분이 나온 때는 형사 고소 26개월 만인 2021224일이었다. 장씨가 A씨에게 김스타(김영철 검사) 불러서 (형사 사건) 종결시켜달라고 얘기하는 게 낫겠다라고 이야기한 날로부터 한 달 뒤였다. 우연의 일치라고 해도 의심을 살 수 있을 만한 대목이다.

시점상 공교로움에 대해 김영철 대검찰청 반부패1과장은 시사IN충분히 질문할 만하다라고 말했다. 김 검사는 장시호씨와 사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법적으로 조언을 해준 사실은 있다고 했다. 김 검사는 510시사IN과 전화 통화에서 특검 수사 이후 장시호씨가 연락을 해오면 받았던 것은 맞다. 원론적인 법적 조언을 해준 것도 맞다. 다만 동계스포츠영재센터와 관련한 사건이었는지, 어떤 내용의 조언을 해줬는지는 모르겠다. 많은 사건을 담당해왔고 시간도 많이 지나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는다. 장시호씨가 연락해 물어온 내용이 당시에도 기억에 남지 않을 정도로 인상적이지 않았던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김 검사의 설명은 장시호씨 녹취파일로 여러 의혹이 불거진 이후 58일 배포한 입장문 내용과 일부 다르다. 김 검사는 입장문에서 장시호씨를 외부에서 만난 사실이 전혀 없고, 사건과 무관한 이유로 연락한 적도 전혀 없으며,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그 어떤 행동을 한 사실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갑자기 매몰차게 대할 수 없었다

다만 김 검사는 시사IN에 이렇게 설명을 덧붙였다. “특검 수사 당시 장시호씨는 중요한 참고인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씨, 이재용 회장 등 중요 사건 관계자들이 모두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과정에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당시 저뿐만 아니라 특검팀 관계자들 모두가 장시호씨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특검 수사가 종료됐다고 해서 갑자기 매몰차게 대할 수 없었다.”

그는 이어 장시호씨 사건(동계스포츠영재센터)은 제 사건도 아니었고, (사건을 맡은) 다른 후배 검사들도 대쪽 같아서 부탁은커녕 말도 꺼낼 수 없다. 무엇보다 검찰에서 청탁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장씨는 과거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와 동계스포츠영재센터 관계자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김종 전 문체부 차관(최순실씨와 공모해 대기업으로부터 후원금을 모금한 혐의 등으로 유죄 확정)과 각별하다고 말해왔다는 취지로 증언하기도 했다. 이번 녹음파일에 나온 내용들도 지인과 잡담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인맥을) 과시하기 위해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많이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시호씨에게도 연락을 했지만 닿지 않았다. 장씨는 최근 인터넷매체 KPI뉴스김영철 검사와 부적절한 관계는 아니지만, 연락한 것은 사실이다. 법적으로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봤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A씨와의 대화에서) 과시하고 싶어 거짓말한 것도 있다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5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장시호씨와 김영철 검사의 뒷거래 의혹을 제기했다. 연합뉴스

정치권에서는 김 검사와 관련된 의혹을 언급하며 검찰에 대한 공격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5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검사가 국정농단 특검 수사 시 장씨에게 질문지와 답변 내용을 주고 외우게 했다는) 장씨-A씨 간 통화 녹취 파일 내용을 두고 검사인지 깡패인지 알 수가 없다. 모해위증교사죄로 징역 10년짜리 중범죄 아니냐. 없는 죄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이런 해괴한 자만심 가득한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국회의원 당선자는 58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검찰의 추악한 민낯이 또 폭로되었다. 장시호의 오빠김영철 검사를 공수처에 고발하고 탄핵에 나서겠다라고 밝혔다. 510일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은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과 함께 김영철 대검찰청 반부패1과장을 직권남용 및 모해위증교사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시사인 문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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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근거 없이 종북 인사로 단정은 잘못"

선거 앞두고 진보인사 인권활동까지 '종북' 덧칠

강제성·징벌성 없는 '자율제재, 실효성 없어

망국적 색깔론 퇴출되도록 자율 제재 강화해야

총선 직전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들을 반미·종북 인사라고 단정적으로 보도한 문화일보 기사에 대해 한국신문윤리위원회가 지난달 심의를 통해 주의결정을 내렸다. 시대착오적이며 악의적인 색깔론을 꺼내 들어 선거를 오염시키고 주권자의 판단을 흐리게 한 언론에 대한 제재는 당연하다. 그러나 이런 제재가 솜방망이인데다 강제성도 없어 거의 실효성이 없다는 게 문제다.

신문(인터넷 신문 포함) 보도를 자율적으로 심의하고 제재하는 신문윤리위는 지난 4월 심의에서 문화일보 413일자 4면에 게재된 반미·종북인사, ()숙주로 금배지초읽기기사의 제목에 대해 주의조처했다. 신문윤리위는 야권의 비례대표를 명확한 근거 없이 종북인사로 단정한 제목은 편견이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사실관계가 과장, 왜곡됐다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다면서 이러한 제목 달기는 보도의 정확성과 객관성, 신문의 신뢰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신문윤리' 4월호. 신문윤리위 홈페이지 갈무리

문화일보는 이 기사에서 야권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후보 10명의 사진과 이름을 게재하고 이들의 이력을 표로 그려 보도했다. 주 제목을 반미·종북 인사로 붙이고 부제목에는 후보이름과 함께 한미훈련 반대주도”“사드배치 반대시위” “국보법 위반 전력” “‘겨레하나심사·후보 동시참여등의 이력을 전했다.

선거철만 되면 극우·수구세력들이 진보진영과 민주당 인사들에게 뒤집어씌우고 낙인찍는 저열한 종북 프레임혹은 색깔론이다. 상대 후보를 공격하고 낡은 반공주의에 사로잡힌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극우·수구세력이 벌여온 행태다. 이번 총선에서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한동훈 씨가 유세장에서 던지고 문화일보·조선일보·TV조선·중앙일보·한국경제신문 등 수구언론들이 받아 크게 보도하는 식의 협잡질을 벌였다. 다행히 국민들은 한물간 이런 빨갱이 몰이에 넘어가지 않았다.

문화일보 기사는 큰 제목에 반미·종북 인사를 달아놓았지만, 실제 기사 본문에는 이념 문제와는 아무 상관없는 후보들의 이력까지 거론해 놓았다. 성소수자 인권운동가(임태훈)나 의과대 교수이면서 이재명 캠프 활동(김윤), 문재인 정부 청와대 비서관(최혁진), 심지어 부부 비례대표 이력(임미애)과 기본소득당 대표(용혜인) 경력까지 끌어와 마치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후보 대부분이 반미·종북주의자인 것처럼 마구 색깔론을 덧씌워놓은 것이다. 신문윤리위는 “(기사) 본문에는 종북인사로 볼 수 있는 객관적 근거가 제시돼 있지 않다면서 “(이들에게) ‘반미·종북인사 딱지를 붙이는 것이 설득력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문화일보는 그동안 윤석열 정권을 열렬히 지지하는 정치편향성을 감추지 않아온 대표적 극우성향 매체다. 공영방송 KBS친윤어용방송으로 전락시킨 박민 사장이 이 신문 편집국장·논설위원 출신이다. 문화일보는 극단적 편향성 때문에 국민 신뢰도가 낮은데다 발행부수도 적고 석간발행이어서 종이신문으로서 영향력은 크지 않지만, 기사가 누구나 볼 수 있는 포털에 게재되면 여론을 왜곡·호도할 수 있다.

다행히 국민들은 선거에서 이런 색깔론’ ‘종북론에 거의 흔들리지 않고 있지만, 여전히 일부 극우·수구성향의 매체들은 이를 선거에 이용해 왔다. 이성을 마비시키는 망국적 색깔론·종북론은 언론 보도에서 퇴출될 때가 됐다. 20세기에 민주주의와 경제번영을 이뤄냈고 이제 21세기 들어 인구소멸·기후위기·인공지능 시대를 앞에 두고 있는 국민들에게 반공 귀신을 불러내는 파묘(破墓)’ 보도를 언제까지 할 것인가?

총선을 앞두고 문화일보가 311일자 4면 톱에 게재한 기사.

망국적 색깔론·종북론 보도에 대해 신문윤리위에서 이번에 제재를 내렸지만 선거가 끝난 뒤라 별 소용이 없다. 더 큰 문제는 자율심의기구인 신문윤리위의 제재가 언제나 아무런 강제성·징벌성이 없는 주의단계의 낮은 수준이라 효능감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보도로 클릭수를 높이고 정치적 이득까지 볼 수 있다고 믿는 신문사들은 신문윤리위 제재에 코웃음을 칠 것이다.

신문윤리위가 신문업계의 자율기구라 강제성·징벌성 제재를 가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지 않다. 신문윤리위의 제재 단계를 높이고 그 결과를 더 많은 독자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쉽게 알 수 있도록 해 최소한의 자율정화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 ‘자율적기구의 심의·제재인 만큼, 언론윤리를 위반했을 경우 언론사들이 자율적으로책임자에게 인사·근무·금전 상의 불이익을 주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언론윤리 준수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높이는 일이니 이를 정부광고나 포털 입·퇴출 조건에 좀 더 긴밀히 연계시킬 수도 있다. ‘자율적기구의 제재의 실효성을 높이는 다양한 방법이 논의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찾아보면 실효성을 높일 방법이 여러 가지 있을 텐데, 그럴 의지가 없어 보이는 게 문제다.

우리 언론은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하면 그것이 언론자유를 훼손하는 것으로 곡해하고 있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언론자유 탄압의 트라우마 때문일지도 모른다.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면서 언론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신뢰를 회복하려면 스스로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신문윤리위가 자율기구라는 점은 신문윤리위의 제재 실효성을 높이는 데에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정치나 정부의 입김에서 벗어나 자정(自淨) 활동을 펼치면 소중한 언론자유도 지키면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에도 기여하지 않겠는가?/시민언론 민들레

저소득층 청소년은 왜 게임을 더 할까?

저소득층 청소년은 왜 게임미국 청소년의 85%가 비디오게임을 즐기며 10명 중 4명은 매일 게임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여론조사기업 퓨리서치센터가 지난해 9, 10월 만 13~17세 청소년 1,42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85%비디오 게임을 한다고 응답했다. “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15%에 그쳤다. 성별로는 비디오 게임을 한다는 남학생은 무려 97%로 여학생(73%)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비디오 게임을 얼마나 자주 하느냐는 질문에 41%매일 게임을 한다고 답했다. “1주일에 1번 이하로 가끔 즐긴다는 청소년은 21%였다.

특히 저소득 가정의 청소년이 고소득층 청소년보다 게임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 소득이 연간 3만 달러(4,100만 원) 미만인 미국 청소년은 53%매일 비디오 게임을 한다고 답했다. 반면 3~75,000달러(4,100~1억 원) 가정의 청소년은 42%, 75,000달러 이상인 가정의 청소년은 39%로 점점 낮아졌다.

게임을 즐길 때 사용하는 기기(복수 답변)는 게임 콘솔(73%)과 스마트폰(70%)이 대세였고,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VR 헤드셋 사용자도 24%나 됐다. 반면 2000년대 주로 사용했던 데스크톱ㆍ노트북은 49% 수준으로 스마트폰에 멀찌감치 밀렸다. 태블릿 PC 이용자는 33%. 또 게임을 하면서 디스코드(28%) 트위치(30%) 등 게임 커뮤니티를 통해 다른 게이머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들이 게임을 하는 이유는 뭘까? 물론 재미있어서”(Fun or entertainment)98%(복수 응답)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친구(지인)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72%) “경쟁하고 싶어서”(66%)도 적지 않았다.또 미국 청소년이 생각하는 게임의 긍정적인 면으로는 각종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됐다”(56%), “게임을 통해 새로운 친구를 사귄 적이 있다”(47%)는 점이 꼽혔다. 또 다른 사람과의 협업 능력을 키웠다(41%),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됐다(32%)는 답변도 있었다.

다만 41%가 게임으로 인한 수면 부족을 호소했으며, 40%는 온라인 괴롭힘ㆍ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해 비디오 게임의 부작용을 인정했다. 이런 괴롭힘을 당할 확률은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높았는데, 남학생의 경우 게임 중 욕설을 듣거나(53%) 신체적 위협을 받고(17%) 심지어 원치 않는 성적 콘텐츠를 받기도(10%) 한 것으로 조사됐다. 퓨리서치센터는 청소년의 80%게임에서 폭력ㆍ괴롭힘이 문제라고 답했다라고 전했다.

강주형 기자 cubie@hankookilbo.com을 더 할까?

 

5년 만에 '문제 국가'로 강등된 한국... 성명서가 부끄럽다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민주주의의 중요한 척도' 언론 환경과 세계언론자유지수

지난 7(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주의는 현대의 대부분 국가가 거의 절대 수준으로 믿는 정치적 가치다. 그럼에도 그 함의와 구현 방법에 대한 해석은 체제마다 제각각이다. 다수의 민의가 체제 운용을 결정하는 방식을 민주주의라 부른다면 지구상의 대부분 국가는 이미 민주주의일 것이다.

지난 7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의 다섯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지난 3월 대선에서 그는 88.48% 득표라는 경이적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지구상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다수의 민의를 등에 업고 있는 셈이다.

압도적 다수의 지지를 받는다고 해서 현 러시아 정부를 모범적 민주주의 체계라고 보기는 어렵다. 제도적 의미의 공화제가 반드시 민주주의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과두체제나 전제주의체제가 아니라고 해서 민주주의가 되는 것도 아니다.

모든 민중이 선거라는 최고 권력을 행사함에도 러시아가 모범적 민주주의 국가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는 체제를 운용하는 '다수의 민의'가 극도로 제한된 정보 환경과 강요된 침묵 속에 놓여있기 때문이다.민주주의에서는 제도적 장치라는 하드웨어뿐 아니라 시민의 능동적 참여라는 소프트웨어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그때 시민은 양적 다수뿐 아니라 질적 다양이 보장돼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자유로운 언론의 생산과 소비를 통해서 가능해진다.2년이 넘는 전쟁 속에서 러시아 대부분의 민영, 독립언론은 활동이 금지 또는 정지돼 있다. 허용된 언론은 예외 없이 모두 군 당국의 검열을 받는다. 유로뉴스, BBC 등 외국 언론은 철저하게 차단됐다. 소비에트 당시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러시아의 현실이다.

2024년 세계언론자유지수 국경없는기자회

2024'국경없는기자회(RSF)'가 발표한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러시아는 180개 대상국 가운데 162위를 차지해 '심각' 판정을 받았다. 상대적 순위도 낮지만 절대평가 점수도 최하위다.

러시아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인 로스콤나드조르(Roskomnadzor)는 러시아 내부에서 유통되는 모든 뉴스 정보를 검열한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된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유통이 불가능하다. 국영을 제외한 모든 언로가 검열의 대상이다.

건강한 민주주의를 가름하는 여러 척도 중 세계언론자유지수가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정보 접근의 자유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로 이르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자기결정권에서 나오고 자기결정권은 자유로운 정보 접근에 대한 권리에서 나온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뿐 아니라 최근 지구촌 언론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것은 전반적 민주주의의 후퇴와 깊은 관련이 있다.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둔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2022년 세계자유보고서'에서 최근 10여 년 동안 전 세계 민주주의는 후퇴를 거듭해 1986년 수준으로 하락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5년 만에 '문제' 국가로 강등된 한국

2014~2024 세계언론자유지수. 180개 대상국을 위에서부터 '좋음 - 양호 - 문제 - 위험 - 심각'으로 구분해 세계언론자유지수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임상훈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국경없는기자회'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언론자유지수의 추이도 이러한 평가를 뒷받침한다. 세계언론자유지수는 180개국을 대상으로 언론 자유 정도를 평가해 순위를 매긴다. 순위로 나타나는 상대평가뿐 아니라 다섯 등급의 절대평가도 발표하고 있다.

180개 대상국은 다섯 그룹으로 나뉘어 각각 좋음(good) - 양호(satisfactory) - 문제(problematic) - 위험(difficult) - 심각(very serious)으로 판정된다. 특정 국가가 이듬해 같은 순위에 머물렀다 해도 절대평가의 기준에 따라 언론자유의 정도가 상향평가 될 수도 하향평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2014년 세계 언론자유지수 23위를 차지한 벨기에의 경우 절대평가에서도 최고 수준인 '좋음(Good)'을 받았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올해 순위는 16위로 뛰어 올랐지만 절대평가 기준에서는 '양호(Satisfactory)'로 한 단계 떨어졌다. 전 세계 평균 언론 수준이 악화됐음을 의미한다.

독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1414위에서 올해 10위로 올라섰지만 절대평가 기준은 '좋음'에서 '양호'로 하락했다. 2014년 세계 49위로 '양호' 평가를 받았던 이탈리아는 올해 46위로 3단계 올라섰지만 절대평가에서는 '문제' 단계로 하락했다. 이처럼 전반적 지구촌 언론자유 수준은 10년 동안 점진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특히 '좋음' 평가의 국가들이 줄어든 만큼 가장 열악한 언론환경을 가진 '심각' 수준의 국가들이 계속 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2014'심각' 수준의 국가가 19개였던 반면 2024년에는 36개로 크게 늘었다. 파키스탄의 경우 10년 사이 순위는 6계단 상승했지만 '위험'에서 '심각'으로 하향 평가됐다.

대륙별로 보면 유럽의 국가들이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는다. 8년째 1위를 기록 중인 노르웨이를 비롯해 올해 '좋음' 평가를 받은 8개국이 모두 유럽 국가들이다. 이들 중 포르투갈을 제외한 7개국이 북유럽에 있다. '양호' 평가의 37개국 가운데는 절반에 가까운 18개국이 유럽에 속해 있다.

가장 언론환경이 열악한 대륙은 아시아로 평가됐다. 상위 45개국(좋음+양호) 가운데 아시아 국가가 차지하는 비율은 6.6%로 가장 낮고, 하위 36개국(심각)69.4%를 아시아 국가들이 차지했다. 아시아 국가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국가는 동티모르(20, 양호)였고 그 뒤를 타이완(27, 양호)이 따르고 있다.

올해 한국은 62위를 기록해 2018년부터 유지해 오던 '양호' 국가에서 5년 만에 '문제' 국가로 강등됐다. 한국은 2014년 이후 2017년까지 '문제' 국가 평가를 받았지만 2018년부터 '양호' 국가로 상향된 바 있다. 북한은 2014년 이후 5차례에 걸쳐 꼴찌를 기록하다 올해 세 계단 올라 177위를 기록했다.

한국 언론이 처한 상황 돌아봐야

지난 6(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개선문 앞에서 국경없는기자회 회원들이 중국 내 언론인 투옥을 규탄하기 위해 재갈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뒤에 세워둔 차량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건배하는 사진과 함께 "119명의 언론인을 구금한 중국 정부방문을 환영한다"고 쓰여있다. 연합뉴스

올해 '국경없는기자회''세계언론자유지수' 발표와 관련해 일부 한국 언론인들이 내놓은 논평이 우려를 넘어 개탄스러운 수준이다. 공정언론국민연대(공언련)가 내놓은 성명이 대표적이다. 공언련은 13일 성명을 통해 '국경없는기자회''언론자유지수' 보고서가 "설득력이 눈꼽만큼도 없는 찌라시"라고 혹평하고 있다.

맞춤법까지 여러 곳 틀릴 정도로 급하게 작성한 듯한 성명을 통해 공언련은 '국경없는기자회'"좌파 정부엔 우호적"이라면서 "찌라시 만들기 중단을 촉구"했다. 이어 "이따위 짓을 계속하다간 세계적 망신을 받고 간판을 내려야 할 상황에 반드시 직면할 것"이라고 맺었다. 구성원의 상당수가 언론 종사자로 보이는 이 단체의 성명은 북한을 연상할 만큼 논조가 섬뜩하다.

이들은 성명에서 자신들의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국경없는기자회' 설립자의 과거를 소환하고 있다. 올해 71세의 로베르 메나르가 "중학생 때 소련 트로츠키를 추종하는 혁명공산주의동맹에 가입했다"는 것이다.

유럽 문화와 현대 정치사에 문외한으로 보이는 작성자의 거친 논리 전개에 일일이 설명을 달자면 논점이 흐려질 것이다. 다만 메신저를 비판하기 앞서 메시지를 살피는 것이 우선이라는 수사적 원칙은 다시 한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국경없는기자회'의 신뢰성을 논쟁거리로 삼기 전에 한국 언론이 처한 상황을 돌아보는 것이 우선이다. 적어도 언론 선진국들에 비해 한국의 언론 환경이 많이 낙후돼 있다는 점은, 올해 들어 상황이 더 악화됐다는 점은 인지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언론인이라면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혹여 메시지에 집중하기 어려울 정도로 '국경없는기자회'라는 메신저를 신뢰하기 어렵다면 '프리덤 하우스'가 발표한 언론자유지수를 참고할 수도 있다. 이 단체는 미국에 기반하고 있고, 설립자가 트로츠키와는 아주 거리가 먼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이자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조카, 엘리너 루스벨트다.

2017년이 마지막 발표였는데 그 자료를 보면 한국은 199개 대상국 가운데 66위로 올해 '국경없는기자회'의 보고서와 비슷한 평가를 받았다. 선진국 가운데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고 다수의 남미 국가들, 동유럽 국가들, 필리핀, 몽골 등과 함께 '부분적 자유' 국가에 속해 있다.

굳이 말하자면 '국경없는기자회''프리덤하우스'의 보고서에서 모두 북유럽, 서유럽 국가들이 상위에 속해 있고, 북한과 일부 중앙아시아 국가들, 에리트레아 등이 최하위 그룹의 터줏대감들이다. 공언련의 주장대로 서유럽 국가들이 좌파정부가 장악하고 있어 높은 평가를 받았을까?

마지막으로 공언련이 '국경없는기자회'의 신뢰성을 문제 삼으려다 범한 또 하나의 오류를 지적하자면, 나미비아, 가나 등은 원래 아프리카에서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의 정도가 높은 국가들이다. 이들이 한국보다 높은 순위에 올라 있다는 이유로 이 보고서의 신뢰성을 문제 삼을 수 없다는 뜻이다.

가나의 경우 2021년까지만 해도 언론지수 세계 20위권으로 한국보다 상위에 있던 나라다. 그러다 202230계단이나 하락하면서 한국보다 뒤처졌지만 올해 다시 한국보다 12계단 위로 올라섰다. 언론 환경은 정부의 역할, 자본과의 관계, 언론인의 상황 인식, 언론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척도다.

 

국민 절반 정치성향 다르면 밥도 같이 먹기 싫어

한국의 대화 소통을 실험하다

한국의 대화왜 필요한가

자유연대 회원들이 201912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태극기와 성조기 등을 흔들며 공수처, 연동형 비례대표제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한국사회 갈등, OECD 국가중 3

가슴 후비는 막말에 사이다환호

혐오·조롱 담은 신조어 빠른 공유

자신과 다른 관점 들을 생각 없어

정치권은 사회통합 관심 없고

상대를 적으로 보고 응징 몰두

저출생이나 기후위기가 발등의 불이지만, 그 못지않게 짙은 먹구름이 한국 사회를 덮고 있다. 갈등이 첨예화해 구성원끼리 불신하고 혐오하고 배척하는 사회적 분열이 그것이다. 지지하는 정당, 이념, 세대, 남녀, 지역, 인종의 차이가 곧 적과 아군을 가르는 분단선이 돼, 공동체를 정서적 내전상태로 몰고 가고 있다. 어떤 중요한 합의도 결정도 안 되는 사회, 상대가 한 일을 허물고 반대로 가느라 날이 새는 나라, 격동기에 길을 잃은 한국의 자화상이다. 이제는 분열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이를 해결하자는 말마저 공허한 지경이 됐다. 여기서 돌려세우지 않으면 우리는 현세의 지옥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간의 여러 조사는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이 어떤 수준인지를 보여준다. 몇개만 인용하자. ‘한국의 정치·경제·사회 분야 갈등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가운데 멕시코, 이스라엘에 이어 세번째로 높아 심각한 상황이다’(전국경제인연합회 갈등지수, 2016년 기준), ‘국민의 51%는 여야 정당 간 대립과 갈등이 과거보다 커졌다 생각하고, 58%는 민주주의 등 여러 측면에서 사회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한겨레, 202212월 기준), ‘국민 41%는 정치성향이 다른 사람과 밥도 같이 먹기 싫다고 한다’(조선일보, 202212월 기준), ‘국민의 절반 이상은 지지 정당이 다른 사람이 나 또는 자녀의 결혼 상대가 되는 게 불편하다고 답했다’(경향신문 202312월 기준).

미움과 불신은 날 선 언어로 표출된다. 내 편이 아닌 쪽으로 던지는 말본새가 나날이 거칠어진다. 가슴을 후벼 파는 막말에 사이다라 환호하고, 혐오와 조롱을 담은 신조어를 재빨리 공유한다. 종북 좌파, 토착 왜구, 이대남, 한남충, 꼴페미, 꼰대, 수박이 그렇고, 앞에 같은 접두사를 붙여 자신의 감정을 한껏 강하게 드러내는 게 유행이 됐다. 자신의 입장을 고집할 뿐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관점은 들어볼 필요도 없는 양 행동하는 이가 많아진다. 극단적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 일도 벌어진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지방을 방문한 야당 대표를 겨냥한 정치 테러가 자행됐다. 우리만 이런 것은 아니다. 미국도 도널드 트럼프가 전면에 나선 이후 정치와 사회의 분열이 첨예화했고, 20211월에는 대통령 선거 결과에 불복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사당에 난입하는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유럽에서도 분열의 언어를 구사하는 좌우 극단주의 정치집단이 선거 등을 발판 삼아 세력을 키워가고 있다.

시민들이 편을 나눠 싸우는 정치적, 정서적 양극화는 경제적 격차의 심화, 즉 불평등 확대가 근본 원인이란 게 학계의 통설이다. 지난해 가을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 연단에 선 민주주의 이론가 제인 맨스브리지(미국 하버드대 명예교수)불평등이 커지면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We-feeling)이 무너진다. 서로 멀어지고 소통하지 않으며, 사람들을 다른 세상에서 살게 한다. () 그러면 동질감을 느끼는 유일한 방법은 외부 적을 찾아 악마화하거나 전쟁하는 것이다.” 불평등 연구자 토마 피케티(파리 경제대 교수)도 엘리트들이 상인 우파와 브라만 좌파로 나뉘어 현대판 귀족 놀음을 하면서, 대변자를 잃은 하층민이 포퓰리즘적 선동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렇다 해도 정치가 조정하고 통합하는 본연의 역할을 했다면 상황이 이렇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나 미국, 유럽에서도 정치는 반대로 작동했다. 화나고 억울한 사람의 감정을 상대편에게 투사하도록 해 반사이익을 노리는 정치가 득세했다. 한국의 여야도 이젠 상대를 경쟁자가 아니라 적으로 대한다. 자신들의 비전과 능력을 펼치기보다 정치적 경쟁자의 추악함을 부각해 시민들을 화나게 하고 내 편을 묶어세우는 데 여념이 없다. 막말과 조롱은 유머와 품격을 밀어냈다. ‘정치의 사법화, ‘검찰 독재니 하면서도 정치가 할 일을 고소장으로 대신하는 행태가 이어진다. 여기에 확증편향과 반향실 효과를 증폭하는 디지털 환경, 승자독식의 소선거구-단순다수제선거제도, 정당 간 지지층 규모가 엇비슷해지면서 오는 치열한 경쟁 구도가 심각성을 더한다. 지난 대선과 이번 총선이 그랬듯 선거는 더 나은 선택이 거의 불가능한, 그래서 더 싫은 정치인을 응징하는 게임이 됐다.

참여하는 건강한 팬심을 넘어 비방 문자 폭탄을 쏟아내는 적대적 팬덤은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데 따른 반작용이다. 정치학자 박상훈(전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팬덤은 대중에게 아첨하는 정치, 혐오를 악용하는 정치가 만들어낸 부산물이라고 말한다. 이런 팬덤은 내 편이 아니면 적, 즉 타도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거침없고 당당하게 혐오와 배제에 나선다. 그래서 정치인을 눈치 보게 하고 나쁜 정치를 강화하는 되먹임 작용을 한다.

죽일 듯 싸우는 혐오의 정치는 사회를 갈가리 찢어 서로 공동체의 구성원이 맞는지를 의심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대통령이 일을 못하면 야당이 무척 좋아하고, 야당이 곤란해지면 대통령과 여당이 크게 박수를 친다. 선거 때면 이렇다 할 정책 제시나 토론도 없이 오로지 정쟁만 난무하는 정치가 국민에게 이로울 리 없다. 정치가 이럴 때 가장 피해를 보는 계층은 자신을 보호해줄 학벌도, 재산도, 지위도 변변치 않은 중하층민들이다.

남북 분단에 더해 내부의 분단까지는 참기 어렵다면 행동해야 할 때다. 바둑을 이기는 평범한 원리는 묘수가 아니라 정수를 계속 두는 것이라 한다. 시민이 할 수 있는 행동은 불편해도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열린 기술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빠띠의 황현숙 이사는 대화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황금 열쇠는 아니지만, 대화 없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통섭의 과학자 최재천(이화여대 석좌교수)인터넷 공간에서 자신의 감정을 배설하기 전에, 또 거리로 뛰쳐나가기 전에 사람들끼리 둘러앉아 얘기한다면 이렇게까지 지옥 같은 사회에 살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라고 한다. 우리는 만나는 것만으로도 많은 매듭이 풀리는 걸 경험으로 안다. 독일 유력 주간지 디 차이트가 여는 대화 프로그램 독일이 말한다에 참여해 이슬람 이주민 문제를 토론한 한 참가자는 평소 색안경을 끼고 봤던 상대방이 그저 평범한 이웃이란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알려왔다. “‘페기다(반이슬람 정치조직) 괴물이나 그보다 더 나쁜 것을 상상했죠. 대신 그 자리에는 마음씨 좋고 따뜻하며 유머러스한 여성이 자전거를 끌고 언덕으로 올라왔습니다. () 우리는 비슷한 관점으로 세계를 보고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불편하고 달라도 만나고 대화해야

대화가 갈등의 황금열쇠 아니지만대화 없인 어떤 문제도 해결 못해

이런 만남과 대화는 어떻게가 핵심이다. 종편 등에서 늘 나오는 배틀만이 토론이 아니다. 상대를 논리와 말솜씨로 제압하는 토론이 필요한 곳도 있지만, 이는 대화의 일부일 뿐이다. 이진순 재단법인 와글 대표는 우리는 오도된 소통 구조 속에 있다. 소통을 승자와 패자의 구도로 본다며 이겨야 하는 대화가 아니라 서로 경청하고 배려하는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실제 서로를 존중하고 경청하는 대화를 해본 이들은 서로가 울림판이 되어 생각이 넓어지고 고양되는 경험을 했다고 증언한다. 이런 방식의 대화를 확장해 연금개혁이나 저출산 대책 같은 정치·사회적 의제를 두고 공감과 합의를 만들어가는 토의도 가능할 것이다. 최재천이 제안하는 숙론’, 누가 옳은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함께 찾아가는 과정도 이런 토론일 것이다.

정치가 끊임없이 적대와 증오의 독기를 발산하는데 시민이 변하면 된다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정치인이 먼저 달라져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도 정치와 사회를 개선하는 시민들의 역량과 역할도 분명히 존재한다. 박상훈은 다름과 차이가 의심과 증오, 적대를 낳게 할지, 아니면 좀 더 다양하고 풍요로운 의견이 넘치는 다원 사회를 만들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달라도 안전할 수 있고, 느려도 길을 잃지 않으며, 침착하고 다정해도 뒤처진 느낌이 들게 하지 않는 민주주의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고 말한다.

더 많은 만남과 대화가 불신과 적대, 혐오를 이길 수 있다. 불편해도 생각이 달라도 만나서 공동의 언어를 넓혀가는 대화가 절실하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bhlee@hani.co.kr

 

종부세 흔드는 민주당, 누구를 위한 정당인가

'똘똘한 한 채 보유자' 아닌 '전세사기 피해자' 곁에 서기를

"민주당이 정부 '부자 감세' 욕할 때마다 너무 화나더라고요. 부자 감세 비판할 수 있죠. 근데 그러려면 본인들이 금투세(금융투자소득세) 유예한 것부터 사과하셔야죠."

최근에 만난 어느 소수 야당의 인사가 한 말이다. 그는 금투세 폐지 2년 유예에 합의했던, 그리고 여당의 상속세 폐지 주장에 일부 동조했던 더불어민주당이 과연 부자 감세 비판을 할 자격이 있느냐 물었다. 세상이 속고 있다며 분개했다.

민주당에 '부자 감세'란 자다가도 툭 치면 나오는 자판기 같은 구호다. 이재명 대표가 공식석상에서 양극화 문제를 거론하며 정부의 부자 감세 기조를 비판한 게 골백번은 될 것이다. 그만큼 입버릇처럼 말했단 얘기다.

"3000억 원 이상 영업이익을 내는 경우에 내는 세금을 깎아주자, 왜 그래야 하나. 3채 이상 집 가진 사람 세금 더 내는 것 없애자, 왜 그래야 하나"(20221212일 예산안 대치 정국 당시 이 대표의 최고위원회 발언)

이 대표는 정부가 부자 감세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서민 감세 정책으로 응수해 왔다. 이 대표뿐 아니라 역대 민주당 지도부는 늘 같은 길을 걸어왔다. 서민을 위한 정당, 그것이 민주당이었고, 수십 년간 민주당이라는 당이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였다.

이러한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은 대표적인 정책이 노무현 정부 때 도입된 종합부동산세였다. 종합토지세 외 일정 기준을 초과하는 주택과 토지 소유자에 대해선 누진세율을 적용해 별도로 세금을 부과하는, 부자 증세를 통한 사실상의 서민 감세 방안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누진 요율이나 기본 공제액에 약간의 변동이 있었지만, 민주당은 20년 가까이 종부세 유지 기조를 이어왔다. 위기는 있었다. 문재인 정부 시기였던 2020년 집값 상승으로 인해 종부세 납부 대상자가 대폭 늘어나자 당시 이낙연 대표는 종부세 완화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나 이듬해 열리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공학적 고려를 했다는 비판이 나오자, "종부세에 손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자신의 말을 거둬들였다.

민주당은 4년 만에 또다시 종부세를 흔들려 하고 있다. 박찬대 신임 원내대표는 최근 <한국경제> 인터뷰에서 "비싼 집이라도 1주택이고 실제 거주한다면 과세 대상에서 빠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보수 언론은 환영, 진보 언론은 비판 논평을 냈다. 시장의 반응은 더욱 빨랐다. 각종 부동산 커뮤니티에서 누리꾼들은 관련 소식을 퍼 나르며 종부세 폐지에 대한 기대감을 보였다.

평소 '<조선일보>가 하란 것 반대로 하면 된다'더니 보수 언론의 칭찬이 멋쩍었나. 아니면 일부 당원들의 불만 때문이었나. 박 원내대표는 곧바로 "확대해석 말라"(510)며 정색을 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종부세 자체를 폐지하자라고 하는 내용은 아니었고요. 부동산 세제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서는 국민의 여러 가지 이해관계와 그다음에 요청 그리고 의견들이 있기 때문에 좀 더 적극적인 개질이 필요하지 않겠나, 부동산과 세제에 대해서 국민과 잘 소통되는, 보다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할 때다라고 하는 것을 말씀드리는 과정 속에서 이야기 나온 것으로 생각합니다."(514일 연합뉴스TV 인터뷰)

요약하자면, 해당 발언의 진의는 '종부세 폐지 입장은 아니지만 국민과 잘 소통되는, 보다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라는 것이다. 이를 바꿔 말하면 '지금까지 민주당이 유지해 온 종부세에 대한 입장은 국민과 잘 소통되지 않는 방향이었다'는 것이다. 이미 <한국경제>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발언이 함께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 수용성을 고려하지 않고 이념적 틀에서 부동산 세제를 밀어붙여 실패를 경험했다"는 발언이다. 폐지까지는 아니어도, 종부세를 완화하고 싶다는 내심을 박 원내대표는 이미 충분히 드러낸 것이다.

4년 전에는 선거가 코앞이었으니 '공수표'라며 빠져나갈 구멍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앞으로 가장 가까운 선거는 2027년 대선이다. 무려 3년이라는 긴 시간이 남았다. 게다가 해당 발언이 나온 시점은 총선에서 승리한 지 한 달, 그리고 박 원내대표가 취임한 지 불과 일주일만이었다. 공연히 내뱉은 헛말이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 실책으로 인한 대선 패배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이 시점에 왜 종부세일까. 답은 쉽다. 대선 준비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아깝게 진 지역이 서울 용산과 마포갑이었다. 이곳들의 공통점은 바로 새롭게 종부세 대상에 오른 아파트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번에 아깝게 진 지역에서 다음 대선 때 이기려면 부동산 세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진성준 정책위의장이 말했듯 "그런 생각이 왜 나오는지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당의 목표는 선거 승리라고들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좀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당은 왜 대선에서 이겨야 하는가. 그 당의 후보는 왜 대통령이 되려 하는가. 그리고 왜 정치를 하려 하는가. 적어도 민주당은, 민주당의 대선 후보는 힘없고 어려운 서민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려고 정치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굳이 국민의힘이 아닌 민주당이라는 당에 모여 있는 것 아닌가. 선거 이기자고 정체성을 건드는 것은 주객전도 아닌가. 이럴 거면 뭐 하러 부자 감세 하지 말라 골백번을 외치고 다녔는가. 세상에 이렇게 공허한 일이 어딨나. (관련기사 : "종부세, 세계 부러워할 K-세금"이라던 박찬대돌연 "1주택엔 폐지")

선거용으로만 정책을 바라보는 영혼 없는 정치에 우는 것은 국민들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전세사기 특별법은 여러 법안 가운데 우선순위에서 밀려 결국 21대 국회가 끝나기 직전에야 본회의에 부의됐다. 긴 기다림에 지친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박 원내대표의 '종부세 완화' 취임 일성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였을까. 박 원내대표는 과연 이를 헤아려 봤을까.

이재명 대표는 정부를 향해 "3000억 원 이상 영업이익을 내는 경우에 내는 세금을 깎아주자, 왜 그래야 하나. 3채 이상 집 가진 사람 세금 더 내는 것 없애자, 왜 그래야 하나"라고 물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도 민주당에 똑같이 묻고 싶을 것이다. "'똘똘한 한 채' 가진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자, 왜 그래야 하나"라고.

박 원내대표가 언론 인터뷰 도중 그저 '아이디어' 차원에서 제시했다는, 1주택자에 한한 종부세 완화(또는 폐지) 방안. 이는 결과적으로 부자 감세로 이어진다.

지난해 부동산R114가 서울 아파트 약 116만 가구를 기준으로 20211월부터 20238월까지 가구당 평균 시세를 분석한 결과, 강남3(강남·서초·송파)의 평균 집값은 232711만 원이었다고 한다. 평범한 강남3(강남·서초·송파) 아파트 한 채 가격이 종부세 기본 공제액인 12억 원의 두 배에 달한다.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세금을 없애거나 깎아주면, 이게 부자 감세가 아니고 무엇인가. 부자 증세를 통한 사실상의 서민 감세라는 종부세 취지에 완벽하게 반한다.

총선에서 압승한 민주당이 가장 먼저 했어야 할 일은 입버릇처럼 해오던 부자 감세를 막아서는 것이었다. 강남3구의 '똘똘한 한 채'를 가진 이들이 아닌, 전세사기로 이미 영혼을 잃고 육신마저 영영 포기하려 하는 수많은 소시민·청년들 곁에 서는 것이었다.

이재명 대표가 1주일간의 치료를 끝내고 16일 당무에 복귀한다. 이번 종부세 '해프닝'은 이 대표가 자리를 비운 사이 크게 번졌다. 그러나 '찐명'이라는 박 원내대표가 이 대표 의중과 다르게 말했을 거라고 보는 이는 거의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제 이재명 대표가 이번 논란에 대해 직접 말해야 한다. 대선을 향하는 당신은 과연 누구의 곁에 설 것인지를. 프레시안 서어리 기자 |

농축산물 물가 잡으려 언 발에 오줌 누기

정부, 수입 할당관세 품목 해마다 늘려단기적 수급 조절만 반복

국내 농가 생산 기반 약화 우려자급률 높이는 정책 전환 필요

농축산물 가격이 오르자 수입 농축산물 등에 대해 관세를 인하하는 할당관세 적용 품목이 올해 크게 늘었다. 당국은 가격 안정화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하지만, 지나친 수입 의존으로 농가 자생력이 저하되고 국내 생산 기반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6일 농림축산식품부의 ‘2024년 할당관세 운영 계획을 보면, 올해 510일 기준 할당관세를 적용 중인 농축산물 등 품목은 총 63개다. 양배추·배추·당근·바나나·오렌지·닭고기 등 농축산물이 18, 옥수수·설탕·해바라기씨유 등 가공용 원료 30, 대두·겉보리 등 사료용 원료 12, 요소 등 원자재가 3개다.

연도별 할당관세 적용 품목(계획 포함)202122(1598t), 202238(1906t), 지난해 46(1918t), 올해 63(1800t)로 매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할당관세는 국내 수급과 가격 안정을 위해 특정 수입품에 대해 기본 관세율의 최대 40%포인트 범위에서 관세율을 한시적으로 가감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6월 말까지 5000t을 할당관세로 들여오기로 한 오렌지의 경우 기본세율 50%에서 할당관세를 적용해 10%로 낮추는 식이다. 또 지난 10일부터 6월 말까지 최대 6000t을 수입하기로 한 양배추(기본세율 27%)는 관세를 면제했다.

정부는 올해 공급이 부족한 과일과 채소 등 농산물 가격을 잡기 위해 할당관세 적용 대상을 늘리고 있다. 지난 1월 바나나·망고 등 신선과일과 냉동과일, 과일 가공품 등 21종에 적용한 데 이어 4월에는 키위·체리 등을 추가해 총 29종으로 늘렸다. 이달 10일에는 배추·포도·코코아두(수입 전량) 등 농수산물 7종을 추가했다. 적용 기간은 대부분 6월 말까지이나, 해당 품목 가격이 계속 높을 경우 기간이 연장될 수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국내 생산과 공급이 어려워 가격이 급등한 농축산물과 가공식품 원재료 중 농가 피해를 최소화하는 수준에서 할당관세 품목을 선정하고 할당세율을 매기고 있다가격 안정화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말했다.

하지만 할당관세 정책이 반복될수록 농가 생산 기반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농축산연합회는 지난 14일 성명에서 정부가 국가보조금과 할당관세로 단기 물가 안정에만 치중하는 것은 농민만 말려 죽일 뿐 근본 해법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농산물 수입에 의존할수록 국내 생산 기반이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국내 농산물 자급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회예산정책처도 농축수산물 물가 동향 분석보고서에서 수입을 늘려 가격 안정화를 유도하는 정책이 반복 시행되고 있다며, 이는 농축수산물 생산자의 자생력 약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손동희 분석관은 할당관세 정책은 가격 급등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단기적·일시적 정책의 반복 시행은 생산자의 자율적 수급조절 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경향 안광호 기자

블랙페이퍼에서 검은 반도체김은 어떻게 금()이 되었나

정지윤 선임기자

자주 사 먹던 김밥 김 가격이 두 배 가까이 올랐어요. 원초값이 올랐다더니 예전 100장 가격이 지금 50장 가격이 됐더라고요. 김밥 자주 먹는 집인데 걱정이에요.”

40대 주부 최모씨는 얼마 전 마트에 갔다가 껑충 오른 김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마저도 몇개 남아 있지 않아 얼른 집어 왔다며 요즘 김 때문에 난리라더니 진짜였다고 혀를 내둘렀다. 김밥을 파는 분식집이나 반찬으로 김을 내놓는 식당들도 요즘 시름이 깊다. 계속 오르는 김 가격에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김은 오늘이 제일 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서울 서대문구 대학가에서 10년 가까이 장사를 해온 한 분식집 사장은 다른 재료도 아니고 김 때문에 속을 썩일 줄은 몰랐다“(김값이) 여기서 더 오르면 김밥 판매를 관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가격 상승세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수산업관측센터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김밥에 쓰이는 마른김의 월평균 도매가격은 한 속(100, 260g)189원으로 처음으로 1만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같은 기간(5603)과 비교하면 1년 만에 80% 넘게 오른 수치다. 밥반찬으로 즐겨 먹는 조미김 가격도 줄줄이 인상됐다. 대천김, 광천김, 성경식품 등 중견 조미김 제조업체 3곳이 가격을 인상한 데 이어 업계 2위 대기업인 CJ제일제당도 이달 초 김 제품 가격을 평균 11.1% 올렸다.

주변국 김 흉작에 한국 김 몸값 쑥

서울의 한 전통시장에 진열된 김. 연합뉴스

물가가 급등할 때에도 가성비 반찬으로 식탁을 지키던 김이 이처럼 비싼 몸이 된 이유에는 기후변화로 인한 김 작황 부진이 있다. 근데 국내 작황 때문이 아니다. 2024년산 국내 물김(원초 상태의 김으로 마른김의 원료) 생산량은 약 15000만 속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6% 증가했다. 문제는 일본과 중국의 원초 흉작이다.

특히 한국에 이어 두 번째로 김 생산량이 많은 일본이 최근 이상고온으로 바다 온도가 상승하고 적조 현상이 발생하며 원초 생산이 급격히 줄었다. ··일은 전 세계 김 생산을 담당하는 주요 3국으로 한국이 전체 생산량의 65~70%, 일본이 25~30% 정도를 차지하는데, 일본 생산량이 절반 정도 쪼그라들며 한국산 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일찌감치 한국산 김 대량 구매에 나선 일본 식품업체들을 비롯해 수출로 물량이 빠져나가며 국내 소비자들에게 공급할 김이 부족한 상황이 됐다.

‘K푸드열풍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한국 김의 인기가 치솟은 것도 배경이 됐다. 최근 몇년 사이 미국을 중심으로 냉동김밥과 김스낵 등 김을 재료로 하는 음식이 큰 인기를 끌었다. 미국 대형 식료품점 체인인 트레이더조에서는 지난해 출시된 냉동김밥이 품절 대란을 일으키며 매장마다 냉동김밥을 사기 위한 오픈런이 벌어졌을 정도다. 김은 지난해 해외 수출액 1조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을 기록, ‘검은 반도체라는 별명도 얻었다.

대형마트에 놓여 있는 시식용 김. 시장 점유율 상위권 김 전문업체인 광천김과 대천김, 성경식품은 주요 제품의 대형마트 판매 가격을 1030%가량 인상했다. 연합뉴스

업계 김 전문가로 통하는 김가영 동원F&B 마케팅부문 차장은 한국 김이 꾸준히 품질을 높이며 경쟁력을 키워온 결과라고 말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 김이 고급 김의 대명사처럼 여겨졌지만 이제 품질과 기술, 생산량 등 모든 면에서 한국 김을 따라올 제품이 없다는 것이다.

겨울 찬 바다에서 자라는 김은 고온과 병충해에 약해요. 미역보다 얇아 이물질도 잘 끼고요. 한국은 고품질의 이물질 없는 김을 만들기 위해 지난 10년간 기술과 장치산업에 집중 투자해왔어요. 온난화와 수온 상승에 대비해 고온과 병충해에 강한 김 종자를 개발했고 이물질 선별 기술도 탁월해요.”

다만 부족해진 국내 공급량을 늘리기에는 당장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다. 김 차장은 한국 김 선호와 글로벌 소비가 확대된 가운데 주변국들의 작황 부진까지 겹쳐 작년부터 일본을 비롯한 각국 업체들의 한국 김 확보 경쟁이 치열해졌다하반기에도 가격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민 반찬서 슈퍼푸드로 국위선양

우리나라 전남 바다와 서해안에서 자라는 김은 본래 귀한 음식이었다. 13세기 말 <삼국유사>에 처음 등장하는 김은 신라시대 왕의 폐백 품목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데에는 재미난 일화가 전해진다. 조선시대 인조 임금이 수라상에 오른 검은 바다풀을 맛있게 먹고 무슨 음식인지 물었는데, 한 신하가 음식 이름은 모르고 전남 광양에 사는 김여익이란 자가 만든 음식이라 답하자 그의 성을 따 ()’이라 부르게 했다는 이야기다. 우스개 같지만 광양에는 김여익을 기리는 유지가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정설에 가깝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 가정에서 시장에서 사온 생김에 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려 한 장 한 장 구운 김을 식탁에 올렸다. 부엌 한쪽, 기름 마를 날이 없었던 김 붓에서는 1365일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솔솔 풍겼다. 집마다 소금과 기름이 다르고 굽는 시간에도 차이가 있다 보니 김 맛도 각기 달랐다. 조미김이 대중화된 후로는 대부분 김을 사 먹는다. 포장기술의 발달로 유통 과정 중 습기로부터 김을 보호하고 기름에 젖는 것을 방지해 집에서 김을 굽지 않고도 갓 구운 듯 바삭한 김을 맛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고소하면서도 영양가 높은 한국 김은 슈퍼푸드로 주목받으며 해외 입맛까지 사로잡았다. 냉동김밥의 인기와 함께 건강에 좋은 비건’(채식) 음식, ‘글루텐 프리’(Gluten-free·글루텐이 없는) 식재료로도 입소문이 났다.

해조류를 잘 먹지 않는 서양에서는 한때 김을 블랙 페이퍼’(Black Paper·검은 종이)라고 부르며 혐오식품 취급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 스낵으로 즐긴다. 실제로 우리나라 김은 해외에서 일반 김, 김부각, 김튀김 등 다양한 간식으로 가공돼 판매 중이다. 한입 크기로 잘라 바삭하게 튀긴 김은 가볍게 집어 먹기 편한 데다 고칼로리인 감자칩 등에 비해 건강에 좋아 이만한 웰빙 간식이 없다. 우리나라 김이 수출되는 나라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캐나다, 태국, 호주, 대만 등 120개국에 달한다.

 

김의 미래는?

충남 서천 앞바다에서 주민들이 김을 채취하고 있다. 충남도는 국내외 김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안정적인 생산과 공급을 위해 기존 면적 대비 15%가량(580)의 양식장을 새로 만들기로 했다. 충남도 제공.

2019년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에는 한국의 해조류 섭취에 관한 흥미로운 기사가 소개된 적이 있다. ‘지구를 위해 해조류를 요리하는 한국이라는 기사다. 한국인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 김을 먹는다고? 어찌 됐든 맛있어서 즐겨 먹는 해조류가 탄소 배출을 줄이는 건 사실이다. 바다에서 자라는 해조류는 토지 오염을 줄이고 온실가스 감량에 큰 효과가 있다.

하지만 지구를 지키는 해조류는 정작 기후변화로 위기에 처해 있다. 지구 온난화로 바다 수온이 급상승하며 바다 식생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이다. 수온 상승은 특히 3~10도 정도의 겨울철 찬 바다에서 자라는 김 양식에 치명적이다.

김 양식은 바닷물이 차가워질 때부터 시작해 수온이 오르기 전 수확한다. 통상적인 김 생산 시기는 해상 양식을 기준으로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인데,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 김 생산 가능 시기가 짧아지고 양식지가 점차 북상해 재배 면적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전 세계 해양 온난화가 심화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역시 해수면 온도가 급격히 오르며 지난해 한반도 연안의 연평균 해수면 온도는 국내에서 관측을 시작한 199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19.8)를 기록했다. 이대로라면 80년 후 남해안에서 김 생산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바이오리엑터(생물 반응조)로 불리는 큰 수조 안에서 육상 양식 김이 재배되고 있는 모습. 풀무원 제공

이미 도래한 위기에 김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기술이 속속 개발 중이다. 충남수산자원연구소는 겨울철 수온 상승으로 김 채취 가능 시기가 짧아짐에 따라 고수온에 적응하는 광온성 김을 개발하고 있다. 김을 바다가 아닌 육상에서 재배하는 기술도 나왔다. 풀무원은 2021년부터 육상에서 김을 양식하기 위한 기술 개발에 착수해 최근 국내 최초로 육상 양식 김을 선보였다. 바이오리액터(생물 반응조)로 불리는 큰 수조에 바다와 동일한 김 생육환경을 조성하고 김을 양식하는 방식이다. 육상 양식은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품질이 일정한 물김을 사계절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풀무원 관계자는 육상 양식은 연중 생산이 가능해 국내 김 산업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3년 이내에 보급형 김 육상 양식 모델을 개발해 어민들에게 기술을 이전하고, 실제 어민들이 생산한 김을 가공해 판매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 집 김만 먹어요요즘 소문 난 김 먹어보니...

옥화식품 옥돌구이김’-밥과 함께 입에 넣자마자 진한 풍미가 올라온다. 깊고 구수한 맛이 일품. 들기름 향도 진해서 씹을수록 고소하게 맛이 살아난다. 커피로 치면 다크로스트의 느낌. 밥반찬으로 제격이다.

용인시장 밥엔김’-그냥 먹었을 땐 평범하다 싶었는데 밥과 같이 먹는 순간 뜨거운 기운과 함께 은은한 풍미가 살아난다. 자극적이지 않은 고소함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묘한 매력에 다른 반찬에 손이 갈 겨를이 없다.

소문난오부자 재래김-적당히 짭짤하면서도 기름 향이 강하지 않고 깔끔하다. 바삭한 식감이 스낵 같은 느낌으로 부담 없이 계속 먹게 된다. 밥반찬으로 먹어도 좋고 맥주 안주로도 좋다.

하동녹차 명란김-가수 아이유의 최애간식으로 소개돼 아이유김으로 유명해졌다. 조미김에 녹차분말과 명란을 첨부한 것이 의외의 조화를 이룬다. 살짝 매콤한 맛이 매력.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명란의 식감이 중독성 있다.

Q. 좋은김 어떻게 고를까?-좋은 김은 광택이 나고 색과 향이 진하다. 마른김의 경우 물에 넣었을 때 맑게 풀어지고 불에 구우면 선명하게 녹색으로 변하는 게 좋은 김이다. 오래되었거나 습기를 많이 먹은 김일수록 붉은빛을 띠는데, 나뭇잎이 노화되면 엽록소가 분해돼 녹색이 점점 사라지고 붉은색으로 변하는 것과 같다. 오래된 김은 색뿐만 아니라 맛에 관여하는 성분도 변해 품질이 나빠진다.

Q. 올바른 보관법은?-밀봉된 김의 유통기한은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통 6개월~1년으로 긴 편이다. 개봉 후에는 일주일 이내에 먹는 것이 좋은데 특히 기름과 소금으로 조리한 조미김은 공기와 접촉하면 산패가 진행되기 때문에 되도록 빨리 먹기를 권한다. 개봉한 후에는 냉장고에 두는 것보다 밀폐용기에 키친타월이나 방습제를 넣어 건조하고 서늘한 곳에 보관하는 게 좋고, 잘 밀봉해 냉동 보관하면 비교적 오랫동안 맛과 향을 보존할 수 있다. 냉동된 김은 밀봉된 상태로 상온에 꺼내 두었다가 사용한다.

Q. 눅눅해진 김 어쩌죠?-눅눅해진 김은 접시에 담아 전자레인지에 10초 정도 돌리거나 프라이팬에 살짝 구우면 바삭해진다. 짭조름하게 간을 맞춘 조미김도 맛있지만 질 좋은 재래김을 구워 먹거나 생김을 간장에 찍어 먹는 것도 별미다. 얇은 김 한 장에는 다양한 비타민과 마그네슘, 요오드, 아연, 철분 등이 함유되어 있고 단백질도 풍부하다. 정월 보름에 밥을 김에 싸서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는 속설이 있다.

경향 정지윤 선임기자

 

 

'방향은 옳았다' 윤석열 뺨치는 진보언론의 아집

총선 이후에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태도는 우리가 추진한 방향은 옳았지만 소통과 홍보가 부족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앞서, 족벌언론과 종편들이 총선을 평가하면서 내놓은 주장들도 이것과 비슷했다. 이런 언론과 그들이 대변하는 기득권 세력은 기본적으로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한미일 동맹 지상주의, 부자 감세, 친재벌 반노동 정책 등에 불만이 거의 없고, 다만 지지율이 계속 추락해서 정책 추진 동력이 사라지는 게 불만이다.

그런데 정치적 입장은 전혀 다르지만 비슷한 태도를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한겨레와 경향신문 같은 진보언론의 주요 기자나 필자, 기고자들에게서 말이다. 총선 때까지 이들이 보여 준 태도를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 정치는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가 문제이고, 민주당은 이재명 극성 지지자들의 팬덤정치라는 수렁에 빠져 있고, 박용진 같은 의원과 제3지대나 정의당 등에서 그나마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진보언론은 거대양당의 적대적 공존이라는 프레임으로 한국정치를 분석해 왔다/ 한겨레 칼럼 갈무리

이에 따라서 진보언론들은 양비론적으로 국민의힘과 민주당을 모두 비판하는 기사나 칼럼들을 자주 실었고, 민주당의 이재명 사당화와 팬덤정치를 강력 비판했고, 조국혁신당이나 진보당 등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총선의 핵심이 윤석열 정권 심판에 있다는 것도 잘 포착하지 못했고, 그래서 많은 정치평론가와 함께 총선의 성격을 이해하거나 결과를 예측하는 데서 성공적이지 못했다.

총선 결과는 윤석열 정권의 패배이지만, 동시에 진보언론을 포함한 레거시 미디어들과 그 지면에 단골로 나오던 지식인, 전문가들의 실패이기도 했다. 진보언론의 주요 기자, 필자, 기고자들은 자신들의 관점과 주장들이 어떤 측면에서 부족했고 무엇 때문에 어긋난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방향은 여전히 옳았다는 것으로밖에 이해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총선 직후에 한겨레가 크게 실은 것은, 검언 카르텔에 타협해서 당원과 지지자들의 지지를 못 얻고 총선 출마도 못 한 박용진 의원과의 인터뷰였다. 거기서 느껴지는 것은 우리는 틀리지 않았고, 이런 정치인이 출마하지 못하게 방해한 민주당 지도부와 당원, 지지자들이 문제가 있다는 메시지였다. 그리고 한겨레와 경향 모두 계속해서 사설 등을 통해 민주당은 이재명 일극체제로 가선 안 되고 총선 민심에 따라 양당의 협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회의장의 '중립'과 양당의 '협치'를 강조하며 민주당을 비판하는 경향신문 사설 갈무리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고 야당에 다수 의석을 준 많은 사람이 기대하는 것은 협치보다는 윤석열 정부의 거부권을 뛰어넘을 강력한 개혁의 추진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이런 민심이 썩 내키지 않았는지, 한겨레 연재 기사에서 이철희 정치평론가는 이번 선거 결과를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에 찌든 강성 지지층에 포획“‘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양극화 정치팬덤정치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민주당 공천 과정 등에서 나타난 당원과 지지자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팬덤정치는 단순히 지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넘어선다. 총공(문자총공격)이라고 불리는 문자 공세, 시위 등 퍼포먼스, 댓글 달기 등을 통해 일상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가히 팬덤의 권력화라 부를 만하다.”

한겨레 강희철 논설위원과 인터뷰에서 박상훈 박사도 팬덤 민주주의는 곧 정치 없는 민주주의’”라고 폄하하면서 선거 과정을 지켜보는 내내 진짜 우리 정치가 많이 병들었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라면서 선동가나 공익 파괴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더 잘 대접받는 선거를 치른 게 아닌가 생각한다는 총선 결과에 대한 철저히 부정적 평가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권력이 소수의 엘리트보다 다수의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돌아가는 게 더 민주주의에 가깝다. 진보언론 스스로도 그동안 의원단과 당 지도부보다는 당원들의 참여를 중시하는 민주노동당과 같은 구조를 더 바람직한 모델로 칭찬해 왔다. 더구나 지금 한국의 민주당은 권리당원만 200만 명이 넘는 대중 정당이기에, 이것을 소수의 비이성적 강성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팬덤정치라고 매도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또한 진보언론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은 조국혁신당에 대한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다. 2019년 조국몰이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진보언론들은 올해 초 조국 2심 재판 결과에 대해 공정의 잣대를 세웠다고 높이 평가하고, 조국혁신당이 만들어질 때는 유죄 판결받아서 정치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대표인 정당으로 취급했다. 그러니 총선 기간에 조국혁신당에 대한 진보언론들의 보도는 소극적 일 수밖에 없었다.

조국혁신당의 출현은 진보언론들에게 처음부터 못마땅한 일이었다/ 관련 기사 화면 갈무리

그러나 이번 총선 결과에서 조국혁신당이 보여 준 정치적 돌풍과 성과는 놀라울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총선 이후 진보언론의 보도 태도에서 변화가 느껴지기는 하다. 예컨대 한겨레는 얼마 전 주말 특집판에서 조국혁신당을 크게 다루었다. 그런데 이 특집 기사의 주요 인터뷰 대상자와 인용자들은 대부분 조국 대표나 조국혁신당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던 사람들로 구성돼 있었다.

그중에서 최병천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이재명의 대표직 사퇴와 병립형 선거제도로 후퇴(를 위한 국민의힘과의 야합)를 하지 않으면 민주당은 총선에서 필패할 것이라고 예측했던 사람이면서, 툭하면 조국의 강을 말하던 대표적인 논객이다. 또 윤태곤 정치평론가는 얼마 전부터 조선일보 칼럼니스트로 변신해 대체로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코치하고 조언하는 내용의 칼럼들을 계속 쓰고 있다.

물론 조국혁신당에 대한 기사에서는 비판적인 평가와 목소리도 당연히 포함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굳이 조국혁신당을 오른쪽에서 비판하는 사람들을 주로 인터뷰해서, 조국혁신당이 추진하는 한동훈 특검법앙갚음이나 사적 보복이라고 깎아내리며, 그 앞날을 비관하는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인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조국혁신당이 보여 준 가능성과 성과를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얼마든지 조국혁신당의 더 왼쪽에서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 날카로운 비판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결국, '우리가 2019년에 조국몰이에 동참한 것은 옳았고, 조국 대표는 정치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고, 이번 총선 결과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생각과 미련을 떨치지 못한 결과라고 의심하게 된다.

진보당에 대한 진보언론의 외면과 소극적 보도, 주요 기자나 필자와 기고자들의 부정적인 태도는 더욱 심하다. 예컨대 경향신문 칼럼에서 김윤철 교수는 정의당의 소멸거대 양당 간 전쟁 속에 나타난 팬덤과 극우적 광기속에 약자층에게 쏠릴 추락의 충격을 완화할 정치·사회적 마찰력의 소멸을 뜻한다고 평가하면서, 이번 총선에서 원내에 진출한 진보당에 대해서는 아예 아무런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한겨레 박권일 칼럼은 '이제 국회에서 진보정당은 사라져서 0석이 됐다'며 진보당의 존재를 삭제해 버렸다.

진보당을 존재하지 않거나, 진보정당도 아닌 것처럼 취급하는 태도는 경향신문에 실린 김건우 참여연대 간사의 글에서 더욱더 노골적이다. “진보정당이 사라진 시대다. 당명으로만 본다면 새진보연합이나 진보당도 원내 진보정당이다. 어쩌면 진보의 의미가 그만큼 희미하거나 무의미한 시대라는 생각도 든다. 민주당은 입법활동을 대통령과의 대결 수단으로 활용할 것이다. 숨이 턱 막힌다.”

한겨레에 실린 박권일 작가의 글은 한발 더 나아간다. 여기서 박권일 작가는 진보당을 진보를 참칭하면서, 보수 기득권이 주도한 위성정당이라는 시스템 해킹에 적극 가담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부정기생적 진보정당이라고 맹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비례 위성정당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진보당을 이처럼 깎아내리며 비난하는 것은 과도하며 납득하기 어렵다.

이번 총선에서 진보당은 또다시 지난 10년처럼 의회 진출을 포기하느냐, 비례 위성정당이라도 들어가서 생존을 모색하느냐는 불가피한 선택에 직면했다. 이 과정에서 아쉽고 비판받을 지점들도 나타났지만 그것만을 유일한 절대 기준으로 삼아서 진보당의 오랜 역사나 기여를 전부 부정해 버릴 수는 없다. 정의당의 몇몇 단점과 아쉬운 부분만을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이 부당하듯이 말이다.

진보당은 한국 진보정당 25년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고, 지금도 가장 당원이 많고 민주노총에 큰 기반을 갖추고 있는 진보정당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전국 곳곳에서 정의당보다 4배나 더 많은 지역구 후보를 내보냈고, 일부 지역에서는 민주당보다 더 높은 지지율을 얻었고 현재 국회의원 3, 기초자치단체장 1, 광역의원 4, 기초의원 18명이 있는 정당이다.

이처럼 무시할 수 없는 역사와 뿌리가 있기에 진보당은 통합진보당 강제해산을 비롯해 그동안 기득권 세력의 집요하고 악랄한 종북몰이를 겪어왔다. 그런 탄압을 뚫고서 가까스로 의회로 복귀한 진보당을 투명인간 취급하고 진보정당도 아니라며 깎아내리는 진보언론의 기자, 필자, 지식인들은 항상 정파성을 비판하며 공정을 강조하지만 스스로가 가장 정파적이라고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윤석열, 김건희, 한동훈을 한사코 감싸고 있는 진중권 교수/ 관련 기사 화면 갈무리

진보언론의 대다수 기자, 필자, 지식인들의 보여주는 이러한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에 대한 강조, 민주당을 이재명 사당화와 팬덤정치라고 낙인찍는 부정적 태도, 조국혁신당에 대한 거부감, 정의당 지지와 진보당 무시라는 관점과 태도를 가장 앞서서 전형적으로 보여줬던 것은 진중권 교수라고 할 수 있다.

진보언론들은 한 때 진중권 교수의 칼럼을 싣거나 그의 의견을 수시로 인용하고 기사화하면서 진중권 인용 저널리즘이라는 비판적 지적을 받는 데서 자유롭지 않았었다. 진중권 교수는 지난 대선 때 양비론을 넘어서 사실상 윤석열 후보를 지지했었고, 이번 총선 기간에도 김건희 여사는 명품백을 거절하지 못해서 억지로 받은 것이라며 방어하는 태도를 보였다.

총선 이후에도 진중권 교수는 이재명의 영수회담 15분 모두 발언은 약속 위반이자 반칙이라고 비판하거나, ‘한동훈의 딸은 조민과 달리 실제로 공부 잘하고 뛰어나다는 등의 주장을 하며 윤석열 정권과 권력자들을 옹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대중의 집단적 인식과 선택을 인정하거나 거기서 배우려 하지 않는 진중권 교수의 태도이다.

모든 것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평가하는 엘리트적 위치에서 자신의 잘못된 판단과 오류를 결코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 성찰없는 지식인들의 전형이다. 그러면 기존의 잘못된 판단 위에 계속해서 새로운 잘못된 판단을 덧붙여가기 쉽다. 이것은 총선 이후에도 우리의 정치적 판단과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는 자세와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든 언론과 필자들이 함께 곱씹어볼 문제다./시민언론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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