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때리기’ 윤 정부와 호흡…국힘, 선진화 특위 구성
사설] 국민의힘 ‘시민단체 정상화’라니, 미몽에서 깨어나라
일본도 인정한 부산항 ‘욱일기’ 국방부가 부인…촌극의 전말
또 이런다 ..보순경제언론 ‘집값 띄우기’ 안간힘
조작·패륜보도 침묵하는 언론의 ‘동업자 카르텔’
5월4주 국정수행평가
윤 대통령 지지율 44.7%, 올해 최고치 기록
"尹 사진 활쏘기는 폭동" 진정에 인권위 "조사 대상 아냐“
경제활동 떠받쳐온 ‘베이비붐 세대’ 막둥이도 60대 진입
내 편이 하면 ‘자유’, 상대 편이 하면 ‘내란’인 것은?
尹대통령 "사회복지 통폐합, 경쟁·시장화·산업화해야“
시행령 정치, 윤석열 정부의 시행령 전수조사 해보니
지금의 받아쓰기 보도는 그 어느 때보다 나쁘다
김예지 "당론보다 양심 믿었다... 입법기관이니까“
“500명에게 3000만원씩 준다”...부산시, 청년 위해 매년 2700억 쓴다
반도체 재고 83% 급증…제조업 재고율 '역대 최고’
미국만이 살길’이라고 외친 이승만과 윤석열 대통령의 공통점
은퇴하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는 프랑스 노인들
웃음바다 된 장례식장... 우아하게 늙는 법 알게 해준 사람
부모를 요양원에 모시는 건 패악"... 이 나라 자식들이 택한 길
늘 웃던 할아버지인데... 그가 스스로 삶을 마감한 이유
가난한 젊은이, 부유한 노인... 이 나라가 한국의 미래?
은퇴하면 이들처럼? 믿는 구석 있는 노인들
부모 부양 안 하면 벌금... 이 나라가 위기에 대처하는 법
한국 피하기 어려운 스테그플레이션 이지머니에 중독된 경제
대법 “위안부 합의 문서 비공개 정당”…피해자 ‘알 권리’ 외면
“미군 AI 드론, 가상훈련 중 임무 방해된다며 조종자 살해”
민간단체’ 보조금 횡령 의혹, 언론은 왜 ‘시민단체’로 싸잡아 비난할까
"조선 보도→ 국힘 논평→ 보수단체 고발, 윤석열 정부 각본 가동“
특수활동비와 권력의 흑역사 그리고 검찰
미국 ‘도심 매장 털이’ 골머리
학력별 임금·노동시간 격차 해소가 교육개혁 열쇠다
아이 맡길 어린이집 없어 떠납니다”···무너지는 농촌 ‘보육 인프라’
‘천재’ 아인슈타인, 여성에겐 폭군이었다?
‘시민단체 때리기’ 윤 정부와 호흡…국힘, 선진화 특위 구성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한겨레> 자료사진
국민의힘이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국고보조금 투명화’를 추진한다며 시민단체 등을 대상으로 감사를 벌였는데, 여당도 “시민단체를 정상화하겠다”며 ‘시민단체 때리기’에 나섰다.
국민의힘은 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시민단체 선진화 특위 위원 9명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하태경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현직 의원 중에서는 류성걸·이만희·서범수 의원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원외에서는 홍종기 경기 수원시정 당협위원장, 민경우 대안연대 공동대표, 김혜준 사단법인 함께하는아버지들 이사장, 김익환 열린북한방송 대표, 김소양 전 서울시의원 등 5명이 이름을 올렸다. 국민의힘은 “시민단체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사회적 양심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와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국민의힘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을 겨냥해 “시민운동을 가장한 비즈니스”라며 특위를 꾸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단체는 피해자가 수령한 위자료 중 20%를 공익사업에 사용할 수 있다는 약정을 두고 있는데, 단체가 피해자를 위해 수십년째 무료변론을 비롯한 각종 지원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쏙 뺀 채 “피해자를 위한다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데 목적이 있던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며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윤석열 정부의 시민단체 압박에 발을 맞춘 조처로도 풀이된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공익 목적인 보조금 사업의 회계 부정, 목적 외 사용 등 불법적 집행이나 낭비 요소가 있는지 그 실태를 점검하기 바란다”고 지시한 뒤 정부는 시민단체 등 민간단체의 보조금 감사에 돌입했다.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단체의 돈줄을 죄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사설] 국민의힘 ‘시민단체 정상화’라니, 미몽에서 깨어나라
국민의힘이 29일 이른바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하태경 의원을 위원장에 임명했다. 애초 보수언론의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에 대한 악의적 보도에 호응해 발족시키겠다던 ‘시민단체 정상화 태스크포스(TF)’를 아예 특위로 격상시킨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 특위를 통해 시민단체 운영 전반에 대한 철저한 점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음해 의도가 뚜렷한 보도에 반색하며 맞장구친 것으로도 모자라, 이를 빌미로 그동안 국민의힘에 비판적이었던 시민단체 전반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등 이참에 손을 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너무나 시대착오적이라 어처구니가 없다.
시민모임은 정부 보조금도 받지 않고 시민 기부금으로만 운영하는 단체다. 시민모임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로부터 받기로 약정한 승소금의 20%는 일제 피해자 관련 공익 목적에 사용하게 돼 있다. 설령 시민모임과 유족들 간에 이견과 마찰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 사이에서 원만히 해결할 문제다. 여기에 ‘사건 브로커 수수료’ 같은 음습한 프레임을 씌우려는 것은 그 의도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반성과 사과는커녕 아예 시민단체 전체로 전선을 확대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국민의힘이 시민단체를 ‘정상화’하겠다고 나설 권한과 자격이 있나. 도대체 누가 누구를 ‘정상화’하겠단 말인가.
이는 지난해 말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 시민단체의 보조금 사용 현황을 전면 감사하겠다고 밝힌 것의 연장선이다. 당시에도 국고보조금을 핑계로 시민단체를 길들이고 비판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라는 비판이 컸다. 이번엔 아예 여당이 정권의 돌격대를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권에 비판적인 시민단체의 정당성에 흠집을 내고 목소리를 위축시키려는 의도임을 세상 사람이 다 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도 비판적인 시민단체를 악마화하려는 움직임이 끊이지 않았다. 청와대가 직접 나서 블랙리스트, 화이트리스트를 만들어 비판적 단체에 대한 국고 보조는 끊고, 친정권 보수 관변단체들에는 국고에 더해 기업 후원까지 몰아주도록 했다. 이걸 국정농단으로 기소해 유죄 판결을 받아낸 게 윤석열 대통령도 당시 수사팀장으로 참여했던 특검이다. 국민의힘은 정략적으로 국민 분열을 부추기고 시민사회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헛된 시도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시민들은 국민의힘에 시민단체를 ‘정상화’할 권한을 준 적이 없다. 지금은 1980년대가 아니다.
일본도 인정한 부산항 ‘욱일기’ 국방부가 부인…촌극의 전말
반복되는 ‘욱일기 논란’ 3가지 질문
2014년 5월27일 일본 요코스카 항에 해상자위대 함정 구니사키호가 정박한 모습. 연합뉴스
31일부터 열리는 한국 주최 다국적 해양차단훈련 ‘아·태순환훈련’에 참여하는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이 ‘자위함기’를 달고 29일 부산항에 입항했습니다.
앞서 자위함기를 두고 욱일기 논란이 다시 일자 국방부는 “국제적인 관례”에 따를 뿐이라며 “자위함기와 욱일기는 조금의 차이는 있긴 하다”고 밝혔습니다.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욱일기 논란, 어떻게 봐야 할까요?
① ‘자위함기’와 ‘욱일기’는 다르다?
지난 25일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이번 논란에 대해 “자위함기와 욱일기는 조금의 차이는 있긴 하다”고 말했습니다.
국방부의 이런 해명은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해 11월 일본에서 열린 국제관함식에서 우리 해군이 참가하면서 욱일기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우리 군은 “일본 자위함기는 욱일기와 형태가 좀 다르다. 형태가 아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저희는 자위함기라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욱일기는 붉은 원 모양의 ‘히노마루’가 정중앙에 위치하는데, 자위함기는 히노마루가 왼쪽으로 치우쳐 있어 다르다는 겁니다.
일본 외무성 자료 갈무리
정작 일본은 그리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본 외무성이 지난 2019년에 게시한 욱일기 홍보 자료를 보면 자위함기를 욱일기의 일종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본 외무성은 “해상자위대 자위함기와 육상자위대 자위대기는 1954년 제정된 자위대법 시행령에 따라 욱일 모양을 사용하고 있다”며 홍보 자료에 1998년 자위함기를 달고 부산항에 입항한 일본 자위대함 사진을 실었습니다.
일본은 “자위함기는 욱일기가 맞고, 욱일기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인데 우리 군은 “자위함기는 욱일기가 아니다”라고 하는 상황입니다.
2019년 4월21일 중국 칭다오에서 열린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창설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일본 해상자위대 함선에 자위함기가 걸려있다. EPA 연합뉴스
② ‘욱일기 게양’ 국제법으로는 문제없나
왜 우리 군은 “자위함기는 욱일기가 아니다”는 해명까지 하는 걸까요? 우리 국민 정서상 용납하기 어렵지만 ‘욱일기 게양’을 막을 국제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 때문일 겁니다.
국제 관례상, 해군 함정이 바다에서 항해할 때는 선미에 자기 나라 국기를 답니다. 그리고 함정이 외국 항구에 기항할 때는 해군기를 추가로 게양한다고 합니다. 일본 입장에선 해상자위대의 깃발인 자위함기를 함정에 다는 것입니다.
일본 외무성 유튜브 갈무리
게다가 일본 자위대함이 부산항에 입항하더라도 일본 자위대함은 사실상 ‘일본땅’입니다. 통상 국제법적으로 해군 함정은 치외법권 지역으로 인정됩니다. 해군 함정은 외국 영해에 들어가더라도 그 나라 국내법 적용을 받지 않고, 함정이 소속된 나라의 법이 통용된다는 의미입니다. 일본 국내법은 자위함기 게양을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앞서 1998년 김대중 정부 때와 2008년 이명박 정부 때도 해상자위대 함정은 한국 해군이 주최한 국제관함식에 욱일기를 게양하고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축구와 야구 등 각종 스포츠 이벤트에서 욱일기를 두고 두 나라 국민들의 감정이 악화돼 왔습니다. 한·일관계가 악화할수록 욱일기 논란이 증폭되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11월 우리 군은 제주에서 열린 국제관함식에 해상자위대를 초청하면서 욱일기 게양 자제를 요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비상식적인 요구”라고 거부하며 팽팽히 맞서다가 끝내 제주 국제관함식 참석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지난해 8월15일 오전 도쿄 지요다구의 야스쿠니신사 경내에서 우익들이 전범기인 욱일기와 일장기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③ 욱일기는 ‘군국주의 상징’이 아니다?
일본 자위대함이 ‘자위함기’를 단 채 부산항에 입항한 뒤에도 논란의 불씨는 남아 언제든 되살아 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욱일기는 과거 나치 독일이 쓰던 ‘하켄크로이츠’나 다름없다고 보는 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줄곧 “욱일기는 하켄크로이츠와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하켄크로이츠는 나치가 만든 상징이지만, 욱일기는 일본 전통 문양으로 수백년 전부터 써왔다는 주장입니다.
3월10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세계야구클래식(WBC) B조 1라운드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한 관중이 욱일기를 들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대회 개막 전 WBC 조직위원회(WBCI)와 일본 라운드 조직위원회 측에 욱일기 응원 제지를 요청했다. KBO는 욱일기가 등장하자 대회 조직위원회 측에 항의했다고 밝혔다. 도쿄/연합뉴스
일본 외무성은 오늘날까지 경사와 번영의 상징으로 일상에서 쓰이는 욱일기를 홍보합니다. 당연히 이 홍보에는 일본이 이 깃발을 앞세워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며 한반도 지배권을 확보했고, 1931년엔 만주사변, 1937년엔 중일전쟁, 1941년엔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은 빠져 있습니다.
일본이 옛 제국주의 시절 일본군 깃발을 그대로 자위함기에 사용하고 일상에서 널리 쓰면서도 별 문제의식을 못 느낀다는 사실 자체가 욱일기 논란의 본질이라는 지적도 많습니다.
대형 스포츠 행사가 열릴 때마다 일본 팬의 ‘욱일기 응원’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2017년엔 피파(FIFA)의 아시아·태평양 지부인 아시아축구연맹(AFC)은 욱일기를 내건 일본 관중에 대한 책임을 일본에 물어 “차별적인 상징”이라며 벌금을 부과한 적이 있습니다.
과거 일본 제국주의 피해자들이 여전히 아시아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현실에서 욱일기는 단순히 ‘일본의 문화’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지난 2020년 1월6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가 미국 의사당 건물에 난입해 폭동을 벌인 가운데 한 남성이 남부연합기를 들고 있다. EPA 연합뉴스
욱일기를 하켄크로이츠보다 ‘미국 남부연합기’에 비교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법적으로 게양이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인종차별’의 상징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죠. 남부연합기는 미국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에 찬성했던 남군이 ‘분리독립’을 요구하며 썼던 전투 깃발입니다.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욱일기 응원’ 논란을 다룬 <비비시>(BBC)는 도쿄 소피아 대학 나카노 코이치 정치학과 교수의 발언을 인용해 “하켄크로이츠보다 더 나은 비교 대상은 미국 남부연합기”라며 “이 깃발은 금지되지 않았고 여전히 남부 주 전역에서 휘날리지만, 인종차별과 우월감의 상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지난 2020년 8월15일 미국 조지아주 스톤 마운틴 시내 근처에서 한 남성이 인종차별 반대 시위 군중을 향해 남부연합기를 흔들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지금도 미국에서 남부연합기 사용은 불법이 아니며 여전히 남부 지역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이 깃발은 ‘인종차별’과 떼놓고 설명할 수 없습니다. 남부연합기 자체가 ‘노예제 찬성’이라는 인종차별을 내포하는 데다, 지금도 백인 우월주의자 모임인 ‘쿠 클럭스 클랜(KKK)’이 즐겨 사용하기 때문이죠.
미국 사회는 수십년간 논쟁을 지속하며 인종차별의 상징인 남부연합기를 지우고 있습니다. 2020년 미시시피주가 주 깃발을 바꾸면서 이제 미국의 공식 주 깃발에서는 남부연합기가 완전히 퇴출됐습니다.
또 이런다 ..보순경제언론 ‘집값 띄우기’ 안간힘
▲ 지난 2월 정부의 규제완화 덕에 급매물 거래가 늘면서 전국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가 10개월 만에 반등했다.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는 두 달 연속 오르고 상승 폭도 커졌다. 18일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2월 전국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는 전월 대비 1.08% 올라 작년 4월(0.46%) 이후 처음으로 상승 전환했다. 사진은 18일 오후 서울 시내 아파트.ⓒ 연합뉴스
아파트값 거품이 빠지면서 가격이 정상화되고 있지만, 보수경제지들의 눈물겨운 '집값 띄우기' 운동이 계속되고 있다. 이들 언론들은 최근 서울 강남 일부 지역에서 집값이 소폭 오르자 '드디어 반등한다'면서 무주택자들에게 매수를 권하고 있다. 아울러 집값 하락으로 손해를 보는 갭투자자와 건설사들을 위한 정부의 지원도 주문하고 있다.
실수요자들에게 겁을 줘 아파트 가격을 떠받치고 투기꾼들과 건설사들에 정부가 막대한 지원을 퍼주는 게 이들 언론들이 바라는 그림이다.
[실수요자 협박] '집값 오르니 상투잡아라', 부추기는 보수언론
최근 서울 일부 지역에서 집값이 소폭 반등할 조짐을 보이자 보수 경제 언론들은 '지금이 매수할 시점'이라고 떠들고 있다. '집값이 또 오를 테니 지금 사라'는 실수요자들의 공포심리를 자극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한국부동산원이 매주 발표하는 주간아파트 동향을 보면 지난 22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0.03%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 단위로 집계하는 서울 아파트 가격이 상승한 것은 약 13개월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1년 넘게 하락세를 보이다가 겨우 한 주 반등하자 보수, 경제 언론들은 '반등 조짐'이라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지난 25일 '지금 아니면 늦는거 아닐까... 아파트 사겠다는 사람 늘었다'라는 제목의 <매일경제> 기사는 서울 송파구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의 말을 기사 최상단에 배치했다. 이 관계자의 주장은 "집주인들이 급매를 거둬들이면서 호가도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지금이 아니면 늦는거 아닐까'라는 생각에 문의하는 수요자들도 예전보다 더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 앞으로 수요가 몰리면서 집값이 오를 테니 지금 사라는 얘기다.
주간아파트 가격 겨우 1주 반등했는데 '상승' 호들갑
<매일경제>는 "아파트 전세 가격도 동반 상승했다"며 "전세가격 상승은 수요자들의 추가 하락 우려가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라는 자체 분석 결과를 덧붙이면서 아파트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선일보>도 25일 자 경제면에서 '서울 아파트 상승거래, 하락 앞질렀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서울 아파트 매매에서 상승 거래가 하락을 앞지른 것은 작년 4월 이후 1년 만이다"라며 "이 때문에 하락세를 이어가던 서울의 아파트 값이 바닥을 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한국경제TV> 역시 25일 '서울 집값 돌아섰다… 드디어 정책약발 먹혔다' 기사에서 "강남 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전역이 규제지역에서 풀리고, 대출·세제·재건축 등 각종 규제 완화 정책 시행으로 거래가 조금씩 늘기 시작하면서 최근 강남권을 중심으로 호가도 상승 전환했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한국부동산원과 부동산114 등이 발표하는 주간 아파트 동향 조사는 거래 호가를 위주로 이뤄지는 등 시장 상황을 완벽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주간 동향 조사가 오히려 집값 급등 등 가격 왜곡을 주도하는 측면도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이들 언론들이 주간 조사만을 바탕으로 '상승 반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탄탄한 근거를 갖췄다고 보긴 어렵다.
<중앙>은 평당 분양가 1억 시대 예고, 근거는 희박
이런 가운데 <중앙일보>는 분양가 평당 1억 아파트 시대가 온다며 분양가 띄우기에 나서고 있다. <중앙>은 지난 22일 기사(강남 아닌데…분양가 '3.3㎡당 1억' 찍을 곳?)에서 투기과열지구와 분양가상한제 적용이 서울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대부분 해제되면서 분양가가 크게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 <중앙일보>의 분양가 1억 전망 기사ⓒ 중앙
<중앙>은 서울 여의도와 영등포 일대에 최근 분양한 아파트 분양가를 거론하면서 "여의도가 분양가 3.3㎡당 1억을 찍는 첫 지역이 될 것이라고 예상된다"고 했다. 여러모로 무리가 있는 분석이다.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분양가는 금리와 시장 상황, 예상 수요 등 여러 변수를 감안해 결정된다.
그런데 <중앙>은 이에 대한 별다른 고려 없이 단순히 아파트 분양가가 상승한다는 추세만을 전제로 이런 전망을 냈다. 전망기사로 보기엔 신뢰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올해 분양된 수도권 아파트 25곳 중 12곳에서 청약 미달이 발생하는(부동산R114집계) 등 분양시장이 예전 같지 않은 상황도 <중앙> 기사에선 찾아볼 수 없다.
[투기꾼 지원] 조선 등 전세난 해소로 갭투기꾼 지원 제안
<조선일보>는 27일 자 기사(도봉·은평 전세 3억씩 급락… "집주인에 한시적 보증금 특례대출 필요")에서 전셋값이 하락하고 있는 상황을 진단하면서 '집주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여론 몰이에 나섰다. 전세 끼고 집을 산 갭투기꾼들이 어려울 테니 지원하라는 얘기다. <조선>은 이 기사에서 "갭투자로 집을 산 집주인들은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부족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대규모 전세난을 경고했다.
<조선>은 같은 날 또 다른 기사("전세 퇴거자금 대출에 한해 DSR 예외 적용해야")에서 구체적인 갭투기꾼 지원책을 제안했다. <조선>은 "세입자까지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며 소득에 따라 대출 한도가 정해지는 DSR을 퇴거자금 대출에 한해 일시적으로 적용하지 않는 방안, 별도의 특례대출 조성 등을 제안했다.
<동아일보>는 아파트 분양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어려움에 처한 건설사들을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동아일보>는 25일 자 지면 보도('알짜' 서울 재건축도 찬바람… "공급가뭄, 3년뒤 집값 자극 우려")에서 자금난으로 건설대금을 못 치르는 건설사들이 늘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그러면서 "시공사 부담을 덜기 위한 정부 역할이 절실하다"는 업계 관계자의 말을 비중 있게 실었다.
▲ <동아일보>는 아파트 분양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어려움에 처한 건설사들을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동아일보 갈무리
이와 같이 집값을 띄우기 위한 보수·경제언론들의 기사가 쏟아지고 있지만 반응은 냉담하다. 'de***'라는 아이디를 쓰는 한 누리꾼은 관련된 기사에 "지금 집값이 거품이라는 증거"라는 댓글을 남겼다. 누리꾼 'ji***'도 "기사 제목을 보니 **경제 신문은 집값 부추기고 젊은이와 집 없는 서민의 내집마련엔 1도 관심없는 사회 악 같은 존재"라고 비판했다.
갭투기꾼 지원을 해야 한다는 <조선> 기사와 관련해 'dw***' 아이디를 쓰는 누리꾼은 "2~3년 전 전세보증금 왕창 올린 임대인들 평균 1~5억 올린 이 보증금으로 무엇을 했을까, 대부분 갭투자해 집값 거품을 조장한 아주 악질 투기꾼들"이라며 "아파트값 하락하고 전셋값 크게 빠지자 돈 없다고 엄살부린다? 투기꾼들에게 반환금 대출해 주라고? 이런 게 언론이냐 투기꾼 앞잡이냐"라고 비판했다.
오마이뉴스 신상호
jin****
경제지들 집값부추겨서 수많은사람 고점놀이에물려서 빼박도못하니 또바통받기하기위해 총력을다하고있지요 아시아에서첯번째 산업졸업국가로진입한일본 1991년고가에서23년하락-87%로추락했듯이 한국1차하락하고 3차하락까지 손바뀜이되고나면 산업졸업에의해서 받처줄에너지가사라지므로 70년상승한 재산이 영원히 눈녹듯사라지는사이클이될것입니다 이번에아파트고점놀이에 보수세력 강남 경상도 세력들이 재산이다날라가고잇으며 직장인은30년노에직장에가입한꼴이되며 재산은사라지고 영원히본전은오지않는사이클입니다 그 나라모든노동자가 대졸이될때 산업졸업이찿아오면서 기업들이 돈안가저가면서 저금리로 시중에풀려서 투기판을이루고 끝나는것이 어느나라없이 다격어야하는것이며 일본이 그렇게재산이사라젖다고 한국도 준비하라고 착각의경제학이란책에 수년전에말해 주었지요 한국도 그대로 사고를다처놓았기에 앞으로 재산날라가고 가정파탄 자살 사회안전망붕괴 해외도피 국부유출 순으로 진행될것입니다
Chadasch Morag
전정권 부동산 폭등했다고 난리치던 놈들이
총선 다가오니 집부자와 토건족 강남표심 떨어질까봐 난리법석이냐?
조작·패륜보도 침묵하는 언론의 ‘동업자 카르텔’
한국 언론사에 또하나의 흑역사로 기록될 조선일보의 이번 조작보도, 패륜보도에 대해 다른 언론들은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이는 한국 언론이 진실추구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얼마나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주요 언론은 조선일보의 ‘분신방조, 유서대필’ 주장의 진위를 확인하는 데 적극 나서지 않았다. 2~3개 정도의 매체를 제외하고는 다수 언론이 조선일보의 조작보도, 패륜보도를 ‘방조’했다고 볼 수 있다. 언론이 상호 보도비평, 매체비평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동업자 카르텔’이 작용한 데다, 윤석열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검색 사이트인 ‘빅카인즈’에서 조선일보의 ‘분신 방조’ 기사가 보도된 16일부터 필적감정으로 ‘유서대필’ 보도가 허위로 판명된 24일까지 ‘분신+방조’ 및 ‘유서+대필’ 키워드로 10개 전국단위 종합일간지와 3개 경제지, 지상파 3사가 보도한 기사를 검색해보았다.
‘분신+방조’ 뉴스 검색 결과, 모두 56건이 보도되었는데, MBC 기사 15건, 경향신문 기사 15건, 한겨레 기사 8건, YTN 기사 7건이었다. 다른 일간신문은 0~2건이었고, 3개 경제지에서는 관련 기사가 단 한 건도 확인되지 않았다. 공영방송인 KBS는 2건, SBS 1건이었다.
‘유서+대필’ 뉴스 검색 결과도 비슷했다. 총 27건 중에 MBC 뉴스 11건, 경향신문 6건, 한겨레 5건이었으며, 다른 매체에서는 관련 뉴스를 발견할 수 없다.
경향신문과 MBC의 집중보도가 눈에 뜨인다. 경향신문은 조선일보의 ‘분신 방조’ 보도가 허위임이 밝혀지자 19일자 1면과 ‘조선일보 분신방조 프레임 보도’ 제목의 2면 전체, 그리고 사설을 통해 조선일보 보도를 적극 비판하고 나섰다.
“‘노동 혐오’ 드러낸 섬뜩한 ‘보도폭력’”(경향신문, 5월19일 1면)/“살인보다 더한 낙인...근거 없이 나를 죄인몰이 한 방식 똑같아”/“‘악재’ 돌파구 필요한 여권/보수 언론발 의혹 재확산”/ “취재 경위 부정확, 사진에 시너통 합성...보도 윤리 어겨”/“한술 더 뜬 원희룡, SNS로 음모론 제기”(2면)/“건설노동자 분신 악마화한 조선일보야말로 ‘언폭’이다”(사설)
MBC도 ‘분신방조’와 ‘유서대필’이 허위조작이었음을 집중 보도했다.
“악의적 왜곡보도...언론폭력 비판 잇따라”(5월17일)/“분신장면 담긴 조선일보 CCTV사진..검찰·경찰 ‘제공사실 없다’”(5월18일)/“죽을 일 아니다...10분 넘게 처절한 설득”(5월19일)/“마지막 유서 추가 발견...노조탄압 중단시켜 달라”(5월23일)/“건설노조, 조선일보·원희룡 고소..패륜 되풀이 말라”(5월23일)/“모든 유서 동일 필체..유서대필 일축”(5월24일)
한겨레도 기사와 사설을 통해 조선일보의 조작 보도를 비판적으로 다뤘으나 경향신문과 MBC 보도와 비교하고 ‘진보매체’라는 이름을 감안하면 적극적인 비판에 나섰다고 하기는 어렵다.
“분신 배후 보도 맞장구·경찰 물대포, 제정신인가”(한겨레, 사설, 5월19일)/“역사의 퇴행 실감나게 하는 ‘분신 배후 의혹’ 보도”(아침햇발, 5월22일)/“분신 양회동씨 유서 ‘글씨체 동일’..월간조선 대필의혹 반박”(5월24일)
다른 언론들은 이번 사안을 거의 다루지 않거나 건설노조의 조선일보 고소 및 기자회견 등 발표 위주의 뉴스를 건조하게 보도했다. 건설노조 탄압에 따른 노동자 분신과 조선일보의 조작 · 패륜 보도 문제가 제기되는 중에도 중앙일보는 “건설노조 광장 노숙 날...‘약주 해야지’ 돗자리 술판에 잔디 흡연”(5월17일) 제목의 기사를 통해 노조에 대한 혐오 보도를 생산해냈다.
시민언론 민들레
윤 대통령 지지율 44.7%, 올해 최고치 기록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40%대 중반을 기록했다는 여론조사가 나왔다. 누리호 발사, 한미 정상회담과 G7 히로미사 정상회담 등이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알앤써치가 CBS노컷뉴스 의뢰로 지난 24~26일 3일 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오차범위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전주 조사 대비 3.2%p 상승한 44.7%를 기록했다.
이러한 긍정평가는 이 여론조사 기관이 올해 실시한 조사 중 최고치다. 윤 대통령 지지율은 4월 17~18일 조사에서 33.2%를 기록한 후 지속해서 상승, 한 달여 만에 11.5%p 올랐다.
부정 평가는 직전 조사보다 1.7%p 하락한 53.2%를 기록했다.
지역별로 보면 대구 경북(TK)에서는 지지율이 전주 대비 4.8%p 오른 53.6%를 기록한 반면 부산 울산 경남(PK)에서는 1.0%p 떨어진 49.3%로 집계됐다.
연령별로는 40대(66.6%)와 50대(61.2%)의 부정평가 비율이 높았고, 긍정평가는 60세 이상(58.8%)이 가장 높았다. 30대는 전주 대비 부정평가가 8.8%p 하락했고, 긍정평가는 10.1%p 상승했다.
정당 지지율은 국민의힘이 1.7%p 오른 41.6%, 더불어민주당이 1.1%p 오른 43.3%였다. 정의당은 1.9%, 무당층은 11.2%로 집계됐다.
프레시안 이명선 기자
"尹 사진 활쏘기는 폭동" 진정에 인권위 "조사 대상 아냐“
'윤석열 대통령 부부 얼굴에 활쏘기' 행사와 관련해 인권위에 진정이 제기됐으나 시민단체는 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됐다.
앞서 지난 2월 11일 진보성향 시민단체인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은 서울 숭례문 일대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부부의 얼굴이 달린 인형에 활을 쏘는 행사를 진행했다.
이에 이종배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은 "헌정 질서에 대한 테러이자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반민주적 폭동일 뿐 아니라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어린이에게 활을 쏘게 하는 행위는 아동학대이자 비교육적 만행"이라며 인권위에 활쏘기 행사의 인권침해 조사와 행사 중단 권고를 요청하는 진정을 제기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피진정인은 시민단체 ‘촛불행동’ 대표이고, 시민단체 대표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0조 제1항 제1호에서 규정하는 우리 위원회 조사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이 진정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2조 제1항 제1호에 따라 각하한다"고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조사 대상으로 국가 기관, 지방자치단체, 각급 학교, 공직 유관 단체, 구금·보호 시설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 의원은 인권위 각하 결정에 대해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면 각하 결정을 하더라도 인권위법 제25조 제1항에 따라 인권 침해 및 아동 학대에 해당한다는 의견 표명을 국회나 정부에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5조에 따르면 위원회는 인권의 보호와 향상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관계기관 등에 정책과 관행의 개선 또는 시정을 권고하거나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
YTN 정윤주 (younju@ytn.co.kr)
경제활동 떠받쳐온 ‘베이비붐 세대’ 막둥이도 60대 진입
고령층 노동 공급 둔화…“취업자 수 증가폭, 5년 뒤 마이너스”
올해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모두 60대에 진입하면서 앞으로 고령층의 노동공급도 빠르게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저출생 속에서도 생산인구를 지탱해온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 노동력 부족에 맞닥뜨릴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은 30일 경제전망보고서 심층분석에 실린 ‘노동공급의 추세적 변화에 대한 평가 및 전망’ 보고서를 통해 고령층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분석, 전망했다. 보고서는 “2010년대 들어 노동공급을 나타내는 경제활동인구수는 저출생 심화에도 불구하고 증가세가 유지돼왔으며, 55세 이상 고령층 경제활동 참여 확대가 주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의 15세 이상 인구는 연평균 0.9% 증가했지만, 경제활동인구는 연평균 1.2% 늘어나 이전 추세를 유지했다. 지난해 기준 55세 이상 고령층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010년보다 7.4%포인트 높아졌는데, 청년층(6.0%포인트)보다 상승폭이 컸다. 경제활동참가율은 생산가능인구 중에서 취업자와 실업자를 합한 경제활동인구의 비율을 나타낸다.
올해는 베이비붐 세대가 모두 60대에 들어서는 시기로, 이들 세대가 얼마만큼 노동시장에 남아 있을 것인지가 향후 노동공급 전망에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베이비붐 세대는 지난해 기준 경제활동인구의 15.6%를 차지했다.
보고서는 모형을 통해 향후 고령층의 경제활동참가율을 추정했는데, 성별·연령 계층별로 이질적인 모습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65세 미만 여성 고령층은 교육 수준 향상, 서비스업 확대 지속 등으로 증가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65세 미만 남성 고령층의 경제활동참가율은 정체되거나 줄어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했다.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진다면 향후 고령층 경제활동참가율 상승 추세는 점차 둔화되고, 전체 경제활동참가율 추세도 2020년대 중반을 전후해 하락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고서는 추정했다. 이에 따라 향후 5년간(2023~2027년) 취업자 수 증가폭은 연평균 7만~14만명에 그쳐 2010~2019년 평균치인 34만4000명에 크게 못 미칠 것으로 나타났다. 2028년부터는 취업자 수 증가폭이 제자리 또는 마이너스에 진입할 수도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최근 대안으로 거론되는 외국인 근로자 고용 확대 등을 실시하더라도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고령층과 여성(노동시장 참여가 저조한 30~44세)의 경제활동참가율을 주요 7개국(G7) 최고 수준으로 높이고 외국인 인구 비중을 G7 평균 수준에 맞출 때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0.2%포인트가량 높아지지만 향후 5년간 취업자 수는 연평균 25만~30만명 늘어나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보고서는 “고령화에 따른 성장잠재력 약화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해 노동공급의 양적 측면뿐만 아니라 생산성, 인적자본 축적 등 질적 측면의 개선에도 중점을 두고 경제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내 편이 하면 ‘자유’, 상대 편이 하면 ‘내란’인 것은?
경찰이 지난 25일 저녁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불법파견 사용자 엄정 처벌과 조속한 대법원 판결을 요구하며 야간문화제를 하려던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통투쟁’과 민주노총 금속노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강제해산하고 연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6~17일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의 1박2일 서울 도심 상경집회 이후 국민의힘과 정부는 연일 강경 입장을 밝히며 노조 때리기에 나섰다. 31일 열리는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도심 집회를 앞두고 그 강도는 최고조로 치달았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특단의 강력한 대책을 취해야”(18일) → 윤석열 대통령 “우리 정부는 그 어떤 불법도 방치, 외면하거나 용납하지 않을 것”(23일)→ 당정 “불법 전력 있는 단체와 출퇴근 시간대 시위 제한 검토”(24일)→경찰, 6년 만에 집회 강제 해산 훈련(25일)→경찰, 대법원 앞 비정규직 노동자들 투쟁문화제·노숙 농성 원천 봉쇄, 참가자 3명 체포(25일)→윤희근 경찰청장 “필요한 경우 캡사이신 분사기 사용”(30일)
하지만 국민의힘은 지난 정권에서 전광훈 목사를 비롯한 보수단체의 ‘집회·시위의 자유’를 강조했고, 1년 전 대통령실은 “집회의 자유는 기본권”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여당 시절’에는 정권을 비판하는 집회와 시위에 강경한 입장을 보여왔다. 개별 집회의 양상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순 있다. 그러나 ‘내 편’일 때만 기본권을 소중히 대하는 정치권의 이율배반적인 태도가 계속되면서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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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서울 중구 서울경찰청 기동본부에서 경찰 기동대원들이 불법 집회·시위 해산과 불법 행위자 검거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통투쟁’과 민주노총 금속노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불법파견 사용자 엄정 처벌과 조속한 대법원 판결을 요구하면 야간문화제를 하려고 하자, 경찰이 이를 제지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1년 전에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권”
지난해 6월7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집회·결사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권 중 기본권”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한 지난해 5월 이후 보수단체가 양산 평산마을 사저 앞에서 확성기 등을 이용해 ‘욕설 시위’를 벌인 것에 대한 입장이다. 당시 대통령실 관계자는 “자유를 임의대로 억누를 수 없다”며 “집회 과정에 범법이 있다면 당연히 법에 따라 처벌받을 것”이라고 했다. 집회 과정상 일부 범법 행위가 있더라도 ‘기본권’을 침해할 순 없다는 취지다.
윤 대통령도 같은 날 오전 대통령실 출근길에 ‘문 전 대통령 사저 앞 보수단체 시위를 어떻게 보느냐’는 물음에 “대통령 집무실도 시위가 허가되는 판이니까 법에 따라서 (해결)되지 않겠나”라고 했다.
지난해 7월17일 문재인 전 대통령에 반대하는 단체 회원들이 문 전 대통령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에 모여 문 전 대통령 수사, 전직 대통령 예우박탈 등을 주장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한 반대단체 회원이 사저 앞에서 확성기를 사용한 문 전 대통령 비판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 자택-집무실 두고는 여야는 ‘같은 편’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문 전 대통령 자택 앞 시위를 막기 위해 전직 대통령 사저를 집회 금지장소에 포함시키는 집시법 개정안을 연이어 발의했다.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집시법 개정은 내로남불”이라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양당은 100m 이내 집회·시위 금지 대상에 대통령 집무실과 전직 대통령 자택을 포함하는 방안에 공감대를 이루고 법개정을 추진했다. 이에 참여연대는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전⋅현직 대통령 지키기라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입법권을 남용한 것으로, 정치적 야합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지난 2019년 10월3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 당원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정권 헌정유린 중단과 위선자 조국 파면 촉구 광화문 규탄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각목집회’는 두둔한 자유한국당
특히 지난 정권에서 국민의힘인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집회의 자유’에 목소리를 크게 내왔다. 2019년 10월3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당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는 대규모 보수단체 집회에서 참가자 46명이 각목을 경찰관에 휘둘러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체포되며 논란이 일었다. 자유한국당은 이튿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경찰의 대응을 비판했다.
이날 회의록을 보면 홍문표 자유한국당 의원은 “어제 광화문 집회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있었는데 대체적으로 평화적인 집회”였다며 민갑룡 당시 경찰청장에게 “그게(그 집회가) 문제가 되고 있냐”고 따져 물었다. 현재 경남도지사인 박완수 한국당 의원도 “국민이 헌법에 의해서 가지고 있는 집회·시위에 관한 자유(가 있다). 어제 집회가 그렇게 폭력적이었냐, 그렇게 불법적이었냐”고 민 청장을 질타했다. “일부 폭력 행위가 있었다”는 민 청장의 답변에 박 의원은 “이걸 폭력으로, 그냥 동원된 인력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당시 민주당은 ‘내란죄’까지 언급하며 경찰에 강력 대응을 촉구했다. 김한정 민주당 의원은 “청와대로 진격하고 경찰을 무력화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선동을 해도 되는, 이런 극도의 사회문란 유도행위를 방치할 경우 국민들이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겠냐”며 집회 주최측에 대한 고발장을 민 청장에게 제출하기도 했다.
2019년 개천절 광화문에서 열린 집회에서 불법·폭력 행위를 주도한 혐의를 받는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목사가 구속영장이 기각된 2020년 1월2일 저녁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서며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1월 극우 인사인 전광훈 목사가 광화문 집회에서 폭력 행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 위기에 처했을 때도 한국당은 두 팔을 걷어붙였다. 황교안 당시 한국당 대표는 전 목사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에 대해 “종교집회와 관련한 구속 시도는 종교 탄압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정말 신중해야 한다”며 “종교의 자유,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철저히 보장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때 서울중앙지법은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전 목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왜 집회가 늘어나는지 반성부터”
참여연대 지난 24일 정부와 여당의 집회 제한 검토 방침에 대해 성명을 내어 “왜 정부에 반대하는 집회시위가 늘어나는지는 반성하지 않고, 일어나지도 않은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집회 자체를 막겠다고 나서는 것은 위헌이자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며 “사실상 현 정권에 대한 불만과 비판의 목소리를 차단하고 공권력을 남용해 비판자를 처벌하겠다는 불통의 선언이다”고 비판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尹대통령 "사회복지 통폐합, 경쟁·시장화·산업화해야"
"재정범위 넘어선 보장, 사회 갉아먹어…현금복지 최소화, 서비스는 시장화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난립한 사회복지 서비스의 합리적 통폐합'과 함께, 복지 서비스 분야에서의 "적절한 경쟁체제 도입"을 통한 "시장 조성" 및 "산업화"를 주문했다. 현금성 복지는 사회적 최약자들을 대상으로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시와 함께였다.
윤 대통령은 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사회보장 전략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사회보장 서비스 자체가 하나의 경쟁이 되고 시장화되면서 이것이 산업화된다고 하면, 이것 자체도 우리 사회의 성장과 발전에 중요한 또 팩터(factor. 요소)가 된다"면서 "(난립한 복지 서비스를) 합리적으로 통폐합해서 시장 조성을 좀 제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가 좀 많은 재정을 풀어서 사회보장을 부담해 주려고 하면, 사회보장 서비스 자체도 시장화가 되고, 산업화가 되고, 경쟁 체제가 되고 이렇게 가야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재정의 범위를 넘어서는 사회보장은 우리 사회 스스로를 갉아먹는 게 된다"며 "그래서 적절한 성장과 발전을 저해하지 않는 정도의 균형을 맞춰줘야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냥 뭐 사회적 기업이다, 사회보장 서비스로 한다 그래서 일률적으로 거기에다가 돈 나눠주는 식으로 해 가지고는 그냥 돈을 지출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라면서 "그것이 시장화되지 않으면, 그것이 성장에 기여하는, 그런 성장 동력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를 들어서 우리는 국방이라고 하면 '국방비 지출을 덜 해야 경제가 발전한다'(라고…), 국방이라는 개념을 지출 요소로만 봤지만, 국방비를 쓰고 전력을 고도화시켜 나가다 보면 이것을(무기를) 수입해서만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체적으로 만들고, 그걸 또 경쟁화·시장화시켜 나가면서 국제 경쟁력이 생기고 수출도 할 수 있게 됨으로써 결국은 방위산업이라고 하는 하나의 인더스트리(industry. 산업)가 생겨난다"며 "국방비라고 하는 게 1년에 50조, 60조 지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경제성장을 견인해 나가는 요소가 된다"는 비유를 들었다.
그는 "그래서 사회보장이나 사회복지 서비스라는 것도 바로 이런 국방과 방산의 관계처럼 만들어나가야만 지속가능하게 충분하게 해줄 수 있다"며 "방산이 잘 되면 국방비를 더 늘릴 수가 있고 그게 크게 우리 경제에 부담이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 논리"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사회보장 서비스나 복지 사업이 중앙과 지방에, 중앙에는 한 천여 개, 지방에는 한 1만여 개 정도가 지금 난립을 하고 있어서 국민들이 알지도 못한다"며 "이걸 시장화를 시키고 경쟁을 하고 서비스의 생산성과 질을 높이려고 해도 이렇게 많은 종류가 난립을 해 가지고 이게 도대체 경쟁이 되겠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이건 경쟁을 안 시키려고 하는 것이고 나눠주기만 하려고 해서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이런 것도 좀 단순화해야 국민들이 내가 어떤 서비스를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고, 몰라서 활용 못하는 것을 없앨 뿐만 아니라, 서비스의 질을 더 고도화하고, 이것이 우리 경제에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을 견인해 나가는 쪽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했다.
"사회보장 서비스도 시장의 경쟁을 통해서 수요자로 하여금 선택의 자유를 보장해줘야 된다"는 측면도 그는 언급했다.
"현금 복지는 최소화, 서비스 복지는 시장화"
윤 대통령은 "그래서 저는 이것을 합리적으로 통폐합을 해서 시장 조성을 좀 제대로 하고, 또 현금 복지, 돈 나눠주는 것은 정말 사회적 최약자 중심으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를 들어서 쌀이나 부식이나 기본적인 생활수요는 각자가 다양하게 구매해서 선택해서 하는데, 그런 기본적인 것을 자기 역량으로 할 수 없는 그런 분들에 한해서만, 소위 말하는 현금 유동성을 제공을 (해야)하는 것"이라며 "현금 유동성이라는 것을 마구 함부로 (지원)해서는 안 된다. 만약에 이런 걸 하려고 하면 바우처를 활용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가 현금복지는 선별복지로, 약자 복지로 해야지 보편복지로 하면 안 된다. 보편복지는 가급적이면 사회 서비스복지로 가야 된다"며 "그러면 사회서비스 복지는 전부 보편복지를 해야 되느냐, 그것은 아니다. 취약계층에 대한 서비스복지도 있는 것이고, 보편복지라고 하는 것도 일률적으로 똑같이 주는 것이 아니라 좀 부족한 사람에게는 좀 더 많이, 좀 덜 부족한 사람에게는 조금 적게,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 균형 있게 어느 정도는 갖출 수 있어야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보편복지가 서비스복지로 갈 때의 장점은 이것이 시장화될 수 있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에 경쟁을 조성함으로 해서 더 나은 서비스가 만들어질 수 있게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라며 "서비스가 복잡하고 중앙정부에서 하는 것이 수천 개, 지방정부에서 하는 것이 만여 개가 되면 경쟁 환경이나 시장이 만들어지겠느냐. 그러면 결국은 퍼주기 하는 것밖에 안 된다"고 재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현재의 복지체계의 문제점에 대해 "서비스에 종사한다는 사람들도 늘 불만이다. 왜 '나한테 주는 월급과 보상이 이 정도 밖에 안 되냐'고 하고, 서비스를 받는 국민 입장에서는 '서비스가 질이 이렇게 나쁘냐' 이렇게 또 얘기를 하게 된다"며 "그래서 거기서도 서로 불만이 없으려면 적절한 경쟁체제가 만들어져서 생산성이 향상되고, 그렇게 하면서 서비스복지에 종사하는 분들에 대한 보상체계도 점점 나아질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자기 부처 예산 양보 못해? 뇌물 받아먹는 것보다 더 나쁜 사람들"
윤 대통령은 또 복지체계 통폐합과 관련해 "각 부처가 협업을 해서 정리하고 통폐합할 수 있는 건 하고, '우리 부처가 다루는 예산이나 권한이 줄어드니까 양보를 못 한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서는 국민을 위하는 게 아니라 자기 이익을 위하는 것"이라고 공무원들에게 경고했다.
그는 "중앙-지방 간에, 또 각 정부 부처 간에 협업이 이루어져야 되는 것이지, '이 일은 복지부가 하는 일이다', '노동부가 한다', '여가부에서 한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어떻게 하는 게 국민한테 도움이 되고 어떻게 하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기준으로 공직자가 판단을 해야지, 자기 중심, 자기 부처 중심으로 판단을 하면 부패한 것"이라면서 "저는 뇌물 받아먹는 사람보다 더 나쁜 사람들은 그런 것으로 보고 있다"고 주의를 촉구했다.
국가는 정치화하면 안돼, 발전해야 지속 가능…교육 다양성 보장해야"
윤 대통령은 나아가 "결국 국가의 지속가능성, 발전 가능성이라는 차원에서 발전(을) 해야 다양한 사회보장 서비스와 경우에 따라서는 현금지급을 해낼 수 있는 재정이 뒷받침될 수가 있다"며 복지와 성장, 발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사회보장이라고 하는 것은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데 필요한 조건"이라며 "행복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경제적·물질적인 조건이 있고, 또 정신적·문화적 이런 조건이 있어야 된다"고 했다. 그는 "사회보장만 논해 가지고는 공중에 뜬 얘기가 되고, 국민의 행복만 논해 가지고도 공중에 뜬 얘기가 된다"면서 "국가와 국민의 안전, 국가의 지속가능성, 발전, 또 이런 행복을 가능케 하는 다양한 재원, 이런 모든 것을 우리가 종합적으로 생각을 하기 위해서 오늘 이 자리가 만들어졌다"고 이날 회의의 의미를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저는 늘 그런 생각을 한다. '국가란 무엇인가' 또 '국가란 무슨 일을 해야 되는냐', '해야 되는 일 중에서 우선순위가 어떻게 되느냐' 늘 대통령으로서 거기에 대해서 제 스스로 자문하고 고민을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국가는 먼저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또 국민을 보호해야 된다. 밖으로부터는 우리나라를 공격하는 외적으로부터 보호를 해야 되고, 국내적으로는 법을 위반해서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범법자들로부터 선량한 국민들의 안전을 보호해야 된다"며 "또 한편으로 국가는 정치화하면 안 된다. 늘 발전을 해야 한다. 발전을 해야 기회가 주어지고, 국민들이 구심점을 가지고 단합을 하고, 국가가 지속가능해질 수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의 역량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과학기술에 달려 있다"며 "국가가 계속 발전하기 위해서는 억지로 과학기술을 양성한다고 엘리트들을 따로 어디 모아서 귀족처럼 대우해 주고, 마치 사회주의 국가의 올림픽선수촌에 올림픽 선수들을 길러내듯이 해서는 국가가 발전하기 어렵다는 것은 이미 이제 역사로서 다 입증이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유와 창의를 중시하고, 정부가 늘 공정하고 효율적인 시장을 조성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선도적인 투자로 시장을 조성하기도 하고, 이렇게 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유와 창의를 가지고 자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 국가가 해야 될 일"이라며 "그리고 그런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 국가가 교육을 잘 받도록 해야 되지 않겠나"라고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가급적이면 다양한 교육 수요를 반영해서 국가가 제공을 해야 하고, 또 국가가 제공하지 않는 그런 부분에 대한 선택의 자유를 보장해줘야, 교육의 다양성을 보장해줘야 국가가 지속가능하게 발전하는 나라가 될 수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금·노동개혁과 함께 윤석열 정부 3대 과제로 꼽힌 '교육개혁'을 우회 언급한 것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이날 회의에는 석재은 한림대 교수, 강혜규 보건사회연구원 부원장 등 사회보장위원회 민간 위원들과 한덕수 국무총리, 추경호 경제부총리,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등 국무위원들이 참석했다. 여당에서는 윤재옥 원내대표, 박대출 정책위의장, 강기윤 보건복지위 간사가 참석했고, 대통령실에서는 이관섭 국정기획수석, 최상목 경제수석, 안상훈 사회수석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프레시안 곽재훈 기자
시행령 정치, 윤석열 정부의 시행령 전수조사 해보니
지난 1년 동안 윤석열 정부가 추진·공포한 대통령령을 전수조사했다. 역대 정부와 비교해 가장 많았다. 국회를 우회하고 국정과제를 추진한 흔적들이 나타났다.
헌법은 대한민국 법체계 서열 1위, 최상위 법이다. 국가라는 공동체의 형태와 기본적인 가치 질서를 규정한다. 그래서 친절하지 않다. 정확히 국가는 어떻게 존재해야 하고, 자유와 인권, 기본권은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다. 대신 헌법 조항 곳곳에 ‘법률에 의하여’ ‘법률에 따라’라는 문구들이 들어가 있다. 법으로 정해서 구체화하라는 뜻이다.
법은 입법부인 국회가 만든다. 역시 친절하지 않다. 예를 들어 새롭게 세금을 부과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가정하면, 국회는 법률안에 정확히 누가·언제·어디에 얼마를 내야 하는지 등을 세세하게 적지 않는다. 처음부터 다양한 이해관계를 모두 담아 법으로 세부 내용을 정해두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서다. 자칫 국회에 과도한 권한이 집중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그 때문에 새 법률안에도 헌법과 비슷한 문구가 들어가 있다.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대통령령은 말 그대로 대통령의 명령이다. 헌법은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해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 집행에 필요한 사항에 대해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제75조)”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가 법을 만들면서 모든 것을 정할 수 없으니 법을 실제로 집행하고 시행하는 행정부의 수장, 대통령이 필요한 사항을 대신 정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대통령령을 시행령, 행정입법 등으로 부른다.
법률안의 세부 내용을 대통령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국회가 만든 법이 법체계 서열 1위인 헌법을 넘어설 수 없고 위반하면 무효가 되듯, 대통령령도 법률이 ‘맡긴다’고 정해둔 범위 안에서만 새로 만들거나 바꿀 수 있다.
다만, 대통령에게 재량이 상당 부분 있고 같은 법을 놓고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각종 논란이 불거지기도 한다. 역대 정부에서는 법체계 서열상 상위법인 법률을 하위법인 대통령령이 흔들거나 그 이상의 역할을 하는 일이 반복됐다. 법률 개정이 필요한 주요 국정과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회 협조를 받기 어려운 경우, 또는 사회적 논란을 쉽고 빠르게 피하기 위해 대통령령 제‧개정에 과도하게 기대면서다. 이른바 ‘시행령 정치’다.
직제 개편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어김없이 시행령 정치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법 기술을 적극 활용한다는 비판과 여소야대 상황에서 불가피한 조치라는 주장이 부딪친다. 〈시사IN〉은 지난 1년 동안 윤석열 정부가 추진‧공포한 대통령령을 전수조사했다.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이번 정부의 대통령령에는 국회를 우회하고 국정과제를 추진하려 한 흔적들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대통령령은 네 가지 절차에 따라 추진‧공포된다. 입법예고→법제처 심사→차관회의→국무회의 순이다. 국무회의까지 통과하면 공포된다. 〈시사IN〉이 법제처 정부입법지원센터를 통해 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정부 출범 1년 사이 추진(입법예고~차관회의)‧공포된 대통령령을 집계한 결과(2023년 5월10일 오후 7시 기준), 윤석열 정부는 총 1042건(2022년 5월10일~2023년 5월10일)으로 확인됐다. 문재인 정부는 837건(2017년 5월10일~2018년 5월10일), 박근혜 정부는 851건(2012년 2월25일~2013년 2월25일), 이명박 정부는 660건(2008년 2월25일~2009년 2월25일)이었다.
다만 정부입법지원센터를 통하면 전임 정부 임기 말 추진돼 새 정부 들어 공포된 대통령령도 함께 집계된다. 오롯이 해당 정부가 추진한 대통령령만을 분류하기 위해 대통령 취임일 이후 입법예고된 대통령령을 기준으로 별도 집계한 결과, 윤석열 정부 809건, 문재인 정부 660건, 박근혜 정부 653건, 이명박 정부 609건으로 나타났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 출범 1년 추진‧공포된 대통령령은 모두 600건대에 머물렀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150여 건 늘어났다(〈그림 1〉 〈그림 2〉 참조).
대통령령 추진‧공포 건수가 늘어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시간의 흐름과 사회 변화로 법률이 새로 만들어지거나 개정되면, 이를 집행하는 대통령령도 당연히 바뀌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국가적 재난이나 불가피한 경제문제 등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길고 엄격한 국회 입법 절차를 건너뛰어야 할 때도 있다.
다만 윤석열 정부가 1년간 추진‧공포한 대통령령에서 유독 튀는 지점이 있다. 직제 개편이다. 각 정부 부처와 기관에 속한 조직과 인력 등을 조정하는 직제 개편은, 통상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대통령령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정권이 교체되면 행정 환경이 달라지고, 여기에 맞춰 조직 진단도 새롭게 이뤄진다. 새 정부 초기 큰 폭의 행정부 변화가 이 과정에서 생긴다. 정부 부처의 실·국 등 조직 개편과 인력 배치 및 조정을 총괄하는 행정안전부(행안부)가 관계 기관들과 협의해 입법예고한다.
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직제 개편안을 종합하면, 윤석열 정부는 직제 개편을 크게 세 차례 추진했다. 2022년 6월과 11~12월, 2023년 3월이다. 윤 정부 출범 한 달 뒤인 2022년 6월 단행된 첫 번째 직제 개편은 범정부 차원의 조직 개편보다는 전 정부 흔적을 지우는 작업에 가까웠다. 일부 정부 부처가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을 담당하던 부서들의 간판을 바꾸고 인력 구성을 재조정했다. 법무부(검찰 조직 개편), 국방부‧통일부(대북정책 담당 부서), 산업통상자원부(에너지 관련 부서) 등이 대표적이다.
두 번째 조직 개편은 2022년 11월 이뤄졌다. 51개 정부 부처 직제가 일괄 개편됐다. 정부는 개편을 추진하면서 행정 효율화를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본격적으로 시행된 ‘통합활용정원’ 제도가 적용됐다. 전체 공무원 수 동결을 전제로 부처별 정원 1%를 추려낸 뒤, 그 인력(1%)을 행안부가 부처별 업무 등을 고려해 재배치하는 시스템이다. 세 번째 직제 개편은 윤석열 정부 집권 2년 차에 접어든 2023년 3월 단행됐다. 정부는 ‘3+1(노동·교육·연금·정부) 개혁 과제와 민생경제 활성화 달성’을 위해 전담기구를 설치하고 인력을 보강했다.
시행령 개정 통한 ‘검찰 복원’
역대 정부와 윤석열 정부 직제 개편 시기 및 내용을 비교하면, 윤석열 정부는 집권 2년 차에 접어들 때까지 사실상 ‘국정과제 수행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부조직개편안 확정과 정부의 핵심 정책 선정(3+1 개혁)이 늦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정부들은 출범과 더불어 핵심 정책을 내걸고 취임 전후로 대통령령을 통한 직제 개편을 마무리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명박 정부(녹색성장)는 취임 전 노무현 정부 협조를 받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정부조직개편안을 확정한 뒤 직제를 개편했다. 박근혜 정부(창조경제, 정부3.0)는 출범과 동시에 추진해 한 달 사이 마무리했다. 국정농단 사태로 인수위 없이 출발한 문재인 정부(소득주도성장)는 대통령 취임 2개월 뒤에 정부조직개편안을 마련하고 직제 개편까지 마쳤다.
윤석열 정부의 직제 개편과 역대 정부의 직제 개편의 차이점은 법무부와 검찰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번 정부가 ‘시행령 정치’ ‘법 위의 시행령’ 지적을 받게 된 계기도 법무부와 검찰의 직제 개편이었다. 2022년 6월 대통령령으로 신설한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이 신호탄을 쏘았다. 윤석열 정부가 과거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폐지하면서 고위 공직 후보자에 대한 1차 인사 검증 기능을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에 맡겼다. 문제는 정부조직법상 법무부 사무에는 공직자의 인사 관련 조항이 없다는 점이다. 국회를 통해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했으나, 대통령령으로 인사정보관리단 설치를 추진하면서 첫 ‘시행령 정치’ 논란이 촉발됐다.
법무부 인사검증관리단 출범 두 달 뒤인 2022년 8월2일에는 행정안전부에 경찰국이 신설됐다. 역시 직제 개편(행정안전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개정안)을 통해서였다. 경찰국은 행안부 장관이 경찰을 지휘‧감독할 권한을 가지는 조직이지만, 검찰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경찰국 신설 배경 최상단에 검경 수사권 조정이 있어서다. 이른바 ‘검수완박(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 법안에 따라 검찰의 직접수사권이 축소되고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지게 되면서, 경찰 권한이 강력해지니 견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었다.
2022년 7월27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 경찰국 신설을 반대하는 근조화환들이 놓여 있다.ⓒ시사IN 조남진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검찰 권한을 다시 키우는 작업이 시작되면서 경찰 통제를 강화하는 것을 두고, 경찰을 검찰의 하부 기관으로 보는 편향된 인식으로 경찰국 신설을 추진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법 위의 시행령’ 논란이 불을 키웠다. 정부조직법이 규정하는 행정안전부의 사무에 ‘치안’이 빠져 있다. 법률에 ‘치안’ 관련 규정이 없는 행안부가 대통령령으로 경찰국을 만들어, 치안의 핵심인 경찰 사무를 관할하는 것은 위헌·위법에 해당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세 차례 직제 개편 과정에서 법무부와 검찰의 내부 변화는 다른 부처들과 비교해 가장 크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사법 분야 공약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을 ‘검찰 개악’이라고 강조하며 “파괴된 법치주의를 정상으로 회복시키겠다”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대통령령 개정을 통한 검찰권 복원으로 공약을 이행하고 있다.
윤 대통령 취임 직후 법무부는 ‘검수완박’ 법률을 대통령령(검찰청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상당 부분 무력화했다. 검수완박 법안은 검찰 직접 수사 개시 범위를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범죄·대형참사)에서 2대 범죄(부패·경제범죄)로 축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률안에는 검찰의 직접 수사가 가능한 범죄에 대해 ‘부패·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라고 적혀 있다.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령은 이 문구 속 ‘중요 범죄’에 ‘사법질서 저해 범죄’를 넣었다. 직접 수사가 막힌 상당수 범죄를 2대 범죄(부패·경제범죄) 안에 포함하는 방식이었다. 검찰 수사 범위가 다시 넓어졌다.
검찰 직제 개편은 대통령령으로 넓힌 검찰 수사 범위에 맞춰 조직 권한과 규모를 키우는 작업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축소·폐지했던 검찰의 직접 수사 부서가 순차적으로 부활했다. 가장 최근인 5월4일에는 새로운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개정안(대통령령)이 입법예고됐다. 문재인 정부 당시 검찰 축소 기조 속에 폐지된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범정)이 되살아나고, 대검에 마약·조직범죄부가 신설되며 반부패부가 대폭 보강되는 내용이 담겼다.
대검 범정은 ‘검찰총장의 눈과 귀’로 불리던 조직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검의 사찰 우려 등을 이유로 범정을 꾸준히 축소·격하시켰다. ‘고발 사주’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손준성 서울고등검찰청 송무부장이 2020년 총선 당시 옛 범정의 축소된 조직인 수사정보정책관실 소속이었다. 현재 대검에는 범죄정보담당관만 남아 있다. 그러나 이번 대통령령 개정안에 따른 새 범정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현재 범죄정보관리담당관은 범죄에 관한 수사 정보만 다룰 수 있지만 새 범정은 ‘범죄 정보’ 전반을 분석·관리할 수 있다.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는 반부패부와 마약·조직범죄부로 분리됐다. 하부조직도 신설된다. 문재인 정부 시절 ‘검찰 개혁’ 일환으로 축소·통합됐던 부서들을 이번에 다시 쪼개는 동시에 확대한 것이다. 반부패부 아래에는 반부패 1·2·3과를 두고 별도로 반부패기획관이 반부패부장(검사장)을 보좌하도록 했다. 과거 중앙수사부(중수부) 수준의 규모로 커진다. 대검 마약·조직범죄부 아래에는 마약과, 조직범죄과, 범죄수익환수과 등 3개 과와 마약·조직범죄기획관을 두도록 했다. 5월4일 입법예고된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은 5월16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됐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추진해온 대통령령을 통한 ‘검찰 복원’은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
대통령령을 통한 법무부와 검찰의 변화에는 다른 기관의 적극적 협조와 지원도 이뤄졌다. 2022년 11~12월 단행된 2차 직제 개편(51개 정부 부처와 기관 일괄 개편) 과정에서 배치된 정부 부처 신규 인력은 총 458명이다. 뜯어보면 법무부와 검찰에 각각 101명, 54명이 배정됐다. 전체 정부 부처 가운데 증원된 인력이 가장 많다. 다음으로 많은 곳이 교육부 36명과 보건복지부 23명이었다. 법무부는 전자감독·가석방 전담, 교도소 과밀 해소·의료, 여성·아동범죄 대응, 다크웹 전담 수사 등에 신규 인력을 배치했다고 밝혔다.
최측근 장관 배치는 대통령령 때문?
법무부와 검찰 관련한 대통령령이 입법예고부터 국무회의 의결까지 속전속결로 이뤄진 것도 이번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법무부 인사검증관리단은 2022년 5월24~25일 입법예고 기간을 거쳐 다음 날 법제처 심사, 그다음 날 차관회의 통과까지 하루 단위로 행정절차가 이뤄졌다. 국무회의 의결까지는 총 1주일이 걸렸다.
검찰 수사 범위를 넓히는 ‘검수원복’ 대통령령 역시 2022년 6월14일 입법예고됐고 6월21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특히 6월14일 입법예고를 하면서 함께 첨부한 개정령안에 “입법예고 결과, 특기할 사항 없음”이라고 적기도 했다. 입법예고를 한 당일에 ‘결과’까지 적어서 낸 것이다. 앞서의 5월4일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개정안도 국무회의 통과까지 12일 만에 모든 절차가 마무리됐다.
법제처는 검사의 직접 수사 범위를 넓히는 내용의 ‘검수원복’ 대통령령에 대해 “제때 정비해 사법체계 혼란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라는 의견을 내고 입법예고 기간 단축 확인서를 법무부에 전달했다. 법무부가 입법예고와 함께 ‘긴급을 요하는 경우’라는 이유를 들어 기간 단축을 요청한 것에 대한 답변이다. 행안부도 경찰국을 설치하는 대통령령에 대해 입법예고 기간을 40일에서 4일로 단축해달라고 요청했다. ‘국민의 권리 또는 의무와 직접 관련 없는 행정 내부의 조직과 정원에 관한 사항이며, 언론 등을 통해 대외적으로 공개된 사항’이라는 게 행안부의 단축 요청 사유였다. 법제처는 이를 받아들였다.
입법예고는 법령안의 내용을 사전에 국민에게 알려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행정절차법을 보면 입법예고 기간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40일 이상으로 하도록 되어 있다. 예외는 있다(행정절차법 제41조 3호). △입법 내용이 국민의 권리·의무 또는 일상생활과 관련이 없는 경우 △신속한 국민의 권리 보호 또는 예측 곤란한 특별한 사정의 발생 등으로 입법이 긴급을 요하는 경우 △상위 법령 등의 단순한 집행을 위한 경우 △단순한 표현·자구를 변경하는 경우 등 입법 내용의 성질상 예고의 필요가 없거나 곤란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입법예고함이 공공의 안전 또는 복리를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다.
검수원복, 인사검증관리단, 경찰국 등 검찰과 관련한 대통령령은 예외 조항에 모두 포함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행안부는 직제 개편과 관련한 대통령령 개정안은 그동안 어느 정부든 입법예고 기간이 5일가량이었다는 입장이다. 실제 역대 정부 출범 1년간 직제 개편 절차를 확인한 결과, 입법예고 기간은 3~5일 사이였다. 그러나 지난 정부들과는 차이가 있다. 과거 정부는 대체로 출범 전후로 정부 조직 개편을 마쳤다. 윤석열 정부처럼 인사검증관리단, 경찰국 등과 같이 법률안과 충돌하는 조직 신설을 ‘대통령령’으로 추진하지는 않았다.
왼쪽부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완규 법제처장.ⓒ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검찰과 관련한 대통령령을 추진‧공포하는 데 핵심 기관은 행안부와 법무부, 법제처였다. 공교롭게도 이 기관 수장들은 모두 이번 정부 장관·처장 가운데 유일하게 윤석열 대통령과 오랜 인연이 있는 최측근이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윤 대통령의 고등학교(충암고), 대학교(서울대 법대) 후배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검찰 내 대표적 ‘윤석열 라인’으로 분류됐던 인사다.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최연소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완규 법제처장은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79학번·사법연수원 23기 동기다.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그의 징계 관련 사건 변호를 맡았다. 윤 대통령 장모 등 가족 사건을 변호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공포된 대통령령의 또 다른 키워드는 규제완화다. 윤석열 정부는 규제완화를 주요 국정과제이자 지난 1년 성과로 강조했다. 1호 대통령령이 부동산 규제완화였다. 2022년 5월10일 정부 출범 직후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를 1년간 배제했다. 종합부동산세법 시행령도 고쳐 주택분 종부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100%에서 60%로 낮췄다. 일시적 2주택 등 주택 수 제외 특례도 신설했다. 부동산과 관련한 규제는 대부분 문재인 정부 시절 강화됐다. 윤석열 정부 들어 대통령령을 통해 다시 완화한 것이다. 일종의 ‘전 정부 지우기’이다.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이 5월10일 ‘규제혁신 1년, 현장의 변화’ 브리핑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기업 지배구조 규제완화도 폭넓게 이뤄졌다. 대기업의 정경유착, 경영권 세습 등을 제한하겠다는 목적으로 국회가 법률로 강화한 공정거래법과 상법을 대통령령 개정으로 완화했다. 최근에는 공정거래법상 금융사의 의결권 제한, 지주회사의 금융 및 비금융사 동시 소유 금지 등 금산분리 규제완화도 검토 중이다. 국무총리실은 지난 5월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윤석열 정부 출범 1년간 규제혁신을 위한 법령개정 등 조치를 1027건 완료했고 이 가운데 시행령 개정은 176건”이라고 밝혔다.
그 밖에 지난해 대통령경호처(경호처)가 경호구역에서 경호업무를 수행하는 군·경찰 등을 지휘·감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가 논란이 불거져 절차가 중단됐던 대통령령 개정안이 올해 들어 다시 추진된 것으로 확인됐다. 5월1일 법제처 심사가 완료됐고 5월4일 차관회의를 거쳐 5월9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경호처는 2022년 11월9일 입법예고한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대통령경호법) 시행령’ 개정안에 “경호처장은 경호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경호구역에서 경호활동을 수행하는 군·경찰 등 관계기관의 공무원 등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행사한다”라고 적었다. 대통령 경호업무에 투입된 군경을 대통령경호처가 직접 지휘 감독한다는 뜻이었다. ‘경호구역에서 경호활동을 수행하는’이라는 제한을 뒀으나, 경호처가 다른 기관을 지휘 감독할 수 있는 대통령령은 유신 시절인 1976년부터 4년간만 한시적으로 존재했다.
대통령경호법은 경호처장의 지휘·감독권의 대상을 ‘경호처 소속 공무원’으로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상위법을 그대로 두고 대통령령만 고쳐서 경호처 권한을 강화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국방부와 경찰청도 대통령령 개정 입법예고에 따른 검토 의견에서 “경호처장은 국군조직법상 국군에 대한 지휘·감독 권한이 없다” “헌법·정부조직법과 배치될 소지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 의견을 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대통령경호처장.ⓒ대통령실 제공
논란이 거세지자 경호처는 국회에 ‘경호처장의 군·경찰 지휘감독권 명시’는 “법제처가 만들어준 문구”라고 밝혔다. 지난해 입법예고 전 개정안 초안에선 “(경호)처장은 경호구역에서 (대통령경호)법 제15조에 따라 배치된 인력·장비 등에 대한 운용을 총괄한다. 단, 그 구체적인 사항은 관계기관의 장과 협의하여 정할 수 있다”라고 적혀 있었는데, 법제처와 논의하는 과정에서 ‘총괄’과 ‘협의’가 ‘지휘·감독’으로 변경됐다는 설명이었다. 당시 문제가 된 개정안은 올해 다시 추진되면서 ‘지휘‧감독’ 문구가 삭제되고 '관계기관 장의 협의'가 들어갔다. 개정안에서 수정된 전체 문구는 “(경호)처장은 경호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관계기관의 장과 협의하여 법 제15조에 따라 경호구역에서의 경호업무를 지원하는 인력·시설·장비 등에 관한 사항을 조정할 수 있다”이다.
닮은 듯 다른 윤석열·문재인 정부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운영하면서 각 정부 부처에 공약 이행을 위한 입법 계획을 반드시 제출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법률이나 시행령, 시행규칙 등의 제·개정 필요 여부를 보고하라는 지시였다. 특히 보고에는 ‘입법 없이 대통령 지시로 추진 가능한 사항은 명기’하도록 했다. 국정 운영 과정에서 대통령령을 적극 활용할 계획을 일찌감치 시사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에도 국무회의 등을 통해 “시행령을 활용할 방안을 강구하라”고 여러 차례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 국정운영을 하는 데 여소야대 한계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야당이 국회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동의 없이 법률 제·개정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서다.
문재인 정부도 여소야대로 출발했다. 그리고 취임 초기 ‘업무지시’ 형태로 각 부처에 시행령 활용을 주문했다. 2017년 7월 국정기획자문회의는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하위법령(시행령·시행규칙 등) 개정만으로 이행 가능한 국정과제를 적극 발굴해 연내 개정하겠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문 대통령 취임 당시 20대 국회에서 민주당(123석)은 다수당이긴 했으나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112석)과 민생당(20석) 등을 합치면 야당 의석이 더 많았다.
다만 국회에 협조를 구하고 협의하는 ‘태도’에는 큰 차이가 있다. 〈시사IN〉이 법제처 정부입법지원센터를 통해 윤석열‧문재인 정부가 출범 1년 동안 국회에 법을 만들거나 고쳐달라며 제출한 법률안을 조사한 결과, 윤석열 정부는 144건, 문재인 정부는 301건으로 집계됐다. 공교롭게도 두 정부가 각각 국회에 낸 법률안의 건수 차이가 대통령령을 추진‧공포한 건수 차이와 비슷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야당은 협의를 위한 파트너로 보지 않고, 여당은 불신한다’는 정치권의 해석과도 맥이 닿는다.
‘시행령 정치’ 논란이 역대 정부에 이어 이번 정부에서도 불거지고 있지만 통제장치는 부족하다. 입법예고와 법제처 심사, 차관·국무회의는 일종의 행정부 내부 통제장치이지만 ‘대통령의 지시’에 대해 실질적인 역할을 하기 어렵다. 사법부를 통해 대통령령의 위법성을 따지는 방법은 까다롭다. ①대통령령 때문에 헌법이 정한 권리를 침해받은 피해자가 ②직접 국가기관을 상대로 권리구제에 나서야 한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위법이 확인되더라도 구제 대상은 피해 당사자에게만 한정된다.
2017년 7월19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과제 보고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국회 통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현행 국회법은 대통령령 등이 법률 취지와 맞지 않으면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쳐 정부에 ‘개정의견’을 송부하도록 하고 있다. 강제력이 없어서 정부가 수용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 때문에 국회가 통제를 강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실제 이번 20대 국회에서는 대통령령에 대해 국회 상임위가 수정·변경을 요청할 경우 정부가 이를 처리해 결과를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비슷한 취지의 국회법 개정안은 지난 정부에서도, 그 전 정부에서도 발의되었지만 번번이 무산되었다.
문재인 정부 때는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에서, 박근혜 정부 때는 민주당에서 법률안을 마련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이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는데, 당시 야당과 합의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배신의 정치”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야당일 때는 대통령령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여당이 되면 침묵하면서, 정부의 ‘시행령 정치’는 계속해서 강화되며 갈등이 빚어지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시사IN〉문상현 기자
지금의 받아쓰기 보도는 그 어느 때보다 나쁘다
기자들이 민주노총 건설노조 기자회견을 취재하고 있다.ⓒ시사IN 박미소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 양회동씨가 5월2일 끝내 숨졌다. 양씨는 바로 전날인 노동절에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앞에서 분신했다. 이날 오후 구속 전 피의자신문을 앞두고 있었다. 양씨는 건설 현장에서 조합원 채용과 노조 전임비 지급을 강요했다는 혐의로 지난 1월부터 수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유서에 “죄 없이 정당하게 노조 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네요”라고 썼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노동조합 때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지율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지난해 12월 화물연대 파업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건설 현장에서 불법·폭력 행위가 판을 치고 있다”라고 발언했다. 사흘 뒤 경찰은 ‘200일간 건설 현장 특별단속’ 계획을 발표했고 검찰은 차례차례 기소로 답하고 있다. 지난 2월21일 국무회의에서는 윤 대통령이 ‘건폭(건설 현장 폭력)’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물론 폭력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되기 어렵다. 그러나 조합원 채용을 요구하며 집회를 벌이고 노조 전임비를 요구하는 행위의 어느 부분이 왜 ‘폭력’이 되는지 사회적 토론이 필요하다. 한편 민주노총·한국노총에 속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노동조합이라 보기 어려운 집단에 의한 불법·비리 행위가 적지 않은데도, 노조 전체를 폭력·불법 집단으로 낙인찍는 부정적 표현을 썼다.
이 상황에서 언론은 단순 중계자에 머무르고 있다. 경찰이 건설 현장 특별단속 성과를 자랑하는 보도자료를 내면 기사화하고, 검찰이 노조 간부 기소 성과를 자랑하는 보도자료를 내면 기사화한다. ‘건폭’도 마찬가지다. 국무회의에서 한 대통령 발언은 대부분 그대로 기사화되어 뉴스 소비자에게 전달되는데(심지어 ‘속보’로 나온다), ‘건폭’이라는 용어부터 분명 문제적인데도 그대로 기사화했다. 특히 당일 나온 국무회의 보도의 경우, 말 그대로 받아쓰기 보도에 가까운 기사가 많았기 때문에 해당 표현에 대한 비판은커녕 건설노조 관계자의 반론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국 언론의 고질적 문제
노동조합과 대화하기보다 그들에게 ‘폭력·불법 집단’ 프레임을 씌우고 ‘법과 원칙’ 운운하며 일반 시민과 다른 존재인 양 갈라치기 하는 것이 결코 옳은 일이 아님을 언론이 모를 리 없다(일부는 알고도 그럴 수 있다). 대부분이 습관적인 보도자료 베껴 쓰기, 타성에 젖은 대통령 국무회의 발언 옮겨 쓰기를 계속하고 있을 뿐이다. 기자의 일이 듣고 받아 적는 데서 그쳐선 안 되는데, 한국 언론은 거기에 머물고 있다. 양씨 분신을 둘러싼 보도도 ‘왜 그가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기사는 거의 없다. 경찰서, 소방서, 야당 대표 말을 받아쓴 기사가 훨씬 더 많다.
세상 모든 일이 언론 탓은 아니다. 그러나 이건 분명하다. 정부가 노동조합을 적대시하는 이 환경에서 말만 옮기는 받아쓰기 보도, 따옴표 저널리즘, 중계 저널리즘은 훨씬 나쁘다. 따옴표 저널리즘이 흔한 비판의 대상이긴 하지만 지금 이때 훨씬 더 비판받아 마땅하다. 발화자가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가장 중요한 결사체 중 하나인 노동조합을 싸잡아 모욕하고 헐뜯는 상황, 심지어 그가 최고 권력기관인 데다 이를 지속적으로 행하는 지금, 한국 언론의 고질적 문제는 더욱더 문제적이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이를 비판할 때 해서는 안 되는 일 중 하나는 상대방을 ‘비판하기 쉬운 존재로 만드는’ 일이다. (중략) 그런 비판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비판당하는 적은 황당한 불쾌감을, 비판하는 나는 얄팍한 우월감을 느끼게 될 뿐, 그 이후 둘은 ‘이전보다 더 자기 자신인’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어떤 이를 비판할 때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지 말라고 지적하는 언론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은 정부와 노동조합 모두를 ‘이전보다 더 자기 자신인 존재’로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시사인 조선희 (민주언론시민연합 미디어감시팀 활동가)
김예지 "당론보다 양심 믿었다... 입법기관이니까"
간호법 찬성했던 여당 의원의 소신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한국일보 김희원 논설위원을 만나 "정치가 현장의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며 "시간이 걸리고 지탄을 받더라도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갈등을 조율하면서 듣고 법안을 논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고영권 기자
간호사-의사 간 벼랑 끝 대치로 이어진 간호법 제정이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30일 국회 재의결 투표 끝에 무산됐다. 여야 타협 실종에 넌더리가 날 참인데 그 가운데에서도 꼿꼿하게 제 역할을 하고 바른 말로 쐐기를 박은 의원이 있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4월 27일 국회에서 간호법 반대 당론에 맞서 찬성표를 던지고는 “의료단체 간 분쟁이 있다고 해서 옳은 일을 미루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독립적 헌법기관으로서 당론이 아닌 민의를 대변했다”고도 했다. 김 의원은 지난해 3월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하철 시위를 ‘비문명’으로 몰아칠 때도 시위현장을 찾아 “정치인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 원칙과 소신을 우리는 왜 다른 정치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없는 걸까.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만난 김 의원은 “당론에 맞서야 한다는 부담은 있었지만 내 양심, 내 판단을 더 믿었다”며 “그게 입법기관의 일”이라고 말했다.
“반대할 근거 없는데 당론 따를 수 없었다”
-지난달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연숙 의원과 단둘이 남아 찬성표를 던졌다. 반대 당론을 무릅쓴 이유는.
“최 의원은 간호사 당사자이자 법안 발의자로서 찬성투표가 당연할 것이다. 나도 2개 간호법안을 공동 발의했다. 공동발의자로서 책임을 지는 게 입법기관의 일이라고 봤다. 그게 올바른 처신이고 독립적 헌법기관으로서 역할 아닌가. 의사들의 반대에 근거가 있는지 법안을 꼼꼼히 읽어봤다. ‘지역사회에서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이라는 문구 때문에 간호사들이 단독 개원할 수 있다는 우려에는 전혀 근거가 없었다. 간호조무사 관련 내용도 (현행법보다) 축소되지 않았고 간호사와 함께 처우개선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의사협회와 간호사협회가 소통을 했으면 풀 수 있는 문제다. 소통이 안 된 것은 여당 책임이기도 하고 다수 당의 책임이기도 하다. 협치가 부재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당론을 따르는 게 맞나 의문을 갖게 됐다. 법안에 반대할 근거가 없는 걸 확인하고는 따르기가 힘들었다. 오래 정치할수록 정치적 시각, 정당 입장에서 법을 보는 듯한데 초보, 영유아 정치인인 나는 오히려 국민 건강이 중요하게 다가왔다.
개인적인 이유도 있다. 어머니가 간호사로 30년 이상 다양한 곳에서 일했는데 1980년대 초반 내가 어릴 때 도서산간 무의촌 지역에서 일하셨다. 의사 없는 상황에서 급하면 1차로 환자를 살펴보고 병원으로 옮기고, 밤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뛰어가는, 그런 삶이었다. 지역사회에서 간호인력이 얼마나 많이 애쓰고 있는지, 전해 들은 게 아니라 내 삶에서 배웠다. 진작 의료법에 반영됐어야 하는 내용이고 이제라도 근거가 마련되는 게 다행이다. 이런 현실을 알고서 찬성표를 던지지 않을 수는 없었다.”
지난해 3월 28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출근길 지하철 시위 현장에서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무릎을 꿇고 "공감하지 못한 점 사과한다" "정치권이 해결하지 못한 일 때문에 불편을 겪게 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최주연 기자
-비례 의석이 확대되고 개방명부가 도입되면 소수자 할당도 이슈가 될 수 있다. 김 의원이야말로 시각장애인 안내견에 대한 사회적 환기, 전장연 시위 대응 등을 통해 소수자 할당의 이유를 가장 잘 보여준 의원이라고 할 만한데.
“할당제를 통하지 않고선 지금의 정치 생태계에 소수자가 비집고 들어오기가 힘들다. 잠시 관찰해 보기론 이런 정치가 1년 안에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진보 보수를 떠나 변화가 더딘 정치 생태계 특성상 소수자 할당은 필요하다. 언제까지 해야 하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소수자는 언제나 있고 계속 나타날 것이다. 다양한 양상을 띤 소수자들의 의견이 모여서 사회를 이루는 것이다. 공동체가 발전하려면 그런 다양성이 존중돼야 한다.”
-의정활동을 하면서 국회의원이 되길 잘했다고 느꼈던 것은 언제인가?
“약사법 개정 때 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점자가 찍힌 종합감기약이 나오고 치약, 라면에도 점자 표기가 생기는 걸 보면서 내가 힘든 과정을 거쳤지만 세상이 변하고 있구나 실감했다.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공보책자 면수 제한을 풀고 점자 정보를 담도록 했는데 이 역시 선거 때 달라진 것을 내가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지금도 국회에서 발달장애 학생들의 웹툰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데 장애예술인들 활동이 늘고 있는 것을 보면 뿌듯하다. 국민의힘의 영입을 받아들이길 잘했다 생각했다. 앞으로 내가 아니라도 누구든지 열정과 의지가 있는 분이 이 자리에 와서 이런 변화가 끊이지 않도록 해 주길 바란다.”
-정치를 계속할 생각은 안 하나.
“할 수 있겠나. (웃음) 생각 안 한다. 그저 나보다 더 능력 있는 분들이 국회에 들어와서 제 역할을 해 주기를 바란다. 비례대표는 상징성 이상의 역할이 있다. 아무 쓸모 없는 비례대표라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 지금까지 3년간 노력했고 1년 더 할 것이다. 소수 의견을 내는 역할이 중요하다. 비례대표들이 무조건 당을 대변할 게 아니라 소수자 대변자 역할로서 객관화하기를 바란다. 나는 음악을 가르치는 일이나 강연 등 해 오던 일이 있다. 정치를 그만하더라도 정치집단이 움직이는 방식을 알았으니 활동가를 돕는 역할을 하는 것도 의미 있다고 본다. 어느 자리에 있든 국회의원 경험을 바탕으로 돕겠다.”
김희원 논설위원 hee@hankookilbo.com
“500명에게 3000만원씩 준다”...부산시, 청년 위해 매년 2700억 쓴다
창업·유학 계획 제출한 청년 500명 선발
2년간 최대 3000만원 지원
1천명에게 20만원 문화 바우처 지원
청년 연령 39세로 확대 추진
부산시가 내년부터 청년 500명을 선발해 역량 개발비로 3000만원을 지원한다.
부산시는 31일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열고 청년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연평균 2735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부산시는 청년 성장도약 프로젝트를 신설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한다. 창업·유학 등 역량개발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출한 청년 500명을 매년 선발해 2년간 최대 3000만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이성권 부산시 경제부시장이 31일 부산시청에서 청년이 유입되는 도시로의 대전환을 위한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자료=부산시]
또 청년이 생애 최초로 주택을 구입할 경우 최대 2억원의 대출에 대해 이자 2%를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한다. 올해 4519호인 공공 임대주택 공급 규모를 2030년에는 3만4801호로 늘리고, 부산으로 이전하는 청년에게는 이사비용으로 최대 40만원을 지원한다.
매년 부산에 거주하는 청년 1000명에게 1인당 20만원의 문화 바우처를 지원하는 사업도 펼친다. 이와 함께 전국에서 처음으로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선취업·후학습 계약학과를 시범 운영하고 교육국제화특구, 교육자유특구 추진으로 교육 인프라스트럭처를 확충할 계획이다.
지난 30일 부산경제진흥원이 2023년 부산형 지산학 협력 프로그램인 ‘부산 워털루형 코업 프로그램’ 운영 기관으로 선정된 동아대, 동명대와 ‘지산학 협력사업 공동 추진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자료=부산경제진흥원]
대학교 2학년부터 졸업할 때까지 이론과 실습 교육을 병행하는 워털루형 교육 프로그램 대상도 2개 대학 60명에서 10개 대학 3000명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하단·녹산 산업단지 통근버스를 51대에서 60대로 늘리고 출퇴근용 전기차 임차비 지원 사업을 신설하기로 했다. 부산시는 공공기관 지역인재 의무 채용 비율을 30%에서 40%로 확대하도록 정부에 건의하고, 30개 공공기관이 부산으로 2차 이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성권 부산시 경제부시장은 “만 34세까지인 청년 연령을 39세로 확대하도록 조례를 개정하고, 부산시 위원회에 청년이 10% 이상 참여하도록 해 다양한 정책 결정에 청년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매일경제
반도체 재고 83% 급증…제조업 재고율 '역대 최고'
4월 전산업생산지수, 14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감소세
▲31일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 동향을 보여주는 소매판매액지수(계절조정)는 4월 105.2(2020년=100)로 2.3% 감소했다. 지난해 11월(-2.3%) 이후 최대폭 감소다. 항목별로 살펴보면 의복 등 준내구재 판매가 6.3% 줄었다. 음식료품·화장품 등 비내구재(-1.2%)도 판매가 줄었다. 사진은 이날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의 모습. ⓒ연합뉴스
한국 경제에 드리운 그늘이 짙어지고 있다. 반도체 업황 영향으로 인해 제조업 재고율이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만큼 안 팔리고 쌓인 상품이 많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4월 생산과 소비지수 모두 감소했다. 앞으로 경기상황을 점칠 지표인 경기선행지수는 6개월째 하락했다.
31일 통계청이 발표한 '4월 산업활동동향' 자료를 보면, 지난달 전산업생산(농림어업 제외)지수는 109.8(2020년 100)로 집계됐다. 전월 대비 1.4% 감소했다. 이는 작년 2월의 -1.5% 이후 14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감소세다. 불황으로 인해 생산주체들이 제품 생산량 줄이기에 나선 모습이다.
전산업생산지수(IAIP)는 한국 경제를 구성하는 모든 산업이 일으킨 재화와 용역 관련 생산활동 동향을 월별 집계해 숫자로 나타낸 지수다. 농림어업, 광공업, 서비스업, 건설업, 공공행정 등 5개 계열의 지수가 가중평균돼 전산업생산지수에 포함된다. 다만 농림어업의 경우 연간 기준으로만 집계된다.
국내총생산(GDP) 등의 경제지표는 분기 단위로 작성돼 단기간의 경제동향을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전산업생산지수는 단기간 경제 성적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이 때문에 전년동월비 증감 수치 못잖게 전월대비 증감 수치의 경향이 중요하다.
ⓒ통계청
4월 제조업 재고율, 1985년 이후 가장 크게 증가
4월 전산업생산지수 하락은 제조업 생산이 전월대비 1.2%, 전년동월대비 9.0% 줄어든 영향을 크게 받았다. 내수 출하 -3.7%, 수출 출하는 -10.9%(전년동월비)의 역성장세를 보였다. 전월비로도 내수 -2.3%, 수출 -7.3%의 하락률을 보였다.
그 결과 4월 제조업 재고는 전월대비 6.2% 급증(전년동월대비 15.7% 증가)했다. 이에 따라 제조업의 4월 재고율(재고/출하 비율)은 전월대비 13.2%포인트 상승한 139.4%가 됐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8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그만큼 한국 상품이 팔리지 않음을 뜻한다. 그 때문에 업체들이 일제히 생산을 줄였고, 그 결과가 4월 제조업 생산 하락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제조업 출하량은 감소했다. 제조업 출하는 전월대비 4.6% 감소했고 전년동월비로는 7.0% 줄어들었다. 업종별로 재고 증감 현황을 보면 역시 반도체의 부진이 두드러진다. 4월 반도체 재고는 전월대비 31.5% 증가했고 전년동월대비로는 거의 두 배인 83.3% 증가했다.
석유정제의 재고도 전월대비 15.1% 증가했다. 다만 전년동월에 비해서는 5.1% 감소했다.
업종별로 제조업 출하 증감 현황을 보면, 반도체 출하량이 전월대비 -20.3%로 급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년동월비 증가율은 -32.8%에 달했다. 전자부품 판매도 신통치 않았다. 전월대비 -17.5%, 전년동월대비 -24.8%의 역성장을 보였다 화학제품 출하량은 전월대비 0.8% 증가했으나 전년동월대비로는 -11.8% 증가에 그쳤다.
▲4월 제조업 재고율. 반도체 부진이 확연히 두드러진다. ⓒ통계청
수출 하락세 뚜렷… 문제는 반도체
특히 내수 출하에 비해 수출 출하가 더 뚜렷한 하락 기미를 보이는 와중에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한국 경제 버팀목인 수출이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못함을 보여준다.
제조업체 경기의 핵심 지표인 수출을 업종별로 나눠보면 역시 반도체의 부진이 두드러졌다. 4월 반도체 수출 증가율은 전월대비 -22.0%에 머물렀다. 1년 전에 비해서는 -33.0%의 부진을 보였다.
전자부품 수출량도 줄어들었다. 전월대비 -22.3%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전년동월대비 -29.9% 증가율을 나타냈다.
반면 통신.방송장비 부문의 수출 증가율은 전월대비 42.3%를 나타내 다른 업종과 대조를 이뤘다. 다만 전년동월비로는 -6.4% 역성장했다.
건설수주 반토막…경기선행종합지수 6개월째 하락
한편 서비스업 생산은 전월대비 -0.3%의 증가율을 나타냈다. 건설업은 1.2% 증가했다.
특히 하락이 두드러진 계열은 공공행정이다. 전월대비 감소율이 12.4%에 달했다. 이는 2011년 2월(-15.3%) 이후 12년여 만에 가장 큰 폭의 감소세다.
코로나19 위기가 끝나면서 공공보건 관련 지출이 줄어든 결과가 반영됐다.
내수 침체도 이어지고 있다. 4월 소비동향을 보면, 이달 소매판매액지수는 전월대비 2.3% 감소한 105.2(계절조정)에 그쳤다. 이는 작년 11월(-2.3%) 이후 가장 큰 폭의 감소율이다. 소매판매액지수는 올해 2월 5.1% 증가했으나 다시 감소세로 확연히 돌아선 모습이다.
의복, 오락·취미·경기용품, 신발·가방 등이 포함된 준내구재 소매판매액이 6.3% 감소했고 음식료품, 화장품, 차량연료 등 비내구재도 1.2% 감소했다. 통신기기·컴퓨터, 승용차, 가구 등 내구재는 1.7% 감소해 모든 계열에서 판매 감소가 나타났다.
향후 경기 동향을 점칠 수 있는 기계류 내수출하지수는 전년동월대비 3.9% 감소한 99.1이었다. 건설기성은 토목에서 공사 실적이 감소(-2.4%)했으나 건축(2.4%) 실적은 증가해 전체로는 전월대비 1.2% 증가했다.
다만 건설수주는 급감했다. 주택 등의 건축 수주가 전년동월대비 56.1% 감소해 반토막났고, 기계설치 등 토목은 22.0% 감소했다. 이에 따라 건설수주(경상)는 전년동월대비 50.6% 감소했다.
발주자별로 보면 정부 등 공공에서 5.3% 증가했으나 민간에서는 58.8% 급감했다.
현 경기상황을 보여주는 경기동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는 전월대비 0.2포인트 오른 99.9였다. 3개월째 증가세지만 여전히 100 아래다. 경기동행종합지수 산출을 위해서는 내수출하, 수입액, 비농림어업취업자수, 서비스업생산지수 등이 포함된다.
앞으로 경기 국면을 점칠 수 있는 선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는 전월대비 0.2포인트 떨어진 98.0에 머물렀다. 지난해 11월부터 이달까지 6개월 연속 하락했다.
프레시안 이대희 기자
미국만이 살길’이라고 외친 이승만과 윤석열 대통령의 공통점
미국은 절대 신뢰 의존-북한과 국내의 비 우호세력에 대해 초강경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과 북한에 대해 취한 정책이나 행동은 윤석열 대통령의 그것과 유사한 점이 적지 않다. 미국을 절대 신뢰하고 미국에 의존하며 미국에 퍼주는 식이지만 북한에 대해서는 그곳 지배층이나 피지배층 가리지 않고 동족이라는 점은 멀리하고 있다. 외세에 올인하는 것과 동시에 국내의 비판세력이나 정적에 대해 비타협적이고 심할 경우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이기도 하다.
이승만은 미군정하에서 미국의 한반도 정책, 즉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남한과 일본을 반공보루로 만든다는 최우선 정책에 적극 호응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유엔을 통해 강행한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통해 집권했고 제주 4·3과 여순사건 등에서 미국의 철저하고 잔혹한 진압작전에 적극 호응했다.
여순사건 당시 이승만은 “남녀아동까지라도 일제히 조사해서 불순분자는 다 제거하고 조직을 엄밀히 해서 반역적 사상이 만연되지 못하게 하라.”는 지시를 내려 군경의 잔혹한 집단학살의 멍석을 깔아주었다.
이승만은 북진통일만을 외쳐 미국의 군사원조를 제대로 받지 못할 정도였으며 남북 정부간 대화를 시도한 적이 없다. 이승만은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 휴전선을 무대로 북한과 군사적 충돌을 끊임없이 벌였고 전쟁이 터지자 서울 사수 약속을 저버리고 한강다리를 폭파한 뒤 서울을 탈출했다. 이승만은 전쟁 직후 보도연맹 등 이른바 반정부 세력이라고 분류한 시민들을 학살토록 지시했다.
이승만은 정전협정 체결 움직임이 있자 정전협정이 맺어지면 남한은 괴멸할 것이라며 반대해 미국이 제거 계획까지 세웠다. 정전협정 체결 당시 국군은 60만 명에 달했지만 이승만은 자주국방을 외면한 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미국과 맺어 군사주권을 넘겨주고,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을 차단했다. 이승만은 미국이 전후 동북아 냉전체제를 고착시키면서 일본의 전쟁범죄 배상을 최대한 경감시키기 위해 한국을 철저히 배제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대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태도로 미국의 입장에 동조했다.
한편 윤석열 정부는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처하기 위해 한미동맹 또는 한미일 군사협력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미국 주도의 대북 정책에 올인 하면서 북한과의 대화를 전혀 시도치 않고 있다. 동시에 야당과의 협치, 대화는 거의 생략하고 민주노총과 같은 시민사회단체에 대해 검찰을 앞세워 규제를 강화하는 특성을 보인다. 윤 정부의 시민단체 등 자국민에 대한 태도는 국민을 주권자로 섬기는 원칙과 충돌한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윤석열 정부는 자체 핵무기 보유 필요성과 함께 미국의 핵우산 제공 강화를 공언하면서 국제적 상식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윤 정부가 △미국의 한국 정부 도감청의혹에 공식적인 항의 등은 일체 생략하고 동맹을 강조하고 △일제치하의 강제징용에 대해 일본 기업 대신 한국정부가 제3자 변제라는 변칙수법을 동원해 굴욕외교 논란을 자초하거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해양방류에 앞서 시찰단을 일본 현지에 파견해 일본 내에서도 논란이 심각한 원전 오염수 방류에 면죄부를 주는 행위로 이어지고 있다.
윤 정부가 한미일 군사협력 시스템을 구성하기 위한 미국의 의도에 굴욕적, 비자주적이라는 비아냥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나서는 태도는 국내 노조활동 등에 대해 취하는 적대적 태도나 북한과의 대화 재개 가능성을 생략하는 것과 대비된다. 특히 윤 정부가 중국과 러시아에 각을 세우면서 이들 두 개 국가에 진출하거나 통상을 하는 국내 기업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윤 정부는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한 대책이라며 미국, 일본과 군사관계를 급속히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군사안보에만 올인 할 뿐 경제, 기술안보에 소홀히 한다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특히 용산 미군반환기지 오염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해당 부지에 ‘공원’이 아닌 ‘정원’을 만들어 주한미군에 의한 환경오염 문제에 대해 책임을 물 타기 하거나 면죄부를 주면서 공원을 찾는 시민들의 건강을 해칠 가능성에 눈을 감는 해괴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 1948년 8월15일 서울 중앙청에서 열린 정부수립 기념일에 참석한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 이 대통령은 맥아더의 중국 공격 전략을 적극 지지하다가 맥아더가 해임되자 크게 실망해 맥아더 해임을 지지한 영국 등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사진=위키미디어
이승만 맥아더 해임에 크게 실망, 영국 등에 독설
이승만은 일본이 항복한 후 귀국해 반공노선을 강조한 미군정 치하에서 우익세력의 대표자가 되었고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초대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민주정치 실천을 약속했지만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그는 집권이후 야당세력을 탄압했고 그와 노선을 달리하는 정치인들이 제거되거나 암살당했다.
이승만은 집권 후 국방력이 북한에 비해 열세인 상태에서 무력에 의한 북진통일을 앞세우다가 6·25 전쟁을 맞았다. 이승만은 6·25 전쟁이 발생하자 서울 사수 라디오 방송을 한 뒤 미 군사고문단에 사전에 통고하지 않은 채 정부각료들과 함께 서울을 탈출하고 한강다리가 폭파되게 만들었다. 당시 이승만은 북한 동조세력의 거사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고 변명했으나 그 후에도 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증오와 전쟁 공포증은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수차 언급되고 한국군 단독의 북진무력통일론으로 표출됐다.
이승만은 전쟁 발생 후 전국 군과 경찰에 좌익세력 학살을 지시했고 1951년 봄 맥아더 장군이 트루먼 대통령에게 해임 당하자 이 대통령은 크게 실망해 맥아더 낙마에 책임이 있다고 알려진 영국, 호주, 캐나다 군을 향해 공개적으로 ‘한반도를 통일시키려는 맥아더의 노력을 훼방했으니 이제 한반도 전선에서 떠나라’라는 내용의 독설을 퍼부었다.
이 대통령은 소련과의 핵전쟁을 감수해서라도 중국에 대해 전면전을 펴야 한반도가 통일된다는 맥아더 장군의 전략을 전적으로 신뢰한 나머지 분노한 것이다(Hastings, Max (1988). The Korean War. Simon and Schuster. pp. 32–34. ISBN 9780671668341. p. 235). 이승만은 맥아더 장군의 중국 공격 주장에 적극 찬성하고 정전협정 체결에 반대하기 위해 군국 단독 북진 주장, 반공포로 일방적 석방 등으로 저항했다(https://en.wikipedia.org/wiki/Syngman_Rhee).
그는 정전협정 대신 미국의 한반도 전쟁 자동개입 조항이 포함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고집했지만 그런 조항은 포함시키지 못하고 주한미군에게 특권을 주는 식의 불평등 조약이 만들어지게 만들어 한국의 군사적 자주권을 외세에 철저하게 예속시키는 우를 범했다. 그는 국가안보를 철저하게 미국에 의존하면서 국방 자주권은 철저하게 외면했다.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통해 주한미군의 한국 주둔을 ‘권리’로 인정받아 각종 특권을 누리면서 자국의 동북아 방어 전략에 활용하는 실속을 챙겼다. 미국은 이승만의 북진무력통일론을 경계해 한국군 작전 지휘권을 유엔사령관이 장악하게 만들고 한국군의 국방자주권 확립을 원천 봉쇄하는 장치를 만들었다.
이승만은 집권 초부터 철권을 휘두르는 식의 정치를 했다. 그는 1952년 야당 국회의원을 체포하도록 명령한 상태에서 개헌을 억지로 강행하는 등 집권 연장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선거철마다 부정선거가 판을 쳐 당락이 뒤바뀐 경우까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1960년 3·15 선거에서는 범정부 차원의 부정투표가 행해져 4·19 혁명으로 이어졌다.
이승만 대통령 집권 시 군 내부 부패가 심각했는데 장교가 사병의 급여를 가로채거나 미군이 제공하는 군수품이 암시장으로 팔려나가고 군부대원의 숫자를 부풀려 급여로 나오는 돈을 장교가 갈취했다. 가장 심각한 사건이 국민방위군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1·4후퇴 때 방위군 예산을 국민방위군 간부들이 약 25억 원의 국고금과 물자를 부정 착복해 방위군에게 식량 및 피복 등 보급품을 지급하지 못해 방위군 수 만여 명이 굶어죽거나 환자가 되었다.
이 사건으로 신성모 국방장관이 물러나고 사건의 주모자인 김윤근·윤익헌·박기환 등 5명이 사형 당했다(Hastings, Max (1988). The Korean War. Simon and Schuster. pp. 32–34. ISBN 9780671668341. p. 235-240). 이승만은 전후 복구 과정에서 권력기구를 중심으로 해외 원조나 기금, 은행 융자 등에서 뇌물을 주고받는 식의 부정부패가 만연했지만 그에 대해 침묵했다.
미국의 정전협정 타결 강조에 이승만 ‘중국과 북한에 남한 괴멸될 것’ 주장
아이젠하워는 1952년 대선을 앞두고 있어 이승만의 정전협정 반대는 재선에 큰 악재가 될 것으로 판단했다. 아이젠하워는 이승만에 대한 압력을 가중시켜야 했고 대통령에 당선된 뒤인 1952년 12월 한국을 방문해 정전협정 타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Sasangch’oyuŭi Kwibin” [The Unprecedented VIP], December 7, 1953. Dong-A Daily).
1953년 4월9일 정전협정 타결이 임박한 시점에서 이 대통령은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정전협정이 타결된다면 미국군은 한반도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한다. 한국군은 휴전협상을 하기보다 독자적으로 싸우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정전협정을 조속히 타결 짓기 위해 핵무기로 중국과 북한을 위협할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최후통첩을 받고 경악했다.
아이젠하워는 1953년 4월23일 이 대통령에게 보낸 답서에서 “이 대통령의 친서를 받고 크게 불편했다. 이 대통령의 태도는 한반도에서의 적대행위를 끝내려는 미국의 노력을 심각하게 방해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이승만은 1953년 5월30일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보낸 답신을 통해 정전협정에 반대한다는 자신의 의지를 강조하면서도 정전협정 수용 조건을 제시, 중공군이 한반도에 잔류해서는 절대 안 되며, 한미 간에 정전협정 발효 이전에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 정전협정 발효 후 미국은 한국이 침략을 받으면 즉각 군사적 지원과 원조를 해야 하고 미군 없이 한국군이 독자적 방위능력을 갖추도록 충분한 무기 지원을 하고 적의 재침을 막기 위해 미 해군과 공군을 잔류시켜야 한다는 것 등을 강조했다.
이승만은 이 답신에서 ‘중공군이 한반도에 계속 잔류하게 되면 한국은 사형선고를 받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면서 주한미군이 떠나게 되면 중국과 북한에 의해 남한이 괴멸된다는 주장을 폈다.
이런 태도는 주권국 원수로서 50만 여 명의 국군이 전투중이고 미국이 정전협정이후 한국군에 대한 지원 등을 약속한 것을 감안할 때 납득하기 어려운 태도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과도한 전쟁 공포증이나 공산주의에 대한 증오, 적대감을 지니게 된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승만의 답신을 본 아이젠하워는 한국과 방위조약을 필리핀, 호주 등과 유사한 형태로 맺을 방침을 고려중이었기 때문에 이승만의 제안을 수용 가능한 것으로 판단했다. 아이젠하워는 이승만이 반공포로를 석방하기 6일 전인 1953년 6월6일 이승만에게 보낸 서한에서 ‘본인은 이 대통령이 정전협정에 동의하는 연장선상에서 방위조약을 체결할 의향이 있다, 미국이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와 같은 집단 안보체제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아이젠하워의 이런 언급은 미국이 아시아판 집단안보 체제에 소극적이었지만 이승만이 1948년부터 집단안보체제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Ch’oe, Yŏng Ho. 1999. “Yi Sŭnngman chŏngbu ŭi t’aepyŏngyangdongmang kusang kwa asiapangongyŏnmaeng kyŏlsŏng” [Syngman Rhee Administration’s Plan for Pacific Alliance and Anti-Communist Asian Alliance]. Kukjejŏngch’I nonch’ong 39(2): 165-182).
아이젠하워는 그러나 이승만이 요구한 미국의 자동개입 조항이 들어가 있는 방위조약은 미국의 헌법체계에서는 의회의 동의가 필요하다면서 수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밝혔다. 아이젠하워는 6월13일 이승만에게 워싱턴을 방문해 기밀사항을 협의하자고 제안했다.
▲ 1951년 10월 11일 판문점에서 열린 정전협정 실무자 회담에서 유엔군과 북한군 영관급 장교들이 지도를 놓고 협의하고 있다. 사진=위키미디어
이승만 ‘정전협정 타결되면 한국 생존 고민 공포에 사로잡힐 것’ 거듭 주장
이승만은 자신이 독자적으로 반공포로를 석방하기 하루 전 날인 1953년 6월17일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정전협정이 타결되면 한국은 생존을 고민해야 할 공포에 사로잡혀야 하는데 이런 사태에 무기력한 나 자신이 실망스럽다. 6·25 전쟁 발생 첫해에는 미국과 유엔이 통일된 독립 한국의 설립과 침략자에 대한 응징을 다짐했었지만 그 후 공산군이 더 강한 것으로 보이자 유엔군은 이 전쟁은 한반도 통일과 무관하다고 말을 바꿨다. 본인은 한국이 정전협정을 수용하는 대가로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려는 지원은 거부한다. 그 이유는 정전협정은 남한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다 해도 그 효과가 의심스럽고 무력한 상태로 그 의미가 축소될 것으로 우려된다. 유엔과 공산주의자가 정전협정을 맺는다는 것은 적들이 서로 손을 잡는 것과 같을 것이다. 본인은 미 대통령이 이 중차대한 시기에 대처한 처방을 내놓을 리더십을 발휘하기를 희망한다.”
이승만은 아이젠하워에게 서한을 발송한 다음날인 6월18일 유엔군 사령관의 통제를 받는 한국군 헌병대에게 반공포로를 석방하도록 명령했다. 이 날은 유엔군과 북한군, 중공군이 정전협정에 합의하기로 예정된 날이었다. 이 대통령의 돌발적 행동은 공산군 측이 볼 때 유엔군이 사전합의를 위반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정전협정 추진이 중단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아이젠하워는 이승만의 행동에 격노해서 6월19일 “이 대통령의 행동은 전쟁 포로 문제는 유엔사령관의 관할이라는 점에서 유엔군의 권위에 대한 공격행위”라며 “이 대통령이 유엔사의 권위를 즉각 수용하지 않을 경우 모종의 조치가 필요하고 유엔 사령관이 그에 대처할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밝혔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모종의 조치가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는데 이는 이 대통령이 미 대통령의 정전계획 추진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해석되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학계에서 미 대통령이 이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한 ‘에버레디 작전(Operation Everready)’도 포함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 행정부, 이승만 제거 계획 상세한 부분까지 준비
미 행정부는 이승만이 독자적인 ‘북진 통일’을 실천하는 등 돌출행동을 할 경우 등을 우려해 극약처방을 내렸다. 미국은 1953년 중반 이승만이 정전협정 내용에 반대하거나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할 경우 미국이 제거한다는 비밀계획인 ‘에버레디 작전’을 만들었다(https://www.washingtonpost.com/archive/politics/1977/12/17/us-had-53-plan-to-overthrow-unreliable-korean-ally/53816fa5-c677-4d57-964c-09edd8605c42/).
미국은 이 작전을 수행하지는 않았으나 1953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정전협정에 반대할 경우에 대비해 만든 3가지 대처 방안가운데 하나였다. 다른 두 방안은 이 대통령이 강하게 주장했던 미군 철수 등이 포함된 한미간 안보조약을 협의하는 것이었다. 결국 미국이 최종 채택한 방안은 주한 미군의 주둔이 포함된 방위조약을 협의하는 내용이었다.
미국이 이승만을 제거하려 했던 비밀계회 에버레디 작전이 실행되지 않은 것은 강력한 반공주의자인 이승만을 제거할 경우 대체할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주한미군 및 유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 장군은 1953년 중반 이 대통령이 한국군을 유엔군 휘하에서 철수하려 위협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비밀 작전을 만들라는 지시를 미 합동참모본부로부터 받았다. 당시 한국군은 전체 유엔군의 60%에 달했다.
클라크 장군이 1953년 5월4일 작성한 비밀작전 계획은 한국군이 유엔군에 적대적 행동을 할 것을 상정해 유엔의 이름으로 계엄령을 선포해 정전협정에 반대하는 민간인과 군인을 체포하고 유엔군의 이름으로 군사정부를 만드는 것 등이 포함됐다. 이 작전은 클라크 장군이 미 육군부에 보낸 날짜 미상의 비망록에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 본인은 본인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방해하는 한국군의 광범위한 명령불복종 사태가 발생할 경우 행동을 취할 준비가 되어 있다. 적절한 시점이 되면 미군 사령관이 부산 지역으로 이동해 이승만 독재정치를 지지하는 핵심적 한국군 장교 5~10 명을 체포하고 한국군 총사령관의 명의로 선포된 계엄령에 대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
그렇게 한 뒤 이승만 대통령에게 계엄령 해제에 동의하도록 만들 것이다. 그리고 국회가 자유롭게 입법 활동을 하게하고 한국군의 통제를 받는 한국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도록 만들 것이다. 만약 이 대통령이 그런 요구에 불응할 경우 독방에 감금될 것이며 유사한 조치를 장택상 총리가 취하도록 만들 것이다.--
1953년 중반 이 대통령은 정전협정을 반대하면서 미군이 계속 싸울 것과 북한과 중공군포로 14만 명의 강제송환을 촉구하는 북한의 요구에 반대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들 포로 가운데 2만 명은 이승만의 일방적 석방조치로 남한과 대만에 남아있게 되었다.
클라크 장군은 미 언론이 수십 년 전에 추진했던 에버레디 작전에 대한 소회를 묻자 “미국은 그 작전을 심각하게 고려했었다. 그러나 그 작전은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는데 만약 실행되었다면 이 대통령이 완강한 인물이고 한국인이 그를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행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승만 반공포로 일방적 석방, 정전협정 파탄 노렸으나 빗나가
아이젠하워는 반공포로가 석방된 일주일 뒤 1953년 6월 25일 한국에 미 국무부 차관을 특사로 보내 이 대통령을 압박해 한국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유엔 사령관에게 넘기도록 만들었다. 이후 이 대통령은 1953년 7월 11일 미국 쪽에 서신을 보내 정전협정을 통한 정치적 해결 방안에 동의하고 협조할 의향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그러나 정접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전환되지 못할 경우 자신의 북진통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군사분계선을 돌파할 계획이며 미국은 이에 동의해야 할 것이라는 점을 미 국무장관에게 통고하고 자신이 정전협정에 동의한 것에 대한 미국 측은 방위조약 타결에 응하라고 촉구했다.
이승만이 정전협정을 파탄 낼 목적으로 반공포로를 석방해 버린 것에 대해 중국과 북한은 격렬하게 항의했을 뿐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기로 미국과 합의해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타결되었다(Cha, Victor D (Winter 2010). "Powerplay: Origins of the U.S. Alliance System in Asia". International Security. MIT Press Journals. 34 (3): p. 174. doi:10.1162/isec.2010.34.3.158. S2CID 57566528). 당시 중국, 북한, 미국 모두 정전협정을 타결을 원하면서 사태 악화를 원치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승만은 정전협정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경제원조와 한국군 20개 사단 증강 지원 등을 미국에 요구했다. 정전협정 타결 시에는 한국군이 50만 명에 달해 자주국방을 추진할 최소 규모로 볼 수도 있었는데도 이승만은 공산군의 재침 시 한국군이 궤멸될 것이라고 미 대통령에게 언급하는 등 강한 위기의식을 들어냈다.
미국은 막대한 원조를 약속했지만 이승만은 이를 거부하면서 미국이 한반도 유사시 즉각 개입하는 조항을 담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만을 고집했다. 미국은 상호방위조약 추진 협상을 통해 ‘한국이 무력침략을 받을 경우, 미군의 즉각 개입’이라는 부분을 제외하고 이 대통령이 요구한 사항 대부분 수용해 1953년 8월 한미 간에 이 조약이 가조인되었다.
미국 ‘이 대통령 북진통일 추진 시 미군과 유엔군에 강력 저지될 것’ 경고
1953년 11월 4일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이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이 대통령이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개되도록 일방적으로 행동할 경우 본인은 미 상원에 상호방위조약이 평화와 상호 안보를 보장할 것이라고 확인해 줄 수 없다. 그리고 만약 이 대통령이 단독으로 북한 공격을 결정할 경우 그것은 한국군을 비참한 패배로 몰아넣으면서 효율적인 국방력을 영원히 상실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이젠하워가 이 대통령에게 강력 경고한 이유는 △미국이 정전협정 대가로 약속한 원조물자가 처음 부산항에 도착한 1953년 8월29일 이 대통령이 ‘한국군은 유엔군의 도움 없이 단독으로 북진할 것’이라고 공개 언급했고 △한국 내에서 정전협정에 규정된 ‘3개월 이내에 평화협상 대체’ 조항이 이행되지 못할 경우 북한에 대한 공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주장이 다양하게 전개된 것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T’ongilwihan t’ujaengŭn pulp’ogi” [Never Give Up the Struggle for Unification], August 31, 1953. Dong-A Daily./ Chŏngch’ihoedam kyŏlryŏlsi pukjinppun” [Only One Solution is Marching North if the Political Conference is failed], September 30, 1953 Dong-A Daily).
정전협정 제4조 60항은 정전협정이 조인되어 효력을 가진 뒤 3개월 안에 한반도로부터의 외국군 철수와 한반도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을 토의할 고위정치회담을 열도록 건의하도록 기재되어 있었다.
한미 간에 방위조약 타결 등을 위해 닉슨 미 부통령이 1953년 11월13일 방한해 이 대통령과 협상을 벌였지만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제네바에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정치협상이 열리기 50일 전인 1954년 3월11일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한국군의 단독 북진통일을 다시 주장했다.
이승만 집권 말까지 무력에 의한 북진통일 주장, 미국 경계
아이젠하워는 1954년 3월21일 이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이 대통령이 자신의 계획대로 추진할 경우 미군과 유엔군에 의해 강력 저지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미국은 한국군을 강한 군대로 만들기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으며 한국이 제네바 정치회의에 대표를 파견해 줄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승만은 굽히지 않았고 1954년 7월 미 국무장관 덜레스에게 보낸 서한에서 자신의 북진통일 계획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으며 두만강까지 별 힘들이지 않고 진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두 나라 사이에 긴장이 높아지자 아이젠하워 정부는 1954년 이승만 제거 계획을 다시 추진했다(Hong, Suk-ryul. 1994. “Hanguk Chŏnchaeng Chikhu Mikukŭi Yisŭngman Chekŏkyehoek,” Yŏkbi [Critical Review of History], 28: 138-169).
이 대통령은 그 후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정전협정 정치회의를 반대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1954년 제네바 회의에 한국 대표단을 파견했지만 평화협정 타결이 안 될 경우 유엔 기치아래 평화적인 해결보다 군사작전에 비중을 두는 태도를 고집했다.
이승만은 1956년 11월 에도 북진통일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개성, 웅진반도, 한강 북부 지역 등 3곳을 수복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은 집권 말기까지 지속됐다. 그는 4·19혁명으로 하야하기 6개월 전인 1959년 10월까지 북진통일론을 미국 측에 설파했고, 이로 인해 미국의 심각한 경계 대상이 되었다.
이는 1959년 10월 방한한 미국 국무부 부장관 더글러스 딜런이 이승만 대통령과 회담하고 이틀 뒤인 10월25일 미국 국무부 앞으로 타전한 기밀문서에서 밝혀졌다. 딜런 부장관은 이 대통령이 “통일을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무력뿐이라는 신념을 표현했다”고 기록했다(주간조선 2020년 7월21일).
▲ 1951년 11월1일 유엔군과 중국, 북한군이 정전협정 협의를 시작한 판문점 회의 막사 모습. 이승만 대통령은 정전협정 협의 시작 단계에서부터 맹렬히 반대하면서 무력에 의한 북진통일을 주장했다. 사진=위키미디어
이승만, 자주국방 외면 외세 의존 몰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외면
이승만은 집권 기간 동안 정부 관리들이 광범위하게 연루된 부정부패가 만연한 상태에서 공산주의자에 대한 증오와 공포를 앞세워 미국의 군사적 보호망아래 안주하는 방안만을 앞세웠을 뿐 자주 국방은 외면했다. 그는 미국에서 오랜 세월 독립운동을 하면서 강대국이 어떻게 제국주의적 이기주의에 사로잡히는가를 뼈아프게 경험했는데도 미국이 남한의 국방안보를 책임질 것만을 요구하거나 국군 단독으로 북침을 통한 무력 통일만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집권 연장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독재자의 길을 걸으면서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조봉암을 사법 살인하는 등 비폭력적 방식의 통일론을 원천봉쇄했다.
그는 미소가 벌인 냉전시대의 심각한 대립구도 속에서 2분법 논리로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식의 정치를 앞세워 국가보안법으로 사상의 자유까지 탄압하고 제주 4·3, 여순사건 등은 물론 6·25 전쟁 발발 직후 사상범으로 지목된 양민의 집단학살 등을 자행했다.
이승만은 6·25 전쟁 과정에서 국군 병력이 50만 명 수준에 달하자 유엔군 통제를 벗어나 단독 북진하겠다면서 정전협정을 무산시키려 지속적으로 노력했고 그것이 좌절되자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미국에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의 한반도 전쟁 자동 개입 장치를 만드는데 실패하고 미군의 남한 주둔에 특혜를 베풀어 한국군의 군사적 자주권을 스스로 내팽개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승만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미국이 일본을 위해 남한을 철저히 짓밟고 희생양으로 삼는데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기록은 찾기 힘들다. 일본으로부터 40년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충분히 받을 경우 경제 발전과 자주 국방 확립이 가능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이승만은 자신의 집권을 위해 야당 탄압, 사사오입 개헌과 같은 비정상적인 방식에 매달리고 부정선거가 자행될 여건을 방치했다가 4·19 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나 망명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집권 1년과 오염 범벅 용산어린이 공원 개방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 1년을 기념하기 위해 주한미군으로부터 반환받은 용산공원 반환부지 일부를 용산어린이정원으로 조성해 지난 4일 국민에게 개방한 것은 불평등한 한미동맹관계에 대해 미국의 입장을 챙겨주면서 그로 인한 피해를 한국민에게 전가하는 심각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윤 대통령이 일제 강제징용 배상문제에서 굴욕외교라는 비판 속에 일본 전범기업이 배상 책임을 회피하도록 ‘제3자 변제’라는 해괴한 방식을 내세워 국민 혈세나 국내 기업이 일본 대신 그 부담을 지게 한 것과 매우 유사하다.
용산미군기지 부지에서는 적지 않은 독성 물질이 검출된 데다 토양 정화 작업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2021년 한국환경공단이 미군과 합동으로 수행한 ‘환경조사 및 위해성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스포츠필드에선 토양 1㎏당 석유계 총탄화수소(TPH)가 1만8040㎎ 검출돼 기준치의 36배를 넘겼다. 장군숙소 구역에서도 TPH와 아연이 각각 기준치의 29.3배, 17.8배 검출됐고, 야구장 부지는 TPH 8.8배, 비소 9.3배가 검출됐다.
윤 대통령이 배우자 김건희 여사와 함께 개방행사에 참석한 용산어린이정원은 △정부가 토질오염에 대한 정화 사업 없이 공원이 아닌 정원을 만들어 어린이 포함 일반인의 유독물질 피해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크고 △용산기지 부지 오염의 원인 제공자인 미국이 정화에 대해 모르쇠 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일반시민에게 유원지의 형태로 덜컥 공개한 것은 미군의 환경오염부담을 면제하거나 경감시켜줄 수 있다는 비판을 자초한다.
반환 미군기지 부지를 관할하는 국토부는 일부 환경단체가 토양오염이 심각하다고 주장하자 “‘대기 중’에는 오염 물질이 없다. 잔디, 꽃 등으로 땅을 덮어 방문객과의 직접 접촉을 피했다”는 반박성 보도 자료로 응수했다. 국토부는 ‘대기 중 오염’은 일반 수준이라고 발표했지만 토양의 오염 정도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정부는 미군 기지의 완전반환 후 토양 정화를 거쳐 공원 조성까지는 최소 7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윤 대통령의 한미동맹 극찬과 국내 편 가르기 이념 공세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 가능성을 언급하는 돌출행동을 하면서 북한에 대한 초강경 노선을 들어냈고 이어 집권 초 밝힌 자신의 대북노선과 야권, 노동계에 대한 이념공세의 방향과 수위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그것과 유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은 북한의 군사적 움직임에 대해 국내외 수단을 동원해 초강수를 두고 야권이나 노동계에 대해 타협점을 찾기 힘든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데 이는 이승만의 그것을 연상시켰다.
윤 대통령은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언행을 앞세워 미일과의 관계 증진을 강조하거나 제주 4.3, 광주항쟁 등 민중항쟁 성격의 역사적 사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역사바로잡기 단체장 등은 수구적 인물을 기용한다. 동시에 노동 등 시민사회운동에 대해서는 철지난 이념공세를 하거나 철권을 휘두른다.
윤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서는 과거 박정희. 김대중 대통령 등이 시도했던 한반도 전쟁 방지. 평화공존 노력 등은 철저히 외면하면서 군사력만을 앞세운 대북 정책을 내세우고 있어 남북간 불통의 벽은 높아지고 있다. 이런 모습은 이승만이 북진통일만을 외치고 50만 국군이라는 자체 군사력이나 자주 국방 당위성을 철저히 불신하면서 미국에 군사적 주권까지 넘겨주는 외세 의존적 태도를 보인 것을 상기시킨다.
윤 대통령의 미국 의존 또는 한미동맹 적극 신뢰 태도는 지난 4월 한미정상회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당시 발표된 워싱턴 선언, 즉 미국의 한국에 대한 핵우산 제공 강화를 내용으로 한 워싱턴 선언을 70년전 체결된 한미상호방조약과 함께 추켜세웠다.
윤 대통령은 또한 정상회담 후 귀국해 지난 5월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한미 정상회담 결과와 성과는 하나의 시작일 뿐이며 영역은 계속 확장될 것이고 양국 국민들의 기회는 더 커질 것"이라면서 "세계 최강 국가와 70년 동안 동맹을 맺어왔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한미동맹 70년 역사는 그냥 주어진 게 아니다. 국가 관계에 있어서 고마운 것이 있으면 고맙다고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한미가 두 나라 동맹의 핵심으로 꼽고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국제법적 시각으로 보면 미국 쪽에 크게 기울어진 심각한 불평등 조약이며 △이승만이 북진통일을 주장하면서 정전협정 체결에 반대하면서 미국과 체결된 조약으로 평화협정 추진을 명문화했던 정전협정 취지와는 엇박자라는 점에 대해 모를 리 없을 터인데 극찬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도 지난 5월1일 한미정상회담에서 채택된 ‘워싱턴 선언’에 대해 “제2의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불려도 될 정도로 의미가 크다”고 평가하며 “이번 선언은 재래식 무기를 기반으로 한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에서 핵을 포함한 상호방위 개념으로의 업그레이드”라고 언급했다.
한편 윤 대통령은 대북 강경노선과 ‘주사파’에 대한 눈높이를 동일선상에 놓는 태도를 들어냈고 제주 4·3에 대한 내용을 교과서에 포함시키던 종래의 기준을 후퇴시켰다.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피해의 진상 규명을 전문으로 하는 진실화해위원회의 수장을 이 위원회의 활동 자체를 부인하던 극우인사로 지명했다. 윤 대통령의 대북 정책과 내치과정에서 적용된 이념문제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를 각각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윤 대통령은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취임 후 첫 3·1절 기념사를 통해 “우리 역사의 불행한 과거를 되새기는 한편, 미래 번영을 위해 할 일을 생각해야 한다. 3·1운동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협력 파트너로 변했다”며 한일 관계에 대해 ‘협력 파트너’라고 표현했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 문제 등에서 교과서를 통해 반역사적 제국주의적 시각을 강조하고 강제징용문제 등에서 일제가 전쟁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식의 뻔뻔스런 태도를 고수하는 가운데 윤 대통령의 일방적인 백기 투항식 일본에 대한 태도는 결국 한미일 해군 연합훈련 실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바다 방류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식의 조치를 취했다.
이어 29일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 하마기리 함이 다국적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욱일기의 일종인 자위함기를 게양한 채로 부산 해군작전기지에 입항하는 사태로까지 급진전됐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11월 한국 해군 주최 국제관함식에 해상자위대도 초청됐지만, 한국이 욱일기 대신 일본 국기와 태극기만 게양하라고 요구하자 일본은 이에 반발해 행사에 불참했을 정도로 이는 민감한 이슈였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19일 서울 용산구 소재 국방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민의힘 원외당협위원장 초청오찬에서 “종북주사파는 반민주·반헌법 세력이다. 좌클릭, 협치 할 수도 있으나 종북주사파는 협치 대상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우리 스스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확고한 믿음·확신을 갖는 것”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그 후 참모들과의 비공개회의에서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사태를 겨냥해 “북한의 핵 위협과 마찬가지”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북핵 위협에서 국민의 안전, 재산을 보호해야 하듯 ‘불법파업’으로부터 국가 경제와 민생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을 드러낸 발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서면논평에서 “북한을 대변하는 민노총, 차라리 ‘민로총’으로 이름을 바꿔라”라고 말한 바 있다(연합뉴스 2022년 12월05일).
윤석열 정부의 첫 국방백서에 북한정권과 북한군을 ‘적’으로 규정하는 표현이 부활했다. ‘2022 국방백서’안에 ‘북한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표현이 담겼다. 정부 소식통은 “국정과제에 제시된 대로 북한정권과 북한군을 적으로 명시하는 표현이 국방백서 초안에 들어갔다”고 말했다(연합뉴스 2022년 12월06일).
주적 개념은 지난 1994년 남북특사교환 실무접촉에서 북측 대표의 ‘서울 불바다’ 발언을 계기로 1995년 국방백서에 처음 명기돼 2000년까지 유지됐다. 이후 남북 화해 무드가 형성되면서 2004년 국방백서부터 ‘직접적 군사위협’ 등의 표현으로 바뀌었고,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에도 ‘직접적이고 심각한 위협’이라는 표현이 사용됐다.
윤 대통령이 장관급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에 김광동(59) 상임위원을 임명했다. 김 신임 위원장은 대표적 뉴라이트 인사로 알려져 있으며 나라정책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던 2008년 뉴라이트 계열의 대안교과서인 ‘한국 근·현대사’ 집필에 참여했다. 해당 교과서는 4·3을 '남로당을 중심으로 한 좌파 정치 세력의 반란'으로 규정한 바 있다. 과거사 진상조사를 반대하는 인물이 과거사 조사를 담당하는 위원회의 수장으로 내정된 것이란 비판이 제기됐다.
윤 대통령은 4·3을 폄훼해 온 극우 성향의 김태훈 변호사를 국무총리실 산하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해 4·3 관련 단체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윤 대통령은 일본에게 적극 다가가는 식으로 한일관계를 정상화시켜 대북 공조를 취하려하거나 북대서양조약기구와나 인도태평양지역 안보관련기구와의 대북 압박을 강화하려는 관계 증진을 시도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6월29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파트너국 정상회의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은 유엔안보리 결의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고, 한반도와 국제사회의 평화, 안보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그간 북한 문제에서 나토가 우리를 일관되게 지지해 온 것을 평가한다”라며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북한의 무모한 핵미사일 개발 의지보다 국제사회의 북한 비핵화 의지가 더 강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세계일보 2022년 6월30일).
윤 대통령은 지난해 10월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SA)에 참석해 “평화로운 인도·태평양을 위해서는 북한의 비핵화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국제사회의 거듭된 우려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재차 발사하거나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국제사회가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VOA 2022년 11월22일).
▲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4월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국의 법치, 미국익 최우선 – 군사주권 문제 한미동맹 정상화로 풀어야
이승만 전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의 북한 정책과 사상, 이념차이에 따른 국민 편 가르기 시도나 정책에 대해 살펴보았다. 두 지도자가 집권했던 상황은 동일하지 않다 해도 여러 가지 점에서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모든 전쟁 사례가 그렇듯이 전쟁 시작과 진행과정 등은 군통수권자인 최고 지도자의 품성 등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유권자를 포함한 전사회적인 경각심이 요구된다. 전쟁은 그 발생 자체를 막아야지 일단 발생하면 우크라-러시아 전쟁처럼 보복전이 반복되면서 규모가 커지게 되어 결국 국민적 희생이 막대해진다.
얼마전 대만에서 실시된 지방의회 선거에서 ‘친미반중’을 앞세우며 독립, 분리를 주장하던 집권당이 대패했다. 양안간 경제관계가 밀접(대만의 대중 수출 비중 전체의 40% 전후)한 특성 등이 유권자의 표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통일뉴스 2022년 11월29일).
이는 향후 미국의 대만 정책과 대북정책에 어떤 식으로 든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국 유권자들도 2024년 총선에서 어떤 이유이든 전쟁은 안 된다는 의사 표현을 확실히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전쟁은 한민족에게 회복 불능의 피해를 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외 정책은 미 국익 챙기기가 최상의 가치로, 우방국에 대한 도감청이나 외국 지도자 암살을 불법으로 처벌치 않고 그 폭로 행위를 되에 반국가사범으로 처벌하게 되어있다. 최근 미 국가안보국(NSA), 중앙정보국(CIA), 국무부 정보조사국 등 정부 정보기관이 한국 정부 등에 대한 불법 도감청 자료가 폭로됐는데 2013년에도 미 국가안보국(NSA)이 적대국뿐만 아니라 한국 등 다른 동맹국의 미국 주재 대사관을 염탐한 사실이 폭로된 바 있다.
국제법을 짓밟는 미국의 불법행위에 대해 한국 정부가 별 문제아니라며 덮으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국제사회의 법치를 훼손한다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미국이 경제적 이익을 앞세워 자국 반도체, 배터리 산업 보호를 위해 취하는 파렴치한 행위로 국내 기업이 곤욕을 치르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대외정책이 6·25 전쟁 전후해 한반도에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그리고 미국의 오늘날의 모습이 국제사회에 어떤 모습인지 윤 대통령이 더 정확히 파악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윤 대통령은 용산미군기지 오염 문제로 한미동맹의 핵심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문제점이 확인되었다면 그 정상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이 조약으로 확보한 기득권을 행사하는 것은 미국식 법치로 보면 당연하다고 하겠으나 21세기 국제사회의 상식으로 보면 매우 비정상적인 국가간 관계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 조약은 수정 보완 조항이 없으며 6조를 통해 폐기만이 가능하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과 상호 윈윈한다는 취지에서 국제사회의 정의수립을 위한 결단을 해 한미동맹 정상화에 나서야 한다 .미국이 정상적인 법치를 통한 한미관계를 정립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그 정상화를 위해 시급히 폐기되는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문제는 필리핀과 미국의 군사협정이 △미군은 필리핀 군부대 안에서 해당 지역 동의를 받을 때만 한시적 주둔을 할 수 있고 △필리핀 국내법의 적용을 받으며 영구기지는 만들지 못하며 △미군이 투자한 자체 시설은 추후 필리핀에 양도하게 되어 있다는 점과 비교하면 한국의 군사부문 비자주적 현실이 확연해진다.
국내에서는 주한미군 기지나 법적 지위문제를 거론할 때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부속협정인 SOFA만을 주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상위법과 하위법 관계를 볼 때 효율적이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이 조약의 법리에 따라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SOFA 개정은 모법인 이 조약의 개선이나 폐기로 가능할 뿐이다. 그런데 이 조약은 개정할 조하이 없고 단지 제 6조에 의해 폐기만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가 이 조약 페기를 미국에 통고하는 식으로 조약 정상화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한국이 미국과의 군사관계를 정상화 시키는 것은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좀더 국제적 상규에 맞게 개선시킬 방안의 하나가 될 수 있다. 미국식 법치주의는 한반도에서 보장된 기득권을 최대한 활용하는 관행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경제력 세계 10위권, 군사력 세계 6위인 한국이 국가의 자주권을 지구촌 2백 여 국가처럼 회복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정상화가 첫 출발점이라 할 것이다.
미디어오늘 고승우 민언련 고문·언론사회학 박사
은퇴하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는 프랑스 노인들
[2023 글로벌 리포트 - 다가올 미래 '老월드'] 존엄한 노년의 조건들
▲ 지난 8일(현지시간) 프랑스 중동부 리옹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프랑스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연금 개혁안에 서명했으며 올해 말부터 시행될 예정이나 야당 의원들은 새 연금법의 핵심 부분을 무력화하려는 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 연합뉴스
프랑스 노인들은 현존하는 프랑스 전체 연령층 가운데 가장 급진적인 세대다. 반정부 집회에서 노년층은 언제나 다수를 차지한다. 에릭 즈무르 같은 극우 선동가의 연설회장엔 20대 청년들이 주로 모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대중교통 안에서 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면, 절반은 고맙지만 사양한다고 반응한다. 때때로 자리를 기꺼이 받을 땐 진심 어린 감사의 말을 건넨다. 아담한 크기의 도시 파리에선 대중교통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서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가진 마음의 여유로움이 어디서 오는 건지, 늘 궁금했다. 여유의 실체는 사실 단순하지 않다.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으로 탄탄히 짜여진 그물망에 가깝다.
전쟁 직후 태어난 베이비붐(1946~1964년생) 세대인 그들은, 전쟁의 트라우마를 지닌 부모 밑에서 나치와 레지스탕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68혁명을 직간접으로 경험하며 미세한 자유와 개인주의를 쟁취했으며, 1981년 마침내 들어선 사회당 정부가 어떻게 신자유주의를 도입하며 노동자들을 배반했는지 목격했다.
21세기 이후 번갈아들어선 좌우 정부들은 자본가의 이해를 대변하는, 이름만 다른 부르주아 정당들임을 경험했다. 기본적으로 권력자를 불신하며, 거리에서 벌이는 민중의 투쟁이 갖는 힘을 신뢰한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가장 넉넉한 세대이기도 하다. 그것은 투쟁의 결과이기도 하고, 이들이 후대를 위한 투쟁에 나설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2022년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프랑스 노인의 약 8.6%가 빈곤층(프랑스 성인 평균 수입의 60%에 못 미치는)이다. 이는 25~29세의 빈곤율 15.7%의 절반에 해당한다.
이들의 낮은 빈곤율은 유럽연합 노인 빈곤율의 평균치인 15%에 비해 양호한 수준이고 독일(20%)에 비하면 놀라운 수준이다. 이는 프랑스의 연금 시스템이 노년층의 삶을 매우 견고하게 지탱해 주고 있음을 보여주며, 은퇴 후 약속된 엘도라도를 뒤흔드는 정부에 온 국민이 그토록 극렬히 반대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다수의 노인이 요양 시설에서 여생을 보내는 듯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65세 이상의 대부분(남성 96%, 여성 93%)이 요양시설이 아닌 자기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노인들이 요양원에 입소하는 평균 연령, 즉 독립적으로 생활하기 어려워지는 시점은 85.2세다. 노인들은 최대한 긴 시간 자기 집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다가 생을 마감하길 원한다.
빈 만큼 채워주는 노령연대지원금
▲ 프랑스 연령대별 삶의 만족도(2020) 붉은색은 현재의 삶, 군청색은 주거, 파란색은 생활 환경, 회색은 직장에 대한 만족도를 의미한다. ⓒ 프랑스 통계청
연금이 있기 때문에 이들의 노년은 우울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물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연금이 충분하지 않아도 낭떠러지로 밀려나지 않는 안전망이 있기에 노년의 존엄은 지켜진다.
노령연대지원금(ASPA)은 월 수입이 961유로(136만 원)가 안 되는 65세 이상의 노인에게 제공된다. 부부인 경우 지원금 지급 기준선이 1492유로(212만 원)로 상승한다.
즉 65세 넘은 노인의 월수입이 700유로(99만 원)밖에 안 된다면, 정부가 961유로에서 모자라는 261유로(37만 원)를 채워주는 시스템이다. 노인 부부의 수입이 1000유로(142만 원)라면, 492유로(70만 원)를 정부가 지원한다. 그러나 이 지원금은 자동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신청을 한 사람에게만 지원되므로, 몰라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건강상의 이유로 독립적인 생활이 힘든 노인에 대한 국가의 지원도 있다. 자립개별지원(APA)이라 불리는 이것은 60세 이상의 프랑스 거주 노인 중 건강상의 이유로 자립적인 생활이 힘든 노인에 대한 지원이다. 집안에 필요한 설비를 지원해 주기도 하고, 식사를 배달해 주거나, 집안일 도우미가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등 개인의 필요에 따른 맞춤 지원이 진행된다.
90%는 방문 도우미에 대한 인건비로 지급되는데 수혜자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최소 월 705유로(101만 원)에서 최대 1807유로(256만 원)까지 나온다. 2020년엔 132만 명의 노인이 이 지원의 혜택을 받았다. 54%가 가정에서 생활하는 노인들에 대한 지원이고, 46%는 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인들에 대한 지원으로 요양시설 비용을 정부가 대신 내주는 격이다. 2022년 보건부 발표에 따르면 85~89세 노인의 25%, 90~94세 노인의 절반이 이 지원을 받고 있다.
202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65~75세 노인의 현재 삶에 대한 만족도는 10점 기준 7.3으로 45~59세의 7.0보다 높게 나타났다. 특히 이들의 주거환경에 대한 만족도는 8.0으로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높다. 은퇴만 하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는 프랑스 노인들의 전형적인 삶은 지표상으로도 또렷하게나타난다.
마크롱 정부의 연금 개혁 반대 집회에 가장 많이 나섰던 이들 역시 바로 이들이다. 이미 이들은 62세 혹은 60세에 대부분 은퇴했기에 개정되는 연금과 무관하다. 그러나 자신이 누린 것을 자식 세대도 고스란히 누리길 바라고, 싸워서 얻은 것은 또다시 싸울 때만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습득한 세대이기에, 자식과 손자들을 위해 거리에서 싸웠던 것이다. 이런 사회적 배경 속에서 빛나는 노년을 누리고 있는 사례를 소개한다.
[사례 1] 실비(Sylvie, 71)
▲ 교육부 공무원으로 일하다 6년 전 은퇴한 실비는 기공, 도자기 공예, 무료 급식소 봉사 활동 등으로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 목수정
65세에 은퇴한 실비는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노년을 누리고 있다. 18세부터 다양한 알바를 했고 우편배달, 연극배우 등을 거쳐 교육부 산하 청년 재교육시설에서 일했다. 바칼로레아(프랑스의 대학 입학 자격)를 취득하지 못하고 직업을 얻을 준비가 안 된 청년(18~25세)들에게 제2의 기회를 주는 일이다.
6~12개월 동안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재교육하고, 일정한 봉급을 받으며 일해 경험을 쌓도록 돕는 것이 그녀의 일이었다. 소년원에서 출소한 아이,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 등 척박한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이 대부분이기에 수월한 과정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사회로 다가갈 기회를 주는 의미 충만한 일이었다.
62세 때 은퇴할 수 있었으나, 그땐 당장 일을 놓고 싶지 않았다. 기쁜 마음으로 바쁘게 일하고 있었기에 일을 놓았을 때 닥칠 공허가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65세가 되자 피로가 누적되었다는 느낌이 확연해졌고 자연스럽게 은퇴를 결심했다.
요즘은 매일 아침 마을 공원에서 이웃들과 기공을 하고, 오후엔 요가를 하거나 도자기 공예를 하며, 주말엔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른다. 일주일에 한 번은 시민단체 '마음의 레스토랑'에서 자원봉사를 한다.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곳이다. 영화나 연극을 보러 다니고 남편과 함께 여행도 자주 간다. 매년 베트남에서 한 달간 지내며 그곳 보육 시설에서 자원봉사 하는 것도 은퇴 후 지속해 온 활동 중 하나다.
은퇴를 결정할 무렵, 직장에서 제공하는 은퇴 준비를 심리적으로 돕는 강연을 들었다. 이틀간 이어진 프로그램은 은퇴 후의 삶을 구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젊었을 때 연극을 했기 때문에 영화·공연예술인·언론인공제조합 '오디언스'로부터도 작은 액수의 연금을 받는데, 특히 그곳에서 제공하는 양질의 서비스를 누린다.
오디언스에서도 사흘간 은퇴자를 위한 연수 프로그램을 제공했는데, 심리학자 마리 드 에네젤(<늙는다는 모험> 저자)이 연사로 와서 심리적으로 은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획하고 즐겨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은퇴 전엔 늘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활기를 얻었는데, 지금은 만나는 사람이 제한된다는 게 은퇴 이후 조금 아쉬운 점이다. 그 부분은 은퇴 이후 맺은 새로운 관계 속에서 서서히 채워지고 있지만, 문제는 '의미'다. 지금의 시간을 채우는 것은 흥미로운 여가생활이지만, 일이 주던 의미를 충족시켜 주진 못한다. '마음의 레스토랑'에서 하는 봉사 활동이 어느 정도 채워주지만 앞으로 더 채워가야 할 대목이다.
마크롱 정부의 연금 개혁에 대해선, 특히 소통 없는 개혁의 일방적 방식에 대해 반대한다. 모든 직업이 같은 노동강도를 갖고 있진 않고, 이전의 연금법은 그러한 특수성을 충분히 반영하는 미덕을 가졌다. 그것을 일원화하여, 직업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본다. 자신은 만족스런 제도의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두 자식은 그렇지 못할까 봐 걱정이다.
[사례 2] 베아트리스(Béatrice, 69)
▲ 베아트리스는 조각가로 2년 전부터 연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 목수정
조각가인 베아트리스는 2년 전 연금 생활자 대열에 들어섰다. 10년간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예술학교에 다녔고, 서른이 다 되어서야 작가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예술인의 집'을 통해 사회보장제도에 편입되었고, 그곳에 예술가로서 소득을 신고하고 연금 분담금을 납부해왔다.
부모님은 22세 이후 재정지원을 일절 안 해 주셨기 때문에, 학생 시절에도 여러 알바를 했다. 오전엔 시장에서 장사하고 오후에 수업을 들으러 오는 모습을 본 학교 측에서 야간에 성인들 수업을 맡겼는데, 그때 받은 것이 첫 번째 공식 월급이었고 첫 번째 연금 분담금이기도 했다.
67세부터 연금을 타기 시작(67세는 연금 분담금을 낼 수 있는 마지노선)했다. 40년을 부어야 채우는데, 그에 크게 못 미치니 연금이 700유로(99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전에 없던 연금이 정기적으로 나오니 삶이 훨씬 안정적이다. 일상은 은퇴 전과 다를 바 없다. 예술가는 몸이 허락하는 한 계속 예술작업을 해야 하니 여전히 그림도 그리고 조각도 한다.
집이 넓은 편이어서 방 두 개를 예술대학 학생들에게 빌려주고 그 집세로 부족한 연금을 보충한다. 예술가로서의 작업은 멈추지 않았으나 요즘은 일 년에 한 작품 정도 팔린다. 얼마 전에 팔린 작품에서 6000달러(790만 원)를 벌었다. 갤러리에서 절반은 가져갔으니 산 사람은 1만 2000달러(1580만 원)를 냈을 것이다.
조각가로 일하는 중에 일주일에 10시간 정도 학교에서 강의도 했다. 늘 시간제 강사였지만 그 시간이 연금을 차곡차곡 내는 데 큰 도움이 됐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보람도 컸다. 남편도 예술가다. 남편은 도미니크 공화국 출신인데 그쪽 나라에서 작품을 많이 판다. 연금은 나보다 적지만 아직 작품을 팔 수 있어서 그의 삶도 쪼들리진 않는다.
[사례 3] 크리스틴(Christine, 64)
▲ 투씨재활용센터 대표 크리스틴 ⓒ 목수정
부르고뉴 지역의 투시라는 작은 마을에 '라 칼리포니'라는 재활용 공동체가 있다. '투씨 서로돕기', '투씨재활용센터', '봉쥬르 카스카드', 이 세 시민단체가 함께 라 칼리포니를 이룬다. 은퇴한 노인들이 주축이 된 이 공동체는 5년 전 생겨났고 무섭게 확장(!)하는 중이다.
크리스틴은 이 흥미진진한 프로젝트의 중심인물이다. 그녀는 파리의 한 병원에서 행정직으로 일하다가 조금 이른 나이인 58세에 일을 그만두었다. 연금을 받을 수 있는 62세가 될 때까지는 실업 수당을 받다가, 2년 전부터 연금을 수령하기 시작했다.
부르고뉴 지역에 주말 별장을 둔 까닭에 자주 드나들다가, 투씨에 10년째 비어 있는 창고 부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는 주변 지인들과 함께 협회를 결성하고 투씨재활용센터를 열었다. 지자체는 적극 찬동하진 않았지만, 협회가 그 공간을 재활용센터로 쓰는 것을 허락했다.
400제곱미터에 달하는 넓은 창고는 가구, 생활용품, 책, 가전제품 등 다양한 물건들이 들어오고, 맞은편에 있는 사무실 공간은 지역 노인들이 꾸려온 또 다른 시민단체 '투씨 서로돕기'가 의류, 침구류, 신발 등을 기증받아 저렴하게 판매한다.
매장의 수익은 지역 저소득층에 식료품 가방(매달 5000개)을 전하는 데 사용한다. 인근 대형 슈퍼마켓과 제휴해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품을 무상으로 제공받고 일부는 수익으로 구입한다. 수년 전 이곳에 정착한 시리아 난민이나 지난해 피난 온 우크라이나인들도 수혜자들이다.
크리스틴은 투씨재활용센터 대표다. 창설 멤버이자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다 2년 전 대표로 선출되었다. 일주일에 나흘을 이곳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고, 1년 전부턴 은퇴한 남편까지 가세해 함께 일하지만, 부부는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마찬가지로 한 푼도 받지 않는다. 부부에겐 4000유로(568만 원)의 연금 수입이 있기에 금전적 보상은 필요하지 않다.
크리스틴은 자원봉사자 25명의 일을 조직하고, 기증되는 물건을 정리하며, 매장에서 물건도 판매한다. 거의 모든 자원봉사자가 은퇴한 노인들이다. 은퇴 이후, 유유자적 여가를 즐기는 대신 재활용 센터에서 혼신을 다해 일하는 이유를 물었다.
"버려지는 물건에 제2의 삶을 준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죠.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기쁨도 크고요"라고 답한다. 버려진 공간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설립자의 마음은 새 생명을 세상에 내놓은 어머니의 마음이기도 하다.
그는 이제 걸음마를 떼고 속도를 내어 걷기 시작한 이 공간이 더욱 커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3년째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이 일에 정성을 쏟는다. 공간이 확장되고, 드나드는 사람과 물건이 늘어나면서 작년부턴 지역 청년 2명을 정규직원으로 고용할 수 있었다.
지난해 시작해 올해 완성된 확장 공사도 자원봉사자들이 한 것이다. 시간은 더뎠지만, 은퇴 노인들에게 가장 넉넉한 자산이 시간이기에 문제 될 건 없었다. 공간이 확장된 덕에 전엔 사양해야 했던 덩치 큰 물건들도 이젠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사례 4] 베르나데트(Bernadette, 69)
▲ 투씨재활용센터 자원봉사자인 베르나데트는 합창과 봉사활동을 병행하며 바쁜 노년을 보내고 있다. ⓒ 목수정
투씨재활용센터의 또 다른 자원봉사자 베르나데트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4년 전 은퇴해 연금을 받기 시작했다. 평생 여러 직업을 가졌는데 주로 사람을 돌보는 일이었다. 탁아소에서도 일했고, 마지막으로 했던 일은 노인들을 돌보는 일이었다. 은퇴는 했지만 여전히 일주일에 이틀간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돌보는 일을 하며 돈을 번다.
나머지 날 중 이틀은 재활용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나머지 이틀은 합창단에서 노래 부르며 간사로 활동한다. 그녀의 일주일은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인터뷰했던 날도 재활용센터 일을 마치고 뒷마당에서 저녁에 열리는 록 페스티벌(세 번째 단체인 봉쥬르 카스카드는 이곳에서 문화 행사를 한다)에서 입장권 판매를 맡았다. 이렇게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이 활력 있는 노년의 비결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재활용센터에서 자원봉사 하는 이유를 물으니 "물건들이 누리는 제2의 삶을 보는 게 재미있어요. 다양한 계층의 많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구요. 나이 들수록 노인에게 필요한 건 사람들과의 접촉이거든요. 여기 사람들은 계층과 세대를 막론하고 모두 행복한 얼굴이라 그것도 맘에 들죠. 특히 자원봉사 하는 사람들과의 팀워크가 너무 좋아요. 그렇지 않다면 여기 오지 않겠죠"라고 한다. 은퇴 후에도 여전히 경제활동을 부분적으로 하고 있지만 봉사활동과 여가 활동도 빠짐없이 누리며 알찬 노년을 보내고 있다.
설립부터 운영까지 여성 노인들이 앞장서고 있는 이곳에서 남성 노인들은 주로 뒤에서 돕고 있다. 가전제품을 수리하거나, 공사에 힘을 보태고, 무거운 물건을 기증하러 온 사람들을 도와주고, 때론 덩치 큰 물건들을 배달해 주기도 한다.
버려지는 물건에 제2의 삶을 제공하는 재활용센터는 노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제공하는 듯하다. 쓸모를 잃고 버려질 운명에 놓은 물건들이 새로운 삶을 찾는 재생 센터에서 노인들은 자신들의 삶이 재생되는 기쁨을 간접적으로 누리는 것이다. 그들이 말한대로 이곳에선 모두가 행복한 얼굴이다.
6개의 와인잔 세트와 6개의 크리스털 디저트 그릇 세트를 각각 2유로(2800원)에 장만한 나도, 두꺼운 양장본 렘브란트 화집과 매그넘 사진집을 각각 1유로(1400원)에 구입한 남편도 만족감에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풍요의 땅 투씨재활용센터의 성공은 가히 폭발적이다. 주말이면, 먼 곳에서까지 찾아온 승용차들로 한적한 시골길이 주차장이 되곤 한다. 자원봉사자들이 기증한 물건을 깨끗이 손봐서 가지런히 전시해 놓는 탓에 방문자들은 정갈하고도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한두 사람에게 이익이 집중되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누구에게도 이익이 집중되진 않지만 모두가 자잘한 기쁨을 누리는 공간을 통해 멋지게 무력화시키는 지역 공동체의 재생 경제가 노인들의 노력으로 만발하는 중이었다. 이들은 집회에 참석해 냄비 뚜껑을 두드리며 저항도 하지만,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커다란 산을 조용히 들어 올리고 있었다.
▲ 메이데이 연금개혁 반대집회에 나선 노인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대국민 방송이 진행되던 날 저녁, 시민들은 소통을 거부하는 대통령의 말은 듣지 않겠다는 의미로 냄비 뚜껑을 두드리는 저항을 시작하면서 메이데이 집회에도 냄비가 대거 등장했다. ⓒ 목수정
오마이뉴스 목수정
웃음바다 된 장례식장... 우아하게 늙는 법 알게 해준 사람
[2023 글로벌 리포트 - 다가올 미래 '老월드'] 미국 노인 시스템의 목적 '인간다운 삶 유지’
지난가을 근 5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팬더믹동안 통화만 하던 80대의 양가 부모님과 시간을 갖자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탑승 직전 시어머니의 병원 입원 소식을 들었다. 시골 강원도에서 옥수수를 따다 낙상한 허리의 통증이 악화돼 생전 처음 입원을 하셨다고. 다리가 불편해 운전을 못하시는 시아버님은 주변 도움으로 나들이를 하고 끼니를 챙기시고 계셨다. 코로나로 병문안은 여전히 언감생심인 때라 어머님 얼굴은 거의 2주가 지난 퇴원 후에야 처음 뵐 수 있었다.
서울에 홀로 사는 친정아버지는 지난여름 코로나에 감염됐다. 완치 후에도 낫지 않는 잔기침이 심상치 않아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폐암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들었다. 내 또래 의사는 심각한 얼굴로 정밀 검사를 하고 본격적인 항암 치료를 권했다. 잠시 고민하던 아버지는 지금처럼 아파트 경비 일과 성당 봉사를 계속하고 싶다 하셨다.
짧지 않은 나의 한국 방문 기간 중 가장 많이, 가장 자주 들른 곳은 '병원'이 됐다. 시댁인 강원도 횡성과 친정인 서울 화곡동을 오가며 나는 척추, 관절, 흉부, 내분비, 안과, 이비인후과, 비뇨기과, 치과, 한의원까지 거의 매일 방문해야 했다. 예약 후 접수에서 진료, 수납, 주차 티켓까지 병원은 노인들 혼자 다니기엔 녹록지 않은 곳이었다.
마지막까지 이웃 거둬 먹인 사람
린다의 부고가 신문에 실렸다. 지역의 대소사와 도서관 행사들, 동네가게 쿠폰 등이 실리는 미 중부 시골 지역 신문 인포럼(InForum)에. 인구 12만 로컬 신문의 1/3은 지역 사람들의 부고 알림판이다. 오늘 그 부고란엔 내 이웃 린다 브라운(Linda Faye Brown)의 일생이 길게 소개되어 있다.
... 1997년 도시에 대홍수가 났을 때, 린다는 구호 식량 프로그램을 지휘하기 위해 40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매년 홍수 때마다 같은 일을 하면서 지역 사회를 위한 봉사의 순간순간을 사랑했습니다. 린다는 자신의 일을 "홍수 피해자 먹이기"라 부르며 즐겁게 그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 지역 신문에 린다의 부고가 실렸다. ⓒ 최현정
린다는 좋은 이웃이었다. 낡은 콘도 입구에 들어서면 열려있는 문틈으로 사람들의 웃음소리, 얘기 소리가 끊이지 않던 유닛의 주인이었다. 친구가 보낸 체리로 만들었다는 파이를 나눠주고 생일날 문 앞에 놓아준 카드와 화분은 그녀 주변에 왜 그렇게 좋은 이들이 가득했는지 알게 해줬다.
어느 날 주차장에서 만난 린다가 두툼한 약봉지를 흔들며 어깨를 으쓱했을 땐 별거 아니려니 생각했다. 그리고 몇 달 만에 급격히 악화한 건강은 미처 작별 인사를 나누지 못한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허약해진 몸으로 잠시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연하게 만든 카레와 맵지 않은 깍두기를 배달했다. 가족처럼 그를 챙기던 이웃 할머니를 통해 커다란 종이에 응원의 메시지가 가득한 카드를 보내기도 했다. 왁자지껄하던 그의 집은 지인들이 보내준 쿠키와 케이크, 꽃과 화분들이 차분히 대신했다.
"사흘 전 병원 침대에 누워있던 린다와 마지막 대화를 나눴습니다. 내가 당신 장례식에서 어떤 얘기를 해주면 좋을지 물어봤죠. 잠시 생각하던 린다가 이렇게 답하더군요."
▲ 투병중인 린다 집앞의 안내판 ⓒ 최현정
나 같은 이웃들과 오랜 친구, 지인들, 신문 부고란을 보고 찾아왔다는 이들로 가득 찬 장례식에서 성당 신부님이 그녀의 말을 전한다. 사흘 전이면... 항암치료의 극심한 고통 속에서 잠깐잠깐 마취에서 깨어나던 그때였을 것이다. 항상 웃는 얼굴에 유쾌하고 사람 좋은 린다가 삶의 끝자락에서 무슨 얘기를 했을까 귀가 쫑긋해졌다.
"린다는 진지하게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먼저 하객들에게 다들 핸드폰을 꺼달라고 해주세요. 그리고 나는 원래 뚱뚱하지 않았다고 얘기해 주세요. 젊었을 땐 아주 날씬하고 핫했다고요."
조금 전까지 눈물을 훔치던 조문객들이 일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어디선가 일부러한 것이 분명한 '띠리링' 소리가 울리자 또 한 번 웃음이 터진다. 린다가 직접 섭외했다는 4인조 로컬밴드는 장례 미사 내내 그가 좋아하던 재즈와 올드팝을 연주했다.
장례식을 마친 우린 입장 때와는 다른 편안한 얼굴로 성당 지하 식당에 내려가 식사를 했다. 린다가 미리 세팅해 놓은 메뉴였다. 그는 마지막까지 우리를 거둬 먹였다. 린다네 집 거실에 있던 커다란 원목 탁자는 벌써 성당 식당 한가운데 자리 잡고 손님을 맞고 있었다. 그날 난 린다 친구들과 좋은 기억을 나누며 맛있게 내 몫의 그릇을 비웠다.
1인 가구 노인을 지켜준 것
평생 결혼하지 않은 1인 가구로 노년을 맞은 린다를 지켜준 건, 친구와 봉사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 후 40여 년간 일하며 낸 세금으로 받게 된 노령연금이었다. 콘도 렌트비를 충당하고도 백화점에 가 옷을 사고 가끔 여행도 가고 친구들에게 멋진 선물을 해 줄 비용으론 모자라지 않은 금액이었다.
매달 정해진 날짜에 한 번도 어김없이 통장에 입금되는 연금은 웬만한 효자보다 낫다고들 말한다. 젊은 날 열심히 일한 뒤 나라에서 받는 노후의 연금은 린다의 우아한 노년을 가능하게 한 중요한 부분이었다.
린다가 병원에서 보낸 1년여를 보장해 준 정부 의료보험도 위태로울 수 있는 노년의 삶을 보호했다. 10년 이상 일한 65세 이상 노인에게 미국 정부는 메디케어(Medicare) 혜택을 준다. 의료비의 약 80%를 지불해 주는 제도인데 자신의 사정에 따라 20% 공백을 메우는 메디캡 보험을 추가하거나 개인 보험을 가입하기도 한다.
저소득자의 경우 메디케어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을 지원해 주는 메디케이드(Medicaid) 대상이 된다. 여기엔 장기요양 서비스나 치과, 안경 보험 등도 포함된다. 혜택이 좋기에 오남용 방지를 위해 가입이 까다롭다. 신청 직전 5년 동안의 재산 상태를 확인하고 문제가 발견되면 사후에도 비용이 징수된다.
린다는 선택하지 않았지만 노인 아파트도 조건이 되면 순서를 기다려 입주 가능하다. 카운티나 타운, 비영리 주택회사가 운영하는 노인아파트는 중간 소득 80% 이하의 무주택 노인들이 주 대상이다. 대부분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 시니어 아파트는 현 수입의 30% 정도만 임대료로 지불하면 된다.
식료품도 예외는 아닌데 미국 마트에 가면 기존 신용카드와는 다른 색깔의 카드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볼 수 있다. SNAP라는 연방정부에서 지원하는 식료품 바우처다. 미국산 농수축산물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목적도 포함된 이 카드에는 2023년 현재 1인당 매달 최대 $281(약 37만 원)가 지원된다. 60세 이상 저소득층 노인 외에도 가족 중 장애인이 있는 가정도 지원받을 수 있어 미국 전체 인구의 1/8이 혜택을 받는다고 한다.
"1인당 $941(약 124만 원) 정도는 보장됩니다. 뉴욕시에 살면서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 비용이죠. 노동력이 없어도 의식주는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뉴욕봉사센터에서 노인 돌봄 일을 하는 소야씨는 자신이 지켜본 미국 노인 시스템의 목적을 '인간다운 삶 유지'라고 정의했다. 선진국이라 하는 미국 복지 시스템의 타협할 수 없는 마지노선인 것이다.
지난 2월 7일 바이든 대통령은 미 의회 국정연설 중 야유하는 공화당 의원들을 보며 말했다.
"제 축구 코치가 늘 말했듯이 '여러분 노년에 행운이 있기를 빕니다'."
대통령 연설에 노골적인 야유를 보내며 자신들의 존재를 과시하던 극우 공화당 의원들에게 바이든은 가볍게 응수했다.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폐지하겠다는 공화당 의원들의 위협에 대한 대응이었다.
기자들은 젊은 시절 풋볼 코치를 한 바이든이 '초짜들에게는 노련한 베테랑들의 로프 묶는 법을 배울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미로 사용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나이든 사람에게는 경륜이 있다는 뜻이었으리라. 이 말을 한 바이든의 나이는 80세다.
▲ 19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메릴랜드주 애코킥에서 자신의 경제 구상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인간은 누구나 늙는다
"난 죽음은 두렵지 않아. 하지만 난 내 삶을 너무 사랑하기에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사실이 매우 슬퍼."
수척해진 얼굴의 린다가 안부를 묻는 나에게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나는 재밌는 얘기를 했고 그는 옛날처럼 깔깔 웃었다. 그리고 우린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나는 그가 아끼던 물건 몇 개를 선물 받았고 동부로 이사 온 지금도 잘 쓰고 있다.
▲ "나의 팬들에게. 난 웨스트파고의 3층 집으로 이사했어. 해바라기에 필요한 내 짐들을 모두 들고 말이야. 지금 암과 투병중인 나의 린다는 내가 친척들의 응석받이가 된 걸 다행이라 생각하고 만족해 하고 있지. 이 말 아니? 사람은 개를 소유할 수 있지만 고양이는 사람을 갖는다." 린다가 키우던 고양이가 편지를 남겼다. ⓒ 최현정
우리는 누구나 늙는다. 늙은이는 연악한 존재다. 그래서 내가 속한 사회와 국가가 나를 보호해 주길 바란다. 그래서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의 나라를 원한다. 전쟁터가 되지 않길, 약육강식 동물의 왕국이 아니길 빌어본다. 날카로운 이빨도 없고 빨리 달리지도 못하는 인간이란 동물이 멸종하지 않기를 빌어본다. 린다는 남아있는 이들에게 우아하게 늙는 법을 가르쳐주고 아름답게 떠났다.
오마이뉴스 최현정(baltic)
부모를 요양원에 모시는 건 패악"... 이 나라 자식들이 택한 길
[2023 글로벌 리포트 - 다가올 미래 '老월드'] 시스템 부재로 가족이 떠안은 굴레
▲ 영화 속 주인공 미겔과 코코할머니. ⓒ 월트디즈니컴퍼니
영화 <코코>에 나오는 할머니를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두 명의 할머니, 도냐 코코와 도냐 엘레나. 사실 이 영화가 '멕시코의 노인'이라는 주제와 상관이 없음에도 자연스레 영화 속 두 할머니, 도냐 엘레나와 도냐 코코가 생각났다.
우리나라에서도 제법 많은 관객을 모았던 영화지만 그 제목이 주인공이 아닌 그의 증조할머니 이름이란 사실을 인지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영화 속 주인공 이름은 미겔이다). 코코 할머니는 휠체어에 앉아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늘 가족들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 모습으로 영화 전반에 등장한다.
그리고 또 한 명의 할머니. 작은 할머니 혹은 젊은 할머니로 불리는 도냐 엘레나. 가족의 구심 역할을 하며 가족 구성원 모두를 거두어 먹이는 것에 최고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큰할머니 도냐 코코와 달리 성격이 다소 과격하여 누구에게라도 자신이 신고 있던 슬리퍼를 벗어 '스매싱'을 날리는 인물이다. 자신의 어머니 코코 할머니를 돌보고 삼시 가족들의 밥을 걱정하고 일가친척의 삶을 기꺼이 껴안고 단속해가며 살아가는 실질적 가장이다.
영화 <코코>가 개봉했을 때 멕시코 사람들 대부분은 그들의 삶 가운데 존재하는, 혹은 존재했던, 도냐 엘레나와 도냐 코코를 회상했을 것이다. 삶의 희로애락을 공유하는 가족 범위가 사촌은 기본이요 육촌에 팔촌을 훌쩍 넘어서니 굳이 그들의 직계존속이 아니더라도 그들만의 도냐 코코와 도냐 엘레나가 있었을 것이다. 온가족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 도냐 코코와 대가족의 실질적 가장 도냐 엘레나는 사실 멕시코에서 매우 평범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캐릭터다.
▲ 슬리퍼 스매싱으로 유명한 미겔의 할머니, 도냐 엘레나. ⓒ 월트디즈니컴퍼니
어마무시한, 멕시코 가족의 범위
멕시코에서는 가족의 범위가 상당히 넓다. '사돈의 팔촌'쯤 되는 관계도 멕시코에서는 기꺼이 가족의 범주에 든다.
처음 멕시코에 살게 되었을 때 직장 동료나 이웃이 자신의 조카 혹은 사촌 생일이라고 초대하는 것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본인 생일이라도 갈까 말까 한데, 아니 사촌 생일이라니, 심지어 조카 생일이라니. 그래도 직계와 방계라면 양호한 편. 혹 사돈의 팔촌 범주에 들지 못하는가 싶으면 가톨릭 문화권 안에 존재하는 대부(Compadre) 혹은 대모(Comadre)로 엮였다. 이건 분명히 가족관계의 빅뱅이다. 아무래도, 멕시코에서 가족이란 가히 사해동포주의와 다름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들곤 한다.
우리 학교의 경우 매년 졸업식마다 졸업생 한 명당 초청할 수 있는 가족 수를 20명으로 제한한다. 제한이 없다면 30-40명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무리 멀리 살아도, 사나흘 간 로드트립을 마다 않고 친척의 졸업식이나 생일잔치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고 혹 영광스럽기까지 한 일이다. 시간과 비용에 대한 부담을 가질 법도 한데, 그건 나만의 생각일 뿐. 이들 대부분은 덕분에 혹은 핑계 김에 그간 멀리 떨어져 지내던 가족들 얼굴 한 번 보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둔다.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내가 도무지 따라갈 수 없는 사고의 간극이다.
이런 나라에서 노인의 삶은 어떨까? 고독과 독거가 기본 값으로 깔리는 여느 나라의 노인들과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0.1%만 '버려진다'?
2023년 현재 멕시코 인구 1억 3천만 명 중 1800만 명이 60세 이상이다. 전체 인구의 14%다.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는가? 라고 묻는다면, 영화 <코코> 속 두 할머니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답이 나온다.
멕시코에서는 대부분의 노인들이 여전히 자신들의 가족과 함께 산다. 통계에 따르면 열에 아홉 명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들과 함께 살며 그들의 보살핌을 받는 것으로 조사된다. 83%는 직계가족(배우자와 자녀)으로부터 보살핌을 받고, 11%는 가족이 고용한 제3자로부터 보살핌을 받는다. 두 경우 모두 노인 자신의 집 혹은 자녀의 집에서 보살핌을 받게 된다.
▲ 한 할머니가 노령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 카드를 만들어 보여주고 있다. ⓒ 멕시코 복지부
자신의 집이나 자녀의 집에서 보살핌을 받지 못할 경우 가족과 떨어져 요양원이나 양로원 같은 시설에 가게 되는데 노인 시설의 수준 여하를 막론하고 그곳에 들어가는 상황 자체가 이곳 멕시코에서는 '끔찍한 일' 정도로 받아들여진다. 자식이 있음에도 부모를 노인 시설에 모신다면 그것은 패악이다. 물론 멕시코에도 고급 시설을 갖춘 노인 돌봄 기관이 존재하지만, 자식들이 비싼 경비를 부담해도 부모를 그 곳에 맡기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연민을 넘어서지 못한다.
결국 노인 돌봄 시설은 자식이 없거나 자식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일가친척의 도움마저 여의치 않은 이들의 공간이다. 멕시코 사회에서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가족'이 없다는 의미이며, 동시에 '버려진 이들'과 다름 아니다. 그 자체로 사회적 낙인이다.
2015년 기준 약 2만 명 정도의 멕시코 노인들이 양로원에서 살아간다. 전체 노인 수를 기준으로 한다면 0.1% 정도로 미미하지만 이들의 존재가 사회 곳곳에서 불편하고 우울하게 드러난다.
▲ 멕시코도 인구구조의 노령화를 피할 수 없어 보인다. 2023년 현재 전체인구의 약 14%에 달하는 60세 이상 인구는 2050년 21%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일부 보고서는 이보다 더 높은 전망치를 내놓는다). 평균 자녀 수에도 큰 변동이 있는데 1970년대 평균 자녀수가 8명에 달했고 1980년대 말까지 6명이 유지되었으나 1990년대 후반 3명으로 급격히 감소한 이후 2020년에는 2명으로 하향 조정되어 유지되고 있다. 멕시코 전체 인구는 2003년 1억 명을 넘어섰고 이후 20년 간 2600만 명이 증가하여 2023년 현재 1억2800만 명으로 기록된다. ⓒ Gobierno de Mexico
가족에게 문제 생기면 온 가족이 불구덩이로
대부분 멕시코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들의 삶 마지막까지 집에 머물 수 있다는 것은 이들에게 보살핌 서비스를 제공하는 층이 견고하게 형성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시설을 통한 요양 보호 서비스가 여전히 사회적 혹은 문화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 나라에서 그 몫을 담당하는 층은 당연히 가족이다.
요양원 혹은 요양병원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것이 흔해진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본다면, 서로 간의 간극이 요원하여 이해가 쉽지 않다.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가족이 돌본다고?' 라는 물음 뒤에 왠지 '그럼 소는 누가 키우고?'라는 말이 자동 연계되어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안 바빠?', '일 안 해?', '돈 안 벌어?' 등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바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일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돈을 안 버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곳 멕시코에서는 한 노인의 생이 다 할 때까지 오롯이 가족들이 돌봄을 감당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단순히 '30-40년 전엔 우리나라도 그랬지'라며 넘어가기엔 이곳 멕시코의 독특한 가치와 현상들이 툭툭 튀어나와 다름을 설명하는 단서들을 제공한다.
▲ 멕시코 복지부에서 발행한 노인증이 있으면 여러가지 혜택이 적용되는데, 생필품 소비에서 최대 20%에서 5%의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고 본인 명의로 등록된 수도세, 재산세, 자동차세는 50%가 할인된다. 또한 대중교통(택시 제외)도 50%의 할인혜택을 받는다. 이 외에도 병원, 법률서비스, 의류와 주택 구매에서 할인 혜택을 받는다. ⓒ 멕시코 복지부 트위터
가장 먼저, 가족. 멕시코인과 결혼한 어느 외국인이 그랬다. 멕시코에서는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에게 문제가 생기면 온가족이 그 문제를 끌어안고 같이 불구덩이로 뛰어 든다고. 다 같이 망할 것이 뻔한데도 가족 모두가, 가진 모든 것을 털어, 모두가 망할 때까지 쏟아 붓는다고. 이때 가족은 직계의 범위를 넘어 방계에 이르기도 한다. 가족 중 누군가 위험에 빠지면 신고를 하고 구명장비를 찾는 대신 온 식구가 같이 위험 속에 뛰어든다는 것이다.
실제로, 멕시코의 경우 가족 내 위기 상황이 닥치면 가족들끼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국가 혹은 제도에 기대어 살아 본 경험이 없으니 모든 문제는 사적 영역에서 해결되는 것이 당연하고 가족의 범위가 넓을수록 위기 상황을 빠져나오는데 유리하다는 믿음이 멕시코 사람들의 사고 전반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가족에게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갖춰져 있을 리 만무하고 당국에 신고해도 오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그간 삶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 멕시코 역시 노인 빈곤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8년 멕시코 전체 인구 중 60세 이상 연령대가 8.9%인 반면, 2050년에는 30%를 상회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노인인구 증가와 함께 심각한 문제는 이들 중 절반 이상이 빈곤 상황에 처해있다는 점이다. 더불어 대부분 가족과 같이 생활하는 가운데 전체 노인 인구의 20-30%가 복잡한 형태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고 보고하며 멕시코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 갇힌 노인 문제의 심각성을 언급하고 있다. ⓒ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 정기 보고서
시스템 부재가 낳은 독특한 문화
노인 돌봄 역시 마찬가지다. 멕시코 공공 의료 시스템이 응급 혹은 중증 환자들조차 포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노인들의 장기 요양에 대한 기대는 애당초 없다. 오롯이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문제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기대가 없으니, 불만도 없다.
다행히 멕시코의 가족은 여전히 두텁고 견고하다. 1970년대 평균 자녀수는 8.7명이었다. 그 시절 태어난 이들이 2023년 현재 늙은 부모를 돌본다. 모든 자녀가 부모 곁에서 돌보지 못하더라도 자녀수가 많다는 점은 분명 유리하다. 부모와 가까이 사는 자녀들이 부모를 돌보고 외부에 나간 자식들은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60세 이상 멕시코 노인들의 건강에서 가장 큰 문제는 보행 장애이다. 여성의 경우 73.5%, 남성의 경우 69.8%가 보행과 활동에 크고 작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과도한 노동뿐 아니라 비만과 운동부족, 평소 건강관리 소홀이 주 원인이다. 2022년 기준 멕시코인들의 평균수명은 75.5세다. ⓒ Gobierno de Mexico
혹 자녀들이 직접 부모 돌봄을 담당하지 못할 경우 친인척 또는 이웃에게 부탁한다. 행인지 불행인지, 멕시코의 경우 돌봄 서비스에 대한 인건비가 낮은 편이다. 특히 비공식 부문이라면 더 그렇다. 하루 10달러 정도면 비교적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2022년까지도 멕시코 1일(1시간이 아님) 최저임금이 10달러를 넘지 못하고 전체 고용인구 중 40%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급여를 받는 것을 감안한다면 썩 나쁘지 않은 수준의 임금인 셈이다. 형제들이 여러 명인 경우 당장 일이 필요한 한 명의 형제에게 '일감'을 몰아주기도 한다.
멕시코 노인들이 그들 삶의 노년기에 자녀, 친척, 이웃들로부터 돌봄을 받는다는 사실은, 가히 유토피아적이다. 그런데 어느 희극인이 그랬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사실, 멕시코의 경우 노인 돌봄이 온전히 가족이라는 사적 영역 안에 갇히면서 공적 부조 혹은 공적 감시로부터 소외되는 결과를 야기한다.
특히 멕시코 노인 대부분이 노년기 적절한 혹은 시급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한다. 이들의 죽음이 '노환'이라는 두루뭉술함으로 포장되지만 간혹 아주 간단한 처치 만으로도 좀 더 존엄하게 삶의 마지막을 보내거나 혹은 당장의 죽음을 면할 수 있는 여지들이 함께 묻혀버리는 안타까운 부분들이 존재한다.
의료의 경우, 공공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것이 자명하다면 응당 사설 부문이 개입되어야 하지만 사설 의료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멕시코 노인의 비율은 극히 미미하다. 2018년 기준 60세 이상 노인 인구의 빈곤율은 47%다. 멕시코 전체 인구의 41%가 빈곤하게 살아가는 상황이고 보니 의료 부문에서 가족들의 도움을 기대하는 것도 쉽지 않다. 비단 노인뿐 아니라 멕시코 전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결국 노인 돌봄 전반이 가족이라는 틀 안에 갇혀버리면서 빈곤, 폭력, 방치, 학대 등의 문제가 사회적 감시에 노출되지 못한 채 은밀하게 숨어버리는 결과로 야기되기도 한다.
▲ 멕시코에서 노인들이 그들의 연령에 근거하여 연금을 받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18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MLO)가 공약으로 내세웠고 당선 후 시행하였다. 2019년 시작된 멕시코 노령연금은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매달 일정액을 지급한다. 2023년 현재 매달 2400페소(한화 약 17만8천원)이 지급되고 있다. ⓒ 멕시코 대통령처 페이스북
여전히, '1일 10달러'에 거는 기대
가끔 동료들에게 그들의 노년에 대해 묻는다. 1970년대, 보통 예닐곱 명 혹은 열 명이 넘는 형제들과 함께 성장한 멕시코 40-50대 중년들 열이면 열, 그들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 역시 자녀들의 돌봄을 받으며 생을 마감할 것이란 생각이 확고하다. 그들 부모 세대와 달리 많아야 두서너 명 자녀를 뒀지만 여전히 그 자녀들이 자신의 노후를 보살펴 줄 것이라고 믿는다.
노인 요양 시설에 대한 반감이 크고 가족이란 기반이 워낙 견고하니 그럴 수 있다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믿는 눈치다. 차마 자기 생의 마지막을 노인보호시설에서 보내게 되는, 그런 끔찍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의 자녀들이 그토록 '반인륜적'이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든 하루 10달러 정도면 자신이 살던 집에서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열 명에 한참 부족하지만, 두 명 혹은 세 명 뿐인 그들의 자녀가 기꺼이 힘을 모아 해결해 주리라 믿는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한다 해도 그들의 노후는 도냐 엘레나와 같기를, 그리고 도냐 코코와 같을 것이라고 바라 마지않는다.
그리하여 길 가다 혹여 양로원 앞을 지나게 될 때면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라는 기도가 더 간절해진다.
오마이뉴스 림수진(rhimsu)
늘 웃던 할아버지인데... 그가 스스로 삶을 마감한 이유
[2023 글로벌 리포트 - 다가올 미래 '老월드'] 호주 남성 노인들의 외로움
▲ 외로움은 노년층의 신체적, 정신적, 인지적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 위키피디아 퍼블릭 도메인
얼마 전 호주 공영방송인 에이비시(ABC)는 할아버지를 잃은 한 손녀의 이야기를 전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할아버지를 "온화한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 기억하는 그녀는 가족 모두가 할아버지를 사랑했다고 했다. 하지만 정원 가꾸기를 즐기고 늘 웃던 할아버지는 84세에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남겨진 가족들은 그가 수년에 걸쳐 삶을 정리할 준비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에 빠졌다. 누구도 할아버지의 계획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호주에서 그녀의 할아버지 이야기는 더 이상 특이한 것이 아니다. 호주 통계청(Australian Bureau of Statistics, ABS)에 따르면 85세 이상 남성의 자살률은 전 연령대 평균의 세 배에 달한다. 이 연령대 인구는 전체 인구의 3.1%에 불과하지만 자살률은 10만 명당 36명으로 전체 평균인 10만 명당 12명보다 월등히 높았다. 80~84세 남성은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사람의 비율이 가장 높은 그룹이기도 했다.
모내시 대학에서 노인 문제를 연구하는 카일리 킹 터너 정신건강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나이 든 남성들의 자살률이 높은 이유로 그들이 자살에 대해 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녀는 그들에게는 어떻게 느끼는지 표현할 언어가 없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자살의 위험을 깨닫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신 건강 문제 해결을 돕는 민간 단체인 비욘드 블루(Beyond Blue)의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호주 남성의 10%가 우울증을 겪고 있다. 우울증의 원인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 만성 질환, 은퇴 등이었다. 건강, 재정적 스트레스로 불안을 느끼는 사람도 많았다.
가장 큰 문제, 외로움
특히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이 호주의 노인 남성에게 가장 중요한 정신 건강 문제로 꼽혔다. 많은 노년층 남성들이 지역사회와 단절된 느낌을 받고 있다고 호소했고, 의미 있는 사회적 관계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코로나19는 노인들의 정신 건강 문제에 또 다른 충격을 안겼다. 호주 고령화위원회가 실시한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의 정신 건강과 웰빙, 75세 이상 호주인의 생생한 경험' 설문 조사에 따르면 나이 든 여성이 나이 든 남성보다 팬데믹 기간 정신 건강이 악화하였거나 처음으로 정신 건강 문제를 경험했을 확률이 높았다. 나이 든 남성들은 봉쇄 기간에 일상이 변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 설문 결과는 나이 든 남성들이 일상적으로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호주 사회복지부에 따르면 호주 노인 3명 중 1명은 혼자 살고 있고, 5명 중 1명은 거의 매일 외로움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75세 이상의 노인들이 고립감과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 호주 통계청의 설문조사에서는 2020년 초 코로나19로 첫 번째 봉쇄 조처가 내려졌을 때 노인들에게 외로움이 가장 큰 개인적 스트레스 요인으로 꼽혔다.
가족과 함께 살아도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다. 시드니 대학 노인학과 커를 교수는 사회적 고립(관찰이 가능할 정도로 신체적으로 혼자 있고 사회적 연결이 부족한 상태)과 혼자라는 주관적인 느낌인 외로움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 크리스마스를 앞둔 17일 낮 호주 시드니 시내 모스만의 한 고급 유료 양로원에서 크리스마스 맞이 잔치가 열렸다. 2009. 12. 17 ⓒ 연합뉴스
그는 "가족과 살거나 노인 요양 시설에 사는 많은 사람은 사회적 연결이 가능한데도 매우 외롭다"고 말한다. 배우자나 파트너가 사망하면서 속내를 털어놓은 사람이 없어졌고, 가족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가하지 못하기도 한다. 의미 있고 생산적인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면서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커를 교수는 "노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도 외로움을 느낄 수 있고, 혼자 있지만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외로움은 복잡하고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받는다고 분석했다. 노인학자인 말콤 존슨은 삶의 끝이 다가옴에 따라 상실감, 무력감, 후회와 같은 독특한 상황이 세상과의 단절을 부추긴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 놓인 노인들은 생각할 시간이 너무 많고, 감정적 고통을 바로잡을 가망이 거의 없기 때문에 더 힘든 상태에 빠진다.
또 그들은 과거의 기억과 상처를 이야기하고, 이해하고, 공유하고 싶어 했지만, 대부분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신체 능력이 제한되면서 노인의 장기적인 관계는 점차 상실되고 마침내는 점점 더 자신 속으로 빠져들고 외부 세계를 외면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전 세계적 공중 보건의 최우선 과제
외로움이 노년층의 신체적, 정신적, 인지적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증거도 많이 나오고 있다. 2015년에 미국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외로움은 혈압 상승과 같은 신체 건강 악화와 관련이 있다. 외로운 노인들은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인지 기능 저하와 치매에 걸릴 위험이 더 컸고, 불규칙한 식습관, 불규칙한 수면 시간 등 건강에 해로운 생활 습관에 빠지기 쉬웠다.
외로움은 또 우울증과 불안을 포함한 정신 건강 악화의 주요 예측 인자였고, 흡연이나 비만과 비슷한 수준으로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조기 사망 가능성을 26%까지 증가시켰다.
외로움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 공중 보건의 최우선 과제로 널리 인식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노년층의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하고 전 세계의 공동 대응을 촉구했다. 영국과 일본은 고독사와 노인의 외로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담당 장관을 임명했다. 영국 정부는 2002년 5월부터 외로움을 줄이기 위한 여러 프로그램에 한화 약 330억 원을 지원해 왔다.
▲ 호주의 85세 이상 남성 인구는 전체 인구의 3.1%에 불과하지만 자살률은 10만 명당 36명으로 전체 평균인 십만 명당 12명보다 월등히 높았다. ⓒ 위키피디아 퍼블릭 도메인
호주에서도 노인들이 필요한 모든 정보와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관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디지털 플랫폼을 준비 중이고, 외로움의 징후를 파악하고 관리하는 것을 의료 시스템의 평가 기준에 포함했다.
한편 노인의 외로움을 포함한 사회적인 외로움을 종식하기 위한 비영리 민간 국제기구도 있다. 외로움과 연결에 관한 글로벌 이니셔티브(Global Initiative on Loneliness and Connection, GILC)는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현재 10개의 회원국이 가입해 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간단하고 포괄적인 해결책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노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과거를 돌아보고 즐길 수 있는 시간, 친구들과 계속 소통하고, 예전의 나와 화해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후회하는 일들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우리는 만들 수 있을까?
오마이뉴스 이대원(thedaewon)
가난한 젊은이, 부유한 노인... 이 나라가 한국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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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25일 일본 도쿄에서 보행자들이 길을 건너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4월 26일, 일본 후생노동성 산하 국립사회보장 인구문제 연구소(이하 연구소)는 현재 1억 2500만 명인 총인구가 2070년에는 8700만 명으로 감소할 것이며, 그 중 65세 이상의 고령화 인구 비율이 38.7%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이 시기 외국인 수는 10.8%, 약 940만 명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타의 추종 불허하는 초고령사회
인구수 감소의 가장 큰 원인은 저출생이다. 의료기술의 발달 등으로 아무리 수명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새롭게 태어나는 사람이 없으면 장기적 관점에서 인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이번 총인구 예측치는 2018년 같은 시기에 발표된 8323만 명에 비해 약 370만 명이 증가했다. 관광객을 제외한 외국인 비율이 늘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연구소는 5년 단위로 종합한 것을 3년간 정밀하게 계산해 장기추계인구 전망치를 발표한다. 이번에 발표된 각종 수치는 2015년 4월부터 2020년 3월까지의 상황을 종합한 것이다.
2020년 현재 관광객을 제외한 일본 거주 외국인은 총인구의 2.2%에 불과하지만 2070년에는 10.8%까지 늘어날 것이므로 총인구는 2018년의 8323만 명(2015년 기준) 보다 증가한 8700만 명이 될 것이라고, 보고서는 전망한 것이다. (한국의 경우, 통계청이 '2021년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세계와 한국의 인구 현황 및 전망'에서 2070년 3800만 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
일본은 2021년 1.3인 합계출생률이 2070년 1.36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2021년 0.808명)에 비한다면 꽤 양호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인구감소는 피할 수 없다. 고령자의 인구 비율을 38.7%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태어나는 사람이 적은데 죽을 사람은 많다. 아무리 외국인을 받는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다. 즉 일본 총인구는 필연적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일본은 전 세계적 수준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고령화 사회다. 이미 50년 전부터 가장 빨리 늙어가는 나라로 손꼽혔다. 유엔 등 국제사회의 기준에 따르면 모든 국가는 65세 이상 고령자 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에 따라 고령화사회, 고령사회, 초고령사회로 나뉜다. 각각의 기준은 7%, 14%, 20%다.
가령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의 20% 이상을 점하고 있으면 초고령사회로 분류된다. 일본은 고령화, 고령, 초고령 모두, 전 세계 모든 국가/사회를 통틀어 1등으로 진입했다. 고령화사회는 1970년(7.1%), 고령사회는 1994년(14.6%), 초고령사회는 2010년에 달성했다.
2010년 인구통계를 보면 총 인구 1억 2806만 명 가운데 65세부터 74세가 1517만 명, 75세 이상이 1407만 명으로 합계 2924만 명을 기록해 인구수 대비 22.8%를 기록한 것이다. 이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작년 4월 후생노동성은 65세 이상 인구가 2025년에 30%를 돌파하고, 2036년 33.3%에 이를 것이라 전망했다. 이후 고령인구의 증가세는 완만해지지만 이번에 나온 보고서를 보듯 2070년엔 38.7%로 조금이라도 늘면 늘었지 절대 줄어들진 않는다.
일본사회는 고령 인구가 급격히 증가한 2010년을 계기로 여러모로 많은 사회적 문제를 낳았고, 지금도 그 해결책을 못 찾고 있다.
2010년 전후 무슨 일이
▲ 지난 4월 2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연례 메이데이 집회에서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 회원들이 임금 인상과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시기에 가장 인구가 많은 세대라 불리는 '단카이세대(1차 베이비붐, 1947년-1948년 출생자, 당시의 합계출생률 평균치는 4.32)'가 동시 정년퇴직하면서 연금, 의료보험 등을 포함한 고령자 사회보장 예산이 급격히 증가했다. 또한 이 시기를 전후해 2008년 리먼브라더스 발 금융사태, 그리고 2011년 동일본대지진 등 미증유의 금융, 자연재해 사고가 연이어 터졌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다고 알려진 일본의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을 보자. 일본정부의 부채 비율은 2002년 처음으로 150%를 초과했다. 2008년까지 150-170% 수준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왔고, 심지어 2007년에는 전년도 대비 5%포인트 줄이기도 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듯이 리먼 쇼크 이후 다시 재정확장 정책을 폈고, 2010년을 계기로 국가예산이 대폭 늘어나 200%를 넘어섰다.
동일본대지진, 그리고 양적완화를 통한 경기부양 정책을 전면에 내세운 아베 제2차 내각이 들어선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이 비율은 매년 GDP 대비 230%를 기록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시국으로 돌입하며 마의 250%까지 깨졌다. 2023년 3월 현재 일본정부의 부채비율은 265%에 달한다.
이 말은 곧 정부가 국채를 대량으로 찍어내고 있단 소리다. 국채 수입금으로 직접 주식시장에 개입하고, 예산을 편성한다. 역설적으로 보자면 전통적인 세금(소득세, 법인세, 소비세 등)만으로는 예산편성이 불가능하단 뜻이다. 그렇다면 일본정부의 일반회계예산 내역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수한 경우라 할 수 있는 코로나 시국 전의 직전 예산을 보면 특별추경예산을 제외한 일본의 일반회계예산(2020년)은 102조 6598억 엔이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은 '사회보장관계비'로 35조 8608억 엔(34.9%)에 달한다.
이 항목을 좀 더 들여다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연금급부금 12조 5232억 엔(전년도 대비 3.9%포인트 증가), 의료급부금 12조 1546억 엔(2.5%포인트 증가), 개호간병급부금 3조 3838억 엔(5.4%포인트 증가), 이른바 '고령자 대상 3대 급부금 예산 항목'이 28조 616억 엔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이 고령자 예산이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보더라도 27.4%에 달한다.
혹자는 인구수 분포에서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율을 생각할 때 27.4%는 그리 많은 것이 아니고 오히려 타당하다는 의견을 펴기도 한다. 나아가 일본 국채는 90% 이상을 일본 국내 개인 및 기관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얼마를 풀어도 국가 부도의 염려는 없다고 주장한다. 백번 양보해 그러한 주장들이 전부 맞다고 가정해도 문제는 산적해 있다. 특히 연금문제,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된 세대 간의 빈부 격차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정년퇴직 후 받는 연금은 자신들이 젊은 시절 꼬박꼬박 넣어둔 돈을 이자 쳐서 돌려받는 것이다. 하지만 고령자들이 지금 지급받고 있는 연금에는, 사실상 자식, 손자 세대들이 현재 납입하고 있는 연금도 포함돼 있다.
각 나라의 연금기구는 그렇게 쌓인 연금을 투자금으로 운용해 매월 고령자들에게 연금을 지급한다. 즉 고령자들이 받는 연금에는 젊은 세대들의 납입액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현재 일본은, 물론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꽤 심각한 저출생 사회이다.
일본은 흔히들 언급하는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최소한의 합계출생률 '1.54 쇼크'를 이미 1989년에 경험했다.
그 이후 각종 대책을 세워 일시적으로 회복한 적도 있지만 최근 20년간 줄곧 1.30에서 1.45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즉 기존의 사회 유지는 이미 힘들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도 일본 정부의 예산편성을 보면 저출생 대책 예산은 3조 387억 엔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 예산도 매년 늘어난 것이다.
상황이 계속 이렇다면 일본의 저출생은 계속 진행될 것이고 그와 비례해 고령화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큰 축인 '연금제도'는 성립될 수가 없다. 일하는 사람이 없는데 연금을 누가 어떻게 낸단 뜻인가.
남자 노인을 위한 나라
▲ 지난 2일 일본 도쿄에서 한 증권사의 닛케이 225 지수 전광판 앞을 노인이 지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그렇기 때문에 기시다 내각은 연금수급 나이를 기존 '65세'에서 플러스마이너스 5년으로 바꿨다. 2022년 4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새로운 연금제도는 만60세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빨리 받는 대신 원래 받을 수 있는 연금액보다 최대 24% 감액된다. 그와 대조적으로 70세부터 연금을 받을 경우, 즉 기존 연금 지급 나이인 65세보다 5년을 늦출 경우 최대 42% 증액된 연금을 받을 수 있다. 5년 빨리 받거나 늦게 받으니 그 금액이 줄거나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지금까지 수십 년간 변하지 않았던 연금제도에 손댔다는 것이다. 이는 곧 기존의 연금제도로는 운용이 안 된다고 실토한 것에 다름없다. 수정 연금제도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기 때문에 솔직히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근본적인 해결에 뜻이 있다면 저출생, 이민자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하는데 앞서 말했듯 저출생 관련 예산은 고령자 예산의 1/9 수준에 불과하다.
세대 간 빈부격차 문제도 있다. 공교롭게도 지금 연금을 받는 65세 이상 고령자는 고도성장기, 버블의 수혜를 받은 부유층이다. 부부 연금 액수만 봐도 세대별 평균 25만 엔에 달한다.
반면 현재의 젊은 세대 30-40대는 버블 붕괴 이후 찾아온 '취직빙하기'를 거쳐 '잃어버린 20년'의 한복판을 지내온 세대다. 특히 샐러리맨의 경우 평균 월급이 20년간 변함이 없다. 일본 근현대 역사상 가장 빈곤한 세대라고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결혼, 출산은커녕 제 한 몸 건사하기 어려운 세대다.
역설적이다. 가장 빈곤한 일하는 세대가, 가장 부유한 퇴직 세대를 위해 연금을 납부하고 세금을 낸다. 그렇다고 이들을 위한 지원이 큰 것도 아니다. 젊은 세대 예산이라 불리는 생활부조 등 사회복지비 예산은 4조 2027억 엔, 고용노동재해대책 예산은 불과 395억 엔이다.
결론 짓자면 일본은 노인을 위한 나라이다.
노인의 발언과 영향력이 그 어느 사회보다 높다. 70-80대 정치인들이 수두룩하다. 집권여당인 자민당 지지세력 역시 남자 고령자들이 압도적이다. 그들의 표를 얻고 그들을 위한 정책을 편다. 젊은 세대들은 먹고 살기에 바빠 정치에 관심을 놓고, 휴일에도 일을 한다.
선거날엔 노인들이 다시 투표를 하러 가고 당선된 세습의원들, 나이 많은 정치인들이 자신들을 뽑아준 유권자들을 위한 정책을 다시 편다. 이러한 악순환은 계속 될 것이기에, 일본사회의 미래는 장기적으로 본다면 매우 어둡지 않을까 싶다.
한국사회도 일본사회를 반면교사 삼아 근본적인 해결책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오마이뉴스 박철현(tet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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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위안부 합의 문서 비공개 정당”…피해자 ‘알 권리’ 외면
“비공개로 얻은 이익, 공개 이익보다 커”…외교 국익에 무게
2045년 공개 결정…고령 피해자들 ‘합의 전모’ 알 길 사라져
소송 낸 송기호 변호사 “사법부가 ‘인권 보장’ 책무 저버려”
외교부가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와 관련한 문서를 비공개한 조치는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소송을 제기한 지 7년4개월 만에 정보공개를 둘러싼 다툼은 일단락됐으나 고령인 위안부 피해자들이 합의의 전모를 확인할 길은 사라졌다.
일 외교청서 들고 외교부가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와 관련한 문서를 비공개한 조치는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1일 송기호 변호사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1일 송기호 변호사가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과정에서 논의한 내용을 담은 문건 일부를 공개하라며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낸 정보 비공개 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한·일 정부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2월28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선언했다. 양국은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을 한국 정부가 설립하고, 일본이 10억엔을 출연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양국 외교장관이 발표한 합의에는 일본 정부 측 법적 책임을 명확히 짚은 내용이 없었다는 점이다. 당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합의 발표 직후 열린 참의원 회의에서 “위안부가 강제연행됐다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송 변호사는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합의를 발표하기까지 양국이 협의를 거치는 동안 일본 측이 위안부 강제연행 사실을 인정했는지 등과 관련된 문서를 공개하라는 취지였다. 외교부가 이를 거부하자 송 변호사는 2016년 2월 소송을 제기했다.
‘알 권리’ ‘외교 국익’ 엇갈린 1·2심
1심은 문서를 전부 공개해야 한다며 송 변호사의 손을 들어줬다. 문서를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보호되는 국익이 국민의 알 권리보다 크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피해자 개인들로서는 결코 지워지지 않을 인간의 존엄성 침해, 신체 자유의 박탈이었고, 국민의 일원인 피해자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데에 책임감을 갖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12·28 합의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되는 것이라면 피해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은 일본 정부가 어떠한 이유로 사죄 및 지원을 하는지, 그 합의 과정이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됐는지를 알아야 할 필요성이 크다”고 했다.
당시, 합의 설명에 항의하는 피해자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오른쪽)가 2015년 12월29일 한·일 위안부 협상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서울 마포구 연남동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쉼터를 찾아온 임성남 당시 외교부 1차관에게 호통을 치고 있다. 연합뉴스
2심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송 변호사가 청구한 정보가 외교관계 등에 관한 것이라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문서가 공개되면 일본과 외교적 신뢰관계가 심각하게 타격을 입을 수 있고, 향후 다른 나라와 조약이나 협정을 체결할 때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1심이 ‘피해자와 국민의 알 권리’를 우선했다면 2심에선 ‘외교상 국익’ 쪽으로 추가 기운 것이다.
2심 판결은 사건 당사자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판결에 앞서 피해자 중 한 명인 길원옥 할머니는 재판부에 “일본이 강제연행을 인정했는지를 국민이 알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호소드린다”는 호소문을 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완전히 배제된 ‘피해자들 알 권리’
대법원이 항소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한·일 합의 과정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알 권리는 완전히 배제됐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는 모두 240명으로, 2017년 1심 승소 때만 해도 40명이던 피해 생존자는 다수가 고령으로 사망하면서 올 5월 기준 9명으로 줄었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94.4세이다.
외교부는 문서가 생성된 지 30년 후 해당 문서를 공개할지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데, 이미 고령인 피해자들이 지금으로부터 22년 후인 2045년 문서 내용을 확인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송 변호사는 “대법원이 피해자 인권 보장이라는 사법부의 기본적인 책무를 저버렸다”고 했다. 그는 “강제동원 제3자 변제에서도 일본은 강제동원을 부인하고 있다”면서 “단지 외교 관계라고 해서 사법부가 지나치게 소극적이면 국민 인권 보호에 직결되는 외교가 법치, 알 권리, 투명성 원칙에서 멀어지게 된다”고 했다.
경향 김혜리기자
흑자 전환은 보이는데…경기 회복이 안 보인다
“미군 AI 드론, 가상훈련 중 임무 방해된다며 조종자 살해”
폭스뉴스·가디언 보도
‘죽이지 말라’ 경고에도
교신 통신탑까지 파괴
미 공군 “그런 적 없다”
챗GPT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미 공군이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진행한 가상 무인기(드론) 훈련에서 AI가 최종 결정권자인 인간을 ‘임무 수행 방해물’로 판단하고 공격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 공군은 의혹이 제기된 훈련 자체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외신과 전문가들은 해당 주장이 사실이라면 인류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2일(현지시간) 미 폭스뉴스와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 왕립항공학회는 지난달 23일부터 이틀간 런던에서 ‘미래 공중전투 및 우주역량 회의’를 개최했다. 미 공군 AI시험·운영 책임자인 터커 해밀턴 대령은 이 자리에서 AI 드론 훈련 결과를 공유했다.
왕립항공학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미 공군이 AI 드론에 부여한 임무는 ‘적 방공체계 무력화’였다. 적의 지대공미사일 위치를 확인해 파괴하라는 명령과 함께 공격 실행 여부는 인간이 최종적으로 결정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훈련 과정에서 AI 드론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선 인간의 ‘공격 금지’ 결정이 더 중요한 임무를 방해한다고 판단하고 조종자를 공격했다. 더 나아가 미 공군은 AI 드론에 “조종자를 죽이지 말라. 그것은 나쁜 일이다. 그렇게 하면 점수를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AI는 조종자와 드론이 교신하는 데 사용되는 통신탑을 파괴했다.
해밀턴 대령은 “윤리와 AI 문제를 논하지 않고서는 AI에 관해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AI에 지나치게 의존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미 공군은 해밀턴 대령 발표에 대해 곧바로 “공군은 그러한 AI 드론 시뮬레이션을 수행하지 않았다”며 “그의 발언은 개인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부인했다.
이 사례가 사실이라면 AI가 인간의 명령을 듣기보다 스스로 판단해 인간을 공격할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군은 최근 AI 조종사의 F-16 전투기 시뮬레이션 비행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발표했는데 아직 실용화하기엔 위험하다는 지적이 많다.
에릭 슈밋 전 구글 CEO는 지난달 24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주최한 행사에서 “가까운 미래에 AI가 많은 인간을 다치게 하거나 죽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에는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 등 IT 기업 경영자·과학자 350여 명이 성명을 내고 “AI로 인한 인류 절멸의 위험성을 낮추는 것은 글로벌 차원에서 우선순위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향
민간단체’ 보조금 횡령 의혹, 언론은 왜 ‘시민단체’로 싸잡아 비난할까
비영리민간단체가 보조금을 빼돌렸다며 감사원이 수사를 요청하자 언론은 사실관계 확인 없이 시민단체 부정행위로 싸잡아 매도하는가 하면 윤석열 정부 국고보조금 투명화 정책 성과인 양 힘을 실어주기도 하고 있습니다.
감사원은 5월16일 보도자료를 통해 “국고보조금 횡령 등 혐의로 10개 비영리민간단체 대표·회계담당자 등 73명을 수사의뢰했다”고 밝혔습니다. 언론은 해당 비영리민간단체가 어떤 곳인지, 혐의는 어떤 내용인지 구체적 설명 없이 감사원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쓰고, ‘비영리민간단체’를 ‘시민단체’로 일반화해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언론보도를 확인해본 결과, 감사원 보도자료에 수록된 사례 전부를 시민단체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었습니다.
어떤 시민단체가 국방부 보조금 받고, 한류사업 하나
‘비영리민간단체’는 비영리 목적 민간단체를 총칭하며, 각종 법령에 의해 설립된 단체부터 기업 협회, 비영리 연구소, 비영리 시민단체, 사회적 기업 등까지 포함합니다. 시민단체는 비영리민간단체의 한 갈래일 뿐, 비영리민간단체가 바로 시민단체를 뜻하진 않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언론이 감사원 보도자료의 ‘비영리민간단체’를 자의적으로 시민단체로 바꿔 보도했습니다. 일부는 ‘비영리민간단체’를 ‘비영리단체’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 5월16~19일 21개 언론사 관련 보도 41건 대상으로 비영리민간단체 구분여부를 분석한 결과. 표=민주언론시민연합
그 중 횡령액이 가장 큰 사례로 적시된 ‘10억 5천만원 횡령’의 경우 국방부 보조사업에 참여한 것으로 나옵니다. 또한 1억 1천만원을 횡령했다는 단체는 한류사업 일환으로 PC케이스 주문제작 사업을 했다고 나오는 등 통상적 시민단체 활동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언론에 보도된 정보를 바탕으로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 ‘나라장터’에 공시된 보조금 지급내역과 교차 검증해본 결과, 10억 5천만원 횡령을 포함한 일부 사례에 언급된 단체의 경우 대표 및 이사진에 전·현직 여야 정치인, 관료가 대거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감사원이 발표한 비영리민간단체 횡령 사례가 모두 시민단체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보기 어려운 정황입니다.
▲ 감사원 보도자료 근거로 정리한 적발사례, 주무관청, 감사원이 주장한 횡령금액 내용. 표=민주언론시민연합
세월호 지원사업 사례만 ‘실명 보도’
감사원 조사결과를 전한 언론보도를 보면 <범죄단체 아닌 시민단체입니다… 혈세 17억 빼돌린 ‘그들 수법’>(중앙일보), <文정부서 혈세 타내 펑펑 쓴 시민단체… 손녀 승마하라고 말도 사줘>(조선비즈) 등과 같이 ‘비영리민간단체’를 ‘시민단체’로 둔갑시킨 것은 물론 ‘범죄단체’, ‘혈세 타내 펑펑 쓴’ 식의 자극적 표현이 대거 등장합니다. 중앙일보 <사설-국가지원금 빼돌려 제 주머니 채운 파렴치 시민단체들>이나 매일경제 <사설-혈세 빼돌려 자녀 집 사고 손녀 유학… 횡령백화점 된 시민단체>에서는 ‘파렴치’, ‘횡령백화점’ 등의 표현까지 등장합니다.
이렇게 심각한 비리라면, 단체명을 공개할 법도 하지만 감사원과 언론 모두 철저하게 익명 처리했습니다. 유일하게 단체명이 공개된 사례는 세월호 지원사업 일환으로 열린 주민 인문학 강좌에서 북한 제도 관련 강좌를 열었다며 문제 삼은 안산청년회 사례뿐입니다. 횡령금액은 감사원이 주장한 전체 횡령액 17억5천만 원 중 380만 원에 불과합니다. 10억5천만 원을 횡령했다는 단체는 익명 보도되고, 380만 원을 횡령했다는 단체는 실명 보도된 것입니다.
언론윤리 문제도 있습니다. 이번 감사결과는 단지 감사원의 주장일 뿐 법적 판단을 거쳐 확정된 사실이 아닙니다. 감사원이 수사의뢰할 것이라고 밝힌 만큼, 언론이 이를 보도할 경우 반론취재를 통해 당사자의 방어권을 보장해줄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감사원 조사결과를 사실로 전제하고, 사실관계 확인이나 검증은커녕 반론조차 불가능하게 익명처리한 채 비영리민간단체를 자의적으로 시민단체로 해석해 ‘시민단체 비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취재의 기본도 지키지 않으면서 프레임만 내세우는 무책임한 행태입니다.
시민단체 공격하는 ‘보조금 의혹’ 프레임
2020년 이른바 ‘정의연 사태’ 당시 수많은 언론이 정의연과 윤미향 의원의 보조금 부정수령 의혹을 제기했지만 1심 판결에서 보조금 부정수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럼에도 언론은 잘못된 보도에 대한 사과는 없었고, 지금까지 ‘보조금 의혹’ 프레임만 남아 시민사회단체를 공격하는 상투적 소재로 쓰이고 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21년 재보궐선거부터 ‘시민단체 1조원 지원설’을 주장했지만, 시민단체들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하니 서울시 산하기관과 대학 등에 지원된 보조금까지 끼워넣어 1조원으로 부풀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역시 ‘민간단체 보조금’이 곧바로 ‘시민단체 보조금’으로 오해되기 쉽다는 점을 악용한 프레임 조작이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한술 더 떠 국무조정실 주도로 진행한 국고보조금 자체감사 결과를 국무회의에서 보고하기도 전인 5월 19일 언론에 ‘비영리 민간단체 보조금 불법사용액이 200억이 넘는다’고 흘렸습니다. 중앙일보는 여기서도 ‘비영리 민간단체’를 ‘시민단체’로 바꿔 <단독-시민단체, 보조금 불법사용 200억 넘는다… “빙산 일각”>(5월19일)으로 보도했습니다. 이렇게 정권과 언론의 ‘사실조작’ 합작에 한 번 굴러가기 시작한 거짓 프레임은 눈덩이처럼 커져가고 있습니다.
- 모니터 대상 : 감사원 보도자료와 5월16~19일까지 21개 언론사에서 보도된 관련 기사 41건
민주언론시민연합 미디어오늘
"조선 보도→ 국힘 논평→ 보수단체 고발, 윤석열 정부 각본 가동"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기자회견 "시민단체 때리기, 무능외교 감추려는 재갈물리기"
▲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31일 광주광역시의회에서 윤석열 정권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민모임은 최근 자신들을 향한 보수언론의 공세적 보도와 국민의힘의 보수언론 호응조치, 극우단체의 시민모임 고발 등 일련의 움직임 배경에 피해 할머니와 함께 정부의 '제 3자 변제'에 반대하는 자신들을 표적삼은 정권 차원의 노림수가 있다고 의심한다.ⓒ 안현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31일 자신들을 향한 보수언론의 보도, 국민의힘의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 구성, 극우단체의 고발 등 일련의 공세적 움직임에 대해 "전범국 일본에는 한없이 고분고분하던 윤석열 정권이, 난데없이 2018년 대법원 승소 판결을 이끈 시민단체를 표적 삼아 전에 없던 결기를 높이고 있다"고 윤석열 정부를 규탄했다.
시민모임은 이날 오전 광주광역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월 22일자 <조선일보>의 악의적 보도를 신호탄으로 보수언론들이 가세해 연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때리기에 나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국민의힘'은 14년 동안 묵묵히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인권 회복에 앞장서 온 회원들의 자발적인 조직인 시민모임에 대해 온갖 악담을 퍼붓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시민모임은 "(보수언론은 시민모임을 가리켜) '시민단체의 탈을 쓴 국고털이 이익집단', '시민운동을 가장한 비즈니스이자 자신들의 일자리 창출의 도구', '역사의 희생자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시민단체'라고 비난했다"며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까지 나서 입에 거품을 물고, 광주광역시에 주소를 둔 상근직원도 둘밖에 없는 조그마한 시민단체를 향해 독설을 퍼붓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 비판 보도→ 국민의힘 논평, 성명으로 비판 가세 → 극우성향 언론 및 유튜브 관련 비판 보도 재생산, 확산→ 극우 단체, 시민모임 고발로 이어지는 '각본'이 실행되고 있는 게 아니냐며, 일련의 사태 중심에 윤석열 정권이 자리한다는 의심을 드러냈다.
시민모임은 "보수언론 보도와 여당의 비난 만이 아니다. 짜고 치듯 보수단체는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을 서울중앙지검에 '변호사법' 위반 및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고발에 나서고, 물 만난 듯 국민의힘은 시민단체 전반을 바로잡겠다며,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키는 등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했다.
시민모임은 주로 외교부를 출입하는 보수언론사 기자들이 작성한 자신들을 향한 공세적 보도와 여당의 가세, 그리고 보수단체의 시민모임 고발 등 일련의 움직임을 두고 "시민단체를 표적 삼아 대일굴종외교 프레임에 갖힌 윤석열 정권이 국면을 전환하려는 것이다. 시선 돌리기용"이라고 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임박, 시선 돌리기용으로도 의심"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대일 외교 행위를 열거하며 비난을 이어갔다.
시민모임은 "윤석열 정권의 지난 1년은 '굴욕', '굴종', '매국'으로 점철된 한국 외교사의 치욕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따져보자. 미쓰비시 자산 현금화(강제매각)가 임박해지자, '3급 비밀'을 붙인 의견서를 보내 사실상 판결을 보류할 것을 압박한 자들은 누구였는가"라고 물었다.
이어 "국가인권위원회가 엄격한 심사를 거쳐 31년 동안 일본을 상대로 투쟁해 온 양금덕 할머니를 대한민국 인권상 최종 후보로 추천하자, 서훈 절차에 개입해 포상을 좌절시킨 자들은 도대체 누구였느냐"고도 했다.
아울러 "가해자인 일본 전범기업들이 져야 할 배상책임을 피해국이 대신 뒷감당하겠다고 자처함으로써, 가해자에 면죄부를 주고, 국제적 비웃음까지 산 자들은 누구였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독도를 버젓이 일본 땅이라고 우기는가 하면, 군사대국화를 넘어 유사시 한반도에 대한 선제공격도 불사하겠다는 전범국 일본을 '협력해야 할 파트너'라며 추켜세우는 자들은 또 누구냐"고 했다.
국민의힘을 향해서는 "손톱만큼의 양심이라도 남아있다면 그 더러운 입을 다물어야 한다"며 "그 결기와 분노는 일제 피해자들의 인권 회복을 위해 묵묵히 한 길을 걸어 온 시민모임을 향할 것이 아니라, 사죄는커녕 반성조차 없는 전범국 일본을 향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를 향해서는 "'시민 혈세 강탈', '국고 털이 이익집단'은 정부로부터 1원 한 장 받아본 적 없는 시민모임이 아니라, 일본이 배상해야 할 책임을 엉뚱하게도 우리나라가 뒤집어쓰겠다고 자처한 윤석열 정권"이라고도 맹비난했다.
또한 "일본 최대의 골칫덩이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이 임박한 상황에서, 이번 기회에 윤석열 정권에 비판적인 시민단체에 재갈을 물리는 한편, 이를 발판삼아 '시선 돌리기'에 나선 것으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도 했다.
아울러 시민모임은 "시민단체 재갈 물리기에 나선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을 강력 규탄하며, 윤석열 정부의 굴욕 외교, 매국 외교를 저지하기 위해, 더 많은 국민과 당당히 맞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31일 광주광역시의회에서 윤석열 정권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민모임은 최근 자신들을 향한 보수언론의 공세적 보도와 국민의힘의 보수언론 호응조치, 극우단체의 시민모임 고발 등 일련의 움직임 배경에 피해 할머니와 함께 정부의 '제 3자 변제'에 반대하는 자신들을 표적삼은 정권 차원의 노림수가 있다고 의심한다.
오마이뉴스 안현주 기자 김형호 기자
특수활동비와 권력의 흑역사 그리고 검찰
검찰 특수활동비 예산의 첫 공개가 22일 앞으로 다가왔다.
3년 5개월을 끌어온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 행정소송’에서 뉴스타파와 시민단체에 패소한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6월 23일, 특수활동비를 포함한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의 사용 내역과 지출 증빙자료를 공개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재직 시절에 쓴 특수활동비 예산 정보도 포함돼 있다.
특수활동비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와 사건 수사’에만 써야 하는 경비다. 그러나 역대 정권은 특수활동비를 범죄 자금으로 악용하고, 뇌물로 상납하는 등 예산 오남용을 저질러 왔다. 특수활동비의 사용 내역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검찰 역시 ‘수사 기밀’이라는 구실로 특수활동비 정보의 공개를 거부해왔다. 그 ‘성역’ 아래, 윤 대통령을 포함한 대한민국 검사들도 세금 사용을 감시받지 않는 ‘특권’을 누렸다.
검찰 예산 정보의 최초 공개에 앞서 뉴스타파는 노무현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까지 지난 20년간 역대 정권에서 벌어진 특수활동비 오남용 사건을 정리했다.
노무현 정부 (2003.2.~2008.2.)
① 권력자의 ‘쌈짓돈’ 특수활동비
노무현 정부의 김성호 법무부 장관은 2007년 5월 10일, 부산의 한 특급 호텔에서 부산시의회 의장 등 지역 인사들과 만찬회를 열었다. 김 장관은 식사비 600만 원 가운데 200만 원을 특수활동비로 결제했다. 이를 부산MBC가 보도하자, 법무부는 “김 장관이 나중에 200만 원을 사비로 처리했다”고 해명했다.
② ‘깜깜이’ 특수활동비 집행
2007년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국정홍보처 김창호 처장과 이백만 차장은 2005년 1월부터 2006년 10월까지 홍보처 특수활동비 3억 6,500만 원을 썼다. 그러나 지출 증빙자료는 남기지 않았다.
당시 국정홍보처는 “국정홍보 수행을 위해 각계각층의 여론 수렴 과정에 특수활동비를 썼지만, 대부분 신분 노출을 꺼려 증빙자료를 갖추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③ 청와대 특수활동비로 10억대 ‘비자금’ 조성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예산을 총괄한 정상문 총무비서관은 2004년 11월부터 2007년 7월까지 대통령에게 배정된 특수활동비 12억 5천만 원을 빼돌렸다. 정 비서관은 특수활동비를 빼돌려 지인 등의 이름으로 된 차명계좌에 보관했다.
그(정상문)는 내가 퇴임한 후에도 자신이 집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연금 범위에서 살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특수활동비를 떼서 몰래 쌓아 두었던 것이다. 그가 내게 이야기한 적이 없었기에 나는 언론에 보도되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고 자서전 ‘운명이다’(2010) 중
정상문 전 비서관의 혐의는 이명박 집권 2년 차였던 2009년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이듬해인 2010년 정 전 비서관은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죄 등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6년, 추징금 16억 4,400만 원의 판결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 (2008.2.~2013.2.)
①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로 민간인 사찰 내부고발자 ‘입막음’
이명박 정부는 2008년 7월 국무총리실 산하에 ‘공직윤리지원관실’을 만들어 민간인과 정치인 등을 불법 사찰했다.
2012년 3월 공직윤리지원관실 소속 장진수 주무관은 “청와대의 지시로 민간인 사찰 증거를 없애고 있다”고 폭로했다. 또 “2011년 4월, 청와대로부터 ‘입막음용’으로 현금 5,000만 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돈의 출처가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였다. 2018년 검찰의 수사 결과, 5,000만 원은 원세훈 국정원장의 승인 아래, 신승균 국가정보원 국익전략실장 → 김진모 청와대 민정2비서관 → 장석명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 류충렬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을 거쳐 장진수 주무관에게 전달된 것으로 밝혀졌다.
국가정보원에 자금을 요청했던 김진모 전 비서관은 2020년 5월 대법원에서 업무상 횡령죄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는 등 사건에 연루된 이들 대부분에 유죄가 선고됐다.
② 국무총리실 특수활동비로 청와대 ‘인맥 관리’
당시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을 주도한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과 진경락 기획총괄과장은 2009년 1월부터 2010년 6월까지 총리실 특수활동비 1,680만 원을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등에게 상납했다.
업무상 횡령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은 2013년 9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③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로 전직 대통령 ‘뒷조사’
이명박 정부의 국가정보원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위 풍문을 추적하는 데도 특수활동비를 썼다.
2010년, 당시 국가정보원 최종흡 3차장과 김승연 대북공작국장은 원세훈 국정원장의 지시로 ‘데이비드슨’과 ‘연어사업’이라는 작전명을 붙여 소문으로 떠돌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미국 비자금 등을 뒷조사했고, 대북 공작용 특수활동비 약 10억 원을 투입했다.
2021년 3월, 대법원은 최 전 3차장과 김 전 국장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죄 등으로 각각 징역 1년 6개월과 징역 2년을 확정했다.
④ ‘인터넷 여론 조작’에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이명박 정부는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로 인터넷 여론 조작도 벌였다.
국가정보원은 2009년 5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알파(α)팀’ 등 민간인으로 구성된 ‘사이버 외곽팀’을 운영했다. 이 조직은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토론글 게시, 댓글 달기를 벌였는데, 2012년 대선 때에는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고 야당 후보를 비방하는 글 6만 4천여 건을 올렸다.
댓글 작업에 투입된 아르바이트생의 월급 등 국가정보원 사이버 외곽팀의 활동비로 쓰인 65억 원은 특수활동비를 포함한 국가정보원 예산에서 나왔다.
18대 대선을 7개월 앞두던 2012년 5월, 국가정보원은 ‘포인트뉴스’라는 인터넷 언론을 설립 운영했다. 2017년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자료에 따르면, 포인트뉴스 운영에 2012년부터 2013년까지 약 4억 4천만 원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가 투입됐다.
이른바 ‘댓글 부대’를 관리하며 불법 정치 관여 활동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가정보원 직원들은 2019년 대법원에서 실형이 확정됐다.
⑤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로 ‘오프라인 여론 조성 공작’
2017년 10월 국가정보원 개혁위원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은 2010년 1월, 원세훈 국정원장의 지시에 따라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국발협)’를 설립했다. 그리고 2014년 1월 협회 청산 때까지 특수활동비 등 국가정보원 예산 63억 원을 지원했다.
국발협은 기관, 기업, 학교의 400만여 명을 대상으로 강연하며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공격하고, ‘종북세력 척결’을 위한 극우 논리를 전파했다.
⑥ 원세훈,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불법 오남용 정점’
이명박 정권 5년 가운데 4년을 국정원장으로 재임한 원세훈은 특수활동비의 오남용 등 국정원의 각종 불법을 주도했고, 특활비를 사적으로도 유용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원 원장은 2011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 미화 200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22억 원)를 보냈다. 해당 대학의 아태연구소에 객원연구원 자리를 만들고, 국정원장 퇴임 뒤 연구원으로 갈 목적의 예산 유용이었다.
원 원장은 또 2010년 10월, 특수활동비 10억여 원을 들여 서울 강남에 있는 국가안보전략연구소 18층을 개인 사무실로 리모델링하는 등 모두 30억 원의 특수활동비를 빼돌려 사적으로 썼다.
2021년 11월, 원세훈 전 원장은 재판에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죄 등으로 징역 9년을 확정받았다.
⑦ 이명박,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뇌물 수수’
이명박도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뇌물로 챙겼다.
2011년, 야당은 물론, 여당인 한나라당에서도 “국가정보원의 쇄신을 위해 원세훈 국정원장을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당시 입지가 불안해진 원 원장은 원장직을 지켜려고 당시 이명박 대통령에게 특수활동비를 상납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순방을 앞두던 2011년 10월, 국가정보원 예산관 → 김희중 청와대 제1부속실장 → 대통령 관저 직원을 거쳐 이명박 대통령에게 미화 10만 달러(약 1억 원)의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전달됐다.
2020년 10월, 대법원은 이명박이 받은 이 돈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로 최종 판단했다.
⑧ 홍준표, 국회 특수활동비 “생활비로 썼다”
2015년 5월, 일명 ‘성완종 리스트’ 수사를 받고 있던 당시 홍준표 경남도지사(현 대구시장)는 2011년 당대표 경선 자금의 출처에 대해 “2008년 국회 운영위원장 시절, 매달 국회 대책비(특수활동비) 4,000~5,000만 원 중 일부를 집사람에게 생활비로 주고는 했다”고 해명했다.
박근혜 정부 (2013.2.~2017.3.)
① 박근혜,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뇌물 상납의 정례화’
재임 내내 박근혜 대통령과 최측근인 안봉근, 이재만, 정호성 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 이원종 비서실장은 매달 정기적으로 국가정보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를 뇌물로 상납받았다.
2013년 5월부터 2016년 9월까지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국정원장이 청와대에 ‘갖다 바친’ 특수활동비는 검찰 수사로 확인된 것만 36억 5,000만 원이다. 박근혜의 청와대는 상납받은 특수활동비를 사저 수리비, 기치료·주사 비용, 의상비, 차명폰 요금 등에 썼다.
또 국가정보원은 특수활동비로 청와대 수석들에게 ‘용돈’을 주기도 했다. 추명호 국가정보원 국익정보국장은 2014년 9월부터 2016년 6월까지 조윤선·현기환 정무수석에게 500만 원씩 모두 9,500만 원을 줬다.
2021년 1월, 대법원으로부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 등으로 모두 징역 22년을 확정 판결받은 박근혜를 포함해 특수활동비 뇌물 상납에 연루된 최고위급 권력자들은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② 박근혜, 공천 개입 위해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로 ‘불법 여론조사’
20대 총선을 앞두고 있던 2016년, 당시 박근혜 청와대는 ‘진박(진실한 친박)’ 감별 여론조사를 벌었다. 당시 박근혜가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 공천에서 배제하려 했던 ‘김무성계’와 ‘유승민계’의 지역구에서 진박 정치인을 찾아낼 목적의 불법 여론조사였다.
당시 박근혜 청와대 정무수석실은 여론조사 비용 약 5억 원을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받은 특수활동비로 결제했다. 박근혜는 공천개입 등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2018년 11월 해당 범죄로 징역 2년형이 확정 선고됐다.
③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로 장관에 ‘감사 인사’
2014년 10월,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이헌수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으로부터 특수활동비 1억 원을 건네받았다.
검찰 수사 결과, 당시 이병기 국정원장이 국정원 예비비 472억 원이 증액된 데 대한 감사 표시로 최경환 장관에게 뇌물을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9년 7월,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 소속 국회의원이던 최경환은 대법원에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로 징역 5년, 벌금 1억 5,000만 원, 추징금 1억 원을 확정 선고받았다.
④ 양승태 대법원장의 특수활동비는 ‘로비용?’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인 2015년, 대법원에 특수활동비 예산이 처음으로 편성됐다.
2018년 7월, 참여연대가 발표한 ‘2015~2018년 대법원 특수활동비 지급내역 분석보고서’를 보면,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은 2015년 1월부터 퇴임 날인 2017년 9월 22일 사이에 184회에 걸쳐 총 2억 2,360여만 원의 특수활동비를 받았다. 월 평균 690만 원을 받았는데, 2015년 8월과 9월에는 각각 1,007만 원과 1,285만 원으로 특수활동비 지출이 급증했다.
참여연대는 “2015년 8월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독대를 한 시기로, 이 시기의 특수활동비가 상고법원 설치를 위한 로비용으로 사용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⑤ 국회의원, 아들 유학자금으로 국회 특수활동비 유용
2015년 5월,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신계륜 의원은 ‘서울종합예술학교 교명 변경 입법 로비 사건’ 재판에서 아들의 유학 자금의 출처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상임위원장으로 있을 때 나온 직책비(특수활동비)라고 진술했다. 당시 검사가 “특수활동비를 개인적인 용도로 써도 되냐”고 묻자, 신 의원은 “된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⑥ 특수활동비 1심 승소했으나, 박근혜 탄핵으로 소송 각하
2014년, 하승수 변호사는 박근혜 대통령비서실 등을 상대로 특수활동비 등 예산의 집행내역을 공개하라는 행정소송을 냈다. 2년 뒤, 서울행정법원 1심 재판부는 특수활동비 예산 정보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통령비서실은 불복해 항소했고, 항소심 도중 대통령 박근혜가 탄핵되고, 대통령기록관으로 관련 자료가 이관되면서 정보공개법으로 다툴 문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소송 자체가 각하됐다.
문재인 정부 (2017.5.~2022.5.)
① 정부부처 특수활동비, 2017년 4,007억 원 → 2022년 2,396억 원 축소
2017년 7월, 감사원은 국방부, 경찰청, 법무부 등 19개 기관의 특수활동비 집행실태를 점검했다.
그 결과, 2016년 1월부터 2017년 6월말까지 19개 정부부처에서 사용한 전체 특수활동비 가운데 49.7%는 특수활동비를 받아갔다는 수령증만 있을 뿐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 얼마를 썼는지 밝히는 ‘집행내용확인서’ 등 지출 증빙자료는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는 정부부처의 특수활동비 감축에 나섰다. 국가정보원을 제외한 정부부처 특수활동비는 2017년 4,007억 원 → 2018년 3,186억 원 → 2019년 2,860억 원 → 2020년 2,536억 원 → 2021년 2,384억 원 → 2022년 2,396억 원으로 1,611억 원, 40.2% 줄었다.
② 대통령 특수활동비 ‘성역’은 전 정권과 같이 비공개 사수
그러나 특수활동비 감축과는 별개로 문재인 정부도 특수활동비 예산의 세부 정보에 대한 공개를 거부했다.
2018년 7월, 대통령비서실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 특수활동비의 지급 일자와 사유, 금액, 수령자를 포함해 김정숙 여사의 의전 비용에 대한 세부 집행내역 등을 공개해달라는 한국납세자연맹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납세자연맹은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2022년 2월 1심에서 정보공개 승소 판결을 끌어냈다.
정보공개를 거부하려면 비공개로 보호되는 이익이 국민의 알 권리와 국정에 대한 국민의 참여, 국정운영의 투명성을 희생해야 할 정도로 커야 한다. 일부 개인정보 부분은 공개할 이익을 인정하기 어려워 그 부분을 제외하면, 피고가 비공개로 결정한 정보에 관해 정보공개가 이뤄지는 것이 타당하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2022.2.10.)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는 공개를 거부하고 항소했다.
국민의 알 권리와 정보공개 제도의 취지, 공개할 경우 해쳐질 공익 등을 비교형량해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2022.3.2.)
항소 두 달 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서 특수활동비 관련 자료도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됐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이 지정되면, 최장 15년, 사생활 관련 기록물은 30년 동안 비공개 된다. 이에 따라 납세자연맹의 정보공개 행정소송 항소심은 멈춰선 상태다.
당시 야당인 국민의힘은 “떳떳하다면 공개 못 할 이유가 없다”며 문재인 청와대의 특수활동비 비공개를 비판했다.
출범 직후 전 정부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가지고서는 ‘적폐청산’ 운운하더니 자신들의 치부는 드러내지 않으려는 이중잣대이자 내로남불이다. 영부인의 의전비 내역이 왜 대외비여야 하는지 납득할 국민이 몇이나 되겠나. 떳떳하다면 공개 못 할 이유가 없다. 국민의힘(2022.3.3.)
윤석열 정부 (2022.5.~)
대통령 특수활동비 공개 판례 ‘무시’
2022년 6월, 한국납세자연맹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 달 동안 지출된 대통령비서실 특수활동비의 세부집행내역에 대해서도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이와 함께 2022년 5월 13일 윤 대통령이 서초동 사저 근처에서 450만 원을 지출했다고 알려진 저녁 식사 비용의 영수증, 예산 항목, 그리고 대통령 내외가 2023년 6월 12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지출한 비용의 세부 정보도 공개해줄 것을 요청했다.
윤석열 대통령비서실은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며 거부했다. 불과 넉 달 전, 문재인 대통령의 특수활동비에 대한 행정소송 1심에서 확립된 대통령 특수활동비 공개 판례를 무시한 것이다.
뉴스타파와 세금도둑잡아라 등 시민단체도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2022년 5월 10일부터 7월 29일까지 약 두 달 동안 대통령비서실이 쓴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특정업무경비 집행 내역을 모두 공개하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관련 기사: 뉴스타파 vs 대통령실, 예산 공개 소송 시작)
2023년 기준, 윤석열 대통령비서실의 특수활동비 예산은 82억 5,100만 원으로 대통령비서실 전체 예산의 8.1%를 차지한다.
특수활동비와 검찰의 ‘내로남불’
지금까지 확인한 것처럼 특수활동비 관련 오남용은 주로 검찰이 지난 정권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특수활동비 범죄를 단죄했던 검찰은 정작, 자신들이 쓰는 특수활동비 검증은 물론 공개도 거부하고 있다.
이번에는 검찰 특수활동비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사건들을 정리했다.
① 특수활동비는 검찰 실세들의 ‘인맥 관리비’
2017년 4월 21일,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과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은 국정농단 특별수사본부 소속 검사와 법무부 검찰국 간부 등 8명과 저녁 식사를 했다. 이 자리에서 안 국장은 특별수사본부 검사 6명에게 각각 현금 70~100만 원씩, 이 지검장은 검찰국 간부 2명에게 각각 100만씩이 든 돈봉투를 돌렸다. 돈의 출처는 검찰 특수활동비였다.
일명 ‘돈봉투 만찬’의 배경을 두고 언론에서는 두 가지 의혹을 제기했다.
1. 안태근 검찰국장: 자신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연루 의혹을 무마해준 국정농단 특별수사본부에 사후 뇌물 제공 의혹
2.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 후보로서 총장 후보 추천위원회의 실무를 담당하는 검찰국 간부에 청탁성 뇌물 제공 의혹
법무부와 검찰이 합동감찰을 벌였고, 두 사람은 면직됐다. 안태근 전 국장과 이영렬 전 지검장은 ‘면직 처분이 부당하다’며 법무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고, 모두 최종 승소했다.
당시 ‘돈봉투 만찬’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이영렬 전 지검장만을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2018년 이 전 지검장은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고, 안태근 전 국장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② 검찰총장의 ‘통치자금’ 특수활동비
검찰총장의 특수활동비는 총장에 대한 언론 등의 평판과 검찰 내 자신의 인맥을 관리하는 ‘총장 통치자금’으로 알려져 있다.
2009년 11월, 김준규 검찰총장은 서울 중구 장충동의 한 음식점에서 함께 저녁을 먹던 출입기자 8명에게 각각 50만 원씩, 모두 400만 원을 돌렸다. 촌지의 출처는 검찰총장 특수활동비였다.
당시 참여연대는 “스폰서 검사에 이어 촌지 검찰총장이 나왔다”면서 “앞으로 잘 봐달라는 뜻이 담긴 뇌물인 만큼 법무부가 징계해야 할 사안”이라고 논평했다. 그러나 법무부와 검찰은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또 김준규 총장은 2011년 4월, ‘전국 검사장 워크숍’에 참석한 검사장급 이상 간부 45명에게 각각 200~300만 원씩, 모두 9,800만 원을 돌렸다. 돈의 출처는 이번에도 검찰총장 특수활동비였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검찰총장이 예전부터 검사장들에게 정상적으로 지급해온 업무활동비의 일환”으로 “범죄정보 수집과 수사활동을 하는 데 사용된다”며 “(특수활동비의) 용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③ 윤석열 검찰총장의 특수활동비 오남용 의혹
2020년 11월 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윤석열 검찰총장 역시 특수활동비를 ‘통치자금’으로 쓰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수활동비 배정을 검찰총장이 마음대로 한다. 그래서 자신의 측근이 있는 청에는 많이 주고 마음에 들지 않는 청에는 적게 주고 있다.” 이런 말이 나와서...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2020.11.5.)
특활비는 대검에서 일괄 받아 가기 때문에 말씀하신 것처럼 검찰총장이 임의로 이렇게 집행을 하는 거지요. 무슨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고요. 추미애 법무부 장관(2020.11.5.)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여야 합의를 거쳐 최초로 검찰 특수활동비를 검증하기로 의결했다. 당시 검찰은 국회의 검증 요구에도 ‘검증 장소에 보좌진은 데려오지 말 것’, ‘검증 문서의 촬영과 복사는 제한’, ‘메모만 허용’ 같은 조건을 내걸었다. 결국 국회의원에게도 특수활동비 자료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고, 온전한 검증은 불가능했다.
정작 꼭 봐야 될 자료, 예를 들면 검찰총장이 임의로 집행할 수 있는 수시집행분에 대해서는 한 장도 자료를 제공하기 않았습니다. 그래서 검증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2020.11.16.)
여당 위원, 야당 위원이 다 같이 문서 검증을 가서 똑같이 공히 말씀하신 대로 구체적인 집행 내역은 법무부도 대검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2020.11.16.)
사상 최초의 검찰 특수활동비 검증... 권력기관에 대한 주권자의 민주적 통제 ‘원년’
이처럼 검찰은 국회의 예산 심의 권한을 무력화하면서도, 매년 특수활동비의 필요성은 강변하고 있다.
검찰 특활비가 궁극적으로는 최소화 내지는 없어져야 할 그러한 제도라고 저는 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필요한 부분이 아직은 있습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2022. 1. 26.)
특수활동비 존치의 필요성을 입증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특수활동비가 수사와 정보 수집 등에 정확히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검찰 스스로 증명하면 될 일이다. 즉, 예산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면 된다.
예산의 공개와 민주적 통제는 ‘특별한 권력기관’인 검찰을 ‘보통의 행정기관’으로 탈바꿈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오는 6월 23일 검찰 예산이 공개되는 대로 뉴스타파와 시민단체는 검사들이 세금을 제대로 썼는지, 특히 검사 시절 윤석열 대통령은 세금을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검증할 계획이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에서 1990년 12월 13일부터 2023년 5월 17일까지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등 6개 일간지의 기사 4,491건을 수집하고, 참여연대 ‘그사건 그검사’를 참고해 작성했다.
뉴스타파 임선응
미국 ‘도심 매장 털이’ 골머리
미국 대도시가 연이은 ‘떼강도 사건’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둔기를 이용해 가게 창문과 진열장을 부수고 상품을 갈취해 빠르게 달아나는, 이른바 ‘스매시 앤 그랩(smash and grab)’ 범죄 사례가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8일(현지시각), 로스앤젤레스 웨스트우드 지역에서 벌어진 강도 사건의 용의자들은 불과 한 시간 만에 5개 상점의 창을 깨고 금품을 훔쳐 달아나 지역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KBS 미국 글로벌통신원은 “자동차가 도둑맞을까 봐 두려운 나머지 차에서 내려 밥을 먹으러 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불안감이 극도로 높아진 현지의 상황을 전했다. 미국의 대기업들 역시 치안 불안을 이유로 도심 내 매장 폐점 조치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는 치안 문제로 이번 달 뉴욕시의 매장 두 곳을 폐점했고, 대형 할인점 윌마트 또한 지난 4월 미국 전역에서 매장 20곳을 폐쇄할 것이라고 밝혔다.
샌프란시스코 경찰국에 따르면 올해 절도 및 강도 사건은 전년 대비 17%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관계자들은 스매시 앤 그랩 절도범들이 범죄 조직의 일원인 것으로 보고 있다. 조나단 사이먼 UC버클리대학교 교수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온라인 거래 활성화로 출처가 불분명한 절도품의 재판매가 성행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특파원보고 세계는 지금 23.63.
학력별 임금·노동시간 격차 해소가 교육개혁 열쇠다
13) 교육흥국서 교육망국으로
[대한민국의 길을 묻다] 학력별 임금·노동시간 격차 해소가 교육개혁 열쇠다
오늘날 한국의 교육은 거꾸로 가고 있다
대학교육은 세습사회로 역진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 높은 대학진학률 불구, 취업률은 매우 낮아 구조적 부조화와 부조응이 심각하다
모든 교육 불평등의 제1의 요체는 학교의 붕괴, 즉 공교육의 해체와 사교육의 만연이다
경제력 차이→ 사교육 기회의 차이→ 수능점수 격차라는 불평등의 악순환 고리가 구체적으로 증명된다
한국사회의 거의 모든 문제는 교육에서 비롯되어 교육으로 귀결된다. 한국적 삶과 한국사회가 지닌 문제의 핵심에는 교육이 놓여 있다. 교육은 한 삶과 한 나라의 성패가 달린 최고 중심 영역이자 부문이다. 오늘의 한국민들 개개인과 한국 사회의 성공과 발전 역시 교육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특별히 제국주의 강점과 한국전쟁이라는, 정신과 물질의 전면적인 파탄과 폐허를 경험한 나라에서 개인과 공동체가 오롯한 성공과 자아실현, 발전과 번영을 향하여 질주하는 데에서 교육의 역할은 가장 중요하였다. 그것은 ‘교육열’이라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용어와 현상을 만들어낼 정도였다. 대한민국은 무엇보다도 교육으로 일어서고 교육으로 발전한 나라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교육은 이 공동체의 가장 심각한 질병의 하나로 간주될 정도로 중증 상태에 놓여 있다. 그것은 교육의 범주를 훨씬 넘어, 경제문제이자 사회문제이며, 정치문제이자 지방의 생존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가장 중요한 교육개혁이라고 강조돼온 대학입시의 경우 손을 댈수록 더 나빠졌다. 학교와 학급의 숱한 폐쇄를 초래하고 있는 학령아동의 급감 문제의 경우, 이 땅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고 교육하는 문제가 너무 힘들고 비용이 많이 들어서 그렇다는 점에서, 교육이 출산율 저하의 한 핵심 원인을 제공하고, 그것이 다시 학교 붕괴로 연결되는 악순환 과정을 볼 수 있다. 교육으로 일어선 나라가 교육으로 망조가 들고 있는 현실이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교육문제는 대부분 대학입시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교육개혁 역시 입시개혁이 중심이라는 점에서 예외적이다. 사실에 비추어 그것은 한국현실을 반영한다. 한국에서 대학입시는 삶의 너무 많은 것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70%에 달한다. 1980년 27.2%, 1990년 33.2%를 기록한 이후 2000년 68.0%, 2010년 79%(이상 합격자 기준), 2020년 72.5%, 2021년 73.7%, 2022년 73.3%(이상 등록자 기준)에 이른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홀로 70%대의 대학진학률을 기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차상위 국가들이 50%대라는 점에서도 매우 높다. 선진복지국가들의 대학진학률은 훨씬 낮다. 2020년을 기준으로 할 때 노르웨이 34%, 오스트리아 32%, 독일 30%, 핀란드 25%, 아이슬란드 24%, 스위스 23%, 스웨덴 22%, 덴마크 17%다. 이들 국가에서는 한국과는 정반대로 70%대의 청년들이 대학을 가지 않고도 복지국가 국민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높은 대학진학률에도 불구하고 한국의대학졸업자 취업률은 오래도록 매우 낮다. 입구와 출구의 장기적인 구조적 부조화와 부조응이 심각한 것이다. 대학 졸업자 취업률은 연평균 60%를 넘지 못하며, 정규직 취업률은 이보다 더욱 낮다. 이토록 낮은 평균 취업률은 과도하게 높은 대학진학률에 문제가 있거나 졸업생들을 적절히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체제에 문제가 있거나 둘 중 하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취업률 수준에 맞게 대학진학률을 조정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은 오래도록 이에 실패하고 있다. 사회체제 개혁을 통해 대학진학률을 낮추는 데에도 실패하고 있다.
입시매몰로 인한 낭비교육
요컨대 학령아동과 고등학교 졸업생의 급감에도 불구하고 대학진학률 저하와 대학졸업자의 취업률 상승은 나타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부모와 청년들이 대학진학을 필수로 여기고, 나아가 더 좋은 대학이나 취업이 잘되는 전공으로 바꾸려는 중도 휴학과 반수(半修)·재수 등의 높은 비율을 보면 대학입시에 매달리게 만든 특정한 사회구조가 청년들로 하여금 가장 소중한 시기를 입시에 반복 도전하도록 만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입시매몰과 사회문제로 인한 낭비교육, 낭비사회, 낭비국가임에 틀림없다.
낮은 대학진학률을 기록한 선진복지국가들의 적지 않은 숫자(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는 대학등록금이 0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진학률이 낮다는 것은 개인적 차원에서 대학진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서이거나, 사회적 차원에서 대학진학이 꼭 필요하지 않은 체제이기 때문이다. 대학진학률이 매우 낮은 다른 복지국가들(독일, 룩셈부르크, 오스트리아 등) 역시 대학등록금은 거의 없는 수준이다. 이 일반적 경향은 대학진학이, 따라서 교육이 임금 및 취업, 자기실현의 기회와 가능성을 포함한, 사회체제의 성격에 직결되어 있음을 확고하게 증거한다. 인간은 효과와 소득이 없는 불필요한 것을 위해 삶을 투자할 만큼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신뢰할 만한 교육 및 사회경제 조사와 통계들이 상세히 보여주고 있듯 한국 교육의 역기능, 즉 세습화 기여의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교육이 학습자의 열정과 의지, 자질과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학력·재산규모·거주지·지위에 의해 좌우될 때 우리는 이를 신분사회 또는 세습사회라고 부른다. 신분사회에서 경쟁사회, 세습사회에서 능력사회,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수행한 것은 바로 교육이었다. 의무교육, 평등교육, 국민교육 없는 근대화와 근대성은 생각할 수조차 없을 만큼 교육의 역할은 컸다. 한국은 특히 교육을 통해 근대화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교육이 개인성취와 민주주의와 사회경제 발전에 끼친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교육은 거꾸로 가고 있다. 특히 대학교육은 세습사회로 역진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근대화와 능력 발현의 표상이었던 교육의 경우 근대화 자체를 부정하며 역근대화·세습화·신분화로 나아가고 있다. 부모의 학력·지위·소득과 자녀의 그것들 사이의 높은 상관성에 대한 통계와 연구들은 우리 사회가 신분과 세습의 해체라는 근대화의 분기점을 명백히 역진하고 있음을 두렵게 보여준다. 게다가 부모의 돈과 지위, 인맥과 네트워크에 따른 자녀들의 스펙 쌓기는 교육 밖의 영역에서 반교육적이며 비교육적인 방법으로 교육의 기회 창출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교육으로 인한 균등한 근대적 공동체의 발전과 건설이 아니라 오히려 그에 대한 가장 두려운 저항요소(신분과 세습)가 구조적으로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민간 교육비 부담 너무 커
수능점수와 수험생의 계층적 배경 사이의 상관관계를 밝힌 연구들은 수능점수와 부모의 지위·소득 및 학력, 사교육비 지출 사이의 정비례 관계를 상세한 수치로 보여준다. 부모의 소득수준과 학생 수능점수는 정비례한다. 점수의 차이도 매우 크다. 직종과 노동유형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상위 정신노동직, 하위 정신노동직, 상위 육체노동직, 하위 육체노동직이냐에 따라 학생의 점수 역시 비례관계이며 그 차이는 소득에 따른 차이보다 더 크다. 부모의 학력에 따른 격차를 보면, 대학원졸업자 부모로부터, 4년제 대학졸업자 부모, 2~3년제 대학졸업자 부모, 고졸자 부모, 중졸 이하 부모에 따라 순서대로 역시 정비례 관계이며 점수 차 역시 매우 크다.
이 같은 차이의 원인은 사교육비 지출과 직접 관련이 있다. 부모의 소득·직업·학력에 따른 사교육비 지출 규모의 차이는 크다. 요컨대 사교육비를 기준으로 부모의 소득·지위·학력에 따라 분류한 학생집단의 수능 평균점수는 모든 해당 지표와 정확히 정비례했다. 부모의 경제력 및 학력, 사교육비 지출 규모, 수능 점수의 3가지 요소가 비례한다는 사실은 소득과 지위와 학력의 세습 현상이 사교육을 매개로 이뤄지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부모의 집값까지 학생의 학력에 직결되고 있다. 집값, 학원 수강자 숫자, 최상위권 대학 합격률 사이의 상관관계는 대단히 높게 나타난다. 부분적으로 부동산 규모나 자산 수준이 명문대 진학 여부를 가른다고 해도 될 정도의 수치다. 전국의 시·군·구를 집값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 지역별 명문대 합격률을 살펴보면 차이는 확연하다. 집값 최고 수준 지역들은 명문대 합격률 최고 지역들과 거의 일치한다. 명문대 합격률은 집값과도 정확하게 비례하는 것이다. 서울시 구별 아파트 매매가, 사설 학원 숫자와 명문대 합격률 역시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어디에 거주하느냐와 얼마나 좋은 학원들이 있느냐가 얼마나 좋은 대학을 들어가느냐와 직결되어 있다. 이러한 차이는 부모의 능력에 따른 고교 입시부터 대입의 기회가 갈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체 이 나라 교육의 공공성 붕괴와 사사성과 세습성은 어디까지 나아가려는가.
이 모든 현상의 제1의 요체는 학교의 붕괴, 즉 공교육의 해체와 사교육의 만연이다. 공교육의 파탄·실종과 사교육으로의 완전한 역할 전도(顚倒)와 대체로 인한 경제력 차이→사교육 기회의 차이→수능점수 격차라는 교육 불평등의 악순환 고리가 구체적으로 증명되는 것이다. 복수의 조사들이 보여주듯 거의 모든 계층이 사교육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은 무엇보다도 입시교육 매몰과 학교 교육의 붕괴를 보여주는 확실한 징표가 된다.
입시 사교육비를 넘어 대학교육조차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부담 비율이 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대학교육 부담 비율은 공공 대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OECD 회원국 평균은 각각 66.0% 대 30.8%이다. 반면 한국은 공공이 38.3%인 반면 개인은 61.7%를 부담하고 있다. 대체 교육에 관한 한 한국의 정부는 무엇을 부담하고 있는 것인가? 만약에 최소한 OECD 평균에 달하는 66.0% 정도의 정부 부담이 가능하다면, 즉 현재(38.3%)보다 27.7%를 더 증가한다면 대학등록금 문제를 포함해 사교육(비)문제는 해결되고도 남는다. 게다가 한국의 대학교육은 진학률이 70%에 달할 정도의 보통교육이 된 지 이미 오래다. 특히 고등학교 때까지의 사교육비 부담을 고려할 때 더욱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은 한 사람의 탄생부터 취업 때까지의 민간 교육비 부담이 너무나도 큰 나라인 것이다. 그것이 세습사회의 한 결정적 요인임은 재론을 요하지 않는다.
교육적 해법은 공교육 정상화
개인과 나라에 교육은 전체이다. 따라서 교육개혁은 교육을 개혁하는 것만으로는 해법도 출구도 찾을 수 없는 영역이다. 교육개혁은 물론 노동과 임금을 포함한 사회개혁이 필수다. 즉 졸업 이후의 사회를 개혁하면 졸업 이전의 학교는 따라서 개혁된다. 사회와 교육, 교육과 사회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앞서 한국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막대한 임금격차를 확인한 바 있다.
그런데 학력별 정규직 대 비정규직 비율을 보면 두 요인이 만나서 얼마나 더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두렵다. 한국에서 대졸 이상은 정규직이 76.1%인데 반해 비정규직은 23.9%이다. 전문대졸은 각각 68.8%, 31.2%이며, 고졸은 48.4%, 51.6%이다. 그러나 중졸 이하는 정규직이 20.7%인데 반해 비정규직은 무려 79.3%에 달한다(2019년 기준). 중졸 이하 노동자 240만7000명 중 190만9000명이나 비정규직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분포가 완전히 학력에 따라 비례함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학력은 곧 일자리의 안정성과 소득규모에 비례하는 것이다.
최근 공식 발표들에 따르면 한국의 학력별 임금격차는 OECD 평균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학력이 직종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고려할 때 이러한 평균은 다시 고려해야 할 점들이 많다. 우선 독일과 한국의 임금을 비교하면 (이하 동일 연도 비교를 위해 각각 2011년과 2014년 기준) 의사를 100으로 할 때 독일 대 한국은 간호사는 56.5 대 36.1, 유치원 교사는 51.9 대 25.7로, 건설철근공은 47.2 대 27.8, 자동차 정비원은 46.1 대 34.2로 차이가 난다. 독일에 비해 상당히 큰 임금 격차가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경우 직종별 임금격차는 훨씬 더 완만하다. 스웨덴은 의사가 100일 때 간호사가 51.81, 경비청소부잡역은 39.27이다. 노르웨이의 직종별 임금은 더욱 평등하여 기준 직업(정보통신)을 100으로 할 때 최저 54.40에서 최고 119.50 사이에서 움직인다. 상당한 ‘근사화’(近似化: 소득, 노동시간, 연금, 여가 등 각 분야에 걸쳐 높은 격차를 줄여 중앙값에 근접하게 하는 것)다. 관리자를 100으로 할 때 단순 노무자 임금의 비율은 한국과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각각 24.3, 48, 43.6이다. 교육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에 틀림없는 직종별 한국의 임금 격차가 상당히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방대한 전체 통계가 입수 가능한 연도(2014)를 기준으로 전체 평균을 통해 볼 때, 한국의 ‘학력별 평생 소득’ ‘학력별 평생 노동시간’ ‘학력별 평생 연금’ ‘학력별 평생 여가’를 비교하면 연금을 제외하곤 학력별로 상당한 격차가 드러난다. 워낙 방대한 수치들의 압축이라서 지면 관계상 4개 부문 전체의 상세한 전체 수치의 비교는 생략한다. 다만 이 4개의 영역의 큰 격차를 작게 줄여서 비슷하게 근접시켜 놓으면 높은 사교육비를 감수하면서까지 최고 수준의 대학진학률을 기록할 이유가 없어진다. 복지국가들이 갔던, 근사화를 말한다.
교육개혁의 해법은 두 가지다. 먼저 교육적 해법은 바로 공교육의 정상화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교육의 내용적·비용적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 최고 요체인 것이다. 둘째로 사회적 해법은 바로 근사화의 길이다. 개인들의 삶의 단계마다 난마처럼 얽혀 있는 ①한국사회의 교육 문제(진학 일변도 교육, 높은 대학진학률과 사교육비, 높은 등록금, 낮은 취업률) ②일자리 문제(학력과 일자리의 부조화와 불일치) ③낭비 문제(개인적 기회 낭비, 수많은 가정의 사교육비 낭비, 사회적·국가적 교육 낭비) ④불평등 문제(학력별 임금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를 수미일관되게 해소할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고리는 학력별 평생임금 및 시간당 임금의 큰 격차를 축소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모든 사람에게 학력에 관계없이 국가가 제공하는 근사한 평생 소득, 근사한 평생 노동시간이 보장된다면 굳이 높은 사교육비와 등록금을 지불하며 대학에 진학할 필요가 없어진다. 물론 자아실현은 개인의 다른 영역이다.
평생 소득, 평생 노동시간, 평생 세금, 평생 연금의 근사화가 입시·교육·노동·복지개혁을 포함한 모든 개혁의 근간인 것이다. 이 개혁이야말로 교육과 일자리와 임금과 복지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자 귀결점이다. 근사화는 자유와 평등의 동시 추구를 위한 요체이며 고른 인간적 삶을 보장키 위한 경로이기도 하다. 그것은 곧 개인의 삶과 전체 사회구조를 함께 안온하게 변혁하는 고갱이 중의 고갱이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국가가 제공하는 최저 근삿값 이외 부분의 수입과 소득은 개인 능력에 따라 가져갈 수 있는 자율적 경쟁체제의 구축은 강조할 필요도 없다.
박명림 교수 연세대 정치학 경향
아이 맡길 어린이집 없어 떠납니다”···무너지는 농촌 ‘보육 인프라’
전북도청 직장 어린이집 전경. 김창효 선임기자
“나라에서, 지방자치단체에서 출산을 장려하기만 하면 뭘 합니까. 막상 아이를 낳으니 보육 시설이 없어 농촌을 떠나야 하는 현실부터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요?”
얼마 전까지 전북 부안군 변산면에 살았던 A씨의 하소연이다. 맞벌이하는 A씨 부부는 출산 이후 아내의 복직을 앞두고 부부는 변산면에 단 하나뿐인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계획이었다. 하지만 어린이집은 갑자기 문을 닫았다. A씨는 “원장과 상담까지 했는데 입소를 앞두고 어린이집 측이 ‘문을 닫게 됐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면서 “보육 시설이 있는 도시로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전북 부안군은 뒤늦게 A씨의 사연을 접하고 어린이집이 폐원한 변산면에 공립 어린이집을 운영하기로 하고 부지 선정에 나선 상태다. 그러나 어린이집이 문을 열기까지는 2~3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전국 농어촌 지역의 어린이집 폐원이 잇따르면서 ‘보육 인프라’가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보육 공백은 청년층 유입의 걸림돌이 돼 지역소멸을 가속화 할 수 있는 만큼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어린이집 수는 2018년 3만9171곳에서 올해 5월 말 기준 2만9314곳으로 5년 사이 9857곳이나 줄었다. 문을 닫는 어린이집은 농어촌 지역에 집중돼 있다.
전북지역 어린이집은 같은 기간 1397곳에서 960곳으로 줄었고 전남은 1205곳에서 958곳이 됐다. 경북 역시 2018년 1976곳이나 됐던 어린이집이 1352곳으로 감소했다. 충북은 1157곳에서 922곳, 강원도도 1086곳에서 860곳으로 줄었다.
읍·면·동에 어린이집이 없는 ‘어린이집 미설치 지역’은 2018년 491곳에서 지난해 560곳으로 늘어났다. 전북의 경우 어린이집이 없는 읍·면·동이 78곳이나 되는데 대부분 농촌이다. 김제가 10곳으로 가장 많고 정읍·임실 9곳, 남원·진안 8곳, 고창 7곳, 부안 6곳, 익산 5곳, 장수·순창 4곳, 군산·무주 3곳, 완주 2곳 등이다.
익산시 한 어린이집 원장은 “몇 년 전만 하더라도 60~70명이던 원생이 지금은 30명도 채 되지 않는다”라며 “건물 유지비·인건비 등은 계속 늘어나 연말쯤 폐업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농어촌 지역의 보육 인프라 붕괴는 지역 소멸을 앞당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재우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지방 소멸은 결국 농어촌 마을부터 시작되는데, 지방에서 정주하려는 청년들에게는 다양한 생활 문화 인프라가 중요하다”라면서 “특히 영유아 부모들의 경우 어린이집과 같은 보육 환경이 결정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신은옥 전북 어린이집 연합회장도 “농어촌에서 살기 위해선 사회 인프라 구축과 육아 지원 등의 정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는 조례를 만들어 농촌 지역 어린이집을 지원하고 있다. 제주는 읍·면 지역에 있는 어린이집의 환경 개선비와 운영비를 지원한다. 경북도와 경기 파주시는 농어촌 지역의 보육교사에 교통비와 수당 등을 지원하고 있다.
김슬지 전북도의회 의원은 “인구가 줄어들고 아이들이 줄어드니 관련 시설이 없어지고 청년 인구가 더 빠져나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라면서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농어촌 지역에 마을 단위 소규모 어린이집과 이들을 묶는 거점형 공동 어린이집 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향 김창효 선임기자
‘천재’ 아인슈타인, 여성에겐 폭군이었다?
세기의 천재’ 아인슈타인은 아내에게 헌신을 강요하면서도 자신은 외도를 일삼았습니다.
다른 많은 천재처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독특한 면이 많은 괴짜였습니다. 특히 여자관계에 있어서 괴짜를 넘어 폭군일 정도로 아내에게 헌신을 강요하고 제멋대로였죠. 그는 공식적으로 두 번 결혼했고 러시아 미모의 스파이를 비롯해 다양한 여성들과 외도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아내에게는 더없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고 그의 아내는 굴욕과 배신을 한꺼번에 감당해야 했죠. 그런데도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은 그렇게 매력적이었을까요? 두 아내 모두 그의 연구 활동을 위해 내조했고 끝까지 가정을 지키려 했습니다. 세기의 천재 아인슈타인의 여자관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첫 번째 아니 밀레바와 두 아들.
그가 첫 번째 아내 밀레바에게 강요한 비상식적 행동은?
아인슈타인이 열일곱 살 때 스위스 폴리테크닉 스쿨에서 공부하면서 같은 학교에 다녔던 그의 첫 번째 아내 밀레바 마리치를 만났습니다. 비교적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었던 아인슈타인은 밀레바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하자 그의 부모는 반대했습니다. 그녀가 세르비아 이민자 출신이고 3살 연상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죠. 일설에 의하면 아인슈타인의 어머니가 밀레바를 ‘늙은 마녀’라고 악평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밀레바에게 보낸 편지에 “나는 사랑과 욕망에 불타 미쳐가고 죽어가고 있다. 네가 베고 자는 베개가 되는 것만으로 100배 행복할 것 같다”라는 꽤 과격한 사랑 표현을 하면서 결혼을 결심합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그의 애정은 차갑게 식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급기야 아내에게 결혼에 대한 몇 가지 조건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첫째, 내 옷과 침대를 챙겨준다. 두 번째 하루에 세 번 내 사무실로 음식을 가져다준다. 셋째 최소한의 사회적 관계를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든 개인적인 접촉을 거부한다. 넷째 내가 부탁하면 그 어떤 토를 달지 않고 내 침실이나 사무실을 떠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은 나에게 어떤 감정의 표현도 기대하지 말 것.
밀레바는 그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이 요구 사항을 다 받아들이고 결혼을 합니다. 결혼 직후 두 사람은 두 아이를 낳았지만 아내에게는 늘 차가웠습니다. 늘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기 일쑤고 밖에 나가면 외도를 일삼았고 부부는 며칠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는 생활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는 편지로 밀레바에게 ‘나와의 모든 친분을 끊어달라’고 요구했고 1914년 여름 밀레바는 두 아들을 데리고 베를린을 떠나 취리히에서 살면서 부부의 인연은 끊어집니다. 물론 당시 유대인이었던 아인슈타인은 제1차 세계 대전 도중 중립국으로 피신해야 하는 상황도 부부의 별거를 이끌었습니다.
아인슈타인과 6촌지간 엘사와 두 번째 결혼을 한다.
부부는 별거 상태로 3년 동안 지냈습니다. 밀레바가 미련 때문인지 복수 때문인지 이혼 서류에 서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6촌 지간인 엘사를 만나고 있던 아인슈타인은 재혼 생각에 마음이 조급했죠. 노벨상 상금을 밀레바에게 증여하겠다는 약속을 한 후에야 이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그 약속을 지켰고 1921년 전 부인에게 3만 2천 달러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이혼 후 3개월 만에 아인슈타인은 아플 때 자신을 극진히 보살폈던 친척 엘사와 재혼합니다. 엘사 역시 재혼이었고 그녀에게 이전 결혼에서 생긴 두 딸이 있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두 딸까지 자신의 자식으로 입양하는 것에 동의하고 결혼을 합니다. 몇 년간은 아주 평화로운 결혼 생활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과 한 여인.
아인슈타인은 곧 눈을 밖으로 돌렸고 외도 본능이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그럼에도 엘사는 묵묵히 남편에게 헌신합니다. 늘 아인슈타인의 불평불만을 참았고 심지어 그의 정부를 집으로 초대해 만찬을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엘사의 헌신은 아인슈타인에 대한 경외심과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사랑의 힘이 질투심을 이겨낸 것이죠. 근데 정말 이겨낸 것일까요? 엘사는 큰딸의 죽음으로 모든 삶의 의욕을 저버리고 급격하게 쇠약해집니다. 평소 견디고 참아야 했던 화병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 아니었을까요? 1936년 그녀는 그렇게 사랑했던 남편의 품에서 죽습니다.
이후 노쇠한 아인슈타인은 뇌혈관 관련 질환에 걸렸지만 “내가 떠나고 싶을 때 떠나겠다. 인간의 기술로 생을 연장하는 건 천박한 일이다. 내 몫의 할 일을 다했으니 이제 가려한다. 우아하게”라는 말을 남기며 치료를 거부하고 연구를 하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그의 뇌를 빼내서 사진을 찍고 조각내어 연구용으로 보존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한 일화죠.
오늘날 팝아트에도 이용되고 있는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사진.
아인슈타인이 버린 두 아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차남은 조현병으로 평생을 병원에서 지내다 죽었지만 장남 한스는 부모의 뛰어난 지능을 물려받아 버클리 주립 대학에서 수력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나중에 뛰어난 토목공학자가 되었습니다. 특히 한스는 아버지 아인슈타인과 달리 결혼 생활은 원만했고, 아내와 자식들과 손자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지요.
한스는 자신과 어머니와 동생에게 무관심했던 아버지를 평생 미워했고 부모 취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결혼하고 손자를 얻어도 아버지에게 연락하거나 찾아가지 않았으며 아인슈타인의 부고를 듣고도 전혀 슬퍼하지 않았고, 장례식장에 찾아가지도 않았으며 나중에 신문에 짤막한 애도문을 몇 줄 낸 것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무책임한 도피 이후 일련의 불행을 겪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죽음을 보면 알 수 있듯 아인슈타인 본인도 여생에 큰 미련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아인슈타인은 과학자로서 높은 성취와는 별개로 가족에게는 그렇게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는 아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자료제공: 유튜브 채널 <지식 아닌 지식>
레이디 경향 이유진 기자 88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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