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 영토 평정”…최악 수준으로 완성된 ‘공포의 균형’
2024년 남북관계
남북·북미 정상회담 실패 뒤
제재 뚫고 경제성장 자신감
한미동맹 ‘선제타격’ 추구 대응
“설마 핵 공격?” 의구심 털어내
북한이 지난달 26일부터 31일까지 개최한 연말 노동장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조선’은 왜 이러는 것일까? 이미 여러 조짐들이 있었지만 지난해 말에 나온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들은 가히 ‘핵폭탄’급이었다. 12월 말에 개회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김 위원장은 남북관계가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한 데 이어 “남조선 영토를 평정하겠다”고까지 선언했다. 한국을 화해와 통일의 상대로 본 것을 “착오”로 규정하며 남북관계는 동족 관계가 아니라고 부인하기도 했다.
이제 북은 남북관계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은 것일까? 한반도는 더 이상 ‘민족 분단’이 아니라 ‘두개의 국가’가 전쟁을 벌이는 상태로 전환되는 것일까? 점증하는 한반도 위기의 본질은 무엇이고 해결책은 있는 것일까?
북, 제재 중에도 꾸준히 곡물 증산
대부분의 국내 언론은 김정은의 발언 중 대미관계와 대남관계 부분을 부각시켰지만 그의 중앙위원회 보고 중 상당 부분은 사실 경제 부문에 치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경제계획의 목표를 100% 이상 달성했다는 지표들로 가득했고 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경제발전계획을 달성하겠다는 의지로 충만했다. 제7차 당대회에서 내건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2016~2020)’에 대해 “목표들이 심히 미진되고 인민생활 향상에서 뚜렷한 진전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던 것과 대비된다.
북은 2021년 1월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경제발전 5개년 계획(2021~2025)을 채택했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경제 부문의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결렬된 이후였다. 오히려 강화되는 경제제재로 한국 및 서구권과의 경제 교류는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코로나로 촉발된 보건위기를 이유로 2020년 1월 스스로 국경을 폐쇄한 이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표된 5개년 계획은 대외 교류와 지원에 일절 의존하지 않고 자립으로 경제를 재건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현재 북은 국내총생산이 2020년 대비 1.4배 성장했다고 발표했다. 이 수치가 사실이라면 지난 3년 동안 연평균 12%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수치는 현재 외부에서 검증이 불가능하다. 북은 국내총생산의 1.4배 성장을 주장하면서도 공작기계가 5.1배 성장했다는 등 일부 부문의 수치만을 공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질소비료 생산량이 1.4배 성장했다는 등 공개된 부문의 수치도 현재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렇지만 동원할 수 있는 외부 자료가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와 세계식량계획이 1990년대 말부터 거의 매년 발표한 북한의 곡물 및 식량에 대한 보고서가 그중의 하나다. 이 보고서에도 한계가 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추세를 볼 수 있다. 1990년대 말 310만t 정도의 식량을 생산했지만, 2010년까지의 10년간 연평균 생산량이 480만t이었고, 2021년까지의 10년 기간에는 570만t이었다. 다시 말해 북은 21세기 들어 10년마다 곡물생산량을 100만t씩 늘리고 있었던 것이다.
남북관계가 완전하게 끊겨서 비료가 들어가지 않은 지 오래됐고, 국경을 닫아 중국에서도 원자재가 들어가지 않았던 2021년, 그리고 그 이후에 곡물 생산을 늘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 밑바닥에는 1990년대 말부터 조용하지만 꾸준하게 진행되어왔던 농법 개혁과 산업 개혁이 있다. 원료와 연료, 생산시설 모두에서 과학적인 ‘주체화’를 추진한 것이 나름대로의 성과를 낸 것이라고 보지 않고서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2019년 도널드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에서 경제제재의 일부라도 풀어달라고 했던 ‘굴욕적 요청’마저 거절을 당하자 북은 아예 국가 전략노선을 수정한 것이었다. 더 이상 제재의 해제에 목매지 않고, 한국은 물론 중국이나 러시아에도 의존하지 않는 자립경제를 구축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제 그 성과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교전국·무력충돌 기정사실화”
경제는 국경을 걸어 잠근 채 개발할 수 있지만 안보 위협은 잠근 국경 너머에서도 들어온다. 국경 폐쇄로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과 한국, 일본의 움직임에 눈을 기울여야 하고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 군사력에 있어서 절대적 우위를 누리고 있는 한-미 동맹을 상대해야 하고, 이제는 한·미·일 삼각동맹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게다가 한·미·일 삼국은 미사일 방어를 강화하는 동시에 선제타격 능력을 배양하고 있다. ‘맞춤형 억제’ 전략으로 정권 제거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도 위기의식을 높인다.
그동안 북은 핵무기와 미사일을 이용한 핵억제 전략으로 한-미 동맹의 억제전략에 대응해왔다. 억제에 억제로 대응하여 ‘공포의 균형’을 이루면 어느 쪽도 상대를 공격할 수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미 동맹이 선제타격 능력을 추구하자 북은 아예 핵무기 선제사용 독트린을 공개했다. 2023년 한반도는 한·미와 북이 서로 상대를 선제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하며 이를 언제든 실행할 수 있다고 서로 위협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런 ‘공포의 균형’에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미국은 언제든지 북을 공격할 수 있지만, 북이 과연 한국을 향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북은 교전국이니 언제 무슨 무기를 사용해서 공격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지만 한국이 미국의 군사전략과 일체화되어 북의 핵기지나 전략본부를 선제타격한다면 북은 같은 민족을 핵무기로 공격할 수 있을까? 대화와 협력의 상대이고, 궁극적으로 평화통일의 상대인 대한민국을 핵무기로 파괴하는 것, 그렇게 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그동안 대화와 협력을 했던 한국 정부와 민간기구들에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 한 북의 핵 독트린에는 커다란 구멍이 남아 있게 된다. 지난해 말 김 위원장이 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선언한 핵심적 이유다. 이어 주요 군지휘관을 소집해 “무력충돌을 기정사실화하라”며 완벽한 군사적 대비 태세를 주문함으로써 한국 전 영토에 대한 공격에 주저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설마 북이 한국을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하겠냐는 질문은 이제 설 자리를 잃었다. 해서 한반도 ‘공포의 균형’은 최악의 수준에서 완성됐다. 북은 중국이나 러시아의 지원이나 압박에 개의치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동시에 미국은 물론 한국에 대한 핵위협도 가장 강력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신년사에서도 “올해 상반기까지 증강된 한·미 확장억제 체제를 완성해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을 원천 봉쇄할 것”이라며 “힘에 의한 진정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또다시 강조했다. 억제의 증강은 ‘공포의 균형’을 더욱 증강시킬 뿐이다.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프레시안
보도지침? '김건희 방탄'보다 '북풍' 택한 KBS와 보수신문
김건희 특검 거부권은 덮고 북풍은 띄우고... 민주당 향해 "정략적 꼼수" 비판
▲ KBS 9시 뉴스는 지난 5일 북한 포격 소식을 집중 보도했다.ⓒ KBS 갈무리
정말 '5공 시절'처럼 보도지침이 내려진 걸까. 대통령실이 지난 5일 김건희 특검법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대통령 가족 방탄' 논란이 불거졌지만, KBS와 보수 신문들의 보도는 오로지 '북한 도발'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대통령실의 김건희 특검법 거부와 관련된 보도는 비중은 크지 않았고 대부분 대통령실 입장 전달에만 주력했다.
지난 5일 <KBS 9시 뉴스>의 첫 꼭지는 '북한 포격'(북한, 오늘 오전 서해상 포사격 훈련…주민 긴급 대피)이었다. 이날 박장범 앵커의 첫 멘트는 "한반도의 평화 상태를 깨기 위한 북한의 도발 수위가 점차 대담해지고 있는데 오늘은 북한 군이 서해상에 200여 발의 포 사격을 실시했습니다"로 시작했다.
이날 <KBS 9시 뉴스>는 북한 도발과 관련해 군의 대응, 주민들 대피 상황, 북한의 노림수와 향후 도발 가능성 등을 상세 보도했다. 북한 관련 보도만 무려 5꼭지에 달했고, 북한과 러시아의 무기 거래 관련 보도도 추가적으로 이어지면서 '북한 위협'을 부각시켰다.
뒤늦게 등장한 김건희 특검(쌍특검) 거부권 행사 보도(윤 대통령 '쌍특검 법안' 재의요구권 행사…제2 부속실 설치 검토)는 철저하게 '대통령실' 입장 대변에 초점이 맞춰졌다.
보도는 '특검 법안의 목적은 총선용 여론 조작', '재의 요구는 헌법상 의무', '국민의 혈세가 민생과 무관한 곳에 낭비'라는 대통령실 입장과 함께 '제2부속실 설치 검토'라는 대통령실 계획까지 빠짐없이 전달했다. 관련 브리핑을 한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도 인터뷰 인용 형태로 두 차례나 기사에 등장했다. KBS는 여야 입장을 전달하는 보도(국회로 돌아온 '특검법' 놓고 여야 충돌…재표결은 언제?)를 끝으로 김건희 특검 거부권 행사와 관련된 뉴스를 매듭지었다.
<KBS 9시 뉴스>와 흡사한 보수신문 지면
▲ 조선일보 6일자 1면ⓒ 조선일보 갈무리
6일 보수신문의 지면도 KBS 9시 뉴스와 흡사했다. 이날 <조선일보> 1면은 '330만 가구, 건보로 30만원 덜낸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중앙에 배치하고, 우측면에 북한 도발(北, 200발 해안포 도발… 軍, 400발로 대응 포격) 기사를 실었다. 김건희 특검 거부권 행사(윤 대통령, 쌍특검법 거부권 행사) 관련 기사도 1면에 실리긴 헀지만, 앞선 2개 기사가 더 크게 배치됐다.
<중앙일보> 1면도 북한 도발(북, 서해 200발 포격...군, 두 배로 맞불 응징) 보도가 가장 크게 실렸다. 김건희 특검법 거부권 행사 보도(김건희 대장동특검법 윤 대통령 거부권 행사)도 1면에 있지만,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았고, 기사 내용도 '대통령실 입장' 전달에 초점이 맞춰졌다.
<중앙>은 김건희 특검 거부권 행사와 관련된 보도(여권 제2부속실 설치 준비...특검 민심 달랠지는 미지수)를 5면에도 배치했는데, 기사는 대통령실의 부속실 설치 검토와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역할론에 초점이 맞춰졌다.
중앙은 이 기사에서 대통령실 부속실과 특별감찰관 신설과 관련해 "한 위원장의 입장이 중요해졌다, 한 위원장이 장차 대통령실과 어떻게 조율해 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도 썼다. 이날 <중앙> 사설면에 '12층 김여사님'이라는 제목을 단 칼럼이 유달리 눈에 띄었는데, 김건희 여사가 아닌 새벽 출근하는 서민들의 이야기였다.
<동아일보> 1면 역시 북한도발(북, 서해 200발 포격도발...군 400발 응징) 보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김건희 특검 거부권 행사 소식은 1면 하단에 배치(대통령실, 제2부속실 설치 내주 착수...김건희 특검법 거부권 행사)했는데, 이 기사 역시 대통령실의 향후 계획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들 신문은 김건희 특검법 거부에 따른 수습책이 필요하다면서도, 민주당을 향해선 "노골적인 총선 전략"이라며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눈에 띄는 지점은 북한 도발을 1면에 대대적으로 다뤘던 <조선>과 <동아>가 김건희 특검법 거부와 관련된 사설을 최상단에 배치하고, 북한 도발 사설은 하단에 배치했다는 점이다. <중앙>은 아예 북한 도발과 관련된 사설을 싣지도 않았다.
<조선>은 이날 사설(한 위원장이 책임지고 특별감찰관 임명, 총선 후 특검 추진을)에서 "김 여사 특검법은 민주당의 노골적인 총선 전략"이라며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국민에게 비난을 받게 되기를 바랐을 것"이라고 썼다. 이어 "국민의힘이 먼저 나서야 한다, 지금 국민의힘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한동훈 비대위원장"이라며 "한 위원장이 민주당 상관없이 국민의힘 차원에서의 특별감찰관 추천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도 사설(반대 여론 무릅쓴 거부권, 민심 수습책 나와야")에서 민주당이 권한쟁의 심판 청구 추진하겠다는 사실을 두고, "반사 이익을 노려보려는 정략적 꼼수"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여당을 향해선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후속 대책을 내놔야 한다"며 "대통령실과 코드를 맞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에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걱정했다. 신상호(lkveritas) 오마이뉴스
‘윤석열 지각체크’ 서울의소리 기자 유튜브에 방심위 ‘접속차단’
8일 통신소위 열고 윤석열 출근길 관련 영상 37건 ‘시정요구’
대통령실 경호처 “대통령 동선 반복적 노출, 안보 심각한 위해”
야권 위원 “근무 태도 비판 내용… 공개된 도로 영상도 기밀인가”
윤석열 대통령의 출근길을 쫓으며 빈번한 ‘지각’을 비판한 서울의소리 기자 유튜브 채널 영상 37건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국가안보를 이유로 ‘접속차단’ 의결을 내렸다.
▲ 유튜브 '제이컴퍼니 정치시사' 윤석열 지각체크 영상. 유튜브 갈무리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는 8일 오후 통신심의소위원회(통신소위)를 열고 서울의소리 정병곤 기자가 운영하는 유튜브 ‘제이컴퍼니 정치시사’의 윤석열 대통령 출근길 관련 영상 37건에 접속차단 등 ‘시정요구’를 내렸다. 적용 법률은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7 제1항 제7호 ‘법령에 따라 분류된 비밀 등 국가기밀을 누설하는 내용의 정보’이다.
방통심의위 사무처에 따르면, 대통령 경호처는 “해당 영상들이 대통령 동선을 상시적 반복적으로 촬영하여 국내외 실시간 공개되고 있으며, 이동로의 구체적 위치, 경호 기업, 경호 수행 인원, 주요 일정 등에 대한 정보가 적국 또는 경호위해 세력에 공개될 경우 국가안전 보장에 심각한 위해로 적용될 수 있다”고 했다.
사무처는 “(경호처 심의 요청 사유처럼) 국가안전보장에 위해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는 시정 요구 측면과 대통령 차량 이동은 일반 국민이 쉽게 인지할 수 있는 내용으로 특정 지점을 지나고 있다는 사실이나 차량 행렬의 현재 위치 및 예상되는 목적지 등을 언급한 것으로 동선이 공개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대통령 일정 언급도 대통령실 홈페이지 공개 일정란에 게시되어 있는 내용으로 비밀 정보로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해당 없음 측면도 있다”고 했다.
사무처 보고를 받은 이후 여권 위원들 찬성으로 접속차단 결정이 나왔다. 김우석 위원(국민의힘 추천)은 “겉보기엔 별 게 아니라 해도 그것이 축적된 데이터라고 하면 효과는 배가 되고 그런 면에서 간과할 수 없다”며 “방치했을 때는 쌓여서 대기업이나 국가까지도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이라고 했다.
▲ 지난해 10월11일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통신심의소위원회 회의 모습. 사진=금준경 기자.
황성욱 위원(국민의힘 추천)도 “보통 작전장교한테도 대통령 동선은 직전에 하달이 된다”며 “대통령 정보뿐 아니라 국군 통수권자이기 때문에 군사기밀에도 해당이 되고 기록으로 공개돼서 남는 문제도 있다. 동선하고 일정이 공개되는 건 그 자체로 안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야권 위원은 ‘문제없음’ 의결을 내렸다. 윤성옥 위원(더불어민주당 추천)은 “대통령 근무 태도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전체 영상에서 대통령 행렬이라고 공개된 도로에서 언급하는 부분은 굉장히 짧게 등장한다”며 “(영상의 내용이) 국가 기밀인지도 저는 명확해 보이지 않는다. 1년여 전 올려진 콘텐츠도 있는데 이제 와서 대통령 동선이라 하면서 규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이걸 삭제 의결한다고 해서 이런 내용들을 유튜브에서 다 없앨 수가 없다. 게다가 이 영상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들이 상당 부분 많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오히려 삭제했을 때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며 “국내에선 못 봐도 해외에선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유튜브를 이런 방식으로 규제하면 앞으로 위원회가 조롱거리 될 수도 있다. URL 바꿔서 이런 게시물을 다시 올리면 다시 일일이 접속차단할 것인가. 세계적인 내용규제의 보편적 기준에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한국은 끝났다'는 호들갑... 윤 대통령은 어디로 가고 있나
[주장] '피크 코리아' 너머, '행복한 나라'로 나아가기 위한 제언
▲ KBS 신년경제기획 <피크코리아, 그 너머의 도전> 영상 캡처ⓒ KBS 다큐 유튜브
KBS1 TV에서 지난 4일 방영한 2024 신년경제기획 <다른 미래 3부 '피크 코리아, 그 너머의 도전'>을 우연히 시청하였다. 우연이라고 하는 건 요즘 TV를 거의 보지 않기 때문이다. 방송을 보면서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인 부분도 있었지만, 대체로 불편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로 했다.
방송 내용을 내 식대로 Q&A로 간단히 요약하면,
(1) Q(사회자): "우리 경제는 정말 정점을 찍었는가? 이른바 <피크코리아>가 맞나?"
A (패널): "맞다.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K-컬처로 대표되는 문화강국이 되었다. 일인당 국민소득은 구매력 기준으로 영국과 프랑스와 같고, 일본과 이탈리아를 넘었다. 그런데 이런 성장이 끝났다.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성장률이 낮아지고, 잠재성장률이 2% 이하로 떨어져, 골드만 삭스는 우리나라가 2050년에 경제규모에서 15위권 이하로 밀려나고(2010년 10위, 2023년 13위), 2075년에는 순위권에 들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2) Q: "그럼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을 겪을 것인가? 피크 그 너머 안 될까?"
A: "우리는 일본처럼 안 될 것이다. 과거 일본과는 달리 위기의식을 갖고 있고, 구조개혁을 하면 지금의 위기를 넘을 수 있다."
(3) Q: "구조개혁, 무엇을 어떻게?"
A: "핵심은 생산성 향상. 서비스업의 생산성을 높여야 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 교육개혁과 R&D 개혁을 해야 한다."
(4) Q: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위험인 저출산, 고령화, 인구감소는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A: "저출산(저출생)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 세계적으로 출산율이 하락하고 있지만, 세계 평균 2.3명, OECD 평균 1.58명에 비해 우리나라는 0.7명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지구상에 소멸 1위 국가가 될 것이라 한다. 인구가 줄면 경쟁이 약화되고 집 구하기도 쉬워지니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의견도 있지만, 이는 우리사회의 비대칭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구가 준다고 해도 지방인구가 주는 것이지 수도권 인구는 늘기 때문에 주택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인구감소는 노동력 감소와 생산성 하락으로 산업붕괴를 가져올 것이다."
(5) Q: "저출산, 인구감소의 원인은 무엇인가?"
A: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18세까지 키우는데 평균 3억6500만 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이런 말들을 들었다. "회사 끝나고 알바까지 해도 아이 양육비를 감당할 수 없다", "지방에는 먹이(일자리)가 없고, 서울은 둥지(집)가 없는데, 새들이 알을 낳겠느냐", "지금 버는 돈 안 쓰고 모아도 노인 돼서 가난한 확률이 높은데, 자식 낳아서 키울 생각을 어떻게 하겠는가?"
(6) Q: "해결책은 없나? 다른 나라의 사례는?"
A: "핀란드는 노키아(수출의 20% 담당) 몰락이후 대기업 노키아를 살린 것이 아니라, 100개의 작은 노키아로 일자리를 만들었다. 프랑스는 '라떼 아빠'란 말처럼 남성 육아를 의무화해서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을 80%로 올렸다. 네덜란드는 바세나르 협약(1982년)을 통해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고용을 안정시켰고, 특히 비정규직의 권리를 정규직과 같이 했다. 프랑스가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것은 80년 동안 이어진 일관된 여성정책 덕분이다. 일본은 아빠가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노동시간을 단축하려고 한다."
(7) Q: "피크 코리아 그 너머를 위한 제언 한마디"
A: "주거와 고용, 노후 안정화를 위한 제 정당 간의 비전과 정책 대결이 필요하다. 개혁을 위해서는 정치적 이해관계 조정이 중요하다. 교육과 R&D의 혁명이 필요하다. 위기의식을 가지고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
진짜 문제는 '저성장'이 아니다
▲ 부산항 신선대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2023.9.21ⓒ 연합뉴스
방송 내용에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패널들의 경제성장주의가 매우 불편했다.'피크 코리아'란 말이 갑자기 논란이 된 계기는 일본 경제지 <머니1(money1)>이 '한국은 끝났다'(韓国は終わった)'는 제목의 기사에서 피크 코리아(peak Korea)론을 제기한 것이다. <머니1>라는 일본의 작은 경제지의 기사가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커다란 반향을 불러온 것은 이례적이다. 아마도 "정곡을 찔렸네... 팩트에 가까워서 반박도 못하겠다...진짜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은 망할듯" ,"이건 반박 불가다"는 댓글처럼 많은 사람이 우리 경제의 미래를 우려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피크 코리아'는 맞지만, '한국은 끝났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GDP성장률은 <머니1> 기사대로 10년 단위 평균으로 8.88%(1980년대)에서 10년마다 7.30%, 4.92%, 3.33%, 1.90%로 순차적으로 떨어지는 모양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이라 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노동력과 자본 생산성을 이용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고 최대치로 달성할 수 있는 경제성장률)을 2023년 1.9%, 2024년 1.7%로 추정하고 있다. 과거에 비하면 성장률이 현저하게 낮아진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피크 코리아'니 '한국이 끝났다'니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다. 방송의 패널들이 말하였듯이 우리나라 경제는 일인당 소득이나 경제규모에서 이미 선진국 경제에 진입했기 때문에 높은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같은 OECD 자료에 의하면 2023년 주요 7개국(G7)의 잠재성장률은 미국(1.8%), 캐나다(1.6%), 영국(1.2%), 프랑스(1.1%), 독일(0.8%), 이탈리아(0.8%), 일본(0.3%) 순이었다. 우리나라가 결코 낮지 않다. 교육개혁을 하고 R&D 혁명을 하고 아무리 용을 써도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 2% 성장만 유지한다 해도 훌륭하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서울공화국, 재벌공화국으로는 이조차 어려울 것이다.
저성장이라고 해서 심지어 제로 성장이라 해서 우리나라는 끝나지 않는다. 문제는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피크 코리아'라는 한국 사회의 참모습이 선진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끄럽다는 것이다. 출산율, 자살률, 노인 빈곤, 산업재해, 노동시간, 자산과 소득의 불평등과 양극화, 수도권 집중 등 각종 사회지표가 OECD 국가 가운데 최악이다.
이것은 우리가 성장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잘못된 성장', 다시 말해 경제성장지상주의의 산물이다. 경제는 성장했는데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법 없이 경제성장을 추구한다면, '성장과 행복'의 괴리라는 대한민국 병의 골은 깊어지고 치유 불가능 상태에 처할지도 모른다.
이 방송의 인터뷰에서도 나오지만, '내가 불행한데,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저출산으로 한국경제의 미래가 위기이니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라'는 어불성설이다. 지금의 저출산은 한국사회에 대한 젊은이들의 파업이고 여성들의 파업이다. '내 삶이 행복한 나라',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기 좋은 나라', '노후가 보장된 나라'가 아니면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방송 패널의 발언이 흥미롭다. 일본이 고도성장으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가, 경제 불황으로 중국에 밀려 3위가 되었는데, 곧 독일에 밀려 4위가 될 것이라는 뉴스가 (일본) 포털에 실렸을 때, 댓글 가운데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은 "나는 큰 나라가 아니라 살기 좋은(편한) 나라에 살고 싶다"였다는 것이다.
저출산과 인구감소가 한국경제를 위협하는 최대 요인인 것은 맞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성장주의자들은 인구가 줄면 노동력이 감소하여 성장 잠재력이 약해지고, 고령인구에 대한 복지부담이 성장을 저해할 것을 염려한다. 그런데 인구감소는 과거에는 질병이나 전쟁으로 인한 것이었기 때문에 재앙이었으나, 지금은 경제발전과 사회발전의 결과라는 의미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초저출산, 한국 사회 바꿀 기회로 삼아야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저출산 대책에 대한 근본적 전환을 시사한 가운데 26일 서울의 한 공공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 일부 요람이 비어 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작년 0.78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가장 낮고, 전 세계에서 홍콩(0.77 명)에 근소한 차이로 뒤지는 '꼴찌에서 2번째'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50년가량 지난 2072년에는 작년말 말 기준 5천144만명이던 인구가 3천622만명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이때가 되면 중위 연령(전체 인구 중 중간 연령)은 63.4세로,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환갑을 넘는 '노인 국가'가 된다. 2023.12.26.
▲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저출산 대책에 대한 근본적 전환을 시사한 가운데 26일 서울의 한 공공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 일부 요람이 비어 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작년 0.78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가장 낮고, 전 세계에서 홍콩(0.77 명)에 근소한 차이로 뒤지는 '꼴찌에서 2번째'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50년가량 지난 2072년에는 작년말 말 기준 5천144만명이던 인구가 3천622만명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이때가 되면 중위 연령(전체 인구 중 중간 연령)은 63.4세로,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환갑을 넘는 '노인 국가'가 된다. 2023.12.26ⓒ 연합뉴스
오늘날 모든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노벨경제학 수상자 게리 베커 교수의 말처럼 인구감소는 경제성장과 여성의 출산권 신장의 결과다. 재앙이 아니라 축복받을 일이다.
인구감소를 경제성장의 관점이 아니라, 행복의 관점에서 보면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인구가 줄면 사람의 가치가 귀해진다. 먹고 살기 위한 치열한 경쟁도 약해질 것이다. 요즈음 태어나는 아이들은 과거 우리 어릴 때와 비교하면 얼마나 귀하게 자라는가. 일 년에 태어나는 아이들이 1970년대의 100만 명에서 요즈음 25만 명 수준으로 줄었다고 난리다. 그렇지만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은 1970년에 태어난 아이보다 훨씬 경쟁도 적고 삶이 행복하지 않을까.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최대의 위기인 기후 변화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여성이나 소수자 그룹에 경제적 기회를 늘려주고, 미숙련노동자의 임금 상승 압력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그리고 국제적으로는 저개발국 사람에게 이민을 통해 더 나은 취업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심각한 저출산을 찬양할 생각은 없다. 인구감소는 피할 수 없다 해도, 우리나라처럼 출산율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모든 일에는 변화의 속도가 중요하다. 우리 사회가 적응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인구가 서서히 감소한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러나 지금의 출산율은 너무 낮고 또 너무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대책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책을 세운다고 해서 무슨 특효약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저출산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불과 40~50년 전만 해도, 아이를 둘 이상 나으면 사회적으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국가의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젊은이가 적지 않다.
초저출산으로 "한국은 끝났다"고 호들갑 떨고 위기를 조장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바른 방향으로 바꿀 기회로 삼아야 한다.
지금의 심각한 초저출산이 하나의 문화로 고착되기 전에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과거의 산아제한 정책과는 반대로 아이를 많이 낳으면 낳을수록 출산장려금을 많이 주고, 양육비를 지원하면 될 것인가. 캘리포니아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왕펑(Wang Feng)은 2023년 1월 30일 자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 > 칼럼에서 "지난 시기 인구 증가 패닉이 잘못된 산아제한정책을 가져왔듯이 출산율을 높이려는 헛된 노력은 여성을 출산 기구로 보는 위험을 가져올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돈이 아니라,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서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한마디로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내 삶이 행복해야 아이도 낳을 생각을 할 것 아닌가. 불행한 삶을 아이들에게 대물림할 수는 없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우선은 군사비를 줄이고 사회복지비 지출을 대폭 늘려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 요인을 줄이는 게 필요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3년 인구정책의 전망과 과제' 보고서를 보면, 2019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은 12.2%로,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프랑스(31%)와 독일(25.9%)의 절반 이하이다.
정치 체제 개혁 필요, 윤 대통령은 어디로 가고 있나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매우 부족하다.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 정치경제사회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불평등과 격차 구조(불균형)를 해결하는 것이고, 정치체제를 개혁하는 것이다.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22>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자산 및 소득의 불평등 정도는 매우 높은 편인데, 날로 심화하고 있다. 자산의 경우 상위 1%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5년에서 2021년에 23.1%에서 24%로 증가하였다. 반면에 하위 50%의 비중은 6.1%에서 5.6%로 줄어들었다. 소득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하였다. 상위 1%가 차지하는 비중이 9.1%에서 14.7%로 높아진 반면에 하위 50%의 비중은 20.6%에서 16%로 줄어든 것이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 이외에 우리나라는 성별, 학력별, 계층별 격차가 매우 심한 나라이다. 통계청 <국민 삶의 질 보고서 2022>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여성의 월 평균 임금은 남성의 64.6%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데, 2021년에 비정규직 근로자의 월 평균임금은 정규직의 44.3%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시간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으로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2021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대졸자의 임금을 100이라고 할 때 중졸 이하는 절반이 안 되는 47.6%, 고졸은 63.3%, 전문대졸은 77%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규모별 격차도 매우 심각한데, 중소기업 노동자의 월평균 소득은 대기업 노동자의 48.9%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어떤 회사에 다니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값이 매겨지는 세상이다.
지역 간 격차 구조도 매우 심각하다.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모여 살면서 교통, 주거, 환경, 교육 문제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반면에 지방에는 사람들이 살려고 하지 않고 수도권으로 몰려간다. 그 결과 한국고용정보원의 조사에 따르면 2023년 2월 현재 118개로 전국 228개 시・군・구의 절반(51.8%)이 소멸위험지역이다. 지역이 소멸할 리 없지만, '지역소멸'이 쉽게 인구에 회자될 만큼 지역의 인구문제가 심각하다.
우리 국민을 괴롭히는 가장 커다란 주범은 아이들의 교육비 특히 사교육비다. 유년 시절부터 대학교 졸업 때까지 사교육으로 죽기 살기 경쟁한다. 좋은 학교를 나와야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돈 많이 벌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애 뒷바라지에 노후조차 준비하지 못한다. 부모들은 왜 이리 어리석을까. 하고 싶지 않지만 남들이 다 하는데 나만 안 할 수 없다는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다. 너도나도 앞다투어 대학에 가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좋은 대학을.
왜 어릴 때부터 의대를 목표로 삶을 희생하는가. 히포크라테스 정신이 충만해서인가. 지방 의료원에서는 3억 원의 연봉으로도 의사를 구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우리 사회의 격차구조를 해결하지 않는 한 교육개혁을 아무리 외쳐봐야 사람들 더 열받게만 한다. 학력별, 성별, 기업규모별, 직종별 임금(소득) 격차를 줄여야 입시지옥을 면할 수 있다. 중학교만 나와도 대졸자 못지않은 생활이 가능해야 한다. 노동시간을 대폭 줄여서 남녀가 아이를 같이 키우면서 워라밸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KBS의 신년기획방송에서 아쉬웠던 점은 이와 같은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점과 해결책이 충분히 제시되지 않은 채, 인구감소로 인한 성장위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생산성 향상만이 지나치게 강조된 점이다. 경제 중심의 시간이어서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우리 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첨단산업의 생존을 위협할 최대 위험 요소는 기후위기 대응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최근 '탈탄소'정책의 일환으로 전기차의 탄소배출량을 자동차생산에 포함된 철강, 알루미늄, 반도체, 배터리 그리고 해상운송에서 배출된 탄소량을 고려해서 재산정하여, 우리나라가 생산·수출하는 '니로'와 '쏘울'을 전기자동차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우리나라의 전기자동차는 생산과 수숭에서 과도하게 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 경제로서는 선진국의 탈탄소 기후위기 대응을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방송에서는 이런 기후위기 대응 문제가 전혀 다루어지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피크 코리아 그 너머' 행복한 나라가 나아가기 위해서는 산적한 과제들이 있다. 이러한 과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각 정당들이 '행복한 나라'를 위한 올바른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고 경쟁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에서는 이런 모습을 찾기 어렵다. 비전과 정책의 경쟁보다는 상호 비방과 혐오의 정치가 판치고 있다. 정치인들은 '바닥으로 질주'(race to the bottom)하고 있다.
정치에서 가장 큰 책임은 정권을 잡고 있는 대통령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주의, 대기업 친화적인 성장주의, 감세 등 기득권 옹호 정책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격차구조를 심화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시대의 과제인 기후변화 대응에서도 역주행하고 있다. 재생에너지정책은 후퇴하고, 가스와 석탄 그리고 원전에 대한 의존은 높이고 있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첨단산업과 우리 경제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다.
정치의 본령은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 그 가운데서도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부문)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정치가 국민을 더 불행하게 하는 현 정치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오마이뉴스 박진도(jd5285)
이낙연 사과한 "민주당 국회의원 전과자 44%" 발언 검증해보니
[팩트체크] 민주화·노동운동 전과 제외하면 16.4%...국힘 비율이 더 높아
검증 결과 대체로 거짓
https://www.ohmynews.com/NWS_Web/OhmyFact/at_pg.aspx?CNTN_CD=A0002992094&PAGE_CD=N0002&CMPT_CD=M0111
오마이뉴스 김시연(staright)
‘이태원 참사 특별법’ 통과…진실 향한 ‘첫발’
참사 437일 만 국회 문턱 넘어
특검 빼고 특조위 총선 뒤 가동
희생자 추모·피해자 회복 지원
유족들 “윤 대통령 거부 말아야”
만감이 교차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9일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통과되자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표결에 앞서 퇴장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참사 발생 후 437일, 특별법 발의 264일 만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법을 공포하면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유족들은 “윤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이 아니라 즉시 법률을 공포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을 재석 177인 중 찬성 177표로 의결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은 표결에 참석했고, 국민의힘은 불참했다.
이태원 특별법은 참사의 발생 원인 등에 대한 진상을 명확하게 규명하고, 희생자 추모사업, 피해자 회복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독립적 진상조사를 위해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를, 피해자 구제 및 지원을 위해 국무총리 소속 피해구제심의위를 각각 구성하도록 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간병비를 포함한 의료지원금 지급, 심리 지원 등 피해자의 일상생활 전반을 종합적으로 보조하도록 했다.
특조위는 대통령에게 특별조사보고를 할 수 있고, 종합보고서를 통해 책임 있는 국가기관 등에 대해 시정 및 공무원 징계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국가기관 등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권고 내용을 이행해야 한다.
앞서 야당이 지난해 4월 발의한 이태원 특별법은 6월30일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돼 11월29일 본회의에 부의됐다. 여야 협상이 평행선을 달리자 김진표 국회의장은 지난해 12월21일 중재안을 냈다. 이날 통과된 법안은 김 의장 중재안을 대부분 수용해 원안에서 특검 요청권을 삭제하고, 법률 시행일을 오는 4월 총선일로 변경했다.
박주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본회의에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민주당은 뼈를 깎는 심정으로 이러한 수정안을 제출하게 되었음을 이해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불참한 후 국회에서 ‘재난의 정쟁화·특검법 표결거부 규탄대회’를 열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이태원 특별법은 여야가 합의 처리하기 위해 협의가 진행 중인 상황이었음에도 단독으로 본회의에서 처리했다”며 “정쟁과 갈등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유족 등으로 구성된 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는 특별법 통과 직후 입장문에서 “진상규명의 첫발을 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며 “윤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이 아니라 즉시 법률을 공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법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당과 관련 부처의 의견을 종합해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경향/문광호·신주영·이두리 기자
54년 만에 나타나 자식 목숨값 챙긴 친모... "이게 상속 정의인가요"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20623370004234
[상속 전쟁: 가족의 배신]
2000만 원대 소형차 사자"…불황에도 모닝·레이·캐스퍼 인기 '뚝'
경차가 경기 침체에도 판매량이 줄면서 '불황형 자동차' 지위를 잃게 됐다. 업계에서는 경차 시장이 다시 살아나려면 전기차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9일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경형 승용차량 신규등록대수는 12만4080대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보다 7.6% 줄어든 수치다. 지난해 국내 자동차 시장이 확대되면서 대부분의 차급 역시 판매량이 증가했다. 반면 준중형(-1.6%)·대형(-3.6%)·경형이 마이너스 성장했으며 이 중 경차의 판매 감소폭이 제일 컸다.
경차는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린 2012년에는 약 21만대까지 팔렸고, 이후 경기가 회복되자 2020~2021년에는 판매량이 9만대까지 줄었다. 경기가 다시 악화한 2022년에는 전년보다 38.7% 늘어난 13만4294대가 팔렸다. 완성차 업계는 그 자리를 소형차가 차지한 것으로 본다. 소형차는 지난해 총 13만6894대 팔리면서 높은 성장률(16.7%)을 기록했다. 2022년에는 경차가 소형차 판매량을 앞섰지만 1년 만에 역전됐다.
코나·셀토스·니로·티볼리·트랙스 등 소형차 선택지가 확대되는 가운데 경차는 여전히 모닝·레이·캐스퍼 등 3종에 그친다. 여기에 경차급 가격을 갖춘 2000만원대 소형차가 여럿 등장하면서 경차 수요를 흡수한 것으로 풀이된다. 2022년 경차 부활을 알린 캐스퍼도 전년보다 3000대 가량 감소했고, 지난해 모닝 부분변경 모델이 새로 투입됐지만 판매량은 12.4% 감소한 2만5845대를 기록했다.
신차 시장에서는 보다 크고 넓은 차를 선호하는 현상도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경차보다 한 차급 위인 소형차가 잘 팔리는 것처럼, 준중형 차량 판매량은 줄고 중형·준대형 수요는 늘었다. 지난해 가장 큰 성장세를 보인 차급은 전년보다 19.8% 늘어난 준대형이다. SUV·RV 차량도 판매량이 90만대를 넘겼다.
현대차·기아의 경우 대당 이익률이 높은 SUV·RV 판매비중을 확대하며 실적을 끌어올리고 있다. 반면 경차는 단가가 낮아 팔아도 많이 남는 구조가 아니다. 그나마 수요가 받쳐줘야 대량생산을 통한 원가절감이 가능한데 전체 경차 판매량은 줄어 박리다매도 쉽지 않다. 스파크는 일찌감치 판매량 부진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단종됐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는 당초 작은 차 선호도가 낮다"며 "경차 모델이 사라지는 가운데 기존 모델들도 (완성차업체가) 적자를 보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경차가 전기차로 전환되면 수요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 전기차의 경우 내연기관보다 내부 공간이 더 넓어 기존 경차의 단점을 상쇄할 수 있다. 반대로 전기차는 비싸다는 이유로 판매가 둔화했는데 경차로 출시되면 가격대를 낮출 수 있다. 실제로 기아 레이는 지난해 레이 EV에 힘입어 전체 판매량이 전년보다 7000대 가까이 늘었다. 현대차 역시 올해 하반기 캐스퍼 전기차 등을 출시할 계획이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경차를 이제는 불황형 자동차라고 부르기에는 어려워졌다"며 "전기차로 전환되고 모델이 늘어나면 다시 수요가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머니투데이
"경제만 외치다 철학 사라진 사회…종교 설 자리 없어“
대다수 종교에서 예비 성직자 감소와 고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인구감소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지만, 물질을 중시하는 시대 가치의 영향도 주요한 이유로 지목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종교계는 어떻게 인식하고, 대처하고 있을까
전 세계 천주교 역사에서 한국은 유례가 없는 국가다. 대다수 국가가 전하는 이의 복음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였지만, 한국은 전하는 이가 당도하기 전 먼저 찾아가 복음을 접했다. ‘한국천주교회사’에 따르면 1784년 이승훈은 중국 베이징으로 넘어가 프랑스 그라몽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후 이승훈을 주축으로 정기적인 신앙 집회가 이뤄지게 됐고, 이 땅에 천주교의 역사가 시작됐다. 천주교는 한국 사회에 유무형의 큰 영향을 끼쳤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이념에 따른 신분제를 부정하고 만인평등이념을 설파했다. 신 앞에 모두가 평등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가르침은 차별을 당연시하던 신분제 사회에 균열을 일으켰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불의와 싸웠다. 김수환 추기경은 정의를 호령하며 시대의 어른으로 추앙받았다. 명동성당은 불의한 공권력에 쫓기는 이들의 피난처로 자리했다. 이후 물질주의가 만연한 시대에 이르러서는 물질 너머 존재하는 시대 불변의 가치를 되새기며, 황금만능주의로 치우친 사회를 균형점으로 이끄는 데 노력하고 있다. 그 일선에서 2022년 기준 4686명의 사제가 활동하고 있다. 다만 최근 확연한 감소세가 관측된다. 2012년 131명이던 신임 수품 사제는 2022년 96명으로 줄었다. 신학생 수 역시 2012년 1285명이 2022년 821명으로 큰 낙차를 보였다. 노령화와 인구 감소가 영향을 끼쳤겠지만, 종교의 입지가 줄어드는 상황은 다른 이유를 연상케 한다. 1996년 사제수품을 받고, 2018년 서울대교구 성소국장을 맡은 이성우 신부에게 어떻게 인식하고, 대처하고 있는지에 관해 물었다. 성소국은 중학생부터 28세 미만까지의 예비신학생을 선별해 신학생이 되도록 돕는 역할을 맡고 있다.
- 그간 천주교는 우리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유무형의 가치를 지키는 데 힘써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다만 그런 배경과 무관하게 갈수록 종교에 대한 대중 관심도가 낮아지는 듯하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하고 있나.▲일 년에 두 차례 전국적인 천주교 모임이 있는데, 때마다 천주교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하고 있다. 핵심은 사랑이신 하느님을 세상에 선포하는 것이다. 사회복지가 천주교의 주된 목적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삶의 형태로 풀어내기 위해 구제, 자선 등에 힘쓰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모든 곳에 존재한다고 보면 된다. 인간은 사랑이신 하느님과 닮은꼴이라는 정체성을 일깨워주기 위함이다. 시대적 징표를 읽고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최근에는 생명에 집중하고 있다. 죽음의 문화가 만연하고, 생명 경시 현상이 너무 심해졌다.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빈부격차 등 사회정의와 관련한 문제에서 관심을 갖고 때마다 사회에 선포하고 있다.
- 사회정의 활동과 관련해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향해서는 ‘정치적’이란 비판도 존재한다.▲정의구현사제단을 천주교의 공식 입장으로 오해하시는데 그렇지 않다. 천주교의 공식적인 사회정의 활동 기관은 정의평화위원회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전국단위 사제 모임이긴 한데, 하나의 임의단체다. 사제 중 사회정의에 관심 있는 분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사회 징표를 읽고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는 곳이다. 천주교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귀 기울이시면 된다.
- 대중에게 종교란 자선과 선행을 베푸는 기관으로 읽히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사실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그럴 역량이나 의지가 없던 부분을 종교가 감당해온 것이 사실이다. 최근 미혼모가 크게 이슈가 되고 있지만, 아직도 이들을 돌보는 사회적 시스템이 부족한 실정이다. 천주교는 생명 중시 관점에서 그런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여타 사회 복지는 시설을 마련하고 사람을 돌보는 수준이면 되지만, 생명·환경 분야는 접근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시대적 필요가 있고, 천주교는 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 모든 종교가 신자뿐 아니라 성직자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천주교의 성소자(예비 사제·수도자) 수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상황이 어떠한가.▲수치적으로만 보자면 줄어든 게 맞다. 다만 인구 감소율을 고려하면 아직 그런대로 유지되고 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한 반에 65명이었다. 당시 신학교에 한 해 30명이 입학했고, 지난 30년간 서울대교구는 900명의 사제를 배출했다. 하지만 현재 고등학교 한 반 인원은 30명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현재 신학대 신입생 수는 20명 정도로 유지되고 있다. 다만 이런 추세가 계속될 경우 10년 뒤쯤엔 정말 문제가 될 수 있다.
- 노령화와 인구 감소 추세를 포함해 여러 원인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파악되는지.▲요즘 젊은이들은 저희 때보다 하고 싶은 것들이 많다.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이건 경제력과도 관련이 있다. 과거 먹고 살기 힘들 때는 다른 걸 생각하기 어려웠지만, 1970~1980년대 경제가 부흥하면서 삶의 여력이 생기니 종교에 사람이 몰렸다. 서울대교구가 30년간 사제 900명을 배출했는데, 이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서품식을 체육관에서 하는 건 우리나라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 긍정 효과는 끝이 나고 부정 효과가 드러나고 있다. 천주교가 중산층화됐다는 지적이 있는데, 그 말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은 떨어져 나갔다는 말이다. 또한 스타를 좋아하는 젊은이들 특성을 맞추기에도 종교는 한계가 있다. 과거 김수환 추기경님, 이태석 신부님이 언론에 비치면 그걸 보고 찾아오는 학생들이 꽤 있었지만, 이제는 관심이 많이 줄었다. 결국 현재 성당에서 마주하는 사제들의 모습이 다음 세대에 매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인데, 이 점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 사회적 분위기나 환경의 영향도 있을 것 같다.▲20세기 들어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고 나서 먹고살기 힘든 상황에서 ‘경제! 경제! 경제!’만 외치다 보니 철학이 없어졌다. 종교인은 인생의 의미를 찾아 가치를 좇으려는 사람들인데, 필수 요소인 철학 베이스가 없어졌다. 고등학교는 입시학원이 됐고, 상아탑인 대학은 취업학원이 됐다. 자연스럽게 종교를 향한 관심도 줄어들었다고 본다. 성직은 가정에서부터 시작하는데. 부모가 신앙의 힘을 잃으면 자녀에게 성소의 꿈도 심어주지 못한다. 중학교 때까지 성당 잘 다니다가 입시 때가 되면 일단 대학부터 가라고 한다. 신앙은 머리가 아니라 몸에 배어야 하는데 성장기에 끊어지면 열에 아홉은 회복 못 한다.
- 인구 감소에 따른 성직자 자연 감소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으나, 다른 이유라면 대처가 필요할 텐데, 성직자 수 감소로 우려되는 점은 무엇인가.▲우스갯소리로 종교는 신자들의 신앙심이 부족해서 망하는 게 아니라 성직자가 부족해서 망한다는 말이 있다. 특히 천주교의 경우 성직자들의 직무 역할 비중이 큰데, 성직자가 줄어들면 여러 면에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유럽 교회는 사제 평균 연령이 70대다. 사제 한 분이 본당 서너 개를 맞고 있어 생명력 유지가 힘들다. 개신교의 장로처럼 천주교에도 평신도 그룹으로 구성된 사목협의회가 있지만, 그럼에도 사제만이 할 수 있는 ‘제관’ 업무가 많은 편이다. 사제 수가 줄어들면 질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 성소국은 성소자의 사제 역량을 지녔는지 식별한다. 어떤 과정을 거치나.▲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인성, 지성, 영성 세 가지 자질을 갖춰야 한다. 신학교 입학 전 예비신학교 단계를 성소국에서 관장하며 이때 인성, 지성, 영성을 중심으로 식별한다. 이때 본인 의지로 그만두는 경우도 있고, 그만두게 하는 경우도 있다. 대개 중학교 1학년 때 200명가량이 오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반으로 준다. 고3 가면 1/10정도 남는다. 와서 보니 내가 생각한 거랑 달라서 그만두거나, 새로운 관심사가 생겨서 나가기도 한다. 과거에는 사제 독신을 많이 고민했는데 이제는 결혼 안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예전만큼 큰 고민은 아니다. ‘결혼도 못 하고 평생 이렇게...’라는 학생에게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고 참 많이 설명했다.(웃음) 사실 현재 가장 많은 탈락 사유는 지성(성적)이다.
- 어느 정도의 지성을 갖춰야 하나.▲가톨릭대학교에 입학할 정도여야 한다. 외국은 교회 내 학교에서 양성이 가능하지만, 국내에선 정규 대학과 분리되면 학위를 받을 수 없다. 성직자에게 지성이 꼭 필요하냐고 할 수 있지만, 희한하게 이게 같이 간다. 영성, 인성이 받쳐주는데 지성이 안 따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실 인성, 영성이 완벽한데 공부가 안되면 방법이라도 찾아보겠는데, 그런 고민을 해 본 지 오래다.
- 성직자 감소 상황에서 이미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을 것 같은데 어떤 노력이 있었나.▲성소자 감소는 이미 20년 전부터 예견됐다. 과거 정규대학(대신학교) 과정 전 예비신학생이 다니는 소신학교가 있었는데, 1978년 고등학교 평준화로 폐교가 됐다. 이후 2009년 동성고등학교에 별도의 반을 만들어 신학교와 동일한 리듬의 기숙 생활을 14년째 이어오고 있다. 초기엔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 뜻이 같은 친구들이 모여 좋아했고, 부모와 학생 모두 만족해했다. 부모는 자녀 신경을 안 써도 되고, 아이는 부모랑 떨어져 있으니 좋다고 했다. 하지만 현시대에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내년부터는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 장학금까지 줘 가면서 굉장한 투자를 했지만, ‘이대로 가면 난 신부가 될 수 있어’라는 선민의식 등 여러 문제로 내년부터는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
- 향후 추가적으로 어떤 대응 방안을 구상하고 있나. 불편을 없애거나 혜택을 주는 유인책도 중요하겠지만, 좀 더 본질을 터치하는 큰 그림이 필요할 것도 같은데.▲지금껏 예비신학생을 돌볼 때 기존 신학생과 같이 돌봤다. 같이 미사 드리고, 기도하고, 나눔하고, 운동해서 같은 공동체에 속하게 했다. 다만 앞으로는 일선 본당 사제가 더 밀착 관리해야 한다고 보고 방향 전환을 꾀할 생각이다. 성소자 양성 관련해서 교구장 주축으로 TF를 구성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적용을 목표하고 있다. 성소자는 저절로 나오지 않는다. 공동체가 힘을 합쳐야 한다. 교회에서 신앙인으로 키워도 집에서 공부만을 강조하면 맥이 끊길 수밖에 없다. 가정사목에 좀 더 신경 쓸 예정이다. 우리 사회는 고도성장 과정에서 경제에 종속된 느낌이다. 경제만 생각하지 말고 인간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종교가 보인다. 사이비 종교가 아닌 이상 종교가 사회에 끼친 긍정 영향은 매우 크다. 그 맥락 안에서 필요한 존재가 성직자들이다. 우리 모두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자동차산업 '창'으로 들여다본 세계 경제전망은? '혼돈'과 '위기'
틀리기를 바라지만…전쟁, 역세계화 등 여전한 공급망 위기 요인
고약한 심보는 푸른 용의 해에도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세상에나, 틀리기를 바라는 전망을 내놓다니 원. 덕담이나 좋은 얘길 못 할 거면 차라리 말을 꺼내질 말던가, 왜 분위기 좋게 신년 인사를 주고받는 기간에 악담으로 재를 뿌린단 말인가."
벌써부터 이런 원망이 귓전을 때리는 듯하지만 <인사이드경제>는 노 빠꾸. 욕을 먹더라도 하고 싶은 말은 내뱉고야 마는 삐뚤어진 심성을 고칠 수는 없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욕 먹을 얘기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자동차산업이라는 창(窓)을 통해
글로벌 경제 상황을 들여다보기 위해 <인사이드경제>가 주로 사용하는 방식은 자동차산업이라는 창을 통하는 거다. 많은 전문가가 세계은행이나 글로벌 경제 연구소의 전망 또는 데이터를 활용하지만, 그런 분석은 너무나도 차고 넘쳐서 굳이 내가 하나를 보탤 이유가 없다. 게다가 필자는 그런 데이터를 사용할 능력과 권한, 그리고 돈이 부족하다.
물론 자동차산업에서도 고급 정보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각종 유료 결제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특정 기업의 세부 데이터가 아니라 국가별, 대륙별 거시적인 데이터라서 시간을 좀 투자하면 분석에 필요한 정보는 꽤 쓸만한 것을 모아볼 수 있다. 내가 돈이 없지 시간이 없나.
여러 산업 중 특별히 자동차산업을 선택한 데에는, 우선 <인사이드경제>가 그나마 다뤄볼 수 있는 영역이라는 점 외에도, 코로나19·기후위기·산업전환·무역전쟁·ESG 등 최근 세계경제에서 중요한 쟁점이 되는 변수에 따라 비교적 많은 영향을 받는 산업이라는 점이 중요한 근거로 작동했음을 밝혀둔다.
자동차산업 변화의 키워드
글로벌 자동차산업 변화의 키를 쥐고 있는 것은 공급망(Supply Chain)이라 할 수 있다. 전기차 주요 부품인 반도체·배터리·모터 공급망에 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원료물질 공급망까지….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산업이 돌아가기 위해 각종 원료와 에너지원을 제때 공급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한때 공급망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발생한 짧은 에피소드일 거라 치부했던 적도 있다. 실제로 와이어링하네스(차량 내 전자장치 등을 연결하는 배선뭉치)를 비롯한 일부 부품 공급망 교란은 팬데믹 이후 1년 이내에 공급원을 다변화하는 방식으로 해결되었다. 하지만 곧이어 반도체 공급망 위기, 전기차 부품 공급망 위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나왔다.
다양한 공급망 위기를 겪으면서 알게 된 것은, 몇 가지 문제가 과거에 비해 덜하다고 해도 사라지지는 않고 있다는 점, 즉 일련의 공급망 위기가 고착돼 새로운 경제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공급망의 안정적 구축에 거의 모든 국가와 경제권이 사활을 걸다보니 이를 중심으로 엄청난 무역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유럽연합의 주요 원자재법(CRMA) 입법 시도 등에서 미국 및 유럽연합이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을 벌이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공급망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그나마 무역전쟁은 총칼을 사용하는 진짜 전쟁(war)이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그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비록 전쟁의 본질적 원인이 공급망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세계 주요 경제권의 원활한 공급망 구축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원료·원자재 값이 치솟기 시작했고, 자동차산업 주요 부품의 가격 상승은 곧바로 차량 가격 인상, 즉 '카플레이션(Car-flation)'으로 이어졌다.
글로벌 산업 변화를 나타내는 도표
지금까지 키워드로 제시한 것들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인사이드경제>만의 도표를 아래와 같이 그려보았다. 도표의 중심에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공급망이 위치해 있으며 △ 무역분쟁과 전쟁 △ 역 세계화(De-globalization) △ 전기차로의 전환 △ 인플레이션(카플레이션) 등의 키워드가 그 주변에 배치되도록 하였다.
▲ 자동차산업의 변화 속 글로벌 공급망에 영향을 주고받는 요소와 그 결과.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앞에서 설명하지 않은 단어는 역(逆) 세계화인데, 이는 세계화의 반대 경향을 일컫는 개념이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이고 도전이 있으면 응전이 있는 법! 똑같은 원리로 세계화 경향이 탄생함과 동시에 그 반대 경향인 역 세계화도 시작되었지만, 그동안 세계화가 훨씬 강력한 힘을 가졌기에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전세계 이동성을 확 줄여버렸고, 이에 따라 공급망 생태계를 글로벌 시장에서 구축하기보다 가까운 곳에서 구축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기 시작하면서 역 세계화 경향은 비로소 평범한 시민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두드러지게 된다. 이 경향은 다시 자신의 경제권에서 공급망을 독점함으로써 경쟁하는 다른 경제권을 견제하거나 심지어 절멸하려는 데까지 나아가면서 그 주요 수단으로 무역전쟁을 사용하게 된다.
전기차로의 전환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면서 공급망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지만,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부품과 차량 가격이 오르는 카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공급 부문에서 가격 인상이 단행되며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이는 다시 전쟁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며 공급망을 교란하기 시작했다. 전기차 가격은 더 올라가게 되고 이 틈새에서 살아남기 위한 출혈경쟁이 시작되었으며, 이는 역설적으로 전기차 전환 속도를 늦추는 요소로 진화했다.
'혼돈(Chaos)'의 자동차산업
도표를 통해 글로벌 자동차산업 전망을 한 단어로 요약해 보라면 '카오스(Chaos)' 즉 혼돈이라 말할 수 있다. 세계화의 반대 경향인 역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전기차로의 전환 경향은 분명 지속되겠지만 그 속도를 줄일 수 있는 수많은 장애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기차로의 산업전환, 코로나19 팬데믹, 역 세계화와 무역분쟁은 '공급망의 안정적 구축'이라는 과제를 전세계 주요 경제권에 던져줬지만, 각 경제권이 서로 치고받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공급망 위기는 끊임없는 인플레이션, 카플레이션을 낳고 있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차량 생산 정체로 인해 구매자들이 차량을 구입하기 어려운 상황이 한동안 이어진 탓에, 차량 가격 인상에도 불구하고 소비가 늘어나는 기현상이 1~2년 가량 이어지며 오히려 완성차업체에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이윤율을 보장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너무 높아져버린 차량 가격은 오히려 산업에 부담을 주기 시작했는데, 단기적으로는 오히려 차량 가격 인하를 통해 이윤율을 희생시켜서라도 점유율을 높이려는 테슬라와 같은 움직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출혈경쟁이 테슬라에는 단기적인 강점을 가져올 수 있을지 몰라도 산업 전체에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동하게 된다는 점이다.
여기에 성장과 회복의 아이콘처럼 여겨졌던 중국 시장도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이제 중국은 자국 시장에서의 판로 개척이 쉽지 않은 상태에서 유럽을 비롯한 해외시장 진출에 사활을 걸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은 반대로 중국 메이커의 진출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으려 하고 있다. 이런 다양한 문제가 겹쳐지면서 글로벌 자동차산업이 그 어느 때보다 위기의 심연 속으로 빠져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혼돈의 끝에는 경기침체와 구조조정이
▲2010~2022년 글로벌 전기차 누적 판매량 추이. 출처 : 국제에너지기구(IEA), Global EV Outlook 2023
지난 3~4년 간 전기차로의 전환은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며 끝도 없이 솟구칠 것만 같았다. 탄소중립, 넷 제로(Net Zero)의 꿈이 생각보다 빨리 이뤄질지도 모른다는 착시현상도 있었다. 하지만 위기와 장애물은 생각보다 가까이 찾아왔으며 이제 '혼돈'의 시기를 거치고 있다.
이 혼돈의 끝에는 글로벌 경제위기와 경기침체가 놓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 머지 않은 미래에 산업전환은 필연적으로 구조조정이라는 국면을 거치게 될 것이다. 생산·판매의 상승이 잠시 이뤄질 것 같은 상황도 있었으나 번번이 공급망 위기를 겪으며 다시 꺾이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이토록 장기화될 것이라고, 그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벌어질 거라고 예측한 이가 있기는 했을까.
내가 틀리더라도 새해에는
글로벌 자동차산업의 전망만큼이나 새해 글로벌 경제전망 역시 불투명하다. 글로벌 경제에 꽉 끼어 있는 한국 경제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별다른 운이 따르지 않는 한, 그 전망이 결코 밝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산업전환 과정에서 조금씩 누적되기 시작한 위기 상황이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축적돼 째깍째깍 시한폭탄처럼 터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 자동차산업 역시 곳곳에서 의심스러운 희망퇴직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해외에서도 폭스바겐과 스탤란티스 등 완성차회사에서 감원과 구조조정 이슈가 불거지기 시작했고, 독일의 콘티넨탈을 비롯한 거대 부품사에서도 만만치 않은 소식들이 들려온다.
그렇다면 이제 위기에 대비한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위기를 노동자의 책임으로 전가시키려는 공격과 움직임이 가시화될 상황이고, 이를 막아내기 위한 조직적·이데올로기적 태세를 갖춰야 한다. 현대차와 기아를 비롯한 완성차회사들이 역대급 이윤을 기록했다는 점에 안도하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특히 가장 열악한 곳부터 공격하는 치졸한 자본의 속성을 감안하면, 4~5차 벤더 작은 사업장들이 밀집된 중소영세공단부터 위기가 몰아칠 가능성이 높다. 그 뒤로 1~2차 벤더, 그리고 완성차의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자동차산업 전체의 안전망을 만들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지 아래로부터 고민과 토론부터 시작할 때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 프레시안
합계출산율 0.7명 사회 한국은 정말 끝났는가
2024년 합계출산율은 0.7명대 밑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뉴욕타임스〉 칼럼은 한국의 인구 감소를 흑사병 때와 비교했다. 새해에는 저출생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EBS 다큐멘터리 〈초저출생〉에 출연한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 법과대학 명예교수가 한국 합계출산율을 듣고 놀라고 있다.ⓒEBS 다큐멘터리 화면 캡처
2024년 합계출산율은 0.68명을 기록할 전망이다. 2022년 0.78명으로 처음 0.7명대에 진입했고 2023년 0.72명으로 낮아진 데 이어 이제 0.7명대 밑으로 떨어졌다. 한국 출산율을 두고 로스 다우섯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14세기에 유럽을 덮친 흑사병이 몰고 온 인구 감소를 능가하는 결과”라고 평했다. 최근 일본 경제지 〈머니1〉이 한국 경제의 저성장 추세를 언급하며 ‘한국은 끝났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기도 했다. 한국 출산율을 들은 미국 대학 교수가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라며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는 EBS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은 인터넷 ‘밈’이 된 지 오래다. 그리하여, 한국은 정말 끝났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합계출산율 0.7명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임신할 수 있는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아이의 수가 0.7명이란 뜻이다. 가임여성 100명이 있다면 이들이 아이를 70명 낳으리라고 예측된다. 태어난 아이 중 여성은 절반인 35명쯤 될 것이다. 이 35명이 다음 세대에 아이를 낳는다면, 그 수는 25명이 채 안 된다(35×0.7=24.5). 그런데 여성이 아이를 낳으려면 남성이 필요하다. 즉, 애초의 인구는 100명이 아니라 200명이다. 합계출산율이 0.7명 이하라는 건, 불과 두 세대 만에 200명이 25명 이하로 줄어든다는 의미다.
한국의 인구는 이미 2020년 5184만명으로 정점을 찍고 감소 중이다. 통계청은 한국 인구가 약 50년 뒤인 2072년에는 70% 수준인 3622만명으로 쪼그라들 거라고 본다. 그나마도 합계출산율이 2030년 0.82명, 2050년 1.08명으로 반등한다는 가정하에서다. 물론 몇 년 안에 출산율이 솟아오른다고 볼 근거는 희박하다. 2022년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0.59명이었다.
이에 대해 ‘인구가 줄어드는 게 꼭 문제는 아니다’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차라리 인간이 덜 태어나는 게 낫지 않으냐는 논리다. 가뜩이나 좁은 땅덩어리에서 한정된 일자리와 주택을 놓고 경쟁하는 만큼, 인구가 감소하면 오히려 모두의 ‘숨통’이 트일지도 모른다. 줄어든 노동자들은 회사와 임금협상을 할 때도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큰 착각이다.” 인구학자인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모니터링센터장이 고개를 저었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지금의 한국 사회 그대로 ‘사람 수’만 줄어드는 게 인구 감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구 감소가 나쁘지 않거나 적어도 자기 삶에 별 영향을 주지 않으리라 여긴다. 그러나 저출생과 고령화는 하나의 사건이다. 젊은 사람이 줄고 늙은 사람이 늘어나면서 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를 보면, 2022년 3674만명이던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50년 뒤인 2072년 1658만명으로 줄어든다. 반면 같은 기간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898만명에서 1727만명으로 늘어나 생산연령인구를 추월한다. 인구수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구성 자체가 질적으로 달라진다(〈그림 1〉 참조).
이러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단적 예시를 하나 들면, 피가 모자라진다. 고령화에 따라 혈액 수요는 느는데 헌혈할 사람이 없어서다. 그뿐인가. 한국 군대는 아이들이 한 해 70만~80만명 태어날 때를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이 1년에 25만명이 안 된다. 수도권 대학과 지방 국립대 정원이 26만명인데. 이미 2020년부터 지방대 미달 사태가 시작됐다. 사회 전체적으로 고통스러운 적응이 필요하고 그 과정은 엄청난 갈등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공동체가 붕괴될 수도 있다(이상림 센터장).”
2023년 12월19일 서울 탑골공원 인근 무료 급식소 주변에서 기다리는 노인들. ⓒ시사IN 신선영
저출생이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아프리카 국가들이나 인도는 아이를 많이 낳지만, 선진국으로 갈수록 저출생 고령화를 겪는다. 한국도 선진국에 진입했으니 어쩔 수 없는 현상 아닌가? 이에 대해 이상림 센터장은 “저출생을 겪는다는 선진국들의 합계출산율이 1.3~1.5명이다. 한국 수준의 출산율은 독일 통일 직후 동독에서 잠깐 나타난 적 있을 뿐 세계적으로 거의 유례가 없다(2021년 0.77명을 기록한 홍콩을 제외하면 한국이 세계 최저다. 홍콩은 인구가 1000만이 안 된다). 무엇보다 속도 면에서 질적으로 다르다. 이 정도 수치면 ‘멸종위기’라 보고,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태어나도록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미래세대가 산다”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밝힌 한국 저출생의 원인
낮아지면서도 매해 등락을 거듭하던 한국의 출산율은 2015년 1.24명을 기점으로 급전직하 중이다. 도대체 지난 10여 년간 한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결혼과 출산에 관해 연구자들이 제시한 가설이 몇 있다. 예컨대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에 따르면, 부모 세대보다 상대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리는 청년세대는 자녀를 많이 가지며, 그렇지 못하면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기피한다. 특히 일자리 경쟁이 심해지면 그렇게 한다.
2023년 11월 한국은행이 펴낸 〈경제전망 보고서〉는 위 가설이 한국의 저출생을 상당 부분 설명함을 입증했다. 먼저 한국 청년층(15~29세)의 비정규직 비중은 2003년 31.8%에서 2022년 41.4%로 증가했다. 비정규직 대비 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수준은 2004년 1.5배에서 2023년 1.9배로 늘었고,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격차(제조업)도 2000년 1.5배에서 2022년 1.9배로 확대됐다.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다가 1년 뒤 정규직이 되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2006년에는 11.7%였으나 2021년에는 3.7%로 급감했다. 중소기업 입사 1년 뒤 대기업으로 ‘점프’한 비율도 2006년 5.3%에서 2021년 3.3%로 하락했다. 지난 20년간 비정규직의 비중은 늘고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 간 격차가 확대됐으며 이동성은 낮아졌다는 얘기다. 그 결과 대기업 정규직 같은 ‘양질의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이 심화됐다.
노동시장의 이 같은 변화는 결혼과 출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청년층 2000명을 대상으로 2022년 9월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장래에 결혼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취업자(49.4%)가 비취업자(38.4%)보다 높았다. 취업을 했더라도 비정규직인 경우에는 결혼 의향이 있는 비율이 36.6%로 비취업자보다도 오히려 더 낮게 나타났다. 반면 공공기관 직원 또는 공무원의 결혼 의향은 58.5%로 높았다(〈그림 2〉 참조). 한국은행이 2020년 '한국노동패널조사' 원자료를 분석한 결과, 20~30대 남성의 경우 소득이 낮을수록 미혼율이 높아지는 경향이 뚜렷했다(〈그림 3〉 참조). 여기서 남녀 차이가 나는 이유는 해당 출생연도의 성비상 남성이 더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나이가 어린 사람이 소득이 낮아서 결혼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다른 연구를 보면 그런 효과를 고려하더라도 남성은 소득이 낮을수록 결혼 확률이 떨어진다.” 보고서 중 인구 파트를 총괄한 황인도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경제학 박사)이 설명했다. “결혼이라는 게 예전에는 생애주기의 당연한 한 과정이었다면 지금은 하나의 큰 장벽이 됐다는 의미다. 자신의 취업 상태나 고용 신분에 따라, 어떤 청년들에게는 출산 이전에 결혼조차도 가질 수 없는 꿈이 되어버린 것이다.” 황인도 실장은 이 말을 하며 잠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에선 대부분의 출산이 결혼을 통해 이뤄진다. 혼인 외 출생아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42%(2020년)에 달하는 데 비해 한국은 3.9%(2022년)에 불과하다. 혼인 감소가 저출생으로 직결되는 이유다. 결혼과 출산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은 경쟁 압력이다. 앞서의 한국갤럽 조사에서 ‘남들보다 뒤처질까 봐 불안한 마음이 든다’ 등 경쟁 압력을 강하게 체감한다고 응답한 청년일수록 희망하는 자녀 수가 유의미하게 적었다. 경쟁 압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또 하나의 변수가 인구밀도다. 미국 심리학자 올리버 승이 동료들과 한 연구를 보면, 인구밀도가 높은 국가 또는 지역에 거주할수록 결혼을 늦게 하고 아이도 적게 낳았다. 한국 16개 시·도별 패널자료 분석 결과 인구밀도가 높고, 아파트 전세 가격이 비싼 지역일수록 합계출산율이 낮아지는 관계가 유의하게 관찰되었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이를 바탕으로 한국 저출생의 원인이 높은 ‘경쟁 압력’과 고용·주거·양육 측면의 ‘불안’이라고 짚었다.
남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의 아파트 풍경. ⓒ시사IN 신선영
하루이틀 제기된 문제는 아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저출생 관련 예산도 많이 쏟아부었다고 알려진다. 그런데 데이터를 보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한국의 GDP 대비 가족 관련 정부지출 규모는 1.4%로 OECD 34개국 평균(2.2%)에 크게 못 미친다. 한국의 법정 육아휴직 기간은 52주로 OECD 평균(69.4주)보다 크게 짧지는 않지만, 신생아 한 명당 이용률이 19.8%로 OECD 평균(88.4%)보다 형편없이 낮다.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부모 중 실제로 이용하는 이들의 비율은 2021년 기준 여성이 65.2%, 남성이 4.1%에 불과하다.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 출산한 여성의 76.6%가 육아휴직을 이용하는 반면 5인 미만 기업에선 1.3%로 이용률이 미미하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실제 육아휴직 이용 기간은 OECD 평균(61.4주)의 6분의 1인 10.3주에 그친다.
‘이탈리아로 가는 길’ 위에 서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만약 한국이 GDP 대비 가족 관련 정부지출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늘릴 경우 출산율이 0.055명 증가한다. 대체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을 지원하거나 남성 육아휴직을 장려하는 등의 방법으로 육아휴직 실이용 기간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늘리면, 출산율은 0.096명만큼 높아진다. 노동시장 격차가 완화되어 한국 청년층 고용률(15~39세, 58.0%)이 OECD 평균(66.6%) 수준으로 올라서면, 출산율은 0.119명 상승한다. 비혼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도 차별 없이 지원하는 등으로 한국 혼외 출산 비중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높이면 출산율은 0.159명 추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인구밀도는 OECD 평균의 4배 수준이고, 도시에 사는 인구 비중이 81%로 매우 높다. 만약 한국의 도시인구 집중도가 OECD 평균 수준으로 하락하면, 출산율은 무려 0.414명 더 높아진다.
꿈같은 얘기일까.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라고 도시계획학자 마강래 중앙대 교수는 말한다. 그가 주목하는 건 한국 인구의 약 3분의 1인 1700만명에 달하는 ‘1·2차 베이비부머 세대(1955~1974년생)’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베이비부머가 805만명이다. 이 가운데 440만명 정도(약 55%)가 지방에서 태어났다. 이 중 10%인 44만명만 고향으로 내려가도 굉장히 많은 게 달라진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주택 소유 비율이 60% 안팎으로 높다. 이들이 지방으로 내려갈 때 일부는 집을 팔고 일부는 세를 놓을 텐데, 이러면 수도권 외곽에 주택을 공급하는 것보다 오히려 수도권의 인구밀도와 집값 상승 압력을 줄여줄 수 있다. 그뿐 아니다.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정부는 인프라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인구를 확보할 수 있다. 귀향한 베이비부머를 잘 활용하면 지방 중소기업의 인력난도 완화된다. 한국 사회에서 ‘잉여적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은 3자(베이비부머, 지방 소도시, 지방 중소기업)가 ‘윈윈’할 수 있다. 나아가 베이비부머와 청년이 갈등을 넘어 상생할 수 있는 모델이다. 물론 이를 위해선 중앙·지방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가 이런 문제의식을 담아 2019년 펴낸 책의 제목은 〈베이비부머가 떠나야 모두가 산다〉이다.
서울의 한 대학 캠퍼스 안에 기업들이 내건 신입사원 채용 현수막. ⓒ시사IN 신선영
“인구문제는 그 어떤 사회문제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다.” 2024년 한국에서 쓰인 문장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세기 가까이 전인 1934년, 스웨덴의 경제학자 군나르 뮈르달과 그의 아내인 사회학자 알바 뮈르달이 함께 쓴 〈인구 위기〉에 나오는 말이다. 당시 스웨덴 출산율은 1.74명(1935년)으로 유럽 최저 수준이었다. 보수는 피임 제한을 주장하고 진보는 인구 위기의 심각성을 인정하지 않던 사회 분위기에서, 뮈르달 부부는 스웨덴 민중의 생활 실태부터 분석한다. 스웨덴 시민들이 과밀하고 열악한 주거 환경과 높은 실업률로 고통받고 있으며,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해 자발적으로 무자녀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출산율의 감소가 생활수준의 향상을 위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 국민들에게 생활수준의 향상을 포기하고 출산율을 높이거나 아니면 현상 유지만이라도 하라고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뮈르달 부부의 결론은 출산 강제가 아니었다. “자녀를 가짐으로써 드는 비용을 줄여야만 한다. 이는 가족의 지속적인 생활 향상을 위한 노력에 자녀가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자녀가 방해 요인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동수당, 무상교육, 유급 출산휴가 등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복지 정책들은 뮈르달 부부의 제안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스웨덴 출산율은 반등했고 2명 안팎 수준을 2010년까지 유지했다. 최근엔 떨어지긴 했지만 2021년 1.67명으로 여전히 한국 출산율의 두 배가 넘는다. 1993년 출산율 1.65명으로 저점을 찍은 프랑스의 경우 공공 보육서비스뿐 아니라 혼외 출생아를 포괄하는 가족복지 정책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21년 출산율이 1.80명으로 유럽 국가 중 가장 높은 프랑스의 혼외 출생아 비율은 60%를 넘는다.
“각 나라들은 어떤 식으로든 대응했다. 스웨덴은 노사정 대타협으로 노동시장 제도를 뜯어고쳤고, 프랑스는 국가가 전면에 나서서 다양한 가족 형태를 장려했다. 아예 미국처럼 이민을 받아 인구 위기를 해결하는 나라도 있다. 가장 최악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 뭔가 바뀌어야 된다고는 다들 생각하지만, 어느덧 ‘체제 전환을 위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는 사회’가 됐다. 연금, 건강보험, 재정 등 거의 모든 의제에서 그러하다. ‘부작위의 위기’다.” 책 〈이탈리아로 가는 길〉을 쓴 조귀동 작가의 말이다.
2022년 9월23일 스웨덴의 한 초등학교. 학교 놀이터에서 어린이들이 놀고 있다. ⓒ시사IN 김연희
그래서 한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앞선 책이 내린 진단은 다음과 같다.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바람직한 모델은 미국 또는 스웨덴이었다. 보수는 미국식 시장경제를 본받아야 할 모델로 삼아왔고, 진보는 북유럽 사민주의의 요소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 가운데 현실적인 타협안으로서의 모델은 독일 정도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길을 따라갈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가장 높아 보인다.”
이탈리아의 출산율은 2021년 1.25명으로 유럽 최하위권이다. 책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한국처럼 제조업 비율이 높으면서 대-중소기업, 정규-비정규직 격차가 큰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갖고 있으며, 이것이 복지 혜택의 격차로도 이어진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낮은 것도 한국과 비슷하다. 부유한 북부와 가난한 남부 간 갈등의 골도 깊다.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응해 집단적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기존 정당들은 지지부진하며 별다른 정책을 내놓지 못하다가, 1994년 검찰의 대규모 정치권 수사로 무너졌다. 그 빈자리를 우파 포퓰리즘 정당들이 대체했다.
조귀동 작가는 이것이 한국의 미래 시나리오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정치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겉도는 가운데,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나타나 기존 정당을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한 결과이기도 하다. 예컨대 더불어민주당의 지지 연합은 대도시 상위 중산층과 호남 출신 저소득층으로 이뤄져 있는데, 경제가 발전하고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이 둘의 이해관계가 더 이상 일치하기 어려워졌다고 조귀동 작가는 본다. 반면 보수는 산업화 담론 이후 인물과 조직, 이데올로기의 진공상태에 빠져 있다.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을 덮친 결과 인구 3분의 1이 줄었다. 분명 비극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노동력이 줄면서 농노의 협상력이 올라갔고, 봉건질서가 해체되는 방향으로 역사가 움직였다. 살아남은 인구의 삶의 질도 개선됐다. 지금의 인구감소가 그런 결말로 귀결될지는 불분명하다. 한국은행은 저출생 고령화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이 없을 경우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2050년대에 0% 이하를 보일 확률이 68%라고 예측했다.
대응은 가능하다, 뭔가를 제대로 한다면
흑사병이 외부로부터 주어진 일종의 자연재난이었다면, 지금의 초저출생은 그렇지 않다. 한국의 경우 여성 고용률을 높일 여지가 크다. 앞으로의 노인은 더 건강하고 학력도 높을 것이다. 기존 장래인구추계가 외국인 순유입 규모를 과소평가하는 측면도 있다. 기술 발전이 필요 노동력 규모를 줄이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를 고려하면 앞으로 15~20년 정도는 지금 노동력의 90~95% 이상은 유지할 수 있고, 따라서 아직 대응할 시간이 있다고 인구경제학자 이철희 서울대 교수는 말한다. 물론 뭔가를 한다는 전제하에서다. 그의 말이다.
“아이를 낳았을 때 비용 대부분을 부모가 부담하지만, 그 아이가 자라나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일하고 세금을 내며 사회보험 재정과 경제성장을 유지시킨다. 출산과 육아의 편익은 부모가 온전히 가져가지 않고 그 공동체가 누린다. 그래서 출산은 그냥 놔두면 사회적으로 적게 공급될 우려가 있는 일종의 공공재다. 사회가 최소한의 자원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직접적 육아휴직 확대 등 당장 성과가 날 만한 일에 집중해왔고 그마저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에게는 효과가 미치지 못했다. 새해에는 노동시장 격차 축소 같은, 어렵고 오래 걸리지만 중장기적으로 성과가 나올 수 있는 일에 대해 청사진을 내놓고 한 걸음을 내딛는 원년이 되길 바란다.”/시사인 전혜원 기자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9841
“우리 결혼 안 합니다” 생애 모델을 거부하는 사람들 [2023 연애·결혼 리포트]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495
소아 필수의료 지형도, 전국 빨간불·지역은 더 빨간불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676
‘필리핀 이모’ 들어오면 저출생 해결될까?
반평생 연 끊은 아버지 '세금 폭탄' 물려줘... '돌연 상속' 늪에 빠진 일본
상속 전쟁: 가족의 배신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22400200003293
한국 박지영 기자
여기서 콜록, 저기서 끙끙...독감 환자 왜 이렇게 많을까?
코로나19가 지나가고 겨울철에 접어들자 다양한 호흡기 질환이 돌고 있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이 유행이다.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1894
시사인김연희 기자
부산시민 10명 중 2~2.5명만 여가생활·소득 만족
https://www.hani.co.kr/arti/area/yeongnam/1123419.html
부산시민들의 여가생활·소득 만족도는 낮았지만 10명 가운데 7명은 부산에 계속 살고 싶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빚으로 막았던 경제위기, 채무자 도산으로 돌아왔다
2023년 빚을 감당하지 못해 채무조정을 신청한 채무자가 폭증했다. 소득은 정체된 반면 금리와 물가가 치솟았기 때문이다. 대출로 유예한 자영업 불황은 도산의 증가로 되돌아왔다.
법률구조공단 개인회생·파산 지원센터에서 한 채무자가 상담을 받고 있다.ⓒ시사IN 신선영
영하 10℃의 강추위가 찾아온 2023년 12월21일 오후 1시30분, 서울회생법원 복도는 한파를 뚫고 법원을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날 오후에는 개인회생 신청자 100여 명의 채권자 집회가 예정돼 있었다. 채권자 집회란 채무자가 변제계획안에 대한 설명을 하고, 채권자 또는 회생위원이 그에 대한 이의를 진술하는 절차다. 사람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법정에 온 사람 중 채권자는 없었다. 채무자들만 모여 판사로부터 회생 절차에 관해 간단한 안내를 듣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오후 2시, 법정에서 채권자 집회가 진행될 동안 김정국씨(가명·30)는 핸드폰을 보면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씨의 핸드폰 바탕화면에는 생후 7개월 딸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김정국씨는 2023년 7월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한 번에 큰 액수를 대출한 것은 아니었다. 생활하는 데 필요한 돈을 조금씩 빌리다 보니 이곳까지 오게 됐다. 10년 차 직장인인 그의 월급은 약 400만원. 적지 않은 월급이지만 빚이 7000만원까지 늘어나 원리금 상환 액수를 감당할 수 없었다.
기준금리가 치솟기 이전 그가 매달 지불한 원리금 상환액은 약 100만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대출금리는 빠르게 올랐고,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느라 신용카드 사용액이 늘어 빚이 급격히 증가했다. 카드 돌려막기, 각종 추가 대출로 인해 매달 갚아야 할 원리금은 300만원을 넘어섰다. 김씨 부부는 전셋집을 월세로 옮기고 생활비 지출을 극단적으로 줄였다. 그러나 2023년 5월 딸이 태어나자 한계에 봉착했다. 아무리 지출을 줄여도 빚을 갚고 남은 월 100만원으로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 불가능했다. 버티다 못한 그는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법원이 변제계획을 승인해준다면 원리금 상환액이 월 80만원 수준으로 줄어들 예정이다. “새출발 해야죠. 계획만 잘 통과되면 앞으로는 갚아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한 후 김씨는 법정으로 들어갔다.
2023년은 스태그플레이션의 해였다. 물가는 꾸준히 오르고,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도 따라 올랐다. 반면 경기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침체를 겪은 한국 경제는 계속 반전의 기회를 노렸다. 사회적 거리두기만 완화되면, 중국의 봉쇄정책만 끝나면, 원자재 가격이 안정되면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2023년이 마무리될 때까지 경기는 쉬이 나아지지 않았다.
스태그플레이션이 장기화하자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망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법적으로는 이들을 지급불능 상태에 빠졌다고 말한다. 지급불능은 단순히 채무로 인해 힘들어하거나, 단기간 채무를 이행하지 못한 사람이 아니다. 앞으로도 채무를 갚아나갈 가능성이 없다고 객관적으로 판단되는 이들이다. 지급불능에 빠진 이들은 성실하게 생활을 영위한다고 하더라도 재기의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지급불능에 빠진 이들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창구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사적 채무조정을 담당하는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가 있다. 신복위에서는 채권자, 즉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의 동의를 받아 채무를 조정할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법원에서 받는 공적인 채무조정이 있다. 법원에서 회생 또는 파산을 인가받아 채무를 조정할 수 있다.
파산을 할지, 회생을 할지는 각 개인이 최저생계비 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최저생계비 이상을 버는 사람은 회생절차를 밟아야 한다. 보통 3년으로 설정되는 변제기간에 최저생계비를 제외한 모든 소득은 채무를 갚는 데 사용된다. 변제 과정을 성실히 이행한다면 남은 채무에 대해 면책을 받을 수 있다. 단, 자신이 보유한 재산의 총가치(청산가치)보다 변제액수가 많아야 한다.
반대로 최저생계비도 벌지 못하는 이들은 파산절차를 밟는다. 파산한 사람은 최소한의 임차보증금과 6개월분의 생활비를 제외하곤 모든 재산을 채무를 변제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파산 과정을 성실히 마친다면 나머지 채무에 대해선 면책받는다.
“채무조정 자영업자 수 확실히 늘었다”
법원과 신복위의 통계에 따르면, 지급불능에 빠진 사람의 수는 2023년 한 해 동안 크게 증가했다. 〈그림〉은 지난 5년간 사적·공적 채무조정을 신청한 사람의 수를 월별로 나타낸 그래프다. 해당 그래프를 보면 두 가지 특징이 보인다. 첫째, 신복위 채무조정과 개인회생을 신청한 사람의 수가 2023년 들어 폭증했다. 신복위 채무조정은 이전까지 1만 건에서 1만2000건 정도를 유지해왔으나, 올해 들어 평균 1만5000건 이상을 기록했다. 개인회생도 마찬가지다. 약 6000건에서 8000건 정도를 유지하던 신청자 수가 평균 1만 건으로 늘었다. 둘째, 개인파산 신청 건수는 크게 변동하지 않았다. 즉, 최저생계비도 벌지 못하다가 망한 사람의 수는 증가하지 않았다. 반면 최저생계비 이상의 소득이 있음에도 채무를 감당하지 못해 회생이나 신복위 채무조정을 신청하는 사람은 증가했다.
자료 : 더불어민주당 오기형 의원실, 법원통계월보
지급불능에 빠진 사람이 증가한 이유는 자명하다. 개인이 벌어들이는 소득이 정체되거나 줄어든 반면 금리인상으로 인한 부채 상환액은 증가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물가가 상승하며 실질소득은 대부분 감소했다.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게 실질 가처분소득 변화다. 실질 가처분소득은 실질소득에서 이자비용 등 비소비지출을 제외한 액수다. 2022년 하반기부터 2023년 상반기까지 4개 분기 연속으로 가계의 실질 가처분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감소했다. 2023년 2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실질 가처분소득이 5.9% 감소하며 역대 최대 감소 폭을 보이기도 했다.
춘천지방법원에서 파산·회생 사건을 담당하는 홍순건 판사는 “채무자들이 겪는 부담은 기준금리의 절대적 수치가 아니라, 상대적 배수로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설정한 기준금리는 2023년 1월 이후 3.5%로 유지됐다. 3.5%라는 기준금리는 언뜻 별로 높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절대적 수치보다 중요한 것은 기준금리가 이전보다 몇 배나 늘었느냐다. 기준금리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만 해도 오랜 기간 2%를 넘기지 않았다. 2015년 3월부터 2020년 3월까지 1.25%에서 1.75%를 오갔다. 오랜 저금리 기간이었다. 이때에 비해 현재 기준금리는 약 2~3배 상승했다. 채무자들이 체감하는 이자 상환 부담 역시 그만큼 가중됐다고 봐야 한다.
지급불능에 빠진 사람은 구체적으로 누구일까? 채무조정 증가가 특정한 집단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채무조정 업무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우려하는 그룹이 있다. 바로 자영업자다.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가 발발한 이후 꾸준히 손실을 감내해왔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됐지만, 후폭풍으로 찾아온 물가상승으로 과거와 같은 수준의 매출 회복은 여전히 요원하다. 더 나아질 상황만을 기대하며 버티던 자영업자들이 희망을 잃고 채무조정을 신청하는 사례가 2023년 들어 증가했다.
실제 통계에서도 지급불능에 빠진 자영업자가 증가하는 모습을 보인다. 서울회생법원 통계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동안 개인회생을 신청한 영업소득자는 총 2276명이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실이 서울회생법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동안에만 개인회생을 신청한 영업소득자가 1884명에 이른다. 전체 개인회생 신청자 중 영업소득자가 차지하는 비율 역시 2022년 15.4%에서 2023년 상반기 20.6%로 증가했다.
영업소득자와 고액 채무자를 담당하는 외부 회생위원인 신용균 변호사 역시 이 변화를 체감했다. 그는 서울회생법원에서 채무자의 재산을 조사하고 변제계획안을 심사하는 전임 회생위원을 6년째 맡고 있다. “과거에 비해 개인회생 신청자들이 보이는 차이점은 별달리 없다.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자영업자의 수가 확실히 늘었다는 점이다”라고 신 변호사는 말했다.
“정부한테 속은 기분이다”
신 변호사가 만난 자영업자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적 특징이 있었다. 우선 몇 달 간격으로 공적 자금을 통한 대출이 반복됐다. 자영업자들은 정부에서 저리 대출을 제공할 때마다 대출을 받아 불황을 버텨왔다. 2022년 말까지도 대출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 최근 1년간 받은 대출에 대해선 회생위원들이 더 면밀한 심사를 한다. 그러나 최근 대출이 방만하게 사용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자영업자들은 주로 기존 대출을 돌려막거나 인건비를 지급하는 데 대출을 사용했다. 2022년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재기할 기회를 노렸지만, 2023년 들어 돌려막기마저 불가능한 사태에 다다른 자영업자들이 많았을 것이라 해석된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도일씨는 최근 채무조정을 신청했다. ⓒ시사IN 조남진
서울 서대문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도일씨(59) 역시 일반적인 자영업자가 보이는 패턴을 똑같이 따라갔다. 코로나19가 발발하기 직전인 2019년 12월 카페를 창업한 김씨에게 지난 4년은 늪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창업 이후 현재까지 제대로 된 매출을 올려본 적이 손에 꼽는다. 월세와 재료비를 감당하기 위해선 매달 1500만원 이상 매출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월 매출이 1000만원을 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당장 장사할 재료도 못 사는 상황에서, 대출은 한 줄기 희망이었다”라고 김도일씨는 말했다. 한 번에 몇천만 원씩, 정부에서 제공하는 대출은 가능한 한 전부 받았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신용카드로 돌려막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자 지원이 만료되고, 금리가 오르면서 희망이던 대출은 절망으로 돌아왔다. “엄청난 빚을 마주하니 정부한테 속은 기분이 들었다. 대출을 받아야 살 수 있는 것처럼 말했는데, 우리 같은 자영업자의 피로 은행들만 배불린 게 아닌가 싶었다.”
한번 연체되기 시작한 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처음에는 며칠만 영업하면 어떻게든 연체한 원리금을 상환할 수 있었지만, 그 ‘며칠’이 점차 길어졌다. 월세를 밀리기 시작하고 공과금과 건강보험료도 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배달 매출이라도 올려보고자 카페 한편에서 조각피자 가게를 병행했는데, 이를 위해 또다시 대출을 받아야 했다. 김씨 부부는 투잡을 뛰면서까지 대출이자를 갚으려 했지만 한계에 처했다. 2023년 9월부터는 무슨 방법을 써도 대출을 상환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지급불능 상태에 빠진 김도일씨의 곁에 가장 빠르게 찾아온 이들은 대출 알선 브로커들이었다. 이들은 어떻게든 대출을 받게 해줄 테니, 대출금의 20%를 수수료로 내야 한다고 말했다. 매일같이 걸려오는 추심과 대출 브로커 전화 사이에서 김씨는 지쳐갔다. 채무조정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긴 했지만, 복잡한 절차 앞에서 좌절하기 일쑤였다. 결국 진보당 가계부채119센터의 도움을 받고서야 그는 채무조정을 신청할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손실을 입은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새출발기금'을 통해서였다.
김도일씨 사례처럼, 자영업자들이 대량으로 지급불능 상태에 빠지게 된 데에는 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 팬데믹 기간에 정부는 자영업자들의 영업을 심각히 제한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손실 보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금리를 낮춰 경기가 살아나길 바랐지만 자금은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투자에만 몰렸다. 정부가 선택한 해법은 대출 확대였다. 자영업자들에게 저리로 대출을 제공해 이들이 팬데믹 기간을 버티게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에는 한 가지 맹점이 있었다. 팬데믹이 끝난 이후 경기가 이전처럼 회복되지 않는다면 확대한 대출이 문제를 키울 것이란 점이었다. 해결되지 않은 맹점은 자영업자들의 지급불능 증가로 돌아왔고, 2023년 한국 사회는 그 후과를 마주했다.
2022년 10월4일 코로나19로 부채가 늘어난 자영업자들을 위한 ‘새출발기금’이 출범했다. ⓒ연합뉴스
지나치게 쉬운 대출이 사태를 악화시킨 측면도 있다. 대부분의 지급불능 채무자들은 상당 기간 돌려막기를 하며 규모를 키운다. 버티면 버틸수록 채무는 늘어나지만, 금융기관들은 이들에게도 추가 대출을 내준다. 당장 한 푼이 아쉬운 채무자에게 추가 대출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으로 다가온다. 심지어 회생절차 중인 채무자에게 대출을 내주기도 한다. 회생 과정 중인 채무자는 최소생계비를 제외하고는 모든 소득을 이미 채무 변제에 투입하고 있기에 추가 대출은 채무자를 또다시 지급불능 상태로 빠뜨린다. 물론 대출 문제에서 일차적으로 책임이 있는 대상은 채무자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서 무리한 대출을 내어주는 금융기관의 대출 관행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급불능에 빠진 채권자의 폭증은 2023년 한 해만으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경제적 파탄에 빠진 사람이 채무조정을 신청하기까지 통상 2년에서 3년이 소요된다. 2022년 한 해 동안 기준금리가 2.25%포인트 올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채무조정 사례는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채무자들이 겪은 경제적 고통과 금융기관 등 채권자들이 입을 손실, 정부의 예산 투입도 뒤따라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시사인 주하은 기자
김건희 여사 두문불출 효과?…尹 지지율 한 달 전과 비슷
건설사 보증으로 ‘빚 내서 빚 갚기’…부동산 꺾이면 한번에 와르르
태영건설발 부동산PF 연쇄 부실 공포
사실상 건설사 보증에 의존한 구조’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꼽혀온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태영건설 위기를 시작으로 연쇄 부실이 터질 것이라는 공포가 커지고 있다. 특히 태영건설 사례를 보면 ‘빚내서 빚을 갚는 구조’와 ‘건설사 신용이 기초담보인 구조’라는 국내 부동산 피에프의 취약점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건설사들로 위기가 번질 수 있으며 건설사들 부실이 금융시스템 전반으로 전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까닭이다.
빚으로 빚을 갚는 부동산 피에프
부동산 피에프는 개발 사업이 성공할 것으로 보고 자금을 미리 빌려주는 투자기업이다. 미래 발생할 현금이 빚을 갚을 상환 재원인 셈이다. 이런 이유로 빚내서 빚을 갚는 구조가 발생한다.
부동산 피에프는 ①토지매입과 인허가 완료까지의 ‘착공 전 단계’ ②개발과 분양이 시작되는 ‘공사 단계’ ③공사가 완료된 이후인 ‘준공 이후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대출도 ‘브릿지론→본피에프→집단대출’을 거친다. ①단계는 불확실성이 큰 사업 초기인 만큼 주로 제2금융권에서 만기 1년 이내의 고금리 대출인 ‘브릿지론’이 이뤄지며, ②단계에서는 3∼5년 만기의 중·저금리 대출이 발생한다. 은행권을 포함한 기관투자자들이 대주단을 구성해 대출, 지분참여, 피에프 대출을 담보로 발행되는 유동화증권 매입 등으로 자금을 공급한다. 또한 ②∼③단계에서 선분양으로 중도금대출과 잔금대출이 들어오면 이 또한 사업비로 쓰이게 된다.
문제는 앞서 실행된 대출이 이후에 실행된 대출을 통해 상환되는 연쇄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고금리와 부동산 경기 침체로 많은 피에프 사업장은 다음 개발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다음 대출을 일으키지 못해 빚을 갚지 못하는 곳이 늘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①단계에서 ②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면서 생기는 ‘브릿지론’ 부실이 큰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10% 자금으로 시작되는 사업
건설사들은 이처럼 복잡한 피에프 구조 속에서 대부분 거래에 보증을 선 상태다. 태영건설의 경우 자기자본 대비 피에프 보증 규모가 지난해 9월 말 기준 374%에 이른다. 부동산 피에프가 위험성이 큰 사업인 데다 공사 전 과정을 관리하는 시행사들이 영세하면서 돈을 빌려주는 금융권이 신용보강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보통 부동산 피에프 시행사들은 총 사업자금의 10%만 갖고 토지매입을 시도하면서 90% 이상은 대출을 일으켜 공사를 진행한다. 현재 법인의 경우 최소 자본금 3억원만 있으면 부동산개발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시공사인 건설사들이 도급 계약을 따내는 대신 금융권에 시행사가 ①단계인 ‘브릿지론’을 미상환하면 본인들이 갚겠다는 지급보증을 서는 일이 부지기수다.
건설사들의 보증은 ②단계에서도 이어진다. 피에프 사업장의 본피에프 대출과 유동화증권 발행에 있어 책임준공(기한 내 준공 완료), 연대보증, 채무인수, 자금보충 등의 약정을 대주단이나 투자자들에게 또 제공한다. 이 배경엔 우리나라는 수분양자 자금이 사업비에 사용되면서 이들도 토지 및 건물에 대한 담보권이 생기는 까닭에 온전한 담보권 확보가 어려운 대출기관들이 신용보강을 요구해 건설사들이 참여하게 되는 특수성도 존재한다.
건설사 신용에 의한 담보대출
전문가들도 부동산 피에프가 사실상 건설사 신용을 담보로 한 대출이라고 바라본다. 김정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2022년 ‘부동산 피에프 위기 원인 진단과 정책적 대응방안' 보고서에서 “국내 부동산 피에프는 시공사가 제공한 신용보강 장치가 모든 금융거래의 기초적인 담보로 활용되는 구조다”라고 밝혔으며, 이보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우리나라 부동산 피에프 구조의 문제점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부동산 피에프가 브릿지론을 본피에프 대금으로 상환하거나 수분양자 자금을 이용하고, 시공사의 신용도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고 언급했다.
이 때문에 최근 건설사 위기가 금융시스템 전반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각종 부동산 피에프 거래에 보증을 선 건설사들이 자금난에 빚을 갚지 못하면 얽혀 있는 금융기관의 건전성은 악화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대출 채권을 토대로 발행되는 유동화증권의 신용등급도 시공사 신용등급과 연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건설사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유동화증권 발행에 문제가 생기고 여기에 보증을 선 증권사들도 위험에 처하게 된다.
시장에서는 부동산 피에프 문제가 태영건설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벌써 중·소형 건설사뿐 아니라 대형 건설사들의 유동성 위기가 거론돼 업체들이 적극적인 해명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자기자본 대비 피에프 보증 규모가 50%를 넘은 곳은 롯데건설(212.7%), 현대건설(121.9%), 에이치디시(HDC)현대산업개발(77.9%), 지에스(GS)건설(60.7%), 케이시시(KCC)건설(56.4%), 신세계건설(50.0%) 등이다.
전슬기 기자 sg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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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날리면’ 확인 안 되는데 “바이든이라 말한 사실 없다”는 법원
MBC 보도 “허위”라며 정정보도 판결
청구자 외교부 아닌 MBC에 입증 책임
윤석열 대통령 비속어 논란에 관한 문화방송(MBC) 보도 화면 갈무리.
법원이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 당시 불거진 ‘비속어 발언 보도’와 관련해 문화방송(MBC)에 정정보도를 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윤 대통령 발언이 감정을 통해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데도 문화방송이 확정적으로 보도했으므로, 해당 보도는 허위라는 논리다. 정정보도 청구 소송에서는 청구자가 ‘보도가 허위’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어떤 말을 했는지 알 수 없다’는 감정결과에도 불구하고 입증 책임을 이례적으로 언론사에 넘겨 ‘보도가 허위’라는 결론에까지 나간 것을 두고 무리한 법 해석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12일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2부(재판장 성지호)는 외교부가 문화방송을 상대로 낸 정정보도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윤 대통령이 ‘바이든은'이라고 발언했는지가 기술적 분석을 통해서조차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문화방송은 윤 대통령이 ‘바이든은'이라고 발언했다고 보도했다”며 “발언이 이뤄진 시각, 장소, 배경, 전후 맥락, 위 발언을 직접 들은 장관의 진술 등을 종합해 볼 때 윤 대통령이 미국 의회와 바이든을 향하여 욕설과 비속어를 사용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이번 사건을 ‘허위 보도’라고 판단한 핵심 근거 중 하나는 외부 음성 감정인이 ‘바이든-날리면’ 여부에 대해 “감정 불가”라고 판단한 점이다. 재판부는 음성 분석을 통해서도 발언 내용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는데 원고에게만 입증을 요구하는 건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이 경우 언론사에 ‘보도가 진실하다’고 증명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고 봤다. 따라서 ‘감정 불가’인데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에 이를 정도로 보도했으므로 이 보도는 허위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2011년 대법원의 문화방송 피디수첩 광우병 보도 판결에서 이 논리를 가져왔다. 당시 대법원은 어떤 과학적 사실에 대해 현재의 과학 수준에서는 진실하지 않다고 원고가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할 경우, ‘부존재를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셈이 되므로 ‘진실하다’고 주장하는 피고 쪽 논리를 검증하는 방식으로 입증책임을 나눌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가 정정보도문에 “‘바이든은'이라고 발언한 사실도 없음이 밝혀졌다”고 적시한 점도 논란거리다. 재판부는 문화방송에 판결 확정 후 뉴스데스크 첫 방송 첫머리에 정정보도문을 낭독하라며 “사실 확인 결과, 윤 대통령은 ‘미국'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없고, ‘바이든은'이라고 발언한 사실도 없음이 밝혀졌으므로 이를 바로잡는다”라고 문구를 정리했다.
통상 정정보도 청구 소송에서 청구자가 허위라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리는데 오히려 문화방송 쪽에 입증을 요구한 점, 정정보도문에 ‘진위 확인 불가’ 대신 ‘허위 보도’라는 단정적인 표현을 적시한 점 등을 두고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정보도 전문 변호사는 한겨레에 “입증책임을 언론에 떠넘긴 건 결국 청구자(외교부)가 허위라는 걸 입증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원고 패소”라며 “물론 피고(언론사)의 진실성도 검토해볼 수 있다. 이 경우 원고·피고 쪽 모두 진실성 입증 안 된 것이다. 그렇다면 정정보도문을 쓴다 해도 확정적으로 ‘허위’라고 쓰면 안 된다. 진위 여부 가려지지 않았다는 내용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미디어언론위원장도 “입증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언급한 대법원 판례는 이번 사건에 들어맞지 않아 무리하고 부당하다”며 “결국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는데 양쪽 다 입증하지 못했다면 적어도 정정보도는 기각됐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문화방송(MBC) 노사는 ‘권력에 기운 1심 판결’, ‘증거주의 재판이 아니라 판사의 주장일 뿐’이라며 곧바로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실은 “이번 판결이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또, 문화방송을 “공영이라고 주장하는 방송”이라고 직격했다.
이도운 홍보수석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열어 “공영이라 주장하는 방송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확인 절차도 없이 자막을 조작하면서, 국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허위 보도를 낸 것은 대단히 무책임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 수석은 이어 “당시 야당이 잘못된 보도를 기정사실화하면서 논란에 가세함으로써 동맹국인 한국과 미국 간에 신뢰가 손상될 위험에 처했던 것도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이번 판결은 사실과 다른 보도를 바로 잡고,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소모적 정쟁을 가라앉히며 우리 외교에 대한, 그리고 우리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한국은 차별금지법 없는 몇 안 되는 OECD 국가“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992991&PAGE_CD=N0002&CMPT_CD=M0112
휴먼라이츠워치 '2024년 세계 보고서' 발간... "북한 인권 정책 강화했으나 국내 인권에는 소홀"
박정훈 대령의 든든한 뒷배, 해병대 정신이란 무엇인가
상명하복보다 정의와 자유가 우선…예비역까지 “진상규명” 촉구
해병대 예비역들이 지난해 11월 5일 서울 용산 국방부청사 부근에서 해병대 군가를 부르고 있다. 이들은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전날 경기도 화성 해병대사령부에서 출발해 국방부청사까지 50㎞를 행군했다. 행군 도중 시민들로부터 메모지에 지지 서명을 받아 채 해병과 박정훈 대령의 이름을 쓴 펼침막을 만들었다. 김창길기자
이런 전개가 또 있을까. 해병대 장병의 사망 사고가 벌어졌고, 수사책임자는 이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려 했다. 일단 사건이 있으면 덮기 급급하던 군에서는 못 보던 일이다. 더 놀라운 건 수사책임자가 항명죄로 입건되자 그 부하들이 직을 걸고 상관의 무고함을 주장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급기야 전역한 예비역 해병들까지 삼삼오오 모여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여기엔 지난해 전역한 MZ세대 해병 장교도 있고, 28년 전 3개월간 수사책임자와 동고동락한 동기들도 있으며, 군을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난 월남전 참전 노병도 있다. 이들을 하나로 묶는 이름은 해병뿐이다. 조사를 둘러싸고 정권 차원의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이 나오는데도, 그 반대편에 선 예비역의 대오는 흔들림이 없다.
“진상규명”이라는 요구 아래 사람들을 모으고, 집회 등 행사를 기획하고, 1박2일 행군에 나서는 일은 생업을 가진 이들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예비역 해병은 “역시 해병대라는 말을 듣고 싶다(905기 해병 안신현)”고 했다. 세대도, 정치색도 다른 이들을 하나로 묶는 것. 해병이란, 해병대 정신이란 무엇인가.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지난해 9월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해병대 예비역들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는 해병대의 상징인 빨간 티셔츠를 입은 예비역 해병 400여명이 참석했다. 김세훈 기자
“저는 사실 해병대 정신 때문이 아니에요.”
해병대 1158기 정원철 해병은 지난해 8월 중순 채 상병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개설했다. 그는 전역 후 전우회 활동을 하거나 ‘해부심(해병대라는 자부심)’을 부리던 사람도 아니었다. 오히려 “해병대 예비역들 모여 있으면 서로 ‘내가 더 힘들었다’ 자랑하는데 내가 당한 악습이 무슨 자랑거리예요. 북한을 덜덜 떨게 하는 게 멋있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그가 오픈채팅방을 만든 건 채 상병 때문이다. 정 해병은 늦둥이, 외동아들이다. 수차례 시험관 시술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는 채 상병의 일이 남 일 같지 않았다. 그는 “우리 집에 대입해 봤는데, 제가 없다면 우리 집도 초상집이죠. 그 마음이 컸어요”라고 했다.
해병대 예비역을 대표하는 공식단체 해병대전우회가 지난해 8월 낸 성명이 행동에 나서는 직접적 계기가 됐다. 당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채수근 상병의 사고를 조사하던 박정훈 대령은 수사 자료를 경찰에 이첩했다가 ‘집단항명수괴죄’로 입건됐다. 국방부 장관은 수사 자료를 경찰에 넘기겠다는 내용이 담긴 박 대령의 수사보고서에 사인했다가, 이틀날 돌연 이를 보류하라고 지시했다. 국방부 장관보다도 윗선의 수사 외압을 의심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해병대전우회는 “외부개입 없이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군이 명확한 결과를 도출해야만 한다”는 내용의 점잖은 성명을 냈다. 이 성명을 예비역 해병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전우회 홈페이지에 달린 댓글을 보면 알 수 있다. “단순히 관망하는 제 3자의 입장문처럼 보인다” “해병대 전 가족들이 분개하고 있는 게 안보이느냐”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정 해병은 “전우회가 밖에 나가서는 봉사활동도 참 많이 하는 가장인데 집 안에 제 자식은 안돌본다”고 느꼈다. 해병대 정신 때문에 나선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는 얼굴도 모르는 채 상병의 죽음도, 개인적 연이 없는 박 대령의 고난도 제 가족의 일처럼 바라봤다.
정원철 해병이 지난 1월 2일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채 상병에 대한 참배를 요구했을 때, 최병태 해병(76)도 그 곁에 있었다. 그사이 정 해병이 개설한 오픈채팅방은 ‘해병대 예비역 전국연대’라는 이름의 단체가 됐다. 600여명의 해병이 가입했다. 해병대 부사관 78기로 전역한 지 반세기가 다 돼가는 최 해병도 그 중 한명이었다. 인천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최 해병은 채 상병의 생일이던 이날 가게 문을 닫고 대전을 찾았다. 그는 “우리 후배가 억울하게 사망한 일이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고 하지 않나. 우리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날 정원철 해병의 참배 요구에 한동훈 위원장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최 해병은 “한 위원장이 그날 거기 오는 줄도 몰랐다. 기왕 왔으면 몇 발짝만 가면 되는데 못 들은 체하고 가더라. 채 해병 사건에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 같았다”고 했다.
최 해병은 1970년대 전쟁 중이던 베트남에 파병돼 분대장으로서 대원들과 몇차례 전투를 수행했다. 그는 “자기 부하를 부모 같은 마음으로 아끼고, 대원 잘못도 책임지는 게 해병 지휘관이다. 아랫사람 책임으로 미룬다면 지휘관 자격이 없다”고 했다. 이번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에는 채 상병 소속 부대의 최고 책임자인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소장)이 있다. 박 대령은 당초 임 사단장 등 지휘관 8명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가 있다고 봤다. 그를 보직해임하고 이 사건을 재조사한 국방부는 그러나 임 사단장의 이름을 빼고 대대장 2명의 혐의만을 적시한 수사기록을 경찰에 넘겼다. 외압이 있었다면, 그 목적은 ‘임성근 구하기’였을 가능성이 있다. 경찰에 입건된 대대장은 채 상병 사고의 원인인 수중수색이 임 사단장의 지시였다고 주장하는 반면, 임 사단장은 ‘수중수색 중인 걸 알지도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해병 장교로 전역한 20대 A해병은 임성근 당시 1사단장 휘하에서 군 생활을 했다. 그는 지난해 7월 해병대 1사단이 경북 예천의 실종자 수색에 투입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경북 예천에는 육군 부대가 이미 주둔하고 있는 데다, 해병대 1사단이 있는 포항에서 예천까지의 거리도 그리 가깝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관은 ‘지난해 1사단이 성공적으로 작전을 했기에 그 노하우를 전수하면서 대민지원을 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2022년 태풍으로 인해 포항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물에 잠기는 일이 발생하자, 해병대 1사단은 상륙장갑차를 투입해 성공적으로 구조 작전을 수행한 바 있다. 지난해에도 상륙장갑차가 포항에서 예천까지 이동했지만, 급류로 인해 작전에 투입되지도 못했다. A 해병은 “사단장 지시 없이 부대가 타 도시로 이동해서 대민지원하기는 쉽지 않다. 대대장들 잘못도 있겠지만 부대가 예천에 투입되게 한 사단장 잘못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해임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지난해 9월 4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보직해임 집행정지 신청 첫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박 대령의 해병대 사관 81기 동기들도 이날 동행해 박 대령을 응원했다. 연합뉴스
해병대는 군기가 강한 부대다. 전역 후에도 기수로 선후배를 가린다. 군기의 핵심을 상명하복이라 할 때, 박 대령은 상부 지시를 불이행한 군인이라 볼 수도 있다. 이 이야기를 꺼내면 해병들은 하나 같이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를 얘기했다. 이 문구는 금색 닻 위에 은빛 독수리가 앉아 있는 해병대 마크에도 담긴 문구로, 해병대가 존재하는 목적을 의미한다.
정원철 해병은 해병대 예비역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구전되는 부마항쟁 진압작전 이야기를 꺼냈다. 1979년 부마항쟁 당시 시위진압을 위해 부산에 투입된 박구일 해병대 7연대장은 대원들에게 ‘시민들이 때려도 맞아라. 총기만 빼앗기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정 해병은 “엄밀히 말하면 이것도 지시 불이행이거든요. 그렇지만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라는 해병대 정신에 부합하는 거죠. 잘못된 지시는 따르지 않는 게 상식이죠”라고 했다.
김태성 해병대 사관 81기 동기회장(50)은 “윗사람의 잘못을 덮으라는 명령을 따르라는 건 해병대 정신이 아니다. 해병대 정신은 정의와 자유를 위한 정신이지, 맹목적 충성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박 대령과는 해병대 사관 동기인 김태성 회장은 해병대 예비역들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갖도록 가슴에 불을 지핀 인물이다. 지난해 8월11일 박정훈 대령이 국방부 검찰단에 출석할 때 동행해 우산을 받쳐준 것을 시작으로 이 일에 발을 들였다. 이후 동기들과 함께 성명서를 내고,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박정훈 대령이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를 받기 위해 군사법정에 출석할 때는 동기들과 함께 찾아가 해병대 군가 ‘팔각모 사나이’를 불렀고, 지난해 11월에는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1박2일간 50km를 행군했다.
박 대령과는 별 친분도 없었다. 1996년 3개월간 훈련을 같이 받은게 인연의 전부다. 그 스스로 말하듯 처음엔 단순히 “오지랖” 때문이었다. 그러나 속속 밝혀지는 사실관계는 박 대령이 잘못한게 없다는 확신을 줬다. 박 대령 휘하의 중앙수사대장(중령), 1광역수사대장(중령), 수사지도관(준위) 등은 모두 군검찰 조사에서 ‘임성근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제외하라’는 취지의 외압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김태성 회장은 “잘못되면 군생활이 끝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고 증언을 했다. 자기 목을 건 사람이 한 두명이 아니다. 여론조사에서 이 사건에 대한 특검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73%가 나왔다. 이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이 상식선을 넘어서 있기에 국민들이 화가 난 것이다”라고 했다.
전국연대에서 각종 행사의 물품 지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905기 안신현 해병(44)은 21대 국회 회기가 종료되기 전에 채 상병 사건에 대한 특검법이 통과되길 원한다. 군 장병이 목숨을 잃은 사건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라고 본다. 회사일을 마치고 밤늦게까지 전국연대 집행부 회의를 이어가야 하는 그로서는 “얼른 일상을 회복하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도 있다. 그는 “해병대의 명예가 무너져 가는 게 싫어 나서기도 했지만, 제 자식이 가야하는 군대일 수 있다는 생각도 컸다. 이런 일이 또 일어나선 안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김태성 회장은 장기전을 준비 중이다. 오랫동안 문제가 풀리지 않더라도 시민들이 잊지 않도록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예정이다. 올해에는 해병대 2사단이 있는 김포 애기봉에서 출발해 대전 현충원과 예천 사고 지점을 거쳐 포항까지 가는 행군을 준비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주말에 1박2일 행군을 진행한다면, 약 2년만에 포항에 닿을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예비역 해병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참여의 폭도 넓힐 계획이다. 그는 “해병대의 모토는 ‘안 되면 될 때까지’다. 전시에 총알이 빗발치는 상륙작전에 투입되는 해병대는 무모한 도전이 그 근간에 깔려 있다. 이 사건이 올바르게 끝날 때까지 행군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동기들에게 연신 미안해하는 박정훈 대령에게 김태성 회장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한다. 다소 오글거리고 촌스러울 수 있지만, 예비역 해병들을 움직인 것은 이런 마음일 수도 있다. “너만 해병이냐, 나도 해병이다.” 경향 이효상 기자
김정은 “동족 아냐” 선포 뒤…북, 6·15북측위 등 교류 창구 모두 정리
12일 ‘대적부문 궐기모임’ 진행 노동신문 보도
북한 당국이 “지난 시기 북남관계 개선과 평화통일을 위한 연대기구로 내왔던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측본부, 민족화해협의회, 단군민족통일협의회 등 우리 관련단체들을 모두 정리하기로 했다”고 노동신문이 13일 보도했다. 신문이 거론한 북쪽 단체들은 1990년대 이후 탈냉전기에 남북 민간교류에 관여해온 조선노동당의 ‘외곽기구’들이다.
노동신문은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역사적인 당중앙위 8기9차 전원회의에서 제시하신 대남정책 전환 방침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대적 부문 일군들의 궐기모임이 12일에 진행됐다”며 이렇게 전했다. 신문이 언급한 “대적” 부문이란 기존의 “대남” 부문의 달라진 표현이다.
노동신문은 ‘대적 부문 일군 궐기대회’에서 △“공화국의 대적 투쟁사를 (새롭게) 써나갈 데 대한 문제” △“괴뢰족속들을 완전히 소멸해야 할 우리의 주적이라는 확고한 관점에서 통일정책을 새롭게 정립하며 대남부문의 투쟁원칙과 방향을 근본적으로 전환할 데 대한 문제” △“남반부의 전 영토를 평정하려는 우리 군대의 강력한 군사행동에 보조를 맞추어 대사변 준비를 예견성 있게 추진해나갈 데 대한 문제” 따위가 “강조됐다”고 보도했다.
이 ‘궐기모임’은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가 연말 전원회의에서 “북남관계는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관계”라며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대남 사업 부분의 기구들을 정리·개편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한 데 따른 후속 조처로 보인다.
범민련 북측본부는, 범민련이 독일 베를린에서 결성(1990년 11월20일)된 직후인 1991년 1월25일 만들어졌다. 범민련의 해외본부는 90년 12월17일, 남측본부는 95년 2월25일 결성됐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1997년 대법원의 ‘이적단체’ 판결을 받았다. ‘3자 연대 통일운동’을 표방한 범민련의 활동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크게 위축됐다. 범민련은 고 문익환 목사가 1989년 3월 방북해 당시 김일성 주석과 두 차례 회담을 한 뒤 그해 4월2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고문 문익환’ 자격으로 북쪽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허담’과 합의·발표한 9개항의 공동성명에 뿌리를 두고 있다.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는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 이후 만들어졌고, 해외위원회와 남측위원회가 따로 있다. 2000년대 들어 위상·활동이 약화된 범민련을 사실상 대체하며 2000년식 ‘3자 연대 통일운동’의 주도체로 활동해왔으나 남북 당국관계의 변화에 따라 부침을 겪어왔다. 민족화해협의회는 1998년 만들어져 남북 사회문화교류와 대북 인도적 지원의 북쪽 협상 창구로 활동해왔는데 몇해 전부터는 ‘해체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활동이 없었다.
한편 북쪽 매체는 아직 공개 보도하고 있지 않지만, 중국에 서버를 두고 있다고 알려진 북쪽의 대남 선전 매체인 ‘우리민족끼리’ ‘통일의메아리’ ‘류경’ ‘조선의오늘’ ‘려명’ 등의 누리집에 지난 11일부터 접속이 안 되고 있다. 대남 기구 ‘개편·정’리 작업에 따른 누리집 폐쇄 가능성이 제기된다. 아울러 북쪽의 대남 국영 방송인 ‘평양방송’이 지난 12일 오후부터 남쪽에서 신호가 잡히지 않고 있다고 연합뉴스가 13일 보도했다./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네이버에 ‘민주노총·전장연’ 치자 AI가 띄운 ‘혐오 Q&A’
통합검색 상단에 AI가 선별한 Q&A
사실과 다른 정보·혐오비난 시정 요구 응하지 않아
언론 지적 뒤 Q&A란 삭제…투명성·책임성 논란 불가피
“Q. 민주노총은 뭐하는 사람들인가요?
A. 대한민국을 없애려는 사람들입니다.”
민주노총 홍보실 담당자인 A씨는 지난달 네이버 검색창에 ‘민주노총’을 쳐 본 뒤 깜짝 놀랐다. 통합검색 결과 상단에 네이버 인공지능(AI) 서비스가 민주노총에 대한 정보로 터무니없는 주장을 띄워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당 섹션은 ‘민주노총 Q&A’란 제목으로, 네이버가 온라인에 등록된 게시물을 AI로 수집하고 선별해 제시하는 서비스라 소개했다. 사실과 다른 정보도 많았다. 한 Q&A는 “민주노총은 대한민국의 노동조합 중 하나로 ‘민주노동운동’을 기반으로 1987년 창설됐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1995년 창립했다.
네이버가 자사 인공지능 서비스를 활용해 ‘민주노총’과 ‘전장연’ 등 키워드 검색 결과로 사실과 다른 정보나 혐오표현을 노출하고 있었다. 네이버는 당사자의 시정 요구에 응하지 않다 언론 취재를 접한 뒤 이들 키워드 관련 AI 답변 섹션을 삭제했다.
▲네이버 검색 결과 AI Q&A란. 언론 취재 뒤 현재는 삭제됐다.
A씨 지난달 20일 네이버 고객센터에 이메일을 보내 ‘민주노총 관련 허위사실과 명예훼손 표현을 시정해달라’고 밝혔다. 네이버 고객센터는 이튿날 답변 이메일에서 “문의하신 검색어로는 AI로 생성된 질문은 (결과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특정 검색어로 검색할 때 어떤 게시물이 상단에 노출될지는 예측하거나 보장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네이버는 여러 사례들을 수집해 검색 알고리즘을 개선해나가고 있다”며 “문의주신 내용도 참고해 내부 개선 검토하겠다”고 했다.
▲민주노총 홍보실 담당자가 지난 12월21일 네이버 고객센터를 통해 Q&A란의 허위사실과 명예훼손성 정보 수정을 요구하자 받은 답변.
A씨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답변을 분류해 노출하는 것이 AI라 하더라도 그 내용에 문제가 있다면 네이버가 개입을 해야 하는데, 네이버는 오히려 ‘AI라서 결과를 수정할 수 없다’는 식으로 답해 황당했다”며 “객관적 정보가 아닌 노조혐오가 담긴 주관적 의견을 공식 답변처럼 상단에 노출하면서 그 피해는 떠넘긴 것”이라고 했다.
다른 사회적 소수자 단체를 검색했더니 마찬가지로 문제가 나타났다. 네이버 검색창에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지하철 탑승을 이어가는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을 입력한 결과 AI가 선별한 ‘전장연 Q&A’가 떴다. “Q. 전장연은 뭐하는 조직인가요?” “장애인 집단이다. 아주 일반시민들 볼매(볼모)로 잡고 나라에 항의하는 조직”이라는 이용자 대화를 띄웠다. “전장연 시위 ‘개노답’ 아닌가요” “전장연 XX(해코지를 의미)할 수 없나요” 등 걸러지지 않은 원색적 혐오표현도 대표 질문에 꼽혔다.
▲네이버 검색 결과 AI Q&A란. 언론 취재 뒤 현재는 삭제됐다.
정보인권단체 진보네트워크센터의 희우 활동가는 네이버가 사전에 허위사실이나 혐오표현을 시정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네이버가 클로바를 사용한 Q&A는 일반 검색 결과가 아니라 게시물을 한 차례 선별해 제시하는 취지다. 클로바가 생성한 답변이 아닐지라도 검색 알고리즘이 도출하는 결과에 허위 또는 혐오발언이 있는 건 당연히 문제이며 네이버는 시정을 검토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네이버는 12일 관련 입장을 묻는 언론 취재를 접한 직후 관련 키워드 ‘Q&A’ 섹션을 내렸다. 현재 ‘민주노총’과 ‘전장연’을 검색창에 입력하면 Q&A란을 찾아볼 수 없다. 네이버 홍보 담당자는 미디어오늘에 “Q&A 블록은 주로 생활형 질의에 대한 검색 결과의 품질을 높이고자 제공한다”며 “민주노총과 전장연 키워드에 Q&A 블록이 노출되는 것은 검색 품질상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제외 조치했다”고 밝혔다.
네이버 측은 또 “Q&A 블록은 검색한 키워드와 관련해 사용자들이 지식iN, 카페에서 자주 찾은 질문과 다양한 답변들을 모아 노출하는 서비스다. 블록 주제는 자동으로 생성되며, 검색 결과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노출되는 게시물을 비롯해 명예훼손이라고 판단되는 게시물에 대해서는 게시중단 등 신고 프로세스를 갖추고 있다. 모니터링 강화 등을 통해 전반적인 검색 결과에 대해서도 지속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네이버 측이 아예 Q&A란을 내린 사후 조치가 아쉬움을 낳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희우 활동가는 “빅테크 기업이 책임감을 가지고 시스템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임시방편을 써서 검색의 질을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는 조치를 한 것으로 보여 아쉽다”며 “구글도 과거 검색 결과에 흑인을 차별하는 내용을 노출해 문제가 되니 아예 관련 태그를 삭제하는 조치로 대응한 바 있다”고 했다.
정다운 전장연 활동가는 통화에서 “포털은 인터넷 정보를 수집해 큐레이션(선별하고 배열함)함으로써 많은 이들의 인식을 바꾸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문제는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는 (포털이) 주요하게 반영할 수 있는 기준 안에 들기가 어렵다”며 “포털은 기본 사실을 검증하고 소수자 목소리를 반영하며, 혐오표현을 노출할 땐 그 사회적 맥락을 함께 노출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AI 영향에 속수무책 이용자·당사자
“구제방법 명시하도록 규제 마련 필요”
‘이루다 논란’ 등 인공지능이 사회적으로 구성된 편견과 오류를 그대로 노출해 나타나는 피해에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구글 등 여러 IT 플랫폼 기업이 인공지능이 산출한 결과물에 질의를 받으면 ‘알고리즘의 결과라 알 수 없다’고 답하고, 당사자나 이용자는 원인을 알거나 구제책을 찾지 못하는 처지에 놓여왔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 해외에선 정부기관이나 기업의 인공지능 활용에 책임을 지우는 규제책을 도입하는 추세지만 국내엔 이렇다 할 규제책이 마련돼 있지 않다. 희우 활동가는 “유럽연합(EU)은 이용자들이 접하는 정보를 빅테크 플랫폼이 통제하고 또 여론 형성,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면서 투명성과 책임성 의무를 지우고 있다”며 “한국 사회도 (AI를 운영하는 기업에) 의무를 지우는 방향을 확립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EU가 지난해 도입한 DSA(디지털서비스법)은 대형 온라인 플랫폼에 알고리즘 투명성에 대한 책무를 두고, 명확한 구제방법을 마련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1월13일 오후 2시27분 기사 일부 수정)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잘한 일은 뉴스가 안 되는 세상
잘한 일은 뉴스가 안 되고 잘못한 일은 뉴스가 된다. 언론의 속성이 그렇다. 2023년 국민연금 기금 운용으로 무려 100조원이 넘는 수익이 발생했다. 수익률도 사상 최대인 12%를 기록한다. 이 사실은 지난 1월 5일에 알려졌는데 이후 나흘간 32건의 기사가 나왔다. 빅카인즈 기준 일간지, 경제지, 방송 기사를 다 합친 기사 숫자다.
2022년 국민연금 기금 운용으로는 80조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수익률은 -8.2%를 기록했다. 80조원의 손실이 알려진 23년 3월 2일 이후 나흘간 같은 기준으로 파악한 기사 수는 134건을 기록했다. 사설만 12개가 나왔다. 물론, 최고의 수익률에 대한 사설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연금 수익률이 좋았을 때는 기사가 많이 나오지 않다가 수익률이 나쁠 때 기사가 쏟아지는 것은 언론의 속성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시 한국경제, 문화일보 등은 사설에서 국민연금 손실의 원인으로 문재인 정부가 기금운용본부를 전주로 옮겼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기금운용본부는 여전히 전주에 있지만 23년도 수익률은 사상 최대다. 23년도 당시 사설에서 주장한 논리가 매우 어색해졌다는 사실은 지적하고 싶다.
수익률이 나쁠 때만 기사가 쏟아지는 것의 가장 큰 문제는 국민들이 국민연금 수익률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국민연금 운용성과는 그리 나쁘지 않다. 1988년 국민연금이 만들어진 이후 현재까지 국민연금 기금에 약 1000조원의 적립금이 쌓여있다. 여기에서 국민연금 가입자가 낸 기여금은 절반도 안 된다. 놀랍게도 국민연금 운용에 따른 수익금 누적액이 약 550조원을 초과한다.
적립금 1000조원의 절반 이상은 가입자가 낸 기여금이 아니라 기금운용을 통해 발생한 성과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금 운용 수익 성과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나쁜 성과는 아니다. 고위험 투자를 할 수 없는 국민연금 구조를 감안해 보면 더욱 그렇다. 실제로 재작년 -8.2% 손실을 봤을 때도 해외 5대 연기금 평균 수익률 -10.6%보다는 선방했다. 주식 비중이 낮은 국민연금 특징이 손실 폭을 줄이는 장점과 장기 수익률을 낮추는 한계를 동시에 나타낸다.
국민연금 수익률이 좋지 않으면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품는 ‘공포 마케팅’ 기사가 많이 나온다. 국민연금이 소진되면 국민연금을 받을 수 없다는 기사가 나왔다. 물론 국민연금은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적립식이 아니라 부과식으로 전환되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즉, 국민연금 기금이 소진되는 것과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는 것에는 인과관계가 없다. 이는 마치 현재 매년 기초연금을 받지만, 기초연금 적립금은 애초부터 0원이라는 사실을 고려해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조선일보 1월6일 기사.
그런데 국민연금 수익률이 올랐다고 해서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긍정하는 기사는 많지 않다. ‘작년에 사상 최대 12% 깜짝 수익률…국민연금 효자종목 분석해보니’ 같은 기사를 보자. 국민연금 손실은 구조적인 문제로 해석하고 국민연금 수익은 우연의 효과로 해석한다는 경향성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올해 수익률은 장담할 수 없다’는 부정적 기사까지 나왔다. 뉴스의 속성이 부정적인 일에 대비하는 ‘레드팀’의 역할을 하는 것이긴 하지만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국민적 편견이 언론의 국민연금 기사의 부정적 편향성에서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은 언급하고 싶다.
그런데 언론이 오히려 긍정적인 부분만 강조하고 부정적 부분은 언급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 지시에 따라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건강보험료를 인하했다는 기사다. 직장인과 지역가입자의 차별을 줄이는 정책은 기본적으로 필요한 정책이다. 그러나 건강보험 가입자의 기여금을 낮추면 어쩔 수 없이 건강보험료 재정은 악화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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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차별을 막는 긍정적 측면과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되는 부정적 측면이 동시에 존재하는 정책인데, 이때 언론 보도는 주로 긍정적인 측면에 치중되어 있다. 정부가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른 보험료 국고지출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국회에서 이를 추가로 삭감해서 건강보험 재정에 악영향을 끼쳐도 별로 기사화가 되지 않는다. 언론은 어떤 때 부정적인 기사를 주로 쓰고 어떤 때 긍정적인 기사를 주로 쓸까. 논의해 볼 주제다.
▲매일경제 1월5일 기사.
미디어오늘/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관종(觀從)
"난 자연산 D컵, 만져 보세요" 홍대 박스녀, 결국 검찰행…공연음란 혐의
2023년 10월20일 밤 10시 무렵 홍대에 박스만 걸친채 나타나 인플루언서 아인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박스안에 손을 넣어 볼 것을 권하고 있다. (SNS 갈무리) ⓒ 뉴스1
박스만 걸친 채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거리에 등장해 '손을 넣어 보세요' '가슴 만져 보세요'라고 해 큰 화제와 논란거리를 만들었던 인플루언서 아인이 공연음란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12일 서울 마포경찰서는 '홍대 박스녀' '압구정 박스녀' ‘엔젤박스녀’ 등으로 알려진 아인을 기소의견을 달아 지난달 초 검찰로 넘겼다고 밝혔다.
아인은 지난해 10월 20일 밤 10시쯤 서울 홍대거리에서 구멍이 뚫린 박스를 입고 나타나 특정 신체 부위를 만져보라고 한 혐의를 받다. 아인이 등장한 홍대 거리는 많은 사람들이 몰렸고 결국 경찰이 출동해 이를 제지하기에 이르렀다.
AV배우 겸 모델인 아인은 이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더하고 싶었는데 경찰이 해산시켰다"며 불만을 나타낸 바 있다. 또 아인은 "나는 의젖(성형수술한 가슴)이 아니다, 바이럴 마케팅이 아니라 그냥 날 알리고 싶어서다, 내 갈 길 간다"며 자신의 가슴이 자연산 D컵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형법 제245조의 공연음란죄는 '공연히 음란한 행위를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하도록 돼 있다./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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