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해 포도 색깔이... 큰일 났습니다 2. 기후대응댐이라는 유령이 출몰했다 3. 탄소중립? 버스부터 공영화합시다 4. '정의롭지 않은' 에너지 전환, 어떻게 봐야 할까 5. “이 정도일 줄이야...” 가라앉는 인도네시아의 현실 6. 20년 내 인구 70% '극심한 날씨' 영향 받는다 7. 매년 0.33일씩 늦어지는 단풍 절정기… 2040년이면 11월에 8. 구상나무·연어·꼬리치레도롱뇽·황로, 기후변화 지표종 됐다 9. "인간 뇌는 99.5%에 불과…나머지는 플라스틱“ 10. 부산 기장 고리 3호기 운영 중단…40년 설계수명 완료 했지만 11. 자살 문명 12. 가덕도 신공항 10조5천억짜리 수의계약? 12. 수도권 대항할 수 있는 지역 대도시 키워야
13. 계절의 실종, 미래를 보다 14. "폭염·가뭄으로 배추 말라죽어, 세 번 심어도 소용없어" 15. '기후 리터러시'와 언론의 역할
올해 포도 색깔이... 큰일 났습니다
충남 전역 농작물에서 고온피해 속출... 배추, 무, 밤, 사과, 고추, 포도 등 전부 비상
▲ 충남 청양의 포도 농가.
요즘 농촌은 기후위기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최근 고온 현상으로 논에서는 때아닌 벼멸구가 창궐해 수확기를 맞은 농민들의 마음이 타들어 가고 있다. 하지만 고온 피해는 벼농사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유난히 무더운 날씨가 지속된 올해는 배추와 무, 밤, 사과, 고추, 포도 등 피해 품종을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농작물에서 고온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30년 이상 농사를 지은 베테랑 농민들조차 "갈수록 농사 짓기가 어렵다"고 토로한다.
충남 예산에서 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 A씨는 "올해는 너무 더워서 사과 농사도 잘 안됐다. 농사 짓기가 갈수록 어렵다"고 호소했다. 이어지는 그의 토로다.
"만생종 후지(부사) 사과 품종의 경우, 지난해보다도 작황이 좋지 않다. 지난해 봄에는 사과꽃이 냉해 피해를 입었다. 때문에 사과가 많이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올봄에는 일부 나무에서 사과꽃이 거의 피지 않았다. 당연히 수확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예산(사과 생산지로 유명함)에서 후지 사과 품종을 재배하는 것은 더 이상은 어려울 수도 있어 보인다. 내 나이가 칠십 넷이다. 다른 일을 찾기도 어렵다."
그러면서 "날씨가 갈수록 덥고 기후변화가 심하다. 온난화 현상이 하루아침에 끝날 일이 아닌 것 같다"라고 말했다. A씨는 "올해는 사과뿐 아니라 무와 배추 농사도 망쳤다. 김장 배추는 8월 20일 경에 심고, 무는 9월 초에 심었다"며 "추석 당일까지도 열대야 현상이 벌어지더니 결국 고온 현상으로 배추와 무가 모두 죽었다"라고 전했다.
무·배추는 죽고 밤은 쭉정이... "이런 경우 처음"
▲ 충남 서천, 이상기후로 여물지 못한 밤송이가 낙과했다.ⓒ 독자제공
밤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들 역시도 울상이다. 올해는 밤벌레(복숭아명나방)로 인한 피해가 유독 커서 큰 소득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밤 품종 중 하나인 옥광밤은 9월 말부터 수확을 시작한다. 하지만 올해는 고온현상으로 밤송이와 밤의 낙과과 계속되고 있고 쭉정이도 늘었다.
서천에서 옥광밤 농사를 짓고 있는 B씨는 "올해는 쭉정이 밤이 유난히 많다. 7월에는 비가 많이 왔다. 이후로 8~9월까지 가뭄이 이어졌다. 가뭄 때문에 낙과(밤이 떨어지는 현상)가 계속됐다"라며 "알이 차지 않은 쭉정이 밤이 송이째 떨어지고 있다. 그나마 살아남은 밤도 알맹이가 작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최근 고온현상이 계속된 탓이 아닐까 싶다. 이뿐만아니라 해충 피해도 크다. 예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방제를 했는데도 복숭아명나방, 일명 밤벌레가 많이 생겼다"고 호소했다.
"40년 동안 밤농사를 지었지만 올해같은 경우는 처음이다. 옥광밤은 고급품종이다. 수매가도 일반 밤보다 2000원 정도 비싸다. 시중에서는 1kg당 1만 원이 넘는다. (올해는 작황이 좋지 않아) 피해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다."
검게 익었어야 할 포도는... 붉은 채로 짓물러
▲ 고온에 짓물러 버린 포도. 충남 청양군의 한 포도농가.
포도 농가들도 고온 피해와 해충 피해로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청양에서 캠벨얼리 품종의 포도 농사를 짓고 있는 C씨는 "보통 8월 7일께부터는 밤에 약간 서늘해야 한다. 하지만 올해는 고온현상이 지속됐다"면서 "그로 인해 포도가 검게 익어야 하는데 착색이 잘 안되서 붉은빛을 띠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포도가 덜 익어서 당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낮에도 기온이 높아서 포도 알맹이가 화상을 입은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게다가 올해는 담배거세미나방 피해도 크다. 지난해까지도 보이지 않던 해충이다. 포도 잎을 갉아 먹는데, 잎이 없으면 포도가 잘 익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 충남 청양의 한 포도농가. 담배거세나방이 포도잎을 갉아 먹었다.
▲ 충남 청양군의 한 포도 농가. 포도에 피해를 입히고 있는 담배거세나방의 모습.
무농약으로 재배하는 고추밭에서는 탄저병이 창궐하고 있다. 김종대 정의당 충남도당 조직홍보국장도 예산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김 국장은 "고추 탄저병은 매년 발생하고 있다. 고추밭은 농약을 자주 쳐야(줘야) 하는데 무농약으로 농사를 짓는 것에 한계를 느낀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농업관련 기관에서 고온 현상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기후변화를 면밀하게 예측하고 고온에 맞는 농작물 재배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지역의 특성에 맞는 작물 재배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 충남 예산의 한 고추밭. 탄저병 피해를 입었다.ⓒ 김종대
"충남도농업기술원, 아열대 작물 재배 연구 중"
충남도농업기술원도 기후변화에 따른 열대 작물 재배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충남도농업기술원 스마트원예과 관계자는 27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보통은 8월 15일을 기점으로 야간에 온도가 많이 낮아진다. 하지만 올해는 9월초 중반까지도 야간에 더웠다"며 "고온현상이 발생하면 작물의 수정이 잘 안되고, 벌레(해충)도 급속도로 번진다"라고 말했다. 이어 "기후변화의 경우, 한번에 대책을 세우기는 어렵다"라면서도 "농촌진흥청에서도 작물 재배 적지(적합지역) 연구를 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 관계자는 "충남도농업기술원에서도 현재 아열대 작물과 채소 등 우리 지역에서 재배 가능한 작물이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다"라며 "현재 30여 종의 아열대 작물 유전자원을 노지에 심고 연구를 하고 있다. (일부 작물은) 하우스를 통해서도 적응성 검사를 하고 있다. 관련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정부차원에서도)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라고 밝혔다.
이재환(fanterm5@hanmail.net)
기후대응댐이라는 유령이 출몰했다
▲ 8월27일 오전 충남 청양군 송방리 청양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지천 기후대응댐 후보지 주민설명회에서 지천댐 반대 대책위원회가 설명회를 반대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기후대응댐이라는 유령이 출몰했다. 역사상 가장 혹독한 폭염을 겪던 차에, 환경부가 난데없이 기후대응댐을 건설하자고 목청을 높인다. 전국에 14개의 댐을 건설하고 거대한 물그릇을 빚어 위기에 대처하자는 것이다. 그야말로 ‘기후대응’이라는 주문으로 졸지에 무덤에서 끌려나온 댐 유령들.
잠시, 우주에서 지구 행성을 바라보자. 저 초록별 육지에는 실핏줄처럼 수많은 강이 구비치며 바다로 흘러간다. 1000km가 넘는 강 중에서 바다까지 중단없이 흐르는 강은 고작 23%다. 댐이 막아서고 있다. 현재 기획되거나 개발 중인 모든 댐 공사가 완료되면 2030년까지 전 세계 강의 93%에서 자연 흐름이 변경된다.
수메르 문명부터 인류는 댐을 짓고 농사를 지어왔다. 하지만 대형 댐 개발은 20세기 자본주의의 고유한 특징이다. 용수와 전력 수급뿐 아니라 근대화와 경제 성장을 추동하는 자본주의의 동력으로 기능했다. 1950년 이후에는 세계은행이 남반구에 발전 명목으로 댐 개발을 집요하게 닦달해왔고, 지금은 중국이 권위주의 국가들에 댐 개발을 독려하는 실정이다.
1990년대 정점을 찍고 잠시 댐 광풍이 주춤하긴 했다. 환경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또 개발 이득을 소수가 차지하고 그 대신 문화유적 상실, 대량 이주, 자연경관 붕괴 같은 불평등의 현실이 수면 위에 솟구친 탓이다. 그러다 2000년대 중반 기후-생태 위기를 핑계 삼아 또다시 댐 개발의 고삐가 당겨졌다. 수력이 친환경 에너지이고, 물 위기에 대응하자는 것이 그 골자다.
과연 댐은 기후대응책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댐은 ‘메탄 공장’이다. 브라질 과학자들이 처음으로 댐과 저수지 일부에서 석탄발전소에 맞먹거나 그 이상의 온실가스가 배출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뒤이어 2016년에는 스위스 연구팀이, 그리고 2022년에는 미국 환경청(EPA)의 온실가스 보고서, 그리고 세계 도처의 댐 배출량 연구들이 이 사실을 인정한다. 침수 과정에서 나무와 온갖 유기 물질이 썩고 분해되면서 메탄을 대량 배출하는 것이다. 탄소흡수원인 숲을 수장시킨 채 메탄을 뿜어내는 기막힌 역설의 형상, 그것이 바로 댐이다.
무엇보다 댐의 치명적인 영향은 생물다양성 파괴다. 댐 개발로 인해 1970년 이래로 담수 동물 개체수가 평균 84% 감소했다. 양서류, 파충류, 어류가 이동이 차단되면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모든 담수어 종의 약 3분의 1이 멸종위기에 처했는가 하면, 이미 80종이 사라졌다. 댐이 건설될수록 더 많은 지구 생물이 소멸된다. 생물다양성이 멸절된 곳은 자명하게 인간의 황무지다.
▲ 댐. 사진=gettyimagesbank
뿐만 아니라 댐은 바다로 흘러가는 퇴적물의 4분의 1 이상을 가둬둠으로써 탄소 순환을 교란한다. 물이 흐르지 못해 유기물이 부족해진 하류 생태계에선 수생식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메콩강 하류처럼 식량 생산이 감소하게 된다. 달리 말해, 매년 2억 톤 가량의 유기물을 품고 구비구비 흐르는 강물이 훨씬 더 많은 탄소를 저장하고 생태계를 풍요롭게 한다.
댐은 이처럼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추방하고, 생물다양성을 고사시키며, 숲을 썩게 만든다. 댐이 야기하는 생태 파괴의 궤적을 다 묘사하기에 이 지면이 너무 짧지만, 그중 놓쳐선 안 되는 중요한 사안이 있다. 극한의 기후 격변이 가속되면서 댐이 점점 ‘무기화’된다는 것이다. 최근 리비아와 인도에서처럼 극한 호우로 인해 댐이 붕괴되면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가 하면, 2021년 브라질과 같이 극단적 가뭄으로 수력 발전이 멈춰 에너지 대란에 휩싸이게 된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선 노후 댐은 철거하고 더 이상 댐을 짓지 않는 것이 좋다. 강을 그냥 흐르게 두는 것이다. 댐이 철거되면 숲이 복원되고 양서류와 나비가 다시 생명의 춤을 출 것이다. 물살이들이 고향으로 다시 회귀할 것이다. 자연 흐름을 절단하고 환경을 무너뜨리며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내쫓는 메가 프로젝트가 기후대응과 친환경으로 수식되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다. 물론 우리는 잘 알고 있다. 尹정부가 댐을 지으려고 하는 이유가 기후위기를 염려해서가 아니라 토건 자본의 배를 불리기 위해서라는 것을.
댐 건설 발표에 들끓는 지역 민심을 달래겠다고, 맙소사 ‘골프장’을 지어주겠다는 환경부. 얼마나 무지한지 자신들의 천박한 환경의식을 스스로 폭로한다. 신공항이며, 케이블카며, 이제는 댐 개발에 이르기까지 온통 토건 자본을 위해 환경파괴의 면죄부를 발급하는 게 저 부처의 유일한 기능이다. 정말로 환경부가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싶은가? 그러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 그래도 정히 뭔가를 하고 싶다면 강은 흐르게 놔두고 환경부 스스로 문을 닫아라. 그것이 최상의 대책이다.
이송희일 영화감독 미디어오늘
탄소중립? 버스부터 공영화합시다
제주에서 '이동' 하기
제주에 내려온 지 1년이 되었다. 막 내려왔을 무렵, 제주살이가 어떠냐고 묻는 지인들에게 조금 불평했던 기억이 난다. 다 좋은데, 교통이 불편했다. 분명 행정구역상 제주시인데, 시내 중심부로 가는 버스의 배차 간격이 빨라야 30분이었다. 중산간으로 가는 길은 더 막막했다. 자주 가는 동네까지 직통버스는 한 시간에 두 대뿐인데, 비슷한 시간에 도착하다보니 배차시간이 1시간이다. 목적지까지 소요 시간은 약 50분. 놀라운 점은 걸어가도 1시간이면 도착한다는 사실이다. 걸어가도 한 시간, 버스를 타도 한 시간이라니! 도보를 몇 번 시도해 보았으나, 얼마 못 가 포기했다. 더워도 너무 더웠다. 추석 기준 제주 북부의 열대야는 연속 70일을 넘겼다. 기상 관측 이래 최장 기록이다. (40일 정도에서 이미 관측 이래 최장 기록을 세운 것인데, 거기서 30일 가량을 더 넘긴 것이다.) 결국 나는 운전 연수를 시작했다. 온 세상이 내가 승용차를 타게끔 만들고 있다!
제주시 외곽 A에서 중산간 B로 이동할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이동 수단은 다음과 같다.ⓒ고이영
승용차는 이동시간이 짧고, 아무 때나 출발할 수 있다. 날씨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 (전기자전거와 자전거는 초기 비용이 적지만 날씨의 영향을 받는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 가지 않을 수 있었다면 자전거를 선택했을 것이다.) 주어진 이동 수단 중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로 보인다. 유일한 걸림돌이 있다면 초기 비용이다. N천만 원대의 목돈에 유지비까지 고려하면, 승용차 구입은 나의 가처분소득을 크게 줄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렇게 된다면 어떨까?
ⓒ고이영
갑자기 버스의 경쟁력이 올라갔다. 초기 비용도 없고 날씨 영향도 적다. 승용차를 사지 않으니 N천만 원의 초기 비용과 수백만 원의 유지비도 아낄 수 있다. 미숙한 운전 실력으로 인한 교통사고 발생 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실제 이익은 더 클 것이다. 사실 당연한 얘기다. 이동시간과 배차간격이 합리적이라면 버스를 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요금을 낮추거나 무상 제공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당연한 이야기가 현실에 적용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버스 산업 구조에 있었다.
준공영제라는 함정
제주도는 2017년부터 버스 준공영제를 운용하고 있다. 버스 배차권과 노선 조정권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민간 버스업체의 운영비용을 보전해 주는 제도다.(국회의원 김진애, 책임연구원;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장, <공공교통 정책의 새로운 문제설정 - 어떻게 교통정책은 사회정책이 되는가>, 2020-정책보고서, 2020) 공공 재정으로 버스업체의 손실을 보전해 주고 있지만, 의외로 개입은 쉽지 않다. 노선이나 배차 등을 조정할 때마다 버스 업체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 게다가 적자 걱정 없이 고정적인 수입을 보장해 주니, 도덕적 해이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버스 업체들의 과도한 이익과 전용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준공영제 시행 이후 운행 노선도, 버스도 늘었지만 수송 분담률은 오히려 하락했다는 점이 전혀 놀랍지 않다. 7년이 지난 지금, 제주 버스는 ‘돈 먹는 하마’라는 오명을 쓰고 재정 부담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에는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이용률이 낮은 노선을 급작스럽게 변경·감축하면서 수백 건의 민원이 폭발하기도 했다.
▲제주 시내의 버스 정류장 ⓒ고이영
수익성이 낮은 노선을 없애거나 감축하는 것은 정말 당연한 일일까? 다들 예산이 부족하다고 하면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거기에는 함정이 있다. 수익성을 계산하는 계산기에 공공교통으로 인한 사회적 이익은 빠져 있기 때문이다. 먼저 승용차의 외부 비용(cf. 사회적 비용, "한 경제 주체의 행위가 시장을 통하지도 않고 값을 지급하지 않고도 다른 경제 주체의 경제적 성과에 불이익을 주는 현상", 우리말샘)을 알아보자. 공공교통 네트워크는 2017년 기준 승용차의 외부 비용을 약 1만 2천 원으로 추산했다.(국회의원 김진애, 책임연구원;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장, <공공교통 정책의 새로운 문제설정 - 어떻게 교통정책은 사회정책이 되는가>, 2020-정책보고서, 15p) 승용차가 발생시키는 혼잡비용과 대기오염비용, 사고비용 등을 합산한 것이다. 반면 승용차당 세금비용은 약 2천 원에 불과하다. 세금을 내고 남은 1만 원은 사회 전체가 갚아야 한다. 승용차를 사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사회는 마이너스 비용을 지불하지만, 승용차 이용자는 손해를 볼 일이 없다.
▲공공교통네트워크가 2017년 기준으로 추산한 승용차의 외부비용. 탄소배출비용을 추가하면 차액은 더 커질 것이다. (출처 : 국회의원 김진애, 책임연구원;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장, <공공교통 정책의 새로운 문제설정 - 어떻게 교통정책은 사회정책이 되는가>, 2020-정책보고서, 15p)
버스는 어떨까? 일단 여러 명이 한 버스에 타니 혼잡도 완화에 도움을 준다. 대기오염과 사고 발생 가능성도 낮아진다. 탄소 배출량까지 감안하면 버스를 타는 것만으로도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그동안의 교통 정책은 버스로 인한 사회적 이익을 제대로 계산하여 이용자에게 되돌려 준 적이 없다. 올해 들어서야 '기후동행카드', 'K-패스' 등의 요금 할인 정책이 겨우 등장했을 뿐이다.
무엇보다 버스, 지하철과 같은 공공교통은 우리에게 필수적인 존재다. 출근하기 싫다고 집 밖을 나서지 않을 도리는 없다. 제주에서 승용차가 없는 버스 이용자에게 선택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취약하고, 일을 쉴 수 없으며, 먼 거리를 가야 하는 사람일수록 버스를 타야만 한다. 선택권이 없는 사람들에게 수요-공급의 시장 논리를 들이미는 것은 부당하다. 오히려 버스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고, 그만큼의 이익을 이용자에게 되돌려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탄소 저감을 위한 공공교통
공공교통은 온실가스 저감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제주의 경우, 직접 온실가스 배출량의 절반 정도가 수송부문에서 발생한다. 1인당 자동차 등록 대수 전국 1위가 제주도라는 걸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1km 이동 시 교통수단별 탄소 배출량은 승용차 210g, 버스 27.7g, 지하철 1.53g으로 공공교통이 승용차보다 현저히 낮다. (그린피스, "대중교통 요금 인상이 기후위기에도 영향을 미친다구요?", 2023.02.20, https://www.greenpeace.org/korea/update/25460/blog-ce-public-transport-fare/) 탄소중립을 위해 공공교통의 활성화가 시급한 이유다.
▲출처 : 국토교통부 탄소공간지도시스템, https://www.carbonmap.kr/index.do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버스를 선택하게 만들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이용이 편리하고 저렴하면 된다. 버스의 "경쟁력 강화"다. 어떤 사람들은 같은 이유로 민영화를 주장한다. '경쟁'이 부족해서 공공부문의 효율성이 민간보다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전제가 잘못되었다. 혼자서 오롯이 도로를 점유하며 달리는 승용차와 대중을 싣고 달리는 버스는 경쟁 상대가 될 수 없다. 개인의 욕망은 늘 사회적 이익을 앞서기 때문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다. 둘 사이의 수평을 맞추려면 공공이 개입하여 버스가 승용차보다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승용차 억제 정책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이미 유럽의 여러 도시는 혼잡통행료를 징수하거나 차량 통행 제한 구역을 만드는 등의 승용차 억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조남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선진 교통정책의 동향>, 특집 교통정책의 선진화 방향, 국토연구원, 2008.06.15) 단, 그전에 버스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승용차 대신 버스를 타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 되어야 승용차 억제 정책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 역시 전국 최초로 차고지 증명제를 시행하여 승용차 구입을 억제하려 한 바 있으나,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버스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승용차 구매를 억제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
공공교통 요금에 대한 강력한 할인 정책도 필요하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공공교통으로 유인하여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저감하기 위해서다. 독일의 경우, 2022년 6부터 8월까지 일부 대중교통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9유로(약 1만2000원) 티켓'을 시험 판매하여 대중교통 이용률 25% 증가, 이산화탄소 180만 톤 저감이라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린피스, "대중교통 요금 인상이 기후위기에도 영향을 미친다구요?", 2023.02.20, https://www.greenpeace.org/korea/update/25460/blog-ce-public-transport-fare/) 공공교통으로 얻은 사회적 이익을 버스 업체가 아닌, 이용자 시민에게 돌려주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승용차 억제 정책 혹은 탄소 배출과 관련된 세입을 공공교통의 재원으로 사용하려는 시도들도 이어지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공공교통의 전면 무료화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은 준공영제하에서는 시행이 불가능하다. 버스 산업의 '완전 공영제'가 필요한 이유다. 준공영제 구조에서는 정부 보조금이 시민이 아닌 버스 업체의 이익으로 흘러갈 뿐이다.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비용이 들어가는 준공영제를 폐지하고 완전 공영제로 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버스 업체가 아닌, 버스 그 자체에 대한 투자가 탄소중립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시민에게 알리고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1km당 450억 원이 드는 '수소 트램'보다, 버스 산업의 공영화에 투자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 훨씬 더 많은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이제는 버스를 공공에게, 시민에게 돌려주어야 할 때다.
고이영 제주 시민 | 프레시안
'정의롭지 않은' 에너지 전환, 어떻게 봐야 할까
인도네시아의 '정의롭지 않은'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파트너십
기후 위기 시대, 저탄소사회로의 에너지 전환은 에너지정책의 핵심이 되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신기후체제의 출범으로 개도국도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하게 되면서, 동남아 국가들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를 발표하였다. 일부 국가는 석탄발전소의 단계적 폐쇄를 촉진하기 위해 선진국과 함께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파트너십(JETP; Just Energy Transition Partnership)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국가는 인도네시아다.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 최대 석탄 수출국이며, 석탄 발전이 국내 전력 생산의 66%를 차지하는 석탄 의존 국가이다. 석탄은 인도네시아 경제와 에너지, 전력 부문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만큼, 이산화탄소 배출에서도 단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인도네시아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 중 전력 생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45%이며, 그중 석탄 발전이 87.8%를 차지하고 있다(2022년 기준, 국제에너지기구 웹사이트).
석탄 의존도가 높은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는 온실가스 감축과 탈석탄 노력에 동참하고 있다. 2030년까지 배출전망치 대비 온실가스 배출을 43.2% 감축하는 NDC 상향안을 제출했으며, 선진국으로부터 탈석탄 지원을 받는 JETP를 출범시켰다.
인도네시아는 JETP를 통해 두 가지 목표를 제시하였는데, 첫째는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억9000만 톤 이하로 줄이고, 2050년까지 전력 부문에서 넷제로를 달성하는 것이다. 둘째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가 전체 발전량의 34% 이상을 차지하도록 재생에너지 보급을 가속하는 것이다. 이는 석탄 발전량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겠다는 인도네시아의 계획을 반영한다. 에너지 전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재원은 선진국과 개발은행, 민간은행 등으로부터 조달받을 예정이다.
▲2023년 11월 21일 인도네시아 정부는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파트너십(JETP)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JETP Indonesia 웹사이트
그러나 2023년 11월, JETP 기금을 지원받기 위해 인도네시아 정부가 종합투자·정책 계획(CIPP; Comprehensive Investment and Policy Plan)을 발표하며 개정된 세부 이행 계획을 공개하였고, 이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억5000만 톤으로 줄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은 34%에서 44%로 늘리는 방향으로 계획이 수정되었는데, 얼핏 보면 기존 계획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거나 재생에너지 비중이 증가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문제가 많다.
미국의 환경 전문매체 몽가베이에 따르면 비판의 지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탄소 배출 감축 대상에 '캡티브 발전소'는 제외되었다. 캡티브 발전소는 중앙 전력망에 연결되지 않고 산업시설에서 자가소비용으로 전력을 생산해 사용하는 발전소이다. 최근 10년간 인도네시아에서는 전기차 배터리에 사용되는 니켈 제련 등 금속 가공 산업의 확장으로 인해 캡티브 석탄발전소의 수가 급증했다. 2013년 1.3기가와트에서 2023년 13.74기가와트로 10배 이상 증가한 이 발전소들은 2030년까지 1억5000만 톤에서 1억 8천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CIPP에서 제시한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달성한다고 하더라도 넷제로 달성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둘째,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이 대형 수력 및 지열 발전소 건설에 집중되어 있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율을 44%까지 높이겠다고 발표했지만, 지역 사회에서 관리할 수 있는 마이크로 수력발전이나 소형 태양광 발전소와 같은 소규모 재생에너지보다 대규모 재생에너지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기후 운동단체 활동가는 정부가 여전히 대중을 재생에너지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적극적인 시민이 아닌 단순한 소비자로만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도네시아는 수마트라, 자바, 칼리만탄, 술라웨시 등 주요 섬을 포함하여 1만7000개 이상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 국가이다. 인구가 분산되어 있고 재생에너지 잠재력이 큰 국가이므로 중앙집중형보다는 분산형 전력 체계로의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는 것이 적합하다는 의견이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의견은 정책 결정 과정에 반영되지 않았다.
게다가 인도네시아 정부는 바이오매스 혼소 발전 확대도 에너지 전환 계획에 포함하였다. 혼소 발전은 기존 석탄발전소에 목재펠릿이나 톱밥, 기름야자 열매의 껍질 등과 같은 바이오매스 연료를 혼합해 연소하는 방식을 말한다. 계획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에서 혼소 발전은 2030년에서 2050년까지 연간 석탄 화력 발전량의 5~10%를 차지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900만 톤(정부 추정치)에서 1020만 톤(연구기관 추정치)에 달하는 바이오매스가 필요하게 되는데, 충분한 공급을 보장하기 위해 삼림 벌채가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마지막은 재원 조달에 관한 것으로, 인도네시아는 보조금, 양허성 차관, 시장금리 대출, 보증 및 민간투자 등의 형태로 JETP 기금을 확보해야 한다. CIPP 초안에 따르면 200억 달러가 필요하다. 미국은 인도네시아에 20억 달러 이상의 자금 지원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이 중 6670만 달러만 보조금의 형태로 제공되고 10억 달러는 시장금리 대출의 형태로 지원될 예정이다. JETP의 한계를 지적하는 전문가들과 활동가들은 10억 달러의 대출에 대해 연간 최소 6830만 달러의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데, 이는 미국이 제공하는 보조금보다 더 많은 금액이라고 주장한다. 온실가스 배출에 더 큰 책임이 있는 선진국이 개도국의 에너지 전환을 지원하기 위해 출범한 JETP가 개도국에 더 큰 부담을 주는 셈이다.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의 '정의로운'이라는 개념은 에너지 전환의 이익과 비용이 공평하게 분배되고, 모든 이해당사자가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며, 의사결정 시 사회적, 문화적, 인종적, 성별 등에 따른 차이를 인식하고 존중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JETP는 대중의 참여를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고 있으며, 기후변화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다하지 않은 선진국들이 기후 재원을 통해 개도국에 더 큰 부담을 지우고 있다는 점에서, 과연 이것이 진정으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계획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러한 문제들은 앞으로의 에너지 전환 논의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유예지 서강대 동아연구소 연구교수 | 프레시안
“이 정도일 줄이야...” 가라앉는 인도네시아의 현실
기후 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은 이미 현실이 된 재앙이다. 인도네시아 자바섬 북부에 있는 드작의 팀불슬로코 지역은 지금도 바닷물에 잠기는 중이다. 지난 8월 24일 드론을 이용해 찍은 팀불슬로코 지역은 마치 바다에 떠 있는 마을처럼 보인다. 왼쪽에 곧게 뻗은 길을 이용해 마을로 들어갈 수 있고, 오른쪽으로 난 길은 마을의 공동묘지로 연결된다.
매캐한 연기로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숨을 편히 쉴 수도 없는 도시.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하늘은 미래를 암시하듯 잿빛이다.
지난 8월 23일 아침, 자카르타 북부 무아라 바루 지역 여기저기 연기가 피어올랐다. 바닷물의 수도 침략을 알리는 봉화인가 싶었지만 단순히 쓰레기를 태우는 연기였다. 도시를 오가는 오토바이와 차량은 하나같이 낡았다. 이들이 내뿜는 매연은 공기를 더욱 탁하게 만든다.
자카르타 북부 해안가에 위치한 거대한 방벽.
무아라 바루 지역의 북부 해안가에는 거대한 방벽이 세워져 있다. 길이는 무려 13㎞에 높이는 2m에 달한다. 해수면보다 낮은 지역에 물이 넘치는 것을 막기 위한 용도다. 자카르타는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빠르게 침몰하는 도시 중 하나다. 지하수 남용으로 지반이 내려앉고, 기후 변화로 인해 해수면 상승까지 겹쳤다. 연간 최대 25cm까지 가라앉는 이 도시는 약 40%가 해수면 아래에 있다.
지난 2018년 인도네시아 반둥공과대(ITB)의 하사누딘 아비딘(Hasanuddin Abidin) 교수 연구팀은 연구결과를 발표하며 2050년 자카르타의 절반 이상이 물에 잠기고 북자카르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예측했다. 이는 최근 20년간 진행된 자카르타 지역의 지반 침하와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효과를 토대로 예측한 결과다.
자카르타가 수도로서 지속가능성이 보이지 않자, 인도네시아는 보르네오섬의 누산타라로 수도를 이전하는 작업에 한창이다. 누산타라는 자카르타로부터 약 1200㎞ 떨어진 보르네오섬 동칼리만탄주에 건설되고 있는 일종의 신도시다. 대통령궁은 이미 완성돼 독립 79주년 기념일(8월17일) 행사도 치뤘다. 수도로서 기능을 갖추기 위해 앞으로 32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액수가 소요된다.
천도하더라도 자카르타에 남아 있는 주민들은 여전히 기후 위기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기후 변화에 대한 전 세계적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해안을 접한 다른 도시들도 자카르타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자바섬 북부 팀불슬로코에서 마을로 연결되는 길이 물에 잠겨 있다. 지난달 24일 드론을 이용해 촬영했다.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비영리단체 ‘클라이밋 센트럴(Climate Central)’은 지난해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탄소 배출로 지구 온도가 3도 오르면 지구 해안 도시 대부분이 물에 잠긴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가난한 도시는 더 빨리 가라앉는다. 지난달 24일 자카르타를 거쳐 자바섬 북부 드작의 팀불슬로코에 도착했다. 수도인 자카르타는 돈으로 물을 막아내고 있지만, 이곳은 그럴 여유가 없다. 항구의 선박처럼 도로 양옆으로 늘어선 집들은 큰 길을 제외하곤 물에 잠겨 있다. 주민들은 마치 배 위에서 생활하듯 살고 있다.
지역 주민 수라틴(63)씨는 가라앉은 집에서 더는 살 수 없어 옆에 새로 집을 지었다. 기존 집은 현재 부엌으로 사용 중이다. 수라틴씨는 “물에 잠긴 이곳에 20년간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라 말했다.
지역주민 수라틴씨가 사는 집(윗 사진). 처마의 차이가 그동안 높아진 해수면을 보여준다. 지금은 부엌으로 사용하고 있다.
5월부터 9월이 건기인 이곳은 공사가 한창이다. 매년 상승하는 해수면만큼 집을 올려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지켜내지 않으면 무너지는 삶, 팀불슬로코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자카르타,팀불슬로코(인도네시아)=최현규 기자 frosted@kmib.co.kr
20년 내 인구 70% '극심한 날씨' 영향 받는다
노르웨이 국제기후연구센터
지구 온난화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이 없으면 인구의 70%가 기후 위기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janiecbros/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세계 인구의 70%가 향후 20년 내 극심한 기온 및 강우량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란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칼리 일레스 노르웨이 국제기후연구센터 기후과학자 연구팀은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개선하지 않으면 4명 중 3명이 기후 변화로 인한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 온도가 2℃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막자는 파리협정의 목표에 도달하면 인구의 20%만 극단적인 기후 변화로 인한 위험을 경험하고 개선을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시에는 70%가 기상 위험에 직면할 것이란 시뮬레이션 결과를 확인했다.
극단적인 날씨 변화가 개별 국가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 연구는 그동안 많지 않았다. 연구팀은 전 세계적인 평균 추세를 살피기보다는 각 지역별 변화를 살피는 데 초점을 둔 대규모 기후 모델 시뮬레이션을 실행했다. 그리고 향후 수십 년 내 하나 이상의 극심한 기상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을 식별했다.
그 결과 세계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열대 및 아열대 지역 대부분이 향후 20년간 기온과 강수량의 극단적인 변화를 경험할 것이란 시뮬레이션 결과가 도출됐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나간다는 시나리오에서는 극단적인 날씨 변화를 경험하는 인구가 20%로 줄어들었다.
연구팀은 극심한 기후 변화가 다양한 문제들을 야기할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기온 상승으로 인한 폭염은 사람과 가축의 열 스트레스 및 사망 위험을 높이고 농업 수확량을 줄이며 냉각재 사용 시설의 운영을 어렵게 만든다.
극단적인 강수량 변화는 홍수로 인한 거주지·농작물·생태계 파괴, 침식 증가, 수질 저하 등으로 이어질 것으로 분석됐다. 변화의 정도가 극심해질수록 인간의 대처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전례 없는 위험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공기를 정화하는 작업은 건강에 도움이 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후 변화를 더욱 가속화하는 한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대부분의 아시아 지역에서 하는 공기 정화 작업은 기온 상승이 가속화되고 여름철 우기에 변화를 일으킨다는 점도 시뮬레이션을 통해 확인했다”며 “공기 정화는 건강을 위해 매우 중요하지만 향후 수십 년간은 기후를 더욱 극단적으로 변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기 정화 작업이 지구 온난화를 심화시키는 이유는 대기 중 에어로졸과 연관이 있다. 화석연료 연소 과정 등에서 발생하는 에어로졸은 햇빛을 반사시키는 역할을 한다. 태양 복사 에너지 일부를 우주로 반사해 지표면 온도를 낮추는 냉각 효과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대기오염을 줄여야 하지만 향후 몇 십년으로 한정한 단기적인 상황에서는 공기 청소가 온난화를 가속화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지구 온난화를 심화시킬 수 있는 여러 복잡한 상황들을 함께 고려해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이번 시뮬레이션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든 최상의 시나리오에서도 세계 인구 15억명은 날씨 변화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10~20년 내 발생할 수 있는 극단적인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다각도의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아사언스
매년 0.33일씩 늦어지는 단풍 절정기… 2040년이면 11월에
산림청은 한국에 분포하는 참나무류·단풍나무류·은행나무의 단풍 시기를 담은 ‘2024 산림단풍 예측지도’를 발표했다. 매년 산림청은 국립수목원 및 권역별 9개 공립수목원과 함께 전국 112개 지점에서 관측된 생물계절 자료와 국립산림과학원의 산악기상 정보를 바탕으로 산림단풍 예측지도를 발표하고 있다.
단풍 절정 시기는 수종별로 차이가 난다. 참나무류는 10월 28일이 단풍 절정기이고, 단풍나무류는 10월 29일, 은행나무는 10월 31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와 비교하면 단풍이 조금 늦어진 것이다. 특히 신갈나무의 단풍 절정 시기는 최근 2년에 비해 5일 정도 늦어진다고 한다. 산림청은 “최근 10년간 단풍 시기는 단풍나무류(0.39일), 참나무류(0.44일), 은행나무(0.45일) 순으로 매년 늦어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는 올해 6~8월 평균기온이 지난 10년(2009~2023년) 평균 대비 약 1.3℃ 상승한 것이 주된 원인으로 분석된다. 또한 위도와 해발고도 등 지리적 요인과 폭염·폭우 등 이상기후로 인해 지역적인 차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산림청이 발표한 자료와 비교하면 이를 이해할 수 있다. 지난해 9월 25일 산림청은 ‘성큼 다가온 가을, 단풍 구경 떠나볼까?’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신갈나무의 단풍 절정 시기는 당시 10월 26이고, 당단풍나무는 10월 26일, 은행나무는 10월 28일이 단풍 절정 시기라고 발표했다. 당시에도 지지난해와 비교하면 2일 정도 단풍이 늦어진 것이다.
당시 산림청은 “2009년부터 식물계절현상 관측자료를 분석한 결과, 당단풍나무가 단풍이 드는 시기는 매년 0.33일씩 늦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면서 “이는 7~9월 평균기온 상승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를 근거로 살펴보면 2040년이면 한국에서 단풍 구경을 가는 시기는 11월이 될 수 있는 셈이다.[이코노미스트 최영진 기자
구상나무·연어·꼬리치레도롱뇽·황로, 기후변화 지표종 됐다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변화를 장기간 관찰하기 위한 ‘국가 기후변화 생물지표종’에 구상나무, 연어, 꼬리치레도롱뇽, 황로 등이 새로 추가됐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은 국가 기후변화 생물지표종 100종을 갱신해 30일부터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누리집’(species.nibr.go.kr)에 공개한다고 29일 밝혔다. 국립생물자원관은 2010년부터 기후변화가 생물의 분포와 서식에 미치는 영향을 장기적으로 관찰하기 위해 생물지표종 100종을 선정, 시민 과학자들과 함께 관측 기록을 축적하고 있다.
생물자원관은 이번에 기후변화에 따른 분포 변화가 예상되는 25종을 교체하면서 식물은 구상나무, 조류는 대륙검은지빠귀와 황로, 양서류는 한국꼬리치레도롱뇽, 어류는 연어 등을 새로 추가했다. 대신 일반적으로 구분하기 어렵거나 접근에 제약이 있는 큰잎쓴풀, 부챗말, 남녘납거미, 배물방개붙이, 중대백로 등 25종은 제외됐다. 생물자원관은 시민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한국 생물다양성 변화관측 네트워크(K-BON)’ 사업을 통해 수집된 자료 분석과 내외부 전문가의 평가를 통해 교체할 종을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새로 추가된 25종 가운데 구상나무에 대해 생물자원관은 “아고산대 침엽수종으로 대표적인 북방계 식물이며,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국민적인 인식도가 높고 민간 참여 유도에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또 연어는 “특정 수역에서만 출현하므로 관찰이 쉬우며, 수온과 회유시기에 대한 관찰만으로도 기후에 의한 영향을 추론하기에 매우 좋은 어류”라는 점이 고려됐다. 황로는 “다른 백로류에 비해 도래 시기가 늦고, 동정이 쉬워 도래 시기 변화 확인이 용이하다”는 이유로 지표종에 새로 추가됐다
반대로 다른 백로류와 구분, 동정하기 어려운 중대백로를 포함해 큰잎쓴풀과 부챗말, 남녘납거미, 배물방개붙이 등 25종은 관찰이 어렵거나, 접근에 제약이 있다는 이유로 지표종에서 제외됐다/ 경향 .
"인간 뇌는 99.5%에 불과…나머지는 플라스틱"
인간의 신장(왼쪽), 간(중앙), 뇌(오른쪽) 샘플에서 추출한 고체 나노입자 투과전자현미경 이미지. (사진=미국 국립보건원)
인체에 유입된 미세 플라스틱이 뇌에 가장 많이 축적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25일(현지시각) 미국 CNN 등 외신에 따르면 뉴멕시코대 연구팀은 2016~2024년까지 뉴멕시코주 엘버커키 검시소에서 채취한 인간의 간, 신장, 뇌의 전두엽 피질 부검 샘플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8년간 법의학적 부검을 받은 시신 92구를 분석했는데, 모든 장기에서 미세 플라스틱 수치가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특히 같은 기간 뇌에서 발견된 미세 플라스틱의 양이 50%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뇌 샘플에서 발견된 미세 플라스틱의 양은 신장과 간 등 다른 장기보다 최소 7배에서 최대 30배 많았다.
연구 주저자인 매튜 캠펜 뉴멕시코대 제약학 교수는 "평균 연령 45~50세인 정상인의 뇌 조직에서 확인한 미세플라스틱 농도는 1g당 4800㎍(마이크로그램), 뇌 중량 기준 0.5%였다"며 "2016년 부검한 뇌 샘플과 비교하면 (2024년 샘플이) 약 50% 더 높은 수치로, 오늘날 우리의 뇌가 99.5%만 뇌이고 나머지는 플라스틱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또 심장과 대혈관, 폐, 간, 고환, 태반 등 장기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됐는데, 뇌 조직에서 발견된 미세 플라스틱은 다른 장기에서 발견된 미세 플라스틱보다 크기가 작았다.
캠펜 교수는 "뇌는 100~200㎚ 길이의 아주 작은 나노 구조를 끌어들이는 반면, 1~5㎛ 길이의 큰 입자는 간과 신장으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플라스틱 입자가 장기로 유입되는 원인으로 '지방'을 꼽았다. 플라스틱이 지방이나 지질을 좋아해 우리가 섭취하는 지방과 함께 혈액을 통해 장기로 유입된다는 것이다.
특히 뇌는 무게 기준 약 60%가 지방으로 구성돼 있다. 다른 장기보다 지방을 훨씬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미세 플라스틱이 더 많이 발견됐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팀은 뇌 안에 미세플라스틱 증가가 전 세계적으로 알츠하이머병과 기타 치매 질환의 발병률 증가와 일치한다고 지적했다.
캠펜 교수는 "알츠하이머를 포함해 치매로 사망한 사람들의 뇌 샘플 12개를 살펴본 결과, 건강한 뇌보다 10배 많은 플라스틱이 발견됐다"며 뇌 안에 미세플라스틱 증가가 치매 질환의 발병률 증가와 연관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 결과가 미세 플라스틱의 수치적인 증가만 보여줘을 뿐, 이로 인한 뇌 손상에 대한 정보는 설명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피비 스테이플턴 럿거스대 약리학 조교수는 "인체 내에서 미세 플라스틱 입자가 유동적으로 뇌에 들어오고 나가는지, 혹은 신경 조직에 축적돼 질병을 유발하는지 여부가 불분명하다"고 짚었다.© 뉴시스
부산 기장 고리 3호기 운영 중단…40년 설계수명 완료
2026년 6월 재가동 목표
계속 운전 목적 안전성 검증
고리 3호기, 40년 설계수명 다해 운영 중단-서울신문
한국수력원자력은 28일 설계 수명이 다한 부산 기장군 고리3호기의 원자로 가동을 중단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고 밝혔다.고리 3호기는 1979년 12월 건설 허가를 승인받고 1985년 9월 30일 상업 운전을 시작해 이날로 설계 수명인 40년이 완료됐다.
고리3호기는 지금까지 2억840kWh를 발전해 부산시민 전체가 13년간 사용할 전력을 만들어냈다.
한수원은 2026년 6월 재가동을 목표로 고리3호기 안전성을 검증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규제기관에 허가를 신청했다. 지난해 설계 수명이 완료돼 운영이 중단된 고리 2호기도 계속 운전을 위한 허가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쌍둥이 원전인 고리 4호기는 내년 설계수명이 만료된다.
국내 최초의 원전인 고리1호기는 설계 수명 완료 후 계속 운영하지 않고 해체 절차를 밟고 있다.
고리원전3, 4호기. 국제신문DB
권용휘 기자 real@kookje.co.kr
자살 문명
돈과 욕망 무한 추구 괴물들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재미’와 ‘이익’에 세뇌당한 시스템의 노예들
늑대 피하려 범을 불러들인 핵발전 옹호
핵전쟁이 될 제3차 세계대전으로 달려가는 인류
한 생명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자살이라고 한다. 살기 위해 태어났지만 막상 살아보니 태어난 이유가 의심스러워지는 상황이 계속되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세상에 죽으려고 태어나는 생명은 없다. 천방지축 뛰어노는 어린아이를 보면 생명의 약동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하지만 그 아이가 커서 사리분별을 하게 될 즈음부터 생명의 약동은 사회와 부딪치면서 점점 힘을 잃어간다. 이 사회화 과정을 잘 견뎌내면 ‘정상인’, 견뎌내지 못하면 ‘비정상인’으로 취급된다. 자살은 당연히 비정상인 가운데 일어난다. 이렇게 보면 자살은 확실히 사회의 산물이다. 누군가 자살을 하면 측은해 하면서도 자살한 사람을 비난하는데, 실은 자살을 하게 만든 사회가 더 비난받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자살률 세계 1위이고, 20대 청년의 사인 가운데 자살이 1위라는 사실은 한국 사회가 그만큼 살기 힘들다는 증거이다. 그럼에도 유튜브에 들어가 보면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선진국이라는 국뽕 영상물이 넘쳐난다. 사회 전체가 집단으로 정신분열 상태에 빠져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자살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문명
자살이 사회적 산물이라면 문명은 어떨까? 문명은 추상 개념이지만 태어나서 성장하다가 쇠퇴하고 사라지는 것을 보면 사람과 다를 게 없다. 다만, 사람처럼 의지를 가지고 자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문명의 흥망성쇠를 살펴보면 마치 자살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처럼 한 방향으로 미친 듯이 달려가는 경우가 있다. 문명이 몰락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흔한 것이 사회의 부패와 기후환경의 변화이다. 전자는 내적 원인이고 후자는 외적 원인이다. 어느 하나의 이유로도 문명이 몰락할 수 있으나 둘이 합쳐질 경우에는 확실히, 단기간에 몰락한다. 아마도 인류문명이 금세기 내에 몰락한다면 이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지난 20일 브라질 아마조나스 주 마나카푸루 근처 아마존 분지의 솔리모스 강 한가운데에 나타난 모래톱에서 발견된 물고기 사체. 아마존 분지는 지금 기록상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다. 2024.9.20. 로이터 연합뉴스
'가이아'"의 명령을 어긴 인간
현재의 문명이 자살을 향해 치닫고 있는 분명한 징후는 기후위기에서 볼 수 있다. 약 50억 년의 나이를 갖고 있는 지구는 놀라울 정도의 항상성을 유지해왔는데, 이는 물리적 순환체계와 생물적 순환체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루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이 나타나기 전까지 지구에는 5번의 대멸종이 있었다고 한다. 주로 지구 자체의 지질학적 변동과 기후변화, 그리고 운석 충돌 등에 의해 벌어진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만 년 전에 모습을 드러낸 인간을 두고 지구와 다른 생물들은 “이번엔 좀 특이한 놈이 나왔네?” 하며 그때까지 지구 생태계를 풍성하게 만든 생물종 다양성의 하나로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인간이란 존재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생명체였다. 초유기체인 지구를 다스리는 가이아(Gaia)의 명령을 어기고 자기 스스로 법칙을 만들어 지구와 다른 생명체를 정복해나가기 시작했다. 다른 생명체들은 가이아가 정해 놓은 법칙에 따라 살았지만, 인간은 가이아의 명령을 존중하는 척하면서 자기들만의 독특한 생활양식을 만들어 나갔다. 문명(文明)이라는 것이다. 가이아는 당황스러웠다. 다른 넘들은 다 내 품 안에서 먹고 자고 싸는데 이넘은 내가 알지 못하는 재료를 가지고 집인지 뭔지 이상한 것들을 무수히 지어서는 마치 지구 전체가 자기 땅인 양 행세를 한다. 개발인지 나발인지 가는 곳마다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는 지들끼리 쌈질은 또 어찌나 해대는지... 잠시 살다 가는 종자가 이럴 수 있나 싶다.
9월 26일 시리아 북동부 하사케 주 탈 사카르 마을의 카부르 강 근처의 말라서 갈라진 흙을 비집고 올라온 녹색 식물. 이 지역의 넓은 농경지가 물이 부족한데다 농부들이 지하수를 뽑아내는 펌프에 필요한 연료 가격이 높아 말라붙고 있다. 2024.9.26. AFP 연합뉴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가이아가 지구를 다스리는 원리는 단순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There’s no free lunch)”는 원칙 하나만 지키면 된다. 가이가가 하나를 떼어주면 그것을 받아먹고 다른 형태로 하나를 내놔야 한다. 그래야 먹이사슬을 통해 다른 존재들이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이란 넘들은 하나를 떼어주면 자기네 문명을 살찌우는 데에 다 써버리고 대신에 문명 건설의 찌꺼기인 오염물질만 싸지르는 것이다. 그 때문에 가이아의 품 안은 여기저기 썩어들어가고 다른 생명체들은 하나 둘 죽어가고 있었다. 가이아가 견딜 수 없어 때때로 자연재해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후려치지만 넘들은 과학인지 뭔지 이상한 것을 들고나와 신통하게도 잘 막아낸다. 과학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가이아의 ‘인간 버전(Human Version)’인데, 가이아의 처지에서 보면 “나를 흉내낸 것을 가지고 나를 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가이아는 결심한다. 이넘들을 내버려 두었다가는 다른 생명은 고사하고 지구 자체가 사달나게 생겼으니 이참에 아예 없애버려야겠다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인간과 문명
사실 가이아는 인간을 없애버리기 위해 특별히 할 일이 없다. 인간이 하는 일들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인간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문명 안에 자살의 요소가 심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자살은 인간이 주위 환경과 어울리지 못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인데 문명 역시 자신의 뿌리인 자연과 어울리지 못해 스스로 죽음을 향해 치닫고 있다. 문제는 문명의 설계자이자 관리자인 인간이다. 인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연을 배경으로 문명을 만들어서는 다른 생물종 위에 군림하면서 ‘겸손’을 잃어버린 것이다. 겸손에는 공생, 조화, 균형, 배려 등 여러 가지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내가 제일 잘 나가”라는 우월 의식이야말로 가이아 파괴의 핵심이다. 내가 잘 나가면 그만큼 다른 누군가가 대접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구라는 닫힌계에서는 그 원칙이 더 철저히 지켜진다. 그러고 보니 요즘 잘 나간다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겸손은 힘들다고 노래하는 자들이 많기는 하다.
환경운동단체 '절멸 반대'(Extinction Rebellion, XR)의 활동가들이 지난 9월 6일 프랑스 남서부 툴루즈의 가론 강에서 "자본주의를 침몰시키고, 우리와 함께 하세요" 등의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펼쳐 놓고 있다. 2024.9.6. AFP 연합뉴스
돈과 욕망을 무한 추구하는 괴물들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잘하는 사람, 또는 잘 나가는 사람에 대한 대우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나은 것은 자연스런 이치다. 그러나 거기에도 한계가 있어야 한다. 잘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쏟아주면 전체의 균형이 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체제에는 한계가 없다. 누군가 그로 인해 돈을 벌 수 있으면, 스타 한 명에게 모든 걸 쏟아붓는다. 그렇게 되면 동종 업계의 대부분은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장과 대중은 그 스타 선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짜릿하고 흥분되기 때문이다. 판이 이렇게 돌아가면 모든 선수들은 자본가와 대중의 총애를 받기 위해 삶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일반인의 관점에서 보면 프로 선수는 거의 괴물에 가깝다. 괴물이 되기 위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한다. 사회가, 문명이 괴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스포츠뿐 아니라 인간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도 그렇다.
괴물이 지배하는 세상을 유지하는 몇 개의 기제가 있다. 하나가 돈이 되면 무엇이든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이고, 또 하나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이다. 이 두 가지가 ‘국가’라는 허구의 공동체를 통해 작동할 때 세상은 지옥이 된다. 생태계 파괴, 지구온난화, 기후위기, 끝없는 전쟁, 구조적 가난과 착취 등 모든 것이 이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문명이 짜릿하고 재미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 문제다. 젊은이들은 말한다. 재미가 없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나도 철없는 젊은 시절엔 그랬다. 나이 서른까지 재미있고 짜릿하게 살다가 죽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정말 거짓말처럼 서른 살에 무기수가 되어 감옥에 갇히고 만다. 그 안에서 무수한 사색을 통해 나의 그런 생각이 실은 사회와 문명이 내게 강요한 것이며 그런 강요를 통해 재미를 보는 사람들이 따로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재미’와 ‘이익’에 세뇌당한 시스템의 노예들
물건을 만들어 팔아 이익을 남기는 것, 욕망을 실현하여 자존감을 높이는 것, 그리고 국가라는 공동체를 통해 삶의 영역을 확장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것 등은 전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문명은 이런 일들의 반복을 통해 더욱 세련되고 고차원적으로 발전해왔다. 문제는 특정 무리들이 이 세 가지를 하나로 묶어서 대중을 세뇌시켜 영속적인 노예상태로 만들었을 때이다. 세 가지를 묶어 대중을 세뇌하는 데에 작동하는 기제가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재미’이고 또 하나는 ‘이익’이다.
시스템의 설계자들은 어떻게 하면 대중이 자기네가 만든 상품에서 재미와 이익을 찾아볼 수 있을지 불철주야 노력한다. 재미가 있으면 이익이 없거나 적더라도 계속 찾을 것이고, 이익이 있으면 재미가 없어도 꾸역꾸역 찾게 마련이다. 둘 다 보장되면 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드디어 세뇌는 완성되고 대중은 특별한 자극이 없어도 스스로 알아서 설계자가 의도한 길을 찾아가게 된다. 세뇌된 대중은 돈 많이 벌고, 열심히 욕망을 추구하고, 국가에 충성하면 훌륭한 인생을 사는 것으로 안다. 그렇게 하지 못한 사람들에겐 비애국자, 낙오자, 비시민, 루저, 비정상 등 온갖 부정적 딱지를 붙여 차별한다. 이런 일이 국가를 넘어 나라들 사이에서, 더 나아가 전 지구적으로 벌어짐으로써 지구적 차원의 생태위기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개개인은 사회가 또는 국가가 하라는 대로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어찌하여 이런 위기를 마주해야 하는지 실감나지 않을 것이다.
9월 24일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의 언덕에서 발생한 산불. 키토는 방화로 추정되는 5건의 산불로 인해 "위급" 상황에 처해 있으며, 약 100가구가 대피해야 했다. 2024.9.24. AFP 연합뉴스
지난 9월 6일 오세아니아의 폴리네시아 지역 섬나라 투발루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섬인 푸나푸티를 비행기에서 찍은 사진, 투발루 등 남태평양 지역 섬나라들은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바다에 잠길 위기에 처해 있다. 2024.9.6. 로이터 연합뉴스
늑대 피하려 범을 불러들인 핵발전 옹호
가장 쉬운 예로 핵발전을 들어보자. 핵발전을 옹호하는 자들은 우라늄 1g에서 얻는 에너지가 석탄 3t에서 얻는 에너지보다 많다며 당장에 모든 에너지를 핵발전으로부터 구할 것을 요구한다. 현대문명의 특징이 효율성의 추구라면 이보다 더 효율적인 에너지는 없을 것이다. 효율이 어마어마하므로 이익도 어마어마하다. 여기서 잠시 멈추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가이아의 원칙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그 어마어마한 효율성의 대가는 바로 처리 불가능한 오염물질의 배출이다. 다 사용하고 남은 핵쓰레기는 최소 10만 년에서 최대 백만 년은 두어야 자연 상태로 돌아간다. 엄격히 말해 핵에너지는 아무리 효율이 좋아도 꺼내 써서는 안 되는 에너지이다.
사실 핵에너지는 처음부터 발전용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전쟁 중에 상대방을 한 방에 제압하기 위해 만든 폭탄에서 비롯되었다. 핵발전이라는 것은 폭탄을 서서히 터뜨려 가면서 에너지를 얻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핵물질에서 나오는 방사선에 노출되면 ‘피폭(被爆)’되었다고 말하는데, 이는 폭탄을 맞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째서 사람들은 이토록 위험한 물질을 꺼내어 쓰는 걸까?
이익이 되면 무엇이든지 하는 자본주의와 자신의 욕망을 무한대로 실현하고픈 핵산업 종사자와 과학자들, 그리고 에너지와 핵무장으로 국가를 강화하고픈 위정자들 때문이다. 요즘엔 여기에 환경론자들까지 끼어들었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눈앞의 늑대를 피하려고 범을 불러들이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하여 한때 세계 2위의 경제력을 자랑하던 일본은 활성 지진대 위에다 핵발전소를 무려 60개나 지었다. 미쳐도 단단히 미친 사람들이다. 결국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핵발전소 4기가 터져 일본 본토는 물론 태평양을 방사능으로 오염시키고 말았다. 오염이 한 번에 그친 게 아니라 2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핵오염수가 산과 바다로 흘러들고 있다. 그런 엄청난 사고를 겪고도 일본은 현재 12기의 핵발전소를 가동 중에 있으며 앞으로 계속 재가동을 확대해 나갈 작정이다. 사고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위에 말한 세 가지 늪에 빠지면 죽을 때까지 가던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자살문명이다.
'절멸 반대'의 기후 활동가들이 9월 23일 월요일 미국 보스턴에서 새로운 화석 연료 인프라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이면서 매사추세츠 주 의사당 입구에서 드러누었다. 2024.9.23. AP 연합뉴스
스웨덴 기후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9월 21일 스톡홀름 중심가에서 40개 스웨덴 사회정의원동 단체들이 조직한 "People Not Profit - 경제적 이익보다 인간 생명이 더 소중해야 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2024.9.21.AFP 연합뉴스
핵전쟁이 될 제3차 세계대전으로 달려가는 인류
핵발전만이 문제가 아니다. 지금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 지역에서 전쟁이 한창이다. 지역에 대한 헤게모니를 계속 유지하려는 서구 열강과 지역의 맹주들 사이의 싸움이다. 특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이 우려되는데 갈수록 핵전쟁의 위험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전력상 도저히 이길 수 없음에도 서구 열강의 지원을 받아가며 전쟁을 지속하고 있다. 이미 국민의 절반이 사망했거나 국외로 탈출했고 자원은 바닥났지만, 우크라이나 지도부는 전쟁을 계속해야만 자신의 생명과 자리를 지킬 수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뼈를 갈아 넣으며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서구 열강도 전쟁의 여파로 경제가 말이 아니라서 전쟁을 중단하고 싶지만 지금까지 투자한 것이 아깝기도 하고 도저히 체면이 서지 않아 그만두겠다고 말도 못한다. 핵심 지원국가인 미국은 선거를 앞두고 전쟁에서 발을 빼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다급해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러시아 본토를 공격함으로써 서구 열강의 지원을 끌어내려고 안달이다.
만약 서구 열강이 잘못 판단해 러시아 본토 공격을 승인하게 되면 이후로 전개될 상황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핵전쟁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제3차 세계대전은 필연코 핵전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기후위기도 위기지만 핵전쟁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한때 식민지였던 미국은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해 초강대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는데 시간이 지나 지금까지 누려왔던 특권적 위치가 불안해지자 또다시 세계대전을 일으킬까 말까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가상이지만, 미 본토가 전장이 되지 않고 제한된 핵전쟁을 통해 적들을 주저앉힐 수 있다면 미국은 전쟁을 일으킬 것으로 본다. 정확히 말하면,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할 것이다. 모든 나쁜 일은 한꺼번에 일어난다고 했는데 인류 멸망도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지 않나 심히 우려된다.
핵발전소는 핵폐기물과 핵전쟁 외에 입지 선정의 문제도 있다. 현재 세계에는 모두 420개 정도의 핵발전소가 있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이 해안가나 큰 강가에 있다. 냉각수를 쉽게 확보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수면의 상승은 더 강력한 태풍과 홍수를 유발하기 때문에 핵발전소의 위험도 가중된다. 인간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망하는 건 좋은데 살아남은 사람과 나머지 생명체들은 도대체 무슨 죄가 있다고 방사능에 오염된 지구를 떠맡아야 하는가?
입력된 재미와 이익이 아닌 자신의 것 찾아야
이익이 되면 무엇이든 하는 자본주의와 인간의 무한한 욕망, 그리고 국가 단위로 나뉘어 끝없이 경쟁하며 전쟁을 일으키려는 충동을 억제하지 않으면 인류문명은 필연코 멸망에 이를 것이다. 심각한 기후위기 상황을 눈으로 보면서도 전쟁을 멈추려 하지 않는 전쟁광들에게 멈추라는 말 대신 편을 갈라 싸우는 대중이 있는 한 멸망은 피할 수 없다. 일년 동안 온갖 규제를 통해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을 줄여봐야 전장에서 미사일 한방 쏘면 그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된다. 헛수고에만 그치면 다행이다.
전쟁은 그렇지 않아도 나의 작은 노력이 기후위기 극복에 무슨 도움이 될까 하고 미심쩍어하는 대중을 낙담케 하여 될 대로 되라는 태도를 갖게 만든다.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당장! 자본가와 위정자들이 입력한 재미와 이익을 의심하고 자신의 관점에서 제대로 된 삶의 재미와 이익을 찾아야 한다. 쇼핑의 재미보다 스스로 만들어 쓰는 재미가 더 크다는 것을, 남을 짓밟고 올라서서 얻는 큰 이익보다 이웃과 함께 나누는 작은 이익이 더 의미있고 행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전쟁에 미친 사람들과 이익에 눈이 먼 사람들, 허무한 재미를 퍼뜨리는 사람들에 대한 지지를 거둬들여야 한다. 그들을 고립시켜 자살로 치닫는 문명으로부터 뛰어내려야 한다.
황대권 생명평화운동가 '야생초 편지' 작가/ 시민언론 민들레
인연이란 처음 만나는 사람이고,운명이란 마지막까지 있어주는 사람이다.
지방 살리려면? 지역 기초단위 시군 간 무한경쟁 멈춰야 한다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수도권 대항할 수 있는 지역 대도시 키워야
수도권 집중은 산업·경제만이 아니라 상징성, 정체성의 집중
수도권의 양적, 질적 집중의 심화와 함께 공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수도권 지하철이 가는 곳까지가 수도권'이라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경기 남부는 서울 북부보다 더 서울로서의 정체성과 산업·일자리·생활 연계를 가지고 있고, 수도권은 이미 충청, 강원권까지 실질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인구는 이미 서울·인천·경기만 합해도 우리나라 전체의 절반을 넘었고(면적은 17% 정도), 산업생산과 특히 신산업분야와 연구개발 분야는 거의 전부가 수도권, 특히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어느새 첨단 연구개발, 고차비즈니스 서비스, 금융·보험·부동산개발, 대학과 문화, 유행을 선도하는 소비와 장소개발 등 우리의 일상생활과 경제·산업기반이 서울과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되며 확대재생산 되고 있다. 그나마 대덕연구개발특구(와 대덕이노폴리스)와 몇몇 지역의 공학 중심대학과 거점 연구소마저 없다면, 수도권 밖의 연구개발과 혁신역량은 사막처럼 보일 것이다.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도의 역사도 일천하지만,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이후 지역자본 형성의 역사가 짧고, 발전주의 국가가 그랬듯이 경제 활동의 기반이 되는 거의 모든 제도와 자원이 서울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고 위계화 되어있다.
따라서 단순한 수치적 균형과 형평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도권에 핵심 경제기능, 인재, 의사결정권한, 문화·여가활동 등의 상징자본이 집중된 상황이다. 이러한 상징성과 압축적 근대성을 가진 한국의 특수성으로 파악하고 정상으로의 회귀방안을 모색하여야 한다.
냉정히 말하면 수도권 집중은 산업과 문화의 경쟁력 향상과 어느 정도 효율성 강화에 기여한다. 다만 알게 모르게 수도권 집중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 개인의 비용만이 아니라 공공의 비용이 수도권의 기여분보다 커지고 있는 점은 예의주시해야 한다.
민간의 개발과 상업화는 탓할 수는 없지만, 공공이 주도하는 인프라사업과 신산업 중심의 재정투여는, 지방도시의 관점에서 보면 거의 천문학적 수준이다. 다시 말하면 수도권 유지의 정치적(선거), 경제적,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
지역 기초단위 시군 간 무한경쟁을 멈춰야
어느 지역이나 좋은 일자리, 투자 기회, 재정지원의 기회가 있으면 주민과 공공부문이 힘을 합하여 이를 유치하고 인재를 영입하고 살기 좋고 잘사는 곳으로 만들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산업정책, 특히 산업배분정책을 보면, 정부의 미래 전략적 정책이나 사업과 투자계획을 공고하고는 전국 지자체의 지원(bidding)을 받고, 프레젠테이션까지 하는 전문가의 심사를 거치고, 지역 간 배분이라는 조정을 거쳐서 전국의 기초지자체에 골고루 뿌린다. 이것이 지난 3~40년간 진행되어 온 전략산업정책 혹은 지역산업정책의 과정이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경험과 의지가 있는 기초 단체의 장은 지역의 예산을 미리미리 기회발전특구,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RISE), 수소에너지산업정책, 신성장산업정책 등에 대비하여 연구용역과 로비를 준비한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서 전국적인 경쟁만이 아니라, 지역내 기초 단체간의 경쟁이 과열된다는 점이다.
특히 '지자체장의 의지'라는 선정기준까지 있어서 기초단체의 경쟁을 부추긴다. (기회는 약간 제한되지만) 수도권의 기초 단체들이 이러한 산업정책의 대상이 되고, 선정되어 새로운 산업이 들어서면 수도권 기존 산업의 전후방 연계와 인재풀의 효과로 인해 상당한 시너지를 누리면서 수도권 전체가 성장하고 혁신역량이 커지지만, 비수도권 기초지자체의 경우 산업연관이나 인재의 유인이 어려워, 특정 산업의 섬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지역 대도시와의 연계도 약하고 오히려 직접적으로 수도권이나 글로벌 연계를 강조하는 무리한 비전만을 가지고 시작하기 때문에 지역간 파급효과는 상당히 미미하다. 중요한 점은 지역의 제조업이 쇠퇴만 한다는 지적이 아니라, 기대하는 만큼의 성장과 혁신이 약하다는 점이다.
문화·예술·어메니티 관련 산업의 경우, 글로벌 문화콘텐츠산업을 제외하고는 가능한 한 여러 지역에 골고루 뿌리내리고 지역 주민의 일상적인 삶과 함께하면서 수요가 꺾이지 않도록, 공급이 유지되고 성장하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하지만 대규모 연구개발과 자원, 인재풀과 산업의 하부구조가 요구되는 소위 첨단산업의 경우 대도시라는 '집적-매칭-학습-혁신'의 공간과의 매개가 필요하다. 서울과 인천, 경기도의 관계가 그렇다.
그러나 지역의 경우 대도시의 성장 잠재력이 계속 쇠퇴하면서 구심점이 없이 기초 단체간의 소모적인 경쟁만이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는 인기 영합적인 중앙정부의 자원배분방식과 단기간의 성과에 집착하는 지자체의 욕구가 있다.
이제는 중앙정부의 산업정책에 기초지자체의 무한경쟁과 정무적 배분을 멈추어야 하고 중앙정부의 산업전략, 공간전략과 정책에 기초단위 지자체의 경쟁을 완화하여야 한다. 중앙정부는 현재보다 더욱 산업기능의 지방분산에 노력해야 한다. 규모의 경제, 경쟁력, 효율성, 주민의 수요, 자유로운 선택 등의 20세기 용어에 머무르지 말고, 현명하고 합리적인 공간분업이 필요하다.
서울과 수도권이 가지고 있는 기능 중에서 중추기능 외에 일반기능을 지역에 이양하고, 서울을 슬림화하여 쾌적하고 효율적이고 포용적인 도시가 되도록 기획하여야 한다. 서울은 글로벌 엘리트, 고차서비스, 네트워크 기업 등 글로벌 기능을 담지하고, 지역의 대도시는 인재의 순환 사이클에 핵심 노드가 되기에 필요한 교통, 환경, 주거, 문화예술기능과 함께 지역산업의 두뇌와 허브가 될 수 있도록 기획하여야 한다.
지역 대도시권 중심으로 제2, 제3의 수도권 형성해야
우리나라의 규모는 물론 미국의 캘리포니아보다 작지만, 산업의 규모와 글로벌 연계, 분화는 세계 10위권 정도의 경제력이 말해주듯이 상당히 크고, 복잡하고, 중층적이다. 이처럼 거대한 산업의 대다수 기능이 수도권에 집중하는 것은 서울과 수도권의 장기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하나의 중심만으로 작동하는 것보다, 여러 개의 상호보완적이고 경쟁하는 다중심이 병렬적, 중층적으로 연계되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
문제는 지방 중심도시(부산-대구-광주. 세종-대전은 수도권에 포함)들의 경쟁력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는 점이다. 서울-수도권처럼 공간분업이나 허브-스포크 형태가 아니라, 지역의 중심도시에서 주요한 기능들이 하나둘씩 주변의 기초지자체나 산업단지, 신도시로 이전해 나가 파편적인 형태로 진행되어, 지역의 중심도시와 연계는 약하다. 이러한 진행과정은 그나마 어느 정도 유지되던 지역의 산업기능마저 형해화되고 용량은 증가했으나, 역량과 경쟁력은 약해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지역산업권·지역혁신권이 서울-수도권처럼 지역 중심도시-주변도시의 틀을 갖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역 중심 대도시의 부활, 역할 강화와 중심지로서의 정체성 부여가 중요하다. 중앙정부는 지역산업정책, 신전략산업정책, 첨단산업정책 등의 시행에서 기초지자체를 무한경쟁의 루프에 몰아넣는 기존 방식을 폐기하고, 광역단위의 지역, 지역의 대도시권 중심의 정책으로 변경해야 한다.
▲ 초광역권 발전 구상도. ⓒ부산시
어느 사이에 형해화되어버린 수도권정비계획법의 원래 취지에 맞게 수도권의 산업집중, 인재집중, 일자리집중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여 지금보다 더 강한 산업의 지역 분산에 힘써야 한다. 이로써 지역의 중심도시에 산업과 경제의 구상기능이 집적하여 서울대도시권에 대항할 수 있는(counter magnet) 경제·산업연계와 문화예술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단위에서 당장의 공장이나 연구시설 하나만 가지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단위의 대도시권을 형성하고 도시연합, 도시통합을 통해 지역경제권의 확대재생산을 지향해야 한다.
예전에는 지역 소도시에서의 이주수요와 일자리 수요를 지역 대도시가 어느 정도 감당해주는, 소위 필터링(filtering)효과가 있었지만, 지금은 농촌이나 소도시에서 서울로 직행 이주가 대세이기 때문에 지방 대도시의 역할과 기능이 갈수록 약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섰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 지역 대도시가 성장하여야 지역 소도시와 농촌이 살 수 있다는 데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나아가 지역의 대도시는 연합·통합·연계를 통해 광역권내에서 주변 도시와 협력하여야 한다.
인재의 지역 거주 선호도가 낮은 것은, 부동산 학습효과, 자녀교육, 문화·여가 어메니티, 성공을 위한 조직 본부와의 근접성 수요, 정체성과 자부심 등 어느 한 가지만이 아니라 복합적인 영향일 것이다. 이러한 자본주의적인 일상생활의 편익이 서울에만 집중되지 않고 지역 대도시로 확산할 수 있도록 지역 대도시의 물리적, 상징적 자본확충과 지역의 광역교통인프라와 생활인프라 확충에 중앙정부의 노력이 집중되어야 한다.
남기범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 프레시안
10조5천억짜리 수의계약?
우리는 지금 출생아 수가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으로 장기간 계속 줄어드는 전대미문의 위기를 겪고 있다. 후기 자본주의가 결국 맞게 된 21세기 위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보편적인 위기가 되었다. 중국, 북한도 최근 저출생으로 난리다. 그렇지만 “다른 나라도 그래”, 그렇게 그냥 넘어가기에는 한국의 상황이 워낙 심각하다.
출생아 수가 줄면 균형을 찾기 위해 자연스럽게 사람에 대한 투자가 늘고, 복지도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가 지켜본 현실은 그렇지 않다. 출생아 수가 줄면, 약한 고리부터 위기가 온다. 지방 소멸 현상이 생겨난다. 그럴수록 지방 경제 회생이라는 목표로 더욱더 인프라와 토건에 대한 투자를 늘린다. 특히 지방 토호들이 지역 정치의 민주주의를 가로막고 있는 중남미와 일본 등에서 이런 경향성이 강하다. 우리보다 먼저 저출생과 고령화의 길을 간 일본의 1990년대 이후 ‘잃어버린 10년’ 동안 일본이 딱 이렇게 갔다.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하다가 나중에는 ‘잃어버린 30년’이 되었다. 그런 일본은 자민당 1당 체계이고, 그래도 두 개 거대 정당이 서로 견제하는 한국은 다르다고 할지도 모른다.
토건에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을까? 연말마다 반복되는 쪽지 예산에서 대선과는 비교도 안 되게 많아지는 총선의 개발 공약들, 여기에 여야의 차이가 어디 있는가? 대규모 국책사업 앞에서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 차이는 잠시 정지한다.
‘가덕도 신공항’ 이익 서울로 갈 것
부산의 가덕도 신공항 사업은 여러모로 일본의 간사이 공항 사례와 유사하다. 도쿄에 모든 게 집중되니까 오사카에도 새 공항이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인공섬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같다. 어떤 면에서는 육지와 해상에 걸쳐 공항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가덕도의 난도가 더 높다.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그래도 간사이 공항은 내부적 논리대로 진행되었는데, 가덕도 공항은 외부적인 부산 엑스포에 개항 시기를 억지로 맞췄다는 정도가 다를 것이다. 엑스포 유치는 실패했지만, 만들기로 한 공항은 그냥 진행되는 중이다.
간사이 공항은 공항 용지와 다리, 공항 관련 시설 등을 합쳐서 15조원 정도가 소요되었다. 그렇지만 이런 대규모 투자에도 지역 내 파급 효과는 거의 볼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 기간 지역 인구는 오히려 줄었고, 지역 내 총생산은 물론 지역 주민소득 역시 낮아졌다. 공항 건설 이후에도 간사이 지역의 지역 총생산이나 주민 소득 증가율은 일본 전국 평균을 밑돈다. 오히려 도쿄 건설사들의 수익으로 도쿄만 이익을 보았다는 지적이 있다. 양준호 교수팀이 수행한 ‘가덕도 신공항 건설의 지역경제 효과 및 영향에 관한 연구’는 이런 사례들을 기준으로 엄밀히 검토한 후, 정부가 제시한 경제 효과, 특히 지역경제 파급 효과가 터무니없이 과대평가되었다고 지적한다.
그것도 그렇다 치자. 부산 가덕도는 환경영향평가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먼저 기반공사를 하기 위한 입찰이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공항 사업의 80%인 10조5000억원의 부지 조성 공사는 이미 4차례나 유찰되었다. 기술적 난도와 위험 부담 등으로 건설사도 쉽게 감당하기에 어려운 사업이 되었다.
정부 입장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이미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낯 뜨거운 편법 정도는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공개 입찰을 포기하고, 10조5000억원짜리 사업을 수의계약으로 하겠다는 건 좀 심하다. 결국 대형 건설사끼리 담합을 권장해서, 그들의 요구대로 사업비도, 공사기간도 늘려주게 될 것이다. 결국 더 많은 이득이 서울로 갈 것이다. 지역 인구와 소득이 줄어들고 도쿄의 이익만 높아진 간사이 공항과 닮아갈 여지가 높아졌다. 그래도 하기로 한 것이니까 그냥 강행하는 게 과연 좋은 것인가? 기후변화 대응으로 공항을 줄이는 게 선진국 추세인데, 1990년대 일본의 실패를 기후위기와 인구위기 속에서 우리가 반복하는 게 과연 맞는가? /우석훈 경제학자/ 경향
계절의 실종, 미래를 보다
2022년 8월 서울 강남역 일대 침수 당시 버스를 타고 가다가 더는 차로 갈 수 없다고 해서 같이 탔던 승객들과 내려서 걸어가고 있다. 사진 촬영 직후에 배수구에 빠져서 팔과 손을 크게 다쳤다. 필자 제공
2년 전 여름 서울에 하루 만에 400㎜ 가까이 폭우가 내렸을 때 강남역 일대는 허리 높이까지 물이 차오르기도 했다. 나는 그 부근을 지나다 도로 침수를 막기 위해 열어둔 배수구 구멍에 빠졌다. 몸에 상처가 많이 났고, 휴대폰도 망가졌다. 폭우에 뚜껑이 열린 맨홀 때문에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은 분도 계셨다. 기후위기는 언제든 누구에게든 재난으로 닥칠 수 있고 정말 위험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은 기후변화로 수십년 내에 전세계의 식량 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22년 기준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45% 남짓이고 사료용 곡물을 포함한 곡물 자급률은 20% 이하로, 세계식량안보지수(GFSI) 순위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최하위권이다. 한국은 밀, 옥수수, 콩으로 만든 가공식품 소비가 급증하면서 세계 7위의 곡물 수입국이 됐다. 더군다나 육류 소비가 늘어나 사료용 곡물 수입도 확대되고 있다. 조천호 박사는 한반도의 기후위기는 식량위기로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며칠 전 식당에 갔더니 뜨거워진 바닷물 때문에 ‘가을 전어’를 들여놓을 수 없었다는 말을 들었다. 커피 원두의 재배 환경이 점점 악화하여 커피 가격이 오르고 있고, 심지어 2080년에는 원두 자체가 멸종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체 원두를 개발하고 있는데, 미래의 커피에는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이번 추석에 배추 한포기에 2만원, 시금치 한단에 만원에 파는 곳도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선택한 미래일까? 기후재난과 식량 안보 위기 등 기후위기와 우리 청년세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돌아보게 된다. 지금 겪고 있는 기후위기는 이미 수십년 동안 내뿜은 온실가스로 인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성장하면서 알게 모르게 기후변화에 기여했다. 편하자고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텀블러를 외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만으로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개인이 아무리 탄소 저감을 위한 행동을 한다고 해도 거대 기업이나 국가 단위의 탄소배출을 상쇄할 만큼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헌법재판소에서 탄소중립기본법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30년 이후 감축 목표를 정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탄소배출 저감 정책이 미비하다는 것을 최고 사법기관 중 하나인 헌법재판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헌재 결정이 내려졌다고 기후위기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정부의 탄소 저감 정책이 미비하다는 것을 인정했으니 국회는 더욱 강력한 탄소중립기본법을 제정해야 하고, 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도 개선해야 한다. “어른들은 투표를 통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을 수 있지만 어린이들은 그럴 기회가 없습니다. 이 소송에 참여한 것이 미래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또 해야만 하는 유일한 행동이었습니다.” 위헌소송 청구인인 한제아님은 헌법재판소 공개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추석 폭염에 모두 놀라고 있지만 나중에 내 아이가 태어난다면 아열대기후 속 한국에서 살아갈 수도 있다. 계절의 실종은 잦은 재난과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삶이 훨씬 더 가혹해질 수 있다. 오염을 제거하는 데는 비용이 따른다. 바다에는 인류가 버린 쓰레기와 미세플라스틱이 가득하고, 우리가 먹는 모든 해산물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고 있다. 탄소배출도 마찬가지다. 탄소배출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것을 넘어 세계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당장에 즉각적인 성과가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은 어렵다. 이 보장되지 않는 노력을 오랜 기간 지속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하지만 헌법재판소 결정에 나오듯이 “현재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불충분하면 그만큼 미래의 부담이 가중된다. 이것은 기후위기라는 위험 상황의 중요한 특성이다.” 과거 무분별하게 배출된 온실가스로 현재 이미 심각한 기후변화를 겪고 있는 것에 대하여, 청년으로서 미래를 바라보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하고 싶다. 기후대응을 위한 법과 정책의 개선을 위하여 나도 이번 기후소송에 참여했다. 그러나 부족함을 느끼며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했다. 크게는 제도 개선에서, 작게는 일상생활의 실천까지.
김백산 | 기후소송 원고 / 한겨레
"폭염·가뭄으로 배추 말라죽어, 세 번 심어도 소용없어"
[수확기 농작물 피해] 가을폭염-가뭄-병해충 기승...농민 시름 "밭 갈아엎고 싶은 심경
▲ “폭염·가뭄·병해충에 속수무책, 배추 등 수확기 농산물 비상” 가을 수확기 채소농가가 가을폭염·가뭄·병해충 등의 악재로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 사진은 면 지역 배추밭이다. 벌레가 배추 잎을 갉아먹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옥천신문
추석 이후까지 이어진 이례적인 폭염에 채소 농가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늦더위를 비롯해 가뭄·병해충으로 인해 배추·파·고추 등 김치에 쓰이는 작물은 물론 쌈채소 등 밭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시들어버리거나 병충해 피해를 입는 등 기후위기가 농가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는 상황이다.
9월에도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올해 9월 중순(9월 11일~20일) 기온은 27.1℃로 평년 기온인 20.9℃보다 6.2℃ 높다. 특히 최고기온도 평년보다 5.5℃ 높은 31.5℃이고, 최저 기온도 평년보다 7.3℃ 높은 24℃를 기록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9월의 경우에는 10일·14일·17일·18일 옥천 지역에 폭염 특보가 발효된 바 있다. 9월에 폭염 특보가 발효된 건 올해가 처음이다(추풍령기상대 기준).
문제는 이례적인 늦더위와 이로 인해 발생하는 가뭄·병해충 등은 농작물의 생육 패턴은 물론 농민들의 농업 방식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특히 늦더위 피해는 수확철을 앞둔 김장채소 위주로 발생하고 있다.
충북 옥천군 면 지역에서 5000평 밭에 배추 농사를 짓는 A씨는 전체 경작지에 절반 가량 피해를 봤다고 예상한다. 폭염과 가뭄으로 심는 족족 배추가 말라 죽는 탓에 두 번이나 다시 심고 물을 줬지만 결국 소용이 없었다. 평년 같으면 배추를 심을 시기나, 키울 때 비가 적당히 왔지만, 올해의 경우 날은 뜨거운데 비는 오지 않았다. 그나마 배추가 잘 자란다 싶으면, 각종 벌레가 달라붙어 잎을 갉아 먹어버렸다.
"9월에까지 이렇게 날씨가 더운 건 처음"
지난 9월 24일 오후에 A씨의 밭을 찾았다. 배추가 자라지 못한 채 벌레가 이파리를 갉아먹어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있거나, 줄기까지 갉아 먹은 모습이었다.
A씨의 경우 5000평 밭에 배추를 심기 위해 투입한 생산비는 대략 계산해도 1700만 원 이상이다. ▲모종값 약 400만 원 ▲멀칭비닐 약 125만 원 ▲멀칭 비닐을 깔고, 배추심는 등 인건비 약 250만 원 ▲스프링쿨러 구입비 약 600만 원 ▲비룟값 약 200만 원 ▲농약값 약 120만 원 등을 투입했다. 대부분의 자재를 농협에서 외상으로 구입했는데, 배추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경제적인 타격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A씨의 말이다.
"9월에까지 이렇게 날씨가 더운 건 처음이다. 통상 8월 중순이나 말에 배추를 심는데, 올해는 너무 더워서 일부러 9월 초까지 늦춰서 심었는데도 너무 덥다. 스프링클러를 계속 가동해도 날씨가 너무 뜨거우니 소용이 없다. 밤에도 더우니 저온성 식물인 배추가 자라지 않는 건 당연하다.
배추가 좀 크려고 하면 벌레가 와서 다 먹어버린다. 솔직히 밭을 갈아엎고 싶은 심정이다. 옥천의 경우 배추농가는 농작물 재해보험에 가입할 수도 없다."
배추 농사를 짓는 B씨도 "4000평 배추밭 중 70%는 피해를 본 것 같다"며 "봄철 옥수수를 심자마자 가뭄피해를 입고, 감자도 장마 때문에 피해를 봤다. 배추까지 이렇게 되니 막막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 배추 90톤 이상 수확을 목표로 규모를 늘렸는데, 30톤 정도 생산하면 다행일 지경이다"라고 덧붙였다.
김장에 들어가는 다른 채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역에서 파 농사를 짓는 C씨는 "농사짓기가 너무 힘들다. 너무 가물고 비가 안 와서 생각대로 농사가 안 됐다"며 "모종이 계속 죽으니 사람들이 종묘사에 가서 모종을 계속 산다. 종묘사도 지금 모종이 동이 났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늦더위에 병충해도 기승, 농민들 시름 깊어져
늦더위로 인해 병충해도 더욱 기승을 부리는 모양새다. 특히 관행농보다 유기농·친환경 농가에 피해가 크다. 농민들은 "요즘 밭에 벌레가 '창궐'하는 것 같다"며 병충해 피해도 호소하는 상황이다.
고추 농사를 짓는 안남 제판권 농민은 "덥고 가물었다가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는 이런 날씨는 처음이다. 고추생산량이 20~30%는 줄어든 것 같다"며 "평년 대비 일주일 가량 빠르게 고추 농사를 정리했다. 숨멎이병, 담배나방, 총체벌레 등 병해충이 말도 못하게 늘었다"라고 전했다.
유기농 쌈채소 농장을 운영하는 D씨의 경우 200g짜리 쌈채소 모음은 지난해 8월에 1401개, 9월에 1105개를 각각 생산했는데, 올해의 경우 8월에 1005개, 9월에 832개를 생산하는 데 그쳤다. 생산량이 지난해 대비 70% 수준으로 떨어진 것.
D씨는 "봄에는 진딧불, 9월 중에는 청벌레, 근심이, 쥐며느리 등이 이파리와 새순을 갉아먹어서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는 제품이 많지 않다"며 "쌈채소를 한번 심으면 통상 40~50일 동안은 사는데, 올해는 벌레가 너무 많고 날씨도 덥다보니 금방 죽는다"라고 말했다.
기후위기 속 농가소득 보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마련 필요
▲ 9월 24일 오후 서울 한 시장에 배추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기후위기로 인한 날씨 변화로 농업에 직접적인 타격이 오는 상황 속 농민들이 농사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도록 농업 피해에 대한 보다 촘촘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부소장은 "농사를 짓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기후위기가 정부나 지자체의 책임은 아니지만, 농산물과 농업을 공공의 영역으로 보고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이 더 강화돼야 한다"라며 "농업정책에 정부 개입이 심한 이유는 농업이 공공재이고 시장의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농민들 또한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화학비료를 덜 쓴다던지, 땅을 살리기 위한 노력에 나서며 기후농정을 펼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현철 옥천군농업기술센터 소장은 "기후문제를 지자체 차원에서 일일이 대응하는게 쉽지는 않지만, 농업 재해가 상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논의하고 검토하겠다"라고 말했다. 황규철 옥천군수는 "농가 피해 현황을 계속 파악하며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옥천신문 양수철(okinews)
'기후 리터러시'와 언론의 역할
기후위기 시대, 어떤 언론이 요구되는가
▲ 부산에서 지난 20, 21일 양일 간 최대 426㎜(강서구 가덕도 기준)의 기록적 폭우가 내리면서 땅꺼짐, 침수 등 피해가 속출했다.ⓒ 부산시소방재난본부
"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속담이 있다. 무슨 일이든 알아야 실천할 수 있다는 뜻이다. '리터러시'는 문해력, 즉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세상이 디지털화되면서 디지털 환경을 알지 못하면 살아가기 어렵다는 취지로 '디지털 리터러시'라는 말이 최근까지 유행했다. 이제는 '기후 리터러시'가 회자되고 있다. 기후위기가 인류가 직면한 시급한 과제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는 단순한 기상 이변이나 재난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돌이킬 수 없는 장기적인 추세이고 예고된 파국이다. 그 속에서 인류와 지구 생명체들의 생존과 지속을 도모하는 인간 사회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둘러싼 쟁점에 대해 언론은 피할 수 없는 숙제를 안고 있다. 언론 보도와 사회적 담론들은 정보 전달 차원을 넘어선다. 사고의 전환과 삶을 영위하는 방식의 변화를 동반하는 쟁점을 다루어야 한다.
기후변화국제협의체(IPCC) 보고서에도 "언론은 기후위기가 제기하는 도전에 인류가 맞서도록 돕는 중요한 기관"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이 마주한 상황은 녹록치 않다. 상업성의 유무로 뉴스 가치를 판단하는 관행은 기후보도를 주변부 기사로 머물게 한다. 매일의 사건, 사고와는 달리 기후문제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아무래도 뉴스 편집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쉽다. 그리고 기후보도 역량이 아직은 미흡하다. 전문성을 갖춘 기자들이 만족할 만큼 양성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시민들이 기후문제에 갖는 의식의 분절과 모순은 넘어야 할 큰 산이다. 기후 이상 변화가 실제 벌어지는 일이고 산업화 이후 인간 활동에 의한 것이라는 데 갑론을박이 있었던 시절은 지났다고 봐야 한다. 최근 수행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 85% 이상이 기후위기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자신의 생활양식을 바꿀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위기 대응에 있어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는 데에는 매우 소극적이다. 심각성을 아는 것과 내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 사이에 분명한 인식의 차이가 있다. 2023년 기후변화대응지수에서 대한민국은 총 60개국 가운데 60위를 차지했다.
우리는 여전히 텀블러를 사용하고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면 된다고 생각하고 현재 생활의 질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과거 '환경오염방지', '자연보호'와 같은 이슈들은 당파를 떠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용이했다. 하지만 지금의 기후문제는 인식 격차와 의견 불일치가 나타나고 있으며 해법 또한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다. 이제 기후문제에 대한 이슈들은 과학적 인식과 규범적 접근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이해 당사자들 사이의 대화와 타협을 통한 제도적 전환 프로그램 형성으로 이어져야 한다. '기후 리터러시'가 필요한 이유다.
기후 리터러시는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사회적, 경제적 측면을 이해하고,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변화의 원인, 영향과 해결책에 대해 학습하고 이해하는 것을 포함한다. 과학적 지식과 비판적 사고가 있어야 하고 행동으로 표출됨을 의미 한다. 그래서 기후 리터러시는 자생적이지 않다. 계획되고 의도되어야 한다. 개인의 순수 노력만으로도 한계가 있다. 계몽에 가까운 외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와 정당의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언론은 핵심적인 기능을 해야 한다. 언론이 대중과 갖는 관계와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기후보도는 기후 리터러시 함양을 위한 훌륭한 교육이고 공론의 장이다.
2022년 9월 프랑스 언론인들은 '생태 비상사태 대응을 위한 저널리즘 헌장'을 공표했다. 환경전문기자, 환경전문매체, 전문가 그룹, 시민단체, 프랑스 주요 매체가 모였다. 이어 2023년 2월 프랑스 최대 지역 일간지 <우에스트 프랑스>가 자체 저널리즘 헌장을 발표했고, <르몽드>가 뒤를 이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유럽 방송 연맹(EBU)>도 비슷한 내용으로 '환경서약'과 '보도 가이드북'을 내놓았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저널리즘의 방향과 원칙을 나름의 시각에서 정리했다. 여기에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면 '기후 리터러시 증대를 위한 언론의 역할'이다.
국내에선 아직 이런 언론의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아쉬운 대목이다. 선언이 뭐 중요하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고민하는 틀이 만들어지는 건 의미가 크다. 앞서 말했지만, 지금의 기후문제는 '무당파적'이지 않다. 지극히 정치적 이슈다. 경제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기 때문이다. 기후위기가 불러오는 피해의 당사자인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지역사회가 참여하지 않는 해법은 작동되지 않는다. 이 과정에 언론이 갖는 현실 임무는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후 리터러시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게 있다. 모든 재난이 그렇듯이 기후재난 역시 사회 내부의 취약한 곳에 피해가 집중되기 마련이다. 위기가 심화되면 '부정의'와 '불평등'은 쉽게 노출된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사회구조 변화를 동반하는데 이 과정에는 반드시 '정의로운 전환'이 고려되어야 한다. 과학적 지식, 비판적 사고, 행동으로 구성되는 기후 리터러시에 '정의'와 '평등'은 양보할 수 없는 요소이다. 언론도 이를 명심해야겠다.
김용만 기후 숲 생태 전문 미디어 '플래닛03'(https://www.planet03.com/)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