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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24.12.1~31 총체적 ZR발광'윤석열과 국민의 힘 그리고 국무위원.관료들

by 이성근 2024. 12. 31.

1. ‘김건희 수렁이토록 몰염치한 집권세력 2. 전쟁광들의 가짜 뉴스, 전쟁하고 싶은 윤석열 정부 3. 로제 아파트’, 노동자 총파업’ 4. 한국증시 탈출, 제발 분석부터 제대로 하라 5. 기억이 지역을 만든다 6. ‘탄핵 이후에 답해야 할 민주당 7. 양극화 해소, ‘라는 소리 듣지 않으려면 8. 뇌 썩음 9. 나라가 더 망가지기 전에 10. ‘윤석열의 계엄 폭동내란죄인 3가지 이유

11.미치광이 기관사에게 운전대를 더 맡겨둘 수 없다 12.윤석열과 그 잔당들의 죄, 국민에게 고함 13. 내란의 우두머리, 윤석열 14. 검찰은 '윤석열 내란' 수사에서 손을 떼라 15. 극도로 위험한 대통령 16. 윤석열 사과 담화 속 술수독재자는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 17.산청군의 112번째 촛불집회 18. 진정한 민주혁명, 배반당하지 않을 시민 정치 체제를 만들자 19.자연에 반역한 환경부의 운명 20.그들은 왜 전공의 처단을 얘기했나

21.‘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 지옥에선 통하지 않는다 22. 범죄 용의자 윤석열을 프로파일링한다 23. 새봄의 민주주의는 그대처럼 밝고 생기 있길 24. 체포되지 않은 윤석열, 끝나지 않은 내란민주공화국 지키고 6공화국 넘어서자 25. 우리의 피를 타고 흐르는 결속의 힘 26. 예수가 된 인공지능 27. 두 번의 실수는 없다2016년 탄핵 오답노트 28.‘인간 윤석열기사를 볼 뻔했다 29.‘윤석열 폭탄안고 트럼프 파고 맞을 건가 30.정치를 위한 정치와 이별할 결심

31.내란 수괴가 사법 마비라는데 침묵하는 사법부 32.국가 신뢰 회복만이 경제위기를 차단한다 33.내란 수괴의 새빨간 거짓말 34.‘법적·정치적 책임번복체포·수사·탄핵이 시급하다 35.이인호 교수의 내란죄 부인 주장에 대한 반론 36.광기에 빠진 역사 속 폭군이 이러했으리라 37.배신자론의 역설 39.박정희·전두환·윤석열역사가 반복되는 이유 40. 윤석열 탄핵에 부쳐, 새보수의 첫 걸음은 '배신자 프레임 깨기

41.보수, 반국가세력과 단절해야 42.강태완과 윤석열 43.직업인으로서의 국회의원 44.결국 문제는 국민의힘이다 45. 45년 전에 묶인 윤석열의 자유’ 46.‘우리자신에게로 47.윤석열 탄핵 이후응원봉보다 사람을, 마음을! 48.87년 체제의 파국응원봉이 내는 길 49. K민주주의의 세계사적 함의 50.국민의힘은 왜 이럴까

51.다른 목소리 52.그들의 나라, 우리들의 나라 53.좀비를 탄핵하라 54.내란옹호자는 개헌을 말할 자격이 없다 55.해방 80, 7공화국 시대를 열자 56.내란의 뿌리를 뽑으려면 57.거리에 피어난, 여기 꺾을 수 없는 꽃들이 있다 58.한덕수는 '나쁜 총리'였다 59.민주주의의 배신자들 60. 윤석열에겐 자비가 필요치 않다

61.‘어준석열 유니버스너머 62.전두환의 자연사가 윤석열의 내란 불렀다 63.내란을 끝내는 현명한 방법 64.유시민 님의 글에 대한 미천한 반론 65.국책연구원 입틀막한다고 소득 격차 국가 책임없어지나 66. 다시 만난 (그들의) 세계 67.차기정부 경제 성공을 위한 5가지 제언 68.윤석열 지우기'가 시작됐다 69.조숙한 '파시즘' 윤석열의 내란 앞에 "나는 반성한다" 70.1978공장의 불빛에서 2024광장의 불빛으로

71. 아직도 박정희 무덤에 침을 뱉는 자들에게 72. 민주당 더 욕심부리면 뼈다귀 놓친 개꼴 된다 73.과거에 갇혀버린 나라 74.친위 쿠데타의 운명 75.악한들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76.보수에 대한 모든 기대를 버렸다 77.‘모든윤석열과의 결별 78.윤석열 또 수사 불응, 그래도 지켜보겠다는 공수처 79.한겨레와 조선이 만나는 곳 '양비론' 80.공직자의 명예

81.비상시국에 한덕수 대행의 개 풀 뜯어먹는 소리? 제발 할 일 해라 82.물에 빠진 늙은 개를 건져주자 벌어진 일 83.민주주의와 내란 사이에 중립은 없다 84.‘내란 수습권한대행은 국회의장이 돼야 한다 85.풀보다 먼저 눕던 한덕수 미스터리’ 86. 정당은 정치적 조폭인가 87.내란의 늪에 빠진 도로 친윤당’ 88.‘푸른 뱀의 해를 기다린다 89.윤석열을 즉각 체포하라 90. 총체적 ZR발광'에 숨겨진 '카오스 전략

 

 

김건희 수렁이토록 몰염치한 집권세력

윤석열 대통령의 117일 기자회견을 보고 외신 기자들은 한 가지 질문에 집중되는 게 놀라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실제로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한 직후여서 대내외적으로 과제들이 막중한 상황이지만 회견 시간의 대부분이 김건희 여사 논란에 할애됐다. 우리는 경제와 외교·안보 등 복잡하고 시급한 현안들 앞으로 걸어가야 하지만, 김건희 모래주머니가 발목을 짓누르고 있다. 그러니 윤 대통령의 회견에서 놀라야 할 것은 그토록 한 가지 사안에 집중하고도, 앞으로 나아갈 계기를 만들기는커녕 답답증만 키웠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의 어찌 됐든 사과이후 해결되거나 변화한 것은 거의 없다. 대통령 스스로를 바꾸라는 게 국민들 요구인데, 윤 대통령 부부는 핸드폰을 바꿨다. 뒤늦게 사과하긴 했지만 정무수석의 기자 무례발언은 윤 대통령과 참모들의 진심이 어디에 있는 건지 좀 더 솔직하게 알려줬다.

김 여사는 지난 1024일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방한 행사를 끝으로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정국은 여전히 김 여사 그늘 아래다. 정국에서 김 여사 문제가 차지하는 규정력은 막강하다. 지금 여권에서 벌어지는 모습들이 증명해준다. 집권세력은 김 여사 문제로 인해 발걸음이 꼬이다 못해 최소한의 염치와 상식마저 내던져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 논란이 대표적이다. 한동훈 대표가 윤 대통령 부부 비판 글 게시자들이 자신의 가족인지 여부만 초기에 밝혔으면 종결됐을 일이다. 위법이 아니라는 둥 애매한 태도로 분란을 키운 것은 한 대표다. 그러다 친한동훈계 인사들은 게시판 논란이 이달 10일로 예정된 김건희 특검법 재표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고, 한 대표도 모호한 태도다. 김건희 특검법이 기껏 한 대표의 당원 게시판 논란 방어를 위한 반격용 카드라는 말인가. 친한계는 윤 대통령이 세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한 김건희 특검법을 이번에는 통과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긴 한 건가. 그렇다면 특검법을 내전용 카드로 써먹을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진지하게 결행할 일이다. 친윤석열계가 특검법 연계론을 공포탄일 것이라면서도 움찔하는 것 또한 코미디다. 또 국민의힘에서는 김건희 특검법 이탈표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빈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어 집단으로 기권하는 기발한 방안까지 논의됐다고 하니, 여사 지키려 이성마저 잃었나 싶다. 특검법 반대가 지상과제이다 보니,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양심에 따른 표결권 따위는 별 고려사항이 못 되는 여당의 현실이다.

야당의 감사원장·검사 탄핵 추진과 상설특검 후보 추천 규칙 개정 등을 두고 대통령실과 여당, 해당 기관이 반발하는 것도 염치없다. ‘거대 야당의 횡포라고 비난하기 전에, 이 사태가 왜 벌어졌는지부터 돌아보는 게 도리다. 감사원은 서해 공무원 피살, 사드 배치 지연, 탈원전·태양광 사업 등 문재인 정부 사건을 집중적으로 파헤쳐 검찰로 넘긴 반면, 현 정부의 대통령실·관저 이전은 감사를 2년 가까이 끌다가 김 여사 관련 핵심 의혹인 공사 업체 선정 배경을 밝혀내지 않았고, 관저에 있는 70규모의 용도 불명 시설에 대한 감사를 누락했다. 감사원의 생명인 독립성과 중립성을 스스로 무너뜨린 데 부끄럽지 않나.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사건을 불기소 처분했을 때는 불공정하다는 국민 다수 여론 속에 숨죽이던 검찰이, 그 책임자인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 3명을 야당이 탄핵하겠다고 나서자 집단 반발하는 것도 보기 민망하다. 대통령이나 친인척을 수사하기 위한 상설특검 후보 추천에서 여당을 배제하도록 야당이 국회 규칙을 개정한 것 또한, 대통령실이 위헌이라며 큰소리칠 일이 아니다. 윤 대통령이 수사팀장이었던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 때도 공정성을 위해 여당은 특검 추천에서 배제됐음을 알면서 이러나.

대통령은 공정과 상식을 잃었고, 여당은 집권 내내 내전 상태이며, 사정기관들은 스스로 구부러진 칼이 되었다. 부끄러움 같은 건 없다. 이제 대통령 지지도가 또 10%대라는 소식에 국민들도 놀라지 않고, 여권에서도 아파하지 않는다. 집권세력은 거부권과 인사권, 사정기관을 틀어쥐고 문제 해결을 미루며 시간을 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김건희 수렁을 끝내 헤어나진 못할 것이다. 몰염치와 비상식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다고 보는 건가.

황준범 | 논설위원 | 한겨레 2024.12.01.

 

전쟁광들의 가짜 뉴스, 전쟁하고 싶은 윤석열 정부

조선 군대의 러시아 파병은 진실인가?

조선의 군대가 러시아에 파병되었다. 규모는 1만 명 이상이다. 고사포와 개인화기를 지급 받고 전장으로 배치되었다... 이미 교전에 돌입하여 몰살당했다. 우크라이나의 미사일 공격으로 지휘부 장군 1명이 부상당했다...”

러시아와 조선이 올 6월에 체결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러시아연방 사이의 포괄적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각각의 나라에서 비준했을 뿐이다. 아직 조선 군대의 러시아 파병은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가짜 뉴스다...”

여기에 더해 20241125일 국내의 한 언론사는 한꺼번에 3개의 기사를 내보냈다

우크라군 참모총장 쿠르스크 전선에서 북한군과 교전’”, “한국 살상무기 우크라 공급시 모든 방법으로 대응’”, “국정원 우크라전 파병 북한군 사상자 발생 첩보...면밀 파악중’”(연합뉴스, 20241125).

또 다른 매체는 미 국방부의 입을 빌어 조선 군대의 우크라이나 파병은 사실이 아니라는 소식을 전했다(통일뉴스, “미 국방부, ‘북한군이 우크라이나에 있다는 징후 없어’”, 20241126.)

 

조선의 군대가 러시아에 파병되었는지에 대한 사실 여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쟁 중이다.

조선 군대의 러시아 파병설은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의 발언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후 대한민국의 국가정보원이 이를 사후적으로 확인하고, 미국과 나토는 시차를 두고 점차 조선 군대의 러시아 파병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독자적 전쟁 수행 능력이 없는 우크라이나는 취임하는 즉시 전쟁 종식시키겠다고 공언한 트럼프의 등장으로 전황상의 불리함, 지원국들의 피로감이 더해지며 더욱 곤경에 처했다. 조선 군대의 러시아 파병설은 국면 전환을 바라는 우크라이나와 전쟁 국가 미국의 네오콘, 그리고 정치적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대통령 윤석열을 묶어줄 수 있는 주요한 고리로 등장하고 있다.

 

조선과 한국의 해외 파병 흑역사

아직 조선이 러시아로의 파병을 공식적으로 확인해 준 바는 없다. 하지만 과거 사례를 참고할 때 미공개라고 해서 조선이 러시아에 파병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실제로 조선군의 해외 파병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꽤 많은 사례가 존재한다. 냉전 시대인 1945~1994년 사이 조선은 53개국에 군사 지원을 했다. 무기를 지원하면 군의 기술 요원이나 자문단도 파견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53개국은 조선이 군대를 파견한 나라의 수라고 할 수 있다. 2차 국공내전, 베트남 전쟁,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분쟁 개입, 미사일 위기 때 쿠바 지원, 34차 중동전쟁, 앙골라 내전, 자이르 파병, 남미 그레나다팔레스타인이란 등에 대한 군사 지원 및 개입 등이 대표적이다. 냉전이 끝난 뒤에는 1994년 시리아 내전에 대규모 파병을 한 것 외에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미야모토 사토루, “북한의 러시아 파병과 그 전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IFES 브리프 NO.2024-16, 2024.11.19.; 김용현 외, 김정은 시대 북한사회 100100(서울시; 동국대학교출판부, 2024), pp.94-103.).

 

한국군의 해외 파병은 잘 알려진 박정희 정권의 베트남 전쟁, 노무현 정권의 이라크 파병 외에 유엔 평화유지군 활동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베트남 전쟁에는 연인원 325천 명이 참전해서, 한국군 사망자 5천여 명, 부상자도 11천여 명이나 발생했다. 그리고 참전 용사들은 체불 임금 미해결, 전쟁 트라우마, 10만 명 이상이 대를 잇는 고엽제 후유증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들 수치 또한 미군 사망자 58천여 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희생자다. 아무런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베트남 전쟁에 남과 북이 한반도를 넘어 이국땅에서 한쪽은 용병으로, 한쪽은 지원군으로 참가하여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눈 것이다. 아울러 한국군이 군사작전을 이유로 무고한 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한 숫자가 확인된 것만 9천여 명이 넘는다. 이에 대한 올바른 진상 규명과 진정한 사과, 제대로 된 보상으로 가는 길은 아직 요원하다. 참전 60년을 넘겼지만 한국 사회에서 베트남 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가짜뉴스가 일으킨 베트남 전쟁, 이라크 전쟁

미국 대통령 바이든은 퇴임을 눈앞에 두고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를 타격할 수 있도록 장거리 미사일의 사용 제한을 해제했다. 우크라이나는 이 무기로 러시아를 공격했고, 러시아는 이에 맞서 핵전쟁 불사를 언급하며 보복에 나서고 있다. 차기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취임하면 곧바로 전쟁을 끝내겠다고 공언했지만 이 약속이 지켜질 것인지는 두고봐야 한다.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원주민을 학살하고 자신들의 나라를 세운 이래 20년 정도를 제외하고는 전쟁을 치르지 않은 해가 없는 국가다. 군인 출신 대통령 아이젠하워가 통탄했듯이 미국을 움직이는 힘은 전쟁을 만들어내는 군산복합체에서 나온다.

과거에 무기는 전쟁에서 싸우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이제는 무기를 팔기 위해 전쟁을 한다. 전쟁으로 먹고 사는 나라 미국은 전쟁을 하기 위해 정보의 조작과 왜곡은 물론 독립된 나라의 정권도 전복한다. 대표적인 것이 베트남전을 일으키기 위해 조작한 통킹만 사건’, 이라크를 침략하기 위해 만들어 낸 대량 살상 무기 존재설이다.

 

미국의 본격적인 베트남전 개입을 위해 날조된 북베트남군의 미 해군 함정 공격 사건. 19648월의 통킹만 사건 조작에 동원된 미 해군 구축함 USS 매독스. 나무위키

1964년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기 위해 발표한 베트남민주공화국에 의한 미국 함정 공격설(정확히는 두 번째 교전이다.)1971년 미국 국방부 펜타곤 보고서를 인용 보도한 뉴욕 타임즈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가짜 공격설은 미국의 국가안전보장회의가 발표한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교전은 존재하지 않았고,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도 훗날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를 고백했다. 대한민국은 이 전쟁에 미국의 용병으로 참여했다. 조선 역시 1965년 두 차례의 정부 성명을 통해 한국이 베트남에 파병한 군대 규모에 비례해 베트남민주공화국과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베트콩)에 무기와 장비, 지원군을 파견하겠다고 밝히고, 실행에 옮겼다. 1967년부터 1969년 초까지 총 87명의 조선 공군 요원이 베트남민주공화국에서 복무했으며, 조종사 14명이 사망하고, 미군 비행기 26대를 격추했다는 증언도 있다. 1966~ 1975년 사이 공군 전투부대, 심리전 부대, 특수전 부대, 고사포 부태, 공병 부대, 베트콩 훈련 및 각종 물자 지원 등이 이뤄졌다(김용현 외, 앞의 책 참조).

 

2001911일 알카에다가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의 펜타곤을 공격한 후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침공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대통령 부시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 살상 무기(Weapon of Mass Destruction, WMD: 핵무기, 생화학 무기, 장거리 탄도미사일 등을 일컫는다)를 계속 제조, 비축하고 있으며, 이라크는 이란, 조선과 함께 국제적 악의 축(Axis of evil)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200210월 미국 의회는 이라크에 대한 군사력 사용을 승인했다. 20032월 당시 미국 국무장관 콜린 파월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이라크가 WMD 프로그램으로 이전 결의안을 위반하고 있는 혐의가 있다며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행동을 승인할 것을 요청했다. 파월은 2003년 유엔에 이라크가 생물 무기 생산을 위한 이동식 실험실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2003320일 미국과 연합군은 이라크를 침공하여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이후 미국은 이라크에서 대량 살상 무기를 찾아내지 못했으며, 파월은 2004년에 이에 대한 증거가 없다고 인정했다. 이 침공에 영국, 호주, 폴란드가 참여하고, 쿠웨이트,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미국에 자국 영토를 제공하거나 외교적 지지를 보냈다. 미국의 이웃국가인 캐나다와 멕시코는 전쟁 지원을 거부했고,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독일과 프랑스도 지원을 거부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라크 침공과 파병을 지지하고, 서희부대와 제마부대로 명명된 건설공병단과 의료지원단, 그리고 자이툰 부대로 명명된 3000명 규모의 병력을 파병했다. 대한민국의 파병 규모는 미국과 영국에 이은 세 번째 규모였고, 비용도 한국 측이 부담했다. 20046월 한국군 파병에 반대하는 이라크 내 저항 세력이 미 군납업체 직원 김선일 씨를 납치살해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으로 국면 전환 꾀하는 윤석열 정부

5년 임기 절반을 마친 대통령 윤석열의 국정 지지율은 20%를 오르내리며 역대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부자 감세, 민생 긴축, 사대 굴종 외교, 남북 관계 악화 등의 정책 실패에 부패와 무능이 더해지며 낳은 결과다. 트럼프의 당선은 혼돈과 불확실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위기에 처한 정권이 시민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며 국면을 돌파할 수 있는 유력한 카드로 만지작거렸던 대표적 사안이 남북의 충돌, 전쟁 위기. 과거 수 차례 자행된 북풍 공작은 시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던 정권들이 정권 연장을 위해 취했던 대표적인 대국민 사기극이었다. 오늘날 그런 공작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오히려 가짜 뉴스는 대중을 현혹하기에 차고 넘친다.

 

전쟁을 만들고, 그 전쟁을 확대하고, 세계를 바야흐로 상시적 전쟁체계로 만들고자 하는 전쟁 상인들의 군산복합체와 전쟁 국가 미국은 그 가짜 뉴스의 진원지다.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운 젤렌스키, 가중되는 사퇴 압력에 국면 전환에 도움이 되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윤석열, 공작정치로 권력자에게 충성하는 정보기관, 불확실한 정보를 아무런 검증 없이 전하는 기성 제도언론이 전파자가 되고 있다. 국가 권력은 정보에 대한 통제도 진행한다. 한국 정부는 올해 초부터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 K-stat, 유엔 무역통계 등에서 한국의 무기 수출입 통계를 하나씩 비공개로 전환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한국의 방위산업 무역 실적을 대대적으로 자랑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개별기업 개별 품목이 아닌 이스라엘에 무기 수출을 얼마나 했는지 등 지극히 개괄적인 정보도 알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군사 부문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분쟁 국가에 대한 무기 수출 비판 여론을 피해 가기 위한 술책이다.

 

20241127일 대통령 윤석열은 우크라이나 정부 특사단을 접견하고 러시아와 조선의 위협에 실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의 최측근이자 장관급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내정된 마이크 왈츠 하원의원은 한국의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을 우려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들(한국)은 우리의 허락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Well, they won’t do it without our approval.)”이라는 트럼프의 과거 발언을 고려할 때, 그리고 국내외 생명평화운동의 투쟁에 직면하여 윤석열 정부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 무기 지원이나 개입은 의도대로 성사되기 어려울 수 있다. 결국 조선 군대의 러시아 파병을 이유로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을 노려왔던 대한민국은 대 러시아 관계 악화라는 청구서만 받아들 처지다.

 

분쟁 국가에 대한 무기 수출과 살상 무기 지원 중단해야

전쟁은 인간성 파괴의 가장 극단적 형태다. 전쟁은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다. 형제와 자매도 예외는 없다. 특히나 이스라엘의 행태에서 익히 봐 왔듯이 미래의 적을 미리 제거하기 위해 재생산이 불가능한 노인은 놔두고, 여성과 아이들을 집중 도륙한다. 어떤 정의로운 전쟁도 나쁜 평화에 미치지 못한다.

과거의 역사 속에서 남과 북은 한반도를 넘어 다른 나라 전쟁터에서도 적군으로 조우했다. 남과 북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로 파병을 정당화했지만 그것은 비극이었다. 왜 남과 북의 젊은이들이 남의 나라 전쟁에 동원되어 목숨을 잃어야 하는가? 조선 군대의 러시아 파병은 아직 사실 여부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러시아와 조선이 체결한 협정에 의해 상대방의 영토에 군대를 파병하는 것은 독립된 주권을 가진 그들의 권리이다. 하지만 그들이 수행하는 전쟁의 명분이 무엇이든 생명평화운동은 이 전쟁 역시 동의할 수 없다. 혹자는 전쟁의 원인을 따지고, 유불리와 불가피성을 운운하지만 진영 논리에 따른 궤변일 뿐이다. 인류는 지금 당장 무기를 내려놓고 모든 전쟁을 끝내야 한다. 또다시 전쟁 상인의 가짜 뉴스에 놀아나 제3차 세계대전의 희생양이 되는 우를 범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 정부가 유럽 국가들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은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는 것은 여러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됐다(경향신문, “한국이 유럽보다 많은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니” 2023126). 우크라이나에 제공된 포탄이 러시아에 파병된 조선의 군대를 향해 발사된다면 남과 북의 평화를 위한 우리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60년 전 베트남 전쟁 참전 악몽의 재현이다. 대한민국 시민사회는 윤석열 정부의 분쟁 국가(특히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수출과 살상 무기 지원을 막아야 한다. 무기산업, 원자력산업은 인간의 탐욕을 산업으로 분식한 반생명반평화 그 자체다. 한국 사회의 생명평화적 재구성은 여기서 시작된다.

정범진 생명평화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시민언론 민들레 2024.12.01.

 

 

로제 아파트’, 노동자 총파업

아파트 아파트 우, 우후우후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부른 아파트가 화제다. 로제가 좋아하는 아파트 술게임에 착안해 만든 노래라고 한다. 술게임 아파트는 유쾌하지만 현실의 아파트게임은 잔인하다. 서울 한복판에 우뚝 솟은 거대한 아파트단지에 입주하거나 청약에 당첨되어 수억원의 시세차익을 얻는 것이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점이 됐다. 그러나 아파트게임에는 승자보다 패자가 많다. 올해 2분기 기준 서울 가구소득 중위 값은 7812만원,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9억원이다. 연봉 8000만원을 버는 고소득자도 서울 아파트에 입주하려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1년을 모아야 한다. 게임의 패자들은 출입문이 다른 임대아파트 동이나 거대한 아파트 그늘 아래에 산다.

로제의 아파트 노래를 패러디하는 영상물도 쏟아진다. 그중엔 학교에서 일하는 교육공무직 노동자의 패러디 영상도 있다. 어색하고 뻣뻣한 몸동작뿐만 아니라 노래가사도 로제의 아파트와는 전혀 다르다. “총파업 총파업, , 우후우후

 

아파트와 임대아파트처럼 학교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있다. 학교비정규직은 영양사와 사서 등 1유형과 조리사 교무실무사 등 2유형으로 나뉘는데 2유형의 기본급이 198만원 정도에 불과해 최저임금보다 낮다. 2025년 월 최저임금 2096270원에 맞추려면 월 11만원 정도 인상해야 한다. 문제 해결을 위해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여성노조로 구성된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가 17개 시도교육청과 임금교섭을 벌였다. 그러나 교육청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기본급 66000원 인상과 근속수당 1000원 인상을 협상안으로 내밀었다. 협상이 아니라 조롱이다.

교육공무직에게 쓸 예산이 없다고 말하는 국가가 부자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다. 정치인들은 공시가 12억원 이상 아파트 소유자만 내는 종부세를 폐지하는 것과 5000만원 이상 돈을 번 금융투자자들의 세금을 면제해주는 것을 서민정책, 코인투자를 청년의 희망이라고 부른다. 종부세는 윤석열 정부의 화끈한 부자감세로 2022년에 비해 무려 5조원이 줄었다. 국가가 투기적인 자산소득은 우대하고 노동의 가치는 폄하하면서 노동은 무너지고 자산격차는 심화되고 있다. 참다못한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은 교육청 앞에 천막을 치고 126일 총파업을 선언했다. 고급아파트에 들어가는 꿈이 아닌 모든 노동자가 함께 살고자 하는 꿈을 담은 소중한 천막이다. 최저임금을 받기 위해 총파업까지 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언론은 급식대란딱지를 붙이고 고용노동부 장관은 엄정대응만을 외친다. 무책임하고 무능한 국가와 정치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로제는 20대 시절 새벽 5시까지 자신을 향한 악플을 찾아봤다고 한다. 이때의 슬픈 마음을 넘버 원 걸이라는 노래로 만들었다. 자기 존재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갈구하는 노랫말이다. 노동자들도 일을 하거나 투쟁을 할 때 많은 비난과 악플을 받는다. 노동조합으로 뭉친 노동자들은 개인이 아니라 노동자 전체에 대한 존중과 연대를 갈구하는 노래를 쓰고 외친다. 로제의 아파트뿐만 아니라 노동자가 부르는 총파업의 노래도 함께 불러주시길 부탁드린다.

박정훈 민주노총 공공운수 노조 부위원장 | 경향 2024.12.02.

 

 

한국증시 탈출, 제발 분석부터 제대로 하라

정부의 주가 부양 노력이 무색하게 한국의 주식시장은 맥을 못추고 있다. 밸류업 정책 한다고 1년 내내 요란을 떨었고, 금투세를 폐지해야 주식시장이 살아난다고 야당을 협박하다시피 해 금투세를 폐지시켰지만 주식시장은 오르기는커녕 떨어지고 있다.

때마침 한국은행의 국제투자대조표가 발표되자 언론의 수사가 화려하다. 개미들의 국장 탈출에 대한 기사가 이어졌고, 심지어 아이큐 순서대로 국장을 탈출한다는 자조적인 인터넷 기사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3/4분기에 해외 주식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막대한 수익을 얻은 반면, 국내에 투자한 외국인들은 큰 손해를 본 것으로 추정되는 자료가 발표된 것에 기반한 기사들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신뢰 추락, 한 술 더 뜨는 언론

시장은 냉정하게 거짓말을 폭로했다. 밸류업 정책과 금투세 폐지가 주가를 부양할 것이라는 거짓말은 금방 들통났다. 한국 정부의 정책 능력에 대한 신뢰는 다시 한 번 추락했고, 시장은 준엄하게 이를 꾸짖고 있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해도 주가는 추락하고 있다. 경제가 위기에 처할 때 최후의 보루는 정부와 한국은행이고, 그 힘의 원천은 공신력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스스로 정책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기에 시장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 주목해야 하는 사실은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고 있는 언론이다. 사실이 아닌 주장을 통해 정부의 실책을 덮고 문제의 본질을 밝히지 못하게 하고 있다. 마치 현명하지 못하거나 개인적 이익을 좇는 개미투자자들 때문에 주식시장이 안 좋은 것으로 포장하고 있다. 이러면 정부 관계자들도 올바른 정책을 펴기가 어렵다. 사실은 전혀 다르다. 팩트체크가 필요하다.

 

팩트체크 1. 개미투자자들은 국장을 떠나지 않았다

개미투자자들이 국장을 떠났다는 통계는 확인되지 않는다. 지난 4년 간 한국 주식시장에서 일관되게 매도한 주체는 기관이다. 외국인은 매도하다가 지난 2년간 매수로 돌아섰지만, 3/4분기부터 다시 강한 매도세를 보이고 있다. 개미투자자들은 2021년과 2022년 기관과 외국인의 매도물량을 다 받아내며 코스피 시장에서만 134조 원어치를 사들였다. 작년에 코스피 시장에서 28조 원을 팔았고, 상반기에 30조 원을 팔았는데 이는 외국인들이 매수세로 돌아서면서 기존의 보유 물량을 처분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이 국장을 떠나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훨씬 매도를 많이 한 기관의 문제를 먼저 짚었어야 한다.

 

팩트체크 2. 수익률 최악 이유는 내수침체와 미래 불확실성 때문

정부에서 주식시장 부양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다. 주식가격은 미래의 수익 대비 현재가치에 대한 예상을 반영한다. 따라서 금년도 한국 주식시장 가격이 오르지 못하는 이유는 내수침체와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으로 보아야 한다.

한국은 수출주도형 경제이기 때문에 세계 경제의 바로미터 역할을 하고 있다. 경기 민감형 경제가 되어 세계 경제의 경기를 선()반영한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움직이는 시장이 되기도 한다. 주력상품인 반도체를 비롯해 자동차, 철강, 화학 등의 전망이 나빠지면서 한국 시장이 제일 먼저 타격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부의 자해적 재정정책으로 내수침체가 깊어지면서 내수 관련 주식들의 전망도 밝지 않다. 서민경제가 어려워지면 주식시장만 좋기는 힘든데, 서민경제를 살리는 정책 대신 주가부양만 하려니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팩트체크 3. 국장 탈출은 공공부문이 선도하고 있다

한국의 해외 주식투자는 최근 들어 급격하게 늘고 있다. 해외 주식투자를 이끄는 주체는 공공부문이다. 2023년 현재 해외 주식투자의 50% 이상은 공공부문이 차지하고 있고, 이를 국민연금이 주도하고 있다.

과거 국민연금은 분산투자의 원칙을 무시하고 국장에만 투자하다가, 어느 순간 해외에 투자해야 한다는 합리적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해외투자를 늘리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 총 자산의 1/3이 해외 주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해외투자를 계속 확대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액수가 크다 보니 환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이미 결정된 해외투자를 강행하고 있다. 해외투자의 방향은 맞지만 환율 사정은 고려하지 않은 채 해외투자를 늘리는 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 국민연금의 국장 탈출 속도가 합리적인지 되돌아 봐야 한다.

 

팩트체크4. 개인투자자의 국장 탈출은 허구적 주장이다

전체 해외 주식투자 중에서 민간 부문은 50%가 채 안 된다. 그중에서 개인투자자 비중은 40%가 안 된다. , 전체 해외 주식투자 중에서 개인투자자 비중은 20%가 채 되지 않는다. 민간 부문 중에서 개인투자자 비중도 2019년에는 20%에 불과했다. 그러니 개인투자자들은 공공부문과 기관투자자들에 이어 해외투자에 나섰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최근 해외 주식투자가 증가하는 이유는 해외 주식투자가 편리해진 이유도 있다. 증권사들이 경쟁적으로 개인의 해외 주식투자를 부추기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국민연금이나 기관들의 해외투자보다 뒤늦게, 그것도 상대적으로 액수도 적은 개인투자자의 해외투자 위주로 국장 탈출을 논의하는게 이상하게 보일 정도다.

 

팩트체크 5. 해외투자는 금융 안정성을 높인다

한국은행의 국제투자대조표에 따르면 금년 3/4 분기 한국의 순대외금융자산은 9778억 달러로 1조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외환위기를 겪었던 한국경제의 금융 안정성이 크게 개선된 것이다. 또한 한국의 대외투자는 그 나라 통화로 표시되는 반면, 외국인의 국내투자는 원화로 표시된다. 최근 환율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순대외금융자산이 증가하는 효과도 있다.

이처럼 한국의 순대외금융자산이 증가하게 되면 외환위기를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고 이는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높이게 된다. 개미투자자들이 해외에 투자를 늘리는 것은 개인적으로 분산투자를 통해 합리적 자산 배분을 하면서 동시에 국가 경제의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기에 권장해야 할 사항이다.

 

팩트체크 6. 국장 탈출이 주식시장의 침체를 가져온 것이 아니다

한국 주식시장의 침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 통계에 의하면 지난 10여 년 간 한국의 주식투자 수익률은 연평균 2%에 불과한데 이는 OECD국가 중 최하위권에 속한다. 10여 년간 낮은 수익률을 보였고 미래의 전망도 밝지 못하다면 한국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 된다. 10년간 평균적으로 한국 주식시장의 상승률이 낮다면 이는 구조적 문제이다.

구조적 문제의 핵심은 한국의 성장률이 둔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출산으로 인한 성장률 하락, 기술 혁신의 둔화로 인한 수출 경쟁력 약화, 대주주의 전횡을 방조하는 주식시장 규칙으로 인해 개미투자자들은 안정적 수익을 기대할 수 없다. 최근에는 대표주식인 삼성전자조차 휘청거리면서 한국의 주식시장은 안정적 자산 증식 수단으로서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자연히 개미투자자들은 모험적이고 투기적인 도박성 투자에 몰리고 있다. 밸류업 정책이나 금투세 폐지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팩트체크 7. 개인투자자들의 미국 몰빵 투자가 문제다

개인투자자들의 해외투자는 권장할 사항이지만, 이들 투자가 합리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해외 투자액 중 90% 이상이 미국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미국의 실적이 좋기 때문에 수익률이 높지만, 안정적인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몰빵 투자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개인들은 투자액의 50% 상당을 10개 종목에 몰아서 투자하는 지극히 편중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소위 미국 대형 기술주 중심으로 투자하고 있는 것인데, 최근 인공지능 열풍을 타고 상승세를 타고 있는 종목에 집중하는 행태로 보인다. 개인들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일 수 있으나, 집단적으로 이런 행태를 보이는 것은 우려할 만하다.

불행하게도 이런 위험한 투자에 대한 경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언론이 국장 탈출만 보도하고 있으니 정책 당국도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개인투자자의 위험한 투자 행태에 대해 정부 당국의 대책은 없어 보인다.

 

팩트체크 8. 가장 위험한 몰빵 투자는 부동산이다

미국 주식에 몰빵 투자하는 개인투자자들의 투기행위보다 더 큰 문제는 부동산 몰빵 투자이다. 현재 한국 가계의 자산은 대부분 부동산 자산으로 구성되어 있고, 고연령층의 경우는 80%를 넘고 있다. 빚을 얻어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이 반복되면서 가계부채가 증가했고, 이것이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위협요인이다.

보유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큰 탓에 관련 산업이 기형적으로 비대해졌다.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지 못하는 건설업과 부동산업에 대한 과다한 투자로 인해 관련 기업들의 부채가 최근 급격히 증가했다. 한국 주식시장의 수익률이 낮은 구조적 이유는 한국 기업들의 생산성이 낮기 때문이다. 생산성을 높이는 R&D 지원 자금과 벤처기업 지원 자금을 줄이는 대신 건설업과 부동산업 대출을 늘리니,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기 어렵다.

 

시작에 불과한 국장 탈출, 잘못된 정부 정책의 결과다

국장 탈출은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국장 탈출은 국민연금과 기관이 주도하고 있고, 개인투자자들은 뒤늦게 뛰어들었다. 국장 탈출의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 주식의 수익률이 낮은 탓이고, 주식 투자의 수익률은 미래의 성장률과 경쟁력에 달려 있다.

한국 경제의 경쟁력이 떨어진 이유는 과거 10여 년간 기술 투자보다는 부동산 투자에 집중한 탓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한 정책에만 집중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 부양을 통한 성장률 제고는 마약과도 같다.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떨어져 환율이 상승했어도 수출이 늘지 못하고 있고, 이러한 추세를 바꾸지 못한다면 한국 주식시장의 수익률을 높일 수 없다. 그런데도 건설경기 부양에만 몰두하는 정부의 모습이 한심하기 그지없다.

 

정부가 부동산 경기 부양 정책을 쓰는 한 한국 경제의 미래는 어둡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서둘러 국장을 떠나는 것이 개인의 자산도 지키고 한국 경제에 기여하는 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홍종학 전 국회의원 · 중소벤처부 장관

 

 

기억이 지역을 만든다

내 고향 울산은 이주민 도시다. 산업화 시기 울산에 자리 잡은 내 부모세대는 산업도시 울산을 형성한 노동이주 1세대다. 어릴 적 1997년 울산의 광역시 승격 뉴스를 보고 신났던 기억이 선연한데, 오늘날 울산도 지역소멸 위기를 겪는다는 사실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1962년 박정희 정권이 울산을 특정공업지구로 지정해 개발이 시작된 지 약 반세기 만에, 한 도시의 압축적 성장과 쇠퇴를 목도하고 있다.

울산의 위기는 청년층의 이주만이 그 원인이 아니다. 내 부모세대는 은퇴 후 울산을 떠나 고향으로 이주하고 있다. 중장년층도 은퇴하면 울산을 떠나려는 이가 적지 않다. 이런 현상은 울산이라는 도시가 고향을 떠나온 이주민에게 귀속감을 주어 울산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실패했음을 뜻한다. 역시 이주 2세대인 나 같은 청년들도 별로 귀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대표적 노잼도시울산이라고 고유한 정체성의 자원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 동향 친구들은 가령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란 단어를 모른다. 부모들도 이주민이자 노동자, 울산 사람으로서 자신들이 겪은 역사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들 스스로가 만들고 참여한 지역 역사에 침묵했다. 그 결과, 부모가 그랬듯 타지로 이주해 노동자로 사는 나 같은 울산의 자식은 전승된 기억이나 계보를 갖지 못한다. 나는 광주와 제주의 청년들이 5·184·3의 기억을 만나면서 지역을 그저 출신지가 아닌 정체성으로 삼는 게 부러웠다.

 

지역소멸 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지역의 청년여성이 겪는 양질의 여성 일자리 부족이 꼽힌다. 하지만 이 현상은 꽤 오래된 것이다. 농촌을 떠나 공장에서 일했던 내 어머니처럼, 근현대사 내내 노동계급 여성들은 일자리를 찾아 떠돌며 도시로 이주했다. 호주제가 여성의 경제적 권한을 제약하는 가운데 여성들은 식모나 공순이라는 이름의 일자리를 전전했다. 역설적으로 지역 도시들의 번영과 현재의 소멸위기 모두, 식민지 시기부터 이어진 이주의 여성화의 결과인 셈이다.

이주의 여성화로 형성된 다른 유형의 도시도 있다. 미군의 원조로 도시기반시설이 구축되고 지역사회가 형성된 원조 도시동두천이 그러하다. 기지촌이라 불린 동두천을 만든 주역 중 하나는 일자리를 찾아 자의로 타의로 흘러든 여성들이었다. 그 역사의 흔적은 동두천시의 소요산역 인근에 방치된 폐건물에서 찾을 수 있다. 1973년 세워져 1996년 폐쇄된 이 건물은 미군을 성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성병에 걸린 미군위안부여성들을 격리했던 성병관리소였다. 현재 동두천시가 건물 철거를 강행하면서, 지역 시민사회는 건물을 보존하라며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동두천시의 한 공무원은 주민들에게 지우고 싶은 기억” “수치와 오욕의 상징을 철거한 새롭고 밝은 미래를 말했다. 그 기억과 상징이 한때 동두천의 번성의 바탕이었고 지역사회가 그에 공모했다는 점에서, 선택적 망각을 선언한 셈이다. 이런 태도는 오늘날 동두천에 정착해 지역 제조업을 떠받치는 아프리카계 난민에게 쏟아진 혐오를 동두천시가 방관했던 것과도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여전히 지역에 거주하는 여성과 유입되는 이주민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과연 소멸위기에 처한 동두천을 살릴 수 있을까? 청년여성이나 이주민의 존재가 지역소멸의 타개책이라면, 과거에 지역이 그들을 어떻게 대했는지부터 기억해야 한다. 내가 인터뷰했던, 이태원의 상인은 참사의 기억을 잊지 말고 기념해야 한다고 했다. 애도와 추모를 위해 전 세계 사람들이 이태원을 찾아야 상권도 살 것이고, 그것이 이태원이 이태원다운모습을 유지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기지촌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지역 사람을 늘리려면 지역 사람을 기억하는 게 먼저다. 지역을 만든 사람들, 그 기억이 다시 지역을 만들 차례다.

최성용 사회연구자 | 경향 2024.12.02.

 

탄핵 이후에 답해야 할 민주당

윤석열 대통령의 시대는 끝났다. 총선 패배에 이어 국민의 신뢰마저 잃은 대통령이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나. 윤 대통령이 4대 개혁의 완수를 외칠 때마다, 그 모습이 처량해 보이기까지 한다. 어디 이뿐인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교해 보라. 공천 개입, 당무 개입, 채 상병 사건, 배우자 관련 의혹 등 탄핵의 사유는 이미 차고 넘친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이 사실을 윤 대통령만 모른다면, 윤 대통령이야말로 이 시대의 벌거벗은 임금님이다.

 

국민은 알고 있다. 정치평론가와 야당이 큰 소리로 외치지 않아도 윤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품격도, 역량도, 도덕성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지금과 같은 상태로 2년 반을 보낸다는 것이 이 나라에 얼마나 치명적인 해를 끼칠 것인지를. 그런데도 국민은 주저하고 있다.

 

이유는 명확하다. 윤석열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다고 해서 이 나라가 평범한 사람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은 2016~17년 촛불을 들어 불의한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그러나 탄핵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지는 못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난 대선에서 손바닥에 왕() 자를 그려 넣고 대선후보 토론회에 참석한 기괴한 정치 초년생 윤석열 검사가 대통령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왜 국민이 부패에 코를 막고, 기괴함에 눈을 감고, 무능력과 불공정에 귀를 닫고 주저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국민은 묻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대안이 될 수 있냐고. 죄가 있다면, 대통령과 배우자를 단죄하는 것은 당연하다.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대통령과 배우자를 단죄한다고 국민의 삶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반윤석열 바람이 지속된다면, 민주당이 집권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하지만 반윤석열 바람에만 기대어, 민주당이 만들어갈 세상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민주당의 승리는 또 다른 윤석열의 집권으로 이어질 것이다.

 

민주당은 국민이 윤 대통령의 퇴진이 대통령과 배우자에 대한 개인적 처벌에 그치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길을 열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한다. 먼저 민주당이 꿈꾸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를 보여줘야 한다.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이 꿈꾸는 세상은 국가 책임을 강화해서 누구나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든든한 토대를 구축하는 기본사회라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의 대규모 감세정책에 동조해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하고 가상자산 과세를 유예하며, 상속세와 고소득 계층을 위한 소득세 감세까지 검토하는 것이 과연 그 세상을 만드는 길인지도 답해야 한다. 국민 모두에게 보편적 소득과 양질의 사회서비스를 보장하는 기본사회감세 기조와 양립할 수 있는 것인가?

 

정당과 정치인은 유권자가 원하는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현실 정치를 고려하면,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개별 시민이 세금을 덜 내고 부자가 되기를 꿈꾸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평범한 사람들의 이런 욕망을 도덕적으로 훈계하고 비난하는 것은 오만한 행동이다. 하지만 그게 정치라면, 정당이 왜 필요한지 의문이다. 국민의 욕망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당이 할 일은 국민이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 행동이 아니라 공동체의 안위를 위해 행동할 때 개인의 이익이 더 잘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개별 국민의 선호를 이유로 윤석열 정부의 감세 기조에 동조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감세를 추진하면서 민주당이 이야기하는 기본사회를 만들 순 없다. 내가 모르는 그 길이 있다면 알려주길 바란다.

 

정치적으로 민주당은 윤 대통령 퇴진 이후 합리적 보수는 단죄의 대상이 아니라 민주당과 함께 국정을 운영할 동반자이자 경쟁자라는 것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보수 정당의 대통령을 연이어 퇴진시키는 것이 보수의 죽음이 아니라, 보수가 권위주의의 잔재를 끊어내고 유력한 집권 세력으로 다시 태어나는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당시 민주당이 20~30년 집권 운운했을 때처럼, 윤 대통령의 퇴진이 보수 전체의 괴멸로 이어질 것이라는 공포가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국민이 꿈꾸는 살 만한 세상은 보수와 진보 두 날개가 필요하다.

 

이제, 민주당이 답할 차례다. 주저하는 국민이 결단할 수 있게.

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복지국가재구조화센터장 | 한겨레 2024.12.02.

 

 

양극화 해소, ‘라는 소리 듣지 않으려면

윤석열 대통령이 느닷없이 양극화 타개를 들고나온 건 지난달 11일이다.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임기 후반기에는 소득·교육 불균형 등 양극화를 타개하기 위한 전향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대변인이 전했다. 4일 전인 7일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혹시나하는 기대가 역시나로 바뀐 실망스러운 기자회견이었다는 평이 쏟아졌다. 하루 뒤인 8일 대통령 지지율이 최저치를 경신해 17%를 기록했다는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주말을 지나고 바로 양극화 타개라는 모토가 등장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심도 깊은 고민과 절박한 반성 끝에 나온 국정 기조 전환이 아닌, 지지율 추락과 국정 장악력 상실이라는 사면초가 국면에서 벗어나기 위해 급조된 슬로건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회의 말이다.

 

사실 지금까지 윤석열 정부는 양극화 타개는커녕 우리 사회의 격차 확대에 일조하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집권 첫해부터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는 감세 정책이다. 종합부동산세의 세율을 낮추고 공시가격 현실화율, 공정시장가액비율을 떨어뜨림으로써 종부세 납부 대상자는 3분의 1토막이 났다. 아예 종부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방침도 공공연히 밝혔다. 종부세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부동산 자산 격차를 조금이라도 완화해보자는 취지의 세금이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끈질기게 밀어붙임으로써 금융자산 격차 확대도 조장하고 있다. 올해 정부 세법 개정안의 핵심인 상속·증여세율 인하는 부의 대물림과 집중을 심화시키는 부자감세다. 임금격차 확대도 외면했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1.7% 오른 130원으로 결정됐는데, 이는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역대 두번째로 낮은 인상률이다.

 

윤석열 정부의 양극화 해소 추진이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무엇보다 감세정책을 중단해야 한다. 감세정책은 고소득층에 유리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 자체로 양극화 해소에 역행한다. 또한 세입 기반을 허물어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원 마련을 어렵게 한다.

윤석열 정부가 양극화 해소를 들고나오자 회자된 말이 있다. 역시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했던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중도실용으로의 기조 전환을 벤치마킹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집권 초기, 감세와 작은 정부, 친기업 등을 표방했던 이명박 정부는 집권 2년차부터 제법 끈질기게 중도실용 정책을 추진해,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과세 등 꽤 굵직한 정책들을 내놓았다. 무엇보다 트레이드마크였던 감세정책을 중단한다. 2011년 애초 예정돼 있던 소득세와 법인세의 최고 세율 구간 감세를 철회한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당초 감세안이 통과된 2008년과 비교해 2011년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최고 세율을 인하하는 것은 정책 기조에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건전재정’ ‘작은 정부기조도 재검토해야 한다. 올해 정부 예산안의 총지출 증가율은 2.8%20년 만에 가장 낮았고, 정부가 짠 내년 예산 증가율 역시 3.2%에 그친다. 경상성장률을 밑도는 초긴축예산으로, 이런 예산으로는 최근 가라앉고 있는 경기를 방어하기 위한 정책도,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분배 정책도 엄두를 낼 수 없다. 이미 내년 본예산을 본격 수정하기는 늦은 시기이므로, 내년 초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내수를 진작하기 위한 부양책과 경기 침체 시 어려움이 가중되는 취약계층을 위한 보호 정책은 추경에 담을 수 있지만, 좀 더 구조적인 양극화 해소 정책은 내후년 본예산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향후 재정 기조를 긴축재정에서 적극재정으로 전환하겠다는 선언이 있어야 한다.

안선희 논설위원 | 한겨레 2024.12.03.

 

뇌 썩음

스마트폰 중독 이미지. 픽사베이 제공

 

2006년에 공개된 영화 <이디오크러시>는 인간의 지능이 극단적으로 퇴화하는 미래를 풍자했다. ‘바보’(idiot)에다 민주주의’(democracy)를 합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바보들이 통치하는 세상을 그린다. 지적 능력이 떨어진 사람들은 거짓과 혐오 발언을 쏟아내고, 사회적 책임과 인권은 안중에도 없다. 주인공 조 바우어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려는 동료에게 당부한다. “사람들에게 꼭 말해줘. 학교에 다니라고! 책을 읽으라고! 제발 머리를 쓰라고!”

영화의 설정이 황당무계한 공상만은 아니었다. 지난 2(현지시간)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는 올해의 단어로 뇌 썩음’(brain rot)을 골랐다. 질 낮은 온라인 콘텐츠를 과잉 소비한 결과, 지적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의미하는 낱말이다.

 

올해 초 미국의 한 행동건강관리 서비스 제공업체가 뇌 썩음의 예시로 든 것도 부정적 콘텐츠를 찾아 끝없이 스크롤하는 행위인 둠 스크롤링과 소셜미디어 중독이다. 해외에선 이미 뇌 썩음 방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7월 만 17세 미만 미성년자가 사용하는 온라인 콘텐츠 플랫폼에 주의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 등이 담긴 아동 온라인 안전법을 만들었다. 호주는 아예 만 16세 미만의 소셜미디어 이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우리 아이들도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에 빠져 산다. 김대진 가톨릭대 의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스마트폰 과의존·중독은 언어 능력 하락으로 이어진다. 아이들의 뇌가 일찌감치 쇼트폼등에 노출되면서, 글을 읽고 이해하는 활동에 흥미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서울대는 학생들의 문해력 저하를 이유로 신입생 중 희망자에 한해 실시했던 글쓰기 시험을 내년부턴 전원이 응시하게 할 계획을 세웠다.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물에 인물이 멘붕했다따위의 표현이 나오거나 맞춤법이 틀리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뇌 썩음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오죽하면 옥스퍼드대가 올해 단어로 등재시켜 섬뜩한 미래를 경고했을까. 스마트폰은 인간이 생각할 시간을 강제로 줄이고 있다. 이를 막을 손쉬운 방법은 독서다. 어른들부터 스마트폰을 놓고 활자를 읽고 또 읽어야겠다. 문해력 저하가 아이들 탓만은 아니지 않은가.

이명희 논설위원 | 경향 2024.12.03.

 

나라가 더 망가지기 전에

19-17-20-20-19. 윤석열 대통령의 11월 국정지지율이다(한국갤럽). 미국이 트럼프 2기로 방향을 틀고, 이재명 대표 선거법·위증교사 1심이 유무죄로 갈린 그 한 달, 국정지지율은 19%로 시작해 19%로 끝났다. “대한민국은 1주 단위로 숨쉰다.” 오래전 사석에서, 주한 외교관이 여론조사 공화국이라며 한 말이다. 아프고 정확하다. 이 겨울 대통령 지지율만 섰는가. 예산국회가 섰고, ·정 대화가 섰고, 연금 협치가 섰다. 공직사회가 선 것도 꽤 됐다. 용산·국회·TF 안 가려 몸사리고, 정책도 복지안동(伏地眼動)’하고, 위 지시를 녹음하며 남몰래 상황일지도 많이 쓴단다. 나라가 섰다. 대통령은 말이 날린다. ‘국정 발광체의 힘과 믿음을 잃고, 동네북이 됐다. 둥 두둥 둥.

 

거부한다.” 50여대학, 5300명 넘은 교수·연구자 시국선언에 등장하는 네 글자다. 글은 김건희, 채 해병, 검찰국가, 이태원참사, 역사왜곡, 입틀막, 혐오, 의료·기후·R&D 대란에 피가 끓는다. 경희대는 진실·윤리·평화, 공사의 경계가 무너진 땅을 폐허라 했다. 윤 대통령 모교 서울대는 영혼 없는 기술지식인을 양산했다고 사죄했다. “특검 받아라, 물러나라, 아님 탄핵하자.”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문인·의료인·종교인·해병대예비역·교사·대학생들로, 어디 직장·단체 소속된 데 없는 수백의 윤퇴청’(윤석열 퇴진을 위해 행동하는 청년들)으로 번졌다.

그 절규대로다. 나라의 토대가 거덜 났다. 생산·소비·투자가 10월 다 뒷걸음쳤고, 세수는 2년간 86조원 펑크가 나고, 내년·내후년은 1%대 성장하리란다. 환율·가계빚·주식시장 다 빨간불이다. 1년 새 쉬는 청년25% 늘고, 파산 법인 수는 27% 치솟았다. 그런데도, 정책은 탁상공론하고 낙관하다 몇 박자 늦는다. 각자도생은 약자부터 잡아먹는다. 동서고금 예외 없다. 민주주의 위기는 삶의 위기에서 온다.

 

민생뿐인가. 군함도에서 일본에 속더니, 사도광산은 더 쌩한 뒤통수를 맞았다. 애걸복걸 외교의 참사다. 결국 우리도 묵묵부답할 것을, 트럼프가 끝내려는 우크라 전쟁에 살상무기까지 설레발친 외교가 국격을 깎는다. 얼마나 박수칠 게 없으면, 바닥 보인 몰빵 외교가 대통령 지지 이유 1위인가. 인권위에 인권’, 통일부에 통일’, 노동부에 노동’, 환경부에 환경이 없다. 응급수술·큰 수술 못한 한스러운 부음만 11월에 네 번 들었다. 이게 국정인가. 민족·민주·민생의 봄은 멀고, 안전하지도 않은 나라, 어찌 살라는 건가.

 

비할 데 없다. 올해의 인물은 김건희다. 노벨상 탈 한강이 걸리나, 이 땅의 울화 맺힌 김건희가 더 꽂힌다. 대통령까지 육성으로 공천 개입시키는 비선 실세를 본 것 아닌가. 대통령 놀이는 대통령 박근혜를 호가호위해 재벌 돈 뜯은 최순실보다 더 거침없다. 이제껏 명태균의 여론조사 조작까지도 못 간 창원지검 수사가 저리 더디고 무딜 뿐이다. 탄핵 발의에, 검찰과 감사원이 거칠게 맞서도 세상의 요동은 적다. 시민은 그들이 한 일을 알고 있다. 저 특검 지지율처럼, 매섭게 김건희만 보고 있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되었나?” 2016114일이다. 국정 기밀문서가 최순실 태블릿PC에서 쏟아진 지 열흘 만에, 지지율이 5%로 폭락한 그날, 박근혜가 한 말이다. 2024년 판이라면, “내가 이러려고 용산으로 옮겼나?”일까. 조롱받는 권력은 고립된다. 부평초(浮萍草)처럼 붕 떠버린다. 해도, 대통령은 옜다! 사과로 국민 부아 일으키고, 휴대폰만 바꿨다. 그게 소통인가. 원효대사가 경계한 갈대 구멍 크기로 하늘을 보고, 귀 닫고, 국민을 부끄럽게 하고 있다. 어리석은 혼군(昏君) 되려 집권한 이 있겠는가. 하나, 임기 반 갓 지나 세상은 진창에 빠졌다. 참사로 참사를, 거짓말로 거짓말을, 분노로 분노를, 실정으로 실정을 덮는 나라가 됐다.

 

닷새 전이다. 이른 해넘이 자리에서, 대통령 윤석열을 찍었다는 스마트팜 농부 친구가 술잔을 내밀었다. “나도 시국선언하고 싶다며 이럴 줄 몰랐다고, 이 나라는 볼수록 검찰스럽고 김건희스럽고 부자 먼저란다. 망조 든 정권에 시민이 던지는 네 마디 오랏줄일 게다. ‘김건희 특검없이, 이 나라가 한발이라도 내딛겠는가. 공직기강과 정책리더십이 서겠는가. 무너진 정권은 늘 자만하고 자승자박하다 자멸했다. 위정자는 국민 눈높이가 마지막 생명줄이다. 하라면 하고, 말라면 식물정부 되는 게 주권재민이다. 저 촛불, 진보·보수 논객의 날선 글, 시국선언 결기가 한 사람을 향한다. 2년 반 제대로 된 참회도, 결자해지도 없는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한다. 나라가 더 거덜 나고, 더 망가지기 전에.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 경향 2024.12.03.

 

 

윤석열의 계엄 폭동내란죄인 3가지 이유

1980년 광주 항쟁 이후 우리 사회가 수십년간 절절히 쌓아온 기준이 무너졌다. 서울 시민들은 군인을 태운 헬기들이 이동하는 소리를 들으며 벌벌 떨었다. 총을 든 군인들이 국회에 난입하고 시민들과 대치했다. 어안이 벙벙했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 총칼로 우리나라를 뺏을 수 없다. 탄핵이나 하야는 정해진 수순으로 보인다. 충분하지 않다.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절차는 윤석열을 비롯한 내란세력에 대한 처벌이다. 이 글은 이번 비상계엄 선포와 이후 몇시간 동안의 집행(12·3 사태)이 왜 내란죄에 해당하는지 법적으로 논증하는 글이다.

 

먼저 조항을 보자. 형법 제87조는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를 내란죄로 처벌하도록 정하고 있다. 쟁점은 12·3 사태에서 무엇이 폭동이었는지다.

 

1. 헌법과 법률을 정면으로 위반한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자체가 폭동이다. 이번 비상계엄 선포가 헌법이 정한 요건(‘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을 충족하지 못했음은 명백하다. 권한을 행사할 요건이 전혀 갖춰지지 않았음에도 대통령은 본인이 가진 가장 막강하고 포악한 권한을 남용했다. 그런데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 행사가, 비록 위헌이라고 하더라도, ‘폭동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까?

폭동이다. 대법원은 전두환 등에 대한 내란죄 등 판결에서, 기존 비상계엄을 전국 비상계엄으로 확대하는 1980517일 신군부의 조치가 폭동이라고 판단했다. “비상계엄의 전국확대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국민에게 기본권이 제약될 수 있다는 위협이며 강압적 효과가 법령과 제도 때문에 일어나는 당연한 결과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법령이나 제도가 가지고 있는 위협적인 효과가 국헌 문란의 목적을 가진 자에 의하여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면 폭동이라고 봤다. 박정희 시해 직후 선포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 것만으로도 내란죄가 인정되었는데, 오직 정권의 안위를 위해 비상계엄 자체를 선포한 것이라면 내란죄에 해당함은 분명하다.

 

2. 계엄사령관 포고령이 폭동이다. 비상계엄이 정당하게 선포되었다고 하더라도, 계엄하 제한되는 기본권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에 한정되고, 정부와 법원의 권한만이 제한된다(헌법 제77조 제3). 국회나 정당의 권한은 계엄으로도 뺏을 수 없다. 그런데 윤석열의 계엄 선포 직후 발표된 포고령 제1호 제1항은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을 금한다는 것이었다. 헌정사상 그 어떤 계엄 포고문에도 국회 활동을 금지한다는 내용은 없었다. 그리고 이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영장 없이 체포, 구금할 것이며 처단한다고 했다. 국회, 지방의회, 정당이라는 중대한 국가권력을 배제하고자 위헌적인 포고령을 선포해 해당 조직 구성원들을 협박한 행위, 폭동이다.

헌법이 계엄으로 제한되는 범위에 국회를 넣지 않은 것에는 중대한 이유가 있다. 기본권이 정지되고 비상권력이 출현하는 계엄하에서, 헌법은 이 막대한 권력을 견제할 수단으로 국회를 지정해두었기 때문이다. 내란세력은 헌법의 한계를 짓밟으며 국회부터 무력화하려고 했다.

 

3. 계엄군의 국회 장악이 폭동이다. 12·3 사태에서 가장 악랄했던 건 계엄군이 말 그대로 국회를 공격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국회는 계엄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권력이기에 계엄권력도 함부로 할 수 없다. 내란세력은 그 국회를 최소한의 명분도 없이 가장 먼저 봉쇄했고, 국회 본청과 의원회관에 특전사를 침투시켰다. 이 계엄이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쿠데타였음을 노골적으로 자백하는 행위였다.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기무사가 부당하게 작성한 계엄 문건도 이 정도의 야만은 아니었다. “당정 협의를 통해 직권 상정 및 표결 저지 대책 필요”, “국회의원 대상 현행범 사법처리로 의결 정족수 미달 유도”. 국회를 무력화하려는 쿠데타의 의도와 계획이 분명한 내용이지만, 최소한 12·3 사태처럼 국회를 봉쇄하고 국회 경내로 군을 투입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국헌 문란의 폭동을 전 국민이 똑똑히 보았다.

 

수사기관은 신속히 대통령과 내란세력에 대한 압수수색과 영장 청구를 준비해야 한다. 윤석열에게 적용될 규정이다. 형법 제87조 내란죄 제1, ‘우두머리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한다.’

임재성 | 변호사·사회학자 | 한겨레 2024.12.04.

 

미치광이 기관사에게 운전대를 더 맡겨둘 수 없다

초등학교 3학년 딸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나를 안아주며 아빠죽지 마라고 했다.

퇴근 후 함께 TV를 보며 쉬고 있던 아빠가 황급하게 신문사로 돌아가야 한다며 집을 나서자 문까지 따라나와 한 말이다. 아이는 계엄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를 텐데 어디서 무얼 듣고 저렇게 말할까. 평소와 다른 아빠의 행동에서 뭔가 무서운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한 모양이다. 계엄이 통상적인 법·제도가 동결되고 시민들이 군대의 통제를 받는, 정부와 인민 사이의 전쟁상태로의 회귀라는 개념 정도는 있었지만, 나 역시 이 나라에 계엄령이 마지막으로 내려졌던 때에 대한 감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사이 군대와 시민의 권력관계는 변했고, 누구나 한국은 더 이상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회사 동료들과 계엄 관련 헌법 조항을 문자메시지로 주고받으면서도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아이돌봄 예산 불처리가 계엄 선포 이유 중 하나로 동원된 것은 희극에 가까웠다. 지하철 옆자리 60대 남성이 휴대전화를 보다가 이게 도대체 뭐고? 이거 완전히 미친 XX 아입니까?”라며 생면부지의 내게 말을 걸어오는 걸 보며 꿈은 아니구나 확신했다. “지금 원단·옷감 배달 다 마치고 퇴근했는데, 지금이라도 국회 앞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계엄이란 게 겪어본 사람들은 얼마나 무서운지 압니다. 국민들 먹고살기 어려운 거는 전혀 생각 안 하고, 대통령 맞나요?” 젊은이들도 이게 뭔 일이지?’ 하는 표정으로 뉴스 속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40대 직장인은 당장 주가와 환율이 걱정된다. 내 주식이 겨우 마이너스에서 회복되는가 했는데, 도대체 어쩌려고 저러나라며 다른 거 다 떠나서 경제적 이유 때문에라도 대통령의 행동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한밤중 대통령발 뉴스에 대다수 시민들이 비슷하게 느꼈던 모양이다.

 

회사에 도착하니 주식·환율 시장이 출렁였고, 한국은 전 세계 톱뉴스가 돼 있었다. 계엄사령관이라는 자의 1호 포고령으로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계엄법에 따라 처단한다는 무시무시한 말들이 어지럽게 떠다녔다. 서울로 진입하는 장갑차, 국회 본관 유리창을 깨고 진입하는 군인들. 영화 속 장면이 아니었다.

 

외국 지인들이 안부를 물어오기 시작했다. 미국 백악관은 한국 정부와 다방면으로 접촉 중이고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했고, 국무부는 중대한 우려를 표하며 평화적으로 해결될 것을 희망한다고 논평했다. 미국의 이런 논평은 후진국에서 유혈 사태가 우려될 때 나오는 것이다. 앙골라를 방문 중인 미 대통령도 긴급 보고를 받았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이 가장 충실하다고 믿은 자유민주주의 동맹국 정상의 기습 행동에 충격을 받았으며, 한국 위기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골치가 아파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민주국가가 하룻밤에 독재국가로 전락한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미국은 사전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주한미군 28000여명을 주둔시키고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진 미국은 한국군이 독자 행동한 걸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다행히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2시간30여분 만에 여당 의원까지 참여해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가 이뤄졌다. 계엄군과 시민 대치는 계속됐고, 대통령의 해제 결의 수용은 그로부터 3시간도 더 지난 뒤에야 나왔다. 미 국무부가 한국 국회의 해제 결의가 준수되길 바란다고 밝힌 직후였다. 미국 반응은 윤석열이 계엄 선포 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외부 요인이었을 것이다.

 

동틀 무렵 잠든 딸의 곁에 무사히 돌아가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사태는 대통령이 국민 상대로 벌인 자해공갈로밖에 볼 수 없다. 각 정당 대표 체포조까지 투입한 걸로 보아 친위 쿠데타를 사전 모의하고 실행한 흔적은 있지만, 주도면밀하게 한 것 같지는 않다. 정부 내 진지한 논의 없이 대통령과 소수 참모가 즉흥적으로 결정했고, 내부 견제 장치는 작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실 이전, 의사 정원 증원, ·일관계 등 이 정부의 중요한 결정이 대부분 그렇게 이뤄졌을 것으로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이 나라가 2년 반 이 정도라도 형체가 유지되어온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것 아닌가.

 

민주주의가 아무리 퇴행해도 군대가 시민에게 다시 총을 겨누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기본적인 믿음이 깨졌다. 많은 사람이 피 흘려 만든 민주주의를 한 사람의 충동적이고 비이성적 결정에 맡겨둘 수는 없게 됐다. 여야 정치권은 개헌을 포함해 민주주의 역진 방지를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 전에 시급한 일은 무능한 데다 미치광이로 판명난 기관사에게서 열차의 운전대를 빼앗는 것이다.

손제민 논설위원 | 한겨레 2024.12.04.

 

윤석열과 그 잔당들의 죄, 국민에게 고함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윤석열과 그 잔당들의 죄를 고합니다. 지금까지 윤석열은 취임 이후 국회가 의결한 법안에 대해 25번의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으며, 지난 622대 국회 출범 이후에도 11번의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이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없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건국 이후에 전혀 유례없던 상황입니다.

윤석열은 자신과 부인 김건희를 둘러싼 각종 스캔들과 의혹을 덮기 위해 수차례 특별검사법을 거부하고, 국회 개원식에 불참하는 등 정치와 국회를 마비시켰습니다. 새해 예산 처리에 앞서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국회 시정연설에도 불참하는 등 대통령으로서 본질적 기능도 하지 않았습니다. 윤석열은 급기야 민주화 이후 45년 만에 반헌법적 비상계엄을 선포해 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었습니다. 국정은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윤석열은 국정과 주정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정권 실세는 윤석열과 관저에서 얼마나 술을 자주 마셨느냐로 결정됐다는 말이 공공연히 돌았습니다. 가능성도 없는 부산 엑스포 유치에 혈세를 펑펑 썼으며, 유치 홍보전을 한다며 건너간 프랑스 파리에서까지 재벌 총수들과 술판을 벌였습니다. 비상계엄도 술 먹다 홧김에 선포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윤석열은 민생예산 24조원을 삭감하고, 48000억원의 예비비를 편성했습니다. 용처를 알 수 없는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825100만원), 검찰 특정업무경비(5069100만원)와 특활비(80900만원), 감사원 특경비(45억원)와 특활비(15억원), 경찰 특활비(316000만원) 등을 무더기로 편성했습니다. 이러한 예산 편성은 대한민국 국가 재정을 농락하는 것입니다.

국정은 마비되고 국민의 한숨은 늘어났습니다. 윤석열은 자신과 아내를 지키느라 사법 질서를 우롱하고, 국민들이 피와 땀으로 일군 대한민국의 성취를 교란시켰습니다.

 

대통령실은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됐습니다. 급기야 윤석열은 한밤의 비상계엄을 통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체제의 전복을 기도했습니다. 자유 민주주의의 버팀목이 돼야 할 대통령이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려는 괴물이 된 것입니다. 윤석열은 계엄에 대한 반성은커녕 민주당의 폭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엄을 선포했다” “경고성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의 말대로 미치광이입니다.

 

윤석열 때문에 대한민국은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풍전등화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즉흥적, 감정적 국정운영을 그대로 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야당들이 신속하게 탄핵 절차에 돌입한 것은 당연합니다. 내란수괴 윤석열을 천벌로 다스리지 않으면, 3의 윤석열이 언제 또 튀어나올지 모릅니다.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윤석열을 일거에 척결해야 합니다. 그것이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유 대한민국을 재건하고 지켜내는 출발점이라고 믿습니다.

윤석열 잔당들의 죄도 적지 않습니다. 윤석열의 충암고 후배 이상민은 윤석열의 비상계엄 시도를 내란죄로 규정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했습니다. 윤석열이 탄핵되면 보수가 궤멸된다는 이유라고 합니다. 국가의 미래보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지는 이들에게 국회의원 자격은 없습니다. 윤석열 탄핵안이 부결되면 이들도 내란공범으로 여겨야 합니다.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윤석열과 그 잔당들을 반드시 끌어내려야 합니다. 이는 체제 전복을 노리는 윤석열과 그 잔당의 준동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안전, 그리고 국가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며, 미래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입니다. 탄핵으로 잠시 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자유 대한민국 헌법 가치를 믿는 시민들이 힘 합쳐 나라를 지킬 것으로 믿습니다.

 

윤석열의 탄핵은 자유 대한민국의 영속성을 위해 부득이한 것이며,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책임과 기여를 다한다는 대외 정책 기조에는 아무 변함이 없음을 세계에 알려야 합니다. 국민들은 서로를 믿고 신명을 바쳐 윤석열과 그 잔당들이 망가뜨린 자유 대한민국의 시스템을 복원해낼 것입니다. 다시는 이러한 무도한 대통령이 나올 수 없도록 국민들의 강철 같은 의지와 저력을 보여줍시다.

*비상계엄 대국민 담화를 패러디했습니다.

이용욱 정치에디터 | 경향 2024.12.05.

 

내란의 우두머리, 윤석열

윤석열은 상기된 표정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피를 토하는 심정이라고 했지만, 대통령이 피를 토할 만한 상황은 전혀 없었다. 전시나 사변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오로지 윤석열의 무능, 무책임, 무지 때문에 국정 전반이 난맥상을 보였을 뿐이고, 대통령이 오로지 자신과 배우자의 안위에만 골몰했던 게 문제였다.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이 국회를 적대시했고, ‘격노갈등만 반복하며 독재를 일삼았다.

 

윤석열은 국회의 탄핵 소추, 예산 감액을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행위라 규정했다. 자신이 들어야 할 말을 국회와 국민을 향해 내뱉었다. ‘국민 삶은 안중에도 없다는 대목이야말로 윤석열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말이다. 윤석열에겐 국민의 목숨마저 안중에 없었다. 무리한 수색 때문에 죽어간 해병대원의 목숨, 이태원에서 죽은 158명의 목숨, 오송참사로 죽어간 14명의 목숨도 그랬다.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라고 국회를 모욕했지만, 윤석열 가족이야말로 범죄 집단이었다.

 

윤석열의 폭주를 막을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국회가 계엄해제를 요구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윤석열은 국회가 헌법적 권한을 사용하는 것을 그냥 두지 않았다. 경찰에게 국회 외곽을 봉쇄하게 했고, 중무장한 계엄군을 국회 경내로 진입시켰다. 우원식 국회의장, 이재명 대표, 한동훈 대표 등을 체포하고, 국회의 표결을 막기 위해서였다.

 

국회 안팎은 난장판이었다. 경찰은 국회를 에워싸고 출입을 전면 통제했다. 국회의원과 국회 직원들의 출입을 막았다. 67세의 우원식 의장도 72세의 이학영 부의장도 모두 담을 넘어 국회에 들어가야 했다.

 

혹시 경찰이 국회를 둘러싸는 경우가 있다면, 국회의장이 테러 위협으로부터 국회를 보호하기 위해 경비를 요청하는 경우 말고는 있을 수 없다. 경찰은 국회에서 계엄해제 요구가 통과된 다음에도 한참 동안 국회를 봉쇄했다. 국회의장의 거듭된 퇴거 요청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떤 법률적 근거도 없는 범죄행위다. 경찰의 국회 봉쇄는 국회의 업무를 방해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윤석열의 내란에 종사했기에 내란죄에 해당한다.

 

현직 대통령이 내란을 시도하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헌정질서 유린 사태는 국회로 달려와 준 시민들의 저항으로 정상화될 수 있었다. 내란 사태는 일단락되었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형법이 제일 먼저 챙기는 범죄가 바로 내란이다.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를 처벌하는 범죄(87). 형법 제91조는 헌법 또는 법률에 의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거나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을 국헌문란 행위라 규정하고 있다. 123일 밤과 4일 새벽에 걸쳐 국회 안팎에서 윤석열의 지시를 받은 군과 경찰이 자행한 행위는 명백한 국헌 문란행위였다.

 

윤석열은 국가권력인 국회의 기능을 배제하였고, 국헌을 어지럽힐 목적으로 자신이 통수권을 갖는 군대와 경찰을 동원했다. 형법에 따르면 윤석열은 내란의 우두머리로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하는 가장 무거운 범죄를 저질렀다. 국방부 장관 김용현, 특전사령관 여인형, 국방부 정보본부사령관 박종선, 행안부 장관 이상민 등 윤석열의 충암고 동문들과 계엄사령관이던 박안수, 행안부 경찰국장 박현수, 경찰청장 조지호, 서울경찰청장 김봉식, 서울경찰청 공공안전차장 오병문, 국회경비대장 목현태 등은 내란의 모의에 참여하거나 지휘하거나 그 밖의 중요한 임무에 종사했기에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해야 한다.

 

주도적 역할은 아니지만, 부화수행(附和隨行)하거나 단순히 폭동에만 관여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 곧 줏대 없이 상급자의 명령을 따라 움직인 군인과 경찰관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범죄 피의자들의 실명을 일일이 거명한 이유는 단순하다. 이들이 현실의 법정에서 내란죄로 제대로 처벌받는지 챙겨보자는 거다. 가장 시급한 것은 내란죄의 우두머리 윤석열을 체포하고, 법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하는 것이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것과 상관없이 즉각 헌법과 법률의 엄중함을 보여줘야 한다. 윤석열이 비록 현직 대통령 신분이라고는 하나, 대통령의 불체포 특권은 내란과 외환의 죄를 범했을 때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바로 범죄자들을 체포해서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 경향 2024.12.05.

 

검찰은 '윤석열 내란' 수사에서 손을 떼라

뉴스타파는 8년 전인 201717<촛불 2017 “죽 쒀서 개 주지 말자”>라는 제목의 신년특집방송을 내보냈다. 박근혜 탄핵과 촛불혁명 국면에서 검찰권력과 기회주의 기득권 정치세력이 슬그머니 권력의 공백을 메우고, 시민이 쟁취한 역사적 성과를 가로챌 조짐이 보였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그때 우려는 현실이 됐다.

8년이 지난 지금, 윤석열을 척결또는 처단’(윤석열 계엄 담화문에서 채집한 단어다) 하자는 국민적 열망이 타오르고 있다. 윤석열 정권의 종말은 이제 시간 문제로 보인다. 그런데 8년 전 그 불길한 예감이 다시 떠오르는 건 왜일까? 단순 예감은 아니다. 이미 조짐이 있다. 검찰이 움직이고 있다.

검찰은 모두가 알다시피 윤석열 정권을 떠받치는 세력이다. 윤석열 김건희 권력의 핵심 중추다. 그리고 현 정권의 무력 부대. 그 검찰이 오늘 국민의힘 대표 한동훈의 입장 발표와 함께 드디어 태세 전환을 하고 있다.

한동훈 대표는 오늘(6) 오전, 윤석열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정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공교롭게 검찰은 오늘 윤석열 내란수사를 위한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했다. 박세현 서울고검장이 본부장을 맡았고, 김종우 서울남부지검 2차장검사, 이찬규 중앙지검 공공수사1부장, 최순호 중앙지검 형사3부장 등 검사 20명과 수사관 30명을 배치했다. 또 군검찰 수사인력을 파견받겠다고 한다. 본부는 서울동부지검에 설치한다.

검찰의 특별수사본부 구성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공개적으로 윤석열 직무정지 입장을 밝힌 것이 크게 영향을 미친 걸로 보인다. 경찰과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등도 윤석열 내란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120명 규모의 수사인력을 동원해 수사에 착수한 걸로 전해진다.

검찰은 윤석열 내란사건을 수사할 자격이 없다

이런 움직임을 보며 몇 가지 짚어보려고 한다.

첫째, 검찰은 윤석열 내란사건을 수사할 자격이 없다. 검찰은 윤석열 검찰정권의 주축이고 친위쿠데타까지 일으킨 내란 수괴 윤석열의 공범이다. 주가조작 등 범죄 혐의가 확실한 김건희 여사를 불기소 처분했고, 지난 2년 반 동안 오로지 자신들의 상관이었던 윤석열의 정적 처단을 위해 몸을 던졌다. 윤석열의 심기 경호를 위해 정치와 언론을 탄압한 주체도 바로 검찰이다. 무려 10명 넘는 검사를 투입해 이른바 대선개입 여론조작이라는 터무니없는 죄를 날조한 뒤 독립언론 뉴스타파를 압수수색하고 재판에 넘긴 게 생생한 증거다. 기소 죄명은 결국 윤석열 명예훼손이다.

윤석열 내란사건 수사 검찰을 진두지휘하는 법무부장관이 바로 이번 사건 핵심 수사대상이라는 점도 문제다. 박성재 법무부장관은 윤석열의 비상계엄이 논의된 국무회의(123) 참석자다. 당시 자리에서 박성재가 어떤 의견을 냈는지, 역할은 무엇이었는지가 규명돼야 하고, 당연히 수사 대상이다.

검찰은 그 동안 제식구 감싸기를 핵심 생존전략으로 삼으며 몸집을 키웠다. 정치권력과 손을 잡아 권력을 키웠고, 급기야 윤석열을 앞세워 스스로 권력을 잡았다. 또 그렇게 만든 권력을 지키는 일에 몰두했다. ‘윤석열 내란의 시작점이 바로 검찰이다. 그런데 그것을 자기 손으로 수사한다고 한다.

이 경우 결론은 두 가지다. 덮어주거나 적당히 봐주는 것, 아니면 윤석열을 제물 삼아 쳐내고 역시 검찰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검찰권력을 새롭게 강화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검찰은 윤석열 내란수사를 할 자격이 없다.

둘째, ‘윤석열 경찰윤석열 내란사건을 수사할 자격이 없다. 당장 조재호 경찰청장은 물론, 윤석열의 술친구로 알려져 왔던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은 윤석열 내란에 가담한 의혹을 받고 있다. 군과 손잡고 불법적으로 국회 장악을 시도했다.

경찰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2년 반 동안 사실상 윤석열 정권의 하수인에 불과했다. 첨예한 정치적 난관을 뚫고 검찰의 수사 대상을 축소하고 경찰의 권한을 확대하는 각종 조치가 이뤄졌지만, 그에 걸맞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이태원 참사 당시 보여준 무능, 그리고 이후 수습과 수사 과정에서 보여준 무책임, 비상식적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경찰 조직 장악 시도에도 찍소리못한 게 바로 경찰이다.

특히 경찰을 지휘하는 행안부의 장관 이상민은 윤석열 내란의 주요 공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상민은 어제 국회 행안위 상임위원회에 출석해 마음만 먹었으면 국회를 장악할 수 있었다는 막말을 쏟아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것이 얼마나 위법하고 위헌적인 발언인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행태를 봤을 때, 경찰은 윤석열 내란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하더라도 국민적인 공감을 얻기 힘들다.

국민 동의를 받을 수 있는 조직이 수사해야 한다.

오늘 국방부는 군 수사 인력을 검찰 특별수사본부에 파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어제 국방위에서 군 검찰을 동원해 김용현 전 국방장관,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내란죄수사에 즉각 나서라는 목소리가 의원들에게서 터져 나왔는데, 기껏 내린 결정이 검찰에 수사 인력 파견, 수사 협조다.

국방부는 이번 윤석열 내란을 모의, 방조, 실행, 은폐한 핵심 조직이다.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이 윤석열 내란을 건의한 사람이고, 특전사령관, 수방사령관, 방첩사령관 등이 윤석열 내란에 동조한 혐의로 이미 수사대상에 올랐다.

 

윤석열 내란은 현직 대통령이 벌인 친위 쿠데타다 내란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수십년 피를 흘려 다져 온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하룻밤에 무너졌다.

윤석열 내란사건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무런 고려 없이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철저히 처벌해 국민적 공감대를 얻는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수사 기관들이 나서 떡고물 챙기듯 끼어들 사건이 아니다. 국회가 나서야 한다. 상설특검이든 특검이든 국민들이 동의할 수 있는 특별 기관이 주체가 돼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검찰의 탈출구가 돼서는 절대 안 된다. 국민이 나서 막아야 한다.

김용진 | 뉴스타파 2024.12.06.

 

극도로 위험한 대통령

정신의학자인 제임스 길리건은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위험한가라는 책에서 미국에서 공화당 대통령의 당선이, 세계대전이나 대공황 같은 커다란 사건을 고려한다 해도 미국의 살인 범죄율과 자살률 증가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이라는 점을 입증한 바 있다. 특히 대통령 개인의 특성보다 속한 정당이, 그리고 추진하는 정책이 주는 모멸감과 수치심이 주요한 요인이라고 했다. 국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이뤄낸 한국의 경우 그 경향이 더 강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정치는 개인이 아닌 세력이 하는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3일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를 경험하면서, 길리건이 그렇게 공들여 입증해낸 과학적 사실과는 다르게, 개인 그 자체가 너무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깔끔하게 드라이까지 한 머리를 하고 비상계엄을 발표하는 대통령의 표정과 입으로 내뱉는 적의로 가득한 말을 들으면서, 그리고 서울 여의도 한가운데 나타나서 국회 유리창을 부수는 총을 든 군인들을 보면서 티브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수행하는 군사작전 미션의 한 장면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 현실감이 없었다. 역사책이나 영화에서만 본 계엄이 내 현실이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안 해봤기 때문이다. 물대포를 맞은 농민이 사망하는 시위의 한가운데에서도, 몇달간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를 행진한 대통령 탄핵 요구 시위라는 엄청난 격동 속에서도 없었던 일이니, 말이다.

계엄사령부가 발표한 포고령을 보면서 슬슬 현실감이 생겼다. 정치 활동과 집회도 금지하고, 언론도 통제한다는 말에 황당함은 두려움이 되었다. 파업 중인 전공의는 48시간 내 복귀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계엄법에 따라 처단한다고 했다. 포고령을 위반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처단한다고도 했다.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전공의가 얼마나 미웠길래 처단한다는 말을 5항에 별도로 적었을까? 심지어 현재 파업 중인 전공의는 없는데 말이다. 사직하고 병원을 떠난 전직 전공의만 있을 뿐인데 안 돌아오면 누구를 처단한다는 것인가 말이다.

 

포고령을 보면 대통령은 국회, 언론, 노조 그리고 전공의를 반국가 세력, 체제 전복 세력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나아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방해하는 모두를 영장도 없이 체포하고 구금하고 싶은 것 같다. 아마도 대통령은 이 모두를 처단하고 싶은 모양이다. 설득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해법을 모색할 국가의 한 주체가 아니라 그냥 치워 버려야 할 적. 그 날것의 분노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포고문이다. 그동안 이뤄낸 우리의 인권에 대한 기본적 인식이, 민주주의 사회가 가지고 있는 기본 원칙이 한순간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담을 넘어 국회에 들어간 국회의원들이 계엄령 해제 요구 결의안을 채택하고, 대통령이 국회 요구를 수용해서 계엄을 해제한다는 발표를 했다. 그 발표에도 두려움과 불안이 가시지 않았다. 계엄에 실패한 대통령이, 북한으로 미사일이라도 쏘면 어쩌지 싶은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들었다. 군사동맹이라고 그렇게 강조하던 미국에도 계엄에 관한 이야기를 안 한 대통령이 전시작전권이 미국에 있다고 그걸 안 할까 싶었다. 현실이 되긴 어려울 텐데, 그런 건 막을 수 있는 수준의 정부와 사회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나라임을 알고 있음에도, 합리적인 추론과 판단이 어려울 정도였다. 내가 믿고 있는 우리 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 합의와 개념이 한 사람으로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짧은 시간이지만 경험했기 때문이다. 군인들이 잠시간 머뭇거리지 않았다면, 국회의원들이 그리 신속히 모일 수 없었다면 우리는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마주했을 것이다.

 

2021년 전두환이 사망한 날, 그가 그렇게 편안하게 90살까지 살다가 죽었다는 사실에 몰아쳤던 허탈감이 다시 떠올랐다. 공권력을 동원해 수많은 국민의 삶을 앗아간 자가 이에 대한 진정성 있는 반성이나 사과도 없이, 이를 통해 얻어낸 수많은 이익에 대한 환수도 없이, 충분한 죗값을 치르지도 않고 사망했다는 사실이 허탈하고 미안했다. 전두환이 그렇게 죽게 그냥 두니까 어젯밤의 그 말도 안 되는 사태가 발생한 게 아닌가 싶다. 극도로 위험한 개인도 있다. 즉시, 극도로 위험한 대통령이 아무것도 못 하게 해야 한다

김인아 | 한양대 교수(직업환경의학) | 한겨레 2024.12.06.

 

 

윤석열 사과 담화 속 술수독재자는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

그는 왕이 되려 했다. 2년 반의 대통령 놀이도 모자라 이젠 왕좌에 등극하고자 했다. ‘이번 기회에 다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한뒤 왕 놀이를 하려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어떻게 국회의장과 제1·2야당 대표, 집권여당 대표, 그리고 전 대법원장과 전 대법관을 잡아가두려고 했겠는가. 민주주의는 입법·행정·사법부 삼권분립으로 견제와 균형이 이뤄져야 작동하는 정치체제다. 행정부 수장이 입법·사법부까지 장악하면 민주주의는 그날로 끝장나는 것이다. 거기다가 눈엣가시인 시민사회 인사들까지 체포 대상에 올렸다. 정적을 제거하고 저항하는 세력에는 재갈을 물림으로써 희대의 공포정치를 하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왕이라는 표현이 과하다면, 박정희처럼 철권 통치자가 되어 종신 대통령이 되려 했는가. 이번 내란 사태는 그가 존경한다는 박정희를 흉내낸 제2의 유신인가.

 

이번 내란 사태의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요체는 대통령이 군과 정보기관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고 야당과 저항세력을 파괴해 독재정권을 세우려는 공작이었다. 홍장원 국가정보원 제1차장의 말처럼 정말 만화 같은 얘기다. 영화 서울의 봄은 실화를 바탕으로 해 현실감이 있었는데 이번 내란 사건은 그야말로 초현실적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저 멀리 1960~70년대 쿠데타로 점철됐던 남미로 돌아간 것 같다. 그날 서울의 밤은 대통령이 미치지 않고서는 행할 수 없는 정말 만화같은 얘기다.

 

친위 쿠데타의 방식과 내용 모두에서 그렇다. 최정예 특수부대 요원들을 국회로 보내 유리창을 깨고 본회의장까지 진입했다. 그리고 국회의원들을 다 끌어내라는 김용현 국방장관의 지시까지 떨어졌다. 천만다행으로 군 지휘관들이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에는 거부해 사태가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았지만, 제정신을 가진 이라면 이런 무모한 일을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대통령은 직접 군 지휘관들에게 전화까지 해 병력의 이동 상황까지 체크했다. 친위 쿠데타의 설계는 물론 총지휘까지 한 셈이다.

 

그가 비상계엄을 통해 하려 했던 일도 황당하다. 선거관리위원회의 부정선거 의혹을 조사하겠다는 것이었다. 김용현은 한겨레에 선관위에 경찰과 군 병력을 투입한 이유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부정선거에 대해 의혹을 갖고 있어 이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극우 유튜버들의 근거없는 주장을 믿고 실행했다는 건데 이미 법원과 경찰 조사에서도 객관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된 사안들이다. 검사 시절 자신의 장기인 먼지털이식 수사와 별건 수사로 부정선거 의혹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포장해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강변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비상계엄 4일 만에 마지못해 사과 성명을 내놨다. ‘국민에게 불안과 불편을 끼쳐드렸다.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많이 놀라셨을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이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이런 말로 국민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국민들은 그날 밤 두려움과 공포에 몸을 떨었다. 정당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집회를 금지하려 했다. 일부 국민들은 처단한다고 했다. 1970년대 암흑의 시대로 되돌리려 했다. 그런 내란 행위가 이런 얄팍한 사과로 그냥 넘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그는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제2의 계엄 발동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걸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이 과연 있을까. 김용현은 불과 석달 전 국방장관 후보자로 국회에 나와 과연 계엄을 한다고 하면 어떤 국민이 용납을 하겠냐계엄 문제는 시대적으로 안 맞으니 너무 우려 안 하셔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랬던 이가 구국의 일념운운하며 비상계엄을 내리고 실패한 뒤에는 원인을 중과부적이라 했다. 이번 내란 주동자들은 이렇게 국회와 국민들을 속였다. 이들은 확신범이다. 불과 석달 전에 계엄은 우려 안해도 된다고 했던 자들의 말은 어떻게 믿으라는 말인가. 국민적 저항에 부닥친 이들이 이 순간을 모면하고자 악어의 눈물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현재 상황을 냉정히 보면 제2의 계엄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 내란 주동자들은 여전히 자유인으로 활개치고 있다. 김용현은 국방장관 관사에 그대로 머물고 있고, 국가방첩사령관·특수전사령관·수도방위사령관도 보직 해임 되었지만 일선 부대에 남아 있다. 최병혁 국방장관 후임자는 윤석열 대선 캠프에서 일했고 김용현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인물이다. 정적들 체포에 협조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국가정보원 1차장은 경질시키려 했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은 군 통수권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독재자들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는다. 스스로 물러나는 법도 물론 없다. 그것은 동서양의 역사가 말해준다. 독재자들은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면 일시적으로 후퇴했다가 다시 공세를 펴는 전략을 폈다. 이들이 하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안된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들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독재자들은 위기의 순간에 음모를 꾸미고 정적으로부터 권력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막을 친다.”

 

임기 문제를 포함해 앞으로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거나 향후 국정 운영은 우리 당과 정부가 함께 책임지고 해나가겠다는 말은 시간을 최대한 벌어보겠다는 술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61129일 탄핵 전야에 임기단축을 발표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당시 대통령직 임기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윤 대통령은 더 중대한 범죄를 저질러 놓고도 박 전 대통령보다도 못한 말을 하고 있다. 끝까지 야당과는 얘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치의 기본 중의 기본인 야당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는 지금까지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시민들이 그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하는 이유다.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도로에는 수천명의 시민들이 몰려들어 밤늦게까지 윤석열을 체포하라고 외쳤다. 하루라도 더 그가 권좌에 앉아있는 한 불안하니 그를 당장 끌어내리라는 것이었다. 그게 시민들과 국가의 안위를 위해 최선이라는 게 시민들의 생각이다. 정치권은 주권자인 시민들의 이런 요구에 속히 답해야 한다.

 

현대 대의민주주의는 참여, 대표, 책임성 3요소로 작동한다. 자유 시민의 평등한 참여, 권한을 위임받은 선출된 대표의 통치, 그리고 시민들에 대한 대표의 책임성을 말한다. 선출된 대표가 주권자인 시민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가족, 소수 기득권층을 위해 전횡을 부릴 때 이들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진정한 민주주의다. 이런 책임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으면 그 사회는 민주공화정이 아니라 전제 군주정이나 귀족정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런 독재자에게는 시민들이 불복종과 저항권을 행사해 주권을 되찾아올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게 바로 민주주의 정치체제다.

 

현재 정국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이 갖고 있다. 대통령이 잘못된 길을 걸을 때는 그를 배출한 정당이 책임을 져야 한다. 대통령의 전횡을 견제하고 통제할 일차적 책무가 바로 여당에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런 정당이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 표결에 대거 불참하고, 대통령의 내란 기도가 명백히 드러나고 그 자신도 책임을 인정한 현 상황에서도 내란 수괴를 감싸고 있다. 탄핵은 대통령이 잘못 했을 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합법적인 제도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국민들의 탄핵 요구에 응답하지 않을 경우 잠시 권력을 유지하며 호위호식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조만간 국민들의 단죄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박현 | 논설위원| 한겨레 2024.12.07.

 

산청군의 112번째 촛불집회

지난 3일 밤 제주에서 비상계엄령 선포를 들었다. 다음날 산청 집으로 돌아갈 채비와 제법 길었던 여정을 되짚고 있다가 연달아 울리는 휴대전화 문자를 확인하고는 아연실색했다. 급하게 뉴스를 확인했고 그 후 계엄선포하의 155, 오전 430분 국무회의에서 계엄해제안 의결. 한겨울밤의 기이한 영화는 오전 540윤석열 대통령, 계엄해제 공고로 끝났다.

 

이 모든 상황을 우리는 경악과 분노의 눈으로 밤새워 지켜봐야 했다. 대통령 윤석열은 민주주의 국가와 헌정 질서를 부정했다. 서울 거리에 헬기와 장갑차가 동원되고 중무장한 군인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에 난입했다. 저항하는 시민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7시간 동안 전개된 비상계엄 상황은 세계에 실시간으로 퍼졌다.

 

4일 이른 아침, 전국 각 지역 시민사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국민비상행동 집회를 예고했다. 경남은 18개 시·군 중 7개 지역에서 그날 저녁 탄핵 집회를 예고했다. 이 중 내 눈에 확 들어온 것은 우리 동네 산청군이다. 지리산 자락 인구 34천명이 채 되지 않는 기초자치단체 산청군. 1년 예산이 6천억원 정도. 중앙정부는 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하고 문화복지 분야에서는 소외·취약 지구로 꼽는다. 이런 산청군에서 윤석열 퇴진’ 112번째 집회가 열렸다. 20221130일부터 시작해 지난 2년간 매주 수요일 이어오는 집회이다. 산청진보연합과 농민회 등 지역단체가 중심이 된 산청수요촛불행동은 이태원 참사 이후 매주 수요일 저녁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집회를 하고 있다. 그간 지리산권 하동·구례·남원·함양 지역과 연대해 덕산댐 반대’ ‘지리산 케이블카 반대등 지역 현안을 적극 알리기도 했다.

6일 아침에는 산청군 간디고등학교 학생들이 창원에 있는 경남도교육청으로 출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전 11시 도교육청 브리핑룸에서 윤석열 탄핵기자회견을 연다고 했다. 아마 ‘12·3 내란사태가 빚은 전국 최초의 청소년 시국선언일지도 모른다.

 

간디고 학생들의 시국선언문을 보면 지금까지 계엄령이 선포되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역사를 배우고 기억하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는 또다시 독재 정권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두려움과 분노에 잠 못 이루는 밤을 가져다주었다며 먼저 3일 밤의 심정을 토로했다. 학생들은 전쟁이 날까 봐, 굶어 죽을까 봐 걱정하는 나라를 원하지 않는다. 나라 때문에 앞길이 막막해 걱정하지 않고, 빈곤에 시달리지 않고, 밤길이 무섭지 않은 나라를 원한다. 모든 이들이 편히 잠들 수 있는 밤을 원한다. 우리는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정의로운 나라를 원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짓밟고 군사반란을 일으켜 또다시 독재를 시작하려 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과 법적 처벌을 요구한다고 선언했다.

 

지난 7일 오후 온 국민은 국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어떻게 하는지 똑똑히 지켜봤다.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지켜야 할 여당 국회의원이 그들의 당권을 지키기 위해 국민을 버리는 과정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탄핵투표 불성립이 결정되는 순간 우리는 역사와 민주주의 앞에서 절망했고 그보다 더한 분노를 품어야 했다.

 

우리는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가 정적을 제거하고 비리를 덮고 오직 권력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거기에 동조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한덕수 국무총리, 한동훈 당대표와 국민의힘은 임기 단축, 조기 퇴진 운운할 것이 아니라 이번 사태의 처음과 끝, 관련자들을 엄정 수사하고 처벌해야 한다. 지난 7일의 밤이 역사의 과오가 아니라 분수령이 될 수 있기를. 부디 이 나라의 학생들이 바라는 편히 잠들 수 있는 밤이 찾아오기를.

권영란 | ‘지역쓰담대표 한겨레 2024.12.08.

 

진정한 민주혁명, 배반당하지 않을 시민 정치 체제를 만들자

이제 시민의회제를 도입할 때

12.3 사태에 놀란 정치권이 신속한 대응을 하고 있다. 5.18의 트라우마를 이미 경험한 시민들은 이 사태에 큰 충격을 받고 독재로의 전환이 재발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하는 모습이다. 권력자 한 사람의 판단이 국가 기능과 헌법 질서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좌우하는 불안정한 정치 체제의 한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고 있다. 일단, 일어난 큰불은 끄고 봐야 할일이다. 그러나 대통령제인지 왕정인지 모를 작금의 정치체제에서 192석의 거대 야당으로도 행정부의 폭거를 견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본다. 아울러 민의를 세밀하게 담아내지 못하는 정당제도에 대한 실망도 커지고만 있다. 대안정치의 구원투수가 절실하다.

 

왜 촛불의 성과를 제도화시키지 못했을까?

우리는 지금의 정권을 탓하기 전에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약속과 달리 어떻게 주권자들의 시대적 개혁 요구를 받들지 못했는지 돌이켜 봐야 한다. 그 결과 시대적 소명 완수는 고사하고 오늘의 사태를 야기한 세력에게 어떻게 정권을 넘겨주게 되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근본적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대의제 정치체제에서 선택받은 정치 엘리트들은 주권자를 그다지 의식하지도 않고 책임도 지려 하지 않는가?

 

이 물음에 대한 분명한 답을 찾지 못한다면 이번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태는 계속 반복될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는 국민의 뜻을 위임받은 정치인들이 책임을 방기하거나, 위임자 위에 군림하거나, 심지어 주권자를 위협까지 하도록 허용하는 대의정치체제의 폐해를 정확히 인식하고 이를 시정할 수 있는 실효적 대안을 찾아야 할 때다. 언제까지 촛불시위와 혁명, 그리고 배신의 아픔과 자괴감, 그리고 반동 권력의 위협에 시달리며 살 것인가?

 

대의정치의 불안정성과 모순에서 벗어나 주권자가 자신의 이름으로 중요 정책 결정이나 정치적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정치적 수단은 어떤 것이 있을까? 대의정치 제제를 효과적으로 보완하여 주권자의 뜻을 실효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시민의회 제도가 유력한 방안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대의정치의 한계를 보완해 줄 정치제도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먼저, 정당제도의 민주화, 비례선거제도의 확대, 직접 민주주의를 가미한 국민 발안과 국민소환 제도의 도입, 인터넷 투표 등을 통한 직접민주주의 전격 도입 등이 그것들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런 대안들은 각각 장점들도 있으나 기성 정치권에서의 유·불리 판단과 실효성에 대한 의문, 부작용에 대한 우려 등으로 도입이 주저되고 있다. 이 와중에 비교적 최근에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시민의회는 기성의 대의제도를 주축으로 주권자의 참여폭을 넓히면서도 숙의토론에 의한 신중한 정책 결정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이다. 나아가 대의제도가 안고 있는 엘리트의 독선과 힘 있는 이해집단의 전횡을 막을 수도 있는 가치중립적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캐나다나 아일랜드 등지에서 활발하게 실험되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외세와 독재에 대한 지난한 투쟁과 숭고한 희생, 세계사적으로 빛나는 민주화의 성취에도 불구하고 반민족적이고 반역사적인 퇴행이 계속 일어나는 이유는 정치체계의 모순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 독선적 엘리트 기득권 세력이 민중이 성취한 자유와 민주의 열매를 독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대의민주주의 정치체제의 모순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한다.

 

시민의회, 생활민주주의와 사회혁신을 위한 도구

이런 관점에서 현행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에 대한 점진적 보정과 함께 새로운 개념의 심의참여민주정치제도인 시민의회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 이 시민의회 제도는 달(Dahl)이나 구딘(Goodin) 같은 저명한 학자들은 물론, 유수의 국내외 학자들과 활동가들이 적극 지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관련 학자들과 복지국가 관련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지역정당, 협동조합, 마을대학 등의 활동과 함께 생활민주주의를 넘어 대안적 정치제도로의 제도 도입과 실행 경험 축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의 내면을 살펴보면 시민의회의 효과와 성공 가능성 심증이 더욱 커진다. 우리나라 시민들의 높은 민주화에의 열망, 이미 세계적으로 검증된 높은 도덕성, 그리고 케이 컬처(K-Culture)로 불리는 한류의 품격, 높은 창의력과 지능, 공동체에 대한 헌신적 태도, 이번 12.3 계엄 사태를 막는 과정에서도 나타난 민주화 투쟁의 경험 등은 시민의회를 도입하여 꽃피울 수 있는 최상의 토양이라는 확신이 든다.

 

이를 기반으로 지금 시도되고 있는 활발한 논의와 실행 경험들이 결합한다면 세계사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새로운 케이-민주주의(K-Democracy) 정체가 탄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룩한 시민 저항운동과 혁명의 열매가 어느 날 반동 세력에 의해 퇴행하기를 반복해 온 반민중적 역사의 막을 내리게 할 수 있는 유용한 정치도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12.3 계엄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시민이 이룬 촛불혁명의 위대한 성취를 시민 주권을 강화하고 시민의 복지 향상을 위한 제도화로 전환하는 데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하였다. 무소불위의 기득권 집단을 허용하는 불공정한 검찰과 언론제도를 개혁하라는 지상명령은 대의제 정치체제에서 승리한 정치엘리트들에 의해 공공연히 묵살되거나 폄하되었다. 세밀히 살펴 서민의 삶을 고양해야 할 민생정책들은 무책임한 인사에게 맡겨져 무참히 실패하였다. 급기야는 무능하고 무도한 세력의 집권을 허용하게 만든 장본인들이 촛불 정부의 정치엘리트들이었다. 이 아픈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시민은 무도한 정권의 농단에도 다시 촛불 들기를 망설이고 있다. 광화문의 인파가 예전과 같지 않은 이유이다. 추첨식 시민의회의 창안자인 달(Dahl)"대의 민주주의의 선거에 의해 선출된 엘리트들이 공공문제들에 대한 결정에 있어서 도덕적으로 우월하거나 어떤 것이 공공선인가에 대한 우월한 지식을 갖고 있다고 단정할 수 없고, 오히려 공공선이라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협소한 관료적제도적조직적집단적 이익을 증진하려 하며, 대중의 시선과 판단에 구속되지 않으면 않을수록 권력의 유혹에 의해 스스로 부패할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라고 확언하고 있다.(이지문 2017).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해 온 정치엘리트와 정책관료들과 그들에게 기생하여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들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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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및 구속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관련 손팻말과 응원봉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는 촛불의 성과를 제도화할 때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는 국가 중심 개발독재정권 하에서 시민의 피와 땀과 헌신으로 빛나는 산업화의 성과를 이루었다. 하지만 유신으로 대변되는 권위주의 독재정체가 도입된 이후 치열한 민주화 투쟁을 통해 국민의 직접 투표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정치 민주화를 어렵게 이루어 냈다. 이른바 19876월 시민항쟁을 통한 문민정부 수립이다. 이것이 직접 선거를 통해 뽑은 대통령에게 국민의 주권을 일정한 기간 전적으로 위임하는 방식의 대통령중심제 민주주의 정체이다. 이와 함께 소선거구제하에서 선출된 민의의 대표들이 주권자를 대신하여 행정부를 견제하고 법을 만들도록 하는 대의민주주의 정체를 확립하였다.

 

그러나 대통령 중심제와 소선거구제에 의한 대의민주주의 정치제도는 가치와 이념보다는 지역적 대결을,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가치를 대변하기보다는 거대 양당의 기득권적 독선을 강화할 뿐이었다. 그 폐해는 오롯이 주권자들이 감수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시민들의 힘으로 2017년 겨울의 촛불혁명을 성공시켰다. 주권자의 명령으로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위임받은 촛불정권은 검찰·언론개혁으로 대변되는 핵심 정치개혁들을 정치 공학적 계산만을 앞세우다 무산시켰다. 부동산 투기 억제와 노동생산성 강화, 저출산 대책의 레버리지가 될 있는 핵심 민생과제인 서민주거대책은 무능하고 용감한 내편 인사에게 끝까지 맡겨 23번의 제도 변경을 하는 등 무책임한 정책을 고집하면서 좌초시켰다.

 

이는 정부 정책을 믿고 따르던 선량한 시민과 젊은이들을 좌절시키고 배신감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결과 지지자들, 특히 실망한 젊은이들의 대거 이탈이 발생했고 그 반동으로 개혁 대상이던 정파가 재기할 토양을 제공해 주었다. 허약한 대의정치 체제가 역사적 도약의 기회를 만들어 준 주권자를 실망시키고 청산 대상인 정치집단을 다시 역사의 무대에 재등장시킨 것이다. 촛불 시민들로부터 촛불 정신과 가치의 제도화의 소명을 위임받은 자들이 주권자 시민의 뜻을 어떤 과정을 거쳐 배반하는지, 그리고 그 결과 어떤 역사의 반동이 일어나는지, 그 폐해가 어떠한지 우리는 절절히 체험하고 있다.

 

대의정치체제의 허약함, 즉 대의정치가 주권자의 뜻을 반영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들을 여기서 다 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소위 정치공학으로 일컬어지는 선거에서 이기는 기술, 즉 대의정치에서 다수의 표를 얻으려는 전략(정략)이 주권자의 뜻을 경시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인 것만은 틀림없다. 이는 지난 문재인 정부가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에 미온적으로 대처할 때 거론한 이유였고, 어떤 개혁법이라도 통과시킬 수 있는 절대적 힘을 갖고 있었던 거대 여당체제에서도 정부여당이 개혁입법에 미온적으로 나온 대표적 항변이었다.

 

그런 대통령과 여당의 인식의 중심에는 검찰이나 언론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국민의 뜻을 따라 개혁을 밀어붙이다가 다가올 지방선거에 역풍이 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여기에 더해, 차기 대선에 유리한 지지도와 절대적 정당 지분을 가진 여당 대표가 무리한 정치구도를 만들지 않으려는 야심이 크게 작용하였다. 모두 대의정치체제에서 정치 공학적 계산을 앞세워 주권자의 뜻과 시대적 요구를 정면으로 배반하는 행태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개인의 주권과 의사를 표명하고 결집할 많은 수단들을 가지게 된 개별 주권자들의 격렬한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고, 개혁의 실패, 책임 정책의 실패는 지지자들의 지지 철회로 끝나지 않고 반동 세력의 재등장으로 귀결되었다. 대의정치체제가 역사적 퇴행을 초래하고, 개혁 대상이 권력의 중심으로 다시 등장하게 되는 역사의 반동이 반복되는 이유이다. 이제 어떻게 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아니 고민만 하지 말고 대안 정치체제를 찾고 도입하기 위해 주권자 시민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

 

우리나라의 역사적 발전 과정과 주변의 환경을 고려하고 주권자 시민들의 특성에 맞는 대안정치체제를 찾는 것은 조심스럽다. 그렇다면 현 대의정치체제의 한계를 실효적으로 보완할 수 있고 무리하지도 않으면서 우리나라 시민들의 특성과 체질에 맞는 보완적 정치제도를 적극 모색하고 도입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 될 수 있다. 시민의회제도가 유력한 대안이다.

 

다시 촛불을 들고 좋은 정치와 정책을

우리 주권자 시민들은 더 이상 엘리트 대의정치의 들러리로만 존재하기를 거부해야 한다. 필자는 지난 대선을 통해 평생 복지국가 정책 개발과 정착에 헌신해 온 몇몇 정치인들이 정책노선의 차이나 개인적 선호가 다르다는 이유로 유력하고 유능한 정치 지도자를 매몰시키는 싸움을 그치지 않는 것을 보았다. 결국 그들의 의도는 성공했으나 반동 정권의 등장으로 인해 그간 추구하던 보편적 복지국가는 10년 이상 뒤로 후퇴했다. 그의 복지국가의 이상은 한 순간 퇴색하였고 그간 노력의 의도조차 의심받는 지경에 이르는 것을 보았다.

 

정치는 정책을 낳는 산모다. 유럽은 경제학을 경제학(Economics)라고 부르지 않는다.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ics)으로 부른다.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국가들이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좋은 경제학을 아는 학자들이나 정책가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끝없는 내전과 외세의 간섭 같은 정치 불안과 기득권 집단을 유지시켜주는 정치체제 때문이다. 주권자 시민이 복지국가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좋은 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좋은 정책은 좋은 정치에서 나온다. 주권자 시민을 위한 좋은 정치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좋은 정치체제를 그 나라의 주권자들이 만들어 내야 한다.

 

기득권 엘리트 정치인들은 별로 아쉬울 것이 없다. 민초들, 우리가 만들어 내야 한다. 만들 수 있다. 다시는 4.3, 5.18, 12.3 같은 숫자들이 한강 같은 작가의 소설의 배경으로 등장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도 노벨상 작가 한강은 너무 자랑스럽다.)

이재섭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 프레시안 2024.12.09.

 

자연에 반역한 환경부의 운명

독일의 사회학자이자 페미니즘 이론가인 마리아 미스와 환경·여성인권 문제를 주로 다뤄온 인도의 사상가 반다나 시바의 공저 <에코페미니즘>에는 우리 인류가 현재 가이아의 법칙과 시장 및 전쟁의 법칙 사이의 경합이라는 시대적 경합의 와중에 있다는 내용이 있다. 저자들은 이 같은 상황을 “(인간의) 지구에 대한 전쟁과 지구와의 평화 사이의 경합이라고 설명한다. 즉 우리 인류가 지구 생태계를 상대로 일으킨 반란 내지는 반역을 지속할 것인지, 또는 지구 생태계의 동반자인 숱한 생물종들과 공존하는 길을 택할 것인지 갈림길에 서 있다는 얘기다. 국내의 한 사회학자 역시 <에코페미니즘> 서평에서 인류가 자연을 마구잡이로 훼손하고 자신들의 편의대로 이용해온역사를 자연에 대한 인간 쿠데타의 역사라고 규정했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 환경부가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27개월간 벌여온 행태는 자연환경 파괴와 오염 가속화 정도로만 평가해선 안 된다. 환경부가 벌여온 일들은 자연에 대한 반역이자 한반도 남쪽 생태계에 대한 쿠데타, 환경정책의 시곗바늘을 전근대로 돌려놓은 폭거 등으로 설명하는 게 보다 정확할 것이다. 제주 제2공항과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흑산도공항 등 환경파괴 사업들을 허가하고, 법령에 따라 시행 예정이었던 플라스틱 포함 일회용품 감축 정책을 포기한 것, 4대강 재자연화를 폐기해 하천의 건강성을 해친 것도 모자라 기후역행 댐’ 14곳의 신설을 추진한 것, 차기 정부에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떠넘긴 것,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산양 1042마리의 떼죽음을 방치한 것 등이 환경부가 자연에 대해 저지른 반역행위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자연환경에 대한 전쟁범죄라고 할 수 있는 이 같은 행위들을 채 3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이뤄낸 것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이처럼 환경부가 저지른 자연에 대한 반역행위들은 대체로 절차적 결함이 있는 데다 정책의 정합성이 극히 부족하고, 필요성이 전혀 없으며, 의견 수렴 절차조차 생략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환경단체 활동가들은 물론 환경 분야 전문가들이 지난 27개월간의 환경부를 역대 최악이자 가장 무능한 환경부로 주저 없이 꼽는 이유다.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손실, 환경오염 등 전 지구적 삼중위기가 점점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 위기의 해법을 찾아내고, 피해를 최소화해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한 환경당국의 책임과 중요성은 앞으로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임에도 이미 정권 초기부터 존재 의의를 상실한 것은 물론, 자연에 대한 반역행위까지 거듭해온 현재의 환경부로는 삼중위기 대처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은 더 큰 공감대를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에코페미니즘>에서 저자들은 인류의 운명에 대해 지구와 평화로운 사이가 되든지, 아니면 지금처럼 다른 생물종을 멸종해가면서 인간으로서 멸종을 맞이하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면서 지구에 대한 전쟁을 계속하는 것은 지성적인 존재의 선택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저자들이 자연과 전쟁을 하면서 멸종을 맞이한다고 언급한 내용이 바로 멸종위기 생물들의 멸종을 방관하고, 오히려 부추겨온 환경부 스스로 선택한 미래일지도 모르겠다.

김기범 정책사회부 차장 | 경향 2024.12.09.

 

 

그들은 왜 전공의 처단을 얘기했나

시민 여러분, 도청으로 나와 주십시오, 지금 계엄군이 시내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노벨 문학상을 받는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배경이 되었던 1980년 광주에서 들려왔던 호소를 2024년 서울에서 다시 듣게 되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실패한 쿠데타처럼 조롱하기 쉬운 것은 없다. 하지만 이 어설픈 친위쿠데타가 성공했다 생각해보라. 인터넷에 올린 글은 강제 차단되고 계엄법 9조에 따라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이 이루어지고, 계엄사령부의 통제하에 들어간 검찰, 법원은 수많은 선량한 시민들에게 반국가사범’ ‘간첩등의 허울을 씌우는 불의한 판결을 쏟아냈을 것이다. 이런 불의에 가만히 있을 우리 국민이 아니다. 곳곳의 저항은 또 한번 부마(부산, 마산)와 광주항쟁으로 이어지고, 그날처럼 대검에 찔리고 개머리판에 찍힌 수많은 죽음을 낳았을 것이다. 설마 하겠지만 그날도 그 설마 했던 일이 일어났다. 이번 사태를 한갓 해프닝으로 끝낼 수 없는 이유다.

 

그런데 국회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함으로써 스스로 불법적 내란임을 밝힌 포고령 1호에는 또 한가지 이상한 조항이 등장한다.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계엄 포고령에 전공의가 등장하고, 게다가 처단이라니. 실로 생뚱맞다 아니할 수 없다.

 

포고령에 왜 전공의 처단이 들어갔을까? 계엄을 선포한 것도 이해가 안 되는데 포고령의 내막을 어찌 알겠는가? 이때 동원할 수 있는 것이 합리적 재구성이다. 계엄을 선포한다는 것은 선포하는 정치인도 목숨을 거는 일이기에 그는 열심히 국민의 지지를 받을 명분을 찾았을 것이다. “내가 잘한 일이 무엇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때 아하! 하고 무릎을 친다. “70% 전후의 높은 지지를 얻었던 정책이 있지!” 그것이 바로 의대 정원 확대. ‘처단이란 말은 전공의들이 감히자기 말을 거스르고, 게다가 의료대란이 장기화되면서 국민의 불만이 자기를 향하는 것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었으리라.

 

하지만 이는 명백한 잘못이다. 무엇보다 포고령 425자 중에 무려 64자를 전공의 문제에 할애한 이 생뚱맞음은 이번 계엄의 명분이 얼마나 궁색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그는 국민을 향한 처단이라는 말이 얼마나 낡고 후진 단어인지, ‘계엄이란 단어가 우리 국민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상기시키는 단어인지 알지 못했다.

 

그는 왜 이런 부적절한 단어를 사용했을까? ‘계엄’ ‘처단등의 퇴행적 단어들은 폐쇄적 극우 사이트에서는 너무나 흔히 사용되는 단어다. 심지어 이 순간조차 그렇다. 그가 여론을 확인하는 시간 대부분을 이들 극우 사이트를 보는 데 썼다는 측근의 증언대로라면, 이는 폐쇄적 논의장에 함몰되면 얼마나 비현실적인 생각에 빠지게 되는지, 그것이 얼마나 큰 비극을 야기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의료계는 전공의 처단운운한 정권에 분노하고 있다. 지난 4일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등은 국민을 처단하겠다는 언사를 서슴지 않는 것은 윤석열 정권이 반국가세력임을 자인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장 자진사퇴하라는 성명을 냈다. 대한의사협회 회장 보궐선거전에 나온 한 후보도 처단당해야 할 것은 이런 말을 내뱉는 자라 목소리를 높였다. 이로써 의료대란은 새로운 국면을 맞아 의료 분야 혼란이 더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무엇보다 환자들의 고통이 걱정이다.

 

독자들이 이 칼럼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이 불의한 쿠데타가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외신들은 한국 사회 민주주의의 취약성과 회복력을 동시에 확인하였다고 했다. 이것은 쿠데타 소식을 듣고 국회로 달려나가 계엄군을 맨몸으로 막아섰던 시민들, 책상과 의자를 모아 계엄군의 진입을 막았던 보좌관들, 담을 넘은 국회의원들, 신문 발행이 가능할지 알 수 없는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도 밤새워 호외를 찍어낸 신문사 직원들, 군인 아들에게 너는 절대로 시민들에게 총구를 돌리지 말라 문자를 보낸 아버지 어머니들, 그리고 느릿느릿 걸은젊은 군인들 덕이다.

 

지난 토요일, 단죄의 첫 칼을 피했지만, ‘그들은 모른다. 시인 김수영의 노래처럼, 이미 이 땅엔 나도 감히 상상을 못 하는 거대한 뿌리가 깊이 뿌리내렸음을, 오랜 세월, 민초들의 피눈물로 키워낸 민주주의의 거대한 뿌리.

신영전 | 한양대 의대 교수 | 한겨레 2024.12.09.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 지옥에선 통하지 않는다

이른 아침부터 12·3 내란 때 국회 진입작전을 지휘했던 707특임대장의 기자회견을 지켜보는 건 가슴 아픈 일이다. 그는 부대원들은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에게 이용당했다고 말했다. 지휘관이 저렇게 말하는데, 일선 병사들이 느끼는 배신감과 트라우마는 얼마나 클까. 그런데도 내란을 지시한 수괴윤석열은 여전히 대통령 자리에 버티고 있다. 더 얄미운 건, ‘어쩔 수 없지만이란 단서를 달면서 권력을 내놓지 않으려 애쓰는 한동훈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 그리고 한덕수 국무총리와 각료들이다. 이들의 방조와 묵인이 없었다면, 윤석열의 내란은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중세 십자군 전쟁을 다룬 영화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에는 예루살렘의 왕 보두앵 4세가 주인공인 젊은 기사 발리앙과 체스를 두며 인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나병으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냉철함을 잃지 않은 보두앵 4세는 발리앙에게 이렇게 말한다. “왕은 누군가에게 명령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은 또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네. 자넬 조종하려는 이가 왕이거나 그에 못지않은 권력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영혼은 온전히 자네의 것이야. 죽어서 신 앞에 섰을 때 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라거나 그때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라는 변명은 더는 통하지 않을 거야. 이걸 꼭 기억하게.”

 

오히려 한덕수는 12·3 내란이 실패하자마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같이 국정 운영을 주도하겠다고 나섰다. 그의 행동은 19791212일 밤,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에 둘러싸여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체포안을 재가했던 최규하 대통령보다 더 한심하고 뻔뻔하다. 권총을 찬 반란군 앞에서 최 대통령은 그래도 10시간 가까이 버텼다. 한덕수는 윤석열의 내란을 막기 위해 목숨 걸고 움직인 적이 있는가. 총리를 비롯한 모든 각료가 사표를 내면서 윤석열에게 대통령직 사퇴를 건의한다면, 윤석열이 버틸 수 있을까. 지금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장·차관이나 대통령실 수석비서관들은 국정 안정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의 혼란을 장기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 셈이다.

 

뻔뻔하기는 국민의힘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의원 105명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불참하고도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들을 갈아치울 수 있는 총선이 앞으로 34개월이나 남았기 때문이다. 윤상현 의원은 유튜브 방송에서 지금 욕 먹어도 1년 후에 국민은 달라진다고 말했다.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면 저런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것일까.

 

197912·12 쿠데타 주범들에 사법적 심판이 내려진 건 17년이 지나서였다. 이번엔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윤석열뿐 아니라 내란을 방조하고 암묵적으로 지탱한 정부 각료와 국민의힘 의원들에게도 법적·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점이다. 국회의원이 “1년만 버티자고 마음먹는 걸 막으려면, 국민소환제를 도입해야 한다. 국민소환제 법안은 2020년 발의됐지만 제 목에 방울을 달지 않으려는 의원들의 외면으로 21대 국회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다.

 

정치인이 국민을 두려워해야 쿠데타의 망령이 다시는 대한민국에 아른거리지 못할 것이다. 임기를 보장해도 대통령은 왕이 아니라는, 그래서 국민을 배반하면 언제든 그 임기는 단축될 수 있다는 교훈을 이번 기회에 분명하게 새겼으면 한다.

박찬수ㅣ대기자 | 한겨레 2024.12.09.

 

 

범죄 용의자 윤석열을 프로파일링한다

그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그가 뜬금없이 휴대전화를 바꿨을 때 예상했어야 했다. 계엄 준비에 착수했다는 걸. 미리 증거를 인멸한 것이다.

 

헌법학자도 필요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범죄학자들이 필요하다. 대통령 윤석열은 123일 비무장 민간인 대량 사살을 시도했고(미수) 국가 중요 기관 찬탈 목적으로 군인을 동원해 범죄 행위를 기수(범죄의 실현)했다. 쿠데타다. 범죄 용의자 윤석열을 프로파일링 해야 한다.

평생 검사로 살아왔다. 남의 죄를 처단하는 직업이다. 처단 자체가 이 직업의 특성은 아니지만 지금 용의자는 이 속성에 과몰입해 있다. 자신은 완전무결하다는 무오류성의 망상에 빠져 있다.

 

처단하는 자. 자신은 유일한 법의 집행자이므로 오류가 있을 수 없다. '내가 하는 모든 행위는 범죄가 아닐수밖에 없다'는 믿음을 체화하며 살아왔다. 이런 신념에 빠져 있기 때문에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스스로는 범죄로 인식조차 하지 않는다. 지능형 범죄자들이 그렇다. 그래서 이들은 범죄 행위나 범죄 현장을 발각 당하고도 당당할 수 있다.

 

이런 유형의 범죄자에겐 죄의식이 없다. 죄의식이 없다는건 공감 능력을 상실한 상태라는 의미다.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특질이다. 그래서 범행은 더욱 대범해진다. 그가 대통령이라면 국가 규모의 스케일이 될 수 있다.

 

공감 능력이 없으니 거짓말을 태연하게 한다. 국정원 1차장이 대통령으로부터 여야 대표, 입법, 사법 요인들과 민간 지식인들을 "이번 기회에 싹 다 잡아들이라"고 한 명령을 직접 들었다고 양심 선언을 했는데, 자신은 국회의원을 잡아들이라 한 적이 없다고 발표한다. 들은 사람이 있는데도 잡아뗀다. 거짓말에 대한 윤리적 개념이 서 있지 않으니 거짓말도, 말 뒤집기도 스스럼 없이 하게 된다. 무오류라는 건 훼손되면 안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행위와 변명은 거기에 맞춰진다.

 

상명하복 조직에 평생을 몸담아 왔다. 자신을 억압하려는 상관은 어떤 식으로든 끌어내리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부하는 어떻게 해서든 처벌받도록 해 왔으며, 검찰 최고위직에 올라서는 법무부 장관을 직접 수사해 그의 부인을 감옥에 집어 넣었다. 그런 방식으로 사람들을 선동하고 저급한 여론 사기꾼을 동원해 급기야 대한민국 만인지상 자리에 스스로 올랐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사이코패스는 보통 '외로운 늑대' 타입이다. 타인을 자신의 편집증적 환상에 동조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능형 범죄자인데다 주변의 자원을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춘 이 용의자는 자신의 편집증을 확산시킬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을 범죄에 끌어들이고 명령을 내려 의무에 없는 일을 하도록 강요하고 거부할 경우 곧바로 목을 자른다.

 

중세 시대 폭군의 타입이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마지막 왕(이자 폭군) 타르가르옌은 그의 가드에게 배신을 당하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다 태워버려라"고 중얼거린다. 민주정에서 정치인과 민간인을 닥치는대로 잡아 가두라고 명령하고 있는 건 중세 왕정 폭군의 심리 상태다. 미치광이 왕이다.

 

엘리트 출신인 용의자는 법치를 기계론적으로 이해한다. 사회적 합의를 적어놓은 글자에 불과한 법조문 자체를 절대적인 것으로 맹신하고 숭앙한다. 계엄을 선포하고 정적을 잡아 가두라고 명령하면 법조문의 텍스트가 살아나서 마법처럼 이행될 걸로 착각한다. 이를테면 법은 이 편집증적 세계관에 갇힌 용의자에게 '주술'과도 같은 것이다.

 

이 용의자에겐 냉혹한 전범(戰犯), 엘리트적 파시스트의 면모도 보인다. 발칸의 학살자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는 인종 학살 전쟁범죄로 체포되어 국제사법재판소에 섰지만 "조국을 위해 한 일", "증거를 대라", "난 자랑스럽다"라고 말했다. 그는 검옥에서 최후를 맞았지만 끝내 윤리적 양심적 고백이나 행동은 전혀 없었다. 지금 용의자는 자신의 행위를 구국의 결단으로 포장하고 있다. 비무장 민간인에게 총을 겨누고도 뭐가 잘못된 것인지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용의자는 그간 수차례 '공산 전체주의', '반국가 세력'을 겨냥해 극언을 쏟아내 왔다. 자유를 지키겠다는 껍데기 같은 말로 자신만의 세계관 속에서 명분을 쌓아왔다고 스스로 주문을 걸어 왔다. 계엄을 선포하고 포고령을 발표하면 전국에 숨죽이고 있던 자유 대한의 극우 세력이 쌍수 들고 궐기해 좌파에 백색테러를 가해줄 거라 진지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옛 독일 나치의 초기 수법이다. 처음엔 백색테러의 무질서를 즐겼던 나치는 나중에 합법적 절차를 만든다. 사적 폭력은 불법인데다 지저분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유대인 제거를 합법으로 만들었고 스스로 윤리적 생체 기능을 거세했다. 세상 모든 이들이 유일한 합법 통치자인 자신을 반대하고 있다는 망상에 빠진 용의자는 반대파를 사적으로 제거 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반대파 처단의 법적 근거를 조성하고자 계엄을 선포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나치처럼 대한민국을 세탁기에 넣어 돌리려고 했을 것이다.

 

그는 결국 비상계엄과 독재라는 달콤한 사적 판타지를 공동체 현실에서 실현했다. 스스로 지옥문을 열었다. 대한민국은 지금 극도로 불안정하고 위험한 용의자를 머리에 이고 있다. 백주에 테러범이 활보하는 걸 방치하고 있다. 빠른 시일 내에 극우 독재적 망상에 사로잡힌 용의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그의 손이 닿으면 우리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박세열 기자 | 프레시안 2024.12.09.

 

새봄의 민주주의는 그대처럼 밝고 생기 있길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스피커를 타고 흘렀다. “알 수 없는 미래와 벽포기할 수 없어~” 빼곡히 들어선 젊은이들의 합창에 며칠간의 우울이 밀려나고 희망의 전구가 켜졌다. 암흑 속에 빛을 받고 서 있는 연녹색 돔의 국회와 그 앞길을 메운 형형색색 응원봉, 수십만의 떼창이 어우러진 몽환적 분위기는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갈 세상도 이렇게 아름다울 거야약속하는 듯했다.

 

탄핵촉구 집회가 열린 7일 밤 여의도에는 20·30대 젊은층이 크게 늘었고 집회 문화도 달랐다. 누구는 정치집회의 세대교체라고 했고, 누구는 청장년 세대통합이라 했다. 케이팝 중간중간 후렴처럼 외치는 탄핵 구호를 타고 옆 사람의 따스함이 옮겨왔다. 하지만 밤공기는 찼고 발은 시렸다. “우리의 현실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어라고 깨우치듯이. 실제 국민의힘 의원들은 표결조차 않고 몰려 나갔고,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은 국군통수권을 쥔 채 여전히 대통령 자리에 있다.

 

같은 밤, 스웨덴 한림원에서 열린 강연에서 노벨 문학상 작가 한강은 자신이 견뎌온두가지 핵심 질문에 관해 얘기했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둘 사이의 긴장과 내적 투쟁이 글쓰기를 밀고 온 동력이었다고 오래 믿었다 한다. 이 질문이 가리키는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성은 그가 소년이 온다에서 다룬 19805월의 광주에서 극한의 형태로 공존했다.

 

지난 일주일 우리가 보고 겪은 세상도 그러했다. 선잠에서 깨어 느닷없이 마주친 대통령의 사나운 표정과 날 선 담화. ‘척결, 처단, 포고문같은 섬뜩한 단어들. 혹시 나도 저들이 긋는 선량한 시민의 금 밖에 나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순간의 자기검열. 카톡을 폭파하고 텔레그램도 지워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망설임. ‘피크(peak) 코리아라더니 결국 그 어둡던 날로 돌아가는가 하는 아득함.

 

이튿날부터 드러난 계엄의 동기와 과정도 기괴했다. 어이없게도 대통령은 극우 유튜버가 강변하는 선거부정론을 믿었다. 그는 군을 동원해 4월 총선이 부정선거라는 증거를 찾아 자신의 확증편향을 입증하려 했다. 이후 국회를 해산하고 무수한 정적을 지하 감옥에 가둔 채 나라를 유신 시대로 돌리려 했다. 공화국에서 왕이 되려 획책한 자를 보고도 여당 대표라는 한동훈이 오락가락하는 것도 인간에 대한 회의감이 들게 했다. 자신의 정치적 유불리가 판단 기준일 뿐 원칙과 국민은 안중에 없어 보였다.

 

하지만 우리는 또 보았다. 목숨이 걸린 줄 알면서 그 밤에 국회로 달려 나간 시민들. 집기를 쌓으며 특수부대의 진입을 늦춘 국회 직원들. 가로막는 시민들 앞에서 눈동자가 흔들리고, 일부러 천천히 움직이던 군인들. 엄청난 과오에 연루됐음이 드러난 뒤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눈물로 참회하는 현장 지휘관들. 그들도 무서웠고, 갈등했을 것이다. ‘그냥 있을까 나가볼까, 명령을 따를까 시민 편에 설까오락가락했을 것이다. 그들이 존엄함을 보여줬다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딜레마적 상황에서 양심의 소리에 따라 한발 내디딘 데 있다. 현대사의 참혹했던 기억들이 우리에게 내적 갈등 속에서 선택할 힘을 길러줬는지 모른다. 우리가 그 밤에 80년 광주의 그 잔혹한 군인들을 다시 맞닥뜨리지 않은 건, 한강 작가의 말대로 광주라는 보편적인 공간에 찾아온 소년덕분일 것이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다시 거리로 나온 시민들. 같이 못 해 미안하다며 카페와 식당에 선결제하는 이들. 집회를 마친 뒤 쓰레기를 치우고 가는 사람들. 우리는 8년 전에도 이렇게 단호했고 따뜻했으며, 연결됐고 질서가 있었다. 여기에 절망을 희망으로 승화시키고, 춤추며 싸울 줄 아는 젊은이들이 가세했다.

 

내란 주범 윤석열은 탄핵이든 하야든 물러날 것이다. 그러면 정치인들은 몸을 돌려 다음 대통령 뽑기에 몰두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급해도 이번에는 이렇게 멋진 시민, 달라진 젊은 세대에게 맞는 새로운 정치 시스템을 이야기해야 한다. 극단이 득세하는 정치, 그래서 급기야 민주적 소양이 전혀 없는 자가 대통령까지 오를 수 있는 낡은 옷은 이제 벗어던져야 한다. 그게 시민들이 두번이나 찬 바람 부는 거리에 나선 뜻이다. 부디 새봄의 민주주의는 이 광장을 메운 젊은이들의 소망과 생기가 환하게 피어나는 그런 것이길.

이봉현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 한겨레 2024.12.09.

 

 

체포되지 않은 윤석열, 끝나지 않은 내란민주공화국 지키고 6공화국 넘어서자

6공화국, 무엇이 부서졌고 무엇이 살아남았는가?

123일 밤에 시작된 잇단 사건은 치밀하게 준비된 친위쿠데타임이 밝혀지고 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계속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자는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이다. 127일 국회는 국민의힘(이라 쓰고 '내란의힘'이라 읽는다)의 방해로 탄핵소추안을 표결하지 못했다. 심지어 국민의힘 대표 한동훈은 내란에 동조한 혐의가 있는 국무총리 한덕수와 함께 초헌법적 과도정부를 운영하겠다는 내란 제2라운드를 시도했다. 129() 현재, 수사기관들이 모두 나서서 수사 경쟁을 벌이는 모습을 연출하지만 윤석열은 아직 체포되지 않고 있다. ,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늘 그랬듯 이번에도 쿠데타를 막는 힘은 시민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시민들이 쿠데타군으로부터 국회를 지켜 국회가 제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민주공화국의 생명이 끊어지지 않았다. 탄핵소추안 표결이 이뤄지는 날에도 여의도에는 백만 명의 시민이 운집해 국회의 탄핵안 가결을 압박했다. 많은 이들이, 특히 중장년일수록 이 광경에서 8년 전 촛불시위를 연상한다. 그때의 촛불이 K-Pop 팬클럽의 야광봉으로 바뀐 모습에 경이로워하며 촛불의 승리가 한 번 더 재연되고 말리라는 위안을 얻는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지금 상황은 결코 박근혜 퇴진운동의 재연이 아니다. 부패한 정권을 몰아내려던 운동의 반복이 아니다. 또한 윤석열과 이재명-조국으로 나눠 치열하게 전개되던 진영 대결의 연장도 아니다. 123일 이전의 그 어떤 사건이나 흐름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현실이 그날 이후 펼쳐지고 있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은 우리의 모든 일상의 전제였던 '민주공화국'을 공격했다. 아니, 공격하고 있다. 지난 40여 년 간 우리 삶의 골간으로 당연시되던 제6공화국 질서가 기습 공격을 당하고 있고, 우리는 지금 그야말로 가까스로 이를 지켜내는 중이다.

 

이런 초유의 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태도 중 하나는 '경험의 관성'이다. 6공화국 출범 이후 처음으로 민주공화국이 정면 공격을 당하는 상황에서 지난 경험의 관성대로 움직이는 것만큼 어리석고 위험한 짓이 없다. 탄핵안 표결에서 국민의힘이 '내란동조정당''외롭고 고된 길'을 택한 것 역시 어느 정도는 현 상황을 2016년 촛불 정국의 반복 정도로 여기는 우매함과 뻔뻔함 탓이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이 열어젖힌 세상에서 이런 관성에 기대는 어떤 개인이든 세력이든 역사의 무시무시한 파도에 쓸려나가 버릴 것이다.

 

6공화국, 무엇이 부서졌고 무엇이 살아남았는가?

물론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이번 주 안에 반드시 윤석열을 체포하든 탄핵하든 자진 하야시키든 하는 것이다. 일단은 모든 시민이 그간의 이념이나 정견, 입장 차이에 상관없이 이 한 가지 목표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하지만 민주공화국을 지키기 위해서도 내란 와중에 우리의 '현존' 민주공화국, 즉 제6공화국 헌정 질서에서 지금까지 무엇이 파괴됐고 무엇이 살아남아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민주공화국의 적들에 의해 과연 무엇이 돌이킬 수 없이 무너졌고 무엇이 재건의 토대로 버티고 있는가?

 

첫째, 대통령. 6공화국 체제에서 민주정부의 핵심 기둥으로 상정된 대통령직은 씻을 수 없는 손상을 입었다. 6공화국 체제라는 거대한 건축물은 민주적인 직접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이 헌정 수호자 역할을 한다는 한 가지 기본 전제에 의지해 구축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이것이 19876월 거리에서 전두환 군사독재에 맞선 시민들 사이의 최소 합의였다. 그런데 헌법대로 직접선거로 선출된 그 대통령이 직무 중에 친위쿠데타를 꼼꼼히 기획했고 시민들이 잠든 틈을 타 이를 무자비하게 관철했다. 민주공화국의 심장이라 여겼던 부위가 민주공화국을 뒤엎는 반역의 원점이 됐다. 이제 우리 모두는 이 무거운 의미를 곱씹어야 할 운명이다.

 

둘째, 국회. 국회는 123일 밤 민주공화국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지금도 온갖 방해 속에 유일하게 이 역할을 수행하는 헌법기관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사실 민주정에서 가장 근본적이면서 핵심적인 기관이 의회라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며, 우리 헌법 역시 제헌헌법 때부터 줄곧(유신과 5공 시기를 제외하면) 이를 전제해왔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시민들 사이에서는, 심지어 '민주 시민'이라는 정체성을 자각하는 이들 사이에서조차 국회를 '세금 낭비하는 기구' 정도로 바라보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박정희 군사쿠데타 세력이 1960년대부터 씨앗을 뿌려 가꿔온 이 반민주적 사고가 너무도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다.

 

그러나 123일 밤의 광경 앞에서 우리 머릿속의 악성 종양 같은 이 망상은 깨져 버렸다. 직선 대통령이 국민의 기본권을 짓밟으려고 일격을 가했고, 시민의 응원을 받은 국회가 이를 물리쳤다. 비상 상황에서 시민[국민]주권의 마지막 제도적 구현체로 나설 수밖에 없는 국회의 권위가 더없이 명확히 확인됐고, 지금도 국회는 한동훈-한덕수의 위헌적 과도정부 선포를 무력화시키면서 계속 이런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이로써 앞으로 폐허 위에서 민주공화국을 재건하려면 최소한 어떤 헌법기관을 발판으로 삼아야 할지 분명해졌다. 그 기관은 국회다.

 

다만 지금 국회란 실체적으로는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의 연합이다. 105명의 '내란동조당' 의원단은 탄핵소추안 가결을 가로막으며 내란범 편의 '5' 노릇을 하고 있다. 이것은 민주공화국이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단지 현재의 국회 그대로가 아니라 '철저히 개혁된' 국회여야 함을 말해준다. 최소한 '내란동조정당'이 철저히 배제되어야 하고, 이들이 국회 의석 1/3을 넘을 만큼 과대 대표되도록 보장해주는 시대착오적 선거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셋째, 시민/국민. 헌법에 명시된 주체 가운데 가장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은, 아니 이 사건을 통해 다시 한 번 헌법의 유일한 주체임이 확인된 것은 시민이다. 시민들은 123일 밤에 친위쿠데타의 성공을 막아내고 이후에 계속 내란 세력과 대치하여 유무형의 항쟁을 지속함으로써, 시민이야말로 민주공화국의 헌법기관들이 파괴되거나 반역을 저지르더라도 이를 뒤집어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는 주권자임을 분명히 했다. 시민들은 지금도 국회를 압박하며 내란 세력을 포위하는 내란 진압 대오의 본진이다. 3.1운동과 4.19혁명에서 대한민국의 뿌리를 찾는 헌법 전문과 시민[국민]주권을 선포한 헌법 제1조는 그 효력을 입증했다.

 

이것이 내란 1주일차의 대차대조표다. 6공화국을 제6공화국이게 만든 헌법기관(직선 대통령)은 복구가 불가능할 타격을 입었지만, 항쟁하는 시민들이 전보다 더 강한 힘으로 살아 있고 국회가 그 손발 구실을 하고 있다. 이 대오로 우리는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모든 권한을 마침내 정지시키고 감옥에 가두고 말 것이다. 내란을 진압하고 민주공화국을 지켜낼 것이다.

 

그러면서 또한 우리는 민주공화국을 잿더미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이미 적나라하게 드러난 제6공화국의 약점과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과반도 안 되는 득표로 선출된 대통령에게 민주공화국을 유지할 모든 권한과 책임을 맡겨 버리는 현 대통령제에 작별을 고해야 한다. 대의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담당기관인 국회를 한국 사회 현실에 맞게 제대로 구성하고, 그런 국회가 그에 맞는 권한과 책임을 행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민주공화국의 실체인 시민의 권력이 지금 같은 비상 상황만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구현되도록 시민이 정치에 직접 참여할 제도적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 이런 반성과 새로운 합의를 담은 제7공화국으로 나아가야 한다.

 

더욱 다양한 시민 항쟁 전술을!

덧붙여 내란 진압 운동에 함께 하는 모든 시민과 정파, 사회운동에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 지금까지 시민 행동은 국회의 중대한 표결과 동시에 개최되는 집회 형태로 펼쳐지고 있다. 이런 식의 대응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상황이 긴급하게 전개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는 2016-17년 촛불 시위의 관성 탓이기도 하다. 그래서 주말 대규모 집회로만 항쟁의 외양을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현 국면은 2016년과 같지 않다. 내란이 진압되지 않은 비상 상태다. 그렇다면 대규모 시민 집회뿐만 아니라 다양한 일상 전술이 기획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돌이켜 보면 19876월에는 오히려 차량 경적 시위처럼 시민들이 부담 없이 참가할 수 있는 다양한 행동 전술이 있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 표결과 윤석열 체포를 기다리는 지금 국면이야말로 매일 이런 저항 행동이 표출됨으로써 주권자의 의지를 더욱더 가시화해야 할 때다. 광장을 비춘 야광봉들의 번쩍임마냥 다채로운 저항 행동의 제안과 분출을 기대해본다.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 프레시안 2024.12.10.

 

우리의 피를 타고 흐르는 결속의 힘

내 곁에서 오랜 시간 함께 지낸 물건이 좋다. 길 잘 든 혁대, 귀퉁이 닳은 수첩, 내 어깨에 착 달라붙는 배낭 따위가 그렇다. 혁대, 수첩, 배낭은 오랫동안 내 소유였으며, 나의 깊은 애착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모종의 이 묻어 있다고 바라보지는 않는다.

 

뉴질랜드 마오리족은 물건을 가리켜 타옹가’(taonga)라 부른다. 모든 타옹가에는 그것을 산출한 숲, 산지, 토지가 부여한 영(), 다른 말로 하우’(hau)가 깃들어 있다. 아는 사람이 동물 뼈로 만든 빗을 주었다 치자. 빗을 받은 이는 그것을 일정 기간만 소유하다가 다른 이에게 건네준다. 빗에 담긴 하우의 힘이 작용해 그것을 받은 이가 병에 걸리거나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신념 때문이다. 사물에 각인된 주술, 종교, 영적인 힘으로 인해 물건들은 마오리 부족 안에서 계속 순환한다.

 

북서부 아메리카 해안 지대에 거주했던 콰키우틀족에겐 포틀래치’(potlatch) 전통이 내려온다. ‘식사를 제공하다, 소비하다라는 뜻을 지닌 이 용어는 현대 한국 젊은이들이 속어로 사용하는 탕진잼비슷한 느낌을 전해준다.

 

다만 포틀래치는 개인이 아니라 집단으로, 특정한 의식을 치르면서 실행된다. 생선기름이나 고래기름 통을 깡그리 태워버리거나 집을 비롯해 수천장의 담요를 태우기도 했다. 상대방을 끽소리 못하게 만들기위해 가장 비싼 동판을 파괴하거나, 조각내어 부족민들에게 나눠 주거나, 물속에 던져버릴 때도 있었다. 마치 부의 투쟁같은 행태가 이뤄지는 것인데, 이렇게 함으로써 자기 가족, 또는 추장이나 부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진다. 이런 의식을 통해 콰키우틀족의 법과 경제 체계에서는 막대한 부가 끝없이 소비되거나 이전된다.

 

마오리족과 콰키우틀족 사례는 프랑스 사회학자이자 인류학자인 마르셀 모스(1872~1950)의 저서 증여론’(1925)에서 가져왔다. 모스는 외친다. 기업처럼 경제적 원리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되기 이전의 우리 인류를 상상해보자고. “인간은 아주 오랫동안 다른 존재였다. 인간이 계산기라는 복잡한 기계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모스는 사회적 관계의 기초가 경제적 교환만으로 이뤄지는 대신 주고-받고-답례하는 인간적 교류와 결속에 뿌리 둘 수는 없는가 반문한다.

 

현직 대통령이 일으킨 내란이 미수에 그쳤으나 열흘 가까이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3일 밤 최강 야구를 보느라 때마침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던 나는 느닷없는 계엄령 선포에 심장이 멎는 듯했다. 내 생애 세번째 계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보았다. 순식간에 의사당 앞에 모여든 시민들의 움직임을. 군용 차량 앞을 몸으로 막아서는 사람들을. 무장한 최정예 병력 앞에 맨가슴으로 스크럼 짜고 맞서는 용기를.

 

나의 생체 세포와 뇌 신경망에는 자동으로 1980‘5월 광주의 이미지가 현재 상황과 겹쳐서 떠올랐다. 당시 헌신하고 희생한 분들의 하우가 역사의 물줄기라는 타옹가를 타고 우리에게 전류처럼 흐르는 듯했다. 눈물이 솟았다. 그분들이 피로 아로새겨 물려준 민주주의 덕분에 후세대가 겁먹지 않고, 오도된 국가 폭력 앞에 당당히 맞설 수 있었다. 젊은 세대가 응원봉을 흔들며 부르는 아파트다시 만난 세계가 내 고막을 지날 때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번역되어 들린다. 마르셀 모스가 동의할지는 모르나 증여되갚기행위는 세대 간에 역사의 흐름을 통해서도 일어나는 것 같다.

 

오는 1231일에 제천간디학교 교장으로서 임기를 마친다. 꼬박 8년을 학생, 교사, 학부모들과 부대끼며 살았다.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이 산골로 이끌었을까? 대안학교 출현 첫 단계를 이끈 1세대 교육실천가들의 삶이었다. 훌륭한 교육 현장의 명맥을 잇고 싶었다. 무엇이든 도움을 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큰 착각이었다. 내가 알량하게 내어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깨달음과 확신, 실천적 지혜를 얻었다.

 

인류의 조상들이 가졌던 투쟁적인 환대광기 어린 소비가 모든 부족민들에게 열렬하게 환영받던 시대를 상상해보라. 자본주의 사회 한가운데서 가장 덜 자본주의적인 연대와 사랑의 정신을 모닥불 쬐듯 잠시라도 오롯하게 느껴볼 공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가난했던 원주민들이 실천했던 고귀한 지출을 현대적으로 되살려보고 싶다. 그런 공동체 한가운데서의 삶 자체가 참교육이다.

이병곤 | 제천간디학교 교장·건신대학원대 대안교육학과 교수| 한겨레 2024.12.11.

 

예수가 된 인공지능

인공지능 예수가 탄생했다. 스위스 루체른시의 한 교회가 진행한 도발적 실험이다. 교회는 고해소 한쪽에 인공지능으로 구현한 예수를 설치하고 신자들과 대화를 나누게 유도했다. 100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는 인공지능 예수는 2개월의 실험 기간 1천명 이상의 방문객과 대화했다. 실제 이용자 중 3분의 2가 영적인 경험을 했다고 응답했다. 실험 프로젝트의 명칭이 기계 속의 신(Deus n Machina)이었으니, 실험 설계자로서는 의도한 바를 달성한 셈이다. 필자는 이 실험을 보고 이런 질문이 생겼다. 인간은 기계와 어디까지 교감할 수 있으며, 그 경계는 어디여야 할까?

 

인공지능 연구자 중 일부는 글, 도서를 읽거나 동영상을 시청하는 것과 인공지능 예수처럼 아바타와 대화하는 방식이 경험에서 별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간과 인공지능 아바타의 상호작용은 기존 매체와 본질적으로 다른 경험을 창출한다. , 영상이 일방향 소통이라면, 인공지능 아바타는 실시간으로 반응하고 감정을 표현하며 양방향 소통하는 준사회적 존재로 인식되는 경우가 흔하다. , 영상이 아무리 매력적이더라도 그것을 읽거나 보면서, 하나의 사회적 존재, 나와 관계를 맺는 대상으로 인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공지능 아바타를 대하는 사용자의 상당수는 아바타를 일정 부분 사회적 존재로, 나와 관계를 맺는 대상으로 본다. 인지과학적으로는 미디어 방정식 현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인간은 이성적으로는 대상이 기계임을 알면서도, 정서적으로는 마치 실제 인간과 상호작용하듯 반응한다는 의미인데, 인간의 외형을 가지고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는 기계이기에 그런 현상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플로리다에서 발생한 비극은 이런 현상의 위험성을 극단적으로 보여줬다. 14살 소년이 드라마 왕좌의 게임 속 등장인물 역할을 맡은 인공지능 아바타와 오래 대화하며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상호작용은 이제 단순한 기술 차원의 문제를 넘어, 인류 사회에 존재론적 화두를 던져주고 있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인간의 관계를 --그것으로 구분했다. 인간과 인공지능 아바타의 관계는 이 둘 사이의 모호한 영역에 있다. 이 모호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인공지능과의 상호작용에서 -의 관계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

 

나는 모든 형태의 인공지능 아바타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정보, 지식을 전달하는 형태의 챗봇은 지금도 넘쳐나고 있으며, 잘만 활용하면 서비스 제공자와 수요자 모두에게 효율을 높이는 좋은 도구이다. 그러나 이런 도구들을 만들어 낼 때 우리는 본질적 질문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과 교감하며, 어떤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자 하는가? 인간과 인공지능의 상호작용이 -관계에서 어디까지 확장되는 게 합당할지,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한가지는 확실히 얘기하고 싶다. 기술적으로 가능해서 해본다는 접근,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하기 위해 해본다는 접근은 지양해야 한다. ‘-그것-가 되었을 때 인류가 어디로 흘러갈지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대명사인 챗지피티(GPT)가 세상에 등장한 지 이제 2년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가 모두 너무 서두르고 있다. 좀 더 천천히, 신중하게, 논의하며 나아가면 좋겠다. 그래도 충분하다.

김상균 | 인지과학자·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한겨레 2024.12.11.

 

두 번의 실수는 없다2016년 탄핵 오답노트

역사가 반복된다는 말은 행동하지 않는 자들의 궤변이다. 역사는 과거를 반복하려는 퇴행세력과 미래를 새로 그리려는 개혁세력의 격전장이다. 그러나 매 시기 전투의 양상은 다르고 그 결과도 다르다. 실패로부터 배우고 진화하는 쪽이 승리한다.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패배의 원인을 정확히 분석하고 이전과 다른 해법을 찾아야 한다. 오답노트를 제대로 쓰는 자만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역사를 추동할 수 있다.

 

윤석열에겐 오답노트 자체가 없다. 그는 잘못된 풀이 방법을 어설프게 베껴 쓰며 파국을 자초했다. 계엄 한달 전 작성된 계엄사 합수본 운영 참고자료 문건에는 19805·17 비상계엄 포고령이 참고자료로 붙어 있다. ‘모든 정치 활동을 금하고 포고를 위반한 자는 영장 없이 처단한다는 내용이다. 표절이라 할 만큼 정치활동 금지처단을 베껴왔지만 바로 그 대목 때문에 전두환이 내란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단 점은 참고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전두환의 정치활동 금지에 더해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까지 금지한다는 오답 덧붙이기도 서슴지 않았다. 사법시험은 9수가 허용될지 몰라도 이런 오답엔 즉각적인 시험지 압수와 강제 퇴장뿐이다.

 

국민의힘은 2016년 탄핵에서 뭘 배웠나? 그들의 오답노트엔 당에 배신자로 찍히면 죽는다탄핵 트라우마만 선명하다. 지난 8일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한 유튜브 채널에서, 비판 여론을 우려하는 소장파 김재섭 의원에게 나도 박근혜 탄핵에 반대해서 욕 많이 먹었어. 그런데 1년 후에는 의리 있어 좋아’ (하면서), 그다음에 무소속(으로) 가도 다 찍어 주더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2016년 탄핵 때와 이번 사건은 다르다. 대통령이 내란죄를 범했다. ‘당의 배신자될까 무서워 어영부영하다간 국가반역자처단될 수 있는 엄중한 상황이다. 새로운 계엄사령관이라도 된 듯, 한덕수 총리와 나란히 담화를 발표하는 한동훈 대표가 법조인 출신이라는 건 미스터리다. 반헌법적 국기문란, 내란동조 행위에 해당한다. 그들은 아직 오답 속에 갇혀 있다.

 

민주당의 오답노트는 어때야 할까? 촛불 시민의 힘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촛불연합정부 수립의 기대를 저버렸고 개혁을 제도화하는 데 소홀했다. 따뜻한 권력의 방석에 앉아 안일했고 태만했다. 대통령 한 사람의 망상과 독단이 다시는 나라 전체를 망가뜨릴 수 없도록 헌정 구조를 바꾸는 데 총력을 다했다면, 8년이 지나 또다시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시민들이 나서야 하는 환란만큼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인적 교체를 넘어 구조 개혁으로 나갔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윤석열 탄핵에 동참하는 여당 의원에 대해선 새로운 국가 질서 수립의 정치적 동반자로 인정하고 존중하겠다는 명시적 선언이 필요하다. 이재명의 대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주권을 위해 초정파적 연대로 새 판을 짜자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으로, 변화의 방정식을 새로 써야 한다.

 

그럼 국민은 과거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2016년 탄핵이 국민에게 남긴 가장 큰 자산은 국민이 천만개의 촛불로 일어서면 철옹성 권력도 끌어내릴 수 있다는 체험이다. 가장 평화적인 방법으로 가장 무도한 권력을 무너뜨리는 것, 그것은 주권자가 지휘하는 가장 질서 있는 퇴진이었다. 그러나 탄핵 인용과 대선에서 우린 멈췄다. 방심한 탓이다. 박근혜 정부는 무너졌지만 그 몸통은 죽지 않고 더 비대해졌다. 검찰권력은 개혁의 기수인 양, 국민을 호도하고 윤석열, 김건희라는 괴물을 낳았다. 친윤계가 장악한 검찰은 김건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불기소 처분하고 대통령 명예훼손이라며 비판적 언론인들을 마구잡이로 기소하고 압수수색했다.

 

그런데 윤석열 일가의 충실한 호위무사였던 검찰이 돌연 안면을 바꿔 비상계엄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한동훈의 현대고 후배인 박세현 서울고검장을 본부장으로 앉혔다. 제 발로 검찰에 출두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체포하고 윤석열을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로 입건하며 부산을 떤다. 여차하면 주군의 목이라도 갖다 바칠 기세다. 그러나 검찰엔 내란죄 수사 권한이 없다. 윤석열의 충암고 라인이 사고 치고 한동훈의 현대고 라인이 수사하는 역할극은 기만이다. 정국의 분수령마다 정의의 칼잡이를 자처하며 권력을 키워온 정치검찰을 더 이상 용납해선 안 된다. 한동훈 대표는 뒤늦게 국민의힘발 내란 특검법을 예고했지만, 검찰이 수사의 주체가 아니라 수사의 대상이란 점은 덮어두려 한다. 이제 국민의 시간이다. 두번의 실수는 없다.

이진순 |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 한겨레 2024.12.11.

 

인간 윤석열기사를 볼 뻔했다

1980823일자 조선일보

그의 투철한 국가관과 불굴의 의지, 비리를 보고선 잠시도 참지 못하는 불같은 성품과 책임감, 그러면서도 아랫사람에겐 한없이 자상한 오늘의 지도자적 자질은 수도생활보다도 엄격하고 규칙적인 육군사관학교 4년 생활에서 갈고 닦아 더욱 살찌운 것인 듯하다.”

 

1980823일에 발간된 조선일보 인간 전두환기사 중 일부분이다. 당시 조선일보는 육사의 혼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의 행동이라며 전두환을 찬양했다. 조선일보뿐이었을까. 5·17 내란으로 신군부 일당이 완전히 권력을 찬탈한 뒤 그해 8월에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되자 모든 언론들은 전두환을 칭송하기 바빴다. 동아일보는 난국 속 영도력 부각” “오도된 가치관 바로국가지표 뚜렷이”(823일치)라 했고 중앙일보는 솔직하고 사심없는 성품” “몸에 밴 근검생활, 이권엔 냉정”(828일치)이라 보도했다. 서울신문은 새 시대를 여는 새 지도자, 전두환 장군이라는 시리즈를, 경향신문은 새 역사 창조의 선도자 전두환 장군시리즈를 내보냈다.

 

12·3 내란사태로 모든 것이 바뀌어버렸다. 더 이상 친위 쿠데타는 음모론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게 과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정말 저렇게 노골적으로 칭송할까 생각도 들지만 국민들은 그동안 언론이 어떻게 권력에 굴종하고 곡학아세를 해왔는지를 목도해왔다.

 

지난 829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을 했다. 채 상병 특검법 거부권 행사 의사를 밝혔고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무혐의 결론에 대해서는 유감 표명 없이 구체적 답변을 피했다. 상당수 언론이 이날 기자회견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과한 수식어를 쓰며 찬양에 가까운 보도를 내보냈다. 한국방송(KBS)대통령은 결연한 표정으로 4+1 개혁의 당위성을 강조했다고 보도했고 티브이조선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강한 의지와 의욕이 넘쳤다수사 현안에 대해선 한발 더 나아가 자신감을 보였다고 했다.

 

만약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가 성공했다면? 상상하기 싫지만 가정을 해본다면 인간 윤석열을 칭송하는 저런 보도가 정말 안 나왔으리란 장담을 어떻게 할까. 언론이 처음부터 비상계엄을 정당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수단밖에 없냐고 비판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살펴봐야 한다’ ‘야당의 무한 발목잡기가 문제가 없었는지 되짚어봐야 한다’ ‘계엄은 이미 벌어진 일이고 앞으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지가 중요하다등의 기사가 쏟아지지 않았을까.

 

언론, 특히 방송이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명제는 종종 기계적 균형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한국언론학회는 방송위원회 의뢰를 받아 대통령 탄핵 관련 티브이 방송 내용 분석보고서를 발표했다. 요약하자면 탄핵 반대자 인터뷰가 압도적으로 많았기에 당시 방송 보도가 편파적이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때 노무현 탄핵 반대 여론은 70% 수준으로 비등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이 보고서를 인용해 보수언론은 지상파 방송이 매우 좌편향됐다고 주장했고, 한나라당에서는 방송 때문에 총선에서 패배했다고 했다. 물론 보수성향 언론학자들이 주도해 작성한 이 보고서에 대해 한국방송학회와 한국언론정보학회 등의 많은 학자들은 비판과 반박을 내놨다.

 

당시 보고서를 둘러싼 논쟁은 여러 쟁점을 남겼다. 언론은 특정 사안에 대해 5 5로 주장을 동등하게 반영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국민의 여론 비율만큼 반영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잘못된 부분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옳은가. 20년 전 한국언론학회의 조언을 따른다면 언론은 최근의 몇몇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윤석열 탄핵 반대 목소리를 대략 20~25% 반영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에 고개를 끄덕일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최근 130여명의 원로 언론인들의 모임인 언론비상시국회의가 후배 언론인들에게 호소를 했다. 요구 사항은 첫번째 객관·중립의 허상에서 벗어나 내란범죄의 본질을 파헤쳐달라, 두번째 진영 논리와 자사 이기주의에 빠지지 말아달라, 세번째 정파의 관점이 아닌 시민의 관점과 헌법 수호 관점에서 취재·보도해달라는 것이다. 모두 동의한다. 언론은 역사의 죄인이 아니라 역사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김준일 | 시사평론가| 한겨레 2024.12.11.

 

 

윤석열 폭탄안고 트럼프 파고 맞을 건가

특수부대가 한국 국회의사당 유리를 깨고 들어가는 장면을 본 미국인들은 기시감이 들 것이다. 2021‘1·6 의사당 난동때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국 의사당 창문을 깬 장면과 겹쳐서다. 사태를 희화화하자면 윤석열 대통령의 행동은 트럼프에 대한 오마주(예술가에 대한 존경의 뜻으로 그의 작품 표현을 모방하는 것)라고 할 수 있겠다. 트럼프는 민간인들을 사주했지만 윤 대통령은 최정예 부대를 투입하는 더 강렬한 표현을 보여줬다.

 

이번 사태를 트럼프와 연결 지어 보는 것은 여기서 그칠 게 아니다. 트럼프의 재등장과 맞물리는 지점들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내란을 감행한 시점, 이후의 관리방안과 관련해 분명히 미국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 원래 한국 지도자들은 미국 눈치를 보지만 쿠데타 세력은 더 눈치를 봤다. 미국은 박정희, 전두환과 초기에는 거리를 두는 척하다가 충성을 확인하고는 백악관으로 불러 기름 부음을 해줬다.

 

그런데 왜 윤 대통령은 자나 깨나 민주주의를 말하는 조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일 때 일을 벌였을까?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이 심각한 오판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은 예상을 뛰어넘는 강경한 발언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의 부정적 반응은 능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한국 정부 쪽에 비공개적으로 전한 메시지는 더 험악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으로서는 바이든이 민주주의의 민 자도 모르는사람이라고 평가하는 트럼프가 백악관에 들어갔을 때 일을 감행하는 게 낫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는 각국 독재자들의 무소불위 권력에 대해 긍정적 태도를 보여왔다. 트럼프의 비서실장을 지낸 존 켈리는 그가 독일 장군들의 아돌프 히틀러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부러워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미국 상황을 중심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무엇보다 국내의 정치·사회적 압박 증가로 기회의 문이 닫히고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바이든 행정부는 끝나가니까 다음달 20일 출범하는 트럼프 행정부에 사후 재가를 받으면 된다고 판단했음 직하다. 19805월 광주에서 학살극을 저지른 전두환은 이듬해 1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취임 직후 방미해 정통성을 인정받았다.

 

이런 맥락과 관련해 트럼프의 침묵도 눈에 띈다. 미국을 비롯해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사건에 대해 소셜미디어로 한마디 할 법하지만 여태 입을 다물고 있다. 내란이 실패했기 때문일 것이다. 승리만을 추구하는 그는 패자에 대해 얘기하기가 싫을 것이다. 자기 방식을 흉내 내다 실패한 사람에게 조소를 보내는 것도 내키지 않을 것이다.

 

만약 윤 대통령이 성공했다면 트럼프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미국 대선 직후 대통령실이 매달린 조기 회동이 성사됐다면 윤 대통령은 트럼프를 사전에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었을까? 윤 대통령이 계속 자리를 지키면 트럼프는 어떻게 나올까? 바이든 행정부는 윤 대통령을 상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피 냄새를 맡은 트럼프가 어떻게 나올지는 예측이 어렵다. 그는 상대의 약점을 기회로 삼는 데 이골이 난 사람이다.

 

한국은 속히 당당한 정부를 세워 트럼프라는 파고에 맞서야 한다. 그렇잖아도 시급한 문제이지만 트럼프까지 고려하면 낭비할 시간이 더 없다.

이본영 | 워싱턴 특파원 | 한겨레 2024.12.12.

 

정치를 위한 정치와 이별할 결심

지난 3일 발생했던 대통령의 반헌법적 친위쿠데타가 대한민국을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신속한 탄핵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을 조기에 진화하지 못하면, 한국 사회와 경제는 큰 혼돈에 빠질 수 있다.

 

미국의 제2기 트럼프 행정부 출범은 대외적 불확실성을 이미 고조시키고 있다. 트럼프의 보호무역 기조로 인해 내수 부진과 수출둔화가 겹쳐, 내년도 한국 경제 성장률이 더 낮아질 것이라는 예측도 줄을 이었다. 한국은행은 11월 수정경제전망을 통해, 2025년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9%로 낮췄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11월 말 기준으로 해외 주요 투자은행 8곳의 한국 경제 성장률 평균 전망치는 한 달 전 2.0%에서 1.8%로 하락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제1기 때와 마찬가지로 보편적 규칙의 제정보다는 개별 국가에 대한 압박과 제재를 통해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당장에 외교·안보 문제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바이든 행정부가 약속했던 보조금 지급 이행, 대중 봉쇄 강화에 따른 국내 기업들의 추가적 피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폐기 내지 축소에 따른 국내 기업들의 피해, 추가 관세, 주한 미군의 주둔 비용 부담 문제 등등 수많은 경제 현안이 발생할 것이 자명하다.

 

그런데 해외 각국 정부로부터 신뢰를 잃고 사실상 정부로서 기능을 상실한 윤석열 행정부를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협상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협상이 가능할 것이다. ‘트럼프 리스크가 극대화된 형태로 국내 경제를 타격할 개연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런 악영향은 쏟아진 물과 같다. 이제와 도로 담을 수도 없고, 신뢰를 잃은 행정부가 나선들 해결할 수도 없다. 더구나 반헌법적 권력이양이라는 황당한 시나리오로 여당 대표와 국무총리가 나선다면, 불확실성만 더 키우고 더 오래 지속시킬 뿐이다. 신속한 국회 탄핵을 통한 대통령 권한 정지와 내란 관련자 엄중 처벌 그리고 신속한 새 정부의 출범만이 이런 불확실성과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나아가 대통령의 친위쿠데타가 정치를 위한 정치와 결별하는 계기가 된다면, 한국 경제와 정치에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수년 안에 제조업 위기와 동남권 중화학공업 산업공동화 그리고 삼성전자의 쇠락이 한국 경제를 강타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123일 이전처럼 야당과 정부의 대치가 남은 2년여 동안에 지속되었다면, 정치권은 오로지 윤석열 퇴진이재명 방탄이라는 정쟁에만 골몰했을 것이고, 다음 대선에서 누가 집권하더라도 아무 준비 없이 이런 심각한 위기를 맞았을 것이다.

 

추운 날씨에도 국회 앞에 모여 탄핵을 외치는 젊은이들의 목소리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갈망임을 여야 정치인들이 알아야 한다. 정치가 현실과 미래 문제를 진단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정책 경쟁으로 나아가야만, 다가올 경제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시점에서 정치를 위한 정치와의 결별은 이재명 대표의 결심에 달렸다. 탄핵 이후 헌법재판소 판결이 내려지고 대선이 치러지기까지, ‘이재명 사법 리스크가 정쟁의 핵이 될 개연성이 높다. 특히 선거법 2심과 대법원 판결이 대선 이전에 내려질지, 또 차기 대통령 당선 이후에 셀프 사면여부와 유죄 판결이 나오면 어떻게 할지 등이 지속적으로 정치 쟁점이 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김건희 리스크를 안고 집권해서 벌어진 일련의 일들과 유사한 일들이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를 안고 집권할 때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미래에 대한 정책 경쟁은 설 곳을 찾을 수 없다.

 

대통령 탄핵이 이뤄지면, 이 대표는 차기 대선에는 출마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려줄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 본인이 억울하다면, 향후 사법절차를 통해 소명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정치를 하는 이유가 국민의 행복과 미래를 위한 것이라면, 정치 지도자로서 자기희생을 통해 정치를 위한 정치를 청산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대표가 이런 결단을 하면, 이념적 성향을 떠나 우리 국민 모두가 진정으로 존경할 수 있는 정치인이 된다.

 

이 대표 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다고 야당은 반대할 수도 있다. 당송 8대가를 대표하는 한유가 세상에 천리마는 늘 있다. 다만, 백락이 흔치 않을 따름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백락은 본래 고대 중국인들이 천마를 주관한다고 여긴 신선의 이름이다. 이 대표의 결단이 한국 정치판을 백락으로 바꿀 수 있다. 천리마가 될 정치인은 이런 정치 지형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경향 2024.12.12.

 

내란 수괴가 사법 마비라는데 침묵하는 사법부

온 국민에게 생중계된 12·3 내란의 현장. 국회를 무장 군대와 경찰로 유린하는 비극을 목격한 건 충격이었다. 권력을 쥐여 준 국민을 겁박하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극도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괴물 같은 독재자를 영화 속에서 본 적은 있지만, 거의 반세기가 지난 2024년에 다시 보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게 대통령이냐.’ 이게 민주주의 법치국가의 대통령이 벌일 짓인가. 이해 불가 초유의 사태다. 헌법주의자라던 자가 헌법을 유린하고, 의회주의자라는 자가 국회를 범죄자 소굴’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로 여겨 척결 대상으로 삼았다.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은 선행 자백을 했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가 야당을 겁주기위해서라고 했는데, 비상계엄 선포 사유에 해당하지 않음을 스스로 밝힌 것이다. 그는 정치력을 발휘하는 대신 군부독재 시대의 군홧발을 먼저 떠올렸다. 평소 즐겨하던 어퍼컷 세리머니가 국민을 향한 한 방, 주먹질임을 알아채는 데 3년이 걸렸다.

 

겁박의 대상으로 야당을 꼭 짚어 말했지만, 겁주려 했던 곳이 더 있다. 사법부다. 비상계엄 선포에서 사법 마비를 두 번이나 언급했다. ‘판사를 겁박하고 다수의 검사를 탄핵하는 등 사법 업무를 마비시키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사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헌법 제773항에 따라 비상계엄 선포 시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영장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포고령 1호에 법원의 권한에 관한 특별 조치는 없었지만, 대통령의 인식 속에는 사법에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보고 듣고도 사법부는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다. 사법부의 수장 대법원장은 비상계엄 선포가 해제된 지난 4일 출근길에 이런 어려울 때일수록 사법부가 본연의 임무를 더 확실하게 하겠다라며 본래의 역할이 재판을 통해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는 일이기 때문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법원행정처장도 계엄 해제에 안도하면서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지만, 겨우 이것뿐이었다. 대통령이 사법 업무와 사법 시스템이 마비되었다고 판단하고 전 국민을 향해 사법부의 위상과 권위를 훼손하는 발언을 했음에도 원론 수준의 태도 표명뿐이다. 명예훼손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전직 대법원장과 전 대법관이 체포 대상에 포함되었다는 데 더욱 발끈하고 분노해야 할 일 아닌가. 겁먹은 것일까. 아니면 사법부 스스로 재판을 잘못해왔고, 사법 시스템이 마비되었다고 인정하는 것인가.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이 사법 마비로 보는 이유를 짐작해 본다. 장모 최은순에 대한 법정구속과 사문서위조죄 등 유죄판결을 내리자, 사법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검사 때를 못 벗은 대통령은 야당 대표 이재명이 기소당했으니 당연히 유죄로 추정되고 정적을 몰아낼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위증교사’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니 심사가 뒤틀렸을 것이다. 그래서 사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보고 사법부에도 경고장을 날렸다. 이러한 사법권 간섭과 침해 우려에 대해 사법부 수장이 별말 없으니 구성원도 조용하다. 법관회의도 아무 움직임이 없다. 그나마 정치적 독립을 어렵게 유지하고 있다고 인정받는 사법부마저 그래선 안 된다. 위헌·위법 비상계엄 선포자에게 따져 물어야 한다. 공개 질의해야 한다. 누가 판사를 어떻게 겁박했는지, 대체 왜 사법 업무가 마비되고 사법 시스템이 망가졌다고 본 건지, 그래서 계엄선포가 성공했다면 법원에 어떤 특별한 조치를 하려 했는지를. 수사해서 기소되면 그때나 판결로 말하겠다며 침묵할 상황은 아니지 않은가.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경향 2024.12.12.

 

 

국가 신뢰 회복만이 경제위기를 차단한다

지난주 123일 밤의 난데없는 비상계엄 시도는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주가가 연중 최저치로 하락하고 환율이 상승하는 등 금융시장에도 그 충격이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우리가 경제적 이슈가 발생할 때 금융시장을 바라보는 이유는 금융시장이 사람들의 시선과 우려가 가장 빨리 반영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주가 하락도 그렇지만 더 우려되는 상황은 환율의 급격한 상승이다. 여러 사람이 최근 탄핵 국면과 과거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을 비교한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국회에서 의결되었던 2016129일을 전후로 해서, 그리고 탄핵이 헌법재판소 판결로 확정되었던 2017310일까지 원-달러 환율은 연말의 계절적인 요인으로 일시 상승한 것을 제외하고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외환시장은 11일 현재 원-달러 환율이 1430원을 넘어서고 1450원 선을 위협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등 일주일도 안 되어 원화 가치가 크게 하락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왜 이러한 차이가 발생했는가?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으로 인해 발생한 정치적 위험을 우려하여 한국이라는 나라의 대외적인 신뢰도가 의심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금융시장의 투자자가 어떤 나라에 투자할 때 경제적인 판단보다 우선하는 것이 그 나라의 정치제도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투자 판단이 옳았다고 하더라도 그 나라가 혼란해서 투자자금을 회수할 수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투자자가 그 나라의 군대가 국회의사당의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영상을 보고도 투자할 수 있겠는가?

 

국가 신뢰의 추락을 우려하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그것이 금융시장을 넘어서서 실물경제를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입 비율이 통상 80%를 넘어서는 대외의존적인 경제구조를 가진 나라이다. 그리고 이러한 국제적인 교역 확대가 경제성장의 기반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치적 위험이 지속된다면 경제위기의 발생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투자자들이 한국의 수출기업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보호무역정책에 대비해서 전력 질주하는 시점에 발생한, 이 정치적 격변이 지속됨으로써 나타날 한국 경제에 대한 악영향을 우려하고 있음을 경고했다.

 

다만 아직은 그러한 악영향이 전면적으로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 사실 세상에는 감히 예상하지도 못한 일이 종종 발생한다. 천재지변도 그렇거니와 작금과 같은 이성을 잃은 정치적 행위도 전세계적으로 곧잘 일어난다. 그러므로 한 국가에 대한 신뢰는 예상하지 못한 위험이 발생할 때 그 사회가 이를 어떻게 수습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비록 한주 동안 외국인 투자자가 1조원의 주식을 매각했다고 하지만, 아직 외국인이 한국을 주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자본을 회수하지 않는 이유이다. 아직 국가의 신뢰를 회복할 기회가 있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역설적으로 그가 없애겠다고 주장했던 주식시장의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범이 자신임을 인정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 원인 제공자인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되지 않고 버젓이 권한을 행사하는 정치적 위험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한국의 국가 신뢰도는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어떤 외국인이 한국을 믿고 투자와 거래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지속 기간이 길수록 경제는 더욱 멍들 것이고, 일정한 임계점에 도달하여 경제위기로 확산할 위험마저 내포하고 있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1980년대부터 진전되었던 민주주의 발전이 한국이 전세계 나라 중에서 예외적으로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이었음을 설파했다. 하지만 경제성장의 핵심인 민주주의가 윤석열 정부의 친위 쿠데타로 위협받고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국제적인 신뢰를 회복하고 경제위기를 차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민주주의 절차와 법적 과정을 통해 비상계엄 시도로 표출된 정치적 위험을 해결하는 것이다. 한국의 민주 시민은 이미 경험했던 대통령 탄핵이라는 법적 절차에 따라 민주주의를 질서 있게 회복할 준비가 되어 있다. 여러 이유로 탄핵 표결에 불참한 105인의 국회의원이 국민의 성숙한 민주주의 의식을 받들어, 나라의 신뢰를 회복하고 경제와 금융시장의 위기 확산을 차단할 수 있도록 대통령 탄핵안에 찬성하기를 엄숙히 요구한다.

원승연 |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전 금융감독원 부원장 | 한겨레 2024.12.12.

 

우리가 이번에도 을 뽑았지, 게다가 미치광이였네

현직 대통령 윤석열이 주도한 ‘12·3 내란은 여러모로 놀랍다. 군을 동원해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정치인들을 싹 다 잡아들여 정리하고, 국회와 언론을 무력화하여 모든 권력을 손에 쥐겠다는 살벌한 꿈을 꾸었다. 지난 4월 총선 결과가 선거 부정때문이라 믿고, 선거관리위원회 전산시스템을 열어 내란을 정당화하려던 발상의 황당함은 애처로울 지경이다.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 출판부가 올해의 단어로 무분별한 인터넷 콘텐츠 소비에 따른 뇌썩음’(brain rot)을 골랐다는데, 이보다 더 딱 들어맞는 사례를 찾기가 한동안 어렵겠다.

 

이 나라 국민의 민주정치 역량은 윤석열 정부가 경제·민생을 망치는 것을 막지는 못했지만, 내란은 곧 진압했다. 오랜 세월 피 흘리며 쌓아온 힘이다. 1898년 겨울 종로 거리에 쌀장수, 백정, 기생, 신기료장수 등 수천 수만 백성이 모여 42일간 철야하며 의회 설립을 요구하던 만민공동회의 기록은 지금 봐도 가슴을 뜨겁게 한다. 그것이 1천명 가까운 희생을 무릅쓰고 온 나라에 독립을 선포한 19193·1운동의 원동력이었고, 민주공화제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만들어냈다. 광복 이후에는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며 독재자들에게 빼앗긴 주권자 국민의 권리를 되찾아왔다. 권력이 빗나간 길을 걸을 때마다 거리를 뒤덮은 촛불이 바로잡았다.

 

이번 내란도 헌법이 정한 길을 따라 정리될 것이다. 국회가 윤석열을 탄핵하고, 특별검사가 체포·구금해 기소하고, 대통령 선거를 거쳐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주권자 국민이 곧 이긴다.

 

그런데, 그것으로 개운해지지 않는, 사태의 심각한 측면이 있다. 이번 내란을 두고 많은 이들이 1979년 전두환 신군부가 일으킨 12·12 군사쿠데타를 이야기한다. 대규모 살상을 감행할 수 있는 무력을 동원한 점이 같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뽑힌 대통령이 종신왕이 되려 한 친위쿠데타라는 점이 가슴을 더 짓누른다. 이승만의 1952년 부산정치파동, 박정희의 197210월 유신이 비슷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에게 국민 주권을 또다시 유린당할 뻔했다.

 

나는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121, ‘왕을 뽑는 나라라는 제목의 칼럼을 이 지면에 쓴 일이 있다. “우리는 명칭은 대통령이지만 실은 왕을 선거로 뽑는 나라에 살고 있으며, 5년마다 (정치적으로) 죽이고 새로 뽑는 일을 반복한다고 썼다. ‘왕을 뽑는 나라란 표현은 카를 비트포겔이 쓴 동양적 전제주의에서 따온 것이다.

 

왕을 세습하지 않고 선거로 뽑는다고 해서, 전제의 정도가 약화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대통령에게 너무 막강한 권한을 준다. 우리 머릿속에 뿌리 깊은 성군’, ‘개혁 군주관념은 우리 편의 승리를 중시할 뿐, 제왕적 대통령제의 위험성과 약점을 가볍게 여긴다. 그 결과는 왕의 실패의 반복이었다. 공동체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보다, 주로 전 정권의 실패에 기대어 집권에 성공하는 대통령들은 머잖아 국민에게 실망을 안기고 따돌림을 당한다. 문제 해결의 정치는 사라지고, 곧 치열한 권력 투쟁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번 내란은 너무 일찍 실패가 확인돼 권력 상실 위기에 처한 윤석열이 대통령 가면을 벗어던지고 폭군의 얼굴을 드러낸 사례다. 이로써 우리는 성장잠재력의 추락, 양극화, 저출생 등 나라의 운명이 걸린 문제들을 풀지 못한 채, 3년 가까운 시간을 또 잃어버렸다.

 

정권 교체는 당연하다. 그런데,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절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승만의 경찰, 박정희·전두환의 군부가 그랬던 것처럼, 윤석열 정부에서 권력의 도구로 완전 전락한 검찰 개혁이 급선무가 되었다. 이를 넘어 민주적 절차를 거쳐 주권자의 뜻을 반영한 정치가 이뤄지게, 정치 개혁이 시급하다. 우리 머릿속의 성군을 지워 없애고, 3권 분립이 명확하게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예산 편성과 심의가 주권자 국민의 감시·통제 아래 이뤄지게 해야 한다. 철저하게 양극화된 한국 정치판을 보고 있노라면 길은 멀고 험해 보이지만, 가야 할 길이다.

 

민주주의라는 나무가 크는 데 더는 백성의 피는 필요 없다. 그러나 왕의 피는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내란 수괴와 중요임무 종사자들을 법에 따라 엄히 처벌하고, 절대 사면을 해선 안 된다. 대통령이 대놓고 왕 노릇 하는 사태의 재발을 막을 최소한의 예방약이다.

정남구 | 선임기자 | 한겨레 2024.12.12.

 

 

내란 수괴의 새빨간 거짓말

12일 아침에 진행된 윤석열의 담화. 노골적인 국민 선동이자 새빨간 거짓말들이다. 29분의 담화를 통해 드러나는 윤석열의 정신세계는 논리적인 해석이 불가능하다. 극단적 이념성과 폭력성으로 야당을 향해 한판 붙어보자는 식의 무모함에는 할 말을 잃게 된다. 그의 인식체계는 확증편향, 과잉확신, 분노조절 장애가 범벅된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 기어이 국민들 피를 보고 말겠다는 섬뜩함도 느껴진다. 이런 비정상인의 담화를 일일이 분석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계엄 상황에 대한 그의 거짓말은 확실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123일 밤의 친위 쿠데타가 의도된 실패였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급조된 거짓말을 천연스럽게 하니까 말이다.

 

우선 병력 출동에 대한 거짓말이다. 그날 밤 국회 의사일정을 방해할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1030분 담화 방송을 하고 병력 투입도 1130분에서 12시 조금 넘어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진실은 무엇인가. 계엄군에게 사전에 내려진 명령은 ‘11시까지 국회의사당을 점령하라는 것이었다. 의사당에 병력이 늦게 도착한 이유는 눈발이 날리는 기상 악화로 인해 특전사 항공단의 헬기 출동이 늦어진 데서 기인했다. 1030분에 헬기가 출동하지 못하자 곽종근 특전사령관이 항공단장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초조해진 윤석열이 병력이 이동하는 시간에 특전사령관에게 전화를 하여 병력 이동을 확인하였는데 이는 치명적 실수였다. 국회 출동을 재촉하는 흔적을 남겼는데, 이는 윤석열이 내란 수괴라는 증거로 충분하다. 게다가 윤석열은 12시 반께에 특전사령관에게 “(계엄군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다그쳤다. 문을 부수고 들어가 국회의원을 제압하려면 무력을 사용해야 한다. 폭동을 사주한 치명적 증거이며, 이것 하나만으로도 형량이 10년 이상 추가되어야 한다.

 

담화에서 윤석열은 300명 미만의 비무장 병력만 국회로 파견한 것도 자신이 충돌을 염려해서 한 소극적 조치였다고 또 믿지 못할 말을 한다. 진실은 무엇인가. 윤석열이 특전사 707특수임무단을 의사당에 들여보내고 난 이후, 3공수 병력도 추가로 투입했다는 군 내부 제보를 받았다. 출동하던 중에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되자 공중에서 회항하여 되돌아갔다는 의혹이 있다. 4일에는 전북의 7공수와 충북의 13공수도 추가 투입하기로 계획하고 출동 대기 중이었다. 계획대로라면 몇천명이 와서 국회는 물론이고 민주당사와 문화방송까지 점령했을지 모른다. “싹 쓸어버리라는 애초 윤석열의 지시 그대로였다. 그는 담화에서 국회의 안전을 걱정하여 전문성이 없는 사병이 아닌 정예 간부만 국회로 보내도록 했단다. 얼마나 국회의 안전을 걱정했으면 이토록 자상하실까. 그러나 진실은 무엇인가. 특전사 전투 병력은 원래 부사관이 주축이지 병사는 없다.

 

용산은 또 국민들에게 거대 야당의 횡포를 알리려고 경고성 계엄을 선포했을 뿐 실제 국회를 무력 제압할 의도는 없었다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썼다. 실제로 4일 저녁에 한덕수 국무총리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만난 윤석열은 다만 야당에 대한 경고용으로 계엄을 선포했다고 잡아뗐다. 그러다가 6일께부터 사령관들의 양심 고백이 잇달아 나오자 국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비무장 병력을 파견한 것으로 말을 바꿨다. 출동 병력이 실탄은 물론 공포탄과 테이저건까지 준비한 증거가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한 거다. 어떻게든 탄핵 이후 내란 폭동의 혐의를 벗어보려는 얕은 수작이다. 게다가 곽종근 특전사령관, 이진우 수방사령관에다가 믿었던 홍장원 국정원 1차장, 여인형 방첩사령관마저 윤석열의 정치인 체포 지시와 계엄의 사전 계획을 증언하고 있다. 이제 윤석열이 내란 수괴 혐의에서 벗어날 길은 완전히 봉쇄되었다.

 

이런 거짓말들 때문에 윤석열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에서 더 불리해졌다. 주말에 국회에서 윤석열 탄핵안만 의결되면 군 내부로부터 양심선언이 쏟아질 거다. 지금은 국군 통수권자가 윤석열이기 때문에 말을 못 하는 것이지 탄핵으로 윤석열이 지위를 잃게 되면 진실을 이야기할 장교들이 4열 종대로 서 있다. 지금까지의 몇배나 되는 진실이 더 밝혀질 거다. 그러니 윤석열이여, 더 거짓말을 하든지 싸우든지 마음대로 하시라. 자신의 유죄 형량만 더 늘어날 뿐이다.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 한겨레 2024.12.13.

 

법적·정치적 책임번복체포·수사·탄핵이 시급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일 밤 1028분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는 계엄 선포의 이유로 민주당의 입법 독재는 자유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서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라는 점 등을 들었다. 그러나 이 계엄은 선포 후 3시간가량 뒤 국회가 본회의를 열어 참석한 여야 의원 190명의 만장일치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함에 따라 효력을 잃었다. 윤 대통령은 새벽 427분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를 수용해 계엄을 해제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곧이어 열린 국무회의를 통해 해제됨으로써 한밤중의 비상계엄은 종료되었다.

 

이 비상계엄은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계엄 얘기는 최근 풍문으로 떠돌기는 하였으나, 현실에서 실제 상황이 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같다. 헌법 77조는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1)고 정하고 있고, “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영장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3)고 정하고 있다. 즉 비상계엄은 전시 등과 같은 비상 상황하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정치·경제·사회 등 국가 활동 전반을 군의 통제하에 둠으로써, 국가 위기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인 것이다.

 

현재까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당시 우리 사회가 군사상의 필요가 있다거나 군에 공공의 안녕질서 유지를 맡겨야 할 정도로 위기에 처해 있었다고 보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보도에 의하면, 윤 대통령은 계엄 해제 당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을 만났는데, 이 자리에서 민주당의 폭거에 맞서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비상계엄 선포밖에 없었다고 계엄 선포 배경을 설명했다고 한다. 이 설명은 이번 계엄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고 하는 헌법적 요건을 결여하고 있음을 자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국회에서 해야 할 일을 군의 힘을 통해 강제로 풀려고 했거나, 계엄을 통해 국회를 제압하려고 했다는 말이 된다.

 

국회는 야당 발의로 지난 7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본회의에 회부하였다. 이 안은 여당인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표결 직전에 퇴장함으로써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의안 불성립으로 폐기되었다. 탄핵소추가 무산되기에 앞서, 윤 대통령은 담화를 발표했다. 그 내용은 이번 계엄 선포와 관련하여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 ‘임기 문제를 포함하여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국민의 힘에 일임하겠으며, 향후 국정 운영은 국민의힘과 정부가 함께 책임지고 해나가겠다는 것이었다. 그가 말한 법적·정치적 책임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어떤 방식과 절차를 거쳐 언제까지 그 책임을 이행하겠다는 말은 없었다.

 

다음날 국민의힘 당사에서 한동훈 대표와 한덕수 총리가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 회견 내용의 요지는 윤 대통령의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을 위해 당과 정부가 협력하여 정부를 꾸려간다는 것이었다. 한 대표는 질서 있는 대통령 조기 퇴진으로 국민들의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안정적으로 정국을 수습하겠으며, 퇴진 전이라도 대통령은 외교 포함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헌법상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71)할 뿐이고, 탄핵에 의하지 않는 한 그 직무가 정지되지 않는다. 따라서 헌법이 정한 사유가 아니면 그 누구도 대통령을 대신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고, 직무를 넘겨줄 수도 없다. 설사 그런 일이 발생하더라도 대통령 본인이 사후 이를 부인하면 그만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정국 안정 방안을 당에 일임하였다는 내용은 문제가 있고, 대통령에 의하여 언제든지 백지화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질서 있는 퇴진론이 위헌적 요소로 비판을 받는 중에, 돌연 윤 대통령은 재차 이번 비상계엄이 정당하다는 취지의 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거대 야당이 지배하는 국회가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괴물이 되었으며, ‘대한민국을 간첩 천국, 마약 소굴, 조폭 나라로 만들려는 반국가 세력이라고 지칭했다. 그는 특히 군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진입한 이유는 헌법기관으로서 강제수사가 불가능한 선관위가 정부의 개선 요구를 거부하므로 이를 바로잡기 위한 목적에서 선관위 전산시스템을 점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윤 대통령의 이 담화는 법적·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는 앞서의 입장을 번복한 것처럼 보인다.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을 반복해온 한동훈 대표도 위 담화 직후 탄핵 절차로써 대통령의 직무집행을 조속히 정리, 정지해야 한다우리 당은 당론으로 탄핵에 찬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현재 내란죄 등의 형사 피의자로 입건되었으며, 출국금지 조치가 되었다. 그에 대한 탄핵이 한번 부결되었으나, 곧 두번째 탄핵이 시작될 예정이다. 한동훈 대표가 탄핵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번에는 탄핵 표결에 출석한다는 여당 의원들도 있어 결과를 속단하기 어렵다. 더구나 이번 담화는 윤 대통령의 판단 능력에 심각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 돌출적인 그의 행위로 인한 국가적 위험을 완화할 조처가 필요한 듯하다. 특히 헌법기관인 선관위에 대하여 군을 동원하고자 한 행위가 그렇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자진 사퇴를 권유해야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의 퇴진을 기약 없이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 기회를 놓치기 전에 시급히 그를 체포하여 수사하고, 그의 직무를 정지시키기 위한 탄핵이 필요하다. 사안의 절박성에 비추어 이는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이석태 | 전 헌법재판관 | 한겨레 2024.12.13.

 

이인호 교수의 내란죄 부인 주장에 대한 반론

헌법의 시각에서 보는 탄핵과 내란죄 논란”, https://blog.naver.com/musim820)

 

윤석열 대통령의 느닷없는 계엄 발동 이후 정치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면서 국정이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 3일 밤 1027분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2시간 40분 만에 국회가 재석의원(190) 전원 찬성으로 비상계엄 해제를 결의했다. 이에 국회 경내로 진입했던 계엄군이 즉각 퇴각했고, 계엄선포 후 6시간 만에 대통령이 계엄 해제를 선언했다. 7일 오전 10시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계엄선포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면서, 2차 계엄은 없으며 임기 포함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을 우리 당(국민의힘)에 일임하겠다라고 밝혔다. 당일 밤 9시경 국회에서 발의된 탄핵소추안이 국회의원 200명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해 부결되었다. 8일 오전 11시 국무총리와 여당(국민의힘) 대표가 공동으로 담화를 발표하고, 대통령 퇴진을 언급하면서 대통령이 외교 포함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야당은 계속해서 탄핵과 내란죄로 정치적 공격을 가하고 있다. 8일 검찰은 대통령을 내란 혐의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 와중에 국민의 격정(激情)이 정치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국회를 장악한 야당은 탄핵과 내란죄 주장으로 국민의 격정을 부추기고 있다. 국민의 의견은 극명하게 갈려 정치투쟁의 거센 파도에 휩쓸려 들어가고 있다. 실로 정치적 위기이다.”

 

-위헌적인 비상계엄 선포에 대하여 탄핵과 내란죄로 의율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헌법적 법률적 과정이지, 결코 (부당한) 정치적 공격이 아니다. 오히려 무장병력을 국회에 난입시켜 국회의 권한행사를 무력화시키려 한 행위에 대하여 한가롭게 정치적 공방만 계속했다면 그것이야말로 국민대표기관인 국회의 직무유기이다.

어떤 이유로도 설명할 수 없는 위헌적인 비상계엄 선포에 더하여 비상계엄 하에서도 침탈될 수 없고 침탈되어서도 안 되는 국회마저 무장병력을 동원하여 무력화시키려 한 사악한 시도를 온 몸으로 막아낸 국민들의 심정이 고작 격정일까? 헬기로 투입된 무장한 특전사 등 병력에 맨몸으로 맞섰던 시민들은 위헌적 사태를 중단시키기 위하여 목숨을 걸었다. 많은 사람들이 국회로 나오기 전에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왔다고 했다. 그런데 그것을 정치상황을 악화시키는 국민의 격정으로 폄하하시는가? 목숨을 걸고 국회를 지켜준 국민과 함께 비상계엄 해제를 가까스로 통과시킨 국회와 야당이 헌법파괴세력, 국헌문란세력을 내란으로 단죄하고 그 우두머리인 윤석열을 탄핵하겠다고 나선 것이 어찌 국민의 격정을 부추기는 것일까? 그것이야말로 지극히 헌법적인 국민대표로서의 태도고 반응이 아닌가?

국민의 의견이 극명하게 갈렸다는 것은 또 무슨 이야기인가? 이 사태 후 윤석열이 두자릿수 지지율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상태가 국민의 의견이 극명하게 갈라진 것으로 보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눈앞의 현실조차 외면하시는 것 아닌가?

 

그러나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순간의 격정(激情)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와 파면 및 구속으로 이어져 국가적 혼란과 위기를 겪었던 2017년의 경험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떤 이유로든 주권자가 선택한 대통령의 직무정지와 파면은 헌법의 규정과 절차에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 실체 없는 내란죄 논란으로 국론이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헌법에 근거해 작금의 정국 혼란에 따른 몇 가지 쟁점을 냉정하게 분석해 본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박근혜의 탄핵을 가져온 것도 국민의 순간의 격정이었다고? 박근혜의 파면과 구속때문에 국가적 혼란과 위기를 겪었다고? 이인호 교수는 여기서 국가적 혼란의 실체를 완전히 혼동하고 있다. 국가적 혼란은 이른바 국정농단을 행한 최순실과 이를 방기한 박근혜에 의하여 야기된 것이고 그 추운 겨울에 매주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에 의하여 비로소 극복된 것이다. 그리고 이교수가 격정이라고 폄하하는 국민들의 요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극히 헌법적인 방식으로 제기되었다. 그가 말했듯이 주권자가 선택한 대통령의 직무정지와 파면은 헌법의 규정과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이교수는 실체 없는 내란죄 논란으로 국론이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12.12. 담화는 내란죄 논란이 결코 실체가 없는 것이 아님을 내란수괴의 직접 발언으로 생생하게 증명해 주었다. 그는 누가 뭐래도 내란의 수괴, 우두머리였고, 지금까지도 일말의 부끄러움도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확신범이다. 게다가 이 교수는 예의 국론 분열의 우려를 내세운다. 이것은 또 다른 입틀막이다. 주권자가 위임한 권력으로 주권 국민에게 총부리를 들이댄 행위에 대해 마땅한 책임을 묻자는 국민들의 요구를, 가까스로 두자릿수를 지키고 있는 내란수괴와 그 지지자들의 주장을 내세워 국론 분열로 호도하는 것이다. 그는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분석을 하겠다고 했지만 분석에 들어가기 전에 이교수가 내세운 전제가 이미 정치적 유불리에 대한 잘못된 계산에 입각해 있다.

 

첫째, 지금의 상황은 대통령과 국회(정확히는 다수당인 야당) 서로의 헌법적 권한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서로 치고받는 난투를 벌이고 있는 정치투쟁의 상황이다. 헌법 투쟁이 아니며 헌법의 위기도 아니다. 정치에서 절대적인 선()은 없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여·야는 자신은 선()이고 상대는 악()이라고 규정하면서 극한으로 달리고 있다.

 

-지금의 상황은 이미 정치투쟁의 상황이 아니다. 전시도 아니고 사변도 아니고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도 없는 상황에서 무장병력을 동원하여 국민에게 총부리를 들이대는 한편 헌법기관의 권능행사를 무력화하려고 시도한 것은 그 자체가 헌법 위반이고 범죄행위이기 때문이다. 헌법 투쟁이 아닌가? 헌법을 파괴한 대통령에 맞서 헌법을 회복하려는 국회와 국민의 싸움은 너무나 헌법적인 투쟁이다. 헌법의 위기가 아니라고? 대통령의 위헌적인 계엄선포에 의해 국민의 생명과 자유가 경각에 달려 있음에도 그 대통령이 여전히 직을 유지하면서 국군통수권 등 권한을 그대로 보유하고 그것을 바로잡을 유일한 방법인 탄핵마저 가로막혀 있는 것만큼 큰 헌법의 위기가 어디 있겠는가?

 

둘째, 이번 계엄발동의 배경 중에는 거대 야당의 입법권 폭주가 있다. 야당은 총선에서 얻은 다수표를 무기로 삼아 장관과 검사는 물론 방송통신위원장과 감사원장 등 고위 정부 관료들을 닥치는 대로 탄핵 소추해 직무를 정지시켰다. 한국 정치사는 물론이고 세계 의정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법집행기관인 검찰·경찰·감사원, 그리고 대통령실의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 경비를 전액 삭감해 사실상 기능 무력화를 시도했다. 예산의결권은 국회 권한이지만, 정상적인 권한 행사로 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큰 위기를 감지하고, 국가원수로서 가진 헌법상 계엄발동권 카드를 꺼내어 들었다. 하지만 국회의 반격 카드인 계엄 해제요구권에 막혀 헌법에 따라 대통령은 계엄 카드를 접었다.

 

-계엄선포 당시 그 배경으로 언급했던 거대 야당의 입법권 폭주를 그대로 되풀이하면서 비상계엄 선포가 야당이 주도한 공직자들의 탄핵소추와 대통령실을 비롯한 법집행기관들의 특수활동비 등 전액 삭감이라는 큰 위기에 맞서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 가진 헌법상의 카드를 집어든 것이며, 국회가 계엄해제요구권이라는 반격 카드를 행사하면서 대통령은 계엄 카드를 접었다고 이교수는 이야기한다. 국민의 생명이 경각에 처하고 국회의 권능이 무력화될 위기에 처한 상황이 고작 어떤 카드패를 선택할지 고민하는 권력자의 게임에 비유되는 것을 보고는 경악을 넘어 분노를 금할 수 없지만 더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그 내용은 자못 심각하다. 야당이 주도하는 국회의 탄핵소추와 예산 삭감은 정확히 헌법이 예정하고 있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세계 의정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거나 정상적인 권한 행사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국회의 권한 행사가 헌법에 위배되거나 위법성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그런 탄핵 소추가 세계 의정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것은 야당이 탄핵소추의 대상으로 삼은 행위가 다른 나라에서 있었다면 대부분 처벌/징계되었거나 애초에 그 자리에 오를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며, 이교수가 정상적인 권한 행사가 아니라고 한 일방적인 예산안 삭감은 대통령제의 모국인 미국에서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던가? 그러기에 이교수는 이러한 권한 행사가 헌법 위반이라거나 법률에 반한다는 것이 아니라 유례를 찾기 어렵다거나 정상적인 권한 행사로 보기 어렵다고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약에 이처럼 완전히 합헌적인 권한 행사를 비상계엄선포권을 발동할 수 있는 국가비상사태로 봐 버린다면, 평시의 국가운영을 전제로 하는 헌법질서는 그 즉시 무너져버린다. 즉 이교수가 언급한 헌법의 위기 정도가 아니라 헌법의 파괴 또는 실종 상태가 되어 버린다.

 

셋째, 대통령의 계엄권 발동은 헌법의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헌법(77)전시(戰時사변(事變)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를 계엄의 발동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 하위법인 계엄법은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를 비상계엄의 선포 요건으로 하고 있다. 아마도 대통령은 야당의 입법과 예산 폭주로 행정과 사법 기능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는지 모르지만, 오판의 가능성이 크다. 또한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한 행위는 계엄 권한의 한계를 넘은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이교수도 마지 못해 게엄권 발동이 헌법의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는 오판이라고 하면서도 야당의 입법과 예산 폭주로 행정과 사법 기능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상황이라고 대통령이 판단했는지 모른다고 언급한다. 법률가 출신의 대통령이 국회의 명백한 합헌적 합법적 권한 행사를 비상계엄을 발동할 수 있을 정도의 상태로 오판했을 것이라는 매우 관대한 시각을 보여준다. 합헌적으로 합법적으로는 야당의 권한 행사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분명하게 인식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계엄 선포는 오판이 아니라 위헌적 계엄 선포를 통해서라도 저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독단이고 헌법을 해하는 행위였다.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한 행위는 단순히 계엄 권한의 한계를 넘은 것이 아니라 계엄 선포에 이미 예정되었던 행위였다.

 

넷째, 그렇지만 대통령의 계엄발동이 요건을 갖추지 못한 위헌적인 행위라고 해서 대통령을 처벌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계엄의 요건과 행사에 관한 1차적 판단은 권한을 가진 대통령의 몫이다. 그 판단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 다만 그 잘못(위헌성)을 사후적으로 확인해서 권한 행사를 무효로 돌리는 권한은 헌법재판소에 있다. 그러나 위헌무효라고 해서 그 권한행위자를 처벌하지 않는다. 많은 법률이 헌법재판소에 의해서 위헌무효로 선언되었다고 해서, 법률제정행위자를 처벌하지는 않는다. 위헌확인의 효력은 그 권한행사의 효력을 배제할 뿐이다. 만일 계엄발동으로 대통령을 처벌해야 한다면, 위헌법률을 제정한 국회의원들도 처벌받아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위헌적인 권한행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고, 그 시정은 효력의 배제이지 처벌이 아니다.

 

-대통령의 계엄발동이 요건을 갖추지 못한 위헌적인 행위라고 해서 대통령을 처벌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왜 아닌가? 이 문장의 뒷부분에서 드러나듯이 이교수는 계엄발동이 법률제정이나 법집행행위 등과 같은 국가기관의 정상적인 권한 행사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위헌적인 권한행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고, 그 시정은 효력의 배제이지 처벌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위헌적인 권한행사의 시정은 효력의 배제이지 처벌이 아니라는 그의 지적은 어떤 면에서는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모든 권한행사의 결과 또는 효과가 효력의 배제만으로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법률을 제정한다고 해서, 법집행의 과정이나 내용에 오류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범죄가 되지는 않는다. 반면 비상계엄의 발동은 필수적으로 무력의 동원이 수반되기 때문에 그것의 합헌성이 담보되지 않을 때에는 그 자체가 바로 범죄행위가 되어버린다. 그러니 이교수의 주장과는 반대로 대통령의 계엄발동이 요건을 갖추지 못한 위헌적인 행위라면, 더구나 이번 계엄처럼 헌법과 계엄법이 예정한 범위를 넘어서 국회의 권능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로까지 이어진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서 처벌이 요구되는 범죄인 것이다. 특히 비상계엄의 선포는 그 자체만으로도 국민의 삶을 파괴하는 매우 심각한 행위이다. 사회 곳곳이 무장병력에 의해 통제되는 상황은 그 자체가 평온한 삶에 대한 회복하기 힘든 폭력이다. 위헌적인 계엄발동이 곧 대통령을 처벌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계엄선포를 통상적인 입법이나 집행과 동일한 선상에 있는 행위로 보는 것은 가당치않은 물타기일 뿐이다.

어쩌면 이교수는 트럼프의 내란행위에 대한 미연방대법원의 대통령면책 판결을 의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미국과는 달리 불소추특권의 예외로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헌법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의 대통령면책(President Immunity)은 적용될 여지가 없다.

이런 점으로 비추어보면 이인호 교수는 소위 통치행위론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나 5.17 비상계엄에 대한 대법원 판결도 제대로 읽지 않은 느낌마저 든다. 물론 헌법학자인 그가 이런 중요한 판단들을 읽지 않았을 리는 없지만, 그의 논지는 정치적 유불리때문에 그런 중요한 판단들마저 외면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섯째, 대통령의 계엄선포와 권한행사는 내란죄(內亂罪)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형법(87)의 내란죄는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그에 준하여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행위이다. 대통령의 권한행사에 위헌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권한행사를 폭동(暴動)’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검찰이 대통령을 내란 혐의 피의자로 입건한 것은 매우 성급한 판단이며, 대통령의 정상적인 업무수행을 방해하는 위험한 조치이다.

 

-이교수는 대통령의 권한행사에 위헌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권한행사를 폭동(暴動)’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하면서 계엄선포와 권한행사는 내란죄(內亂罪)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물론 대통령의 통상적인 권한행사를 폭동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무장병력의 동원을 필수적으로 수반하는 비상계엄의 선포는 그 합헌성이 담보되지 않는 한 그 자체가 일종의 폭동이다. 비상계엄의 대상이 지역이든 전국이든 마찬가지다. 전국계엄이면 전국의 평온을 해칠 정도의 무력이 동원되는 것이며 지역계엄이면 한 지역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무력이 동원되는 것이다. 그러한 무력의 동원이 바로 형법 제87조에서 말하는 폭동이다. 그러므로 비상계엄선포라는 대통령의 권한행사에 정당한 헌법적 근거가 결여된다면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내란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폭동이 되는 것이다. 특히 이번 12.3 비상계엄 선포는 국회의 정상적인 입법활동과 예산활동을 중단시키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계엄해제요구라는 국회의 고유권한마저 무력화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것이었으므로 국헌 문란 목적의 폭동이라는 내란죄 구성요건을 완벽하게 충족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을 내란 혐의 피의자로 입건한 것은 매우 성급한 판단이 아니라 매우 적절한 판단이며, 대통령의 정상적인 업무수행을 방해하는 위험한 조치가 아니라 대통령의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위험한 대응을 차단하기 위한 지극히 정상적인 법적 대응이다.

 

여섯째, 국회의장은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표결 결과에 대해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투표 불성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는 꼼수이며 헌법과 국회법 위반이다. 탄핵소추안이 재적의원 과반수 발의로 표결에 들어갔고, 투표 결과 투표수가 총 195표로 헌법상의 의결요건인 재적의원 3분의 2(200)’를 넘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이는 안건 부결인 것이지 투표 불성립이 아니다. 국회법 제92(일사부재의)부결된 안건은 같은 회기 중에 다시 발의할 수 없다.”라고 못 박고 있다. 그런데도 야당은 탄핵소추안을 계속해서 내겠다고 한다.

 

-이교수는 국회의장이 탄핵소추안 표결 결과에 대해 부결이 아니라 투표불성립이라고 한 것은 탄핵소추안의 계속 발의를 위한 꼼수라고 비판한다. 부결된 안건은 같은 회기 중에 다시 발의할 수 없다.”는 국회법 제92조의 일사부재의의 원칙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것이 부결이 맞는지 투표불성립이 맞는지는 여기서 다툴 생각이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것이 일사부재의의 원칙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에는 동의할 수 없다. 국회의장도 야당도 같은 회기 중에 탄핵소추안을 계속 발의하겠다고 한 적도 없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같은 회기가 아닌 한 탄핵소추안은 얼마든지 다시 발의할 수 있다. 설사 동일인에 대하여 동일한 사유로 탄핵소추안을 계속 발의하는 것은 다른 회기라 하더라도 일사부재의의 원칙의 취지에 반한다는 주장까지 이교수가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물론 나는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수사가 진행되어가면서 탄핵소추 사유는 계속 보강될 것이기 때문에 그런 비판과 우려는 과도한 것이라고 본다.

 

일곱째, 대통령이 지난 7일 담화에서 정국 안정 방안을 여당에 일임하겠다고 한 것은 임기를 포함한 수습 방책을 마련해 달라는 취지로 읽어야 한다. ‘수습책의 일임인 것이지 국정운영의 일임이 아니다. 헌법상 그럴 수도 없다. 현재 대통령은 궐위(闕位)나 유고(有故) 상태가 아니다. 현재 누구도 대통령의 권한을 대신할 수 없다. 그런데 여당 대표가 대통령 퇴진을 언급하고 대통령이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은 불필요하게 또 다른 헌법 논란을 일으키는 큰 실수이다.

-127일의 담화에서 우리당에 일임하겠다고 한 것이 수습책의 일임인 것이지 국정운영의 일임이 아니라고 이교수는 주장한다. 그러니 누구도 대통령의 권한을 대신할 수 없고 퇴진이니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한동훈의 주장은 큰 실수라고 한다. 이교수의 글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동의하는 부분이다. 한동훈의 주장대로 하는 것은 또 하나의 위헌상태일 뿐이다. 그리고 이미 그런 입장은 대통령의 거듭된 인사권 행사(이상민 사의 재가, 법무부 감찰관 사의 재가, 진화위위원장 임명)로 전혀 근거 없는 것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사적인 욕망을 위하여 헌법질서조차 무시하겠다는 발상이 드러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대통령의 담화가 임기를 포함한 수습 방책을 마련해 달라는 취지라는 이교수의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 담화는 자신의 거취를, 특히 조기퇴진 여부까지도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에 맡기겠다는 것으로 비쳐졌다. 그것은 물론 거짓말이었지만, 그것이 진정성있는 발언이었다고 하더라도 헌법상 용인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직과 권한은 대통령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사유물이 아니고, 그것은 오로지 헌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 헌법이 정한 방식으로 행사되어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닌 한 직무정지도 권한대행도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자신의 헌법상 권한을 누군가에게 맡기겠다고 발언한 것 자체가 그가 얼마나 헌법을 경시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만하다. 국무총리에게 맡긴다고 해도 가당치않을 말을 일개 정당에게 일임하겠다는 그 발상 자체가 지극히 반헌법적이다.

 

이제 대통령이 직접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주권자(국민)로부터 위임을 받은 대통령만이 할 수 있다. 전쟁에서 적()의 장수를 존중하지 않고 흥분해서 판단력을 잃는 것은 패망으로 가는 길이다. 그러나 아직 길이 있다. 냉철한 판단으로 책임 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마지막까지 보여야 한다. 야당은 국민을 선동하여 정치투쟁의 먹잇감으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 보통의 일반 시민은 정치적 대타협을 통한 정국의 안정을 바랄 것이다.

 

-이교수의 생각과는 달리 이제 대통령이 직접 사태를 수습하는 길은 없다. 퇴진 이외의 수습을 할 주권자의 위임은 이미 철회되었다고 해야 한다. 이교수는 전쟁에서 적()의 장수를 존중하지 않고 흥분해서 판단력을 잃는 것은 패망으로 가는 길이다라고 하여 마치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존중하지 않고 순간적으로 흥분해서 비상계엄이라는 극단의 길로 치달은 것이 사실인 듯 주장한다. 그러나 12.12. 담화를 통해서 비상계엄 선포는 결코 순간적인 흥분에 의한 즉흥적 결정이 아니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게다가 현재 드러나고 있는 내용들에 비추어보면 이번 비상계엄 선포는 오래 전부터 준비되어 온, 헌법체제의 파괴를 목적으로 한 지극히 정교하고 치밀한 계획범죄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렇게 내란 수괴가 대국민 선전포고를 한 마당에 유일한 해법은 국회에 의한 탄핵소추밖에 없다.

 

그러나 아직 길이 있다. 냉철한 판단으로 책임 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마지막까지 보여야 한다.”는 이교수의 주장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으나, 그가 책임 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수사기관의 수사에 응하는 것이다. 그 길만이 남아 있다. 그런데 1211일 국가수사본부가 법원에서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고 집행하려했던 대통령실 등의 압수수색이 경호처의 반발로 좌절된 것을 보면 그가 그런 모습을 보여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넌센스다. 게다가 12.12. 담화를 통해 내란수괴 윤석열은 끝까지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이제 남은 것은 즉각 공권력을 동원하여 윤석열을 즉각 체포하는 것, 그리고 그 상태에서 탄핵소추를 의결하는 것이다.

 

보통의 일반 시민은 정치적 대타협을 통한 정국의 안정이 아니라 비상계엄 선포로 국민의 삶을 뒤흔들어놓고 헌법질서를 파괴하려고 한 내란수괴의 탄핵과 내란죄에 대한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와 재판을 통한 내란사범들의 엄정한 처벌을 바랄 것이다. 나아가 보통의 시민들은 이런 터무니 없는 사태를 가능케했고 그러면서도 이에 대한 아무런 해결책도 갖고 있지 못한 87년 헌법을 비롯한 국가사회시스템의 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결 과정을 바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과정에 널리 시민들이 참여하고 결정함으로써 진정한 주권자로서 우뚝 서기를 바랄 것이다./ 민주주의법학연구회 김종서

 

광기에 빠진 역사 속 폭군이 이러했으리라

과대망상과 편집증적 증상을 보이는 최고권력자의 위험천만한 말과 행동으로 전 국민이 정신적 트라우마를 앓고 있다. 3일 밤 느닷없는 비상계엄 발표로 충격에 빠진 국민들은 12일엔 독기 가득한 29분짜리 궤변을 들어야 했다. 국회의원들을 국회 본회의장에서 끌어내고, 정적들을 체포하라고 그가 직접 지시했다는 진술들이 군과 경찰에서 속속 확인되고 있는데도 그는 태연작약했다. 국회 질서유지를 위해 군과 경찰을 보냈다는 둥 헛소리를 지껄였다.

 

자신만이 옳다는 과도한 확신과 자기애, 그리고 정적들이 자신을 해치려 한다는 의심과 망상에 사로잡힌 최고권력자가 광기에 빠져 수많은 이들을 숙청했던 역사 속 폭군의 모습이 이러하였으리라. 그런 폭군 치하에서 나라는 혼란 속에 빠져들었고 백성은 도탄에 신음했다. 지금 대한민국이 꼭 그런 상태에 빠지기 일보직전이다.

 

그의 망상이 도대체 어디까지 갔을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다. 군경을 동원해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 의원들을 끌어내고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를 최우선으로 체포해 계엄해제 의결을 막으려 했다. 그리고 정적들을 납치해 남태령 군기지 지하 벙커에 감금하려 했다. 북파 특수임무 훈련을 받은 HID 최정예 요원들까지 차출해 대기시켰다. 도대체 그는 무슨 일까지 저지르려 했던 것일까. 수사를 통해 정확한 진상이 밝혀지겠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봐도 명태균씨가 얘기했다는 꼭 ‘5살짜리 꼬마에게 총을 들려준 격이다.

 

여기에다 지난달 발생했던 북한 무인기 사건에 군이 연루됐다는 의혹, 북한 오물풍선에 원점타격까지 압박했다는 의혹에까지 이르면 정말 오싹해진다. 정말로 북한과의 국지전을 유도할 심산이었던가. 나라와 국민들은 전쟁의 참화에 고통받아도 자신의 권력만 유지하면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무도한 심보 아닌가.

 

공교롭게도 북한과 러시아는 군사동맹 조약 비준을 마친 터였다. 이런 의혹이 맞다면 전면전으로 확대돼 러시아군의 개입까지 불러올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해 3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1차 세계대전도 유럽의 변방 발칸반도에서 일어난 사라예보 사건을 빌미로 독일이 의도적으로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이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켰듯이 한반도에서도 그런 오판을 하지 말란 법도 없다. 이번 내란 사태는 반민주적 조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안보 위협을 구실로 삼는 동서고금 독재자들의 전형적인 패턴을 그대로 보여줬다. 그는 독재자적 본성을 지닌 폭군이었다.

 

12일 그가 티브이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혹시나 진심어린 사죄를 하거나 하야를 선언하지 않을까 기대하는 국민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그랬듯이 그런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내란을 획책해 실행에 옮기고, 그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데도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은 채 자신의 정당성을 강변하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그리고 극우 보수 지지층을 향해 모종의 신호를 보냈다. ‘1차 내란이 실패로 돌아가고 김용현 전 국방장관을 비롯한 자신의 수족들이 잘려나가자 외부의 극우 보수 세력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두가지가 주목된다.

 

첫째는 북한과 연계된 부정선거 의혹 제기다. 일부 극우 유튜버들의 근거없는 음모론을 그대로 반복했다. 자신이 이들의 주장을 밝히려 계엄령까지 내려 선거관리위원회 조사까지 하려 했으니 자신을 지켜달라는 주문이다. 일종의 내란 선동 혐의가 짙다. 실제로 일부 극우 인사는 유튜브에 출연해 대역전극이 시작됐다고 화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죄상이 만천하에 드러난 이 마당에 이런 선동에 휘둘릴 이는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둘째는 수사 대응 가이드라인 제시다. 그는 계엄령은 대통령의 통치행위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했다. 이미 대법원은 1997년 전두환·노태우의 12·12 군사반란 사건 판결에서 헌법에 정한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폭력에 의하여 헌법기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 따라서 그 군사반란과 내란행위는 처벌 대상이 된다고 분명하게 밝힌 바 있다.

 

그런데도 그가 궤변을 늘어놓는 데는 이번 내란 사태의 가담자들에게 대응 전략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벌써 그의 말이라면 모든 것을 따르는 예스맨김용현이 바로 태세를 전환했다. 김용현은 10일까지만 해도 모든 책임은 오직 저에게 있다며 영장실질심사를 포기하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3일엔 변호인단을 통해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고유한 통치 권한이라며 내란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문제는 국민의힘 내 친윤세력의 움직임이다. 집권여당으로서 이런 사람을 대선 후보로 내세우고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들에게 백배사죄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대통령을 감싸고 있다. ‘체리따봉문자 논란으로 원내대표에서 물러났던 원조 윤핵관권성동 의원이 다시 원내대표로 등장했다. 구원투수로 나선 셈이다. 국민의힘을 윤석열 사수대로 만들겠다는 심산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년 봄으로 예상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최종 판결까지 시간을 벌면서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겠다는 노림수도 엿보인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과 국민의힘 친윤계는 이해관계가 통한다. 대통령의 광기와 폭정이 속속 드러나고, 국가적 위기 상황을 조속히 끝내야 하는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어떻게든 권력을 놓치 않으려는 기득권 정치인들의 술수에 기가 막힌다. 정치인으로서 소명을 잊고 권력의 단맛에 취해 대의에 거스르는 타락한 정치인들의 전형이다.

 

독일의 저명한 사상가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권력 추구를 정치인의 정상적 속성으로 보면서도 대의에 대한 열정, 책임의식에 입각한 행동, 사태를 냉철하게 보는 균형감각을 갖지 못할 경우 정치적 무능력자로 전락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정치인의 권력 추구가 대의에 헌신하지 않고, 권력에 도취되어 책임감과 균형감각을 잃었을 때 정치가의 타락이 발생한다고 설파했다. 베버는 독일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고 사회적 혼란이 극심했던 1919년 독일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며 이 책을 낸 것인데, 지금 국민의힘 의원들이 되새겨야 할 대목이 적지않다고 본다.

 

최고권력자의 광기로 시작된 이번 친위 쿠데타(12·3 내란 사태)가 한국 민주주의를 다시 시험하고 있다. 1961년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와 1972년 친위 쿠데타(유신), 1979~80년 신군부의 쿠데타에서 정치군인들은 저항하는 시민들을 강압적으로 진압하며 권력을 거머쥐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최정예 군인들을 국회에 투입했으나 국회의원들과 보좌관, 그리고 시민들의 저항에 6시간 만에 실패로 끝났다. 군의 중간 지휘관들이 의원들 끌어내기와 체포 명령을 거부한 것도 큰 역할을 했다.

 

이번 내란 사태는 한국 민주주의의 가드레일이 튼실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1960년대 이후 군부독재에 맞서 수십년간 이어온 민주화운동의 결과물이다. 민주화 이후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독재자와 그 동조자들의 말로를 보며 후세대들이 민주주의를 학습한 효과다. 19876월항쟁, 2016년 촛불혁명에 이어 2024년 다시 무도한 최고권력자를 단죄하려는 시민들이 전국 각지에서 구름처럼 일어나고 있다. 민주주의 역사의 현장을 지금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국회가 저항의 중심이 된 것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새로운 경험이다. 2016년에는 시민들의 거리 시위가 중심이 되고, 나중에 정당과 국회의원들이 참여했다. 이번에는 국회가 먼저 계엄을 거부하는 신속함과 결단력을 보여줬다. 주권자들을 대표하는 제1의 시민 권력기구로서 제 역할을 한 것이다. 여기에 시민들이 형형색색의 응원봉을 들고 열화와 같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과거 민주주의 성지가 명동성당, 시청앞, 광화문 일대였다면 이번에는 국회앞이 되었다는 점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만큼 국회의원들과 그들의 정치적 결사체인 정당들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아직 내란 사태는 진행 중이다. 국민의힘이 대의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국민의힘이 아니라 국민의 배신당으로 낙인찍혀 해체의 운명을 맞을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시민들의 응원봉은 철퇴가 되어 그들의 책임을 물을 것이다.

박현 논설위원 | 한겨레 2024.12.14

 

배신자론의 역설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명태균이 국민의힘 대선 경선 과정에서 여론조작을 했다. 윤석열은 이득을 보았고, 홍준표는 손해를 보았다. 그런데, 홍준표의 공격은 윤석열이 아닌 명태균을 향했다. 지인이 의문을 풀어주었다. ‘배신자론때문이었다.

 

보수정당의 배신자론은 역사가 있다. 한나라당에서 의원·도지사 등을 역임하다가 민주당으로 옮겨간 손학규를 향한 비난, 2015년 국정교과서를 반대했던 새누리당 정두언 역시 빨갱이 비판을 들어야 했다. 배신자 비판이 으로 승격된 것은 박근혜 탄핵 사건 이후인 듯하다. 탄핵에 찬성한 유승민, 김무성 등에 대해 홍준표 등은 보수는 배신자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배신자론을 무기로 보수의 중심을 차지했다.

 

배신자론의 내용은 이렇다. 보수는 주군을 배신하지 않는다. 합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아도 그래서 당장은 대중의 공격을 받아도, 인내를 가지고 주군을 보호하라. 그러면, 결국 당신은 보수의 핵심으로 남는다. 윤상현이 주장하듯 시간이 지나면 시민들은 선악이 아닌 의리와 배신으로 평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의리와 배신이라니. 조폭집단이면 이해가 가지만, 자유민주주의와 공공성을 강조하는 보수정당의 핵심 담론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윤석열의 탄핵 국면에서도 어김없이 배신자론이 핵심 담론으로 등장한다. 그 중심에는 박근혜 탄핵을 반대했다는 자랑스러운이력을 가지고 있는 홍준표가 있다. 이번에도 그는 주군의 잘못을 눈감는다. 그리고, 배신자는 보수가 아니며, 주군과 당을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들의 말이 옳을 수 있다. 홍준표나 아직 건재한 이른바 중진의힘이 그 증거이다. 탄핵 과정에서 보수를 주도하며 배신자론으로 젊은 보수 정치인들을 겁박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보자. 옳고 그름의 관점이 아닌 그들이 좋아하는 성공의 관점에서 보자. 배신자론의 한계는 확장성이다. 홍준표는 201719대 대선에서 24%를 득표하며 간신히 2등에 머물렀다. 서울, 인천, 경기에서는 3등이었다. 이듬해 그가 자유한국당 대표로 이끌었던 7회 지방선거에선 참패를 당했다. 2020년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황교안의 지휘 아래 21대 총선에 나섰지만, 또다시 참패했다.

 

흥미롭게도 최근 보수정당이 강했던 시기는 박근혜를 구속했던 윤석열이 대통령 후보였던 20대 대통령 선거, 그리고 박근혜 탄핵에 찬성한 배신자 이준석이 당을 이끌었던 20228회 지방선거였다. 이때는 수도권에서도 매우 강했다. 하지만 쇄신을 거부하고 이준석을 내쫓으며 새로운 주군 윤석열의 의리파들로 뭉쳐서 치렀던 202422대 총선에서 다시 참패했다.

 

감히, 예측하건대 탄핵 이후 대한민국 보수의 운명은 배신자론에 달려 있다. 이 배신자론이 다시 주류담론화에 성공한다면 이른바 중진의힘을 중심으로 안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극우적이고 더 수구적으로 변할 것이며, 그들의 확장성은 영남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홍준표가 서울을 피하고, 대구로 기를 쓰며 들어갔듯이. 그리고 가장 기뻐할 이들은 이재명과 더불어민주당이다. 역설적이게도 배신자론을 외치는 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대상이다.

 

하지만 배신자론을 극복한다면 당장은 개혁신당과 한동훈, 안철수, 오세훈 등이 약진하며 보수는 혼돈의 시기를 맞이할 것이다. 이런 혼돈이 정리된 뒤에는 민주당이 마땅히 두려워할 보수정당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서울·경기에서 민주당에 밀릴 이유가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경로 탈피를 이끌 젊은 힘이 있을까.

 

나는 배신자론이 승리하여 민주당이 미소 짓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아가 민주당은 자신만의 배신자론은 없는지 성찰해야 한다. 리더의 잘잘못은 평가하지 않고,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하고, 그를 공격하는 자들을 더욱 강하게 공격한다면, 그것은 보수의 배신자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이들은 또 다른 수구일 뿐이다.

 

친박, 배신을 두려워 말라라는 20161216일치 중앙일보 전영기 논설위원의 칼럼 마지막은 다음과 같다. “보수는 흠 없는 완전체가 아니다. 고장이 나면 손질해야 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성질과 유사하다. 보수를 분열시키고 보수가치를 무너뜨린 박근혜를 버려야 한다. 지키기 위해 변화하는 건 보수의 장점이다. 보수가 새 리더십을 세워 스스로 수선하고 새 집을 지어야 할 때다.”

최영준 |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 한겨레 2024.12.15.

 

박정희·전두환·윤석열역사가 반복되는 이유

123일 쿠데타를 일으킨 윤석열은 직권을 남용하고 헌법을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반역 내란죄를 저질렀다. 이 믿을 수 없는 범죄는 정신착란에 가까운 광기의 결과로 보인다. 이는 그가 이른바 친북 반국가 세력으로 간주하는 야당의 국가 안보 위협 주장을 중심으로 비상계엄 선포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한 논거에서 드러난다. 윤석열은 이미 2021년 대선 선거운동 때 친북 반국가 세력이라는 서사를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와 대조적으로 사용했다. 이는 뉴라이트의 우파 반동 세력이 사용해온 낙인찍기 전략을 사용하는, 즉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반공 수사의 새로운 버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군사반란에 대한 접근 방식이 박정희나 전두환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실은 이미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은 전두환을 많은 치적을 가진 유능한 정부 지도자로 묘사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공개적으로 말한 적도 있을 정도다. 그는 지난 대선을 가까스로 이긴 뒤 자신이 검사 시절에 직접 감옥에 가두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찾아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통치 방식에 대해 극찬하기도 했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그리고 그 정부에서 일한 뉴라이트 등 보수 우파 인사들이 정부 고위직에 대거 포진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역사 왜곡과 날조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어느 도지사가 외국까지 나가서 독재자의 미화에 가담하는 것이 별로 놀랍지 않다. 전국에서 이미 가장 많은 박정희 동상을 둔 기록도 모자라 외국에서도 독재자의 역사를 우상화하기 위해 열심히 뛴 셈이다. 지난 10월 말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대표단과 함께 1964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일 국빈 방문 당시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을 만난 뒤스부르크를 찾았다. 만남의 장소에 기념 현판을 세우려는 것이었다. 이 계획으로 국회 국정감사에서 야당으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았지만, 이를 무시하고 함께 온 한국 기자들 앞에서 기념 현판을 뒤스부르크 시장에게 증정하는 등 외교적으로 무신경할 뿐만 아니라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보였다. 독일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한국 광부와 간호사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으면 몰라도, 기념 현판 내용은 박 전 대통령의 공로에 대한 설명이 거의 전부이다. 또한 기념 현판 상단에 그의 사진이 있어 이것이 실제로 무엇을 염두에 두었는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놀라운 것은 한국 쪽에서 뒤스부르크를 반동적인 역사 왜곡에 악용하려 한 것은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2010년 이명박 정부 때 이미 뒤스부르크에 기념패를 세워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2014년 박근혜 정부가 집권했을 때 또 다른 비슷한 시도가 있었지만 역시 거부되었다. 그리고 지금 2024, 윤석열 정부하에서 이런 종류의 시도가 또 이뤄졌다. 따라서 역사 왜곡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외국으로까지 역사 수정주의를 확장하려는 노력과 한국의 우파 보수 정부의 연관성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1945년 해방 이후에도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에서 과거를 제대로 직시할 수 있는 전환점, 즉 역사관을 바로 세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전직 독재자들의 초상화가 수십년 동안 청와대에 나란히 걸려 있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진이 국군방첩사령부 복도에 다시 걸려 있다는 보도가 최근에 나왔을 때 별다른 반응도 감지되지 않았다. 왜 그럴까? 역사를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를 잊은 자들은 그 역사를 반복하면서 정죄받게 된다고 한다. 지난 123일과 그 후 정부·여당의 행태가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네스 모슬러(강미노) |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 정치학과 교수 | 한겨레 2024.12.15.

 

윤석열 탄핵에 부쳐, 새보수의 첫 걸음은 '배신자 프레임 깨기'

'더러운 장난', 배신자 신화는 허구다

배신자 프레임은 허구이자 만들어진 신화다. 그것도 아주 고약한 의도로 만들어진 신화다. 지금부터 그 신화를 깨부숴야 한다.

 

'배신의 정치'의 근원은 '조폭 정치'(좋은 말로 의리 정치)의 수괴로서 '친박계'라는 전근대적 가신 정치를 창시한 박근혜가 20156월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겨냥해 내놓은 '배신의 정치'란 말에서 유래한다. 이른바 '친박 돌격대'들은 박근혜의 말이 떨어진지 13일만에 유승민을 선출된 원내대표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무소불위 대통령의 시행령 통치를 견제하기 위한 국회법 개정에 합의해 줬다는 이유로 '위헌'이니 하는 험한 말들이 친박 가신들 사이에서 어지럽게 난무했다. 지금 친윤들의 궤변들에서 기시감이 느껴진다.

 

유승민을 끌어내린 '친박 돌격대', 지금 박근혜를 감옥에 집어 넣은 윤석열 씨와 친분을 과시해 한 자리 차지한 자들 많다. 어떤 사람은 광역자치단체장까지 꿰찼다. 그들은 '배신자'가 아닌가?

2016년 국회는 박근혜를 탄핵했다.(탄핵이 완성된 건 20173) 유승민은 새누리당 내 '탄핵 찬성파'들과 '바른정당'의 깃발을 들고 허허벌판에 섰다. 탄핵 후 친박계를 흡수한 자유한국당에게 가장 위협적인 건 민주당이 아니라 보수 표를 갉아먹을 유승민과 바른정당이었다. 골육상쟁(骨肉相爭)이 더 잔인한 법이다. 그들은 유승민을 위시한 이들에게 '배신자 프레임'을 씌웠다. 주도한 이들은 깃발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TK 지역의 토호 정치인들과 망가진 보수 정당을 유지해 권력의 부산물을 놓지 않으려 하는 몇몇 '이익공동체'들이었다.

 

궁지에 몰린 가짜 보수주의자들이 살기 위해 유승민을 배신자로 몰았다. 앞으로는 고상한 대의를 챙기는 척 하면서 탄핵의 강을 건너려는 사람들에겐 뒤에서 독이 든 침을 뱉었다. 똑같이 박근혜 탄핵에 앞장선 사람들 중 새로운 주류에 편입된 사람들은 '배신 감별사'들에 의해 면죄부를 받았다.

 

배신하지 않는 방법은 쉽다. 투항하면 된다. 박근혜 탄핵소추위원이던 '배신자' 권성동(한때 바른정당 소속)'친윤계'의 거두로 윤석열 정권에서 원내대표를 두 번이나 한 이유는 이렇게 설명된다. 박근혜로부터 공천장을 받아 국회에 입성한 '한때 친박계' 추경호와 윤재옥이 윤석열 정권에서 당내 선출직을 휩쓴 이유도 그렇다. 그들은 '배신자 프레임'을 즐기면서 박근혜 탄핵이 없었다면 생기지도 않았을 윤석열 정권에 TK의 상징성을 팔아 주류로 부상했다.

 

'강약약강'의 비겁한 무기가 배신자 프레임이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자들은 배신자가 되지 않는다. 추경호, 윤재옥 같은 낡은 정치인들이 TK 정치판에서 기득권을 누리기 위해서 '배신의 정치'라는 고약한 독극물이 필요했다. '배신자 프레임'의 기원은 이토록 천박하고 허약한 데서 시작한다. 대통령이 된 박근혜 수사 검사와 술잔을 기울이던 추경호는 지금 윤석열 씨의 내란에 동조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대체 누가 배신자인가.

 

바른정당을 위한 변호를 하자면 한국 정치사에서 3당이 독자적으로 성공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는 점을 짚고 싶다. 자민련은 제2당과 연합을 했고, 자유선진당은 보수정당에 흡수됐으며, 국민의당은 형체조차 없이 공중분해된 역사가 있다. 바른정당의 실패는 그들이 '배신자 정당'이어서가 아니라, 오랜 기간 독재 통치의 트라우마에 시달린 유권자들의 '양당제 선호'(윤석열의 '상상 계엄'이 초래한 거대한 재앙으로 입증된) 제왕적 대통령제가 결합한, 한국인들의 정서 기저에 흐르는 강력한 집단 무의식을 극복하지 못한 탓이 크다.

 

또한 유승민이 저지른 단 하나의 잘못이 있다면 탄핵 직후 지역구 대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데 있다고 본다. 만약 그가 미련없이 대구를 떠나 수도권에 출마해 '내가 박근혜 탄핵에 앞장섰다'고 밝히며 선거에 임했으면 무소속으로라도 살아 남아 지금 보수 정당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뒤늦게 경기도지사에 도전했지만 이미 늦은 시점이었다. 정치판의 잔인한 속성상 패배가 거듭될수록 '배신자 프레임'은 더 강화되는 법이다. 유승민은 아직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을 뿐이다.

 

한때 박근혜를 '누나'로 불렀다는 '원조 친박' 윤상현 의원은 '친윤계'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배신자 프레임'의 최대 수혜자인 그가 자랑스럽게 말했다고 한다. "나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 반대했다.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며) 그다음에 무소속 가도 다 찍어줬다", "내일, 모레, 1년 후에 국민은 또 달라진다" 전도유망한 젊은 정치인 김재섭 의원이 ", 나 지역에서 엄청나게 욕을 먹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물은데 대한 답변이다. (대화 내용은 윤상현 의원 본인이 재구성한 것이다.)

 

인천 동구·미추홀구을 지역구에서 무소속으로 두 번이나 당선된 그에게는 선거를 다루는 신묘한 능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2019년도 원내대표 경선에서 동료들의 지지를 못 얻어 중도 하차했고, 지난 723일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에서는 민망하게도 고작 3.7%를 얻어 꼴찌를 기록했다. 의리파 윤상현이 배신자 유승민보다 낫다면 윤상현은 왜 당내 경선에서 이런 처참한 성적표만 붙들고 있을까? 그가 '배신자 프레임' 속에서 '셀프 면죄부'를 획득했을진 모르겠으나, 다른 의미에서 그는 '기회주의자'로 낙인 찍혔기 때문일 터다. 아무리 발버둥처도 국민의힘 당원들은 윤상현을 믿지 못한다. 지역구에선 인기가 좋을지 모르겠으나, 그의 그릇은 보수 정당 내에서 3.7%. 탄탄한 지역구를 둔 정몽준 같은 정치인도 7선이나 했지만 서울시장도, 국회의장도 한번 못했다. 평생 눈치나 보던 정치인의 말로다. 앞으로도 무소속으로 많이 당선되시길 바란다.

윤상현류의 '간신 정치'에 지쳐갈 무렵 전해진 '탄핵 찬성' 국민의힘 의원들 이름을 보며, 쉽지 않은 투쟁의 길을 선택한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배신자라고 말하는 자들이 바로 배신자다.

 

시대는 바뀌고 있다. '배신의 정치' 프레임에 이용당하는 TK는 더이상 보수 본류가 아니다. 시민들이 총든 계엄군의 국회 난입을 전 세계에 실시간 생중계하고, K팝 아이돌 응원봉 들고 탄핵 촉구 시위에 나서는 시대에 50년 전 박정희 정서를 붙들고 야비한 프레임을 생성하는 자들이 TK 정치를 망치고 있다. 이제 보수 정당 재건은 수도권에서 시작해야 한다. 배신자 프레임이라는 낡은 유령과 TK 정치라는 후진적 지역구도를 벗어나야 한다. 대한민국 보수 세력을 위해서라도 이번 탄핵이 그 시작점이 되길 바란다.

 

유승민, 한동훈은 이제 정치를 시작하면 된다. 민심의 바다는 수도권이다. 특히 73년생 서울 압구정 샌님 한동훈이 박근혜에 머리를 조아리고 대구 서문시장을 찾고, 부산 사직(구장)에서 야구를 봤다며 구애하는 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유승민 역시 마찬가지다. TK가 보수의 상징성을 갖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대구가 '보수의 본류'라는 생각에 갖혀있다면 확장성을 스스로 옭아매는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입증된 바, 유권자 지형은 이미 변하고 있다. 호남과는 다르다. 호남이 여전히 민주당의 지주 역할을 하는 건 박근혜, 윤석열 같은 '혼군'이 여전히 실존하는 시대가 끝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 진영에서 광주의 민주적 상징성을 오롯이 인정하는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고, 그 신념을 행동으로 보여준다면 민주당을 지지하는 호남의 외곬 정서는 자연스레 무너지게 돼 있다.

일부 기회주의자들의 추악한 의도로 만들어진 더러운 프레임은 깨져야 마땅하다. 그게 탄핵을 맞이하는 보수주의자에게 2025년의 첫 걸음이 되길 바란다.

박세열 기자 | 프레시안 2024.12.15.

 

 

보수, 반국가세력과 단절해야

영화 <변호인>에서 배우 송강호는 노무현 전 대통령 역할을 맡아서 열연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애꿎은 학생들을 연행해서 고문한 공안 경찰을 증인 신문하는 장면이었다. 그는 증인이 말하는 국가란 도대체 뭡니까? 국가는 국민입니다. 그런데 증인이야말로 그 국가를 아무 법적 근거도 없이 탄압하고 짓밟았다라고 열변을 토했다.

 

이 장면은 민주공화국의 본질을 잘 설명한다. 국가는 국민이다.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권력자는 민주공화국을 적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3일 밤 윤석열은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겠다며 내란을 일으켰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 무장 군대를 난입시켜 주요 정치지도자들을 체포하고 국회 기능을 마비시키려 했다. 그리고 국민의 기본권을 박탈하는 내용의 계엄포고령을 발표했다.

 

국회를 제1차 점령 목표로 삼은 목적은 매우 불순한 것이고, ()헌법적인 것이었다. 헌법상 보장된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권 행사를 막기 위해 최정예 부대를 동원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최악의 친위 쿠데타이고, 내란 시도다.

 

다행히 국회가 민첩하게 대응했고, 시민들이 몸으로 장갑차를 막았기 때문에 조기에 사태가 수습될 수 있었다. 그러나 내란이 성공했다면,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을 것이다. 정치인들은 구금되었을 것이고, 언론도 계엄군에 의해 장악되었을 것이다. 정권에 비판적인 지식인들,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줄줄이 포고령 위반으로 연행되었을 것이다. 복귀를 거부하고 있던 전공의들도 연행됐을 것이다.

 

윤석열을 비롯한 내란 세력은 명백하게 국회와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눴다. 국회와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는 국민들을 처단대상으로 삼았다. 단지 그 시도가 실패했을 뿐이다.

 

윤석열은 반국가세력운운했지만, 자신이 일으킨 내란이야말로 반()국가적인 행위다. 입법기관인 국회를 사실상 마비시키는 등 헌정질서를 파괴하려고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헌법은 현직 대통령이라고 해도 내란죄를 저지르면 형사소추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여전히 내란 세력을 비호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명백한 증거와 진술들이 있는 상황에서 내란임을 부인하는 것은 살인을 보고도 살인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길 만한 것을 우겨야지, 무장 군인들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에 난입하는 장면을 보고도 내란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은 매우 한심한 일이다. 대통령이 직접 특전사령관에게 전화해 문을 부수고 국회의원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다는 것인데, 이것이 어떻게 내란이 아니란 말인가? 특히 법 전문가임을 자처하는 일부 학자나 변호사들이 내란죄가 아니라고 우기는 것은 스스로 타락한 전문가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암세포를 확인한 의사가 암이 아니라고 우기는 게 가능한가? 내란을 보고도 내란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은 진실을 외면하고, 법리를 외면하는 것이다.

 

시민사회 영역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공직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내란 세력을 비호하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다. 이들은 실질적인 권한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내란 세력을 비호하는 것은 국가적인 혼란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민주공화국을 위협하는 반()국가적인 행태다.

그래서 국민의힘 국회의원 대다수가 내란죄를 부정하면서, 내란수괴의 탄핵에 반대한 것은 심각한 문제다. 국민의 대표라고 하는 국회의원들이 내란을 일으킨 자들을 옹호하는 것이 인정된다면, 어떻게 민주공화국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민주공화국에는 진보도 있고, 보수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폭력적으로 헌정질서를 전복시키려고 한 내란세력을 비호하는 것은 보수가 아니다. 그것은 반()국가세력이다. 이들은 히틀러의 나치당과 다를 바 없다.

히틀러가 이끌던 나치당은 1932년 선거에서 30%가 넘는 지지로 제1당이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히틀러는 독일 총리에 임명됐다. 그러나 그는 권력을 잡은 후 정치적 반대파들을 제거해 나갔고, 국회를 무력화시켰으며, 결국 일당독재로 나아갔다. 이런 히틀러의 행태와 윤석열의 행태는 상당히 많이 닮았다. 선거로 집권한 후에,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독재의 길로 나아가려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한국의 보수가 해야 할 일은 이런 반()국가세력과 단절하는 것이다. 이번 탄핵 소추안 표결에서 공개적으로 찬성 입장을 밝히고 1인시위까지 한 김상욱 의원이 보수가 나아가야 할 길을 잘 보여줬다. 한국에는 반()국가세력이 아닌 보수가 필요하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 경향 2024.12.16.

 

 

강태완과 윤석열

강태완의 추모제에 가려 했다. 118일 특장차와 중장비 사이에 끼어 숨진 32세 노동자. 그는 몽골 태생이지만 한국에서 자라 몽골어를 못하는, 한국말을 너무 잘했으나 한국인은 아닌 사람이었다. ‘미등록인 그의 꿈은 그냥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꿈을 위해 그는 제도가 부과한 도전을 수행했다. 말이 안 통하는 몽골로 자진출국했고, 입시를 준비해 한국의 대학에 입학했고, 인구소멸 지역에 살면 거주 비자가 나온다길래 김제의 한 회사에 취직했다. 올해 6월 거주는 허락받았으나, 생명까지는 허락되지 않았다.

 

강태완의 이름도 얼굴도 몰랐던 나는 한 채팅방에서 사흘 지나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이후 소식이 없었다. 사과 한마디 없는 회사와 싸우느라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는데 으레 돌 법한 서명 안내도 없었다. 외롭게 싸우고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쓰이던 중 125일 추모제가 열린다는 공지를 봤다. 당장 기차표를 끊었다. 하지만 123일 밤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자, 쏟아지는 일들에 파묻혀 갈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질수록 윤석열을 퇴진시킬 힘도 끈질기고 강해질 텐데, 투쟁이 커질수록 어떤 투쟁은 잊히게 될까 두려웠다.

 

윤석열의 반헌법적 쿠데타의 전말이 조금씩 드러났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헛소리하지 말라거나 상종을 말자며 무시당했을 말들을, 국무총리와 장관들은 듣고 앉았고, 군과 경찰의 간부들은 진지하게 모의했다. 대통령 직무 정지를 위해 탄핵소추안이 긴급하게 발의되었으나 첫 표결에서 국회는 탄핵에 실패했다. 여당 대표와 제1야당 대표는 자신이 대통령인 듯 말하기 시작했고, 인권의 이름으로 계엄 사태를 꾸짖어야 할 국가인권위원회는 말이 없었다. 헌정 질서의 구조물들이 썩다 못해 삭아버린 현실이 투명하게 드러났다. 광장으로 물밀듯 쏟아져나온 사람들의 힘으로 14일 윤석열은 탄핵당했다.

 

강태완의 이름을 몰랐으면 좋았을 테다. 그가 아는 사람들 곁에서, 그냥 평범한 사람이 되어가는 기분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면, 나는 그의 이름을 몰라도 됐다. 이름도 얼굴도 다 알 수 없는, 광장에 함께 있던 누군가로 스쳐도 좋았을 테다. 그러나 그는 광장에 나올 수 없었다. 헌법은 우리의 권리장전이다. 정당이나 국가기구의 권한과 관계는 모두 권리 실현을 위한 구조물일 뿐이다. 인간의 존엄과 평등이라는 출발선이 잊힌 나라에서 구조물들은 본연의 책무를 망각하고 서로 충돌하며 헌정질서를 파괴한다. 그 잔해를 쓰레받기에 담는 일은 이제 헌법재판소와 수사기관들이 맡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권리를 세우는 일은 고스란히 우리의 몫으로 남았다.

 

강태완의 추모제에 다녀왔다. 회사가 공개 사과와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약속했고 15일 강태완을 떠나보내는 추모제가 열렸다. 예상과 달리 그의 투쟁은 외롭지 않았다고 한다. 후원금이 이어졌고 애도의 현수막이 김제를 넘쳐 전주로 익산으로 보내졌다고 했다. 퇴진 광장에 그는 없었으나 수많은 강태완들이 모였음을 깨달았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노동자와 같은 구획을 넘어 그냥 평범한 사람이 되는 꿈을 이고 사는 사람들이 전진시키는 민주주의. 죽음이 들이닥치기 전, 강태완은 영상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이주아동 체류권 보장을 위한 캠페인 <Let Us Dream>. 이것이 이주아동만을 위한 것으로 읽히지 않길 바란다. 누구든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저마다의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꿈꾸게 하소서. 이곳은 우리의 권리가 쉽사리 무너지지 못하도록 지키는, 민주주의의 현장이다.

 

윤석열은 우리의 미래를 차압하여 과거를 키웠다. 강태완은 우리의 현재를 도우며 함께 미래를 열 것이다. 윤석열도, 윤석열이 대통령 된 나라도 과거로 보내며 우리는 미래로 가자. 이제 시작이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 경향 2024.12.16.

 

 

직업인으로서의 국회의원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최고로 긴장되는 순간은 광주를 빠져나가려던 택시가 군인 검문에 걸렸을 때다. 여기서 잡혔다면 1980년 광주의 참상을 취재한 독일 기자와 택시기사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트렁크를 뒤지던 군인은 낌새를 채고서도 택시를 그냥 보내준다. 이 장면을 봤을 때,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그 군인의 행동이 온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는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전한 당시 상황 중 하나였다. 사정을 알면서도 검문소를 통과시켜 준 군인이 실제로 존재했던 것이다.

 

123일 난데없는 계엄 사태에 놀라 생방송으로 국회 앞 상황을 지켜보던 중, <택시운전사>를 볼 때와 비슷한 의아함을 느꼈다. 완전군장에 야간투시경까지 착용한 특수부대원들은 군모와 복면 사이로 눈만 나와 있는데도 표정이 드러났다. 주저함과 안타까움, 약간의 슬픔이었다. 앳된 얼굴에 서린 그 표정들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군인들 다치면 어떡하지!” 하고 외쳤다. 정확하게 그 반대의 위험을 걱정하는 중이었는데도 말이다. 어떤 영상에서는 시민과 대치 중인 부대원들에게 물러서, 물러서!” 하고 지시하는 군인도, 감정이 격앙된 시민을 감싸안고 토닥이는 군인도 볼 수 있었다.

 

1980년 광주에서의 그 단 한 명의 군인과 2024년 계엄 상황에 투입된 군인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상부의 지시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부여된 책임과 권한을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비단 군인뿐 아니라 특정 직업과 직함 속에 존재하는 이상 우리 모두는 한 번쯤 이런 상황에 놓일 수 있다. 평범한 나날 속에선 그저 돈 받고 하는 일이던 것이 어느 한순간 엄청난 딜레마, 일생일대의 결정 앞으로 나를 끌고 갈 수 있는 것이다. 가장 말단에 있더라도, 상부의 명령이 지극히 위협적이더라도 일단 그 일을 맡고 있다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것이 12·3 계엄이 우리에게 남긴 중요한 교훈이다.

 

그런 한편, 이번에 각별히 주목받은 직업인들이 있다. 바로 국회의원이다. 계엄 해제의 책임을 다하려고 국회 담장을 넘어 의사당으로 달려가던 그들을 간절한 마음으로 응원하다 깨달았다. 지금처럼 국회의원들을 믿고 의지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들이 나의 정치적 대표자라는 사실을 이처럼 온전히 실감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사실 그동안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모든 국회의원들은 일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자리를 누리는 사람들로 보였다. 정치혐오에 가까운 생각인 줄 알면서도 그랬다. 계엄의 밤이 되어서야 나는 일하는 사람들로서의 국회의원을 제대로 목격할 수 있었다.

 

이 와중에도 여전히 이 자리를 누리는것으로 여기는 의원들도 보이기는 한다. 카메라 앞에서도 나는 정권 뺏기고 싶지 않아라고 당당히 말하던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을 그 상징으로 삼아도 좋겠다. 계엄의 밤에 믿음직했던 의원들조차도 어느 순간 누리는 자리로 돌아갈지 모른다. 그러나 이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군대의 사병들조차 자기 판단과 책임하에 행동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은 시민들이 지켜볼 것이기 때문이다. 일하는 사람인지, 누리는 사람인지 판단하면서.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 경향 2024.12.16.

 

결국 문제는 국민의힘이다

뇌썩음(brain rot)’. 옥스퍼드 랭귀지가 선정한 올해의 단어다. 인스타그램 릴스나 유튜브 쇼츠 등 60초 안팎의 짧은 영상 쇼트폼 콘텐츠의 과도한 소비로 지적 능력이 퇴보하는 것을 비판하는 용어다.

윤석열 대통령(이하 윤석열)‘12·3 계엄령 선포 사태는 뇌썩음 정치의 대표 사례로 역사서에 등재되지 않을까 싶다. 극우 유튜브 방송을 보고 들으며 부정선거설을 굳게 믿고 계엄군을 국회보다 선거관리위원회에 먼저 보냈다는 정황이 드러난 것을 볼 때 그렇다. 어디 그것만이겠는가. 윤석열의 뇌썩음 증거들은 집권기 내내 쉽게 찾을 수 있다는 데에 큰 이견이 없을 거다. 그 증거들을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당할 때까지의 열흘 남짓한 사이에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었는데, 잠시 짚어보고 가자.

 

첫째, 야당에 경고를 내리기 위해서는 해도 된다고 혹은 성공할 거라고 여기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것. 둘째,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자신을 비판하며 퇴진을 요구하는 세력을 종북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운 것. 셋째, 자신이 실패해 -또 국회와 국민이 성공해- 2시간 만에 끝난 것인데도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냐고 항변한 것. 넷째, 탄핵소추로 몰려가는 상황인데도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니라며 자신의 퇴진을 요구하는 이들과 맞서 싸우겠다고 억지를 부린 것. 다섯째, 하나같이 사회적 저항과 분란만 일으킨 의료·교육·노동·연금 문제를 개혁의 성과라며 그것이 수포로 돌아갈까봐 잠을 못 이루며 걱정한다는 것.

 

이를 보며 뇌썩음에 따른 지적 능력 퇴보의 귀결이 망상증인 것인가라는 의문을 갖는다. 현실과 동떨어진 망상을 진실이라고 믿는 정신적 질병에 걸린 게 아니라면 도저히 저럴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으니. 특수부 검사와 검찰총장을 지낸 대통령이라는 자의 지적 능력이 저 정도일 것이라고 누가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

 

공교롭게도 윤석열은 대통령 취임사에서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며, 지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가 지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보지 못했으나, 반지성주의의 전형 그 자체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딱히 본 바 없다.

이론을 사랑하는어떤 학자는 그의 합리성을 찾아내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여기서 합리성(rationality)합당함이라는 뜻을 갖는 이성(reason)까지는 아니어도, 뭔가 남는 장사를 할 것이라는 가정에 기댄 인간 행위의 특성, ‘(최소한의) 품격을 가리킨다.

 

국힘 사멸정당의 길 걸을 공산 커

<미국의 반지성주의>를 쓴 리처드 호프스태터가 지성의 중요성을 환기시킬 때도, 뇌썩음이라는 단어 사용의 원조로 알려진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에서 반지성주의적 풍토를 한탄할 때도 모두 중시한 것은 합리성보다는 이성이었다. 이를 그 학자가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윤석열이 최소한의 품격을 지녔을 거라는 가정에 기대어 그의 합리성을 밝혀보고 싶어 했음은 알고 있다. 그런 합리성마저도 갖고 있는 게 아니라면, 그를 -설사 그에게 투표하지 않았다 해도- 대한민국의 헌정체제를 책임질 대통령으로 승인한 우리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처참하게 느껴졌을 테니. 하지만 그 학자는 곧 참담함마저 받아들이며 순수학문적 습관에 기댄 실천학문적 열정을 거두었다. 앞서 거론한 뇌썩음의 증거들 앞에서.

 

윤석열은 원래 반지성주의적 망상증 환자였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가? 한국의 대통령은 환자여야 오를 수 있는 자리인가? 원래 환자가 아니었다면, 대통령이 된 후 그리된 것인가? 그렇다면 왜 그리되었는가?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 그리되지 않을 방도는 없었던 것인가?

 

그게 뭐였든 결국 문제는 국민의힘이다. 윤석열을 발탁해 자신들의 대통령 후보로 내세운 것도,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도, 그래서 집권여당이 된 것도 모두 국민의힘이다. 이리 말하는 것은 탓하기 위함만이 아니라, 정당이 얼마나 중요하고 강위력한 존재인지를 상기시키기 위함이기도 하다.

 

국민의힘은 사멸 정당의 길을 걸을 공산이 크다. 합리성을 내세워 아무리 주판알을 튕겨봐도 합당함을 잃으면 소용이 없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합당함을 잃었다. 아니, 내다 버렸다. 비상계엄령 해제 투표를 해야 할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들은 비겁하게 숨어 있었다. 탄핵소추 투표를 해야 할 때는 도망을 쳤다. 합당치 않은 비상계엄 사태를 아무것도 아닌 일로 여긴 게 아니라면,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문제로 몰고 갈 의도가 아니라면 도저히 그리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리했다. 자신과 다른 생각과 처지를 헤아릴 줄 몰라 대통령은 물론, 정치인의 자질조차 없던 이를 대통령으로 만들 정도의 힘을 보유한 주체이자 제도인 정당이 그리했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이 탄핵을 당해 궤멸의 위기에 처했던 게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탄핵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다. 대통령을 만들어 낼 정도의 큰 힘을 합당치 않은 데 쓴 것의 결과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죽어가는 새누리당을 국민의힘으로 살려놓은 반전의 계기였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로 인해 역풍이 불어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며 제1당 자리에 올랐던 것 같은 경험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건 합당치 못한 사유로 탄핵소추를 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합당한 사유로 인한 것이었다. 집권세력의 사익 추구를 위한 권력의 사유화만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을 겪게끔 사회의 구조적 위험을 방치하거나 국민을 그 위험 속으로 내몰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을 살려놓았다고? 그렇다. 새누리당은 망하고 국민의힘이 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래도 그 과정에서 부끄러운 척이라도 하고 혁신하는 척이라도 해서 국민으로부터 존재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당하지는 않을 수 있었다. 즉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통해 반성(하는 척)의 계기를 제공받았기 때문에 국민의힘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그들이 윤석열을 공정과 정의의 사자로 호출해 대통령을 만들 수 있었던 것, 즉 그리해도 어색하지 않았던 것은 그런 반성(하는 척)의 시간을 거쳤기 때문이다. 그들 스스로 그것을 탄핵의 강 건너기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그때만 해도 이들은 대의와 다수 여론을 거스르지 않고 살아남을 줄 아는 간지를 보유하고 있었고 발휘하기도 했던 거다.

 

친윤의 국힘 깨야 보수 궤멸 막아

그러나 지금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시작부터 훗날의 밑천을 다 탕진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다. 당을 여전히 친윤이 장악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자신들의 수장인 윤석열이 군대를 동원해 내란을 기도했고 그 수괴임이 명백한데도 그리하고 있다. 국회의원 총사퇴라도 하는 흉내를 내야 할 때, 오히려 탄핵 찬성파를 축출하는 데 힘을 쏟고 있는 형색이다. 국운을 다시 지피는 무슨 심박한 정책이라도 추진하느라 그런 것이라면 봐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책의 ㅈ자도 나오고 있지 않다. 여전히 탄핵 반대의 입장과 관점에 서서 더불어민주당을 탓하고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공략에 힘을 쏟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의 보장으로 공당의 지위를 부여받은 정당임에도 불구하고, 국헌을 문란케 한 내란에 동조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전에 이미 레임덕도 아닌, 데드덕에 빠져들었다고 거론되던 윤석열이 무서워 그런 거라고 보기도 어렵다. 또 결정적 순간에 숨어버리는 비겁함과 남 탓으로 일관하는 조잡스러움을 보면 의리파라 그런 것도 아니다. 의리파라면 묵묵히 자신이 먼저 나서서 총을 맞아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는커녕 자신을 제외한 모두에게 총을 쏴대기만 한다. 당 안에선 친한파와 탄핵 찬성파에게, 당 밖으로는 야당에, 심지어 탄핵과 정치의 합당함을 요구하는 국민에게.

 

그러니까 결국 국민의힘, 특히 자칭타칭 친윤이라는 이들이 주도하는 패거리-도당(徒黨·clique)’이 문제였음을 깨닫는다. 윤석열이 원래 환자였든 아니었든, 또 대통령이 되고 나서 환자가 되었든 아니었든 비정상적 통치 행태를 보인 것은 결국 집단적인 비겁함과 조잡함의 힘때문이었던 거다. 그러니까 보수의 궤멸은 윤석열 탄핵 때문이 아니라, 친윤의 국민의힘 때문이다. 그래서 보수의 궤멸을 피하려면 탄핵을 막을 게 아니라, 친윤의 국민의힘을 깨야 하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좌파 정치인이자 <옥중수고>의 저자로 점진적 개혁노선 지향의 유러코뮤니즘 형성에 영감을 준 안토니오 그람시는 현대 정치체제에서 정당을 현대의 군주라고 불렀다. 모든 정당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사자의 용맹함과 여우의 간지를 가진 정당, 즉 부당함에 도전해 합당함을 추구하고 구현하는 집단 지성의 조직을 그리 불렀다. 미국의 정치학자이자 <절반의 인민주권>의 저자인 샤츠슈나이더는 정당을 민주주의의 창조자라고 불렀다. 소수 엘리트 혹은 극단적 집단이 아니라, 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과 상식을 대표하는 주체이자 제도라는 의미에서였다. 국민의힘은 그리 불릴 수도 없고, 그렇게 불리고 싶은 의지를 갖고 있지도 않다. 행여라도 그게 아님을 보이고 싶다면 당장 비상대책위부터 비친윤파만이 아닌, 합당함을 추구하는 당 밖의 시민에게도 개방하고 맡겨야 한다. 또 집권여당이라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국회와 야당과 함께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고 정부를 함께 꾸려가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의힘이, 보수정치세력이 궤멸에서 벗어날 작은 기회라도 잡을 수 있을 거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 경향 2024.12.16.

 

 

45년 전에 묶인 윤석열의 자유

윤석열이 인생 책이라며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를 꺼내들었을 때 이미 재앙은 예고됐다. 1979년 대학 입학 무렵 부친 고 윤기중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가 권했다고 한다. 윤석열은 2000년대 중반까지 30년 가까이 수시로 탐독했다고 했다.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는 제목처럼 자유의 가치를 강조한다. 프리드먼은 정부의 간섭을 배제한 자유로운 시장이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한다는 신념을 가진 신자유주의 경제학자였다. 평등과 자유가 맞설 때는 자유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수준의 생활이나 소득을 누려야 한다는 이른바 결과의 평등은 자유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과의 평등을 꾀하면 정부가 거대해져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선택할 자유>가 출판된 1980년은 미국과 영국의 경제가 침체했던 시기다.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프리드먼의 조언을 받아들여 경제를 회생시켰다. 규제 철폐와 세금 인하, 재정지출 축소, 국영기업 민영화 등이 핵심 정책이었다. 이 책은 한국에서 1986년 처음 번역돼 출판됐다. 윤석열은 그에 앞서 대학 입학 무렵 접했다고 하니, 믿기 어렵지만 영어 원서로 읽은 모양이다.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신자유주의는 양극화를 심화시켜 소외계층을 확대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2000년대 이후 주춤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책 <경제학 레시피>에서 프리드먼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자유는 좁디좁은 경제적 자유의 개념 중에서도 자산소유자(지주와 자본가)가 가장 큰 이윤을 내는 방법으로 자신의 자산을 사용할 수 있는 자유라고 지적했다. 자산가의 자유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노동자 파업이나 실직자에 대한 정부 지원 등은 당연히 무시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신자유주의는 사실상 침몰했다. 대대적인 경기부양과 감염병 대응을 위해서는 큰 정부의 역할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신자유주의는 동면에서 깨어난 곰처럼 부활했다. 20225월 취임사에서 윤석열이 16분 분량의 연설문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자유’(35차례)였다. 지난달 국회입법조사처장에 임명된 이관후 전 건국대 교수는 지난 5월 칼럼에서 지금 이 나라는 윤 대통령이 인생의 책으로 27년이나 끼고 다녔다는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에 따라 통치되고 있다. 부자들의 세금을 낮추고, 규제를 최소화하며, 카르텔을 척결할 것, 모두 신자유주의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프리드먼의 요구 사항들이라고 썼다.

 

지난 2년 반 동안 한국 경제는 어두운 터널에 갇혔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글로벌 고물가, 반도체 불황 등 대외 변수가 악화한 영향이 크다. 하지만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부동산값 상승, 고용 및 내수 부진, 가계부채 확대 등 내부 상황은 더 나빠졌다. 경제 활성화를 위한 감세는 오히려 침체를 가속화했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 주식시장만 유독 덜 오르는 저평가 상황도 심해졌다. 40여년 전 나온 철지난 경제이론을 신봉했던 윤석열은 역시 1980년대 이후 전무했던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제 발등을 찍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결정에 거는 기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우리가 최악에 의한 통치에 맞서 싸운다면 결국 더 나은 세상으로 돌아갈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취임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보유국이었던 한국은 탄핵으로 최악의 통치를 극복하고 더 나은 세상의 출구를 찾은 셈이다.

 

한국 경제의 커다란 리스크 하나가 사라졌다. 그러나 한국 경제는 지금 사면초가에 처했다. ·달러 환율은 달러당 1430원대 고공행진 중이다. 곧 취임할 트럼프 당선인은 관세 폭탄을 예고했다. 소매판매액지수는 1995년 이후 최장인 10분기 연속 감소하는 깊은 부진에 빠졌다. 과거 두 차례 탄핵 사례를 보면 환율과 증시는 곧 안정을 찾았지만, 소비심리는 상당 기간 위축됐다.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내수를 살릴 방안을 찾아야 한다. 신자유주의 기조로 심화하는 경제적 양극화도 바로잡아야 한다. 정치적 불안정성이 더 이상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게 해서는 안 된다. ‘윤석열 이후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 경향 2024.12.17.

 

우리자신에게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다룬 김덕영 감독의 <건국전쟁>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4·19 혁명은 이승만 대통령이 국민 교육에 헌신해서 국민을 자각하게 한 덕분에 가능했다.” 자기도취자들의 계보일까. 나는 윤석열 대통령123일 이후 한 말 중에서 “(내가) 국회를 봉쇄하지 않아서 계엄 해제가 가능했다는 말이 가장 인상 깊었다. 4·19도 계엄 해제도 자신들의 치적이라는 논리다.

세상 모든 힘이 자신에게만 있고, 따라서 우주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이러한 확신은 어떻게 해체될 수 있을까. 인간은 어떤 조건에서 변화가 가능한가 아니면 절대로 변하지 않는 인간도 있는가라는 교정학적(矯正學的)’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의 계엄 선포와 이후 12·12 담화문, 탄핵소추안 가결 후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일련의 행동을 보고 많은 이들이 처음에는 도대체 왜? ? ?”를 질문하다가 취했나 봄을 거쳐,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의 진단이 내려졌다. 하지만 나는 윤석열은 정상이다. 우리가 미칠 지경이지라는 의견에 동의한다.

 

근대 사회는 합리성이 지배한다는 신화로 작동을 한다. 그래서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나 정치 지도자에 대해 의문을 갖고 연구한다. <히틀러의 정신분석> <부시의 정신분석> <박정희의 정신분석> 같은 책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특별하지 않다. 전형적인 자기 확신범일 뿐이다.

 

우리는 여전히 윤석열같은 사람을 보면 의문에 시달린다. 미친 사람인가, 아픈 사람인가, 단지 나쁜 사람인가? 이에 대한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나쁜 사람이다. 나쁜 행동을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것이다. 모든 폭력 가해자에 대한 심리 분석에서 전문가들의 결론은 이것이었다. “그들은 한다. 왜냐면 할 수 있으므로(They do. Because, They can).”

 

문제는 그들이 나쁜 행동을 할 수 있는 구조와 환경이다. 윤석열의 욕구와 망상의 배경은 지도자로서 경험 없음과 일부 열혈 지지자들의 존재라 할 수 있다.

 

지금 인간 윤석열의 상태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나는 초기 사태 즈음에는 칼 구스타프 융의 우아한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자기 마음을 들여다봐야 시야가 트인다. 밖을 보는 사람은 꿈을 꾸지만,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깨어난다.” 깨어난다? 그가 자기 안을 보고 깨어날까. 하지만 그가 스스로 안으로 들여다보는 일은 불가능한 것 같다. 문제는 그가 대통령이라는 선출직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가 자기 내부의 문제를 밖으로 투사한 행위는 개인의 꿈으로 끝나지 않고 전 국민에게는 악몽이 되었고 전 세계의 우려와 비웃음을 샀다.

 

인간이 변하는 경우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고통받을 때이고 또 하나는 상대방이 평상시와는 다른 태도(리액션)를 취할 때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사랑하는 집사람과 같이 수감되는 등의 고통이나 지지자가 등을 돌릴 때도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은 예감은 왜일까. 역대 가장 활발한 대외 활동으로 부부 대통령, “윤건희라고 불렸던 김건희씨를 집사람이라고 칭할 만큼 평범한(?) 그는 반성할까. 아니, 그의 반성을 기대하는 나의 심리는 무엇일까.

 

성찰은 끊임없는 재귀의 과정

거울이 지금과 같은 형태를 갖추기 전까지 인간이 자기 얼굴을 볼 수 있는 방법은 고요한 물이었다. 물이 찰랑이면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없고, 거울이 깨져도 마찬가지다. 파경(破鏡)이라는 말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 파경은 인간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자신을 직면하지 못할 때에도 등장한다. 깨진 거울로는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래서 거울이 깨지거나 깨는 행위는 상징적이다.

 

스스로 거울을 깨서 자신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는 것은 직면의 첫 단계다. 거울을 보기에 앞서 거울에 다가가는 것, 깨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인간이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려면, 남들이 생각하는 내가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야 하고, 이는 새로운 인식론을 필요로 한다. 이를 성찰(省察)이라고 해두자.

 

영어 표현과 한국어 사이에 간극이 큰 단어 중 하나가 성찰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성찰은 반성한다는 어감이 큰 데다 너무 자주 쓰이는 것 같다. 영어에서는 뜻이 비교적 명확하다. 재귀(再歸, reflexive)를 의미한다. 자기 자신에게로 다시 돌아온다는 뜻이다. 반성이 아니다. 자신을 객관화(대상화)할 수 있는 힘, 자기 존중감이 필요하다. 자신에게로 끊임없이 되돌아옴, 재귀와 유착(流着)의 연속을 말한다. 재귀가 반복될 때 우리는 인생무상(人生無常)의 상태를 산다. 즉 삶에는 항상적인 상태가 없다(無常). 언제나 갱신 중이라는 얘기다.

 

지금 상황에서 윤석열의 망상으로 인한 국민의 고통을 멈추게 하는 방법은 그가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국회, 선관위, 의료계 등이 자신을 억압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대신, 한순간이라도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한국 사회에는 윤 대통령 또래 남성들의 하위문화가 있다. 일종의 무의식적 궁금증이라고 생각하는데, 술을 마시면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소리를 지르며 타인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묻는 주사의 일종이 그것이다. “알아!”가 아니라 아십니까? 제발 알려주세요이다.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도 궁금하다. 그러나 그것은 타인에게 공포감을 조성해가며 물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때 자신이 할 말과 안 할 말, 할 행동과 안 할 행동이 분간될 것이다. 나는 윤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가 분별력 없음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상황에 맞지 않는 모든 판단과 언행이 나왔고, 그의 어리석음은 충격과 더불어 웃음거리가 되었다.

 

1214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될 때도 그는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런 말을 들을 때, 나는 그가 무서워진다. 끝까지 자기로부터 도망가는 인간.

 

일상의 회복이 아니라 재발견

14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말 중에서 진부하지 않은 언어가 하나 있었다. “여의도 안의 싸움이 현장의 충돌로 확장될 것.” 투쟁에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일상 역시 투쟁의 연속이라는 뜻이리라.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끝나는 투쟁은 없다.

 

많은 이들의 지적대로, 이번 탄핵정국에서 시민들의 행동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민중가요 대신 ‘K이 불리고, 20대 여성이 전체 참여자 중 19%에 육박했으며, 시민들의 깃발은 다양했다. ‘(서울지하철) 6호선을타는사람들의모임’ ‘고양이발바닥연구회’ ‘아무것도하기싫은사람들의모임’ ‘페미니스트 평화정치학 연구회-전국나쁜사람퇴치연맹.

 

이 중 전국나쁜사람퇴치연맹이 눈길을 끈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윤건희같은 이들이 많다. 이런 단체를 운영하려면, 어떤 사람이 나쁜 사람이고 그것을 판단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한 사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조직의 구성원들은 자신부터 나쁜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타인을 비판하려면 자기부터 되돌아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탄핵 와중에 대통령과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이들 중 일부는, 이 모든 사태가 민주당의 폭주 때문이라며 비난했다. 귀담아들을 소리는 아니지만, 민주당에 대한 염려가 없는 국민도 없을 것이다. 민주당 역시 자신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니체의 첫 저작인 <선과 악을 넘어서>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당신이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볼 것이다는 우리 모두를 위한 진실이다.

 

민주당이 국민들의 투쟁에 무임 승차했다는 비판을 피하려면, 민주당은 자신들이 거대 양당 정치의 최대 수혜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안 된다. ‘촛불’, 아니 응원봉은 양당 정치가, 대의제를 불가능하게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로 인해 직접 민주주의와 팬덤 정치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지역구 중심의 선거 제도부터 폐지해야 한다.

 

윤건희씨, 야당, 전국나쁜사람퇴치연맹이 말하는 일상의 윤석열들. 이들 모두가 자신과 마주할 때 민주주의의 전진이 있다. 민주주의는 일상의 회복이 아니라 자신과 만나는 일상의 재발견으로부터 가능하다.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편집장 | 경향 2024.12.17.

 

윤석열 탄핵 이후응원봉보다 사람을, 마음을!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갔다. 롱패딩과 양털부츠, 마스크와 핫팩으로 중무장했다. 소용없었다. 아스팔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는 뼛속까지 시리게 했다. ‘대통령(윤석열) 탄핵소추안가결을 바랐다. 투개표가 빨리 끝나기 또한 바랐다. 주변을 둘러보니 달랐다. 여성이 다수인 청년들은 흔들림이 없었다. 집중력과 인내심이 놀라웠다.

탄핵 정국 속 1030세대의 응원봉이 주목받고 있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다만세)로 대표되는 집회 속 K팝도 화제다.

 

한국 시민은 지난 2주 사이 다만세를 두 차례 겪었다. 123일 내란 사태로 다시 만난 세계는, 45년 전 독재자가 지배하던 폭력의 세계였다. 윤석열은 그 세계를 부활시키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1214일 탄핵안 가결로 다시 만난 세계는 민주주의와 평화의 세계다.

 

12·312·14 사이 전국 곳곳의 광장에선 수많은 이들이 무대에 올랐다. 부산 서면 집회에서 한 여성은 자신을 온천장에서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소위 말하는 술집 여자라고 소개하며 발언에 나섰다. 이 여성은 쿠팡 노동자 사망, 동덕여대 시위, 장애인 이동권, 교제폭력 등의 이슈를 거론하며 이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난 다음에도, 정치와 우리 주변의 소외된 시민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사실 내려가라이런 말 들을 각오까지 하고 올라간 건데, 손뼉 치고 환호해주니 울컥했다”(한겨레 인터뷰)고 털어놨다. 환호는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동질감과 유대감에서 비롯했을 터다.

12·14 이후는 어떨까. 한국 시민은 대통령 탄핵 유경험자. 8년 전 박근혜 탄핵 때를 돌아본다. 탄핵 광장에선 백가쟁명했으나 광장이 닫히자 불평등·양극화·성차별·기후위기 같은 이슈는 뒷전으로 밀렸다. 공론장은 차기 대선을 둘러싼 정치공학적 이슈로 덮여 버렸다. 시민의 삶은 바뀌지 않았다.

 

<한국 정치 리부트>에서 저자 신진욱·이세영은 한국 정치를 열광과 환멸의 사이클로 설명한다.

주도한 건 정치 엘리트였다. 그 결과 정치사회 외부에는 제도 질서를 통해 흡수되지 못한 열정과 에너지가 쌓이게 되고, 임계점에 도달한 에너지가 사회정치적 모멘텀과 조우하면 대의 시스템을 우회해 분출되는 상황이 빚어졌다. 하지만 열광의 시간또한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통치세력이 시스템을 정비하고 외부 요구의 일부를 흡수하면 거리의 열기는 냉각된다. 이때부터는 환멸의 시간이다.”

 

2024년에도 열광의 시간을 마감하고 환멸의 시간을 준비할 건가. 응원봉을 흔들던 청년들은 집과 학교로, 노래방 도우미 여성은 일터로 돌아가라 할 텐가. 나머지 과제는 정치제도 속 기득권들이 알아서 잘할 테니 맡겨두라 할 텐가.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탄핵 이전의 일상-등교하고 시험 보고 출근하고 송년회도 하는-으로 돌아가되, 탄핵 이전의 정치로 돌아가선 안 된다.

응원봉을 향한 열광을 넘어, 응원봉을 든 사람들과 그들의 마음에 주목할 때다. 광장에서 빵과 커피와 어묵을 나누던 선결제는 한때의 미담으로만 기억될 일이 아니다. 시민은 선결제로부터 공유·공존·공공선 같은 가치를 읽어냈다. 이러한 가치는 복지·조세 관련 입법을 통해 제도화할 수 있다. 탄핵안 표결을 거부하고 퇴장하던 국회의원들을 향한 분노는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국민소환제에 담아낼 수 있다.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개헌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의 관성적 접근으로는 시민의 삶을 바꿀 수 없다.

일부에선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이 마무리될 때까지 사회대개혁 논의는 유보하자고 한다. 물론 탄핵소추는 끝이 아니다. 대통령의 직무정지라는 잠정 조치일 뿐이다. 그렇다고 헌재만 바라보며 손놓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물리적 광장이든, 온라인 공론장이든 다양한 시민들이 다양한 이슈를 제기할수록 민주주의는 확장되리라 믿는다.

 

보수든 진보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광장은 이제 닫혔다며 정치를 자신들의 전유물인 양 회수하려 할 경우 심판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밝혔듯 수많은 일인칭들이 독재와 폭력에 반대하며 광장에 섰다. 그 동력을 이어나가야 한다. 삶의 변화, 정치의 변화를 향해.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 경향 2024.12.17.

 

 

87년 체제의 파국응원봉이 내는 길

나는 19876월항쟁에 참여하지 못했다. 나름 부끄러운 사연이 있었다. 5월 초의 노동절 시위로 구속됐다가 6월항쟁 직전에 막 석방된 터였다. 학교에선 정학됐고 하릴없이 어머니 손에 이끌려 부산 고향집으로 내려가 집안의 서점 일을 도우며 지냈다. 버스 타고 시내 보수동의 서적 도매상 거리를 오가는 것도 일과였다. 하필 시위가 심한 곳이었다. 무거운 책 짐 양손에 들고 시위대와 전경 사이를 최루탄 맞으며 다녔다. 부모님이 들었을 책 짐의 무게와 전경대 너머 내가 있어야 할 자리 사이에서 눈물이 흘렀다. 어느 날 시위대가 집 앞을 지날 때 어머니 손을 뿌리치고 달려나갔다. 거리를 가득 메운 군중, 경적을 울리던 선두의 택시 행렬, 펄럭이며 대열을 이끌던 거대한 태극기. 내게 6월항쟁이 거대한 태극기의 이미지로 남아 있는 이유다.

 

202412, 전국 곳곳의 윤석열 탄핵 집회에서 우리가 본 것은 거대한 태극기가 아니라 온갖 기발한 문구가 아로새겨진 수많은 작은 깃발, 제각기 반짝이는 아이돌 응원봉이었다. 그리고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렸다. 1987년의 우리는 민주주의를 쟁취했고, 2024년의 우리는 그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37년 동안 한국 사회는 태극기와 아이돌 응원봉의 거리만큼 달라졌다. 변하지 않은 것은 군부와의 타협으로 만들어진 1987년의 정치체제뿐이다.

 

1214, 여의도 탄핵 집회 후 귀가한 동네 사람들이 뒤풀이를 열었다. 서로 위로하고 응원하며 시끌벅적했다. 한 이웃은 계엄이 선포되던 날 뉴스를 보자마자 차를 몰고 여의도로 달려갔다. 광주의 고등학생이었지만 항쟁 때 싸우지 못한 것이 평생 마음의 짐이 됐다는 그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가장 먼저 국회 앞에 당도했다. 처음 200여명이던 시민이 곧 수천명으로 불어났다. 그이들이 민주주의를 지켰다. 우리는 경의의 박수를 쳤다.

 

고등학교 2학년 딸과 함께 집회에 나간 이웃은 딸의 말을 전했다. “내 인생에 대통령 탄핵만 두번째야.” 모두 웃음이 터졌다. 2016~2017년 박근혜 탄핵 촛불 집회 때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집회에 나갔던 어린이, 청소년이 이제 청소년, 청년이 되어 동무와 함께 응원봉을 흔들며 민주주의를 외쳤다. 민주주의를 몸으로 체득한 세대다. 두려워하지도, 비장해지지도 않으면서 발랄하게 할 말을, 할 일을 다 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켰지만 민주주의 자체는 완전무결하지 않다. 늘 고치고 때로 갱신해야 한다. 1212, 부산대 사회학과 학생들과 가진 온라인 시국토론회에서 나온 청년 세대의 의견이 신선하고 문제적이었다. 학부생 한솔씨의 발언이 특히 그랬다. 민주당 권리당원으로서 적극 활동하고 있다는 그는 집회 현장에서 젊은이들, 여성, 퀴어, 장애인이 의견을 말할 때 민주당이 탄핵부터 시켜야 한다며 이들의 다양성을 묻어버리는 모습을 보았, “집회에 참여하는 게 참 좋지만 우리가 여기서 정말 민주주의를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2024년의 탄핵 집회에 가장 많이 참여한 이들은 한솔씨 같은 20대 여성이었다. 기성세대가 곧잘 미숙하다며 폄하하는 이들이다. 외국인도 제법 있었다. 나도 첫번째 집회 때는 외국인 친구와 함께했다. 성소수자의 깃발은 어디서나 무지개 빛깔로 나부꼈다. 장애인은 물론이다. 국회의사당 앞은 원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오랜 집회 장소였다. 그들의 싸움은 이 체제의 오류와 한계를 앞장서서 폭로하던 도화선이었다. 사실 더 많은 사람이 있었다고 말해야 한다. 위태롭고 불안정한 생계에 묶여 싸우지 못한 이들이 많았다. 싸울 이유가 가장 절실한 이들은 바로 그 이유 탓에 싸우지 못한다.

 

6월항쟁 때는 시민이 주체가 됐다. 넥타이 맨 중산층 남성 시민이 투쟁의 상징이 됐다. 군부와의 갈등도 타협도, 모두 이 중산층 시민이 갈망하던 형식적민주화를 둘러싸고 진행됐다. 0.1%만 이겨도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고, 거대 양당의 영구적 과두정이 보장되는 87체제가 이렇게 제도화됐다. 온갖 불평등과 차별의 해소는 이 체제의 과제가 아니었다. 202412월에 등장한 이들은 더 이상 중산층 남성 시민으로 축소되지 않는다. 아니, 이들이야말로 이른바 87체제에서 경시되거나 배제되어온 이들, 미숙하거나 자격 없다고 간주된 이들, 차별과 불평등으로 고통받아온 이들이다.

 

20대 여성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진보적이고 사회적으로 가장 활동적이며 문화적으로 가장 개방적인 집단이다. 왜 선거 때 잠시 액세서리로 쓰이고 버려져야 하는가? 지난 6월의 배터리 공장 아리셀 화재 참사로 18명의 이주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한국 사회는 이들의 노동으로 유지되고 있다. 왜 이들이 생명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싸울 권리를 가져선 안 되는가? 왜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목숨 끊는 이들이 생기는가? 윤석열은 물론이지만 문재인 정권도 끝내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면했음을 기억하자. 장애인 예산 비중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의 3분의 1 수준이다. 평생 집에, 시설에 갇혀 살라고 강요하는 선진국은 기괴하다. 공공부문과 대기업의 소수 정규직을 제외한 일하는 사람 대다수가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으로 위태로운 삶에 내몰려 있다. 능력이 부족하면 차별받는 게 마땅하다며 모욕하는 세상을 참기 어렵다. 민주주의가 이들의 존엄과 효능감을 높이는 데 계속 실패한다면 그때 닥칠 위기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윤석열은 헌법재판소에서 반드시 탄핵될 것이다. 그 일당도 철저히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함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제 정상으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들린다. 민주주의를 위해 단일대오로 뭉치자는 목소리도 들린다. 역사를 후퇴시키려는 반동 앞에서 우리는 늘 단일대오로 뭉쳤다. 미래를 향해서라면? 단일대오는 또 다른 억압일 뿐이다. 넥타이 맨 중산층 남성 시민이 군부와 타협해 만든 1987년의 정치 질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크게 삐걱거렸다. 이제 윤석열의 비상계엄으로 파국을 맞았다. 그 질서 아래서 들리지 않던 목소리들이 스스로 외치기 시작했다. 펄럭이던 태극기 대신 반짝이는 아이돌 응원봉이 말하는 바는 이런 것이다. 우리에겐 돌아갈 정상 상태가 없다. 이제 새로 길을 내며 나아가자.

조형근 | 사회학자 | 한겨레 2024.12.17.

 

 

K민주주의의 세계사적 함의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 이는 윤석열이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선물받은 명패에 적힌 문구로, 그의 집무실 책상을 장식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를 모든 권력은 내가 쥔다로 오독한 그는 무책임의 극치를 보이며 1214일 마침내 탄핵소추를 당했다. 무모한 정치 도박으로 제 무덤을 판 그의 행태를 보건대 남은 임기를 채웠다 해도 파란의 연속이었을 테다. 그러니 한국 현대사에 비극으로 기록될 이 사태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2024123, 45년 전 계엄의 망령이 살아나 이 나라 민주주의의 민낯을 드러냈다.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나 한류를 꽃피웠고, 광주항쟁의 비극적 서사를 시적 산문으로 승화한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기뻐하는 그해에 계엄이라니, 참담했다. 오죽하면 미국이 윤석열을 호통쳐주길 바랄 지경이었다. 한국 대통령이 혹여 또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니 미국의 도청도 묵인해야 하나, 그가 혹여 대북 도발도 감행할지 모르니 전시작전권 환수도 당분간 언감생심인가, 비애와 자괴감이 엄습했다.

 

필자는 이 사태의 비용을 경제로만 국한해 바라보는 일각의 경제제일주의를 경계한다. 이게 어찌 경제만의 문제인가? 우리의 인간됨이 정면 부정당하는 문제이거늘. 작금의 비극이 벌어진 한국 정치의 구조적 결함에 대한 뼈아픈 성찰이 시급하다. 제왕 아니 여왕의 군림을 허용한 대통령제, 적대적 공생관계에 안주하는 거대 양당 과두정치, 그 필연적 산물인 정치 양극화 등의 취약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충암파로 대변되는 망국적 정실주의, 음모론과 가짜뉴스로 확증편향을 부추기는 진영 논리의 폐해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지경이다.

 

하지만 우리는 1987년 이래 37살 신생 민주공화국의 시민불복종과 법치가 민주주의의 신속하고 강인한 회복력의 근간임을 세상에 각인시켰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모리스 알브박스가 제시한 집단기억의 순기능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나라가 위태로우면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 우리는 민주주의 쟁취의 집단기억을 체화하고 있어,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으로 남는 것”(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의 두려움에도 본능처럼 몸이 먼저 반응한다. 계엄이 선포되자 엄동설한에도 한밤중에 국회로 달려가고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을 선결제로 나누는 공동체 의식을 거슬러 올라가면, 1980년 광주에서 주먹밥을 나누며 피 흘린 집단기억에 이른다. 이렇게 얻어낸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감과 효능감이라는 역린을 누군가 건드리면 시민적 저항이 폭발한다. 이는 안전하고 즐길 수 있는 독특한 시위 문화의 핵심 토대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인용에 이르기까지의 지난한 여정이 지닌 세계사적 함의를 자각할 때다. 국내 탄핵 정국은 전세계가 주목하는 사안이 되었다. 특히 전세계 폭정자들이 두려움으로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이번 사태의 대외적인 함의가 묵직하다.

 

이 사태의 원숙한 해결 여부는 한-미 동맹 2.0의 가능성을 점치는 리트머스 시험지이기도 하다. 한국은 전후 미국의 원조 수혜국에서 바이든 정부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핵심 파트너로 거듭나, 미국에 내줄 것도 생긴 최초의 동맹으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일궈냈다. 이는 2023년 한국이 미국 내 외국인 직접투자와 관련해 고용창출에서 1위를 점한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도 당선 확정 후 일성으로 한국에 (군함) 조선 협력을 제안해 한국이 미국 안보에도 긴요한 파트너임을 입증했다. 나아가 이번 사태로 우리는 미국 정치의 미래를 비출 거울이 될 소중한 기회도 얻었다. 202116, 미국에서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는 이들이 넘었던 국회의사당 담장을, 한국에서는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이들이 넘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여차하면 폭력과 약탈이 수반되던 시위 현장을, 한국에서는 비폭력과 나눔의 축제 현장으로 탈바꿈시켰기 때문이다. 이야말로 한-미 동맹의 재도약이다.

 

여전히 독재와 전제정에 신음하는 개발도상국은 물론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모델로 여겨졌던 서방의 민주주의도 위기에 처한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민주공화국의 전범을 보여줄 때다. 이야말로 한류의 정수다. , 엄동설한에 국민을 길거리 축제로 내모는 몹쓸 정치, 제대로 갈아엎자.

김양희 | 대구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 한겨레 2024.12.17.

 

국민의힘은 왜 이럴까

대통령 윤석열이 틈만 나면 반국가세력을 외쳐댔지만 계엄이 현실화할 줄은 몰랐다. 12·3 비상계엄은 윤석열의 우발적 범행이 아니라 몇달 전부터 준비됐다는 사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회가 계엄을 2시간 만에 해제하지 못했다면 시민들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했을지, 지금도 모골이 송연하다.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냐거나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는 식의 윤석열의 담화는 망상에 사로잡힌 미치광이의 말이라고 치부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헌정 중단을 불러올 수 있던 내란을 막지 않고 윤석열 탄핵 후에도 방어에 급급한 국민의힘을 보면 의문이 생긴다. 국민의힘은 얼마나 갈 수 있을까.

 

국민의힘 의원 108명 중 12명만 탄핵에 찬성했다. 탄핵에 찬성한 한동훈 대표는 친윤석열계에 의해 사실상 축출됐다. 이 와중에도 친윤계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당선된 권성동 원내대표는 탄핵보다 더 무서운 건 분열이라고 했다. 야당이 제안한 여··정 협의체도 거부했다. 국회 추천 몫 헌법재판관 3명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해선 안 된다고 우기며, 인사청문회도 보이콧했다. 여당이라면서 국가 위기 상황의 혼란을 수습하려는 책임감은 눈곱만큼도 없다. 연예인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 최소 몇달은 대중 시선 밖에서 자숙하는 시늉이라도 하는데, 친윤계는 2선 후퇴는커녕 더 의기양양하다.

 

이런 친윤의 모습은 8년 전 친박을 보는 듯하다. 2016129일 박근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친박계는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을 발족했다. 그럴싸한 이름과는 딴판인 친박의 구당 모임이었다. 친박 당대표 이정현은 사퇴를 거부했고, 야당의 여··정 협의체 제안을 쓰레기통으로 가야 할 얘기라며 걷어찼다. 당시 탄핵안 표결 참여를 주도한 정진석 원내대표는 배신자였고, 김무성·유승민은 청산 대상이었다. 원내대표 선거에선 친박이 똘똘 뭉쳐 정우택 의원을 당선시켰다. 탄핵 이후 친박 색채는 더 짙어졌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 이유로 탄핵 트라우마를 얘기한다. 박근혜 파면 두 달 뒤 대선에서 패배하고, 21대 총선에서도 참패하면서 풍찬노숙 시기를 보냈는데, 탄핵 찬성파의 분열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잘못한 일에 대가 치르는 것을 트라우마로 표현해도 되나 싶지만, 박근혜 탄핵의 기억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국민의힘이 지금까지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당시 의원 122명 중 최소 62명이 탄핵에 찬성했고, 국민 뜻에 부응하려는 의원들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정 등에 기댄 것이긴 하지만 5년 만에 정권을 가져올 수도 있었다.

 

보수는 박근혜 탄핵을 겪으며 버티기만 배운 것 같다. 보수 지지층만 보고 고슴도치처럼 몸 웅크리고 견디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당시 새누리당에서 탄핵 찬성·비박계 33명이 탈당해 바른정당을 띄웠지만, 이들 중 22명이 10개월 만에 자유한국당에 복귀했다. 탄핵에 반대했던 자유한국당이 결과적으로 보수의 주도권 경쟁에서 이긴 셈이다.

 

국민의힘은 이번에도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시간이 흐르면 진보·보수 양당 구도가 복원될 것이고, 정치적 부활이 가능할 거라고 보는 듯하다. 윤상현이 탄핵에 반대해도 1년 지나면 다 찍어주더라고 버젓이 얘기하는 실정이니 말이다. 지금 국민의힘이 믿는 구석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2심 유죄만 나오면 대선도 해볼 만하다는 것이다. 지난 4월 총선 때 이재명 사법리스크만 붙잡고 심판론으로 매진했다가 폭망한 일은 잊은 모양이다. 보수가 반이재명 정서에 의지할수록 이재명의 생명력이 유지된다는 건 간과하고 있다.

 

한때 선거는 보수에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이명박근혜’ 9년은 보수정당이 국가를 운영해도 되겠냐는 의문을 던졌다. 보수정권은 정치·사회적 반대파를 으로 인식하고, 국가권력을 불법 동원하기도 했다.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권위주의 시절로 뒷걸음질쳤다. 보수정당은 속으로 썩어들어갔다. 당명을 바꾸는 게 쇄신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아스팔트 보수에 기대면서 자생력은 점점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지금 국민의힘은 정상적인 보수정당이 아니다.

 

박근혜와 윤석열의 탄핵 사유는 차원이 다르다. 윤석열은 어차피 단죄되고, 전직 대통령이 될 것이다. 국민의힘은 어떻게 할 것인가. 윤석열을 버리고, 이재명을 놓아야 한다. 상식과 합리에서 멀어지고 극렬 지지층만 품는 가짜 보수는 영속할 수 없다.

안홍욱 논설위원 | 경향 2024.12.18.

 

 

다른 목소리

김예지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1차 탄핵소추안에 찬성표를 던진 국민의힘 의원 2명 중 1명이다(다른 한 명은 안철수 의원). 시각장애인인 김 의원은 3일 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표결에 참여하려고 국회 월담까지 생각했으나, 안전을 우려한 당시 한동훈 대표의 만류로 뜻을 접었다고 한다. 김 의원은 BBC코리아 인터뷰에서 우리 당이 만들어서 세운 대통령을 탄핵소추하는 안건에 대해 표결해야 한다는 무겁고도 무겁고도 정말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면서도 제가 대리해야 하는 시민들을 대신해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할 일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고 말했다. ‘계엄은 잘못이지만 탄핵은 안 된다. 질서 있는 퇴진은 물 건너갔지만 탄핵은 안 된다. 당론이 탄핵 반대니 탄핵은 안 된다. 대안은 없지만 무조건 안 된다, 집권여당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무책임·무논리에 맞서, 그는 양심이 낸 다른 목소리에 따라 행동했다. 김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 100여명이 쌓은 거대한 둑에 흠집을 냈고, 2차 탄핵소추안 표결에서는 둑이 무너졌다. 국민의힘 의원 다수는 여전히 언더커버 경찰의 존재를 알아챈 영화 속 조폭처럼 배신자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국회 밖에서도 다른 목소리는 외롭다. 심미섭 페미당당 활동가는 비상계엄이 내려진 날 곧바로 국회로 향했다. 많은 이들이 영부인이 대통령 옆에서 술 먹이고 조종한 것” “쥴리 계엄같은 얘기를 했다. 낯선 상황은 아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도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같은 여성혐오 언사가 광장에서 빈번하게 들렸다. 여성 대통령의 실패는 여성의 실패로, 남성 대통령의 실패는 그 부인의 실패로 인식된다. 심미섭 활동가가 이번 촛불집회 때 자유발언 기회를 얻어 투쟁현장에서 페미니스트, 퀴어, 장애인, 비정규직 같은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 호응이 넘치던 현장이, 페미니즘이라는 말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삿대질하며 끌어내려!’라고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심미섭 경향신문 기고).

 

비상계엄이 선포된 123일은 세계장애인의날이었다. 불굴의 투사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는 국회에서 7대 장애인권리법안 제·개정 및 장애인권리예산 반영을 요구하는 12일 농성을 하고 있었다. 박 대표는 이튿날 더불어민주당 비상시국대회 이후 의원과 당원이 간이 토크쇼를 하는 현장을 찾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런 행사하는 데 와서 그렇게 하면 호소력이 있겠어요. 미움만 받지. 마이크를 드릴 테니까 할 얘기 하고 그다음에 조용히 하세요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윤석열을 탄핵한다고 장애인의 권리가 저절로 보장되지 않는다. () 민주당 권한으로 처리할 수 있는 장애인 권리 입법에 대해 당론으로 채택해달라고 외쳤다. ‘윤석열 탄핵소리에 환호하던 사람들은 민주당에 대한 비판이 나오자 슬슬 짜증을 냈다. 결국 그를 둘러싼 사람들로부터 들려온 소리는 구걸하지 마세요” “더 힘든 사람도 많아요” “이재명 대통령 만들고 얘기합시다였다. 사람들은 그만 끝내라는 듯 야유가 섞인 박수를 쳤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자신의 엑스에 민주주의가 만개할 때 오히려 묻히는 투쟁들전장연, 동덕여대, 한화오션, 구미 옵티칼 고공농성을 꼽았다. 비상계엄의 공포와 탄핵의 기쁨이 열흘 새 급격히 자리를 바꿨지만 이들 현장에선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가 목격한 한국의 민주주의는 늘 누군가를 버리고간다.

 

모두가 만족하는 세상은 없다. 다양한 세상의 다양한 욕구들은 매 순간 충돌한다. 소신과 독선, 권리와 억지의 경계는 희미하다. 다만 민주주의는 다른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다. 주류와 달라 듣기 불편한 의견을 척결하고 처단하지 않는다. 누가 선량한 국민인지, 누가 반국가세력인지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지지하는 대선 후보가 다르다고 하여 동료 시민을 혐오하지도 않는다. 민주주의는 제도의 문제이기 이전, 세상과 사람의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문제다.

 

탄핵은 탄핵이되 어떤 탄핵인가. 이후의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오기까지, 그리고 혹시 있을 대선이 치러져 새 대통령이 뽑힐 때까지, 아울러 새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지치지 말고 던져야 할 질문이다.

백승찬 문화부 선임기자 | 경향 2024.12.18.

 

 

그들의 나라, 우리들의 나라

1214, 국회에서 윤석열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다. 11일 만이었다.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우리나라 주권자들의 저력과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확인해준 시간이었다. ‘국난 극복이 체질이 된 대한민국 주권자들은 2차 비상계엄이 선포될지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서도 차분히 행동했다.

 

8년 전 박근혜 탄핵 때의 시위문화와도 달랐다. 대한민국 주권자들은 겨울강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시위에 참여했다. 저마다의 깃발을 만들었고, K팝과 민중가요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고, 다 함께 구호를 외쳤다. 메인 시위대가 진행하는 본행사 외에도 작은 민회(民會)를 연상시키는 공론장들이 곳곳에서 펼쳐졌다. 20세기 초 혁명가 옘마 골드만이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라고 한 말이 참으로 실감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12·14 탄핵소추안 통과는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버전업을 위한 첫걸음을 뗐을 뿐이다. 우리는 독재자를 권좌에서 잠시 직무정지시켰을 뿐 완전히 몰아낸 것이 아니다. 가까스로 헌법재판소의 법정과 역사의 법정에 세웠을 뿐이다. 어제까지 눈떠보니 선진국타령에 우쭐해하던 주권자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계엄을 선포한 유일한 나라라는 불명예를 떠안으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자괴감이 드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지금부터의 시간이 중요하다. 우리가 바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어떤 나라에 살고 싶은가. 윤석열 퇴진 이후 그들의 나라를 넘어 우리들의 나라를 상상하고, 무엇이 좋은 나라인지 사회대개혁을 위한 사회협약을 이루어야 한다. 헌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여야와 시민사회가 사회대개혁을 위한 공론장을 가동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 같은 실패를 더 이상 되풀이해선 안 된다. 정책을 추진할 뿐만 아니라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와 철학을 적극 고민해야 한다.

 

쉽지 않다. 혐오와 배제의 분쟁 사회가 되어버린 정치 지형에서 만만치 않다. 하지만 함석헌 선생이 비전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던가. 나라 전체가, 사회 토대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비상한 위기의식을 갖고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한다. 죽은 말이 되어버린 공정과 상식의 가치를 바로 세우고, ‘사람을 귀히 여기는 생명 존중의 문화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를 포함한 사회권 논의를 통해 노동하기 좋은 나라와 인권이 존중되는 나라라는 사회 비전을 협약해야 한다. 기후위기 같은 탈근대 과제들 또한 외면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공위기(空位期)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낡은 것은 갔지만, 새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지금의 시간이 헌재의 시간 이후의 시대를 예비하는 변곡점의 시간이 되기를 나는 희망한다. ‘드높은 문화의 힘을 한없이 신뢰했던 백범 김구 선생의 사회 비전을 다시 생각한다. 만민평등의 세상을 바랐던 19세기 말 동학 사상과 운동에 눈길이 자주 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근착 녹색평론에 실린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동학이 지향한 민주주의는 모시는 시민(侍民)들에 의한 시민(侍民) 민주주의였다.”(조성환) 민주주의는 영구혁명이다. 대한민국 주권자들은 지금, 우리들의 나라를 위해 아름다운 저항을 하고 있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 경향 2024.12.18.

 

 

좀비를 탄핵하라

지난 3일 한국인들은 충격적 비상계엄 포고를 접했다. 의회활동 금지 등 반헌법적 조항을 담고 (자유)민주주의 자체를 통째로 부정하는 계엄 포고문은 현실이라기엔 너무 황당했다. 계엄 병력의 소극적 태도와 시민들의 저항에 힘입어 국회는 여당의 조직적 비협조에도 계엄 해제 요구안을 즉시 통과시켜 친위 쿠데타시도를 중단시켰다. 11일 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 재석의원 3분의 2를 겨우 넘겨 통과되었다.

 

모두가 ‘2024년의 현실로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이 사태는 2016년 후반 정치상황과 흡사했다. 대통령 박근혜의 직무태만과 국정농단, 이에 대한 범시민적 비판·항의, 권부의 친위 쿠데타(비상계엄) 계획, 여당 의원 다수가 동참한 대통령 탄핵안 가결과 헌법재판소의 탄핵은, ‘내란 수괴로서 형사처벌과 직무탄핵 전망이 극명한 윤석열의 정치적 말로와 닮았다. 국민의힘이 탄핵 트라우마운운하며 탄핵안 가결을 막으려 했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박근혜 및 윤석열 집권기의 유사한 정치적 비정상성을 방증한다.

 

그 유사성이란 자체 정치·정책적 어젠다가 모호한 집권세력이 과거 권위주의 군부독재의 파생물로서 사법기구의 정치적 종속, 일부 지역(영남세대(장노년)(수구적이라기보다는) 허구적 보수성에 기대 국정을 권위주의적 무책임성으로 일관하고 이에 따른 사회·경제적 위기가 시민들로 하여금 직접민주주의적 광장정치에 나서게 한 것이다. 이는 21세기 한국 민주주의가 과거 역사로나 여겼던 극우 군부독재의 정치문화적 유제로서 일종의 좀비(zombie)적 인물, 정파, 지지층에 의해 형해화되었음을 뜻한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이번의 난데없는 비상계엄 선포 때, 한국인들은 역사적 좀비에 의해 통치되고, 아니 학대받았다. 즉 박근혜와 윤석열의 퇴장은 좀비에 대한 탄핵인 셈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 다른 좀비 출현의 원천 봉쇄가 아니라는 딜레마가 있다. 사실, 박근혜 탄핵 후 정상적민주주의의 회복은 이후 문재인 정부의 표면적 안정성에도 불구하고 반대세력의 집권과 파행으로 이어졌다. 2016촛불항쟁1987년 민주화의 주역 시민들에게는 이번 비상계엄 내란 사태에 대한 범시민적인 항거가 일종의 시시포스(Sisyphos)적 형벌로 느껴진다. 그래서 배우 최민식씨를 포함한 수많은 기성세대가 맹추위 속에서 국회 앞을 비롯한 전국에서 응원봉을 든 청년들에게 미안함을 표시했다. 음료와 김밥의 선결제 릴레이를 벌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좀비정치 시대의 극복은 무엇보다 정책·이념적 차원에서 (21세기적) 정상성을 가진 보수 정치세력과 정당이 제대로 자리 잡아야 가능하다. 아니면 좀비 정파가 그 지지층마저 좀비화시켜 상식적·생산적인 국정 대신에 허위적 사회 분열·반목이 확대재생산되는 혼란이 지속될 것이다. 탄핵안 통과를 위해 국회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국민의힘 김상욱 의원의 호소는 더 이상 좀비로 남지 말자는 절박한 외침이었다(반면 같은 당 고참 정치인들의 윤석열 비호는 좀비정치에 대한 기회주의적 기대와 의존이다).

 

자칭 민주()” 세력도 좀비정치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주류 양당의 적대적 담합정치를 통해 좀비성을 공유하는 건 아닌지 자성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에 이어 신자유주의적 불평등, 빈곤, 소외에 처한 서민들을 혁신적 정책노선을 통해 정치적 지지 기반으로 다지는 데 실패했고 심지어 청년세대의 신뢰조차 얻지 못했다. 민주당의 핵심 지지 기반인 호남도 보수정파의 좀비정치에 따른 반사이익의 성격이 강하며, 이에 대한 호남사회의 불편함이 일부 총선에서 드러났었다. 보수, 진보, 중도를 막론하고 시민과 사회를 과학적으로 대표하지 못하는 정파는 결국 기회주의적 좀비정치에 대한 미련을 떨칠 수 없다.

장경섭 서울대 석좌교수·사회학| 경향 2024.12.18.

 

 

내란옹호자는 개헌을 말할 자격이 없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13일 국회의장을 예방해 지금이 헌법을 개정할 수 있는 적기라고 말한 데 이어, 18일엔 당대표 권한대행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개헌 카드를 꺼냈다고 한다. 그는 집권당 원내대표와 당대표 권한대행으로서 해야 할 말, 국민들이 그에게 듣고 싶은 많은 말들 가운데 왜 하필 개헌에 대해 말했을까?

 

먼저 그에게 이 사태와 헌법의 관련성에 대해 묻고 싶다. 윤석열은 헌법을 지켜 내란을 일으킨 게 아니라 헌법을 위반해 내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는 헌법과 계엄법이 규정한 비상계엄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했으며, 비상계엄을 선포할 때라도 입법부인 국회,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조치를 취할 권한이 없음에도 군을 보내 장악하려 했고,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했음에도 해제를 머뭇거렸다.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키려고 예비 또는 음모한 것이 관련자들의 증언을 통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윤석열은 헌법때문이 아니라 헌법에도 불구하고 이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런데 왜 헌법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 제일성이어야 했는지 묻고 싶다.

 

다음으로, 개헌 주장의 자격에 대해 묻는다.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무슨 자격으로 헌법 개정을 논하는가. 그 당이 배출한 대통령이 내란 범죄를 저질렀다. 민주헌법 채택 이후 37년 만에 처음 있는 쿠데타 시도로 전 국민이 아직도 충격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런 때,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헌법 개정을 논하는가. 그 대통령이 지난 2년 반 동안 헌법과 법률의 경계를 넘나들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 대통령이 계엄을 모의하고 준비하던 지난 수개월 동안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 그 대통령이 기어이 위헌적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시민들이 계엄군과 맞서 국회를 지키던 그날, 다른 국회의원들이 담을 넘어 본회의장으로 향하던 그날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합헌적 절차에 따라 한국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탄핵소추안 표결을 할 때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

 

설사 지금 헌법이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 할지라도, 당신이 입에 올릴 말은 아니다. 적어도 현행 헌법은 민주주의자들의 규율이자 규범이다. 이 헌법하에서 대한민국 시민들 압도적 다수는 민주주의자로 살아가고 있고 우리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했다. 개헌은 헌법을 지킬 의지가 있는 민주주의자들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있는 헌법도 수호할 의지가 없는 당신과 당신네 정당 다수 국회의원들이 개헌을 논할 자격은 없다.

 

일부 언론에서는 윤석열의 범죄를, 혹은 그 범죄에 이르게 된 원인을 두루뭉술 ‘87년 체제의 한계와 연관시키는 주장들도 보이는데, 동의하기 어렵다. 지난 37년 동안 우리는 윤석열까지 포함해 8명의 대통령을 경험했다. 그중 1명을 탄핵으로 파면했으며 지금 또 1명에 대해 파면 여부를 다투는 중이고, 나머지 6명은 헌법 테두리 안에서 임기를 마쳤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종료 뒤 범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재임 중 헌법을 위반한 범죄 때문은 아니었다. 윤석열의 범죄는 지난 두번의 대통령 탄핵소추나 한번의 탄핵 인용 사례와는 질이 다른 중대범죄다.

 

이번 사태를 경험하면서 우리 사회가 먼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문제는, 제도보다 사람, 그리고 제도적 실천에 관한 것이다. 헌법 수호 의지가 없는 자가, 민주주의 규범을 한낱 집권을 위한 장식쯤으로밖에 인식하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주요 정당의 후보가 되고 대통령이 되었는가. 대통령인 그가 군을 동원해 입법부를 침탈하려고 할 때 그의 주변에 있었지만 모르거나 알고도 말리지 못했던 사람들은 왜 그렇게 되었는가. 내란을 일으킨 그를 여전히 두둔하거나 감싸고 있는 사람들을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헌법의 관점에서 어떻게 판단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민주주의자와 아닌 자를 어떻게 판별할 수 있으며, 민주주의자가 아닌 사람을 선출 공직으로부터 격리할 방법은 무엇인가. 제도의 문제는 이 모든 문제를 충분히 논하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아니, 선행하는 문제를 논의해야만 제도 개선의 방향이 보일 것이다.

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 | 한겨레 2024.12.18.

 

한국 민주주의의 안정성이 미더운 이유

123일 계엄 선포 이후 곧 반대 시위 영상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세계를 돌아다녔다. 그중 특히 관심을 끈 짧은 영상에 시민이 다가오는 군인을 붙잡고 몸을 돌리며 밀어내는 장면이 있다. 그 장소에 모여 있던 시민과 군인들이 서로를 해칠 의도가 없다는 손동작도 보였다. 내가 아는 미국 사람들 여럿이 그 영상을 보고 감탄했다. 무엇보다도 미국이라면 그 시민이 당장 총에 맞아 죽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많았다. 이번 민주 시위에서 나온 영상들은 대체로 그런 모습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참여했는데도 모든 집회는 질서 정연했고 군·경찰과 시위대 사이의 접촉은 부드러웠다. 124일 새벽 계엄해제가 신속하게 진행되기까지 일반 군인들의 암묵적인 협조가 중요했다는 이야기도 많다. 이번 같은 중대 사태가 아닌 일상 치안에서도 한국 경찰의 폭력이 문제가 되는 일은 드문 것 같다. 반면 독일 데이터 회사 스타티스타 자료를 보면 미국 경찰에 의해 사살당하는 사람은 연평균 1000명가량 된 지 꽤 여러해다.(지난해는 1164명이었다.)

 

어떤 사회 현상이든 자신 있게 이것 때문이라는 주장은 항상 주의해서 보아야 한다. 현상들 사이의 상관관계를 사회 복잡계 안에서 객관적으로 조사하기도 힘들고, 또 많은 이가 자기 선입견과 부합하는 상관관계는 쉽게 인과관계로 규정하지만 마음에 안 들면 증거를 캐묻기 마련이다. 그러나 술렁이는 분위기와 정치적 대립이 눈에 띄는 상황에서도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상호신뢰 자체는 상당히 강하다는 인상을 이번에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계엄은 40년간 외국에 살면서 한국 정치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도 상당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계엄이 해제되기까지의 몇시간을 제외하면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던 날까지 심각한 걱정을 거의 안 했던 게 솔직한 심정이다. 1271차 탄핵 투표가 무산됐을 때에도 곧 다시 발의가 있을 것이라는 발표를 보고 그럼 큰 문제가 없겠네했던 것이 나의 심리였다. 달리 표현하면 국민들이 문제를 잘 해결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한번도 흔들릴 이유가 없었다. 이것은 당연히 무책임한 태도이고 자주 한국을 방문해 학술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이들의 노력에 기대어 산다고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재외 국민이 들여다본 한국의 모습이 사회 내에서 경험할 때보다 훨씬 안정적인 것일 수도 있다.

 

민주주의를 측정하는 지표가 여기저기서 인용되지만 객관적인 척도를 마련하기 어렵다는 것은 대부분의 정치학자가 안다. 영국 시사지 이코노미스트는 선거 절차와 다원주의’, ‘정부의 기능’, ‘정치적 참여’, ‘정치 문화’, ‘시민적 자유다섯개 카테고리로 분류된 60개 질문으로 주관적인 전문가 평가를 취합해서 민주주의 지표를 만들어낸다. 그 지표에 따르면 2023년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나라는 노르웨이였고 한국은 22위였다. 참고로 영국은 18, 미국은 29위였다. 이에 더해, 현재 지표를 넘어선 민주주의 안정성도 당연히 관심 대상이다. 사회의 현 상태는 온갖 압력의 평형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물질세계를 과학적으로 기술할 때와 마찬가지로 그런 사회 평형이 얼마나 안정적인가는 매우 중요하다. 이번 사태가 강하게 시사한 바가 바로 그 안정성이 보통 정치 지표에 쉽게 나타나지 않는 시민들의 의식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대립 되는 시각을 보유한 사람들 사이에 내재한 신뢰와 스스로 나라의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는 참여 정신, 그리고 법적인 절차에 대한 평균적인 인식 수준이 그런 안정성의 기반이다.

 

지금은 어디에 살든 지도자가 도발적이고 이상한 행동을 할 잠재적 가능성을 거의 모든 사람이 의식하고 있다. 그런 정치적 요동에 반응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 문화가 어느 나라에 구축되어 있는가? 가령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사회적 소요를 일으킬 경우 그에 적절하게 대처할 시민사회의 저력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회의적이다. 그에 비해 지난 열흘은 한국이 세계적으로 안정적인 민주주의를 보유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는 중요한 기간이었다.

김민형 | 영국 에든버러 국제수리과학연구소장 | 한겨레 2024.12.18.

 

 

해방 80, 7공화국 시대를 열자

지난 열흘은 절망과 희망, 환멸과 환희의 변곡점을 수없이 오간 나날이었다. 반세기 전 사라진 줄 알았던 비상계엄의 악령을 한밤중에 모여든 용감한 시민들이 막아냈고, 기회주의적인 정치인들의 괴이한 행동에 경악하면서도 여의도 거리의 활력과 열기, 풍자와 해학에 진한 감동을 맛보았다.

 

이제 윤석열의 시대는 끝났다. 내년 초에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탄핵을 인용할 것이다. 온 국민이 지켜본 명명백백한 내란 범죄에 대해 다른 판결 가능성은 없다. 남은 것은 내란죄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뿐이다. 쿠데타를 정치적 수단으로 삼는 질긴 악습을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법정 최고형으로 엄단해야 한다.

 

국민의힘도 수명을 다했다. 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반대하는 정당은 도대체 어느 나라 정당인가. 의원 대다수가 내란 수괴의 탄핵에 반대표를 던짐으로써 스스로 내란죄의 공범이 되었다. 스스로 기회주의적 수구 정당, 반민주적 파쇼 정당임을 고백했다. 박정희, 전두환의 쿠데타 정당의 피가 연면히흐르고 있음을 자인했다.

 

수구보수 국민의힘이 괴멸했으니, 자유주의 보수인 더불어민주당만 남았다. 민주당의 독주 시대가 열렸다. 이제 민주당은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자각해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뿌리대로 좋은 보수가 되는 것이다. 진보를 가장하지 말고 보수다운 보수가 됨으로써 다시는 수구가 보수를 참칭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스스로 파멸한 수구를 정치의 무대에서 완전히 퇴장시키고 자신의 왼쪽에 합리적인 진보가 등장할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지난 80년간 한국 정치를 왜곡해온 수구-보수 과두지배 체제를 끝장내고, 진정한 보수-진보 대결 체제를 세우는 것이다.

 

윤석열의 시대가 끝났다고 바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윤석열이 아니다. 윤석열이라는 괴물을 낳은 우리의 낡은 제도, 관행, 의식, 규범이 문제다. 윤석열은 제왕적 대통령의 전형이자 신자유주의의 선봉장이고, 권위주의의 화신이자 능력주의 경쟁교육의 산물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 권위주의적 조직문화, 능력주의 경쟁교육을 개혁하지 않는 한 괴물 윤석열은 언제든 부활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시대착오적인 구질서, 이 앙시앵레짐을 타파해야 한다.

 

2025년은 해방 80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해이다. 내년은 새로운 대한민국의 원년이 되어야 한다. 윤석열로 상징되는 낡은 대한민국을 혁파하여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분권형 대통령제 혹은 의원내각제로 권력구조를 바꾸어야 하고, 수구-보수 과두지배 체제를 유지시키고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막아온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자유시장경제에서 사회적 시장경제로 경제체제를 개혁해야 하고, 냉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한반도의 국제질서도 재편해야 한다. 또한 권위주의 문화는 민주주의 문화로, 능력주의 교육은 존엄주의 교육으로 바꿔내야 한다. 그리하여 명실상부 성숙한 민주국가, 선진적 복지국가로 진입해야 한다.

 

어떻게 새로운 공화국을 만들 것인가. 무엇보다 경계할 것은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결코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민주당만으로는 한국 사회의 질적 변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함께 배웠다. 모든 시민사회단체가 힘을 합쳐 새로운 대한민국의 청사진을 그려내야 한다. 나는 국가대개혁 범국민시국회의’(가칭)를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학계, 교육계, 종교계, 노동계, 문화계, 법조계 등 모든 시민사회단체가 정치계와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비전, 7공화국의 청사진을 설계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이 모든 논의를 독점하거나 주도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당은 박근혜 탄핵 이후 국민이 건네준 압도적 권력에도 불구하고, 즉 대선·총선·지방선거의 압승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개혁을 거의 한 것이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통절히 반성해야 한다. 박근혜 탄핵은 수구에만 트라우마가 된 것이 아니다. 수구 보수에 박근혜 트라우마가 있다면, 자유주의 보수와 진보엔 문재인 트라우마가 있다.

 

한국 현대사를 돌아볼 때 참으로 놀라운 점은 광장을 뒤흔드는 역동적인 국민주권의 에너지이다. 김대중을 살리고 노무현을 세운 바로 그 에너지가 다시 살아나 윤석열을 몰아냈다. 이 광장의 활력과 열기를 체제 전환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폭발적인 국민주권의 에너지를 모아 해방 이후 80년 동안 지속된 구체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대한민국, 7공화국 시대를 열어야 한다.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 한겨레 2024.12.18.

 

 

내란의 뿌리를 뽑으려면

내란 사태는 한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친위 쿠데타가 일단 진압됐더라도, 우리가 내란이 일어나고만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는다. 이것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돼버렸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우리는 이념, 정견에 상관없이 힘을 합쳐 내란의 뿌리를 뽑는 일에 나서야 한다. 뿌리가 없고서야 독을 품은 열매가 열릴 리 없다. 뿌리는 여러 가닥이겠지만, 그중에서도 반드시 직시해야 할 게 있다. 6공화국에서 당연시되어 온 권력 집중의 신화가 그것이다.

 

현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라는 시민들의 요구를 수용하며 제정됐고, 그래서 직선 대통령이라는 단 하나의 구심을 바탕으로 국가의 나머지 질서가 구축돼 있다. ‘직선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이 구조는 4공화국, 5공화국과 단절하지만, 바로 그 점에서 3공화국으로 회귀했다고도 할 수 있다. 3공화국 헌법을 탄생시킨 주역은 물론 5·16 군사 쿠데타 세력이다. 이들은 산업화나 경제성장을 달성하려면 권력이 대통령 1인에게 최대한 집중돼야 한다는 생각을 제3공화국 헌법에 새겨 넣었다.

 

6공화국 헌법은 이런 권력 집중의 신화를 그대로 이어받으면서도 4, 5공식 독재는 청산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깨어 있는 시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이라면 민주 헌정을 충실히 수호할 것이라는 대전제에 발 딛고 서 있다. 그리고 이 질서는 지난 40여년간 별문제 없이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대다수 대한민국 시민은 여전히 더 나은 계몽 군주에 대한 기대를 담아 대통령 선거에 민주주의의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123일 밤, 우리는 이 질서의 대전제가 실은 얼마나 불안하고 불확실한 것이었는지 적나라하게 목격했다. 민주공화국의 수호자로 상정됐던 그 대통령이 민주공화국을 전복하기 위해 내란을 기획, 조직하고 진두지휘했다. 윤석열은 전 정권에 불만을 가진 광범한 유권자의 평균을 대변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며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막상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이런 가면을 벗어 버리고 극우 이념과 음모론에 휩쓸리는 극소수의 대변자로 분연히 일어섰다. 그 밤에 제6공화국이 딛고 서 있던 지반이 무너졌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친위 쿠데타로 4(유신) 시대를 연 것 역시 제3공화국의 대통령이 아니었는가. 윤석열은 이 전례를 철저히 학습하고 반복하려 했을 뿐이다. 박정희 시대가 이후의 헌법들에 남긴 시한폭탄을 꺼내 단추를 눌렀을 뿐이다. 집중된 권력을 손에 쥔 대통령이 이끄는 한국적 민주주의(혹은 K민주주의)’의 세계와 친위 쿠데타, 군사 반란, 독재의 세계를 가르는 경계는 이토록 흐릿한 것이었다.

 

이런 사건이 저질러진이상 이제 우리의 모든 민주주의 제도는 이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윤석열은 너무나 기괴한 인간형이어서 또 다른 윤석열들이 나오기는 힘들다는 가정은 성립할 수 없다. 윤석열이 감히 국민과 동일시한 극우 유튜브 방송은 낡은 시대의 유산이 아니라 최첨단 현상이다. 초집중적 대통령제를 그대로 놔둔다면 이 제도가 이런 미지의 흐름들과 만나 민주공화국의 골간을 흔들 가능성이 계속 늘어나기만 할 것이다.

 

이 점에서 내란 사태 이후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는 분명하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국회로, 지방으로, 시민으로 분산하는 전면 개헌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계와 약점을 노출한 제6공화국만이 아니라 장기 제3공화국 시대를 비로소 끝내야 한다.

장석준 |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 한겨레 2024.12.19.

 

 

거리에 피어난, 여기 꺾을 수 없는 꽃들이 있다 [특별기고]

한국에 비상계엄?”

동료가 문자를 보냈다. 유난히 삐걱거렸던 하루에 가짜뉴스까지. 짜증이 확 났다. 하지만 곧 쏟아지는 문자들. 내용은 똑같았다. 누구는 물음표를 붙이고, 누구는 느낌표를 달았을 뿐이다. 니네 대통령, 얼굴이 불콰하니 술 세게 먹었나 보더라. 나보다 먼저 계엄 선언의 장면을 본 친구가 한마디 더 보탰다. 열렬한 지한파라고 했던 친구다. 수십년 동안 피로 쌓아올린 민주주의는 저 농담 같은 한마디에 순식간 무너졌다. 이미 비비시(BBC) 화면에는 무장한 군인들이 헬기를 타고 국회로 날아들었다.

 

나는 그때 한국의 대척점에 있는 칠레를 생각했다. 작가 한강은 소설 소년이 온다에 계엄을 기록했다. 계엄이 오면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고 적었다. 그녀가 노벨상을 받으러 가려는 길에 계엄이 다시 왔다.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는 1971년에 뜨거운 사랑의 기록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너도나도 그의 시를 읽었다. 곧 칠레에 계엄이 왔고, 그의 집에 군인이 몰려왔다. 그는 더 이상 기록하지 못하고 독살되었다. 계엄은 인간이 아프게 기억하고 뜨겁게 사랑한다고 착각할 때 예고 없이 찾아오는가 보다.

 

계엄이란 말부터 틀렸다. 군대 통치라는 살벌한 현실을 엄히 경계한다로 애매하게 표현한다. 계엄은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한다. 총을 겨누고 하는 말. 네가 잘되길 바란다며 제 아이를 두들겨 패는 패악질의 아비와 다를 바 없다. 모든 언어가 그 뜻을 상실한다. 그중에서도 국민은 가장 오염된 언어다.

 

하지만 계엄은 민주주의에도 불구하고 오는 것이 아니다. 탄탄하게 다져 올린 담벼락의 미세한 틈 하나에서 밀고 올라와 독기를 세우는 덩굴옻나무처럼, 계엄은 민주주의 안으로 갈라진 금 사이에서 나온다. 퇴락의 징조는 적지 않았다.

 

민주주의는 쉽게 방심한다. 안팎으로 방어막을 세우고 시스템을 정교하게 한다고 늘 요란스럽지만, 역사는 분명하지 않나. 민주주의는 그 견고하다는 벽 안에서 무너진다. 2차대전 이후 나치즘을 원천봉쇄하려고 고통스럽게 키운 독일의 민주주의는 지금 다시 나치즘과 마주하고 있다. 40여년 만에 계엄이 한국에 다시 찾아왔을 때, 이를 반긴 사람들은 계엄을 겪었던 사람들이다. 그중에는 학살, 고문, 강제진압으로 고단한 삶을 연명해 갔던 사람도 있다. 이런 이들이 이제 국무위원이 되어 묻는다. 불법한 계엄을 한 대통령이 탄핵되면 국민에 무슨 유익함이 있나?” 계엄의 기억은 몸속에 남아 끊임없이 변주되어 살아온다.

 

민주주의라는 고귀한 가치, 이 또한 사람의 일이다. 정치란 사회적 해법을 찾는 과정이지만 이 숭고한 과정이 사람을 타락시킨다는 사실을 슬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국민의 대표라는 환상과 늘 싸워야 한다. 동종교배는 열등한 자손을 낳다는 생물학적 원리가 인간의 정치계에서 간단히 무시된다. 무한하게 다양한 사람들을 대표한다는 사람들의 직종은 손에 꼽힌다. 온통 법률가다. 나랏일이 대부분 법을 통해야 하니 그러려니 하겠으나, 그 법은 점점 그들이 대표하는 국민이 아니라 당사자를 향하고 있다. 그러니 법으로 난리법석이다. 서로 날카롭게 찔러댄다. 대통령도 법의 이름으로 계엄을 하고, 정당도 법의 이름으로 합리화하고 저항한다. 게다가 서로 알고, 더러는 같은 뿌리다. 서로 고발하고, 기소하고 판결한다. 권력을 가진 사람도, ‘저항하는 사람도 같은 무리다. 오늘날 가장 처절하게 저항할 수 있는 그룹은 의사라는 점은 상징적이다. 민주주의는 점점 포획되어 간다.

 

포획된 민주주의는 배불리 먹여주진 않는다. 먹고사는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 정치가 골목가게, 공장, 배달 오토바이에서 멀어진다. 사회적 자원을 어떻게 모아서 사람들을 지원하고 투자할 것인지 궁리를 하지 않고, 다시 법적인 것으로 돌아간다. 돈 한푼 들이지 않고 펜으로 문장 바꾸면서 민생을 돌보려 한다. 이번 계엄은 주식시장과 환율시장을 무너뜨리고, 가게들이 줄지어 선 골목을 텅텅 비게 했다. 민주주의가 주머니를 두툼하게 해줄 거라는 기대는 접었더라도, 가뜩이나 가벼워진 주머니를 털어가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계엄은 국회 앞에서 실패했고, 시장과 골목 입구에서 실패했다.

 

퇴락한 민주주의 정치는 공동의 답을 찾지 못한다. 날을 세워 대립하면서도 국민의 마음을 다져 해법을 찾지 못한다. 답을 내어야 할 때 답을 내지 못하면, 정치는 길거리를 쳐다본다. 너도나도 다시 국민의 뜻을 찾는다. 그래서 국민은 억울할 만큼 바쁘다. 해결책을 찾으라고 대표를 뽑아 보내고, 동시에 해결사 노릇도 해야 한다. 알뜰히 챙겨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도 저녁에는 따로 가르쳐야 하는 부모 같다. 아이들은 그래도 당당하다.

 

그래서, “국민은 위대하다는 말, 정치인들이 할 말은 아니다. 국회가 탄핵하던 날, 길거리로 또다른 호소가 쏟아졌다. “이제 시작입니다. 끝까지 싸웁시다.” 당연히 싸울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국회에서 할 말은 아니다. 필요한 것은 또다른 싸움의 호소가 아니라 그들의 싸움의 다짐이다. 국회의장의 마지막 말은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국민 여러분, 국민 여러분의 연말이 조금 더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취소했던 송년회, 하십시오.” 더 이상 국민을 길거리에서 찾지 말고, 살가운 삶의 언덕으로 돌려보내야 된다. “국민 여러분이라는 말은 그때야 제 뜻을 회복한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거리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다. 광화문 앞에, 여의대로 위에 있다. 성숙하기 전에 퇴락한 민주주의를 가진 이들의 팔자다. 지금의 민주주의가 밉다고 저 귀한 것을 어찌 갖다 버리겠는가.

 

촛불을 든다는 것은 사람을 이어서 횃불을 만들자는 것이다. 주황색 불빛 하나를 만드는 일이다. 이번에는 응원봉으로 제각각이었다. 제 빛깔과 제 모양으로 제각각 흔들렸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빛을 가지고 나와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킨단다. 바람이 낮게 와서 사방 천지에 피어 흔들리는 들판의 봄꽃 같았다. 팔자는 사납지만, 눈물나게 아름답다. 네루다는 꽃을 모두 꺾을 수는 있을지언정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몰랐나 보다. 세상에는 도무지 꺾을 수 없는 꽃들이 있다는 것을. 그 꽃들이 여기에 온다는 것을

이상헌 국제노동기구 고용정책국장 | 한겨레 2024.12.19.

 

 

한덕수는 '나쁜 총리'였다

윤 정권 최장수 총리, 국정 실패 공동 책임...내란죄 피의자로 거부권 행사하면 탄핵 못 면해

한덕수 국무총리가 예기치 않은 대통령 권한대행에 오르자마자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거부권 행사, 헌법재판관 임명 등을 어떻게 결정하는냐에 따라 자신의 운명은 물론 국가의 미래도 달라질 상황에 놓였습니다. 한 권한대행은 윤석열의 12·3 내란을 막지 못하고 사실상 동조한 내란죄 피의자입니다. 탄핵을 해야 할 부적격자이지만 정국 상황상 어쩔 수 없이 중책이 맡겨졌습니다. 하지만 계엄 사태 전까지만해도 '나쁜 총리'로 불렸던 그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여전히 큽니다. 한 권한대행이 민심을 따르지 않는 결정을 할 경우 탄핵을 지체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윤석열 정부 초대 총리인 한덕수는 국정 실패의 공동책임자입니다. 대통령 윤석열이 집권 초기부터 오만과 독선에 빠져 퇴행적 행태를 보이는데도 국정 전반을 총괄하는 총리로서 한마디 직언도 하지 않았습니다. 통상전문가이면서도 '경제 문외한'인 윤석열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는 노력도 없었고, 그렇다고 이태원 참사와 새만금 잼버리 파행 같은 국가적 재난 사태에 어떤 책임을 지지도 않았습니다. '영혼없는 관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온 인물이 민주화이후 역대 최장수 총리 타이틀에 이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것 자체가 코미디입니다.

 

한덕수의 기회주의적 처신은 총리 재신임 후 두드러졌습니다. 지난 4월 여당의 총선참패 직후 한 총리가 사의를 표명했지만 마땅한 후임자가 없어 윤석열이 유임의사를 밝히자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그 중 압권은 지난 9월 보수 언론과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대인이시다. 제일 개혁적인 대통령"이라고 한 낯뜨거운 아부 발언입니다. 당시 윤석열이 김건희 명품백에 '현명하지 못한 처신'이라고 언급한 데 대해선 "그 정도면 국민께서 이해해주셔야 한다"고 말해 국민 가슴에 염장을 질렀습니다.

 

지난 정기국회에서 한덕수가 보인 답변 태도는 더 심각했습니다. 야당 의원들이 의료대란 문제를 지적하자 한덕수는 "가짜뉴스다. 어디에 죽어나가느냐"고 했고, 경제위기 지적에는 "완전히 오도된 통계"라고 날을 세웠습니다. 채 상병 외압 의혹 질의에는 "의원님 말씀은 다 틀렸다"며 언성을 높였고, 일본 오염수 방류 질의는 '선동'이라고 몰아부쳤습니다. 앞서 윤석열이 국무회의에서 "여러분들은 말로 싸우라고 그 자리에 계신것"이라는 말을 듣고 '싸움닭'으로 변했다는 말이 많았습니다.

 

한덕수가 '사는 길'

한덕수의 '권력욕'12·3 계엄 선포와 그 후 행동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한덕수는 내란이 실패하자마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같이 국정운영을 주도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대통령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윤석열을 법적 근거도 없이 배제한 채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건 권력욕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에 앞서 비상계엄을 심의하기 위한 국무회의가 열리게 함으로써 계엄 선포의 절차적 요건을 갖추게 한 책임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한덕수가 사는 길은 국회 결정과 절대 다수 민심을 따르는 것뿐입니다. 21일 공포시한인 양곡관리법 등 6개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제기되는데, 국회 의결로 성립된 법안 거부는 위임된 국정관리 권한을 넘어서고 정쟁을 키운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반면, 헌재조차 인정한 공석인 재판관 3명 임명은 물론, 국회가 통과시킨 내란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의 즉시 공포는 민심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총리실이 18일 이들 법안을 "1231일 마지막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은 국민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한덕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때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고건 총리 밑에서 국무조정실장을 지냈습니다. 당시 고 권한대행은 헌재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심의 기간을 가급적 단축시켜 달라"고 당부하는 등 안정적 국정 관리에 최선을 다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한덕수는 권한대행이 된 후 "현 상황의 조속한 수습과 안정된 국정 운영이 제 긴 공직 생활의 마지막 소임"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마지막 공직이 더이상의 오욕을 남기지 않도록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에 달렸습니다.

이충재 | 오마이뉴스 2024.12.19.

 

 

민주주의의 배신자들

계엄의 공포는 끝나지 않았다. 대통령 윤석열은 직무가 정지됐지만, 아직 파면당하지 않았다. 망상에 빠진 권력자를 제어해야 할 집권여당은 그를 보호하고 있다. 민심은 안중에도 없다.

윤석열은 지난 14일 탄핵안 가결 직후 담화에서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라를 분열시키고 혼란을 가중시키더라도 버티겠다는 것이다. 자신으로 인한 국정 혼란과 국민 불안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국정지도자 자격이 없는 이런 인물은 영구 파면이 정답이라는 게 다시 한 번 분명해졌다.

 

다만 그 과정은 지난할 것이다. 윤석열은 다양한 트집을 잡으면서 정치생명 연장을 노릴 것이다. 이미 헌법재판소가 보낸 탄핵 관련 서류 수취를 거부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도 내란 우두머리피의자를 옹호하겠다는 뜻을 노골화하고 있다. 공석인 국회 몫 헌법재판관 임명 추진에 반대하고, “내란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지금까지 국민의힘이 보인 행태는 당명을 떼야 할 정도다.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에 참여한 의원은 단 18명뿐이었다. 나머지 의원 90명은 뭘 하고 있었나. 국민의힘은 1차 탄핵안 표결 때는 105명이 불참해 무산시켰고, 2차 탄핵안 의결 때도 85명이 반대했다. 2016년 박근혜 탄핵 때는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 의원 128명 중 최소 62명이 찬성했다. 그때보다 윤석열의 탄핵 사유가 덜하다는 뜻인가. 반면 탄핵에 찬성했다는 이유로 당대표를 쫓아내고 탄핵 찬성표를 던진 동료들을 배신자라고 공격했다. 보스 아래 의리로 뭉치는 조폭과 다를 바 없다.

 

국민의힘은 8년 전 과오를 되풀이하고 있다. 이들은 박근혜 탄핵 때도 배신자 프레임으로 한 줌뿐인 기득권을 유지했다. 개혁과 쇄신은 사라지고, 우경화로 치달았다. 자생력도 잃어버렸다. 보수의 목에 칼을 꽂았던 윤석열을 영입해 정권을 재탈환했지만 권력의 단맛에 취해 야수의 폭주를 제어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이미 죽은 줄 모르고 돌아다니는 좀비와 다를 바 없다.

 

이번에 확인했듯이, 우리 내부에는 헌법 제1(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부정하려는 요소들이 계속 존재한다. 이를 제어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언제든 과거로 퇴행할 수 있다. 지난 글에서 말했듯 정치권이 할 일은 분별력을 잃은 권력자를 제어할 비상조치다. 국민의힘은 집권여당으로서 자격이 없다.

 

정작 나라와 민주주의를 지켜온 건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이들은 민주공화국의 중단을 막기 위해 무장한 계엄군을 막아섰고, 불의한 권력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형형색색의 응원봉을 흔들고 구호를 외쳤다. 이들이 그 똑똑하다는 국민의힘 의원들과 달랐던 점은 양심이 시키는 대로 저마다의 용기를 냈다는 것이다.

 

3·1독립선언서는 양심이 시키는 대로 우리의 새로운 운명을 만들어 가불합리한 현실을 바로잡아 자연스럽고 올바른 세상으로 되돌리려한다고 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은 계엄군을 막는 시민들에게서 진심과 용기가 느껴졌으며, “소극적으로 움직이는젊은 계엄군들의 행위를 보편적 가치의 관점에서 본다면 생각하고 판단하고 고통을 느끼면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적극적인 행위라고 평가했다. 그가 <소년이 온다>를 쓰려고 ‘1980년 광주를 취재하며 만난 자료에 시민들 곁을 지키다 살해된 야학 교사는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라고 썼다.

 

이런 작지만 적극적인 행위들이 3·1독립운동부터 4·19, 5·18, 6·10, ‘박근혜 탄핵촛불, 그리고 이번 탄핵까지 면면히 이어져온 것이다. 이를 두고 한 외신 기자는 한국인들은 나라가 어두우면 집에서 가장 밝은 것을 들고 나온다고 평가했다.

이승을 떠도는 좀비들은 영화 <넘버3>불사파두목의 말을 읊조린다. “내 말에 토토토토토토 토다는 XX는 전부 배반형이야 배반형. 배신, 배반형!”

 

민주 시민들은 토를 단다. 윤석열은 위헌·위법적 비상계엄으로 헌정 질서를 짓밟고,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 등 헌법기관을 유린했으며, 시민에게 총부리를 돌렸다. 탄핵이야말로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헌법적 절차다. 이를 배신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대한민국과 국민에 대한 또 다른 배신자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김진우 정치에디터 | 경향 2024.12.19.

 

탄핵 골든타임, 섣부른 개헌론을 경계함

자유를 내세웠지만 내심으론 독재자를 꿈꾸던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소추되었다. 위대한 대한국민들이 저항권을 성공적으로 행사한 결실이다. 헌정의 중대 고비마다 민주화를 직접 쟁취해온 국민이 거둔 또 한 번의 승리다. 군과 경찰의 봉쇄시도에도 계엄해제의 고삐를 당겨 국민대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낸 국회도 칭찬해야 마땅하다. 아직도 내란죄 피의자의 손을 놓지 못하고 내란 방조의 굴레를 자임하고 있는 국민의힘 다수 국회의원들을 제외하고.

 

이번 사태를 대통령제 탓으로 돌리려는 시각이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내란의 현실을 회피하면서 개헌론을 꺼내든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내란혐의자들에 대한 조사와 책임추궁에 집중해야 할 중대한 헌법의 순간에 섣부른 개헌론은 경계해야 마땅하다. 어설픈 권력구조 개헌론으로 헌정회복의 골든타임을 결정적으로 지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의 근본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인과관계를 충분히 따져서 개헌을 비롯해 미래를 향한 대응을 모색하는 것이 순서다.

 

느닷없는 비상계엄 사태의 본질은 헌법이 무시되고, 헌법이 유린된 것이지, 헌법의 권력구조가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다. 검찰 등 권력기관을 사유화하여 사정정국의 공안통치로 일관해오다 친위쿠데타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의 시대착오적 만행을 헌법 탓으로 돌리는 것은 현상에 매몰된 착시일 수 있다. 예컨대, 내각제나 이원정부제를 한들 위헌·위법한 계엄선포를 막을 수 있나? 내각제나 이원정부제에선 국회와 정부 모두가 특정 정당에 장악되는데 국민의힘처럼 내란 방조의 오명을 벗기보다 권력유지에만 혈안이 된 극우정당에 그런 전권을 맡길 수 있나? 그랬다간 비상계엄을 할 필요도 없이, 굳이 법치를 부인하는 시행령 통치를 할 이유도 없이, 민주공화국은 망상에 빠진 독재자나 위헌적 정당의 손에 넘어갔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번 친위쿠데타는 대통령제에서 국회만이라도 국민의 편에 있었기에 막을 수 있지 않았는가?

 

물론 대통령과 국회, 거대정당으로 양극화된 현행 체제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극한대립이 일상화되면서 국력의 낭비나 비효율성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개헌론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지금 이 헌정회복의 골든타임에 당장 할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은 나라를 21세기의 선도국에서 20세기 후진국으로 퇴행시킨 내란사태의 조사와 책임추궁에 집중하면서 윤 대통령의 어처구니없는 자해행위로 위기를 맞은 경제와 외교를 하루빨리 되살릴 수 있는 국정안정에 집중해야 할 때다. 독재의 위험과 정치의 비효율성이라는 딜레마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개헌 등 슬기로운 국정개혁의 과제는 놀란 가슴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다스린 국민들이 주도하는 충분한 숙의과정을 거쳐 찬찬히 논의해야 한다. 우물에 가서 숭늉 찾듯이 탄핵의 골든타임을 함부로 허비해서는 정말 안 된다.

 

한편 이번 사태의 진짜 원인을 성찰하는 일은 탄핵의 골든타임을 지키는 데 매우 긴요하다. 이번 친위쿠데타는 국회를 반국가세력의 온상지로 망상한 시대착오적 권력중독자가 민주공화적이어야 할 대통령직을 제왕적으로 운영하려 한 헌법위반에서 비롯되었다. 그 배경은 대통령제가 아니라 민주공화국 원리에 맞지 않게 사유화된 검찰이나 경찰 등 권력기관의 발호에 있다. 야당이나 노동계 등 시민사회를 반국가세력으로 몬 힘이 어디에서 나왔나? 거부밖에 할 게 없는 식물대통령에게서?

 

일상적 사정권력의 동원만으로는 힘에 부친 대통령이 군부마저 끌어들였다는 사실은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헌법체제가 기본적인 통제력은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그동안 독재자를 꿈꾸는 대통령의 손발이 되었던 검찰, 경찰, 정보기관 등 권력기관의 행태가 헌정 위기의 뿌리임을 직시해야 한다. 이들의 공권력이 좀 더 분권되고 법원에 의해 효과적으로 통제되었더라면 이번 사태를 예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검찰개혁, 경찰개혁, 정보기관개혁을 거부해온 정당이 국민의힘이라는 점은 이 정당이 내란 방조마저 불사하는 행태와 맥이 닿아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대통령 윤석열의 망상이 개인적인 것만이 아니라 우리 정치에 뿌리내린 극우정당의 정체성과 닿아 있으며 이들이 정치화된 검찰 등 권력기관과 결탁하고 있음을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마저 부정하는 내란 방조자들이 정략적 목적으로 개헌론을 들먹일 자격과 공간을 주지 않도록 아무리 경계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경향 2024.12.19.

 

 

윤석열에겐 자비가 필요치 않다

일체의 사법절차 거부하며 버티기 들어간 윤석열...수사기관 조롱하고 알량한 법지식으로 국민 모욕

내란 피의자인 대통령 윤석열이 일체의 사법절차에 저항하고 있다. 수사기관들의 소환에 불응하고, 헌법재판소 서류도 받기를 거부했다. 윤석열은 언제나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다. 법과 원칙을 입에 달고 살던 검찰총장 출신의 그가 이런 치졸한 방법까지 동원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수사 피의자 가운데 가장 악질로 분류되는 경우가 고의로 출석을 회피하는 사람들이다. 일부러 집을 비워 통지서를 받지 않는 수법이 대부분이다. 윤석열은 이런 최소한의 감당도 하지 않는다. 버젓이 한남동 관저에 머물면서도 '수취 거부' '수취인 불명'으로 빠져나간다. 그러면서 관저에 배달된 자신의 생일 축하 꽃바구니는 골라서 받았다. 오죽하면 헌재조차 "이런 피의자는 처음"이라며 혀를 내두르겠나.

 

윤석열은 지난 12일 대국민담화에서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서겠다"고 했다. 앞서 1차 탄핵안 표결 직전엔 "법적·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그런 당당함과 기백은 온데간데없다. 윤석열이 주도한 계엄을 실행한 군과 경찰 지휘관들은 내란죄로 줄줄이 엮여 사법심판대에 올랐다. 그런데 정작 우두머리인 윤석열은 수사도, 탄핵 재판도 못 받겠다며 버티고 있다. 이런 사람이 국가지도자였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대통령이 된 이래 윤석열은 국정 실패에 제대로 책임을 인정한 적이 없다. 그를 늘 따라다니는 말이 '격노'였다. 누군가에게 화를 낸다는 것은 자신의 잘못이 없다고 생각해서다. '바이든-날리면' 사태는 언론 탓이고, 이태원 참사는 시민들 잘못이고, 의료 대란은 전공의 때문이고, 총선 참패는 선관위가 원흉이란다. 그러니 "대통령이 수사기관이 부른다고 가야 하느냐"는 기상천외한 말이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것이다.

 

계엄 선포문에서도 윤석열은 줄곧 남 탓만 했다. 탄핵을 남발하고 예산을 삭감한 야당 때문에 계엄령을 발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투다. 윤석열을 계엄에 이르게 한 동기가 그것만은 아니겠지만 취임 후 줄기차게 전 정부 탓, 야당 탓을 해왔던 것을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자신은 밤잠 못 자고 열심히 국민을 위해 일했는데 다른 세력의 방해로 국정이 엉망이 됐다고 여기는 것이다.

 

윤석열이 그렇게 자신있다면 수사기관에 직접 출석해 당당하게 밝히면 될 일이다. 참모들 뒤에 숨고, 변호사들을 앞세울 게 아니라 계엄을 왜 선포했고, 언제부터 마음먹었는지, 준비는 어떻게 진행했는지를 사실대로 진술하면 된다. 그런 주장이 얼마나 황당하고 터무니없는지는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악질 피고인' 윤석열에게 돌아갈 건 헌재 파면 결정뿐

윤석열은 버티기가 통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착각이다. 헌재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이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박근혜도 처음엔 "진상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검찰과 특검의 조사 요구에 온갖 핑계를 대며 거부했다. 이에 헌재는 "박근혜가 검찰이나 특검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 압수수색도 거부했다"며 헌법 수호 의지 부족을 파면 근거로 못박았다.

 

그나마 박근혜는 탄핵안이 통과되자 본인의 '부덕과 불찰'을 탓하며 "참으로 괴롭고 죄송스러운 마음"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윤석열은 자신의 잘못으로 구속된 군 지휘부나 현장에 동원된 군인, 경찰 등에 대한 일언반구의 사과도 없다. 윤석열의 책상 위에는 아직도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의미의 'The buck stops here'라고 쓰인 명패가 놓여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당시 대통령이던 도널드 트럼프를 향해 'The buck never stops there(그쪽에선 절대 책임지지 않는다)'며 비꼬았다. 윤석열의 집무실 명패도 이렇게 바꿔야 할 모양이다.

 

윤석열은 비상계엄으로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트린 것도 부족해 수사기관을 조롱하고, 알량한 법지식으로 국민들을 모욕하고 있다. 악질도 이런 악질이 없다. 그런 윤석열에게는 일말의 자비도 필요하지 않다.

이충재 | 오마이뉴스 2024.12.20.

 

어준석열 유니버스너머

전 정치인 유시민씨는 얼마 전 어느 토론에 나와 나는 유튜브나 포털 사이트에서 원하는 기사만 찾아보지 기성 언론은 보지 않는다유튜브 보는 사람을 과소평가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특히 기성 언론 다 무시하고 유튜브에 몰입하는 사람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그는 보고 싶은 뉴스만 보다가 현실을 오판하게 되고, 급기야 내란을 일으킬 수 있다.

 

내란 수괴 윤석열씨는 군대를 동원해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장악하려 했을 뿐 아니라, 여론조사 꽃(방송인 김어준씨가 설립한 여론조사기관)을 확보·봉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우선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일을 겪은 김어준씨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여러 보도로 알려졌듯 윤석열씨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진실로 믿고 있었고, 그래서 김어준씨의 회사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난 10여년간 부정선거 음모론의 대표주자를 딱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김어준씨 아니던가.

 

과거 김씨는 18대 대선 개표 조작설, 이른바 케이(K)음모론을 제기했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뿐만 아니다. 그는 황우석 사태, 세월호 참사, 정봉주 성추행 사건 등등에서 수많은 거짓과 음모론을 유포했고,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음에도 제대로 된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어지간한 언론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과시하며 활동하고 있다(박권일, ‘서사과잉: 김어준씨의 경우참고). 이에 더해, 이번 내란 사태에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김어준씨의 북한군 위장 암살조 가동주장을 충분한 검증도 없이 공개해 시민단체들이 거세게 비판하기도 했다. 김씨가 지금까지 대한민국 공론장에 끼친 해악을 모두 열거하자면 책 한권으로도 부족할 지경이다.

 

오해하면 곤란하다. 이건 김씨의 잘못이 내란 수괴와 동급이란 주장이 아니며, 윤석열 음모론의 원인이 김어준 음모론이라는 얘기도 아니다. 문제는 김어준과 윤석열이 공유하는 세계관, 이른바 어준석열 유니버스. 그것은 무엇인가? 표면적 공통점은 음모론이다. 일반적으로 음모론이란, ‘권력자가 어떤 목적을 위해 비밀리에 모종의 사건을 계획·실행했음을 폭로하는 서사를 가리킨다. 앞서 언급한 부정선거 음모론이 대표적 예다.

 

음모의 주체는 주로 강대한 권력집단이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예컨대 여성, 페미니스트들을 겨냥한 집게손가락음모론이다. 광고, 게임 이미지에 등장하는 집게손가락 모양이 페미니스트가 숨겨둔 남성 혐오 표현이라는 주장인데, 사실로 밝혀진 적이 단 한번도 없음에도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 2023년 불거진 게임 업계 집게손가락 소동에서 정치인 이준석씨는 볼 것도 없이 (남성혐오를 상징하는) 메갈(리아) 손가락이고 의도된 바가 있다고 본다고 발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논란이 된 이미지를 40대 남성이 그린 것으로 밝혀졌음에도 이씨는 아무런 사과도 해명도 하지 않았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저런 음모론의 생산과 소비를 끝없이 부추기는 사회적 조건이다. 여기엔 기성 언론과 정치에 대한 낮은 신뢰, 유튜브 같은 게이트 키핑없는 뉴미디어와 허위 정보의 확산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있을 터이다. 내가 주목하는 건 음모론이 유독 권력 쏠림이 심한 사회에서 활개 친다는 점이다. ‘큰판한번만 이기면 모든 게 뒤집히는 시스템에서는, 공정성을 확보하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승자의 보상이 크면 클수록 편법·반칙의 유인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입시 비리가 결코 근절되지 않는 것도, 선거 음모론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근본적으로 여기에 있다. 승자가 모든 걸 독차지하고 패자들은 나락에 떨어져 모욕당하는 시스템에서 경쟁은 곧 전쟁이 되고, 공정성 시비와 음모론이 창궐하며, ‘강자 선망약자 혐오도 만연한다. 나는 한국의 능력주의’(박권일, 이데아)에서 그런 문화를 힘 숭배라는 말로 요약한 바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준석열들에 대한 비판과 책임 묻기는 필수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대통령 비상계엄권을 비롯하여 권한과 자원이 과집중되는 승자독식 체제를 해체하지 않으면, ‘어준석열들은 영원히 다른 얼굴로 회귀할 것이다. 시스템을 바꾼다는 것은 제도를 바꾸는 일과 함께 우리 삶의 방식을 성찰하고 혁신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수라장 뒤에 다시 만나는 세계는 부디 다르게 만나는 세계이길 바란다.

박권일 | 미디어사회학자 | 한겨레 2024.12.20.

 

전두환의 자연사가 윤석열의 내란 불렀다

우리나라 헌법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때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계엄을 선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77조 제1). 전시와 같은 위기 때 국가와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게 계엄의 목적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12·3 내란사태는 집권 세력이 불순한 목적으로 계엄을 선포하고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준전시 국가비상사태를 조작하려 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민을 위험에서 보호하기는커녕, 자신들의 권력을 연장하고 강화하기 위해 국민을 위험에 빠트렸다. 헌법에 명시한 계엄의 목적과 절차를 정면으로 거스른 행위다.

 

이를 주도한 대통령 윤석열은 1214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됐다. 이날 서울 여의도에 발 디딜 틈이 부족할 정도로 모여든 백만 군중은 물론이고 온 나라에 환호가 울려퍼졌다. 모두들 망국의 위기에서 큰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일부 경험 많고 사려 깊은 이들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심지어는 내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경종을 울리고 있지만, 윤석열 탄핵안 통과의 성취감은 여전히 대단하다. 시민들은 찬성 204를 일궈낸 정치권에 박수를 보내고, 민주당 등 야권은 민주 시민들 덕분이라며 짐짓 공을 국민들에게 돌린다. 참으로 흐믓하고 정겨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도 그랬다. 2016129일 국회는 이번보다 훨씬 압도적인 234표 찬성으로 박근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에서도 소속 의원 128명 중 절반에 가까운 62명 이상이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다. 국민들은 열광했고 이후 3개월여 헌법재판소 심리를 거쳐 박근혜는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직에서 쫓겨났다. 헌재 재판관 8명 전원이 찬성했다. 물리적 충돌이나 소요 없이 법과 제도에 의해 최고 정치권력자를 중도퇴진 시킨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량과 법치주의 성취에 전 지구적인 찬사가 이어졌다.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단기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던 금융시장도 회복에 긴 기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국회 탄핵 소추안 가결 당시 2%까지 하락하며 2000선 아래로 떨어졌던 코스피 지수는 헌재 결정 이후 급격한 안정세를 보이며 2200선을 회복했다. 급등했던 원화 환율도 정상화되면서 빠져나갔던 외국인 자금도 다시 유입됐다.

 

전 세계가 부러워할 정도로 훌륭하게 역경을 극복한 이 나라에 불과 7년 여 만에 또 대통령 탄핵이라는 불상사가 반복됐다. 더구나 이번 윤석열 일당의 비상계엄을 빙자한 내란 행위는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비슷한 탄핵 사유가 단순히 반복 재현된 게 아니다. 국토를 보위해야 할 군대로 하여금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제압하려 했다.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를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외적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대상인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들이대기까지 했다. 197912·12 군사 쿠데타와 이듬해 광주 5·18 만행을 연상시킨다.

 

세계 10대 선진국 대열에 거론될 정도로 성장한 나라에 어찌 이런 한심한 작태가 벌어지는가? 영구집권을 꿈꾸던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능가하는 만행을 계획했다는 게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장면이나 국회의 계엄취소 결의 이후, 더구나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 이후 담화에서 보인 윤석열의 태도는 그야말로 미치광이에 다름 아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짓을 결행할 수 있겠나? 나아가 이를 통치행위이므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라고 우길 수 있겠는가? 통치행위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이미 대법원에 의해 내려진 지 오래인 걸 모른단 말인가?

 

하지만 좀 더 냉정하게 되짚어 보자. 전임 문재인 정부는 그런 '미친 X'을 검찰의 요직을 거쳐 검찰총장에 기용했을까? 국민의힘은 그가 미쳤다는 걸 알고도 그를 대통령 후보로 정했으며, 유권자들은 미친 그에게 더 많은 표를 주어 당선시켰을까? 대한민국 전체가 미쳤다고 하지 않는 한 발생할 수 없는 일이다. 집단 지성의 힘을 조금이라도 인정한다면 그럴 가능성은 없다. 그보다는 윤석열과 김건희, 그리고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자들이 나라의 권력을 차지하고 나서 미쳐갔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하긴 그들의 미친 짓은 시간이 갈수록 도를 더해 간 것 같기는 하다.

 

그럼 윤석열과 그 일당이 서슴지 않고 미친 짓을 도를 더해 가며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주가 조작이나 고속도로 노선 변경, 공천 개입과 매관매직 등이 불법인 줄 알면서도 그들은 거리낌이 없었다. 검찰을, 나아가 사법부까지 장악한 그들은 미친 짓이 불러올 책임과 징벌 따위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고, 쿠데타가 성공하면 쥐게 될 부귀와 권력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있었다.

 

조금 마음이 쓰이는 대목이 있다면 정권 교체였을 것이다. 혹여 정권을 잃으면 자신들의 불법-탈법에 대한 사법적 응징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스스로가 검찰 수장으로 탄핵된 박근혜 정권의 국정 농단을 사법처리한 바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쿠데타가 실패해 정권을 잃더라도 사법처리 되지 않을 것으로 믿은 것으로 보인다. 언제부턴가 정치권의 불법에 대한 사법처리를 정치보복으로 치부해 온 전력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은 기회만 있으면 정치보복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다. 특히 정치적 탄압을 심하게 받은 이들이 더욱 그렇다. 199712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두환-노태우 사면 복권을 건의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이를 수용해 12·12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혐의 등으로 무기징역과 징역 17년 형이 확정된 지 8개월 만에 그들을 특별사면했다. 수사와 재판 기간 등 구속됐던 기간을 모두 합쳐도 2년 밖에 안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2021년 말 자신의 재임 중에 박근혜가 받았던 징역 22년 벌금 180억 원을 사면했다. 박근혜는 수감된 지 49개월 1736일 만에 풀려났다. 자동차부품업체 다스의 자금 수백억 원을 횡령하고, 삼성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징역 17년을 받은 이명박 대통령도 윤석열 정부에 의해 202212월말 특별사면됐다. 수감 기간은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49개월이다.

 

국가와 국민을 불안과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대통령들, 전두환-노태우-박근혜-이명박, 이들은 모두 엄청난 중형을 선고받았지만 길어봐야 5년도 안돼 모두 사면 복권으로 자유의 몸이 됐다. 특히 전두환은 20211123일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사망했다. 1931년에 태어났으니 만 나이로도 90세의 장수를 누렸다.

 

전두환은 군사반란을 일으켜 민주 정권의 탄생을 무산시키고, 광주 5·18 유혈 진압의 만행을 저지른 살인마다. 그가 호사를 누리며 살다가 편안하게 자연사했으니 쿠데타를 모의하는 윤석열 일당에게 그보다 안심되는 일이 또 있겠는가? 전두환이 집권하자 그들의 개가 된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면죄부를 줬다. 하지만 형사 처벌을 면해준 것보다 전두환의 호의호식과 장수 자연사는 내란 음모를 꾸미는 세력에게 실패해도 별거 아니겠구나하는 안도감을 주었고, 그들의 내란 음모에 과감성을 더했을 것이다.

 

이제 헌법재판소가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탄핵 결정을 하면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일까? 미치광이가 대통령 직에서 쫓겨나고, 150조 원 넘게 썰물처럼 빠져나갔던 외국인 자금이 다시 돌아오고, 코스피 지수가 2500선까지 올라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나?

 

일부에서는 전 세계가 군부를 동원한 쿠데타를 맨손으로 막아낸 대한민국의 민주 역량을 칭송한다고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란을 시도한 집단과 그를 둘러싼 정치세력들이 여전히 큰소리를 치고, 사태의 종결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여전히 걱정해야 하는 나라라는 평가가 계속되고 있다.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는 더해 가고 좀처럼 가실 줄을 모른다. 내란세력에 대한 확실한 응징이 없다면 제2, 3의 윤석열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유상규 에디터 | 시민언론 민들레 2024.12.21.

 

 

내란을 끝내는 현명한 방법

대한민국이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 모든 것이 혼돈스럽다.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는 양곡관리법 등 법률안 6건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회가 상설특검을 가동하기로 결정했는데도 특검 추천 의뢰를 무작정 미루고 있다. 국회가 의결한 내란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은 거부권을 발동하지도 공포하지도 않은 채 뭉갠다. 국회가 추천할 예정인 헌법재판관 세 사람을 지체하지 않고 임명할지 여부 또한 알 수 없다.

 

8년 전과 너무 다른 탄핵 국면, 모든 게 엉망진창

윤석열은 한남동 관저에서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가? 그는 검찰과 공수처의 출석 요구서 접수를 거부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관련 자료 제출 요구도 무시했다. 검찰은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데도 김용현과 사령관들을 잡아들였다. 판사들은 수사 대상에 경찰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를 들어 구속영장을 척척 내주었다. 어느 국무위원도 내란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국힘당 국회의원들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과 윤석열 탄핵안 의결에 참여한 동료 의원을 배신자라고 욕한다. 선출직 최고위원이 전원 사퇴하는 방식으로 당대표 한동훈을 쫓아냈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한 8년 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시민들이 촛불집회를 하는 가운데 국회는 압도적으로 탄핵안과 특검법을 의결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윤석열보다 더 극렬하게 부정선거 음모론을 펼쳤던 황교안이 대통령 권한대행이었지만 만사를 대체로 원만하게 처리했다. 헌법재판관들은 만장일치로 탄핵을 인용했고 특검은 박근혜를 구속 기소했으며 법원은 중형을 선고했다.

 

탄핵 사유는 윤석열이 훨씬 더 분명하다. 박근혜의 잘못은 국민 모르게 부정을 저지른 것이었다. 반면 윤석열은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위헌적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불법적 포고령을 발표했다. 무장한 군인들을 국회와 중앙선관위에 난입하게 했다. 친위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 뒤에도 야당을 비난하고 내란을 부정했다. 그런데도 특검이 언제 출범할지 알 수 없다. 헌법재판소가 9인 체제로 탄핵안을 정상 심사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여전히 모든 자리 장악하고 있는 내란의 공범들

압도적 다수 국민이 탄핵과 처벌을 원하는데도 윤석열 탄핵으로 가는 길은 울퉁불퉁하기 짝이 없다. ? 이유는 딱 하나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기관에 내란의 공범과 검찰독재의 협력자들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8년 전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내란 공범이 구속된 조직은 군과 경찰뿐이다. 국방부장관, 육군 참모총장, 특전사령관, 수방사령관, 방첩사령관, 정보사령관 등 윤석열과 반란을 사전 모의해 병력을 동원한 혐의가 있는 군 관계자들은 검찰이 구속했다.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 등은 공수처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구속했다.

 

군과 경찰은 국가의 물리적 강제력을 보유한 조직이다. 쿠데타를 하려면 군과 경찰을 동원해야 한다. 그래서 윤석열은 인사권으로 군과 경찰의 요직에 공범을 심었고, 그들을 시켜 국회와 선관위를 파괴하고 사법권을 장악하려 했다. 아직 적발되지 않은 내란 잔당이 난동을 벌일 위험은 있지만 윤석열이 당장 2의 내란을 일으킬 가능성은 없다. 국회가 직무를 정지시켰고, 군과 경찰 수뇌부의 내란 공범이 거의 다 붙잡혔다. 그러나 윤석열 탄핵을 완성하고 내란을 완전히 종식하기까지는 험난한 여정이 남아 있다. 다른 권력기관의 검찰독재 협력자와 내란 공범들이 자기네가 저지른 악행과 범죄를 감추려고 탄핵의 완결을 저지하고 있다.

 

검찰독재 협력자내란 공범은 죄질이 다르다. 내란 공범은 검찰독재 협력자의 부분집합이다. 내란 공범은 모두 검찰독재 협력자이지만 모든 검찰독재 협력자가 내란 공범인 것은 아니다. 권력기관에 잔류한 내란 공범은 결국 특검이 밝혀낼 것이다. 그러나 검찰독재 협력자는 수사를 할 필요가 없다. 누구인지 다 안다. 그들이 윤석열의 검찰독재에 협력한 목적은 두 가지다. 첫째,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이념을 실현하려고. 둘째, 개인적 이익을 도모하려고. 검찰독재 협력자들은 둘 가운데 하나 또는 둘 모두를 위해 윤석열의 집권을 도왔고 윤석열의 권력 오남용을 감추었으며 윤석열의 모든 행위를 옹호했다. 그 대가로 더러는 자리를 받았고 더러는 이권을 챙겼으며 더러는 민원을 해결했다.

 

장관들, 검사들, 국힘당 정치인들, 기자들, 검찰독재 부역자들

검찰독재 협력자는 네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한덕수 국무총리와 장관들이다. 그들은 평소 윤석열의 권력 행사를 대행했다. 친위 쿠데타가 성공했으면 위헌 위법한 계엄 통치 명령을 군말 없이 수행했을 것이다. 둘째는 검사들이다. 극소수 정치검사와 다수의 선량한 검사를 나눌 근거는 없다. 검사들은 이재명을 비롯한 야당 정치인들을 제거하는 일에 앞장섬으로써 민주주의와 정치를 파괴했다. 김건희의 범죄 혐의를 무마해 법치주의를 무너뜨렸다. 정치검사들의 그런 행위를 비판한 검사는 말 그대로 극소수였다.

 

셋째는 국힘당 정치인과 당원들이다. 국힘당 국회의원들은 윤석열과 김건희의 범죄 혐의와 관련해 야당이 추진한 특검법을 모두 무산시켰다. 위헌 불법인 비상계엄 선포를 방조했고 윤석열 탄핵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내란 행위의 실체가 드러났는데도 윤석열을 비호하면서 한덕수더러 내란 특검법 공포와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하라고 한다. 검찰독재 협력자 수준을 넘어 내란 공범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당원들은 전당대회를 할 때마다 윤석열이 간택한 후보에게 압도적으로 많은 표를 주어 당 대표로 선출했다. 국힘당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위헌정당이다. 민주사회에 존재할 자격이 없다.

 

넷째는 소위 레거시 미디어의 기자 또는 언론인들이다. 극소수 공영방송과 기자들의 신문을 제외한 모든 신문방송이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권에 도전한 윤석열의 검란(檢亂)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라 칭송하고 검란의 주모자를 공정과 정의의 화신으로 추켜세웠다. 대통령 윤석열과 영부인 김건희의 기괴한 언행에 대한 폭로가 나오면 심층 취재와 후속보도를 하는 게 아니라 무시하거나 제보자를 공격했다. 윤석열이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고 경고한 민주당 정치인들을 시대착오적 선동가로 몰아세웠다. 하이에나처럼 조국 가족에게 달려들었던 그들이 이제는 죽은 윤석열을 물어뜯고 있다.

 

탄핵 불발, 경제 폭망, 국지전, 유혈 사태잠 못 이루는 국민들

윤석열이 그 정도인 줄 몰랐다는 변명은 이제 와서 하는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정책에 대해서 전적으로 무지하며 무속을 신봉하는 알코올 중독자라는 것은 국힘당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부터 모를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하게 드러났다. 전두환을 찬양하고,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으며, 남과 대화하지 못하는 무능력자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윤석열이 검찰 권력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고 한 행위에 동조하면서 사법 리스크라는 말로 검찰독재의 사법 피해자인 이재명을 비방했다. 윤석열의 빈자리에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줄 정치인을 끼워 넣을 목적으로 지금도 이재명 악마화하고 정치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망한다면 8할은 언론인 책임이라고 나는 믿는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탄핵 찬성 여론이 80퍼센트에 육박한다. 그런데도 국민은 불안하다. 한덕수가 헌법재판관을 추가 임명하지 않으면? 헌법재판관 여섯 가운데 하나라도 반대하면? 탄핵 결정이 지연되고 정치적 불확실성이 높아져 경제가 더 어려워지면? 트럼프가 취임해 한국 제품에 고율 관세를 매기면? 윤석열이 돌아와서 또 계엄령을 선포하면? 북한을 도발해 국지전을 터뜨리면? 국민 항쟁이 일어나 유혈 사태가 벌어지면? 그런 걱정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민주당이 이끄는 국회를 믿는다. 적어도 지금은 다른 대안이 없다. 그것이 윤석열의 내란을 완전히 종식하고 나라를 정상화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두 권력이 대립하는 혁명적 정세가 펼쳐지고 있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정통성 있는 권력인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되었다. 그러나 윤석열의 권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제한적이지만 한덕수 총리와 국무위원들이 행정권을 대리 행사한다. 윤석열이 임명한 검찰총장이 내란 수사를 지휘한다. 검찰독재 협력자와 내란 공범들이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다는 말이다.

 

두 권력 충돌하는 혁명적 정세’, 민주당과 이재명 리더십 빛났다

다른 하나의 정통성 있는 권력은 다행히 건재하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국회다. 이재명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이 국회를 이끈다. 국힘당의 방해를 받으면서도 헌법이 부여한 국회의 권한을 최대한 행사한다. 대통령 권한대행과 국회가 저마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권한을 행사하고 있으니 혁명은 아니다. 하지만 분립된 두 권력이 충돌하고 있으니 혁명적인 정세임은 분명하다.

 

언론은 입을 닫고 있지만, 12.3 내란 이후 대한민국의 위기를 타개한 리더는 이재명이다. 그는 검찰독재의 사법적 공격과 김진성의 물리적 테러를 견뎌내고 민주당의 총선 압승을 이끌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시도를 감지하고 지속적으로 경고하면서 대비책을 세웠다. 야당 국회의원들을 결속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신속하게 의결함으로써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를 꺾었고 윤석열 탄핵안을 열흘만에 가결시켰다. ‘계엄의 밤에 국회로 달려왔고 날마다 탄핵 촉구 집회를 이어갔던 시민들의 응원에 힘입었지만, 민주당의 실력과 이재명의 리더십 또한 인정해야 마땅하다. 민주당은 검찰독재 협력자와 내란 공범들이 장악한 한덕수 대행체제를 상대로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을 받아내고 내란 특검을 출범시키는 데 필요한 일을 하나씩 해나갈 것이다.

 

오늘의 시점에서 보면 확고한 헌법적 정통성을 지닌 권력기관은 국회 하나뿐이다. 그 국회를 압도적 과반 의석을 보유한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을 비롯한 야당들과 연대해서 운영한다. 민주당 대표 이재명은 확고한 리더십으로 국회를 운영하고 있다. 국민들이 무엇을 불안하게 여기는지 알고, 그것을 해소할 전략과 전술을 찾으려고 아이디어를 모은다. 가장 큰 책임을 맡은 정치인으로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상황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한다.

 

이재명을 믿는 것, 내가 찾은 가장 현명한 내란 종식 방법

나는 불안감이 들면 민주당이 주도하는 야당연합이 내리는 결정을 살핀다. 상황이 시시각각 달라지고 만인이 저마다의 해법을 주장할 때, 어느 것이 옳은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공동체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어떤 결정이든 내려야만 할 때, 그럴 때 나는 유능하다고 믿을 수 있는 정당과 리더의 판단을 따른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다. 이 순간 믿을 수 있는 정당은 어디이며 리더는 누구인가. 민주당과 이재명이다. 민주당과 연대하는 정당들이다. 그들이 실패하면 대한민국은 몰락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민주당이 한덕수에게 24일까지 내란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을 공포하라고 요구했다. 거부할 경우 어떻게 할지는 모른다. 국무총리를 탄핵하든 다른 조처를 하든, 나는 민주당이 하는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하려고 한다. 획득한 모든 정보를 토대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모두 검토한 끝에 내린 최선의 결론이라고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멀리서 공개된 정보만으로 판단하는 비평가보다는 이재명과 민주당 지도부가 더 나은 결정을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내가 찾은, ‘윤석열의 내란을 끝내는 현명한 방법이다. 더 현명한 방법을 아는 분이 혹시 있다면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고해 주시기 바란다.

유시민 작가 | 시민언론 민들레 2024.12.23.

 

유시민 님의 글에 대한 미천한 반론

윤석열 반란 넘어 민주공화국을 완성하는 방법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된다.’라는 현수막을 국힘에서 달았다고 합니다. 선전전과 심리전의 명수인 그들이 뽑아낸 기막힌 구호라고 생각됩니다. 많은 국힘 지지자들은 이에 공감하고 결집할 것입니다. 탄핵 찬성 75% 내에 있는 국힘 지지자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내란은 잘못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중요한 것은 범죄자이며 거악인 이재명에게 정권을 내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또한 대한민국을 망치는 길이다.’

 

내란을 비호하는 국힘은 민주사회에서 퇴출되어야 할 극우정당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 정치집단은 영남과 강남의 굳건한 지지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독재시대의 역사적인 토대가 있습니다. 현재의 국힘 다수는 이 견고한 지지를 바탕으로 다시 힘을 모으고 약간의 스윙보터들을 끌어모아 다시 권력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는 1945년 해방 이후 계속해서 반민족, 반민주 세력과 투쟁하고 있지만 한 번도 완전한 청산을 이루어 내지 못했고, 참과 거짓은 구별할 수 없을 지경으로 물들고 오염되고 말았습니다. 5.18 항쟁을 학살로 진압하였고 진정한 반성도 없었던 세력의 후예인 국힘을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지지합니다.

 

고지전이라는 영화처럼 우리는 87년 이후 37년의 고지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고지전에 사람들은 정신을 잃어가고, 진실이란 것은 없고 나의 생존만이 중요할 뿐이라고만 생각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상대방을 완전히 파멸시키기를 원할 정도로 증오합니다. 국가는 이미 골병이 들 대로 들었습니다. 젊은이들이 바다에서 거리에서 떼죽음을 당해도 이 사회는 서로 증오하고 분열되어 떠난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행정부의 수장이자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반란의 수괴인 무정부상태이고, 이에 저항하는 국회권력과 시민이 맞서는 혁명적 상태입니다. 하지만 혁명적 상태이기만 할 뿐 반란세력을 혁명적으로 제압할 혁명세력도 없고, 혁명에 어울리는 가치, 이념도 없습니다. 반란 동조 세력이 판치는 구체제의 질서 속에서 반란에 대한 심판을 어렵게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럼 무엇이 반란을 완전히 끝내는 방법일까요?

저는 질문을 바꾸고 싶습니다. 무엇이 반란을 완전히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방법일까요? 윤석열의 내란에 대한 심판은 두 눈 부릅뜨고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결국은 권력과 의지들이 충돌하고 타협하며 기존의 틀과 한계 내에서 마무리되어질 것입니다. 구질서에서 반란세력의 심판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윤석열의 내란을 끝내는 현명한 방법이 아닙니다.

문제의 원인을 사람 또는 어떤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국힘)으로만 보면 문제의 근본 해결이 어렵습니다. 그 문제를 만들어 낸 조건, 토양에서 찾아야 합니다. 민주공화국을 유린한 자들은 최선을 다해 심판해야 하지만 지금 그들을 심판하는 것은 무성한 풀밭에서 큰 풀 몇 개를 잡아뜯는 것에 불과합니다. 근본적 방법은 풀밭을 갈아엎는 것입니다. 그럼 조금 시간이 지나면 풀들은 자연스럽게 모두 말라죽습니다. 새질서로 그 풀밭을 갈아엎으면 다양한 새물결이 몰아쳐서 저절로 그 들은 소멸하게 될 것입니다.

 

혁명적 정세에서는 혁명적 해법이 필요합니다.

박근혜탄핵 시기를 많은 사람들이 촛불혁명 혹은 혁명적 정세라고 했지만, 그 촛불집회에서는 혁명이라고 부를 만한, 혁명으로 가기 위한 어떤 구호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구 질서가 붕괴된 상황에서 새 질서를 만들어 내야 하지만, 어떤 지향점도 세력도 보이지 않습니다. 박근혜 탄핵 촛불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집권초기 시민혁명의 열기가 남아있는 소중한 시기를 적폐청산에 허비했고 결국 검찰권력의 탄생만 도왔습니다. 다시는 그와 같은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이 시민혁명의 열기가 새질서의 탄생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현재의 극한대립과 혐오의 정치에서는 지금은 물론이고 앞으로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반란을 뿌리째 완전히 청산하고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한 세력이 어떤 지역과 세력을 완전히 청산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토양, 토대 위에서는 반란세력이 언제 다시 권력을 잡아 대한민국을 나락으로 떨어뜨릴지 알 수 없습니다. 권력을 잡지 못하더라도 계속해서 우리나라를 혼란과 분열, 증오와 혐오의 정치에 빠뜨릴 것입니다.

 

반란을 끝내는 단순한 정권교체로는 현재의 모순적 상황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정권을 바꿨지만 나라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어떤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서도 현재의 구도를 청산하고 극복해 낼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붕괴된 87년 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질서를 마련해야 합니다. 다시는 윤석열과 같은 인간이 대통령이 될 수 없도록 해야 하고, 다시는 패권적 극우정당이 집권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며 건강한 보수가 되살아나야 합니다. 민주당과 이재명이 싫은 사람도 건강한 보수 정당에 투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의 힘들고 혼란하니 시기가 단지 이재명 정부 탄생을 위한 권력투쟁으로 비추어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이 혼란한 시기를 새로운 질서의 탄생을 위한 산고의 시간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재명을 싫어하는 사람도, 민주당 지지자가 아닌 사람도 함께 희망의 촛불을 들고 새로운 사회를 꿈꿀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미완이었지만 87년 민중항쟁의 성공요인은 호헌철폐 독재타도로 상징되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간절히 바라는 시민들의 하나 된 외침과 염원이었습니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그러한 염원을 대변하는 정치인일 뿐이었습니다.

 

새질서를 만드는 전면 개헌은 현 정국에 있어서의 백가지 해법중 하나가 아닌 단 하나의 유일한 해법입니다.

 

현재의 무정부 상태, 혼돈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질서가 태어날 수 있는 좋은 조건이기도 합니다. 구질서가 무너지고 물러가야 새질서가 올 수 있습니다. 현재의 혼란은 다함께 꿈꾸는 새로운 대한민국, 새로운 민주공화국에 대한 희망과 변혁의 물결이 되어야 합니다. 오래된 병은 한 번에 고쳐지지 않습니다. 새로운 물결에 계속해서 씻기고 다듬어지면서 변화해 가야 합니다. 그 물결은 바로 여의도에서 목격한 다양성의 물결입니다. 그 새로운 물결이 몰아치도록 물꼬를 트는 것이 새질서의 구축입니다.

 

어떤 사람은 지금은 반란진압과 심판에 집중해야 하고, 개헌은 다음 정권이 시간을 가지고 해나가면 된다고 합니다. 국힘의 개헌 제안을 의심합니다. 하지만 의심과 걱정이 있다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못 하면 안 됩니다. 개헌은 여당 주도로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87년 개헌도 시민혁명으로 궁지에 몰린 신군부 세력과의 타협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김대중 선생은 서생의 문제의식, 상인의 현실감각을 말했습니다. 시민혁명의 열기가 뜨거운 지금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국힘 내에는 내란공범과 검찰독재의 협력자들이 있지만 계엄해제에 찬성한 18, 탄핵에 반대하지 않은 23(찬성, 기권, 무효)이 있습니다. 이들은 최소한의 민주적 양심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들과 협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새질서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여 나머지 국힘 의원들에게서도 변화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국힘당의 모두를 민주주의 파괴 위헌 정당으로 몰면 현 상황을 해결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반란의 심판과 새질서의 구축은 서로 대립하지 않고 오히려 상승작용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현재의 탄핵을 둘러싼 법적 다툼은 국민을 힘들고 지치게 합니다. 국민은 불안합니다. 새로운 비전과 희망이 필요합니다. 이재명을 싫어하는 사람도 함께 꿈꿀 수 있는 내일의 희망이 필요합니다. 이재명 대표의 순수성, 열정, 능력을 믿습니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눈앞만 보지말고 나라의 100년 앞을 보아야 합니다. 작금의 상황은 윤석열이라는 괴물 한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미완의 민주주의인 87년 체제의 한계이고 정치에 있어서의 대립적 모순구도가 곪아 터진 것입니다. 이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10년 앞도 장담할 수 없늘 정도로 이미 위태롭습니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권력교체 한다고 새 세상이 열리지 않습니다. 민주당은 대선승리에 매달리지 말고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민주당은 그럴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생각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민주공화국 내에서 서로 공존하며 평화롭게 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증오가 아닌 존중과 다양성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의 유일한 살길입니다. 87년 체제는 이미 명을 다했고 국운도 쇠락하고 있습니다. 반란으로 시작된 혁명의 열기를 이어가지 않는다면 언제 다시 새 공화국 출범의 기회가 올지 알 수 없습니다. 이 기회를 잃게 되면 대한민국호는 언제 복원력을 잃고 침몰하고 말지 알 수 없습니다.

최병두 | 시민언론 민들레 2024.12.23.

 

국책연구원 입틀막한다고 소득 격차 국가 책임없어지나

소득 격차에 정부 책임이 크다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의 국민인식 조사 결과가 삭제되는 일이 벌어졌다. 본질은 외면하고 표현을 문제 삼아 보건복지부가 압박했다고 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정부 행태가 어이없고 민망할 뿐이다.

 

23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국책연구기관인 보사연 홈페이지에서 사회정책 국민 인식조사연구 결과가 이틀 만에 삭제됐다. 이 자료는 지난 19일 복지부와 보사연이 공동주최한 포럼에서 발표된 다음날 복지부가 삭제를 요청했다고 한다. 보사연은 ‘92.4%가 한국의 소득 격차가 크다답하고, ‘그 책임은 정부에 있다는 동의 비율이 84%를 넘는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소득 격차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과 정부의 책임 인식 모두 증가 추세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이 조사를 두고 정부 사회정책이 역할을 더 해야 한다는 뜻이지, 소득 격차가 정부 책임인 것처럼 해석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연구 결과가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국책연구기관 독립성을 침해한 것이나 다름없다.

 

소득 계층 간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주체는 가계나 기업이 아니라 정부다. 이 때문에 소득 격차가 커지는 건 당연히 정부의 책임이다. 소득 격차 확대 추세는 각종 통계와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최근 통계청의 ‘3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소득 상위 20%5분위 소득은 하위 20%5.69배이고,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14배포인트 증가했다. 윤석열 정부가 한물간 낙수효과를 앞세우며 추진한 부자감세 정책이 역방향으로 적잖은 영향을 줬을 것이다.

 

비판에 귀 닫은 윤 정부의 불통과 아집이 국책연구기관까지 넓어져 우려스럽다. 카이스트 졸업식에서 R&D 예산 축소 항의자를 밖으로 들고 나간 입틀막 사태’, 고등학생 풍자만화 윤석열차입상에 대한 경고, 윤석열 골프 현장 취재기자의 휴대폰 압수 등까지 이 정부는 외부 비판에 노골적인 적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반대로, 지난 총선 참패 후 국정 방향이 옳고 열심히 했는데도 국민이 알아주지 않는다우기더니, 임기 절반을 지나면서는 재정·복지·민생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성과를 냈다고 자화자찬했다. 정부 관료들은 이런 현실과 동떨어진 국정 운영을 바로잡아야 할 책임이 있다. 권력엔 아부하고 국책연구기관 비판까지 무시한 독단과 불통이 계엄 망상으로 이어진 것 아닌가. 행정 당국도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경향사설 2024.12.23.

 

다시 만난 (그들의) 세계

종교와 반란은 필자의 주요 연구 테마 가운데 하나다. 이것은 기독교나 불교가 국가에 반란을 일으킨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그런 사례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제도화된 종교집단들은 지배체제와 유착하는 편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이때의 종교란 물질적 현실과 초자연적인 영역 모두와 관련된 인간의 세계 인식을 말한다. 여기에는 인간이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이나 사회적 관계를 맺는 법, 가치 판단이나 행위를 결정하는 규범 등이 포함된다는 점에서 세계관이나 우주론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자신들이 믿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인식이 현실의 체제와 일치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환상 속의 세계로 도피하거나, 폭력적인 방식으로라도 세상을 교정하려고 한다.

 

대통령이 군대를 동원하여 의회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시민들은 맨몸으로 분연히 일어나 폭력적인 친위 쿠데타를 좌절시키고 내란 우두머리와 그 수하들을 심판하고 있다.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되던 순간, 여의도를 가득 채운 시민들이 눈물과 환희를 담아 부른 다시 만난 세계와 함께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전세계 사람들은 21세기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난 이 비현실적인 사태에 처음에는 경악했고, 이제는 찬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는 오직 우리의 우주, 즉 현대를 살고 있는 대다수 지구인의 상식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상식이란 그저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인식이라는 의미만이 아니다. 그것은 합리적이며, 공감하기 쉽고, 교육, 언론 등 제도적인 기반으로 뒷받침되는 세계다. 그러나 이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번 사태를 경험하는 이들도 있다. 내란 이후 이어진 여러 여론조사들에 의하면, 대통령 지지율은 집권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으나 여전히 10%를 웃돌고 있다. 이것은 종북 반국가 세력이 체제 전복을 노리고 있고, 부정선거를 통해 의회를 장악한 범죄자들이 국가를 마비시키고 있으며,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그들을 처단해야 한다는 윤석열의 광기에 찬 발언에 동조하는 사람이 한국인 가운데 열에 하나는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다시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그것은 상징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옳고 그름에 대한 윤리적 판단, 좋고 싫음에 대한 미적 판단,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이나 감정적인 반응까지 결정한다는 점에서 작동하는 상징들의 체계. 그것은 공동체가 공유하는 역사적 경험이나 의사소통 과정에서 형성되는 사회적 실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나의 사회 내에서 여러개의 세계관이 공존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이 속한 종교집단, 계층, 하위문화에 따라서 똑같은 물질적 현실이라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험될 수 있는 것이다.

 

근대 국민국가는 보통교육과 매스미디어를 통해 세계관을 일정 수준까지 표준화함으로써 성립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급속한 변동, 그리고 최근의 미디어 환경 변화는 일부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하나의 대안적인 우주를 창조했다. 이에 의하면, 우리의 체제는 정치, 문화, 경제 등 모든 영역에서 북한 공산 세력의 침범을 받고 있고, 인권, 자유, 평등의 확대에 대한 요구는 그들의 준동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이 종말론적 상황은 초법적인 권력을 통해서라도 타파되어야만 한다. 이것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정확히 반대되는 사고방식이지만 그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고 믿고 있다. 오랜 군사 독재 시절의 훈육을 통해 몸에 새겨지고, 개인화된 영상매체를 통해 재생산되고 있는 이 우주론은 정치적 반대 세력에 대한 증오, 의회정치에 대한 불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로 현실화된다. 만약 국군통수권자이자 행정부 수반이 이 종교를 믿는다면, 그것은 총을 든 공수부대나 국회의원 체포조의 형태로 물질화할 수도 있다.

 

물론 이 세계관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난 세기 한국인을 지배했던 식민제국과 독재국가의 세속종교와 대단히 닮아 있다. 역사적 소멸의 운명에 처해 있었던 그들의 세계는 급진화된 사적 폭력의 형태로 부흥을 시도하고 있다. 과거에 그것은 억압적인 체제를 유지하는 힘이었지만, 이제는 공격과 수비가 바뀌었다. 오늘날 시민들의 피로 구축한 자유롭고 민주적인 세상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이 이질적인 세계의 침투를 막아야 한다. 처단되어야 할 것은 전공의들이 아니라 반역자이고, 척결되어야 할 것은 의회가 아니라 반역자를 비호하고 있는 위헌 정당이다.

한승훈 |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종교학) | 한겨레 2024.12.23.

 

 

차기정부 경제 성공을 위한 5가지 제언

며칠 전 지방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후배 교수와 만났다. 최근 그의 연구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인사의 선거캠프에 참여하는 학계 인사들 동향으로 자연스럽게 화제가 이어졌다.

 

혹자는 너무 성급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대통령 탄핵소추가 이뤄졌지만, 아직 헌재 결정이 남아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수괴 혐의가 명백한 만큼 상반기 내 조기대선이 유력하지만, 대통령의 탄핵·수사 지연작전으로 대선이 정확히 언제 치러질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하지만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더욱이 차기정부는 1차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와 마찬가지로, 대통령직인수위도 없이 바로 출범해야 한다.

 

대선후보가 풀어야 할 경제과제도 산더미다. 윤석열 정부의 2년 반 실정으로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한국경제도 최악이다. 민생경제는 고물가·고환율·고금리로 피폐해 있다. 내수 한파로 중소상공인의 체감경기는 코로나 위기 때보다 더욱 심각하고, 청년고용도 찬바람이다. 반도체 등 주력산업은 경쟁력 약화로 고전한다. 내년에는 1%대 저성장이 예상된다. 여기에 트럼프 2라는 복병까지 대기하고 있다. 눈앞도 잘 보이지 않는데, 6개월 이후, 나아가 향후 5년 뒤까지 내다봐야 할 어려운 상황이다.

 

차기정부는 이 난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그 해답을 내놓는 것은 각 대선후보의 몫이지만, 모두가 꼭 염두에 둬야 할 게 있다. 지난 8년간 국정을 맡은 윤석열, 문재인 두 정부는 경제에서 국민에게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차기정부는 최소한 전임 정부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첫째, 경제정책 방향이 옳아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가 낙제점인 것은 원칙과 경제환경에 맞지 않는 엉터리 정책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경기침체 위기 속에서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과 취약계층 지원은 정부의 핵심 역할이다. 하지만 윤 정부는 부자감세와 재정건전성을 앞세운 잘못된 조세재정정책으로 오히려 경제를 망치는 이적행위를 했다. 감세를 통한 경기부양 효과도 대다수 경제학자가 이미 기대하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린 지 오래다.

 

둘째, 경제정책 방향이 옳다고 꼭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정책 수행·관리 능력이 뒤따라줘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 위기 극복 등에서 성과를 냈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 등을 통한 소득주도성장(소주성)정책이 논란이 됐다. 저성장·양극화 심화 속에서 가계의 임금·소득 증가가 소비 증가와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이뤄야 한다는 취지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이 중소상공인에 직격타를 가하는 것에 제대로 대처를 못했다. 결국 임기 중반 코로나까지 겹치며,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포기했고, 소주성도 추진동력을 잃었다.

 

문 정부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마찬가지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해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성을 높이고, 임금 등 처우를 개선하자는 취지에 반대할 국민은 없다. 하지만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결국 상당수 비정규직은 고용안정성은 보장하되, 임금은 정규직과 별개 체계인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정규직-비정규직 간, 같은 비정규직 간 갈등이 벌어졌다. 또 이런 한계들 때문에 정규직 전환이 공공부문에만 국한되고, 민간부문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셋째, 정부의 신뢰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패는 윤석열 대통령 탄생의 ‘1등 공신이라는 오명을 듣는다. 부동산 실패 요인은 전세계가 과잉유동성인 상황에서 부동산 금융 관리에 실패한 게 치명적이었지만, 정부의 신뢰성 상실 요인도 컸다. 2017년 대선 전 보유세 인상 등을 통한 부동산 세제 정상화를 약속했다. 시장은 문 정부에서는 부동산 투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정작 집권 뒤에는 세금으로 집값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눈치보기를 했다. 이는 정부의 부동산 안정 의지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졌고, 시장의 역습으로 집값은 급등했다.

 

윤 정부의 금융감독정책도 잦은 말 바꾸기로 인한 정책 신뢰 상실과 시장혼선을 자초했다. 주식 공매도와 기업 밸류 업 정책이 대표적이다. 특히 대통령 스스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강화하는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더니, 재계가 반대하자 꼬리를 내렸다. 결국 실효성도 의심되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대안으로 내놓아, 1400만 주식투자자를 우롱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경제정책의 과도한 정치화(이념화)는 금물이다. 에너지정책이 대표적 사례다. 지난 8년간 정부의 원전 정책은 문재인 정부 때의 탈원전과 윤석열 정부 때의 원전 올인으로 롤러코스터를 탔다. 문 정부는 환경과 안전만 앞세워 원전발전 비중, 원전생태계에 미칠 영향, 재생에너지 확충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현실을 간과했다. 윤 정부는 탈원전을 문정부 때리기를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하고, 국민적 합의 기반 없이 무리하게 원전 비중 확대, 신규 원전 건설을 강행한다. 그 와중에 탄소중립에 필수인 재생에너지 확충이 큰 차질을 빚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양곡관리법 등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민주당은 입법권 침해라고 반발했다. 연간 1조원 정도의 재정 부담은 부차적이다. 필요하다면 정부가 빚을 내서라도 농민을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의 쌀 소비는 계속 줄고, 값싼 외국쌀은 쏟아진다. 정부가 관리하는 쌀 재고도 갈수록 늘어난다. 쌀 공급이 많아 가격이 급락할 때마다 정부가 사준다면, 적정한 쌀 생산은 어떻게 달성하나? 농민 지원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지원의 방법과 방향이 잘못됐다는 얘기다. 원칙이나 현실성보다 대중적 인기에만 영합하는 포퓰리즘은 위험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2022년 대선에서 기본소득 도입을 간판공약으로 내걸었다. 임기초반 국민 1인당 25만원을 시작으로 임기 내 100만원으로 증액하고, 청년에게는 연 200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이다. 이를 위한 25조원의 재원 마련을 위해 기본소득토지세 등 각종 증세방안을 곁들였지만 실효성에서 의문이 뒤따랐다. 이 대표는 누구나 1000만원을 장기대출 받을 수 있는 기본금융 도입도 약속했다. 하지만 이 역시 재원조달 방안이 없는 데다, 현실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정부가 돈을 빌려준다면 사실상 기본소득과 다를 바 없고. 민관기간이 대출한다면 강제할 수 없지 않나?

 

1차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요구를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나라냐는 국민의 함성에 따라 적폐청산을 앞세웠다. 하지만 과거 청산이 지나치다 보니 오히려 국가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2차 촛불혁명으로 출범하는 차기정부에도 각계의 요구가 봇물 터지듯 쏟아질 수 있다.

곽정수 |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 한겨레 2024.12.23.

 

윤석열 지우기'가 시작됐다

정부 부처, 윤석열 탄핵소추 후 태세 전환 기류...사법부도 국정 기조 정면 부인 판결 잇따라

내란수괴 윤석열 시민체포단 긴급행동21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입구에서 군인권센터 주최로 열린 가운데 참가자들이 모형수갑을 들고 '윤석열 체포'를 촉구하고 있다. 이날 집회는 법원이 집회금지 통고 효력을 정지시키면서 열리는 관저 앞 첫 합법집회다.권우성

 

윤석열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 후 각 분야에서 '윤석열 지우기'가 점차 속도를 내는 양상입니다. 윤석열 정권을 지탱해온 버팀목이 됐던 정부 부처에 균열이 표면화되고, 관망적 태도를 보이던 사법부도 위법적인 윤석열표 정책에 제동을 걸고 나섰습니다. 정치권에선 헌재에서 윤석열 파면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이런 움직임이 가속화될 거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정부내 각 부처의 태도에서 감지됩니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19"김건희 여사의 종묘차담회는 국가유산의 사적 사용이 맞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김건희가 지난 93일 서울 종묘 망묘루에서 외부인들과 차담회를 가진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자 국가유산청이 '공식적 행사'라며 두둔했던 것에서 180도 달라진 것입니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판단이 미숙했다"고 사과했는데, 12·3 내란 사태가 영향을 줬을 거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정권 수호의 첨병 노릇을 하던 통일부, 국정원 등도 입장이 미묘하게 바뀌었습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최근 국회에서 대북전단 살포 단체에 활동 자제를 요청했다고 밝혔는데, 그간 표현의 자유를 억누를수 없다며 전단살포를 묵인했던 기존 태도와는 딴판입니다. 국정원도 윤석열이 계엄령 선포의 이유중 하나로 꼽았던 중앙선관위의 부정선거 의혹과 관련, 선관위 점검을 통해 '부정선거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취지의 입장문을 냈습니다. 외교부에선 지난 5일 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대통령실 자료를 장관 모르게 일부 외신에 비공식 배포한 부대변인을 곧바로 직위해제시켰습니다.

 

12·3 이후 법원의 판결은 윤석열의 위헌·위법적인 국정 기조를 정면으로 부인하는데까지 나가는 모습입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192022년 화물연대 파업 당시 윤석열 정부가 화물노동자들에게 내린 업무개시 명령의 위헌성 여부를 판단해달라고 헌재에 요청했습니다. 이는 정부의 업무개시 명령이 사실상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것을 법원이 인정한 셈이라는 게 대체적인 해석입니다. 법원이 지난주 연이어 남영진 전 KBS 이사장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권태선 이사장에 대한 해임 처분 취소 판결을 내린 것도 윤석열 정부의 방송장악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입니다.

 

법원, 무풍지대로 여겼던 한남동 관저 시위 허용

법원이 그동안 무풍지대로 여겨졌던 한남동 관저 앞 시위를 허용한 것도 주목할 대목입니다. 경찰이 그동안 한남동 관저 인근에서 열리는 집회를 제한한 조치에 법원이 제동을 걸면서 지난 21일 처음으로 군인권센터가 관저 출입로 앞에서 집회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22일 농민들의 트랙터가 경찰과 장시간 대치 끝에 남태령을 넘어 한남동 관저 부근까지 진출해 시위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법원의 판결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 변화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당장 윤석열 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추진해 온 '부자 감세' 세제 개편안은 대부분 좌초될 위기에 놓였고, 조만간 발표될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도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해졌습니다. 야당이 요구하는 추경 편성만 해도 정부는 겉으론 난색을 표하지만, 갈수록 둔화하는 경기흐름을 고려하면 조기 추경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재정당국에서도 윤석열표 '건전재정' 기조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는 시각이 팽배합니다.

 

정부의 태도 변화는 다분히 윤석열 탄핵 후 제 살 길 찾기의 일환이지만 그간의 잘못된 국정을 회복시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윤석열의 파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가 남긴 지난 27개월여의 족적을 지우는 일입니다. 이런 과제는 조기 대선 후 출범할 새정부의 몫이지만 그전이라도 윤석열이 퇴행시킨 경제와 민생, 외교와 안보 등 모든 분야를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충재 | 오마이뉴스 2024.12.24.

 

조숙한 '파시즘' 윤석열의 내란 앞에 "나는 반성한다"

국가기구의 민주화, 민주화 제2단계

이 글은 반성문이다. 에밀 졸라의 유명한 논설 "나는 고발하다"처럼 민주공화국의 적들을 준열히 고발하는 글을 쓰면 좋았겠지만, 그 전에 내가 써야 할 것은 "나는 반성한다"는 고백이다. 123일 밤, 역사를 그 전과 후로 가르는 일대 사건을 겪고 난 뒤에는 그럴 수밖에 없다.

 

나는 반성한다. 우선 2024년 대한민국에서 친위쿠데타가 일어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점을 반성한다.

평소 나는 민주주의 같은 제도, 집단의식 혹은 생활양식은 테크놀로지나 산업 같은 물질문화와 달리 불가역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고 강조해왔다. 한 차례 진일보했다 하여 그 상태 그대로 이어지라는 법이 없으며 각 세대마다 자기만의 체험으로 다시 일궈나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지론을 스스로 철저히 이해했다면, 출범한 지 40년이 다 되어가는 제6공화국에서도 어느 곳에선가 민주정을 뒤엎으려는 모의가 준비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수미일관하지 못했고, 그래서 쿠데타 세력에게 무방비로 기습당하고 말았다.

 

또한 나는 반성한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파시즘이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실체화할 가능성을 놓친 점을 반성한다.

나는 파시즘이란 "현대적인 극우 대중운동을 바탕으로 성장하여" "집권 이후 실제로 기존 민주주의의 골간을 파괴하는" 이념-운동이라는 정리를 신뢰했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파시즘이라는 복잡한 현상에 관해 지난한 논쟁을 거듭한 끝에 도달한 명쾌한 정의였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 따른다면 한국 사회에는 아직 본격적인 파시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것은 오판이었다.

 

'극우 대중운동'은 없었지만,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요소가 전에 없던 공간, 즉 온라인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민주정의 가장 기초적인 토대인 선거제도를 불신하게 만듦으로써 현존 대의기구 전반을 뒤엎어도 상관없다는, 아니 뒤엎어야 한다는 망상을 전염병처럼 퍼뜨리는 극우 유튜브 방송들이 있었다. 20세기 파시스트들과는 달리 21세기 온라인 극우 선동은 '비어홀 폭동'이나 '로마 진군'을 거치지 않아도 인터넷을 통해 대통령의 뇌와 곧바로 접속하여 군대를 동원하고 국회를 타격하는 실체적 힘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나는 과거와는 다른 요소와 역학을 통해 파시즘의 기본 요건을 충족시키는 이런 21세기 파시즘의 조짐을 제때에 포착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나는 또 다른 중대한 잘못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절박한 과제가 국가기구의 철저한 민주화임을 충분히 강조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1987년 민주항쟁과 개헌을 통해 대통령을 직접투표로 선출하게 됐다는 사실을 뜻한다. 이는 분명 제4공화국, 5공화국의 노골적 독재와 단절하는 새 출발이었지만, 권력이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되는 구조는 변함없이 지속됐다. 이 점에서 제6공화국은 5.16 군사쿠데타 세력이 만든 제3공화국 질서를 넘어서지 못했다. 달리 말하면, 군사쿠데타 이후 자리 잡은 국가기구 내의 관료적이고 억압적인 구심들이 해체되지 않은 채 이어졌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지속과 성숙을 바라는 논자라면, 바로 이 '불안하고 불완전한' 민주화를 직시하고 끊임없이 문제제기했어야 했다.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각 부처나 군대, 검찰, 경찰처럼 '합법적 폭력'을 다루는 기관에 도사린 비선출직 권력 구심들을 비판했어야 했고, 초집중적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이 이 구심들을 불순한 목적을 위해 동원할 잠재적 위험을 경고했어야 했다. 하지만 대통령 자신에 의해 내란이 '저질러진' 지금, 누구도 이 중대한 과제를 제대로 수행했다고 항변할 수 없게 됐다.

 

진짜 과제를 못 보게 가린 촛불 이후 7년의 잘못된 대립 구도

이 대목에서 반성은 집단적 반성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7년도 더 전에 촛불시위가 있었다. 12. 3 내란 사태를 통해 충격적으로 드러난 문제들은 이미 그때 시민들을 분노하게 만든 쟁점들 안에 잠복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10년 가까이 지나도록 이 문제들은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문제들은 더욱 곪고 곪아 제6공화국을 새로운 독재 체제로 끝내기 일보직전까지 갔다.

 

그래서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 도대체 이 사회의 논의 지형에 어떤 약점과 한계가 있었기에 우리는 권력 심장부에서 이토록 치밀하게 반란이 기획, 실행되도록 방치하고만 있었던 것일까? 이른바 촛불'혁명'을 겪었다면서 어떻게 '내란 정부'를 탄생시키고 말았을까? 특히 한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는 (나 같은) 이들일수록 이런 물음을 뼈아프게 던져야 한다.

 

여러 이유를 짚어야 하겠지만, 문재인 정부 후기에 굳어진 '검찰 개혁'을 둘러싼 담론 지형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조국 법무부장관을 둘러싼 논란을 겪으면서 촛불시민연합은 돌이킬 수 없이 분열됐다. 한 쪽은 '검찰 개혁'이 가장 긴급한 과제라고 강조하면서 조국 장관 문제는 덮으려 했고, 다른 한 쪽은 조국 장관을 통해 드러난 한국 사회의 문제들(상위 중간계급의 대물림과 위선 등등)이 더 심각하다면서 '검찰 개혁'을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두 입장 사이의 골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졌고, 촛불시민연합의 이러한 분열을 바탕으로 윤석열 정부가 탄생했다.

 

이렇게 양극화된 논의 지형이 문제였다. 우리 대다수가 그 안에 갇혀 정작 가장 커다란 위험이 커나가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우선 조국 장관 논란을 계기로 촛불시민연합에서 이탈하거나 새로운 대안을 찾아 나선 이들의 경우는 '검찰 개혁'에 대한 관심까지 덩달아 거두고 말았다. 집권 리버럴 세력의 위선과 기만에 대한 비판이 잘못이었다거나 검찰 개혁의 세세한 방법론을 둘러싼 논쟁이 필요 없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의 '검찰 개혁' 시도에 한계가 있다 하여 이 과제 자체를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안으로 치부하거나 아예 망각한 전반적 분위기에 함정이 있었다.

 

도대체 '검찰'이라는 변수를 생략하고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1987년 민주화 이후 제6공화국의 역사와 공직 경력을 함께 해온 인물이 어떻게 최고위 공직에 올라 '비상계엄' 자작극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징집마저 용케 피한 채 한 평생 책상 앞에만 앉아 있던 인물이 어떻게 군사반란을 감행하고 대북 도발을 시도할 수 있었을까? 개인의 영달과 조직의 보위를 위해 짜맞추기 수사를 거듭하고 군대 같은 상명하달 체계로 움직이는 한국의 검찰 조직을 대입하지 않으면, 답할 수 없는 물음들이다. 이런 점에서 12. 3 내란 사태는 우리를 다시금 '검찰 개혁'을 둘러싸고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한 그 순간으로 돌려놓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조국 장관을 무턱대고 옹호하면서 '검찰 개혁'만 계속 부르짖은 쪽이 옳았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근본적인 오류는 이 입장의 출발점이 된 문재인 정부의 정치 노선에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정부'를 자임했지만, 당시 한국 사회에서 시작됐어야 할 개혁의 방향이 무엇인지를 완전히 잘못 파악하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개혁'의 내용으로 '적폐 청산'을 내세웠다. 겉으로는 통쾌하게 들리지만, 현실에서 이는 전임 박근혜 정부 최상층 인사 몇 명에 대한 사법적 심판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는 기존의 초집중적 대통령제 구조에 손을 대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철저히 활용했고, 가령 윤석열이 이끄는 검찰 조직을 그 충실한 손발로 삼았다. 당장은 이로 인해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는 '기울어진' 양당 구도가 유지됐기에 촛불 이후 한국 사회가 별 문제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바로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다음 과제로 '검찰 개혁'을 꺼내들자 상황이 돌변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개혁'의 시대적 과제로 국가기구 전반의 민주화를 추진한 게 아니라 국가기구 안에서 '합법적 폭력'을 담당하는 여러 기관 중 하나인 검찰만 따로 떼어 개혁 대상으로 부각시켰다. '기울어진' 양당 구도에서 강자의 위치에 선 정부-여당이 이런 식으로 '검찰 개혁'의 시동을 걸었기에 이는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른 공세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만 했다. 게다가 여기에 조국 장관을 둘러싼 논란까지 더해지자 촛불시민연합은 모두를 당혹케 할 만큼 빠른 속도로 와해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지난 몇 년을 복기하는 것은 이제 와서 누가 잘못했는지 따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친위쿠데타 발발에 이르기까지 어느 쪽이 더 책임이 무거운지 판결해보자는 것도 아니다. 지금도 진행 중인 내란 사태 앞에서 이런 평가는 아무 의미도 없다. 처참한 이야기이지만, '우리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라도 우리 모두는 이런 무참한 실패를 낳은 생각과 감정, 말의 지형에서 일단 벗어나야 한다. 다 함께 새 출발의 지반 위에 서야 한다.

 

뒤늦게라도 민주화의 두 번째 단계를 열어야 한다

무엇이 새로운 출발의 지반이 되어야 하는가? 나는 1987년에 이뤄진 최소한의 민주화 이후 미루고 미뤄온 국가기구 전반의 철저한 민주화(민주화의 두 번째 단계)를 공통 과제로 삼아 모든 논의와 실천을 다시 시작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국가기구의 민주화'가 뜻하는 바다. 6공화국 내내 끈질기게 이어진 기대와는 달리, 이는 직선 대통령에게 권력을 몰아주고 이를 통해 관료기구 전체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일 수 없다. 이런 기대는 현실에서 실현될 수 없을뿐더러 윤석열 같은 최첨단 파시스트에 의해 정반대 방향에서 구현될 가능성마저 있음이 드러났다.

 

그렇다고 검찰처럼 횡포가 뚜렷이 드러나 보이는 특정 관료기구를 가려내 손보는 것일 수도 없다. 검찰만이 아니라 경찰, 군대 내 정보조직 등으로 개혁 대상의 숫자를 늘려봐야 마찬가지다. 위험도가 높은 관료기구의 개별적 개혁은 최소한의 부분적 조치일 뿐이다. 12. 3 내란에서도 결국 문제의 핵심은 이런 기관들을 비밀리에 서로 엮어 강력한 반민주 세력을 구축한 최상위 권력에 있었다. 대통령을 포함한 국가기구 전반의 얼개와 작동방식을 뜯어고쳐야만 하는 이유다.

 

아마도 우리 시대에 맞는 '국가기구의 민주화'란 다음 두 가지 요건의 결합일 것이다. 첫째, 권력은 최대한 분산되어야 한다. 국가기구 내에서 국회로, 지방정부로 분산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좁은 의미의 국가기구를 넘어 시민사회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분산되어야 한다. 둘째, 그렇게 분산된 권력 구심마다 대중의 일상적 영향력이 관통해야 한다. 대중은 다양한 권력 구심에 대한 다양한 통제 방식을 통해 민주주의를 더 깊이, 더 넓게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이러한 방향에서 국가기구의 민주화를 추진하기 위해 가장 먼저 풀어야 할 숙제는 물론 12. 3 내란의 최종 진압, 윤석열을 비롯한 내란 세력의 철저한 단죄다. 너무나 빠른 속도로 성장한 조숙한 파시즘에 대한 첫 번째 결정적 반격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에 그치지 않고 곧바로 국가기구 민주화의 다음 국면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만 파시즘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다.

 

이런 다음 단계 과제로는 개헌이 반드시 포함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개헌으로 모든 내용이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국가기구 민주화는 사회대개혁, 사회대전환과 별개의 과제일 수 없지만, 그럼에도 둘이 실제로 긴밀히 결합하려면 상당한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 모든 어려운 도전을 위해 이제 우리는 제2단계 민주화의 통합적 전략을 고민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도 지난 7년의 분열, 도착, 혼란과 과감히 단절해야 한다.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 프레시안 2024.12.24.

 

1978공장의 불빛에서 2024광장의 불빛으로

197928살 김민기는 남산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었다. 1년 전 그가 제작한 노래굿 한편 때문이었다. ‘공장의 불빛’. 1978년 유신정권 말기에 억압받던 노동자 인권과 노동 현장의 열악한 환경을 고발했던 공장의 불빛은 비상한 용기로 김민기를 도운 송창식의 작업실에서 비밀리에 제작된 뒤 2천여개의 카세트테이프에 복사되어 암암리에 퍼져나갔다. 당시 김민기는 총 3개의 마스터테이프 사본을 만들었고, 각기 다른 3명에게 건넨 뒤 그 기억을 지웠다고 한다. 혹시라도 연행되어 고문을 받게 되더라도 그들의 이름을 발설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그는 말했다.

 

지금 주소로 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7137. 1980년대 당시 간판도 없고 지도에서도 찾을 수 없던 음침한 검은색 벽돌 건물. 1987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실체를 드러낸 이곳 남영동 대공분실은 권력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하여 평생 불구자 또는 싸늘한 주검으로 만들었던 한국판 나치 수용소였다. 1985년 고 김근태 의원이 고문기술자 이근안에게 23일 동안 혹독한 고문을 당했던 그곳은, 그의 말처럼 시간이 종국적으로 멈춰버린 영원한 저주의 세계였다.

 

같은 해(1985) 그곳에서 불과 100m도 떨어지지 않은 남영동의 한 카페에 나는 앉아 있었다. 어머니가 운영하던 커피전문점의 2층 창가 자리에 앉아 우울하게 바라본 거리에서 절친했던 중학교 동창이 구두를 닦고 있었다. 대학생인 나와 일찍이 노동자가 된 그의 사이만큼이나 어이없게도 길 건너 약국 간판 아래에는 담배라는 글자가 매달려 있었다. 잠시 뒤 카페 문이 열리고 10살도 안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가 테이블마다 껌 한통과 자신의 처지를 적은 마분지 한장을 함께 건넸다. 무심히 바라본 길가에는 화사한 원피스를 입은 여학생들 사이로 검은 옷의 수녀님들이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걸어가고 있었고, 순간 거리는 온통 회색빛으로 변해버렸다.

 

약국에서 담배를 파는 세상, 어릴 적 친구는 눈치 없이 아는 체하는 나를 외면하는 세상, 어른들은 눈과 귀와 입을 잃어버리고, 아이는 구걸하듯 껌을 파는 세상. 나는 비통한 마음으로 노래 이층에서 본 거리를 만들었다.

수녀가 지나가는 그 길가에서/ 어릴 적 내 친구는 구두를 닦고/ 길거리 약국에서 담배를 팔듯/ 세상은 모순 속에 깊어만 가고/ 분주히 길을 가는 사람이 있고/ 온종일 껌을 파는 아이도 있고/ 시간이 숨을 쉬는 그 길가에는/ 낯설은 그리움이 나를 감싸네/ 2층에서 본 거리 어두운 거리였어/ 이층에서 본 거리 안개만 자욱했어

 

원래 이런 가사였던 비겁한 나의 노래는 그나마도 검열에 의해 난도질당한 채 탄생했고, 같은 시간 누군가는 잔인하고 악랄한 고문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야만적인 국가폭력을 남영동의 또 다른 거리에서 마주하고 있었다.

20253, 군사독재 시절 무자비한 고문이 자행되었던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탈바꿈하여 임시 개관 특별전시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시민들의 민주화 관련 기증품으로 열리게 될 이 전시에 출품 예정인 가장 오래된 민중가요 관련 자료가 바로 1978년 초판 공장의 불빛카세트테이프다. 야만의 시대에 노래는 위로를 전하는 것만으로도 불온한 무엇이 되었다.

 

19805월 광주를 피로 물들인 비상계엄의 시대, 나는 15살이었다. 광주민주화운동 5년 뒤인 1985년 광주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무대에 올라 연주를 하면서 나는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총알 자국이 선명한 벽을 바라보며 모든 것이 차단된 채 짓밟혔던 그 순간 나는 어디에 무엇으로 있었던가를 참회했었다.

 

2024123, 45년 만에 불법적인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국회에 헬기가 착륙하고, 한밤중 거리에는 장갑차가 질주하고, 계엄군이 국회 유리창을 깨고 난입했다. 나는 소년 시절에 겪었던 성공한 계엄의 시간들이 떠올라 공포에 휩싸였다. 어이없는 포고령을 읽으며 이 계엄이 성공하면 즉시 겪게 될 구체적인 내일의 변화가 떠올라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때, 청년은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아섰고, 노인은 살 만큼 살았다며 계엄군 앞에 우뚝 섰다.

 

가까스로 국회가 계엄해제 요구안을 가결한 뒤 시민들은 다시 만난 세계를 자축하듯 너나 할 것 없이 광장으로 나섰다. 거리에는 8년 전에 들었던 무채색의 촛불 대신 자신이 지지하는 가수들의 화려한 응원봉이 등장했고, 투쟁의 레퍼토리는 익숙한 케이(K)팝 노래들로 바뀌었다. 다시 소환된 노래들은 반짝거렸다. 광장의 카페와 식당은 수많은 시민의 선결제로 무료급식소가 되었다. 어른들은 젊은이들의 노래를 함께 불렀고, 젊은이들은 비상계엄이 성공했으면 만나게 되었을 끔찍한 세상에 관해 어른들에게 들었다.

 

무채색의 공장 건물에 퇴근이라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 듯 켜져 있던 공장 불빛의 시대는 형형색색 응원봉들이 빛을 뿜는 광장의 시대로 변했다. 엠제트(MZ)가 민주의 약자라고 해석되는 오늘, 1978공장의 불빛2024광장의 불빛이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의 붕괴를 막고, 국가 기능을 정상화하고자계엄을 선포했다고 주장했다. “2시간짜리 내란이 있느냐, 질서 유지를 위해 소수의 병력을 잠시 투입한 것이 폭동이냐고 강변했다. 그가 남긴 말은 이랬다. “저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김민기가 불의에 맞서 끝까지 목숨을 걸고 싸우며 만든 공장의 불빛카세트테이프에는 그의 말이 녹음되어 있다. “여러분이 떳떳한 이 나라의 주인으로 행세할 때 이 나라의 내일 또한 떳떳할 것입니다.”

 

시민들이 떳떳한 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광장에서 대통령 탄핵을 외치며 케이팝을 노래하자 가수 이승환도 광장의 무대에서 누군가에게만 불온한 노래를 불렀다. 시민들은 완전히 새롭고 질서 있는 시위 문화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렇게 엄청난 위기의 시국을 축제로 만드는 위대한 시민의 나라에서 나는 새로운 노래를 계속 이어가려 한다. 밴드 해리빅버튼의 이성수와 래퍼 한명과 함께 작업할 새 노래의 제목은 영웅이 아니야’.

넌 영웅이 아니야/ 넌 영웅이어서도 안 돼/ 그건 네게 어울리지 않아/ 영웅은 절대 네가 되어서는 안 돼

이두헌 가수·다섯손가락 멤버 | 한겨레 2024.12.24.

 

아직도 박정희 무덤에 침을 뱉는 자들에게
한 유튜버가 국립서울현충원의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가 침을 뱉는 치기 어린 행태를 담은 영상을 최근 우연히 보게 됐다. 그는 박정희는 친일파라며 응징을 하겠다고 큰 소리를 쳤다. 그러면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어록대로 그렇게 해 주겠노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렇다. 박정희 대통령은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는 말을 남겼다. 왜 그랬을까. 얼마 전 필자가 인터뷰했던 좌승희 박사의 설명을 들어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새마을운동 당시 박 대통령은 성과를 낸 마을만 지원하는 인센티브 정책을 펼쳤다. 그러자 장관·정치인들이 모두 들고일어나 그러잖아도 독재정권이라는 비판을 받는 박정희 정권이 이러다가는 무너질 수 있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박정희는 정권이 넘어가도 좋다며 소신대로 정책을 밀어붙였다.


필자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주변에서는 참 사람 좋은 분이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정작 자식들은 밖에서는 싫은 소리 한 번 듣지 않고 호인으로 불리던 그분이 가정에서는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아버지였을 뿐이었다고 토로했다. 친구는 돌아가신 후 남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것보다는 살아생전 자식과 가난한 집안 살림을 위해 때로는 체면 불구하고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아버지를 둔 가정이 부럽기만 했다고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박정희가 세계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을 일으키기 위해 새마을운동·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 경제정책을 구상하고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주변에서 보기엔 무리하게 추진한 점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강력한 리더십이 아니었다면 과연 가난한 나라를 경제 대국으로 탈바꿈시킨 한강의 기적이 가능했을까. 남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국민을 잘살게 만들겠다는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은 여러 가지 면에서 필리핀에 비교된다. 1960년 이후 두 나라를 주요 경제지표를 통해 비교하면 경제성장의 경로와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선 국내총생산(GDP)만 하더라도 1960년대 초반 한국이 약 27억 달러일 때 필리핀은 약 60억 달러로 2배가 넘었다. 하지만 박정희의 소위 개발 독재를 거친 후 한국은 1980년대 중반에 1000억 달러를 돌파하는 급격한 발전을 보였고, 2020년에는 16000억 달러로 승승장구했다. 반면 필리핀은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 위기로 성장이 더뎠다. 2020년 필리핀의 GDP는 약 3700억 달러에 머물러 한국에 비해 현격히 뒤떨어졌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경제지표의 변화가 아니다. 어떤 국가는 성공했으나 어떤 국가는 왜 실패했는지, 그 이유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박정희와 필리핀의 마르코스, 두 지도자는 비슷한 시기에 나라를 통치했고 둘 다 독재자라는 오명을 썼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박정희가 세계 최빈국 수준이었던 한국의 경제발전을 최우선 목표로 두고 이를 가로막는 걸림돌을 과감히 제거해 나갔다면, 마르코스는 국가의 경제발전보다는 자신의 권력 유지와 부정부패에 집중했고 결국 그의 독재는 필리핀을 경제적 침체에 빠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박정희가 독재자였다면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독재는 경제성장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였으며, 이를 통해 우리나라가 오늘날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는 말을 남긴 것은 자신이 추진한 정책에 대해 역사의 비판이 쏟아질 것을 예견한 것이다.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결의는 자신의 명예나 영광보다는 가난한 이 나라를 잘살게 만들겠다는 그의 신념을 설명해 준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박정희의 독재를 부정적·억압적인 것으로만 평가해 왔다. 이는 좌파가 씌운 친일·독재프레임에 국민 대다수가 오도돼 온 탓이 크다. 최근 영화 하보우만(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의 약속을 준비하고 있는 이장호 영화감독은 나는 여태껏 속고 살았다면서 이승만과 박정희를 오해했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으로 대한민국에 사죄하려 한다고 고백했다.


어디 이 감독뿐이랴.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발전에 이바지한 사람들을 친일파라는 프레임에 가둬 버린 좌파의 기획에 의해 국민 대다수가 우롱당했다. 이제는 우리가 저들이 박정희 무덤을 향해 내뱉은 더러운 침을 닦아 내야 할 때가 아닌가.
박선옥 논설실장 | 스카이데일리 2024.11.4.
극우매체 1

 

민주당 더 욕심부리면 뼈다귀 놓친 개꼴 된다

더불어민주당과 배후의 원탁회의 세력은 올 초부터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으로든 뭐로든 임기 전에 끌어내려야 한다는 말을 거침없이 해왔다. 그런 민주당조차도 예상할 수 없었던 윤 대통령의 우스꽝스러운 계엄으로 민주당은 바라던 조기 대선의 목표에 거의 다가섰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이쯤에서 더 이상의 정치적 완력 행사를 자제해야 한다. 탐욕을 부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탄핵소추하거나 아예 국무회의를 정지시키기 위해 남아 있는 국무위원 15명 중 5명을 탄핵소추한다면 모두에게 불행한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는 대통령처럼 국회 재적의원의 3분의 2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지 아니면 총리 등 기타 공직자처럼 과반의 동의만 얻어도 되는지 헌법적으로 불명확하다. 따라서 민주당이 과반의 동의만 얻어 탄핵소추한 뒤 한덕수 권한대행의 직무가 정지됐다고 선언해 버리면 3분의 2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측에서 거세게 반발하면서 국민이 양쪽으로 나뉘어 서로에게 실력을 행사하는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에 대해 국민의힘이 거부권 행사는 되고 헌법재판관 임명은 안 된다고 하는 것도, 민주당이 거부권 행사는 안 되고 헌법재판관 임명은 된다고 하는 것도 다 아전인수격인 해석일 뿐이다. 헌법적으로 가장 명확한 사실은 권한대행의 권한 행사에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프랑스 헌법은 권한대행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해 놓았지만 우리나라 헌법에는 그런 게 없다. 미국은 부통령이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이 아니라 직위를 승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한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는 법적인 탄핵 사유가 되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헌법학자들이 대체로 권한대행의 권한은 제한적으로 행사돼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학설일 뿐이다. 역사적 경험이 축적된 상태에서 진지한 연구를 통해 도출된 학설도 아니다. 권한대행이 재임하는 시기는 공위(空位)의 시기여서 얼마든지 국가적 비상사태가 날 수 있다. 그런데도 권한대행의 권한을 헌법적 근거도 없이 선제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승자박이 된다. 무엇보다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에 대해 내린 유권 해석이 없다. 단지 권한대행은 수권(授權)이 국민으로부터 직접 이뤄진 것이 아니어서 권한 행사를 자제하도록 권고받을 뿐이다.

 

또 민주당이 국무위원 5명을 동시 탄핵해 정족수 미달로 국무회의 개최가 불가능해진다면 그 자체로 헌법기관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이 된다. 계엄선포를 위한 국무회의가 소집됐지만 심의는 제대로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 국무회의는 의결기관이 아니어서 찬반 의견이 법적 의미를 지닌 것도 아니지만 총리를 포함해 대부분의 국무위원들은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따라서 국무위원들에게는 법적인 탄핵 사유가 없다. 그런데도 국무위원들을 탄핵해 국무회의 개최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헌법기관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국헌문란 행위에 해당한다.

 

내란죄에는 형법상 최광의(最廣義)의 폭력 개념이 적용된다. 대법원은 1997년 전두환·노태우 재판에서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 자체를 폭동이라고 보고 이들에게 내란죄를 적용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한 것이지만 국회 기능을 마비시킬 목적으로 행사했다는 의심을 받기에 내란죄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 민주당의 탄핵소추권 행사도 국회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지만 법적 사유도 없이 국무회의의 기능을 마비시킬 목적으로 행사하는 것이라면 마찬가지로 내란죄가 될 수 있다. 대통령의 내란 시도도, 국회의 내란 시도도 국민은 주권자로서 막아야 한다. 필요하면 저항권을 행사해서라도.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로 조기 대선이 가시화하면서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사실상 극복했다. 그 정도면 됐지 뭘 더 원하는가. 더 이상의 정치적 완력을 행사했다가는 뼈다귀를 물고 다리를 건너던 개가 물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그 뼈다귀까지 얻겠다고 짖는 바람에 물고 있던 뼈다귀까지 놓치는 개꼴이 될 수 있다.

 

지금 탄핵을 통한 질서 있는 퇴진이 이뤄질 때 그로 인해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것은 민주당이다. 퇴진이 무질서해질 때 민주당에 돌아올 이익이 무엇인가. 조기 대선으로도 불안해서인가. 각박하고 탐욕스럽기가 그 대표를 닮아간다.

송평인 논설위원 | 동아 2024.12.24.

 

 

과거에 갇혀버린 나라

"뭔 비리가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제 행적을 일일이 소명해야 하는 절차가 까다롭고 귀찮아서요."

최근 만난 A그룹의 고위 임원은 텔레그램만 쓴다고 했다. 채팅 자동 삭제 기능이 있는 데다 보안성이 좋아서다. 이미 상당수 A그룹 임원들이 텔레그램으로 통화하고 문자를 보낸다. 혹시 모를 검찰 수사나 사내 감사에 대비하려는 생존 본능이다.

 

B대기업의 사장급 인사는 "수첩에 메모하던 습관을 버렸다"고 토로했다. 무심코 남긴 기록이 자신의 뒷덜미를 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때 '적자생존'(적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뜻으로도 사용)이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이젠 함부로 적으면 죽는 상황이 됐다. 기록의 소멸이자 사유의 추락이다.

뒤탈을 없애려 의사결정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기업인들의 행동은 이제 일상이 됐다. 중대재해처벌법과 주52시간 근무제 등 기업을 옥죄는 기존 규제에 더해 새로운 규제 압박이 커지면서 많은 기업이 이중, 삼중의 사법 올가미에 걸려들까봐 전전긍긍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했기에 망정이지 국회증언감정법이 통과됐다면 기밀 유출을 우려하는 외국계 기업들의 대탈출극이 벌어질 뻔했다. 국회가 자료를 요구하면 영업 비밀이어도 제출하고, 증인으로 채택된 기업인은 영상으로라도 출석해야 한다는 게 이 법의 골자다. 보안을 생명처럼 여기는 기업 입장에선 펄쩍 뛸 일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는 상법 개정도 재계의 큰 골칫거리다.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면 기업들의 구조조정과 사업 재편에 급제동이 걸릴 공산이 크다. 손해를 본다고 주장하는 소액주주들이 사사건건 소송을 걸고, 사외이사들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 한 발짝도 움직이려 하지 않을 게 뻔하다. 살아남으려는 변신의 몸부림이 통제받는 순간 기업 경쟁력은 추락하고 과거의 유물처럼 화석화될 것이다.

 

'굿 투 그레이트'의 저자 짐 콜린스는 지속가능한 성공을 위해 비전과 변화, 장기적 안목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사법 리스크로 움츠러든 기업인에게 도전정신과 미래 지향적 사고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미래 대비보다는 위기 관리에 자원을 소모하면서 혁신의 골든타임을 놓치기 십상이다.

지난 17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들과 만났다고 한다. 준감위 위원들은 '삼성 위기의 타개책이 뭔지' 등 여러 질문을 미리 준비했다. 하지만 그날 이 회장의 낯빛이 너무 어두워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는 후문이다. 내년 2월 초에 2심 선고를 앞둔 이 회장에게 적극적인 행보를 기대하기 힘들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거기에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탄핵 사태도 갈 길 바쁜 기업들에 대형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느닷없이 대선 일정이 앞당겨지고 정권이 바뀌면 정책 기조가 뒤집힐까, 새 권력에 찍히면 수사 대상에 오를까 노심초사하는 기업이 적지 않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출범에 대한 대응책 마련도 벅찬데 설상가상이다.

한국은 스스로를 옥죄고 견제와 충돌을 반복하는 '자기 파괴적 악순환'에 놓여 있다. 기업 손발을 묶는 겹규제, 상대방을 끌어내리는 정치 투쟁을 반복하니 미래는 실종되고 나라 전체가 과거의 덫에 빠져드는 모양새다.

 

국익만을 생각하며 앞을 향해 뛰어도 글로벌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경제위기 국면이다. 중국·대만·일본 등 경쟁국과의 제조업 패권 경쟁만 생각해도 아찔하다. 우리는 2025년 을사년 새해에 미래를 되찾을 수 있을까.

황인혁 지식부장(부국장| 매일경제 2024.12.24.

 

친위 쿠데타의 운명

한국 시각보다 9시간 늦은 포르투갈 124일 아침, 내 휴대폰에 급보, 비상계엄령이라는 문자가 갑자기 보였다. 하도 맹랑한 내용이라서 나는 가짜뉴스겠지 생각하면서 외신을 점검했다. 한데, 놀랍게도 모두 다 서울의 비상계엄령 소식을 머리기사로 올렸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국회의사당 안팎의 모습을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올린 물음은 제3세계에서 유일하게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룩한 나라라고 평가받는 한국에서 2024년에 이런 사건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지였다.

무장한 군인이 의사당 안까지 난입한 숨가쁜 상황에서 비상계엄령을 반대한 야당 의원의 결연한 의지와 이들을 지킨 시민의 뜨거운 동참이 이번 정변 계획을 일단 좌절시켰다. 긴장의 시간 열흘 만에 탄핵안은 결국 국회를 통과했다.

 

뜬금없는 이번 서울발 비상계엄 소식을 접하면서 제일 먼저 떠올린 인물은 올해 9월 사망한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였다. 일본인 2세로서 농업기술을 전공했고 후에 대학 총장도 지낸 그는 1990년 선거에서 예상을 뒤집고 보수세력의 지지를 받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를 꺾고 승리했다.

그는 심각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의 지도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이에 비판적인 의회와 끊임없이 갈등을 빚었다.

19924, 그는 군부를 동원해 의회를 해산하고 사법권과 언론 통제도 강화했다. 199312월 신헌법을 발표해 재선의 가능성을 마련한 뒤 1995년 재선에 성공했다. 3선 금지조항을 비켜나가기 위한 헌법해석법까지 통과시켜 20003선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이런 독재적 발상과 행태는 결국 그의 몰락을 재촉했다. 그의 집권 10년 동안 자행된 반인권적 통치행위와 부정부패에 일거에 폭발한 민심으로 쫓겨난 그는 일본으로 도피했다. 그는 일본에서 팩스로 자신의 사임을 발표했으나 의회는 이를 거부하고 대신 영구한 도덕적 무능을 선고하고 파면 결의를 했다. 2005년 말 재기를 노리고 칠레에 입국했으나 체포된 그는 2년 후 페루에 송환됐다. 그는 3년여의 재판 끝에 징역 25년형을 선고받고 7년 동안 복역하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올해 9월 사망했다.

 

권력의 정점이자 내리막 시작

물론 후지모리의 이 같은 쿠데타는 친위 쿠데타의 역사에서 전형으로 자주 이야기되는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남긴 유산과는 비교될 수 없다. 하지만 후지모리주의라는 정치적 유산의 지지자들은 이후에도 그의 딸 게이코의 대권 도전을 지원했다. 그녀는 세 번이나 결선투표까지 갔으나 근소한 표차로 패했다.

 

프랑스 혁명 후의 격변기에 유럽에서 그랑드 나시옹프랑스를 건설했던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1799년 브뤼메르 쿠데타를 거치면서 제1 총통이 되었고, 1805년에는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1812년 겨울 러시아 정복전쟁과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패배한 후 그의 영향력은 급속히 쇠락했다. 그는 2년 후 엘바섬으로 유배되었으나 한겨울을 나고 탈출, 파리로 돌아가 재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100일 천하로 끝나 세인트헬레나섬에 유배되어 생을 마쳤다.

40년 전 엘바섬에 들렀을 때 나는 나폴레옹이 유배 중에 기거했던 크지 않은 빌라에서 지중해를 바라보며 이 세상에서 권력과 이별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는 탈레랑(1754~1838·나폴레옹을 정계에 등장시켰으나 후에 그와 갈등을 겪었던, 유럽을 무대로 종횡무진 활동했던 외교관)의 말을 떠올렸다.

 

인류사의 큰 재앙인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장본인 중 하나인 아돌프 히틀러도 이탈리아 파시스트 무솔리니의 로마 진군처럼 1923년 뮌헨을 시작으로 해서 베를린 진군을 기획했으나 실패, 의회 진출을 통해 국가권력을 쟁취하는 길을 택했다.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막대한 배상금 때문에 허덕이던 독일은 1929년 대공황 발생으로 갈등과 혼돈의 수렁에 빠졌다.

이는 히틀러에게는 하나의 기회였다. 그가 이끈 나치당은 1932년 의회선거에서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했지만 제1당이 되었고 그는 1933년 총리가 되었다.

공산당이 베를린 의회 건물에 방화했다는 것을 구실로 총리에게 전권을 위임하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켜 친위대를 동원,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을 비롯한 비판세력을 제거했다.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19348월 사망하자 그는 곧 총리와 대통령의 지위를 통합한 유일한 지도자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1인 통치체제를 철저히 구축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고속도로(아우토반) 건설과 같은 대규모 공공투자를 통해 실업자를 구제하면서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군수산업의 확충에 힘을 쏟았다. 비교적 짧은 기간에 보여준 가시적 성과 덕에 그는 대중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3991일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은 결국 6년 동안 6500만명이 희생된 인류사의 최대 비극을 낳았고, 1945430일 그는 소련의 붉은 군대가 완전히 포위한 베를린의 지하벙커에서 자살했다.

 

이미 지닌 권력을 바탕으로 더 많은, 더 완전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친위 쿠데타에 성공한 나폴레옹은 15, 히틀러는 12, 후지모리는 10년 권좌에 머무를 수 있었다. 그러나 친위 쿠데타의 성공은 권력의 정점이자 동시에 이의 내리막의 시작이기도 하다.

프랑스 혁명의 기치인 공화주의 이념을 유럽에 전파한 나폴레옹을 흠모한 베토벤이 원래 교향곡 3<영웅>을 그에게 헌정하려 했으나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악보에서 보나파르트를 지웠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447월 히틀러 암살을 주도했다가 실패해 즉결처분된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도 젊은 시절 히틀러를 독일 민족을 구원할 진정한 지도자로 여겼다. 그러나 그는 2차 대전 발발 이후 전쟁의 참상을 겪으면서 반나치주의자가 되었다.

정직, 기술, 노동이라는 구호를 내세워 집권에 성공한 후지모리는 긴축재정을 통해 경제분야에서 이룬 성과와 빛나는 길’(Sendero Luminoso)이라는 좌익 게릴라 소탕 등으로 일정한 정도 구축했던 지지 세력도 계속된 인권탄압과 부정부패로 그에게 등을 돌렸다.

 

지금도 안심할 상황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1972년 유신체제의 출범과 몰락에서도 친위 쿠데타의 궤적을 볼 수 있다. 7년 동안 유지된 유신체제는 19791026일 궁정동 안가의 총성과 더불어 일단 끝났지만, 다시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군부의 19805월 유혈 쿠데타로 연결되어 반동의 시대는 적어도 19876월까지 지속되었다.

 

그 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민주주의는 나름대로 정착되어 오늘에 이르렀는데, 하룻밤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고 무장한 군인들이 의사당 안으로 난입하는 일이 벌어졌으니 세계는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페루처럼 거의 내전 수준의 정부군과 게릴라 사이 전투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겠다고 비상계엄을 선포했으니 어떻게 이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비상계엄 선언, 국회의 해제 요구 결의안 통과 그리고 이에 따른 해제까지 6시간이 걸렸으니 이번 친위 쿠데타는 실패한 쿠데타임은 물론이고, 단명한 것으로도 기네스북에 오를 것 같다. 가장 짧은 시간에 성공한 쿠데타로는 41년 동안 지속한 살라자르 독재체제를 시작 6시간 만에 무너뜨린, 1974425일 있었던 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을 꼽는다. 이 무혈 혁명은 국민의 절대적 지지 때문에 그렇게 빨리 성공할 수 있었지만,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는 시민의 저항으로 그렇게 빨리 실패로 끝났다.

 

탄핵에 이어 내란죄의 우두머리로 윤석열은 이제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그가 내린 비상계엄은 내란이 아니라 통치 행위에 속하고, 지금은 분노하고 있지만, 국민도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결단을 이해할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지금의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안심해도 되는 것인지. 그리스 신화에는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진 히드라가 나온다. 머리 하나를 자르면 그 자리에서 곧 두 개의 머리가 나오는 괴물이다. 영웅 헤라클레스는 히드라의 잘려나간 목 부분을 횃불로 지져서 새로운 머리가 나올 수 없게 만들었으나 한가운데 있는 머리는 죽지 않아서 거대한 바위로 짓눌렀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지금 한국 땅에서 벌어지는 히드라와의 싸움에 수많은 헤라클레스가 횃불 대신 스마트폰 불빛을 들었다고 믿는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 경향 2024.12.24.

 

악한들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악을 지칭하는 영어 evil을 거꾸로 하면 live, 삶이다. ‘영어 철자처럼 악은 우리 삶을 거스르는, 삶의 생명력을 파괴하는 과정이다라는 조크를 대중에게 알린 사람은 정신과 의사 스콧펙이었다. 스콧펙은 <거짓의 사람들>이라는 역작에서 악의 심리학에 관해 기술했다. 그는 우리는 여전히 악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고 했다. 이유는 대다수 악한들은 자신이 악한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진료나 검사를 받지 않고, 또 연구의 대상이기를 거부해왔기 때문이다. 스콧펙은 악한 사람들의 행동 특징을 자신의 임상 사례를 통해 검토하면서 다음과 같은 특징들로 정리를 했다.

 

첫째, 악한 사람들은 자신의 악을 볼 수 없고, 감내할 수고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악을 저지를 수 있다. 둘째, 악한 사람들은 책임 전가의 달인들이다. 악한 행동을 저지르고 어떻게 해서든 남 탓을 한다. 악이 자행되는 이유는 책임을 뒤집어씌우기 위해서이다. 셋째, 악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미워할 수 없고, 자신에게 과오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을 피해자, 희생자로 여기지 가해자라는 생각은 일절 하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들의 적반하장에 기겁을 한다. 넷째, 악한 사람들은 일을 그르쳐 놓고도 잘했다고 우겨대는 사람들이다. 음모론을 짜내고 황당한 프레임으로 사람들을 호도하려고 한다. 다섯째, 악한 사람들은 공감능력 결핍으로 악한 행동으로 인해 생긴 고통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들은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잔치와 연회를 벌일 수 있는 사람들이다. 끝으로 악한 사람들은 자신의 악함을 위장하는 데 능숙해서 처음부터 알아보기란 쉽지 않다.

 

현대 사회에서 누가 악한이고 악한은 어디에 있는가?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악한들이 가장 위장하기 좋은 곳이 종교집단이고 그래서 종교집단에 악한이 많다고 했다. 정신분석가 마이클 아이건은 위장된 악한들이 몰려 있는 집단으로 정치인 집단을 들었다. 그는 부시와 트럼프 등 미국 대통령들이 사이코패스 속성이 강하다며, 사이코패스들의 정치 속에서 죄책감이 사라진 시대를 맞이했다고 개탄한 바 있다.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도 악한들의 도발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악한들은 책임을 회피하며 부정선거 음모론과 함께 관심을 호도할 프레임을 찾고, 진실을 감추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면서 계엄 트라우마가 망각되기를 바라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오히려 계엄 트라우마는 실패한 내란 범죄로 기억에 선연히 남을 것이다. 또 이번 사태의 초점이 흐려지기를 바라는 것 같은데 그럴 일도 없을 것이다. 영상은 생생하게 그날의 일을 전하고 있고, 발표되는 수사결과들은 명료하게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악한들의 수법대로 물타기를 하며 뒤를 봐주는 언론에 호소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그들의 만행을 보았고 정신적 트라우마를 입은 상태다.

 

실패했으므로 쿠데타가 아니고, 한 명도 죽지 않은 내란이 어딨냐는 궤변으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악한들이 있나보다. 실패한 쿠데타도 쿠데타다. 살인미수가 범죄이듯이. 총든 군인을 국회에 보냈으나 실패했고, 내란을 모의하고 기획했다는 것들이 실토되었다. 만일 성공했다면, 정치인들은 구금되고, 전공의는 처단되었으며 국민들의 자유는 금지되었을 것이다. 도사, 법사, 데이터 조작가, 일부 종교인들은 한탕으로 이익을 얻었을 것이다. 고속도로를 휘게 하고, 주식을 조작하고, 부동산 수익을 위한 금긋기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사이코패스가 의심되는 어느 정치인은 불안감을 호소하는 초보 정치인에게 국민들은 1년 뒤에는 기억도 못하는 존재이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로 위로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시민들은 악에 대해 깨달을수록 현명하게 행동할 것이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경향 2024.12.24.

 

 

보수에 대한 모든 기대를 버렸다

최근 한국 보수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이 이만저만 아니다.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허를 찔리고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런 황당한 집단에 대해서 우리는 신랄한 평가를 하고 기대를 버려야 한다. 내란 사태를 겪으면서 나는 보수, 더 정확히 말하면 보수를 참칭하는 현 정권의 핵심 인사들, 국민의힘 다수 의원들, 그리고 그들과 강하게 연결된 엘리트 집단이 단순히 경제운영 능력이 부족한 수준을 넘어, 경제운영을 맡겨서는 안 되는 집단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들은 거대한 사익추구집단에 불과하다. 중요한 몇 가지만 되짚어 보자.

 

사익추구는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것을 넘어, 권력을 이용해 감정적 보복을 하거나 자신에게 필요한 인물이나 광적인 지지자를 편애하는 행위까지 포함된다. 20227월 당시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법인세를 포함한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하며, 이를 통해 경제 성장, 세수기반 확충 등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감세가 경제 성장의 마법이라는 것은 전통적인 보수의 수사로 이해할 수 있으나, 당시 정권의 행보를 보면 이상한 점이 많았다. 최근 내란 사태에서 드러난 보수 세력의 행태를 고려하면, 이는 문재인 정권에 대한 감정적 보복으로 보인다. 이들은 국가경제보다 전 정권을 극도로 증오하는 자신들의 핵심 지지층과 극우 유튜브의 반응을 더 신경 썼다는 것이다. 당시 극우 유튜브에서는 문재인 정권이 나라의 재정을 탕진해 한국이 남미의 베네수엘라처럼 될 것이라고 과장되게 선동했었다.

 

이런 추측은 과하지 않다. 현 정권은 감세정책을 진지하게 준비하지 않았다. 2022년 추 부총리는 감세효과에 대한 질문에 법인세 인하가 장기적으로 3.4% 경제성장을 가져온다는 짧은 보고서를 언급했다. 그러나 그 보고서는 핵심정책 근거로 삼기엔 부실했다. 무엇보다 현 정권 들어 새로 뭘 분석한 것이 없는 예전 분석 결과의 재탕이었다. 더 황당한 일도 있었다. 당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법인세 인하가 국제적 추세라며 미국, 영국, 프랑스를 언급했으나, 당시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안으로 대기업에 최소 법인세율 15%를 도입해 사실상 증세를 시행하고 있었다. 미국의 정책도 확인하지 않고 여당 원내대표가 이를 국제적 추세라며 국회에서 당당히 주장한 것이다. 준비가 없으면 무리수를 두게 마련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추 부총리는 2022년부터 “2023년 상저하고를 외치며 상반기 경제는 나쁘지만 하반기에는 회복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측이 틀린 것은 차치하더라도, 이는 매우 비판받아야 할 행보다. 경제정책 수장은 시장심리 기대조정(expectation control)을 신중하게 해야 하는데, 시장의 기대는 실제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만약 경제부총리가 지속적으로 코스피가 5000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면, 주식시장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추 부총리는 사실상 그와 같은 무책임한 발언을 지속한 셈이다. 이후 2024년 그는 총선에 출마해 당선되었고, 원내대표 자리까지 올랐다. 이 모든 과정은 추 부총리가 시장 상황이 아니라 윤석열의 심기만을 경호했다는 의심을 낳기에 충분하다.

 

윤석열이 부산 엑스포 유치 과정에서 재벌 총수들과 술자리를 갖고 떡볶이까지 함께 먹은 일의 퍼즐도 어느 정도 맞춰졌다. 극우 유튜브에서는 문재인 정권이 재벌의 재산을 몰수하려 한다며 끊임없이 선동했고, 윤석열은 자신을 열렬히 지지하는 유튜버들에게 나는 문재인과 달리 재벌 총수들과 친하다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사익을 위한 이벤트에 재벌 총수들을 동원한 이상, 그들에게 뭔가를 제공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이는 최근 상법 개정 논의에서 드러났다. 윤석열은 연초에 일반주주보호를 위한 상법 개정에 긍정적 입장을 밝혔으나, 재계의 강력한 반발이 이어지자 상법 개정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노골적인 사익추구에 국장만 추락했다.

 

한국의 보수는 국가운영에서 손을 떼고 반성부터 해야 한다. 그들은 거대한 사익추구집단이기도 하지만, 개선의 여지도 보이지 않는다. 올해 8월 국민의힘 주호영 국회부의장은 연찬회에서 민주당이 개최한 세미나와 간담회 횟수를 합치면 3517회인데 국민의힘은 2021회에 불과하다. 기자회견장 이용 횟수도 민주당은 846, 국민의힘은 354회로 절반에 못 미친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의원 중에 전화 안 되는 의원님들 꼽으라고 하면 다 꼽을 수 있다고도 비판했다. 그들은 공부도 안 하고 활동도 안 하면서 전화까지 안 받는다. 뭘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들에게 희망은 없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 경향 2024.12.24.

 

모든윤석열과의 결별

최승호의 대설주의보1980년대 군사독재의 폭압을 대설(大雪)에 빗댄 시다. 시는 세상을 얼어붙게 만든 눈보라 군단을 백색의 계엄령이라고 했다. 2024123, 백색의 계엄령은 현실의 언어가 됐다. 장갑차와 헬기를 앞세운 계엄군이 국회에 투입됐고 선관위 침탈을 시도했다. 접경지 강원도 양구에도 군인들이 드나들었다.

 

그날 밤 계엄이 성공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두건, 야구방망이로 무장한 계엄군이 선관위를 침탈하고 부정선거가 확인됐다는 발표가 나온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지피던 극우세력들이 광장을 장악한다. ‘수거(체포) 대상들은 언제 체포·사살될지 모를 공포에 갇힌다. 북의 공격을 유도해 전시·사변 또는 그에 준하는사태가 벌어진다.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소추안이 부결됐다면 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내란 사태를 일으킨 대통령이 복귀한 뒤 반대파를 색출한다. 탄핵 집회에서 응원봉을 들고 선결제에 동참했던 시민·기업은 직장을 잃거나 세무조사에 시달린다. 수많은 야권 인사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등 조작된 혐의로 정치생명을 잃는다.

 

다행히 끔찍한 사태는 막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벼랑 끝에 서 있다. 지금 집권세력의 모습을 보라. 대통령 윤석열은 친위 쿠데타를 시도하고도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딨느냐며 수사에 불응하고 있다. 내란 방조의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정부는 거부권을 행사하며 계엄 전으로 돌아갈 기세다. 계엄에 반대한다던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을 비호하더니 아예 내란 동조 세력이 당을 장악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도대체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는 것 같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1층 문이 열리면 잡혀갈까 싶어 다시 10층으로 올라갔다” “80517일 계엄군에 끌려간 동생이 생각나 그 새벽에 전화로 생사를 물었다”. 계엄, 내란이란 바로 이런 거다.

 

항간엔 대통령이 영화 <서울의 봄>을 두 번 보며 무릎을 쳤다는 말도 들린다. 전두환식 독재를 꿈꿨던 걸까. 독재로 가려는데, 민주화 이후 만개한 민주주의를 못 견디겠다는 신호를 계엄으로 드러내려 한 걸까. 도스토옙스키는 독재는 습관이다. 그것은 마침내 질병으로 변한다고 했다. 습관이 질병을 만든다는 평범한 진리를 담은 말이다. 전두환·노태우도 이러진 않았다는 한탄, 대통령 한 사람만 물러나면 새 세상이 올 줄 알았다던 착각. 이렇게 대통령 개인의 비인격적 지배’(습관)를 방치한 사이 우리는 윤석열 정부라는 심각한 질병과 맞닥뜨렸다.

 

공고한 줄 알았던 민주주의는 지난 3년간 급속히 퇴행했다. 비선출 권력의 정치권력화, 비판 언론 공격, 표현의 자유 후퇴 등을 들 수 있다. 2024년 스웨덴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가 조사·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지수는 지난해보다 20계단 추락한 47위였다. 민주주의 국가 중 지난해보다 민주주의 지수가 후퇴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독재로 가게 된다는 전문가들의 경고에도 국민의힘은 가짜뉴스 대응단을 꾸리며 계엄을 두둔하고 있다. 더 심각한 건 사회적으로 합의된 보편적 가치가 윤석열 정부에서 무너졌다는 점이다. 실제 자유, 평등, 다원주의, 선거를 부정한 사례가 부지기수다. 특히 극우인사들이 권력과 보수의 주류로 등장한 것은 이전 정부에서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이들은 냉전 이데올로기를 국가 정책으로 구현하면서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공격을 일상화했다. 야당을 국헌문란 세력으로 규정하고 선관위 기능을 부정한 대통령의 계엄 선포(3), 대국민 담화(12)는 그 정점이다.

 

많은 이들이 123일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벌써 달라졌고 지금도 달라지고 있다. 계엄의 밤 당시 시민들은 탱크를 막아서며 국회 담을 넘는 의원들을 도왔고,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는 시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지 말라고 당부했다. 세월호·이태원 참사의 교훈을 잊지 않은 젊은이들은 부당한 공권력에 따르지 않겠다며 차도 위에 드러누웠다. 광장과 남태령 고개에선 여성, 농민, 성소수자, 노동자 등 고립되고 분리됐던 약자들이 어울렸다. 이들은 다시 만난 세계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르며 서로를 격려했다. 대통령 윤석열을 끌어내리는 걸로 끝내지 않겠다는, ‘윤석열적인모든 것들과 단절하겠다는 싸움이다. 대통령 윤석열을 잉태한 모든 야만과 폭력과의 싸움이다. ‘나라가 어두울 때 가장 밝은 것을 들고나오는대한민국 시민들의 민주주의 수준에 근접조차 못한 세력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싸움이다.

구혜영 정치부문장 | 경향 2024.12.25.

 

윤석열 또 수사 불응, 그래도 지켜보겠다는 공수처

12·3 내란사태의 주범 윤석열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2차 출석 요구도 거부했다. 앞서 검찰·경찰까지 포함하면 네차례 조사 거부다. ‘정당한 이유 없이 수사기관의 출석 요구에 불응할 경우등 체포영장 청구 요건을 넉넉히 갖췄다. 더욱이 윤 대통령 쪽은 탄핵심판이 먼저라며 수사 불응 의사를 노골적으로 밝혔다. 그런데도 공수처는 당장 윤 대통령을 체포하지 않고 더 지켜보겠다고 한다. 국민들은 계엄 사태 이후 하루하루가 불안한데, 공수처는 그렇게 한가한가.

 

공수처는 25일 윤 대통령의 2차 출석 요구 불응에도 상황을 더 지켜보겠다고 했다. 형사소송법은 상당한 범죄 혐의가 있고, 정당한 사유 없이 피의자 신문을 위한 조사에 응하지 않을 경우피의자를 체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이 인정되지 않는 중대 범죄인 내란 우두머리혐의를 받는다. 이미 검찰과 경찰의 한차례 출석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다. 수사기관이라면 당연히 체포영장을 청구해 강제수사에 나서야 한다. 오동운 공수처장은 전날 국회 법제사법위에서 윤 대통령이 안 나오면 체포영장을 청구할지를 묻는 질문에 지금 결정된 방침이 없는 상태라고 했다. 앞서 검찰에서 윤 대통령 사건을 넘겨받기 전에는 상황이 되면 체포를 시도하겠다고 큰소리쳐놓고 이제와서 딴소리다. 검찰에서 사건을 넘겨받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나. 공수처는 검찰 수사의 공정성을 문제 삼았는데, 지금 공정성을 의심받는 건 오히려 공수처다. 오 처장은 여당인 국민의힘이 추천했고, 윤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았다. 오 처장은 국회에서 대통령께서 공수처에 출석하시는 소중한 시간을 꼭 내주시기를 거듭 요청드리고 원하는 바입니다라고 했다. 이게 내란 주범에게 수사기관장이 할 소린가.

 

공수처는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수사도 13개월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아무리 수사 인력이 부족한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근본적인 수사 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수사 능력은 물론, 의지도 없으면서 윤 대통령 수사에 덜컥 뛰어들었나. 공수처가 윤 대통령에 대한 강제수사를 계속 머뭇거린다면, 내란 세력을 비호한다는 의심까지 받을 수 있다. 사실상 친위 쿠데타를 시도했던 내란 우두머리가 별일 없다는 듯 대통령 관저에 머물고 있는 비정상적인 상태를 국민은 한시라도 참기 힘들다. 경향사설 2024.12.25.

 

일본 ‘3대 오물과 한국 내란범들

2차 세계대전 당시 만주와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을 앞당긴 일본군 장성 세 명을 묶어서 ‘3대 오물(三大汚物)’이라고 한다. 중일전쟁을 일으킨 원흉이며, 수만명의 병사를 굶어 죽게 만든 임팔 전투의 지휘관인 무타구치 렌야, 임팔 전투 기획안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무타구치와 같은 라인이라고 넙죽 승인해 주었으며 무모한 태평양 전쟁을 부추긴 스기야마 하지메, 필리핀 전장에서 무모한 가미카제 작전을 시도하다가 폭삭 망하고 나서 항공군 총사령관이면서도 도주한 탈영의 신도미나가 교지가 바로 그들이다. 태평양 전쟁을 미화하는 일본의 우익조차 오래전에 버린 이 세 명에 대해 한국 독립군의 스파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무능하고 비겁한 이들은 모두 규슈 출신이며 일본 육군대학 선후배 사이여서 전쟁 말기까지 출세 가도를 달렸다. 이들의 뒤를 이어 만주사변의 주범인 이시와라 간지와 자칭 작전의 신쓰지 마사노부는 육군대학 6등 이내 졸업자인 군도조(軍刀組) 출신들이다. 전시내각의 총리 도조 히데키는 육군대학 삼수생이고 그 아버지는 육군대학 수석 졸업자다. 일본 군국주의와 패망은 육군대학의 주류 집단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

 

12월의 내란은 무능한 지휘관은 적보다 무섭다는 경구를 실감케 하는 최악의 사태였다. 8월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된 육사 출신 김용현(38)과 방첩사령관 여인형(48), 전 정보사령관 노상원(41)은 이번 내란의 3대 오물이다. 김용현은 현역 시절 4성 장군 진급에 실패하자 예비역이 된 후 육사 7년 선배인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을 골프장에서 만나 막말을 퍼부은 것으로 유명하다. 오직 출세를 향한 그의 열망은 일본 왕을 향해 막말을 한 스기야마 하지메와 비슷하다. 여인형은 검찰 조사에서 자신이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을 만류했다고 진술한 모양이지만 실상은 계엄 성공 이후 자신의 세상이 열릴 것이란 망상에 젖어 있었다. 육사를 수석으로 입학했던 노상원은 성추행으로 불명예 전역을 한 과거로 인해 군에 한이 맺힌 인물이다. 그는 올봄에 전북의 한 무속인을 찾아가 김용현이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되면 자신은 대통령실로 진입할 것이라 떠벌렸다. 일본 3대 오물의 현대적 환생이라고 할 인물은 이 세 명이 전부가 아니다. 권력과 진급의 노예가 된 소신 없는 사령관들과 그 추종자들도 군인이라고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중요 가담자들이다.

 

일본 군국주의와 패망을 육군대학 없이 설명할 수 없듯이 한국에서 두 번의 성공한 쿠데타(5·16, 12·12)와 한 번의 실패한 내란(12·3)도 육군사관학교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앞의 두 번의 쿠데타가 선출된 권력이 군을 통제하는 문민통제의 실패 사례라면 이번 내란 사태는 아돌프 히틀러의 러시아 침공(1941), 조지 부시의 이라크 침공(2003)과 같은 군에 대한 문민통제의 폐단이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권력이 합리적인 심의 과정과 제도적 절차를 생략하고 군을 사적으로 통제하는 것을 주관적 문민통제라고 한다. 권력자의 야심에 기회주의적 군부가 아첨하고 추종하면서 벌어진 친위 쿠데타도 이에 해당된다. 군에 대해 제도와 법에 의한 객관적 문민통제가 아니라 권력자에 의한 주관적 문민통제는 민주주의에 가장 위협적인 정치 현상이다. 박정희의 유신 쿠데타와 박근혜의 계엄 문건 작성도 주관적 문민통제의 또 다른 폐단으로 그 주축은 육사 출신이었다. 육사 출신들이 군의 진급과 보직에서 과도한 특혜를 누리면서 무능하며 기회주의적인 지휘관을 배출했고, 그것이 검찰 권력과 결탁해 작금의 내란 사태로 이어졌다. 엘리트주의와 선민의식, 폐쇄적인 선후배 문화로 구성된 일부 육사 출신의 일그러진 정체성은 국가안보의 자산이 아니라 짐이다.

 

오물들의 내란 행위를 변호하거나 옹호하는 세력들의 궁극적 이상은 전두환의 5공화국이다. 그들에겐 검찰 권력과 군사 권력이 야합하는 통치 체제와 공포정치가 가장 좋은 것이다. 이런 망상의 원천을 제거하기 위해 육군사관학교 폐교를 검토할 때가 되었다. 지금의 육사 선후배 일파는 정치세력화되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행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차제에 육··공 삼군 사관학교를 통합하고 자원·인력을 민주화·선진화하는 새로운 군사 교육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일본은 60년 역사의 육군대학을 폐교한 1945년에야 비로소 군국주의를 청산했다. 우리도 내란과 외환의 인적 네트워크를 제거하는 확실한 방법으로 국군의 육사 패권을 청산하고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군사 체계를 도모할 때다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 경향 : 2024.12.25

 

 

한겨레와 조선이 만나는 곳 '양비론'

12.3 내란사태에 대한 한겨레와 조선일보의 보도는 크게 대비되고 있다. 두 신문의 본래의 색깔이 이번 내란 사태 보도에서만큼은 확연히 구분된다. 그러나 두 신문이 특히 유사한 모습을 보였던 점에서는 아직도 근본적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바로 양비론을 편다는 점에서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 진단에서 한겨레는 그동안 자주 보여왔던 양비론적인 접근을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양비론에서만큼은 한겨레는 조선일보의 주장과 크게 다를 게 없는 칼럼들을 내보내고 있다.

두 신문의 25일자에 각각 실린 논설위원들의 칼럼에서 비슷한 논리 전개가 보인다.

한겨레의 이날자 논설위원 칼럼 <나라가 망하는 것은 순간의 일이다>는 조선 망국의 원인으로 고종과 명성왕후 부부의 전횡을 지목한다. 고종과 명성왕후의 실정과 독단이 조선의 멸망의 큰 원인이라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지만, 이 칼럼은 이를 강조하느라 외세의 입장에 서고 말았다. ‘갑오개혁의 실패 원인을 당시 주조선 일본공사관의 1등 서기관의 입을 빌어 진단해 조선의 멸망은 자신들의 침략이 아닌 조선에 원인이 있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위험하고 어설픈 논리 전개다. 필자 자신이 의도했건 않았건 간에 일본의 조선 침탈은 불가피한 침략이었다는 결론이 돼버리고 있다.

 

이 글은 이래선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단정하는데, 고종의 아관파천을 친위 쿠데타라고 함부로 단정 짓고는 일본과 러시아가 이런 처참한 광경을 보면서 조선은 자립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한다. 일본과 러시아가 조선의 개혁의 좌절에 안타까운 심경이었던 듯, 그래서 자신들의 침략이 불가피했다는 것으로 결론짓고 싶었던 것인가.

 

여기서 이에 대해 길게 따질 건 아니다. 다만 짚고 싶은 것은 이 필자의 이런 식의 단순화가 지금의 내란 사태에 대한 시각에도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논설위원은 대결적인 정치 문화가 지금의 위기를 부채질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는 정치 검찰의 무도한 칼질을 비판하는가 싶더니 그로 인해 진보·보수 사이엔 노무현 트라우마’(2009)에서 시작된 상호 증오의 감정이 뿌리내렸다고 말한다. ‘노무현 트라우마가 무얼 얘기하려는 것인지 불분명하지만 상호 증오에 원인이 있다고 하고서는 여야 간의 극한대결 질타로 환원되는 한겨레의 정치 보도 패턴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래서 윤석열의 내란 도발을 망상이라고 하면서도 내가 살려면 상대를 물리적으로 제거해야 한다는 판단을 낳은 것은 이 상호 증오였다고, 상호 간의 증오라고, 양쪽이 다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마치 일본과 러시아가 조선 침략이 불가피했다고 결론 짓듯이 윤석열의 내란 도발이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보는 듯하다. 증오정치에 대해 '윤석열의 증오''상호증오', 윤석열을 원인이 아닌 결과로 봄으로써 결과적으로 윤석열을 증오정치의 희생양처럼 만들어버린다.

 

이 글은 윤석열에 대한 파면 절차를 조직적으로 마무리 지은 뒤, 개헌을 통해 극한 정치 대립을 완화하고 민의가 한층 더 잘 반영되는 새 국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마무리하면서 극한 정치대립을 다시 강조한다. 양비론에서 시작해서 양비론에서 끝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같은 날 논설위원 칼럼. <'프레지던트'는 어쩌다 일본어 '大統領'이 됐나> 윤석열 내란 사태를 한국 대통령제의 비극으로 보는 논리를 전개한다. “행정 권력과 입법 권력이 불화를 일으켰을 때 발휘됐던 정치와 타협의 지혜도 이젠 소진됐다. 양극단 지지층만 노리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민주주의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고 비판한다. 윤석열 내란을 양극단 지지층의 문제로 지적하고 유효기간이 지난 대통령제의 문제로 연결한다. 윤석열의 문제를 양측의 문제로, 제도의 문제로 둔갑시킨다.

그리고는 어김 없이 민주당 비판으로 향한다. 그러나 대통령제 유효기간 상실 주장은 권력 8부 능선에 선 듯한 민주당에는 씨알도 안 먹힐 소리라는 것이다. 나아가 앞으로 예상되는 민주당 출신 대통령에 대해 그렇게 권력을 잡더라도 5년 내내 범죄자 대통령이라는 꼬리표로 나라가 두 쪽 나고, 5년 뒤 전임자들처럼 처형·추방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고 극언을 퍼붓는다. 이 글은 일본이 166년 전 급조한 대통령이라는 말의 늪에 빠져 민주정과 봉건왕조 사이에서 우리만 허우적거리고 있다고 하지만 필자 자신이야말로 스스로 설정한 전제와 결론 사이에서 허우적거린다.

 

한겨레는 이렇게 양비론과 혐오정치 비판을 고리로 조선일보와 만나고 있다. 그같은 양비론적인 태도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한겨레 자신의 지면을 통해서도 나오고 있다.

위의 논설위원 칼럼이 실린 25일자 미디어 전망대 칼럼 <‘계엄도 탄핵도 잘못양비론 언론, 시민 단죄 못 피한다>가 이를 지적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을 놓고 여야의 의견이 갈리고 여의도의 탄핵 촉구 집회에 맞서 광화문에서도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자, 일부 언론에선 객관과 중립을 내세워 정쟁으로 몰고 가는 고질병이 재발한 것이다.”

이 비평은 아직은 언론이 양비론 뒤에 숨거나 뒷짐 지고 훈계할 때가 아니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른 데는 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비판하고 있다.

 

물론 한겨레로서는 자신에 대해 조선일보와의 유사성을 지적하는 게 과도한 비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개별적인 사안들에 대한 보도에서의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내란의 원인에 대해 대결과 혐오·증오 정치로 일반화하는 것에서는 조선일보의 양비론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6일자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1면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특검법과 헌법재판관 임명을 하지 않기로 한 것에 대해 거야의 데드라인이라고 제목을 달고 있다. ‘거야라는 표현으로 부당한 요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국민일보는 법 기술 뒤에 숨은 정치권정권 수습은 뒷전이라고 해 양비론을 펴고 있다.

이렇게 양비론은 매체들 간에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며 서로가 서로를 끌어주고 있다. 한겨레도 그 속에서 양비론의 심화에 한몫하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의 24일자에 실린 저널리즘책무실장의 칼럼은 윤석열을 망상의 세계로 이끈 것, 그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극우 유튜브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칼럼은 유튜브를 숙주삼아 허위 조작 정보와 음모론이 독버섯처럼 퍼지는데도 기성 언론은 무시하는 게 상책이라는 태도로 일관해왔다면서 이에 맞설 가장 강력한 해독제는 팩트체크이며 이런 일은 취재 전문성과 저널리즘 규범을 지닌 기성 언론이 응당 짊어져야 할 책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 칼럼이 놓치고 있는 것은 사실은 기성 언론이야말로 유튜브의 숙주라는 것이다. 기성 언론과 극우 유튜브는 많은 경우 서로가 서로를 강화하며 서로의 내용을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양비론에서만큼은 한겨레도 조선일보, 다른 매체들에 대해 '숙주' 역할을 하고 있다.

이명재 에디터 | 시민언론민들레 2024.12.26.

 

공직자의 명예

돈돈 하며 살아가는 요즘 세상에서 가치가 떨어졌다는 이도 있고, 실체 없는 허영된 열망에 불과한 구태스러운 것에 아직도 매달리냐는 핀잔도 있겠지만, 사실 명예가 중요한 직업이 있다. 박봉에도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학자, 주어진 공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근무하는 공무원, 민간인보다 폭넓게 기본권 제한을 받지만 사명감 하나로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이 특히 그렇다.

 

누군가 나를 비난하고 내가 왜 정상적인 재판 절차에 의존하지 않았는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변할 것입니다. 그 시간 나는 독일 민족의 운명을 책임지고 있었고, 따라서 독일 민족의 최고재판관이었다고 말입니다. 나는 반역의 주모자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 누구든지 국가를 치려고 손을 든다면 필연적인 죽음이 그에게 닥칠 것입니다.” 히틀러의 1934713일자 연설이다. 그로부터 보름 전이었던 1934630일 밤, 히틀러는 친위대(Schutzstaffel)와 비밀경찰(Gestapo)을 동원해 돌격대(Sturmabteilung) 지휘부와 정치적 반대 세력을 영장 없이 체포한 다음, 재판 절차도 거치지 않고 처단했다. 당시 바이마르공화국 수상으로서 내각 수반의 지위에 있던 히틀러는, 수권법(授權法)을 통해 이미 입법권까지 장악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형식적 법치주의의 틀조차 갖추지 않은 채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되는 세력을 숙청했다는 점에서, 1934장검의 밤’(Nacht der langen Messer)은 노골적인 친위 쿠데타의 사례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히틀러의 위 연설 직후 저명한 헌법학자였던 카를 슈미트는 총통은 법을 수호한다’(Der Fuhrer schutzt das Recht)라는 글을 통해, 장검의 밤을 가장 고결한 형태의 행정적 정의라며 정당화하였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나치독일의 패망으로 귀결되자, 이 글은 카를 슈미트에게 지울 수 없는 오점으로 남게 된다.

 

12·3 비상계엄의 밤, 실시간 방송으로 국회 상황을 지켜보며 초헌법적인 계엄 선포에 대한 해제 요구 의결을 초조히 기다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국회의원 출입을 막기 위해 국회 봉쇄를 지시한 고위 경찰 공무원, 계엄 해제 요구 의결을 저지하기 위해 의사당에 병력 투입을 지시한 고위 군 지휘관은, 비단 본인의 명예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경찰·국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지울 수 없는 멍에를 남겼다. 국무회의에서 비상계엄 선포에 결사반대하지 않은 국무위원도 해당 공직의 존재 이유를 망각했다는 몰염치는 물론, 자신을 신임해 그 직에 임명한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했다는 불명예를 역사에 기록하게 되었다.

 

고위 경찰·군인과 장관급 국무위원들에게, 과거 엄혹했던 시절의 독립운동가들처럼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대한독립 만세를 외쳐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고위직에 부여된 명예와 책임에 걸맞게, 위헌적 지시에 대해서는 그 직을 걸고 안 된다, 못한다며 반대하고 거부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는지 묻고 싶을 뿐이다. 그날 봉쇄 지시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 출입을 묵인했던 현장 경찰관, 저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국회 의결에 물리력 행사를 자제했던 출동 장병들의 용기에 감사드린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 | 경향 2024.12.26.

 

비상시국에 한덕수 대행의 개 풀 뜯어먹는 소리? 제발 할 일 해라

광인 대통령 가니 무능 대행 오는가

과거 한 정책 담당 공무원 사무실에 갔다. 회의 테이블 옆 벽에 이런 문구가 붙어있다.

 

정책 실행 가부(可否)48시간 이내

1주일 동안 판단 서지 않으면 폐기

 

책임자는 결정하는 사람이다. 그것도 빨리 해줘야 구성원들이 이에 따라 일을 한다. 결정하는 게 리더의 '존재의 이유'. 공무원뿐이겠는가. 민간 분야는 더하다. 빠른 결정이 조직의 경쟁력이다. 결정이 느린 기업은? 도태된다.

 

CEO의 가장 큰 책무가 바로 결정하는 것이다. 거기엔 부담은 물론 리스크도 있다. 그렇지만 CEO가 이를 회피하면 조직이 돌아가지 않는다. CEO의 결정을 얻어내기 위해 수많은 임직원들이 결재서류를 들고 방 앞에 줄 서 기다리고 있는 이유다. 결정을 미루는 CEO는 리더로서의 자격이 없다.

 

결정 '제때' 해야, 한덕수 자격 있는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행태가 논란이 되고 있다. 한 대행은 내란 특검법, 김건희여사 특검법, 그리고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를 국회가 협상해서 해법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국회가 이미 의결해서 행정부로 넘긴 사안을, 행정부가 다시 입법부로 보내 타협하라는 것이다. 받아들이든 거부권을 행사하든 하면 될 일인데, 이건 또 무슨 ''인가. 한마디로 책임 떠넘기기인데, 자기가 해야 할 결정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 권한대행의 임명권 관련하여 헌법재판소에 이어 대법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냈고 국회 입법조사처 역시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이 가능할 뿐 아니라 "학계의 이견은 찾지 못했다"고까지 명시했다. 심지어 여당인 국민의힘이 추천한 조한창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포함한 3인의 후보자 모두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한 대행은 버티는 중이다. 5122만 국민의 안전과 대한민국의 경제를 책임져야 할 국정 총책임자가 지금 이 순간 위중한 사안을 두고 결정을 외면하고 있다. 결정은 '제때' 해야 한다. 적시에 결정하지 않는 지도자는 지도자의 자격이 없을 뿐 아니라 속히 그 자리에서 면해야 한다. 틀린 결정 보다 더 나쁜 것이 바로 결정을 안 하는 것이다. 무능에서 더 나아가 무책임이고 또 이는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결정 회피는 국민에 대한 배신

시작부터 무능한 정부였다. 개혁하겠다던 연금·노동·교육은 손도 못 대고 있고 양극화, 기후변화 대응 역시 첫 삽도 못 떴으며 의료 분야는 난장판이 됐다. 많은 이들이 지목하듯 '미치광이 대통령'의 직무를 이 엄동설한에 온 국민이 나서 간신히 정지시켜 놨더니 이번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권한대행이 등장했다.

 

국민을 안심시키고 나라를 정상으로 되돌려야 할 책무를 지닌 자가 헌법은 외면한 채 여·야 간 타협과 협상을 전제조건인양 내걸고 있다. 이 시국에 한 대행은 "무엇보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며 이 비상시국에 개 풀 뜯어먹는 소리를 하고 있다. 헌법에 입각해 당신이 해야 할 일부터 하고 볼 일이다. 아니라면 내란 동조범이다.

정희준 문화연대 집행위원 | 프레시안 2024.12.26.

 

물에 빠진 늙은 개를 건져주자 벌어진 일

크리스마스 선물은 배송되지 않았다. ‘내란 수괴는 관저에 틀어박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2차 출석 요구도 거부했다. 여전히 폭음과 격노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내란 방조범혐의를 받는 대통령 권한대행은 헌법재판관 임명마저 거부하고 있다. 시간을 질질 끌며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무산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으리라는 국민의 기대는 또 물거품이 됐다. 탄핵을 촉구하며 국회 앞을 메웠던 인파 속에는 전국 집에 누워있기 연합’ ‘전국 뒤로 미루기 연합’ ‘방구석 게임 매니아 연합등 재치 넘치는 작명을 새긴 깃발을 든 이들도 많았다. 하루빨리 나라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자신은 따뜻한 이불 속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평범하지만 간절한 소망을 유머로 표출했다. 그런 의지가 모여 대통령 권한을 정지시켰으니, 이젠 시스템이 다시 작동되고 신속히 수사와 탄핵심판도 진행되겠거니 했다. 온 국민이 계엄 전 과정을 두 눈으로 봤다. 우리 공동체가 이 정도로 명백한 위협조차 제때 제대로 제거하지 못할 거라고 의심하는 국민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아뿔싸! 그들을 너무 띄엄띄엄 봤다. 내란 주범들은 일제히 버티기에 들어갔고, 방조 세력 또한 공공연히 내란 수괴 생명 연장 프로젝트 가동에 나섰다. 내란 수괴가 살아야 자신의 죄상도 감춰진다는 계산이다. 내란 방조 세력 상당수가 이미 단순한 이익공동체를 넘어 범죄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던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국민의 선의는 또 철저히 배신당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수처의 소환장,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청구 접수 통지서 수령조차 거부했다. 수사보다 탄핵심판이 우선이라더니, 정작 관련 서류는 제출조차 하지 않고 있다. 구질구질하기가 잡범만도 못하다. 40년 지기 석동현 변호사를 내세워 윤 대통령은 체포하라거나 끌어내라 같은 용어를 쓴 적이 없다고 했다는 주장도 했다. “윤 대통령이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직접 지시했다는 군 지휘관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는데, 버젓이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다. 최근 검찰이 입수한 명태균씨의 녹음 파일에는 윤 대통령이 김영선 공천과 관련해 내가 윤상현한테 한번 더 이야기할게. 공관위원장이니까라고 말한 내용이 들어 있다고 한다. 지난달 7일 기자회견에선 저는 당시 공관위원장이 정진석 비서실장인 줄 알았다고 했다. 국민 앞에서 대놓고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 양심이 마비됐거나, 거짓과 사실을 구분할 수 없는 말기적 망상에 빠졌거나다. 이런 사람이 하루라도 더 대통령으로 머문다는 생각만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국민이 적잖을 것이다.

 

국민의힘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탄핵심판 지연 술책에 합이 척척 맞는다. 국민의힘이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은 불가하다고 하자, 한 대행은 기다렸다는 듯 여야가 합의하라며 임명을 거부했다. 이미 여야가 3명 충원에 합의해 청문회까지 마친 마당에 뭘 더 합의하라는 건가. 헌재도, 대법원도 임명하는 게 맞다는 사안이다. 지금의 헌재 6인 체제는 근원적 불안정성을 갖는다. 1명만 딴생각을 하거나 만에 하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심리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이를 해소하고 헌정의 예측 가능성을 되살려야 할 사람이 정반대로 엇나가고 있다.

 

일각에선 최악의 경우 윤 대통령이 임명한 강성보수 성향 재판관이 심리를 계속 끌다가, 내년 418일 두명의 재판관이 퇴임하면 저절로 정족수 부족으로 탄핵심리가 중단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한 대행의 몽니가 판을 깔아주고 있다. 그러는 사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상급심 선고가 나오면 반전도 노려볼 수 있다는 셈법일 것이다. 나라와 국민이 어떻게 되든, 알량한 권력을 손에 쥐고 내란 방조 처벌을 피해보려는 노욕이 아니라면 꿈도 못 꿀 시나리오다.

 

중국 작가 루쉰은 사람을 무는 개는 물에 빠졌다고 건져주지 말고 버릇을 고칠 때까지 계속 패야 한다는 유명한 경구를 남겼다. 지금 한 대행이 준동하는 모습이 물에서 건져준 사람에게 으르렁대는 개와 다르지 않다. 소환에 불응하는 윤 대통령에 대해 즉시 체포에 나서기는커녕, “상황을 더 지켜보겠다며 꼬리를 내리는 공수처의 행태도 석연치 않다. 또다시 국민에게 이빨을 드러낼 시간을 벌어주려는 것인가. 지금 당장 수괴는 잡아가둬 기를 꺾고, 방조범도 탄핵이란 몽둥이를 아낄 이유가 없다.

손원제 | 논설위원 | 한겨레 2024.12.26.

 

민주주의와 내란 사이에 중립은 없다

악몽 같던 계엄의 밤을 지낸 지 벌써 3주가 넘었지만, 여전히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국회에서 어렵게나마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이제 좀 정리가 되겠지 하는 기대와 달리, 대놓고 시간끌기 전략으로 들어간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과 계엄에 대한 사과 한마디 없이 다시 친윤으로 되돌아가버린 국민의힘 앞에서 정국은 일종의 교착 상태에 빠져버린 모습이다. 덕분에 싸늘하게 식어버린 연말 분위기도 그렇지만, 취소했던 연말 모임을 어렵사리 되살려서 만나는 동료와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도 마음 편한 안도감보다는 불안감이 더 많이 묻어난다. 우리의 국격과 경쟁력을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트린 내란 세력들에 대한 사그라들지 않는 분노와 조금씩 밝혀지고 있는 그들의 미친 계획들 때문에 되살아나는 계엄의 트라우마는 여전히 많은 이들을 불면에 시달리게도 하고 있다.

 

계엄의 밤에 대부분의 우리 언론은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국회에 밀고 들어오는 계엄군 앞에서도 카메라를 들이대는 데 주저함이 없었고, 언론의 발 빠른 현장 전달은 시민들이 국회를 지키는 방패와 창이 될 수 있는 또 다른 힘이었다. 여러 언론이 계엄을 기계적 중립으로 다루지 않겠다는 내부의 입장을 정리하였고, 계엄 사태를 곧바로 불법 내란 행위로 규정하여 보도하기 시작했다. 총을 들고 국회에 난입하는 장면을 온 국민이 목도한 상황에서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바이든/날리면사태처럼 명백한 사실마저도 정치권력의 몇마디 말장난으로 정치공방화해버렸던 걸 고려하면 이번에 여러 언론사가 짧은 시간임에도 과감하고 정확한 판단을 한 것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계엄 선언 이후 며칠간 우리 언론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고 누구와 함께 서 있는 사람들인가를 괜찮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시적 교착 상태에 빠진 지금, 눈치 빠른 언론들은 조금씩 본래의 익숙한 그들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새로운 정치적 관심거리를 찾아서 논란이다또는 논란이 예상된다는 자신들의 기대를 주문 걸듯이 갖다 붙이는 익숙한 그 모습 말이다. 평범한 시민들은 여전히 내란의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에도, 언론의 의제는 국민의힘 내부 권력싸움에서 대선과 개헌으로 어지러이 흘러 다니고 모든 사안은 정파에 따른 이해득실을 꼼꼼히 따지는 정치 패널들과 이른바 분석 기사에 의해서 정치적 공방으로 내파되어 버리고 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계산법이지만, 헌법재판관의 임명이나 윤석열 수사, 내란 특검법 수용 등 시급히 처리되어야 하는 사안들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2심 판결 일정을 따져가며 일종의 거래나 논쟁거리로 다뤄지는 것이 무슨 정해진 공식인 것처럼 여러 언론에서 반복되고 있다.

 

물론, 언론이 본래 체질적으로 늘 다른 언론사보다 빠르게 새로운 의제를 발굴하거나 논란을 만들고 관심을 유도하고자 하는 동기를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때로는 시민들의 염려가 해소될 때까지 의제를 꾸준히 유지시켜주는 어젠다 키핑이 더 필요한 가치가 되기도 한다. 또한 중립성이라는 허울 좋은 언론의 안전장치가 실제로는 언론을 시민들로부터 외면받게 만드는 가장 무용한 가식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요즘과 같은 특별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하루라도 빨리 내란 세력들이 처벌되고 안전한 일상을 되찾고 싶은 평범한 시민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언론은 다른 무슨 기발한 기삿거리를 찾기보다 내란 세력의 처벌이라는 의제를 유지하고 논의를 집중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의 입장에서 내란 세력의 해소가 전제되지 않은 차기 대통령 선거나 개헌 등의 새로운 기삿거리들은 모두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만들어내는 허위 의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근본적 원인이 되는 내란 세력을 해소하는 것이 일상과 민생을 회복하기 위해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셈 빠른 언론들은 벌써 앞으로 있을 몇개월 뒤를 생각하기 바쁠지도 모르겠지만, 혼란스러운 길에서는 어디에서 시작했는지를 기억해야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그날 보여준 것처럼 당연하게도, 내란과 민주주의 사이에서 우리에게 무슨 중립성이 있을 수 있겠는가? 계엄 선언 뒤 우리 언론이 보여준 용기 있고 빛나는 모습이 너무 빨리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홍원식 | 동덕여대 ARETE 교양대학 교수 | 한겨레 2024.12.27

 

 

내란 수습권한대행은 국회의장이 돼야 한다

우리 헌법의 대통령 권한대행 규정은 12·3 내란 같은 친위 쿠데타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다. 내란 우두머리의 수하였던 총리·부총리가 대신 대통령 행세를 하다니, 이 무슨 언어도단인가. 설사 대통령의 사망·질병 등 일반적 유고 상황일지라도,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인물이 국가 원수를 대행하는 건 민주적 정통성 원리에 위배된다. 다른 민주국가들에서 의회를 중심에 둔 대통령 권한대행 제도를 두는 이유다.

 

미국의 대통령 권한대행 1순위는 부통령이다. 부통령은 대선 러닝메이트로 국민이 선출하며, 상원의장을 겸한다. 2순위는 하원의장이다. 3순위는 상원임시의장(명목상 상원의장인 부통령을 대신해 평소 상원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직책)이다. 그다음이 국무·재무·국방 등 장관들이다. 적어도 1~3순위는 국민의 직접 선출이라는 민주적 정통성을 갖춘 인물들이다.

 

프랑스 헌법 역시 상원의장을 1순위 권한대행으로 지정하고 있다. 2순위가 행정부. 이원집정부제로 우리보다 강력한 총리가 있음에도 1순위 권한대행은 의회에 맡긴 것이다. 상원의장이 궐위인 경우 새 의장을 선출하면 되므로 2순위까지 내려갈 일도 없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유사하다. 포르투갈의 1순위 권한대행은 의회의장이고, 2순위는 의회의장의 대리인으로 규정돼 있다. 루마니아는 1순위 상원의장, 2순위 하원의장, 폴란드는 1순위 하원의장, 2순위 상원의장이다.

 

의회 중심의 변형된 권한대행 제도도 있다. 오스트리아 헌법은 유고 시 대통령 업무를 일단 총리에게 이관하지만, 유고 상황이 20일 이상 지속되거나 탄핵소추됐을 경우 하원의장과 2명의 부의장이 협의체를 구성해 다수결로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도록 한다. 아일랜드 헌법은 대통령 궐위 시 대법원장·하원의장·상원의장으로 구성되는 위원회가 대통령 권한을 행사하도록 한다. 남미의 아르헨티나는 권한대행 1순위를 대통령과 함께 선출되는 부통령에게 부여하되, 부통령도 궐위가 되면 다음 권한대행직 수행자는 의회가 결정한다.

 

상징적 존재에 그치는 독일 대통령도 궐위 시 권한대행은 연방상원의장이 맡도록 기본법에 규정돼 있다. 민주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튀르키예도 권한대행은 국회의장이 맡는다. 우리처럼 총리가 권한대행을 하는 나라로는 대표적으로 러시아가 있다.

 

우리 헌법은 국회 의결로 계엄을 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함으로써(77) 친위 쿠데타를 저지할 방도를 마련해뒀지만, 그런 짓을 저지른 대통령이 탄핵소추될 경우 한통속인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이 권한을 대행하게 한 것(71)은 개헌 과정의 명백한 실수였다. 대통령과 행정부의 권한이 절대시됐던 독재 시대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떨치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국무위원이 위헌적 비상계엄에 동조했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 이를 결사적으로 막지 못한 것만으로도 이들은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 장관도 아닌 법무부 감찰관이 계엄 당일 불법적 계엄 관련 회의에 참석할 수 없다며 그 자리에서 사직했다. 그 정도 사리분별과 결단력도 없이 어떻게 일국의 장관이랍시고 고개를 들고 다니나. 하물며 대통령 권한대행은 개 발에 편자다. 한술 더 떠 한덕수 총리처럼 여전히 내란 우두머리의 부하처럼 구는 권한대행은 내란 방조범 이상이 아니다. 그런 권한대행은 두번, 세번, 네번 탄핵해도 이상할 게 없다.

 

 

내란을 막아낸 것은 국민과 국회였다. 지금 민주적 정통성을 지닌 유일한 국가기관은 국회다. 비록 헌법의 흠결로 인해 얼치기들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지만, 이 헌법적 혼란과 국가적 위기를 타개해나갈 민주적 권위는 오로지 국회에 있다. 국회가 주권자 국민의 뜻을 제대로 대변하고, 국회의장이 실질적 대통령 권한대행과 같은 권위를 가져야 한다. 발포 명령까지 내린 내란 우두머리가 탄핵소추됨으로써 민주적 정통성을 상실한 행정부는 국회를 절대적으로 존중해야 한다. 그것만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1)는 헌법의 지상명령에 따라 헌정을 회복하는 길이다.

 

헌법 71조는 수정돼야 한다. 아울러 대통령 탄핵 조항(65·111)도 바꿔야 한다. 9명의 법조인에게 대통령 탄핵과 같은 주권적 결단의 최종 결정권을 맡기는 건 타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가 이뤄지면 국민투표를 통해 가부를 결정해야 한다. ‘대통령 파면을 선고할 권한은 주권자 국민의 것이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루마니아·슬로바키아 같은 나라의 헌법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

박용현 | 논설위원 | 한겨레 2024.12.29.

 

풀보다 먼저 눕던 한덕수 미스터리

풀보다 먼저 눕는 사람.”

한덕수 국무총리와 함께 일한 적 있는 전직 정부 고위 인사가 한 총리를 가리켜 한 말이다. 김수영의 시 에 빗대서, 누구보다 시류에 빠르게 적응하는 걸 표현했다. 김영삼 정부 말기에 통상산업부 차관이던 그는 김대중 정부로 정권이 바뀐 뒤에도 통상교섭본부장과 오이시디(OECD) 대사,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경제수석의 출세 가도를 달렸다. 19973월 통산부 차관 인사 프로필에 서울로 적혀 있던 고향은 이듬해 3월 통상교섭본부장 인사에선 전북으로 바뀌었다.

 

그는 김대중 정부 임기가 끝나가자 다시 살길을 모색했다. 경기고 선배인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차기 대통령이란 전망이 무성하던 시절이었다. 20013월 어느 날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의 일이다. 파업 중인 발전노조 집행부가 명동성당에 들어가 농성을 벌였다. 한덕수 수석은 경제 악영향을 이유로 경찰력을 동원해서 농성 중인 지도부를 끌어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다른 수석비서관이 명동성당에 경찰을 투입하는 건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도 하지 못한 일이다. 그걸 김 대통령에게 하라는 말이냐고 반박하자, 한 수석은 문제가 생기면 내가 옷을 벗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 수석은 20027월 중국과 마늘 협상 파동의 책임을 지고 경제수석을 그만둔다. 청와대에서 일했던 인사는 그때 한 수석은 무슨 일만 나면 직을 걸겠다고 말했다.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형식이었지만, 내부에선 나가고 싶어 하니 내보내자는 기류가 강했다고 말했다.

 

2002년 대선에선 예상과 달리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그 무렵 한 전 수석과 저녁을 같이 했던 정치부 기자의 얘기다. “한 전 수석에게 ‘1년쯤 쉬시면서 천천히 진로를 모색하시라고 말하니까 대뜸 , 이광재씨나 안희정씨를 좀 소개해주시오라고 나한테 부탁했다. 좀 놀랐다.” 한덕수씨는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부총리와 국무총리까지 지냈다.

 

그가 이명박 정부의 주미 대사로 임명된 과정을 정확히 알긴 어렵다. 그러나 전 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였던 인사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새 정부의 주미 대사로 발탁된 건 전례 없는 일이다. 초기 이명박 청와대에서 일했던 고위 인사는 -미 간엔 자유무역협정(FTA)을 잘 마무리하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내 기억으론 한덕수씨가 우리와 노 전 대통령 양쪽에 이걸 잘 끌어가는 데는 자신이 최적임자라고 설득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렇게 세번의 정권교체에도 살아남은 한덕수는 2022년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국무총리로 발탁됐다. 지금은 국회 추천 몫의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하다 탄핵당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를 잘 아는 인사들은 누구보다 권력 이동에 민감하고 순응했던 한 총리가 대세를 거스르며 용서받기 어려운 악수를 뒀다고 말한다. 어느 원로 언론인은 열흘 전쯤 그에게 전화를 걸어 헌법재판관 임명을 촉구했다고 한다. 한 총리는 이런 헌법적인 문제를 권한대행에게 맡기면 어떻게 하냐며 여야 합의가 먼저라는 태도를 반복했다. 이 언론인은 그래도 설마 했다.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무엇이 풀보다 먼저 눕던 한덕수를 바꾼 것일까. 그를 아는 인사들은 두가지 가능성을 말한다. 하나는 한 총리 부인과 김건희 여사의 친분이다. 박지원 의원은 한 총리 부인과 김건희 여사가 굉장히 가깝다. 두 사람이 무속으로 연결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직 정부 고위 인사는 총리실 쪽에서 들은 얘기라면서 한 총리 부인이 점집 5곳을 다니면서 점을 보는데 그중엔 김건희 여사와 공유하는 점집이 여럿 있다고 한다. 아마 두 사람이 공유한 점괘가 버티라는 게 아니었을까라고 말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이런 말도 흘려 넘길 수 없는 게 현 정권의 실상이다.

 

이보다는 한 총리가 예상보다 훨씬 깊숙이 계엄 선포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검찰은 윤 대통령이 올해 3월부터 김용현 전 장관 등과 비상계엄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윤 대통령에게서 계엄 얘기를 들은 사람은 더 많다. 여권의 한 인사는 설마 했지만 나도 계엄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훨씬 오래전부터 그랬을 것이다. 개입의 결정적 증거를 윤 대통령이 쥐고 있으니 한 총리로선 끝까지 그와 한배를 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버들가지처럼 휘어져도 부러지진 않았기에 한덕수는 4개 정권에 걸쳐 권력을 누렸다. 국가 혼란을 장기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니, 특유의 처세술도 이제 엄정한 심판을 받을 때가 됐다.

박찬수 대기자 pcs@hani.co.kr | 한겨레 2024.12.30.

 

 

정당은 정치적 조폭인가

철학이나 노선 투쟁이라도 했으면 모르겠는데 그야말로 패거리 지어 왕따 시키며 너는 안 돼’, ‘너는 싫어하는 식의 싸움은 조폭들도 안 하는 짓 아닌가.” 2023126일 전 국민의힘(국힘) 의원 이언주(현 민주당 의원)가 페이스북을 통해 전 국힘 의원 나경원의 당대표 불출마 선언과 관련해 한 말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8일 뒤인 23일 국힘 상임고문 이재오는 시비에스(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당시 유력 당권 주자인 안철수를 연일 공격하고 있던 친윤 정치인들을 향해 안 후보에 대한 집단 린치가 거의 테러 수준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이건 국회의원들이 아니다. 이건 완전히 조폭들이다. 조폭 중에서 조폭 똘마니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이들이 똘마니면 대장은 대통령실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안철수 때리기에 윤석열까지 가세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24일 안철수가 -안 연대라는 표현을 썼다는 이유로 대통령실로부터 무례하고 어폐가 있다엄중 경고를 받았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석열도 -안 연대라는 표현에 대해 도를 넘은 무례의 극치라며 격노했다나. 윤석열과 국힘은 집단적으로 그 무엇엔가 홀려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이런 일련의 공격에 대해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오병상은 윤석열에게서 절대복종을 요구하고, 불복에 진노하는 제왕적 권위의식이 엿보인다고 했고, 동아일보 부국장 이승헌은 군사정권 이후 정치권에서 이렇게 집단 린치가 집중적으로 자행된 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결국 3·8 국힘 전당대회에선 윤심의 선택을 받은 김기현이 당대표로 당선되었지만, 그 역시 나중에 윤석열의 격노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국힘은 늘 윤석열의 격노에 흔들리며 춤을 추는 정당이었다. 당시 국힘이 윤석열의 뜻에 절대복종하는 조폭놀이를 중단하고 이성을 회복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12·3 비상계엄 선포와 같은 미친 짓이 나올 수 있었을까? 우문이다. 현재 국힘은 보수는 배신자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배신자론으로 무장해 대통령 탄핵에 표를 던진 의원들에 대한 복수욕에 혈안이 돼 있으니 말이다.

 

좋은 쓴소리가 배신으로 몰리고 낯뜨거운 아첨이 사기 진작으로 여겨지는 집단은 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진짜 조폭조차 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런 단순무식한 배신자론은 배격하건만, 국힘은 그걸 무슨 종교적 신조나 되는 것처럼 신봉하고 있으니 이 노릇을 어찌할 것인가. 국힘을 조폭에 비유하는 게 오히려 조폭에게 결례가 되는 건 아닌지 염려될 정도이다.

 

연세대 교수 최영준은 지난 16일치 한겨레 칼럼에서 국힘의 배신자론에 대해 조폭집단이면 이해가 가지만, 자유민주주의와 공공성을 강조하는 보수정당의 핵심 담론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믿기지 않지만 그게 사실인 걸 어이하랴. 국힘에서 배신자론을 역설하는 대표 논객들이 하늘 우러러 한점 부끄럼조차 없다는 듯 당당하게 하는 말을 들어보라. 이들의 배신자론에 국가와 국민은 없다. 공적 가치도 없다. 미시적인 인간관계만 있을 뿐이다. 그것도 오직 위만 쳐다볼 뿐 아래와 옆을 위한 의리를 강조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배신자론은 속된 말로 남는 장사. 왜 그런가? 배신자론은 정치를 사익 추구 비즈니스로 악용하는 사람들에게 그럴듯한 포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나는 의리를 목숨처럼 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포장이다. 정치인이 공사를 구분하지 않고 사적 의리를 앞세우는 건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살벌한 당파싸움이 벌어지는 승자독식 체제에선 좀 다른 양상이 전개된다.

 

지금은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상황이 아니다. 그래서 일부 시민들에겐 국가·국민·공적가치를 배신하는 것에 대한 분노보다는 잔인한 정치 보복 가능성에 대한 공포가 더 큰 의미를 갖는다. 공적 문제를 사적 문제로 바꿔치기하는 배신자론은 바로 그런 상황에서 번성한다. 정도의 차이일 뿐 누구에게건 사적인 인간관계에서 배신으로 인한 쓰라린 상처의 경험은 있기 마련이다. 배신자론을 팔아먹는 사람들은 바로 그 점을 노린 것이며, 그 효능은 이미 경험으로 입증된 바 있다. 이제 우리는 걸핏하면 배신을 외쳐대는 정치인들의 상습적인 사기 행위를 응징하기 위해서라도 정치는 사적 관계에 휘둘려서는 안 될 공적 영역임을 분명히 하면서 그걸 지겨울 정도로 반복해 역설할 필요가 있다. 정당은 정치적 조폭이 아니며, 국회의원은 조폭 똘마니가 아니라는 걸 국회법 제24(선서)에 추가하는 게 어떨까.

강준만 | 전북대 명예교수 | 한겨레 2024.12.30.

 

내란의 늪에 빠진 도로 친윤당

2024년 마지막 주말 광화문 세종대로 일대를 가득 메운 태극기와 성조기 깃발은 어쩐지 섬뜩했다. 만일 계엄이 성공했다면 이들 태극기부대가 해방 공간에서 서북청년단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란 비약적 생각 때문이다. 그날 광장에는 상대 진영에 대한 맹렬한 적의와 내란 피의자 윤석열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 교차했다. 수만명이 운집해 계엄 합법’ ‘탄핵 무효’ ‘이재명 구속’ ‘한동훈 배신자를 외쳤다. 연단에 오른 한 목사는 윤석열 대통령님 계엄을 선포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대통령의 탄핵을 막지 못했다며 사죄의 큰절을 올렸다. 엽기적이다. 국민의힘의 사죄는 무장한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를 침탈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공포와 치욕을 느낀 국민에게 향해야 한다.

 

용산 관저에 틀어박혀 수사도, 압수수색도 거부하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절차를 굴절시키는 데만 골몰해온 윤석열에게 극우 세력의 발호는 단비 같은 소식일 것이다. 윤석열은 마지막 담화에서 사과의 말은 한마디도 없이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다고 했다. 예서 국민은 강성 지지층, 극우 세력일 수밖에 없다. 엄연한 내란을 부정하고,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을 정상화하고 부정선거 음모를 밝히기 위해 계엄을 선포했다고 확신하는 세력은 극우밖에 없다. 윤석열은 결집 기미를 보이는 강성 지지층과 극우의 지지를 바람막이 삼아 싸우려들 것이다. 국민의힘이 앞장서 헌법재판관 임명을 저지시켰다. 시간끌기를 넘어 탄핵심판 무산까지 도모하는 것이다.

 

비상계엄 선포로 일순간에 보수를 궤멸 지경으로 내몬 윤석열이 끝까지 싸우겠다고 호기를 부릴 수 있는 건, ‘도로 친윤당이 된 국민의힘이 뒤에 있기 때문이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어 직무정지가 된 상태에서도 윤석열은 한동훈 대표 사퇴에 매달렸다고 한다. 탄핵에 찬성한 한동훈이 남아 있는 한 자신의 의도대로 국민의힘을 방패막이로 동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친윤이 장악한 국민의힘은 내란 동조당이란 비난을 무릅쓰고 윤석열 비호에 총력전을 벌인다. 무리한 감싸기를 하다보니, “대통령 노력 덕에 사상자가 없었다” “실패한 계엄은 내란이 아니다” “비상계엄은 고도의 통치행위등 궤변과 반헌법적 발언이 판을 친다.

 

국민의힘은 탄핵소추를 당론으로 반대한 데 이어 헌법재판관 임명을 저지하는 등 탄핵을 노골적으로 방해하고 있다. 정상적으로 진행되면 파면 결정을 피할 수 없으니 최대한 시간을 끌며 기회를 보자는 심산일 터이다. 시간이 지나가면 강성 지지층을 중심으로 결집할 것이고, 이재명 사법리스크도 증폭될 것이란 기대다. 허망한 기대이기 십상이나, 국민의힘은 지난 주말 광화문 집회의 규모에 고무된 분위기다.

 

검찰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재판에 넘기는 과정에서 윤석열의 계엄 당일 충격적인 행각이 드러났다. 윤석열은 계엄 당시 경찰청장에게 국회에 들어가려는 국회의원들 다 체포하고 잡아들여라라고 했고, 수방사령관에게는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고 지시했다. 윤석열이 내란 우두머리라는 것을 이만큼 증거하는 것도 없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수첩에는 계엄 명분을 만들기 위해 북한과의 국지전을 유도했다는 정황까지 들어 있다. 이런 경악할 사실이 속속 드러나는데도 국민의힘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외려 계엄 주동자 김용현 측 입장문을 보도자료로 배포, 내란 세력의 대변인 노릇을 자처했다.

 

친위 쿠데타로 헌정 질서를 전복시키려 한 내란 세력을 비호하는 것은 보수가 아니다. 온갖 궤변으로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을 감싸고 내란을 부정하는 국민의힘은 더는 보수를 대표할 수 없다. 계엄에 찬성하는 강성 지지층, 극우를 대변하는 극우정당일 따름이다. 오죽하면 보수 논객 조갑제가 명백하고 현존하는 미치광이 역적 대통령을 제명도 못하는 국민의힘은 이적단체라고 했을까 싶다.

 

국민의힘이 내란 사태 국면에서 무모할 정도로 반동의 길을 질주하고 있다. 혹여 탄핵 반대해도 1년 지나면 다 잊고 또 찍어준다”(윤상현)는 생각이라면, 오판이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과는 비할 수 없는 내란의 문제다. 1년은커녕 10년이 지나도 잊힐 수가 없는 사안이다. 내란을 획책한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 내란 우두머리 탄핵에 반대한 정당이라는 주홍글씨는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양권모 칼럼니스트 | 경향 2024.12.30.

 

푸른 뱀의 해를 기다린다

202412월은 살면서 영영 못 잊을 한 달로 남을 듯싶다. 비상계엄이란 공포와 탄핵 집회의 응원봉에서 본 희망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서 느낀 절망이 교차한 시간이었다. 감정에도 총량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슬픔이든 기쁨이든 총량을 넘어선 감정의 소비는 사람을 지치게 하고 우울하게 만든다. 두 감정을 번갈아 소비하는 일은 더욱 그렇다. 지금 우리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행인 것은 이렇게 보낸 힘든 시간들이 의미가 없진 않으리란 희망이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윤석열이 종북 반국가세력 척결이라며 꺼내든 비상계엄은 적어도 반국가세력이 누군지 명확히 확인시켜준 계기가 됐다.

 

대한민국은 헌법에 기반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세력이 바로 반국가세력이다. 종북만 반국가세력이 되는 게 아니다. 반헌법적 계엄과 내란 혐의를 옹호하고, 공개적으로 이를 고무·찬양하는 세력 역시 반국가세력이다. 그런 점에서 국민의힘은 이적단체라고 한 조갑제 대표의 주장에 동의한다.

 

국가보안법에 동의하지 않지만, 이 법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종북이나 계엄 옹호나 모두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보안법 제1) 범법자들이다. 같은 맥락에서 윤석열을 옹호하는 세력을 극우세력으로 부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인 우익 내지는 보수의 가치가 반민주주의에 있다고 믿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이들을 지칭한다면 반민주주의 세력이 적절하다.

 

박근혜 탄핵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볼 때 놀라운 점은 윤석열 옹호 집회에 참석하는 인원들의 수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지적처럼, 윤석열의 탄핵 사유가 훨씬 위중한데도 말이다. 그만큼 이 사회에서 암약해온 반민주주의 세력이 많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가 걱정해야 할 세력은 종북이 아니라 이들 반민주주의 세력이다.

 

탄핵 여부에 대해 설왕설래가 많지만, 시간이 걸릴 뿐 순리대로 결과가 나오리라 기대한다. 내란 혐의자들 역시 법의 심판을 받으리라 낙관한다.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이들 반민주세력에 대한 대응 문제도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일명 가짜뉴스에 대한 수사와 처벌 역시 반민주주의 세력을 대상으로 확대해야 한다. 이를 돈벌이로 삼는 유튜버들에게도 책임을 물을 시간이 다가올 것이다.

 

비상계엄 선포 당시 내 신변과 자유가 억압당할 수 있다는 근본적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해준 건 국민들이 이를 용납하지 않을 거란 근본적 믿음이었다. 퇴근길을 돌려 국회로 뛰어와준 국민들께, 탄핵 집회에 가장 밝은응원봉을 들고나온 학생들께, 집회 현장 선결제로 연대를 보내준 익명의 시민들께 올해가 가기 전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2025년 을사년(乙巳年)푸른 뱀’(청사)의 해다. 동양사상에서 푸른 뱀은 치유와 풍요를 의미한다. ‘푸른 용의 해인 올해는 본래 변화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해였다. 사실 변화는 어떤 형태로든 고통을 동반한다. 내년엔 이 고통들이 부디 치유되고 다시 풍요롭기를 희망한다. 여객기 참사로 감당하기 힘든 슬픔을 겪고 있는 유족분들에게도 만번의 애도와 만번의 위로를 전한다.

송진식 전국사회부 차장 | 경향 2024.12.30.

 

윤석열을 즉각 체포하라

전봉준농민투쟁단의 마음 받아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이 1231일과 11, 윤석열 관저 앞에서 12일 밤샘 농성을 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신년의 첫해가 오르는 11일 새벽 6시 그의 관저가 있는 매봉산 신년 산행을 계획했습니다. 헌법재판소, 공수처, 국가수사본부 등 헌법기관들의 소환과 출석통지서도 받지 않는 수취인 불명의 내란 수괴가 정말 그곳에 있는지 확인할 참이었습니다. 전체 주권자의 명령으로 붙잡아 헌법기관에 인도해 주고 싶은 마음들이었습니다. 한반도 전체 민중·시민·노동자·소수자들의 피와 생명을 대가로 신종 군부정권을 세우려 했던 극악한 자를 즉시 체포, 구속하지 않고 올해를 넘기려는 이 국가와 정부의 책임을 묻고 싶었습니다. 그 당연한 헌정의 집행을 지연시키고 방해하는 내란의힘, 국민의짐을 포함한 모든 기구나 기관은 내란 종사·연장·지속 업무에 가담한 내란 공동공모정범이라고 외칠 참이었습니다. 문학인 1100인 선언, 영화인 6700명 선언, 음악인 2000인 선언, 여타 문화예술인 4500인 선언 등에 나선 문화예술인들은 272개의 문화예술단체들과 함께 윤석열즉각퇴진 예술행동()’을 꾸리고 이날의 준엄하면서도 신나는 예술 농성을 힘있게 준비해 왔습니다.

 

그러나 179명의 이웃이, 또 다른 이들이 운명을 달리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앞에서 우리의 자세와 마음은 어떠해야 할지 긴급 논의를 진행해야 했습니다. 못 오는 이들을 위해 줌(ZOOM)도 함께 열었습니다. 참사 희생자와 그 가족의 고통을 위로하고 추모하는 긴 묵념을 드리고 무거운 논의에 들어갔습니다. 숙고의 결과 윤석열즉각퇴진 예술행동()’제주항공 참사 희생자·피해자의 명복을 빌고 그 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하며진정한 추모와 애도의 시간에 우선 함께하려 윤석열 구속 촉구 12일 예술농성을 잠시 뒤로 잠정 연기하기로 했습니다.

 

제주항공 참사에 예술농성연기

그런데 회의 말미에 기가 막힌 참사 소식이 또 하나 들려 왔습니다. 그간 수취인 불명으로 당일 공수처의 3차 소환명령에도 아무 답이 없던 내란 수괴 윤석열이 직무정지 중임에도 쥐새끼처럼(쥐라는 생물들에게도 정말 미안한 말입니다.) 기어 나와 정부에서 사고 수습과 피해자 지원에 최선을 다해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당부하고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소방대원들과 모든 구조 인력의 안전도 최우선으로 지켜질 수 있도록 힘써 주시길 바란다고 지시했다는 것입니다. 주권자 전체와 참사 희생자와 그 가족 모두를 이용, 조롱하고 모욕하는 치 떨리는 일이었습니다.

 

지난 내란 선포 당시 출동 대기하고 있던 7공수여단, 11공수여단, 지상군사령부, 경찰 부대 등을 빼고 현재 밝혀진 것만 5000여명의 중무장한 군·경찰을 투입해 헌정 전체를 파괴하고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 희대의 살인마입니다. “총을 쏴서라도 들어가 끌어내” “(국정원에) 대공수사권 줄 테니 이참에 다 밀어버려”. 북파공작원들에게 소형 폭탄을 지급하고 청주공항, 대구공항, 성주 사드기지 파괴 공작 명령을 내렸는데 해당 요원 제보에 의하면 1225415분까지 그 작전 취소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는 미치광이들입니다. 북에 무인기 세 대를 날리며 교전 상황을 유인하고, 오물 풍선을 핑계로 원점 타격을 지시하고,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교전 유도 등을 계획했다는 괴물들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보다 더 흉악하고 파렴치한 내란·외환 현행범입니다. 그런데도 단 한마디 사과나 반성도 없이 국가 전체를 여전히 거대한 참사로 이끌며 내란을 이어가고 있는 자가 대통령을 참칭하며 나서는 이 해괴하고 추악한 상황을 어떻게 용인할 수 있을까요.

 

우리 힘 모을 긴급한 역사의 시간

모두가 엄숙하고 존엄한 애도와 추념의 시간을 가져야 할 이 소중한 시간을 위해서라도 이 땅에서 바로 걷어내야 할 단 하나의 소란과 난동, 단 하나의 극혐물질은 내란 수괴 윤석열입니다. 내란을 연장하고 있는 국무위원들과 내란의힘이 분명한 국민의짐들입니다. 내란의 원인과 핵심을 여야 정쟁이나 형식적인 법 절차나 논리 등의 문제로 왜곡하려는 내란 세력들에게 맞서 주권자 전체가 떨쳐 일어서야 할 중대한 역사의 시간입니다. 4·19혁명과 5·18민주항쟁, 6·10항쟁과 노동자대투쟁, 2016년 촛불혁명을 이어 ‘1000만 민주항쟁·빛의 혁명으로 우리가 가진 모든 힘을 집중하고 모아가야 할 긴급한 역사의 시간입니다.

송경동 시인 | 경향 2024.12.30.

 

총체적 ZR발광'에 숨겨진 '카오스 전략

"아직도 (국회에) 못 들어갔냐" "본회의장으로 가서 4명이 1명씩 들쳐업고 나오라고 해"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27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기소하면서 발표한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사태 당시 발언 내용이다. 이 발언들을 접하면서 떠오른 말이 하나 있다. '지랄발광.' 천주교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김용태 마태오 신부가 지난 9일 대전 대흥동 성당 미사에서 12·3 비상계엄 사태를 표현한 이 말은 비록 비속어지만 상황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지랄'은 원래 뇌전증(간질)을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 뇌전증 증상이 몸을 떨며 데굴데굴 구르는 것에 빗대 '분별없이 법석을 떠는 행위'를 가리키는 욕설이 됐다. '발광'은 미친병의 증세가 밖으로 드러난 비정상적이고 격한 행동을 뜻한다. 김용태 신부는 한국 첫 가톨릭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유일한 후손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12·3 비상계엄 사태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다 사전까지 찾아보았다고 한다.

 

윤 대통령을 두고는 검찰총장 시절부터 '저돌적'이라는 표현이 늘 따라다녔다. '저돌'이라는 말에는 과감, 용감, 정면 돌파 등의 긍정적 의미도 있지만 난폭함, 공격성, 무모함 등의 뜻도 내포돼 있다. 내란 사태의 저돌은 불행히도 후자였다. 비상계엄 당시 윤 대통령의 행동은 저돌(猪突)의 저()가 뜻하는 동물의 속성 그대로였다. 민주주의 수호에 나선 시민들이 쏜 불화살을 맞고 길길이 괴성을 지르며 날뛰는 야수의 모습과 정확히 겹쳐진다.

 

공교롭게도 검찰의 발표가 나온 그 시각,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우원식 국회의장 앞으로 몰려가 거세게 항의하는 모습이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고 있었다. 바로 그때 텔레비전 하단에 긴급 뉴스 자막이 떴다. "윤석열, 수방사령관에게 '총 쏴서라도 국회 진입' 지시". 국회에 '발포 명령'을 내린 내란 수괴를 보호하기 위해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르는 요란한 함성, 그리고 그 소음을 배경음악으로 깔고 등장한 경천동지할 뉴스, 이 그로테스크한 조합을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 다시 '열혈사제' 김용현 신부의 표현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지랄발광 이중창'.

 

국민의힘은 한술 더 떠서 검찰의 공소 내용을 비판하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입장문을 언론에 보도자료로 배포했다. 윤 대통령이 국회를 향해 총을 쏘라고 지시하고, 국회를 무력화시킨 뒤 별도의 비상 입법기구를 창설하려는 의도가 확인됐다는 검찰의 공식 발표가 나왔는데도 국민의힘은 아무런 분노도 충격도 느끼지 않는다. 대신 검찰 발표를 "픽션" "여론선동" 등으로 비판한 범죄자의 '확성기' 역할을 자처했다. 아직도 집권 여당이라고 우기는 국민의힘의 이런 엽기적인 정신상태를 뭐라고 표현해야 좋은가. 속된 표현을 거듭 쓰는 게 미안하지만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총체적 지랄발광'.

 

이뿐만이 아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등 국무위원 14명은 지난 2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어 한덕수 대행 탄핵소추 재고를 요구하고 나섰다. 내란 사태 이후 국무위원 공동 대국민사과도 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 갑자기 우르르 몰려나와 "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는 내각 전체에 대한 탄핵소추와 다름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런데 이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국민 대다수의 마음속에 현 내각은 이미 탄핵된 상태다. 이 무능하고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국무위원들을 모조리 쫓아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도 간신히 참고 있는데 도리어 적반하장으로 나오니 도리 없이 또 말하련다. "지랄들을 떨고 있네."

 

내란 옹호 세력의 '집단적·총체적 지랄발광'은 단순한 정신분열증세가 아니다. 그 저변에는 명백한 전략과 노림수가 있다. 일종의 '카오스(chaos) 전략'이다. 전통적인 군사 전략이나 정치 전략과 달리 '질서를 무너뜨리고 예측 불가능성과 혼란을 조성해 상대를 압도하거나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려는 전략'이 카오스 전략이다. 주로 힘이 열세인 '비대칭 전력'을 가진 국가나 조직이 구사하는 전략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차고 넘치는 범죄 행위 증거, 국민의 압도적인 탄핵 여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싸늘한 시선 등 모든 면에서 내란 옹호 세력은 심각한 열세의 '비대칭 전력'이다. 이런 상황에서 찾은 게 카오스 전략이다. 예측 불가능성과 혼란을 조성하고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려 반전의 기회를 찾으려는 것이다. 국가의 신인도가 한없이 추락하든, 2의 외환위기 사태가 닥치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

 

헌법재판관 임명을 한사코 거부하는 것은 카오스 전략의 대표적인 예다. '9인 완전체'를 만드는 것이 재판의 정당성을 보장하고 헌법과 상식에 부합하는데도 이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정족수 부족 사태 등을 이끌어 뒤죽박죽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예측 가능성은 이들의 최대의 적이다. 카오스 전략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분탕질 전략'이다. '상황을 혼란스럽게 만들거나 흐트러뜨리는 행위'가 바로 분탕질이다. 지금 내란 옹호세력은 헌법재판소의 정상적인 운영에 한사코 분탕질을 치고 있다.

 

윤 대통령이 "내란죄는 공수처 수사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버티는 것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은 공수처와 경찰, 국방부가 참여하는 공조수사본부가 체포영장을 청구한 것에 대해서도 "권한 없는 기관에 의한 체포영장 청구"라는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 평생 검사 생활을 했다는 사람이 종국에는 요리조리 법망을 피하려는 '법꾸라지'의 추한 모습을 보인다. 국민의힘은 내란 특검법도 거부하고 있다. 수사 기관들의 불필요한 경쟁을 막고 수사 관할권의 법리적 문제를 말끔하게 정리하기 위해서도 특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됐으나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질서보다는 혼란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카오스 전략의 선봉에는 조선일보가 있다. '못난 정치가 고조시킨 경제 불안, 외환 위기급 충격 올 수도' '29'연쇄탄핵병' 민주당도 이 전체 사태에 큰 책임 있다' '헌법도 예측 못 한 막장 정치 갈등, 출구가 안 보인다'. 최근 잇달아 나온 사설 제목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혼란과 위기의 근본 원인이 윤 대통령의 내란 범죄에 있음을 외면한 채 여야를 싸잡아 비판하기 바쁘다. 정치권 공동 책임을 탓하는 비분강개한 문장 뒤에는 윤석열 대통령을 두둔하는 말이 숨어 있고, 여야의 타협을 촉구하는 점잖은 훈계 뒤에는 탄핵을 반대하는 속마음이 감춰져 있다.

 

'최 대행 대행도 재판관 임명 부정적, 여야 타협 불가피'란 조선일보 사설은 내란 사태에 대한 이 신문의 근본 인식을 보여준다. '대행 대행'이라는 표현이 헌법 규정에도 맞지 않는 '선전선동용 말만들기'라는 것은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헌재 재판관 임명 문제에 '여야 타협'을 요구하는 것은 '임명하지 말자'는 뜻임은 삼척동자도 안다. 특히 주목되는 말은 "3명이란 숫자는 헌재의 대통령 파면 재판을 좌우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3명 중 2명이 민주당 추천이기 때문이다"라는 대목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행위가 과연 민주당 추천 헌재 재판관은 파면에 찬성하고, 국민의힘 추천 재판관은 반대할 그런 사안인가. 하기야 전두환을 구국의 영웅으로 찬양하고,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사회혼란으로 폄하하고, 계엄하 언론인 체포를 앞장서 옹호한 게 이 신문이다. 조선일보의 내란 옹호 전통은 유구하게 살아 숨쉰다.

 

이제 카오스 전략에 쐐기를 박을 때가 왔다. 그 첫걸음은 법원이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으니 이에 따라 엄정한 법 집행을 하는 일이다. 내란 범죄자는 현직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체포·구속하는 것이 법의 공정이다.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대통령을 단호히 응징해 국가를 원래 상태로 돌려놓자는 게 평범한 대다수 국민의 염원이다. 지금이야말로 윤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했던 '공정과 상식'을 명징하게 구현할 때다.

김종구 (언론인) | 프레시안 2024.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