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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24.4.1~30 ‘이대로’ 3년은 너무 막막하다

by 이성근 2024. 5. 1.

1.윤석열-한동훈, 석고대죄할 수 있나 2.이익 대신 정의 추구, 약자 배려한 학자 군주노무현 3. 성관계의 기본은 동의4. 기억은 동사다 5. 조세 국가의 위기와 4월 총선 6. 맺힌 가슴 풀엉 살게 마씀 7. 제주4·3과 이승만 8. 넓은 집과 넓은 도시 9. 자녀 세대에 무엇을 상속할까 10. 관성에 틈을 내는, 풀꽃의 상상력

11. 특정 정당이 72.5% 제기한 방송 심의와 거짓 공정성 12. 선거 이후 세상을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 골드 핑거’ 13. 윤 대통령은 아직도 모른다 14. 2030세대가 매긴 학점 D 15. 정치적 전환기 공무원의 역할 16. 22대 총선, ‘윤석열-조국 대전에서 빠진 것 17. 의사들 돈 좇게 만든 나라, 국민 돈 터는 민영보험 18. 우리는 기억하겠다 19. 사회적 정의가 치유 20. 악화일로의 한러 관계를 우려한다

21. 독립운동에서 민주화운동까지 22. 자율규제, 봄꽃과 지옥 사이 23. 누구를 위한 부담금 정비인가 24. 점진적 방법으로 이뤄진 변혁 25. 검사와 의사 26. 총선 계기, 대외정책 과감히 전환하자 27. 모두 텃밭으로 가자 28. 재벌은 3·4세들이 나눠 먹는 피자 판인가? 29.윤석열·한동훈식 검사 정치의 완패 30. 승부에 집착한 대통령, 길 잃은 의료개혁

31.‘반윤정치이중의 환멸 속에서 32. 2년 천하, 검사 정치는 끝났다 33.국가의 방위란 무엇인가 34.‘검찰 정권이 다시 등장하지 않도록 35. ‘이대로’ 3년은 너무 막막하다 36.북한의 헤어질 결심적대적 두 국가 체제는 무엇을 바꾸나 37. 세월호를 이만 잊으려는 그대에게 38. 한국의 보수, 길을 잃다 38.서중석 선생이 들려주는 4·19 39. 한국도 루비콘을 건넜는가 40. ‘300 0’의 의미

41. 기억은 공간을 통해 이어진다 42. 김건희 여사의 화려한 부활 43. 국민을 대변하는 비판은 왜 총선 후에 나오는가 44.생존하는 도시의 덕목 45. 동 이름을 외국어로 짓겠다는 부산 강서구청 46.진보의 얼굴 47.총선이 지운 이름 민주시민’ 48. 지금이 사과 타령이나 할 때인가 49. 운조루 종부 할매 50.죽음을 올바르게 기억한다는 것

51.5평 토굴의 스님 편하다, 불편 오래되니 자가 떨어져 버렸다” 52.심판론에도 변함없다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53. 불로소득주의를 넘어, 공공이 미래 54.가속노화시대의 기묘한 세대공감’ 55. 처참한 나라살림, 2023년으로 끝나지 않는다 56.지성의 발달과 인류의 행복지수 57.이 폐허를 응시하자 58.‘소멸걱정 대신 여기서 행복하게 살기 59.일학개미의 비명 60.홀대·차별 받는 법 밖의 노동자들이 많다

61.‘파괴왕윤석열 2년의 징비록 62.

윤석열-한동훈, 석고대죄할 수 있나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인지 무척 궁금할 것이다. 속으로 이럴 리가 없는데라고 수도 없이 되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같은 일부 법조 엘리트 출신의 인생관은 오만하다. 자신은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뭐든지 다 잘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바둑을 배웠으면 이세돌이요, 피겨를 배웠으면 김연아요, 사업을 했으면 이건희 정도 됐을 것이라는 망상에 빠질 위험이 있다. 하물며 정치쯤이야.

법조계 출신 국회의원들이 정치가 결코 만만한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대부분은 초선 의원 때 철이 든다. 이성보다 감성, 결과보다 과정, 실체보다 태도, 법치보다 정치가 우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은 국회의원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지금도 정치를 모르는 것 같다. 총선 민심이 정부 여당에 왜 이렇게 사나운지 이유를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유세에 나선 한동훈 위원장의 연설에서는 짜증과 당혹감이 배어 나온다. 입만 열면 범죄자, 입만 열면 종북이다. 이재명, 조국 같은 범죄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이나 자신과 같은 정의의 사도보다 도대체 왜 더 많은 지지를 받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이재명 대표가 형수에게 했던 말, 그거 쓰레기 같은 말 아니에요? 제가 그분이 했던 말을 한번 읊어볼까요? 여러분, 맞습니다. 제가 읊어볼 수조차 없는 말입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들어주세요. 불편하지만 나라를 위해 들어봐 주십시오.”

한동훈 위원장은 자신이 야당을 심하게 욕할수록 표가 점점 더 떨어지는 이유를 끝까지 알지 못한 채 총선을 맞을 것이다. 그게 그의 한계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1일 서울시 강동구 명성교회 부활절 연합예배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저와 정부는 더 낮은 자세로 국민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국민의 아주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겠습니다. 저와 우리 정부는 어렵고 힘든 분들이 일어서실 수 있도록 따뜻하게 보살피고 이분들께 힘을 드리겠습니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말하는 것 같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일어설 수 있도록 따뜻하게 보살피려면 법을 바꿔야 한다. 법을 바꾸려면 야당과 대화하고 타협해야 한다. 야당 대표를 만나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날까? 안 만날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만나지 않았던 이재명 대표를 총선이 끝났다고 새삼스럽게 만날 리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동안 이재명 대표를 제1야당 대표가 아니라 피의자나 피고인으로 취급했다.

민주당 8월 전당대회에서 다른 사람이 민주당 대표로 선출되면 윤석열 대통령이 만날까? 만나지 않을 것이다. 다른 핑계를 찾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뿐만 아니라 야당 자체가 싫은 것이다. 혼자 다 하고 싶은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이 지금과 같은 태도를 고집하는 한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이기기 어려울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까? 국민의힘에서 그래도 정치를 오래 한 사람들이 올바른 진단과 처방을 내놓고 있다.

일주일에 두번 세번 재판받으러 가는 사람이 민주당 대표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면 감옥 가야 할 사람이 조국혁신당 대표다. 야당 대표들이 그런데도 국민은 그거 다 알고 계시면서 그래도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이 더 밉다고 생각한다. 그게 본질이다.”

근본 원인은 두 가지다. 첫째, 지난 2년 동안 경제와 민생에서 실패했다. 둘째, 윤석열 정부는 공정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정권을 잡았다. 그런데 공정하지 못한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유승민 전 의원)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에게 무릎을 꿇어야 한다. 오만과 독선으로 불통의 모습을 보인 것, 정치를 파당적으로 한 것, 인사를 배타적으로 한 것, 국정과제에 혼란을 초래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것을 사과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의 전면적 쇄신을 국민 앞에 선언해야 한다. 인사부터 쇄신해야 한다. 작금의 민심 이반에 책임이 있는 대통령실과 내각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조해진 의원)

두 사람의 진단과 처방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이 석고대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할까? 하면 기회가 열린다. 그래도 안 할 것 같다. 사람이 본성을 바꾸기는 어렵다.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 한겨레 2024.04.01

 

이익 대신 정의 추구, 약자 배려한 학자 군주노무현

20057월 나는 청와대를 떠나 대구로 돌아왔다. 청와대에서 일할 때 내 좌우명은 제갈량의 후출사표에 나오는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瘁 死而後已, 나랏일에 전심전력을 다 하고 죽은 뒤에야 멈춘다)였다.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나고 끝없이 회의를 했다. 하루에 8차례 회의를 연 날도 있다. 다른 참모들은 연무관 헬스장이나 수영장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나랏일을 하는데 나 자신을 돌본다는 생각은 내 머리 속에 없었다. 자연히 내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2년반 내내 크고 작은 건강 문제에 시달렸으니 실은 바보였다. 나는 청와대 일이 너무 힘들 때나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 내일 청와대를 그만두고 대구에 내려가는 상상을 하며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다(이 노래는 일본 유학 시절 윤동주 시인의 애창곡이었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져 스르르 잠이 잘 왔다. 이제 드디어 고향에 돌아왔다. 대통령 정책특보 직함은 유지했으나 아무 할 일이 없었다.

그러던 중 2006년 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소문이 들려 이창동, 문성근, 안희정, 정태인과 함께 청와대에 들어가 노 대통령을 만류했으나 실패했다. 대통령의 의지는 이미 확고했고, 우리들의 반대 논리는 아직 엉성한 수준이었다. 그 뒤 우리도 자유무역협정을 열심히 공부했다. 정태인 비서관은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반대 강연을 수백회 했다. 나는 신문에 반대 글을 쓰는 정도였다. 그 무렵 박봉흠, 변양균 정책실장이 좀 보자고 해서 만났더니 청와대에서 일한 사람으로서 정부 정책 비판을 자제해달라는 부탁을 아주 점잖게 했다. 그러나 나는 청와대 떠날 때 밖에 나가서도 비판할 건 비판하겠다고 공언한 처지였다.

우리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한 이유는 이렇다. 관세가 폐지되더라도 전자, 조선, 철강 등 한국의 주력 수출품은 이미 무관세라 한국이 얻을 이익은 없다. 관세 인하로 이익 보는 분야는 섬유, 자동차인데, 섬유는 원산지 규정이라는 복마전이 있어 이익을 보기 어려운 구조다. 유일한 잠재이익이 자동차인데 그것마저 막판 협상에서 한국이 크게 양보했다. 그 대신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라는 괴물이 등장한다. 한국에 투자한 미국 기업이 한국의 어떤 법률이나 제도 때문에 손해 봤다고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에 제소할 수 있고, 여기서 패소하면 거액을 배상해줘야 하는 제도다. 유럽은 이 제도를 요구하지 않는데, 미국은 요구한다. 실제 이 제도 때문에 한국이 거액을 배상하는 사건이 지금까지 두 건(론스타, 엘리엇) 발생했다. 금액도 금액이지만 이 조항 때문에 한국 관료들이 정책 입안시 미리 위축되어 정책 주권이 위협받는다는 것이 더 근본적 문제다.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직전 오스트레일리아(호주)와 맺은 자유무역협정에서 호주의 요청을 받아들여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빼주었다. 그런데도 한국의 교섭 당국은 이걸 빼지 못했으니 오호! 통재라’. 우리의 반대 논리의 핵심은 바로 투자자-국가 소송제였다. 그 무렵 노 대통령이 그래도 이정우, 정태인이 애국자야라고 말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노 대통령은 옹졸하지 않았다.

그 뒤 청와대와 왕래가 없다가 참여정부 막바지에 대통령, 내각, 수석들이 참석하는 참여정부 5년 평가 학술행사(영빈관)에 가서 기조발제를 했다. 또 그 무렵 나는 참여정부의 빛나는 노을이라는 글을 언론에 투고했다. 오래전 참여정부가 사방에서 뭇매를 맞을 때는 참여정부는 구름에 싸인 달이어서 언젠가는 사람들이 진가를 알아줄 날이 올 거라는 글을 청와대 브리핑에 올린 적도 있다. 참여정부가 끝날 무렵 어느 날 연락을 받고 청와대 관저에 가서 노 대통령, 성경륭 정책실장과 점심을 먹고 차를 한잔 했다. 대통령이 용건을 꺼내지 않아 궁금해서 내가 물었다. “오늘 무슨 일로 저를 보자고 하셨는지요?” “, 그냥 고마워서 밥 한번 먹자고 한 겁니다. 요즘 밖에서 도와주는 사람은 이 교수 밖에 없어서.” 대통령이 외로워 보였다.

2008225일 퇴임식 날 대통령과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서울역에서 특별열차를 타고 봉하로 내려갔다. 지방으로 내려가는 최초의 전임 대통령이라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서경석 목사가 조선족 교회 교인들을 대거 이끌고 서울역에 와서 노 대통령 환송 플래카드를 흔드는 장면은 보기에 훈훈했다. 특별열차 안에서 노 대통령은 모든 칸을 돌면서 같이 일한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했다. 노 대통령은 밀양역 광장에 내려 연설을 했다. 독립투사 김원봉이 해방 후 수십년 만에 귀향했을 때 밀양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환영했다고 하는데, 이날도 밀양역 광장을 인파가 가득 메웠다. 봉하 마을에 도착해서는 , 기분 좋다!”고 외쳤다. ‘노무현과에 속하는 정치인이 있다며 청중 속에 있던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을 연단 위로 불러올려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그때는 밝은 미래가 펼쳐질 것처럼 보였다.

노 대통령이 국가 경영에 관한 책을 같이 쓰자고 학자들을 불러 2009221()321() 성경륭, 최병선, 김용익, 송기도, 이병완, 장하진, 조기숙, 김은경, 김창호, 김수현, 김성환, 윤태영과 함께 봉하에 내려갔다. 이날 종일 책 집필 계획을 세우던 게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이야. 노 대통령이 나에게 물었다. “이 교수, 차비 대줄 테니 자주 좀 오세요. 요새 서울, 대구 어디 있어요?” “왔다 갔다 합니다.” “사람이 왔다 갔다 하면 안 되는데.” 옆의 권양숙 여사도 웃고 모두 웃었다. 저녁 먹고 서재에 모여 차 한잔 할 때다. 노 대통령 손이 계속 앞에 놓인 강냉이 뻥튀기에 갔다. 권 여사가 보다 못해 입을 열었다. “손님들한테는 권하지도 않고 혼자서 계속 드시면 어떻게 해요.” “뭐 별로 권할만한 음식이 못 돼서.” 좌중의 폭소가 터졌다. 노 대통령은 여전히 유머가 많았다. 그때 노 대통령은 오직 책 읽고, 책 쓸 생각밖에 없어 보였다. 그 뒤 사태는 급전직하, 두달 뒤 2009523일 아침 대통령 서거 비보를 들었다. 유서에 나오는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는 구절이 내 머리를 때렸다(이듬해 노 대통령의 최후 염원이었던 책 노무현이 꿈꾼 나라’(이정우 외 38인 공저, 동녘, 2010)를 출간해 봉하 묘역에 바쳤다).

장례식 날 나는 한겨레신문에 추도문 학자 군주 노무현을 그리며를 썼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익보다 정의를 추구했다. 맹자가 양나라 혜왕을 찾아가자 혜왕이 물었다. “선생께서 불원천리 찾아오셨으니 우리나라에 큰 이익을 주시겠지요?” 맹자가 답했다. “왕께서는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王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 그렇다. 노무현은 평생 이익 대신 정의를, 약자에 대한 배려를 앞세웠다. 늘 손해 보고 지는 길을 갔다.

노무현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말실수와 학벌을 든다. 노 대통령은 자신을 학벌사회, 연고사회의 바다에 떠 있는 외로운 돛단배에 비유한 적이 있다. 노 대통령은 가난 탓에 학벌은 낮았으나 책을 많이 읽어 학식이 높았다. 학자 군주였다. 조선 왕조 5백년 27명의 왕 중에 학자 군주는 단연 세종과 정조다. 세종, 정조는 독서광이었고, 집현전, 규장각을 설치해 학자들과 대화했다. 노 대통령도 독서를 좋아했고, 위원회를 설치해 학자들과 대화했다. 정책을 만들 때도 눈앞의 인기보다 논리적 타당성과 진정 국민을 위한 정책인지를 따졌다.

시간 여유가 생길 때 노 대통령의 화제는 역사였다. 동서양 여러 나라 역사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질문하는 일이 많았다. 중국 최고의 명군으로 불리는 당 태종은 자신이 세 개의 거울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얼굴 보는 거울, 직언하는 신하 위징, 그리고 역사였다. 위징이 죽었을 때 태종은 거울을 하나 잃었다며 슬피 울었다. 노 대통령은 끊임없이 역사를 되돌아보려고 노력한 점에서 당 태종과 비슷하다. 직언을 잘 수용한 점도 비슷하다. “요즘 청와대에 위징이 너무 많아 일하기 힘들어라고 농담하던 노 대통령이었다. 역대 대통령 중 단연 최고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대통령 밑에서 일한 나는 행운아였다. 지금도 문득문득 그때 일이 생각나고, 노무현 대통령이 그립다.

이정후 전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 | 한겨레 2024.04.01

 

성관계의 기본은 동의

한동훈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은 지난 326일 비동의강간죄를 반대한다고 나서며 억울한 사람이 양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327일 천하람 개혁신당 총괄선대본부장은 우리의 내일이 두렵지 않도록 당당하게 비동의강간죄에 맞서겠다고 선포했다. 두 당은 10대 공약과제 안에 비동의강간죄가 있었던 더불어민주당을 겨냥했다. 그런데 두 당의 반대가 일자 민주당은 곧바로 “10대 공약에 비동의강간죄가 수록된 것은 실무적 착오였다고 발표했다. 김민석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상황실장은 기자들에게 당내에도 이견이 상당히 존재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개혁신당, 민주당이 연달아 비동의강간죄에 반대하거나 그 흐름에 동조한 것이다.

이견은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이견의 구조적 원인이고 문제를 이해하는 리터러시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이견이 없는 안건은 단 하나도 없다. 이견은 일상다반사이고 이를 조정하고 설득하는 것은 입법부와 정치의 역할이다. 국민의힘, 개혁신당, 민주당이 비동의강간죄앞에 함께 멈춰 선 것은 어떤 의미인가. 세 당의 방향이 같아서인가? 아니면 문제를 이해하는 역량이 부족한가? 이견을 조정하는 역할을 멈춘 것인가? 민주당은 대신 비동의강간죄를 장기 과제로 추진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고개를 들어 방향을 확인하자.

비동의강간죄가 한국 사회에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초다. 그 전에는 성폭력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1953년 형법 제정 때부터 강간죄(297)32정조에 관한 죄에 속했다. 형법이 사람의 성적 인격권이 아니라 부녀의 정조를 지킨다고 못 박은 것이다. 피고인은 저 여성은 정조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법원은 음행에 상습 없는’(음란한 행위를 상습적으로 일삼지 않는) 여성인지 따졌다. 피해자 본인이 고소하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친고죄였고(2012년에 삭제) 고소 기한도 6개월이었다. ‘강간으로 인정되려면 피해자가 저항이 현저하게 곤란할 정도폭행 또는 협박이 있어야 한다. 피해자가 얼마나 저항했는지를 재판에서 따지고 저항이 일정한 수준에 이르지 않으면 강간이 아니게 된다. 이 구성요건과 판단기준은 지금까지 그대로다. ‘정조에 관한 죄가 간판을 내린 뒤, ‘성적 자기결정권이 새로운 보호법익으로 등장했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1990년대 초 성폭력이라는 개념과 용어가 등장했다. 피해자에게 저항을 입증하라고 하는 것이 피해자에게 고통을 준다는 문제의식도 등장했다. 극심한 강제적 만이 문제가 되고 적당히 강제적인 부터는 모두 정상으로 보는 이 기준은 남성 시각의 성문화를 재생산한다는 비판이 대대적으로 일었다. 이때부터 동의자율성정조가 사라지는 시대에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고 논의된 개념이다.

비동의강간죄는 동의한 성관계와 극심한 물리적 강제에 의한 성관계 사이, 중간지대를 살핀다. 데이트 강간, 부부 강간, 직장 내 성폭력이 대표적이다. 또한 동의 자체를 표시할 수 없는 경우를 중요하게 고려한다. 피해자-가해자 관계가 종속적이거나 장애, 연령, 술 또는 약물, 경제적 취약관계를 이용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피해자의 과거 성적 이력이나 직업, 지위를 가지고 성폭력이 아니라고 간주했던 편견도 배제해야 한다.

비동의강간죄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은 크게 명확성이 부족하다는 것과, 다른 사회 문화적 차원에서 해소해야 할 문제에 형벌을 도입하는 게 과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도죄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것만으로도 죄가 성립하는 협의의 폭행 협박 기준을 사용하고 있다. 법에서는 이미 승낙, 양해, 고의와 같이 의사를 따지는 기준과 판례가 많다. 국가 형벌권 발동이 과도하다면, 여타 사회 문화적 차원에서 성별 격차, 성차별적인 성폭력 예방, 그로 인한 학습권, 노동권, 인격권, 안전권 침해를 줄이기 위해 충분히 노력해야 한다. 사회적 교육, 홍보, 피해자 지원, 예방 대책과 예산은 언제나 절실하다. 이러한 투여 없이 엄벌하겠다만 앞세우는 것은 잘못된 방향이다.

성관계의 기본은 동의. 이것이 방향이다. 이것을 말하지 않고 비동의강간죄 법안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말하는 후보와 정당은 찍을 수 없다. 방향조차 가로막기 때문이다.

김혜정 |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 한겨레 2024.04.01.

 

기억은 동사다

잊지 않겠다는 약속은 기억할 말들을 만날 때 단단해진다.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다가올수록 무엇을 기억해야 할지 막막했는데, 내가 몇년째 엇비슷한 말들에 멈춰 있음을 깨달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이 앞장서고 수많은 사람들이 곁에서 밀어가며 만들어온 시간을 떠올리면 지금은 마치 시간이 멈춘 느낌이다. 조금 낯설고 많이 속상하다.

지나온 시간을 복기하는 일이 필요하다. 내가 기억하는 변곡점 중 하나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공식 사과다. 20178월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사과했다. 많은 이들이 촛불 이후 달라진 시대를 보여주는 징표로 읽었다. 하지만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었다. “지난 정부가 선체 침몰을 지켜보면서도 승객 한 명 구조하지 못했을 정도로 무능하고 무책임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지난 정부의 문제가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에 대한 질문을 등장시킨 사건이었다. “팽목항에서 우리는 국가의 거짓과 무능함을 마주했어요. 언론의 무책임함과 정치인들의 민낯도 보게 됐어요. 그동안 우리가 철석같이 믿었던 세상이 산산이 다 부서졌어요.” 희생자 웅기 엄마 윤옥희의 말(<520번의 금요일>)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에 대한 질문에 지난 정부의 문제라고 응답했다. 진상규명은 전혀 다른 과제가 되어버렸다. 생명과 안전을 지킬 줄 모르는 국가를 근본적으로 진단하고 재구성하기 위한 과제가 아니라, 새 정부를 향해 쏟아지는 해묵은 요구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급할 이유도 없었다. 이미 정부는 바뀌었고 문제는 사라졌으므로. 더디지만 조사와 수사를 통해 밝혀진 것도 있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국가가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질문을 숨겨버린 사이에 재난참사 피해자에게 응답조차 하지 않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다.

4·16생명안전공원에 관해서도 다르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앞선 참사들이 어떻게 잊혔는지 되새기게 되었다. 재난을 기억하려면 공식적인 기록과 장소와 의례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나 청와대로 초청한 유가족을 향해 대통령은 거꾸로 지역 주민을 설득하시라고 주문했다. 생명안전공원을 납골당으로 부르며 혐오를 선동하는 이들 앞에서 유가족은 피켓을 들고 설득해야 했다. 재난을 기억하는 일이 우리 모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길임을 확인해온 시간이 무색하게, 피해자와 반대자가 서로 풀어야 할 문제가 되어버렸다. 10주기를 앞두고 착공도 못한 현실은 그 결과다. 기억하겠다는 약속도 기억하자는 제안도 이런 멈춤 앞에 망연하다.

사회적 참사를 수습하는 일은 참사에 대한 너와 나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고, 우리가 왜 다 같이 보듬고 극복해야 하는지를 모두에게 설득하는 과정이고, 그게 바로 정치라고 생각해요.” 희생자 영만의 형 이영수의 말(<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을 빌려서 짚어보자면, 세월호 참사가 부적절한 방식으로 정치화되는 동안 정치는 오히려 사라져왔다. 기억할 말을 찾는 일에서 자꾸 미끄러지고 있다면 함께 기억할 우리가 흩어지고 희미해진 탓은 아닐까.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일은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다. 무엇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우리의 이야기들이 다시 만나야 할 때라는 점은 알 것 같다.

세월호 참사 작가기록단이 낸 두 권의 책, <520번의 금요일><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를 읽으면서 큰 위로를 얻었다. 유가족이라도 다 다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 생존자라는 이름에 갇힐 수 없는 사람들,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세월호 참사의 시간을 회피하지 않고 함께 걷는 사람들. 우리의 시간은 멈춘 적이 없었다. 기억하려는 우리가 있는 한 기억은 제 말을 찾아낼 것이다. 기억은, 언제나 동사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 경향 2024.04.01.

 

조세 국가의 위기와 4월 총선

작년 말과 올해 정부·여당은 다시 감세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 완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상속세 완화, 가업승계 증여세 최저세율 적용구간 확대, 대기업 대상 임시투자세액공제 기간 연장, 자사주 소각과 배당 시 법인세 인하,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폐지 등 발표가 이어진다. 대부분 부자 감세다. 눈앞의 선거를 의식하면서 준조세 폐지 감면, 가공식품 부가가치세 한시 경감 등 범위도 넓어졌다. 그러나 국정을 책임지는 집권여당이 무분별한 매표 감세 경쟁을 부추기는 오늘 현실은 참담하다.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에게 근대국가는 자기 목적을 갖지 않으며 단지 공동의 목적만을 지향하는 공적 속성을 지닌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 덕에 근대국가는 개인의 재산권과 사적 소유를 제한하며 시민에게 납세 의무를 부과하는 조세 국가가 될 수 있었다. 조세 국가에서는 조세를 통해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에 광범위하고 지속적이며 제도화된 관계가 맺어진다. 그 과정에서는 또한 납세자 누구나 국민이라는 공통된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가상 속에 존재하던 공동체가 조세의 납부와 징수를 거치면서 비로소 가시화된 실체를 획득하는 셈이다.

조세 국가는 재정을 왕족 소유의 영지나 유전이 아니라 시민사회로부터 조달한다. 시민들에게 재정에 대한 기여를 의무로 부과하는 대신 반대급부로 시민의 정치적 대표성을 인정하고 사회적 보호를 제공한다. 조세와 민주주의, 조세와 보편 복지 사이의 주고받음을 조직하는 것이 조세 국가의 역할이다. 재정의 시민사회에 대한 의존이야말로 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추동해온 힘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복지국가의 발전 정도는 복지 재정을 시민사회가 함께 부담하는 정도에 달려 있으며 따라서 조세 국가의 역량 및 조세 수준과 밀접히 연관될 수밖에 없다.

조세 국가가 복지 재정을 시민사회에 의존하려고 증세를 시도하면서 한계에 봉착한다면 복지국가는 좌절되기 쉽다. 상위계층이 자신이 가진 여분의 자원을 공적으로 기여해야 하는 의무를 덜기 위해 조세 국가를 위기에 빠뜨릴 때 복지국가는 약화된다. 그럴 때 부자들을 대변하는 정치권력은 이익집단처럼 퇴화하며 국가를 마땅히 있어야 할 제 위치로부터 탈구시켜 국가의 부재를 초래한다. 그에 맞서 공동체를 회복하려면 조직된 민중이 정치 공간에서 더 강한 조세 국가를 재건해야 한다. 어떤 선거도 그래서 중요한 법이다.

제임스 오코너의 마르크스주의 재정학에서는 자본주의 국가의 기능이 공공투자로 자본축적을 지원하는 것과 복지지출로 체제를 정당화하는 두 가지로 파악된다. 그러나 한국의 역대 정부는 두 기능의 수행을 위해 공공투자나 복지지출을 늘리기보다는 기업과 가계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데에 치중했다. 한국의 낮은 조세 수준과 역진적 조세 구조에는 여태 그렇게 유지된 한국형 조세 국가의 특징이 반영되어 있다.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의 복지시스템은 외환위기의 충격과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피해가기 어려웠다. 신자유주의는 공적 체계를 약화시키며 각자도생을 강제했다. 최근에는 기술 변화가 불러오는 사회적 균열의 위험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저성장과 고령화를 배경으로 재정건전성을 빌미로 한 역풍도 거세다. 그 귀결은 개인들의 사회로부터의 자발적인 이탈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현세대의 직접 이탈)과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2세를 두지 않는 간접 이탈)이 수치적 증거다.

그런 점에서 정부·여당이 상위계층의 이해관계를 노골적으로 우선시하며 밀어붙이는 일련의 감세 정책은 한국 사회로선 불행이다. 그 이유는 부자 감세는 조세 국가를 위기로 내몰며 국가의 공적 속성을 약화시키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은 복지비용과 기후위기 대응 및 산업구조 변동에 따르는 비용의 분담을 위한 재정 여력을 증세로 확보해야 하는 시점이다. 피부양인구와 생산인구의 상대적 비중이 변하면서 세입과 세출의 불균형이 구조화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오늘 정작 필요한 것은 현명한 증세의 정치인 것이다.

박근혜 정권을 붕괴시킨 제1기 촛불은 국가의 부재에 대한 국민적 심판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다가오는 4월 총선은 제2기 촛불 정부로 나아가는 한국 민중의 여정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조세 국가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정부·여당의 부자 감세 기조를 투표로 심판해야 한다. 2기 촛불 정부는 복지국가 발전의 기반을 재건하고 산업전환과 불평등의 비용을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나누는 대안적 복지체제로의 경로를 적극적으로 열어가야 한다.

나원준 경북대 교수·경제학 | 경향 2024.04.02.

 

맺힌 가슴 풀엉 살게 마씀

제주 4·3평화공원에 다녀왔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역사의 깊은 내막을 사진과 전시로 접한 충격은 컸다. 일방적 매도와 학살로 제주도민들의 삶과 가족과 마을이 부서졌고, 존엄은 훼손되었다. 7년이 일단락된 후에도 국가권력은 이 사건을 시인하고 해결하지 않음으로써 가해를 이어갔다. 살아남은 제주도민들은 입도 벙긋하지 말라고 서로 다독이며 숨죽여 앓았다. 나는 이런 문제 방치 방식을 알고 있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대하는, 세월호와 같은 사회적 참사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외면과 억압의 중요한 뿌리가 4·3 사건에 있을 수 있겠구나 내내 생각했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내담자들 중엔 가정폭력, 괴롭힘과 왕따, 범죄 또는 성폭력 등으로 촉발된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 이분들의 치료를 돕다 보면 트라우마를 유발한 권력과 시스템의 구조에 역사적·사회적 트라우마들이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극히 사적인 영역에서 유발된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도 사회가 상실을 애도하는 방식, 고통을 겪는 사람을 돕는 방식이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 또한 알게 된다. 그래서 지난 칼럼에서는 우리가 그 애도에 함께 하는 것이, 트라우마 당사자들이 상실에 대한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단계를 거치며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썼다.

그러나 트라우마 당사자의 온전한 회복에 필요한 핵심적이고 구체적인 어떤 단계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이 단계에 대한 실마리는 4·3 트라우마센터 홈페이지에 소개된 ‘4·3 이야기마당에서 찾았다. 4·3 생존희생자 및 유족들이 모여 생애사, 마을사를 나누는 이 프로그램의 제목은 맺힌 가슴 풀엉 살게 마씀(맺힌 가슴 풀고 사세요)”이다. 그렇다. 트라우마 전문가 주디스 허먼이 이야기한 당사자들이 진실을 통과해 회복에 이르는 과정, 이야기마당의 사진을 보며 구체화돼 와닿는 느낌이었다. 그랬다. 화해와 공감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은 당사자가 공동체 앞에서 스스로 고통을 말할 기회를 마련하고 그가 진실을 말하며 부서진 삶을 재구성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기다리는 일이었다. 4·3사건 당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고 그 일이 내게 무슨 영향을 미쳤는지를 남들 앞에서 낱낱이 풀어내는 과정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나의 고통을 고발하며 자신의 존엄을 회복하는 중대 행위다. 또한 이야기마당 참여자들이 이 풀이를 경청하는 것은 당사자의 맺힌 시간과 감정을 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분쟁지역 갈등 해결을 맡아온 도나 힉스는 자신의 책 <관계를 치유하는 힘 존엄>에서 피해자들이 삶과 감정에 입은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선 보상이나 처벌과 별개로, 그들의 고통을 시인하는 일종의 공개적 과정에 대한 욕구가 따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30여년 전 일어난 북아일랜드 분쟁에서의 총격 피해자와 가해자가 직접 대면하는 자리를 만들었던 <진실 마주하기>TV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험을 적는다. 물론 매우 실현되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피해자가 가해자 앞에서 그 일로 인한 고통과 상실을 솔직히 말하고 오랫동안 자신을 사로잡아온 질문들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과정이 그야말로 그 당사자들과 공동체의 존엄과 정의를 회복하는 일이라고 느껴졌다. 가해자는 그 폭력을 저지르기 위해 폭력을 피하고자 하는 자신의 인간성을 스스로와 분리함으로써 스스로를 비인간화했고, 또 피해자들을 정치적 적이라며 비인간화했다. 이렇게 피해자가 자신의 고통을 가해자와 공동체 앞에서 직접 말하는 것 자체가 그들이 정당화했던 폭력과 이후의 묵인, 억압을 인간화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더 많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기다림과 자리를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가려진 진실의 내력을 풀고, 맺힌 가슴을 풀고 살 수 있도록.

안주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경향 2024.04.02.

 

제주4·3과 이승만

이승만을 대통령이라고 하면 될거우꽈? (그냥) 이승만이라고만 하면 될거우꽈? 지금도 가장 원한이 남는 게 그 사람이 몇 년형을 내렸으면 기간이 되면 남편을 내쳐야지(석방해야지) 자기네 모음냥(마음대로) 죽일 수가 이수과?”

올해 104살이 된 한 할머니는 202142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4·3 직권재심 재판이 열린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은 할머니가 내뱉은 최대의 분노 표출이었다. 할머니는 4·3 시기 집이 불타고 어린 자식들과 피난길에 나섰다가 남편과 헤어졌다. 100살이 훌쩍 넘도록 남편을 기다리지만, 20대의 남편은 돌아올 줄을 모른다.

제주의 유학자 김경종(1888~1962) 선생은 1950이승만 성토문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한국전쟁 발발 직후 벌어진 민간인 학살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옛날 항적은 진나라의 항복한 병사 40만을 살해하였다. 만세에 모두 무도하다고 일컫는다. 지금 이승만이 나라 안 죄수 수십만을 죽였으니 그 포학무도함이 항적과 더불어 과연 어떠한가. (중략) 승만의 죄는 천 번 참수하고 만 번 도륙을 내어도 오히려 남은 죄가 있다. 감히 대통령이라는 이름으로 예와 같이 백성의 위에 거한다. (중략) 남한의 수십의 형무소는 차고 넘치어 수십만에 이르고 있다. ()군의 입성에 이르러 부화뇌동할 염려가 있다고 말하고 급히 학살령을 내렸으니 (중략) 승만의 포학무도가 이에 여기에 이르렀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수십만명이 예비검속으로 죽고, 형무소 수감자들이 집단학살되던 때였다. 그의 아들은 4·3 시기 육지 형무소에 수감됐다가 행방불명됐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2003년 펴낸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는 집단 인명피해지휘체계와 관련해 최종 책임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4·3 항쟁 시기 숱한 제주도민의 죽음 뒤에는 이승만이 있었다는 말이다.

대통령 이승만은 194811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계엄령은 시민권의 제한만이 아니라 민간인 학살을 정당화하는 무기로 이용됐다. 이 시기 이후 초토화가 가속화됐고, 수많은 비명이 제주섬을 덮쳤다.

군경과 서북청년단은 빨갱이 소탕을 명분으로 자신들이 규정한 빨갱이를 없애는 데 용감했다. 마을 주민들을 모아놓고 이웃들끼리 죽이도록 하고, 그 장면을 보도록 강요했다. ‘반인륜적'이라는 표현 이상의 일들이 벌어진 곳이 1948년과 1949년 제주였다.

당시 주한미군사고문단의 보고서를 보면, 19481124일부터 닷새 동안 9연대는 제주도에서 사살한 인원만 337명이고, 332명을 체포했다. 하지만 이들이 노획한 총은 7정에 지나지 않았다. 같은 해 1213일 토벌대는 경찰과 민간인 등 3천여명을 동원해 하루에만 105명을 사살'했다. 무차별 학살이 펼쳐졌다. 그해 말 9연대의 뒤를 이어 진주한 2연대도 마찬가지로 가혹했다.

숱한 제주도민이 죽임을 당하는데도, 이 대통령은 토벌을 재촉했다. 그는 1949121일 국무회의 자리에서 미국이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많은 동정을 표시하지만 제주도와 전남사건의 여파를 완전히 발근색원하여야 그들의 원조는 적극화할 것이라며 악당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같은 해 102일 제주비행장(현 제주공항)에서는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249명이 이승만 대통령의 재가에 따라 집단처형됐다. 제주도 사건이 사실상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249명을 한꺼번에 대규모 처형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언론에는 단 한줄도 보도되지 않았다. 제주도는 외부와 단절된 고립의 섬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승만이 있었다.

서울 한복판에 이승만기념관을 만들고, 이승만 동상을 세운다고 한다. 수많은 제주의 영혼이 울고 있다.

허호준 | 전국부 선임기자 | 한겨레 2024.04.03

 

넓은 집과 넓은 도시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한강을 덮은 물안개가 근사하다. 컨시어지 서비스로 배달된 아침식사를 마치고 출근 준비를 한다. 초고속 엘리베이터로 50층을 내려가 지하주차장에 세워둔 승용차를 타고 회사로 직행한다.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차를 세워두고 아파트 2층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아내를 불러 건물 지하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하루를 마무리한다.

(생각나는 데로 갈겨썼지만, 충분히 있을 법한) 대도시 고층주상복합아파트에 사는 어떤 이의 일상이다. 럭셔리한 인테리어의 넓은 아파트, 멋진 전망, 호텔식 서비스, 엘리베이터만 타면 도달할 수 있는 갖가지 편의시설, 많은 현대인이 꿈꾸는 (이른바 0.1%에 해당한다는) 성공한 인생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런 삶이 더 흔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골목길을 내려가는데 옆집 할아버지는 벌써 일어나 집 앞을 빗질하고 있다. 마을버스 운전기사는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냐 한마디 건넨다. 지하철 구내 빵집의 갓 구운 빵 냄새가 덜 깬 새벽잠을 위로한다.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동네 슈퍼에 들러 내일 아침거리를 사고, 동네 책방에 들려 책방 주인의 신간 추천도 받고, 비슷한 시간 퇴근한 아내와 새로 생긴 동네 일식집에서 식사 겸 가벼운 한잔 후, 집 앞 꽃집에서 화분 하나를 싼값에 흥정해서 집에 돌아와 하루를 마무리한다.

(역시 생각나는 대로 썼지만, 충분히 있을 법한) 도시 서민 동네에 사는 어떤 이의 평범한 일상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의 실제 생활일 것이다. 평범하고 좁은 연립주택, 골목골목 다양한 모습으로 성심껏 가꿔놓은 가게들, 걷기만 하면 만나고 말 건넬 수 있는 낯익은 이웃들, 보통 사람들이 실제로 사는 특별할 것 없는 도시 모습이다.

성공할수록 넓고 큰 집을 꿈꾼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돈을 벌면 그래야 할 것 같다. 다들 그러기 때문이다. 건설회사의 광고대행사는 부자들의 사회적 욕망을 점화하는데 성공했고, 대안으로 등장한 고급주상복합은 멋진 전망, 차별화된 서비스, 편의성을 무기로 지난 20, 성공이라는 인정을 갈구하는 현대 한국인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높고 화려하고 편리한 큰 집에 살수록 자신이 사는 도시는 점점 더 작아진다는, 보이지 않는 사실을 말하는 광고는 없다.

2006년 오스트리아 빈 대학 주거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고급주상복합 거주민의 만성 우울증 지수가 서민 동네 거주민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연구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 우울증 지수가 거주민이 접촉하는 우연하고 즉흥적인 도시적만남의 횟수와 정확히 반비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것이다. 멋진 전망과 고급 서비스를 처음 접할 때 느끼는 만족감은 사실 얼마 안 돼 무뎌진다. 그 비싼 한강뷰를 보면서 매일 감탄하는 거주민은 없다. 경비원의 90도 인사에 매일 성공의 쾌감을 느끼는 사람도 없다. 주상복합이라는 큰집에 살게 되는 순간부터 실제로는 그 작은 세계에 자신의 일상은 갇히게 되고 그가 마주칠 수 있는 도시적 기회는 축소된다. 이 아이러니는 유럽의 많은 나라가 고도제한과 용적률 제한을 유지하면서 자동차로 움직이는 초고층 큰 집보다 보도로 연결된 작은 집이 모인 도시를 선호하는 숨은 뜻을 설명해준다. 이 집을 구매해 성공한 극소수 상류층(VVIP), 0.01%로 인정받으라는 상업광고에 현혹되지 않을 만큼만 집과 도시의 관계를 이해한다면, 길과 이웃으로 연결된 우리의 평범한 도시가 사실은 가장 넓은 집이란 사실도 알게 된다.

임우진 | 프랑스 국립 건축가 | 한겨레 2024.04.03.

 

자녀 세대에 무엇을 상속할까

작년 말 상속·증여세법이 개정되었다. 올해부터 결혼하는 자녀에게 1억원의 추가 비과세 증여를 할 수 있는 법이다. 부부합산 최대 3억원까지 양가로부터 증여세 없이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경제적 지원을 받아 혼인이 늘면 저출생 문제 해소에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3600조원에 달하는 고령층의 막대한 자산이 젊은층으로 이동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그러나 억대의 부모 찬스를 쓸 수 있는 청년은 제한적일 터라 부자감세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몇몇 지인들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마당발로 유명한 대학 동기의 한마디가 조금 충격이었다. “그동안 제도가 너무 비현실적이었지. , 우리가 평생 회사와 조직에 충성하며 얼마나 뼈빠지게 일했냐? 그렇게 모은 돈을 자식들에게 못 준다는 게 말이 되니? 사람들은 이미 예전부터 법의 선을 넘지 않는 방법으로 자식들한테 야금야금 돈을 물려주고 있다고. 이게 특별한 부자들만 그러는 게 아니야.” 그동안 소득과 자산 가격, 물가 상승 등을 반영해 상속·증여세가 현실화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많았다. 그래서 친구의 이야기에 수긍이 되면서도 그럼 부모로부터 자본을 이전받지 못하는 청년들은 어떡하지?’ 하는 양가감정이 들어 마음이 무거웠다.

지금의 중장년은 사회의 주류이자 상대적으로 괜찮은 삶을 살아왔을 확률이 가장 높은 세대라고 한다. 퇴직과 은퇴를 계기로 새로운 노년의 삶을 만들기 위해 다시 열심히 배우고 활동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자녀 세대 중에는 다양한 삶의 가능성에 도전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청년들이 있다. “요즘 청년들은 부모보다 훨씬 가난해지는 세대라고 하는데 모든 청년이 그런 것은 아니다. 중장년 세대 중 상당수는 경제적 자본 혹은 꼭 돈이 아니더라도 관계망이나 지식 같은 무형의 자본을 자녀와 나눌 것이다. 그런데 하위 몇십 퍼센트의 청년은 가족 안에서 그 어떤 자본도 전혀 상속받을 수 없다.” 중장년 세대들이 청년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했던 사단법인 씨즈 이은애 이사장의 말이다.

변화의 움직임이 없진 않다. ‘세대 연대 기금또는 세대 승계 기금등을 만들어 청년 세대가 쓸 재원을 확보해주거나, 부의 대물림을 완화하고 청년들의 출발선을 조금이나마 고르게 만들어주기 위한 사회적 상속같은 의제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를 현실화시키는 방안들 중 몇가지가 눈에 띈다. 10조원에 달하는 상속·증여세를 목적세로 전환해 그 일부를 사회적 상속분으로 조성하는 방법, 지방으로 귀환하는 베이비부머에게 증여세를 감면해주는 방법 등이다. 조세 저항도 피하고 재분배 효과도 기대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것이다. 그 무엇이 되었든 이제는 인생 전환을 고민하고 있는 중장년 당사자들 안에서도 이런 의제들이 활발하게 논의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서로 윈윈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세대 연대 모델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한다.

선거철마다 날아오는 공보물 속 허울 좋은 공약들이 폭탄처럼 느껴지는 요즘, 분열과 갈등이 팽배한 우리 사회를 통합하고 성장시킬 기회로서 사회적 상속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정치권에서도 더 이상 초벌적 검토에만 머무르지 말고, 속도를 내기를 촉구한다.

남경아 <50플러스 세대> 저자 | 경향 2024.04.03.

 

참사 10주기,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416일 오전 849분 세월호가 왼쪽으로 몇 도까지 기울었는지 어떻게 알았을까. 그 순간 아무도 세월호를 밖에서 지켜보고 있지 않았는데 말이다. 화물칸에 매달린 쇠사슬이 기울어지는 모습이 근처 차량 블랙박스에 녹화돼 있었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가 영상을 복구하고 쇠사슬 각도를 분석해서 세월호의 기울기를 추정했다. 객실층 매점 안 벽걸이 전화기의 꼬불꼬불한 줄이 기울어진 각도는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분석해서 제시했다. 그래서 우리는 몇시 몇분 몇초에 세월호가 얼마나 기울었는지 꽤 자세히 알게 됐다.

3년 동안 물에 잠겨 있던 것을 찾아내 복구한 블랙박스 영상 7개와 출항 전후 시시티브이(CCTV) 영상들에 나오는 시계가 모두 달랐다는데 세월호에서 온갖 일이 발생한 정확한 시간은 어떻게 알았을까? 전날 오후 인천항에서 출항을 기다리던 화물차 기사가 틀어 놓은 케이비에스 라디오 시보가 블랙박스에 녹음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그것을 기준으로 모든 시계를 맞출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화물이 언제 어떻게 한쪽으로 쏠렸는지, 바닷물은 어떻게 배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는지 꽤 자세히 알게 됐다. 2017년 세월호 선체를 인양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세월호가 크게 기울었던 92분부터 완전히 전복된 이후인 1035분까지 해경의 문자 통신망 코스넷에 올라온 메시지는 모두 1190개였다. 그중 770개가 대화 상대의 입장과 퇴장을 알리는 문자, “안녕하세요 인천상황실입니다. ‘3009님을 환영합니다”(933) 같은 환영 문자, “환영 멘트 꺼주세요”(목포상황실, 958) 같은 대화방 설정 요청 문자였다. 정작 침몰 현장에 출동했던 해경 123정에는 코스넷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948분 목포해경이 “123정 코스넷 안 된다는 사항임이라고 알렸지만 지휘부는 123정에 닿지도 않을 지시를 계속 내렸다. 이처럼 승객 구조와 아무 관련이 없는 말들로 해경 대화방이 가득 찼다는 사실은 20146월 광주지방검찰청의 수사보고서 첨부자료에 드러나 있다.

선장과 선원들이 123정으로 도주하던 945분에도 현재 위치에서 대기하시고 더 이상 밖에 나오지 마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었다는 사실은 승객들이 촬영한 휴대전화 동영상을 통해 파악할 수 있었다. 선체가 70도 정도 기울었던 109, 밖으로 빨리 나오라는 아빠에게 단원고 신승희 학생이 보낸 메시지는 카카오톡 서버에 남았다. “구조될 거야 꼭. 지금은 한 명 움직이면 다 움직여서 절대 안 돼.”

이렇게 많은 정보를 얻었으니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더 나올 것이 없을 정도로 충분히 밝혀졌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가족의 억울한 죽음을 납득하게 할 만큼 충분한 진실이란 있을 수 없다. 다만 10년 동안 증언과 진술로, 도면과 그래프로, 사진과 영상으로, 그 종류와 형식을 가리지 않고 세월호 기록을 만들고 모으고 정리한 이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304명의 죽음의 이유를 소상히 알게 된 것도 사실이다. 세차례에 걸친 세월호 조사위원회들이 안팎의 사정으로 매번 미흡한 결과물을 내놓았음에도 적지 않은 진실의 조각들이 10년에 걸쳐 우리 앞에 쌓였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고 느끼면서도 우리는 세월호에 관해 꽤 많이 알고 있다. 이 양가적 감정이 참사 10주기를 맞는 우리를 괴롭게 한다. 올해도 기억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무엇을 기억해야 할지 막막하고 또 먹먹하다. 우리의 기억은 개인적인 동시에 집단적이고, 추상적인 동시에 구체적이어야 한다. 10년 전 그날 304명의 허망한 죽음 앞에 눈물 흘리던 자신의 감정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그 죽음의 이유를 상세히 기억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습관적으로 외치는 대신, 그동안 밝혀진 사실들을 붙들고 함께 무엇을 할 것인지 궁리해야 한다.

진실의힘이 펴낸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기자간담회에서 전치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우리는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이들이 제 사명을 다하도록 하는 기준이 될 진실, 새로운 제도와 시스템을 만드는 데 근거가 될 진실, 다음 세대는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교육하는 재료가 될 진실을 손에 들고 있다. 참사의 모든 진실은 아니겠지만, 같이 다듬고 활용해야 할 소중한 진실이다. 이 진실의 무게를 나눠 지고서 여기서 어디로 나아갈지 고민하는 것도 참사 10주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전치형 | 카이스트 교수·‘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기록팀 | 한겨레 2024.04.04

 

관성에 틈을 내는, 풀꽃의 상상력

20197, 독일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기획했던 바이로이트 기후숲 프로젝트. 채아람 제공

겨울의 쌀쌀함은 사그라지고 풍경은 이제 봄꽃의 설렘으로 가득하다. 돌이켜 보면 이맘때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쯤 지난 시점,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이 삶은 달걀을 학교에 가져와서 나눠주곤 했다. 학창 시절의 기억이 소환된 건 지난 일요일 즉흥적으로 찾았던 어떤 교회 덕분이다. 부활절인데, 으레 준비된 삶은 달걀 선물이 없었다. 대신 그날 성도들이 손에 하나씩 들고 돌아간 것은 풀꽃 모종이었다. 목사님은, 하나의 생명을 살리는 데 얼마나 섬세한 노력이 필요한지 경험해 보자는 뜻으로 부활절 모종 나눔을 시작했다고 설명하셨다. 달걀이 아니라 모종이라니! 반가운 생각이라서, 사실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라서 이마를 짚었다.

2018년, 폴란드에서 열렸던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며칠 간의 관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우울했다.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괴물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보였다. 회의장에는 가장 똑똑하다는 정책 결정자들이 모여있었지만, 면도날 같은 외교 언어가 만들어내는 어쩔 수 없는 관성 속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상상하기란 어려웠다.

당장 해낼 수 있고 손에 잡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독일에서 함께 생태학을 공부하던 친구들과 함께 죽어가는 지역의 숲을 살릴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이름은 바이로이트 기후숲.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해 기존의 소나무와 가문비나무가 죽어가고 있으니, 그 숲에 적당히 틈을 내 다양한 자생종과 손님종을 섞어 심는 방안이었다.

나는 독일어를 거의 못하는 외부인이었다. 대신, 그래서 시도할 수 있는 무모함이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틈을 낸 곳은 숲이 아니라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 방식이었다. 거대 담론으로부터, 주정부로부터, 하향식으로 일하는 게 아니라, 사람과 지역 맥락에서 시작했다. 뭘 알아서가 아니라, 잘 몰라서 의도치 않게 관성을 깰 수 있었다. 처음 대면하는 위기 앞에서 아는 척하지 않고 오히려 함께 모르는 시간을 허락하니, 천천히 드러나는 다른 길이 있었다.

코로나와 함께 한국에 돌아왔고, 지금까지 다른 길을 찾고 또 헤매고 있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보다 과감한, 탄소예산 기반의 2040 기후중립 경로를 만드는데 열정을 쏟기도 했고, 한국과 독일 싱크탱크들이 함께 작업한 K-Map 탄소중립 경로에서 농업 부문을 맡아 그동안 정책에서도 운동에서도 신경 쓰지 못하던 틈을 살피기 위해 노력했다.

다만 한국에 돌아오면서부터 항상 가졌던 걱정은, 이곳의 익숙한 속도감과 관성에 매몰되는 것이었다. 그런 시점에, 독일 녹색당과 긴밀하게 협력하는 정책연구소이자 정치재단인 ‘하인리히 뵐 재단’이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재단의 목표는 생태·민주주의·비폭력 등의 가치에 기반을 두고 동아시아와 독일 사이 정책 대화를 촉발하는 것이다. 동아시아 사무소는 홍콩의 정치 상황 악화로 예기치 않게 서울에 새로 자리를 잡게 됐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부터 재단에 합류했다. 동아시아 지부가 중요하게 다룰 외교 안보와 기후위기, 민주주의, 기술 의제에 대해, 신선한 시각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기존의 관성을 깨고 달걀 대신 풀꽃을 떠올린 목사님으로부터, 외부인으로서 틈을 냈던 기후숲의 경험으로부터, 나는 엔지오의 의미를 본다.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상상력과 용기, 그리고 연대를 만들어내는 조직으로써.

노건우 | 하인리히 뵐 재단 동아시아지부 생태담당관 | 한겨레 2024.04.04.

 

공정한가 싸움뿐인 총선, ‘공약경쟁이 사라졌다

민심은 참으로 무섭다. 한번 바람을 타니 파도가 되어 배를 뒤집어엎을 기세다. 기성 정치인과는 다를 것 같은 인물이 등장하면서 오르기 시작한 집권 여당의 기세가 총선을 코앞에 두고 흔들리고 있다. 총선 결과로 이어질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으로선 그렇다. 불과 몇 개월 전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를 보고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고 인정했다. 강물 같은 국민의 뜻을 거스르면 배가 가라앉게 된다는 군주민수(君舟民水)의 엄중함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민심에 반하는 인사권 행사로 유리하던 여론 지형에 변동이 생겼다. 채모 상병 사망사건 수사 과정에 당시 국방부 장관의 외압이 있었을 거란 여론이 비등한 가운데 거대 야당이 탄핵을 추진한 피의자를 대사로 임명한 것이다. 이종섭 사태가 민심 흐름을 바꿔 놓았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철학인 공정과 상식, 법치와 정의는 어디로 갔느냐는 국민 대다수의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직권남용 핵심 피의자를 공직에 임명하는 것이 과연 공정하고 상식적인가. 법률가 출신 정치인은 이렇게 판단했을 것이다. 이종섭은 피의자지만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시민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 그러니 대사 임명에 법적 하자는 없다, 대사직을 수행하려면 출국해야 하니 규정과 절차에 따라 출국 금지를 풀면 된다. 그렇다. 법적 관점에서는 공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시민은 이렇게 반문했을 것이다. 야당 대표도 피고인이지만 무죄추정을 받는데 정치적 대화 상대로 여기지도 않고 파렴치범 취급하는 것은 과연 공정한가. 일반적으로 출금된 피의자가 출금 해제를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데 법 앞에 평등한가. 피의자로 수사받는 자가 일반 시민이라면 공직에 임명될 수 있겠나. 법률가는 절차의 공정, 법과 원칙에 초점을 맞추고 적법 절차와 방어권 보장, 무죄추정의 원칙이 지켜졌다면 공정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데 시민이 인식하는 공정은 조금 다른 것 같다. 다차원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가 정의로워야 한다. 공평하고 올바른 것이 공정이기 때문에 과정의 공정보다는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정의에 방점을 찍는다. 절차와 과정에 위법이 없고 공정했다고 할지라도 기회가 평등하지 않으면 그리고 나타난 결과가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되면 불공정하다고 느낀다.

이번 총선에서도 공정이 화두다. 공천 과정에서 탈락 기준이 되기도 하고 전격 공천취소의 잣대가 되기도 했다. 공정성으로 한 방 먹은 여당도 야당 후보의 불공정성을 드러내 만회해 보려 애쓴다. 그 핵심에 다수 국민의 관심사인 부동산 문제가 있다. 불법은 아니지만 불공정하게 부동산을 취득한 야당 후보가 공격 대상이다. 편법 대출, 꼼수 증여, 투기성 주택구매, 갭투자 등이 공정하냐는 비판이다. 불법은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그런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시세차익을 얻었으니, 결과도 정의롭지 않다는 것이다.

공정성이 늘 화두가 되고 공정과 상식이 국정철학인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불평등이 심해졌다는 증거다. 법 집행, 소득과 재산 분배, 취업 기회, 입시 제도 등 불공정하다고 인식하는 영역이 쌓여 있다. 공정경쟁의 필수조건인 법 앞의 평등, 기회의 균등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불신이다. 이런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공약을 제시해 경쟁해야 할 총선에서 여야 모두 누가 더 불공정한가를 드러내고, 막말과 상대편 흠집 내기를 주고받는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다. 공정이 총선의 화두이자 표심의 향방을 결정할 요소로 떠올랐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선거는 이미 불공정하다. 여성, 성평등, 범죄 피해자, 사회적 취약계층 복지, 인구, 기후 위기와 에너지 등 여러 의제에 대한 공정한 정책대결의 장이 펼쳐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4년을 기다린 유권자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또 경험하고 있다.

하태훈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장 고려대 명예교수 | 경향 2024.04.04

 

특정 정당이 72.5% 제기한 방송 심의와 거짓 공정성

정부 여당이 선거 과정에서 보이는 내부 갈등과 혼란은 이번 22대 국회의원 선거의 깜짝 놀랄 만한 결과를 예고하고 있다. 스포일러가 되지는 않기 위해 모두 눈치게임을 벌이고 있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민의의 날씨를 피할 도리는 없는 법이다. 때마침 선거 한복판에 등장한 875원짜리 대파 그리고 이미 폐인이 된 줄 알았던 조국 대표의 치아라 마외침 등 놀라움 가득한 이번 선거는 오래 기억할 만한 여러 장면들을 남기고 있다.

이번 선거는 각기 다른 이유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될 만한 것이지만, 특히 내게는 그중에서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와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위)미친 존재감이 오래 저장될 첫번째 대상이다. 류희림 위원장 임명에서부터 말 많고 탈 많은 방심위였지만 그가 출범시킨 22대 총선 선방위는 가히 우리 방송 역사의 새로운 장을 써나가고 있다. 22대 총선 선방위는 법정제재를 이미 17건이나 결정해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으며, 그중에서도 중징계인 관계자 징계를 9건이나 남발하고 있다. 도대체 누구의 뜻을 헤아려 그렇게 해석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선거와 직접 관련되지 않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언급과 파란색으로 미세먼지 농도 숫자 1을 표기했던 것까지 선방위의 이른바 기호학적 심의를 피해 가지 못했다. 이번 총선에서 보여준 방심위와 선방위의 폭주는 우리가 가진 방송 공정성 심의 체계가 얼마나 민주공화국의 수준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심의위원의 기본적인 양적 균형도 갖출 수 없는 구조적 한계는 물론이고, 3월 한달 동안 방심위에 접수된 불공정 민원의 72.5%를 국민의힘이 제기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가 어떻게 선거 국면에서 악용될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22대 총선의 방심위와 선방위는 행정 권력에 기반을 둔 공정성 심의 체계가 오히려 우리 사회의 정치적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현재 방심위와 선방위의 책임을 따지는 것과 별개로, 22대 국회에서는 방송 공정성 심의 체계에 대해 새로운 방향성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모든 언론이 중립적 입장을 취하길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또한 우리 사회의 공론장을 형성하는 데 바람직하지도 않다. 더구나 과거와 비교할 수도 없이 수많은 플랫폼과 채널이 폭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에 지금처럼 기계적 균형의 공정성을 강제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언론은 언론사별 정치적 편향성으로 오랫동안 비판받아왔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는 언론사가 지닌 정치적 입장 차이에 대한 문제제기라기보다 그로 인해 파생되는 사실 왜곡과 권·언 유착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더 정확한 의미에서 언론의 공정성에 대한 기대는 중립적 보도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확인을 위하여 다양한 입장에서 취재와 검증에 얼마나 충분한 노력을 기울였는가에 대한 판단이자 요구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언론 환경에서 공정성에 대한 판단은 기계적 균형에 기반을 두어 과도하게 행정주의적이며 형식적으로 경직된 측면이 있다. 물론 현재 방심위와 선방위가 보여주는 공정성 심의는 이런 기계적 균형과도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또 다른 문제이지만.

마침내 투표가 시작된다. 선거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기억과 기대가 투표소로 모여 하나의 민의를 만들어내는 민주주의의 알맹이이다. 누군가에게는 이름마저 가려져야 했던 이태원의 비통함 또는 채 상병의 억울한 죽음이 한표가 될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사과나 대파를 조금이라도 마음 편히 살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한표가 될 수도 있다.

언론학자로서 투표를 결정하기 전에 한번쯤 떠올려보길 바라는 기억은 현 정부에서 언론이 어떻게 모욕적으로 굴복당했는지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자유를 35번이나 언급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이렇게 할 거면서 왜 굳이 자유를 그렇게 외쳤나 싶지만 그때는 보편적 가치로서 모두가 빠짐없이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강변하였다. 특정 방송사의 전용기 탑승 배제, ‘바이든-날리면소송, 예고도 없이 하루아침에 쫓겨난 방송 진행자, 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 그리고 17건의 선거방송 법정제재에서 그가 외쳤던 자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빠짐없이 기억해야 한다.

홍원식 | 동덕여대 ARETE 교양대학 교수 | 한겨레 2024.04.05.

 

선거 이후 세상을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 골드 핑거

오랜만에 만나는 대형 홍콩(중국)영화 골드 핑거의 한자어 제목은 금수지(金手指)이다. 말 그대로 황금 손가락이란 뜻이고, 다른 말로 하면 마이다스의 손쯤 되겠다. 무엇이든 손만 대면 몽땅 금이 되는 남자의 얘기다. 중국의 톱스타 양조위(량차오웨이)와 유덕화(리우더화)가 주연이지만 영화를 잘 들여다 보면 사실상 양조위가 원톱이다. 둘은 세기적 영화였던 무간도이후 20년 만에 다시 영화에서 만났다. 그 사이에 홍콩은 중국화가 거의 이루어졌고 이제 다시 20년쯤 후에는(2046) 자치권마저 없어지고 완전히 중국이 된다. ‘홍콩 시위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홍콩에서 영화 인생을 시작한 많은 홍콩 배우들, 홍콩을 배경으로 하는 이런저런 영화들에게서 기이한 낭패감, 좌절과 상실의 정서가 느껴져 왔던 건 그 때문이고, 중국 공산당 정부도 일정 정도 그걸 방치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영화 골드 핑거을 보고 있으면 중국 정부가 더 이상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다소 오싹한 시그널이 느껴진다. 이 영화 골드 핑거는 양조위·유덕화 두 주연 배우의 불꽃 같은 연기 대결 따위의수사(修辭)로 판단할 영화가 아니다.

중국 반환 전 홍콩 금융자본 큰손의 성공과 몰락 이야기

시대 배경은 1980년대이다. 홍콩의 중국 반환은 1997년에 이루어졌지만 영국-중국 간 협상은 1982년부터 시작됐다. 영화의 주인공 청이옌, 홍콩식 영어 이름으로는 헨리 청인 남자(양조위)는 민난어(민남어 閩南語)를 쓰는 사람으로 아마도 중국 변방인 푸젠성이나 대만의 변방 출신인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그의 출생과 홍콩 이전의 삶을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넘어 간다. 무일푼으로 홍콩에 온 청이옌은 건설회사 직원이었던 쩡첸차오(임달화)를 만나 토지매매 사기에 가담하게 되면서 조금씩 조금씩 홍콩의 큰손으로 커 나간다. 영화는 그가 그렇게 막대한 부를 쌓아 가는 과정과 몰락을 그린다.

청이옌의 주변에서 떼돈을 버는 사람들, 특히 주가 조작에 참여하는 공범자들, 홍콩의 은행재벌 2세와 이런 저런 부자들, 그들의 뒤를 쫓는 ICAC(반부패 수사국)의 팀장 류치위안(유덕화) 등등 모두가 궁금해 하는 것은 청이옌의 전주(錢主)가 과연 누구이며 어디서 그런 막대한 불법자금을 가져 올 수 있는 지에 대한 것이다. 특히 류치위안 요원은 그 뒤를 캐려 애쓴다. 늘 그렇듯이 그런 과정에서 한 인물의 범죄 영웅 신화가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청이옌은 젊은 시절 필리핀의 한 여성 구두숍에서 일하다 대통령 부인 이멜다를 만났으며 그녀의 총애를 받은 끝에 마르코스 대통령의 불법 해외자금을 관리하게 됐다든지 하는 얘기이다. 또는 말레이지아에서 무역상을 할 때 우연히 전투에 휘말렸고 그 과정에서 반군이 관리하는 마약 자금의 돈 세탁 과정에서 거금을 마련하게 됐다든지 등등의 얘기이다.

청이옌의 뒷배는 아시아 일대의 검은 세력들, 독재 정권들, 블랙머니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래서 그는 더욱 더 언터쳐블의 남자로 취급받는다. 돈은 점점 청이옌을 타락시킨다. “남자는 돈이 생기면 타락하고 여자는 타락하면 돈이 생긴다.” 청이옌은 홍콩의 타락한 자본주의를 이용해 돈을 벌고 자신도 타락하며 홍콩 자본주의를 더욱 타락시킨다. “백주(낮술)는 얼굴을 붉게 만들고 금은 얼굴을 검게 만든다.” 모두 영화 속에 나오는 대사들이다. 의미가 심장하다.

하지만 영화는 청지옌에 대한 모든 소문은 그냥 만들어진 이야기일 뿐, 이 남자의 주된 활동은 주가 조작이었음을 그려 내는데 주력한다. 청이옌은 문어발 그룹인 카르멘 센츄리라는 이름의 지주회사를 통해 홍콩 전체의 자본시장을 주무르고 거기서 얻은 수익을 홍콩 최대 건물이자, 홍콩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원래는 영국 소유였던 금산빌딩을 사는데 사용하는 등 부동산 취득과 거래를 통해 돈 놓고 돈 먹기의 머니 게임에 이용했음을 밝힌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엄청난 뒷거래와 뇌물이 오고 갔음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수사관 류치위안은 청이옌을 사기 및 뇌물수수 혐의로 잡아 넣으려 하고 각각 14년과 10년의 형을 받게 하려 하지만 청이옌은 법리의 허점을 이용해 빠져 나가곤 한다. 그의 주변 인물들은 의문의 죽음을 당하기도 하는데 당연히 청이옌은 합리적 의심을 살 만큼 살인교사 혐의를 받는다.

투명·정직·공정과 공존할 수 없는 자본주의

1977년부터 시작된 청이옌의 불법 인생은 80년대와 90년대까지 이어지지만 97년 홍콩 반환 직전, 드디어 광란의 질주를 멈춘다. 그럼에도 그는 겨우 3년 형을 받는데 그친다. 자본주의의 법과 공정은 그런 것이다. 청이옌은 혼잣말로 이렇게 투덜거린다. “홍콩은 이상한 곳이야. 돈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법을 꺼내 들어.” 청이옌의 이 대사는 묘한 양가성(兩價性)을 느끼게 한다. 자본주의는 결코 투명하고 올바르며 정직하거나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고 만일 그걸 원한다면 홍콩의 자본주의 체제는 다른 방식으로 전환되거나 혁파돼야 한다는 것이다. 왜 갑자기 중국 영화권이 1980년대의 혼란스러웠던 홍콩 자본시장의 사건을 영화로 만들어서 내놨을까. 반부패 수사팀의 팀장이자 수사요원의 캐릭터를 왜 정의로운 인물로 강조해 냈을까. 거기에 중국 공산당의 의도는 없는 것일까. 중국으로 반환되기 전 초호화 자본주의를 표방했던 홍콩은 타락한 금융자본가들의 세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는 아니었을까.

현재 중국사회의 최대 현안은 부패이다. 경제사범이 활개를 치고 있고 그것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고 중국 정부는 보고 있다. 중국 공산주의 사회는 마르크스식 이론에 따른 것이 아니고 마오쩌뚱의 지식인-농민 계급의 연대에 의한 혁명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혁명 이후에 오히려 자본주의를 거꾸로 일으켜서 그 물적 토대를 강화한 후 다시 사회주의적 재분배의 사회로 나아가는, 완벽하게 계획된 경제발전론에 입각해 있는 사회이다. 정신과 이데올로기는 사회주의이지만 발밑은 자본주의를 활성화 시켜야 하는 이중구조에서 시진핑 공산당 정부는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자본주의적 병폐를 최대한 억제하려는 정책과 액션을 취하는 중이다. 사상을 그 어느 때보다 강화해야 할 때이다.

지금의 중국 사회를 신()문화대혁명의 시대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홍위병은 없지만 홍위병의 역할을 하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고, 사상과 이념의 고삐를 죌 수 있는 프로파간다, 그것도 대중적으로 유효한 선전선동의 무엇이 있어야 할 때인 것이다. 영화 골드 핑거가 만들어진 속사정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홍콩은 20년 후에는 공산사회로 완전 복귀가 이루어질 것이며 홍콩이 지닌 부의 시스템은 이제 결코 과거처럼, 청이옌이 쥐락펴락 했던 부패한 금융자본의 체제로 돌아가서는 안 되며, 결코 그렇게 되돌아가게 하지도 않겠다는 무언의 경고 같은 것이 아닐까. 그렇게 느낀다는 것은 지나친 아전인수 격 해석일까.

그런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영화는 관객들의 흥미를 자아낼 만큼 시각적으로 자본의 화려함을 극대화(최고급의 스위트 룸, 야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들, 무희들, 사교클럽의 공간들)시켜 표현한다. 성적 표현의 수위는 극도로 자제하거나 삭제했으며 오로지 돈이 만들어 내는 타락한 정서를 그려내는데 주력한다.

영화 '골드 핑거' 포스터

자본주의 이상의 체제를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

이제는 홍콩영화라는 카테고리가 없어진 시대의 새 중국영화 골드 핑거는 이상하고 씁쓸한, 개운치 않은 뒷맛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 구성이지만 그 목적성에 대해 동의하기까지 꽤나 복잡한 심정이 된다. 자본주의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지경이 아니다. 갈 데까지 간 상태이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정녕코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원한다면 자본주의가 아닌, 자본주의 이상의 다른 체제를 꿈꿔야 한다. ‘골드 핑거가 얘기하려는 것이 그 점이라면 그건 맞는 얘기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홍위병(검열 통제)’이 판치는 것 같은 지금의 중국식은 아니다. 그건 동의하기 어렵다. 한국사회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선거가 중요한 때이지만 선거 이후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생각해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이다.

영화는 종종 매우 고차방정식의 사회적 고민을 얘기하게 만든다. 그건 영화가 지닌 놀라운 힘이다. 모두 투표를 하고 다소 홀가분한 마음으로 관람할 만한 영화지만 극장을 나올 때는 또 다른 차원의 생각을 품게 만드는 작품이다. ‘골드 핑거는 선거 날인 410일에 개봉한다.

오동진 영화 평론가 | 시민언론 민들레 2024.04.06.

 

윤 대통령은 아직도 모른다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행간엔 억울함이 읽힌다. 27년 동안 건드리지 못한 국민의 90%가 찬성하는 의사 증원과 의료개혁을 해보겠다는데 기득권 카르텔인 의사들에게 가로막혔다. 정부 출범 이후 “37차례에 걸쳐 의사 증원을 협의했고, 올해 1월부턴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무려 19차례나 의사 증원 방안을 논의했는데도 의료계는 논의가 부족했다며 사실을 왜곡한다. 그러더니 이제 와 근거도 없이 350, 500, 1천명 등 중구난방으로 숫자를 던지고있다. 그동안 화물연대 파업, 건설노조와의 갈등, 건전재정 기조, -일 관계 정상화등의 난제 해결을 과감히 실천했는데 왜 이번엔 같은 방식으로 밀어붙여도 해결되지 않는지 당혹감도 엿보인다. 대화 여지를 열어놓겠다는 메시지는 윤 대통령의 강한 어조에 묻혀 대통령실 참모들이 부랴부랴 대통령 번역기역할에 나선 뒤에야 공식화됐다.

윤 대통령이 두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의-정 갈등을 다루는 모습은 그간 반복돼온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문제 발생버티기(또는 적반하장)여론 악화뒷북 수습으로 이어지는 패턴이다. -정 갈등은 증원 규모가 예상을 뛰어넘는 2천명으로 확정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고 의사들의 반발이 확산되자 그간 하던 대로압수수색과 면허정지 등 강경책으로 맞받았다. 협의는커녕 지난달엔 아예 학교별 배정 인원까지 발표하며 쐐기를 박았다. 갈등 장기화로 정부의 조정 능력이 의심받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국민 앞에 섰다. 앞서 채 상병 순직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주오스트레일리아(호주) 대사 임명, 황상무 수석의 회칼 테러발언,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등을 대처하는 방식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이때마다 여권에선 만시지탄이라는 한탄이 터져나온다. 기자들을 막아선 채 51분 동안 물을 두번 마시며 읽어 내린 대국민 담화는 내가 뭘 잘못했냐는 억울함을 드러내며 불통 대통령을 거듭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주춤하는 듯했던 정권 심판론을 순식간에 선거 전면에 끌어올린 이도 윤 대통령 자신이다.

돌아보면 윤 대통령의 지난 2년은 총선 승리를 향해 달려온 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여소야대 국회가 국정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문제의식 아래, 모든 역량을 22대 총선 준비에 집중해왔다. 올해 들어 관권선거 비판을 무릅쓰고 24차례에 걸쳐 전국을 누빈 민생토론회는 이 프로젝트의 일부분일 뿐이다. 이준석 대표를 축출하고 전당대회에서 나경원·안철수 후보 등을 우악스럽게 내치며 김기현 대표를 앉힌 것도, 지난 연말 복심인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밀어넣은 것도 모두 이번 총선은 대통령실에서 주관해야 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원하는 사람이 (대표가) 돼야 한다”(여권 관계자)는 논리였다. 지난해 내내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위해 비판세력과 전임 정부를 반국가세력’ ‘공산전체주의로 매도하며, 철 지난 이념전쟁을 주도한 이도 윤 대통령이다. 입법부를 무시한 잇따른 거부권 행사 역시 국정 발목을 잡는야당과 싸우면서 30%대의 고정 지지층을 모아내겠다는 전략적 행보로 해석됐다.

그간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이번 총선에 대한 기대는 여당이 탄핵 저지선인 100석을 지킬 것인지 여부로 쪼그라들었다. 믿었던 한동훈 위원장마저 “(정부 실패의) 책임이 저한테 있진 않지 않나라고 속내를 드러내는 천기누설을 했다. 보훈부 장관을 지낸 박민식 후보(서울 강서을)는 홍범도 흉상 이전에 나는 반대했다며 손절했다. 적지 않은 여당 후보들이 선거 공보물에서 윤 대통령을 지운 채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인기 없는 대통령이 총선 지휘를 한다는 게 얼마나 헛된 망상이었는지 지금쯤은 깨닫고 있을까.

윤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국민이 옳다며 몸을 낮추고, 민생과 소통을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껏 반성한 적도, 책임진 적도 없는 일방적 국정운영 기조는 변하지 않았고, ‘875원 대파소동이 드러낸 민생 무능까지 겹쳐 거센 심판론의 파고 앞에 스스로 섰다. 대국민 담화에서 확인됐듯이 윤 대통령은 그저 억울할 뿐 국민이 왜 화를 내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선거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윤 대통령이다. 민심의 심판대 위에서 윤 대통령이 국민의 힘을 확인할 시간이다.

최혜정논설위원 | 한겨레 2024.04.07

 

2030세대가 매긴 학점 D

사전투표 참가율이 31.3%에 달한다. 지난 대선에 버금가는 비율로 역대 어느 선거보다 높은 투표율이다. 이 중 2030으로 대표되는 30대 이하 투표율은 얼마나 될까. 이제 정치권의 관심은 2030세대의 표심에 쏠리고 있다. 4050세대는 범야권, 60대 이상은 여권으로 표심이 양분돼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30대 이하 유권자는 1267만여명으로 전체 유권자의 28.6%에 달한다. 그런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4일 발표한 2차 유권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비율이 이 세대에서 가장 낮다. 40대 이상은 80%를 초과한 반면, 18세 이상 20대가 50.3%, 30대는 68.8%였다. 다른 대부분의 여론조사도 부동층의 비율이 2030세대에서 2~3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언론과 사회에서도 2030세대의 투표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참여를 통해 발전한다는 원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유는 속박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무엇을 향한 의지와 행동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무엇은 공정과 정의로 이야기되는 평등한 자유와 자유로운 평등을 보장하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도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고 불평했다는 얘기가 있다. 물론 이것은 후대에 날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기성세대가 만든 이 논리가 지금도 여전하다는 것이다. 이번 총선도 마찬가지다. 2030세대는 탈이념적이고 실리를 추구하는 이기주의 성향이 강하다고 간주한다. 이것이 정치적 무관심으로 이어져 미래를 어둡게 한다고까지 나무란다. 그러면서도 2030세대의 참여가 미래를 결정한다며 투표 참여를 호소한다.

정치권은 2030세대가 공정과 특혜 시비에 민감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동시에 입시·채용 비리와 편법 상속, 부동산 투기 등의 내로남불이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계에 만연해 있음도 시인한다. 청년들을 위한 정책을 너나없이 내세우면서도 정작 청년들의 동의를 얻지는 못한다. 정치적 무관심이나 정치 혐오의 원인을 제공한 자가 오히려 그 무관심과 혐오를 비난한다. 차려 놓은 밥상에 먹을 것이 없어도 40대 이상은 몸을 생각하거나 일을 하기 위해서 숟가락을 든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밥을 먹지 않고 밥상을 떠난다. 전국 15개 대학 학생들이 윤석열 정부의 중간평가 점수를 ‘D학점으로 매겼다고 한다. 학사경고감이다. 이들에게 투표 참여를 강권할 수 있는가.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옷만 갈아입은 다른 기성 정당들도 과연 학사경고를 면할 수 있을까.

젊은이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면, 이들이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대 담론과 투표 독려가 선거 때마다 반복되지만, 들러리라는 자괴감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번 총선은 더 심각하다. 달리 보면, 무관심을 강제당하거나 외면을 무관심으로 매도당한 것이다.

일탈과 반항은 젊음의 특권이다. 일탈이 병든 사회의 징후라면, 반항은 사회의 병을 고치려는 저항이다. 이들은 기성세대에 비판적이다.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보면 탈이념적이고 이기주의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진보를 요구하며 다른 방식으로 저항하는 것일 뿐이다.

특히 지금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권리를 침해하는 권위주의와 불공정에 민감하다. 이 민감성은 분노로 이어지고 논리나 집단의 매개 없이 즉각적 행동으로 연결된다. 혹자는 이것을 정동으로 설명한다. 이것은 이기주의가 아니라 각인의 자유와 평등에 핵심 가치를 두는 개인주의 본연의 모습이다. 민주주의는 각인의 자유와 평등을 전제로 한다. 민주주의의 주체는 집단이 아니라 개인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성장하거나 태어난 세대들은 M세대 중후반부터 잘파(ZAlpha) 세대를 포괄한다. 이들은 이러한 민주주의의 주체로서 오히려 그에 걸맞은 사고를 가지고 있다.

정치권은 적극적인 정치적 관심을 보이며 비판하는 2030세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정치적으로 소극적이거나 환멸을 느낀 2030세대를 비난하며 동원하려 한다. 젊은층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소수 정당들은 의회 진출 기회가 제도적으로 막혀 있다. 그럼에도 투표에 참여한다면, 2030세대야말로 대인배. 투표장에 가서 의도적으로 무효표를 찍는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이미 차려진 밥상인데, 투표 참여가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진정으로 미래를 생각하는 정치라면 지금이라도 젊은층의 비판과 실망에 주목하고 총선 이후의 미래 비전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경향 2024.04.07.

 

정치적 전환기 공무원의 역할

경제 정책 중에는 좌우 입장과는 별로 상관없는 정책이 있는가 하면 매우 민감한 정책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조세 정책이다. 감세 정책은 한국의 우파들이 목숨처럼 지키려 하고, 윤석열 정부는 특별히 더 그렇다. 한국에서 원전은 정치색이 별로 없던 정책이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에선 거의 개국공신급의 근본적 정책이 되었다. 원전을 찬성하지 않으면 이 정부에선 출세하기 어렵다. 사회적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좌우 구분이 거의 없는 정책이 되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에선 이념 정책으로 몰려 푸대접을 받고 있다.

1년 전부터 정부에서 하는 일들이 속도 조절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진짜로 할지 말지, 이번 총선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원래 공무원은 정권의 영향을 받으면 안 되지만, 현실이 그렇지는 않다. 대통령이 추진하는 주요 정책을 맡았던 공무원들이 정권교체 후 곤경에 처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국정과제는 공무원들이 맡고 싶지 않은 정책이 되었다.

꼭 정권이 바뀌어야만 공무원이 불이익을 받는 것도 아니다. 현 정권에서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으로 여러 문제가 발생하자, 결국 차관급 인사 3명을 동시에 교체하였다. 문제는 대통령이 일으킨 것인데, 책임은 실무진이 지게 되었다. 인사 불이익 정도가 아니라 감사원 감사는 물론 사법처리까지 가게 되는 경우도 발생하다 보니, 공무원들이 현 정권은 물론 다음 권력의 눈치도 봐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 결과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는 느림보 행정이 판을 치게 되었다. 게다가 순환 보직 체계니까, 정치적으로 문제 될 것 같은 자리를 하루빨리 피해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고 하는 양상도 나타난다. 용산에서 관심 갖는 정책을 다뤄야 하는 부서는 부처 내에서 이제 험지이고 기피 부서다.

적극 행정유행 속 현실은 복지부동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이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도록 하자는 논의는 IMF 외환위기 직후 한동안 유행했다. 누가 정책을 검토하고 입안했는지를 적극적으로 남겨서 책임지게 하자는 정책실명제 논의가 있었다. 도대체 누가 무엇을 잘못해서 전 국민이 외환위기 같은 큰 재앙을 만나게 되었는지 밝히자는 취지였다. 그렇지만 잘못된 정책이 처벌을 받는 제도가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지금도 과정상 편법이나 불법에 대해 처벌을 하지, 정책의 잘잘못으로 처벌을 하지는 않는다.

요즘 행정학에서는 적극 행정이라는 용어가 유행이다. 처음 벌이는 일을 제도화하거나 남들이 안 했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다 보면 규정이나 제도가 미비해 피치 못하게 편법이 벌어지게 된다. 이런 것을 적극 행정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해석하고, 뇌물 등 악성 불법이 아닌 사소한 편법 정도는 처벌하지 말고 넘어가자는 의미다. 과거의 모든 것을 먼지 털듯 털어내던 감사행정에서도 적극 행정 개념을 도입하는 중이다. 그렇지만 이건 학술 차원에서의 논의이고, 현실은 과거식으로 표현하면 복지부동에 더욱더 가까워졌다.

한국은 공무원의 정치 참여에 대해 매우 엄격하다. 프랑스나 독일은 공무원의 정치 참여가 폭넓게 허용되고, 다만 자신의 직무에 대해서만 중립성과 공정성의 의무가 요구된다. 미국은 폭넓은 자유를 규정하는 수정헌법 제1조에 의해 특수한 신분의 사람이 정당에 가입하는 것을 제한할 수 없다. 유럽만큼은 아니더라도 공무원의 일정한 정치 행위가 가능하다. 우리는 너무 기계적으로 공무원들에게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는데, 민주주의 원칙에 맞지 않는 군사정권 시대의 엄격한 잣대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다. 자연인으로서 정치적 소신을 갖는 것과, 정부 방침에 따라 공정한 행정을 하는 것이 충돌하지는 않을 정도로 사회가 발전했다.

공직자들 국민만 보고 간다필요

4·10 총선 결과에 따라 정책 환경이 요동칠 것이다. 그렇지만 국민의힘이 국회선진화법을 넘어설 수 있는 180석을 차지하지 않는 이상, 여당이 일방적으로 법을 통과시킬 수 없는 것은 지금과 마찬가지다.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야당과 대화와 타협을 통해 입법 환경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대통령 스타일상 야당과의 대화와 협력은 기대하기 어렵다.

정치적 격변기가 다가오고 있다. 이럴 때 직업 관료들이라도 정부 시스템을 정상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용해야 한국이 지금의 경제위기를 넘어갈 수 있다. 고물가, 세수 부족, 산업 경쟁력 확보 등 시급한 문제들이 많다. 많은 정치인들이 습관적으로 국민만 보고 간다고 말한다. 지금의 공무원들이야말로 국민만 보고 간다면서 일해야 할 시기다. 언젠가 국민들이 진심으로 공무원들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순간이 오기를 희망한다.

우석훈 경제학자 경향 2024.04.07.

 

22대 총선, ‘윤석열-조국 대전에서 빠진 것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선거라는 말이 있지만, 이번 총선만큼 엎치락뒤치락이 심한 선거가 또 있을까. ‘정권 심판구호로 야당 우위에서 시작됐지만, ‘한동훈이란 스타 장관의 때이른 등장으로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민주당의 공천 파동은 역풍을 태풍으로 만들었고 선거를 한 달 남긴 시점엔 판세가 국민의힘 쪽으로 기울었다. 대통령 부정평가가 60%를 넘나드는데도 여당 압승이란 여론조사 결과가 계속되었고 국민의힘 170이란 예측까지 나왔다. 그때 ‘3년은 너무 길다는 구호와 함께 조국 전 장관이 짜잔하고 나타났다. 태풍의 방향이 다시 바뀌고 쓰나미로 변했다.

22대 총선은 윤석열 대 조국의 전투가 되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으로 격돌했던 두 사람의 2라운드다. 1라운드는 조국의 패배였다. 내로남불, 위선이란 비난의 화살을 맞으며 조국은 권력의 최고층에서 밑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2라운드는 아직 대법원의 판결을 남긴 조국의 화려한 부활로 시작됐다. 대법에서 2심 판결이 확정되면 2년 감옥살이를 해야 하는데도,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에 정당을 만들고 윤석열 정부에 분노하는 이들을 결집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이 퇴진하는 날 같이 의원직을 사임하겠다는 박은정 전 검사의 결기가 그들 당의 존재 이유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정치 신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개인 역량이나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기 어렵게 됐다. 이재명 대표는 쉽게 이길 선거판을 꼬이게 만든 장본인으로 많은 지지자를 잃었다. 그러므로 22대 총선에선 무대 뒤에 있지만 가끔 튀어나와 굳은 얼굴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윤석열 대통령과, 무대 전면을 뛰어다니며 매력적인 언행은 물론 주먹까지 흔들게 된 조국 대표가 주인공일 수밖에 없다.

조국에게 환호하는 수많은 국민들이 그의 위선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독선과 무능, 검찰의 압수수색 정치에 신물이 난 국민들은 그에게 지지를 보내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라는 사명과 공권력을 위임받은 검사들이 자기 조직의 안위와 권력을 위해 칼을 휘두르는 행태에 대한 비판이다. 따져보면, 조국 역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장본인일 뿐이다. 적폐청산이란 목적으로 특수부를 키워 윤석열이란 검찰 출신 대통령을 만든 데 일조한 그가 칼을 다시 칼집에 꽂아 넣겠다는 결심으로 국민 앞에 선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총선은 검찰개혁예고편이다. 이 드라마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고 잃고 있는가? 선거가 끝나야 최종 결산이 가능하겠지만, 과정에 대한 성찰도 중요하다.

첫째, 민주주의의 열망에 대한 확인이다. 스웨덴 예테보리대학 연구소가 발행한 보고서에서 한국이 독재화 국가로 지목되었다는 기사를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국민들은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음을 안다. 방심위가 내리는 언론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조치들, 사장이 바뀐 방송사에서 하루아침에 사라진 프로그램과 기자, 앵커들. 청년들이 억울하게 생명을 잃었지만 진상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외면당한 이태원 참사와 해병대 채모 상병 사건, 국회에서 수많은 논쟁을 거쳐 통과됐지만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사라져간 법들, 대통령 부인이 명품백을 받는 영상이 전국에 송출됐지만 내 일이 아니라는 검찰. 지난 2년간 민주주의가 무너져 간 장면들이다.

둘째, 여성·청년·노동자·장애인·성소수자·이주민 같은 비주류·소수자의 인권이 검찰개혁이란 블랙홀에 휩쓸려 실종됐다. 선거 때면 포장이든 양념이든 이들의 권리 신장 정책이 나오고 영혼 없는 목소리일지언정 전파를 탔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런 목소리들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또 다른 퇴행이다. 사회적 비주류·소수 집단의 참여가 더 깊은 민주주의의 핵심 요인이라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얇고 피상적이다.

셋째, 여성의 인권은 더 훼손되었다. 김준혁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막말이 대표적이다. 일본군 위안부는 어떤 의도에서도 조롱이나 농담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화여대 졸업생에 대한 모욕은 여성혐오의 끝판왕 수준이다. 민주당의 민주’, 그들이 지향한다는 진보는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선거의 소용돌이가 지나면 깊이 자성해 보기를 권한다.

22대 총선은 지역구 공천에서 오법남’(50대 이상, 정치인과 법조인, 남성)80%를 넘는 불균형 속에서 진행된다. 이런 인적 구성에서 평등하고 공정한 의정을 기대하긴 어렵다. 백래시 시대, 검찰개혁 이후까지 생각하는 투표가 필요하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경향 : 2024.04.07.

 

의사들 돈 좇게 만든 나라, 국민 돈 터는 민영보험

그 많던 전문의들은 어디로 갔나

2010년 이후 10여년간 상급 종합병원은 1500명가량 의사가 늘어난 반면, 의원급 종사자는 1만명가량 늘어났다. 매년 3000명가량 배출한 의사 대부분이 개원의가 된 셈이다. 그 결과 중환자를 돌봐야 하는 병원에서는 의사, 특히 전문의 구하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왜 한국에서는 전문의들이 개원의가 되는 걸까?

우선, 대형병원들은 수익성이 낮은 진료과목의 전문의를 고용하지 않는 추세다. 대표적으로 흉부외과, 뇌신경외과, 소아과가 이에 해당한다. 응급환자가 늘어도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더 고용하지 않는다. 응급실 뺑뺑이가 시작되는 첫 번째 길목이다.

반면 내과 계열과 통증·근골격계 의사들은 병원이 고용하려고 해도 개원가 소득이 높아 구하기가 쉽지 않다. 개원가는 영양주사, 도수치료, 비급여 시술 같은 것들로 수익을 창출할 여지가 많다. 피부·미용 시장의 팽창도 원인이고, 탈모, 비만, 영양 등 이른바 관리의료 시장의 창출도 개원가 쏠림을 크게 부추겼다.

지난 20여년간 의료 상업화가 의사 공급의 불균형을 심화시킴에도 불구하고, 이를 바로잡아야 할 정부들은 모두 의료 선진화”, “신성장 동력운운하며 의료 시장화를 가속했다. 의료 시장화의 천국인 미국을 제외하고, 복지제도로서 의료에 대한 이해가 있는 나라 대부분은 신의료기기나 치료 재료를 그 효능과 위험도를 엄밀하게 평가해 규제하는 데 반해, 한국은 신의료기기에 대한 안전성 평가를 무조건 간소화해 왔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안전성 평가는 나중에 하고 시장에 먼저 진입시키는 선 진입, 후 평가까지 추진한다. 그래서 개원의들이 할 수 있는 비급여 시술의 종류와 양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공급자 주도의 도덕적 해이인 것이다.

사례를 하나 보자. 지난해 7월 허가된 무릎관절 자가골수줄기세포 주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광고를 통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3만원짜리 연골주사와 비교해 별 차이도 없는 치료 대안이 규제도 없이 광고로 퍼지는 것도 문제지만, 환자들이 내는 수백만원이 의사들의 영리적 개원가 쏠림을 부추겨 의료 공급구조를 왜곡시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두 번째 핵심적 문제가 바로 여기서 시작하는데, 이런 고가의 비급여 치료가 빠른 속도로 퍼지게 만드는 민영의료보험 시장의 엄청난 확장이다. 4000만명 이상 가입한 실손의료보험은 이런 비급여 시장을 창출하는 미다스의 손이다. 비급여 진료를 중심으로 하는 병·의원들이 실손보험 가입 여부를 물어보는 것은 상식이다. 자궁근종 치료 등에 선택적으로 활용되는 수백만원의 하이푸 치료도 의사가 아닌 상담사가 실손보험 가입 여부를 묻고는 적극 권유한다. 보험상담사가 무릎관절 유전자 치료제로 광고했던 수백만원짜리 가짜 약 인보사도 같은 사례다. 모두 실손의료보험이 없었다면 쉽지 않은 일들이다.

이 와중에 윤석열 정부는 실손의료보험 이용을 장려하는 실손보험청구간소화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오는 10월부터는 민영보험사가 환자 개인의료정보를 축적해 보험사에 이익이 되도록 보험 가입과 보험금 지급에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의료기관은 실손보험 가입자에게 낭비적 진료를 더 늘릴 것이다. 엄청나게 증가하는 비급여 시장은 의사와 정부 모두 책임이 있다.

시장 중심 공급구조로 비급여 진료를 부추기고 실손보험을 활성화하는 정책은 한국 의료를 기형적으로 만드는 원인의 원인으로 작동해 왔다. 그 결과 응급, 중환자, 수술 진료에 집중해야 할 의사들의 개원 붐이 일어, 이제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들도 집단 개원을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일차의료기관 역할을 해야 할 동네의원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무한 시장 경쟁으로 내몰려 고가 임대료와 인테리어 비용 등을 환자 주머니에서 회수해야 하는 사업이 되었다.

따라서 지금의 의료 대란을 해결하려면 의료의 본령이 무엇인지를 논의해야 하고, 공적 사회서비스로서의 의료를 되찾아야 한다. 이제 비급여 통제, 실손보험 규제를 통해 정상적인 일차 의료로서 동네의원을 복원해야 한다. 이게 의료의 공공성이다.

마지막으로 일본도 의사들의 개원 자율권을 인정하지만 민간 사업체처럼 운영하도록 놔두지는 않는다. 강력한 비급여 규제인 혼합진료 금지가 사회적으로 합의돼 있어 일본 의사들은 비급여가 아니라 필요한 의료행위는 모두 급여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혼합진료 금지는 영리적인 한국의 외래진료 서비스를 바로잡을 최소한의 조치다.

정형준 |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재활의학과 전문의 한겨레 : 2024.04.09.

 

우리는 기억하겠다

, 심하다.” 절로 탄식이 나왔다. 꽃들이 만발한 4월 첫 토요일, 고속도로는 아예 주차장이었다. 나들목 나가기 전 1.5킬로미터에서 족히 한 시간 반은 걸렸다. 안절부절못하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으리라. 누군가 말했다. “조바심 내지 말아요. 안산 가는 길이 어디 쉽겠어요.”

우리동네 합창단 파노라마는 지난 토요일, 안산에서 연습을 했다. ‘그날이후 열번째 봄이다. 오는 416일 오후 3, 안산에서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식이 열린다. 마지막 순서가 기억합창이다. 유가족과 시민이 만든 4·16합창단, 전국·세계 곳곳에서 온·오프라인으로 참가하는 시민합창단 4160명이 함께 노래한다. 우리도 함께하기로 했다. 지난 토요일은 합동연습의 날이었다. 4·16합창단의 박미리 지휘자는 노랫말마다 곡조마다 뜻과 사연을 들려주며 우리의 노래에 영혼을 불어넣었다.

연습 후 단원고 가까운 4·16기억전시관을 찾았다. 세월호 참사 후 인근 다섯 마을의 변화를 알려주는 마을의 4·16’이라는 전시였다. 일동마을에서는 매주 촛불을 들었고, 사동은 청소년 공간을 만들었다. 반월동은 매달 기억밥상을 차렸다. 희생자가 두번째로 많았던 와동에서는 미안한 마음에 주민들이 분향소 앞을 지나가지 못했다. 어렵사리 모인 주민들은 펑펑 울었다. 이윽고 이웃대화모임을 만들었고, ‘주민한마당’, ‘마을학교로 이어졌다. 100명 넘게 희생된 고잔동에서는 영구차와 언론사 차량 들이 늘 북적댔다. 징글징글하다는 말이 나왔다. 이듬해 봄, 사람들이 기억꽃집을 열어 꽃을 나눴다. 꽃집이 고잔동으로, 온 안산으로 퍼졌다. 꽃같이 예쁜 아이들을 기억하는 4월이 됐다. 재난은 깊은 고통으로 지역을 갈랐지만, 마주 잡은 손, 부둥켜안은 가슴도 낳았다. 그렇게 공동체들이 탄생했다.

우리동네 합창단 파노라마도 그렇게 태어났다. 가슴 먹먹하던 그 봄에 평범한 동네 사람들이 분향소를 만들고 촛불을 들었다. 아이들 생일상을 차리고 유가족 이야기를 들으며 울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어색하게 노래 부르며 행진도 했다. 세월호가 던진 질문을 새기며, 뭐라도 하자고 다짐하곤 했다. 막 태동하던 마을이 세월호를 만나며 조금 단단해졌다. 이듬해 6, 모이면 술만 마신다며 핀잔 듣던 동네 남자들이 중창단을 만들었다. 여성들도 합류하며 합창단이 됐다. 꽃을 나눈 안산의 마을 사람들처럼 지역에서 노래를 나눴다.

영원한 것은 없는 법, 코로나를 거치며 출석률이 떨어졌다. 계기가 있을 때 모이자며 시즌제로 바꿨다. 시즌제 첫 활동이던 작년 가을에는 지역의 이주노동자센터 10주년 때 축하공연을 했다. 신곡도 불렀다.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노래하고 음식을 먹으며 친교를 나눴다.

올해 초 세월호 참사 10주기 시민합창단 모집 공고가 나오자 이심전심 참여에 뜻을 모았다. 끼리끼리 알던 멤버의 벽을 허물고 새 단원도 모집했다. 신도시 전부터 살던 원주민들이 왔는데, 우리 동네 초등학교 선후배라니 신기했다. 나고 자란 동네에 이사 온 이들이 누군지 궁금했다며 그이들도 신기해했다. 소식 듣고 찾아온 남성은 합창단 경력이 오래라더니 과연 남성들의 화음이 아름다워졌다. 이주민도 왔다. 동네 협동조합 책방 직원인 일본인 여성은 여덟살, 다섯살 딸들이 하자고 졸랐다며 웃었다. 이주노동자센터의 미얀마어 통역 여성도 딸과 함께 참가했다. 미얀마도 큰 아픔을 겪고 있어서 세월호의 슬픔이 남 일 같지 않다는 말에 서로 마음이 이어졌다. 지역에서 장애인권 활동을 해온 수어통역사는 수어로 노랫말을 전한다. 이사 갔던 이웃도 아들을 데리고 왔다. 마음이 아프던 아들은 이제 많이 나아서 함께 씩씩하게 노래 부른다. 그사이에 일자리도 얻어서 합창단에 기쁜 소식이 됐다. 각양각색 스물다섯명이 함께 세월호를 기억하며 노래하고 있다.

함께 부를 모음곡 세월의 울림은 어떤 노래일까? 첫 곡 가만히 있으라가만 가만 가만히 거기 있으라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기울어진 하늘을 바라보며 보고픈 엄마 아빨 불렀을아이들을 떠올리면 처음부터 목이 멘다. 가만히 있으라는 권력에 맞서 10년을 싸워온 가족들 덕분에 세상이 조금 움직였다. 다음 곡은 네버 엔딩 스토리.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 가기를그리움의 말이 사무친다. 그리고 가슴에 찍힌 불도장 화인을 부른다. “눈물을 털고 일어서자고 쉽게 말하지 마라는 가족의 절규에, “이제 4월은 내게 옛날의 4월이 아니다라고 우리도 응답한다. 더는 옛날의 우리일 수 없다며.

이윽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를 부를 차례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던 다짐대로 가족들은 안간힘을 쓰며 버텨냈다. 시민들도 뜨겁게 연대했다. 사상 최초의 특별법 제정으로, 특조위·선조위·사참위 등 위원회 설립과 조사로 이어졌다. 한계도 많았지만 세월호 참사가 배 한 척의 침몰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참담한 실패였음을 깨닫게 했다. 그리고 잊지 않을게를 부른다.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절대로 잊지 않을게”, 이 다짐 앞에서는 어떤 말도 군더더기일 뿐이다. 마지막은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세상의 슬픔들에 슬픔으로 손을 내민다. 슬픈 이들이 있는 곳이면 가족들은 어디든 찾아갔고, 세상의 끝에서 함께했다. 노래는 종결의 뉘앙스 없이 4도 화음으로, 4박자가 아니라 3박자째에 불현듯 끝난다. 이 싸움이, 이 그리움이 결코 끝날 수 없다는 듯이.

세월이 가면 기억은 희미해지지만, 세월호의 기억은 세월과 함께 자란다. 10년이 되니 더 선명해졌다. 별이 되고 꽃이 된 이들이 더 빛나는 것처럼. 그날 우리는 보았다. 침몰하던 큰 배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이들을. 그날 우리는 보았다. 침몰하던 한국 사회를. 우리는 또 보았다. 안산에서, 전국 곳곳에서 희생자를 추모하던 끝없는 줄을. 스스로 만들어낸 거대한 애도의 공동체를. 그리고 함께 만들어온 기억들을. 그날 이후 기억하겠다는 말은 한국어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었다. 그것은 고통에 잠긴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이면서, 범박한 일상에 젖어가는 부끄러운 나를 깨우치는 다짐의 말이 됐다. 그래서 오늘 감히 말한다. 기억하겠다.

조형근 | 사회학자 한겨레 : 2024.04.09.

 

사회적 정의가 치유

4월에는 정의가 넘쳐나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치유되지 않을 날들이 너무 많다. 4월에는 기억이 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잠에 이르지 못할 날들이 너무 많다. 4월에는 꽃이 피는 이상으로 만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혼자 아파야 할 날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4월에는 고백과 사과와 위로와 연대로 날들이 계속되어야 한다. 4월에는 마음이 슬프고 고통스러운 날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50년간 마음의 트라우마 영역에서 일해왔던 정신과 의사 주디스 허먼은 과거에 <트라우마>라는 책에서 트라우마 환자들의 치료는 모두 3단계 과정으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했었다. 그 치료의 3단계는 안전 되찾기, 지지망 다시 만들기, 그리고 새로운 현실의 삶과 재연결하기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허먼은 3단계 치료 이후에도 애도가 좀처럼 끝나지 않고 상처가 덧나는 환자 그룹을 지속적으로 만났다. 허먼은 그의 새 책 <진실과 회복>에서 4단계를 제시했다. 환자들이 피해에 대한 사회적 정의가 흔들릴 때마다 아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4단계는 정의를 되찾기이다.

정의를 되찾지 못하면 사람들이 충분히 치유되지 않는다. 정의의 회복이야말로 영혼을 쉴 수 있게 해준다. 마음의 트라우마는 왜 정의가 중요한 치유 요인일까?

그것은 원인이 사회적 위계에 있거나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 즉 트라우마의 발생에 정의롭지 않은 부분들이 관여되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를 일으킨 사회적 사건에 거대한 권력들의 부정의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끝없이 개인화하고 고유화하고 최소화한다. 피해자들에게 있어 가해 행위는 구조적 정의의 문제이며, 이 문제를 풀어갈 힘은 미약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회복 과정에서 정의와 관련된 아주 중요한 진심 어린 사과를 받지 못한다. 진심 어린 사과란 인정하기, 사죄하기, 책임지기로 이루어졌다. 많은 피해자단체들이 진심 어린 사과를 받는 것을 보는 일이 여전히 우리에게는 희망이다.

우리는 사회적 위계나 시스템은 원래 안전하게 설계되었을 것으로 믿는데, 이 기본 전제가 깨지면 사람들은 큰 트라우마를 받게 된다. 피해자보다 센 권력, 혹은 거대한 국가권력이 가해자이면 사람들은 개인적 자유 권한의 행사도 힘들어진다. 이 거대한 권력과 마주해서 진실을 회복하기로 결심한다는 일은 한 개인과 집단의 엄중한 사명이 된다. 홀로코스트와 집단 트라우마를 다루어온 로버트 제이 리프턴은 트라우마의 사회적 정의를 되찾기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은 생존자로서의 사명을 갖게 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사회적 트라우마가 클수록 피해자, 생존자들은 많아지고, 사회적 정의에 대한 요구는 높아진다. 416생존자는 416가족이라는 직접적 생존자들이 있고, 그날 세월호 안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리지 못한 채로 그 방송을 끝까지 함께 보던 어른 목격자들, 즉 엄청난 수의 국민이자 부모였던 목격자들, 생존자들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수 국민 모두가 케네디 모멘트라고 부르는, 10년 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10주기가 다가왔다. 416가족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사과에 대한 구호를 여전히 외치고 있다. 또한 사회적 정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안전한 사회와 생명이 존중되는 사회도 주장한다. 세월호 가족뿐 아니라 다른 재난 피해자들과 뭉쳐 재난피해자권리센터를 만들기도 하였다. 세월호 가족의 사명은 우리 사회의 치유와 희망이 되고 있기도 하다.

트라우마의 회복은 정의의 회복으로 치유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만일 정의가 치유하지 않으면 우리 삶은 부서진 채로 살아가야 한다. 사회적 정의를 함께 만드는 것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것만이 가장 중요하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경향 : 2024.04.09.

 

악화일로의 한러 관계를 우려한다

-러 관계가 지속적으로 악화하는 가운데 러-북 관계는 날로 긴밀해지고 있다. -러 관계는 수교 이래 최저점을 갱신 중이다. -러 간의 날 선 공방은 일상화되었다.

필자는 냉전이 끝나가던 1980년대 말, 젊은 외교관으로서 한-러 수교 업무의 주무를 맡아 보았다. 그런 연고로 추락하는 지금의 양국 관계를 보는 필자의 소회는 착잡하기 그지없다. 당시 러시아는 개혁 개방으로 탈냉전 시대를 열고 서방과 관계 개선을 하려는 나라였다. 남북한과의 관계에서도 한국을 더 중시했다. 그러나 이후 러시아는 미국을 위시한 서방이 러시아를 지속적으로 약화시키려 한다고 인식하여,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남북한과의 관계도 조정했다. 그러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다. 한국은 서방의 제재에 동참했다. 반면 북한은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래 한·미와 대결을 심화하다가, 러시아를 지지하고 연대를 표방했다. 더욱이 북한과 러시아는 미국의 패권주의와 적대시 정책의 피해자라는 동류의식을 갖고 있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한국의 새 정부는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일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길에 나섰다. 역내 미국 주도의 안보연대에 극도의 경계심을 보여온 러시아는 북한과 손잡고 본격 대항하기 시작했다. 작년 러-북 정상회담을 통해서다. 무엇보다도 러-북은 군사협력을 부각시켰다. -북 간에 무기와 기술이 거래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거래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 배치되는 데도, 러시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러시아는 미국이 리드하는 역내 세력연대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그 대응방식에 제약은 없다는 점을 각인시키려는 듯하다. 사실 과거에 러시아는 민감 군사기술을 북한에 이전하는 데 신중했다. 그러나 미-러 대립이 극심한 지금 러시아는 미국을 자극하는 데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금처럼 러-북 협력이 지속되면, 우리 안보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친다. 첫째로 러시아의 비호 아래 북한이 핵미사일 능력을 발전시킨다. 안보리 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 기능정지에서 보듯이, 러시아가 나서 안보리 제재 체제를 지속적으로 손상시키므로 북한이 제재를 회피할 여지가 커진다. 그러면 북핵 문제 해결은 더 멀어진다. 둘째로 러-북 군사협력은 북한의 재래식 전력을 향상시켜 도발 가능성을 키운다. -북 정상회담에서 위성 관련 협력 합의가 나온 이후, 북한은 실패를 거듭하던 정찰위성 발사에 성공했다. -북이 잠수함, 전투기 분야에서 협력할 가능성도 있다. 셋째, -북 안보협력의 차원이 격상될 수 있다. -북은 푸틴 대통령의 북한 방문 계기에 지금보다 격상된 안보협력 관계의 법적 기초를 공표할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러-북이 캠프 데이비드 합의보다 진화된 안보협력 합의를 내놓는다면 북한은 고무될 것이다. 넷째로 러-북 관계 강화는 중-러 연대와 맞물릴 소지가 상당하다. 결과적으로 한반도 주변에 한··일 대 북··러의 대립선이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자칫하면 한국은 냉전시대처럼 서방 진영의 최전선에서 러시아, 중국과의 대결을 감당해야 할 수 있다. 그러면 한국의 주요 외교 과제인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추구의 길이 막힌다. 러시아와 중국이 방해하고 나오면 이 작업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절한 대처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목표는 러시아가 안보리 결의를 무시하고 북한과 군사협력을 하여 우리 안보를 저해할 가능성을 억제함으로써, -러 관계의 파탄을 막고 관계 복원의 길을 여는 것이다.

대처 방향과 관련하여, 한국 내에는 중국이 러-북 연대를 못마땅해 할 것이라는 전제에서, 중국을 활용하여 러-북 협력을 제어했으면 하는 기대가 있다.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중국이 러-북 밀착을 달가워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중국이 좀처럼 러시아를 견제하고 나서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는 중국에 러시아와의 연대는 중요하고, 중국 또한 북한 관련 안보리 결의에 열의가 별로 없다.

그러나 만일 미국이 중국과 분야별로 협조할 전략적 의도를 갖고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하여,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미-중 간 협조 사안으로 분리해 낸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그 때 한국은 그 상황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미-중 간의 전면적인 경쟁 대립 상황이 바뀌어야 한다. 문제는 지금의 미-중 관계에서 이것이 가능할 지이다.

다음으로 한국이 나서서 러시아와 교섭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국내에는 한국이 한-미 동맹 강화, -일 관계 개선, ··일 안보협력을 이뤘으니, 이제 고양된 입지에서 러시아와 대화를 하여 문제를 풀어가면 된다는 다소 태평한 순차적 대처 구상이 있다. 그러나 첨예한 미-러 대립 때문에 한-, ··일 관계 강화가 즉각 한-러 관계에 악재가 되는 환경에서, 그것도 러시아가 작심하고 대항하려는 상황에서, 단순한 순차적 대처가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비근한 예가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교 차관의 방한이었다. 루덴코 방한은 한-러가 고위급 양자대화를 통해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어렵사리 준비한 것이었다. 그러나 때마침 터진 러시아 외무성 대변인의 한국 비난 발언과 뒤이은 상호간의 치고받기로 나쁜 분위기가 조성되는 바람에 루덴코 방한은 휩쓸려 가버렸다. 이처럼 지금 한-러 양자대화를 저해할 악재는 차고 넘친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사정은 우리에게 좀 더 전략적이고 조직적인 접근을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단순한 순차적 대처 대신, 처음부터 우리의 대미국, 대러 관계 전반에 대해 통합되고 조율된 전략을 세워 총체적(holistic)으로 접근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된다. 그 전략 속에는 대미 공조 수위는 어느 정도이며, 대러 외교 공간은 어느 만큼인지가 담긴 한국형 좌표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 러시아가 진지한 대화에 응할 가능성이 커지고, 대화가 성과를 낼 개연성도 커질 것이다.

이러한 전략을 기초로 몇 가지 세부 전술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연성 전술인데, 한국이 러시아에 대한 대미공조의 수위를 약간 조정한 뒤, 거기에서 생기는 운신 여지를 갖고 러시아와 기본적인 교류를 유지하면서, 이를 지렛대로 러시아의 행보를 억제하는 방안이다. 둘째는 경성 전술인데, 러시아가 고도로 경계하는 조치까지 열어놓고 이를 카드로 활용하면서 강하게 만류하는 방안이다. 만일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면 미국의 대러 정책이 크게 바뀔 것이므로, 우리가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공간이 늘어날 것이다.

한국에 한··일 공조를 하면서 북··러와의 관계를 관리하는 일은 당위적이면서 딜레마적인 난제이다. 이제 러시아가 북한과의 연대를 치고 나왔으므로, 우리로서는 대응을 미룰 수 없다. 그런데 이미 악화된 관계 여건 때문에, 이렇다 할 방략 없이 단순히 한-러 고위급 대화를 해서는, 러시아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고 반전의 전기를 잡기도 어려워 보인다. 무언가 새로운 접근 방법을 고려해야 할 때이다.

위성락 | 전 주러시아 대사 한겨레 : 2024.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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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에서 민주화운동까지

김성숙 (1898~1969)

젊은 시절 스님이었다. 19193·1운동 때 체포되어 옥살이를 했다. 감옥에서 나온 다음에는 노동운동을 했다. 1923년에 유학을 구실로 중국 땅에 건너갔다. 고려유학생회를 이끌며 학생운동을 했고 의열단에 들어갔다. 중국 공산당의 무장 봉기에 참여하기도 했다.

열혈 청년김성숙은 1930년대 후반에 대중정치로 노선을 튼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한다. 그렇다고 자기 과거를 부정하고 반공 노선으로 전향한 것은 아니다. 1945년 해방 직전에 이승만이 소련을 맹렬히 비난하자 김성숙은 이를 비판한다. 이렇게 이승만과 척을 진다.

194512월에 한국 땅에 돌아온다. 중국 땅의 가족과 헤어진 다음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 해방공간에서 좌파와 우파가 손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여운형 선생과 김규식 박사가 추진하던 좌우합작운동을 적극 지지했다.” 1946년에는 미군정을 비판했다는 구실로 여섯 달 옥살이를 한다.

그러다가 남한에 우파 단독정부가 수립되자 김성숙은 현실을 받아들인다. 6·25 전쟁이 터지자 남쪽에 남기를 택한다. 그렇다고 극우 정권과 야합한 것은 아니다. 한결같이 야당 정치인으로 살았다. 이승만의 독재를 비판했다. 조봉암이 진보당을 창당할 때 관여했다. 1957년에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여섯 달 동안 옥살이를 한다.

4·19 혁명으로 이승만이 쫓겨난 뒤에도 혁신계 정당 운동의 고된 길을 택했다. 5·16 쿠데타가 터진 다음 또 잡혀가 열 달 동안 옥살이를 했다. 1960년대 후반에는 대중적인 야당 활동을 했다.

김성숙은 이상주의에서 현실주의로, 무장투쟁에서 의회정치로, 비밀조직활동에서 대중운동으로 노선을 바꾸었다. 그렇다고 옛날에 운동했던 자기 과거를 팔아 반공주의자로 전향하지 않았다. 김성숙은 끝까지 권력과 타협하지 않았다. 말년에 생활고에 시달렸다. “돌이켜 생각할 때 소위 나랏일을 한답시고 집안 살림을 돌아보지 못하여 폐를 끼치니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탄식했다. 세상을 떠난 날이 1969412일이다.

김태권 만화가 한겨레 : 2024.04.10.

 

자율규제, 봄꽃과 지옥 사이

자율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지배나 구속을 받지 않고 자기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어떤 일을 하는 것을 뜻한다. 영어(autonomy)로는 자기 자신을 뜻하는 그리스 단어의 합성어로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법을 부여한다는 의미다.

인터넷 세계가 펼쳐진 뒤 그 안에 난무하는 글, 이미지, 영상, 거래 등을 자율규제에 맡겨둘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줄곧 이어져왔다. 1996년 미국이 통신품위법(the Communication Decency Act)을 제정했을 때는 인터넷 기업들이 자율규제를 통해 문제 있는 콘텐츠를 걸러낼 수 있는데 국가가 이를 직접 결정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논쟁이 불붙었다.

국내에서는 문재인 정부 시절, 온라인상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갖는 플랫폼의 갑질을 척결한다며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규제를 별도로 강화하려 해 그 필요성에 대해 정치적 토론이 불붙었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논의를 뒤로한 채 자율규제를 국정 기조로 들고 나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에는 자율규제라 이름 붙은 기업과의 회의가 이어진다.

지난해부터 기승을 부리고 있는 온라인 유명인 사칭 범죄는 우리가 실행하고 있는 자율규제의 밑바닥을 드러낸다. 너무도 뻔뻔하게 페이스북 광고에서, 유튜브 영상에서, 네이버 밴드나 카카오톡 오픈채팅에서 나를 사칭해 사기를 치고 있는 이들을 본 피해자들이 해당 플랫폼 기업에, 경찰에, 검찰에, 규제당국에 신고도 해보고 호소도 해봤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유명인 피해자들이 기자회견까지 나서고야 방통위는 기업들에 자율규제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기업들은 한숨을 쉰다. “폐쇄형 커뮤니티 안의 대화까지 다 엿볼 수도 없고 진짜 사칭인지 여부를 수사할 권한도 없는데 기업이 무슨 수로 가짜 콘텐츠를 다 막느냐는 것이다.

이런 정부의 자율규제 요청은 다크패턴(눈속임 상술),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 등 수많은 분야에서 이어지고 있다. 최근 과기정통부는 이동통신 3사 등 메타버스 업계에 아바타 성추행과 같은 비윤리적 행위 방지를 위한 자율규제를 요청했다. ‘자율은 봄꽃처럼 아름다운 단어이나 그저 그 뒤로 숨고자 하는 이들이 늘어간다면 한순간에 무질서 지옥을 불러올 수 있다.

임지선 빅테크팀장 한겨레 : 2024.04.10.

 

누구를 위한 부담금 정비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16일 국무회의에서 자유로운 경제 의지를 과도하게 위축시키는 부담금은 과감하게 없애나가야 한다며 부담금 정비를 주문했다. 이에 소관 기관들은 정비 방안을 마련해 기획재정부에 제출했고, 조정을 거쳐 지난 32732개에 달하는 부담금 폐지(18) 또는 감면(14) 방안을 발표했다.

우리나라의 부담금 규모는 2023년 말 기준으로 9124조원에 이른다. 혹자들은 부담금을 준조세라고 부른다. 부담금은 무엇이고 왜 납부하게 될까? ‘부담금관리기본법에서는 부담금을 반대급부 없이 특정한 공익사업 수행을 위해 조세 외에 공공주체가 부과하는 금전지급 의무라고 규정한다. 부담금에는 사용료, 이용료, 분담금, 부과금, 부담금 등 종류도 다양하다.

정부는 이번 부담금 정비 배경으로 국민의 체감 부담을 완화하고(8), 기업 경제활동을 촉진시키고(11), 경제·사회 여건이 변화했다는 점과 실효성이 미흡(13)하다는 점을 꼽는다. 정부 주장대로 국민 부담을 일부 덜어주는 방안이 있지만, 그보다는 기업에 과도한 특혜를 주거나 환경 문제를 등한시하는 폐지·감면안이 더 눈에 띄는 게 사실이다.

이번 부담금 정비 방안의 문제점은 크게 환경적 측면과 재정적 측면으로 나눠볼 수 있다. 환경적 측면에서 볼 때, 우선 정부가 그동안 기후위기의 대책으로 마련했던 대책들과 상충한다. ‘농지의 효율적 보전·관리 및 산림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뒷받침한다는 이유로 농지전용부담금과 대체산림자원조성비의 부과요율을 인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가뜩이나 농지면적이 감소하고 있는 현실에서 비농업진흥지역의 부담금을 감면하는 것은 무분별한 개발을 장려하는 것과 같다. 특정물질 제조·수입부담금에서 특정물질 제조·수입업자의 영세성을 감안해 제2종 특정물질(수소불화탄소가스)에 대한 부과요율을 인하한다는 방안은 더 큰 문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234‘2024년부터 지구온난화 물질인 수소불화탄소가스를 감축할 예정이라고 밝힌 지 1년도 되지 않아 정책이 후퇴한 것이다.

재정적 측면에서도 문제가 적지 않다. 첫째, 부담금 경감 내지 폐지에 따라 감소하는 재원에 대한 언급이 없다. 정부는 이번 부담금 정비로 2조원이 감소한다고 했다. 각각의 부담금은 기금이나 특별회계 등에 사용되어왔다. 환경개선금은 환경부 소관의 환경개선특별회계, 개발부담금은 해당 지자체와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의 재원으로 쓰인다. 둘째, 이번 정비 방안에 따라 지방자치단체 세입예산만 5600억원가량 감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감소액이 특정 지자체에 집중된다는 점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지방 세수가 급감한 상황이라 이들 지자체는 살림살이가 더욱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셋째, 정부 발표와 달리 국민이 체감하는 경감액은 미미한 반면 기업 부담은 크게 줄게 된다. 일반인은 출국납부금(110007000) 외에 감경되는 금액이 소액에 그친다. 영화관람료부담금은 영화 1편당 500원 남짓이고, 전기료에 부과되는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은 4인 가구 기준으로 월 667원 줄어드는 정도다. 자동차사고 피해지원사업분담금은 차량 1대당 연간 600원 줄어들 뿐이다. 넷째, 민간의 공적 재정 책임을 과도하게 감면해준다. 학교용지부담금의 경우 학령 인구의 감소로 학교 신설 수요가 없다는 것이 폐지 이유다. 지역 상황에 따라 학교를 새로 지어야 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국민이 그 비용을 모두 떠안아야 한다. 전형적인 이윤의 사유화, 비용의 사회화다. 개발부담금의 경우 2024년에만 50% 감면한다지만 정부 의도대로 분양가 인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고스란히 민간개발업자의 이익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번 정비 방안이 정부 주장대로 국민 부담을 일부 완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경제적 부담의 일부 완화가 환경적 측면의 문제를 덮을 수는 없다. 영세사업자의 부담을 완화시켜주는 것이라 하더라도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또한 기업 부담의 대폭 경감은 공적 책임의 완화라는 측면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정비 방안이 발표되었다고 바로 시행되지는 않는다. 폐지되는 18개의 부담금은 법률 개정 사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정물질 제조·수입부담금처럼 시행령 개정으로 정비가 가능한 13개의 부담금은 정부 뜻대로 7월부터 시행할 수 있다. 이런 일방통행식 결정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

손종필 |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한겨레 : 2024.04.10.

 

점진적 방법으로 이뤄진 변혁

4년간 각국 혁명사가들과 진행한 혁명비교연구의 출판이 이뤄진다(2023119일자 본 칼럼 한국혁명참조). 심포지엄에서 발표했던 원고를 고치고 결론을 새로 쓰다 보니 점진적 대변혁이란 메이지유신의 특징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중국과 조선이 일찌감치 군현제로 전환한 데 반해 일본은 메이지유신 때까지 봉건제로 남아 있었다. 도쿠가와 시대 대다수 지식인들은 봉건제가 좋은 제도라며 일본 예찬 소재로 삼았다. 19세기 중반 서양의 위협 앞에서 중앙집권을 해야 할 필요가 대두하자, 그들은 일본도 봉건제에서 군현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낯선 서양 정치사상을 수입해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보단 봉건제-군현제라는, 동아시아에서 장구한 세월 그 장단점이 논의된 낯익은 정치제도에 관한 토의를 정치체제 변혁의 단서로 삼은 것이다.

민두기의 연구에 따르면 19세기 후반 청에서도 의회제 도입과 지방분권을 논의하면서, 그것은 현행 군현제에 봉건제를 가미하는 것이라는 논법을 사용했다(<중국근대사연구: 신사층의 사상과 행동>). 내가 보는 한 같은 시기 일본에서의 봉건-군현 논쟁은, 청의 그것보다 더 치열했으면 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청에서는 초강력 군현제에 봉건제의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 과제가 된 반면, 거꾸로 일본에서는 장구한 역사의 봉건제를 아예 군현제로 바꾸려는 혁명적 시도가 행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봉건영주인 다이묘(大名)들이 건재하고 그 가신단인 사무라이들이 지배계층으로 군림하는 사회에서 군현제 도입은 곧 그들의 존재기반을 허무는 일이었다. 예상되는 반발을 회피하기 위해 점진적 방법이 모색되었다. 유신을 주도한 4개 번은 왕정복고 직후 천황에게 판적봉환(版籍奉還)을 청원한다. “지금 삼가 그 판적(版籍·토지와 백성)을 거두어 바치니 원하옵건대 조정의 사정에 맞추어 줄 만한 것은 주고 빼앗을 만한 것은 빼앗아, 부디 열번(列藩)의 봉토에 조명(詔命)을 내리어 이것을 새로 정해 주시길 바랍니다.”(<판적봉환 상표문>) 왕정복고는 반드시 군현제 수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막부하의 봉건에서 천황하의 봉건으로 바뀌는 것이라는(것이면 좋겠다는) 논법이다. 천황정부는 판적은 수리했으나 다이묘를 번지사(藩知事)로 남겨두는 절충적인 선택을 했다. 명실공히 군현제로 이행한 것은 폐번치현(廢藩置縣, 1871) 때다. 당시 군현제에 대한 반발은 여전했다. 무엇보다 당시인들에게 군현제는 신분제 철폐를 의미했다. 일본인들이 볼 때 군현제의 중국은 신분과 세습이 없는 위아래도 모르는사회였다. 군현론자들은 이 난관을 어떻게 돌파했을까.

당시 일본인들에겐 서양이 새로운 모범으로 비치기 시작했는데, 군현론자들은 높은 문명을 이룬 서양 각국은 모두 군현이라는 인식을 전파했다. 프랑스를 방문 중이던 다케우치 야스노리(竹內保德)는 마르세유에서 리옹으로 가는 길에 남아 있는 성곽들을 보며, 프랑스도 봉건은 흔적만 남고 군현제를 수립했다 했고(<歐行日記>), 막부 최후의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도 영국이 과거 봉건제를 택했으나 강국이 되레 군현제를 도입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丁卯日記>). 또한 그들에게 군현제는 신분 타파, 인재 등용, 능력주의를 실현할 매력적인 제도로 점점 인식돼갔다. 군현제가 수립되면 공경(公卿)이나 문벌이라 해서 높은 관위를 차지하지 않으며, 덕망재간이 뛰어나 천하 사람들이 의지할 만한 자라면 평민 중에서라도 선발해 중책을 맡기는 사회가 되리란 것이다(<淀稲葉家文書>).

메이지유신 과정을 관찰해보면 이렇게 전통적인 정치자산을 활용하여 점진적, 절충적인 경로로 변혁을 진행시켰음을 알 수 있다. 왕이나 다이묘를 단두대에 보내는 일도, 민중이 대규모의 폭력을 행사하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 점에서 프랑스혁명이나 러시아혁명과의 차이는 분명하다.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경향 : 2024.04.10.

검사와 의사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는 국가의 비시민적 활동을 조절할 수 있는 제도다. 선거를 통해 여론이 국가에 직접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당들은 상대를 이기기 위해극한의 상징적 대결을 벌일 뿐만 아니라 유권자 전체와 공감하는 상징적 소통을 이루려 노력한다. 이런 점에서 정당도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시민사회의 조절제도다. 정당은 공약을 내걸고 표를 얻고자 하기에 되도록 이를 지키려 노력한다. 선거는 또 올 것이며, 유권자의 시민적 권력은 여전할 것이고, 상대 당의 비판도 항상 매서울 것이기 때문이다. 선출 공직이란 걸 망각한 대통령이 국가 관료제를 동원해 절대권력을 휘두를 때 정당이 나서 이를 조절한다.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이제 정당 정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요번 선거에서 분명하게 드러난 두 가지 의제에 집중해야 한다. 먼저 검사. 정치 권력이 검사 인사를 독점한다. 검사 동일체 원칙에 따라 검찰총장 1인이 전국 단일 조직으로 구성된 검찰을 지배한다. 수사, 기소, 공소 유지, 형 집행이 엄연히 서로 다른 분야인데도 검사가 모두 다 한다. 정치 검사가 마음대로 수사하고, 기소하고, 공소 유지하고, 형 집행한다. 대통령은 약속과 달리 검찰을 공정하게 운영하지 않는다. 정치를 검사와 피의자의 관계로 본다. 사람이 밉다고 제1 야당의 대표를 만나지도 않는다. 피의사실을 함부로 유출해서 피의자 국민의 자아를 완전히 까발려 사회적 죽음으로 내몬다. 우리에게 그렇게나 큰 감동을 안겨준 배우가 무참히 떠났어도 전혀 반성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의사. 병원과 치료 중심의 보건의료체계에서 재택 의료, 방문 간호, 1차 의료, 방문 건강 관리 등 지역 사회와 예방 중심의 보건의료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고령화와 팬데믹으로 이러한 사회적 요구가 더욱 강해졌다. 실제로 의료 환경의 변화로 간호사의 역할이 다양화되고 전문화되면서 의사가 수행하던 업무까지 PA 간호사가 맡아 한다. 간호조무사도 업무가 확대되면서 간호사가 수행하던 일까지 대신한다. 하지만 모조리 다 불법이다. 청년 사이에 자아 표현의 수단으로 자리 잡았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예술성을 인정받은 K타투가 불법 의료 행위라서 처벌의 대상이 된다.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초등학생이 의대에 가기 위해 미적분을 공부한다.

사회학자 파슨스는 사회가 효율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해결해야 할 배분통합의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배분은 사람들에게 희소한 보상을 분배하는 것과 특정한 지위에 인력을 배치하는 것이다. 보상의 분배와 인력의 배치는 긴장을 낳는다. 통합은 바로 이러한 긴장을 관리한다. 긴장의 잠재적 요소를 처리하고 안정과 예측 가능성을 부여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역할이 이러한 통합 업무를 주로 맡는다. 정당한 행위 유형을 규정하고, 특정한 가치 유형을 구현한다. 이렇게 볼 때 검사와 의사는 한국 사회가 효율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배분과 통합의 문제를 제기한다. 보상의 불평등과 인력의 위계적 배치가 지나치게 강고해서 사회 전체에 긴장이 극심하다.

기능은 갈수록 분화하는데 이에 맞는 전문화된 역할 체계는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검사의 경우 검경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로 통합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하나로 묶인 수사-기소-공소 유지-형 집행과정을 분화시켜 새로운 역할 체계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의사의 경우 의사를 갑자기 증원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검사-진단-치료-예방과정을 하나로 묶어 몸에 대한 지식을 의사가 독점하는 현 역할 체계를 새롭게 짜야 한다. 이러한 새판 짜기는 물론 각 역할의 전문성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각 역할이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고유하게 이바지하는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먼저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경향 : 2024.04.11.

 

총선 계기, 대외정책 과감히 전환하자

윤석열 정부의 낮은 지지도와 국민들의 미래에 대한 안보·경제적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윤 정부나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이번 총선을 기점으로 보다 유연하고 실용적인 대외정책을 추진할 것을 권고한다. 그동안 윤 정부의 대외정책은 가치를 강조하고, 이분법적인 세계관에 기초해 있다. 이러한 대외정책은 극히 예외적으로 향후 지속 가능하지 않고, ·중 전략경쟁 시기 그 비용은 대한민국이 감당하기 어려울 개연성이 크다.

대한민국 대외정책 전통에서 윤석열 정부는 특이하다. 흔히 좌파 정부는 이념이나 가치, 민족 등 형이상학적 어젠다를 강조하는 반면, 우파 정부는 그 허구성을 비판하고 실용주의를 강조했다. 박정희 정부가 대표적이다. 이 정부 주요 핵심 인사들의 뿌리인 이명박 정부가 이전 정부의 이념적 편향을 비판하고, “창조적 재건을 바탕으로 한 실용주의 외교를 표방한 것과도 크게 대조된다. 윤 정부의 정책입안자들이 한·미 동맹 위주로 대외정책을 재편한다는 분명한 목표의식에 집착하다보니, 미국 바이든 정부가 표방하는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이라는 가치중심의 대외관을 전폭 수용한 결과로 보인다.

윤 정부의 대외정책은 미국이 세계 제일의 패권국가이고, 미국이 표방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시대정신이고, ·중 전략경쟁에서 미국은 이길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기초한다. 이러한 전제하에서는 미·중 전략경쟁에서 미국에 편승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 1990년대 초반 탈냉전 시기 미국의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주장한 역사의 종언에서 보여준 세계관과 흡사하다. 그러나 후쿠야마가 곧 자신의 주장을 수정했듯이, 세계는 생각보다 다차원적이고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 ·미 동맹에만 몰두

바이든 행정부조차 이젠 역사적 낙관주의와 이분법적 세계관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대중 압박은 지속하지만 탈동조화대신 위험회피전략으로 선회했다.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러를 위시한 동방, 과거 제3세계 국가들을 통칭하는 남방(Global South)으로 다극화되고 있다. 그 내부적으로는 구심력 대신 원심력이 강화되고 분화 중이다. 서유럽은 미국에 대해 보다 자율성을 추구하고 있고, 일본은 미·일 동맹을 강조하면서도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실리적 접근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러는 상호 전략적으로 협력하면서도, 상대의 주도성을 허용하지 않으려 견제하고 있다. 중국의 남방국가 정체성에 대해 인도는 도전하고 있으며, 브라질, 인도, 중국 등은 각기 국익 최대화를 위해 각축 중이다. ·중 전략경쟁의 성패는 이들 남방지역에서의 경쟁에 좌우될 공산이 크다. 금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미국은 대외정책에 가치를 강조하는 대신 일방·보호주의와 실리중심적 정책을 강하게 추진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퇴조 현상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가치중심 외교는 남방에서 점차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이러한 세계질서의 분할과 각축의 시대에 통상국가이면서, 지정학적으로 대륙과 해양, 동방과 서방 세력의 단층선이자 파쇄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불안하기 그지없다. ·중 전략경쟁 시대에 안보와 경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시대어가 되어버린 경제안보는 경제를 안보적인 각도에서 재해석한다는 측면도 존재하지만, 동시에 전통적인 안보 개념보다는 경제가 더 안보로 등치되는 시기라는 것을 말해준다. 전통적인 의미의 안보 개념에 치중하는 안보우위의 사고로는 새로운 도전에 대처하기 어렵다. 민족국가 시대에 상위의 권위가 존재하지 않는 국제관계에서 전통적인 최종 해법은 전쟁이었다. 현대에도 전쟁 억지력은 중요하지만, 국익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쟁을 활용하기엔 비용도 크고 비효율적이다. 영토와 주권 존중의 유엔 원칙도 여전히 유효하다. 북한이 최근 남북한 양국론을 들고나오는 속내이기도 하다. 러시아와 같은 현상변경적인 강대국이라도 예외는 아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국지전적인 성격을 띠고, 러시아는 이를 전쟁 대신 특수작전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쟁을 대신해 경제력과 과학기술 역량이 중요해지고 있다.

국익 위한 외교·경제적 접근 필요

국력의 핵심 지표로 부상한 경제·과학기술 역량 강화를 위해, 외교적 지혜와 역량의 강화는 정권의 평가를 좌우할 사안이 되었다. 최근 한국 정부들이 보여준 국제정치의 이해 수준과 외교에 대한 홀대와 무지는 깊이 우려할 정도다. ·중 전략경쟁이 격화되는 윤석열 정부 시기 가치와 이분법적인 세계관의 강조는 실제 안보와 이익을 조화시켜야 하는 국가이익과는 괴리가 커지고 있다. 국제질서의 주요 행위자인 중국 및 러시아와 대립각을 넘어 충돌 국면으로 전환하고 있다. 미래 발전 동력인 남방국가들에 대한 접근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지난 엑스포 부산 유치 경쟁의 최종 결과인 29표 참패는 남방국가들에 대한 한국 외교의 참담한 현실을 보여주었다. 최근 발생한 중국, 호주 대사 관련 불미스러운 일들도 우연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 깊은 우려의 근원이다.

러시아와 밀착한 북한은 점차 생존력을 강화하고 대한민국 안보를 노골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북한 비핵화는 더 이상 실제적인 외교 사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현 상황에서 북한은 더욱 안정화되고, 위협이 될 것이다. 미국이나 중국 역시 북한에 대해 기존의 억제지향적인 정책 대신 새로운 외교·경제적인 접근법을 모색할 것이다. 트럼프가 등장한다면 한국 외교는 고립무원의 상황으로 빠질 수도 있다.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금융패권 전략 대신 새로운 산업 역량을 구축하고자 하는 미국의 전략에서 대만의 제조업 핵심 역량은 일본이, 한국의 역량은 미국이 확보하는 신가쓰라·태프트 분할 전략도 가능한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미국과의 동맹 강화 정책은 옳다. 그러나 이는 대한민국 생존에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더 늦기 전에, 보다 유연하고 실리적인 외교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총선을 계기로 과감히 정책 전환을 단행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국익은 강대국의 시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역량으로 쟁취하는 것이라는 국제정치의 가장 기초적인 주장을 다시 생각해본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플라자 프로젝트 이사장 경향 : 2024.04.11.

 

모두 텃밭으로 가자

울창할 울()은 답답할 울이기도 하다. 형성문자이지만 29획이나 되는 이 한자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숨 쉴 틈도 없는 빽빽하고 곤란한 상태가 느껴지니 상형문자인가 싶기도 하다. 좀체 빠져나갈 곳이 안 보이는 우울함, 그토록 노력했는데도 인정과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억울함은 병이 되곤 한다. 각자에게 우울과 억울의 이유는 1000만 가지겠지만 정치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세상에는 정치로 잘 풀리는 이들보다 그렇지 않은 이들이 훨씬 많다.

그럴 때 텃밭은 소소한 처방약 중 하나다. 텃밭은 인과관계가 뚜렷하다. 좋은 씨앗이 좋은 땅과 물과 농부를 만나면 좋은 결과를 만든다. 농사가 잘 안되었다 하더라도, 병충해 때문이든 불순한 일기 때문이든 농부의 실수 때문이든 그 이유가 분명하다. 그러니 농사를 망치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농부는 다른 방법이나 다른 작물을 고민하게 된다. 왜 자신은 안 풀리고 왜 세상은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지 화가 나게 하는 정치와는 달리 이유 없이 답답하고 억울할 일이 적다. 게다가 밭고랑 사이를 누비다 흐르는 땀과 흙 냄새와 콩깍지와 들판의 푸른 기운은 그 자체로 정신건강에 특효약이다.

무엇보다 텃밭은 연결을 느끼게 한다. 계절과 작물이 연결되고 흙 속 미생물과 열매가 연결되고 나와 자연이 연결되고 텃밭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연결된다. 그 연결은 노동시장에서 얻어낸 화폐를 지출해 규격화되어 선별 포장된 상품만을 고를 수 있는 소비자인 내가 아니라 스스로 일구고 거두고 나누고 성공하지만 그만큼 실패하고 고민하는 나와 우리로서의 감각이기도 하다. 그래서 파트타임 아마추어 농부는 기후와 먹거리 위기가 시나브로 자기의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텃밭에는 즐거움뿐 아니라 많은 수고로움과 어려움이 있다. 사다 먹는 게 훨씬 싸고 편하고 뒤처리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친환경적이고 낭만적인 슬기로운 텃밭 생활을 꿈꾸어보지만, 텃밭에 필요한 물품들마저 인터넷으로 해외 직구를 해야 하고 5월에는 넘쳐나는 쌈채소에 골치를 썩고 7월에는 풀과의 전쟁 끝에 좌절을 겪을지도 모른다. 도시 생활자에게는 한두 평의 땅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텃밭에서 적지 않은 것을 배우고 힘을 낼 수 있다.

그러니 모두 텃밭으로 가자. 마침 버드나무 가지에 물이 오르고 땅에서 뭐든 튀어나오는 시기다. 땅이 없으면 스티로폼 화분이라도 장만하고 친구네 밭에라도 놀러 가고 그것도 어려우면 농민회의 꾸러미라도 신청하자. 물가 못 잡는 무능한 정부 비판을 넘어서 대파를 키우는 농민의 사정을 들을 수 있는 연결을 시도해보자.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밭을 그대로 두는 농부는 없다. 씨를 뿌리기 전에 좋은 밭을 만들어야 하고 그런 밭을 만드는 데에는 시간과 땀과 자연의 도움이 필요하다. 밭에 가서 바라보고 귀를 기울이고 잇고 일구어야 한다.

더구나 기후위기의 시대에 땅을 돌보고 작물을 돌보는 일은 더 이상 기성의 매뉴얼대로 가능하지 않다. 극단화된 정치의 시대를 헤쳐나갈 수 있는 매뉴얼도 없다. 땅과 사람들이 서로 많이 만나서 해법을 더듬어 찾아가야 할 것이다. 이제는 민주산악회가 아니라 민주텃밭회를 시작할 때다.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 소장 경향 : 2024.04.11.

 

재벌은 3·4세들이 나눠 먹는 피자 판인가?

국민의 관심이 22대 총선에 쏠린 사이 주요 그룹들이 잇달아 사업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재계 7위 한화의 지주회사 격인 한화와 방산계열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비주력 사업의 양도, 물적분할, 인적분할(기존 주주에게 신설법인 주식도 나눠 주는 방식) 계획을 내놨다. 재계 31위 효성도 지주회사인 효성을 인적분할해서 2개 지주회사로 나누기로 했다.

기업이 경영상 이유로 사업구조를 바꾸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한화와 효성도 선택과 집중, 경영 효율, 시너지 효과, 경쟁력 강화를 강조한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투자자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사업구조 개편을 내세워 총수 자녀들의 지배권 승계와 계열분리를 해온 재벌의 오랜 관행 때문이다. 실제 효성은 조석래 명예회장의 별세 이후 조현준 회장 형제의 계열분리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재벌이 계열분리를 위해 회사(그룹) 분할을 서슴지 않는 것은 선진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특이한 현상이다. 기업을 가족재산으로 여기고,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을 당연시하는 뿌리 깊은 인식 때문이다. 10여년 전 히든챔피언(강소기업)을 취재하기 위해 독일을 방문했다. 현지 기업인들에게 한국의 계열분리와 회사 쪼개기 관행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한 회사 분할은 일종의 배임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계열분리를 위한 회사 쪼개기가 회사나 일반주주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고, 법 절차도 위배하지 않았다면 문제 될 게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업구조 개편의 특성상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기업 분할, 합병, 영업 및 자산 양수도 등 자본(의 변화를 수반하는) 거래는 본질적으로 제로섬 게임이어서, 거래 한쪽이 이득을 얻으면, 상대방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효성그룹 사업구조 개편의 실체는 2018년 옛 효성의 인적분할에서 잘 드러난다. 당시 효성은 지주회사 효성(존속법인)과 효성티앤씨 등 4개 사업자회사로 인적분할해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했다. 회사는 기업가치 제고 및 경쟁력 강화를 내세웠는데, 사업구조 개편의 실제 이득은 조현준 회장 일가에 돌아갔다. 조 회장 일가는 원래 옛 효성의 지분 38%를 갖고 있었는데 분할 과정에서 현물 출자, 유상증자 등을 통해 55%로 크게 높였다. 그만큼 일반주주의 지분은 줄었다. 종합하면 1단계로 총수일가 지분을 높인 뒤, 2단계로 회사를 쪼개서 나눠 갖는 그림이다.

삼성물산 합병 사건의 경우 세간의 관심은 이재용 회장 일가의 지배력 강화로 이어진 부당한 합병 비율과 분식회계 혐의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효성 사례를 적용하면, 1단계 총수일가의 지분 확대 이후 2단계로 합병 삼성물산의 인적분할을 통한 이 회장 오누이 간 계열분리가 유력한 시나리오다.

3·4세 승계가 진행 중인 재벌들은 모두 비슷한 유혹을 느끼고 있다고 봐야 한다. 재벌도 달라진 경영 환경에 맞춰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스웨덴의 최대 재벌인 발렌베리는 170년 가까이 5대에 걸쳐 가족경영을 이어오고 있지만, 계열분리를 한 적이 없다. 대신 각 세대 중에서 가장 역량이 뛰어난 두 사람을 선발해서 경영을 맡긴다.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와 종업원의 것이라는 유일한식 경영철학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업은 총수 자녀들의 계열분리를 위해 멋대로 잘라 먹는 피자 판이 아니다.

22대 총선이 윤석열 정권 심판론 속에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의 압승으로 끝났다. 이제까지와 같은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은 제동이 걸리겠지만, 경제만 놓고 보면 벌써 걱정이 앞선다. 정부·여당은 총선을 앞두고 실현 가능성이 낮고, 의지도 없는 공수표를 남발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내걸고 급조한 기업 밸류업 지원책도 부도 위험성이 높다. 후진적 기업지배구조라는 근본 원인의 개선 없이 세제 지원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비슷하다.

지배주주의 이익만을 위한 사업구조 개편 역시 이사회가 견제 기능을 못하는 후진적 기업지배구조의 산물이다. 민주당의 이용우 의원은 2020년 발의한 상장회사 특례법안에서 소수주주 동의제’(법안 제20) 도입을 제안했다. 상장사가 합병, 분할, 영업 양수도 등을 할 때는 최대주주(총수)와 특수관계인(가족)은 주총에서 의결권 행사를 금지하자는 것이다. 윤 정부가 정말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바란다면 제도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한겨레 : 2024.04.12.

 

윤석열·한동훈식 검사 정치의 완패

4·10 총선 결과는 이른바 검사 정치의 완패로 요약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검찰에서 어떠한 중간 단계도 거치지 않고 정치로 직행했다. 그들이 빚어낸 컬래버레이션은 참혹한 실패로 끝났다.

검사정치는 태생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다.

1. 검사의 삶은 이분법 그 자체다. 검사의 세계는 검사와 피의자, 선과 악, 피해자와 가해자로 갈린다. 기소 아니면 불기소, 유죄 아니면 무죄다. 당연히 회색 공간은 없다. 피의자는 항상 거짓말을 한다고 간주되므로, 검사는 타인을 의심하고 불신한다.

정치는 그렇지 않다. 100% 선도, 100% 악도 없다. 100% 승리도, 100% 패배도 없다. 회색의 중간지대를 사이에 둔 채 주고받고, 타협하고, 윈윈(win-win)한다. 그러려면 상대방을 존중하며 신뢰를 갖고 대해야 한다. 평생 검사로 살아온 이들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세계다.

2. 검사는 상명하복의 수직적 문화에 익숙하다. 검사동일체 원칙이 법적으로는 폐지됐지만, 조직 내 분위기는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위에서 내리꽂는데는 저항감이 작은 반면, 아래로부터 의견을 수렴하는 일은 낯설다.

정치는 반대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포함한 공직자는 공복’(公僕·public servant)이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시민의 종이다. 종처럼 시민을 떠받들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시민과 눈높이는 맞춰야 한다.

3. 검사는 책임지지 않는다. 피의자를 기소해서 재판에 넘기면 끝이다. 무죄 판결이 나와도 해당 검사는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사과하지도 않는다. 사과할 경우, 법적으로 과실을 인정하는 일이 된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다르다. 정치인이나 공직자 본인의 직접적 과실이 없더라도, 도덕적·정무적 책임을 진다. 사과는 물론이려니와 사임하는 경우도 많다.

모든 시민에게는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다. 검사도 정치인이 될 수 있다. 다만 검사의 태생적 한계를 탈피하려는 부단한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윤 대통령과 한 전 위원장은 어떠했나.

1-1. 이분법

윤 대통령은 야당, 노동조합, 교육계를 잠재적 범죄자로 여겼다. 과학계를 겨냥해 카르텔운운하더니 R&D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전공의들을 향해선 증원에 반대하는 이유가 장래 수입 감소를 걱정하는 것이냐고 몰아붙였다. 자신은 지선(至善)이며, 자신과 견해가 다른 이들은 모두 척결 대상으로 간주하는 이분법이다.

2-1. 수직적 문화, 선민의식

윤 대통령은 지난해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과정에 노골적으로 개입했다. ‘민심 1유승민, ‘당심 1나경원 후보를 차례로 찍어냈다. 안철수 후보를 두고는 국정 운영의 방해꾼이자 적이라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내가 대통령이고, 국민의힘은 내 덕분에 집권당이 되었으니, 내 맘대로 내리꽂고 찍어눌러도 된다는 생각이었을 터다.

한 전 위원장은 이번 총선 과정에서 어록을 남겼다.

이수정은 여기서 이러지 않아도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다. 여러분을 위해서 나왔다”(327일 경기 수원 유세). “저는 검사 처음 시작한 날 평생 할 출세 다 했다고 생각했다. 더 할 생각도 없다. 다만, 나라가 잘되길 바란다”(43일 충북 충주 유세).

자신과 이수정 후보 같은 엘리트는 시민을 받드는 종이 아니며, 시민에게 은혜를 베푸는 존재라 여기는 것이다.

3-1. 무책임성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올해 초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검찰 재직 시절 이 사건 수사·기소를 책임졌던 한 전 위원장은 기자들이 입장을 묻자 답했다. “사실상 대법원의 수사의뢰로 진행된 사건이다.” 사건이 넘어왔으니 어쩔 수 없이 수사했을 뿐,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이야기다.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이후, 윤 대통령은 국민 앞에 나서지 않았다. 비서실장을 통해 짧은 입장을 전했을 뿐이다.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고 경제와 민생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44자였다. ‘송구하다는 의례적 사과조차 없었다.

검사 정치에는 대화도, 설득도, 양보도, 협상도 없다. 오로지 수사·규제기관을 동원한 압박 뿐이다. 칼은 칼집에 들어 있을 때 위력을 발휘한다. 휘두르기 시작하면 더 이상 무섭지 않다. 정치의 본질을 외면한 힘 자랑으로 권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22대 총선에서도 검사 출신 후보들이 상당수 당선됐다. 등원하는 순간, 아니 지금 당장 뇌구조를 개조하는 작업에 들어가기 바란다. ‘검사 정치의 실패를 재연하고 싶지 않다면.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경향 : 2024.04.12.

 

승부에 집착한 대통령, 길 잃은 의료개혁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고 장담하는 의사들과 특권적 의사 집단과 싸우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대치 국면이 5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대국민 담화에서 역대 정부들이 (의사들과) 9번 싸워 9번 모두 졌다고 했다. “지난 27년간, (의사 증원은) 그 어떤 정권도 해내지 못한일이었고 이제는 그러한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언급한 ‘9번 싸움의 시작은 195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의사가 없는 지역에서 경력과 기술이 인정되면 의료행위를 하도록 했던 한지(限地) 의사에게 정규 의사면허를 부여하는 제도 도입이 추진됐다가 의사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이승만 정부 시절의 일까지 거론하며 역대 정부와 차별화에 나선 것이다.

애초 의-정 갈등의 장기화는 예견된 것이었다. 의사들의 협상력은 다른 어떤 집단보다 강력하다. 대체 불가능한 독점적 권한(의사면허)으로 응급·중증 환자들의 생사를 좌우한다. 1999~2000년 의약분업에 반대했던 의사들은 5차례에 걸쳐 단체행동을 벌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약품 오남용을 막아 국민 건강을 지키자는 것이) 이렇듯 큰 파문이 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의약분업을 실시하는 것은 하나의 문화혁명과도 같은 것이었다고 적었다. 그는 재임 기간 중 가장 큰 사회 갈등으로 의약분업 사태를 꼽았다.

정부도 이를 몰랐을 리 없다. 불과 4년 전, 문재인 정부는 한 해 400명씩 의대 정원을 늘리자고 했다가 의사들의 집단 휴진에 버티지 못하고 백기를 들었다. 이번엔 의대 정원 3058명의 65%2천명을 늘리자는 더 과감한 증원안이었다. 집단행동이 불러올 파장을 뻔히 알면서도 대비책은 세워두지 않았다. 협상 전략은 부재했고, 검찰 정부답게 법과 원칙이 강조됐다.

지루한 싸움이 계속될 줄은 국민만 몰랐던 것 같다. 50일 동안 정부는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만 유예했을 뿐 국면 전환을 위한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정상회담보다 더 많은 시간(140)을 할애했다는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전공의 대표의 만남도 성의를 보이는 전시효과에 그쳤다. 의사들은 물론이고 정부에서도 긴박감은 보이지 않았다. 동네 병원이 정상 운영되고 있으니 국민 다수는 불편을 못 느낀다고 여긴 것일까. 수술이나 치료가 연기될까, 응급처치를 받지 못할까 노심초사하는 응급·중증 환자들의 속만 타들어갔다.

그러는 사이, 정부의 의료개혁은 ‘2천명이라는 논쟁적 숫자만 남겼다. 국민 다수가 의대 증원을 지지했던 것은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소아과 오픈런’, ‘수도권 원정 진료로 드러난 의료공백 문제가 나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된 영향이었다. 대부분 의료기관이 이윤 경쟁에서 자유롭지 않다 보니 의사 공급의 불균형이 심각한 지경이다. 보상이 부족한 필수의료에는 전문의가 부족하고, 비급여 진료로 많은 돈을 버는 개원가에는 의사가 몰린다.

‘2천명이 맞냐, 틀리냐로 논점이 공회전하는 동안에 의사가 부족한 곳에 의사를 어떻게 늘릴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실종됐다. 정부 정책에 박수를 치던 이들도 지금은 본말이 전도된 것 아닌지 의심한다. 정부가 연일 브리핑을 열어 백화점식 정책을 나열하고 있지만, 정작 재정이 많이 투입돼야 하거나 논란이 큰 민감한 사안에는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보이지 않는다.

총선 이후, -정 갈등은 본격적인 협상 국면에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정원 감축까지 주장하는 강경파가 득세하는 의료계가 합리적 안을 내놓을 리 만무하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표의 유불리로 입을 닫고 있던 이들의 백가쟁명식 대안이 쏟아져 나올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의약분업을 관철하는 과정에서 실패한, 그리고 피곤한 개혁이라는 평가를 많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의사들을 설득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정치권을 비롯한 각계에서 나오는 연기 또는 유보의견에 대응하기도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다. 앞서 윤 대통령의 담화가 기존 입장 고수로 알려졌을 때 여당 의원들은 탄식을 쏟아냈다. “날아오는 혜성을 보면서 멸종을 예감하는 공룡들의 심정”(국민의힘 의원·경향신문 인터뷰)이라는 식의 압박은 앞으로도 강해질 것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의사를 늘려 필수·지역 의료 붕괴를 막는다는 정책 목표를 되새기고, 이를 위한 최소한의 원칙과 기준, 실행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의료 카르텔 척결이라는 정치적 구호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황보연 논설위원 한겨레 : 2024.04.12.

 

반윤정치이중의 환멸 속에서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마무리되었다. 이미 선거 국면 막판에 들어서며 각종 여론조사나 전문가들이 예측한 바와 같이 더불어민주당이나 조국혁신당 등 정권심판론을 내세운 범야권 반윤동맹세력이 절반을 훌쩍 넘는 절대다수의 의석을 차지하는 결과가 나왔다. 집권여당의 과반 의석 확보라든가 범야권의 3분의 2 이상 의석 확보 같은, 향후 정국을 요동치게 할 극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 총선은 냉정히 평가하자면 여야 정치세력이 헛힘만 쓰고 만 제자리걸음 총선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현 정권 2년에 넌더리가 나 심판표를 던진 다수의 국민에게는 이런 정도의 결과가 도저히 성에 차지 않겠지만 결과만으로 본다면 반윤동맹의 승리이기는 하다. 현 윤석열 정권은 집권 중반임에도 국민의 지지는커녕 사실상 불신임에 가까운 옐로카드를 받아든 셈으로 향후 국정운영에서 어떠한 주도권도 행사하기 힘든 식물 상태를 면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집권여당인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당선자는 당선자대로, 비당선자나 공천 탈락자는 그들대로 더 이상 윤 대통령에게 충성을 바칠 일말의 동기도 사라져버려, 아마도 단순한 레임덕을 넘어 상당한 내분과 심지어 하극상까지도 만연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행태로 볼 때 총선에서 과반을 얻지 못했다고 해서 윤 정권, 아니 정확히 말해 윤 대통령이 변화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직 행정부 권력을 장악하고 있고 무엇보다 내치·외치에 걸쳐 정책 기조를 바꿀 의지도 능력도 의심스러운데다가 거부권 행사라는 전가의 보도도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은 3년 동안 또 다른 극적인 변화가 없는 한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존을 기본 골격으로 하는 지금과 같은 지루한 혼란상만 끝없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이번 총선은 여당이 절반을 넘는 비상사태가 일어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또 한번의 선거가 끝났다. 그리고 한국 정치에 대한 또 한번의 환멸이 추가되었다. 이번 선거 역시 한국 현대정치사를 관통하며 끈질기게 작동해왔던 민주/반민주 구도에서 한걸음도 벗어나지 못했다. 현 정권의 검찰독재에 가까운 신종 공안통치가 어렵게 형성된 민주질서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으며 여기에 국제정치 지형에서의 친미·친일 편향, 현대사 해석에서의 급격한 극우 편향이라는 위험한 도박이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게다가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기관에서 연거푸 발생하는 예측불허의 사건·사고들 역시 민주주의의 지속가능성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그것이 곧 정권심판론의 정당성과 시급성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거시적으로 본다면 현 정권의 특수한 성격에서 오는 이러한 민주주의의 위기는 일시적이고 단기국면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상상의 범위를 넘어서고 있는 기후위기는 물론이고 저성장·저임금·고금리·고물가의 수렁에 빠진 경제위기, 불평등·불공정 분배에서 오는 양극화와 계급 갈등, 저출생과 고령화, 젠더 및 세대 갈등 같은 사회위기로 이루어진 이런 다중위기 상황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직면한 보다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도전으로, 이번 총선은 이런 중대한 위기적 의제들이 전면에 내세워졌어야 하고 이를 기준으로 투표 행위가 이루어졌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의제들은 이번 총선에서 정권심판론의 기세에 가려 가뭇없이 실종되었다. 서로 적대적으로 의지하며 권력을 주고받는 것으로 정치 과정의 모든 것을 대체해버린 수구보수-중도보수 양당 체제에서 이러한 본말전도 현상은 이제 차라리 익숙한 현상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견고한 양당 체제에 균열을 내고 다양한 이해집단과 의제들이 의회정치의 영역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채택되었으나 이 역시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창당이라는 편법에 의해 형해화하고 말았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해오던 소수 진보정당들 역시 거대 양당의 톱니바퀴에 끼여 갈 곳을 잃고 존재조차 희미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정치에 대한 환멸은 여기서 비롯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환멸이 뒤를 잇는다. 그 많던 진보세력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왜 이러한 정치지형을 바꾸지 못하고 선거 때만 되면 비루하게이 양당 체제의 정치놀음에 일개 하수인들로 참여해 일희일비하거나, ‘비겁하게무기력한 냉소적 방관자의 위치에 머무르고 마는 것일까. 이른바 진보세력의 말석을 차지하고 있는 무명 소졸에 불과한 나로서도 제 발이 저린다. 할 말이 없다.

변명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관철된 이후 포퓰리즘을 제외한 어떤 진보 담론도 지배적 정치권력으로 현실화된 사례가 없다. 진보적 담론은 있되 진보적 실천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포스트 마르크시즘 담론들의 내부에는 진보세력의 정치세력화와 권력 획득 과정에서 충분히 예측되는 집단적 전체주의화와 소외, 타자화 등에 대한 근원적 기피와 과장된 공포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들을 끝없이 집단과 공동체로부터 분리하여 일개 원자화된 소비주체로 환원시키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안팎으로 작용하여 거대한 패배주의와 무기력증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절대다수의 진보세력이 이미 신자유주의 체제 계급 구조의 상부에 안착했다는 한국적 특수성도 제대로 한몫을 한다.

엄밀히 말하면 현재 한국의 언필칭 진보세력들은 현재 한국 사회구조의 진정한 피해자들을 대변해줄 제대로 된 대안 담론도 생산해내지 못하고 있으며 당연히 그에 따른 정치사회적 행동도 조직해내지 못하고 있다. 대신 그들은 민주당이 무슨 진보냐라고 개탄하면서도 사실은 중도보수 정치세력인 민주당에 자신의 모든 정치행동을 위탁하며, ‘민주당=진보등식에 나태하게 편승하거나 아니면 냉소주의라는 또 다른 안전지대에 숨는 것이다. 비루와 비겁 사이의 왕복이다. 물론 악조건 속에서도 이 신자유주의의 막장과 기후위기의 절벽 끝에 몰린 절대다수의 타자들과 기꺼이 운명을 함께하고 있는 이름 없는 전사들의 헌신과 희생은 예외로 해야 한다. 이 총체적 환멸의 시대에도 별이 없어도 항해를 할 수밖에 없고, 이기지 못해도 저항과 행동을 멈출 수 없는 사람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막막한 환멸로 가득한 세상이지만 그들이 승리자가 되는 세상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는 믿음까지 잃을 수는 없다.

김명인 | 문학평론가·인하대 명예교수 한겨레 : 2024.04.12.

 

2년 천하, 검사 정치는 끝났다

한동훈 장관 휴대전화 비밀번호 풀고, 검찰 지휘부의 윤석열 라인부터 정리해야.’

2년 전,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참여연대 공동대표)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이렇게 주문했다. 법무부 장관에 지명된 한동훈 후보자를 향해 모든 의혹을 풀어야 될 책임이 후보자에게 있다. (문제 된 휴대전화 내용을) 어떻게든 명백하게 국민들한테 제공을 해야 된다고 지적했다. “‘검찰 지휘부가 대통령의 측근이다라는 외관이 있는 순간 검찰의 독립성 또는 객관성에 대해 국민의 신뢰는 무너지게 된다. 윤석열 당선자가 가장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문제인 만큼 이 부분을 선도적으로 정리해야 한다고 했다.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였다. 그러니 시늉이라도 낼 줄 알았다. 그러나 정권도, 검찰도 이런 요구는 무시했다. 대부분 언론도 침묵했다. 이후 정권과 검찰이 독차지한 권력을 얼마나 제멋대로 휘두르며 검찰공화국 2을 즐겼는지는 국민 모두가 지켜본 대로다. 그 독단의 관성은 총선까지도 이어졌다. 그리고 심판받았다.

2년간 국민의 복장을 뒤집어놓은 윤석열식 국정, 그리고 조롱거리가 된 한동훈식 선거는 검찰의 비뚤어진 유산에 그 뿌리를 대고 있다.

민주국가 중 우리나라처럼 검찰이 단일하고 독자적인 권력집단으로 자리잡은 유례가 없다. 수사·기소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한손에 쥐고, 일사불란한 조직적 응집력으로 뭉쳐 있다. ‘기소편의주의라는 재량권을 무한정 확장해, 아무리 죄가 커도 거뜬히 봐주고 아무리 죄가 없어도 끈질기게 괴롭힌다. 철저히 조직적 이해관계에 따라서다.

더 큰 문제는 공정과 중립 원칙을 벗어나 검찰권을 남용해도 국민이 이를 통제할 수단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국민이 선출한 권력은 임기가 유한하지만, 검찰 조직의 권력은 지속된다. 후보 시절 윤석열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을 두고 대통령 임기 5년이 뭐가 대단하다고, 너무 겁이 없다고 한 말에서 검찰의 영속하는 권력에 대한 자부심(?)이 드러난다. ‘아무도 우리를 건드리지 못한다는 오만함이다.

검찰이 누리는 이 무소불위의 영원한 권력은 국민과 여론을 깔보는 선민의식, 우월의식으로 연결된다. 이에 도취해 있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인이 된 뒤에도 자신들의 권력이 국민의 선택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잊은 듯했다. 민심에 역행하고 상식과 원칙을 파괴하는 국정편의주의가 열거하기도 힘들 만큼 횡행했다. 대통령 배우자의 주가조작 의혹은 공범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특검법은 대통령의 특권인 거부권으로 막았다. 해병대원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인데 출국금지까지 당한 피의자를 대사로 임명해 출국시켰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도 이런 기상천외한 일들을 벌인 것은 검사식 오만이 아니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범죄가 확정된 이들을 대통령이 특별사면하고 여당은 후보로 출마시켰다. 한동훈 전 위원장은 이런 후보를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상대 당은 범죄자 집단이라고 몰아붙였다. “범죄자와 싸우는데 (국민들한테) 큰절을 왜 하냐고 했다. 어떤 국회의원 후보자를 가리켜 여기서 이러지 않아도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다. 여러분을 위해서 나왔다고 했다. 국민을 민주정치의 주인이 아니라 박수꾼이나 동냥꾼 취급하는 망발이다. 국민을 바라보는 검사식 시각이다.

총선 결과는 이러한 검사 정치에 대한 탄핵이었다. 검사도 정치를 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나 윤석열·한동훈식 검사 정치에 국민은 진저리를 쳤다. 검찰의 비뚤어진 유산을 체화한 최정점의 두 검사 출신이 검사 정치는 더 이상 안 된다는 민심의 심판을 끌어냈다.

이들의 충실한 부하였던 검찰도 함께 심판받았다. 야당과 전 정권 수사에만 일로매진한 검찰은 되레 검찰독재정권이라는 야당의 구호에 힘을 실어줬다. ‘조국 사태당시의 먼지털기식 수사와 대조되는, ‘살아 있는 권력 수사뭉개기는 조국혁신당 열풍의 풀무가 됐다. 검사 정치의 토양이자 수단이었던 검찰은 수사-기소권 완전 분리와 민주적 통제 강화라는 근본적인 개혁 요구를 스스로 불러냈다.

검찰정권 2년 천하는 사실상 끝났다. 윤 대통령이 검사 정치를 고집한다면 더 큰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고, 검찰 역시 반성과 쇄신에 나서지 않으면 역사에서 퇴장하는 신세가 될 수 있다. 총선에서 확인한 민심의 무서운 경고다.

박용현 논설위원 한겨레 : 2024.04.14.

 

국가의 방위란 무엇인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1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데 이어 11일에는 미국 상·하원 합동 회의에서 연설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중국·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염두에 두고 미-일 군사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 정상의 공동성명에는 주일미군과 자위대의 지휘체계 개선, 무기 공동개발 추진 등의 내용이 담겼다. 요컨대 자위대나 일본의 방위산업을 미국의 안보정책에 편입시키겠다는 것이다.

자민당의 비자금 문제로 20%대라는 최저 지지율이 계속되고, 언론에서도 강하게 비판을 받던 기시다 총리는 이번 미국 방문을 국면 전환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중국의 군사적 확대가 아시아를 위협하고 있는 지금, -일 동맹을 더욱 강화해 역사에 남을 안보정책의 전환을 실현하겠다는 기시다 총리의 의지가 느껴진다. 그리고 미·일 외교를 지렛대로 지지율을 회복하려는 정치적 전술도 관측된다.

기시다 정권에서는 2022년 국가안보전략 등이 개정되면서 5년 동안 방위비를 현재 국내총생산(GDP)1%에서 2%로 두배가량 늘리는 것이 결정됐다. 최근에는 영국·이탈리아와 공동개발하는 차세대 전투기에 대해 제3국 수출이 가능하도록 지침을 바꿨다. 일본은 무기 수출이 금지됐던 나라다. 미야자와 기이치(1919~2007) 전 총리는 1976년 당시 외무상 시절에 국회에서 우리나라는 무기 수출을 해서 돈을 벌 정도로 비참한 상태가 아니다. 좀 더 높은 이상을 가진 나라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약 반세기가 지난 뒤, 미야자와 전 총리의 파벌을 계승한 기시다 총리는 높은 이상을 버렸다.

이처럼 군사적 안보정책에 치우친 기시다 정권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 11일 새해 첫날 이시카와현 노토반도에 강진이 발생해 245명이 사망했다. 파괴된 건물의 재건은 진척이 되지 않고 있다. 피해가 컸던 것은 정부의 초동 대응이 늦었기 때문이라는 전문가의 지적도 있다. 지진뿐만이 아니다. 일본에서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매년 태풍과 집중호우로 희생자가 나오고 있다. 일본인에게 생명과 관계된 구체적인 위협은 자연재해다.

저출산과 인구 급감은 한·일 공통의 문제지만, 일본에서는 특히 비수도권의 인구 감소가 너무 심각하다. 인구 감소로 의료와 교육 등 공공 서비스의 공급이 곤란해지고 있다. 또 최근에는 철도 노선 폐지를 둘러싸고 지방자치단체와 철도회사의 의견 대립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번 국회에서 기시다 정권은 식량·농촌·농업기본법의 개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개정안은 처음으로 식량 안보를 정책 목표로 삼고 식량 수입의 안정적인 확보, 국내 농업의 생산성 향상, 비상시 농업인에게 특정 작물의 생산을 지시할 수 있도록 권한 부여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식량 수입이 중단된다. 국내에서 생산량을 늘리려 해도 농업 종사자는 빠르게 고령화가 되고 있고, 정보통신(IT)과 기계 활용을 확대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식량난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에선 외부의 적보다 내부에서 생명과 생활을 위협하는 다양한 현실적 문제들이 존재한다. 이런 사실을 직시하지 않고, 군사적 안보에 치우친 정부의 정책은 핵심을 벗어난 것이다. 아시아의 정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안보력 증강이 필요한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방위비의 규모와 사용처에 대해서는 어떤 기능을 가진 장비가 필요한지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기시다 총리의 개인적 야심을 위해 미국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이나 미·일 군사체계 일체화를 약속한 것은 국민의 생명을 고려하지 않은 경솔한 행동이다. 향후 국회 논의에서 안보의 의미를 폭넓은 시야에서 논의해야 한다.

야마구치 지로 | 일본 호세이대 법학과 교수 한겨레 : 2024.04.14.

 

검찰 정권이 다시 등장하지 않도록

윤석열, 한동훈이 내가 수사해 봐서 잘 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녀서 조롱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두 사람만의 말이 아니라 검사 출신들이 책임 있는 자리를 맡으며 흔히 내뱉는 말이었다. 그걸 듣는 순간 나의 머릿속에는 1960, 70년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쿠데타 군인들이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그들은 자신들이 폭력으로 사회적 평화를 강압하는 일에 동원된 경험이 있으므로 민간 정치에 개입하여 자본축적의 위기를 잘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생각은 당시 군부 조직에 만연했던 일종의 믿음 혹은 문화 같은 것이었다. 그런 조직 문화를 군부 정치 연구자들은 신직업주의(neo-professionalism)’라고 불렀으며 그것을 쿠데타 원인으로 꼽았다.

우리가 정치검찰이라고 부르는 존재는 제도로서 검찰은 아니고, 검찰의 일부 분파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도 그런 믿음 혹은 조직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교육 관련 수사를 해 봤기 때문에 교육 문제도 잘 해결할 수 있고 조선소 관련 수사도 해 봤으니 조선 문제도 잘 알고 있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3세계 군부 쿠데타의 내적 동인이 되었던 네오 프로페셔널리즘이 우리나라 정치검찰에도 만연해 있으며 그것이 검찰의 정치개입 원인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정치검찰의 네오 프로페셔널리즘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한국 현대사에서 검찰 조직은 늘 정치권력의 수단이었다. 그 권력의 성격이 무엇이든 검찰은 정치권력의 하위 동맹자로서 도구적 기능을 수행해 왔다. 웨버주의자는 국가이론에서 검찰과 같은 국가 폭력을 관리하는 기구는 어떤 계급적 성격을 가지지 않은 중립적 존재라고 했다. 우리의 검찰도 본질적으로 어떤 계급적 성격을 가지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자본가계급의 집행위원회도 아니고 프롤레타리아의 도구도 아니다. 다만 중립적 존재는 아닌 것 같다. 검찰은, 굳이 말하자면 정치적으로는 일종의 룸펜이라고 할 수 있다. 룸펜 계급은 보수 정권이든 진보 정권이든 동맹자의 사회적 속성을 가리지 않는다.

다만 룸펜의 지위는 역사적으로 달랐다. 권위주의 시대에는 동맹 질서에서 군부, 정보기관보다 아래에 있었으나 그런 기구들이 민주화 과정에서 문민 통제에 들어가게 되자 가장 상위의 포식자가 되었다. 그와 같은 지위에 오른 검찰 조직에서 네오 프로페셔널리즘을 가진 분파가 자신들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 정권을 장악한 것이 윤석열 정권이다.

우리는 윤석열 정부를 검찰독재라고 하는 건 조금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을 검찰정권이라 부르는 데는 망설일 필요가 없다. 그는 검찰총장으로서 법무장관의 인사청문회가 진행되는 정치의 시간을 칼로 찢고 들어갔다. 그로부터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군부 쿠데타의 지도자가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오른 경우, ‘군복 위에 양복을 입고라고 표현했는데,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 ‘검사복 위에 양복을 걸쳐 입고대통령이 된 것이었다. 검찰이라는 조직의 힘은 그가 대통령이 되는 길을 만들어준 바탕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은 루이 보나파르트의 등장에 비견할 수 있겠다. 어느 계급도 헤게모니를 갖고 있지 못한, 어느 세력도 힘의 우위를 갖고 있지 못한 힘의 교착 상황을 비집고 잽싸게 권력을 차지한 루이 보나파르트처럼 정치검찰 윤석열이 그랬다.

검찰정권의 정치 인식은 군부정권의 그것과 같았다. 야당 대표를 범죄자라서 만날 수 없다고 한 윤석열 대통령이나 선거운동 기간 내내 야당 지도자들을 향해 감옥에 가야 할 사람이라고 퍼붓고 다닌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특수부 검사 출신 정치검찰의 진심을 드러낸 것이었으며 그것은 군부정권이 가지고 있었던 네오 프로페셔널리즘의 발로 그것이었다.

여기에서 강조하려는 것은 검찰의 권력 장악을 검찰 출신 개인의 문제로 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검찰의 조직 문화의 하나로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검찰 정권에 대한 총체적 심판이었던 이번 선거는 검찰 정권의 청산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우쳐 주는 것이었다. 더 이상 정치검찰의 권력 장악과 같은 일이 되풀이해서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면 정치적으로 협량하고 부박하여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개인은 물론 검찰 조직 차원에서 그런 일의 재발을 막을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경향 : 2024.04.14.

 

이대로’ 3년은 너무 막막하다

돌이켜보면 ‘3년은 너무 길다는 슬로건만큼 정권심판 민심을 표징하는 것도 없다. 집권 2년도 되기 전에 치러진 총선에서 정권 조기 종식구호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질 만큼 심판 민심은 매서웠다. 여당이 108석으로, 간신히 탄핵 저지선을 지켰지만 내용상으론 윤석열 대통령과 집권세력에 대한 불신임에 가깝다. 내각제 같으면 총리가 물러나고 정권이 바뀌어야 하는 상황이다.

윤석열 정권은 남은 임기 3년도 극한 여소야대 우산 아래 놓이게 됐다. 야당 협조나 양해 없이는 입법, 예산, 인사, 법제화가 필요한 정책 등에서 윤석열 정부가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윤 대통령은 일찍이 총선에서 여당이 다수당이 되지 못하면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식물 대통령이 실체로 다가왔다.

총선 결과는 국정 기조의 전면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일단 윤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겠다고 응답했다. 응당 그리하여야 하나, 소환되는 장면이 있다. 지난해 서울 강서구청장 보선 패배 뒤 저와 내각이 반성하겠다.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고 쇄신을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그때 제대로 반성하고 국정을 쇄신했다면 총선 결과가 이렇지는 않았을 터이다.

국정 쇄신, 윤 대통령이 바뀌지 않으면 만사휴의다. 오만·독선·불통의 윤 대통령이 바뀌어야 쇄신의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단기에 윤 대통령의 변화와 국정 쇄신 의지를 검증할 수 있는 다섯 개의 시험대가 앞에 있다. 인적 쇄신, 협치, 소통, ‘해병대 채 상병 특검’, 김건희 여사 문제다.

가장 먼저 이뤄질 인적 쇄신. 비서실장과 국무총리, 내각 인선에서 구태를 깨고 파격에 가까운 감동 인사를 할지 여부다. 야당도 비토할 수 없는, 거국 내각 효과를 낼 통합형 인사를 국무총리로 발탁하느냐가 핵심이다.

두 번째 협치, 먼저 손을 내밀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날지가 바로미터다. 야당의 협조 없이는 국정을 운영하기 힘들다는 현실을 받아들여 야당과 대화·타협하는 정치의 복원에 나설지가 관건이다.

그리고 불통의 장막을 거두고 국민, 언론과 직접 소통하는 통로를 만드는 일이다. 기자회견을 한사코 거부하고, 나홀로 담화나 국무회의 발언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방 소통 방식을 개선할 것인가. 당장 총선 패배 입장 발표를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에 따라 방향이 가늠된다.

다음으로 총선 후 제일 먼저 대통령 책상에 올라올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대처다. “국정 쇄신 의지는 채 상병 특검법을 대하는 자세에서 판가름날 것이다. 총선 와중에 이뤄진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과 도피성 출국이 정권심판론을 폭발시켰다. 이태원 참사, 채 상병 순직 사건에서 보듯 국민을 지키지도 못하고, 진실을 은폐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정권의 무도함을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여당 내에서도 특검법 수용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총선 민의를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채 상병 특검법에 무조건 거부권으로 맞선다면, 윤 대통령의 불변(不變)’을 공인하는 게 된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의 변화 의지는 부인 김건희 여사 문제 풀이에서 확인될 것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명품백 수수 사건등 김 여사 관련 각종 의혹들을 단호히 정리할지 여부다. 끊이지 않는 대통령 부인의 국정 관여 의혹, 이를 확실히 불식시킬 조치가 나올지도 지켜봐야 한다. 뒷북치기 제2부속실 설치 등으론 해법이 될 수 없다. 종국엔 김건희 특검법을 대하는 자세가 모든 것을 말해줄 테다.

윤 대통령은 이 다섯 가지 시험대를 통과해 국정 쇄신과 변화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을까. 기대와 회의가 교차한다.

밀리기 싫어하고 고집스러운 윤 대통령이 총선 민의와는 반대로, 반동의 길로 갈 수도 있다. 어차피 여야 의석 분포는 21대 국회와 크게 달라진 게 없으니 남은 3년의 국정도 지난 2년과 같이 독단적으로 운영하려 들 수도 있다. 그러면 다섯 가지 시험지에 적힐 응답이 달라진다. 인적 쇄신은 감동 없는 보여주기에 그치고, 국무총리 인선은 통합과는 거리가 멀고, 협치는 외면하고, 일방 불통은 개선하지 않고, ‘채 상병 특검법김건희 특검법은 거부권 행사로 막을 것이다.

총선 민의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길이고, ‘이름뿐인 대통령으로 전락을 자초하는 길이다. 윤 대통령이 끝내 변화를 거부하면, ‘이대로’ 3년은 너무 길고 막막하다.

양권모 칼럼니스트 경향 : 2024.04.15.

 

북한의 헤어질 결심적대적 두 국가 체제는 무엇을 바꾸나

남북기본합의서 폐기 가능성영토 분쟁 소지에 핵 억제력도 잃어

한국사회가 4·10 총선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남북관계도 변화를 향해 달음박질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이 일관되게 외치는 것은 남한과의 결별이다. 보수 정권 시기 반복된 일시적 단절이 아니다. 한국 정부가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한반도 질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밝힌 적대적 두 국가체제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이를 위해 북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겨졌던 선결 조건을 해결하는 중이다. ‘한민족’, ‘평화통일이라는 뿌리 깊은 인식의 삭제다.

북한 정권에는 김일성 시대부터 강조해온 두 가지 역사적 소명이 있다. 하나는 사회주의 강국 건설’, 또 다른 하나는 조국통일이다. 김일성은 19727·4 남북공동성명을 통해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 원칙에 합의했다. 북한은 1980106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 방안’, 19934월 최고인민회의 제95차 회의에서 제시한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 대단결 10대 강령을 묶어 조국통일 3대 헌장으로 삼았다. 이는 곧 김일성의 통일 관련 유훈이 된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김일성의 의지를 담아 평양에 세운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꼴불견이라며 철거했다. ‘적대적 두 국가로의 관계 전환을 위해 김일성의 권위에까지 도전하는 모양새다. 북한이 일시적·감정적 결별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방증하는 대표적 사례다.

이제 북한은 한반도 내 두 국가 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가장 상징적인 걸림돌도 치울 모양새다. “남과 북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특수관계라고 정의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이른바 남북기본합의서(1991)’의 폐기다. 지난 328일 통일부는 북한이 제14기 최고인민회의를 추가로 개최하고 헌법 개정뿐 아니라 남북기본합의서를 폐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이러한 움직임은 논리적 일관성을 갖는다. 민족 부정평화통일 포기두 국가 체제로의 전환이라는 순차적 움직임이다. 그렇다면, 궁금한 것은 그다음 상황이다. 두 국가 체제의 한반도는 과거와 무엇이 다른가이다.

상황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사회 일각에는 남과 북은 이미 사실상의 두 국가 체제 아니냐는 인식이 있다. 이는 남북이 별개 국가로 갈라지더라도 지금과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란 기대를 내포한다. 유사한 맥락에서 남북기본합의서 폐기도 평가절하하는 시각이 많다. 이미 합의서는 실질적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1991년 남북이 유엔에 동시가입함으로써 국제법적으로 남북은 별도의 독립 국가로 인식되고 있다. 각자 표결권을 갖고. 대사를 파견하는 식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사실상 남북은 이미 정치적 적대국임을 선언하고 있다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나 금강산국제관광국을 없애는 등 남북기본합의서를 유명무실화하는 실질적 조치를 끝내고 최종 폐기 선언만 남은 셈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가 명시적인 국가 대 국가 간 관계로 전환돼도 정말 현재와 아무런 차이가 없느냐는 점이다. 당장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면 남북관계는 커다란 모순에 직면한다. 민족관계라는 특수성은 그동안 국가 간 관계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상황을 용인하고 있다. 한국사회가 북한과의 관계에서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것들이 실상 굉장히 특수한 경우였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것이 영토의 정의다. 헌법 제3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조항은 남북을 국가 간 관계로 치환할 때 그 즉시 분쟁 소지를 갖는다. 국경선의 확정 부분도 유사하다. 1953년 정전협정에서 육상경계선은 설정됐지만 해양경계선이 분명히 설정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해양 북방한계선(NLL)과 관련한 부분은 계속 논란을 만들어 왔다. 명시적 합의가 없었음에도 NLL이 용인됐던 것 역시 민족적 특수관계에 기반한다. 국가 간 관계로 전환 시 분명히 확정해야 할 사항이다. 결국 남과 북이 사실상 별개인 것과 남과 북이 명시적 별개인 것은 같은 의미일 수 없다는 것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기존 헌법에는 없던 영토 조항을 헌법에 새로 삽입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 이는 대한민국 영토에 대한 권리 주장이라기보다 실효적 지배지역에 대한 주권을 명확히 하는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라며 헌법에 영토 조항을 명시하지 않는 국가도 많은데 (북한이) 굳이 이러한 조항을 삽입하는 것은 남북을 국가 대 국가 관계로 명확히 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새 헌법에 영토 조항을 어떻게 삽입하느냐에 따라 한반도가 국제법적 영토분쟁지역이 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한반도 내 두 국가 체제로의 전환은 무력 충돌 가능성 측면에서도 종전과 다른 상황을 만든다. 북한이 추진하는 통일 조항 삭제작업을 꼼꼼히 살펴보면 특징이 있다. 일관되게 평화통일 원칙만 삭제하고 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말해 온 대남 적화통일 노선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평화통일, 또 다른 하나는 전쟁에 의한 통일이다라며 이중 김정은이 포기하겠다고 하는 것은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을 전제로 한 평화통일이지 유사시 전쟁을 통한 통일까지 포기하겠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많은 이들이 혼동하는 것이 지금 북한이 말하는 두 국가론이 평화적인 질서하의 두 국가를 의미하는 줄 아는데 전쟁관계의 두 국가다라고 덧붙였다. 통일부 당국자 역시 김 위원장의 언급을 볼 때 헌법 개정은 통일 조항 삭제, 적대국 관계, 영토조항 추가 등이 반영될 것으로 보이며 무력통일 조항이 추가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무력충돌 가능성은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 이는 한국을 겨냥한 핵무기의 실질적 사용과도 관계된다.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는 것은 맞나

남북을 막론하고 통일에 관한 논의는 외세 간섭 없는 평화통일에 맞춰져 왔다. 크고 작은 분쟁 속에서도 남북 정권 어디도 이를 부정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다. 문제는 북한이 핵무기를 실전화한 상황에서는 이러한 통일정책이 외교적·군사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북한이 배치한 무기들은 한반도 내의 억제력을 담보한다. 즉 유사시 북한을 타격할 수 있는 미군을 포함한 각종 전략 자산을 핵무기로 억제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같은 민족에게 핵을 겨누는 행위가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지는 평화통일의 유훈을 어기는 것이 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북한은 민족 개념 탈피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는 해석이다. 홍 위원은 북한이 한반도 문제에 관한 억제력을 갖기 위해서는 미국에 유사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신호를 줄 수 있어야 한다라며 북한으로선 한민족이라는 개념을 탈피하는 것이 한국을 공격할 수 있다는 가장 확실한 신호라고 말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역시 민족적 특수관계를 탈피한 상태의 북한은 한국을 겨냥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한 셈이라며 전쟁 초반에 선제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해 주도권을 잡겠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했는데 이를 달성하기 위해선 동족·민족 개념부터 없앨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다음 단계인 외교 협상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미 미국 정치권을 중심으로 북핵 문제의 현실적 접근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는 비핵화가 아닌 핵 군축이 핵심이다. 조 위원은 바이든이든 트럼프든 미국은 북한과 핵 문제와 관련한 협상을 할 생각이 있다고 봐야 한다라며 이미 유럽, 중동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국에 북핵은 반드시 관리해야 할 현실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기조가 한국 정부의 비핵화원칙과 전면 배치된다는 점이다. 홍 위원은 북한으로서는 핵보유국 승인과 군축협상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에서 비핵화를 주장하는 한국이 걸림돌일 수밖에 없다결국 통일을 포기하고 적대 국가 관계로 전환해 한국을 당사국에서 배제해 버리는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양 교수는 이대로 가면 한반도 문제에 있어 한국이 패싱(무시)되고, 미국과 북한의 협상 결과에 우리 운명을 맡기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남북관계의 전환은 북한의 외교적 무대를 넓힌다기보다 한국의 개입 가능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의미다.

그렇게 보이는 것그런 것은 유사해 보이지만 큰 차이가 있다. 한반도 내 두 국가 체제의 확립은 기존 남북관계와 유사해 보이지만 분명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전문가들 역시 현재 상황에 대해서만큼은 남북관계가 지금까지는 없던, 처음 보는 상황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 맞다고 입을 모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1‘3·1절 기념사에서 우리의 통일 노력이 북한 주민들에게 희망이 되고 등불이 돼야 한다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역사적·헌법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헌법 제4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조항을 재확인한 것에 가깝다. 문제는 통일이 한쪽의 말만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 간 관계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에 이를 막을 전략과 의지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조 위원은 북한의 통일 포기는 주민이 아닌 정권의 포기에 가깝다차라리 정부에서 평화통일 공세를 강하게 추진해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 교수 역시 북한이 헌법에 적대적 두 국가를 명시하기 전에 대화와 교류협력을 재기해볼 필요가 있다과거 사례를 보면 남북이 대결할 때는 북한이 주도권을 잡고, 대화할 땐 한국이 주도권을 잡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찬호 기자 주간경향 : 2024.04.15.

 

세월호를 이만 잊으려는 그대에게

10년 전 416일의 날씨는 무척이나 화창했다. 영내로 복귀하기 위해 차에 타는데, 차에서 라디오를 듣고 있던 운전병이 흥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전했다. “인사과장님, 인천에서 수학여행 가던 배가 침몰했답니다.” “진짜? 어떡해?” “300명 탔다는데, 근데 다 구조했답니다! 얘들은 수학여행 이빨거리(자랑, 허세 부릴 거리를 뜻하는 해병대 은어) 생기겠습니다.” 운전병과 나는 복귀하는 차량에서 봄바람을 맞으며 수학여행 가기 좋은 날씨라는 태평한 소리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소식이 이빨거리가 아닌, 굉장한 규모의 사회적 참사가 될 것을 전혀 몰랐다. 퇴근 뒤 뉴스채널 보도를 보고 나서야 전원 구조는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417일부터 온갖 지시와 공문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공문은 안전이라는 글자 안에서 허락된 모든 내용에 대해 지시했고, 두서도 없이 여러가지를 반복적으로 요청했다. 당장 부대 시설 안전 진단해서 보고하라, 부대 안전장구 상태를 확인하라, 부대원 전원에 대한 신상 면담을 실시하고 근거를 남겨놔라, 사고 우려자를 확인해서 조치하고 보고하라2014년 그해에만 부대 전체 안전 진단을 족히 열번은 넘게 한 것 같다. 평소 같으면 상·하반기 두차례, 그리고 재난에 대비한 수시 점검 정도만 몇차례 더 했을 일이다. 안전 진단에 대한 지시는 세월호 구조 현황이 절망스러워질수록, 세월호의 침몰을 둘러싼 의혹들이 커질수록 더 잦은 빈도로 지시되었다. 이전 진단의 후속 조치가 채 완료되지도 않았는데 새로운 지시가 내려왔다.

위에선 내용보다도 안전 진단을 했다는 사실 자체, 이 결과를 보고받았다는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자꾸 반복된 지시를 내리면, 어느 순간 받는 쪽에선 요령껏 해야겠다는 마음이 싹트기 마련이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와 후속 조치가 계속 이어지고 있던 그해 6, 강원도 고성의 22사단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세간엔 임 병장 사건으로 알려진 바로 그 사건이다. 애초 범인 임 병장은 긴장도가 높고 장전된 총기와 가까이 지내는 지오피(GOP)에 투입하기엔 무리가 있는 에이(A)급 관심병사로 분류됐다가, 투입을 앞두고 비(B)급으로 조정됐다. 사고 직후 일각에서는 지오피 투입 병력 확보를 위해 무책임하게 등급을 상향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육군 수사에서도 임 병장에 대한 집단따돌림 진술이 확인됐다. 결국 22사단 총기난사 사건은 인원과 총기류 관리 모든 면에서 총체적으로 발생한 관리 부실과 방치에서 비롯한 비극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안전, 안전 난리를 쳤던 바로 2014년 그해에 말이다.

최근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이 출간한 책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 고통의 기록을 정면으로 통과하지 않고서 우리는 그 어디로도 갈 수 없다. 참사의 기억은 미래로 향하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순응하려는 우리의 고개를 붙잡아 세운다. (중략) 우리가 이 기록과 기억에서 도망치려 할 때, 하던 대로 하고 살던 대로 살려 할 때, 한국 사회는 2014415일 세월호가 출항했던 그 밤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참사를 불러온 사회구조를 재생산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다.”

세월호 염불 좀 그만하라며, 교통사고에 왜 자꾸 의미를 보태주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2014416일 이후,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쏟아졌던 온갖 공문, “또야?”라며 피로해하던 그때를 되새겨본다. 한편 그해, 숱한 점검이 반복됐음에도 불구하고 아군의 총에 맞아 죽은 장병과 그 총을 쏠 수밖에 없었던 이의 운명에 대해서도.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22년 서울 한복판 이태원에서 죽은 159,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안전사고들에 대해서도. 기억하지 않아도 되고, 하던 대로 했다 치고살아가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이만 잊으려는 이들에게 저 문장을 새겨주고 싶다.

방혜린 | 군인권센터 국방감시팀장 한겨레 : 2024.04.15.

 

한국의 보수, 길을 잃다

한국의 보수가 갈 길을 잃었다. 보수의 이념은 실종되고, 보수적 정책은 효율성을 상실하고, 무엇이 보수 집단의 정체성인지 모호하다. 기형적 대통령제에서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을 보유하였음에도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것은 한국의 보수가 정치적 나침반을 잃어버렸다는 분명한 징후이다. 이런 징후는 이미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어진 촛불집회에서 명약관화하게 드러났지만, 보수 세력은 당내 민주화를 통해 정치문화를 혁신하는 대신 과거 권위주의적 행태를 답습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거리낌 없이 거론되는 모욕을 당하면서도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지금의 모습은 보수의 혼돈과 종말을 보여준다.

보수가 패배했다는 게 문제가 아니다. 정권을 잡기 위해 정당하게 경쟁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 패배는 결코 몰락을 의미하지 않는다.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해 패했다면, 국민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도록 성찰과 혁신을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보수가 길을 잃었다는 것은 이들에게 성찰과 혁신의 가능성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험난한 탄핵 정국의 위기에도 변하지 않은 보수가 과연 총선 실패로 근본적으로 변할 수 있을까? 만약 이번에도 서로 책임을 돌리다가 혁신의 기회를 놓친다면, 보수는 영원히 길을 잃을 수도 있다.

보수가 스스로 못 변한 게 큰 이유

보수의 실패가 한 정당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보수의 실패는 외견상 진보의 승리처럼 보인다. 승자독식 소선거구제에서 한 정당의 승리는 반드시 다른 정당의 패배이다. 22대 총선에서 국민의 약 45%가 국민의힘 후보에게 투표했음에도 두 정당의 지역구 의석수 차이는 약 1.8배에 달한다. 국민의 의사가 기형적으로 대변되는 이러한 제도에서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진영정치는 선거를 제로섬게임으로 만든다. 한쪽이 이겨도 다른 쪽에 치명적 손해가 생기지 않거나 선거 결과가 전체의 이익을 증대한다면 패배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제로섬게임은 패자뿐만 아니라 승자에게도 이롭지 않다. 승자는 타협과 협력을 추구하는 대신 배제와 분열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관용의 여유가 없는 것은 패자나 승자 모두 마찬가지이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저울질하고 균형을 맞추며 합의점을 찾아 특정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이다. 여론을 중시하고 국민의 다양성을 높이 존중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여러 정당 간 경쟁이 공공선을 증대한다. 정치는 결코 제로섬게임이 아니다. 그런데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양극화가 심화함으로써 민주주의 제도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한 사람의 이익이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의 손실이라는 제로섬 사고가 대중 담론에서 점점 더 자리를 잡게 된 데 있다. 경제적 양극화, 기후변화, 인공지능(AI), 젠더 갈등, 난민 문제 등 오늘날 우리 삶을 위협하는 문제들은 너무도 복잡해서 어느 것도 단기에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모든 문제가 합리적 토론과 장기적 계획을 요구한다. 분열과 증오가 일상화된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합리적 문화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특정 계층과 집단의 이해충돌과 반대의견 때문에 문제 해결 자체가 곤란해진 사회를 제로섬사회라고 한다. 이런 사회에서 여야가 타협과 협력의 문화를 만들어가길 기대하는 것은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보수가 길을 잃으면, 진보도 길을 잃는다. 결국 사회 전체가 길을 잃을 수 있다.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우선 보수가 왜 비참한 결과를 맞게 되었는지 처절하게 성찰해야 한다. 정치평론가와 정치학자들이 이런저런 분석을 내놓겠지만, 나는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했는데도 보수가 스스로 변하지 못한 것이 가장 커다란 이유라고 생각한다. 변화된 상황에서 스스로 변하지 않는 가치는 타당성이 없다. 가치의 지향성을 잃어버린 보수는 단순한 이해집단으로 전락한다. 무엇이 우리가 지켜야 하는 가치인지가 불분명하다면, 누가 보수라고 자처하겠는가? 보수는 위기에 처할 때마다 몇몇 수식어를 첨가함으로써 외관을 바꿔왔다. ‘합리적 보수또는 따뜻한 보수로 변신하다가 진보적 보수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얼굴에 쓰는 가면이 바뀌면 인격도 달라져야 하는데, 보수의 얼굴은 언제나 구태의연했다.

제로섬 사회서 보수가 변할까?

그렇다면 우리는 보수를 어떤 이미지로 보고 있는가? 보수는 본래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고 유지하려는 태도를 가리킨다. 보수는 어떤 가치를 보존하려고 하는가? 보수는 전통적으로 권위주의’ ‘자유주의’ ‘실용주의로 대표된다. 프랑스 대혁명을 비판하며 현대적 보수주의를 정립한 영국의 정치사상가 에드먼드 버크에게 정치는 권위이다. 버크에 의하면 국가는 결코 도덕적 청산, 국가 혁신, 급진적 혁명을 통하여 쉽게 분해하고 재조립할 수 있는 레고 블록 구조물이 아니다. 국가는 역사와 전통으로 만들어진 태피스트리와 같아서 한 가닥의 당겨진 실이 전체 패턴을 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취급되어야 한다.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는 혁명보다는 점진적인 개혁을 선호한다.

따라서 보수는 급진적 변화는 아니더라도 무언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시대가 변하면 가치와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가? 보수는 차별금지법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것처럼 변화 자체를 반대하는 듯하다. 유가적 가치가 완전히 해체된 지금 보수는, 물론 이 점에서는 진보도 다를 바 없지만, ‘권위주의만을 답습하는 것 같다. 이준석, 나경원, 김기현처럼 조금만 다른 목소리를 내도 가차 없이 내치는 윤석열 대통령의 태도에서 일반 국민은 권위주의의 왜곡된 실상을 본 것이다. 22대 총선 결과는 국민이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얼마나 싫어하고 경멸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반권위주의 문화가 널리 퍼져 있는데 권위는 없으면서 권위주의만 고집하는 보수당은 그저 꼰대당으로 각인될 뿐이다. 제로섬사회에서 한쪽이 권위주의적이면 마치 다른 쪽은 덜 권위주의적인 것 같은 착시현상이 일어난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보수의 이미지는 자유주의로 대변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윤 대통령은 가장 적극적으로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어떤 자유주의를 말하는 것인가? 그는 틈만 나면 공산 세력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고 시장경제에 기반해 성장의 기틀을 세운 어르신들의 헌신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의 자유주의는 근본적으로 시장의 자유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이다. 신자유주의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유 시장의 혜택을 받기 때문에 국가가 자원 재분배를 통해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더 나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양극화가 일어나면서 시장이 모든 사람에게 이롭다는 확신은 깨어지기 시작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차별을 경험한 사람, 교육이나 취업 시장에서 기회가 거의 없는 사람, 소수민족에 속하거나 구조적으로 취약한 지역에 사는 사람은 제로섬 사고가 훨씬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로섬 사고는 실패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작용이다.

보수는 언제나 실용적인 집단으로 인식되었다. 이념은 설령 선명하지 않더라도 경제는 훨씬 더 잘 운용하는 집단이라고 여겨졌다. 독일 보수당인 기민당의 총리였던 메르켈은 여러 사회문제에 실용적인 정책을 통해 유연하게 대처할 때는 성공하였지만, 난민 문제를 도덕적·이념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정권을 잃었다.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녹색당의 정책을 과감히 수용하고, 새로운 빈곤이 출현하면 진보당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복지정책을 실행하고, 신자유주의의 문제가 심각해지면 자유방임 경제 노선을 버리고 사회적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탄력성과 유연성을 보인 것이 보수였다. 22대 총선은 이런 확신이 깨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독선적이고 독단적인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실용주의와 거리가 멀다. 한국의 보수는 변화된 사회에서 변하지 않아 갈 길을 잃었다. 다시 길을 찾으려면 보수가 철저하게 환골탈태해서 새로운 정체성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제로섬사회에서 보수가 과연 바뀔 수 있을까?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경향 : 2024.04.16.

 

서중석 선생이 들려주는 4·19

서중석 (1948~)

서중석 선생은 군사정권 때 대학에서 세번 제적되고 고문을 당했다. 그래도 공부를 멈추지 않아 한국 현대사 1호 박사가 됐고 성균관대 교수를 지냈다. 다음은 서중석 선생이 들려주는 4월혁명.

한국은 일찍부터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컸다. “(독립운동가 사이에서) 보통선거 취지가 이미 1919년에 나타났다. 해방 후엔 그런 분위기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민주주의를 짓밟았다. 1960315일에 부정선거를 저질렀다.

마산에서 시민들이 들고일어나자 경찰이 총을 쐈다. “‘공산당 지하 조직이 좌익 폭동을 일으켰다는 거로 몰고 가려고 했다. 그래서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세 젊은이의 시체 호주머니에다가 인민공화국 만세’ ‘이승만 죽여라이런 쪽지까지 집어넣었다.”

이날 마산의 학생 김주열이 최루탄에 맞아 숨졌다. 바다에 버려진 그의 주검이 411일에 떠올랐다. 마산의 어머니들이 들고 일어섰다. 2차 마산 의거다. “411일에 어머니들, 여자들만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하는 사진이 있다. 그 플래카드를 보면 이승만 정권 물러가라고 쓰여 있다.”

418일에 대학생 시위가 시작됐다. “419일 오전 분노한 서울시민들이 탑골공원에 있는 이승만 동상을 끌어내려 광화문까지 질질 끌고 갔다. 이런 역사를 기억한다면, 다시 이승만 동상을 세우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지?” 이날 낮 학생 시위대가 중앙청 쪽 담을 돌 때, 불우한 청소년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사람들이 돌팔매질 같은 걸 막 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그러면서 많이 죽었다. 오후 140분 무렵 경찰이 콩 볶듯이 총을 쏘기 시작한다.” 425일에 교수들이 시위를 했다. 이 시위가 얼굴에 먹칠할 뻔한 상황인 한국의 모든 지식인을 구해줬다.” 426일에 이승만이 하야를 결정한다.

4월혁명의 기억은 강렬했다. 이듬해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조차 “1972년에 가서야 유신을 할 수 있었다. 4월혁명 이념을 말살하는 데 박정희 정부로서도 10년이 넘는 세월이 걸린 것이다.”

김태권 만화가 한겨레: 2024.04.16.

 

한국도 루비콘을 건넜는가

부끄러운 얘기지만 대만 사태가 한국인의 일상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중대 문제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불과 3년 전인 2021년 이맘때였다. 그해 41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공동 문서에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강조한다는 문구를 집어넣은 게 시작이었다. 이후 일본 언론들은 미·일 정상이 이런 언급을 한 것은 52년 만에 처음이라고 호들갑을 떨어댔다. 자료를 살펴보니, 19725월 오키나와 반환을 앞둔 리처드 닉슨과 사토 에이사쿠가 196911월 문서에 비슷한 내용을 넣은 적이 있었다.

 

·일 정상이 반세기 전에 굳이 대만(한반도도 언급했다)을 언급한 것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오키나와가 반환되면 미군의 대응 태세가 흔들릴 수 있다고 박정희와 장제스가 우려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얼마나 걱정이 됐는지 그해 61일치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제주도를 미군기지로 제공할 뜻이 있다는 말까지 했다. 냉전이 끝난 뒤 한동안 잊고 살아왔지만, 대륙과 해양 사이에 자리한 대만·오키나와·한반도는 하나의 큰 공동 운명체라 할 수 있다.

 

 

이런 깨달음은 이틀 뒤인 18일치 아사히신문 7면에 나온 다케우치 유키오 전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의 짧은 인터뷰를 읽고 일종의 공포로 변했다. “자유민주주의적 국제질서에 대한 중국의 도전이 국제사회 전체의 과제이다. 동아시아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같은 동맹의 틀이 없다. 이번 회담은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미-일 동맹을 통해 나토 같은) 디딤판으로 만들었다는 의미가 있다. 스가 총리에게 (그만한) 각오가 있었는지는 불명확하지만, 중국에 대한 이번 의사 표명은 루비콘강을 건넌 것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의 보복도 예상할 수 있다. 확고한 각오와 강고한 대응이 필요하다.”

 

놀란 마음에 미-일의 공동문서를 다시 읽으니 일본은 동맹 및 지역의 안전보장을 한층 강화하기 위해 자신의 방위력을 강화하기로 결의했다는 묘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후 아베 신조, 아소 다로 같은 일본의 유력 정치인들이 대만 유사사태는 곧 일본 유사사태라는 말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일 동맹이 이렇게 변한다면, 그 여파는 곧바로 한국에도 미치게 될 터였다.

 

일본 정부는 이후 202212월 안보 관련 3개 문서를 개정하면서 방위예산(국방비)2027년까지 국내총생산(GDP)2% 수준(5년 동안 2)으로 올리기로 했다. ·일은 다케우치 전 차관이 예언한 대로 동아시아에 나토 같은 동맹의 틀을 만들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협력하는 중이다. 지난해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선 한국을 끌어들여 한··3각 동맹으로 나아가는 첫발을 내디뎠고, 지난 11일엔 워싱턴에서 미··필리핀 정상회의를 열어 남중국해에서 진행 중이던 중국의 공격적 행동을 한목소리로 비난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미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일의 글로벌 파트너십을 외치던 지난 11~12일 한··3개국 해군은 대만이 속한 동중국해에서 연합 훈련을 벌였다.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부와 일본 해상자위대가 낸 보도 자료를 보면, 미 해군에선 항모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세 척의 구축함, 일본 해상자위대에선 호위함 아리아케, 한국 해군에선 이지스 구축함 서애류성룡 등이 참가해 대잠수함 작전등을 진행했다. 앞선 6~7일엔 남중국해에서 미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호주필리핀 등 네 나라가 함께 훈련했다. 대만 사태가 발생하면 한··3각 동맹, 남중국해 사태엔 미···4개국의 연대 틀을 활용해 대처하려는 미국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엔 인·태 지역에서 미국을 떠받치는 핵심 동맹으로 거듭난 일본이 있다. -일 동맹은 더 이상 구호가 아닌 실제 군사적으로 글로벌 동맹으로 위상과 역할이 커지게 됐다. 우리에게 여러 부담스러운 요구를 해올 것이다.

 

돌이켜보면, 일본은 각오하고 결심한 뒤 루비콘을 건넜다. 한국은 어떤가. 이 중차대한 문제 앞에서 어느 때보다 균형 잡기여론 수렴이 중요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자기가 뭘 했는지도 모른 채 이미 한쪽으로 휩쓸려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물러나면 나라 꼴이 우스워지고, 나아가면 가랑이가 찢어질 것이다. 진퇴양난이다. 나라가 위태롭다.

charisma@hani.co.kr 한겨레: 2024.04.18

 

‘300 0’의 의미

22대 총선 이튿날 새벽, 누군가 이렇게 적었다. “한국 정치가 다시 300 0으로 돌아갔다.” 거대 양당과 그 위성정당의 셈법에만 익숙한 이에겐 생뚱맞은 숫자일 게다. 그러나 한때 진보정당의 대의에 동참했던 이들에겐 참으로 사무치는 숫자다. 2004년 민주노동당이 10명의 당원을 국회로 보낸 지 정확히 20년 만에, 진보좌파의 자리는 국회에서 사라졌다. 그 의미와 과제를 짚어야 할 시점이다.

 

혹자는 ‘22대 국회에 진보정당이 사라졌다는 명제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다. 이를테면 진보당, 기본소득당 등이 엄연히 22대 국회에 있는데 왜 진보좌파가 0이라고 주장하느냐라는 반박이다. 답은 명확하다. 진보를 참칭하면서, 보수 기득권이 주도한 위성정당이라는 시스템 해킹에 적극 가담한 행위는 평등·해방의 가치는 물론이고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부정한 작태다. ‘300 0’, ‘기생적 진보정당이 아닌 독자적 진보정당이 의회에서 사라진 현실을 가리킨다.

 

총선에 나온 독자적 진보정당은 하나가 아니었지만, 원내 정당에서 원외 정당이 된 녹색정의당이 아무래도 입길에 많이 올랐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이들을 향한 진단훈수가 쏟아졌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평가는 두가지였다. 하나는 페미니즘에 올인해서 망했다이고, 다른 하나는 다양한 가치를 내세웠지만 선명하지 못해서 졌다이다. 전자는 집중해서 망했다는 것이고 후자는 집중하지 않아서 망했다는 것이니 형식논리상 둘은 양립 불가능하다.

 

페미니즘에 열중하다 망했다는 주장은 정의당 국회의원들, 특히 젊은 여성 의원 류호정과 장혜영이 민생과 노동 의제를 외면했다는 데 대한 비판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정의당 소속 국회의원 6인이 대표 발의한 법안들을 실제로 살펴보면 전혀 사실이 아니다.(강남규, ‘정의당이 노회찬 정신실종?’, 경향신문) 2024년 시점에서 봐도 류호정은 대표발의 61건 중 페미니즘 관련은 3건으로 5%, 장혜영은 차별금지법을 포함해도 42건 중 6건으로 14%에 불과하다. 도리어 이쯤 되면 페미니즘에 소홀한 걸 지적해야 할 지경이다.

 

그럼 다양한 가치를 지향하다 선명성을 잃어서 몰락했다는 평가는 어떨까? 이는 적지 않은 정치 전문가들과 일부 정의당 출신들도 지적하는 부분이다. 불평등, 기후, 여성, 장애인까지, 포기하기 어려운 의제들을 모두 붙잡고 가느라 선택과 집중을 못 하게 됐고, 기존 지지자들조차 다른 당에 모두 뺏기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은 페미니즘 때문에 망했다는 주장보다는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은 다양한 정도를 넘어 심지어 상충하는 의제를 백화점식으로 나열한다는 점, 노동당과 녹색당은 정의당보다 훨씬 선명함에도 현실정치에서 정의당보다 존재감이 없다는 점을 같이 언급해야 공정할 것이다.

 

그렇기에 정의당 패배 요인을 가치의 다양성에 돌리는 분석에 온전히 동의하기 어렵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제는 선명한 하나의 깃발 아래 모이던 시대가 끝났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카를 마르크스조차 생태주의로 재해석되는 시대다. 현대 진보정치에서 가치의 다양성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사실 정의당의 몰락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따지고 보면 조국 사태 같은 국면에서 당 지도부의 오판도 중대한 이유였다.

 

다른 선거처럼 이번 총선도 르상티망’(원한감정)이 주도했다. 이런 조건에서는 내가 잘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잘못되는 데서 정치 효능감이 극대화된다. 누군가가 싫어서 투표하는 사람은 더 좋은 정치가 아니라 그를 가장 아프게 찌를 칼에 투표한다. 그래서 힘없는 세력은 너무 쉽게 사표론의 먹이가 된다. 억울하고 답답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진보정치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말해야 한다. 싫은 놈에게 최대한의 고통을 주는 정치가 아니라 보이지 않던 사회의 상처를 가시화하고 치유하는 정치를 제안해야 한다.

 

이번 총선을 두고 많은 이들이 노회찬과 심상정으로 대표되던 진보정당 시대의 종결을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보정치가 끝난 것은 아니다. 진보정치는 민중의 대변이 아니라 차라리 민중의 발명이다. 삶의 현장에서 다양한 가치를 의제로 만들어내는 열정은 어느 시대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끝내 정치적 주체로 결집시킨다. 결국 그것이 진보정치의 존재 이유 아닌가.

박권일 | 독립연구자·‘한국의 능력주의저자 한겨레 : 2024.04.19

 

부자가 되면 안 되는 까닭

아내와 나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식구회의를 열었다. 영화를 보러 갈 때도, 여행을 갈 때도, 용돈을 올려줄 때도, 옷이나 신발을 살 때도, 학원과 학교를 선택할 때도, 어떤 일이든 식구회의를 열어 결정했다. 지금은 그 아이들이 다 자라 혼인을 하고 자식을 낳고 산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식구들은 만나기만 하면 식구회의를 연다.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고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도 나눈다. 그리고 서로 덕담을 나누기도 한다.

 

나는 식구회의 때, 자식들에게 한평생 소박하고 가난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가끔 한다. 이오덕 선생님 말씀처럼, 가난해야 물건을 귀하게 쓰고, 가난해야 사람다운 정을 가지게 되고, 그 정을 주고받게 된다. 먹고 입고 쓰는 모든 것이 넉넉해서 흥청망청 쓰기만 하면 자기밖에 모르고, 게을러지고, 창조력이고 슬기고 생겨날 수 없다. 무엇이든지 풍족해서 편리하게 살면 사람의 몸과 마음이 병들게 되고, 무엇보다도 자연이 다 죽어버린다.

 

우리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으로 끌려가 목재소에서 일하다 발목을 다쳐 한평생 다리를 절고 다녔다. 그래서 어머니가 34남 많고도 많은 자식을 먹여 살리느라 목장 일에 공사장 일까지 마다치 않으셨다. 한평생 일밖에 모르고 사셨던 어머니는 영양실조에 골병까지 들어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때 그 가난이 대를 이어 오늘까지 내려왔다. 그러니까 우리 자식들은 아무리 부지런히 일해도 부자가 될 가능성은 없다. 아무튼 나는 가난한 부모 덕으로 가난한 농부들과 땀 흘려 일하고, 일하는 사람 귀한 줄 알고 산다.

 

우리 자식들이 부자가 되면 안 되는 까닭은 하늘에 떠 있는 별만큼이나 많다. 한 사람이 부자가 되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가난해질 테니까. 정직하게 땀 흘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습게 여길 테니까. 사람이고 자연이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돈으로 보일 테니까. 함부로 먹고 마시고 쓰고 버리고 허깨비처럼 살다 보면 아이들이 살아갈 오래된 미래인 숲(자연)을 짓밟을 테니까.

 

숲이 얼마나 소중한지, 숲에서 자라는 나무 한 그루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지 누구나 다 안다. 아랫마을에 사는 정순씨는 노인요양원에 출근한다. 하루 내내 몸과 마음이 아픈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이 어찌 고달프지 않겠는가. 그런데 출근길마다 고달픔을 덜어주는 나무가 있단다. 산기슭에 하얗게 보이는 자작나무 한 그루란다. 그 나무만 보면 마음이 어쩐지 위안이 되고 힘이 솟는단다. 몇십억짜리 아파트나 몇백억짜리 고급 빌딩을 하루 내내 본다고 해서 이보다 더 큰 위안이 되겠는가.

 

나무 한 그루도 이렇게 사람을 살맛나게 하고 희망을 안겨준다. 하물며 우리를 살리는 산밭에서 자라는 감자와 고구마와 옥수수는, 쉬지 않고 흐르는 작은 개울에서 살아가는 버들치와 송사리는, 낮은 언덕에 말없이 폈다 지는 구절초는, 대숲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는, 얼마나 사람을 살맛나게 하랴.

 

나는 아들네들이 사람과 자연을 살리는 흙에 뿌리내리기를 언제까지나 기다릴 것이다. 하늘이 주신 자연 속에서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아갈 그날을 애써 기다릴 것이다. 나무처럼 굳세게 서서 기다리고 또 기다릴 것이다.

서정홍 산골 농부 경향 : 2024.04.21.

 

기억은 공간을 통해 이어진다

미국 워싱턴에는 동쪽 끝에 의회 의사당이, 서쪽 끝에 링컨 대통령 기념관이 마주보고 있는 내셔널 몰이라 불리는 긴 공간이 있다.

 

동쪽으로는 각종 역사박물관들이, 서쪽과 남쪽으로는 홀로코스트와 2차 대전·한국전쟁·베트남전쟁 참전용사 추모공원, 마틴 루서 킹 목사 추모공원 등이 자리해 있다. 미국 정치의 핵심부라 할 수 있는 워싱턴은 백악관과 의사당만 있는 공간이 아니라 사실상 거대한 추모의 공간이다.

 

비행기를 타고 뉴욕 맨해튼으로 날아가면 9·11 테러로 파괴된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있었던 자리에 그라운드 제로라 불리는 추모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여기에는 평지에 서서는 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심연을 상징하는 네모난 분수가 북쪽과 남쪽에 하나씩 있고, 당시의 참사를 기억할 수 있는 박물관이 있다.

 

이러한 공간들의 기능은 여러가지이겠으나 그 모든 것을 압축하여 한마디로 하자면 기억일 것이다. 즉 기억은 정보와 상징으로 직조된 공간을 통해 이어진다. 이 공간의 방문자들은 세대에 세대를 더하여, 비극의 역사를 경험했든 경험하지 못했든, 이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이번 4월은 2014416일 발생했던 세월호 참사 10주기이다. 10년이라는 시간은 어느새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생명과 안전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향과, 그것을 위해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회적 대참사의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기억해야 한다는 사회적 흐름을 만들어냈다. 지난 10년의 시간은 한 사회가 비극과 슬픔을 어떻게 애도하고 기억하고 전승할 수 있는지를, 감추어야 했던 기억을 어떻게 공적 공간으로 끌어낼 수 있는지를 치열한 싸움을 통해 학습한 시간이었다.

 

희생자들의 85%가 단원고등학교 학생이었던 세월호 참사에서 무엇보다 중요했던 공간은 이 학생들이 공부하던 2학년 열 개 교실과 교무실이었다. 유품들과 편지들, 꽃들이 놓여 있던 이 교실은 남은 이들이 떠나간 이들을 만나러 가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교실은 추모공간이 아니라 학생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너무나 옳아서 잔인했던 주장에 밀려 세월호 선체가 인양되기도 전인 2016년 단원고 교정을 떠났다. 현재는 안산에 위치한 4·16민주시민교육원 내 단원고 4·16기억교실및 인터넷상 가상공간으로 복원되어 있다.

 

세월호 선체의 인양을 둘러싼 투쟁도 있었다. 세월호 선체는 희생자들이 마지막으로 흔적을 남겼던 공간이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우리에게 말없이 말해줄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진상규명을 말하던 와중에도 이 공간을 더 넓은 공적 공간에 출현시키는 데는 참사로부터 만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기술적으로 어려워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어려워서 걸린 시간이었다.

 

사라져버린 다른 하나의 공간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이다.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설치되었던 텐트 형태의 이 추모공간은 유가족들이 희생자들을, 그리고 다른 유가족들을 만나는 장소였다. 이 장소는 참사 4주기가 되던 2018416일 합동 영결·추도식을 끝으로 철거되었다. 이제는 사회적 추모가 끝났다는 합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 확장된 가치를 지향하는 ‘4·16생명안전공원을 건립하기로 방향이 정해졌기에 진행된 일이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도록 이 공원 부지는 아직까지 공터로 남아 광야의 예배가 열리고 있다. 지금 여러 군데 흩어져 안치되어 있는 희생자들의 유골함을 이곳에 모아 추모공원을 조성하되, 봉안당 공간은 최소화하고 마치 워싱턴이나 맨해튼의 그라운드 제로처럼 모든 시민들이 이곳에 와서 공간을 소비하면서 자연스레 사회적 참사의 역사를 배우고 생명과 안전을 지향하도록 개방된 공원으로 만들고자 하는 계획은 아직 풀들이 어지러이 자라나고 있는 공터 위를 배회하고 있다.

 

참사는 완결될 수 없다. 참사는 누군가에게는 지속되는 현실이고, 누군가에게는 재구성된 서사이며, 다음 세대에게는 자신의 시대를 이해하게 해주는 역사가 된다. 참사와 그 희생자들을 기리는 공간은 몸과 영혼을 지닌 인간이 각자의, 그리고 모두의 기억을 함께 이어갈 수 있게 해준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은 여전히 컨테이너로 된 팽목기억관과 서울시의회 앞 자그마한 기억공간을 불안하게 지키고 있고, 컨테이너 안에서 그날을 노래하며 4·16생명안전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사회는 이 노력에 반응해야 한다. 집단적 기억의 가치에 걸맞은 공적 공간의 조성은 인간에 대한 예의이자 그 사회의 품격이다

최태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경향 : 2024.04.21.

 

김건희 여사의 화려한 부활

대통령실 홈페이지 뉴스룸메뉴에 가면 사진뉴스항목이 나온다. 김건희 여사 사진은 지난해 1212암스테르담 동물보호재단 방문이 마지막이다. 넉 달 넘게 두문불출했기 때문이다. 김 여사는 총선 사전투표도 윤석열 대통령과 따로, 비공개로 했다. 4·10 총선에 미칠 김건희 리스크를 축소하려는 대통령실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총선이 끝나자 사정이 달라졌다. 김 여사는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곳곳에서 존재감이 드러난다.

지난 17일 새벽 TV조선과 YTN이 잇따라 박영선 국무총리·양정철 비서실장 유력 검토설을 쏘아올렸다. 대통령실은 언론 공지를 통해 검토된 바 없다고 밝혔다. 공직 인사를 두고 애드벌룬을 띄우다가 여론 봐가며 접는 일이야 흔하다.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공식라인이 공식부인했음에도 대통령실 일부 관계자들이 검토한 건 사실이라고 거듭 확인했다. 인사·홍보 담당 라인에 있지도 않은 이들이다. ‘비선개입 의혹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박영선 전 장관은 MBC 기자 시절부터 김 여사와 알고 지냈으며 비공식 라인관계자들은 김 여사와 가깝거나 인연이 있다고 한다. 상상하기 어려운 공직기강 문란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인사조치는 없었다.윤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폐지했던 민정수석실을 법률수석실(가칭)로 바꿔 부활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민심을 청취하는 조직이 필요해서라고 한다. 실제 이유가 그렇다면, 폐지하기로 한 시민사회수석실을 없애지 말고 개편하면 될 일이다.

총선 전 거론조차 없던 법률수석을 총선 후 신설하겠다는 건 여소야대 정국을 의식한 방어용으로 비친다. 윤 대통령 본인과 관련된 해병대 채 상병 특검’, 김 여사와 관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디올 백 의혹 특검이 현실화할 경우에 대비하려는 것 같다. 정작 시급한 특별감찰관·2부속실 설치는 뒷전으로 미룬 채 세금으로 용산 로펌을 운영하겠다는 건가.

김 여사에게 디올 백을 전달한 최재영 목사가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추가 입건됐다. 스토킹 혐의가 인정되려면 피해자가 불안과 공포감을 느껴야 한다. 김 여사 조사가 필요한 이유다. 조지호 서울경찰청장은 필요하면 (조사)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현 단계에서 판단하기는 성급하다고 말했다. 법 집행에는 공정·균형·형평이 요구된다. 범죄 성립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입건하지 말아야 한다. 일단 피고발인을 입건했으면 피해자 조사도 해야 옳다.

총선 이후 검찰 안팎에선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 교체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를 지휘하는 송 지검장이 올해 초 김 여사를 소환조사하려다 대통령실과 갈등을 빚었다는 설이 파다한 터다. 대한민국 국민 중 불소추 특권을 갖는 이는 단 한 명, 현직 대통령 뿐이다. 윤 대통령은 헌법에 없는 특권을 배우자에게 선물하려 한다.

최근 윤 대통령이 관저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며 관저 정치라는 말까지 등장했다”(중앙일보). 딱 한 줄이지만, 함의가 작지 않다. 비선 의혹, 관저 정치.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의 임기 말, 이런 표현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렸다. 윤 대통령은 박근혜씨를 수사해 탄핵으로 이끈 국정농단 특검팀의 주역이었다. 이런 말들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다.

클라우스 요하니스 루마니아 대통령이 22일 공식 방한 일정을 시작했다. 요하니스 대통령은 배우자 카르멘-제오르제타 여사와 함께 입국했다. 김 여사도 정상외교 관례에 따라 공개 석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공식 활동 복귀의 신호탄이 될 것이다.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경향 : 2024.04.22

 

 

국민을 대변하는 비판은 왜 총선 후에 나오는가

최근 미디어오늘 17일자와 18일자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 . 이들 기사에서 소개하는 보수언론의 대통령과 여당 비판은 TV조선만이 아니라 채널AMBN에서도 등장했다. 김주하 MBN 앵커는 지난 16지금까지 해왔던 국정 운영방향은 옳은데 소통이 잘 안된 것이라고 보는 걸까라고 지적했다.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은 지난 12일자 칼럼에서 모든 문제는 윤 대통령, 더 정확히는 윤 대통령 부부에게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 정권을 향한 보수언론의 비판을 뒤집으면 이렇게 되물을 수 있다. 언론은 왜 국민한테는 그리 박절했던 건가? 바퀴벌레도 우습게 볼 언론의 변신 언론은 제 역할을 다했는데 소통이 안 된 건가? 국민을 대변하는 비판은 왜 총선 전이 아닌 총선 후에 나오는가?

 

국정운영의 방향과 실태에 대해 언론은 해당 언론사의 이념적 성향과 판단에 의해 지지·옹호할 수도 있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언론사의 그런 비판보도가 총선에서 여권이 승리했는가, 참패했는가에 따라 등장한다면 우리는 기회주의적 면피성 보도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정운영의 난맥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민적 비판에 부딪혀 왔다. 이를 비판하는 일부 동료언론이 제재와 탄압에 시달리는 것 역시 국민을 불안케 했다. 그런데 총선 성적을 보고 나서야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면 무엇에 의한 무엇을 위한 비판인가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건 당연하다.

 

언론이 국민의 알 권리를 대변한다는 명제를 틀리다 할 수는 없다. 언론은 분명 그런 기능을 하고는 있다. 그러나 국민의 알 권리 대변은 이미 오래전부터 언론이 취재를 통해 정보를 입수하고 유통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데 필요해 만들어낸 허구적 개념이라고 비판받아왔다. 총선에서 특정 정당의 승리를 기대하며 또는 기원하며 비판을 자제하다 참패로 끝나 정국의 향방이 달라지고 나서 비판을 제기한다면 국민의 알 권리를 대변한다는 명제는 허구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늦게라도 벌어지는 보수 언론들의 정권에 대한 꽤나 신랄한 비판을 무어라 해석할 것인가? 국민의 심판에 가까운 총선 결과를 두고 우리도 실정과 폭정에 대해 이런저런 경고들을 무수히 날렸다변명의 여지를 만드는 밑작업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언론으로서, 언론사로서의 신망과 위세를 어떻게든 유지하려는 포석처럼 보인다. 강도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도 할 바를 하려 애썼다고 명분을 얻으려는 나름의 방어기제 작동이라 해석해도 크게 빗나가진 않을 것이다. 지난 17TV조선 앵커가 저녁 메인뉴스 뉴스9’에서 여당을 향해 일갈한 내용을 다시 읽어보자.

 

늘 봄바람처럼 태평한 사시춘풍 두루춘풍들이다. 머뭇거리며 안이하고 구차하게 땜질하는, 망하는 팔자다. 처참하게 패배해 땅바닥에 으깨지는 일패도지를 당하고도”(‘앵커칼럼 오늘’, <조용한 국민의힘>)

변상욱 언론인 미디어오늘 2024.04.22.

 

 

생존하는 도시의 덕목

각국 경제 규모를 나타내는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대한민국은 2018년 이후 10위권 밖에 위치해 있다. 비교 단위를 도시로 확대하면 순위는 더 밀려난다. 천의영 경기대 교수가 저서 <메가시티 네이션 한국>에서 GDP와 광원(불빛) 기반 지역총생산(LRP)으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14위 대한민국 위쪽으로 비국가 4곳이 있다. 보스턴~워싱턴을 잇는 보스워시’, 시카고 일대 그레이트 레이크’, ‘파리~암스테르담~뮌헨’, ‘양쯔강 삼각주등 미국·유럽·중국의 메가리전(megaregion)들이다. 인구 1000만명 이상 메가시티(megacity)가 주변 동질성을 띤 도시들과 기능적으로 연계되며 집적된 지역이다.

 

지구인의 60%, 한국인의 90%가 도시에 산다. 특히 세계 인구 13%34개 메가시티 시민이다. 2020년대 후반이면 지구 면적 2%에 인구 62%가 몰리고, 2030년이면 메가시티 10개가 새로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람과 자원이 집약되며 규모의 경제, 문화의 다양성을 갖춘 공간들이 세계 경제를 이끌고 이는 곧 국가의 경쟁력이 됐다. 미국 GDP20%를 차지하는 보스워시는 대한민국 전체의 2배 규모 경제활동이 이뤄진다.

 

빈부격차, 소외 등 역효과에도 거스를 수 없게 된 도시화에 따라 각국은 지역과 공간에 대한 전략을 두고 고심 중이다. ‘성장의 시대이후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로 GDP·일자리 등 경제적 지표만으로는 안 되고 삶의 질에서도 비교우위를 가져야 한다. 면적보다 설계와 구상이 관건인 셈이다.

 

네덜란드 하우턴은 서울의 10분의 1 면적에 인구 5만명이 사는 소도시이지만 자전거 도시의 정석으로 불리며 많은 행정가들이 찾는다. 동서로 뻗은 자전거 전용도로를 중심으로 지하철역·학교·시청·병원 등 공공시설과 마트·식당 등 상업시설이 집적돼 도시의 모든 기능이 어디서든 자전거로 10분 안팎에 접근 가능하다. 이는 최근 대도시 문제, 기후위기의 해법으로 부상한 ‘n분 도시를 떠올리게 한다.

 

도시 모델이나 전략에 범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과 욕망, 시간의 역사가 쌓인 각자의 공간 문제이기 때문이다. 공통점이라면 단기간 성과를 만들 속도전의 비법이 없다는 것이다.

 

하우턴의 철학은 1970년대 개발 몰입에 대한 반동으로 시작돼 30~40, 길게는 반세기 만에 정책으로 실현됐다. 최근 한국에서 도심 재개발 모델로 꼽는 도쿄 역시 대개조를 위해 일본 정부가 도시재생특별조치법을 만든 게 2002년이다. 뉴욕 맨해튼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주목받는 허드슨야드도 2005년 프로젝트 계획이 수립돼 20년이 다 돼서야 실체가 보이기 시작한다. 지역이 확장하며 공존하는 시대적 흐름이 설계한 메가리전은 더욱 그렇다.

 

선거가 끝나면서 한철 바짝 주가를 올린 전국의 개발과 서울 편입의 이슈는 사그라들 조짐이다.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도시의 덕목은 애초에 목련 피는 봄 오면과 같은 정치적 구호를 외칠 수 있는 사회에선 기대할 수 없다. 반년도 지나지 않아 사라질 담론, 전략은 생략된 채 구호만 난무하는 한국. 그 안의 도시 경쟁력은 요원할 뿐이다.

김보미 전국사회부 차장 경향 : 2024.04.22

 

동 이름을 외국어로 짓겠다는 부산 강서구청

신도시 조성지구 '에코델타동' 작명 추진

이유 물어보니 "전국 처음 해보고 싶어서"

 

부산시 강서구청에서 신도시 조성 지구의 법정동 이름을 에코델타동이라는 국적 불명의 외국어로 지으려 한다. 강서구의회에서 반대했지만 구청은 이를 강행하여, 현재 검토 승인 요청이 부산시청 자치분권과를 거쳐 행정안전부 자치분권지원과에 가 있다.

 

2023128일에 한글문화연대와 한글학회를 비롯해 75개 국어단체가 반대 의견을 밝혔음에도 1226일에 강서구 지명위원회에서는 에코델타동으로 새로운 법정동 이름을 결정하였다. 이에 대해 2024112일 강서구의회에서 법정동 이름을 외국어로 짓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냈으나, 강서구청은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다. 국어단체들이 38일 부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청 담당자들을 만나 부당함을 밝혔음에도, 부산시에서는 명확한 입장 없이 행안부에 승인을 요청하였다.

 

우리말로 이름을 지을 수 없다면 모를까, 한국어로 이름을 지을 수 있는 상황에서 외국어로 법정동 이름을 짓는 것은 국어기본법에 어긋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반헌법적 발상이므로 절대로 승인해서는 안 된다. 강서구청에서는 신도시 입주 예정자들을 상대로 한 의견 조사에서 에코델타동의 선호도가 가장 높았다는 점을 결정 근거로 내세우고 있으나, 강서구 신도시의 땅이라고 해서 대한민국 바깥에 있는 게 아니다. 모든 걸 해당 지역 주민의 다수 의견대로만 한다면 행정부와 의회, 법이 왜 필요하겠는가?

 

이미 강서구의회에서 올바로 지적한 것처럼, 강서구 지명위원회의 결정은 강서구 국어진흥조례 제8조를 위반한 것이므로 적절하다고도 할 수 없다. 강서구 국어 진흥 조례 6조와 8조에서는 공공기관이나 정책 등의 이름을 정할 때 일상생활에서 대부분 사람이 자주 쓰는 낱말로 작성하고, 외국어 사용을 자제하라고 정해 두었다.

 

강서구의회에서 진행된 법정동 명칭 제안과 토의 과정에서 밝혀졌듯이, 강서구청은 전국에서 최초로 법정동 이름을 외국어로 지어 국민의 이목을 끌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강서구청 심숙희 총무과장의 발언을 보면 강서구의 의도가 애초부터 에코델타동을 법정동 이름으로 지으려 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그는 의원들 질의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냥 제 생각에는 요새 세계화 추세에 전국으로 처음인데 그냥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해보면 또 저희들을 보고 다른 데서도 아마 생길 수 있을 것 같고, .”(출처: 심숙희, 2024, 245_부산강서구의회_회의록(2))

 

부산 강서구청은 주민 의견 조사 결과를 앞장세우고 있으나, 사실은 애초에 명칭을 정하기 위한 연구 용역 결과에서부터 에코델타동’ ‘뉴델동’ ‘리버델타동등 세 가지를 제안하여 외국어로 이름을 지으려는 의도를 드러냈었다. 나서서 외국어 남용을 부추긴 꼴이니,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로서 할 짓이 아니다.

 

전국의 법정동 3,648개 가운데 외국어 이름은 하나도 없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의 거주지 이름이자 국토의 이름이기에 공용어인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헌법 정신에도 맞기 때문이다. 2004년 헌법재판소에서는 “.... 국명을 정하는 것, 우리말을 국어로 하고 우리글을 한글로 하는 것 .... 등이 국가의 정체성에 관한 기본적 헌법사항이 된다고 판시하였고, 2005년 제정된 국어기본법 제3조에서는 한국어를 대한민국의 공용어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공적인 업무와 문서에서 한국어를 사용하고, 정부 및 지자체의 이름과 공공시설의 이름, 국토의 이름 등을 공용어인 한국어로 짓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렇지만 부산시 강서구청에서는 전국 최초로 외국어 법정동 이름을 지어 보려는 공무원들의 비뚤어진 공명심 때문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이고 있다.

 

부산은 다른 지역에 비해 외국어로 이름 지은 지구나 시설이 월등히 많다. 특히 우리말로 쓰고 있던 달맞이길문탠로드, ‘광안대교다이아몬드브릿지로 별칭을 붙이기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새로 이름을 지을 때 그린레일웨이’, ‘마린시티’, ‘센텀시티’, ‘에코델타시티’, ‘오션시티등 외국어를 사용한 일이 많았다. 최근에는 휴먼브릿지’, ‘금빛노을브릿지’, ‘사상리버브릿지’, ‘감동나루길 리버워크등 새로 만드는 시설 이름에도 외국어 이름을 붙이고 있다. 공공시설과 지역 이름에 외국어를 사용하면 주민 가운데 외국어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안전을 위협하며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깎아 먹을 위험이 크다. 언어 인권의 침해이자 정체성 훼손이다.

 

부산에서 민족 제일의 문화유산인 우리말을 등한시하고 지역 곳곳을 외국어로 이름 짓는 것은 한국 문화를 끌고 가는 도시로서의 품격을 떨어트리는 짓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세계적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한국 영화의 성장이 있고 한국 영화는 한국 문화를 발판 삼아 성장하였다. 한국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부산에서 외국어를 앞세우는 것보다 우리 문화의 뿌리인 우리말로 이름을 짓는 것이 국제도시로서의 부산의 품격을 훨씬 더 높여줄 것이다.

 

해당 지역에 입주할 예정인 일부 사람들은 에코델타동을 선호하는 주민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나 본데, 우리말로 법정동 이름을 짓는다하여 특별히 어떤 손해나 피해를 입는 게 아니라면 우리 문화의 발전과 언어 인권의 보호를 위해 생각을 바꿔 주기 바란다. 거대한 둑에 작은 구멍 하나가 생겨 물이 새기 시작하면 둑 전체가 무너질 위험이 있다는 건 그저 동화에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화 시대라고 무조건 우리 것을 뒷전으로 내던질 일이 아니다. 개방할 것과 지킬 것을 잘 헤아려주기 바란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시민언론민들레 2024.04.23.

 

 

진보의 얼굴

진보가 개념으로 자리 잡은 것은 18세기 후반이다. 근대 초기, 빠른 과학 발전과 부강한 민족국가에 대한 낙관적 전망은 인류가 열등한 과거에서 우월한 미래로 진화하고 있다고 믿게 했다. 이때 진보는 역사적인 단계를 의미했으며, 그 주인공은 스스로 역사의 주체가 된 보편적 인류였다. 그런데 19세기에 이르러 인류가 진보한다는 믿음이 대중적으로 널리 퍼지면서 진보는 필연적 법칙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인류가 더 강해지고 더 똑똑해지고 더 새로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누가 어떻게 그럴 것이며, 무엇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가치인가? 이제 진보는 역사 발전의 단계가 아니라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가 되었다.

 

이 간략한 역사로 알 수 있는 것은, 진보를 의미하는 특정한 사상, 이념, 정치가 따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진보에는 더 나은 미래라는 뜻이 이미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차라리 대다수의 사상가, 이념가, 정치인이 저마다의 진보를 자임한다고 말해야 한다. 특히 한국현대사에서는 냉전 체제 이후 반공 이데올로기가 극심했던 1960~1970년대에 한동안 진보 담론이 공소했다가, 군사독재정권이 물러난 이후 민주화 운동이 가열되었던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에 진보 담론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여기는 이는 이전보다 더 발전했다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하기보다는 그것을 다만 전제한 상태에서 행동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슬픈 사회주의자>)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진보의 의미란, 역사 발전의 단계도 아니고,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도 아니며, 이전보다 발전했다는 자기증명은 더욱 아닌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현재 진보정치를 담당하는 이들은 더 이상 스스로를 입증하지 않고도, 정권 심판과 적폐 청산이라는 기치 아래 보수라는 외부의 적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상대적인 진보의 위치를 가까스로 연명하고 있는 것 아닐까.

 

우리가 최소한으로 합의할 수 있는 진보 정치가 있다면, 수십년 전에 배치된 구도 안에서 어느 진영에 소속되어 어떤 이념을 천명하느냐가 아니라, 지금 이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실제로 절박한 문제와 필요한 가치를 새롭게 갱신해 나가고 있느냐를 물어야 한다. 소수 진보정당이 흔적을 감추고 거대 양당과 그 위성정당의 이분법적 구도가 강화된 시점에서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부패하고 불공정한 통치 집단의 인적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아니다. 대의민주주의 제도 안에 평화운동, 기후운동, 퀴어 페미니즘, 장애인 권리와 질병 담론 등 더 나은 삶을 위한 다양한 의제에 귀 기울이는 자리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다. 실제로 우리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억압과 폭력이 기득권의 인적 교체 이후에 나중에해결해도 되는 문제로 밀려나고 있는데도, 진보의 가치가 획일화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불감증이다.

 

진보의 얼굴은 필연적으로 다양할 수밖에 없다. 더 나은 삶, 더 좋은 사회, 더 나아간 정치를 지향하는 저마다의 꿈은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레드 콤플렉스에 시달린 시기에조차 진보의 이미지는 최소한 농민, 노동자, 청년, 여성, 소수자 등의 다양한 얼굴로 상상되었으나, 지금은 차라리 수십년째 독재정권에 저항해 정의를 부르짖는 투사의 단일한 얼굴로 표상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진보가 더 나은 가치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과 무관할 수 없다면, 그것은 억압과 폭력에 고통스러워하는, 그러나 여전히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수많은 이들의 얼굴을 상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인아영 문학평론가 경향 : 2024.04.24.

 

 

총선이 지운 이름 민주시민

알렉시 드 토크빌은 선거에 의한 대의 공화제가 민주주의라고 규정했다. 공익 논쟁의 무대가 민주주의이고, 이 과정에서 표출된 갈등을 다투면서 공익을 합의하는 게 정치(선거)라는 뜻이다. 이번 총선은 오래된 속설을 멀찌감치 비켜갔다. 가장 나은 후보를 가려내는 역할을 내던진 정당, 경쟁자를 적으로 간주한 정치인, 국가와 시민사회의 체인벨트 역할을 포기한 (무쟁점) 정치. 어디에도 정치와 민주주의의 권위는 없다. 한 정치학자는 모든 정당, 보편적인 정치가 붕괴됐음을 확인한 첫 선거라고 한탄했다. 주권자 입장에선 더 나쁜 세력을 막기 위해 덜 나쁜 세력에게 표를 준 선거로 변질됐다. 최선이 없다면 차선을 택했던 기존 선거와 달리 최악을 면하기 위해 차악을 골라야 했던 것이다. 차악이라 해도 은 악이다. 악이 만들 세상에 대한 신뢰가 있을 리 없다. 선거 내내 자질 논란을 빚었던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지역구에서 승패 득표 차(2377)보다 무효표(4696)가 더 많았던 것이 이를 입증한다. 그런데도 총선 2주가 지나도록 승자의 성찰도, 패자의 반성도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참패 성적표를 받아들고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고도의 정치를 하는 자리가 대통령인데 정치를 하겠다니 무슨 소리인가. 만시지탄이지만 그간 정치를 하지 않았다는 자성일 수 있겠다. 실제 윤 대통령 집권 2년은 무능, 오만, 편향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된다. 총선 결과는 정치를 하지 않은 대통령에 대한 매서운 질책이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국정 메시지를 쉽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황스럽다. 쉽든 어렵든 소통의 내용이 잘못됐고, 국정기조를 안 바꾸면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게 총선 민심이다. 윤 대통령 반응은 이를 알고도 무시하거나, ‘윤석열 사태에 준하는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윤 대통령은 야당과의 소통도 정치하는 대통령이 할 일로 꼽았다. 집권 당시 여소야대와 달리 지금은 윤 대통령이 만든 여소야대다. 여당은 21대 총선에 견줘 5석이 늘었지만 실질적 지표는 악화됐다. 개헌·탄핵 저지선을 겨우 넘긴 수준이고, 대통령은 여당을 장악하는 힘을 잃었다. 이런 상황에 느닷없이 박영선 국무총리 후보설이 흘러나왔다. 윤 대통령이 박 전 장관을 총리로 임명하고 싶다면 야당의 양해를 구하고 거국내각 수준의 협조를 요청하는 게 우선이다. 친분 있는 야당 인사를 중용해 협치 모양새를 만들고, 이를 야당이 받으면 다행이고 받지 않으면 야당 탓 할 수 있다 생각했던 모양이다. 윤 대통령은 또, 집권 후 처음으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회담을 제안했다. 잘한 결정이다. 하지만 만나기만 한다고 소통, 협치가 되는 건 아니다. 이번 회담은 정치 복원 신호탄이자 정치의 효용을 확인하는 자리여야 한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모든 의제를 열어놓고, 이 대표 말을 많이 듣겠다고 한다. 이런 방식은 대통령 지지율이 높거나 신뢰관계가 두터워야 가능하다. 지금이 그런 때인가. 회담이 총선 참패 위기를 모면하려는 반짝 이벤트가 아니라면 윤 대통령이 합의 가능한 의제 설정에 적극 나서야 하고, 필요하다면 지지층을 설득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채 상병 특검, ·정 갈등부터 서둘러 해결해야 한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정당 득표율 차(5.4%포인트)4년 전 총선에 견줘 3%포인트 줄었다. 민주당은 조국혁신당의 지민비조 덕을 톡톡히 누렸다. 169석으로 원내 1당을 굳힌 민주당이 자력 승리라 착각하면 안 되는 이유다. 그런데 민주당은 예상 경로를 이탈하고 있다. 총선에서 이기고도 지도부 총사퇴라는 납득 불가 상황이 발생했고 새 지도부는 주류 단일 대오로 채워졌다. 이재명 대표 연임 논란이 국회의장 경선전까지 번지고 있고, “협치는 없다는 반정치 메시지가 커지고 있다. 하나같이 총선 민심을 받드는 자세라고 볼 수 없다.

 

특히 조국혁신당은 민주당 진로의 변수가 될 수 있다. 총선 결과, 호남에서 민주당은 조국혁신당에 밀렸다. 호남 표심은 민주당에 대한 채찍질이라기보다 조국혁신당을 대체재로 선택한 것이라는 분석이 중론이다. 민주당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강성 지지층 목소리만 듣고, 당내 이견을 봉쇄할 경우 조국혁신당이 반명·비명 그룹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 벌써부터 김경수 전 경남지사 사면·복권설이 나오고 있고, 민주당 일부 인사들의 입당 문의도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총선 때 약속한 교섭단체 기준 완화를 백지화할 기세다. 당 안팎 통합 노력을 소홀히 하는 것, 이 역시 총선 민심에 대한 역행이다.

 

아직 총선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헛헛하다고 한다. 주권자인 내가 투표권을 가진 정치 고객이었을 뿐 민주시민으로 대접받지 못해서라면 가혹한 생각일까. 견고한 진보주의자 홍세화 선생이 18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배제된 자들과 민주시민의 간극을 줄이는 데 평생을 걸었다. 그가 품었던 우리가 싸우는 과정 자체가 그 싸움을 통해 획득하려는 사회와 닮아야 한다는 말을 되새긴다. 주권자를 민주시민 자리에서 내몬 지금 정치가 답해야 할 질문이고 기꺼이 감당해야 할 숙제다.

구혜영 정치부문장 경향 : 2024.04.24.

 

 

지금이 사과 타령이나 할 때인가

지난달 베란다 화분에 홍로 사과나무를 옮겨 심었다. 지난 2년간 뒤뜰에 있던 것인데 일조량이나 기온 탓인지 도통 꽃을 피우지 못해서다. 북쪽에선 싹 틔우기도 힘드니 꽃이 필 리 없다. 올해는 홍로를 맛볼 수 있을까.

 

올해만큼 이토록 화려했던 봄은 내 일찍이 못 봤다. 진달래, 개나리가 벚꽃과 동무가 되고, 목련이 채 피기도 전 벚꽃잎이 봄바람에 휘날린다. 조팝꽃이 산수유보다 일찍 향을 뽐내질 않나. 온통 뒤죽박죽이다. 봄의 전령들은 어쩌다가 이런 철부지가 됐을까. 덕분에 봄나들이는 멋지게 즐겼지만 왠지 씁쓸하고, 슬슬 불안해진다.

 

누구는 <침묵의 봄>(1962)을 우려했어도, 우리는 이 화사한 봄을 더 걱정해야 할 판이다. 만일 봄 기온이 갑자기 3도 정도로 떨어져 수십일 지속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농작물은 태반이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할 것이다. 어떤 영화처럼 자전축이 틀어지거나 하는 사태가 아니어도 이런 위험이 불현듯 닥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요즘 문득 든다.

 

최근 사과를 비롯한 과일, 채소 가격이 치솟았다. 그래 사과 정도는 안 먹고 살아도 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게 쌀이나 밀일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식량값이 뛰었는데 기후위기 심화 땐 상상조차 힘든 충격이 닥칠 테다. 이러다간 훗날 서울시청 광장에 웬 잔디밭인가, 용산민족공원은 무슨 배부른 소린가라며 대파밭으로 갈아엎자고 할지도 모른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사과 가격은 금리가 아니라 수입으로 잡아야 한다는 투로 말했다. G7, 대만과 비교하니 올해 국내 과일, 채소 가격이 가장 많이 올랐다고 한다. 휘발유 같은 에너지류 소비자물가도 세계 2위다. 즉 한국의 물가는 중동사태·기후변화 등에 가장 취약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쯤 되면 한은은 반성문을 내야 한다.

 

한은 본관에는 장삼이사도 쉬이 알아보게끔 큼지막한 한글 글귀가 걸려 있다. ‘물가안정.’ 한은의 최우선 덕목이자, 존재 가치란 사실은 한국은행법 제1조를 비롯해 곳곳에 명시돼 있다. 한은이 금융안정등을 이유로 경기침체니, 가계부채니 걱정하기에 앞서 맨 먼저 챙겨야 할 게 물가다. 나머지는 정부에 책임을 넘기면 된다. 물가를 못 잡은 건 새가슴 탓인가, 정권 눈치보기 탓인가. 한은 독립성이 무슨 의미인지 곱씹어봐야 할 때다.

 

과거 박근혜 정부 시절 빚내서 집 사라정책에 호응해 초저금리를 만든 장본인이 한은이다. 그렇게 부풀린 가계부채를 이유로 이제는 물가 잡기를 머뭇거린다면 자가당착이다. 2022년 집값이 조정기에 들어갔을 때 금리를 올렸어야 한다. 적어도 지난해 늦여름쯤은 인상 타이밍이었다. 심지어 최근 미국에선 금리 재인상론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우리도 언제든 금리를 올릴 준비가 돼 있다는 메시지라도 적극 내라고 주문하는 전문가가 적잖다.

 

서민들 고혈을 빠는 고물가의 큰 책임이 한은에 있다. 물론 금리를 올리면 영세 자영업자 같은 취약차주의 고통이 커진다. 다만 이들은 선별적 구제책으로 보살피면 된다. ‘한강의 큰 줄기부터 봐야지, ‘샛강을 너무 따져선 일을 그르친다.

 

개방형 통상국가.’ 노무현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추진에 지지세력의 비판에 부딪히자 내건 캐치프레이즈였다. 그러나 나랏일이 어디 계산대로만 되는가. 며칠 전 농림축산식품부 자료를 보면 2022년 한국 농업 현주소는 참담하다. 20년간 FTA 이후 농가가 줄어든 건 이해가 되는 바다. 농촌 노령화 속 농가 축소는 자연스럽다. 그러나 농가당 농업소득이 949만원에 불과해 20041205만원보다 21.2%나 줄었다. 이건 어디가 한참 잘못된 결과물이다.

 

윤석열 정부는 어떤가. 그저 지원금 풀어서 사과, 배 가격이나 선거 앞에 일단 떨어뜨려보자는 것 외 어떤 농업대책을 갖고 있을까. 특히 이 정부는 올해 농업 R&D 예산을 20% 넘게 줄였다. 그저 한 일이라곤 식품업자들을 불러 앉혀서 빼빼로, 붕어싸만코, 꼬북칩 가격이나 겁박하고, 대파값 갈등을 자초한 것밖에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옹졸하게 분개하지 말자. 모래야 바람아, 정말 얼마큼 작으냐.

 

요즘 편의점에는 간편식이 다채롭게 나오고 있다. 그 이유를 최상목 기재부 장관이나 이 총재는 알고 있을까. 장차 나라를 짊어질 동량들이 끼니를 때우기 급급한 모습이다. 장관님, 총재님은 오늘 점심으로 뭘 드시려는가.

전병역 경제에디터 경향 : 2024.04.25.

 

 

운조루 종부 할매

구례에는 영조 52년에 지어진 고택 운조루가 있다.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자가 새겨진 큰 뒤주로 유명한 집이다. 운조루의 주인 유씨 가문은 1년 소출의 20퍼센트인 쌀 서른여섯 가마니를 이 뒤주에 넣어 쌀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라도 가져가도록 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유씨 가문의 종부, 이길순 할매다.

나는 이 할매를 오래전 텔레비전에서 처음 만났다. 전국의 명문가를 찾아다니며 그 집만의 특별한 요리를 소개하는 프로였다. 멋진 고택에 어울리는 멋진 요리가 줄줄이 나왔다. 근현대사의 격동 속에서도 품격 있는 집안에서는 저렇게 손 많이 가고 귀한 음식을 해먹었구나, 어쩐지 배알이 꼴리는 것도 같았다. 구례 운조루라는 자막이 뜨더니 허리 질끈 묶은 일복 차림의 할매가 촬영팀을 끌고 밭으로 향했다. 할매는 볏짚을 걷어내고 괭이로 언 땅을 파헤치더니 무릎 꿇은 채 땅속 깊이 손을 넣었다. 할매는 그날, 유씨 가문의 별식이라며 겨울 무에 돋아난 연둣빛 싹을 잘라 데치고 무쳤다. 다른 종갓집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하찮은, 그러나 나 같은 서민도 익히 아는 진짜 겨울 별미였다.

 

구례로 돌아온 몇년 뒤 읍내로 향하는 중이었다. 택시 기사가 한 할매를 보고는 태워드려도 되겠냐 양해를 구했다. 어차피 남는 자리, 그러시라 했다.

 

집이 코앞이요. 고맙제만 그냥 가씨요.”

그래도 걸어가실라먼 힘드시잖애라.”

펭상 다니던 질인디 멋이 힘들겄소.”

 

할매는 끝내 택시에 타지 않았다. 그이가 바로 운조루 종부였다. 할매는 봄부터 가을까지 집에서 3~4떨어진 밭을 다니며 일을 한다고 했다. 돈이 없는 집도 아닌데 한여름에도 택시를 탄 적은 물론 없단다. 그 뒤로 운조루에 갈 때마다 할매를 눈여겨 살폈다. 할매는 언제나 부지런히 몸을 놀리고 있었다. 운조루의 정취를 구경하러 온 손님 중 누구도 허름한 일복을 입은 채 깨를 털거나 콩단을 나르는 할매가 종부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어느 가을밤, 운조루 정자에서 흥겨운 콘서트가 열렸을 때도 할매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종종걸음으로 마당을 오가며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었다.

 

부잣집으로 시집간다고 다들 부러워했지만 할매는 시집올 때 꽃가마도 타지 못했다. 달구지를 타고 시댁으로 왔더니 행랑채고 안채고 낯선 사람들이 드글거렸다. 반란군에게 양식을 대준다는 이유로 군인들이 산 밑 마을에 불을 지르고 쫓아내던 시절이었다. 오갈 데 없는 사람 중 상당수가 운조루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할매는 낯선 여자들과 대청마루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결혼생활은 한시도 숨 돌릴 새 없는 노동의 연속이었다. 겨울이면 찬물에 대식구 빨래를 하느라 벌겋게 달아오른 손이 퉁퉁 부어올랐고, 펼 새 없는 허리는 늘 시큰거렸다. 그 와중에도 아이는 줄줄이 태어났고 시어머니가 돌봤다. 자식 얼굴 볼 새도 없이 할매는 소처럼 일만 했다. 아이들은 할매를 성이라 불렀다. 시누이가 성이라 부르니 자기들도 그렇게 부른 것이다.

자석 이삔 줄도 모리고 살았소.”

 

할매는 평생 뼈빠지게 일해서 시할머니의 뜻을 이으며 산다. 할매는 보리물 죽을 끓여 살뜰히 모셨던 시할머니의 가르침을 지금도 잊지 않았다. 시할머니는 집안일 하는 사람 누군가 나뭇단에 쌀자루 숨겨놓았다는 말을 듣고 고자질한 사람을 나무랬다.

네 이놈! 손대지 말고 가만히 두거라. 오죽 굶었으먼 그랬겄냐!”

 

시할머니는 당신 딸들에게는 누룽지나 먹이면서도 굶주리는 이웃의 사정을 헤아리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유씨가문 덕분에 인근의 농민들은 자기들 굶주릴 때 부잣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부자에 대한 분노를 키우지 않아도 되었다. 굶주림에 못 이겨 헐값에 자기 땅을 넘기는 일도 없었다. 운조루와 인근 주민들은 이런저런 현대사의 격랑을 항꾼에(함께) 겪고 항꾼에 견뎌냈다. 그러나 할매는 행복했을까? 활동사진 튼다고 나팔소리 울려퍼질 때 가슴이 설레었던 청춘의 할매는, 시집가면 영영 못 보게 될 친구들과 읍내 나가 사진 한 장 찍고 싶었던 할매는, 봄꽃 흐드러지면 까치발을 들고 담장 밖을 기웃거리던 신혼의 할매는 어디에 있을까? 북망산천 갈 날이 낼모레, 올해도 꽃은 흐드러졌는데 늙은 할매의 마음은 여전히 두근거릴까? 뜻을 지킨 인생은 아름답기도 쓸쓸하기도 하다.

정지아 소설가 경향 : 2024.04.25.

 

 

죽음을 올바르게 기억한다는 것

아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노동자들의 안전보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4월은 의미가 깊은 달이다. 오는 28일이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기 때문이다. 1993428, 미국의 유명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바트 심슨 인형을 생산하는 타이의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하였고 188명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노동자들이 인형을 훔쳐가는 것을 막기 위해 밖에서 잠가둔 문 때문에 노동자들이 피해가 커졌다. 이와 관련해서 1996년 열린 유엔 지속가능한 발전 위원회에 참석한 각국의 노조 대표자들은 이 죽음을 기억하고 산재사망의 심각성을 알리자며 촛불을 들었다. 이후 실제 일부 나라에서는 이날을 공식 기념일로 지정하여 산재 노동자들의 사망을 추모하는 다양한 행사를 열고 노동자 안전보건 관련 현황과 정책들을 점검한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기념일이 있다. 바로 산업안전보건의 날이다. 정부는 1968년부터 매년 7월 첫째 주 월요일을 산업안전보건의 날로 정하고 그 한 주간을 산업안전보건 강조 주간으로 지정해 다양한 행사를 해왔다. 202211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한 뒤로는 한 주를 넘어 7월 한달 전체를 산업안전보건의 달로 정했다. 일종의 격상이다. 한편에서는 노동자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노동자들의 관점을 대변하는 날이 아니라, 정부 주도의 이벤트성 행사라는 한계를 지적하기도 한다. 일하다가 사망한 노동자들의 죽음을 추모하고, 이러한 일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을 고민해야 하는 기념일에 산업안전보건의 한 주체이자 사고와 질병의 피해자인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지 않는다는 문제 제기는 일면 타당하다.

 

산업안전보건의 날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198872일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당시 17살의 노동자 문송면을 기려 정한 날이라고 오해를 했다. 그는 온도계·압력계를 제조하는 한 공장에서 수은과 시너를 다루는 작업을 하다, 불과 한달 뒤 몸에 이상 증상이 발생했고 입사 두달 만에 병가를 내고 치료받다 사망했다. 매년 7월이면 노동시민단체가 마석 모란공원에서 그의 추모행사를 여는 것을 보다 보니 떠올린 순진한 생각이었다. ‘산업안전보건의 날이 그 훨씬 이전인 1968년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당혹스러움이란. 기념일을 정하는 것에 꼭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 당시에는 다른 의미가 있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산업안전보건의 날1988년의 문송면이나 2018년의 김용균을 추모하자는 게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러한 당혹감을 얼마 전 10회 국민안전의 날기념식 보도자료에서도 느꼈다.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중앙부처, 지자체, 공공기관, 민간단체 및 일반시민 200여명이 참석해 진행했다는 국민안전의 날기념식엔 어디에도 세월호 이야기가 없었다. 유튜브에 공개된 기념 영상은 물론, 이틀간 운영된다는 안전체험교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안전의 날은 20144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의 중요성을 되새기자는 의미로 2015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제정된 국가기념일이다.

 

국가와 국민 모두가 안전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이 덜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세월호 참사 10주년이니 비극적 사고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고, 이런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은 얼마나 이루어졌고, 아직 남아 있는 위험 요인은 무엇인지 점검하고 환기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10년 전 416일 아침, 우연히 본 티브이 속 영상과 시간이 지날수록 느껴졌던 당혹감, 한동안 계속됐던 충격과 허무함. 비록 옅어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미안함이 마음 한편을 가득 채우고 있다. 과연 이제는 우리 사회가 안전해졌는가 되물어야 할 국가 기념일이 이래도 되나 싶었다. 2022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내놓은 권고안 32개 중 실제 이행된 것은 단 하나에 그치고, 20개는 추진 계획조차 없다는 기사도 있었다.

 

추모식과 기념식은 다른 것일 수 있다. 애도를 표하는 것과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것 역시 같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기념식은 늘 산재 노동자의 죽음이나 재난으로 사망한 국민들을 위해 묵념으로 시작하듯, 죽음을 올바르게 기억하는 그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다.

김인아 | 한양대 교수(직업환경의학) 한겨레 : 2024.04.25.

 

 

5평 토굴의 스님 편하다, 불편 오래되니 자가 떨어져 버렸다

무사찰주의지리산 암자 도현스님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꽃달(花月)’, 들이나 산이나 백화난만이다. 겨울을 넘어온 동백과 더불어 납월홍매 산수유 봄을 열면, 춘분 즈음에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 피고, 청명 지나 살구꽃 도화 라일락 피고, 그리고 명자 철쭉 피고지고, 여름 다되어서 모란이 큼지막한 얼굴을 내민다.

전에는 그렇게 순서대로 피었는데 요새는 앞뒤가 없다. 올해 녹우(綠雨)가 잦아 산에 물이 많고 봄인가 하면 여름이어서 그런지, 더 그렇다. 사월 지리산에 삼월 꽃도 더러 있고, 오월 꽃도 다투어 개화하니, 좋기는 하지만 통 정신이 없다. 전채 먹고 수프 먹고, 차근차근 입가심하고, 코스요리 나오듯이 봄 꽃구경이 그러했는데 지금은 한상 떡 벌어지게 차린 한정식처럼 눈도 마음도 바쁘고, 벌도 나비도 바쁘다.

산색은 어느새 연두를 삼키고 초록으로, 등고선을 따라 올라가고 있다. 이맘때 지리산은 녹우(綠牛)’, 푸른 소 같다. 머리를 해 뜨는 동으로, 꼬리를 서쪽으로, 몸뚱이를 길게 늘어뜨리고 천년만년 엎드려 있는 거대한 한 마리 푸른 소. 그 구불구불 능선이 소의 등뼈, 지리산 1백리 종주길이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나라는 지눌의 정혜결사문첫 문장처럼 우리가 곤궁할 때, 묵묵히 사흘을 걸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그 길이다.

소의 육신은 사방팔방 비탈을 이루며 헤아릴 수 없는 겹겹의 주름 폭을 이루고 있다. 소의 남사면, 섬진강이 흐르는 구례 하동 방면이다. 여기를 겉지리라 한다. 소의 북사면, 남원 함양 산청 방면을 속지리라 한다. 양지바른 겉지리에 절집이 많고, 해가 짧은 속지리엔 당집(巫堂)이 많았다. 그래서 남향으로 화엄사 쌍계사, 한 산에 두 본사(本寺)가 자리하고, 북향으로 실상사 벽송사 같은 몇몇 절이 산재한 골짜기 곳곳에 당집이 여럿 남아 있다.

몸과 마음이 같이 있으면 편안해지는 거요

하동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쪽으로 들어간다. 유명한 벚꽃터널 10리를 지나 쭉 가다가 삼거리에서 좌로 빠지면 칠불사이고, 오른편 찻길이 끝나는 곳에 마을이 나온다. 신라 최치원이 호리병 속의 별천지라 했던 의신마을이다. 여기서 7쯤 오르면 달 밝은 벽소령이다. 지리산의 한가운데, 소의 갈비뼈다. 가파른 산길을 따라 한참 걸으면 산모퉁이 돌아 작은 암자가 있다. 암자는 꼭 바로 보여주지 않고 한 땀 빼고, 한 모퉁이 돌아야 나온다.

연암난야’, 집 처마에 소박한 현판이 걸려 있다. ‘연암(蓮庵)’은 서산대사가 머물었던 수행처 이름에서, ‘난야(蘭若)’는 토굴을 뜻하는 범어 아란야에서 가져왔다. 산죽으로 울타리 친 마당에 보리수 청매 한 그루, 밤나무 두 그루, 싹을 내민 파초 한 무덤, 올챙이 노는 작은 연못, 그 앞에 빈 의자 놓여있다.

여러 해 지나 다시 오니 마당에서 포행 하던 스님 반가이 맞아준다. 집은 다섯 평, 천장은 낮고 공간은 좁다. 마루와 부엌, 사람 둘 눕기도 좁은 방 하나, 그리고 벽장 속에 손바닥만 한 부처님 앉아 계시다. 합장하고 창을 여니 온 세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물소리 들리지요? 빗점골 계곡 따라 내려가는 소리요. 가만히 들어보면 옛날 고향바다의 파도소리 같아. 물에 발을 담고 있으면 이 물이 흘러 부산 앞바다로 가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지.”

가진 것은 보리수 청매 한 그루, 빈 의자

도현스님, 초등학교 졸업하던 열다섯에 밥 굶지 말라고 절에 보내져, 1963년 부산 범어사에 덕명스님을 은사로 동진(童眞)출가했다. 20여년 선방을 돌며 간화선 수좌를 하다가 태국에서 5년 위빠사나 수행을 하고 돌아왔다. 칠불사 선방에 살다 이곳에 터 잡은 지 30여년, “중노릇이 회갑을 넘은선사다. 쌍계사 안거결제 때 한가운데 앉아 기념사진을 찍는 방장급 스님이다. 그런데 절도 없고, 시자도 없고, 공양주도 없고, 문중도 있지만 없고, 주지도 안 하고, 차도 없고, 돈도 없이 무사찰주의를 고집하며 혼자 산다.

은사스님이 여러 번 찾아와 주지 맡으라고 했지요. 안 갔어. 나는 선객이라, 주지 맡아서 큰 불사 벌이고 그런 것 소질이 없어 못해요.”

그래도 나날이 돈이 드는데 살림살이는 어찌 하시냐고 물었다. 여기는 큰 절 소속 산내암자하고는 다르다. 아무 지원도 없는 완전한 독살이.

아침 먹으면 점심 걱정하고, 추수하면 보릿고개 걱정하는 것이 사람이지. 하루는 가지에 앉은 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듭디다. 거울도 없이 깃털을 잘도 다듬는구나, 쌓아놓은 재산도 없이 잘도 살아가는구나! 부처님 믿고 한번 살아보자, 내가 하루살이는 아니고 한달살이.”

가끔 큰 절에 법문도 다니고, 오랜 인연의 신도들이 좀 있다. 마을사람들도 들여다보고, 더러 지나가는 나그네들이 찾아와 보시를 하곤 한다. 그들에게 한 달에 한번 편지를 쓴다. 소소한 일상, 계절의 변화, 울화통 삭히는 비법 같은 법문을 담아 글을 보낸다. 그런 세월이 30년 넘었다. 편지는 조용한 행복1, 2’ ‘나라고 불리어지는 것에 대한 알아차림4권의 책으로 나왔다.

법정스님 어깨너머로 배운 글

스님 글이 법정스님을 닮았어요했더니, “그렇지, 법정스님 어깨너머로 배운 거라. 송광사 선방 살 때 불일암 가서 차도 마시고 했는데 여기서 같이 살자 하시더라고, 그래서 은사처럼 모시고 살았어요. 저 파초가 스님이 가져온 불일암 파초요한다. 그러면서 편지가 가잖아요? 그러면 전신환이 와. 우체국으로도 오고. 그 안에 보시가 들어있지. 다들 사는 것이 바쁘니 깜빡 잊고 있다가 편지 보고 생각나는 모양이라. 해인사 장경각에서 법문을 도매로 받아와 여기서 소매로 팔아먹고 살아. 그러니 한달살이지. 불경에 중 굶어 죽으란 법 없어요.”

살다가 괴로울 때는 어찌해야 하는지 비급 한 수 알려 달라 했다. “먼저 숨쉬기 운동부터 해야 돼요. 들숨날숨, 들숨날숨, 들이쉴 때 스으하고, 내쉴 때 후우하고, 자기가 숨 쉬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봐요. 지금 숨 들어간다, 나온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거라5분 해보라 해서 해봤더니 잘 모르겠고 살짝 가라앉은 느낌은 든다. “들숨날숨 가만히 보고 있으면 멀리 떠돌던 잡념들이 내 안으로 돌아와요. 마음을 불러 몸 곁에 두는 거지. 몸과 마음이 같이 있으면 편안해지는 거요. 매일 조금씩 해보면, 어느 날 안 보이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해. 욕심에서 한 발 벗어나는 거요.”

장경각에서 받아온 한소식이 이어진다. “마당에서 장작을 패고 있는데 해가 기울면서 산그늘이 내 몸을 서서히 덮더란 말이야. 그래 산이 내게 말을 거는구나, 하고 알았지. 산을 보고 한바탕 웃어줬어요. 한밤중에 고양이가 문을 긁는 것은 배고파서 그런 것이고, 파초 잎이 부르르 떠는 것은 바람 불고 곧 비가 온다는 거라, 들숨날숨 하고 있으면 알게 돼요. 그게 지관(止觀)’이요.”

이 대목 헤르만헤세의 싯다르타에 나온다. 싯다르타가 강가의 야자나무 이야기, 강물에 뛰어들려고 했던 이야기를 하자 뱃사공 바주데바가 말한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그대로군요. 강이 당신에게 말을 건넸던 거예요. 강은 친구이며, 말을 건네는 거지요강물소리에 귀 기울여 보면, 어제 흐른 것은 저 앞에 갔고, 오늘 흐르는 것은 여기 가고, 내일 흐를 것은 저 뒤에 오는 것 같지만 강어귀에서나, 폭포에서나, 시냇물의 여울에서나, 산과 바다에서강에는 현재만 있을 뿐 과거라는 그림자도, 미래라는 그림자도 없어요.’

지혜는 많이 배워서 나오는 게 아니요

들숨날숨 하다보면 고요 속에 지혜가 생겨난다 하니, 불교의 삼학, 계정혜(戒定慧). “평생 중노릇에 결국 도달해야 할 곳은 . 지혜는 많이 배워서 나오는 게 아니요. 내 것을 덜어낼 때, 내 몫을 덜 가질 때 나와요. 당장은 손해 같지만 나중에 돌아와. 삭히면 깊어지듯이. 지혜는 불쌍하다, 어쩔까나, 하는 자비심이 원천이요.”

수도승은 누구인가? ‘수도권에 사는 중이 수도승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차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야 하는 산중에서 홀로 무욕의 삶을 사는 스님이 아닌가 한다. ‘편하다는 제목의 스님 자작시 한 수. ‘따뜻한 물 쓰기도 불편하고/ 화장실 가기도 불편하고/ 군불 넣기도 불편하고/ 산길 오르내리기도 불편하다/ 그렇게 불편을 오래 사용하다 보니/ ‘자가 떨어져 버렸다

내 것을 덜어내라는 스님 법문이 참 묘하다. 하직삼배하면서 불전에 노란 지폐를 한 장 놓으려다 한 장을 더 놓았다. 산문 나서면서 물으니, 전 재산 2백만원 있다고 한다. 떠날 때 화장(火葬)할 돈이라 한다.

이광이 작가 한겨레 2024-04-25

 

심판론에도 변함없다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22대 총선의 유일한 키워드는 심판이었다. 정당 중심의 대의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일차적으로 보상과 처벌의 성격을 갖는다. 유권자는 투표를 통해 잘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준다. 선거는 민주적 책임성을 묻는 기제인 것이다. 따라서 이번 총선이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심판으로 치러진 것은 우리 민주주의가 도도한 양극화의 흐름 속에서도 제법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위안을 준다. ‘3년은 너무 길다는 구호가 얻은 폭발적 반응에 비춰보면 여당이 탄핵 저지 의석을 얻은 건 약간 의외다. 그럼에도 우리 국민은 주권자로서 해도 너무한 빌런’(윤 대통령)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포함해 175석을 얻었고, 국민의힘은 108석을 얻었다. 4년 전 총선에서는 민주당이 180,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103석을 획득했다. 지난번보다 격차가 줄어들었다. 지역구 득표율을 기준으로 보면, 두 당의 격차는 8.9%포인트(21)에서 5.4%포인트(22)로 줄었다. 정치적으로는 정부·여당의 완벽한 패배이지만 내용으로는 양당 간의 경합구도가 여전히 유지된다고 할 수 있다.

 

선거 결과는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여론과 흐름에 다소 어긋난다. 야권이 생각만큼 못 이겼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3월 한 달 평균을 보면, 정부지원론보다는 정부견제론이 훨씬 높았다. 39% 50%. 실제 득표에서 국민의힘은 45.1%, 민주당은 50.5%를 얻었다. 여론조사에서의 11%포인트 격차가 투표에서는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참고로, 325~28일의 문화방송(MBC) 패널조사에서는 35% 60%로 무려 24%포인트의 차이였다. 이유가 뭐든 국민의힘 지지층이 민주당 지지층보다 더 많이 투표에 나선 탓일 것이다. 지민비조(지역구 투표는 민주당, 비례대표 투표는 조국혁신당)의 방식으로 사실상 연대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비례대표 투표에서 얻는 득표율을 합하면 50.9%에 달한다. 민주당 지역구 득표율과 엇비슷하다. 이에 비해 국민의힘은 36.7%에 불과했다. 지역구 득표율에 비해 8.4%포인트 낮다. 두 당 간의 격차도 14.2%포인트에 달한다. 국민의힘에서 떨어져 나왔다고 볼 수 있는 개혁신당(3.6%), 보수성향의 자유통일당(2.3%)까지 더하면 42.5%. 그래도 지역구 득표율에 못 미친다. 국민의힘이 선방, 즉 예상보다 덜 졌다는 얘기다.

 

선거 후에 실시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야권이 예상보다 많은 의석을 얻었다는 응답이 40%였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43%가 선거결과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야권 압승에 불만을 표한다는 건 이들이 여당을 지지했거나 또는 심판론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이 비율이 실제 투표에서 여권을 찍은 비율보다 낮다. 결국 여권 지지층이 상대적으로 더 적극적으로 투표장으로 나갔다는 얘기가 된다. 이는 역으로 심판론에 동의하는 유권자들을 야권이 온전히 투표로 유인해내지 못했다는 뜻이다.

 

큰 의석수 차이, 작은 지지율 차이. 요컨대, 문책은 이뤄졌으나 정서적 양극화 등으로 인해 심판정서의 온전한 발현이 저지된 선거였다. 선거 전의 각종 여론조사, ‘런종섭이나 대파 파동등 언론이 주목한 이슈들의 성격들이나 그들의 논조 등을 감안할 때에도 양당 간의 5.4%포인트 격차는 예상보다 적다. 이런 점에서 우리에 대한 호감이나 지지보다 그들에 대한 반감이나 적대가 투표의 기준이 되는 부정적 열정이 제1 요인으로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김민하의 표현대로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자리잡았다는 의미다. 걱정이다.

 

민주화 이후 선거에서 보수와 진보는 호각세를 보여왔다. 67, 조국혁신당의 의석을 포함할 경우 79석의 의석수 격차가 주는 착시효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에서도 그 흐름은 큰 틀에서 바뀌지 않았다. 19대와 20대 총선의 지역구 득표율을 보수와 진보로 대별해서 보면 양자의 격차는 각각 1.6%포인트, 0.3%포인트에 불과했다. 그때 비하면 5.4%포인트는 매우 크다. 허나 이 정도면 흔히 말하는 오차범위 안에 있는 수치다. 상황적 계기나 국면적 요인에 따라 성패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차이다. 게다가 이번 선거의 경우 심판론이란 메가 프레임 속에 치러졌으므로 이 격차는 할인해서 봐야 한다. 다만, 보수보다는 진보 쪽으로 트렌드가 움직이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 트렌드가 계속 이어질지 다시 반전할지는 정치세력, 정치 엘리트들의 선택과 전략에 달려 있다.

 

특별히 선거과정에서, 그리고 선거결과를 통해 확인된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사실의 핵심은 팬덤정치다. 이번 선거에서 팬덤을 거느린 정치인은 성공했다. 이재명 대표를 비롯해 조국 대표와 이준석 전 대표가 선거승리의 주역이 됐다. 이재명 대표는 극심한 공천 파동을 이겨냈고, 조국 대표는 위선자 프레임을 이겨냈고, 이준석 전 대표는 소외의 설움을 이겨냈다. 그들은 대표적인 팬덤 정치인들이다. 팬덤이 그들을 살렸다. 반면에 팬덤이 옅거나 눈에 띄지 않는 이낙연 전 대표, 금태섭 전 의원, 박용진 의원은 낙선·낙천했다.

 

주목할 것은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보여준 모습이다. “전략도 없고 메시지도 없고 오로지 철부지 정치 초년생 하나가 셀카나 찍으면서 나 홀로 대권 놀이나 한 거다.”(홍준표 대구시장) 맞다! 그런데 셀카나 찍으면서 나홀로 대권놀이한 게 의도적인 선택이라면? 그는 선거 내내 팬덤을 구축하는 데 힘을 쏟았다. 깨알같이 야당을 조롱했고, 시종일관 야당에 대한 혐오와 적대를 추동하는 팬덤 플레이에 주력했다. “팬덤정치의 본질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을 과도하게 혐오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좋아함(선호)보다 싫어함(혐오)에서 발원하는 것이 팬덤정치다.”(박상훈) 그는 대통령과의 차별화란 익숙한 문법 대신 팬덤정치란 새로운 문법을 취했고, 성공했다. 따라서 그의 팬덤은 선거 패배 후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국회로 배달된 한동훈 응원의 화환 행렬, 팬클럽 신규회원의 증가, 대선 후보와 당대표 후보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보이는 부동의 강세가 그 증거다.

 

선거 민주주의는 작동하지만 정치는 없는 나라.”(이관후 교수) 협치를 불편해하고, 심지어 배신으로 간주하는 팬덤 대중의 인식과 압박으로 인해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다시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 팬덤정치가 우리 정치의 뉴노멀이 됐다. 팬덤 구축이 정치적 성공의 교리가 됐다. 포퓰리즘, 정서적 양극화, 팬덤정치는 패키지로 움직인다. 서로가 서로를 강화하고, 자극하고, 지원한다. 결과는 상대에 대한 혐오와 적대, 나아가 부정과 배제다. 이 위험한 나쁜 정치 패키지가 우리 정치를 짓누르고 있음이 이번 총선에서 확인됐다. 훗날 우리 정치의 분기점으로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이번 총선은 한편으론 안도를, 다른 한편으론 우려를 던져주었다. 단호히 심판하면서도 다시 탄핵의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제어한 집단지성의 절묘함이 참 다행스럽다. 뭘 해도 옹호되고, 정치적·도덕적 흠결이 오히려 정치적 자산이 되는 팬덤정치, 상대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내 눈의 들보보다 남 눈의 티끌에 분노하는 정서적 양극화를 보면서 근심이 더 깊어졌다. 이대로 가면 정당들이 대중의 선호에 기반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막말과 흠집 잡기로 이기는 데에만 혈안이 되는 정당, 스티브 베넨이 말하는 탈정책’(post-policy) 정당으로 전락할 수 있다.

우리 정치를 옥죄면서 절벽으로 내몰고 있는 팬덤정치! 이 팬덤정치는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

이철희 | 문재인 정부 마지막 정무수석 한겨레 2024-04-26

 

 

불로소득주의를 넘어, 공공이 미래

고단한 번역작업이 완성된 무렵에야 나는 저자에게 메일을 보내 <불로소득자본주의 시대>의 한국어판 서문을 요청했다. 브렛 크리스토퍼스는 대단히 친절한 사람이었다. 메일을 보낸 다음날 바로 답신이 왔는데 저자서문까지 함께 보내왔다. 번역서 저자서문 때문에 고생을 바가지로 하고도 끝내 서문을 받지 못한 경험을 가진 나로서는 너무 뜻밖이고 고마운 일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분량이 너무 짧고 간명했다. 하룻밤에 쓴 서문이니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이 서문으로 끝내야 하나 다시 요청해야 하나 생각이 복잡했다. 출간된 책에 수록된 저자서문은 결국 내가 욕심을 이기지 못해 재요청을 한 결과 얻어낸서문이다. <불로소득자본주의 시대>는 사실 여러모로 읽기 쉽지는 않은 책인데, 최종 저자서문은 안내 글로 손색이 없다. 서문에서 저자는 불로소득주의로의 타락, 즉 자본의 생산적 기능마저 저버린 지대추출자본(rentier capital)의 논리가 역사적 자본주의의 본성에 내재해 있고 따라서 영국의 어두운 이야기가 곧 한국이야기가 될 수도 있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크리스토퍼스는 매우 열정적인 학자다. 그는 현대 마르크스경제학 발전의 새 지평을 연 데이비드 하비의 후속세대 학자로서 기본선에서 하비의 성취 위에 서 있지만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하비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첫째, 하비는 예민한 감수성으로 마르크스의 시야 밖에 있는 지대추출자본의 세계에 대해 주목하면서도 나름의 약점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반면 크리스토퍼스는 그 한계를 벗어던지고 아예 불로소득자본주의론을 새롭게 구성하는 길로 나아갔다. 이는 하비가 미처 하지 못한 작업으로 하비의 내파’(內破)가 일어난 모양새다. 둘째, 사람들은 하비의 창조적 자본론해석과 박탈을 통한 축적 등 예리한 신자유주의 비판에 경탄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제도적 다양성론이 미약하고 복잡한 전환과정 및 전환역량 문제를 건너뛰는 것에 답답해한다. 반면 크리스토퍼스는 더 땅으로, 전환적 제도론으로 내려온다. 우리는 그에게서 좀 더 손에 잡히는 제도적,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제도주의 정치경제학자의 면모를 보며 이 대목에서 사람들의 갈증에 응답한다. 이는 포스트불로소득자본주의로 가는 4가지 대안정책 패키지(반독점 경쟁정책, 조세정의정책, 복지·생태와 선순환하는 산업정책, 자산소유구조의 재편정책)에서 잘 볼 수 있다. 이 복합적 대안정책 구색은 진보적 자유주의와도 공유점을 갖고 있지만 주로 조세정책에 집중한 피케티와는 결을 달리한다.

 

그런데 <불로소득자본주의 시대>는 자산과 지대 유형을 중심으로 짜여 있는 책이라 자칫 놓칠 수도 있지만 크리스토퍼스는 우리 시대 불로소득주의 문제를 일관되게 공공성의 파괴와 내일의 공공국가 재창조라는 관점에서 사고한다. 일관되게 국공유자산과 커먼즈의 확장, 공공협력, 거버넌스의 개선과 민주적 통제를 추구한다. 바로 이런 지향이 <불로소득자본주의 시대>뿐만 아니라, 그의 다른 저서들 <뉴인클로저> <포트폴리오에 담긴 우리의 삶> <가격은 틀렸다-자본주의는 왜 지구를 구하지 못할까> 등을 관통한다. 특히 에너지 전환문제에 개입한 마지막 저서는 큰 반향을 얻고 있고 국내 공공재생에너지 논의와도 공명한다.

 

저자는 통념과는 매우 다른 주장을 한다. 좌파의 지배적 통념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본성상 반생태적이다, 따라서 기후생태위기를 극복하려면 자본주의를 넘어서야 한다는 논리다. 또 다른 통념은 재생에너지 가격이 하락하면 에너지전환이 원활해지므로 민간기업에 대한 정부보조금이 전환해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퍼스의 생각은 다르다. 문제의 핵심은 비용 문턱이 아니라 수익성 문턱, 또는 이윤 문턱이다. 비용문제를 넘어, 여타사업에 견주어 좋은 돈벌이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사기업투자+정부보조금 틀의 근본한계다. 저자에 따르면 국가만이 재생에너지투자를 빠르게 늘릴 재정수단과 물류 및 행정 능력을 모두 갖고 있으므로 국가가 재생에너지 인프라의 소유와 통제에 기반해 전환을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폴라니의 통찰에 따라 노동, 토지, 화폐만이 아니라 전기도 허구적 상품화를 탈피해 탈상품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윤석열 정부 아래 전방위적인 퇴행이 일어났는데 제정신 있는 선진국 정부치고 한국처럼 정부가 긴축재정 기조를 고수하고 사기업과 시장에 맡기면 대전환기를 헤쳐나갈 수 있을 것처럼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정부가 앞장서서 대규모 공공투자를 실행하면서 에너지전환과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창조하려고 나선다. 공동투자를 주도해 주저하는 민간투자도 유도한다. 크리스토퍼스는 이런 방식조차 허점을 갖고 있다고 짚는다. 한국은 정말 갈 길이 멀다.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 경향 2024-04-28

 

가속노화시대의 기묘한 세대공감

나는 고전평론가다. ‘고전의 지혜를 현대인의 삶의 현장과 연결시켜 주는 전령사라는 뜻이다.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냥 백수다. 또 사회적인 범주로는 60대 독거노인이다. 좀 처량해 보이지만 나름 명랑한일상을 누리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미 1인 가구가 대세가 되었고, 그것도 전 연령에 걸쳐 있다고 한다. 그럼 이렇게 분화된 1인들은 세상과 어떻게 연결될까? 이것은 정치경제학을 넘어 인류학적 과제에 속한다. 이런 차원에서 일단 내 주변의 상황부터 추적, 관찰을 시도해 보았다.

 

나의 일상은 주로 남산 아래 필동에 있는 공부공동체(감이당&남산강학원)에서 이뤄진다. 감이당은 6080세대가, 남산강학원은 2030세대가 주를 이룬다. 세대 간 장벽이 두꺼울 법도 한데, 현장은 의외로 잘 한다. 채널은 대략 세 가지다.

 

첫째, 신체 상태. 6080은 말한다. 나이 드니까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어! 관절염에 임플란트, 갑상선 장애에 불면증까지. 2030은 응답한다. 저희도 그런데요. 아토피는 기본이고 골다공증에 이명, 대상포진까지. 아니, 그 팔팔한 나이에 왜? 소위 ‘MZ세대는 디지털 세상에 태어나 몸을 쓸 기회가 거의 없었고 영양과잉에다 각종 MSG에 길들여져 있다. 면역계는 물론이고 근골격계가 심각하게 허약하다. 노년내과에선 이런 증상을 가속노화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지금 청년들은 겉은 브링브링하지만 속은 골골하는셈이다. 그에 비하면 6080은 단군 이래 가장 활기찬 노년에 속한다. 육체노동의 시대에 성장했고 가난해서 먹을 게 넉넉하지 않았다. 또 산전수전을 두루 겪다 보니 기본 뼈대가 튼실한 편이다. 노화가 시작될 즈음 디지털 문명을 만나 고단한 육체노동에서 벗어난 것도 큰 행운이다. 결국 청년은 가속노화, 중년은 자연노화! 결국 같이 늙어가는처지가 된 것. 자연히 서로 주고받을 이야기가 넘쳐난다.

 

둘째, 내면 풍경. 우리 시대 청년들은 인정욕망에 시달리느라 지칠 대로 지쳐 있다. 20세기에는 먹고살기가 어렵다 보니 도처에 공동체가 있었고, 게다가 함께 연대해야 할 시대적 미션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현장과 배치는 완전히 증발했다. 남은 건 오직 게임이다. 부동산, 주식, 코인은 말할 것도 없고 일상의 모든 것이 게임이다. 노래도 게임, 연애도 게임, 행복도, 몸매도 다 게임이다. 우리나라가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를 뒤흔든 게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의 결말이 그렇듯 중도 탈락자건 최후의 승자건 결론은 처참하다 - 죽거나 나쁘거나! 하여, 청년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불나방처럼 게임에 뛰어들거나 아니면 은둔형 외톨이가 되거나. 청춘의 에로스를 발산하기도 전에 이미 영혼이 탈탈 털린 셈이다. 한편, 중년들도 깊은 공허에 빠져 있다. 그동안 죽도록 일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시대적 미션까지 수행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 그러다 갱년기가 되자 문득 일도 가족도 미션도 다 증발해 버렸다. 한데 100세 시대란다. 살아갈 날이 아직도 한참이다. 대체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지? 이 막막함과 헛헛함이 다시 20306080을 이어준다.

 

마지막, 감이당의 공부는 동의보감과 주역, 불경과 양자역학, 철학과 인류학 등이 주류를 이룬다. ‘몸에서 자연으로’, ‘마음에서 우주로라는 비전을 추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밟게 되는 코스다. 물론 치열한 모색과 고투의 여정이 있었다. 하지만 청년들은 이 코스에 단도직입한다. 고민이고 뭐고 없다. 자기가 누구인지, 어떻게 사는 게 좋은 삶인지 알 수만 있다면 뭐든 상관없다는 태도다. 요컨대, 중년들에겐 이 공부가 생로병사의 비전으로 이어지는 고도의 지성이지만 청년들에겐 지금, 당장을 버티게 해주는 생존의 전략이다. 아무튼 그래서 또 잘 한다.

이렇게 해서 감이당의 2080은 세대 간 장벽을 넘어 몸과 마음, 공부를 함께 나누는 길벗이 되었다. 그 원천에 가속노화’, ‘게임지옥이 있다고 생각하면 좀 씁쓸하긴 하지만 그래서 또 기묘하다. 그 덕분에 이렇게 세대공감의 현장이 열렸으니 말이다.

나는 이 데이터가 널리 활용되기를 희망한다. 그리하여 2030외딴 방에서 나와 청춘의 파토스를 만끽할 수 있기를! 6080가족·노동·화폐라는 낡은 표상에서 탈주하여 생의 새로운 연대기를 창조할 수 있기를!

고미숙 고전평론가 경향 2024-04-28

 

처참한 나라살림, 2023년으로 끝나지 않는다

2023년 나라 살림의 결과가 나왔다. 황당함을 넘어 처참하다. 차라리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가 틈만 나면 공언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 교과서의 균형 재정이라도 실현되었다면 좋았겠다. 그런데 현실은 그것도 아니다. 목표나 이념은 고사하고 이유도 모호한 채 나라 살림이 크게 허물어졌으며, 앞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기약조차 없다.

 

국가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작년의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본래 계획된 582000억원을 무려 29조원이나 넘은 약 87조원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여러 시민단체의 분석에 따르면 이 또한 온갖 꼼수회계로 분식된 수치이며, 이를 감안하면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가 1256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정부가 쓰기로 해놓고 돈을 아낀다는 이유로 지출하지 않은 예산불용액도 엄청나서 역대 최고 수준인 457000억원이 되었다고 한다. 요컨대 87조원의 적자가 났으며, 457000억원의 지출이 불발되었다. 가져가기만 하고 쓰지는 않았으며, 심지어 쓰기로 한 돈조차 제대로 쓰지 않은 것이다.

 

겉으로 보면 똑같은 적자 재정이기는 하지만, 많은 세금을 거두고 그보다 더 많이 특히 가난한 이들에 대한 재분배의 성격을 가진 사회 부문에 집중적으로 지출해 재정 적자를 감수하는 이른바 정형화된 진보좌파 정부의 재정 정책은 분명히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세입과 세출의 일치를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 교과서의 균형 재정정책은 더더욱 아니다. 1980년대 미국 레이건 정부 시절에 등장했던 기묘한 정책 조합’, 즉 감세 정책 대신 군수 부문을 시작으로 팽창적인 정부 지출을 행했던 형태의 정책과도 전혀 다르다. 정부의 재정 적자 자체는 두려워할 일도, 피하기만 할 일도 아니지만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러한 재정 운용의 목표와 이념은 무엇인가? 작년 나라 살림에 큰 결손이 난 이유와 명분은 도대체 무엇인가?

 

현 정부 재정 운용 목표·이념 뭔가

정부가 도무지 해명을 할 기미가 없으니, 교과서로 돌아가보자. 나라 살림은 공공재정(public finance) 이라고 불린다. 공공이 필요한 것에 지출할 수 있는 자원을 어떻게 융통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는 다시 세 가지 질문으로 구성된다. 첫째, 무엇을 위해 지출할 것인가. 둘째,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셋째, 지출과 수입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

 

첫째, 정부는 먼저 공공의 이익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지출해야 할 사항들이 어떤 것인가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리처드 머스그레이브의 분류대로 하면 이는 다시 공공재의 조달과 외부효과의 해소, 재분배, 경제 안정화라는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나는 2023년 한 해 동안 머스그레이브가 제시한 이 세 가지 목적 중 무엇 하나 적극적으로 정부가 추진했다는 인상을 전혀 받지 못했다. 오히려 쓰기로 해놓고 돈 없다는 이유로 쓰지 않은 사업이 무려 45조원이 넘는다. 이 정부가 공공재정의 지출이 경제는 물론 사회 전체의 후생 증진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에 대해 폄하를 넘어서 부정과 냉소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둘째,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의 문제는 세금 부과에 있어서의 형평성, 공정성, 효율성, 정책 방향성 등을 함축하게 된다. 윤석열 정부의 입장이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유일한 부문이 바로 여기이니, 이른바 부자 감세’, 혹은 좀 더 가혹한 표현으로는 감세 포퓰리즘이다. 세금 부과는 형평성이 있어야 하며, 더 내야 할 사람과 덜 내야 할 사람에 대해 누구나 마땅히 납득할 수 있는 기준에 근거해야 한다. 또한 공정해야 한다. 어떤 이유에서 어떤 행위에 대해 왜 그것이 공공에 의해 세금이 부과되어야 (혹은 되지 않아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효율적이어야 한다. 조세 행정의 행정 비용에 있어서 또 그것이 초래할 각종 사회적 비용에 있어서 최소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말로 또 실천으로 보여주었던 감세 정책은 과연 이 세 가지 기준으로 볼 때 높은 아니 긍정적인 평가라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셋째, 세입과 세출 총액의 수지를 맞추는 문제이다. 여기에는 양쪽을 매년 1년 단위로 철저하게 맞추어야 한다는 균형 재정론자들의 입장도 있지만, 거시경제의 상황에 따라 또 장기적인 국가의 정치적·전략적 목표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도 있으니, 전형적으로 경기 순환의 반대 방향으로, 즉 불황기에는 적자 재정을, 호황기에는 흑자 재정을 편성해야 한다는 기능적 재정의 이론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하지만 현 정부의 재정 정책 기조는 어느 쪽으로 보아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대통령과 관료들이 틈만 나면 공언하는 바와는 달리 지금의 정부 기조는 균형 재정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해서 경기 순환의 폭을 완화하기 위한 기능적 재정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지금과 같은 인플레이션 국면에 도대체 어째서 부자 감세의 적자 재정으로 부자들에게 돈을 풀려 드는 것인가? 이른바 낙수효과라는 것은 현실적인 존재와 작동 여부가 최소한 극히 의심스럽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일이 아닌가? 이 상황에서 이렇게 큰 규모의 재정 적자를 만들어내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정부는 안 되니 국회가 나서야

문제는 2023년으로 끝나지 않는다. 현 정부가 편성한 2024년 예산안에 따르면,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작년보다 338000억원이 늘어난 92조원으로 계획이 잡혀 있다. 이미 GDP50%를 넘어선 국가채무는 더욱 늘어날 것이며,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작년의 2.6%에서 3.9%로 올라갈 것이다. 여기에 만약 경기가 악화되고 각종 세수 결손이 발생할 경우 이보다 훨씬 더 큰 폭으로 수치들이 악화될 것이다. 결국 코로나19 시기와 비슷한 재정 적자를 보게 되겠지만, 이것이 서민들을 위한 지출 때문이 아니라 부자 감세 때문이라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나는 균형 재정론자가 아니다. 오히려 정부의 재정 적자는 얼마든지 허용될 수 있고 또 마땅히 적극적으로 활용되어야 할 정책 수단이라고 믿는 편이다. 하지만 지금의 재정 적자는 부자 감세를 통한 낙수효과라는 것 말고는 어떤 경제 논리나 어떤 정치경제 이념으로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묻지마재정 적자가 중장기적으로 가져올 폐해는 너무나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으므로 반복할 필요조차 없다.

 

여기에서 이제 구성될 22대 국회의 최우선 과제가 무엇인지를 강조하고 싶다. 고삐 풀려버린 정부 재정 정책에 방향성을 부여하고 합리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의회를 입법부라고 하지만, 유럽 중세까지 소급되는 의회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그의 가장 원초적이고 1차적인 임무는 백성들의 세금 부담을 관리하고 정부의 재정이 잘 쓰이도록 감시하는 일이었으며 입법의 기능은 오히려 여기에서 파생된 것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극적인 과정을 거쳐서 아주 크게 기운 여소야대의 국회가 구성되었다. 각각의 정치세력이 우선적으로 달성하고 싶은 의제들도 넘쳐날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그런 분파적 관심사와 분파적 이익이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 전체의 정부 재정이 그야말로 거덜날위급 상황이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정부는 그렇게 해야 할 뚜렷한 이유도 명분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회가 나서야 한다. 다시 교과서의 세 원칙으로 돌아가자. 공공이 지출해야 할 항목들에 대해서는 분명히 과감하게 지출해야 한다. 공공자금의 조달은 형평성, 공정성, 효율성을 원칙으로 폭넓게 이루어져야 한다. 세입과 지출의 균형은 거시경제의 균형과 경기 상황이라는 구체적 조건을 놓고 탄력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어려운 과제이다. 기술적 세부사항을 아는 관료조직은 정치적 책임 때문에 무얼 하기 쉽지 않으며, 정치적 권력을 쥔 선출직 공무원들은 경제 논리에 무지해 무얼 하기 쉽지 않다. 그 결과 사공이 실종되어 버리고, 배가 산이 아니라 소용돌이로 밀려가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할 집단 지성의 총화가 바로 국회의 존재 이유가 아닌가. 22대 국회는 난맥상의 나라 살림부터 바로잡으라. 이 시급한 민생과제를 무시한 채 이런저런 특검법부터 올리는 정쟁이 난무한다면 이념도 정책도 없는 집단이라는 비판은 국회로도 옮겨붙게 될 것이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경향 : 2024.04.29.

 

지성의 발달과 인류의 행복지수

얼마 전 어느 젊은 과학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내용 대부분은 자신의 최근 몇 년간 연구 경험과 연구 철학 등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중 나를 깊은 상념에 빠지게 하는 대목이 몇 개 있었다. 그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저는 지능이 너무 높아진 게 인간을 고통스럽게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왜냐하면 보통 지적 능력이 그렇게 발달하지 않은 동물들은 정신적인 고통에 그렇게 시달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우리는 정신이 발달하고 비대해지니까 육체적인 고통보다 정신적인 고통에 더 시달리잖아요.” 그는 이에 덧붙여 이렇게 이야기한다. “인간처럼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이룩한 종이 (지난 오랜 세월 동안) 없었던 이유는 그것이 생존에 썩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한국이 산업화되고 발달되었다고 해서 사람들이 더 행복해졌나요? 오히려 출생률은 더 떨어졌잖아요. 생물로 봤을 때 출생률 저하는 도태거든요.”

 

이것은 물론 그분의 개인적 견해일 뿐이다. 하지만 그 인터뷰 기사를 읽고 나서 여러 날이 지나도 마음은 계속 무거웠다. 일단, 그분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광야에서 사는 동물들이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과 번식을 위해 얼마나 고생을 하며 사는데 어떻게 그들보다 인간들이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다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는 가축들은 가엽기 짝이 없다. 인간들에 국한해 살펴보더라도 예전엔 배고픔, 질병, 죽음, 전쟁,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하루하루 살아 나가기가 힘들었지만 점차 과학과 지성이 발전함에 따라 현대인들의 삶의 질이 옛날보다 (평균적으로) 더 좋아졌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 아닌가. 실은 이 대목 외에도 그분이 피력한 선진국과 비교한 우리나라의 사회와 경제 발전 상황에 대한 견해도 마치 설익은 사과 같았다.

 

거대 담론보다 쉬운 소통 어떨까

촉망받는 젊은 교수들이 인류와 사회에 관한 거대담론에 대해 대중에게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요즘에는 여러 젊은 과학자들이 저술 활동, 팟캐스트, 인터뷰, 강연 등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젊은 과학자들은 인류와 사회에 대한 거시적인 견해보다는 자신이 알고 있는 구체적인 과학적 지식과 그것들의 의미와 활용 위주로 대중과 소통하는 편이 어떨까 싶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미국 카네기멜론 대학의 젊은 수학교수 포션 로(Po-Shen Loh)는 늘 지성과 에너지가 넘친다. 그는 미국 전역을 다니며 매년 100회 이상 강연을 하고 있고 그의 강연은 매우 인기가 높다. 그는 주로 ‘AI의 침공에서 살아남기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는데 그 강연을 들어보면 그는 주로 수학 문제에서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구체적인 예들과 AI에 질문하는 법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AI와 인류의 미래와 같은 거창한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인간의 지성을 과학이 대변하는 시대가 되었다. 인류의 삶의 방식은 지난 200년간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빠르게 변화해 왔다. 새로운 문물에 지배받는 삶보다는 자연적인 삶이 더 좋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과학과 기술에 의존하며 살고 있다. 유럽인들을 기준으로, 사람들의 관심사는 지난 300년간 어떻게 변했을까? ‘가족은 인간의 본능적이고 기본적인 관심사니까 제외하기로 하고, 옛사람들과 현대인들의 주요 관심사 3가지씩을 골라 비교해 보자. 옛사람들의 3대 관심사로는 죽음, 종교, 전쟁을 꼽을 수 있겠다. 예전에는 주변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살았다. 가족들이 죽어가고 이웃, 친지들이 죽어갔다. 또한 예전에는 전쟁이 잦았고 전쟁이 일어나면 국민 모두가 승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다. 요즘은 어떠한가? 삶의 형태와 철학이 다양해지다 보니 3대 관심사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성인들의 경우 대체로 일, 건강, 돈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인류 지성, 지구환경 개선할 것

과학은 사람들을 기아와 질병으로부터 구제해주었다. 나는 과학이 앞으로 가져올 변화에 대해서도 낙관적인 편이다. 지구온난화, 핵전쟁의 위험, AI의 침범 등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인류의 지성을 믿는다.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과학은 계속 발전할 것이고 그러한 발전을 통해 인류는 점점 더 현명해지고 착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인류가 머지않아 멸망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상상은 믿지 않는다. 인류의 지성은 지금까지 나빠지기만 하던 지구환경을 개선해 나가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믿는다.

송용진 인하대 수학과 교수 경향 : 2024.04.29.

 

이 폐허를 응시하자

숫자만 남았다. 거슬러가면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등으로 드러난 필수의료·지역의료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사회적 관심사였다. 언젠가부터 의사 수가 얼마나 부족한지, 어떻게 늘릴 것인지로 관심이 옮겨가다가 이제는 내년도 의대 입학 정원이 몇명일지만 남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풀기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의사가 부족하다는 근거로 곧잘 인용되는 OECD 비교를 보면 한국은 괴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객관적 건강 지표는 우수한데 주관적 건강 인식이 매우 낮다. 의사는 적은 편인데 병원과 병상과 장비는 매우 많다. 1인당 외래 진료 횟수나 입원일수는 평균의 두 배를 넘는다. 한국 사람들이 두 배나 더 아플 리 없는데 말이다. 동시에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각한 불균형이다.

 

시작부터 자유방임형 의료체계, 체계 없는 체계였기 때문이다. 국가는 예산을 집행해 체계적으로 의료서비스를 공급하는 대신, 민간의료기관이 돈 벌 시장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의료기관을 어디에 어떻게 개설하고 운영할지 거의 민간에 맡겨왔다. 국가 주도의 체계적인 건강보험조차 방임에 기여했다. 의료 이용의 경제적 부담이 줄어든 조건이 자본엔 수익을 올릴 기회가 된 거다. 민간병원이 더 늘었고 재벌병원도 등장했다. 큰 병원은 안 와도 되는 사람들까지 오게 만들면서 돈을 쓸어갔고 작은 병원들은 비급여 진료를 늘려 수입을 올렸다. 민간보험사가 뛰어들어 실손보험을 쏟아내며 시장을 키웠다. 국민은 과잉 진료를 받고 의사는 과로하고 의료비는 증가한다. 긴 대기시간, 짧은 진료시간도 이런 구조의 결과다. 한국 의료의 문제는 부족보다 과잉이다.

 

지역과 필수과목의 의사 부족도 과잉의 이면이다. 돈 되는 지역과 과목으로 자본도 사람도 흘러가는 구조에서 의사 수만 덜렁 늘려 불균형이 해소될 리 없다. 지역의료가 무너지는 건 지역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며 필수의료가 무너진 건 공공의료가 사라져온 탓이다. 의사를 기업가로 만드는 구조에서, 출생률이 뚝뚝 떨어지는 걸 빤히 보며 소아과 의사가 되겠다거나, ‘지방소멸추세가 번연한데 지방 의사로 살겠다면, 기업가로선 실격이다. 수가 인상 같은 임기응변 대처가 실패해온 이유다.

 

윤석열 정부는 문제를 푸는 대신 숫자 폭탄을 던졌다. 작년 가을까지도 500명 예측이 떠돌다가 불현듯 2000명이 됐는데, 까닭을 알 수 없다. 당장 두 배 되는 입학생들을 어떻게 교육할지, 이들이 졸업할 때면 무엇을 하게 되는지 계획도 없다. 터무니없는 숫자를 맞추느라 수요 조사로 우회했고, 등록금 수입과 지원에 솔깃한 대학들이 앞다투어 써낸 정원이 유일한 근거로 남았다. 윤석열의, 윤석열에 의한, 윤석열을 위한 2000이었다.

 

전공의들은 사직 폭탄을 던졌다. 의사집단은 의대 증원에 실린 국민의 기대를 찬찬히 헤아리는 대신 정부와 싸우기 바빴다. 강 대 강 대치 국면에서 한국 의료의 위기를 함께 풀어갈 자리는 사라져버렸다. 시장의 원리를 관철하려는 정부 대 시장에서의 권력을 지키려는 의사집단 간 힘겨루기 끝에 정원이 얼마로 정해지든 결과는 다르지 않다. 시장이 이기고 폐허가 남는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의 모습은 소박하다. 누구든 어디에 살든 얼마를 벌건, 아플 때 어렵지 않게 의사를 만나, 필요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 동네에 내 말에 귀 기울이는 의사 한 명이 있어 건강하게 살아갈 힘을 주는 체계. 꼬일 대로 꼬인 한국의 의료체계로부터 공공의 길을 내기란 만만치 않다. 크게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상황인데 한 번에 바꿀 뾰족한 수도 아직 없다. 정치권과 의사집단만 쳐다보고 있을 수 없다. 평범한 우리가 더 많이 이야기하며 대안을 만들기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선, 이 폐허를 응시하자.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경향 : 2024.04.29.

 

날로 두꺼워지는 성차별 보고서

내일이면 5월이다. 노동자의 날, 어린이의 날,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들이 속해 있다. 누군가에겐 퐁당퐁당 쉬어가는 휴일이겠지만 기념되는 집단이 처한 인권실태가 보고되는 때이기도 하다.

 

올해 5월엔 매년 있지 않고 올해에만 있는 날이 있다. 먼저 514일이다. 6년 만에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가 한국 정부를 심의하는 날이다. 한국은 1984년 가입한 여성차별철폐협약 당사국으로서 20188차 권고에 대한 이행 여부를 답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그 권고를 제대로 이행했을까? 20188차 권고문을 보자. 13번 권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채택하라’, 권고 23(a) ‘형법 297조 개정, 피해자의 자유로운 동의 여부를 중심으로 강간을 정의하고 부부강간을 명확하게 범죄로 규정하라’, 권고 23(e) ‘직장 내 성희롱 효과적인 관리, 감독, 예방 시스템 수립하라세개 항목만 봐도 이행 0’이다.

 

문제는 한국 정부가 권고 불이행을 넘어 성차별, 불평등, 혐오를 가속한다는 것이다. 최근 발표한 (그마저도 한해 늦었지만) 4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2023~2027)에 차별금지법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난 26일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단독 의결해버렸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대통령 지명 위원의 고의적 훼방으로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 권고 표명조차 못 하고 있다. 정부는 2023년 형법의 강간죄 개정 과제를 양성평등기본계획에서 삭제했다. 법무부 장관은 비동의 강간죄도입이 억울한 무고 피해자를 양산한다는 왜곡된 주장을 확산시켰다. 정부는 2024년 고용평등상담실 지원 예산을 없앴다. 24년 전부터 직장 내 성희롱 상담과 지원, 예방, 모니터링을 하던 민간기관이 문을 닫게 됐다. 대통령은 여전히 여성가족부 폐지를 고집하고 있으며, 여성차별철폐위원회 권고 이행보고를 해야 할 여성가족부 장관도, 여성 폭력 담당 국장도 공석이다.

 

한국의 성차별 실태보고서는 하루하루 두꺼워지고 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가족 내 남성과 여성의 역할 인식과 관련한 여성가족부 2023년 가족실태조사에서, 3년 전보다 성역할 고정관념이 강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의 경제적 부양은 주로 남성이 해야 한다에 대해 동의한다는 응답이 22.4%에서 33.6%10%포인트 넘게 상승했다. ‘가사는 주로 여성이 해야 한다’(12.7%26.4%)거나 가족 돌봄(자녀·부모 등)은 주로 여성이 해야 한다’(12.3%21.5%)는 동의율도 마찬가지였다. 시민들 자신의 성차별 고정관념이 강화된 것일까? 아니면 코로나 팬데믹과 경제불황을 거치며 악화된 성별 분업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것일까? 지난 몇년간 확연해진 약자 혐오, 페미니즘 사상 검증 압력이 반영된 것일까? 보고서에 담기는 성차별, 인권 퇴행의 실태는 뚜렷하다.

 

또 다른 날은 529일이다. 21대 국회 임기 종료일. 딱 한달 남았다. 국회는 정부의 성평등 퇴행을 견제하고 바로잡아야 할 기관이다. 그런데 막무가내 퇴행을 견제·저지하지 못한 채 회기 종료를 앞두고 있다. 예컨대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이래 26년째 부동의 1위다. 이런 이유로 현 정부도 기업이 스스로 채용·근로·퇴직 등에서 성 격차를 공개하는 성별근로공시제를 국정과제로 삼았지만, 정작 공공기관 성별임금 정보공개마저 퇴보시켰다. 국회가 성평등임금공시제 법제화 논의를 앞당겼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지 5년이 지나도록 국회는 손 놓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이후 장애,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도 즉각적인 임신중지 도움을 받지 못했다. 여성가족부 지침과 원스톱센터 규정에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을 협소하게 기술하고, 무고 여부를 따지거나 본인 혼자 결정하기 어렵게 한 것도 부담을 가중한다.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가 조사한 보고서에도 응답자 대부분이 2021년 이후 임신 초기에 임신중지를 하고자 했으나 신뢰할 만한 정보와 의료기관을 찾기 어려웠고, 거주지 가까운 곳에서 임신중지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21, 22대 국회가 읽어야 할 성차별 보고서가 많다. 성차별 보고서는 성별분업과 위계를 깨려고 존재한다. 한쪽에선 제출만, 다른 쪽에선 읽기만 해선 안 된다. 너나 할 것 없이 같이 써 내려가고 응답해야 한다.

김혜정 |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한겨레 : 2024.04.29.

 

소멸걱정 대신 여기서 행복하게 살기

마을 입구 집이 적막하다. 조선낫 모양 허리 굽은 갈촌아지매가 요사이 통 뵈지 않는다. 텃밭 이랑에는 잡풀이 무성하다. 몇 해 전 갈촌양반 세상 뜬 뒤 아지매 홀로 집을 지키더니 딸네 갔는지 요양원에 갔는지 댓돌 위에 겨울 털신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산청군 한 마을이다. 특별할 것도 없는 여느 시골 마을이지만 생성된 지 200~300년쯤 됐다. 1960년대 중반에는 100여 가구에 500여 명이 살았다. 아침이면 아이들이 우르르 줄을 이어 고개 너머 2밖에 있는 학교로 향했다. 추석이면 타작마당에 모여 동네 노래자랑대회를 펼쳤다. 지금은 30여 가구에 50명쯤 살고 있을까. 자식들은 다들 도시로 나가고 부모들은 하나둘 세상을 떴다. 몇 년 사이 더러는 요양원으로 자식네로 갔다. 안담에도 정담에도 빈집이 늘었다. 더러 주말이면 사람 그림자가 얼비친다. 이것도 잠시, 점차 발걸음 뜸해질 거다.

 

그렇다고 비어가는 마을만 있는 건 아니다. 주변에는 2000년대 초반부터 다양한 형태의 마을이 자연스럽게 들어섰다. 도시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은 아무리 깊은 골짜기라도 귀신같이도로를 내고 전기·수도를 들이고 땅을 다듬어 택지를 조성했다. 금세 마을이 들어섰다. 이곳에서 나고 평생을 살아온 노인들은 물이 귀하고 북향에 바람골이라 사람이 안 살던 덴데 저따다 집을 짓네. 거참 우짤건지라며 혀를 찼다. 다행히 20년이 훌쩍 지나 제법 모양새를 갖추고 새 마을이 되었다. 자연생태니, 교육공동체니, 귀농귀촌이니 붙어 다니던 수식어가 언젠가부터 없어지고 이제는 산이나 골짝을 딴 마을 이름으로 불린다.

 

산청군은 소멸 고위험지역에 포함된다. 올해 초 발표에 따르면 산청군은 소멸위험지수 0.124로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10위권에 꼽힌다. 지난해 10월 기준 산청군 인구는 33800명이다. 노인(65세 이상)13780, 청년 여성(20~39)1887명이다. 노령인구가 40%를 넘었다. 20210.5 미만으로 소멸위험지역이었는데 2년 사이 달라졌다. 이 추세라면 3~4년 안에 노령인구가 인구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같은 상황은 타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지방소멸론이 등장 후 중앙정부·학계·언론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폭력적이었는가를 생각하면, 위에 언급한 지표나 통계를 굳이 들먹거리고 싶지 않다. 되짚어보면 정부·학계는 해마다 소멸지역 순위를 매기고 초읽기를 했다. 언론은 종말론운운하며 보도했다. 여기에는 대안도 없고 모색도 없다. 서울수도권 말고 나머지지역은 살아남으려면 각축전을 벌이라고 내모는 꼴이다. 지방정부는 앞다퉈 소멸대응기금 투자계획 수립과 전략을 세워 내놓는다. 대부분 대동소이하다. 지역 특수성에 대한 고민이나 주민 의견 반영은 찾아볼 수 없다. 조금만 검색하면 전국 어디서나 진행되는 사업을 위한 정책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소멸에 대해 즉각적으로 위기의식을 느낀다. 그것이 본능적이든 학습화된 것이든. 2023226일 여기 칼럼난에서 나는 소멸지수 말고 희망지수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언급한 적 있다. ‘지방소멸을 사회 공론화하는 과정은 무책임할 정도로 일방적이다. 해당 지역 주민들이 가질 불안감은 어떨까, 오히려 탈지역을 부추기는 건 아닐까. () 소멸위험지수보다는 각 지역의 발전지수’ ‘희망지수를 공론화하는 게 서울수도권 집중화를 늦추는 길이 될 수도.’ 위기와 불안을 조장하는 앵무새 보도는 계속이고 10년 넘도록 무릎 칠 만한 방안은 나오지 않는다.

 

소멸 고위험지역 주민 1인으로 생각해본다. 다만 소멸이 다가온 현실이라면, 타 지역 인구 끌어오기에 전전긍긍하기보다 지방정부는 정주민이 여기서,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를 더 모색하는 게, 미래적인 대안이지 않을까.

권영란 | 진주 지역쓰담대표 한겨레 : 2024.04.29

 

일학개미의 비명

값이 싸면 많이 사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외국 돈도 마찬가지다. 100엔에 1000원이던 것이 900원 안팎으로 떨어지자 지난해부터 많은 사람들이 엔화를 사들이고 있다. 일본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일학개미도 늘었다. 지난 3월 말까지 일본 증시 투자 금액이 40억달러를 넘어섰다. 집계를 시작한 2011년 이후 최대치라고 한다. 닛케이지수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지난 1분기까지 일학개미 대부분이 짭짤한 이익을 거뒀다. 일본 투자는 거의 땅 짚고 헤엄치기처럼 보였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가 급변했다. 주가 상승으로 인한 이익보다 환차손이 더 클 수 있다는 불안이 엄습하고 있다. 특히 미국 채권 상품에 투자한 일학개미들 사이에선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다. 고수익을 기대하고 미국의 조기 기준금리 인하와 엔화 가치 상승에 베팅했는데 상황이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금리가 낮아지면 엔화 가치는 상대적으로 올라간다. 미국 금리가 하락하면 미국 국채 가격은 상승한다. 엔화 반등의 환차익과 채권값 상승 수익을 동시에 노렸지만 현재로선 큰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달러 환율은 지난해부터 140~150엔대에서 움직이더니 지난 29160엔을 넘어섰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미국이 연내 3차례 정도 기준금리를 낮출 거란 관측이 많았지만 그새 국제 금융시장 분위기가 달라진 탓이다. 여기에 중동 전운까지 겹치면서 엔화는 날개 없는 추락이 이어지고 있다. 엔화는 1990년대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미국 달러에 비해 늘 강세였다. 2011년엔 환율이 달러당 70엔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금 같은 엔저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되진 않을 것이다. 엔화 가치 하락으로 일본인들의 고통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환율 예측은 신의 영역이다. 엔화가 반등한다고 해도 그 시점을 예측하기는 불가능하다. 정부와 기관투자가의 전망도 빗나가는데 개미 투자자들이 오죽하겠는가. 해외 투자의 기본 원칙은 역설적이게도 환율을 예측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환율 방향을 지레짐작하지 말고, 일정한 시차를 두고 분할 매수·분할 매도가 최선책이라는 것이다. 일학개미들의 건투를 빈다.

오창민 논설위원 경향 : 2024.04.30.

 

홀대·차별 받는 법 밖의 노동자들이 많다

노동절을 하루 앞둔 30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비정규직 대표 100인이 기자회견을 열고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동일노동 동일임금, 최저임금 적용 대상 확대, 특고 플랫폼 프리랜서 4대 보험 전면적용, 이주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 등 비정규직 노동 10대 요구안을 발표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1일은 제134주년 세계노동절이다. 노동절은 노동자의 권익·복지 향상과 인간다운 삶을 도모하기 위해 제정한 날이다. 노동권은 노동자 권리를 보장하는 법과 제도로 구현된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노동법의 온전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었고, 이 추세는 점점 더 가팔라지고 있다. 플랫폼노동 같은 새로운 노동의 확산으로 노동법 밖 노동자가 양산된 탓이다.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태웠지만, 오늘의 노동자들은 태워버릴 노동법이 없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법적 규율이다. 그러나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특수고용직·플랫폼노동자·프리랜서 등 비임금노동자는 이 법을 온전히 적용받지 못한다. 전국사업체조사 기준 20215인 미만 사업장의 임금노동자는 2527846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13.4% 수준이다. 특수고용직·플랫폼노동자·프리랜서 등 비임금노동자 규모는 850만명에 달하고, 이들의 40% 이상이 30대 이하 청년층으로 추정된다. 산업안전보건법 등 다른 노동법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수 노동자가 최저임금 이상을 받고, 4대 보험에 가입하고, 갑질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갖지 못한 게 현실이다. 육아휴직과 배우자 출산휴직은 언감생심이다. 이들에게 작금의 노동 현실은 산업사회 초창기의 야만의 시대와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

 

실태가 이렇다면 보완입법을 통해 구멍을 메워야 정상이다. 그러나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 고령층·외국인 가사노동자 최저임금 적용 배제 주장이 나온다. 화물기사 최저임금제 격인 안전운임제는 2022년 말 폐지했다. 노동법 구멍이 메워지긴커녕 커져가는 것이다.

 

서구는 다르다. 유럽연합(EU) 의회는 지난 24플랫폼노동의 노동조건 개선 지침을 가결했다. 지침은 플랫폼노동자를 자영업자가 아닌 노동자로 추정하고, 이들에게 유급휴가·실업수당·최저임금 등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EU 회원국은 지침 발효 2년 내에 관련 법을 제정해야 한다. 지난 2월 호주에선 개인사업자로 분류된 화물기사·플랫폼종사자의 최저보수 보장 등을 담은 법안이 제정됐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구멍을 막는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다고 했다.

 

근대 국가들이 노동자 보호 법제를 만든 것은 공동체의 통합과 건강한 유지·발전을 위해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금처럼 노동자 절반 이상이 상시 해고와 산재 위험에 떨고 육아휴직을 꿈도 못 꾸는 사회에서 인구소멸 문제 해결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지난 총선 때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문제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은 전면 적용하되 형사처벌 규정 적용은 일정 기간 유예하자하고, 국민의힘은 사회적 대화를 통해 단계적으로 적용하자고 했다. 여야가 근로기준법 구멍을 메워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22대 국회는 노동법 밖 노동자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입법 논의에 지체 없이 착수해야 한다.

경향 사설 2024. 4.30

 

파괴왕윤석열 2년의 징비록

기하학에서 무게중심은 지구의 중력이 질량을 가진 물체에 작용할 때 물체가 넘어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서 있을 수 있는 최적의 지점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보수는 무게중심 같은 존재다. 진보의 꼭짓점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회라는 도형이 넘어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다. 진보는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며 앞으로 이끌지만, 보수는 전통의 가치를 지키며 사회의 정체성을 대표한다. 국가의 품격을 최종 심급에서 결정하는 건 보수의 수준이다.

 

다만 사회는 정물이 아니라 변화하고 움직이는 유기체의 총화여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앞으로 나아간다. 사회는 움직이는 도형과 같다. 정지 상태의 도형은 무게중심이 힘의 중심보다 낮을수록 안정적이지만, 동적인 상태에서는 무게중심이 힘의 중심(예를 들어 양력이 발생하는 공력중심)보다 높아야 안정적이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힘이 강할 때 무게중심을 지나치게 낮게 잡으면 도형이 엎어진다. 역사학에서는 그것을 혁명이라고 부른다. 반면 근대의 미국이나 영국, 일본처럼 보수가 무게중심을 높여 변화(혁명을 예방하는 혁명)를 이끌면 큰 혼란 없이 나라의 안정과 부강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불행히도 한국의 보수는 변화와 안정을 선도하기는커녕 정의와 책임 같은 보수의 전통적 가치마저 무시한다. 나라의 기본 토대인 세금을 폭탄으로 치부하여 조세저항을 부추기고, 법과 원칙을 휴지처럼 가볍게 여기고, 거짓말을 화장실 가듯 예사로 한다. 국정농단으로 무너진 박근혜 정부의 폐허 앞에서 잠시 망연자실했던 한국의 보수는 때가 되면 본능에 따라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또 다른 바지사장을 찾아 나섰고, 민주당 정권에서만 선택적으로 작동하는 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정의와 공정의 표상으로 둔갑시켜 윤석열 대통령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국정농단의 악몽을 떠올릴 만큼 처참한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한국의 보수가 이렇게 허약한 이유는 이기적 욕망에 사로잡혀 보수의 근본 가치를 잃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2년은 보수 스스로 징비해야 할 전쟁 같은 재난이다.

 

윤 대통령은 불과 2년 만에 국가의 거의 모든 영역과 유무형의 기능을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뜨렸다. 윤석열 정부가 파괴한 목록을 10가지로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해병대 채 상병의 죽음과 이태원 참사에 대한 은폐와 축소를 통해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줄 것이라는 신뢰를 무너뜨렸다. 핵심 피의자를 호주 대사로 빼돌렸다가 호주 상원의원이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공영방송이 보도하는 등 나라를 국제적 비웃음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총선 전 대대적인 민생토론회 개최를 통해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라는 헌법 규정을 조롱했다. 시행령으로 상위법을 흔드는 초법적 행태를 비롯하여 헌법과 법률 무시가 일상이 됐다. 여당을 대통령실 여의도 출장소로 전락시켜 정치를 무력화했다. 새만금 잼버리 행사,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로 국격을 실추했다. ·일 편중외교로 불필요한 지정학적 긴장과 대결을 자초했다. 낡은 신자유주의 이념을 맹신해 재정과 경제를 망쳤다. 연구개발(R&D) 예산을 제멋대로 삭감해 과학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려 미래 역량을 훼손했다. 재생에너지와 탄소중립에 대한 천대와 무시로 에너지 전환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검찰권의 편파적 남용을 유도하고 방조했다. 검찰이야말로 윤 대통령의 집권을 위해 동원된 가치(공정과 상식)를 정면으로 배반하는 불공정하고 비상식적인 집단이라는 사실을 온 국민이 알게 됐다. 수사와 기소 기능 분리는 필연적이다. 김건희 특검법 거부권 행사로 법 앞의 평등이라는 민주주의 기본 질서를 짓밟았다. 국정 기조를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윤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파괴할 것은 자기 자신과 아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합리적 보수의 관점에서 보면,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실무에 개입한 대통령실이 아니라 법과 원칙에 따라 국가와 군에 대한 의무를 다한 박정훈 대령이 보수에 걸맞은 사람이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는 박 대령 같은 사람을 투사로 만든다. 총선 참패 뒤에도 여당 안의 합리적 보수가 숨 쉴 공간은 크지 않아 보인다. 여야의 극단적인 대립을 비롯하여 우리 현대사가 노정한 불행의 대부분은 보수가 보수답지 못해서 생긴 일이다. 양비론으로 뭉갤 사안이 아니다. 80년대 대학생들은 청년이 바로 서야 나라가 산다고 했는데, 이제 그 말을 바꿔야 한다. ‘보수가 바로 서야 나라가 산다.’

이재성 | 논설위원 한겨레 2024. 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