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2024.1.2~31 계속 역주행

by 이성근 2024. 2. 2.

1. 100501050주식부자 9천명을 위한 주식양도세 역주행 2. "시대가 마음에 안 들더라도 무기를 놓지 말자" 3. 빈곤과 고립이 없는 세상을 바라며 4.‘총독의 소리맞춰 준동하는 친일파 5. 대통령이라는 자리 당신의 일자리는 안녕한가요 6. 관용 사라진 정치, ‘테러가 점령했다 7. ‘어이없다는 대통령이 어이없다 8. 거꾸로 가는 국정방향과 천박한 노동인식 9. 북한 김여정이 윤석열 대통령을 '찬양'한 까닭은? 10. 위험천만 한동훈식 '운동권 청산론', 그리고 '파시스트'들의 경우

11. 이 나라 보수와 김건희 리스크 12. ‘강남 8학군 출신강조의 이유 12-1정책의 스칸디나비아화 12-3. 대통령이 셀프 무혐의하라고 있는 자리인가 13. 한국의 세계관을 묻는다 14. 평범한 사람들의 자리는 어디인가 15. 부자들의 패거리 카르텔’ 16. 윤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가 무서운 것일까? 17. 공감 제로, 그리고 재난의 데자뷔’ 18. 해방 뒤에도 일제시대가 좋았다확신형 친일파 19. 이선균과 이재명, 너무 다른 경찰 수사 20. ‘그래도 된다는 극단적 분위기가 만드는 정치인 공격

21. '바이든'이 아니었다니! 윤석열 대통령께 사과드립니다 22. 흉터는 힘이 세다 23. 2023년 테크 업계, AI가 발전한 만큼 사람들은 행동했다 24. 이재명 피습사건, 이대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25. ‘이재, 곧 죽습니다’ 26. 정당은 정당일 뿐이다 27. 나쁜 정치 28. 부자 포퓰리즘의 정치공학 29.우리의 대안을 조직하자 30. 간토학살 100주기 지나도록 특별법 뭉갠 국회는 반성하라

31.꿩의 긴 꼬리와 김건희 여사의 두문불출 32. 우크라이나, 미국 실패의 그림자 33. 이해도, 용서도 안 되는 미국 자본주의 이야기 34.대통령의 막말과 증식하는 폭력 35.전쟁 위기 조성하고 주가 폭락에 당황하는 윤 정부 36. 어떤 이대남에 주목해서 호들갑 떨 때가 아니다 37. 우리 시대에 희망이 있을까? 38. 이 정부가 정보공개를 못 하는 이유 39. 욕망의 정치, 윤 대통령의 싸구려 포퓰리즘’ 40. 위선 공화국의 역설

41.‘혼자가 좋다는 나라의 저출생 대책 42.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싫다’ 43. 김건희, 마리 앙투아네트, 다이아몬드 목걸이 44.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들 45.나라 안팎 탄소 배출에 진심인 한국의 공적 금융 46.한동훈의 반란, 윤석열은 진압했나 47.돈의 분열증, 부동산과 금융의 공생 47.누가 대통령 귀에 엉터리 경제이론을 속삭이는가 48.“어머니,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49.진실과 정의는 포토라인에 있는가 50 오디션과 이데올로기

51.한동훈의 승리? ‘김건희는요? 52. 양승태의 무죄, 조희연의 유죄  53.너무나 비과학적인 ‘R&D 예산 난장판’  54. 가짜 설교는 가라 55. 신장식 하차, ‘배추고발, ‘사직구장제소  56. 금융시장의 약장수들

 

100501050주식부자 9천명을 위한 주식양도세 역주행

정부는 지난해 1226일 주식양도소득세가 부과되는 대주주 기준을 10억원에서 50억원으로 완화했다. 연말마다 큰손들이 대주주 지정을 피하려고 주식시장에 매물을 쏟아내서 개미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너무나도 궁색한 설명이다. 대주주 투매로 인한 일시적인 주가 하락은 개미 투자자에게 오히려 좋은 저가 매수 기회이기 때문이다. , 대주주 여부와 관계없이 자본이득에 과세하는 금융투자소득세제가 예정대로 내년에 시행되면 대주주 지정을 피하려 주식을 투매하는 현상은 어차피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번 조치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정부의 이러한 어설픈 설명보다는 이번 조치가 가져올 부정적 파급 효과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 조치는 자본이득 과세를 전면 도입하기에 앞서 이루어진 지난 10여년 동안의 정책적 노력을 무위로 만들 수 있다. 정부는 2000100억원이었던 대주주 과세 기준을 201350억원, 201625억원, 201815억원, 202010억원으로 점차 낮춰왔다. 그리고 2020년에는 소득세법을 개정해 금융투자소득세제를 도입했고, 그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만약 금융투자소득세제를 무리 없이 연착륙시키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시행 이전에 10억원인 현행 대주주 기준을 더욱 낮춰야 하는 것이 순리겠지만 이번에 이를 오히려 대폭 올려버렸다. 내년으로 예정된 금융투자소득세제 시행 시점을 또 한차례 유예하거나 제도 자체를 폐기할 빌미가 만들어진 것이다.

상장 주식을 장내 매도했을 때 얻은 자본이득에 과세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먼저 경제주체들의 의사결정이 왜곡된다. 근로를 통해 돈을 벌기보다는 주식투자로 돈을 벌려는 경제주체들의 비중이 필요 이상으로 커진다. 주주들은 배당을 요구하기보다는 시세차익에 지나치게 많은 관심을 두게 되고, 기업들은 이에 화답해 배당보다는 자사주 매입을 통한 주주 환원에만 집중하게 된다. , 주주들이 장외에서 주식을 매도하는 것을 꺼리게 되어 공개매수를 통한 기업 인수를 어렵게 한다.

이뿐 아니라 자본이득 과세 포기는 중요한 세원의 포기를 의미한다. 2022년도 주식양도소득세 결정세액은 2983억원이다.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고 할 수 있지만, 지난해 세수 부족분이 59조원인 것을 고려하면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 주식양도소득세가 금융투자소득세로 전환되면 세수가 75% 증가할 거라는 과거 기획재정부 전망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참고로 38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본이득에 과세하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9개 국가에 불과하다.

끝으로 자본이득 과세 포기는 명백한 부자 감세다. 현행 주식양도소득세는 시가로 주식을 10억원어치 이상 보유한 부자에게만 부과되고, 금융투자소득세도 주식양도소득이 5천만원 이상인 부자에게 부과된다. 따라서 이를 포기하는 건 부자를 위한 감세 조치임이 명백하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양경숙 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2022년 말 10억원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대주주는 전체 주식투자 인구 1440만명 중 0.09%13368명에 불과한데, 이 중에서 무려 70%(9207)가 이번 조치로 세금을 면제받게 된다.

한편, 이번 조치는 보수와 진보 언론 양쪽으로부터 총선용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는 데 별 효과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치로 혜택을 볼 수 있는 유권자는 겨우 9천여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자 감세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낙인이 찍혀 총선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경제개혁연구소는 2009년부터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세금 정책에 대한 평가도 포함되어 있는데 부유층에 유리하다는 답변 비중은 이명박 정부 시절 80%를 웃돌았다가, 박근혜 정부 시절 70%대로 내려왔고,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40%대까지 떨어졌지만, 윤석열 정부 시절에는 다시 60%대로 반등했다. 종합부동산세 완화, 법인세율 인하, 가업상속 공제 요건 완화, 가업승계 증여세 저율 과세구간 확대 등이 반영된 탓일 것이다.

투표에 임하는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만이 나쁜 세금 정책을 막을 수 있다

김우찬 | 경제개혁연구소장·고려대 경영대 교수 | 한겨레 2024.1.1.

 

"시대가 마음에 안 들더라도 무기를 놓지 말자"

막막한 시대, 무엇에 그리고 무엇으로 힘을 낼 것인가

"20세기는 홉스봄의 한 세기"라는 말을 들었던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85세에 펴낸 회고록을 마무리하면서 "정치 권력과 제국, 제도가 얼마나 가변적인가를 저절로" 배웠고 "이런 유행 저런 유행이 오고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라고 말한다.(<미완의 시대>, 민음사 펴냄)

그의 역사 기술과 관점에 동의하든 아니든 이제 그 자신이 역사다. '홉스봄의 세기'(회고록에 포함된 '옮긴이의 말'에 포함된 표현)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장기' 20세기를 대표한 역사가라 할 수 있다. 그 자신은 그가 배운 것을 개인적 감상으로 표현했지만, 우리는 그것이 객관적인 것, 역사이자 시간에 관한 것이라 여긴다.

새해 벽두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역사가를 떠올린 것은 그의 권고대로 조금 '떨어져서' 오늘을 보자는 취지다. 물론, 그에 기대서 새삼 역사관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을 터, 여러 가지 익숙한 새해 맞이용 결심을 되풀이하고 싶지도 않다. 역사보다는 오히려 '시간'을 단초로 삼는다.

'새해'라는 생각의 틀은 몸부터 시작해 오롯이 시간이 체화된 결과물이다. 무엇 하나 또렷이 보이지 않고 온 사방이 막힌, 아무 희망의 근거도 찾을 수 없다는 한탄 또한 시간에 관해 말하는 것과 같다. 최근 몇 년 으레 단골 소재인 저출산이나 기후 위기, 돌봄, 불평등은 저절로 분노가 치미는 '정동'의 문제이되, 날이 갈수록 더 답답한, 그래서 더욱 시간의 문제이다.

그리하여, 2024년 새해에는 시간을 다시, 고쳐 감각하자고 제안한다. 역사가 될 시간은 가변적이고 개방적이며, 결정되어 있지 않다. 이런저런 유행은 쌓이고 연결되지만, 지속하거나 축적되지 못한다. 쪼개지고 흩어지지만 큰 흐름을 이루고 결국은 어느 곳엔가에 이른다.

미시적 인과관계와 법칙성을 벗어난 우연은 한편으로 해방의 씨앗이다. '과학적으로' 아무 희망의 근거가 없을 때, 역사의 우연성을 빼고 무엇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 막막하고 답답한 때, 우연과 우발이 희망과 해방의 역설적 근거가 된다.

우리는 이 막막한 시기에 그 가변적이고 우연한 시간을 생각하며 개인과 사회를 살리는 운동을 되살리자고 제안한다. 새로운 시간 감각과 리듬으로, 당연하게도 윤리와 도덕, 성찰과 각성, 개인보다는 공동체, 연대와 협력, 공통의 노력과 실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첫째, 공부하기. 작년 마무리 논평에 쓴 것과 같다.(관련 기사 : 2023'희망하기'를 되돌아보다)

'사회적인 것'에 관한 공부라 한정해도, 무슨 제도 교육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개인과 사회를 옥죄는 현상과 문제를 이해하고 그 너머를 구상하는 일, 무엇이 걸림돌인지 찾아내고 힘을 모으는 방법을 궁리하는 것을 우리의 공부라고 해야 한다.

둘째, 협력적 성찰.

공부 또한 중요한 성찰의 방법이지만, 그보다 대화와 토론, 공동의 실천 경험과 반성이 협력적 성찰의 요체가 아닌가 한다. 구조화된 각 개인, '(필드)'과 아비투스에 매인 각자가 해방의 실마리를 발견하는 방법은 성찰을 빼고는 구하기 어렵다.

셋째, 돌봄 노동. 우리는 조안 트론토의 다음과 같은 돌봄 정의에 공감한다. 돌봄은 "우리가 가능한 한 세상에서 잘살 수 있도록, '세상'을 유지하고 지속하며 고쳐나가는 모든 종() 활동"으로 볼 수 있다.(Caring Democracy, p.19; 한글 번역은 <돌봄 민주주의>, 67)

이때 "세상은 우리의 몸, 자아, 환경을 모두 포함하며, 이들은 복합적이고 생명을 유지하는 그물망으로 엮여있다". 이런 돌봄은 어쩔 수 없이 인간 종의 모든 노동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돌봄 노동은 정의와 윤리의 실천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다시, 에릭 홈스봄의 회고이자 권고로 되돌아간다. 그의 공부, 성찰, 돌봄 노동의 시간과 그 결과물, 중요한 '메타 지식'이라 믿는다.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시민건강연구소 | 프레시안 2024.01.01.

 

빈곤과 고립이 없는 세상을 바라며

2024년 새해 아침은 춥지 않아서 일출을 보기에 좋았다. 해가 솟아오르기 전에 이미 하늘은 밝다. 지평선 위로 훌쩍 올라오기 전부터 해는 하늘 어느 한 곳도 빠뜨리지 않고 고르게 비춘다. 하지만 시선을 하늘 아래로, 건물들로, 도로로, 우리가 사는 이곳으로 내려보면 빛은 그다지 고르지 않다. 어느 곳은 햇빛이 가득한 양지이지만 또 다른 곳에는 그늘이 너무나 짙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100명 중 15명가량은 빈곤하다. 65세 이상 노인이라면 그 비율은 100명 중 약 40명으로 올라간다. 나이가 더 많은 고령노인일수록, 혼자 사는 노인일수록 빈곤할 확률은 특히 더 높다. 일례로 며칠 전 발표된 폐지수집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평균 나이는 76세로 고령노인이 많은데, 80% 이상이 소일거리가 아닌 생계를 위해 일한다. 그럼에도 약 월 130시간 폐지 줍는 일로 얻는 소득은 16만원이 채 못 된다. 노인일자리사업 임금도 대부분 30만원 이하이다. 빈곤한 노인은 자녀를 비롯한 주변 사람과의 교류가 적어 고립되기 쉽다. 몸의 질병도 문제이지만 외로움 등으로 마음의 건강 역시 챙기기 어렵다. 우리가 흔히 행복의 조건으로 말하는 타인과의 교류, 몸과 마음의 건강은 소득계층에 따라 크게 불평등하다.

 

노인기 빈곤은 갑작스럽게 발생하기보다는 이전 시기부터의 문제가 누적된 결과이기도 하다. 특히 중장년기의 고립과 빈곤은 과거에 비해 심화되었다. 정년은 빨라지고 일자리는 불안정해진 상태에서 중장년기는 더 이상 경제적 안정성이 확보된 시기가 아니다. 고시생들이 살던 고시원은 홀로 사는 중장년층으로 칸칸이 채워졌다. 생애 단계를 더 거슬러 올라가 청년들의 고립과 불안정성 역시 심각하다. 극단적으로는 청년기 자살은 그 비중이 약 4분의 1이 되었고, 특히 20대 자살은 최근 5년간 43.9% 증가하였다. 우리 사회는 한 해에 20대 청년을 1500명 넘게 이런 방식으로 잃고 있다. 고용 불안정성, 주거비 등과 얽힌 경제적 고통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전 세대에 걸쳐 가족이라는 끈은 약화되었고, 개인은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생계의 중심인 일자리의 불안정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빚에 기댄 결과, 그로 인한 고통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것이 2024년으로 넘어온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바꿔내야 할 현실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회는 나아진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지만, 이렇게 보면 빈곤과 불안정성, 고립의 문제는 나아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어떤 부분에서는 더욱 나빠지고 있다.

 

그래서 2024년 사회복지와 사회정책의 역할은 중요하게 조명될 것 같다. 복지는 약자에 대한 배려이기보다는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 권리에 대한 보장이자 개인을 고립에서 벗어나게 하는 장치이다. 그렇다면 어떤 접근을 해야 할까? 복지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환영해야 할까? 선거를 앞두고 반짝 4월까지만 복지가 이슈로 부각되는 것이 아니길 바라본다. 복지는 선거정치의 수단이 아니라 정치의 목적일 때 제대로 다룰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문제의 표면만 건드리게 된다.

 

우선 삶의 기본 조건으로 고용안정성을 높이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길 기대한다. 또한 한층 심화되는 시장화 흐름 속에서 주거, 의료, 돌봄의 공공성 등을 확보하는 문제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 사회복지에 고질적인 공공성의 결핍을 극복하지 않는다면 복지는 그 질을 개선하기도, 모두에게 고르게 전달되기도 어렵다. 마지막으로 실업·은퇴·질병 등의 상황에서도 삶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보험제도가 제대로 보장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민연금을 비롯한 사회보장제도 개혁이 중요하다. 올 한 해 선거와 무관하게 한결같이 이 모든 것을 우리 사회가 끝까지 고민하고 실행해내길 기대한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경향 2024.01.01.

 

 

총독의 소리맞춰 준동하는 친일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조선총독부가 보내 드리는 유령해적방송인 총독의 소리입니다. 총독 각하의 노변담화(爐邊談話) 시간입니다.

충용한 제국(帝國) 신민(臣民) 여러분, 제국이 재기하여 반도에 다시 영광을 누릴 그날을 기다리며 은인자중 맡은 바 고난의 항쟁을 이어가고 있는 모든 제국 군인과 경찰과 밀정과 낭인 여러분,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산하(山下) 생영(生靈)을 맡고 있는 본인의 뜻을 어기지 말라. 나의 마하장병(摩下將兵)이여. 관민 여러분, 식민지의 모든 밀정, 낭인 여러분, 불발(不拔)의 믿음으로 매진하라. 제국의 반도 만세.”

최인훈 소설 총독의 소리에 나오는 구절이다. ‘총독의 소리1945년 일본의 패망 후 조선총독부가 한반도에서 물러나지 않고 지하로 잠입해 활동을 이어간다는 가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소설은 해방 후 남북분단과 친일파의 준동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 등을 지하 조선총독부의 시각에서 도발적이고 풍자적인 언어로 그려낸다.

 

소설 속 허구를 현실로 가져 온 친일파적 준동들

요즘 친일파들의 준동이 수상쩍다. 아예 내놓고 친일행각을 벌인다. 그들의 노골적인 준동을 보노라면 엉뚱한 상상마저 하게 된다. ‘지하조선총독부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조선총독이 은인자중 하던 밀정들에게 이젠 정체를 드러내고 활동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은 아닐까? 친일파들이 일본의 공작금으로 매국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 국방부가 일선 부대에 배포한 장병 정신교육교재에서 독도를 영토분쟁 진행 중인 지역으로 기술한 사실이 밝혀졌다. 윤석열 정부의 국가관과 역사관을 의심케 하는 사건이다. 국방부는 군인들에게 독도를 영토분쟁지역으로 가르치고 있었다. 국방부의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내용을 들여다보자.

 

한반도 주변은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여러 강국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군사력을 해외로 투사하거나,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쿠릴열도, 독도 문제 등 영토분쟁도 진행 중에 있어 언제든지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댜오위다오는 중국일본 간 영토분쟁 지역이다. 쿠릴열도는 일본러시아 간 영토분쟁 지역이다. 국방부는 엄연한 우리 영토인 독도를 댜오위다오나 쿠릴열도와 같은 영토분쟁 지역으로 기술한 것이다. 독도와 관련한 영토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역대 정부의 공식 입장과는 다른 입장을 보인 것이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사실은 해당 교재에 실린 한반도 지도에서 독도를 지웠다는 점이다. 교재에는 열한 장이나 되는 한반도 지도가 실렸지만 독도는 단 한 곳에도 표기되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지우지 않았다면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혹여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고자 하는 일본 정부의 바람을 슬그머니 도와주려 한 것은 아닌지 하는 의혹마저 들 정도다.

 

내놓고 친일파 커밍아웃한 국방부장관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표기한 장병 교육교재 사건은 친일파 암약의 의혹을 부채질 한다. 더군다나 그 사건의 최고 책임자인 신원식 국방장관은 일찌감치 스스로 친일파임을 커밍아웃한 바 있다. 그는 20198월 한 보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대한제국이 존속한다고 해서 일제보다 행복했다고 확신할 수 있나? 일본으로부터 사과도 받고 돈도 받았다. 이제는 잊어버려야 한다."

비슷한 시기에 그는 자유한국당 주관 집회 연설에서 친일파 이완용을 두둔하고 일본의 식민지배를 옹호하는 발언도 했다.

우리는 매국노의 상징으로 이완용을 비난한다. 그러나 당시 대한제국은 일본에 저항했다 하더라도 일본과 국력 차이가 너무 현저해 독립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올해 9월 국회 국방위원회 국민의힘 간사 시절, 그는 두 건의 SNS포스팅을 통해 항일 독립투사인 홍범도 장군을 매도했다. 그는 홍 장군의 공산당 전력을 문제 삼으면서 육사 내 흉상 이전을 주장했다.

“1927년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행은 결코 독립투쟁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으며 스스로가 공산주의 이념에 경도돼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무늬만 공산당원이 아닌, ‘충직하고 뼛속까지 빨간 공산당원이었다. (중략) ‘반공의 정체성 속에 태동하고 성장·발전해온 대한민국 육사와 국군이 공산당원 홍범도를 기리고 추앙케 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이냐.”

설마 지하조선총독부의 새로운 지령이라도 떨어진 것일까? 신원식 장관을 비롯한 친일 성향 인사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윤석열 정부의 친일 굴욕 외교도 상식의 궤를 벗어나고 있다. 은인자중 하던 밀정들이 총궐기라도 시작한 분위기다.

 

친일파와 뉴라이트 세력이 나라를 집어삼킨 형국

친일 커밍아웃이 잇따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몇달 전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100년 전 일을 가지고 (일본인들이) 무조건 무릎 꿇어야 한다는 건,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김영환 충북지사는 3자 변제 방식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을 옹호하면서 나는 오늘 기꺼이 친일파가 되련다고 했다. 그 망언들을 일일이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친일 성향의 뉴라이트 인사들이 중용되고 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과거 뉴라이트 학자들의 싱크탱크인 '뉴라이트 싱크넷' 운영위원장을 역임했고, 2005년 출범한 뉴라이트 역사단체 '교과서포럼'에서도 활동했다.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은 뉴라이트 계열 학술단체인 자유민주연구학회와 나라정책연구원을 이끌던 인물이다. 한오섭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은 뉴라이트전국연합 기획실장 출신이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뉴라이트 지식인 100인 선언'에 이름을 올렸었다. 그 이름을 일일이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섬뜩하다. 친일파와 뉴라이트 세력이 나라를 집어삼킨 형국이다. 저들은 독립운동의 역사를 왜곡하고, 이승만박정희 독재를 미화하고, 신냉전 이데올로기를 설파하느라 여념이 없다. 다시 항일운동과 반독재 투쟁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나라와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워야 한다. 당장 신원식 국방부 장관을 파면시켜야 한다. 정부 요직을 차지한 다른 친일세력들이 어떤 매국행위를 벌이고 있는지도 엄중히 살펴봐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지금이라도 친일 굴욕외교를 중단해야 한다. 더 이상 한일과 북러가 대립하는 신냉전 구조를 심화 시켜서는 안 된다. 정부 스스로 못하면 국회가 저지해야 한다. 국회도 못하면 주권자인 국민이 또 나설 것이다.

박상주 칼럼니스트 | 시민언론 민들레 2024.01.01.

 

 

대통령이라는 자리

19876월 민주항쟁 이후 윤석열 정부처럼 스스로 국가 기강을 어지럽히고 국정운영을 엉망으로 하는 정권은 경험하지 못했다. 엄연한 삼권분립 민주공화국에서 대통령이 집권여당을 떡 주무르듯 농단하는 뉴스가 넘쳐나고, 국회의원 선거 차출을 위해 3개월짜리 장관, 6개월짜리 차관이 양산되고 있다. 곳곳에서 부실한 국정운영으로 국민의 삶이 각박해지고 나라가 어려움에 빠지고 있다.

상투적인 비난이 아니다. 최근 외교안보 분야 뉴스만 봐도 그 예가 차고 넘친다. ‘박빙 승부와 역전승을 예고하며 국민 기대를 부풀려 놓고 ‘29 119’라는 외교적 참변으로 끝난 엑스포 부산 유치 작전, 정보부서 책임자급 간부 대부분을 대기·교육·지원 근무 등 형식을 통해 떠돌이 신세를 만들어 놓고 주야장천 권력투쟁에 몰두한 국가정보원 수뇌부, 항일 독립영웅 홍범도 장군을 욕보이더니 끝내 영토 보존의 신성한 의무마저 망각하고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표현한 얼빠진 국방부, 마치 거친 상대방을 다루는 특별한 비방이나 있는 듯이 한껏 목청을 높이고 힘을 과시했으나 결과적으로 언제 물리적 충돌이 발생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린 남북관계! 이러고도 나라가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이런 난맥상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에 윤 대통령이 대한민국 공동체의 보편적 이익이 아니라 특정한 정파적 이익을 정의로 인식하고 행동하는 게 크다고 본다. 정작 자신이 검찰 정권으로 상징되는 용산 카르텔을 꾸려 나라를 위험하게 만들면서도 툭하면 자기들만의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라며 이러저러한 카르텔 척결을 주창하는 정신세계를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윤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한다. 대선 후보 시절 제주 해군기지건설을 추진한 노 대통령을 회상하며 고뇌와 결단을 가슴에 새긴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그래서 노 대통령을 보좌했던 참모로서 대통령의 고뇌와 결단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에게 비친 노 대통령의 고뇌는 내 생각이나 기질 혹은 내 개인의 이익이 국익과 배치되는 것이었으며, 결단은 이때 자신을 버리고 국익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20039월 노 대통령은 허버드 주한 미국대사와의 대화에서 이라크 추가 파병이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솔직하게 말했다. “나를 지지하는 대부분 사람은 파병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내가 만약 파병하기로 하면, 이 중 절반 정도가 나에 대한 지지를 이 이유만으로 철회할 것입니다. 나머지 절반가량은 나를 위해 파병 반대를 철회할 것입니다. 또 지금 파병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정치적으로 나의 반대자들입니다.”

 

이처럼 노 대통령은 지지자의 절반을 잃을 줄 알면서도 추가 파병을 결정하였다. 한국 경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통령이 결단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때도 그는 많은 지지자를 잃었다. 시간이 흘러 역사는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 부대가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안 내고, 원래의 대국민 약속대로 이라크 평화 재건을 도왔으며, ·FTA는 급변하는 국제 경제 환경 속에서 한국 경제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음을 증명하였다. 그러나 당시 이러한 일들이 누적되면서 노무현 정부는 낮은 국정 지지율을 면하지 못했다.

 

노무현에게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어떤 것이었기에 이런 고뇌에 찬 결단을 했을까? 나는 2003년 어버이날에 노 대통령이 쓴 국민에게 드리는 편지속에서 그 답을 찾는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힘있는 국민의 목소리보다 힘없는 국민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체질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할 때는 그 누구에게 혹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 수 없습니다. 중심을 잡고 오직 국익에 의해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중심을 잃는 순간 이 나라는 집단과 집단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와 통치는 다릅니다. (중략) 저는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국익이라는 중심을 잡고 흔들림 없이 가겠습니다.”

 

이처럼 국익을 위해 자신을 버렸기에 많은 국민이 지금 노무현 전 대통령을 국민 전체를 대표하여 나라를 이끈 통치자로 기억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이런 말을 귓등으로도 들을 것 같지 않지만, 그래도 반대파가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주장한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당파적 이해를 관철하고자 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대표하여 나라를 이끄는 통치자의 자리다. 대한민국 공동체를 포용하는 눈으로 봐야 참된 국익이 보인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 경향 2024.01.02.

 

 

당신의 일자리는 안녕한가요

지난 연말, 세계 저명 학술지 네이처2023년 과학계를 빛낸 인물로 과학자 10명과 더불어 생성형 인공지능(AI) GPT를 뽑았다. 2011년부터 해마다 올해의 인물을 발표한 네이처가 인간이 아닌 존재를 명단에 포함한 것은 처음이다. 네이처는 챗GPT가 과학 발전과 진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경향신문도 챗GPT2023올해의 인물로 선정했고, 국내외 언론 다수가 챗GPT 열풍을 연말 10대 뉴스로 꼽았다.

2023년은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해였다. 202211월에 나온 챗GPT1년 만에 대세가 됐다.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산업·금융·법률·의료 등 전 분야에 손쉽게 활용 가능한 수단으로 급속히 확산하며 인공지능 시대를 성큼 앞당겼다. GPT를 개발한 오픈AI의 지난해 연간 매출이 16억달러(2976억원)를 돌파하며 전년의 57배에 달했다고 하니 폭발적인 확산세를 짐작할 만하다. 흔히 산업혁명과 인터넷, 알파고 등장에 비견되는 생성형 인공지능을 두고 헨리 키신저가 인쇄술 이후 최대 지적 혁명이라고 했을 정도다.

 

인공지능 열기가 한때 수그러들고, 인간보다 똑똑한 인공지능이 나타날 미래를 놓고 기대와 우려가 극단적으로 표출됐던 분위기도 가라앉았지만, 2024년 인공지능 시대를 바라보는 전망은 같다. 기술이 더 빨리 발전하며 더 멀리 달려나가리라는 것이다. 2023년이 태동기라면 2024년은 급속한 성장기라는 얘기다. 사람 같은 로봇, 휴머노이드가 이미 도처에 들어서고 있고 더욱 정교한 차세대 모델 챗GPT-5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이 급속도로 개인과 사회에 닥쳐온다는 것은 인간이 생각하고 풀어야 할 문제가 그만큼 늘어난다는 뜻이다. 인공지능에 무관심하거나 무지해서는 살아남기조차 어렵게 된다. 속도전으로 개발되는 기술이 선사하는 혜택과 번영이 확대되는 만큼 그에 따른 위험과 부작용도 함께 커지는데 그 간극이 전보다 훨씬 더 깊고 첨예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양날의 검과 같은 문제다.

 

세계적 석학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구글을 그만둔 제프리 힌턴은 인공지능이 킬러 로봇처럼 인류를 파괴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제자 일리야 수츠케버는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기술 개발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 등 개발론자들은 인공지능은 사람이 제어할 수 있는 도구라며 공포가 과장됐다고 말한다. 디스토피아의 공포와 유토피아의 희망이 맞선다.

 

거창하게 인류 파멸이냐 번영이냐를 논하기보다 각자 삶의 질이 어떻게 바뀔지를 따지는 것으로 이 숙제를 풀어보는 게 좋겠다. 미국 대선 등 올해 세계 각지에 선거가 몰린 터라 인공지능을 이용한 가짜뉴스 선거 문제가 최근 핫이슈이고, 예술·법률·의료 분야 논란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 방면의 해묵은 난제이자 삶의 질에 직결되는 일자리 문제를 살펴보는 게 우선 와닿을 것이다.

 

지난해 5월 할리우드 작가와 배우들이 63년 만에 동반 파업에 나섰다. 작가들은 대본을 창작하는 일자리가 인공지능에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배우들은 딥페이크 영상이 무단 남용되는 상황을 문제 삼았다. 모두 인공지능의 보조로 전락할 우려를 표한 것이다. 최근 구글은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한 광고 판매 부문 직원들에게 ‘3만여명에 달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인공지능 개발회사 직원들이 인공지능에 역습을 당한 셈이다. 사무·관리직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는 우려가 현실화했다. 세계경제포럼 보고서는 인공지능 등장으로 2027년까지 일자리 1400만개가 순감할 것으로 예측하며 사무행정, 경리 등을 주요 감소 분야로 지목했다.

 

그래도 혹자는 인공지능이 사람 일자리를 빼앗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한다. 인공지능은 감정지능이 부족하고, 인간과 경쟁하지 않고, 명령대로만 움직이며, 인간이 작동시키는 존재라는 게 근거다. 하지만 선뜻 납득이 안 된다. 인공지능이 갖지 못한 능력을 갈고닦으면 대체될 일 없다는 말인데 500년 걸린 변화가 5년 안에 이뤄질 만한 지금의 기술 발전 속도를 무시하는 얘기다.

 

얼마 전까지도 직원이 있었다가 없어진 식당·은행·마트·공장이 주위에 부쩍 늘어난 걸 보면 사람 일자리 대체가 눈앞에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에 보도자료 기사를 쓰게 하는 국내 언론사가 나온다는 소식이 마침 들렸다. 2024년 지금, 인공지능의 일자리 위협이 지진해일(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다 / 차준철 논설위원 | 경향 2024.01.03.

 

 

관용 사라진 정치, ‘테러가 점령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부산에서 습격당한 사건은 충격적이다. 경찰 발표를 보면, 범인은 이 대표를 살해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목을 겨냥해 흉기를 휘둘렀다고 한다. 1야당 대표를 죽이려고 행동하는 건 1945년 해방 직후의 무정부적 혼돈 상황이나 군부독재 정권이 정적을 제거하려는 비밀공작 차원에서나 가능했을 법한 일이다. 평시에, 그것도 선거로 정권을 바꾸는 게 뿌리내린 한국 사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건 놀랍다.

정치인 테러가 곧바로 민주주의 후퇴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20065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겨냥한 커터칼 테러 이후에도 우리는 평화적인 촛불 시위를 통해 대통령을 바꾸는 민주주의 진전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다른 측면에서 위기를 알리는 경종임이 분명하다. 민주주의란 오랫동안 쌓은 나름의 원칙과 규범에 의지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정치적 행동과 태도를 제어할 수는 없다. 빈틈을 메우는 상식과 합의가 필요한데, 어느 순간 그게 증발해 버린 느낌이다.

 

가령 대통령이 대국민 기자회견을 하는 건 중요한 일인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20228월 이후 단 한번도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에 직접 답변한 적이 없다. 대통령이 새해 기자회견을 하라는 강제규정은 어디에도 없지만 이걸 어기는 순간 정치의 핵심인 소통은 취약해진다. 마찬가지로 반대하는 정치인에게 물리적 공격을 가하거나 신체적 위해를 입혀선 안 된다는 점을 선거법 또는 정당법에 명문화하긴 곤란하다. 그래도 우리는 말이나 글로 싫어하는 정치인을 비판할 순 있어도 칼로 찌르거나 폭력을 행사해선 안 된다는 점에 동의해왔다. 그런 행동은 정치·사회 안정을 해칠 것이란 점에 공감해왔다. 이런 공감과 동의가 제대로 된 민주주의 작동엔 더 중요하다. 지금 그런 가치는 손쉽게 외면당하고 있다.

 

지난 대통령선거를 흔히 비호감 대선이라 불렀다. 여야 모두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네거티브 선거운동으로 반사이익을 얻으려 했던 탓이다. 박빙의 차이로 당선된 윤석열 대통령은 선거 이후에 그 상처를 씻어내야 했지만, 갈등과 분열에 기댄 상대방 공격은 1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대통령이 국회 과반 의석을 가진 제1야당 대표와 단 한차례도 진지하게 국정을 협의하지 않은 건 단적인 예다.

 

이런 상황에선 극단적으로 정치에 몰입한 이들이 폭력에 경도되는 걸 막는 저항선은 훨씬 약해진다. 부산의 폭력은 돌발적이고 개인적일 수 있지만, 그 밑바닥엔 대선 때의 증오가 평시의 정치까지 지배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 깔려 있다.

 

이재명 대표 피습을 라고 외치는 지지자를 향해 내가 피습당했다고 생각해달라고 말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말은 진심일 터이다. 이번 사건이 4월 총선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가장 노심초사할 사람은 어쩌면 한동훈 위원장이다. 2006년 지방선거 직전에 일어난 박근혜 대표 피습이 한나라당의 선거 압승에 날개를 달아줬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때 박 대표가 깨어나자마자 했다는 대전은요?”라는 말은 상징적이다. 한동훈 위원장은 이제까지 이재명 대표를 정치적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았다. ‘범죄자로 여기고, 정치에서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봤다. 아무리 혐의가 뚜렷하다 생각해도 제1야당 대표라면 무죄 추정 원칙에 따라 불구속 기소해서 법원에서 진실을 다투는 게 정상이다. 굳이 국회에 체포동의안을 내고 유죄를 속단하는 듯한 본회의장 발언을 길게 한 건 야당 대표를 으로 봤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방의 노선과 정책엔 반대하지만 그 정당이 선거에서 이긴다면 국정을 운영하고, 국회 다수당으로 활동하는 걸 인정하고 대화하겠다는 자세는 필요하다. 넬슨 만델라는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에 선출된 뒤 자신을 27년간 투옥했던 백인 정권에 어떤 보복도 하지 않았다. ‘당신을 27년간 투옥하고 수많은 흑인을 박해한 백인 정권을 어떻게 증오하지 않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만델라는 증오는 마음을 흐리게 합니다. 지도자는 누군가를 미워할 여유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윤 대통령과 집권세력은 제1야당 대표를 범죄자로 보는 시선을 거둬야 한다. 병상의 이 대표는 우리 사회에 가득 찬 증오와 분노의 감정이 더는 높아지지 않도록 하길 바란다. 부산의 불행한 사건이 한국 정치를 조금은 바람직한 길로 접어들게 한다면, 그건 바로 이 대표의 노력 때문일 것이다.

박찬수대기자 | 한겨레 2024.01.04.

 

 

어이없다는 대통령이 어이없다

일본 도쿄 한복판인 지요다구 가스미가세키에는 영토·주권 전시관이 있다. 독도, 센카쿠열도, 쿠릴 4개 섬이 자국 영토라고 선전하기 위해 아베 신조 정권 때인 20201월 확장·재개관했다. 당시 기자는 개관 첫날 그곳을 찾았다. 전시관은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억지로 가득했다. 독도를 자기 땅으로 표시한 일본 지도가 걸려 있고, 독도관 입구에는 ‘1953년부터 한국의 불법 점거라고 써 있었다. 일본 정부가 독도는 일본 판도가 아니라고 밝힌 태정관 지령’(1877)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60대 일본 남성은 한국은 반성하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그로부터 4년 후, 윤석열 정부의 행태에 비슷한 심정을 느끼게 될 줄 몰랐다. 국방부가 발간한 장병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에 독도를 일본과 영토분쟁 중인 지역으로 기술했기 때문이다. 독도를 국제 분쟁지역으로 만들려는 일본에 먹잇감을 던져준 셈이다.

 

교재에 수록된 한반도 지도에 하나같이 독도가 빠졌고, 양국 간 영토·역사 문제 언급도 없는 걸 보면 교재 제작에 특정 의도가 작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일 간에 과거사, 독도 영유권 분쟁이 있는 건 사실등 편향된 인식을 보여왔다. SBS 보도를 보면 교재 제작 과정에서 대통령실 안보실장 주재 범정부 회의가 수차례 열렸고, 교재를 활용해 일반 국민 대상 안보교육을 실시하는 방안도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 정신교육을 논하기 전에 공직자들의 나사 빠진 정신부터 고쳐야 한다.

 

신 장관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번 일에 어이없어했다고 한다. 앞서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크게 질책했다고 전했다. 매사 이런 식이다. 5세 입학과 주 69시간제, 수능 킬러 문항 배제 등 정부가 설익은 정책을 내놨다가 혼란을 야기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알려진 대통령 반응은 화내거나 질책하거나 어이없어하는 것이다. 국정 최고책임자라면 달라야 하는 것 아닌가.

 

이번 사태는 갑툭튀가 아니다. 윤 대통령은 강제동원 배상 문제를 졸속 봉합했고,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적극적인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는 등 일본을 두둔하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반면 일본은 성의 있는 호응은커녕 한국 반성하라는 적반하장을 보이고 있다. 급기야 일본 기상청은 지난 1일 이시카와현 인근에 강진이 발생하자 독도를 자국 영토로 표기하고 쓰나미 주의보를 발령했다. 영토·역사 문제처럼 민감한 현안은 덮은 채 일방적인 한·일관계 개선에 매달려온 후과가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윤석열 정부가 벌이고 있는 뉴라이트 이념전과 떼서 생각할 수 없다. 윤석열 정부는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등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사를 지우고, 친일 전력이 있는 백선엽 장군의 재평가를 추진하고 있다. 뉴라이트는 일제 식민통치의 불법·강제성을 부정하고 식민통치가 한국을 근대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이는 역사수정주의를 내세운 일본 극우보수들의 인식과 궤를 같이한다.

 

윤 대통령이 뉴라이트에 포섭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은 과거 친일파 미화 국정교과서 추진으로 논란이 됐고, 김성회 전 대통령실 종교다문화비서관은 위안부 피해자를 화대운운하면서 비하했다. 따지고 보면 일본의 독도 국제 분쟁화 시도에 빌미를 준 건 이명박 정부였다. 지지율 회복이 급했던 이 전 대통령은 2016년 독도 방문이라는 무리수를 뒀다. 윤석열 정부의 한 축은 이명박 정부 출신들로, 일부는 뉴라이트이다.

 

결국 이번 사태의 저변에는 윤석열 정부의 편향적인 대일 외교, 뉴라이트적 인식과 이념전 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국정 최고책임자의 이런 기조가 정부 내에 퍼져나갔을 것이고, 과거 이 칼럼에서 지적한 일본식 손타쿠’(忖度·윗사람이 원하는 대로 알아서 행동)가 자연스럽게 가동됐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정부를 강조했다. 지난 2년간 윤 대통령이 건드려서 문제를 키운 게 얼마였는지 되돌아보라. 윤 대통령은 패거리 카르텔 타파를 또 얘기했다. 낮은 지지율에도 아랑곳 않고 어퍼컷 세리머니를 연발하던 독선과 오만을 성찰하긴 한 걸까. 윤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선물한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라고 쓰인 명패를 대통령실에 뒀다고 한다. 이럴 거면 명패를 치워라.

 

윤 대통령의 검찰 후배이자 부하였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우리는 우리 할 일 잘하면 되고, 대통령은 대통령이 할 일을 잘하면 된다고 했다. 그 말 그대로다.

김진우 정치에디터 | 경향 2024.01.04.

 

거꾸로 가는 국정방향과 천박한 노동인식

새해가 되었어도 반가움보다는 우울함이 크다. 이스라엘과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화적 사태 해결 촉구에 불만의 목소리만 들린다. 바로 옆 일본은 한동안 잊고 있던 지진으로 재난을 당했고, 한반도 정세 또한 녹록지 않은 듯하다. 올해는 미국을 포함하여 약 50개국에서 대선과 총선이 있다. 유럽연합 의회 선거도 있으니 국제정세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연합의 정치 환경 변화는 전 지구적 차원은 물론 국가 차원의 노동문제와 연관된 무역과 통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국제협약 비준과 이행은 노동문제에 직간접적으로 연동된다. 대표적으로 한·EU FTA 체결 관련 논란을 되짚어 보면 된다. 2018년 유럽연합(EU)은 한국 정부가 자유무역협정 13장의 무역과 지속 가능한 발전규정 미이행 건으로 분쟁 해결 절차를 개시한 바 있다. 당시 FTA 이행사항은 결사의 자유강제노동 철폐와 같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였다. 2011년 체결 이후 한국 정부가 비준하지 않은 것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한 것이다. 우리의 기존 통념과 사고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우나 국제사회에서 노동은 경제의 하위 범주가 아니다.

 

그렇다면 지난 몇년 사이 정부의 노동인식은 변했을까. 오히려 국제 흐름과 역행하는 모습들만 확인된다. 현 정부 출범 이후 헌법에 보장된 노동기본권은 벼량 끝에 내몰리고 있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조합을 혐오의 대상으로 규정한 지 오래다. 이미 자본과 기업의 이윤 향유를 위해 30인 미만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부터 과로 사회로 내모는 노동시간 정책들이 검토되고 있다. 때론 노동하는 인간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되는 것이 목도된다. 최근 이주노동자 도입 과정에서 일부 정치가들의 언사들이 대표적이다. 국제협약 위반임에도 불구하고 차별적인 정책들이 거리낌 없이 논의된다.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으로 만든 원칙과 기준이 모두 흔들리고 있다.

 

이런 우려는 국정 운영 방향을 밝힌 대통령 신년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과 2024년 두 차례 대국민 신년사를 발표했다. 올해 신년사를 보니 경제 활력, 수출 개선, 경기회복과 성장주도, 물가안정, 규제 혁파, 기업 창의 혁신, 시장경제 원칙과 건전재정 기조 유지 등 화려한 수식어와 표현들이 난무했다. 특히 대통령은 대한민국 재도약을 위한 행동하는 정부를 표방했다. “취약계층과 사회적 약자에게 온전히 전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표현도 등장했다. 구체적으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지원 정책을 펼치겠단다. 그러나 신년사 전문에서 노동은 존중이 아닌 개혁대상으로 표상화됐다.

 

취임 이후 대통령은 빠짐없이 노동, 교육, 연금의 3대 개혁을 언급한다. 신년사에서도 흔들림 없는 추진을 거듭 강조했다. 2023년 신년사(1983) 중 노동은 248자로 12.5%를 차지했던 반면, 2024년 신년사(4256)에서는 274자로 6.4%에 그쳤다. 얼핏 전체 비중이 작아진 듯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노사법치주의, 노동시장 유연화, 이중구조, 임금체계가 노동개혁 주요 과제로 제시된다. 특히 엊그제 대국민 신년사에서는 새로운 흐름도 감지된다. 바로 과거 노사 공정성의 어휘가 불법행위 엄정 대응으로 바뀌었다. 만약 그 대상이 노동조합이라면 번지수가 틀렸다. 이권과 카르텔의 개혁 대상은 자본과 기업이 아닌가.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 사단법인 유니온센터 이사장 | 경향 2024.01.04.

 

 

북한 김여정이 윤석열 대통령을 '찬양'한 까닭은?

김여정 북한 당중앙위 부부장의 2일 담화가 깊은 동면에 들어간 남북관계를 새삼 일깨운다. 드디어 윤석열 대통령의 진가를 확인했다면서 단순히 감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남측 대통령을 공개 '찬양'했다. 북한 '최고존엄'이자 친오빠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론인 '참신한 선전선동론'의 과감한 실천이자, 조선노동당 '대남 대변인'으로서 화려한 변신이 아닐 수 없다

그는 2일 자 담화에서 자신이 생각을 고쳐먹게 된 계기로 윤 대통령의 1일 신년연설의 한 대목을 꼽았다. "올해 상반기까지 증강된 한미 확장억제 체제를 완성해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을 원천봉쇄할 것"이라는 다짐과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에 대비해 한국형 3축 체계를 더욱 강력히 구축하는 데 속도를 낼 것"이라는 말이다. 그는 "가뜩이나 어수선한 제 집안에 '북핵, 미사일 공포증'을 확산시키느라 새해 벽두부터 여념이 없는 그(윤 대통령)에게 인사말 겸 지금까지 세운 '공로''찬양'해주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고 털어놓았다.

 

'공로'의 내용은 역설적이다. "지금 조선반도의 안보 형세가 당장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매우 위태롭게 되고 안보 불안이 대한민국의 일상사가 된 것은 전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공로'"라는 평가였다. 2019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험한 말로 남측을 비난해 온 그가 이리 '따뜻한 덕담'으로 새해를 연 것은 처음이다.

 

"입 가진 사람마다 비난을 퍼붓고 있지만 나는 찬양하고 싶다"라면서 "이 인간이 시종 '힘에 의한 평화'를 떠들고 확장억제력 증강과 한미 합동군사연습에 몰념하여 대한민국의 운명을 백척간두에 올려놓은 것"'찬양'받아 마땅한 치적으로 꼽았다.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역발상이 아닐 수 없다. 뒤이어 "야유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하는 말"이면서 공연한 오해를 막으려는 세심함까지 보였다.

 

달을 보라 하는데 달을 가르치는 손가락만 보지 말 일이다. 손가락이 달라졌을 뿐 '달의 현상'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중언부언 탓에 풍자의 생명인 간결미가 없어 아쉬움을 남긴다

 

그가 윤 대통령의 '능력''공로'를 인정하고, '특등 공신'으로 '찬양'하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우선 미국의 핵전략자산을 끌어들여 대한민국을 '목표판'(과녁)으로 만들고, 때 없이 북한의 '정권종말'과 같은 위협을 입에 달고 살아 온 것을 고맙게 여겼다. 무차별적인 각종 규모의 합동군사연습을 확대 강화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주적'인 자신들의 분노를 최대한 끌어 올리고, 서울을 겨냥한 '방아쇠'의 안전장치를 풀게 한 '능력'은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기자가 10여 차례 방북 취재를 통해 깨달은 남북 간의 역설적인 화법은 김 부부장의 풍자를 해석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남측 취재진을 표독스레 대한 북측 관계자를 괴롭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되레 그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공개적으로 상찬하는 것이다. 북한은 남북 당국 간 회담이건 이산가족 상봉행사이건 행사 뒤 '총화'를 한다. 총화 시간에 남측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이는 역으로 비판의 대상이 된다.

 

남측 정부가 대북 화해협력을 주창하건, 적대적이건 중요하지 않다. 상호 불신을 걷어내지 못한 분단 체제에서 생즉사, 사즉생의 역설은 통용돼 온 어법이기 때문이다. 김 부부장이 한껏 남측 대통령을 띄워놓고 남측에서 비난받을 것을 앞당겨 염려하는 대목에서 떠오른 기억이다. "안보를 통째로 말아먹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 그쪽 세상(남측)에서 장차 더해질 것이 뻔하지만 우리에게는 자위적이며 당위적인 불가항력의 군사력을 키우는 데 단단히 '공헌''특등 공신'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입에는 꿀을 바르고 속에는 칼을 품은 흉교한 인간보다 적의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우직하고 미련한 자를 대하기가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 부부장이 윤석열 정부의 소신이 옳았음을 인정하는 대목에선 '남북 합작'의 의혹까지 생긴다. 그가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의 통일'을 염불처럼 떠들어 '민족의 화해 단합''평화통일'과 같은 환상에 눈이 흐려지지 않게 각성시킬 수 있었다고 말한 대목에서다. "우리를 침략하려는 적의 선의를 믿어야 한다는 허황된 가짜 평화 주장"을 질타하고 "조직적으로 지속적으로 허위 선동과 조작, 그리고 가짜뉴스와 괴담으로 자유 대한민국을 흔들고 위협하며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과의 전쟁을 다짐한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해 628일 자유총연맹 창립 축사를 연상시키지 않는가.

 

김 부부장의 문재인 정부 비난 역시 윤석열 정부의 전 정부 비난과 붕어빵이다. 다만 윤 정부와 관점이 달랐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을 "참 영특하고 교활한 사람"이었다면서 "어리숙한 체하고 우리에게 바투 달라붙어 평화 보따리를 내밀어 우리의 손을 얽어매어 놓고는 돌아앉아 네가 챙길 것은 다 챙겼다"고 지적했다. "특유의 어눌할 어투로 '한 핏줄'이요, '평화', '공동번영'이요 하면서 살점이라도 베어줄 듯 간을 녹여내는 그 솜씨가 여간이 아니었다"라는 평가도 덧붙였다. 구체적인 실례로 북한에는 핵·미사일 발사 시험의 금지를 간청하고, 돌아서서는 F-35A 전투기 수십 대를 반입하고 여러 척의 잠수함을 취역시켰으며, 미사일 사거리를 제한한 한미 미사일협정의 완전 철폐를 밀어붙인 점을 들었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다루기 까다로운 상대였고, 진짜 안보를 챙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고 인정하는 대목에서 다시 분단과 불신이 낳은 남북 간의 어법이 떠오른다. 생즉사, 사즉생의 역설에 따르면 북이 칭찬한 윤 대통령이 틀렸고, 비난한 문 대통령이 옳았다는 말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는 "(2의 문재인이 아닌) 무식에 가까울 정도로 '용감한' 윤석열이 대통령 권좌를 차지한 것은 우리에게 두 번 없는 기회"라며 "문재인 때 밑진 것을 열 배, 스무 배 아니 그 이상으로 봉창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9·19 남북 군사합의안 파기의 명분을 만들어 준 현 정부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먼저 9.19 합의 조항을 만지작거려 주었기에 휴지장 따위에 수년간이나 구속당했던 우리 군대의 군사 활동에 다시 날개가 달리게 됐기 때문"이다.

 

김 부부장의 독특한 담화는 그러나 일시적인 충동에서 나온 게 아니다. 당국가 체제인 북한에서 당의 입장 발표문을 즉흥적으로 쓴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뿌리는 김정은 위원장이 201939일 내놓은 '참신한 선전선동'에 닿아 있다. 김 위원장은 우리의 공보전문가 격인 제2차 전국 당 초급 선전일꾼 대회에 보낸 서한에서 '새로운 투쟁'의 방법론으로 제시했다. 특히 "하나의 구호를 게시하고 한 건의 선전선동자료를 침투해도 비현실적이고 과장된, 요란한 표현으로 분식할 것이 아니라 인민이 선호·인정·호응할 수 있게 진실성과 통속성을 보장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한 대목에 정확히 부합한다.

 

뻔한 말을 재미있게 하는 게 선전의 정수다. 북한은 핵전력을 대폭 증강한다고 하고, 남한은 미국과 핵무기 전개 훈련을 예정하고 있다. 올해도 한반도 안보상황은 험로가 예상된다. 그 와중에 나온 김 부부장의 풍자가 한반도의 현실을 되레 분명하게 돋을새김한다.

김진호 에디터 시민언론 민들레 2024.1.4

 

 

위험천만 한동훈식 '운동권 청산론', 그리고 '파시스트'들의 경우

국회 보좌진 검증을 국정원에 맡겨야 한다는 민경우 씨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그런 당(민주당)을 숙주삼아 수십년간 386486, 586, 686되도록 썼던 영수증 또 내밀며 대대손손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가르치려 드는 운동권 특권정치를 청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신년사를 통해 "자기들만의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을 반드시 타파하겠다"고 한 위원장의 발언에 힘을 실었다.

 

이때만 해도 '운동권 특권 정치'는 운동권 출신 민주당의 일부 다선 의원들을 겨냥한 것인 줄 알았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민주화 투쟁은 지나갔고, 이젠 후배 챙기고 선배 모시는 '권위적 온정주의 태도'만 남은 운동권의 모습이라든지, 여당 입장에서 '데모꾼'으로 비치는 투쟁 방식이라든지 하는 야당의 문제점들을 비판하는 것인 줄 알았다. 물론 국민의힘이나 보수 신문의 단골 레파토리인 '운동권식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이라든지, '운동권식 권모술수''운동권식 정략' 같은 것들은 좀 진부하다. 같은 방식으로 '검찰식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이라든지 '서초동식 권모술수'라든지 '검찰식 정략'과 같은 수사도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건 상대 진영에 대해 서로 주고받는 레테르 붙이기 수준의 수사적 비판들일 뿐이다.

 

그런데 한동훈 위원장의 비대위원 인선을 보면서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걸 금방 감지했다. '노인 비하' 발언으로 비상대책위원직을 사퇴한 민경우 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내건 '운동권 정치 청산'의 상징성을 갖고 합류했다. '노인 비하' 발언에 가려졌지만, 민경우 씨가 각종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설파한 '운동권 청산론'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노인 비하'는 사실 별로 중요치 않은 문제란 생각마저 든다.

 

그의 '운동권 청산론'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한 위원장은 그를 발탁할 때 알고 있었을까? 궁금하다. 한동훈 위원장은 그의 주장을 어디까지 내면화 한 것일까? 아니면 한 위원장은 그가 어떤 주장들을 해 왔는지 모른채 비대위원에 발탁한 것일까? 어느 쪽이든 모두 문제가 심각해 보인다.

 

<시사포커스TV>라고 하는 유튜브 채널에 민경우 씨가 출연한 영상들을 살펴봤다. 그는 일종의 '운동권 감별사'.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자신이 나름대로 정리한 운동권 계보를 가지고 민주당 의원들을 감별해 내는데, 그 기준이 모호한데다, 자의적이고, 과격하다. 80년대 안기부 대공 요원이나, 공안 검사의 '궁예적 관심법'이 내내 번뜩인다.

 

민경우 씨의 '운동권 감별 체계'를 관통하는 핵심은 '주사파'. 1986년에 김일성 주체사상이 대학 운동권을 휩쓸었다는 것 까지는 팩트에 가깝다. 그러나 민경우 씨는 1986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과 이후에 활동한 운동권들까지 주사파의 개념 영역을 확장한다. 1970년대 운동권인 이부영 전 의원, 함세영 신부 등의 '운동권 정서'에는 주사파적 성질이 내재해 있었다고 주장하며 1986'주체사상'을 흡수한 86세대를 비롯해 그 이후 세대까지 모두 '주사파'의 범주에 집어 넣는다. 그에게 있어서 한국 역사의 운동권과 운동권 정치의 본질은 모두 '친북 반미' 주사파의 다양한 변주들일 뿐이다. 주사파적 집단 무의식이 내재된 한국 '운동권 부족 집단'에 대한 인류학적 고찰이라고 칭해야 할까?

 

임종석, 안희정 등 주사파 계열 운동권에서 활동한 과거를 가진 정치인이야 '주사파 출신'이라고 비난할 자유에 대해 뭐라고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민경우 씨는 PD 계열, '비주사 NL 계열'도 주사파의 변종으로 규정한다.

 

90년대 학생운동권에 몸담은 바 있는 이탄희(97학번), 박주민(93학번), 강병원(89학번)도 결국 '주사파'의 자장 안에 있었다는 것이고, 이런 추론은 이들이 지금도 주사파의 자장 안에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는 근거가 된다. 90년대~2000년대 초반 학생 운동권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헛웃음을 지을 만한 주장들이다. 이런 '관심법'을 버젓이 내놓고 스스로 '운동권 청산' 이론가를 자임하고 있다. 그런 색깔 감별사를 한동훈 위원장이 '운동권 청산론'의 상징으로 발탁한 셈이다.

 

민경우 씨는 이런 '주사파의 변종들''사회주의자'라고 칭한다. 사회주의자가 국회에서 활동한다고 한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민경우 씨는 이런 주장들을 확장시키면서 정치권의 '학생 운동권'은 모두 청산 대상이 되어야 마땅한 것처럼 뉘앙스를 풍긴다. 그는 "주사파가 폭넓게 정의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주사파는 거의 민주당 그 자체다. 여기에 야당 보좌진들이 국정원의 인사 검증을 받고 채용돼야 한다는 주장에까지 이르면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민경우 씨에 의하면 86세대 이후인 '한총련 세대'"전대협보다 훨씬 빨갛""노골적인 종북"이다. 그는 "국회의원 보좌관들이 상당히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다. 고급 정보에 접근한다. 노골적 간첩은 적더라도, 남북한 사이버 연결은 매우 쉽다. 굉장히 중요한 정보들이 넘어갈 개연성이 있다"면서 "(보좌진 채용을 할 때) 국정원에서 검열하든가 해서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제어할 수 있는 게 필요하다"는 극단적 주장을 내놓았다.

 

국회 보좌진을 국정원이 사상 검증한다면, 그게 3권 분립인가? 유신 독재 시절에도, 전두환 독재 시절에도 국정원이 야당 국회의원 보좌진 채용 과정에서 '사상 검증'은 하지 않았다. 이런 게 한동훈의 '운동권 청산론'의 실체인가? 그러니까 결국 구태의연한 '색깔론'이다. 민경우 씨를 발탁한 한동훈 위원장은 그의 생각에 동의하는가?

 

정치가 '진실'을 독점하기 위해 벌이는 '게임'같은 게 아님에도, 지금 우리 정치는 '진실 독점 게임' 양상으로 흐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금 한국 정치는 트럼프를 두고 미국에서 벌어지는 '내전'과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트럼프는 '거짓말쟁이'로 보기 어렵다. 그는 '대안적 진실'을 내놓고, 현실을 그 '대안적 진실'에 끼워맞추는 일에 능숙한 인간일 뿐이다.

 

가짜뉴스를 비판할 때 자주 호출되는 나치의 선전상 요제프 괴벨스는 알려진 것과 다르게 '거짓말'을 통해 대중을 선동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진실'이라 여기는 것을 말하고, 현실을 자신이 생각한 '진실'에 맞추는 데 능숙했다. 이를테면 유대인은 열등하다는 '진실'을 스스로 만들어낸 후, 실제로 유대인이 열등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모든 작업을 진행했다. 독일인들이 자신이 창조한 진실을 믿을 수 있도록. 중요한 건 스스로도 자신이 창조한 '진실'을 믿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권력'이 필요하다. 권력은 '대안적 진실'에 힘을 불어넣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합의되지 않은 '대안적 진실'을 추구하는 정치 운동권(이를테면 뉴라이트, 혹은 주사파) 집단들은 자신들의 진실을 진실되게 하기 위해, 때론 국가 권력과 투쟁하고, 때론 국가 권력을 이용한다. 그들이 '권력 쟁취'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이를테면 민경우 씨가 신영복을 '주사파 대부'로 규정한 후 국정원 원훈석의 '신영복체'를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데 착수한 것(쉽게 성공했다)이나, 신원식 국방부장관이 홍범도를 '공산주의자'로 규정하고 육군사관학교에서 그의 흉상을 치워버린 일 같은 건, 국가 권력을 이용해 '대안적 진실''객관적 진실'로 탈바꿈하려 노력하는 일의 일환이다. 신화를 파괴하고 새 신화를 건설해야 하기 때문이다.

 

'운동권 출신 정치인은 부패하고 무능한데 권력을 차지하고 앉아 다음 세대를 착취한다'는 주장은 이제 중년, 노년에 접어든 86운동권 출신 정치인 집단을 싸잡아서 '청산 대상'으로 하고자 하는 명분을 만드는 작업이다. 그 집단은 '민주당 그 자체'가 되고, 여기에 색깔론이 덧씌워지면서 한동훈 비대위의 '1의 목표'로 재탄생한다. 민경우 씨의 과격한 '사상'은 그런 '운동권 청산론'의 민낯을 아주 투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운동권 청산론'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에도, 국민의힘에도, 구태의연한 문화들, 인물들이 많다. 그 청산은 각 당의 '미래세대'들에게 맡기는 게 맞다. 국민의힘이 '운동권 감별사'를 영입해 남의 당을 수술해 줄 필요도, 이유도 없다. 국민의힘은 '국민의힘 세대교체', 민주당은 '민주당 세대교체'에 힘쓰고 경쟁해야 한다. 김종인의 말처럼, 한동훈식 운동권 청산론은 시대 정신이 될 수도 없다.

 

대통령은 자신의 '오른팔'을 당 전면에 내세워 다시 '이념 전쟁'으로 뛰어들었다. 자신감을 되찾은듯 하다. 내년 총선이 '이념 전쟁'으로 가면 어느 쪽이 유리할까. 각자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박세열 기자 | 프레시안 2024.01.06.

 

이 나라 보수와 김건희 리스크

보수(保守) 중에도 존경하는 사람이 있고, 이 나라에 합리적 보수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공과 사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공동체를 진정으로 생각하는 보수가 있다면, 그런 보수는 이 사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보수의 정체성이란 뭘까? 다른 무엇보다도 보수는 지킬 것이 있어야 한다. 지킬 가치가 있어야 하고, 지킬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보수라 부를 수 없을 것이다. 보수가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법치주의가 빠질 수는 없다. ‘법치주의의 의미와 내용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법 앞의 평등이 지켜져야 한다는 점에 대해선 이견이 없을 것이다. 최소한 공직자나 그 가족이 공직을 이용해 사적 이익을 추구해선 안 된다는 점에 대해서도 공감대가 있을 것이다. 누구의 배우자라 해서, 누구와 친하다고 해서 현존하는 법을 적용받지 않는 것은 보수의 가치와는 공존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정권과 집권여당은 보수의 자격을 상실한 지 오래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배우자도 법을 지켜야 하고, 법을 위반한 의혹이 있을 때에는 수사를 받아야 한다. 그것을 위한 특별검사법을 악법이라 규정하는 것은 보수의 존재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대통령의 배우자가 명품백을 받으면서 매우 부적절한 언행을 하는 영상까지 공개됐다. 대통령 배우자가 남북문제에 직접 나서겠다”, 자신과 함께 큰일을 하자라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권한을 위임한 것이지, 대통령 배우자에게 위임한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나라의 근본이 흔들리는 상황이다. 이렇게 심각하고 참담한 상황이 드러났는데도, 여기에 대해 침묵하는 보수가 과연 법치를 얘기하고 보수임을 자처할 자격이 있는가?

 

그래서 이 나라 보수를 진심으로 걱정하게 되었다. 한 사회에는 다양한 의견이 공존해야 한다. 보수도 있고 진보도 있어야 한다. 빨간색도 있고 파란색·노란색·보라색·녹색도 있는 사회가 건강한 것이다. 이 나라 보수가 가치도 잃어버리고 정체성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보수가 아닌 사람에게도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그런 속에서 2023128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이 나라 보수는 김건희 리스크를 더 이상 안고 갈 수 없다는 칼럼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기홍 대기자는 이 칼럼에서 하급직 공무원의 배우자라 해도 그런 선물(명품백)은 받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라고 지적하고, 김건희 여사의 대국민 사과와 근신, 특별감찰관 임명과 국민권익위 조사를 촉구했다.

 

물론 이것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주가조작 등의 의혹에 대해서는 특별검사를 통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나는 이 칼럼을 보면서 이 나라 보수의 존재와 고민을 인식했다. 나와 의견이 다르더라도, 이런 보수라면 존중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현재의 사태를 무마하려는 의도의 말과 글들이 여전히 눈에 많이 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 보수가 언제까지 김건희라는 세 글자를 성역으로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다. 진짜 보수라면 더 이상 비선을 용인하거나 대통령 배우자의 부적절한 처신을 용납해서는 안 될 일이다. 과거 비선과 국정농단으로 인해 보수 전체가 붕괴하다시피 했던 기억을 떠올린다면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이제야 제2부속실을 설치하겠다는 식으로 문제를 회피하려는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 나라 보수의 상당수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부디 지금이라도 이 나라 보수가 가치와 정체성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지금 나라를 위해서 토론할 주제가 얼마나 많은가? 심각한 불평등과 부채 문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출산율 문제, 불안정한 국제정세 속에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할 외교 문제와 남북관계, 수도권 초집중과 비수도권 지역의 어려움, 날로 심각해져가는 기후위기 등의 원인을 어떻게 진단하고, 어떤 해법을 모색할 것인지에 대해서 토론하기에도 시간이 너무나 부족한 상황이다.

 

그런데 주가조작과 비선 의혹, 그리고 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에 명품백 수수 의혹까지 있는 대통령 배우자를 둘러싼 논란으로 정치권이 시간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낭비적인 일이다. ‘이 나라 보수라는 자존감을 가진 분들이 하루빨리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내어 김건희 리스크를 정리하고, 국가공동체를 위한 토론의 장으로 나오길 바란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변호사 | 경향 2024.01.8.

 

 

강남 8학군 출신강조의 이유

최근 <트루먼 쇼> 같은 가짜 세상에 갇힌 듯한 혼란을 종종 느낀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외모를 칭송하는 기사들을 접할 때다. 내 심미적 기준이 정상인지가 혼란의 원인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가져야 할 객관적 의문은 다른 쪽이다. ‘얼평금지’(얼굴 평가 금지)가 이 시대의 보편적 규범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스포츠 중계에서도 선수의 외모 언급이 사라지지 않았나? 그런데 왜 갑자기 정치인의 외모를 언급하는 기사들이 쏟아지는가?

 

답은 어렵지 않다. ‘팬덤 정치의 한 단상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정치인의 젊은 시절 사진을 공개하며 팬덤을 만들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다른 점이 있다. ‘호감형’ ‘준수하다’ ‘세련됐다등 칭찬에 대체로 따라붙는 말이 있다. ‘강남 8학군 출신이라는 표현이다. 주의 깊게 봐야 하는 것은 이 말들을 엮어내는 의도다.

 

따져보면, 한 위원장에게 강남 8학군 출신이란 수식은 좋게 봐줘도 사족이다. 서울대 법대 졸업, 사법시험 패스, 초고속 승진 등 한국에서 가질 수 있는 최고 엘리트 간판을 모두 가졌는데 그런 수식이 왜 필요할까? 같은 간판을 가진 사람 중에서라면 낙후한 지역 어려운 가정 출신인 편이 더 대단하다 할 텐데, ‘강남 8학군 출신을 강조하면 오히려 그 성과를 축소하는 게 아닐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부르디외는 사회적 계층을 나누고 공고하게 하는 데에는 경제적 자본만이 아니라 문화적 자본도 작용한다고 했다. 상위 계층의 문화적 선호, 소비 양식이 세련된 취향으로 여겨지고, 이것이 하위 계층이 아무리 노력해도 갖기 어려운 고유한 특성으로 자리 잡게 되면 계층 이동이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의도적으로 증폭될 수도 있다. 2011년 영국의 연구활동가 오언 존스의 책 <차브>노동계급을 게으르고 무책임하고 상스러운 집단으로 묘사하는 미디어와 이를 이용하는 정치인들의 행태를 고발했다. 많은 영국인에게 노동계급은 산업혁명기 투쟁으로 이룩한 자랑스러운 이름이었지만 이들을 차브란 멸칭으로 부르며 편견을 조장하려는 시도는 단숨에 그 이름을 폄훼했고 계층 갈등을 일으켰다.

 

문화적 자본의 작동은 능력주의도 왜곡한다. 미국 사회학자 로런 리베라가 로스쿨 학생들이 최상위권 로펌에 입사하는 과정을 연구해보니 상류층 자제들의 말투, 태도, 취미와 문화생활 경험이 합격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반면 서민 가정에서 자란 학생들은 같은 로스쿨 출신에 성적도 좋았지만 면접관의 태도와 질문에서 느껴지는 불편함과 이질감에 당혹스러워했다. 몇몇은 지레 지원을 포기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강남 8학군 출신으로 경제적, 문화적 결핍이 없는 환경에서 반듯하게 자란사람이라며 한 위원장을 칭송하는 것은, 단순히 팬덤으로만 볼 수 없는 현상이다. 계층화를 심화시켜 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갈등을 조장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어쩌면 이는 한 위원장이 공적 리더십을 가졌는지 판별해줄 가늠자가 될 수도 있다. 그 위에 올라타서 누리려 하는지, 아니면 공동체를 위해 단호히 배격하려 하는지 지켜보면 되기 때문이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 경향 2024.01.8.

 

 

정책의 스칸디나비아화

수년 전 한 노동운동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 경악한 적이 있다. "사회주의 노선은 이제 포기하겠다. 그 대신 10년 내 스웨덴과 유사한 평등사회를 만드는 운동을 하겠다"는 것이 그 글의 요지였다. "아니, 노동운동가가 이렇게 세상을 모르나!"

 

단적으로 말하자면, 한국 사회가 스웨덴과 유사한 사회로 바뀌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회는 여러 개의 제도로 구성돼 있다. 제도는 고유의 이해관계자 집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도를 바꾸기란 어렵다. 스웨덴처럼 불평등 정도가 낮은 사회를 가져온 요인은 노조의 중앙집중화된 조직구조와 연대적 임금정책인데,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스웨덴적 지향을 일부라도 가질 수밖에 없는 영역이 있다. 바로 가족정책이다. 그것을 연구자들은 '정책의 스칸디나비아화'로 표현한다. 여성의 고용률과 출산율을 끌어올려야 하는 절박한 사회경제적 필요 때문이다.

 

여성이 출산과 보육의 부담 없이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가족정책은 스웨덴을 비롯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 가장 먼저, 모범적으로 실행되었다. '정책의 스칸디나비아화'란 공보육 서비스와 육아휴직급여의 높은 소득대체율 등 여성의 전일제 취업을 촉진하기 위한 여러 제도를 실시하는 것, 여성을 가족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독립된 개별노동자로 인정하는 것, 배우자의 사회보장권에서 파생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개인적 권리를 인정하는 것, 맞벌이 부부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외벌이에게 불이익을 부여하는 것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러한 정책이 높은 여성고용률과 출산율을 동반한다. 스웨덴의 2023년도 1분기 여성고용률은 75.67%이고 2021년 출산율은 1.67명이다.

 

독일처럼 전통적인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을 가졌던 국가도 3세 이하 보육시설을 대폭 확충하고 육아를 목적으로 휴직할 경우 소득의 67%를 보전하는 스웨덴을 모델로 한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를 높일 수 있었다. 이러한 정책변화를 통해 3세 미만 아동의 보육시설 이용률과 유자녀 여성의 취업률은 크게 증가했다. 최근 독일의 여성 고용률은 73.51%에 달한다.

가족정책에 관한 한 후발주자인 한국과 스웨덴의 격차는 아주 크다. 한국의 여성고용률은 61.36%에 불과하다. 스웨덴에서 2세 미만의 아이를 둔 엄마의 고용률은 70%를 넘지만, 한국에서는 50%를 넘지 않는다. 스웨덴에서 남녀 고용률 격차는 5%를 넘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15.6%이다.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 가임기에 여성이 노동시장을 떠나 애들이 어느 정도 큰 뒤에 다시 경력단절여성으로 노동시장에 복귀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M자형 커브는 스웨덴에서는 1970년대 극복되었으나 한국은 아직 진행 중이다.

 

이제 여성 근로자가 자유롭게 출산과 양육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고용률과 출산율을 높이는 문제는 국가의 생존이 달린 문제가 되었다. 아빠의 육아휴직을 촉진하는 제도 등 스웨덴 정책의 요소들은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있지만, 갈 길이 멀다. 마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육아휴직 급여의 상한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정책의 스칸디나비아화'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 구상들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 길이 늦게 출발한 복지국가를 현대적으로 재설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정승국 고려대 노동대학원 객원교수 | 한국 2024.01.10.

 

대통령이 셀프 무혐의하라고 있는 자리인가

대통령실과 법무부가 이런 말까지 할 줄은 몰랐다.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이유를 뭐라고 댈지 짐작해보면서 총선용 악법이니 위헌적 요소니 하는 말로 눙치겠거니 했다. 그런데 거부권 행사 이유에 그 말을 기어이 집어넣었다.

 

“12년 전 결혼도 하기 전 일로 문재인 정부에서 2년간 탈탈 털어 기소는커녕 소환도 못 한 사건.”(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

 

문재인 정부 당시 검찰이 2년 넘게 무리하고 과도하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강도 높게 수사하고도 김건희 여사에 대하여는 기소는커녕 소환조차 하지 못한 사건.”(법무부)

 

이 말에는 특검법 내용의 문제점에 대한 주장을 넘어 김 여사 주가조작 혐의 자체에 대한 유무죄 판단이 들어가 있다. 사실상 혐의가 없고 더 수사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다. 대통령 비서실장 브리핑과 법무부 보도자료에 들어가 있으니, 이는 대통령의 판단이며 거부권 행사의 공식 이유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엄연히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이다. 수사 중인 특정 사건에 대해 대통령이 혐의 유무를 판단할 권한은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없다. 월권이다.

 

한마디도 지기 싫어하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조차도 법무부 장관 시절 김 여사 수사에 대해선 검찰이 공정하게 수사하고 공정하게 처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원론적 답변에 그쳤다. ‘윤석열 사단인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도 국정감사 때 김 여사 수사를 무혐의로 털 거냐는 질의에 지금 수사가 진행 중에 있다고 답했다. ‘윤석열 검찰도 무혐의 처분을 못 한 채 쥐고 있는 사건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번에 대통령실과 법무부는 이미 끝난 사건 취급을 했다. 윤석열 사단으로 검찰 요직을 도배한 것으로도 모자라 이젠 그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에 아예 무혐의 결론을 내리고 결재 도장을 찍어버린 셈이다. 이로 인해 특검 필요성은 한층 커졌다. 대통령실과 법무부가 검찰에 김 여사를 무혐의 처분하라는 수사지휘를 내린 셈이니 앞으로 공정한 수사는 더더욱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정치적 주장 차원에서 자신의 배우자는 결백하다는 판단을 언명할 수는 있지만, 이를 거부권이라는 헌법적 권한을 행사하는 공식 근거로 삼은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매우 위험한 헌법적 일탈이다. 이번 거부권 행사가 권력의 부당한 사유화임을 스스로 명백히 입증한 것이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일 때도 권력의 사유화로 비난받을 일이 있었다. 장모 최은순씨의 각종 의혹이 불거지고 수사가 진행 중이던 20203월 대검찰청은 최씨가 무혐의라는 논리를 담은 총장 장모 의혹 대응 문건을 만들었다. 대검찰청이 이렇게 움직였으면 그 과정에서 일선 수사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최씨의 은행 잔고 위조 혐의는 공소시효를 얼마 남겨두지 않았는데 검찰이 소환조사도 하지 않아 미온적 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대검찰청이 누구의 개인 변호사도 아닌데 이런 문건을 만들면서까지 장모 의혹을 비호하는 것은 공조직의 사적 사용에 다름 아니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권력의 사유화 논란이 반복되는 것을 보며 본디부터 공적 윤리감각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고 단순 반복은 아니다. 이번엔 장모가 아닌 부인에 관한 사안이며, 윤 대통령 본인이 자신의 고유한 권한인 거부권을 직접 사용했다는 점에서 더욱 노골화한 형태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그 자리의 무게가 검찰총장에 비할 바 아니라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대통령은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삶 전체를 짊어지는 자리다. 한치의 사사로움도 끼어들 여지가 없을 만큼 공적 책임이 엄중하다. 그 책임을 완수하도록 최고의 권한을 부여받는 자리다. 그런데 그 막강한 권한을 부인을 지키는 데 사사로이 사용했다. 그것도 월권까지 해가면서. 이로써 윤 대통령은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위신을 한없이 추락시켰다. 대통령직을 희화화했고, 그 자신도 우습게 만들었다.

 

대검찰청이 장모 의혹 대응 문건에서 셀프 무혐의판단을 내렸던 은행 잔고 위조 사건으로 최은순씨는 유죄가 확정돼 징역을 살고 있다. 윤 대통령이 셀프 무혐의판단하에 특검을 거부한 김 여사의 주가조작 혐의는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윤 대통령의 2년 전 발언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특검을 왜 거부합니까? 죄졌으니까 거부하는 겁니다. 진상을 밝히고 조사를 하면 감옥에 가기 때문에 못 하는 겁니다.”

박용현 | 논설위원 | 한겨레 2024.01.11.

 

 

 

한국의 세계관을 묻는다

02411일부터 한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이다. 임기는 2. 5개의 상임이사국(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10개의 비상임이사국으로 이뤄진 안보리에서 비상임이사국의 역할은 미미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안보리 내 강대국들이 거부권을 남발하며 극한 대립에 빠져들면서, 비상임이사국의 존재감이 부상하고 있다. 안보리의 첫 가자지구 교전 중단 결의안 역시 비상임이사국 몰타가 제출했으며 브라질이 중재한 결과다.

 

외교의 본질은 우리가 누구인가란 물음에 대한 대답이라고 한다. 강대국이 주도하는 냉혹한 세계질서에서 생존하는 것이 한국 외교의 최우선 과제였다. 이제 세계질서에 관여하는 낯선 일을 해야 한다. 세계의 문제를 인식하는 우리의 방식, 세계관의 점검이 필요하다.

 

실패로 끝난 2030 엑스포 부산 유치 과정에서 한국식 세계관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개도국·저소득국을 상대로 한 막대한 재정지원 공세에 맞서 물고기대신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신생 빈곤국에서 자본주의 선진국으로 거듭난 경험을 가난한 세계와 공유하겠다는 것이다. 그럴듯하지만 의문이 들었다. 무엇을 공유하겠다는 것인가. 가난한 세계는 정녕 벗어나는 비결을 몰라서 가난한가?

 

한국의 성장에는 한국 스스로의 노력 외에도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일본의 하청으로 시작한 경험,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의 존재 등 지정학적 요인이 작용했다. 아프리카, 남미 등 국가의 저발전에는 식민지 시대부터 누적돼온 모순이 구조적 원인으로 존재한다. 그리하여 식민지 시대에 대한 사죄와 배상은 점점 국제사회의 중요한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손실과 보상기금이 출범한 이유다. 사우디 역시 엑스포 유치 과정에서 개도국이 진 부채탕감 지원책을 발표했다.

 

한국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정의란 무엇인가란 질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신 기후위기 해법으로 최첨단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기상예보 시스템이나 수상도시 건설 기술 등을 언급한다. 질문 없이 해결을 찾고 기술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세계관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는 국내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7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스물네 살의 교사가 자살하며 무너진 교육 현장을 고발했다. 정부는 경찰 출신의 학교폭력 전담 수사관이 학교폭력 업무를 맡는다는 해법을 내놓았다. 교사가 학폭 업무 처리로 인한 스트레스로 숨졌다고 보는 인식에 따른 맞춤형 해결책이다. ‘학부모가 교사를, 타인이 타인을 향해 함부로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과 고민은 없었다. 현행 초등학교 학교폭력 예방교육 역시 어떤 처벌을 받는가부터 시작한다. ‘왜 폭력을 저지르지 말아야 하는가란 질문이 빠져 있다.

 

우리가 생략한 질문은 불행으로 돌아온다. 윤리적 질문을 던지지 않는 세계에서 은 문제 해결의 유일한 수단이 되고 사회는 더 에 집착한다. 그러면서 불행해지지만 우리는 빠르게 돈이 많은 국가가 된 것이 자랑스럽다는 세계관에서 살고 있다. 국제사회 관여자로서 발 딛는 새해, 다른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물꼬가 트이기를 기원한다.

<박은하 기자 주간경향 2024.01.15

 

평범한 사람들의 자리는 어디인가

한국에는 보통 사람들에 관한 고정된 이미지가 있다. 그런 이미지는 현실의 정치사회적 문제를 다룰 때 심각한 걸림돌로 작동한다.

 

연예인과 일반인

배우 이선균이 세상을 떠난 후, 이번에도 누구 탓인지를 놓고 수많은 말이 오간다. 피의 사실 공표를 여론전 도구로 사용하는 국가 권력, 사실과 소문을 뒤섞어 뉴스 상품으로 가공하는 언론, 대중의 관심을 자신의 이익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는 미디어 창작자, 이들 모두에게 탓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작성된 빌런들의 목록은 눈앞의 문제를 단순하게 만들고, 비극적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파편화할 뿐이다. 맥락, 환경, 구조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왜 한국의 국가 권력은 이토록 여론전에 집착하는가? 연예인이라는 직종은 어쩌다 그런 여론전의 도구가 됐는가? 연예인 루머로 장사질하는 악인은 왜 이토록 많은가? 낯선 타인을 공격하고 비난할 거리를 제공하는 정보가 비싼 값에 팔리고, 타인의 인격을 파괴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감정의 경제는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해 재미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악인들은 이런 재미를 자신의 이익으로 전환한다.

 

대중은 이런 구조의 외부에 있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그 구조 전체가 대중이라는 기본 토대 위에 구축돼 있다. 대중이라는 덩어리 안에는 정보를 적극적으로 소비하거나 재생산하는 사람도 있고, 소극적인 관찰자도 있고, 아예 무관심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 누구도 감정의 경제와 무관하게 살 수는 없다. 그게 곧 한국의 사회적 관계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항상 사회정치적 문제가 발생하는 영역 외부에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마치 일반인연예인은 전혀 다른 사회에 살고 있는 것처럼, ‘일반 대중은 국가 권력이나 언론의 작동 방식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무빙>의 착한 보통 사람들

보통 사람들에 관한 전형적 이해 방식 중 하나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드라마 <무빙>이다. 이 작품뿐 아니라 강풀의 작품 대부분이 보통 사람들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에 기초한다.

 

<무빙>의 세계는 두 축으로 이루어진다. 한편에는 선한 본성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악한 국가 권력이 있다. 남한과 북한의 초능력자 모두 기본적으로는 전자에 속한다. 그들이 정의롭지 않은 일을 저지르는 것은 대부분 국가 권력의 개입 또는 강제 때문이다. 그들은 그러나 국가 권력에 대한 윤리적 또는 정치적 판단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남한과 북한의 권력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행복하게 살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라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남북의 초능력자 대부분이 수동적 피해자가 아니라 국가 권력의 악행에 자발적 또는 비자발적으로 협력한 이들이다.

 

악한 국가 권력 vs 착한 보통 사람들이라는 구도는 가해자-피해자 관계의 변형이다. 이 점을 각인시키기 위해 국가 권력이 초능력자들에게 행사하는 폭력의 잔혹함을 강조한다(여러 한국 드라마가 신체적 폭력에 집착하는 것 역시 비슷한 이유다). 그런데 이런 식의 구도는 무엇이 보통 사람들의 연대를 가능케 하는지 답할 수 없다. 피해자라는 공통점만으로 국가 권력에 함께 맞서 싸우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가족이라는 장치가 개입한다. <무빙>의 초능력자들이 목숨 걸고 싸우고, 서로 연대하는 유일한 이유는 자식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자식 가진 부모의 마음이나 행복한 가족에 대한 희망이 보편적 휴머니즘의 원천으로 작동한다. 드라마의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북한 초능력자는 희수네 치킨집으로 들어와 삼촌이 된다. 타자를 받아들이는 방법 역시 유사 가족 관계를 맺는 것뿐이다. 결국 가족이 사회적 관계의 유일한 형태가 된다.

 

한국인의 의식을 오랫동안 지배해온 반정치적 믿음이 있다. ‘정치는 권력자의 영역이고, 평범한 국민에게 중요한 건 먹고사는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믿음은 개인을 민주주의의 시민이 아니라 정치와 분리된 백성으로 만든다. <무빙>의 세계를 구성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믿음이다. 드라마는 가족애를 통한 백성의 연대를 꿈꾸지만, 이는 실현 불가능한 망상에 가깝다. ‘내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태도와 제 자식 귀하면 남의 자식 귀한 줄도 아는보편적 감각은 양립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는 귀한 제 자식을 위해 타인을 향한 폭력도 불사하는 부모의 모습을 수없이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과 가족의 행복에만 몰두하는 반정치적 백성이 평범한 사람으로 이해되는 곳에서, 평범한 사람 사이의 폭력이 반복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보통 사람이라는 성역

 

일반인, 일반 대중, 일반 국민 따위의 말은 어떤 양극화된 구조를 전제한다. 한편에는 돈, 권력, 명성을 가진 이들이 있다. 공동체의 문제를 다루는 건 이런 특권층이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이 계층이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도 이들이다. 다른 한편에는 수동적 관찰자인 보통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특권층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방식으로만 행동한다. 공동체의 문제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며, 그런 문제에 관한 책임에서도 자유롭다.

 

이런 양극화된 구조에서 탈정치적 성역화라 부를 만한 현상이 나타난다. 현실 정치의 더럽고 복잡한 문제는 정치인들이 맡고, ‘일반 국민은 순결한 공간에 남아 명령(혹은 읍소)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 국민도 온라인 여론을 조직하고, 대규모 거리 시위에 참여하지만, 이런 활동 대부분은 본래적 의미의 정치가 아니라 정치인에 대한 사랑 혹은 증오를 조직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물론 이런 성역화는 배제의 한 가지 형태일 뿐이다. 그래서 정치 참여의 고전적 방식, 즉 대안 정당 운동, 노동운동, 사회운동 등은 노골적 조롱과 공격의 대상이 된다. 일반 국민은 결코 정치라는 특권층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 이런 상황을 대의 민주주의의 일반적 특성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잘못된 이해다. 현대 민주주의는 모두 대의 체제지만, 아래로부터 조직되는 사회·정치 운동이 한국처럼 극단적으로 위축된 곳을 찾기는 어렵다. 일반 국민과 정치의 극단적 분리는 한국의 고유한 특성이다. 그런 분리를 무시하고 스스로 정치의 영역에 진입하는 시민이 평범한 사람의 지위를 차지할 때만 한국 민주주의는 정상화될 수 있다. 박이대승 정치철학자 사회 주간경향 2024.01.15.

 

 

부자들의 패거리 카르텔

지난달 공개된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물가를 고려한 가구 실질소득은 전년보다 줄었다. 가구 보유 자산에서 빚을 뺀 순자산의 실질가치도 20233월 기준으로 전년보다 10% 가까이 하락했다. 2023년 들어 사정이 나아진 것도 아니다. 가계동향조사 결과, 2023년 가구 실질소득은 전년 동기에 비해 1분기는 증가율이 0.0%였고 2분기는 3.9% 감소했으며 3분기에도 0.2% 증가에 그쳤다. 더욱이 소득 분위별로 비교하면 20233분기 들어 상위 40% 소득이 4% 넘게 오를 때 하위 20% 소득은 절대적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이 불확실성의 해였다면 2023년은 불평등의 해였다는 세계은행의 비유가 한국에서도 빈말은 아니었다.

 

이처럼 빈곤 가구 중심으로 민생난이 가중되는 현실에 비하면 며칠 전 정부가 발표한 새해 경제정책방향은 일말의 기대마저 저버리는 것이었다. 기실 여야 합의로 작년 말 확정된 새해 예산과 개정세법도 실망스러운 내용이었다. 새해 물가상승률이 어느 전망 기관 예측치인 2.8%로 실현된다면 새해 예산은 실질 기준으로 재정총량 자체가 작년 수준에서 동결되는 셈이 된다. 2024년에도 한국경제는 작년처럼 정부의 긴축적 재정운영에 발목 잡힐 운명으로 이미 예정되어 있다. 문제는 그것이 분배를 악화시키는 부자 감세 탓에 비정상적으로 강제된다는 사실에 있다.

 

세입예산 부수 법률로 이번에 개정된 상속증여세법에는 가업 승계 시 증여세 최저세율 10%가 적용되는 과세 구간의 상한을 60억원에서 120억원으로 올리고 결혼이나 출산 뒤 2년 내 증여받은 재산에 대해 3억원의 증여세를 면제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부잣집 자식들이 좀 더 일찍 부모 재산을 물려받아 불릴 수 있게끔 길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습되는 부가 일해서 버는 소득보다 3배나 빠르게 늘어나 돈이 돈을 버는 사회에서 어떻게 그런 세법 개정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가난해서 자식들한테 미안한 우리 부모들의 숨죽인 탄식과 열패감은 아무렇지 않은가.

 

최근에는 심지어 상속세 인하 주장까지 들려온다. 정부가 앞장서 상속세를 현행 유산세 방식(부모의 유산에 과세)으로부터 유산 취득세 방식(자식이 취득한 유산에 과세)으로 바꾸겠단다. 부자들 상속 부담을 덜어준다고 참 애쓴다. 점입가경으로 제1야당 일부 인사들도 그 흐름에 동참한다. 재벌들이 상속세를 덜 내고 주식을 물려받으려면 주가 하락을 유도해야 하니 상속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란다. 어이가 없다. 왜 진실을 숨기는가. 부의 세습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서슴지 않는 총수 일가의 탐욕이야말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진짜 원인 아닌가.

 

얼마 전 개정된 소득세법 시행령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주식양도소득세를 내는 대주주 기준이 10억원에서 50억원으로 상향되면서 과세 대상이 축소되었다. 하지만 대주주 기준을 변경하고자 했다면 옳은 방향은 내년 도입될 금융투자소득세 안착을 위해 오히려 하향하는 쪽이었다. 1만명의 슈퍼리치만을 위한 특전인 이번 주식양도소득세 감세는 자본이득 과세를 위한 그간의 사회적 노력을 무위로 돌리고 11년 전 과거로 시간을 되돌려놓았다. 그러니 정부가 새해 경제정책방향에서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자 신고 기준을 완화하고 유류세를 정상화 계획 없이 그저 인하한다고 했어도 놀랄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시대에 역행하며 부자들만 위하는 정치 아닌가 말이다.

 

오늘 한국경제는 고물가와 고금리, 반도체 경기 부진, 중미갈등과 공급망 재편이 불러온 지각 변동까지 이중 삼중으로 악재가 겹친 상황이다. 그 결과, 21세기 들어 첫 10년간 한국경제 중흥을 이끌었던 중국 대상 제조업 수출이 위축되면서 경제 회복세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성장 엔진만 꺼져가는 게 아니라 불균형적인 경제구조와 열악한 사회안전망을 배경으로 분배 역시 개선의 전망이 안 보인다.

 

그럼에도 정부는 부자 감세를 남발하며 세수가 펑크나자 허울뿐인 재정 건전화를 내세워 지출을 제한하는 긴축에 나서고 있다. 집권의 목표가 본래 그런 것이었으리라. 기득권 보수 정치를 지지하는 부자들과 대자본의 세금을 줄일 수 있다면 경제 회복도 복지국가도 중장기 경제사회 대전환도 그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오늘 한국사회는 흡사 부자들이 감세의 이름으로 경제적 자원을 집단 약탈하면서 공동체의 기초가 무너져가는 것만 같다. 패거리 카르텔은 다른 게 아니다. 실력 없는 부자들의 보수 정치가 그것이다.

나원준 경북대 교수·경제학 | 경향 2024.01.09.

 

 

윤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가 무서운 것일까?

지난해 1228일 오후 국회에서 김건희 특검법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을 의결한 직후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브리핑룸 단상에 섰다. 약간 상기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 국회에서 쌍특검 법안이 통과됐다. 대통령은 법안이 정부로 이송되는 대로 즉각 거부권을 행사할 것임을 말씀드린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회에서 의결한 법률안에 대해 대통령이 이의가 있으면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환부하고 재의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통령이 갖는 권한은 재의 요구권이다.

 

거부권이라는 단어는 언론에서 편의상 쓰는 말이다. 공직자들은 거부권이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도운 홍보수석은 거부권이라는 비헌법적, 비법률적 단어를 썼다. 아마도 대통령의 반대 의지를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랬을 것이다.

 

이도운 홍보수석은 1964년 강원도 홍천 출생이다. 오산고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서울신문 기자를 했다. 2017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을 맡았다가 문화일보 논설위원으로 복귀했다. 지난해 2월 윤석열 대통령 대변인에 임명됐고, 11월에 홍보수석에 임명됐다.

 

지난 5일 임시국무회의에서 특검법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한 직후 이관섭 비서실장이 나섰다. 특검법이 왜 잘못된 것인지 구구절절 설명했다. 맞는 내용도 있지만 틀린 내용이 더 많았다. “50억 클럽 특검법은 이재명 대표 방탄이 목적이라는 논리는 그냥 궤변이다.

 

도이치모터스 특검 또한 12년 전 결혼도 하기 전 일로 문재인 정부에서 2년간 탈탈 털어 기소는커녕 소환도 못 한 사건을 이중으로 수사함으로써 재판받는 관련자들의 인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이 주장이 맞는다면 검찰이 김건희 여사를 무혐의 처분하면 된다. 검찰이 그동안 김건희 여사 소환을 못 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으니 특검이 필요한 것이다.

 

이관섭 실장은 1961년생으로 경북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잔뼈가 굵은 관료 출신이다. 윤석열 대통령 정책기획수석, 국정기획수석으로 임명됐다. 대통령실 실세로 소문이 나더니 지난해 11월 정책실장이 됐다. 그리고 한달 만에 비서실장이 됐다. 경제 관료 출신의 정치 브리핑은 보기에도 민망하다.

 

법무부는 지난 5야당 단독으로 강행한 위헌적인 특검 법안 2건에 대한 국회 재의요구, 국무회의 의결이라는 6쪽짜리 보도자료를 냈다.

총선을 앞둔 시기에 여야 협의 없이 거대 야당이 패스트트랙을 통해 일방적으로 강행 통과시킨 이 법률안은 총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정쟁성 입법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대변인이 낸 논평을 방불케 한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 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하는 국무위원이다. 따라서 법무부가 이런 보도자료를 낸 것은 검찰청법이 규정한 검사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 도대체 누구 지시로, 왜 이런 자료를 냈을까? 현재 공석인 법무부 장관 직무는 이노공 차관이 대행하고 있다.

이노공 차관은 1969년 인천 출생으로 영락고와 연세대 법대를 나와 검사가 됐다.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근무할 때 윤석열 검사와 카풀을 하는 등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직후 엑스포 유치를 총지휘하고 책임을 진 대통령으로서 부산 시민을 비롯한 국민 여러분에게 실망시켜 드린 것에 대해 정말 죄송하다고 직접 사과했다. “이 모든 것은 전부 저의 부족이라고 생각해달라고 했다. “잘 지휘하고 유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은 대통령인 저의 부족의 소치라고 했다.

 

그랬던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부하들을 방패로 내세워 여론의 화살을 맞게 하고 자신은 그 뒤에 비겁하게 숨어 있다. 왜 그럴까? 김건희 여사가 무서운 것일까? 모든 언론이 김건희 여사 문제를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고 말하는데, 그 소리는 들리지 않는 것일까?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사람 중에 윤석열 대통령에게 김건희 여사 의혹을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고 진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일까?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간신만 있고 충신은 없는 것일까? 정말 궁금하다.

성한용 | 정치부 선임기자 | 한겨레 2024.01.09.

 

 

공감 제로, 그리고 재난의 데자뷔

비가 오든 눈이 내리든 상관없었다. 찜통 같은 더위 속에서,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걷고 또 걸었다. 삼보일배와 오체투지, 1인 시위 등을 이어가며 목소리를 냈다. 생업을 접은 지도 오래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지난 1년여간 이태원 참사 특별법제정을 위해 모든 걸 바쳤다. 하루아침에 희생된 생때같은 아이들을 생각하면 단 한순간도 멈출 수 없었다. 이태원특별법이 사고 발생 후 15개월 만인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방청석에서 지켜보던 유가족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특별법이 통과되는 것을 보면서 20221029일 밤을 떠올렸다. 늦은 시간 느닷없는 재난경보로 시작된 그날의 기억은 전대미문의 참사라는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충격과 함께 슬픔이 밀려왔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이런 생각들이 분노의 감정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할 책임을 지닌 국가는 그때 없었다. 막을 수 있었던 참사였지만 맥없이 손을 놓았다. 사고 발생 전부터 이상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됐다. 통제되지 않은 거리는 축제를 즐기려는 인파로 터질 듯했다. 사고 발생 수시간 전부터 압사사고가 우려된다는 신고가 잇따랐다. 6호선 지하철 이태원역 무정차나 인근 도로 통제 등 간단한 조치만 취했더라도 150여명이 소중한 목숨을 허망하게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주무 장관이란 사람의 입에선 그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다”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는 어이없는 변명만 나왔다. 놀라운 책임 회피다. 국가는 재난과 재해, 대형 참사를 예방할 의무를 지고 있다. 헌법 346항을 보면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헌법 정신이다. 예측 가능한 재난을 막지 못했다면 국가에 법적 책임까지 물을 수 있다는 얘기다.

 

참사가 아니라 압사사고라고 우기는 대목에서는 말문이 막힌다. 역시 예상한 대로다. 제대로 된 사과나 추모도 없었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을 위로하기는커녕 참사를 정쟁화시키는 불순한 집단으로 몰고 갔다. 집권세력은 특별법 제정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참사의 진상규명이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의 문제를 진보 대 보수의 갈등 구도로 바꿔놓아버렸다. 결국 이들은 표결에 불참했다.

 

이태원 참사 발생 후 1년여 동안 일어난 일련의 장면을 복기해보면 3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때와 무척 닮아 있다. 부실한 선박 관리와 안전불감증은 항해 전 사고를 예고하고 있었다. 사태가 일어난 뒤 보여준 선장과 항해사의 판단 착오와 늑장 대응 역시 이태원 참사 때 우왕좌왕하는 당국자와 다를 바 없다. 무엇보다도 사고의 책임 소재를 가리고 진상규명을 하는 건 당연한 상식인데도 이 문제를 정쟁화하는 정부·여당의 대응은 놀랍게도 똑같다. 책임 회피에서 시작해 유족을 국민으로부터 분리하고 고립시키기 위해 진영싸움으로 몰아간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태원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야당이 주도하는 조사위원회가 1년 반 동안 조사를 한다면 국론이 분열될 것이라고 했다. 특별법은 아직 정식 공포, 시행되지도 않았고 특조위는 출범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딴지걸기다.

 

엊그제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단체 활동가 등이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세월호 기억공간앞에 섰다. 시민들에게 잊지 않고 함께 행동하기로 했던 마음을 다시 모아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10년이 흐른 지금도 왜 세월호가 침몰했는지, 아이들을 왜 제대로 구조하지 못했는지 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온전한 진실과 완전한 책임규명, 진심 어린 사과다. 이런 것들이 해결돼야 참사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이태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집권세력은 국론분열운운하며 특별법을 시행하기도 전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대형 참사가 일어나면 정부가 책임 회피로 일관하다가 잘못 대응해 위기를 키우는 모습을 수차례 목격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스텝이 꼬이게 마련이다. 그런 전철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별법의 원만한 시행과 철저한 조사가 뒤따라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말하지 않았는가. “국민은 무조건 옳다. 참사 유족 역시 똑같은 국민이다.

조홍민 사회에디터 | 경향 2024.01.11.

 

해방 뒤에도 일제시대가 좋았다확신형 친일파

박중양 (1872~1959)

처음에는 개화파였다. 김옥균 암살(1894)과 독립협회 해산(1898) 때문에 조선에 환멸을 느꼈다. 유학 시절 일본에서 고생했는데, 이토 히로부미가 잘해주자 그 측근이 된다. 귀국 뒤 관료로 일했다. 조선이 망했을 때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였다.

 

일본 문물을 좋아했다. “일본 맥주는 마셔도 안 취한다며 예순병을 마셨다. 머리를 잘라야 개화가 된다며 가위 든 관리를 길목에 숨겨 사람들 상투를 자르게 했다. 새 길을 내면 잘살게 된다며 대구 성곽을 밀어버리고 동성로 등 사거리를 냈다. 1919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 시위에 맞불을 놓을 자제단을 결성했다. 3·1운동을 한국 민중 대 일본 관헌의 싸움이 아니라 조선 내부 갈등으로 모는 물타기 전략이었다.

 

사람을 가볍게 봤다. 일본 관리를 만나러 간다며 기사에게 과속운전을 강요해 행인을 쳤다. 속리산 여승을 강간했다. 여승이 숨진 채 발견되어 한때 관직에서 물러났다가, 여론이 잠잠해지자 다시 복귀해 잘 먹고 잘살았다. 평소 개화 문물이라며 지팡이를 짚고 다녀 박작대기라고 불렸는데, 일본인 순사도 마음에 안 들면 지팡이로 때렸다고 한다.

 

이른바 친일부역자라 불리는 사람들을, 나는 민족주의를 배제한 채 바라보고 싶다. 평범한 한국 사람을 낮추보고, 낮은 직급 공무원에게 갑질하고, 개발을 구실 삼아 토목공사를 밀어붙이고, 체제에 저항하는 사람을 위선자로 모는 본새는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다. 박중양의 일화에서 한국 사회 극우의 보편적 정서 같은 것이 엿보인다.

 

해방 뒤 반민특위에 체포돼 1949112일 법정에 섰지만, 박중양은 자신이 옳다고 소리쳐 확신형 친일파로 불렸다. 병보석으로 풀려나고도 일제강점기가 좋았다고 큰소리쳤다. 1957년에는 이승만을 비꼬는 책자를 써 이승만에게 보내는 기행으로 정신병으로 의심받았다. 1959년 세상을 떠났다./ 김태권 만화가 | 한겨레 2024.01.11.

 

 

이선균과 이재명, 너무 다른 경찰 수사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선균 배우를 좋아했단다. 자신이 최고책임자로 있는 조직과 관련되어 사람이 죽었다면, 혹시 무슨 잘못은 없었는지부터 살피는 게 공직자의 기본이지만, 그는 늘 달랐다. 이태원 참사나 오송 참사에서도 유체이탈식 발뺌만 했다.

 

공개 소환을 반복하며 망신을 주지 않았다면, 거짓말탐지기 조사라도 해달라는 애타는 호소에 귀 기울였다면 어땠을까. 정밀 검사 결과 음성이 나왔으니 원칙대로 무혐의로 종결하면 그만인데도 경찰은 그러지 않았다. 유아인 배우에게 그랬던 것처럼 꼬투리라도 잡겠다며 압박을 거듭했다. 이런 압박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선균 배우는 그렇게 죽음으로 내몰렸다.

 

마약 수사는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해야 한다. 그래야 단순 투약자를 넘어 판매와 유통, 나아가 제조범까지 검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선균 배우를 수사하는 경찰은 전혀 달랐다. 뭔가 대단한 일을 한다고 으스대는 모습이었다. 관할도 아닌 인천지방경찰청장은 이선균 배우 말고는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는 것처럼 굴었다. 세계적인 배우를 엮을 수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태도로 피의사실을 유출했고, 공개 소환과 공개수사를 고집했다.

 

물론 이선균 배우의 죽음이 경찰만의 책임은 아니다. KBS는 공영방송의 본분을 내팽개치고 저질 유튜브 수준의 보도를 했고, 진짜 저질 유튜버들은 광기를 보였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악질 보도의 근거는 모두 경찰이었다. 경찰은 수사를 시작하지도 않은 입건 전 조사단계에서부터 40대 유명 배우 등의 단서를 흘리다가 반나절도 안 되어 이선균 배우가 마약수사를 받을 거라고 공표했다.

 

사람이 죽었으니 공소권 없음처분이 났지만, 그렇지 않아도 무혐의로 끝날 사건이었다. 설령 경찰이 몰아붙인 것처럼 마약을 복용했다 쳐도, 이선균 배우가 실형을 선고받고 투옥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초범인데다 수사에 협조했으니 구속하기도 어려웠을 거다. 만약 이선균 배우에 대한 수사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살해하려던 테러범에게 했던 것처럼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다면 어땠을까.

 

이재명 대표 테러 사건 수사는 딴판이었다. 피의자는 다음 대선의 유력한 후보인 이 대표를 죽이려고 범행을 저질렀다. 그가 밝힌 것처럼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거나 야당이 총선에서 이기는 것을 막기 위한 테러였다. 사람을 해치고 민주헌정질서를 파괴하는 무서운 범죄였다. 죄질 나쁜 살인미수니, 징역 10년은 넘는 무거운 처벌을 받을 거다.

 

그렇지만 이 범죄자에 대한 경찰의 대접은 이선균 배우와 비교해 너무 달랐다. 신상공개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 신상공개를 안 한 이유조차 공개하지 않겠다고 배짱을 부렸다. 어떤 각별한 인권보장을 이유로 신상공개를 안 하더라도, 왜 비공개인지는 밝혀야 했다. 국가기관의 작용과 공직자의 활동은 모두 공개와 공개적 책임을 전제로 하는데도 경찰은 거꾸로였다. 범죄자가 국민의힘 당원이었고 태극기 부대 일원이라는 중요한 사실조차 끝내 숨겼다. 이쯤 되면 경찰이 신경 쓰는 게 뭔지 짐작할 만하다. 이선균 배우처럼 누군가는 죽음으로 내몰면서까지 공치사에는 열심이지만, 대통령이 싫어할 만한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는 충심이 만들어낸 기괴한 장면이었다.

 

수사는 범죄 유무를 가리는 국가작용이다. 누군가의 주목을 끌기 위한 푸닥거리나 대통령이 싫어하는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공작일 수는 없기에 흔히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라고 근사하게 표현한다. 수사기관이 실체적 진실을 찾겠다며 이선균 배우에게 그랬던 것처럼 무작정 달려들면 안 되기에 적정절차 원리를 준수하며 인권을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다. 수사는 진실을 발견하며 인권도 보장하는, 양쪽으로 달려가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힘든 일이다. 이게 수사를 공부할 때 배우는 맨 첫 대목, 곧 기본 중의 기본이다.

 

수사는 현실에서 국가가 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무기다. 무기이니 사람이 죽거나 다칠 수 있고, 그래서 함부로 쓰면 안 되는 최후 수단이다. 하지만 평생 수사만 했다는 사람이 대통령도 하고 여당 대표도 하는 세상이 되자, 최후 수단은 선제공격을 위한 흉기로 둔갑해버렸다. 수사는 치우치지 않고 오로지 정의와 진실만을 추구해야 하지만, 윤석열 정권에서의 수사는 한쪽으로만 기울어졌다. 그저 대통령만 의식하고 있다. 검찰은 진작부터 그랬고, 이젠 경찰도 부쩍 검찰의 행태를 쫓고 있다. 원칙은 이런 식으로 구석으로 내몰리고 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 경향 2024.01.11.

 

 

그래도 된다는 극단적 분위기가 만드는 정치인 공격

전 세계적으로 보면 정치인을 습격하거나 암살하는 행위는 그렇게 드물지 않은 일이다. 물론 나라마다 정치 문화가 다르고 독특한 점이 있겠지만 정치인을 공격하는 사건의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그래도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다. 사회가 정치적으로 너무 심하게 분열되어 있거나 사람의 목숨 자체가 그렇게 귀하게 여겨지지도 않는 사회에서 살인범죄가 자주 발생한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정치인에 대한 암살 시도나 암살 사건은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그 사회에 대한 진단을 내릴 수 있다.

 

국가가 암살을 정적 제거 도구로 삼는 러시아 경우

러시아에서 정치인 암살 역사는 길고 풍부하다. 물론 러시아의 경우 폭력의 주체는 거의 개인이 아닌 국가다. 권위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개인의 자유가 없는 사회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인을 공격할 자유도 역시 없다. 반면에 국가의 폭력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시민사회에 없으니 국가가 이런 상황을 악용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러시아의 가장 유명한 사례만 봐도 이것을 알 수 있다. 1940821일 멕시코시티에서 레프 트로츠끼(Lev Trotsky)가 암살 당했다. 20세기 초반에 극단적인 무정부주의자로 레닌과 함께 열렬히 사회주의 혁명에 임했고, 소련 창립에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큰 기여를 한 인물이다. 하지만 1920년대 후반에 공산당 서기관으로 권력을 잡은 스탈린과 대립 관계에 들어섰고, 결국 소련에서 추방 당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멕시코에 머물게 되었다. 그런 트로츠끼를 소련의 스파이였던 라몬 메르카데르(Ramon Mercader)가 스탈린의 지시를 받아 암살한 것이다. 범인은 멕시코 현지에서 바로 잡혔다. 징역 20년을 선고 받고 1960년에 출소 후 소련으로 가서 국가 최고 훈장인 소련의 영웅상까지 받았다.

 

소련의 역사에서 위와 비슷한 정적 암살이나 암살 시도 사례는 수없이 많다. 하지만 트로츠끼는 20세기 초반 레닌과 함께 러시아 제국을 혁명으로 무너뜨리는데 큰 역할을 했고 소련 창립자 중 한 명으로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의 암살은 스탈린의 어떠한 다른 정적 암살 사건보다 충격이 컸다. 스탈린 대숙청의 최정점이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정적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것은 독재 체제만의 특징이 아니다. 2015227, 모스크바 한 가운데 크렘린궁 벽과 200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보리스 넴초프 (Boris Nemtsov) 야당 대표가 암살 당했다. 늦은 밤에 여자친구와 시내 산책을 즐기다가 바로 옆에 갑자기 멈춘 자동차 문이 열리면서 발사된 4발의 총탄을 맞고 즉석에서 숨졌다. 넴초프는 그 당시 야권에서 인지도가 가장 높은 정치인이었고 2000년대부터 푸틴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왔다.

 

범인을 잡아도 배후는 밝히지 못 한다

경찰국은 실제 권총을 쏜 범인을 잡아 재판에 넘겨 징역형을 선고받게 했지만 그 배후는 아직까지 밝히지 못한 채 여전히 조사 중이라는 것이 공식 입장이다. 2015년 기준으로 현직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에 대한 성공적인암살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그 전에도 정권 반대 활동을 벌이는 인사나 기자의 암살 사건은 있었으나 정치인은 처음이었다. 거기에다가 보란 듯이 대통령실 바로 앞에서 정치인을 암살함으로써 야당 세력에 공포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됐다.

 

2020820일 러시아 야권 세력의 대표이자 가장 유명한 활동가인 알렉세이 나발니(Alexey Navalny)는 시베리아에 있는 톰스크 시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의식이 흐려지며 심한 고통으로 쓰러졌다. 비행기는 비상 착륙을 하고 나발니는 현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나발니 변호사들은 나발니가 러시아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을 내렸고 결국 나발니는 이틀 만에 치료 목적으로 독일로 이송되었다.

 

나발니 암살 시도 사건은 국제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독살 시도에 사용한 화학물질 때문이었다. 독일 병원에서 검사를 한 결과 '노비촉'이라는 독한 신경작용제가 나발니 몸에서 발견되었다. 더 끔찍한 것은 이 '노비촉'이 이미 다른 독살 시도에도 등장했었다는 사실이었다. 200611월에 런던에서는 러시아 국정원 구 요원인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Alexander Litvinenko)가 폴로늄으로 독살되었고, 20183월에는 러시아에서 런던으로 피신한 러시아 구 국정원 요원인 세르게이 스크리팔(Sergey Skripal)과 그의 딸인 율리아 스크리팔(Yulia Skripal)을 노비촉으로 독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공식적으로 러시아 정부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같은 해에 있었던 대국민 대화 프로그램에서 푸틴 대통령은 스크리팔 독살 시도에 대한 질문을 받자 배신은 용서할 수 없는 최악의 범죄다. 개는 개처럼 죽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직접적으로 독살 시도를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소름 돋는 표현으로 야권에 강한 경고를 보낸 셈이다.

 

개처럼 죽은푸틴의 배신자

2023823일에 예브게니 프리고진(Evgeny Prigozhin) ‘바그너 그룹용병장이 타고 가던 경비행기가 공중 폭발했다. 비행기를 타고 있었던 탑승객들은 전원 사망했다. 두 달 전인 6월에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적극적인 전투를 벌이던 바그너 그룹이 반란을 일으키자 푸틴 대통령은 방송에 나와 바그너 그룹을 절대 용서를 받지 못할 배신자, 반역죄인등과 같은 심한 표현을 쓰면서 반란을 규탄했다. 그때부터 프리고진의 목숨은 시한부라는 비공식적인 의견은 한결 같았다. 8월에 알 수 없는 이유로 폭발한 비행기에서 그가 사망했을 때 그 배후가 어디에 있는지 러시아 사회에서는 이견이 없었다. 공식적인 조사가 시작되자마자 흐지부지 되면서 아무런 결론이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다.

 

폭력의 주체는 다를 수 있다. 정적이라고 생각되는 인물을 국가가 처형할 수도 있고 반대 세력을 지지하는 외톨이 늑대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행위자(actor)가 누가 되든 간에 폭력의 원인은 항상 비슷하다. 극한 사회적 분열 상황에서 세력 간에 서로 견제할 수 있는 도구가 없고, 대화 방식이 아닌 육체적인 폭력으로 상대를 처벌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그래도 된다로 이어지는 것이다.

벨랴코프 일리야 수원대 인문사회대 교수 | 시민언론 민들레 2024.01.13.

 

 

'바이든'이 아니었다니! 윤석열 대통령께 사과드립니다

인지부조화 해소를 위해 쓰는 칼럼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OOOO 쪽팔려서 어떡하나"

 

대통령의 발음 기관이 어떤 형태 조합을 통해 물리적으로 음성을 내었는지조차 법원에서 진위를 가려야 하는 세상이 됐다. 이제 대통령의 발언 중 OOOO 자리를 '바이든은'으로 들었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청각 기관을 항시적으로 의심해야 하는 마법과 같은 세상으로 빨려들어갔다. 토끼굴에 빠진 엘리스처럼.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2(성지호 부장판사)12일 외교부가 MBC를 상대로 낸 정정보도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며 MBC"이 사건 판결 확정 후 최초로 방송되는 뉴스데스크 프로그램 첫머리에 진행자로 하여금 별지 기재 정정보도문을 통상적인 진행속도로 1회 낭독하게 하라"고 주문했다. 외교부가 요구한 정정보도문은 이렇다. "본 방송은 지난 2022.9.22. <뉴스데스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에서 미국 의회 및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향해 욕설 및 비속어 발언을 했다는 취지의 보도를 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확인 결과,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이라는 발언을 한 사실이 없고, '바이든'이라는 발언을 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이하 생략)"

 

대통령은 "바이든"이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핵심이 빠져 있다. '바이든'이 아니라면 윤석열 대통령은 뭐라고 말했을까? 뭐라고 말했길래 140개 넘는 거의 모든 언론이 '바이든'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한 것을 두고, '바이든'은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걸까? 답은 있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다시 한번 들어봐 주십시오. 국회에서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이라고 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날리면'은 정확한가. 여기에서 재미있는 점은 정작 이 발언을 한 윤석열 대통령이 스스로 단 한번도 본인 육성으로 자신의 입에서 튀어나온 형체 불분명한 언사에 대해 해명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법원에서도 '감정 불가' 의견서가 제출됐다.

 

기왕 이렇게 됐으니 솔직하고 짓궂은 심경으로 말하면, 뉴스데스크에서 앵커가 정정보도문을 읊고 나서 "윤 대통령은 '미국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하지 않았고 '(한국)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날리면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했습니다"는 말을 1회 낭독하는 모습을 꼭 보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현실 블랙 코미디를 후대에 길이 길이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나올 지경에까지 이르지만,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한번 사태를 직시하자. '바이든-날리면' 논란은 인류가 가진 최고의 난제 중 하나인 언어의 생성에 관한 고대의 비밀에 대해 고민해 볼 철학적 질문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탈구조주의와 해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에 영향을 줬던, 70여년 전에 유행한 신비평 이론에 따르면 텍스트에 대한 모든 해석의 객관적인 증거는 오로지 "텍스트 위에 써진 단어들(words on the pages)"이다. 발화자(윤석열 대통령)의 의도나 사회적 지위, 문장이 발화된 장소나, 문장이 발화된 전후 시대적 맥락은 텍스트의 의미에 개입해선 안된다. 즉 발화자가 발화하는 순간, 그 문장들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가진다. 이를 '음성'으로 확장하면 '음성 그 자체'를 대상으로 우리는 의미를 구분짓기 위한 작업에 돌입해야 한다. 대통령의 입에서 튀어나온 '음성' 그 자체를 텍스트로 옮기거나 하는 '불경한 짓'을 거두어야 한다. 대통령이 바이든을 만난 직후에 이 발언이 튀어 나왔다는 사실도 잊어야 한다. 그런 맥락 같은 건 대통령과 대통령실, 외교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정신적 착란에 빠지게 할 수 있는, 신비평 이론에 의하면 '오류'로 걸어들어가는 지름길이다.

 

그리하여 처음부터 대통령의 '음성'을 다시 들어보자.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아르튀르 랭보는 인간의 언어에서 모음이 힘이 세다는 걸 간파했다. A, E, I, O, U, 다섯 개의 모음에 색깔을 부여하고 "언젠가는 너희들의 보이지 않는 탄생을 말하리라"라고 썼다. 그는 시인이 되기 위해선 "모든 감각의 규범을 철폐함으로써 미지해 도달해야 한다"'투시자'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OOOO 쪽팔려서 어떡하나"

 

'랭보'의 시선으로 보면 대통령의 음성에서 간신히 구별 가능한 건 웅웅거리는 모음들이다. 모음은 발음과 언어의 의미를 구별짓는, 형태소보다 작으면서 형태소를 가능케 하는 첫번째 구분 도구다. 모음은 말 그대로 음성의 '어머니'이자, 퇴폐적이고 신비로운 '윙윙거림'들이다.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발음하는 대통령의 입술에서 '아이으믄'(전문가조차 감정불가라고 하니 이런 방식밖에 표기법이 없다)이라고 웅얼거리는 소리가 나왔는데, 이 발성은 모음조차 명확하지 않아 평범한 사람 귀에 들리기엔 아와 어, 오와 으의 중간 어디엔가 발음의 좌표가 위치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글자를 분절해서 보면 ''로도, ''로도 들리고, ''로도, ''로도 들리고, ''으로도 ''으로도 들릴 수 있는 것이다. 모음조차 불분명하니, 대통령의 음성은 듣는 사람에 따라 자음과 모음 조립이 가능한 숫자만큼 무한 확장될 수 있다.

 

그래서 사실 이건 자연의 소리를 언어로 옮기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한 짓이다. 이 무의미 앞에서 인류가 쌓아온 언어 해석의 맥락은 허무하고 천박하고 초라한 기술에 불과하다. 이를테면 그건 돼지 울음 소리, 소 울음 소리, 폭풍우 휘몰아치는 소리, 파도가 치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같은 것이 된다. 그런 소리들을 어떻게 '의미를 갖는 글자'로 바꿔치기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대통령의 '옥음'은 음성 그자체로만 보존해야 하는 특별한 작품이 된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말의 신성함을 누가 문자로 기록할 것인가. 해석의 독점권은 오로지 ''에게만 허락되는데. 모든 규정과 해석은 불경한 시도다. 로고스여 영원하라.

 

대통령의 '음성'이 구분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대통령의 발음이 내포한 어떤 '착란'적 틈을 비집고 대통령실과 정부가 권위를 앞세워 그 자체로 구별 가능하지 않은 '모음의 우물거림'의 자리에 '날리면'이라는 단어를 쿠데타처럼 대동하고 등장했다. 그리고 법원은 마침내 그 쿠데타를 절반 가량 인정했다. 대통령실과 외교부가 법원을 동원해 확립한 'OOO=날리면' 기준으로 보면 대한민국 국민은, 60% 정도는 '날리면''바이든'으로 들리는 사람들로, 30% 정도는 '날리면''날리면'으로 들리는 사람들로, 10% 정도는 아예 이 말을 해석할 가치를 못 느끼거나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이건 교정돼야만 한다. 이제 후속 조치를 해야 할 시간이다. MBC'정정 보도'를 한다고 해서 바이든이 날리면이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이제 '바이든'으로 기록된 모든 활자 매체와 과거 방송들, 유튜브에 남아 있는 모든 기록을 하나하나 정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번 판결은 시작일 뿐이다. 외교부는 모든 매체가 보도한 '바이든'을 정정하도록 하는 방안을 실행하길 바란다.

 

"(한국)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날리면은 쪽팔려서 어떡하나"

 

자 이제 저 어색한 문장은 이렇게 완성되고 공인되어 '유한한 인간들'에게 '말씀'으로 차분히 내려오신다. 생각해보면 해볼수록 저 문장은 우리 인간들을 더욱 겸손하게 해 주는 것 같다. 들리는대로(들렸다고 착각하는대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규정해버리는 건, 우리의 감각을 맹신하는 우리 자신이 가진 문제이고 인간의 한계다. 어쩌면 인간의 감각 기관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욱 미숙한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저 문장은 차라리 하나의 언어예술 작품처럼 대해야 마땅하다. 언어예술 작품은 통상의 방식으로 청음해서 독해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명심하면서.

 

우린 불경하게도 대통령의 웅얼거림을 함부로 인지하고 분석하려는 죄를 지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갈릴레오처럼, '그래도 바이든'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레지스탕스가 되어 지하 세계로 숨어들 것이다. 이 나라에선 '바이든'으로 들은 것은 허락되지 않는 일이다. 이제 '바이든'은 전설처럼 구전으로만 전해질 것이다. '바이든'으로 들은 전 국민의 3분의 2가 집단적으로 청각 기관이 문제를 일으킨 사건으로 후세에 전해질 것이다. '집단 청각 장애'의 원인을 어떤 훌륭한 학자가 맹렬히 연구해서 좋은 논문을 하나 써 주었으면 한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의 피해자인 윤석열 대통령에게 사과를 드리면서 법원의 노고에 무한한 경의를 표한다. 마지막으로 필자의 인지부조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처절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런 정신착란적 글을 선보이게 돼 독자들에게도 미안한 마음 뿐이다.

박세열 기자 | 프레시안 2024.01.13.

 

흉터는 힘이 세다

내 양 눈썹 부위에는 흉터가 있다. 두개 모두 동갑내기 친구가 만든 것인데, 한쪽은 시멘트 쓰레기통 위에서 밀어 떨어뜨려서, 반대쪽은 달리기에서 지자 화가 나 던진 돌에 맞아 생겼다. 예닐곱살배기 때라 그럴 수도 있던 일인데, 어른들은 둘 사이에 살이 꼈다고 수군댔고, 그래서인지 우리는 지금까지도 서먹하다.

 

최근 야당 당수가 습격당했다. 경동맥을 피해 다행이지만, 그래도 습격당했던 다른 정치인들처럼 그의 목에도 흉터가 생기리라.

조직학적으로 흉터는 손상 부위 회복 과정에서 이루어진 염증 반응, 혈관 생성 등 다양한 생리 현상의 산물이다. 특히 콜라겐 섬유가 불규칙하게 다량 생성되면서 주변 조직과는 다른 형태를 띠어 두드러져 보인다. ‘흉터는 종종 낙인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실제로 소나 말 엉덩이, 심지어 죄인 이마에 찍던 낙인도 흉터이고 조직학적으로 이 둘을 구별하기 어렵다. 흉터가 늘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스스로 삶을 내려놨어요.” 조심스레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와 상담을 청한 학생 중엔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흉터가 있는 이가 많다.

 

흉터가 있다고 다시 상처받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한강의 단편소설 아기 부처에서 온몸 화상 흉터 때문에 강박적으로 완벽함을 추구하며 살아가던 한 남자처럼, 목덜미 흉터 위로 다시 3센티 자상이 생기고 그 위에 먹피가 맺히기도 한다.

 

흉터는 흉하다. 그래서 흉터 제거술도 행해진다. 하지만 흉터를 없애기는 어렵다. 그 수술이 또 다른 상처를 내기 때문이다. 흉하지 않은 흉터도 있다. 어릴 적 김씨 아저씨는 술에 얼큰해질 때면 6·25 전쟁 때 총알이 스쳐 생긴 다리 흉터를 자랑스레 내보이곤 했고, 대여섯살 꼬마였던 나는 이순신 장군을 배알하는 눈빛으로 그 흉터를 바라보곤 했다.

 

흉터는 무언가를 상기시킨다. 대부분 아픔과 연관되지만, 때론 잊지 않겠다던 맹세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상기시킨다. 스님들은 출가할 때 팔뚝에 작은 향을 피운다고 한다. “나 스스로를 태워 중생들을 밝게 비추리라라는 다짐 의식이다. 그 의식은 팔뚝에 작은 흉터를 남긴다. 이 흉터는 자신이 왜 출가했는지를 상기시킨다.

 

흉터는 증거다. 실제로 흉터는 상처 회복을 위한 세포들의 분투 증거다.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했던 제자 도마는 예수에게 상처를 보여 달라고 했다. 믿기 위해선 흉터라는 증거가 필요했다. “등에 밤톨만 한 흉터가 있나?” “있어요.” “그럼 맞다 맞아!” 1983년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에서도 몸에 있는 흉터로 가족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야당 당수 목에 남은 흉터도 여전히 조악하고 졸렬한 한국 정치 수준의 증거로 오래 남을 것이다.

 

흉터는 우리가 누군지를 보여준다. 말과 소에 찍힌 낙인은 주인이 누군지를 보여준다. 가축만이 아니다. 바울은 선교 중 받은 핍박으로 몸에 생긴 상처를 자신이 신의 제자가 된 징표라 자랑했다. 흉터뿐만 아니라 흉터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역시 우리가 누군지를 보여준다. 우리에게는 멀쩡한 이들을 화냥년’, ‘혼혈아’, ‘위안부라 낙인찍고 괴롭혔던 역사가 있다. 한 사람의 상처 앞에서 ‘1센티이니 ‘2센티이니 하는 수다도 그런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다.

 

흉터는 정직하다. 흉하든 아니든, 고통이든, 자랑이든, 치졸함의 증거이든 우리는 그것을 부인할 수 없다. 흉터는 운세, 허망한 낙관이나 비관보다 실제적이다. 있는 흉터를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그것을 부인하고 전진할 수 없다.

 

무엇보다 흉터는 힘이 세다. 강요 없이 흉터를 받아들이는 순간, 흉터는 우리에게 넓은 마음, 두번 실패하지 않을 거란 다짐, 그래도 전진해야 한다는 분투의 힘을 준다. 그래서 새로운 출발을 하려 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흉터에서 시작해야 한다. 조금 더 나가면,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우리의 사악함이 만들어낸 흉터 위에서, 또한 인류의 공동 번영과 평화를 이루어내려면 며칠 전 9000번째 어린이의 장례식이 진행된 폐허의 가자지구라는 인류의 흉터 위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해 첫달, 오늘은 거울 앞에서 구석구석 내 몸의 다른 흉터를 살펴봐야겠다. 그러면서 상처를 아물게 하려 분투했던 시간과 그때 내 등을 두드려 주었던 이들의 얼굴도 떠올려 볼 테다. 상처가 흉터가 될 사이도 없이 죽어간 이들도 기억해볼 일이다. 한 영화의 대사처럼 신은 우리를 보실 때 승리와 훈장이 아니라 상처와 흉터를 보실 테니까.

신영전 | 한양대 의대 교수 | 한겨레 2024.01.14.

 

 

2023년 테크 업계, AI가 발전한 만큼 사람들은 행동했다

2023년의 화두는 단연 AI(인공지능)였다. 202211월 서비스를 시작한 챗지피티(ChatGPT)20231월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져, 그야말로 판을 뒤집어엎는 게임 체인저로 등극한 것이다. 챗지피티는 질문을 입력하면 그게 어떤 물음이든 스스럼없이 답을 내놓았다. 물론 틀린 정보나 아예 없는 정보를 마치 있는 것처럼 전해주는 빈도도 높았지만, 지금까지 본 챗봇과는 완전히 다른 수준이었다. 텍스트를 생성하는 챗지피티 말고도 그림이나 사진을 뚝딱 만들어주는 이미지 생성형 AI 서비스도 등장했다.

 

AI 서비스들의 출시 이후, 현재 노동환경이 훨씬 더 빨리,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변화할지 모른다는 날 선 불안이 사회를 뒤덮었다. 이전에는 비교적 공정이 단순하거나 반복적인 노동이 AI에 의해 대체되리라 여겨졌지만, 2023년 우리가 목도한 AI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간주되던 창작에 침투한 것이다. 예를 들어 소설 창작이나 작곡, 그림과 사진 촬영 말이다. 챗지피티가 출시되고 몇 개월 되지 않아 챗지피티로 썼다는 책이 출간되었고, AI가 작곡했거나 편곡한 노래가 유튜브에 게시되기도 했다. 이전에는 웹소설의 표지를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청탁하곤 했지만, AI 서비스가 대중화된 이후에는 웹소설 플랫폼마다 이미지 생성형 AI로 만든 듯한 표지가 눈에 띄었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AI 기술과 반대로 테크기업의 노동시장은 내내 먹구름이었다. 경기침체가 직접적 원인이라고는 하나, 글로벌 대기업들이 일제히 대규모 구조조정을 감행한 데에는 AI의 영향도 있었다. 그 수도 어마어마하다. 메타, 구글, 아마존, 링크드인 등 유명 글로벌 테크기업이 각각 수만 명의 인력을 해고했다. 2023년에만 테크업계에서 해고당한 이들이 26만명을 넘어섰다. 글로벌 테크기업의 해고 동향을 기록하는 웹사이트(Layoff.fyi)에 기록된 숫자다. 글로벌 테크기업의 거센 해고 동향에 가려지긴 했지만, 국내 테크기업도 만만치 않다. 올해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희망퇴직 등을 시행해 임직원 규모를 절반 이상 줄였고, 야놀자 역시 전 직원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았다. 2023년 초에는 게임 쿠키런의 개발사인 데브시스터즈가 직원들에게 당일 해고를 통보하여 논란이 된 바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언급한 것처럼, 2023년은 분명 ‘AI 일상화의 원년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테크기업 해고의 해이기도 했다. 기술은 가파르게 성장했지만 기술을 만드는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떠나야 했다. AI 일상화의 원년, 테크기업 해고의 해. 여기에 2023년을 기억하는 문장을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바로 테크 시민의 해라고 말이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새로운 서비스가 나올 정도로 정신없이 쏟아지던 AI 뉴스와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던 대규모 구조조정이 쉴 새 없이 몰아쳤지만, 많은 사람이 이 흐름을 흔들림 없이 주시했다. 그뿐 아니라 연대하여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대표적 예가 할리우드의 작가 파업이다. 미국작가조합(WGA)에서 주도한 이번 작가 파업은 무려 148일 동안 지속됐다. 미국작가조합의 요구안에는 작가들의 처우 개선과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여러 항목이 기재됐는데, 그중에서도 최소 인력 수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최소 인력 수란 바로 하나의 작품을 제작할 때 투입되어야 하는 최소한의 작가 수다. 최종 합의안에 따르면, 6부작 시리즈에 3, 7~12부작에는 5, 13부작 이상은 최소 6명 이상 작가가 투입되어야 한다. 명령어 한 줄만 넣으면 어떤 글이든 뚝딱 만들어내는 챗지피티로 인해 작가들의 노동권이 크게 위협받자, 제기된 대안이다. 이렇게 하면 AI의 활용 자체를 막지 않으면서도 작가들의 일자리 또한 유지할 수 있다.

 

기술에 맞서 권리 요구한 테크 시민

한국에서도 AI에 대항하는 창작자들의 움직임이 가시화된 바 있다. 20236월 네이버웹툰에서 일어난 일이다. 며칠 사이로 네이버웹툰 도전 만화게시판에 똑같은 섬네일 이미지를 한 작품이 우후죽순 게시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 게시물들은 창작자들의 동의 없이 창작물을 학습하여 만든 AI의 사용을 반대한다며, 이미지 생성형 AI 웹툰을 보이콧하겠다는 목소리를 담고 있었다. 네이버웹툰이 매년 개최하는 지상최대 공모전에 창작자들이 직접 의견을 낸 사례다. 여기에는 AI를 활용한 웹툰에 대한 반발과 공모전 접수 작품을 네이버웹툰에서 자체적으로 AI 학습 데이터로 사용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동시에 담겨 있었다. 도전 만화 게시판뿐만 아니라 SNS에서도 뜨겁게 이슈가 되자, 네이버웹툰은 2차 접수부터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한 작품은 출품을 제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의견을 반영해 카카오웹툰에서는 웹툰 공모전에서 아예 인손인그(인간의 손으로 인간이 그린)’ 작품만 받겠다고 공지하기도 했다.

 

한편 시민사회에서도 AI 기술에 대항하는 움직임을 꾸준히 보여줬다. 2020년 통과된 데이터 3법에 따라 현재 기업들은 개인정보를 가명 처리하여 활용할 수 있다. 가명 처리된 데이터는 공익과 연구 목적 등으로 쓰일 뿐 아니라 AI 학습에도 사용되곤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개인이 가명 처리와 개인정보 활용을 원치 않는다 하더라도 이를 요구할 통로가 없었다. SKT에서는 심지어 이 요청을 거절한 바도 있다. 이에 참여연대,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정보·인권 단체들이 규합해 SKT를 대상으로 개인정보의 가명 처리 정지 요구권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 원고들이 승소했으나 패소한 SKT 측에서 항소해 2심이 진행됐다. 202312202심 판결에서도 법원은 시민의 편을 들어주었다. 이제 자신의 개인정보를 AI 학습 등에 자체적으로 활용할 수 없도록, 사용자가 가명 처리 정지를 요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23, AI가 발전한 만큼 사람들은 행동했다. 기술을 따라가기 급급한 게 아니라, 기술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며 싸웠다. 우리는 비단 우리가 거주하는 국가의 시민일 뿐 아니라, 글로벌 테크기업이 주도권을 쥔 테크업계라는 제국 안에서도 시민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들을 테크 시민이라고 명명한 건 이 때문이다.

 

기술로 인해 세상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을까? 그런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서로의 어깨를 겯고 당당히 목소리를 냈던 2023년의 풍경이 증명하는바, 적어도 사람들은 세상이 더 나은 곳이 되기를 원하고,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 2024년의 시민들은 또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서 나타날까? 나날이 가혹한 시절이지만, 기대와 희망을 품고 새해를 맞는다. 해가 넘어가는 새해가 아니라, 빛나는 사람들이 스스로 열어낼 새해를.

조경숙 (테크-페미 활동가) | 시사인 2024.01.14.

 

이재명 피습사건, 이대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피습 당해 자칫 사망할 수도 있는 위기를 넘기고 다행히 잘 치료되어 퇴원했다. 집도 의사의 소견으로는 가해자의 칼이 조금만 깊이 들어가 경동맥을 건드렸거나, 그 피습 상태로도 출혈이 과다했다면 사망할 수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건 직후 마치 이 대표가 이상한 노인의 우발적인 습격을 받아서 가볍게 다친 것처럼 보도가 나왔고, 부산대병원에서도 충분히 치료받을 수 있었는데, 헬기까지 타고 서울대병원으로 옮겨 지역의료를 무시했다는 식으로 생명을 다투는 사람의 선택에 도덕적인 질타를 했다. 그래서 지난번 대선에서 현 대통령인 윤석열에 불과 25만 표 뒤진, 현재 제1야당 대표이자 이 나라의 가장 중요한 정치 지도자의 한 사람에 대한 테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이상한 분위기가 계속된다.

 

야당 대표 살해 시도, 경찰은 뭉개고 언론은 피해자 공격

가장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사건 직후의 정부, 경찰, 언론 등의 거의 노골적인 증거인멸, 사건 축소, 그리고 다른 프레임으로 국민 관심 돌리기다. 국무총리실 산하 대테러상황실은 사건 발생 직후 40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이재명 대표가 ‘1센티 열상을 입었다고 사건의 진실을 축소하는 문자를 뿌렸다. 수사기관은 범죄가 발생하면 현장을 보존하는 것이 기본인데도, 경찰은 곧바로 현장을 지웠고, 이재명이 입었던 피묻은 셔츠는 진주의 의료폐기물 업체에서 발견되는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얼마 전 자살한 배우 이선균 씨의 경우처럼 수사 과정을 생중계하듯이 언론에 흘려서 인격 살인을 가해온 수사당국인데도 이번 사건에서는 범인이 민주당적을 가졌다는 사실을 흘린 이후에는 이유도 대지 않은 채, 그의 당적과 가해 동기를 파악할 수 있는 변명문을 공개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경찰은 범인과 차에 동승했던 사람이 자진 신고를 했는데도, 3일이 지나서야 소환했고, 공범 여부 등 중요한 점을 동승자에게 제대로 물어보지도 않았다. 경찰은 신원뿐만 아니라 피습 당시 영상, 그리고 가해에 사용한 칼, 피의자의 변명문도 공개하지 않았고, 현장검증도 하지 않았다,

 

민주당 측의 조사에 의하면 사건 직후 가해자가 누구이며, 왜 그런 살인을 시도했는지 묻는 보도는 거의 없었고, 피해자인 이재명에게 책임을 돌리는 보도는 8개 채널에서 하루 400개씩 쏟아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직후 모든 종편이 청해진 해운과 유병언 일가가 마치 사건 책임자인양 중계방송 하듯이 보도를 쏟아낸 것과 판박이다. 미국 뉴욕타임즈가 미리 보도한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국내 언론의 이 사건 보도는 물타기로 일관하고 있다.

 

극우이념 가해자가 좌파정치인 제거하려한 분명한 정황

이 사건이 이렇게 넘어가도 될까? 물론 과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피습사건도 있었고, 최근에는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에 대한 테러도 있었다. 그런데 과거의 정치인 테러와 달리 이번의 경우 가해자가 <월간조선> 30년 구독한 이력, 그가 사용한 칼, 민주당 이재명 지지자로 위장하여 몇 번이나 계속 접근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점(사인을 받겠다고 계속 말한 것), 그리고 피해자인 이재명 대표가 입은 치명적 상해 등을 종합해 볼 때 극우이념을 가진 가해자가 이재명을 제거되어야 할 좌파로 보면서, 살해를 시도한 정황이 분명하다.

 

암살과 테러는 특정 종교나 이념에 대해 외골수의 신념을 가진 극단주의자들이 자신이 적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을 제거하면 나라와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주관적 확신과 신념으로 저지른다. 그러나 그런 확신범을 조종하거나, 자금과 무기를 제공하거나, 노골적으로 행동을 부추기는 정치적 발언이 언제나 선행하는 경우가 많다. 여운형 암살이 대표적이다. 지난 미 대선직후 극우파들이 미 국회의사당에 진입하기 직전에 트럼프가 지금 행동할 때라고 선동적 발언을 한 것도 의회 난동의 방아쇠를 당긴 발언이다.

 

물론 피압박 민족이나 피착취 세력이 저항의 한 방편으로 감행하는 테러도 있다. 안중근과 김구도 테러를 수단으로 일제에 저항했다. 압도적 힘의 우위를 뒤집을 수 없는 상황에서 저항적 테러는 위축된 대중들에게 용기를 주고, 억압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인데, 이런 테러를 일으킨 사람은 거의 그 자리에서 살해당하거나 살아나도 사형을 면할 수 없었다. 무슬림들의 자살 테러는 자기가 먼저 죽기를 선택한 것이다. 즉 힘의 관계나 정치 환경에서 극히 불리한 위치에 있는 약자나 저항세력은 대체로 죽음을 각오하고 테러를 감행한다.

 

죽음 각오한 저항의 테러, 배후 감추는 극우의 테러

그런데 제국주의, 극우 반공주의 체제 하에서 사회주의, 리버럴 지향을 가진 지도자들에 대한 극우 테러는 성격이 다르다. 미국의 극우세력인 KKK단의 테러, 케네디 대통령 암살, 마틴 루터 킹 목사 살해 등은 모두 여기에 속한다. 이 경우 극우 테러는 공권력과 여론이 대체로 자신의 편이라는 확신, 그리고 테러를 감행해도 발각되지 않거나, 설사 체포되더라도 수사기관과 법원이 모두 자기 편이기 때문에 곧 풀려날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 테러를 감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테러의 경우 공권력이나 극우 정치세력이 실제로 배후에서 이들을 지원한다. 그래서 테러 이후에도 수사는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배후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케네디 살해, 김구 살해가 그러했다.

 

1947년 여운형 살해 테러범 한지근은 현장에서 체포 구속되었으나, 공판에서 배후 공범 관련 질문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당시 미군정은 여운형 암살 계획을 알고 있었다. 범행의 배후로 극우 테러리스트 조직인 백의사의 염동진 등이 무기를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사건 발생 27년 후, 공소시효가 지난 시점이었다. 김구 살해범 안두희는 사건 이후 체포되어 피의자임에도 거의 귀빈 대우를 받았고, 곧 풀려나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살았다.

 

그런데 표적이 되는 인물이 테러로 사망하면 정치적 환경은 완전히 역전된다. 케네디와 킹 목사가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미국과 미국의 민주당이 오늘처럼 우경화되었을까? 중도좌파 여운형과 통일 민족주의자 김구가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한반도가 지금처럼 70년 동안 분단 상태에 놓여 있었을까?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중요 인물, 특히 개혁과 진보를 상징하는 인물의 살해는 그 국가와 사회의 궤도를 우경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즉 비록 수사기관에 의해 살해의 배후는 끝내 규명되지 않더라도, 이들이 사라지면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세력이 누구인가를 보면 가해의 배경이 드러난다. 여운형이 암살당하기 전날 김용중에게 보낸 서한에는 이곳 미국인들은 극우분자를 두둔하오. 좌파면 누구나, 아니 극우가 아닌 사람은 누구나 공산주의자로 낙인찍고 그 활동에 방해를 당하고 있소라고 적었다. 당시 여운형은 남한에서 총선이 실시되면 극우가 추대하는 이승만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 될 수 있었다. 여운형과 김구 살해는 이승만과 한국 극우 친일 세력이 모두가 원하는 일이었다.

 

표적의 죽음으로 이익을 얻는 세력이 배후

즉 정치 테러는 단독 혹은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지금까지 진행된 이재명 대표에 대한 태러 수사는 단독 우발 범행으로 몰아가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과거 여운형, 김구 때의 수사와 거의 판박이다. 가해자 이력은 공개되지 않고, 공범 관련 수사는 하는 시늉만 하고, 현장의 증거는 곧바로 지워버리려 했다. 지금 경찰이 가해자 신원과 가해 배경을 감추는 것은 과거 여운형과 김구 살해 직후 테러범을 정중히 모시는정도에 버금간다.

 

테러나 학살이 발생할 때는 언제나 그 표적이 되는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폄훼, 악의적 공격, 그리고 악마화 과정이 선행한다. 주로 언론이나 정치가들의 발언 등을 통해서 이들은 반민족 세력, 사회악, 그래서 죽여도 좋은 존재라는 선전이 확산, 반복된다. 1945년 직후 11번이나 테러를 당하다가 결국 희생된 여운형에 대해 당시 한민당 극우파 세력은 여운형은 공산당의 앞잡이다. 여운형은 일제 강점기 2천만 원의 돈을 받아먹었다. 여운형은 깡패두목이며 사기꾼이다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김구 역시 암살당하기 전에 빨갱이, 여순사건 배후 조종자로 몰렸다. 이렇게 천하가 모두 아는 항일 투사이자 애국자를 민족분열주의자’ ‘공산당 앞잡이심지어 친일파라고까지 흑색선전을 계속하면, 그러한 선전을 철석같이 확신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나오고, 그들 중 극단주의자가 테러를 실행한다.

 

지금까지 이재명 대표에 대한 언론과 정치권의 비난, 폄훼, 그리고 악마화 과정도 과거 여운형이나 김구 테러 직전 그들에 대한 인신공격과 매우 유사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를 단 한번 면담조차 하지 않았고,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은 그를 잡범이라고 불렀으며, 극우 유튜버는 그를 빨갱이라고 공격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심지어 공산 전체주의’ ‘운동권 카르텔운운하면서 야당 지도자들이 타도되어야 할 공산 전체주의 수괴인 양 이념적 덧칠을 했다. 이런 대통령과 여당 정치인들의 적대적 언사는 극우 극단주의자 테러 세력에게 확신을 주는 정치환경을 조성하며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매우 중요한 촉발제이다.

 

이재명을 악마화하는 한국의 전쟁 정치

거의 죽음의 위험 앞에 있는 사람을 헬기로 이송한 것을 두고 특권이며 지방을 무시한 것이라고 시비를 걸거나, 심지어 자작극이라고 공격하는 등의 극우 유튜버나 보수 언론의 거친 담론을 보면 결국 잡범’ ‘중대 피의자’ ‘빨갱이이재명은 테러 현장에서 죽었어야 하는데 안 죽어서 문제라고 보는 듯한 느낌도 준다 해방 후 가장 높은 국민적 지지를 받던 여운형, 김구에 대한 한민당과 친일세력의 거친 공격과 이들이 살해된 직후 극우세력의 태도도 그러했다.

 

이재명 대표 피습사건은 이재명 개인의 지도력이나 인격, 태도, 정치 이념이나 노선으로 접근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 이것은 한국이 과거 해방정국과 마찬가지로 테러와 폭력, 적대와 학살이 난무하는 혼란 상황으로 되돌아 가는가, 아니면 계속 문명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가의 문제다. 21세기 백주 대낮에 이런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도 그렇지만, 이 야당지도자 살해미수 사건을 정부, 경찰, 언론이 과거처럼 적당히 묻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오늘 한국 정치의 야만성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 인물의 풀이 제한된 이 좁은 남한 땅에서 이념적 극단주의와 권력자들의 은밀한 공작으로 중요한 국가 지도자들이 살해당하거나, 정치적으로 매장당한다면 도대체 그런 국가에서 어떤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 시민언론 민들레( 2024.01.14.

 

 

이재, 곧 죽습니다

새해, 우리는 한 해를 시작하며 나름의 결심을 한다. 삶이 우리가 하는 크고 작은 여러 선택으로 이루어진다면, 좋은 삶은 결국 좋은 선택에 달렸다. 누구나 좋은 선택을 원한다. 좋은 선택은 당위와 자기 이익이 양립하면 쉽지만 상충하면 어렵다.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이에 밝다(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군자는 , 소인은 를 잣대로 선택한다. ‘가 맞서면 무엇을 해야 할지 알면서도 개인의 유불리에 걸려 넘어지는 수가 많다. 지난 연말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은 견리망의(見利忘義)를 앞서는 현실을 가리킨다. 안타깝게도 견리망의는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심해진다.

 

이 대표, 윤 대통령 반면교사 삼길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 있겠어요?” 지난해 11월 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 이전의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돌아가겠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2019년 이후의 민주당 당론이었고 2022년 대선 공약이었다. 대선 후보 이재명은 표의 등가성 보장하는 선거제 개혁’ ‘비례대표 확대’ ‘비례대표제 왜곡하는 위성정당 금지등 거대 양당의 기득권을 타파할 정치개혁 공약을 제시하고 정권이 아닌 정치교체를 약속했다. 노회찬이 말한 “50년 동안 썩은 판을 바꾸겠다는 멋있는공약이었다. 그런데 2년 만에 이재명은 다가오는 총선의 유불리를 잣대로 연동형과 병립형을 놓고 저울질한다.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지난해 12월 말 김건희대장동 50억 클럽특검법, 이른바 쌍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윤 대통령은 법안이 정부로 이송되자 바로 재의요구권을 행사해 국회로 돌려보냈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는 특검 거부에 관한 자신의 소신을 피력했다. “특검을 왜 거부합니까? 죄지었으니까 거부하는 겁니다.” 그리고 2년 만에 윤 대통령은 자기 배우자의 유불리를 잣대로 주판알을 튕겼다. 전형적인 소인의 행태다. 이재명은 선택해야 한다. 견리망의인가, 견리사의(見利思義)인가?

 

얼마 전 <이재, 곧 죽습니다>라는 드라마를 봤다. 주인공 이재12번의 죽음을 겪으면서 그때마다 다른 삶이 물고 물리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곧 죽습니다라는 제목을 보니 우리가 삶에서 종종 부딪치는 중요한 선택과 죽음의 관계가 떠올랐다. 가톨릭교회에서 널리 알려진 피정 안내서로 예수회를 창립한 이냐시오 데 로욜라가 쓴 <영신수련>이란 책자가 있다. 이냐시오는 <영신수련>선택을 위한 길잡이에서 선택을 잘하려면 마음의 눈이 맑아야 한다고 강조한 후 좋은 선택을 하는 방법으로 죽음의 상상을 제안한다. 결정하기 어려운 중대한 선택일 경우, 지금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상상하고 그때 했을 선택을 바로 지금 하라는 것이다. 이제 곧 죽는데 이익이 무슨 소용인가, 죽을 때 후회할 선택은 하지 말라, 이런 뜻이다. 본래의 삶을 살려면 인간은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직시하라고 했던 마르틴 하이데거,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함정을 벗어나는 최고의 길이라 했던 스티브 잡스, 모두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죽음의 상상은 좋은 선택의 관건인 자기 이익에서 멀어지는 데 효과가 뛰어나다.

 

대의명분 앞에 무엇을 망설이나

이재명의 마음은 연동형 고수와 병립형 회귀 사이에서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널뛰기할 것이다. 마음의 눈이 맑지 않다는 신호다. 이냐시오는 이런 때 이전의 선택을 절대 변경하지 말고 고수하라 권고한다. 모의실험 결과 총선에서 병립형 비례제가 민주당에 유리하다고 한다. 그러나 국민에게 한 약속을 저버리고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무신불립(無信不立), 정치인은 국민 신뢰 없이 설 수 없다. 선거제 선택은 이번 총선보다 다음 대선에 더 큰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그래도 총선에서 지면 어쩌나 걱정된다면 지난 총선에서 얻은 180석으로 무얼 했는지 반성부터 해야 한다. 의석수도 중요하지만, 대의명분과 국민 신뢰는 더 중요하다. 민주당이 다수 의석으로 밀어붙인 검수완박공수처가 지금 어떤 꼴인지 보라. 총선 결과에 상관없이 국민의힘도 다음 대선을 의식하는 한 제멋대로 하지 못한다. 연동형 비례제로 거대 양당 독식 체제를 깨고 다당제의 기틀을 놓는 것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질적으로 바꾸는 일이다. 이 대의명분 앞에서 무얼 망설이나?

 

이렇게 얘기해도 눈앞의 유불리에 좌고우면하는 걸 보면 <이재, 곧 죽습니다>에서 죽음역을 맡은 박소담의 말이 자꾸 떠오른다. “꼭 인간들은 죽은 후에 살려고 발버둥 친단 말이야. 살았을 때 그렇게 좀 살지 그랬어.” 올해는 그렇게 좀사는 사람이 많았으면, 견리사의의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 경향 2024.01.14.

 

 

정당은 정당일 뿐이다

오는 15(현지시간) 열리는 아이오와 코커스를 시작으로 미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된다. 이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 미국인에게 우리 정당이 지는 것은 단순히 내가 원하는 정책이 반영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 인종, 사회적 지위와 도덕적 기준 등 자신의 모든 정체성이 그 한 표에 담겨 있다. 그러므로 선거 결과에 승복 따위는 할 수 없다. 우리 정당의 패배는 곧 나의 실존에 대한 부정이기 때문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정치학 교수인 릴리아나 메이슨은 이를 두고 정당이 그 사람의 메가 아이덴티티”, 거대 정체성이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람은 무수한 정체성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다. 미 중부 지역에서 나고 자란 기독교 백인 남성이면서 부자 증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노동계급일 수도 있고, 남부 출신이지만 지금은 동부에 살고 있는 무신교 흑인 여성이면서 임신중지에 찬성하는 금융계 종사자일 수도 있다. 이처럼 인종·젠더·계급 등 여러 정체성이 교차하는 어느 한 지점에서 정치적 입장이 형성되고, 그것이 정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는 것이니 분명 정당도 자신을 정의하는 특징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메이슨의 말처럼 정당이 그 자체로 거대한 정체성 집단이 되는 경우다. 원래 정당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공동의 정책적 대의를 위해 모인 교집합이다. 빈곤을 퇴치하고, 재난 방지 대책을 세우기 위해 반드시 같은 정체성을 공유할 필요는 없다. 내가 생각하는 정책의 우선순위와 정당이 정한 우선순위 사이에 극복할 수 없는 간극이 있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더 많은 교집합을 가진 다른 정당으로 옮겨갈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변화하는 지지자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정당 스스로가 바뀌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몇년 사이 미국에서는 정책이 아니라, 정체성과 정당이 일체화하는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4년제 대학 학위가 없는 백인은 1990년대 초까지 두 정당 사이에 균등하게 분포했지만, 현재 이들 중 자신을 민주당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양당 내 기독교인의 비율은 비슷했지만, 지금 기독교인은 자신을 공화당원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미국에서는 교회에 가는 대신 정치 유튜브에 몰두하는 복음주의 개신교 유권자층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들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가 아니라 미국을 타락시키는 민주당을 물리쳐줄 도널드 트럼프이기 때문이다. ‘공화당 지지자라는 정체성이 다른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상위 정체성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양한 이유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모든 불안감과 염원을 트럼프의 공화당에 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이슨은 백인우월주의, LGBT와 이민자에 대한 반감 등은 미국 내에서 언제나 존재해 왔던 것이지만 이들이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된 경우는 많지 않았다면서, “트럼프가 여러 정치적 스펙트럼에 흩어져 있던 사람을 거대 정체성으로 뭉쳐내는 피뢰침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정체성이 정당으로 수렴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가. 정당의 위기와 나의 위기가 동일시된다. 트럼프가 기소되는 것은 트럼프의 문제여야 마땅하나, 그것은 우리 모두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다보니 정당을 지키기 위해 오히려 나의 소신에 침묵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미국인의 80%는 부자증세에 찬성하고 69%는 임신중지 합법화에 찬성하지만, 이는 부차적 문제가 된다.

 

오히려 선거는 다수결로 정할 수 없는 주제를 놓고 벌이는 전쟁으로 변질된다. ‘어느 인종이 더 나은가’ ‘어떤 종교가 더 가치 있나처럼 타협할 수도, 승복할 수도 없는 문제를 놓고 표 싸움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혐오는 정치의 이름으로 사회적 제약에서 자유로워진다. 스탠퍼드대 정치학 교수인 샨토 아이엔가는 인종과 종교, 젠더처럼 누군가의 정체성을 공격하는 것은 사회적 규범의 제약을 받지만,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압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수단이 목적을 대체할 수 없는 것처럼, 정당이 궁극적인 정체성이 될 수는 없다. “우리는 서로 다른 배를 타고 왔을지 몰라도 지금은 모두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마틴 루서 킹 의 말처럼 우리 대 그들의 싸움을 하고 있는 공화당 지지자도 민주당 지지자도, 사실 모두 같은 미국이라는 배에 타고 있지 않은가.

정유진 국제부장 | 경향 2024.01.14.

 

 

나쁜 정치

한동훈은 한국 정치에서 하나의 사건이다. 대통령의 젊은 측근이 어느 날 갑자기 집권당 대표이자 전권을 쥔 총선 사령탑이 되더니, 금세 유망한 정치 지도자로 부상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벌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 선두 경쟁을 한다. 윤석열 대통령 말에 시큰둥하던 사람들도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주목한다. 집권당 의원, 당원, 지지자들은 이 정치 신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기꺼이 그의 지도를 받아들인다.

 

정치 경험 없는 인물의 대선 직행은 실패한다는 불문율을 깬 윤 대통령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후배 검사를 통해 대선에 이은 또 다른 승리를 손에 쥐려는 꿈이다. ‘윤석열 성공 모델’, 재현될지 모른다. 한국 정치의 오랜 관행과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한동훈은 윤 대통령이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다. 하나는 보수층이 강조하는, ‘똑똑하다’ ‘젊다라는 긍정적 특성이다. 보수층은 그런 장점이 윤 대통령 단점을 보완해주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덜 똑똑하거나, 늙어서 정권위기가 온 게 아니다. 그게 중요했다면, 이준석 전 당대표를 붙잡아야 했다.

 

다른 하나는 야당에 대한 효과적인 공격이다. 한동훈처럼 야당, 야당 지도자를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 만드는 재능이 있는 정치인은 없었다. 그 재능은 그에게 정치팬덤을 안겨줬다. 그러나 그의 정치팬덤은 야당 지지율 상승은 막아도, 대통령·여당 지지율 하락은 막지 못했다. 윤 대통령 집권은 살아 있는 권력과 맞선 결과지만, 한동훈 부상은 죽은 권력 때리기의 부산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동훈이라는 사건은 정치적 양극화 현상이다. 정치팬덤은 두 진영으로 나뉘어 대립하는 정치적 양극화의 연료이며, 양극화는 정치팬덤에 영양분을 제공한다. 야당 공격, 팬덤, 양극화는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양극화 세상에서는 정치 유망주로 성장하고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비전, 정책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부정적 감정 유발만으로 충분하다.

 

이 현실에서 정치는 별 쓸모가 없다. 한동훈은 선당후사를 선민후사로 바꿨다. 민심을 강조하는 수사학으로서는 문제없지만, 그가 정당을 정치의 주체로 인식했으면서도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권력자는 흔히 국민의 이름으로 전횡을 해왔다.

 

윤 대통령도 국정을 정치나 이념으로 하지 않겠다고 여러 번 말했다. 정말 그는 대화 거부, 일방통행, 야당 공격과 전 정부 비난, 국회 무시로 자기 말을 실행하고 있다. 검찰총장보다 더 강한 대통령 권력이 정치를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정치는 귀찮고 까다로운 일이라고 느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윤 대통령과 달리, 한동훈은 나름대로 정치 감각도 있고, 정치적 제스처에도 능하다. 그러나 지지자와 사진 찍기, 재래시장에서 떡볶이 먹기, 1992 맨투맨 티셔츠 입기는 정치 흉내다. 정부 실정 외면, 야당 조롱도 정치가 아니다. 그게 정치라면 나쁜 정치다.

 

지금 해야 할 것은 정치하는 척하는 게 아니라, 정치하는 것이다. 정치는 이견을 다루는 일이다. 다양한 이해와 의견을 조정하고 타협하며 합의를 만드는 게 정치다. 윤 대통령이 당면한 인구소멸, 지방소멸, 경제불안,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은 모두 야당을 존중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그 반대로 했고, 결국, 국정위기가 왔다. 윤석열 집권은 성공 모델이 아니라 실패 모델이다.

 

한동훈은 윤석열 실패를 피할 수 있을까? 지금 그는 이기는 정당을 목표로 뛰고 있다. 야당이 가진 권력을 가져오면, 의회권력만 추가하면 위기가 사라질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그러나 양극화 상황에서 승리는 정치 지도자의 비전이 될 수 없다. 승리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승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승리는 상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최면을 걸어서라도 쟁취하고자 하는 그 무엇이다. 이런 혐오 경쟁에서 승리는 상대에 대한 적대 행위를 정당화해준다. 승리, 새로운 대결의 신호다. 정치 부재와 그로 인한 삶의 위기가 지속될 것이다. ‘동료 시민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많은 과제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표류할 것이다. 이렇게 승리는 재난의 씨앗이 된다. 통치 불가능성에 빠진 윤석열 정부가 증명한다.

 

패배로부터 얻을 것은 있지만, 승리로부터 얻을 것은 없다. 누구의 승리도 축하해주고 싶지 않다./이대근 우석대 교수 경향 : 2024.01.15.

 

부자 포퓰리즘의 정치공학

감세 포퓰리즘에 대한 비판이 뜨겁다. 그럴 법도 하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발표된 것들 중 당장 기억나는 것 몇 가지만 들어보자. 결혼 증여세 부과 기준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상향,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기준 10억원에서 50억원으로 상향,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다주택자 중과세 폐지 등이 줄줄이 발표되었거나 의제로 제기되었다. 그냥 감세가 아니다. 부자 감세이다. 유리지갑을 호소하는 갑근세 납세자들이나 저소득층을 위한 감세가 아니라, 그야말로 부자 감세라는 점을 진보매체 보수매체 할 것 없이 모두 지적하고 있는 판이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이 있다. 그냥 폭넓게 고소득층·자산계층에 유리한 방향으로 세제를 개편하는 큰 틀에서의 두루뭉술한 부자 감세 같은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소득과 자산이 얼마 이상 되는 사람들에게 정확히 몇 %의 이익을 안겨준다고 하는 핀셋감세이다. 정부 재정에 구멍을 내는 길은 무책임한 지출 증대만 있는 게 아니다. 400조원을 예상했던 2023년 세입에서 결손은 50조원이 넘을 것이 확실하다. 이런 재정 구멍에도 감세 드라이브이다. 가히 감세 포퓰리즘이라고 할 만하다.

 

이를 두고 경제 정책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올해 있을 총선을 대비한 부자 감세의 선거 전략이라는 지적도 많이 나와 있다. 그러니 이 글에서는 다른 문제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부자 감세와 감세 포퓰리즘이 결합된 부자 포퓰리즘이 어떻게 선거 전략으로 성립할 수 있는가이다.

 

언뜻 보면 이해하기 힘든 형용모순의 용어이다. 어떻게 부자를 대상으로 포퓰리즘을 선동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식의 감세에 소수 부자들은 표를 던질지 모르지만, 국민 다수에게 인기가 있을 만한 정책은 결코 아니다. 노골적인 부자 감세 정책에 대한 서민 대중의 보복이 두렵지도 않은가? 인구의 몇 % 되지도 않는 부자들의 표를 얻으려다 되레 훨씬 더 많은 이들의 반감으로 역풍을 맞을 위험이 높은데, 이게 과연 좋은 선거 전략이 될 수 있을까? 될 수 있다고 본다. 게다가 아주 효과적이고 훌륭한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전환을 전후해 벌어진 정당 정치 및 대의제 민주주의의 변질을 역사적으로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아주 옛날은 말고 대략 2차 대전 이후의 미국 정치 상황 정도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그때까지만 해도 선거 때마다 각 정당의 전략은 가급적 국민 통합적인 의제를 내걸어 다수를 획득한다는 덧셈 정치에 가까웠다. 민주당의 케네디 대통령은 물론 공화당의 아이젠하워 대통령 또한 선거 때마다 야심 찬 계획과 새로운 전망들을 내세워 표를 얻고자 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전통적인 지지층뿐만 아니라 중도층의 표를 얻고, 나아가 가능하다면 상대방 지지층의 표까지 가져오고자 했던 것이다.

 

부자감세, 효과적이고 훌륭한 전략

이러한 교과서적 전략은 1960년대 말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이라는 문제적정치인의 등장으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생각해보라. 대의제 민주주의는 고전적인 직접민주주의가 아니다. 후자라면 전 인구의 51% 이상에게 동의를 얻어야 권력의 정당성을 쥘 수 있지만, 전자라면 국민들의 대표를 뽑는 투표와 선거라는 복잡한 과정에서 실제로 투표장에 나온 이들이 던진 표 중 최대 득표라는 인위적인 다수가 되면 그만이다.

 

닉슨은 갈라치기 정치의 원조가 된다. 딱딱한 바닥에 사탕을 내던지면 두 쪽이 나게 되어 있고, 똑같은 크기로 갈라지는 법은 없다. 두 조각에서 더 큰 쪽을 가진 편이 승자가 되는 게임이 바로 선거라는 것이다.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굳이 표를 더 많이 얻으려 통합적인 이슈와 의제를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닉슨은 그전 정치인들과 달리 정치를 국민 통합의 계기로 보지 않았다. 그는 정치란 적과 친구의 구별이라고 했던 카를 슈미트의 이론을 현실 전략으로 구현한 인물이었다. 1960년대 후반 가장 뜨거웠던 국민적 쟁점이었던 베트남 전쟁과 흑인 민권 문제에 대응하여 자신을 지지할 보수파 백인층을 이른바 침묵하는 다수의 이름으로 호명하여 결집시켰다. 그리고 그들 중 다수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하지만 반대쪽은 절대로 찬성할 수 없는 정책들을 (예를 들어 임신중지 문제) 내걸어서 국민을 두 쪽을 내고 숫자상 우위를 점하는 전략을 구사하였다. 1980년대 영국과 미국에 들어선 대처 정권과 레이건 정권에서 이러한 닉슨식 전략은 또 한 번 중요한 변형을 거친다. 딱딱한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사탕이 꼭 두 쪽으로 쪼개지라는 법은 없고,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파편으로 산산조각이 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승자가 되기 위해 제일 큰 덩어리를 차지하는 데 필요한 표의 숫자도 훨씬 줄어든다. 여기서 포스트민주주의시대의 새로운 갈라치기 정치가 등장한다. 이제 정당들은 닉슨 시대와 또 달라졌다. 아주 예민하고 분열적이지만, 동시에 더욱 골치 아프고 더욱 복잡한 쟁점들을 꺼내든다. 그러면 사탕은 찬성 집단과 반대 집단에 더하여 무관심·무의견 집단까지 세 조각으로 갈라지게 되어 있다.

 

이 지점에서 필승 전략이 나온다. 무관심·무의견 집단을 가급적 크게 만드는 것이 좋다. 그리고 나머지 국민 가운데 반대 집단은 비록 절반 이상의 규모라고 해도 그 분노와 반대의 크기가 들쭉날쭉하고 조직도 되어 있지 않아 투표장에서의 의사 표현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하면 된다. 반면 찬성 집단은 비록 숫자가 적다고 해도 아주 견결하게 결집해 반드시 투표로 연결시키면서, 그들이 부자 집단이라 돈이나 다른 자원이 많다면 자발적인 기부와 적극적 활동까지 기대할 수 있게 된다.

 

대중 포퓰리즘의 통념도 깰 필요

이제 왜 부자 포퓰리즘이 성공적인 선거 전략이 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핀셋 부자 감세는 경제적 합리성으로만 생각하면 당연히 국민 다수에게는 인기가 없는 정책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얼핏 보면 효과적인 선거 전략이 되기 힘들다. 하지만 대의제 민주주의에서는 인위적 다수를 차지하면 그만이다. 깨진 사탕 조각에서 가장 큰 쪽을 차지하면 그만이다. 먼저 알쏭달쏭한 경제학 논리를 구사하여 부자들에게 세금을 깎아주면 그게 왜 국민 전체에게 이익이 되는지, 왜 국민 전체가 더 잘살게 되는지 길고 복잡하게 설명한다. 부자 감세에 대해 막연하지만 뭔가 아니다 싶었던 이들은 전문가들의 말발에 밀려 무관심층으로 떨어져 나간다. 그래도 살아남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이들이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반대자들은 파편화되어 있지만 찬성자들은 단결하며 조직된다. 부자 감세를 반기는 이들은 이런 정책 구사에 물질적·정서적·이성적인 세 차원 모두에서 호감을 갖게 되며, 이는 분명한 지지의 정서 및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다른 말로 하자면, 누진적인 기존 조세 체계에서 증세와 감세 정책이 도입된다면 부자들은 실제로 세금을 덜 혹은 더 내게 된다. 이들은 이러한 정책 변화에서 현실적인 고통 또는 편익을 얻는다. 하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이러한 정책이 도입되어봐야 실제로 세금을 크게 덜 혹은 더 내게 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세금 정책 변화로 인한 고통 또는 편익은 막연한 것일 수밖에 없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했다. 누가 더 효과적인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지는 분명하다.

 

좌파는 현상타파를, 우파는 현상유지를 원한다는 낡은 도식은 전 세계적인 우익 급진파의 대두로 깨어진 지 오래다. 이제 포퓰리즘이 헐벗고 굶주린 대중에 기대어 생겨나는 것이란 통념도 깰 필요가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의 다수란 실제의 다수가 아닌 효과적 다수’, 즉 선거공학에서 의미를 갖는 힘의 크기를 뜻한다. ‘부자 포퓰리즘은 성립할 수 있는 선거 전략이다. 진정한 다수가 각성하여 크게 하나로 통합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정치공학이 탄생하지 않는 한.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경향 : 2024.01.15.

 

우리의 대안을 조직하자

봄이 오고 있을까? 반도체 시장에 봄이 온다는 기사를 읽으며 중얼거렸다. 윤석열 대통령 말마따나 반도체는 우리의 생활이고, 안보고, 산업경제 그 자체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모든 나라에서 그렇다 보니 불확실성도 점점 커진다. 누구도 봄을 자신 있게 전망하기 어렵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질문은 다음에 있다. 반도체 시장에 봄이 오면 우리 삶에도 봄이 오나.

 

연말 윤 대통령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 고용률이 높고 실업률이 낮다는 성과를 내세웠다. 하지만 늘어난 취업자 수 분포를 보면 이런 모습이다. 음식점에서 일하는 청년, 돌봄일을 하는 여성, 여기저기 60세 이상 노인. 이들 중 자신이 어딘가에 자리를 잡았다고 마음 놓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임금은 낮고 일은 고된데 갑질도 빈번하다. 그래서 구직 포기 청년이 늘어나니 실업률이 낮다. 다른 한편으로는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앱을 쳐다보느라 봄을 기다릴 시간조차 없다. 일해서 빚 갚을 기회는 점점 사라지는데 빚을 갚아야 하니 닥치는 대로 일해야 한다. 왜 이렇게 됐을까.

 

2000년대 들어 삼성 반도체, 현대 자동차 등 세계로 뻗어가는 대기업의 모습은 한국의 저력을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았다. 그러나 수출이 증가하면서 중소기업도 살고 일자리도 늘던 구조는 1997년 경제위기 전후로 급속히 달라졌다. 재벌 대기업이 질주할수록 대기업과 중소기업 격차는 벌어졌고 고용 창출로 이어지지도 않았다. 정부마다 상생과 일자리를 되뇌었지만 경제 구조를 바꿀 엄두는 내지 않았다. 세계 경제 조건에 따라 수출 대기업은 오르락내리락했지만 다른 모든 흐름은 말라갔다.

 

대신 가계부채가 흘렀다. 정부 정책과 금융사의 동기가 만나 가계대출이 증가했다. 고소득층은 정부가 부동산시장을 키워준 덕분에 자산을 불릴 수 있었다. 저소득층은 달랐다. 각종 서민금융정책은 빈곤의 금융화를 이끌었다. 주거비, 생활비, 교육비를 감당하느라 대출이 급했던 사람들, 자영업으로 살길을 찾아보려고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빚에 갇혔다.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뇌관이 되었다. 경제위기라고 복지가 후퇴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진했다. 단 시장으로 갔을 뿐이다. 아동 보육, 노인 장기요양 등 제도를 강화해도 삶이 아니라 시장을 지원하게 되는 구조다. 돌봄노동자는 저임금에 시달리고 주 돌봄자는 돌봄시간을 계산하면서 시간제 일자리를 알아본다.

 

거대 양당은 우리 삶을 위태롭게 만들어온 정책들에서 지나치게 닮아 있다. 그래서 더 시끄럽고 언론에 날카롭다. 대안이 달리 없으니 자신이 더 낫다고 주장할 방법이 상대를 깎아내리는 것밖에 없다. 여기에 질린 사람들에게 손 흔들며 3지대에 정치인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념은 같고 인물만 달라진 정당이 기득권 양당을 깎아내리는 것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사회운동은? ‘기성 정치권을 깎아내리는 것밖에 할 수 없다면 다를 바 없어질 텐데. 여기에서 말문이 막힌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은 긴 시간 동안 서로를 악화시키며 구조화된 문제들이다. 사회운동도 선뜻 대안을 내놓기 어렵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를 직시하지 않고 대안이 불가능하다면 찾아나서야 한다. 봄을 기다리는 대신 불러오자는 이들과 체제전환운동포럼’(gosystemchange.kr)을 준비하고 있다. 부족한 질문을 서로 채우며 함께 토론하는 시간이 기대된다. 노동의 권리를, 돌봄의 관계를, 지구와 뭇 생명에 대한 감각을 확장하려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모이면 서로 발견해주는 것이 있으리라.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진단하며 낡은 것은 가고 새로운 것은 오지 않았다고들 말한다. 거꾸로는 아닐까. 새로운 것은 와 있는데 낡은 것이 가지 않았다면? 대안을 조직하지 않으면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대안을 조직하자.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경향 : 2024.01.15.

 

 

간토학살 100주기 지나도록 특별법 뭉갠 국회는 반성하라

지난 1227일 일본을 방문한 김진표 국회의장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만나 100년을 맞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한 진상 규명과 한국인 유골 봉환에 대한 일본 정부의 전향적 검토와 적극적 협조를 요청했다. 국회 수장이 일본 총리를 만나 간토 학살 문제를 제기한 것은 마땅히 주목받아야 한다. 19239월 조소앙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총장이 조선인 학살에 대한 항의 공문을 보낸 이래, 100년 만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김 의장의 행보는 선후가 바뀌었다. 간토 학살 100주기를 맞아 지난해 3월 여야 의원 100명이 발의한 간토학살진상규명특별법안은 여야의 무성의로 인해 아직 국회 행안위에 계류 중이다. 이대로 간다면 특별법안은 19대 국회 때처럼 21대 국회에서도 회기만료 자동폐기 운명을 맞을 수 있다. 김 의장은 먼저 국회의 특별법 제정을 확실히 하고, 진상규명에 대한 일본 정부의 협조를 요구했어야 했다.

 

1948년 유엔총회는 제노사이드 협약을 채택했다. ‘인종학살을 의미하는 제노사이드를 인류가 단호하게 대응해야 할 범죄 행위로 규정했다. 간토 조선인 학살 역시 명백한 제노사이드 범죄다. 그런데 이 제노사이드의 완결적 형태가 기억의 제노사이드인 역사 부정론이다. 자신들의 범죄 행위를 역사에서 지우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1923년부터 사건을 은폐했다. 지금도 관련 자료의 존재를 부인한다. 100년 전 시작한 기억 제노사이드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지난 1214일 마이니치 신문이 보도한 조선인 학살 육군성 보고 문서를 포함, 2009년 중앙방재회의 보고서, 간토 계엄군 사령부 상보, 피살 조선인 813명을 명기한 사이토 마코토 조선 총독 극비 문서 등 연이어 발견되는 일본 정부 문서가 알려주는 것은 실재 역사로서의 간토 조선인 학살이다. 도쿄, 군마현, 가나가와현, 사이타마현, 치바현에 있는 관련 증언과 기록은 차고도 넘친다. 지난해에 아사히와 마이니치, 교도통신 등 매체가 조선인 학살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일본 정치인과 시민들이 각종 추도 모임에 줄을 이어 참여한 이유다.

 

간토 학살 진상규명 및 규탄 운동은 항일투쟁기 재일조선인에게 가장 중요한 민족운동이었다. 학살 다음 해인 1924년 오사카 나카노시마 공회당 조선인 학살 규탄대회에는 30명의 보고자가 연단에 올랐고 참석 청중은 7천 명에 달했다. 이후 매해 91일은 이 천인공노할 사건을 기억하는 날이었다. 이 기억 운동은 일제 패망 이후에도 재일조선인과 일본 시민단체로 이어졌다. 진상을 밝히려는 재일동포의 연구 성과가 축적됐다. 일본 시민단체 일조협회는 도쿄 요코아미쵸 공원에서 50년 동안 추도식을 열고 있다. 또 다른 시민단체 봉선화는 100여 명 조선인이 희생된 아라카와 강변에 사무실을 두고 40년 동안 진상조사와 추도활동을 벌이고 있다. 일본 정부와 우익이 벌이는 기억 제노사이드에 대항해 100년 동안 이어지는 치열하고 끈질긴 기억운동이다.

 

다시 21대 국회로 눈을 돌린다. 100명 여야 의원이 발의한 간토학살특별법을 10개월째 행안위에 계류시키는 태만한 국회다. 국회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 기억운동을 외면할 것인가? 100년 동안 구천을 떠도는 조선인들의 원혼을 달래는 일에 이제라도 나서야 하지 않는가? 천황제 족쇄에 묶여 전근대에 머물고 있는 일본, 이 이웃 나라를 보편 가치를 공유하는 시민사회 국가로 견인해야 하지 않겠는가? 국회에 엄중히 경고한다. 작금의 직무유기 행태는 일본 정부가 벌이는 기억 제노사이드 범죄행위에 동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태만한 국회를 기다리는 것은 준엄한 역사의 심판이다. 도쿄 요코아미쵸 공원 50년 추도식을 이어온 미야카와 야스히코 일조협회 도쿄도연합회장은 말했다. “간토 조선인 희생 100주기, 이제 싸움은 시작이다.” 심판은 이렇게 준비되고 있다. 국회의 반성을 촉구한다.

박덕진 l ‘시민모임 독립대표 한겨레 : 2024.01.16.

 

 

꿩의 긴 꼬리와 김건희 여사의 두문불출

동물 생태에 대한 연구가 깊어질수록 오랜 세월 사람들이 품어온 오해가 많이 풀리고 있다. 새가 머리가 아주 나쁘다는 것도 그런 오해 가운데 하나다. 서양 속담에 어리석은 타조는 적이 가까이 다가오면 머리를 모래에 파묻는다는 게 있다. 미국 클리블랜드 동물원이 2020311일 블로그에 올린 팩트체크글을 보면, 사실이 아니다. 타조는 모래에 얕은 구멍을 파서 둥지를 만들고 알을 낳는데, 하루에 여러 번 부리를 이용해 둥지에 있는 알을 뒤집는 것이 사람들에게 착각을 불러일으킨 것이라고 한다.

 

우리 속담에는 꿩은 머리만 풀에 감춘다는 게 있다. 사람이나 맹금에게 쫓기는 꿩이 머리만 풀 속에 처박고 안심하고 있다가 잡힌다는 것이다. 정말 꿩이 어리석어서 그런 걸까? 축산기술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 꿩은 수컷(장끼)의 경우 몸무게가 평균 1.5에 이르는데, 한쪽 날개의 길이는 25밖에 되지 않는다. 잘 날지 못하고, 오래 나는 건 더 못한다. 위험을 피하기 위해 숨는 쪽을 택하기 쉽다. 꿩은 풀숲을 헤치고 다니기 쉽게 몸이 날씬하고 길쭉하게 진화한데다, 장끼의 화려한 꼬리는 길이가 50가 넘어 감추기가 매우 어렵다. 그렇다면, ‘어리석음보다는 고사성어 장두노미’(藏頭露尾)처럼 머리는 감추지만 꼬리까지 흔적 없이 감추기의 어려움에 초점을 맞추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달 15일 네덜란드 순방에서 귀국한 이후 두문불출하고 있다. ‘디오르 백김건희 특검법정국에서 관심을 피해보자는 뜻일 게다. 김 여사는 과거에도 그런 적이 있다.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허위 경력, 논문 표절 등 의혹이 퍼지자 20211226일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하고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했다. 그 뒤 선거 때까지 두문분출했다. 말이나 행동, 패션이 입방아에 오르는 걸 한동안 피할 수 있었다.

정남구 논설위원 | 한겨레 2024.01.16.

 

우크라이나, 미국 실패의 그림자

950~1953년 한국전쟁이 그랬듯이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의 성격 역시 복합적이다. 한국전쟁은 본래 내전이라고 할 수 있는 두 분단국가의 무력 갈등이었다가, 국제전 즉 중-소블록과 미국 중심 서방블록 사이 대결로 비화했다. 반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애당초 과거 제국을 복원하려는 푸틴의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푸틴의 속전속결 계획이 실패로 끝나고 미국과 그 동맹국들도 관여하게 되면서, 이 전쟁도 벨라루스와 북한, 이란 등 지원을 받는 러시아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사이의 국제전, 즉 간접적으로는 미-러 전쟁의 모습도 아울러 띠게 됐다.

 

한국전쟁과 비교를 계속하자면, 이번 미-러 간접전에서 미국은 70여년 전과 비교하면 훨씬 더 압도적 힘의 우위를 보유하고 있다. 군비 지출만 봐도 미국의 군사 예산은 러시아보다 10배 정도 많다. 미국산 무기의 위력, 예컨대 미국산 대포들의 사정거리가 러시아의 그것보다 더 길다는 점은 러시아 군인들도 인정한다. 그런데도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미국은 훨씬 더 약한 러시아를 상대로 그 어떤 유의미한 승리도 거두지 못했다.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 비율(18%)은 줄긴커녕 오히려 약간 늘어났다.

 

미국이 간접 참전에 나선 목표인 러시아 군대 약화하기역시 뜻대로 되지 못했다. 전선이 교착된 진지전이 되고 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현장에서 현재 우크라이나군보다 5배 더 많은 포탄을 매일 사용하는 러시아 군대가 약화했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2022224일 이후 초강대국 미국으로부터 1000억달러(134조원) 상당의, 역사적으로 파격적인 규모의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가 미국만큼의 재력이나 군사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러시아를 이기지 못하고 수세에 몰리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전쟁의 승패는 여러 레벨에서 결정된다. 전장에서의 전술·전략 등은 가장 기초적 레벨이다. 한데 전장에서 이기려면 보급이 뒷받침돼야 한다. 즉 군사물자 증산 등 생산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또한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계속 조달받자면 교역을 지속해야 하기에, 상대국을 외교·교역 차원에서 성공적으로 고립시켜야 전쟁 승리의 가능성도 커진다. 그리고 자국은 물론 제3국 국민, 나아가서 전쟁 상대국 국민에게까지 설득력 있는 전쟁 목표 등에 대한 서사를 제시해야 여론 싸움에서 이기고 상대국 민심을 교란해 그 정권의 입지를 약화할 수 있다.

 

이 네가지 레벨에서 여태까지 우크라이나 쪽에서 결정권을 행사해온 것은 미국이었다. 그리고 이 네가지 레벨에서 미국이 여태까지 보인 것은 주로 참담한 실패뿐이었다

 

전장에서의 전략·전술을 이야기하자면, 우크라이나에 전세가 아직 다소 유리했던 2022년 말 우크라이나군은 남부 지역 탈환, 그리고 크림반도로 진격 계획을 펜타곤(미 국방성)에 제출했다는 점부터 언급해야 한다. 아직 남부에서 러시아의 방어선이 구축되지 않았던 그 시점에서, 미국산 우수한 무기로 무장하여 그때만 해도 사기가 높았던 우크라이나군은 어쩌면 푸틴에게 역사 교과서에 오래 남을 완패를 안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데 미-중 갈등 등 여러모로 긴장이 고조된 시국에 푸틴을 너무 궁지에 몰면 안 된다고 판단한 펜타곤은 이 계획을 수락하지 않았다. 상위 파트너인 미국의 이런 의중 앞에서 우크라이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대신 북부 지역 탈환에 초점을 맞췄고, 지난해 여름에야 남부 지역 탈환을 위한 대반격을 시도했지만 이미 구축된 러시아의 방어선에 막혀 크나큰 손해만 입고 말았다. 푸틴과 타협의 여지를 남기고자 하는 미국의 일관성 없는 태도는 결국 우크라이나 병사들의 엄청난 희생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말았다.

 

그 희생을 더 크게 만든 것은 대포의 위력에 의존하는 진지전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전쟁물자가 된 포탄 등 증산에 미국이 계속해서 실패한 점이다. 1년에 150여만발의 포탄을 생산하고, 거기에 벨라루스나 북한으로부터 포탄을 수입할 수 있는 러시아에 동등하게 맞서려면 우크라이나도 이 정도의 포탄이 필요하다. 한데 지금 미국이 1년에 생산할 수 있는 포탄 수는 336천발에 불과하고, 유럽 전체의 포탄 생산능력 역시 그 정도 이상이 안 된다. 러시아는 여전히 국영기업인 소련 시대의 포탄제작소를 보유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1~2년 뒤 끝나고 나면 포탄 수요가 급감할 것이라고 내다보는 구미권 민영 군수회사들은 손쉽게 포탄 증산에 투자하지 못한다. ‘이윤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이처럼 전시 상황에서 푸틴식 국가자본주의를 이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무기 제조에 필요한 부품이나 기계 등을 중국이나 걸프 지역 국가 내지 튀르키예 등을 통해 수입하고 있는 러시아의 교역망을 차단해야 했다. 한데 준동맹인 중-러 관계는 그렇다 치더라도, 중동에서 이스라엘과의 동맹을 최우선시하는 미국은 튀르키예나 걸프 국가들에 대러 제재에 가담해야 할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했다. 가자지구에서 제노사이드에 준하는 이스라엘의 만행이 지속되고 있는데도 전혀 바뀌지 않는 미국의 친이스라엘 편향 외교는, 푸틴과 중국이 중동을 포함한 글로벌 사우스의 민심을 손쉽게 획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거기에다 독재자 푸틴이 파괴한 러시아의 민주주의 회복도 아닌 러시아의 국력 약화를 전쟁의 목표로 공공연하게 제시한 미국은, 러시아의 일부 친서방 중산층까지도 전시 상황에서 푸틴을 조건부 지지하게 하였다.

 

푸틴의 침략에 맞선 우크라이나 민중의 상상을 초월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종속, 전시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적 경제의 한계, 그리고 미국의 근시안적인 국가주의적 접근과 세계체제 주변부에서 미국의 영향력 쇠락은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이 실패한 원인이 됐다. 이 모든 상황이 우리가 결국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교훈이다.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 한겨레 2024.01.17.

 

 

이해도, 용서도 안 되는 미국 자본주의 이야기

11월 비수기 극장가에 나온 뜻밖의, 예기치 못했던 대작 플라워 킬링 문은 향후 저주받은 걸작이 될 공산이 커 보인다. 러닝타임이 206분이다. 3시간 26분짜리 영화다. 1980년에 개봉됐던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천국의 문219분이었다. ‘천국의 문을 만든 유나이티드 아티스트(UA)는 이 영화 한 편으로 회사 문을 닫았다. ‘플라워 킬링 문에 제작비를 댄 애플TV가 그럴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다만 분명한 것 한 가지는 미국 근현대사의 흑역사를 파헤친 작품의 경우 평가와 상관없이 대중 관객들의 올바른 지지를 얻고 흥행 수익을 올리기까지는 늘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모든 역사(적 사건)가 다 그렇다. ‘플라워 킬링 문은 노장 마틴 스코세이지의 작품답게 미국의 역사를 새로 쓴 작품이다. 이 영화는 현대 영화사에 남을 작품이 될 것이다.

 

1920년대 미국 자본주의가 벌인 인디언 연쇄 살인극

 

국내 개봉 제목 플라워 킬링 문은 원제인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Killers of the Flower Moon)’을 개작한 것이다. 제목을 바꾸면서 오히려 의미를 뭉개버려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플라워 문은 아메이칸 인디언인 오세이지족 언어로 5월을 의미하는 모양이다. 5월의 꽃이 만월의 달처럼 흐드러지거나 5월의 달이 만개하는 꽃처럼 풍요롭거나 해서 그렇게 붙인 모양이다. 그러니까 원제를 직역하면 플라워 문의 살인자들이고 이건 곧 ‘5월의 살인자들이라는 얘기인데 여기서 플라워 문은 아메리칸 인디언들, 특히 오세이지족을 지칭하는 바, 그렇다면 영화 제목의 원 뜻은 오세이지족 연쇄 살인사건이라는 뜻이 된다. 작품 이름을 개작하려면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하는 게 나을 뻔했다. 아니면 내일을 향해 쏴라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처럼 창의적인 제목을 붙이는 것이 낫다. 영화가 갖고 있는 정치적인 의미를 낮추고 탈색시키려 했던 의도였을까. 국내 배급사가 그만큼 정치(精緻)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메리칸 인디언 부족 중 하나인 오세이지족은 오클라호마 인디언 레저베이션(인디언 보호구역), 당시에는 인디언 준주(準州, Indian Territory)에 살았던 부족이다. 미국 근현대사에 있어 인디언의 역사는 참혹과 비극 그 자체이며 대체로 학살극이다. 우리가 즐겨 봤던 존 웨인의 이른바 역마차 서부극은 아파치와 코만치, 나바호 족들에 대한 살인극이자 인종차별 영화였다. 그들과 같은 운명은 아니었더라도 이번 영화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체로키, 크리크, 촉토, 세미놀, 치카소 같은 5개 부족의 경우는 백인사회의 하부 구조에 들어가 계급적으로 순종하며 동화된 케이스이다.

 

오세이지족은 원래 미시시피 지역에 살았으나 미 정부에 의한 강제 이주 절차에 따라 미주리와 캔사스를 거쳐 그 밑인 중남부 오클라호마 주에 살게 된 부족들이다. 특이한 것은 다른 부족과 달리 이들은 오클라호마의 땅을 자신들의 돈으로 매입해 소유권을 가지고 있었다. 땅을 가진 자들이라면 그 땅에 소속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당연한 바, 오세이지족은 자신의 오클라호마 땅에서 석유가 터져 나온 것이 행운이 된 동시에 재앙이 됐던 사람들이다. 영화 플라워 킬링 문은 행운보다 재앙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바로 그 재앙을 부른 백인들의 음모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는 내용의 작품이다.

 

백인 자본가들의 무법과 폭력이 횡행하던 시절

이 영화의 배경, 사건이 벌어지는 정확한 시기는 1918년에서 1924년 사이이다. 이때 벌어지는 살인극의 얘기를 다룬다. 1918년을 시작점으로 삼는 이유는 주인공 어니스트 버크하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전쟁에서 돌아오는 것부터 보여주기 때문이다. 1918년은 1차 대전이 끝난 해이다. 1924년을 콕 집어서 지칭하는 것 역시 영화 속에 캘빈 쿨리지 미 30대 대통령의 모습이 나오기 때문이다. 쿨리지가 아메리칸 인디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 바로 이때이다. 동시에 미국사에서 가장 악명이 높았던 존 에드거 후버Jr.가 최연소 FBI 국장이 된 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모든 살인 사건의 뒤를 쫓는 토마스 브루스 화이트 시니어(제시 플래먼스)는 텍사스 레인저 출신의 FBI 요원으로 나온다. 미국 FBI는 이때 비로소 전국 조직으로서의 시스템과 기능성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토마스는 자신들의 수사가 후버의 명령 때문이라고 말한다.

 

1920년대라면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한마디로 흥청망청의, 광기의 자본주의가 극에 달하던 시기였다. 돈이 넘쳐났다. 세기말적 사고도 풍미했다. 다다이즘이 확산됐던 때이다. 스콧 핏체럴드가 창조한 위대한 개츠비처럼 매일매일을 초호화판 파티와 함께 알코올과 약물로 일상을 보내던 시기이다. 계급의 양극화는 극단으로 치닫고 백인 자본가들에 의한 무법과, 집단 린치에 가까운 폭력이 버젓이 횡행하던 때였다.

 

1920년대 미국의 극단적 자본가들의 관심은 땅과 철도였다. 1차적으로는 텍사스의 거대한 농장에서 방목하던 소떼, 그 육식의 고기들을 미국 동부로 나르기 위해서였다. 유통망=철도망이 필요했고 그걸 깔기 위해서는 땅이 필요했다. 1920년대 미국의 미친 자본주의를 이루는 네 가지 요소는 토지/노동력/철강/자본이었다. 토지는 연방정부가 대 주고 최저임금의 노동력은 아메리칸 인디언이나 해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흑인들, 동부로 끊임없이 밀려들어 오는 이민자들이 원천이 됐다. 철강은 카네기 같은 자수성가형 인물,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노동자의 정체성을 비웃고 깔아뭉갠 카네기 같은 자본가(카네기의 노조 탄압사는 가히 역사적이다), 돈은 JP 모건 같은 금융가가 댔다. 연방정부가 철도를 깔고 자본에 허덕이면 자본가들이 국채를 사들이고 그걸 두 배, 세 배의 가격으로 되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기던 때가 바로 이때이다. 미국의 재벌 가문들 상당수가 바로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자본은 곧 신, 재산 증식 위한 살인도 그저 비즈니스일 뿐

 

영화 초입부에 주인공 어니스트 버크하트가 삼촌인 빌 헤일(로버트 드 니로)의 거대한 소 목장에 들어서는 모습을 부감 쇼트로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빌 헤일은 목장주이다. 빌 헤일은 자신의 주변 수하들을 이용해 오세이지족의 땅과 부를 가로챌 계획을 세운다. 어니스트는 좋은 먹잇감이다. 그가 홍인(紅人)도 마다하지 않는다면 오세이지 여인과 결혼시킬 생각이다. 순진한 조카 어니스트는 곧 빌 헤일의 장기 말이 돼 조금씩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니스트는 몰리 카일리(릴리 글래드스톤)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게 되는데 현명하고 우아한 인디언 여자 몰리는 그가 사기꾼 코요테인 것을 알면서도 잘생긴 남자라는 이유로, 또 어니스트가 어느 면에서는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와 결혼을 한다.

 

몰리에게는 세 자매가 있는데 언니인 아나, 그리고 두 동생 리타와 미니가 있다. 엄마 리지는 몸이 아프다. 이들 다섯 모녀는 엄청난 땅과 현금을 지니고 있다. 어니스트를 앞세운 빌 헤일이 원하는 것은 이들 여자가문의 돈이다. 인디언 여자가 죽으면 그녀의 배우자에게 재산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돈을 크게 먹어야 한다. 일가족의 돈을 한 사람에게 몰아야 한다. 엄마 리지는 곧 죽을 것이다. 막내 미니는 이유 없이 아프다.

 

도시 여기저기에서 이런저런 오세이지 인디언 사람들이 술과 약으로 죽어 가는데 그게 이상하게도 자연사처럼 보이지 않는다. 미니도 그 일환으로 보인다. 결국 미니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언니 아나는 총에 맞아 사망하며, 미니의 남편이었다가 나중에 리타의 남편이 되는(자신의 처형과 재혼한 셈) 빌 스미스는 새 아내 리타와 함께 누군가 설치한 폭탄으로 폭사한다. 몰리 카일리, 곧 몰리 버크하트는 심한 당뇨를 앓고 있고 구하기 힘든 인슐린으로 연명하고 있는데 언제부터인가 이 인슐린에도 뭔가 섞이고 있음이 감지된다. 몰리가()를 위시해서 오클라호마에 살고 있는 오세이지족, 석유로 떼돈을 번 인디언들에게 이상한 의문사가 바이러스처럼 번지기 시작한다. FBI의 후버 국장은 쿨리지 대통령의 명령으로 수사에 착수한다.

 

주인공은 사랑하는 아내를 죽여서라도 재산을 가로채야 한다는 악당 자본가인 삼촌의 꼬드김과 가스라이팅에 넘어간다. 그는 처의 일가를 죽이는 살인극에 동조하면서 그들을 죽이면서도 슬퍼하고, 슬퍼하면서도 음모에 휘말리는 우유부단함을 보인다. 역사에는 이런 인간들이 많다. 이해는 하지만 용서할 수 없고, 때론 용서는 돼도 이해는 절대 안 되는 인물들이다. 용서는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인간형이 낫다. 어니스트 버크하트은 용서받을 수 없다. 악당 자본가 빌 헤일은 더욱 그렇다. 빌 헤일 같은 인간들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자본의 시스템이 워낙 숭고하고 공고한 것이라 믿는다. 이들은 자본이 곧 선과 같은 것이라 믿는다. 그들 자본가는, 자신이 자본을 증식하는 행위에는 그 어떤 부도덕함이란 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건 그냥 비즈니스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때문에 자신이 벌이는 인간 이하의 살인극조차 종종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자본주의는 바로 그런 식으로 이루어졌다. 미국은 바로 그런 나라이다. 탐욕과 폭력으로 세워진 나라.

 

1920년대 광기의 자본주의, 현재와 미래에는 다를까?

마틴 스코세이지는 1920년대 배경의 영화를 통해 2023년 현재의 미국, 트럼프라는 광기의 시대를 거친 지금의 미국을 얘기하려 한다. 금광과 석유라는 옛날의 골드러시, 그 광기의 자본주의 시대나 코인과 주식, 코스피 지수에 휘둘리는 혼돈의 현대 자본주의 시대나 사실 그리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영화는 늘 과거에서 이야기 거리를 찾는다. 과거는 미래이고 미래는 늘 과거이다. ‘플라워 킬링 문은 바로 그런 얘기를 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를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이다.

 

플라워 킬링 문은 마틴 스코세이지가 자신의 전작들, 곧 마피아 영화인 굿 펠라스와 이민사를 다룬 영화 갱스 오브 뉴욕그리고 금융가 뒷얘기를 그린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를 뒤섞어 아예 새 상품으로 내놓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시네필들이라면 그 혼합과 창조의 요소들을 잘 찾아낼 것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 시민언론 민들레 2024.01.17.

 

 

대통령의 막말과 증식하는 폭력

애초에 그에게 품격 있는 언어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에도 막말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취임 후에는 미국 순방 중에 비속어를 사용하는 모습이 그대로 방송 카메라에 잡혔다. 심지어 대통령의 발언을 그대로 보도할 수 없어 ××들이”, “×××× 어떡하나라고 암호화해 내보내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물론 누구든 비속어를 사용할 수 있다. 나는 대통령이 교양 있고 단정한 말투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온건하고 교양 넘치는 언어가 누군가의 훌륭한 자질을 반영한다고 믿는 것은 계급적 편견에 불과하다. 투박한 언어 속에도 진심을 담을 수 있고, 어려운 사자성어를 쓰지 않고서도 상대방을 감화시킬 수 있다. 소위 못 배운 사람도 삶에 담긴 지혜를 나누고, 이제 겨우 한글을 뗀 할머니들도 아름다운 시를 쓴다. 대통령의 막말이 갖고 있는 문제는 그의 교양 없음이 아니라, 그 막말이 노골적으로 폭력, 증오, 적대를 추동하고 이를 정당화한다는 점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 시절 사람들이 우려했던 문제도 바로 그의 막말이 불러온 폭력이었다. 이것은 정치인과 공직자에게는 단순한 근심거리를 넘어 현실적 공포였다. 트럼프 취임 이전 의원들이 받았던 위협은 연 800여건 정도로 보고되었으나, 트럼프가 급부상하고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의 임기 첫해에는 위협 사건이 3천건을 훌쩍 넘겼으며, 마지막해에는 놀랍게도 거의 1만건에 달했다. 결국 그 폭력의 흐름은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의사당 난입 사태로 정점을 찍었으며, 지금도 살해 협박부터 총기 난사까지 정치적 동기에 기반한 폭력은 계속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트럼프와는 다른 색채의 막말로 갈등을 부추긴다. 그것은 바로 검사의 언어. 그는 자의적 법치 개념과 기득권의 이념을 휘두르며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선동한다. 자신의 이념에 부합하지 않는 이들, 정치적 입장이 다른 이들을 도덕적으로 열등하고 불법을 자행하는 자’, 처벌받아 마땅한 자로 명명하는 것이다. 심지어 피의자인 야당 대표를 만날 수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는 반대편을 불법적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증오에 권위를 부여하고 사람들의 적대감과 처벌 심리를 극대화한다. 그의 언어는 정치인의 막말이라는 돌림병을 가져왔고 온 나라에 갈등과 폭력의 불씨가 타오르도록 만들고 있다.

 

그는 감사에 앞서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을 이권 카르텔로 칭했고, 연구개발(R&D) 예산을 깎기에 앞서 학자·연구자들도 카르텔로 몰아붙였다. 정치적 입장이 다른 이들을 반헌법세력으로 범죄화하고, 신년사에서는 패거리 카르텔이라는 허구적 집단을 호명하며 이들의 처단을 외쳤다. 위법의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처벌과 폭력에 권위와 정당성을 부여하는 사전 작업이다. 덕분에 사람들은 자신의 적대심을 당연한 듯 언어적·물리적 폭력으로 표출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극우 유튜버들은 대통령의 말에 힘입어 종북 주사파를 재소환하고 있으며, 한 정치인은 대통령실 진입을 시도한 학생들을 사살해야 한다고 썼다. 국가를 위협하는 범죄자에 대한 자신의 분노는 도덕적이고 그에 대한 응징도 정당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 피습 사건의 범인은 구국 열망과 행동에 마중물이 되고자한다는 글을 남길 정도로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고 윤리적인 폭력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한동훈 위원장은 그냥 굉장히 이상한 사람이 굉장히 나쁜 범죄를 저지른 것뿐이라고 했지만 개인과 구조가 별개라고 보는 것이야말로 망상이다. 견해가 다른 이들을 공식 석상에서 범법자로 명명하고, 그들을 향한 멸시와 적개심을 표출하는 정치인의 막말은 전염 효과가 있다. 이는 증오를 퍼뜨리고 우리 사회 폭력의 총량을 증가시킨다. 이렇듯 만연해진 적대는 결국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도덕적 동기로 자행되는 폭력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극단적으로 분열되어 있는지, 어떤 갈등과 폭력이 잠재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징후다. 정치인들은 이처럼 비뚤어진 신념 체계를 바로잡기는커녕 더욱 고착시키고 있다. 더 많은 폭력이 터져나오기 전에 이 끝없는 막말의 증식을 멈춰야 한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과 정치인의 막말을 지적했던가. 부디 그들이 문제의 시급성을 인식하고 자신의 언행에 책임을 지길 바란다.

김정희원 |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수 | 한겨레 2024.01.19.

 

 

전쟁 위기 조성하고 주가 폭락에 당황하는 윤 정부

1998122, 클린턴 행정부의 윌리엄 코언 국방부장관이 방한하여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를 만났다. 한국이 극심한 재정난 속에서 IMF 구제금융을 받기로 한 어수선한 시기였다. 김대중 당선자를 만난 코언은 한국의 재정적 어려움이 국방비 삭감으로 이어질지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당시 김대중 당선자의 인수위원회는 국방예산을 10% 정도 삭감하기로 하고 예산 삭감하기로 하고 예산 삭감 계획을 다 짜놓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방문이 있고 나서 국방비 삭감은 없던 일이 되었다. 그 전 해에 한국에 대한 금융 지원에 난색을 표명하던 미국의 재무부를 상대로 한국을 도와야 한다고 설득한 장본인이 바로 코언 국방부장관이다. 한국의 재정난이 더 심해지면 국방비도 줄여야 할 것이며, 이는 한반도와 동북아 세력균형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김대중 정부 장관과 너무 다른 2024년 국방부장관

당시 코언의 배후에는 한국의 김동진 국방부장관이 있었다. 김 장관은 코언에게 편지를 보내 동맹을 지키기 위해 구제금융 지원에 코언 장관이 노력해 달라고 설득했다. 당시 월가의 무디스와 같은 신용평가 회사들은 한국의 재정위기뿐만 아니라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 등 코리안 리스크를 거론하며 한국의 신용을 저평가하고 있었다. 1994년의 한반도 전쟁 위기의 여파가 이어지던 김영삼 정부 마지막 순간은, 만일 한국 정부의 재정난이 더 심화되면 이를 기회로 북한이 도발할 것이라는 불안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1월 말에 국방부 차영구 정책실장을 비롯한 한국의 안보 관계자들이 월가로 파견되었다. 한국은 국방비를 줄이지 않을 것이며, 지금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은 잘 억제되고 있다는 걸 신용평가 회사에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언론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98년에 금융 위기에 처한 국가를 회복시키는 데 이처럼 국방부의 역할이 컸다.

우리가 천문학적 혈세를 군에 지원하는 이유는 전쟁을 억제하고 주변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여 한국의 국제 신용을 높이는 데 있다. 무역과 생산, 투자, 소비가 전부 추락하는 복합위기의 시기에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는 국가의 회복력을 도모하는 핵심 조건이다. 이러한 때 전쟁을 불사하는 강경한 대북 발언을 남발하다가 급기야 작년 11월에 남북 군사합의서를 무력화한 국방부는 1998년의 국방부와는 전혀 다른 존재처럼 보인다. 국방부는 멀쩡한 군사합의서를 무력화한 데 이어 올해 벽두부터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 대규모 함포 사격을 감행하고 강원도 철원에서 지상포 발사 훈련을 한 다음 이를 언론에 공개했다. 더 나아가 신원식 국방장관은 14일에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남한의 4월 총선을 앞두고 대남 테러를 할 가능성이 크다며 구체적으로 천안함 폭침과 같은 국지적 도발을 강행하거나 지대공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구체적인 도발 양상까지 묘사함으로써 한반도에서 전쟁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매우 효과적으로 전 세계에 알린 셈이다.

 

적대적 공존을 위한 남과 북의 주적연대

한편 북한은 15일부터 3일 간 서해 백령도와 연평도 일대에서 포 사격을 실시하였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작년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과 북을 적대적 교전국가로 규정하고 강경발언을 쏟아낸 데 이어 나온 실제 군사행동이었다. 남북 쌍방이 서북 해역에서 대규모 포격을 주고받은 다음에 합동참모본부는 이제 군사적 완충구역은 없다며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규모 응징을 결의했다. 우리 국방부는 한반도가 대만해협보다 더 위험한 분쟁의 열점이라는 걸 전 세계에 앞서서 알리고 다녔다. 국방부 본연의 책임이자 역할인 한반도 위기관리가 주변으로 밀려나고 오히려 위기를 조장하는 새로운 현상이다.

상황이 심각하게 전개되자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소 로버트 칼린 연구원과 지그 프리드 해커 교수는 111일에 ‘38노스에서 한반도가 19506월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더 위험하다는 분석을 실었다. 116일에는 1994년에 제네바 합의를 성사시킨 주역이었던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명예교수가 외교안보 전문지인 내셔널인터레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올해 (동북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주가 폭락으로 현실화된 코리안 리스크

긴장이 고조된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코스피 지수와 코스닥 지수가 올해 들어 19일까지 7.6%나 하락하며 지난해 11월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윤석열 정부가 연초부터 주식 공매도 금지 기간 연장,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증권거래세 인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지원 강화 등 별의별 총선용 대책으로 주가를 띄웠지만 한반도 지정학의 리스크에 따른 외국인의 대량 매도를 막지 못하면서 증시는 곤두박질쳤다. 증권가에서는 중국과의 무역 감소와 북한발 전쟁 위기가 그 원인으로 분석되었다. 1998년의 국방부가 한반도는 안정되어 있다며 평화의 메신저 역할을 했다면 지난 1년 간 윤석열 정부와 국방부는 전쟁의 메신저였다. 최근 경제 전문지들은 그간 코리안 리스크로 불리는 한반도 위기는 항상 주가에 상수로 반영되어 있지만 최근에는 증시를 흔드는 변수로 바뀌고 있다고 분석한다.

사태가 심각해질 조짐을 보이자 신원식 국방부장관은 16일에 KBS 전화 인터뷰에서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미국 학자들의 전쟁 위기 주장은 과장되었다고 진화에 나섰다. 작년에 윤 대통령과 신 장관은 번갈아 가며 한반도 전쟁 위기를 거론하면서 전쟁이 나면 북은 반드시 핵을 사용할 것이라며 핵전쟁을 예고한 바 있고, 오직 힘에 의한 평화를 외치며 북한을 끝까지 강력하게 응징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게 말하던 자들이 막상 코리안 리스크가 현실화되자 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미국 학자들의 주장을 폄훼하고 나섰다. 로버트 칼린은 30년 이상 미국 정보기관에서 북한을 분석하며 평양에만 30여회 방문한 정통 북한 전문가다. 해커 박사 역시 8번 북한을 방문하여 북한의 플루토늄을 직접 보기까지 한 최고의 북한 전문가다. 국제사회가 누구의 말을 더 믿겠는가. 게다가 미국 학자들의 주장은 적대와 혐오라는 반북 감정의 노예가 된 한국 당국자들의 말과 행동을 철저히 고려하여 나온 말들이다. 미국 학자들의 말을 원망하기에 앞서 그 빌미를 제공한 윤석열 정부의 책임을 간과하기 어렵다.

 

경제와 안보 간 딜레마 상황에 처한 윤석열 정부

4월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표를 얻으려면 부동산과 주식을 부양해야 하고, 반대로 북한과 적대관계를 고조시키려면 주가 폭락이라는 코리안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이런 딜레마에 빠진 윤석열 정부가 전쟁이 곧 터질 것처럼 호들갑 떨다가 이제는 거꾸로 상황을 진정시키려니까 말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경제와 안보는 날개 없이 추락하는 중이다.

최근 한반도 지정학의 비용은 분명 과거 전쟁 위기와 다른 점이 있다. 1994년이나 2003년의 전쟁 위기와 달리 지금의 한반도 지정학은 한국에 구조적으로 더 불리하며 경제적으로 훨씬 더 민감하고 치명적인 효과를 초래한다. 무엇보다 남과 북의 최고 지도부와 국방 당국이 직접 전쟁을 불사하는 강경 발언을 외치고 있다는 점도 과거와 다르다. 예전과 달리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크게 약화된 점도 큰 차이다. 더욱더 결정적인 차이는 북한이 실질적인 핵 보유국 대열에 진입했다는 점이다.

 

한반도 지정학 위기는 냉전 이후 지난 30여 년 간의 질서가 붕괴되고 새로운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시대에 안보 불안의 위험성이 크게 확대되는 중이다. 예전의 안보 불안이 평정을 되찾는 일정한 회복력으로 나름 코리안 리스크를 관리했다면 20241월의 상황은 분명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 이러한 상황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선거에서 북풍을 활용하려는 수구적 행태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과거 70여 년 간 북한의 위협을 정치에 활용해 온 세력으로 인해 치러야 할 비용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냉전 수구적 행태가 재현되는 한반도에서 4월 총선을 앞두고 전쟁의 위협을 심각하고 진지하게 고려할 때가 되었다. 남과 북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전쟁을 감행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힘을 과시하여 정권의 위신을 높이려는 남과 북의 경쟁은 한반도 위기관리에서 더없이 무능하다. 게다가 군사적 완충구역이 사라진 지금은 이미 심리적으로는 전쟁 상태에 돌입하였고, 이것이 우발적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은 커 보인다. 우발적이고 국지적인 충돌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교육원 객원교수 | 시민언론 민들레 2024.01.20.

 

어떤 이대남에 주목해서 호들갑 떨 때가 아니다

총선이 다가온다. 앞다투어 청년층에 구애를 펼치던 지난 대선의 풍경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보일 거라 예상된다. 청년기본법에 따르면, 청년은 대략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태어난 2030세대로, ‘MZ세대’ ‘이대남(20대 남성)’ ‘이대녀(20대 여성)’ 등 다양하게 불리기도 한다. 어떤 청년을 주목하고 담론의 주제로 삼을지는 각자의 자유이지만, 국가 방향을 결정해가는 정치의 영역에서만큼은 무거운 책임감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방향은 0점이다.

 

우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두드러지는 속칭 이대남에 대한 호들갑이 극심하다. 극우 정치세력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활용해 치밀하게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은 한국만이 아닌 전 세계적 현상이다.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 중 정치 분야의 접속률 또한 그리 높지 않다. 연령대와 무관하게 그런 커뮤니티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며, ‘이대남의 분노등 미디어와 정치권의 이야기가 청년층이 주류라기엔 실체가 불분명한 것이다. 잘못된 번지수로 인해, 정치권은 청년을 위한답시고 극우세력의 눈치를 보는 정책만 쏟아냈다. 그 결과, 배제된 다수 청년들은 정치에 강한 불신만 품게 되었다.

 

정작 청년을 두고 한국 사회가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게 논의해야 할 문제는 따로 있었다. 청년의 중간 지점인 1997년생을 기점으로 시간을 돌려보자. 태어나자마자 조국은 외환위기라는 국가 부도 사태를 겪었다. 애당초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뉴타운 투기 광풍 이후 비극적인 용산참사까지 이어졌다. 사람이 죽어가더라도 자산 증식을 위한 욕망은 언제나 존중받는 세상이었다. 청소년기에는 세월호 참사로 동갑내기 단원고 학생들을 떠나보냈다. 가까스로 청년이 되었지만, 이태원 참사라는 또 다른 허망한 사고로 또래들을 잃어야 했다.

 

태어난 이후, 국가는 언제나 국민을 방치하는 모습만 보였다. 각자도생의 방법을 찾지 못하면 생존까지 위협받는 세상이었다. 그런데도 입시, 취직, 결혼, 출산까지 남들처럼 번듯하게 살아내라고만 한다. 심각한 청년 자살률, 니트(NEET), 물질주의, 개인주의 등 청년세대를 대표하는 통계와 특성들은 지난 시간과 무관하지 않다. 간혹 요즘 애들이 보수화되었다며 진심으로 고민하는 중장년의 모습도 보인다. 비극의 한복판에 몰아넣고 국가 진보에 대한 당위적인 참여를 운운하는 건 참 몰염치하다.

 

아픈 기억만 연속된 세대가 손잡아주는 사람 없이 또다시 시간이 흘러 한국 사회의 중추가 된 미래는 더욱 슬플 것 같다. 정치, 언론, 학계 모두가 극우주의 커뮤니티를 두고 왈가왈부할 시간에, 지난 시간의 무게를 묵묵히 버티고 있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꺼내고 함께할 방법을 찾기 위해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단순히 진보냐 보수냐를 넘어 갈등과 혐오로 점철된 오늘날, 사회적으로 훨씬 더 의미 있고 효용이 높았을 테다.

다행히 아직 늦지 않았다. 그동안 말해지지 않은 청년들을 찾아내고, 진짜 듣고 싶었던,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 대한 조명을 이제 시작하면 된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 경향 2024.01.21.

 

 

우리 시대에 희망이 있을까?

서울시 김포구, 부천구, 광명구, 의정부구, 구리구, 고양구, 장흥구, 일산서구, 일산동구, 덕양구, 삼송구, 한강구, 검단동구, 검단서구, 행신구, 창릉구, 청라구, 계양구심지어 내가 살고 있는 인천 부평까지 서울시로 편입된 정체불명의 지도 한장이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 ‘서울 서부 확장 개요도라는 해괴한 제목의 지도다. 지도 모양이 주위의 모든 땅을 먹어 치운 하이에나 같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지만, 그냥 웃고만 지나가고 말기에는 마음 한편이 편하지 않다. 마치 우리 시대 날것의 욕망과 천하고 부박한 속내를 들킨 것 같아서 공연히 내가 부끄럽다.

 

지난해 10월 김기현 당시 국민의힘 대표는 당 내부에서 검토한 결과 김포를 서울에 편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김포 서울 편입 문제를 처음으로 공론화시켰다. 이어 국민의힘 뉴시티프로젝트 특위 조경태 위원장도 구리-서울 통합 특별법을 우선 발의하고, 하남, 고양, 부천, 광명, 과천 순으로 서울에 편입하겠다고 말했다. 이른바 서울 확장론또는 메가 서울론의 시작이었다. 국민의힘의 마구잡이 발표는 수도권에서 불리한 민심을 만회하기 위한, ‘서울시민 또는 집값을 미끼 삼은 총선용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같은 당 유정복 인천시장마저 실현 가능성 없는 정치쇼로 치부했으니 말이다. 사기극은 현실적으로도 거의 불가능하다. 행정, 입법 절차가 1년 이상 걸릴 뿐만 아니라 서울시의회와 경기도의회 동의도 얻어야 하며, 국회에서 단독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방안도 없다. 서울 주변 도시의 서울 편입 소동은 당사자들의 눈을 가리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이고, 표를 구걸하기 위한 퓰리즘이다.

 

한국의 수도권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6개국 중 가장 크다. 수도권은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하지만 총인구의 50.2%가 살고 있다. 100대 대기업 본사의 91%, ‘상위 20개 대학80%, 의료기관의 52%가 몰려 있다. 상위 1% 근로소득자 77.1%가 수도권 직장에 다닌다. 228개 시··구 중 46.5%(106)30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은 시·도마다 혁신도시를 조성하고 수도권에 집중된 공공기관 등을 이전시켰지만 경제적 불균형과 삶의 질은 개선되지 않았고 저출산(저출생), 고령화, 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소멸위험은 더욱 커졌다.

 

국민의힘이 김포시의 서울 편입 방안을 담아 발의한 특별법은 예상대로 21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될 예정이다. 서울 편입 관련 주민투표 등 행정적 절차를 회기 안에 마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만악의 근원은 서울 중심사고. 그걸 깨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결단코 없다. 이미 지방이 수도권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서울 확대론또는 메가 서울론정책은 다 같이 죽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방자치, 분권, 국가균형발전은 우리 세대의 절체절명의 시대적 과제다. 지역소멸은 곧 국가소멸이다. 다가올 총선의 핵심적 의제는 서울 편입이 아니라 지역주의 타파와 국가 균형발전이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현재 직면한 핵심 과제의 근본적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목적만 달성하면 나라야 망하든 말든 개의치 않는, 국민들의 말초적 욕망을 건드리며 눈앞의 이익만 좇는, 권력 연장에만 혈안이 되어 제 살길만 찾는, 그러다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시치미를 뗄 게 뻔한, 부화뇌동의 소동이 슬프고 참담하다. “국가는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 헌법 1232항의 내용이다. 우리 시대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신현수 |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 한겨레 2024.01.21.

 

이 정부가 정보공개를 못 하는 이유

지난해 10월 법원은 대통령비서실 직원 명단 공개 판결을 내렸다. 지난 11일에는 대통령비서실의 특수활동비 등 집행 내역과 수의계약 내역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뉴스타파는 애초 대통령비서실에 정보공개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하자 소를 제기했다.

이 정부에서 공공기관이 정보공개를 거부해 소송으로 다투는 일은 대통령실에 국한되지 않는다. 검찰의 특수활동비 사용 내역 등의 정보공개를 요구한 소송은 대법원까지 올라가 정보공개 판결이 확정되었다. 하지만 검찰은 업무추진비 카드 전표를 공개하며 상호와 사용 시각을 가리는 등 판결문 취지를 위반해 논란이 되었다. 법무부도 업무추진비 카드 사용 내역 등의 공개 요구를 거부한 뒤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정보공개 여부를 다시 결정하라고 하자 카드 번호, 음식점 상호 등을 가리고 공개하는 바람에 역시 소송으로 다투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경찰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흉기로 공격한 피의자의 신상을 비공개하기로 하면서 비공개 결정의 이유도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올해는 민주 헌법을 채택하고 37년이 되는 해다. 한국은 나름 세계가 알아주는 민주주의 국가다. 그런데 공공기관의 공적 결정을 비공개하는 이유조차 공개할 수 없다는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정부기관의 납득하기 어려운 정보 비공개 결정, 소송을 통한 다툼, 법원의 정보공개 판결들이 이어지면서, ‘결국 공개해야 할 정보들을 왜 비공개했는가를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나는 이 정부의 정보 비공개 행태의 주요한 원인은 공적 정보의 생산·관리·유통에 대한 무능이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사건들은 공개할 수 없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국정의 다양한 분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특정 개인이나 사건을 넘어서 이 정부 전체를 아우르는 설명이 필요하다.

정부가 행한 일의 과정과 결과를 공개하려면, 먼저 법과 제도에 따른 일 처리가 이뤄져야 한다. 우리 법률에는 장차관 등 정무직 공무원만이 아니라 직업 공무원까지 따라야 하는 절차 규범이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 정부 사람들은 제도와 절차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방법 자체를 잘 모르는 것 같다. 그저 상황에 따라 입맛대로 일 처리를 했기 때문에, 사후에 정보를 공개하려고 보면 위법 사항이 발견되거나 아예 공개할 정보가 관리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건 단순한 정보 관리의 문제를 뛰어넘는다. 우선, 대통령을 포함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무직 공직자들이 제도에 따른 공적 일 처리에 훈련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 헌법과 법률은 주어진 한계 내에서 권한을 사용하면서 입법·사법·행정부가 각기 고유한 기능에 충실하도록 제도와 절차를 만들어놓았다. 정부가 일을 하는 과정에서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투명한 정보공개와 상호 견제를 통해 시민의 이익을 대변하도록 고안된 시스템은, 그 자체로 복잡할 수밖에 없다. 이런 복잡한 시스템을 이해하고 운영하려면, 집권하기 전 일정한 훈련이 필수적이다.

 

물론 역대 모든 대통령이 충분히 훈련받은 뒤 대통령이 된 건 아니다. 당선 이후 대통령들은 소속 정당 정치인과 직업 관료,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도움을 얻어 법과 제도에 따른 정부 운영을 해나갔다. 1700개가 넘는 법률을 준수하면서 수십만명에 이르는 직업 공무원을 통제하는 일에는 전문성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현 대통령은 대통령실 운영을 보건대 스스로가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공적 일 처리를 하는 데 훈련되어 있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59분 대통령’(회의 때 1시간 중 59분을 혼자 이야기한다는 의미)이라는 별칭이 드러내듯, 다른 이들의 도움을 얻는 일에도 익숙하지 않아 보인다. 대통령이 임명한 여러 정무직 공직자들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이 정부가 주는 교훈은 이것이다. 민주 정부를 운영할 능력을 갖춘 대통령은 집권 이전에 법규범에 기본적인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하고, 집권 후에는 집권당과 직업 공무원, 전문가들의 도움을 얻을 능력이 있어야 하며, 시민들 목소리에 반응할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 능력이 없는 대통령은 언제든 지금과 같은 정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시민들이 이런 대통령 후보를 걸러내지 못한다면 이런 무능한 정부는 한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 | 한겨레 2024.01.22.

 

욕망의 정치, 윤 대통령의 싸구려 포퓰리즘

서울 노원구의 28년 된 아파트에 사는 자영업자 구보씨는 요즘 희망에 부풀어 있다. 대통령이 직접 파격적인 재건축 완화책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구보씨에게 재건축은 계층 상승의 유일한 사다리다. 구보씨는 쏟아지는 자영업자 대책이 좀 기껍다. 재난지원금 상환도 면제됐고, 은행 대출이자도 현금으로 돌려받는다. 전기료도 감면받고, 세금 납부기한도 연장됐다. 조만간 신용사면도 해준다고 한다. 다 총선 때문이겠지만, ‘내 코가 석 자인 마당에 흔들리는 마음 어쩔 수 없다.

 

중소기업에 다니며 주식 투자를 하는 구보씨의 조카는 요즘 희망에 부풀어 있다. 공매도 금지, 대주주 주식 양도세 완화에 이어 대통령이 직접 증권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공식화했다. 이런 감세가 직접적 이익이 되진 않겠지만, 주식시장 부양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다. 언젠가 주식으로 대박나면 감세의 수혜를 누릴 거란 꿈도 있다. 다 총선용이겠지만, 당장 내 주식이 오를 수 있다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과 정부가 욕망의 정치를 부추기려 혈안이다. 주식이든 아파트값이든 유권자의 욕망을 자극함으로써 정치적 지지를 얻는 게 욕망의 정치다. 욕망의 정치가 가공할 위력을 발휘한 게 200818대 총선이다. 뉴타운 열풍에 당시 한나라당은 서울의 48개 선거구 중 40곳을 석권했다.

 

무능과 실정, ‘김건희 리스크까지 겹쳐 지지율 30%대에 고착된 윤석열 대통령이 오로지 기대는 게 욕망의 정치소환이다. “매표에 가까운 포퓰리즘 정책, 매표 복지 안 하겠다고 다짐했던 윤 대통령이 하루가 멀다고 선거용 포퓰리즘 정책을 뿌리고 있다. 부동산 보유자, 자영업자, 개미투자자를 콕 집어 깎아주고, 줄이고, 퍼주는 정책 일색이다.

공매도 금지, 대주주 주식 양도세 완화, 임시투자세액공제 연장, 금투세 백지화, ISA 비과세 한도 상향,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증시 대책이다. 조세원칙, 조세형평성, 건전재정 같은 기준은 팽개친 지 오래다. 증시가 부양될 때까지 무모한 정책을 죄다 꺼낼 태세다. “국가와 사회가 계층의 고착화를 막고 사회 역동성을 끌어올리려면 금융투자 부분이 활성화돼야 한다”(윤 대통령)는 턱없는 명분을 달았다. 속내는 어떻게든 총선 때까지 주식값을 올려 구보씨 조카 같은 1400만 개미투자자의 대박꿈을 자극하겠다는 것이다.

 

구보씨 같은 600만 자영업자를 겨냥한 선심 정책은 전방위적이다. 시대에 역행하는 일회용품 허용으로 문을 열었다. 소상공인 57만명에 대해 총 8000억원의 재난지원금 환수를 면제했다. 은행의 손목을 비틀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만 2조원대 대출이자를 현금으로 돌려준다. 1분기 중 소상공인 126만명의 전기료를 감면하고, 128만명의 세금 납부기한을 연장해줬다. 역대 최대 규모(290만명)의 신용사면도 예고했다. 대부분 시행 시기를 1분기로 한정했다. ‘총선용이란 걸 이리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어렵다.

 

나쁜 포퓰리즘의 극단은 파괴적인 부동산 정책이다. 다주택자 규제와 재건축·재개발 빗장을 왕창 풀어버렸다. 준공 30년 이상 아파트는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이 가능토록 하고, 1기 신도시 정비사업은 임기 내 착공을 못 박았다. 산술적으로 향후 5년간 전국 아파트 460만가구의 재건축이 가능해진다. 대놓고 부동산 욕망을 부추기는, 개발 투기 심리를 자극해 부동산 보유자들의 환심을 사려는 포퓰리즘이다.

 

윤 대통령은 신년 업무보고를 전국을 돌며 민생토론회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총선용 정책 발표장으로 삼기 위해서다. 나라 곳간이 거덜나든 말든 표만 되면 된다는 맹목이 지금 국정을 관통한다. 앞으로도 좀 더 센, 하여 더 치명적인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낼 터이다. 상식의 잣대에서 보면 난도 김건희 문제도 풀지 못하는 판에 기댈 수 있는 게 매표(買票) 정책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제 정책이 온통 기승전-총선이 되면서 위기 타개를 위한 거시경제 대책은 뒷전으로 밀렸다.

경제에는 공짜가 없다고 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쏟아부은 포퓰리즘 정책은 총선 후 심대한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그 피해는 취약계층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이 일찍이 말한 대로 매표에 가까운 포퓰리즘 정책으로 수많은 청년, 자영업자, 중소기업인, 저임금 근로자들이 고통을 받는다”(대선 출마 선언문). 윤석열 정부가 싸구려 포퓰리즘정책의 혹독한 후과를 감당할 실력이 있을까. ‘없다에 한 표 던진다.

양권모 칼럼니스트 | 경향 2024.01.22.

 

 

위선 공화국의 역설

누가 욕하는 거 들으면 그 사람한테 전달하지 마. 너희들 사이에서는 다 말해주는 게 우정일지 몰라도 어른들은 안 그래. 괜히 말해주고 그러면 그 사람이 널 피해. 내가 상처받은 걸 아는 사람 불편해, 보기 싫어. 아무도 모르면 돼, 그러면 아무 일도 아니야.”

많은 사람의 인생 드라마가 된 <나의 아저씨>에서 이제는 고인이 된 이선균이 연기한 박동훈의 대사이다. 연말에 갑작스럽게 날아든 이선균의 사망 소식으로 한동안 우울했다. 내가 좋아했던 연기자 한 명을 잃어버렸다는 슬픔에 더해 왠지 모를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바로 우리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모르면 아무 일도 아닌데 모든 걸 알고 싶어하는 관음증에 걸린 우리 사회의 위선이 그를 죽게 만든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혹시 위선 공화국이 아닌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총선을 목적에 두고 터진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도덕적 민낯을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치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마약 혐의 수사를 받던 한 인기 연기인이 왜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함의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아도 분명해 보인다. 강압 수사를 진행한 적이 없고 모든 것을 규정과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수사해왔다는 경찰의 발표에도 석연치 않은 점은 바로 공개성때문이다.

 

혐의 사실이 확실하지 않음에도 이름과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사건 관계인을 미리 약속된 시간에 맞춰 포토라인에 세우는 공개 소환 방식은 당사자를 사회적으로 발가벗긴다. 비공개로 소환했다가 그 장면이 폭로되면 오히려 피의자에게 손해라고 생각하여 비공개 소환 요청을 거부했다는 경찰의 답변은 궤변에 가까운 위선이다. 겉으로는 피의자의 인권을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피의자의 권리와 인격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겉으로만 선하거나 도덕적인 체하는 것을 위선이라고 한다. 겉과 속이 다른 것도 위선이고, 자신의 실제 동기가 아닌 다른 동기에 의해 행동한 것처럼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도 위선이다. 경찰의 실제 목적은 우리 사회의 긴박한 문제로 떠오른 마약 사범을 수사하고 검거하여 해당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다. 마약 혐의가 있는 유명한 인기 연예인을 전시하듯이 대중에 공개하는 보여주기 수사가 마약과의 전쟁에 얼마나 커다란 도움이 되는가? 마약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적인 대화와 유족이 공개를 원하지 않는 유언장조차 국민의 알권리라는 이름으로 샅샅이 보도하는 공영방송의 행태는 도덕적 위선의 극치이다.

 

과도한 도덕적 요구의 부메랑

위선의 핵심은 이미지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을 가상 또는 이미지라고 한다. 남을 도덕적으로 판단하여 비난하고 결국에는 남의 인생을 난도질하는 사람은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위선의 전형이다. 우리는 물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살지 못한다.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믿고 그것이 도덕적이라고 확신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약속을 저버리고 거짓말도 한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미지를 열심히 추구하다 보면 결국 자신이 원하는 존재가 된다고 말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아주 오랫동안 집요하게 무엇인가를 보여주려고 한다면, 결국 그에게는 다른 존재가 되는 일은 어려워진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일관성 없이 겉으로만 도덕적이고 선한 사람인 척 행동한다면, 그의 이미지는 종종 남을 기만한다.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가상이 실제의 모습보다 더 중요한 이미지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 문제의 핵심을 포착한 마키아벨리는 대중은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많은 경우에 그들은 실재보다도 이미지에 더욱 좌우된다고 말한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이미지를 자기 마음대로 재단함으로써 자신의 선한 이미지를 내세운 것은 위선이다.

내가 우리 사회를 위선 공화국이라고 자조적으로 부른 것은 우리 사회 전체가 부도덕하면서도 마치 도덕적인 것처럼 행세하는 이중성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비난해야 마치 자신이 비난할 만한 도덕적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행위, 자신이 선한 것처럼 내보이고 싶지만 실제로는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적어도 다른 사람의 실수와 흠결에 관대할 터인데 모든 일에 각박한 태도, ‘내로남불이라는 말에서 드러나듯 자신에겐 한없이 관대하면서 남에게는 모질기 짝이 없는 자기중심주의는 모두 위선이 무성하게 자랄 훌륭한 밑거름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민낯을 직시해야 한다. 수세기에 걸쳐 우리의 삶을 주조했던 유교의 도덕적 토대는 이미 붕괴한 지 오래인데, 우리는 여전히 유교 국가에서 살고 있다고 착각한다. 공인의 도덕적 행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우리가 도덕적이라는 착각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왜곡 현상은 공인이라는 개념에도 적용된다. 공인은 본래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일컫는데, 이제 공인은 그 이미지가 널리 알려진 공개된 인물을 가리킨다. 공적인 일이란 모든 사람의 삶과 관련된 활동으로서 이러한 업무를 담당하는 공직자와 성직자, 그리고 정치인이 대표적인 공인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미지의 강도가 공인을 결정한다. 연예나 스포츠 분야 따위에서 인지도가 높은 셀럽도 공인으로 여겨진다. 대중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는 유명 인사는 대중에게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포츠인이 운동만 잘해서는 안 된다. 도덕적으로 선한 스포츠인이어야 한다. 배우가 연기만 잘해서는 안 된다. 도덕적으로 선한 연기인이어야 한다. 그 이름과 이미지가 널리 알려진 사람이라면 모두 도덕적이어야 한다.

 

도덕은 다양성을 기반으로 해야

그들은 모두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사회의 도그마에 부합해야 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해야 한다. 혹여나 어릴 적 실수가 드러나면 이미지가 심각하게 훼손되거나 영영 매장될 수도 있는 까닭에 이미지 관리는 평생 이뤄져야 한다. 개인이 숨 쉴 여지를 허용하지 않는 철저하게 독단적인 도덕사회이다.

문제는 도덕성에 대한 과도한 요구가 본의 아니게 위선을 낳고 궁극적으로 그것이 추구하는 도덕 자체를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도덕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는 결코 도덕적이지 않다. 겉으로라도 도덕적이기를 요구하는 사회의 과도한 요구는 사적인 삶과 공적인 역할 사이의 괴리를 가져오고, 궁극적으로는 내면과 외면의 불일치로 인한 정체성의 위기를 초래한다. 왜냐하면 높은 도덕성 기준은 단순히 개인적인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기대이며, 개인의 이미지와 겉모습이 종종 개인의 진실성을 은폐하는 문화를 조성한다. 위선을 조장하는 것은 바로 과도한 도덕성의 요구이다.

 

이러한 현상은 무엇보다 정치적 위선에서 나타난다. 정치 영역에서 도덕적으로 올바른 이미지를 유지하라는 압력은 정치인의 진정한 동기와 행동을 가리는 가면을 채택하는 결과를 낳는다. 민주주의를 밥 먹듯이 주장하는 사람이 당내의 다양한 의견을 허용하지 않는 비민주적 태도를 보이고,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정치인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수직적 관계로 세우는 광경을 목도하면, 우리는 정치적 위선의 역설을 간파하게 된다.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로 실제의 모습을 평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가상의 이미지가 자신의 진짜 모습인 것처럼 생각하고 드러내는 자기기만의 위선이 발생한다.

 

한국 사회의 과도한 도덕적 순수성에 대한 요구는 오히려 위선을 조장하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한다. 남의 도덕적 타락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결점을 간과함으로써 위선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남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 할수록 자신이 더 도덕적인 것처럼 보이는 위선의 역설은 진정한 도덕적 담론을 억압한다. ‘도덕적이어야 한다고 강렬하게 요구하면서도 무엇이 도덕인지는 모르기 때문이다. 흔들리지 않는 도덕성을 요구하는 위선적인 사회는 은연중에 도덕적 기대를 달성할 수 없다는 냉소주의를 낳을 수 있다. 현대의 다원주의 사회에서 도덕은 다양성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나만 옳고 도덕적이라는 독단론으로부터 해방되어야 우리는 비로소 공동의 도덕을 논할 수 있다. 어쩌면 그 첫걸음은 아무도 몰라도 되는 사적인 일과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하는 공적인 일을 구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 경향 2024.01.23.

 

혼자가 좋다는 나라의 저출생 대책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추락했다는 통계가 나왔을 때 인구학자들도 크게 술렁였다. 과거 독일 통일 5년 뒤인 1994년 옛 동독 지역의 출산율이 0.77명이었다. 기존 국가시스템이 붕괴되고 극단적 불확실성이 지배하던 시기에나 나올 법한 출산율이 2022년 한국 사회에 나온 셈이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인구 미래 공존에서 인류 역사를 통틀어 전염병 창궐이나 전쟁, 체제 붕괴를 겪지 않는 한 0점대의 출산율은 인구학에서 거의 불가능한 숫자로 여겨졌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나라가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2018(0.98) 1.0명대가 무너진 이후로 좀처럼 반등하지 않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1.0명을 밑돈다. 이대로라면 향후 50년 동안 인구의 30%가 줄고 인구 구조도 급격히 고령화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오죽하면 뉴욕타임스에 한국의 출산율이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에 몰고 온 인구감소를 능가하는 수준이라는 칼럼이 실렸겠나.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지난 18일 저출생 대책을 주요 공약으로 냈다. 양대 정당이 국가적 의제의 해법을 함께 도모한다는 점은 고무적이라 할 만하다. 정책 실효를 높이기 위한 고민의 흔적도 보인다. 아빠에게 출산휴가 한 달을 의무화(국민의힘)한다거나 육아휴직을 신청만 하면 자동으로 쓰도록(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하는 공약이 대표적이다. 여성의 독박육아부담이 크고 육아휴직을 쓰고 싶어도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을 고려한 조처들이다. 양육의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결혼·출산지원금과 같은 파격적 현금성 지원 공약(민주당)도 등장했다

그럼에도 여론은 냉담하다. 왜일까.

현재의 인구 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출산율은 2.1명이다. 이에 못 미치면 저출산 사회’, 1.3명 미만은 초저출산 사회로 본다. ‘아이를 적게 낳으라는 가족계획 사업(1996년 종료)30년 넘게 벌어지는 동안에, 우리는 저출산 사회로 진입(1983)하고 말았다. 이어 2002년 초저출산 사회로 들어서고 출산율이 1.08명으로 내려앉은 2005년에야 정부는 부랴부랴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수립에 나섰다. 열악한 보육 인프라를 깔고 부처별로 백화점식 대책이 앞다퉈 나왔다. 적어도 2015년까지는 출산율이 등락을 반복할지언정 더 악화되지는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출산율은 이후로 내리 하향 곡선을 타며 뚝뚝 떨어졌다. 수백조원 예산에도 정책이 실효를 내지 못하자, 문제의 본질을 건드려야 한다는 지적이 정부 안팎으로 쏟아졌다. 정부 대책 기조가 조금씩이나마 진일보해온 맥락이다. 박근혜 정부는 청년층 일자리·주거 지원을 저출생 대책에 넣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에선 처음으로 성평등이라는 키워드를 끌어올렸다. 단순한 출산 장려를 넘어 여성 삶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자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여야 공약들을 톺아보면, 정치권의 저출생 문제에 대한 인식은 한 발짝도 진전되지 못했다. 장시간 노동을 유발하는 정책을 접지 않고 일하는 부모의 육아 부담을 덜어준들, 아이를 낳을 마음이 없는데 첫째·둘째·셋째 아이에 따라 차등해서 현금성 지원을 한들 꿈쩍이나 할까. 무엇이 필요한지도 모른 채 청년들의 손에 당장 뭔가를 쥐여줘야 한다는 성급함만 앞서는 형국이다. “화장실 갈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위해 화장실로 가는 길을 만들고 표지판을 만들고 휴게소를 만들고 화장실을 대리석과 보석으로 꾸미는 것”(이관후·정치학 박사)이나 다름없다. 제도와 현실의 간극이 큰데, 여전히 제도만 갈고닦아서야 되겠나.

최근 가구 브랜드 이케아가 38개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2023 라이프앳홈)는 의미심장하다. 한국인은 집에서 혼자 있을 때 즐겁다는 비중이 전세계 1, ‘집에서 식구들과 함께 웃는 데서 즐거움을 느낀다는 비중은 최하위였다. 개인 단위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각자도생 시대의 고단함이 배어 있다. 김은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청년에게 결혼·자녀갖기는 노동자로서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한 사건으로 인식된다. 사회가 여성의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면 새로운 가족균형이 나타나 출산율이 회복된다는 서구 사회의 교훈을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이쯤 되면 더 이상 저출생 대책이란 용어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지도 의문이다. 그저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비전을 제시하면 될 일 아닌가.

황보연 | 논설위원 | 한겨레 2024.01.23.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싫다

2010년대 중반 페미니즘 리부트 운동이 일어났을 때 젊은 여성들은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죄와 벌)라는 구절을 소환하며 김수영을 여성혐오 시인의 첫 줄에 세웠다. 반면 2013년 무렵 안녕들 하십니까릴레이 대자보가 나붙던 시절엔 언론자유를 다룬 그의 시(김일성 만세)를 패러디한 글이 쏟아졌다. 김수영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과 분단, 4·19 혁명과 반동을 겪은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시대와 불화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갔다. 포로수용소에 2년이나 갇혔던 자신을 친공 포로도, 반공 포로도 아닌 민간 억류인이라 했던 것처럼. 적당히 뭉개지 않고 평생을 시대의 이분법과 싸운 현재진행형의 시인 김수영은 그래서 가장 정치적인 시인으로 꼽힌다.

화룡점정은 1964년 발표한 거대한 뿌리. 4·19 혁명, 5·16 군사쿠데타 이후 혼란과 불안이 난무한 시대였다. 박정희 정권은 산업화·근대화로 가는 산뜻한 출발을 위해 내치고 없애야 할 목록을 만들었고 이를 반동으로 치부했다. ‘거대한 뿌리는 반동의 명단을 하나하나 호명한다.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구리개 약방, 피혁점, 곰보, 애꾸, 무식쟁이. 그러나 김수영은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고 했다. 아무리 하찮은 전통이라도 민중의 삶은 지켜야 한다는 저항이고, 또 무수한 반동을 구분하는 안목 없인 변화하는 시대에서 중심을 잡을 수 없다는 역설이다.

4월 총선을 앞두고 김수영을 불러들이고 싶었다. 그의 과거는 지금도 유효하고, 그래서 그의 화두는 지금 정치가 답해야 할 질문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반동으로 밀려났지만 지켜야 할 전통, 진짜 반동이라 버려야 할 전통이 무엇인지 지금 정치는 답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못할 것이다. 온갖 노골적인 반동이 대신 말해주고 있다.

17대 총선 이후 정치권은 국민 공천을 시도했다. 중간중간 변주는 있었을지언정 국민 주권을 귀하게 여겼는데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한 분위기다. 이는 내부 권력의 주류 교체가 급한 절대 존엄들의 사당화 탓이 크다. 여권에선 대통령이 집권여당 대표 사퇴를 압박하는 일쯤은 다반사고, 당 지도부는 검찰·친윤 낙하산 공천에 신경 쓰고 있다. 민주당은 대의원제 폐지를 시작으로 친명 줄세우기 공천이 노골적으로 횡행한다. 그리 곤욕을 치르고도 검증에서 성비위 의혹 연루자를 통과시키고, 대표 측근들의 사천(私薦)도 용인한다. 심지어 난민법·차별금지법 반대로 정치혐오를 확산했던 이언주 전 의원의 복당을 외연 확대라고 치켜세운다. 정권심판론이 민주당 정체성이라는 말인가. 사당화에 줄선 후보들은 자기 철학보다 절대 존엄 보위에 사활을 걸게 된다. ‘국민의힘·민주당답지 않은 후보를 깨려 출마하고, 주머니 속 공깃돌 다루듯 지역구를 옮겨다니는 행태에도 부끄럼이 없다. ‘주권자의 위임을 받아 정당성을 얻는국민 주권을 더러운 전통으로 만들어 탕진하는, 기막힌 반동이다.

이러니 거대 정당이 선거제를 통합·연대 정치의 틀로 만드는 데 신경 쓸 리 있겠는가. 준연동형제의 오남용을 반성하긴커녕 국민의힘은 병립형만 외치고, 민주당은 입장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 최근엔 소수정당에 의석을 나눠주고 이중등록제를 허용하는 권역별 병립형 비례제합의설까지 나온다. 영호남 지역주의 해소를 내세우고 산적한 정치개혁 문제를 덮으려 한다. 몰염치나 다름없다. 좌절과 상실로 끝난 촛불 정치연합을 되살리려는 몸부림을 하찮은 전통으로 취급하는, 그야말로 거대한 반동이다.

석 달 남짓한 총선 국면에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충돌했다. 총선 준비에 애타는 당을 뒤흔든 대통령, 집권 초반 조기 차별화를 노린 당대표도 처음이지만 대통령 부인 방탄을 위해 공개 혈투를 벌이는 것 자체가 국민 모독이다. 양측은 충돌 이틀 만에 220여개 점포가 불탄 서민들의 가난 앞에서 악수 했다. 앙상한 골조만 남은 통곡의 현장에서 화해식을 치르다니. 권력투쟁이든 약속대련이든 국민을 정치적 배경으로 삼겠다는, 최악의 반동이다.

혁명의 열망이 좌절될 때 반동이 온다. 김수영은 반동을 긍정해야 다시 혁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피혁점, 곰보, 애꾸, 무식쟁이와 같은 비루한 전통을 끌어안은 자리에 거대한 뿌리를 내렸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반동이 싫다’. 지켜야 할 전통, 버려야 할 전통도 가닥을 못 잡는 이 모든 무수한 정치의 반동이 싫다’.

구혜영 논설위원 | 경향 2024.01.234

 

김건희, 마리 앙투아네트, 다이아몬드 목걸이

지난 23일 충남 서천시장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90도로 허리 숙이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평당원인 대통령이 당대표에 준하는 비대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게 21일이다. 20년 검찰 선후배 윤석열과 한동훈의 갈등은 그렇게 이틀 만에 막을 내렸다. 이런 쇼를 하려고 대통령은 국민과 약속했던 민생토론회까지 취소했던 건지 우스울 따름이다. 남은 건, 집권세력 내부에선 김건희라는 이름 석 자가 볼드모트처럼 불러서도 안 되고 건드려서도 안 되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란 사실이다.

돌발적인 권력 내부 충돌이 김경율 비대위원의 마리 앙투아네트발언에서 촉발됐음은 분명해 보인다. 한 위원장이 서울 마포을에 김경율 위원의 전략공천을 내비친 날, 김 위원은 명품백 사건에 대한 김건희 여사 사과를 요구하면서 프랑스 혁명이 왜 일어났는가.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 난잡한 사생활이 드러나 폭발한 거 아닌가. 지금 이 사건도 국민 감성을 건드렸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겨레 보도를 보면, 김건희 여사는 자신을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한 발언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혁명 와중에 사치와 부패의 상징으로 몰려 처형당한 왕비에 비유했으니 어찌 분노하지 않을까 싶긴 하다. 그 노여움이 남편인 윤 대통령을 자극해서 한동훈 위원장의 고개를 숙이게 했으니, 이젠 다 끝난 것일까.

오스트리아에서 시집온 철없는 왕비를 단두대까지 끌어올린 데엔 유명한 다이아몬드 목걸이 스캔들이 한몫했다. 훗날 나폴레옹은 왕비의 죽음은 명백히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프랑스혁명 4년 전에 일어난 이 사건은 등장인물은 많지만, 얼개는 단순하다.

파리의 보석 세공업자들이 647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엄청난 고가의 목걸이를 만들었는데, 팔 데가 없었다. 어느 백작 부인이 앙투아네트 왕비의 눈에 들고 싶어 하는 추기경에게 왕비가 몰래 이 목걸이를 사고 싶어 하니까 당신이 사서 왕비에게 전달해주면 좋겠다고 속이고 목걸이를 사게 했다. 백작 부인은 목걸이와 돈을 중간에서 가로채 달아났다. 나중에 추기경과 세공업자들이 앙투아네트에게 목걸이를 물어보면서 백작 부인의 사기는 들통이 났다. 왕비와는 관련 없는 전형적인 사기 사건이지만, 프랑스 귀족 사회의 부패와 탐욕, 부르봉 왕가의 사치와 허영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프랑스 국민에겐 각인됐다.

물론 목걸이 스캔들과 명품백 사건을 비교할 수는 없다. 647개의 다이아몬드로 만든 초호화 목걸이에 비하면, 디올백은 겨우(?) 300만원짜리 작은 선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두 사건이 쌓아 올린 권력과 국민 사이 불신의 벽은 유사한 측면이 있다. 목걸이 스캔들 이전에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치와 낭비벽으로 왕실 재정을 탕진한다는 비난의 시선을 이미 받고 있었다.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왕비의 평판을 바닥으로 완전히 끌어내리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용산 대통령실은 몰카 공작이란 피해자성만 강조할 게 아니라, 왜 이 사건이 집권여당까지 흔들 만큼 뜨겁게 달아올랐는지 냉철하게 돌아봐야 한다. 김건희 여사를 둘러싸고 그동안 제기된 숱한 논란들, 박사학위 논문 표절과 주가 조작 의혹, 무속에 의지하고 인사에 개입한다는 의구심, 양평고속도로 특혜 논란까지, 이런 모든 것들이 명품백 사건 밑바닥에 켜켜이 쌓여 있다. 다이아몬드 목걸이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앙투아네트와 달리, 김건희 여사는 명품백을 직접 거리낌 없이 받았다. 대통령기록물로 규정해 국가재산으로 보관하고 있다는데 가장 중요한 질문, 왜 현장에서 그 백을 거절하지 않았는가에 대해선 답변하지 않는다.

한동훈 위원장의 90도 꺾인 인사를 받음으로써 윤 대통령은 김건희 직접 해명이란 당내 요구를 잠재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님은 윤 대통령도, 한 위원장도, 김 여사도 알고 있을 터이다. 300년 전 프랑스의 루이 16세는 아내의 결백을 분명히 보여주려 추기경을 구속했지만, 오히려 프랑스 민중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을 뿐이다.

4월 총선이 다가올수록 명품백 논란은 더 거세게 물 위로 떠오를 것이다. 메마른 불신의 장작 위로 진실을 요구하는 불씨는 이미 떨어졌다. 세찬 바람 부는 재난 현장에서 윤석열과 한동훈 두 사람이 굳게 손을 맞잡는 퍼포먼스로 그걸 뛰어넘을 수는 없다.

박찬수대기자 | 경향 2024.01.24.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다가왔다. 대한 추위가 무섭지만 정치권은 뜨겁기 이를 데 없다. 거대 양당의 틀 안에서 달음질하는 이들도 있고, 새로운 정치를 표방하며 판을 다시 짜느라 이합집산하는 이들도 있다. 출사표를 낸 이들은 저마다 경세가를 자처한다. 좋은 세상을 만들려는 순정한 마음으로 나선 이들도 있고, 허망한 열정에 들떠 나서는 이들도 있다. 유권자들의 분별력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상황이다.

 

박석무 선생의 <다산의 마음을 찾아>를 읽다가 우리 시대를 비춰주는 것 같은 한 대목과 만났다. 다산은 퇴계가 제자 이중구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에 주목한다. 퇴계는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못한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런 탄식이 자기에게도 있다고 고백한다. “나의 경우는 학문이나 능력이 텅텅 빈 사람인데도 그런 줄을 알아차리지 못함에 대한 탄식이라네.” 대학자의 겸허한 자기반성이다. 다산은 그런 퇴계의 글을 읽다가 문득 두려움을 느낀다. 그는 자기 재능이 부족하다고 느끼는데 사람들은 도리어 그의 기억력이 뛰어나다고 칭찬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모르는 사이에 땀이 나고 송구스럽다. 이를 태연히 인정하여 남들이 속아줌을 즐기다가 진짜 큰일을 맡기는 경우 군색하고 답답함에 몸 둘 곳이 없을 터이니 매우 두려운 일이다.” 성경의 한 지혜자도 같은 취지의 말을 했다. “은금의 순도는 불에 넣어 보면 알 수 있고, 사람의 순수함은 조금만 이름이 나면 알 수 있다.” 무서운 말이다. 자기가 한 일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사람은 불행하다. 그 평가는 언제든 냉혹한 적대감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능력을 과시적으로 드러내려 한다. 은인자중하는 이들은 비존재 취급을 받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정치의 장에선 특히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자극적이고 서슬 퍼런 언어를 함부로 사용하는 이들이 많다. 최소한의 품격이나 역사의식조차 못 갖춘 이들이 사람들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일이 다반사다. 품성이 모질지 못해 말을 조심스럽게 하는 이들은 대중의 시선을 받지 못한다. 흉기가 된 말들이 세상을 떠돈다. 무심히 지나던 이들도 그 말에 찔려 상처를 입기도 한다. 우리 가슴엔 그런 말들에 베인 자국이 무수히 많다. 상처의 기억이 누적될수록 마음의 여백과 정신의 회복탄력성은 점점 줄어든다. 조그마한 차이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플라톤의 철인왕까지는 기대하지 못한다 해도 인문적 교양을 갖춘 이들이 국민의 대표가 되었으면 좋겠다. 복잡하고 다양한 인간의 실상을 깊이 통찰하고, 주변화된 이들의 소리를 귀담아듣고, 역사가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가진 사람이 필요한 시대다. 그는 또한 우리 시대가 직면한 다양한 위기를 직시하고 그 위기를 헤쳐 나갈 실천적 지혜를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의 사고는 유연해야 하고, 인간 존중이 그의 심성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을 깎아내리는 것으로 자기 존립 근거를 삼으려는 사람들, 버럭버럭 피새를 부려 다른 이들의 입을 막아버리는 사람들이 역사의 무대에 오른다면 역사는 퇴행하게 마련이다.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진 사람은 희망의 좌절까지도 견뎌낼 수 있을 정도의 의지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하게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이다. 이런 책임 정치를 하려는 이들이 많아져야 한다.

 

정치는 어지럽고 경제는 어렵고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다. 기후위기는 이제 징후를 넘어 일상적 현실이 되었다.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내어도 난마처럼 얽힌 현실의 실타래를 풀기 어렵다. 오만하고 무지하고 무정하고 남의 소리를 겸허하게 들을 생각이 없는 이들에게 우리 주권을 맡기는 것은 섶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일과 다를 바 없다. 두려운 일이다.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 경향 2024.01.25.

 

나라 안팎 탄소 배출에 진심인 한국의 공적 금융

금융기관이 석탄화력발전소를 짓는데 자금을 제공한다면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은 금융기관일까, 석탄화력발전소일까. 누가 정범이고 누가 공범인지, 아니면 둘이 공동정범을 형성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둘이 만나야 온실가스 배출은 현실이 된다는 사실이다. 석탄화력발전소가 온실가스 배출의 출구라면 금융기관은 그 입구에 해당한다.

 

금융이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엔진이라면 온실가스 배출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금융은 에너지원을 선정함에 있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동함으로써 에너지 전환의 성패를 결정한다. “(화석연료) 투자를 멈추지 않으면 기후변화도 멈추지 않는다”(윤세중, 2023)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금융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 않다. 많은 기후활동가가 자본주의와 거리를 두는 이념적 기반을 가진 탓인지도 모른다.

 

기후금융이란 기후변화의 원인인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기후변화의 영향에 적응하기 위해 동원된 금융을 말한다. 그것은 화석연료산업이나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파괴하는 사업에서 철수하는 금융을 포함한다. 특히 기후위기 해결에 역행하는 화석연료 투자는 지구 온난화와 그로 인한 물리적 리스크(자연재난)와 전환 리스크, 그리고 재무적 리스크를 동반하는 위험투자로 분류된다.

 

화석연료 투자와 관련하여 주목을 받는 것은 공적 금융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정부의 의지가 직접 표출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2021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화석연료에 대한 공적 금융지원을 중단하겠다는 글래스고 기후협약’(Glasgow Climate Pact)을 채택한 것도 이같은 사정을 반영한다. 한국 정부는 서명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대한 공적 금융의 투자 실태는 어떨까.

 

결코 자랑스럽지 않은 오늘의 화석상

지난해 126, 아랍 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28)에서 한국은 오늘의 화석상’(Fossil of the Day Awards)을 받았다. 기후단체의 국제 연대체인 기후행동네트워크(Climate Action Network-International)가 제정한 이 상은 국제사회에서 기후협상의 진전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한 나라에 수여한다.

 

한국이 수상한 이유의 하나는 한국의 SK E&S가 오스트레일리아 바로사 가스전에 참여하여 탄소를 내뿜고 원주민의 권리를 침해하러 든다는 것이었다. “한국은 호주 북부 해안에서 수십억 달러 규모의 탄소 폭탄을 터뜨리려 하고 있다”. 언뜻 보면 규제받지 않은 민간 재벌이 해외에서 지구 온난화를 부추기고 현지인과 갈등을 일으키는 모양새로 보인다.

 

실상은 다르다. 공적 금융이 민간자본의 뒷배 노릇을 하면서 화석연료 투자를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사 가스전에는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가 약 9400억 원(66천만 달러)을 투자하고 있다. 앞으로 이 가스 사업을 수행하려면 연간 543만 톤에 이르는 온실가스 배출을 차단하거나 상쇄해야 하며 그 비용만도 연간 2억 달러(최대 5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한겨레신문, 2023.4.20.). 공적 금융이 좌초자산에 투자해 국민의 돈을 위험에 빠뜨리는 꼴이 날 수도 있다.

 

공적 금융이 민간자본을 앞세워 해외 화석연료 사업에 투자하는 경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수출입은행과 중부발전은 인도네시아의 찌레본 석탄화력발전소(두산중공업, 햔대건설)에 투자하고 있다. 공기업이 대놓고 진출하기도 한다. 한전은 인도네시아에서 자와 9,10호기를, 그리고 베트남에서 붕앙2 석탄발전소를 짓고 있다. 다들 KDI의 수익성 평가에서 마이너스로 평가된 사업들이다. 지난해 11월 미국의 기후환경단체인 오일체인지 인터내셔날(OCI)에 따르면 한국은 G20국가 가운데 일본 다음으로 많은 공적 금융을 해외 화석연료산업에 투자하고 있는 나라다. 2019~2021년 사이에는 약 83820억 원을 투자했다.

 

그럼 국내에서는 어떨까? 우리나라는 석탄화력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있는 만큼 최소한 석탄화력발전에 대한 공적 금융투자는 중단되지 않았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삼척에서 짓고 있는 석탄화력발전소 블루파워가 대표적이다.

 

삼척 블루파워는 포스코인터내셔널(29%), 포스코이앤씨(5%) 등을 주요 주주로 두고 있다. 하지만 54.53%의 지분은 KIAMCO 파워에너지 3호 펀드라는 인프라 펀드가 보유하고 있다. 이 펀드는 산업은행과 국민연금공단 등이 주도하며 정책금융공사와 우정사업본부도 참가하고 있다. 해외 화석연료 사업이 그렇듯이 국내 화석연료 사업 역시 공적 금융이 뒷받침을 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국민연금은 20215, “탄소중립 사회 전환에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겠다라며 탈석탄 선언과 함께 석탄 채굴과 발전 산업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바뀐 것은 없었다. 석탄투자 제한기준을 정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투자 대상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주주활동도 미적거렸다. 그러는 새 국민연금의 석탄 관련 투자는 2021년의 126500억 원에서 2023년에는 13조 원으로 늘었다(2023년 국정감사).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20236월 기준으로 금융기관의 화석연료금융 자산은 1185000억 원. 이 가운데 공적 금융이 보유한 자산은 618000억 원으로 60.8%에 이른다(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2023). 이처럼 국내의 화석연료 투자는 공적 금융이 주도하고 있으며 해외 화석연료 개발에도 공적 금융은 민간자본의 자금줄이 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2110, ‘신규 해외 석탄발전 공적 금융지원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해외 석탄발전 사업과 설비에 대한 공적 금융지원(공적 개발원조·수출금융·투자 등)을 중단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행을 위한 후속조치는 따르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공적 금융의 역할은 그냥 눈앞의 이윤을 좇아 흘러갈 뿐이다. 당사국총회(COP28)에서 기후변화로 피해를 본 개발도상국을 지원하기 위해 조성키로 한 손실과 피해 기금도 내지 않고 있다.

 

기후환경에 관한 한 지구는 하나의 세계다. “글로벌하게 생각하고 로컬하게 행동하자”(Think globally, Act locally)라는 말이 있다. 각자가 처한 공동체나 도시에서 지구의 건강을 생각하며 행동을 취하라는 말이다. 생태의 시대라는 책에서 라트카우(2023)는 이 말을 두고 세계적으로 행동하는 양 꾸미며 그저 자국의 국익만 노리는 자세로 생각도 행동도 무시한 것은 아니었을까라고 묻는다. 한국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기후위기 대응은 다른 나라한테 떠맡기고 우리는 탄소를 많이, 그리고 오랫동안 배출하겠다는 글로벌 무임승차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이를 용인할까. 전환이 지연될수록 기후재난은 심해지고 전환에 필요한 자금은 늘어날 것이다. 세계적으로 기후위기는 이미 현실로 다가오고 있으며 온실가스에 대한 규제는 강해지고 있다. 기후재난이 한반도를 피해가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의 반도체나 자동차, 철강과 같은 주력 수출상품들이 RE100이나 탄소국경조정세의 벽을 통과할 수 있을지, 금융기관이나 대기업이 미국이나 유럽에서 요구하는 각종 정보 공시기준을 지킬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앞으로 10년간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현 세대와 미래 세대가 겪을 세상도 달라진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지난해 3월 발표한 제6차 평가보고서의 핵심메시지다. 단기적 정책 대응의 시급성을 말하는 지점이다. 그 출발점의 하나가 금융, 특히 공적 금융의 역할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박태주 60+기후행동 운영위원 | 시민언론 민들레 2024.01.26.

 

 

 

한동훈의 반란, 윤석열은 진압했나

"너는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vs. "살려는 드릴게"

검찰총장 때도 그랬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한마디로 '무자비한 정치'를 해왔다. 유승민, 나경원, 안철수를 무릎 꿇리고 이준석은 내쫓았고 자신이 꽂았던 김기현도 걷어찼다. 윤 대통령에겐 '병력'이 있었기에 무엇이든 밀어붙일 수 있었다. 초재선 의원들이 스스로 홍위병이 되어 선배 정치인들 모욕주고, 연판장 돌리고, 의원총회에서 대놓고 원내대표를 비난하기도 했다.

 

지금은? 공천이 '우주의 진리'인 국회의원들은 공천권을 가진 실세 비대위원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지지를 철회했다'는 기사를 가지고 한 위원장을 흔들려던 이용 의원의 도발도 결국 진압됐다. ''친윤' 이용 향해 쏟아지는 당내 비판(문화일보)'에서 보듯 보수언론이 나서 확인사살까지 했다. 결국 민심도 한 위원장 쪽으로 기울었다.

 

한동훈의 반란

한 위원장은 두루뭉술하고 애매한 '정치적 표현'을 하지 않았다. 이관섭 대통령실장의 비대위원장직 사퇴 요구를 거부한 직후 기자들에게 이를 확인해줬다. 대통령실의 당무 개입 사실을 직접 드러낸 것이다. 이후 "할 일을 하겠다," "내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 "당은 당의 일 하고, 정은 정의 일 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실을 면박 주듯 했다.

 

나아가 친윤 핵심 이철규 공동인재영입위원장에 대해 "내 스태프"라고 평가 절하했고, 김경율 사천 논란엔 지도부와 사전 협의를 했다고 반박했으며, 갈등 해결을 위한 김경율 사퇴와 관련해서는 "들은 바 없다"며 일축했다. 그러니까 대통령실의 압력과 요구를 모조리 거절하고 반박하고 잘라버린 것이다.

 

윤석열은 반란 진압했나?

23일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서천시장에서 만남과 한 위원장의 90도 인사를 두고 갈등은 봉합됐을 뿐 아니라 서열을 다시 확인했다는 주장도 있다.

 

1. 한 위원장은 대통령을 하차 지점에서 영접하지 않고 엉뚱하게 눈발 날리는 현장에 외롭게 홀로 서 있었다. 둘의 만남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하려고 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 맹추위 속에 벌세운 것이다.

 

2. 한동훈이 폴더인사에 대통령은 그 '어깨 툭' 인사를 했는데 눈 마주친 건 1초나 될까? 인사말도 ", 그래"였다. 이렇게 윤석열은 자신이 권력자임을 한동훈에게 확인시켜 준 것일까?

 

3. 내가 보기에 한동훈의 폴더인사는 승자의 배려다. 대통령의 체면은 살려준 것이다. 이번 갈등에서 대통령의 상처는 크다. 치욕적이다. 반면 한에게 윤은 나이 많은 선배다. 장관도 시켜줬고 비대위원장에도 앉혀줬다. 폴더인사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4. 윤 대통령은 싫은 사람 안 만나고, 불편한 자리 안 가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곧, 직접 만남에 나섰다. 자신에게 대들었고 망신을 준 부하다. 자신의 전매특허인 쫓아내기 작업에 들어가지 않고 왜 만나기로 했을까. 치욕을 만회하고 자신의 권력을 만방에 각인시킬 수 있는 방법은 '국가원수으로서의 의전' 외엔 없었기 때문 아닐까?

 

5. 무엇보다 윤은 한을 용서했을까? 한동훈은 서천시장 만남 직후 "대통령에 대한 깊은 존중과 신뢰의 마음을 갖고 있고, 그것은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통령실에서 "'한동훈에 대한 기대와 지지를 철회했다'는 발표를 철회한다"는 이야기는 아직 없다.

 

한동훈, "내가 니 시다바리가."

한동훈은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다. 사법시험도 윤 대통령처럼 9수 만에 된 게 아니라 대학 다니면서 합격했다. 정치에 뛰어들었으면 당연히 성공해야 하고 대권을 쟁취할 결심은 이미 섰을 것이다.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는 한동훈에게도 해당된다.

 

한동훈의 이번 반란은 "나는 당신 꼬붕 아니다"라는 메시지다. 영화 <친구>의 대사 "내가 니 시다바리가"를 던진 것이다. 검사 시절엔 상사였던 윤석열을 도와주긴 했지만 죽을 때까지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비서실장을 보내 물러나라고 통보하듯 한 것도 한동훈의 자존심을 긁었을 것이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해"도 기분 나쁘지만, 한 달도 안 돼 "너 나가" 하는데 누가 이를 받아들이겠는가.

 

윤석열, "너는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윤석열은 큰 상처를 입고 일단 물러섰다. 치욕이다. <달콤한 인생>의 대사처럼 "너는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를 되뇌면서 전열을 재정비하고 묘수를 짜내고 있을 것이다. 그는 무자비한 사람이다. 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벼락출세 시켜준 문재인도 배신한 사람이다. 조국 법무부장관은 가족까지 멸문지화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번엔 쉽지 않다. 민심은 물론 보수언론도 자기 편이 아니다. 그래서 예의 그 '캐비넷' 이야기가 떠돈다. 검찰을 동원할 거란다. 그런데 한동훈도 검사장 출신이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한에게 줄을 서는 듯하다. 명분도 없고, 병력도 없다. 결국 힘이 없는 것이다.

 

지금 판돈이 제일 커진 사람은 한동훈

많은 이들이 총선 전후로 양쪽이 큰 싸움을 치를 것으로 예상한다. 누가 이길까? 권력이란 게 나눠 가질 수도 없고, 하늘에 두 태양이 있을 수 없다. 한동훈에겐 어려운 싸움이다. 첫째, 한이 상대해야 할 사람은 윤 대통령 뿐이 아니라 사실은 '윤석열 부부'이기 때문이고, 둘째, 이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이 승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총선 결과다. 국민의힘이 불리한 현 상황에서 한 위원장이 총선을 승리로 이끈다면 그는 '언터처블'이 된다. 부동의 대권주자가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 한동훈의 판돈이 제일 커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총선승리의 전제는 바로 공천이다. 대통령실과의 진검승부는 불가피하다. 자기 사람 심으려는 대통령실에 양보하면 '윤석열 아바타' 한동훈의 정치 인생은 그것으로 끝이다.

 

마리 앙투와네트? 루이16세 걱정부터 해야

판세가 이미 한동훈에게 기울었다는 징후는 여럿 있다. 첫째, (총선 승리가 전제이긴 하지만) 민심은 물론 보수언론도 한동훈 편이다. 둘째, 대통령 임기말까지 공천 걱정 없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인기 없는 대통령을 소 닭 보듯 할 것이다. 셋째, 레임덕은 이미 시작됐다. 원래 취임식 다음날부터 레임덕 시작이다. 넷째, 온갖 수를 써서라도 한 위원장을 내보내려 하겠지만 윤 대통령의 수는 한 위원장에게 다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머리를 쥐어짜 생각해낸 게 바로 '지지 철회' 기사다. 본전도 못 건지고 망신만 당했다.

 

윤석열은 이미 늙은 사자다. '임기가 3년이나 남았다'고 하지만 국정지지도가 이렇게 낮고 논란이 끊이지 않으면 본인만 괴로울 뿐이다. 김경율 비대위원이 김건희 여사를 마리 앙트와네트에 비유했다가 난리가 났다. 지금 앙투와네트가 문제가 아니다. 본인이 루이16세가 되지 않을 방법부터 고민해야 한다.

 

"살려는 드릴게."

이 둘이 20년 넘는 선후배 관계로 인간적 신뢰가 남다르다며 갈등은 봉합됐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30년 직장생활 같이 하고 원수 된 사람들 많다. 무엇보다 그건 검사라는 공무원 생활 때 이야기다. 이들은 지금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정치의 링 위에 올라 있다. 이번 갈등의 시작부터 서천시장에서의 만남까지를 한동훈의 입장에서 요약하면 이렇다. 내 할 일 한다. 예의는 갖추고. 영화 <신세계>의 대사다.

 

"살려는 드릴게."

정희준 문화연대 집행위원 | 프레시안 2024.01.27.

 

 

돈의 분열증, 부동산과 금융의 공생

돈은 순리대로 돌아야 인간을 위한 돈이 된다. 그러나 정작 돈의 생각은 다르다. 자기가 경제와 세상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굽신굽신해야 다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 돈은 어떻게 돌고 있을까?

 

돈은 유동성이 최고인 재산 중의 재산이며 모든 여타 재산에 대한 일반적 등가권(title)이다. 생산적으로 투자되면 유용한 가치를 창출할뿐더러 일자리와 임금소득을 보장한다. 화폐-생산-노동-임금으로 이어지는 생산적 화폐순환 또는 소득경제 순환이 일어난다.

 

생산적 투자의 위험부담이 싫을 경우 돈은 본성상 자산적 투자로 흐른다. 물론 그 고삐를 풀어주는 제도적 조건이 따라야 한다. 인간의 살림살이에 유용한 필요 물자의 조달이라는 책임에서 해방되어 교환가치증식에 몰두하는 화폐-자산-화폐의 순환 또는 화폐-화폐의 순환(채권자-채무자)이 발전한다. 자산시장이 팽창하고 불로소득 잔치판이 벌어지는 가운데 부가가치생산과 민간소비를 중심으로 하는 실질경제 순환은 쪼그라든다. 안정적 일자리와 임금소득은 옛날이야기로 밀려난다.

 

자산적 축적에 특유한 거시경제동학과 함께 자산불평등이 확대된다. 일반 대중의 삶과 심성도 자산경제 돈잔치판과 투자자 욕망에 흽쓸린다. 너도나도 내 집의 주인은 물론 워너비 건물주가 되고 싶어한다. 이로써 불로소득자본주의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데 이것이 피케티가 놓친 21세기 자본체제의 지배적 모양새다. 자산경제 동전의 뒷면에 있는 것은 부채의 폭증이다. 가계부채와 자산투자기업 특히 부동산개발기업의 부채(부동산PF대출)가 그 선두를 달린다. 화폐창조권을 사유화한 은행과 각종 금융기관들이 자산·부채경제의 공모자로 변질해 그 흥망, 자산인플레와 이어지는 부채디플레, 고물가·고금리·경기침체와 운명을 같이한다.

 

자본주의라면 어디든 법적 소유권보장체제가 돈의 정신분열증을 떠받친다. 인간의 살림살이는 그 분열증을 원천적으로 피할 도리는 없다. 그럼에도 공공적, 제도적 조절양식 여하에 따라 병증은 상당 정도 치유될 수 있다. 돈 권력의 본성 대 사회공공성 논리 간의 이중운동에 따라 축적체제 양상은 큰 역사적, 국민적 다양성을 보인다. 해방적 나우토피아를 만들 수도 있다. 이는 법적 소유권이 돈의 방종적 축적놀이와 불로소득청구권을 보장한다 해도 그 지배권의 현실적, 시공간적 실현과정은 사회세력 간의 치열한 투쟁의 장이 되고 정치적, 정책적 쟁투와 제도화를 통과해야 함을 말해준다. 돈의 민주화 길도 그만큼 복잡하다.

 

폴라니는 토지, 화폐, 노동을 사회의 본원적 공동자산(사회의 실체!)으로 보고 시장사회가 이를 허구적 상품으로 포섭해 사회의 실체적 경제와 생태적 균형을 파괴한다고 갈파했다. 이 놀라운 통찰에 우리의 축적체제론을 더하면 돈의 분열적 축적 길과 이에 종속된 인간의 살림살이 운명은 부동산과 금융의 조절양식, 양자의 접합방식에 크게 좌우된다고 말할 수 있다. 부동산시장은 그 자체 자산적 축적의 큰 소굴이다. 하지만 부동산 및 금융시장 양쪽 모두의 탈규제와 상호의존적 공생, 그에 따른 부동산의 금융화를 통해 자산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판도라 상자가 열린다. 한국에서 결정적으로 이 뚜껑이 열린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다.

 

민주 대 반민주 대립이 널리 통용되고 진영정치 기준도 되지만 부동산과 금융의 통제고삐 여하라는 시각으로 보면 다른 인식이 가능하다. 이 시각이 갖는 함축은 의미심장하다. 왜 한국경제가 개발주의에서 불로소득주의로 압축전환했는지, 왜 우리가 민주화의 역설에 빠졌는지를 밝히는 중요한 열쇠다. 박정희 시대에 오늘의 부동산공화국으로 가는 문이 열렸다고 말하지만 어폐가 있다. 박정희식 개발주의는 산업경제를 위한 금융통제를 시행해 부동산과 금융의 사이 좋은 공생의 길을 막았고 금융의 주요 물줄기는 부동산투자로 흐르지 못했다.

 

외환위기 이후 다시 박근혜 정부 때 빚내서 집 사라로 대표되는 줄푸세정책이 자산경제 물길을 새 단계로 올려놓았다. 윤석열 정부는 묻지마 줄푸세 2.0정부다. 미국 바이든의 정책(확장재정, 부자증세, 친노동, 학자금부채탕감)의 절반만 해도 정권도 살고 나라살림과 민생도 숨이 좀 트일 텐데 시대착오적 역주행으로 나라살림은 엉망이고 민생은 벼랑 끝에 몰렸다. 숨막히는 긴축재정 기조에도 세수부족이 엄청 심각한데 눈앞 선거라고 또 감세폭탄을 던진다. 심지어 안전진단 없는 재건축이라니(1·10대책). 안전판 없는 윤석열리스크, 매우 불안하고 위험하다./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 | 경향 2024.01.28.

 

 

누가 대통령 귀에 엉터리 경제이론을 속삭이는가

장관님들이 힘드실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님이 (반도체에 대해) 너무 잘 알고 계셔서.”

 

지난 15일 열린 이른바 민생토론회세번째 시간에 첫 토론자로 나선 이우경 에이에스엠엘(ASML)코리아 사장이 한 말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저도 전문가이긴 합니다만, 입시에 대해서는 (윤석열 대통령께) 제가 진짜 많이 배우는 상황”(2023619일 당정협의)이라고 했던 말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윤 대통령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토론회 서두에 16분에 걸쳐 한 발언으로 미루어보면 뿌듯해하지 않았을까 싶다.

 

윤 대통령은 어떤 일이든 아주 강한 자신감을 갖고 추진한다. 문제는 엉터리일 때가 적지 않다는 데 있다. 경제 관련 사안도 예외가 아닌데, 올해 들어 계속 외치고 있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황당함마저 느끼게 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란 말은 윤 대통령의 후배 검사출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 그는 지난해 1017일 국회 정무위원회 금감원 국정감사에서 불법 공매도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일요일이던 115일 금융위원회는 임시회의를 열어 올해 6월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는 시장의 예상을 뒤집은 일이었다. 이 원장은 국정감사에서 공매도에도 순기능이 있어서 지나치게 제약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이 한국 증시를 선진국 지수에 편입하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공매도 제한을 꼽아온 것을 짚은 것이다.

 

공매도 전면 금지 첫날 코스피지수가 5.7%, 코스닥지수가 7.3% 폭등했다. 이차전지주를 대표하는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은 상한가(30%)까지 올랐다. 그 뒤 윤 대통령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입에 달고 다닌다. ‘세금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이라는 새로운 주장이 등장한다. 정부는 지난해 말, 주식 양도세 과세 때 과세 대상이 되는 대주주인지 판단하는 보유 주식 시가총액 기준액을 10억원에서 50억원으로 올렸다. 윤 대통령은 12일 증권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2025년부터 과세하기로 돼 있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의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선진국에선 증권거래세를 매기지 않고, 투자 소득에 과세한다. 우리나라도 그 방향으로 가려고 오래전부터 한 걸음씩 내디뎌온 것이 금투세다. 대통령의 금투세 폐지발언은 막 취임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체면을 땅에 떨어뜨렸다. 박근혜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1차관을 지내면서 주식 양도세 범위 확대 등 자본소득 과세 강화를 추진했던 최 부총리는 18금투세 폐지는 1400만 투자자를 위한 감세라고 말을 바꿔야 했다.

 

윤 대통령은 117일 금융 분야 민생토론회에서 상속세를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한 원인으로 꼽고, 개편 의사를 내비쳤다. 이날 발언은 많은 이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한번도 그런 연구 결과를 접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부자들 세금 깎아주려는 것을 주식 투자자들을 위한 것으로 포장하려다 금을 밟고 만 것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꽤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2월 자본시장연구원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분석이란 보고서를 냈다. 실증분석 결과, 미흡한 주주 환원 수준, 낮은 수익성과 성장성이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나왔다. 후진적인 기업지배구조도 원인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지만, 설명력은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상한 말을 계속하고, 정책은 꼬이고, 정부 부처는 수습하느라 고생한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못하고 있다고 대답한 사람 가운데 경제·민생·물가를 이유로 꼽는 사람이 가장 많다. 대규모 부자 감세가 족쇄가 되어 재정정책을 기둥으로 한 경제정책이 먹통이 된 상황을 사람들은 피부로 느끼고 있다. 윤 대통령은 202278일부터 비상경제 민생회의를, 올해 들어서는 민생토론회를 직접 주재하고 있지만, ‘부자지지자를 위한 선심 쓰기를 민생정책이라고 포장해 내놓는 게 대부분이다. 더는 속을 사람이 없는 그런 엉터리 논리를 대통령 귀에 속삭이는 이들을 쳐내지 못하는 한, 윤 대통령도 이 나라 경제도 앞날이 아득하다. 대통령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올인1월 한달 동안 공매도 금지의 약발도 다하고, 주가는 큰 폭 하락했다. 조금이라도 깨닫는 바가 있기를 바란다마는.

정남구 | 논설위원 | 한겨레 2024.01.28.

 

 

어머니,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묘지에서 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저 파괴된 건물에서 나오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검은 바다에서 연기처럼 꺼진 것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내부에서 사멸된 것은 무엇입니까.”(박인환, ‘검은 신이여’)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알 파쿠라 학교를 공격했다는 뉴스를 보다가, 종군작가단으로 6·25전쟁 한가운데서 썼던 박인환의 시가 떠올랐다. 뉴스에서는 잿더미가 된 포격의 잔해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죽거나 죽어가는 사람들을 담요에 싸서 옮기고 있었다. “폭발이 세번 일어날 때 여기 서 있었어요. 시신 한구와 목이 없는 시신을 내 손으로 옮겼어요. 신께서 피의 복수를 해줄 거예요.” 어린 소년이 울면서 부르짖던 말이다. 그 울부짖음은 74년 전 학도병 이우근(1934~1950)의 부치지 못한 편지와 겹쳐졌다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 지금 내 옆에서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빛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 어머니,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1950810일 쾌청한 날씨에 당시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이었던 이우근 학생이 포항여자중학교에서 북한군과 대치 중에 어머니에게 썼던 편지의 일부다. 이튿날 그는 전투 중 전사했고 그의 일기는 피에 얼룩진 채 옷 속에서 발견되었다.

 

러시아의 공격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2년째 계속되고 있다. 하마스의 기습작전으로 시작된 가자지구 전쟁도 4개월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이어 이스라엘군이 크리스마스에 시리아를, 새해에는 레바논을 공습했다. 2주 전에는 미·영군이 홍해의 예멘 반군 후티를 공습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미국·서유럽과 중동·러시아·중국, 기독교와 이슬람, 유대인과 무슬림, 이스라엘·사우디와 이란·시리아·레바논·예멘의 대결 구조로 확전되고 있다. 오늘도 유엔이 가자지구에 질병과 기근 위험을 경고했고, 우크라이나 포로 65명을 태운 수송기가 격추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모든 계획과 모든 아이디어 뒤에는 총, 혹은 탱크, 혹은 원자폭탄이 있다. 아니면 권총이 있거나, 하다못해 오래된 브라우닌 권총이라도라고 일갈한 이는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강제수용소에 갇혀 강제노역했던 영화예술가 요나스 메카스였다. 전쟁을 시작한 사람은 많지 않을 수 있으나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의 욕망과 논리는 무궁하다. 전쟁의 주체 또한 마찬가지다. 전쟁 당사자는 쌍방이겠으나 실제로 그 뒤에 숨은 실세 혹은 조력자들은 고구마 넝쿨이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크고 작은 원인이 쌓여 한 지점에서 터지는 게 전쟁이다

 

완충구역 북 해안포 사격에 따라 우리 군은 오늘 오후 해상사격 예정입니다. 서해5도 주민께서는 만일의 사태에 유의 바랍니다.” 도민들에게 대피 안내방송과 문자가 전송되었다. 지금은 가물가물해진 민방위훈련이나 등화관제 훈련이 아니라 새해 연평도의 실제상황이었다. 국민 전체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이런 재난 문자를 받는다면?

 

유엔군(미군), 중국군, 북한군 사령관이 서명했던 휴전협정 이후 70여년이 지났다. 여전히, 최근 들어 부쩍, 북한은 포사격, 핵실험, 미사일 도발을 하며 대한민국의 완전 소멸운운하며 위협 중이다. 한반도 정세가 6·25 전쟁 직전만큼이나 위험하고 김정은의 전쟁 준비경고를 허세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미국 전문가들의 경고도 있었다. 우크라이나, 가자지구, 홍해의 일이 남의 나라 얘기로만 다가오지 않는 까닭이다.

 

대만 총통선거를 필두로, 인도네시아 대선과 총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대선, 인도 총선, 유럽의회 선거, 미국 대선, 영국 조기 총선 등이 올해 치러야 할 세계적인 선거들이다. 그 한가운데 우리의 4월 총선도 있다. 선거 결과들은 세계정세와 경제는 물론 전쟁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 -, -중동 간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형세가 한반도 정세이기도 하다.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님 곁으로 가겠습니다. 웬일인지 문득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그리고 옹달샘의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포탄이 오가는 전쟁터에서 16살 이우근이 마지막으로 꿈꾸었던 건 어머니와 상추쌈과 샘물 한사발이었다. 국가도, 이데올로기도, 승패도, 그 어떤 명분이나 논리도 아니었다. 하루빨리 세계의 전쟁이 종식되기를. 70여년 전 겪었던 전쟁의 상흔이 아물지 않은, 여전히 휴전 상태인, 우리로서는 더더욱!

정끝별 | 시인·이화여대 교수 | 한겨레 2024.01.28.

 

 

진실과 정의는 포토라인에 있는가

실망시켜 죄송합니다”, “성실하게 수사에 임하겠습니다”. 이런 말과 함께 수사기관 앞에서 카메라에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피의자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이런 자리를 포토라인이라 부른다. 공직자이거나, 유명한 사람이거나, 사회적 파장이 큰 흉악 범죄의 피의자들이 수사기관에 출석하거나 출석 후 귀가에 앞서 입장을 밝히고 언론의 질문에 응대하는 관행이다.

 

포토라인은 늘 논란거리였다.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과 수사나 재판이 끝나지 않은 피의자를 수사기관이 공개 소환해 언론 앞에서 망신 줌으로써 무죄 추정의 원칙에 반한다는 비판이 상존했다. 여러 논란 끝에 검찰은 201910월자로 피의자 공개소환을 전면 폐지했다. 다만 경찰과 공수처는 공개소환을 유지하고 있다.

 

포토라인이 범죄 피의자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피의자의 입장이란 것이 대부분 성실하게 수사받겠다는 것뿐이고, 그 앞에서 기자들이 여러 질문을 던지지만 대부분 대답하지 않고 자리를 뜬다. 화제가 되는 건 대개 포토라인에 선 피의자의 표정, 태도나 특이한 행동, 장착 같은 것들뿐이다. 표정, 태도, 행동에 대한 평가는 보는 이에 따라 주관적일 수밖에 없어 피의사실과 무관한 비난이 쏟아지는 사례도 많다. 요즘은 여기에 추측과 소문을 덧붙여 재생산한 가십 콘텐츠로 돈과 인기를 버는 이도 많다

 

최근 배우 이선균씨가 세상을 떠났다. 고인 역시 경찰로부터 공개 소환됐고, 포토라인에 섰다.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받았고, 고개 숙여 사죄했다. 사망 이후 연예인과 같은 유명인 피의자를 사회적 관심을 많이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포토라인에 세워 소득 없이 망신을 주는 행위가 타당한가에 대한 오래된 논쟁이 반복됐다. 사실 포토라인 이슈는 공개 소환과 떼놓을 수 없다. 수사기관이 소환 일정을 언론에 알리지 않으면 포토라인은 만들어지기 어렵다. 결국 포토라인은 수사기관으로부터 시작된 문제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관계자발로 누가 무슨 혐의로 입건돼 수사를 받고 있고, 어떤 진술을 했는지 공공연히 언론에 단독딱지를 달고 보도되는 일이 관행이 된 지 오래다. 대개 수사기관이 위법하게 몰래 흘린 것들로 엄연한 피의사실 공표. 피의자를 망신 줘서 기선을 제압하고 여론의 힘으로 수사를 밀어붙이거나, 피의자의 반응을 간 보려는 속셈이다. 공개 소환이나, 피의사실 공표나 모두 수사의 빈틈을 여론으로 메꿔보려는 수사기관의 구태다.

 

수사기관은 수사로 범죄를 입증해야 하고, 범죄자는 법으로 단죄받으면 된다. 엄격한 도덕적 잣대가 적용돼야 할 직무상 범죄를 저지른 공직자나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야기한 피의자가 아니라면, 누구도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감당해야 할 몫 이상의 사회적 비난거리가 될 까닭이 없다. 유명인을 포토라인에 세워 망신 주는 일이 범죄 예방이나 국민의 알권리 보장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경찰서 문 앞이 아니더라도 진실과 정의를 밝힐 장소는 많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 주간경향 2024.01.29.

 

 

오디션과 이데올로기

한국 사람들은 정말 노래를 좋아하는 듯하다. 방송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흔히 보는 게 가수 오디션이다. 게다가 다 죽어가던 어떤 보수 방송의 연예 분야가 트로트 가수 오디션을 통해서 기사회생하자 그에 질세라 몇몇 방송들이 기를 쓰고 흉내를 내고 있다. 이런저런 음악 오디션에 참가를 신청하는 사람들이 몇십만명을 넘어선다니 애청자들까지 합치면 한국인들 몇백만명이 가수 뽑기에 몰입하고 있는 셈이다. 하기야 6·25전쟁 때도 남북한 군인들이 낮에는 목숨을 걸고 싸우다가도 밤이면 맹렬하게 가무를 즐겼다는 증언을 접한 적이 있다.

 

그런데 침착하게 생각해보면 이런 현상이 과연 단순히 노래 사랑, 가수에 대한 열광에 그치는 것일까 하는 질문, 또한 이런 몰입에 신나는 박수만을 쳐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음악 오디션은 학맥, 인맥, 정치적 사회적 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심사에 참여하는 뮤지션들은 공정하게 심사하려 하고 애청자들도 주관적 취향에 따라 선호하는 가수가 다르긴 하지만 최종 결과를 놓고 시비를 심하게 걸지는 않는다. 오디션이 나름대로 공정성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

 

가수 오디션은 사람들에게 한국 사회의 치열한 경쟁을 통한 성공 혹은 실패가 개인의 실력이나 노력의 문제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경향이 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음악을 넘어서 전체 사회적 차원에서도 무한경쟁을 불가피한 것으로 인식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대체로 승복하게 된다. 오디션이나 신문 박스 기사에 자주 등장하는 드라마틱한 성공 신화는 초점을 개인에 맞추고 사회경제구조나 제도의 문제를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기득권을 가진 엘리트 및 사회상층부의 지배와 권력 독점이 정당한 것이라는 암시를 끊임없이 생산/재생산한다. 최근 몇년 유행하는 개념을 빌리면 능력주의(meritocracy)’가 한국 사회에서 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증거다. 한 개인의 성공은 그 사람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라고 보는 사고방식 말이다.

 

최근 극성을 떠는 학벌에 대한 과도한 집착도 어떻게 보면 이러한 능력주의의 한 모습이다. 최상위 대학교에 들어간 사람들은 그럴 만한 이유가 다 있고 그들의 승리는 부단한 노력의 당연한 결과라는 인식 말이다. 머리 좋고 공부 열심히 한 사람은 유명대에 들어가고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은 별로 알아주지 않는 대학에 갈 수밖에 없다는 게 상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능력이란 무엇인가? 냉정하게 해부해보면 그것은 부모(요즘은 조부모들까지 포함)가 제공하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자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 네트워크(연줄), 문화적 소양이 뒷받침되는 사람과 그것이 극심하게 부족한 사람 간의 격차는 불을 보듯 뻔하다.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기회의 평등이라는 말을 쉽게 쓴다. 출발선이 같으니 평등하고 따라서 결과는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쪽은 최신식 운동화, 전문가의 체계적인 지도로 무장되어 있고 다른 한쪽은 맨발에 아무런 조언이나 사전 트레이닝 없이 달리기 시합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누가 이길까? 답은 뻔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조건보다는 노력과 재능의 문제로 오인하면서 승리와 패배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세습보다는 능력을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능력주의를 좀 더 나은 현상으로 간주하지만, 사실은 능력 안에는 이미 세습적 요소가 들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는 이미 능력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상당히 내면화하고 있어 세속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누리는 특권과 지배를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한 예로 국회의원을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선출하는 선거 경쟁에서도 사람들은 명문대출신을 매우 선호한다. 높은 수능 및 내신 점수와 정치인의 유능함과는 별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참고로 21대 국회의원 중 SKY 출신 비율은 37%, 20대 국회에서는 SKY 비율이 47.3%!).

 

가수 오디션은 그 자체로는 죄가 없다. 물론 과도한 경쟁 속으로 참가자를 몰아넣어 시청률을 높이려는 전략은 문제가 있다. 예술 관련 오디션에서는 다른 분야보다 재능이나 가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것을 모르지 않는다. 특히 가수 오디션과 일반 분야에서의 사회적 경쟁은 성격이 아주 다르다. 하지만 우리가 음악계가 아니라 한국 정치/사회까지 오디션이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본다면 특정 집단의 부당한 지배를 벗어나기 힘들고 엘리트들이 누리는 특권 구조는 은폐되기 마련이다.

권혁범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경향 2024.01.29.

 

한동훈의 승리? ‘김건희는요?

지난 26일 국민의힘 제주도당이 4월 총선 및 도의원 보선에 나설 예비후보들을 모아놓고 준법선거·클린선거 선언식을 열었다. 예비후보들은 클린선거 선언 이후 각자 소신을 밝힌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논란에 대한 질문도 포함됐다. 사회자가 그런 질문은 기자회견 이후 개별적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7명의 예비후보들은 답하지 않았다(<뉴스제주> 참조).

 

이른바 ·한 대전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승리했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23일 충남 서천 화재 현장에서 ‘90도 폴더 인사를 한 걸 두고도 승자의 아량을 보였다는 해석이 나왔다. 한국갤럽·전국지표조사 등 주요 여론조사(이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에서 한 비대위원장에 대한 긍정 평가가 높게 나타난 것도 승리의 증거로 간주된다.

 

한 위원장은 승리했나? 갈등 봉합 이후 그는 제가 김건희 여사의 사과를 얘기한 적이 있던가요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국민 눈높이” “국민들이 걱정할 만한 부분을 언급했을 뿐 사과를 촉구한 적은 없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거론하며 이번 논란의 주연급 조연으로 부상한 김경률 비대위원은 어떤가. 디올 백 이야기는 접어둔 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은 더 이상 밝혀질 게 없다김건희 특검반대론을 폈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서천에서 조우한 후 엿새 만인 29일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용산 대통령실에서 오찬을 함께 했다. 김 여사 관련 사안은 이 자리에서 논의되지 않았다고 동석했던 윤재옥 원내대표가 전했다. 윤 대통령은 봉합을 넘어 확실하게 화해도장을 찍고 싶었던 것 같다.

 

한 위원장은 이긴 게 아니다. ‘형수 문제에 눈을 감고 입을 닫겠다는 조건으로 거래 혹은 타협한 거다.

 

조기 종영된 ·한 쇼는 무의미하지 않았다. 봉합의 끝에서 본질은 선명해졌다. ‘김건희가 남았다. 명품 백도, 주가조작 연루 의혹도 사라지지 않았다. 민주공화국의 선출된 최고 권력뒤에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존재하며, 선출된 최고 권력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보호하기 위해 뭐든 할 각오가 돼 있음이 드러났다.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조계 특권층을 통칭해 불멸의 신성가족이라 했는데, 김 여사는 윤석열의 신성가족으로 등극했다.

 

명품 백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고서 한국 정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디올 백은 더 이상 단순한 가방이 아니다. ‘신성가족 김건희의 불투명성을 상징하는 기호.

 

김 여사는 대선 과정에서 학력·경력 부풀리기 의혹이 일자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약속했다. 취임 후 언행은 달랐다. 친분 있는 민간인을 행사에 동반하고, 고가 목걸이를 착용하곤 지인에게 빌렸다했으며, 리투아니아 방문에선 명품 매장을 찾았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특혜 의혹에다 대통령실 외교·의전라인 교체 당시 김 여사 관련설도 제기됐다. 취임 전 발생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은 여전히 수사 중이다.

 

차곡차곡 쌓여오던 시민의 분노는 디올 백이란 임계점에 이르러 마침내 폭발했다. 지난 26일 공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부정 평가 이유 중 3위가 김 여사 행보’(9%)로 나타났다. 대통령 부정 평가 이유에서 김 여사 행보가 5%를 넘은 것은 처음이다. 해외 유수 언론들까지 명품 백 사건을 “K드라마”(영국 가디언)에 비유하며 보도하고 있다.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경향 2024.01.29.

 

 

2016년 국정농단 사건 때로 돌아가본다. 시민은 왜 최순실씨(개명 후 최서원)에 분노했나. 선출되지 않은, 아니 임명직조차 갖지 않은 비선이 대통령 뒤에 숨어 권력을 휘둘러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정신을 위배해서다.

 

김 여사는 대통령의 배우자이니 괜찮은가. 300만원 상당의 물품을 받고, 그 자리에서 남북문제에 제가 좀 나설 생각이라 해도 넘어가야 하나. 백보 양보해 배우자로서 미칠 수밖에 없는 영향력을 인정한다 해도, 실정법 위반 의혹이 있다면 조사·수사받아야 옳다. 당사자도 아닌 남편이 친정권 언론사 대담을 통해 해명한다고 시민을 납득시킬 순 없다. 주가조작 연루 의혹도 마찬가지다.

 

한 위원장은 국회의원 정수 축소 등 특권 내려놓기를 약속하고 있다. 포퓰리즘이라는 야당 비판에는 대다수 국민이 바라는 걸 하겠다고 하는 게 포퓰리즘이라면, 기꺼이 포퓰리스트가 될 것이라고 맞선다. 서울경제 여론조사를 보면, 쌍특검 법안(김 여사 주가조작 의혹·대장동 50억 클럽 의혹) 재의결에 동의한다는 답이 65%였다. 명품 백과 관련해 김 여사가 직접 사과해야 한다는 응답은 56%였다. 진정한 포퓰리스트가 되고 싶다면 이 조사를 참고할 일이다

김정은의 헤어질 결심’, 의미와 대처방향

연초부터 북한의 새로운 대남노선이 한반도에 전운을 몰고 왔다. 북한 지도자 김정은은 불신과 대결만을 거듭해온 쓰라린 북남관계사를 냉철히 분석한 데 입각했다며 기존 통일정책을 포기하고 영구분단을 기정사실화하면서 한반도에 가장 적대적인 두 국가가 병존하고 있다고 선언하였다. 이는 한반도의 현재와 미래 모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으로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대남노선 전환의 의미는 대략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북한은 남한과의 통일을 지향하지 않고 남남으로 살아가겠다고 공식 선언하였다. 그동안 남북이 공유해온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남북관계 인식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이러한 반전은 윤석열 정부와 격렬하게 대립하면서 감정적으로 표출된 양 보이지만, 기실 북한이 꽤 오랫동안 준비해온 것이다. ‘우리민족제일주의대신에 우리국가제일주의를 대대적으로 고창하고, 남한을 대한민국이라 호명한 것 등이 두 개의 국가론을 다지는 포석이었다. 김정은은 남북한 간 체제의 차이와 역량 격차가 극명한 속에서 장기적으로 백두혈통 정권의 지속을 위해 이 길을 택했을 것이다.

 

둘째, 북한은 두 개 국가의 병존 정책을 현실화하는 차원에서 대남 혁명공작 분야를 폐지하였다. 북한은 이미 대남적화 관련 조항을 노동당 규약에서 삭제한 데 이어 이번에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민족경제협력국 등의 국가기구와 대남 접촉기구들을 폐지하였다. 대남 선전공작을 해온 평양방송의 송출도 중단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라는 김여정 부부장의 대남 담화(2022819)의 맥락과 상통한다. 김정은이 남한과 확실하게 헤어질 결심을 한 것이다.

 

셋째, 북한은 남북관계를 사실상 전쟁 중인 가장 적대적인 관계로 규정하였다. 김정은의 헤어질 결심이 경착륙한 것으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다. 아마 남북관계가 비적대적 관계로 전개되었다면, 김정은은 남한과 평화협력을 추구하며 장기적으로 두 개의 국가병존으로 나아가는 연착륙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급격히 적대적 방향으로 흐르면서 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남북이 몰두한 팃포탯(tit for tat) 대결이 남북군사합의서의 파기로 이어지고, 무력충돌의 위험성을 키운 가운데 가장 적대적인 국가규정이 나온 것이다.

 

과연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나? 먼저 북한의 두 개 국가론은 한반도 미래에 중대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렇다고 기존 관념에 바탕을 두고 즉각 대응할 일은 아니다. 중장기적으로 내부 숙의를 거쳐 합리적 대처방안을 찾아야 한다. 당장 절실한 건 가장 적대적 관계에서 터져 나올지 모를 전쟁 혹은 무력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 수립이다.

 

북한이 의도적으로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은 작다. 그들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전쟁을 도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군은 세계 최강의 미군과 연합전력을 구성하고 있으며, 재래식 군사력 면에서는 북한군을 압도한다. 그래서 전쟁을 입에 달고 다니는 김정은도 적들이 건드리지 않는 이상 결코 일방적으로 전쟁을 결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제를 단다. 북한군 내부도 작년보다 더 많은 병력이 경제건설 현장에 투입되는 것 말고, 특이동향은 감지되지 않는다.

 

만약 전쟁이 발발한다면 먼저 휴전선이나 북방한계선에서 충돌이 발생하고, 그것이 관리되지 못하면서 확전되는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군사분계선에서 남북 충돌을 막는 일이 시급하다. 우선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내뱉는 거친 언사와 위협적 행동부터 즉각 중단해야 한다. 북한이 먼저 할 리 만무하니 우리부터 해야 한다. 그러면 충돌은 막을 수 있다.

 

오늘의 위기조성에 큰 영향을 미친 윤석열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에 대해 많은 국민이 우려한다. 이번만큼은 국가 명운이 걸렸으니 절제된 판단력으로 국민 불안을 해소하고 한반도 리스크도 덜어주길 바란다. 국회도 적극 나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 충돌 방지를 위해 소임을 다해야 한다. ‘한반도 전쟁 반대남북 충돌 방지를 위한 조치 마련 촉구결의안 등을 제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며, 전쟁을 가벼이 여기는 시각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수백만 명의 국민이 죽어 나가고 한국 경제·사회가 후진국의 나락으로 떨어진 뒤, 핵먼지를 뒤집어쓴 채 얻은 승리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 경향 2024.01.30.

 

양승태의 무죄, 조희연의 유죄

유무죄의 경계가 무엇일까? 사법부의 전직 수장이 피고가 된 사건에서 재판부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직권남용과 공모 혐의 모두에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에 논란이 야기되고 있다. 반대로, 현직 교육감이 피고가 된 사건에선 재판부가 조희연 서울교육감의 직권남용에 유죄를 선고했다. 결이 다른 두 선고는 후속 재판에서 다시 다루어지겠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직권남용 무죄와 조희연 교육감의 직권남용 유죄를 바라보는 마음은 매우 혼란스럽다. 두 재판부를 맞바꿔서 다시 재판해보는 비현실적인 상상도 해본다.

 

현실 바깥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범죄 사건을 다룰 때 인용하는 대중적인 표현으로 숨기는 사람이 범인이고 이익을 보는 사람이 범인이라는 말이 있다. 이 표현을 두 사건에 대입하면 양승태는 숨긴 것도 없고 이익을 본 것도 없다는 것이고 조희연은 숨긴 것이 있거나 이익을 본 것이 있으리라는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해직 교사 5명을 특별채용 형식으로 복직시키는 과정에서 조희연 교육감은 무엇을 숨기고 어떤 이익을 보았을까? 이미 공수처와 검찰에서 충분히 확인했겠지만 해직되었던 교사들이 교단으로 다시 돌아온, 특별히 숨길 것도 없고 이익 볼 것도 없는 단순한 사건이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저출산과 지역소멸 등 수많은 난제를 안고 있는 데다 사회적 갈등이 증가하는 것도 걱정이다. 교육 영역에도 유사한 갈등이 많다. 해직 교사의 복직 문제도 그 하나였다. 그런데 선출직인 개혁적 교육감이 당면한 갈등을 해결하고 교육 현장을 안정화시켜 더 나은 미래의 교육으로 나아가자는 차원에서 적극행정의 방식으로 특별채용을 추진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교육감이 법을 지켜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교단의 안정과 발전을 위한 화해 조치와 적극행정이 오로지 위법의 관점에서만 전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개인적으로 두 차례 실정법과 마주한 경험이 있다. 2000년에 총선시민연대를 결성하여 낙선운동을 했다. 구속을 각오하고 부패정치를 청산하겠다고 공언한 터여서 말없이 재판을 받았는데 재판부가 실정법 위반 혐의에도 불구하고 부패정치 청산의 공익을 감안하여 관대한 처분을 내려주었고 국회도 법을 개정하여 낙선운동 자체가 합법화되었다. 그 후에 사학 민주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실정법 위반을 이유로 기소되었다. 1심에서 금고형의 구형을 받았지만 벌금으로 경감되었고 상급심에서 선고 유예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가 실정법 위반과 사학 민주화라는 공익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준 것이다.

 

뉴욕 맨해튼 근처의 라과디아 공항은 전임 시장인 피오렐로 라과디아의 이름을 딴 공항인데 그에 대한 전설이 있다. 대공황 시절인 19351. 당시 판사였던 라과디아는 빵 한 조각을 훔쳐 기소된 불쌍한 노인을 재판하면서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당시로서는 큰돈이었다. 초범인 데다 식구들이 굶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여 선처를 기대했던 법정이 웅성거렸다. 그때 판사는 노인을 굶주리게 한 공동의 사회적 책임을 물어 판사인 자신도 10달러의 벌금을 내고 방청객들에게도 50센트의 벌금을 권고했다. 10달러의 벌금을 내고도 47달러 50센트를 마련한 노인은 재판부의 현명한 결정 덕분에 다시는 빵을 훔치지 않아도 되었다.

 

역사에서 진보란 이익 갈등의 현실 속에서도 공익적 가치의 선한 영향력으로 실현될 미래의 정의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과 같은 것이다. 유죄와 무죄 사이를 가로지르는 강은 육법전서가 들어갈 만큼 강폭이 넓은데, 유죄가 아닌 것은 모두 무죄라는 판단이 양승태 무죄론의 전제라면 무죄가 아닌 것은 모두 유죄라는 판단이 조희연 유죄론의 전제인가 싶다. 이것은 정의의 최소 출발점인 공정함의 실종 아닌가?

정대화 국가교육위원회 상임위원 | 경향 2024.01.30.

 

너무나 비과학적인 ‘R&D 예산 난장판

새해 과학계에는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후폭풍의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각 대학과 연구소에는 20%, 50%, 90% 등 일괄 예산 삭감 공문이 줄지어 도착하고 있다. 정부 약속만 믿고 기술 개발에 참여했던 중소기업 4000여곳에 비상이 걸렸다는 뉴스가 나오고 출연연구기관 통폐합 추진이라는 흉흉한 얘기가 돈다. 70억원 예산이 없어 미국이 제안한 유인 달 탐사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의 한국 큐브 위성 탑재를 거절했다는 뉴스도 심란함을 더한다. 연구비가 깎여 일자리를 잃거나 심각한 수준으로 생계를 위협받게 된 과학자들(특히 박사후 연구원, 비정규직 연구원 등)은 최악의 명절을 맞게 됐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다른 진로를 모색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2024, 한국 사회는 국가부도 상황이었던 IMF 외환위기 때도 없었던, 33년 만의 첫 RD 예산 삭감이라는 역사적인 해를 지나는 중이다.

 

정부 지출 대비 R&D 예산 5% 유지2022년 출범 당시 윤석열 정부가 과학기술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며 내건 국정과제였다. 그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과학기술의 혁신은 우리를 더 빠른 도약과 성장으로 이끌 것이라고 했던 대통령은 꼭 1년 후 광복절에는 나눠먹기식 R&D 체계를 개편하여 과학기술 혁신을 추진할 것이라고 돌변했다. 1년 사이엔 국가재정전략회의(2023·6·28)의 그 유명한 카르텔 발언이 있었다. “나눠먹기식·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라는. 증가안으로 짰던 R&D 예산은 대통령 발언 직후 대폭 삭감됐고, 격론 끝에 46000억원(전년 대비 14.7%) 삭감된 금액으로 통과됐다. 정부 총지출 대비 R&D 투자는 지난해 4.9%에서 올해 3.9%로 쪼그라들었다.

 

석연치 않은 예산 삭감 과정이 과학자들에게 안긴 분노는, 새해 들어 대통령의 잇단 180도 말바꾸기에 우롱당하고 있다는 모멸감으로 바뀌어 끓어오르고 있다. 삭감할 때도, 늘리겠다고 할 때도 납득할 만한 과학적인설명은 없었다. 지난 4일 새해 첫 업무보고를 겸해 열린 민생토론회52024년 과학기술인·정보방송통신인 신년인사회에서 윤 대통령은 재임 중 R&D 예산을 대폭 늘리겠다고 연이틀 호언했다. 열흘 뒤 반도체 민생토론회에서는 내년도 RD 예산을 대폭 증액해 민생을 더 살찌우는 첨단산업이 구축되도록 대통령으로서 약속드린다고 했다. 도대체 지난해와 같은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인가 싶을 정도다.

 

과학계의 시선은 냉랭하다. 당장 며칠 후, 다음달이 걱정인 젊은 과학자들, 미래의 꿈이 희미해지고 있는 연구원들에게 내년 예산 대폭 증액 약속, 몇개 부문만 콕 찍은 장기 개혁 방안은 아무런 희망이 되지 못한다.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은 “R&D 예산을 하루아침에 삭감한 당사자가 또다시 즉석에서 예산을 늘리겠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삭감한 예산을 회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반드시 제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무엇보다 180도로 입장을 휙휙 바꾸면서 제대로 된 설명 없이 금년 예산에 RD를 조금 줄였는데라며 별일 아닌 듯 넘어가려는 발언이 과학자들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데이터에 기반한 과학적 설명을 위해 수십, 수백 번 실험을 반복하는 사람들로선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설명 없는 태도 돌변 외에도, 앞뒤 안 맞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서슬 퍼런 예산 삭감의 칼을 휘두르면서 소리 높였던 이권 카르텔의 실체를 밝히고, 문제를 해소했느냐는 점이다. 카르텔이 있다면 카르텔을 잡아야지, 예산을 일괄적으로 깎고 연구를 못하게 하는 건 상식 밖의 일이다. R&D 집중 대상을 찾겠다는 것도 불과 몇주 전이다. 일단 예산부터 깎고, 연구 집중 대상을 찾겠다니 이런 주먹구구가 없다. 전체 R&D 예산은 뭉텅 잘라놓고, 글로벌 R&D 예산을 3배 이상 늘린 이유도 두루뭉술하다. 전문가들은 기술 이전이 없다면 외화 낭비라며 실효성에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특정 분야를 ‘3대 미래기술이라며 집중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건강한 학술생태계를 위해선 학문의 다양성이 필수라는 상식에 비춰 우려스럽다.

 

종잡을 수 없는 우왕좌왕 정책, 고무줄 예산이 우리의 미래를 갉아먹고 있다. 이래 놓고 최근 한 일간지 보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과학 대통령으로 국민들에게 기억됐으면 한다고 했단다. 이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지켜보는 시민들의 황당함과 분노도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송현숙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 경향 2024.01.31.

 

가짜 설교는 가라

가짜 뉴스가 언론에, 유튜브에, SNS에 버젓이 돌아다니는 세상이다. 심지어 가짜 뉴스를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언론도 있다. 언론인은 언론회사의 종업원에 불과하다는 말도 들린다. 소속 언론회사의 영업 이익에 충실히 복무하는 기자들에게 공정하고 진실한 보도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기대라는 뜻일까.

 

현실 외면하고 저항의지 약화시키는 가짜 설교

언론에 가짜 뉴스가 있다면, 종교에 가짜 설교가 있다. 가짜 뉴스가 세상을 더럽힌다고 느끼는 시민은 많지만, 가짜 설교가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교회성당에서 가짜 설교를 수십 년씩 들어온 사람이라면, 그 영혼과 정신은 얼마나 처참하게 일그러졌을까. 상상만 해도 아찔한 그런 일은 평범하게 저질러지는 악처럼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다. 오늘 한국의 종교에서 설교가 큰 문제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기 위해 스스로 종교를 택한다는 뜻이다. 레닌도 종교는 인민에게 아편이라고 말했다. 국가나 종교가 백성들로 하여금 고통스런 현실을 잊게 만들기 위해 종교를 이용하고 강요한다는 뜻이다. 인민의 아편이든, 인민에게 아편이든, 둘 다 종교의 나쁜 기능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금 한국에서 종교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인민의 아편인 종교도 있지만, 인민에게 아편인 종교도 있다. 사람들이 스스로 종교로 도피하기도 하지만, 정치권력과 종교 지배층이 신도를 속이고 이용하기도 한다. 인민의 아편인 종교는 시민들에게 커다란 유혹이라면, 인민에게 아편인 종교는 정치권력과 종교 지배층에게 커다란 유혹이다.

 

뉴스 조작이 독자를 속이려 한다면, 설교 조작은 신도들 속이려 한다. 설교를 듣는 사람이 역사와 현실을 정직하게 보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악의 세력에 대한 백성들의 저항 의지를 약화시키며, 사람들의 관심을 관념의 세계나 죽음 이후로 돌리려 한다.

 

정치권력과 종교 지배층은 각종 선거에 직간접으로 개입할 뿐 아니라 설교를 통해 일상적으로 신도들의 정신세계에 나쁜 영향을 행사한다. 가짜 설교는 현실을 망각하라고 사람들을 유혹하고 세뇌하고 속여서, 백성들의 저항 의지를 약화시킨다. 가짜 설교는 정치권력과 종교 지배층의 이익을 수호하고 변호하는 역할을 한다.

 

 

 

 

성탄절인 2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에서 성탄 축하 예배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칼럼 내용과 관련 없음. 2023.12.25. 연합뉴스

중요 사건 언급 않기, 모두의 책임으로 돌리기, 진실과 가짜 뒤섞기

 

가장 흔히 쓰이는 설교 조작 수법은 무엇일까. 첫째, 중요한 사건을 아예 언급하지 않는 설교가 있다. 말하지 않는 사건은 없는 사건이나 다름없으니,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일처럼 취급된다. 윤석열 검찰독재 정권의 실상을 고발하는 목사신부는 몇이나 될까. 이재명 민주당 대표 살해미수 사건을 언급한 목사신부가 있기는 한가.

 

둘째, 우리 모두 잘못했으니, 우리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식의 설교도 있다. 그런 설교는 책임 소재 규명을 방해하고, 책임져야 할 사람을 보호해준다.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의 원인을 모든 국민의 안전 불감증 탓으로 설교한다면, 참사 원인을 제대로 밝힐 수 있을까.

 

셋째, 사소한 주제에 집중하여 심각한 주제를 숨기는 설교도 있다. 진실과 가짜를 적당히 뒤섞어 전달하기도 한다. 메시지를 묵살하기 위해 메신저를 비난하는 수법은 언론뿐 아니라 설교에서도 흔히 쓰이고 있다.

 

그런데, 중립을 지키는 설교처럼 사악한 설교가 또 있을까.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는 설교는 사실상 부자를 편드는 설교와 다름없다. 가해자와 희생자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는 설교는 사실상 가해자를 편드는 설교에 불과하다.

 

외국 사례를 들어 한국 현실을 외면하거나, 옛날 사건을 꺼내어 오늘 상황을 덮는 설교 수법도 있다. 중요한 주제를 언급할 시간을 우아하게 회피하는 것이다. 모범 사례 언급하여 부패 사례 덮기, 반성을 유도하여 비판 삼가기, 사랑은 강조하고 정의 외면하기, 개인에게 집중하여 구조 문제 숨기기 수법도 있다.

 

억압자들에게 저항하고 싸우는 예수를 전해주는 진짜 설교

전에는 교회성당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나는 걱정되었다. 교회성당에 다니지 않다가 구원 못 받으면 어떡하냔 말이다. 지금은 교회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이 나는 주로 걱정된다. 교회성당에 다니다가 구원 못 받으면 어떡하냔 말이다. 가짜 설교에 시달릴 그들이 염려되어서 그렇다.

 

설교는 아편일 수 있지만 해방의 도구일 수도 있다. 태극기 집회에서만 사악한 사람들이 마이크를 잡는 것은 아니다. 종교 속으로 도피하는 사람들은 인민의 아편과 다름없는 설교에서 빨리 탈출해야 한다. 설교에서 세상 변혁의 힘을 찾는 사람들은 가짜 설교를 하는 설교자에게 적극적으로 항의해야 한다. 가짜 뉴스가 세상을 망친다면, 가짜 설교는 종교와 신도를 망가뜨리고 있다. 목사신부와 신도들이 힘과 지혜를 모아, 가짜 설교를 어서 몰아내야 한다.

 

나는 꿈꾸어본다. 억압자들에게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예수, 억압자들에게 저항하고 싸우는 예수를 전해주는 진짜 설교 말이다. 그런 설교는 정치적 억압,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차별로 가득한 한반도 역사와 현실을 올바로 보게 하고, 악의 세력을 낱낱이 폭로할 것이다. 민주주의에 이바지하고,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며, 사회 개혁에 앞장서도록 격려하는 진짜 설교가 일요일마다 전국의 교회성당에서 울려퍼지는 그날을 나는 기쁘게 소망한다.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장 | 시민언론 민들레 2024.01.31.

 

신장식 하차, ‘배추고발, ‘사직구장제소

문화방송(MBC) 라디오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진행자 신장식 변호사가 28일 하차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구성한 선거방송심의위원회에서 뉴스하이킥을 겨냥해 연이어 법정제재를 내리자 엠비시에 더 부담을 줄 수 없어서결정했다. 선거방송심의위는 지난 111일 뉴스하이킥에 법정제재(관계자 징계)를 의결했다.

 

구체적 사유는 지난해 1213일 방송에서 패널로 나온 이언주 전 국민의힘 의원이 국민의힘 상황을 두고 이제 대통령의 꼬붕들만 남아 있다고 한 발언과 김준일 뉴스톱 대표가 국민의힘 내부보고서를 근거로 국민의힘이 1당이 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고 말한 부분이다. 정치적 균형, 공정성, 품위유지를 어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관련 회의록을 보면, 표적은 진행자다. 일부 위원들은 엠비시 책임자(라디오국 시사콘텐츠 제작파트장)에게 신장식을 데려온 자가 누구냐고 물었고, “진행자를 보면, 이 프로그램 중지시켜야 된다고 했다. 신 변호사는 지난해 9월 서울행정법원이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해임효력 집행정지 신청이 인용돼 임기(올해 8)를 다할 수 있게 되자, 그때까진 방송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방송에 집중하기 위해 지난 연말 엠비시 부근으로 이사했다. 그러나 방송사 재허가·재승인에 영향을 미치는 벌점이 계속 쌓이자, 하차를 결정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뉴스하이킥에는 신장식의 오늘이라는 앵커 멘트가 나온다. 진행자가 직접 작성한 짧은 의견이다. 또 그는 패널들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거나, 변호사로서 법적 지식을 바탕으로 부연 설명을 하곤 한다. 그러나 의견의 영역에 속하는 이런 멘트들이 허구의 추론을 부추기거나 이유 없는 비난일 때는 없었다고 판단된다. 다만 그의 비판은 주로 대통령과 여당 등 권력자를 향한다.

 

31일 신 변호사와 통화했다. 그는 자칫 한쪽으로 편향되거나, 반대로 중립을 표방해 물타기가 되는 것을 피하고, ‘사실을 해석해 균형 잡힌 시각을 전달하는 것이 진행자로서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손석희 앵커 등 이미 시사프로에서 적극적 진행이 확장돼왔다. 다만 의견은 사실에 바탕을 둬야 하고, 논리적 비약으로 가서도 안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방심위는 지난해 11월 선거방송심의위를 꾸리면서 과거와 달리 직접 선거방송을 하는 티브이조선에 위원 추천권을 주고, 보수미디어 단체인 공정언론국민연대 출신을 2명이나 넣는 등 편파 구성논란을 빚은 바 있다. 그러니 누가 누구에게 공정·객관·편향을 말하는가. 설령 방송 진행자가 시사프로에서 의견을 말하더라도, 이는 여론·미디어 시장에서 판단되고 판정받으면 될 일이다. ‘뉴스하이킥은 전체 라디오 프로그램 중 청취율 1위다. 언제까지 국민들을 가르치려 드는가. “국외 주요 선진국의 경우, 우리나라처럼 시사보도를 일일이 심사하고 제재하는 시스템 자체가 없다”(김준일 뉴스톱 대표, 131일치 한겨레 칼럼) 지금의 조처는 사후검열을 통해 사전검열을 꾀하는 것이다.

 

이와 별도로, 대통령실은 제이티비시(JTBC)와 또다른 마찰을 빚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5일 시장 상인들을 격려하며 여러분 매출 오르게 힘껏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는데, 해당 장면에 배추 오르게라는 자막을 넣었다는 이유다. 대통령실 항의로 제이티비시는 자막을 수정했고 단순착오 오기로 확인돼 바로잡는다는 사과문을 게재했다. 그럼에도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손해배상 청구와 명예훼손 고소 등 법적 대응을 운운하기도 했다. 이게 철저히 진상을 규명관계자 전원 징계, 법적 처벌 받아야”(국민의힘 미디어법률단 등) 할 일인가. 159명이 숨진 이태원 참사는 얼마나 진상을 규명했고, 징계받은 사람은 몇 명인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오마이뉴스에 정정 보도를 청구했다. 지난 10일 부산시당 간담회에서 사직에서 롯데 야구를 봤습니다라고 말했는데, “사직구장에서 야구 관람했다는 부제를 달았다는 것이다. 연설 직후 좌천 시기인 2020년은 코로나로 무관중 경기였는데, 어떻게 봤다는 것이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한 위원장은 2020년 아닌, 2008년 사직구장 응원 사진을 공개했다. 오마이뉴스는 이를 지적했다. 한 위원장은 잘못된 허위 보도로 일반인들이 한 위원장이 허위 사실을 발언한 것으로 오해를 하는 등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허위는 누가 했고, ‘오해는 누가 하게 했는가. 2020년에 사직구장엔 안 가고, ‘사직동 길거리에서 텔레비전 중계로 야구를 봤단 말인가. “한 위원장은 사직구장이 아닌 사직에서 야구를 봤다고 말했기에, 이를 바로잡습니다라고 정정하면 되는 건가.

2024년 대한민국 언론의 체험 삶의 현장이다권태호 | 논설위원실장 | 한겨레 2024.01.31.

금융시장의 약장수들

요즘은 볼 수 없지만 옛날엔 동네에 약장수가 가끔 찾아왔다. 마을 공터에 자리를 잡은 약장수는 사람들이 모여들면 “애들은 가라”고 외치면서 차력쇼를 선보인다. 건장한 장정들이 나와 맨손으로 철근을 구부리고 머리로 벽돌을 깨고, 입에서 불을 뿜기도 한다. 쇼의 열기가 고조될 때쯤 “이 약 한 번 잡숴봐”라며 약을 돌린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소경이 눈을 뜨고 칠순 할배가 늦둥이를 본다”는 식의 대충 만병통치약이다. 약을 산 이들이 몇이나 됐는지는 기억에 없다. 약의 효험에 대해서도 들은 적이 없다. 수려한 말로 허풍을 떨거나 사기를 치는 사람에게 “어디서 약을 팔아”라며 면박 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현대 자본주의 시장에서 대중이 이런 ‘약’을 살 가능성이 높은 곳이 금융시장이다. 금융기관들은 난해한 금융공학으로 파생상품을 만들어 높은 수익을 보장한다며 소비자들을 유혹한다. 파생금융상품은 당초 상품 가격이나 환율, 주가 등의 급변동 위험(리스크)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제는 자산 형성을 위한 재테크 상품으로 선전되고 팔리고 있다. 왜곡된 파생상품은 금융시장은 물론 경제 전체에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상환능력이 없는 저신용자들에게 무리한 대출을 해주고 이에 대한 리스크를 각종 파생상품으로 쪼개고 합쳐 감춘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이어진 장면을 목격했다.

최근 파생상품 하나가 한국 금융시장을 흔들고 있다. 홍콩 증시의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을 산 많은 투자자들이 지수가 급락하면서 막대한 원금 손실에 직면하고 있다. 이 상품은 만기 때 홍콩H지수가 가입 당시의 70% 선을 넘으면 수익을 얻지만 그 밑으로 떨어지면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 지난달 8일부터 26일까지 만기가 도래한 ELS에서만 총 3121억원의 손실이 확정돼 원금 손실률이 53%에 달한다. 이 상품은 올 상반기에만 5조~6조원대의 손실이 예상되고 있다.

손실을 본 사람들 중에는 치매 초기 증상이 있다는 90대, 노후자금 수억원을 투자한 70대, 미성년자 등도 포함돼 있다. 이들 상당수가 손실 발생 가능성이 없다는 은행 직원들의 말을 듣고 상품에 가입했다고 한다. 투자자들은 시위에 삭발까지 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은행들에 대한 검사에 착수했고 은행들은 뒤늦게 ELS 판매 전면 중단을 선언하고 있다. 앞으로 이어질 투자자들과 은행들 간의 지난한 분쟁이 눈에 훤하다.

우리는 교훈을 얻지 못했다.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때도 수천명의 투자자가 수천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문제가 된 DLF는 독일 국채 금리에 연계된 파생상품이다. 독일 국채 금리가 -0.3%보다 높으면 수익이 나지만 이보다 낮아지면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였다. 은행 직원들은 당시 독일이 망하지 않는 한 국채 금리가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 거라 했고, 이번에는 중국이 망하지 않는 한 홍콩H지수가 폭락하지 않을 거라면서 상품을 팔았다. 그러나 각국 중앙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제로까지 내리면서 독일 국채 금리는 추락했고, 중국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홍콩H지수는 반토막이 났다. ‘검은 백조’(일어날 것 같지 않지만 만약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을 가져오는 사건)도 출현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금융시장이다.

손실 위험이 큰 파생상품은 애초에 금융 전문가가 아닌 개인이 투자해서는 안 되는 상품이다. 투자은행(IB) 등 기관투자가들은 이런 상품에 투자할 때 손실을 회피할 반대 방향 투자 수단(포지션)도 함께 확보해 놓는다. 개인투자자들은 이런 리스크 회피(헤징)가 불가능하다. DLF 사태나 이번 ELS 사태에서 개인투자자들이 잃은 돈은 반대 포지션에 투자 또는 헤징한 기관투자가들에게 넘어가거나 그들의 손실 보전에 쓰였다. 이 과정에서 상품을 발행하고 판매한 증권사와 은행들은 수수료 수입을 챙겼다. 결국 희생되는 이는 개인들이다.

기울어진 시장 구조에서 개인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보다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 안정성을 기대하는 투자자들이 주로 찾는 은행에서 파생상품을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손실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하겠다”는 서약서를 쓴 개인에게만 판매하는 방법 등이다. 세계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에 낸 저서 <블랙 스완>에서 경제위기를 예견했던 나심 탈레브는 “다이너마이트에 경고 표시가 붙어 있어도 아이들에게 주지 말라”며 복잡한 금융상품을 일반 대중에게 파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최고의 상품을 창조해 내는 시스템이지만 대중이 투자를 하거나 상품을 살 때 약장수들에게 속지 않도록 보장돼야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김준기 뉴스콘텐츠부문장 경향 2024.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