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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단체 보조금 ‘314억 부정’ 적발하고 ‘5000억 깎는’ 정부
노조 때리기 이어 민간단체 옥죄기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이 4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민간단체 보조금 감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실이 지난 3년 동안 비영리 민간단체에 지급된 국고보조금 1조1천억원 가운데 314억원이 부정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4일 밝혔다. 정부는 부정행위가 적발된 단체를 형사고발 또는 수사의뢰하고, 내년도 관련 민간단체 보조금 예산을 5천억원 이상 줄일 방침이다. 국무조정실이 중심이 돼 조사한 내용을 이례적으로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 발표한데다 3년간 부정사용된 예산 규모의 16배에 이르는 민간단체 보조금을 내년에 삭감하겠다고 밝히면서, 최근 ‘노조 때리기’에 이어 대대적인 ‘민간단체 옥죄기’에 나선 모습이다.
이날 대통령실이 공개한 ‘비영리 민간단체 보조금 감사결과 및 개선방안’ 자료를 보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비영리 민간단체에 지급된 정부 보조금 중 감사가 이뤄진 금액은 6조8천억원이며, 이 가운데 1조1천억 규모 사업에서 이날 현재까지 확인된 부정사용액이 314억원(1865건)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대상 단체는 이 기간에 3천만원 이상의 국고보조금을 받은 민간단체 1만2천여개다. 정부는 회계 투명성 강화를 내세우며 지난 1월부터 국무조정실이 중심이 돼, 비영리 민간단체 국고보조금 지원 실태를 조사해왔다. 이날 브리핑에 나선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은 “횡령, 리베이트 등 사안이 심각한 86건은 고발 또는 수사의뢰를 하고, 목적 외 사용이나 내부거래 등 300여건은 감사원에 추가 감사를 의뢰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묻혀진 민족의 영웅’을 발굴하겠다며 정부 보조금 6260만원을 받았지만, 보조금 용도와는 무관하게 윤석열 정권 퇴진 운동 강의에 강사비 211만원을 사용한 통일운동 단체 등을 주요 적발 사례로 꼽았다.
대통령실은 앞으로 대대적인 민간단체 보조금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밝혔다. 당장 내년도 보조금을 5천억원 이상 삭감하고, 윤석열 대통령 임기 동안 지속적으로 감축할 계획이다. 5천억원은 2022년도 보조금 총액 5조4446억원의 약 9.2%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는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늘어난 보조금 1조7천억원의 약 30%에 해당하는 규모이기도 하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예전으로 돌아가는 게 마땅하지 않으냐는 판단으로 약 30% 정도 삭감해 5천억원 정도 규모가 나왔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한겨레>에 “기획재정부에서 5천억원보다 추가로 삭감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보조금 6천만원 받아 윤 퇴진 강연”…민간단체 적발 사례 보니
해당 단체 “퇴진 내용 없는데 꼬투리 잡아”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민간단체 보조금 감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실이 4일 발표한 민간단체 보조금 감사 결과는 최근 3년간 1만2천여개 비영리 민간단체에 지급된 정부 보조금 6조8천억원 가운데 현재까지 확인된 1865건, 314억원의 부정·비리 사용 내용을 확인한 것이다. 보조금 부정 사용의 주요 유형으론 △횡령, 사적 사용 △거래업체의 리베이트 수령 △가족·임원 등 내부거래 △서류 조작 등 부정 수급 등이 꼽혔다. 특히 이번 감사에서 ‘이산가족 교류’나 ‘통일·탈북자 사업’ 관련 단체들이 국고보조금을 부정 사용하거나 비리를 저지른 사례로 다수 지목된 점이 눈에 띈다.
주요 적발 사례를 보면, 통일운동을 하는 ㄱ단체는 ‘숨은 민족 영웅 발굴’ 사업을 한다는 명목으로 정부 보조금 6260만원을 받았지만, 이 돈을 사업과 무관하게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정치적 강연 등에 썼다고 한다. 이 단체는 보조금으로 ‘대선후보에게 보내는 사회협약’, ‘윤석
열 정권 취임 100일 국정난맥 진단과 처방’ 등 정치적 강의를 했고, 그 내용에 윤석열 정권 퇴진 운동 관련 등이 포함됐다는 게 대통령실 쪽 설명이다. 대통령실은 또 이 단체가 실제 원고를 작성하지 않은 사람에게 지급 한도의 약 3배를 초과하는 원고료를 지급했다며 수사를 의뢰할 예정이다. 이 단체의 회장은 <한겨레>에 “정부에서 실제 지급된 돈은 1500만원에 불과했고, 강의 내용도 윤석열 정권 퇴진과 관련한 것은 없었다”며 “정부가 진보 성향 단체를 분류해 꼬투리 잡고 짓밟는 것”이라고 말했다.
ㄴ단체는 독립운동가의 초상화를 전시하는 단순 기능의 앱을 만드는 데 개발비 5300만원을 업체에 지급한 뒤 500만원을 돌려받는 식으로 모두 4개 업체로부터 3300만원의 리베이트를 부당하게 챙겼다.
또 정부 보조금을 받아 일자리 사업을 추진한 ㄷ단체는 강의실, 피시(PC) 설비, 상근 직원 등이 없는 사실상 페이퍼컴퍼니로, 공동대표 가운데 한명이 이사장으로 있는 학원의 시설·기자재를 단체 소유로 허위 기재해 일자리 사업 보조금 3110만원을 부정 수령한 것으로 조사됐다.
장애인 관련 매체인 ㄹ신문은 2012년 폐간한 뒤에도 2019년까지 보조금을 거짓으로 신청해 모두 850만원의 돈을 받아냈다. 보조금 지급 기관은 7년 동안 이 매체의 폐간 신고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고, 업체가 허위 제출한 ‘가짜 신문’만 확인한 뒤 보조금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세수 메우는 ‘봉’…월급쟁이는 서러워
장혜영 의원실 기재부 자료
세수 메우는 ‘봉’…월급쟁이는 서러워사진 크게보기
법인·종부세 등 줄줄이 감소
국세 49% 늘 때 근소세 69% ↑
경기 무관 증가, 유리지갑 입증
정부 감세 기조서 밀린 탓도
올 들어 국세가 덜 걷혀 세수펑크가 예상되는 가운데 직장인이 납부하는 근로소득세수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둔화로 법인세와 양도소득세, 종합소득세, 상속세 등은 줄줄이 쪼그라들었는데, ‘유리지갑’인 직장인이 낸 세금만 증가한 것이다.
직장인들의 세부담이 커지면서 월급이 올라도 실제 소득 증가를 체감하지 못하는 직장인도 늘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통과시킨 대규모 감세법안이 올해 적용되면 근로소득세의 나홀로 증가는 더 심해질 수 있다. 정부의 감세 정책이 기업과 자산에 맞춰지면서 노동자들의 노동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세수 메우는 ‘봉’…월급쟁이는 서러워
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이 기획재정부 제출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올해 4월까지 근로소득세수는 22조8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000억원 늘었다. 부동산·자산·금융 소득과 사업소득 등에 대한 세수가 대부분 부진한 시기에 직장인이 낸 세금만 늘어난 것이다. 근로소득세는 월급·상여금·세비 등 근로소득에 부과되는 세금으로, 급여에서 원천징수된다.
근로소득세수는 경기 상황과 관계없이 늘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근로소득세수는 5년 전인 2017년 대비 23조4000억원(68.8%)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국세(49.2%)보다 큰 폭으로 증가했다. 자영업자·개인사업자 등에게 부과되는 종합소득세 증가폭(49.4%)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다.
정부는 경기 회복에 따른 취업자 수 증가로 근로소득세수가 늘었다는 입장이다. 대기업 중심으로 임금이 오른 점도 근로소득세수를 올린 요인이다.
실제로 2021년 귀속 근로소득 연말정산을 신고한 근로자 수는 1995만9000명으로 2017년(1801만명)보다 195만명 늘었다.
하지만 정부의 대규모 감세 기조가 대기업과 고액자산가에 맞춰진 것도 원인이 되고 있다. 지난해 정부는 법인세와 보유세는 세율을 낮추고 세액감면과 공제를 확대하면서 적극 감세했지만 근로소득세는 소득세 과세표준 구간을 소폭 조정하는 데 그쳤다. 일각에서는 법인세, 재산세 감세를 위한 보여주기식 소득세 감세라는 지적도 나왔다. 전반적으로 세액공제를 줄이는 추세여서 향후에도 근로소득세는 계속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근로소득세를 제외한 나머지 세금들은 줄줄이 줄었다. 지난달 31일 기재부가 낸 4월 국세수입 현황에 따르면 1~4월 소득세수는 35조7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8조9000억원(-19.9%) 줄었다.
4월까지 양도소득세수는 5조9000억원으로 1년 전(13조1000억원)보다 7조2000억원 덜 걷혔다. 부동산 거래가 줄었고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감면에도 영향을 받았다. 종합소득세 역시 경기 침체로 올 4월까지 2조4000억원 덜 걷힌 1조8000억원을 기록했다.
소득세 외 세목도 대폭 줄었다. 법인세 감세가 두드러진다. 같은 기간 법인세는 35조6000억원으로 1년 전(51조4000억원)보다 15조8000억원(-30.8%) 감소했다. 상속증여세(-8%), 종합부동산세(-26.3%), 증권거래세(-28.6%) 등 자산 관련 세수도 모두 줄었다. 자산가치가 떨어진 것이 원인이지만 종부세 등 감세의 영향도 받았다. 올해는 지난해 통과시킨 법인세, 종부세 감세가 본격 적용돼 세수는 더 쪼그라들 가능성이 크다.
장 의원은 “정부는 세금 감면으로 경기를 활성화시키면 세수가 늘어날 것이라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경기 침체 위기에 대처할 세수마저 부족한 상황”이라며 “6월 중에 세입재추계 결과를 공개하고, 국회에 대책을 성실히 보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 반기웅 기자
5대 시중은행 1분기 순이익 4조원···은행·보험만 순이익 늘어
은행·보험·카드·상호금융 등 전체 금융업권 중 올해 1분기 순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늘어난 업계는 은행과 보험사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5대 시중은행이 4조원을 벌어들이는 등 은행·보험업계 순이익이 12조원을 넘었다.
5일 금융감독원과 은행권에 따르면 국내 금융회사의 1분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2조7600억원 중가한 16조24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은행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조4000억원 불어난 7조원으로, 금융업계 순이익의 43.1%를 차지했다.
은행 중에선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이 전체 은행권의 절반 이상인 4조969억원의 순이익을 달성했다.
하나은행은 전년 동기 대비 45.5% 불어난 9742억원의 순이익을 거둬, 5대 시중은행 중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신한은행이 전년 동기 대비 7.9% 증가한 9316억원을 벌었고, KB국민은행이 9219억원, 우리은행이 8595억원의 순이익을 남겼다. NH농협은행은 전년 동기 대비 29.6% 4097억원의 순이익을 남겼다.
은행권 순이익이 증가한 것은 높은 금리 덕분에 이자 이익이 불었고, 1분기 들어 시장금리가 하락해 유가증권 관련 이익이 개선됐기 때문이다. 1분기 국내 은행의 이자 이익은 14조7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조1000억원(16.7%) 증가했다.
다만 전 분기와 비교해서는 이자 이익이 7000억원(4.4%) 줄었다. 1분기 순이자마진(1.68%)도 전 분기보다 0.03%포인트 낮아졌다. 순이자마진이 전 분기보다 하락한 것은 2020년 2분기 이후 약 3년 만이다.
이는 은행권이 ‘상생금융’ 방안을 실천하면서 대출 금리를 인하했고, 금리가 낮은 수시입출식 예금 잔액이 감소해 은행의 자금조달 비용이 증가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은행권의 수시입출식 예금 잔액은 지난 3월 말 873조6000억원으로, 지난해 말(899조2000억원)보다 25조6000억원 감소했다.
보험업계는 올해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이 도입된 효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I손해보험업의 경우 삼성화재가 올해 1분기 순이익 6133억원을 달성했다. DB손해보험은 4060억원, 메리츠화재 4047억원, 현대해상 3336억원, KB손해보험은 2538억원의 순이익을 남겼다.
경향 최희진 기자
국민 3분의2는 핵무장 찬성? 핵 보유로 인한 위기 제시하면 3분의2 반대
통일연구원, 2023 통일의식조사…"한국인 핵무장 욕구에 대한 논의, 근본적 차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국 국민 다수는 핵 보유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핵 보유로 경제제재 등의 위기가 발생한다는 조건이 붙을 경우 이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핵 보유를 둘러싼 대국민 여론 수집 및 논의를 기본부터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5일 통일연구원은 '한국의 핵개발에 대한 여론'을 주제로 한 2023년 통일의식조사(연구책임자 이상신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공동연구자 민태은 연구위원, 윤광일 숙명여대 교수, 구본상 충북대 교수)를 발표했다. 지난 4월 15일부터 5월 10일까지 전국 거주 만 18세 이상 성인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조사에서, 연구원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남한도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응답자의 60.2%가 '찬성한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같은 조사 결과를 두고 국민 다수가 핵 보유에 대해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우선 핵무기 보유 찬성 여론이 60%에 달하고 있지만 이는 이전보다 감소한 수치였다.
연구원은 2014년부터 핵무기 보유 여부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당시 50.5%의 찬성 응답이 나온 이후 매년 60% 중반대로 그 비율이 높아졌다가 2021년 10월 찬성 71.3%로 최고치를 찍었다. 그러다 2022년 69%로 주춤하더니 올해 60% 초반대로 집계됐다.
연구원은 "최근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다는 여러 언론보도가 있었다. 시카고 국제문제협의회(71.0%), 아산정책연구원(70.2%), 샌드연구소(74.9%),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55.5%), 통일과나눔재단(68.1%), 최종현학술원(76.6%) 등의 조사에서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을 지지하는 여론의 비율이 70%가 넘거나 근접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그런데 핵 보유 필요성에 대한 여론은 언론보도와 달리 상당한 폭으로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연구원은 "2021년에서 2023년 사이에 북한의 미사일 도발 등이 오히려 빈번해지고 대중국 관계가 악화되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핵 보유 필요성 하락은 국내정치적 요인 및 자체적 핵 보유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장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것 등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풀이했다.
이와 함께 미국의 핵을 남한에 재배치할 것을 요구하는 여론도 2021년 이후로 하락했다. 조사에 따르면 2021년 재배치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61.8%로 집계됐으나 2022년 60.4% 떨어진 이후 올해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3.6%만이 찬성한다는 답을 내놨다.
전반적으로 핵 보유에 대한 찬성 여론이 주춤한 가운데, 핵을 개발할 경우 맞닥뜨리게 될 위험 요소들을 언급하고 그럼에도 핵을 보유해야 하느냐고 묻자 응답자의 3분의 2 이상은 핵 보유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선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로 인한 경제위기가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응답자의 75.3%가 동의한다고 답했다. 또 그럼에도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는 응답은 36.8%로 집계돼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63.2%)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핵무기 개발로 인해 생기는 다른 문제점과 관련해서도 유사한 경향이 발견됐다. 한국의 핵무기 개발로 한미동맹이 파기되고 주한미군이 철수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응답자의 62.8%가 동의했으며, 그럼에도 핵무기를 개발해야 하냐는 질문에 62.8%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한국의 핵무기가 북한과 중국을 자극하여 한반도 전쟁위험이 더 커질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응답자의 70%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주장에는 68.6%가, 환경파괴가 벌어질 것이라는 주장에는 79.1%가, 평화를 지향하는 이미지 손상에는 72.2%가 각각 동의한다고 답했다. 또 각각의 위기가 있음에도 핵을 개발해야 하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0% 이상은 개발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연구원은 "여섯 가지의 위기 가능성을 제시하고, 그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보유가 필요할지를 물었을 때 핵개발을 계속 주장하는 여론은 극적으로 줄어든다. 각 항목 모두 핵개발에 동의하는 비율은 36%에서 37%에 그친다"라며 "이는 핵 보유 찬성여론이 70%를 넘는다는 다른 연구기관의 조사결과와 매우 대조적인 내용"이라고 전했다.
연구원은 "이 조사결과의 함의는 지금까지 한국인의 핵무장 욕구에 대한 많은 여론조사와 논의들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들은 "끊임없는 북한의 핵위협과 점증하는 동북아시아의 미중갈등, 그리고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의 한미동맹 파기 위협에서 촉발된 '방기에 대한 공포'(fear of abandonment) 등을 고려하면 한국의 대중이 더 확실한 안보를 원하는 심리는 자연스러운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한국인들은 핵보다는 동맹과 외교적 수단 등을 통해 안보를 확고히 하는 것을 더 선호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이밖에 "미국의 핵우산 정책이 한국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은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얼마나 동의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52.2%가 동의한다고 밝혀 핵 보유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물을 때와는 반대되는 경향의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이같은 결과를 두고 연구원은 "한국의 핵보유에 대한 여론은 국제 정세 및 국내정치 구도의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한편 연구원은 "선거에서 후보나 정당이 한국의 독자적 핵무기를 개발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다면, 이 후보나 정당에 투표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33.7%가 이 후보나 정당에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는 답을 내놨다고 밝혔다. 투표한다는 응답은 17.7%에 그쳤으며 중요한 기준이 아니라는 응답은 48.7%에 달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자의 경우 투표한다가 15.3%, 투표하지 않는다가 39%, 중요한 기준이 아니라는 응답이 45.8%로 집계됐으나 국민의힘 지지자의 경우 투표한다는 응답이 29.4%로 조사됐다.
연구원은 "다른 후보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독자적 핵무기 보유를 주장한 후보들에 의해 한국의 핵 개발 논의가 주도되어 왔다"며 "이번 조사 결과는 핵무기 개발 공약이 선거에서 중요한 의제가 되지 못할 것임을 시사한다"고 진단했다.
연구원은 "국민의힘 지지층에선 29.4%가 핵개발 공약을 내세운 후보와 정당을 선호한 반면 지지하지 않겠다는 답변은 25.3%에 그쳤다"라며 "양극화된 한국 국내정치의 구도 및 정당공천 제도 때문에 정치인이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정당 내부의 지지를 먼저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며, 따라서 보수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정치인들의 핵개발 공약 경쟁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연구원은 "핵무기 개발을 약속한 정당과 후보자에게 투표하겠다는 답이 가장 높은 것은 산업화세대(1951년~1960년 출생자)로, 26.9%가 투표하겠다고 응답했다. 반면 IMF세대(1981년~1990년)에서는 이 비율이 6.6%로 가장 낮아서 뚜렷한 세대별 차이가 관찰됐다"고 덧붙였다.
프레시안 이재호 기자
전 세계 핵탄두 총 몇 개?…“히로시마 폭탄 13만 5000개 합친 파괴력”
전 세계 지뢰 감시기구인 ‘노르웨이 피플스 에이드’(이하 NPA)가 최근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핵탄두를 보유한 국가는 총 9개이며 이들 국가가 가진 핵탄두는 9576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NPA는 “이 무기들이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폭탄을 13만 5000개 이상 합친 파괴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핵무기 보유국 핵탄두 수 현황 연합뉴스
지난해와 대비해 추가로 136개의 핵탄두가 추가됐으며, 이는 세계 최대 무기고를 보유한 러시아와 중국, 인도 더불어 북한과 파키스탄의 핵 보유력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러시아가 보유한 핵탄두 수는 4489개, 미국은 3708개로 확인됐으며, 뒤를 이어 중국이 410개, 프랑스와 영국이 각각 290개와 225개, 북한이 30개 등을 배치 또는 예비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전 세계 핵무기 90% 가진 미국-러시아, 핵 위기 높여
전문가들은 냉전 종식 후 감축돼 왔던 전 세계 핵무기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으로 인해 향후 10년 동안 다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특히 전 세계 핵무기의 90%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는 2010년 뉴스타트 협약으로 핵무기를 더 늘리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개전 약 1년 후인 지난달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뉴스타트 참여를 중단하겠다고 밝히면서 파장이 일었다.
양국은 뉴스타트를 통해 핵탄두 숫자를 상호 제한해 왔다. 또 준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상대국 핵시설을 사찰하고, 1년에 두 차례 배치한 핵탄두와 운반체 숫자도 공유하도록 했다.
러시아의 핵추진 잠수함이자 세계 최장 잠수함으로 꼽히는 벨고로드 자료사진(오른쪽은 수중 드론 포세이든)
그러나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협정 참여 중단을 선언했고, 뒤이어 지난 25일에는 푸틴 대통령이 직접 “벨라루스에 전술 핵무기를 배치하기로 양국이 합의했으며 이를 위한 핵무기 저장시설을 7월 1일까지 완공할 것”이라고 밝혀 국제사회의 우려가 증폭됐다.
러시아가 국외에 핵무기를 배치하는 것은 우크라이나·벨라루스·카자흐스탄 내 핵무기를 러시아로 완전히 이전한 1996년 이후 27년 만이다.
미국도 이에 대응해 러시아에 자국의 핵탄두 숫자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28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러시아가 주장한 뉴스타트 중단이 법적으로 근거가 없기 때문에 미국도 러시아의 협정 위반에 대응해 미국이 반년마다 하는 정보 업데이트를 합법적으로 중단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러시아는 또 다시 맞대응에 나섰다. 이튿날인 29일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현지 스푸트니크 통신에 “뉴스타트에 따라 이뤄지던 러시아와 미국 간의 모든 정보 이전을 중단한다. 이에 따라 미사일 시험 발사 통보도 앞으로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2023. 3. 30
어느 대학 나왔나요? 묻지 않는 세상이 온다
학교 이름이 삶 전체를 규정하는 구조는 불평등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미래를 위협한다. 기업들은 채용 문화를 빠르게 바꾸고 있다. 〈시사IN〉은 ‘교육의봄’과 변화의 단면을 짚어나간다.
(1) 어느 대학 나왔나요? 묻지 않는 세상이 온다 https://www.sisain.co.kr/47683
윤석열은 최초의 서울대 법대 출신 대통령이다. 서울대 의대 출신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로 대통령이 되었다. “소수의 엘리트가 세상을 바꾼다”라고 말했던 여당 대표 이준석은 과학고와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다. 〈한겨레21〉이 윤석열 정부의 장차관과 대통령실 비서관급 인사를 분석한 결과 이른바 ‘스카이(SKY)’ 대학 출신이 67%였다(문재인 정부는 59%). 놀라운 이야기는 아니다. 정권이 바뀌었을 뿐 명문대 출신이 권력을 독차지하는 현상은 다르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 학벌은 신화가 아니다. 의심할 수 없는 ‘팩트’에 가깝다. 오랜 세월 우리는 학벌사회의 폐해를 말하면서도, 동시에 좋은 학교를 나온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현실을 목격해왔다. 학벌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켜켜이 쌓인 경험치 앞에서 공허했다. 고위 공직자 자녀들의 스펙 취득 논란에서 보듯 진보든 보수든 모두 학벌사회라는 성을 더 높이 쌓아올리고 있다.
학벌사회는 왜 문제인가? 청소년기의 노력과 선택이 나머지 ‘인생 전체’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는 2007년 〈중앙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한국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교육이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학생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을 학교와 학원에서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15년 전 토플러의 지적을 흘려들은 우리는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은 보이지 않는데 아이들의 입시 경쟁만 더 치열해지고 있다. 최근 1~2년 사이에 주목받은 〈한국의 능력주의〉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 〈대치동〉 〈시험능력주의〉 같은 책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한결같다. 학벌이 개인의 삶 전체를 규정하는 불평등 구조를 깨야 한다는 점이다.
‘교육의봄’은 2020년 10월 만들어진 신생 단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12년 동안 이끌었던 송인수, 윤지희 두 사람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후배 활동가에게 맡기고 새롭게 만들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학생과 부모의 과도한 학습 및 사교육비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 노력했다면, 교육의봄은 좀 더 본질적인 운동에 나섰다. 학벌사회의 근원에 ‘취업’이 있다고 보고, 기업의 채용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교육의봄은 출범하자마자 혼란(?)에 빠졌다. 이미 세상이 바뀌고 있었다. 교육의봄이 추구하려는 ‘학벌을 보지 않는 채용 문화’가 기업에 급속도로 번지고 있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심정으로 기업의 채용 문화를 바꿔보려 했는데, 바위에 이미 균열이 가고 있었다. 교육계만 이를 모르고 있었다. 교육의봄은 노선을 틀어야 했다. 변화하는 현실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플랫폼’이 되기로 하고, 교육과 취업의 새 길을 모색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시사IN〉은 교육의봄과 함께 변화의 단면을 짚어보기로 했다. 이번 호에서 우선 기업의 채용 흐름을 살피고, 다음 호부터 사교육 시장의 변화(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 기업의 채용 문화(이소영 마이크로소프트 이사), 그리고 지금 우리들의 직업관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를 살피는 강연을 연속해서 싣는다.
자, 지금 기업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미래산업의 핵심인 IT 기업의 채용 방식부터 보자. 카카오는 개발자 채용 시 1차 서류 전형에서 딱 ‘네 줄’만 적는다. 이름, 이메일, 전화번호, 지원 부서다. 출신 학교, 학점, 영어 점수, 자격증 따위는 필요 없다. 카카오 입사 지원은 ‘10초면 된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대신 1, 2차에 걸쳐 코딩 테스트를 받는다. 단순 풀이보다는, 나중에 실제로 닥칠 개발 환경에서 해결 능력이 있는지를 중점으로 본다.
2021년 5월2일 대구 엑스코에서 치러진 ‘대구도시철도공사 신입사원 채용’ 필기시험장의 모습.ⓒ연합뉴스
코딩 테스트를 통과한 이들을 대상으로 경력 정보와 자기소개서를 받는다. 여기에도 학교 정보는 필요 없다. 경력 정보에는 학교(신입) 또는 직장(경력)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해봤는지, 자기소개 항목에는 어떤 직무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서술하면 된다. 그러다 보니 예상치 못한 일도 일어난다. 최종 합격자에게 인사 시스템 등록용으로 나중에 따로 학교 정보를 받는데, 한 합격자가 겨우 대학 2학년생이었다. 그는 학교를 자퇴하면서까지 입사를 원했고, 최종 채용됐다.
개발자가 아닌 기획자를 뽑는 경우는 어떨까. 개발자처럼 완전한 블라인드 채용은 아니다. 그런데 학력 기재는 필수가 아닌 선택이다. 인턴십이나 수시 경력 채용에서도 학력은 필수가 아니다. 지원자의 30% 정도는 출신 학교를 기재하지 않는다. 대신 A4 한 장 분량의 기획안을 받는다. “카카오가 더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서비스 기획안을 제출하세요” 같은 내용이다. 이 한 장짜리 기획안이 채용의 당락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이 기획안을 평가하는 심사자들에게 지원자의 학력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다. 사실상 ‘절반의 블라인드 채용’인 셈이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직무능력을 최우선으로 평가하는 것은 옳지만, 기왕이면 스펙 좋은 사람을 뽑는 편이 회사로서도 ‘현실적인’ 이익이 아닐까. 카카오 인재영입팀 이진원 이사는 이렇게 말한다. “언젠가 서울대 출신 지원자들이 왜 학력을 기재하지 못하게 하는지 물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에 갔고, 그것이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인데 억울하다고 했다. 나는 좋은 대학에 간 것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물은 맞지만 회사에서 일을 잘하는 능력과는 다르다고 답했다.” 이진원 이사는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이런 채용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우수한 인재를 영입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 그 결과물이 지금의 블라인드 채용이다.”
최근 1~2년 사이 학벌사회의 불평등 구조에 주목한 도서가 여러 권 출간됐다.ⓒ시사IN 이명익
이런 변화는 ‘코딩’이라는 특수한 직무능력 평가도구가 있는 IT 기업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까. 취업 준비생들이 대기업 이상으로 선호하는 공기업의 실태를 보자. 대표적인 공기업인 한국전력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에 250명을 채용했는데 7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언론은 공기업 채용 때마다 높은 경쟁률로 인해 ‘고스펙자도 줄줄이 탈락’ 따위 제목을 단 기사를 쏟아낸다. 이처럼 치열한 경쟁률은 고임금과 복지 혜택 때문만은 아니다. 블라인드 채용도 한몫했다.
어떻게 적격자를 뽑는가
공기업 채용 현황은 2017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2017년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블라인드 채용 제도를 전국 350여 개 공공기관과 공기업에 전면 도입했다. 국가직과 지방직 공무원 원서의 학력란은 이미 2005년 참여정부 때 사라졌다. 여기에는 확고한 철학이 있었다. 출신 학교, 성별, 연령, 종교 등이 적합한 인물을 뽑는 데 편견으로 작용한다고 봤다. 이력서에 학력, 출신지는 물론이고 사진도 필요 없다. 한 공공기관에서는 외모에 의한 차별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스크린을 쳐놓고 면접을 진행했을 정도다.
이렇다 보니 문재인 정부 이후 공공기관 채용 규모를 늘린 것과 맞물려 공기업 입사 지원자가 늘었다. 공기업 채용 전문 컨설팅 기관인 ‘겟잡컨설팅’ 박규현 대표는 “블라인드 채용으로 학교가 안 좋아도, 학점과 토익 점수가 낮아도, 나이가 많아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많은 구직자들이 공기업 취업 경쟁에 나서고 있다”라고 말했다. 고스펙자가 줄줄이 탈락하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고스펙자가 주목받지 못하는 구조인 셈이다.
그럼 어떻게 적격자를 뽑는가. NCS(National Competence Standards·국가직무능력표준) 시스템이라는 게 있다. 필기시험부터 면접까지, 직무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표준화한 것이다. 회계관리, 문화콘텐츠 기획, e-비즈니스 등 거의 전 분야에 걸쳐 직업기초 능력과 직무수행능력을 평가하는 시스템이다. 말하자면 ‘공공기관용 수능시험’이다.
가령 출판의 경우 기본적인 맞춤법부터 해외 원고 계약 관련 사항을 평가하고, e-비즈니스의 경우 배송 불만 응대, 웹사이트 관리 등에 관한 사항을 평가한다. 실제 직무 역량 평가척도로 유용한지 여전히 논란이 일지만 학벌·스펙의 대체재로 기능하는 것만은 엄연한 사실이다. NCS를 바탕으로 공기업마다 필기, 면접 등을 변주해서 채용 공고를 낸다.
예컨대 발전 공기업인 남부발전의 입사 전형은 이렇다. 우선 서류 전형의 핵심은 직무능력을 중심으로 한 자기소개서다. 심사위원회가 자기소개서를 평가해 최종 합격자의 30배수를 뽑는다. 필기 전형은 NCS(100점), 전공 분야 기초 지식(100점), 한국사(25점), 영어(25점) 등으로 이뤄진다. 면접에도 NCS와 블라인드 제도를 반영하는데, 발표·토론·실무 면접(1차 면접), 인성 및 직무적합성 평가(2차 면접)로 진행된다. 면접에는 여성 심사위원을 과반수로 참여시키고 있다.
지난 2월 교육의봄은 ‘학벌·스펙과 업무 성과의 관계’를 살펴보는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교육의봄 제공
흥미로운 점은 ‘보듬 채용’이라 부르는 탈락자 배려 시스템이다. 필기 및 면접에서 탈락한 이들에게 강약점 분석 보고서를 전달한다. 보고서에는 합격자와의 점수 비교, 보완점 등에 대한 코멘트가 들어간다. 남부발전이 참여하는 채용박람회에 이 보고서를 지참하면 최근 2년 내 입사한 직원으로부터 개인별 맞춤형 입사 컨설팅도 받을 수 있다. 이 보듬 채용의 결과 임산부와 50대 신입사원이 입사하기도 했다.
2019년 노동연구원은 ‘공정 채용의 현실과 개선방안’이라는 연구 자료에서 225개 공공기관 채용 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내용을 발표했다. 블라인드 채용을 통한 입사자의 직무 역량을 과거 입사자와 비교해 물어본 결과 ‘비슷하다(58.4%)’가 가장 높게 나타났고, ‘예전보다 높은 편이거나 확연히 높다(28.2%)’가 그 뒤를 이었다. 직무 역량이 낮은 편이거나 확연히 낮다고 답한 이는 13.3%였다. 또 블라인드 채용이 공정성을 높이는 데 ‘기여도가 높거나 매우 높다’라는 응답이 62.7%로, ‘낮거나 매우 낮다(6.3%)’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국내 외국계 기업은 2019년 기준 1만4300여 개다. 국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나 된다. 공기업의 고용 비중이 9%임을 감안하면 채용시장에서 위상이 결코 낮지 않다. 특히 명품, 소비재 기업이 아닌 제조업 기반 외국계 기업은 인지도가 떨어져 채용시장에서 인기가 높지 않다. 워런 버핏이 100% 지분을 가진 ‘대구텍’, 영국의 산업용 소프트웨어 기업인 ‘아비바’ 등은 국내에 덜 알려졌지만 성장 가능성이 높은 회사다.
외국계 기업이 학벌을 참고사항으로만 여길 뿐 중시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이미 널리 퍼졌다. 그런데 왜 그럴까?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토드 로즈는 뇌과학과 교육을 접목하는 교육신경과학 분야의 권위자다.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와 성적 부진으로 고교를 중퇴하고 뒤늦게 공부해 대학 교수가 된 그는 〈평균의 종말〉이라는 저서에서 구글 채용 담당자와 나눈 대화를 소개한다.
구글 채용 담당자인 칼라일은 각 프로젝트 팀장들이 입사 지원자의 학력 등 일반적인 스펙보다 프로그램 경진대회 수상 여부나 취미활동 등 다양한 정보를 요구하는 것에 의구심을 느꼈다. 그래서 칼라일은 시험 점수, 학위, 학점 등 300가지에 달하는 스펙을 목록화했다. 그리고 이들 스펙이 업무에 적합한 직원을 판단하는 데 얼마나 유용한지 검증했다. 그리고 이렇게 평가했다.
‘SAT(미국식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와 출신 학교의 명성은 재능을 미리 예견케 해주는 지표가 되지 못했다. 프로그래밍 경진대회 우승 역시 마찬가지였다. 학점은 어느 정도 중요한 지표였으나 졸업 후 3년 동안만 그러했다. 어떤 입사 지원자든 졸업 후 3년이면 시험 성적은 무용지물이었다.’
구글 채용 담당자의 ‘실험’은 오래전 논문으로도 입증됐다. 1998년 프랭크 슈미트 아이오와 대학 교수와 존 헌터 미시간 주립대학 교수는 ‘인사심리학의 선발 방식에 따른 타당성과 유용성’이라는 논문에서 학력과 구직자의 실력 간 상관관계가 0.1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0.5 이상이면 강한 상관관계, 0은 상관관계가 없음을 뜻한다. 노동자 3만2000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이 논문에서 가장 유용한 요소는 채용 후 맡길 일을 미리 시켜보는 ‘작업 테스트’였다. 0.54의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5월12일 마이다스아이티의 이형우 회장이 교육의봄 연속 강연 ‘학벌 없는 채용의 시대가 온다’에서 AI 기반 역량검사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시사IN 이명익
국내에도 비슷한 연구가 있다. 지난 2월 교육의봄은 ‘학벌·스펙과 업무 성과의 관계’를 살펴보는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LG 마그나 인사팀 반준석 책임연구원은 대기업인 A사의 연구개발 분야 신입사원 79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대상자의 출신 학교를 1군(수능배치표 기준 상위권 1~5위 대학), 2군(6~20위 대학), 3군(21~100위 대학)으로 나눠 상급자들이 작성한 KPI(핵심성과지표) 5년 치와 비교했다. 이 연구의 가설은 ‘학력이 좋을수록 업무 성과가 좋을 것이다’였다.
결과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출신 대학과 업무 성과 사이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었다. 둘째, (통계적으로는 의미가 없지만) 입사 후 3~4년까지는 상위권 학교 출신의 업무 성과가 높았는데 그 뒤로는 오히려 역전됐다. 셋째, 졸업 평점·토익 성적으로도 비교해봤는데, 이 역시 상관관계가 거의 없었다.
이 연구의 한계는 있다. 한 대기업의 연구개발 분야 직군에 한정됐다는 점, KPI에 인사 담당자의 주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점 등이다. 그럼에도 국내 연구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결과임에는 틀림없다. 반준석 연구원은 “논문 작성 시기가 2014년이지만, 지금 시점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연구 결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교육의봄 홈페이지(bombombom.org)를 참조하면 된다.
‘학벌사회로는 미래 없다’ 판단한 기업들
학력이 무의미하다면, 업무 역량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마이다스아이티’라는 기업이 있다. 건설 설계 소프트웨어 점유율 40%를 차지하는 세계 1위 업체다. 호텔식 뷔페 식사를 제공하는 등 뛰어난 사원 복지로 잘 알려진 이 회사는 새로운 인재 채용 방식을 퍼뜨리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자회사 ‘마이다스인’을 통해 인공지능(AI) 기반의 역량검사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학벌·스펙이나 주먹구구식 면접으로는 우수한 인재를 뽑을 수 없다는 고충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2018년에는 AI 역량검사 프로그램 ‘인에어(inAIR)’를, 2020년에는 온라인 채용 솔루션인 ‘잡플렉스(JOBFLEX)’를 출시했다.
AI 역량검사는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역량을 긍정성·적극성·전략성·성실성으로 보고 이를 신경과학과 생물학에 기반해 분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게임, 인성검사, 특수상황 대처에 대한 질문을 활용한다. MBTI 검사 또는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밸런스 게임 같은 문항도 있다. 낯설고 어색하지만 지난해 600여 개 기업이 이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유튜브에서 이런 AI 역량검사를 해설하는 영상이 인기를 끌 정도다. 마이다스아이티 최원호 이사는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신해 채용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공지능이 집약한 정보를 토대로 사람이 직접 면접을 통해 최종 결정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글로벌 IT 기업은 이미 AI 채용을 현실화했다. 올해 초 매각하기는 했지만, IBM은 왓슨이라는 AI로 지원자의 경력, 교육 현황 등을 분석해 인재를 추천해왔다. 구글은 큐브로이드라는 AI 로봇이 지원서를 분석해 면접관에게 질문 리스트를 제공한다.
AI 채용 기술이 학벌사회를 무너뜨리는 핵심 도구가 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AI가 완벽해진다 해도 근원적으로는 ‘기업형 인간’을 양성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떨칠 수 없다. 어찌 보면 씁쓸한 일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우리 사회가 뒷짐 지고 있는 동안 ‘학벌사회로는 미래가 없다’라는 판단을 기업이 먼저 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이런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고 대비하는 것 또한 미래세대에 대한 공동체의 의무다. 새 정부의 교육부 수장과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교육감들이 반드시 새겨야 할 현실이다. 질곡의 학벌사회, 바꾼 것은 아니지만 바뀌고 있다.
참고한 자료:〈채용이 바뀐다, 교육이 바뀐다〉(김현빈 외, 우리학교), 〈학벌·스펙과 업무 성과의 관계를 살펴본다〉(교육의봄), ‘공정 채용의 현실과 개선방안’(노동연구원)
(2) 사교육의 괴수가 사교육 붕괴를 말하다 https://www.sisain.co.kr/47738
(3) 다른 사람의 성공에 기여한 적 있나요? https://www.sisain.co.kr/47786
(4) 성공하는 일은 당신을 닮았다 https://www.sisain.co.kr/47825
시사인 이오성 기자
"불평등 세상 꿈꾸는 당신께"‥강남 아파트 광고에 '발칵’
분양이 한창인 서울 서초구의 한 주상복합아파트 홈페이지.
광고 사진에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라는 문구가 쓰여있습니다. 2027년 9월 준공 예정인 아파트·오피스텔 주거복합단지 '더팰리스 73'입니다.
반포동의, 옛 쉐라톤팰리스강남 호텔 부지에 들어서는 주상복합 아파트인데, 조성될 73가구의 분양가만 100억 원에서 최대 4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시행사 측은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가 참여한다면서 '최상위 주거공간으로서 세기에 다시 없을 주거 명작, '뉴욕 센트럴파크처럼 서리풀공원을 품는다' 같은 홍보 메시지도 썼습니다.
소수의 재력가들을 겨냥한 초호화 아파트 콘셉을 내세우면서 노골적인 '구별짓기' 전략을 편 겁니다. 이 같은 광고문구가 각종 커뮤니티로 퍼지자 누리꾼들은 "박탈감을 조장한다"며 시행사 측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한 시민은 "부자들이 우월하다는 의식을 이렇게 대놓고 표현한 광고는 처음 봤다"고 꼬집었고, SNS에서도 "한없이 천박한 자본주의", "한국사회의 총체적 난국을 한 문장으로 기막히게 표현했다" 같은 평가가 잇따랐습니다.
더팰리스73 홈페이지는 한때 접속량 초과로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현재 더팰리스 73 홈페이지에는 해당 광고문구가 삭제된 상태입니다.
MBC
강남 ‘관전 클럽’…남녀 26명 뒤엉켜 있었다
SNS에서 사람들을 모아 서울 강남구에서 이른바 ‘스와핑·관전 클럽’을 운영하던 업주가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스와핑이란 두 쌍 이상의 커플이 서로 상대를 바꿔가면서 성관계하는 것을 뜻한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14단독 김창모 부장판사는 클럽 업주 A(48)씨에게 식품위생법 및 풍속영업 규제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1억 1500여만원 추징을 명령했다. 함께 기소된 공동 운영자와 종업원에게는 각각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풍속영업규제에관한법률은 유흥업 등을 영위하는 장소에서 선량한 풍속을 해치거나 청소년의 건전한 성장을 저해하는 행위 등을 규제해 미풍양속을 보존하고 청소년을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목적을 둔 법이다.
A씨 등은 지난해 7월 경찰에 입건됐다. 트위터 등 SNS에서 스와핑을 할 남녀를 모집해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업소에서 스와핑 행위를 매개한 혐의를 받는다. 해당 업소를 일반음식점으로 신고한 까닭에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도 받는다.
이들은 방문객 예약을 받고 1인당 10만~15만원의 입장료를 걷었다. 방문객에게는 피임용품과 성 기구를 제공하고 성관계를 할 수 있는 별도의 방을 마련하고, 춤을 추고 노래할 수 있는 곳도 준비했다.
식품위생법상 유흥주점 영업 허가를 받은 업소에서만 손님이 춤을 출 수 있다. 또 풍속영업 허가를 받더라도 음란행위 알선은 금지된다.
참여 손님은 입장료 10만~30만원을 내고 스와핑에 참여하거나 타인의 스와핑 행위를 관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단속 당시 클럽에 남성 14명과 여성 12명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손님들은 입건되지 않았다. 이들을 처벌하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경찰은 손님들이 ‘자발적으로’ 집단 성행위를 했다고 판단해 모두 귀가 조치하는 한편 따로 수사 선상에 올리지 않았다.
서울신문 김유민 기자
블랙핑크 전용기…1시간 2800만원·30시간 8억
전용기 사업하는 유일한 국적 항공사 대한항공
지난 3월, YG와 MOU 체결…삼성도 고객
블랙핑크가 타는 전용기 대여비는 얼마일까.
대한항공이 지난 1일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블랙핑크 멤버들이 이용하는 전용기 내부 사진을 공개했다. 대한항공은 지난 3월 블랙핑크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와 업무협약을 맺고 블랙핑크 월드투어 공식 후원 항공사가 됐다.
블랙핑크 멤버 제니는 대한항공과 계약 전인 지난 1월 비스타젯의 전용기를 타며 화제를 모았다. BTS도 비스타젯 전용기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은 연간 7억 원대 멤버십 제도를 운영한다. 이용 가능 시간은 30시간으로, 멤버십에 가입하면 시간당 480만 원, 국내선은 290만 원에 이용할 수 있다. 전용기로 국제선을 이용한다고 가정하면 30시간에 총 8억 4400만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시간당 비용은 약 2813만 원으로, 30시간을 모두 소진하면 7억 원을 내고 재가입해야 한다.
기업이나 개인은 전용기를 보유하거나, 전용기 업체와 계약을 맺고 필요할 때마다 빌려서 사용한다. 현재 국적사 중 전용기 사업을 하는 곳은 대한항공이 유일하다. 대한항공은 걸프스트림 G650ER, 보잉 비즈니스제트, 봄바디어 글로벌 익스프레스 XRS 등 총 4대로 전용기 대여 사업을 하고 있다.
전용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블랙핑크 리사(앞 왼쪽), 제니(앞 오른쪽), 로제(뒤). [사진 = 온라인 커뮤니티]
대표 고객은 YG엔터테인먼트와 삼성이다. 삼성은 전용기 유지 비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비판을 받고, 2015년 전용기 3대와 전용 헬기 6대를 대한항공에 넘겼다.
국내 대기업 중 전용기를 보유한 것은 SK그룹, 현대차그룹, LG그룹 3곳이다. SK그룹은 걸프스트림 G650 등 항공기 세 대를 보유했고, 현대차그룹은 한국과 미국 대통령 전용기인 보잉 737-7GE(BBJ)를 갖고 있다. LG그룹은 G650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전용기 이용료는 기재, 목적지 등에 따라 다르다. 항공사가 전용기 계약 의뢰를 받으면 인건비, 조업료, 연료, 현지 공항 이용료 등을 계산해 가격을 제시한다. 전용기 이용 가격은 대외비다. 세계 최대 비즈니스 전용기 운영사인 비스타젯은 최소 시간당 1만 5000달러(1인 기준 약 1962만원)부터 시작하며 모든 노선에 같은 가격으로 시간 요금제를 적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소진 기자 adsurdism@asiae.co.kr
가야 왕족들은 ‘로만글라스 유리그릇’ 어디서 사왔을까
경남 합천 옥전고분군에서 나온 로만글라스. 김규현 기자
순한 능선 위로 크고 작은 옛 무덤들이 혹처럼 무리 지어 솟아 있었다. 무덤들을 에워싼 둘레길에는 산책 나온 시민들이 보였다. 능선 정상에 서니, 고령 시가지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난 1일 찾은 경북 고령 지산동고분군의 모습이었다. 고대 가야연맹이 남긴 지산동고분군은 오는 9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다.
가야 고분군이 세계유산에 등재되면 국내에선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등에 이어 16번째 세계유산이 된다. <한겨레>가 이날 가야고분군세계유산등재추진단과 함께 찾은 가야 고분군은 고령 지산동고분군 외에 경남 합천 옥전고분군, 전북 남원 유곡·두락리 고분군이었다. 유네스코 유산 등재를 앞둔 ‘가야 고분군’(Gaya Tumuli)은 이 3곳을 포함해 경남 김해 대성동고분군, 경남 함안 말이산고분군, 경남 창녕 교동·송현동 고분군, 경남 고성 송학동고분군까지 7개다.
고령 지산동고분군은 7개 고분군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5~6세기 가야 왕족의 봉토분 704기가 모여 있다. 주산의 정상부 바로 아래 있는 44호분은 높이 6m, 지름 25m에 달하는 대형 봉토분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순장(죽은 사람과 가까웠던 사람이나 동물을 딸려 함께 묻는 일) 무덤이기도 하다. 무덤 한가운데는 왕의 자리인 ‘으뜸돌방’이 직사각형 모양으로 있고, 남쪽과 서쪽으로 ‘딸린돌방’ 2기가 있다. 이를 둘러싸고 동그랗게 32기의 순장덧널(순장곽)이 있는데,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백성 40여명이 순장됐다고 한다. 가야연맹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대가야의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었다.
‘가야 고분군’(Gaya Tumuli)에 포함된 7개 고분군 현황. 문화재청 제공
시민사회 '친정권'으로 새판 짜기…권-언 합작 거대한 구상
'시민사회 재편' 친권력 지형 조성하려는 권력과 언론
'민간단체 비리' 프레임, 친정권 언론과 함께 착착 진행
비판 견제해야 할 언론들 경각심은 미흡…시각 안이해
시민단체는 범죄 파렴치 집단?
권력이 표적을 정하면 산하 기관이 그에 대한 공격을 수행하고, 언론이 이를 받아 뒷받침해주는 윤석열 정부판 마녀사냥이 한국사회의 곳곳에서, 분야를 가리지 않고 펼쳐지고 있다. 특히 정권과 이른바 '보수' 언론의 화력이 집중되는 곳이 시민단체다. 지난 4일 대통령실이 발표한 3년간의 민간단체 국고보조금 감사 결과는 횡령과 리베이트 수수, 사적 사용, 서류 조작 등의 부정투성이였다는 결론으로 요약된다. ‘범죄 파렴치 집단’으로 몰아간 이 발표를 언론은 충실히 중계했다.
‘민간단체들 눈먼 보조금’ ‘尹퇴진 강의가 민족영웅 발굴?…이런 보조금 비리 314억’ ‘줄줄 샌 민간단체 보조금’ ‘정부 보조금은 먼저 타 먹는 게 임자, 틀린 말 아니었다’ 등등의 보도가 거의 모든 신문의 지면을 덮었다.
이번 민간단체에 대한 비리 적발 발표는 현 정부 출범 후 집요하게 펼쳐진 시민단체에 대한 매도와 공격의 일환이며 한 과정이다. 이를 그대로 받아 쓰기하는 것은 물론 그 같은 공격을 응원하고 여론몰이를 하는 언론은 시민단체들에 대해 '마녀사냥'을 하듯 호응하고 있다. 언론들은 이번에 드러난 민간단체의 비리를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빙산의 일각인 것은 그 같은 정부와 언론의 시민단체, 시민사회에 대한 이해다. 정부와 언론이 드러내고 있는 것은 시민사회의 역할과 기여, 민주제 발전과 성숙의 한 결과이며 동력인 시민사회에 대한 무지라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어떤 기관이든 단체든, 특히 스스로 공적인 감시자 역할을 자임하는 단체라면 부정과 비리를 경계하는 엄격성은 더욱 높은 기준을 요구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기에 그에 대한 비판과 교정은 그만큼 엄격해야 한다. 그럴 때 시민단체의 발전과 성숙, 그를 통한 그 사회와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기여가 더욱 내실을 다지게 된다.
그러나 한국언론은 이를 제대로 따져보려 하지 않는다. 민간단체들의 반박을 들어보면 이번 발표에는 상당한 과장, 과장 이상의 의혹이 있다. 한겨레 신문은 특히 여러 신문이 집중 보도한, 한 통일운동단체의 ‘숨은 민족 영웅 발굴’ 사업 보조금 6800만 원이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정치적 강연 등에 쓰였다는 발표에 대해 이 단체회장 인터뷰를 통해 "정부에서 실제 지급된 돈은 1500만원에 불과했고, 강의 내용도 윤석열 정권 퇴진과 관련한 것은 없었다"는 반박을 싣고 있다. 비리의 규모는 물론 비리의 실체 자체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지만 이 같은 반론의 전달은 언론 전체에서 극히 예외적이었다.
비리 실체, 규모 의문투성이지만 짚는 언론 없어
설령 대통령실 발표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비리의 규모가 과연 ‘부정투성이’였는지 의문이다. 3년 간 전체 보조금 6조 8000억 원 중 부정 사례는 314억 원인데, 이는 전체 대비 0.46% 정도다. 시민단체들을 각종 비리 집단으로 매도하며 대대적인 감사를 벌인 결과가 이 정도라면 오히려 이는 부정투성이인가 하는 의문은 물론 그 반대의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지점이다.
정부와 한편이 돼 시민단체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유력 언론들의 보도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있는 곳은 그나마 한겨레와 경향신문 정도다. 그러나 과연 이들 신문의 비판과 지적이 충분한지는 의문이다.
경향은 ‘비판적 목소리까지 위축되나’라는 기사에서 “정부의 대대적인 보조금 감사로 인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시민단체의 활동이 위축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사설에서는 “정치적 목적을 띤 ‘표적감사’ 아니냐는 의심도 피하기 어렵다”고 했다.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 아니라 일각에서 우려‘도’ 나오고 있다는 것이며, 표적감사라는 의심이 나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시민단체 자율성 축소는 불가피해 보인다”고 쓰고 있는데, 불가피해 보인다며 '담담한 전망'을 하고 있다.
한겨레의 사설은 ‘시민단체 옥죄기’ 빌미가 돼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보조금 사업의 타당성을 구체적으로 따지지 않고 전 정부에서 늘어난 만큼 삭감하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정략적이라는 인상마저 준다”고 비판하고 있다. 어느 정도의 정략이 확인돼야 ‘정략적이라는 인상마저 주는’ 이상의 비판이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다.
정부의 시민단체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는 '시민사회' 지형을 바꾸려는 전쟁이라고 해야 할 정도다. 시민사회, 이른바 ‘제3섹터’를 정권에 유리한 지형으로 전면적인 새판 짜기를 하겠다는 의도가 보인다.
국민의힘이 지난달 29일 ‘보수’ 언론의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에 대한 악의적 보도에 호응해 발족시키겠다던 ‘시민단체 정상화 태스크포스(TF)’를 아예 ‘시민단체 선진화 특위’로 격상한 것도 시민단체 전반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해 '친정부적 시민사회'로 재편하겠다는 발상이다.
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대일역사정의 운동과 시민단체 탄압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6.1 연합뉴스
이런 움직임은 윤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7일 국무회의에서 "보조금 사업의 회계 부정을 철저히 점검하고 과감하게 사업을 정비하라"고 지시한 것의 충실한 이행이다.
정부만이 아니라 서울시의 오세훈 시장이 이미 그에 앞서 2021년 9월 기자회견까지 열어 박원순 시장이 재임하던 10년간 시민단체에 1조 원을 지원하면서 전용 현금지급기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시민단체들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한 결과 서울시 산하기관과 대학 등에 지원된 보조금까지 끼워 넣어 1조 원으로 부풀린 것으로 ‘민간단체 보조금’이 곧 ‘시민단체 보조금’으로 오해되기 쉽다는 점을 악용한 왜곡이란 게 드러났지만 그 자신은 물론 언론의 바로잡기는 없었다.
한편으로 우호적 시민단체 육성 의도
윤석열 정부와 오세훈 시장의 이 같은 시민단체 '죽이기'는 엄밀히 말하면 우호적인 시민단체 육성에 다름아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시민단체들을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로 분류해 비판적 단체에 대한 국고 보조는 끊고, 친정권 보수 관변단체들에는 국고에 더해 기업 후원까지 몰아주도록 한 것과 다르지 않다.
시민단체에 대한 공세와 재편은 전방위적으로 더욱 일사불란하게 펼쳐지고 있다. 대통령실 발표에 앞서 지난 5월 16일 감사원이 대통령실 발표의 ‘전편’처럼 “국고보조금 횡령 등 혐의로 10개 비영리민간단체 대표·회계담당자 등 73명을 수사의뢰했다”고 발표했다. 이때도 해당 비영리민간단체가 어떤 곳인지, 혐의는 어떤 내용인지 구체적 설명도 없었던 감사원의 발표를 언론은 충실히 보도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이 발표와 언론 보도를 분석한 결과 언론은 ‘비영리민간단체’를 ‘시민단체’로 일반화해 비판했다. 민언련의 구분대로 ‘비영리민간단체’는 비영리 목적 민간단체를 총칭하며, 각종 법령에 의해 설립된 단체부터 기업 협회, 비영리 연구소, 비영리 시민단체, 사회적 기업 등까지 포함하는 것이며, 시민단체는 비영리민간단체의 한 일부일 뿐, 비영리민간단체가 바로 시민단체를 뜻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많은 언론이 감사원 보도자료의 ‘비영리민간단체’를 자의적으로 시민단체로 바꿔 보도했다. 특히 부정 사용이 가장 큰 사례로 제시된 ‘10억 5000만원 횡령’의 경우 국방부 보조사업에 참여한 것으로, 1억 1000만 원을 횡령했다는 단체는 한류사업 일환으로 PC케이스 주문제작 사업을 했다고 나오는 등 통상적 시민단체 활동으로 보기 어려운 곳이었다.
이렇게 심각한 비리라면, 단체명을 공개할 법도 하지만 감사원과 언론 모두 철저하게 익명 처리한 반면 유일하게 단체명이 공개된 사례는 세월호 지원사업 일환으로 열린 주민 인문학 강좌에서 북한 제도 관련 강좌를 열었다며 문제 삼은 안산청년회 사례뿐이었다. 횡령금액이라고 인정해도 380만원에 불과하다. 10억 5000만원을 횡령했다는 단체는 익명 보도되고, 380만원을 횡령했다는 단체는 실명 보도된 것이었다.
시민단체를 주요 표적으로 삼은 정권과 이른바 '보수' 언론 합작의 시민사회 재편 작업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언론과 함께 또 다른 여론의 한 축인 시민사회 새판 짜기 작업이라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단계일 뿐이다. 아직 빙산의 99각은 수면 밑에 있다. 그러나 수면 위로 밀고 올라오는 그 빙산의 치고 올라오는 기세를 견제하고 막아야 할 일부 비판언론의 시각은 매우 안이해 보인다. 빙산의 몸체가 물 위로 떠오를 때는, 그때는 이미 막기 힘든 상황이 될 것이다.
시민언론 민들레
시대전환 조정훈, 드러나는 시대착오 본색
외국인 가사노동자는 정력제나 세탁기와 같다?
최저임금 적용 제외라는 노골적 인종차별 주장
모범 사례라는 홍콩‧싱가포르 출산율 세계 최저
가사 육아, 돌봄에 대한 무시와 성차별 반복해
검찰권력과 기득권 우파에 밀착한 언행 가속화
국힘 소속처럼 행세…총선 생존 위한 계산인가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 9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북한인권정보센터 창립 20주년 기념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5.9. 연합뉴스
2020년에 문재인 정부가 ‘한국판 뉴딜’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최저임금 수준의 쓰레기 일자리”라면서 독설을 퍼부은 적이 있다. 그런 조정훈 의원이 지금은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도 안 주는 일자리’를 제공하자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쓰디쓴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주말 아침에 TV를 켰더니 조정훈 의원이 KBS <일요진단>이라는 프로에 출연해서 또 ‘최저임금도 안 주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법안을 설명하고 있었다. ‘저런 법안을 내놓고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여기저기 참 뻔질나게 나와서 떠들고 있구나’ 하면서 채널을 넘기려고 하는데 이런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마치 남성 정력제 광고처럼 한번 해보면 너무 좋은데 해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설명할 수가 없다. … 이것이 주는 효과는 마치 세탁기가 없을 때의 삶과 세탁기가 있을 때의 삶과도 비슷하다.”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남성 정력제나 세탁기와 비교한 것이다. 순간, 조정훈 의원이 왜 저런 법안을 낸 것인지 모든 게 이해가 됐다. 그에게 가사노동자는 자신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 ‘정력제나 세탁기’와 같은 도구인 셈이다.
이처럼 조정훈 의원이 요즘 여기저기 열심히 나와서 하는 말은 비슷비슷한 이야기의 반복이다. ‘아직도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말을 믿느냐’,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은 강력 단속해서 쫓아내야 한다’, ‘내 법안은 돈을 안 들이고 경력단절과 저출생을 해결할 최선의 방안이다’, ‘여기서 성공하면 다른 업종으로도 확대할 수 있다’, ‘국익을 생각해야 한다’ …
인종주의를 기반으로 한 들을수록 기가 막히는, 이해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는 주장과 논리들이지만, 이 사회의 상층부에 있는 엘리트들이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지, 왜 ‘저출생’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갈수록 심각해지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주는 주장과 장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조정훈 의원의 논리는 ‘현재 한국인 가사노동자는 임금이 300만 원이 훨씬 넘고, 중국동포 가사노동자는 200만 원이 훨씬 넘는데도 사람을 못 구하고 있다. 100만 원으로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대거 도입하면 중산층도 많이 쓸 수 있게 된다’는 주장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처럼 ‘인력이 부족해 높은 임금이 형성돼 있으니 외국 인력이라도 들여와야 한다’는 주장은 비슷한 문제가 제기돼 온 의사, 검사, 판사 등에 대해서는 결코 적용되지 않는다. 오로지 주로 여성들이 수행하는 가사, 육아, 돌봄에 대해서만 최저임금 이하로 만들어도 아무 문제 없는 별 가치 없는 노동이라는 인식이 작동하고 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2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실에서 조 의원과 면담 전 악수하고 있다. 2022.11.28. 연합뉴스
또 조정훈 의원은 ‘300만 원을 주고도 괜찮은 이모(가사노동자)를 구하지 못해서 갑과 을이 뒤집혀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경우에 외국인 노동력을 도입하는 게 당연한 일인데, 가사노동만 그것을 못 하게 막고 있는 것이 오히려 “역차별”이라고 했다. 즉, 가사노동자들을 다시 ‘을’의 위치로 되돌리기 위해서 필리핀 등에서 온 노동자들에 대한 인종차별을 이용하자는 말이 된다.
결국, 주로 여성이 하는 가사와 육아와 돌봄을 최저임금도 못 받을 하찮은 일로 여기는 사회, 노동자들은 당연히 ‘을’의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회, 소수자의 인권은 무시하고 차별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실제로 조정훈 의원이 ‘저임금 외국인 가사노동자 사용’의 모범 사례로 제시하는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합계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특히 귀에 꽂히는 것은 조정훈 의원이 “나도 해외 생활을 20년 하면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많이 썼다”며 경험에서 나온 법안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조정훈 의원은 하버드대학을 나와서 세계은행에서 일해 온 ‘국제적 경제 전문가’로서 유명한데, 이런 초엘리트들의 출세 뒤에는 바로 ‘보이지 않는 여성과 노동’이 있었다. 누군가를 돌보며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힘들고 어려운 노동의 부담을 피한 덕분에 조정훈 의원은 자신의 경력과 출세를 위한 시간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초엘리트들은 이 모든 게 자신의 ‘능력’ 덕분이었다고 착각한다. 나아가, 더 많은 ‘보이지 않는 여성과 노동’을 더 효과적으로 더 싼 값으로 착취할 정책들을 제시하며 그것을 ‘국익’이라고 포장한다. 그래서 조정훈 의원은 자신의 법안을 반대하는 민주노총을 비판하며 “도대체 국익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질문하고 싶다”고 되물었다.
조정훈 의원의 법안이 더 고약한 것은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공격해서 결국 내국인 가사노동자의 노동조건도 같이 악화시킬 것이라는 점에 있다. 이 나라에서 가사노동자들은 2021년에 국회를 통과한 ‘가사노동자 법안’ 덕분에 그나마 부분적으로 노동자성을 인정받으며 사회적 보호의 틀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제 모든 가사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완전히 인정하고 노동 3권과 4대 보험을 전면 적용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과제가 남아 있다. 그런데 조정훈 의원은 ‘가사노동자가 아니라 가사사용인 직군으로 분류하면 현재도 최저임금 적용 제외가 가능하다’면서 이것을 막아서고 있다. 결국 외국인 가사노동자로 시작해서 모든 가사노동자의 노동조건을 함께 끌어내리려 한다.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 24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계획서 승인의 건 의결에 앞서 반대토론을 하고 있다. 2022.11.24. 연합뉴스
이처럼 시대착오적인 방향으로 달려가는 조정훈 의원이 21대 국회의원이 된 초기만 해도 사람들은 뭔가 ‘참신하고 능력 있는 정치인’처럼 여겼다. 보좌관들과의 상호수평적 관계를 강조하며 ‘탈이념, 실용, 생활정치, 기득권 양당에 맞선 제3의 길, 좌도 우도 아닌 앞으로’를 말하는 그럴듯한 겉치레에 혹했던 것이다.
조정훈 의원은 이미 2016년부터 민주당에 입당해서 출마를 시도하다가 실패했지만, 2020년에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이라는 통로를 이용해 국회로 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정훈 의원은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엘리트로서 위치를 지키고 더 큰 권력으로 다가가려면 검찰권력과 기득권 우파의 눈 밖에 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 직후부터 야당의 검찰수사권 정상화 법안을 막는 데 누구보다 열심이더니, 그 후에도 ‘김건희 특검’ 반대,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반대, 간호법 반대, 노란봉투법 반대, 이재명 사퇴 요구 등 일관되게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편에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실제로 “핼러윈 참사를 ‘세월호 시즌2’로 만들려고 하느냐”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에 반대했고, “정규직 노조의 천국을 만들기 위한 노란봉투법”이라면서 민주노총을 비난하고, “문재인 정부 때 망가졌던 외교 관계를 복원해 나가는 과정”이라며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를 칭찬하는 조정훈 의원은 요즘 국민의힘 소속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법안도 조정훈 의원의 발의, 오세훈 서울시장의 시범 실시 발표, 윤석열 대통령의 적극 검토 지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마치 ‘3각 공조’와도 같은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적용을 말하고 있다면, 조정훈 의원은 인종별 차등적용을 말하는 셈이니 여기서도 서로가 통한다.
‘불법체류 이주노동자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추방’ 주장도 교회에서 예배보던 노동자들까지 닥치는 대로 단속해서 추방하고 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실천을 응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동훈 장관의 행보에 “긍정적인 면이 부정적인 면보다 훨씬 많았다”며 찬양하는 그의 이런 태도는 다가오는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한 계산과 맞물려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조정훈 의원과 김해영 전 의원. 사진 출처 = 조정훈 의원 페이스북
물론, 이제 비례정당 같은 틈새와 기회는 없을 것이고 지역구도 개척하기 힘든 상황에서 고민이 많을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조정훈 의원은 윤석열 정부 탄생을 돕다가 낙동강 오리알처럼 된 금태섭 전 의원이나 족벌언론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만 하다가 지지 기반은 만들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김해영 전 의원등과 교류하며 ‘제3지대’를 모색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 재앙과 윤석열 정부 탓에 팍팍해지는 우리의 삶 속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시대착오적 방안을 제시하는 엘리트 권력자들을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저출생은 걱정하며 해결해야 할 문제라기보다는, 이 사회와 지구에 사는 보통 사람들과 여성들의 지혜롭고 타당한 선택이자 해결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깊어진다.
전지윤 편집위원 시민언론 민들레
이래경 끝내 사퇴, 그 참을 수 없는 마녀사냥의 가벼움
민주 혁신위원장 맡자마자 언론‧비명계 맹비난
실천적 지식인‧운동가…"구국의 심정으로 당 쇄신"
이재명과 친분도 없는데 '친명계' '사당화' 낙인
"나는 굳이 분류한다면 '김근태계' '서민계'일 뿐"
페이스북 글 침소봉대…'음모론 신봉' 인신공격
"개인 판단‧의견에 마녀사냥식 정쟁, 매우 유감“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언제든 마녀사냥의 먹잇감이 돼 처참히 유린될 수 있는 현실.
야당의 쇄신 작업을 이끌 혁신기구 수장으로 외부 인사인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이 5일 임명됐으나 개인 페이스북 글 등이 갑자기 논란을 빚으면서 결국 당일 저녁 '자진 사퇴'로 막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이 이사장을 상대로 말꼬투리 잡기식 침소봉대와 거두절미, 아전인수격의 비난이 빗발쳐 고질적인 언론의 인신공격이 되풀이되는 양상을 보였다.
"사인(私人) 의견이 마녀사냥식 정쟁 대상…매우 유감"
이 이사장은 이날 오후 7시쯤 공개한 '사의 입장문'에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 민주당의 변화를 통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것에 일조하겠다는 일념으로 혁신기구의 책임을 어렵게 맡기로 했다"며 "그러나 사인(私人)이 지닌 판단과 의견이 마녀사냥식 정쟁의 대상이 된 것에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한국사회의 현재 처한 상황을 압축하는 사건이라는 것이 저의 개인적 소견이지만, 논란의 지속이 공당인 민주당에 부담이 되는 사안이기에 혁신기구의 책임자직을 스스로 사양하고자 한다"면서 "간절히 소망하건대 이번을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아 민주당이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정치로 나아가는 길을 인도할 적임자를 찾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 이사장은 "더불어 민주당을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께 흔들림 없이 당과 함께 하여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역사 앞에 기도하는 심정으로 저로 인해 야기된 이번 상황을 매듭지고자 한다"고 전했다.
이 같은 사의 표명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임명 사실을 밝힌 지 9시간여만이다. 이 대표는 회의에서 "민주당은 당의 혁신기구를 맡아서 이끌 책임자로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이래경 명예 이사장님을 모시기로 했다"며 "새로운 혁신기구의 명칭·역할 등에 대한 것은 모두 혁신기구에 전적으로 맡기겠다. 지도부는 혁신기구가 마련한 혁신안을 존중하고 전폭적으로 수용할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민주화운동으로 두 차례 제적…중소기업 운영, 실천적 지식인
1954년생인 이 이사장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부를 나와 1983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발기인으로 참여, 초대 상임위원을 맡았다. 1984년 신원엔지니어링을 창업해 대표를 맡았으며, 1988년 독일 호이트사와 합작해 호이트한국을 설립하고 대표이사로 27년간 재직하다 2015년 퇴임했다. 고 김근태 의원이 이끌었던 한반도재단 이사 및 운영위원장을 지냈으며, 지역 시민사회 중심의 보살핌 운동을 지향하는 사단법인 일촌공동체 명예회장,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다.
현재 이사장으로 몸담고 있는 '다른백년'은 시민사회의 동력과 새로운 상상력을 담아내고자 여러 지식인이 모여 설립한 사단법인으로 민간 싱크탱크라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의 새로운 전환을 위한 담론'을 통해 시민사회와 소통을 표방하고 있으며 동학혁명 이후 외세에 의한 근대화, 독재정권에 의한 산업화 과정에서 지난 100년 동안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앞으로 '다른 100년'을 만들고자 논평, 출판, 강연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이 이사장은 서울대 73학번이지만 1975년 서울대생 김상진 할복자살 사건과 1980년 광주민주항쟁과 관련된 일련의 시위로 두 차례 제적돼 1996년 명예 졸업했다. 김근태계 인사로 분류되는 이 이사장은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2014년 신당 새정치연합을 창당할 때 잠시 참여하기도 했다.
앞서 민주당은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과, 탈당한 김남국 의원의 가상화폐 보유 논란 등으로 안팎에서 집중 공격당하며 위기감이 고조되자 지난달 14일 쇄신 의원총회를 열고 당 차원의 혁신기구를 만들겠다고 결의한 바 있다. 위원장 인선이 이날 완료됨에 따라 혁신기구 공식 출범도 이번 주 안에 이뤄질 전망이었다.
"대한민국 난파 직전, 구국의 심정으로 당 쇄신" 결심했지만
이 이사장은 임명 직후 여러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내정 사실을) 어제 저녁에 통보 받았다"며 "내가 너무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이라 청천벽력 같다. 두통이 발생할 정도로 고민이 든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백척간두라고 할까, 벼랑 끝에 칼날 위에 서 있다는 느낌"이라면서 "당의 총선을 넘어서 지금 대한민국이 난파 직전이다. 구국의 심정으로 수락했다"고 밝혔다.
그는 "오는 7일부터 공식 일정을 시작하는데, 가능한 한 소속 의원 전원과 지구당 위원장을 만날 예정"이라며 "민주당 누리집을 열어 혁신위에 하고 싶은 당원들의 얘기들을 모두 받아 검토하겠다. 그 이상으로 혁신위원장을 만나겠다는 적극적인 당원이 있다면 기탄없이 만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이사장은 이 같은 포부를 실현할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과거 이력과 페이스북에 썼던 글들이 돌연 문제가 되면서 당 안팎의 융단폭격을 맞으며 좌초하고 말았다. 민주당 외부에서는 언론이 앞장섰지만 내부에서도 홍영표‧이상민‧김종민 등 으레 비명계 의원들이 강력 반발하고 나서면서 사태를 급속도로 악화시켰다.
이재명과 친분도 없는데 '친명계' '이재명 사당화' 딱지
'이래경 불가론'의 핵심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친명계'라는 것이었다. 지난 2019년 이재명 대표가 1심에서 무죄였던 친형 강제진단 사건과 관련해 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릴 때 이 이사장이 '(가칭) 경기도지사 이재명 지키기 범국민 대책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는 걸 근거로 든다.
그러나 당시 대책위 제안자에는 함세웅‧송기인 신부, 이해동 목사, 명진 스님,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김종철 전 연합뉴스 사장, 최학래 전 한겨레신문 사장, 박재승 전 대한변협 회장,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등 30여 명이 이름을 올렸고 이 이사장은 그중 한 명일 뿐이다. 사회 원로들이 2심 판결의 법리적 문제점을 짚으며 "대법원을 통해 현명한 판결이 있기를 희망한다"고 의견을 표명한 게 문제가 될 이유가 없다.
이 이사장이 지난 대선 때를 포함해 평소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고 이재명 대표를 지지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당연한 자유이고 헌법적 권리일 뿐이다. 불법 선거운동을 했다거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것도 아니고 도를 넘는 욕설과 막말을 했다는 것도 아닌데, 한 사람의 시민이 자신의 사상과 양심, 정치관을 개인 SNS에 올렸다고 비난하는 건 반자유‧반헌법‧반민주적 발상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이 이사장은 이 대표와 이렇다 할 친분도 없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제가 친명계로 분류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며 "이 대표는 좋은 정치인이고 큰 꿈을 펼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지지하고 개인적으로 응원한다. 하지만 친명계라고 표현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이 대표와 개인적 인연이나 친분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딱 한 번 만났다. 이재명 대표가 경기지사 시절, 내가 경기도연구원의 객원 연구원으로 일했다"고 답했다. 이 이사장은 "나는 이재명이 갖고 있는 성향과 추진력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이라며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친명계는 아니다. 아주 냉정한 시민의 입장에서 대한민국이 잘 되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지지하는 것이다. 이재명이니까 무조건 좋다는 게 아니다"라고 거듭 설명했다.
"나는 굳이 분류한다면 '김근태계'이고 '서민계'일 뿐"
이 같은 입장은 지난 대선 때 이재명 대표를 지지했던 국민 절반과 조금도 다를 게 없다. 현재 각종 SNS와 커뮤니티 등을 통해 정치적 의사 표시를 하는 수많은 시민 역시 마찬가지다. 이 이사장은 나아가 "이재명 대표도 잘못하면 언제든지 채찍을 들고 단칼에 베어낼 것"이라고 단호하게 천명하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친명계든 비명계든 정당판에서 누군가에게 신세를 진 이력도 없고 줄곧 사업이나 시민사회운동에 투신해온 철저한 외부 인사이자 원리원칙주의자이기 때문에 당내 어떤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혁신기구를 이끌 적임자였다. 그러나 언론과 민주당 비명계는 이를 오직 '이재명 사당화'로만 연결시켰다.
심지어 '안철수계'라는 명명까지 등장하자 이 이사장은 "안 의원이 나를 세 번이나 찾아와서 혁신비전위원회에 참여했던 것"이라며 "안철수계라고 부르는 걸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고 김근태 의원과 함께해온 사람이다. 오로지 김 의원을 통해 (정치를) 대리만족해 온 사람이어서 정치를 모르는 사람"이라며 "나를 분류한다면 '김근태계'고, 역사주의자고, 고달픈 사람들을 위한 서민계"라고 표현했다.
페이스북 개인 글 침소봉대…'음모론 신봉' 인신공격
또 다른 문제가 된 것은 천안함과 미국 관련 언급이다. 이 이사장은 지난 2월 페이스북에 "자폭된 천안함 사건을 조작하여 남북관계를 파탄 낸 미 패권 세력들이 이번에는 궤도를 벗어난 중국의 기상측정용 비행 기구를 마치 외계인의 침공처럼 엄청난 국가위협으로 과장하여 연일 대서특필하고 골 빈 한국 언론들은 이를 받아쓰기에 바쁘다"고 올렸다.
하지만 미국 당국 스스로 군사적‧첩보적 위협이 아니었다고 밝힌 중국의 '무해한 풍선'(중국 당국은 기상관측용 민간 풍선이라고 항의했다)을 미국이 최첨단 전투기까지 출격시켜 격추하는 등 사태를 과장하고 이를 국내 언론이 받아쓰기에 바빴던 건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 때 발생한 천안함 침몰이라는 초유의 사건을 둘러싸고는 언론을 비롯한 각계에서 숱한 의문이 제기돼왔는데 이 이사장 글의 한 토막만을 들어 지나치게 단정 짓고 성급하게 매도한 측면도 있다. 이에 대해 이 이사장은 "와전된 이야기다. 하나의 가정, 가설의 예로 이야기한 것"이라며 "(천안함 사건은) 원인 불명이라는 것이 내 입장"이라고 말했다.
미 정보당국의 대통령실 도청 의혹이 불거진 뒤인 지난달 5일 "아마도 지난 한국 대선에도 미 정보조직들이 분명 깊숙이 개입했으리라"라는 글을 올린 건 윤석열 대통령실의 국가안보실 도청 사건을 비롯해 역대 미 당국 행태에 비춰봤을 때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인데도 언론들은 무조건 '음모론'으로만 몰아갔다. 도청 의혹을 덮어놓고 가짜뉴스로 치부하고 비방하던 대통령실처럼 말이다.
이밖에 이 이사장이 "중동에서 20년간 진행된 대학살을 지지한 조 바이든이 푸틴을 전범으로 낙인찍는 것은 위선적 거짓"이라고 지적한 걸 두고 언론은 '푸틴 대통령을 두둔하는 듯한 뉘앙스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라고 부각시키는 등 그 고질적 비약‧왜곡 보도를 이번에도 유감없이 쏟아냈다.
민주당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기자들 질문 공세에 "특별히 문제 될 것이 있나. 자유인으로서 본인의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한 것"이라며 "공당의 혁신위원장이 되면 언어에 대한 조절이 충분히 있을 것으로 본다. 실제로 그분이 우리 사회 일원으로서 주로 활동한 내용은 중소기업 대표로서의 삶"이라고 답했다. 이어 "미국에 대한 비판 발언을 지적하는 것 같은데 이는 미국의 패권주의적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작정하고 난타를 가하는 언론에 더해 일부 비명계의 아우성이 동시에 협공을 가하면서 이래경 이사장도, 민주당도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깊은 사상적 탐구와 실천을 게을리하지 않은 이 원로 지식인‧운동가는 불과 하루 전 혁신위원장직 요청을 받고 '벼락'을 맞은 듯한 부담감 속에서도 윤석열 정권에서 '난파' 직전인 우리 사회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어 '구국의 심정'으로 헌신하겠다고 결심한 게 전부다. 이제 그에겐 아마도 난생처음일 '친명계·음모론 신봉'(경향신문 기사 제목)이라는 낙인만이 남았다
시민언론 민들레 김호경 에디터
한국, 11년 만에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선출
한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됐다. 한국이 안보리에 재진입한 것은 11년 만이다.
한국은 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총회 비상임이사국 선거에서 투표에 참여한 192개 회원국 중 3분의 2 이상인 180개국의 찬성표를 얻어 임기 2년의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이 됐다.
아태 지역에서 1개국, 아프리카에서 2개국, 중남미에서 1개국, 동유럽에서 1개국을 각각 뽑는 이번 선거에서 한국은 아태그룹 단독 후보로 나섰다. 아프리카 몫은 알제리와 시에라리온에 돌아갔으며, 중남미 지역에서는 가이아나가 선출됐다. 동유럽 지역에서는 슬로베니아와 벨라루스가 출마해 ‘서방 대 러시아’의 대리전’을 벌인 끝에 서방의 지지를 받은 슬로베니아가 선출됐다.
한국이 비상임이사국이 된 것은 1991년 유엔 가입 5년 만인 1996~1997년, 2013~2014년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다. 이번 임기는 2024~2025년이다.
한국은 이번 비상임이사국 선거에서 ‘글로벌 중추국가’라는 키워드에 맞춰 ▲평화유지(PKO)·평화구축에 대한 기여 ▲여성과 평화 안보에 대한 기여 ▲사이버안보에 대한 기여 ▲기후변화 극복에 대한 기여 등 네 가지 중점 과제를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선거 공약으로 발표했다.
안보리는 미국과 중국, 프랑스, 영국, 러시아 등 5개 상임이사국과 10개 비상임이사국으로 구성된다. 비상임이사국은 상임이사국과 달리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지만, 안보리 현안 논의와 표결에 참여할 수 있다.
최근 안보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북한의 미사일 도발 등 핵심 사안을 두고 중국·러시아와 서방의 대결 구도를 이어왔다. 한국은 북한 미사일 관련 이해당사국으로 참여했지만 앞으로는 정식 이사국으로서 목소리를 더욱 키울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다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의 거부권 행사로 중요한 사안마다 안보리 제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안보리 무용론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규탄 결의안은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했고, 북한 미사일 발사 제재 결의안 역시 중국과 러시아 거부권으로 무산됐다.
경향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부끄러운 행보... 위험한 성적표
중국 다음 큰 수출시장 아세안 시장 위기 징후... 8개월 연속 동기 대비 수출 감소
17년 전, 싱가포르에 처음 왔을 때의 일입니다. 가족과 함께 이민을 온 거라 제일 먼저 한 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학비가 국적에 따라 달랐습니다. 싱가포르 국민이 제일 싸고, 그 다음은 영주권자, 제일 비싼 건 외국인이었습니다. 외국인도 두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아세안 소속 국가에서 온 외국인이면 좀 싸고, 그 밖의 외국인들은 싱가포르 국민에 비해 거의 100배 가까운 학비를 냈습니다.
▲ 싱가포르의 초등학교 학비. 국적별로 금액 차이가 큰데 외국인도 아세안과 비아세안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 MOE
전 '아세안(ASEAN)'을 아시안(ASIAN)으로 잘못 읽고 한국에서 온 우리를 같은 아시아인이라고 좀 더 싸게 해주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학비를 낼 때가 돼서야 그 아세안이 아시아 사람이 아니라 동남아국가연합(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을 뜻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럼 아세안이 뭐기에 싱가포르 학교에선 그 나라 국민들에게만 학비를 깎아주는 걸까요? 17년 전의 저처럼 아세안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도 있을 수 있으니까 아세안에 대한 간단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아시안 말고, 아세안
아세안은 동남아시아 10개국의 지역 경제 공동체로, 유럽연합에 비해서는 좀 느슨한 국가간 연합입니다.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베트남, 브루나이,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태국, 필리핀이 회원국이며 이들 나라의 인구를 모두 더하면 6억 7천만 명이 넘고, 2021년 기준으로 GDP (국내총생산)가 3.3조 달러가 넘는 거대 공동체입니다.
1961년 태국·필리핀·말레이시아 3개국이 공산주의 확대 저지 및 국제정세 공동 대응을 목표로 창설한 동남아연합 (ASA :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이 아세안의 뿌리입니다. 이후 베트남전 발발과 싱가포르 독립 등 역내정세 변화에 따라 동남아 연합의 확대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자 1967년에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가 동남아 연합에 합류하여 아세안이 된 것입니다.
이후 브루나이가 독립 후 가입했고, 좀 더 시간이 지나 1990년대에 냉전이 종식되고 공산주의 확대 저지 같은 초기 목적이 의미를 잃자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등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잇달아 가입하면서 지금과 같이 10개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후 2015년에 아세안 정치‧안보 공동체(APSC), 아세안 경제공동체(AEC), 아세안 사회・문화 공동체(ASCC)로 구성된 아세안 공동체(ASEAN Community)를 출범시켜서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아세안의 상설 사무국은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 있고,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정상회의는 매년 개최됩니다.
▲ 아세안 개황. 아세안 10개국의 인구를 더하면 중국과 인도 다음으로 많습니다. ⓒ 한-아세안 센터
한국은 1989년 아세안과 부분 대화관계(Sectoral Dialogue Partnership)를 수립한 이후 1991년에는 완전대화상대국 관계(Full Dialogue Partnership)로 격상되었습니다. 참고로 아세안의 완전대화상대국은 10개뿐입니다.
1997년에 '한·아세안 정상회의'와 '아세안+3(한국, 중국, 일본) 정상회의''가 동시에 개최 되면서 한국과 아세안은 좀 더 가까운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밖에도 역대 정부는 한-아세안 FTA 협정 체결, 한-아세안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공동선언 채택, 아세안 특사 파견, 부산에 아세안문화원 개원 등 아세안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특히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신남방정책'을 천명하고 ''한·아세안 미래공동체 비전''을 발표하면서 아세안과의 거리는 급격하게 가까워졌습니다. 그 때까지의 우리 외교는 한반도를 둘러싼 4강(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게 우선이었지만, 신남방정책 천명으로 아세안과의 외교를 기존의 4강과 동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입니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과 함께 우리나라 외교의 큰 변화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중국 다음으로 큰 우리의 수출시장
역대 우리 정부의 이 같은 외교적 노력은 경제적 성과로 나타났습니다. 1989년 82억 달러에 그쳤던 한-아세안 교역규모는 2022년에 2074억 달러로 25배나 늘었습니다. 아세안을 상대로 한 무역수지는 2000년 이후 연간 단위로 한 번도 적자를 본 적이 없어서 우리나라 전체 무역수지 472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던 2022년에도 아세안을 상대로는 423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 2000년 이후 아세안과의 무역 규모. 전체적으로 큰 성장 추세이며 2022년 무역금액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 이봉렬
아세안은 경제권역 단위로 보면 미국을 제치고 중국 다음으로 큰 우리의 수출 시장입니다. 제 2의 해외투자 대상지역이며, 제 1의 건설수주 시장이기도 합니다. 양측간 교류인원은 연간 1200만 명이 넘을 정도로 교류가 활발합니다.
미·중 갈등 속에서 중국과의 무역수지는 적자전환한 지 오래고, 일본과는 늘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세안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우리의 무역수지를 끌어 올리는 일등 공신입니다. 아세안은 젊은층의 비중이 높은 세계 3위의 인구를 가진 거대한 소비 시장, 풍부한 천연자원, 빠르게 자리 잡은 글로벌생산거점, 경쟁력 높은 관광산업 등을 고루 갖추고 있어 앞으로도 한국 수출의 매력적인 대안입니다.
거기에 한류의 영향을 받아 한국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입니다. 넷플릭스에서는 한국 드라마가 늘 최우선 순위에 오르고, 얼마 전 블랙핑크의 공연은 5만 5천명의 동남아 팬들로 가득 찼습니다. 싱가포르 최대 맥주브랜드인 타이거는 한국 소주를 섞은 맥주를 만들어 팔고, 맥도날드는 한국 이름을 붙인 햄버거 메뉴를 따로 만들어 팝니다. 인도네시아는 BTS 팬인 아미의 수가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나요? 마냥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닙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불편한 일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다른 10개 국가가 모여 연합체를 이룬 아세안은 싱가포르를 제외하면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못사는 나라가 맞습니다. 그런 나라들을 상대로 무역을 하고 또 엄청난 수익을 거둬 들이고 있다면 외교를 할 때 좀 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내외의 섬세하지 못한 행보
▲ 2022년 11월, 대통령실에서 배포한 김건희씨 사진. 캄보디아 국민 입장에서 이 사진을 보면 그 심정이 어떨까요? ⓒ 대통령실
그런데 지난해 11월, 캄보디아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에 함께 간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씨는 주최국인 캄보디아가 주최하는 정상 배우자 프로그램에는 불참한 채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캄보디아 소년을 안고 사진을 찍어 배포했습니다. 당시 이 사진은 "오드리 헵번 코스프레"아니냐는 논란도 있었고, "빈곤 포르노" 발언으로 정쟁의 대상이 되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김건희씨의 행태에 대한 캄보디아의 입장입니다. 아세안 정상회담 주최국으로서 세계 정상을 불러서 자국의 밝은 면을 보여 주고 싶었던 캄보디아로선 병약한 캄보디아의 소년이 한국의 대통령 부인의 품에 안겨 있는 불쌍한 모습이 더 크게 보도되는 걸 어떻게 봤을까요? 그들의 입장에선 윤 대통령 부부를 초청하지 않은 것보다 못한 상황이 됐다고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
▲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가 열렸던 2022년 11월 15일.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각국 정상을 맞이하는 모습과 윤대통령 부부가 뒤늦게 행사 중에 자리를 찾아 가는 모습 ⓒ YTN보도화면 갈무리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11월 15일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주최한 G20 정상회의 환영 만찬장에서 행사 각국의 정상들이 자유롭게 담소를 나누는 중에 자리에만 앉아 있는 윤 대통령을 향해 김건희씨가 일어나 나가라는 듯한 말과 손짓을 하는 장면이 영상에 잡혀 기사화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윤 대통령 부부는 행사가 시작되고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입장하는 각국의 정상을 일일이 맞이한 후 환영사를 마칠 때까지 나타나지 않다가 행사가 한참 진행되고 있는 중에 자리를 찾아 가는 모습으로 행사를 어수선하게 만든 겁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윤 대통령은 그 다음날 열린 맹그로브 모종 식수 행사에는 박진 외교부 장관을 참석시키고 귀국했습니다. 그 행사는 주최국인 인도네시아가 지구 차원의 기후위기에 대한 공동 대응에 앞장서고 있다는 걸 과시하는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그래서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 인도 모리 총리,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 등 G20정상회의에 참석한 대부분의 정상들이 함께 식수를 하고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눴는데 윤 대통령은 그 자리에 없었던 겁니다. 행사의 주최국으로서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국민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 2022년 11월 16일(현지시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가한 각국 대표들이 인도네시아 발리 덴파사르의 맹그로브 파종구역에서 삽질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 연합뉴스
윤 대통령의 외교는 어디로 가나
지난해 11월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을 계기로 배포한 '아세안 경제협력의 중요성과 신정부 추진 전략' 보도자료에서 "현재 협력 관계가 베트남, 싱가포르 등에 편중돼 있다며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캄보디아 등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살펴본 바 대로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이 두나라와는 시작이 썩 좋지 않습니다.
6월 1일, 산업통상자원부는 2023년 5월 수출 실적을 발표했습니다. 자료를 보니 아세안을 상대로 한 수출이 지난해 10월 이후 8개월째 전년 동기 대비 줄어들고 있습니다. 8개월 연속으로 동기 대비 수출이 줄어든 건 2008년 금융위기 때 이후 처음입니다. 코로나 때도 없었던 일입니다. 중국의 대 아세안 수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과도 비교되는 결과입니다.
▲ 아세안에 대한 수출과 무역수지가 전년 동기 대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아세안과의 전년동기 대비 무역수지가 10개월째 감소하는 건 2000년 대 들어 처음 있는 일입니다. ⓒ 이봉렬
무역수지 추세를 보면 더 심각합니다. 아세안을 상대로 한 무역수지는 아직 흑자이긴 하지만 그 규모가 계속 줄어 들고 있습니다. 한 때 월 47억 달러에 이르던 무역수지 흑자가 올해 1월에는 18억 달러도 채 안 됐고, 5월에도 21억 달러에 그쳤습니다. 전년 동기 대비 무역수지를 보면 10개월 연속으로 줄고 있는데 이런 역성장은 금세기 들어 처음 있는 일입니다.
산업통산자원부는 5월 수출입 동향 보고서에서 "글로벌 수요 약세 등으로 아세안 내 최대 무역 파트너인 베트남의 對세계 수출입이 줄어"든 게 아세안을 향한 수출이 줄어드는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우리 기업들이 반도체나 전기전자 부품 등의 중간재를 베트남으로 수출한 후 그 곳에서 완제품을 만들어 다시 세계로 수출하는데 코로나 이후 베트남에서 만든 완제품의 수출이 줄면서 베트남을 향한 우리의 중간재 수출 역시 줄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베트남 뿐만 아니라 다른 아세안 국가에 대한 수출도 마찬가지로 줄고 있습니다. 아세안 국가 중에서도 베트남, 싱가포르,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이 다섯 개 나라가 우리의 대 아세안 수출액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 다섯 나라 모두 우리 수출이 전년 대비 적게는 5%에서 많게는 30%나 줄었습니다. 베트남의 수출이 늘기만 한가하게 기다리고 있을 게 아니라 아세안의 다른 국가들과도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수출 감소의 원인을 찾고 새로운 수출품목 개발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대통령실은 "아세안과의 교역 규모가 이번 정부 내 2600억달러로 1.5배 성장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처럼 실상은 성장은 커녕 첫 해부터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교역 상대 가운데 무역규모가 가장 크고 지속적으로 흑자를 내오던 아세안조차도 이렇게 위험한 지경으로 향해 가고 있는데, 적극적인 교류는 커녕 오히려 헛발질만 하고 있으니 무슨 수로 성장을 할 거라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 폐기하고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이란 걸 새로 들고 나온 거나, 윤 대통령 부부가 캄보디아와 인도네시아에서 벌인 미숙한 일들이 대아세안 수출 감소로 곧바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 2022년 11월 11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이 프놈펜 한 호텔에서 열린 한국-캄보디아 정상회담에서 훈센 캄보디아 총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대통령실
하지만 우리 외교가 중국과 러시아를 적대하고, 미국과 일본을 숭상하며, 아세안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을 홀대한다면 앞으로 우리 수출과 경제 회복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건 확실합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외교부 제 1차관을 역임했던 최종건 교수는 최근 펴낸 책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나라>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인수위 시절에 주 한국 아세안 대사들이 단체로 찾아와 "제발 신남방정책이 유지되도록 다음 정부에도 제언해 달라"고 청원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아세안 대사들의 청원에 귀를 귀울였다면 지금과는 다른 상황이지 않았을까요? 아세안을 향한 세계 각국의 구애가 이어지는 지금 상황에서 우리의 대 아세안 외교는 어디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물어야 합니다.
17년 전 아세안이 뭔지 몰랐던 저는 예상보다 학비를 더 내는 데 그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2대 교역국이자 최대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아세안에 대해 잘 모른다면 우리 경제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역대급으로 뒤로 가는 대 아세안 무역, 이쯤에서 돌려 세워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우리 수출, 더 이상 기댈 언덕이 없습니다.
오마이 뉴스 [이봉렬 in 싱가포르]
‘살고싶은 곳’ 1위라더니...젊은사람 다 떠나 인구 줄어들 판
2016년엔 1만4600여명 순유입했지만
최근 반년 중 5개월이나 마이너스 기록
40대 이하 5045명…젊은층 이탈 심해
제주도 수천억 투입 인구 잡기 안간힘
지난 4일 오후 제주시 한림읍 금릉해수욕장을 찾은 도민과 관광객들이 물놀이를 하며 주말 연휴를 보내고 있다. [자료 = 연합뉴스]
이주열풍으로 한 해 1만명 이상의 인구가 유입되던 제주가 이제는 인구 감소를 걱정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반년 중 한 달만 빼고 모두 인구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5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제주지역 주민등록인구(외국인 제외)는 67만7057명으로 전달보다 58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214명)부터 줄어든 제주의 인구는 지난 1월 666명, 2월 403명, 3월 59명이 감소했다. 4월 84명이 순유입돼 반전을 맞는 듯 했지만, 지난달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이에 따라 제주 주민등록인구는 지난해 12월 67만8159명에서 5개월 만에 1102명이나 감소했다.
그동안 제주는 이주열풍으로 인구가 가파르게 상승한 곳이었다.
하지만 2016년 순유입 인구 1만4632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8년 8853명, 2020년 3378명, 지난해 3148명으로 매년 순유입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들어 연령별 인구 증·감 현황을 보면 50대 이상은 모두 늘어난 반면 40대 이하는 모두 줄었다. 9세 이하 1457명, 10대 422명, 20대 1723명, 30대 757명, 40대 686명 등 총 5045명이 제주를 떠난 반면 50대 595명, 60대 2378명, 70대 370명, 80대 290명, 90대 이상 310명 등 50대 이상은 3943명이 늘어났다.
지난해 기준 제주의 출생아 수는 3600명인 데 비해 사망자 수는 4800명에 달하는 등 데드크로스 현상도 매년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제주도는 지난달 2075억원을 투입해 △저출산 대응 △경제활동인구 확충 △고령사회 대비 △지역공동체 조성을 핵심으로 하는 4대 전략·66개 세부 과제를 시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발표에서 제주도는 2026년까지 목표를 ‘합계출산율 1.3명 이상 회복(2022년 기준 0.92명)·15~64세 생산연령인구 50만명 도달(2022년 기준 49만894명)’로 설정했다. 또 148개에 달하는 인구정책 세부 사업을 올해 66개(신규 사업 29개)로 집약·축소했다.
송은범 기자(song.eunbum@mk.co.kr)
“의대 가고픈데 내신 망했어요”...결국 10대 청소년이 선택한 길은
고등학교 자퇴 후 수능 준비해
정시 비율 늘며 정시에 집중
검고 출신, 전체 신입생의 2.1%
“입시 위해 사회성 포기”우려도
서울 강남구에 사는 고등학생 박모군(17)은 학교를 자퇴한 뒤 재수학원에 다니며 의대 입시를 준비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손 꼽히는 좋은 학군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내신 경쟁이 워낙 치열해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작은 실수 하나에 내신 등급이 떨어지기 십상이다. 수시전형으로는 원하는 의대를 가기가 만만치 않은 상황. 차라리 수능공부에만 집중한다면 정시전형을 통해 원하는 학교를 가는게 더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박 씨와 부모님은 재수학원을 알아보는 중이다. 박 씨는 “학교를 계속 다니면 내신이나 각종 교내활동 등 챙겨야 할게 많아서 불필요하게 시간 낭비를 하게 될 것 같다”며 “수능에만 집중할 수 있으려면 차라리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보는 게 나을 것 같아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의대 열풍 속에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가려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대학 입학은 이전보다 더 쉬워졌지만, 여전히 학생들이 선호하는 의·치·한의대나 상위권 대학 입학의 문이 좁은 상태는 계속되자 일부 학생들이 학교 공부 대신 수능에만 집중하기 위해 자퇴를 하는 것이다.
교육업계 관계자들은 검정고시를 보고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최근 공교육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커지고 수능이 어려워지면서 이같은 추세가 확대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 김모씨(31)는 “의대 등 상위권 대학의 입시는 여전히 어려워서 재수, 삼수도 많이 하고 수능도 매년 어려워지는 추세 속에서 학생들은 학교 수업만으로는 원하는 대학 진학이 어렵다는 생각을 계속 하는 것 같다”며 “수시로 대학을 가려면 내신이나 각종 교내 활동이 중요한데, 내신은 한두 번 미끄러지면 회복이 어려워 전략적으로 자퇴하고 수능에 집중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윤곤 메가스터디 입시전략연구소 소장은 “대학 입시 목표가 뚜렷한데 내신이 좋지 않거나, 학교 과정이 입시에 방해 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 중에서 경제력 등 부모의 지원이 뒷받침 되는 경우 이런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다”며 “정시 비율이 40% 가까이 커진 상황에서 자퇴 후 정시에 집중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늘면서 재수학원의 5% 가량을 이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자퇴한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시험에 합격하기 쉬운 검정고시를 빠르게 본 뒤 재수종합학원이나 재수기숙학원 등에 다니며 수능 공부를 한다. 서울 상위권 대학 공대에 재학 중인 A군(18)은 중학교 졸업 후 고교 진학을 포기한 뒤 1년 동안 공부해 대학 입시에 성공했다. A군 가족은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공부가 뚜렷해서 고등학교 가서 공부하기보다 빨리 대학에 가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어해 이같은 선택을 했다”고 전했다.
검정고시 출신 대학 신입생 수는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2017년 전체 34만2841명의 대학 신입생 중 검정고시 출신은 4355명으로 전체의 1.2%에 불과했다. 그러나 2021년에는 학령 인구 감소로 전체 신입생 수가 32만9843명까지 줄었지만 검정고시 출신 신입생은 오히려 6960명으로 늘어 전체의 2.1%를 차지했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같은 추세를 우려하고 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생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제도를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데 수능에 집중해 좋은 대학에 가려는 학생들에게는 이 방식이 더 유리해 보일 수 있다”며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 수능에 집중하기 위해 자퇴하는 학생이 늘어나는 것이면 오직 수능을 위해 (학교에서) 사회성을 기르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 등을 기르는 과정을 생략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이라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박나은 기자(nasilver@mk.co.kr)
‘거악과 싸우니 우리 잘못은 괜찮다’…최면 정치의 일상화
위기의 민주당 (상)
위장탈당·코인…도덕 불감증의 징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박광온 원내대표가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자리하며 인사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민주당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노골적으로 파괴하는 언동이 당내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그걸 방치하고 정치적 득실만 계산하는 우리 당 정치인들의 모습이 사실 가장 비극적이고 위기라고 느낀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최근 <한겨레>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이런 진단은 의원 한 사람의 개인 의견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4월부터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김남국 의원 가상자산(코인) 투기 의혹’이 잇따라 터지고 당이 조기에 사태를 수습하지 못한 데 이어, 전면 쇄신을 내건 혁신기구 수장까지 임명된 지 9시간 만에 물러나면서 민주당 안팎에서 ‘전례 없는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한겨레>가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7일까지 현역 국회의원, 당직자, 보좌관, 원외 인사, 전문가 등 30여명을 인터뷰한 결과, 당 안팎에선 최근 “민주당 정치가 무너졌다”, “당 면역체계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 “도덕성이 바닥을 찍는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자조가 잇따랐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도 도덕적 위기는 있었지만 당시엔 무엇이 옳은가에 관해서는 절대적 기준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당내에서 그런 기준을 흔드는 주장이 나오면서 진영의 존재 기반 자체를 허물어뜨리고 있다”(초선 의원)는 것이다. 처한 상황과 서 있는 자리에 따라 위기의 원인과 해법에 대한 생각은 다소 엇갈렸지만, 민주당이 전례 없는 도덕적 위기를 맞았다는 데엔 이견이 없었다.
■ ‘졌잘싸’…책임지지 않는 정치
위기의 근원은 어디일까. 한 초선 의원은 “19대 대선(2017년)과 이어진 총선,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면서 국민들이 우리를 다 옳게 생각한다는 착각에 빠졌다. 어느 순간부턴 잘잘못을 가리고 도덕을 판단하는 기준이 아예 사라졌다”고 돌이켰다. 그는 “(이후 20대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지면서도 패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니 통렬한 반성 대신 ‘졌지만 잘 싸웠다’를 외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대선 직후 민주당 안에서 나온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란 자위적 구호가 위기의 경고음이자 징후였다는 평가다.
누적된 착각과 오만은 대선 직후 추진한 ‘검찰 수사권 축소법’(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그대로 노출됐다. 몇몇 당 관계자들은 민형배 의원의 ‘꼼수 탈당’을 최악의 사례로 꼽았다. 국회 상임위원회에 설치된 안건조정위원회는 여야가 타협을 하자고 만든 장치인데, 여기서 논의가 민주당 뜻대로 이뤄지지 않자 민 의원을 ‘무소속’ 몫으로 법제사법위 안건조정위에 넣은 뒤 법안을 힘으로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한 청년 원외 정치인은 “명분이 있으면 나머지는 어떻든 상관없다는, 기득권적 태도”라고 꼬집었다. 진보·개혁 진영은 전통적으로 절차와 과정을 중시해왔는데, 결과를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며 패권주의적 태도를 보여줬다는 얘기다.
대선 이후 더불어민주당 주요 일지
■ 이재명 대표의 보선·전대 출마
이재명 대표가 지난해 6·2 보궐선거 때 인천 계양을에 출마함으로써, 지도자의 ‘희생’과 ‘헌신’으로 위기를 돌파해온 민주당의 리더십이 퇴색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패장’이 선거 직후 다른 선거에 나서는 것도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거니와, 신승이 예상되는 경기 성남 분당갑을 피해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인천 계양을을 택했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1999년 지역구인 종로를 뒤로하고 부산에 가서 민주당의 정치를 완성했지만, 이재명은 대선에 지고 계양을에 출마해 자기 정치를 완성했다.” 한 다선 의원의 냉소다. 노 전 대통령만이 아니다. 대선에 패배한 정동영 전 의장이 2009년 전북 전주 덕진 재선거에 출마하려 할 때 민주당은 공천을 주지 않았고, 손학규 전 대표는 2011년 보궐선거 때 사지인 경기 분당을에 걸어 들어가 승리하면서 야권 대선주자로서 주목받았다.
그러나 이 대표는 대선 패배에 이어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은 지방선거까지 참패하고도 다시금 8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권을 쥐었다. 민주당 초선 의원은 “패배에 책임지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자리에 가는 모습을 보며, 공동체를 자신의 욕망 실현을 위한 장으로 바라본단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 ‘도덕이 밥 먹여주나’ 무뎌진 원칙과 도덕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대부분 이 대표를 둘러싼 윤석열 정권의 검찰 수사에 야당 탄압의 성격이 짙다는 데 공감했다. 그러나 이 대표가 ‘기소 시 당직 정지’를 규정한 당헌 80조를 개정해 ‘예외’를 둘 수 있게 하고 적용받는 과정, 불체포특권 포기를 약속하고도 민주당을 ‘방탄정당화’한 모습에 실망감을 나타냈다. ‘조국 사태’가 민주당 지지층의 분열을 초래하면서 도덕성 위기의 서막을 올렸다면, 대선 이후 당의 정치 지도자로서 이 대표와 측근들이 보여준 행보는 이런 위기를 가중시켰다고 평가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이 대표가 대선 패배 이후 출마해 당대표가 되고 당헌·당규를 고치고 이런 과정들을 보면 민주당이 질서와 규범을 완전히 잃은 상태가 됐다고 느낀다”며 “대선은 졌지만 당권은 놓치지 않겠다는 힘의 정치, 승패의 정치로 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인식 탓에 당 관계자들은 검찰의 먼지털기식 수사로 당장 의원들 몇명이 기소되느냐보다, 정치 도덕을 부정하는 ‘몰염치’의 언어가 당내에 만연한 게 더 큰 문제라고 봤다. 민주당의 한 다선 의원은 지난달 3일 열린 의원총회를 그런 몰염치의 현장으로 기억했다. 돈봉투 의혹에 연루된 윤관석·이성만 의원 탈당 직후 열린 의총에선 당 지도부의 미온적 대처를 성토하는 발언이 쏟아지던 가운데 한 지역구 초선 의원이 발언에 나섰다고 한다. “‘돈봉투 안 받아본 사람 있습니까. 그게 죽을죄입니까’라고 하더라. 정치인으로서 비공개회의에서도 차마 할 수 없는 말이라 너무 창피해서 말문이 막혔다.” 또 다른 의원이 기억하는 해당 의원의 현장 발언은 조금 다르다. “‘지지자들 밥도 안 사 먹이고 정치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까’라고 말한 거로 기억한다. 지지자들 밥값도 내주고 그래야 큰 지도자가 되는 건가 싶어 실소가 나왔다.” 발언의 ‘디테일’은 달라도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만 돌을 던지라’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다수의 당 관계자들은 돈봉투 의혹과 김남국 의원의 가상자산 투기 의혹 앞에서 “말할 수 없이 부끄러웠다”고 입을 모았다. ‘국회의원은 재테크도 하면 안 되냐’거나 ‘민주당은 돈 벌면 안 되냐’, ‘정치가 돈 없이 돌아가냐’는 식의 노골적인 주장은 공직자로서 최소한의 책임윤리를 망각한 언행이라는 것이다. 한 재선 의원은 “국회의원과 관련한 여러 제한 조건들을 법이 규정한 이유는 더 높은 도덕적 수준을 위해 절제하라는 뜻”이라며 “탐욕과 사적 이익을 극단적인 수준에서 추구하며 나타난 모습이 김남국 코인 사태”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태로 인해 민주당은 극단적 사익 추구 정당으로 낙인찍혔다. 아프고 충격적”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다선 의원은 “도덕을 거추장스러워할 정도로 우리 당 의원들이 뻔뻔해진 것”이라며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을 말한 노무현 정신은 배우지 않고 ‘노무현 마케팅’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의 현 위기 진단다.
■ “거악과 싸우니 작은 잘못은 괜찮다는 사고 버려야”
지금이 비상한 위기라는 데엔 당 안팎에 이견이 없지만, 167석 거대 야당엔 현재 자발적 정풍운동이 일어날 기미가 잘 보이지 않는다. “당이 죽어가면 김근태나 노무현이 했던 것처럼 쇄신을 요구하면서 다수가 발작적으로 일어나야 하는데, 지금은 그게 전혀 없다. 어떤 문제 제기나 그저 불편한 계파 투쟁의 국지전으로 끝나는 이유다.”(한 보좌관)
문제는 의원들의 침묵이다. 한 다선 의원은 “초선 의원들은 패기를 갖고 당의 혁신을 부르짖는 대신 계파의 졸병 노릇만 하고, 중진 의원들은 선수에 맞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씁쓸한 속내를 비쳤다. 당 관계자들은 특히 “당이 민주화 시대와 다른 윤리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86 운동권 세대는 거악과 싸우며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고 ‘거악과 싸우니 우리의 작은 잘못은 괜찮다’는 논리를 앞세워왔다. 당내 30~40대도 그런 86세대의 영향을 받으며 정치를 해와 구조를 바꾸기 어렵다.”(다른 보좌관)
2012년 대선 이후 10년 가까이 당에 뿌리내려온 극단적 팬덤 정치와 결별하는 것도 과제로 꼽힌다. 김남국 의원의 코인 논란 때도 강성 지지층은 김 의원을 옹호하고, 김 의원을 비판한 청년 정치인들을 징계해야 한다고 주장해 민심과 다른 인식을 드러냈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현재 민주당이 처한 상황을 “그 전과 질적으로 다른 위기”라고 설명했다. 돈봉투 의혹이 송영길 전 대표 등 ‘86세대의 문제’라면, 코인 투기 논란은 민주당의 ‘미래 세대’인 40대 정치인의 이중성을 드러낸 것이고, 이들을 감싸는 강성 지지층의 문제까지 총체적으로 얽힌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당 전반의 문제, 86세대라는 특정 세대가 아닌 모든 세대의 문제, 선출된 정치인뿐 아니라 지지층까지 포함한 문제가 되면서, 대중에게 세대교체를 통한 혁신의 기대마저 접게 했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표는 새로운 혁신위원장을 물색하는 중이다. 친명계에선 새로운 혁신위원장이 과감한 쇄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친명계 한 중진의원은 “혁신위원장 낙마가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며 “이런 우여곡절을 겪었으니, 더 과감하게 혁신을 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오는 12일 열릴 민주당 의원총회에선 당 혁신의 방향을 두고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지역화폐 예산 전액 삭감 재추진…“동네가게 올 이유 사라져”
게티이미지뱅크.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국회에서 무산된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예산 전액 삭감을 재추진하면서, 자영업자들과 소비자들 사이에는 지역 경제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7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행정안전부는 지역사랑상품권 사업을 제외한 2024년도 예산요구안을 지난달 31일 기획재정부에 제출했다. 각 부처로부터 예산요구안을 받은 기재부는 관계부처 및 지자체와 협의, 국민 의견수렴 등을 거쳐 정부 예산안을 편성해 오는 9월 초 국회에 제출한다. 지난해 행안부는 ‘2023년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4700억원 상당의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을 요구했고, 기재부는 이를 전액 삭감해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하지만 국회는 여야 대립 끝에 전년보다 3천억원가량 줄어든 3525억원을 최종 예산으로 편성했다.
예산 전액 삭감을 재추진한다는 소식에,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트위터에서는 연일 ‘지역화폐’가 ‘실시간 트렌드’에 올랐고, 자영업자 커뮤니티 등에서도 예산 삭감을 우려하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경기도 수원에서 9년째 정육점을 운영하는 이아무개(44)씨는 “안그래도 작년에 10%에서 6%로 환급비율을 낮추면서 ‘수원페이’를 사용하는 사람이 줄었다. 꾸준히 사용해오던 단골들이 더 줄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신용카드로 인터넷 구매하면 당일배송도 해주는데, 굳이 우리 같은 동네 가게를 이용할 이유가 있겠나”라고 우려했다. 자신을 건설자영업자라고 밝힌 ㄱ씨는 “지역화폐는 사용기간이 3개월로 한정돼있어 시골노인까지도 필요한 물품을 골라 구매할 수 있고 지역시골 식당, 슈퍼 등에 매출이 활성화되고 부가가치세는 정부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고 지역화폐의 장점을 적었다.
지역화폐를 사용해온 소비자들도 반발한다. 인천에서 카드형 상품권인 ‘인천이(e)음카드’를 사용하고 있는 직장인 김아무개(26)씨는 “4인 가구다 보니 10% 캐시백 한도인 30만원씩 한 달에만 120만원을 써왔다. 외식을 하더라도 지역에서 하고, 쇼핑을 해도 대형마트가 아닌 시장에서 쓰게 됐었다”며 “지역 경제 촉진은 물론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예산 줄이면 아무래도 지역에서 소비할 유인이 떨어질 것 같다”고 했다. 전주사랑상품권 ‘돼지카드’를 사용해온 학부모 최아무개(46)씨도 “다른 지자체에 비하면 혜택이 그대로 유지돼온 편이라, 학원비나 병원비, 장보기 등에 연 200만원을 알차게 활용해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없어질까 봐 걱정된다”며 “소비자 입장에서 10%를 환급받을 수 있는 게 정말 클 수밖에 없는데, 이게 없어지면 혜택 좋은 신용카드를 찾아봐야하나 고민”이라고 했다.
나아가 지자체 등에서 지역화폐로 청소년과 청년 등에 지급해오던 생리대지원금이나 교통지원비, 취업준비생 면접 수당 등도 줄어들거나 폐지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올해 초 경기도로부터 청소년 교통비를 지원받았던 대학생 ㄴ(21)씨는 “큰 액수는 아니더라도 지역 화폐가 다양한 계층도 지원하고, 지역 경제도 살리는 역할을 했다”며 “정부가 예산을 줄이면 지자체 예산만으로 지역화폐가 운영이 될지 의문”이라고 했다. 지역사랑상품권은 국비를 20~50%가량 지원받아 5~10% 할인된 가격으로 지자체가 발행해왔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충북대 약대 교수 “처리된 후쿠시마 오염수 가져오면 마시겠다”
박일영 충북대 교수 BRIC 게시판에 글
“과학과 동떨어진 주관적 견해 증폭
국민의 공포만 키워가고 있기 때문”
일본엔 주변국 ‘시료 직접 채취’ 허용 촉구
“나는 처리된 후쿠시마 오염수를 가져오면 방류농도로 희석해서 마시겠다.”
박일영 충북대 약대 교수가 최근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누리집 공개 게시판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논란과 관련 “과학으로 판단할 사안을 주관적 느낌으로 왜곡하지 말라”며 이런 제목의 글을 올린 것으로 7일 확인됐다.
박 교수는 30년 가까이 대학에서 방사성의약품학을 공부하고 강의한 전문가다. 그는 “자극적일 수밖에 없는 제목으로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국민의 정서에도 국가의 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그렇다고 후쿠시마 오염수의 방류를 막을 수 있는 실질적 수단도 보이지 않는 이 소모적 논란이, 방사선에 관한 과학과는 동떨어진 주관적 견해들에 의해 증폭되어 국민의 공포만 키워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오염수를 처리한 뒤 삼중수소를 방류농도인 1ℓ당 1500베크렐(㏃) 미만으로 희석한다면, 이 물 1ℓ를 마시더라도 내가 받는 실효 선량은 0.000027밀리시버트(mSv)”라며 “이는 바나나 1개를 먹을 때 바나나에 포함된 칼륨-40 등에 의해 받는 실효선량 0.0001mSv의 약 1/4”이라고 했다.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누리집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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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어 “(전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 포함된) 780테라베크렐(TBq)의 삼중수소가 모두 투입돼 북태평양의 물에 희석돼 우리나라 근해로 들어올 때의 삼중수소에 의한 추가 방사능은 0.0000026Bq/ℓ로서 현재 바닷물의 방사선량 값인 약 12Bq/ℓ에 비해 극히 미미한 증가가 있을 뿐”이라며 “희석이 불안정해 1000배쯤 높은 농도의 해류가 온다 해도 0.0026Bq/ℓ일 뿐이다. 이 정도의 선량으로는 물고기나 사람에 해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다만 박 교수는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제반 시험성적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고, 주변국에서 요구하는 경우 시료 직접 채취를 허용해 이중 확인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태평양은 일본만의 바다가 아니므로, 주변국에서 요구하는 경우 시료의 직접 채취를 허용해 이를 시험함으로써 이중확인이 가능하도록 해야 필요 없는 오해들을 불식시킬 수 있다”며 “우리 정부는 이러한 시험 성적자료의 공개와 시료의 직접 채취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관철해 우리 국민의 불안을 덜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우리 국민들의 식탁과 수산업계, 요식업계를 위해 수습해야 할 때”라고 했다. 박 교수는 “필자가 해도 좋고, 필자가 아닌 누구라도 방류농도의 희석수에 별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정말 알고 있는 사람이 나서서, 방류농도의 희석수를 직접 마심으로써 우리 국민들의 식탁을 안심시키는 일이 절실히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그는 “주변에 쓰레기가 흩어져 있다 해서 담배꽁초 하나를 더 버리는 게 권장할 일은 아니듯이, 현재 바닷물의 방사선량이 12Bq/L라고 해서 0.0000026Bq/L의 삼중수소를 바다에 추가하는 것이 박수칠 일은 아니”라면서도 “막상 저지할 수 있는 실질적 방법도 없이 반대를 위한 과장된 공포를 유발해 국민들의 식탁을 걱정스럽게 만드는 것은 책임감 있는 사람의 자세라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기민도 기자 key@hani.co.kr
“대한민국이 뻘겋다…창원간첩단 하부조직 전국 68곳”
전국단위 지하조직인 창원간첩단 ‘자주통일 민중전위’가 2021∼2022년 대북보고문과 북한 지령문에 언급된 지역 하부망과 새끼회사 및 노동계 정당 등을 합친 ‘자통 간첩포치도’. 순수 지역 하부망과 새끼조직만 68곳, 전체를 합치면 100곳에 이른다.자유민주연구원 제공
유동열 원장, 2021∼2022년 자통 대북보고문·지령문 분석
68곳 지역망 중 절반 정도 기 구축, 나머지 새로 구축 대북보고
전국단위 지하조직인 창원간첩단 ‘자주통일 민중전위(자통)’의 지역 하부망과 ‘새끼조직(하부조직)’이 전국에 걸쳐 68개라는 주장이 나와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이는 자통이 민주노총, 민노당 등 노동단체와 정당 등 대규모 조직에 침투한 것을 제외한 수치다.
자유민주연구원과 국가대개조네트워크가 지난 7일 오후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개최한 ‘최근 북한의 간첩공작과 대책’ 정책세미나에서 ‘최근 북한 간첩단 사건 평가와 대책’을 발제한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자통이 2021∼2022년 북한에 보고한 대북보고문과 지령문(2021년 3월 8일, 2022년 6월 16일 지령수수후 6월 21일 대북보고, 2022년 8월 28일 대북보고문)을 분석한 결과 언급된 하부망과 새끼조직 등 지역조직과 단체만 68개로 조사됐다”며 관련 내용을 공개했다. 자통은 조직을 민간기업으로 위장, 상부조직을 ‘이사회’, 총책은 ‘이사장’, 조직원은 ‘임원’, 하부 새끼조직은 ‘새끼회사’ 등으로 불렀다.
가장 많은 곳은 영남권으로 거제·통영·고성·진주·양산 등 경남지역 18곳과 영주·예천·봉화 등 경북 지역 7곳을 합쳐 25곳이었다. 이어 대전·보령·서산·당진 등 충청권이 16곳으로 뒤를 이었다. 이어 춘천·원주·강릉·철원 등 강원권은 9곳, 광주·화순·구례·여수 등 호남권은 8곳, 송파·동대문·강동·강남·은평구 등 서울은 5곳, 인천·광명·동두천·양주 등 인천·경기권은 4곳, 제주는 1곳으로 드러났다.
유 원장은 “창원간첩단 기소장에 나와있는 대북보고문과 지령문을 분석한 숫자”라며 “이미 구축된 하부망과 새끼회사뿐만 아니라 앞으로 구축할 새끼회사를 포함한 것으로 이미 구축된 하부망은 전체 절반 가량으로 분석됐다”며 “지도에 표시하면 창원간첩단 조직만으로도 ‘대한민국이 뻘겋게 표시된다’”고 설명했다. 하부망·새끼회사 67곳에는 민주노총, 진보당 등에 침투한 것으로 언급된 조직은 포함되지 않았다.
하부망·새끼회사 조직원들 중에는 북한과 연계된 사실을 알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유 원장은 “자통 등 지하조직은 단선연계 복선포치(單線連繫 複線布置)의 조직 운영 원칙을 준수한다”며 “단선연계 복선포치의 조직 형태는 상하 조직원만 일대일로 접촉하고 상위 조직원은 하위 조직원을 여러 명 두되 하위 조직원끼리 서로 알 수 없도록 차단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국가정보원 수사처장을 지낸 윤봉한 국가안보통일연구원장은 토론에서 “최근 제주·창원·진주·전주 및 서울에서 검거된 일련의 간첩단 사건은 오늘날 북한 연계조직들이 전국적 단위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입증한다”며 “이들 조직이 합법적 활동 거점으로 지역 진보당과 단체들을 활용하면서 하층·중층 통일전선의 구축을 시도했던 사실로 미뤄 이번에 적발된 간첩조직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밝혔다. 윤 원장은 “북한전문가들은 전국회의, 민주노총, 진보당, 전농 등 진보단체를 위시해 정치·사회·종교·학원 등 각계각층에 조직적 간첩세력이 활동하고 있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윤 원장은 “고(故) 황장엽 노동당 비서는 국내에 5만 여명에 달하는 북한 스파이가 활동하고 있다고 언급했다”며 “북한 공작원 출신인 토론자 김동식씨는 통상 공작원보다 한 단계 위인 ‘선생’급 고정간첩망 20여개 조직 60~100여명이 활동 중일 것이라 예측했다”고 설명했다.
독일의 경우 통독전 서독내 슈타지 간첩은 비밀 정예요원 2만~3만명으로 통일 후 드러났다. 서독 연방의회 원내 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한 의원 협조자, 총리 보좌관, 여당 원내총무, 통일부 장관 등 고위급 간첩, 정계 재계 학계 종교계 언론계 학생운동권 등 사회 전반에 2만∼3만명이 활동했으며, 협조자를 포함할 경우 10만명을 상회할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문화일보 정충신 선임기자
고물가·가계부채·환율 불안” 한은, 긴축 기조 이어갈 전망
오른 공공요금도 변수
“물가 안정에 중점 둘 것”
“고물가·가계부채·환율 불안” 한은, 긴축 기조 이어갈 전망
한국은행이 인플레이션(물가오름세) 하락 속도의 불확실성, 높은 가계부채 비율, 환율 상승 압력이 다시 높아질 가능성 등을 향후 통화정책의 잠재 위험으로 진단했다. 이 같은 진단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긴축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설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은은 8일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 “이번 금리 인상 과정에서 마주한 여러 위험 요인 가운데 상당 부분이 여전히 해소되지 못한 채 잠재 리스크로 남아 있다”고 밝혔다.
우선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지만, 기조적 물가 흐름을 나타내주는 지표들이 하방 경직성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3.3%까지 내려왔지만, 한은이 추정한 기조적 물가지표의 중위값은 지난 4월 3.9% 수준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웃돈다.
한은은 전기·도시가스 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이 오랜 기간에 걸쳐 물가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봤다. 또 예기치 못한 공급 충격 등으로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다시 오를 가능성도 거론됐다.
이상형 한은 부총재보는 이날 설명회에서 호주·캐나다 등이 깜짝 인상에 나선 것에 대해 “호주·캐나다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하락했다가 반등하고 근원물가 경직성에 관한 우려가 나오면서 통화정책을 좀 더 제약적인 수준으로 가져가 물가를 목표 수준으로 만들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나라는 호주·캐나다와 같다고 볼 순 없으나 물가 상황을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높은 가계부채 수준 등 금융 불균형 해소가 생각보다 더딘 점도 위험 요소로 꼽혔다. 한은은 “주택 가격이 여전히 소득 수준과 괴리돼 고평가됐고, 가계부채 비율도 높은 수준”이라며 “정부 규제 완화 등 영향으로 올해 들어 주택 가격 하락세가 빠르게 둔화하고, 주택 관련 대출을 중심으로 은행 가계대출도 재차 증가함에 따라 가계부채 디레버리징(부채 상환·축소)이 지연될 상황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달러 환율 상승 가능성도 안심할 수 없는 요소다.
한은은 “경상수지 적자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추가 인상하거나 국내 통화정책 기조가 조기에 전환될 경우에는 환율 상승 압력이 다시 커질 수도 있다”며 “경상수지 개선이 지연되면 성장 하방 위험과 외환 수급 불균형 위험이 높아지면서 대외건전성에 대한 신뢰가 약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와 같은 ‘신용·유동성 위기’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한은은 “물가 안정에 중심을 두고 긴축 기조를 상당 기간 이어나갈 것”이라며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 성장 하방 위험과 주요국 통화정책 변화 등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판단해갈 것”이라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 MB 시절로 '전속력 후진'
지난 주에는 윤석열 정부의 언론 정책을 상징하는 두 개의 큰 사건이 잇따라 일어났습니다. 첫째는 경찰에 의한 MBC 뉴스룸과 기자 자택 압수수색, 둘째는 감사원과 감찰을 앞세운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의 면직입니다.
많은 시민들이 미차 타임머신을 타고 15년 전인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즉 MB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시감을 느꼈을 겁니다. 윤석열 정부의 언론 정책을 상징하는 이 사건들이 MB 시절의 사건들과 데칼코마니처럼 겹치기 때문입니다. 15년 전 MB 정부도 윤석열 정부처럼 MBC PD수첩에 대한 압수수색과 기소를 감행했고 감사원과 검찰을 앞세워 정연주 KBS 사장을 해임시켰습니다.
MB 언론장악의 설계자 이동관의 귀환
https://newstapa.org/article/0EPdU
그런데 이런 'MB 시절로의 퇴행'을 마치 확인이라도 시켜주는 듯한 보도가 나왔습니다. 대통령실이 MB 시절 언론 장악의 설계자이자 지휘자였던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을 방통위원장 후보로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입니다. 대통령실이 보도에 대해 부인하지 않으면서, 이동관 씨의 방통위원장 내정설은 거의 기정사실화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4월, 뉴스타파는 MB 시절 정권 차원에서 자행된 언론 장악 작전의 총지휘자가 이동관 씨라는 사실이 적시된 대통령 기록물과 국가정보원 내부 문건을 찾아내 공개한 바 있습니다. 오늘은 이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도합니다.
이동관 언론 장악 문건에 남은 적나라한 행태
뉴스타파가 확인한 20여 건의 문건들은 이동관 씨가 수장으로 있던 청와대 대변인실과 홍보수석실이 직접 생산했거나 요청해서 만들어진 문건들이었습니다.
문건들에 따르면 이동관 씨는 2008~2010년 청와대 대변인과 홍보수석으로 재직하면서 ① 대변인실은 물론 수석비서관실까지 동원해 언론 모니터를 강화했고 ②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를 ‘문제 보도’로 낙인 찍어 때로 수정까지 요구했으며 ③ 국정원으로부터 공영방송 내부 동향과 언론인 축출 방안을 보고받고 ④ 국정원에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실행 계획을 세우도록 지시했습니다.
이렇게 명확한 증거가 드러났는데도 이동관 씨는 아직 단 한마디의 사과를 하지 않았고 윤석열 정부는 이동관 씨의 임명을 강행할 태세입니다. 윤석열 정부의 언론관이 어떤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집회 시위 탄압도 MB처럼
지난 주에는 언론계 뿐 아니라 집회 시위 현장에서도 중요한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5월 31일 경찰은 전남 광양 포스코에서 망루 농성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한국 노총 간부의 머리를 진압봉으로 무차별적으로 내리쳐 부상을 입혔고, 같은 날 민주 노총 야간 문화제를 강제 해산하는 과정에서는 4명을 체포하고 4명에게 부상을 입혔습니다. 집회 시위 현장에서는 2017년 3월 이후 6년여 만에 캡사이신 분사기가 등장했고 경찰이 살수차 재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역시 MB 시절을 연상케 하는 장면들입니다. 지난 2009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승인 아래 경찰이 노동자들에게 최루액을 뿌리고, 진압봉을 휘둘렀던 쌍용차 강제 진압 사태도 생각나고, 무리한 강제 진압으로 철거민과 경찰 등 6명이 숨졌던 용산 참사도 생각납니다. 현장에서는 집회 시위에 대한 경찰의 대응 수위와 폭력이 도를 넘고 있다는 우려들이 나옵니다.
배경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있습니다. 지난 5월 23일 윤석열 대통령은 집회, 시위에 엄정한 법 집행을 주문하면서 집회 대응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서는 면책을 하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14, 5년 전 이명박 정부가 내렸던 방침과 판박이처럼 똑같은 발언입니다.
직무를 충실히 이행한 법 집행 공직자들이 범법자들로부터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국가가 강력히 지지하고 보호할 것입니다. 경찰과 관계 공무원들은 불법 행위에 대해서 엄정한 법 집행을 해줄 것을 당부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2023.5.23 국무회의 발언 중
시위대 검거 등 정당한 공무집행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면책을 보장하여 적극적인 공권력 행사를 보장하도록 하겠습니다. 소병철 당시 법무부 기획조정실장/2008.3.19.
윤석열 정부의 전속력 후진
이 모든 일들이 지난 한 주 사이에 벌어진 일입니다. 집권 초반부터 퇴행의 조짐을 보여왔던 윤석열 정부는 집권 1년차를 맞아 퇴행의 속도를 급속하게 올리며 뒤쪽으로 급발진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퇴행적 급발진은 이제 1년도 남지 않은 총선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언론의 감시와 견제 기능을 무력화시키고 공영방송을 장악하는 것, 노조 혐오 정서에 편승해 노조 때리기로 지지층을 결집하는 것이 총선 승리를 위한 정지 작업이라고 판단하는 것이겠죠.
그러나 언론 자유와 노동 3권, 집회 시위의 자유는 모두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입니다. 지지기반 강화와 정파의 승리를 위해 헌법적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입만 열면 강조하는 자유 민주주의라는 가치와 가장 거리가 먼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현 시점 윤석열 대통령의 내면은 러시아나 중국 같은 권위주의 국가의 지도자와 더 닮아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뉴스타파
이직에도 세대차이…나이 들수록 '적은 월급 감수'
통계청 2021년 일자리 이동 통계 발표
임금 감소 일자리 이동 60세 이상 높아
청년층 5명 중 1명 1년 새 일자리 이동
등록 취업자 2549만 명 전년비 2.6%↑
월급이 줄어드는 데도 직장 옮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재작년 한 해 동안 일자리를 이동한 임금 근로자의 36.4%가 임금이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통계청이 8일 발표한 '2021년 일자리 이동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0∼2021년 중 이직한 임금근로자 219만 8000명 가운데 36.4%는 임금이 줄어들었다. 일자리를 옮기는 주된 이유가 기본적으로 임금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적지 않은 수치다.
일자리 이동 임금증감액
임금이 줄어든 일자리로 이동한 비율을 연령별로 보면 60세 이상(44.6%)이 가장 높고, 50대(40.7%), 40대(36.9%), 30대(32.5%), 20대 이하(30.7%) 순이었다. 성별로는 여성(35.0%)이 남성(37.4%)보다 낮았다.
이동 전후 임금 감소 폭은 25만원 미만(12.2%)이 가장 많고 이어 50만원∼100만원 (7.2%), 25만원~50만원 (6.8%), 100만원~200만원 (5.3%), 200만원 이상(4.9%) 등으로 나타났다.
2021년 전체 등록 취업자(4대 사회보험 등 행정자료로 파악되는 임금·비임금 근로자)는 2549만 명으로 전년보다 65만 8000명 증가했다.
일자리 이동 여부를 보면 미등록에서 신규 진입(15.8%), 같은 기업체 근무(68.7%), 기업체 간 이동(15.5%) 등이다.
통계청 자료 / 임금근로자 임금증감액 차이
일자리 이동률은 30세 미만(20.9%), 30대(15.9%), 60세 이상(14.7%) 순으로 높았다. 청년(15∼29세) 취업자는 한 해 동안 5명 중 1명이 일자리를 옮긴 셈이다.
2020년에는 등록 취업자였으나 2021년 제도권 밖 취업, 실직 등으로 미등록된 취업자는 336만 8000명으로 전년보다 12만 5000명 줄었다.
일자리를 옮긴 사람들을 종사상 지위별로 보면, 임금근로자는 93.1%가 직장을 옮긴 뒤에도 임금 근로를 지속했지만, 자영업자자 등 비임금근로자는 85.0%가 임금 근로로 전환했다. 사업을 접고 월급쟁이가 된 경우가 많았다는 의미다.
통계청 자료 / 이동자 일자리 이동현황
2020년 중소기업 근로자 1552만 6000명 가운데 2021년에도 같은 직장에서 일한 사람은 1025만 명(66.0%), 다른 중소기업으로 옮긴 사람은 234만 8000명(15.1%)이었다. 대기업으로 옮긴 사람은 40만 9000명(2.6%), 비영리 기업으로 옮긴 사람은 18만 6000명(1.2%), 미등록 상태가 된 사람은 233만 2000명(15.0%)이었다. 중소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뒤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는 일은 여전히 높은 벽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통계청이 발표한 이날 발표한 일자리 통계는 일용·특수형태 근로자를 제외한 상시 임금근로자를 대상으로 집계한 것이다. 임금 정보는 사회보험·과세자료 등으로 파악된 월평균 세전 근로소득 기준이다.
시민언론 민들레
'천안함'이라는 사상검증, 보수-진보 언론의 합작
북격침'에 대한 합리적 의문 제기 불온시하는 언론
잘못된 질문에 답할 게 아니라 질문 온당한지 물어야
사실상 하나의 답변밖에 허용치 않는 질문 강요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의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 내정과 사퇴 사태가 확인시켜 준 것들 중 하나는 한국사회에서 펼쳐지고 있는 사상검증, '천안함'이라는 사상검증이다. 천안함은 북한에 의해 격침된 것인가, 아닌가, 이 두 가지 선택지에 대한 답변을 해야 하는 사상검증이다. 사실상 두 가지가 아니라 하나의 결론, '북한의 소행이며, 나는 그것을 진리로서 믿습니다'라는 답변밖에 용납되지 않는 '건전한 사상'의 검증이다.
이래경 이사장의 여러 과거의 발언들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파편적인 해석을 보여주고 있지만 천안함 침몰 원인의 진상에 대한 한국언론의 보도 역시 그 점에서 판박이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한 그루의 나무만을 보고 숲 전체를 얘기하는 격이다. 의도적으로 거두절미하고 자의적인 사실의 선택으로 전체의 진상이라고 내놓는 이른바 ‘보수’ 언론의 보도는 말할 것도 없지만, 그 주장의 헛점과 그 같은 주장들의 의도를 경계하고 지적해야 할 이른바 '진보'언론들도 그 사상검증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천안함의 함장이었던 이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부하들 죽인 게 나인가 북(北)인가?”라고 물었다고 하는데, 세상의 일들이 단지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나뉜다고 생각하는 듯한 이가 대한민국 해군의 영관급 장교, 특히 대형 전투함의 지휘관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그같은 단순논리가 천안함 침몰 사태를 과학과 진실규명의 문제에서 종교와 신앙의 영역으로, 그것도 저급한 종교의 차원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그같은 유사종교화, 사상검증의 강요 속에서 경계에 실패한 책임을 져야 할 함장이 오히려 전쟁 영웅처럼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요지경이 펼쳐지고 있다.
천안함 침몰원인을 조사해온 민.군 합동조사단이 20일 오전 국방부에서 조사결과를 공식 발표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역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TV로 이를 지켜보고 있다. 2010.5.20. 연합뉴스
침몰 원인에다 진상 왜곡 은폐 의문 겹쳐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순찰중이던 천안함이 두 동강 나고 46명의 해군 장병이 희생된 사건에 대해 당시 이명박 정권은 북한 잠수함의 어뢰 공격에 의한 격침으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정부의 사고 원인 발표는 의문의 해소가 아닌 또다른 의문, 더욱 심각한 의문의 출발이었다. 사고 원인에 더해 진상의 왜곡과 은폐에 대한 의문이 겹쳤다.
북한에 의한 격침설의 근거가 10가지 제시되면 그 근거를 뒤집고 반박하는 10가지, 20가지의 논거들이 제시됐다. 당시 대통령이던 이명박 씨 자신이 “내가 배에 대해 조금 아는데, 북의 공격과는 무관하다”고 발언했었다. 당시 한미 합동훈련에 참가한 미군 장교도 훈련 중 발생한 사고라고 말한 사실이 당시 언론에 보도까지 됐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북 잠수정에 의한 격침으로 ‘방침’이 선회한 듯했다. 특히 조선일보의 '북 격침' 주장이 이를 이끌었다. 도저히 어뢰에 의한 폭발이라고는 볼 수 없는 수 많은 반증들이 나왔지만 모두 무시됐다.
많은 의문을 제기하다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해 재판을 받아온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위원(진실의 힘 대표)이 지난해 6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던 것은 숱한 의문과 의혹들에 충분한 근거가 있다는 점이 공인된 것이다. 북한 어뢰 공격설을 뒤집는 좌초설을 주장해 온 그에 대한 재판 과정은 그의 말처럼 “국방부의 조작과 허위와 은폐, 거짓을 드러내는” 과정이었다. 법원은 천안함 프로펠러가 휘어진 현상과 증거로 제시된 어뢰추진체 백색흡착물질에 대한 정부의 발표가 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되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천안함 침몰은 북 격침에 의한 것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결론은 7일 촛불행동의 논평처럼 “다른 주장을 펴면 희생자를 모독하고 한국 해군의 명예를 손상시킬 뿐만 아니라 북의 입장을 옹호한다는 지탄을 받게" 돼버렸다. 이번의 이래경 이사장 일로 인해 한때 흔히 볼 수 있었던, 정치인들간의 토론회에서 이에 대한 답을 강요받고 ‘북한의 소행’이라고 답하고서야 대한민국의 공직을 맡을 자격을 얻는 '의식'이 다시금 되살아날 수도 있다.
신상철 대표의 "과학적인 분석과 판단이 필요한 일을 거의 종교와도 같이 ‘믿어라, 믿지 않으면 종북이다’라고 한다"는 말처럼 과학과 진실규명의 문제를 종교와 신앙, 맹신과 광신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천안함 침몰에 대한 의혹 제기는 매우 단순하고 상식적인 것이었다. 사건 당시 인근 해역에서는 한미합동 대잠수함 경계훈련이 전개되고 있었다. 그같은 삼엄한 경계 상황에서 ‘북한이 작전 중인 한미해군의 탐지망에 전혀 걸리지 않은 채, 1.7톤에 달하는 중어뢰를 장착할 수 있는 130톤 연어급 잠수함으로 해류가 강한 지역까지 침투해, 그것도 순찰함에 불과한 천안함을 공격할 수 있겠는가’하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게다가 많은 이들이 제기하듯이 북의 잠수함이 천안함 공격 후 유유히 도주까지 했다면 작전 대실패에 따른 책임추궁이 전혀 없었다는 것도 의혹을 낳는다.
신 대표의 말이나 촛불행동의 논평처럼 “천안함 사건은 현재 진행형 사건”이며 희생장병들의 진정한 명예를 위해서라도 이 사건에 대한 진실 찾기는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천안함은 지금도 계속 침몰되고 있으며 두 동강 나고 있는 것이다. 장병들은 두 번 세 번 거듭 죽임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질문 자체를 용납치 않는 상황, 장병들 거듭 죽이는 일
천안함 침몰은 사건 그 자체로서만 아니라 북한 소행론이라는 결론이 국내외 정치 및 외교안보적으로 어떻게 이용됐는가와 연결된다. 염무웅 문학평론가의 “이 사건은 한반도 정세에만이 아니라 당시 일본 민주당 정부의 붕괴에도 깊은 연관이 있을 수 있는, 요컨대 남북한과 중국 일본이 포함된 동북아 평화체제의 성립을 미국 군사지배세력은 용납하기 어려웠던 게 아닌가 싶고, 그 과정에서 천암함 사건이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는 지적 그대로다.
이런 많은 의문과 의혹들을 조선 중앙 등의 이른바 '보수' 언론은 외면하며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이들 언론의 보도 자체가 의문을 만들고 증폭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를 견제해야 할 이른바 '진보' 언론들이 그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가. 코로나 바이러스 미국 기원설 등과 함께 이래경 이사장의 의문 제기의 취지를 ‘음모론 신봉’으로 몬 경향신문의 보도가 이 사안에 대한 진보 언론의 보도의 단면을 보여준다.
지금 한국언론에 필요한 것은 천안함 침몰이 북 소행이냐 아니냐는 양자택일 앞에서, 실은 한 가지 정해진 결론에 답하는 것이 아니다. 그 질문 자체가 온당한 것이냐고 묻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 질문을 강요하는 자칭 타칭 ‘보수’ 언론과 ‘보수 권력’, 보수라기보다는 진실 추구의 시도를 종북으로 모는 이들을 견제 반박해야 할 언론들이 오히려 그 질문 안에 갇혀 있다. 결과적으로 '보수' 언론의 '천안함에 대한 질문 봉쇄'를 돕고 있다. 의도되지 않은 보수-진보 언론의 '천안함의 종교화'의 합작이 벌어지고 있다. / 시민언론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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