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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2024년 2월1일~29일 진보는 못하더라도 후퇴는 하지 말자

by 이성근 2024. 3. 1.

1.언론개혁에 대한 정치권의 무지와 편견 2. 역설적 치열함, 비호감 선거 3. 경제가 안보다 4. 기시다-윤 관계 개선이 추도비철거로 이어졌다 5. ‘사익·자본위해 공정·상식배신한 통치자 6. 애도폭력과 애도시위 7. 진보는 못하더라도 후퇴는 하지 말자 8. 선배세대와 꼰대이즘 9. 민족주의의 종언 10. 카르텔의 나라 11. 대통령 의중만 좇는 수사와 법 집행 12.보수가 나라를 갉아먹는 방법 13. 어떤 설렘도 없이 총선이 다가온다 14. 한국판 우생학 15. 다시 돌아온 산업정책의 시대 15. 숫자 너머 사람을 보라 16. 표퓰리즘의 계절, 밑 빠진 독에서 물 긷기 17. 미국의 불평등 심화에 대한 경제학적 논쟁

(10)사회적 연대가 약해져 간다 (12)팬데믹이 심화시킨 상위소득 집중도 (13)AI가 실업과 불평등을 가져올까 (14)불평등 확대가 성장과 혁신에 나쁜 이유 (15)결혼·출산, 누가 막냐고? 불평등한 세상이 (16)세계는 불평등으로 갈라지고 있을까 (17)불평등은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 (18)부동산공화국과 자산불평등 (19)금융발전과 불평등

18. 왜 음모론을 퍼뜨리려 애쓸까 19. 비례연합정당, 진보정당운동의 갈림길 20. 이자스민과 이민사회 21. 더 늦기 전에 22. 세계 각지로 뿔뿔이 흩어지는 러시아 사람들 23. 운동권 청산이 시대정신이라니 24. 이재명, ‘변방의 장수정신을 잊었나 25. 미래가 현실을 좌우? 26. 4.10 선거 혁명을 기대한다 27. 이재명 대표가 맞닥뜨린 진실의 순간’ 28. 아이를 낳을까, 이런 세상에 29. 더 늦기 전, 이재명은 청룡언월도를 들라

30. 용산·친윤의 진격, 국민의힘 조용한 공천 퇴행 31. 대통령 말처럼 이승만의 ''을 폄훼해서 죄송합니다 32. 이재명 사퇴를 권함 33. ‘운동권때리기 34. ‘석열스만을 어찌할 것인가 35. 이재명 사퇴 권한 '경향' 칼럼... 20094월 글과 너무 닮았다 36. 지속 가능하지 않은 되먹임 37. ‘경제운용은 보수가 낫다는 말, 이젠 헛소리 38. 파국을 막기 위한 시공간적 경로 39. 선거 공약 예산 낭비 막으려면

 

언론개혁에 대한 정치권의 무지와 편견

20199월 무렵 전국언론노동조합 조사단의 일원으로 영국·프랑스·독일·벨기에를 방문해 각국 정부의 언론정책과 언론노조의 동향을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영국 공영방송 BBC에서 동아시아 뉴스를 담당하는 기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그해 초 열차를 이용해 중국 단둥을 통과하는 정보를 보도하지 않은 사례를 얘기했다. 그는 당시 북한 지도자가 탄 열차가 중국 단둥을 통과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면서 하지만 취재기자가 직접 확인하지 않을 경우에는 복수의 유력 취재원이 같은 말을 한다는 것을 확인하기 전에는 보도하지 않는다는 자체 제작 가이드라인(BBC Editorial Guidelines)을 준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덧붙여 속보 경쟁에서 다소 뒤처지는 일도 있겠지만 대신 BBC 보도만큼은 정확하다는 신뢰를 쌓는 게 더 값진 자산이라고 말했다.

BBC 가이드라인은 전 세계 언론인들에게 공정보도의 중요한 잣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필자도 당시 BBC노조로부터 가이드라인을 받아 국내에서 번역본을 만들어 언론노조 각 지부와 공유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SBS20년 만에 취재 제작 가이드라인 등을 정비한 ‘SBS 저널리즘 준칙을 만들었는데 증언에 의한 사실 확인은 최소한 2인 이상의 확인이 필요, 복수의 취재원과 전문가 등을 통해 진위 여부를 확인등을 명시했다. BBC 가이드라인이 국내에서도 확산되는 추세임을 실감하며 내심 반가웠다.

유럽 출장 경험 중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충격은 프랑스와 독일 정부의 언론 지원 정책이다. 프랑스 문화부 책임자는 전 국민이 아침식사 테이블에서 신문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본 정책이라고 밝혔다. 그는 국가의 존립 이유는 민주주의 구현이고, 이를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지원 정책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라는 논리를 폈다. 독일 연방미디어청 책임자는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역사적 과오 뒤에는 히틀러 정부의 언론독점이 있었다면서 교훈을 바탕으로 민영 미디어에 의한 과도한 미디어 집중을 막는 것이 기본 정책이고, 이를 위해 다양한 미디어에 대한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와 독일에는 어느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막대한 예산 지원을 통해 언론이 자생력을 갖고 민주주의 실현의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가 정착되어 있다.

언론노조는 유럽 현지 조사 결과와 국내에서의 숱한 토론 등을 거쳐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만들었다. 202011월 김승원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에는 기존 법조문에 없는 신문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 근거를 처음으로 명시했다. 또 편집제작평의회와 독자권익위원회 같은 편집권 독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명문화해 언론개혁을 이루자는 내용 등이 담겼다. 개정안은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언론노조가 서명한 언론개혁 방안에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집권여당이자 국회 다수당이었던 민주당은 그러나 20218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정하고 밀어붙이려다 언론계와 마찰을 빚었다. 이 개정안은 언론 현장 종사자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외면한 채 재갈을 채우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세계적 흐름은 외면한 채 언론개혁의 기본 원칙도 없이 언론의 비판 기능을 무디게 하려다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는 한술 더 떠 언론 자유를 노골적으로 침해하는 중이다. 대선 당시 언론의 윤석열 후보 검증 보도 취재원을 색출하기 위한 검찰의 강제수사,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각종 조치,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독단적이고 편파적인 운영 등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도 현업 언론인들은 편집권 독립이라는 언론개혁의 지상명제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내부 기준을 만들고 있다. 상당수 언론사에선 편집제작평의회, 독자권익위원회 등 제도적 장치를 통해 편향된 보도가 나오지 않도록 끊임없이 토론을 조직하고 있다.

기성 정치권에 한마디 던지고 싶다. ‘언론개혁은 당신들의 입맛에 맞는 언론으로 길들이는 것이 절대 아니다라는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을 요청한다. 프랑스와 독일 수준까지는 좇아가지 못하더라도 언론 종사자들이 어떤 고민과 노력을 하고 있는지 최소한의 이해라도 하면서 언론개혁을 논해주길 당부한다. 언론은 정치권의 적이 아니다.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버팀목이다./한대광 사회에디터 | 경향 2024.02.01.

 

역설적 치열함, 비호감 선거

새해 들어 야당 대표와 여당 국회의원이 습격을 당했다. 정치인은 원래 욕을 많이 먹는 직업이다. 오죽하면 고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을 욕하는 것으로 주권자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들을 수 있다고 말했겠나. 그러나 욕먹는 것과 생명을 위협받는 일은 다르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어떤 개인에 대해서도 합당한 이유 없이 폭력이 가해져선 안 된다. 그런 일이 공개적으로 대담하게 일어난다면,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적 공분이 일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본래 정치란 한 사회의 갈등을 힘이 아닌 말을 통해 해결하려는 인간 행위다. 폭력이 아닌 말과 제도적 절차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문명의 수준이 결정된다.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 꼭 커다란 정치적 사안만은 아니다. 노사관계나 교육과정, 계약관계처럼 시장과 사회에서의 다양한 일들은 물론이고, 우리의 사적인 일상에서도 물리적 폭력이 문제 해결에 얼마나 동원되느냐가 문명의 척도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사실 그러한 사안들에서 폭력이 동원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만드는 과정이 바로 정치다. 이 점에서 본다면 정치는 그 본질에서부터 폭력과 가장 먼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정치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늘 잘될 수만은 없다. 우리 정치에서도 욕설과 폭언은 물론이고 종종 물리적 대결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폭력적 언행을 정치의 일부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런 순간은 정치가 존재하지 않는 예외상태다. 정치가 멈춘 곳에서 폭력은 모습을 드러낸다.

그럼 정치가 잘못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현대 민주주의는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정치를 제어하기 위해 선거라는 절차를 도입했다. 일정한 임기 동안 정치 권력을 부여했다가 잘못하는 것 같으면 교체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잘못해도 교체를 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비판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시민들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자기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도무지 교체될 가능성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주요 정치적 행위자나 정당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정치적 상대방이나 자당 내부의 이견 세력을 공격하는 것을 방치하거나 종용한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될까?

현재 한국의 정치는 양당 과두 독점체제다. 거대 양당이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는 정도보다 더 많은 권력을 누린다는 뜻이다. 물론 모든 제도는 장단점이 있다. 우리가 현 제도와 체제를 유지하는 이유는, 권력 독점이라는 단점을 상쇄하는 양당 체제의 정치적 안정성과 효율성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을 보면, 국민들이 더 이상 현 제도나 체제를 유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사실 양당의 공천 과정을 보노라면 이것이 정치인지 시정잡배들의 거래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우리는 비호감 대선을 치른 지 2년 만에 비호감 총선을 앞두고 있다. 정권에 대한 지지율은 낮은데, 그 여론이 야당에 대한 지지로는 연결되지 않는 기현상도 지속되고 있다. 각 정당 내부의 이견 세력들은 탈당을 시도했다. 다수 언론에서는 이런 현상이 총선에서 빚어낼 결과에 대해 경마식 보도를 하고 있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양대 정당이 국민들을 실제로 대표하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를 증명할 분수령에 우리는 서 있다.

이번 선거는 지난 대선처럼 실로 치열할 것이다. 많은 곳에서 박빙의 대결이 펼쳐질 것 같다. 거대 야당에 대한 견제, 정부 여당에 대한 심판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상대를 악마화함으로써 국민들을 가르고 소수의 열성 지지자들을 결집시켜 실로 처절한 전투를 벌일 것이다. 참으로 비호감이 극대화된 역설적 치열함이다. 치열한 승부의 결과는 어느 한쪽의 명백한 승리가 없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때 두 정당은 적대적 상호공존이라는 목적을 달성했다고 여기고 서로 속으로 웃을 것이다.

선거제도는 과두 독점체제를 유지시키는 여러 요인들 중 하나다.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니다. 기존의 제도나 체제가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을 완전히 규정해 버린다면, 그것은 시민에게 주권이 있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한국 민주주의의 역동성을 보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세력이 다른 수단이나 제도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던 많은 경우에 실패를 겪었다. 시민들은 때로는 직접 거리에 나와 문제를 해결했고, 때로는 제도적 압박을 넘어서는 놀라운 선거 결과로 상황을 바꿔놓기도 했다. 제도가 민심을 왜곡한다면 민심이 제도를 넘어설지, 그것이 주목된다.

이관후 정치학자 | 경향 2024.02.01.

 

경제가 안보다

국제정치는 급변하고 있다. 안보우위(냉전)-경제우위(탈냉전) 시대는 종언을 고하였고 경제안보(·중 전략경쟁)의 시대로 전환하였다. 경제안보의 시대란 안보우위 시대이면서도 경제가 안보가 되는 시대이다. 각국은 기존의 경제적 효율성 추구보다는 경쟁력 강화와 안보를 결합한 새로운 산업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 및 기술 경쟁은 심화하고 보호주의의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그 결과 냉전 시기와 같이 국가와 산업정책의 귀환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지정학적 동인의 중요성도 부활하였다. 각국의 핵심 전략인 전략적 자율성강화는 탈중국화로 이해되지만, 역으로 탈미국화의 추세 강화도 의미한다. 가치에 기반한 지정학이 대두되었으나, 세계 어느 국가도 순수 가치에 기반하여 대외정책을 추진하지는 않는다. 정책의 핵심은 미래 생존과 경제발전을 위한 경제이익과 역량 확보다.

2024년은 혼돈, 불확실성, 자기 보호주의 강화가 핵심적인 추세로 보인다. 세계 76개국에서 진행될 각종 선거 흐름은 대체로 보수주의로 기울고, 자기 보호주의가 핵심일 것으로 판단된다. 대만 총통선거 결과가 양안관계의 현상 유지 방향으로 귀착되었지만, 언제든 미·중 군사적 충돌이 가능하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은 국제전으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이며, 전황은 미국·서방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은 이들 양면 전쟁은 물론이고, 양안과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충돌에 개입할 여력이 부족한 형편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현 대중정책의 두 축인 동맹과 더불어’ ‘리쇼어링’(Reshoring·미국 내로 생산기지 전환) 정책 간 충돌이 명확하다. 후자가 우선시되면서 한국의 산업에도 큰 도전을 안겨줄 것이다. 서유럽, 일본, 인도 등 세계 주요국들은 전략적 자율성강화를 꾀하면서 각자도생 전략을 추진 중이다.

한국 안보 우위에 도전요인 급부상

윤석열 정부는 가치 동맹에 방점을 두고 경제와 산업부문에 대한 안보우위를 추구하였다. 2024년 정세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을 향한 도전요인들이 급부상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첫째, 세계는 미국·서방의 영향력보다는 중국·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추이에 놓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202211월 발간한 ‘A World Divided’ 보고서, 2023년 말 미국 Hamilton Index(ITIF), 2024년 호주 전략정책연구소의 글로벌 핵심기술 현황보고서에서도 잘 드러난다. 둘째, ·중 전략경쟁 편승 정책의 경우 상대방으로부터 야기되는 비용도 그만큼 확대된다.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 악화가 초래할 비용이 예상보다 클 것이란 개연성이 증대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와의 관계도 도전요인이다. 셋째, 디리스킹(Derisking·위험회피) 정책 시대는 안보를 단선적으로 강조하기보다는 유연하고 복합적인 외교·안보·산업 정책을 요구한다. 경제안보 시대에는 경제이익을 수호하는 것이 안보가 될 정도로 중요하다. 다만, 이를 획득하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고도의 외교적·지정학적 역량이 필요하다. 넷째, 트럼프 2.0 등장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조 바이든 정부의 정책에 초점을 맞췄던 윤석열 정부는 대단히 곤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할 우려가 커졌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및 새로운 국가 대 국가 관계로서의 대남정책이 등장했다. 남북 양측이 국내정치적 여건상 강 대 강 정책을 구사하고 상호 적대적 공생관계를 형성하고 있어, 우발적 충돌이 핵전쟁 및 국제전으로까지 확산될 위험도 커지고 있다.

역사의 진보라는 희망적 사고는 허구일 수도 있다. 적어도 지금은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The End of History’라 선언하면서 가졌던 서구문명에 대한 낙관적 확신이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려운 국면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단선론·낙관론적 시대에서 이탈하여 비선형적 혼돈의 시대로 (일시적이건 구조적이건) 전환하고 있는 과도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윤석열 정부 화용외교땐 기회

2024년 국제정세는 이념과 가치에 따라 다른 강대국들과의 갈등을 불사하는 기존 윤석열표 외교안보 정책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모든 강대국과의 조화와 협력을 중시하면서 실리를 챙기는 화용외교(和用外交)’를 추진할 것을 권고한다. 안보의 단선론적 우위 정책에서 보다 실용적이고 유연한 원칙에 기반하여 경제이익을 중시하는 산업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미국에서 정부 주도 산업정책과 대중 기술 제재는 확대될 것이므로, 미국 내 새로운 입법규제와 행정명령 추이를 면밀히 검토하고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와의 마찰로 적어도 올해 상반기까지는 중국이 한국을 압박하기 위한 조치를 내놓을 개연성이 다대하다. 우선 그 대상은 산업 및 핵심광물 영역에서 나타날 것이다. 정부와 기업들은 이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

2024년 세계 각국에서 안보 불안정성이 확대됨에 따라 기업의 비용과 경제 부담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 경제위기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업은 그 비용에 대비하고, 정부는 우선적으로 경제 보호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안보와 동맹의 남용을 경계하고, 경제가 안보인 시기에 경제의 붕괴는 곧 안보와 동맹의 붕괴를 초래하는 함수관계가 존재한다. 경제안보 시대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경제·기업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발전을 돕는 것이다. 국가와 산업정책의 회귀 시기에 정부는 자주 간여하거나 획일적인 지도형 정책 추구보다는 민간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최대한 고양하고, 기업을 보호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한국은 통상국가로서 국가 정체성에 기반해 새로운 글로벌 경제 거버넌스 형성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미국 경제·산업 정책에 대해 협력을 강화하면서도, 중국·러시아·중동·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보수화 흐름이 이어지며 주요국들은 글로벌 거버넌스 구축 경쟁에서 자국 유불리에 따른 현실적 행보를 할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통상국가인 한국엔 비용 문제가 부각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추세를 잘 활용하는 화용정책은 오히려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플라자 프로젝트 이사장 | 경향 2024.02.01.

 

기시다-윤 관계 개선이 추도비철거로 이어졌다

20년 동안 일본 군마현 다카사키 군마의 숲공원에서 한-일 우호의 상징 역할을 하던 강제동원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가 철거됐다.

군마현은 공원을 전면 폐쇄한 속에서 지난 129일 추도비 철거를 시작했다. 취재가 봉쇄된 일본 언론은 헬리콥터를 띄웠다. 31일 아사히신문이 상공에서 찍은 영상을 보면, 추도비가 있던 자리는 공터가 됐다. 지름 7.2m 원형 받침과 비문이 붙어 있었던 가로 4.5m, 세로 1.95m 콘크리트 비석은 잘게 부서져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기억·반성 그리고 우호라고 적힌 금속 재질의 비문 등은 따로 떼어 추도비를 세우고 관리해온 일본 시민단체 기억·반성 그리고 우호의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에 건네졌다.

원형 받침과 비석을 가차 없이 부순 걸 보니, 현은 이 추도비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몰랐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로 쭉 뻗어 있는 약 4m 높이 금색 탑과 뒤의 콘크리트 비석은 세로로 큰 구멍이 뚫려 있다. 이 구멍은 한반도를 향해 있다. 군마라는 낯선 곳에서 희생된 조선인의 영혼이라도 고향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원형 받침에는 길을 잘 찾으라는 듯 나침반이 그려져 있다. 철거 전 추도비 취재 과정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슬프면서도 고마운 마음에 한참을 한반도 쪽을 바라봤다.

일본 패전 50주년인 1995년 군마 시민들은 발로 뛰어다니며 조선인 희생자를 조사했다. 일제강점기 때 한반도에서 군마의 광산과 군수공장 등에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이 약 6천여명, 이 가운데 300~500여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됐다. 일본의 시민들은 이 아픔을 기억하며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20044월 조선인 추도비를 세웠다.

일본 식민 지배와 침략전쟁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1995), 식민 통치에 대한 통절한 반성·사죄를 언급한 오부치 게이조(1937~2000) 전 총리와 김대중 전 대통령(1924~2009)-일 파트너십 선언’(1998)은 지방정부가 소유한 공원에 현 의회의 만장일치로 조선인 추도비를 세울 수 있게 하는 힘이 됐다.

이번 추도비 철거는 강제동원 피해자 등 역사문제를 봉합해 버린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관계 개선이 한-일 우호는커녕 역사 지우기를 부추긴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2004~2012년 사이 추도식에서 나온 조선인 강제연행발언으로 우익단체가 반발해 논란이 커졌다고 추도비를 부숴버린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일제강점기 조선인 동원의 강제성은 일본 정부도 국제기구에서 인정한 내용이다. 20157월 사토 구니 당시 주유네스코 일본대사는 일본이 근대 산업시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당시 유네스코 회의에서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노역했다고 밝힌 바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윤 정부는 ·일 간에 필요한 소통을 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에 대해 야마모토 이치타 군마현 지사는 “(한국 등) 외교 경로로 뭔가 온 것이 없다고 했고, 가미카와 요코 외무상은 지자체의 결정 사항이라며 회피했다. 그리고 사흘 만에 추도비는 사라졌다./ 김소연 | 도쿄 특파원 | 한겨레 2024.02.01.

 

사익·자본위해 공정·상식배신한 통치자

기득권을 사수하기 위해 국민을 통제하고 핍박한 이들에 맞서 수많은 학생, 시민들이 양심을 걸고 싸워 오늘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만들었다. 사진은 영화 ‘1987’의 한 장면.

군인은 국방을, 경찰은 범죄 예방을, 근로자는 일을, 학생은 공부만 하면, 선진국으로 모두 잘살게 된다.”

1970년대 중고교 시절에 익히 들은, 교장 선생님 훈시! 순진한 우리는 이 근대적 역할분담론을 내면화하며 컸다. , 정치군인은 예외였다. 영화 서울의 봄’(김성수 감독)은 그런 분위기에서 터진 일을 다룬다.

내가 대학에 간 1980년대 현실은 이 역할분담론의 허구를 폭로했다. ‘땡전 뉴스가 국민을 기만했고 대학은 최루탄 범벅이었다. 선배들은 도서관에서 구호를 외치다 폭력 경찰에게 끌려갔다. 교직원들은 주동자 잡기에 바빴고, 캠퍼스 곳곳엔 살인마 처단’ ‘독재타도’ ‘민주쟁취’ ‘자주통일등 구호가 나붙었다. 학생식당 앞 대자보를 찬찬히 읽다가 순수하게 생각했다. ‘제발 어른들이 이런 대자보를 잘 읽고 그대로만 실천한다면 나라가 좋아질 텐데.’

그 내용은 대략 이랬다. ‘지금 한국은 군부독재다. 그 뒤엔 미 제국주의가 있다. 노동자는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농민은 농업 경시·저곡가 정책에 신음한다. 빈민은 생사 갈림길에서 허덕이고, 광주나 사북에서 저항하던 시민과 노동자는 비참하게 죽었다. () 결국, 우리는 공부만 할 게 아니라 민중 민주 민족을 위해 분연히 일어서야 한다!’

그렇게 떨쳐 일어나 저항하던 학생들 상당수가 감옥에 갇히거나 강제징집돼 군대로 끌려갔다. 나중에 알았지만, 단과대 대표였던 나도 개화 대상자였다. 영화 남영동1985’(정지영 감독)‘1987’(장준환 감독)에 나오듯, 학생들은 양심을 걸고 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목숨도 잃었다.

한편, 1960년대 산업화 이후 병영적 노동 통제와 어용노조에 신음하던 노동자들 역시 떨치고 일어났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어용노조 퇴진하라!” “두발을 자유화하라!” “집단 체조 시간을 폐지하라!” “인간답게 살아보자!” “살인적 임금을 인상하라!” 구호들이 거리와 광장을 메웠다. 1970년 분신 항거한 전태일의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던 호소에 대한 응답이었다. 단순 생존을 넘어 사람다운 삶!

그렇게 해서 민주노조가 여기저기서 들어섰고,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까지 섰다. 산별노조 운동과 노동자 정당(민주노동당)이 진보 진영의 쌍두마차가 됐다. 수많은 희생을 낳으며 전개된 일련의 투쟁은 마침내 군부독재를 문민정부(김영삼 정부), 나아가 민주정부(김대중 정부)로 전진시켰다. 대통령 직선제는 물론 각종 민주적 제도들이 만들어졌고, 노동자의 사회경제적 지위도 향상돼 대중 소비 시대가 열렸다. 이렇게 진보하면 통일된 자주민주 사회도 가능하겠다는 희망까지 생겼다.

그런데 이런 성취조차 맨 앞의 근로자는 일만, 학생은 공부만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가능했다! 역할분담론은 결국 자본이 원했던 사회통제론이었다! 근로자가 노동자로, 공장에서 광장으로, 묵묵히 일만 하던 이들이 사람답게 살자며 아우성치고, 학생들 역시 도서관과 강의실을 박차고 나와 목숨 걸고 저항했기에 사회가 진일보했다. 학계는 학계대로, 종교계는 종교계대로, 문화예술계는 문화예술계대로 자기만의 울타리를 넘어서 온 사회를 걱정하고 행동했다. 사회 진보가 곧 자기 진보였다! 그리하여 영화 변호인’(양우석 감독)에 나오듯 참여정부(노무현 정부)가 탄생했고, 모든 분야에서 역사 속 적폐를 청산하고 사회경제 시스템을 건강하게 쇄신해야 했다. 그야말로 공정과 상식의 눈으로!

그러나 놓친 것이 있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로 뭉친 재벌들은 돈의 권력을 이용해, 제각기 입법·사법·행정을 은밀히 장악했다. 영화 내부자들’(우민호 감독)이나 더 킹’(한재림 감독)은 그런 현실을 폭로한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던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독백이 아닌 냉엄한 현실이었다! 취임 초기 검사와의 대화에서 민주화에 동참은커녕 어깃장을 놓던 검사들의 모습은 자본과 권력 실세(특히, 검찰 특수부) 간 동맹의 증거였다. 이명박근혜 정부는 노무현식 민주화에 대한 안티테제였고, 촛불혁명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도 자본주의(자본과 검찰의 결합)를 넘지 못했다. 그렇게 자본이 권력을 농락하는 사이, 그 빈틈(부정부패)을 뚫고 송곳처럼 솟은 세력이 현 정부다. 공정과 상식을 앞세워 집권한 윤석열 정부는 이제, 사익과 자본을 위해 공정과 상식을 배신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양곡관리법, 간호법, 노란봉투법,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김건희 주가조작 특검법, 이태원참사 특별법 등 국회를 통과한 9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특검을 왜 거부하나, 죄지었으니까 거부하는 것이라 했던 자신의 말이 곧 부메랑이 되었다. 해병대 채 상병과 이태원참사 특별법도 그 앞에 막힌다. 반면, 재벌과 부자를 위한 감세나 규제 완화는 기꺼이 하고, 산재 예방을 위한 중대재해처벌법은 마뜩잖게 본다. 윤 정부의 공정과 상식은, 자본의 이윤 증식이 곧 민생경제란 논리다. 진실은 민생을 희생해 자본 증식을 돕는 것!

이는 국가의 존재 이유인 국민(민초)에 대한 배신이다. 최근 화마를 겪은 충남 서천 시장 상인들이 윤석열-한동훈에게 느낀 배신감도 같은 맥락이다. 참된 민생이란 생계 걱정 없고, 마음 편히 사랑하고 아이 기르며, ‘저녁이 있는, 재미와 의미가 충만한 삶이다. 이런 나라를 위해 일하라고 (혈세 내며) 대통령도 뽑고, 입법·사법·행정을 믿으며 열심히 산다. 그러나 통치자들은 이 기본 공정과 상식을 배신하고, 그 자리에 거짓말과 뻔뻔함을 채운다.

연초부터 세상을 놀라게 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살인미수 테러 역시 이 배신의 산물! ‘상식의 눈에, 이는 단독범행이 아니다. 돈과 권력의 수인(囚人)이 아닌, 민주주의를 향해 열린 주체로 재탄생하라. 촛불 민중이 또 다른 서울의 봄을 열기 전에! 동시에 우리 민초들도 역사 발전을 위해 기본에 충실하되 두루두루 역할 횡단을 해보자. 예컨대, 문화 공간 길담에서 곧 시작하는 자본 읽기모임도 그래서 재미날 것으로 보인다.

강수돌 |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 한겨레 2024.02.01.

 

애도폭력과 애도시위

어떤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행위가 폭력이 될 수 있을까? 애도행위가 아무리 부적절하고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폭력이라는 딱지를 붙여 비난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최근 벌어진 일련의 소동을 나는 애도폭력이라 부르고 싶다. 지난 123일 충남 서천시장 화재를 배경으로 이뤄진 윤석열·한동훈 회동이 비판받는 이유는 단지 정치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치쇼가 재난 현장을 주목하게 하는 대신 재난을 지워버렸다.

서천시장 292개 점포 중 227개가 불에 타, 80%가량의 생존터가 사라진 대규모 화재 현장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총선을 앞두고 터진 정치적 갈등, 그러니까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한 연기만 수십대 카메라 앞에서 선보이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지금까지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찾은 재난 현장 중 이렇게까지 재난이 삭제된 경우가 또 있을까. 차라리 그 둘이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시커먼 잿더미 위에서 눈물짓는 늙은 상인의 얼굴이라도 언론에 보도됐을 것이고, 지방정부의 대책에 대해 한 줄이라도 더 자세히 언급됐을 것이다.

·한의 서천시장 회동이 있던 시점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막기 위해 유가족과 시민대책위의 필사적인 몸부림이 이어지던 때이다. 가족들의 삭발이 있었고, 거부권 행사가 예측되던 전날은 체감온도 영하 20도가 넘는 혹한에도 밤새도록 15900배 철야행동이 이어졌다. 유튜브로 생중계되는 밤샘 절을 시청하다 새벽에 달려가는 시민이 있었지만 대통령의 거부권은 망설임 없이 행사되었다.

정부와 여당은 국론분열을 야기하는 정쟁의 도구인 특별법 대신 빠른 보상과 지원을 약속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자 또다시 시체팔이라는 악성댓글이 유가족에게 쏟아졌다. 유가족 김남희씨의 말처럼 유가족의 바람인 진상규명을 가장 모욕적인 방법으로 거부한 것이다.

애도폭력은 애도 자체가 폭력이 되는 사태다. 어떤 애도는 공적 공간에서 금지된다. 이를 위해 특정한 애도만 선별적으로 허용된다. 애도를 애도로 덮는다. 정부·여당 인사들은 참사 초기부터 보상을 해줄 테니 진상조사는 빼자는 주장을 유가족에게 전달해왔다. 윤 정부의 재난조사가 정권의 위협이 될 거라는 피해망상은 현 권력이 정상적으로 공적 영역을 통치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취약함을 드러낸다. 취약한 권력이 행사하는 힘은 폭력적이고, 폭력적인 만큼 약하다.

이 소동 한가운데서 지난여름 14명이 사망한 오송참사 진상조사가 유가족과 시민사회의 힘으로 이뤄졌다. 중앙정부는 국정조사를 실시하지 않았고, 충북도는 진상조사를 하지 않았다. 대신 유가족과 시민사회가 독립적인 진상조사를 진행하고 조사보고서를 마련했다. 재난·참사 관련 국가의 지원 없이, 국가의 무관심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유가족·시민·전문가 집단이 독자적으로 작성한 첫 사례다. 애도는 죽음에 따른 상실을 슬퍼하는 것만 아니라, 무엇을 상실했는지에 대한 앎을 포함한다. 진상규명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애도의 방법일 뿐만 아니라, 이를 둘러싼 싸움이야말로 애도의 사회적 실천, 애도시위이다. 오송참사가 귀중한 첫발을 내디뎠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 경향 2024.02.04.

 

진보는 못하더라도 후퇴는 하지 말자

1년 전, 지면에 글을 시작하면서 던진 화두는 오늘날 사회운동이 익숙한 것들과 결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익숙한 것 중 하나는 안일한 진영주의의 대명사인 민주(진보)대연합이었다. 그것은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로 현 사태를 해석하며 반민주의 자리에 끊임없이 민주당 아닌 정당을 채워넣고 그들을 청산하면 민주주의가 회복될 것이라는 논리로 가득 차 있다. 적이라 지명된 이들의 이름만 바뀔 뿐, 달라진 세력구도와 비판적 성찰은 없고 오직 적과 우리의 대립이 모든 갈등을 삼킨다. 정세는 납작하고 대안은 텅 비어 있다. 진보운동은 적에 맞서 민주주의를 되찾는 장구한 여정에 따라 시시포스적인 운동을 반복할 뿐이다. 총선을 두어 달 남긴 현재, 시민사회와 야권으로부터 민주대연합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별 차이가 없지 않으냐고 묻는다면, 맞다. 하지만 오늘과 같은 한나라당 독주구도에서는 작은 차이도 중요하다고 답해야 한다. 비판적 지지의 망령이 다시 찾아왔다고 말한다면, 한나라당 독주구도에서 비판적 지지가 올바른 지지의 형태라고 말해야 한다.” 홍세화 선생이 2010년 새해를 열며 쓴 칼럼의 일부다.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을 막기 위해 진보운동이 민주당과의 작은 차이를 뒤로하고 MB연합으로 뭉치자는 선언이었다. 굳이 길게 인용한 것은 지금 민주대연합을 들고나온 이들의 주장이 14년 시차를 두고도 동일하게 선명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작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큰 적과 싸우려면 민주당을 견인해서 뭉쳐야 한다는 진보운동의 헛된 미망 말이다.

민주대연합은 백기완 선생이 1987년 대선 유세 중에 우리의 당면 목표는 민중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현 체제의 군정연장 음모를 분쇄하는 일 이를 위해 민주세력은 대연합을 결성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서 출발했다. 당시 이 주장은 야당들로부터 외면받았고 노태우가 당선되었다. 그 때문인지 민주대연합이라는 미망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령처럼 진보 운동·정당 주변을 떠돌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선거제 개정이 화두다. 시민사회 원로들은 민주당의 권역별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후퇴하려는 시도를 막는 동시에 현 선거제를 유지하면서 민주당 주도의 민주진보연합정치를 하길 요구한다. 현 선거제에서 민주당에 강제되는 위성정당 창당의 부담을 줄여주면서,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이 비례연합정당을 구성함으로써 반윤석열연합을 형성하자는 제안이다. 비례명부를 같이 쓴다는 점에서 이전보다 수위가 높은 연동형 비례대표제판 민주대연합이다. 30년째 반복되는 민주대연합으로 총선을 치르면 무너지는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새 희망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일까? 지난 선거들에서 이뤄진 민주대연합 여러 판본의 기억을 되짚어보건대 그런 건 없었다. 외려 사회운동의 힘이 민주당으로의 수혈 끝에 쪼그라들었을 뿐. 진보는 못하더라도 후퇴는 하지 말아야 한다.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 | 경향 2024.02.04.

 

선배세대와 꼰대이즘

우리도 선배세대를 부정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었는데 뭘 그리 걱정하나. 당연한 과정인데.”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세대갈등 젠더갈등에 한탄을 하자 한 원로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학자이자 현장에서 보다 좋은 사회를 위해 한평생을 헌신한 그였기에 다소 의아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극단적인 분열을 부추기는 현실에 대해 그는 담담했다. 평소 잘못이 있다면 좌우 신구를 막론하고 송곳처럼 날카롭게 지적해왔던 그답지 않다고 하자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현상을 판단하는 방법이 이미 후배세대들은 우리와 다르다.

불현듯 한 시민사회 활동가와 얘기를 나눴을 때 일이 떠올랐다. 50대 환경운동가 A씨는 10~20대 활동가를 꿈꾸는 청소년과 청년들을 교육했을 때 크게 당황했다고 말했다. 그는 활동가가 어떤 일을 하는지 등을 설명하고 체험하게 하는 단기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런데 해당 교육기간이 끝나자 전원이 활동가를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힘든 걸 몰랐을 테니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는데 뭘 그러냐며 웃자 그는 정색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유가 의외였어요. 보수가 적어서도 일이 힘들어서도 미래가 불투명해서도 아니었죠. 활동방식이 불합리하다고 느끼더군요. 이전 세대들이 어떤 이슈를 주류화하기 위해 조직을 꾸리고 운동하는 방법은 효율적이지 않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그들은 활동가를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활동가의 꿈을 꾸고 있어요. 우리와 뭔가 다른 방식으로 말이죠.”

실제로 최근 시민사회는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그 시점을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촛불항쟁 전후로 분위기가 확 달라진 건 분명하다. 과거와 달리 어떤 특정 문제가 불거지면 사이버상에서 나이와 성별 지역을 막론하고 모인 뒤 해결이 되면 흩어지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사실 선배세대들의 방식과 청년들의 방식 중 어떤 것이 맞다고 운운하는 일 자체가 불필요하게 된 지 오래다. 이미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선배세대들보다도 더 좋은 결과들을 거두고 있으니 말이다.

이번 총선에서 원로교수의 말이 맞아떨어지길 바란다. 이미 선배세대들은 그동안 종전 정치와 선을 긋고 새 바람을 불어넣겠다고 수차례 말해왔다. 하지만 늘 도돌이표였다. 보수 진보가 한통속인 아수라장을 주류세력들이 스스로 정리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건 무리가 있다.

다행히 청년세대들은 세대교체라는 사회적 열망을 이용하려는, 불순한 세력들이 누군지 판단할 수 있는 식견을 가지고 있다. 과거 우리 선배세대들이 후배세대들에 대한 걱정과 달리 후배세대들이 잘 해냈던 역사처럼 말이다.

김아영 정책팀 기자 | 내일 2024.02.02.

 

민족주의의 종언

하나의 핏줄, 하나의 언어, 하나의 역사, 하나의 문화를 가진남과 북이라고, 20184월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은 위원장은 말했다. 그런데 올해 최고인민회의에서 더 이상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라고 규정했다. 인식의 전환은 남북 관계 악화를 반영하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사실 민족주의적 접근은 오래전에 이미 끝났다. 황혼의 남은 한줌 빛이 이제 꺼졌을 뿐이다.

북한의 민족 개념은 두개다. 하나는 통일 담론으로 19727·4 남북공동성명의 민족 대단결에서 20006·15공동선언의 우리 민족끼리’, 2018년 정상회담의 하나의 민족까지 이어졌다. 다른 하나는 한민족이 아니라 북한 민족이다. 김정일 시대의 김일성 민족이나 조선 민족 제일주의는 북한의 이념, 제도, 지도자를 정당화하는 개념이다. 김정은 시기의 김정일 애국주의역시 김일성 민족개념에 입각해 있다.

북한의 역사에서 우리 민족끼리는 남북 관계가 좋았던 시기에 등장한 담론이다. 그렇게 길지 않다. 대내적으로 체제 정당성 담론인 북한 민족을 강조했던 시기가 훨씬 길었다. 20191월 김정은 체제에서 강조한 우리 국가 제일주의민족에서 국가로 전환한 것이 아니다. 두개의 민족 개념 중 통일 담론으로서의 민족 개념을 폐기하고, ‘북한 민족을 국가라는 개념으로 대체한 것이다.

분단 이후 남북 관계도 민족주의적 접근과 거리가 멀다. 한반도 문제의 국제화 때문에, 언제나 국제질서의 변화에 영향을 받았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다섯번의 남북정상회담은 하나의 예외 없이 북-미 관계가 풀려서 남··미 삼각관계가 선순환할 때 가능했다. 남북 양자 관계만으로 현안을 풀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끼리는 관성에 의한 구호일 뿐, 정책 현실은 아니었다.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 관계도 끝났는가? ‘특수 관계는 두개의 국가라는 국제법적 현실과 민족 통일의 미래라는 이중성을 결합한 개념이다. 현실과 미래를 이어주는 다리는 관계의 수준인데, 당연히 미래의 문을 닫으면 남는 것은 두개의 국가라는 현실뿐이다. 물론 두개 국가는 새롭지 않다. 유엔 가입 때부터 국제적으로 남과 북은 두개 국가이고,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통일 방안의 핵심인 남북 연합 역시 말 그대로 두개 국가의 연합이다. 중요한 것은 두개 국가 그 자체가 아니라, 두개 국가의 관계다.

지금은 파도가 아니라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을 들여다볼 때다. 심층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움직임을 알지 못하고 민족주의에 호소하던 시간이 끝났음을 인정할 때가 왔다. 김정은 위원장을 포함하는 남북의 분단 3세대는 통일에 부정적이다. 남북 관계의 상대적 자율성도 줄어들면서, 적대적인 상호 의식도 층층이 쌓였다. ‘북핵 문제를 협상으로 해결할 가능성도 급격히 줄었다. 전술적이 아니라 전략적 변화이고, 사건이 아니라 구조가 변하고 있다.

더욱 우려할 만한 구조의 변화는 군사분계선이 단순히 남북을 가르는 소분단이 아니라, 동아시아와 세계를 가르는 대분단의 선으로 굵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신냉전을 완성하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군사 분야에서 진영 대결이 짙어지고 있다. 북한은 남방정책의 기대를 접었다. 미국 대선 이후의 협상 재개나 혹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벼랑 끝 전술과 같은 단어들은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 미국에서 다시 중국 역할론이 제기되고 있으나, 과거 북핵 문제 해결 시기의 미-중 협력을 재연하기는 어렵다.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정책 차이가 분명한데, 그 틈을 파고들어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킬 외교의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외교가 사라지니 군사만 남았고, 그것이 현재 위기의 구조적 특징이다.

북한은 군사분계선을 대분단의 선으로 만들어 생존하겠다는 전략이다. 대분단이 굳어지면 소분단을 극복할 수 없다. 서독의 정책을 왜 대동독 정책이 아니라 동방정책이라고 했겠는가? 여지가 줄어들고 있지만, 대분단을 막을 북방외교를 포기하면 안 된다. ‘민족 공조흡수통일은 달리 보여도 공통적으로 민족주의적 접근이다. 이제는 달라진 질서를 반영하는 탈민족주의적 접근이 필요하다. 통일의 미래는 어떨까? 북한이 미래로 가는 다리를 끊었다고 해서, 우리까지 동조할 필요는 없다. 오지 않을 줄 알면서도 왜 고도를 기다리겠는가? 기다림 자체가 삶의 존재 이유이듯이, 통일의 미래는 분단국가의 숙명적 과제다. 아무리 멀어도 미래로 가는 문을 닫을 필요는 없다.

김연철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 | 한겨레 2024.02.05.

카르텔의 나라

1. 걸핏하면 카르텔이다. 카르텔이 문제라고 카르텔을 없애겠다고 카르텔을 때려잡는 것이 개혁이라고 핏대를 세운다. 이 나라는 어쩌자는 것인지 날마다 카르텔 타령이다. 대선에서 공약하더니 대통령으로서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그렇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내 머리는 정리가 되지 않을 지경이다. 분명히 이 나라에서 대통령이 대단히 애용하는 말인데 말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도 무슨 카르텔인가하고 있으니 스스로 난감하다. 윤석열 정부에서 많은 것들에 대해서 이 말을 사용했다. 솔직히 뭔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 정리되지 않은 말을 정리된 말로 알아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비난하면서 이 말을 사용하고 있다. 그냥 무심히 정리하지 않은 채 내 머리를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이 세상에서 도대체 카르텔이 무엇이고, 이 말을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비난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기로 했다. 지난달 신년사에서 다시 한번 윤 대통령은 카르텔를 타파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노동 개혁 추진을 밝히고, 노동자, 노동조합을 말했으니 신년사 중 카르텔과 노동에 관한 내용을 중심으로 생각을 해보자.

2. 올해 신년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자기들만의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을 반드시 타파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서 대통령이 말하는 패거리 카르텔에는 노동조합도 포함된다는 것은 그동안 해왔던 대통령의 말을 통해서 넉넉히 확인된다. 이 신년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패거리 카르텔을 타파하는 개혁을 추진하겠다면서 노동개혁을 자세히 언급한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신년사에서 밝힌 노동개혁은 노사법치와 노동시장의 유연화, 이중구조 개선 등이다. 구체적으로 대통령의 말을 통해서 살펴보자.

윤 대통령은 먼저 노동개혁의 출발은 노사법치라면서 불법행위는 노사를 불문하고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급속히 변화하는 산업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노동시장이 유연해야 한다면서 직무 및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로 변화시키고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며, 유연근무, 재택근무, 하이브리드 근무 등 다양한 근무 형태를 노사합의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노사법치가 노동조합에 대한 것이라면, 노동시장의 유연화, 이중구조 개선은 노동자(권리)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노사법치라니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무슨 신조어인가 했다. 노사자치라는 말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아니었다. 노사관계, 근로관계에서 불법행위를 엄단하겠다며 한 말이라서 노사자치와는 전혀 다른 말이었다. 이 나라 최고권력 대통령이 패거리 카르텔을 타파하겠다면서 맨 먼저 한 말이고, 불법행위에 노사를 불문하고 엄정 대응하겠다는 걸 보니 노사자치라고 노사가 주장해도 봐줄 것 같지 않은 말이라서 오히려 노사자치에 반대의 말로 들리기조차 한다. 그동안 이 나라 노사관계에서 임금단체협상 등 노사합의하면서 노사 간 고소고발 취하로 검사의 수사를 위한 시간과 노력을 헛되게 해왔던 것에 대해서 대통령으로서 더는 용납하지 않겠다, 노사합의든 뭐든 불법은 끝까지 엄정 대응하겠다는 말인가 싶기도 한데 설마 그렇게까지는 아닐 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노사법치라니 노동자,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불법행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라서 중립적이고 공정한 말로 들린다. 이 나라에서 그동안 국가권력이 노사관계에서 법치를 강조할 때는 노동자들이 파업 등 투쟁에 대한 것이었다. 불법파업은 용납할 수 없다며 관계장관들이 기자회견을 통해서 법치를 말해 왔다. 그래서 대통령의 노사법치라는 말도 무엇보다도 이 나라 노동자, 노조의 불법파업을 무릅쓰는 투쟁에 대한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노사법치로 노동자, 노조의 불법 파업투쟁 등 불법행위를 엄정 대응하겠다는 것이니 말은 새로워도 그 취지는 전혀 새롭지 않은 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화, 이중구조 개선은 이미 이전 정권들에서 해 왔던 말로,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윤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쓰고 있어 그 내용을 살피는 게 새롭다 할 지경이다. 연공급의 임금체계를 직무·성과급제로 바꾸고 각종 유연근무시간제를 도입하며,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 임금 및 근로시간, 그리고 고용 등에 관한 노동자의 권리를 향상시키고자 이 나라에서 권력이 해왔던 말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경총 등 이 나라 사용자 자본의 단체들이 오랜 기간 줄기차게 요구해 온 것들이다. 온통 노동자의 권리를 삭감하기 위해 요구하는 것들이다. 안정적이고 높은 수준으로 임금의 향상, 노동 선진국 수준으로 노동시간 단축, 대기업 정규직과 격차 해소를 위한 중소·영세 비정규직의 대폭적인 임금 향상 등 노동자의 권리 향상을 위한 정책은 대통령의 신년사에는 찾아볼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패거리 카르텔의 전형이다. 그래서 그들이 가진 임금과 고용 등에 관한 권리를 삭감하고, 조직력을 약화시켜야 하는데 관심이 있는 것이지, 그들의 수준으로 그렇지 못한 노동자들의 권리를 향상시키고, 노조로 단결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이상과 같이 노동과 관련해서 대통령이 말한 카르텔에 대해 살펴보고 나니 카르텔이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대통령이 추진하겠다는 개혁의 대상을 이르는 말이고, 비교적 높은 수준의 권리를 가진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두고서 하는 말이니 말이다.

3. 카르텔은 독과점을 이르는 말이다. 독점적 지배를 통해서 불공정한 초과수입인 지대를 확보하기에 이를 규제해서 시장의 공정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개념이다. 사실 이 세상에서 독점을 통한 지배로 보자면, 국가권력만 한 것이 없다. 이 세상에서 주는 것 없이 빼앗는 것이 폭력인데, 그것을 독점한 것이 국가권력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오랜 기간 존재해 왔던 사적 폭력을 몰수해서 독점한 것이 국가권력이다. 오늘 이 세상 나라들의 법전에는 그걸 새겨 놓았다. 인간의 역사에서 수많은 자치(주의)가 있었다. 그걸 모조리 괴멸시키고서 오늘 국가가 권력이 존재한다. 군대와 경찰, 징세권 등은 가장 중요한 증명이다. 국가권력이야말로 카르텔의 왕이다. 국가권력에 대한 나눔은 일체 허용하지 않는다. 주권의 신성, 불가침을 내세워 어떠한 폭력 행사도 주저하지 않는다. 본래 카르텔이란 말은 독점자본주의의 폐해를 시정하기 위해서 사용한 것이다. 자본의 집적과 집중으로 거대한 독점자본이 형성되면서 자본들 사이에도 더는 공정한 시장경쟁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면서, 자유경쟁의 시장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사용한 것이다. 거대한 지대 수입에 의존하는 독점자본을 규제함으로써 자본주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사용한 말이다. 따지고 보면 무언가 독점 지배해서 초과 수입인 지대를 얻는 것은 독과점의 자본만은 아니다. 봉건제를 무너트리고 근대 시민사회를 열렸을 때 원시적인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 있었고, 자본의 질서가 세워졌다. 노동에 대한 자본의 독점적 지배가 확립됐던 것인데, 이 세상에서 그것으로 노동에 대한 자본의 초과수입은 법적 질서로 보장됐다. 노동자를 사용해서 거둔 수익은 전적으로 사용자의 차지고, 노동자에게는 임금을 지급하면 그만인데, 이러한 자본의 질서는 근대 시민혁명에서 자본의 노동에 대한 비경제적인 국가권력의 지배를 통해서 확보된 것이다. 그저 경제적 지배로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가 저절로 확립된 것이 아니다. 노동에 대한 자본의 초과수입 지대는 노동과 자본의 공정경쟁에 의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 지배 외에 비경제적 지배인 국가권력의 지배를 통해서 법적으로 보장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살펴보면, 권력과 자본이 오늘 이 나라에서 노동에 대해서 카르텔이라 비난하는 게 우습다. 진정으로 이 세상에서 카르텔이 무엇인지 들여다본다면, 감히 그들은 노동에 대해서 카르텔 운운하며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4. 노동조합을 두고서 특별히 노동자들에게 단결해서 활동할 권리를 부여한 것이라고 말해 왔다. 오늘 이 나라에서는 노동조합을 두고서 카르텔 운운하는 것도 이러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노동시장 공급에서도 독()점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조직해서 활동하는 것이 허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노동자들을 위해서 특별히 노동조합이라는 카르텔을 허용했다는 식이다. 이런 생각이라면 진정으로 공정한 노동시장을 위해서는 노동조합이라는 카르텔을 억제할수록 바람직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카르텔 운운하는 것도 이런 식의 생각이 머리 깊숙이 자리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이 세상에서 자본의 카르텔에 맞서기 위한 것일 뿐, 노동의 지배를 통해서 자본에 대한 노동의 초과수입 지대를 확보하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니다. 자본과 권력의 카르텔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노동자, 노동조합에 대해 카르텔이라는 비난을 듣게 되니 나는 아직도 낯설고 내 머리는 뒤죽박죽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 매일노동뉴스 2024.02.06.

 

대통령 의중만 좇는 수사와 법 집행

검찰이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씨에게 비싼 핸드백을 준 최재영 목사를 주거침입죄로 수사한단다. 검찰이 벼르는 범죄는 누군가의 주거공간에 침입해야만 성립한다. 미리 약속을 잡은 데다 대통령 경호처의 경호를 거쳤으니 침입은 아예 성립하지 않는다. 고발이 있었다고 쳐도, 이런 경우엔 곧바로 무혐의 처분을 하면 그만이다. 챙겨야 할 사실관계나 법률 쟁점도 없는 이상한 사건일 뿐이다.

최 목사에게 범죄를 추궁한다면, 그건 제3자 뇌물제공이나 청탁금지법 위반 등을 따져봐야 한다. 김건희씨가 공직자는 아니지만, 대통령 부인이라는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데다 인사를 비롯한 대통령의 국정운영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정황이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다.

대통령은 자기 아내가 최 목사를 매정하게 대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이고, ‘정치공작’ ‘함정몰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작 비싼 핸드백을 덥석 받은 이유에 대한 납득할 만한 해명은 내놓지 않고 있다. 사실을 따져야 할 검찰은 대통령의 논리에만 충실할 뿐이다. 핸드백을 주고받은 게 청탁금지법 위반이라는 신고를 받은 국민권익위원회도 꿈쩍도 안 하고 있다. ‘반부패 총괄기관김건희 명품백은 관여할 사항이 아니라고 발뺌 중이다.

대통령 부인도 일을 할 수 있고 사무실을 운영할 수 있지만, 이런 식으로 뇌물까지 받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유독 대통령 가족들만 법의 지배에서 비켜나 있다. 국정운영의 기본인 견제와 균형, 감시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는 실형을 선고받고 수형생활을 하고 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법무부가 가석방을 검토하고 있단다. 언론 보도 직후 법무부는 일절 검토한 바 없다고 최은순씨 가석방 문제를 전면 부인했지만, 최씨는 지난달에 이미 가석방 심사 대상으로 꼽혔다. 법무부가 최씨를 풀어주겠다는 근거는 고령, 지병 호소, 초범, 그리고 수감생활 중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모범수라는 점이었단다. 전형적인 견강부회다.

재소자들은 대부분 수감생활 중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모범수다. 문제를 일으켜봤자 교정경찰에게 곧바로 진압되고 형벌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가석방으로 조금이라도 일찍 출소할 수 있는 길도 막혀버린다. 나이 많은 재소자도 많고, 재소자 둘의 하나쯤은 각종 질병을 호소한다. 감옥이란 곳이 신체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고통을 주는 곳이기에, 갇힌 사람들은 대개 몸과 마음이 아프기 마련이다.

최은순씨가 형기를 절반밖에 채우지 않았는데도 가석방이 된다면, 다른 재소자들에게도 똑같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대개 가석방은 형기의 80~90%쯤 살아야 가능하다. 2022년 한 해 동안 가석방을 허가받은 재소자는 1281명인데, 이 중 60% 미만의 형기 복역만으로 석방된 경우는 38, 0.37%에 불과하다. 중증 환자가 아니라면 0.37%의 높은 장벽을 넘어설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 시절은 물론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등 검찰의 주요 보직을 차지하고 있을 때도, 그의 가족은 검찰의 법집행에서 비켜나 있었다. ‘공정과 상식은 자신과 가족을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만 요구하는 공격용 언사였을 뿐이다.

이는 김건희씨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개입했는지를 따져보기 위해 특별검사를 통해 수사해보자는 법률안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대목에서 더욱 분명하게 확인된다. 김건희씨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을 통해 23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 혐의가 사실이라면 부당이득의 2배인 46억원의 과징금을 내야 한다. 남들에게는 떳떳하면 수사받으라고 윽박지르면서도 자기 가족에 대한 수사는 기필코 막아버렸다. 한때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사람이기도 하다.

수사가 중심을 잃고 대통령의 심기나 헤아리는 일탈을 반복하고 있다. 대통령과 그 주변에 대한 수사와 법집행은 야당 등 대통령의 정적에 대한 수사 및 법집행과 완전히 다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죄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을 잡느냐 그렇지 않냐로 달라졌다. 한쪽에선 상대를 모욕하고 괴롭히고 마침내 제거하는 것이 수사의 목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고, 다른 한쪽에선 어떤 범죄든 감싸고 묻어버리는 것이 제 역할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고 있다. 국민이 위임해준 검찰권은 윤석열 대통령만을 위한 권력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수사는 흉기가 되어버렸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 경향 2024.02.08.

 

보수가 나라를 갉아먹는 방법

한국에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현재 한국에서 보수를 자처하는 권력자들의 수준은 한심할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보기에 이들은 오직 선거 승리가 목적인 보수를 사칭하는 선거결사체인데 이들이 나라를 갉아먹고 있다. 이유는 세 가지이다. 우선, 보수 사칭 선거결사체들은 권력 쟁취라는 사익 추구가 목적이지 공공성 이런 거에 전혀 관심이 없고, 자기가 살아온 인생을 부정하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비대위원장, 이복현 금감원장 등은 검사 시절 재벌 수사로 공정이라는 정치적 자산을 쌓고 그것을 기반으로 심지어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재벌총수를 사면하고 심지어 자신이 수사한 사건이 법원에서 이례적인 전부 무죄가 나오는데 전혀 창피함이 없이 무죄판결이 재벌총수의 사법리스크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검찰의 기소 논리를 무력화시키려는 재계의 논리를 그대로 가져와 판결을 옹호하기까지 한다. 얼마 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부당합병 및 회계부정 사건 1심 재판에서 이재용 회장이 무죄를 선고받은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결국 그들은 검사 시절에도 공정, 정의를 위한 사명감보다는 굵직한 재벌 사건을 해야 검찰에서 출세하기 때문에 수사했던 것으로밖에 풀이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원칙을 지키는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며 국가 운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공성도 일관성도 없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두 번째, 보수를 자처하는 권력자들은 자기들끼리 우쭈쭈하는 데 선수이다. 서로의 부드러운 인성과 해외 학벌을 추켜세우며 서로 쓴소리 안 하고 지내다 보니, 뭔가 비판을 하는 사람은 불만에 가득 찬 싸가지없는 좌파놈들이며 국민은 다 자기들을 존경한다고 생각한다. 더 문제는 서로 추켜올리면서 지내다 보니 자기들이 한국 사회의 의제, 방향, 전략에 대해 아무런 내용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내가 현 권력자들이 서로를 심하게 우쭈쭈하고 있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 계기는 그들이 들고나온 총선 전략이 운동권 청산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경제성장률이 1.4%25년 만에 일본에 뒤진 상황에서 말이다. 또한 주식투자자들이 얼마나 희망이 없으면 내용도 발표되지 않은 기업 밸류업 정책(주가가 저평가된 기업에 대한 기업가치 제고 정책)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가가 오르는 이 상황에서 말이다. 그런데 입만 열만 미래세대를 위한다던 집권 여당이 총선에 들고나온 시대정신이 운동권 청산이다. 한 비대위원장은 자신보다 못난 운동권이 껄떡거리는 게 싫은 거 같은데 운동권하고 비딱하게 자존심 싸움할 시간에 관료들하고 정책이나 다듬어라. 이런 거에만 관심을 두니 정국 운영이 이 모양이다.

마지막이다. 올해 본격적인 총선정국으로 들어서면서 현 정권은 대충 정책을 얼기설기 모아 패키지로 던지고, 뒷수습은 관료에게 맡기고 있다. 윤 대통령은 1월 초부터 코리아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며 서로 연관이 없는 공매도 개혁, 소액주주 이익 제고를 위한 상법 개정,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확대, 상속세 완화, 기업 밸류업 등을 묶어서 던졌다. 그러나 상속세 완화는 지금 당장 추진할 건 아니라고 물러서는 데 하루도 안 걸렸고, 소액주주 이익 제고를 위한 상법 개정도 흐지부지되는 데 딱 2주 걸렸다. 이유는 뻔할 것이다. 대통령이 총선용 민생정책을 만들어 오라고 하면, 각 부처가 자기 영역의 정책 하나씩 집어넣어서 급하게 패키지로 대통령에게 들고 가는 것이다. 그러면 대통령은 일단 그냥 지른다. 결과는? 아시안컵 한국축구다. 감독(대통령)은 전략이 없고 선수들(관료)이 경기를 뛰면서 해결하려다 지쳐서 망한다.

최근 윤 대통령이 미는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와 주식 밸류업 정책은 아주 선의로 해석하면 일본의 아베 신조 내각 시절 2012년부터 추진되었던 통화·재정·구조개혁 정책의 통합 패키지인 아베노믹스를 흉내내려는 거다. 그러면 현 정권은 아베노믹스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부터 그것이 지금 한국경제에 적용 가능한가까지 꼼꼼히 따져야 한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다. 총선에만 관심 있는 현 권력층이 최근 일본 주가의 급상승에만 꽂힌 것이다. 이게 일면만 보는 비극이다. 생각해 보자. 일본 주가지수가 1980년대 후반 일본 경제의 최전성기 수준으로 35년 만에 회복한 게 단지 작년부터 시행한 일본 거래소의 밸류업 정책 때문이겠나? 선거 급하다고 대충 주가 부양 정책 던지다가 주식시장에 혼란만 줄 것이다. 그리고 이게 보수 사칭 선거결사체가 만들어 내는 진정한 위험성이다. 이들은 정부 재정지출만 빼고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할 것이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 경향 2024.02.13.

 

어떤 설렘도 없이 총선이 다가온다

여의도 상공에 다시 위성정당이 떠오르고 있다. 거대 양당의 탐욕이 쏘아 올렸다. 그 위성의 불빛을 좇아 정치인들이 몰려들 것이다. 사다리를 내려달라고 발을 구르며 읍소할 것이다. 흡사 휴거를 기다리는 종교집단처럼 한바탕 굿판이 벌어질 것이다. 4년 전에도 그랬다. 총선을 앞둔 봄날 이런 글을 썼다.

분노도 사치다. 이처럼 타락한 선거가 있었는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의석을 삼키려는 거대 양당의 아귀다툼이 가관이다. 이제 막 투표용지를 받아드는 학생들에게 정치권은 무얼 보여주고 있는가. 부끄러울 뿐이다.

지금 여의도 상공엔 위성정당(위성이란 용어가 점잖다. 어떤 이는 괴뢰라 칭한다)이 떠 있다. 위성정당에서 쏟아지는 요설(妖說)이 봄날을 어지럽힌다. 국민들이 코로나19와 싸우는 사이 정당정치는 십리나 후퇴했다. 우리가 쟁취한 민주주의가 왜소해지고 있다. 군소정당과 함께 가겠다던 더불어민주당은 이제 당명에서 더불어를 떼어내야 한다. 금배지 달아보겠다고 허겁지겁 번호표 받아들고 위성정당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인물들 참으로 없어보인다.”(202043일자 경향신문)

승자 독식과 거대 양당의 독점 구도를 막자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놓고 한순간에 파기해버렸다. 민주당이 이처럼 국민과의 약속을 깨버린 적이 있었는가. 민주당 지지자들마저 낯을 들 수 없었다. 소탐대실, 대의를 저버리면 그 후과가 반드시 찾아오는 법이다. 민주당은 총선에서 이겼지만 대통령선거에서 0.73%포인트 차이로 졌다. 사견이지만 패배의 시작은 위성정당을 띄워 도덕적 우위를 스스로 지운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정교하게 계산한 것은 아니지만 위성정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헤어질 결심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일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그렇게 정당정치는 4년 전보다 후퇴했고 민주주의는 더욱 왜소해졌다.

이재명 대표가 위성정당을 띄우겠다고 선언하자 민주당 의원들이 일제히 입을 닫았다. 누구 하나 일어나 안 된다고 외치지 않았다. 4년 전엔 당내에서 비판여론이 일었지만 이번엔 안팎이 조용하다. 위성정당방지법을 만들자며 날을 세웠던 의원조차 병립형으로 회귀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물러섰다. 무도한 정권의 실정을 심판하려면 한 석도 아쉽다는 핑계를 댈 것이다. 무례하고 진부하다.

언제부터인지 정치권에 새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새 인물이 당내 경쟁을 통해 거목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누구든 정당에 들어오면 내부의 기득권에 편입되고 충성을 강요당한다. 처음부터 당내 권력에 줄을 서야 하고, 당론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 찍히면 퇴출이다. 정치신인들도 그렇게 젊은 꼰대가 되어간다. 인걸의 빼어난 자질도 기성정치인들의 권력유지를 위한 도구로 활용될 뿐 새로운 세력을 모으는 리더십으로 전환되지 못한다. 그래서 새 얼굴도 도로 그 얼굴이다. 이 모든 것이 양당제의 고착화에서 비롯되었다.

정치개혁을 외치면서도 적대적 공생을 위한 양당의 성곽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렇게 제도권에서 서로 싸우며 새 인물과 세력은 철저하게 경계하고 있다. 내놓는 정책들도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의사당에서는 활기가 사라졌다. 그럼에도 정치개혁은 요원하다. 개혁 대상들에게 개혁을 맡겨야 하니 겉돌 수밖에 없다. 결국 민심은 제도권 밖으로 눈을 돌렸고 급기야 윤석열, 한동훈 같은 정치 문외한들이 완장을 차고 들어와 정치판을 휘젓고 있다. 초보 정치인들이 기존 관행을 질타하며 제도권 정치인들을 조롱해도 대응할 논리가 마땅치 않다. 그만큼 정치 토양이 황폐해졌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선거든 지방선거든, 양대 정당 후보 중 승자가 권력을 다 가져가는 현실이다 보니, 양당의 기성 정치권에 어떻게든 잘 보여야 정치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다. 그러니 이런 현실에 순응하고 적응하여 들어오는 자는 그의 나이가 몇 살이든 기존 구조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흐르지 않는 물길에 고인 물은 오래되어서 고인 물이 아니라 처음부터 고인 물이다.”(신진욱 <그런 세대는 없다>)

약속이 뒤집히고, 술수와 거짓말이 아무나 찌르고, 대의는 실종되었다. 신의와 도덕이 무너진 자리에는 집단이기와 사리사욕만 돋아나고 있다. 우리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정치판은 이렇게 썩어가고 있다. 이제 저쪽이 싫어서투표하는 상황도 한계에 이르렀다. 정치권에 봄날은 언제 올 것인가. 그 어떤 설렘도 없이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김택근 언론인·시인 | 경향 2024.02.13.

 

한국판 우생학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지난 25일 서울 중구 부영빌딩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다둥이 가족에게 출산장려금을 전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직장인들이 올해 설에 회사로부터 받은 최악의 설 명절 선물을 제보한 유튜브 영상. 한 직장인이 사과 2개를 받았다고 제보했다. 유튜브 이과장갈무리 한겨레

부영그룹에 이어 사모투자펀드 운용사인 IMM도 억대 출산장려금을 직원들에게 주기로 했다. 앞서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심각한 저출생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2021년 이후 태어난 직원 자녀 70명 모두에게 현금 1억원을 지원하는 출산장려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연년생 자녀를 출산한 직원, 쌍둥이를 출산한 직원에게는 2억원씩 지급했다.

기업의 출산장려금은 여러모로 반가운 일이다. 한국 사회 최고 난제인 저출생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직원들의 사기를 높여 회사 발전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금호석유화학과 HD현대, 현대자동차 등도 출산장려금을 확대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들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13기업의 자발적인 출산지원 활성화를 위해 세제 혜택 등 다양한 지원방안을 즉각 강구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취업난과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 막대한 사교육비에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삼포 세대에게 대기업의 출산장려금은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언제부턴가 다자녀는 우리 사회에서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됐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지난해 출산율 1위가 강남구다. 국가의 출생률 제고 정책도 은연중에 부유층에 맞춰져 있다는 느낌이다. 자녀에게 증여세 공제 한도인 15000만원의 결혼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전문직이나 공무원, 공기업 종사자, 대기업 직원들이 아니면 법으로 정해진 출산 휴가나 육아 휴직을 쓰기도 쉽지 않다.

19세기 영국에서 등장한 우생학은 열악한 유전자를 가진 인구의 재생산을 막고 적격자의 출산을 장려해 인류의 질적 향상을 꾀한 비윤리적 사이비 과학이다. 과거의 우생학이 국민의 결혼과 출산에 국가가 직접 개입하는 폭력적 방식으로 이뤄졌다면, 21세기 한국판 우생학은 외견상 모든 것이 개인의 선택에 맡겨져 있다. 그러나 경제적인 이유로 출산을 할 수 없다면 강제 불임과 사실상 차이가 없다. 출산과 양육은 생명체의 본능이자 자연의 섭리다. 가난해도 사랑하고 싶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생명에는 계급이 없다. 출산과 출생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오창민 논설위원 | 경향 2024.02.13.

 

다시 돌아온 산업정책의 시대

산업정책의 시대가 돌아왔다. 미국과 유럽을 필두로 세계 곳곳에서 자국의 전략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생산, 투자, 수출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각종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규범안보를 내세워 수출입 통제를 강화하고, 국외 생산기지를 자국으로 옮기는 기업을 지원해준다. 미국의 반도체과학법인플레이션감축법’, 유럽연합(EU)유럽반도체법그린딜산업계획이 대표적인 예다. 독일, 프랑스, 중국, 일본, 인도 등도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어 자국의 디지털, 그린 관련 첨단산업을 키우려 하고 있다.

산업정책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15세기 중후반 국제무역이 본격화하면서부터 수출 보조, 수입 제한, 산업 보호 등 소위 중상주의정책이 대세를 이뤘다. 18세기 이후 자유무역 이론이 득세하면서 중상주의가 후퇴하는 듯했으나, 후발 주자들에게 국가 개입을 통한 산업 육성은 언제나 매력적인 선택지로 남아 있었다. 미국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의 유치산업 보호론에 힘입어 미국의 철강, 화학, 기계 분야 제조업이 급성장하며 19세기 후반엔 산업혁명의 본산 영국을 앞질렀다. 우리나라의 눈부신 경제 성장 역시 산업정책이 작동한 사례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없었다면 조선업, 중화학공업, 반도체산업이 주도한 한강의 기적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한동안 산업정책은 경제사 교과서에나 나오는 얘기로 취급받았다. 그 옛날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 주장했듯, 재화의 자유로운 교환이 생산을 극대화한다는 시장주의가 대내외 경제정책을 지배했다.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과 국제기구에 의해 시장 개방을 요구받았고, 차별적 관세와 산업보조금은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에 의해 제한되었다. 산업정책은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을 야기하고, 지대 추구를 유발하며, 쏟아붓는 자원에 비해 효과도 별로 크지 않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분위기가 바뀐 건 비교적 최근이다. 국제분업체계 아래 중국을 비롯한 신흥 제조업 국가들이 급부상했고, 급기야 첨단기술 분야에서까지 선진국의 아성을 넘보기 시작하자 미국과 유럽에서 위기감이 커졌다. 팬데믹 기간 중 마스크와 백신 부족, 전쟁발 에너지 위기 등은 적어도 기간산업과 전략산업에선 생산 역량을 자국 내에 갖춰야 한다는 자각을 끌어냈다. 이 자각과 함께, 유행이 끝난 줄 알았던 산업정책이 부활했다. 레커 유하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에 따르면 주요국 국제통상 관련 정부 정책 중 산업정책으로 분류되는 사례는 201034건으로 8%에 불과했으나 2021년엔 1594(48%)으로 급증했다. 사이먼 이버넷 스위스 장크트갈렌대 교수는 산업정책이 언급된 주요 경제지 기사 수가 19901천회 미만에서 202316천회로 16배 이상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산업정책의 시대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023년 한해만 해도 산업경쟁력 강화, 공급망 안정, 국가안보 유지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2천여개의 산업정책이 발표됐다. 지정학적 여건은 개선될 기미가 안 보이며 첨단산업 주도권 선점을 위한 강대국 간 경쟁 역시 하루 이틀 안에 끝날 문제가 아니다. 자국 산업 보호 정책은 군비경쟁처럼 한쪽에서 시작하면 다른 쪽에서 따라가지 않을 재간이 없다. 2주 전 만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고위 관료는 자신들의 경제안보전략을 소개하면서, 유럽연합 설립의 근간은 경제 통합이지만 미국과 중국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에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올해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에서 선거가 치러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국 산업에 대한 지원이 더 강해지면 강해졌지 후퇴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20228월부터 국가첨단전략산업법을 시행하고 있고, 지난해부터 소부장특별법’ ‘공급망기본법’ ‘자원안보법을 연달아 통과시키며 산업정책의 시대에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의 셈법은 미국, 유럽, 중국과는 다르다. 문을 걸어 잠그고 유치산업을 키울 수도, 그렇다고 문을 활짝 열고 저부가가치산업에 특화할 수도 없다. 급변하는 세계정세에서 중견국으로서 우리나라의 위치를 정립하기 위해선 이런 큰 그림 속에서 세부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념과 포퓰리즘에 사로잡힌 경제정책을 남발할 여유가 없음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장영욱 l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 한겨레 2024.02.14.

 

숫자 너머 사람을 보라

통계청의 ‘2023년 연간 산업활동 동향을 보면 지난해 소매판매액지수는 전년 대비 1.4% 감소했다. 내구재(0.2%)는 소폭 늘었지만 음식료품 등 비내구재(-1.8%)나 의복 같은 준내구재(-2.6%) 판매는 급감했다. 지난해 개인회생을 신청한 자영업자는 전년도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었다. 개인사업자의 저축은행 대출 연체율은 20224분기 3.31%에서 지난해 3분기 7.49%로 올랐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발표하는 숫자는 추상적이다. 그 자체로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숫자 이면에 있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을 봐야 한다. 통상 소매판매액은 매년 증가한다. 이것이 전년도보다 감소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자영업자들이 대거 시쳇말로 폭망했다는 의미다.

필자가 사는 서울 서대문구 아파트 단지 입구에 있는 식육점이 얼마 전 폐업했다. 식육점 맞은편에 있는 무한리필 고깃집도 불이 꺼졌다. 코로나19 사태 전엔 와이셔츠 등 남성 의류를 팔던 가게였다. 그 뒤로 횟집, 장어구이집 등으로 탈바꿈했는데 고깃집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은 것이다. 5년 전 이 동네로 이사올 때 맨 먼저 들렀던 공인중개사 사무소도 지난해 가을 간판을 내렸다. 주상복합건물의 1층 목 좋은 장소인데 지금껏 비어 있다. 아파트 입구 업소 30여곳 중 3곳의 상태가 이렇다.

중소기업 퇴직 뒤 2년가량 쉬다가 코로나19가 잠잠해지자 재작년 경기도 신도시 지역에 보리밥 식당을 연 지인이 있다. 처음엔 직원을 3명 고용했지만 매출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아 6개월 만에 모두 내보냈다. 부부가 어렵게 꾸려나가다가 지난해 가을 폐업을 결정했지만 임차인을 못 구해 보증금만 축내고 있다. 인테리어 시공비 등 초기 투자비와 인건비, 월세로 지금까지 2억원 가까이 까먹었다. 대출 상환일은 다가오는데 갚을 방법이 없다. 부인이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는 오는 6월쯤 대출 연체자가 될 것이다.

내수 부진으로 자영업자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정부 지출은 되레 줄었다. 지난해 예산 불용액이 역대 최대인 457000억원(불용률 8.5%)을 기록했다. 부자 감세 등으로 발생한 564000억원의 세수 결손을 막기 위해 정부가 써야 할 사업에 당초 계획대로 돈을 쓰지 않은 것이다. 돈이 먼저인가, 사람이 먼저인가. 답은 명확한데 순서가 바뀌었다. 경기 둔화 국면에 정부 지출이 주니 내수가 더욱 위축되고 경제에도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

500만 자영업자와 100만 무급가족봉사자는 한국 중산층의 핵심이다. 자영업자 가장에게 딸린 식솔을 고려하면 1000만명이 넘는다. 지금 같은 불황 국면이 조금만 더 길어지면 자영업자의 상당수는 가난에서 자력으로 빠져나올 수 없는 하류층으로 전락할 것이다. 근면하고 성실한 자영업자는 일단 살려놓고 봐야 한다.

정부도 최근 자영업자 지원 대책을 내놨다. 금융권의 도움을 받아 자영업자 200만여명에게 1인당 100만원씩, 24000억원의 이자를 환급하기로 했다. 간이과세자 기준을 연 매출 8000만원에서 1400만원으로 올려 세금 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 대통령이 검사 출신 아니라고 할까봐 신분을 속인 미성년자에게 술·담배를 판매했다가 적발된 자영업자는 면책한다는 지침도 내놓았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4·10 총선을 앞두고 급조한 것이라 실효성도 의심스럽다. 진정으로 자영업자를 도울 요량이라면 예산 불용이 없어야 했다. 재정 적자 확대가 우려되고 미래세대에 부담을 넘기는 게 걱정된다면 지금이라도 감세 정책을 철회해야 한다.

지난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미국이나 일본보다 낮은 1%대이고, 올해도 잘해야 2%대 초반이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성적표다. 2021년과 2022년 경제성장률은 각각 4.3%2.6%였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성장률이 1%포인트 떨어지면 취업자가 451000명 줄고 가계의 월평균 소득이 10만원 감소한다.

당신은 실직의 공포와 도산을 걱정해본 적 있는가. 직원들 월급 줄 걱정을 경험해본 적 있는가.” 김동연 경기지사가 과거 경제부총리에 취임하면서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에게 한 말이다. 한 명 한 명의 인생이 걸린 문제를 책상에서 관성적으로 처리하지 말라는 얘기다. 윤석열 정부에 당부한다. 숫자 너머 사람을 보라. 경제지표에 사람을 끼워 맞추지 말라.

오창민 논설위원 | 경향 2024.02.14.

표퓰리즘의 계절, 밑 빠진 독에서 물 긷기

굳이 정치면을 펼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여당, 야당 가릴 것 없이 돈을 쓰자는 얘기가 나오면 틀림없다. 선거가 임박했다는 얘기다. 지속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구조개혁만이 대한민국의 명운을 결정지을 것이라던 목소리들이 무슨 숙청이라도 당한 것처럼 일제히 치워진다. 대신 소외된 서민들과 불균형한 지역발전에 대한 재발견이 잇따르며, 돈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박애의 경쟁이 시작된다. 바야흐로 ()퓰리즘의 계절이다.

우리가 흔히 대중영합주의로 읽는 포퓰리즘은 사실 너무 다양한 형태로 발현되기 때문에 정치학자들도 한 가지 형태로 정의내리기 어려워하는 개념이라고 한다. 실제로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부유세 강화를 주장했던 버니 샌더스나 이민자 추방과 보호무역을 주장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상대 진영에서는 모두 포퓰리스트 취급을 받았을 만큼 정형화된 모습이 없다.

이 포퓰리즘의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로마 공화정 말기 그라쿠스 형제가 추진했던 개혁정책을 출발점으로 찾는 의견이 적지 않다. 그라쿠스 형제는 귀족이 독식한 농지를 재분배하고, 밀을 사들여 시민들에게 싸게 공급하려고 했는데, 이들 형제의 개혁안을 지지하는 이들을 다수를 사랑하는 자들이라는 포퓰라레스로 부른 것이 포퓰리스트의 시초라는 설명이다.

인종이나 이민자 이슈가 덜한 한국 사회는, 미국이나 유럽과는 달리 이 그라쿠스 형제 시절의 원초적인 포퓰리즘과 유사한 대목이 적지 않다. 특히 진보 진영의 경우에는 재정 투입을 통한 보편복지나 재분배를 주요한 담론으로 다뤘는데, 이 때문에 보수 진영으로부터 늘 포퓰리스트라는 딱지가 붙어왔다.

그런데 최근 이 같은 흐름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4·10 총선을 앞둔 보수 진영에서의 변화다.

당장 정부·여당이 소득 상위 20%를 제외한 모든 대학생에게 국가장학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국가장학금은 대학생이 속한 가구의 소득·재산에 따라 장학금을 차등 지급하는 제도인데, 지금보다 지급 범위를 더 넓혀 전체 대학생의 80%에게 장학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당장 연간 수조원에 달하는 재원이 추가로 투입된다. 장학금 지급 확대의 긍정적인 측면에 더해 대학을 다니지 않는 청년들과의 차별 문제, 지출 확대에 따른 재정 부담이 당연히 고려돼야 하지만, 정부의 시선은 한쪽에만 머물러 있다.

재원이 부족해 과거에 폐지됐던 재형저축도 다시 등장했다. 이자소득세가 면제되는 재형저축은 1976년 도입 당시 연 10%가 넘는 높은 금리를 제공해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1995년 재원 부족으로 판매가 중단됐고, 박근혜 정부에서 다시 잠깐 부활했다 역시 재원 문제로 1년여 만에 폐지됐는데, 총선을 앞두고 부활시키겠다는 것이다.

재정건전성을 금과옥조로 연구·개발(R&D) 예산을 비롯해 역대급예산 칼질을 실행해온 정부·여당의 표변인데, 기본소득 등으로 원조 포퓰리즘 딱지가 붙어있는 야당마저 정부·여당이 연일 선거용 선심 정책, 인기영합적인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지난해 종합부동산세, 법인세 인하에 이어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추진, 주식 대주주 양도세 기준 완화, 임시투자세액공제 연장 등 잇단 감세 추진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재정여건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지난해에는 56조원이 넘는 세수 부족을 겪었는데, 세수 여건이 여전히 나빠 올해에 2년 전보다도 세금이 더 적게 걷힐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증세 없는 복지 확대가 허구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지만, 그 누구도 입에 담지 못하고, 밑 빠진 독에서 계속 물을 길어올리겠다는 봉이 김선달들만 넘쳐나는 셈이다.

결과는 명확하다. 누군가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그 누군가는 미래세대다. 최근 경제학계 연구결과를 보면 국가 재정 여건이 개선되지 않으면 2000년 이후 태어난 세대는 생애소득의 41%를 세금으로 내야 할 것으로 추산됐다. 1950~1960년대생은 생애소득의 10~15% 정도만 세금으로 냈다.

전 세대를 위해 그들보다 3배에서 4배에 달하는 세금을 감당해야 할 미래세대에게 과연 대한민국은 여전히 멋진 조국일 수 있을까. 무엇보다 미래 본인들의 소득으로 펑펑 생색을 내고 있는 정치권을 보면서 탈한국을 꿈꾸지 않는 젊은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문득 궁금해진다.

이호준 경제부 차장 | 경향 2024.02.14.

미국의 불평등 심화에 대한 경제학적 논쟁

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주장은 이제 상식에 가깝다. 가구의 서베이조사에 기초한 지니계수도 높아졌지만, 이러한 조사는 최상위소득층이 소득을 과소보고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피케티와 주크만 파리경제대학 교수, 사에즈 버클리대학 교수 등은 소득세 자료를 사용해 소득상위 1%나 상위 10%의 소득이 전체 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계산했다. 이들의 연구는 미국에서 상위 1%의 소득집중도가 1980년대 이후 크게 높아져 소득불평등이 악화됐음을 생생하게 보여 주목을 받았다.

상위 1% 소득집중도 상승 여부 논쟁

그러나 얼마 전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 학술지 중 하나인 정치경제학 저널이 게재를 결정한 논문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오텐과 스플린터의 연구인데 이들은 미국 상위 1%의 소득집중도가 별로 높아지지 않았다는 결과를 제시했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세전소득에서 상위 1% 집중도가 196010.8%에서 201919%로 크게 높아졌지만, 이들은 동기간 9.4%에서 13.8%로 높아졌다고 보고했고, 세후소득의 집중도 상승은 더욱 낮았다. 이 연구는 이미 몇 년 전 워킹페이퍼 형태로 발표됐고, 피케티 교수의 연구팀과 논쟁을 발전시켜왔다. 그런데 이번에 학술지에 게재돼 여러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으며, 다시 양측의 경제학자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동일한 세금 자료를 사용한 두 연구의 결과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제대로 신고되지 않은 사업소득이나 자본소득 그리고 정부소비 등의 소득분배를 추계하는 방법론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소득세 자료에 나타나는 소득은 국민계정의 국민소득을 모두 커버하지 못한다. 국민소득에는 세금신고가 되지 않은 상당 부분의 소득과 정부지출처럼 국민소득 계정에는 포함되지만 소득세 자료에는 나타나지 않는 소득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소득을 적절한 가정을 통해 소득계층별로 배분해 상위 1%10%의 소득집중도를 계산한다.

이중에서 탈세 등으로 소득세 자료에 신고되지 않은 소득이 어떻게 계층별로 분배돼 있는가 하는 가정의 차이가 가장 큰 차이를 가져왔다. 먼저 피케티 등의 기존 연구는 각 소득계층 집단이 비슷하게 탈세를 할 것이라고 생각해 미신고 소득이 세금 자료에 신고된 소득의 분배와 대략 동일하게 분배됐을 것이라 가정한다. 이 경우 탈세소득은 전체 소득분배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된다.

반면 오텐과 스플린터의 새로운 연구는 현실에서는 추적하기 어려운 탈세소득을 미국 국세청의 세무조사 자료를 사용해 소득계층별로 추산하고, 이를 세금 신고된 소득에 추가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세무조사 자료에 따르면 사업소득 신고에서 손실, 즉 마이너스 소득을 신고한 계층이 탈세를 한 경우가 많았다. 또한 신고소득과 미신고소득을 합친 진정한 사업소득의 상위 1% 사업소득 중 미신고소득은 약 20%대 초반으로 하위계층에 비해 훨씬 낮았다. 이런 방식으로 계산하면 사업소득 기준 상위 1%가 전체 미신고 사업소득의 16%만을 차지하고 하위 90%가 미신고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 반면 기존의 연구에서는 신고된 사업소득 기준 상위 1% 계층이 탈세한 전체 사업소득의 약 절반을 차지했다. 저자들은 이렇게 탈세소득을 추정해 새롭게 소득분배 순위와 상위소득의 집중도를 계산했다. 하위계층의 탈세가 현실에서 상대적으로 더 컸기 때문에 이들의 방식은 상위 1%의 집중도를 낮추게 된다.

이렇게 세무조사에 기초한 자료를 사용하는 것이 일견 더욱 현실과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개인사업자가 탈세를 위해 회계 부정을 통해 소득세신고에서는 사업소득을 마이너스로 신고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2010년대에 몇 년 동안 마이너스 소득을 보고한 바 있다. 피케티 등은 그러나 상위소득계층의 탈세가 정말 상대적으로 하위계층에 비해 더 적을 것인가에 의문을 제기한다. 무엇보다 최근에는 부자들이 여러 복잡한 기법을 사용해 세무조사와 세금을 회피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다. 가이튼 등의 2021년 연구는 더욱 발전된 방법론을 사용해 탈세소득을 추정해보면 기존의 세무조사 자료보다 고소득층이 탈세를 훨씬 더 많이 한다고 보고한다. 게다가 최근 수십 년 동안 상위 1% 등의 계층으로 부의 집중도는 지속적으로 높아졌는데 자본소득 집중도가 높아지지 않은 결과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한다. 오텐과 스플린터는 그러나 최근 부의 집중도가 높아졌다 해도 금리가 크게 낮아져 소득집중도 변화는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반박한다. 또한 현실의 세무조사 결과와 달리 탈세 이후의 소득분배와 탈세된 소득의 소득분배를 동일하다고 가정하는 일이 오히려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한다.

또 다른 쟁점은 정부소비와 재정적자를 어떻게 소득계층별로 분배하느냐인데, 이는 세후소득 분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이전소득과 같은 경우는 명백하게 계층별로 얼마나 받는지 뚜렷하지만, 국방이나 경찰, 교육이나 교통과 같은 일반적인 정부소비는 재정적 소득은 아니지만 국민소득의 구성요소이므로 적절한 가정이 필요하다. 피케티 등의 연구는 정부지출의 혜택이 각 소득계층의 분배구조에 따라 동일하게 나누어진다고 가정한다. 따라서 정부지출이 소득분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반면 새로운 연구는 교육과 같은 일반적인 정부지출은 소득재분배 역할을 하니 저소득층이 더 많은 혜택을 입는다고 가정한다. 그래서 정부소비의 절반은 모든 이에게 동일한 소득을 가져다줄 것으로 계산한다. 따라서 이를 감안한 상위소득 집중도가 기존 연구보다 상대적으로 낮아진다. 또한 새로운 연구는 재정적자도 이후에 100% 세금 인상으로 충당될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로 인해 세금을 많이 부담하는 고소득층의 소득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 이 또한 상위소득 집중도를 낮추는 요인이다.

정치적 편향 개입될 수밖에 없어

미국의 불평등 논쟁은 평행선을 달리기 쉽지만 분명한 것은 역사적으로 불평등이 높아져 왔으며 부나 건강 등 여러 측면에서 불평등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진은 지난 119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를 마주보고 서 있는 용감한 소녀상이다. /AP연합

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주장은 이제 상식에 가깝다. 가구의 서베이조사에 기초한 지니계수도 높아졌지만, 이러한 조사는 최상위소득층이 소득을 과소보고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피케티와 주크만 파리경제대학 교수, 사에즈 버클리대학 교수 등은 소득세 자료를 사용해 소득상위 1%나 상위 10%의 소득이 전체 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계산했다. 이들의 연구는 미국에서 상위 1%의 소득집중도가 1980년대 이후 크게 높아져 소득불평등이 악화됐음을 생생하게 보여 주목을 받았다.

상위 1% 소득집중도 상승 여부 논쟁

그러나 얼마 전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 학술지 중 하나인 정치경제학 저널이 게재를 결정한 논문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오텐과 스플린터의 연구인데 이들은 미국 상위 1%의 소득집중도가 별로 높아지지 않았다는 결과를 제시했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세전소득에서 상위 1% 집중도가 196010.8%에서 201919%로 크게 높아졌지만, 이들은 동기간 9.4%에서 13.8%로 높아졌다고 보고했고, 세후소득의 집중도 상승은 더욱 낮았다. 이 연구는 이미 몇 년 전 워킹페이퍼 형태로 발표됐고, 피케티 교수의 연구팀과 논쟁을 발전시켜왔다. 그런데 이번에 학술지에 게재돼 여러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으며, 다시 양측의 경제학자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동일한 세금 자료를 사용한 두 연구의 결과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제대로 신고되지 않은 사업소득이나 자본소득 그리고 정부소비 등의 소득분배를 추계하는 방법론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소득세 자료에 나타나는 소득은 국민계정의 국민소득을 모두 커버하지 못한다. 국민소득에는 세금신고가 되지 않은 상당 부분의 소득과 정부지출처럼 국민소득 계정에는 포함되지만 소득세 자료에는 나타나지 않는 소득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소득을 적절한 가정을 통해 소득계층별로 배분해 상위 1%10%의 소득집중도를 계산한다.

이중에서 탈세 등으로 소득세 자료에 신고되지 않은 소득이 어떻게 계층별로 분배돼 있는가 하는 가정의 차이가 가장 큰 차이를 가져왔다. 먼저 피케티 등의 기존 연구는 각 소득계층 집단이 비슷하게 탈세를 할 것이라고 생각해 미신고 소득이 세금 자료에 신고된 소득의 분배와 대략 동일하게 분배됐을 것이라 가정한다. 이 경우 탈세소득은 전체 소득분배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된다.

반면 오텐과 스플린터의 새로운 연구는 현실에서는 추적하기 어려운 탈세소득을 미국 국세청의 세무조사 자료를 사용해 소득계층별로 추산하고, 이를 세금 신고된 소득에 추가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세무조사 자료에 따르면 사업소득 신고에서 손실, 즉 마이너스 소득을 신고한 계층이 탈세를 한 경우가 많았다. 또한 신고소득과 미신고소득을 합친 진정한 사업소득의 상위 1% 사업소득 중 미신고소득은 약 20%대 초반으로 하위계층에 비해 훨씬 낮았다. 이런 방식으로 계산하면 사업소득 기준 상위 1%가 전체 미신고 사업소득의 16%만을 차지하고 하위 90%가 미신고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 반면 기존의 연구에서는 신고된 사업소득 기준 상위 1% 계층이 탈세한 전체 사업소득의 약 절반을 차지했다. 저자들은 이렇게 탈세소득을 추정해 새롭게 소득분배 순위와 상위소득의 집중도를 계산했다. 하위계층의 탈세가 현실에서 상대적으로 더 컸기 때문에 이들의 방식은 상위 1%의 집중도를 낮추게 된다.

이렇게 세무조사에 기초한 자료를 사용하는 것이 일견 더욱 현실과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개인사업자가 탈세를 위해 회계 부정을 통해 소득세신고에서는 사업소득을 마이너스로 신고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2010년대에 몇 년 동안 마이너스 소득을 보고한 바 있다. 피케티 등은 그러나 상위소득계층의 탈세가 정말 상대적으로 하위계층에 비해 더 적을 것인가에 의문을 제기한다. 무엇보다 최근에는 부자들이 여러 복잡한 기법을 사용해 세무조사와 세금을 회피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다. 가이튼 등의 2021년 연구는 더욱 발전된 방법론을 사용해 탈세소득을 추정해보면 기존의 세무조사 자료보다 고소득층이 탈세를 훨씬 더 많이 한다고 보고한다. 게다가 최근 수십 년 동안 상위 1% 등의 계층으로 부의 집중도는 지속적으로 높아졌는데 자본소득 집중도가 높아지지 않은 결과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한다. 오텐과 스플린터는 그러나 최근 부의 집중도가 높아졌다 해도 금리가 크게 낮아져 소득집중도 변화는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반박한다. 또한 현실의 세무조사 결과와 달리 탈세 이후의 소득분배와 탈세된 소득의 소득분배를 동일하다고 가정하는 일이 오히려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한다.

또 다른 쟁점은 정부소비와 재정적자를 어떻게 소득계층별로 분배하느냐인데, 이는 세후소득 분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이전소득과 같은 경우는 명백하게 계층별로 얼마나 받는지 뚜렷하지만, 국방이나 경찰, 교육이나 교통과 같은 일반적인 정부소비는 재정적 소득은 아니지만 국민소득의 구성요소이므로 적절한 가정이 필요하다. 피케티 등의 연구는 정부지출의 혜택이 각 소득계층의 분배구조에 따라 동일하게 나누어진다고 가정한다. 따라서 정부지출이 소득분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반면 새로운 연구는 교육과 같은 일반적인 정부지출은 소득재분배 역할을 하니 저소득층이 더 많은 혜택을 입는다고 가정한다. 그래서 정부소비의 절반은 모든 이에게 동일한 소득을 가져다줄 것으로 계산한다. 따라서 이를 감안한 상위소득 집중도가 기존 연구보다 상대적으로 낮아진다. 또한 새로운 연구는 재정적자도 이후에 100% 세금 인상으로 충당될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로 인해 세금을 많이 부담하는 고소득층의 소득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 이 또한 상위소득 집중도를 낮추는 요인이다.

정치적 편향 개입될 수밖에 없어

결국 피게티 등의 기존 연구와 이를 비판하는 최근 연구 결과의 차이는 이러한 여러 가정의 차이에 기인한다. 노벨경제학상(2015) 수상자인 디튼은 국민소득을 사용해 정확한 소득분배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는 때로는 정치적 편향이 개입되는 연구자 각자의 가정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고 썼다. 실제로 미국의 불평등 논쟁은 평행선을 달리기 쉽고, 언론이나 독자들은 보고 싶은 결과만 보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역사적으로 불평등이 높아져 왔으며 부나 건강 등 여러 측면에서 불평등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소득불평등이 얼마나 심화됐는지에 관해서는 생산적인 논쟁이 계속 발전돼야 한다. 다만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이런 논쟁에서 한쪽 편만 옹호하며 한국에서도 불평등이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일이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경제학부 교수 | 주간경향 2024.02.18.

(19)금융발전과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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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부동산공화국과 자산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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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경제학](18)부동산공화국과 자산불평등

한국은 흔히 부동산공화국이라 불린다. 한국의 부동산은 매우 비싸고 불평등하게 분배돼 있다. 먼저 한국은 국민소득 대비 주택 혹은 토지자산의 배율이 아주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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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불평등은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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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경제학](17)불평등은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

지난 8월 3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에서 한 남성이 차량을 몰고 인도로 돌진해 사상자를 낸 뒤 백화점 내의 행인에게 무차별적으로 칼부림을 하는 사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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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계는 불평등으로 갈라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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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결혼·출산, 누가 막냐고? 불평등한 세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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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불평등 확대가 성장과 혁신에 나쁜 이유

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2306021129571&code=114

(13)AI가 실업과 불평등을 가져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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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팬데믹이 심화시킨 상위소득 집중도

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2303241250521&code=114

(10)사회적 연대가 약해져 간다

https://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2301131136181&code=115

 

왜 음모론을 퍼뜨리려 애쓸까

코로나19가 창궐하던 때였다. 대학교 때 친했던 선배로부터 오랜만에 카카오톡이 왔다. 아마 지인들에게 한꺼번에 보낸 듯했다. “중국산 백신 접종을 거부하면 테러범이 되는 법률안에 대한 반대 청원 부탁드립니다. 반대 의견이 만 명을 넘어야 합니다.” 마음이 착잡해져서 아무 답도 하지 못했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 백신 접종을 강제했다는 말은 명백히 가짜뉴스다.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재선을 돕는 비밀요원이고, 매년 쌍십절이 되면 중국인들이 인육을 먹으려고 한국으로 몰려온다는 등의 음모론과 가짜뉴스는 도무지 사라지지 않는다.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면 부정선거가 저질러졌다는 음모론이 어김없이 또 등장할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개탄하며 우리는 묻게 된다. “왜 사람들은 터무니없는 음모론을 믿을까?” 이 질문 못지않게 중요하지만, 흔히 간과되는 또 다른 질문이 있다. “왜 사람들은 음모론을 남들에게 퍼뜨리고 싶어 하는가?” 백신을 거부하면 테러범으로 몰린다는 귀중한(?) 정보를 혼자 간직하면 그만이지, 왜 굳이 주변 사람들에게 그 정보를 아득바득 전달하려 애쓸까?

최근 여러분에게 음모론을 설파한 지인을 떠올려 보시라. 그의 눈빛은 확신에 차 있다. 듣는 이의 반응을 꼼꼼히 살핀다. 행여 못 믿겠다고 대꾸하면 벌컥 화를 낸다. 예를 들어, 이재명 대표 피습의 배후에 국정원이 있다는 음모론에 여러분이 시큰둥해한다고 하자. 그 지인은 여러분이 ‘2이 아닌지 의심할 것이다.

지난 칼럼에서 사람들이 어떤 믿음을 자신이 현재 소속된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집단이 경쟁 집단보다 더 옳고 더 고상함을 입증하기 때문에 받아들인다고 했다. 이를테면, 보수주의자는 사형제에 대한 찬성이 보수가 진보보다 더 도덕적임을 입증한다고 보기 때문에 사형제에 찬성한다. 이러한 부족주의적 성향은 왜 사람들이 음모론을 남들에게 전파하려 애쓰는지도 알려준다.

부족 간 다툼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바로 머릿수다. 공동의 과업을 함께 수행하는 우리 팀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팀이 상대 팀을 누르기 쉽다. 효과적으로 팀원을 모집하려면, 어떤 믿음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개인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 당위의 문제로 바꿔놓아야 한다. 앞의 예를 들자면, 국정원이 야당 대표의 피습을 배후에서 꾸몄다는 가짜뉴스를 들은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그의 충성심을 알려주는 잣대가 된다. 국정원 배후설을 의심하는 민주당 지지자는 사쿠라라고 욕먹는다. 즉 진화적 시각에서 보면 사람들이 음모론을 널리 전파하려는 열정은 단체 행동에 되도록 많은 팀원을 끌어들이기 위함이다.

이해는 용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왜 음모론에 빠지는가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음모론을 정당화하긴커녕, 음모론을 몰아내는 길을 찾도록 도와준다. 어떻게 음모론을 줄일 수 있을까? 진화심리학자 위고 메르시에는 저서 <대중은 멍청한가?>에서 황당한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이 그 비용을 톡톡히 치르고, 어떤 이득도 얻지 못하게끔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소문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어떤 소문은 개개인에게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예컨대 인사철이 되면 누가 승진할지를 두고 회사에 소문이 무성하다. 이런 경우 허황된 소문을 함부로 퍼뜨리면 유포자 자신의 평판이 땅에 떨어진다. 사람들은 입수한 소문을 점검하고 또 점검한 다음에야 남들에게 전하기 마련이다.

반면에 어떤 소문은 개개인과 직접 관련되지는 않지만 사회적 영향을 폭넓게 끼친다. 일루미나티 암약설, 백신의 자폐증 유발설, 세월호 고의 침몰설, 이재명 피습의 국정원 배후설 등은 현실로부터 한 걸음 떨어진, 놀랍고 기이한 이야기들이다. 어차피 진실 여부를 판독하기 어려운 이런 소문들을 퍼뜨림으로써 사람들은 비용을 치르지 않은 채 자기 부족에 대한 충성을 서로 확인하는 이득을 얻는다. 즉 유포자조차 머리로는 그러려니 하지만 가슴으로는 믿지 않는 소문들이다.

메르시에는 누군가 여러분에게 음모론을 전파한다면 이렇게 물어보길 제안한다. “그게 사실이라고 믿는다면, 왜 그에 걸맞게 행동하진 않나요?” 정말로 문재인 전 대통령이 간첩이라고 믿는다면, 113에 즉시 신고해야 한다. 지인들을 붙잡고 연설을 늘어놓거나, 극우 유튜브 채널에 칭찬 댓글을 느긋하게 남길 때가 아니다.

인간은 자기 편에게 유리한 진실만을 추구하도록 진화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진화한 본성을 억누르고 객관적이고 투명한 진실을 다 함께 추구해야 한다.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 경향 2024.02.14.

 

비례연합정당, 진보정당운동의 갈림길

더불어민주당이 준연동형 선거제 유지로 당론을 정하면서 진보정당들에 비례연합정당 결성을 제안했다. 궁색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비례연합정당은 결국 4년 전 비례위성정당의 재판이다. 이번에도 이유는, 국민의힘이 비례위성정당을 만들어 선거제 개혁 취지인 비례성 보장을 무력화할 테니 민주진보진영도 하나로 뭉쳐 이에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정당들 가운데 진보당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반면 녹색당과 정의당이 함께 만든 선거연합정당 녹색정의당에서는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녹색정의당이 고민 끝에 어떤 결론을 내릴지에 따라 비례연합정당이 과연 더불어민주당이 제안한 방향과 내용대로 성사될지 결정될 것이다.

사실 당장 실리만 놓고 보면,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의 제안에 따르면, 진보정당들은 비례대표 후보명부 앞 순번에 배정돼 쉽게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그래 봐야 여전히 진보정당들이 받는 지지율에 미치지 못하는 의석수지만, 적어도 이번 국회에서 차지했던 의석보다는 좀 더 많은 의석을 보장받게 된다. 총선을 앞두고 늘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정당들에 이보다 더 달콤한 유혹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들이 있다. 그중 첫째는 양당 독점 정치 혁파라는 선거제 개혁 취지와 비례위성정당 꼼수의 충돌이지만, 이것 말고도 진보정당운동의 운명을 좌우할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민주노동당 이후 진보정당들은 총선에서 늘 정당투표를 통해 지지층을 형성해왔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여러 지역구에서 후보를 단일화한 2012년 총선에서도 정당투표용지에는 민주통합당 말고 다른 선택지들이 살아 있었다. 반면에 이번 총선에서 진보정당들이 대부분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한다면, 정당투표 도입 이후 처음으로 리버럴정당 왼쪽의 선택지들이 사실상 사라지는 꼴이 된다.

이렇게 총선을 치른다면, 한편으로는 진보정당들이 거대 양당 중 한쪽에 의지해 생존하는 데 익숙해지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진보정당 지지층의 구심력이 더욱 와해될 것이다. 그리고 2년 뒤에는 지방선거가, 다시 1년 뒤에는 대통령선거가 다가온다.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의존과 독자 지지층 부재를 현실로 받아들인 정당이 잇단 선거의 압박 속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안 봐도 뻔하다. 비례연합정당 참여를 선택한 진보정당들은 더불어민주당과 항시적 연합을 맺는 소수정당의 위상을 넘어 더불어민주당의 내부 분파로 통합되어갈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진보정당운동의 목적이 리버럴정당을 왼쪽에서 압박하는 것이었다면, 이런 선택도 크게 잘못됐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정말 이게 목적이었다면, 독자 진보정당을 포기하고 더불어민주당 내 진보파가 되는 쪽이 더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진보정당운동을 시작하며 품었던 뜻은 단지 그것만이 아니었다. 보수정당과 리버럴정당의 대의기구 독점을 통해 시민사회와 구조적으로 괴리돼온 제6공화국 정치질서를 뒤집어 새로운 민주주의로 나아가겠다는 것이 그 뜻이었다. 진보정당들은 아직도 이 뜻을 실현할 구체적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지만, 비례연합정당 참여가 이런 노력 자체의 최종적 포기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따라서 비례연합정당 참여를 둘러싼 토론에서 진보정당들이 결정해야 하는 사안은 단지 총선 방침만이 아니다. 진보정당운동의 존폐 여부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이 점을 명철히 인식하며 결단해야 할 것이다.

장석준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 경향 2024.02.14.

 

이자스민과 이민사회

이주민으로 처음 국회의원이 되었던 이자스민이 8년 만에 다시 국회로 돌아왔다. 정의당 비례대표 의원이던 류호정의 탈당과 이은주의 사퇴로 공백이 생긴 비례대표직을 양경규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과 함께 이어받았다. 남은 기간은 단 4개월이지만 벌써 이민사회기본법 제정안을 발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새누리당 국회의원이던 2016년 이미 이민사회기본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당시에는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하고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폐기되고 말았다. 얼마 전 법무부가 이민청을 설립하자고 제안했지만, 철저하게 국가주의 시각을 드러낼 뿐 이민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부족하다.

이자스민이 다시 발의할 이민사회기본법 제정안에는 어떤 내용이 담길까? 2016년 대표 발의한 법안을 살펴보자. ‘이민사회다문화가족 및 재한외국인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인종, 피부색 등에 따른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평등한 대우를 받으며, 대한민국의 전통 문화뿐만 아니라 각각의 다문화가족 및 재한외국인이 가진 문화를 함께 계승·발전시켜가는 사회로 정의한다. 이러한 정의는 큰 틀에서는 다문화주의 담론과 일치한다. 문화적 소수자가 문화적 다수자와 마찬가지로 동등한 시민적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점에서 보편적 정의의 정치학을 주장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토대 위에 문화적 소수자는 자신이 가진 문화를 공적으로 인정받고 지원받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특수한 인정의 정치학을 주장한다. ‘보편적 정의의 정치학위에 특수한 인정의 정치학이 더해진 것이 바로 다문화주의 담론이다.

이는 달성하기 매우 어려운 이상이다. 우선 보편적 정의의 정치학이 실현되려면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전해야 한다. 시민권 제도를 통해 온 국민을 직업, 젠더, 학력, 종교, 나이, 출신지, , 섹슈얼리티 등 사회적 범주와 상관없이 공동의 법적 권리와 의무를 갖는 시민으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삶은 사회적 범주에 따라 갈가리 찢겨 있다. 이를 뚫고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게 얼마나 험난한 과정인지 우리 모두 잘 안다. 일단 민주주의가 성숙해야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인종, 피부색이라는 새로 도입된 사회적 범주로 대표되는 문화적 소수자를 시민으로 받아들일 토대가 마련된다. 시민은 모든 사회적 범주를 벗은 인간 그 자체로서의 보편적 개인이다.

인정의 정치학은 이러한 보편적 정의 위에서 발전한다. 기본 단위가 보편적 개인이 아니라 특수한 집단이다. 우선 자신의 공동체 안에서 자기 음식 먹고, 자기 언어 말하고, 자기 옷 입고, 자기 종교 믿는 등 실존적 안전을 누릴 문화권을 추구한다. 자기 문화 안에서 유의미한 타자와 호혜적 인정 관계를 통해 자아를 실현한다.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자신의 집단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전체 사회의 공론장으로 나와 특별한 신분집단의 명예를 요구한다. 이때 무엇을 근거로 그런 요구를 하느냐 하는 것이 핵심 문제가 된다.

2016년 발의된 법안이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된 것은 한국사회가 국민국가 프레임에 사로잡혀 있음을 드러낸다. 국민국가 프레임에선 오직 국민만이 시민이 될 수 있는데, 이민사회는 국민이 아닌 사람도 시민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국민국가 프레임을 벗어나지 않는 한 문화적 소수자를 품는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문화적 소수자가 인정의 정치학을 실천하며 살아갈 수 없도록 강제한다. 기껏해야 그 집단이 가진 도구적 속성을 인정받아 살아갈 수 있을 뿐이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해결해줄 도구적 속성을 지닌 것으로 상상되는 다문화가족이 대표적 예다. 8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거의 안 변했다. 그런데도 이자스민은 협소한 국민국가 프레임을 넘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한결 발전시키는 이민사회를 제안할 수 있을까?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 경향 2024.02.15.

 

더 늦기 전에

한국 축구가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요르단에 무기력하게 패배해 큰 충격과 실망을 줬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이라는 기대가 근거 없는 희망사항이었음을 쉽게 알게 된다.

클린스만 감독 부임 이후 수많은 우려와 비판이 있었고 감독 교체의 여론도 높았지만, 작년 9월에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친선경기에서 운 좋게 처음으로 이겼고, 아시안컵 예선 및 16강전과 8강전에서도 아슬아슬하게 운이 따랐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한국 축구대표팀의 민낯은 준결승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몇 차례는 운으로 가릴 수 있었지만, 결국에는 근본적인 전술과 전략의 부재 그리고 그에 따른 조직력 와해의 후과를 피할 수 없었다. 감독 교체와 축구협회 회장 및 집행부의 총사퇴를 통해, 이번 일이 한국 축구가 전화위복 되는 계기가 되길 팬으로서 바랄 뿐이다.

그런데 한국 축구보다 한국 경제가 더 문제다. 한국 경제의 위기 징후와 이에 대한 경고는 지난 10년여간 지속돼 왔다. 축구보다 경제는 훨씬 더 복잡하고 인과관계 사이에 시차도 크다. 이해관계 역시 훨씬 더 복잡하고, 개혁에 대한 기득권의 저항도 비할 바 없이 강력하다. 따라서 잘못된 진단과 처방으로 기득권을 유지하거나 기득권에 영합하려는 시도가 만연하고, 이는 국민의 눈과 귀를 어지럽혀 개혁을 막기 십상이다. 나아가 위기가 현재화되는 시점이 전화위복 기회가 아닌,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최근에 삼성전자에 큰일이 난 게 분명하다는 말이 나돈다. DRAM 부문에서 삼성전자의 압도적 경쟁력이 확 떨어졌다는 진단이다. 생성형 AI 서비스에 필요한 HBM(고대역폭 메모리)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밀렸고, DDR5 등 일반 DRAM 사업에서도 경쟁사업자들에게 뒤지고 있다. 또한 삼성전자가 야심차게 도전하고 있는 시스템 반도체 사업에서도 뒷걸음치고 있다. 스마트폰 부문에서 저가 제품시장을 중국업체들이 잠식한 것은 이미 10년 전 일이고, 고가 제품시장에서도 지속적으로 애플과의 경쟁에서 도태되고 있는 이른바 샌드위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위기의 원인과 대책은 무엇일까? 필자는 2016년 책 <삼성전자가 몰락해도 한국이 사는 길>을 발간한 바 있다. 노키아 몰락의 원인을 분석하고 삼성전자와 한국 경제에 대한 함의를 찾는 내용이었다. 노키아의 몰락은 혁신적 산업의 내재적 특성인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불확실한 기술발전에 대비하기 위해 노키아는 2009년 기준으로 매출액의 14.4%를 연구·개발에 투자했고, 수많은 신생기업들을 인수했다. 그 결과, 스마트폰의 효시인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를 출시했고, 스마트폰 시대에 콘텐츠의 중요성도 정확히 꿰뚫어 최초의 앱스토어인 오비(Ovi)를 구축하기도 했다. 그러나 회사 내부 의사결정 과정에서 기존의 저가 휴대폰에 기초한 성공의 경험과 이들 사업부의 의견이 우선되었고, 새로운 기술의 채택보다 기존 기술의 향상이라는 전략적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슘페터의 예측대로, 파괴적인 혁신은 도전 기업이었던 애플의 몫이 되었다.

삼성전자가 지금 맞닥뜨리는 문제와 이에 대한 대응 역시 노키아의 전철을 따르고 있는 듯하다. 삼성전자는 과거 성공 공식이었던 수직계열화 전략을 시스템 반도체 사업에서도 고수함으로써 파운더리 분야에서 TSMC를 쫓아갈 기회를 놓치고 있다. DRAM 공정혁신이 슘페터적 혁신이라면 새로운 방식의 채택에 뒤처지고 있고, 새로운 혁신이 없는 경우라면 선도기업으로서 이점을 상실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금껏 메모리 반도체 부문이 나쁠 때는 스마트폰 부문이 좋았고, 스마트폰 부문이 나쁠 때는 반도체 부문이 좋은 운을 누려왔다. 현재 삼성전자가 정말 위기로 보이는 것은 이 두 부문이 동시에 나빠지고 있어서다.

그런데도 삼성전자는 위기에 대한 진단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이런 위기마저도 총수 일인의 일신상 안위를 위해서 이용하는 것 같다. 또 이에 동조하는 언론도 적지 않은데, 마치 재벌 총수 개인기로 회사가 좋아진다는 낯 뜨거운 기사들로 보수 경제지들이 도배를 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몰락이 슘페터적 혁신 경쟁의 결과로 불가피하더라도, 핀란드경제처럼 한국경제는 회복력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과 시장의 유연성을 담보할 수 있는 재벌개혁이 필수적이다. 또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것이라는 신호를 주기 위해서라도, 분식회계와 주가 조작사건은 엄벌에 처한다는 판례를 확립해야 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경향 2024.02.15.

 

세계 각지로 뿔뿔이 흩어지는 러시아 사람들

러시아의 미래가 어둡다. 2022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경제지표, 정치 상황, 사회 이슈 등 모든 부분이 악화되고 있지만 특히 인구 문제가 심각하다. 한 나라의 인구 유출입은 그 국가가 처한 현황을 진단할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인구가 늘고 있는 국가는 성공 확률이 더 높고 반대의 경우에는 어려워지는 것이 상식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인구 이동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지만 짧은 시간에 급변하는 인구 동향은 그 국가에 문제가 크다는 징조다. 전쟁이나 내전, 지진이나 홍수 등과 같은 재난은 항상 인구 유출의 주요 원인이 되곤 한다. 전쟁을 시작한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러시아 통계청마저도 전쟁 시작 이후 러시아의 인구 감소를 기록했다. 1월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최근 2년 동안 러시아 인구는 약 80만 명 정도 줄었다고 한다. 이는 심지어 우크라이나에서 병합한 4개 지역에 사는 인구를 포함한 숫자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국외 독립 조사기관도 아닌 러시아 정부기관에서 나오는 통계 자료가 그렇다. 러시아 대통령실 지시로 통계 숫자 조작 마법을 보여 주는 것으로 유명한 이 기관조차 이런 숫자를 내세울 정도면 실제 상황은 훨씬 더 형편없을 것이 틀림없다.

러시아에서는 20222월 전쟁이 발발했을 때 1, 20229월 군 동원령이 떨어졌을 때 2차 대거 해외 이민 현상이 나타났다. 물론 계산하는 방법과 기준에 따라, 혹은 있는 숫자를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정확한 이민 숫자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대략이라도 규모를 추측할 수 있는 방법들은 그래도 있다. 그중 하나는 러시아 국적자들의 다른 나라 입국 현황 및 체류 자격 취득 자료를 살펴보는 것이다.

212일에 대한민국 법무부가 발표한 '202312월 출입국외국인 정책 통계월보'에 따르면 2023년 정부가 접수한 난민 신청 건수는 총 18838건이다. 202312월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 이는 202211539건과 비교해 약 63늘어난 수치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난민 신청자 중 러시아 국적자가 5750건으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이는 총 난민 신청 건 중 30%에 해당하는 숫자다. 세 명 중 한 명 꼴이다. 2022년 러시아 국적자 난민 신청 1038건보다 5배 증가했으며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94년부터 2019년까지 26년 동안 난민 신청을 모두 합친 5814건과도 비슷한 규모다. 거리가 가깝지도 않고 이민 역사가 그렇게 길지도 않으며 국가간 교류가 그렇게 많지도 않은 러시아와 한국 간 현상이 이런데 다른 나라 통계 자료는 더더욱 인상적이다.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미국 법무부의 통계에 따르면 2022년에 미국 난민을 신청한 러시아 국적자는 21763명이었다. 2022년 미국에 러시아 망명 신청자 50배 급증 이는 직전 연도의 467명과 비교하면 4500% 증가한 숫자다. 그것도 푸틴 대통령이 군 동원령을 내린 20229월 바로 다음 달인 10월 한 달에만 4000명이 미국에서 난민을 신청했다고 통계가 말해 준다.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다. 미국 남부 멕시코와의 국경지대는 불법으로 미국에 정착하려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악명이 높은데 그 대부분이 멕시코를 비롯한 남미 출신자였다. 하지만 2022년부터 멕시코 바로 다음으로 2위를 차지한 난민 신청자는 러시아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 CNN 보도에 따르면 202210월부터 1년 동안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을 불법적으로 넘어 미국에서 난민 신청을 한 러시아 국적자는 22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 역시 역대 최고 수치다. 전쟁 징집 이후 약 22000명의 러시아인이 미국에 입국 시도

유럽도 마찬가지다. EU망명청 (EUAA) 202311월 한 달 통계자료를 봐도 독일에서 난민 지위를 찾는 러시아 국적자는 총 난민 신청 건수 중 42%, 프랑스에서는 25%를 차지한다. EU 최신 망명 동향 둘 다 해당 국가의 역대 기록이라고 한다. 영국 BBC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를 떠나 망명길에 오른 이들이 최소 수십만 명에서 최대 수백만 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포브스도 러시아 당국의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2022년에만 60100만 명이 러시아 국경을 넘은 것으로 추산했다. 숫자는 추정이지만 실제 규모는 이보다 더 크다는 의견은 한결같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러시아를 떠난 사례는 역대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시아 역사에서 국민들이 이렇게 대거 해외로 도피하는 사태는 20세기 초 사회주의 혁명으로 제국이 무너질 때에나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혁명이 일어난 1917년부터 소련이 창립된 1922년까지 5년에 걸쳐 150여만 명이 러시아에서 유럽과 미국으로 빠져나갔다고 추정된다. 2022년 발발한 전쟁 이후의 이런 이민 숫자에 2022년부터 절반 이상 급속도로 하락한 중앙아시아로부터의 이민과 2023년의 러시아 역대 최저 출산율을 더하면 상황이 얼마나 긴박한지 알 수 있다. 말 그대로 인구 재앙이다.

친정부 언론은 이 문제에 대해 아예 언급을 안 하거나 큰 문제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나갈 사람들은 나가고 남을 사람들이 남아서 열심히 아이를 낳으면 그만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사회학 전문가들은 이 현상을 나중에 폭발할 대형 지뢰라고 경고한다. 이런 인구 대거 유출 상황은 지금 당장은 괜찮게 보일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지금 떠나는 사람은 주로 20~30대의 젊은 층이고 고학력, 고연봉자들이다. 경제활동의 중심 세대가 이렇게 대규모로 이민 가면 고급 인재난은 불가피하다. 이 사람들이 주도하는 발명, 기술 진화, 경제 발전 등은 이제 러시아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생길 확률이 배로 높아진다. 러시아와 유럽, 미국 등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랴코프 일리야 수원대 인문사회대 교수 | 시민언론 민들레한겨레 2024.02.17.

 

운동권 청산이 시대정신이라니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참 세련됐다. 몸에 꼭 맞춘 양복에 지적인 느낌을 주는 뿔테 안경, 어떤 질문에도 망설임 없는 답변, 너무 똑똑해서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 것 같은데 시장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학교 빼먹은 거 아니냐고 걱정하며 호떡을 사주는 다정함까지, 여러모로 매력적이다.

그런데, 한 위원장의 시대인식은 아직 2024년으로 따라오지 못한 것 같다. 지난달 31, 과거 1970~80년대 운동권이었다가 전향한 이들이 주축인 민주화운동동지회 등이 연 토론회에 보낸 축사에서 한 위원장은 “86 운동권 특권 세력 청산은 시대정신이라고 했다. 그에 앞서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한 지난해 1226일에도 한 위원장은 운동권 특권이라는 표현을 일곱 차례나 사용하며 이들을 청산해야 한다면서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를 향한 혐오와 적대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바 있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운동권 청산시대정신이라니, 한 위원장과 내가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은 맞는가 싶었다.

한 위원장은 국회의원이나 정부 요직을 지낸 민주당의 80년대 학번 정치인들을 운동권 특권 세력이라고 부른다. 86세대가 정치권에 처음 집단적으로 진출한 건 200016대 총선을 앞두고다. 당시 정치권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새 피를 수혈한다며 이들을 영입했고, 10여명이 당선됐다. 당시 영입된 이들 중 일부는 한 위원장 말대로 “386486이 되고 586, 686이 되도록정치를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20년 넘게 정치를 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이들에게 아직도 운동권이라고 하는 건 적확하지 않다. 3선인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경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한 위원장 논리대로라면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도 운동권 특권 세력으로 청산 대상에 해당한다. 원 전 장관은 학생운동을 거쳐 노동운동에 투신한 경력을 인정받아 2000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공천을 받았고, 이후 3선 의원에 재선 제주지사, 장관까지 지냈다. 그럼에도 한 위원장은 원 전 장관을 이재명 대표의 대항마로 추어올렸고, 원 전 장관은 인천 계양을에 출마해 4월 총선에서 4선에 도전한다.

머리 좋기로 소문난 한 위원장이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왜 팩트도 빈약하고, 논리도 조악한 시대정신론을 꺼내 든 걸까. 한 위원장이 영입인재 1로 모신 박상수 변호사가 지난해 페이스북에 쓴 글이 한 위원장을 이해할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겠다. “2040 청년들이 왜 분노하고 있냐는데, 기성세대가 약속한 최상단의 코스를 밟아도 나이 마흔에 결혼하여 아이 기르고 집 한 채 마련하는 것도 보장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60년대생 이상 꿀빨러(고생하지 않고 편하게 이득을 본 사람)들은 (청년들을) 이해할 생각도 없다.” 86세대가 모든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자원을 독점하는 바람에 이후 세대가 착취당하고 있다는 이른바 꿀 빤 세대론이다.

이는 여러 통계와 분석으로 사실이 아니라는 게 이미 증명된 바 있다. 그럼에도 꿀 빤 세대론은 극히 일부 사례에 불과한 성공한 586 상층부를 일반화해 청년들의 증오를 부추긴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책 그런 세대는 없다에서 민주당·진보·좌파를 비난하는 86세대 담론은 한국 사회의 불평등·불공정 현실에 대한 청년의 분노를 정치·이념 투쟁의 맥락 안으로 끌어들이는 물길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갈라치기는 적을 분명히 하고 우리 편을 공고히 만든다는 점에서 중요한 득표 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한 위원장이 취임식에서 말했던 좋은 나라 만드는 데, 동료 시민들의 삶을 좋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었다는 게 진심이라면, 그가 읽는 시대정신은 달라져야 한다. 최악의 불평등, 여전한 노인 빈곤, 길 잃은 국정운영 등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일은 널렸다. 조혜정 | 정치팀장 | 한겨레 2024.02.18.

 

이재명, ‘변방의 장수정신을 잊었나

이재명은 가진 것 없는 변방의 장수를 자임하며 여의도로 들어왔다. 그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거머쥐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좋은 점이 많은 정치인으로 보였다. 무엇보다 이재명은 모든 사안에 명쾌한 입장을 냈고, 무슨 일에든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에게는, 극한 상황을 견디며 책임윤리를 다한 김대중의 끈질긴 권력의지, 놀랄 만한 용기로 장애물을 돌파한 김영삼의 담대함, 권력 투쟁의 냉정한 현실에서 평상심을 잃지 않은 김종필의 유장함, 역사의 격랑에 주저 없이 몸을 던지는 노무현의 열정이 다 있었다. 간발의 차이로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으나 그는 훌륭한 지도자였다. 특히 그를 돋보이게 했던 것은 기동력이었다. 의표를 찌르는 신속한 판단이야말로 다른 정치인들을 압도하는 덕목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런 이재명이 사라졌다. ‘변방의 장수는 찾을 수 없었다. 역사상 우리가 처음 경험하고 있는 검찰정권이라는 상황에서도 어떻게 된 일인지 그의 민첩함은 보이지 않는다. 검찰정권에서, 권력 분립과 견제라는 민주주의의 최소한이 무력화되고 있고 대통령 권력의 폭주와 일방주의가 이어지고 있는데 이재명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재명과 민주당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움직임을 자제하고 있는 무위(無爲) 전략을 쓰고 있는 것인가? 그런 전략의 결과였다면 차라리 좋겠다. 지금 이재명과 민주당의 정치적 부진은 무위전략의 결과가 아니라 무()전략의 결과라서 걱정이다.

강호 무림을 평정했다는 조선 제일의 검이 알고 보니 선무당의 무능한 칼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데도 이재명과 민주당은 그저 무던한 야당이다. 야당의 역할은 반대를 조직하고 분노를 동원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의 말은 무디었고 그의 행동은 더디었다. 이재명과 야당의 무기력은 국회의원 총선거를 향한 레이스에도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 때문에 국민의힘 총선 행보가 오락가락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재명과 민주당은 마냥 뭉그적거리고 있는 것 같다.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더 나은 미래를 보여주지도 못하고 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어떤 이는 진영대결 구조에서 일어나기 마련인 상호의존 현상이라고 한다. 대통령의 국정 수행 능력이 바닥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야당도 덩달아 나태해진 것 같다는 설명이다. 어떤 이는 이른바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집요한 검찰의 칼날에 대응하느라 이재명의 진이 다 빠져 무기력화되었다는 얘기다. 또 어떤 이는 지지기반의 중도층 확장 의도 때문에 날렵했던 그의 행보가 굼뜨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이는 이재명이 기득권을 지키기에 골몰하느라 변방의 장수 시절에 보여주었던 역동적 리더십을 잊어버린 탓이라고 진단한다.

어떤 설명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재명과 민주당의 어수선한 모습이 최근 위험한 상황까지 와있다는 사실이다. 최근에 들리고 있는 공천 과정의 잡음은 느낌이 심상찮다. 이곳저곳에서 공천의 공정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공천 과정에는 뒷말이 없을 수 없겠으나 어떤 얘기는 지나쳐 듣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 대표 의 정치적 욕심 때문에 난맥이 생기고 있다는 경고가 그런 것이다. 우려할 일이다. 왜냐하면 그런 뒷담화는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에 심각한 내상을 입힐 것이기 때문이다.

이재명은 일지군(一枝軍)을 이끌고 당당하게 여의도로 들어오던 변방의 장수정신을 다시 불러내야 한다. 혹여 그 정신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차지한 자리를 지키는 데 골몰하는 배부른 구들방 장수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그는 가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변방의 장수였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어느 성직자가 그를 위해 기도했다. “그이가 흠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고단한 생애만큼 상처 많은 사람입니다. 번듯한 학연, 지연, 정치적 인맥도 없이 늘 변방에서 외롭게 싸워왔던 그런 사람입니다. 차별과 배제로 밀려난 이들처럼 그렇게 고독한 사랑을 실천했던 사람입니다.”

이재명은 자기 손에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을 때 오히려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었다. 우리는 그의 고단하고 외로웠던 삶이 그를 강퍅하게 만들지 않고 인간을 누구보다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지도자로 만드는 거름이 되기를 기도한다. 그의 목숨을 건 단식과 생명을 잃을 뻔한 테러의 위협이 자신을 더 비우고 내려놓으면서 더 큰 세상을 담는 계기가 되기를 기도한다.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 경향 2024.02.18.

 

미래가 현실을 좌우?

<백 투 더 퓨처>는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돌아가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공상과학 영화다. 적어도 현재까지의 과학으로는 불가능한 상상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영화적 상상으로 그냥 즐기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하다고 믿는 어이없는 현실이 있다.

KBS 제작1본부장은 <다큐 인사이트>에서 418일 방송 예정했던 세월호 10주기 방송-바람이 되어 살아낼게(가제)’ 방송을 6월경으로 연기하라고 지시했다. 이로 인해 KBS 안팎은 제작 자율성 침해 논란으로 갈등을 빚고 있다. 그런데 연기 지시 이유 중 하나가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올해 총선은 410일 치러진다. 418일 세월호 특집을 본 시청자들이 410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투표로 총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발한 상상력의 결과다. <다큐 인사이트> 예고편과 보도자료도 통상 방영 이틀 전 나간다고 하니 <다큐 인사이트> 제작 과정이 영향을 미칠 리도 만무하다. 결국 혹여 총선에 영향을 미칠까 우려하는 과잉충성이 빚은 소극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 기시감이 느껴진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KBS, MBC에서는 낙하산 사장의 영향으로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방송이 불방되거나 당시 정권이 원하는 방송을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5KBS훈장시리즈 불방 사건이다. 역대 70여만건의 서훈 명단을 분석해 간첩 조작을 했던 수사 관련자나 친일 행위자에게 훈장을 수여한 사례와 그 뒷이야기를 다루는 것이었다. 이게 박정희 정권에서 행해진 일들을 포함하니 당시 정권에 불편해서 방송을 막은 것이다. 일부 내용은 <시사기획 창>을 통해 내용이 변경되어 나갔지만, 친일 관련 내용은 결국 불방시켰다. 일제강점기라는 불행을 겪은 대한민국에서 친일행위자들에게 훈장을 수여한 반사회적인 현상을 공영방송 KBS가 다루지 못하는 비극적인 사례다. 이후 JTBC에서 간첩 조작 수사 관련 서훈 부분을 먼저 방송했다. KBS에서 훈장을 준비하던 최문호 PD는 퇴사하여 뉴스타파로 옮기고 훈장과 권력 4부작을 제작했다. 역설적으로 이 작품은 안종필 자유언론상을 비롯해 각종 상을 획득했다.

정권에 불편한 방송을 연기시키려는 KBS는 이미 대통령 대담 방송으로 비판받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사퇴 논란 등 현안 관련 질의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정권의 아킬레스건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을 축소하려 했다는 것이다. 대담을 한 박장범 앵커는 외국 언론에선 디올백이라 한 것을 굳이 일부 언론의 표현을 찾아 파우치, 조그마한 백이라고 표현해 비판을 자초했고, 대통령에게 변명할 기회만 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KBS윤비어천가방송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런데 KBS는 대담 방송의 시청률이 높았다는 이유로 설날 재방송을 했다. 설날 민심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였냐는 의문이 나올 만하다. 미래의 방송이 현재의 사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세월호라는 참사의 아픔을 기억하고 극복하려는 프로그램은 막으면서, 대통령에게 변명의 기회만 제공했다고 비판받는 프로그램은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함에도 재방송을 결정했다. 정작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주체는 누구인가?

대통령 의중이 반영됐다고 의심되는 박민 사장 취임 이후 KBS는 망가져가고 있다. 단협에 규정된 국장임명동의제를 무시하고 시사·보도국장을 임명하는 독단을 저질렀다. 다수의 기자·PD를 비제작부서인 수신료국으로 전출시켰다. 그리고 편성 논란을 야기했다. 총선 이후에 방송될 세월호 특집이 총선에 영향을 미칠까, 미래가 현실을 좌우한다는 억지 논리로 제작 자율성을 침해하는 현실이 총선에 영향을 미칠까? 박민 사장은 X맨이 아닐까? 현명한 유권자들이 판정해줄 것이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학부 교수 | 경향 2024.02.18.

 

4.10 선거 혁명을 기대한다

대한민국 현실, 선거 혁명, 그리고 소명으로서의 정치

22대 총선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이번 선거는 대한민국 공동체가 계속 퇴행할지, 한 걸음이라도 전진할지를 판가름하는 역사적 분기점이 될 것이다. 미디어에서도 저마다 4.10 총선의 정치적 함의와 시대 전환적 의미를 피력한다. 집권 중반의 선거는 정권 중간평가일 수밖에 없다. 검찰 수장이 대한민국 최고 권력을 잡은 후 우리는 그 권한이 얼마나 사유화될 수 있는지, 권력의 칼날이 어떻게 행사될 수 있는지를 목도하며, 입법 권력을 통해서라도 현 정권을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절박함을 갖게 되었다. 그간 여러 희생과 고난을 감내하며 켜켜이 쌓아 올린 민주주의의 근력이 얼마나 허약했는지, 이제 임계점을 넘어가 버리기 전에, 더 허물어지지 않도록 지켜내야 할 것이다.

이제 그 때가 되었다. 욕망으로 점철된 정치로 갈 것인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사익 추구가 아닌 공동체의 공공선을 위해 행사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국민은 진영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진정 우리 공동체를 한 걸음 전진하게 해줄 정치인을 알아봐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몇 해에 한 번씩 돌아오는 선거에서 투표하는 것 말고는 직접 행사 가능한 정치적 주권은 사실상 없다. 투표권 외에 헌법과 법률을 발의할 권리도, 발의한 법률에 국민이 투표할 권리도, 공약을 이행하지 않거나 허튼 짓을 하는 국회의원을 소환할 권리도 없지 않은가. "국민을 하늘같이 존중하고, 범같이 무서워하는" 정치인을 선출하자. 대한민국의 회복탄력성을 기대한다.

1. 안보와 외교! 대한민국이 불안하다

현 정권이 들어선 후, 하루하루가 우울한 뉴스로 장식되고 있다. 온갖 분야의 퇴행과 그로 인한 아우성이 도를 넘어섰는데도 불구하고, 정치가 해법을 제시해 주지 못하고 정권은 '입틀막'으로 대응하는데 급급하다. 권력을 가진 소수의 섣부른 결정이나 독단으로 인해 국민 다수가 겪어야 할 고통의 크기는 비교 불가하다. 한반도 전쟁 발발 우려가 대표적이다.

물론 복잡한 국제적인 힘의 역학 구도가 맞물리는 사안이지만, 무엇보다도 연일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권력자들의 무모함이 위험천만하다. 남북의 우발적 무력 충돌을 막기 위해 합의한 9.19 남북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외치고 있지 않은가. 이제 북한도 사실상 그 합의를 파기하는데 이르렀고, 국지전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는 한미일 3국 동맹 강화로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불필요한 자극은 그야말로 불필요하고 위험하다. 공멸로 가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로 가자. 출구 없는 압박은 파국으로 가는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 이제 한반도를 둘러싼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는 엄혹한 현실이 되었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보복과 응징이 먼저가 아니다. 협상력이 아쉽다. 먼저 평화와 화해를 위한 실력 발휘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대만보다 한반도에 당장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하니, 참으로 위험천만한 시간을 지나고 있다.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성에 외국 투자자들이 투자를 꺼린다고 하는데, 이와 같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우리 사회를 가라앉히고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국제관계, 외교가 불안하다. 이제 북한과 일본의 수교는 날을 잡아놓은 모양새다. -쿠바 수교로 인해 속도감이 붙었다는 해석도 있지만, 일본이 북한과 손을 잡는다면 북한의 방대한 지하자원 채굴권을 갖게 될 것이고, 그간 한일 관계 복원을 핑계로 저자세 외교로 일관해 온 우리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하고 패싱될 것이 예상된다. 미국 차기 대선에서 당선이 유력한 트럼프가 돌아온다면, 북미 관계가 호전될 것이고 우리나라가 또 패싱될 것 역시 확실해지지 않겠는가.

러시아와 대립각을 세워 외교부 간에 선을 넘는 발언이 오가고 있다. 우리 국방 수장이 우크라이나 직접 군사 지원 필요성을 언급한 후 한러 외교관계도 충돌하게 되고, 러시아는 윤 대통령의 발언도 편향되었다고 문제 삼았다. 러시아의 현대차 공장은 러시아 업체에 헐값 매각이 이뤄졌다. 국가 수반이나 장관의 말 한마디로 국익이 막대하게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한편 대통령이 반중외교를 공개 선언하면서 대중 수출은 급격히 줄고, 우리의 주 수출 품목이던 반도체의 중국 내 자급률은 무섭게 성장해서 연평균 30%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고, 그로 인해 중국의 반도체 경쟁력은 2년 내 우리나라를 위협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한다. 중국과의 무역은 31년 만에 첫 적자를 기록했다. 한미일 일변도 외교로 인해 우리 입지가 좁아지고, 결국 국익이 훼손될 일만 남은 것이다. 우리가 위임한 최고 권력이 외교 마당에서 고립을 자초해서는 안 된다.

2. 언론, 민생, 역사 왜곡! 대한민국이 아프다

언론은 또 어떤가? MB 정권 때부터 언론장악, 언론탄압 장본인으로 비판받던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물러나더니, 언론 분야 전문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검찰 출신 대통령 선배가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은 가족과 친지를 동원해서 현 정권을 비판했던 <뉴스타파>를 제거하기 위해 민원을 사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사과 한마디 없다. 그는 방심위를 사회적 해악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제 상식도, 염치도 무너진 세상이 되었다. 작년 세계 언론자유의 날에 발표된 '국경없는 기자회'의 언론자유지수는 윤석열 정부 1년 동안 후퇴했다. MBC 기자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불허가 결정적이라고 한다.

과학 연구 분야에서 33년 만에 국가 R&D, 연구개발비를 삭감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미래지향적 기초연구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고, 미래 성장 동력을 꺾어버렸다는 평가로 우려가 깊다. 태양광 대체 에너지 등 재생 에너지 분야도 아우성이다. 유리 지갑인 직장인의 근로소득세는 늘었지만 부자 감세로 인해 세수는 바닥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망 경제성장률은 최하위권이다. 게다가 물가는 천정부지다. 사과 한 개가 1만 원에 육박하는 가격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사과 가격 하나도 잡지 못하는 정부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이 와중에 역사 왜곡까지 거침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승만 기념관 건립에 이어 <건국전쟁> 영화를 띄었다. 3.17의거와 4.19의거, 그리고 제주 4.3항쟁 피해자들의 응어리와 눈물은 누가 닦아줄 것인가. 홍범도 장군 동상 철거는 말할 것도 없고, 이승만 전 대통령이 사법 살인한 죽산 조봉암 선생이 재평가되고 있지만, 국가보훈부는 아직 독립유공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극명하게 대비되지 않은가?

3. 최후의 보루는 국민, 선거 혁명

검찰(정권)은 온갖 권력과 요직을 독점하고도,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했다. 이제 선거를 통해 바꾸고 혁명을 이뤄내야 한다. 4.10 총선은 대한민국의 미래 운명이 좌우되는 절체절명의 선택이 될 것이다. 윤석열 정권을 심판할 것인가. 아니면 야당에 채찍과 경고를 주어야 할 것인가. 한국 사회의 불안과 무서운 권력의 사유화를 걷어내기 위해서 투표장에 가야 한다. 무너진 공정과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그리고 날로 양산되는 갈등과 불신과 증오를 걷어내기 위해서 지혜롭고 냉정한 선택을 해야 한다.

과연 대한민국 각 분야, 정치에서 지성은 사라지고 욕망만 남은 것인가. 국제정세는 급변하는데 숙의하고 공론해야 할 많은 국가적 의제들은 어디로 갔는가. 권력의 사유화로 인해 절박한 국민이 촛불을 들어야 하고, 에너지와 시간을 과도하게 소모적인 데 보내야 하는 현실에 조바심마저 든다. 대중적 소구력 있는 사안만을 염두에 둔 채 정치공학적으로만 접근하지 말고 이제 우리 공동체 요소요소에서 필수적인 분야와 의제를 다루는 정책 대결을 보고 싶다.

다양하게 열린 선거 지형에서 연대하고 힘을 모아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 이제 헬조선을 깨고 나가도록 선거혁명으로 대한민국을 다시 리셋해야 한다. 한국인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 했다. 영화 <길 위의 김대중>에서 그는 눈물로 국민을 위로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민은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마지막 승리자는 국민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사람 사는 세상'을 슬로건으로 "국민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고 했다. 선거로 혁명을 일으키자.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장고 끝에 결정한 통합형 비례정당을 통한 준연동형으로 비례성에 따라 각 소수정당에도 원내로 진입할 기회를 줄 수 있어 반갑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다. 타협과 양보의 정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거대 양당의 독과점을 타파하겠다고 제3지대를 표방하며 발족한 개혁신당은 무엇이 개혁인지 그 철학과 방향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소수의 정치 검찰로부터 국민에게 권력을 돌려주겠다는 각오로 출범한 조국신당에도 민주화와 공동체 미래를 위해 필요한 역할을 기대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이 중에서 '리셋코리아행동'의 출범은 주목할 만하다. 각 분야 정책을 점검하고 향후 방향을 제시하는 조직이다. 현 정부를 비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황을 꼼꼼히 진단하고 향후 방향을 재정립하는 정책 콘텐츠, 선명한 어젠다가 있어 반갑다.

4. 부디 정치에 철학과 윤리를 기대한다

소위 보수냐, 진보냐 하는 진영의 문제는 사실상 본질이 아니다. 자칫 이편도 저편도 잘한 것이 없다는 양비론 프레임에 갇히게 되면, 정치 혐오증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영화 <한산>에서 일본군 포로가 고문을 당하다가 이 싸움의 의미는 뭐냐고 이순신에게 절규하듯 묻는다. 이순신은 왜적이 침범해오니 싸운다고 하지 않았다. "이건 불의와 의의 싸움이다"라고 말한다. 선명하지 않은가. 양측의 싸움이 아닌 불의와 의의 싸움이라고 임진왜란을 규정한다. 불의에 저항하자.

독일의 사상가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란 '열정''균형적 판단'이라는 널빤지 둘을 겹쳐서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구멍 뚫는 작업이라고 했다. 만약 이 세상에서 불가능한 것을 이루고자 몇 번이고 되풀이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아마 가능한 것마저도 성취하지 못했을 거라는 말은 전적으로 옳다. 이는 역사적 경험에 의해 증명된 사실이다. 최소한 기본 규범이 무너지는 나라는 만들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균형 잡힌 사고와 절제된 주장은 정치의 영역에서 핵심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이제 빠른 속도로 퇴행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여러 분야를 재건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인기 영합 정치보다 제발 콘텐츠가 있는 정책으로 회귀하게 해달라. 정치인들은 공부를 하기 바란다. 역사를 그리고 공동체의 윤리와 공공선을……. <펠로폰네서스 전쟁사>를 곁에 끼고 쇼를 하기 보다 그 책의 내용에 집중하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이제는 막말로 상대방을 비난하여 얻는 반사이익으로 표를 얻으려 하는 '아무말 대잔치'를 멈춰 달라.

정치인은 연예인이 아니다. 허영심으로 자신을 전면에 내세우는 욕구를 만족하는 정치를 할 것인가. '대의'라고 하는 에토스(ethos, 정신)를 살려 공동체에 헌신을 목표로 할 것인가. 대중 영합 정치를 지적하는 말이다. 선거를 통해 세우려는 정치의 본령은 국민을 어루만지고, 억울함을 해소해서 정의를 세우고 민생을 일으키는 일이다. 하루가 급하다. 이제 더는 시간을 낭비할 때가 아니다. 410,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

강경숙 원광대학교 교수 | 프레시안 2024.02.19.

 

이재명 대표가 맞닥뜨린 진실의 순간

야당은 영어로 오퍼지션 파티(opposition party), 즉 반대하는 당이다. 한국에도 과반 의석을 점한 오퍼지션 파티, 더불어민주당이 있다. 다만 오퍼지션(반대) 기능은 취약하다.

지난해 한국 경제성장률은 1.4%였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2% 아래 성장률 기록이 세 번 있었다. 외환위기 때인 1998, 금융위기 직후인 2009,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이다. 2023년엔 대형 악재가 없었다. 오로지 정부 책임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집요하게 따지는 걸 본 기억이 없다.

지난 15일 박성재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청문회는 해 지기 훨씬 전에 끝났다. 전임 장관들 청문회는 대부분 자정 가까이에 마무리됐다. “검사 독재 청산”(이재명 대표)을 외치는 민주당의 칼날은 무뎠다.

오퍼지션 파티는 뭘 하고 있나. 자기들끼리 치열하게 오퍼지션 중이다. 한동안 친이재명(친명)-비이재명(비명)으로 갈려 싸우더니, 비명 핵심이 탈당하자 친명-친문(친문재인)으로 나뉘어 싸운다.

계파 갈등이 첨예할수록 공천 과정은 투명하고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하지만 같은 문 정권 인사 중에서도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겐 불출마를 사실상 요구하면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겐 공천장을 줄 태세다. 현역 의원이나 비명 인사를 배제한 정체불명의 후보 적합도 조사도 이어지고 있다.

선거 패배 전에는 경고음이 울린다. 위기 신호 몇 가지는 이렇다. 첫째, ‘이나 같은 접두사의 부상이다. 2016년 총선 때 진박 감별운운하던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을 보라. 주권자의 선택권을 무시하고 장난치다간 심판당한다.

둘째, 당내 주류의 자기희생 없는 물갈이다. 당을 쇄신하고 국회를 바꾸려면 물갈이는 필요하다. 다만 효과를 발휘하려면 기득권자들의 기득권 포기가 필수다.

셋째, 근거 없는 낙관론이다. ‘샤이 진보’ ‘샤이 보수를 거론하며 자당 지지층 가운데 숨은 표가 있을 거라 기대하는 경우다.

민주당은 지금 세 가지 다 해당하는 것 같다. ‘찐명(진짜 친명)’을 과시하는 부류가 실재하고, 주류 핵심 가운데 불출마·험지 출마가 거의 보이지 않으며, 샤이 진보를 언급하는 이들도 있다니 말이다.

선거는 과학이다. 지난 16일 공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37%)이 민주당(31%)을 앞질렀다. 양당 격차는 오차범위 내이지만, 여론조사는 흐름이 중요하다. 이전 조사보다 국민의힘은 3%포인트 상승, 민주당은 4%포인트 하락했다.

총선 결과에 대한 희망을 묻자 국민의힘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 36%, ‘민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 31%로 나왔다. 역시 오차범위 내 격차이지만, 1월 넷째 주 조사에서 33% 동률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민주당이 밀리는 추세임엔 분명하다(자세한 내용은 한국갤럽 홈페이지 참조).

예견된 결과다. 민주당은 서울 강서구청장 보선 승리 이후 정권심판론에 취해 있었다. 파격적 쇄신도, 피부에 와 닿는 정책도 없었다. 정권의 독선과 오만을 효과적으로 견제하지도 못했다. ‘디올 백에만 매달렸다. 공천 과정에선 이 대표가 직접 개입하며 무원칙·불투명 논란을 자초했다.

반면 여권에선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전국을 돌며 공약을 살포하고 있다. 관권선거·포퓰리즘 비판도 외면한 채 전력질주 중이다. 공천 과정에서도 현재까지는 용산발 내리꽂기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올드 보이김무성 전 대표는 불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과 이 대표는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에 맞닥뜨렸다. Moment of Truth결정적 순간을 가리킨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32년 투우 경기를 관찰한 에세이 오후의 죽음에서 사용하며 유명해졌다.

2016년 총선 당시 문재인 대표는 안철수 의원 탈당으로 진실의 순간에 직면했다. 그는 삼고초려 끝에 김종인 전 의원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로 영입했다. 공천권을 틀어쥔 김종인 대표는 이해찬 의원 등을 컷오프하며 당의 변화를 알렸다.

이번에도 열쇠는 이 대표가 쥐고 있다. 친명·비명을 아우르는 통합적 선거대책위원회 구성, 주류 핵심 인사들의 선도적 희생 없이 위기 돌파는 불가능하다. 디올 백을 넘어서는 새로운 의제와 언어도 필요하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수수 의혹은 규명돼야 마땅하지만, 이것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는 없다.

아시안컵 내내 무전략·무전술로 일관하던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요르단전에서 진실의 순간에 맞닥뜨렸다. 치욕적으로 쫓겨난 이후에도 그는 선수 탓을 하며 정신승리 중이다. 하지만 전 세계가 안다. 한국의 아시안컵 탈락에 누가 가장 큰 원인 제공자인지.

이 대표가 한국정치의 클린스만이 되지 않길 바란다. 야당다운 야당, 제대로 반대하는 야당은 반드시 필요하다. 주권자의 삶을 위해서는 물론, 카운터파트인 정권의 올바른 권력 행사를 위해서도./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 경향 2024.02.19.

 

아이를 낳을까, 이런 세상에

얼마 전 한 친구가 정관수술을 했다고 알려왔다.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물려주지 못할 것 같다며 내린 결론이다. 대학 시절엔 셋 이상 낳겠다고 말했던 친구라 충격이 컸다. 둘이 벌어 집 하나 살 자신도 없다는 그의 표정이 어쩐지 쓸쓸했다.

설 명절에 만난 가족은 슬며시 아기 얘기를 꺼냈다. 둘은 있어야 집안이 북적북적 덜 심심하다는 조언이었다. 영화에는 두 아이 중 하나만 똑똑하면 나머지가 힘드니 행복한 두 멍청이를 만들자는 아내도 나온다(<어바웃 타임>). ‘과연 그런가싶다가도 결혼도 안 한 처지에 먼일이라며 덮어뒀다. 친구 아이는 귀엽지만, 솔직히 내 아이를 기를 자신은 없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는 “(출산은) 매력 없는 선택지가 되었다는 문화평론가 정지우씨의 글이 화제였다. “아파트 (대출) 빚에 30년씩 시달리며 아이를 사교육 경쟁 지옥에 밀어넣는 것보다, 발트 3국 여행하고, 발리랑 다낭에서 한 달 살기 하는 게 (사람들에게) 훨씬 근사해 보인다는 논리였다. 돈 있는 사람이 아이를 더 낳는다는 통계를 보면 출산이 꼭 선택의 문제인가 의문이지만, 저출산을 고스펙 여성탓으로 돌리고 대한민국 출산 지도를 내미는 나라에서 이만하면 사려 깊은 관점이다 싶었다. 진실은 못 낳는 가정과 고민하는 친구, 다른 선택을 말하는 정씨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은 더 이상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 근미래 세계 영국을 다룬다. 아이를 잉태한 어머니가 흑인 이민자 출신이란 게 영화의 핵심 갈등 요소다. 저출생 심화로 인구 감소가 현실화하면 이민을 적극 환영하는 게 (윤리를 떠나) 합리적 선택일 텐데 이상하게도 영화 속 영국은 이민자를 철창에 가둔 채 게토(ghetto)화하고 있다. 국경에서는 무장봉기한 이민자와 정부군이 혈전을 벌이고, 이민자 해방을 주장하는 이들은 아이를 정치적 상징화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주인공 테오의 임무는 그 아이를 이 지옥 같은 나라에서 탈출시키는 것이다.

테오와 산모, 아이가 가는 길은 차별과 폭력의 연속이다. 정부군이고 반군이고 가장 어린아이의 생멸은 숫자까지 세 기념하면서 특별히 어리지 않은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죽인다. 테오가 아이를 데리고 지나갈 때 양측 모두가 감격하며 총격을 멈추지만 잠시뿐, 또다시 총알과 대포를 서로에게 겨눈다. 이들의 행로를 따라가는 카메라는 총격에 죽은 아들딸을 끌어안은 채 울부짖는 어머니들을 여러 차례 비춘다. 자라난 아이를 죽여 없애는 마당에 새로 태어난 아이만 끌어안은들 무슨 소용인가. 신의 저주인지 질병인지 출생률 0의 원인이 따로 나오지는 않지만 어쩐지 알 것도 같았다. 소중한 아이가 이런 세상에 살기를 바랄 부모는 없다.

정부고 기업이고, 아기를 낳으면 이런저런 혜택을 준다고 홍보하지만 잠시 지원받는다고 부모와 아이 모두가 살 만한 세상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영화 원제가 인류의 아이가 아닌 아이들(children)’이란 데 주목해 본다. 지금의 부모도 한때는 아이였다. 영화의 배경은 2027, 가상이지만 3년 남았다.

조문희 기자 | 주간경향 2024.02. 1566

더 늦기 전, 이재명은 청룡언월도를 들라

총선 공기가 달라졌다. 설 전후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지지율(한국갤럽)‘35 34’에서 ‘31 37’로 역전됐다. ‘김건희 디올백파장은 끝난 건가. 여론조사 전문가 3명에게 물었다. 답이 재밌다. 그렇진 않을 거라고. 설 전후엔 지역구 공천 여론조사·발표가 많았던 여당 표가 더 반응했을 수 있다고. 여당의 김무성 불출마·김성태 낙천 수락뉴스와 민주당의 친명·비명·친문 싸움뉴스를 대비시킨 이도 있다. 선거 공학이든 몸부림이든, 셋의 총선 평은 모아졌다. 여당 상승세, 야당 내림세다.

민주당은 위기다. 승복하는 이, 헌신하는 이가 없다. 공천자·낙천자·경선자 다 이재명과의 거리만 따진다. 그러다 의정활동 하위 20%’를 통지받은 국회부의장이 당을 떠났다. 밖으로는, 진보·시민사회와의 지역구·비례연합 협의도 순번 밀당에 가다서다 한다. 정권심판의 대의, 선당후사의 공심, 공천 잣대의 신뢰, 주류의 리더십이 다 흔들린 것이다. 설까지 앞서다 진 4월 총선이 두 번 있었다. 이명박 심판 열기에 붕 떠가다 박근혜 비대위에 진 2012년 민주통합당이 그랬다. 진박·친박·비박 감별하며 당 옥새까지 다투다 진 2016년 새누리당이 그랬다. 지금 민주당도 2024년에 그럴 수 있다.

지지율은 경종일 뿐이다. 청년은 일자리 없어 놀고, 노인은 돈이 없어 일한다. 소상공인·건설사 폐업이 줄 잇고, 설 제사상에 금사과를 못 올린 물가는 지금도 하늘이다. 민주주의는 삶의 위기에서 온다. 힘없고 가난한 이의 눈물을 먹고 자란다. 이 아우성치는 민생 어디에 민주당이 서 있는가. 방송 장악, 약속 사면, 유병호 감사원 폭주에 대변인 논평 한 줄이 전부인가. 홍범도를 지우고, ‘윤석열·한동훈 10을 꿈꾸는 검찰국가가 대한민국 미래인가. 핏줄 선 외침도, 결기도, 목마름도 없는 제1야당에 물 줄 국민은 없다. 곤두박질친 존재감, 그들만 모르는 위기감, 이것이 민주당의 진짜 위기다.

이준석·이낙연의 동행이 11일 만에 깨졌다. 여성가족부 폐지, 장애인 시위, 노인 무임승차 폐지. 당 정체성이 걸린 중대한 이견을 미봉한 채 한 지붕 다섯 가족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었을까. ‘빅텐트라 썼지만, 사람들은 섞어찌개로 읽었다. 거대 양당 사당화를 새 정치 이유로 삼더니, “이준석 사당이라 치고받은 건 블랙코미디다. 두고두고, 국고보조금과 총선 번호가 회자될 때마다 선거공학 흑역사로 소환될 게다.

야권엔 조국 불씨도 지펴졌다. 창당 D-데이는 23, 그는 석 달 전 밝힌 비법률적 명예회복의 길로 정치를 택했다. 수긍할 이 많지 않다. 1·2(징역 2)대로면, 그는 대법 판결 후 구속된다. 입시비리는 사실로 단죄됐고, 내로남불은 민주·진보 분열의 씨앗이 됐다. 조국신당은 팬덤·소수당 전략이다. ‘검찰독재 심판이 조국만의 화두일 리 없다. 정치 입문은 기본권이다. , 여전히 나는 그의 첫발이 백의종군이길 바란다.

정권심판론은 사분오열됐다. 용산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역으로, 뿔뿔이 책임 공방할 야권은 공멸 위기다. 이재명·이낙연·이준석·조국은 역사 앞에 고개를 들 수 있는가.이재명은 더 품고, 더 소통하고, 더 양보해야 한다. 그때서야 혁신도 통합도 함께 진통하며 멀리 갈 수 있다. 169명 배지의 생사여탈을 가르고 새피를 수혈하는 건 대작업이다. , 지는 떡잎은 비명이고, 주류 희생이 없으면, 새순이 온전히 틔워질까. 성공한 순혈 정당이 없다. 공천 잡음이 컸던 당은 어김없이 총선에서 졌다. 그 내홍은 커지고 정권심판 뉴스까지 뜸하니, 이재명의 말발과 메아리도 커질 리가 없다. ‘총선 패장이재명의 대권 길이 있을까. 없거나 험로다. DJ는 좌장 권노갑을 불출마시키며, 그 많은 동교동의 출마 민원과 원성을 넘어갔다. 그렇게 결단하고, 그렇게 뭉쳐 크게 싸워야 한다. 정치는 권한과 책임이 같다. 야권 리더 이재명이 쥘 것은 손익계산서가 아니라 삼국지 관우가 내리친 청룡언월도여야 한다.

설로 돌아간다. 다 혀를 찼다. 어느 자리선 말도 못 꺼내게 했다. 술맛·밥맛 떨어진다고. ‘V2의 디올백은 그렇게 입에도 담기 싫은 울화로 남았다. 사과 없이 덮어도, 디올백은 30%대 국정지지율과 불통의 상징으로, 윤석열·김건희 부부 얼굴 너머로, 끝까지 선거판에 어른거릴 게다. 여당은 이제 찐윤·영남공천이 몰린 난코스로 접어든다. 콜라·사이다·주스의 영역 싸움이 이럴 게다. ‘정권 심판’ ‘민주당 심판’ ‘양당 심판소리가 터질 총선이 어느새 7주 앞으로 다가섰다.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 경향 2024.02.20.

 

용산·친윤의 진격, 국민의힘 조용한 공천 퇴행

반성·쇄신·감동 없는 국민의힘 공천

공천, 즉 후보자 추천은 정당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면 공천은 선거 출마자를 확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역대 선거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혁신공천에 실패하는 정당이 패하곤 했다.

2016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진박 공천''옥새 파동'이 대표적이다. 당시 청와대가 개입하면서 공천 논란이 불거졌고 결국 집권당이던 새누리당은 122석 확보에 그쳐 민주당 123, 국민의당 38석 등을 얻은 야당에 참패했다. 이밖에 2015년 유승민 원내대표 찍어내기와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 추진 등도 새누리당 패인의 하나다. 이러한 요인들은 박근혜 정부가 '권위주의적' 경향성을 드러내 것으로서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대표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전략이 주효했다. 김 위원장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당시 박근혜 비대위의 위원으로 활약했고 경제민주화라는 진보적 의제를 선점함으로써 총선·대선에서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했었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의 문재인 대표는 김 위원장을 과감하게 비대위원장으로 기용했다.

이 전략은 결국 민주당의 중도 외연 확장에 결정적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해찬 정청래 강기정 전병헌 의원 등을 '컷오프(공천 탈락)' 했다. 공천 혁신의 상징적 조치였다. 그리고 삼정전자 출신의 양향자와 박근혜 정부 비서관 출신인 조응천을 공천함으로써 파격성도 보였다. 19대 총선 때 민주당은 100석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123석으로 원내 제1당이 됐다. 모든 선거가 같은 경로의존성을 보이진 않더라도 분명한 경향성을 보인다. 즉 공천에서 경로가 시작된다.

여야가 공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금까지의 분위기는 국민의힘 공천에서 결정적 잡음은 찾기 어렵다고 하지만 서울 강남3구와 대구·경북의 공천 뚜껑을 열어봐야 공천에 대한 점수를 매길 수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공천 갈등이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국민의힘 공천에서 친윤에 대한 국정책임을 묻는 정치적 의미가 담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인요한 국민의힘 전 혁신위원장은 지난 해 11'당 지도부와 중진, 대통령과 가깝게 지내는 의원'들에 대한 불출마나 수도권 험지 출마를 요구했다. 1011일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참패했고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도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인 전 위원장은 국성의 실패에 대한 친윤과 중진들의 동반책임을 요구한 것이다.

'윤핵관' 핵심이었던 장제원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비주류 하태경 의원이 부산 해운대갑 지역구를 포기하고 험지 출마 의향을 비쳤다. 초반에 책임정치가 공천을 통해 이루어지는듯 했으나 이후 이러한 동반책임은 찾기 어려웠다.

국민의힘은 공천 신청자가 있는 242개 지역구의 3분의 2 이상에 대한 공천을 확정했다.(단수추천, 우선공천, 경선 지역구 등) 그러나 여당 핵심 인사의 불출마 선언이나 현역의원 컷오프는 없었다. 대통령실 참모 출신과 윤핵관, 친윤 의원 다수는 단수공천을 받거나 경선을 보장받았다. 윤 대통령의 국정부진에 대한 집권당 차원의 반성과 문책성 공천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주진우 전 법률비서관, 전희경 전 정무1비서관, 장성민 전 미래전략기획관, 이승환 전 행정관은 단수공천을 받았고, 김은혜 전 홍보수석과 전지현 전 행정관은 경선을 보장받았다. 대통령 지지율의 정체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라고 볼 수 없다. 또한 윤 대통령의 최측근 의원인 정진석, 윤한홍 의원도 단수공천을 받았다.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이철규 의원도 경선 대상에 포함됐다.

이준석 전 대표 축출, 나경원 전 의원의 전당대회 불출마 압박, 김기현 전 대표 사퇴 논란 등 주요 이슈 때마다 대통령실과정치적 궤를 같이 했던 배현진, 박수영, 유상범, 강민국, 정동만 의원 등 친윤 초선 그룹들도 다수가 단수공천을 받았다. '초선 실세'로 꼽히는 박성민 의원도 경선을 보장받을 것으로 보인다. 박대출, 이만희, 정점식, 송석준 등 재선·3선 의원들도 단수추천을 받았다.

민주당의 내홍이 깊어지면 국민의힘에 유리한 선거지형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권 주류에 대한 '물갈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22대 국회에서도 정권의 국정운영 방식은 물론 개혁적 성향 인물들의 활약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는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권력에 대한 줄서기 문화를 강화시키게 될 개연성이 높다. 지금까지의 국민의힘 공천에서는 반성도 쇄신도 감동도 찾아볼 수 없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 프레시안 2024.02.23

 

대통령 말처럼 이승만의 ''을 폄훼해서 죄송합니다

한동훈이 말하지 않는 진짜 이승만의 ''

기이한 일이다. 민주주의의 축제인 총선을 앞두고 민주주의를 망친 인물을 띄우는 상황 말이다.

국민의힘에서 이승만을 주제로 한 <건국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적극 띄우고 있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이 다큐를 직접 관람한 후 기자들 앞에서 "제가 나오던데요?"라고 능청을 떨었다. 그는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결정적인, 중요한 결정을 적시에 제대로 한 분"이라고 이승만을 평가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은 일, 농지개혁, 두 가지를 꼽았다. 다큐에는 한 비대위원장이 법무부장관 시절 이승만에 대해 평가한 장면이 삽입돼 있다고 한다.

이 영화에 대해 "우리나라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는 윤석열 대통령은 한 발 더 나아간다. 22일 경남 창원에서 연 '민생 토론회'에서 그는 "흔히 원자력 발전의 시작을 19784월 고리 1호기로 기억하는 분이 많지만 실제로 우리나라 원전의 기초를 다진 분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건국 아버지는 이렇게 원전의 아버지가 된다. 대통령의 주장대로 "세계 10대 경제국"이 된 데에 이승만의 선구안이 작용했다고 한다면, 한국이 인터넷 강국이 된 것도 몇 수 앞을 내다 보고 '문맹 퇴치'를 위해 노력한 이승만의 공 덕이겠다.

대통령은 지난해 3.1절 기념식에서 독립운동가 사진에 이승만이 빠지자 "·미 동맹과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에 초석을 닦은 분 아니냐" "왜 그런 분이 이런 평가를 받아야 하느냐"고 탄식했고, "이 전 대통령의 과를 덮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그보다 훨씬 더 큰 공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중앙일보 2023328일자)

하긴, 이승만의 공이 어디 한두개인가. 내친 김에 이승만이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기여한 무수한 ''을 떠올렸다. 국민의힘과 이승만 지지자들이 잘 말하지 않는 ''은 셀 수도 없이 많다. 절로 존경하는 마음이 들게 만드는 그런 것들 말이다.

탁월한 언론인 출신 문창재가 쓴 <대한민국의 주홍글자>에 따르면 한국전쟁 시기 국민보도연맹을 만든 이승만 정권은 수만 명에서 20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을 학살했는데, 이런 사건을 통해 이승만은 한국 국민에게 국가 권력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국민방위군 사건도 있다. 청년들을 제2국민병으로 징집한 후 방치해 굶주림과 추위, 질병으로 사망하게 했다. 많게는 9만 명의 사망자가 나왔고, 20만 명 이상이 동상으로 신체 일부를 절단했다. 전쟁이 인권을 어떻게 유린하는지, 이런 짓을 왜 하면 안되는지 반면교사로서 준 큰 교감을 이승만의 ''에서 빼놓을 순 없다.

이승만은 1954'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영구집권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당시 재적의원 203명 중 3분의 2135.333.....표가 필요했지만 0.333......명이 모자란 135표 득표에 그친 이승만 정권은 반올림 기법을 동원에 0.333......표를 버리는 기적의 사사오입 논리를 도입했다. 사람을 3등분 할 순 없지 않은가. 후대 '동료 시민들'에게 '표 계산에서 반올림이란 없다'는 원칙을 확립시키는 데 큰 공을 세운 바, 우린 이승만의 이런 업적을 통해 '영구 집권' 시도가 민주주의에 큰 해악을 끼치는 것임을 알게 됐다. 민주주의 DNA를 국민의 몸에 새겨 박정희 독재와 전두환 독재를 이겨낸 것도 이승만의 공이겠다.

특히 한국 민주주의가 이승만에게 빚을 지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19593.15부정선거였다. 자유당은 85세였던 이승만이 언제 죽을 지 몰라 이기붕을 대통령 승계 1순위인 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부정 선거의 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짓을 자행했는데, 이승만은 결국 부정선거가 어떻게 민주주의에 해악을 미치는지 국민들에게 각인시킨 공을 세웠다 할 수 있겠다. 3.15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자국민에게 발포해 186명의 사망자와 6026명의 부상자를 냈는데, 이는 '자국민에겐 총을 겨눠선 안된다'는 교훈을 안겨줬다. 전두환의 광주 학살에 대해 부족하나마 그 정도의 단죄를 내릴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보면 이승만이라는 훌륭한 반면교사의 역할이 있었다 할 수 있겠다.

스스로 반민교사가 된 이승만은 양민 학살, 헌법 유린, 선거 유린을 통해 우리에게 인권과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가르쳐 준 '국부'라 불러도 손색이 없겠다.

19625차 헌법 개정에서 '4.19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할 수 있도록 한 것도 혁명에 의해 무너진 이승만 정권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겠나. 쉽게 말해 대한민국 헌법의 기틀이 된 '민주주의 정신'을 탄생시킨 것도 이승만의 공이다. '4.19정신은 전두환 정권에서 한번 삭제되는 수모를 겪긴 했지만 1987년에 새롭게 탄생해 37년을 이어온 우리 헌법 전문에 수록됐다.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문장은 이렇게 한국의 '건국 정신'이 된다. 따지고 보면 이승만은 민주주의를 건설하는데 피로서 국민을 각성시킨 '건국 대통령'이라 불려도 된다.

윤석열 정부는 이승만 기념관 추진을 공식화했다. 부디 이 모든 공을 그대로 기록해 후대에 남겨야 할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멘토'로 모시는 이종찬 광복회장이 "이승만 기념관은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에 근거, 공과 과를 모두 담아내 역사 교훈의 장, 국민 모두의 통합의 장으로 건립하라"고 촉구한 것에 동의하는 바다. 서대문 형무소를 우리가 유산으로 남기는 이유들이 있잖은가.

민주주의 축제인 4월 총선이 7주도 남지 않았다.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은 <건국전쟁>을 관람한 소감을 올라면서 "이번 4월 국회의원 선거야 말로 '건국 전쟁'이다. 대한민국의 체제 정통성과 헌법정신을 지키는 건곤일척의 승부처다. 4월 총선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그래서 국민의힘이 져서는 안될 선거다"라고 주장했다.

유일하게 '혁명'으로 무너진 독재정권은 64년동안 구천을 떠돌고 있었다. 박정희조차 찬양했던 4.19정신은 오랜 기간 한국 역사의 합의된 성역이었다. 4.19의 주역들은 이제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기억이 힘을 잃어가자 국민의힘은 이명박 정부 때도, 박근혜 정부 때도 변방에서 떠돌던 이승만이란 이름을 총선을 앞두고 심해에서 길어 올리고 있다.

'영구 집권'을 꿈꾸며 선거제도를 유린하고 자국민을 학살한 70년 전 독재자를 갑자기 '민주주의 꽃' 총선 목전에 등판시켜 '건국 전쟁'을 일으키고자 하는 그 기이함에 대한 평가는 유권자들의 몫이다.

박세열 기자 | 프레시안 2024.02.24

 

이재명 사퇴를 권함

이재명은 민주당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정당 지도자로서 부적격이다.

그는 경기도지사에서 당내 대선 경선 참여자로, 대선 후보자로, 대선 패배자로, 당대표로 자신의 지위가 변할 때마다 다른 사람이 되었다. 특히 자기 정체성이었던 기본소득을 포기한 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선거제를 약속하고, 그걸 뒤집고, 뒤집은 걸 다시 뒤집었다.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을 하고는 포기를 포기했다가 이런 변심을 지지하지 않은 동료 의원을 공천 과정에서 보복했다. 전당대회 연설에서 당대표 경쟁 후보가 공천을 걱정하지 않는 당을 만들겠다고 다짐하고는 공천 때 복수하는 당으로 만들었다.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 앞에 있는지, 정세와 자기 입지의 유불리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된다. 어제의 이재명은 오늘의 이재명이 아니고, 오늘의 이재명은 내일의 이재명이 아니다. 매일 변하는 남자를 사랑하기는 어렵다.

그의 말과 행동은 다음 말과 행동으로 뒤집힐 때까지만 유효한, 짧은 유통기한을 갖고 있다. 그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일관성이 있다면, 자기애뿐이다.

이재명은 자기 외 누구도 믿지 않고,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 1당을 이끌면서 주요 현안을 자기 이익의 관점에서 홀로 결정하고, 당 지도부는 물론, 그와 가깝다는 의원의 조언조차 듣지 않는다.

자기애의 자연스러운 귀결은 자기 아닌 거의 모든 것과의 불화다. 그는 자기가 사랑하지 않거나,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이들을 배제한다. 그게 바로 공천 과정에서 드러난 것들이다. 공천 파동은 자기애의 표출이다.

공천 불이익을 당할 만한 이들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문제는 정당한 행위조차 정당화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재명은 자기 결정을 설득하고 당사자를 승복시킬 권위와 정당성, 도덕성을 상실했다. 그는 공천 불이익을 받은 이가 불이익을 거부할 이유 그 자체다.

그는 대선 패배 직후 자기 지지자들이 낙담하고 있을 때 2억원대 주식을 사서 자기 이익을 챙겼다. 공천 보복을 당한 박용진이 분노를 삼킬 때 0점 받은 사람 운운하다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가 뛰어난 정치적 역량이라도 갖고 있다면, 당의 운명이 걸린 총선을 잘 지휘한다면, 당 지지자들은 그의 도덕성·공감 능력의 결핍을 묻어둘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역량은 실망스럽다. 해당 행위자는 친명이라는 이유로 끌어안고, 득표력 있는 당 자산은 비명이라는 이유로 내버렸다. ‘신명이라는, 86(1980년대 학번·1960년대생) 다음 세대 운동권은 한동훈이 윤석열 정권 심판론을 가리기 위해 불을 댕긴 ‘86 운동권 심판론‘86 세대교체론이라는 기름을 부었다. 자신도 86처럼 권력을 누려보자는 순진한 발상에서 그랬을 것이다. 이재명은 또 친명이 윤석열 정권 아닌, 문재인 정권 심판론을 제기할 때 수수방관, 자기가 천명한 문명(·)’ 협력을 거부했다.

당 파괴가 이재명의 선거전략인가? 왜 그는 윤석열 정권 심판론의 불씨를 끄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일까? 왜 당 밖에서는 한동훈이, 당 안에서는 이재명이 ·이 합작으로 당 안팎을 쪼아대는 현상이 나타날까?

이 모든 무리수는 총선 패배의 길을 가리키고 있다. 불길한 징후를 그도 느낄까?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다. 그의 눈에는 자신의 경쟁자로 여겨지는, 잠정적 당권·대권 주자가 제거되는 것만 보일 것이다. 그에게 공천은 미리 보는 차기 당권 투쟁이자 잠재적 대권 경쟁이다.

여기 두 개의 길, 이재명이 사퇴하고 선거에 승리하는 길, 당권을 지키고 선거에 패배하는 길이 있다고 해보자. 그가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분명하다. 8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재선출되는 것이 그의 목표다. 그로서는 당이 승리해도 당권을 잃으면 패배지만, 당이 패배해도 당권을 장악하면 승리다. 쉽게 이길 수 있는 선거를 어렵게 끌고 가는 이유이다. 승리한 당대표가 된다 해도 승리는 그의 당권 재창출을 위한 불쏘시개로 소비될 것이다. 자기애가 깊을수록 민주당 위기도 깊어진다.

이 모든 위기에도 이재명을 변호할 수 있는 유일한 논리는 시스템 공천이다. 그런데 시스템이 정상이라면 일어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시스템이 망가졌거나, 당대표가 망가졌거나, 아니면 둘 다 망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재명의 이익과 당의 이익은 충돌한다. 둘을 분리해야 한다. 이재명은 문제 자체이지 해결책이 아니다. 이미 물 건너갔다고 체념하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그 일이 일어나야 한다.

이대근 우석대 교수 | 경향 2024.02.26....어 정도 인가 이 작자..

 

운동권때리기

서울의 봄5·18 민주화운동이 비극적으로 끝난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종로에 있는 TOEFL 학원에 등록했다. 어느 날 거기서 서클(동아리) 후배와 마주쳤다. 나와 그는 눈인사만 한 후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계엄령하 살벌한 상황에서 서울 뚝섬 근처에서 20여명의 선후배가 시위하다가 무자비하게 폭행당한 후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게 1980년이다.

지난 2월 초부터 갑자기 운동권을 둘러싸고 여야 간에 설전이 벌어졌다. 여당과 극보수 언론이 이 기회에 운동권 특권정치를 청산해야 한다고 연일 운동가 출신 야당 정치인을 공격한다. 노리는 것은 운동권전체에 대한 폄하인 듯하다. 사실 따져보면 운동권이라는 단어는 묘한 의미를 내포한다. 뭔가 특수한 부류의 무리를 지칭하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전문시위꾼으로 매도하기 딱 좋다. 운동가들과 그들의 지지자들을 갈라치는 뉘앙스를 품고 있다.

물론 민주화 운동 출신 정치인 중 비판을 받아도 마땅한 인사들이 있다. 정당정치 영역으로 진입한 후 지지자들을 실망하게 한 명망가들도 적지 않다. 그들이 과거에 이념적 선명성 추구, 과도한 진영론, 정책적 사고 부재, 낮은 젠더 의식 등으로 과오를 범한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법을 명백히 위반한 일부 운동가 출신 정치인들이 자신에 대한 검찰의 조사나 기소를 야당 탄압으로 규정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곤혹스럽다.

하지만 여당의 어떤 정치인은 야당의 운동가 출신 정치인에게 자기 손으로 땀 흘려 돈 번 적 없고 오직 운동권 경력 하나로 수십 년간 기득권을 차지한 사람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이제 그들은 게으른 특권층으로 매도된다. 어떤 극보수 신문은 반민주·반인권 일삼는 무소불위의 집단이라고 이들에게 맹폭을 가했다(그런 특성은 되레 그 신문에 해당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운동가들은 당시 학교에서, 공장 등의 일터에서 쫓겨나고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고 투옥된 사람이 부지기수다. 이들은 민주화 이후에도 학교나 일터로 돌아가서 세속적 성공을 하기는 힘들었다. 시위, 농성, 투옥으로 점철된 이들에게는 정치 말고는 열려 있는 공간이 매우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운동 경력은 정치권과 시민운동에서만 대체로 긍정적인 경험으로 인정받았다. 운동가들은 회사에서, 학교에서 혹은 공공성 관련 영역에서도 우대를 받기는커녕 냉대를 받았다.

대다수 민주화 운동가들이 생업으로 돌아갔다라고 얘기하는 극보수 신문은 사설까지 동원해 이런 특수한 사정을 외면한다. 마치 생업에 묵묵히 종사한 운동가는 순수하고 도덕적인데 정치권으로 간 운동가는 타락한 사람처럼 암시한다. 정치무대로 가지 않았던 운동가들과 운동가 출신 정치인들을 대립시키는 전술이다.

물론 극소수는 변호사, 대기업 임원, 교수도 되었지만 아주 예외적 경우다. 고문 후유증으로 건강을 잃어 요절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엄중한 시대에 별다른 고뇌 없이 세속적 이익을 맘껏 누린 사람들이 이제는 노골적으로 운동권을 비난하고 조롱하며 공론의 장에 진입해 있다. 나는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처럼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 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진 않겠다. 왜냐하면 그런 감정은 타인이 강요할 수도, 강요해서도 안 되는 깊은 내면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내 경우는 다른 학자 지망생들과 마찬가지로 부채 의식이 강했다. 그때는 대부분이 그랬다. 주변에 자신의 행복, 미래, 때로는 목숨까지 걸고 독재정권에 정면으로 맞서 싸운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민주화가 이름 없는 수많은 일반 시민의 노력으로 이뤄졌다고 하지만 과연 희생하고 헌신한 운동가들 없이 일반 시민들만의 힘으로 그게 가능했을까?

여권에서는 특권이라는 말을 강조했지만 내게는 청산이 민주화 및 통일 운동에 매진했던 사람들을 내치고 이 기회에 민주주의도 걷어차자는 의미로 다가온다. ‘독재부역자 청산’ ‘친일파 청산이라는 구호는 위험하고 낡았지만 모순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운동권 청산이라니!

지금 정치권에서는, 특히 야권에서도 총선 공천에 관련하여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매일 터져 나온다. 전직 운동가들에게 결코 유리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이 와중에 하고 싶은 얘기는 그들이 치열하게 민주화에 이바지한 점을 늘 기억하고 존중하며 겸허한 마음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자는 말이다. ‘민주주의여 만세!’라고 외치던 시절은 흘러간 과거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권혁범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 경향 2024.02.26.

 

석열스만을 어찌할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과 위르겐 클린스만 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비슷한 데가 많다.

우선 밖으로 떠돌기를 좋아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3번의 해외 순방 등 취임 이후 19차례나 해외를 방문했다. 가장 최근 방문한 1212일의 네덜란드는 그가 한달 전에 방문한 영국과 프랑스의 옆 나라였다. 자원과 준비가 많이 필요한 정상의 해외 방문인데, 불과 한달도 안 돼서 같은 지역의 나라들을 연이어 방문한 것이다. 이럴 경우 보통은 한번의 해외 순방으로 기획된다.

한달도 안 돼 같은 지역에 있는 네덜란드를 방문한 명분인 양국의 반도체 동맹은, 한국에게는 갑의 위치인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회사 에이에스엠엘(ASML)이 경기 화성에 자사 제품들을 수리하는 공장을 짓는 투자를 하는 등 잘 진행되고 있다. 네덜란드 방문 때 윤 대통령 일행의 그 회사 클린룸 방문과 관련한 무리한 요구로 외교적 불만만 터져 나왔다고 한다.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마다 터져 나온 구설수들을 다시 꺼내기는 민망할 정도다.

윤 대통령의 첫 해외 방문은 취임 직후인 20226월 말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인데, 부인 김건희 여사의 공식적 대외 활동을 시작하는 기회였다. 김 여사는 대선 때 구설수에 오르자 윤석열 개인의 부인으로서만 내조하겠다고 밝혔는데, 해외 방문을 계기로 자연히 대통령 부인으로서의 대외 활동을 시작했다. 김 여사를 동반하는 해외 방문이 한달이 멀다 하고 진행되자, 윤 대통령 부부가 해외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을 방문한다는 비아냥이 떠돌 정도였다.

클린스만은 지난해 2월 취임하고 나서 잦은 해외 출장이나 미국 자택 체류로 6개월여 만에 구설수에 오르기 시작했다. 취임 200일 동안 한국에 머문 날은 68일에 불과해, 그 역시 해외를 방문하는지 한국을 방문하는지 헷갈리게 했다.

그는 아시안컵 준결승에서 요르단에게 완패한 뒤 한국으로 가서 경기를 분석해보겠다고 하고선 미국 자택으로 가버려, 국민적 분노를 사며 감독에서 해임됐다. 그의 일관된 노 빠꾸정신은 독일 언론도 자극했다. 일간 타츠는 그와의 가상 인터뷰 형식 기사에서 클린스만이 한국을 자주 찾지 못하는 건 자택인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평양 가는 비행기가 적기 때문이라며, 그가 남북한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한국 물정에 어둡다고 풍자했다.

클린스만은 노 빠꾸정신으로 경탄을 자아낸 반면 윤 대통령은 급빠꾸로 경외를 끌어냈다. 가히 석열스만이라고 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애초 지난 18일부터 일주일 예정으로 독일과 덴마크를 방문하기로 했는데, 그 나흘 전에 갑자기 취소했다. 국빈 방문 정상외교를 나흘 전에 취소할 정도면 천재지변이나 정상의 신변 이상 등 중대한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대통령실은 국내 민생 현안 집중 등 제반 사유라고 방문 취소 이유를 들었다.

지난해까지 해외 순방을 뻔질나게 다닐 때는 순방이 곧 민생이라고 했는데, 이번 독일과 덴마크 방문은 민생이 아니었는 모양이다. 한국 대통령의 민생 챙기기에 포함되지 못한 독일 쪽이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윤 대통령으로부터 순방 취소를 양해해달라는 전화를 받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한국 쪽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외교 용어는 표현과 의미가 보기와는 다르다. ‘솔직한 의견을 교환했다는 표현은 이견이 심했다는 뜻이다. 상대방에게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현은 상대방이 황당하고 무례한 짓을 저질렀는데 우리가 대국적으로 양해한다는 의미이다.

정상의 국빈 방문이 별다른 이유 없이 나흘 전에 갑자기 취소되니, 외교가에서 이게 뭐지?’라며 입방아를 찧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노릇이다. 독일을 저렇게 무지하게 기분 나쁘게 한 사연의 내막이 김건희 여사 때문임이 한국에서는 정설이다. 윤 대통령 부부의 잦은 외유에 대한 비난 여론에 최근 명품 가방 수수로 얼굴을 못 내미는 김 여사의 동행 여부가 다시 구설에 오르면, 총선에서 여당에 악영향을 미칠까 봐 아예 독일 방문을 취소했다는 것이다.

기자 생활 30년 이상을 하면서, 그런 이유로 국빈 정상외교가 취소된 사례가 있었던가?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정상외교를 가는 비행기에서 술에 취해 정상회담이 취소된 사례에 비견될 만하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불철주야하는 대통령이 설마 그런 이유 때문에 국빈 정상외교에서 급빠꾸했다고 나는 믿을 수가 없다. 나는 정말 그렇게 믿고 싶다!

정의길 | 선임기자 | 한겨레 2024.02.26.

 

이재명 사퇴 권한 '경향' 칼럼... 2009년 4월 글과 너무 닮았다

잔인하고, 공정하지도 않은 '이대근 칼럼'을 읽고

이대근(우석대 교수)이 돌아왔다. 2006<경향신문> 정치·국제에디터일 때부터 지금까지 200개가 넘는 칼럼을 썼고, <경향신문>의 편집국장까지 지낸 대표적인 논객이 이대근이다.

2019년 연말에 <세상에 속지 않는 법>이라는 칼럼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경향신문>을 떠나 있었는데, 올해 1월부터 우석대학교 교수 직함을 달고 외부필진 자격으로 <경향신문>에 칼럼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이대근의 이름은 잊을 수가 없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한 달여 전인 2009416일에 나온 <굿바이 노무현>이라는 칼럼의 충격 때문이다.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집권한 그는 민주화 운동의 인적·정신적 자원을 다 소진했다. 민주화 운동의 원로부터 386까지 모조리 발언권을 잃었다. 그를 위해 일한 지식인들은 신뢰와 평판을 잃었다. 민주주의든 진보든 개혁이든 노무현이 함부로 쓰다 버리는 바람에 그런 것들은 이제 흘러간 유행가처럼 되었다. 낡고 따분하고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 이름으로는 다시 시민들의 열정을 불러 모을 수가 없게 되었다. 노무현이 다 태워버린 재 속에는 불씨조차 남은 게 없다. 노무현 정권의 재앙은 5년의 실패를 넘는다. 다음 5년은 물론, 또 다음 5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당선은 재앙의 시작이었다고 해야 옳다. 이제 그가 역사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이 뿌린 환멸의 씨앗을 모두 거두어 장엄한 낙조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2009416일 자 <경향신문> 이대근 칼럼 '굿바이 노무현' 경향신문 PDF

벌써 15년 가까이 지난 글이건만, 옮겨 적는 손가락이 조금씩 떨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 칼럼을 노무현이 읽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 달 후 노무현은 그의 말대로 "장엄한 낙조 속으로" 사라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부터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615, 이대근은 노무현을 소환하는 또 다른 칼럼을 썼다. <노무현의 마지막 선물>

이제 누가 노무현을 죽였는지 더 이상 묻지 말자. 민주주의를 살려내려는 우리의 열정 또한 그를 죽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대의 역설이자 당대의 비극이다. 그러나 그 역설은 그의 심장의 고동이 멈추는 순간 희망의 싹이 자라면서 끝났다. 죽음으로써 그는 서민의 벗으로 돌아왔고, 500만명의 노무현으로 부활했다. 그리고 전차에 치인 듯 비틀거리던 야당을 일으켜세우고, 시민들을 각성시키고, 정치적으로 무장하게 했다. 위대한 노무현 정신의 재현이다.

그의 죽음이 "비틀거리던 야당을 일으켜세우고, 시민들을 각성시키고, 정치적으로 무장하게"해서 "위대한 노무현 정신의 재현"이 이뤄졌다는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는 펜으로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고 감으로써 "위대한 노무현 정신의 재현"을 이루게 한 의인이 되는 셈이다. 노무현의 죽음을 슬퍼하는 나는 이때 이후로 이대근을 잊지 못한다.

돌아온 이대근의 칼럼

116일 자 <경향신문> 이대근 칼럼 '나쁜 정치' 경향신문 PDF

그런 그가 4년의 침묵을 깨고 처음 쓴 칼럼의 제목은 <나쁜 정치>(1/16). 그가 말하는 나쁜 정치란 무엇일까?

한동훈은 한국 정치에서 하나의 사건이다. 대통령의 젊은 측근이 어느 날 갑자기 집권당 대표이자 전권을 쥔 총선 사령탑이 되더니, 금세 유망한 정치 지도자로 부상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벌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 선두 경쟁을 한다. 윤석열 대통령 말에 시큰둥하던 사람들도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주목한다. 집권당 의원, 당원, 지지자들은 이 정치 신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기꺼이 그의 지도를 받아들인다.

정치 경험 없는 인물의 대선 직행은 실패한다는 불문율을 깬 윤 대통령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후배 검사를 통해 대선에 이은 또 다른 승리를 손에 쥐려는 꿈이다. '윤석열 성공 모델', 재현될지 모른다. 한국 정치의 오랜 관행과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한동훈은 윤 대통령이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다. 하나는 보수층이 강조하는, '똑똑하다' '젊다'라는 긍정적 특성이다. 보수층은 그런 장점이 윤 대통령 단점을 보완해주리라 기대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칭찬 일색이다. 그럼에도 분명 다른 할 말이 있을 거라 여기며 참고 읽었다.

윤 대통령과 달리, 한동훈은 나름대로 정치 감각도 있고, 정치적 제스처에도 능하다. 그러나 지지자와 사진 찍기, 재래시장에서 떡볶이 먹기, 1992 맨투맨 티셔츠 입기는 정치 흉내다. 정부 실정 외면, 야당 조롱도 정치가 아니다. 그게 정치라면 나쁜 정치다.

이대근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한동훈은 정치적 양극화 현상에 의한 정치팬덤의 지지를 받고 있을 뿐, 제대로 된 정치를 하지 않고 있다. "다양한 이해와 의견을 조정하고 타협하며 합의를 만드는 게 정치", 한동훈은 정치하는 척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정치를 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노무현을 벼랑 끝으로 내몰던 이대근의 펜 끝이 이렇게까지 무뎌질 수 있을까. 앞부분만 읽은 독자라면 이대근이 한동훈을 찬양하는 칼럼을 썼다면서 공유할 수도 있겠다 싶다.

이대근이 복귀 후 두 번째로 내놓은 칼럼의 제목은 <명품백, 선거제, 그리고 리더십>(2/6)이다. 그는 두 명의 지도자를 나란히 세운다. 바로 연동형 선거제 공약을 지키지 않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에 대해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 윤석열 대통령이다.

멋진 무언가를 덜컥 받은 일로 궁지에 몰린 두 지도자,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걸 왜 자꾸 사오세요" 하고 빈말로 끝냈다 해도 나중에 돌려주라고 했으면 하고 후회할 것이다. 대선 때 참모들이 제안한 '비례 확대(연동형) 선거제' 공약을 받지 않았더라면, 받아도 "평생 꿈"이라거나 "내가 대통령 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라는 따위의, 마음에도 없고 물리기도 어려운 말을 함부로 해서 여지를 없애버리지만 않았더라면 하고 자책할 것이다.

명품백 받은 사실이 드러나고,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 철석같던 연동형 선거제 약속을 뒤집어 여론이 악화됐을 때 뭔가를 해야 했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 즉각 잘못을 인정하고, 수습해야 했다.

대통령 부인이 고액의 선물을 받은, '불법행위' 논란이 있는 명품백 사건과 야당 대표의 공약 철회가 어떻게 같은 잣대로 비판해야 할 잘못인지 난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대근은 끝까지 그 둘을 비교하면서 싸잡아 비판한다. 그러면서 두 지도자 모두 리더십이 부족하다고 마무리한다.

한동훈·윤석열에겐 무뎠던 펜 끝, 이재명에겐

27일 자 <경향신문> 이대근 칼럼 '이재명 사퇴를 권함' 경향신문 PDF

이대근의 지난 칼럼을 길게 소개한 건 지난 27일 자 칼럼 <이재명 사퇴를 권함> 때문이다.

이재명은 민주당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정당 지도자로서 부적격이다.

첫 문장부터 거침이 없다.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한다.

그는 경기도지사에서 당내 대선 경선 참여자로, 대선 후보자로, 대선 패배자로, 당대표로 자신의 지위가 변할 때마다 다른 사람이 되었다. 특히 자기 정체성이었던 기본소득을 포기한 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선거제를 약속하고, 그걸 뒤집고, 뒤집은 걸 다시 뒤집었다.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을 하고는 포기를 포기했다가 이런 변심을 지지하지 않은 동료 의원을 공천 과정에서 보복했다. 전당대회 연설에서 '당대표 경쟁 후보가 공천을 걱정하지 않는 당'을 만들겠다고 다짐하고는 '공천 때 복수하는 당'으로 만들었다.

모든 문장이 일관되게 이재명은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그의 칼럼을 있는 그대로 다 옮길 수는 없는 법. 이대근 칼럼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아래 몇 문장만으로도 충분하다.

그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일관성이 있다면, 자기애뿐이다. 이재명은 자기 외 누구도 믿지 않고,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

그의 역량은 실망스럽다. 당 파괴가 이재명의 선거전략인가?

이대근은 이재명이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며 다음과 같은 말로 칼럼을 마무리 짓는다.

이재명은 문제 자체이지 해결책이 아니다. 이미 물 건너갔다고 체념하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그 일이 일어나야 한다.

이 문장을 15년 전 그가 쓴 칼럼 <굿바이 노무현>의 마지막 문장과 비교해 보라.

노무현 당선은 재앙의 시작이었다고 해야 옳다. 이제 그가 역사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이 뿌린 환멸의 씨앗을 모두 거두어 장엄한 낙조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소름 끼치도록 닮지 않았는가? 한동훈과 윤석열에겐 무뎠던 이대근의 펜 끝이 이재명의 목에는 칼이 되어 꽂히는 모양새다. 잔인하다. 공정하지도 않고.

2019, 이대근이 4년을 쉬기 전 마지막으로 썼던 칼럼 <세상에 속지 않는 법>에 있는 한 문장을 이대근에게 되돌려주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세상은 옳은 것과 그른 것으로 구성된 대립물이 아니라 조금씩 맞고 틀린 것들이 어지럽게 뒤섞인 덩어리다. 하나의 진실이 있다고 믿는 건 맹목이며, 그걸 강요하는 건 폭력이다."

이봉렬(solneum) | 오마이뉴스 2024.02.28.

 

지속 가능하지 않은 되먹임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얘기다. 세속의 재산 얘기일 리는 없지만,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진다는 부익부 빈익빈이 떠오른다. 예금액이 많은 사람은 금융소득이 더해져 예금이 점점 늘고, 이자를 내지 못하면 채무자의 채무는 점점 늘어난다. 늘어나면 늘어났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다음에는 더 늘고, 줄어들면 줄어들었다는 이유 때문에 다음에는 더 주는 현상이 우리 주변에 많다. 양의 되먹임 혹은 늘어나는 되먹임이라 부르는 효과다.

감염병의 확산도 늘어나는 되먹임을 보여준다. 한 사람이 매일 주변의 한 사람을 감염시킨다면, 첫날 한 명의 감염자는 이튿날에는 두 명이 된다. 이렇게 두 명으로 늘어난 감염자는 또 하루 안에 각각 한 명씩을 감염시키니, 사흘째 되는 날에는 감염자가 네 명이 되고, 나흘이 되면 여덟 명이 된다. 늘면 더 늘어나고 그래서 다음에는 더 늘어나는 전형적인 늘어나는 되먹임 효과다. 한편 방역 당국과 모두의 노력으로 감염의 확산을 잘 막아내면 내일은 오늘보다 감염자가 줄고, 감염자가 줄어들어 신규 감염자도 줄면 모레의 감염자는 더 줄어든다. 이것도 늘어나는 되먹임이다. 늘어나는 되먹임은 항상 늘어나기만 한다는 뜻이 아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늘면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고 바다에서 방출되는 이산화탄소가 늘어나는 것은 늘어나는 되먹임이다. 모두의 노력으로 이산화탄소 농도를 크게 줄이면 마찬가지의 늘어나는 되먹임 효과로 지구 기온 상승을 멈출 수 있다. 늘면 늘고 줄면 주는 것이 늘어나는 되먹임이다.

늘면 줄고 줄면 느는, 거꾸로 작용하는 것이 줄어드는 되먹임이다. 집에서 이용하는 온도 조절기가 대표적이다. 설정해놓은 기준보다 온도가 오르면 조절기는 난방 장치의 작동을 멈춰서 이후에는 집의 온도가 내려가고, 온도가 낮아지면 난방 장치를 가동해 온도가 오르게 된다. 주식시장 주가의 움직임도 폭락과 폭등이 없는 평상시에는 줄어드는 되먹임 효과를 보여준다. 주가가 오르면 수익을 현금화하려는 사람이 늘어 매도 주문이 많아져 주가가 내려가고, 주가가 내려가면 낮은 가격에 매수하려는 사람이 늘어 거꾸로 주가가 오른다.

줄어드는 되먹임 효과의 끝판왕은 생명이다. 우리 몸은 체온이 오르면 땀을 흘려 체온을 내린다. 액체인 물이 기체인 수증기로 기화하면 많은 에너지를 빼앗아 주변 온도를 내리는 것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겨울날 기온이 내려가면 피부 모공 주변 근육이 수축해 닭살이 되면서 많은 털이 일렬로 똑바로 선다. 누워있던 털을 세우면 피부 주변 공기층이 두꺼워진다. 물은 기화열이 상당히 큰 물질이라는 것과 공기는 뛰어난 열의 부도체라는 물리학의 현상을 이용해 우리 몸은 줄어드는 되먹임으로 일정한 체온을 유지한다. 혈액 속 당분의 양이 늘면 인슐린을 분비해 혈당을 줄이고, 혈당이 줄면 글루카곤을 분비해 다시 혈당을 늘린다. 여러 종류의 경이로운 줄어드는 되먹임이 생명이 보여주는 놀라운 항상성의 작동 원리다.

자연은 대개 늘어나는 되먹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인위적인 개입이 없다면, 자연은 늘면 줄이고 줄면 늘려 결국 평형상태에 도달한다. 가진 에너지가 많아 온도가 높은 쪽은 가진 것이 적어 온도가 낮은 쪽에 에너지를 전달하고, 담긴 물의 높이가 다른 물통을 나란히 연결하면 수위가 높은 쪽 물이 낮은 쪽으로 이동해 양쪽의 수위가 같아진다. 가만히 두면 자연은 결국 모든 곳이 균일한 평형상태에 도달한다.

물리학의 평형상태를 보면서 사회를 떠올린다. 가진 자가 더 가지고,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지고 있는 작은 것마저 빼앗기는 늘어나는 되먹임은 영원히 계속될 수 없다. 심지어 만약 x의 증가 속도가 xa제곱(a>1)에 비례하면 x는 유한한 시간에 무한대에 도달해 발산하는 특이점이 도래한다. 간단한 미적분으로 보일 수 있는 명확한 수학적 진실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가 점점 가속해 늘어나기만 하는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지구의 기후도 마찬가지다. 우리 인간이 지속 가능한 환경에서 살아가려면 현재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늘어나는 되먹임을 멈추어야 한다. 늘면 더 늘고 그래서 또 더 늘어난다. 해결을 미래로 미룰수록 해결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아쉽게도 어제 미처 호미로 막지 못했다면 오늘은 그래도 가래로 막을 수 있다. 내일로 미루면 가래로도 못 막는다. 바로 지금이 해결의 적기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 경향 2024.02.28.

 

경제운용은 보수가 낫다는 말, 이젠 헛소리

목련이 피는 봄이 오면, 김포는 서울이 될 수 있을 겁니다.”

23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김포시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울이 될 것이라고 단정해 말하지는 않았지만,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빠져나갈 구멍을 크게 만들지도 않았다. 요컨대, ‘410일 총선거에서 여러분이 국민의힘 후보를 뽑아 과반 의석을 만들어주면 특별법을 통과시켜 김포시를 서울시에 편입하겠다는 뜻으로 나는 읽었다.

주민투표를 거치고, 경기도와 서울시 의회의 동의를 얻어 김포시를 서울시에 편입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경기도민이나 서울시민 60% 이상이 반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얻으면 이를 우회해 특별법으로 서울 편입을 밀어붙이기는 할까? 나는 안 할 것이라고 본다. 선거가 끝난 판에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아가며 추진할 만큼 실익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국민의힘이 과반 의석을 못 얻어야, ‘목련꽃이 질 때 한동훈 위원장이 사기꾼 소리를 듣는 것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총선 전략으로 사람들의 가슴에 부동산 개발 이익 기대심리를 부풀리고 있다. 지난해 1030일 김포시 서울 편입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뒤, 다른 서울 주변 도시의 서울 편입도 입에 올렸다. 한동훈 위원장은 김포 방문 전날 구리시를 찾아 서울 편입을 신속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요란하게 북을 치며 그 뒤를 따라간다. 25일에는 2기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추진계획을 밝혔고, 21일에는 원칙적으로 개발이 불가능하던 환경평가 1~2등급지까지 포함해 비수도권 그린벨트를 적극 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26일엔 여의도 면적 117배에 이르는 339에 대해 군사보호구역 지정을 해제한다고 밝혔다.

부동산에는 마약 같은 성분이 들어 있다. 문학평론가 고 김현이 19789뿌리깊은 나무에 쓴 글의 한 구절이 다시 떠오른다. “아파트값이 움직이는 시기에는 모든 아파트 주민이 소다를 잔뜩 넣은 밀가루 빵처럼 부풀어 오른다. 아파트 단지는 사람을 적당히 미치게 하는 데에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20084월 총선 때 서울 각지에서 뉴타운 지정을 공약해 큰 재미를 본 적이 있다. 나중에 큰 후유증을 남겼지만, 서울에서 48석 가운데 40석을 쓸어담으며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정부와 국민의힘 지도부는 그 추억을 잊지 못하는 것 같다. 이번에도 사람들의 가슴에 바람이 들고, 표가 움직일까? 기대를 갖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이 들썩거리는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주택 시장 흐름이 좋지 않고, 폭증한 가계부채와 고금리 탓에 사람들이 거꾸로 마음을 졸이고 있어서 그럴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슬프다고 한 것은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정부와 여당의 정책 능력이 이런 수준밖에 안 되는가 하는 점 때문이다. 2기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그린벨트 해제, 군사보호구역 해제 방침은 모두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이른바 민생토론회에서 발표됐다. 그게 당면한 민생 현실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부동산 개발로 경기를 살리고, 그 혜택이 서민들에게도 돌아가게 하겠다는 말이라면 얼마나 케케묵은 발상인가.

지난해 한국 경제는 1.4% 성장에 그쳤다. 소비자물가는 3.6%나 올랐다. 지난해 1~11, 상용근로자 1인 이상 사업체의 1인당 월평균 실질임금은 2022년에 견줘 0.9% 줄었다. 가계 신용대출이 크게 줄었으나 주택담보대출이 45조원이나 늘어나면서 전체 가계대출이 10조원 증가했고, 연체율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 개인회생 신청 건수가 121017건으로 2022년보다 34.5% 늘어나 2014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았다. 그러나 민생을 챙기는 일에 정부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세수가 564천억원이나 덜 걷혀서, 국회 승인을 받아 쓰기로 했던 돈조차 못 썼기 때문이다.

올해는 뭐가 좀 나아질까? 한국은행은 지난 22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1%로 제시하면서, 민간소비 증가율은 1.6%에 그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11.9% 전망에서 크게 낮췄다. 민생 형편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인데, 정부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 , 주식을 가진 사람들의 가슴에 바람을 불어넣는 일에만 무진장 애를 쓰고 있다. 슬픈 일이다.

정남구ㅣ논설위원 | 한겨레 2024.02.29.

 

파국을 막기 위한 시공간적 경로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던 한국 의료 시스템의 어떤 요소가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 다가오는 것만 같다.” 한 선배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쓴 문장이다. 저 문장에 내가 느끼고 있는 불편함과 혼란, 그리고 불안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저 문장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의대에 입학한 뒤 한 선배가 우리 대학병원은 망할 거 같은데 뭐 하러 입학을 했냐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했다. 대학교의 부속병원이 아닌 기업의 총수나 기업이 만든 재단의 자본으로 대형 병원이 개원하고 증축을 하던 시기였다. 작은 병원들은 다 망할 거 같다고 했다. 이후 수십년간 대학병원들도 분원을 짓고, 병원을 크게 신축했다. 병원들은 여전히 병원을 짓고 있고 이제는 실버타운까지 포함한 의료복합타운을 만들고 있다.

고난도의 수술을 위해서는 실력 좋은 의사 이외에, 실력 있는 전문가들이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 규모의 경제라고나 할까, 환자 수가 어느 정도 이상이 되어야 그런 수술팀을 운영할 수 있는 게 사실이다. 지역에는 그런 병원도, 수술을 도와줄 전문가도 없었다. 훌륭한 의사가 혼자 사명감을 가지고 지역으로 간다고 해서 그런 수술을 하고, 수술 후 처치를 하고, 환자를 돌볼 수는 없다.그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지금, 학교에서는 한번도 배운 적 없는 낯선 이름의 주사와 수액 이름이 동네 의원에 붙어 있는 게 당연해졌다. 한국은 실손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고, 전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으면서 고령화 속도는 가장 빠른 나라가 되었다. 의료의 전문성이 점점 고도화되면서, 한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다른 분야 전문의 여러명이 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만큼 이전보다 훨씬 긴 교육과 훈련의 기간이 필요해졌다. 기술이 발전하면 투입되는 노동력이 줄어드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노동집약적인 보건의료 영역에선 서비스가 필요한 환자가 갈수록 많아지고, 습득해야 하는 기술이나 지식도 늘고 다양해지면서 당연히 의사는 더 필요해졌다. 의사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관련 전문가들도 더 필요해졌다.

수도권과 지역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서울에서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아이가 사망하는 일이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가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매년 100만명의 암 환자들이 서울의 5 병원으로 몰린다고 한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의료개혁이 필요하다고 했고, 현 의대 정원의 65%가 넘는 2천명 증원을 핵심으로 꼽았다.

의료 체계를 구성하는 핵심적 자원인 의사의 규모와 분포 모두 당면한 과제이고 정부가 핵심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정책이다. 그런데 지역 격차나 생명을 촌각으로 다루는 바이털 의사 부족 문제는 의사의 절대적인 수보다 분포가 중요할 수 있다. 의사의 공간적 분포뿐만이 아니다. 이송체계 등을 고려한 시간적 분포 역시 중요한 요소다. 반면 인구구조와 국민들의 보건의료에 대한 요구 변화에 따른 의료산업 및 기술 발전은, 분포보다는 절대적 숫자가 중요한 정책일 수 있다. 그런데 분포에 대한 정책의 구체성은 확실하지 않은 반면, 규모에 대한 정책은 매우 즉각적이고 단호했다. 규모 자체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그 정책이 초래할 결과와 파장의 불확실성은 매우 크다. 교육할 수 있는 여건이나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충분히 고려한 것 같지도 않았다.

역사 속 몇가지 우연과 많은 이들의 헌신, 희생 속에서 유지하고 있던 것이 한국의 보건의료체계다. 세계 최고라고 불리는 보편적 의료 보장의 나라 한국은 어찌 보면 이런 우연과 헌신이 만들어낸 가느다란 줄에 매달려 있는 상황일 수 있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나가자 수술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바이털을 꿈꾸며 대학에 입학했던 학생들도 수련을 포기하고 의대 교수들이 대학을 그만두기 시작한 것도 오래된 일이다. 국가적 재난 상황이라는 지금 보건의료체계를 지탱해야 한다는 사명을 부여받은 공공의료기관은 전체 병상의 8.8%에 그칠 뿐이다. 공교롭게도 정책이 발표된 뒤 보험회사의 주가는 급등했다. 이런 일들이 그저 우연이길 바란다. 파국을 의미하는 전조가 아니길 바란다. 이루고자 하는 결과가 같음을 확인하고 최선의 시공간적 경로를 찾아야 한다.

김인아한양대 교수(직업환경의학)| 한겨레 2024.02.29.

 

선거 공약 예산 낭비 막으려면

자유주의 경제학의 대부인 밀턴 프리드먼 교수는 돈 쓰는 방식을, 누구의 돈인가와 누구를 위해 쓰는가의 조합에 따라 4가지로 구분했다. 내 돈을 날 위해 쓰는 경우, 내 돈을 남 위해 쓰는 경우, 남의 돈을 날 위해 쓰는 경우, 남의 돈을 남 위해 쓰는 경우이다. 넷 중 어떤 경우가 가장 낭비가 심하겠는가.

내 돈을 날 위해 쓸 때, 가령 내가 쓸 물건을 내가 살 때는 꼼꼼히 가격과 품질을 따져보고 가장 큰 효용(만족)을 얻도록 가성비 최고인 것을 선택한다. 내 돈을 남 위해 쓸 때, 가령 회사 동료의 생일 선물을 살 때는 품질도 신경 쓰겠지만 우선은 가격을 더 따진다. 남의 돈을 날 위해 쓸 때, 가령 회사 법인카드로 식사할 땐 일단 한도까지 쓰고 보되 가장 맛있고 좋은 것을 사 먹으려 한다. 마지막으로 남의 돈을 남 위해 쓸 때는, 비록 일상에서 예를 찾기는 어렵지만, 자기가 책임질 필요가 없다면 비용에도 그다지 신경 안 쓸 것이고 품질도 크게 개의치 않을 것이다.

정리하면 내 돈 나에게면 비용과 편익을 모두 꼼꼼히 따지고 남의 돈 나에게면 편익을 꼼꼼히 따지며 내 돈 남에게면 비용을 꼼꼼히 따지지만, ‘남의 돈 남에게면 비용과 편익 모두 관심 밖이라는 얘기다. 당연히 남의 돈 남에게가 가장 낭비가 심한데, 이게 바로 정부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지나치게 단순화한 감은 있으나 정부 비효율의 본질을 제대로 짚었다.

어떻게 하면 남의 돈을 남 위해 쓰더라도 내 돈을 날 위해 쓰듯 할 수 있을까. 이게 행정학자들이 노상 연구하는 주제다. 솔직히는 내 돈 날 위해는 고사하고 남의 돈 날 위해 쓰는 것만큼이라도 되게 하는 게 목표다.

각종 SOC 사업 예타 면제 남발

행정엔 비록 남의 돈 남에게 쓰는 상황이지만 비용과 편익을 강제로 따지게 하는 장치가 제법 있다. 대표적인 게 예비타당성조사다. 국가재정법 규정에 따라 정부 돈이 300억원 이상 투입되는 사업은 의무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예타의 핵심은 비용편익분석이다.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과 얻는 편익이 얼마씩인지를 따지는 것이다. 비용보다 편익이 클 때 사업을 하는 게 원칙이지만, 때론 편익이 비용에 못 미쳐도 차이가 너무 크지 않으면 통과된다.

예타를 거친 사업은 최소한의 효율성이 보장될까? 그렇지는 않다. 통과한 사업 중에도 엄청난 예산 낭비 사업이 꽤 많다. 편익을 제대로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령 A지역과 B지역을 잇는 전철 노선을 건설한다고 하자. 이 사업의 편익은 어떻게 계산할까? 편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향후 이 전철을 몇명이나 이용하고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수입이 얼마인가일 것이다. 비록 전문가가 추정한다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라 정확할 수는 없다. 어떤 가정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상당히 달라진다. 그래서 갑의 입장인 지자체장이나 유력 정치인이 요구하면, 설령 대놓고 요구하지 않더라도, 을의 처지인 전문가는 갑이 만족하도록 부풀린 편익을 내놓기 십상이다(어차피 남의 돈으로 하는 남 위한 일 아닌가!).

얼마 전 용인경전철 손해배상 청구 주민소송에서 법원은 사업을 추진했던 용인시장과 수요 예측을 잘못한 한국교통연구원에 200억원 이상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막상 전철을 개통해보니 수요는 교통연구원이 추정한 수치의 10%에도 못 미쳤다. 용인시장은 마땅히 거쳐야 할 절차를 생략하며 사업을 밀어붙였다. 그동안은 뻥튀기 수요 예측과 무리한 사업 추진의 책임을 물을 수 없었으나, 이제 법원 판결로 제동이 걸렸다. 긍정적인 변화다.

엉터리 수요 예측을 방지해 예타의 신뢰성을 높이면 예산 낭비 사업을 막을 수 있을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예타를 아예 건너뛰는 방법도 있기 때문이다. 국가재정법엔 예타를 면제할 수 있는 규정이 있다. 원래는 불가피한 경우에 제한적으로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이현령비현령식으로 남용되고 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도 광주와 대구를 연결하는 달빛철도, 대구·경북(TK) 신공항, 가덕도 신공항 등이 예타 면제를 받았으며, 그 밖에도 각종 사회간접자본(SOC) 사업들이 줄줄이 예타 면제를 기다리고 있다.

선거 공약은 남의 돈 남에게끝판왕이다. 남의 돈을 남 위해 더 많이 쓰겠다고 생색낼수록 표 얻는 데 도움 되니 주저할 이유가 없다. 그 결과는? 그냥 질러본 공약(空約)에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다. 진짜 실행돼 엄청난 예산이 낭비되고, 두고두고 골칫거리 된 사례가 어디 한두 건인가.

비용 선명할 땐 헛공약 사라질 것

어찌하면 무리한 공약으로 인한 예산 낭비와 지키지 못할 공약(空約) 남발을 최소화할까. 사업 공약이 정치인들에게는 남의 돈을 남에게 쓰는 것이지만 국민 혹은 유권자 입장으로는 우리 돈을 우리에게쓰는 것이다. 그러니 실상을 알면 내 돈만큼은 아니라도 남의 돈보다는 관심을 갖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사탕발림 혜택뿐만 아니라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을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알려야 한다. 네덜란드의 경우 우리로 치면 국회예산정책처에서 각 당이 내놓은 공약 이행에 들어가는 비용을 추계해서 발표한다. 유권자들은 편익뿐만 아니라 비용(세금)도 고려하니 한결 신중해진다. 정당들도 일단 질러보는 공약은 결코 내놓지 못한다.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공론화 과정이 성공하려면

우리도 10여년 전 비슷한 시도를 했다. 기획재정부가 총선 복지 공약의 비용을 추계했는데, 정치권은 반발했고 이를 의식한 선관위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위반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복지만 콕 집고 행정부가 주도한 점은 부적절했으나 공약 비용 추계 자체는 필요했다. 낭비성 공약이 점입가경인 지금은 더욱 그렇다. 선거 공약 비용 추계는 국회예산정책처가 맡는 게 맞다. 중립성이 우려되면 각 당이 다시 검증하면 된다.

비용이 선명하게 드러나면 공약 남발은 사라질 것이다. 글쎄, 큰 정부를 지향하는 정당은 더 많은 예산과 더 큰 사업을,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정당은 그 반대를 택할까? 아니면 정당 간에 총액을 맞출 수도, 가령 총사업 비용이 50조원 정도가 되게 하자고 합의를 볼 수 있다. 어느 경우든 지금보다 좋은 공약이 개발되고 예산 낭비는 줄 것이며, 유권자들도 정책을 보고 선택하는 경향이 늘어날 것이다. 윈윈이니 나 같으면 당장 하자 할 것 같은데, 정치권은 어떨까?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 | 경향 2024.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