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타들어간 내 속 좀 봐주시오··· 농심은 '섭씨 死도' 2. 뜨거워지는 동해안…수온 상승에 오징어 어획량 ‘급감’ 3. 사하라 사막 50년 만에 호수 생겼다… 4. 산도, 강도, 나무도 생동하는 존재다
5. 신안에서 세계 최대 모새나무 발견 6. 토종식물 씨 말리는 가시박 7. 토착종 25종 멸종시킨 ‘무자비한 킬러’ 사냥 나선 호주 8. 가덕신공항 공사 첫발 뗐지만…공기·비용 협상 등 ‘험로’
9. 인류역사상 최초 세계 물순환 균형 깨져…물 재앙 위협 고조 10. 시골에 솟은 도시 쓰레기의 무덤, 493개 ‘쓰레기산’ 11. 가덕도 신공항 활주로 배치가 위험하다" 12. 영남알프스 간월재 억새숲 보존 사활 13. 치명률 최고 88% 전염병 확산하는데…"팬데믹 또 온다 14. “은하·별 1억개 담았다…역대급 고화질 ‘우주 지도’ 첫 공개 15. 원해도 다 살 수 없는 먹거리의 시대가 온다
타들어간 내 속 좀 봐주시오··· 농심은 '섭씨 死도'
유난히 뜨겁고 길었던 여름이 지나고, ‘결실의 계절’이 돌아왔다. 유례없는 이상기후가 농토 곳곳에 남긴 흔적들은 처참했다. 절기의 선을 넘어 9월까지도 이어진 폭염의 여파는 대지 위에 발 딛고 선 농민들에게 가장 먼저, 가장 가혹하게 가닿았다. ‘배춧값, 과일값이 오른다’는 짜증 섞인 반응들을 잠시 제쳐두고, 끝나지 않은 ‘그 여름’을 버텨내고 있을 그들을 만났다. 붉게 타들어가고, 갈라지고, 말라비틀어지고, 녹아내린 '결실'을 마침내 손에 쥔 농민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사방으로 갈라진 배, 쭉정이만 남은 벼, 붉게 타버린 감, 푸르딩딩한 귤, 말라비틀어진 배추. 유례없이 뜨겁고 길었던 여름이 논밭에 남긴 흔적들이다. 마침내 찾아온 수확의 계절, 결실 대신 수심을 손에 쥔 농민들을 만났다. 사진은 농민 임동순(67· 충남 아산)씨가 열과(고온에 의해 과실 표면이 갈라지는 현상)에 의해 손상된 배를 손에 쥔 모습이다. 아산=하상윤 기자
전남 영암군 농민 민형식(52)씨는 벼멸구로 초토화된 볏논을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민씨는 “이제껏 농사짓는 동안 이토록 멸구가 지독하게 기승을 부렸던 적이 없었다”라며 “높아진 기온과 함께 산란·부화 주기가 짧아진 멸구의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이들의 창궐 앞에 알곡은 속수무책으로 녹아내렸다”라고 토로했다.
멸구가 창궐한 볏논이 마치 곰팡이가 핀 듯 얼룩덜룩하게 변한 고사체로 채워져 있다. 수확기를 맞았지만, 농민들은 추수를 포기했다. 드론 촬영. 영암=하상윤 기자
그러면서 그는 “그나마 있는 재해보험도 운용 행태를 보고 있자면 갑갑할 따름”이라며 “수확 불능 상태의 나락을 가져다 무게로 피해 정도를 측정하는 게 무슨 현실성이 있는가?”라고 말하며 현행 농작물재해보험 제도의 손해평가 방식의 허점을 지적했다. 이상고온이 벼멸구 창궐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농민들의 성토가 이어지자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8일 농업재해대책심의위원회를 열어 벼멸구 피해를 농업재해로 인정했다.
전남 영암군 농민 민형식(52)씨가 벼멸구 피해로 고사한 나락을 손바닥에 올려 내보이고 있다. 영암=하상윤 기자
민형식씨가 벼멸구가 휩쓸고 지나간 볏논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는 "매년 같은 시기, 같은 땅에서 같은 작물을 기르는 농민들은 이상기후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라며 "앞으로 이런 일이 더 심화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영암=하상윤 기자
화훼농민 조우철(63·전남 강진)씨는 말라붙은 장미가 즐비한 시설 하우스에 서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는 “장미를 키우는 농민으로서 오랜 세월 수많은 여름을 경험했지만, 올여름만큼 나무가 많이 죽은 해는 없었다”라며 “폭염 이후 생산량이 40%까지 떨어지고서 아직도 회복이 안 되고 있다”고 털어놨다. 또 조씨는 “이토록 무자비한 자연재해 앞에서 의지할 것이라곤 재해보험뿐인데 그마저도 가장 필요한 순간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전남 강진군 화훼농민 조우철씨가 폭염 이후 고사한 장미꽃을 손바닥에 올려 내보이고 있다. 강진=하상윤 기자
폭염 피해는 임산물에도 예외가 없었다. 대봉감 과수원에서 만난 농민 박춘홍(58·전남 영암)씨는 드문드문 열매를 맺은 감나무를 가리키며 “일소(햇볕 데임) 피해를 받은 대봉감이 하나둘 다 떨어지고 남은 것들이다”라고 소개하며 “예년에 비해 (수확량이)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햇볕 데임은 자외선과 고온에 의해 과실이 검게 그을리며 세포가 괴사하는 현상으로 농사 소득 감소의 직접 요인으로 작용한다. 영암군에 따르면 올해 금정면 등 대봉감 재배농가의 농지 809㏊ 중 50%가 넘는 480㏊에서 햇볕 데임 피해를 봤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박씨는 “기후재난이 눈앞에 다가왔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라며 “이상기후와 맞물려 생산비는 갈수록 치솟고 생산량은 바닥을 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낙과가 그득한 배 과수원에서 만난 임동순 아산시 둔포면 염작2리 이장은 폭염에 의해 열과(표면이 쩍쩍 갈라지는 현상) 피해를 입은 과실들을 하나둘 들어 살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열과는 현행 농작물재해보험으로 보상 받을 길이 없다”라며 “열과에 의해 수확량의 절반 이상이 수확 전에 떨어지거나 수확 이후에 폐기된다”고 설명했다. 임 이장은 산더미처럼 쌓인 채 썪어가는 과실 더미 앞에 서서 “자연을 거스를 수 있는 농업은 없다”면서 “그러나 내년도 올해와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 섬뜩함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농민 임동순(67·충남 아산)씨가 열과 피해를 받아 폐기된 배 무더기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수확기를 맞은 이 과수원에서는 악취와 함께 날벌레가 들끓었다. 아산=하상윤 기자
수확을 앞둔 제주 감귤밭도 상황은 비슷했다. 지난 4일 찾은 서귀포 성산읍 수산리의 ‘극조생’ 품종 감귤 과수원 바닥엔 열과(열매가 터지는 현상) 피해를 본 낙과들이 가득했다. 그나마 가지에 남은 감귤은 색이 나지 못해 짙은 초록빛을 띠고 있었다. 일교차가 클수록 감귤의 착색이 빨라지지만, 올해는 지난 9월까지도 열대야가 이어지며 낮과 밤의 온도 차이가 크지 않아 감귤 착색이 제때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기존 감귤 유통 관련 조례에 의하면 감귤 열매 착색률이 50% 미만이면 시장에 유통할 수 없다. 제주도는 이상기후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이달 2일부터 착색률과 상관없이 푸른 감귤이어도 당도가 높으면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제주도 감귤 생산 및 유통에 관한 개정 조례를 시행했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농민 오창현(50)씨가 일소·열과 피해를 받은 감귤과 한라봉을 손에 올려 내보이고 있다. 서귀포=하상윤 기자
전남 해남군 농민 김종주(68)씨는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들이닥치며 황무지로 변한 배추밭에 서서 심정을 털어놨다. “매일 같이 배춧값이 폭등한다는 뉴스가 쏟아지지만, 현장은 그럴수록 더 소외돼요. 마트에서 배추가 포기당 만 원까지 간다는데, 농민들이 손에 쥐는 건 650원 또는 700원입니다.” 김씨는 “정부가 나서서 농민들이 안정적으로 먹거리를 공급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정책을 펴야 하는데, 허구한 날 ‘수입 카드’ 꺼내 들고 흔드니 농민들은 죽을 지경이다”라고 말했다.
전남 해남군 문내면 농민 김종주씨가 폭염과 폭우를 거치며 말라 죽은 배추를 들어 보이고 있다. 하상윤 기자 jonyyun@hankookilbo.com
뜨거워지는 동해안…수온 상승에 오징어 어획량 ‘급감’
▲ 동해 묵호항 위판장장에 쌓여 있는 오징어. 강원도민일보 자료사진
한국 연근해 평균 수온이 전 지구 평균의 2배에 이르는 높은 상승률을 보인 가운데 오징어 어획량이 급감한 동해에서는 수온이 1.9도나 오른 것으로 파악됐다.
13일 국립수산과학원의 ‘2024 수산 분야 기후변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1968∼2023년 56년간 전 지구 표층 수온이 0.7도 오르는 사이 한국 해역의 표층 수온은 1.44도 상승했다.표층 수온 상승 폭은 동해가 1.9도로 가장 컸으며 서해 1.27도, 남해 1.15도 순이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한인성 수산과학원 기후변화연구과장은 우리나라 연근해 수온이 특히 가파르게 오른 원인에 대해 “기후변화에 따라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 강화 등 우리나라 주변을 둘러싼 대규모 기단들의 변화가 극심한 데다 저위도에서 오는 따뜻한 해류의 열 수송도 많이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해는 폐쇄적인 해역이고 동해도 입구와 출구가 좁고 얕은 해협이라 기후변화에 의한 수온 상승이 빨라질 수 있는 지형”이라고 부연했다.
연근해 중에서도 동해의 수온 상승 폭은 서해의 1.5배나 됐다.
한 과장은 “동해는 북부 해역은 찬물이고 남부 해역은 따뜻한 물인데 온난화 효과로 찬물과 따뜻한 물의 경계선이 점점 북쪽으로 이동하다 보니 과거 찬물 해역이던 곳이 따뜻한 물 해역으로 바뀐다. 그래서 동해에서 수온 상승이 훨씬 빠르게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동해에서는 과거 ‘국민 생선’으로 불리던 명태의 씨가 마르고 오징어는 어획량이 급감했다.김현우 수산과학원 연근해자원과 연구관은 이에 대해 “수온 상승과 과도한 어획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명태는 연간 어획량이 1980년대에는 10만t(톤)이 넘었지만 지난 2007년 이후 1∼2t에 불과할 정도로 희귀해졌다가 2019년부터 어획이 전면 금지돼 러시아산에 의존한다.
해양수산부가 2014년부터 고갈된 명태 자원을 회복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수정란을 부화해 키운 어린 명태를 바다에 푸는 ‘명태 살리기 사업’을 하고 있지만 10년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성과는 없다.
오징어는 2000년대에는 연평균 20만t 정도 잡히다가 지난해에는 역대 최저인 2만3000t까지 줄어 ‘금징어’라고 불릴 만큼 가격이 급등했다. 동해 수온 상승으로 어군이 형성되지 않고 개체 분포가 넓어진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김 연구관은 설명했다.
우리나라 연근해 어업 생산량은 1980년대 평균 151만t 수준에서 2000년대 116만t으로 급감했고 2020년대에는 93만t으로 지속해 감소하는 추세다.
수산과학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대부터 살오징어 어획량이 급감했고 멸치와 고등어도 감소하거나 정체 상태다. 반면 주요 난류성 어종인 방어, 전갱이, 삼치는 지난 40년간 어획량이 꾸준히 증가했다.
김 연구관은 “과거에 방어는 제주도 연안에서 많이 잡히다 수온 상승으로 어장이 북상하고 있어 지금은 동해 남부 쪽에서도 많이 잡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근래 서해에서 꽃게 어획량도 많아졌다”며 “이는 수온이 상승해 꽃게가 살기에 알맞은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수산과학원은 제주 연안에서 수온 상승에 따라 아열대성 어종의 종수, 개체수, 밀도 모두 뚜렷하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미 제주도 내 수산물 시장에서 아열대 어종이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는 국립수산과학원이 표층 수온을 관측하기 시작한 1990년 이래 우리나라 해역의 연평균 수온이 가장 높은 해였다.한 과장은 “수온 상승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면서 “올해 수온은 지난해의 기록을 깰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수산과학원은 2100년까지 우리 바다 수온이 시나리오에 따라 1∼4도 상승하는 것으로 내다봤다. 신정은 강원도민일보
사하라 사막 50년 만에 호수 생겼다…
북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 이례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홍수가 났다. 전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인 이곳에서 홍수가 발생한 건 반세기 만이다.1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 AP 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달 모로코 남동부 지역에 이틀간 연평균 강수량을 웃도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홍수가 발생했다.
모로코 기상청에 따르면 수도 라바트에서 남쪽으로 약 450㎞ 떨어진 알제리 국경 인근의 타구나이트 마을에서는 24시간 동안 100㎜ 이상의 강우량이 관측됐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위성 영상을 보면 당시 폭우로 소도시 자고라와 타타 사아에 있는 유명한 일시적 습지 이리키가 호수의 모양새를 갖추기도 했다.모로코 기상청 관계자는 “이렇게 많은 비가 그렇게 짧은 시간과 공간에 집중된 것은 30∼50년 만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기상학자들이 온대 폭풍으로 부르는 그런 폭우는 앞으로 몇 달, 몇 년간 이 지역의 기상 조건을 바꿀 수 있다”며 “공기 중에 수분이 많아지면서 수분 방출이 늘어나고 더 많은 폭풍을 유발하기 때문”이라고 전망했다.
모로코 사막 마을인 메르주가에 폭우로 인해 생긴 호수 사이로 야자수들이 보인다. AP연합뉴스
사하라 사막은 아프리카 북부와 중부, 서부의 12개 나라에 걸쳐 있다. 전체 면적이 940만㎢로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막이다. 세계에서 가장 덥고 건조한 곳으로 지역의 절반 이상은 연간 강수량이 약 25㎜ 미만이다.
지구 온난화와 함께 이 지역에서는 지난 몇 년간 극도의 가뭄 등 혹독한 기상 현상이 늘고 있다. 과학자들은 사하라 사막에 이번과 유사한 폭풍이 닥칠 수 있다고 예측해왔다. 셀레스테 사울로 세계기상기구(WMO) 사무총장은 최근 기자들에게 “온난화로 인해 물순환 사이클이 빨라졌을 뿐만 아니라 더 불규칙하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우리는 물이 너무 많거나 너무 적은 그런 문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9월 10일(오른쪽)과 8월 14일 테라 위성이 촬영한 사하라 사막. NASA
AP통신은 지난달 10일 북아프리카의 건조한 산과 사막 지역에 쏟아진 이례적인 폭우로 모로코, 알제리의 사막 지역을 포함 2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CNN은 최근 “비정상적인 날씨로 사하라 사막이 푸르게 변했으며 일부 지역의 식물이 꽃을 피웠다”면서 “기후변화가 주요한 이유로 꼽힌다”고 전한 바 있다.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폭우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고온 현상 때문이다. 올 들어 평균 대기 기온이 상승했고, 세계 해양 평균 온도는 상승 중이다. 지구 온도가 상승한 만큼 대기는 더 많은 습기를 머금게 돼 폭우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특히 케냐를 포함한 동아프리카 홍수는 ‘인도양 쌍극자’로 인해 증폭된 것으로 분석했다. 기상학자들은 “올해 인도양 쌍극자 현상이 극단적으로 나타나면서, 예년보다 뜨거워진 바다 온도와 대기 증발 효과가 케냐의 대홍수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YTN
산도, 강도, 나무도 생동하는 존재다
수계(서품) 받고 스님이 된 성스러운 나무들
태국은 많은 밀림을 갖고 있는 국가다. 태국 북부의 치앙마이 숲속을 여행하다 보면 화사한 진노랑의 샤프란천을 두른 웅장한 나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처음 여행하는 사람들은 의아해하지만 이것은 태국의 스님들이 입는 성스러운 가사(스님의 옷)를 나무에게 입힌 것이다. 불교국가인 태국은 수백 년 된 나무에게 스님이 되는 의식인 수계(受戒)를 받게 하고, 그 상징으로 가사를 입혀 성스러운 나무임을 알리는 것이다. 이렇게 스님이 되는 수계의식을 나무에 베푸는 것을 '부앗 톤 마이'(Buat Ton Mai :Tree Ordination)라고 한다. 1980년대 말 태국을 시작으로 캄보디아, 라오스, 스리랑카 등의 불교국가에서 오랫동안 나무와 숲의 거룩함과 소중함을 인식해 온 사람들이 함부로 벌채하거나 파괴하지 못하도록 지켜온 방식이다.
불교는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하게 하려는 종교다. 그러면 불교에서 중생은 누구일까? 인간만일까? 그렇지 않다. 인간을 포함하여 고통을 느끼는 동물까지 중생일까? 역시 그렇지 않다. 불교는 정신능력이 있다고 생각되는 유정물(인간과 동물)과 없다고 생각하는 무정물(초목과 돌 흙, 구름 등)도 모두 중생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유정물, 무정물 모두 제도해야 할 구류중생(九類衆生)이며, 마땅히 산천초목도 모두 부처가 될 불성이 있는 존재라고 보았다.
생태위기의 원인은 바로 인간중심주의
기후위기의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는 바로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이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지구상의 의식 있는 위대한 존재이고, 나머지는 모두 인간의 식량이 되거나 채굴, 이용의 대상이므로 지배, 정복 굴복시켜야 할 대상이라고 보는 것이다. 역사학자인 린 화이트(Lynn White)는 사상적으로 기독교가 인간중심주의를 조장했다고 주장했다. 성경의 창세기에 인간은 유일신 야훼의 모습대로 우월적 존재로 창조되었다. 탈생물적 교만이다. 더욱이 그 인간에게 신은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다스리고 정복하라는 권한을 준다. 신의 명령인 것이다. 서구문명이 지배와 정복, 확장을 당연하게 생각한 것은 바로 신의 지상명령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날개를 달아 준 것은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잘못 적용한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이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사회를 더욱 강화시킨 것이다. 이제 인간 이외의 모든 동물과 식물은 인간의 식량이며 먹이이며, 자연의 거친 야생성은 인간이 장악하여 순화시키고 굴복시켜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인간중심주의는 우리의 생활과 관념 속에 아주 깊게 스며들어 있다. 인간에게 이로운 곤충을 익충(益蟲)이라고 하고 해를 끼치는 벌레를 해충(害蟲)이라고 한다. 특히 해충은 뒤에 “박멸”이라는 말이 따라붙어 씨를 말려 죽이려 한다. 익숙한 먹는 풀 외의 기타 풀들을 잡초(雜草)라고 부른다. 잡초는 “제거”라는 말이 늘상 따라온다. 독한 제초제로 죽여야 한다. 익충과 해충은 인간에 의한 구분이다. 잡초와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것도 인간의 관념이다.
러시아, 프리모리예 지방. 10월 12일: 가을에 시호테알린 산맥의 세레브리아니 고개를 통과하는 자동차 도로의 공중 사진. 2024.10.12. TASS 연합뉴스
해충은 없다, 잡초도 없다
사람들은 ‘돼지가 미련하다. 소가 우직하다. 여우가 교활하다, 뱀이 사악하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가 정말 우직한 것일까? 아니면 인간이 우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여우가 실제 교활한 것인가? 교활하다고 인간이 생각하는 것인가? 그렇다. ‘뱀은 사악하다’라고 ‘인간이 생각’하는 것이다. 돼지, 소, 여우, 뱀은 인간의 판단 너머에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잘못된 집단적인 관념으로 뱀이나 돼지를 대하고 동물들을 차별적으로 대하는 것이다.
2012년 많은 미국의 양심들은 흑인 차별에 반대하고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를 외치며 차별철폐 운동을 벌였다. 백인 시각에서 유색인종이 더럽고 저열해 보이는 것은, 흑인들에서 생겨난 잘못일까? 아니면 백인들 시각의 잘못일까? 백인의 시각이 잘못된 것이라면, 똑같은 논리로 우리가 익충과 해충을 구분하고 더럽고 사악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그들 동물의 잘못이 아니라 인간의 잘못된 집단적 관념 때문인 것이다. 사람들은 다리가 없는 뱀이나, 다리가 많은 곤충, 지네, 그리마 등을 특히 싫어한다. 그러나 그들은 진화과정에서 그저 그런 모습이 된 것이다. 그들이 독이 있다고 해도 인간을 죽이려고 일부러 독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죽지 않으려고, 종족 번식을 위해 갖고 있는 능력인 것이다. 그들은 조심해야 할 동물이지 나쁜 동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징그러운 나쁜동물이라고 판단하고 차별하고 죽여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10월 2일, 콜롬비아 아마조나스 주 마케도니아 지역의 아마존 강 저수위의 공중 사진. 콜롬비아 국가재난위험관리기구(UNGRD)는 최근 브라질과 페루의 삼중 국경에 영향을 미치는 강수량이 놀라울 정도로 부족해 아마존 강의 흐름이 최대 90% 감소했다고 보고했다. 2024.10.2. AFP 연합뉴스
신유물론 : 물질은 활력과 생기 있는 존재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이를 뛰어넘는 최근의 철학적 논의가 바로 신유물론이다. 구유물론은 만물의 궁극적인 실재를 물질로 보고 정신은 물질의 부수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사상이다. 한편 인식론에서는 의식을 가진 존재를 주체로 보고, 의식이 없는 존재를 대상으로 파악한다. 그래서 의식을 가진 인간은 능동적인 주체이고, 물질은 수동적인 객체 또는 죽은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를 기반으로 해서 물질은 철저히 자연의 인과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로 생각했다. 이것이 인간중심주의의 기반이 되어 인간 외의 모든 존재는 죽어 있는 것이며, 지배 정복의 대상이 됐다.
이처럼 구유물론은 데카르트의 물질관에 영향을 받아 물질을 ‘생기 없는 것’,‘죽어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신유물론은 그와 전혀 달리 ‘활력 있는 것’, ‘생동하는 물질’로 보는 철학이다. 물질이 외부의 어떤 작용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체로 활력을 갖고 있다고 본다. 또한 신유물론은 비인간 존재의 활력과 능동성을 인정하고, 심지어 감정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며, 나아가 그들의 고통과 신음에 귀를 기울이려는 학문적 태도이다. 그러나 비인간 존재를 ‘살아 있는 물질’로 간주하는 것은 그들이 동물이나 인간과 똑같은 존재 방식을 갖고 있다는 걸 뜻하는 건 아니다. 그들은 자기 고유의 방식대로 존재하며 살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위가 살아 있다는 것은 인간과 다른 바위 고유의 내재적인 물성을 갖고 살아 있다는 것을 뜻한다.
신유물론의 선구자는 브뤼노 라투르 (Bruno Latour)이다. 그의 ‘행위자 연결망 이론 (Actor-network theory, ANT)’은 인간과 비인간 모두 자연계에서 동일한 ‘행위자’로 존재하며 이들은 연결망을 통해 서로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인간도 다른 사람과 자연에 영향을 주는 행위자이듯이 도로의 과속방지턱도 다른 사람들과 자동차, 기타 자연에 영향을 주는 행위자라는 것이다. 들뢰즈는 물질은 내재적인 힘에 의해서 활기를 띠며, 이 힘은 끊임없이 운동하고 변화하고 생성하는 힘이라고 한다. 구유물론이 분절적, 기계적, 인간중심적 세계관이라면, 신유물론은 관계와 연결된 세계라는 인식 위에 인간중심주의를 해체하며 자연 속에 인간의 위치를 재배치하려는 시도다.
지난 9월 18일 폴란드 남부 타트라 산맥의 자코파네 근처에서 본 부분 월식. 이 월식은 '옥수수 달'이라고 불리는 보름달에 일어났다. 2024.9.18.EPA 연합뉴스
나무와 숲, 자연은 신령한 존재
이 글은 자연은 위대하고 신성하다는 뻔한 이야기를 반복하려는 것이 아니다. 숲속에서 수백 년 살아온 오래된 거목들은 그 자체로 하늘과 땅과 인간의 역사를 온몸으로 기록하고 있는 거대한 존재다. 수백 년 수천 년간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짐승과 벌레들을 키웠고, 나뭇잎과 뿌리를 통해 물을 저장하고 끌어올리고 내뿜으며 땅속과 땅 밖의 엄청나게 많은 생명의 생기를 주고 받아 왔다. 비가 내려 물을 머금고 대지를 적시며 뿌리와 뿌리로 연결된 땅속의 수억만 생명들을 살리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왔고, 새들과 짐승들의 서식지였으며 공기를 정화시켜 다른 생명의 삶을 키워왔다.
이뿐 아니라 숲속의 생활을 하는 수행자들에게 큰 이치를 깨닫게 해준 거룩한 존재다. 이런 나무를 어찌 단순한 목재로만 간주할 수 있겠는가? 이들 거목은 땅속의 물을 증산작용을 통해 빨아 올려 하늘로 보내고, 구름을 만들고 비로 내리게 했고, 나무와 산과 물이 생기 있게 살게 한 성스러운 존재인 것이다. 생명들은 모두 연결된 존재로서 서로 살리며, 거룩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오랜 풍상의 거목들은 더욱 그 가치와 거룩함이 빛나는 신령한 존재의 상징이다. 이들 거목은 수많은 생명들에게 나눠주고 베풀며 살아온 부처이자 보살인 것이다. 그 거룩한 삶에 수계를 주어 신령하게 모시는 것이 트리 오디네이션(Tree Ordination)이다.
속신 : 자연에 대한 금기
과거 우리 조상들은 속담(俗談)도 있었지만 속신(俗信)이라는 지혜도 있었다. 일상생활에 구속력이 있는 민간신양이자 자연에 대해 터부(Taboo) 역할을 했다. 1970년대까지 나이든 노인들에게서 자주 들었지만 이제는 미신으로 치부되어 사라진 지혜이자, 생활속의 애니미즘이다.
“흐르는 물에 오줌을 누면 아이를 못 낳는다” “입춘날 물을 헤프게 쓰면 수신의 노여움으로 흉년이 들거나 홍수를 당한다” “세숫물을 많이 쓰면 저승에 가서 다 마셔야 한다” “우물가에 밥알을 떠내려 보내면 3대가 빌어먹는다” “새끼 업은 메뚜기를 잡으면 어머니가 빨리 죽는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 “큰 나무를 베면 일찍 죽는다” “나무를 많이 때면 산신령의 노여움을 산다” 등등이다.
우리나라 전역의 모든 산봉우리는 반야봉, 비로봉, 문수봉, 보현봉 등 부처와 보살의 이름이 아닌 곳이 없다. 시제를 시내거나 성묘할 때도 제일 먼저 산신에게 재물을 올리는 것이 순서였다. 사찰의 경우에도 산신각이 있어 산을 신령한 존재로 모셨던 것이다. 경주 남산의 많은 불상과 마애불은 조각을 한 것이 아니라 바위 속에 있는 부처와 보살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정도로 자연은 신령하고 모시고 경외해야 할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최근 환경운동가들이 전통의 애니미즘을 소중히 여기고 주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2008년 에콰도르는 자연의 생물이 영구적으로 생존하고 번식하고 진화할 권리를 헌법에 명기하였다. 헌법에 자연권을 명기한 세계 최초의 일이다. 남미의 볼리비아도 2011년 ‘어머니 지구법’을 제정했다. 뉴질랜드도 마오리족 원주민들이 신성시하는 왕거누이강을 인간과 동일한 법적 위상을 갖는 존재로 간주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세계는 이렇게 갈수록 자연도 인간으로부터 침해받지 않고 스스로 존재할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9월 25일 시에라리온 캄부이 힐스 삼림 보호구역에서 불법으로 베어낸 오래된 나무에서 전기톱을 사용하여 통나무를 자르고 있는 사람. 캄부이 힐스 삼림 보호구역의 삼림 벌채는 불법 벌채, 토지 개간, 채굴로 인해 섬세한 생태적 균형이 깨지면서 풍부한 생물다양성을 위협하고 있다. 보존 노력은 이러한 지속 불가능한 관행으로 인해 점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24.9.25. AFP 연합뉴스
기후위기대응이란 이름으로 벌어지는 수많은 나무 살해들
앞의 긴 이야기들은 바로 지금 할 이야기로 귀결된다. 산림청은 지난 2021년 1월 20일 산림의 기후위기 대응 탄소중립목표 달성을 위해 “2050 탄소중립 산림부문 추진전략(안)”을 발표했다. “2050년까지 30년간 30억그루의 나무를 심어, 탄소를 3400만 톤을 줄이는 데 기여하고, 산림의 탄소 흡수력 강화, 신규 산림 탄소흡수원 확충, 목재와 산림 바이오매스의 이용 활성화, 산림 탄소흡수원 보전, 복원 등 4대 정책 방향과 12대 핵심과제를 중점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도시숲 조성, 섬지역, 유휴 토지, 북한과 해외에 나무심기 등을 한다면 아주 좋은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나무를 심기 위해 ‘영급 구조개선’이라는 이름으로 탄소 흡수효율이 떨어지는 30-50년 된 나무들은 모두 베어버리고, 탄소 흡수능력이 좋은 10년된 어린나무를 심겠다는 것이 그 핵심 내용이다. 이 논리라면 아마존과 보르네오의 오래된 밀림들은 모두 베어버리고 새로 묘목들을 심는 것이 기후대응에 효과적이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오래된 숲은 베고 새로운 나무를 심겠다는 정책은 당시 환경단체의 강력한 반발로 겉으로는 포기된 것 같았다. 그러나 나무를 베고, 심고, 임도를 만들어야 돈을 버는 임업 비즈니스 담당 산림청은, ‘산림경영’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많은 산에 마치 동물가죽 벗기듯 모두 벌채를 하고 있다. 산림경영은 보존이라는 명목 아래 계속 나무를 베고 심는 논리를 개발해야 돈이 된다. 산불이 나면 오히려 돈벌 좋은 기회가 된다. 지원도 많아지고 일거리가 많아져 이득이 된다. 임도를 내야 산불을 막는다는 핑게로 산의 중간중간에 길을 내는 거대한 공사도 도맡는다. 그러나 실상은 임도로 인해 산불은 바람길이 되어 더 많이 번진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소나무 재선충도 넓은 지역을 무분별하게 약을 살포하다 보니 의미있는 곤충들과 새들도 모두 희생이 되었고 실제 소나무재선충은 잡지 못했다.
산림청은 산과 숲을 보호하기는 것보다 산을 통해 돈을 버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 환경단체들의 목소리다. 실제로 기후위기나 탄소중립 과제는 큰 기회가 된다. 지금 전국 도처 산에 울창하던 산림을 싹쓸이 벌목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여름철마다 일어나는 산사태가 바로 그 때문이다.
설악산과 지리산 케이블카, 산악열차 그리고 기후대응댐
2024년 현재 전국에서 41개의 케이블카 운영되고 있다. 초기에 반짝 특수를 누리다 1~2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실상 적자를 내고 있음에도 최근 50여 지자체에서 건설 추진에 혈안이 되어 있다. 설악산의 오색 케이블카 개발은 윤석열 정부가 공사 강행을 약속했고, 그 외에 울산바위의 케이블카나 강릉시와 평창군의 케이블카, 대전과 지리산 산청과 남원 등의 케이블카와 산악 열차, 신불산(영남알프스) 케이블카 등 전국 산들이 케이블카 개발로 들썩이고 있다. 추진한 단체장이 재임하는 4~5년 동안은 돈을 벌지만 이후에는 영락없이 적자행진을 하는 것이 케이블카 사업이다. 미국은 63개의 국립공원이 있지만 공원 안에는 케이블카가 한 대도 없다. 스위스는 스키를 위한 관광 케이블카가 460개 있지만 국립공원에는 하나도 없고, 역시 일본도 1970년 이후로 국립공원에는 신규 케이블카는 하나도 설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연은 미래세대의 것이며 우리는 그들의 것을 빌어쓰는 것, 잘 사용하여 그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 지속가 능한 발전 개념이다. 절대 건드리지 않는 것, 보존을 위한 최소한만이 용인된 것이 국립공원임에도 그들에게 미래세대는 안중에 없이 당장의 이용과 돈벌이를 위해 엄청난 나무와 산을 송두리째 베어내려 하고 있다.
최근 더욱 황당한 일은 홍수 방어 확보를 명분으로 지난 7월 30일 전국의 14곳에 ‘기후대응 댐’을 짓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환경을 보존해야 할 환경부가 이렇게 한꺼번에 댐을 짓겠다는 발표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 저수량도 적어 홍수조절 능력도 의심받고 있다. 몇 년 전 강남과 오송 참사 등으로도 알 수 있듯이, 도심의 집중폭우 피해는 기후대응 댐이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지난 8월 8일, 캐나다 매니토바 주 처칠과 길리엄 사이의 숲 위로 해가 지고 달이 뜨는 시각의 풍경. 2024.8.8. AP 연합뉴스
신령하고 거룩한 산과 강과 나무를 건드려 동티난 문명
예전 조상들은 ‘동티난다’는 표현을 썼다. 가만히 놔두면 되는 것을 괜히 건드려서 생긴 재액을 말한다. 신이 내린 신벌(神罰)이라고도 한다. 자연은 스스로 복원하며 정화한다. 모든 생명은 죽고 싶어하지 않는다. 자신을 해치는 병균에 대해 항체를 만들어 대항하며 스스로 치료한다. 산과 강과 나무, 바위, 인간을 포함한 비인간 존재는 살아 있다. 지금 기후위기는 인류의 어리석음과 자본과 돈의 탐욕으로 자역을 파괴해온 과보이며, 자연이 거대하게 항체를 만들어 저항하는 것이다. 동티가 난 것이다.
기후위기는 인류에게 자신들의 잘못을 깨달으라는 채찍이며, 개인의 욕망을 위해, 성장과 풍요를 위해 갈등 대립해 온 삶을 전환하여, 서로 의존하고 연결된 존재임을 깨달아 경쟁 대립하지 말고, 서로 협력과 평화, 자연과 생명을 보호하고 살리는 삶으로 개벽적 전환을 강제하는 메시지인 것이다.
노동운동과 기후운동의 연대를 위한 박태주 선생의 글에 대하여
지난 10월 5일 박태주 위원의 “탄소중립 대안세력으로 나아가야 할 노동-기후연대”의 글에서 “노동운동이 고용과 임금을 위해 자본과 한통속이 돼 자본주의의 기득권 유지라는 반생태적인 행위를 한다고 비판을 한다고 해도, ‘사회정의의 칼’이라는 역할을 주목하며 변혁성을 갖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그의 글에 필자는 완벽히 동의한다. 노동단체는 기후문제 해결에 나서는 녹색계급을 만드는 중요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기후운동에서 노동단체의 기후생태운동을 무한히 격려하고 지원하며 연대하려 하고 있다. 마땅히 기후운동은 노동단체를 배제할 수 없고 배제해서도 안 된다. 또한 녹색 노동운동의 활동을 기대한다.
그러나 “연대는 두 운동 사이의 교집합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가령 노동조합이 기후위기의 해결을 자신의 의제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면, 기후운동은 정의로운 전환, 일자리 보장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은 충분히 동의하지만, 또한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그래서 더 근본적 전환을 도모하는 실천방법을 내부적으로 깊이 모색해 주기를 부탁드린다./유정길 불교환경연대 녹색불교연구소소장/ 시민언론 민들레
신안에서 세계 최대 모새나무 발견
전남 신안에서 세계 최대 직경을 자랑하는 모새나무의 군락지가 발견돼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산림청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는 최근 ‘산림생명자원 모새나무 수집·보존 및 특성평가 연구용역’을 진행하면서 신안 중부지역 일대에 자생하는 최고 크기 수고 6m, 근부직경 68㎝(누적 근원경 64.46㎝)에 달하는 모새나무 집단군락지를 발견했다고 16일 밝혔다.
신안군은 이번에 발견된 모새나무 집단군락지는 세계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크다는 평가에 따라 보호 차원에서 군락지 위치를 비공개하고 지속적 연구를 통해 수령과 생태적 중요성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모새나무는 정금나무, 들쭉나무와 함께 우리나라 토종 블루베리로 알려졌다.
모새나무의 검은색 열매 추출물은 피부 미백용 화장품 원료, 전립선 비대증 예방 및 치료 등의 약용으로도 두루 사용된다. 중국에서는 모새나무 잎을 활용해 자색밥이나 모새잎 떡을 만들기도 한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2007년 전남 진도군에서 발견된 최대 규모의 수고 5m, 직경 15cm의 모새나무를 뛰어넘는 세계 최대 직경을 자랑하는 모새나무 군락지를 발견해 뜻깊다“며 ”실태조사를 통해 추가적 군락지를 확인하고 보호를 위해 천연기념물 또는 보호종 지정을 위해 보전에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모새나무는 진달래과에 속하는 상록 활엽 관목으로 주로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해안 지역에 분포한다.
우리나라는 주로 서남해안 지역인 신안, 목포, 해남, 진도, 제주도 등에 자생한다. 6∼7월에 흰색 또는 분홍색 꽃을 피우고 10월에 검은색 열매가 열린다.
토종식물 씨 말리는 가시박
▲ 15일 춘천 서면의 한 하천을 뒤덮은 가시박을 제거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생태계 교란 유해 외래 식물인 가시박이 하천변을 중심으로 강원도내 전역을 뒤덮은 가운데, 인근 야산으로까지 확산되고 있어 방역 대책이 시급하다.
15일 오전 찾은 춘천 서면의 하천변. 강 주변으로 빽빽하게 자리잡은 가시박과 이로 인해 고사한 나무들을 제거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날 해당 지역 일대를 돌아본 결과, 하천변은 물론 자전거 도로길 인근 급경사지와 야산까지 가시박으로 뒤덮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지역 주민 임 모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문제인 것 같다 정도였는데, 올해 가시박이 나무를 타고 야산까지 퍼진 모습을 보고 소름이 끼쳤다”며 “이대로면 온 야산에까지 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두렵다”고 말했다. 화천군 주민 유모(71)씨도 “3~4년 전부터 막 번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말도 못하게 많이 퍼졌다”며 “우리집 나무도 3그루나 죽었는데, 농작물에도 피해가 가니 문제가 심각한 것 같다”고 했다.
가시박은 1990년대 농작물 접목용으로 국내에 도입된 이후 강한 번식력으로 인해 하천변을 중심으로 확산돼왔다. 토종 식물을 휘감아 고사시키는 주범으로 알려지면서 환경부는 2009년 가시박을 생태계 교란 유해식물’로 지정했다.
강원도에 따르면, 현재 도 전역에 퍼진 외래식물(가시박, 단풍잎돼지풀 등)의 면적은 올해 9월 기준 총 1178만㎡이다. 2009년부터 철원, 화천, 양구, 인제, 고성 등 민통선 일대에 국·도비를 투입해 생태계 교란 식물 제거사업을 시작해오다 2021년부터 도 전역에 예산을 지원하고 있지만, 번식력이 워낙 강하다보니 제거에 난항을 겪고 있다.
제거 작업이 위험한 것도 문제다. 춘천시의 경우 시비를 추가로 세워 제거작업에 투입하는 예산을 2022년 2억 600만원에서 2024년 4억 7200만원까지 늘렸지만, 가시박이 하천변뿐 아니라 급경사지와 야산 등 손이 닿기 어려운 지역까지 퍼져있다보니 제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춘천시 관계자는 “급경사지나 야산 같은 곳에 자란 것들은 제거 자체가 어렵고, 사유지의 경우 함부로 제거하기도 어려운 점도 있다”며 “사유지에서 야산으로 퍼지는 경우도 있어서 논이나 밭 등 사유지 같은 경우 주민분들이 관리해주시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도 관계자는 “환경부에 생태계 교란 식물 제거 작업 관련 국비 지원을 늘려줄 것을 지속해서 건의하고 있다”고 했다. 최현정 hjchoi@kado.net
토착종 25종 멸종시킨 ‘무자비한 킬러’ 사냥 나선 호주
야생 고양이로 매년 15억마리 사라져
80종이 멸종위기종이거나 멸종 위협
오스트레일리아의 야생 고양이.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주 페이스북 갈무리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가 야생 고양이 개체 수 조절을 위해 사격수로 구성된 방제팀을 꾸렸다고 14일(현지시각) 외신이 보도했다. 가디언과 오스트레일리아 에이비시(ABC) 방송 등은 뉴사우스웨일스주 정부가 야생 고양이 전담 방제팀을 출범했다고 전했다.
전문 사격수 5명으로 구성된 방제팀은 주 서부 전역의 국립공원에서 야생 고양이 개체 수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오스트레일리아 모든 지역에서 야생 고양이 사냥은 합법이지만, 주 정부가 전담팀까지 꾸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야생 고양이는 야생에서 태어나 인간과 상호작용하지 않고 살아가는 고양이로, 집고양이나 도시·교외를 떠도는 길고양이와는 다른 개념이다.
본래 오스트레일리아에 살지 않았던 고양이는 200여년 전 유럽인들이 애완용으로 들여온 것으로, 많은 집고양이들이 주인으로부터 독립해 번식에 성공하며 야생 고양이의 뿌리가 됐다.
새를 먹고 있는 야생 고양이.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주 누리집 갈무리
주 정부가 작심하고 야생 고양이 개체 수 조절에 나선 데는 이유가 있다. 야생 고양이가 오스트레일리아 토착종의 멸종 및 개체 수 감소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 정부 누리집을 보면,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에 630만 마리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야생 고양이는 작은 포유류나, 새, 도마뱀, 곤충 등을 먹이로 하는데 이 가운데 80종이 멸종위기종이거나 멸종 위협에 놓였다고 한다. 앞서 지난해 9월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정부도 “야생 고양이는 걸어 다니는 무자비한 킬러”라며 야생 고양이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여러 대책들을 내놓기로 한 바 있다.
에이비시는 주 정부의 추정치를 인용해 야생 고양이가 해마다 15억 마리의 오스트레일리아 토착종을 죽이고 있다고 전했다. 오스트레일리아 비정부기구인 외래침입종위원회 관계자도 가디언 인터뷰에서 “날마다 500만 마리의 토착 포유류와 조류, 파충류와 개구리 등이 야생 고양이와 밖을 돌아다니는 애완 고양이들에 의해 죽고 있다”며 “야생 고양이로 최소 25종의 토착종이 이미 멸종했다”고 말했다.
다만 사격수를 동원한 고양이 ‘살생’이 효과적인 조처인지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이미 주 정부가 야생 고양이 개체 수 조절을 위해 시행 중인 여러 조처와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며 찬성하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일부 동물권 단체를 중심으로는 반대 목소리도 나온다. 오스트레일리아 동물정의당은 고양이를 포함한 외래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야생’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에 반대하며 비살생 방식에 초점을 맞춘 연구들과 정책을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주 정부는 사격수들이 고도의 훈련을 받았으며, 인도적 살생을 위해 매우 엄격한 절차를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고 에비시는 전했다. 주 정부는 우선 국립공원 안에서 방제팀을 2년간 운영한 뒤 성공적이라고 판단되면 다른 지역까지 범위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
가덕신공항 공사 첫발 뗐지만…공기·비용 협상 등 ‘험로’
현대건설 컨소 수의계약 착수
현대건설 연합체(컨소시엄)가 가덕도신공항 부지 조성공사 사업자 선정을 위한 수의계약 절차에 응하겠다는 뜻을 밝힘(국제신문 16일 자 1면 보도)에 따라 네 차례 유찰로 지지부진했던 사업에 속도가 붙게 됐다. 그러나 정식 계약을 하기 위한 과정에서 연합체가 공고 조건 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지역사회에서는 연합체가 사실상 공사를 수행할 사업자로 확정된 점을 활용, 정부와 힘겨루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16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연합체는 앞으로 6개월간 기본설계와 ‘우선 시공분(현장 사무소 등 공사 수행에 필요한 시설)’ 설계에 들어간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는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과 구체적 시기를 협의해 이번 달 중에 부산에서 연합체를 대상으로 현장 설명회를 갖는다. 이후 국토부에 제출되는 기본설계 등에 대한 적격성 심사를 거친 뒤 내년 상반기에 정식 계약을 맺을 계획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연합체가 몇몇 사안에 대해 공고 조건 변경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내다본다. 우선 예상되는 것은 공사기간 연장이다. 공고문에는 사업자가 착공 후 7년(84개월) 내에 공사를 끝내게 되어 있다. 국토부는 애초 공사기간을 6년으로 정했다. 그러나 이 조건이 담긴 1, 2차 입찰이 유찰되자 3차 입찰 때부터는 1년 더 늘렸다. 이에 더해 연합체는 바다를 매립해 활주로를 만들어야 하는 등 공사의 난도를 고려하면 현재 제시된 공사기간으로는 무리가 있다고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건설 자동화 설비와 첨단 공법 등을 동원하더라도 7년 내 완공이라는 목표 달성은 쉽지 않다는 것이 이유다. 또 현재 3개(현대건설·대우건설·포스코이앤씨)로 규정된 시공능력평가액 상위 10개사 공동 도급 범위도 4개로 늘려야 한다는 요구가 협상 과정에서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근래 나타나는 건설 현장의 숙련 인력 부족 문제 등을 감안할 때 대형 건설사 3곳이 대규모 공사를 담당하기에는 힘에 부친다는 주장이다.
이밖에 협상 때는 공사비 인상 요청이 나올 수도 있다. 최근 건설 현장에서 자재비 상승 등으로 공사비가 지속해서 오르는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논리다. 국토부는 공항 및 항만 외곽시설, 교량 등을 건설하는데 들어가는 공사비를 10조5300억 원으로 책정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협상 과정에서 업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수는 있으나 공사기간은 입찰 공고 때 분명하게 명시된 것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중도 변경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또 시공능력평가액 상위 3개사가 보유한 역량을 보면 현재로서는 공동 도급 범위를 늘려야 할 당위성이 부족하다고 언급한다. 공사비 인상과 관련해서도 업계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은 뒤 책정한 것이어서 별다른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이와 함께 연합체가 사업 참여 의사를 공식적으로 표명했기 때문에 공사에 차질을 불러올 돌발 변수 발생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 연합체도 조달청에 공문을 전달하면서 “수의계약을 제대로 진행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중도에 해당 공사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2029년 12월 말 적기 개항과 국제 수준의 공항을 건설하려면 충분한 공사 기간과 공사비가 보장돼야 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정식 계약 전 계속 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역사회는 연합체가 공고 조건을 충분히 숙지했으며 공사 참여 업체들과 내부 논의를 거쳐 수의계약 수용 의사를 밝힌 만큼 이 같은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언급한다. 또 상위 10개사 공동도급 범위 확대도 실현성이 낮다고 본다. 대형 건설사 가운데 삼성물산과 GS건설은 이전부터 사업 불참 의사를 표명했으며, DL이앤씨·롯데건설·SK에코플랜트 등은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이에 일부에서는 연합체의 이런 움직임이 정부를 압박해 더 유리한 조건을 얻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공사 진행이 늦어져 적기 개항에 차질이 생기면 정부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염창현 기자 haorem@kookje.co.kr
가덕신공항보다 더 집중한 화두는 엑스포·퐁피두
시가 이기대예술공원의 핵심 시설로 건립을 추진 중인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 유치를 두고도 의원들의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민주당 김기표(부천을)·이소영(의왕과천)·한준호(고양을) 의원은 “이미 부산에 시립미술관과 현대미술관이 있는데 1100억 원을 들여서 퐁피두센터를 굳이 유치할 필요가 있느냐”면서 “한화문화재단이 서울 63빌딩에 퐁피두 분관을 유치하는 만큼 부산 분관이 성공적으로 운영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하지만 박 시장은 “세계적인 관광도시인 바르셀로나나 마드리드, 파리와 같은 경우에 그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이유가 훌륭한 미술관들이 있기 때문”이라며 “한화가 퐁피두센터를 유치했다고 해서 부산에 유치를 못한다는 것은 서울 중심적 사고”라고 맞받았다. 이 과정에서 한 의원이 퐁피두센터 분관 유치가 박 시장 배우자의 반사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취지로 질문을 던지자, 박 시장은 “중대한 명예훼손의 가능성이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 의원은 또 시가 퐁피두 측과 체결한 비밀유지 각서 등을 이유로 공개를 거부한 양해각서(MOU) 문건 내용 일부를 국감장에서 공개해 시를 당혹하게 만들었다. 이 의원은 “부산시의회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관련 MOU 문건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덕신공항 적기 개항과 활주로 방향 문제에 대한 질의도 나왔다. 민주당 민홍철(김해갑) 의원은 “가덕신공항의 공사 계약 유찰이 됐지만 연내 계약이 될 수 있는지, 동서 방향 활주로가 안전에 문제가 없는지, 여객 수송뿐만 아니라 물류 수송을 위해 활주로 길이와 폭을 더 넓혀야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기본설계를 하는 과정에서 활주로 방향 등 안전 문제에 대해 충분히 검토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활주로가 넓고 더 길어지면 좋겠는데 예산과 관련된 문제이고, 앞으로 공항 체제나 역할을 감안할 때 활주로 하나를 더 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2단계 확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민 의원은 부울경 순환교통망과 환승체계 구축을 위해 동남권 광역교통청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같은 당 염태영(수원무) 의원은 미군 55보급창 주변 오염토를 조속히 정화할 것을 촉구했다. 국민의힘 김희정(부산 연제)의원은 〈부산일보〉가 보도한 ‘빈집 부실 통계’ 문제를 거론하며 시가 일원화된 통계 구축과 함께 빈집 종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30엑스포 유치로 3년 만에 진행된 이날 부산시 현장 국감에서 여야 의원들은 자료 제출과 국감 회의장 시설 등 시의 준비 부족을 질타했다.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인류역사상 최초 세계 물순환 균형 깨져…물 재앙 위협 고조
괴적 토지 이용과 물 관리 부실이 기후위기와 겹치며 물 순환 압박
세계 식량생산 50% 이상 위협…세계 GDP의 8% 저소득국 15%까지 손실
지하수 고랄로 도시들 침하…담수의 근원 더이상 강수량에 의존 불가능
[이슬라 데 코아타=AP/뉴시스]2023년 9월29일 볼리비아 이슬라 데 코아타에서 한 원주민이 극심한 가뭄으로 갈라진 티티카카 호수 바닥을 걷고 있다. 세계의 물 순환이 균형을 잃어 세계 경제와 식량 생산, 그리고 삶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물 재앙의 위협 고조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획기적인 새로운 보고서가 발표됐다고 CNN이 16일 보도했다. 2024.10.17.
세계의 물 순환이 균형을 잃어 세계 경제와 식량 생산, 그리고 삶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물 재앙의 위협 고조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획기적인 새로운 보고서가 발표됐다고 CNN이 16일 보도했다.
국제 지도자 및 전문가들로 구성된 세계물경제위원회가 16일(현지시각) 발표한 이 보고서는 수십년 간의 파괴적 토지 이용과 물관리 부실이 인간이 초래한 기후 위기와 겹치면서 전 세계 물 순환에 전례없는 스트레스를 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 순환은 물이 지구 주위를 움직이는 복잡한 시스템을 말하는 것으로, 물은 호수, 강 및 식물을 포함하여 땅에서 증발해 대기로 상승한 뒤 냉각, 응축돼 비 또는 눈으로 땅에로 떨어지기 전 장거리 이동이 가능한 수증기의 큰 강을 형성햔다.
물 순환의 붕괴는 이미 많은 고통을 유발하고 있다. 거의 30억명의 사람들이 물 부족에 직면해 있다. 농작물은 시들고, 지하수가 마르면서 도시가 가라앉고 있다.
긴급한 조치가 없다면 그 결과는 훨씬 더 재앙적일 수 있다. 물 위기는 세계 식량생산의 50% 이상을 위협하고 2050년까지 전 세계 국내총샌산(GDP)의 평균 8%, 저소득국가는 최대 15%의 손실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보고서 저자인 요한 록스트룀 세계물경제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는 세계 물 순환의 균형을 깨뜨리고 있다. 모든 담수의 근원인 강수량에 더 이상 의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토양과 식물에 저장된 수분인 '푸른 물'과 호수, 강, 대수층의 액체 물인 '녹색 물'을 구분하면서, 녹색 물의 공급은 오랫동안 간과돼 왔지만, 식물이 수증기를 방출할 때 대기로 되돌아가 육지 전체 강우량의 약 절반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물 순환에 그만큼 중요하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또 물 순환의 붕괴는 기후 변화와 깊이 연관돼 있다고 밝혔다.
녹색 물의 안정적 공급은 지구를 가열하는 탄소를 저장할 수 있는 식물을 지원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습지를 파괴하고 숲을 파괴하는 것을 포함해 인간이 가하는 피해는 이러한 탄소 흡수원을 고갈시키고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그 결과, 기후 변화로 인한 열은 풍경을 건조시키고 습기를 줄여 화재 위험을 증가시키고 있다.
그 위기는 물에 대한 엄청난 수요 때문에 더욱 긴급해졌다. 보고서는 사람들이 '품위 있는 삶'을 누리려면 하루 평균 약 4000ℓ가 필요하다며, 이는 유엔이 기본적 필요를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50~100ℓ를 훨씬 상회하며, 대부분의 지역이 자체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다.
보고서는 세계 정부가 물 순환을 '공통선'으로 인식하고 공동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들은 국경에 걸쳐있는 호수와 강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거대한 거리를 여행할 수 있는 대기의 물 때문에 서로 의존하기 때문에 한 국가에서 내려진 결정이 다른 국가의 강우량을 방해할 수 있다.
이 보고서는 낭비를 막기 위한 더 나은 가격 책정과 많은 물을 필요로 하는 작물 재배나 데이터센터 같은 시설을 물 부족 지역에 설치하지 않는 것같은 경제 정책의 근본적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를 발행한 세계무역기구(WTO)의 오콘조-이웨알라 사무총장은 "세계적 물 위기는 비극이지만 물의 경제성을 바꿀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며 물의 희소성과 그것이 제공하는 많은 혜택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물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서울=뉴시스] 유세진 기자
시골에 솟은 도시 쓰레기의 무덤, 493개 ‘쓰레기산’
지난 8월29일 충남 아산시의 한 재활용업체 부지에 폐합성수지류 폐기물이 담긴 포대자루가 쌓여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10m짜리 ‘의성 쓰레기산’이 세상에 드러난 지 5년이 지났다. 한 재활용업체가 허용 보관량보다 150~200배 많은 폐기물을 쌓으면서 솟아난 거대한 쓰레기산은 외신에도 알려지며 논란이 됐다. 환경부는 당시 전수조사로 전국 235개 쓰레기산을 찾아냈다. 2021년 의성군은 3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들여 이를 치웠다.
쓰레기산은 지금도 솟아나고 있다. 경향신문이 환경부에서 받은 ‘불법폐기물(쓰레기산) 발생 및 처리 현황’을 보면, 올해 7월 기준 2019년부터 누적된 쓰레기산은 493개다. 5년 전 환경부 집계(235개)보다 2배 이상 많다. 5년간 전국 약 500곳에 불법 폐기물이 쌓였다 치워지기를 반복했다는 뜻이다. 이 중 대부분은 ‘처리’됐지만 93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지난 8월29일 충남 아산의 한 재활용업체 부지에는 노랑, 주황, 초록 등 여러 색의 폐기물 포대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일부 포대는 심하게 뜯어져 내용물이 밖으로 새어 나왔다. 언뜻 화산재처럼 보이는 폐기물들이 초등학교 운동장만 한 땅을 가득 메웠다.
포대 안에 있던 것은 곱게 갈린 플라스틱 등 조각난 폐합성수지류 폐기물이다. 건물 안팎에 쌓인 폐기물량은 1만9000t에 달한다. 아산시가 허가한 용량(696t)의 27배가 넘는 양이다. 업체는 수년간 허용량을 초과한 폐기물을 쌓으며 불법 운영했다. 본래 폐기물 보관 장소로 한정됐던 건물 안은 이미 포화 상태였다. 꾸역꾸역 들어찬 쓰레기에 밀려 문의 유리창은 깨져버렸고, 철제 벽도 무게를 이기지 못해 구부러졌다.
부지 안쪽으로 갈수록 오래된 고무 냄새가 진동했다. 건물 밖 폐기물 포대들 사이로 오폐수가 고인 것 같은 물웅덩이가 보였다. 울창한 나무에 둘러싸인 채 여름 햇빛을 가득 받고 있었지만, 쓰레기가 쌓인 부지는 죽은 땅이나 다름없었다.
지난 8월29일 충남 아산시의 한 재활용업체 건물 창문이 폐기물 포대 무게에 눌려 깨져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이곳은 전국에 솟아난 493개 쓰레기산 중 하나다. 환경부 설명대로 2019년부터 누적된 493곳의 쓰레기산 중 400곳은 지난 7월 기준으로 처리가 완료됐다. 그러나 93곳엔 여전히 쓰레기가 남아 있다. 아산 쓰레기산을 포함한 38곳은 손도 대지 못한 ‘미처리’ 상태다.
‘의성 쓰레기산 논란’ 5년 뒤, 쓰레기산을 대하는 책임자들의 태도는 미적지근했다. 지자체는 무심했고, 폐기물을 방치한 이들은 치울 의지가 없어 보였다. 환경부는 쓰레기산이 대부분 사라졌다고 여겼다. 환경부 관계자는 “점검을 통해 새로 적발한 곳이 있었을 뿐”이라며 남은 쓰레기산도 지자체가 쓰레기를 방치한 이들을 독려하면 처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곁의 ‘쓰레기산’
지난 8월22일 찾은 인천 부평구의 한 쓰레기산은 대형마트 바로 옆에 있었다. 건설폐기물을 불법으로 방치한 업체 대표가 징역형을 선고받은 뒤 1만4000t이 넘는 쓰레기가 공터에 덩그러니 남았다. 높은 임시 벽을 둘러놓아 밖에서는 쓰레기가 보이지 않는다. 벌어진 틈 사이로 들여다보면 무성한 잡초 더미에 방수포와 콘크리트 조각, 목판, 폐벽돌 등 건설폐기물이 뒤엉켜 있다.
지난 8월22일 인천 부평구의 한 건설폐기물 처리 업체 부지에 방치된 불법 폐기물이 쌓여 있다. 한수빈 기자
마트 앞을 지나던 주민들은 쓰레기산의 존재조차 몰랐다. 장을 보고 나오던 김인경씨(53)도 “(인근 아파트에 10년간 살았지만 벽 너머에 쓰레기가 쌓여 있는지) 전혀 몰랐다”며 “사람들이 다니는 동네 한복판에 쓰레기를 그냥 두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다른 시민은 “공사장이라 벽을 쳐놓은 줄 알았다”며 “쓰레기가 있다면 구청이 빨리 치워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부평구는 “쓰레기가 언제 다 치워질지 모른다”고 했다. 쓰레기를 방치한 업체는 이미 폐업했고, 땅 주인은 ‘내가 버린 게 아니다’라며 구청의 행정대집행에 소송을 제기했다. 구청이 패소하면서 행정대집행을 하려고 확보해둔 예산도 다시 반납했다. 부평구 관계자는 “주민들 피해가 있거나 오염물질이 나오면 치워야 하지만, 주거지와도 멀리 떨어져 있어 (처리가) 시급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충남 아산의 쓰레기산도 마찬가지였다. 시청은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을 내리며 허가 용량을 초과한 폐기물을 치우라고 했지만 업체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 현재 아산시는 주기적으로 업체를 찾아 처리를 독려하고 있을 뿐 “행정대집행 계획은 없다”고 했다. 기자와 만난 업체 관계자는 “여기 있는 것들 모두 재활용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골에서 죽는 도시 쓰레기
대부분 쓰레기산은 개발에서 비껴난 비도심 지역에서 솟았다. 지난 5년 동안 발생한 쓰레기산 493개 중 서울에 위치한 것은 2개뿐이었다. 인천·경기 등 수도권의 쓰레기산이 176개로 가장 많았으나 대부분 도심 외곽 지역이었다. 수도권 밖에 생긴 나머지 315개 쓰레기산 중에선 경북이 83개로 가장 많았고 전남 52개, 충남 48개였다.
지금까지 방치된 쓰레기산도 비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전국 ‘미처리’ 쓰레기산 38개 중 서울에 위치한 것은 한 곳도 없다. 경기에 5개, 인천에는 2개가 있다. 충북이 8개로 가장 많고, 충남과 경북이 각각 6개로 뒤를 이었다.
폐기물은 크게 가정에서 배출되는 생활폐기물과 기업 등에서 나오는 산업폐기물로 나뉜다. 쓰레기산은 산업폐기물의 이동 과정에서 발생한다. 생활폐기물은 ‘발생지 책임 원칙’에 따라 지자체 내에서 처리하지만, 산업폐기물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대부분 민간업체인 처리시설은 지자체 허가만 있으면 쓰레기를 다른 지역으로 옮겨 처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각종 산업폐기물 처리시설은 땅값이 싼 농촌과 비수도권에 몰린다. 일부 업체들은 인적이 드문 지역에 쓰레기를 쌓아놓은 뒤 폐업 신고를 하거나 사라져 버린다. 한국환경공단 자료를 보면, 2022년 기준 산업폐기물은 전체 폐기물 중 87.6%로 생활폐기물보다 훨씬 많다.
5년 전 논란이 된 의성 쓰레기산도 ‘도시 쓰레기의 무덤’이 시골에 쌓인 경우였다. 의성군은 쓰레기산을 처리한 후 발간한 ‘방치폐기물 처리사업 백서’에서 “(20만t의 쓰레기가) 모두 의성군 내에서 배출되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었다며 땅값이 싼 농촌 지역에 폐기물처리업 허가를 신청하는 업체가 많다고 짚었다.
‘의성 쓰레기산’으로 불리던 경북 의성군 단밀면 생송리 재활용업체 사업장의 2018년 11월 모습. 경북도 제공
한곳에 몰린 쓰레기는 환경을 망가뜨린다. 지난 8월29일 여의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산업폐기물 처리의 공공성·책임성 확보를 위한 법 개정 방안 토론회’에 참석한 유민채 전 청주 북이면 추학1리 이장은 이렇게 말했다. “농촌으로 서울·경기도 등 전국 각지에서 쓰레기들이 몰려온다. 소각장 인근 주민이 농사지은 배추밭에 검은 분진이 까맣게 내려앉는다. 농촌에 엄청난 쓰레기를 들이부으면서 어떻게 안전하고 건강한 생명 먹거리를 생산하라고 하나.”
‘치워진’ 쓰레기산은 어디로 갔나
전국 곳곳에 쌓였다가 처리된 쓰레기산은 어떤 과정을 거쳐 사라진 걸까. 환경부 자료를 보면, 지난 5년간 쌓였던 불법 폐기물은 184만5000t에 달한다. 이 중 158만8000t(86.1%)은 처리가 완료됐다. 처리 방식은 크게 재활용, 소각, 매립으로 구분된다. 환경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소각(38만2000t)과 매립(47만7000t)으로 처리된 폐기물이 85만9000t(54%)으로 재활용(72만9000t·46%) 비중을 넘는다.
의성 쓰레기산 처리 때는 20만8000t 중 70% 이상(14만7000t)이 재활용됐다. 방치된 쓰레기의 절반인 9만5000t이 시멘트 공장의 보조 연료로 재활용되며 주목을 받았다. 시멘트를 제조할 때 필요한 유연탄 대신 쓰레기 소각열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폐기물을 수출하기도 했지만, 최대 수입국이던 중국이 2018년 1월부터 폐플라스틱 등 24종 폐기물의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국내에서 처리해야 할 쓰레기 용량이 늘어난 점이 골칫거리로 떠오르면서 에너지 재활용이 대안으로 조명받기도 했다.
이런 식의 재활용도 ‘차선책’일 뿐 환경에 무해하지는 않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온다. 환경오염시설로 피해를 본 농촌 지역을 지원하는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하승수 변호사는 “열을 회수하더라도 결국 쓰레기를 소각하는 건 마찬가지”라며 “분류상 재활용이긴 하지만 대기를 오염시킬 우려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22일 인천 부평구의 한 건설 폐기물 처리 업체에 방치 폐기물이 쌓여 쓰레기산을 이루고 있다. 한수빈 기자
일부에서는 사람이 없는 땅에 쓰레기를 쌓아두는 것이 매립이나 소각보다 환경오염이 덜하다고 주장한다. 방치된 쓰레기도 환경에 악영향을 준다. 홍수열 자원순환연구소 소장은 “쓰레기가 야외에 오랜 시간 방치되면 침출수가 흘러나오고 미세 플라스틱이 날리는 등 환경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발견된 쓰레기산은 정부 예산을 들여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쓰레기가 모이면 화재에 취약하다. 경향신문이 소방청에서 확보한 자료를 보면 지난 5년간 폐기물·재활용시설에서 발생한 화재 건수는 631건이다. 화재로 41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720억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의성군은 2018년 12월 쓰레기산에서 일어난 화재가 다음해 1월까지 계속되며 곤란을 겪었다. 쓰레기 자체 압력으로 만들어진 열과 가스가 화재로 이어졌다. 아산 쓰레기산에서도 지난해 3월 용접 작업 중 불씨가 폐기물로 튀면서 큰불이 났다. 쓰레기 사이에 남은 불씨를 제거하느라 진압에 꼬박 이틀이 걸렸다.
쓰레기산, ‘0’이 될 수 있을까
남아 있는 쓰레기산은 ‘주민 피해가 적다’거나 ‘예산 집행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8월29일 찾은 인천 서구의 택지개발 공사장에 쌓인 쓰레기산도 그런 이유로 10년째 남아 있다. 이곳에는 폐전선 6700t이 머리카락처럼 뒤엉킨 채 쌓여 있다. 누가 버렸는지 알 수 없어 땅 주인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처리를 떠맡았지만, 아직 공사가 시작되지도 않은 땅이라 처리 속도는 더디다. 구청은 처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구청 관계자는 “폐전선이 그 자체로 대단히 오염을 일으키는 물질은 아니고, 아직 빈 땅이라 관련 민원은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8월29일 인천 서구 택지개발 공사장 부지에 폐전선 약 6700t이 쌓여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환경부도 남은 쓰레기산에 행정대집행을 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예산을 써도 이익을 환수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다. 환경부는 “의성 논란 이후 발생을 막기 위한 입법이 충분히 이뤄진 상태”라고 했다. 2020년 5월 시행된 폐기물관리법 개정안은 불법 폐기물 발생과 관련한 민간업체들의 책임 및 처벌 강화에 중심을 두고 있다. 한번 솟아나면 처리가 복잡하고 환경을 망가뜨리는 쓰레기산은 발생 자체를 막는 게 핵심이지만, 예방을 위한 제도 변화는 지지부진하다.
쓰레기 발생량이 처리 능력에 비해 과도한 점도 쓰레기산 발생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환경공단 자료를 보면, 하루 평균 폐기물 발생량은 2017년 42만9531t에서 2022년 51만842t으로 16% 증가했다. 늘어나는 쓰레기를 제대로 처리하려면 안전성을 갖춘 시설이 필요하다. 산업폐기물의 이동을 제한해 쓰레기의 발생지 처리 원칙을 세울 수 있도록 폐기물관리법을 개정하는 등 입법 논의도 이뤄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하 변호사는 “불법 폐기물 발생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데 초점을 두지 않으면, 남은 93개 쓰레기산이 모두 치워져도 또 다른 93개 쓰레기산이 생길 것”이라며 “생활폐기물처럼 지역 내에서 발생한 쓰레기는 지역 내에서 책임지도록 하고, 최소한의 공공성을 갖춘 처리시설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소장은 “불법 폐기물을 막으려면 폐기물 처리시장이 안정화돼야 한다”면서도 “발생량 자체를 줄이는 게 가장 좋은 해법”이라고 말했다.
경향 창간기획팀-유정인(정치부) 고희진(전국사회부) 이홍근(정책사회부) 최혜린(국제부) 정지윤·한수빈(사진부) 박채움(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
나이지리아로 간 ‘7번’ 유니폼, 옷의 죽음을 따라가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10070600111
한국, 세계 4위 중고의류 수출국
생산~폐기, ‘지구 반 바퀴’ 여정
결국 소각되거나 쓰레기로 쌓이는 옷,
“매립지 주변에 피부 성한 동물이 없어”
배송 즉시 버린다…‘딜리버-스루’ 시대
https://www.khan.co.kr/environment/environment-general/article/202410100600021
초저가로 163건 사서 63건 폐기
‘버릴 생각’으로 사는 사람들
생산·마케팅 “산업 전반이 불필요한 소비 부추겨”
그날 ‘007 작전’ 속에 새 옷들이 소각됐다
브랜드 가치 유지 위해 재고 ‘보안 소각’
누가 얼마나 태우는지 몰라
소각량 보고하도록 해 추적 관리해야
팔리지 않은 옷들의 집단 장례
태그가 달린 새 옷들이 철통 보안 속에 태워지고 있다. 기업은 불량품 유통, 시제품 디자인 유출, 재판매 차단 등을 ‘보안 소각’ 이유로 든다.
실제 이유는 다르다고 관련 업계와 전문가들은 말한다. 생산한 분량을 다 팔지 못했다는 사실도, 멀쩡한 옷을 태운다는 사실도 알려져서 좋을 게 없어 ‘대외비’로 태운다는 것이다.
태워지는 규모는 알 수 없다. 정부는 모르고, 기업은 숨긴다.
과잉생산된 옷들은 소각되면 대기를 오염시키고, 매립되면 땅을 더럽힌다. 유럽연합(EU)은 지난 7월 재고 소각 금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한국은 소각량조차 추산하지 못하고 있다.
2023년 기준 최근 5년간 71개 패션 상장기업이 배출한 의류 및 폐합성수지·폐합성섬유량.출처: 한국환경공단 ‘올바로’ 시스템
가덕도 신공항 활주로 배치가 위험하다"
국회 국토교통위 손명수 의원, " 기상청 잘못된 풍향 관측 데이터로 이착륙 활주로 배치"
가덕도신공항 조감도.(사진제공 : 국토부)
부산 가덕도 신공항 활주로 배치에 중대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활주로를 동서 방향으로 결정했을 때 핵심 자료로 사용된 기상청의 풍향 관측 데이터 중 2년치 자료에 오류가 발생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돼 항공기의 안전한 이·착륙을 위해 활주로 배치 적정성에 대한 재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손명수 의원(경기 용인시 을)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가덕도신공항 건설사업 타당성평가 및 기본계획 수립용역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1997년부터 2022년까지 6년 간 기상 관측자료 분석 결과 가덕도는 북서풍(北西風)의 발생빈도가 높았다.
그러나 2013년부터 2022년까지의 기상 자료를 바탕으로 한 가덕관측소 Wind Coverage 분석결과에는 ‘동풍이 우세풍으로 나타나는 특이점을 보임 (통상, 북서풍이 우세풍)’ 이라 분석하고 ‘동서방향의 활주로 배치가 바람 측면에서 유리’라고 덧붙였다.
국토교통부의 '공항·비행장시설 및 이착륙장 설치기준'과 ‘공항·비행장시설 설계 세부지침’ 에 따르면 활주로는 가능한 주 풍향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배치하도록 돼 있어 활주로는 동서 방향으로 정해졌다.문제는 기상청이 손 의원에게 제출한 가덕도 풍향 자료에서 비롯됐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우세풍(가장 비중이 큰 바람)은 북서풍으로 19.7%~25.1% 가량의 비중을 보였으나 2020년과 2021년에는 북서풍이 각각 11.4%와 7.5%로 줄고, 동북동풍(東北東風), 그러니까 북동풍(北東風) 보다 동쪽에 더 치우친 바람이 각각 22.3%와 19.8%로 가장 많이 부는 바람으로 기록됐다.
이는 다른 해(2.4%~4.2%)보다 이례적으로 높은 것으로 2022년에는 동북동풍이 다시 2.2%로 떨어지고, 서북서풍(西北西風)이 13.9%로 우세풍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기상청은 ‘태풍 마이삭의 영향으로 일정 기간(2020년 9월 4일~2021년 5월 26일) 동안의 장비 장애’로 데이터에 오류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가덕도 신공항 기본계획의 바람 분석은 잘못된 기상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위험한 결정인 것이다.
우리나라 대다수 공항 활주로는 북서풍과 남동풍의 영향 때문에 남북 방향으로 설계돼 있다. 이는 항공기가 이·착륙을 할 때 정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 것이 안전성과 연료 효율성 측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례적으로 제주공항이 지리적 특성 때문에 주 활주로가 동서 방향으로 뻗어 있는데 그로 인해 옆에서 부는 바람, 즉 측풍의 영향을 1년 내내 받게 됨으로써 제주공항은 항공기 조종사들 사이에선 '가장 착륙이 까다로운 공항'으로 꼽히고 있다.
손명수 의원은 “활주로 방향 결정에 핵심인 풍향 관련 자료가 잘못됐다는 점이 확인된 이상 기존 용역 결과를 다시 한번 철저히 검증해 국민안전과 가덕도 신공항의 성공적 건설을 위해 정밀한 재검토가 필수적이다”고 강조했다.
김광년 기자 / 국토일보
영남알프스 간월재 억새숲 보존 사활
억새명소’로 꼽히는 울산 영남알프스 신불산 억새숲이 해마다 자연 감소하고 있어 울주군이 보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간월재 억새숲은 지난해 산림청이 선정한 휴양을 즐기기 좋은 ‘100대 명품숲’에 이름을 올렸다. 탁 트인 억새평원과 잣나무숲이 어우러져 경관적 가치가 뛰어나 올해도 수많은 방문객들의 인파가 몰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간월재 억새숲 면적은 해마다 크게 자연감소하는 추세다. 17일 울주군에 따르면 신불산 정상부터 능선따라 분포하는 간월재 억새숲은 지난 1968년에는 343㏊에 달했다. 그러나 이후 소나무가 대거 침범하고, 등산객 증가와 데크 및 계단 설치로 군락지가 훼손되면서 면적이 줄어들었고, 지난 2011년에는 16㏊까지 감소했다.
울주군 관계자는 “억새가 풀 종류이기 때문에 다른 나무나 풀 등에 밀릴 수밖에 없다”며 “또한 고산지역 특성과 최근 기후 변화, 방문객들로 인한 훼손도 심해 억새숲 면적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군은 지난 2014년 ‘영남알프스 억새 복원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지난 2015년부터 본격적인 간월재 억새 보존 사업에 들어갔다.
연 1~2회가량 억새 관리 사업을 실시해 잡관목 제거, 억새 식재, 펜스 설치 등을 진행했다. 올해는 예산을 4억5000만원으로 확대해 상·하반기 총 억새 15만 포기가량을 심기도 했다.
수 년간의 억새 보존 사업 끝에 지난 2021년 기준 간월재 일대 억새숲은 33㏊까지 늘어났지만, 여전히 과거 대비 10% 면적에 불과한 수준이다. 더욱이 이제 인공적인 보존 사업 없이는 간월재 억새숲은 지속 감소하다 못해 아예 사라질 수도 있는 만큼, 군은 최근 본격적인 보존 사업 절차에 착수했다.
앞서 영남알프스 억새 복원 기본계획 수립도 10년이 지난 만큼, 지난 4월 군은 ‘울산생명의숲’과 억새숲의 체계적인 복원 방안, 보전 방법 등을 정립하기 위해 대구대학교 산림연구소를 통해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오는 21일 중간보고회가 열릴 예정이며, 군은 향후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5개년 중장기 보전 계획을 수립한다.
울주군 관계자는 “신불산 억새숲이 많은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만큼, 관광 자원화를 위해 최대한 유지하는데 힘쓰고 있다”며 “용역 결과에 따라 사업 방향을 정해 내년부터 본격적인 보존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혜윤기자 hy040430@ksilbo.co.kr
치명률 최고 88% 전염병 확산하는데…"팬데믹 또 온다“
코로나19에 이은 또 다른 팬데믹(세계적 감염병 대유행)이 국제사회가 대비하지 못한 채 찾아올 위험이 크다는 경고가 나왔다.15일(현지시간) WHO에 따르면 국제적 보건 위기에 대응하고자 세계은행과 WHO가 조직한 글로벌 준비태세 감시위원회(GPMB)는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에만 위험 수위가 높은 감염병 17가지가 발생하는 등 팬데믹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최근 르완다에서 확산한 치명률 최고 88%의 급성 열성 전염병인 마르부르크병과 지난 4월 미국에서 가축을 통한 인간 감염 사례가 확인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5N1) 등을 고위험 감염병 사례로 들었다.
최고 수준의 보건 경계태세인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가 1년 4개월 만에 다시 선언된 엠폭스(옛 명칭 원숭이두창) 역시 고위험 감염병으로 꼽혔다.
보고서는 "코로나19 다음의 팬데믹은 우리가 완벽하게 시스템을 갖출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것"이라며 "미래에 닥칠 도전을 견딜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1차 의료 시스템에 지금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WHO는 팬데믹 위험을 키우는 요인도 보고서에 기술됐다고 소개했다. 국가 간 내지 국가 내부의 신뢰 부족, 불평등한 보건 여건, 집약적으로 이뤄지는 농업, 인간과 동물 간의 교차 감염 가능성 등이다.
디지털 기술은 보건 위기에 신속한 대응할 수 있게 해 주지만, 잘못된 정보를 빠르게 확산시켜 위험을 증폭하는 요인도 될 수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WHO는 "모든 국가가 보건 시스템을 강화하고 취약 계층에 대한 보건 서비스를 보장할 수 있어야 팬데믹 대응이 가능해진다"고 강조했다.
각국의 시선이 인간 사회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도 WHO는 언급했다.
WHO는 "인간과 동물, 환경이 서로 맞물린 지점을 모두 아우르는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며 "건강과 복잡하게 연결된 여러 부문 간 협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미래에 닥칠 보건 비상사태에서 회복할 수 있는 힘은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 기술 향상, 보편적인 보건 인프라, 다양한 팬데믹 위험 요인에 대한 이해 증진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은하·별 1억개 담았다…역대급 고화질 ‘우주 지도’ 첫 공개
유클리드우주망원경 관측 목표치의 1% 완성유클리드우주망원경의 관측 결과를 담은 첫 우주 지도. 은하 1400만개를 포함해 약 1억개의 별과 은하가 포함돼 있다. 유럽우주국 제공
유럽우주국(ESA)이 현대 우주론의 가장 큰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인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발사한 유클리드우주망원경의 관측 결과를 담은 첫 우주 지도를 공개했다.
지난해 발사된 유클리드망원경은 6년 동안 6억화소의 카메라로 하늘의 3분의 1 이상 영역에 있는 최대 100억광년 거리의 수십억개 은하들을 관측해 우주의 시공간 지도를 작성하는 것이 주된 임무다.
유럽우주국이 최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국제우주대회에서 공개한 이 지도에 담긴 영역은 전체 목표의 1%다. 하지만 이 작은 영역에 은하 1400만개를 포함해 약 1억개의 별과 은하가 포함돼 있다.
이 사진은 올해 3월25일부터 4월8일 사이에 이뤄진 260번의 관측 데이터를 모아 완성한 것이다. 2주 동안 겉보기 크기(시지름) 기준으로 보름달 면적의 500배가 넘는 하늘 영역을 샅샅이 훑었다.
유클리드우주망원경의 우주 지도는 최대 600배까지 확대해 볼 수 있다. 맨오른쪽은 지도가 하늘에서 차지하는 영역의 크기를 비교하기 위해 표시한 달. 유럽우주국 제공
별 사이를 잇는 은하깃털의 실체는?
공개된 사진은 화소 수가 208기가픽셀(2080억픽셀)이나 된다. 최대 600배까지 확대해서 볼 수 있어 은하의 복잡한 구조를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약 4억2천만광년 떨어져 있고 지도 작성 영역의 0.0003%도 안되는 나선은하 ESO 364-G036의 구조를 150배 확대해 상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공개된 사진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우리 은하의 별들 사이에 있는 우주 구름이다. 지구의 새털구름(권운)처럼 보인다고 해서 은하깃털이라고도 부른다. 사진(위)에서 검은색 우주를 배경으로 파랗게 빛나는 줄무늬의 우주 구름은 가스와 먼지의 혼합물이다.
유럽우주국은 지난 2월부터 본격적인 관측 활동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목표치의 12%까지 관측을 마쳤다고 밝혔다.
유클리드우주망원경의 첫 우주 지도 중 일부를 150배 확대한 사진. 왼쪽은 4억2천만광년 거리에서 포착한 2개의 은하(ESO 364-G035 및 G036)가 충돌하는 모습, 오른쪽은 6억7800만광년 거리의 은하단 아벨 3381. 유럽우주국 제공
가까운 별에서 수십억 광년 은하단까지
지구에서 태양 반대쪽으로 150만km 떨어진 우주공간에 있는 유클리드망원경의 장점은 하늘에서 희미한 것과 밝은 것, 먼 것과 가까운 것, 작은 행성과 거대한 은하단을 모두 한 장의 사진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주 초기에 탄생한 것에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수십억년에 걸친 시공간을 함께 보여준다.
이를 위해 은하의 모양을 관측하는 가시광선 카메라(VIS)와 은하의 밝기와 거리 등을 측정하는 근적외선 분광계·광도계(NISP) 두 가지 관측장비가 탑재돼 있다.
6억 화소의 가시광선 카메라는 지상의 천체망원경보다 4배 이상 선명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시야각은 허블의 200배로, 한 번에 보름달 2배 크기의 하늘 영역을 관측할 수 있다.
유클리드우주망원경이 작성하게 될 우주지도 영역. 오른쪽 아래 노란색 부분이 이번에 작성한 영역이다. 유럽우주국 제공
유클리드가 암흑물질을 찾는 방법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는 5%의 물질과 27%의 암흑 물질, 68%의 암흑 에너지로 구성돼 있다. 물질을 제외한 두 가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암흑 물질은 빛을 방출하거나 반사하지 않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자체 질량을 갖고 있다. 따라서 중력과 비슷한 효과로 은하들을 모아주는 자석 같은 역할을 한다. 반면 암흑 에너지는 우주를 가속 팽창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정한다.
과학자들은 유클리드망원경의 중력렌즈 관측을 통해 암흑 물질의 실체를 파악할 계획이다. 중력렌즈란 멀리 떨어진 천체에서 나온 빛이 거대한 천체들의 중력 영향을 받아 빛이 증폭되면서 굴절돼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암흑 물질엔 질량이 있으므로 유클리드망원경이 포착한 중력렌즈를 분석하면 은하에 의한 것과 암흑물질에 의한 중력렌즈 효과를 구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과학자들의 생각이다.
암흑 에너지는 은하 사이의 거리 변화, 초신성 빛이 멀어지는 속도 등을 통해 추적한다. 유클리드를 통해 우주를 깊이 들여다보면서 서로 다른 시기의 우주 크기를 비교하면 언제부터 우주 팽창 속도에 변화가 생겼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원해도 다 살 수 없는 먹거리의 시대가 온다
농민들은 기후위기와 고령화라는 어려움에 직면한 고랭지 배추를 살릴 의지가 있는지 정부에 끊임없이 물어왔다. 현 정부는 그 답으로 ‘무관세 중국산 배추 수입’을 내놓았다.
9월30일 서울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의 배추 경매 현장. ⓒ시사IN 김다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경매 감정용 배추’를 김숙자씨(가명)가 급하게 주웠다. 김씨는 아들과 함께 40년째 배추 유통업을 하고 있는 베테랑 유통업자다. 그는 한 망(3포기)에 3만1000원을 주고 배추를 낙찰받았다. 그가 집어든 경매 감정용 배추는 경매가 시작되기 전, 배추 상태를 확인하도록 배추망에서 한두 포기씩 꺼내둔 것이었다. 감정용 배추도 낙찰자의 몫이긴 하지만 배추가 헐값일 때는 대개 버려두고 가기 마련이다.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다. “이게 지금 한 포기당 만원인 거잖아요. 이것도 귀한 거야. 그러니 당연히 챙겨 가야죠.” 김씨가 배추의 푸른 겉면을 떼어내며 말했다.
9월30일 방문한 서울 송파구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가락시장)의 배추 경매는 여느 때와 같이 밤 11시에 시작됐다. 경매사들이 배추단을 쌓아놓은 팰릿 앞에서 독특한 구호와 함께 소리를 치면 입찰기를 든 유통업자들의 손이 빨라졌다. 1차 경매는 17분 만에 끝났다. 김숙자씨는 최근 가락시장에 들어오는 배추 수량 자체가 평소의 3분의 2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면서도 이번 주 들어 사정이 나아진 거라고 말했다. “얼마 전에는 한 망에 7만원이 넘었는데 지금은 3만원대예요. 좀 숨통이 트인 거지. 내가 배추를 오래 취급했는데도 이런 가격은 진짜 처음 봐.” 한 망에 7만원씩 하는 배추는 어디서 사가느냐고 물으니 예상하지 못한 답이 돌아왔다. “유명한 칼국숫집 같은데서 가져가죠. 무조건 맛있는 국내산 김치를 내놔야 하는 식당들.” 농산물 원산지표시제에 따라 식당에서는 배추의 원산지를 소비자들이 볼 수 있게 표기해야 한다. 국내산 배추여야 소비자들이 만족하는 대형 프랜차이즈 외식업체들은 사계절 내내 국내산 배추가 필요했다.
마침 이날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배추 수급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중국산 배추를 수입한다고 밝혔다. 송 장관은 2년 만에 수입되는 중국산 신선 배추 초도 물량 16t이 9월26일 국내에 들어왔다는 설명과 함께 배추 수확량에 따라 10월까지 최대 1100t을 추가 수입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국내에 이미 반입된 16t 규모(약 5300포기)는 외식업체와 식자재 업체에 제공될 예정이었다.
정부 조치에 대해 유통업체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우선, 신선 배추 내수시장으로 유입되는 물량이 아닌 만큼 도매가격 안정화에 실효성이 없을 거라고 봤다. 가락시장 도매시장법인의 한 관계자는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중국산 배추 수입 결정은 김치업체들에 ‘정책 시그널’을 주는 상징적 행보에 그칠 뿐이라고 평가했다. 심지어 김치 완제품 업체에서도 중국산 배추가 매력적인 상품이 아닐 거라고 예상했다. 가장 큰 이유는 국민들의 김치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국내 업체가 만든 완제품이라도 원재료가 중국산이면 ‘메이드 인 차이나’ 김치가 되는 거다. 한국 소비자들은 웬만하면 이런 김치를 선택하지 않는다. 업체들이 이런 소비자들의 심리를 모를 리 없다. 업체로서도 국내산 배추를 이용한 ‘믿을 수 있는’ 김치를 만든다는 브랜드 이미지를 포기하면서까지 중국산 배추를 이용하는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산 수입 배추가 국산 배추의 대체재가 돼 수급 불안을 잠재우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분석이다.
정부의 이번 조치가 기후위기 시대에도 농산물 정책을 여전히 ‘먹거리 관점’이 아닌 ‘물가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나왔다. 정은정 농촌사회학자의 말이다. “강원도는 여름 채소를 떠받치는 상징적인 지역이다. 하지만 농민 고령화, 기후변화로 면적 대비 고랭지 배추 생산량도 감소하면서 농가소득 보존이 점점 어려워졌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여름 배추’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진단은 일찌감치 나왔다. 농민과 전문가들은 고랭지 배추 농업을 살릴 의지가 있는지, 아니면 이대로 포기할 건지 정부에 계속 물어왔다. 하지만 정부는 지금까지 중장기적인 식량 정책을 내놓지 않고 답을 회피해왔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9월29일 전남 해남군 일원의 배추밭을 찾아 김장 배추 작황을 점검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물가안정 효과 미미한 ‘묻지마 수입’
현 정부는 할당관세 제도를 통해 수입 배추 관세를 모두 깎아줌으로써 이 질문에 대답을 한 셈이다. 배추는 이전 10년간 할당관세가 적용된 적이 없는 품목이다. 할당관세는 정부가 특정 수입품에 대해 무관세 혹은 저관세를 적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지난 4월 정부는 물가를 안정화한다는 명분으로 ‘제19차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5월10일부터 10월31일까지 수입되는 배추 전량에 대해 0% 관세를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윤석열 정부는 올해 들어 과일류 21개 품목부터 대파·양파·당근 등 한국인 식생활과 관계가 깊은 민감 품목에 대한 할당관세를 폭넓게 적용했다. 9월29일 임미애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20개에 불과하던 농축산물 할당관세 적용 품목은 윤석열 정부 첫해인 2022년 35개, 지난해에는 43개로 늘었다. 2023년 할당관세에 따른 관세지원액은 3934억원에 이른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67개 품목에 할당관세가 적용됐다.
이런 ‘묻지마 수입’ 정책에 대해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지적된다. 첫째, 할당관세는 소비자 물가안정 효과가 크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022년 할당관세 품목별 물가안정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소비자가 직접 구매하는 최종재의 관세를 1% 인하할 경우 소비자가격 인하 효과는 소고기 0.12%, 돼지고기 0.60%, 닭고기는 0.29%가 최대치였다. 수입업체가 받은 할당관세 혜택이 소비자 판매 가격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해당 보고서는 소비자가 직접 소비하는 품목보다 중간재 품목을 지원할 경우 물가안정 효과가 즉각적이고 강하다고 설명한다.
9월30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이천비축기지에서 관계자들이 중국산 수입 배추를 살펴보고 있다. . ⓒ공동취재
두 번째 문제는 관세법의 애초 취지를 잘못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세법 제71조는 할당관세를 적용할 수 있는 특수한 조건을 설명한다. 수입물품에 대한 관세를 할인함으로써 정부는 세수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이런 이익을 포기할 만큼 경제적 효과가 확실하고 법이 정한 근거에 명확하게 합당할 경우 할당관세를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관세법에 따르면 ‘수입가격이 급등한 물품 또는 이를 원재료로 한 제품의 국내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하여(제71조 2항)’ 할당관세를 적용할 수 있다. 국내산 물품의 가격이 아니라 수입산 물품의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 상승해 소비자에게 타격이 있을 때 관세를 조정해 국내 도입가와 균형을 맞춘다는 의미다. ‘2024 국정감사 이슈 분석’ 중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보고서에서도 해당 내용을 지적한다. 보고서는 “만일 대파, 양배추, 당근, 배추 등의 농산물 품목에 할당관세를 적용하려면 그 명분은 이들 품목의 국내산 가격이 아니라 수입산 가격에 기반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법에 명시된 또 다른 조건 중에는 ‘원활한 물자수급(제71조 1항)’이 필요할 때도 있다. 이번 배추 품귀 현상이 적용되지 않을까? 해당 조항의 의미를 김규호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에게 물었더니 2021년 요소수 사태를 예로 들었다. “국내에 대체재가 거의 없는 특정 물자 수급에 어떤 이유로든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해보자. 그럴 경우 정부는 할당관세를 적용해 글로벌 시장에 우호적인 시그널을 줄 수 있다. 예컨대 중국에서 요소수 수출량을 줄여 국내 피해가 커진다면 정부가 저관세 카드를 활용함으로써 요소수 수출국과 수입업체 등에 사인을 보내고, 시장 불안 심리를 진정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번처럼 일시적인 생산량 감소로 특정 국산 품목의 가격이 올라간다고 해서 즉각적으로 무관세 시장을 열어버리는 것은 관세법의 취지를 완전히 살린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김규호 입법조사관은 “만약 지금이 김장철인데 비축 물량과 다음 작기 등을 감안해도 단기적 해법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한 번쯤 고려해볼 수 있는 제도”라고 말했다. 김장철에 배추 가격이 평년보다 수십 배가 오른다면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가계와 기업이 적지 않은 경제적·심리적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러운 배추 수입 결정은 오히려 농업계가 품목별 자조금 단체 등을 통해 매매계약을 맺으며 농산물 수급 조절을 해오던 정책에 혼선을 빚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월4일 국내 최대의 고랭지 채소밭인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안반데기에서 고랭지 배추 출하가 한창이다. ⓒ연합뉴스
기후와 먹거리 변화 알리는 ‘깃대종’
국내 최대 배추 생산지인 전남 해남에서 배추 농사를 짓는 김문희씨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정부와 소비자가 농부에게 시간을 조금만 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7월부터 9월까지 여름 배추가 나오는 시기는 1년 중 배추 생산량이 가장 적은 때다. 고랭지 배추는 강원도 등지에서만 수확되는 배추로 생산량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역대급 9월 폭염으로 고랭지 배추 수확량이 감소하면서 평소보다 심한 ‘배추 보릿고개’가 만들어졌다. “해남도 9월 말에 내린 폭우로 배추 작황에 타격이 클 거라 봤지만 어느 정도 회복하고 있다.” 김씨는 정말 배추를 수입해야 할 만큼 올해 본격 김장철(11월 중하순)에 타격이 될지 의문을 품고 있다. “올해 고춧가루가 굉장히 안 팔렸다. 배추 농사 짓는 사람들은 그해 김장양을 고춧가루 판매량으로 짐작한다. 김장 배추 공급량이 줄어들 수 있지만, 그만큼 김장 수요가 줄어들 확률도 높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산 배추 수입이 결정돼버리니 농부들도 맥이 빠진다.” 배추 공급량이 회복됐을 때 중국산 배추 물량까지 더해지면 가격이 곤두박질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이번 사태를 ‘배추의 역습’으로 정의했다. 배추는 스마트팜으로 키우지 않는 대표적 노지 채소다. 시골에 가면 쉽게 배추밭을 볼 수 있다. 농민들에게도 친근한 작물이다. 자급을 위해서라도 다수 농부들이 조금씩은 밭에 심고 키운다. 농약이라는 인위적인 힘을 빌리기도 하지만, 배추는 자연의 최전선에서 자란다. 노지에서 자라는 배추는 기후와 먹거리의 변화를 알려주는 ‘깃대종’이다. 그런 의미에서 ‘배추의 역습’이라는 말은, 그동안 작물 재배 방식이나 수확 시기 등을 예측하던 관습에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것을 뜻한다.
김규호 입법조사관은 “기후위기 대응에는 많은 비용이 필요한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새로운 먹거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경제적 비용뿐만 아니라 수급 불안에 따른 소비심리를 안정화시키는 비용 역시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내가 원하는 만큼 언제든 무한정 식품을 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아니라 불확실성이 언제든 상존할 수 있다는 먹거리 감각을 갖춰야 한다. 정부는 농산물의 생산량 등락에 따라 시민들이 불안하지 않게끔 정책을 설계하되 이런 새로운 감각을 공유할 방법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올해의 ‘배춧값 파동’은 정부의 먹거리 정책에 지금껏 유예되어온 숙제를 다시 던지고 있다.
김다은 기자sis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