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극단적 ‘유튜브 정치’ 키우는 국회 2. 윤 대통령, 당신의 마음은 안녕하십니까 3. 첫 시집과 끝 시집을 두 손에 들고 4. 북토크의 견물생심 5. 왜 행정개혁은 얘기되지 않을까 6. 펨코와 일베 사이 7. 기술 발전이 일자리를 빼앗을까 8. 살아남지 못한 '나홀로' 사장님?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누구인가 9. 부자 감세가 서민 살리고 역동경제라는 정부의 오판 10. 결혼 로망스의 파탄
11. 종부세 폐지론과 패닉바잉 그리고 ‘악어의 눈물 12. 금속노조의 도넛 경제학 13. 낙수효과, 환상 속의 그대 14. 저출생 아니라 저출산 15. 매력도시 서울 대개조의 방향을 묻는다 16. 상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17. 노인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18. 대한민국 ‘중산층 기준’의 패러독스 19. 이게 나라냐고, 다시 외칠 수밖에 없다 20. ‘규범’을 파괴하는 ‘사실’의 힘
21. 미국 대중 정책의 초당적 성격 22. 조선은 망할 수밖에 없던 나라? 23. 김건희라는 비극 24. 한국 종부세와 미국 보유세의 3가지 차이점 25. 종부세를 그대로 놔두라 26. 극단주의의 유령 27. 조국혁신당은 거대한 소수가 될 수 있을까 28. 격노하는 대통령, 분개한 국민 29. 포퓰리스트 우파와 워크 좌파의 공모 30. 작은 것들의 신
31. 이름이 궁금해도 참아 본다 32. 김건희 여사, 선을 넘으셨습니다 33. ‘호국’과 ‘민주’의 정치학 34. ‘재벌 떡볶이 먹방’의 청구서 35. 모든 이에게 케렌시아를 허하라 36. 북한의 생존전략 변화와 북·러 조약 37. 배신의 내로남불 38.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창의적일까? 39. 윤 정부, 명분 없는 감세 멈춰야 40. 혁명 65년, 쿠바는 어디로 가나?
41. 윤석열 정부는 왜 그렇게 주가에 집착하는가 42. 부드러운 얼굴'의 극우세력 창궐, 가까이 온 신파시즘 43. 약한 자아의 사회 44. 잘 죽을 권리 45. 정답을 비켜가는 저출생 대책
46. 일본 시민들이 밝혀낸 사도광산 강제동원 47. 전쟁하는 나라의 피폐한 국민의 삶 48. 말은 바로 합시다, '방위산업'은 무기산업입니다 49. 상속세 개편과 상속자 자본주의 50. 터지기 직전 부동산 시장, 키울 때 아니라 대비할 때
51. 이진숙 ‘빵집’ 청문회를 보는 서글픔 52. 지연된 종말의 시간 53. 삼성전자 파업과 정태인 선생의 교훈 54. 탄핵과 협치 55. 재벌총수는 하고 싶은 거 다 할 것이다 56. 복기의 시간, 1/N의 책임 57. 국가안보 망각하는 ‘대통령 휴대폰’의 비밀 58. 한동훈의 돌이킬 수 없는 길
극단적 ‘유튜브 정치’ 키우는 국회
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자서전에 담은 윤석열 대통령과의 독대 대화가 화제다. 김 전 의장은 “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가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썼다. 박홍근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이 ‘좌파언론들이 사고 2~3일 전부터 사람이 몰리도록 유도한 방송을 내보낸 이유도 의혹’ ‘사건의 의혹을 먼저 규명하지 않고 이상민 장관을 사퇴시키면 혹시 나중에 범죄 사실이 확인될 경우 좌파 주장에 말리는 꼴’이라고 말했다”는 전언까지 공개했다.
김 전 의장은 “극우 유튜버 방송에서 나오는 음모론적인 말이 대통령의 입에서 술술 나온다는 것을 믿기 힘들었다”고 썼고, 박 전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이 극우성향의 유튜브에 심취해 있다는 말은 여러번 들었다”며 “지금도 극우 유튜버들의 음모론을 사실로 믿고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이번 사건은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정치의 유튜브 시대’가 도래했음을 분명히 하는 역할을 했다. 극우 강성 지지층들이 일부 보수 유튜브에 심취해 있었을 때 민주당 강성 지지층 역시 친민주당계 유튜브 내용을 흡수하는 데 열중했다.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가 친명 유튜브를 자주 본다는 얘기도 무성하고 심지어 이해찬 민주당 고문은 전국 순회 당원모임에서 ‘유튜브 시청으로 시작해 유튜브 시청으로 끝나는’ 자신의 일상을 소개하면서 “레거시 언론을 보지 말고 유튜브를 보라”고 독려하기도 했다. 강성 지지층들의 집합체인 유튜브에서의 발언과 평가, 출연 등이 선출직 경선과 본선에서 ‘당심’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경로가 돼 버린 지 오래다.
문제는 유튜브 채널이 ‘그들만의 일방통로’라는 점이다. 때문에 음모론의 출발점이거나 배포처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강성 보수 유튜브 채널엔 보수 인사들만 나온다. 강성 민주당계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발언이 강해질수록 지지층들의 환호가 쏟아진다.
‘정치 유튜브의 활황’은 국회의 빈약해진 역할과 맞닿아 있다. 통신 기술 발달로 유권자들의 정치참여와 의사 표현이 손쉬워졌는데도 국회는 여전히 ‘여의도 의사당’에 갇혀 있다. 5만명 넘게 동의한 청원을 방치해 ‘폐기’시키고 입법심사를 한달에 세번하는 것도 버거워한다. 상임위나 본회의장에서는 대화와 토론의 기본도 지키지 않고 상대방에 대한 모욕과 모멸 발언만 쏟아내면서 ‘또다른 유튜브 방송’을 만들어 놨다.
자정능력을 잃어버린 지도 오래다. 국회가 ‘음모론’의 숙주가 될까 걱정될 정도다. 강성 지지층의 ‘당심’에만 의존하는 국회의 미래는 생각하기도 겁난다. 국회가 강성 유튜버에 장악되는 건 아닐까. 아니면 이미 장악된 것일까.
박준규 정치팀 기자 내일신문 2024-07-01
윤 대통령, 당신의 마음은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여러분의 마음은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정신건강 정책 혁신위원회’에서 이렇게 모두발언을 시작했다.
묻고 싶다. 윤 대통령의 마음은 안녕하신가, 하고. 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윤 대통령에게서 들었다는 ‘이태원 참사 조작 가능성’ 발언을 접하고 든 생각이다.
2022년 12월 5일 국가조찬기도회 직후 윤 대통령과 김 전 의장이 나눴다는 대화 내용을 재구성해본다. 김 전 의장 회고록 및 박홍근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김 전 의장에게서 듣고 메모한 내용을 바탕으로 했다.
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는 것이 옳습니다. 스스로 물러나야 여야가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뿐 아니라 본인 앞날을 위해서도 바람직합니다.”
윤 “의장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 강한 의심이 가는 게 있어 아무래도 결정을 못 하겠습니다.”
김 “그게 무엇입니까?”
윤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봅니다. 이태원은 먹거리나 술집도 별로 없고 볼거리도 많지 않은데 그렇게 많은 인파가 몰렸다는 게 이해가 안 갑니다. MBC와 KBS, jtbc 등 좌파 언론들이 2~3일 전부터 사람이 몰리도록 유도한 방송을 내보낸 이유도 의혹입니다. 의혹을 먼저 규명하지 않고 이 장관을 사퇴시키면 나중에 범죄사실이 확인될 경우 좌파 주장에 말리는 꼴이니, 정부의 정치적·도의적 책임도 수사 끝난 후에 지게 해야 합니다.”
대통령실은 회고록이 공개되자 “멋대로 왜곡했다. 개탄스럽다”는 입장을 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이와 별개로 “공식적 대화가 아닌 것을 가지고, 회고록을 빙자해 흘리고 있다. 정치인이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한 것”(뉴스1)이라고 비판했다. 어느 대목이 어떻게 왜곡됐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2022년 10월 29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참사가 발생했다. 시민 159명이 목숨을 잃었다. 분노와 비난의 화살은 온통 정부로 향했다. 취임한 지 6개월도 안 된 윤 대통령의 ‘마음’은 두려움으로 가득찼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국가애도기간을 설정하고, 추모법회·추모예배·추모미사에 갔다.
1주일이 지났으나 분노는 더 뜨거워졌다. 참사 전 압사 위험을 알리는 112 신고가 쏟아졌음에도 경찰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사실이 드러나서다. 윤 대통령은 ‘사랑하는 오른팔’ 이상민 장관을 잘라야 할 처지에 몰렸다.
이 무렵 극우 유튜브를 중심으로 전파되던 음모론은 수렁에 빠진 대통령에게 ‘지푸라기’가 돼줬을 법하다. ‘역시 우리 잘못이 아냐! 상민이를 자를 이유도 없고!’ 극우 유튜버들은 ‘토끼 머리띠를 한 남성이 밀었다’ ‘각시탈 착용자들이 기름을 뿌렸다’ ‘민주노총이 연루됐다’ 같은 음모론을 떠들어댔으나 모두 사실무근으로 결론났다.
위기에 맞닥뜨리면 도피처를 찾는 게 인지상정이다. 황당한 음모론에 기대고 싶어지기도 한다. 지도자는 그래선 안 된다. 위기일수록, 사실만 보아야 한다. 나와 내 가족·참모·동기·선후배·지인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다는 ‘프리즘’을 통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야말로 지도자의 필수 덕목이다. 이런 용기가 없으면, 고위공직은커녕 사기업 간부 구실도 해내기 어렵다. 하물며, 대통령이 음모론에 경도됐다면 그 위험성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윤 대통령은 일종의 가상세계 속에 사는 것 같다. 총선 이후 가장 놀란 장면은 국민의힘 의원 워크숍이었다. 윤 대통령은 “(참모들이) 맥주도 놓지 않아야 된다고 했는데, 제가 좀 욕먹겠다”며 의원들의 술잔을 채워주고 ‘어퍼컷’도 날렸다. 술잔 돌리기도, 어퍼컷 세리머니도 가상세계에서 찾아낸 지푸라기요 도피처일 터다.
도널드 트럼프와의 첫 TV토론 후 위기에 몰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말했다. “내가 젊은이가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조금은 안심했다. 최소한의 현실인식은 있구나 싶어서다.
윤 대통령은 어떤가? 자신과 정권을 둘러싼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있나? 현실공간에선 20%대 지지율(한국갤럽 기준)이 고착화하고 있다. 18~49세 지지율은 11~12%에 불과하다. 청장년 10명 중 9명은 윤 대통령에 반대한다는 이야기다. 탄핵소추를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80만명을 넘어섰다.
윤 대통령은 극우 유튜브와 알코올과 어퍼컷의 세계를 떠나야 한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시민이 안전해진다. 윤 대통령은 당장 김 전 의장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솔직하게 밝히고, 이태원 참사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기 바란다.
“인간의 마음은 민주주의의 첫 번째 집이다”(미국 교육자 테리 템페스트 윌리엄스). 윤 대통령의 ‘마음’을 묻는 이유다.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경향 : 2024.07.01.
첫 시집과 끝 시집을 두 손에 들고
시를 읽는 이유 중 하나는 나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자신을 먼저 들여다봤던 시인의 언어를 빌어 나를 가누고 가늠하기 위해서다. 그런 의미에서 시는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나은 ‘미래의 나’를 꿈꿀 수 있도록 한다. 최근 오병량 시인의 ‘고백은 어째서 편지의 형식입니까?’와 황동규 시인의 ‘봄비를 맞다’를 읽으며 가누고 가늠하는 일로 행복했다. 밑줄 쫙쫙 그어가며 그 행간을 오래 서성이며.
오병량 시인이 등단 11년 만에 첫 시집을 들고 나타났다.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군복무를 마치고 문창과에 재입학했던 이십대 중반의 그는 국문과 소속의 내 시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시를 푯대 삼아 대학원에 진학해 박사과정을 밟던 중 등단하더니 다시 박사과정을 그만두고 작은 식당을 차렸다. 좀체 그의 시를 보기 어려워 안부가 궁금하던 차였다.
시집을 여는 ‘시인의 말’은 이렇게 시작한다. “봄 앞에 앉아, 나는 여태, 나의 주어가 못 되는 처지입니다”. 나도 같이 눌러앉을 자세를 잡는다. “젖은 베개를 털어 말리고 눅눅한 옷가지에 볼을 부비다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쓰다 만 편지를 세탁기에 넣고는 며칠을 묵”(‘편지의 공원’)히면서 버텨냈을 그의 시편들은 얼룩이 많고, 일렁임이 많고, 단애가 많다. 젊은 시인의 첫시집답다. 이루 잡히지 않는 가족사와 유년의 기억, 청춘과 사랑과 실연의 흔적, 그로 인한 막막한 방황과 모색이 숲처럼 묵묵하고 사슴처럼 튀어 오르고 음악처럼 새어난다. 오래 쓴 편지처럼.
“어떻게 빈 종이만 쓰다듬는 중일까, 책상이 다 뜨거워지도록/ 그는 다정했지만, 밑줄이 다 망가지도록 제 마음만 달랬다/ 바람인지, 바닥인지 모를 일이나 무언가는 쓸려와/ 여리게 밀려난다 빗소리였다/ 마음을 씻기는/ 줄곧 살아냈으나 끝끝내 사라지지 않을 늦밤”(오병량, ‘봄눈’). 나는 ‘늦밤’에 ‘시’를 넣어 읽는다. 고군분투했을 그에게 전하고 싶다. 생업은 시 쓸 시간을 줄게 하는 게 아니라 더 당당하고 창의적인 시인이 될 자유를 준다고. 어쩜 내게 건네는 당부일지도.
‘봄비를 맞다’는 등단 66년 차인 황동규 시인의 18번째(시인의 말에 따르면 마지막이 될) 시집이다. 이십대의 나는 그의 시를 읽으며 시를 썼고 이후 그의 시에 단편의 글들을 쓰기도 했다. 그는 시집의 뒷글을 이렇게 닫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리할 게 무엇인가 생각할 때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아침에 해가 뜨고 아파트 발코니에선 꽃들이 피고 지고 있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시, 물빛으로 환한 시간이.” 그의 시편들은 노년에 맞이하는 ‘진짜 꽃의 삶을 사는 기쁨’, 그 환한 기쁨으로 찬란하다. 나의 80대도 이처럼 환했으면 한다.
‘앙스트블뤼테’(불안의 꽃)라는 말이 있다. 마르틴 발저가 79살에 썼던 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생존이 위태로울 때 사력을 다해 마지막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으려 한다는 뜻의 생물학적 용어다. 노시인의 앙스트블뤼떼는 놀람과 긍정과 경탄의 간투사와, 죽비를 맞은 듯 서늘한 아포리즘에서 만개한다. “이것 봐라, 죽은 나무가 산 잎을 내미네./ 풍성하진 않지만 정갈한 잎을./ 방금 눈앞에서/ 잎눈이 잎으로 풀리는 것도 있었어./ 그래 맞다. 이 세상에/ 다 써버린 목숨 같은 건 없다!”(‘봄비를 맞다’). 입말인 듯 쉽고 눈에 선하면서 “끄트머리가 확 돋보이는 시”(‘사월 어느 날’)다.
“아침이 가고 저녁이 온다./ 혼자 있음./ 혼자 없음./ 지내다 보니/ 있음이 없음보다 한참 비좁고 불편하다. (…) 마지막 시 쓰기 딱 좋은 저녁이 올 것이다.”(‘코로나 파편들’) 노시인이 굳게 지켜낸 품격과 긴장은 늙음과 질병, 코로나의 시간에 호응하면서 맞선 데서 비롯한다. 그리고 순간순간 터져 나는 탄성과 느낌으로 시의성의 최대치에 도달한다.
젊은 시인의 첫시집과 원로 시인의 끝시집에서, 나는 다시 배운다. 시의 힘은 외로움을 견뎌내는 데서 나온다는 것을. 그 외로움을 젊은 시인은 기억과 고백의 지속의 시간으로, 원로 시인은 현현과 독백과 순간의 시간으로 견지해낸다. 또한 시의 힘은 소소한 것에 깃든 압정과도 같은 한 줄 통찰에서 나온다는 것을 배운다. 우리 삶이 외롭고 힘에 부치는 날들이 태반이지만, 그러함에도 우리가 사소한 일상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삶을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새삼 깨닫는다. 이런 평범한 시간들이 섬광과도 같은 아름다운 문장 하나로 발견되는 것이 시라는 것도.
휴가철이 시작되었다. 기억의 지속이든 초월의 순간이든, 시적인 시간에 물들기 위해 시집 한 권 챙겨가는 여행이시길!
정끝별 | 시인·이화여대 교수 한겨레 : 2024.07.01.
북토크의 견물생심
북토크와 출판기념회는 어감이 다르다. 전자가 아기자기한 만남의 자리라면 후자는 정치인이나 나이 지긋한 사람의 부대행사로 다가온다. 예전에는 둘 사이의 간격이 훨씬 가까웠던 모양이다. 본래 북토크는 출간을 축하할 겸 작가를 예우하는 행사였다고 들었다. 지금의 북토크는 출판사의 마케팅과 독자의 팬심이 조응하는 자리다. 작가는 ‘신간이 나왔습니다. 우리 애를 잘 부탁드립니다’ 하는 홍보대사 역할을 맡는다. 아이돌이 신곡을 발매하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과 유사하다. 양쪽 다 얼굴을 내밀고 존재를 알리고 호감을 심어줌으로써 자신의 활동을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피력하고자 한다.
북토크에는 ‘토크’를 주고받을 상대방이 필요하다. 나는 북토크 진행자를 자주 맡는다. 예전부터 종종 SF 관련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했던 덕분인 듯하다. 6월에는 북토크에 4번 참석했다. 하나는 내 신간인 <아무튼, 보드게임>을 홍보하는 자리였지만 나머지 자리에서는 진행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작가로서든 진행자로서든 괜한 걱정을 했다. 오늘의 북토크는 홍보 효과가 얼마나 있을까?
그건 아마 출판사 마케터도 모르지 않을까. 과거에는 책을 홍보하고 싶으면 신문이나 라디오에 광고를 냈다. 지금은 SNS 이벤트나 사전독자 모집 등 방법이 훨씬 다변화되었다. 어떤 식으로든 운 좋게 입소문을 타면 책의 판매량이 훌쩍 뛴다. 그런데 좋은 책이라고 해서 언제나 입소문이 나지는 않는다. 책의 내용이나 구성과 별도로, ‘성공’은 예측하기 어려운 과정으로 이루어지곤 한다. 한 예로 정보라의 단편집 <저주토끼>는 부커상 번역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뒤로 명실공히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이러한 변화는 책이 출간된 지 5년이나 지나서야 나타났다. 아무리 홍보에 힘쓰더라도 과연 판매에 보탬이 될지는 미지수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북토크는 화젯거리를 만든다는 점에서 홍보에 기여하기는 한다. 대부분 온라인으로 참석자를 모집하기 때문에 북토크 소식만으로도 마케팅 효과가 난다. 추후 좋은 후기가 공유된다면 그것도 긍정적이다. 다만 장소를 대관하고 진행자를 섭외하려면 돈이 든다. 요즘은 현장 참석자 없이 온라인으로 라이브 영상을 송출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당연히 돈이 든다. 편집자와 마케터의 가외 노동까지 고려하면 과연 북토크가 득이 되긴 하는지 의문스럽다. 나는 북토크처럼 책을 이야기하는 자리를 매우 좋아하고, 그런 자리가 더욱 늘어나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서늘하다. 혹시 주최자들의 자기만족에 불과하진 않을까.
그럴 때면 견물생심이라는 말을 애써 떠올린다. 북토크에는 ‘실물’이 있다. 작가는 독자 앞에 살아 있는 사람으로 생생하게 등장한다. 반대로 작가 입장에서는 자신의 책을 읽은, 심지어 좋아하기까지 하는 독자를 직접 만날 수 있다. 참석자들은 자신과 같은 책을 집은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확인한다. 여기에는 말없이 확인되는 은근한 연대감이 있다. 글로는 전부 표현되지 않는,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비로소 분명해지는 것들도 있다. ‘실물’에 대한 이런 감각은 책을 향한 욕심을 자극한다. 보통은 이를 애정이라고 부르겠지만.
심완선 SF평론가 경향 : 2024.07.01.
왜 행정개혁은 얘기되지 않을까
지난달 전동킥보드를 함께 타던 청소년 두 명이 차량과 충돌해 한 명이 목숨을 잃고 한 명이 다쳤다. 늦은 시간 친구와 킥보드를 타고 이동하다 벌어진 불행한 사고였다. 사고가 나자 군청과 학교는 뒤늦게 안전 캠페인을 벌이고 경찰은 단속을 강화했지만 청소년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 차가운 반응에는 이유가 있다.
규정이 없어 발생한 사고일까?
몇년 전부터 차도와 인도를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방치되던 전동킥보드는 마땅한 교통수단을 찾지 못한 청소년들의 관심을 끌었다. 법에 따르면 면허를 가진 사람만이 탈 수 있고 2인 이상 동승할 수 없지만, 관리하는 주체가 없으니 청소년들이 많이 이용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때론 위태롭게 운전했지만 청소년들은 스스로 대안을 고민하고 있었다. 작년에 지역청소년들이 군청에 정책을 제안하는 자리에 강사 및 조언자로 참여했다. 그때 청소년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것은 전동킥보드의 이용과 관련된 교육과 관리, 그것을 대체할 교통수단이었다. 도시와 달리 농촌의 청소년들이 이용하는 버스는 일찍 운행이 중단되고 걸어다니기엔 거리가 너무 멀다. 밤에는 어둡고 도로가 좁아 자전거를 타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공유자전거를 도입하거나 통학택시비 또는 교통바우처를 지원하거나 공공교통체계를 정비해달라는 합리적인 제안을 했다.
이런 제안을 받은 군청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군수는 청소년들의 제안을 검토해서 추진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지만 이후의 구체적인 변화는 없었다. 전동킥보드의 이용자에 관한 규정은 있지만 사업자의 의무나 지자체의 권한에 관한 법이 없어 법을 만드는 것이 먼저라는 관료들의 뻔한 대답이 나왔다. 버스의 노선과 운행시간을 늘리고 청소년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려는 노력도 없었다. 만일 군청이 청소년들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청소년들의 이동권을 보장했다면, 비극적인 사고는 예방되거나 피해가 줄어들지 않았을까?
만일 지자체에 그런 권한이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군청은 사업자를 잘 통제하고 꼼꼼하게 관리계획을 수립해서 시민의 안전을 보장했을까? 지자체가 5년마다 수립하는 대중교통 기본계획의 현실을 보면 그럴 가능성은 낮다. 지금까지 이 기본계획은 4차례나 수립되었지만 주민들의 요구보다 버스회사들의 요구를 반영했다. 지자체의 각종 계획과 매뉴얼들은 용역업체가 수립해서 담당부서 캐비닛에 보관되는 서류일 뿐이다.
군단위 지자체의 경우 장애인 이동권만큼 청소년 이동권도 취약하다. 이동의 불편함을 반복해서 경험하는 청소년들이 지역사회에 정주할 가능성은 낮다. 군청은 인구감소를 이유로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지원받고 있지만 정작 주민들이 지적하는 원인을 바로잡지 않는다. 주민의 편익 증진이 지자체 사무배분의 기본원칙이라고 지방자치법에 명시되어 있지만 행정은 움직이지 않는다.
사후약방문이 아니라 직무유기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나 희생자의 이름을 붙인 법률이 뒤늦게 제정되지만 그 효과는 크지 않다. 사실 이미 있는 법만이라도 제대로 지켜진다면 상당수의 비극적인 사고는 예방되거나 그 규모가 줄어들 수 있다. 그러니 문제는 법의 존재 유무가 아니라 법을 집행하려는 의지이다.
의지는 충만하나 필요한 예산이 부족해서일까? 중앙정부가 교부세를 삭감하자 전국의 모든 지자체들이 예산이 부족하다며 불만을 토해냈지만 실제로는 수립한 예산을 다 쓰지도 못한다. 2023년 결산서를 보면 우리 지역도 2020년 이후 가장 많은 잉여금을 남겼고 다른 지자체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요구하면 행정은 예산부족을 핑계로 삼지만 정말 문제는 돈이 아니다.
그러면 문제는 뭘까? 민주화 이후 제도를 운영하는 권한을 잡은 것은 참여하고 결정하는 시민이 아니라 절차를 내세운 관료들이었다. 시민들의 요구를 받아 관료를 통제해야 할 정치인들도 지침과 규정으로 보호되는 관료조직의 벽을 넘지 못했다. 행정의 신속한 업무처리는 승진이나 이익을 보장하는 곳에서 이뤄진다.
일을 해야 할 곳에선 직무를 유기하고, 하지 말아야 할 곳에선 직권을 남용하니 행정에 대한 불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매일 들려오는 비극적인 사고 소식들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니 정치개혁만이 아니라 행정개혁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경향 : 2024.07.01.
펨코와 일베 사이
지난 총선의 지지율을 살펴보면 유난히 ‘튀는’ 집단이 보인다. 50대 이하 연령층에서 여당이 완패했는데, 단 하나의 예외가 존재한다. 20대 이하 남성, 이른바 ‘이대남’이다. 이대남의 지역구 지지율을 보면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을 앞섰다(47.9% 대 46.4%). 개혁신당, 녹색정의당, 새로운미래를 합산해 보수 대 진보를 비교해봐도 보수가 우세했다(49.4% 대 47.7%). 양대 정당의 위성정당 및 조국혁신당을 포함한 비례대표 지지율 역시 보수가 우세했다(48.2% 대 47.7%). 이 데이터의 출처는 지상파3사 공동 출구조사인데, 이번 출구조사에서 보수정당 지지가 과소 집계되었음을 감안하면 보수정당의 실제 득표율은 이보다 좀 더 높았을 것이다.
사실 20대뿐만 아니라 30대 남성에서도 보수 우위가 기본이다. 총선 직전인 3월 갤럽 여론조사의 정당 지지율을 보면 20대는 물론이요 30대 남성에서도 국민의힘이 민주당보다 우세했고, 보수정당 지지율 합계가 진보정당 지지율 합계보다 높았다. 30대 남성이 자신을 ‘보수’로 보는 비율은 ‘진보’로 보는 비율을 상당히 앞섰으며(34% 대 20%), 총선 이후 6월 조사에서도 여전했다(34% 대 21%). 다만 단순 지지정당이 아닌 실제 총선 투표 의향, 대통령 직무수행 지지율, 현 정부 ‘지원’이냐 ‘견제’냐를 묻는 질문에는 여당에 불리한 답변이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좀 더 멀쩡한 대통령이어서 심판 심리가 작동하지 않았다면 30대 남성층에서도 보수정당 득표율이 높았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른바 ‘이대남 현상’에 대해서는 숱한 연구와 토론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원인으로 교육과 취업 등에서 벌어져온 과잉경쟁과 능력주의를 지적해왔다. 하지만 이것들만으로는 왜 하필 남성만 보수화되었는지가 설명되지 않는다. 유의할 점은 이대남이 진보에서 멀어지기 시작한 시점이 2016~2018년이라는 사실이다(JTBC 2024년 2월10일 ‘20대 남녀 이념 차 “한국이 가장 최악”…FT 분석 사실인지 따져보니’).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보수정당이 대선 및 지방선거에서 연달아 패배한, 말하자면 보수정치권이 완전히 망한 게 아닌가 싶었던 시기다. 왜 하필 이때 이대남은 보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을까? 이것은 일반적인 정치문법이나 사회경제적 지위 분석으로는 해석되지 않는다.
이대남 보수화의 핵심 계기는 이 시기에 본격화된 젠더 갈등이다. 나는 3년 전 칼럼에서 “페미니즘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지적했다. “남성이 가해자로 지목되면 ‘유죄 추정’ 원칙이 적용된다는 공포가 시발점이었다. 곰탕집, 홍대 스튜디오, 이수역 주점, 박진성 시인 사건 등이 남초 커뮤니티에 실시간 중계되면서 핵인싸에서 찐따까지 대동단결이 이루어졌다. 2018년 남성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이 분수령이었다. 가해자가 여성이고 피해자가 남성인데도 페미니스트들은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고 여성가족부 장관은 이에 호응하는 성명을 냈다.”(2021년 7월8일자 ‘이대남은 왜 시장주의자가 됐을까’)
‘여혐’ 한순간에 바뀌기 어려워
1980년대 학생운동권의 트라우마가 ‘5·18 광주’라면, 최근 이대남의 트라우마는 ‘유죄 추정’이다. 그리고 1980년대 학생운동권의 사상이 학회와 정치조직에서 폐쇄적 학습을 통해 퍼졌다면, 최근 이대남의 사상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개방적 학습을 통해 퍼진다. 그리고 이 같은 경향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많은 연구자, 교사, 학부모들이 10대 남성의 보수화를 증언한다. 경제학자 우석훈은 2년 전 <슬기로운 좌파생활>을 펴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혐은 중학교 때부터 몇년에 걸쳐 다듬어진 ‘문화적 취향’이기 때문에 한순간에 바뀌기 어렵다. 10대~20대 남성의 극우화는 최소 20년 이상 계속될 것이다.”(2022년 1월12일자 문화일보 인터뷰)
진보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리 전망이 밝지 않다. 진보 사회운동의 사상적 전통에는 법률적 평등을 부차화하는 흐름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카를 마르크스인데, 노동자와 자본가가 법적으로 평등한 주체로서 근로계약을 맺지만 실상 이것은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에 따른 불평등을 은폐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률적 평등을 ‘형식적’이라고 여겨 부차화하고,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를 ‘실질적’이라고 여겨 중시한 것이다.
이것이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에도 마르크스가 여전히 위대한 사상가로 꼽히는 이유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보다 한 세기 뒤에 <정의론>을 펴낸 존 롤스는 ‘형식적 자유’와 ‘실질적 자유’를 구분하고 후자를 강조한다. 실질적으로 기회가 균등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수단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롤스는 그 형식적 자유, 즉 ‘권리’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며 그들 사이에 우열관계가 있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의 주장을 부연해보자면 자본주의란 자치권보다 소유권이 우위에 있는 체제, 즉 노동자들이 직장을 접수하겠다고 나서면 경찰과 군대가 출동하는 체제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기본적 속성이고, 이로 인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발전된 대표적 방법이 분배(케인스)와 혁신(슘페터)이다.
‘법률적 평등’을 부차화하는 현상은 현대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사뭇 다른 철학적 기반 위에서 다시 나타난다. 이른바 3세대 페미니즘의 대표주자인 주디스 버틀러는 젠더가 생물학적 성별이라는 ‘본질’ 또는 ‘본성’의 발현이라는 전제를 근본적으로 뒤엎는다. 가부장제 또는 이성애는 매일매일의 실천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것이다. 젠더 또는 정체성이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임을 부정하고 강제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는 인식에 도달함으로써, 페미니즘은 ‘여성’을 해방시키는 운동이라기보다 사실상 무한정의 젠더를 인정하는 운동으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특정 젠더를 부과하는 언행을 거부하는 운동은 당연히 기존의 법률과 문화를 가로지른다. 젠더평등 화장실 도입이 추진되고,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 거부되며, 이성애적 일부일처제를 벗어난 가족관계가 시도된다.
유시민 작가는 지난해 9월 노무현재단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일베, 펨코, 디시 등 혐오와 날조가 난무하는 이대남 커뮤니티들을 싸잡아 비난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전두환을 ‘전땅크’라고 부르며 영웅시하는 행태를 지적했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은 일베와 펨코 사이의 차이를 과소평가한 것이다. 일베는 전땅크를 찬양하지만 펨코는 전땅크를 비난한다. 영화 <서울의 봄>에 대한 펨코의 비평문들을 보면 펨코는 상식적인 자유주의의 기준을 훌쩍 넘어선다. ‘여자는 삼일에 한번씩 패야 한다’는 혐오발언(이른바 ‘삼일한’)은 일베에는 수시로 등장하고 펨코보다 평균연령이 높은 엠엘비파크에서도 가끔 보이지만 펨코에서는 볼 수 없다. 이들의 반페미니즘은 전통적 여성혐오라기보다 무임승차자에 대한 혐오에 가깝다(김선영, ‘온라인 커뮤니티 에펨코리아로 살펴본 이대남 현상’, 2023). 최근 펨코에서 동성애 혐오의 비율이 낮아지고 있어 주목된다. 동성애 혐오 댓글의 3분의 1 정도의 빈도로 이를 비판하는 댓글이 올라오고 있다. 굳이 페미니즘 이론을 원용하지 않더라도, ‘행복추구권’이라는 자유주의적 기본 권리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하는 것이리라. 리얼돌을 수입하고 즐길 권리가 중요한 만큼, 누구와 연애를 해야 행복한지를 결정하는 권리도 중요하니까.
펨코·일베 차이 과소평가해선 안 돼
펨코가 진보 쪽으로 진화할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다. 예를 들어 팩트체크를 무엇보다 중시하면서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중국몽’ 연설의 원문을 팩트체크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시민 작가처럼 “쓰레기”라든가 “안 놀아주는 게 답”이라고 치부해선 안 된다. 한국에서 접속수 2위에 해당하는 초대형 커뮤니티이고(1위는 디시), 일베와 확실히 차별화되어 있으며, 대규모의 학습과 토론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최근 동탄의 한 헬스클럽에서 한 남성이 성추행범으로 몰렸다가, 여성이 허위신고했음을 자백하면서 궁지에서 벗어난 사건이 있었다. 이 과정은 펨코에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는데, 과거 유사한 사건들에서 그러했듯이 대표적 진보 커뮤니티인 클리앙이나 딴지일보에서도 상당한 동조가 나타났다. 2018년 비동의 간음죄를 깊이 고찰하고 이의 도입을 반대한 바 있는 조국 대표의 발언을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결국 이번에도 ‘유죄 추정’ 문제를 비판하고 나선 정치인들은 모두 국민의힘 소속이었다.
이범 교육평론가 경향 : 2024.07.01.
기술 발전이 일자리를 빼앗을까
1811년 3월11일 늦은 밤, 영국 노팅엄의 직조공 수백명이 한 면직 공장에 침입해 60여대의 편물기를 파괴했다. 산업혁명기 기술혁신으로 인해 실직 위기에 놓인 수공업 노동자들이 자신을 대체한 기계를 부숴버림으로써 현실에 저항했던 것이다. 이른바 ‘러다이트 운동’은 이후 주변 지역으로 퍼지며 5~6년간 지속되었다.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 가담한 노동자들을 잡아들였고, 주동자들을 교수형에 처하기까지 했다. 이후 기계화는 더 빠르게 진행됐지만 기계 파괴 운동은 금방 동력을 잃었다.
러다이트 직조공들의 생각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점에서 그들은 옳았다. 방적 기술을 예로 들어보자. 18세기 초반 100파운드(약 45㎏)의 면화에서 실을 뽑으려면 숙련공이 5만시간 동안 일해야 했지만, 제니 방적기가 발명된 이후인 1780년엔 2천시간이면 충분했다. 동력 뮬 방적기가 도입된 1795년에는 300시간으로 단축됐다. 방적기를 다루는 데엔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었다. 비싼 숙련공은 일자리를 잃고 대신 저임금의 여성 또는 아동 노동자가 고용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일자리 총량이 줄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18세기 후반 약 17만명이던 영국의 면직 산업 종사자는 19세기에 들어서면서 20만명을 넘어섰고, 기계 파괴 운동이 막을 내린 1817년엔 35만명까지 늘어 있었다. 생산 확대와 함께 품질 개선이 이뤄지면서 내수와 수출 시장 규모가 커졌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수공업 직조공들의 실질임금이 반 토막 난 반면 전체 노동시장의 임금은 1.5배 증가했다. 기술 발전으로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었지만, 전체적으론 더 많은 사람이 더 높은 임금을 받으며 일할 수 있게 됐다.
그 이후로도 기술 발전은 계속됐다. 인간이 하던 많은 일들을 이제 컴퓨터와 로봇이 대신한다. 기계화, 자동화로 인한 노동시장 효과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기계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대체 효과’, 둘째, 새로운 기술에 따라 새로운 직무가 발생하는 ‘복원 효과’, 셋째, 생산성 증대로 인해 전체 노동 수요가 많아지는 ‘생산성 효과’다. 산업혁명기에는 복원 효과와 생산성 효과가 대체 효과를 압도했지만,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시기와 지역에 따라 기계가 도입된 공장에서 고용이 줄기도 하고 늘기도 한다.
효과는 산업과 직군, 숙련도에 따라 다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2003~2018년 사이 미국, 독일에서 정보통신장비, 소프트웨어, 로봇이 도입되면서 고숙련 고용은 증가한 반면 저숙련 고용은 감소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본격적으로 도입된다면 비반복적, 인지적 업무를 수행하는 숙련 노동자의 일자리까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행 연구는 정보통신업과 전문 과학기술 분야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위험도가 가장 높으며, 인공지능에 많이 노출된 산업과 직업에서 고용과 임금이 동시에 감소할 것이라 추정했다.
기술 발전은 너무나 빠르고 광범위하여 그 영향을 바로 예측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는 비교적 분명하다. 기계화, 자동화는 누군가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며, 변화에 적응할 역량이 없는 사람일수록 피해를 더 크게 볼 것이라는 사실이다. 러다이트 운동에 나섰던 노동자들은 기계화 그 자체가 아니라 기계 소유를 둘러싼 구조적 모순에 저항했다. 산업혁명 초기 숙련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으면서도, 저숙련 노동자는 열악한 근로환경에서 장시간 노동에 노출되면서도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못했다. 1800년대 활발했던 노동 운동과 참정권 확대 운동은 이에 대한 반동이었으며, 기술 발전이 인간에게 해를 덜 입히도록 하는 안전장치로 작동했다.
과거에 그랬다면 미래 역시 사람이 바꿔 갈 수 있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것을 걱정하기보다, 인간을 이롭게 하는 기술 발전에 투자하고, 새로 생기는 일자리에 맞춰 교육훈련 제도를 정비하며, 일자리를 잃거나 보호의 바깥에 놓일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새로 갖춰 가려 노력해야 한다. 하루가 멀다고 일하다 죽는 사람이 생기고 그나마 일할 사람조차 사라지고 있다는 우리나라에서, 위험하고 따분한 일은 기계에 맡기고 더 즐겁고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그리 나쁘지 않은 미래’를 만드는 건 기계가 아닌 사람의 몫이다.
장영욱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한겨레 : 2024.07.01.
살아남지 못한 '나홀로' 사장님?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누구인가
정확한 통계부터 확인해야
사설] 소상공인 98% "최저임금 인하‧동결"…'과속 인상 역설' 되새겨야(24.06.12 서울경제)
[사설] 실업자 증가 쇼크, 기업 활력 높여 일자리 안정 찾아야(24.06.13 서울경제)
<서울경제>가 이틀 연속으로 사설에서 최저임금을 다뤘다. 12일 사설에서는 "최저임금은 이미 기업들이 감내할 수준을 넘어섰다"면서 최저임금 인하‧동결을 요구하는 소상공인 절대다수의 호소를 끝내 외면한다면 "자영업자 폐업, 청년 일자리 쇼크 등 부작용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저성장 장기화로 흔들리는 우리 경제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날인 13일 사설은 "취업자 4명 중 1명이 종사하는 자영업‧소상공인"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그리고 "과도한 임금 인상이 일자리 참사로 이어지지 않도록 최저임금 인상 결정 과정에서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자영업자 폐업, 쇼크, 일자리 참사, 치명상 같은 표현들이 무시무시하다.
두 편의 사설에서 거론된 소상공인의 어려움은 우리가 생활 속에서 체감하는 것과 일치한다. 가계의 실질소득이 줄어들고 있으니,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돈을 쓰지 못한다. 한국경제인협회 의뢰로 자영업자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자영업자의 48%는 현재도 이미 고용 여력이 없다고 답했다. 그래서일까.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일자리가 수십만 개 줄어든다'는 식의 협박성 주장은 예년보다 줄어들었다. 올해의 최저임금 인상 반대론 중 눈에 띄는 것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1. 자영업 연체율이 높으니 최저임금 인상 억제해야 한다.
2. 소상공인의 지불 능력이 낮으니 최저임금 인상 억제해야 한다.
3. 숙박‧음식점업 등 특정 업종이 힘드니 최저임금 차등 적용해야 한다.
4. 최저임금 못 받는 노동자가 많으니 최저임금 인상 억제해야 한다.
5.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가 증가했으니 최저임금 인상 억제해야 한다.
6.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가 감소했으니 최저임금 인상 억제해야 한다.
1번과 2번은 거의 같은 이야기고, 3번은 2번의 변종이다. 그런데 최저임금은 지불 능력에 따라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 최저임금의 취지라고 최저임금법에 명시되어 있다. 4번은 광범위한 불법이 저질러지고 있다는 것이니 바로잡아야 할 일이지 최저임금 억제의 근거가 못 된다. 5번과 6번은… 이상하다.
우선 지난 18일 소상공인연합회가 개최한 '2025년도 최저임금 소상공인 입장 발표 기자회견'의 회견문 첫머리를 보자.
"최저임금은 지난 2017년 6470원에서 2024년 9860원으로 50% 이상 상승했습니다. 그 사이 소상공인의 현실은 어떻게 변했습니까? 2017년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158만 명에서 2023년 141만 명으로 17만 명 줄었고,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같은 기간 415만 명에서 437만 명으로 22만 명이나 늘었습니다. 늘어나는 인건비와 하락하는 매출을 견디는 방법으로 '1인사업장'을 택할 만큼 소상공인이 한계상황에 내몰린 것입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2017년부터 2024년까지 최저임금 인상률과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의 증가를 언급했다. 왜 5년도 아니고 10년도 아닌 7년 동안의 변화를 이야기했을까? 2017년과 2018년에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을 큰 폭으로 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좋다. 7년을 가지고 논의를 해볼 수도 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그 7년간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가 415만 명에서 437만 명으로 늘어났다는 것을 최저임금이 과도하게 높다는 근거로 제시했다. 그리고 일부 업종에 대해서만이라도 '구분 적용'을 시행하자고 촉구했다.
여기까지만 봐도 노동 쪽 입장에서 반론할 거리는 너무 많다. 첫째,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문재인 정부 5년 동안의 최저임금 인상률은 박근혜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률보다 낮았다. 둘째, 문재인 정부 시기에 최저임금 산입 범위 개악을 통해 각종 수당을 단계적으로 산입하게 되었으므로 실제 임금인상 효과는 그보다 작았다. 셋째, 최저임금 인상률을 비율로 따지면 50%가 넘을지 몰라도 액수로는 7년간 3390원 오른 것이다. 시간당 최저임금은 10년 전 박근혜 정부가 공약했던 1만 원에도 아직 못 미치고 있다. 넷째, 2017년~2023년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가 17만 명 줄었다는 것은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주체가 그만큼 적다는 뜻이므로 오히려 최저임금 인상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로 노동자와 소상공인이 날을 세우고 공방을 벌이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일단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가 22만 명이나 늘어났다'는 소상공인협회의 주장을 기억하자.
살아남지 못한 '나홀로 사장님'…1년새 11만여명 줄었다[생존위기 소상공인①](24.06.22 뉴시스)
늘어나는 '나홀로 자영업자'…커지는 '최저임금 차등적용' 목소리(24.06.19 아시아경제)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 수를 최저임금과 연결한 언론 보도를 찾아봤다. <뉴시스>는 소상공인의 위기에 관한 연속 기사에서 '나홀로 사장님'이 살아남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기사에는 세 명의 사장님이 등장한다. 수원 권선구의 미용실에서 혼자 주6일, 12시간씩 일하는 신모씨, 서울 종로구에서 홀로 고깃집을 운영하는 문모씨, 편의점을 운영하면서 하루 12시간씩 남편과 교대로 일하는 이모씨. 모두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소상공인이다. 고깃집 사장님 문모씨는 "코로나 때는 희망이라도 있었지, 지금이 훨씬 힘들다"고 말했다.
이분들이 인건비를 부담하기 어려워 '나홀로 사장'으로 영업하거나 가족을 동원한다는 것은 분명한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그런데 <뉴시스>는 지난달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가 424만2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1만4000명(-2.6%)이 감소했다면서 "나홀로 사장들이 끝내 버티지 못하고 폐업한 결과"라는 해석을 달았다. 소상공인연합회에서는 분명히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가 늘어났다고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진실은 이렇다.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2021년과 2022년에 비교적 큰 폭으로 늘어났고, 올해 들어서는 전년 동월 대비 감소 추세를 보인다. 그런데 올해도 월별로 비교하면 달라진다. 올해 5월까지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전달 대비 조금씩 증가했다. 그래서 <아시아경제>는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 수가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두 달 연속 증가했다면서 '나홀로 자영업자' 비중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 수의 증가를 최저임금 차등적용 주장과 연결했다.
그러니까 최저임금이 너무 높다고 주장하는 단체 또는 언론에 따르면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증가했다. 아니, 올해는 감소했다. 아니, 이번 달에는 지난 달보다 증가했다. 헷갈리지만 증가든 감소든 모두 인건비 부담 탓이라고 한다.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가 증가한 것도, 감소한 것도 모두 최저임금 차등적용의 이유라고 한다. 답을 미리 정해놓고 통계를 가져오기 때문에 이런 혼란이 발생한다. 그러면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 수와 최저임금은 대체 어떤 관계일까?
"확인할 수 없다"가 답이다.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가 누구인지부터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가 얼마나 늘어났고 줄어들었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매달 발표하는 고용동향에서는 전체 취업자를 '임금근로자'와 '비임금근로자'로 나눈다. 그리고 비임금근로자를 다시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 무급가족종사자로 구분한다. 비임금근로자에서 무급가족종사자를 뺀 나머지를 자영업자로 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에는 특수고용직 노동자가 포함되어 있다. 배달 라이더, 퀵서비스 기사, 택배 기사, 화물차 기사, 학습지 강사, 학원 강사, 보험설계사, 헬스 트레이너….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명목상 사업자로 일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원‧하청 사업주의 지배하에 있기 때문에 특수고용직 노동자도 노조를 설립하거나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받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또 하나는 저소득 일용 노동자를 사업소득자로 둔갑시킨 경우, 이른바 '가짜 3.3 노동'이다. 4대보험, 야근수당 등 근로기준법상 의무를 피하려고 멀쩡한 직원을 '사업자'로 위장해 등록한다. 사업장의 노동자가 실제로는 5명 이상인데 서류상 근로기준법 미적용 기준인 '5인 미만'을 만들기 위해 가짜 3.3 계약을 활용하기도 한다.
▲지난달 20일 플랫폼희망찾기에서 발표한 보도자료의 일부. ⓒ플랫폼노동희망찾기
6월 20일 '플랫폼노동희망찾기'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사업소득 원천징수 대상자 약 847만 명 가운데 '기타 자영업'(국세청 업종코드 940909)으로 신고된 사람 수가 약 455만 명이다. 사업소득이 신고되는 사람 중 절반 이상이 기타 자영업에 종사하는 셈이다. 그럼 기타 자영업이란 무엇이며 이 455만 명은 누굴까?
원래는 협회 고문, 프로스포츠 선수, 1인미디어콘텐츠창작자(즉 유튜버) 등 물적 기반 없이 독립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을 분류하기 위한 범주가 기타 자영업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업주들이 고용에 따르는 의무를 피해 가는 데 광범위하게 사용, 아니 악용되고 있다. 그래서 455만 명의 기타 자영업자 중에는 진짜 유튜버도 있겠지만 여러 직종의 단시간 노동자와 취약한 노동자가 몰려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가능성을 검증하려면 더 정밀한 통계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가 감소한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보려면 최소한 연령별, 업종별, 연도별로 마이크로데이터를 비교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배달 라이더 급증···운수창고업 '나홀로 자영업자', 도소매업 추월(24.01.18 경향신문)
'고령 택시기사' 급증에…60세 이상 자영업자 200만명 돌파(24.02.15 조선일보)
언론은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의 실체를 파악하고 있을까? 관련 보도가 아예 없지는 않다. 지난 1월에는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 가운데 운수창고업 종사자 수가 69만5000명(2023년 10월 기준)에 달해 도소매업(68만7000명)을 넘어섰다는 보도가 나왔다. 배달 라이더 수가 급격히 늘어난 영향이다. 또 지난 2월에는 지난해 60세 이상 자영업자가 전년 대비 7만5000명 늘어났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이는 고령자들이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개인택시, 화물차, 택배운송 등의 일자리를 얻거나 돌봄 노동에 뛰어든 결과였다. 띄엄띄엄 나오는 이런 기사들은 자영업자 통계와 관련된 단편적인 진실만을 알려준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보고서 2022-05, '자영업자의 노동시장 위험과 고용안전망'에 수록된 표. ⓒ한국노동연구원
위 표는 한국노동연구원이 '한국노동패널'과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바탕으로 '자영업자의 취업형태별 구성'(2021년 기준)을 분석한 결과를 보여준다. 한국노동패널에서는 무급가족종사자를 따로 분류하고, '자영업자'는 크게 둘로 나눴다. 고용원이 있거나 사업을 위해 임대료 또는 부동산 비용을 부담한 적이 있는 자영업자를 '독립 자영업자'로, 임대료 또는 부동산 비용을 부담한 적이 없는 1인 자영업자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노무제공자'로 정의했다. 이 표에서 '노동패널'을 보면 '독립 자영업자'는 116만4000명(고용주)과 168만6000명(1인 자영업자)을 합쳐 285만 명이다. 그리고 '노무제공자'는 132만 명. 한국노동패널 기준으로는 자영업자의 약 32%가 노무제공자라는 것이다. 노동시장 환경의 빠른 변화를 고려하면 2024년 현재 이 비율은 더 커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 32%는 최저임금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장님'이 아니다. 이들은 최저임금을 받는 10대 아르바이트 노동자일 수도 있고, 노동권 사각지대에 있는 개인사업자일 수도 있고, 건당 수당을 받지만 순수입을 시간으로 환산하면 최저임금보다 낮게 나오는 노동자일 수도 있다. 이들을 위한다면 오히려 최저임금 적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최저임금 논의는 '을과 을의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을과 을이 싸워봤자 어느 쪽도 처지가 나아질 수 없다.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률이 물가상승률보다 낮았던 탓에 노동자는 고물가에 실질임금 감소로 허덕이다가 이제 점심값마저 줄이고 있다. 자영업자는 이자 비용, 임대료, 로열티, 공공요금 등 각종 비용이 상승하는 가운데 그나마 조절가능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갈아 넣으며 일했다. 양쪽 다 어렵다. 그러나 자영업자 통계를 근거로 어느 한쪽 '을'의 어려움을 강조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서류상 자영업자지만 실질은 노동자인 사람이 수백만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왜곡된 통계를 바로잡고 노동시장의 실태부터 이해해야 제대로 된 최저임금 논의를 시작할 수가 있다.
안진이 더불어삶 대표 | 프레시안 2024.07.02.
부자 감세가 서민 살리고 역동경제라는 정부의 오판
정부가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해 상속세·배당소득세·법인세 개편에 나선다고 밝혔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방침도 내놨다. 주주환원을 늘려 자본시장을 활성화시키고 경제 활력을 도모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대부분 재계의 민원이고 ‘부자 감세’ 논란을 부른 사항이다. 정부가 서민·중산층 시대를 구현하겠다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대주주와 투자자에게 세금을 깎아준다고 서민 경제가 활성화한다는 건 ‘주술’에 불과하다. 올해 세수 펑크가 확실한데도 감세를 정책 핵심으로 떠받드는 경직성도 도를 넘었다.
정부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에서 ‘2024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및 역동경제 로드맵’을 발표했다. 배당과 자사주 소각으로 주주환원을 늘린 기업에 대해 증가분의 5%를 법인세에서 깎아준다. 최대주주의 주식 상속 시 경영권 프리미엄 명목으로 주식가치를 20% 높여 평가하는 최대주주 할증도 폐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인수·합병 때 경영권 프리미엄은 20% 넘게 평가되는 일도 많다. 실존하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반영하지 않는 건 실질 과세 원칙에 어긋난다. 반면 소액주주 권리 보호를 위한 지배구조 개선 대책은 재탕에 불과했고, 기업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방안은 빠졌다.
윤 대통령은 “기업 가치를 높이고 국민들에게 더 많은 자산 형성 기회를 제공하는 밸류업 프로그램을 정착시키고 확산하겠다”고 말했다. 기업 가치가 올라가면 개인도 그 과실을 같이 누릴 수 있다는 ‘낙수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서민들은 투자할 돈은 고사하고 하루하루 생계를 잇기도 빠듯한 상황이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올 1분기 중산층 가구 다섯 중 하나는 ‘적자 살림’을 했다. 소득은 제자리인데 고물가·고금리로 써야 할 돈이 늘어난 것이다. 장사를 접고 싶은 자영업자가 부지기수지만, 결심 후 실제 폐업까지 1년이 걸린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이번 대책에 소상공인을 위한 원리금 부담 경감·폐업지원금 확대 등이 뒤늦게 포함됐지만, 그 수혜 폭과 실효성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그칠 수 있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기존보다 0.4%포인트 높여 2.6%로 전망했다. 그러나 서민들은 그 온기를 느낄 수 없고 집값 상승 기미로 미래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부의 대물림’ 문턱을 낮추는 부자 감세는 계층 간 양극화만 부추길 뿐이다. 여야가 서민경제에 활력을 되살리는 대책을 더 과감히 서둘러야 한다. | 경향 2024.07.03.
결혼 로망스의 파탄
지난 1일 정부가 저출생·고령화, 인력·이민 등 인구정책 전반을 포괄하는 ‘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2005년 저출산 및 고령사회 대응을 국가 의제로 설정한 이후 4차에 걸쳐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해왔지만, 인구 증가에 별반 효과가 없자 아예 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지난 5월9일 윤석열 대통령이 저출생 문제를 국가비상사태로 규정하고 가칭 ‘저출생대응기획부’를 신설하겠다고 밝힌 후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기존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정책 심의 권한만 가졌지 독자적인 집행·예산권이 없어 정책을 의결하고 강제하는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수용한 셈이다.
‘전략’이란 이름부터 눈에 띄지만, 더 놀라운 것은 과거 경제기획원과 유사한 모델로 설계했다는 설명이다. 경제기획원이 어떤 조직이던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지 불과 두 달여 만에 설립됐다. 경제성장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7차례에 걸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독자적 예산 편성권은 물론 외자 도입과 배분이라는 막강한 권한도 지녔다. 1963년 경제기획원 장관이 부총리를 겸임하면서 ‘국가주도형 성장제일주의 전략’을 짜고 실천했다. 설립된 지 33년 만인 1994년 김영삼 정부가 폐지했다. 국가주도형 개발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인식이 컸다.
한동안 역사에서 잊히는 듯했지만, 인구전략기획부가 경제기획원을 인구정책 컨트롤 타워의 모델로 다시 불러냈다.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던 인구정책과 국가발전전략을 모아 총괄한다. 특히 인구정책을 기획하고 평가할 뿐만 아니라 예산을 배분하고 조정하는 사회부총리 기능도 갖췄다. 마치 경제기획원이 ‘성장률’에 매달리듯, 인구전략기획부는 ‘국가주도형 출생제일주의 전략’을 짜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온갖 정책을 동원할 태세다. 국가가 나서서 산아제한 정책을 통해 인구감소를 이끌었다는 성공의 기억에 의지한다. 사실 20세기 대다수 개발도상국은 산아제한 정책을 통해 인구를 줄였다. 이제 거꾸로 산아증가 정책을 통해 인구증대를 이끌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이다.
과연 국가가 주도하는 출생률 증가 정책은 성공할까? 물론 저출생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높은 자녀 교육비, 높은 주택 가격, 공간적 격차 및 불균형을 해소하는 국가 정책은 꼭 필요하다. 이러한 정책이 출생률 상승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가 전략적으로 이런 정책을 펼치는 것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빠뜨린 사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혼외 출산율이 매우 낮다. 2018년 기준으로 2% 남짓으로, OECD 평균인 40.7%보다 훨씬 낫다. 일본만이 한국과 같은 수준이다.
올해 서강대 김영철 교수가 펴낸 ‘미혼율의 상승과 비혼가정의 제도화’라는 논문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여성의 사회참여와 경제활동이 활발한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는 청년이 결혼을 피하는 게 보편적인 현상이다. 결혼생활 대신 비혼동거(cohabitation)나 등록 파트너십(domestic partnership)을 통해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고 키운다. 두 파트너는 각자의 소득과 재산을 인정하고 하는 일도 존중한다. 가사와 양육도 함께 나눈다. 결혼을 안 했으니, 상대 가족이 내 가족이 되지 않는다. 1970년 7.4%에 그치던 OECD 평균 비혼출산율은 2022년 42%를 넘어섰다. 영국, 프랑스, 덴마크 등 50%를 넘긴 나라들도 많다. 이를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모두 ‘비도덕적인 내연관계’다. 그 사이에서 출생한 자녀도 환영받지 못한다. 하지만 사랑-결혼-출산-육아의 자연적 연계를 실천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로망스 서사가 파탄난 지금, 이러한 낡은 도덕적 판단을 폐기하고 당장 비혼가족의 제도화에 나서야 한다.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 | 경향 2024.07.04.
종부세 폐지론과 패닉바잉 그리고 ‘악어의 눈물
’2022년 1월24일 한겨울, 경기 성남의 상대원시장 골목이 한 중년 남성의 뜨거운 눈물로 달궈졌다. 유튜브 생중계로 보던 이의 눈시울마저 붉어질 뻔했다. 그렇다. 이재명 대선 후보에겐 서민 심금을 울리는 무언가가 분명 있었다. 선거 막판 구구절절한 연설에 완전 ‘잼며든’ 많은 이들이 지지자가 됐다.
“여덟 가족이 반지하방 한곳에서 살았습니다. 이 골목에서 아버지의 리어카를 밀면서, 학교 가는 여학생들을 피해서 저 구석으로 숨었습니다. (중략)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우리 서민들의 삶과 이재명의 참혹한 삶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흉금을 터놓은 말은 안타깝게도 시장통을 넘지 못했다.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다. 왜 그랬을까. 결국 그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서민을 앞세워 총선에 압승한 더불어민주당이 느닷없이 종합부동산세를 없애자는 얘기를 내놓고 했다. 무슨 자신감일까, 어떤 복안이 있을까, 벌써 대선 주판을 튕기는 걸까.
문재인 정부 때 한 달이 멀다 하고 내놓던 대책에도 집값이 더 뛰자 사람들은 마침내 합리적 의심에 가닿았다.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는 거 아니냐?’ 그 근거는 바로 세수다. 2017년 59조원대이던 부동산 관련 세수가 2021년 108조원을 넘었다. 거래세인 취득·등록세와 양도소득세가 각각 33조7000억원, 36조7000억원이나 됐다. 종부세액은 1조6900억원에서 7조2700억원으로 뛰었다.
얼핏 보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다. 집주인은 집값 올라 좋고, 건설사와 금융사는 수조원대 이익 따박따박 챙겨 좋고, 정부는 곳간 가득 채워 좋고…. 무주택 서민들만 눈감아주면 모두 해피엔딩 같다. 게다가 이렇게 거둔 세금은 서민들에게 쓰겠다면 아무 문제 없는 건가. 그런데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냥 기분 좋다가 말았다. 정신 차리고 보니 보유세를 많이 낸 거 빼곤 나아진 게 없다. 이렇게 말한 이들도 많다. “우리가 언제 집값 올려달라고 한 적 있냐. 가만히 있는 집값을 들쑤셔 놓고선 팔지도 않았는데 세금만 더 내라니.”
국토는 본디 모두 공유재산이고 그 위에 강남 같은 노른자위에 자가가 있으면 ‘품위 유지비’로 세금은 더 내는 게 맞다는 논리는 헨리 조지(1839~1897) 신봉자들에겐 바람직한 얘기다. 그러나 필부들은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경제철학이다. 종부세가 절대선일 수는 없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을!’이란 조세 원칙에도 비켜나 있다.
기어코 종부세를 손대려거든 이참에 ‘보편증세’ 같은 큰 그림이라도 내놓고 떠들어야 체면이라도 서지 않겠나. 그래, 이 정부에서 너덜너덜해진 종부세, 까짓것 없앨 수도 있다고 치자. 대신 거래세, 특히 양도세를 대폭 강화하자고 하라. 집값 상승액 중 물가, 이자비용 등을 제한 뒤 상당수 세금으로 거둔다고 해보자. 그럼 투기를 할 메리트가 사라진다.
지난 대선 패배의 본질은 초밥도, 대장동도 아니다. 큰 뿌리는 부동산 정책 실패에 있다. 그런데 총선에 압승하고 흘린 게 종부세 폐지론이라니…. 종부세 세수가 지방균형발전용 재원이란 건 알고 있을까.
정부·여당과 민주당의 행태를 보면 부동산 ‘패닉바잉’을 부추기는 꼴이다. 눈치 없이 이놈 저놈이 멍석을 깔아대니, 벌써 시장은 들썩인다. 자고 나면 도처에 매매 호가가 오른다는 소리다. 지난 정부 때 낯익은 장면이다. 이런 와중에 윤석열 정부가 ‘스트레스 DSR’ 같은 규제까지 미루는 등 시장친화적으로 나서자, 기름을 끼얹었다. 가계대출은 6월에만 5조원 넘게 급증했다.
세입이 64조원 이상(관리재정수지) 펑크난 처지다. 윤석열 정부도 부동산 세수 확충 유혹에 빠진 건 아닐까. 미국발 금리 인하까지 단행될 경우 부동산 쇼핑을 더 부채질할 공산이 크다.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저출생 기록 행진의 핵심 이유가 높은 집값이다.
전병역 경제에디터 | 경향 2024.07.04.
금속노조의 도넛 경제학
민주노총 산하 제조업 산별노조인 금속노조는 지난 5월부터 충북 단양의 수련원에서 확대 간부교육을 매주 한 차수씩 진행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지회 임원과 대의원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으로 올해의 제목은 ‘기후위기 시대, 노동자가 주도하는 정의로운 전환’이다. 기후위기를 주제로 1박2일 동안 집중 교육을 진행하는 사례는 한국 노동조합에서 아마도 처음일 것이다.
한 회당 몇개 지부를 묶어서 100명이 넘는 인원들이 참여한다. 대다수가 남성 육체노동자인 금속노조의 분위기는 다소 투박하다. 좋고 나쁜 것에 솔직하며 분명한 것을 좋아한다. 그런 조합 간부들에게 기후위기라는 복잡하고 거대한 이야기는 만만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제 노동조합에도 작업장의 불볕더위부터 탈석탄과 RE100이 요구하는 산업 전환에 이르기까지 기후위기가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금속노조 집행부는 조합 간부들부터 기후위기 인식을 높이고 노동조합의 대응 역량을 키우기 위해 귀중한 교육을 기획했다.
아무래도 처음 시도하는 본격적인 기후 교육이다 보니 생소하고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타임오프 폐지와 노조 회계 공시 대응 같은 노동조합의 당면 투쟁 현안도 많은 시기에 굳이 기후위기 교육을 해야 하느냐는 불만도 들린다. 그러나 노조 집행부는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기후위기를 공부하고 전략을 준비해야 할 적기라고 생각한다.
나도 강사로 참여하는 교육 분위기는 사뭇 진지하다. 기후과학과 산업 전환을 다루는 어지간히 졸릴 만한 강의가 끝나면 ‘우리 노동조합 도넛 그리기’라는 모둠 토론이 이어진다.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가 제안해 암스테르담 등 여러 도시에서 활용되고 있는 아이디어인 ‘도넛 경제학’을 조합원들이 일하는 작업장에 처음 적용해보는 시간이다.
도넛의 바깥 고리는 노동자들의 생산활동의 결과로 지구에 주는 영향을 평가하는 9개 지표로 구성되어 있다. 에너지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 미세먼지 발생 등이 과다하다면 ‘지구행성적 경계’를 돌파해 지구 시스템이 위험해질 것이다. 도넛의 안쪽 고리에는 경제적 처우와 노동시간, 교섭력 등 노동자들의 존엄과 안전을 보장할 작업장 내부 평가 지표들이 있다.
조별로 1시간 정도 자기 사업장의 현황에 대해 토론한 다음 지표마다 점수를 매겨 테이블에 펼쳐진 전지 위에 도넛을 그린다. 도넛이 동그랗고 매끈한 모양으로 그려진다면 그 작업장은 노동자와 지구 모두를 위해 바람직한 상태이고, 도넛이 안팎으로 삐죽빼죽하다면 인간에게나 자연에 모두 지속 가능하지 못한 작업장에 해당한다. 이 결과는 다음날 노동조합 기후 전략 수립 토론의 바탕이 된다.
참여자들은 노동조합 도넛을 통해 지구와 우리의 노동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노동조합이 스스로 노동의 방식과 결과를 파악하고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지금의 단체협약 관행과 노동운동의 자원으로 당장 기후위기를 해결하기는 어렵겠지만, 작업장 도넛은 기후위기 속에 우리의 노동 현장이 어디쯤에 있고 무엇을 바꿔 나갈 수 있을지를 더듬어볼 수 있는 요긴한 식량이 될 것이다.
이런 판국에 민주당이 뭘 어쩌겠다고? 상대원시장에서 내보인 것이 ‘악어의 눈물’이 아닌지 입증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악어는 입을 움직이는 신경과 눈물샘 신경이 같아서 먹이를 삼키기 좋게 하는 과정에 ‘눈물’이 나온다고 한다. 민주당도 실은 눈앞의 ‘먹이’에 더 신경을 쓰는 게 아니길 바란다.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 때 부동산 실정을 참회하고, 해법을 보여줘야 마땅하다. 단지 우리의 뜻은 순수했는데, 세상이 몰라준다거나 때를 잘못 만난 것일 뿐이라며 구렁이 담 넘듯 해선 안된다.
구중심처에 어떤 분들처럼 자리를 꿰차는 것 자체가 목적 같은 이가 설치는 한, 그 어떤 조직에도 나은 내일은 없다.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 소장 | 경향 2024.07.04.
낙수효과, 환상 속의 그대
삼성전자가 반도체 업황 회복을 타고 2분기에 10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냈다.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는 실적으로, 영업이익이 1조원을 밑돌던 1년 전과 비교하면 무려 15배 늘어난 규모다. 폭발적인 실적 상승에는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가격 반등과 인공지능(AI)용 반도체 수요 급증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삼성전자 주가는 3년5개월 만에 최고치로 뛰었다.
정부도 삼성전자의 어닝 서프라이즈를 바라보며 모처럼 웃었을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6개월 전보다 0.4%포인트 높여 2.6%로 전망했다. 반도체를 필두로 한 수출 회복세를 반영한 숫자다. 기업들 실적이 좋아지면 세수 확충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반도체 불황으로 지난해 각각 11조5000억원, 4조6000억원씩 적자를 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해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고 한다. 통상 전체 법인세의 약 10%를 내온 두 회사의 실적 향상은 가뜩이나 심각한 세수 부족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올해 법인세를 내지 않는 이유가 영업이익 적자 때문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적자였지만 영업 외 손익은 29조원 흑자, 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은 17조5000억원에 달한다. 나라살림연구소에 따르면 해외자회사 배당금 법인세 감면,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 설비투자 및 연구·개발(R&D) 세액공제 확대 등 정부의 적극적인 감세 정책으로 깎아준 세금이 12조원을 넘는다. 삼성전자의 법인세 0원은 정부가 추진한 적극적인 감세 정책의 결과라는 것이다.
세수 결손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도 정부·여당은 대기업과 고소득층 세금을 더 깎아주려 한다. 배당과 자사주 소각을 통한 주주환원에 적극적인 기업은 법인세를 줄여주고, 대기업 최대주주가 보유한 주식 가치를 일반 주주의 주식 평가액보다 20% 가산하는 최대주주 할증평가 제도는 없애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기업 세제는 기업가 정신을 세우고 혁신을 유인하고 보상을 작동시킬 효과적인 수단임에도 그간의 역할에 아쉬운 점이 많다”며 “경제 활동을 촉진하는 인센티브로서의 세제로 탈바꿈이 필요하다”고 했다. 재계에선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대기업 R&D 세액공제 확대, 임시투자세액공제 연장 등 요구사항을 쏟아내고 있다. 마치 엄청난 세금 부담 때문에 기업들이 혁신도, 투자도 못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17.5%로, 영국(19.8%), 프랑스(25.6%), 호주(29.3%)보다 낮다. 조사 대상 중 한국보다 실효세율이 낮은 나라는 미국(14.8%)과 일본(17.3%)뿐이었다. 법인세 최고세율이 적용된 법인은 151곳(2022년 기준)으로, 전체 법인세 납부 법인의 0.03%에 그친다.
지금 시장에선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고대역폭 메모리(HBM)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느냐 마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다. AI 반도체에 들어가는 HBM 수요가 급증하면서 엔비디아의 밸류체인에 있는 SK하이닉스를 비롯해 대만 TSMC, 미국 마이크론 등은 수혜를 보고 있지만 삼성전자만 ‘AI랠리’에서 소외돼 있어서다. 삼성전자 주가는 엔비디아 납품 관련 소식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사실상 독점 공급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 입장에선 엔비디아 HBM 납품이 절실하다. 비메모리 분야에서 TSMC와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고, 후발주자인 마이크론은 기술 격차를 좁히며 추격하고 있다.
“삼성 내부 얘기를 들어봐도 D램에 안주하다 HBM 호황에 대비하지 못한 측면이 크다. 최고결정권자가 오판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엔비디아 하청업체로 전락했다고들 우려하지만, 하청업체만 되어도 다행이다. 반도체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상당하다.” 한 전직 관료의 진단이다. 반도체 사업수장 교체에 이어 HBM 개발팀 신설 등 전열을 정비한 삼성전자가 판세 뒤집기에 성공할지 지켜볼 일이다. 지금 정부가 할 일은 대기업 감세에 힘을 쏟기보다 낙수효과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 왜 낙수효과가 작동하지 않는지 구조적 요인들을 짚어보는 것이다.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 거래 관행, 노동시장 이중구조 등이 지속되는 한 아무리 삼성전자 실적이 폭증하더라도 온기를 체감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머물 것이다.
이주영 경제부문장 | 경향 2024.07.07.
저출생 아니라 저출산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 저출생과 저출산도 그렇다. 이 경우 더 주목할 것은 말을 하는 이들의 진단이 달라 향하려는 방향 또한 다르다는 점이다. 오래 지속되고 있는 ‘출산파업’으로 산부인과부터 초중고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여파가 차례차례 현실화되니 정부도 이런저런 대책을 부랴부랴 세우려 하는 듯 보인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저출생 대책이라고 말하고 또 한편에서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경우처럼 여전히 저출산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그만큼 내부에서도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 혼선과 혼란이 있는 것 같다.
저출생은 말 그대로 출생아의 수를 문제로 보는 말이다. 언뜻 보면 태어나는 아이가 중심인 좋은 말 같다. 그러나 출생이 출산을 통해 일어난다는 사실을 가린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아이가 하늘에서 내려오길 바라거나 공장에서 아이를 만들려는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저출산은 말 그대로 출산을 적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심에 두는 말이다. 이 말은 출산을 왜 안 하는지를 질문하고 살피게 하고 또한 임신하고 출산하고 양육하고 돌보는 사람을 보살피게 한다. 그리고 그동안 이를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인지하게 해준다. 제대로 된 진단은 제대로 된 정책을 만드는 데 필수다.
저출산을 살필 때도 문제될 관점이 있다. 사람을 ‘숫자’로 보는 점이다. 출생률이든 출산율이든 사람을 숫자로 보는 태도에는 사람을 고유한 삶의 주체가 아니라 ‘인구’라는 통계학적 추상체로 보는 시각이 깔려 있다. 이런 관점에는 사회 시스템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위해 사람이 필요하다는 위험천만한 전체주의적 인간관이 스며 있다.
어떻게 보면 현재의 경제 시스템 자체가 사람을 각기 고유한 삶을 살아가는 인격체로서 바라보기 어렵게 한다. 사람을 인격체가 아니라 노동력 상품으로 취급하니 말이다. 정부도 이 시스템의 일부다. 사람의 고유한 생활세계를 살피려는 태도는 보기 어렵고 ‘인구’라는 숫자로 보기 급급하다. 적정 인구가 기업이 필요한 노동력을 군말 없이 저렴하게 제공해 주었으면 좋겠고 기업이 파는 상품을 재깍재깍 구매해 소비해 주면 좋겠고 그렇게 하기만 하면 사회가 문제없이 돌아갈 것같이 보일지 모른다. 이런 정부는 인구감소, 인구절벽이라는 말을 쓰기 좋아한다
소진, 기진맥진, 한도초과와 같은 말들은 이 시대의 상징어들이 되었다. 사람들에게 더 이상 쥐어짜일 에너지가 없다는 말이다. 아이를 낳을 부모가 사는 세상이 이러는 한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46억년 지구 역사에서 모든 생명체가 개체 보존이 되지 않을 때는 종 보존을 멈춘다는 것이 정설이다. 인간도 다르지 않다. 아이가 좋은 삶을 살려면 아이를 낳을 어른들이 좋은 삶을 살고 있어야 한다.
그나마 있던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씩으로 걸고 출범한 정부의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여가부 장관직이 공석이다. 여가부 폐지를 앞장서 주장한 정치인들은 이제 국회의원이 되어 각각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와 기획재정위원회 활동을 시작했다. 우리 사회의 미래가 나아지길 기대하기는 더 어려워진 것 같다.
박이은실 여성학자 | 경향 2024.07.07.
매력도시 서울 대개조의 방향을 묻는다
3년 전 보궐선거로 돌아온 서울시장 오세훈은 서울을 글로벌 톱5의 매력도시로 만들겠다고 여러 번 공언했다. 지난 5월에는 매력공간지수라는 걸 개발해 서울을 몇 개의 권역으로 나눠서 평가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오세훈 시장의 구상을 담은 이런 말들은 곳곳에서 벌어지는 난개발로 드러나는 문제를 가리고 있다.
서울시민이 마주한 엄중한 현실은 우리 모두가 누리던 공간을 민간 자본에 내주고, 그들이 더 많은 이익을 누리도록 고밀도로 개발하는 것이다. 새로운 공간과 시설이 들어서면, 늘어난 공간만큼 더 많은 시민들이 누릴 수 있을 것이란 건 순진한 착각이다. 한강, 용산정비창, 서울혁신파크 등은 오세훈 시장이 돌아온 이후로 화려한 디자인을 앞세워 개발하고 있는 대표적인 공간들이다. 그는 서남권, 강북권 등 지역별 개발 전략을 공개하면서 서울을 대개조하겠다고 했다.
물론 필요한 곳은 도시계획을 세워 공간을 다시 구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서울을 개조하기 위해 오 시장이 참조하는 해외도시들이 지향하는 최우선 과제는 기후위기 대응이다. 전부 때려 부수고 새로 짓는 방식보다 탄소배출을 최소화하도록 건물을 고쳐 쓰고, 차로와 주차장을 줄여 자전거와 보행자가 편히 다니도록 하고, 도시에서 가장 적합한 재생에너지인 태양광발전을 확충하는 방식이다.
도시 곳곳에는 활용도가 낮아 보이는 유휴부지들이 꽤 있다. 대표적으로 한강과 지천의 수변공간과 공원 녹지다. 기후위기 시대에 수변공간은 쪼그라드는 생물들의 생존과 시민의 안전을 위해 남겨둔 소중한 공간이다. 여의도에 항구를 만들고, 한강의 수상교통을 활성화한다고 도시의 매력이 높아질지 의문이다. 오 시장이 말하는 매력도시란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는 도시라고 하던데, 하천 제방에서 자라던 나무를 밀어내고 카페를 만들고, 월드컵공원에 대관람차를 만든다고 살고 싶은 도시가 될지 모르겠다.
화려한 조감도를 앞세운 랜드마크와 새로운 시설들을 조성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든다. 민간자본으로 하니까 서울시민들의 부담이 없을 것이란 말은 거짓이다. 서울시장 오세훈을 떠올릴 만한 새로운 랜드마크가 올라가는 동안 살 만한 도시였던 서울에서 밀려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대신 서울에서 살 수 있을 만큼 지불 능력이 있는 사람들만 남게 될 것이다. 산과 녹지, 그리고 하천에서 스스로 자라던 식물들은 밀려나고 잘 꾸며진 정원들이 들어설 것이다. 그럭저럭 살아가던 야생동물이 쫓겨난 자리에 선택된 몇 종의 동물들만 남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를 위한 공간이었으나, 점점 특정 세력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화려한 디자인의 조감도를 앞세운 개발 전략을 발표할수록 소외감만 느끼게 된다.
서울시 공기업 서울주택도시공사는 서울에 집 지을 곳이 없다며 리버버스, 수상호텔, 대관람차 개발에 나서고 있다. 비가 많이 오면 불안에 떨던 침수 취약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서울에서 함께 살 공간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하는데, 물 위에 호텔을 짓는다고 나선 것이다. 오세훈 시장의 구상대로 서울을 대개조하고 나면, 그 도시에 어떤 사람들이 살게 될지, 그들의 삶은 얼마나 매력적일지 정말 궁금하다.
김동언 서울환경연합 정책국장 | 경향 2024.07.07.
상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빠르게 흐르는 강가에 서 있는데 물에 빠진 사람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요. 강물에 뛰어들어 그를 물가로 끌어올린 다음 인공호흡을 하죠. 그가 숨을 쉬기 시작하자마자 또다시 도움을 요청하는 외침이 들려요. 또다시 강에 뛰어들어 구조하고 인공호흡을 하는데, 그가 숨을 쉬기 시작하자마자 또 다른 구조 요청이 들립니다.
그래서 다시 강으로 들어가 손을 뻗고, 잡아당기고, 인공호흡을 하고, 숨을 쉬게 하고, 또다시 구조 요청, 이게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어요. 저는 뛰어들어 사람들을 끌어내고 인공호흡을 하느라 너무 바빠서 상류에서 누가 사람들을 밀어 넣고 있는지 알아볼 시간이 없어요.”
지역사회 활동가 사울 알린스키 혹은 의료사회학자 어빙 졸라가 들려준 우화라고 한다. 그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눈앞에 벌어진 문제 대응에 급급하다 보니 근본적 문제를 다루기 어렵다는 딜레마, 그리고 상류에서 벌어지고 있는 근본적 문제를 찾아 해결하지 않으면 비슷한 희생이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을 드러낸다.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 그대로이다.
지난 6월24일, 경기 화성시 (주)아리셀 리튬배터리 제조 작업장의 화재 사고로 23명이 사망했다. 이 중 20명은 하청업체 ‘메이셀’ 소속이었고, 그중에서도 18명은 이주노동자였다.
사고 후 원인 분석이 잇따랐다. 폭발 가능성이 높은 제품을 대량으로 작업 공간에, 그것도 출구 쪽에 쌓아놓아 탈출을 가로막는 등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았다, 리튬전지의 열폭주는 일반 소화기로 대응할 수 없는데 특수 소화 설비를 갖추지 않았고, 노동자들이 안전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분석에 따르면 재발 방지책은 자동으로 나온다. 설비를 잘 갖추고, 안전교육을 잘하고, 노동자들이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기만 하면 된다. “참 쉽죠!” 그런데 이상하다. 이 쉬운 답을 왜 맞히지 못하는 것일까? 왜 어디서 본 듯한 비슷한 사고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일까?
2008년 1월, 경기 이천시에 건축 중이던 코리아냉동 물류창고의 화재 사고로 40명이 사망했다. 당시 절반 이상이 임시 노동자였고 13명은 이주노동자였다. 2020년 4월, 역시 이천시의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건축 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38명이 사망했다. 모두 하청 노동자였다.
화염과 유독가스가 노동자들의 근로계약서와 여권을 일일이 살펴본 후에 공격하는 것도 아닌데, 사고 희생자의 대부분은 불안정 노동자, 이주노동자들이다.
김위상 의원(국민의힘)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사고성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총 812명, 그중 10.4%인 85명이 이주민이었다. 올해 3월까지의 사망자 213명 중에서는 24명으로 11.2%에 달했다. 국내 취업자 중 이주노동자 비중은 3.2%에 불과하지만 산재사망은 서너 배나 높다.
이번 사고를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피해 노동자들이 소속된 하청업체는 서류상 배터리 제조업체로 등록되어 있지만 사무실조차 없다. 대표가 스스로 밝혔듯 노동자들에게 작업 지시를 내리기는커녕 서로 얼굴을 본 적도 없다. 그날 그날 인터넷 구인광고를 통해 사람들을 모아 버스에 태워 아리셀에 보내는 ‘불법파견’이었던 것이다. 아리셀은 노동자 안전교육을 제대로 할 이유가 없다. 애초에 그걸 안 하려고 불법파견을 활용하고 ‘싼값에’ 일용직 이주노동자를 쓰는 것 아닌가. 그러니 리튬에서 아르곤, 메탄올로 위험물질이 바뀌고, 배터리 제조공장, 건설현장, 조선소, 비닐하우스로 작업 현장이 바뀌어도 희생자는 항상 비슷하다.
이쯤 되면 당장 팔을 걷어붙이고 강 상류로 뛰어 올라가야 한다. 위험의 외주화가 ‘국룰’이 된 노동시장 질서를 바꾸지 않는 한, 하류로 떠내려오는 엇비슷한 노동자들의 구조 요청을 계속해서 듣게 될 것이다.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 경향 2024.07.07.
노인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고령화 시대의 노인 연령의 적절성과 패러다임의 변화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1970년 62.3세에서 2022년 82.7세로, 지난 50년간 약 20년이 증가했다. 60세까지 살면 오래 살았다고 여겨 잔치를 벌이던 시절, 평균 수명이 40~50대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마치 인생을 한 번 더 살 수 있는 행운을 얻은 것 같다.
이제 곧 100세 시대가 도래하고 일부 사람들은 기대수명이 120세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하는 가운데 우리가 생각하는 노인의 기준은 과연 몇 살부터일까?
사실 노인을 중년과 구분하는 기준은 연금 수급, 복지 혜택의 대상 연령을 지정하는 것과 같은 사회경제적 이유와 더 밀접하게 관련돼 변화해왔다. 독일 비스마르크 때 도입된 연금제도에서 1916년부터 연금수급을 받을 수 있는 나이를 65세로 지정한 이후 1950년 UN이 고령지표로서 65세를 기준으로 사용하면서 이러한 인식은 더욱 확대됐다. 우리나라에서도 1981년 노인복지법에서부터 노인을 65세로 명시한 이래로 이러한 기준을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1981년 당시 기대수명이 67세였던 것을 고려하면 기대수명이 82세에 이른 현재에도 이 기준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노인은 65세 이상의 연령에 해당하며 65~75세는 초기 노년기, 75~85세는 중기 노년기, 85세 이상은 후기 노년기로 구분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구분도 계속해서 변해가고 있으며 학자들마다 그 기준은 상이하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몇 살부터 자신을 노인이라고 생각할까?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 노인인권실태조사에 따르면 57.5%가 노인의 시작을 70세 이후로 보고 있었다. 65세~70세의 64%는 스스로를 노인으로 여기지 않았다.
65~70세의 대다수가 왜 스스로를 노인으로 여기지 않을까? 건강상의 이유로 ‘아직은 젊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노인이라는 대상에 대한 우리의 뿌리깊은 편견과 차별로 인해 노인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담겨있다. 우리는 늙음과 노화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으며 노인의 이미지는 곧 노쇠·의존·비생산성·낮은 경제력·지적 능력의 감퇴로 연결된다.
최근 들어 노인연령의 기준을 70세로 하자는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노인의 연령 기준을 조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복지혜택·근로소득 및 정년 등과 관련되는 심도 깊은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주제이다. 이와 함께 노인이라는 대상에 대한 우리의 뿌리깊은 편견과 차별에도 맞설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버틀러라는 학자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노인들에게 가해지는 편견과 차별을 연령주의라고 불렀다. 이는 인종차별,·성차별과 함께 주요한 차별의 한 형태로 이해될 수 있다. 집단주의가 강한 아시아 국가에서 이러한 차별은 더욱 심각할 수 있다. 고령화 사회로 비교적 서서히 진입한 서구 국가에 비해 급속한 고령화를 겪은 우리나라에서는 나이듦에 대해서 더 부정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의견도 많다.
더 오래 일하고, 더 늦게 연금을 받는 데 대한 법적·사회적 논의와 함께 우리는 노인에 대한 우리의 연령주의적 사고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는 1986년부터 나이로 근로자를 차별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해 정년을 완전히 금지했다. 노인이 질병을 가진, 비생산적이고, 지적 능력이 감퇴된 존재로서가 아니라 삶의 지혜와 전문성을 축적한 대상으로서, 건강하고 일하고 싶은 동기가 있다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을 사회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연령주의에서 벗어나 돌봄과 비주류의 대상에서 삶의 지혜와 전문성을 지닌 대상으로서의 관점의 전환, 노인이 가진 삶에 대한 기대와 욕구에 대한 존중 어린 시선이 필요하다.
이제 곧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삶에서 언젠가는 반드시 마주하게 될 그 시점을 앞두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노인에 대한 생각을 나부터 한 번쯤 되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조효진 한국상담심리학회 고령화사회와 심리상담 위원회 위원 | 경향 2024.07.08
대한민국 ‘중산층 기준’의 패러독스
서울에 30평짜리 아파트 자가 소유, 부채 없음, 현금 및 금융 자산 1억원 이상, 자녀 2명, 매년 해외여행 1회 이상….’
항간에 떠도는 중산층의 기준이다. 한눈에 보아도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일단 부채 없이 서울에 30평짜리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으며 금융자산까지 1억원이 있다면 가계순자산은 거의 확실하게 10억원이 넘는다. ‘2023년 가계금융복지 조사’에 따르면 가계순자산이 10억원을 넘는 가구는 상위 10.3%에 해당한다.
소득과 소비는 가구의 크기와 여러 조건에 따라 일률적으로 말하기 힘들지만, 특별히 무리하지 않으면서 4인 가구가 매년 1회 이상 해외여행을 하는 수준의 씀씀이가 가능하려면 가처분소득 기준으로 가계소득이 연 8000만원 이상은 되어야 한다. 이 경우 상위 20%에 해당한다. 아무리 보아도 이는 상층 혹은 중상층이지 중산층이 아니다. 참고로 같은 조사에 따르면, 가계순자산과 가구 소득의 중간값은 각각 2억4000만원, 5400만원 정도이다.
여기에서 두 가지 질문이 나온다. 첫째, 도대체 누가 저런 기준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일까? 둘째, 어째서 사람들은 한참 위로 치우쳐 있는 이런 기준을 마치 진정한 중산층의 기준인 양 여기는 것일까?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에 중요한 시사점을 갖는 연구로 올해 초 한국개발연구원에서 발표한 ‘한국의 중산층은 누구인가’를 들 수 있다. 이 연구는 자산이나 소득이 상위 20%에 해당하는 사람 중 많은 수가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여기고 있다는 현실과 의식의 괴리 현상을 지적하고 있다. 즉 소득 기준으로 볼 때 상위층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중산층 심지어 하위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며, 이들의 비율이 무려 17.8%에 달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가짜 중산층’이 사회적 담론과 문화에서 과도하게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교육 수준과 구매력에서 그 아래의 계층보다는 훨씬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2010년대 초 부동산 값이 일시 하락했을 때,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가 원리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었던 이들이 이른바 ‘하우스푸어’ 담론을 만들어 냈던 것이 하나의 좋은 예이다. 거액의 대출을 받아 비싼 아파트를 사서 소유하는 이들이 어떻게 빈민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 집단에는 기자나 방송국 PD 등 사회적 담론을 주도하고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들이 다수 있었고, 결국 이 어처구니없는 ‘하우스푸어’라는 말도 잠깐이지만 인구에 회자되는 일이 벌어진 바 있다.
중산층 기준, 대체 누가 만들었을까
이들이 중산층 담론의 주도권을 쥘 경우, 그 아래에 정말로 위기에 처한 중하층의 목소리가 사회적 담론 및 국가 정책에서 과소대표될 위험이 있다. 같은 연구에 따르면 소득 기준으로 중산층에 속함에도 스스로를 하층으로 인식하는 ‘취약 중산층’도 20%에 달했다. 당장 내일이라도 생활 수준이 하층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위기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 말한 ‘가짜 중산층’의 목소리에 담론과 정책이 과도하게 흔들리는 일을 지양하고, ‘취약 중산층’에 좀 더 무게중심을 두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 즉 왜 저 터무니없는 ‘중산층의 기준’에 사람들이 휘둘리는가의 질문은 좀 더 답하기 어렵다. 계급 계층 의식이라는 것은 객관적 수치와 통계가 아니라 (많은 숫자의 통계에 입각하여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사회·문화 등 여러 요인으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통계 수치의 계산을 잠깐 뒤로하고, 이러한 현상 자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로 눈을 돌려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중산층’이라는 말이 가진 정치·사회·문화적 함의로 시야를 넓혀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 말은 무엇보다도 삶에서 경제적 독립성과 다방면의 자유를 누리는 계층을 뜻한다. 영국 역사를 볼 때 그 원형이 되는 것은 중세의 ‘향사 계층(yeomanry)’이라고 할 수 있다. 귀족이나 엘리트 특권 계층은 아니지만, 늘 생계를 걱정하면서 인격적·정신적으로 누구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는 서민과 달리 자기 토지와 재산을 소유하며 자기 삶의 터전에서 나름의 목소리를 내고 영향력도 가지면서 살아가는 ‘자유민’을 의미한다. 로빈슨 크루소의 아버지가 아들의 방랑벽을 만류하면서 매력적으로 묘사했던 중간 계층 삶의 모습도 대략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중간 계급은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많은 숫자가 아니었다. 중산층이 정책과 제도에서 사회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복지국가가 대두하면서부터다. 복지국가의 이념을 제시한 사회사상가 마셜(T H Marshall)이 말한 사회적 시민권 또한 이렇게 경제적 독립성을 가지고 그에 근거하여 정치·사회·문화 활동에서 일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상태를 일컫는 것이었다. 이것이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공유하는 중산층이라는 말의 함의와 대략적으로 일치한다. 즉 중산층이란 한마디로 경제적 독립성을 가지고 다방면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을 이른다는 정서이다.
문제는 독립성과 자유 확보에 달려
이러한 맥락을 깔고 앞에 나온 ‘중산층의 기준’을 다시 보면,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오늘날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는 이들의 생각 속에서는, 경제적 독립성을 가지고 다방면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서울의 30평 아파트로 시작하여 줄줄이 이어지는 그러한 정도의 자원을 가져야만 한다는 정서가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다는 것이다. 잠깐만 정보를 찾아보고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아도 부조리함을 곧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지고 있다는 것은 그 증후에 해당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주거, 교육, 의료, 노후 등의 문제에 있어서 미래에 대해 큰 걱정 없는 안정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자원이 필요할까? 그리고 정치적 의사 표현이나 문화적인 향유 및 참여, 자신의 삶을 뜻대로 계획할 수 있는 자유를 충분히 누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조건이 필요할까? 이것은 객관적 수치를 들이댈 문제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또 정치적·사회적으로 따져본 중산층이라는 말의 함의는 그러한 독립성과 자유가 확보되었느냐 아니냐의 문제이다. 나의 소득과 자산이 사회 전체의 중간값이나 평균을 얼마나 웃도느냐 밑도느냐와 별개의 문제이다. 그러한 독립성과 자유를 확보했다는 실감이 있다면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생각할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통계 수치가 어찌되었든 자신은 중산층이 못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70~80%는 경제적 독립성과 자유의 실감을 전혀 누리지 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통계 수치로 보면 분명히 중산층에 해당하는 사람마저도 상위 20%의 사람에게나 허용되는 경제적 수준을 ‘중산층의 기준’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객관적 수치로 따진다면 중산층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며 또 항상 다수를 차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정치적·사회적인 의미로 따져본 중산층은 다른 문제이다. 그 숫자가 적을 수도 있고, 가난한 나라에서는 그 기준이 통계적 중간값이나 평균과 얼마든지 크게 괴리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은 잘 사는 나라인가, 가난한 나라인가. 각종 경제 지표에서 우리나라는 전 세계 상위를 달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니, 잘 사는 나라인가. 아주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독립성과 자유를 확실히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상위 20%의 삶의 수준에 도달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가난한 나라인가. 게다가 앞에서 인용한 한국개발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객관적 수치로 볼 때 통계상 중산층은 우리나라의 경우 전혀 줄어들고 있지 않다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이런 질문을 패러독스, ‘알쏭달쏭한 역설’이라고 하던가.
홍기빈 (재)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경향 : 2024.07.08.
이게 나라냐고, 다시 외칠 수밖에 없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며칠 동안 부들부들 떨린다. 참담하다. 지난 7월4일이었다. ‘용호성’이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으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누구인가? 박근혜 대통령 집권 초인 2013년 3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 내 문화체육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재직하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2013년 국립극단에서 공연 예정이던 <개구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미화하고, 좌파 문화예술인이 연출을 맡고 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려 공연 자체를 무산시킨 당시 사건에 관여했음이 밝혀져 있다. 2014년엔 영화 <변호인>을 파리 한국영화제 출품 작품에서 배제토록 지시했다. 같은 해 3월경엔 대통령비서실장 김기춘, 교문수석 모철민, 문체비서관 김소영 등으로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책임심의위원 후보자 총 19명이 좌파 성향이니 위촉을 배제해야 한다는 지시를 받아 문체부 담당 사무관에게 여러 수단을 강구해 배제 대상자를 책임심의위원에서 제외할 것을 지시한 사실도 밝혀졌다. 2015년 국립국악원 기획운영단장으로 파견돼서는 국악원의 정기공연 프로그램인 ‘금요공감’의 공연작으로 예정된 <소월산천>의 연출이 당시 국정원 및 청와대의 블랙리스트 대상이라는 이유로 공연 2주 전 공연을 변경 혹은 취소하도록 지시했음도 드러났다.
그가 청와대에 파견 근무하던 시절,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실은 청와대 비서실과 국정원과 문체부(산하기관 포함)를 두루 아울러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관장한 최대 몸통기관이었다. 이 모든 게 추측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용호성 역시 2017년 김기춘 재판 과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이행 및 협조 사실을 시인했다. 2018년엔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의 권고안에 따라 당시 문체부 장관이 검찰에 공식 수사 의뢰를 했던 핵심 피의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다음날인 2022년 3월10일 불기소 처분되었을 뿐이다.
블랙리스트 주도자의 화려한 복귀
지난 시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밝혀진 바대로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자신들의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정치적 견해가 다를 수 있다는 자의적 기준에 따라 ‘이들을 서서히 고사시켜 나가겠다’는 치밀한 계획하에 자행한 희대의 국가폭력, 공작정치의 전형이다. 특정 문화예술인 1만여명을 사찰, 검열, 차별, 배제함으로써 민주주의 원리를 파괴하고 헌법에 명시된 예술표현의 자유와 문화예술인의 권리를 침해한 국가적 범죄행위이자 위헌적이고 위법, 부당한 범죄 행위에 다름 아니다. 이를 위해 국가와 정부가 권력을 부당하게 사유화하거나 남용해 공적 제도와 공적 기관을 통해 문화예술인을 차별하고 그 결과 예술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문화향유권을 침해한 헌정 유린의 사건이었다.
그런 용호성이 문체부 제1차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건 나라가 아니다. 이건 국가도 정부도 아니다. 유인촌 장관 역시 이명박 정권 당시 문체부 장관과 대통령 문화특보로 그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정점에 있었던 자이다. 둘의 공통점이라면 그런 막중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 시절 진상조사가 어떤 조사권이나 기소권 등도 없이 한시적으로 진행되면서 진상규명과 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이런 미진한 진상조사로 분명한 조사에 따른 단죄나 처벌 등을 받은 적이 없음을 근거로 어떤 사회적·윤리적 소명의식도 없이 오리발을 내밀고 있는 배은망덕한 자들이라는 것이다.
2016년 11월4일. 이건 나라가 아니라고, 이건 정부가 아니라고, 나아가 이런 대통령은 자격이 없다고, 문화예술인들은 광화문으로 나아갔다. 그곳에 박근혜 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문화예술인 캠핑촌을 비정규 노동자들과 함께 꾸리고 박근혜가 탄핵되던 그날까지 광장을 지켰다. 그런데 유인촌 장관에 이어 용호성 제1차관이라니.
문화예술인들은 이런 국가적 재난을 우려해 6년여 동안 줄기차게 특별법 제정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역시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책임이 있다. 다행히 근래 국회에서 조국혁신당과 민주당 의원들이 이런 계속되는 국가적 참사를 끊기 위해 지난 블랙리스트 사건의 온전한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법 제정 운동에 다시 나서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임계점을 넘어 문화예술인들을 향해 전면전을 선포한 이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며칠째 부들부들 떨린다.
송경동 시인 경향 : 2024.07.08.
‘규범’을 파괴하는 ‘사실’의 힘
도덕은 실종되고 적나라한 현실만이 지배한다. 인간이 행동하거나 판단할 때 마땅히 따르고 지켜야 할 기준과 도리를 통상 규범이라고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온갖 종류의 갈등을 겪지만 그래도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는 합의가 오랫동안 존재했었다. 사람들이 종종 ‘양심’ 또는 ‘상식’이라 부르는 행동 기준은 설령 현재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과 다를지라도 우리가 따라야 할 이상과 당위로 여겨졌다. 당위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이상주의자’가 되고 사실을 중시하면 ‘현실주의자’가 되기도 하지만, 사실과 당위 사이에는 일종의 생산적 긴장 관계가 존재한다. 현실을 무시한 당위는 공허하게 들리고, 당위를 배제한 현실은 맹목적이기 때문이다. 이상은 우리가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구체적 현실 속에서 이상을 실현할 힘을 발견해야 한다. 도덕과 규범이 사라졌다는 것은 우리가 현실의 사실적 힘에 완전히 예속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규범 사라진 자리엔 힘의 논리만
마땅히 그렇게 하거나 되어야 하는 ‘당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구체적 현실 속에서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사실’이 규범이 된다. 현실은 이제 도덕적 이상을 위해 개혁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현실 자체가 우리의 삶과 행동을 지배하는 규범이 된다. 16세기 지독한 정치적 혼란을 겪었던 마키아벨리는 새로운 정치질서를 정립하려면 현실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달라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것을 행하지 않고,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행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보다는 잃기가 십상이다.” 마키아벨리는 현실을 무시하고 이상만 따르면 실패한다는 경고에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생존을 위해서는 부도덕한 행위가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다. 군주는 상황의 필요에 따라서 선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규범이 현실의 사실적 힘에 잡아먹히는 순간이다.
당위와 규범과 이상이 사라진 자리에는 힘의 논리만 지배한다. 현실의 적나라한 민낯이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 알고 싶으면, 우리는 상식과 법치라는 위선적인 화장을 지우고 맨얼굴을 보면 된다. 우리 사회의 민낯이 드러난 세 가지 현상을 보자. 첫째는 10여년 동안 우리 정치를 지배해온 두 진영의 정면충돌이다. 22대 국회도 정말 어렵게 개원하였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관례를 어기고 국회의장과 운영·법사위원장을 독식했다고 비판하면서 원구성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았고, 민주당은 단독으로 상임위원장 선출을 표결 처리했다. 한쪽은 선거 결과로 나타난 민심과 민의를 그리고 다른 쪽은 관례를 강조하지만, 핵심은 다수결이라는 힘의 논리를 따르라는 것이다. 22대 총선에서도 거의 국민의 절반인 45%가 국민의힘을 뽑았다는 점은 중요하지 않다.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 덕택으로 두 정당이 가져간 지역구 의석수 차이가 무려 71석이나 되는 현실이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우리 사회의 두 번째 민낯은 지루하게 이어지는 의·정 갈등이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으로 시작한 의료 갈등은 대한의사협회의 총파업 선언으로 정점에 도달했다. 정부도 휴진하는 의료기관에 진료 명령을 내리는 ‘강 대 강’ 대치는 계속되고 있다. 임현택 의협 회장의 거칠고 강한 수사는 무엇이 문제인지를 잘 드러낸다. “우리가 왜 의료 노예처럼 명령에 따라야 하냐”는 말은 의료의 공공성과 그에 따른 윤리적 책임성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다.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의사에게 유죄 선고를 한 판사에게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고 막말하면서 “이 여자와 가족이 병원에 올 때 병 종류에 무관하게 의사 양심이 아니라 반드시 심사규정에 맞게 치료해주시기 바란다”고 겁박한다. 이런 말이 과연 의료계를 대변하는 사람에게 적합한지는 이미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만약 그가 정부에 대해 가장 잘 싸울 수 있는 사람이라서 선출되었으니 그런 말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수용한다면, 중요한 것은 의사로서의 소명과 책임도, 자존심도 아니다. 의사들의 이익과 권리, 즉 이권이 핵심이다. 국민이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의사가 똘똘 뭉치면 정부가 굴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힘의 논리가 고개를 내민다.
현실 통제할 도덕이 필요한 시간
우리 사회가 화장을 지우면 드러나는 세 번째 민낯은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대한 국민권익위원회의 종결 결정이다. 정쟁이 불거질 때마다 대통령의 배우자가 불려 나오는 것도 코미디지만, 이 사건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더 가관이다. 한편으로는 대통령 배우자에게 적합한 역할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에 대한 합의와 규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선물과 뇌물의 차이가 아무리 미묘해도, 한 국가 최고결정권자의 배우자가 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누가 봐도 적절하지 않다. 그런데 권익위가 종결 결정한 이유가 청탁금지법상 공직자 배우자에 대한 제재 규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법적으로는 사실일 것이다. 이러한 해석이 배우자는 선물을 받아도 된다는 걸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법이 그렇다는 이유로 현실에서 통용되는 상식이 훼손된 것은 분명하다.
현실과 사실이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이상보다 훨씬 더 강력할 수 있다. 본래 ‘사실의 규범적 힘’이라는 개념은 현실의 반복되는 사건에서 규칙을 추론하여 특정 관행을 사실뿐만 아니라 규범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정치인들이 상식과 법치를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권력 투쟁을 정치의 본질로 생각하면, 권력의 마키아벨리즘이 규범이 된다. 마키아벨리는 본래 현실을 무시하면 정치권력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지만,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이해하면 사실이 규범이 된다.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냐. 현실의 엄혹함을 무시할 수 없다.” 이재명 대표의 이 말은 마키아벨리즘의 진수이다. 정치적 현실을 단지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면, 권력 투쟁이 유일한 정치의 규범이 된다. 선거로 다수당이 되었다면, 다수의 힘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게 옳다. 민주적 이상을 위해 힘의 과시와 사용을 자제하는 것은 오히려 힘의 논리를 거스르는 것이다.
그러나 유리한 현실을 규범으로 전환하는 것은 정치를 단순한 권력 투쟁으로 전락시키고, 기본 원칙을 모호하게 하는 심각한 윤리적 딜레마를 초래한다. 언제부터인지 돈과 권력은 우리 사회에서 제일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소명과 이상과 도덕은 개도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이 사회적 책임을 일방적으로 강요한 유교적 유산에 대한 반발 때문인지, 아니면 구체적 현실에서 스스로 깨달은 경험적 진리인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극단적 현실주의자가 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경향 : 2024.07.09
미국 대중 정책의 초당적 성격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참패한 대선 첫 TV토론 이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귀환을 우려하는 경고음이 세계 각지에서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도 비상한 각오로 트럼프 2기 출범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주한미군 철수와 연계한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 대미 무역흑자를 겨냥한 통상 압박, 기업들의 투자 환경에 리스크로 작용할 급격한 에너지 정책 전환 등 위험요인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트럼프가 재집권하든 아니면 바이든(민주당) 정부가 4년 더 연장되든 상대적으로 불확실성이 덜한 분야가 있다. 바로 대중국 정책이다. 첨단기술을 위시한 미국의 고강도 견제는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 등 동맹국들은 미·중 긴장의 파고에 수시로 맞닥뜨릴 것이다.
최근 공화·민주 진영이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서 벌인 중국 정책 관련 지상 논쟁을 봐도 둘 다 추구하는 바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확인된다.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매슈 포틴저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공화당 인사도 충돌 억제를 최우선 과제로 꼽는다. 고위급 외교를 지속해 경쟁을 관리해야 한다는 민주당 쪽도 미국이 경제·군사적 우위를 되찾아 중국을 압도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중국산 수입품에 60% 관세, 모든 수입품에 10% 보편관세 부과’와 같은 트럼프의 과격한 공약이 실행될 경우 미·중관계와 글로벌 경제에 엄청난 충격파를 초래할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 역시 반도체·전기차·배터리·태양전지 등 핵심 부문에서 기존에 트럼프가 부과한 대중 관세율을 더욱 끌어올렸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는 미 행정부 교체와 상관없이 대중국 강경 기조가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연속성을 지니고 유지될 것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관련 논의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중국 견제에 대한 워싱턴 정가의 초당적 지지는 그동안의 대중 관여 노력에 대한 반성 위에 기초하고 있다”고 짚었다. 미국이 2010년대 중반까지 약 20년간 중국을 책임 있는 국제 행위자로 견인하겠다며 대화·압박을 병행했는데, 더는 이런 접근이 유효하지 않고 애당초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식의 근본적 성찰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사실 미 의회에서 벌어지는 ‘중국 때리기’ 경쟁에는 국내 정치적 동기도 다분히 자리하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의회에서 발의된 중국 견제 관련 법안은 616건(퀸시연구소 추산)에 달했지만, 대다수는 해당 상임위 내 법안 심사 절차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중국을 보는 미국의 인식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또한 민주·공화 양당 모두 미국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방위적 중국 견제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미국 민주주의가 지닌 취약성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도 휘청이지만, 적어도 미국 정치권은 ‘결정적 도전’으로 규정한 문제 앞에선 단결하고 있다.
어느 쪽이 백악관의 주인이 되든 미국은 반도체 기술통제, 과잉생산, 대만·남중국해 등 첨예한 사안마다 한국에 동맹 공조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편에 서서 더 많은 ‘역할 분담’을 하도록 압박할 것이다. 과연 그런 상황에서 한국 정치권은 단합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김유진 워싱턴 특파원 경향 : 2024.07.09
조선은 망할 수밖에 없던 나라?
얼마 전 유시민 작가와 조수진 변호사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 북스’를 보았다. 흥미로운 책을 한 권 선정해 그 내용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채널이다. 이번에는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장의 최근작 <박태균의 이슈 한국사>를 소개했다. 책은 모두 10개 주제로 이루어졌는데 나는 4장 ‘식민지 근대화론: 우리 안의 역사 논쟁’이 흥미로웠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를 겪은 기간에 근대화되고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를 좀 연장하면 오늘날 한국은 식민지 경험 덕에 발전했고, 이 때문에 일본은 침략자지만 동시에 한국 근대화에 기여하기도 했단 결론에 이른다. 저자 박태균 교수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내가 저자의 설명에 흥미를 느낀 데에는 두 가지 정도 이유가 있다. 하나는 저자가 식민지 근대화론에 비판적이기는 해도 여전히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개인적 생각이라며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후에 조선이 과거와 단절하는 방식으로 한번 바뀌었어야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조선의 지배층과 성리학 근본주의가 더 강해진 채로 19세기 서양 근대와 만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조선이 식민지가 된 근본적 원인이었다는 함의를 가진다.
다른 하나는 저자의 조선시대에 대한 그런 인식이 오늘날 한국 지식인층에 널리 퍼져 있다는 점 때문이다. 저자와 대화를 이어가던 유시민 작가도 조선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에 망했어야 한다고 공감을 표했다. 저자가 조선시대는 아니어도 한국사를 전공했고, 유시민 작가도 다방면에 높은 식견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한 사회가 장기적으로 어떻게 전개되고, 어떤 요소들이 그 전개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명료하고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런 전개가 그 사회 구성원이나 지배세력에 의해 모두 의도되거나 통제될 수 있었다고도 할 수 없다.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636·12~1637·1) 뒤 처음 즉위한 왕은 효종(재위 1649~1659)이다. 효종 때에 국가 정책이 여럿 추진되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누구보다 효종이 추진하려던 ‘북벌(北伐)’이고, 김육이 추진했던 ‘동전(銅錢) 유통’과 ‘대동법’이다. 세 가지 중에서 대동법만 성공했다. 동전 유통과 북벌은 당시의 사회경제적 조건과 정치적 합의가 부족해 중도에 포기되었다.
효종에게 ‘북벌’은 자기 권력의 정당성에 직결된 문제였다. 그가 차남이었음에도 아버지 인조에 의해 왕이 된 이상, 북벌은 그에게 피할 수 없는 숙제였다. 그런데 북벌에 가장 강력한 반대자가 김육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왕과 신하 이상이었다. 김육의 둘째 아들의 딸이 효종의 외아들 현종의 부인이다. 효종의 요청으로 맺어진 관계였다. 효종은 그 정도로 김육을 신뢰했다. 그런데도 김육은 북벌에 반대했다. 또, 김육이 대동법을 성사시키면서 가장 신뢰해 중추적 역할을 맡긴 인물이 호조판서 이시방이다. 두 사람 역시 상사와 부하 관계 이상이었다. 그런 이시방이 동전 유통에 반대했다. 결국 재정개혁과 민생안정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대동법만 성사되었다. 효종 대 정책 결정이나 추진은 왕이 민다고 하여, 그 왕의 신뢰를 받은 신하가 추진한다 하여 성립되지 않았다. 지금 봐도 합리적인 결정 방식이다.
한 사회가 5년, 10년 후 어떻게 될지 예측하긴 어렵다. 다음 세대에 어떨진 더욱 알기 어렵다. 원인과 결과의 논리적 연쇄가 그렇게 명백하다면 미래에 대한 예측이 왜 어렵겠는가. 병자호란부터 조선이 개항한 1876년까지는 대략 7~8세대에 해당하는 230년 넘는 긴 시간이다. 그 시간 전체가 책임져야 할 결과가 존재할 수 있을까? 누구나 죽음이 아닌 생애로 그 삶을 평가받듯이, 200여년에 걸쳐서 망할 수밖에 없다고 평가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경향 : 2024.07.10.
주택담보대출 3년 만에 최대, 집값 못 잡으면 경제위기 온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가파르다. 올 상반기에만 은행 주택담보대출이 27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3년 만에 최대 폭이다. 가계대출과 연동된 부동산시장도 심상치 않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정부 통계 작성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10일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예금은행 가계대출(정책모기지론 포함) 잔액은 1115조5000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6조원 늘었다. 은행권 가계대출은 올해 3월 잠시 뒷걸음쳤다가 석 달째 증가세를 이어갔다.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뇌관이다. 지난 1분기 가계부채 규모가 3년반 만에 국내총생산(GDP)을 밑도는 수준까지 떨어졌다지만 여전히 세계 최상위권이다. 지난해 한국 가계 부문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14.2%로 전년보다 0.8%포인트 상승했다. 100만원을 벌면 14만2000원을 원리금으로 갚아야 한다는 의미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주요 17개국 가운데 소득 대비 빚 부담 정도와 증가 속도가 네 번째로 높았다.
가계대출이 급증하자 금융당국은 최근 은행 관계자들을 불러 모아 대출 자제를 요구하며 현장 점검을 예고했다. 그러나 정책금융을 무분별하게 풀고 DSR 규제 시행을 연기한 장본인이 바로 금융당국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당국의 졸속 행정이 사태 악화의 원인을 제공했다.
부동산시장도 들썩이고 있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5000건을 돌파했다. 6월 계약분 신고기한이 이달 말까지이므로 아직 20일이나 남았는데 벌써 4월 거래량(4990건)을 뛰어넘었다. 지난 1~5월 서울 아파트 매매도 1만8830건을 기록했다. 정부가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06년 이후 가장 많은 규모다. 실거래가도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의 일부 초고가 아파트들은 거래될 때마다 역대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아파트 전셋값과 분양가가 오르는 데다 부동산세 감세, 주택시장에 대한 전방위적 규제 완화 등이 더해진 결과다.
3고(고금리·고환율·고물가)의 고통이 여전한데 부동산 광풍까지 불면 민생은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진다. 윤석열 정부는 부동산을 통한 경기 부양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영끌’과 부동산 투기의 악순환이 재발하면 한국 경제는 결딴난다. 금융 정책은 가계대출 감축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부동산 정책은 철저히 서민 주거 안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경향 : 2024.07.10.
김건희라는 비극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휘젓고 있는 ‘김건희-한동훈 문자 파문’이 심상치 않다. 댓글팀 의혹까지 그야말로 일파만파 형국이다. 여당 한 중진 의원은 “심리적 분당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누가 무슨 의도로 반년이나 묵은 궁중 비사를 터뜨렸을까.
친윤(석열) 세력 기획설이 근거 있게 들린다. 사건이 알려진 직후 장예찬 전 최고위원의 잇단 폭로, 연판장, 기자회견 논란까지 기획설을 뒷받침하는 실행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이런 내막들이 사실이라면 친윤 기획설은 총선 참패 후 지속되는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시도로 봐야 한다. 윤 대통령이 거부한 채 상병 특검법을 한 후보가 (조건부) 찬성했는데도 지지층은 한 후보 편을 드는 현실까지, 여권 주류의 공포감은 충분히 이해된다. 그래서 용산 묵인하에 총선 책임론으로 한 후보를 흠집내 판 흔들기에 나섰단 것이 친윤 기획설의 핵심이다.
반윤 프레임을 띄우면 이번에도 전대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 쉽지 않다. 분노의 에너지만으로도 이준석 전 대표를 몰아낼 수 있었던 때와 지금은 다르다. 국정운영 부정평가율이 60%를 웃도는 집권 중반기에 여권 주류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뭘 해도 보수가 결집할 거라 믿는 것이 기획의 동력이겠지만 탄핵의 강도 건넜던 지지층이 권력의 역행을 반길 리 없다. 문자 파동에도 한동훈 대세론은 흔들림 없는 반면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대구·경북에서조차 30%대까지 하락했다. 역대 정권의 레임덕은 여권 균열에서 시작됐다. 레임덕 위기도 권력 후광에 곁불을 쬐고 갈등을 획책하는 참모가 있다면, 윤 대통령은 제나라 명재상 안영의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힘을 앞세워 교만하게 구는 3명의 장수를 복숭아 2개로 제거한 계략)를 참고하길 권한다.
드물지만 한 후보 측 유출설이 없진 않다. 그러나 이 가설은 설득력이 약하다. 문자가 공개되면 한 후보가 김건희 여사의 사과를 외면해 총선 참패를 자초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게 뻔하다. 한 후보가 이런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문자 유출을 감행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이 가설은 한 후보가 문자 파동을 고리로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충돌을 각오했단 걸 전제한다. 5건의 문자 원문엔 한 후보의 ‘김건희 특검’ 조건부 수용에 대한 윤 대통령의 격노, 이를 무마하려 한 김 여사의 요구(윤 대통령과의 통화, 사적 사과)가 담겨 있다. 만약 한 후보가 권력 투쟁을 감행하려 했다면 국민적 공분을 산 중대 사안에 사적 분노로 대응한 윤 대통령, 윤 대통령의 분노를 대신 전달하고 사적 사과를 시도한 김 여사의 월권 을 지적했어야 했다. 나아가 지금까지 김 여사와 주고받았다는 문자 300여통을 전부 공개해서 이 기회에 당원들의 평가를 받겠다는 정도의 결기는 보여야 했다. 그러나 한 후보는 그러지 않았고 ‘사과 의사가 없었다’는 정도로 용산 개입설에 선을 그었다.
문자 파문은 진흙탕 싸움으로 번질 기세다. 의도와 결과에 따른 유불리는 그들 몫이므로 지켜볼 일이다. 상대방이 권력을 잡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권력 투쟁이 정치의 목적이 됐고, 과거와 달리 공식 권력과 비공식 권력의 다툼을 한국 보수 정치가 수용하는 지경까지 온 것이 이번 파문의 본질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김건희라는 이름 석 자의 등장이다. 진실게임 와중에도 권력을 위임받지 않은 사인이 대통령 직무에 개입한 의혹(윤 대통령과 한 후보 통화 요구, 두 사람 회동 촉구 등)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는 비공식 정치가 공식 권력을 압도하는 상황이 일상화됐음을 입증한다. ‘보편적 민주주의 결핍(시민권 제한 등)을 넘어 가장 후진적인 형태의 민주주의가 구조적인 퇴행의 길로 들어섰다’(신진욱 교수)는 견해도 있다. 더 심각한 건 개별 사안에 대해 ‘내 청을 들어달라’는 수준이 아니라 김 여사가 윤 대통령의 세계관과 문제인식 프레임까지 지배하고 있단 사실을 확인한 사건이라는 점이다. 이는 김 여사가 전한 ‘윤 대통령 격노’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다. 김 여사 본인 생각을 한 후보에게 보내고 이를 한 후보가 외면하니 윤 대통령이 화를 냈다는 건데 이는 김 여사의 생각과 판단, 감정에 윤 대통령이 포획됐거나 동조하고 있단 걸로 봐야 한다.
이런 현실에 사과, 정무 감각, 배신자, 해당 행위 논란이 무슨 소용이랴 싶은 무력감이 든다. 점령군의 점령 자체를 문제 삼지 않고 점령군의 탱크 대수를 따져 봤자 근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김건희’가 거론되는 한 언제나 주도권은 그에게 있었다. 윤석열 정부의 무능과 실정을 못 보게 막는 ‘김건희’라는 존재를 더 이상 용인하면 안 된다. 그러려면 ‘김건희발’ 불의와 잘못에 익숙해지지 않는 ‘순진한’ 분노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가 등장할 때마다 생전 처음 불행을 겪듯 최선을 다해 분노해야 한다. 국민의힘 전대 주자들은 대통령 부인의 위법 의혹이 처벌 대상임을 분명히 밝히는 싸움에 나서야 한다. 이것이 김건희라는 비극 앞에 정치가 취해야 할 ‘순진한’ 분노다.
구혜영 정치부문장 .경향 : 2024.07.10.
한국 종부세와 미국 보유세의 3가지 차이점
종합부동산세(종부세)는 다시 이슈가 될 것인가?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종부세의 ‘사실상 폐지’를 추진 중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후보는 종부세에 대해 “상당한 역할을 했지만, 근본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진보 쪽에서는 종부세 폐지 혹은 완화는 이해도 안 되고, 용납도 안 되는 사람이 많아 보인다. 종부세 폐지 및 완화론은 그저 ‘보수의 반동’일 뿐이다. 정말 그럴까?
종부세 강화를 주장하는 분들이 칭송하는 제도 중에 미국의 보유세가 있다. 미국의 보유세에 대해서는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한국의 진보 지식인들도 높게 평가한다.
미국의 보유세와 한국의 종부세는 3가지가 다르다. 미국의 보유세는 효능감이 높다. 반감은 적다. 그래서 국민수용성이 높다. 한국의 종부세는 정반대다. 효능감이 적다. 반감은 크다. 그래서 국민수용성이 낮다.
첫째, 미국의 보유세는 효능감은 높고, 반감은 적게 설계되어 있다. 미국의 보유세가 효능감이 높은 근본 이유는 ‘자신의 재산가치와 연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보유세는 지방세이며, 편익과 연동된 응익세(應益稅·Benefit tax)다. 지방세라는 의미는 걷는 주체도 동네 의회이고, 동네에서 사용된다는 것이다. 한국 상황으로 비유하자면 서초구의회, 강남구의회에서 얼마를 걷어서, 얼마를 쓸지 결정한다.
미국, 효능감 높고 반감 적게 설계
실리콘밸리 인근에 팰로앨토라는 지역이 있다. 팰로앨토는 스티브 잡스, 휼렛패커드, 구글의 창업자 래리 페이지 등 실리콘밸리 부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2층짜리 단독주택이 한국 돈으로 200억~300억원 하는 곳이다. 팰로앨토 지역을 예로 들어보자.
인근 지역 보유세율이 1%라고 가정하자. 그리고 팰로앨토 지방의회는 자기네 동네 보유세(재산세) 세율을 3%로 했다고 가정해보자. 이렇게 걷은 돈은 ‘동네 공공 인프라’에 활용된다. 학교, 도로, 소방, 치안 등에 사용한다. 옆 동네는 범죄예방 차원에서 설치된 CCTV가 인구 1만명당 10개밖에 없는데, 팰로앨토 지역은 30개를 설치하는 식이다. 자기네 ‘동네 공공 인프라’에 사용할 예산 규모를 먼저 결정하고, 그만큼을 보유세(재산세)로 걷는다. 동네 주민들의 ‘편익과 연동된’ 세금이기에 효능감이 높다.
미국의 보유세가 반감이 낮은 이유는 한국과 달리 ‘세금 변동폭’이 크지 않고, 자산(Asset)은 있지만 소득(Income)이 없는 경우 이연제도를 통해 배려해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캘리포니아의 경우 물가연동제를 채택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비율의 일정분만큼만 세율 인상에 반영한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다고 세금이 덩달아 폭등하지 않는다.
이연제도 역시 반감을 줄인다. 예컨대, 은퇴한 70세 노인 A씨가 50억원짜리 타워팰리스에 살고 있는데 소득이 없다고 가정해보자. 자산은 50억원이지만 소득은 없을 수 있다. 이 경우 미국은 주택을 처분하거나 사망해서 ‘소득’이 발생할 때 한꺼번에 보유세를 낼 수 있다. 특히 은퇴한 노인들이 해당한다. 보유세의 정책목표는 ‘내 재산 인프라 투자세’의 성격을 갖는다. 대부분 나라들에서 보유세를 ‘재산세’로 걷는 이유다.
둘째, 한국의 종부세는 효능감은 낮고, 반감은 크게 설계되어 있다. 국민수용성은 낮을 수밖에 없다. 효능감이 낮은 근본 이유는 납세자 입장에서 돌아오는 혜택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보유세를 두 번 낸다. 국세는 종부세, 지방세는 재산세다. 물론, 위헌은 아니다. 그러나 ‘두 번 내는 것’은 명백하다. 선진국 중에서 한국과 같은 경우는 거의 없다.
미국의 보유세는 ‘우리 동네 인프라 투자’에 사용된다. 한국은 그렇지 않다. 한국의 종부세는 ‘부담능력과 연동된’ 부유세의 성격이 강하다. 걷은 돈은 전국으로 나눠준다. 종부세를 교부받는 지자체는 좋겠지만, 세금을 내는 사람은 기분 좋을 리 없다.
한국, 효능감 낮고 반감 크게 설계
반면, 한국의 종부세는 반감이 크도록 설계되어 있다. 가장 중요하게는 부동산 경기 변동과 연동되어 ‘세금 증가폭’이 엄청나다. 납세자를 적폐 취급하는 세계관이 투영되어 있고, 소득 흐름은 전혀 배려해주지 않고 있다.
미국의 보유세가 ‘물가연동제’ 수준이라면, 한국식 종부세는 ‘부동산 가격 변동’의 충격이 ‘따따블’로 반영되는 구조다. 진보정부 집권기와 부동산 가격 상승기가 만나면 ‘세금폭탄의 마법’이 작동하게 된다. 종부세가 ‘시장가격’과 연동되어 실제로는 3단계 증세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①시장가격이 오르면, ②부동산 세율도 올리고, ②공시가 반영 비율도 올린다. 부동산 가격이 최고점이던 2021년의 경우, 서울 지역 아파트 4채당 한 채가 종부세 대상이었다. 문재인 정부 기간 중 가격은 약 2배 뛰었는데, 주택분 종부세 세율은 약 10배가 상승했다. 모두 3단계 증세 때문이었다. 만일, 다른 세금이 5년 만에 10배 인상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입장을 바꿔보면, 누구라도 잘 수용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종부세는 적폐세(積弊稅) 성격이 강하다. 종부세 강화론자들은 초부자세이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초부자’에게는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게다가 종부세는 합산+누진+다주택자 중과(重課) 방식이다. ‘기어이 더 강력한 세금’을 때리겠다는 불타는 의지가 담겨 있다.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에서는 보기 힘든 사례다.
종부세 같은 세금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 한국적인 현상이다. 종부세에는 5개의 정책목표가 짬뽕되어 있다. ①보유세 ②부유세 ③부동산 가격상승억제세 ④다주택자 규제세 ⑤지역균형발전세다. 여기에 ⑥한반도평화세만 추가하면, 한국 진보세력의 ‘이데올로기적 염원’이 모두 반영된다.
주택분 종부세는 많을 때도 고작 5조원에 불과했다. 한국의 토지자산은 1경1000조원 규모다. 한국 진보는 ‘5조원짜리 세금’으로 노동해방과 민족해방을 모두 꿈꾸는 격이다. 미션 임파서블이다. 현실로 내려와야 한다. 종부세 폐지 공론화가 ‘현실주의 진보노선’의 첫걸음인 이유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경향 : 2024.07 11
이재명 대표, ‘먹사니즘’ 첫 방향이 왜 부자감세인가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시행 유예와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완화 입장을 밝혔다. 그간 윤석열 정부의 감세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해온 제1야당 대표가 표변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하면 ‘부자 감세’이고, 민주당이 하면 ‘민생 정책’인가.
이 전 대표는 지난 10일 당대표 출마 선언 뒤 기자들과 만나 “주식시장이 안 그래도 어려운 상태에서 금투세를 예정대로 시행하는 게 맞나”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종부세에 관해서도 “불필요하게 갈등과 저항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며 “근본적으로 검토할 때가 됐다”고 했다. 이날 이 전 대표는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른바 ‘먹사니즘’을 당대표 연임 도전의 최대 이유이자 목표로 내세웠다. 이 전 대표는 “성장의 회복과 지속 성장이 곧 민생”이라고도 했다. 민생과 성장을 제1야당의 최대 현안으로 중시하겠다는 이 전 대표 의지는 존중한다.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을 미래 산업 활성화와 지역 균형 발전의 해법으로 제시한 것도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이 전 대표가 얘기하는 먹사니즘의 첫 방향 설정이 왜 부자 감세인지는 의아하다.
금투세는 주식과 펀드 등 금융투자로 연간 5000만원을 초과하는 차익을 거둔 투자자에게 걷는 세금이다. 당초 2023년부터 시행할 예정이었지만, 증권거래세를 완화하는 조건으로 시행 시기를 내년 1월로 미뤘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금투세 유예로 연간 9808억원의 세수가 준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종부세액의 70%는 상위 1%가 냈다. 이들이 보유한 부동산은 1인당 평균 830억원대였다. 2021년 7조3000억원인 종부세액은 공시가격 하락과 공제 확대로 지난해 4조2000억원으로 줄었다.
주지하듯 윤석열 정부는 감세로 경기 부양을 시도하고 있다. 부유층과 대기업에 혜택을 주면, 투자와 소비가 늘어 경제가 살아나고 자영업자나 서민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이명박 정부의 ‘낙수효과’를 그대로 본떴다. 그러나 내수는 회복 기미가 안 보이고 빈부 격차만 커지고 있다. 무분별한 감세 정책으로 지난해 60조원 가까운 세수 결손이 났고, 올해 5월까지 나라 살림살이 누적 적자가 74조원에 이른다.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더 써야 할 국가 재정이 부실한 상황에서 감세와 민생은 양립 불가능하다. 이 전 대표의 감세론과 먹사니즘도 지금으로선 모순이다. 경향 : 2024.07 11
종부세를 그대로 놔두라
윤석열 정부는 종합부동산세를 상당 부분 무력화시켰는데, 이에 그치지 않고 아예 폐지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더불어민주당이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부동산시장에서 중요한 정책수단이 속수무책으로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위험한 상황이다.
부동산시장은 불안정성이 심한 시장에 속한다. 공급의 비탄력성 때문이다. 주택을 만들어 공급하는 데는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 수요는 미래 가격 전망에 따라 탄력적으로 변화한다. 이로 인해 부동산시장의 안정을 위한 올바른 정책수단은 수요 조절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다. 쉽게 가열되는 수요를 적절하게 제어하지 않으면 공급이 비탄력적이므로 거래량의 작은 변화에도 가격변화가 크다. 매매 가격의 변동성은 전·월세 가격에 영향을 끼쳐 서민들의 주거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부동산시장의 상황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이자율 수준이다. 이것이 주택 보유의 비용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다만 이자율 수준을 결정하는 한국은행은 주택시장만 염두에 둘 수는 없다. 경제 전체 상황과 해외 이자율 수준을 고려해 금리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는 부동산시장의 가격안정을 위해 금융 부문의 정책수단으로 금리보다는 대출 규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대출 규제, 자산 불평등 강화 기제로 작용”
대출 규제는 수요 규제에 즉각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정책수단으로, 부동산시장의 단기적인 규제수단으로 적절하다. 문제는 금융기관들은 안전한 수익이 보장되는 주택담보대출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정부 의지가 부족하거나 금융당국이 금융기관에 포획된 행태를 보이면 실효적인 대출 규제가 이루어지지 못할 수도 있다. 또 어떤 기준에 의해 규제해도 대출받는 사람만 투자와 수익 창출 기회를 누린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차별적이다.
반면 종합부동산세는 상승한 부동산 가치의 작은 일부분, 통상 1%에도 못 미치는 정도의 세금이 증가할 뿐이다. 조세정책은 이미 가열된 시장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잘 정착돼 납세자들의 머릿속에 ‘상수’로 자리 잡은 보유·양도·취득에 대한 적정 수준의 부동산 세제는 이자율 변화에 따라 안정된 시장이 불안정하게 변하는 길목에서 시장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양도소득세는 부동산 투자자의 수익률 전망을 낮춰서 투자를 자제하게 한다. 취득세는 빈번한 거래에 부담을 주고 종합부동산세는 소득수준과 비교해 과도한 부동산 보유에 비용을 부과한다. 양도소득세는 양도소득이 실현돼야 과세하기에 납세자들은 양도세율이 완화될 때까지 기다리며 매각을 미룰 수도 있다. 종합부동산세는 그 부담이 보유 기간에 비례하는 속성을 통해 양도세의 취약점을 보완해준다. 중요한 것은 이 세제들이 납세자들의 의식 속에 착근되도록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택시장 안정의 가시적인 효과가 있으려면 10년 정도의 일관성 있는 조세정책의 추진이 필요할 것이다.
대출 규제는 소득과 담보자산이 충분한 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지기에 자산 불평등을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하는 성격을 가진다. 종합부동산세를 대체할 정책수단으로써 뚜렷한 단점이다.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조명되는 종합부동산세로 인한 납세자들의 부담은 새롭게 종합부동산세 납세자가 되거나 세액이 급증한 사람들, 자산보다 소득이 취약한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이다.
부동산 자산 가격 상승이라는 좋은 일과 세 부담 증가라는 불리한 일이 동시적으로 발생하는데, 세금에 대한 놀라움과 낭패감만이 개인들에게 부각되는 것이 인지상정일 수 있다. 종합부동산세가 부과되는 부동산 소유자는 소득이 없어도 자산만으로 충분하게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판단될 수 있는 고가 부동산의 소유자다. 종부세의 부과 기준이 그렇게 설정돼 있다. 소득과 자산은 서로 독립적인 경제적 능력의 지표인 것이다.
부동산시장을 염두에 두고 보는 정책당국자들은 부동산 보유에 부과하는 세금이 정책적인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필요 없는 세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은 보유자의 담세능력을 보여준다. 부동산보유세는 소득세처럼 개인의 경제적 능력에 부과되는 세금으로서 정책적 기능과 상관없이 존재 의미가 있다. 부동산시장에 자금이 몰려 가격급등 현상이 생긴 것이라면 부동산 가치에 부응하도록, 즉 보유자의 경제적 능력에 합당하도록 과세하면 시장의 가격안정도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경제주체의 경제적 능력에 대한 판단기준으로서 소득과 함께 최근 재산이 점점 더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재산의 어떤 점이 경제적 능력의 원천이 되는 것일까. 재산의 소득 창출 능력과 사용가치가 그 원천이 된다. 소득 창출 능력이라면 우선 자산으로부터 소득을 파악해 과세하는 것으로 가능해진다. 예금이나 채권 형태의 자산에 대해서는 이자소득을, 주식에 대하여는 배당과 양도차익을, 임대주택에 대하여는 임대소득을 각각 과세하면 된다.
“부동산 안정화, 일관성 있는 조세정책 필요”
그러나 부동산 보유자가 직접 거주하는 부동산으로부터의 실물향유소득에 대하여는 소득세가 과세하는 방법을 갖고 있지 못하다. 자가주택에 거주하는 개인은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개인이 소득에서 일정 부분을 월세 형태로 지불해야 하는 것에 비해 그렇게 하지 않고도 거주할 수 있어 동일한 소득을 갖고 있더라도 경제적 능력이 우월한 것이다.
대출 규제와 부동산세제는 특성을 구별해 활용해야 한다. 부동산세제는 입법을 통해 가동되는 정책으로 세율이나 공제 금액 등을 단기적으로 시의적절하게 변화시키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경기에 상관없이 존재하는 규범으로서 항구화시켜야 한다. 부동산경기가 좋지 않더라도 기존에 존재하는 세제를 바꿀 필요가 없다. 가격이 하락하면 세 부담도 가치에 연동해 줄어든다.
없던 세제를 새로 도입해 과열되는 부동산경기에 대처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항구적인 보유 세제를 가지고 있으면, 가치 증가에 연동해 세 부담이 올라가면서 경기과열에 대한 제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정책적 효과를 차치하더라도 부동산자산은 그 자체로 경제적 능력의 대리지표이기에 상응하는 과세가 공정 과세를 실현하는 길이다.
김유찬 포용재정포럼 회장 주간경향 : 2024.07 13 1587호
극단주의의 유령
7월 초 영국과 프랑스의 총선에서 각각 노동당과 좌파 연합이 승리함으로써 유럽 정치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영국에선 노동당이 63.4%의 의석을 차지해 집권했고, 프랑스에선 좌파 연합인 신인민전선이 32.6%의 의석을 차지해 제1당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득표율과 정당 구도를 보면 승리자는 따로 있다.
영국에서 극우 정당인 영국개혁당이 처음 의회에 진출하면서 14.3%의 득표율을 얻어 자유민주당을 제치고 득표율상 제3당으로 약진했다. 노동당 압승에 가려진 암울한 그림자로 평가된다. 프랑스에서도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이 의석률로는 제3당에 머물렀지만 득표율에서는 29.3%를 얻어 제1당이 되었다. 게다가 이것은 양대 진영과 달리 국민연합이 단독으로 참가해 얻은 득표율이다. 프랑스의 극단주의는 암울한 그림자 정도가 아니라 코앞에 닥친 위협이 되었다.
영국개혁당과 국민연합이 위험한 것은 이들이 극단주의를 표방할 뿐 아니라 부정적 포퓰리즘과 결합했기 때문이다. 극단주의(extremism)는 급진주의(radicalism)와 다르다. 급진주의가 민주주의 질서 내에서 급속한 변화를 추구한다면, 극단주의는 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하면서까지 과격한 변화를 추구한다. 포퓰리즘도 엘리트주의를 반대하며 인민 주권을 실현하려는 본래의 성격을 벗어나 대중추수주의로 전락하면, 선거 승리만을 위해 대중을 혐오 정치로 선동하는 이른바 ‘표퓰리즘’으로 변질된다.
이번 영국과 프랑스의 총선은 극우 포퓰리즘이 사라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실상 더 큰 종양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 선거였다. 역설적이게도 극우 포퓰리즘의 집권과 주요 원내 세력화를 막은 것은 의석률의 득표율 반영을 왜곡한 다수 대표제 효과였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선거 제도의 방지 효과도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왜곡을 통해 유지되는 제도와 정치는 그 자체로도 타파 대상이므로 극우 포퓰리즘의 빌미가 될 뿐이다.
극우 포퓰리즘의 공통적 특징은 적대적 양극화와 혐오 정치를 조장하고 동원함으로써 각인의 자유와 평등에 기반한 민주 질서를 파괴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력이 상품으로 교환되는 질서이며, 그 교환의 장소가 노동 시장이다. 그리고 노동 시장의 갈등은 종종 집단 간 갈등으로 나타나며, 특히 세계화 시기엔 인종과 국적에 따른 갈등으로 현상한다. 극우 포퓰리스트는 이 갈등을 인종주의적 혐오 정치로 동원한다. 외국인 노동자는 투표권이 없으므로 ‘적’으로 설정하기 가장 쉬운 집단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를 적으로 규정해 자국민 이익을 옹호하면서 표를 얻으려는 것이다. 이것이 더욱 극단화되면 나치즘에서 나타났듯 대량학살로도 치달을 수 있다.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서 나경원 후보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최저임금 구분 적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외국인 노동자를 최저시급 이하로 지급할 수 있도록 차별화한다는 것이다. 이 구분 적용은 2030년 인구 절벽 시대의 노동력 부족 현상을 해결하고 저임금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나 간병인을 통해 저출생·고령화 문제에도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현 정부의 저임금 외국인 가사도우미 합법화 정책을 노동시장 전체로 확대하겠다는 얘기다. 한국의 인구 문제와 노동력 문제를 외국인의 노동력 덤핑과 인종 차별을 통해 해결하려는 것이다. 극우 세력의 인종주의적 발상과 맥을 같이한다.
백번 양보해 우리나라 최저임금이 월등히 높아 그 미만으로도 문화적 생활이 가능하다면 이러한 주장도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선진국 중에서 턱없이 낮을 뿐 아니라 내년도 인상폭도 물가 상승률을 반영하지 못해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나 후보의 주장이 더욱 우려를 자아낼 수밖에 없다. 자유 시장 경제의 민주주의 질서에서도 인종이나 종교 등 노동 시장 외적 요인에 따른 차별은 금지된다. 명백히 자유 민주주의 질서를 위협하는 극단주의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보았듯이 이러한 주장이 대중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국민의힘 지지자에게 호소력이 더 크기 때문에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서 이러한 주장이 제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종주의는 진보와 보수의 문제나 좌파와 우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 질서를 지키려는 합리주의와 이를 파괴하려는 극단주의의 문제다. 극단주의는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가 모두 경계해야 할 민주주의의 적이다. 혐오가 대중의 지지를 얻을 때 극단주의의 유령이 육체를 획득하게 된다. 그때 민주주의는 이미 우리 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경향 : 2024.07.14.
조국혁신당은 거대한 소수가 될 수 있을까
조국혁신당의 새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가 오는 20일 치러진다. 4·10 총선 돌풍에 비하면 여론의 주목도는 떨어진다. 조국 대표가 다시 대표 선거에 출마하면서 결과가 뻔한 탓도 있지만, 혁신당 자체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총선 이후 혁신당의 존재감은 날로 약화되고 있다. 한국갤럽 정기 여론조사를 보면 총선 직후 14%까지 올랐던 혁신당 지지율은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7월 2주 조사에서는 8%를 기록했다. 거대 양당 중심으로 돌아가는 국회에서 12석 비교섭단체가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는 예상 가능하다. 혁신당은 그런 한계를 극복하고 ‘거대한 소수’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총선용 프로젝트 정당으로 막을 내릴까. 혁신당에 아쉬운 몇 가지를 정리해본다.
혁신당은 조국의 복수를 위한 정당인가. “백척간두에서 홀로 몸을 던졌는데 하나둘 함께 뛰어내렸고 국민들이 받아줬다.” 혁신당은 조국 1인 정당으로 출발했다. 당명부터 그렇다. 조 대표는 제1야당이 휘청거리는 총선판에 구세주처럼 등장해 정권심판론의 불씨를 되살렸고, ‘3년은 너무 길다’며 대통령 탄핵을 외쳤다. 원내 입성 후 당 1호 법안으로 ‘한동훈 특검법’을 추진하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검찰개혁은 당의 최우선 과제다. 자신과 가족을 수사한 검찰 조직 및 그 조직의 수장들이 표적이다. ‘당신은 얼마나 공정한가, 나와 내 가족을 수사했던 딱 그만큼 당신과 당신 가족도 수사해보자’ ‘정권의 입맛에 맞춰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는 검찰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속마음이 보인다. 조 대표는 “사적 복수가 아니라 불의한 강자에 대한 공적 복수”라고 말한다. 어느 쪽이든 언제까지 반윤석열·한동훈·검찰만 외치고 있을 것인가. 존재 이유의 확장이 필요하다.
혁신당은 조 대표 사법리스크를 극복할 수 있을까. 조 대표는 지난 2일 자녀 입시비리 등에 대해 2심에서 징역 2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는 데 비하면 조 대표 사법리스크는 더욱 선명하다. 총선에서 690만명의 지지를 받았다고 대법원 판결을 피해갈 수는 없다. 최종 판결이 안 나왔다고 조 대표가 대선에 출마할 명분이 있을까. 시점을 알 수 없지만 최종심에서 유죄가 확정된다면 그는 구속을 피할 수 없다. 형 집행 종료 후 5년간 피선거권도 제한된다. 의원직은 승계되고 의석수는 변함이 없겠지만 조국 없는 혁신당이 이전과 같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조 대표는 자신이 구속되면 “제2, 제3, 제100, 제1000의 조국이 등장할 것”이라고 하지만 축이 사라진 팽이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조국 없는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만들어야 한다. 젊고 신선한 인물을 더 앞장세우고 대중적 스타로 키워야 한다.
혁신당은 민주당을 견인할 수 있을까. 혁신당은 지난 총선 광주, 전남, 전북 비례대표 투표에서 민주당을 눌렀다. 혁신당은 각각 47.72%, 43.97%, 45.53%를 받았고 민주당은 36.26%, 39.88%, 37.63%를 얻는 데 그쳤다. 혁신당은 광주에선 민주당보다 10%포인트 이상 앞섰다. 부산과 세종에서도 혁신당은 민주당을 눌렀다. 윤석열 정권을 심판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이재명의 민주당도 마음에 들지 않는 다수가 혁신당을 선택한 것이다. 혁신당은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가. 22대 국회 개원 이후 혁신당이 보인 모습은 특검에만 열을 올리는 민주당과 다를 바가 없다. 민주당 2중대라는 평가를 받는 순간 혁신당의 존재 이유는 사라진다. 17대 총선에서 10석을 얻으며 등장해 무상급식, 아동수당, 노령연금 등 정책 대안으로 정치권을 견인한 ‘거대한 소수’ 민주노동당 같은 준비된 모습은 안 보인다.
콘텐츠 없는 정당, 민생에 취약한 정당이라는 평가를 의식한 듯 혁신당은 ‘사회권 선진국’을 정책 목표로 내걸었다. 연말까지 구체적 정책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사회권 강화는 아직 추상적 개념뿐이다. 혁신당은 지금보다 훨씬 많은 당의 에너지를 정책 역량 개발에 쏟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거대 양당에 표를 줄 수 없는 40~50대 진보적 시민의 자기위안용 프로젝트 정당으로 그칠 수도 있다. 정치투쟁을 전공으로 하는 정당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준비된 정당이 되어야 대중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복수와 권력투쟁에만 집중하는 정당은 대중정당으로 매력이 없다. 강성 지지층은 속이 시원하겠지만, 먹고사는 문제의 개선을 바라는 서민이나 여야 모두 별로인 중도층 입장에서 그런 정당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박영환 정치부장 경향 : 2024.07.14.
격노하는 대통령, 분개한 국민
‘격노’(激怒), ‘몹시 분하고 노여운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라는 뜻이다. ‘격노’가 2024년 올해를 지배한 단어라도 될 기세다. 이 격분의 감정이 대한민국 대통령의 정서적인 상태를 상징하는 표현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난 4월에 열린 국민의힘 총선 패배에 관한 토론에서도 ‘뻑하면 대통령이 격노한다’는 말이 나왔다.
대통령의 격노는 다양한 수준에서 드러난다. 국민의힘에 한동훈 비대위가 들어설 당시 김기현 전 대표가 사퇴를 거부하자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보도, 한동훈 비대위가 들어선 이후엔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을 총선 이후 조건부로 검토한다는 말이 나오자 이에 대해 격노했다는 보도, 심지어 방미 기간 중 블랙핑크 공연이 무산되자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몹시 화가 나는 감정은 그 자체로 나쁘진 않다. 오히려 인간 본성에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특히 부당한 모욕과 무시를 당하면서 화를 내지 못한다면 그것이 더 문제다. 더하여 타인의 심히 무례하고, 비열하며, 야만적인 언사와 행동에 대한 분노는 타당한 도덕 감정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때로 정의의 수호자로서, 정의의 공정한 집행자로서 정치지도자의 분노는 유용성이 있다. 특히 힘이 없는 약자를 위해 최고 정치지도자가 가끔 내는 분노는 평범한 사람들이 열렬히 지지하는 대상일 수 있다. 이처럼 타인에게 가해진 부당한 행동을 보고 분노하는 일을 도덕 감정에서는 ‘분개’(indignation)라고 한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정치지도자들의 ‘정당한 분개’는 아름답고 찬탄할 일이라 말한다. 그 정당함은 중립적 방관자가 공감할 수 있을 만큼 절제되고 조절된 말과 태도에서 나온다. 분기탱천하거나 시끄럽게 아우성치는 분노의 격정은 오히려 혐오감과 불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타자를 위한 ‘분개’의 감정마저 절제되어야 하는 이유는 정치지도자의 격정, 특히 최고지도자의 분노는 명확히 억압적 권력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마다 화를 낼 수 있다는 건 명백히 타자와의 권력관계에서 우위에 있다는 의미다.
부당한 일을 당한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은 대체로 그 일을 인내하고 감내해야 한다. 절제된 분노의 발산조차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억압의 강도를 더 세게 만들 수 있다. 반면 권력이 더 많은 이들일수록 (블랙핑크 공연 무산과 같은) 별달리 부당하지 않은 일에도 몹시 화를 낼 수 있다.
스미스는 이처럼 분노를 마음껏 표출하는 일을 두고 ‘허영심의 발로’라고 말한다. “허영심에 찬 연약한 사람들은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 혹은 자신에게 감히 반대하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흔히 격앙된 감정을 과시하여 드러내 보이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기백을 보이는 것으로 상상한다.”
스미스가 이런 허영심에 찬 사람들을 연약하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이들이 ‘자기제어’를 제대로 못하기 때문이다. 분노의 제어가 언제나 위대하고 고상한 역량인 이유는, 분노에서 벗어나야 곤경 속에서도 신중하고, 교묘한 불의가 만드는 이익의 유혹에 저항할 수 있고, 적절한 자혜의 덕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스미스는 인자함, 호의, 꾸밈없는 애정, 우의, 존경은 한 사회에 속한 사람들을 결속시킨다고, 이런 경향이 과하다고 비난받을 수는 있어도 결코 이에 대해 분노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반면, 노기, 증오, 질투, 악의, 복수심 같은 감정들은 유대를 깨뜨리는 경향이 있으며, 이런 감정이 과다하면 공포의 대상 혹은 증오의 대상이 된다.
현재 채 상병 특검법을 둘러싼 논란의 중심에도 대통령의 ‘격노’가 있다. 최고권력자의 분노는 주변인을 때로 두려움으로 몰아넣는다. 두려움에 싸인 주변인은 부당한 명령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이의 제기가 없는 곳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 편견에 찬, 잘못된 의사결정이다. 채 상병 사건의 경우 대통령의 격노가 부당한 수사 개입으로 이어졌다는 보도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여당 의원들이 내놓는 변명이 ‘대통령은 격노하면 안 되냐?’는 것이다.
서글픈 점은 이렇게 자주 격노하는 대통령이 채 상병의 죽음을 두고 분개했다는 보도를 본 적은 없다는 데 있다. 대통령이 분개하지 않으니 국민이 힘을 모아 대신 분개하고 있다. 그 분개가 이제 특검법을 거부하는 대통령을 향할지도 모를 일이다.
김만권 정치철학자 경향 : 2024.07.14.
포퓰리스트 우파와 워크 좌파의 공모
극우 포퓰리즘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포퓰리스트 우파는 자신들이 좌파가 부과하는 억압적 강요에 맞서 ‘온건한 정상성’을 옹호하고 있다는 수사를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그들은 워크(woke: 각성한, 깨어 있는) 좌파의 ‘캔슬 컬처’(취소 문화)가 개인이 이성애자이거나 전통적인 견해를 갖는다는 이유만으로 죄책감을 갖게 하고, 어떤 말이나 행동이 갑자기 금지될 수 있다는 위협을 느끼도록 해, 숨 막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비난한다.
한 사례로, 최근 파시즘을 옹호하는 마이클 밀러먼이라는 우파 지식인이 “왜 정상적인 모든 것은 파시즘이라고 불리는가”라는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모두 파시즘으로 몰아붙이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달린 반응이 주목할 만하다. “누가 나를 파시스트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2차 대전 전에는 평범한 이들 모두가 파시스트였다. 가족과 조국을 사랑하고 다른 이들을 경계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란 말인가.” “정상적인 것이 파시즘이라면, 파시즘이야말로 정상적인 것이다.”
극우 포퓰리즘이 광범위한 호소력을 갖는 현상을 우파의 이데올로기 조작으로 분석하는 것은 피상적이다. 이들의 부상은 단순히 전통적 인종주의로는 환원되지 않는 깊은 불만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애국심은 그 자체로 파시스트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데, 포퓰리스트 우파는 외국인이나 성소수자 등을 외부 위협으로 인식하게 해 분노와 적의의 대상이 되도록 애국심을 왜곡한다.
여기에 포퓰리스트 우파의 역설이 있다. 그들의 애국심은 과도하게 애국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불충분하게 애국적이다. 그것은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을 왜곡한 형태일 뿐이다. 포퓰리스트 우파는 자신들이 국가, 대기업, 언론과 같은 엘리트의 압력에 대항해 노동자 계급을 대변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억만장자들의 막대한 지원 아래 자본주의의 근본적 구조는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않는다.
문제는 극우 포퓰리즘을 비판하는 이들 역시 모순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워크 좌파는 성적, 인종적, 경제적으로 배제되고 소외된 이들의 보호자를 자처하면서도, 매우 억압적인 초자아의 체계를 부과함으로써 어떤 사람이나 입장을 배제하는 것을 넘어 이를 둘러싼 토론의 가능성 자체를 없애 버린다. 겉으로는 다양성과 포용을 주장하지만 이에 대한 자신의 정의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가차 없이 배제해 버린다. “우리 안에는 다양성과 포용성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 그런 사람은 이미 모두 축출해 버렸으니까.” 마지막으로 남은 식인종을 먹어 버렸다는 농담의 극단적 버전이다.
워크 좌파는 억압적 체계를 조성해 개인이 엄격한 이상에 완벽히 부합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끊임없이 느끼도록 만든다. 포퓰리스트는 이 틈을 파고들어 “긴장 풀고, 당신의 있는 그대로를 자랑스러워하라”고 속삭이며 해방적 기분을 선사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존 질서를 유지하길 원하며 현실의 문제를 회피한다. 좌파 역시 입으로는 급진적 변화를 주장하지만, 그들이 그리는 변화는 진정한 변화 없이 기존 질서가 유지되도록 하는 변화다.
결론적으로 새로운 포퓰리스트 우파는 충분히 애국적이지 않고, 워크 좌파는 충분히 급진적이지 않다. 워크 좌파가 피억압자의 진정한 이익이 무엇인지를 자신들이 더 잘 아는 양 행동하며, 이들이 기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꾸짖을 때, 억압받는 이들은 “왜 내가 당신들이 말하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라며 멀어져 간다. 이렇듯 새로운 포퓰리스트 우파와 워크 좌파는 깊이 공모한다. 이들은 동전의 양면이다. 이들은 지금 직면한 뿌리 깊은 문제를 회피하고, 글로벌 자본주의에 새겨진 근본적인 적대를 무시하는 두 가지 방식이다.
슬라보이 지제크 |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한겨레 : 2024.07.14.
작은 것들의 신
김용진, ‘기(氣)로 가득한 기(器), 달항아리’, 캔버스에 철(핀), 2024. 작가 제공
조선의 백자호, 일명 달항아리의 둥근 모양을 보면 넉넉해지고 만족스러운 기분이 든다. 사실 달항아리는 커다란 사발 두 개를 아래위로 붙여 만들기 때문에 이음새의 흔적이 남아 가운데 배부분이 살짝 이지러진 경우도 있다. 결과적으로 정확한 기하학적 원이 아니라 둥그스레한 항아리가 되는데, 이 인간미 넘치는 자연스러운 곡선에 매료된 이가 많다. 그중에는 도상봉, 김환기, 구본창, 강익중 등 유명한 미술가도 있다. 하늘의 달을 닮아 언제 봐도 지겹지 않은, 손으로 어루만져 보고 싶고 손길이 닿는 곳에 두고 싶어지는 달항아리의 정겨운 느낌이 그들의 작품 속에 나타나 있다.
지금 소개하는 김용진 작가도 달항아리를 캔버스에 담았는데, 그의 작품을 눈여겨보게 된 이유는 어울리지 않는 재료 때문이다. 철사라는 재료와 달항아리라는 소재는 낯선 조합이다. 만인이 달항아리에서 기대하는 ‘어루만져 보고 싶은’ 곡선과 매끄러운 도자기 표면을 어떻게 캔버스 위에 빼곡하게 꽂은 따끔따끔한 철사 침들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해부대 위 우산과 재봉틀의 만남”이라는, 백여 년 전에 초현실주의자가 알려 준 데페이즈망(낯선 사물들의 만남을 통해 다른 차원의 의미를 드러내는 기법)을 시도했다고 봐야 할까. 무던하고 소박한 달항아리의 상징성을 뒤엎고, 알고 보니 까칠하고 예민하더라는 반전의 효과를 노린 것일 수도 있다.
만일 당신이 가장 자신 있게 다룰 수 있는 재료가 철사인데, 그런데 또 하필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물건이 달항아리라면? 김용진이 그랬을 것이다. 철사라는 재료를 자신의 숙명처럼 받아들이게 된 후, 그는 철사를 자르고 단위를 만들어 표면에 심는 몇 개의 행위로 자신의 작업을 단순화했다. 미술 행위라고 해서 처음부터 의미 있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용진처럼 하찮은 듯 여겨지는 작은 것에서 미술을 지속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인도의 아룬다티 로이가 쓴 소설, ‘작은 것들의 신’에서는 ‘작은 것들’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사람들은 지켜야 하는 커다란 틀은 항시 신경 쓰지만, 그 바람에 자기 주변에서 벌어지는 작은 느낌은 곧잘 무시된다. 이혼 후 쌍둥이 남매를 키우는 여자 주인공은 자기 아이들을 돌봐주는 남자에게 끌리는데, 그는 사랑해서는 안 될 불가촉천민이다. 그들은 어느 날 둘 사이에서 일어나는 작은 기쁨에만 집중해 보기로 한다. 비록 커다란 틀에서는 애초부터 어긋나 있기에 영영 맺어질 수 없는 사이라 해도, 작은 경험에 빠져있는 동안에는 서로 사랑하고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아니 소설가가 상상하는 신은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하지 못하는 외팔이인 듯하다. 조그만 것에 몰두하는 동안에는 신은 큰 것에 관여할 수가 없다.
김용진도 철사와 달항아리를 동시에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막연한 상태로 달항아리에 접근하는 대신, 자신 있는 철사 손질에 정성을 모아보기로 한다. 작은 것은 언젠가 큰 것을 품게 될 의미심장한 씨앗일 테니까. 김용진의 작업방식은 우리가 하루하루 세월을 보내는 인생살이를 떠올리게 한다. 예술도 삶도 결국엔, 무엇으로 시간을 채웠는가로 말해지지 않겠는가.
시간은 앞으로 나아갈 뿐 쌓이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쏘아 올려진 화살 또는 흐르는 강물에 비유되어 왔다. 나 역시 어떤 시간이 매듭지어지면 다음 국면으로 넘어간다고 믿었다. 그런데 문득 내가 시간의 궤도를 돈다는 걸 깨달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신문을 보고 커피를 내려 마시고, 글을 몇 자 끄적였는데, 어제도 그랬고, 작년에도 그랬다. 항상 같은 경험을 되풀이하며 궤도 위에 있는 한 지점을 날마다 통과하고 있었다. 그 지점에 내가 마신 수천 잔의 커피와 수만장의 글자들이, 시작할 땐 뭐가 될지 모르는 자그마한 눈송이였을 뿐인데 어느덧 육중한 눈덩이로, 심지어 어떤 형태로, 축적되는 중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소한 루틴들이 내 삶의 궤도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행복에 대한 해답도 궤도 상에 루틴을 하나 빼거나 끼워 넣는 식의 작은 조정과 변화로 구할 수 있지 않을까. 근무할 때 잠을 쫓으려고 허겁지겁 종이컵에 커피를 마셔대던 내 지인은 컵이 쌓여 탑을 이룬 것을 보고 루틴을 바꾸기로 했단다. 아무리 바빠도 근사한 찻잔에 부어 우아하게 즐기기로. 큰 행복 설계도 중요하지만, 자잘한 행복을 발굴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곰돌이 푸가 말하듯, “매일 행복하진 않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다.”
이주은 | 미술사학자·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한겨레 : 2024.07.14.
이름이 궁금해도 참아 본다
제유성, ‘Under the Sea’, 2023, 캔버스에 유채, 140×140㎝, 갤러리마크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어여쁜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보통은 그냥 지나치지만, 간혹 그 꽃의 이름이 궁금할 때가 있다. 요즘엔 검색을 미룰 필요도 없이 휴대폰으로 사진 한장만 찍으면 바로 이름이 화면에 뜬다. 그렇게 한번 이름을 알게 된 꽃은 여타 꽃들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여럿 사이에 뒤섞인 모호한 상태를 탈피하여 명확한 존재로 기억된다고나 할까.
‘자연에 이름 붙이기’라는 캐럴 계숙 윤이 쓴 책을 읽었다. 누군가는 자연의 생명체에 하나하나 이름을 붙였을 것인데, 그리스도교 성경에서는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그 일을 맡았다고 씌어있다. 실제로 혁혁한 공헌을 한 사람은 스웨덴 출신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였다. 지금으로부터 250여 년쯤 전에 그는 생명체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분류된 것에는 이름을 매겨두었다. 어릴 적 수업시간에 배웠던 ‘종·속·과·목·강·문·계’가 바로 린네가 만든 분류체계이다.
린네 이후 분류학은 놀라운 발전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정교한 분류 방식이라고 할 지라도 모든 생명체에 완전하게 적용될 수는 없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캐럴 계숙 윤은 ‘움벨트(Umwelt, 독일어로 주변 환경이라는 뜻)’를 강조한다. 생명체는 오랜 세월 주변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왔고, 그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을 변화시켜 온 것이다.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것들은 대부분 이름이 붙여짐으로써 세상에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 그러나 부를 이름이 마땅히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어쩌면 분류란 그저 관리상의 편의를 위해 외부에서 누군가에게 이름을 부과한 것일 수도 있다. 이 시대에는 과거에 필연적이라고 여겼던 분류체계가 의심되기도 한다. 최근 독일에서는 마치 이름을 바꾸듯이 자신의 젠더를 바꿀 수 있는 법이 통과되었다. 전문가의 소견서도 요구되지 않고, 오직 본인의 결정만으로 자신이 여자라거나 남자, 혹은 성별을 분류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선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당황스럽겠지만 이제는 기존에 붙여진 이름에서 벗어나 대상을 보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을 듯하다.
미술품에도 이름이 있다. 작가가 붙인 작품의 제목이 이름인 셈이다. 제목이 없이 번호만 붙어있거나, ‘무제’라고 씌어있는 미술품을 전시장에서 마주치면, 역시 당황스럽다. 이 작품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제목은 한편으로는 관심을 모아주고 해석의 단서를 제공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정된 시각에 사로잡히게 만들기도 한다. 미술가는 자기 작품의 의미가 한낱 몇 글자의 제목에 국한되지 않을까 우려하면서, 무제를 선택하는 것이리라. 관람자가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서 열린 상태로 작품을 받아들이기 바라면서.
지난주에 제유성의 개인전에 갔었다. 벽에는 그림만 걸려있을 뿐 라벨이 딸려있지 않아서 별도로 유인물을 보면서 제목을 확인해야 했다. 요즘엔 이런 식으로 라벨 없는 전시회가 많다. 아마도 문자가 주는 선입견 없이 그림에만 몰입해 보라는 권유인 듯하다. 나는 어떤 파란 그림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다. 공기 중에 꽃가루가 날리고 저 멀리 동그란 언덕들이 겹겹이 어우러져 있는 듯했다. 코가 간질간질 나른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그림이었다. 그런데 ‘바다 밑에서’라는 제목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금세 바닷속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꽃가루라고 생각했던 것은 바닷속 기포처럼 느껴졌고, 상어의 지느러미 같은 것도 눈에 들어왔다. 아름답지만 공기 부족으로 숨 막힐 수 있고, 구석에는 위협이 잠복하고 있었다.
제목이 붙은 그림을 보는 것은 제목에 의존하지 않은 채 이미지만 감상할 때와 느낌이 다를 수 있다. 분류되어 명확해진 것과 분류되지 않아 자유로운 것 사이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날 것 이미지의 의미는 미리 떠올렸던 것이 아니라, 아직 의미가 이것 또는 저것으로 분류되지 않은 채 이것도 될 수 있고 저것도 될 수 있는 상태에서 생성된 것이다.
이름을 알고 싶다는 건 관심이 있다는 것이고 그 순간이 곧 앎의 시작점이다. 하지만 무조건 이름부터 검색하지 말고, 찬찬히 그 특성을 관찰하면서 알아가는 태도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그 대상이 미술품이라면, 한 번쯤 궁금한 것을 참고 이미지만 감상해 보자. 의외의 영감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주은 | 미술사학자·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한겨레 : 2024.4.28
김건희 여사, 선을 넘으셨습니다
스포일러는 있었다. 대선 직전인 2022년 1월 공개된 7시간45분가량의 <서울의 소리> 녹취록이다. 김건희 여사는 말했다.
“내가 정권 잡으면 거기(서울의 소리)는 완전히 무사하지 못할 거야.” “우리 남편은 바보다. 내가 다 챙겨줘야지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남편’도 ‘우리’도 아니고 ‘내가’ 정권을 잡을 거라고 했다.
이번엔 취임 후다. 최재영 목사에게서 ‘디올 백’을 건네받던 날(2022년 9월) 발언이다.
“막상 대통령이 되면 좌나 우나 그런 거보다는 진짜 국민들을 먼저 생각하게끔 되어 있어요. 이 자리가 그렇게 만들어요.” ‘이 자리’에 ‘퍼스트레이디 자리’를 넣어보면 어색하다. ‘대통령 자리’를 넣어야 어울린다.
2024년 1월.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보낸 문자(텔레그램 메시지)다.
“대통령과 제 특검 문제로 불편하셨던 것 같은데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부모가 자식 대신, 어른이 아이 대신, 상사가 부하 대신 사과하곤 한다. ‘우리 OOO가 어려서(뭘 잘 몰라서, 초보여서) 실수했는데,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식이다. 왜 퍼스트레이디가 대통령 대신 사과하나.
“요 며칠 제가 댓글팀을 활용하여 위원장님과 주변에 대한 비방을 시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너무도 놀랍고 참담했습니다. 함께 지금껏 생사를 가르는 여정을 겪어온 동지였는데(중략) 결코 그런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문장은 정치적 인화성이 크다. 우선 ‘댓글팀’. 퍼스트레이디가 여론조작을 시도했다면,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수사받을 사안이다.
‘동지’ 역시 문제적 표현이다. 김 여사와 한 전 위원장은 어떻게 동지가 됐나. 다시 녹취록을 뒤져보자. 서울의 소리 기자가 ‘제보할 게 있다’며 한동훈 당시 검사장의 전화번호를 묻는다. 김 여사는 답한다. “그럼 (제보할 내용을) 나한테 줘. 아니 나한테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제3자 연락처를) 보내줄 테니까 거기다 해. 내가 한동훈이한테 전달하라고 할게.”
윤 대통령의 검찰총장 시절 법무부 징계결정문에는 “한동훈은 2020년 2월 5일~4월 30일 카카오톡 메시지를 징계혐의자 처(김 여사)와 332회 주고받았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둘은 오랫동안 동지 관계였다고 봐야 한다.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습니다.” 2021년 12월 김 여사는 허위 이력 논란 관련 기자회견에서 약속했다. 약속을 어긴 건 잘못이다. 하지만 <서울의 소리> 녹취록을 통해 그의 정치적 욕망은 백일하에 드러났다. 시민이 스포일러를 놓쳤거나 외면했을 뿐이다.
윤석열 정권 초기, 다른 언론사 기자에게서 “김 여사와 메신저로 대화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독특한 스타일이구나, 사업을 오래 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다. 독특해서가 아니었다. 김 여사는 정치를 하고 있었던 거다. 그러니 봉하마을 방문과 해외 순방에 지인을 동반하고, 팬클럽에 사진을 보내고, 측근들을 대통령실에 심었던 거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공범인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가 ‘VIP를 상대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운동을 하겠다’는 취지로 말한 녹취록이 공개됐다. 이 전 대표는 김 여사의 주식계좌를 관리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VIP 정체를 두고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라 했다가 “김 여사를 뜻한 것이었지만 허풍이었다”고 말을 바꾸는 등 오락가락하고 있다.
해병대원 채 상병 순직 사건은 가장 예민한 국정 현안이다. 대통령실에서 구명 로비 관여 의혹을 즉각 부인한 이유도 그래서일 터다. 하지만 부인한다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개입 의혹은 여기에 비교하면 ‘소소한’ 사안에 불과하다. ‘임성근 구명 로비 개입 의혹’과 ‘댓글팀을 통한 여론조작 시도 의혹’ 두 가지는 반드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대기업 CEO의 배우자는 경영에 관여할 수 없다. 검찰총장 배우자는 수사에 개입할 수 없다. 하물며 대통령 배우자라면 더 엄정하게 선을 지켜야 한다. 부부 사이 통상적 조언을 넘어 스스로 주체가 돼 공적 업무에 관여해선 안 된다.
김 여사 스스로 자제하길 모두가 바랐다. 2년여가 지난 이제는 기대가 무망함을 안다. ‘문자 읽씹’ 논란이 점입가경인 가운데서도 김 여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단독 외교’를 펼쳤다.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이 설립한 한인 교회를 방문하고, 워싱턴에서 탈북민을 만나 북한 인권 개선을 역설했다.
윤 대통령이 김 여사를 자제시킬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결국 국회와 검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미진하면 특별검사를 도입하는 수밖에 없다. 퍼스트레이디의 국정농단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이르기 전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
2022년 3월 9일 주권자는 ‘기호 2번 국민의힘 후보 윤석열’을 제20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투표용지에 ‘김건희’는 없었다.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 2024.07.15.
‘호국’과 ‘민주’의 정치학
지난 6월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기념하는 달이며 동시에 ‘호국 보훈’의 달이기도 했다. 이 두 가지는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 군부독재 시대에 호국이 민주를 거의 압사시켰던 기억이 생생해서 그렇기도 하다. 지금도 둘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이 존재한다.
‘호국’이란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어떤 도전도 허락하지 않는 성역이었고 그 개념에 문제 제기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호국’은 그것이 정권 안보와 중첩되어 있다는 진실을 은폐하는 장치이기도 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도 그렇다. 대통령, 당대표, 국회의원 등에 당선되면 그다음 날 당선자는 ‘호국’의 상징인 국립현충원을 가장 먼저 찾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물론 민주주의가 정착되면서 ‘보훈’의 내용이 충실해졌다(내게는 일단 ‘호국’ 하면 1970년대, 1980년대에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교련과 모의 수류탄 던지기 등의 훈련을 통하여 사회를 군사주의로 포위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또한 준군사조직으로 전락한 ‘학도호국단’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6월을 맞이하여 정부는 지난 2일 ‘2024년 호국보훈의달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국무총리의 이름으로 담화문이 공개되었지만, 사실은 현 정부의 메시지라고 봐도 될 것이다. 일단 내용을 떠나서 이런 식의 발표문이란 국민을 향해 일방적으로 ‘선전포고’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냥 ‘국민께 드리는 글’이라고 하면 안 되는가? 이런 전형적인 관료 권위주의적인 ‘담화문’ 형식은 그 자체로 내용을 결정하기도 한다.
이번 담화문은 “자주독립을 위해 일제에 항거하신 순국선열,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산화하신 호국영령, 민주주의를 꽃피우신 민주열사의 헌신이 있었습니다”라고 한 후 ‘산업화의 주역’과 제복을 입으신 분들(국군장병, 경찰관, 소방관 등)을 추가한다. 그리고 “이분들의 위대한 희생과 헌신 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라고 상식적인 결론을 내린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우선 ‘호국’은 나라를 보호하고 지킨다는 뜻인데 좀 따져보자면 ‘민주열사’는 왜 서울과 대전에 있는 국립현충원과 여섯 개 지역에 있는 호국원에서 찾아볼 수 없나?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원했던 것은 제대로 된 나라 만들기 아니었나?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도 ‘호국’의 일부다. 원래 ‘호국영령’은 6·25 전쟁 및 군사적 충돌에서 사망한 군인을 지칭하는 것이었지만 그 의미는 계속 확장되어왔다.
국가로부터 보상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민주 투사’들이 있다. 그것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억울한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물론 그 길이 국가가 모든 것을 수렴하려는 국가주의에 말려드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사망한 이의 유족이 만약 국립묘지를 원한다면 최소한 국가가 관장하고 운영하는 시설에 모셔야 하는 것 아닌가? 민주열사 상당수는 남양주시(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민간 시설이다. 민주주의를 위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했던 사람들은 국립현충원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있다. 4·19 국립묘지, 5·18 국립묘지를 제외하면 모두 사설이다.
게다가 서울과 대전의 국립현충원에는 능동적인 친일파(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자와 부역자) 무려 60여명이 여기저기에 묻혀 있다. 이들도 시민들이 소중한 세금으로 마련한 자리에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와 함께 잠들고 있다. 좀 기이하지 않은가?
올해의 ‘대국민 담화문’은 “정부는 최고의 예우를 다해 나라와 국민을 위한 희생과 헌신에 보답”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또한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일류보훈’을 실현하겠습니다”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민주 유공자를 현충원 등에서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는 없다. 내 얘기는 국립시설에 꼭 안장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일종의 선택권을 유가족 등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그 ‘옵션’이 없다.
추모하는 마음과 함께 물리적 시설이 중요하다. 덧붙여 나라와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쳤거나 희생당한 이들을 기리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현충원이나 유사 시설도 결국은 전쟁과 영웅을 찬양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올리브 스톤이 감독한 영화 <하늘과 땅>에서 주인공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전쟁이 남기는 것은 묘지들이야. 거기에는 적도 아군도 없지.”
권혁범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경향: 2024.07.15.
‘재벌 떡볶이 먹방’의 청구서
최재원 에스케이(SK) 수석부회장(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윤석열 대통령, 구광모 엘지(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에이치디(HD)현대 부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이 2023년 12월6일 부산 중구 깡통시장을 방문해 떡볶이와 빈대떡을 시식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보도된 사진과 동영상 중 국민에게 가장 ‘씁쓸함’을 안긴 장면은 무엇일까. 아마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장면 중 하나가 ‘재벌 떡볶이 먹방’일 것이다. 지난해 12월6일 부산 중구 깡통시장에서 재벌 총수들이 윤 대통령 옆에 도열해 떡볶이를 먹던 모습 말이다. 당시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젓가락으로 떡볶이를 집었다 접시에 도로 놓는 장면이 ‘짤’(화제 영상)로 돌았는데, 부랴부랴 ‘사실은 맛있게 먹었다’며 해명 영상이 등장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재벌 총수들이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부산 유치 실패를 무마하는 행사에 병풍처럼 동원된 장면은 ‘한국 자본주의의 수준’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주요 그룹 총수들은 2023년 한해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10여차례씩 동행했다고 한다. 남태평양의 쿡제도 등에서 각자 엑스포 득표 활동을 한 것을 빼고도 말이다. 형사재판, 세무조사 등 약점 많은 재벌이 울며 겨자 먹기로 응했으리란 해석도 있지만, 묵묵히 따라준 재벌이 곧 정권에 ‘청구서’를 들이밀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정부가 지난 3일 발표한 세제개편안은 ‘드디어 재벌의 청구서가 도착한 것인가’ 하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최대주주 보유주식 상속에 적용해온 20% 할증을 기업가치 제고(밸류업)를 명분으로 폐지하는 것 등 재계 희망사항이 충실하게 반영됐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이에 앞서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서 30%로 낮추겠다는 의중을 밝히기도 했다. 주식거래 등으로 5천만원 이상의 소득을 올린 투자자에게 물리는 금융투자소득세를, 2025년 시행 전에 아예 폐지한다는 계획도 개편안에 포함됐다.
재벌 등 부유층의 세금 부담을 낮춰주면 한국 증시에서 주식 가치가 올라갈 것이라는 정부와 재계의 주장은 실증적인 근거가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지적한 사실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는 높은 상속세 탓이 아니라 한국 기업의 불투명한 회계 관행, 후진적인 지배구조, 미약한 주주 환원 등의 결과라는 게 학계에서 정립된 견해다. 그러나 이를 개선하기 위해 추진돼온 상법 개정 등은 재계의 반대로 무산됐고, 감세만 남았다.
재벌 등 부유층의 세금을 깎아줘도 나라 살림에 문제가 없다면 걱정이 덜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가 재정은 수십조원의 세수 결손이 예상되는 위기다.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밝힌 ‘5월 국세 수입 현황’을 보면 5월까지 걷힌 국세는 151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조1천억원이나 적다고 한다. 2023년은 사상 최대인 56조원의 세수 결손이 발생한 해다. 경기가 나빠 기업실적이 하락한 탓도 있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등을 깎아준 결과가 반영됐을 것이다. 정부는 외국환평형기금 등을 동원해 모자라는 자금을 ‘돌려막기’ 하거나, 지방교부세·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줄이고 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지방정부 살림은 더욱 쪼들리고 지역 불균형은 한층 심해질 것이다.
로버트 라이시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저서 ‘시스템’(The System)에서 소수의 독과점기업이 정치권·정부와 결탁해 법과 제도를 자기네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체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대표적인 수법이 고소득층의 세금을 깎아주고, 규제를 줄여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더욱 강화하게 해주는 것이다. 라이시 교수는 감세로 인한 재정 부족으로 미국의 의료서비스와 공교육, 복지제도가 뒷걸음질하고 경제적 불평등이 극심해졌다고 고발했다. 그는 특히 상속세의 허점으로 부가 손쉽게 세습되면서 일어나는 불평등의 고착화와 민주주의의 손상을 걱정했다. 이는 결코 미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진보정당을 자칭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수뇌부마저 부자감세 유혹에 흔들리는 현실에서, 그래도 한겨레는 정부 감세 정책과 허울뿐인 건전재정 논리를 일관되게 비판해왔다. 그러나 그 많은 정치 기사들 사이에서 이 문제가 몇번이나 1면 톱으로 다뤄졌는지 헤아려보면, 정책의 물꼬를 돌리려는 뉴스룸국의 의지가 충분했는지는 회의적이다. 운이 좋아 거대한 부를 물려받는 이들에게 세금까지 줄여주는 게 맞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나. 불평등 완화와 ‘진짜 역동적인 경제’를 위해, 좀 더 대찬 공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제정임 |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장 한겨레 : 2024.07.15.
모든 이에게 케렌시아를 허하라
모든 이에게 케렌시아를 허하라. 시인 류시화는 “투우장 한쪽에는 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구역이 있다. 싸우다 지친 소는 자신이 정한 그 장소로 가서 숨을 고르며 힘을 모은다. 기운을 되찾아 계속 싸우기 위해서다”라고 썼다. 그는 그곳을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을 가진 스페인어 ‘케렌시아’(Querencia)라 불렀다. 또 뱀, 개구리 등 동물도 그곳을 가지고 있으며, 휴식이 없으면 생명 활동의 원천이 바닥나니, 그곳은 ‘회복의 장소’ ‘인간 내면의 성소’를 넘어 ‘존재계가 생명을 지속하기 위한 본능적 부름’이라고 썼다. 케렌시아는 단지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방해받지 않고 몸과 마음이 안전하고 편하게 쉴 수 있는 조건, 시간, 공간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어릴 적 내 케렌시아는 다락방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상상의 나래를 폈고,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몇번 울기도 했던 것 같다. 거기서 깊이 잠들어 가족이 실종신고를 할 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는 내 생애 가장 단꿈을 꾸며 꿀잠을 잤다. 대학 재수 시절, 내 케렌시아는 석양 무렵, 학원 건너편에 있던 약현성당 마당의 벤치였다. 가톨릭 신자도 아니지만, 두번째 도시락을 까먹은 뒤 30분쯤을 보낸 그곳, 그 시간은 나를 버티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꿈꾸게 해주었다.
휴가의 계절이다. 휴가는 자신의 케렌시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휴가의 효과에 대한 13개 논문을 분석한 프란시스카 스페스는 휴가가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부정적인 감정, 탈진, 스트레스 등을 유의하게 감소시킨다고 했다. 미국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최근 연구에서는 유급 휴가가 10일 더 연장될 때마다 여성의 우울증 발병 확률이 29% 줄고, 특히 2명 이상의 자녀를 가진 여성은 38%나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연간 노동시간은 2023년 1872시간으로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742시간에 비해 130시간(월 10.8시간)이 많고, 독일의 1343시간에 비하면 529시간(월 44시간)이나 길다. 근로자 휴가조사에 따르면, 2022년에 상용 근로자는 연차 휴가 12.7일, 특별 휴가 0.8일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연차를 다 쓰지 못한 경우도 23.8%에 달했고, 종사자 규모가 작을수록 휴가 사용 일수가 적었다. 휴가 중 업무 관련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26.8%였다.
더 나은 휴식을 위해선, 연장 노동시간의 총량 관리와 노동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의 제도화가 필요하고 연장, 야간, 휴일 노동시간 적립제의 실효화도 필요하다. 오래전부터 대부분의 선진국이 해오고 있는 상병수당 법제화로 아플 때 편히 쉴 수 있어야 한다. 원격근무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일도 과제다. 무엇보다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소규모 사업장과 이주노동자를 제도 내로 포함하는 것은 여전히 시급한 시대적 과제다.
우리의 휴가는 늘 미안하다.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2016명, 작년 한해 산업재해 사망자 수다. 지난 5월28일 배달노동자 정슬기(41)씨는 새벽까지 주 63시간 일하다 쓰러져 숨졌고, 9일 폭우 속 택배기사 ㄱ씨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배송을 못 할 것 같다”는 말을 끝으로 실종 뒤 이틀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동료 ㄴ씨는 아침 7시까지 배송을 마감하지 못하면 다음에 일을 아예 배정해주지 않아 폭우 속에도 배송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난달 24일 경기 화성시 아리셀 리튬전지 공장 화재로 사망한 23명은 물로도 꺼지지 않는 1천도 넘는 화마 속에서 죽었다. 기업주는 자기 회사를 위해 일하는 이들의 얼굴과 이름도 알지 못했다. 우리는 케렌시아는커녕, 몸 하나 피할 수 있는 작은 통로와 공간마저 허락하지 않는 야만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케렌시아로 떠나야 한다. 이는 살아남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신학자 헨리 나우웬의 말처럼, 한적한 곳을 모르는 삶, 고요가 자리하지 않는 삶은 쉽게 파괴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우리는 존재가 소유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노력한 결과보다 우리 자신이 훨씬 더 가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발견해야 한다. 더 나아가 그곳이야말로 이 탐욕 가득한 세상을 전복시킬 새로운 생각, 마음, 결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시간과 장소이기 때문이다.
모든 이에게 케렌시아를 허하라. 하지만 케렌시아를 찾은 이의 몫도 있다. 그곳에선 잠시 휴대전화를 꺼두어도 좋다. 거기서만큼은 온전히 자신의 본전과 만나야 하니까.
신영전 | 한양대 의대 교수 한겨레 : 2024.07.15.
북한의 생존전략 변화와 북·러 조약
지난달 19일 북한과 러시아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에서 양국은 오래전 폐기했던 군사동맹 부분을 복원했으며, 최초로 포괄적이며 구체적인 경제협력에 합의하였다. 그런데 이 조약에 대한 세간의 분석은 군사적 위협을 집중 조명할 뿐, 북한의 미래와 관련해서 지니는 의미나 안보 면에서 역설적으로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여지 등은 제대로 다루지 않은 느낌이다. 따라서 이 부분을 살펴보려 한다.
북·러 조약은 북한이 그간 추구해온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통한 생존과 발전 전략’을 포기한 상황에서, 북한에 ‘러시아, 중국 등 비서방권과의 협력을 통한 생존과 발전’이란 새로운 기회 공간을 제공하였다. 사회주의진영이 몰락한 1990년 전후부터 북한은 외교적 고립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미국의 승인을 통한 국가생존’ 전략을 추구하였다. 북핵 문제 발생과 그에 대한 미국의 강력 대응 앞에서 이 전략은 더욱 굳어졌다. 그러나 북한은 2019년에 있었던 김정은·트럼프 정상회담에서 핵 담판에 실패한 것을 계기로 미국을 통한 생존과 발전의 길을 포기하였다. 북한은 2022년 9월 핵무기 영구보유와 사용을 공식적으로 법제화하고 미국과의 핵 협상 통로를 폐쇄하며 새로운 생존전략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미국 주도의 강력한 대북제재와 코로나19로 인한 셀프(self) 국경봉쇄가 겹치면서 당시 북한의 미래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북한에 결정적 기회를 제공하였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재래식 무기 부족으로 고통을 겪던 러시아에 북한이 지닌 방대한 재래식 무기가 가뭄에 단비와 같은 존재가 됐다. 김정은은 반대급부로 러시아에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에너지 자원 등 경제협력을 요구할 수 있었다. 북·러는 작년 9월 김정은·푸틴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러한 내용을 담은 일련의 합의에 도달하였다. 북한은 러시아에 일관된 정치적 지지와 함께 재래식 무기 제공을 약속했으며, 러시아는 유엔 제재로 인해 대북수출을 금지했던 석유·가스·코크스 등 연료 자원의 수출을 재개하는 등 포괄적인 경제협력을 약속하였다. 이 합의를 공식화한 것이 북·러 조약이다. 이처럼 북·러 조약을 계기로 북한은 탈냉전 후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생존과 발전에 유리한 전략환경을 마련했다.
북·러 조약이 상당 기간 양국관계의 주춧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큰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이 조약이 러시아의 세계전략 틀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주도의 ‘일극 체제’를 거부하고 새로운 다극질서 구축을 주장하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북한 방문 직전 노동신문 기고를 통해 “우리는 서방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역 및 호상 결제체계를 발전시키고 일방적인 비합법적 제한조치들을 공동으로 반대해나갈 것”임을 천명한 바 있다.
한편, 북·러 조약의 군사동맹 부분에 대해서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약 제4조는 우리가 우려하듯이 전쟁 발발 시 ‘지체없이’ 군사적 지원을 한다는 약속이다. 이는 북한이 1961년 7월 옛 소련과 맺었던 동맹조약과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그에 앞서 제3조는 ‘조성된 위기상황’(즉, “어느 일방에 대한 무력침략행위가 감행될 수 있는 직접적인 위협에 처할 경우”)에 대한 입장 조율과 공동대처를 위한 ‘쌍무협상 통로의 지체없는 가동’을 의무화하였다. 이는 과거에 없던 조항으로 러시아가 한반도 위기상황에 개입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준 것이다. 북한이 중국과도 맺은 적이 없는 새로운 내용이다. 이것이 일견 북·러의 긴밀한 협력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거꾸로 러시아가 북한의 호전적인 행동을 제동할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지금 한반도에서는 일방적인 침공에 의한 전면전보다 국지적 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되거나 비전투 분야에서 적대적 공방이 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더 크다. 남북이 전쟁을 원해서가 아니라 오해와 불신으로 인해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나마 러시아가 유일하게 위기상황 발생 시 제도적으로 북한과 입장을 조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길은 분명하다. 한국이 러시아와 긴밀한 협력관계에 있다면 러시아를 통해 북한에 우리의 진의를 전달할 수 있으며, 러시아를 상황 안정을 위한 중재자로 활용할 수 있다. 이 점에서 한·러관계의 회복과 발전은 국가안보를 위해 반드시 실현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정부가 국민안전과 국가번영을 위해 이 사실을 직시하길 바란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 2024.07.16.
민족차별, 일본의 ‘두 얼굴’
“콜럼버스, 나폴레옹, 베토벤이 함께 여행을 떠난다. 이들은 우연히 원숭이(유인원) 가족을 만난다. 원숭이에게 피아노와 말 타는 법을 가르친다. 그리고 자신들이 탄 인력거를 끌게 한다.”
일본의 인기 밴드 미세스 그린 애플(Mrs. GREEN APPLE)이 발표한 신곡 ‘콜럼버스’의 뮤직비디오 줄거리다. 인종차별을 옹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비판에 뮤직비디오는 발표 다음날 공개가 중지됐다. 콜럼버스는 항해자가 아닌 식민주의자로 재평가받고 있다. 미세스 그린 애플은 “비참한 역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의도는 없었다”라고 사죄했고, 소속 음반사도 “역사와 문화적인 배경에 대한 이해가 모자란 표현”이었다고 사과했다. 각 방송사는 이들의 출연을 취소하고, 신문사는 사설과 기사를 통해 일제히 문제를 제기하는 등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처럼 일본 사회는 차별에 때로는 매우 민감하다. 하지만 이러한 사태를 사전에 막지 못한 이유는 인종차별적 표현에 대한 일본 사회의 둔감함이라고 할 수 있다.
도쿄와 인접한 사이타마현(埼玉県) 가와구치시(川口市)와 와라비시(蕨市)에서는 최근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쿠르드족은 일본에서 나가라”라는 외침이 조용한 주택가에 울려 퍼지고 있다. 쿠르드족을 대상으로 한 헤이트 스피치다. 재일동포와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혐오집회를 연상케 한다. 독립국가를 갖지 못한 최대의 민족이라고 불리는 쿠르드족은 수많은 탄압과 분쟁에 휘말려 세계 각지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일본에는 가와구치시와 와라비시를 중심으로 3000여명이 ‘난민 신청 중’의 자격으로 살고 있다. 난민 신청 중에도 강제 송환을 가능하게 하는 입국 관리법 개정을 계기로 난민 신청자의 상당수가 쿠르드족이라는 것이 알려지고 쿠르드족 간의 폭행 사건이 일부 신문에 보도되면서 이들은 헤이트 스피치의 표적이 되었다. 헤이트 스피치는 “체류자격이 없는 쿠르드족이 범죄를 일으킬 수 있다”라는 인식으로 이어져 주민들의 불안감만 키우고 있다.
하지만 가와구치시의 외국인 인구는 최근 20년간 두 배로 늘었지만, 범죄는 급감했다. 일본은 난민에 매우 인색한 나라다. 난민으로 인정받은 쿠르드족은 1명에 불과하다. 물론 이민에도 부정적이다. 이러한 인식의 배경에는 일본 사회의 외국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경계가 자리하고 있다. 외국인이 늘어나면 범죄가 늘어난다는 인식이 대표적이다. ‘가이진(外人)’이라는 단어도 일본인들의 외국인에 대한 경계와 차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많은 일본인들은 외국인을 “가이진(外人)”이라고 부른다. 일본인과 근본적으로 다른 이질적인 존재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듣기 싫어하는 단어 중 하나다.
하지만 일본은 ‘가이진’과 공존해야 하는 나라가 되었다. 2040년에는 97만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노동력의 대부분을 외국인으로 채워야만 한다. 국민연금을 지탱하기 위해서도 외국인 노동자의 연금 가입이 필수 조건이다. 외국인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사회가 되어 버렸지만, 혐오발언 등 외국인에 대한 일상 속의 차별에는 매우 둔감하다. 이는 일본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한국인들에게 외국인들은 어떤 존재일까
박진환 일본방송PD 경향: 2024.07.16.
배신의 내로남불
사랑의 배신만 쓰라린 게 아니다. 기업 조직이나 정치판에서도 배신은 늘 일어나며, 배신을 당한 상처가 남녀관계에서 일어나는 배신의 상처보다는 덜할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사랑의 배신으로 인한 상처는 다른 이성을 만나 치유될 수도 있지만, 기업 조직이나 정치판에서 당한 배신으로 인해 아예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낀다면, 이건 치유되기도 어렵다.
“개는 절대 거짓말 안 하죠. 배신할 줄도 모르죠.”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가 1989년에 가진 한 인터뷰에서 “개 키우면서 얻은 철학 같은 게 있느냐”는 질문에 내놓은 답이다. 1994년 문화방송 기자였던 박영선이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박근혜와 ‘육영수 여사 서거 20주기’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의 한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던 중 하루 일과를 물었다. 박근혜는 “TV 프로그램 중 동물의 왕국을 즐겨본다”고 했고, 그 이유에 대해 “동물은 배신하지 않으니까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배신은 악덕이지만, 무작정 배신을 비난하면서 배신자에게 저주를 퍼부을 수는 없다는 데에 인간 세계의 딜레마가 있다. 공적(公的) 영역과 사적(私的) 영역의 차이 때문이다. 그 누구건 우리 인간은 사회생활을 하는 한 공적 관계와 사적 관계라고 하는 두 종류의 관계를 동시에 맺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사적으론 큰 신세를 진 사람에게 공적으론 반대하거나 비판을 해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이럴 때 어찌 해야 하는가?
배신의 위계질서가 내로남불 불러
우리는 늘 공사 구분을 잘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공직자에겐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사람들이 겉으로 하는 말만 들으면 한국은 세계에서 공사 구분을 가장 잘하는 나라일 것 같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당위의 세계가 아닌 현실의 세계를 지배하는 건 여전히 부족주의이기 때문이다. 부족주의는 내로남불의 이념이다. 부족주의에선 공사를 구분하면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용납될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과 자기 부족의 이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내가 하면 로맨스이지만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정신 상태가 가능해진다.
부족주의와 더불어 지도자 추종주의가 강한 한국에선 배신을 규정하고 결정하는 건 더 강한 권력이다. 그래서 배신에 대한 질책은 늘 위에서 아래로 향한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법은 없다. “위에서 그렇게 배려해주고 키워줬는데 배신하다니”라는 말은 가능해도 “밑에서 그렇게 충성을 다했는데 배신하다니”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 “밑에서 그렇게 충성을 다했는데 몰라주다니”라는 정도의 서운함만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배신의 이런 위계질서는 “나는 배신해도 되지만 너는 배신하면 안 된다”는 식의 내로남불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한국 정치판에서 ‘배신’은 자주 쓰여온 말이긴 하지만, ‘조국 사태’ 이후 문재인 정권에서처럼 많이 쓰인 적은 없었을 것이다. 당시 ‘도리’ ‘은혜’ ‘의리’ ‘배신’ ‘변절’이란 단어들이 난무했다. 특히 이른바 ‘배신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윤석열을 겨냥한 배신 타령이 많았다. 당시 쏟아져 나온 민주당 인사들의 ‘배신론’ 또는 ‘배은망덕론’을 몇개 좀 감상해보자.
“물 먹고 변방에서 소일하던 윤 검사를 파격적으로 발탁한 분이 대통령이다. 윤 총장이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대통령께는 진심으로 감사해야 하고, 인간적인 도리도 다해야 한다.”(김병기) “오랫동안 한직에 밀려 있던 사람을 갖은 반대를 무릅쓰고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는데 은인 등에 칼을 꽂은 배은망덕하고 뻔뻔한 사람이다.”(노웅래)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일종의 발탁 은혜를 입었는데, 이를 배신하고 야당의 대선후보가 된다는 것은 도의상 맞지 않는 일이다.”(송영길)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나. 배신하겠다는 사람을 어떻게 알겠나.”(윤건영) “대통령의 신임마저 저버린 배은망덕한 행위를 한 윤석열 총장은 역사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추미애)
당시 윤석열은 이런 비난 공세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하다. 인정하거나 수긍했을까? 더 궁금한 건 최근 국민의힘 7·23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원희룡 등 후보들이 경쟁자인 한동훈을 겨냥해 퍼붓는 ‘배신 공세’에 대한 생각이다. 처음엔 한동훈이 채 상병 순직과 관련한 ‘제3자 특검’을 추진하겠다고 한 걸 문제 삼더니, 7월4일부터는 김건희 사과 논의 문자 ‘읽씹’ 논란을 매개로 한동훈을 배신자로 몰아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윤석열도 친윤 인사들에게 ‘읽씹’을 언급하면서 “이런 XX인데, 어떻게 믿냐”는 취지로 격노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는 데엔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 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11년 전 발언이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는 오직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원칙인가?
윤의 ‘배신 타령’은 어리석은 자해
윤석열의 생각이 궁금하긴 하지만, 사실 하나 마나 한 질문이다. 배신 타령은 문제의 핵심을 외면한 어리석은 자해(自害)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핵심은 무엇인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 김종인이 12일 저녁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에서 답을 제시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년 동안 했던 통치 행위, 헌법상 주어진 권한만 발동하면서 3년을 이끌어갈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은데 절대 자기 뜻대로 가지 못한다”며 “국민이 어느 순간에 갑작스럽게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아무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무슨 말인가? 윤석열이 여태까지 해온 방식대로 계속 밀어붙이면 망한다는 이야기다. 제발 크게 보시라. ‘읽씹’은 쟁점이 될 수 없는 사안이다. 대통령 부부를 믿을 수 없다는 게 쟁점이며 그래야만 한다. 잠시 2021년 12월26일로 시간 여행을 해보자. 그날 김건희는 “제가 없어져 남편이 남편답게만 평가받을 수 있다면 차라리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고 했다. “국민의 눈높이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겠다”며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했다.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 말씀 드린다”라는 대목에선 잠시 훌쩍이며 뒷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그래서 앞으로 더 이상의 논란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건 모든 국민이 아는 바와 같다. 이후에도 김건희는 계속해서 남편과 국민의힘에 큰 타격이 되는 ‘사고’를 쳤다. 문제의 명품백을 받으면서 “제가 남북 문제에 나설 생각”이라는 국정농단급 발언을 한 날도 ‘김건희 특검’ 찬성 여론이 높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된 2022년 9월13일이었다. 김건희가 저지른 크고 작은 스캔들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숨이 찰 정도로 많았으며, 이는 윤석열의 지지율을 20~30%대에 묶어두면서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를 당하는 데에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윤석열이 김건희의 그런 자해적 행태를 흐뭇한 미소와 함께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기만 한 건 불가사의한 일이었지만, 더욱 불가사의한 건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이다. 왜 윤석열 부부를 그렇게 방치하면서 추앙만 하는가? 국민의힘이 망한 다음에 그런 추앙이 무슨 소용인가? 국민의힘이 망하면 나라가 잘되는가? 아니다. 다 망한다. 지금 민주당이 사당(私黨)으로 전락해 망가질 대로 망가진 건 국민의힘이 망가지면서부터 시작된 비극이라는 걸 모르는가?
“집권여당은 대통령과 척지는 순간 망한다”는 말보다는 “대통령이 바뀌지 않으면 모두 다 망한다”는 말이 더 절실한 게 아닌가? 배신을 말하는 이들은 윤 정권의 성공을 원하는 충정을 알아달라며 대통령에게 직언을 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기는 한가? 직언이 먹혀들지 않으면 직언을 반복하고, 그러다가 대판 싸우기라도 한 적이 있느냐는 말이다. 그렇게 싸우는 건 배신이 아니다. 진짜 나쁘고 무서운 배신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가?
자신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큰 재미를 본 사람이 “사람에게 충성하라”고 강권하는 건 일종의 ‘먹튀’다. 윤석열은 자신이 그 말을 했을 때의 심정으로 돌아가 그간 자신의 모든 언행이 공적 대의에 부합했는지, 자신이 그토록 아꼈던 한동훈은 왜 과거의 자기처럼 행동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게 하고 나서도 “이런 XX인데, 어떻게 믿냐”는 말이 나온다면, 자신의 과거는 자기 잇속만 챙긴 사기극이었다는 뜻인지 궁금하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경향: 2024.07.16.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창의적일까?
지난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22에 연동하여 ‘창의적 사고력’ 측정 결과를 발표했다. OECD 회원국을 포함한 총 64개국이 참여했는데, 전체 1위는 60점 만점 중 41점을 받은 싱가포르가 차지했고, 한국은 38점을 얻어 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과 함께 2~4위 그룹으로 분류됐다.
이 결과는 다소 의외였는데, 한국의 학교들이 주로 입시준비와 문제풀이에 치중해왔다는 점에서 볼 때 기대하기 힘든 성과였다. 게다가 한국 학생들뿐 아니라 싱가포르 학생들도 자신들의 창의성이 높다는 사실이 의외였던 모양이다.
물론 이 조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몇 가지 함정이 있다. 우선 이 평가에서 사용된 ‘창의적 사고’란 개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위대한 예술가나 뛰어난 발명가 등의 천재성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스크랩북에 가족사진을 창의적으로 정리하거나 직장에서 복잡한 일정 문제에 대한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는” 정도의 소소한 변환 능력을 의미한다. 공부 잘하고 머리가 똑똑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습득해갈 수 있는 능력이었다.
OECD도 시인하듯 이번 조사에서 사용한 창의성 척도는 기존의 수학, 읽기, 과학 성취도 평가 점수와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 말하자면 수학을 잘하는 학생들이라면 당연히 창의적 사고력 점수도 높게 나올 수 있는 방식의 평가였다는 뜻이다. 결국 PISA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한국 학생들의 창의성 점수가 이번에 높게 보고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더구나 하위 범주로 들어가 보면 실망감은 더 커지는데, 한국의 경우 그 하위범주인 ‘다양한 아이디어 만들기’ ‘독창적 아이디어 만들기’ ‘아이디어 평가하고 개선하기’ 등 가운데 유독 ‘독창적 아이디어 만들기’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점수가 높지 않았다. 말하자면 한국 학생들은 기존의 사고를 변형하고 다양화하는 능력은 있지만,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능력은 그리 높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냈다고 하겠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번 조사 결과는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을 자세히 보면 우리가 모르던 점들도 몇 가지 발견된다. 첫째, 창의적 사고력이 뛰어난 학생 중 절반가량은 학업 영역에서 뛰어나지 못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창의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창의적인 학생들이 반드시 교과목 성적에서 우수한 것은 아니었다. 만일 우리 사회가 창의적 두뇌를 더 원한다면 이런 학생들이 교과목 성적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선발과정에서 더 많은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는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둘째, 창의성도 좋은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미래교육과정에서 창의성 학습은 각종 교과교육들과 결합될 필요가 있으며, 더 많은 수업들이 프로젝트기반 수업이나 문제기반 수업 등으로 전환돼야 한다.
또한 이번 조사는 창의성이 개인 차원의 능력을 넘어 사회문화적 맥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을 드러내준다. 조사에 참여한 64개 국가들의 창의성 평균을 수학 성취도 평균으로 예측하는 회귀분석을 활용하면 대략 한 국가의 수학성적으로 그 나라의 창의성 점수 평균을 예측할 수 있는데, 이러한 회귀선을 중심으로 분포되는 국가들의 양상이 매우 흥미롭다. 우선 한국을 비롯해 핀란드·캐나다·에스토니아·덴마크 등 주로 서구권 국가들은 모두 수학 성취도가 높을뿐더러 창의성 점수들은 수학 학업성취도에 근거해 기대되는 수준을 훨씬 능가한다. 이런 경향은 남미 국가들에서도 발견되는데, 그들의 창의성 점수는 비록 절대적으로 높지는 않아도 수학 성취도에 대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반대로 중국문화를 공유하는 국가들, 예컨대 대만·마카오·홍콩 등은 세계 최고의 수학 성취도에도 불구하고 창의적 사고력 평균은 OECD 평균 혹은 그 이하에 머물렀다. 또한 아시아 국가들 대부분의 경우도 수학성취도에 의해 기대되는 창의성 수준에 조금씩 밑돌았다.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아직 답은 없다. 하지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창의성은 한 사회의 문화적·역사적·정치적·기술적 포용성을 반영하는 집합적 역량이다. 창의적이란 관성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이며, 그만큼의 사회적 개방성과 관용성을 필요로 한다. 창의적 사회는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벌하지 않으며, 설사 ‘틀린 것’도 ‘다른 것’으로 승화하도록 돕는다.
요약하면, 한국의 학교는 아직 희망이 있다. 하지만 그 희망의 깊이가 그리 깊지 않다는 게 문제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경향 : 2024.07.17
윤 정부, 명분 없는 감세 멈춰야
윤석열 정부의 조세정책은 한마디로 퇴행적이고 무책임하다. 명확한 근거 없이 전방위적인 부자감세를 무작정 밀어붙이고 있다. 그 결과 국가재정에 거듭된 빨간불이 켜졌고, 다른 한편 조세공평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상속세와 종부세 개편을 통해 추가적인 감세를 추진하고 있다.
금투세 도입을 검토할 당시 학계와 정치권에서는 이견이 없는 분위기였다. 조세공평 측면과 해외 입법례를 고려했을 때 도입을 더 미룰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던 추경호 의원까지 나서 당시에 금투세 법안을 발의했을 정도다. 금투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된다는 근거는 없다.
상속·증여세(상증세)는 최근 집값 급등으로 과세인원이 가파르게 늘어난 측면이 있다. 집 한 채 상속에 대해서는 과세하지 않도록 공제액 상향조정 등 미시적인 개편은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려는 최고명목세율 인하, 최대주주 할증평가 폐지, 가업상속공제 확대 방안은 구체적 타당성 없이 오로지 초고소득층의 세 부담만을 줄이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최고명목세율 50%를 앞세워 우리나라 상증세 부담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주장이 퍼져 있다. 하지만 피상속인의 소득에 대해 과세한다는 측면에서 상증세 부담의 정도는 소득세와 함께 봐야 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최근 국회에서 근거 제시 없이 OECD 국가들보다 한국의 상증세와 소득세 부담이 모두 높다고 주장했다. 단단히 잘못 알고 있다.
OECD 국가들의 경우 소득세 부담이 낮은 나라는 상증세가 높고 반대로 소득세가 높은 나라는 상증세 부담이 낮다. 한국은 전자에 해당한다. 202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GDP 대비 비중이 소득세 6.1%, 상증세가 0.7%를 차지한다. 일본(6.4%, 0.5%), 프랑스(9.5%, 0.7%)가 우리와 같은 유형이다. 반면, 독일(10.5%, 0.3%), 영국(10%, 0.3%), 미국(11.4%, 0.2%)은 후자에 해당한다. 상속세를 폐지하는 대신 상속재산을 처분하는 시점에 매기는 자본이득세(소득세)를 도입한 스웨덴, 캐나다의 소득세 비중은 각각 12.4%, 12.3%로, 한국의 소득세와 상증세를 합한 수치(6.8%)를 훌쩍 뛰어넘는다.
경영권을 가진 주식은 일반 주식보다 가치가 높은 까닭에, 우리 세법은 대기업 최대주주에 한해 가치를 20% 할증한다. 이를 두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부자를 괴롭히는 나쁜 세제라는 가짜 뉴스가 국민의 눈을 흐린다. 그러나 과세기준으로 공정가치를 좇는 것이 다른 나라라고 다를 리 없다. 미국은 재무부 시행규칙에 터 잡아 경영권에 대한 할증평가를 국세청이 적용하고 법원이 인정한다. 독일, 영국,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가령 독일은 원칙적으로 25%의 할증평가를 적용한다.
가업상속공제는 나라마다 세부 규정 여기저기에서 차이가 많은 까닭에 획일적인 비교는 어렵다. 영국이 가업상속에 호혜적이라면 독일, 일본은 까다롭게 따지는 편이다. 미국은 한때 운용하다가 폐지했다. 한국은 중소·중견기업이 적용대상이나 일본은 비상장 중소기업만 가능하다. 일본은 상속세를 ‘유예’하는 데 그치지만, 한국은 최대 600억원까지 ‘공제’해 준다. 독일은 원칙적으로 자산이 2600만유로(385억원) 이하일 때만 적용하고, 기준을 넘으면 상속세로 가업승계가 어려운 경우 등 제한적으로 공제를 허용한다. 한국이 가업상속공제에 유난히 엄격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2014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일부 납세자만 적용받을 수 있는 혜택이라는 점에서 평등권 위반 소지가 있어 가업상속공제 적용 요건을 엄격히 정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OECD가 7월 발간한 ‘한국경제보고서’는 상속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라는 근거가 없고, 나아가 효율적인 세금이라고까지 기술한다.
종부세를 포함한 한국의 보유세는 GDP 대비 비중으로나 부동산 시가총액 대비로나 OECD 주요국보다 모두 낮은 편이다. 2023년 기준으로 1가구 1주택자의 평균 종부세액이 82만원, 2주택자 이하는 115만원이다. 세 부담이 지나치게 과하다고 볼 수 없다.
작년과 올해의 대규모 세수결손에서 볼 수 있듯이 재정지출을 줄이지 않는 한 감세를 하면 돈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한쪽에서 줄이면 다른 쪽에서 채워야 한다. 감세로 세수가 증가한다는 래퍼곡선은 허구에 가깝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명분 없는 감세정책 추진을 멈추고 책임 있는 국정을 운영하길 바란다.
김현동 배재대 경영학과 교수 경향 : 2024.07.18.
혁명 65년, 쿠바는 어디로 가나?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우리, 승리하리라!” 인구 1100만의 쿠바에 흔한 구호다. 이 비장한 구호의 기원은 (혁명 1년여 뒤) 1960년 3월, 아바나 항구, 프랑스 화물선 ‘쿠브르’ 폭발 사건이다. 쿠브르호는 벨기에산 무기와 군수물자(76톤)를 아바나항에서 하역하던 중 두차례나 폭발, 침몰했다.
쿠바와 지리적으로 가까우나 이념적으로 극단인 미국은 1959년 1월 쿠바 사회주의 혁명이 ‘목에 가시’였다. 유럽산 무기까지 유입되니 좌시할 수 없었다. 비밀요원 침투, 체제 전복, 수뇌 암살 기도 등이 미국의 기본 대처법! 그중 하나가 쿠브르호 폭파였다. 이 폭발로 노동자 100명이 죽고 200명이 다쳤다. 그 희생자 추모 연설에서 피델 카스트로(1926~2016)는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우리, 승리하리라!”를 외쳤다.
따지고 보면, 이 구호는 1차적으로 쿠바가 400년 이상 계속된 스페인 제국주의 지배로부터 해방투쟁(1868~1898)을 하던 때, 2차적으로는 미국으로부터의 독립과 사회주의 혁명(1952~현재)을 전개하던 내내 그 절실함과 단호함을 드러냈다.
같은 맥락에서,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에서 ‘조국’은 더는 협의의 조국이 아니다. 최소한, 세계 혁명을 꿈꾼 체 게바라(1928~1967)에게 그런 조국은 없다! 의사였던 ‘체’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지만 쿠바 혁명에 앞장섰고, 나중엔 콩고를 거쳐 끝내 볼리비아에서 최후를 마친 세계시민(!)이었다. 이런 뜻에서 앞 구호는 “혁명이 아니면 죽음을!”로 확장된다.
그런데 바로 그 혁명도 어언 65년! 내가 최근 체험한 쿠바 현실은 헤밍웨이가 즐긴 다이키리와 달리 몹시 쓰렸다. 물론 혁명 직후부터 미국의 경제 봉쇄, 1990년 이후 소련과의 단절, 최근의 코로나 사태 등이 모두 악재다. 그럼에도 사회주의를 내건 혁명 쿠바의 오늘은 ‘낭만과 열정’의 아이콘과는 전혀 딴판이다.
우선, 가장 적대국인 미국의 화폐, 즉 달러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 “화폐 자신이 공동체가 아닌 곳에서 화폐는 공동체를 해체한다. 그리하여 스스로 화폐 공동체가 된다”던 마르크스의 통찰처럼, 쿠바는 페소 공동체를 넘어 달러 공동체로 변신한다. 1달러가 암시장에선 350페소까지 교환된다. 무상급식·무상교육·무상의료가 쿠바 체제의 골간이고, 그간 유기농·협동조합의 모범이었는데, 미 달러 과잉 의존은 ‘체’에겐 광기로 비칠 것! 설상가상, 2021년 화폐개혁 뒤 물가 상승은 무서울 정도다. 안 그래도 전기나 식량 부족으로 고통을 겪는데 물가가 수십배 올랐다. 자립 경제의 토대 붕괴로 인한 악순환!
둘째, 아바나에서 140㎞ 떨어진 휴양지 바라데로는 달러권 해외 여행객에겐 천국이다. 수도 아바나는 허름하나 수백년 역사의 유산으로 관광 달러를 번다. 그러나 관광 경제는 체질이 허약하다. 나아가 혁명을 오염시킨다. 사실, 65년 전 혁명을 지지했거나 체제 존속을 바라는 쿠바 본토인들에게 오늘의 쿠바는 ‘조국’보다 ‘죽음’에, ‘승리’ 아닌 ‘패배’에 가깝다. 그래서 청년들이 쿠바를 탈주한다. 최근 10년간 인구가 7%나 줄었다고 한다. ‘체’는 “우리 모두 현실주의자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엔 불가능한 꿈을 품자”고 했다. 현실적 조건을 고려하면서도 근본 변화를 이루자는 뜻인데, 안타깝게도 ‘체’의 꿈은 빗나갔다. 근본 변화는 별로 없고 자본주의 상품-화폐 경제만 갈수록 확장된다.
셋째, 객관적 상황 변화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들의 주체적 의지다. 그런데 50년간 쿠바 혁명을 이끈 ‘피델’의 모교이자 300년 전통을 가진 아바나대학의 분위기는 ‘혁명’과 담을 쌓은 듯했다. 정문 수위들은 나 같은 방문객에게 ‘돈’을 요구했고, 캠퍼스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본관과 중앙도서관 사이, 이그나시오 아그라몬테 광장엔 1958년 혁명 투쟁 중 진압군에게 뺏은 탱크가 전시돼 있을 뿐, 캠퍼스 어디에도 현실 변화를 위한 학생·교수들의 활기찬 대화·토론이 없었다. 심지어 시내의 한 미술관에서는 직원 한명이 친절을 베푸는 듯하더니 마침내 ‘달러’를 구걸했다. 전기 충격을 받은 기분! 또 ‘체’나 ‘피델’ 얼굴이 붙은 학교 앞에서 초등학생(5학년)을 만났을 때다. 아이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의사당 건물인 카피톨리오로 가는 길을 물었다. 방향만 가리켜도 좋은데, 아이는 굳이 자기를 따라오라 했다. 길을 가던 중 아이는 내게 “초콜릿이 있으면 하나 달라”고 했다. 없다고 했더니 “그럼 1달러만 달라” 했다. 그 말에 앞이 캄캄해졌고, 마침 소낙비가 와 다른 골목으로 피했다. 서글픈 생각으로 비를 피하고 섰는데, 자전거인력거 운전자가 힘겹게 지나가다 금세 생긴 물웅덩이에 빠져 허우적댔다. 돕고 싶어도 방법이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운전자는 이래저래 용을 쓰더니 겨우 빠져나와 비와 땀에 젖은 채 힘겹게 사라졌다. 그 뒷모습이 쿠바의 오늘을 상징적으로 말하듯, 아직도 아른거린다.
65년 전, 혁명 1세대는 ‘목숨’ 걸고 혁명을 했다. 그러나 정호현 쿠바 한글학교 교장의 말처럼, “현재 쿠바 청년들은 갈 수만 있다면 해외로 나가 일도 찾고 돈도 벌고 싶어 한다”. 나를 아바나대학까지 자전거인력거로 날라준 청년 후안도 그럴 것이다. 한편, 한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청년들에겐 “책으로 된 교재도 부족하고, 피디에프(PDF) 파일을 볼 수 있는 패드를 구하기도 힘들” 정도다.
혁명 광장 건너편에 게시된,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란 글을 남기며 1965년 ‘피델’을 떠난 ‘체’! 그 얼굴이 세계 각국에서 온갖 상품으로 팔리는 오늘날, 과연 혁명이란 목숨 걸 가치가 있을까? 나아가 자본의 가치 증식이 갈수록 한계에 이른 현재, 그래서 유럽에선 극우파가 부상하고 미국에선 트럼프가 (목숨 걸고) 재기하려는 지금, 우리에겐 어떤 혁명이 필요한가?
석유, 상품, 경쟁, 화폐, 자본의 지배를 벗어난 세상은 과연 가능할까? 많이 없어도 공동체가 살아 있고, 소박하게 행복한 나라, 세계인들에게 ‘이것이 대안!’이라 할 세상, 그런 곳은 어디? 사람을 가득 태운 아바나 시내버스가 ‘석유 아닌 태양광으로 달렸으면’ 하고 상상했던 순간이 뇌리를 스친다. 쿠오바디스, 쿠바?
강수돌 |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한겨레 : 2024.07.18.
윤석열 정부는 왜 그렇게 주가에 집착하는가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면 정부의 경제 운용을 비판하는 소리가 미디어에서 흘러나오곤 한다. 그러나 1993년 김영삼 정부 때부터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5월까지 장기간에 걸쳐 대통령 지지율에 영향을 끼친 경제변수를 연구한 결과(배형석·양성국, ‘한국 대통령 지지율과 경제변수’, 2019)를 보면 코스피지수 흐름은 대통령 지지율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앞서 2015년 김덕파 등이 한 연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참모들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유난히 주가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삼프로티브이(TV)’에 나갔다가 큰일날 뻔했다. 정책을 묻는 질문에 구체적인 공약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두루뭉술한 답변에 그쳐 ‘준비가 너무 안 돼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를 불식하기 위해선지 이틀 뒤 국민의힘 정책총괄본부가 ‘1천만 개미투자자 살리는 자본시장 선진화 공약’을 내놓았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다섯가지를 약속했다. ‘신사업 분할 상장 시 투자자 보호 강화’와 ‘내부자의 무제한 지분매도 제한’은 사소한 것이고, 큰 것은 ‘개인 투자자에 대한 세제 지원 강화’, ‘공매도 제도의 합리적 개선’, ‘자본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 획기적 개선’이었다.
이른바 ‘재테크’에 밝은 청년의 지지를 얻겠다는 생각에서 깃발을 높이 든 이 정책의 성과를 주가로 평가하자면 아주 미미하다. 대통령 선거 전날 2622.40이던 코스피 지수는 그해 9월 말 장중 2134.77까지 추락했다. 그 뒤 서서히 회복했지만 7월18일 종가 2824.35는 대통령 선거 전날에 견줘 겨우 7.7% 오른 것이다. 같은 기간 20% 넘게 오른 미국 다우지수, 50% 넘게 오른 일본 닛케이지수에 견주면 투자자들은 성이 차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주가 상승률 비교로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 성과를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 코스피지수, 다우지수, 닛케이지수 모두 금리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그보다는 ‘상장사 실적’과 ‘실적 전망’을 잘 반영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코스피 지수의 상승 폭이 미미한 것은 우리나라 상장사 실적이 나쁘기 때문이다. 지금도 기업의 순이익 대비 시가총액의 비율이 일정한 범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게 그 증거다. 특히 우리나라 상장사 시가총액은 제조업 비중이 70% 가까이를 차지하는데, 우리 경제의 고성장을 이끌어온 그 제조업의 취약성이 주가지수를 낮은 포복으로 기게 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증권거래세 폐지 대신 도입하기로 한 금융투자소득세의 시행을 유보하더니, 아예 폐지하자고 한다. 연간 투자수익이 5천만원 이상인 경우 물리는 세금이다. 그 세금을 피하기 위해 큰손들이 우리나라 주식을 대거 팔아치우면 주가가 폭락한다고, 그래서 모든 주식투자자가 손해를 볼 것이라 한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해서는 안 되는 선동이다. 수익이 난다면 사람들은 세금을 각오하고 기꺼이 투자한다. 아직 시행도 하지 않은 금투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에는 연민이 느껴질 정도다.
지난해 11월 금융위원회는 ‘공매도를 6월 말까지 금지’하는 조처를 내렸다. 주가가 폭등하면서 공매도가 집중된 2차전지 관련주를 중심으로 주가가 급반등했다. 그러나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합리적 개선’을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며 취한 공매도 한시 금지 조처는 연장됐다. 외국인 투자가들은 한국 증시를 ‘선진 증시와는 더 거리가 멀어졌다’고 평가한다. 정부는 공매도를 다시 허용하는 걸 두려워하는 모습이다.
‘자본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 획기적 개선’은 이른바 밸류업 프로그램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놀라운 것은 추구하는 목표와 수단이 따로 노는 것이다. 기업이 밸류업을 추구하는데 최대주주에게 엄청난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은 뜬금없다. 최대주주 보유주식 할증 평가를 없애 상속세를 대폭 깎아주는 것, 밸류업 기업이란 이유로 가업상속 공제 대상과 한도를 확대해주는 것은 ‘국고 편취’라고 할 만큼 부도덕해 보인다.
윤석열 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자본시장 선진화’는 주식 자산이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집중된다. 소액 개인투자자는 정책 효과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들러리로 쓰인다. 그런 겉 다르고 속 다른 정책이 또 하나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이 되고 있다
정남구 | 논설위원 한겨레 : 2024.07.18.
부드러운 얼굴'의 극우세력 창궐, 가까이 온 신파시즘
한국 정치가 바닥을 향한 질주를 계속한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의 당권 투쟁은 점입가경이다. 윤석열 정부는 계엄령만 선포하지 않았을 따름이지 입법부와 사법부, 그리고 언론의 독립을 거의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정치적 막장이 과연 끝일까, 시작일까?
프랑스 총선에서는 결선 투표에서 극우 국민연합(RN)이 143석을 얻어서 비록 제3당에 머물렀으나 1차 투표에선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그 직전에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에선 압승했다. 국민연합은 지난 총선보다 무려 40석을 더 얻어 프랑스 정치의 실질적 주역으로 등극했다. 국민연합은 반이민, 반이슬람, 인종주의 노선을 노골적으로 표방했고, 그동안 과거 나치 지배의 쓰라린 기억 때문에 지지를 꺼린 다수의 지방 농민들과 자영업자들까지 돌려세웠다. 마크롱 대통령의 중도파와 좌파연합의 선거연대로 프랑스 극우 정당의 더 이상의 약진은 주춤해졌다. 하지만 헝가리, 독일, 폴란드, 오스트리아 등 다른 유럽 국가에서 극우세력의 약진은 놀라울 정도다.
젊은 극우 지도자들 미국·유럽서 부상
서방계 극우 돌풍의 진원지는 미국이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유력한 재선 후보로 부상하는 것이 그 증거다. 전 세계 극우세력의 총 지휘부는 미국이고, 그 공통된 이데올로기는 인종주의, 자국민 우월주의다. 트럼프가 표방하는 '미국 제일주의'는 곧 변형된 인종주의다. 우크라이나 침략을 감행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나 가자 지구에서 대량 학살을 벌이는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야말로 현대판 극우 파시즘의 화신들이다.
트럼프는 빈민 출신의 입지전적 39세의 상원의원 J.D. 스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벤스는 "월스트리트가 아닌 노동자에게 헌신하겠다"고 말했다. 오하이오,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등 과거에 민주당 표밭이었으나 이제 우파의 세력이 커진 러스트 벨트(Rust Belt) 지역 제조업 노동자들의 표를 얻으려는 트럼프의 전략에 따른 것임은 물론이다.
프랑스 총선을 이끈 국민연합 당수 조르당 바르델라는 더 젊은 28살의 청년이다. 국민연합의 대통령 후보였던 마린 르펜은 청년 바르델라에게 총선 지휘봉을 넘겨주었다. 국민연합은 그가 젊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대항마로서 적임자라고 본 것 같다. 그는 기존 극우의 이미지와는 아주 다른 핸섬한 외모의 틱톡 스타이며 매우 부드러운 매너를 보여주는 청년이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프랑스 정부나 정치를 주도해온 국립행정학교나 파리 정치대학 출신이 아니라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이다. 그는 어머니가 이탈리아 이민자였기에 자신은 인종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이주자는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거의 국가지상주의, 인종주의 대신에 여성과 소수자 혐오, 반이민, 능력주의로 무장한 새로운 청년 극우세력이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대체로 입지전적인 인물이고, 기존의 대자본-관료-엘리트 카르텔 밖에 있던 사람들이다.
'극우 정체' 모르는 한국 청년들과 시민들
몇 년 전,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청년들을 상대로 강연할 기회가 있었다. 강연 중 이념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내가 청년들에게 극좌와 극우란 무엇이고, 각각 어떤 특징을 갖는지 물었다. 청년들은 극좌에 대해서는 학교나 언론에서 배운 대로 이런저런 대답을 했는데 극우에 대해서는 거의 답변하지 못했다. 의아했다. 시민 대상의 강연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는데, 유사한 반응이었다.
수강생 중 한두 사람은 그저 극우는 군부독재라는 정도의 답변을 했다. 한국에 극우세력이나 극우 이념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극좌에 대한 비판만 너무 자주 들어서 그런 것일까?
미국이나 유럽의 극우세력이 전통적으로 견지하는 인종주의가 한국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데다, 그동안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반외세 통일의 가치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고 해도 보통의 시민들, 특히 매우 우수한 청년들이 극우의 특징을 모른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주류언론이나 보수 정치가들이 입만 열면 우파와 좌파 운운하는 나라에서 극우의 특징과 그들의 행태를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는 민주화 이후에 과거와 같은 군사독재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인권이 신장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일제의 천황제 파시즘 체제 이후, 이승만 독재,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을 거쳐 민주화 이후 박근혜, 윤석열 정권에 이르는 거의 100여 년의 역사는 그들의 기억 속에 없고, 시장과 경쟁이 마치 자연법칙이나 공기처럼 익숙해진 지금 세대가 자신의 정치적 선택이 어떤 정치·경제적 결과를 가져오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재벌·검찰엔 무비판…민주세력·여성은 공격
지금까지 한국에서 극우의 특징은 서구와 달리 인종주의와 민족주의가 아니라 바로 국가지상주의, 노골적인 자본 독재와 항상적인 반노동 정책이자 이데올로기였다. 과거의 일본, 독일처럼 힘을 가진 패권 국가에서 극우세력은 곧 침략 전쟁과 타민족과 인종에 대한 대량 학살을 초래했고, 한국이나 대만, 칠레 등 개도국에서는 쿠데타와 학살, 고문, 인권 탄압, 간첩 조작, 적색공포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 이들 모든 국가에서 극우의 집권은 삼권분립의 종식, 적나라한 폭력의 행사 바로 그 자체였다.
극우의 이런 특징은 이젠 대체로 과거형이다. 전 세계에서 극우는 이주민 혐오, 여성 혐오, 종교적 맹신, 극단적 가부장주의, 특히 능력주의로 옷을 갈아입었다. 한국도 그러하다. 일베 청년들의 등장은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서 새롭게 등장한 극우세력이었다. 일베 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나 용어는 여성 혐오다. 그리고 이들의 일관된 논리는 과거 운동 세력, 북한과 중국, 여성, 정규직 노동자들의 특권주의 비판이다.
이들은 기존의 재벌, 검찰. 관료 등 실질적인 권력을 쥔 지배 집단의 행태는 거의 비판하지 않지만, '능력'이나 사회적 기여도 없이 '특권'을 누린다고 생각하는 '민주화' 세력과 소수자들에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지금 개혁신당 의원인 이준석이 '신세대 극우'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인물 중 하나다.
청산 실패 한국의 '극우 지배'…오래된 현재
이 지점에서 전통적 극우와 신세대 극우가 만난다. 가부장주의, 국가주의, 지역주의가 능력주의와 결합해서 윤석열 정부를 지탱해준다. 물론 핵심 윤석열 지지자들은 강남 거주 부자들이다. 그러나 부자가 아닌 20대 남성, 60대 이상의 노인층, 가정주부, 그리고 영남의 윤석열 지지층도 그들과 유사한 정치적 지향을 보인다. 즉 노년층, 영남인들과 남성 청년은 다른 이유로 극우 보수의 지향을 지닌다.
21세기 신자유주의의 양극화와 경제 불안은 청년과 노년층의 삶의 기반을 위협한다. 불안한 남성 청년과 노인들이 기댈 마지막 언덕은 그들이 남성이라는 것, 나이가 많다는 것, 영남 출신이라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미국의 하층 백인 남성에게 오직 백인이라는 우월의식이 그들의 기댈 수 있는 언덕인 것과 유사하다.
그 점에서 한국과 일본은 프랑스나 독일과 달리 일제 말 전시 파시즘, 이승만 정권 시기의 대량 학살,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국가폭력의 진실이 규명되거나 제대로 청산되기도 전에 새 세대 극우의 등장을 맞았다. 즉 한국과 일본에게 극우세력의 지배와 파시즘은 한 번도 청산된 적이 없는 매우 '오래된 현재'다. 그래서 전쟁과 학살이 무엇인지 모른다.
극우의 창궐과 신파시즘을 막는 길은?
오늘날 세계 각국 극우세력의 창궐은 대체로 신자유주의와 시장만능주의, 불평등과 양극화, 노동시장 유연화로 인한 실업과 고용불안, 이주노동자 확산 등에 따른 결과다. 신자유주의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전통적인 제조업 노동자와 자영업자들, 농민이며 이들 중 백인 하층 남성들, 청년들이 주로 극우세력의 기반이다. 미국의 노동자들도 반이민, 외국 상품에 대한 높은 관세, 기업의 리쇼어링을 통한 일자리 확대를 강조하는 트럼프나 극우세력을 지지하게 되었다. 결국 경제 불안이 극우의 가장 큰 불쏘시개인 셈이다.
대중들이 극우 성향을 강하게 띠게 되는 것은 물론 극우 정치세력의 의도적인 선전 혹은 프레임 짜기 전략의 결과이기도 하다. 극우 정치가들의 언술과 언론의 선전에 노출된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불안과 불행의 원인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인지적 오류, 혹은 '구조맹' 상태에 빠져 있다. 실업이나 임금 삭감의 고통을 겪은 노동자들은 자신의 처지가 정치적, 구조적인데도, 그것이 개인의 잘못으로만 보거나 이주노동자 혹은 정규직 노동자의 특권, 여성의 특권 때문이라고 여긴다. 지구적 이주노동자는 결국 자본의 이동, 금융자본의 필요에 의해 발생하는 것인데도,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은 그것이 외국인 노동자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오늘날 극우 파시즘은 분명히 대자본의 이해를 충실히 반영하는 이데올로기다. 그러나 이런 극우 정치세력 지도자들이 반드시 대자본가 출신은 아니며, 오히려 지금 미국, 프랑스처럼 빈민이나 노동자 중 성공한 인물이 능력주의로 무장해서 극우의 선봉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극우의 사회문화적인 기반은 바로 능력주의, 성공지상주의, 소비주의, 그리고 물질주의다.
그러나 경제 위기와 경제 불만만이 극우세력의 창궐을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극우세력이 경제에 의해 불가항력으로 발생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과거 독일·이탈리아·일본 등에서 파시즘의 등장은 개인화, 연대의 파괴와 고립 위에서 가능했다. 시민들이 고립에 빠지지 않을 지역적·사회적 연대 망, 경제적으로 위기에 몰린 사람들이 자존감을 갖고 재기할 기회, 그리고 조직적인 시민교육이 부재한 나라에서 극우세력이 창궐하거나 집권까지 한다.
사회개혁 위한 유능한 정치세력 등장해야
극우 정치세력의 집권은 언제나 이러한 경제 위기와 만연한 불평등과 실업을 극복할 수 있는 자유주의와 좌파 세력을 포함한 범 진보세력의 정치적 무능력, 혹은 대안적인 비전과 정책의 부재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자유개혁,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어설픈 개혁노선을 걷다가 더 심각한 경제 위기를 가져오거나 중산층의 표를 얻기 위해 우익의 기조인 성장주의, 능력주의와 단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몰락한 중산층과 노동자들은 단기적인 보상을 약속해주는 극우에 기울어진다. 미국의 민주당, 한국의 민주당, 프랑스의 사회당, 독일의 사민당이 모두 이런 이유로 극우세력 확산의 불쏘시개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이들 극우 파시즘 세력도 평화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들은 힘과 폭력을 통해 반대파를 완전히 굴복시키는 것을 평화라 말한다. 극우세력은 대체로 선거를 통해 집권한다. 그러나 집권 후 그들은 노골적으로 국제 규범이나 국내의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폭력을 행사한다. 전쟁, 대량 학살의 지옥도는 극우 파시즘이 만든 세상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범지구적인 차원에서 온건보수–자유개혁–사민주의 좌파 세력이 우선 전쟁과 학살에 대한 반대의 기치를 높이 들고, 노동자들과 자영업자 실업자 청년들에게 희망을 보여줄 수 있는 선명하고 일관된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대중의 직접 참여와 전면적인 정치교육, 과감한 사회개혁을 내건 새 정치세력을 만들어내야 한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시민언론 민들레 : 2024.07.20.
한국 진보진영의 '트럼프 기대론'이 위험한 이유
3개월여 앞으로 바짝 다가온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의 4년 만의 세계 최강대국 최고 권력자 복귀 전망에 미국 내는 물론이고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는 전지구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한국의 이른바 진보로 분류되는 이들 사이에서 트럼프에 대한 기대가 적잖게 보이고 있다.
정치적 성향이나 가치관에서 대체로 미국의 민주당 후보 지지가 일반적인 한국 진보 진영에서 트럼프 당선을 바라는 기류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트럼프 집권 1기 때의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된다. “재집권하면 김정은과 잘 지낼 것”이라는 18일(현지시간) 미국 밀워키 공화당 전당대회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의 발언은 그 같은 기대감을 더욱 높일 것으로 보인다. 그는 김정은을 언급하며 “핵무기를 많이 가진 사람과 잘 지내는 건 좋은 일”이라며 북한의 핵보유를 사실상 인정하고 “그는 나를 다시 만나고 싶어할 것”이라고 해 재선 시 김정은 위원장과의 북미 정상회담이 다시 추진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트럼프에 대한 기대는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실망도 크게 작용한 것이랄 수 있다. 바이든이 4년 전 트럼프의 맞상대가 됐을 때 내걸었던 '미국을 다시 정상화하겠다'는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이 바이든이나 미국 민주당 정권에 대한 실망을 낳고 있다. 특히 한반도 주변의 대중 포위 전략이나 신냉전적 상황은 바이든도 트럼프와 다를 게 없다는 인식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 같은 남북 관계 긴장 완화 가능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트럼프의 당선을 바라는 것은 과연 타당한 일인가. 또 그같은 기대를 수긍한다 하더라도 4년 만에 대통령에 복귀하면 트럼프는 과연 첫 임기 때와 같은 모습을 보일 것인지는 의문이다. 트럼프에 대한 기대가 위험하고 어리석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흔히 미국의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자국의 이익 우선 기조에서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다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이는 절반만 옳은 것이다. 미국의 '이익'이 어떤 것이며, 그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이 어떤 것이냐는 민주당과 공화당 간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특히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밀어붙이는 면에서 전례 없는 일방주의를 보였다.
그보다도, 트럼프는 집권 4년간 민주주의와 이성, 분별, 인간에 대한 예의를 파탄내려는 집요한 시도를 보였다. 폭력경찰에 의한 무고한 흑인의 죽음과 그 이후 펼쳐진 무법과 광란의 사태에서 보였듯 트럼프의 대통령 재임 기간은 미국의 상식적인 국민들-특히 흑인과 이민자, 약자와 소수자들-에게는 감내하기 힘든 악몽이 됐었다. 대선에서 패배한 트럼프의 선동으로 폭도들이 미국 연방의회에 난입해 의사당을 점거하고 4명의 시망자가 발생한 2021년 1월 6일의 사태는 미국 역사에 영원히 치욕의 날로 기록될 일이었다.
트럼프의 8년 전 당선은 미국의 타락을 넘어 세계인의 수치며 굴욕이었지만 4년 만에 그가 다시 대통령에 돌아온다는 것은 2중의 수치며 굴욕이다.
이제 그는 더욱 강력해지고 확신에 차 있다. 트럼프는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피격 사건 당시 자신의 심경을 설명하면서 "피를 흘렸지만, 나는 매우 안전하게 느꼈다. 신이 내 편에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해 자신에게 신의 가호와 후광을 스스로 덧씌웠다. 피격 당시 오른팔을 쳐들고 외쳤던 '싸우자(fight), 싸우자, 싸우자'는 말은 누구와의 싸움을 의미하는 것인가. 자신에게 반대하는 이들, 미국 우선주의에 따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경고로 들린다. 그의 신념에 찬 일방 독주와 파행은 더욱 극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를 자아내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당선을 바랄 것인가. 오로지 우리의 남북관계를 위해서 미국 국민들에 어떤 희생과 고통이 따라도 우리는 아랑곳할 일이 아니며 세계인으로서의 수치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인가. 다소 과장해서 설령 히틀러라도 남북문제를 푸는 데 도움만 된다면 지지할 수 있다는 것이냐, 라는 물음 앞에서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그런 논리라면 7.4 남북 공동성명 등으로 남북 간의 관계 개선 시도를 한 박정희를 그런 이유로 그의 수많은 악행과 민주주의 유린에도 불구하고 지지하겠다는 것과도 거의 다를 바 없다.
바이든이든 혹은 그가 아닌 다른 어떤 민주당 후보로 교체되든 그가 과연 적임자이냐 하면 그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경계해야 할 것은 어떤 한두 가지 면으로 복잡다단한 사안을 판단하려는 단견과 협애에 빠지지 않으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에 위험한 것은 트럼프와 윤석열의 조합이 낳을 결과가 어떨 것인지 예상되기 때문이다. 아니면 윤석열이 지난 2년간 보여왔던 이해하기 힘든 행태에 비춰볼 때 도저히 예상하기 힘든 수준이기 때문이다. 대미 대일 굴욕 외교를 펼쳐 온 한국의 대통령은 트럼프에게는 최대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최적의 상대일 수 있다. 동맹이라도 비용을 대지 않으면 돕지 않겠다고 거듭 얘기하고 있는 트럼프는 이미 재임 시절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을 5배 이상 올리라고 요구했다. 당시 트럼프가 썼던 협상 카드는 ‘주한미군 철수’였다. JD 밴스 부통령 후보 역시 17일 수락 연설에서 동맹 간의 상호 방위를 ‘미국의 자비’로 규정하며 “미국인의 자비를 배반하고 무임승차하는 동맹들은 더 이상 없게 할 것”이라고 거들었다. 당시처럼 한국의 대통령이 문재인이 아닌 윤석열인 상황에서 방위비 협상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어느 정도 예상된다. 이미 지난해 9월 우크라이나에 23억 달러(3조 원)가량을 유무상 지원하겠다는 등 펑펑 써대는 씀씀이를 보이고 있는 그의 '통 큰 손'이 얼마나 후한 인심을 쓸지 가늠이 된다.
이미 한국의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사실상 '탄핵'을 당한 윤석열로서는 트럼프를 자신을 구원해 줄 손길로 삼을 수 있다. '한미 동맹관계의 획기적 개선' 성과를 보여줌으로써 과거 전두환이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나 일본 나카소네 총리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것과 같은 모습을 재연할 수도 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위험성은 한국 권력의 문제에 있는 것이다. 한국은 대미 관계에서 결코 종속변수가 아니다. 물론 분명한 국력의 차이는 있다. 그러나 나라와 나라 간의 관계에는 영원한 강자도 약자도 없다. 이 말은 강자와 약자의 지위가 바뀌지는 않더라도 국면과 상황, 주체적 대응에 따라 강자의 지위와 약자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변동되는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게 옳다. '트럼프와 윤석열'의 조합은 한국을 영원한 약자, 만만한 '봉'으로 만들 것이다. 트럼프 그 자체가 문제인 점을 넘어서 그를 상대하는 한국의 대통령이 윤석열이라는 점이 더욱 큰 문제인 것이다. 비록 일부일지라도 한국의 진보진영에서 일고 있는 '트럼프 기대론'을 접어야 할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명재 에디터 시민언론 민들레 : 2024.07.20.
약한 자아의 사회
“민주주의의 최대 적은 약한 자아다.”
요즘 한국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머릿속에 자주 떠오르는 말이다.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은 잔혹한 독재자가 아니라 개인의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약한 자아라고 했다. 한마디로, 자아가 약한 자들이 모인 공동체는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아도르노의 지적은 한국 민주주의가 오늘날 퇴행을 거듭하고 있는 원인을 정확하게 짚고 있다.
먼저 지금 한창 떠들썩한 정치판을 둘러보자.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선 대통령에 대한 충성 경쟁이 가관이다. 채 상병 사망 사건과 명품 백 수수 의혹에서 보듯, 대통령의 초법적 국정운영과 그의 부인의 빈번한 부패 스캔들이 이미 상당 정도 드러났음에도 이를 비판하고 바로잡겠다는 후보는 찾아볼 수 없다. 모두가 충성을 맹세하느라 바쁘다. 한동훈 후보가 그나마 대통령과 거리를 두는 듯한 행보를 보인다지만, 지난 총선 과정에서 그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인 ‘폴더인사’의 기억을 국민은 잊을 수 없다. 사실상 여당의 모든 후보가 대통령의 ‘충복’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야당은 다른가. 민주당의 대표 경선은 아마도 해방 이후 치러진 당 경선 중 가장 맥빠진 선거일 것이다. 당을 완전히 장악한 이재명 대표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는다. 한때 군사독재에 맞서 용감하게 싸웠던 86세대는 당대표 후보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퇴락했다. 들리는 건 오로지 당대표에 대한 낯부끄러운 찬양과 충성 맹세뿐이다. 민주주의의 활력이 사라진 민주당에선 이제 역사상 최초로 90% 당대표가 탄생할 조짐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한국 정치는 수십년 전으로 퇴행한 것으로 보인다. 군사독재 시대에도 이렇게 권력자에게 비루하게 굴신하는 정치는 없었다. 어찌 이리도 정치인의 자아가 약해졌는가. 정치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엘리트들 대다수가 ‘약한 자아’의 소유자이다. 의사들을 보라. 누가 보더라도 한국 의사들의 미성숙하고 오만한 태도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데도 내부에서는 어떤 반성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판사는 어떤가. 양승태 사법부가 저지른 사법농단이 만천하에 드러났지만 제대로 처벌을 받은 판사는 단 한명도 없다. 게다가 양 전 대법원장의 47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하는 사법부의 뻔뻔스러운 행태에 국민은 할 말을 잃은 지 오래다. 검사는 다른가. 김학의 사건을 비롯해 검사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온전히 죗값을 물은 적이 있는가. 최고 권력자와 그 경쟁자에 대한 검찰의 노골적인 편파 수사에 국민의 분노가 폭발 직전에 있는데도 검찰 내부는 너무도 조용하다.
나는 정말로 궁금하다.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정치인이든 의사든 판사든 검사든, 조직 내에서 벌어지는 불의한 행위에 대해 비판하고 나서는 자가 어찌 하나도 없을 수 있단 말인가. 양심적인 정치인, 의사, 판사, 검사가 왜 없겠냐만, 그들은 어찌하여 침묵만 지키고 있는가. 내 기억으로는 한국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라고 하는 이 그룹에서 조직의 범죄적 행위에 따르기를 거부한 인물은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을 폭로하고 법복을 벗은 이탄희 판사가 유일하다.
한국의 엘리트 집단에 이리도 의인이 귀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들 대다수가 권위주의적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적 성격이란 권력을 가진 자에게 철저히 굴종하고, 자신이 권력을 가지면 타자를 가혹하게 굴종시키는 성향의 인간을 말한다. 한국의 엘리트 대다수가 권위주의적 성격의 소유자다. 에리히 프롬은 권위주의적 성격을 ‘사디마조히스틱 캐릭터’라고 불렀다.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는 가학적(사디스틱)이고, 자기보다 힘센 사람에게는 피학적(마조히스틱)인 성향을 보인다는 뜻이다.
권위주의적 성격은 파시스트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파시스트는 거의 예외 없이 권위주의적 성격의 소유자이다. 이들은 권력을 숭배하고, 약자를 혐오한다. 한국 엘리트가 대부분 권위주의적 성격을 가졌다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에 대단히 불길한 징조다. 한국 민주주의가 파시즘으로 퇴락할 위험을 내장하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평판을 가진 스웨덴의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는 최근 한국 사회의 독재화를 경고했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한국 엘리트의 권위주의화이다. 독재화는 제도의 복원으로 회복이 가능하지만, 권위주의화는 인간의 변화를 통해서만 극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조직의 불의 앞에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강한 자아를 가진 자가 사라진 사회는 파시즘의 문턱에 서 있는 사회다.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 한겨레 : 2024.07.23.
잘 죽을 권리
의료, 요양, 돌봄, 상조. 우리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마주해야 하는 것들이다. 이 시대 ‘죽음’은 점점 더 거대한 비즈니스가 되어가고 있다. 살기도 힘들지만 죽기도 쉽지 않다. 잘 죽기는 더욱 어렵다. 무병장수 끝에 고통 없는 죽음, 9988234를 꿈꾸지만, 그게 어디 내 맘대로 되는 일인가. 현대의학의 눈에 노화란 없다. 살아 있는 한 치료하고 극복되어야 할 다양한 이름의 질병만이 있을 뿐. 우리의 노년에는 병명과 먹어야 할 약이 하나씩 더해진다. 누구에게나 임종의 시간이 찾아온다. 하지만 죽음을 의료의 패배로 인식하는 고약하고 오만한 의료시스템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환자를 살리려 든다. 의사에게 환자를 살려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면 환자에게도 잘 죽을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 임종 단계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것, 그것은 우리 사회가 어렵게 얻어낸 ‘잘 죽을 권리’의 시작이다. 내가 주 1회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대형병원 부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실 모습을 통해 다음 3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첫째, 자기결정권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 성인이 자신의 연명의료에 관한 의사를 직접 문서로 작성하는 것이다. 60대 남성이 아내·아들과 함께 상담실을 찾아왔다. 당사자는 병색이 완연하고 가족들은 뭔가 화가 난 사람처럼 보였다. 아내는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이거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거예요?”
말을 들어보니 담당 의사의 권유로 왔다고 했다. 그래서 설명을 들어보고 결정하면 된다고 말씀드렸다. 가족들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을 하면 병세가 더 악화될 경우 응급의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고 한다. 생각했던 것과 차이가 있으니 의사 선생님과 다시 상의하겠다며 돌아갔다. 의사가 상담을 권유한 것은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와 아들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고, 정작 당사자는 제대로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여부는 가족 아닌 환자 당사자가 결정해야 한다.
둘째,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 60대 여성 암환자가 보호자(자녀) 없이 진료를 보러 나온 김에 몰래 등록하러 왔다고 했다. 자식들이 알면 귀찮게 할 것 같다고 했다. 80대 부부도 자식들 모르게 하고 싶고 등록 내용을 아무도 못 보게 하고 싶다고 했다. 연명치료에 관한 생각을 혼자만 알고 있는 것은 의미가 없다. 가족은 물론 가까운 친지들에게도 평소 자주 분명히 말해야 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을 한 것에 대해서도 알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등록 여부와 무관하게 가족의 반대로 연명치료를 받게 되는 늪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셋째, 마음을 가볍게 가져야 한다. 70대 초반 여성이 잔뜩 경계하는 얼굴로 상담실에 들어왔다. 웃는 얼굴로 맞이하며 가벼운 인사와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등록 전 확인 사항이 몇 가지 있어 말문 트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그분은 어느새 경계심을 풀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냈고 본인도 초기 치매 진단을 받았다며 걱정이 많다고 하셨다. 초기에 진단을 받으셨으니, 이제부터 약 잘 챙겨 드시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하고 싶은 일 즐겁게 하시라고 말씀드렸다. 들어올 때와는 다르게 환히 웃으며 방을 나가셨다. 부디 삶의 무게가 조금이나마 가벼워지셨길 바랐다.
김수동 탄탄주택협동조합 이사장 경향 : 2024.07.24
정답을 비켜가는 저출생 대책
“정책이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옛날에 다 정리된 얘기들이 다시 나오는데… 1990년대로 돌아가는 느낌이랄까요.”
한 유아교육·보육 전문가의 말이다. 지난달 19일 정부의 ‘인구 국가비상사태’ 선언 이후 한 달간 나온 저출생 관련 정책들을 보며 든 내 심정 역시 그랬다.
필리핀 가사관리사 서비스가 서울시에서 시범운영된다. 서울시는 다음달 6일까지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서비스 이용 신청을 받아, 9월부터 6개월간 전일제(8시간), 시간제(4시간·6시간)로 서비스를 시행한다. 만 24~38세의 필리핀 국적 외국인 노동자들이 비전문취업비자(E-9)를 통해 들어오는데 100명 규모 시범사업으로 시작해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시간당 1만3700원으로 하루 8시간 기준 월 238만원가량이 든다. 고용노동부는 내년 상반기 중 전국에 1200명까지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외국인 유학생에게도 가사돌봄 활동을 허용할 방침이다.
지난달 27일엔 교육부가 어린이집·유치원 통합 첫발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유보통합 실행계획’을 발표했다. 희망하는 0~5세 모든 영유아에게 12시간 돌봄을 보장하겠다는 내용을 가장 앞세워 강조했다. 하반기 100개 모델학교를 시작으로 2027년까지 3100곳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보도자료엔 ‘세계 최고 영유아 교육·보육을 위한 유보통합 실행계획(안)’이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관련 기사들엔 “애를 12시간 맡길 거면 왜 낳으라고 하는 거예요?” “아이들이 불쌍하다” “어른이 일찍 끝나는 게 우선이지 거꾸로 가는구먼” 등 비난 댓글이 폭주했다.
시행을 앞두고 있는 필리핀 가사관리사와 유보통합은 현 정부의 주요 저출생·보육 정책들이다. 주요국의 대책들과 정확히 반대 방향이다.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노동시간을 줄이는 주요국들과는 반대로 아이를 부모로부터 떼어놓고 오래, 잘 돌봐주겠다는 대책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행복을 느끼도록 해도 낳을까 말까인데, 아이가 짐이라는 듯 돌봄 서비스만 강조하면 대체 아이는 왜 낳는가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육아천국으로 꼽히는 스웨덴에 머물며 <라테파파의 나라에서 띄우는 편지>라는 시리즈 기사를 보도한 것이 6년 전이다. 카페와 공원, 도서관, 거리, 버스·전철 할 것 없이 수없이 마주치는 라테파파(적극적으로 육아를 하는 북유럽의 아빠를 부르는 말)들이 신기해서 취재를 자원했다. 기사 제목들은 ‘여기선 오후 4시면 차가 밀린다… 모두 애 데리러 가니까’ ‘남자들도 자녀와 친해질 시간, 좋은 아빠가 될 기회 있어야’ ‘아이가 집에 올 때 부모도 퇴근하는 것은 상식이다’ ‘법은 있지만 실제로 사용 못하는 문화 바꿔야’ 등이었다.
정답은 모두 나와 있다. 전 세계의 전문가와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주요국들이 마르고 닳도록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과 성별 격차 해소, 일·가정 양립 지원 정책 등이다. 90년 전인 1934년 일찍이 <인구 위기>라는 책을 쓰며 스웨덴의 가족과 인구정책, 나아가 복지정책의 초석을 놓은 알바 뮈르달과 군나르 뮈르달 부부가 강조한 인구정책 관련 조언은 현재까지 유효하다. 출생률 제고 정책이 성공하려면 우선 기혼 여성이 경력을 쌓는 동시에 자녀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자녀 양육에 드는 경제적 부담 상당 부분을 개별 가족이 아닌 사회가 져야 한다는 것, 모든 인구 관련 정책들은 차별 없이 모든 가정에 보편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만 정답 사이를 비켜가고 있다. 아이를 낳고 싶은 남녀 모두에게 아이를 키울 시간과 이를 위한 일정 부분의 경제적 여유를 보장하는 것이 핵심인데, 정부는 구조적인 변화는 시도하지 않고, 중산층 이상의 일부만을 대상으로 하는 대책으로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 지난 23일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여성연구소, 한국여성학회가 공동주최한 ‘정부의 저출생 대응 담론과 정책 진단’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성평등 관점이 빠진 정부의 일·가정 양립 정책은 여성을 중심으로 일과 가정을 동시에 챙기도록 유도하며, 오히려 모성 페널티(엄마들이 일터에서 맞닥뜨리는 불이익)를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영세기업과 자영업자, 급증하는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 등 육아휴직 사각지대는 이번 정부 대책에서도 빠졌다.
왜 우리 사회에서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평범한 행복조차 사치가 되어버렸나. 정부는 뭘 하고 있는가. 저출생 정책들을 대하며 더욱 마음이 무겁다.
송현숙 후마니타스연구소장 경향 : 2024.07.24.
일본 시민들이 밝혀낸 사도광산 강제동원
제46차 세계유산위원회가 지난 21일부터 인도 뉴델리에서 시작됐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강제동원이 대규모로 이뤄졌던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될지가 한-일 사이에 쟁점이다. 등재 여부는 이달 26~29일 사이에 결정된다.
일본 정부는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노골적으로 피하려고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대상 기간을 에도시대(1603~1867)로 한정하는 꼼수를 썼다. 하지만 유네스코의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가 제동을 걸었다. 지난달 이코모스는 사도광산과 관련해 “세계유산 목록으로 고려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면서도 여러 지적 사항을 붙여 보류를 권고했다. ‘조선인 강제동원’에 대한 내용도 그중 하나다. 이코모스는 “광업 채굴이 이뤄졌던 모든 시기를 통해 추천자산(사도광산)에 관한 전체 역사를 현장에서 포괄적으로 다루는 설명 및 전시 전략을 수립하고, 시설 및 설비 등을 정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등재 과정에서 조선인 강제동원을 포함한 전체 역사를 반영해야 한다는 한국 쪽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일본 정부는 줄곧 “강제동원이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약하다. 사도광산의 조선인 강제동원 실태는 한국 쪽이 아닌 일본 시민사회가 밝혀낸 성과다. 33년 전인 1991년 8월 재일동포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사도섬에 있는 절 ‘쇼코사’의 하야시 미치오 스님이 ‘사도광산 조선인 연초(담배) 배급명부’를 확보하면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태평양전쟁 당시인 1944~1945년 미쓰비시광업 사도광업소가 광부들에게 담배를 지급하는 과정에서 만든 이 명부에는 조선인 400여명의 이름·생년월일 등이 적혀 있었다. 하야시 스님과 지역 사람들은 1991~1995년 세번이나 한국을 방문해 사도광산에서 일했던 피해자를 직접 찾아냈다. “도망갔다가 잡힌 사람이 두들겨 맞는 것을 봤다”, “지역에서 (데려갈 사람의) 할당이 있다고 해 사도로 끌려왔다”, “항상 배가 고팠고, 통제를 받았다” 등 그들은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피해자들의 증언뿐만 아니라 사도광산 회사 쪽이 작성한 각종 자료, 일본 정부·경찰이 만든 공문서, 니가타현의 문헌 등 조선인 강제동원의 증거는 차고 넘친다. 태평양전쟁(1941~1945)이 시작되자 사도광산에선 금뿐만 아니라 군사 물자에 필요한 구리·아연·납 등을 집중적으로 채굴하기 시작했고, 부족한 일손을 메우기 위해 식민지였던 조선의 노동자 1500여명이 동원됐다. 일본 지방정부인 니가타현이 1988년 펴낸 ‘니가타현사 통사편8 근대3’엔 “1939년에 시작된 노무동원 계획은 명칭이 모집, 관 알선, 징용으로 바뀌지만 조선인을 강제로 연행한 사실은 동질”이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30여년 전 한국을 오가며 조선인 강제동원 실태조사를 주도한 하야시 스님을 2022년 8월 사도섬에서 만났다. 그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봐야 한다. 도망치면 안 된다”며 “조선인 강제동원 등 전쟁 책임 문제는 인간의 존엄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우리 일본인들이 계속 추궁받아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하야시 스님은 지병이 악화돼 올해 3월 77살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
김소연 | 도쿄 특파원 한겨레 : 2024.07.25
전쟁하는 나라의 피폐한 국민의 삶
얼마 전 유럽에 휴가를 다녀왔다. 포르투갈에서 숙소에 체크인 하고 배정을 받은 방에 들어가 보니 바로 옆방 베란다에서 통화하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러시아말이었다. 머나먼 포르투갈에서 바로 옆방 투숙객이 같은 러시아 사람이라는 것을 신기해 하면서 의도치 않게 통화 내용을 들게 되었다. 엿듣고 싶지 않아서 집중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통화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크고, 구조상 열려 있는 베란다가 내 방 베란다 바로 옆이라서 내용을 대충이라도 듣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러시아에 남아 계신 부모님에게 포르투갈에서 난민 신청한 이야기, 이런저런 적응하는 이야기 등이었다. 그날 밤 옆방 남자를 호텔 로비에서 우연히 만났다. 같은 러시아 사람이라고 반갑게 인사했다. 그리고 숙소 뒤에 있는 아늑한 정원에 앉아 음료수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포르투갈 여행 중 만난 모국 러시아 망명객
니콜라이 (가명)는 러시아에서 공무원이었다고 했다. 100만 명 넘는 대도시에 살면서 한국으로 치면 구청과 같은 정부 기관에서 일하고 있었다. 러시아 공무원은 월급이 그리 높은 편이 아니지만 아내와 같이 맞벌이 하면서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몇년 전에 은행 대출을 받이 집을 샀다. 2020년에 코로나로 인해 아내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여러모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시간이 흘러 코로나도 끝나가는 시점에 유럽 휴가도 갔다 오고 새 차도 사고 인생이 좋아지는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아내와 2세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2022년 2월에 이 모든 게 한꺼번에 무너져 버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에 니콜라이 가족이 분열했다. 푸틴의 열렬한 지지자인 아내의 부모님은 전쟁을 전적으로 지지했고, 전쟁 반대인 자기 딸 부부와 매일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니콜라이의 직장도 전쟁터로 변했다. 모든 직원들이 전쟁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매일 싸우고 서로 욕하고 이견 때문에 물리적 폭력사태까지 빚어졌다. 거기에다가 공무원을 향한 정부의 압박이 배로 증가했다. 사무실에 전쟁을 찬성하는 ‘Z’ 사인을 무조건 배치해야 했고 자기 개인 sns에서도 ‘Z’ 를 사용해야 했다. 정부는 2022년 봄 전쟁 지지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전쟁터에서 싸우는 병사들을 돕기 위해 모든 공무원 월급에서 매월 일정한 금액을 공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월급은 대략 4% 줄었다.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자 아이 낳을 계획이 깨끗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일상마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친정과 모든 연락이 끊겼음은 물론 전쟁을 지지하는 이웃들과 친구들 간 소통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폐쇄된 국경 때문에 해외 휴가는 꿈이 되었고 상승하는 물가로 가정 예산이 타격을 받아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2년 9월 또 하나의 불행이 닥쳐 왔다. 국가에서 동원령이 내려진 것이다.
전쟁으로 일상이 산산조각난 가운데 내려진 국가 동원령
니콜라이는 30대 중반 남성으로 동원령 대상이었지만 공무원들은 처음에 동원령 대상 목록에서 제외되었다. 그래서 1차 동원을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마음이 상당히 불안했다. 그때 같은 연령대 남성들이 대거 러시아를 이탈하는 뉴스를 계속 보면서 조마조마했다. 전쟁 반대론자라는 정치적 입장과 전쟁터에 나가면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기도 이민 여부를 두고 엄청난 고민에 빠졌다. 해외여행을 다니기는 했지만 해외에서 장기간 살아 본 적도 없고 외국어도 모르며 자기가 가진 자격으로 해외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지도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러시아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굳어지기만 했다. 주변에서 빗발치듯 사망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죽마고우 친구가 동원으로 전쟁에 끌려가서 우크라이나에서 죽었다는 소식에 이어 바로 옆집 아줌마의 아들, 직장 동료의 남동생, 아내의 친구의 오빠 등등, 아는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은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정부에서 이런 죽음을 정당화 하는 모습이었다고 했다. 러시아 국민이면 당연히 죽어야 하고, 우크라이나는 나라도 아니며, 우크라이나에 사는 사람들은 사람도 아니다. 그들은 죽어 마땅한 놈들이다. 러시아 문화에는 타인을 죽이는 전통이 있다. 러시아는 전 세계와 싸우고 있고, 필요하면 전 세계를 핵으로 파괴시킬 날이 꼭 올 거라는 등,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들이 24시간 내내 방송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치적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잡아 감옥에 집어넣는 것도 거의 매일 목격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자기는 sns도 별로 안 하고 반정부 활동도 안 하는 평범한 시민이라 설마 자기에게까지 이런 정부의 탄압이 가해지지는 않겠지 간절히 바라기만 했다. 이런 환경에서 더 이상 정신적으로 버티기가 어려웠다.
국민이 죽고 탈출하고, 텅 빈 나라에 미래 있겠나
그러나 이민을 가야 한다고 결심한 결정적인 사건이 2023년 초 발생했다. 니콜라이 부모님 집으로 니콜라이에 대한 전쟁 동원 통지서가 날라 온 것이었다. 애초부터 공무원 같은 일부 특수 직업을 가진 국민들을 동원령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것은 아니지만 통지서를 본 순간 정부의 거짓말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니콜라이는 그 순간에 러시아를 떠나야 한다는 결정을 아내와 함께 내렸다고 나에게 토로했다.
바로 다음 날 사표를 냈다. 처음에는 러시아 국민들이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조지아에 가서 한동안 헤맸지만 결국 2023년 말쯤 포르투갈에 있는 한 회사에서 오퍼를 받아 포르투갈로 건너와 바로 난민 신청을 했다. 현재는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묵묵히 앉아 그의 말을 들었다. 그의 간절함과 순수함에 마음이 짠했다. 내가 뭐라도 그를 도와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서 너무 답답했다. 니콜라이 같은 스토리는 현재 러시아에서 수십만 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건 우크라이나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돈 벌고 아이를 키우며 일상을 평범하게 살고 싶은 수많은 사람들이 정치인들의 건력욕과 국제정치의 냉혹함 속에서 왜 고통을 견뎌야 하고, 죽어야 하고, 자기 집을 떠나야 하고, 자기 친구와 친척을 왜 잃어야 하는지…
여러 러시아 독립기관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이후에 러시아를 떠난 사람들은 대략 120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정확한 숫자를 알 길이 없지만 실제 숫자는 이보다 더 클 수도 있다는 평가도 있다. 물론 사람들의 스토리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정치적 입장 차이 때문에 자발적으로 이민을 선택한 이도 있고 정부 압박으로 강제 이민을 한 이도 있을 것이며 니콜라이 처럼 복합적인 이유로 이민 길에 오른 이도 있을 것이다. 이유가 뭐든 자기가 낳고 살아온 본국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타지에서 새 삶을 시작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다. 러시아 주변 국가 입국 현황자료, EU(유럽연합) 난민 신청 상황자료, 미국 이민국 보도자료 등으로 입증된 것만 70만 건에 달한다. 이렇게 대거 국민이 이탈하는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 나는 러시아 사람이니 러시아 걱정이 태산이지만 우크라이나 사람들이라고 우크라이나 걱정을 안 할까?
벨랴코프 일리야 수원대 인문사회대 교수 시민언론 민들레 2024.07.27.
말은 바로 합시다, '방위산업'은 무기산업입니다
“정치인은 전쟁을 시작하고, 부자는 무기를 대고, 가난한 사람은 자식을 제공한다. 전쟁이 끝나면 정치인들은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하고, 부자들은 생필품의 가격을 올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자식의 무덤을 찾아간다(세르비아 속담).”
탄소제로, 친환경 무기 사용하는 ‘지속 가능한 전쟁’?
무기박람회에 등장한 자사 제품을 홍보하면서 “열대우림을 오염시키는 납 성분을 제거한 친환경 탄약”을 자랑하는 이 기괴한 역설에 나의 인식은 혼란스럽다. 최첨단 공법으로 제작한 탄소 제로, 친환경 무기를 사용하는 ‘지속 가능한 전쟁’이 벌어질 판이다. 무기박람회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투자 자문사는 무기생산 기업에 대한 투자를 유혹한다. 무기산업이 침체에 처한 한국 경제를 살릴 성장동력으로 등장하고 있다.
방위산업이 아니라 무기산업이다
‘무기산업, 군수산업, 방위산업’을 검색해 보니 요즘은 ‘방위산업’이라는 개념이 대세다. “국가 방위를 위하여 군사적으로 소요되는 물자의 생산과 개발에 기여하는 산업”(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여기에 덧붙여 세계 2차대전까지는 ‘군수산업’이라는 말이 주로 통용되다가 방위산업이라는 용어로 대체되었다는 설명이 나온다. 하나의 용어나 개념이 설명의 정확성과 엄밀성보다는 부정적 측면을 감추고 등장하면, 대중의 인식은 호도되기 쉽다. ‘방위산업’이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전쟁에서 공격과 방어의 구분이 불분명하고, 방어용 무기 역시 공격용이라는 측면에서 ‘방위산업’은 무기산업의 분칠된 표현이다.
전쟁에서 인명을 살상할 용도로 만들어지는 물건을 ‘무기’라고 하지 않고, 방위산업 제품으로 표기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자본주의 사회는 무기산업을 방위산업으로 포장해 대중의 거부감을 누그러뜨리고, 자본의 이윤을 창출하는 하나의 산업으로 간주하도록 만드는 명확한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무기산업은 군산복합체를 넘어 금융자본과 결합해 현대 자본주의의 최정점에서 문명의 파괴와 생명의 위기를 재촉한다
한국 무기산업의 폭발적 성장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올해 2월 발표한 「방위산업 현황과 전망」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국내 주요 무기업체의 매출액은 약 84%가 국내에서 발생했다. 남북 분단과 대치는 상시적 무기 개발을 강제하고, 기업들은 지속적인 국가적 수요에 따라 생산능력을 꾸준히 키워 왔다. 냉전 이후 급감한 유럽의 무기 생산능력은 유럽의 무기 수입 수요를 증가시켰다. 이러한 상황은 유럽 국가들과 안보‧경제적으로 우호적 관계인 한국 무기업체에 큰 기회요인을 제공했다. 분단이 역설적으로 현시기 국제적 무기수요 증가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020년까지 K-방산 수출액은 30억 달러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지만, 2021년부터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2022년 173억 달러, 2023년 130억 달러 규모에 달했고, 국방부 방위사업청의 2024년 수출 목표치는 200억 달러다. 2023년 무기산업 수출 규모는 대상국이 2022년 4개국에서 12개국으로 3배, 무기체계 종류는 2배로 늘었다. 2023년 무기산업 수출액은 130억 달러로 2022년 173억 달러에 비해 약 25% 감소하였지만, 이는 기저효과에 따른 것으로 코로나 이전에 비하면 크게 증가한 것이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전 세계 100대 무기기업 중 한국 기업은 4개가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다.(배보람, “‘전쟁의 시대’ 평화라는 기후정의의 필요성,” <기후, 기회: 파국의 시대에 맞서기 위한 기후 전망과 전략>(서울: (주)지학사, 2024), p. 138)
마케팅 활동 역시 활발하다. 한국에서는 매년 종합 무기박람회 ADEX, 지상 무기 박람회 DX KOREA, 해양 무기 박람회 MADEX, 경찰 무기 박람회 KPEX 등 다양한 무기박람회가 열린다. 각종 육해공 군사무기와 경찰무기가 일반 시민들에게 ‘멋진’ 상품으로 둔갑해 전시되고, 전 세계로 수출된다. 주요 수출 무기는 한화의 장갑차와 K-9 자주포, 천무 다연장 로켓, 현대로템의 K-2 전차,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FA-50 경공격기, LIG넥스원의 현궁 대전차 미사일과 천궁-II 지대공 미사일, 풍산의 탄약류 등이다.
특히 최근의 무기박람회는 무기산업의 기후 위기와 생태계 파괴에 대한 책임론이 강조되는 추세를 반영하여, 무기제조업체의 ‘친환경’ 행보를 홍보하는 장이 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항공엔진의 친환경 추진 시스템 구비를, 현대로템은 다목적 무인차량의 전기배터리화, 디펜스 드론의 수소전지화, 풍산의 환경단체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2023년 3분기 말 기준 방산 5사(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국항공우주, 현대로템, LIG넥스원, 한화시스템) 수주 잔고는 약 104조 원 규모로 전년 말 대비 약 1.3% 성장했다. 자본시장 역시 무기 수출 기업들의 성장세를 반영해, 한국의 록히드마틴을 꿈꾼다는 무기회사 여럿을 둔 대기업 계열의 한 자산운용사에서는 국내 무기 분야 1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투자상품까지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국민연금 역시 2023년 상반기 한화시스템, 풍산과 같은 대표적 무기기업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서울경제, “국민연금, 리오프닝 덜고 방산‧반도체에 베팅했다,” 2023년 7월 5일)
한국제 무기 분쟁 지역 수출, 비인도적 무기도 투입
대한민국의 「대외무역법」은 “국제평화와 안전 유지 등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필요할 경우, 인간의 생명‧건강 및 안전, 동물과 식물의 생명 및 건강, 환경보전 또는 국내 자원 보호를 위하여 필요할 경우” 무역을 제한하는 특별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수출된 한국 무기가 어느 나라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어떤 무기를 수출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이런 규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문제는 분쟁지역으로의 수출, 두 번째는 비인도적 무기의 수출이다.(출처: “2023 국제회의: 무기 거래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전쟁없는 세상 자료집>)
최근 한국 대통령 윤석열은 미국에서 열린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에 참가해 여러 나라 정상들과 회담을 했다. 그중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와 두 번의 만남을 가졌는데 회의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다. 지난 6월 평양에서 개최된 조러 정상회담에 대응하는 성격의 논의, 조선과 러시아의 군사협력에 상응하는 조치, 예를 들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의 한국 직접 지원 등이 다뤄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이전에 한국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여러 나라(미국, 폴란드, 핀란드,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호주 등)에 무기를 수출했고, 이들 무기는 우크라이나에 지원된 무기의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한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판매는 세 배 늘었다.(경향신문, “한국, 대이스라엘 무기 수출액 10년간 3배 증가,” 2023년 10월 19일) 예멘 내전에 개입하고, 전쟁의 장기화를 이끌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도의 아랍 동맹군에 대한 무기 수출,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 수출된 FA-50 경공격기와 한화의 바라쿠다 장갑차, 대지정공의 물대포차 등은 각 나라의 분쟁과 민중의 저항을 탄압하는데 동원되고 있다.
확산탄과 대인지뢰는 무차별적인 살상과 민간인이 많은 피해를 당하는 특성으로 인해 대표적인 비인도적 무기다. 현재 「확산탄금지협약」은 110개국, 「대인지뢰금지협약」은 164개국이 가입한 국제협약이지만, 한국과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소수의 국가는 가입하지 않고 있다.
한국은 16개 확산탄 생산국 중 하나다. 한국의 주요 무기회사인 한화와 풍산도 최소한 2012년까지 확산탄을 생산하고 수출했다. 한화는 확산탄 사업이 국제적으로 문제시되어 해외 사업에 지장이 되자, 그룹 전체의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확산탄 관련 사업을 지난 2020년에 분할 매각했다. 하지만 이 분리된 회사가 충남 논산에 대규모 확산탄 시설공장을 다시 짓고 있어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한겨레신문, “논산에 대량 살상 무기 ‘확산탄’ 공장 건설…시민들은 반대,” 2024년 2월 2일)
한국은 11개 대인지뢰 생산국 중 하나다. 대인지뢰의 주요 제조사인 한화는 2005, 2006년에 클레이모어 대인지뢰 약 2000개를 뉴질랜드로 수출한 바 있다. 한화는 2011년에도 KM74 대인지뢰 4000개를 생산했다. 한국 정부는 2019년에 지난 5년간 대인지뢰를 생산하지 않았다고 밝혔으나, 앞으로의 생산 계획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등장한 무기산업
지난해 12월 7일 한국 대통령 윤석열은 「제2차 방산수출전략회의」를 주재했다. 대통령은 무기산업이 안보와 경제를 뒷받침하는 국가전략산업임을 강조하며, 미래의 신성장 동력이 되도록 첨단전략산업으로 육성해 지금의 무기수출 성장세를 지속 확대해 나갈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할 것임을 약속했다.(대한민국 대통령실 보도자료, “尹 대통령, K-방산이 세계시장에서 우위 선점하도록 적극 지원할 것,” 2023년 12월 7일) 무기산업이 새로운 수출 전략이자 지역 경제를 이끌 기간 산업, 침체에 처한 제조업을 대신할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인식되고 있다. 자동차와 조선 관련 산업도시였던 창원은 외신에 보도될 정도로 한국의 대표적인 무기산업 단지가 되었다. 방위사업청이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충남은 방사청을 중심으로 관련 후방 산업의 성장을 기대한다. 전북도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무기산업의 육성계획을 제시하고, 전남 역시 우주산업과 국방산업을 결합한 산업 특구를 모색한다.(배보람, 앞의 글, p. 137)
군산복합체의 나라 미국에서 무기산업의 규모와 성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가장 흔히 사용되는 논리는 국가안보와 일자리다. 그러나 무기산업의 일자리 창출 효과는 그다지 높지 않다. 무기산업의 일자리 창출에는 다른 산업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들고, 막대한 정부 보조금이 지출된다. 2009년 매사추세츠대학교 경제학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청정에너지, 교육, 의료 등 다른 우선 순위 산업에 각각 10억 달러를 사용할 경우, 동일한 예산을 국방에 지출할 때보다 많은 일자리가 창출된다. 10억 달러 투자 시 국방 분야는 일자리가 1만 1600개가 만들어지는 반면, 청정에너지 분야는 1만 7100개, 의료는 1만 9600개, 교육은 국방의 두 배가 넘는 2만 9100개가 창출된다는 것이다.(앤드루 파인스타인 지음, <어둠의 세계: 무기산업을 둘러싼 부패의 내막과 전쟁 기획자들>(오월의 봄, 2021), p. 528)
창과 칼을 녹여 보습을 만들어야
무기는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된다. 자위를 위한 최소한의 무기 소유를 현실 세계에서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돈만 된다면 무엇이든 팔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무기는 생명에 반하는 것이고, 전쟁을 부른다. 무기거래는 국제적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거래 중 가장 부패하고, 무책임한 행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공론장에서 한국 사회 무기산업 신성장동력론은 거침이 없다.
지난 시기 대한민국은 아무런 이해 관계가 없는 베트남 전쟁에 미국의 용병으로 참가하여 5천여 명이 넘는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그 보다 훨씬 많은 베트남 민중을 학살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만 9천여 명 이상이다. 그리고 그 피의 댓가를 경제개발의 종잣돈으로 삼았고, 지금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베트남 민중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 불편한 진실의 토대 위에 서 있다.
과거는 물론 지금도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들은 평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만들고, 무기를 팔고, 폐허가 된 전쟁터 재건사업을 수주한다. 그러나 무기를 팔아서 평화를 만들 수는 없다. 서로를 겨눈 무기를 내려 놓을 때 평화가 온다. 식민 지배를 극복하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유일한 나라라는 대한민국이 제국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전쟁 상인이 되어 다른 나라의 희생을 토대로 자신의 부와 삶을 유지한다면, 우리의 미래세대는 그 삶을 긍정할 수 있을 것인가? 창과 칼을 녹여 보습을 만드는 오래된 숙제를 다시금 생각한다.
정범진 사단법인 생명평화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시민언론 민들레 2024.07.28.
상속세 개편과 상속자 자본주의
21세기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자산 격차라는 게 토마 피케티라는 프랑스 경제학자가 지적하는 얘기다. 다양한 복지정책이 강화되면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소득 격차는 좀 완화되었지만, 자산 격차는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많은 선진국은 물론이고 심지어 중국이나 러시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상위 50%가 대부분의 자산을 가지고 있고, 하위 50%는 2~3%가량의 자산을 가지고 있단다. 우리나라도 집을 가지고 있는 가계가 55~60%가량이라서 현실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몇년 전 청년들에게 열풍이었던 ‘금수저, 흙수저’ 얘기가 이런 자산 격차로부터 나온 것이다. 금수저 같은 직관적인 표현을 조금 개념적으로 가다듬으면 ‘세습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된다. 여기서 한발만 더 나아가면, ‘상속자 자본주의’가 된다. 뭐라도 상속할 것이 있는 사람들이 출산을 하고, 상속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무상속자는 결혼과 출산은커녕 연애도 포기하게 된다. 3포·4포를 거쳐 n포까지, 자산과 거리가 먼 청년들에게 한국은 너무 추운 곳이다.
지난 몇년간 청년들의 자산을 향한 열풍은 눈물 날 정도다. 가진 게 없으니 부채를 통한 자산 형성이 청년들의 열풍이 되었다. 주택시장에서는 영혼까지 끌어서 빚을 낸다는 ‘영끌’, 주식시장으로 오면 빚내서 투자하는 ‘빚투’다. 이 흐름이 코인시장으로 오면 ‘잡코인’ 열풍이 되었다. 한 번에 큰 자산을 획득하기 위해 위험성이 극대화된 안 알려진 코인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청년들의 자산 열풍이 결국 문재인 정권을 쓰러뜨리고 윤석열 정권을 세웠다.
자산 격차 강화하는 윤석열 정부
청년들의 자산 격차가 여당의 동력원이었지만, 총선 이후 윤석열이 모든 힘을 기울이는 경제정책은 종부세 완화에 이어 상속세 완화라는 자산 격차 강화 쪽이다. 강남 사는 부자들, ‘강부자’가 밀어서 대통령이 되었다는 박근혜 정권도 차마 상속세에는 손을 대지 못했었다. 상속세 최고구간은 폐지하고, 과표 하위구간은 1억원에서 2억원으로 올린다. 결정적으로 5000만원인 자녀 공제를 한 번에 5억원으로 높인다. 이런 과감한 변화의 메시지는 용산 정권이 자신들을 만들어준 자산 없는 청년들의 지지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차피 재선할 것도 아닌데, 그냥 이번 임기에 자기가 하고 싶은 로망을 이루고 싶은 사람처럼 거침없이 정책을 설계한다.
과연 상속세 개편안이 현실화될까. 만약 지난 총선에서 여당이 많은 흙수저 청년들의 지지로 압승했다면, 상속세 완화도 사회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여당은 총선에서 완패했다. 국회 소수파가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라서, 대통령의 부자들에 대한 사랑만 보여줄 뿐이고,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야당 국회의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공정 기조에서 뭔가 물려받을 게 있는 상속자 자본주의 쪽으로 국정 기조가 바뀌었다는 것만 확실해졌다.
원래 한국에서 상속세를 내는 피상속인은 1만명도 채 안 되었다. 문재인 정권 때 부동산 급등으로 상속세를 내는 피상속인이 많이 늘어 2022년에 1만9506명이 되었다. 그해 사망한 사람은 37만명인데, 그중에 상속세를 발생시킨 상속인은 아마 1만명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사망 전에 증여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집이 여러 채면 몰라도 집 한 채 가진 중산층이 국세청의 눈을 피해 사망 10년 전에 완벽하게 사전 증여를 하기는 쉽지 않다. 2022년이면 이미 집값이 오른 뒤라서, 부동산 폭등은 반영된 시점이다. 이걸 설명하기 가장 부드러운 방법은 100세 시대에 맞는 노인 복지가 아직 미흡해 집 한 채 정도 가진 사람은 결국 은퇴 후 집을 담보로 생활비를 대부분 쓰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자산 가치에서 부채를 빼고 나니까 자녀에게 5000만원 이상 물려줘서 상속세를 발생시키는 경우가 2만건이 안 된다고 볼 수 있다. 배우자까지 포함하면 더 줄어든다. 이 5000만원 공제액을 5억원으로 올려주면? 어차피 지금도 대부분의 중산층은 5000만원 공제도 다 사용하지 못한다. 결국은 이것도 중산층 감세가 아니라 현실적으로는 다주택자 감세다.
현시점에서 상속세에 대한 윤석열의 정치적 계산은 미스터리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결정적 계층은 청년층이었는데, 지금은 더욱더 세습 자본주의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왜 그럴까. 용산 주변에 상속세를 걱정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것은 과학적 설명은 아니지만, 현실적 설명은 될 것이다. 그의 집권 기반은 상속 자본주의가 아니었지만, 그의 통치 기반은 상속 자본주의라고 볼 수 있다. 경제적 현실과 동떨어진 집권층, 정권 망하는 지름길이다. 상속자 자본주의, 이게 윤석열이 만들고 싶은 미래 한국의 궁극적 모습인가.
우석훈 경제학자 경향 2024.07.28.
터지기 직전 부동산 시장, 키울 때 아니라 대비할 때
한국, 중국, 일본, 동아시아 3국은 모두 짧은 시간에 고속으로 경제 성장을 달성했다. 우수한 인적자본을 기반으로 한 저가의 제품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한 이후, 과감한 투자로 세계 기술을 받아들이며 선진국을 위협하는 추격자가 되었고, 연구 개발의 성과로 첨단 기술에서 세계 선두 자리를 넘보는 위치에 도달했다. 세계는 동아시아 3국의 경제 발전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참혹한 부동산 거품의 후유증, 이젠 우리 차례다
그러나 고속성장의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양극화로 인한 사회 갈등이 심화되고 있고 특히 부동산 거품으로 인한 폐해가 컸다. 세계의 부러움을 받던 경제도 부동산 거품으로 인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교훈을 안겨주고 있다. 한 때 일본의 주택가격과 토지가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솟아 전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다가, 결국 고꾸라졌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국가에서 일약 병든 환자가 되어 잃어버린 30년을 겪고 나서도 좀체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전국적으로 부동산 투기 광풍이 불었고, 지방 정부는 경쟁적으로 부동산 개발을 부추겨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개발이 이어졌다. 건설업의 비중이 국내 총생산의 30%를 넘고, 부동산 관련 대출이 급증하면서 경제 위기에 대한 경고음이 커졌다. 결국 정부가 나서서 부동산 억제 정책을 쓴 결과 빠른 속도로 부동산 기업대출과 가계대출이 줄어들면서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다. 대규모 부동산 개발회사가 무너지면서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성장률 저하, 실업률 증가 등 심각한 경제 위기 국면에 들어섰다.
이제 한국만이 남았는데 이웃 나라의 교훈은 보지 못한 채 더 큰 위기로 치닫는 현실이 안타깝다. 부동산 거품이 가득한 한국경제에서 여전히 부동산 불패론을 외치는 언론과 전문가들이 넘치고 있는 모습이 초현실적이다. 거품이 무너질 때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정책이 시급하다.
중국이 부동산 광풍 잡기 위해 꺼내든 최후의 카드 3조홍선
시진핑 주석이 2020년 8월에 이른바 3조홍선(3條紅線) 정책을 발표했다. 3가지 빨간 줄을 쳤다는 의미인데, 첫째는 부동산 기업의 자산대비 부채비율이 70%를 넘지 않도록 규제했다. 둘째는 기업의 자본대비 부채 비율을 100% 이내로 규제했다. 셋째로 유동성 위기를 막기 위해 단기부채 대비 현금 비율이 100%가 넘도록 했다.
사실 이러한 규제가 나오기 이전 중국 정부는 부동산 거품을 억제하기 위해 수많은 경고를 했다. 이미 2017년 시진핑 주석은 주택은 거주의 수단이지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고 천명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경제 당국은 갖가지 규제조치를 이어갔다. 그래도 꺾이지 않는 부동산 거품에 대해 3조홍선은 최후의 일격이라는 의미가 있다.
즉시 방만한 투기의 주범이었던 중국의 거대 부동산 개발 회사들이 타격을 입었다. 헝다와 비구이위안을 비롯한 대형 부동산 개발회사들이 무너졌다. 이러한 중국의 부동산 거품 붕괴로 인한 후폭풍이 거세다. 2024년 4월 현재 중국의 주택가격 상승률은 33개월 연속 떨어졌고, 거래량 역시 34개월 연속 줄어들었다. 주택가격은 2021년 7월의 고점 대비 11.3% 하락했다. 이어진 중국의 경제 위기는 중국 정부가 자초한 것이고. 최근에는 안정적 관리를 위해 다시 부동산 개발 회사를 선별해서 지원책을 발표하고 있는 중이다.
시진핑의 ‘3조홍선’을 한국 부동산에 적용한다면
중국은 왜 위험을 무릅쓰고 극약 처방을 했을까?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큰 교훈이 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부동산 거품의 해악은 크다. 조기에 종식시키기 못하면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시간이 흐를수록 폐해는 크다. 부동산 광풍으로 인해 부동산업이나 건설업의 비중이 커지고 이에 따라 거기에 종사하는 인력이 늘어나게 되는데, 거품이 커질수록 이 규모가 커지기 때문에 거품이 꺼질 때의 피해도 따라서 커지게 된다.
한국이 중국처럼 3조홍선 정책을 적용했다고 가정해 보자. 살아남을 부동산 회사나 건설회사는 얼마나 될까? 이런 기준으로 보면 현재 한국의 부동산 거품은 한중일 3국 중 최악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나 한국은행의 정책 당국자 어느 누구 하나 나서 위험을 경고하는 사람이 없다. 만약 중국과 같은 정책을 펴서 위기가 오면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을 알기에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관료들은 거품이 커지는 것을 방조하고 있다. 그래도 국가를 위하는 책임있는 당국자라면 거품을 경고해야 하지만 조용히 있다. 한국의 언론과 관료들은 미필적 고의로 거품을 조장하고 있고, 그 결과 한국 경제는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이제 거품 붕괴와 부동산 폭락을 대비해야 한다. 더 이상 거품이 커지지 않도록 하고, 부동산업과 건설업, 주택담보대출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지금 주택담보대출을 늘이는 금융회사는 상응하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부동산 PF 부실을 방치하고 스트레스 DSR 규제를 연기하며 거품이 커지는 것을 조장하는 금융위원회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금융시장 최후의 보루인 한국은행이 더 선제적으로 정책을 펼 때다. 무너질 서민경제를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홍종학 전 국회의원 · 중소벤처부 장관 시민언론 민들레 2024.07.29.
이진숙 ‘빵집’ 청문회를 보는 서글픔
한겨레에 ‘이진숙 기자’의 이름이 처음 등장한 건 1991년 5월25일치 13면에 실린 ‘“홍콩신문 기사 편파적 인용” 문화방송노조 반론 방영요구 등 반발’ 기사에서였다.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명지대 학생 강경대가 숨지고 젊은이들의 분신이 잇달던 그해, 정권은 유서대필 조작으로 정국을 돌파하려 했다. 문화방송(MBC)은 당시 이 논란을 다룬 꼭지에 이어 연세대 앞 철길에서 분신한 이정순을 아무도 돕지 않았다는 외신 보도를 배치했다. 데스크에 왜곡편파 보도라며 항의했던 사회부 이진숙 기자는 며칠 뒤 언론노보에 자신이 본 현장 상황을 자세히 기고했다. 정권에 의해 유서대필범으로 몰린 강기훈이 무죄를 선언받는 데는 24년이 걸렸지만, 이진숙과 시사저널·언론노보의 상세한 사진보도 덕에 이 논란은 더 이상 번질 수 없었다.
지난주 이례적으로 사흘간 계속된 그의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후보 청문회를 지켜보며 마음이 착잡했다. 한때 열혈 노조활동을 했던 이의 전향을 뭐라 할 생각은 없다. 그런 사람이 한둘도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쓴 법인카드 내역마저 “사적으로 단 1만원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는 말만 반복할 뿐 일체의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모습은 너무나 구차하고 비루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과장하거나 꼬투리 잡아 상대편을 쫓아내는 보복의 악순환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가 주말에 회사 관용차를 이용해 골프를 치거나 자택 부근에서 법인카드를 과다하게 썼다는 의혹 또한 회사 사업과 관련성을 따져 가려 제기할 문제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는 도를 넘었다. 유일하게 내겠다던 대전 성심당 빵집 포인트 내역조차 “빵을 구입한 사람이 개인정보가 드러난다며 반대한다”며 제출을 거부했다. 이 후보자는 희화화하지 말라고 했지만 ‘빵집 청문회’ 상황을 자초한 건 본인이다. 자신의 안위와 관계없이 본 것을 말하던 33년 전의 이진숙은 없다. 상식적인 이들 눈에는 최소한의 품위도 없는 뻔뻔함과 권력욕만 보일 뿐이다.
나아가 그는 5·18 민주화운동을 극도로 폄훼한 지인의 에스엔에스에 ‘좋아요’를 누른 이유를 묻자 ‘좋아요’ 연좌제, 지인 연좌제 아니냐며 비아냥대다 “앞으로는 특히 제가 공직에 임명된다면 소셜미디어에서 ‘좋아요’ 표시를 하는 것에 조금 더, 손가락 운동에 조금 더 신경을 쓰겠다”고 답했다. 일본군 ‘위안부’가 강제냐, 자발이냐를 묻는 질문엔 ‘논쟁적 사안’ ‘개별적 사안’이라며 답을 거부했다. “우리 괴물은 되지 말자”던 영화 대사가 떠올랐던 게 나뿐일까.
한때 과격한 운동권 투사였다가 180도 돌아선 이 정권의 일부 고위층도 청문회에서 이런 인식을 감히 대놓고 드러내진 않았다.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서글프고 섬뜩하다. 문화방송을 나와 정치권 언저리를 돌면서 했던 여러 인터뷰에서 ‘균형 보도’의 필요성을 주장하던 이 후보자가 방송정책을 좌우하게 되면, 5·18을 이리 조롱하는 의견도 균형 보도라며 방송사들이 내세우게 될지 모를 일이다. 민주화 역사도, 사회적 참사도 정쟁 대상으로 상대화시켜버리는 공영방송의 재등장 우려는 그저 기우로만 볼 수 없다. 최근 한국방송(KBS)은 생중계를 하던 자사 기자의 노트북에 붙은 세월호 노란 리본을 다시보기 영상에서 모자이크 처리하고 유튜브에선 아예 꼭지를 삭제했다. 사장이 바뀐 뒤 한국방송은 세월호 10주년 특집 다큐도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제작을 중단한 터다.
영국 비비시(BBC)의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당시 보도는 공영방송의 의미에 대해 지금도 시사점을 준다. 비비시가 영국군을 ‘아군’이 아니라 ‘영국군’이라 보도하자 마거릿 대처 총리가 “포클랜드로 아들을 보낸 영국 어머니의 눈물을 생각하라”며 격노했다. 이에 대한 비비시의 응수는 “아르헨티나의 어머니들도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공직자, 특히 방송정책 수장으로서 ‘바닥’을 드러낸 이 후보자를 윤석열 대통령은 임명 강행할 테고 야당은 다시 탄핵소추로 맞설 것이다. 대통령의 방송4법 거부권 행사도 기정사실로 되고 있다. 캄캄한 밤, 분노와 절망만으로 길을 찾을 순 없다. 접점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국민의힘 신동욱 의원은 야당의 방송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무제한 토론에 나서면서도 지금 법이 여권에 유리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정권 교체에 따라 기자나 피디들이 쫓겨나는 일이 다신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비아냥, 고성이 난무한 이번 청문회에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을 불러 임명동의제의 의미와 실태 등을 듣고 차분한 질의로 이 후보자의 모순과 정책적 허점을 드러낸 때였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냈던 중재안의 모멘텀을 살릴 방안을 여야가 모색하길 간절히 바란다.
김영희 | 편집인 한겨레 2024.07.29.
지연된 종말의 시간
당혹스럽다. 40년 만에 ‘엠제트(MZ) 세대’ 취급을 벗어나 ‘영(young)한 척’을 할 수 있는 중년 아재가 되나 했더니, 과거의 ‘영포티’들은 이제 ‘영피프티’가 되어서 계속 젊은이로 살겠다고 한다. 나는 어린 시절 연예계의 ‘어른’들이었던 트로트 사천왕의 당시 연령과 근접한 나이가 됐지만, 여전히 많은 자리에서 ‘어린놈’ 취급을 받고 있다. 최근 집권당의 전당대회에서는 40대 중반의 인사가 청년 계층을 대변하는 최고위원으로 당선됐다. 얼마 전까지 30대가 당대표였던 정당에서 말이다.
오늘날 젊음의 종말은 지연되고 있다. 청년 기준의 상한선은 사회 주류 세대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한없이 높아지고 있다. 온전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동경하지만 가능하면 미루고 싶은 무언가이다. 그래서 나이의 권력을 누리면서도 젊음의 특권 또한 포기하지 않으려는 문화적 전략이 힘을 얻는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도 막상 중년 취급을 받게 되면 심히 복잡한 기분이 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바로 앞의 세대가 언제까지나 계속 젊은이로 살겠다고 하니 우리는 대체 언제쯤이나 어른 대접을 받게 될지 조바심이 들 뿐이다.
‘욕망하지만 미루어져야 할 종말’이라는 주제는 종교적 세계관 속에서도 종종 등장한다. 14만4천명의 신자가 모이면 세상의 끝이 오고 새 하늘 새 땅이 열린다고 믿는 종교단체가 있다. 이것은 신약성서의 계시록에 등장하는, 종말의 때에 천사들에 의해 이마에 도장이 찍힐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확대 해석한 것이다. 이것은 이 교단에서 창작한 교리는 아니고, 20세기 이후 한국에서 등장한 몇몇 기독교 계열 신종교들이 공유하는 믿음이다. 문제는 이 교단이 공격적인 확장 전략을 편 결과, 정말로 그 이상의 신자를 모아버렸다는 것이다.
최근 필자의 수업을 듣는 대학원생이 교단 이탈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약속된 수의 사람들이 모였음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실망해서 교단을 떠난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일부는 교단에서 예언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은근슬쩍 교리를 바꿔버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14만4천명이 가입자 전체를 말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다가, 어느새 일정한 자격을 갖추고 교리 시험에 합격한 이들만을 가리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종교적 종말론에는 특정한 시점을 설정해놓고 그때가 오면 세상이 뒤바뀔 것이라고 하는 유형도 있지만, 인간의 행위가 그 시간을 앞당길 수 있다는 믿음도 있다. 그런 ‘시간의 가속’에는 신자를 모으는 것만이 아니라, 특정한 주술이나 의례를 수행하는 등 세계가 끝날 때 ‘일어날’ 것으로 예언된 사건들을 적극적으로 ‘일으키는’ 행위 전반이 포함된다. 인간의 참여가 종말의 때를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파국을 피하기 위해 그것을 미루려는 행위도 가능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현실의 세계가 부조리와 고통으로 경험될 때, 인간은 세속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에도 종말론적 사유를 적용하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한국 사회의 많은 문제가 현재의 집권 세력 때문에 일어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자. 그들에게 이 체제의 ‘종말’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대통령 임기 종결과 함께 자연히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이런 수준의 ‘시한부 종말’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3년은 너무 길다”고 외치며 시간을 가속하려 한다. 모든 진영에서 인기 정치인들에 대한 메시아니즘적인 열광이 일어난다. 그들이 현 정권의 종말 이후 새로운 체제에 대한 구체적인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세상이 끝나야 한다는 사실 자체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속적 종말론의 징후는 신비한 예언서 속이 아니라 가까운 역사 속에 있다. 그 징후란 자격 없는 실세의 국정 개입, 국가의 법적 체계를 파괴하며 사익을 추구하려고 하는 측근 세력, 시민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통치자 등이다. 이런 사태들은 시민 대다수가 이 시간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바라게 하는 조건들이지만, 2016년과 같은 종말론적 사건은 지연되고 있다. 현재의 정권이 직전에 탄핵당한 정권보다 월등히 나아서가 아니라, 10년 사이에 두번이나 급변이 일어난다면 국가의 정상적인 질서가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현실적 우려 때문이다.
임박한 종말이 지연되면 누군가는 이익을 본다. 어느 세대는 늙지 않고, 어떤 종교는 지속되며, 어떤 정권에는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어떤 계기로든 종언을 향한 압력이 밀려들기 시작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한승훈 |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종교학) 한겨레 2024.07.29.
삼성전자 파업과 정태인 선생의 교훈
삼성전자 노조가 장기 파업 중이다. 창사 55년 만에 발생한 ‘최초의 파업’이 이렇게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처음부터 짐작한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을 것이다. 검색엔진 서비스가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을 보도하는 기사에 내 이름이 언급됐다고 알려준다. 검색해 찾아본 기사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이날 연단에 오른 이현국 전삼노(전국삼성전자노조) 부위원장은 뜻밖의 인물을 거론했다. 평생을 노동문제 상담가로 살아온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였다. 이현국 부위원장은 ‘노동3권을 공부하면서 왜 헌법이 주위 분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파업까지 허락했는지 궁금했는데, 하종강 교수께서 답을 주셨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 앉아 있는 수많은 급여 소득자에게 한 달에 50만원의 추가금이 지급된다면 그 돈이 어디로 갈까요? 결국 소비와 지출을 통해 사회에 환원되게 돼 있습니다. 내가 좀 더 나은 보상을 받음으로써 우리 지역 경제를 윤택하게 합니다. 이것이 노동운동을 하는 당연한 이유입니다.’”(‘시사인’ 875호, 이오성 기자, 2024년 6월24일)
일부 언론에서는 삼성전자 노조 집회에 “온갖 좌파 언론 매체들이 총출동해 ‘응원 취재’를 한 것”과 민주노총 인력이 행사 진행을 도운 것과 노조 간부가 집회 도중 하종강 교수의 이름을 거론한 사실을 두고 “온건 노선을 지향하는 듯”했던 전삼노가 “감추고 있던 발톱을 드러냈다”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보장된 노동자 파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렇게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삼성전자 노동자들을 교육하면서 내가 정확하게 그렇게 표현했는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자세한 기억이 없다. 다만 비슷한 설명을 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사실 그 내용은 2년 전 폐암으로 작고한 경제학자 정태인 선생이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의 경제 이론을 설명해주는 강의에서 내가 배운 것을 조금 더 쉽게 풀어 번안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우리나라 경제를 거의 초토화하던 무렵, 우리나라 17대 대선에서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부터 “전 국민의 임금을 동결해야 한다”는 정책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더욱이 우리 세대는 어릴 때부터 “절약이 미덕”이라고 배워왔고 “독일 사람들은 성냥개비 하나를 쓸 때도 사람이 몇명 이상 모이지 않으면 켜지 않았다” 따위의 교훈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랐다. 경제 위기를 맞아 온 국민이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고, 노동자들은 목소리를 낮춰 임금 인상을 자제하는 등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극히 당연한 논리처럼 횡행하던 무렵이었다.
폴 크루그먼의 여러 주장 중에서 “경제가 어려운 때일수록 노동자와 서민에 대한 집중적 지원이 위기를 벗어나는 지름길이 된다. 노동자와 서민의 경제 수준을 높이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은 일일 뿐 아니라, 부자 감세보다 훨씬 더 경기 부양에 효과적이다”라는 내용이 눈에 번쩍 뜨일 수밖에 없었다.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에서 정태인 선생은 경제 분야 최고 인기 강사 중 한 사람이었다. 그의 명쾌한 강의를 나의 부족한 두뇌 능력에 의지해 기억나는 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부유층은 돈을 쓰고 싶을 만큼 쓰고도 여유 자금이 남은 사람들이어서 감세로 소득이 조금 올랐다고 해서 그 소득만큼 더 소비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이나 여러분의 부모님 같은 노동자와 서민들은 돈을 쓸 곳이 많이 있지만 없어서 못 쓰고 있는 사람들이어서 서민들에게 들어간 돈은 바로 시장으로 풀려 고스란히 경제 성장의 윤활유가 됩니다.”
내가 삼성전자 노동자들에게 했다는 노동운동의 정당성에 대한 설명은 결국 정태인 선생의 흉내를 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태인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그의 논문과 글을 모아 만든 책이 2주기를 가까이 앞두고 세권 출판됐다. 며칠 전 ‘고 정태인 추모 기념 글 모음집 온라인 북토크 ‘정태인 함께 읽기’’ 행사가 열렸다. 그의 칼럼을 모은 책 ‘신랄하지만 따뜻하게’ 1, 2권과 논문을 중심으로 편집한 ‘정태인의 미래 키워드’를 주제로 연구자, 정치인, 활동가들이 모여 온라인으로 대화를 나눴다. 목이 잠겨 말을 잇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가끔 나와 언쟁을 벌일 때면 “우리가 대학 다닐 때, 환갑 넘은 교수들 중에서 맞는 말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잖아. 형이 지금 그 나이가 된 거야. 형 생각이 틀린 거라고…”라며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해 나를 깨우치곤 했던 정태인 선생이 그립다.
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한겨레 2024.07.30.
탄핵과 협치
거의 모든 한국의 언론에 최근 자주 등장하는 단어 가운데 탄핵이 있다. 특히 대통령 탄핵을 한번 경험한 까닭에 이 단어가 담고 있는 정치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누구나 감지할 수 있다.
대통령과 행정부에 권력 집중이 두드러지고 권위주의적 유산이 남아 있는 브라질에서도 1992년 콜로르 대통령에 이어 24년 만에 지우마 대통령이 탄핵소추되었다. 물론 극심한 사회적 갈등이 이를 동반했다. 이런 브라질과 비교해 보아도 더 짧은 기간에 다시 대통령이 탄핵당한다면 한국 사회가 겪을 혼란의 정도는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2017년 12월 탄핵당한 박근혜 대통령과 2016년 여름 탄핵당한 브라질 지우마 대통령의 탄핵은 둘 다 여성 대통령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당시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탄핵이 이뤄진 정치·사회적 배경은 사뭇 다르다. 전자는 보수진영, 후자는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대통령이었다.
대통령 탄핵은 한 나라의 정치·사회가 심하게 양분되어 갈등이 극단적으로 치달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맞은 탄핵위기에 자진 사임한 닉슨 대통령처럼, 탄핵에 이르지 않고 해결되는 일도 있다. 그러나 이는 권력의 속성상 오히려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 탄핵의 요건과 절차는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인 절차에 따른 대통령 징계나 파면은 상당히 어려운 까닭에 한국도 국회와 헌법재판소가 관여하는, 고도의 법적이자 정치적인 절차를 거치게 되어 있다.
총리를 불신임할 수 있는 내각책임제와 달리 대통령중심제를 택한 대부분의 나라가 탄핵 조항을 헌법에 명시한 이유는 권력이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정치적 상황이 낳을 수 있는 위험에 대한 안전장치로서 탄핵제도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표적물을 쏘아(彈) 잘라낸다(劾)’는 탄핵의 뜻도 그렇지만, 탄핵의 라틴어 어원인 ‘족쇄를 채운다(impedicare)’에서 더 잘 드러난다.
제왕적인 대통령이라는 표현처럼 권력의 과도한 집중이 낳은 폐해를 이미 수차례 경험하고 한 차례 대통령 탄핵도 있었지만, 한국적 상황에서는 내각책임제가 더 정치적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이유로 대통령중심제를 택했다. 4·19 이후 들어선 제2공화국의 실패를 한 예로 든다. 그러나 이는 60여년 전의 일인 데다 시행 기간도 너무 짧아 오늘날 내각책임제의 부적합성을 입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런 국회서 권력구조 개혁 의문
그러나 2017년의 탄핵정국을 둘러싼 전 사회적 갈등 그리고 지금 다시 일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논의는 순전히 대통령의 자질 문제인지, 아니면 대통령중심제가 본질적으로 안고 있는 권력구조의 문제인지를 두고 논란이 있다. 그래서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위한 대안으로 내각책임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지난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이로 신승했지만, 승자독식을 가능하게 만든 대통령중심제의 문제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대통령중심제의 행정부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여소야대의 22대 국회가 다시 등장한 까닭에 행정부와 입법부 사이의 갈등으로 인한 정치사회의 파열음은 이제 거의 일상화되었다. 입법부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이 이미 15차례나 행사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앞으로도 계속 반복된다면 과연 정상적인 정치가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이 따라서 제기된다.
권력의 형태와 속성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연구했던 계몽기의 사상가 몽테스키외는 ‘권력을 손에 쥔 모든 인간은 이의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이를 악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권력의 상호견제를 보장할 수 있는, 입법과 행정 그리고 사법의 삼권분립을 <법의 정신>(1748)에서 강조했다. 입헌군주제와 귀족의 역할을 중시했던 그의 사상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권력에는 기본적으로 한계가 설정되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그 후 공화정치의 기본 정신이 되었다.
이런 정신이 대한민국의 헌법에도 명시되었건만 1972년의 유신체제는 대통령의 권력이 행정부를 넘어 의회와 사법의 영역까지도 완전히 점령한 흑역사를 기록했다. 대통령 직선제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87년 체제’ 아래서 청와대로 상징되는 권력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고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사태도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대한민국 정치 1번지가 된 ‘용산’이 정치 실종의 원인 제공자라는 많은 비판을 받으면서 탄핵이라는 단어가 다시 뉴스를 장식하게 되었다.
‘87년 체제’의 산물인 현행 헌법도 그동안 다양해진 생활세계의 변화에 따라 일정한 정도의 손질을 가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특히 시대 변화에 따른 권력구조의 개편과 관련, 현재의 대통령 5년 단임제 대신 미국처럼 4년 중임제를 선호하는 개헌 논의도 많다.
모든 제도에는 장단점이 있다. 미국과 서유럽에서 오랫동안 운영되고 있는 권력구조가 한국 사회에서 그대로 통할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여기에 참여하는 사회 성원이 그 시대의 과제를 능동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식과 의지, 그리고 능력에 달려 있다.
그러나 대통령 탄핵소추 청원을 둘러싼 국회 청문회의 많은 장면이 이런 의식과 의지, 그리고 능력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청문회 내내 ‘상대방이 말할 때 끼어들지 말라’는 위원장의 주의 경고의 목소리가 고함과 소란 속에 파묻히는데도 ‘숙의(熟議)민주주의’까지 이야기하는, 이상한 나라의 국회다. 이런 국회가 앞으로 과연 권력구조의 합리적인 개선이나 개혁을 추진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탄핵과 협치 사이, 이젠 결단 필요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한국의 정치권에서 통치 대신에 여야를 막론하고 ‘협치(協治)’라는 단어를 즐겨 쓴다. 국어사전에 아직 없는 이 단어의 뜻을 단순하게 ‘협력하는 정치’라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 같지만 여야가 밖으로 내세우는 명분용의 어휘로 이미 굳어진 것 같다.
또 이 협치를 국가가 여러 업무를 관리하기 위해 정치, 경제 및 행정의 권한을 행사하는 일과 시민과 여러 집단이 자신들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면서 서로의 견해 차이를 조정할 수 있는 기구와 과정을 포함하는 제도를 의미하는 ‘거버넌스(Governance)’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다.
우리는 권력과 통치, 그리고 지배와 같은 단어를 자주 사용하지만 보통 이를 구별해 쓰지는 않는다. 이 문제와 관련해 막스 베버는 <경제와 사회>(1921)에서 권력을 ‘하나의 사회적 관계 안에서 저항에 맞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모든 기회’로 비록 형체는 없지만, 역동적인 것으로 보았다. 반대로 지배는 ‘규정된 내용에 사람들이 복종하게 하는 기회’이며, 권력과 달리 지속적이라고 규정했다. 이와 달리 그는 통치를 넓게는 정치, 좁게는 행정이나 관료제도와 거의 동의어로 이해했다.
이런 권력이나 지배 또는 통치든지, 아니면 지금 흔히 이야기되는 협치든지, 더 나아가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거버넌스든지 문제의 핵심은 누가 어떻게 오늘날 정치생활에서 나타나는 복잡한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이것의 열쇠는 결국 깨어 있는 국민이 쥘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정신이 바로 선다면 탄핵이 협치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협치를 추동시킬 수 있다. 면피용의 협치를 이야기하는 대신에 진정성이 담긴 탄핵 논의는 무관심이나 혐오의 대상이 된 정치에 오히려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두 감정 사이에서 방황하면서도 이 둘을 통합하고 싶어 하지만, 이 둘을 통합할 수 없고, 그를 괴롭히는 회의와 불안만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인간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다”는 괴테의 비극 <클라비고>(1774)에 나오는 대사처럼 탄핵과 협치 사이에서 이제 어떤 결단이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경향 2024.07.30.
재벌총수는 하고 싶은 거 다 할 것이다
얼마 전부터 재벌의 분할·합병이 다시 시작되었다. 계열사를 떼고 붙이는 것 말이다.
두산그룹은 3단계 떼고 붙이기다. 먼저 두산에너빌리티를 사업회사(존속법인)와 신설 투자법인으로 인적분할하고, 신설 투자법인이 두산밥캣의 지분을 소유한다. 그리고 두산로보틱스는 신설 투자법인과 합병한다. 마지막으로 두산로보틱스는 두산밥캣 주주와 포괄적 주식 교환을 통해 두산밥캣을 완전자회사로 만든다.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이 SK E&S를 흡수합병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SK이노베이션이 지분 89.5%를 소유하고 있는 SK온은 SK이노베이션의 완전자회사인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 SK엔텀을 각각 흡수합병하기로 결정했다.
일반인들은 이해조차 힘든 이러한 계열사 분할·합병은 누군가에겐 이득을, 누군가에겐 손해를 입힌다. 일반주주들이 손해를 보고 총수가 이득을 본 경우가 많았다. 결론부터 말하자. 앞으로 현 정권의 남은 기간 동안 총수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다할 것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일반주주들이 다칠 것이다.
우선 재벌은 현 정권의 남은 기간이 총수의 사법 리스크가 가장 작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총수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것은 사익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상장회사에서 지배주주가 사익을 추구하면 당연히 법적 리스크가 따른다.
그중 총수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검찰이다. 검찰의 배임·횡령 수사 말이다. 그런데 한동훈이 국민의힘 대표가 되면서 정국은 묘해졌다. 정권 후반기 검찰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 대표 사이의 힘겨루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정치 관련 수사의 블랙홀에 빠져 재벌 수사에 역량을 투입할 조건이 안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배임죄 폐지까지 언급한 상황에서 총수에 대한 배임죄 적용에도 발목이 잡혀버렸다. 이래저래 검찰의 우선순위에서 재벌 수사는 밀릴 거라 볼 수 있다.
둘째, 재벌은 현 정부가 지배구조 개혁을 위한 법 개정에 진정성이 없고 자기편이라는 확신을 굳힌 것 같다. 예를 들어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고려하도록 할 경우 계열사 이사회에서 분할·합병안 통과가 어려워질 수 있다. 분할·합병이야말로 총수와 일반주주의 이해가 충돌하는 사안인데 이사들이 일방적으로 총수의 편을 들고 일반주주를 무시하다가 법적으로 큰코다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즉, 총수와 재벌전략가들은 현 정권의 남은 기간이 법 개정 없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판단에는 근거가 있어 보인다. 얼마 전 이복현 금감원장이 직접 상법 개정을 언급했으나 도무지 추진력이 생기지 않고 심지어 여당 의원이 금감원장의 월권을 언급했다. 정권실세가 직접 언급한 것이 이러기도 쉽지는 않다. 그건 우리가 모르는 상법 개정을 반대하는 강한 힘이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또, 얼마 전 발표한 세법개정안을 보면 총수는 최대 33% 상속세 절감 효과를 본다. 여기에 금투세 폐지, 가업상속공제 완화까지 합쳐지면 과거 어느 정부에서도 하지 않았던 총수 맞춤형 감세 패키지이다. 재벌 입장에서는 이 골든타임을 놓칠 수 없다.
셋째, 재벌은 지금이 윤 대통령에게 뭔가를 받아낼 적기라 보는 것 같다. 우리는 부산 떡볶이 먹방을 기억한다.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 이후 부산 민심을 달랜다고 윤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을 병풍 삼아 부산의 한 시장에서 떡볶이, 튀김 등을 사먹었다. 총수들이 직접 엑스포 유치에 적극 나섰을 뿐 아니라 실패 이후의 뒤처리까지 도와줬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다만 재벌들이 언제 대가를 요구할 것인가의 시기 문제만 있을 뿐. 한 국가의 서슬 퍼런 최고 권력자에게 언제 대가를 요구할 수 있을까? 그가 약해질 때다. 낮은 지지율, 여당 내 권력지형, 김건희 여사·채 상병 수사 등 윤 대통령 상황은 어느 하나 녹록지 않다. 정황상 지금이 재벌이 윤 대통령에게 대가를 받아가기 좋고, 어쩌면 받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분할·합병을 할 수 있는 건 적어도 정권이 비토를 놓지 않는다는 자신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재벌의 정보력과 정세판단력은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벌은 현 정권의 남은 임기를 총수를 위한 자유시간으로 규정했다. 아마 유일한 변수로 생각하는 것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지배구조개선에 대한 입장일 테다. 두 사람은 알맹이 없는 밸류업에 뿔난 주주들을 금투세 폐지로 달래려는 윤 대통령과 다르길 바랄 뿐이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경향 2024.07.30.
복기의 시간, 1/N의 책임
뉴스를 접할 때마다 기시감이 든다. 김규현 변호사가 공개한 카카오톡 대화나 통화 내용은, 2016년 이화여대 학내 사건으로 촉발된 ‘정유라 특혜 의혹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2016년 여름, 이화여대 학생들의 교내 시위 출발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최경희 당시 총장이 경찰을 교내로 불러들여 강제 해산을 시도하면서 분노한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여야 국회의원실과 유관기관에 2천건이 넘는 민원과 감사요구서를 제출했는데, 그중에 정유라에 대한 특혜 의혹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해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가 공론화되었고, 결국 정유라에게 제공된 ‘삼성의 세마리 말’은 ‘최순실 국정농단’의 증거이자 뇌물로 대법원에서 최종 인정되었다. 대학생 정유라에 대한 출결과 학점 특혜 의혹이 ‘삼성의 세마리 말’에 이르기까지, 무관한 듯 보였던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연결되었고 서로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의 다양한 증언과 제보가 뒤섞였다.
지금 김규현 변호사가 공개한 카톡방을 둘러싼 사태 전개도 비슷해 보인다. 참여자 각각에 대한 새로운 의혹들이 꼬리를 물고 있고 관련 의혹을 제보하거나 고발하는 새로운 인물들이 계속 등장한다. 이 사태의 결말이 어떻게 나올지, 얼마나 긴 과정을 거쳐 종착점에 이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는 분명해 보인다. 열차는 출발했고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군에서, 경찰에서, 행정 부서나 기관에서, 민간에서, 서로 무관한 듯 보이지만 엉킨 실타래의 한끝씩 듣고 본 사람들이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기 전에 몇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은 그 기회를 번번이 걷어찼다. 2016년 여름부터 촉발된 그 사태가 기실 2014년 ‘세월호 사건’에서 시작해 2015년 겨울 ‘정윤회 비선 실세 의혹’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잘못된 대응이 누적된 결과였던 것처럼, 지금의 사태도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들에게 사태의 책임을 묻는 것으로 충분할까? 76만5천명의 정부 공무원들이 657조원의 예산을 들여 당장 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은데, 이런 상태에서 일이 제대로 굴러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지 않았더라면 국회가 마땅히 처리해야 했을 중대 사안들도, 앞으로 계속 제기될 의혹을 푸느라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다.
기왕 사태가 이렇게까지 온 건 어쩔 수 없다 치자. 우리가 왜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에 대해 각자 선 자리에서 함께 복기해야 할 시간이다. 볼테르의 말대로, 역사가 스스로 반복되는 게 아니라 인간이 반복을 하는 것이다. 그가 최소한 법적으로는 아무런 하자 없이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왜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국정운영 능력이 없는 대통령에게 그 자리를 허락하게 되었을까?
‘지난 대선에서 그를 찍은 사람들이 문제’라거나 ‘내가 찍기는 했지만 저럴 줄은 몰랐다’는 식의 답은, 이런 불행한 사태를 또다시 경험하지 않도록 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지난 대선에서 그를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이 다수였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왜 소수가 되었는지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저럴 줄은 몰랐다’는 사람은 왜 몰랐는지에 대해 함께 복기해봐야 한다. 우리가 가진 어떤 시스템이, 제도가, 혹은 문화가 ‘저럴 줄 몰랐던 사람’을 두번이나 선택하게 만든 건 아닌지 말이다. 집권당 정치인들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대한민국의 책임 있는 양대 정당 중 한 정당이 왜 두번이나 실패한 대통령 후보를 내놓게 되었는지, 혹은 집권 이후 실패로 가는 길을 견제하지 못했는지에 대해 이제는 공론화를 해볼 시간이다. 당시 윤석열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어준 지금의 제1야당이자 직전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책임은 말할 나위도 없겠다.
지난번 우리는 너무 쉽게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검사들이 국정농단 책임자들을 찾아내 처벌하도록 막대한 권한을 위임해주고 새로 들어선 정부엔 정체 모를 ‘적폐청산’의 과제를 던져주면 사태가 해결될 줄 알았던 것이, 지금 두번째 불행을 가져온 게 아닐까?
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 한겨레 2024.07.31.
국가안보 망각하는 ‘대통령 휴대폰’의 비밀
지난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윤석열 대통령의 개인 휴대폰에 대한 통신영장을 법원에 신청했지만 기각됐다고 밝혔다. 채 상병 순직 사건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는 윤 대통령은 그 시점에 개인 휴대폰으로 국방부 장·차관 및 국방비서관과 여러 차례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공수처의 통신영장 신청은 바로 이 부분을 규명하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 등과 개인 전화로 통화한 건, 또 다른 측면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있다. 대통령이 비화(秘話) 기능 없는 개인 전화를 이렇게 마구 사용한 건 국가안보에 얼마나 위협적인지, 용산 대통령실의 경호·보안 시스템은 얼마나 허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구나 윤 대통령과 통화할 때 이종섭 장관은 우즈베키스탄 출장 중이었다. 미국 같으면 당장 의회에서 청문회를 열 만한 사안이다. 최근 미국 정부가 한국계 북한 전문가 수미 테리를 기소한 걸 두고 “문재인 정부가 아마추어처럼 해서 그렇다”고 주장했던 현 정권은 그보다 훨씬 아마추어적으로 대통령실의 보안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윤 대통령의 개인 폰 사용은 대통령으로서 책임감과 소명의식 부재를 시사한다. 대통령실의 모든 비서관급 이상 직원에겐 음성을 암호화하는 비화 기능이 탑재된 공용 휴대폰을 지급한다. 비화 전화기 제작은 국정원이 하지만, 관리·감독은 경호처가 맡는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시절 웨스트윙(집무동)에선 모든 직원의 개인 폰 사용을 금지했다. 우리는 그 정도까지 아니지만, 대통령 주재 회의에 참석하는 비서관들은 휴대폰을 문밖에 놓고 들어가야 한다. 휴대폰을 원격 조종해 회의 내용을 녹음하거나 촬영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
문재인 대통령 시절 제1부속실장을 지낸 조한기씨는 “문 대통령이 대통령 되기 전에 쓰던 휴대폰을 갖고는 있었지만, 재임 중에 사용하는 걸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조 전 실장은 “집무실이나 관저에서 업무용 통화를 할 때는 항상 비화기 달린 유선 전화를 썼고, 외부에서 휴대폰을 쓸 때는 공용 폰을 사용하셨다. 부속실 직원들이 밤 10시까지 관저에서 대통령을 보좌했는데, 그 이후엔 몰라도 그 전까지는 대통령이 개인 폰을 쓰는 걸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재임 시절에 통화한 적이 있는 외부 인사는 “대통령 전화를 몇 번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발신전화 표시 제한’이란 문구가 떴다. 공용 전화라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갈수록 심해지는 휴대폰 의존에서 대통령만 자유롭긴 어렵다. 미국에서도 오바마와 트럼프 대통령은 개인 전화를 쓰지 말라는 백악관 내부 지침에도 끝내 블랙베리와 아이폰을 사용했다. 그러나 오바마의 블랙베리는 카메라·마이크·인터넷 등 많은 기능이 제한됐고 매달 백악관 통신팀의 해킹 검사를 받았다. 두 대의 개인 폰을 쓴 트럼프는 한 대는 트위터용으로, 다른 한 대는 전화용으로 사용했는데, 보안 문제로 통신팀과 자주 마찰을 빚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트럼프보다도 개인 폰 사용에 더 몰두하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지금 용산 분위기로는 경호처나 국정원의 누구도 대통령에게 보안 문제를 지적하기 어려울 것이란 점이다. 국정원장을 지낸 박지원 의원은 “경호처가 대통령의 개인 전화를 제대로 검사하고 관리하는지 알려진 게 없다. 우즈베키스탄의 국방부 장관과 개인 폰으로 통화하는 건, 미국·러시아·중국·북한에 도청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공수처가) 전화 내용을 궁금해하는데, 남북관계가 좋으면 북한에 물어보는 게 더 빠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게 단순한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다.
지난해 4월 미국 정보기관의 용산 대통령실 도·감청이 미국 언론에 보도돼 논란이 일었다. 그때 뉴욕타임스는 용산 대통령실의 내부 대화를 담은 비밀 보고서가 ‘신호정보에 기반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휴대폰 감청일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그렇게 당하고도 대통령이 개인 폰을 무시로 사용할 정도로 용산의 보안 체계는 엉망이다.
법원이 대통령 개인 전화의 영장을 기각한 건 나름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채 상병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대통령실의 무너진 보안 의식과 책임감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한번 대통령의 휴대폰을 낱낱이 들여다보고 싶다. 대통령의 위태로운 전화가 외국에 나간 국방부 장관 한 사람뿐이겠는가. 해킹을 당한 흔적은 없는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살피는 게 국익엔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지금보다 더 휴대폰에 의존할 미래의 대통령들을 위해서도 그렇다.
박찬수 | 대기자 한겨레 2024.07.31.
한동훈의 돌이킬 수 없는 길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당권→대선 후보→대권’이란 3단계 대선 프로젝트의 첫 관문을 통과했다. ‘한딸’로 불리는 팬덤도 생겼다. 특히 용산과 친윤의 배신자 프레임 공격을 뚫고 득표율 63%란 압도적 승리를 거둔 의미는 크다. 당원과 보수 지지층에서도 윤석열 대통령과 한 대표는 분리됐다. 하지만 대권가도가 장밋빛 전망은 아니다.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를 상대하러 가기 전에, 그의 앞에 서 있는 윤 대통령을 넘어야 한다.
한 대표의 전당대회 메시지를 압축하면 ‘국민 눈높이’다. “배신하지 않을 대상은 대한민국과 국민”이라는 말도 강렬했다. 윤 대통령으로 향하는 채 상병 특검법 찬성, 수평적 당정관계는 이를 상징하는 약속이었다. 아직 대통령 임기가 반환점을 돌지 않았는데도 정권 말기적 현상을 보이는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는 불가피했을 것이다.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이 충돌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현직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을 만들 순 없어도 대통령이 안 되게 만들 수 있다는 건, 김영삼과 이회창의 사례가 보여줬다. 보수 진영에선 지지율이 바닥을 기는 윤 대통령이 한 대표에게 길을 내줘야 한다고, 먼저 변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나를 밟고 지나가라며 등을 내주진 못할지언정, 발목은 잡지 말라고 한다. 그런다고 국민들이 익히 지켜봐왔던 윤 대통령이 과연 바뀔까.
윤 대통령이 7·23 전당대회 다음날 여당 신임 지도부를 대통령실로 초청해 만찬을 했다. 한 대표와 서로 팔을 휘감고 러브샷도 했지만 분위기가 화기애애한 것 같진 않다. 윤 대통령이 낙선자 3인방(나경원·원희룡·윤상현)까지 부른 걸 보면 한 대표가 불편했던 것 같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남 일처럼 “(한 대표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혼자 놔두지 말고 주위에서 잘 도와주라”고도 했다.
그로부터 엿새 뒤인 지난 30일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회동했다. 정진석 비서실장만 배석한, 사실상 첫 독대였다. 정국 현안·이슈는 테이블에 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당직 개편 얘기가 나오자 “이 사람 저 사람 폭넓게 포용해 한 대표 사람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면서도 “당의 일은 당대표가 책임지고 알아서 하시라”고 했다. 한 대표는 31일 임기 보장을 요구하며 버티는 친윤 정점식 정책위의장을 만나 사퇴를 요구했다. 최고위원회를 친한계 다수로 재편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한 대표가 두 차례 윤 대통령을 만나서 했다고 소개된 발언의 중심에는 윤 대통령이 있다. 지도부 만찬에선 “대통령 중심으로 뭉치자”고 했고, 독대 회동에선 “대통령이 걱정 없게 잘해내겠다”고 했다. 당대표가 되자 두 사람 간에 쌓인 감정을 풀어보려고 한 것 같다. 권력의 속성상 당대표가 힘으로 대통령을 이길 수는 없다. 게다가 여당 다수는 여전히 친윤계다. 초장부터 윤 대통령에 맞섰다 분란만 커지면 득될 게 없다고 봤을 것이다.
갈등을 봉합하고픈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갈지 알 수 없다. 민낯을 확인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야당은 채 상병 특검법으로 한 대표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한 대표의 측근인 장동혁 최고위원이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굳이 논의를 이어갈 실익이 없다”고 유보 가능성을 비쳤고, 한 대표도 민주적 토론 과정을 거치겠다고 했다. 당내 특검 반대론을 뚫는 게 쉽진 않겠지만 한 대표는 특검에 반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미 채 상병 특검을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너무도 단호하게 얘기한 터라 퇴로가 없다. 이제 와서 특검을 거부하면 대국민 거짓말쟁이가 되고, 정치적 미래는 사라질 것이다. 그때도 윤 대통령이 ‘당대표가 알아서 하시라’고 잠자코 있을 리 만무하다. 두 사람의 충돌은 필연이 될 것이다. 윤 대통령 국정운영에 국민 눈높이를 갖다 대면 부딪칠 이슈가 한둘이 아니다.
한 대표의 또 다른 숙제는 당 재정비다. 박근혜 탄핵 이후 국민의힘이 다시 정권을 잡았지만, 보수의 정체성은 흐릿하다. 보수 의제로 정책 이슈를 주도하지도 못한다. 이런 식으론 지속 가능한 정당이 될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당 혁신은 그 자체로 난제이지만, 윤 대통령과 관계가 틀어지면 난망한 일이다. 대선에 출마하려면 1년 뒤에는 당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니 시간도 많지 않다.
한 대표는 전대 출마선언문에서 “결심했으니 주저하지 않겠다”고 했다. 권력 의지를 숨기지 않는 그는 어쩔 수 없는 길로 들어선 것 같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말이다.
안홍욱 논설위원 경향 2024.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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