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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24.10.1~31

by 이성근 2024. 11. 1.

1. 윤석열 정부의 퇴진? '후퇴'의 시간 위한 '퇴진'이어야 한다 2.서울 도심서 2년째 열린 시대착오적 군사 퍼레이드  3. 거꾸로 가는 주식부자 세금 4. 김건희 여사와 진정성. 5. 파국적 평형상태? 대한민국 남성성의 위기 6. 민주공화국 운명, 7. ‘김건희 의혹 대응에 달렸다 8. 국무총리의 존재이유 9.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10. 천장만 보는 사회

11. 마을로 간 촛불, 기후돌봄 주민의회 운동을! 인구절벽 앞, 12. 혼란스럽기만 한 이민정책   13. 사과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14. 한국이 싫어서 15.임종석을 위한 변명 16. 우리는 꼴찌입니다 17. 담배와 스마트폰 18. 김남주 30주기 해남집회를 다녀와서 19. ‘탄핵 윤석열!’ 그다음은? 20. 부동산 공화국 대한민국과 부단 운동

21. 김건희 대통령 놀이’, 이게 나라냐 22.·하마스 전쟁 1년이 남긴 것 23. ‘나뿐인 사람’, 24. 초단절 사회 25. 서울시교육감 선거, 왜 중요한가 26. 인구변화 파도, 어디부터 덮칠까 27.낙타의 바늘귀보다 좁은 종교인의 하느님 나라 문 28.‘혼군 에워싸고 나라 망치는 외척과 환관, 간신들 29.사회 붕괴 전조로 읽히는 사교육비 역대 최대’ 30. 서바이벌의 법칙:

31.여왕벌 게임·흑백요리사·더 인플루언서 32.경쟁서 배제되는 특권 누리는 그들, ‘33. 계급장 떼고 눈가림 심사대 앞에 설 수 있나 34. ‘노벨문학상 한강이 되살려낸 존엄의 언어 35.눈치도 없는데 귀마저 닫으면 어떡하나 36. 한강, 폭력과 트라우마의 보편성 37.인지과학적 뒷담화 ‘38. 한강의 역류, 정치 39. 부채감을 느끼도록 진화한 이유 40.불온서적이 노벨상을 받았다

41.열매와 씨 42. 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폭력적인가 43.‘5만전자와 십상시, 그리고 뉴삼성의 딜레마 .‘44. ··가 세상을 바꾼다 45.오빠는 필요 없다 46.평양의 무인기가 말해주는 것 47. 김건희 나라'의 아부꾼들 48. 믿을 걸 믿어야지, 미국을 믿다니 49.윤석열 부부가 모르는 것 한가지 50.여론조사 중독정치

51.정치인은 죽고, 시인은 살게 하라 52.인공지능 시대 53.용산의 '하트 여왕' '이상한 나라'의 한동훈 54..이러다 다음 전쟁터는 한반도가 된다 55. 다시 전쟁이 나면 두 번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56. AI 에이전트가 몰려온다 57.정년 연장이 꺼내든 숙제 58. 금융실명제와 금융투자소득세 59.민심과 싸우려는 김건희 남편 대통령 ‘60. 피눈물로 되찾은 정권이란 미망과 탄핵

61.북러의 폭주, 그다음은 재앙이다 62.이미 예견됐던 채식주의자 폐기 63.인공지능 시대의 명암 64. 권력자는 족쇄를 차야 한다 65. 우크라의 실패에서 배워야 할 것‘ 66. 오너 리더십의 한계, 삼성만 문제인가? 67. 헌정위기의 불편한 진실 68. 강시정권인가, 각시정권인가 69. 검찰공화국 만든 검찰발 보도’  70. ‘보수 개신교계가 생산하는 혐오의 쓰나미가 몰려온다 71. 강자는 강자를, 약자는 약자를 대리하는 사회

 

윤석열 정부의 퇴진? '후퇴'의 시간 위한 '퇴진'이어야 한다

약자의 입장에서 바람직한 '후퇴'를 실현해야 한다

참으로 기나긴 여름이었다. 습기를 머금은 더위가 석 달을 꼬박 채우며 계속됐다. 중국과 일본을 덮친 역대급 태풍이 한반도를 비껴가는 대신 초가을의 반가운 소식이 자꾸만 뒤로 미뤄졌다. 심지어 추석에도 무더위는 끝날 줄 몰랐고, 몸도, 마음도 이제 더는 견디기 힘들다고 아우성 댔다. 그러다 10월과 함께 드디어 가을 날씨가 찾아온 것 같다. 아직도 한낮 기온은 마치 한여름인 듯 뜨겁지만 말이다.

몇 년 전부터 매해가 그러했지만, 올해는 확실히 한반도에서 기후변화를 결정적으로 체감한 해다. 올해 여름부터는 누구의 입에서나 "이번 여름이 앞으로 가장 시원했던 여름이 될 것"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들을 수 있게 됐다.

그런데도 한국어의 세계에서 기후 문제는 여전히 경제와 얽히고 정치를 움직이는 소재와는 거리가 멀다. 일상의 푸념일 수는 있어도, 늘 어느 정도는 호들갑을 떨며 이야기되는 정치 쟁점에는 끼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보자. 덥고 습하고 춥고 비바람이 거센 것만큼 우리 삶에 당장 영향을 끼치는 현실이 또 무엇이 있는가? 이것만큼 지금 우리 생명과 생활을 직접 결정하는 요인이 또 무엇이 있는가? 이에 비하면 아파트 값이나 주식 가격 동향은 얼마나 '비현실적', '초현실적'으로 들리는가?

'진보'가 아니라 '후퇴'를 고민할 때

더위가 아직 기승을 부리던 9 7일에 서울 강남대로에서 '기후정의행진'이 있었다. 심상치 않은 여름 날씨를 겪으며 더욱 위기감을 느낀 많은 시민들이 이 행진에 함께 했다. 또한 여러 진보정당들도 참여했다. 국민의힘과 마찬가지로 기후문제에 미적대는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에 결합한 정당들도 '진보정당'으로 봐야 하는가에 관해 아직도 곳곳에서 논란이 있지만, 아무튼 자칭 타칭 '진보정당'들이 대거 동참했다.

그런데 비례위성정당 합류 같은 쟁점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진보정당'이라는 말 또한 정색하고 다시 따져봐야 한다. 대한민국은 '좌파' '사회주의' 같은 말을 쉽게 쓸 수 없는 나라였고, 지금도 이 사정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좌파를 '좌파'라 하지 못하고 다른 말로 에둘러 불러야 하는 시대가 지금껏 이어졌다. 4. 19 혁명 전후한 시기에는 '혁신계'라는 말이 그 자리를 채웠고, 6공화국 시대가 시작될 무렵부터는 '진보파'가 그런 용도로 쓰였다. 고 노회찬 의원 같은 분들이 '진보' '좌파'의 대체어로 통용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나도 본래 '세계 좌파정당 운동사'라 해야 할 책을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서해문집, 2019)라는 제목으로 낸 바 있다.

그러나 '진보'라는 단어가 언제까지 이런 위상과 역할을 이어갈 수 있을까?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의 '진보'는 어쨌든 ""이 있음을 전제한다.  ""을 민주주의의 더 나은 상태, 즉 민주주의의 확대와 심화로 본다면, 여전히 의미가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실은 ""에는 그런 민주주의의 측면 말고도, 아니 그것보다 더 명시적인 다른 가치들이 함축되어 있다. 생산의 확대, 그에 따른 경제 규모 증가, 과학기술의 무한 발전 등이 그것이다. 말하자면, '진보' '발전', '성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의미의 자장(磁場)에 속해 있다.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서 기후위기 대응 촉구 대규모 집회 참가자들이 삼성역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데 지금은 기후재난의 시대다. 산업혁명 이후 지구 평균기온 1.5도 이상 상승이 이미 기정사실화되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진보'가 과연 얼마나 절실한 긍정적 가치가 될 수 있을까? 요즘 '진보정당'이 어느덧 좌파정당들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의 다른 이름이 된 세태를 한탄하거나 규탄하는 목소리가 있고, 혹자는 오히려 반대로 '진보정당'들이 제기한 과제가 더불어민주당의 몫이 돼버렸으니 이제 진보정치란 곧 더불어민주당 정치라고 호기롭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시대의 풍향을 제대로 감지한다면, 지금은 좌파정당들 자신이 '진보정당'이라는 호칭을 재고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흔히 '진보'와 정반대되는 말로 이해되는 '후퇴'를 우리 시대의 정치적 지향으로 고민하자는 논의가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후퇴학' 토론이 시작됐다는 것이었다. '후퇴'라니? '탈성장'이나 '포스트성장' 같은 말들보다 훨씬 더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또한 그만큼 우리가 직면한 상황을 가감 없이, 솔직하고 용감하게 제기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 논의를 발의한 사람 중에는 한국 독자들에게도 상당히 친숙해진 우치다 타츠루(內田樹)가 있다. 본래 프랑스문학 전공자였다가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사상에 매혹돼 철학자라는 분류에 더 어울리는 저작 목록을 쌓아온 우치다 타츠루는 지금은 대학을 떠나 자유사상가로 활동한다. 우리말로 번역된 다수의 저작들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우치다 타츠루는 도발적인 주장을 던지길 주저하지 않는 자유분방한 논객이지만 일본 사회의 모순과 궁지를 짚는 대목에서는 늘 비교 대상을 찾기 힘든 깊이를 보여준다.

그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 '후퇴'라는 화두다. 우치다 타츠루 말고도 '후퇴학'에 공감하는 여러 필자들이 쓴 글을 담은 <한 걸음 뒤의 세상: '후퇴'에서 찾은 생존법>(박우현 옮김, 이숲, 2004)에서 이 말에 모여드는 고민의 가닥들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실린 글 "후퇴를 위한 두 가지 시나리오"에서 우치다 타츠루는 '후퇴학'의 배경이 되는 네 가지 큰 위기로 "팬데믹, 기후위기, AI 도입에 따른 고용환경 변화, 인구 감소"를 든다. 당연히 우리에게도 가장 중대한 네 가지 위기이며, 우치다 타츠루도 지적하듯이 인구 감소와 고령화의 속도에서 한국은 일본보다도 더 앞서가는 형편이다.

우치 타츠루를 비롯해 <한 걸음 뒤의 세상>의 집필자들은 하나같이, 이 네 가지 위기를 말끔히 '해결'한다거나 진행 속도를 '지연'시키면서 현재의 생활방식을 지속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못 박는다. 하물며 새로운 '성장'이나 '진보'를 고민하여 풀릴 수 있다고 보지도 않는다. 오히려 지금까지 계속된 '성장', '진보'의 필연적 결과가 이러한 거대 위기로 나타난다고 파악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현 경제 규모나 사회 수준에서 '후퇴'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진단한다. 중요한 것은 소수 강자가 아니라 다수 약자의 입장에서 바람직한 '후퇴'를 실현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치다 타츠루는 다음 같이 명쾌하게 정리한다.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최고령 국가 단계에 진입할 것입니다. 따라서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노인뿐인 나라'라면 어떤 제도를 마련해야 사람들이 나름대로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일본은 세계에 모델을 제시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일본이 후퇴 전략만큼은 피해를 최소화해 연착륙에 성공했다"고 세계에 알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라면 일본은 세계에 도움은커녕 후퇴에 실패해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되는 사례로 남겠죠." (<한 걸음 뒤의 세상> 11-12)

솔직히 말하면, <한 걸음 뒤의 세상>에 실린 글들은 이런 후퇴 전략의 내용으로는 아직 크게 미완성이다. '후퇴학'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와 몇몇 커다란 원칙의 선언에서 더 나아가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러나 '후퇴'라는 인기 없을 말로 현재 일본 자본주의가 도달한 막다른 골목을 가장 정직하게 의제에 올린 태도 자체는 높게 평가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후퇴'라는 화두를 꺼내들어야 한다. 한국 사회가 직면할 현실을 늘 일본 사회가 먼저 겪고 고뇌해온 지난 세기의 여정은 21세기에도 '후퇴학'을 둘러싼 대화로 반복될 운명인가 보다.

'후퇴'의 시간을 열기 위한 '퇴진'이어야 한다

그래도 역시 '후퇴'는 께름칙하다. 굳이 이렇게까지 표현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탈성장'보다도, '수축'보다도 더 자학적인 표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하지만 '후퇴'의 영어인 retreat의 여러 의미를 곱씹어 보면, 꼭 부정적인 어감만 있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retreat '뒤로 간다'는 뜻이지만, '물러선다'는 의미도 있다. 지금 전개되는 어떤 상황에서 한 걸음 물러선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파생된 의미가 '피정(避靜)'이다. 우치다 타츠루도 '퇴수(退修)', '정양(靜養)', '정사(靜思)' 같은 일본식 번역어로 retreat의 뜻 가운데 이 측면을 지적하는데, 한국 가톨릭교회가 retreat를 옮긴 말은 '피정'이다. 번잡한 일상이나 무거운 번뇌에서 벗어나 묵상이나 수련을 위해 칩거한 상태를 '피정'이라 한다. 좀 더 일반화하면, "일상을 벗어나 차분한 환경 속에서 영성을 충만히 하는 시간을 갖는 것"(<한 걸음 뒤의 세상> 13)이다.

이렇게 본다면, 정말로 지금 한국 사회와 그 모든 구성원에게 시급하고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후퇴'인 것 같다. 지금이야말로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 사회가 성공에 도취해 내닫고 있는 질주를 일단 멈추고 "한 걸음 뒤"에서 이 여정을 다시 생각해야 할 때다.

우리는 정말, 지난 세대가 GDP 몇 만 불 시대 달성을 내세우며 총력전을 벌였던 것처럼 인공지능 개발 경쟁을 위해 총력전을 벌이자는 윤석열 정부의 구호에 발맞춰 나아가야 하는가?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의 '개미' 투자자들을 위해 현 정부와 감세 경쟁을 벌이겠다는 더불어민주당을 다음 권력의 주인으로 만들어주기만 하면 되는가? 기왕에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시작됐으니 아예 인구를 더욱더 수도권으로 집중시키고 부와 권력을 능력 있는 소수에게 더욱더 몰아주면 되는 것인가?

최근 윤석열 정권 '퇴진'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확실히, 하루라도 더 빨리 퇴진해야 할 정권이다. 그러니 2016-17년 촛불시위의 쓰라린 기억에도 불구하고 '퇴진'의 목소리는 더욱더 높아져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절대로 '퇴진'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후퇴'를 위한 '퇴진', '후퇴'를 동반하는 '퇴진', '후퇴'를 여는 '퇴진'이어야 한다. 한국 사회가 처음으로 '후퇴'의 시간을 갖기 위한 '퇴진' 투쟁이어야 한다. 모든 시민이 지금까지 달려온 길에서 한 걸음 물러나 그 길을 돌아보고 서로를 마주보며 새 방향을 짚어보는 시간. 이때에는 이제껏 '진보' 세력이 주장해온 대안들조차 원점에서 재논의되고 재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진보'보다는 '후퇴' 혹은 '피정'에 값하도록 말이다.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 프레시안 2024.10.01.

 

서울 도심서 2년째 열린 시대착오적 군사 퍼레이드

국군의 날인 1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또 열렸다. 이번 국군의 날 행사에는 5300여명의 병력과 340여대의 장비가 참가했다. ‘괴물 미사일로 알려진 탄두 중량 8t의 초고위력 지대지 탄도미사일 현무-5’가 최초로 공개되는가 하면, 미군 초음속 전략폭격기 ‘B-1B’도 등장했다. 국군의 날 행사에 미국의 전략 자산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우리의 국방력을 과시하기 위한 행사라지만, 오히려 서울이 군사적 긴장의 한복판에 위치한 도시라는 점을 스스로 부각시키는 우를 범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 자체가 이미 시대에 맞지 않는 군사정권의 잔재다. 1956년 제1회 국군의 날을 기념해 시작한 군의 시가행진은 1968년 이후 4~5년마다 열렸으나 2013년 이후 중단됐다가 지난해 10년 만에 부활했다. 게다가 2년 연속으로 열린 것은 전두환 군사정권 이후 40년 만이다. 군사정권이나 선호하던 권위주의적 군사 행사에 윤석열 정부는 유난히 집착을 보이고 있다. 이번 국군의 날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기까지 했다. 국군의 날 행사에는 지난해 100억원에 이어 올해 80억원가량의 예산을 편성했는데, 국회 예산정책처는 예산 낭비 우려가 있다며 대규모 행사의 개최 주기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가뜩이나 재정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교통 통제로 시민 불편까지 초래하면서 불필요한 행사를 벌였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시대착오적인 군사 퍼레이드를 고집하는 것은 북한의 위협에 군사적 압박으로 대응하겠다는 강경 일변도의 대북 정책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북한이 핵을 사용할 경우 한-미 동맹의 압도적 대응을 통해 북한 정권을 종식시킬 것이라고 말한 데 이어 올해도 북한이 핵무기 사용을 기도한다면 그날이 바로 북한 정권 종말의 날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군사 압박만으로 북핵 문제를 풀 수 없음은 지난 30여년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926일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과 대화의 문을 닫아온 것이 거꾸로 상황을 통제 불능의 상태로 악화시킨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북한 위협에 대한 군사적 대비는 필수 과제지만, 그게 전부일 수는 없다. 정부는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대화 모색에도 착수해야 한다.

| 한겨레 사설 2024.10.01.

 

거꾸로 가는 주식부자 세금

금융투자소득세가 시행을 불과 석달 앞두고 다시 유예 또는 폐지될 처지에 빠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 1월 대선 후보 시절 주식양도세 폐지 일곱자 공약을 내걸며 물꼬를 트더니 제1야당마저 두 손을 드는 분위기다. ‘세금 물리면 주식시장 붕괴한다는 일부 세력의 공포 마케팅에 이렇게 정치권이 물러선다면 금투세는 영원히 한국 땅에서는 시행도 해보지 못할 운명에 처할지도 모르겠다.

금투세는 주식·펀드 등 금융투자로 얻은 차익이 연 5천만원이 넘으면 초과 액수에 대해 2227.5% 세율로 물리는 세금이다. 손실과 이익을 통산해 순이익이 5천만원을 넘어야 과세 대상이 되는 만큼 손실을 봐도 세금(증권거래세)을 내야 하는 현 제도보다 훨씬 합리적이다. 또한 지금은 주식·채권·파생상품의 양도차익에 대해 비과세가 많은데다 동일한 자산에 대한 투자라도 금융상품에 따라 세금이 제각각인 문제가 있는데, 이를 단일화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개미(소액 투자자)들은 과세 대상이 아니고, 대략 5억원 이상 증권을 보유한 상위 1%( 14만명) 고액 자산가에게만 해당하는 주식부자 세금이라는 점이다.

금투세 유예·폐지론자들은 금투세를 시행하면 큰손(고액 자산가)들이 세금을 피해 외국 시장으로 이탈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금투세 시행하면 주식시장이 붕괴해 개미들도 피해를 본다는 주장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상당한 논리 비약이 있다. 첫째, 큰손들 중에는 경영권 유지를 위해 주식을 팔지 못하는 대주주들이 매우 많다.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 같은 이들이다. 둘째, 주가는 결국 기업 실적에 좌우되고 세금은 주변적 요소다. 세금이 있어도 수익을 낼 것 같으면 투자를 한다는 얘기다. 셋째, 주식거래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기관·연기금·외국인은 금투세와 상관이 없어 안전판 구실을 할 수 있다. 넷째, 한국 주식시장은 시가총액 기준 세계 12위 거래소(올해 8월 세계거래소연맹 집계)로 성장한데다 아무리 저평가됐다고 해도 어느 영역보다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기업 실적, 실물경제, 환율, 외국 증시 등 주요 변수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주가에 반영된다. 일부 큰손들이 이탈해 주가가 급락하면 저가 매수 기회로 삼을 투자자들도 많을 것이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소액주주 보호 장치를 마련해 주가 밸류업을 먼저 한 뒤 금투세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있다. 이는 최소 10~20년 안에는 금투세를 시행하지 말자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재벌개혁 과제는 1997년 외환위기 직후부터 추진됐지만 20년 넘도록 미완의 숙제다.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금투세와 상법 개정 등 개혁 과제를 동시에 추진함으로써 재벌개혁과 자본시장 선진화의 기폭제로 삼을 필요가 있다.

금투세는 주식시장의 투명·건전성을 제고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보면서 필자는 2000년대 초반 증시 담당 기자를 했을 때보다 투자 환경이 얼마나 개선됐는지 의문이 들었다. 금투세를 시행하면 개인별 소득자료가 국세청에도 통보되는 만큼 범죄 예방 효과를 낼 수 있다.

개선 과제도 엿보인다. 첫째는 장기 투자 유인책이 없다는 점이다. 미국처럼 1년 이상 장기 투자자들에겐 낮은 세율을 적용함으로써 단기 중심의 투자 문화를 개선할 수 있다. 이는 투자자의 국외 이탈을 막는 효과를 낸다. 둘째, 손익통산 이월 기간 5년은 짧은 편이다. 폭락장 여파로 손실을 크게 볼 경우 5년 안에 만회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는 만큼 10년 이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 셋째, 반기별 원천징수 제도는 투자 이익의 재투자를 통한 복리 효과’(이자에 이자가 붙는 방식)를 줄인다. 투자자들은 수익률 0.1%에도 민감하므로 연 1회 신고 방식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시행 초기에는 금투세 면제 구간을 5천만원에서 1억원으로 올리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다. 이런 정도만 개선해도 투자자들의 불만과 우려를 크게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국회에서 올 연말까지 충분히 개정할 수 있는 사항들이다.

금투세 유예·폐지와 거래세 인하는 게도 구럭도 다 잃는 격이다. 조세 형평성과 세수는 물론 정부와 정치권 신뢰마저 잃는 나쁜 결정이 될 것이다. 고액 자산가 주식양도세는 종목당 50억원 이상 보유자로 확대했던 2013년 이전으로 후퇴하고, 거래세까지 인하(세율 0.15%)된다면 증권거래세가 신설(0.30%) 1979년 이전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검사 정권이 들어서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제동을 걸고 민주당마저 이를 추종한다면 조세정의와 자본이득과세 선진화에 역행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박현 ㅣ 논설위원 | 한겨레 2024.10.02.

 

김건희 여사와 진정성.

원래 이 주제로 칼럼을 쓸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최근 대통령실에서 나왔던 황당한 세 글자 진정성이란 말이 뇌리에 박혀 떠나질 않았다.

지난달 12일 대통령실은 세계 자살예방의날인 이틀 전(10), 김건희 여사가 마포대교를 도보로 순찰하는 사진에 비판이 잇따르자, “진정성을 봐주면 좋겠다는 해명을 내놨다. 대통령실은 진정성의 근거로 약자와 소외계층을 돌보는 행보는 꾸준히 할 예정이고, 일회성이 아니라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정작 비판이 쏟아진 지점은 약자와 소외계층을 돌보는 행보가 아니었다. 개선·조치·격려·당부와 같은 말, 일선 공무원들에게 지시하는 듯한 모습, 통치자의 태도였다.

이른바 통치자 코스프레의 불길함은 이미 여러 차례 감지됐다. 대선 직전인 2022 1월 공개된 서울의소리 녹취록에서 김 여사는 남편이 아니라, “내가 정권 잡으면이란 발언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지금 생각하면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었다. 총선을 앞둔 올 1월엔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다. “대통령과 제 특검 문제로 불편하셨던 것 같은데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였다. 본인이 어떤 자격으로 연락하고 대신 사과하나.

대통령실이 해명에서 밝혔듯 진정성의 요체는 꾸준함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꾸준하고 일관된 행동으로, 또한 약속을 지키는 모습으로 뒷받침된다. 김 여사의 진정성을 얘기할 때 자연스럽게 오버랩되는 장면은 허위경력 의혹 등에 대한 대국민 사과일 것이다. 2021 12월 본인의 논란으로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자, 후보 부인으로 국민 앞에 선 김건희는 대국민 사과를 하며 두 가지를 약속했다. “남은 선거 기간 조용히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겠다는 것과 남편이 대통령이 되어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는 것이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둬달라고 읍소까지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내의 역할을 한참 벗어난 행보에, 최소한 왜 나서는지 설명조차 없다. 국민들은 모욕감을 느끼고 있다.

약속을 어긴 것보다 더 큰 문제로 생각되는 점은 지난 1월 총선을 앞두고 공개된 한동훈 당시 비대위원장에게 김 여사가 보낸 텔레그램 문자이다. “본인의 문제로 물의를 일으켜 사과하며 필요하다면 대국민 사과를 할 의사가 있으니 검토해달라는 내용이다. 주목할 부분은 필요하다면이다. 잘잘못에 대한 사과가 아닌, 정치적 유불리가 기준이 된, 전략으로서의 사과다. 매사에 이런 식이니 진정성이란 말이 가당키나 한가.

지난 7월엔 김 여사 변호인이 김 여사가 검찰 조사 당시 검사 앞에서 심려를 끼쳐드려 국민들에게 죄송하다” “여러 가지 정무적 판단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사죄를 하고 싶어도 쉽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고 밝혔다. 검사 앞 대국민 사과라는 황당한 발언에, 당시 보수·진보 언론 할 것 없이 비판 사설을 실었다. “변호사를 통해 알려진 이런 비공개 사과에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실재 여부도 불확실한 발언을 대리로 전하며 진심 운운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김 여사의 진정성은 누구에 대한, 어떤 진정성인가. 국민에 대한 진정성을 말한다면 두 가지를 실천하라. 우선, 김 여사 자신이 그렇게 염려하는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고 가급적 대중 앞에 나타나지 말아야 한다. 연이어 드러나는 각종 의혹들, 그 의혹들을 무시하는 듯한 공개행보에 국민들은 노여움을 거두긴커녕,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또 다른 하나, 진정성을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극적으로 김건희 특검법 통과를 돕고 수사에 협력하는 것이다. 21대와 22대 국회에서 잇달아 발의된 이른바 김건희 특검법’(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주가조작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은 포함된 혐의가 8가지로 늘었다. 도이치모터스와 삼부토건 주가조작 의혹, 코바나컨텐츠 뇌물성 협찬 의혹, 명품가방 수수 의혹, 국민권익위원회 조사 불법행위 의혹, 인사개입 의혹, 채 해병 사망 사건 및 세관 마약 사건 구명 로비 의혹, 최근 새로 불거진 총선 공천개입 의혹까지 그야말로 전방위다. 의혹들을 하나하나 풀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정신을 입증하라. 현 정부의 대선 캐치프레이즈였지만 지금은 조롱거리로 전락한 공정과 상식을 조금이라도 되살리는 첫걸음이다.

송현숙 후마니타스연구소장 ’| 경향 2024.10.02.

 

파국적 평형상태?

 100년 전인 1929. 이탈리아 남부 작은 도시인 투리의 교도소에서 날카로운 눈매의 작은 남자가 추위로 곱은 손을 호호 불며 글을 쓰고 있었다. 이탈리아공산당 당수이자 하원의원이었던 안토니오 그람시다. 그는 광기의 파시즘과 무솔리니를 비판했다가 치외법권에도 불구하고 긴급조치에 의해 끌려온 것이다. 그는 결국 감옥에서 병사하고 말았지만, 그의 글은 현대사회를 이끄는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우파들도 자주 사용하는 시민사회’, ‘헤게모니라는 개념이 바로 그가 이 교도소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 모두는 자신도 모르는 그람시주의자들이다.

요즈음 한국정치를 보고 있자면 그람시가 자꾸 떠오른다. 그가 만든 또 다른 용어인 파국적 평형상태(catastrophic equilibrium)’라는 개념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한 사회는 지배적 세력이 사회 전체에 대해 정치·도덕적 주도권(헤게모니)을 행사한다.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 서로 대립하는 사회세력의 힘이 엇비슷해 어느 누구도 다른 세력과 사회 전체에 대해 헤게모니를 행사하지 못하고 둘 간의 평형상태가 오래 지속되면서 사회가 혼란에 빠지고 파국으로 달려가는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이 그람시가 말하는 파국적 평형상태다. 이 같은 상태는 결국 로마민주주의를 무릎 꿇리고 시저(카이사르)라는 독재자를 등장시킨 케사리즘’, 프랑스혁명의 혼란 속에서 쿠데타라는 반혁명을 통해 독재자 자리에 오른 나폴레옹의 보나파르트주의 같은 비극으로 이르게 된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윤석열 정부를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과 이재명 대표가 이끌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세력 간의 대립은 그람시가 이야기한 파국적 평형상태를 빼어 닮았다. 지난 대선에서 나타난 0.73%의 표차라는 것이 두 세력의 평형상태, 교착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윤석열 정부의 연이은 실정과 오만, 독선으로 인해 민주당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뒤에 나타나고 있는 양측의 사생결단식 대립이다. 여러 인사와 정책들이 보여주듯이, 윤석열 대통령은 총선 참패에도 불구하고 전혀 자성이나 쇄신노력을 보이지 않은 채 막무가내식으로 자신의 극우노선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에 맞서 민주당은 여러 개혁진보 야당들과 함께 총선에서 차지한 압도적 의석에 기초해 방송4, 노란봉투법, 채 상병 특검법 등 개혁적 법안들을 통과시키는 한편 윤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들에 대해 연이어 탄핵을 시도하고 있다. 자유주의세력의 이 같은 공세에 대해 윤 대통령은 유례없이 연이은 거부권 행사로 대응하고 있다.

문제는 민주당과 개혁진보 야당들이 국회의 절대의석을 차지하고 있지만 국민의힘이 108석을 차지하고 있어 대통령의 거부권을 넘어서기 위해 필요한 200석에는 못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는 민주당이 개혁법안을 통과시키면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윤 대통령이 무리한 인사를 하면 민주당이 이들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하는 거부권 대 탄핵이라는 교착상태, 파국적 평형상태에 빠져 있다.

우리는 오랜 군사독재 때문에 쿠데타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이 매우 강하다. 따라서 교착상태가 장기화된다고 해서, 그람시의 우려처럼, 군이 다시 무기를 들고나와 곤봉 앞에 모든 세력을 무릎 꿇게 하는 케사리즘이나 보나파르티즘이 들어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걱정되는 것은 교착상태가 장기화되면서 양 진영의 대립이 총만 들지 않은 내전상태로 발전하고 일반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혐오감이 극대화되는 것이다. 아니 급기야 양자의 대립이 폭력적 사태로까지 나아가고 그 가운데 히틀러와 같은 극단적인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부상하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정치적 대타협 같은 충격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국민들이 아무리 지겨워하더라도, 다음 대선이 있는 2027 3월까지는 이 같은 교착상태가 지속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조국 의원의 주장처럼 윤 대통령을 탄핵한다면 교착상태를 깰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 의석수 등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2년 반 이상 지금과 같은 교착상태가 계속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아니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다시 승리하는 경우, 교착상태가 대선 이후에도 계속될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지금같이 짜증나고 소모적인 평형상태가 장기화되더라도, 사태가 쿠데타와 같은 결정적인 파국에는 이르지 않는 것만이라도 고마워해야 하는 것인가? 답답한 일이다

손호철 서강대 정치학과 명예교수 ’| 경향 2024.10.02.

 

대한민국 남성성의 위기

지난 921일 오후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앞 대학로에서 열린 딥페이크 성착취 엄벌 촉구 시위: 만든 놈, 판 놈, 본 놈 모조리 처벌하라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올여름 한국의 반성폭력 활동가들을 만났을 때 미국의 인셀 현상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인셀은 비자발적 금욕을 뜻하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다. 하지만 그저 여성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었지만 실패한 남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여성들에게 거부당했다고 생각하며 여성혐오를 깊이 내면화한 남성들이다. 많은 경우 사회적으로도 고립된 상태에서 세상과 여성에 대한 분노를 키워간다. 여자들이 나를 거부할 수 없는 세상, 그들은 그런 세상을 꿈꾼다.

당연히 인셀은 남성성의 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현상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이를 사회적 위협으로 보고 적극 대응해왔고 관련 연구도 쏟아졌다. 하지만 한국만큼 문제가 심각한 곳이 있을까. 한국의 젠더 인식과 성평등 지수가 전세계에서 바닥이라는 점은 각종 통계로 잘 알려져 있다. 그만큼 차별과 폭력을 체감하는 수준도 다르다. 이제는 한국이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가장 활발하게 생산하는 국가라는 점도, 영상 속 피해자가 대부분 한국 여성이라는 점도 널리 알려졌다. 과연 대한민국의 남성성은 무사한가? 슬프게도 그렇다고 답하기가 어렵다.

첫째, 올해 딥페이크 성범죄로 검거된 피의자의 80% 10, 그중 25% 14살 미만의 촉법소년이었다. , 여성들로부터 반복적으로 성관계를 거부당하며 깊은 증오가 축적될 나이가 아니다. 한국의 아동·청소년들은 그런 나이가 되기도 전에 여성혐오와 성범죄에 빠져들고 있다. 또한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만들고 유통하는 이들은 사회부적응자이거나 은둔형 외톨이가 아니다. 자주 만나던 친구들, 밝게 인사하던 학생들이다. 남성들의 위계에서 바닥에 놓인 채로 여성과 사회에 대한 증오를 키우던 인셀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남성들이 성착취물을 직접 만들고 있다.

둘째, 피해자 역시 익명의 여성 일반이 아니라 친한 친구, 좋아하는 여자, 심지어 가족이다. 전통적 가부장제의 이중 잣대,  성녀와 창녀의 이분법이 붕괴되었다는 의미다. 가부장 이데올로기가 뒷받침하는 성적 대상화는 엄마, 여동생, 아내와 같은 여성은 건드릴 수 없는 성역으로 둔다. 설사 성매매를 함께하며 전우애를 다지는 남성 동지라고 하더라도, 만약 그가 내 여동생을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아마 그 자리에서 싸움이 붙을 것이다. 하지만 10대들의 딥페이크 세상에서는 이런 이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이라면 모두 딥페이크로 가지고 놀 수 있으며 심지어 돌려보기까지 한다. 이는 관습적인 가부장으로서의 남성성이 사회화되기도 전에, 여성의 성적 대상화부터 학습했다는 뜻이다. 내 곁에 있는 여자라면 누구든 나의 포르노 세상 속에 존재할 수 있다.

셋째, 이처럼 전방위적인 여성혐오 사상이 디지털 기술과 만나 성폭력이 사소화·자연화되고 있다. 여성 신체의 대상화, 파편화, 성애화가 너무 손쉽게 집단적으로 이뤄지면서, 성적 만족을 위해 누구든 도구화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다. 특히 단순 시청을 넘어 제작에 동참한다는 것은 능동성의 수준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뜻한다. 이들은 주변 여성들의 사진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 도장 깨기를 하면서도 타인의 인격적 존엄을 훼손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각 방마다 수천명의 남자들이 모여 같은 짓을 하는데 왜 나만 잘못인가? 오히려 이 행위는 사회적으로 승인되고 촉진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어른들은 위기의식이 없는 모양이다. 딥페이크인지 모르고 봤다면 처벌하지 말자는 국회의원, 피해 소녀가 어떤 상태이든 관심 없고 내 아들의 수능시험이 더 중요하다는 학부모, 텔레그램은 꿈쩍도 하지 않는데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면 한국 업체만 손해 본다는 기업인, 포괄적 성교육은 조기 성애화를 부추긴다는 종교인의 발언이 당당하게 전파를 타는 나라다.

대한민국의 남성성은 위기에 빠져 있으며 그 미래는 더욱 암담하다. 정부는 남성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총력전을 펼쳐야 할 텐데 어쩌면 이렇게 무심할까. 젊은 남성들의 젠더 인식을 바꾸기 위한 교육적 개입이 오늘 당장 시작되어도 그들이 변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만큼 시급한 문제다. 여자들이 나를 거부할 수 없는 세상, 주변의 모든 여성이 성적 도구가 되는 세상, 그들은 그런 세상을 손안에 만들었다. 과연 그 세상이 화면 속에만 머무를까?

김정희원 |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수 | 한겨레 2024.10.03.

 

민주공화국 운명, ‘김건희 의혹 대응에 달렸다

김대남 전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이 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와 주고받은 통화 녹음 파일이 공개됐다. 내용이 흥미진진하다. 그동안 용산 대통령실 내부 역학 관계와 집권세력 내 갈등의 이면은 소문과 추정의 영역에 속했다. 권부 내부자의 입을 통해 가식과 포장을 걷어낸 속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통령실에선 통화 당사자가 선임행정관에 불과하고, 윤석열 대통령, 김건희 여사와 모두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며 녹음 내용은 한 개인의 허언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선임행정관은 비서관 바로 아래 직위다. 선임행정관에서 승진해 왕비서관 소리를 듣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궁색한 변명으로 들린다.

윤 대통령 부부와 일면식도 없다는 것도 일방적 주장이다. 이미 김 전 선임행정관이 윤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됐다. 검찰이 김문기를 모른다고 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몰아간 것처럼 하면, 대통령실 해명인들 안 걸릴 수가 없다. 허언인지 진언인지도 이제 가려봐야 할 문제다. 오히려 구체적 진술과 당시 배경 상황 등에 비춰보면, 일부 과장과 허세가 있을진 몰라도 대체로 실제 있었던 사실을 털어놓은 게 아니냐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어느 쪽이 맞을지는 결국 수사를 통해 규명할 수밖에 없다. 이미 여당 내 친한동훈계 김종혁 최고위원이 수사를 통해 누가 배후이고 어떤 공작이 있었는지 밝혀져야 한다고 했다. 당도 진상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역시 친한계에선 배후까지 다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친한계가 의심하는 최종 배후가 김건희 여사라는 건 누구나 짐작한다. 김 전 선임행정관은 직접 김 여사의 지시를 받았다고 토설하진 않았지만, 자신의 행위가 김 여사를 위한 것임을 여러차례 시사했다.

그는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둔 지난 710 여사가 한동훈이 때문에 지금 진짜로 죽으려고 하더라. 배은망덕이라며 이번에 그거 잘 기획해서 서울의소리에서 치면, 아주 여사가 좋아하겠는데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 대표가 지난 총선 당시 여론조사 당비를 이용해 두차례 자신의 대선 인지도 조사를 했다며, “횡령이라고 지칭했다.

윤상현 의원 말에 따르면, 당시 그는 나경원 당대표 후보 캠프의 핵심 총괄이었다. 서울의소리는 712일 실제 이를 한동훈 당비 횡령 유용 의혹이란 제목으로 기사화했다. 그사이 711일에 열린 당대표 후보 토론회에선 용산 대리인으로 통하던 원희룡 후보가 같은 사안으로 한 대표를 맹공했다. 동시다발로 한 후보에 대한 공세가 이뤄진 셈이다.

일부에선 김 전 선임행정관이 나경원 후보를 위해 김 여사를 판 것”(윤상현 의원)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두 경쟁 캠프의 동시다발적 공세를 묶어 기획한 더 큰 흑막이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게 좀 더 합리적이다. 이 일이 있기 직전 한동훈 문자 읽씹 사태가 폭로된 것을 두고도 김 여사가 한동훈 떨어뜨리기에 직접 참전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많았다.

김 전 선임행정관도 기사화를 요청하는 대화 도중 “(한동훈)  ××, 다섯번씩이나 (문자를) 보냈으면 답변을 한두번은 해야 되는 것 아니냐며 김 여사의 깊은 배신감에 대해 토로했다. 이 또한 김 여사의 분노가 이른바 공격 사주로 표출된 것일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김 여사가 지난 대선 후보 경선 때도 직접 이명수 기자에게 경쟁 후보를 흠집내달라고 사주한 적이 있다는 사실도 특기할 필요가 있겠다. 2021 915일 통화에서 홍준표 까는 게 슈퍼챗(유튜브 후원금)은 더 많이 나올 거야라고 한 대목이다. 기획이라고 할지 공작이라고 부를지는 아직 애매하지만, 김 여사가 이 분야의 초짜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지 않은가.

이번 사태로 뚜렷해진 건, 지금 국정을 짓누르는 여권 투톱 간 갈등의 핵심은 -한 갈등이라는 사실이다. ‘-한 갈등의 뿌리가 김 여사 문제라는 점 자체야 새로울 게 없다. 그러나 갈등을 벌이고 실제 한 대표를 공격하기까지 한 행위 주체가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일 수 있다는 정황이 드러난 건 놀랍다.

대통령 배우자가 정당 경선에 개입하고, 그 실행 대가로 연봉 수억원짜리 자리를 보장해준 것이 아니냐는 게 지금 제기되는 의혹이다. 사실이라면 최순실씨를 뛰어넘는 국정농단이다. 우리는 비선 전횡을 단죄함으로써 민주공화국을 지켜낸 바 있다. 이번에도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우리 공동체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손원제 | 논설위원 | 한겨레 2024.10.03.

 

국무총리의 존재이유

국무총리는 한국형 민주공화제의 관건이 되는 헌법기관이다. 총리는 대통령의 보좌기관이면서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하고 국정 최고심의기관인 국무회의의 부의장을 맡는 정부의 2인자이다. 장관으로 불리는 행정각부의 장을 맡기 위한 자격요건이 되는 국무위원의 임명을 제청하거나 그 해임을 건의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행정권 2인자의 지위를 확인할 수 있다. 군사사항을 포함하여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도 총리의 부서가 있어야 한다.

이렇듯 막중한 지위의 총리는 대통령이 혼자서 임명할 수 없다. 반드시 국민대표기관인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정부 2인자의 임명에 국회 동의라는 족쇄를 채운 것은 대통령제의 구조적 문제점인 행정독재의 위험과 의회와 정부 사이의 교착상태를 해소하려는 한국형 민주공화제의 묘수다.

흔히들 현행 정부형태를 제왕적 대통령제로 단정하지만 2인자 총리제만으로도 타당성이 떨어진다. 윤석열 대통령의 막무가내 행태가 제왕적 대통령의 이미지를 드리우지만 헌정 제도의 본질은 변함없다. 온갖 실정으로 여론상 불신임 단계지만 권력구조의 문제라기보다 불통 리더십과 예스맨 문화의 최악 조합 탓이 더 크다.

민주화 이전에도 총리제가 있었으니 이를 두고 제왕적 대통령제가 아니라고 볼 수 없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반론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우선 유신이나 5공의 대통령제는 권력구조 자체가 대통령에게 제왕적 지위를 부여했다. 대통령은 명실상부한 국가원수로서 행정권은 물론 국회해산권이나 의원추천권처럼 국회를 좌지우지하는 제도적 권한을 가졌다. 헌법재판제는 유명무실하였고 일반사법권도 수장형 대법원장을 두어 대통령의 영향권 아래 두었다. 이런 제도에서 총리제가 방탄용’, ‘대독용으로 전락한 것만을 탓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제도를 넘어 정치현실의 차이는 더욱 적나라하다. 유신과 5공에서 제도적 권력은 장식이고 국정농단이 오히려 일상이었다. 법은 통치의 도구였을 뿐 군부, 정보기관, 검경이 제왕적 대통령의 친위대로 나서 국민통제체제를 구축하였다. 이런 상황에선 총리뿐만 아니라 국회도 사법부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지금은 어떤가? ‘제왕적 대통령제인 유신에 항거한 서울의 봄을 짓밟고 군사반란으로 태동한 5공을 종식시켜 민주적 대통령제로 전환한 것이 현행 헌법이다. 국회는 입법독재라는 반발이 있을 정도로 첫 번째 국민대표기관의 위상을 확보해왔다. 사법부도 헌법재판소가 민주화를 뒷받침해왔고 대법원도 유신이나 5공 때와 비교할 수 없는 제도적·현실적 위상을 가졌다. 유독 총리만 제왕적 대통령제의 정치적 지체현상으로부터 제대로 해방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소홀히 하고 있는 사이 총리도 헌정에서 공화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왔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 못지않게 제왕처럼 군림하려 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두 번이나 총리를 경질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국회 동의 제도 때문이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참패한 여당과 한 몸임을 내세워온 윤 대통령도 총리의 사표를 수리하지 못했다. 총리 교체는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명분 삼아 실정을 대신 갚게 함으로써 국정을 전환할 수 있는 중요한 카드인데 그 기회를 날려버린 셈이다.

한편 대통령이 변하지 않을 때 총리가 실정을 바로잡을 수도 있다. 총선 참패의 원인을 충언하고 야당과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설득할 수 있다.

그러나 한덕수 총리에게 이처럼 헌정이 필요로 하는 역할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 이유야 어떻든 여당 대표마저도 진언할 것이 있다는데 총리는 낯간지러운 용비어천가를 불러젖힌다. 국회에서 방탄총리의 역할에 적극적이다 못해 철벽총리가 된다. 국민 여론을 들어 국정쇄신을 건의하기는커녕 오히려 국민과 전임 정부를 탓하며 대통령을 역성든다.

이럴 바에야 총리가 왜 필요한가? 대통령을 보좌하면서도 국회의 동의를 뒷배 삼아 대통령을 견제하기도 하는 한국형 대통령제의 공화적 진면목은 이상론에 불과한가? 그래서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모순적 명칭하에 국민들을 현혹하면서 총리에게 2인자가 아니라 실질적 1인자의 지위를 주는 이원정부제로 개헌해야 할까? 자신이 모셨던 전임 대통령을 깎아내려서라도 현직 대통령을 역성드는 예스맨 총리에게 한국형 민주공화제의 명운을 기대해야 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 너무나 서글프고 야속하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경향 2024.10.03.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공천 개입' '당무 개입' 등 쏟아지는 대통령 부부 의혹에도 '김건희·채상병 특검법' 또 거부권

'김건희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은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행실과 직접 관련된 법안이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의 비리와 불법 혐의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다. 두 사람이 애초 그런 의혹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을 일이다. 한 사람도 아니고 대통령 부부가 함께 위법과 부도덕에 발을 담근 게 단초인 셈이다.

김 여사는 무려 8개의 혐의를 받고 있다. 여당 공천에 개입하고, 명품백을 받고, 주가조작에 가담했다는 의혹은 거의 사실에 근접해 있다. 과거 정부의 어느 대통령 배우자가 이런 비합법과 부도덕의 경계를 넘나들었나. 이것만으로도 그는 영부인으로서, 국가를 대표한 '퍼스트 레이디'로서 자격 미달이다.

윤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자로서 무고한 사병의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기는커녕 대통령의 권한을 부당하게 행사해 사건을 은폐하고 뒤집으려 한 것으로 의심 받고 있다. 그러고는 사건의 발단이 된 '격노설'이 사실인지를 묻는 법원 질의에 '안보 사안'이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대통령 격노 여부가 국가 안보와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건지 구차하고 비겁하다.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공천 개입' '당무 개입' 의혹은 윤 대통령 부부가 함께 관여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연일 언론에서 보도되는 녹취 파일에는 대통령과 김 여사 이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온다. 총선 공천 개입 혐의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해 실형을 선고받게 한 당사자가 바로 윤 대통령이다. 녹취 내용대로 윤 대통령이 공천에 개입했다면 도둑잡는 경찰이 도둑질을 한 격이다.

윤 대통령은 자신들을 겨냥한 쌍특검 법안이 '위헌적'이고 '정쟁형'이라는 이유로 거부권을 거듭 행사했다. 근거가 뚜렷한 비리 혐의를 수사하자는 게 헌법 위반이라는 건 언어도단이다. 공천과 당무 개입으로 헌법 질서를 어지럽힌 건 오히려 윤 대통령과 김 여사다. 국민 대다수가 특검에 찬성하고 있는데 이것이 어떻게 정쟁이라는 건지도 납득하기 어렵다.

권력에 취한 대통령... 도탄에 빠진 경제와 민생·민주주의 시스템 퇴행

윤 대통령이 내놓고 거부권을 남발하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자신을 버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다. 여당 의원들은 겉으론 대통령 부부를 손가락질하면서도 대통령의 기세에 눌려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원내지도부를 용산 만찬에 불러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과 척을 진 한동훈 대표는 얼마든지 쌍특검 재의결에서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는데도 그럴 용기가 없어 보인다.

검찰도 윤 대통령의 기대에 충실히 부응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꽂아 넣은 검찰 수뇌부는 어차피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들이 국민보다 권력을 쳐다볼 거라는 건 누구보다 윤 대통령이 잘 알고 있다. 김 여사와 관련된 물증이 아무리 쏟아져도 검찰 지휘부는 꿋꿋이 엄호할 태세가 돼있다. 여론의 지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명품백을

받은 김 여사를 무혐의 처분하는 것을 보라.

윤 대통령은 다음달이면 정권 후반기에 들어선다. 권력이 한창일 때는 느끼지 못하지만 내리막에 접어들면 풍선에서 바람빠지듯 권력이 쪼그라들기 마련이다. 주변에서 아부하던 측근들이 하나둘 떠나고 숨겨졌던 온갖 치부도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때가 되면 호위무사였던 권력기관들도 등에 칼을 꽂으며 물어 뜯는 게 5년 단임제의 숙명이다.

윤 대통령은 국정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오로지 '반문재인' 하나로 당선된 것처럼 그대로만 하면 국민이 환호할 것으로 착각했다. 국민의 삶은 뒷전이고 권력에 취해 마음대로 국정을 주물렀다. 그 결과 경제와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민주주의 시스템은 퇴행했고, 국격은 곤두박질쳤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대통령 임기 5년이 뭐가 대단하다고. 하는 거 보면 너무 겁이 없다"고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질타했다.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을 비호한다고 비판하면서 "얼마나 많은 비리가 있기에 이렇게 무리하느냐. 과거에 어떤 정권도 겁이 나서 이런 짓을 못했다"고 일갈했다. 윤 대통령이야말로 얼마나 비리가 많길래 자신이 관련된 특검을 거부하는지 묻고 싶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는 이 모든 후과를 어떻게 감당하려는지 겁이 없어도 너무 없다

이충재(h871682) 전 언론인 (한국일보) | 오마이뉴스 2024.10.04.

 

천장만 보는 사회

지난 8, 뜬금없이 한국은행이 대학입시에 관한 보고서를 냈다. 제목은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방안’. 보고서는 상위권대 진학률 격차가 학생의 잠재력보다 소득계층, 거주지역 같은 사회경제적 배경에 의해 주로 설명된다, 과도한 입시경쟁이 저출산과 만혼, 수도권 인구 집중과 서울 집값 상승 등 구조적 사회문제를 유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응 방안은 지역별 비례선발제였다. 일부 상위권대가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을 반영해 입학생을 선발하는 방식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콕 집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의 결단을 요청하고 나섰다.

일목요연한 보고서이고 대안도 일리 있었다. 그런데 새로운 얘기인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진학률 격차 원인이 사회경제적 배경임을 보인 연구는 이미 많았다. 과거 서울대가 시행한 지역균형·기회균형 전형도 유사한 취지였다. 오히려 놀란 건 사회적 반응이다. 사람들은 마치 처음 들은 얘기인 양 경악했다. 진보적인 이들은 더 분노하는 것처럼 보였다. “역동적인 개천 용 사회 한국이 어쩌다 이런 세습 사회가 됐나!” 그러나 보고서와 그에 대한 반응은, 선의에도 불구하고 핵심을 비켜나 있다.

한은 보고서는 소득계층과 거주지역에 따른 상위권대 진학률의 격차를 지적하면서도, 상위권대 출신자와 비상위권대, 대학 비진학자 간의 훨씬 더 심각한 격차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요컨대 피라미드 천장 진입의 불공정만 문제 삼을 뿐, ‘피라미드 자체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물론 한은은 입시경쟁 과열을 문제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으므로 경쟁이 과열되는 대학을 말하는 게 당연하지 않으냐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보고서는 저출생, 수도권 인구와 집값, 나아가 청소년 정신건강까지 포함하는 구조적 사회문제 해결을 목표로 명시했다. 그렇다면 피라미드 천장 일부를 교체하는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다.

유리천장이란 말은 알려졌다시피 능력과 자격이 있음에도 여성이거나 소수자 출신이라는 이유로 승진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의미한다. 유리천장은 실재하며 이를 없애는 일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결국 최상층·엘리트 중심 담론이라는 점에서 한계 역시 명확하다. 언론을 포함한 한국 사회 전체가 이런 천장 편향에 빠져 있다. 천장 편향은 인지 오류의 하나인 생존 편향’(생존한 개체에만 집중하고 생존하지 못한 개체를 간과하는 경향)과 유사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생존 편향이 알지 못한 것이라면 천장 편향은 알고 싶지 않은 것에 가깝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개천 용 신화도 천장 편향이다. 일단 만 되면 엄청난 보상이 주어지므로 모두가 어떻게 이 되는지에만 관심이 있다. 경쟁(주로 시험)의 보상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제도 해킹 또한 만연한다. 이런 사회는 공정을 외치고 불공정을 규탄하기에 언뜻 정의로워 보이지만, 실은 승자독식과 부정부패가 끝없이 악순환하는 불평등 지옥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한은 보고서는 입시경쟁을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입시경쟁은 또한 사회문제의 결과이기도 한 점을 고려하면, 입시경쟁과 사회문제를 모두 포괄하는 배경 요인을 상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제도이자 문화로서 능력주의 체제. 그렇다. 문제는 다시 능력주의다. 그리고 해결은 이미 많은 사람이 지적했듯 개천에 대한 염려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반드시 의 특권 축소가 병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용의 몫을 줄이지 않으면 개천의 행복은 불가능하다.

조선 성종 때 선비 김효흥은 76살에, 고종 때 선비 박문규는 83살에, 철종 때 선비 김재봉은 무려 90살에 과거에 급제했다. 전체 문과 급제자의 61.5퍼센트가 한양과 경기도 출신이었다(‘조선, 시험지옥에 빠지다’). 소득계층, 거주지역은 당시에도 급제의 결정적 변수였다. 만일 그때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실시했다면 조선이 망하지 않았을까? 그럴 리 없다. 엘리트 지역 배분 이전에, 엘리트 경쟁의 내용이 생산성 없는 지대 추구에 불과했기에 조선은 망한 것이다. 공부 잘하면 무조건 의대와 로스쿨을 지망하고 저학력·저소득층은 투명인간 취급하는 오늘 대한민국은, 과연 조선의 저 모습과 얼마나 다른가.

박권일 | 독립연구자·‘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 한겨레 2024.10.04.

 

마을로 간 촛불, 기후돌봄 주민의회 운동을!

베이버부머 세대!

그들은 누구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일반적으로 베이비부머 세대란 해방 직후인 1946년부터 가족계획 정책이 시행된 1963년까지 태어난 세대를 말한다. 현재 60~70대이며 740만 명 정도 된다. 베이비붐 현상 이후 태어난 19641974년생을 2차 베이비부머 세대라고 한다. 이들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8.6%를 차지하는 964만명으로 단일 세대 규모 중 가장 크다. 이들이 올해부터 법정 은퇴연령(60)에 진입하는데, 이들이 생산 현장을 떠날 경우 연간 경제성장률이 하락할 정도로 대한민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1000만 명에 육박하는 2차 베이비부머 은퇴를 쓰나미(해일)’에 비유하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 베이비부머의 자녀 세대들이 취업난을 겪으면서 취업과 결혼이 늦어져, 베이비부머 세대는 노부모 부양에 대한 부담과 함께 자녀에 대한 지출 부담도 지게 된 이중적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세대이다. 그런 가운데 은퇴 후 삶을 준비하며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 광장 촛불민주주의에서 풀뿌리 실천진보로

그런데 요즘 사회운동권에서 진보 담론 재구성 논의와 더불어 베이비부머 세대의 풀뿌리 실천 진보로의 재구성이라는 화두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9 27일 생명평화향연 9월 월례모임에서 베이비부머 세대와 생명평화운동의 정치세력화 모색이라는 주제의 토론회가 열렸다.이 토론회의 요지는 실천 진보로의 재구성은 베이비부머 세대가 다시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베이비부머 세대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전 과정을 이전 세대의 간접경험과 자기 세대의 직접경험을 통해 고스란히 몸으로 겪은 세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재 베이비부머 세대는 한 세대 동안 가장 빠르게 새로운 삶의 전환을 맛보았다. 그런데 다시 아주 급속하게 해체를 경험하며 새로운 탈바꿈으로 초고령화 장수시대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인구통계학적으로 볼 때 이들은 향후 20여 년 동안 고령화사회의 이슈와 대안을 만들며 한국사회와 정치의 주요세력으로 역할을 하리라 여겨진다. 한국의 베이비부머 세대는 인류역사상 가장 많이 배운 세대이고 아마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세대 단위로서는 가장 강력한 조직화를 이룬 경험을 공유한 집단이다.

반면에 다음 세대는 이러한 문제를 인식할 지적훈련 및 조직적 훈련과 경험들을 쌓지 않았다. 그런 그들에게 현재 당면한 문제해결의 짐을 지울 수 없다. 풀뿌리 실천 진보로의 재구성과 그 정치세력화의 선도 및 마중물 역할을 베이비부머 세대가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의 발제자인 이정호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정책위원장은 위에 언급한 맥락에서 실천 진보로의 재구성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첫번째는 사회적 고통의 재구성을 기반으로 체제전환적 정치운동(직접민주주의 운동)과 사회적 경제운동(경제민주화 운동)의 전개이다.

두번째는 도농 상생 통합과 지역 활력을 만들어가는 가운데 녹색 계급의 성장을 통한 기후위기, 인간위기, 지역(공동체)의 복합위기를 해결해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베이비부머의 30여년간의 장대한 드라마의 불꽃이었던광장 촛불민주주의는 마을 촛불민주주의로 진화 발전해야 함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베이비부머의 30여년간의 장대한 드라마는 광장 촛불민주주의로 불타올랐다. 가장 평화적으로 생명을 보살피면서, 가장 거대한 물결로 한 세대를 마감하였다. 어느 나라도 어느 세대도 하지 못했던 베이비부머의 민주주의 실험은 거대한 드라마로 막을 내렸다. 광장을 만들었다.

이제 광장의 촛불은 골목골목에서 피어나야 한다. 서울 한복판의 촛불은 각각의 마을로 보내져야 한다. 우리의 일상이 촛불 광장의 환희심으로 피어나야 한다. 그게 과제이다. 골목에서, 각 지역의 마을들에서 피어나지 못한 촛불은 또 다시 광장의 촛불로 피어날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이제 우리 세대가 할 일은 골목을, 마을을, 지방을, 자연을 살려내는 일이다. 그것이 제2의 민주화운동이고, 2의 경제적 균형을 위한 방향이다. 흩어지지 말고 다음을 준비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시점이다.”

길 잃은 촛불과 하이브리드 촛불민주주의

‘87년 체제를 넘어서야 할 촛불의 주류는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87년 체제에 포획되어 이를 넘어서는 유토피아적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정권교체 프레임과 팬덤 정치에 가스라이팅 당하여 87년 체제를 넘어서는 정치교체의 주체 형성과 로드맵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

촛불 시민이 주체가 된 하이브리드(hybrid) 촛불 민주주의가 필요한 시대이다. 더이상 광화문광장에만 머물러 있는 아스팔트 진보나 나 때는 말이야를 연발하며 살아가는 추억과 낭만 진보, 그리고 실천력이 뒤따르지 못하는 입진보로만 머물러있지 말아야 한다. 마을과 지역에 둥지를 트고 일하며(진지전 전략), 필요에 따라서는 광화문광장에서 전민항쟁(기동전 전략)을 수행하며, 마을(지역)과 광화문광장을 넘나드는 하이브리드 촛불민주주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이를 통하여 개벽 세상을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그 개벽 세상을 만들어 내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촛불은 개벽 세상을 여는 빛이다. 이러한 빛을 안고 살아가는 촛불 시민들이 해야 할 과제가 있다. 촛불의 일상생활화, 지역적 상설화, 국가적 제도화, 지역지구화를 추진해나가는 일이다.

첫째로, 개인적으로는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국가에서 민주주의자들의 민주국가를 만들기 위해, 촛불의 일상생활화(비폭력대화ㆍ인디안식 공감토론ㆍ민주시민 학습등)에 힘쓰는 일이다.

둘째로, 지역(마을)에서는 촛불의 지역적 상설화를 위해 일하는 것이다. 이는 지역민회(대안적 공론장, 주민의회)와 지역정당의 건설을 통해 읍ㆍ면ㆍ동장 선출제를 추진하여 마을 공화국(마을자치정부ㆍ마을기금ㆍ마을대학 등)을 건설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해야 할 것이다.

셋째로, 국가적으로는 촛불의 제도화이다.

국민발안 시민입법ㆍ국민소환ㆍ국민투표제와 마을자치정부 기반의 마을연방 민주공화국을 제도화하는 직접민주주의 개헌과 더불어 국민공론화 기구인 시민의회를 건설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대의민주주의 중앙집권 통치제제인 87년체제를 극복하고, 직접민주주의 민치(民治)와 대의민주주의 통치(統治)의 협치 국가체제인 포스트 87년 체제를 구축하는 일이다. 이는 마을공화국을 기반으로 마을연방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으로써 대한민국을 재건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넷째는, 지구적으로 세계 직접민주주의운동을 추동 발전시키며, 세계의 마을과 마을공화국, 마을연방 민주공화국 등을 기반으로 마을공화국 지구연방을 건설함으로써 지구문명을 재건축하는 일에 나서는 것이다. 이는 촛불의 지역지구화(Lobalization)와 지구지역화(Glocalization)를 동시에 추진함으로부터 가능해질 것이다.

촛불시민은 개인ㆍ지역(마을) ㆍ국가ㆍ지구 차원에서 위와 같은 공진화의 개벽세상 만들기 운동,‘민주화 이후 민주화운동을 수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운동을 수행해 나갈 주체세력과 그 주체세력이 형성되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마중물역할을 할 선도세력은 누구일까?

그 선도세력은 베이비부머 민주화운동세력 가운데서 나올 것이고 나와야만 한다. 베이비부머 민주화운동 세대와 같이 집단적 경험을 공유한 세대는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촛불혁명을 경험한 촛불세대이다. 하지만 이들은 집단적 협력과 조직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익숙하거나 그럴만한 역량과 경륜을 갖추지 못했다. 그러기에 베이비부머 민주화운동 세대의 역사성을 계승하면서 촛불세대와의 연결성을 갖추고있는 1970년대 후반에 출생해 19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른바 ‘97세대의 역할이 중요하다. 베이버부머 민주화운동 세대가 새로운 운동의 환경조성과 마중물 역할 및 지원 역할을 맡고, 97세대가 세대 연결의 허브를 맡아 노장청여(老長靑女)의 연대동맹군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촛불 세대로의 세대교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나갈 것이다. 작금의 상황에서 베이비부머 민주화운동 세대는 새로운 시대정신과 제2 민주화운동에의 또다른 헌신과 결기ㆍ선도와 조직화를 통하여 돌개바람을 일으킬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시대정신을 외면하고 서울 수도권 도시에 부박되어 있으면, 지대경제만 키우다가 저출산 초고령화 지역소멸로 나라가 망하게 될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비부머 민주화운동 세대들의 전략적 과제와 농촌 살리기

그렇다면 이들 베이비부머 민주화운동 세대들의 전략적 과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기후위기ㆍ인간위기(불평등ㆍ자살 등) 그리고 지역(공동체)위기라는 복합위기를 해결하는 새로운 진보담론(문명전환ㆍ체제전환ㆍ정치시스템 전환) 재구성을 기반으로 정치적으로는 직접민주주의 자치분권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그다음 경제적으로는 협동조합청ㆍ공공은행ㆍ마을기금 만들기 같은 사회적 경제기반의 담대한 민생개혁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공동화되어 가는 농산어촌을 살리는 일일 것이다.

이 세 가지 중에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지만 이 가운데서도 불요불급한 게 있는데, 그것은 먼저 공동화되어 가는 농산어촌을 살리는 일이다. 그 이유는 농산어촌을 살리면 지방이 살고, 듀얼라이프(dual life, 대도시와 농산어촌 두지역 살기)같은 도농 공생정책을 잘 펴면 동시에 서울 수도권도 살리면서 저출산과 초고령화 그리고 지역소멸이 한 쾌에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농산어촌을 살리는 것은 한국사회문제의 킹핀(Kingpin)인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농산어촌을 살리려면, 무슨 정책을 펼쳐야 하고 무슨 운동이 일어나야 할까? 서울 수도권 인구 300만 명의 귀농귀촌과 700만 명의 듀얼라이프 인구정책, 이를 배경으로 한 이도향촌(離都向村)의 농산어촌 유토피아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농산어촌은 초록문명 생명사회(네오 수렵채취 농업문명사회,Eco-dream Society) 15차 융복합 창의산업의 터전이기에 제4차 산업혁명 유토피아 건설의 최적지이다. 이러한 인식을 가진 운동은 단순한 농촌 르네상스운동이 아니라 21세기 4차 산업혁명시대에 걸맞는 신천지 유토피아를 구현하는 운동이어야 할 것이다.

이 운동은 베이비부머 세대들에게는 제2의 민주화운동일 수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이루었던 민주화는 군사독재정권을 몰아내는 절차적(형식적) 민주화였다. 1987 6월 민주화 시민 대항쟁으로 성립된 87년 체제 이후 35년이 지난 지금 실질적 경제민주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그 골은 깊어만 가고 있다. 그 결과는 청년들이 도저히 결혼하여 아이를 낳을 수 없는 1:9:90% 헬조선 신양반제 사회를 만들어 냈고, 이는 현생인류 역사상 초유의 저출산율과 지역소멸이라는 국가멸절 위기의 나라가 되었다.

이러한 절실한 인식으로 출발하는 이도향촌(離都向村)의 농산어촌 유토피아운동은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듀얼라이프 도농 공생정책과 함께 가면 그 운동과 정책적 성과는 매우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왜냐하면 이 정책은 관계인구효과로 농산어촌도 활력을 되찾고, 서울수도권 대도시의 고질적인 문제인 인구 초과밀화 문제와 부동산투기 문제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정책은 프랑스와 일본에서 입증된 성공사례이다. 프랑스의 경우 이 정책으로 파리 시의 작가와 예술가 등 독립 지식인집단과 재택근무 사무 전문직 노동자들이 농산어촌으로 빠져나가 파리 시가 꿀렁꿀렁해지면서 인구 초과밀화 현상을 해결하고 주택문제 안정화의 길을 걷게 된다. 파리 시 정부는 아파트 및 주택단지 내 공실화된 주택을 사들여 마을형 돌봄양로원과 공동육아 마을유치원 그리고 공동부엌과 마을도서관 등 복합문화관을 개설하여 아이 기르기 좋은 동네와 고독사 없는 노인 안심마을의 이상을 실현하고, 파리 시 전체를 15분거리 생활권으로 재조직하여 살맛나는 쾌적한 도시로 변신시켰다.

지금 한국에서 듀얼라이프(dual life)정책을 가장 앞장서서 실천하고 있는 곳은 경상북도인데, 복수 주소지 등을 비롯한 각종 우대 플랜으로 잰걸음을 내딛고 있다. 이 운동의 또 다른 장점은 예전 민주화운동처럼 오로지 헌신과 결기만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회경제적으로는 실질적 민주화를 이루는 운동인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도랑치고(사회혁신) 가재잡는(경제가치 창출)” 사회적 경제방식의 운동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더 노력하기에 따라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콧노래 부르며 하는 신바람 나는 운동일 수 있다.

이도향촌의 농산어촌 유토피아운동과 기후돌봄 주민의회

그렇다면 이도향촌(離都向村)의 농산어촌 유토피아운동이 해야 할 구체적인 일은 무엇일까?

그 첫번째 일은 3돌이(원주민 박힌 돌과 도시에 살다가 고향에 돌아온 돌’, 그리고 아무 연고 없이 굴러 들어온 돌’) 협업기반으로 주민자치와 사회적 경제와 결합하여 지역통합 돌봄체제(아이와 노인 돌봄, 어린이와 청소년 키움, 장애인과 사각지대 돌봄)를 시급히 구축하는 일이다.

지역통합 돌봄체제(COMMUNITY CARE) 구축은 돌봄을 받을 권리와 제공할 권리의 그 상호성 때문에 주민자치와의 결합 없이는 불가능한 영역이다. 왜냐하면 돌봄은 능력으로만 되지 않으며, 사회적 우정의 휴머니즘과 함께 자발적 상호부조와 연대의식이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돌봄 문제는 일방적인 톱다운 행정으로는 잘 되지도 않을뿐더러, 된다 하더라도 그 효율은 지극히 낮을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일은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통한 농산어촌 주민 기본소득 100만원 시대를 만드는 일이다. 비록 맹아적 수준이지만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이익공유제 기반 기본소득은 이미 전남 신안군 모델, 여주시 구양리 모델도 있고 대전시 대덕구 미호동 모델도 있다. 이러한 모델들을 종합하고 국가와 해당 기초자치단체가 정책(영농형 태양광 등)과 조례 제정(시군 내 시[]유지. 도유지. 국유지의 땅과 건물 활용조례 등), 재원 지원(태양광 설비자금의 융자 및 대출 보증 등)을 통해 가용자원을 끌어모아 설계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전남 영광군 군수 보궐선거에 출마선언을 한 사람 가운데 양재휘 영광 기본소득위원회 위원장은 신재생에너지 이익공유로 군민들에게 연 기본소득 1천만원 시대를 열겠다는 공약을 했다. 태양광에너지 기반 농산어촌 주민의 월 기본소득 100만원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는 중이다. 민간에서는 듀얼라이프 도농공생 정책에 부응하여 대도시와 농산어촌을 오가며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탄소 제로 듀얼라이프 마을, 일명 사도삼촌마을(四都三村:4일은 도시 3일은 농촌)”프로젝트도 추진되고 있다. 도시인들이 영농형 태양광 기반으로 마을을 만들어 탄소 제로 운동에도 일조하면서, 태양광 에너지 소득으로 생활비 걱정 없이 듀얼라이프 스타일 취향으로 살아가겠다는 취지의 마을이다.

세 번째 일은 기후위기와 돌봄 재난시대를 맞아 기후돌봄 주민의회를 조직하는 일이다.

기후위기 심화로 지구상 거의 모든 생물과 사회적 약자들의 취약성이 증대하고 있고, 사회적 재생산의 기반이 교란되고 있다. 이제는 탄소제로 행동 못지않게 기후 회복력과 돌봄 역량 강화가 사회의 의무로 등장하였다.

지금껏 대한민국은 돌봄 복지를 국가가 담당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복지정책을 수행해 왔다. 동시에 노인복지 등 상당부분(요양원과 요양병원 등)을 시장에 맡겨 왔다. 그런데 돌봄 영역이 돈벌이 산업화로 변모되어 갈 때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삭막함과 폐해가 심각함을 똑똑히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지역통합 돌봄이 온전한 커뮤니티 케어가 되려면, 읍ㆍ면ㆍ동 단위에서 업자(業者)나 공무원 주도가 아닌 주민 주도가 되어야 하고 제대로 된 주민 주도가 되려면 풀뿌리 주민자치가 제도화되어야 한다.

더 이상 구경꾼 민주주의가 아니라 주민과 마을(지역)공동체가 기후돌봄의 행위 주체로서 나서야 하고, 이를 통해 주민자치를 활성화시키면서 풀뿌리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일이 열매 맺도록 하는 요체는 기후돌봄 행동과 주민자치를 결합시킴으로써, 대안적 공론장인 기후돌봄 주민의회를 조직하고 이를 통해 기후돌봄 조례를 만드는 것이리라! 더 나아가 사회적 경제로까지 안착하게 하여 돌봄이 관치행정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고, 돌봄이 돈벌이로 접근하는 시장 메카니즘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전국 3500개 읍ㆍ면ㆍ동에 기후돌봄 주민의회가 우후죽순 열리면서, 이를 계기로 관치행정과 자본의 돈벌이 시장에 빼앗긴 마을공동체 기능을 되찾아오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임진철 직접민주마을자치전국민회 상임의장 | 시민언론 민들레 2024.10.04.

 

인구절벽 앞, 혼란스럽기만 한 이민정책

다문화 다인종 국가 한국, 종합적 이민전략이 없다

코로나가 끝나고 외국인들이 다시 대거 입국하기 시작하면서 이민 정책이나 외국인 관리에 대한 이슈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유학생도 계속 많아지고 해외 근로자 숫자도 쉼없이 올라간다. 유엔(UN, 국제연합) 기준에 따르면 외국 출신 인구가 국가 총 인구의 5%를 넘으면 다문화 / 다인종 국가로 인정된다. 한국은 2024년 기준으로 등록된 외국인 인구로 볼 때 이제 다문화 / 다인종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은 많이 미흡하다는 것을 나를 포함해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많이 느낀다.

나는 이민과 관련된 뉴스 보도, 포럼, 세미나, 정책토론 등에 관심이 많고 관련 행사에 자주 참석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답답함을 많이 느낀다.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는 행사에 모인 수많은 전문가들이 말은 많이 하는데 알맹이가 잘 안 보여서다. 얼마 전에 참석하게 된 외국인 정책 포럼에서 무대에 올라온 오세훈 서울시장은 우리가 사는 글로벌화된 세상에” “포용적인 이민 정책 수립 필요” “고령화 사회의 트랜드를 바꾸려면” “더 이상 미룰 수 없고” “벤치마킹을 열심히 해야 등등 막연하고 별 의미 없는 말만 많이 했다. 얼핏 그렇듯 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내용은 없는 그런 표현들이 이런 행사들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이민자는 외면하고 해외 근로자 일색인 토론회

외국인 관련 뉴스를 듣거나 관련 행사에 참여하면서 느끼는 것은 그런 뉴스들이나 토론의 대상은 외국인 전체도 아닌 임시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국한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쿼터제, 한국어 교육 제공 여부, 근로환경 개선 등과 같은 문제들이다. 물론 그런 주제들도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지만 외국인 이민 정책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문제들이다. ‘해외 근로자 이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민자는 본국을 떠나서 법적 절차를 통해 (, 영주권 취득이나 귀화) 다른 나라에 영구적으로 정착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반면에 해외 근로자는 말 그대로 돈을 벌러 임시로 해외에 나가 다른 나라에 잠시 체류하면서 일을 하는 사람이지, 영원히 정착해서 살 사람들은 아니다. 방문취업 비자로 한국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현재의 법률 구조상 영주권이나 귀화로 가는 길이 막혀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기서 아이를 낳아도 그 아이에게 영주권이나 국적을 주지도 않는다. , 한국 사회가 고민하고 있는 고령화나 생산인구 감소 등의 문제와 딱히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이민자로 부를 수 있는가.

이런 문제가 생기는 근본적인 이유는 국가 차원에서 이민에 대한 종합 전략이 없다는 것이라고 본다. 언론 보도를 보거나 전문가와 이야기를 해 보면 우리 사회의 이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하다고 개인적으로 느끼곤 한다. 쉽게 말하면, 이민자를 왜 받아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고령화가 심각해서 이민자를 많이 받아야 한다면 외국인에게 영주권이나 국적을 주고 아이를 낳으라고 격려하는 정책을 펼쳐야 논리적이다. 하지만 해외 근로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영원히 한국에 남을 길이 거의 없고 아이도 안 낳는다. 앞뒤가 안 맞는 주장이다.

정부가 정확한 목표가 없으니 산하 기관들이 제대로 움직일 리 없다. ‘글로벌화가 그 자체로 이민정책이 될 수 없고, 고위직 공무원들이 나와서 좋은 사람들이 많이 오면 좋지가 이민정책의 전략적 목표가 될 수도 없다. 정확한 니즈를 파악하고 정확한 정책을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좋은 사례로 들고 싶은 정책은 캐나다의 주정부 이민 프로그램(Provincial Nominee Program)’이다. 주 단위로 그 지역에 꼭 필요한 해외 인력을 선발해서 연방정부에 추천하면 연방정부가 거주권을 제공하는 형식이다. 참고할 만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목표도 없고 컨트롤 타워도 없이 관리만 해서야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은 한결같이 한국 비자체계의 비효율성을 불만스럽게 생각한다. 어떤 사람을 왜, 어떻게, 얼마나 많이, 어느 분야로 받아야 할지 산출해서 계획한 것이 없으니 시스템이 복잡해지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들어오는 외국인의 관리에 집중을 하지, ‘유지 정책이 거의 없다. 그리고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도 법무부 장관 시절에 이야기한 적 있듯, 전략적인 이민 정책 플랜을 만들면 시행을 관리하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한 대표의 다른 정책들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 동의하기 어렵지만 이 생각만큼은 매우 동감한다. 지금은 외국인 근로자를 노동부, 결혼 이민자를 여성가족부, 유학생을 법무부와 교육부, 해외 동포를 외교부가 관리한다. 이런 식으로는 부서별 경쟁도 존재하고 이해관계가 달라서 이민정책이 제대로 운영될 수가 없다. 외국인과 관련된 업무를 한 부서에 부여하고 제대로 관리를 맡길 필요가 시급해 보인다. 해외 사례를 봐도 이민을 많이 받는 국가에서는 이민과 관련된 업무를 관리하는 부서가 항상 별도로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이 부분부터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개인적으로 본다.

앞으로도 많은 외국인들이 국내로 계속 들어와서 정착할 거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이에 대해 많은 행사나 토론회를 개최하거나 지원만 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앞장서서 체계화된 정책을 세우고 정확한 시행절차를 앞당겨 실천에 옮기는 모습을 보여 주기 바란다.

벨랴코프 일리야 수원대 교수 | 시민언론 민들레 2024.10.05.

 

사과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는 과거 선감도라 불렸던 지역이 있다. 그곳에는 1942년부터 1982년까지 5000여명의 강제수용된 어린이들에게 강제노동, 학대, 암매장 등이 행해졌던 선감학원이 있었다. 수백명의 아이들은 과거 섬이었던 그곳을 탈출하다가 익사했다. 선감학원의 학대생존자들은 2020 12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출범하자마자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2022년부터 아이들이 암매장된 장소로 추정되는 곳에 대한 시굴이 행해졌으며, 경기도는 지난 8월 본격적인 유해 발굴 작업을 시작했다. 희생자들의 작아도 너무 작은 분묘는 185기여로 추정된다고 한다. 지난 토요일에는 아홉 번째 선감학원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지난 7월 유엔 고문방지위원회는 한국 정부가 제출한 제6차 국가보고서를 심의하고 시설수용 및 과거사 피해자의 구제 보장을 권고했다. 정부가 피해자들을 위한 배·보상을 하고, 공식적 사과와 함께 명예회복을 추진하고,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해당 심의에는 1950~1960년대 부산 지역 최대의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영화숙·재생원의 피해생존자협의회 대표가 참여하여 당시의 참상을 직접 증언했다. 위원회는 이례적으로 긴 시간을 할애해 귀를 기울였다.

뿐만 아니다. 진실화해위는 이미 형제복지원, 대구희망원, 서울시립갱생원, 천성원 등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여기까지 보면 한국 현대사 특유의 국가폭력에 대한 역사적 반성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야 할 길이 멀다.

무엇보다 생존자를 발견하는 작업이 직권조사가 아닌 신청에 의해 이루어진다. 학대생존자들이 자신이 피해자임을 인식하고, 정부의 조사사업에 대해 알고, 기한 내에, 스스로 신청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국가를 상대로 한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은 당사자가 알아서 해야 한다. 어린 시절 학대로 인한 노쇠하고 핍진한 몸을 이끌고 밟기에는 지난한 행정 절차다. 신청 기간이 정해져 있어 늦게 발견된 생존자들은 피해자로 인정받기 어렵다. 생존자가 맞는지 기록을 대조해 보아야 하지만 반드시 명확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다. 더욱 가슴 아픈 현실은 이러한 피해 조사 과정에서 당사자들이 오랜 트라우마를 반복적으로 경험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가의 행정엔 적시성과 적절성이 필요하다. 제때, 제대로 된 정책이 시행되어야 한다. 비록 진실화해위 활동으로 과거 국가폭력에 대한 정부 대응에 진일보한 측면이 있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선 모든 과정이 너무 느리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절차는 관료적이다.

적시성과 적절성을 갖춘 사과란 무엇일까. 첫째, 공식적이고 공개적인 사과다. 이미 몇몇 관련 지방자치단체들은 이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당사자들에 대한 상징성과 일반 시민들에 대한 가시성이 부족하다. 과거사에 대한 사과는 떠들썩하고 알려져야 한다. 그래야 생존자의 사회적 명예 회복이 가능하다. 둘째, 사과는 언어를 넘어 피해 구제 과정 전반에서 존중으로 나타나야 한다. 역사적 의미에 부합하는 충분한 예산과 인력을 편성해야 하고, 직권조사와 신청을 병행하고, 활동 기간을 확보해야 한다. 피해 사실 조사 과정에서도 생존자 친화적인 조사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기록이 부족할수록 생존자들의 상호 증언을 신뢰해야 하고, 조사 과정이 중복되어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키는 증언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관료적 언어가 아니라 생존자들을 배려하는 언어로 진행·기록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조사를 넘어 생존자들의 회복을 위한 지원 역시 필요하다. 셋째, 조사 자료가 축적되고, 생존자 친화적 절차가 정교화되며, 상시적으로 생존자를 발굴하고 대응할 수 있는 상시 조직 설치를 위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여 과거사 조사 기능의 안정성과 연속성을 확보해야 한다.

국가가 수용시설들에 기능을 위임했을 때, 공적 폭력은 넓게 퍼졌고, 사실은 발견하기 어려워졌다. 위임된 폭력은 위임된 범위를 넘어 행사된 반면, 국가의 법적 책임은 얇아졌다. 그렇기에 현대 국가는 역사적 결과에 포괄적 책임을 져야 한다.

사회질서 유지의 명분으로 희생된 잔여적 존재들의 삶을 싸매는 것이 정의이고 국격이다. 저질러진 폭력으로부터의 완전한 회복이란 없다. 생존자들이 안고 살아가는 역사적 상처를 조금이라도 치유하는 것이 지금 여기 국가의 의무다. 국가가 외면한 사이 생존자들의 나이는 어느새 70대에 이르렀다. 과거의 폭력에 대해 국가가 제대로 사과할 수 있는 시간도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최태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경향 2024.10.06.

 

한국이 싫어서

얼마 전, 기후위기 시대를 맞닥뜨리며 삶을 생태적으로 전환하기 위해 대도시에서 농촌지역으로 삶터를 옮겨 생활하는 청년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기후와 수도권을 위해 다른 지역민들의 삶의 터전이 파괴되는 것을 왕왕 목격하고 걱정과 분노를 쏟아냈다. 최근 이들은 막 자리 잡아 살기 시작한 농촌지역에 초고압 송전탑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국전력이 전북 부안과 고창, 전남 신안 등의 해상풍력발전단지에서 생산된 소위 친환경 재생에너지를 삼성과 SK하이닉스 등 반도체기업이 들어설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에 전송하기 위해 초고압 송전탑 250개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 송전탑들은 전북 무주, 진안, 장수와 충북 영동, 충남 금산, 그리고 경남 거창과 함양에 들어선다는데 해당 지역 주민들도 모르게 결정된 일이었다. 한전이 이런 식으로 일을 추진하는 데엔 1978년 박정희 정권하에서 입법된 전원개발촉진법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전기사업 명목으로 지도면에 마음대로 선을 긋고 일을 추진해 생태계와 지역 주민들의 삶터가 파괴되고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들이 이런저런 질병에 걸려 죽어도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악법이다.

이런 식으로 전송된 전기가 도착해 쓰이게 될 반도체 산업이란 것도 생명이 온전히 잘 살기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역시 문제적이다. 반도체 산업 자체가 이미 온실가스 배출량의 5%를 차지할 만큼 전력 소비를 많이 하는 데다 물 부족 국가로 거론되는 한국에서 삼성 반도체 하나가 사용하는 물만도 하루 평균 31t이고 반도체 산업단지가 전격 가동되게 되면 매일 76t의 물이 사용될 것이라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반도체 관련 소재, 부품, 그리고 장비 생산 공정에서 발암성, 유전독성, 생식독성 등을 가진 유해화학물질이 사용되는데 영업비밀 보호라는 명목으로 작업장 환경 정보는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다. 반도체 기업에서 인근 지역으로 배출하는 폐수, 휘발성 화합물, 유독가스, 고형폐기물이 반도체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인근 거주민들의 건강을 해치고 주변 생태계를 파괴해 생명이 깃들어 살기 어렵게 만들어도 정부는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

생활인구와 출산 급감으로 지방소멸을 걱정한다는 지자체들은 중앙부처에서 돈 내려온다고 덥석덥석 받아서는 안 된다. 본인 임기 내에 뽑아먹을 이익이나 챙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아니라 진정으로 지역의 미래를 걱정하고 대비하고 싶다면 기후위기 시대에 지역민들의 좋은 삶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고민할 책임이 있다.

<한국이 싫어서>는 얼마 전 개봉된 영화다. 미래가 안 보이는 한국에서의 고달픈 삶을 뒤로하고 새로운 꿈을 꿔보기 위해 뉴질랜드로 떠난 한 청년여성의 분투를 다룬다. 이런 중 수도권이 아니라 소도시나 농촌에서 새로운 꿈을 펼쳐보기 위해 국내 이주한 청년여성들도 있다. 지역 소도시와 농촌을 선택해 삶을 일구려 애쓰는 기후위기 시대의 청년들이 무얼 바랄까? 한국이 싫다는 말 대신 소도시와 농촌의 삶이 살 만하고 좋구나 하는 말을 들어보고 싶다. 그런 나라에서야 미래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구가 계속 가열되고 있는데도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개발사업만 계속되어선 안 된다.

박이은실 여성학자| 경향 2024.10.06.

 

임종석을 위한 변명

이러다 정말 전쟁 나는 거 아냐?”

중고등학교 친구 케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5년여 만이다. 케이가 이런 내용의 문자를 보내온 것은. 케이는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하루가 멀다 하고 문자를 보냈다. 북한이 단거리·중거리·대륙간탄도 미사일을 연일 쏘아대던 때였다. 시험관 시술로 어렵게 쌍둥이를 낳은 케이에게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현실 공포였다. 이민을 가야 하나 싶다던 케이의 문자는 평창겨울올림픽을 거쳐 남북정상회담, -미 정상회담이 이뤄지는 동안 끊겼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시작됐다.

통일, 하지 맙시다.”

임종석 전 의원의 도발적 한마디가 여의도에 논란을 몰고 왔다. “북한 지령을 받았냐는 막무가내 색깔론을 걸러내도 비판이 더 많은 듯하다. 공교롭게도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입에서 반헌법적 발상이란 말이 나왔고, 민주당에서도 통일 포기란 비판이 이어졌다. 임 전 의원은 졸지에 자신의 소신이자 헌법적 가치인 통일을 헌신짝처럼 내다 버린 사람이 됐다.

과문한지라 통일에 대한 가치와 지향은 헌법 정신에 남기고 미래 세대에게 넘겨주자는 임 전 의원의 말과 통일을 지향하되 잠정적 두 국가 현실을 인정하자고 비판하는 분들의 말이 크게 다른 것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큰 틀에서 평화로운 공존이 필요하다로 수렴되는 말로 들렸다. 물론 같은 말이라도  다르고  다르며, 목적지가 같아도 가는 방법이 다르면 도착하는 시간도 풍경도 달라질 수 있는 법. 그러니 헌법에 통일을 어떤 식으로 명기할 것이냐, 헌법 3조 영토 조항을 폐기(혹은 개정)할 것이냐 하는 디테일들은 굉장히 중요한 차이이긴 하다. 다만 임 전 의원의 말마따나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토론하고 접점을 찾아가면 될 일이지 싶었다. 막말로, 먹고사는 게 급선무니 동성혼 허용’ ‘차별금지법 제정’(차별받지 않고 사는 것, 그 또한 헌법적 권리다!)은 나중에 해도 된다는 분도 있는데, 통일하지 말자는 말이 뭐 대수인가.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얘기하고 있는데 굳이 통일, 하지 말자. 2개의 국가를 수용하자고 말할 필요가 있었냐는 지적에 살짝 흔들리긴 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저 정도 말을 했으니 화석화된 통일이, 평화가 새삼 얘깃거리라도 된 것 아닌가. 정치적 인기에 급급해 임 전 의원이 너무 나갔다고들 하지만, 모처럼 그가 정치인으로서 제 할 일(어젠다 제시)을 한 것은 아닌지

임 전 의원의 폭탄 발언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가 여전히 유효하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국민 10명 중 3명 이상(35%) 북한과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고 여기고, 절반 넘게 가까운 시일 내에 통일이 어려운 만큼 북한을 별개의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54%)고 답하는 시대다. ‘통일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33.9%)이 싫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102 ‘2024 통일 의식 조사 925일 발표된 전국지표조사 결과,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초등학교 교사인 친구한테 물어보니 요새 학교에서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의무적으로 가르치진 않는다고 했다.

지금 우리의 소원이 통일인지 물어야 하는 건 역설적으로 그놈의 통일이 오히려 전쟁 위험을 더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어서다. 북한은 오늘도 ‘7차 핵실험 예고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고, ‘대한민국이 현재 누리는 자유를 북녘땅으로 확장하겠다는 윤 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 사용을 기도한다면 정권 종말의 날이 될 것이라고 경고만 한다. 남북이 이렇게 브레이크 없이 마주 달리다가 작은 국지전이라도 발생하면, 누군가는 다치고 또 죽을 수도 있다. 때늦은 응징과 보복이 다 무슨 소용인가. 내 친구 케이가 원하는 건, 우발적 충돌을 막을 방법, 케이에겐 지금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닌, ‘우리의 소원은 평화란 노래가 간절하다.

이정애 | 정치팀장 | 한겨레 2024.10.06.

 

우리는 꼴찌입니다

인도 하면 떠오르는 것은? 힌두교, 불교, 간디, 커리, 그리고 커리 가게를 운영하는 럭키(인도 출신 방송인). , 그런 것도 좋지만 인류세 관찰기는 환경 칼럼이니까 기후변화나 에너지 쪽으로 이야기를 좁혀 보자. , 이제 무엇이 떠오르는가?

미세먼지로 악명 높은 곳, 초미세먼지가 가장 심한 100개 도시 가운데 83곳이 몰려 있고, 어떤 곳은 연평균 농도가 세자릿수를 보이는 곳. 아직도 전기의 70%를 석탄으로 만들고, 유럽연합(EU) 27개국을 합친 만큼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나라. 요약하면 환경 후진국. 그래서 우리는 늘 모범사례 즐비한 선진국으로 눈을 돌린다.

지난달 3주에 걸쳐 미국에 다녀왔다. 미 국무부의 국제 방문자 리더십 프로그램’(IVLP)의 하나로 인도·태평양 9개국에서 모인 10명이 미 전역을 돌며 에너지 정책에 대해 듣고 토론하는 자리였다.

풀뿌리 단계부터 시민사회와 기업, 공공이 파트너십을 맺도록 한 사회체계, 그것이 어떻게 캘리포니아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보급에 녹아들었는지, 네바다주가 재생에너지계의 아웃사이더 격인 지열 발전에 얼마나 진심인지, 그리고 공화당 텃밭 미주리주에 부는 녹색 바람 등을 접할 기회였다.

역시 미국이다. 기술과 도전정신, 창의력으로 성장의 발판을 쌓고 이를 흔들림 없이 지탱할 자본과 인력이 있는 곳. 우리는 늘 미국이나 유럽처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높은 나라에 시선을 맞췄다. 잘사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지금 우리의 모자람은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고, 이제부터 부지런히 따라가면 된다고 자위한다. 착각이다.

에너지 전환에서 우리 위치는 한참 아래다. 환경 후진국이라 치부했던 국가도 우리를 저만치 앞질러 가고 있다. 인도도 그렇다. 인도는 2010 자와할랄 네루 국가 태양 미션’(JNNSM·네루 태양 미션)을 발표하고, 당시 고작 11메가와트였던 태양광을 2022년에 2만메가와트로 늘리기로 했다. 비슷한 시기 한국의 녹색성장은 말잔치로 끝났지만, 네루 태양 미션의 목표는 7년 만에 조기 달성됐다. 이후 목표는 두번 더 상향됐다. 물론 인도에서도 초창기 태양광은 너무 비쌌다. 인도 정부는 태양광과 석탄 발전 전력을 묶음 판매하는 독특한 번들링으로 킬로와트시당 단가를 17.91루피(287.5)에서 단박에 4.75루피(76.2)로 떨어뜨렸다. 현재 인도의 태양광 발전단가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만들어 쓰고, 남는 전기는 전력회사에 파는 넷미터링과 유사한 뱅킹 메커니즘 1986년 도입됐다.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의 풍력발전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1980년대에 풍력발전을 했다는 것도 놀랍고, 이를 뒷받침하는 요금제까지 마련했다는 점은 더 놀랍다. 나스닥에 상장된 재생에너지 민간 발전사도 있고, 자국에서 쌓은 풍부한 실적을 토대로 세계 시장을 두드리는 다국적 터빈 제조사도 있다. 인도의 재생에너지 비중도 20%를 웃돈다. 한국은 아직도 10% 이하다.

인도뿐이랴. 필리핀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2%, 타이와 말레이시아는 18%. 미 국무부 프로그램에 함께한 나라 중 한국보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낮은 나라는 없었다. 심지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작은 태평양의 섬나라 나우루조차 ‘2050 넷제로를 선언하고 손바닥만 한 땅 한 편에 태양광 발전소를 만들었다.

에너지 전환이라는 총성 없는 전쟁에서 한국은 미국과 유럽에만 뒤진 게 아니다. 우리보다 경제 수준이 낮다고 눈길 주지 않았던 곳도 이미 앞질러 가고 있다. 화석연료 시대에 쌓아 올린 우리의 성장 공식이 재생에너지 시대에도 유효하리라 믿어선 안 된다.

윤지로 | 에너지·기후정책 싱크탱크 넥스트 미디어총괄 | 한겨레 2024.10.06.

 

담배와 스마트폰

담배가 건강에 미치는 해악은 이미 수많은 연구와 사례로 확인된 바 있다. 하지만 서구에서 담배가 여성해방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흡연은 남성 중심의 질서에 균열을 내는 해방적 몸짓으로 칭송받았다. 1929년 부활절에 미국에서 수십명의 여성들이 담배를 피우며 거리를 행진한 자유의 횃불 사건이 도화선이 됐다. 이 기획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조카이자, ‘홍보의 아버지로 알려진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담배 회사를 위해 기획한 마케팅의 하나로 밝혀졌지만, 진보주의 여성들이 기성 질서에 맞서는 행위로 이용하기도 했다.

인류 진보의 위대한 성과로 여겨져온 스마트폰과 디지털 기술이 청소년들에게 담배나 술 못지않게 해롭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유럽지부의 국가 건강정책·시스템 책임자 나타샤 아조파르디무스카트는 한 인터뷰에서 스마트폰이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해악이 커지고 있다면서 연령 제한, 가격 통제, 금연 구역 설정 등과 같은 강력한 담배 규제책을 스마트폰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3년 미국 타임 인공지능 100대 인물에 선정된 아베바 비르하네 아일랜드 트리니티대 교수도 지난 6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스마트폰과 인공지능 기술 개발을 주도하는 거대 기술기업들이 담배 회사 못지않게 위험하다고 꼬집었다. “로비를 포함해 담배 회사들이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사용하는 온갖 방법을 거대 기술기업이 따라 하고 있지만, 인류가 직면한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줄 솔루션이자 위대한 진보로 대중의 지지를 업고 있다는 점에서 훨씬 위험하다는 것이다.

내년부터 초··고 일부 교과에 대해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된다. 수준별 교육, 맞춤형 교육을 통해 학습 효과를 높인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학부모, 교사 등의 반발이 거세다. 디지털 기기 사용이 아동·청소년들의 집중력, 문해력을 약화한다는 불안감도 높다. 스웨덴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일정 연령 이하 아동의 디지털 학습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마당에, 디지털 강국을 표방한 한국은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를 전면 도입하겠다며 속도를 내는 상황이다.

인공지능을 외면하고 살 수 없는 시대다. 청소년들이 인공지능을 자기 주도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인공지능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를 성찰하는 디지털 리터러시가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 도입보다 절실하다.

한귀영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연구위원 | 한겨레 2024.10.06.

 

김남주 30주기 해남집회를 다녀와서

선생님, 저 잘했죠. 칭찬해주세요.”

2011년 겨울이었다. 희망버스 기획자라는 표적이 되어 수배생활을 마치고 부산구치소 71, 0.68평짜리 독방에 갇힌 첫날이었다. ‘철커덩 육중한 철문을 잠근 간수의 발소리가 멀어질 때쯤 나도 모르게 김남주 선생님께 독백처럼 건넨 인사였다. 이런 독방에서 93개월을 사셨을 선생님의 삶 앞에 조금은 부끄럽지 않고, 칭찬받고 싶은 날이었다. 선생님은 이 감옥이 팔과 머리의 긴장이 잠시 쉬었다 가는 휴식처이고/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독서실이고 정신의 연병장”(‘정치범들 )이라고 했다. 나는 이곳에서 어떤 꿈을 키워나가야 할까. 내심 꿈에 부풀기도 했던 날이었다.

김남주 선생은 내 삶의 이정표

그해 6차에 걸쳐 한진중공업 희망버스가 운행되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매회 1만여명에 이르는 공권력을 투입하고 경찰 댓글부대를 운영하는 등 공안정국을 조성하며 희망버스를 막으려 했지만 자발적 연대자들로 이뤄진 희망버스는 멈추지도 타협하지도 않았다. 결국 조남호 회장이 국회 청문회장에 끌려나가 대국민사과를 하고 부당해고를 인정해야 했다. 재벌총수가 국회 청문회장에 출석한 건 14년 만이라고 했다. 19대 총선이 몇달 앞으로 다가와 있기도 했다. 보수의 아성이었던 부산을 근 한 달에 한 번씩 갈아엎는 희망버스의 힘 앞에 결국 정권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벗이었던 김주익 전 한진중공업 지회장이 목을 매달아야 했던 85호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 309일 만에 살아 제 발로 걸어 내려올 수 있었던 그해 1110일은 한국의 노동자 시민들이 신자유주의 정리해고의 광풍에 맞서 싸워 오랜만에 승리한 날이었다. 한국사회 민주주의와 노동자 민중이 오랜만에 활짝 웃던 날이었다.

그 투쟁에 힘껏 함께한 후 결국 구속되던 날, 누구보다 김남주 선생님께 칭찬받고 싶었다. 20대 때 선생님을 만난 이후로 그는 내 삶의 이정표와 같았다. 흔들리거나 외로울 때마다 전투적인 인간을 찬양했던 선생님을 떠올렸다. 이런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끊임없이 그에게 길을 물었다. 어떤 투쟁 현장에서 다시 공권력과 격돌을 해야 할 때면 눈을 한 번 감고 선생님의 선하던 얼굴을 떠올리는 게 싸움을 목전에 둔 나의 한결같은 제의였다. 또 한 사람의 열사나 전사를 떠나보내야 하는 눈물겨운 추도식장에서 추모시를 낭송해야 할 때마다 연단으로 오르기 전엔 꼭 눈을 감고 선생님의 얼굴과 육성을 떠올렸다. “어느 시대 어느 역사에서 투쟁 없이/ 자유가 쟁취된 적이 있었던가.”(‘나 자신을 노래한다 ) 지금 내가 읽어야 할 시는 추모시가 아니라 동지의 시, 투쟁의 시, 옛 전사들의 뜻을 잇는 시여야 한다고 마음속 결기를 다지곤 했다.

다시 변혁의 길을 찾아 나설 때

그런 선생님이 저 하늘로 가신 지 올해가 30주년이라고 했다. 그의 꿈은 모두 이루어졌는가. 제국주의의 야만은 세계적으로 잦아들었는가? 조국은 하나가 되었는가? 민주주의는, 자유는 확장되었는가?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고 괄시받던 민중의 삶은 나아졌는가? 물어보고 싶었다. 익천문화재단 길동무의 김판수, 염무웅 두 선생님께서 길을 열어주셨고, 25명의 청년 작가·활동가가 김남주 이후 한국사회와 현재의 우리를 조망하는 기획연재를 오마이뉴스에 해주고 있다. 광복절 전날인 814일에는 청계천에서 서울 추모제를 치르고, 지난 926일에는 해남에서 열린 김남주 30주기 추모제에 함께했다.

다시 제국주의 광풍이 전 세계 여기저기를 휩쓸고, 한반도의 정치·군사적 긴장 또한 극으로 치닫고 있는 때. 이상한 대통령이 다시 등장해 여러 민주적 사회운동에 대한 공안몰이를 하며 모든 민주주의가 거부당하는 참혹한 때. 1100만명 노동자들이 신종 노예에 다름없는 비정규직 불안정노동자로 내몰려 있는 때. 우리는 추모제가 아니라 옛 동학군의 보은집회와 같은 해남집회를 하러 온 듯하다는 염무웅 선생님의 말씀이 죽창 날처럼 서늘했다. 여전히 초라한 선생의 해남 생가 뜰에서 울컥, 추모시를 읽지 못하고 눈물 흘리던 황지우 시인을 따라 모두가 눈물짓기도 했다. 이제 우리는 어떤 <사상의 거처>를 찾아 나서야 할까. “잡초는 어떻게 바위를 뚫고/ 박토에서 군거하던가/ 찔레꽃은 어떻게 바위를 뚫고/ 가시처럼 번식하던가.”(‘잿더미 ) 추억하는 것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을 터이므로 다시 새로운 변혁의 길을 찾아, 나서야 할 때이다.

송경동 시인 | 경향 2024.10.07.

 

탄핵 윤석열!’ 그다음은?

현실은 탄핵 이후를 걱정할 상황이 아닌 것 같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3년도 되지 않았는데, 민주화 이후 수십년간 한국 사회가 어렵게 쌓아가고 있었던 암묵적 규범들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스스로 국민이 단 하루도 인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더 답답한 것은 대통령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책은 말할 것도 없고, 방송 뉴스나 신문도 보지 않는 것 같다.

대통령의 배우자가 고가의 물건을 받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은 어떤가? 국민이 동의할 수 없는 인사들이 연이어 고위직에 임명되어 국정에 참여하고 있다. 노동부 장관엔 가장 반노동적이라고 비판받는 인사를 임명하고, 독립기념관장엔 식민지근대화론자라는 의혹을 받는 인사를 임명하는 식이다. 국가인권위원장에 반인권적이라고 의심되는 인사가 임명된 것은 화룡점정이었다. 더 해괴한 일은 대통령의 배우자가 국회의원 공천과 정부 고위직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대통령은 함께 국정을 운영해야 할 야당과 비판적인 시민사회를 반국가세력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민생? 말할 것도 없다. 수출 증가로 함박웃음을 짓는 대기업 집단과 달리 내수에 기반하는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앵무새처럼 긴축, 긴축을 반복하고 있다. 총선 전에 열심히 민생투어를 했던 윤 대통령이 맞나 싶다. ‘민생 선거운동의 동의어쯤으로 이해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쯤 되면, 탄핵은 자연스러운 경로처럼 보인다. 그러나 탄핵을 입에 올리는 것이 주저된다. 탄핵의 사유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교하면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할 사유는 차고 넘칠 것 같다. 그런데도 탄핵을 입에 올리는 것이 주저된다. 물론 한국 민주주의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보수 정부의 대통령을 연이어 탄핵하는 것이 장기적 관점에서 민주주의에 좋은 일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더 직접적인 이유가 있다. “뭐냐고? 해 봤잖아.” 연인원 1700만명이 참여했던 2016~2017년 촛불시민항쟁의 결과가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의한 정권을 끌어내리는 것은 우리의 삶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만이었다. 탄핵으로 불의하고 무능한 대통령은 사라졌다. 하지만 대통령을 끌어내린다고 세상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자 새로운 정권이 촛불이 탄생시킨 정권의 무능과 불공정을 질타하며 더 큰 불의를 안고 돌아왔다.

탄핵이 불가피해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다음은? 물론 거론되는 여야 대권 주자들 중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지금보다는 나을 것 같다. 하지만 같은 실패를 반복할 순 없다. 우리 스스로에게 묻자. 윤 대통령을 몰아내고, 우리가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지 우리는 알고 있냐고. 우리가 가난한 나라에서 벗어나 선진국이 되고, 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이룬 이후, 우리는 우리가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할지 생각하지 못했다.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는 좌표를 상실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각자도생뿐이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남이 어떻게 되든, 나와 내 자녀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이 팽배해졌다. 급기야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에게까지 이어지는 세습자본주의가 공고해지고 있다. 그러자 나와 내 가족만 잘살게 해준다면, 대통령은 누가 되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팽배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좌표를 잃은 우리 사회의 극단적 결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미 탄핵되었다.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부정하겠지만, 국민의 신뢰를 잃은 정부는 법률적 탄핵 여부와 관계없이 실질적으로 이미 탄핵된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탄핵이 아니라 우리에겐 탄핵 이후 우리가 만들어 갈 나라의 좌표가 없다는 것이다. 탄핵이 또 다른 무능하고 불의한 정권을 불러오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를 구체적으로 상상해야 한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우리가 꿈꿀 새로운 나라의 좌표를 만들어야 한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물리는 금융투자소득세 같은 공정한 과세와 일용직 노동자의 자녀와 의사의 자녀가 동등한 출발선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꿈꾸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드는 것, 우리가 만들어 갈 나라의 새로운 좌표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복지국가재구조화연구센터장 | 한겨레 2024.10.07.

 

통일, 그 이상론과 현실론

통일을 하지 맙시다. 그냥 따로 살면서 서로 존중하고 서로 돕고 같이 행복하면 좋지 않을까요. 단단히 평화를 구축하고 이후의 한반도 미래는 후대 세대에게 맡깁시다. 객관적 현실을 받아들이고 두개의 국가를 수용합시다. 헌법 3조 영토 조항을 지우든지 개정합시다.” 얼마 전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한 발언이다. 그 파장이 만만치 않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복명복창하는 꼴이라며 종북(從北)을 넘어 충북(忠北)”이라고 비꼬았다. 탈북자 출신 박충권 의원은 임 전 실장을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의 합법화에 명분을 제공하는 밀정이라고까지 비난했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서 임 전 실장 발언은 반헌법적 발상이라며 북한이 핵 공격도 불사하겠다는 상황에서 평화적 두 국가론이 과연 가능이나 한 얘기인가라고 일갈했다. 민주당을 포함한 진보 진영에서조차 임 전 실장의 이른바 통일 포기론 두개의 국가론'이 국민 정서를 외면하고 반헌법적 요소를 내포하는 등 너무 앞서간 발상이라는 우려를 내놓았다.

임 전 실장의 발언은 분명 과격하게 들린다. 하지만 현재의 한반도 현실에서 그리 어긋나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선 그의 통일 포기론'을 보자. 우리 정부 통일정책의 기조를 이루는 1989년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은 첫 단계로 남북 간에 화해 협력과 평화 공존을 모색하고, 두번째 중간 단계로서 남북연합을 구축해 사람과 물자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사실상의 통일 상태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인 단일 민족국가로의 제도적 통일은 남북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동질성을 회복한 뒤 국민투표와 같은 평화적 방법으로 결정하자는 것이다. 달리 말해 임 전 실장의 통일하지 맙시다라는 메시지는 통일 자체에 대한 반대라기보다는 현실적 제약을 고려한 통일에 대한 강한 모순어법적 표현이라 하겠다.

두개 국가론도 마찬가지다.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 채택 이후 한국 정부는 ‘1민족 2국가 2제도 2정부라는 ‘2국가론을 분명히 해왔다.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 관계의 과도기적 2국가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1991년 유엔 동시 가입 이후 남과 북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엄연한 두개의 주권국가로 자리 잡아온 것 또한 사실이다. 사실 과거 우리 정부가 제안해오던 남북연합도 유럽연합처럼 국가 간의 연합을 전제한 것으로, 이는 북측이 꾸준히 제기해온 ‘1민족 1국가 2제도 2지방정부라는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을 적화 통일을 획책하는 트로이의 목마로 인식하는 데서 나온 대안적 발상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말 김정은은 선대의 연방제 구상을 전면 폐기하고 과거 동독과 유사한 ‘2민족, 적대적 2국가론을 들고나왔다. “‘흡수 통일’ ‘체제 통일을 국책으로 정한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으며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되었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이렇게 보면 임 전 실장이 말하는 ‘1민족, 평화 공존적 2국가는 우리 정부가 고수해온 단계론적 통일방안의 연장선에 가깝지, 김정은 노선에 대한 화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가 제기한 헌법 3조 영토 조항 문제도 간과하기 어렵다. 올해 1월 김정은은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에 영토와 영해, 영공 조항을 신설해 주권 행사 영역을 새롭게 규정하는 헌법 개정을 지시한 바 있다. 이러한 영토 규정이 만들어져 이행될 경우 대한민국 헌법 3조와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당초 이 조항이 마련된 것은 대한민국만이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실효적 구속력은 누가 보기에도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분쟁을 촉발할 개연성은 커졌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이렇게 보면 임 전 실장의 주장은 통일 이상론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한 실용적 해법을 찾자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의 진보 현실론'이 감당해야 할 과제는 만만치 않다. 그의 평화 공존론을 북측이 수용할 리는 없어 보이고, 윤석열 정부 또한 자유의 북진 통일론을 전향적으로 선회할 리 없을 것이다. 북핵 문제의 와중에 평화 공존을 논할 공간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는 상상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그가 던진 논쟁적 화두가 통일 이상론과 현실론 사이의 괴리를 좁혀 나가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문정인 | 연세대 명예교수 | 한겨레 2024.10.07.

 

부동산 공화국 대한민국과 부단 운동

세상에 이런 일이? 도저히 믿겨 지지 않은 일이 비노바 바베라는 길 위의 성자를 통하여 일어났다. 아마 앞으로도 지구상에 이런 사랑의 혁명이 일어날 수 있을지, 유일무이한 사건으로 기억될 부단 운동 (토지 헌납 운동)을 부동산 공화국,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에서 다시 제안해 보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일까?

비노바 바베와 500만 에이커의 부단운동

부단 운동, 인도 전역을 비노바 바베는 13년 동안 거의 맨발로 걸으며 땅을 구걸하지 않고 당당히 요구했다. 땅은 공기나 물처럼 신의 선물이기에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땅을 달라고 지주들을 설득하며, 가난한 이들과 함께 순례하며 개인의 변화를 통한 사회 변화,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다.

사랑의 힘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과 헌신에 감동한 이들이 내어놓은 땅은 약 500만 에이커, 남한 면적의 1/5에 해당하는 거대한 토지였고 이 땅을 가난한 이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주었다. 토지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함께 평화의 마을을 만들어 가는 부단 운동은 땅을 나누고 부를 나누고 노동을 나누는 사회 혁명이었다.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일일까?

청년 몇 사람이 우리 마을을 찾아왔다. 생태 마을을 꾸려서 살고 싶다며 땅을 구하러 온 거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실망하고 돌아갔다. 시골 땅값도 만만치 않아 공동체를 꾸릴 만한 토지를 구한다는 것이 자신들이 그동안 모은 적은 돈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 청년들에게 땅을 줄 수는 없을까? 기후재앙 시대에 바르게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없을까? 그래서 나는 물이 있는 산, 임야를 찾고 있다. 전 국토의 70%가 산인데 기후재앙 시대에 노아 방주 같은 피난처를 만드는데 산 만큼 좋은 곳이 있을까? 농사도 지을 수 있고 집도 지을 수 있는 토지나 임야를 그들에게 제공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청년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60+ 운동, 환갑이 넘은 세대들이 자식들에게 유산 물려주지 않기, 사회에 봉사하면서 살기, 생명 평화 운동하기 등 잘 늙어가는 운동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덧붙여 토지 헌납 운동을 벌여나갔으면 좋겠다. 미래 세대에게 공해와 국가 부채밖에 안긴 게 없는데 정말 미안한 마음으로 도저히 희망이 없다는 청년세대에게 공동의 토지를 선물해주면 얼마나 멋질까?

기성세대가 권력과 부를 움켜쥐고 나누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의 마음이 많이 누그러질 것이다. 비노바 바베는 가난한 이들을 여섯 번째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이들을 위해 소유한 땅의 1/6을 달라고 설득하였는데, 우리는 청년들이 세 번째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내었으면 좋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경제 제도의 변화로 사회 혁명을 이룰 수 있다고 믿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부단 운동처럼 먼저 우리의 마음이 변하고 각자의 삶이 변하고 그로 인해 사회구조가 변할 것이라는 믿음에 기대어, 작은 헌신과 나눔의 실천을 통해 새 사회 건설 운동을 시작해 보자는 것이다.

땅 있는 이들은 뜻이 없고, 뜻 있는 이들은 땅이 없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힘을 모아 돈을 모아 조그마한 땅이라도 미래 세대에게 나누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아마도 그들이 나날이 지옥 같은 기후재앙 시대에 우리를 구원할지도 모른다.

양희창 간디공동체 상임이사 | 프레시안 2024.10.08.

 

김건희 대통령 놀이’, 이게 나라냐

올 것이 왔다. 보수의 말도 험해진다. 닷새 전 동아일보 이기홍 대기자는 김건희 수렁, 사법심판대 서는 게 유일한 탈출구라고 썼다. 사과로 문제를 풀 단계가 지났고, 언제라도 탈탈 털릴 사법처리를 지금 밟으라 했다. 7일자 중앙일보 이하경 대기자도 윤석열 대통령이 실기하고 들끓는 민심과 충돌하면, “김 여사 문제가 윤 대통령 문제로 바뀔 수 있다고 경고했다. 두 칼럼엔 김건희가 공기관 인사에 관여한 걸 접한 일화, 수석들 앞에서까지 대통령에게 민망한 언행을 했다는 목격담이 실렸다. 내가 들은 여러 조각의 김건희도 거기서 거기’, 별반 다르지 않다. 공직 인사에 뒷말 남긴 김건희 라인이 한둘이고, 부처·공기관·금융사 입찰에 김건희의 코바나컨텐츠 전시·후원사가 콧노래 부른 게 또 한두 번인가. 정권이 반환점도 채 돌기 전, 김건희가 엎질러 놓은 물, 밀담·뒷거래·낙하산이 뒤엉켜 쏟아지는 세상을 마주했다.

또 봐도 놀랍다. 2022 1, 김 여사와 유튜브 서울의소리 기자가 52차례 나눈 통화록이 까졌다. 김 여사는 내가 정권을 잡으면 무사하지 못할 유튜브 채널이 있고, “여기서 지시하면 캠프가 다 조직된다고 했다. 기자에겐 “(경선 중인) 홍준표 까는 게 슈퍼챗 더 나올 거라 했고, 관리할 유튜버를 알려달라 했다. 1인칭(내가·여기서) 어투엔 권력욕이 넘치고, 눈엣가시 정적은 공격하라 시켰다. 대선 후보 윤석열이 정치를 극도로 싫어한다고 분칠한,  가 아니었다. 그날 공격받은 홍준표가 페이스북에 독설을 썼다 지웠다. “최순실 사태처럼 흘러갈까 걱정스럽다.”

그 우려대로다. 김건희의 대통령 놀이는 거침없다. 아니, 더 세졌다. 겁이 없기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주포들을 대통령 취임식에 불렀을 게다. 공사 구분이 없기에, 대통령 전용기에 민간인 태우고, 디올백 선물을 챙겼을 게다. 과시욕이 남달라, 한밤중에 요란한 마포대교 순시를 갔을 게다.

그뿐인가. 김건희에게 김영선 공천을 얻어냈다는 정치브로커 명태균이 대통령에게 36000만원어치 대선 여론조사를 무상 제공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불법 정치자금도 뇌물죄도 될 수 있는 불씨다. 용산 관저 드레스룸과 사우나는 어쩌다 자격 없는 김건희 친분 업체(21그램)가 증축했을까. 도이치 주범 이종호는 왜 임성근 사단장 구명 로비를 VIP(김건희)에게 하겠다 하고, 대통령은 왜 임성근 수사에 격노했을까. 의문의 꼭짓점엔 다 김건희가 있다. 그러고 보면, 걸그룹 블랙핑크와 동행하려 한 방미 행사가 뒤틀려 국가안보실장과 의전·외교비서관이 줄낙마할 때도, 용산엔 ‘V2 격노설이 파다했다. 국정농단이 별다른 것인가. 비선 권력이 공식 직함도 없이, 공적 시스템 밖에서, 인사·선거·국사에 개입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 집권까지 김건희 지분이 크고 그걸 행사할 자격이 있다고 우긴다는 거 아닌가.

용산은 오늘도 갈팡질팡이다. 정치브로커가 ‘(내 입) 감당되면 (감방에) 집어넣으라 겁박해도, 대통령실 답은 두루뭉술하다. 그 많던 고소고발도 없으니, 어떤 스토리가 있고 무슨 약점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개 사과 손바닥 왕() 소동에서 봤듯이, 진위와 자초지종도 대통령 부부에게 바로 묻지 못해 우왕좌왕한 대선 때와 달라진 게 없다.

여당에선 먼저 사과라도 하잔 말이 움트고, 개혁신당에선 김건희법 만들자는 소리가 나온다. 다 섣부르다. 사과도 매도 처음이 쉽다. 20개 허위 경력·학력이 문제가 됐을 때, “아내 역할만 충실하겠다던 그였다. 사과는 어떤 일 있었고(진실), 뭘 잘못했고(인정), 어떻게 하겠다(약속)고 해야 한다. 타이밍만 재는 용산엔 지금 그런 믿음이 없다. 새 법은 뭘로 만들 건가. 김건희로 인해 청탁금지법·검찰수심위가 무너졌고, 그를 방어막 치다 검찰·경찰·감사원·권익위·방심위가 길을 잃었다. 김건희법과 사과는 국감 후, 특검으로 진상이 백일하에 드러난 뒤, 시민이 하랄 때 하는 게 맞다.

그림자 권력 김건희는 세 얼굴이다. 누구라도 건드리면 화 입을 윤석열의 역린이고, 보수 분열의 씨앗이고, 성인 65%가 특검법을 찬성하는 공공의 적이다. 10월 정치가 요동친다. 김건희 육성까지 예고된 국감에선 스모킹 건이 나올까. “나라와 당 사는 길을 택하겠다는 한동훈의 착점은 어딜까. “이게 나라냐.” 사면초가 차오를 용산궁에 더 버틸 힘이 있을까. 없다. 버티면, 보수 민심도 터진다. 나라도 정권도 망조 들게 한 김건희의 대통령 놀이, 이제 끝낼 때가 됐다.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 경향 2024.10.08.

 

·하마스 전쟁 1년이 남긴 것

2023 107,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이 비극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지난 7일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1년을 맞았다. 그동안 휴전협상의 노력과 전 세계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중동 전반으로 전쟁이 확대되고 있다. 가자지구를 중심으로 한 분쟁은 서안지역을 넘어 레바논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으로 이어지면서 확전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사망자 수 또한 증가하고 있다. 레바논에 대한 공격이 시작된 사흘 동안에만 의료진 50명이 사망했으며, 최근의 이스라엘 공습으로 3주 동안 레바논에서의 사상자가 12000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한 지 1, 앞으로 이 전쟁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이스라엘은 자국의 안보를 끊임없이 위협했던 팔레스타인 하마스, 레바논 헤즈볼라, 예멘 후티 세력,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란까지, 소위 시아 벨트 저항의 축들에 대한 전면전까지 불사하고 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레바논의 헤즈볼라 지도부는 물론 전멸을 목표로 지상전 개시 이래 가장 격렬한 공격을 퍼붓고 있다. 이스라엘은 미국 대선을 앞둔 혼란의 시기를 틈타 이란 핵시설 공격이라는 카드까지 만지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란도 헤즈볼라 수장인 하산 나스랄라 표적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미사일 180여기를 동원해 이스라엘을 공습하기도 했다. 최근 4년 만에 금요예배를 관장한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은 완전히 합법이라 주장하며, 앞으로 더 많은 공격을 가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레바논 그리고 이란의 국민들은 더 이상의 희생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전쟁의 참상을 겪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겪고 있다. 41870. 지난 1년 동안 가자지구 안에서만 이 비현실적인 숫자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여기에 이스라엘 1200, 그리고 레바논의 2000명 넘는 사망자까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중동 역내에서만 한 해 동안 사망한 사람이 45000명에 육박한다. 또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난민만 190만명에 이른다. 지금 당장 전쟁이 끝난다고 해도, 이 전쟁의 여파는 수년 동안 계속될 것이다.

전쟁 발발 1년의 시점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나날이 늘어나는 민간인 사상자 수에 우리 모두가 둔감해지는 것이다.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팔레스타인 시인 모사부 아부 토하는 가자지구 내 사망자 수가 거짓이라는 일부 주장에 대해, “팔레스타인인들은 죽음 후에도 죽음을 거부당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살아서 죽는다고 토로했다.

더 이상 어린아이를 비롯한 무고한 희생자가 팔레스타인, 레바논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나와서는 안 된다. 지난 주말 내내 서울을 비롯해 워싱턴, 뉴욕, 도쿄, 런던, 파리, 로마, 자카르타 등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 반대,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가 이어졌다. 전쟁 발발 1년이 된 7일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레바논에서는 포성이 멈추지 않았다. 세계 전역에서 울려퍼진 시위대들의 외침이 더 이상 허울뿐인 구호에 머물지 않도록 종전을 위해 보다 즉각적인 국제적 개입이 절실한 때이다.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 경향 2024.10.08.

 

나뿐인 사람’, 초단절 사회

나쁜 놈 어원이 뭔지 아세요?” 청년은 대뜸 이렇게 물었다. 어리둥절한 사이에 나뿐인 놈이란다. 낮다는 뜻의 낮브다가 어원이라는 설명도 있지만, 요즘 세상은 나뿐인 사람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각자도생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각자 생존하려 발버둥 칠수록 나뿐인 사람이 된다. 이는 서로 의지하며 진화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속성에 어긋난다.

사회는 다정한 곁이다.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사회는 나를 기르고 보호하는 가족이다. 자라며 만나는 사회는 친구다. 성인이 되어 뛰어든 직업의 세계도 사회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면, 집단 따돌림에 시달리면, 직장에서 갑질에 시달리면, 내 곁의 힘이어야 할 사회는 사라진다.

사회는 스스로 망치지 않는다. 외부 충격에 뒤틀리지 않는 한 스스로 망치려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나만의 이익을 챙기려는 시장 경제나 권력을 노리는 난폭한 정치가 사회를 위협했다. 칼 폴라니는 저작 거대한 전환을 통해 시장과 국가의 위협에 맞선 사회의 자기 보호 운동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지금도 사회는 공격받아 시달리며 위축된다.

경제력 세계 10위권 진입 이력, 인구 5천만명 이상 국가 중 1인당 국민소득 세계 6, 외환보유고 세계 9위라는 경제 통계는 대단하다. 돋보이는 정치 통계도 있다. 박상훈의 책 혐오하는 민주주의에 따르면 2021년 대한민국 정당원 수는 총 10429천여명으로 인구 대비 20.2%, 유권자 대비 23.6%, 영국의 인구 대비 2%, 스웨덴 등 유럽 각국의 3% 안팎인 수준은 물론 중국의 인구 대비 7.1%를 훨씬 능가한다. 그에 견줘 삶의 만족도, 자살률, 출산율 등 사회 통계는 처참하다. 경제는 성장했고 정치는 확장되었지만, 사회는 납작하게 눌려 있다.

시장 경제의 상품 생산 기지인 공장은 담 넘어 확장되었다. 컨베이어 벨트를 대신한 플랫폼이 사회공장의 생산라인이다. 언제 어디서나 접속할 수 있어서 곳곳에 스며 있다. 컨베이어 벨트는 모여서 일하게 했지만, 플랫폼은 흩어져 일하게 한다. 같은 직업을 가진 동료와 오감을 통한 상호작용이 어렵다. 온라인에서 초연결 시대일지 몰라도 오프라인은 초단절 상태다. 사회공장의 독립노동자(비임금노동자)는 단절되어 권리 사각지대에 있다. 이들에게 다정한 곁으로서 사회는 희미하다.

의회에서 성숙하지 못하는 정치는 먹고사니즘을 들먹이며 경제에 꽂혔다가 역사 이데올로기 싸움을 불붙이고 사법적 공격과 탄핵 압박을 오가며 사회 보호 경로를 이탈한다. 지지 정당이 집권하면 어용단체처럼 움직이고 실권하면 정권 퇴진을 외치는 사회단체는 사회로서 독립된 비전을 보여줄 수 없다. 쓰다가 버려지는 상품이 되기를 거부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만든 노조는 실리에 집착해 시장 경제에 휩쓸리고, 정치세력화를 추앙하는 상층의 정치 도구가 되면 사회로서 기능이 약해져 경로를 이탈한다.

챗지피티에 견줄 사회이론이 있을까. 관심을 끄는 새로운 기술은 계속 나오지만, 대중적 주목을 받는 사회이론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기술과 함께 개발되는 것이 있다. 나쁜 짓이다. 온라인 공간의 폭력인 사이버불링과 이를 둘러싼 페미니즘 사상 검증 논란, (n)번방을 넘어 딥페이크 논란이 줄을 잇는다. 미국에서는 딥페이크를 선거운동에 이용하는 일도 벌어진다.

멸종위기종에 인류는 자기밖에 모르는 나뿐인 생물이다. 4차 산업혁명이 타오르고 사회혁명은 억압된 결과다. 지구 행성의 생태계는 기후위기를 통해 인류에게 다른 사회를 만들 것을 요구한다. 요즘은 사회혁명보다 사회대전환’ ‘체제전환이라는 표현이 눈에 띄지만, 우리를 자극할 새로운 이론은 보이지 않는다. 낡은 사회이론은 다른 세계로 가는 경로를 보여주지 못하고 기술권력 앞에 내던져진 것은 오직 우리의 몸뚱이다.

진화를 통해 학습한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가족을 위해 일하는 것은 사회의 기초단위인 가족을 지키려는 것이다. 친구와 즐기려는 것은 우정이 흐르는 사회를 향한 열망이다. 흩어져 일하는 독립노동자가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도 사회를 향한 열망이다. 동물권을 생각하는 사람은 인간 너머로 사회를 확장한다. 기후정의 운동도 지구 사회를 향한 열망이다. 이런 체험이 쌓여 새로운 사회이론이 탄생하고 확장될 때 마침내 사회의 자기 보호를 위한 거대한 물결이 출렁일 것이다.

조건준 | 아무나유니온 대표 | 한겨레 2024.10.08.

 

서울시교육감 선거, 왜 중요한가

다음주 수요일에 치러지는 서울시교육감 선거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선거다. 외형적으론 한 지역의 교육 수장을 뽑는 선거지만, 실제로는 한국 교육의 향방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진보 정근식 후보와 보수 조전혁 후보 사이의 양강 대결로 구도가 잡힌 형국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출신의 정근식 후보는 조희연 전 교육감의 혁신교육 확대와 역사교육 강화를 내세우고,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지낸 조전혁 후보는 조희연 심판을 외치면서 선행학습 허용, 지필고사 부활 등을 강조한다.

특히 학생인권조례와 학생인권법에 대한 두 후보의 입장 차는 확연하다. 찬성 입장인 정근식 후보와 달리, 조전혁 후보는 학생인권법 반대,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주장한다.

누가 서울 교육의 수장이 되느냐에 따라 한국 교육 전체가 커다란 변화를 겪을 것이다. 서울 교육이 한국 교육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전국적으로 진보-보수 교육감의 지형이 반반으로 팽팽하게 맞선 형국인지라 서울시교육감 선거 결과가 교육계 전체의 판도를 좌우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 선거에서 진보 후보가 패배한다면, 그간 학생 인권과 협력교육을 강조하며 혁신의 방향으로 나아가던 한국 교육이 다시 시대착오적인 경쟁교육으로 회귀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동안 힘겹게 쌓아온 혁신교육의 성과가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파국의 도미노를 초래할 수 있다.

이번 선거는 무엇보다도 윤석열 정부의 교육정책을 심판하는 선거다. 교육도 경쟁시장 구도가 되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천박한 시장주의적 교육관은 기실 승자독식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정당화하는 전형적인 기득권의 논리다. 학벌계급사회를 강화하는 궤변을 반드시 깨부숴야 한다.

실로 지금 한국 교육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세계 최악의 경쟁교육이 개혁되기는커녕, 최근의 초등 의대반 현상에서 보듯, 더욱 악화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 대학생 열명 중 여덟명이 고등학교 시절을 사활을 건 전쟁터라고 기억한다고 한다. 경쟁교육으로 악명이 높은 중국과 미국 학생의 두배가 넘는 수준이다. 목숨을 건 전쟁터에 내몰린 결과 우리 아이들은 너무도 불행하다. 프랑스의 르몽드지는 한국 학생들은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들이라고 했다. “한국 교육은 가장 경쟁적이고, 가장 고통을 주는 교육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극단적인 경쟁교육의 결과 우리 사회는 너무나 병든 공동체가 되었다.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을 선호하는 국민’(World Values Survey 2020)으로 조사되었고,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갈등이 가장 심한 나라’(킹스칼리지 런던정책연구소 2020)로 평가되었으며, ‘세계에서 관용도가 가장 낮은 나라’(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2015),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이 가장 적은 나라’(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2014)로도 꼽혔다.

아이들의 불행과 사회의 병리는 대한민국을 사라지게 하고 있다. 2023 122일치 뉴욕타임스의 칼럼 제목은 한국은 사라지고 있는가?”였다. 한국의 극단적 저출생 문제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라면서, 그 근원에는 극심한 입시경쟁이 자리 잡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국의 잔혹한 학업 경쟁 문화는 부모를 불안하게 하고 학생을 비참하게 만든다.”

최근 미국의 유명 작가인 마크 맨슨이 만든 동영상 나는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를 여행했다에서도 한국이 가장 우울한 나라가 된 원인을 무엇보다도 절대적으로 잔인한 교육 시스템에서 찾고 있다.

이처럼 한국 교육은 세계 최악의 경쟁교육임을 국제적으로 공인받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을 이런 야만적인 교육에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 우리 아이들도 존엄한 인간이다. 우리 아이들도 다른 나라 아이들처럼 행복한 유년기, 아동기, 청소년기를 누릴 권리가 있다. 행복한 교실이 행복한 부모, 행복한 나라를 만든다. 아이들이 행복해야 아이들을 낳을 것 아닌가.

거시적인 맥락에서 보면, 이번 서울시교육감 선거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물론, 한국 사회의 변화, 대한민국의 존속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선거다.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중병을 앓는 한국 교육과 사회를 혁신하려는 세력과 고수하려는 세력 간의 대결이다. 진정 우리 아이들을 구하고, 사회를 치유하고, 나라를 살리고자 한다면, 서울 시민들은 모두 빠짐없이 투표장으로 나서야 한다.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 | 한겨레 2024.10.08.

 

인구변화 파도, 어디부터 덮칠까

저출산 극복에 중점을 두었던 인구정책은 장차 인구변화로 나타날 우리 사회의 변화에 대응하는 데 무게를 더해가는 경향을 보인다. 2030년까지 합계출산율을 1.0으로 높인다는 정부의 목표가 실현된다고 해도, 인구 감소와 고령화의 장기적인 추이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인구변화의 파급효과를 전망하고, 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는 정책 방향은 타당하다.

다만 전국 총량을 주로 따지는 현재의 총론적인 접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각 지역·부문의 특성을 반영한 세밀한 맞춤형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인구변화가 초래할 노동수급 불균형 문제는 그 좋은 예를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한 노동인구 절벽을 우려하지만, 향후 20~30년 동안 노동시장에서 나타날 현상은 전반적인 노동력 부족이 아니라 특정 지역, 특정 부문에서 일할 사람이 부족해지는 문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장차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의 어떤 산업에서 일할 사람이 부족해질까? 최근 필자와 엄상민 경희대 교수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인구와 산업·기술 변화에 따른 2032년까지의 각 시도·산업별 노동수급 불균형 규모를 전망한 바 있다. 아래에는 이 연구의 주요 결과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지역·산업별 인력수급 불균형 문제를 완화할 방안을 모색해본다.

 

첫째, 보건의료와 사회복지 서비스업은 서울·경기·세종·제주를 제외한 전국 14개 시도에서 대규모 인력 부족에 직면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주로 인구 고령화로 인한 돌봄 서비스 수요 급증을 반영한다. 장차 돌봄 대란을 막기 위해서는 이 부문 종사자에 대한 처우 개선, 적절한 유형의 외국 인력 도입 등을 통해 돌봄 인력 공급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한 건강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고령 친화적인 주거와 도시 환경을 조성하는 등 돌봄 서비스 수요를 줄이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둘째, 서울과 경기에서는 정보통신업과 전문·과학기술 서비스업 등 첨단 업종에서 상당한 규모의 인력 부족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도권에 집중된 첨단산업이 성장하면서 인력 수요가 커지는 한편, 청년 인구 감소로 인해 이 부문 노동 공급이 줄면서 나타날 현상이다. 이와 같은 인력 수급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첨단산업이 필요로 하는 인적 자본을 갖춘 인력 공급을 늘리기 위한 교육·훈련의 개선이 요구된다. 고숙련 인력이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지역 불균형이 더 심해지는 문제를 막기 위해서는 첨단산업 사업체의 지방 분산 노력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셋째, 울산·경남·대구·경북 등 동남권 지역에서는 대규모의 제조업 인력 부족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산업화 초기 이 지역 제조업체에 대거 진입했던 인력이 고령화되고, 이 지역 청년 인구가 유출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풀이된다. 이와 같은 인력 부족을 덜기 위해 은퇴 나이가 되었어도 생산성이 높은 제조업 근로자의 고용을 연장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겠다. 또한 이 지역 일자리의 질, 근로 여건, 생활 환경 등을 개선함으로써 청년 인구를 유인하는 노력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 지역 산업에 적합한 유형의 외국인 근로자를 더 많이 유치하고 오래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개선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구변화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지역과 부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각기 다른 지역·산업 사정을 반영한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 또한 인구변화가 초래할 노동수급 불균형을 완화할 수 있는 정책은 노동뿐만 아니라 산업, 교육, 복지, 의료, 지역 균형, 외국인 정책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다. 따라서 인구변화 대응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정부 내 여러 부처 간의 유기적 협력과 정책 조율이 필수적이다.

이와 같은 인구변화 대응의 컨트롤타워 역할은 현재 정부가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가칭 인구전략기획부에 맡겨질 것으로 보인다. 신설되는 부처에는 전체 인구문제를 종합적으로 조망하면서도 각 지역·부문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맞추고, 복잡하게 얽힌 이해와 갈등을 조정하는 작업이 요구될 것이다. 이 어려운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새 부처의 조직, 기능, 권한 등이 잘 정해지기를 기대한다.

이철희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장 | 한겨레 2024.10.08.

 

낙타의 바늘귀보다 좁은 종교인의 하느님 나라 문

인문학이 중요하다는 말은 넘쳐나고, 인문학 이름의 강의도 많지만, 인문학 고전을 진지하게 읽는 강의는 찾기 어렵다. 인문학 고전은 혼자 읽기 어렵고, 인문학 고전을 깊이 연구한 스승을 찾기도 어렵다.

자연은 아름답지만 역사는 슬픈 땅 제주도에 기쁜 소식이 들린다. 관광의 섬 제주가 품격있는 인문 도시가 되도록 돕는 인문학 강좌 시리즈가 탄생한 것이다.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원장 진희종)이 주최하는 제주에서 인문학 고전 읽기 시리즈다. 제주도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외지인들이 배우고 생각하기 위해 제주를 찾도록 돕는 강좌다.

종교인의 말에는 왜 칸트의 매력과 감동이 없을까

제주에서 인문학 고전 읽기 시리즈의 1번 타자로 등판한 국보급 철학자 김상봉 교수는 칸트 탄생 300주년 기념으로 제주에서 순수이성비판 읽기를 제안했다. 현대사상을 그 뿌리에서 깊이 이해하려는 사람은, 철학 역사에서 새 시대의 문을 열고 모든 현대 사상의 초석을 닦은 칸트를 읽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씀이다.

김상봉 교수는 강의록 초안에서 포부를 밝혔다. “지금까지 한국의 근대화는 물질적 근대화에 초점이 맞추어졌고, 여기에 정치적 근대화를 우리가 보탰지만, 이제는 지금까지의 성과 위에 정신적 근대화를 추구해야 할 때다. 근대 정신을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대적 정신의 기초인 순수이성비판을 읽고 칸트를 이해해야 한다.”

 

5일 새벽 강풍으로 인해 쓰러진 대전 용전동의 한 교회 십자가 첨탑이 인근 빌라를 덮친 채 방치돼 있다. 2007.3.5.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상봉 교수의 다섯 번에 걸친 강좌 제목만 슬쩍 보아도, 내 마음은 벌써 뜨거워진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란 무엇인가?’

플라톤의 이데아와 칸트의 아프리오리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어떻게 세계가 내 마음 속에 있을 수 있는가?’

인류가 출현하기 전에는 시간이 있었는가 없었는가?’

내 앞에 보이는 것이 정말로 있는 것일까?’

 

오늘 칼럼의 주제와 칸트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 철학자 칸트의 말에서는 매력이 풍겨오는데 반해, 오늘날 종교인의 말은 그렇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종교인처럼 말을 많이, 자주 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그런데, 종교인의 말에는 왜 매력과 감동이 드물고, 의롭고 선한 영향력이 적을까.

 

종교인은 부자와 언론인, 검사보다 더 하느님 나라 가기 어렵다

종교인이 부처나 예수 이야기를 안 했거나 덜 해서가 아니다. 종교인의 인품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뒤져서도 아니다. 모든 종교인이 다 게으르거나 부패한 것도 아니다. 윤리적으로 모범적인 종교인이 얼마나 많은가. 남몰래 선행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 열심히 수양하고 공부하는 종교인이 얼마나 많은가.

신약성서 마가복음 10,17-25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예수에게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물었다. “‘살인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거짓 증언하지 마라 등 계명들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되물은 예수는 어려서부터 그 계명을 다 지켜 왔다는 그에게 당신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가서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오라고 요구했다. 재산이 많은 그는 울상이 되어 근심하며 떠나갔다. 그러자 예수는 선언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입니다.”

 

내 생각에, 종교인 역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종교인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종교인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언론인과 검사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왜 그럴까. 윤석열 독재정권에 시달리는 백성의 고통에 대부분 종교인이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권의 패악질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바라보기 때문이다. , 교회, 성당에 꽁꽁 숨어 윤석열 정권에 저항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직업은 종교인이 아니라 구경꾼입니다라고 정직하게 고백하는 종교인 어디 없나. 훌륭하게 살아온 대부분 종교인들에게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분명히 있다.

윤석열 정권에 저항하지 않는 종교인이, 예수니 부처니, 해탈이니 천국이니, 백날 외쳐봐야 무슨 소용 있겠는가. 사랑, 자비, 깨달음에 온갖 아름다운 말이 종교인 입에서 더 나온다 한들, 윤석열 독재정권에 저항하지 않는 종교인의 말을 대한민국 그 누가 진심으로 경청하겠는가. 자기들은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서, 남에게 십자가를 지라고 설교하는 종교인의 말을 누가 흔쾌히 받아들이겠는가.

 

윤 정권에 저항하지 않는 쓸데 없는 종교인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 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비록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준다 하더라도, 또 내가 남을 위하여 불 속에 뛰어든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고린토전서 13,1-3).

이 아름답고 감동적인 신약성서 구절을 우리 역사 현실에 비추어 이렇게 바꾸고 싶다.

종교인이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윤석열 정권의 패악질에 저항하지 않으면, 종교인은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종교인이 부처님과 하느님의 행동과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 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윤석열 정권의 패악질에 저항하지 않으면, 종교인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종교인이 모든 지식과 깨달음과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준다 하더라도, 또 남을 위하여 불 속에 뛰어든다 하더라도, 윤석열 정권의 패악질에 저항하지 않으면 종교인은 아무 쓸데 없습니다.“

윤석열 정권에 끈질기게 저항해온 일부 종교인에게는 내 말이 못내 죄송하다.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장 | 시민언론 민들레 2024.10.09.

 

혼군 에워싸고 나라 망치는 외척과 환관, 간신들

대놓고 정권 협박해도 멀쩡한 양모가(陽謀家)

흔히 모략(謀略)은 생각을 드러내는 양모(陽謀)와 생각을 숨기는 음모(陰謀)로 구분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략에 대해 무언가를 음험하게 숨기는 음모를 떠올리나, 사실은 양모가 훨씬 고단수 전략이다. 내 의도는 이러하니 대응해 보라는 식으로 패를 까면서 상대방을 압도하는 모략가는 이미 상대방의 약점을 손에 쥐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양모가는 쉽게 건드리거나 제어하기가 훨씬 어렵다. 정치 브로커 역술인, 주가 조작범과 같은 다양한 간신들이 김건희 여사 주변에서 설치는 변태와 엽기의 파란만장한 세태에서 우리는 모략의 변화무쌍함을 목격하게 된다.

최근 여러 언론에 대고 무수한 말을 쏟아내는 명태균 씨의 경우는 전형적인 양모가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는 물론이고 여러 유력 정치인과의 관계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명 씨는 내 손 안에 모든 게 들어 있다는 신호를 용산에 발신하는 것이다. 공개된 녹취록에서는 여차하면 내 XX 다 터자뿌겠다(터트려버리겠다)”고 말한다. 또한 내가 이렇게 뭐 협박범처럼 살아야 되겠어요?”라며 지난 총선 때 대통령 부부를 협박했다고 밝힌다. 요즘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압수수색에 대비하여 제2, 3의 폰이 있음을 밝히며, 정권의 탄생 비밀이 자신에게 저장되어 있음을 반복적으로 암시한다. 병적인 다변증(多辯症 logorrhea)으로 의심될 만큼 말이 많은 명 씨는 하루 종일 언론에 자신의 위치를 과시하며 끊임없이 용산과의 특수한 관계를 풀어놓고 있다. 이런 명 씨에 대해 용산은 어떤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아예 입도 벙긋하지 못한다. 대통령 부부가 명 씨에게 무언가 약점이 잡혀 있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참으로 놀라운 양모 전략이다.

 

햇볕에 드러나자 몰락한 음모가(陰謀家)

밝은 곳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명 씨와 달리 평소에는 권력자에게 온갖 아부와 아첨을 하다가 어두운 곳에서 모략을 꾸며 다른 정적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다는 구함좌폐(構陷坐廢)로 이익을 도모하는 사람도 있다. “한동훈 공격하면 여사가 좋아해라며 <서울의 소리>의 이명수 기자에게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에 대한 불리한 기사를 쓰도록 사주하는 김대남 씨의 경우다. 김 씨는 실제로 국민의힘 여의도연구소의 총선 여론조사 정보를 빼내서 기사화되도록 했고, 올해 7월의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서 원희룡 후보가 이 기사를 근거로 한동훈 대표를 공격하는 명확한 결과를 만들었다. 이런 공격 사주는 명확한 물증이 나왔기 때문에 이미 의혹 수준을 넘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녹취록에서 총선 당시 이원모 대통령실 비서관이 공천을 받은 데 대해서도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을 지목하며 아주 그냥 여사한테 그냥 이원모 하나 어떻게 국회의원 배지 달게 해주려고 저 XX을 떨고 있다고 비난한다.

더 놀라운 음모도 있다. 김 씨는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게 되자 은밀히 더불어민주당 한 의원에게 접근하여 공천을 타진했다는 점이다. 멀지 않은 시기에 김 씨의 은밀한 거래 시도에 대한 보도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음모의 변화무쌍함 덕분에 김 씨는 보상을 받았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고액 연봉의 산하기관 감사 자리를 꿰찬 것이다. 이에 대해 한동훈 대표가 응징을 벼르고 있는 동안에 용산은 김 씨에 대해 대통령 부부와 친문이 없다고 둘러대고 있을 뿐 아무런 조치를 하지 못한다. 김 씨는 뒤켠에서 숨죽이고 있다가 뒤늦게 자리에서 물러났다. 녹취록에서 엿보인 그의 인생관에 비추어 볼 때, 책임을 느끼고 스스로 물러난 것은 아닌 것 같다.

 

분별력 없는 혼군(昏君) 권력자와 간신의 만남

용산은 양모가이건 음모가이건 전혀 대처하지 못한다. 역술인 천공이나 주가 조작범 권오수, 이종호 씨 등이 권력을 사칭하며 활개치는 동안 용산은 그 어떤 조치를 한 적이 없다. 이들이 권력자에게 접근하여 가려운 곳을 잘 긁어주었다 할지라도 긁는 손톱에는 이미 독이 묻어 있었다. 그로 인해 상처가 나고 곪아 터져도 환부를 도려내지 못해 부패한 냄새가 진동을 해도 말이다.

이런 엽기적 간신이 활개 치는 배경에는 분별력이 없는 권력자, 즉 혼군(昏君)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중국 역사의 권위자인 사마천학회장인 김영수 교수는 그의 저서 <간신론>, <간신학>, <간신전> 3부작에서 권력과 돈을 탐하는 간신과 혼군의 만남이야말로 나라가 절단나는 최악의 조합이며 현대에도 그 엽기적 세태는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올해 총선을 전후하여 현대판 외척 세력인 김건희 여사 관련 인물들과 현대판 환관 세력인 소위 윤핵관이라는 정치인들 사이에서 고기 덩어리를 서로 먹으려고 이전투구를 벌였던 양상이 드러나고 있다. 김 여사와 한동훈 대표 간의 갈등은 이제 비밀도 아니며, 그로 인해 대통령실과 당 대표 간 소통마저 단절됐다. 국정의 추진 동력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최근 정치계의 정간(政奸), 언론계의 언간(言奸), 학계의 학간(學奸) , 스펙으로 포장된 소위 엘리트들이 권력을 파멸로 이끄는 걸 경계하자는 취지로 눈부신 저작들을 저술했다. 그는 국회와 여야 정당을 대통령과 완전히 분리시키고, 대통령 부부를 맹종과 아첨의 간신들 속에 가두어버리는 간신의 전성시대가 바로 지금이 아닌지, 심각하게 되돌아 볼 것을 촉구한다. 그 정점에는 제대로 인재를 볼 줄 모르는, 분별력이 없는 권력자가 있음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한동훈도 간신들에 둘러싸여 있는가, 그 스스로 간신인가

만일 윤 대통령이 지금의 국정 난맥을 개혁하려면 썩은 상처를 완전히 도려내야 한다. 간신에게는 절대 용서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전문성을 기준으로 인재를 발탁함으로써 정부를 다시 만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대통령 면전에서 개혁을 요구할 책임이 있는 한동훈 대표 역시 추석 연휴 용산의 만찬에서 단 한마디도 직언을 하지 못했다. 지난 겨울 서천의 화재 현장에서 완전히 윤 대통령에게 무릎을 꿇은 한 대표가 이제 와서 새삼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 역시 변화와 개혁의 길에 나서지 못하고 용산의 주문대로 특검안을 국회에서 부결시키는 데 앞장선 이상 간신의 무리에서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 이들이 정치적 소명과 책임을 망각하는 바로 그 틈이 간신들이 파고드는 공간이다.

김종대 전 국회의원 | 시민언론 민들레 2024.10.09.

 

 

사회 붕괴 전조로 읽히는 사교육비 역대 최대

초등학교 의대반 등 기괴한 현상 속 사교육비 27.1

학벌주의 인한 변별과 서열화가 과도한 경쟁 이끌어

우물 안 능력주의와 공정에만 집착하는 개구리들

상위계층 지위 유지 전략에 온 국민 휩쓸리는 형국

윤 정부 부자감세 등이 역대 최대 사교육비 근본 원인

지난해 사교육비 지출이 역대 최대인 27 1천억 원을 기록했다. 사교육업체 수가 크게 늘고 주요 사교육업체의 매출도 비약적으로 증대했다. 의대증원 정책 등의 영향으로 초등 의대반이 생기고, 심지어 유치원 의대반까지 생겨서 유치원생에게 미적분까지 가르친다고 한다. 가히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기괴한 일들이 대한민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 교원들의 93.7%도 사교육이 더 확대되었다고 답했다. 윤석열 정부가 공정한 수능 기치 하에, 수능 킬러문항으로 이권을 챙기는 사교육 카르텔을 잡겠다고 칼을 뽑았지만, 그것은 거의 쇼에 불과하다는 것을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금방 알아챘다. 윤석열 정부의 모든 교육 정책은 온 국민과 학부모를 더 심한 성적 경쟁, 즉 사교육을 부추기는 쪽으로 갔기 때문이다.

 

윤 정권의 사교육 카르텔 척결 쇼 비웃는 괴물 사교육

외국에도 사교육이 있지만 한국처럼 공교육 자체를 무력화할 정도로 괴물이 된 나라는 없다. 사교육비 증대가 국가와 사회에 어떤 주름을 남기는지는 모든 국민들이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부모의 경제적 부에 의한 교육투자의 격차는 사회정의에 심각하게 반하는 것이지만, 사교육비는 가계의 가처분 소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어 국가 경제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주고, 학부모의 노후 복지에도 적신호를 준다. 그래서 역대 모든 정부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입시정책을 수도 없이 변경했다. 그런데도 정권과 사회를 비웃듯이 사교육 규모는 점점 더 커져 왔다. 그렇다면 과연 사교육은 우리 정치와 사회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괴물인가?

사교육 투자는 경쟁적 입시가 유도한 것이다. 학생들은 학교 내신성적 향상을 위해 학원 수강을 하기도 하지만, 그 경우도 학교 교육의 보충이 아니라, 학교 시험에 대비하기 위한 맞춤형 지도의 성격을 갖는다. 물론 사교육에도 교육적 측면은 있고 사교육도 엄연히 교육기관인 것은 맞다. 그러나 사교육이 주로 공급하는 것은 시험 승리를 위한 정교한 기술 습득이다. 그런데 이 기술은 입시경쟁이 심할수록, 입시제도가 자주 바뀌면 바뀔수록, 학교가 대학이 요구하는 전형에 맞추어 입시 지도를 하기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리고 수능시험의 변별을 위한 기법이 더욱 정교해져서 통상의 학교 수업으로는 그 기법을 습득하기 어려울수록 더욱 더 강력한 힘을 갖는다. 교원들은 사교육을 가장 많이 유발하는 대입 전형으로 수능 제도(61.1%) 1위로 꼽았으며, '사교육 확산의 주요 원인'으로 '입시 경쟁의 심화'(73%), 사회적 분위기(51.1%) 학부모의 높은 기대(46.5%), 교육정책의 불확실성(36.6%) 순으로 답했다.

 

상위계층 지위 유지 전략이 온 국민 끌고 다니는 사교육 시장

역대 정부는 한 번의 수능 시험 성적이 학생의 인생 진로를 좌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입시 전형의 다양화, 특히 각종 비교와 평가를 포함한 학생부 종합성적을 반영하도록 하였고, 대학에도 학교의 내신 평가에 기초한 수시모집 확대 등을 권장했다. 그러나 수능이 건재하는 한 이 모든 다양하고 복잡한 입시 전형 정책은 학생들과 학부모의 부담만 가중시켰다. 또한 의대와 명문대의 입학 사정에서 수능 최저기준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수능의 지배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학생들의 상향 평준화로 수능 1, 2 점을 둘러싼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학교에서의 내신 상대평가가 건재하고, 내신 성적을 위한 학원 수강도 일반화되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사교육 없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그렇다면 사교육은 정말 그 투자 효과가 입증되었는가? 그렇다. 부분적으로 입증되었다. 재수 이상의 입학생 비율이 계속 늘어나고, 의대 입학생 80% N수생(재수 이상)이라는 각종 자료가 그것을 말해준다. 즉 학원과 기숙학원을 다니지 않은 우수한 이과 출신 학생들이 최상위권 대학의 인기학과나 의대에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증거다. 물론 사교육 투자는 좋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면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대다수 학부모의 불안감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교육은 최상위권의 자녀를 둔 학부모들에게는 분명히 효과적인 투자전략이지만, 나머지 학부모들에게는 울며겨자먹기로 따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의 압박, 불안심리의 반영이라는 점도 있다. 당연히 상층 학부모들의 교육투자 행태가 그 아래 계층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상층의 가족 투자 전략, 지위 유지 전략이 온 국민에게 영향을 준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치열한 경쟁, 공정성에 대한 집착이 부른 수능의 퍼즐게임화

윤석열 정부는 학원, 강사, 교사들 간의 킬러문항 출제를 둘러싼 이권 카르텔이 존재한다는 전제 위에서 사교육을 잡겠다고 나섰다. 완전히 헛다리를 짚은 것이다. 킬러문항은 학생 성적의 엄격한 변별, 즉 수능 출제의 공정성과 객관성, 승복 가능성을 목숨처럼 여기는 국민, 학부모들의 민감성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것은 어떤 카르텔의 음모가 아니다. <수능해킹>(창비, 2024)의 저자들이 밝혀낸 것처럼 오늘날 수능 시험은 학력과 실력 평가가 아닌, 거의 퍼즐 맞추기 게임이 되었으며, 예상 문제들은 주로 수험생 커뮤니티에서 만들어지고, 문제은행이라는 거대한 콘텐츠 시장이 형성되었으며, 수능 문제의 생산자가 곧 소비자다. 기성세대가 알고 있는 수능과 오늘의 수능은 다르다. 수능 문제의 생산과 소비 자체가 거대한 시장이 되었으며, 수능은 이제 문화로 정착했다.

한국의 수능시험, 대학입시는 다수를 탈락시키기 위한 장치이며, 그 원리는 엄격한 변별이며, 경쟁이 치열할수록 변별의 기법은 정교해지고, 시험의 정당성은 변별의 합리성과 공정성에 있다. 의대나 최상위권 대학 입학을 위한 경쟁이 치열할수록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절차적 공정성에 더 집착하고, 이 공정성 집착이 더 엄격한 변별을 요구하며, 변별의 요구는 사실상 모든 수능 문항을 준킬러문항으로 만들어 버렸다. 내신 성적에서 실패한 학생들은 수능에서 승부를 걸기 위해 자퇴를 하거나 재수의 길로 가기 때문에, 수능 시험의 병목은 더욱 심각해진다. 내신의 확대는 수능을 고도의 경쟁적 시험으로 압박한 요인이 되었다. 수능시험 문제가 학력 혹은 수학능력의 측정과 무관한 엄격한 변별의 요구에 부합하는 퍼즐게임으로 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열망하는 많은 교육자나 지식인들은 여전히 수능 자격고사화, 내신 위주의 대입 선발, 수능 상대평가 폐지 등을 외치지만, 그러한 주장은 1~2점 차이의 엄격한 변별을 요구하는 학부모, 줄세우기 서열 상위의 학생을 순서대로 싹쓸이 하려는 대학에게는 한가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수능이 반교육적인 제도임을 알고 있지만, 공정한 변별의 정언명령을 거부할 어떤 대안도 생각해 낼 수 없다. 수능이 실력 평가의 측면보다는 퍼즐게임이 되면서, 패배를 승복하지 않는 수험생의 재수, 삼수 무한도전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대학 서열화 둔화되면 사교육 줄일 수 있다는 당연한 원리

공교육의 결손이 사교육을 키웠다는 통상의 지적은 부분적으로는 진실이다. 과거 방과후 학교, EBS 인터넷 강의 등이 사교육을 잡는 방법으로 도입되었지만, 그것은 학교를 학원처럼 만들겠다는 시도와 다름 없었다. 그것은 교육적 원칙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즉 학교는 수능 대비를 위한 기술 습득 기관이 아니다. 교육자로서 교사는 입시 성공을 위해 학생을 조련하는 역할을 잘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므로, 학교공부가 입시에 종속되면 이 조련사의 역할을 훨씬 더 잘하는 사교육 강사들의 인기는 더욱 치솟는다.

안정된 일자리, 좋은 직업 획득의 기회가 더욱 희소해질수록, 학부모들은 의대나 유명대학 상위권 학과의 입학이 자녀의 미래를 더 확실하게 보장해준다고 믿지 않을 수 없고, 의대 등 안정된 자격증을 부여해주는 학과에 입학하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루저가 될 위험성이 크다고 세상 사람들이 믿으면 믿을수록 수능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즉 사교육은 수능이라는 병목의 과부하의 산물인데, 변별과 서열화라는 경쟁게임 자체의 논리와 학벌주의와 대학 서열화라는 사회적 변수에 좌우된다. 반대로 말하면 사회적 변수, 즉 학력주의와 대학의 서열화가 둔화될수록 학부모들은 무리한 사적 교육투자를 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고, 시험이 절대평가가 되거나 대입이 수능성적 서열에 기초하지 않게 되면 학부모와 학생들이 사교육으로 몰려갈 유인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입시경쟁은 결국 사회적 지위 확보 경쟁이므로 교육과는 원칙적으로는 무관하다. 27조 원의 사교육비는 진정으로 국가와 사회를 위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청년을 육성하는 데 지출되지 않고, 변별에서 승리하기 위한 게임에 지출되는 돈이다. 그렇게 많은 지출이 세계를 선도하는 과학자나 인문학자를 배출하는 것과는 무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 퍼즐게임의 승리자들은 자신에게 많은 투자를 해준 부모님에게 감사할지언정 그 게임 밖의 사회, 자신의 지위를 보장해줄 수도 있는 사회에 대해서는 책임감을 갖기는커녕 언제나 자기보다 노력과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기보다 높은 보상을 받는 것을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극도의 분노와 박탈감을 갖게 된다.

 

수능성적대로 사회적 보상 서열 정하는 것이 공정일까?

수능성적을 둘러싼 공정에의 집착은 세상의 변화와 무관한 우물 안 개구리들 간의 죽고 살기 전쟁이다. 우물 밖에서 천재지변이 발생하여 우물이 막히거나, 우물에 독이 들어오면 모두가 죽는다. 그런데도 시험 성적이 전부인 줄 안다. 그리고 자신들이 노력과 능력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정투쟁이 만연한다. 그러나 수능성적대로 사회적 보상의 서열을 배치할 수 있는가? 그런 공정은 도달 불가능한 목표다.

의사, 변호사, 그리고 명문대 졸업생이 성적 서열만큼의 지위를 평생 누릴 수 있는가? 회사 입사에서 대학 졸업장의 효과는 갈수록 떨어진다는 자료도 많다. 그러나 문제는 다수의 한국인들이 이런 현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교육 투자를 줄일 의사가 없다는 사실이다. 즉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경쟁 그 자체, 그리고 성적 변별의 공정성을 신앙처럼 받아들인다는 점이 문제다. 막대한 사교육 투자의 주체인 한국의 386 세대는 80년대 말 이후 명문대 졸업장을 무기로 대거 중산층으로 편입된 최초의 세대이고, 이들이 견지하는 능력주의와 공정에 대한 집착이 사교육을 부추긴 요인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사회불신이 심각하고, 사회복지나 안전망이 취약한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경쟁 그 자체가 더 격렬하고, 시험을 통한 변별이 신화로 자리 잡은 것이 더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은 불가피한 점이 있으나, 그 경쟁이 대학 입학의 관문에 과도하게 집중된다는 것이 입시 문제, 사교육 문제의 근원이다. 경쟁의 분산, 소모적 경쟁의 축소만이 대안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 서열화의 극복, 수도권 집중의 완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학자 김종영이 서울대 10개 만들기 대안을 제시한 것이나, 한국은행이 서울대를 비롯한 수도권 대학 입학을 지역 할당으로 하자는 제안도 이러한 고민의 산물이다. 결국은 공교육과 지방 대학의 질을 높이고 지역경제와 대학의 연결고리를 강화하는 것만이 대안일 것이다.

 

입시제도 변경 아닌 과도한 보상과 차별 축소가 관건

필자는 <시험능력주의>(창비, 2022)에서 한국의 입시 문제는 거꾸로 선 노동문제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교육문제, 즉 입시 문제는 입시제도의 변경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었다. 사교육을 부추기는 가까운 요인은 대학의 서열화, 더욱 정교한 변별의 요청이지만, 그 상위에는 노동시장의 불안, 소수의 제한된 사람들에게 주는 특권적 보상과 그 아래 사람들에 대한 심각한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단순하게 말하면 의대나 최상위권 대학 졸업자에 대한 과도하게 높은 보상과 더불어 그 병목을 성공적으로 통과하지 못한 대다수 사람들이 평생 겪어야 하는 무시와 차별이 그 원인이다. 과거에 양반을 돈으로 사려 했듯이 오늘에는 의사 자격증과 명문대 졸업장을 사교육 투자로 얻으려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보상의 격차를 축소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며, 고용불안을 줄이는 것이 사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거시적 조건일 것이다. 그런데 이 지구적 신자유주의 시대에 고용불안의 완전한 해소는 개별 국가의 힘을 넘어선다. 한국이란 한 국가나 정치권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성적 차별이 보상의 격차로 연결되는 고리를 느슨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의대 졸업자, 변호사 자격증, 그리고 명문대 졸업장의 프리미엄을 줄이는 것이다. 복지 확충 혹은 기본소득, 그리고 노동시장의 구조적 불평등 극복이 중요하다. 물론 이것은 매우 큰 사회개혁의 과제이며, 그중 어느 하나도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없다.

 

역대 모든 한국 정부가 한결같이 사교육을 잡지 못했지만, 사실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대체로 미국식 시장주의에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에 발본적 개혁을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입시 문제는 결코 교육차원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사회개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인데 역대 모든 정부는 그런 차원에서 입시 문제를 보려 하지 않았다. 그러니 사교육을 잡겠다고 하면서 실제 정책은 그 반대로 펴온 것이다. 그중에서도 윤석열 정부의 사교육비가 역대 최대를 기록한 것은 바로 윤석열 정부가 사교육을 가장 부추기는 정책, 부자 감세, 정부 축소, 노동 탄압, ()복지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 시민언론 민들레 2024.10.09.

 

서바이벌의 법칙: 여왕벌 게임·흑백요리사·더 인플루언서

저는 방송이 존나 지겹습니다. 이 게임이 그렇게 재밌습니까? 그렇게 사람 본능 건드리면서 팀원들 바꿔가면서 TV를 보는 사람들이 무엇을 느껴야 합니까. 제가 솔직하게 게임한 게 그렇게 재밌습니까? 이걸 원하세요? 결국에는 사람들의 악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결국에는 깨끗하게 마무리 지으실 거죠? 우승이라는 글자로. 진짜 우승이 어딨습니까? 이딴 식으로 하는데. 정신 차리세요. 전 진 게 아닙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에서 방영 중인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 <여왕벌 게임>에서 여왕벌 모니카가 말했다. 4일 공개된 4화에서 탈락이 확정된 후 마지막 발언 기회를 얻었을 때였다.

이날 여왕벌과 해당 팀의 수컷 중 한 명은 한정된 시간 동안 진흙을 최대한 많이 옮기는 게임을 했다. 최종 1위를 차지한 여왕벌 장은실은 패배한 세 팀 중 한 팀의 우두머리 수컷을 영입할 수 있었다. 우두머리 수컷을 빼앗긴 팀의 나머지 인원은 모두 탈락한다. 장은실이 지목한 이는 모니카 팀의 우두머리 수컷이었다.

 

탈락한 수컷들이 간략하게 소감을 말하고 나서도 온몸에 진흙을 뒤집어쓴 모니카는 한참을 침묵했다. 다른 출연자들은 모니카의 눈치를 봤다. 모니카는 입술이 떨릴 정도로 화를 참고 있었다. 모니카는 전문 연기자가 아니기에, 이어진 발언이 대본에 있거나 화난 척하는 것은 아닌 듯했다. 모니카는 정든 팀원을 상대 팀에 빼앗기거나 꼴찌가 아닌데도 탈락해야 하는 상황에 분노하며 제작진에게 정신 차리라고 화를 낸 것이다.

 

재밌는 것은 <여왕벌 게임> 제작진이 자신을 향한 비난 장면을 편집하기는커녕, 노골적인 비속어까지 그대로 살려 내보냈다는 점이다. 심지어 저는 방송이 존나 지겹습니다라는 코멘트는 비장한 음악을 깔면서 카메라 각도를 달리하며 반복해 보여줬다. 방송사 유튜브는 이 발언의 자막과 모니카의 얼굴로 섬네일을 만들었다.

모니카는 게임에 완전히 몰입해 이례적으로 분노했지만, ‘사람 본능을 건드려 악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 <여왕벌 게임>만이 아니다. 공전의 인기를 끌며 8일 최종화를 방영한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은 요리사들의 계급 백수저 흑수저로 나눴다. 백수저 20명이 세트장 높은 곳에서 팔짱 끼고 지켜보는 사이, 흑수저 80명은 20명에 들기 위한 일종의 예선전을 치러야 했다. 더 큰 논란을 부른 규칙은 4라운드 흑백 혼합 팀전 레스토랑 미션에서 나왔다. 세 팀이 식당 손님에게 내놓을 음식과 가격을 정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한참 미션을 진행하던 도중 각 팀에서 한 명씩을 방출해야 한다는 규칙이 안내됐다. 방출된 인원들은 새로운 팀을 만들어 급히 미션에 참여해야 했다. 자신만의 요리를 만들겠다며 자발적으로 팀을 떠난 사람도 있지만, 투표 끝에 방출된 사람도 있었다. 해당 분야 최고의 명장으로 평가받는 요리사는 쓰임새 부족한 사람으로 평가받아 쓸쓸하게 내쫓겼다.

 

모두가 사는 서바이벌은 없다. 공동 우승만큼 맥빠지는 경쟁 구도도 없다. 모든 서바이벌 예능은 최후의 1을 가리는 과정을 그린다. 참가자들이 저마다 발군의 실력을 보이더라도, 결국 1명을 제외하고는 탈락한다. 서바이벌 예능은 각자의 레인에서 달려 기록으로 금메달을 가리는 육상 경기가 아니다. 서바이벌 예능은 탈락자를 만들기 위해 때로 협동보다는 견제, 찬사보다는 질투, 동료애보다는 이기심이 있어야 승리하는 규칙을 강제한다. 주어진 틀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참가자들은 어쩔 수 없이 규칙을 따른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들의 극심한 비난을 받는 참가자도 생긴다.

참가자가 유도된 규칙에 따라 악한 모습을 내보여 비난받는 사이, 제작진은 높아진 화제성에 웃음을 참는다. 넷플릭스 <더 인플루언서> 1라운드에서 인플루언서 77명은 서로에게 좋아요 싫어요 투표를 했다. 참가자들은 자연스럽게 좋아요를 얻기 위해 노력했으나, 제작진의 숨은 규칙은 좋아요 싫어요의 합산으로 순위를 매기는 것이었다. ‘싫어요조차 관심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제작진의 의도를 간파한 몇몇 참가자들은 쉽게 1라운드를 통과했다. 서바이벌 예능 제작진은 좋아요 싫어요를 모두 즐긴다.

 

논란조차 흥행의 동력으로 삼는 서바이벌 예능은 관심경제 사회의 솔직한 반영이다. 아울러 운과 실력으로 수많은 경쟁자를 제친 1인이 모든 것을 가져가는 승자독식 사회에 대한 살벌한 풍자다.

백승찬 선임기자 | 경향 2024.10.09.

 

경쟁서 배제되는 특권 누리는 그들, ‘계급장 떼고 눈가림 심사대 앞에 설 수 있나

노벨 문학상 시대의 흑백요리사와 괴물미사일

넷플릭스의 요리경연 프로그램인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이 장안의 화제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8일 최종회차까지 공개되면서 한동안 그 열기는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이미 수많은 요리경연 프로그램이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선보였었는데, <흑백요리사>가 지금 이렇게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례 없는 규모의 세트와 인원, 유명 요리사와 무명 요리사의 대결, 자기 분야 최고의 위치에 있으면서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두 심사위원, 심사위원을 심사해야 할 것 같은 경력의 요리사들의 경연 참여 등 세상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요소가 많았다. 요리와 음식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도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것은 오로지 맛으로만 평가하기 위해 안대로 눈을 가린 초유의 눈가림 심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특히 공정과 정의가 시대의 화두인 한국에서는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백수저 요리사와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동네 밥집의 흑수저 요리사들이 계급장을 떼고 눈가림 심사 앞에서 평가받는 모습이 큰 울림을 주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목격하기 힘든 공정과 정의가 인위적으로라도 세상 어디에선가 구현되기를 갈망한다.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것이다. 올해 한국프로야구는 세계 최초로 자동투구판정시스템(ABS)을 도입해 스트라이크와 볼을 판정했다. 시행착오가 없지 않았으나 예년에 비해 볼 판정 시비가 크게 줄어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ABS는 투수들의 이름값을 따지지 않기 때문에 혹시나 있을지 모를 볼 판정의 편향성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흑백요리사>의 눈가림 심사 또한 그런 편향성을 줄이기 위한 놀라운 선택이었다. 그런 까닭에 판정의 결과에 해당 요리사들은 물론 전 세계 시청자들이 설득될 수밖에 없었다.

 

과학에는 안대나 ABS 같은 기계를 훌쩍 뛰어넘는 극강의 눈가림 심판이 있다. 바로 자연이다. 과학에서는 어떤 가설이든 이론이든 결국에는 궁극적으로 자연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이론이라도 실험결과와 맞지 않으면 폐기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과정에서 과학자의 이름값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자연은 가장 완벽한 눈가림 심판이다.

아인슈타인도 대자연의 눈가림 심판을 피하지 못했다. 영원불멸의 정적인 우주론을 추구했던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자신이 발견한 중력장 방정식에 임의로 새로운 항까지 추가했으며, 동적으로 변화하는 우주론을 주장한 다른 학자들을 경멸하기도 했다. 그런 아인슈타인도 관측결과까지 경멸하지는 못했다. 1929년 허블이 팽창하는 우주를 발견한 이후로 아인슈타인의 우주론은 설 자리를 잃었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인슈타인은 1935년 포돌스키, 로젠과 함께 양자역학이 완전하지 않으며 아직 발견하지 못한 숨은 변수가 자연을 보다 완벽하게 기술할 것이라 주장했다. 이후의 수많은 실험들은 아인슈타인에게 탈락을 선고했다. 2022년 노벨 물리학상은 이와 관련된 공로자들에게 수여되었다. 과학이 이토록 성공적이었던 이유 중 하나는 무자비하고도 가혹한 자연의 눈가림 심사 앞에 그 누구도 예외가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흑백요리사>가 내세운 계급전쟁이 한국 사회의 격렬한 경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흑백요리사>와 한국의 현실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초경쟁사회라는 말이 무색하게 한국의 현실에서는 여경래처럼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경쟁을 하지 않는다. 현재 한국 경제를 움직이는 주요 재벌의 총수들은 대체로 창업주의 3, 4대 후손들이다. 이들은 과연 얼마나 치열한 경쟁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올랐을까? 한 조사(CEO스코어)에 따르면 총수 일가의 부모와 자녀가 함께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40개 대기업 그룹의 경우 평균적으로 총수 일가는 29세에 입사해 34세 전후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이는 보통의 상무직급 임원 평균 연령(53)보다 19년 빠르다고 한다(‘세대교체 인사라며속도 내는 재벌 세습경영, 민들레, 2023·12·3).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이들에게 국가경제를 좌우할 대기업의 경영을 맡기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지 한번 따져봐야 할 문제다.

누구나 선망하는 판검사나 의사는 어떨까? 법을 다루는 이분들에게는 누구보다 법 적용과 집행에 엄격해야 할 것 같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작년에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전 10년 동안 판검사가 피의자로 입건된 사건 중 재판에 넘겨진 경우는 0.05%에 불과했다. 일반 국민이 기소된 확률이 30%대인 것과 크게 차이가 난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에 연루된 판사들은 대부분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사건을 불기소 처리한 사례에서 보듯이, 검사들은 권력을 향한 충성경쟁에 가장 열심이었다. 만약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여러 의혹들(주가조작이나 논문표절 등 혐의)을 두고 검사들이 눈가림 심사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30여년 전의 논리에서 한발도 나가지 못한 느낌이다.

 

의사들은 의대 정원을 계속 동결시켜 자신들의 기득권을 철저하게 유지하고 있다. 더 많은 의사배출로 더 많은 경쟁이 발생하는 것이 아마도 싫었기 때문일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합리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갑작스럽게 의대 정원을 늘린 것은 문제이지만, 증원 불가라는 답을 미리 정해놓은 듯 예전부터 정부와의 대화에 소극적이거나 실력행사부터 들어가는 의사들의 행태를 납득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한국 같은 초경쟁 사회에서 최상위층이 오히려 경쟁에서 배제되는 특권을 누리는 모순은 우리의 전체 경쟁력을 좀먹는 원인이다. 최상위층이 회피한 경쟁은 결과적으로 중간층 이하의 사람들에게 몇배의 과중한 경쟁으로 떠넘겨지고 있다. 최상위 지도층은 앞장서서 솔선수범하고 그 결과에는 가장 무겁게 책임져야 한다. 그게 공정이다.

 

극심한 경쟁은 참가자들에게 상식을 뛰어넘는 선택을 강요하기도 한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라고 말할 때의 그렇게까지가 사회적 통념상 어디까지 허용될 것인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흑백요리사>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백수저 요리사로 참가한 최현석이 단체전에서 요리 재료를 초반에 싹쓸이한 것이나 비상식적으로 높은 가격의 메뉴를 내놓은 것을 두고 시청자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대단했다. 뛰어난 전략가라는 호평도 많지만 굳이 그렇게까지?”라고 의문을 던진 사람도 적지 않았다.

여기서 사고실험을 하나 해 보자. 만약 <흑백요리사>의 우승상금이 3억원이 아니라 300억원이라면 어땠을까? 또는, 경연의 결과가 <오징어게임>에서처럼 생사와 직결된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최현석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더 많아졌을 것이다. 이런 구도에서 보자면 <흑백요리사> <오징어게임> 사이에 묘한 연결고리가 생긴다. <오징어게임>에서는 성공에 대한 보상도 천문학적이지만 실패에 대한 대가도 치명적이다. 이런 극한의 설정 속에서 경쟁의 참가자들에게 그렇게까지의 한계는 어디일까?

 

방금 제기한 문제는 드라마나 예능 속에서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자주 마주친다. 경쟁 중에서도 가장 격렬한 생존경쟁이 국가 단위로 벌어지는 사태가 전쟁이다. 학생들에게 먼저 인공지능을 탑재한 공격무기에게 교전권을 허용하는 것에 찬성하는가?”라고 물으면 경험적으로 80% 정도는 부정적으로 답한다. “만약 북한이나 중국이 교전권을 가진 인공지능 무기로 우리를 공격할 때에도 그 원칙을 지킬 것인가?”라고 재차 물으면 부정의 답변 비율은 크게 떨어진다.

 

넷플릭스의 또 다른 K드라마 역작인 <킹덤>에서 이와 비슷한 딜레마가 나온다. 임진왜란처럼 국가의 존속이 위태로운 전쟁 상황에서 좀비를 전장에 도입할 것인가의 문제가 그렇다. 드라마 속의 좀비는 현실에서 인공지능을 탑재한 무기, 또는 핵무기 같은 대량살상무기로 즉시 치환될 수 있다. 실제로 핵무기를 처음 개발했을 당시 미국에서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다. 전쟁을 당장 끝낼 수도 있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대량살상무기 사용 여부를 두고 미 군부에서도 찬반이 엇갈렸다. 연합군 최고사령관이었던 아이젠하워는 자신의 조국이 그런 무기를 사용하는 첫 국가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었다.

<흑백요리사> 8~10회가 공개된 지난 1, 국군의날 기념 시가행진에서 현무5 미사일이 처음으로 전 세계에 공개되었다. 핵무기를 만들 수 없는 우리는 탄두중량만 8t에 이르는, 전 세계 무기사에 유례가 없는 재래식 괴물미사일을 탄생시켰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지정학적으로 우리에게 강제된 지독한 생존경쟁이 말 그대로 괴물을 빚어낸 셈이다.

작년 3 BTS의 리더 RM은 스페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왜 한국인들은 살인적인 경쟁 속에서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한 적이 있었다. 유럽의 여타 제국주의 나라들과 달리 식민지배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혹독하게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취지였다.

 

우리는 이렇게 살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투명한 환경 속에서 수천 년을 살았다. 그 오랜 고통의 세월 끝에 그나마 지금은 우리가 전 세계에 그 어느 때보다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고발한 작가 한강은 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괴물미사일 같은 미친 선택을 해야겠지만, 이제는 그런 선택을 강요하는 규칙 자체를 바꾸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최상위 지도층이 그야말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그들도 <흑백요리사>의 여경래나 에드워드 리처럼 계급장 떼고 눈가림 심사대 앞에 설 수 있어야 한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조교수 | 경향 2024..10.14

 

노벨문학상 한강이 되살려낸 존엄의 언어

소설가 한강이 2024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았다. 사진은 2016년 소설  출간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모습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나흘이 지났습니다. ‘한강 신드롬입니다. 노벨문학상을 탄 한강 작가의 책을 사기 위해 오픈 런이 벌어지고, 작가가 운영하는 책방에 인파가 몰리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작가 이름과 대표작 제목으로 도배됩니다.반가운 일이지만, 저는 보이는 현상 말고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말하려 합니다. 한강이 부순 장벽, 장벽의 잔해 속에서 새로 정돈되는 가치, 그리고 위로받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한강은 최근 한국 문학계에서 국제적 문학상을 가장 많이 받은 작가입니다. 그럼에도 한강 노벨문학상을 연결해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았습니다.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대다수가 남성·서구·백인이라는 점이 배경으로 작용했을 터입니다.

국내 문학계에선 상대적으로 젊은’ 50대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여성 소설가들이 획기적이고 도발적인 한국 현대문학의 대부분을 쓰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언론과 문단에선 나이 많은 남성 작가들을 노벨문학상의 유력한 후보로 여겨왔다고 전했습니다.

 

한강은 묵묵히, 꾸준히 썼습니다. ‘성별·연령·인종·지역·언어 같은 장벽에 균열을 냈습니다. 밑동부터 금이 가기 시작한 장벽들은 기어코 무너져 내렸습니다. 영국 가디언은 사설에서 한강을 아웃사이더로 지칭하며 대담한 아웃사이더가 보상받았다고 평했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지독한 백래시(backlash·반동)에 직면해 있습니다. 국가폭력으로 고통받은 피해자와 가족들, 가부장제 구조에서 억압받는 여성들이 지지와 공감을 얻기는커녕 혐오와 차별의 표적이 됩니다.

거대한 장벽을 허문 한강 작가 역시 박근혜 정권 당시 블랙리스트에 오른 백래시의 피해자입니다. 그런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백래시 속에 일그러진 가치를 가지런히 정돈하는 계기로 작용할 겁니다. 많은 것들이 역행하고 퇴행하는 시대, 제자리 찾기가 시작될 겁니다.

 

일상 속에서 정말 깊은 진실을 보거나 보여주기 쉽지 않잖아요. 친구와 밥을 먹다가 나는 요즘 산다는 게 뭔지 생각하고 있어라고 고백하기는 어려운 것처럼 꺼내기 쉽지 않지만 표면 아래에서 우리를 흔드는 중요한 감정들, 깊은 의문들, 감각들을 문학이 다루면, 그걸 읽는 사람들은 문득 자신 안에 있던 그것들을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매일경제 인터뷰).

한강의 말대로 <소년이 온다>를 마지막장까지 읽어낸 독자는 자신 안에 있던 뭔가를 발견하게 될 거라 믿습니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도청에)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시민군)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소년이 온다> 에필로그)

극히 일부이지만, 다른 반응도 들려옵니다.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5·18 민주화운동과 제주 4·3사건을 피해자 입장에서 다뤘다고,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여성이라고 불만스러워하는 이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럴 땐 미국 통계학자 네이트 실버의 조언이 유용합니다. 그는 신호(진짜 의미있는 정보)와 소음(잘못된 정보)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가치의 회복과 재정립, 새로운 시대의 부상을 예고하는 신호입니다. 일부의 폄훼는 한때의 소음에 불과합니다.

한강의 수상은 많은 이들을 위로하는 중입니다. <소년이 온다> 주인공 동호의 모델이 된 고 문재학군(1980년 당시 16)의 어머니 김길자씨(85) 평생 내가 못해낸 일을 소설가 한 분이 좋은 글로 세계에 알렸다며 감격스러워합니다.

가부장제의 폭력성을 파헤친 <채식주의자>를 읽으며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전의 어린 시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는 대목에 공감한 여성들이 한강의 수상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노벨문학상을 탄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1995년 방한했을 때 기자간담회에 참석했습니다. 간담회 내내 한 가지 생각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언젠가는 한국 작가도 노벨문학상을 받는 날이 올까..

그날이 와서 기쁩니다. 수상자가 한강이어서 더 기쁩니다. “어떻게든 폭력에서 존엄으로, 그 절벽들 사이로 난 허공의 길을 기어서 나아가는 일”(2017년 노르웨이 문학의 집 강연)을 소명으로 삼는 작가여서 그러합니다. 작고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 압도적 폭력에 고통받는 사람들, 그럼에도 끝내 존엄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의 언어를 찾아준 작가여서 그러합니다.

한강은 팔레스타인과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말하며 축하 행사와 기자회견을 사양했습니다. 가장 영예로운 순간에 가장 약한 사람들을 떠올리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전과 그 이후의 세상은, 분명히 조금은 다를 겁니다.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 경향 2024..10.14

 

눈치도 없는데 귀마저 닫으면 어떡하나

권력은 매우 파워풀한 약물이다. 권력을 쥐면 사람의 뇌가 바뀐다.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지 않고, 실패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터널처럼 아주 좁은 시야를 갖게 하며, 자기애에 빠지게 하고, 오만하게 만든다. 권력은 모든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한다.”

아일랜드 신경심리학자 이언 로버트슨의 말이다.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 곧이곧대로 믿을 건 아니다. 강조의 취지를 감안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면, 모든 권력자는 다 실패하고 다 비참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게 아닌가. 늘 예외는 있는 법이다.

권력을 쥔 적도 없고 쥘 뜻도 없는 보통사람일지라도 권력에 대해 나름의 평가는 할 수 있다. 적어도 권력의 부패나 타락 가능성을 보는 눈은 권력 내부 또는 근처에서 일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날카롭고 매섭다. 권력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거니와 권력의 비위를 맞춰야 할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 윤석열은 어떤가? 그는 보통사람의 눈 밖에 난 지 오래다. 20%대의 지지율로 미루어 보건대 적어도 열에 일곱은 그의 국정운영에 비판적이다. 분노하는 사람도 많다. 무엇에 분노하는가? 정책은 논외로 하자. 진보 유권자가 분노하는 정책은 보수 유권자가 반기는 것이니, 그 어느 쪽이건 진영논리 독선은 자제하자.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모든 유권자가 똑같이 분노하는 게 있다. 무엇인가? 다음 여섯 언론인의 칼럼을 통해 그 분노의 대상과 이유에 대한 설명을 감상해보기로 하자.

 

(1) “보수층이 이재명의 온갖 범죄 혐의에 혀를 차다가도 김 여사는?’이란 반박을 받으면 말문 막힐 때가 많다.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지지자들로선 속된 말로 ‘X팔리는 심정이 된 것이다.”(조선일보 논설실장 박정훈, 921)

(2) “주가조작, 공천 등에 영부인이 연루된 것만도 비정상인데 이를 덮으려 국가기관이 동원되고 거부권이 남용된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실, 검찰, 국민권익위, 여당은 영부인에게 복무하는 기관인가.”(한국일보 뉴스스탠다드실장 김희원, 101)

(3) “대선 때부터 3년 넘게 보수진영 전체를 욕보이고 있는 여사 문제 수렁에서 헤어나려면 김 여사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일반 국민 누구나에게 적용될 절차를 거쳐 공정하고 엄정한 사법적 처분을 받는 것 이외엔 그 어떤 출구도 없다.”(동아일보 대기자 이기홍, 104)

(4) “여권 핵심 인사는 수석들이 있는 자리에서 김 여사가 대통령에게 민망한 언행을 하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고 했다. 사실이라면 김 여사의 공천개입, 인사개입 개연성은 높아진다.”(중앙일보 대기자 이하경, 107)

(5) “김건희의 대통령 놀이는 거침없다. 아니, 더 세졌다. 겁이 없기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주포들을 대통령 취임식에 불렀을 게다. 공사 구분이 없기에, 대통령 전용기에 민간인 태우고, 디올백 선물을 챙겼을 게다. 과시욕이 남달라, 밤중에 요란한 마포대교 순시를 갔을 게다. () 나라도 정권도 망조 들게 한 김건희의 대통령 놀이, 이제 끝낼 때가 됐다.”(경향신문 편집인 이기수, 109)

(6) “나라가 김건희 블랙홀에 빠졌다. 자고 나면 추가되는 김 여사 관련 폭로·의혹에 여당 의원들은 여론이 하루하루 달라진다고 고통을 호소한다. 대통령 배우자가 국정 혼란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현 사태를 겪으며”(한겨레 논설위원 황준범, 1011)

 

그렇다면 보통사람들이 느끼는 분노의 핵심 대상은 김건희인가? 아니다. 윤석열이다. 유권자들은 김건희가 아니라 윤석열에게 표를 주었다. 대통령의 의무와 책임엔 배우자가 국정운영을 망치는 걸 못하게끔 하는 게 포함돼 있다. 그러나 윤석열은 그 의무와 책임을 방기했을 뿐만 아니라, 김건희에 대한 내부 논의 자체를 원천봉쇄함으로써 사실상 김건희의 대통령 놀이를 찬양고무했다. 그에겐 부인의 대통령 놀이가 어떤 불법을 저지른다 해도 그걸 보호하는 게 국정운영보다 더 중요했다. 적어도 결과적으로는 그랬다. 보통사람들은 바로 이 점에 대해 가장 분노하는 것이다.

한동훈 김건희, 자제 필요 용산과 전면전 치닫나라는 한겨레 1010일자 1면 머리기사 제목이 기가 막히다. 한겨레가 기가 막힌 게 아니다. 이 제목은 현 정치적 상황의 문제를 제대로 포착했다. 여당 대표가 김건희의 자제를 요청하는 게 대통령·참모·친윤계 정치인들과의 전면전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게 기가 막힌다는 것이다.

친윤계 정치인들은 한동훈을 비난하느라 바쁘다. 아닌 게 아니라 왜 좀 더 일찍 김건희의 자제 필요성을 외치지 못했느냐고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감히 대통령도 어쩌지 못하는 절대 성역에 자제 운운하는 망발을 할 수 있느냐고 비난하는 것이다. 아니, 그들에게도 선의는 있을 게다. 정략에만 혈안이 된 야당에 대한 불신과 탄핵 트라우마 때문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여태까지 그런 식으로 대응해왔기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다는 걸 인정할 뜻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이유는 단 하나. 아직 대통령 임기가 절반은 넘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그들이 임기 말, 임기 후에도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 일관성에 경의를 표하겠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건 내 생각이 아니라 역사의 법칙이다.

윤석열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대통령 권력이 악화시킨 점은 있겠지만,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4월에 번역·출간된 미국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의 <사람을 안다는 것>을 읽으면서 윤석열을 떠올린 적이 있다. 브룩스는 사람을 디미니셔 일루미네이터 두 종류로 나눈다. 디미니셔는 제 능력을 믿고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만, 일루미네이터는 다른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면서 협력을 모색한다.

브룩스는 일루미네이터가 되는 것은 일종의 기량이고,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애를 써야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이런 존재 방식을 한국 사람은 눈치라고 부른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기분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한국에선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하는 눈치를 이렇게까지 격상시켜준 게 반가웠다. 쥐꼬리만 한 권력이라도 갖게 되면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기분에 둔감하게 대응하는 걸 무슨 자랑이나 되는 것처럼 뻐기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서 제발 위의 눈치만 보지 말고 아래, 그리고 수평적인 눈치 좀 보고 살자는 운동이라도 벌어지면 좋겠다.

 

윤석열은 검사 시절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았기에 권력의 탄압을 받기도 했지만, 사실상 그 덕분에 많은 사람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된 후 그에게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게 밝혀졌다. 그가 나름의 원칙과 정의감 때문에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면, 대통령이 된 후에 자신의 슬로건이었던 공정과 상식을 스스로 유린하진 않았을 게다. 그는 민심의 눈치마저 볼 수 없는 눈치 무능력자였을 뿐이다! 대통령이 되는 데엔 축복이었던 특성이 대통령이 된 후에 저주로 바뀌었으니, 그 자신도 어리둥절할지도 모르겠다.

눈치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눈치를 보는 삶을 살 수 있다. 귀를 열면 된다. 눈치가 있는 사람이 해주는 말을 들으면 된다. 그러나 비극적이게도 윤석열에게 귀는 있지만 귀를 열 시간도 없고 뜻도 없다. 윤석열 대선 캠프 대변인을 지낸 이동훈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 시간이면 혼자서 59분을 얘기합니다. 다른 사람 조언 듣지 않습니다. 원로들 말에도 나를 가르치려 드냐며 화부터 냅니다.”

 

눈치도 없고 귀마저 닫으면 어떻게 하잔 말일까? 김건희의 말은 잘 듣는다지만, 여태까지 그의 말을 너무 잘 들은 데다 맹종했기 때문에 지금 이 지경이 된 게 아닌가. 그 누구건 스스로 자멸할 권리는 있다지만, 공직 그것도 대통령이라는 엄청난 공직을 맡은 사람이 자멸의 권리를 주장하면 어쩌자는 건가. 인간 어리석음의 극치를 보여주겠다는 게 인생의 최종 목표인가? 그게 아니라면, 이제라도 자신에게 김건희 문제로 쓴소리를 했다는 이유로 내친 극소수의 사람들을 찾아 사과하고 그들의 고언에 귀를 열기 바란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 경향 2024..10.15.

 

한강, 폭력과 트라우마의 보편성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다양한 각도에서 그에 대한 의미 부여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것은 특별한 문학적 사건임에 틀림없지만, 다른 한편으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의미심장한 사회학적 현상이기도 하다는 점을 눈여겨보게 된다.

폭력과 트라우마의 문제와 씨름해 온 한국의 작가가 세계의 공감을 획득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 사건은 대한민국 발전사의 한 절정인가, 아니면 발전 신화의 해체인가? 한국 사회의 잔혹한 이면을 비추는 이야기들은 어떻게 세계의 치유에 기여하는가? 이런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좀 더 넓은 문화 변동의 맥락으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

 

최근 십여년간 세계의 찬사를 받은 한국의 문화생산물들은 주목할 만한 공통점이 있다.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 ‘설국열차’, ‘기생충 같은 사회비판적 영화들로 세계적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넷플릭스 역대 최고 흥행작이 된 오징어 게임은 살인적 경쟁 사회의 공포와 긴장을 극한까지 고조시킨 작품이다. 한강 작가는 5·18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 4·3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 가족애의 끔찍한 이면을 그린 채식주의자 등의 작품들로 노벨상을 비롯한 많은 영예로운 수상을 했다.

장르는 다양하지만, 이들의 공통된 주제는 폭력이다. 국가의 폭력, 자본의 폭력, 경쟁의 폭력, 가족과 가부장의 폭력 등 다양한 양태의 폭력에 대한 질문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다. 다름 아닌 폭력의 문제와 대결한 이 작품들이 세계에서 강렬한 공명을 얻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의 경험이 보편적 의미를 획득하는 양상이 과거와 근본적으로 달라졌음을 시사한다.

 

그동안 대한민국이 무엇으로 세계에 알려지고 세계와 이어졌는지를 돌아보자. 처음에 한국은 그저 전쟁으로 파괴되고 가난한 나라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후 한국은 전혀 다른 상징성을 갖는 모델로 세계에 등장했다. 1980년대에 세계는 한국을 고속 성장’, ‘경제 기적의 대표 사례로 탐구했고, 1990년대엔 성공적 민주화’, ‘산업화와 민주화의 동시 달성에 대한 찬사가 더해졌다. 2000년대부터는 그간의 압축적 발전이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자의식을 표현하는 선진국 담론이 정부 문서와 대중매체를 장악했다.

이 같은 승리 서사들은 한국의 현대사와 오늘의 사회 현실 속에, 인간에 대한 잔혹한 폭력과 치유되지 않은 상처들이 가득 차 있다는 진실을 외면하고 억압해 왔다. 왜냐하면 그것을 허용한다는 것은, 마땅히 세계에 경탄의 대상이 되어야 할 케이(K)-모델에 흠집을 내고 ‘1등 한국의 이미지에 때를 묻히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바로 그 폭력의 역사를 치열하게 성찰하는 한국의 문화생산자들이 세계에서 큰 지지를 얻고 있음을 보고 있다. 세계 최빈국에서 출발해서 세계 10대 경제강국, 수출대국, 군사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기적을 이뤘다는 나라, 하지만 세계에서 자살률 최고, 산재사망률 최고, 출산율 최저, 행복도 최저라는 이 나라는, 현대성의 상반된 두 얼굴이 극단적 대조 속에 하나의 머리에 붙어 있는 곳이 아니던가.

세계는 그처럼 현대성의 빛과 그림자, 그 분리 불가능한 두 측면의 모순이 극한까지 농축된 너무나 한국적인 경험에 접속하는 가운데, 현대라는 보편적 시공간에 놓인 그들 사회의 이중성을 돌아보는 계기를 발견한다. 여기서 세계가 보는 것은 한국 사회의 폭력성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창을 통해 선명히 드러난 폭력의 보편성, 현대의 보편적 폭력성이다.

 

그처럼 폭력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단지 역사의 증언이나 현실 고발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엔 치유를 통해 현실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트라우마의 본질은, 너무 아픈 어떤 것이 어느 날 내 안에 들어왔는데 그것을 밖으로 빼낼 수도 없고 나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도 없어 그저 아픈 가시가 박힌 채로 있어야 하는, 그 회피 불가능성과 통합 불가능성의 모순적 공존에 있다. 그리고 그 모순이 표현 불가능성, 즉 언어의 실종을 초래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한스 요아스에 따르면, 그 무언의 자물쇠를 여는 길은 바로 이야기하고 공감받는 경험이다. 이를 통해 그간 무너졌던 자아가 재건되었을 때, 지금껏 그의 침묵을 전제로 유지된 사회관계는 흔들리고 그를 주체로 받아들인 새로운 관계가 생겨난다. 한국의 현대사에서 개인들이 겪은 폭력의 경험을 어루만지는 이야기들은, 이처럼 세계의 모든 곳에서 그와 같은 폭력을 겪은 사람들의 재건의 과정으로 스며든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강 작가에 대한 일각의 불편함은 단지 그가 독재정권의 폭력을 비췄다는 정치적 이유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이승만에서 시작된 국난 극복의 신화 대신에, 그 역사가 강요한 인간의 비참과 그 속에서 빛난 숭고한 인간성에 대한 공감이 지금 한국과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가 되었다는 데 있다. 강자에 동일시하고 힘의 논리를 숭상하는 한국의 지배 문화는 이 같은 수준의 도덕적 보편성에 범접할 수 없다.

한반도에 핵전쟁의 위험이 극에 달했던 2017 10월에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한강 작가는 인간이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최후의 저지선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온전하고 진실한 인식이라고 썼다.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단순한 연민을 넘어서는 실천적 의지와 실행이 매 순간 우리에게 요구된다는 사실도.”(‘누가 승리의 시나리오를 말하는가?’, ‘문학동네 통권 93) 그렇다면 우리는 한강 작가를 향한 우리의 시선을 돌려, 그가 가리키는 세상을, 그와 함께 직시해야 할 것이다.

 

이태원에서 수백명의 젊은이가 끔찍하게 생을 마쳐도,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로 수십명이 숨져도, 쿠팡 노동자들이 연이어 과로로 쓰러져도,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무심하게 가던 길을 가는 이 섬뜩한 사회에서 어떻게 타인에 대한 온기가 살아 있을 수 있으며, 연대가 피어날 수 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에서 존엄으로, 그 절벽들 사이로 난 허공의 길을 기어서 나아가는 일만이 남아 있다”(‘여름의 소년들에게’), 그것은 단지 작가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일 것이다.

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 한겨레 2024..10.15.

 

인지과학적 뒷담화

교수 사회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다. ‘혼자만 잘났잖아요. 실력은 모르겠는데 성격에 문제가 있어요. 주변 사람을 잘 안 챙겨요. 학생 지도는 안 하고 돈벌이만 신경 써요.’ 다른 교수에 관한 험담을 내게 전하는 상황이다. 이런 험담의 결정판은 이것이다. ‘학내에서 그 사람에 관한 얘기가 참 많아요.’ 여기서 언급된 얘기는 당연히 칭찬이나 미담이 아니라 험담이다. ‘참 많아요라는 묘사를 통해 그 험담이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있음을 주장한다.

나는 이런 험담 내용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다. 험담 내용만으로 그 사람이 실제 어떤 인물인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학내 교수 상당수가 이런 험담의 대상자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ㄱ 교수가 ㄴ 교수에 관한 험담을 내게 전하면, 얼마 후 ㄴ 교수는 ㄱ 교수에 관한 험담을 전해주는 식이다.

 

험담 내용에는 큰 관심이 안 가지만, 두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첫째, 험담 대상자로 자주 등장하는 이의 조직 내 영향력이 궁금하다. 왜냐하면 그런 인물은 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히어로 또는 빌런이다. 초능력 인간이 등장하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은 영웅이 히어로이고, 히어로에 대적하는 악당을 빌런이라 부른다. 조직 구성원 대부분이 험담 대상에 오르내리지만, 그중에서도 등장 빈도가 높은 이라면 그는 조직 내 이야기에서 주연이다. 히어로 또는 빌런일 확률이 높다. 좋은 쪽으로 건 나쁜 쪽으로 건 그 사람의 영향력이 크다는 의미이다. 둘째, 험담을 풀어놓는 이의 사연이 궁금하다. 사람들은 히어로와 빌런, 둘 다 욕한다. 영화 속에서는 히어로를 찬양하지만, 현실에서는 히어로를 놓고도 부러워서 욕하고, 히어로에게 더 큰 것을 기대하며 욕한다. 빌런을 놓고는 분노해서 욕한다. 욕하는 이의 마음속에 부러움, 기대, 분노 중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지, 그런 감정의 배경이 무엇인지를 가늠해 본다. 물론, 내 마음속으로만 생각한다. 행동과 언어의 이면을 살피는 인지과학자의 습성이다.

 

이런 두 성찰은 꽤 의미가 있다. 그런 험담에 단순히 동참해서 누군가를 깎아내리며 후련해하기보다는 말이다. 조직 내 영향력 구도를 알 수 있고, 나와 대화하는 이의 내적 욕망과 결핍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런 성찰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도 통한다. 때로는 조직 내에서 떠도는 나에 관한 뒷담화, 험담이 들리기도 한다.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얘기한다는 말머리로, 누군가가 나에 관한 뒷담화를 내게 직접 들려주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침울해하거나 분노하지 말고 성찰해 보자. 조직 구성원들이 내적으로 무엇을 욕망하고, 어떤 부분에 결핍이 있어서 그런 얘기를 하는지, 조직 내에서 나는 히어로 또는 빌런, 어느 쪽에 가까운지 말이다. 조직 내에서 자신의 위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다른 구성원의 마음을 살피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침울함과 분노는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그러나 이런 성찰을 통해 우리는 조직과 자신을 동시에 다른 시선으로, 메타 인지적 틀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이런 얘기를 강연장에서 들려줬더니 한 청중이 물었다. 자신은 회사에서 빌런도 히어로도 아니고, 둘을 합쳐서 빌어로이고 싶다고. 영웅과 악당의 양면을 다 품고 사는 게 더 인간답고 속 편하다는 말일 테다. 뒷담화를 통해 조직과 자신을 온전히 성찰할 수 있다면, 빌어로도 나쁘지 않으리라 본다.

김상균 | 인지과학자·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 한겨레 2024..10.16.

 

한강의 역류, 정치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환호가 사그라들지 않는다. 세상이 온통 한강이다. 문학의 종언을 고하는 때 문학의 희망을 다시 열었다는 것만 해도 충분히 환호할 만한 사건이다. 개인적으론 노벨 문학상의 정치성이 가장 빛난 결과가 한강이라는 점이 특히 반갑고 고마웠다. 2016년 밥 딜런 수상에서 보듯 노벨 문학상의 정치성은 한 사회의 무의식과 호흡하고, 세계를 변혁하려는 모든 노력에 대한 애정이라 할 수 있겠다. 올해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 문학상의 정치성을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낸 것이라고 했다.

 

한 작가의 <소년이 온다>는 기존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과 다른 결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가해, 피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벗어나 5·18을 삶의 상처로 승화시켰다. 2009 1월 용산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며 저건 광주잖아라고 한 에필로그, 죽은 열여섯 살 소년 동호가 엄마에게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라고 한 부분을 보자. 국가폭력의 구조와 가해자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폭력 앞에서도 숭고할 수 있는 존재가 인간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소설엔 살아남은 누나와 누나 친구들도 등장한다. 이 여성들은 성폭력 피해자로 짐작된다. 악몽 같은 삶을 살아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중간에 한번 질문 형식으로 쓰여졌다. 마치 당사자가 된 듯한 작가의 통증이 느껴졌다. 이 여성들에게 5·18이란 총을 쏠 수 없는 자와 총을 쏠 수 있는 자를 가르는 싸움 아니냐는 완곡한 물음이었다. 여성들은 지독한 고통에도 죽은 동생의 장례를 치르지 못해 사는 내내 자신들의 삶이 장례였다며, 동생의 죽음이 살아남은 모두의 아픔이라고 했다. <소년이 온다>는 이처럼 국가폭력에 가려진 고통의 개별성과 마주하게 했고, 고통의 개별성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는 힘이라는 걸 알게 했고, 이 과정은 온전히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투쟁이라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한 작가의 다른 작품 <채식주의자>는 육식을 거부한 여성, 영혜의 이야기다. 왜 육식을 거부했는지 영혜의 설명은 없다. 대신 영혜의 남편, 형부, 언니 등 주변 인물들이 불편한 시선으로 영혜를 대하는 스토리텔러로 등장한다.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 하는 아버지도 있다. 그러고 보면 <채식주의자>란 제목은 육식(착취) 사회에서 식탁(가부장제)의 질서를 받아들이지 않는 여성을 불온한 존재로 몰기 위한 명사일 수도, 사회적 약자를 억압하는 데 대한 저항의 명칭일 수도 있다. 한 작가는 이어진 소설 <나무 불꽃>에서 햇빛만 있으면 밥 같은 거 안 먹어도 된다며 나무가 되려는 영혜의 모습을 그렸다. 육식 강권 사회의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굶어죽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영혜를 보며 페미니즘이 역사적(일상적) 트라우마에 직면하는 자세를 생각한다. 그건 여성 스스로 자신을 만들고, 여성을 더 이상 수동태로 말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더 놀라웠던 건 지금 직면한 문제들이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는지 일상에서 깨닫는, 트라우마에 직면하는 페미니즘의 자세를 작가가 견지했다는 점이다. 한 작가는 전쟁 비극에 무슨 잔치냐며 수상 기자회견을 거부했다. 페미니즘이 두 번째 휴머니즘인 이유를, 한 작가는 인류에 대한 예의가 담긴 이 한마디로 풀어냈다.

 

한 작가 수상은 탈근대(개별성, 다양성), 보편성 획득으로 평가된다. 진작 정치가 할 일이었다. 근대가 무엇인가. 우리가 국가 공동체를 만들고, 주권자가 되어 서로 돕자는 약속 아니던가. 그러나 그 약속은 번번이 소수자와 약자들을 역사에서 삭제하고 은폐했다. 이를 되돌려야 할 정치는 오히려 근대의 무기인 대결 담론으로 무장한 채 이들에 대한 근대의 배반을 외면했다. 양극화 정치는 갈수록 틈이 커지고 있고, 같은 진영 내에서도 다양성이 설 자리는 없다. 명태균이라는 룸펜프롤레타리아(황금만능주의에 찌든 무리)에 휘둘리는 여권은 보기조차 민망하다. 한 작가 수상에 고은, 황석영이 먼저 받았어야 할 상이라는 시대착오적 발언도 들린다. 뉴욕타임스는 나이 든 남성 작가만이 노벨상 후보라 보고 있나라며 이런 억지담론에 일침을 놓았다. 탈근대가 버겁다면 역사적 트라우마의 보편성이라도 얻으려 노력하는 게 마땅하건만 정치는 그마저도 포기했다. 5·18민주화운동 정신은 아직도 헌법 전문에 없다. 심지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김광동 위원장은 국정감사에서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망언을 또다시 쏟아냈다.

 

한 작가는 16일 스웨덴 언론 인터뷰에서 세계에 많은 고통이 있고, 우리는 좀 더 조용하게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한강이라는 새 물결에 정치의 역류가 계속되는 한, 정치를 향한 한 작가의 질문도 계속될 것이다. 정치는 무어라 답하며 한강의 물줄기에 합류할 텐가.

구혜영 정치부문장 | 경향2024..10.16.

 

부채감을 느끼도록 진화한 이유

아내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나보다 먼저 읽었다. 나는 한참 지난 뒤에야 읽었는데 페이지마다 한두군데쯤 문장 사이에 회색 빗금이 그어져 있었다. 같은 크기로 정갈하게 그어져 있는 그 표시를 나는 저자가 의도적으로 넣은 문장부호라고 생각했다. 흔하지 않게 로 시작하는 소설의 화자가 혹시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는 뜻인가 싶기도 했으나, 아니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아내가 읽다가 너무 힘들어서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페이지를 덮을 때마다 다음에 다시 읽기 시작할 부분을 연필로 표시해둔 것이라는 것을. “읽기 너무 힘들다는 것이 그 소설을 읽은 사람들의 공통된 소감일 것이다. 작가가 소설을 쓰는 동안 거의 매일 울었다는 작품을 쉽게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이거나 도리가 아니다. , ‘예의 도리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며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화두다.

 

아수라장 속에서 정대의 손을 놓쳤다. 다시 총소리가 귀를 찢었을 때, 모로 넘어진 정대를 뒤로하고 너는 달렸다.”

소설의 한 대목이다. 소설을 읽다가 가장 오래 멈춰 있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동호는 쓰러진 정대를 그대로 둔 채 도망간 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아닐까? 그 부채감이 그 뒤 동호의 짧은 삶을 규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었을까? 이 대목에서 오래 멈출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와 비슷한 일이 노동운동 속에서도 꽤 많이, 어찌 보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호텔 노동조합 파업 현장에 조합원 수보다 몇배나 많은 공권력이 투입된 적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극심한 고통을 안겨줄 수 있는지 매일 훈련받은 테러 진압 병력이 조합원 상당수가 여성이었던 파업 현장에 투입됐고 수많은 노동자가 부상당했다. 그 무렵 우리가 본 사진이 있다. 당당하게 서 있는 몇명의 경찰 앞에 고개를 바닥에 숙인 채 엎드려 있던 노동자들. 얼마나 참혹하게 진압당했는지 그 한장의 사진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2000 629일 오전 20여일째 파업 농성 중인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 경찰병력이 투입돼 노조원들을 연행하기에 앞서 바닥에 엎드리도록 했다. 김진수 선임기자

 

 역사상 가장 참혹한 진압의 후유증으로 두명의 임신부 조합원이 유산했다고 알려졌다. “나는 임신부예요!”라고 외쳤지만 소용없었다고 한다. 그중 한명은 진압 현장에서 하혈했다고 전해지기도 했다. 노동조합은 많은 고민 끝에 이 일을 문제 삼아 싸우지는 않기로 결정했다. 그 사건을 거론하면 당연히 불씨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겠지만 당사자들의 뜻과 사정을 고려해 그냥 묻어두기로 했다. 언론이 보도하지도 않았지만 소문은 널리 퍼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게 되었다.

며칠 뒤, 어느 병원의 파업 현장을 방문했다. 조합원들이 모두 같은 색의 셔츠와 조끼를 입고 로비에 질서정연하게 앉아 있었는데 유독 두명의 여성 조합원이 화사한 원피스에 고운 화장을 하고 앉아 있었다. 조합원들이 지나다가 오늘 웬일이야?”라고 물어보았을 때, 그이가 답했다. “내가 임신부잖아요. 오늘 공권력이 투입될지도 모른다고 해서요.”

호텔 파업 진압 과정에서 두명의 임신부가 유산했다는 소문은 벌써 들어 알고 있었고, 오늘 자신들의 파업 현장에 무자비한 공권력 투입이 예상된다는 말을 듣고는, 자기가 임신부라는 걸 어떻게든 알려야겠기에 고운 옷에 예쁜 화장 차림으로 나와 앉아 있었던 것이다.

내가 말했다. “이 사람아, 그럼 오늘 같은 날은 나오지 말았어야지.” 한 사람이 답했다. “그래도, 어떻게 나만 집에 편하게 있을 수가 있어요.” 다른 조합원 동지들이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 농성을 하는데, 자기만 임신부라고 집에 편히 있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원피스를 입은 조합원 등 임신부 세 사람에게 의자를 가져다주어 조금이라도 편히 앉게 했다. “사진을 한장 찍어도 되겠냐?”고 어렵사리 양해를 구했고, 그 세 사람은 선선히 그러마 했다.

 

많은 고민 끝에 노동조합 간부를 맡는 노동자들 대부분이 그 비슷한 생각을 한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가 해고당하거나 구속된 동료도 있는데, 나만 편히 있을 수는 없다, 어찌 보면 그러한 부채감이 노동조합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힘이다. 인류가 그렇게 인간에 대한 예의 도리를 느끼도록 진화한 이유는 그러한 부채감이 인류 사회 전체에 유익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부채감으로 오늘도 많은 활동가가 불이익을 감수하며 자신들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달려간다

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 경향2024..10.16.

 

 

불온서적이 노벨상을 받았다

나는 2008년에 입대했다. 20세기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엄혹한 야만의 시대였다. 그때만 해도 군대에선 사람은 육체적으로 가혹한 행위를 당해야만 말을 듣는다고 가르쳤다. 때로는 맞기도 했다. 어쨌든, 잘못하면 당연히 그래야 했던 시기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얼차려나 체벌이 무섭진 않았다. 물론 고통스러웠지만, 공포스럽진 않았단 뜻이다. 내가 무섭다고 생각하는 건 다름 아닌 검열이었다. 21세기에도 개인의 사상을 검증하는 게 당연히 할 수 있는 조치라고 여겨지는 것이 무서웠다. 군대는 우리가 어떤 책과 신문을 구독하는지, 수업에서는 무슨 말을 듣는지 모두 확인했다. ‘군내 불온서적 차단 대책 강구(지시)’라는 이름의 공문이 내려왔고, 생도들의 책꽂이 하나하나가 철저하게 검열됐다. 바로 2008년 국방부 불온서적 사건이다. 국방부가 지정한 불온서적은 북한 찬양, 반정부·반미, 반자본주의 세 분류 총 23권이었지만, 일선 부대에서는 비슷하다 싶으면 모두 불온서적으로 분류해 과잉 검열했다. 특정 신문을 구독한다는 이유로 지휘부가 생도를 소환하기도 했다. 사상이 편향됐다는 이유에서였다. 같은 사건이라도 다양한 관점을 살펴보고자 보수, 진보 언론사 모두 구독한다는 항변은 씨도 먹히지 않았다. 나의 사상이 불손했으며 구독을 포기하겠다는 억지 인정을 받아내고서야 부대의 추궁이 끝났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 동안 검열은 비단 군대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이뤄졌다. 익히 알려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그 대표적인 사건이다. 블랙리스트 진상규명을 통해 총 8931명의 문화예술인이 검열 대상으로 관리됐다는 것이 확인됐다. 검열을 넘어 공연한 민간인 사찰도 부지기수로 이뤄졌다. 기무사(현 방첩사령부)가 군인도 아닌 세월호 유가족에 대해 민간인 사찰을 벌인 행위는 유명하다. 당시 세월호 유가족 사찰을 지시한 자는 공판 자리에서 대통령 국정운영 보좌 기관이라는 사명감으로 사찰을 자행했다고 항변했다. 정권을 보위하기 위해서라면 높으신 분이 보시기에 좋지 않은 것들, 그러니까 보수 정권 지도자의 가치에 배치되는 것, 조금이라도 진보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것, 저항의 역사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 그래서 수구 세력에 도전할 여지가 있는 그 모든 가능성은 적극적으로 차단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그것이 충성이고 국가 기관의 책무라고 여겼다. 검열로 인해 삭제당한 것의 빈자리는 정권이 옳다고 여기는 것으로 채워졌다. 뉴라이트 계열의 대안 역사 교과서, 독립군을 때려잡던 친일파 장군의 자서전 같은 것이 필독도서로 지정됐다.

 

며칠 전 1010, 작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속보를 탔다. 한국인으로서도 처음, 아시아 여성으로서도 처음인 한국 문학의 대단한 쾌거다. 하지만 한강 작가는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8931명 중 하나였고, 검열된 그의 책은 정부가 주관하는 우수도서 선정과 보급 사업에서 번번이 제외됐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상을 탄 작가에게 축전 보내길 거부했다. 심지어 최근까지도 학부모단체의 민원 세례로 인해 책 채식주의자가 유해도서로 지목되어 고초를 겪는 중이다.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공동 번역가 페이지 아니야 모리스는 한강에 대해 몇번이고 검열에 맞섰으며 매번 더 강하고 흔들림 없는 작품으로 자신을 침묵시키려는 시도를 떨쳐낸 작가로 평했다. 그렇게 보수 정권이 꺾어 누르고 싶었던, 계속 검열하고 삭제해 다른 것으로 바꿔두면 결국 알아서 사라지겠거니 한 가치들이 끝내 살아남아 승리했다. 분단과 전쟁, 군사독재, 국가폭력의 상흔을 지적하는 것에 빨갱이’, ‘북한 찬양과 같은 것으로 때려버리면 그만이라 여겼던 이들이 형편없이 지고 만 것이다. 5·18, 4·3과 같은 역사적 상처에 직면한 불온서적이 노벨상을 받았다. 직면하고 저항하려는 쪽과 보기 싫은 건 지우고 무시하면 된다는 쪽, 과연 이제 불온하므로 대체되어야 하는 가치는 어느 쪽일까.

방혜린 | 군인권센터 국방감시팀장 | 한겨레 2024..10.16.

 

열매와 씨

계절의 변화를 식물처럼 온몸으로 드러내며 실현하는 존재가 지구상에 또 있을까. 뿌리를 내린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절을 오롯이 받아들이며 생명의 경이로운 사이클을 완주하는 식물은 우리에게 감탄의 대상인 동시에 어느 틈에 우리의 삶을 식물에 등치시키게 하는 마력을 발휘한다. 민족의 자랑이 된 한강 작가를 세계에 처음 알리게 된 소설 채식주의자에서 주인공이 자신을 독립적이고 무해한 식물에 일치시키려 한 것도 이해가 된다.

긴 장마와 폭염 끝에 가을이 순식간에 실종될 거라는 염려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벼는 잘 여물어 추수의 기쁨을 선사했고, 과수들도 때맞추어 열매를 맺었다. 역사상 가장 더운 여름을 지내며 무사히 결실을 하고 씨를 만들어낸 식물들에 갈채를 보낸다. 앞으로도 계속 더워질 지구 안에서 오랜 기간 가혹한 자연환경에 적응하고 또 적응해온 식물들이 성공적인 생활사를 굳건히 이어가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씨를 맺는 종자식물들은 약 36천만년 전 고생대에 출현하여 지구의 육상 생태계를 떠받치는 존재가 되었다. 씨가 생기는 방식에 따라 겉씨식물과 속씨식물로 구분되는데, 소나무나 은행, 소철 종류 정도만 겉씨식물에 속하고, 대부분의 종자식물은 씨방이 씨를 둘러싸서 열매를 만드는 속씨식물이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탁월한 능력 덕분에, 개화식물이라고도 불리는 속씨식물은 현재 약 30만종의 다양성을 자랑하며 식물 중 가장 성공한 부류란 찬사를 받는다.

우리는 어떤 노력이든 반드시 성과를 기대한다. 일이 이루어진 결과(結果)나 성과(成果), 모두 열매를 맺는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열매나 과일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대부분 먹을 수 있고 맛도 좋은 과육이지만, 식물의 입장에서는 과육보다 씨가 훨씬 더 중요할 것이다. 과육은 씨를 보호하고 여러 곳으로 퍼뜨리기 위해 식물이 고안해낸 멋진 포장재에 불과하다. 씨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식물은 꽃을 피우고, 꽃의 생식작용을 통해 후손을 품은 씨가 생겨난다. 꽃에 있는 암술의 밑동에 자리 잡은 알세포가 수술에서 떨어져 나온 꽃가루 세포와 만나서 수정이 이루어지면, 수정란이 배아를 만들고, 그 배아를 키우기 위한 배젖과 보호막인 껍질을 발달시켜 씨가 만들어진다.

씨앗은 장차 성체로 성장할 배아를 품고 때를 기다리는 타임캡슐이다. 건조한 상태에서 어떤 기후조건도 견디어내며 발아할 환경을 기다릴 수 있다. 경남 함안에서 고려 시대의 연씨가 700년의 세월을 지나 발아하여 붉은 연꽃을 피우며 번식된 것이나, 성경에 나오는 헤롯 대왕의 왕궁터에서 발굴된 2천년 전 야자씨가 발아하여 나무로 자란 것을 보면, 씨는 생명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주는 생생한 실례이다.

 

그러하기에 지구의 위기를 대비하여 씨앗을 보존하려는 노력도 의미가 있다. 국제식량농업기구는 북극 노르웨이령 스발바르섬에 종자저장고를 만들어 100만가지가 넘는 작물의 종자를 보관하고 있다. 영구동토층의 지하에 마련된 저장고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각국에서 기탁한 씨앗들을 보관하고 있는 현대판 노아의 방주이다. 경북 봉화군의 산속 지하에도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관리하는 저장고가 있다. 여기에는 약 20만점의 야생식물 종자를 보관하며 기후와 멸종의 위기를 버텨낼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씨앗은 적당한 환경을 만나면 당장에라도 발아하여 성장할 수 있고, 조건이 안 맞으면 수천년을 버티며 미래를 기다릴 수 있다. 다음 세대와 미래를 품고 있는 씨앗은 우리에게 잠재력과 가능성, 그리고 희망의 상징이다. 우리 사회는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얼마나 다양한 씨앗을 준비하고 있을까. 때를 만나기 전에는 그 열매가 무엇일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발아할 조건이 맞으면 어느 틈에 싹을 틔우고 자라서 눈부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그런 씨앗들. 종자 회사에서 영리적 목적으로 개발한 보급형 종자들은 대부분 당대의 성장에 그치고 후대로 이어지는 씨앗은 맺지 못한다. 자연의 법칙을 따라 제대로 결실한 열매의 씨앗들만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

 

미래를 위한 씨앗 중 하나는 기초과학이다. 국제연합은 작년을 기초과학의 해로 지정하고, 올해부터 2033년까지를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과학의 10으로 지정하였다. 이는 지구의 미래를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과학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우리나라에선 올해 갑자기 국가의 연구개발 예산을 작년 대비 무려 28천억원이나 삭감하며 다양한 씨앗을 키우고 있던 기초과학과 기초연구의 현장들을 얼어붙게 만든 해프닝이 벌어졌다. 농부는 굶어 죽을지언정 종자를 지킨다는 속담이 소환되며, 종자를 먹어 치우는 어리석음에 비유된 이 예산 파동은 내년 예산을 다시 작년 수준으로 복원하면서 표면적으로는 일단락된 듯 보인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1년간의 냉해는 올해의 열매 수확에만 타격을 준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씨앗을 만들어내는 데에도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갑자기 불어닥친 의대 증원의 돌풍은 쓰나미가 쓸고 가듯 심각한 인력 이탈을 초래하며 과학기술 생태계를 더욱 피폐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이달 초에 발표된 과학 부문 노벨상 수상자들을 보면, 쓸모가 당장 보이지 않는, 열매를 가늠할 수 없는 그런 연구들을 시작하고 이끌어온 과학자들이 주를 이룬다. 마이크로알엔에이(microRNA)를 예쁜꼬마선충 벌레에서 발견해낼 때는 이 알엔에이가 인간에게서도 유전자의 발현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장차 치료제로 개발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지 못했다. 기계학습을 통해 성장한 인공지능은 수십년의 겨울을 거치면서 최근에야 꽃이 핀 연구의 산물이다. 지구상에 존재하거나 존재할 수 있는 모든 단백질의 구조를 예측하고 디자인할 수 있는 인공지능 도구는 수많은 구조연구의 데이터들을 밑거름 삼아 열매를 맺었다.

씨앗에는 관심이 없고 당장 눈에 보이는 과일만을 속성으로 재배하려는 사회에서는 이런 업적을 기대할 수 없다. 우리는 노벨상을 바라기 이전에, 쭉정이가 아닌 튼실한 과학의 씨앗을 부지런히 많이 키워내야 한다. 바람이 제대로 불고 땅이 촉촉해지면, 우리의 토종 씨앗에서 자라난 나무들이 한강 작가의 작품처럼 세계가 인정하는 최상급 열매를 맺을 것이다. 농부의 마음으로 그런 환경을 힘써서 꾸준히 만들어주어야 한다.

노정혜 | 서울대 생명과학부 명예교수 | 한겨레 2024.10.17.

 

 

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폭력적인가

1970년대 후반 칼 세이건을 비롯한 몇몇 천문학자들은 성간 우주 탐사선 보이저호의 발사를 앞두고 두고두고 회자될 사랑스러운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린다. 그것은 외계인에게 지구를 소개하는 금속 레코드판을 별과 별 사이를 항해할 보이저호에 싣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골든 레코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레코드판에는 지구 사진과 인사말, 지구의 소리, 그리고 지구상 가장 아름답다고 선별된 일련의 음악이 실려 있다.  <지구의 속삭임>은 그 과정을 기록했는데 읽다보면 이 엉뚱하고도 순진한 프로젝트가 사람들을 얼마나 몰두하게 만들었는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콧대 높은 유엔의 관료들도 한마디씩 덧붙이고 그들의 인사 뒤에는 지구의 또 다른 지적 생명체인 혹등고래의 노래소리가 흐른다. 유엔 사무총장과 미국 대통령의 인사말이 실린 파트를 지나면 55개의 언어로 사람들이 인사한다.

보이저 2호 동체 겉면에 붙어 있는 골든 레코드. 지구의 위치 등에 관한 간단한 정보가 표기돼 있고, 내부에는 지구에서 발생하는 각종 소리와 인간의 일상을 닮은 정보가 내장돼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공

 

지구의 소리는 지구의 진화 과정을 담는다. 화산과 지진과 천둥소리, 끓어오르는 진흙탕 소리, 바람과 비와 파도 소리, 귀뚜라미와 개구리와 하이에나와 들개 소리, 발소리와 심장 뛰는 소리 그리고 웃음소리가 들린다. 또 인류 진화 이후 지구에 등장한 소리들, 이를테면 양치기, 대장간, 모스 부호, 로켓 이륙 소리 따위가 뒤를 잇는다. 듣다보면 황량한 원시 지구의 검고 뜨거운 땅 위에 서 있다가 한바탕 생명의 진화를 되돌아 겪은 뒤 다시 이곳으로 도착하는 듯하다.

골든레코드는 외계인에게 안녕하고 인사하면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소개하고, 우리가 가진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한다. 자연스럽게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가 드러난다. 그렇다면 중요한 문제. 우리가 가진 최악의 면 역시 레코드판에 담아야 할까?

 

지구의 사진을 담당한 존 롬버그는 비교적 쉽게 이 문제를 정리한다. “우리는 전쟁, 질병, 범죄, 가난을 전시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지구의 소리를 담당한 앤 드류안은 망설인다. “우리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면, 달리 말해 서로 싸우는 종으로 보여준다면, 이 레코드판이 최소한 정확한 문서로서의 가치는 가진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칼 세이건은 밀고 나간다. “우리가 자신의 최선의 측면만을 우주에 보여주려는 게 잘못인가? 우리는 최고의 음악들을 고르려고 애썼다. 인류와 인류가 앞으로 누릴지도 모르는 미래에 대해서도 절망적인 시각이 아니라 희망적인 시각을 전달하면 왜 안 되는가?”

지구의 사진과 소리 부분에서는 결국 인류의 비극이 의도적으로 누락됐다. 그러자 나는 이 프로젝트와 약간 멀어지고 말았다. 나는 전쟁, 질병, 범죄, 가난을 겪는 사람들, 부러진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 의도적으로 누락되는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어두운 소식을 전할 때마다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던 순간이 머릿속으로 지나갔다.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에 어째서 내가 무언가 보상받는다는 느낌이 들었을까. 그것은 한강이 아시아 여성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폭력적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비극을 누락시키기보다는 비극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인류의 최악의 측면에서 최선의 측면을 발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정보를 담은 파트에서는 어두운 소식을 모두 잠재우지만 아름다움을 담은 파트에서는 보이저 레코드판도 이를 빼놓지 못한다. 수록된 마지막 음악은 환희와 고통, 평화와 괴로움이 공존하는 베토벤의 카바티나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응시해온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해 기쁘다. 이런 날들을 지날 때면 예술의 힘을 좀 더 믿게 된다. 어둡고 차가운 곳에 머무느라 어둡고 차가워진 날들을 좀 더 긍정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아는 것에 대해 말할 때보다 느끼는 것에 감탄할 때 진실에 더 가까워지는 게 아닐까.

하미나 <아무튼, 잠수> 저자 | 경향 2024.10.17.

 

‘5만전자와 십상시, 그리고 뉴삼성의 딜레마

2009년 늦가을 마침내 애플 아이폰이 국내에 상륙해 삼성의 혼쭐을 빼놨다. 2010년엔 지펠 냉장고가 돌연 폭발해 사상 최대 21만대 리콜에 나섰다. 그즈음 반도체공장 산재를 다룬 반올림 갈등도 불거졌다. 2년여 만에 다시 삼성을 맡았을 때는 불산가스 누출로 하청노동자가 숨졌다.  2년여 만에 돌아온 2016년엔 갤럭시노트7 폭발까지.

모두 삼성 출입기자로서 겪은 일들이다. 돌이켜보니 삼성이랑 참 이 질기다. 사실 삼성에 위기 아니었던 적이 없다.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성패를 갈랐을 뿐.

 

이건희 회장 생전인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이 연말에 사면복권을 단행했다.  떡값검사 뇌물공여 X파일 사건 등으로 물러난 이 회장의 경영복귀 신호였다. 시민사회의 비판이 들끓었다. 다만 난 좀 다른 판단을 내렸다. 그의 복귀는 일면 타당하다는 메시지를 냉정히 담았다. 이유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아니다. 바로 아이폰 3GS.

아직까지 LG 초콜릿폰과 함께 연아의 햅틱으로 저 거대한 항공모함 노키아를 반쯤 격침시킨 삼성은 기세등등했다. 사실은 코앞에 빙산이 다가왔는데도 말이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반파당해 침몰 직전 상태였다.

 

이건희 회장의 진두지휘가 없었더라면 홍길동폰’(쇼옴니아)이란 수모까지 견뎌 지금의 갤럭시폰은 되지 못했을 거다. 1995년 삼성 구미사업장에서 애니콜 등 불량품 15만대를 전량 폐기한 화형식 정도의 결기가 때론 필요하다. 아니면 단기성과에 급급한 월급쟁이 사장과 다를 게 뭔가.

애니콜부터 지펠, 갤노트, 불산, 반올림과 최근 반도체 논란까지 관통하는 공통분모는 뭘까. 바로 원칙 내지 기본기다. 그걸 지키지 않은 채 누적됐을 때 끝내 곪아 터지기 마련이다. 이건 마누라랑 자식까지 다 바꾸더라도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철칙이다.

 

요사이 삼성 반도체 위기설이 파다하다. 그러나 외부인은 파운드리가 어떻고, HBM이 저떻고는 대충 퍼즐만 맞춰보는 정도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기자들은 종종 청와대, 국정원은 취재 가능해도 삼성의 내막은 알아낼 수 없다고들 한다. 어쨌거나 세상 사람들이 삼성은 위기라고 떠드는 거야말로 적어도 위기의 전조다. 우리의 제일주의 삼성이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과연 3세 경영세습에 정력을 허비해서일까.

근래 파운드리, HBM 문제를 아우르는 특징이 있다. 두 사업에서 삼성이 보기 드물게 이란 사실이다. 삼성도 더러 을인 분야는 있다. 하지만 세상에선 보통 갑 같은 을이라 부른다. 그러나 파운드리와 HBM에선 고객사 입맛에 맞춰줘야 하는 찐을을 겪는 중이다. 삼성에는 도전거리다.

 

이건희 회장 체제에선 월화수목금금금 근무를 자랑처럼 여겼다. 양의 축적을 통한 질적 변화를 추구하는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 전략이 먹혔다. 이제 그이의 유훈인 창조경영은 예전과는 완전 다른 방식을 요한다. 단지 호칭·직급 파괴, 출퇴근·복장 자율화 정도로는 담보하지 못한다. 그간의 조직문화를 갈아엎어야 할 수도 있다. 현장기자 때 애플·구글과 비교하며 삼성을 그토록 비판했지만, 돌아보니 과욕이었다. 세계를 호령하는 미국의 빅테크 ‘M7’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히피문화에 기반한 자유와 창의 위에 비로소 꽃피우고 열매 맺은 것들이다.

최근 여기저기서 전현직 삼성 반도체맨의 심경 토로가 이어진다. 예컨대 D램 메모리 성공 경험을 잣대로 상명하복식으로, 너무 세세한 부분에 책임을 따지니 일을 못하겠다는 원성이 들린다. 타사나 해외로 간 이들은 개발을 마음 놓고 할 수 있어 너무 좋다고도 한다. 이재용 회장은 주위를 조용히 물린 채, 전직 삼성맨들을 만나 날것 그대로의 쓴소리부터 들어보고 실마리를 찾길 바란다.

전병역 경제에디터 | 경향 2024.10.17.

 

.‘··가 세상을 바꾼다

··? 데이터와 논리와 타이밍의 준말이다. 기업이든 정당이든 국가 기구든 모든 조직이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데이터에 근거한 논리로 타이밍 있게 추진을 해야 한다. 데이터는 숫자가 아니다. 데이터는 특정 목적을 위해 수집된 다양한 정보의 집합이다. 숫자의 데이터화 과정은 죽은 것을 살려내고, 버려진 것을 회수하고, 의미 없던 것을 의미 있게 만드는 과정이다. 데이터에 기반한 논리적 싸움(논쟁)은 그 자체가 사회적 공감대 형성 과정이다. 따라서 데이터에 기반한 논쟁은 치열할수록 좋다. 이러한 논쟁을 통해 여론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수렴되고 정책의 실효성은 높아진다. 설사 정책이 실패하더라도 빠른 대처가 가능해서 회복도 빨리할 수 있다. 현실의 불합리한 점은 분노로 표출되지만 이의 제도적 개선은 반드시 데··타가 따라야 한다.

바로 얼마 전 우리는 데이터에 기반한 치열한 논쟁을 한 적이 있다. 바로 2007 4월에 최종 타결되고 2012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다. 당시 나라가 양분될 정도로 찬반 진영의 논쟁이 치열했다. 특히 의료·농업·자동차·지식재산권 분야의 논쟁이 치열했지만, 그 시작과 끝은 양 진영의 데이터에 기반한 논리 대결이었다. 이러한 치열한 논쟁은 정부 협상단의 협상력을 그만큼 더 높여주었다. 그 결과 시행 후에도 미국 측의 요청으로 두 번이나 수정되었지만, 우리는 정권이 몇 번 교체되어도 큰 논란 없이 이어지고 있다. 데이터에 기반한 치열한 논쟁의 결과다.

 

중대재해 정확한 데이터 없어

이와 비교되는 정책이 의대 학생 ‘2000명씩 5년간 증원이다. 숫자만 있고 데이터가 없다. 2000명이란 숫자만 제시하니 의료계도 영(0)이란 숫자로 답을 할 뿐이다. 실질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거대 야당은 이럴 때 정연한 논리로 정치력을 보여줄 수 있음에도 못하고 있다. 데이터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특정 목적을 위해 다양하게 수집·분석·추계된 데이터가 없으니 논쟁이 안 되고 홀로 외침만 있다. 그 외침도 처음에는 비판·비난·협박 논조였으나 이제는 호소에 가까운 외침으로 변했다. 정부는 2026학년도 증원을 제로(0) 베이스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숫자를 얘기할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데이터를 제시해야 한다. 데이터가 있어야 데이터의 근거를 가지고 논쟁이 시작될 수 있다. 논쟁이 되어야 여론 수렴이 가능하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것 아닌가.

의료정책은 ESG(환경·사회·거버넌스)의 사회적 가치(S)에 해당하는 중요한 정책이다. 그리고 정책 결정 과정의 난맥상은 거버넌스(G)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의료정책을 한 예로 들었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ESG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부족하다. 아직까지도 우리나라는 ESG를 친환경 행위쯤으로 이해하는 이가 많다. 사회적 운동으로서의 ESG는 각 조직의 특성에 맞게 하면 된다. 그러나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ESG의 계획과 실행은 명확한 데이터에 기반해 이뤄져야 하며, 이 데이터에는 측정·보고·검증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글로벌 기업들도 데이터의 중요성을 잘 모르고 있다. 지속가능보고서의 자료집(fact book)을 보면 숫자만 나열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숫자에 의미를 붙여주는 데이터화는 애써 외면하고 있는 곳이 많다. 예를 들어 법정 장애인 고용률은 전체 정규직 고용인원의 3.1%임에도 대부분의 기업이 장애인 고용 숫자만 표시하고 데이터(%)는 표시를 안 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계산을 해보면 모두 3.1%에 한참 뒤떨어진 수준이다. 반면에 한 기업은 남녀 임금격차가 축소되고 있음을 10년치 숫자를 나열하고, 격차율(%) 축소 추세를 그래프로 보여주고 있다.

 

1만명과 400명 사업장이 같나?

이처럼 숫자를 데이터화하면 숫자의 의미가 살아나 문제점과 대책 포인트를 알게 해주는데도 그 간단한 것을 안 하고 있다. ESG의 환경(E)에서 중요한 요소가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율이다. 이는 정부의 전력정책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여기에도 숫자 싸움만 있지 데이터에 근거한 논쟁이 없다. 탈원전이든 친원전이든 데이터에 기반한 논쟁은 없이 숫자를 일방적으로 정해놓고 싸울 뿐이다. 2030년 재생에너지 목표(%)는 지난 정부 30.2%에서 이번 정부는 21.6%로 낮추었다. 이유는 실현 가능성을 전제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실현 불가능하다. 지금 재생에너지 사업허가를 받아도 전력 계통 접속은 2031년에 가능하다. 그 사이 전력수요는 늘어날 것이므로 2030년 재생에너지 비율은 현재(10%)보다 오히려 낮아질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생에너지 공급설비 숫자만 정하고 수요관리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뒤늦게 심각해진 문제가 송전설비다. 이는 전·현 정부 모두의 책임이다. 이제 특별법을 제정해 추진하겠다고 하지만 2030년 이후에나 이루어질 일이다.

사회적 가치(S)에서 중요한 게 중대재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효과에 대한 논쟁은 없고 논란만 있다. 고용노동부에서 분기별로 발표하는 중대재해 현황을 보면 숫자만 있지, 이를 분석한 정밀한 데이터는 없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비판하는 경제단체, 옹호하는 시민단체, 사회 현안을 공론화해야 할 언론도 반성해야 할 점이다. 시민단체들이 이슈화하는 중대재해는 사회적 대참사도 있지만 대부분이 정규직 1만명 규모의 대기업 중대재해다. 그리고 그것도 데이터가 아닌 숫자를 강조한다. 중대재해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데이터를 만들어야 한다. 창원의 한 스테인리스 철강 업체는 11개월 사이에 3명이나 사망했다. 정규직 기준 직원은 400명 정도다. 1만명 사업장으로 환산하면 75명이나 된다. 2번째 사고가 났을 때 50명 규모의 사고에 준하는 경각심을 주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회사 사장은 아직까지 사과를 안 하고 버티고 있다.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해선 인과관계를 분석한 다양한 데이터로 교육을 하고 책임에 상응하는 처벌이 필요하다.

세상을 바꾸려면 데이터에 기반한 논리를 개발해 타이밍 있게 추진해야 한다.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 | 경향 2024.10.17.

 

 

오빠는 필요 없다

오빠.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는 두가지다. 하나는 혈연가족 내에서 손위 남자 형제를 지칭하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남남끼리에서 나이 어린 여자가 손위 남자를 정답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을 뜻한다. 친오빠를 부를 때 여동생이 그 호칭에 정다움을 넣어서 호명하는 경우는 살면서 별로 본 적이 없다. 한국의 남매 관계성이란 사이가 좋은 경우에도 내놓고 다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런데 남남인 사이에서 자신을 오빠라고 불러달라는 남자들이 있다. 정다운 사이가 되고 나면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한 호칭이 정해질 텐데 일단 오빠라고 불리기만 하면 자동으로 그런 사이가 될 거라는 주술적 믿음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다. 국어사전에는 오빠에 대한 세번째 정의가 수록되어야 한다. 오빠.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강요하는 성 역할 중 하나로,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가 될 것을 강요하는 호칭.

한국 여자들의 사회생활은 오빠라고 불러달라는 이들에게 오빠라고 불러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오빠라고 부른다고 해서 사회생활이 언제나 더 편해지는 것은 아니고, 모든 남자가 연하의 여자에게 오빠라고 불리는 것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자신을 오빠라고 불러주기를 원하는 남자들이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들은 자신에게 오빠라고 불러주는 여자와 오빠라고 불러주지 않는 여자를 아주 노골적으로 차별한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 6회에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장면이 있다. 극 중 마케팅 피디(PD)로 나오는 한주(한지은 역)에게 감독은 피피엘(PPL)을 찍고 싶으면 배우, 감독, 매니저 등 모두 남자인 현장에서 여자로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써보라며 오빠라고 불러보라고 한다. 명백히 부당한 요구다. 하지만 사회생활이란 게 어디 그런가. 현장은 멈춰 있고 촬영은 속행되어야 하는 상황. 한주는 마음을 다잡고 혼신의 연기를 시작한다. 오빠옵빠오퐈옵뽜오빠옵빠오퐈옵뽜~ 배우의 목소리가 아직도 머리에서 울릴 정도의 명연기였다.

 

여성학자 전희경이 2008년에 낸 책 오빠는 필요없다에는 진보적이면서도 끝끝내 오빠를 하고 싶어 하는 남자 선배들에게 도전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그로부터 10년 뒤 강준만은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여성 인권을 지지한다며 생색을 내고 싶어 하는 오빠들이 사실 가부장제가 얼마나 견고한지 알기 때문에 여유를 부리고 있으며 오빠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방식으로 페미니즘을 길들이고 있다고 직격했다.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 작가는 현남 오빠에게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을 통해 동등한 관계보다는 오빠 노릇을 하고 싶어 하는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처럼 오빠가 상징하는 남성 중심의 지배질서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런 문화와 거리를 두는 여성들이 있는가 하면 오빠라는 호칭을 쓰는 데 아무런 위화감을 가지지 않는 여성도 있다. 검건희씨와 명태균씨가 카카오톡 메시지로 주고받은 내용에는 오빠가 등장한다. 대통령실에서는 이 오빠는 남편인 윤석열 대통령이 아니라 친오빠라는 해명을 내놓았지만, 둘 중 누구라고 해도 김건희씨가 오빠 뒤에서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인 듯하다. 김건희씨가 만약 권력을 원했다면 직접 자신이 나서서 검증을 거쳤어야 했다. 하지만 김건희씨가 권력을 발휘한 방식은 선생님들을 모셔놓고 그 앞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며 사적 친밀성에서 나오는 영향력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정통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권력 있는 남자의 어머니나 아내나 딸이 되는 것 외에는 길이 없었다. 이 정부가 늘 주장해왔던 것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건희씨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이 바로 구조적 성차별의 명백한 증거다. 아무리 무식하고 철이 없어도 오직 남자를 통해서만 권력에 접근할 수 있고, 다른 어떤 능력보다도 남자를 오빠라고 부르는 능력이 가장 중요한 사회를 우리는 성차별이 구조화된 가부장제 사회라고 부른다. 김건희씨가 지금의 정치권에서 존재하는 방식 자체가 가부장제가 여전히 굳건히 작동하고 있는 증거라는 말이다. 김건희식 오빠 정치도 오빠 중독자들의 정치도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

권김현영 | 여성현실연구소장 | 한겨레 2024.10.18.

 

 

평양의 무인기가 말해주는 것

평양 상공에 나타난 북한 무인기를 둘러싸고 여러 말들이 나온다. 도대체 누가 어떤 이유로 평양의 가장 번화한 구역 바로 위에 전단을 실은 무인기를 날려 보냈을까.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통일 독트린을 발표하자 용산 대통령실은 이를 추가로 설명하면서 북한 주민의 정보 접근권 확대를 강조한 바 있다. 확성기 방송 등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에 대한 의식을 고양시킨다는 취지다. 이 발표가 있고 나서 정부나 민간단체가 풍선만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 더 많은 전단과 물품을 보내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얼마 전 탈북 단체는 바람의 방향이 맞지 않자 강물에 전단과 물품을 실어 북으로 보내는 새로운 수법도 보여주었다. 그러니 무인기에 전단을 실어 보내는 아이디어쯤이야 충분히 나올 법하다. 더 과감하고 다양하게 북한에 전단을 보내라고 민간단체를 격려하고 고무하는 정부 역할을 간과하고 이번 사태를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민간 탈북 단체가 무인기를 보냈더라도 이는 정부와의 협력 속에서만 가능하다. 촘촘한 감시망이 있는 군사분계선을 관통하는 비행체를 군이 묵인하거나 안내하지 않는다면 민간단체가 어떻게 평양 상공을 농락하는 고도의 작전을 할 수 있겠는가.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무인기 자체보다 살포된 전단지다. 어쩌면 이번 사태의 비밀을 푸는 열쇠는 누가 만든 무인기냐보다 누가 만든 전단지냐를 확인하는 데 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국군 심리전 부대들은 대북 확성기를 다시 설치하고 방송하는 심리전에 착수한 상태였다. 특히 지난해부터 심리전 부대가 확성기뿐만 아니라 다량의 전단을 제작하여 비축하기 시작했다는 제보가 필자에게도 도착했다.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이번에 평양에 살포된 전단지가 보존 상태가 깔끔하고 표현 수위도 통제되어 있다는 점은 군의 비축용 전단지는 아닌지 강한 의심이 들게 한다. 남은 국정감사 기간에 야당 의원들은 국군 심리전단의 전단 제작과 비축 실태를 정밀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필경 군에서 이 전단을 제작했다면 국군 인쇄창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이런 의혹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민간단체의 전단 제작에 정부가 개입했을 가능성은 있다.

 

이런 일련의 전개는 무엇을 말해주나. 탈북 민간단체는 윤석열 정부의 통일 전쟁에서 용병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북한에 대해 정부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민간단체가 정부의 역할을 상당 부분 담당하는 새로운 유형의 회색지대 전쟁(gray zone warfare)이 시작되었다는 느낌이다. 이제까지의 군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국토를 방위하는 데 주된 임무가 있었으나 앞으로는 탈북자들과 합동으로 북한의 정권 교체와 체제 전환이라는 더 높은 수준의 임무를 수행하는 통일의 주력으로 전환될 조짐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가지 문제가 있다. 정부의 통일 전략으로 촉발될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북한도 역시 회색지대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예컨대 김포·인천공항에 다량의 풍선이나 드론을 날려 보내거나 서북 도서에서 위력적인 무력시위를 벌이면 과연 우리는 대처할 수 있겠는가. 그다음으로 정부가 통일 우호세력이라는 탈북자 민간단체나 외국의 제3세력을 과연 제대로 통제할 수 있을까. 2014 10월에 탈북 단체의 전단 살포가 남북 간의 격렬한 교전으로 이어진 바 있다. 당시 대구 비행장에는 확전에 대비하여 F-15K 전투기가 공대지 미사일을 탑재하고 출동 대기 중이었다. 당시 김관진 안보실장은 군에 무한대의 강경 대응을 주문했다. 기관총과 소총 수준에서 멈추었기에 망정이지 까딱하면 전쟁 날 뻔했다. 윤석열 정부가 10년 전의 상황을 재현하면서도 정작 국가의 위기를 예방하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이는 외환(外患)의 죄를 범하는 셈이다.

 

언제부터인가 ‘2025년 통일이라는 망상이 권력 주변에서 확산되면서 정체불명의 무인기가 출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다음은 무엇인가. 지금 남과 북이 전면전을 수행할 의도나 능력은 크지 않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서도 일어날 것이라는 불안이 일상화되면 그것이 바로 회색지대 전쟁이다. 올해 2월에 바로 그 이유, 즉 군사적 긴장으로 주가가 폭락했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이 고조되면서 여당은 선거에서 참패했음을 기억하라.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 한겨레 2024.10.18.

 

 

김건희 나라'의 아부꾼들

기어코 김건희 여사 무혐의로 결론 내린 검찰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발표에서 따로 주목한 건 발표 시점이다. 보궐선거 결과가 나온 17일로 잡은 건 부산 금정구청장 선거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는 속셈일 터지만, 바로 다음날이 서울중앙지검 국감이라는 점에서 의문이 들었다. 국감을 앞둔 부처는 사전에 무리한 정책 발표를 미루는 통상적인 관행에 비쳐볼 때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검찰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 가담 사실을 부인하고 뚜렷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는데 언제부터 피의자 진술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는지 의문이다.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처럼 사전에 정해 놓은 무혐의에 맞지 않는 증거를 잘라냈으니 진실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그러니 당당하게 국감에 나가서 논리를 설파하면 된다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대통령실이 등을 떠밀었을지 모르나 '친윤 검사'인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이 먼저 손을 들었을 공산도 크다.

 

김 여사 육탄방어 나선 사정기관장들

'김건희 무혐의' 특명을 안고 이례적으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된 그는 더 높은 곳을 보고 있을 것이다. 국민의 손가락질보다 당장은 살아있는 권력에 충성해야 검찰총장이 될 수 있다는 욕심이 앞섰을 게다. 'V1'을 넘어 'V0'로 확인된 김 여사의 눈밖에 나면 어떤 경을 치는지 '정치 검사'들은 놀라운 후각으로 알고 있다. 정권이 바뀌어 검찰이 해체 수준으로 망가지든 말든 그건 나중 얘기다.

윤석열 정부에는 이창수 같은 사람이 도처에 널려 있다. 조지호 경찰청장은 11일 국감에서 김 여사 마포대교 순시 당시 "교통통제는 분명히 없었다"고 반복해 말했다. 그러다 마포대교 인근에서 연달아 접수된 교통불편 신고 112 녹취록이 공개돼 궁색해지자 서울경찰청에 답변을 떠넘겼다. 바통을 넘겨 받은 김봉식 서울청장은 한 술 더 떠 "통제는 없었지만 교통관리는 했다"는 기상천외한 답을 내놨다. 음주운전은 했는데 술은 안 마셨다는 거다.

 

"감사원은 대통령을 지원하는 기관"이라는 소신을 가진 최재해 감사원장은 국감에서 김 여사 관저 공사 개입 의혹에 "아무 근거도 없는데 김 여사를 왜 조사하냐"는 황당한 답변을 했다. "무속인 개입이 왜 위법인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김 여사 추천이 아니었으면 감히 무자격 업체가 대통령 관저를 공사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게 감사원이 할 일이다. 민간인인 무속인이 정부 공사에 관여했다면 그 자체로 위법이라는 것도 상식이다. 독립적 헌법기관의 위상을 김 여사 구하기에 내동댕이 친 셈이다.

국가의 사정기관장들이 일제히 김 여사 육탄방어에 나서는 모습은 도저히 정상적인 정부의 형태라고 볼 수 없다. 이 나라가 오직 김건희 한 사람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에 부역하는 이들은 끊임 없이 통치자의 심기를 살펴 명령에 따라 충성을 다하는 것이 본인의 역할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한다. 그래야 부끄러움 없이 좋은 자리를 얻고 개인의 영달을 꾀할 수 있어서다.

 

'바이든-날리면' 듣기평가에 이어 온 국민을 읽기평가 테스트로 몰아넣은 '오빠=친오빠' 해명을 한 용산 참모들은 어떤가. 김 여사와 가까운 대통령실의 '7간신'은 더하면 더했지 다르지 않을 거다. 아부꾼과 간신들의 특징은 권력이 기울었다 판단되면 누구보다 먼저 등에 칼을 꽂고 달아난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권력에 빌붙은 호가호위이지 영원히 함께할 의리와 충성이 아니다. 어차피 '김건희 나라'는 그들에게도 시한부일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간신들이 득세하는 건 주군의 필요에 의해서일 경우가 많다. 아부꾼과 간신이 끊이지 않았던 까닭은 그들의 존재가 군주에게 이익이 됐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도 그들에게 한줌의 권력을 나눠주며 공생의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 나라가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 역사는 수도 없이 일깨워줬다. 우리도 그 길로 향하는 것 같아 두렵고 참담하다.

이충재 | 오마이뉴스 2024.10.19.

 

 

믿을 걸 믿어야지, 미국을 믿다니

미국 대선과 총선이 채 두 주 밖에 남지 않았다. 미국 내에선 당연히 관심이 높지만, 세계인들의 눈과 귀는 미국 대선 이상으로 요동치는 세계 정세에 쏠려 있다. 러시아의 승리를 목전에 둔 우크라이나 전쟁, 3차대전의 가능성까지 품고 있는 이란-이스라엘의 격돌, 고조되는 중국-미국의 경제전쟁과 군사적 긴장 등.

여기서 기이한 것은, 패배를 눈앞에 두고도 끝까지 싸워 승리!’를 외치는 우크라이나, 국제적 고립과 전략적 패배를 알면서도 학살, 암살, 테러, 공습!’을 외치는 이스라엘, 불길한 후폭풍을 예감하면서도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을 자극하는 남한 일본 대만 필리핀 등의 행태다.

이들은 왜 이러는 것일까? 미국을 뒷배로 믿고 따르기 때문이다. “미국의 적이 되는 건 위험한 일이지만 친구라고 믿다간 죽어.” 이들에게 미국의 정체를 간명하고 날카롭게 묘사한 키신저의 경구를 일깨워주고 싶다. 적이든 동맹이든 필요하다면 가차 없는 폭력과 사기에 가까운 이중성을 발휘하는 게 미국이다. 이런 미국을 제일 믿는 건 이스라엘이다. 힘을 믿고 밀어붙이고 있지만, 둘 다 국제적 고립이라는 전략적 패배의 딜레마로 빠져들고 있다.

지금 일촉즉발인 이란-이스라엘 격돌의 결정적 계기는 헤즈볼라 지도자 나스랄라의 암살이다. 그의 죽음은 이 금언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믿을 걸 믿어야지, 미국을 믿다니.’

 

임시 휴전안 수락 발표 직전 H. 나스랄라 암살?

이미 널리 알려졌듯, 한 달여 전인 9 27일 이른 밤(베이루트 시각), 이스라엘군은 베이루트 남쪽, 헤즈볼라 사령부를 공습, 회동 중인 지도자 나스랄라를 포함, 일군의 정치 및 군사 지휘부를 암살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헤즈볼라는 지도부의 안전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암살 관련 보도나 시사 유튜브를 종합해보면, 그날 헤즈볼라의 경계는, 이란의 사전경고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느슨했다. 왜 그랬을까? 결정적 이유는 임시 휴전안 때문이다.

9월 하순 유엔총회 및 안보리 기간, 프랑스와 미국 등은 헤즈볼라-이스라엘 간에 21일 동안의 임시 휴전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휴전안은 레바논을 통해 헤즈볼라로, 미국을 통해 이스라엘로 전달됐고, 두 당사자도 동의했다. 그래서 유엔 주변에서는 네타냐후가 금요일, 27일의 총회 연설에서 휴전안 수락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실제는 달랐다. 금요일 오전(뉴욕 시각), 총회장으로 가기 직전, 네타냐후는 군의 헤즈볼라 지도부 암살 작전을 승인했다.(사진 참조). 그리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방을 나섰다.

 

유엔총회 참석차 머문 뉴욕 숙소에서 전화로 군의 헤즈볼라 공격을 승인하는 네타냐후. 서 있는 사람 왼쪽 비서실장, 오른쪽. 군 각료. 출처: 9 27일 예루살렘포스트에 실린 총리실 배포 사진

회의장에 도착, 연단에 선 네타냐후는 1시간 가까운 연설을 이어갔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모든 곳, 또 중동 어디도 공격할 수 있다가 핵심 메시지였다. 맘만 먹으면 누구든 죽일 수 있다는 협박이었다. 그 협박을 사실로 입증하듯, 연설이 끝난 직후, 이스라엘 공군은 베이루트로 출격, 나스랄라에 대한 테러 공습을 벌였고 죽였다.

 

미국의 이중 플레이

나스랄라는 휴전안을 믿었다. 프랑스와 미국 역시 외교 노력이 성공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프랑스와 미국, 나스랄라 모두는 속았고, 그는 처참하게 살해됐다. 네타냐후의 이스라엘은 휴전은커녕 더 큰 전쟁의 도화선을 당겼다. 4일 후인 10 1, 이란은 철통같다는 이스라엘의 아이언돔 방공망을 뚫는 대규모의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그동안 미국의 공식 입장은, ‘헤즈볼라와의 군사적 대결은 중동 전역으로의 확전이 우려되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레바논 공격 자제를 요청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상 미국은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사이에서 이중 플레이를 벌였다.

이스라엘에 헤즈볼라 공격을 은밀히 부추긴 미국 관리들이라는 제목의 9 30일 자 온라인 매체 폴리티코의 기사.

 

일군의 백악관 고위 관리들은 미국의 공식 입장과 반대로 이스라엘에 대 헤즈볼라 군사작전을 부추기고 다녔다.(관련 기사 사진 참조) 이해영 교수는 바이든은 NSC(국가안보위) 중동 조정관과 이스라엘군 출신 안보 보좌관을 통해 사적으로 혹은 비공식적으로 전쟁을 추동해 왔다고 지적했다. , 협상을 강조하지만, 백악관은 이스라엘의 작전을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함으로써 이들은 레바논 공격을 준비하던 네타냐후에 힘을 실어 주었다. 달리 말하면 휴전안을 미끼로 벌인 미국의 이중 플레이에 나스랄라는 암살되고, 가자에서 레바논, 시리아, 결국 이란까지, 전쟁은 확대됐다. 심지어 이스라엘은 이젠 레바논에 주둔한 유엔평화유지군까지도 공격하고 있다.

 

거짓과 속임수는 미국의 주특기

트럼프 정부에서 CIA 국장을 지냈던 M. 폼페오는, 지난 2019년 한 대학 강연에서 웨스트포인트 생도규범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속임수 쓰지 않는다, 그런 행동을 용납하지 않는다지만, CIA는 사기 치고, 속이고, 훔치는 조직이다라고 자랑하듯 털어놓은 적이 있다.(사진 참조). 그것이 실은 CIA뿐 아니라 국무부와 백악관을 포함, 미국 정부의 일관된 대외정책의 기조(?)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시작은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민스크 협약이 사실상 사기였다는 데서 출발한다. 전쟁 발발 한 달여 만에 이뤄진 종전 협상마저 미국의 반대로 파기됐다. 대리전에 나선 우크라이나는 패망을 목전에 두고 있다. 북한의 핵을 오늘날처럼 키운 계기도 미국의 협력 약속 불이행이다. 1994년 미국이 북한의 핵 프로그램 동결을 조건으로 제시한 제재 해제, 발전소 건설 및 에너지 지원 약속은 사실상 지켜지지 않았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철천지원수(?)처럼 대하는 이란과의 문제 한복판에도 미국의 책임이 놓여 있다. 2015년 미국과 이란은 독일, 러시아, 영국, 유럽연합, 중국, 프랑스 등과 함께 포괄적 이란 핵협정(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약칭 JCPOA)’을 타결한다. 이란 핵무기 개발중단과 경제제재 해제를 맞교환한 것으로, 이란과 미국의 오랜 긴장 관계를 푸는 매우 의미 있는 진전이었다. 협정 타결의 이면에는, 핵발전 연료 생산을 위한 이란의 우라늄 농축, 즉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노력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미국의 약속이 있었다. 이란은 협정을 준수했고, 이는 국제적으로도 확인됐다. 그런데 정작 제재 해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게다가 트럼프는 2018, ‘부실한 협정이고 이란이 약속을 위반했다며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애초부터 협정반대-협정탈퇴를 위해 노력해온 이스라엘 정부와 로비 단체는 트럼프의 결정을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이들에게 미국의 외교는 사기에 가까운 이중적 행태의 다른 말일 뿐이다.

스스로에게도 사기 치는(?) 미국

생각해 보면 키신저의 말은 다른 나라는 물론 미국 자신도 되새겨야 한다. 더는 사실이 아닌 미군 최강! 미국 최고!’를 믿는 것이 스스로에게 독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중국, 북한 등과 세 개의 핵전쟁을 동시에 치러 승리할 수 있다며 자신을 독려한다. 목전에 다가온 우크라이나 전쟁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미국 중동외교의 지휘관이라는 사실을 애써 부정한다. 암살 테러가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킨다는 걸 알면서도 참수 작전의 승리라고 자축(?)한다. 중국과의 격돌을 감당할 역량이 모자라면서도 군사적 긴장상태를 조성한다. 남한, 대만, 일본, 필리핀 같은 나라들이 중국을 자극하도록 부추긴다.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다극화 시대가 오고 있다는 지정·경학적 변동의 현실을 보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쪽에는 G7 다른 한쪽에는 브릭스를 그린, 다극화 시대를 상징하는 삽화.

요약하면 미국은 자신이 지구적 범위의 난장판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 동시에 미국 밖에서 지구적 범위의 거대한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그 때문에 미국의 위상과 신뢰도가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미군 최강, 미국 최고라는 망상, 스스로도 지키지 않는 자유, 민주, 가치 질서 같은 허황한 구호가 합작해 빚어내는 엄중한 현실이다. ‘믿을 걸 믿어야지, 미국을 믿다니라는 말은 이런 의미에서 미국 스스로에게도 해당하는 금언이다.

 

패권 망상에 매달리는 미국

협상이 아니라 사기에 가까운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대화가 아니라 우선 총부터 드는 미국.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보다 미국 역사가 그렇다. 미국은 건국 이래 19세기까지 조약 파기는 물론, 침략과 정복 전쟁으로 원주민 인디언을 죽이고 밀어내며 영토를 확장했다. 거의 같은 방식으로 남미를 장악했고, 2차 대전 이후 지금까지, 미국을 거스르거나 반대하는 정부나 집단은 봉쇄, 암살, 회유, 쿠데타, 경제제재, 전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제어 또는 제거하고 있다.

두 번째는 그 연장선상에서 미국이 수립한, 특히 1960년대 이후 변함없이 이어지는 미국의 헤게모니,  패권 유지라는 거대전략이다. 군사적 개입과 상대를 기망하는 이중적 외교는 이 전략의 실천 전술 중 하나고, 전략과 전술을 수립하고 유지하는 주체는 군산정언학 복합체다. 이 복합체의 일부로서, 민주당과 공화당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트럼프가 자신이 당선되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는 것은 좀 더 일찍 수습에 들어가겠다는 것일 뿐, 미국의 패권 전략이나 군사 개입 노선 자체를 바꾸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패권은 하락 중이고 패권 전략은 안팎의 도전과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말할 나위 없이 미국은 강한 나라다. 그러나 영구전쟁으로, 이중적 사기술로, 천문학적 빚더미로 위기 극복의 역량은 바닥 수준으로 떨어졌다. 변하지 않는 한, 미국은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사이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900여 킬로미터 떨어진 볼가강 유역의 도시 카잔에서는, 이번 22일부터 24일까지 열여섯 번째 브릭스 정상회의가 열린다. 다른 세계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

김평호 저술가·전 단국대 교수 | 시민언론 민들레 2024.10.19.

 

윤석열 부부가 모르는 것 한가지

역대 대통령들이 저지른 과오들엔 그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국민의 입장에서 결코 용납할 수는 없어도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는 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예컨대, 탐욕에 이성이 마비되어 저지른 범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탐욕 때문에 몰락한 지도자들이 무수히 많았기에 개탄은 할망정 왜 그랬는지 몹시 궁금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 정치는 정치학의 영역을 탈출해 정신분석학의 영역으로 성큼 들어서고 말았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를 임기 초부터 계속 보여주고 있는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와 그가 무슨 일을 하건 우상처럼 숭배하기만 하는 대통령 윤석열의 경우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 왜 그들은 한사코 일관되고 집요하게 자신들을 망치는 자해를 일삼으면서도 그걸 전혀 모르고 있는 걸까? 왜 대통령 측근 인사들은 대통령 부부는 물론 나라까지 망치는 그런 엽기적 자해를 구경만 하고 있는 걸까? 단지 윤석열의 격노가 무섭기 때문인가?

 

지난 17일 한국의 대표적 보수 논객들은 칼럼을 통해 일제히 김건희 체제의 종언을 요구하고 나섰다. 보수마저 이제 더 이상 김건희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고 나선 셈이어서 의미심장하다. 이제 막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 명태균 게이트가 드디어 컵의 물을 넘치게 한 마지막 한방울이었을까?

국민들이 언제까지 여사의 이런 처신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 대통령실이 2, 3류들에게 농락당한 장면을 목격하면서 구정물을 함께 뒤집어쓴 느낌이다.”(조선일보 논설주간 김창균) “공직 활동도 부인이 챙겨줘야 하는 사람이 대통령이라면, 나라가 무너질 일이다. 그러니 선임행정관이 대통령을 꼴통으로 여기고”(동아일보 대기자 김순덕) “국민의 인내심이 임계치에 달해서다. 윤 대통령은 나라와 부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

 

김건희는 우리 남편은 바보다. 내가 다 챙겨줘야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지, 저 사람 완전 바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 남편을 챙겨주기 위해 대통령 업무에 이런저런 개입을 했다는 의혹을 받게 된 걸까? 그러나 최근의 마포대교 공개 시찰 논란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내가 정권을 잡으면 어떻게 하겠다거나 저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끊어지면 적극적으로 남북문제 (해결에) 나설 생각이라고 말했던 걸 보면 이른바 대통령 놀이에 심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럴 자격이 있는가? 법적 자격만을 묻는 게 아니다. 무례하게 들릴망정 진실을 말해보자. 김건희는 다른 일에선 영악할지 몰라도 정치적 언행에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리숙하고 경솔하다. 김건희와 사적으로 나눈 말이나 문자를 폭로해 정치판을 요동치게 만든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탓할 필요는 없다. 한번은 큰 배신이나 사기를 당할 수도 있지만, 세번 연달아 그런 일을 당하는 사람이라면, 속된 말로 타고난 봉 체질이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공적 업무를 맡아선 안 된다.

윤석열 부부가 모르는 게 하나 있다. 대통령 탄핵에 대해서 말이다. 민주당의 대통령 탄핵 공세가 사납게 전개되던 지난 8월 조선일보 논설실장 박정훈은 민주당 기준대로라면 문재인 정권 5년간 탄핵을 정치 쟁점화할 기회가 수두룩했지만 당시 야당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박근혜 탄핵의 피 맛을 보았던 민주당 눈에는 참으로 순진하게 보였을 것이다라고 했다. 순진하다 못해 어리석은 건 문 정권과의 그런 비교를 통해 탄핵은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고 믿는 윤석열 부부의 생각이다.

 

그래서 지난 1월 중순에 나온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 김경율의 경고를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이름으로 환원시켜 펄펄 뛰었을 게다. 다시 말하지만, 당시 그의 메시지는 역사란 무슨 거창한 사건과 명분만이 아니라 매우 사소하게 시작된 일이 야기한 집단적 감성의 폭발에 의해 이루어지거나 바뀔 수 있다는 것, 사소하게 여긴 명품 백 하나가 윤 정권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대중은 권력의 나쁨보다는 어리석음에 더 분노하며 폭발하는 법이다. ‘박근혜 탄핵을 복기해보라. 폭발의 티핑포인트는 최순실이 박근혜의 연설문을 미리 받아 보고 첨삭했다는 사실을 밝힌 제이티비시(JTBC) 최순실 태블릿 피시(PC)’ 특종 보도였다. 윤석열 부부는 지금 그때와 매우 비슷한 분위기와 상황에 놓여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겠다. 비판이 아니라 나라를 위한 호소다. 더 이상 탄핵을 재촉하지 말고, 국민께 사죄하면서 김건희의 대통령 놀이를 완전히 끝장내면 좋겠다

강준만 | 전북대 명예교수 | 한겨레 2024.10.21

 

 

여론조사 중독정치

최근 명태균-대통령 부부 스캔들로 국회 국정감사장이 뜨겁다. 이 스캔들은 아직 조사나 수사가 많이 진전되기 전이라,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가늠하기 힘들다. 지금까지 나온 통화 녹음이나 증언만 보더라도 공직 인사나 정부 부처 정책 결정에 넓게 걸쳐 있는 국정 농단, 국민의힘 당내 경선과 공직선거 공천 개입, 정책 정보 사전 유출을 통한 이권 추구 등 다양한 의혹들에 대한 진실 규명이 필요해 보인다. 오늘은 명태균을 이 다양한 스캔들의 중심에 서게 만든 핵심 수단, 여론조사 결과 조작에 초점을 맞춰보려 한다.

 

“(보통) 500~600개의 샘플을 추출한다고 할 때 40만원의 전화 비용이 든다.  그런데 2000개 샘플로 결과 보고서를 쓰라고 했다.  이 얘기는 500개 샘플에다가 곱하기를 하라는 것”, “20대와 30대의 윤석열 당시 후보 지지를 20% 올리라는 것은 20대와 30대 중 윤석열 후보 지지 응답에 곱하기를 해서 결과 보고서를 만들라는 지시.”(2024 1021일 법제사법위원회, 강혜경 증인 발언 중)

지난 21일 국회 법제사법위 회의장에서는, 명태균과 강혜경이 나눈 전화 통화 녹음이 여러건 공개되었다. 강혜경은 그중 한 대화 내용에 대해 위와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강혜경은 명태균의 지시를 받아 여러건의 여론조사를 실행한 사람이다. 위 진술은 몇가지 하위 정보로 나눌 수 있다. 첫째, 2000명을 조사했다고 보고한 한 여론조사 결과는 실제 600명을 넘지 않는 사람만 조사한 결과다. 둘째, 조사된 500명의 응답을 2000명의 응답으로 부풀리는 방법은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다. 셋째, 명태균은 그중에서도 20~30대 응답자의 응답 결과 중 윤석열 후보 지지 응답자의 비중을 부풀려 왜곡하는 방법을 쓰라고 콕 집어 지시했다.

명태균은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강혜경이 지금까지 여러 언론과 법사위 회의장에서 공개한 통화 녹음 내용과 진술을 통해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지난 대선 국민의힘 후보 선출 당내 경선 과정에서 윤석열 후보의 승리를 위해 한 활동이다. 명태균은 윤석열 후보가 홍준표 등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경쟁자보다 더 높은 여론의 지지를 받는다고 정보를 조작하는 것이 당내 경선 승리 전략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명태균이 시도한 여론조사 결과 조작이 국민의힘 당내 경선에 실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와는 별개로, 그는 그렇게 생각했고 이런 그의 생각에 당시 윤석열 후보도 동의한 것 아닌가 의심할 수 있다. 강혜경의 주장에 따르면, 명태균은 수십차례에 걸친 여론조사 결과를 윤석열 후보에게 종종 보고했다.

 

다시, 명태균은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강혜경은, 그가 국민의힘 당내 경선과 대통령 선거 기간 전체에 걸쳐 윤석열 후보의 당선을 위해 수십차례에 걸쳐 공표용, 비공표용 여론조사를 진행했고,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여론조사에 들어간 비용을 받으러 갔다가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을 받아왔으며, 김영선 전 의원의 세비 절반을 받은 것은 윤석열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노력한 대가 중 일부였다고 한다. 그가 얻은 또 다른 대가는 2022년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정치인들로부터 수수한 돈도 있었고, 대통령 윤석열의 국내외적인 공적 업무에 부인 김건희를 통해 개입할 권력을 얻은 것도 있었으며,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는 명성을 토대로 많은 국민의힘 정치인들에게 접근해 그들을 위해서도 여론조사 결과를 조작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리하자면 명태균은 여론조사 정보 조작의 대가로 돈과 권력, 명성과 정치인 연줄을 얻었다는 것이다.

대체 여론조사가 무엇이길래, 명태균이라는 개인에게 이처럼 엄청난 대가를 가져다줄 수 있는 수단이 되었을까? 문제는 여론조사 자체가 아니라 여론조사 결과 조작이 돈과 권력, 명성을 낳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유권자가 될 사람만 주목하게 만드는 선거제도가 지속되는 한, 여론을 조작해서라도 될 사람으로 인식되려는 정치인들의 욕망을 제어하기 어렵다. 정당들이 여론조사로 당직자와 공직 후보자를 선출하는 관행을 끊어내지 못하는 한, ‘명태균들의 일자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경마식 여론조사 보도가 일상인 언론의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한, 유권자들의 여론조사 중독도 치유되기 어렵다. 정치와 언론이 만들어낸 여론조사 중독, 디톡스가 시급하다.

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 | 한겨레 2024.10.23.

 

 

정치인은 죽고, 시인은 살게 하라

한국에 백범 김구가 있다면 세네갈에는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1906~2001)라는 정치인이 있었다. 생전 헌신적으로 조국을 위해 일했고, 사후 많은 이들이 존경심으로 기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상고르는 정치 지도자로서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게 시인이자 지식인으로서 명성도 높다. 프랑스 국립학술원 회원이었고, 서구 주류 문학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국내에서도 1970년대 그의 시선집 검은 영혼의 춤’(민음사)을 발간했다.

그는 흑인 문화의 정체성, 그 가치와 철학을 특화해 네그리튀드라는 흑인 문화 운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프랑스에서 유학해 주류 사회에 편입했지만 사회주의자였고, 사회주의자였지만 프롤레타리아 혁명 등 전통적 방식을 배격하고 서방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고, 아프리카에서 드물게 일찍이 평화적 정권교체를 실천했다.

그는 시를 통해 정치인은 죽게 하고, 시인은 살게 하라고 일갈했다. 독립한 세네갈의 초대 민주 대통령이 됐고, 다양성의 가치로 개별 국가들이 존중받으며 공존하는 질서를 만들고자 분투했다. 그럼에도 국가와 공동체의 힘은 정치가 아닌, 결국 문화에서 나옴을 역설한 셈이다.

 

노벨 문학상 발표 뒤 한국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아프리카 먼 나라의 수십년 전 정치인이자 시인인 상고르의 간절한 바람이 몸으로 체감된다.

국 최초의 노벨 문학상은 개인 한강의 놀라움과 기쁨이다. 또한 작가와 작품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한국문학, 나아가 한국 사회 전체가 누려야 할 영광이자 위로다.

그늘과 상처, 결핍을 자양분으로 삼고 자라는 것이 문학이다. 우리의 슬프고 굴곡진 현대사는 역설적으로 문학의 토양을 넓고 비옥하게 만들었다. 1980 527일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에 숨진 고등학생의 짧은 삶이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로 되살아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의 역사 속 형제와 친구는 서로 고통을 떠안기는 상황에 내몰려야 했으며, 국가의 폭력은 무고한 개인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희생을 안겼다. 해방 전후 제주와 여수, 대구가 그랬으며 민주화 과정 서울, 마산, 부산 등 한반도 곳곳이 그랬다. 수십년이 흘렀건만 살아남은 이들은 병든 짐승마냥 피울음을 삼키며 깊은 상처를 핥고 불면과 고통의 나날을 지내야 했다. 그 숱한 개인들의 핍진한 사연이 밤하늘의 별만큼 많다. 시와 소설의 몸을 빌려 그 하나하나의 서사가 고통스럽게 꽃피운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만큼이나 많은 한강들이 배출될 수밖에 없는 역사를 살아온 셈이다. 노벨 문학상은 단언컨대 우리 질곡의 역사에, 우리 공동체에 건네진 소중한 위로다.

그럼에도 현실 정치의 자장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채 각자가 갖고 있는 좁고 비뚤어진 가치와 역사관으로 작가 한강을 재단하고, 문학을 난도질하는 모습이 기가 막힐 따름이다.

정치가 문화예술인을 무더기로 블랙리스트로 분류하고 예술과 예술인의 삶을 고사시키려 했던 야만적 정치 행태에 사법적 단죄가 내려진 지 몇년 지나지도 않았다. 성찰도 교훈도 없었다. 다양성의 가치에 대한 존중은커녕 진영 대결에 기반한 역사 왜곡과 일방성만 판을 치는 행태가 더 극심해지고 있다. 세계는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섰다는 평가로 한강의 문학적 성취를 높이 치하했건만 한국 사회 한쪽에서는 역사를 왜곡했다는 둥, 상을 취소하라며 헐뜯기 바쁘다. 그들에게 동원된 논리의 배경에는 고스란히 정치가 있었다. 타협과 양보, 배려와 존중 등 정치의 순기능이 아닌, 대립과 갈등을 부채질하는 역기능으로서 정치였다.

 

다시 세네갈의 상고르와 한국의 백범. 서로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활동했지만 둘의 삶은 묘하게 닮았다. ‘내가 원하는 자유는 공원의 꽃을 꺾을 자유가 아니라 꽃을 심을 자유라고 말한 백범은 민주공화국에서 자유의 본질적 가치를 역설했다. 상고르 역시 자유로움 속 다양한 가치와 문화의 존중을 통한 흑백, 강대국과 약소국의 공존을 간절히 원했다.

오직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했던 백범이 노벨 문학상 소식을 듣는다면 지하에서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으리라. 그러다가 21세기 문화 강국이라는 한국 사회의 모습이 백주 대낮에 자신이 암살된 해방 직후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 앞에 입을 닫아버릴지 모를 일이다. 다양성의 가치가 존중받는 속에서 비로소 시인도, 예술도, 정치도 살 수 있다.

박록삼 | 언론인 | 한겨레 2024.10.24.

 

인공지능 시대

2016 3월 한국에서 바둑을 가장 잘 두는 프로 기사 이세돌과 구글 딥마인드 회사의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 사이에 바둑 시합이 벌어졌다. 이세돌은 자신이 이길 거로 예상했으나 4  1로 패배했다. 그 시합이 끝나자 알파고를 개발한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대표는 우리는 달에 착륙했다며 기뻐했다. 이후 유사한 시합이 중국 최고수들과 있었으나 결과는 같았다. 그는 바둑 프로그램 개발에 쓰인 컴퓨터 기술을 딥러닝(Deep Learning)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컴퓨터가 다양한 정보를 입력해 결과를 산출하는 데에서 나아가 컴퓨터 스스로 주어진 정보를 토대로 학습해 보다 개선된 결과를 얻는 것이다. 그 이전에도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들이 있었으나 이들은 컴퓨터의 단순한 연산 능력에 바탕한 것이었다. 즉 컴퓨터 프로그램이 인류가 그간 쌓아온 과거 대부분의 시합을 빠른 시간에 복기하여 활용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도 최고수가 되면 과거의 수 정도는 잘 알고 있으므로, 종전 바둑 프로그램이 사람을 이기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알파고는 달랐다. 이 프로그램은 사람이 둔 바둑을 모두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딥러닝 방법에 따라, 예컨대 알파고 프로그램 간의 상호 시합을 통해서 새로운 수들을 찾아내는 등 경기력을 월등하게 향상시켰다. 이 과정은 사람의 두뇌 활동과 유사한 컴퓨터 신경망을 통해서 이루어졌으며 이는 새로운 차원의 컴퓨터 기술이었다. 바둑은 사람이 생각해낸 게임 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경우의 수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제 그 단계를 컴퓨터 인공지능이 능가한 것이다.

 

알파고를 만든 허사비스는 알파고와 이세돌의 시합 뒤 바둑 프로그램 개발은 더 이상 하지 않고 향후 딥러닝 기술을 의학 등 산업계 전반에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로부터 8년여가 지난 109일 그는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존 점퍼와 함께 딥러닝 방법을 써서 단백질의 구조를 밝혀낸 업적으로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하였다. 그 전날 발표된 노벨 물리학상 또한 인공지능의 아버지라고 알려진 제프리 힌턴 등 인공지능 연구자들에게 공동 수여되었다. 이렇듯 인공지능은 모든 과학 기술과 산업 부문에서 경이적인 발전 속도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바야흐로 인류가 새로운 정보혁명의 총아라 할 인공지능의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인공지능 쏠림은 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인공지능 연구는 많은 자본이 소요되는 분야인데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 거대 정보를 다루는 미국의 대기업이 이끌고 있다. 한국은 2023년 연구개발 예산을 줄여 과학계로부터 비판을 받은 바 있고, 인공지능 연구자 3대 유출국으로 알려져 발전 속도에서 뒤처지는 아쉬움이 있다.

 

현재 인공지능 연구는 2022 11월 오픈에이아이(AI)사에서 개발한 대화형 프로그램 챗지피티(GPT)를 비롯하여 가전제품, 인공지능 로봇, 의학, 생화학, 약학, 첨단 무기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각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인공지능의 발전 정도가 지금보다 훨씬 커져 그 수준을 가늠하기 어렵게 되면, 여러가지 고려가 필요할 수 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2017 인공지능의 출현에 대비하지 않으면, 인류는 멸망할 수 있다며 인공지능의 잠재적 위협에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오픈에이아이의 수석 연구자였던 일리야 수츠케버 등은 이 기업에서 수행하는 인공지능 개발과 관련하여 적절한 통제와 관리를 하지 않으면 인류가 장차 큰 재앙을 맞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난 8월 발효된 유럽연합의 인공지능법(Artificial Intelligence Act)은 이런 우려에 대비하고, 고위험 인공지능으로부터 인간의 기본권과 민주주의, 법치,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우리의 경우는 아직 인공지능 전반을 다루는 입법은 마련되지 않았고, 11개 인공지능 관련 법안이 국회에 발의되어 논의 중이다.

 

인공지능은 그 목적과 기술의 발전 정도에 따라 약인공지능(Weak AI)과 강인공지능(Strong AI)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약인공지능은 특정 주제의 분야에서 주어진 일을 인간의 의도에 따라 수행하는 인공지능으로, 문제 해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 등 인간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대부분의 인공지능은 약인공지능의 범주에 속한다. 반면에 강인공지능이란 컴퓨터에 인간과 동일한 수준의 지성을 구현하고자 하는 시도인데, 컴퓨터 공학과 통계학뿐만 아니라 인간의 지각능력과 의식에 대한 철학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매우 복잡한 분야다. 여기서 사람이 만든 인공지능이 사람과 유사한 능력을 가진 데에서 나아가 사람의 능력을 넘어 마침내는 사람의 통제를 받지 않는 상황을 상상해 볼 수 있는데, 그 지점을 인공지능의 특이점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것은 기계가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실을 유추해내는 추론능력뿐만 아니라, 시각, 촉각, 청각 등 감각기관으로 받아들인 정보를 통해 세상을 인지할 수 있는 지각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다소 인식론적이고 모호한 질문에 대한 답을 탐색하면서 인간의 고유 영역인 주체성 부분과 의식의 영역까지 거론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머지않아 인공지능 기술이 더욱 발전하여 사람의 신체 일부분까지 기계로 대체 가능하다면, 이는 사람과 기계의 협업 시대, 급기야 에스에프(SF) 영화에서 보는 터미네이터처럼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시대가 도래할 수 있음을 예고하는 것인지 모른다.

 

문학평론가 김명인은 이번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작품들에 대하여 그의 소설들에는 질문들은 무성하나 대답은 없다. 쓰고 있는 작가 역시 대답을 모른 채 질문의 형식으로 소설을 끌고 간다. 이것은 탈근대, 혹은 후기 근대적 글쓰기의 전형이다라고 하여 그의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문학적 보편성을 비주류 소수자·약자들의 언어 대변에서 찾는다. 이는 마치 거대 정보와 언어 학습 모델의 인공지능 시대와 맞닥뜨린 우리 사회 대중들의 당혹스러운 모습을 은유하는 듯하다. 초기술사회에 진입한 우리는 지금 어디쯤 와 있으며, 과연 제대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석태 | 전 헌법재판관 | 한겨레 2024.10.24.

 

용산의 '하트 여왕' '이상한 나라'의 한동훈

'정권 재창출' 의지가 없는 대통령, 그리고 대선주자 한동훈

중국의 대문호 루쉰을 인용할 때도 느꼈지만,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좌파 작가의 작품을 곧잘 인용한다. 좋은 일이다. 이번엔 자본주의의 모순을 파헤쳐 온 무정부주의자 어슐러 르 귄의 SF 소설을 인용했다.

 

"김건희 여사 관련 이슈들이 모든 국민들이 모이면 얘기하는 불만의 1순위라면 마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처럼 더불어민주당을 떠나는 민심이 우리에게 오지 않는다."(한동훈 대표, 23일 확대당직자회의)

이 말엔 몇 가지 중요한 상황 판단이 들어있다. 먼저, 한 대표는 '보수 결집'보다 '중도 확장'이 중요하다는 걸 안다. 둘째, '김건희 리스크'가 지금 중도 확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본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유죄가 선고될 경우 민주당에 마음이 가 있던 '중도층', 그들이 한 대표가 포섭해야 할 '타겟'이다.

 

해법은 제대로 짚었지만, 중요한 건 한 대표가 처한 상황이다. 한 대표가 언급한 오멜라스는 어슐러 르 귄의 단편 소설 속에 등장하는 부조리한 유토피아다. 왕도, 노예도, 경찰도 없는 오멜라스의 사람들은 행복하지만, 그 행복은 한 어린아이의 비참한 삶을 집단적으로 방치함으로 얻어진 행복이다. 오멜리스가 행복한 건 양심의 가책을 느낀 사람들이 오멜라스를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오멜라스엔 '양심' '행복'을 교환한 사람들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영원히 '행복함'을 유지할 수 있다.

한 대표는 민주당을 소설 속의 오멜라스에 비유하고 있는데, 정작 한 대표 본인이 처한 상황은 여왕이 통치하던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이 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토끼굴이다. 오멜라스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보다, 하트 여왕이 통치하는 이상한 나라를 헤매고 있는 한 대표의 처지가 더 딱해 보인다.

 

지난 21일 윤-한 차담은 여러모로 괴이한 회동이었다. '윤석열 원더랜드'의 문을 열고 혈혈단신 용산에 발을 디딘 한 대표를 에워싼 건 대통령이 거느린 수많은 카드 병정 같은 참모들이다. 소설 속에서 하트 여왕이 주관하는 기묘한 크로켓 경기를 본 앨리스는 기겁한다. 공은 살아있는 고슴도치고 방망이는 살아있는 플라밍고다. 카드 병정들이 손과 발을 사용해 고슴도치가 통과할 아치를 만들고 있었다. 하트 여왕은 게임을 도중 '저놈의 목을 베어라'라고 연신 소리를 지르고 있다. 크로켓 경기가 끝날 때쯤엔 모든 병정들이 목을 베이는 형을 선고받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사는 세계는 보통의 정서로 설명될 수 없다. 지난 4월 총선 참패 원인은 한동훈이어야 하고, 지난 당대표 선거에선 원희룡 대표가 선출돼 있어야만 하는 세계다. 카드 병정을 거느리며 국정을 주무르고 있는 하트 여왕이 왜 문제인지 왕은 잘 모른다.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자. 여왕이 '목을 베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사형 집행인은 '몸이 없는 머리는 벨 수 없다'고 항변하고 있고, 하트 여왕의 남편인 왕은 '모든 머리는 벨 수가 있다'며 하트 여왕을 대신해 아무런 의미도 없는 논쟁을 벌이며 국사를 논하고 있는 기괴한 형국. 하트 여왕은 왕과 재판관을 향해 "선고를 먼저 내리고 재판은 나중에 하라"고 소리치고 있다.

 

현실로 돌아와 보자. 대통령은 "집사람이 많이 힘들어한다" "활동을 많이 줄였는데 그것도 과하다고 하니 더 자제하려고 한다"고 말했고, "(한동훈이) 나와도 계속 일 해 왔지만 나와 내 가족이 무슨 문제가 있으면 편하게 빠져나오려고 한 적이 있나"라고 오히려 반문한다. '김건희 라인' 참모들을 경질하란 요구엔 "누가 어떠한 잘못을 했다고 하면 구체적으로 무슨 행동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얘기를 해줘야 조치를 할 수 있지 않나"라며 거부했다. 대통령실이 공개한 회동 사진엔 '김건희 라인' 의전비서관과 한 대표가 같은 프레임 속에서 박제됐다. 굴욕적이다. 하긴, 이상한 나라에 온 건 앨리스의 잘못이지, 애초에 하트 여왕의 잘못은 아니다.

 

하트 여왕으로부터 '머리를 베어라'라는 선고를 언도받고 재판정에 선 앨리스가 지금 '오멜라스'를 바라보며 걱정을 하고 있는 꼴이다. 소설 속 앨리스는 여왕을 향해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며 "너흰 그냥 카드 한 벌일 뿐이야"라고 외친 후 꿈에서 깨어나게 된다. 한 대표는 그럴 수 있을까?

 

'-한 회동'에서 성과가 있다면 윤석열 대통령에게 '정권 재창출' 의지가 없다는 걸 확인했다는 점이다. 한 대표는 당대표에 출마하며 "정권 재창출"을 강조하며 "만약 1년 뒤쯤 그게 저라면 저는 당연히 (대선에) 나온다"고 말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부산 범어사를 찾아 '무구무애(인생을 살면서 허물이 없어 걸릴 것이 없다)가 적힌 족자를 받아 들고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고 다짐했다.

대선 주자 한동훈의 목표는 '정권 재창출'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그럴 의지가 없다. 한 대표는 '중도 확장'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그럴 의지가 없다.

 

앨리스가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여왕을 향해 반기를 들었듯, 한 대표가 정권 재창출을 목표로 한다면 '차별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한 대표는 지금 겹겹의 딜레마에 처해 있다. 첫째, 한 대표가 인식하고 있는대로 '중도 확장'을 목표로 한다면 대통령과 영부인을 둘러싼 의혹을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 대통령의 경우엔 한 대표가 약속한 채상병 특검이 해법이 될 것이고, 영부인의 경우엔 김건희 특검이 해법이 될 것이다. 이 경우 대통령 탈당, 나아가 '분당'까지 각오해야 한다.

둘째, 한 대표가 설사 분당을 막고 보수 단일 대오를 유지하며 대통령 부부에 대한 처분을 '국민 눈높이'에 맞추는 데 성공했다 치자. 본인이 대권을 꿈꾼다면 대한민국 유권자들이 '검찰 대통령'을 연속 두 번 선택할 수 있게 만드는 명분을 제공해 줘야 한다. 한 대표가 언급한 어슐러 르 귄의 오멜라스는 지금 검찰의 모습과도 같다. 영부인의 범죄 혐의를 방치한 대가로 '영원한 행복'을 구가하고 있는 '검찰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붙잡기 위해선 친정을 향해 개혁의 칼을 들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 대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이 어려운 일들을 전부 해낼 수 있는가? 욕심을 버리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사즉생이다. 보수를 살리고 본인의 대권을 포기할 때, 오히려 길은 열릴 수도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박세열 기자 | 프레시안 2024.10.26.

 

 

이러다 다음 전쟁터는 한반도가 된다

지난 며칠간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란 심란한 뉴스를 지켜보며 마음이 너덜너덜해졌다. 그동안 한반도를 둘러싸고 적잖은 위기설'이 나돌았지만, 이번만큼 진짜 전쟁이 터질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에 시달린 적은 없었다. 숨이라도 돌릴 겸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 8월 초 펴낸 정책 구상집(‘보수정치가 이시바 시게루나의 정책, 나의 천명’)을 꺼내 읽다, 그가 강연 때마다 청중들에게 소개한다고 강조한 쇼와 16(1941) 여름의 패전 책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

이 책은 80여년 전 일본이 저질렀던 뼈아픈 판단 미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일 개전을 앞둔 1940 9월 일본 정부는 국가총력전의 방책을 연구해 국책에 기여한다는 목적으로 총력전연구소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모인 이들은 육해군과 내무성·대장성·상공성 등 정부 부처, 일본제철·일본우선·도메이통신(현 교도통신의 전신) 등 주요 국책 기업에서 활약하던 30대 초중반의 엘리트들이었다. 이들은 개전을 코앞에 둔 1941 7월부터 전쟁 모의시험(시뮬레이션)을 진행해 초반엔 일본이 우위를 점하겠지만, 서서히 미국의 산업생산력 등이 발휘되고 소련도 참전해 3~4년 뒤엔 패배할 것이란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런 결론이 나왔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쟁을 피해야 했다. 그러자 도조 히데키 육군대신이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자네들 얘기도 알겠네만, -러 전쟁 때도 그랬듯이 전쟁은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네.” 결국 128일 진주만 공습이 이뤄졌고, 젊은 엘리트들의 예측대로 38개월 만에 일본은 항복했다. 책 제목이 암시하듯 일본은 개전하기 전부터 패전한 셈이었다.

 

국가정보원의 지난 18일 발표 이후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사실로 확인되며, 정부 안팎에서 험한 말들이 오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24일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지원을 검토해나갈 수 있다고 했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과 여당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인 한기호 의원은 우크라와 협조해 북괴군 부대를 폭격하고 이 자료를 심리전에 써먹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문자 대화까지 나눴다. 혈맹 관계를 회복한 북-러 동맹을 상대로 당장 전쟁이라도 벌일 기세다.

 

격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윤 정부가 추진해온 한·· 3각 협력 강화 노선 전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이 정부 요직에 들어앉은 이들이 유능했다면, ··러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정책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일이 쏟아내는 현란한 찬사에 취한 윤 정부는 폭주할 뿐이었다. 상대의 과도한 칭찬엔 늘 이렇게 해도 괜찮겠어? 결국 책임은 당신이 져야 하는 거야'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려대로 윤 정부 출범 불과 2년 반 만에 남북 관계는 파탄났고, -러 동맹이 복원되면서 30여년간 공들여온 북방 외교는 물거품으로 변했다. 조태열 외교장관이 24일 중국에 북핵 문제와 불법적인 러-북 협력에 적극 대응해주기를 기대한다고 했지만, 우린 맘대로 하면서 저들이 우리 뜻대로 움직일 거라 기대해선 안 된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23일 한국의 살상무기 지원과 관련해 가혹하게 대처할 것이라면서도 ·한은 훌륭한 교류와 상호 이해와 협력의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24~25일 지난 6월 서명한 -러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 4(상호 원조)를 언급하며 어떻게 할지는 우리에게 달린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 헌장 51조가 허용하는 집단적 자위권에 따라 우크라이나가 지난 8월 점령한 러시아 영토인 쿠르스크주를 탈환하는 데 북한의 원조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셈이다.

 

이런 변명을 액면 그대로 수용해도 곤란하겠지만, 러시아가 한국과의 관계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80여년 전 도조 같은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모험주의는 곤란하다. 상대가 우리에게 가할 수 있는 최악의 조처를 생각하면서 치밀한 시뮬레이션을 돌려야 한다.

그렇게 생각할 때 러시아가 겪는 고통은 일시적·국면적·전술적이지만, 우린 북한이라는 증폭 장치를 통해 영구적·전면적·전략적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러의 군사협력 정도에 따라 미국이 제공해온 확장억지’(핵우산)가 벗겨질 수도 있다. 폴란드와 발트3국엔 북한이 없다. 이대로 가면, 다음 전쟁터는 틀림없이 한반도가 된다.

길윤형 | 논설위원 | 한겨레 2024.10.27.

 

 

다시 전쟁이 나면 두 번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반도에서 두번째 전쟁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서로를 확실하게 파괴할 수 있는 남북한의 군사력 때문이다. 마치 병 속에 든 두마리의 전갈처럼 공격은 자살이고, 전쟁은 공멸이다. 그런데 지금 전쟁을 막았던 억지의 구조에 변화가 발생했다. 전후 가장 전쟁에 가까이 갔고, 남북한이 제한전쟁을 벌였던 1968년과 비교해 보면, 현재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 수 있다.

 

첫째, 전시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는 미국의 정세 관리 능력이다. 1968 121일 북한 무장 게릴라의 청와대 습격 사건 이후, 박정희 정부는 보복 공격을 원했다. 당시 미국의 린든 존슨 정부는 베트남 전쟁 때문에 한반도에서 또 다른 전쟁을 원하지 않았고, 원산 앞바다에서 나포된 푸에블로호 승무원을 구출하기 위해서 북한과 협상을 선택했다. 존슨 대통령은 사이러스 밴스 특사를 파견해서 박정희를 말렸다. 미국이 보복 공격을 막으면 베트남에 나가 있는 한국군을 철수하겠다는 박정희에게, 존슨 정부는 그러면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대응했다.

지금 한반도 정세를 관리하기 위한 미국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고 중동에서 전쟁의 불길이 번지면서, 한반도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정전 체제의 관리 책임이 있는 유엔사령부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대북 전단과 확성기 방송, 그리고 무인기 모두 정전협정 위반이면서 동시에 유엔사 규정 위반인데, 구경만 하고 있다. 조사가 아니라, 규정 위반의 재발을 막을 책임이 있다. 1968년 유엔사 사령관이 전쟁을 막기 위해, 남한이 보복 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어떻게 노력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둘째, 전통 우파와 뉴라이트의 차이다. 1968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술을 많이 마셨고, 술자리에서 온갖 지시를 내렸다. 장군들은 술에 취한 대통령의 보복 공격 명령을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려 위기를 넘기곤 했다. 존슨 대통령이 이런 내용을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밴스 특사는 한국의 장군들이 유엔사 사령관에게 고충을 털어놓았다고 보고했다. 정일권 총리와 이후락 비서실장이 밴스 특사를 찾아와 박정희 대통령을 말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때는 술에 취한 대통령을 말리는 관료가 존재했다.

뉴라이트는 전통 우파와 다르다. 뉴라이트는 전향의 열등감 때문에 대부분 극단적인 역사관을 갖고 있다. 전쟁 세대인 전통 우파는 전쟁에 신중하지만, 전후 세대인 뉴라이트는 너무 쉽게 전쟁 불사를 외친다. 전통 우파는 명분이라도 애국심을 내세웠지만, 뉴라이트는 대부분 사익을 추구한다. 뉴라이트는 과도하게 정파적이고, 공동체 윤리가 없다. 치명적 약점은 무능이다.

셋째, -러 관계의 차이다. 1968년 북한이 푸에블로호를 나포했을 때, 미국은 소련과 북한의 공모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소련은 몰랐다. 김일성이 1961년에 맺은 -소 우호조약의 자동 개입 조항을 거론했을 때, 소련은 조약이 공격이 아니라 방어에 한정된다고 선을 그었다. 소련은 북한의 푸에블로호 나포가 국제법 위반이고, 북한의 군사모험주의를 반대한다고 분명하게 전달했다.

 

지금의 북-러 관계는 달라졌다. 냉전 시대에 경험하지 못했던 결정적 변화다. 북한은 전쟁 중인 러시아에 포탄, 노동력에 이어 용병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북한도 러시아에서 받을 것이 많다. 특히 군사 분야의 협력은 한반도의 군사 질서를 바꿀 것이다. -러 관계가 전쟁터의 혈맹이 되면서, 한반도는 실질적인 신냉전 국면으로 전환했다. 역사적으로 한반도가 진영 대결의 공간으로 변할 때, 우리는 전쟁의 비극을 겪었다.

 

한반도는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 물론 여전히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가 급회전할 때, 과거의 경험에 기반한 관성적 판단은 틀릴 수 있다. 전쟁을 막았던 억지 구조의 균열은 과거와 다른 결정적 변화다. 차원이 다른 경각심을 가질 때다.

우선 전시 작전통제권을 가진 미국의 상황 관리 책임을 촉구해야 한다. 유엔사의 휴전 관리 책임도 적극적으로 물어야 한다. 미국 대선 전후 혼돈의 시기를 지혜롭게 넘길 수 있는 평화 세력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 1968년에는 술에 취한 대통령을 말리는 관료와 장군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정부 안에 없으므로 야당이 중심이 되어 평화를 위한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면, 두번째 전후의 세상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 | 한겨레 2024.10.27.

 

 

AI 에이전트가 몰려온다

사람들은 인공지능(AI)이 어디까지 왔는지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인공지능 스타트업 앤트로픽(Anthropic)이 지난 22(현지시각) ‘컴퓨터 사용 기능을 발표하자, 한 에이아이 컨설턴트가 이렇게 말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 일반 대중은 이런 변화를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날 앤트로픽이 공유한 시연 영상은 적잖은 충격을 던졌다. 인공지능이 키보드 입력, 마우스 커서 이동 등 컴퓨터 조작에 필요한 모든 작업을 스스로 수행한 것이다. 최신 인공지능 모델인 클로드 3.5 소네트 기반으로 작동하는 일종의 인공지능 에이전트(대리인)’ 기능이었다.

인공지능 에이전트란 특정 작업이나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에이아이 시스템을 의미한다. 주어진 환경에서 데이터 기반으로 결정을 내리고, 실질적인 작업까지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는 자동화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인간을 보조하는 걸 넘어 대신할 수 있는 까닭이다. 실제 업계에서는 이번 앤트로픽의 시연과 관련해 인공지능이 실제 직원을 대신할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실리콘밸리가 주도하는 이런 변화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다. 글로벌 시가총액 1위 기술기업 애플은 10월 마지막 주에 자체 인공지능인 애플 인텔리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일정·연락처 등 개인 정보를 기반으로 식당을 예약해주거나 이메일 답장 초안을 작성해주는 등 내가 해야 할 일을 인공지능이 알아서 처리해준다.

 

애플은 10억명 이상의 사용자를 보유한 영향력이 매우 큰 기업이다. 애플로 인해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일상으로 파고들고, 사람들이 익숙하게 사용하기 시작하면 산업 영역에서 인공지능 에이전트 적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그 영향이 가장 먼저 미칠 업종으로는 콜센터가 지목된다. 전화 응대 같은 반복적인 작업을 인공지능 에이전트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리 헤멜레이넨 매킨지 수석 파트너는 생성 인공지능 에이전트는 인사(HR), 재무, 고객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비즈니스의 모든 영역을 자동화할 수 있는 진정한 가상 노동자가 되고 있다고 짚었다.

콜센터뿐 아니다. 매킨지에 따르면 오늘날 글로벌 산업군 업무 시간의 60~70%는 이론적으로 생성 인공지능 등 기술 역량을 통해 자동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쏟아져 나오는 인공지능 에이전트, 자동화 물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중국과 유럽연합(EU)의 대응을 참고해볼 수 있다. 중국은 자국 기업에 대한 전폭적 지원으로 미국과 경쟁 구도를 만들었고, 유럽연합 역시 유로존 내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있다. 변화를 외면하기보다는 전략적·능동적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육성해 미국에 종속되지 않을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 분야 석학 조경현 뉴욕대 교수는 이와 관련해 오픈에이아이를 비롯한 선도적 인공지능 기업들은 정확히 어떤 데이터 세트를 가지고 자사 인공지능 모델을 훈련했는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수정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자체 거대 언어 모델’(LLM)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리콘밸리 인공지능 스타트업 퍼플렉시티의 아라빈드 스리니바스 최고경영자 역시 자국 데이터를 보호하고 독립적인 인공지능 생태계를 구축해야 글로벌 인공지능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실리콘밸리발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몰려온다. ‘주권적(sovereign) 인공지능 전략을 추진하는 동시에 인공지능 활용 교육, 일자리 감소·대체에 대비한 사회적 안전망 구축 등의 적극적 대응이 필요한 때다.

박원익 | 더밀크 뉴욕플래닛장 | 한겨레 2024.10.27.

 

정년 연장이 꺼내든 숙제

기업 임원으로 재직하다 정년퇴직한 70세 벤은 삶을 바삐 보내려 애쓴다. 세계 여행을 다니고 요가, 요리, 중국어도 배웠다. 그러다 삶에 난 구멍을 채우고 싶다며 한 인터넷 의류업체의 인턴사원으로 재취업한다. 편하게 입고 다녀도 된다는 사장 말에도 정장이 편하다며 양복에 넥타이 차림을 고수한다. 사장은 처음엔 선입견을 갖고 별 기대를 안 했지만 벤의 연륜과 노하우, 처세술에 점점 신뢰를 갖는다. 벤은 연애 상담이나 옷차림 조언을 해주는 등 젊은 동료들과도 격의 없이 지낸다. 영화 <인턴>의 주인공 이야기다.

 

흰머리에 주름이 가득하지만 인생 선배로서 멋지게 조직생활을 하는 벤 같은 사람을 영화에서 볼 순 있어도 현실에서 만나는 일은 드물다. 인구 구조가 바뀌면서 60·70대에도 일하는 사람이 늘었지만, 이들의 직장생활은 벤과는 많이 다른 게 현실이다.

취업 상태인 60세 이상 인구가 지난달 675만명에 달하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전 연령대를 통틀어 취업인구가 가장 많다. 20대 취업자 수가 357만명으로 절반 남짓에 불과한 것과 대조적이다. 55~79세의 경제활동참가율은 60.6%로 역대 최고다.

정년퇴직 연령인 60세 이후에도 일터를 떠나지 못하는 건 벤처럼 자아 실현을 위한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는 돈을 벌기 위해서다. 자녀 교육비나 집값이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인 한국에서 평생을 열심히 일했어도 정작 여유롭고 안정적인 노후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고령인구 중 연금을 받는 사람은 절반 남짓에 불과하다. 이들의 평균 연금 수령액은 월 82만원으로 1인 가구 최저생계비( 125만원)에 크게 미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한국이다. 이 때문에 고령층 10명 중 7명은 계속 일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노인 일자리의 대부분은 단기 일자리, 단순 노무직 등 불안정한 형태에 몰려 있다.

저출생·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된 한국은 생산연령인구가 줄면서 국가 경제의 기초체력도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다. OECD가 추정한 올해 한국의 잠재성장률(2.0%)은 우리보다 소득 수준이 두 배 이상 높은 미국(2.1%)보다 낮다. 고령층이 더 오래 일을 한다면 노동력 감소를 완충하는 효과가 있고, 소득 증가로 소비 여력이 커지면 내수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최근 행정안전부가 공무직 노동자들의 정년을 65세로 연장한 데 대한 긍정적인 여론이 높다. 전국의 정부청사에서 시설관리와 환경미화 업무 등을 담당하는 2300명이 대상이다. 대구시도 공무직 412명의 정년을 65세까지 늘리기로 했다. 대한노인회는 현재 65세인 노인 연령을 매년 1년씩 늘려 75세로 올리자는 제안을 내놨다. 관련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년 연장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다. 정년 연장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켜 결과적으로 청년 일자리를 줄일 수 있다는 게 대표적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들도 있다. KDI 정책포럼에 따르면 고용원 수가 10~999인 규모의 사업체에서 고령자 1명의 정년을 연장했을 때 20대 이하 고용은 0.2명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부터 60세 정년이 법적으로 의무화된 이후 청년 고용이 16%가량 줄었다는 한국노동연구원 분석도 있다.

결국은 고령층이 원하는 만큼 더 오래 일할 수 있게 하면서도 청년 고용에는 타격을 주지 않는 묘수를 찾아내는 게 핵심이다. 이미 국내 일부 대기업과 해외에서 하고 있는 퇴직 후 재고용이나 퇴직자에 대한 전직 지원 등의 사례도 충분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제도 설계도 필수다.

 

특히 소수의 좋은 일자리를 두고 고령층과 청년층이 제로섬 게임에 빠지지 않도록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근로여건이나 사업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중소기업의 경우 지금도 정년 이전에 회사를 관두는 경우가 많다. 이런 기업들의 근로조건을 끌어올리고, 필요하다면 정부 지원을 늘리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내년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찍으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안정적인 노후를 보장하고 사회적 비용과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논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이주영 경제부문장 | 경향 2024.10.27.

 

 

금융실명제와 금융투자소득세

정치인 한동훈에 대해 자세히는 모른다. 그렇지만 그가 금융투자소득세를 반대할 때, 그가 좋은 검사였을지는 모르지만 대통령이 될 준비가 되어 있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퍼펙트 스톰을 언급할 때, 그의 주변에 보수라도 제대로 된 경제학자가 없을 것이라는 의심마저 들었다. 그렇게 따지면 새로 도입할 수 있는 조세는 없다. 환경세나 탄소세 등 앞으로 논의해야 하는 미래형 조세도 많다. 경기 좋을 때만 새로운 세금을 도입하자는 것, 경제학에 그런 이론은 없다.

 

다시 30년 걸린 금투세 도입 기회

내가 생각하는 국민경제의 기본은 월급 받는 이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과세체계다. ‘유리 지갑이라고 불평하는 사람들과의 형평성, 이게 조세체계 기본이다. 튼튼한 국민경제는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들이 집도 사고 적당한 행복을 누리면서 큰 문제 없이 살 수 있는 경제다. 1인당 국민소득 상위권에 있는 스위스도 그렇고 미국도 마찬가지다. 이게 기본이다. 물론 우리는 점점 더 그 상태에서 멀어지고 있다. 청년들은 당대에 집 사긴 힘들다고 판단한다. 그래도 좋은 경제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한국이 일본보다 먼저 그리고 더 우수하게 한 정책은 별로 없다. 그렇지만 1993년 단행된 금융실명제는 한국이 선진국이 되는 기본틀을 만들었다. 국회의장을 지낸 김진표가 당시 실무를 맡았던 걸로 유명하다. 아쉬운 것은 이걸 더 먼저 할 기회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철희, 장영자 사건이 터지고 지하경제의 문제점이 전면화되면서 전두환 정권 때인 1982년 금융실명제 입법을 했었다. 그렇지만 정작 전두환 본인의 불법 정치자금 문제에 부딪히면서 법 실행이 유보되었다. 노태우도 집권하자마자 선진 화합경제라는 이름으로 금융실명제 예고는 했지만 시행하진 못했다. 결국 금융실명제는 10년 후 김영삼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당시 대통령의 인기는 연예인보다 높았다. 성공한 금융실명제의 후속 조치로 금투세 도입도 검토되었지만, 도입까지 가진 못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함께 선진국이 되기 위한 몇 가지 후속 조치 중 하나였다. 그때 했다면 우리의 21세기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한국이 다시 금투세를 도입할 기회가 생기는 데 30년이 걸렸다.

 

30년 전이라면 한동훈이 하는 이야기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 지금의 코스피 지수로 증권시장을 정비한 것은 1983년 전두환 정권이었다. 코스피의 기준 연도는 도입 시기인 1983년이 아니라 신군부가 집권한 1980년이다. 슬프게도 우리가 코스피를 볼 때마다 신군부가 집권한 그해를 기준으로 매일매일 비교하게 된다. 코스피가 정비되고 10년밖에 지나지 않은 1990년대에 한국의 증시는 불안정했다. 시기상조라는 말은 그 시기에 할 말이다. 한동훈식으로 이야기하면 한국은 영원히 금투세를 도입할 수가 없다. 증시가 안 좋으면 도입할 수 없고, 증시가 좋으면 하필 이때에 이런 이유로 도입할 수가 없다. 그냥 하지 말자는 이야기인데,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의 자세라고 보기 어렵다.

 

한동훈 방식이라면 영원히 못해

게다가 지금은 세수 오류 30조원 등 역대급으로 세수 관리가 어려운 시점이다. 재정 관리가 너무 어려워져서 당장 지방 교부금도 줄여야 하고, 유류세도 다시 올리는 등 허리띠를 조여야 하는 상황이다. 앞으로 국가를 운영하겠다는 사람이 너무 책임감 없다.

 

금융은 실물의 그림자다. 금융 자체가 실물을 지원하고 보완하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지, 실물경제와 상관없이 자기 혼자 걸어가는 것은 아니다. 실물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증시는 제로섬 게임이 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어디에서 오겠는가? 제도적으로 맹점이 아직 많고, 오너 독단으로 대기업이 운영되는 오너 리스크 등이 결국은 증시에 반영되는 것이다. 큰손 몇명에 의해서 증시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이라면, 그 자체가 핵심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크게 보면, 제도가 정비되면서 투명성이 높아지고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이 안정적인 투자자인 외국 연기금이 한국 증시에 유입되는 효과로 나타난다. 큰손에 흔들리는 증시, 그건 선진국 증시 모습이 아니다.

 

한국 경제의 어두운 모습의 상당 부분은 일본에서 왔다. 재벌 순환구조를 비롯해 후진적인 금융 시스템까지, 근원은 일본이다. 금융실명제를 전격 도입하면서 한국이 일본보다 더 발전된 나라가 될 수 있는 제도 정비를 했다. 일본이 금투세를 도입한 것은 1989년이다. 한국과 일본은 싫든 좋든, 여러 가지가 비교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큰손 몇 사람에게 의존해서 한국 증시를 지키겠다는 말, 이런 주장이 국제적으로 한국은 아직 멀었다고 보이게 만들지 않겠는가?

우석훈 경제학자| 경향 2024.10.27.

 

 

민심과 싸우려는 김건희 남편 대통령

어찌보면 일종의 내부자인 명태균(김건희 여사가 완전히 의지하는 선생님)과 김대남(전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의 공적(?)이 지대하다. 그들의 미필적 토설이 아니었으면 용산 구중궁궐 대통령 부부의 치부를 이리 날것으로 접할 수 없었을 터이다. 그들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회의 때 혼자 떠들고, 참모들 말은 안 듣고, 꼴통처럼 고집을 부리고, 그러면서도 부인 말은 잘 듣고, 극우 유튜브를 보며 심리적 위안을 받는다고 한다. 그간 즉흥적이고 독단적 국정운영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이만큼 증언해주는 것도 없다.

 

사실 ‘59분 대통령의 독선 불통이야 새삼스러울 게 없지만, 김건희 여사의 광범위한 오지랖의 실상은 충격적이다. “(대통령실의) 십상시 같은 어린 애들을 쥐락펴락하면서 인사 등 국정에 개입했다. 그들의 녹취록과 문자 대화는 대통령 배후에서 김 여사가 국정, 인사, 공천, 당무에 관여한 증좌처럼 비친다. 천박하기까지 한 언사는 둘째치고, “철없이 떠드는 무식한 오빠라고 남편을 평가한 여사의 문자는 한 가닥 남은 정권의 권위를 깡그리 무너뜨렸다. 배우자에게 이 정도 평가밖에 받지 못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의 최고지도자이자 군통수권자라니, 참 낯뜨거운 일이다. 이제 대통령의 모든 언행은 죄다 희화화될 것이다.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군주가 제일 위험한 게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명태균, 김대남의 공적은 더 있다. 그들의 폭로(?)가 김 여사의 위험한 오지랖을 제어할 계기를 잠시나마 마련했다. 실제 마포대교 시찰 등 대통령 놀이를 즐기던 김 여사가 납작 엎드렸다(엎드린 시늉인지 모른다). 그간에도 여론이 나빠지면 뒤로 숨었다가, 슬그머니 공적 활동을 재개하는 과정을 반복해왔다. 명품백 수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등 시비가 잇따랐지만, ‘명태균·김대남 파문은 차원이 다르다. ‘김건희 국정농단 의혹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인(私人)이 공적 시스템 밖에서 국정에 개입하면 그게 국정농단이다. 국민에겐 이제 박근혜 탄핵을 불러온 최순실 김건희로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김건희 국정농단 의혹이 민심을 격동시키고 있다. 지난주 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은 20%에 턱걸이했다. ‘보수의 대주주라고 하는 대구·경북에서도 30% 선이 무너졌다. 보수층의 인내심도 바닥나고 있다. 부정 평가 이유로 첫손에 김건희 문제가 꼽혔다. “어떻게 먹고사는 문제보다 김 여사 문제에 더 분노하는지, 이 사실 자체가 충격적”(유승민 전 의원)이다.

 

임계점에 다다른 분노 민심이 간보기에 익숙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로 하여금 대외활동 중단, 대통령실의 김건희 라인 정리, 의혹 규명 절차 협조 등 소위 ‘3대 요구를 들고 나서게 했을 터이다. 윤 대통령은 이 최소한의 조치에 대해서도 완전히 무시했다. 대신 윤 대통령은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고 객기를 부렸다. ‘김건희 의혹에 대해 죄다 정치 공세, 왜곡된 여론으로 치부하고 거부권에 의지해 계속 덮고 가겠다는 심산이다. 아마도 이렇게 뭉개고 가다 11월 중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1심 판결이 나오면 전세가 역전될 것이라 고대하는 듯하다. ‘헛꿈이기 십상이지만, 그때쯤 김 여사는 다시 고개를 쳐들려 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저질러진 비위·의혹에 대한 진위를 가리고 징치할 특검법과는 별개로 앞으로 일어날 농단을 예방할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한동훈 대표의 정치적 의도가 뭐가 됐든, 특별감찰관 임명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윤 대통령이 특별감찰관마저 극구 반대하는 것은, 김 여사가 자기 주변을 감찰이 들여다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기 부인을 언터처블 성역으로 남겨두려는 데 윤 대통령은 진심이다.

 

실효성이 제한적인 특별감찰관이라도 없다면 비선 권력의 비위와 전횡을 사전에 제어할 길이 없어진다. 국정 개입을 넘어 국가 안보와 국민의 안녕이 달린 문제까지 비선의 촉수가 번질 수 있다. “저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끊어지면 적극적으로 남북 문제에 나설 생각이라고 했던 김건희다. 공적 개념이 1도 없는 여사가 적극적으로 남북 문제에 개입하는 것,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너무도 상궤를 벗어난 국정이 펼쳐지고, 김 여사의 오지랖이 상상을 뛰어넘기에 정권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때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 ‘김건희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작금의 남북 군사적 위기를 이용할 것이란 시중의 우려가 정말 심상하지 않게 들린다.

양권모 칼럼니스트 자| 경향 2024.10.28

 

피눈물로 되찾은 정권이란 미망과 탄핵

보수 대통령을 연이어 탄핵할 수는 없지 않은가.”

국민의힘의 한 인사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김건희 특검에 반대하는 이유도, 대통령 탄핵으로 연결될 가능성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의 솔직한 언급은 여당 내 많은 이들의 생각이고, 보수 진영 전체의 걱정일 터이다. 군사독재 시절은 차치하고라도 1987년 민주화 이후 몇 안 되는 보수 대통령 가운데 한 사람은 국가부도를 맞았고 또 한 사람은 헌정사상 첫 탄핵을 당했다. 또다시 윤 대통령을 탄핵한다면, 보수 정치세력엔 매우 뼈아프고 수치스러운 일일 것이다. ‘피눈물 흘리고 되찾은 정권이란 홍준표 대구시장의 표현은 그런 정서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가 않다. 지난 주말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은 20%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어느 대통령이나 지지율의 부침은 있다. 지지율이 낮다고 해서 임기 단축하고 물러나라는 말을 쉽게 하진 않는다. 지금은 다르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진보·보수 가리지 않고 하는 얘기는 똑같다. ‘이런 상태로 2년 반을 더 지내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나 하는 탄식이다. 그럼 어쩔 건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남은 대통령 임기를 다 채우는 건 국가 운명에 결정적 악재로 작용할 수 있으리란 우려는 선을 넘고 있다. 그 중심엔 물론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논란이 있다. 그러나 김건희 논란보다 더 무서운 건, 바로 윤석열 대통령의 무능과 독선, 배신에 대한 절망감이다.

 

여야 정쟁 속에 위기 아닌 적이 별로 없었고, ‘정치는 4란 말을 귀가 따갑게 들었다. 그래도 대한민국이 고비고비를 넘어 지금의 단계까지 온 데엔, 국정운영을 하는 정치권력에 대한 국민 신뢰가 큰 몫을 차지했다.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국민 다수가 대통령제를 지지한 이유도, 대통령은 어느 정치인보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 헌신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지금, 정치권력과 그 정점인 대통령에게서 그런 긍정적 역할의 기대감은 손톱만큼도 찾아보기 어렵다.

 

치밀한 준비 없이 시작한 의료개혁은 ‘2000명 증원이란 대통령 한 마디에 꼬여 버렸다.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대통령은 보여주질 못한다. 경제에 적신호가 켜진 지 오래다. 대통령이 우리의 경쟁력과 성장 추세를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고 호언장담한 결과는 지난주 발표된 ‘3분기 경제성장률 0.1%’라는 충격적인 수치다. 곧 있을 미국 대선은 한국 경제의 시계를 더욱 불투명하게 만들 수 있다. 무모한 외교 정책은 훨씬 위태롭고 직접적이다. 북한군이 러시아를 도와 참전할 것이란 정보보다 더 걱정스러운 건, 오직 북한에 대응하려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공급까지 검토하겠다는 대통령의 단세포적 접근이다. 한반도의 평화는 살얼음판 위에 놓였다. 2년 반이란 시간은 이런 위기를 현실의 악몽으로 바꿔놓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질곡을 벗어날 현실적 길은 탄핵 또는 임기단축 개헌뿐이다. 대통령제에서 탄핵은 최후의 수단이지만, 국민 믿음을 저버린 지도자를 바꾸는 합법적 수단이기도 하다. 탄핵에 반대하는 가장 중요한 논거는 정치 불안정을 심화하고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탄핵은 다운된 컴퓨터의 전원을 껐다 켜는 재부팅의 효과가 있다고 상당수 정치·법학자들은 말한다. “1990~2018년 사이에 성공한 10건의 국가원수 탄핵 사례를 보면, 법치주의와 언론 자유 등의 항목에서 민주주의는 침식되지 않았다. 탄핵은 국가 리더십의 실종을 해결하고 민주주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톰 긴즈버그 시카고대 로스쿨 교수팀은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기고문에서 밝혔다.  10건의 사례 중엔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도 포함돼 있다. 긴즈버그 교수팀은 탄핵 절차만으로 대부분의 대통령은 정치적 목적의 외교정책 등 논란이 되는 행동을 자제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김건희 논란만 피해간다고 위기를 벗어날 수는 없다. “여사가 공개 행보를 자제하면 된다거나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자는 식으로 대응하는 건 격화소양(膈靴搔癢·신을 신고 발바닥을 긁는다)일 뿐이다. 문제의 근원은, 박근혜 탄핵의 교훈을 새기지 못하고 국가를 이끌 자세도 능력도 없는 인사를 권력의 꽃가마에 무임승차시킨 데 있다. 보수 정치세력이 고민해야 할 건 김건희 논란을 피할 편법이 아니다. 현 정부 실패를 겸허히 인정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길을 선택하는 일이다. ‘어떻게 되찾은 정권인데라는 미련을 갖기엔 윤 대통령은 너무 멀리 가버렸다.

박찬수 대기자 | 한겨레 2024.10.28.

 

 

북러의 폭주, 그다음은 재앙이다

자식을 전쟁터에 보낸 엄마는 잃을 게 없다. 악몽에 몸부림치다 결심한다. 나도 목숨을 걸겠다.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항의 편지를 쓰고, 모스크바 국방부 앞에 모여 현수막 시위를 벌였다. "전장에 끌려간 내 자식을 돌려보내 달라." 잃을 게 없어 두려울 것도 없는 여성들은 '집으로 가는 길'이란 이름의 작은 단체를 만들었다. 소련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전쟁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는 푸틴은 이 단체 활동가를 스파이로 지목했다.

 

'전쟁은 전멸로 끝날 뿐, 승리로 끝날 수 없다'는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고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전장은 인간을 말려 죽이고 있다. 독재 회랑 속 몸을 숨기고 같은 인간을 사지로 내모는 권력자들 탓이다. 흑색 작전에 능한 푸틴은 러시아인 총알받이 모집에 어려움을 겪자 북한으로 눈을 돌렸다. 세계 2위 군사력을 보유했다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고전하고, 자국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병력 수급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걸 처음엔 이해하기 힘들었다. 소모전 3년이다. 긴 전쟁에 장사 없다는 걸 이제는 알겠다.

 

"나오라. 넘어가지 말라. 힘들다야." 익숙한 북한말 억양이 러시아 훈련소로 추정되는 어수선한 공간의 공기를 가르고 있다. 이름은 '폭풍군단'인데 얼굴은 앳되고 몸집은 왜소한 젊은이 1만 명을 푸틴 손에 건넨 북한 김정은. 그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2022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래 죽거나 다친 러시아 병사가 어림잡아 70만 명이다. 북한의 미래를 '북러혈맹'에서 찾겠다는 김정은은 러시아에 적잖은 대가를 바라고, 선뜻 총알받이를 내준 고마운 북한한테 푸틴은 목숨 값을 치러줄 것이다. 비정하고 간교한 권력자들의 주거니 받거니는 그 자체로 재앙이다.

 

결사항전을 다짐한 중동의 권력자들도 다르지 않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제거된 수장 이스마일 하니예와 야히아 신와르를 순교자라 떠받든다. 순교자에 대한 모독이다. 하마스 대원과 민간인을 '인간방패' 삼다가 포위망이 뚫려 폭사한 것뿐이다. 신와르는 참극의 시작인 지난해 10월 가족과 지하 땅굴에 몸을 숨겼다. 거미줄 같은 땅굴망을 발밑에 두고 가자지구 거리에서 횡사한 이가 노소를 가리지 않고 4만 명이 넘는다. '전범'이란 오명을 개의치 않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그렇게 몰고 갔다.

 

히틀러 연구로 저명한 영국 역사학자 이언 커쇼는 권력을 앞세워 20세기 유럽 정치사를 쓴 지도자들을 둘 중 하나로 분류했다. '유럽을 만들었거나, 혹은 파괴했거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친 '야만의 시대' 중심에 파괴적 권력자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는 얘기인데, 지금과 다를 게 없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으로 동북아 냉전은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 노골적인 침략 전쟁을 벌여온 푸틴과 러시아를 뒷배 삼아 핵무장에 매달리는 김정은이란 지도자가 그렇게 만들었다. 미국은 대선을 코앞에 두고 중동과 러시아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되고 있는 전쟁이 짜증나고 버거운 기색이 역력하다. 북한군 파병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미적거렸던 이유 중 하나다. 그런데도 미국의 정세 관리 능력만 바라보며 두 지도자의 폭주를 속절없이 지켜보고만 있는 우리 신세가 처량하다.

조아름 기자 | 한국 2024.10.29.

 

이미 예견됐던 채식주의자 폐기

윤석열 정부 출범 초기인 2022 830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첫 시안이 공개됐다. ··고교에서 배워야 할 내용을 정한 가이드라인인 교육과정 개발을 위해 교육부는 처음으로 국민참여소통채널을 열어 의견을 수렴했고 같은 해 919일 첫 시안에 대한 국민 주요 의견을 공개한 바 있다.

 

당시 교육부 출입 기자였던 나는 보도자료 말미에 정리된 이른바 주요 의견을 읽다가 두 눈을 의심했다. “사회적 소수자 예시에서 성소수자를 삭제해달라”, “인권 관련 지도 시 동성애, 성전환, 낙태 등 사례가 포함되지 않도록 조처해달라 같은 주장이 정부 공식 보도자료에 실린 것이다.

 

브리핑에서 혐오에 기반한 주장을 보도자료에 가감 없이 쓰는 것이 적절하냐고 따져 묻자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부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바탕으로 교육과정을 개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성소수자, 성적 지향과 관련된 문제는 첨예한 (다른) 생각이 있기 때문에 서로 상충된 부분을 연구진이 검토해달라는 취지라고 답했다. 해당 주장들이 주요하다고 판단한 근거나, 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는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해 말 확정·고시된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성소수자, 성평등, 재생산권, 섹슈얼리티 등의 표현이 빠진 것이다. 이에 대해 유엔 인권이사회가 국제 인권규범에 명시된 교육권과 건강권을 위반한 것으로 보인다 심각한 우려를 표해 정부는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 폐기 논란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레 2년 전 일이 떠올랐다. 경기도교육청은 지난해 청소년 유해도서를 분리·제거해달라는 내용의 보수 성향 학부모 단체 민원을 접수하고 이들의 주장이 담긴 언론 기사 링크를 첨부한 공문을 각 교육지원청에 두차례 보내놓고도 노벨상 수상 이후 논란이 커지자 도서의 폐기 등은 각 학교가 운영위원회를 열어 자율적으로 판단했다고 해명에 나섰다. ‘국민 주요 의견이라는 이름으로 혐오 발언을 유통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2년 전 교육부의 행태와 너무나 닮아 있다.

 

공문 이후 경기도 초··고교에서 폐기된 도서는 2517, 열람이 제한된 도서는 3340권에 이른다. ‘채식주의자는 한 고등학교에서 2권이 폐기됐고, 중학교 두곳에선 열람이 제한됐다.

 

언론 기사 링크는 참고용일 뿐이었다는 교육청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이가 얼마나 될까. 현장 교사들은 분노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경기지부는 지난 11일 성명에서 기준도 논리도 없는 보수 학부모 단체 민원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을 멈추라 경기도교육청의 무분별한 검열은 폭력이라고 비판했다.

 

경기도만의 일도 아니다. 전교조가 624일부터 715일까지 전국의 학교도서관 담당자 14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 2명 가운데 1(48.2%)이 성평등·성교육 도서 구입 방해 압력이나 지시를 직접 받거나 목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폐기 또는 열람 제한 압력이나 지시를 직접 받거나 목격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53.2%에 달했다.

 

특히 압력을 가한 주체(복수응답)로 학부모·시민 단체(51.1%)만큼 교육청(50%)이 꼽혔다. 교사들이 일부 단체의 요구에 교육청이 제대로 된 심의 과정도 없이 압박을 주는 공문을 지속적으로 보낸 것은 명백한 검열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동성애 혐오 주장을 펼치고 성평등 교육에 반대해온 전국학부모단체연합이라는 곳에서 이제는 채식주의자의 전국 초··고교 도서관 비치를 반대하고 나섰다고 한다. 이들의 표적이 채식주의자만이 아니라는 점을 다들 눈치챘을 것 같다. ‘현대판 분서갱유’(전교조)라는 말까지 나오는 가운데, 이번에는 나의 불길한 예감이 틀리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유진 | 오픈데스크팀장 | 한겨레 2024.10.29.

 

 

인공지능 시대의 명암

큼직한 사건을 다루는 국회의 국정감사에 대한 보도가 모든 언론 매체를 꽉 채운 듯한 요즈음 나는 21년 전에 있었던 한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이번 국정감사 중에 국회의원들이 증거자료로서 녹취록이나 파워포인트(PPT)를 연일 보여주었다. 21년 전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국회의 대정부질의 때 나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한 중요한 증거라고 하면서 디스켓 하나를 복사한 종이 한 장을 흔들며 보여주었다. 디스켓의 양면 사진을 종이에 복사를 해서 증거물이라고 보여주었기에 그는 이 일로 대표적인 컴맹 정치인으로 불렸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의 하나인 검찰의 김건희 불기소 처분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의 박지원 의원은 같은 혐의 내용을 대중적인 생성형 인공지능 챗GPT 4.0에 물었더니 기소하라고 했는데 법원 측의 판단은 어떠냐고 물었다. 참고인으로 출석했던 법제처장은 이에 대한 즉답을 피하면서 앞으로 인공지능을 보조적 수단으로 강구 중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질문의 본질은 인공지능의 재판 도입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시골 노인은 물론 현재 수준의 인공지능조차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한 범죄사실 앞에 법이 눈감고 있는 현실에 관한 것이었다. 검사나 판사 대신에 차라리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법 운용이 이제 사회적 정의와 법을 지키는 길이 될 수 있다는 냉소 섞인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법복을 입은 인공지능

이렇게 변화하는 정보사회의 기술적 조건에 대한 정치인의 이해를 보면서 그동안에 일어났던 우리의 생활세계 변화에서 인공지능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문법이나 맞춤법과 같은 저술작업에 등장하는 문제 해결 때문에 가끔 인공지능에 의지하는 나 자신도 인공지능 덕분에 산업과 경영, 금융과 유통, 언론, 교육, 보건, 노동, 예술 분야에서 그동안 일어났던 많은 변화와 흔적을 종종 느낄 수 있다.

 

위에서 언급된 인공지능의 법 운용체계에의 적용은 다른 영역보다 많은 문제를 안고 있기에 인공지능의 가능성과 한계를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사례로 최근 많이 논의되고 있다. 한마디로 표현해서 로봇 판사 인공지능 판사가 내린 사법적 판결을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엄청난 양의 과거 판결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이 어떤 판결이 가능한지를 예측하는 데는 보다 더 적합하기에 판사보다는 변호사의 업무수행에 사실 더 유용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수많은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고 내린 판결이 단순하게 법 적용에만 머무르지 않고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측면, 또는 해당 사건의 전체적인 맥락까지 고려해야 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래서 로봇 판사가 과연 판사의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데는 회의와 논박이 따른다.

여기에서 특별히 제기되는 문제는 인공지능이 사실관계의 확인과 판단을 내리는 모든 과정이 암흑 상자에 들어 있어 이에 쉽게 접근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가령 인공지능 판사가 내린 판결에 불복해서 피고가 항고한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판결이 나왔는지를 알 수 없을뿐더러 이의 책임 소재도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불투명성과 함께 또 문제되는 것은 인공지능이 지난 판례를 학습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그 속에 들어 있는 과거의 인종주의적, 종교적 또는 성적인 편견까지도 학습, 이에 기초해서 판결을 내릴 위험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인공지능이 판사의 역할을 과연 대신할 수 있느냐는 회의에도 불구하고 사실 너무나 접근이 어렵고, 불분명하고 혼란스러운 법의 운용체계를 대신하는, 인공지능이 도달할 수 있는 법률적 특이점에 대한 긍정적인 논의가 있다. 기술이 인간을 압도하는 시점으로 설정된 기술적 특이점에 대한 전망을 빌려 법체제도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에 의하여 신속하고 정확하고 통일적인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 지능보다 더 세련되고 빠른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 수준을 넘어서는 특이점이 언제 올 것인지를 두고 구글의 기술 부문 책임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특이점이 온다>에서 현재 인공지능의 발달 속도를 고려할 때 이 변곡점의 시간을 대략 2045년으로 예견하고 있다.

 

초인공지능과 전도된 인간

그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인지 능력을 능가할 뿐만 아니라 과학과 기술이 결국 정신적, 육체적 영역에서도 인간이 지닌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만들어 우리가 기존에 지녔던 인간상에 대한 생각을 넘어선다는 뜻에서 트랜스 휴머니즘을 설파한다. 고통과 질병, 장애와 노화 같은 인간의 숙명적인 조건도 생명과학과 게놈과 나노기술로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약속한다.

 

인간존재의 극대화를 지향하는, 이런 생각은 물론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예를들어 니체의 초인 개념에서도 비슷한 사고유형을 발견할 수 있다고 일련의 트랜스 휴머니즘의 지지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또 다른 이 분야의 전문가인 옥스퍼드 대학의 닉 보스트롬은 인공지능이 연속적으로 스스로 개량해 나가면서, 또 어느 시점에서는 폭발적으로 진화, 인간의 지능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초인공지능(ASI)’ 시대의 도래가 가능하다고 보면서 이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인류의 실존적 위기라고 경고한다.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의 주제처럼 보이는 특이점이나 초지능에 대한 이런 논의는 그러나 우리가 사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아니다. 주어진 일을 인간의 의도에 따라 수행하는 인공지능으로, 많은 양의 데이터를 학습시켜 스스로 특정한 과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인공지능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그다음에 올 단계가 인간의 지능과 같은 수준의 지능을 지닌 인공 일반지능(AGS)’이다. 2023년 인간의 추론능력과 비슷한 생성형 챗GPT의 등장을 계기로 해서 기계도 지능을 획득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이은 마지막 단계가 처음에 거론된, 초인공지능이 등장하는 특이점의 시점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그의 어떤 단계에 있든지 근본적으로 데이터를 다루는 지능이다. 어떤 경우에도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현실과 만나면서 이를 해명하고 이의 가치를 생활세계 안에서 다른 사람과도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인간적인 존재방식을 터득할 수는 없다. 인간적인 삶의 총체를 단순히 데이터나 정보의 총합과 등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에 대한 이런 근본적인 비판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개인정보의 보호, 알고리즘의 편향성과 공정성의 결손을 문제 삼았다. 이에 대한 하나의 법적인 대응의 첫 결과가 바로 올해 313일에 통과되어 81일부터 시행된 유럽연합의 인공지능 규제법’(AI Act)이다.

이 규제는 현재 인공지능의 무서운 팽창 속도를 고려한, 의미 있는 국제적인 대응이기도 하다. 2023년에 전 세계 인공지능시장의 규모가 약 2000억달러였는데 연평균 성장률이 30~40% 이상이 되어 2030년에는 약 1조달러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견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규제가 인공지능 개발의 연구자나 투자기업, 이 분야의 주식 거래자에게는 희소식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인공지능이 불러올 미래의 세계에 대한 이러저러한 전망을 정리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인간이 만든 기술이 인간의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주인인 인간을 부리는 전도된 상황에 대한 비판은 항상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완성도를 높여가는 기술과 인간의 불완전함 사이에 벌어진 차이를 반핵운동의 선구자였던 철학자 귄터 안더스(1902~1992) 프로메티우스의 간격이라고 불렀다. 이런 간격으로 생긴 열등감 때문에 인간은 오히려 기계가 되고 싶어서 안달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연유로 인간은 자신을 스스로 쓸모없는 존재로 만든다고 그는 비판하면서 우리는 기계적으로 유치하게 되어간다고 경고했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 경향 2024.10.29.

 

 

권력자는 족쇄를 차야 한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은 다론 아제모을루·사이먼 존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와 제임스 로빈슨 미국 시카고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그들은 국가 번영에 대한 사회적 제도의 중요성을 입증했다. 법의 지배가 불완전하고 인구를 착취하는 제도를 가진 사회는 성장이나 개선을 이루지 못한다. 수상자들의 연구는 그 이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수상이유를 밝혔다. 이제 그들은 거장이 되었다. 원래 거장이 되면 다양한 해석이 따라붙는다. 사람마다 그들의 연구를 해석하는 관점이 조금씩 다를 수 있는데, 내가 그들의 연구를 이해한 방식과 한국사회에 어떤 교훈을 던져줄 수 있는가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그들이 제시한 개념 중 하나가 좁은 회랑(narrow corridor)’인데 이는 책으로도 나왔다. 국가(정부)와 사회(시장) 사이, 독재와 무정부 사이의 미세한 균형을 잘 잡아야 번영을 한다는 것이다. 말은 멋있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도대체 어디가 균형점인지 알기가 어렵다. 그래서 좁은 회랑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한국은 정부가 시장을 압도하는 리바이어던(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다 괴물의 이름으로 강력한 국가권력을 상징) 체제인가, 정부가 시장에 휘둘리는 리바이어던 부재의 국가인가? 둘 다 아니다. 한국은 코로나19 사태 시기에 강력한 통제정책도 군말 없이 따르는 사회이나 권력자가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는 것에 진정으로 분노하는 사회이다. , “족쇄 찬(견제와 감시를 받는) 리바이어던을 원한다.

 

이제 한국에서 정부와 시장의 균형을 잡는 일은 난도 최상급 추상예술 경지에 이르렀다. 그래서 권력자의 합리적이고 유연한 자세가 중요한데 현 집권세력은 이게 불가능해 보인다. 그들은 시장이 전 정권이라는 거대한 괴물정부에 눌려 고사 직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유를 목 놓아 외치는 것도 진심이다.

 

노벨위원회는 유럽인들이 대규모로 세계를 식민지화할 때, 그 사회의 제도는 변화했다. 이러한 변화는 모든 곳에서 동일하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지역에서는 원주민 인구를 착취하고 자원을 수탈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다른 지역에서는 식민지 개척자들이 유럽 이민자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포괄적인 정치적 및 경제적 시스템을 형성했다고 그들의 연구를 설명했다.

 

이 지점이 중요하다. 권력자들은 각자 그들이 바라보는 곳이 다르다. 권력자들이 국가의 번영을 위해서만 노심초사한다는 것은 정치인들만 하는 얘기다. 권력자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에 따라 국가가 좁은 회랑이라는 균형에 가까이라도 갈 수 있는가, 아니면 밖에서 겉돌 것인가가 결정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돌을 맞으면서 가겠다고 하지만 사회는 윤 대통령의 시선이 영부인에게 가 있다고 말한다. “(현 정부에서)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라고 물을 때 누구든 잘 모르겠다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 솔직한 것이다. 윤 대통령의 시선은 김건희 여사에게 가 있는데 우리는 김건희 여사가 무엇을 바라보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 권력자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이고 더 문제는 권력자가 족쇄를 차고 있지 않다. 이런 국가는 가뜩이나 찾기가 어려운 좁은 회랑을 찾아갈 수가 없다.

 

올해 9월 다론 아제모을루가 가디언에 기고한 칼럼의 일부이다. “억만장자들인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일론 머스크는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으로도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다. 단순한 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억만장자들이 다양한 주제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가진 천재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이들은 주요 소셜미디어 플랫폼과 같은 중요한 소통 수단을 통제하고 있다.” 그가 주의 깊게 보는 것은 단지 정치권력만은 아니다. 그는 전문성 없이 여러 분야에 얕은 지식만 가진 사람들이 지나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상(The Dictatorship of Dilettantism)을 비판하고 있다.

 

나는 최근 한국의 금투세 논란을 보면서 이게 비단 미국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5만 고액자산가의 세금을 없애면 개인투자자 1400만이 혜택을 누린다는 이 기적의 논리가 힘을 받게 된 데에는 물밑에서 열심히 움직이는 시장권력자들의 역할이 상당할 것이다. 그들 역시 족쇄를 차지 않은, 아니 소셜미디어라는 날개를 단 시장의 리바이어던이다. 그들의 맹렬한 활약도 역시 정부와 시장 사이의 좁은 회랑의 바깥에서 한국을 빙빙 돌게 만들 것이다. 10년을 고민해 여야 합의로 만든 조세체계도 한 방에 날려버리니 말이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 경향 2024.10.29.

 

 

우크라의 실패에서 배워야 할 것

러시아가 국제법을 전면적으로 위반하면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이미 2년 반 이상이 지나면서 최근에 우리는 세계 무대에서 매우 역설적인 광경을 지켜보게 되었다. , 러시아는 침공뿐만 아니라 아예 19세기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행위를 방불케 하는 우크라이나 일부 영토의 합병’, 즉 불법 강탈까지 선포했다. 침공의 원흉인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국제형사재판소에 의해 체포 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2024년 현재의 러시아는 전범이 다스리고 있는 제국주의적 침략 국가다.

한데 이와 동시에 친러의 태도를 견지하는 나라들은 바로 과거 서구 제국주의 침략의 피해를 맛본 구미권 바깥의, 소위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다. 1022~24일에 러시아에서 개최된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 참석한 36개국 중에 상당수는 인도나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처럼 글로벌 사우스의 리더 격인 과거의 식민지들이었다. 그중에 22개국은 국가 원수들이 직접 러시아에 와서 제국주의 침략의 원흉인 푸틴과 포옹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도나 브라질, 남아공 정도면 유권자들의 표심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민주 국가들이다. 아마도 거기에서는 국가의 수반이 푸틴과의 좋은 관계를 과시해도 표를 크게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모양이다. 이런 역설적 상황이 가능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물론 글로벌 사우스 지도자들의 푸틴과의 포옹은,  친러를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친러 이상으로 반미의 의미가 훨씬 크다는 것이다. 대러 제재를 포함한 미국의 각종 제재들은 기축 통화로서의 미국 달러의 특별한 위치를 이용하는 것인데, 글로벌 사우스의 입장에서는 꼭 달러로 외환보유고를 채우고 국제 결제를 위해 주로 달러를 써야 한다는 것은 수탈로 비치며, 달러 패권을 이용하는 제재는 패권 국가의 횡포로 인식된다. 그 밖에도 과거 이라크 침략부터 현재 이스라엘의 가자 제노사이드 지원까지, 미국의 패권적 행태들은 글로벌 사우스의 유권자 다수에게도 지도층의 다수에게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리가 없다. 이 반미 정서들은 미국과의 대립을 자신의 대외정책적 브랜드로 만든 푸틴에 대한 친근함의 과시로 충분히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 할인 판매되는 러시아산 에너지 거래를 통해 발생하는 이익이라는 프리미엄도 물론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글로벌 사우스의 친푸틴적 태도에는 또 다른 배경도 있다. 침략당한 국가를 예로 드는 것이 죄송스럽게 느껴지지만, 지금 한국도 똑같은 우()를 범하기에 그래도 짚고 넘어가는 게 맞는 것 같다. 즉 우크라이나는 침략당한 국가임에도 친미 일변도의 외교, 우크라이나 지식인·미디어 등의 서구중심주의적 성향이 우크라이나와 글로벌 사우스 사이의 괴리를 넓힌 것도 사실이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현재로서는 그렇지 않아도 승산이 있는 대미 대립을 벌이면서 그들에게 일정한 경제적 이익을 안겨줄 그 어떤 반()서구 세력에 대해서도 꽤나 긍정적이었을 테지만, 우크라이나의 친미 일변도의 포지셔닝은 더더욱 비서구 세계와의 관계를 악화시킴으로써 결국 침략자 푸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현재는 전쟁 상황으로 인해 달라졌지만, 러시아 침략 이전에 우크라이나의 가장 중요한 무역 상대국은 중국이었으며, 우크라이나의 주요 수출품인 곡물은 주로 아프리카로 수출되었다. , 경제적으로 우크라이나는 비서구에 기대고 있었다. 하지만 2014년의 유로마이단 사태(친유럽·민주주의를 요구한 우크라이나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 이전에도, 이미 1990년대부터 우크라이나가 내세운 대외 정책의 주된 목표는 궁극적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유럽연합 편입이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는 1999년에 나토의 세르비아 공습을 지지했고, 2003년에는 미국의 이라크 침략까지 지지해 심지어 소규모 파병까지 감행했다. 이런 대외 정책을 뒷받침하는 것은 지식인 사회나 미디어 등의 서구중심주의적 담론이었다. ‘유럽적 가치를 극구 칭송하는 우크라이나 주류 지식인과 언론들은, 예컨대 일종의 백인 프리미엄 차원에서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이 시리아 피난민들에 비해 유럽에서 훨씬 더 후한 대접을 받는 점 등에 대한 고민 같은 것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글로벌 사우스의 입장에서는 백인 피난민 비백인 피난민에 대한 상이한 태도는 분명히 인종 차별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우크라이나 안에서는 우리도 유럽인인 이상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침략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데도 글로벌 사우스의 민심이 좀처럼 우크라이나의 편에 서려 하지 않는 것은 과연 놀라운 일일까? 인도나 브라질에서 우크라이나의 고통이 큰 반응을 일으키지 못한 것은 통탄할 일이지만, 우크라이나의 여론 주도층 역시 미국 침략 피해자들의 고통에 일찌감치 연대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구미권 일변도의 포지셔닝은 결국 글로벌 사우스와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의 실패를 초래했다. 한데 과연 지금 대한민국의 포지셔닝은 어떠한가? 우크라이나인들은 주변부적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유럽인인 반면에, 한국인들은 스스로를 명예 백인으로 인식하며, 서구중심주의 이데올로기 내면화의 차원에서는 한국은 우크라이나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다. ··일 군사 협력 강화 같은 윤석열 정부의 친미·친일 외교 정책은, 일찍이 일제 침략을 받은 바 있으며 지금 미국의 포위 정책 대상이 된 중국인들에게 실질적인 위협으로 충분히 보일 수 있다. 한국 수출의 대부분은 구미권이 아닌 글로벌 사우스로 가지만, 한국 사회 안에서 예컨대 베트남이나 필리핀의 역사나 문화, 문학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 이해는 극히 낮은 수준이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는 사실 오로지 미국 스탠더드다. 이와 같은 친미 일변도의 포지셔닝과 철저한 서구중심주의는, 유사시에 한국도 우크라이나처럼 글로벌 사우스로부터 공감과 연대를 얻을 확률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이는 한국의 미래 차원에서 바람직한 일일까? 우크라이나의 글로벌 사우스와의 관계 설정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선진국이 된 한국은, 이제라도 19세기 말 일본과 같은 탈아입구(脫亞入歐), 유치한 서구 베끼기와 극도로 위험한 친일·친미 일변도의 외교를 벗어날 때가 됐다.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 한겨레 2024.10 30

 

 

오너 리더십의 한계, 삼성만 문제인가?

향후 10년 내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수 있다.”

2010년 이건희 선대회장이 경영복귀를 하며 던진 경고다.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2024 10. ‘삼성전자 위기론이 본격화하고 있다. 전영현 반도체 담당 부회장이 예상을 밑돈 3분기 실적에 대해 사과문을 낸 뒤 위기 진단과 처방 기사가 하루도 쉰 날이 없을 정도로 쏟아진다. ‘일등주의 도전정신을 잊은 직원들, 경직되고 관료화된 조직 등 모두가 쇄신과 혁신을 통한 경쟁력 회복을 주문한다.

하지만 이런 진단과 처방에는 핵심이 빠졌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병사들의 용기만으로 안된다. 유능한 장수가 필수다. 기업도 다를 게 없다. 전 부회장도 모든 책임은 경영진에게 있다고 인정했다. 당연한 얘기다. 일부 언론은 고대역폭 메모리(HBM) 개발에 실기한 전 경영진의 책임을 제기한다. 하지만 재벌의 실질적인 최고경영자는 누구인가? 사실상 임직원의 생사여탈권을 쥔 이른바 오너를 빼고, 월급쟁이 경영진에게 위기의 최종 책임을 묻는 게 타당한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22년 취임했다. 하지만 선대회장이 쓰러진 2014년 이후 사실상 총수 역할을 해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경영자의 능력과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삼성맨을 만날 때마다 이 회장이 그동안 어떤 경영철학과 성과를 보여주었는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거의 같다. “(이 회장은 분명한) 메시지가 없다.” 이건희 선대회장 하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 1993년 프랑크푸르트 신경영선언이 떠오르는 것과 대비된다. 총수의 핵심 역할은 조직 전체가 한 방향으로 뛰도록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다. 총수가 메시지가 없다는 것은 미래비전과 방향제시가 없다는 뜻이다. ‘리더십 실종이다.

 

이 회장의 경영성과도 특별한 게 없다. 야심차게 세계 1위를 목표로 제시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은 용두사미 꼴이다. 바이오는 분명 성과지만, 반도체 위기로 빛이 바랬다. 사실상 지난 10년간 이건희 유산으로 버텨왔다고 봐야 한다. 어쩌면 총수 리더십 실종 상황에서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이 회장은 의사결정이 필요한 사안을 보고하면 이 방안이 최선이냐고 묻는다고 한다. 한 임원은 그런 상황에서 자신있게 그렇다고 답할 경영진은 거의 없다. 결국 원점에서 재검토가 이뤄지면서, 의사결정이 늦어지고, 리스크 있는 사업은 뒷전으로 밀린다고 말했다.

 

최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취임 4주년을 맞았다. 현대차는 삼성과 정반대로 쾌속 질주 중이다. 지난 4년간 순이익은 3, 시가총액은 2배로 증가했다. 글로벌 기업 순위도 5위에서 3위로 도약했다. 비결로는 총수의 리더십이 꼽힌다. 한 간부는 정 회장의 리더십을 미래 비전 제시, 여러 의견을 경청하지만 필요한 시점에는 과감한 결정을 피하지 않는 결단력이라고 말한다. 삼성과 대조적이다.

 

요즘 삼성 임직원들이 더욱 불안해하는 것은 위기 속에서도 총수의 메시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25일 이건희 선대회장 4주기 추모식, 27일 회장 취임 2주년 때도 침묵을 지켰다. 평상시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회사가 창사 이래 최대위기를 맞은 상황에서도 총수가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충격이다. 굳이 위기 때마다 특유의 리더십으로 돌파한 이건희 선대회장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위기 극복의 리더쉽을 발휘하지 못하는 총수는 어느 기업에도 치명적이다.

삼성전자는 3대 쇄신책을 내놓았다.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 복원,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 신뢰와 소통의 조직문화 재건이다. 모두 필요한 얘기지만, 총수의 리더십이 없으면 사상누각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정면으로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경영진은 총수 눈치를 본다. 언론은 최대광고주의 눈치를 본다. 한술 더떠 사법 리스크, 52시간 근무제, 국가지원 부족 같은 핑계거리만 늘어놓는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제시한 이 회장의 등기이사 취임과 컨트롤타워 복원도 마찬가지다. 총수가 등기이사가 아니어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나?

 

총수의 리더십 실패로 위기에 처했는데도 제대로 처방을 못하는 것은 삼성뿐이 아니다. 신세계는 지난해 이후 경영실적 부진으로 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신상필벌 원칙을 내세워 전문경영진을 대거 경질했다. 하지만 10년 이상 경영을 총괄해온 정용진 부회장은 오히려 회장으로 승진했다. 에스케이도 경영부실로 인해 고강도 구조조정과 인적쇄신을 하고 있다. 부실의 진앙은 전지사업으로 대규모 적자가 누적된 에스케이온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노베이션과 이앤에스(E&S)의 합병까지 강행했다. 하지만 에스케이온의 대표이사인 최재원 수석부회장(최태원 회장의 동생)은 합병사의 수석 부회장으로 건재하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진단과 처방이 제대로 내려져야 한다. 재벌이 한국경제의 성장동력 역할을 해온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재벌이 3·4세 체제로 넘어오면서, 총수의 리더십 위기라는 구조적 한계가 분명해지고 있다. 능력검증이 안된 후계자로 인한 재벌의 승계 리스크는 오래전부터 예고된 일이다. 그동안은 이를 무시했지만, 이제 너무 늦지 않게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곽정수 |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 한겨레 2024.10 30

 

헌정위기의 불편한 진실

한국형 민주공화제가 시나브로 국정공백 사태까지 초래할 정도로 퇴행하고 있다. 헌재, 인권위, 방통위 등 인권보장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주요 국가기관이 기능정지 혹은 축소의 늪에 빠지고 있다. 법원마저 형사사건의 외피를 쓴 정치적 사건들 때문에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가 악순환의 소용돌이를 맞고 있다. 87년 민주화 40주년을 목전에 두고 한국형 민주공화제가 전례 없는 최대 위기에 빠진 듯하다.

 

우선 민주화의 든든한 뒷배로 자리매김했던 헌재가 기능부전 상태에 빠졌다. 9인 합의제 기관인데 퇴임한 재판관 3인의 후임선출이 지체되고 있어서다. 법률의 위헌결정, 탄핵결정, 공권력에 의한 기본권 침해를 확인하는 헌법소원 인용결정 등 헌재의 핵심적 결정은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데 6인 재판부에서 1명이라도 이탈하게 되면 종국심리에 참여한 절대다수 의견에도 불구하고 헌법수호를 위한 결정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궐석된 재판관 3인 전원의 의견이 모두 위헌상태를 옹호하는 의견으로 간주되어 버리는 꼴이다. 이처럼 사실상 헌법재판의 정지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입헌주의 헌정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새 위원장을 맞은 인권위는 출범 후 22년간 확고히 정립되어 왔던 소위원회의 만장일치 처리관행을 폐기하였다. 인권침해 진정에 대한 절차적 보장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킨 것이다. 또한 방송행정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합의제 특별행정기관으로 설치된 방통위는 5인의 위원을 채우지 못한 2인체제가 오래되었는데 위원장마저 탄핵소추되어 기능정지상태다.

 

법원마저 정치적 사건들이 넘쳐나면서 사법과 정치가 교차하는 담벼락 위로 법관들을 내몰고 있다. 11월에 이재명 제1 야당대표에 대한 허위사실공표사건과 위증교사사건에 대한 1심 선고가 예고되어 있다. 이 사건들의 형식은 형사사건이지만 실질은 정치사건이다. 정치재판을 형사사건으로 배당받은 법관들은 형사사법의 정의를 세워야 할 사법적 책무와 검찰권의 남용을 통제하고 정치의 사법화를 절제시켜야 할 헌법적 책무 사이의 딜레마로 내몰리고 있다. 형사적 관점에서 보면 유무죄의 사실판단과 양형판단만 해야 하지만 권력통제의 관점에서 보면 형평성을 잃은 검찰권 남용에 편승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국회의 절대다수인 야당의 대표라는 헌정에서의 위상은 대통령과 함께 국정의 협치를 이끌어가야 하는 막중한 지위일 뿐만 아니라 차기 대선의 유력주자라는 점에서도 헌정적 의미가 크다. 벌금 100만원 이상과 같은, 책임효과가 결코 높다고 볼 수 없는 죄책만으로도 장기간 피선거권이 정지된다.

 

여당은 대통령의 불소추특권 조항까지 들먹이며 야당대표의 사법리스크를 조장하고 있다. 대통령의 형사상 특권은 헌재가 확인한 바 있듯이 개인의 특권이 아니라 공직 자체에 결부되어 국민대표라는 공직의 안정성과 독립성을 보장하여 궁극적으로 국민주권을 보장하는 제도다. 특히 1인 국민대표기관인 대통령의 경우 주권자의 신임이 탄핵의 핵심기준인데 취임 전 재판을 이유로 선거를 통해 표출된 국민의 직접적인 신임 자체를 부정하는 해석론을 따르기가 쉽지 않다.

 

애당초 이들 사건이 소추된 발단이 선거라는 정치적 계기 때문이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선거의 본질은 말로 오가는 정치공방을 통해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 것이다. 거짓말로 혹세무민하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지만 그렇다고 윤리적·정치적 책임을 넘어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모자라 선거결과를 번복하거나 피선거권을 정지시켜 국민대표 선출이라는 민주공화국의 핵심절차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과도한 것이다. 특히 허위 여부가 불분명한 말 한마디로 후보자의 자격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할 만한 사유가 되지 못하는 경우에도 선거 자체의 효력을 다투는 선거쟁송절차가 아닌 단순 형사사건으로 다루는 것 자체가 민주공화제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다. 유권자들의 민주적 결정을 검사나 법관의 형사적 판단으로 대체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을 바보취급하면서 법조엘리트들의 자의적 판단으로 후보자의 참정권을 박탈하고 나아가 유권자의 공직선임권을 박탈하는 것이 민주공화국일 수 있는가. 더구나 현직 대통령은 비슷한 정황에도 기소되지 않았다는 형평성 문제에 더하여 검찰권 자체가 정적탄압 혹은 부인방탄의 도구로 사유화되었다는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고서 어찌 단순 형사사건의 정의를 내세워 떳떳이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임을 자부할 수 있을 것인가.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경향 2024.10.31.

 

 

강시정권인가, 각시정권인가

윤석열 정권은 사실상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았다. 악재는 악재로 덮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정난맥은 극에 달했다. 3류 정치 브로커라는 명태균씨는 대통령 부부의 치부를 연일 들춘다. 권위 잃은 대통령의 메시지는 헛웃음을 낳는다. 대통령이 그나마 성과로 내세웠던 체코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 계약은 절차가 보류됐다. 급기야 대통령의 공천개입 정황을 뒷받침하는 통화 육성까지 공개됐다. 내세울 성과는 없고, 방어해야 할 쟁점들은 날마다 쌓여간다. 이 정도면 통치불능 지경이다. 지지율 20%짜리 대통령에게 비상구는 없다.

 

화불단행(禍不單行·재앙이 겹쳐 옴)이라고, 비극의 덩어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통령이 자신의 처지를 모른 채 권력을 쥔 듯 행동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 특별감찰관을 모두 거부한 것이 그 증거다. 정치적으로 죽은 대통령이 아직 숨은 붙어 있는 집권여당 대표에게 군림하려는 것은 자신의 처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뒤늦게 제2부속실을 설치한다고 했는데, 그렇게 하면 온갖 김건희 의혹은 없어지나. 자신이 죽은지도 모르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권력은 민심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작금의 행태가 어떤 후폭풍으로 돌아올지 아직도 실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런데 죽었어도 죽은지 모르고 돌아다니는 존재로 두 가지가 있다.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좀비, 1980~1990년대 홍콩 영화에서 인기를 끌었던 강시다. 서양귀신과 동양귀신. 출신 성분은 다르지만, 죽은 줄도 모르고 날뛴다는 점에서 둘은 같은 존재다.

 

둘 중 윤석열 정권에 맞는 것을 고른다면 강시를 택하고 싶다. ‘앉은뱅이 주술사에게 조종받는 눈먼 무사, ‘철없이 떠드는 우리 오빠로 낙인찍힌 그분 처지는 슬프고도 코믹하다. 도사의 주문에 따라 천지 분간 못하고 통통 튀는 강시가 어울린다. 흉한 모습의 좀비보다는 뺨에 연지곤지라도 찍어바른 강시가 낫지 않나.

 

더 큰 문제는 강시든 좀비든 지각이 마비됐다는 것이다. 총선 참패 이후 뻔뻔한 방탄국정으로 일관하면서도, 대통령과 그 부인이 각종 스캔들에 부끄러움을 못 느끼고, 국민에게 미안해하지 않는 것도 그래서라고 본다. ‘강시정권은 이편과 저편을 가릴 수 없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돌진하고, 온 국민을 적으로 돌린다. 강시정권은 전후좌우를 살필 수 없기 때문에 경제든 안보든 국정은 산으로 가고 있다. 지지율 20%짜리 대통령이 국민 동의를 구하는 절차도 없이 우리나라를 다른 나라 전쟁으로 빨려들게 하는 무책임한 불장난을 벌이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세계 정세가 요동치는 요즘 같은 격변기에, 무지한 정권은 존재만으로도 국가에 위협이 된다. 그러므로 반국가세력, 반대한민국세력은 윤석열 정권 그 자체다.

 

윤석열 정권의 좌충우돌을 보면서 비지스의 명곡 ‘I Started A Joke’가 떠올랐다. “I started a joke, which started the whole world crying(내가 농담을 시작하자, 세상 사람들은 울기 시작했네)” “I started to cry, which started the whole world laughing(내가 울기 시작하자, 세상 사람들은 웃었네)” “Till I finally died, which started the whole world living(마침내 내가 죽자, 세상은 살아나기 시작했지)”.

 

이 아름다운 멜로디의 팝 넘버는 아이러니하게도, 신뢰 잃고 권위도 잃은 윤석열 정권을 떠올리게 했다. ‘내가 공정을 말하자, 세상 사람들은 편파라며 비웃었네’ ‘내가 상식을 말하자, 세상 사람들은 무식이라 했지’ ‘내가 반국가세력을 말하자,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은 나를 가리켰어’.

 

윤석열 정권은 사실상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았다. 악재는 악재로 덮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정난맥은 극에 달했다. 3류 정치 브로커라는 명태균씨는 대통령 부부의 치부를 연일 들춘다. 권위 잃은 대통령의 메시지는 헛웃음을 낳는다. 대통령이 그나마 성과로 내세웠던 체코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 계약은 절차가 보류됐다. 급기야 대통령의 공천개입 정황을 뒷받침하는 통화 육성까지 공개됐다. 내세울 성과는 없고, 방어해야 할 쟁점들은 날마다 쌓여간다. 이 정도면 통치불능 지경이다. 지지율 20%짜리 대통령에게 비상구는 없다.

 

화불단행(禍不單行·재앙이 겹쳐 옴)이라고, 비극의 덩어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통령이 자신의 처지를 모른 채 권력을 쥔 듯 행동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 특별감찰관을 모두 거부한 것이 그 증거다. 정치적으로 죽은 대통령이 아직 숨은 붙어 있는 집권여당 대표에게 군림하려는 것은 자신의 처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뒤늦게 제2부속실을 설치한다고 했는데, 그렇게 하면 온갖 김건희 의혹은 없어지나. 자신이 죽은지도 모르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권력은 민심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작금의 행태가 어떤 후폭풍으로 돌아올지 아직도 실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런데 죽었어도 죽은지 모르고 돌아다니는 존재로 두 가지가 있다.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좀비, 1980~1990년대 홍콩 영화에서 인기를 끌었던 강시다. 서양귀신과 동양귀신. 출신 성분은 다르지만, 죽은 줄도 모르고 날뛴다는 점에서 둘은 같은 존재다.

 

둘 중 윤석열 정권에 맞는 것을 고른다면 강시를 택하고 싶다. ‘앉은뱅이 주술사에게 조종받는 눈먼 무사, ‘철없이 떠드는 우리 오빠로 낙인찍힌 그분 처지는 슬프고도 코믹하다. 도사의 주문에 따라 천지 분간 못하고 통통 튀는 강시가 어울린다. 흉한 모습의 좀비보다는 뺨에 연지곤지라도 찍어바른 강시가 낫지 않나.

 

더 큰 문제는 강시든 좀비든 지각이 마비됐다는 것이다. 총선 참패 이후 뻔뻔한 방탄국정으로 일관하면서도, 대통령과 그 부인이 각종 스캔들에 부끄러움을 못 느끼고, 국민에게 미안해하지 않는 것도 그래서라고 본다. ‘강시정권은 이편과 저편을 가릴 수 없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돌진하고, 온 국민을 적으로 돌린다. 강시정권은 전후좌우를 살필 수 없기 때문에 경제든 안보든 국정은 산으로 가고 있다. 지지율 20%짜리 대통령이 국민 동의를 구하는 절차도 없이 우리나라를 다른 나라 전쟁으로 빨려들게 하는 무책임한 불장난을 벌이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세계 정세가 요동치는 요즘 같은 격변기에, 무지한 정권은 존재만으로도 국가에 위협이 된다. 그러므로 반국가세력, 반대한민국세력은 윤석열 정권 그 자체다.

 

윤석열 정권의 좌충우돌을 보면서 비지스의 명곡 ‘I Started A Joke’가 떠올랐다. “I started a joke, which started the whole world crying(내가 농담을 시작하자, 세상 사람들은 울기 시작했네)” “I started to cry, which started the whole world laughing(내가 울기 시작하자, 세상 사람들은 웃었네)” “Till I finally died, which started the whole world living(마침내 내가 죽자, 세상은 살아나기 시작했지)”.

 

이 아름다운 멜로디의 팝 넘버는 아이러니하게도, 신뢰 잃고 권위도 잃은 윤석열 정권을 떠올리게 했다. ‘내가 공정을 말하자, 세상 사람들은 편파라며 비웃었네’ ‘내가 상식을 말하자, 세상 사람들은 무식이라 했지’ ‘내가 반국가세력을 말하자,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은 나를 가리켰어’.

 

그럼에도 강시영화 관람하듯 저들의 기행을 보며 웃고 떠들 일이 아니다. 이대로라면 온 국민이 힘들여 이룬 국가적 성취가 물거품이 될지 모른다. 대통령은 돌 던져도 맞고 가겠다고 했는데, 강시는 감각이 없으므로 귀담아들을 말이 아니다. 강시정권에 거울을 비춰 자신이 얼마나 흉한 몰골인지 깨닫게 해야 한다. 아니면 이마에 노오란 부적을 붙여 멈춰 세우든가. 그럼에도 강시가 돌진을 계속하려 한다면 짱돌을 던져서라도 방향 전환을 하게 하거나 주저앉혀야 한다. ‘감히 대통령에게 짱돌을 이런 말은 통하지 않는다. 공천개입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탄핵수사를 주도했던 대통령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사족 하나. ‘강시정권 각시정권으로 잘못 읽는 독자는 없기 바란다.

이용욱 정치에디터 | 경향 2024.10.31.

 

 

검찰공화국 만든 검찰발 보도

명품 가방을 조그마한 파우치라고 불러준 앵커가 한국방송(KBS)의 사장 후보로 최종 낙점되었다. 이전 사장들에 비해 유독 젊은 나이의 그가 사장 후보로 나설 때부터 여기저기서 설마 하는 걱정이 들리더니만,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된 모양이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 참 세상은 이븐하지 않다. 그동안 쌓아 올린 술잔의 무게가 무색하게, ‘조그마한 파우치 한방에 현 박민 사장의 연임이 무산된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인기 있는 흑백요리사의 한 부분을 빌려보자면, ‘이븐하지 않네요. 당신은 탈락입니다.’

 

속절없이 밀려버린 박민 사장이 얼마나 아쉬운 마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돌아가는 세상을 보며 정작 분노해야 하는 것은 우리 국민들일 것이다. 누군가는 통정매매로 큰돈을 번 정황이 있음에도 그저 우연이거나 몰라서 그런 것이니 무혐의로 처리되고, 명품 가방을 받아도 조그마한 파우치 정도로 별일 아니라고 해주는 방송을 보다가, 그냥 텔레비전을 꺼버리고 속으로 몹쓸 것들 하며 분을 삭이는 것이 작금의 모습이다. 곧 좋아질 거라던 수출이 다시 감소하며 3분기 경제 성장률이 쇼크에 빠져버린 경제는 물론이고 언제라도 전쟁이 터질 것처럼 안보 불안이 고조되어 있는 속에서,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는 그야말로 빵점이고 분노는 폭발 직전이다.

 

현재 대한민국이 엉망이 되어버린 데에는 여러 책임이 있겠지만, 그 중심에는 결국 검찰이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행정부의 부정과 무능에 제동을 걸어주어야 하는 감사원, 국민권익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제구실을 못 하는 것도 나중에 따져봐야 하는 일이지만, 결국 그 모든 책임과 비난은 검찰에 우선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사권과 독점적 기소권을 가진 검찰이 법 집행에서 최소한의 공정성과 정당성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다른 국가 기관들과 사회적 안전장치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연쇄적 반응을 점화시켰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슬러 올라가서 현재의 정부가 태어나고 자라난 온실이 바로 검찰이며, 수많은 사고와 무능으로 점철된 현 정부가 변변한 사과나 반성 한번 없이 지금까지 눈 부라리고 큰 소리 내고 있는 것도 결국은 검찰 권력의 머리 위에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는 국민 대부분이 이 사고 현장의 목격자이자 증인이라는 것이다. 도이치모터스 의혹에 대해서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린 뒤, 한겨레신문은 검찰이 자멸한 날이라고 선언하고 해체 수준의 검찰개혁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비단 한겨레신문뿐만 아니라, 보수언론을 포함한 대부분의 언론이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며 검찰이 김건희 변호인이냐고 비판한 것은, 이제는 우리 민주주의 체제에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검찰이 존재할 수는 없다는 것이 국민 상식이 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쉽게 말도 꺼낼 수 없었던 검찰 해체라는 목소리까지 이제는 다반사로 터져 나오는 걸 보니, 이것도 새옹지마라고, 못난 정부의 덕분이라고 칭찬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다.

 

검찰에 대한 비판 속에서 빠뜨리지 말아야 하는 것은 바로 검찰에 대한 언론의 모습이다. 현재의 검찰이 우리 민주주의의 체계를 위협할 정도의 무소불위한 힘을 가진 것은 그저 법률적 기소권과 수사권의 문제만은 아니다. 불균형한 법률적 권한이 절대권력의 하나의 기둥이라면, 기꺼이 검찰 권력의 또 다른 기둥이 되어서 국민에게 뽀얗게 단장한 검찰의 모습만 비춰준 것이 바로 우리 언론이었음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서초동 편집국장이라는 별칭이 말해주듯이, 검찰은 달래기도 하고 때로는 겁도 주어 가며 언론을 다루는 데 매우 유능했고, 이에 비해 이른바 법조라인이라는 기자들이 오랫동안 검찰을 대하는 태도는 더없이 공손하고 무기력하기만 했다.

 

이제 와서 언론이 검찰은 죽었다고 소리 한번 지르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언론도 답을 찾아야 한다. 검찰발 정보를 사실로 단정하고 받아쓰기하는 관행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기자실에 대못 박아서 폐쇄하는 건 안 된다고 했으니, 그럼 이제 기자단에 대한 다른 대안은 무엇인가? 언론 스스로 찾고 국민들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그것이 언론의 책무성(accountability) 원칙이다.

홍원식 | 동덕여대 ARETE 교양대학 교수 | 한겨레 2024.10.31.

 

보수 개신교계가 생산하는 혐오의 쓰나미가 몰려온다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에서 지난 9월에 성소수자에 대한 개개인의 포용 수준 설문 결과를 발표했다. 대한민국 국민 10명 중 3~4명은 성소수자에 대해 적대적 감정이 있다고 밝혔다. 성별, 연령, 정치적 성향에 따라 감정의 차이가 보이지만 놀랄 만큼 크진 않다. 이 조사에서 가장 뚜렷하게 적대감을 높이는 요인으로 드러난 건 종교다. 개신교 신자의 60%가 남성 동성애자에 적대적 감정을 가진다고 답했다. 신의 가르침 때문이라지만 이는 천주교 신자는 34%에 그쳐 왜 개신교가 두배 가까이 높은지 설명할 수 없다. 레즈비언에 대한 적대적 감정도 천주교인은 25%였고 개신교인은 54%였다.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를 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도 역시 개신교인의 66%가 포용해선 안 된다고 답했다. 게다가 개신교인의 55%는 앞으로도 성소수자에 대한 국민의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이것이 부정적 감정과 부족한 포용적 태도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1027일 일요일, 경찰 추산 23만명(주최 쪽 추산 110만명)의 개신교인이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찬양과 큰 기도회라는 명목으로 서울광장 일대와 여의도에 모였다. 신을 경배하는 의식으로서의 예배라기보단 정부와 국회, 법원이 더 많은 차별을 하라고 요구하는 정치 집회에 가까웠다. 신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혐오와 편견의 기도가 쏟아졌다. 차라리 차별금지법과 동성혼 반대만 있었다면 다행일지 모른다. 이슬람 혐오가 더해지고 페미니즘이라는 악한 사상에서 영혼을 분리하자는 것도 기도에 포함되었다. ‘결혼과 출산은 여성에게 손해라고 말하는 페미니즘 사상에 젖은 것을 회개하라며 성경 말씀대로 남편은 아내의 머리이니 아내는 남편을 보필하던 때로 되돌아가자고 요청한다. ‘노산과 불임률 증가로 시험관 시술이 난무한다며 윤리적 비난을 더하고, 반려동물을 제 자식처럼 아끼는 반려인이 천만명이 넘었다고 한탄하며 인간과 동물의 서로 다른 창조 목적을 기억하라고 훈계한다.

 

연합예배의 슬로건은 건강한 가정 거룩한 나라였고 루터의 종교개혁 507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음에도 계속 쌓여온 성직자들의 성폭력, 불륜, 횡령, 표절 등에 대한 반성은 없다. 이런 행사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축사 영상까지 보내며 할렐루야를 외쳤다. 이 연합예배는 애초 지난 7월에 나온 정서적, 경제적, 애정적 공동체로 함께 사는 동성 커플에게도 이성 간 사실혼과 마찬가지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을 반대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건강 보험은 모든 국민을 위한 복지 제도이고 부양은 타인을 돌보는 것이니 피부양자 자격의 확대는 우리 사회가 더 따뜻해지고 튼튼해진다는 의미다. 오죽하면 개신교가 최소한의 복지도 뺏는 종교로 보일까 봐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교계 내부에서 나오겠는가.

 

앞서 설문에서 성소수자의 자리에 만약 외국인이란 단어가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개신교인의 60%가 외국인에게 적대적 감정을 가지고 66%는 포용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면? 언론은 대서특필하지 않았을까. 정치권도 종교가 생산하는 혐오를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다루지 않았을까. 보수 개신교계는 동성애 쓰나미가 몰려온다며 거룩한 방파제로 맞서야 한다며 절규한다. 나는 어떤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 거대한 혐오의 쓰나미가 더 두렵다.

한채윤 |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 한겨레 2024.10.31.

 

 

강자는 강자를, 약자는 약자를 대리하는 사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혹시 책임준공형 관리형 신탁이라는 용어를 들어본 일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름부터 어렵고 생소한 이 신탁유형은 간단히 말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에서 신탁사가 시공사의 보증인 같은 역할을 해서 PF 대출을 돕는 신탁유형이다. 시공사가 그다지 튼튼한 기업이 아닐 경우 금융기관들이 PF 대출을 거부해서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이때 신탁사가 건물에 대한 준공책임을 보증(이른바 책임준공’)하여 PF 대출 및 사업 진행을 돕는다.

 

고위험 고수익의 실험장 책임준공형 관리형 신탁

신탁사는 왜 이런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것일까? 그만큼 기대수익도 크기 때문이다. 시공사가 공사를 진행하다가 어떤 이유로든 공사가 중단되어 준공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책임준공형 관리형 신탁이라면 신탁계약에 의해 그때까지 지어진 건물은 신탁사에 귀속되고, 이후 신탁사는 자신의 자금을 투입해 건물을 완공한 후 직접 분양하여 분양이익을 챙기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시공사는 공사 중단 시점까지 지어놓은 건물을 신탁사에 헐값에 넘겨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며 분양이익은 한 푼도 건지지 못한 채 사업에서 배제된다.

 

하지만 신탁사가 늘 이득을 챙기는 것은 아니다. 신탁사가 분양이익을 챙기는 것도 어디까지나 부동산 경기가 활성화되어 있는 경우에 한한다. 만약 분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미분양 사태가 발생한다면 신탁사가 고스란히 사업의 위험부담을 짊어지게 된다. , 신탁사 입장에서 이 책임준공형 관리형 신탁은 고위험 고수익의 공격적 사업이다.

부동산 시장 호황기인 지난 2017년 이후 부동산신탁사들은 책임준공형 관리형 신탁 상품을 적극적으로 판매했고, 이 상품은 신탁사들의 주요 수익원이 될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상품을 통해 부동산신탁사들이 자기자본 대비 과도한 수준의 위험을 인수한 것도 사실이어서 부동산 호황기가 끝나고 나면 그 위험이 현실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공존해 왔다.

결국 2024 5월경이 되자 7개 부동산신탁사의 책임준공형 관리형토지신탁 현장 중 4분의 1 가량이 책임준공 기한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제 PF대주단으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신탁사들이 하나, 둘씩 늘어가고 있는데, 변호사 입장에서 이런 소식을 들으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지 아는가? 우습게도 처음 떠오른 생각은, 아아, 대형 로펌들에 새로운 먹거리가 등장했구나, 하는 것이다.

 

대형 로펌 밥상머리에 떨어진 부스러기 하나

그런데 이 사태가 의외로 나 같은 동네 변호사에게도 새로운 먹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는 것을 최근 깨닫게 되었다. 오랜 지인 한 명이 최근 오피스텔을 분양받았는데 입주예정일이 2개월 간 지연되었는데도 시행사와 신탁사가 지체상금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부 수분양자들이 시행사를 상대로 지체상금 지급청구 소송을 제기하자 신탁사는 분양계약서 제29조 제200항을 들이대며 지체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항변했다.

무려 제29조 제200항이다! 계약서 제29조 한 조문이 분양계약서 한 장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는데 그중 200항까지 가서야 신탁사가 신탁계약에 따라 시공사를 대신하여 책임준공의무를 이행하게 될 경우 입주예정일은 6개월 이내의 기간에서 자동으로 연장되며 수분양자들은 이에 동의하고 일체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한다는 내용이 기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수분양자들은 자신들이 분양받은 오피스텔이 책임준공형 관리형 신탁계약의 대상이었던 사실도 전혀 몰랐고 계약서 제29조 제200항에 이처럼 수분양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크게 제한하는 중요한 내용이 숨어있는 줄은 더욱 몰랐다면서 울분을 토했다.

 

재판에서는 당연히 위 조항이 약관규제법 상 무효인지 여부와 만약 무효가 아니라면 분양대행사 측에서 수분양자들에게 설명의무를 다했는지 여부가 다투어졌다. 신탁사 측은 신탁사와 시공사 간 체결된 책임준공형 관리형 신탁계약이 결국은 수분양자들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입주예정일 연기에 따른 지체상금이나 계약해제권을 제한하는 제29조 제200항이 불공정 약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 입주예정일이 늦어지면서 잔금 지급기일도 함께 늦어졌으니 그만큼 수분양자 입장에서는 잔금 준비기간이 길어져 이득을 봤다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사실 이 글을 쓴 이유는 위 사건에 등장하는 책임준공형 관리형 신탁계약이나 그러한 신탁계약에서 신탁사가 떠안는 리스크를 고객(수분양자)에게 떠넘기는 불공정한 약관계약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위 사건의 판결은 오는 12 5일로 예정되어 있다. 이 판결은 비록 13명의 원고들이 구하는 지체상금의 액수(청구취지) 1 3000만 원에 불과하지만 사회적 파장이 매우 큰 판결이 될 것이다. 그래서 12 5일 판결문을 받아본 후 다시 이 사건에 관해 길고 자세한 설명을 담은 글을 써보려고 한다.

 

같은 듯 완전히 다른 대형 로펌+전관 변호사와 동네 변호사

필자가 위와 같이 장황하게 현재진행 중인 사건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이 사건을 경험하면서 내가 느낀 변호사라는 직업에 관한 소회를 풀어놓기 위함이다. 변호사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대형 로펌 변호사, 전관 변호사, 그리고 동네 변호사다(물론 이 분류는 매우 자의적임을 미리 고한다). 요즘에는 대형 로펌에서 전관 변호사를 많이 흡수해가기 때문에 대형 로펌 변호사와 전관 변호사는 그 역할이나 수입 구조 측면에서 별로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그들(대형로펌 변호사와 전관 변호사)의 삶과 동네 변호사의 삶은 완전히 다른 직업군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확연히 다르다.

 

어떤 기사를 보니 대한민국 고소득 전문직 1위는 변호사(연봉 30)라는데, 또 어떤 기사를 보면 변호사들 평균 월수입이 대기업 직원들보다 못하다고 한다. 이 무슨 괴리인가. 이유인즉슨 변호사 숫자가 대거 확대된 이후 그들(대형 로펌 변호사들과 전관 변호사들)의 리그와 동네 변호사의 리그가 완전히 달라져 소득불균형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버는 전문직도 변호사지만 가장 못 버는 전문직도 변호사인 것이다. 이 두 변호사가 과연 같은 직군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지경이다.

필자는 동네 변호사로서 지난 10년 동안 법정에서 대형 로펌 변호사나 전관 변호사들을 여러 번 상대해 보았다. 국내 대형 건설사로부터 소송을 당한 농부 세 명을 대리했었고,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소비자들을 대리했었고, 국내 유명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의료피해자를 대리했으며, 이번에는 신탁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수분양자들을 대리하고 있다. 그동안 내 상대가 된 대형 로펌 변호사들과 전관 변호사들은 대형 건설사를 대리하고, 기업을 대리하고, 병원을 대리하고, 신탁사를 대리했다. 그들이 1건 착수금으로 받는 금액만 따져보아도 아마 나의 1년 치 연봉과 맞먹을 것이다. 이러니 그들의 수입과 나의 수입이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지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저 판사는 법복 벗고 동네 변호사 될까, 로펌 변호사 될까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강자를 대리하기 때문에 고소득이 되고, 약자를 대리하기 때문에 저소득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고소득 변호사들이라 강자를 대리하고, 저소득 변호사들이라 약자를 대리하는 것일까. 여튼 중요한 점은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약자들을 대변하는 자들은 결국 같은 약자인 동네 변호사라는 현실이다. 대형 로펌들은 금융기관이나 병원, 또는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하려는 개인 사건을 잘 받아주지 않는다. 어마어마한 비용 문제는 차치하고, 대형 로펌이 자신의 주된 클라이언트인 금융기관이나 병원, 또는 기업을 상대로 싸우면 향후 그들로부터 수임을 받을 수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에 사건을 받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결국 우리 사회의 강자들은 강자의 대리를 받고 약자들은 약자의 대리를 받는 현상이 공식처럼 굳어가고 있다. 물론 동네 변호사를 약자 취급하는 것이 적절치 않을 수는 있다. 법정에서 법리를 다투는 일은 변호사 개인의 경제적 능력과는 별개이고, 동네 변호사들 중에는 방송이나 교육, 또는 정치 활동을 위해 일부러 동네 변호사를 선택하는 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막 개업 변호사로 첫발을 디딘 생계형 동네 변호사들을 떠올려보라. 그들은 분명 변호사 사회 내에서 약자의 범주에 들어간다. 당장 사건수임이 간절하다 보니 낮은 가격에 이 사건 저 사건을 마구 수임하고, 그 결과 눈코 뜰새 없이 바쁜 경우가 허다하다. 재판 수행으로 바쁜 것이 아니라 사무실 운영으로 바쁜 것이다.

 

동네 변호사로 10년을 살아보니, 그리고 자의 반 타의 반 늘 약자의 편을 대리하다 보니 문득 강자가 강자를 대리하고 약자가 약자를 대리하는 사회구조가 훤히 들여다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법정에 설 때마다 멀리 법대 위에 앉아있는 법복 입은 판사의 면면을 꼼꼼히 살피면서 의심을 반복하게 된다. 저 사람도 퇴직한 이후에는 대형 로펌에 입사해야 할 텐데, 그럼 그 후에는 병원, 신탁사, 건설사들로부터 수임을 받아야 할 텐데, 과연 이 법정은 기울어지지 않았을까?

김태현 변호사 | 시민언론 민들레 2024.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