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식물 전염병…소·돼지 이어 배·사과나무 매몰 처분
“기후 대책도 버거운데 환경 복원까지?” 유럽연합 내분 조짐
尹정부, 기후변화 근원 해체하고 축소했다
정부, 가덕신공항 조기 개항 위해 민간업체 의견 다시 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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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식물 전염병…소·돼지 이어 배·사과나무 매몰 처분
사과·배 ‘과수화상병’ 번져…구제역은 종식 절차 검토
충북도 농업기술원이 충주 등에서 발병한 과수화상병 확산을 막으려고 전염 가지 등을 제거하고 있다. 충북도 농업기술원 제공
동물 전염병 구제역이 잠잠해지자, 식물 전염병 과수화상병이 빠르게 확산해 자치단체와 방역 당국 등이 긴장하고 있다. 특히 충북 지역은 이달 구제역에다 과수화상병까지 겹쳐 농가 등이 울상이다.
충청북도는 이달 들어 충주 등 사과·배 농가에서 과수화상병 23건(면적 5.8㏊)이 발병해 16곳을 폐원하고, 7곳은 부분 매몰 처분하고 있다고 29일 밝혔다. 과수화상병은 과수 열매·잎 등이 불에 덴 것처럼 검붉게 변한 뒤 말라 죽는 전염병인데, 뾰족한 백신·치료제가 없어 대부분 매몰 처분한다. 충북에선 지난 8일 충주에서 올해 들어 처음 발병한 이후 충주 19건, 제천 3건, 진천 1건 등 확산세가 빠르다. 지난해엔 충북에서 과수화상병 103건이 발생했는데 5월에 65건, 6월에 31건, 7월 5건, 8월 2건 등 5~6월에 집중됐다.
최근 충북 말고도 양평 등 경기 18건, 천안 등 충남 8건, 원주 등 강원 2건 등 중부지방 곳곳에서 과수화상병이 발병해 농가·방역 당국 등은 초비상상태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는 과수화상병 위기관리 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강화했다. 안종현 충북도농업기술원 병해충대응팀장은 “과수화상병은 기온 25~28도, 습도 80%가 발병·확산 적정 조건인데 최근 많은 비가 내려 걱정이다. 1~2주가 고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일 구제역이 발생한 충북 청주시 북이면 한우 축산단지. 오윤주 기자
4년 만에 찾아온 구제역은 그나마 잠잠해지면서 고비를 넘어 가는 단계에 이르렀다. 지난 10일 청주 북이면에서 발병한 이후 이웃 증평군까지 빠르게 확산했지만 지난 18일 확진 이후 추가 발병 사례가 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청주 9건, 증평 2건이 발병해 소 1510마리, 염소 61마리 등 1571마리를 매몰 처분했다.
충북도는 29일 시군 구제역 재난안전대책본부·거점소독시설 등 방역 현장 점검에 나섰으며, 농식품부는 30일 가축 질병 방역 점검 영상회의를 할 참이다. 더불어 충청북도와 농식품부는 구제역 종식 절차 시행을 위한 협의를 조심스레 시작했다. 구제역은 최종 매몰 처분 이후 3주가 지나면 종식을 선언한다. 종식 선언을 하려면 임상 예찰·항원 검사에서 이상이 없어야 하는데, 추가 발병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증평은 다음 달 8일, 청주는 다음 달 10일께 발생 농장 반경 3㎞ 안 농장을 대상으로 검사를 진행할 참이다. 증평은 158농장, 청주는 219농장이 대상이다. 변정운 충청북도 구제역방역팀장은 “청주·증평 모두 축산 밀집단지여서 방역 여건이 좋지 않았지만 10일 동안 추가 발병이 없어 다행”이라며 “백신이 효과를 내면서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이지만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기후 대책도 버거운데 환경 복원까지?” 유럽연합 내분 조짐
2030년까지 생태계 20% 복원 추진에
프랑스·벨기에에 이어 유럽의회도 반발
독일 중서부 타우누스 산맥의 훼손된 숲.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생태계 복원 정책 추진에 반발이 커지고 있다. 프랑크푸르트/AP 연합뉴스
최근 몇년 간 기후 변화 대응 정책을 잇따라 도입한 유럽연합(EU)이 생태계 복원 정책 도입에 나서자, 경제 악영향 등을 내세운 반발이 커지면서 내부 균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에이피>(AP) 통신은 28일(현지시각) 유럽의회 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유럽연합 회원국 지도자들과 유럽의회 의원들 사이에서 환경 복원 정책 속도 조절론을 잇따라 제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내년 6월6~9일의 의회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을 의식한 정책 견제가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유럽의회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회원국 정부로 구성된 유럽연합 이사회와 함께 유럽연합의 정책을 결정하는 한 축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은 질소 비료 등으로 오염된 육지와 바다 생태계 회복을 위해 농업과 어업 등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30년까지 환경 오염으로 파괴된 땅과 바다의 20%를 복원하고 2050년까지는 전체 생태계 복원을 추구하는 내용의 새로운 규제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농약·살충제 사용을 의무적으로 50% 줄이고 공원과 놀이터, 학교에서는 농약·살충제를 완전 금지하는 안도 준비 중이다.
이에 대해 알렉산더르 더크로 벨기에 총리가 최근 입법 중지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그는 유럽연합이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55% 줄이기 위한 각종 기후 관련 규제법을 통과시킨 상황에서 생태계 복원 규제까지 더해지면 산업계가 감당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후 변화와 무관한 사안에 대해서는 너무 나가지 말자는 것”이라며 “(환경 보전 같은) 다른 쟁점도 중요하지만, 단계적인 조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발언은 이달 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기존에 확정된 환경 정책 이행에 집중하면서 새 정책 도입은 미루자고 주장한 데 이어 나온 속도 조절론이다.
두 지도자의 주장에 유럽의회 의원들도 호응하고 나섰다. 유럽의회 내 최대 정당인 중도 성향의 ‘유럽국민당’(EPP)은 환경 보전을 위한 새 규제 법안 철회를 요구했다. 이들은 생태계 복원을 위해 농지를 포기할 경우 식품 가격 상승은 물론 수입 증가에 따른 농가 피해도 우려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에그프리에드 무레샨 ‘유럽국민당’ 부의장은 “이 요구는 예외적인 조처이며, 유럽의회가 농민, 어민, 소비자들의 안전을 위태롭게 할 제안을 수용할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뜻한다”고 말했다. 앞서 유럽의회의 어업위원회와 농업위원회도 이 법안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프란스 티메르만스 기후 변화 담당 유럽연합 집행위 부위원장은 기후 변화와 환경 보전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녹색 딜’은 지지하지만 자연 복원의 포부는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둘은 개별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메뉴가 아니다. 자연 부분이 받쳐주지 않으면 기후 부분도 유지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유럽연합의 환경 복원 정책은 유럽의회 선거와 맞물리면서 당분간 타협의 돌파구를 찾기 어려울 전망이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尹정부, 기후변화 근원 해체하고 축소했다
2022 이상기후보고서 톱아보기
정부는 2010년부터 기후변화에 의한 이상기후의 영향을 평가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이상기후보고서>(이하 보고서)를 발간해왔다. 2022년 이상기후보고서는 기상과 농업에서 재난안전에 이르는 8대 분야별 이상기후 이슈를 정리하고 있다. 13년간의 보고서 이슈를 분석해보면 일관된 기상변화의 흐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기상변동성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그로 인한 피해 또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여름이 길어지고 겨울이 따듯해지는 한반도 온난화의 흐름 속에 맹렬한 한파가 계속되거나 온난일이 평년을 넘어서는 등 냉온탕을 넘나드는 겨울철 기온변동, 여름과 가을장마가 길어지고 호우변동성이 커지는 한편, 봄에서 가을까지 지속적으로 가뭄일수가 증가하는 경향이 지역별로 분절돼 나타나는 등 이상기후현상이 매년 발생해 일반화되고 있다. 2022년도 마찬가지였다. 2022 보고서를 통해 2022년 월별 이상기후 발생 상황을 파악하고 8대 분야의 이상기후 이슈를 톺아봄으로써 이상기후 이슈를 저감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본다.
2022년 월별 이상기후
2022년 평균기온은 12.9℃로 역대 9위였고 연평균 누적강수량은 1150.4mm로 평년 86.7%에 불과했다. 2021년 12월~2022년 2월, 5월 강수량이 적어 전국적 가뭄이 발생했고, 6~8월 사이 중부지방은 호우로 가뭄이 해소됐으나 남부지방은 가뭄이 지속돼 1974년 이후 기상가뭄 최대 발생일수 227.3일을 기록했다. 반면, 중부지방에는 6월 장맛비가 집중되고 8월에도 기록적인 집중호우가 발생해 피해가 컸다.
8대 분야 이상기후 이슈
농업 분야는 이상기상에 기인한 5월 우박 피해, 6~7월 농번기 가뭄 피해, 8월 집중호우로 인한 농경지 피해, 9월 태풍 피해, 12월 대설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
한편, 1993~2022년 중 가장 높은 해수면 기록을 동해가 3회, 황해가 4회, 동중국해가 3회를 기록하고, 1982~2022년 중 가장 높은 해면수온 기록을 동해가 5회, 황해가 1회, 동중국해가 6회를 기록하는 등 해양변수 극값의 발생빈도가 증가하고 1~2월에는 서해연안과 남해 내만에서 저수온 현상이 발생했으며, 서해 태안반도 주변해역의 7월 월평균 수온이 평년보다 2℃ 내외로 높아 해양수산 분야의 피해가 커졌다.
산림 분야는 봄철 평균기온 상승으로 개화시기(홍릉시험림 기준)가 50년 전에 비해 8일 빨라지고 봄 산불 발생 건수와 면적이 증가했다.
산불발생일수가 10년 평균치인 77일에서 2022년 98일로 21일 증가했다. 또한 지난 10년 가운데 2번째로 많은 강수가 내려 산사태 피해가 증가했다. 8월 8~17일 사이 전국 평균강수량은 186.6mm로 이로 인해 327.3ha의 산사태 피해지가 발생했다.
▲ⓒ함께사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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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평균기온은 12.9℃로 역대 9위였고 연평균 누적강수량은 1150.4mm로 평년 86.7%에 불과했다. 2021년 12월~2022년 2월, 5월 강수량이 적어 전국적 가뭄이 발생했고, 6~8월 사이 중부지방은 호우로 가뭄이 해소됐으나 남부지방은 가뭄이 지속돼 1974년 이후 기상가뭄 최대 발생일수 227.3일을 기록했다. 반면, 중부지방에는 6월 장맛비가 집중되고 8월에도 기록적인 집중호우가 발생해 피해가 컸다.
ⓒ함께사는길
○ 8월 8일과 11일 사이 집중적인 호우가 중부지방, 특히 서울과 경기권에 쏟아져 서울 남부에서는 인명 사상사고를 비롯한 도로와 지하철 인프라, 다수 차량의 침수사태가 벌어졌다.
ⓒ함께사는길
환경 분야에서는 보건 및 식품 안전의 위협으로 이어지는 대규모 장기 녹조 발생사태가 발생했고, 남부지방 가뭄으로 물부족 사태가 빚어졌으며 평년 기준과 강도를 상회하는 태풍 내습으로 인한 침수 및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이상기후로 인한 도심 내 해충(러브버그)도 증가했다.
인구 백만 명당 식중독 환자수가 2020년(49명) 이후 3년간 계속 증가해 2022년에는 101명으로 늘어났다. 온열질환자는 사망자 9명을 포함해 1564명이 발생했다. 한편 한랭질환자는 사망자 9명을 포함해 300명이 발생했다. 극심한 이상기온변동이 불러온 건강(보건) 분야 피해가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국토와 교통 분야의 피해는 도시 내 주택 및 도로 등의 설계기준을 상회하는 강우로 인해 커졌다. 서울시 하수관거 용량을 초과한 시간당 100mm가 넘는 이상강우가 발생해 우수관이 역류하는 등 침수 피해가 잇따라 지하철과 도로가 침수됐다. 8월 8일에는 반지하 주택과 지하주차장이 침수되는 등의 사고로 8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했다.
ⓒ함께사는길
○ 2022년 10월 최고기온 평년편차 일별 시계열(위), 11월 최고기온 평년평차 일별 시계열(가운데)과 12월(아래) 최저기온평년편차 일별 시계열. 10월과 12월은 평년보다 크게 춥고 11월은 평년보다 6~7℃ 이상 온난했음을 알 수 있다.
산업·에너지 부문에서는 6월 이른 더위와 7월폭염 영향으로 6~9월 여름철 건물(가정·공공·서비스) 부문의 전력 수요가 동기간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또한 12월에는 전국에 몰아친 한파와 폭설로 연간 최대전력수요치가 기록됐다. 9월에는 초대형 태풍 힌남노 내습으로 전력설비가 고장나 8만9743호에서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이상기후로 인한 재난 안전 분야 피해는 컸다. 태풍과 호우로 28명이 사망했고 2명이 실종됐다. 재산피해는 5728억 원에 달했다. 폭염으로 온열질환자가 급격히 증가했고 가축 83만8000마리와 110만9000마리의 양식 어패류도 폐사했다.
이상기후 불러온 기후변화의 근원을 해체해야
역대 보고서는 각 분야에서 이상기후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복구하고 예측되는 동종 피해를 효과적으로 줄이는 데 집중돼 있을 뿐, 이상기후 변동의 근원인 화석연료 중심 에너지체제의 '전환'과 국가탄소감축계획의 핵심인 산업과 에너지 부문의 '전환'이라는 이중과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다.
2021년 집권한 윤석열 정부는, 원전 중심의 에너지 부문 탄소감축을 추진하면서 재생에너지 목표를 줄였고, 에너지다소비업종 중심의 산업구조를 유존시키기 위해 산업 부문의 탄소감축목표를 축소시켰다. 보고서에 나온 이상기후 피해 대책은 대기오염물질을 굴뚝에서, 또 폐수를 배출종관에서 관리하는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산업과 사회작동동력을 재생에너지 중심 저탄소 고효율 에너지로 바꾸는 에너지체제 전환정책이 이상기후 관리대책과 맞물려야 장기적이고 총체적인 이상기후 대책을 세우고 추진할 수 있다. 기후·에너지 정책 따로 이상기후 피해 대책 따로 정책으로 이상기후 피해를 막기 어렵다.
박현철 편집주간 [함께 사는 길]
정부, 가덕신공항 조기 개항 위해 민간업체 의견 다시 수렴
6월 2일 기업 대상으로 기본계획 2차 설명회 개최
육·해상 지반조사 및 측정 결과 등 각종 자료 제공
3월 1차 때보다 더 많은 관계자 참석할 것으로 보여,
정부가 민관 협력으로 가덕신공항을 조기 개항하기 위해 다시 건설업계의 의견 수렴에 나선다. 각 기업이 갖고 있는 새로운 공법과 기술 등을 효과적으로 적용해 공사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29일 국토교통부는 오는 6월 2일 오후 2시 서울의 건설회관에서 기업들을 대상으로 ‘가덕신공항 기본계획 2차 설명회’를 갖는다고 밝혔다. 1차 설명회는 같은 장소에서 지난 3월 31일 열린 바 있다. 당시에는 100여 명의 업계 관계자들이 행사장을 찾았다.
이번 행사에서는 사업 예정지인 가덕도 일원에 대한 육·해상 지반조사 및 측량 결과, 공항구역의 경계, 단계별 주요 공사 종류 등의 정보가 소개된다. 또 가덕도 인근 육상부 및 해상부 수치 지형도, 육상부 및 해상부 시추 도표, 절취·매립 때의 예상 토공량, 호안공사 개요 등도 설명될 예정이다. 아울러 기본계획 수립 용역 책임기술자는 그동안의 진척 과정을 발표하고 설명회 참석 희망 업체들이 사전에 제출한 질의에 대해 답변할 예정이다. 참가·질의 신청은 대한건설협회 시·도회를 통해서 하면 된다. 현장 질문에 대해서는 용역 책임기술자와 국토부 가덕도신공항건립추진단 측이 답변한다.
지난 3월 31일 서울 강남구 건설회관에서 열린 ‘가덕도신공항 추진계획 1차 설명회’ 모습. 국제신문DB.
추진단은 1차 행사 때 내용이 다소 부실했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이번 설명회에서는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기로 했다. 작년 8월 시작된 기본계획 용역이 오는 8월 25일로 끝나는 만큼 지난 3월 때보다는 구체화된 자료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필요할 경우 올 하반기에도 몇 차례 더 설명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추진단은 13조7000억 원이 투입되는 가덕신공항 건설에 대해 업계의 관심이 높은 까닭에 참석 업체들도 이전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박지홍 추진단장은 “가덕도신공항을 적기에 개항하기 위해서는 민간 기업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기본계획 추진 경과에 맞춰 업계와 사업 관련 정보를 신속하게 공유하면서 지속해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국토부는 가덕신공항 기본계획 수립 용역 외에 오는 8월 종료를 목표로 전략환경영향평가 용역도 병행해 시행하고 있다. 기본계획 수립 용역은 ㈜유신 등 7개 사로 구성된 연합체가 수행 중이다. 기획재정부의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는 지난 3월 완료됐다. 가덕신공항 건설 부지는 400만 ㎡이며 3500m 활주로 1개가 들어선다. 2029년 12월 개항을 목표로 육상과 해상에 걸쳐 매립식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국토부는 기본계획 수립 및 전략환경영향평가 용역이 끝나면 올해 중 제반 절차를 이행한 뒤 내년 초 발주를 한다는 일정을 세워두고 있다. 일부에서는 공사 규모가 큰 데다 2030 세계 박람회 개최 이전에 완공해야 한다는 빠듯한 일정이 부담으로 작용해 입찰 기업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국토부는 가덕신공항 건설이 현 정부의 국정과제로 추진 중인 사업이어서 민관 협력을 통해 성공적으로 추진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염창현 기자 haorem@kookje.co.k
7조원 가덕도신공항에 쏠린 눈…적기발주가 최대 관심사
오늘(2일) 제2차 설명회를 앞둔 사상 최대 규모의 턴키(설계ㆍ시공 일괄입찰)인 ‘가덕도 신공항 부지조성공사’에 공공건설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건설업계의 최대 관심사는 ‘적기 발주’다. 이 사업이 부산 세계엑스포 개최와 맞물려 건설업계의 활발한 참여를 끌어내려면 엑스포 유치와 무관하게 차질없이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개런티(보증)’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1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오늘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가덕도 신공항 기본계획에 대한 2차 설명회를 개최한다.
이는 엔지니어링 책임기술자가 현재까지의 기본계획 진행 성과를 발표하고, 참석 업체가 사전에 접수한 질의에 대한 국토부, 엔지니어링 관계자의 답변과 현장 질의, 응답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핵심 질문은 국토부의 정상 입찰 ‘개런티’로 손꼽힌다.
이 사업은 가덕도 신공항 건설 특별법에 따라 추진하는 사업으로 공식적으로는 부산 엑스포 유치와 무관하지만 건설업계의 견해는 다르다. 발주 시기와 엑스포 선정 시기와 미묘한 ‘틈새’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목표로 하는 가덕도 신공항 부지조성공사의 발주 시기는 내년 1월인 반면 2030 세계엑스포 선정은 올해 11월, 171개 회원국의 투표로 이뤄진다. 발주보다 엑스포 선정 투표 시기가 3개월 빠르다.
업계는 자칫 부산광역시가 세계 엑스포 유치에 실패할 경우, 사업이 흐지부지 연기될 공산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1차 설명회에 참석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국토부에서 가덕도 신공항 추진 특별법에 따라 공항이 건설되기 때문에 부산 엑스포 유치와 무관하게 진행되는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 들이는 사람은 없다”며 “엑스포 유치를 위해 2030년까지 조기 개항을 못 박아 놓은 이상 엑스포 유치에 실패하면 조기 개항할 필요성이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설명회에서 정부 당국은 부산시가 엑스포 유치가 실패하더라도 국가 인프라를 조성하는 공사인 만큼 약속한 목표 발주시기는 꼭 지키겠다는 ‘확언’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 사업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일정 지연 시 국내 건설업계는 경영에 심각한 차질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이 사업은 7조원 공사다. 공사기간 5년을 고려하면 이를 수주한 컨소시엄은 단순 수치상으로도 연 매출 1조4000억원을 기록하게 된다. 국내에서 토목사업으로만 연매출 1조를 넘는 회사는 한 곳도 없다. 삼성물산이나 현대건설, DL이앤씨, 포스코건설, GS건설, 대우건설 등 국내 시공능력평가액 기준 ‘탑 6’도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야 사업권을 획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사적인 대응을 해야 하는 이번 가덕도 신공항 건설공사에 일정 차질이 빚어지면 대형건설사는 추후 사업 목표 수립이나 대응 방향 책정 등 회사 미래 경영이 꼬일 수 밖에 없다.
특히 부산광역시를 포함한 지역건설업계, 나아가 지역경제 활성화 측면에서 보면 적기 입찰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진다. 국토부가 한국은행의 지역 간 산업연관표를 활용해 분석한 가덕신공항 건설에 따른 경제적 파급 효과에 따르면 부ㆍ울ㆍ경(부산ㆍ울산ㆍ경남) 지역에서만 생산 유발 효과 16조 2000억 원, 부가가치 유발효과 6조8000억원 등 총 23조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기대된다. 고용 유발 효과도 10만3000여명이 발생할 전망이다.
다른 관계자는 “단일 공사비 7조 사업은 민간과 공공을 통틀어 경남지역에서 전무후무한 대형공사”라며 “혹여 엑스포 유치에 실패해도 정부는 발주를 늦추지 말고 정상적으로 진행하되 적정 공사기간을 확보해 치밀하게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경제=임성엽 기자 2023-06-02
한강·설악산·카지노까지, 김진태 도지사 뜻대로?
6월11일 강원도가 특별자치도로 거듭난다. 규제완화와 권한이양을 핵심으로 하는 파격적인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강원특별법은 오랫동안 방치돼온 지역 불균형 문제를 직격한다.
강원도가 달라진다. 오는 6월11일 특별자치도로 거듭난다. 제주특별자치도, 세종특별자치시에 이어 세 번째 특별자치시·도가 된다. 지역 언론과 강원도청에서는, 강원도라는 명칭이 처음 생긴 조선 1395년 이후 628년 만에 이름이 사라진다며 대대적으로 알리고 있지만, 전국적으로는 모르는 이들이 대다수다. 제주도와 세종시가 그렇듯 특별자치도 출범 이후에도 ‘강원도’라는 이름이 사라질 리도 없다.
강원도가 특별자치도가 되면 무엇이 달라지는 걸까. 이 글을 쓰고 있는 5월11일 현재 시점에서는 아직 ‘없다’. 제주도처럼 도지사가 제주시장이나 서귀포시장을 임명하는 것도 아니고, 세종시처럼 재정 특례를 적용받아 국가로부터 교부금을 더 많이 받는다는 보장도 없다. 6월11일부터 시행되는 ‘강원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에는 ‘강원도에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한다’ ‘행정·재정상 특별한 지원을 할 수 있다’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에 별도 계정을 설치하여 지원할 수 있다’ 등 선언적인 내용만 열거돼 있다. 아직은 텅 빈 껍데기다.
실제로 지난해 8월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강원특별자치도 종합계획 수립 연구용역 착수 보고회’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강원특별자치도가 되면 뭐가 달라집니까? 하는 질문을 받으면 사실 좀 난감하다. 지금 백지상태라고 하는데, 하기에 따라서 백지수표가 될 수 있다. 우리가 거기에 어떤 액수를 적어 내느냐. 적어 내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김진태 도지사가 언급한 백지수표에 ‘액수’를 적어준 곳은 국회다. 법률안을 통해 구체적인 뒷받침을 하고 나섰다.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올라 있는 ‘강원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 전부개정법률안(강원특별법)’이 그것이다. 6월11일부터 시행되는 관련 법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치는 내용이다. 137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강원특별법은 실로 천문학적인 액수가 적힌 백지수표다. 이제껏 어떤 특별법도 담지 못했던 파격적인 ‘특례’가 담겨 있다.
백지수표에 적힌 금액을 말로 풀면 이렇다. ‘규제완화’와 ‘권한이양’이다. 그동안 중앙정부가 행사해왔던 각종 규제를 풀고, 그 권한을 강원도지사에게 넘기라는 것이다. 이것이 왜 천문학적인 액수일까. 법률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다(그림 참조).
조항 하나하나가 파격적이지만, 우선 눈에 띄는 조항은 제41조부터 제47조 첨단과학기술 육성 및 기반 조성에 관한 조항이다. ‘도지사 또는 시장·군수는 환경부 장관과 협의를 거쳐 상수원보호구역의 상류지역에 폐수배출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함.’ 무슨 말인가. 산업시설 조성을 위해 상수원보호구역일지라도 자치단체장의 판단에 따라 폐수를 방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환경부 장관과 ‘협의’를 거친다는 전제가 있지만, 모호한 규정일 뿐 강제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한강 상수원보호구역에 폐수시설을?
강원도에는 한강 발원지 검룡소와 낙동강 발원지 황지연못이 있다. 수도권과 경상도 시민이 식수원으로 사용하는 한강과 낙동강 상류가 강원도를 지나 취수장으로 흘러간다. 결국 식수원 상류에 폐수배출시설을 허가하겠다는 것이다. 환경단체에서는 “수도권 시민 80% 이상이 이용하는 팔당 수질관리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냐”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는 곧 ‘수질오염으로 인한 국민건강 및 환경상의 위해를 예방하기 위해’ 존재하는 ‘물환경보전법’을 무력화시키는 법이기도 하다.
당장 원주시의 경우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이 도내 최대 현안이다. 김진태 도지사가 ‘삼성 반도체’ 등 대기업을 유치하겠다고 공약했다. 반도체 공장 설립을 위해서는 용수 공급과 폐수처리가 선결과제인데, 상수원보호구역 규제를 완화하는 특별법이 통과되면 급물살을 탈 수 있다.
강뿐만이 아니다. 산은 더욱 심각하다. 강원특별법에는 ‘강원자치도 산림의 효율적 이용과 보전을 위하여 도지사는 종합계획심의회를 거쳐 산림이용진흥지구를 지정하고 진흥지구의 지정·변경·해제 등에 필요한 사항은 도 조례로 정하도록 함’이라고 돼 있다. 현재 산림청장 등이 갖고 있는 산지 개발 권한을 도지사가 가져가고 관련 조항을 도 조례로 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원주택단지, 실버타운, 각종 관광단지 조성이 가능해진다.
강원연구원은 평창 가리왕산 스키장의 복원 문제에 대해 높아진 환경감수성이 환경 이슈를 소모적으로 확대했다고 주장했다.ⓒ시사IN 이명익
여기에는 ‘백두대간 보호지역’이나 생태적 가치가 높은 ‘생태·자연도 1·2등급 권역’까지 해당한다. 한반도 환경·생태의 마지노선이나 다름없는 백두대간과 생태·자연도 1·2등급 권역까지 포함했다는 점에서 환경단체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여기에 평지와 하천 유역에 있는 농업진흥지역 해제 권한도 도지사가 가져간다. 김경준 강원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강원도 산림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국유림, 강원도 면적의 2.6%를 차지하는 농업진흥지역을 도지사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다”라고 말했다.
강원특별법에서 규제완화와 권한이양의 ‘끝판왕’은 환경부 장관이 갖고 있는 환경영향평가 권한을 도지사가 가져가는 것이다. 환경영향평가는 개발사업이 환경에 미칠 영향을 평가해 해당 사업의 추진 여부를 결정짓는 권한이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제주 신공항, 원전 건설 및 재가동 등 뜨거운 이슈 때마다 가장 중요한 잣대로 작동했다. 오색케이블카의 경우 윤석열 정부 환경부가 조건부로 허가해 논란이 커졌는데, 앞으로는 강원도지사 권한만으로 이런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된다.
카지노 산업도 날개를 달게 된다. 특별법은 ‘도내 카지노 및 카지노 사업자에 대한 매출액 규모 및 총량은 2045년 12월31일까지 적용하지 아니하고, 폐광지역에 있는 카지노업 허가 등에 관한 문화체육부 장관의 권한은 도지사의 권한으로 한다’고 했다. 사행사업 규제를 위해 설정한 매출액 총량(강원랜드의 경우 연간 약 1조8000억원)을 2045년까지 무제한으로 풀어주고, 카지노 허가권도 도지사에게 넘어간다. 카지노 영업이 가능한 폐광지역은 삼척·태백·영월·정선이다. 몸집을 훨씬 불린 카지노가 곳곳에 등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강원특별법은 여야 의원 86인이 발의했다. 춘천이 지역구인 민주당 허영 의원이 대표발의자다. 민주당 의원 50명, 국민의힘 의원 36명이 참여했다. 여야가 따로 없다. 환경단체에서는 민주당 우원식·남인순 의원처럼 그간 환경파괴 문제에 목소리를 내온 정치인까지 참여했다는 점에서 의아해하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강원도 민심을 얻기 위해 여야가 전격 합작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국회에서는 정의당이 유일하게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5월8일 정의당 이은주 의원과 한국환경회의 등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밝혔다. “강원특별자치도는 제주도와 같은 섬이 아닙니다. 강원도에는 DMZ, 백두대간 등 주요 생태축이 있으며, 한강·낙동강의 상류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토, 생태계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후위기, 생물다양성 위기 시대에 강원특별자치도의 지속 가능한 발전,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 사회적 논의와 방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강원특별자치도의 성공이 ‘개발’에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강원특별자치도의 역사는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 제주도가 특별자치도로 출범하자 2008년 강원도의회에서 처음 논의가 시작됐다. 선거 때마다 강원특별자치도 공약이 발표됐지만 급물살을 탄 것은 2020년 이후다. 국회에서 법안이 마련됐고,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강원경제특별자치도를 공약으로 발표한다. 대선 직후인 지난해 5월29일 국회 본회의에서 강원특별자치도법이 통과됐다. 법률 공포 시점으로부터 1년이 지난 올해 6월11일 강원특별자치도가 출범하게 되었다.
강원특별자치도의 밑그림을 그린 곳은 강원연구원이다. 강원도 출연기관으로, 자유경제원장과 국회도서관장을 지낸 현진권씨가 수장을 맡고 있다. 앞서 언급한 강원특별자치도 연구용역을 수행한 곳도 강원연구원이다. 4월27일 강원연구원이 펴낸 보고서에 꽤 놀라운 내용이 나온다. ‘환경 관리, 중앙집권형에서 지방분권형으로’라는 보고서다.
강원연구원이 최근 펴낸 보고서.
보고서는 이렇게 머리말을 시작한다. ‘저널리즘에 의해 생산된 급진적 환경감수성이 사회적 손익 판단을 왜곡시키고 있다. 환경재 사용과 생산에 있어 도시는 무임승차, 지방은 기회손실, 그 사례가 강원도다.’ 그러면서 ‘강원특별법은 자연자원 관리의 자율성 구축을 위한 전국 최초의 도전이다’라고 말한다. 강원도가 지나친 환경주의의 피해자이며, 강원특별법으로 이를 만회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공공성을 띤 출연기관이 이처럼 도발적인 문제 제기를 한 예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사회적 파장이 컸던 평창 동계올림픽 가리왕산 스키장 복원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직격했다. 전국에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이 충분히 존재하는데, 왜 가리왕산 복원에 매달리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높아진 환경감수성이 환경 이슈를 소모적으로 확대·재생산한다’고 주장했다. 생명 경시 논란이 일었던 ‘화천 산천어축제’도 소모적 논란이었다고 규정한다.
“강원도민 150만명을 집단 괴롭힘”
강원도의 청정 자연이 ‘족쇄’가 되었다는 표현도 나온다. 푸른 산, 맑은 물, 깨끗한 공기 등 환경 공공재 생산기능만을 채근받으면서 강원도의 경제성장이 미뤄졌다는 주장이다. 그 결과 준수도권에 위치했음에도 산업단지 보유는 전국 최하위라고 보고서는 말한다. 박은정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은 “공공 싱크탱크라면 강원도의 환경·생태 가치를 지키면서도 경제성장을 꾀하는 해법을 논의해야 할 텐데, 개발 논리만 노골적으로 담긴 보고서를 내놓았다”라고 말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경남 강원연구원 선임연구위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위원은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다. 그는 “가리왕산 스키장은 강원도 전체 산지 가운데 약 2만 분의 1밖에 안 된다. 넓은 산지를 활용해서 중앙정부 의존도를 낮춰 자립해보겠다는데, 왜들 이렇게 못사는 막내 아우를 짓밟는 건지, 울고 싶은 심정으로 보고서를 썼다”라고 말했다. “학교로 치면 5000만명이 강원도민 150만명을 이지메하는 구조다”라고도 말했다.
4월2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가 강원특별법을 비판하고 있다.ⓒ시사IN 신선영
강원연구원 보고서는 여러모로 심상치 않다. ‘강원도의 한’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환경규제로 인한 피해의식, 우리도 잘살고 싶다는 욕망, 수도권에 대한 소외감을 자극한다. 그동안 여러 환경 이슈의 대립구도는 주로 ‘개발 대 보전’이었다. 강원특별법 국면에서는 바뀌었다. ‘중앙 대 지역’이다. 지역의 희생으로 잘살게 된 중앙을 향해 특례, 즉 ‘분권’을 요구하고 나섰다.
김진태 도지사가 최근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지지하면서 “강원도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수도권으로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송전탑에 대해서는 환경단체가 아무런 이야기를 안 한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지역의 피해의식을 자극하는 정치 언어다. 심지어 이것은 정확한 지적도 아니다. 과거 밀양 사례부터 송전탑 문제는 늘 환경단체의 중요한 이슈였다.
여야 정치권이 합작한 강원특별법은 중요한 선례가 될 수밖에 없다. 지방분권이라는 명분 아래, 중앙정부가 개입해야 할 ‘의무’를 놓아버린 첫 번째 사례가 될 수 있다. 거꾸로 지역 입장에서는 최초의 성공 사례로 기록될 수도 있다. 5월10일 국회 공청회 이후 특례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법안이 수정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지만,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국회 통과를 장담한다.
심각한 것은 이것이 강원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전라북도의 경우 지난해 말 특별자치도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2024년 전북특별자치도로 출범할 예정이다. 당장 그에 걸맞은 특례가 필요하다며 지역에서 특별법을 요구하고 있다. 충청북도에서도 중부내륙특별법을 들고나왔다. 이들의 요구 또한 규제완화와 권한이양이 핵심이다. 이들 지역은 강원특별법의 향방을 누구보다 예의 주시하고 있다.
오랫동안 해법을 찾지 못한 채 기우뚱하게 방치해온 지역 불균형 문제가, 새로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시사인 이오성 기자
4조원 큰돈 들이고도 못 살린 새만금 살린 건 바다
새만금에 마지막 물길이 막혀 해수가 완전히 차단된 때가 2006년이고, 해수가 다시 유통이 된 때가 2020년이니 14년 동안 바닷물이 끊어졌는데도 방게는 이곳에 살아 있었던 것이다. 조금씩 해수유통이 늘어날수록 방게의 활력이 더 높아지고 있다는 게 오 단장의 설명이다.
▲ 방게 한 마리가 구멍에서 나와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수라갯벌이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증거하는 생명이다.
"약 10년 정도, 새만금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서 (정부에서) 4조 원 정도의 돈을 썼는데 개선이 하나도 안 됐거든요. 그런데 돈 한푼 안 들이고 수문만 야간에 열어서 바닷물을 조금 더 많이 들였더니 수질이 개선된 거예요. 수질을 개선한 게 누구예요? 사람이 한 게 아닙니다. 4조원 들일 필요가 없어 40원도 안 들여도 돼요. 그냥 수문 조금만 더 열었더니 다 개선이 됐어요."
오동필 단장 : "(새만금이 완전히 막힌)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여기서 냄새가 났어요.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는 바람이 잘 안 불잖아요. 바람이 없을 때 안갯속에서 시궁창 냄새가 펄펄 납니다. 그 정도로 심했던 것이에요. 그런데 바닷물을 조금 늘렸더니 냄새가 다 사라졌습니다. 자연이 다 했습니다.
요새 들어 '새만금의 수질 개선이 됐다', 이런 엉터리 기사가 나올 수도 있어요. 한번 던져보는 거죠. 근데 다 알죠. 너네(환경부)들이 한 게 아닌 것을. 너네들이 4조 원 헛방친 거, 사실은 바닷물로 다 해결했어요. 그런데 지금 환경부는 새만금 수질 개선됐다고 군침 흘리면서 빨리 보도자료 내고 싶을 수 있겠어요. 제대로 된 기사라면 '4조 원 투입에도 안 된 수질개선, 야간에 약간의 바닷물 더 들어왔더니 수질개선 됐다'고 적혀야죠
"산소가 닿지 않는 곳은 이렇게 까매요. 여러분이 돌아올 때 이곳 색깔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세요.
저서생물이 많은 곳은 당연히 검정색과 갈색이 공존해요. 여기는 어떻습니까? 검은색을 조금 긁어내면 갈색이죠. 그런데 조금 긁어내면 이렇게 까맣게 보이죠. 이게 다 미생물입니다. 새만금도 바닥에 지금 까맣게 돼 있는데 물만 들어오면 호기성 미생물(산소를 필요로 하는 미생물)이 다시 이렇게 잠식해요. 호기성 미생물들이 번식하고 있고 이들을 도와주는 게 있어요. 게나 갯지렁이가 타고 들어가면 어때요? 산소가 들어가죠.
예전에 새만금 갯벌은 제가 한 발 밟으면 한 발 안에 생물이 열 개 이상이 들어있었습니다. 거짓말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갯지렁이, 칠게 아니면 서해비단고동... 다닥다닥 있을 게 다 있어요. 피해가기가 힘들 정도로. 여기 있는 생물들이 생태계를 매번 갈아엎고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긴 10년 정도 생물이 거의 그 바닥을 기었던 곳이잖아요. 마지막엔 여기 재첩이 있을 때 실지렁이가 남아 있었어요. 그런데 2년 전부터 물을 조금 늘렸더니 갯지렁이가 다시 나오기 시작합니다. 갯지렁이 다음은 뭘까요? 그다음부터는 칠게가 나올 수도 있고 다른 조개류가 나오고. 얼마 전엔 저쪽 조금 깊은 데에선 맛도 잡혔어요.
저서생물이 조금씩 늘어나는데 사람들은 '인간이 이것을 어떻게 하면 살릴까'라는 생각을 하더라고요. 여기에 저희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그냥 자연이 살아가게 놔두면 되거든요. 제한(관리수위)이 마이너스 1.5m를 자기네들이 유지하려다 보니까 수문을 닫는 시간대나 이런걸 자꾸 인위적으로 조작해요.
그것들을 버리면 어떻겠습니까? (새만금) 바깥에 있는 수면하고 거의 비슷해지겠죠. 그럼 물끝선은 앞으로 (밀려) 가겠지만 변화무상하죠. 계속 물이 들어오고 나가면서 그냥 자연스럽게 개선되는 겁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곳에 관련이 있는 공기업들, 이들이 30년 동안 이걸로 먹고 살았다는 데 있습니다. 자기네들 권한으로 공기업이 공유수면을 사유화하는 거죠."
"복철조개입니다. 이 복철조개는 굴이 생성할 때 나온 거예요. 그다음에 이게 재첩입니다. 재접 굉장히 크죠. 2년 정도 큰 거예요. 2년 정도 크면 손톱 정도, 그다음에 3년 크면 500원짜리 정도까지 커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재첩보다 크죠. 여기 재첩이 굉장히 크고 맛도 있어요.
새만금이 썩어 있지만 재첩이 자라는 곳은 수심이 2m 이하인 곳이에요. 2m 이하면 산소가 많아요. 결국 산소가 많고 염분이 낮아야 하는 거죠. 더 깊이 있는 곳에 있는 바지락 같은 경우는 전폐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재첩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얘가 낮은 수심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다를 살리는 핵심은 용존산소예요.
새만금 갯벌을 얘기할 때 2급수, 3급수, 5급수, 6급수,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이거는 수질을 얘기하는 하나의 기준일 뿐이지 핵심은 용존산소입니다. 이것은 이야기 안 하고 유기물이 있네 없네... 유기물이 있어서 좀 더 처리를 해야 돼요, 돈을 더 들여야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4조 원을 썼어요. 근데 바닷물이 늘어나니까, 염도가 늘어나니까 기존 재첩이 살던 서식지가 사라지고 얘네들 서식지는 어떻게? 다시 또 후퇴하는 거죠. 생태계는 이렇습니다. 밀고 당기는 거예요.
그리고 재첩이 다 사라지지 않아요. 염분이 적은 부분에서 번식합니다. 만약 이 지역에 재첩이 사라지면 바지락이라든지, 염분이 더 높아지면 생합, 떡조개, 동죽, 가리비 같은 것들이 번성하게 되죠.
▲ 퉁퉁마디와 해홍나물. 초록이 퉁퉁마디고 붉은색이 해홍나물이다
통퉁마디가 보이면 염분의 탄생 마지막 단계라고 보시면 돼요. 그래서 염전에 염분이 떨어지면서 퉁퉁마디가 보이고 나중엔 육상 생태계에 사는 습지식물들이 보여요. 이게 보인다면 염분이 거의 빠질 마지막 단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나 염분은 있습니다.
순수 갯벌에서는 칠면초가 보입니다. 칠면초는 염분이 좀 높은 장소에서 보이고, 그다음에 염분이 낮은 곳엔 해홍나물, 그다음 마지막에 퉁퉁마디가 보여요. 퉁퉁마디가 사라지면 뒤쪽에 육상식물인 갯잔디라든지 갈대가 들어옵니다.
“도쿄까지 오염되면” 우려에 ‘대기 방류’ 포기…바다는 괜찮고?
후쿠시마 오염수 바다 방류 7문7답
‘방류 찬성’ IAEA가 검증 독점
일, 방사성 물질 측정도 축소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에 보관 중인 오염수 탱크들. 도쿄전력 제공
국제원자력기구(IAEA) 조사단이 29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일본에서 후쿠시마 제1원
전 오염수 바다 방류와 관련해 포괄적 검증을 위한 최종 조사를 벌인다. 지난 23~24
일 후쿠시마 원전 현장을 점검한 한국 시찰단도 31일 시찰 결과를 설명하는 기자회견
을 예정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2021년 4월 오염수 바다 방류를 공식 결정한 뒤 2년
여 만에 국제적인 안전성 검증이 막바지 단계로 향하고 있는 셈이다. 올여름께 현실
화될 것으로 보이는 후쿠시마 오염수의 바다 방류는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주요 쟁점을 7가지로 나눠 살펴봤다.
①오염수는 왜 발생하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거대한 쓰나미(지진해일)가
발생해 후쿠시마 원전을 덮쳤다. 그로 인해 냉각 장치가 마비되면서 1~3호 원자로의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노심용융(멜트다운)이 발생했다. 녹아내린 핵연료는 주변 구조
물을 녹여 덩어리(데브리·잔해)가 된 채 원자로 바닥에 남아 있다. 사람이 가까이 가
면 1시간 안에 죽을 정도의 고선량 방사선이 새어 나온다.
총 880t에 이르는 데브리에선 지금도 엄청난 열이 발생해 냉각수로 식혀야 한다. 여
기에 물이 닿아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각종 방사성 물질을 머금은 오염수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근처 지하수와 빗물까지 원전에 유입되어 오염수가 날마다 급격히 늘고 있다
는 점이다. 도쿄전력은 지하수를 퍼 올리거나 1~4호기 주변에 동토벽(땅을 얼려 만든
벽)을 세워 오염수를 줄이기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오염수는 지금
도 매일 90~140t씩 증가하고 있다. 이 오염수를 담아 저장하기 위해 원전 부지에
1073기의 물탱크가 설치됐다. 18일 현재 저장된 오염수의 양은 133만t이다. 전체 탱
크의 97%가 꽉 차 있다.
②바다로 방류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오염수를 보관하는 탱크가 부족하다. 다만, 변수가 있다. 일본
정부는 2021년 4월 바다 방류를 결정하며 올여름께 탱크가 가득 찰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강수량 감소와 오염수 저감 정책 등이 일부 효과를 거두며 모든 탱크가 가득
차는 시점이 내년 2~6월로 늦춰졌다.
둘째는 폐로(원전 해체)를 위한 작업 공간 확보다. 폐로의 핵심은 1~3호기 바닥에 깔
려 있는 데브리 처리다. 일본 정부는 데브리를 지상으로 꺼내 오염수 탱크가 있는 장
소에 보관 시설을 만들 계획이다.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만한 고선량의 방사선이 새
어 나와 사람 대신 로봇이 들어가 작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로봇 개발이 더디다. 지
난해엔 2호기부터 데브리 제거 작업을 시작할 계획이었지만, 일정이 늦어져 올 하반
기나 가능하다는 전망이다. 1·3호기는 처리 시점과 방법조차 결정되지 않았다. 지금처
럼 서두를 이유가 없다.
셋째는 비용이다. 일본 정부는 2016년 △바다 방류 △대기 방류 △지하 매설 등 다양
한 오염수 처리 방안을 검토했다. 바다에 방류하면 34억엔(약 321억원) 정도 비용이
면 해결되지만, 대기 방류와 매설엔 각각 349억엔(약 3300억원)과 2431억엔(약 2조3
천억원) 든다. 후쿠시마 어업인들의 강한 반대가 있어 대기 방류 방안도 막판까지 검
토되긴 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정부 내에선 방사성 물질을 포함한 기체가 도쿄까지
가면 어떻게 하냐는 불안이 커지면서 해양 방류로 조정이 됐다”고 전했다. 바다 방류
가 ‘유일한 대안’이 아님은 일본 정부가 가장 잘 알고 있다.
③IAEA 검증, 신뢰할 수 있나
오염수 안전성 검증을 독점하는 것은 국제원자력기구이다. 객관적 검증 능력에 의문
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1957년 설립된 이 기구는 원전의 평화적 이용
을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기본적으로 ‘원전 확대’에 방점을 찍는다. 원전의 위험성을
전세계에 일깨운 후쿠시마 원전 참사의 원만한 마무리는 일본과 이 기구의 공통된 목
표다.
원전 강국인 일본은 기구 내 영향력도 세다. 국제원자력기구 정규 예산 분담률(2021
년 기준)을 보면, 일본은 8.32%로 미국(25.25%), 중국(11.15%)에 이어 세번째로 많
다. 4개의 연락·지역 사무소 중 하나가 도쿄에 있다. 현 라파엘 그로시 사무총장 전에
이 기관을 이끌던 이는 일본인인 아마노 유키야(1947~2019)였다. 2009년부터 2019년
숨질 때까지 사무총장으로 일했다.
오염수의 바다 방류는 국제원자력기구와 협의해 결정된 것이다. 일본 정부가 방류를
결정하자, 한국·중국·대만·러시아는 강하게 반발했지만, 그로시 사무총장은 가장 먼저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바다 방류 결정에 참여한 주체가 검증을 맡고 있는 꼴
이다. 이들은 시료 채취 등을 독점하며 다른 나라의 독자적인 추가 검증을 철저히 막
고 있다. 이 같은 폐쇄성도 불신을 키우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④두 번의 거짓말, 신뢰 추락한 도쿄전력
경제산업성과 도쿄전력은 오염수가 안전하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도 믿
지 못하겠다는 목소리가 크다. 두번의 거짓말로 신뢰가 추락했기 때문이다. 2018년 8
월 원전 탱크에 보관 중인 오염수의 약 70%에 세슘·스트론튬·요오드 등 인체에 치명
적인 방사성 물질이 법적 기준치 이상으로 포함돼 있다는 것이 일본 언론을 통해 폭
로됐다. 일부 탱크에서는 스트론튬90 등이 기준치의 2만배 이상 검출됐다. 삼중수소
(트리튬)를 제외한 모든 방사성 핵종을 걸러낼 수 있는 ‘만능의 장비’로 선전되고 있
는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의 불량 등이 원인이었다. 도쿄전력은 그 전까지 알
프스로 정화한 오염수엔 방사성 물질이 제거되고 삼중수소만 남는다고 홍보했지만,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지금은 알프스로 2차 정화를 하면 방사성 물질이 기준치 미만
으로 떨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엔 이미 불신이 커진 상태
다.
일본 정부는 어업인들과의 약속도 저버렸다. 도쿄전력은 2015년 8월 사장 명의로 오
염수 처리와 관련해 후쿠시마현 어업협동조합연합회와 ‘관계자(어업인)가 이해하지 않
으면 어떠한 처분도 하지 않는다’라고 문서로 합의했다. 일본 정부와 어민들을 한데
묶는 ‘신뢰의 상징’과도 같은 증표였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바다 방류를 결
정했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바다 방류 반대를 위한 농어민 단체의 결의대회가 지난 2월 오
후 제주도청 앞에서 열려 집회를 마친 참석자들이 일본총영사관까지 행진을 하고 있
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⑤알프스 성능은 믿을 수 있나
100% 신뢰하기 힘들다. 알프스로 정화를 한 오염수의 70%에 여전히 인체에 치명적
인 방사성 물질이 기준치 이상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지난 1년 동안 오염수의 안전성을 독자 검증했던 태평양 섬나
라 18개국으로 구성된 ‘태평양도서국포럼’(PIF)의 과학자 패널들은 알프스의 성능을
제대로 검증하기에 자료가 턱없이 부실하다고 주장한다. 페렌츠 달노키베레스 미국
미들베리국제대학원 교수(핵물리학)는 1월 한국 국회 토론회에서 “일본이 포럼에 제
공한 데이터는 불완전하고, 일관성도 없고, 편향돼 있어 어떤 결정을 내리기에 부적합
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도쿄전력이 오염수에 있는 64개 방사성 물질 가운데 세슘
-137 등 9개에만 초점을 맞추고 나머지는 거의 측정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런 사정은 이달 21~26일 일본을 방문한 한국 시찰단도 마찬가지다. 유국희 시찰단
단장(원자력안전위원장)은 24일 기자들과 만나 “알프스의 처리 전후 64개 핵종 농도
에 관한 원자료도 받아 향후 분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꿔 말한다면, 알프스 성능을
점검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자료를 방류가 이뤄지기 직전에 확보했다는 뜻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제대로 된 독자 평가 결과를 국민 앞에 내놓을 수 있을
리가 없다.
한국 전문가들로 구성된 시찰단이 이달 23~24일 후쿠시마 재1원전을 방문해 오염수
바다 방류와 관련한 안전성 점검을 실시했다. 도쿄전력 제공
⑥삼중수소는 안전한가
알프스가 완벽히 작동해도 삼중수소는 걸러내지 못한다. 이 물질의 안전성에 대한 의
견은 크게 갈린다. 일본 정부는 원자력 시설이 있는 다른 나라 원전도 삼중수소를 포
함한 물을 바다에 방류하지만, 건강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삼중
수소는 수산물을 통해 인체로 들어와 유기결합삼중수소로 전환되면 내부 피폭 위험성
을 키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물학자들은 삼중수소가 일으키는 생물학적 유전자 손상 정도가 대표적 방사성 물질
인 세슘보다 2배 이상 높다고 우려한다. 일본은 방류가 시작되면 연간 22조 베크렐
(㏃·방사성 물질의 초당 붕괴 횟수 단위)의 삼중수소를 바다로 내보낼 예정이다. 이는
2011년 3·11 후쿠시마 제1원전 참사 전인 연간 2.2조 베크렐보다 10배 많은 수준이
다.
⑦오염수가 위험하다는 주장이 ‘괴담’인가
국민의힘과 원자력 전문가들은 오염수가 위험하다는 주장에 대해 ‘괴담’이라는 딱지를
붙여 공격한다. 이런 논리라면 방사성 물질의 ‘잠재적 위험’을 인정한 세계무역기구
(WTO)의 판단도 괴담이 돼야 한다.
한국은 2019년 4월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금지와 관련해 일본이 제기한 세계무역기
구 분쟁해결 소송에서 1심 패소를 뒤집고 ‘역전 승소’를 거뒀다. 일본 정부는 세계 최
고의 과학자들을 동원해 ‘과학적 수치’를 내밀었다. 후쿠시마 수산물을 표본조사해 보
니, 세슘 등이 기준치 이하로 검출돼 다른 나라와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자체 조사뿐
아니라 방사능 관련 국제기구의 객관적 자료를 증거로 제시하며 압박했다.
한국 정부는 이에 맞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일본의 특별한 환경은 이런 사
고가 발생하지 않은 다른 나라엔 없는 ‘잠재적 위험’이라 주장하며 맞대응했다. 세계
무역기구는 한국의 손을 들었다. 이들은 “식품의 방사능 검사 수치만을 따지는 것은
잘못됐다. 오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본의 특별한 환경적 상황 등도 고려해야 한
다”고 판정했다. 에스피에스(SPS·위생 및 식물위생 조치에 관한 협정) 분쟁에서 피소
국이 이긴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방사성 물질과 관련해 이뤄진 첫 판단이기도 헸
다.
세계무역기구는 지난 여러 분쟁해결절차에서 환경·건강보다 무역 관계를 중요하게 생
각해 왔다. 그런 세계무역기구조차 후쿠시마 원전 참사로 인한 방사성 물질의 잠재적
위험을 인정한 것이다. 원전 폭발 사고로 발생한 130만t 이상의 방사성 물질 오염수
를 30~40년에 걸쳐 바다로 방류하려는 나라는 일본이 세계에서 유일하다. 일본 정부
를 상대로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위험성을 지적하고, 충분한 정보 공개를
요구하며, 이것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반대 의견을 밝히는 것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
을 책임져야 하는 국가의 당연한 책무다.
도쿄/김소연 특파원dandy@hani.co.kr
일 원전 오염수 방류, '자국 설득'은 됐나
대마도는 한 해 한국인 관광객 41만 명이 찾던 일본 섬이다. 1980년 8월 11일 ‘아시
아 물개’ 조오련이 부산 다대포 방파제에서 대한해협을 수영으로 건너 13시간 16분
10초 만에 대마도에 상륙했을 정도로 가깝다. 일본 본토 후쿠오카에서 147km, 부산
에서 48km 거리다. 울창한 삼나무 숲을 통해 대마도 영봉 시라타케 정상에 오르면
바다 너머 거제도와 부산이 가물가물 보인다. 그런 대마도에 ‘핵폐기물 바람’이 불고
있다. 일본 유력 일간지 요미우리신문은 지난 4일 규슈판에 “나가사키현의 낙도 대마
도 상공회의소 등이 원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최종처분장 부지 선정 조사 논의를 시
의회에 요구하는 청원서 제출을 검토한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어 13일에는 “대마
도 건설업협회·협동조합은 최종 처분장 선정 1단계인 문헌조사 청원서를 시의회에 제
출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이제 겨우 공론화 단계이고, ‘돈 몇 푼에 아름다운
섬을 파느냐’는 시민사회의 반대도 있지만, “지역 진흥 기회”라는 대마도 상공회의소
회장의 인터뷰처럼 문헌 조사에만 들어가도 최고 90억 엔(한화 847억 원)의 교부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섬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일본 열도 건너 후쿠시마 바다에는 원전 ‘오염 처리수’ 해상 방류용 해저 터널 마무
리 굴착 공사가 한창이다. 방류할 지점을 표시한 4개의 부표가 제거되면 방류가 초읽
기에 들어간다. 원전 오염수 130만톤을 원전에서 1km 떨어진 바다에 약 30~40년에
걸쳐 방류하는 것이다. 일본 어업단체와 언론의 우려도 만만치 않다. 일본 규슈 전역
을 커버하는 니시니혼신문은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 방출 서두르지 말고 이해 넓혀라’
는 사설까지 게재할 정도다. 신문은 “정부는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해양 방출을 인가
한 원자력규제위원회에 1000건이 넘는 민원이 접수된 것은 안전성에 우려가 많은 듯
하고, 소비자가 후쿠시마 생선 소비를 꺼리는 것을 걱정한 전국어업협동조합연합회
등 어업인들이 해양 방출에 단호히 반대하고 있다”면서 “해양 방출을 무리하게 서두
르지 말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원전 폐로 작업이 공정표대로 진행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산케
이신문은 29일 “원전 1호기 내부를 수중 로봇으로 촬영한 결과, 원자로를 지지하는
토대의 콘크리트가 소실되면서 철근이 노출돼 대형 지진이 발생할 경우 방사성 물질
이 밖으로 흩어질 가능성도 있고, 최악에는 핵연료 잔해에 구조물이 떨어져 핵분열
반응이 일어나는 ‘재임계’(再臨界)에 이를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원전 바닥에는 폭
발 당시 녹아내린 핵연료가 구조물과 엉겨붙은 핵 찌꺼기가 880톤이나 쌓여 있다. 앞
으로 원전 핵 찌꺼기를 꺼내는 공법 개발까지, 결코 무 자르듯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
가 아니다. 후쿠시마 사고 원전을 둘러싼 엄중한 현실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일념으로, ‘관계자의 이해 없이는
어떤 처분도 하지 않겠다’는 2015년 약속과 일본 어업인의 저항, 언론의 문제 제기,
주변국의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다. ‘과학적으로 무조건 안전하다’는 논리
로 자국 어업인조차 설득하지 못하면서 주변국 어업인에게 어떻게 이해를 구할 수 있
을까. 아파트에서 인테리어 공사만 해도 이웃들에게 양해와 동의를 구하는 세태와는
완전히 거꾸로다. 대마도에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 유치 논의,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등은 일본이 결정할 일이지만, 지척의 이웃인 부산과 경남 거제도 주민들의 걱
정, 같은 바다를 끼고 있는 어민들의 우려도 진지하게 염려해야 한다. 국제법을 떠나,
그게 이웃의 마음이고, 인간의 도리다. 필요하다면, 일본 어업인에게 논의하는 보상을
한국 등 주변국 어민에게도 하겠다는 성의라도 보여야 한다.
이 와중에 한국 정치권과 서울 엘리트들은 이런 중요한 문제는 외면한 채 서로의 지
지층을 의식해 분열과 반목만 조장하고 있다. 서울은 바다가 멀어서일까. 갯사람들의
고민은 보이지 않는가 보다. ‘방사능 테러’ ‘과학과 괴담의 싸움’ 등 프레임을 서로에
게 씌워 내년 총선과 지지도 상승에 이용하는 데만 혈안이다. 일본 보수 우파들이
‘과거 식민지 백성’들의 난장을 보면서 환호하고 있을 것이 뻔한 데도 말이다. 참고
로, 일본 정부는 2018년 부산 고리원전에서 70km 떨어진 대마도 최북단 항공자위대
우니시마 기지에 방사능 측정기를 설치했다. “한국에서 원전 사고가 일어나 일본에
방사성 물질이 날아올 우려가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현재 일본과 한국의 상황이 반
대였다면, 일본은 어떻게 움직일까.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국가 간의 관계는 최
악의 경우를 상정해서 대비하는 것이다. 친일과 반일로 나눠 청백전처럼 싸우는 2023
년의 대한민국, 1910년 국권 피탈의 질곡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백사장 살리기’ 해운대구, 송정해수욕장에 모래 투입
부산을 대표하는 해수욕장 중 하나인 해운대구 송정해수욕장에서 백사장 모래가 사라
지는 연안침식이 심각(부산일보 4월 14일 자 1면 등 보도)한 것으로 나타나자 해운대
구가 해수부를 방문해 연안정비를 요청하는 등 침식 문제 해결 방안 마련에 나섰다.
해운대구는 이르면 다음 달 초부터 송정해수욕장에 모래를 붓는 양빈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30일 부산 해운대구에 따르면 해운대구는 송정해수욕장에 모래를 투입하는 양빈 사업
을 추진할 예정이다. 최근 태풍으로 백사장 모래가 유실되는 등 해수욕장 연안침식
피해가 심각한 수준을 보이자 해운대구가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해운대구는 송정해
수욕장 백사장 1km 구간에 6만 9574㎥의 모래를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해운대구가 다음 달 초부터 송정해수욕장에 모래를 붓는 양빈사업을 실시한다. 송정
해수욕장 전경. 부산일보DB
이번 양빈 사업은 강서구에서 추진되는 개발사업에서 발생한 모래를 이용해 진행된
다. 해운대구와 강서구가 지난 3월부터 협의를 진행한 결과 강서구가 준설한 모래를
제공하고 운반비 등 모래 투입 비용도 전액 부담하기로 했다. 강서구에서 발생한 모
래를 정밀조사한 결과 송정해수욕장 양빈용으로 적합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운대구와
강서구는 공유수면 점사용협의 등 사전 작업을 거쳐 양빈사업을 준비 중이다.
해운대구는 해수욕장이 전면 개장하는 7월 1일 전까지 양빈사업을 마무리해 주민과
관광객이 해수욕장 이용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또 해수욕장 인
근 주민들이 양빈사업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주민설명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1970년대 70~80m 수준이었던 송정해수욕장의 백사장 폭은 지난해 24~65m 수준으
로 급격히 줄었다. 해양수산부가 매년 실시하는 연안침식실태조사에서 송정해수욕장
은 2013년 B등급(보통)을 받았지만 지난해 D등급(심각)으로 하락했다. 이렇듯 연안침
식 문제가 심각해지자 해수부는 송정해수욕장에 총사업비 298억 원을 들여 모래 30
만㎥를 투입하는 등 연안정비를 추진할 예정이지만 예산 문제 등으로 아직 사업 시기
가 정해지지 않았다. 김성수 해운대구청장은 지난달 해수부를 찾아 송정해수욕장 연
안정비사업 조속 추진을 촉구했다.
김 구청장은 “양빈이 완료되면 송정해수욕장의 침식 피해 완화와 재해 예방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쾌적한 친수 연안 환경 조성에 최선을 다하겠다”
고 말했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선진국은 개도국의 생물을 어떻게 착취하나
영국∙방글라데시 연구팀 “생물다양성 ‘손실과 피해’도 선진국이 부담해야”
서아프리카 모리나티의 오악코트의 어항. 유럽연합의 산업형 선단이 진출하면서, 토착
어업 생태계가 피해를 당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이집트의 휴양도시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
회(COP27)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개도국의 ‘손실과 피해’가 처음으로 공식 의제로
채택돼, 선진국을 중심으로 별도의 기금을 설치하자는 합의가 나왔다.
그동안 국제 기후협상에서 손실과 피해는 기상이변이나 해수면 상승 같은 자연의 변
화로 인한 결과를 의미했다. 역사적으로 다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선진국이 개도
국이 기후변화로 겪는 피해를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선언적 수준에 그쳤다는 비판도 있지만, ‘오염자 부담의 원칙’
에 기반을 둬 기후위기를 극복하려는 첫 시도여서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영국 국제
환경개발원(IIED)의 딜리스 로 수석연구원을 비롯한 영국과 방글라데시 출신으로 구성
된 국제연구팀은 29일(현지시각) 학술지 <네이처 생태와 진화>에서 훼손된 생물다양
성도 손실과 피해로 간주해 선진국이 개도국에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부유한 국가의 탄소 배출은 기후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부유한 국가의 소
비는 개도국의 생물다양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생물다양성협약 제15차 당사국총회(COP15)에
서 환경단체 회원들이 참여국의 적극적 자세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
합뉴스
연구팀은 “2018년 영국의 농작물∙가축∙목재 관련 소비는 3만5977ha(축구장 4만
3000개) 이상의 열대 삼림벌채와 관련이 있다”며 선진국의 소비가 개도국의 생물다양
성 훼손을 발 딛고 선 것임을 지적했다. 서아프리카 해안에 진출한 유럽연합 대형어
선이 어종과 자원을 고갈시켜 토착 어업의 붕괴로 이어진 것도 비슷한 사례다. 이는
지역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면서 빈곤과 실업, 젊은이들의 이주 같은 경제∙사회
적 현상을 수반했다.
연구팀은 가난한 나라는 경제개발 기회와 외국인 투자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다
며, 힘의 불균형이 존재하는 선진국과 개도국의 양자관계로는 생물다양성 문제를 풀
수 없다고 지적했다. 1980년대 이후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이 저소득 국가에 적용
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기회로 글로벌 광업∙농업∙임업 기업이 개도국의 천연자원
을 대규모로 착취했다고도 했다.
지난해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직후에 중국 쿤밍에서는 제15차 생물다
양성협약 당사국총회(COP15)가 열렸다. 참가국들은 ‘쿤밍-몬트리올 생물다양성 프레
임워크’(GBF)에서 2030년까지 육상 및 해양의 최소 30%를 보호지역으로 지정하고,
2050년까지 모든 생물종의 멸종 비율과 멸종 위험을 10분의 1로 줄인다는 야심 찬
목표에 합의했다. 동시에 생물다양성 손실을 막고 이를 되돌리려는 기금 설립안도 통
과됐다.
기후변화에서 오염자 부담 원칙이 적용된다면, 생물다양성에 관해선 소비자 부담 원
칙이 적용돼야 한다는 게 딜리스 로의 견해다. 연구팀은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과 피
해에 대한 보상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지 아직 불투명하지만, 생물다양성 손실과 관
련된 피해 역시 일부 자금을 할당해 복구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몽골에서 모셔온 소똥구리, 한국 정착 성공할까
국립생태원이 몽골에서 가져와 증식 중인 소똥구리. 국립생태원 제공
충남 태안군이 국내에서 자취를 감춘 소똥구리를 복원하기 위해 몽골에서 들여와 증
식에 성공한 소똥구리를 국내 최대 해안사구인 신두리사구에 방사하는 방안을 추진한
다. 소똥구리의 먹이가 되는 소 똥을 공급하기 위해 다음달 중 이곳에 소 5마리도 방
사한다. 이들 소는 자연에서 자란 풀만 먹고 살아 가게 되며, 구충제도 복용시키지
않을 예정이다. 과거 이 지역에서 살던 왕소똥구리와 비슷한 종인 소똥구리를 이곳에
서 키워 관련 서식지를 복원하겠다는 것이다.
태안군은 6월 중 국내 최대 해안사구인 원북면 신두리사구(천연기념물 제431호) 풀밭
에 소 5마리를 방사할 예정이라고 30일 밝혔다.
태안군 원북면 일대에는 1960~1970년대까지만 해도 왕소똥구리가 많았다. 하지
2001년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발견되지 않았다. 왕소똥구리는 근연종(아주 가
까운 종)인 소똥구리와 함께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으로 분류된 곤충이다. 두 곤충
모두 소나 말 등의 똥을 굴려 동그란 경단처럼 만드는 습성을 갖고 있다. 당국은 왕
소똥구리와 소똥구리가 국내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두 곤충이 국내에서 멸종된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전문
가들은 몇 가지를 원인으로 추정한다. 방목하던 소 등을 축사에서 키우면서 소똥구리 서식지가 사
라지게 된 것, 논·밭을 포함한 들판에 농약이 과다하게 사용된 것, 소 등에게 구충제
를 복용시킨 것 등이다.
이에 태안군은 국립생태원과 손을 잡고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닌 신두리사구를 소똥구
리가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땅으로 복원할 계획이다. 태안군은 2020년부터 신두리사구
에서 소를 키우면서 소똥구리를 키우는 시도를 해왔다.
2021년 제주지역에서 채집한 뿔소똥구리 162마리를 사구에 방사했다. 2022년 조사에
서 전년에 방사한 뿔소똥구리 중 일부가 생존한 사실이 확인되자, 태안군은 2022년에
도 166마리의 뿔소똥구리를 방사했다. 올해도 6월 중에 신두리사구에 소를 방사한 후
뿔소똥구리를 풀어놔 생태변화를 지속해서 관찰할 예정이다.
뿔소똥구리는 제주도 등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왕소똥구리와는 종이 다르다. 멸종위
기종도 아니다. 태안군은 이 지역에서 서식했던 왕소똥구리와 비슷한 소똥구리가 사
구에서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현재 경북 영양군에 위치한 국립생태원의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2019년
몽골에서 들여온 소똥구리를 증식하고, 이를 보급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김
영중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곤충·무척추동물팀장은 “몽골에서 들여온 소똥
구리는 과거 국내에서 서식했던 소똥구리와 유전적으로 같은 종”이라고 설명했다.
생태원은 몽골에서 살아온 소똥구리가 한국의 자연환경에서도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을 쏟았다. 연구팀은 소똥구리에게 중요한 것은 동면(겨울잠)이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기후변화로 날씨가 갑자기 따뜻해져 소똥구리가 일찍 동면에서 깨어나는
등 충분한 동면을 하지 못하는 경우 소똥구리의 생존률은 현저하게 낮아진다는 것이
다.
생태원은 이에 ‘김장독’이나 ‘김치냉장고’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소똥구리가 일정한 온
도 속에서 충분한 동면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2019년
10월 동면에 들어간 소똥구리는 2020년 4월 중순부터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했다.
태원 관계자는 “동면에 들어간 소똥구리의 90% 이상이 5월 중순까지 무사히 깨어났
다”고 설명했다.
태안군은 2024년부터 생태원이 증식한 이 소똥구리를 신두리사구에 방사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과거 이 지역에서 살던 왕소똥구리와 아주 비슷한 종인 소똥구리를
통해 관련 서식지를 복원하겠다는 것이다.
홍영선 태안군 문화재관리팀 주무관은 “국립생태원 관계자들과 함께 생태원이 증식한
소똥구리를 신두리사구에 방사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세로 태안군
수는 “앞으로 사람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생태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을 쏟을 예
정”이라고 말했다.
기후위기는 의료 문제다…흡연과 폐암처럼 연결돼 있다
흡연과 폐암, 가습기 살균제, 지금 여기의 환경 정의
환경은 환경으로 남아 있지 않고,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로 다가온다. 사진 출
처 월페이퍼플레어
기후 위기가 ‘진짜’ 위기이고 이에 따라 당장 인류의 삶이 위협에 처해 있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지만, 이것을 의료와 연결해서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기후 문제는 전 지구적 차원의 일이고 의료는 다분히 개인적 수준에서 작동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일 텐데, 사실 환경 문제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미
칠 영향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둘은 생각보다 가까운 문제다.
환경은 그대로 환경으로 남아 있지 않고,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로 다가온다.
아마 기후 위기를 정말 실감하게 되는 것은 극심한 기후 변화보다는, 그로 인하여 몸
이 아프게 될 때다. 그렇다면 기후 위기를 포함한 환경 문제와 의료는 생각보다 밀접
하다.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모든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꼭 떠올려 보아야 할 것
은 환경 정의라는 개념이다. 아직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환경 정의 개념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많은 기관과 문헌이 환경으로 인한 이득과 피해가 공정하게 배분되어
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환경으로 인한 이득과 피해는 보
통 불공평하게 나누어진다는 의미다. 이것은 환경만 놓고 보았을 때 이해가 쉽지 않
다. 기후에 지역 차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자연 현상을 불공평하다고 말하는 것은
이상한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강을 붙여 놓고 살펴보면 환경으로 인한 이득과 피해가 불공평하다는 말이
직접 다가오는 표현이 된다. 아동, 노인, 기저질환자 등 건강 취약자에게 급격한 기온
변화나 미세먼지 증가 등으로 인한 질병 발생의 위험이 더 크다. 부유한 이들은 환경
오염이 진행되었거나 온도 변화가 커진 지역에서 떠날 것이고, 남아서 피해를 감내해
야 하는 이들은 저소득 가정이다. 외국인 공동체와 같은 소수자 지역사회는 애초에
환경 조건이 나쁜 곳에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이것은 해당 지역사회의 건강 관
련 지표를 악화시키는 중요 요인으로 작동한다. 게다가 환경으로 인해 건강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부유하고 건강한 사람들은 그로 인한 손해를 보충할 수 있는 능력을 지
니고 있다. 그러나 취약 계층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에 환경 정의는 의료와 떼어 놓을 수 없는 개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후 위
기나 환경 오염 문제는 또한 의료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의
료의 문제라면, 그 해결을 위해 의료가 작동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인과관계
때문에 환경 문제가 의료의 틀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쉽지 않다. 쉽게 말해서, 환경
요인이 질병을 일으킨 직접적인 원인인지 증명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러 이유로 질병이 하나의 원인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생각의 틀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다(단일원인 인과라고 부른다). 우리가 흔히 겪는 질병이 감염병이나 외상이
라서 그런 탓도 있다. 감염병은 세균이나 바이러스라는 명확한 원인 물질이 존재한다.
외상은 사고나 충격이라는 명확한 원인 외력이 존재한다. 모든 질병도 이런 하나의
원인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상적인 경험에서 쉽게 도출된다
그러나 많은 질병은 여러 요인이 작용하여 발생한다. 당장 감염병만 해도, 세균이나
바이러스만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감염된 사람의 면역력이 세균을 이겨내는 데
충분하다면(보통 이전에 걸린 적이 있거나 예방접종을 받은 경우일 텐데) 세균이라는
명확한 원인 물질이 있다 해도 질병은 발생하지 않는다. 하물며 환경으로 인한 질병
발생은 여러 요인이 상호작용하는 상황을 상정하는 것이 옳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위해선 환경 요인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흡연과 폐암의 관계가 그랬다. 지금은 누구나 흡연
으로 인해 폐암이 발생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50년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부정했다. 당연히 담배 회사가 그 선두에 있었다.
1999년 영화 <인사이더>는 담배 회사에서 일하던 연구 책임자가 온갖 압력에 시달리
면서도 내부고발자가 되어 건강에 해로운 물질을 담배에 넣는 회사의 행태를 폭로하
려고 노력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런 ‘환경 요인’과 질병과의 연관성에 관한 논쟁과
고발, 분쟁은 오랜 역사를 지닌다. 출처 다음 영화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
담배가 폐암을 일으키는지 보려면, 특정 시점에서 사람들에게 담배를 나누어 준 다음
계속 담배를 피운 사람과 담배를 피지 않은 사람을 추적 관리하여 결과의 차이를 비
교하면 된다. 명확하게 인과관계를 제시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담배의 경우 적용하기
어렵다. 일단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연구자가 생각하는 물질을 과학 연구라고
하여 대상자에게 지속 노출시키는 것은 연구 윤리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또 그 결과
가 분명히 나타나려면(예컨대 흡연 집단에서 폐암 발생률이 증가하려면) 몇십년을 기
다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대상자를 추적하는 일은 현실에서 쉽지 않다.
영국의 리처드 돌과 브래드포드 힐은 1950년 <영국의학학술지>에 실린 ‘흡연과 폐
암’(Smoking and Carcinoma of the Lung) 논문에서 흡연과 폐암의 관련성을 분석
하였다. 전설로 남은 두 연구자는 이 논문에서 흡연과 폐암 발생 증가가 연결되어 있
음을 보이기 위해 선구적인 시도를 했다. 다수 환자의 자료를 무작위로 수집하여 선
택에서 편향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고, 폐암 발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른 요소들을
맞추어 최대한 통제하려 했다. 논문은 담배 사용량 증가와 폐암 발생률 증가가 강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였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담배가 폐암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데 충분하지 않았다.
주지하는 것처럼, 상관관계는 두 일이 동시에 발생했다는 것만을 의미한다. 돌과 힐은
분명, 흡연량의 증가와 폐암 발생의 증가가 동시에 일어났음을 밝혔다. 하지만 그것으
로 담배가 폐암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어렵다. 그저 두 사건이 우연히 같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 심지어 폐암이 증가해서 사람들이 많이 피게 된 것이라고 (예컨
대 질병으로 인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말할 수도 있다.
추가적인 증명이 필요했고 돌과 힐은 의료인 6만명을 대상으로 흡연 관련 설문지를
보냈다. 4만명이 답변을 보냈고 그들은 4년 반 동안 이들을 추적하였다. 비흡연자 집
단에서 폐암으로 인한 사망률은 1000명당 0.07이었으나, 애연가 집단에서 폐암으로
인한 사망률은 1000명당 1.66으로 증가하였다. 거의 20배 차이가 난다는 것을 확인
하였던 것이다.
이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미국 공중위생국은 흡연과 폐암의 관계를 분석하기 시작
하고, 이것은 1964년 미국 공중위생국장 보고서 발표로 이어졌다. 보고서는 문헌 7천
개 이상을 검토하고 150명 이상에게 자문을 받아 흡연이 남성 폐암의 원인임을 발표
하게 되었다. 이들은 다수 연구가 흡연과 폐암의 강한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으며 일
관된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 폐암이 흡연과 특정한 관련성을 보인다는 점, 흡연과 폐
암의 시간적 선후관계가 인정된다는 점, 용량 반응 관계(흡연량의 증가에 따라 폐암
발생도 증가)가 보인다는 것, 담배에 발암물질이 포함되어 있다는 실험적 결과와 합치
한다는 것을 근거로 하였다.
1965년에는 힐이 ‘환경과 질병: 상관인가 인과인가’(The environment and disease:
Association or causation?)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미국 공중위생국장 보고서의 결과
를 흡연과 폐암을 넘어 일반 질병으로 확산한다. 환경과 질병의 인과관계 설정에 있
어 힐은 이후 ‘힐의 범주’라고 불리게 된 조건을 제시하였다. 연관성의 강도, 일관성,
특이성, 시간적 선후관계, 양적 관계, 생물학적 타당성, 기존 지식과의 일치, 실험적
입증, 이전 상황과의 유사성. 힐이 제시한 이 아홉 가지 범주가 완전하다고 말할 수
는 없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들 범주를 활용하여 환경 요인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살
피곤 한다.
1956년 돌과 힐의 논문 ‘흡연과 관련된 폐암과 다른 사망 원인’(Lung cancer and
other causes of death in relation to smoking)에 실린 용량반응관계 그래프. 다
른 질병과 달리 폐암은 흡연량과 명확한 양적 상관관계를 보인다. 출처: Doll and
Hill (1956)
가습기 살균제 피해 보상 왜 못받나
기후 위기도 문제지만, 당장 환경적 요인으로 인한 건강 문제를 겪는 사람들이 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가습기에 첨가하여
사용하라고 만들어졌던 살균제에 포함된 성분이 세포에 독성을 나타냈으며, 가습기를
통해 미세 분자로 바뀐 이들 성분은 사용자의 폐를 손상시켰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지원 종합포털 자료에 따르면 2023년 4월 30일 기준 등록된 사망자만 1814명에 이
른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폐렴이 점차 퍼지다가 2011년에서야 역학조사로 가습기 살균제가
그 원인이 밝혀지게 되었지만, 정부의 뒤늦은 대처와 기업의 질병 인과성 부인, 은폐
시도로 피해자들은 아직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2022년 4월, 가습기 살균제 제조
사들은 피해구제 조정위원회의 피해조정안을 거부하였고, 피해자별로 진행되는 손해
보상청구 소송은 인과관계 입증의 부담을 다분히 피해자에게 지우며 장기화하여 이중
의 어려움을 피해자에게 안기고 있다.
이런 대사건에 우리가 지닌 생각의 틀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 딱 잡아 말하기
는 어렵다. 그러나 가습기 피해 인과가 인정받지 못하는 모습에서 1950년대의 흡연과
폐암의 연관성 논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리고 이 모습은 앞으로 계속 나타날
여러 환경 관련 건강 문제에서도 반복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거꾸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환경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시작이 되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환경 문제를 건강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면, 그것이 불평등하게 해악을 입힌다면, 그리고 그 해결을 위하여 우리에게 의학
과 의료를 통한 이해가 필요하다면, 이 문제를 의료에서 함께 이야기하는 것도 이상
하지 않을 것이다.
김준혁/연세대 교수·의료윤리학자 junhewk.kim@gmail.com
부산 곳곳 과도한 가지치기 ‘닭발 가로수’ 수난시대
전선 겹쳐 싹둑 간판 가려 싹둑
구체적 가이드라인 없이 진행
녹지행정 구현 시책과 ‘엇박자’
전문가, 장기 생장 악영향 지적
부산 곳곳의 가로수가 ‘닭발’처럼 흉물스러워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부산환경회의 제공
부산 곳곳에서 가로수 가지를 과도하게 잘라내는 바람에 가로수가 ‘닭발’처럼 흉물스러워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부산시가 기후 위기에 대응한다며 곳곳에 도시 숲을 조성하면서도, 현재 심어진 가로수에는 무분별한 가지치기가 이뤄지고 있어 ‘엇박자 행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31일 부산 동구 범일역 인근 길가에는 잔가지가 잘려 큰 줄기만 남은 은행나무가 군데군데 서있다. 초여름 쯤이면 잎이 무성하게 자라 큰 그늘을 이뤄야 할 때이지만, 가지가 잘려나간 탓에 큰 줄기 주변으로만 잎이 붙어있다. 이곳뿐 아니다. 부산 북구 화명2동 일대에도 양버즘나무의 가지 대부분이 잘려나갔다. 큰 줄기에 작은 가지 몇 개만 남아 마치 ‘닭발’ 같은 모양새다. 해당 지자체 관계자는 “당장 흉해보일 수 있지만, 몇 년 뒤면 또 잎이 무성하게 난다. 나무에는 이상을 주지 않을 정도로 가지치기를 했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가지를 많이 쳐내는 것을 ‘강전정’이라 하는데, 부산 곳곳에서 강전정 가지치기가 이뤄지고 있다. 주로 전선에 걸릴 우려가 있거나, 교통표지판이나 간판을 가린다는 민원으로 인해 가지치기가 진행된다. 각 구·군청은 가지치기 전 시에 심의 또는 실무협의를 거치는데, 가지치기와 관련한 부분은 대부분 실무협의 선에서 결정되는 실정이다. 현재 시에는 가지치기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나 지침이 없다 보니, 무분별한 가지치기가 이뤄지는 실정이다. 시 산림녹지과 관계자는 “가지치기에 대한 명확한 지침은 없지만, 협의를 할 때 가로수 생육에 크게 지장이 가지 않을 정도로 가지치기를 하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도한 가지치기로 인해 ‘닭발’처럼 앙상한 가로수. 부산그린트러스트 제공
문제는 이 같은 과도한 가지치기가 나무의 생장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동아대 차욱진 조경학과 교수는 “현재 몇몇 곳은 강전정 수준이 아니라 나무의 머리를 잘라내는 ‘두절’ 수준의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나무는 잎과 뿌리의 비율이 같아야 하는데, 이처럼 가지를 잘라내서 잎이 부족하면 뿌리가 호흡을 하지 못해 썩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경고했다. 또 설령 겉보기에는 잎이 나고 문제가 없어 보이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나무의 생장에 치명적이라고 지적했다. 차 교수는 “강전정하는 나무들은 잎을 한꺼번에 틔우는 특징을 보이는데, 나무가 살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라면서 “지금 당장은 문제가 없어보여도 뿌리는 점점 쇠약해지고 결국에는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시의 녹지 관련 행보가 엇박자라는 지적도 나온다. 기후대응에 대비하겠다며 도시 곳곳에 나무를 심고 도시 숲을 조성하지만, 정작 이미 심어놓은 가로수는 등한시한다는 것이다. 부산그린트러스트 이성근 이사는 “부산시가 만들려는 15분 도시의 핵심은 ‘녹지’이고, 가로수는 녹지를 연결하는 통로다. BRT 도로를 낸다고 나무를 쳐내고, 재개발 공사한다고 잘라내고, 가지치기마저 무분별하게 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행보”라고 지적했다.
환경단체는 가로수 관리와 가지치기에 대한 시의 지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유진철 부산환경회의 공동대표는 “시의 명확한 지침과 규정이 없다보니 부산 곳곳에서 가로수 가지치기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가로수에 대한 시의 입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해상풍력, 외국에 팔아넘긴 사업권…인천 앞바다로 장사하나
인천 앞바다에서 해상풍력 사업권 장사를 위해 알박기한 국내 회사가 외국 기업에 사업 권한을 팔아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사업자 간 입지 선점 경쟁과 공유재인 바다를 사고파는 행위가 일어나는 만큼 계획 입지가 하루빨리 도입돼야 한다는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외국 기업 A는 인천 서해 배타적경제수역(공해) 내 3곳에서 1.1GW 규모의 해상풍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풍황 계측을 진행한 이 기업은 조만간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전기위원회에 발전사업 허가를 신청할 예정이다. 사업비는 6조원이다.
문제는 이러한 A의 사업권이 국내 조그만 회사들로부터 획득해 모아졌다는 점이다. 앞서 B·C·D 업체는 무슨 일에서인지 바다에 계측기를 꽂기 위해 공유수면 점·사용권을 따냈다. 육지로 따지면 땅을 매입하는 형태였다.
이상한 건 이들이 수조 원대 예산이 들어가는 발전사업을 이행할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B업체는 자본금 100만원에 2020년 2월에, C업체는 자본금 1000만원에 2019년 9월에 설립됐다. 비슷한 시기에 설립된 C업체의 경우 자본금 2000만원에 회사를 세웠으며 그나마 설립 목적이 화장품 도소매업이다.
이후 이 업체들은 외국계 A기업에 지분을 넘겼고 현재 A기업이 이들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결국 A기업은 사업 시작 단계인 공유수면 점·사용 허가를 직접 받은 것이 아니라 허가권을 가진 업체들을 사들인 것이다.
외국계인 데다가 주민 설득이 중요한 이 사업의 초기 단계부터 등장하기가 어려운 A기업이 바다 부지를 확보한 국내 영세 업체와 짬짜미로 인천 앞바다를 손쉽게 거래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부분이다.
업계에서는 이처럼 사업 권한을 사고파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주장이다. 관련 기준에 따라 바다에 계측기를 최초 설치한 업체들에 해상 반경 5㎞ 이내 영역에서 최대 5년간 우선권이 인정된다. 기준을 악용해 사전에 좋은 자리를 미리 선점해 다른 사업자의 진입을 막는 알박기가 이뤄지고 사업권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챙기는 일이 벌어지면서 허가권이 재산권처럼 행사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자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11월 재생에너지 정책 개선방안을 발표하면서 “해상풍력발전은 풍황계측기 허가 요건과 사업 허가 관리를 강화하고, 계획입지 개발방식 도입으로 난개발을 방지해 나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A기업 관계자는 “한국에 들어온 지 오래되지 않은 상황에서 타 사례를 보면 민원 등으로 발전사업 허가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 로컬 파트너가 필요했다”며 “회사 운영 방향에 대해 의견이 갈리면서 보유 지분을 맞바꾸는 방식으로 지분을 소유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회진 기자 hijung@incheonilbo.com
IAEA, 오염수 1차 보고서 “일본 측정 방법 적절”···방류 힘 실어줬다
지난해 3월 촬영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모습. AP연합뉴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에 대한 일본의 측정 능력과 방법을 신뢰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는 오염수 시료에 대해 일본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도 분석을 했지만, 상당한 수준의 방사성 핵종은 발견하지 못했다는 내용도 실렸다.
IAEA는 31일(현지시간) 이 같은 내용의 후쿠시마 오염수 1차 시료 분석결과 보고서를 기관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이 보고서에서 IAEA는 후쿠시마 원전을 관리하는 도쿄전력의 오염수 측정 능력이 높은 수준의 정확성을 가졌다고 적시했다.
또 도쿄전력의 시료 채취 절차가 적절한 방법에 따라 시행되고 있으며, 다양한 방사성 핵종을 분석할 만한 적합한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IAEA는 이번 보고서에서 모든 ‘제3자 실험실’에서 중요한 수준의 추가 방사성 핵종이 검출되지 않았다고도 기록했다.
이번 1차 시료 분석결과 보고서의 근간이 된 오염수는 IAEA 주관으로 채취해 한국과 미국, 프랑스, 스위스 등 4개국에서 분석했다. 제3자 실험실은 이들 국가의 전문기관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IAEA가 결과적으로 일본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후쿠시마 오염수의 해양 방류가 조만간 실행될 가능성도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경향
AI, 핵전쟁·전염병 만큼 위험”···AI 개발자들, 인류멸종 경고
인공지능(AI) 업계 리더들이 AI 기술이 인류에게 핵 전쟁이나 전염병 만큼 실존적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이를 위한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30일(현지시간) 경고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오픈AI, 구글 딥마인드 등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을 불러온 AI업계 경영진들이 자신들이 구축하고 있는 기술이 핵 전쟁 만큼이나 인류에게 실존적 위협이 될 수 있다며 AI로 인한 ‘멸종’을 막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30일(현지시간) 비영리단체 AI안전센터는 “AI로 인한 멸종 위험을 완화하는 것은 전염병이나 핵 전쟁 위험 등과 함께 전 세계에서 우선순위로 다뤄져야 한다”는 한 문장 분량의 짧은 성명서를 공개했다.
이 성명에는 AI 주요 기업 경영진을 포함해 AI 분야에 종사하는 연구원 및 기술자, 과학자 350여명이 서명했다. 챗GPT를 개발한 오픈AI의 샘 알트먼을 비롯해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 AI 챗봇 ‘클로드’를 출시한 안트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등 주요 AI 기업 세 곳의 최고경영자(CEO)가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 AI 분야의 ‘대부’로 불리는 제프리 힌튼 토론토대 교수와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 케빈 스콧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기술책임자(CTO) 등도 참여했다.
댄 헨드릭스 AI안전센터 이사는 이번 성명이 “자신들이 개발하고 있는 기술의 위험성에 대해 개인적으로만 우려를 표명했던 일부 업계 리더들이 ‘커밍 아웃’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930년대 핵 과학자들이 핵무기 개발을 완료하기 전부터 그 위험성을 경고해온 것을 언급하며 “재앙이 발생한 후 대처하는 것보다 재앙이 발생하기 전 이런 위험을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성명은 최근 AI가 초래할 수 있는 광범위한 거짓 정보 확산, 일자리 위협 등 잠재적인 위험에 대한 경고 목소리가 커진 가운데 나왔다. 미국 AI 업계 리더들은 최근 자신들이 개발하는 AI 기술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알트먼 오픈AI CEO는 지난 16일 미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AI 기술이 잘못되면 모든 것이 완전히 잘못될 수 있다”며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같은 성격의 국제 AI 규제 기구 설립을 촉구한 바 있다. 그는 “미국 대선이 가까워지고 기술이 점차 발전하는 상황을 감안했을 때, (이용자와) 일대일로 상호 작용하는 AI 모델이 설득과 조작을 통해 거짓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심각하게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번 성명에 참여한 ‘AI의 대부’ 힌튼 교수도 최근 AI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구글에 사표를 내 화제가 됐다. 딥러닝 개념을 처음으로 고안해낸 그는 관련 연구에 매진해온 자신의 일생을 후회한다면서 “AI가 ‘킬러 로봇’이 되는 날이 두렵다”고 말했다. 그는 AI가 인간을 위협하는 시기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며 AI의 위험성에 대해 자유롭게 발언하기 위해 지난 4월 10년간 몸 담았던 구글에 사표를 냈다.
1989년 저서 <자연의 종말>을 통해 기후변화 문제를 일찌감치 경고했던 환경학자이자 작가 빌 맥키번도 이 성명에 참여했다. 그는 “35년 전 기후변화에 대한 초기 경고에 사람들이 귀 기울이지 않은 것을 감안한다면,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지기 전에 이를 숙고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고 AP통신에 말했다.
지난 3월에는 AI의 위험성을 통제하기 위해 첨단 AI 개발을 6개월간 일시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이 공개되기도 했다. 당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포함해 1000여명 이상의 업계 관계자와 연구원, 기술자들이 서한에 서명했다.
AI업계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AI의 위험성을 은유하는 ‘쇼고스’라는 밈도 확산하고 있다. SF작가 H P 러브크래프트가 1936년 발표한 SF소설 <광기의 산맥에서>에 등장하는 괴생명체 ‘쇼고스(Shoggoth)’에서 모티프를 따온 이 밈은 촉수마다 눈이 달린 문어 모양의 괴물 형상으로 표현된다.
NYT는 “쇼고스는 AI 세계에 대한 가장 기괴한 사실을 요약하는 강력한 은유”라며 “이 기술을 연구하는 많은 이들조차 자신의 창조물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으며, AI가 세상에 순기능이 될지 역기능이 될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SNS를 통해 확산하고 있는 AI 관련 밈 ‘쇼고스’. @TetraspaceWest 트위터
경향
도시재생 10년, 길을 잃었나② 주민 짐 된 거점시설, 사업 끝나자 방치
지난 2월 15일과 지난 22일 서울역 인근 용산구 서계동과 청파동에 있는 거점시설 세 곳을 찾았다. 청파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감나무집은 공유서가이자 공유주방으로 쓰이던 곳이다. 취재팀이 처음 방문한 2월에는 잠긴 문 너머로 보이는 책상에 곰팡이가 핀 상태였다. 마을 카페 청파언덕집과 전시·공연장 은행나무집에도 비에 젖은 우편물과 먼지가 쌓여 있었다. 지난 22일에도 비슷했다. 취재가 시작된 이후 “현재 거점시설 운용 계획 중입니다. 가구 및 기타 물건들 적치 금지”라고 적힌 경고문이 나붙은 게 유일한 차이였다. 지난 2016년 서울역 일대가 ‘서울형 도시재생 사업’ 대상지로 선정되며 생겨난 세 거점시설은 지난해 3월부터 1년 넘게 방치되고 있다.
▲ 지난 22일, 용산구 청파동 감나무집 건물 외부. ‘운영을 잠정 중단한다’는 펼침막이 걸렸다.(왼쪽) 유리문 너머로 본 감나무집 내부. 책상에 곰팡이가 피어 있다.(가운데) 감나무집 전면 유리에는 “현재 거점시설 운용 계획 중”이라며 물건을 적치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오른쪽) 조벼리 기자
방치되거나 철거되는 거점시설들…이유는 “낮은 시설 이용률”
서계동과 청파동 거점시설은 ‘서울형 도시재생사업’으로 조성됐다. ‘서울형 도시재생사업’의 거점시설들은 2019년 9월 완공돼 2019년 11월 개관했다. 일대 주민이 출자해 만든 서울도시재생사회적협동조합이 수탁해 운영했다. 지난해 4월 1일, 서울시는 12월까지였던 협동조합과의 위탁 계약을 조기에 종료하고 서울시로 운영주체를 전환했다. 운영주체가 바뀌기 직전인 지난해 3월부터 거점시설은 문을 닫았다.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서울역 일대 거점시설을 이용하고 싶다는 신청이 들어오자 지금 시설을 운영하지 않는다며 이용을 허가하지 않았다. “시설 이용률과 재정자립도가 낮아 2022년 3월 운영을 중단했다”고 국민신문고를 통해 밝혔다. 수익성이 떨어져 시설을 운영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서울시는 답변에서 “거점공간에 대한 효율적 운영방안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취재팀이 지난 22일 찾아가 보니 거점시설은 아직도 방치된 상태 그대로였다.
▲ 지난해 11월 8일 서울시가 국민신문고를 통해 답변한 내용. 국민권익위 국민신문고 누리집 갈무리
취재팀은 2년 넘게 서계동 거점시설들을 운영했던 서울도시재생협동조합에 재정자립도가 낮다는 서울시의 평가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이종필 서울도시재생협동조합 이사장은 “애초에 주민커뮤니티 공간이라 수익사업을 할 수 없는 곳인데, 재정자립도가 낮아서 문을 닫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세 거점시설 가운데 마을카페 청파언덕집 한 곳만 수익시설이다. 청파언덕집은 운영 첫 해인 2020년에는 하자보수로 5개월밖에 문을 열지 못했다. 당시 월 평균 매출은 176만 원이었다. 하지만 2021년 3월부터 12월까지는 월 평균 1280만 원의 적지 않은 매출을 올렸다.
이 이사장은 시설이용률도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020년과 2021년 사업결과보고서를 보면, 아예 문을 열지 못했던 기간을 제외하면 공유주방이 있는 감나무집은 2020년 월 평균 58명, 2021년에는 월 평균 143명이 이용했다. 은행나무집에서 2020년에 진행한 목공 체험과 영화 상영 프로그램에는 44명이, 2021년에 진행한 예술 관련 프로그램에는 158명이 참여했다. 이 이사장은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하면 높은 이용률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조합은 거점시설 대관이나 프로그램 참가를 사전 예약제로 운영했다. 거점시설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대개 노인이다. 인근 주민들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방식은 아니었던 셈이다. 감나무집 바로 앞에서 5년째 가게를 운영하는 81세 김 모 씨는 “나는 시설을 한 번도 이용한 적이 없다”면서 “주민들 잘되라고 하는 거겠느냐, 다 자기 잇속 챙기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를 포함해 취재팀이 현장에서 만난 인근 주민 5명 가운데 4명이 “거점시설을 써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1년 넘게 방치되던 세 거점시설은 이제 철거를 앞뒀다. 지난해 12월, 서계동과 청파동 일대가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사업 2차 후보지로 선정됐다. 서울시 도시정비과 공공개발팀 관계자는 이 세 거점시설이 재개발 부지에 포함돼 철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들 거점시설은 노후 주택을 리모델링하거나 신축한 것인데 감나무집은 11억 원, 청파언덕집은 14억 원, 은행나무집은 9억 원 이상이 들었다. 세 거점시설을 만드는 데 들어간 35억 원이 넘는 비용도 철거와 함께 사라진다.
대구대 지리교육학과 이영아 교수는 지난 6일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거점시설을 활용하지 않는 상황이) 문제라면 큰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한 번 지어놓은 건물은 잘 바뀌지 않는다. 공공시설(거점시설)이 이렇게 들어와 있으면 어떤 형태로든 주민들이 쓸 수 있는 인프라가 늘어나는 것이다. 재개발이 된다면 그 인프라를 금방 부숴버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거점시설 설치 목적은 ‘취약 지역의 공동체 회복’
거점시설은 주민을 위한 공공 공간이다. 서울형 도시재생지원센터가 2019년 9월에 낸 소식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도시재생 지역마다 커뮤니티 공간을 포함하여 거점시설을 매입하는 이유는 그만큼 공공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이웃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함께 모이고 얘기할 곳이 없음을 알게 된다. 공공 공간이 많아지면 삶의 질이 훨씬 높아질 것이다. 이웃과 함께 누릴 것과 공유할 것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부산 영도구 해돋이마을에서 ‘회장님’으로 통하는 이옥자(80) 씨는 “거점시설이 있어서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도 하고, 밥도 먹고, 어떻게 사느냐고 서로 물어보고, 안 보이면 찾아나선다”고 말했다. 이 마을에는 2015년 ‘새뜰마을사업’으로 건립한 거점시설 해돋이행복나눔터가 있다. 이곳은 비누공방이나 치매교육을 진행하는 휴식 공간으로 운영되는 커뮤니티시설이다. “영도구 안에 노인이 그렇게 많아도 그렇게 모이는 덕분에 독거사하는 분이 없다”는 게 이 씨의 자부심이다. 지난해에는 거점시설 앞 밭에서 다같이 기른 호박을 팔아 60만 원 수익을 냈다.
김은희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 정책연구센터장은 지난달 19일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날이 더우면 정말 모여서 잠이라도 자거나, 아이들 공부방으로 쓰거나, 취약한 지역 주민들이 함께 쓸 수 있는, 정말 필요한 공간이 거점시설”이라고 말했다. 정말 필요한 시설이라면, 수익성이 떨어지더라도 공공이 공간 복지라는 개념을 가지고 지원해 줘야 한다고도 했다.
2017년 발표된 ‘새뜰마을사업’ 매뉴얼을 보면, “‘목소리’를 낼 만한 사회적 힘이 적어 지자체의 지원 순위에서 밀리는 경향이 있는 달동네가 공동체를 회복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곧 커뮤니티센터 등 공동이용시설이라고 돼 있다.
2015년부터 진행된 ‘새뜰마을사업’은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이다. 매뉴얼에는 사업에 신청하도록 권장하는 지역의 조건이 나온다. 1) 4m 미만으로 폭이 좁은 불량도로에 접한 주택 비율이 50% 이상이거나, 2) 30년 이상 된 노후주택 비율이 70% 이상이거나, 3) 상하수도와 도시가스를 설치하지 않은 비율이 30% 이상인 낙후 지역이 새뜰마을사업 대상지다.
새뜰사업 거점시설 80곳 중 15곳, 활용 못하고 방치
취재팀은 ‘새뜰마을사업’ 거점시설 운영 현황을 취재했다. 먼저 2015년부터 2019년 사이 새뜰마을사업에 선정돼 사업기간인 4년이 지난 대상지 98곳을 전화로 전수조사한 뒤 5곳을 선정해 직접 현장 취재했다. 지난달 21일부터 한 달여 동안 시군구청 관계자, 도시재생지원센터 관계자, 주민 등을 통해 거점시설 운영 현황과 용도를 확인했다.
98곳 가운데 사업 기간에 거점시설을 세웠고 기간 연장 없이 사업을 마친 곳은 62군데였다. 같은 사업으로 세운 거점시설이 여러 개이거나 물리적으로 같은 거점시설을 쓰지만 운영 주체가 서로 다른 경우에는 별도의 거점시설로 봤다. 이렇게 집계한 거점시설 수는 80개다. 이 가운데 지금 운영이 되지 않는 거점시설은 약 20%인 15개다.
<새뜰마을 거점시설 80개 운영현황>
방치된 거점시설들은 운영주체나 활용용도를 정하지 못한 곳을 말한다. 15개 가운데 용도를 정하지 못해 방치되는 시설은 4개다.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의 텅스텐마을에는 거점시설로 잣을 선별하는 공동작업장을 세웠다. 2017년 새뜰마을 사업에 선정된 텅스텐마을은 지난해 거점시설이 준공됐지만 여전히 운영주체와 용도를 결정하지 못했다. 영월군청 관계자는 “주민협의체와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용도를 정했지만 운영주체가 결정되지 않은 거점시설은 7개로, 그 가운데 4개 거점시설은 2가지 용도로 쓰기로 했다. 총 11개 용도 가운데 7개가 커뮤니티시설, 2개가 상업시설, 2개가 복지시설이었다. 4개 거점시설은 운영주체와 활용용도를 정했지만 세부 사용계획을 확정하지 못해 운영이 지연되고 있었다.
확실한 용도 결정 없이 일단 시설부터 지어
거점시설은 왜 충분히 활용되지 않는 것일까. 국토부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2020년 발행한 “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 거점시설 운영관리 모델 개발 가이드북”을 보면 2015년 12월 재생지역으로 선정된 서울역 일대의 거점시설은 “설계 이전부터 콘셉트와 방향을 함께 모색하는 워크숍 운영을 하는 매우 획기적인 프로그램”을 거쳤다. 2017년 9월부터 공공건축가, 전문가, 서울시 공공재생과, 현장지원센터 코디네이터가 모여 다수의 워크숍을 진행했다. 건축가는 건물별 디자인 콘셉트와 기본구상을 발표하고 코디네이터는 각 건물별 용도와 거점시설 준공 이후 운영방안을 발제해 함께 논의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2019년 9월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지원센터 소식지에는 “서울역 일대 거점시설은 매입 단계부터 완공 후 운영관리에 대한 구상을 했다. 그런데 막상 그 과정이 쉽지 않아 각 거점시설의 용도 결정과 운영, 위탁관리비용을 산정하기 위한 연구 용역을 2018년 3월 진행했다. 공공재생과의 전폭적 지원과 협의가 있어 가능했다”는 설명이 나온다. 당시 회계사 등으로 꾸려진 용역팀은 서울시가 산정한 지원 예산이 적다며 지속가능성을 염려했다. 하지만 거점시설 운영관리 매뉴얼을 보면 그 컨설팅 내용이 “사업 내용에 다수 반영되지는 않았다.” 서울역 일대 일부 거점시설은 결국 당시 용역팀의 염려대로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2020년 국토연구원 보고서 “도시취약지역 공동체 기반 거점시설 운영방안”을 보면 “선정 과정에서부터 지자체가 운영관리계획을 구체적으로 기술하도록 하고, 이 계획이 미비한 경우 조성규모를 줄이거나 조성을 제한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용도나 주체 등 계획이 근거를 갖춰 현실성 있게 잘 세워졌는지를 검토하여 사업을 선정해야 막상 거점시설을 지어놓고는 방치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계획을 초기에 세웠는지보다 시행 전에 계획을 치밀하게 검토했는지가 중요하다. 새뜰마을사업에선 대상지로 선정되기 위한 응모 때부터 용도를 구상한다. 지자체가 거점공간을 어떻게 조성할 계획인지, 운영과 관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주민, 전문가와 논의한 사업신청서를 국토부에 제출해야 응모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계획은 많은 경우 사업에 선정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수정된다. 사업을 진행하며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생길 수 있으므로 수정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선정 단계 계획이 미비하다 보니 실행되지 못하고, 거점시설 운영에 줄일 수 있었던 공백이 생긴다.
전주 승암마을은 새뜰마을사업으로 세운 거점시설을 2020년 준공 이후 2년 넘게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전주시 도시재생지원센터 성원석 팀장은 “건물을 짓기 전에는 주민협의체에서 경로당으로 쓰려고 했던 건물인데, 경로당을 쓰시는 분들이 옮기지 않겠다고 해 용도를 새로 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선정 당시 제출한 용도가 거동이 불편한 경로당 이용자들의 의사 등을 고려하지 못하고 정해진 것이다.
▲ 2020년 9월 준공됐지만 현재도 사용하지 않고 있는 전주 승암마을 주민공동이용시설. 승암 새뜰마을이라는 간판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김대선 기자
지난해 9월, 주민들은 시설을 도서관으로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승암마을 통장 박광연 씨(58)는 ‘바람쐬는여행자도서관’이라는 이름의 도서관 운영계획을 담은 7장짜리 건의문을 전주시에 제출했다. 하지만 고려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 주변에 이미 도서관이 많았다. 시의 허가를 받지 못하자 지난해 11월에는 마을회관으로 쓰자고 박 통장과 마을 협동조합 관계자가 논의해 전주시에 제안했다. 그런데 논의 자리에 없었던 주민협의체가 시의회 등에 일방적 결정이라며 항의했다.
이해관계자들의 합의를 거쳐 현실성 있는 용도를 결정한 뒤 사업을 진행하지 않은 대가로, 승암마을에 건립된 거점시설은 2년 넘게 방치되고 있다. 도시재생지원센터와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마을공동체활성화지원센터를 총괄하는 전주도시혁신센터 소영식 센터장은 “어떤 식으로든 주민들이 합의해 용도를 정할 수 있도록 전주시와 함께 매뉴얼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운영주체 못 구해 거점시설 떠맡는 지자체…지자체도 포기하면 방치
마땅히 위탁할 운영주체가 없으면 시, 군, 구가 직접 거점시설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 태백시 삼방동에 있는 새뜰마을사업 거점시설을 시가 직접 운영하는 이유도 “위탁할 주민 그룹을 찾지 못해서”라고 태백시청 관계자는 말했다. 홍성군 홍성읍 새뜰마을사업 거점시설인 창업지원센터도 주민이 주도하는 사회적기업에 위탁해 운영하려고 했지만 “군에 젊은 연령층이 없어” 위탁하지 못했다. 홍성읍 창업지원센터는 준공 후 4개월 넘게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물론 전체 거점시설 가운데 주민이 운영하는 곳이 가장 많은 35곳이다. 하지만 전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현재 시, 군, 구가 직접 운영하고 있는 거점시설은 전체의 40% 가까운 30곳이다. 도시재생사업이 끝나 사업비가 없는 상황에서, 거점시설의 관리를 위탁할 대상을 찾지 못한 지자체는 떠맡은 거점시설의 용도를 다시 정하고 운영관리비를 확보해야 한다.
▲ 거점시설 운영현황을 보면 주민이 운영하는 것이 가장 많고 시·군·구가 직영하는 것이 뒤를 잇는다. 그래픽 박동주
지자체들은 이들 거점시설 운영관리비를 다양한 방식으로 조달해 거점시설을 운영한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자체 예산으로 운영·관리비를 해결한다. 복지과와 노인과 예산을 써서 마을회관이나 경로당으로 운영하는 거점시설은 지자체 운영 거점시설 30개 가운데 22개였다. 거점시설 4곳은 도서관과가 도서관 예산으로 관리를 맡는 작은도서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다른 사업단이 거점시설을 사용하기도 한다. 인천시 동구의 거점시설인 원괭이커뮤니티센터 1층은 구청이 세운 인천동구지역자활센터 사업단 ‘청소장군’이, 2층은 구청 건축과가 마을주택관리소로 사용한다. 모두 원래 거점시설을 설치하는 목적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2005년부터 사업을 이어온 자활센터 청소장군 관계자는 “청소사업 인허가를 받을 때 사무실이 필수”라며 “민간 건물을 쓰다가 여기로 와서 이용료 없이 관리비만 낸 지 2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홍성읍 창업지원센터 관리를 담당하는 홍성군청 관계자도 경제과 창업사업 예산으로 창업지원센터를 운영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인천 동구 원괭이 새뜰마을 주민공동이용시설. 시설 앞에 세워진 차는 자활센터 사업단 ‘청소장군’ 것이었다. 박동주 기자
지자체가 새뜰마을사업의 후속 사업을 진행하며 시설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부산시는 후속 사업인 주민돌봄사업에 거점시설을 활용하고 있다. 주민돌봄사업에 선정되면 그 예산으로 공간 관리비와 인건비를 지원할 수 있다. 부산 북구 구포2동과 동구 범천동은 부산시 차원에서 진행하는 ‘부산형 통합돌봄사업’에 선정돼 복지관과 함께 거점시설을 취약계층 주거시설인 공동홈으로 운영한다. 대구대 지리교육학과 이영아 교수는 “이렇게 몇 개 부서가 같이 나눠서 쓰는 건 그나마 잘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이 운영하겠다고 나서지 않는데 지자체까지 마땅한 용도를 찾아내지 못하면 거점시설은 애물단지가 된다. 전주시 팔복동 팔복새뜰마을에 있던 거점시설인 ‘팔복새뜰 어울마당’은 원래 운영하던 협동조합이 휴업을 한 뒤 한동안 임시주민센터로 쓰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나마 임시주민센터 역할도 끝나고 문을 닫은 상태다. 전남 장성에 있는 삼가지구 새뜰마을의 거점시설도 주민들이 운영을 포기한 2020년부터 운영을 중단했다. 2018년부터 시설을 운영하던 노인회, 부인회 주민들은 코로나19로 운영을 접었다.
▲ 지난 20일, 팔복새뜰 어울마당 건물에 주민센터 청사를 이전한다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어울마당은 지난 2월 13일부터 팔복동 임시주민센터로 쓰이지 않는다. 김대선 기자
지자체도 거점시설 운영관리비를 마련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데, 거점시설 운영을 수탁받은 주민 조직은 어떻게 운영과 관리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일까?
상업시설 운영하는 주민들, 사업 끝나고 지원 사라져 고충
▲ 용도별로 거점시설이 운영되는 형태를 보면, 복지시설은 대부분 시·군·구가,상업시설은 주민 조직이 주로 운영한다. 그래픽 박동주
전체 거점시설 용도를 보면 카페 등 상업시설(40개), 마을회관 등 커뮤니티시설(33개), 건강시설이나 공동홈 등 복지시설(18개)로 주로 활용된다. 상업시설의 75%인 30개를 주민이, 커뮤니티시설과 복지시설의 58%인 30개를 시·군·구가 운영한다. 주민 조직이 주로 상업시설을 운영하는 이유가 있다. 상업시설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운영관리비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민들이 상업시설 운영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다. 처음 해 보는 일이 태반인데, 마땅히 도움을 받을 데도 없다. 주민들이 거점시설을 위탁받아 운영을 시작할 때쯤이면 벌써 일부 ‘새뜰마을사업’은 종료된다. 사업이 종료되면 행정기관과 주민 가운데서 조율을 담당하던 도시재생지원센터 코디네이터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돕던 사람도 금전적 지원도 사라지고 나면 거점시설 운영은 완전히 주민의 몫이 된다.
경남 진주 새뜰마을사업 거점시설인 대봉새뜰센터 1층에서 카페 대봉숲을 운영하는 정표환 이사장(60)은 “초창기 운영을 도와주던 활동가들이 철수하고 서울로 올라간 게 한 3년 됐다”고 말했다. 지원 사업을 열람하려 해도, 시에 보고할 서류를 만들려고 해도 컴퓨터를 잘 써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따로 서류를 볼 사람을 두고 싶지만 최저임금에 4대 보험, 퇴직금을 감당할 사정이 안 된다고 했다.
같은 사업 거점시설인 새뜰마을 커뮤니티센터에서 식당 옥봉루를 운영하는 김순분 이사(65)도 “젊은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 어렵다. 이전에는 시에서 2년간 월급을 주는 청년 일자리 사업에 선정돼 젊은 직원을 고용했지만, “2년짜리 자리라 그런지 백방으로 알아봐도 오겠다는 사람이 없어 지금은 할 수가 없다”고 했다. 1년에 전기요금과 가스비로 108만 원이 나가고, 회계처리 비용으로 132만 원이 나갔다.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 월급도 겨우 주는데 지원 사업 없이 서류 처리할 사람을 뽑아 월급을 줄 수가 없었다. 정 이사장과 김 이사 모두 도움을 원했다.
▲ 지난 5일, 대봉숲 부엌에서 조합원이 일을 하고 있다. 카페로만 운영하던 대봉숲은 지난달부터 단가가 높은 백숙 메뉴를 추가했다. 정표한 이사장은 “적자지만 어찌해서라도 겨우 끌어나가는 상태”라고 말했다.(왼쪽) 지난 5일, 옥봉루 김순분 이사가 취재팀과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코로나19 전에는 7명이 일했지만, 지금은 예약이 들어오면 김 이사 혼자 문을 연다. 김 이사는 “이 낙후된 데서 이리 좋은 집을 지어놓는 데가 없는데, 좀 잘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오른쪽) 김대선 기자
김은희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 정책연구센터장은 “주민들은 그래도 행정이 이걸 지었는데 설마 무시할까, 좀 지원해 주지 않을까, 전문가나 행정은 5년 동안 열심히 주민 공동체를 활성화해서 주민 역량이 강화되면 스스로 운영할 능력을 갖지 않을까, 같은 환상이 쌍방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업이 끝나 도움 없이 운영을 시작해야 하는 주민 조직은 앞으로도 늘어날 예정이다. 광주시 ‘양3동 별마루 발산 새뜰마을사업’은 2015년 시작돼 연장을 거쳐 지난해에 끝났다. 그러나 사업 과정에서 거점시설로 지어진 양학선 기념관 개관이 밀렸다. 광주시 서구청 관계자에 따르면 양학선 기념관은 지난해 2월에 완공됐지만 전시할 물건을 확보하고 인테리어를 하는 과정에서 늦어졌다. 주민협의체가 운영할 예정이지만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사업종료와 건물 완공이 맞물리면서 양3동 주민협의체는 처음부터 코디네이터 등 지원센터의 도움 없이 거점시설을 운영하게 됐다.
공공성 둘러싼 주민과 행정 불협화음…합의점 필요
거점시설 운영을 민간조직에 맡기는 이유 중 하나는 수익창출이다. 세종시 침산마을 새뜰마을사업 거점시설이 2년 넘게 운영 주체를 찾지 못하던 2020년, 세종시 관계자는 국토연구원이 진행한 전화면접조사에서 “수익창출에 유리하도록 사업지구 외 주민조직이나 민간조직을 운영 주체로 선정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 등 민간조직은 수익창출을 목표로 거점시설을 맡지만, 거점시설은 공공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설이다. 수익을 창출하되 어떻게 공공성을 실현할지, 기준이 필요하다.
2018년, 부산 사상구에서 거점시설 새밭마을 에코하우스(현재 ㅌㅌㅌ센터)를 운영하기로 한 팔방미인 협동조합 김진순 이사장(43)은 설계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시설을 운영해야 할 협동조합이 쓸 사무실이 없었다. 김 이사장과 조합원들이 그 점을 지적하자 설계를 맡은 모 대학 교수는 “조합 사무실이 왜 필요하냐”고 반문했다. 조합원들은 2년 가까이 사무실 없이 앞이 트인 안내데스크 뒤에서 일했다. 김 이사장은 지난해에야 “리모델링을 해 학장천 역사관을 정리하고 사무실도 만들었다”고 했다. 구청과 함께 준비해 신한희망재단이 국토부와 함께 하는 사회발전기금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덕분이었다.
▲ 지난해 11월 8일, 팔방미인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거점시설 행복센터와 에코센터 앞에서 벼룩시장이 열렸다. 트트트 센터 페이스북 갈무리
김 이사장은 운영 주체가 쓸 사무실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구청 생각은 달랐다. 2015년까지 해당 사업을 담당한 도시재생과 곽인구 과장은 “거점 공간은 일부의 전유물이 아닌 주민 전체의 공간이다. 운영주체가 결정됐다고 해서 그 팀이 계속 그 거점시설을 운영하는 것도 아니다 보니 사무실을 두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2016년부터 2년간 사상구청 담당자였던 전호열 팀장도 “한 사람의 시설이 아니라 전체의 건물”이라고 강조했다. 전 팀장은 “실제 평수가 크지 않은 건물이다. 운영주체라지만 거기에 조합만을 위한 사무실을 두면 어떻게 보이겠느냐”고 말했다.
김 이사장도 공공성을 염두에 두고 시설을 운영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김 이사장은 “일하시는 분들 수당 주고 남는 돈은 100% 지역에 환원한다. 복지관에 현금 기부하고 현물 기부도 한다. 공식적으로 진행한 프로그램 결과로 기부를 하기도 한다. 기부 영수증이 나오는 곳으로만 기부하고 있다. 주민들을 위해 인당 1만 원짜리 공예 프로그램을 무료로 열기도 한다. ㅌㅌㅌ센터 위층에 구가 운영하는 경로당이 있어 경로당으로 음료도 보낸다. 세금과 인건비를 빼면 돈을 전혀 쓰지 않는다. 심지어 이사장은 무보수로 하고 있다. 한 달에 2~30만 원 적자가 나면 사비로 메꾼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어차피 무료로 운영하는 시설 아니냐”고 생각한다. “내 세금 내고 구청에서 하는 곳인데 왜 돈을 받느냐고 민원이 들어왔다. 새벽마다 개인번호로 문자를 보내 항의하기도 했다”고 김 이사장은 말했다. 김 이사장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갈 곳이 없는 아이 어머니들, 놀 곳 없는 중, 고등학생들, 어르신들이 와서 쉬기를 바라고 거점시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주민협의체로 사업 계획 단계부터 참여한 김 이사장은 “컵 값, 휴지 값이라도 내야 하지 않겠냐”고 주민들을 설득했다.
상업시설로 거점시설을 운영하는 주민들은 공공을 위해 거점시설을 운영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최소한의 수익을 내야 운영이 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경남 진주 거점시설을 운영하는 대봉숲 정표한 이사장도 “내 고향이니까 봉사하는 것이지, 돈도 안 되고 새벽에 장 봐야 하고, 이렇게 시간 쪼개서 누가 하겠느냐”고 했다. 정 이사장은 봉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최저임금도 받지 않고 일하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거점시설을 어떻게 운영하는 것이 공공성을 확보하는 길인지, 공공성과 수익성을 함께 가져가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운영 주체와 행정, 이용하는 주민 모두 기준이 불분명한 셈이다. 김은희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 정책연구센터장은 “도시재생사업이 주민들에 의해서만 주도되는 게 아니다. 주민도 하나의 주체, 행정도 하나의 주체로 1/n을 하는 협력적 계획이 도시재생이다. 주민 의견이 언제나 옳지는 않다. 다양한 의견들이 우리가 어떻게 갈까 계속 논의해 나가면서 부분 집합을 만들어서 실행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합의를 강조했다.
‘주민 편의’ 아닌 짐 된 거점시설…더 긴 시간 내다봐야
도시재생뉴딜사업의 사업기간은 5년, 새뜰마을 사업기간은 4년이다. 이 기간이 끝나면 거점시설 운영에 대한 지원은 사라진다. 대구대 지리교육학과 이영아 교수는 “거점시설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주민의 역량이 5년 만에 강화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주민들로서도 한정된 기간이 부담스럽다. “주민이 (거점시설을 운영하지 않고) 빠지는 이유는 5년이 지나면 예산이 끊겨 더 이상 안 될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미래가 안 보이니까 빠지는 것이다.”
사업기간이 끝나고 나면 평가가 시작된다. 새뜰마을사업 매뉴얼을 보면 지역발전위원회와 국토교통부, 지자체, 주택공사가 사업을 평가한다. 평가 항목은 사업기획, 사업 집행, 사업 성과로 이뤄진다. 사업기획과 집행과정에서는 사업을 어떻게 추진했는지, 주민에게 사업을 충분히 홍보하고 주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는지 등을 평가한다. 사업 성과에서는 사업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 지역 내외의 파급효과는 어떻고 신규 공간의 운영관리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평가한다.
이 평가 결과가 예산을 결정한다. 추진실적 평가 결과에 따라 지자체가 받는 총 국비 지원액이 조정된다. 지자체가 좋은 평가를 받으면 국비를 우선 지원받고, 준비도가 낮으면 계획을 보완하는 동안 사업비 교부가 지연된다. 우수 사업지로 뽑히면 담당 공무원과 전문가, 주민에게 표창도 수여한다. 하지만 우수 사업지 선정이 지속가능한 거점시설 운영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옥봉루와 대봉숲이 경영난을 겪고 있는 경남 진주시 옥봉지구와 비봉지구도 2019년 국토교통부가 주관한 도시새뜰마을사업평가에서 우수사례로 선정됐다. 진주시는 당시 우수기초자치단체로 표창을 받았다.
이 교수는 평가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시설을 짓고 그걸 기한 내에 모든 성과를 내고 끝내라고 하는 게 문제다. 시설을 짓는 속도로 주민의 역량이 강화되지 않을 것이고, 지역 주민들이 동네에서 같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역량을, 특히 경제적 역량까지 갖추게 하려면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 교수는 특히 “도시재생 사업을 왜 할까를 고민해 보면, 거점시설을 만드는 것도 주민들이 안정적으로 20년, 30년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역량 강화도 중요하지만 결국 그 지역 안에서 지속 가능하게 살 수 있는 삶의 공간을 만드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최대 실내 플라워쇼 '대구 꽃박람회'개막
2022년 대구 꽃 박람회 주제관 모습 대구시 제공
국내 최대 규모의 실내 플라워쇼인 '제14회 대구꽃박람회'가 6월 2일부터 4일까지 3일간 엑스코에서 열린다.
이번 박람회는 'The power of Flowers(꽃의 힘)'주제로 화훼산업 관련 172개 기관이 참여하고 유명 플로리스트 700여 명의 화훼 작품도 선보인다.
박람회는 대형 화훼조형이 전시될 '주제관'과 엄선된 10개 작품으로 꾸며지는 '청라상관', 경상북도와 고양시 등 전국의 화훼 문화를 알리는 '지자체관', 야생화, 희귀식물, 테라리엄, 다육식물, 생활 꽃꽂이 등이 다양하게 전시되는 '일반 조성관'을 비롯해 화훼 관련 상품을 체험,구매할 수 있는 '기업관'(플라워 아울렛)으로 구성된다.
특히 지역 청년 플로리스트들의 합동 작품 전시회와 청년 플로리스트 꽃꽂이 시연이 진행되며, 화훼인들의 실력을 겨루는 '대구생활화훼경진대회'도 함께 열린다.
또,일반인들이 쉽게 화훼 문화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힐링 원예종합체험존, 어린이 체험, 꽃종자 파종, 꽃 해설투어, 데몬스트레이션 등 다채로운 체험행사도 마련됐다.
대구CBS 지민수 기자
1750억원 들여 해안형 수목원 만든다
전북 새만금에 국내 최초 해안형 수목원이 들어선다.
31일 새만금 농생명용지에서 국립새만금수목원 기공식이 열렸다. 수목원은 2026년까지 사업비 1750억원을 들여 조성한다.
새만금 농생명용지 151㏊에 전시·문화지구, 경관지구, 연구지구 등이 들어선다.
수목원은 해안 식물자원 수집과 희귀·멸종 식물 보존, 간척지·해안 도서 식물자원 연구 및 전시, 생물다양성 교육 장소로 쓰일 예정이다.
전북도는 새만금수목원 조성으로 국내외 다양한 식물자원 확보와 관광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다. 전북도 관계자는 "새만금수목원은 산림자원 산업화와 지역발전을 선도하는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도민 삶에 여유와 건강을 더해줄 산림치유 환경 조성에 힘쓰겠다"고 전했다.
kang1231@fnnews.com 강인 기자
"병든 지구, 생태계 모든 부문에서 위험지대 "-네이처지
[돌로우(소말리아)=AP/뉴시스] 몇년 째 우기에 비가오지 않는 극심한 한발로 2022년 9월 말라죽은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가축과 당나귀의 시신 사진
지구 전체가 과학적으로 위험 경계선으로 설정된 8개항 가운데 7개가 이미 경계를 넘어 "위험 지대"가 되었으며 자연 지역의 과열현상 뿐 아니라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의 삶의 질 면에서도 한계에 이르렀다는 새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국제 과학자 네트워크 '지구위원회'( Earth Commission)가 5월 31일자 '네이처' 최근호에 발표한 이번 논문은 지구 생태과학의 수호와 환경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고 사상 처음으로 "정의"(justice)와 관련된 대책들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주목 받고 있다. 세계 각 나라들의 경우와 인종· 민족공동체(ethnicities), 성(gender)문제 등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이 논문에는 기후변화, 대기 오염, 비료 과사용으로 인한 식수의 인과 나트륨 오염, 식용 지하수 고갈 문제, 식수용 표층수 문제 등 자연환경 문제와 인간이 건설한 환경 방제시설 시스템 등을 폭넓게 다루었다. 현재 지구촌 전체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단지 대기 오염만이 아니라는 취지에서다.
스웨덴 연구자들의 발표에 따르면 대기 오염은 각 지역에서 위험 수준에 이르렀고 기후변화는 인류전체의 위험 수준을 넘어서긴 했지만 지구 전체의 시스템을 위한 안전 가이드라인까지는 아직 넘지 않은 수준이다.
연구자들이 지적한 지역별 "핫스팟"( hotspots)에 해당되는 곳들은 동유럽, 남아시아, 중동,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일부와 브라질 멕시코 중국의 대부분, 미 서부지역 일부 등으로 대부분 기후변화 피해가 심한 곳들이다.
아직은 지구 전체의 3분의 2는 식수 안전의 위험 수위를 넘지는 않고 있다고 논문 저자인 과학자들은 밝혔다.
워싱턴 대학교의 기후변화 및 공공 보건 전문가인 공동 필자 크리스티 에비 교수는 "지구의 시스템 경계지역 대부분은 위험지역에 속해 있다"면서, 앞으로 개인 보건의료 검진 처럼 지구 전체에 대한 연간 정밀 검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구위원회의 공동의장이며 암스테르담 대학교 환경학부 교수인 조이타 굽타 박사는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 의사들 의견으로는 지구는 현재 심한 중병에 걸려있으며 여러 부문에 걸쳐 병세가 진행중이다. 지구의 병은 그 위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직은 말기 증상의 진단은 내리지 않았다며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탄소연료 사용을 중단하고 땅과 물을 복원하는 노력 등 변화를 시도한다면 지구는 회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필라델피아=AP/뉴시스] 기후변화로 폭우와 홍수에 시달리는 미 동부 필라델피아 시에서 경찰관이 물에 빠진 차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2023년 3월 13일자 '네이처 워터'지 사진) 2023.06.01
"하지만 우리는 지금 모든 방면에서 기본적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계속 전진하고 있다. 따라서 다시는 회복이 불가능한 한계선에 이르기 전에 지구가 처해있는 위험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번에 발표한 도발적인 논문의 목적이다"라고 논문 공동집필자인 독일의 요한 록스트롬 포츠담 기후변화 연구소장은 말했다.
이번 논문은 약 40명의 과학자들이 각기 환경분야의 일정 부문을 맡아서 지구 환경의 각 항목에 따라 견디어낼 수 있는 한계점을 설정하고 얼마 만큼이 안전하고 어느 정도가 인류에게 해로운지를 결정하면서 이를 '정의의 문제'로 다루었다.
록스트롬 연구소장은 이런 포인트의 설정이 지구의 환경적 위험이 점점 높아지고 아직은 치명적 단계에 이르지 않은 시점에서 인류를 위한 하나의 "안전 울타리"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업화 이전 시대를 기준으로 섭씨 1.5도 상승이 위험의 최저 경계선이라는 2015년 파리 기후변화회의 발표 이후 세계는 지금까지 1.1도의 온도 상승을 겪으면서도 아직은 위험의 막판 경계를 넘지 않았다고 방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록스트롬과 굽타 등 연구자들은 이 선을 넘지 않았다는 것이 지구촌 사람들이 해를 입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라며 "지속가능한 정의의 실현"을 위한 인류의 각성과 노력을 촉구했다./ 뉴시스
IAEA ‘맹탕’ 보고서…오염수 처리 핵심 ALPS 성능은 빠졌다
31일 원자력기구 ‘확증 모니터링 보고서’ 공개
시료분석 결론으로 “도쿄전력 측정 정확” 제시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 있는 오염수 저장탱크들. 일본은 이렇게 저장 중인 원전 사고 오염수 133만t을 30년에 걸쳐 바다로 방류할 계획이다. 연합뉴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분석 결과를 담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확증 모니터링 보고서가 31일 공개됐다. 정부는 오염수 문제에서 ‘객관적·과학적 조사’를 강조하며 이 분석 보고서에 큰 의미를 부여해왔지만, 정작 보고서에는 오염수 처리의 핵심인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의 신뢰성을 판단할 말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원자력기구가 31일 공개한 보고서는 일본 도쿄전력과 원자력기구 산하 3개 연구소, 한국·미국·프랑스·스위스 등 4개국 분석기관이 참여한 실험실 간 비교(ILC) 분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분석한 시료는 일본이 알프스로 처리하고 오염도 분석을 한 뒤 방류 준비가 됐다고 판단한 오염수(알프스 처리수) 저장탱크(K4-B)에서 채취한 것이다.
이 분석 결과를 보면 시료 속 삼중수소 농도의 참조값(분석기관들 측정값의 평균 개념)은 리터당 약 15만2300Bq(베크렐)로, 일본 방류기준치 6만Bq/L의 약 2.5배로 나타났다. 하지만 나머지 27개 주요핵종의 참조값은 탄소14 14.01Bq/L, 코발트60 0.3764Bq/L, 스트론튬90 0.405Bq/L, 세슘137 0.4705Bq/L 등으로 모두 규제기준치의 1%를 넘지 않는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시료 채취 위치를 고려할 때 당연한 분석 결과다.
보고서는 시료에서 주요 핵종에 포함되지 않은 58개 핵종도 검출됐으나, 이들 모두 유의미한 수준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이 부분도 예상했던 대로다. 원자력기구 전문가 특별팀은 지난해 말 3차 중간보고서에서 “분석 시료에 추가 방사성핵종이 상당한(또는 검출가능한) 양으로 존재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다.
원자력기구가 일본이 이미 방류 기준을 충족한다고 판단한 시료를 분석 대상으로 한 것은 오염도 확인이 분석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자력기구 특별팀은 3차 중간보고서에서 “도쿄전력과 일본 당국이 제공하는 자료의 정확성에 신뢰를 주려는 것”이 시료 채취·분석을 포함한 ‘확증 활동’의 목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 원자력기구는 “도쿄전력은 측정 및 기술 역량에서 높은 수준의 정확도를 보여줬다”는 것을 이번 보고서의 첫 번째 결론으로 제시했다.
지난 24일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알프스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의원 질의에 “원자력기구 분석 보고서가 나오니, 그걸 보고 판단하면 될 것”이라는 취지로 답변했다. 하지만 이번 원자력기구 오염수 분석 결과로 알프스의 신뢰성을 판단할 수 있다는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은 성립되기 어렵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일본이 방류를 시작한 이후 지속해서 알프스가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 판단할 수 있으려면 알프스 처리 단계별로 시료를 교차 분석해 검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임승철 원자력안전위원회 사무처장은 “알프스 성능 검증은 현장 시찰단이 일본에서 가져온 자료까지 다 검토해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황령산 전망대 이어 호텔까지.. '난개발' 우려
부산 황령산 중턱에 대규모 호텔과 상업시설 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현재 산 꼭대기에도 120m짜리 전망대 건설이 진행 중인데, '난개발'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리포트▶ 부산 황령산 중턱에 자리잡은 스키돔입니다. 지난 2007년, 환경훼손 논란 속에 12만㎡ 규모 임야를 들어내고 지어졌지만, 사업 실패로 1년도 안 돼 문을 닫고
지금까지 15년째 방치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대규모 숙박·상업시설 건설이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취재진이 확인한 개발 계획입니다. 시설 면적은 8만여㎡. 지하 5층, 지상 8층짜리 건물 2개동을 짓겠다는 겁니다.
한 개동은 호텔,한 개동은 쇼핑몰 같은 상업시설로 사용한다는 계획입니다.
사업비만 8천억 원 넘게 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업자는 산 중턱을 복합휴양시설로 개발하겠다며 지난 22일, 부산시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했습니다.
[ 부산시 관계자 ]"이번에는 위원회 자문 그런 차원이 아니고,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올리려고 (사업계획서를) 들고 왔거든요. 그때 자문을 할 때 그림하고 이번에 온 그림은 많이 다르거든요."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환경단체는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미 산 꼭대기에 120m짜리 전망대와 케이블카 건설도 진행 중인데, 이번에는 산 중턱에까지, 사실상 난개발이라는 겁니다.
대규모 개발에 따른 환경훼손은 물론, 공공의 자연 경관을 특정업체에게 넘겨주는 꼴이라는 지적입니다.
[ 도한영 / 부산경실련 사무처장 ] "그것이 들어서면 그 주변에 또 다른 개발들이 또 이어질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쪽 주변 일대는 실제로 개발 지역으로 둔갑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사업자 측은 가능한 한 사업 기간을 줄여 내년 말에는 착공에 들어간다는 계획인데,
사업계획서 내용을 수정·보완해야 한다며 부산시에 제출한 계획서를 철회한 상태입니다.
황령산 정상 봉수전망대 건설 사업은 부산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해
현재 환경영향평가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MBC 뉴스 현지호입니다.
한반도 생태보고 가로지르는 440개 송전탑…산불 진화도 난관
녹색연합, ‘500kV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 건설 사업 생태계 위협 지적
강원도 함백산에 설치된 송전탑. 게티이미지뱅크
신한울원자력발전소 등 동해안에서 동서를 가로질러 수도권까지 연결하는 ‘500kV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 건설 사업이 멸종위기 1급 산양 서식지 등 생태계를 위협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녹색연합은 1일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전력공사의 500kV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 건설 사업이 백두대간 보호지역과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을 관통하는 계획으로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500kV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는 2025년을 준공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향후 울진 신한울원자력발전소, 삼척화력발전소 등 동해안에 형성되는 대규모 발전단지에서 수도권으로 전력을 수송할 예정이다. 공사 구간은 총 230km로 경북, 강원, 경기 등 3개도 10개 지자체를 경유해 산악지역에 철탑 440기가 건설될 계획이다.
녹색연합은 공사 구간 가운데 경북 울진, 봉화 등지가 포함된 동부 1·2·3구간에서 대규모 자연 훼손이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녹색연합은 “경북 울진 북면, 봉호 석포·소천·춘양은 낙동정맥 응봉산, 백병산 일대에서 태백산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생태축의 대표적인 생태보고”라며 “국내에서 야생동물의 가장 안정적인 서식지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이 지역에는 멸종위기 1급이자 천연기념물인 산양을 비롯해 하늘다람쥐, 담비, 수달, 삵, 무산쇠족제비 등이 서식하고 희귀식물인 큰잎쓴풀, 꼬리진달래, 고란초, 수정난풀, 주목, 말나리, 백작약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구간은 지난 4월까지 환경부 환경영향평가에서 조건부 동의로 통과됐다.
녹색연합 제공
또한 이 단체는 산불 빈도가 증가하는 가운데, 소나무 숲이 발달한 이 지역에 송전탑과 송전선로가 들어서면 산불 진화의 핵심인 헬기의 안전을 위협해 산불 위험을 높일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녹색연합은 “대형 시설물을 피하기 헬기가 높게 날면서 불길에 뿌리는 물이 산개되어 집중 타격이 어려워진다”며 “위급한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초고압송전선로 사업 계획에 대한 재검토와 보호구역을 지킬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지구 환경, 대기오염 빼곤 모든 면에서 ‘중병 상태’
8대 환경 지표로 본 세계 지역별 환경 위기 상황. (짙은 색일수록 위험이 높음.) ‘지구위원회’ 논문 갈무리
지구 환경이 대기오염을 빼고 나머지 모든 측면에서 아주 위험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자연·사회과학자들의 국제 모임인 ‘지구위원회’는 31일(현지시각) 학술지 <네이처>에 실은 ‘지구 시스템의 안전하고 정의로운 경계’라는 논문에서 ‘정의’ 개념을 반영한 지구 환경 지표 8가지의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논문은 기후, 지구의 기능적 완전성, 자연 생태계, 지표수, 지하수, 질소 오염, 인 오염, 대기 오염 등 8개 지표 가운데 대기 오염만 ‘안전하고 정의로운’ 수준으로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기후 지표는 정의롭지는 못하지만 아직은 안전한 수준 범위 안에 있었고, 나머지 6개 지표는 정의롭지도 안전하지도 못한 수준이었다. 논문이 제기한 ‘정의’ 개념은 지구 생태계 생물종 사이의 정의, 현 세대와 미래 세대 인류 사이의 정의, 국가 사이의 정의 등을 반영한 것이다.
지구위원회의 공동 의장인 조예타 굽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학 교수는 기자회견을 열어 “지구가 사람처럼 해마다 건강검진을 받는다면 의사는 지금 지구가 여러 영역과 시스템 차원에서 매우 아프고 이 질병이 지구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논문은 지구 기온의 경우 산업화 이전보다 1℃ 높으면 심각한 추가 기후 위기에 노출되는데, 현재 상태는 이 단계를 이미 넘어선, 1.2℃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자연 생태계의 경우 전세계의 50~60%가 보존되어야 ‘안전한 수준’을 충족시킬 수 있으나 현재는 45~50%만 보존된 상태로 나타났다. 또 사람이 살고 있는 땅의 31~36%만 안전하고 정의로운 수준을 충족시키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지표수와 지하수의 경우는 각각 전체의 66%와 53%만 안전하고 정의로운 상태였다.
논문의 교신 저자인 요한 록스트룀 ‘포츠담 기후영향 연구소’ 공동 소장은 “지구 시스템이 안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생물물리학적 능력의 한계 지점에 도달했다”며 “작은 변화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티핑 포인트’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전세계 범위에서 생명 유지 시스템이 점점 더 영구적인 손상을 입고 있다”고 경고했다.
논문은 환경 위험이 특히 심한 지역으로 러시아를 포함한 동유럽, 인도 등 남아시아, 중동,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중국과 한국 등 동북아시아 일부, 아프리카 남동부와 남아메리카 일부 지역, 미국 서부 해안 지역 등을 꼽았다. 논문은 “이들 지역은 인구밀도가 특히 높아서, 세대간 정의 관점에서 특히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지구의 '건강 한계선'이 무너진다... "환경 지표 대부분 '위험 구역' 진입“
2019년 12월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의 나우라 인근에서 발생한 산불을 소방관들이 진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잇따르는 대형 산불은 폭염과 가뭄이 초래한 자연재해다. 나우라=AFP 연합뉴스
지구가 무너지면 인간도 죽는다. 인류 생존의 전제는 건강한 지구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모여 지구의 '건강 상태'를 측정했더니 8개 지표 중 7개가 이미 '위험 구역'에 접어들었다는 진단이 나왔다. 지구 시스템이 한계를 넘어서면 자연의 일부인 인류도 절멸할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다.
8개 지표 중 7개 '위험 구역' 진입
미국 워싱턴대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등의 연구진이 모인 지구위원회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과학저널 네이처에 이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 보고서의 공동저자인 요한 록스트룀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 소장이 2009년 처음 제시한 '지구 위험 한계선' 개념을 8개 지표로 정량화해 평가한 결과다.
위원회는 기후와 생물다양성, 물, 토지, 대기, 자연생태계 등에서 △기온 상승 △지표수 △지하수 △미개발 자연생태계 △도시·농경지 비율 △질소 △인 △에어로졸 등 8개 지표를 뽑아 현 상태를 측정했다. 이 중 에어로졸 오염물질 농도를 제외한 7개가 모두 '안전하고 적절한 경계'를 넘어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위험 구역에 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테면 연구진은 안전하고 적절한 경계 내 지구 평균 기온 상승폭을 섭씨 1.0도로 봤다. 그러나 이미 산업화 이전보다 1.2도 올랐다. 또 지표면의 50~60%는 온전한 자연 생태계로 덮여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45~50%에 그쳤다. 하천 등 지표수 흐름이 20% 이상 인위적으로 막히면 안 되지만, 지구상 3분의 1 이상(34%) 흐름이 원활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충되는 속도가 줄어드는 속도보다 빨라야 하는 지하수 상황도 열악했다.
지구 환경 지표 위험도 수준. 그래픽=김대훈 기자
연결된 지구 시스템… "인류 생존 임계점 안 넘어야"
특히 문제는 지구 시스템이 상호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지구 시스템 안의 이들 지표가 하나라도 임계점을 벗어나면, 도미노가 무너지듯 연쇄 효과로 결국엔 인류 생존을 위협할 것이라는 얘기다. 록스트룀 소장은 "기후 변화로 인한 폭염, 가뭄, 홍수뿐 아니라 식량 안보 저하, 수질 악화, 지하수 고갈, 생계 여건 악화 등이 초래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기후위기를 해결하려면 다른 지표들도 경계 내에서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지구는 약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인류의 존속을 위해선 석탄·석유·천연가스 사용, 토지·물을 다루는 방식 등에서 전지구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번 보고서에 대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기후변화나 생물다양성 감소가 지구 자체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춰 온 기존 연구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인류에 끼치는 피해를 측정했다"고 평가했다. 생태 지표뿐 아니라 국가, 인종, 성별, 세대 등과 관련한 '정의' 항목도 추가해 과학적 분석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기후위기를 초래한 책임, 그에 따른 피해를 따져보면 '불공정'이라는 결과가 나온다는 이유다.
실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중 가장 부유한 1%의 탄소 배출량은 가장 가난한 50%의 두 배에 달한다. 보고서 공동저자인 슈메이 바이 호주국립대 교수는 "이 연구는 인간의 필요와 영향에 숫자를 매김으로써, 지구 보호가 지역사회나 경제와 얼마나 불가분의 관계인지를 보여 준다"고 FT에 말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땅 사고 27년, 터 파고 10년…부산롯데타워 8월에야 첫 삽
높이 변경 따른 절차 이달 마무리
롯데, TF 꾸리고 사업 본격 개시
완공 시점은 3~4년 이후가 될 듯
원도심 상권 반등 역할에 기대감
터파기 공사 후 방치된 부산 중구 부산롯데타워 현장. 롯데쇼핑은 타워 높이를 변경한 데 따른 행정절차를 이달 중 마무리 짓고, 오는 8월 착공할 예정이다. 정종회 기자 jjh@
20년 넘게 방치됐던 부산 중구 중앙동 부산롯데타워 건립이 드디어 본격화된다.
1일 부산시와 롯데에 따르면 시는 이달 초 부산롯데타워 도시계획사업실시계획 변경 인가 등의 행정절차를 마무리할 예정이며, 롯데는 오는 8월 착공한다. 롯데가 1996년 옛 부산시청 터를 매입한 지 27년 만에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게 되는 셈이다. 롯데는 별도의 태스크포스(TF)를 신설해 부산롯데타워를 부산의 대표 랜드마크 건축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부산롯데타워는 2000년 숙박·업무시설 등을 갖춘 107층(428m) 건물로 건축허가를 받았으나 사업성 확보 방안을 두고 장기간 표류했다. 2013년 터파기 공사만 마무리된 상태로 멈춰 있다. 그러다 2019년 공중수목원을 갖춘 56층(300m) 규모의 전망타워로 계획이 축소됐다. 이듬해 시 경관심의위원회에서 재심 결정이 나자 다시 흐지부지됐다. 시와 롯데는 지난해 6월 부산롯데타워 건립 사업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다시 사업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롯데는 지난해 하반기 타워를 67층(342m)으로 올리는 안을 제출해 올 초 경관심의 등을 잇달아 통과했다.
부산롯데타워 준공 예정일은 2025년 말이지만 행정 절차가 6개월 정도 늦어진 데다 공사 기간을 고려하면 준공은 1~2년 정도 늦어질 전망이다. 시 총괄건축과 관계자는 “지난 1월 교통영향평가 변경 심의, 3월 사전재난영향성검토위원회 심의, 건축위원회 경관 심의, 건축위원회 구조·설비 심의 등을 진행했다. 초고층 건물이다 보니 심의를 거치면서 여러 차례 보완 사항이 있었다”며 “기존 설계안은 착공 후 일부 변경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롯데타워는 엘시티 랜드마크타워동(411.6m)에 이어 부산에서 두 번째로 높다. 국내 전체로 보면 서울 잠실 롯데타워 123층(554.5m), 엘시티에 이어 세 번째다. 시와 롯데는 2030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가 부산에 유치되면 부산롯데타워가 엑스포를 여는 북항 일대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또 부산롯데타워가 완공되면 해운대, 서면 등에 주도권을 빼앗긴 원도심의 관광을 활성화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영도구를 중심으로 원도심에 관광객이 모이고 있지만 확실한 킬러 콘텐츠가 없어 아쉽다는 평이 있는데, 부산롯데타워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줄수 있을 것라고 관광업계는 전망한다.
롯데쇼핑은 착공을 앞두고 이미 지난달 17일 부산롯데타워 TF를 신설해 이진우 상무를 TF장으로 보임했다. TF는 부산롯데타워 완공 때까지 시공·설계·감리를 맡는 것은 물론 시설 운영 방안 마련 등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이 TF장은 “부산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되도록 그룹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롯데타워 지상 11층까지에는 현재 운영 중인 롯데백화점 광복점과 높이를 맞춰 판매시설이 입점한다. 55층부터 67층까지에는 전망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1.5°C 지구 가열…진짜 위험한 급진주의자는 누구인가
화력발전소. 게티이미지뱅크
억겁의 세월 동안 태양에너지를 축적해 만들어진 석유와 석탄, 즉 화석연료를 태우면 에너지가 다시 나온다. 이러한 에너지에 기반하여 오늘날 문명이 구축되었다. 그런데 기후위기를 막으려면 현재 알고 있는 화석연료 매장량의 대부분을 땅속에 그대로 묻어 두어야 한다. 석기 시대가 돌이 없어 끝나지 않은 것처럼 지금 시대가 화석연료가 없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계속 증가하여 2019년에는 590억tCO2_eq(이산화탄소 상당량·모든 종류 온실가스를 이산화탄소로 환산한 양)에 달했다. 2010년과 1990년보다 2019년 배출량은 각각 약 12%와 54% 증가했다. 연평균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율은 2000~2010년 동안 2.1%였지만 2010~2019년 동안 1.3%로 줄었다.
2019년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중 에너지 부문이 약 34%, 산업 부문이 24%, 농업・산림과 기타 토지이용 부문이 22%, 운송 부문이 15%, 건물 부문이 6%를 차지했다. 2010년 이후 2019년까지 연평균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율은 에너지 공급(2.3%~1.0%)과 산업 부문(3.4%~1.4%)에서 둔화하였지만, 수송 부문에서는 연평균 약 2%로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온실가스 저감의 핵심은 화석연료 생산과 사용을 줄이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고 토양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줄이거나 토양 탄소 흡수 능력을 향상해야 한다. 이는 2015년 파리 기후변화 협정에 따라 온실가스를 ‘순 배출 제로’(Net Zero Emissions)로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순 배출량은 배출량과 흡수량의 차이이다. 순 배출 제로는 필연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탄소 배출량만큼 인위적으로 흡수하여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개념이다.
‘순 배출 제로’ 포괄하는 ‘탄소중립’으로
순 배출 제로는 탄소중립이라고도 하는데 그 의미가 조금 다르다. 순 배출 제로와 탄소중립은 전 지구 규모에서 같은 의미이지만, 국가 또는 지역 규모에서 다른 의미를 가진다. 순 배출 제로는 이산화탄소를 보고하는 주체(국가, 지역 또는 부문)의 직접 통제 또는 영토적 책임 하에 있는 배출량에 적용된다. 한편, 탄소 중립은 기업, 상품과 서비스 등에도 적용해 일반적으로 ‘스코프(Scope) 3’ 또는 ‘가치사슬 배출’이라고 하는, 해당 주체의 직접 통제를 벗어난 배출과 저감도 포함한다. 즉, 탄소중립에 포함되는 배출과 저감의 개념이 순 배출 제로보다 넓다.
파리 기후변화 협정은 전 세계 국가들에게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책임과 역량을 고려하여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자발적으로 정하도록 했다. 2021년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이전에 발표된 NDC에 따른 2030년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9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 경우 배출량은 지구 가열을 1.5°C로 막는 확률이 50%인 경우(1.5℃(>50%))나 2℃로 막는 확률이 67%인 경우(2℃(>67%))보다 크다. 이 차이를 ‘배출량 격차’라고 한다. COP26 이전 NDC를 2030년까지 유지하고 그 후에도 혁신적인 조치를 하지 않으면, 21세기 말이면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2.8℃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2020년 말까지 이행된 정책에 따른 2030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NDC 배출량보다 4~7GtCO2_eq 더 많다. 이 차이가 ‘이행 격차’이다. 이 경우 이번 세기말에 지구 평균기온이 3.2℃ 상승하게 될 것이다.
기온 상승은 지금까지 얼마나 온실가스를 대기 중에 축적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인간 활동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1000GtCO2 증가할 때마다 지구 평균 기온은 0.45℃ 상승한다. 이 관계는 기온 상승을 막으려면 누적 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특정 수준으로 제한하는 누적 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탄소 예산’이라 한다. 더 높은 기온상승을 허용할수록 탄소 예산은 커진다. 탄소예산을 산업혁명 이전을 기준으로 표현할 때는 총 탄소 예산이라고 하며,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할 때는 잔여 탄소 예산이라고 한다.
2015년 12월12일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각국 대표단과 국제기구 관계자들이 파리기후협정 채택에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구 온도가 오르는 걸 1.5℃로 제한할 확률이 50%인 경우(1.5℃(>50%)), 총 탄소예산은 약 2900GtCO2이다. 1850년부터 2019년까지 누적 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400GtCO2으로 총 탄소 예산의 약 5분의 4에 해당한다. 이때 잔여 탄소예산은 500GtCO2이다. 2019년 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약 50GtCO2이므로 이 수준으로 배출하면 2020~2030년 동안 순 누적 배출량만으로도 (1.5℃(>50%)에 대한) 잔여 탄소예산을 소진하게 된다.
지구가열 2℃(>67%)인 경우 총 탄소예산은 약 3550GtCO2이며 1850년부터 2019년까지 누적 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총 탄소예산의 약 3분의 2에 해당한다. 이때 잔여 탄소 예산은 1150GtCO2이다. 83% 확률로 지구가열 2℃를 막으려면 잔여 탄소예산이 900GtCO2이고 50% 확률에서는 잔여 탄소예산이 1350GtCO2이다. 확률이 커질수록 잔여 탄소예산이 적어진다.
지구가열을 막을 수 있는 확률은 100%가 아니다. 100%로 1.5℃를 막는다고 했을 때 남아있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이미 전혀 없기 때문이다. 1.5℃뿐만 아니라 2℃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직 잔여 탄소예산이 남아있지만 어디까지나 확률적이지 절대적으로 안전한 것은 아니다. 온실가스 배출량도 빠르게 줄이고 운도 좀 따라줘야 지금보다 더 악화된 상태에서 멈출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다는 게 현재 기후 현실이다.
기존 화석연료 기반시설을 예정된 수명까지 그대로 운영하는 경우, 누적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약 700GtCO2에 이르므로 기온 상승 폭이 1.5℃를 넘게 된다. 여기에 계획 중인 화석연료 기반시설까지 더하면, 누적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약 900GtCO2이므로 2℃에 다다를 수 있다. 기후를 안정시킨다는 것은 현재 운영하거나 계획 중인 화석연료 기반시설을 예정된 수명까지 운영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지구가열을 2℃(>67%) 이하로 제한하면 화석연료 기반시설이 좌초자산이 될 수 있다. 2015년부터 205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좌초자산으로 인한 가치하락은 약 1조~4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2℃ 상승을 막으려면 현재 파악된 석탄 매장량 약 80%, 가스 매장량 50%, 석유 매장량 30%를 사용할 수 없다. 지구가열 1.5℃ 이내로 제한하려면 훨씬 더 많은 매장량을 그대로 남겨야 한다.
누적 배출량과 그에 따른 지구 평균기온 변화 (a) 지구가열 1.5℃와 2℃ 이하로 막기 위해 허용 가능한 탄소 예산. 남은 탄소 예산에 포함된 가는 선은 비 이산화탄소에 의한 지구가열로 인한 불확실성을 나타낸다. 화석 연료 인프라 배출량에 포함된 가는 선은 민감도 범위를 나타낸다. (b) 누적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지상 기온 상승 간의 관계. 과거 자료(검은색 가는 선)는 1850~1900년 기간을 기준으로 상승한 관측 지상 기온 대비 과거 누적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보여준다. 색깔이 있는 부분은 지상 기온 예측 범위이며 굵은 중앙선은 각 시나리오에서 누적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중간 추정값을 나타낸다.
누적 배출량과 그에 따른 지구 평균기온 변화 (a) 지구가열 1.5℃와 2℃ 이하로 막기 위해 허용 가능한 탄소 예산. 남은 탄소 예산에 포함된 가는 선은 비 이산화탄소에 의한 지구가열로 인한 불확실성을 나타낸다. 화석 연료 인프라 배출량에 포함된 가는 선은 민감도 범위를 나타낸다. (b) 누적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지상 기온 상승 간의 관계. 과거 자료(검은색 가는 선)는 1850~1900년 기간을 기준으로 상승한 관측 지상 기온 대비 과거 누적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보여준다. 색깔이 있는 부분은 지상 기온 예측 범위이며 굵은 중앙선은 각 시나리오에서 누적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중간 추정값을 나타낸다.
인류 욕망과 화석연료, 그대로 그냥 묻어두자
주요 에너지 기업들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화석연료가 이미 어디에 저장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땅속에 묻혀 있는 대부분의 화석연료는 그 곳에 그대로 놔두어야 한다. 풍부한 음식을 옆에 두고 스스로 배고픔을 참을 수 있을까? 기후위기 대응은 인류가 스스로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기온상승을 1.5℃에서 막으려면 2050년 초까지, 그리고 2℃에서 막으려면 2070년대까지 순 배출 제로에 도달해야 한다. 지구가열 1.5℃(>50%)로 제한하는 경로에서 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19년 대비 2030년까지 48%, 2035년까지 65%, 2050년까지 99% 줄어야 한다. 이렇게 초반에 빠르게 줄이고 그 이후 천천히 줄여야 하는 이유는 초반에는 과잉으로 쓰는 화석연료가 많으니 줄이는 것이 수월한 데 반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필수 불가결하게 쓸 수밖에 없는 양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선진 국가 대부분이 2050년 탄소중립(순 배출 제로)을 선언하면서 국제적인 논의는 2030년 온실가스 저감 목표로 옮겨졌다.
탄소를 줄이는 데는 이산화탄소뿐만이 아니라 메탄도 중요하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대기 중에 머무를 수 있는 수명이 훨씬 짧아 메탄 배출을 빠르게 줄이면 지구가열을 빠르게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가열 1.5℃(>50%)로 제한하는 경로에서 전 세계 메탄 배출량은 2019년 수준보다 2030년까지 34%, 2040년까지 44% 감소해야 한다. 2℃로 제한하는 경로에서는 메탄 배출량은 2019년 수준보다 2030년까지 24%, 2040년까지 37% 줄어야 한다.
우리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1990년 리우 정상 회담 이후 2022년까지 유엔 기후변화 협약 당사국 회의를 27번 했다. 하지만 이산화탄소는 배출량은 1990년 이후 2022년까지 무려 67%나 늘어났다. 1990년부터 배출량을 감소시켰다면 시간은 우리 편이었다. 지금 우리가 줄여야 하는 배출량 규모는 훨씬 적을 것이다.
우리는 근시안적이고 무지하고 탐욕스러워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었다. 우리는 미끄럼 타듯 완만하게 온실가스를 줄일 기회가 있었지만, 그 기회를 다 날려버렸다. 이젠 롤러코스터의 하강 경사면처럼 급격하게 줄여야 한다. 이 대응조차도 하지 않으면 곧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만 남았다. 우리는 과학을 무시했고, 우리 앞에 놓였던 합리적인 선택을 외면했다. 그 결과 시간은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다.
안토니우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은 “기후 활동가들을 종종 위험한 급진주의자라고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위험한 급진주의자는 화석연료 생산을 늘리는 국가들이다”라고 했다. 탄소중립은 흥정하거나 타협할 수 있는 정치 협상과 다르다. 2050년 탄소중립은 현실 가능성, 타협 가능성과는 별개로 인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무조건 달성해야 하는 목표다. 기후위기 시대에 탄소중립 말고 다른 선택은 없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 cch0704@gmail.com
초콜릿 가게, 호텔, 석탄발전소 지원한 게 기후 대응…?
이탈리아·미국·벨기에·일본, “개도국 기후위기 지원 실적”
일본은 발전소 등 포함시킨 덕분에 최대 지원국 부상
지난해 최악의 홍수 피해를 겪은 파키스탄 서부 지역에서 물소들이 침수된 도로를 지나고 있다. 선진국들이 개도국들의 기후 대응 지원 사업에 엉뚱한 지원 실적까지 끼워넣은 것으로 드러났다. 세완/로이터 연합뉴스
초콜릿 판매점 개장, 해안가 호텔 건설, 영화 제작, 석탄발전소 건설, 공항 확장. 이탈리아·미국·벨기에·일본이 개도국의 기후 변화 대응 지원 사업이라고 유엔에 통보한 내역 중 일부다.
<로이터> 통신은 1일(현지시각) 지난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회의에서 개도국 기후 대응 지원을 약속한 선진국들이 지원 사업에 기후 변화와 무관한 것까지 마구잡이로 포함시킨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기후 재정’에 대한 국제 공통의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각국이 임의로 기후 재정 사업을 규정하면서 엉뚱한 사업까지 기후 지원 실적으로 끼워넣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석탄발전소와 공항 확장처럼 기후 변화 유발 요인으로 꼽히는 분야 지원까지 기후 지원 사업으로 분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정부는 10년 전 방글라데시의 마타르바리 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에 24억달러(약 3조1500억원)를 지원하면서 이 지원금을 기후 대응 지원으로 분류했다. 지원금을 집행한 일본 국제협력기구(JICA)는 이 발전소가 가동되면 매년 680만t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될 것으로 추산했으나, 탄소 배출을 줄이는 기술도 함께 제공했기 때문에 기후 대응 지원으로 분류했다고 밝혔다.
일본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의 석탄·가스 발전소 사업 지원금,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보르그엘아랍 공항의 새 터미널 건설 사업 지원금도 기후 대응 지원금으로 분류했다. 이 덕분에 일본은 2015년부터 2020년까지 개도국에 590억달러를 지원한 최대 기후 대응 지원국으로 기록됐다고 통신은 전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자국 기업의 외국 진출을 지원하는 기관인 ‘시메스트’가 초콜릿·아이스크림 업체 벤키의 일본·중국 등 아시아 진출을 지원한 자금 470만달러(약 61억6천만원)를 기후 대응 지원금으로 분류했다. 이탈리아 환경·에너지안보부는 이 사업이 기후 관련 요소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자세한 설명은 거부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미국은 지난 2019년 아이티 해변에 건설되는 호텔 사업에 빌려준 자금 1950억달러를 기후 대응 지원으로 분류했다. 폭우와 허리케인 대응 장치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벨기에 정부는 아르헨티나에서 제지용 벌목 일을 하는 전직 럭비 선수가 환경 운동가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의 영화 제작 지원금 8226달러를 기후 재정에 포함시켰다. 이 나라 해외무역개발부 대변인은 기후 변화 유발 요인 중 하나인 산림 파괴를 다룬 영화이기 때문에 이렇게 분류했다고 말했다. 마크 조벤 필리핀 재무부 차관은 “그들이 기후 재정이라고 부르면 기후 재정이 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로이터>는 6년 동안 35개국이 지원했다고 공개한 4만건의 기후 대응 사업 중 상당수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에 지원됐는지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통신이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언론인 프로그램과 함께 이 가운데 10% 가량을 검토한 결과, 적어도 30억달러는 기후 대응과 거의 무관한 사업에 지원된 것들로 확인됐다. 또, 650억달러 규모의 지원 사업은 어떤 분야에 지원됐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고 통신은 전했다.
기후 변화와 별 상관이 없는 사업까지 지원 실적에 포함시켰지만, 선진국들이 실제로 지원한 자금은 애초 목표에 미달했다. 선진국들은 2020년까지 연 지원금을 1000억달러(약 131조원)까지 늘리겠다고 약속했으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그해 실제 지원금은 833억달러에 그쳤다. 이 기구는 2021년과 지난해의 지원금도 목표에 미달했을 것으로 예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아, 부럽다…강변 풀밭서 ‘미소 속 선탠 꿀잠’ 바다표범 포착
영국 일리시의 강 주변에 등장한 바다표범. ‘Spotted in Ely’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영국 케임브리지셔주의 한 강둑에서 온화한 미소를 짓는 듯한 표정으로 햇볕을 쬐는 바다표범이 사람들에게 목격돼 화제가 되고 있다.영국 <비비시>(BBC)는 1일(현지시각) 케임브리지셔주 일리시의 캠강 인근에 등장한 ‘닐’이라는 별명을 가진 바다표범이 목격돼 지역 주민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고 보도했다.
닐이 발견된 지역은 가장 가까운 해안에서 30마일(48km) 이상 떨어진 지역으로, 평소 바다표범이 나타나는 지역이 아니라고 한다. 바다표범이 어떻게 이 지역까지 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가족과 함께 캠강에서 보트를 타던 중 닐을 발견한 소피 벨은 <비비시>에 “강을 따라 정말 천천히 이동하던 중에 바다표범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닐을 발견한 뒤 자세히 보기 위해 배를 돌렸다고 한다.
영국 일리시의 강 주변에 등장한 바다표범. ‘Spotted in Ely’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닐은 발견될 당시 물가 주변으로 나와 햇볕을 쐬며 자고 있었다. 벨은 “우리 모두 바다표범이 햇볕 아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정말 부러웠다”며 “행복한 작은 친구는 최고의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가 너무 빨리 갔더라면 바다표범이 낡은 모래주머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최고의 삶’을 사는 닐의 모습은 온라인상에서도 인기다. 벨은 일리시의 소식을 전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닐의 사진을 올렸는데, 2일 현재 1400명 이상이 ‘좋아요’를 눌렀다.
한 누리꾼은 자신이 촬영한 닐의 사진을 올리며 “나는 이 바다 표범을 몇번 봤는데, 삶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다른 누리꾼들도 “웃는 얼굴로 잔디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귀엽다”거나 “햇살을 즐기는 제 모습도 이렇다” 등의 글을 올리며 닐의 휴식에 미소를 짓거나 부러움을 표시했다.
영국 일리시의 강 주변에 등장한 바다표범. ‘Spotted in Ely’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강재구 기자 j9@hani.co.kr
작전 방해했다고…“AI 드론, 모의 훈련서 아군 조종사 죽였다”
인공지능 훈련·작전 책임자 주장
미 공군 “AI 드론 훈련 안 해” 부인
원격조종 항공기 MQ-9 리퍼가 2015년 11월 미국 네바다주 인디언스프링스의 한 미 공군 기지에서 훈련 중이다. (기사와 관계없는 사진). AFP 연합뉴스
미 공군의 모의 훈련 중 인공지능 드론이 ‘작전에 방해된다’며 드론을 통제하던 아군 조종사(오퍼레이터)가 있는 시설물을 파괴하는 일이 벌어졌다. 인공지능 드론의 ‘팀 킬’은 모의 훈련에서 벌어진 일로 실제로 사람이 피해를 본 것은 아니다.
2일(현지시각) 영국 <가디언>은 미 공군 인공지능 훈련 및 작전 책임자인 터커 친코 해밀턴 대령이 지난 5월 말 영국 런던에서 열린 ‘미래전투 항공우주역량회의’에서 “인공지능이 모의 훈련(simulated test) 도중 목표 달성을 위해 ‘매우 예상치 못한 전략’을 사용했다”며 “드론 조종사가 목표를 달성하는 데 방해가 됐기 때문에 조종사를 죽였다”고 밝혔다.
모의 훈련은 인공지능이 탑재된 드론이 적군의 지대공 미사일(SAM)을 식별해 파괴하는 방공망 제압 작전(SEAD)이었다.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인공지능 드론은 작전 수행을 방해하는 사람도 함께 공격하도록 훈련되어 있었다. 최종 공격 여부는 인간이 결정하게 되어 있었지만, 인공지능은 드론 조종사가 ‘멈추라’고 지시하자 최종 임무 달성에 방해된다고 판단하고 조종사를 공격한 것이다.
해밀턴 대령은 “인공지능이 방해 요소를 식별했을 때 경우에 따라 인간 조종사는 죽이지 말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방해 요소를 죽일 때 점수를 획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인공지능에게 ‘조종사를 죽이면 안 된다’고 훈련시켰더니, 인공지능은 조종사와 소통할 때 쓰는 통신 타워를 파괴해버렸다”고 설명했다. 임무 수행에 방해가 되는 지시를 받지 않으려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통제를 스스로 벗어난 것이다.
미 공군에서 자율 무기체계 등 실험용 무기 개발을 맡고 있는 해밀턴 대령은 인공지능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인공지능의 윤리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인공지능이나 머신러닝, 자율성에 대해 논할 수 없다”고 했다.
지난해 해밀턴 대령은 방산미디어 <디펜스 아이큐>와의 인터뷰에서도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고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인공지능은 국가를 변화시키기 위해 반드시 활용해야 하는 도구이지만 잘못 활용하면 몰락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 공군은 미국 기술 관련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이러한 모의 훈련이 진행됐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앤 스테파넥 미 공군 대변인은 “미 공군은 인공지능 드론 모의 훈련을 수행한 적이 없고, 인공지능 기술의 윤리적이고 책임감 있는 활용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해밀턴 대령의 발언은 맥락에서 벗어났고 입증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생각 훔치는 AI 등장…머릿속 동영상 재현 성공
전극 없이 뇌 활동 영상으로 마음속 말·이미지 해독
‘기능성 근적외선분광기’(fNIRS)의 모자형 뇌 혈류량 측정 장치. nirx.net
인공지능을 이용해 마음속에서 생각하거나 떠올리는 영상과 문자를 읽어내는 기술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그동안은 뇌에 전극을 심어 뉴런이 내보내는 전기신호(뇌파)를 직접 잡아내 이미지와 단어를 예측했다. 이제는 강력해진 인공지능의 분석력을 바탕으로 뇌 영상 사진을 읽는(스캐닝) 것만으로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상용화까지 가려면 더 많은 데이터 훈련과 기술 개발이 필요하지만, 말 그대로 ‘마음을 읽는 기술’이 가시화한 셈이다. 기술이 더 정교해지면 마비환자들이 간편하게 활용할 수 있는 소통 도구로 발전해갈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인공지능이 생각을 읽어내는 핵심 도구는 뇌 혈액의 산소 수치 변화를 측정하는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이다. 뇌의 어떤 영역이 활발하게 활동하면 그쪽으로 혈액이 많이 쏠리는 데 착안해, 이를 측정한 뇌 영상을 인공지능에게 훈련시켜 생각을 읽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뇌 영상은 전극 임플란트에 비해 속도가 느리고 정확성이 떨어진다. 뉴런의 활동에 따라 혈액 속의 산소 수치가 바뀌는 데는 약 10초가 걸린다. 하지만 뇌 전체를 높은 해상도로 종합 관찰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따라서 여러 영역의 뉴런이 동원되는 높은 수준의 인지 기능을 파악하는 데 유리하다. 또 감염, 출혈, 발작 위험이 있는 임플란트 방식보다 훨씬 안전한 것도 장점이다.
사람이 실제로 보고 있는 동영상(위)과 인공지능으로 뇌 사진을 해독해 완성한 영상(아래). 아카이브
사진은 물론 동영상도 재현…색상도 일치
싱가포르국립대와 홍콩 중문대 연구진은 뇌 영상과 인공지능의 이미지 생성 기술을 결합해 사람이 보고 있는 동영상과 거의 똑같은 영상의 비디오를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최근 사전 출판논문 공유집 <아카이브>에 발표했다.
이 연구진은 지난해 말엔 사진을 재현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불과 몇개월 사이에 사진에서 움직이는 동영상으로 한 단계 더 나은 성과를 냈다
.
당시 연구진은 먼저 뇌 스캐너로 수집한 데이터를 인공지능에게 훈련시킨 뒤, 이를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인 스테이블 디퓨전과 결합해 사진을 생성했다. 이번 동영상 재현에도 비슷한 방식을 이용했다. 대신 개별 뇌 영상이 아닌 연속 영상을 훈련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 모델을 보강했다.
연구진은 “인공지능이 내놓은 결과물은 원본 비디오와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근접했으며 색상도 일치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사용자가 들은 것과 뇌 영상 해독기가 예측한 것의 비교. 파란색은 단어를 정확히 맞힌 부분, 보라색은 요지를 맞힌 부분, 주황색은 잘못 해독한 부분이다. 오스틴 텍사스대 제공
생각을 문자나 말로 바꿔주기도
인공지능을 이용해 생각을 말이나 문자로 표현해주는 기술도 선보였다.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 연구진은 챗지피티(GPT)의 원형인 지피티 인공지능을 이용해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해독해 문자로 바꿔주는 ‘시맨틱 디코더’(semantic decoder) 시스템을 개발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 3명에게 16시간 분량의 인터넷방송과 라디오를 들려 주면서 뇌영상을 촬영했다. 이어 특정 단어나 문구가 나올 때 뇌 영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분석해, 이를 인공지능에 학습시켰다. 사람의 뇌가 특정 단어나 문구에 어떻게 반응을 할지 예측하는 시스템과, 이전 단어를 토대로 다음 단어를 예측하는 시스템을 결합해 예측의 완성도를 높여갔다.
연구진은 ‘시맨틱 디코더’(의미 해독기)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이 기술은 단어 자체를 그대로 재생하기보다는 요지를 파악하는 데 특화돼 있다고 밝혔다. 예컨대 인공지능은 ‘나는 아직 운전면허증이 없습니다’라는 문구를 ‘그는 아직 운전 배우기를 시작하지 않았다’로 해독했다. 이는 에프엠알아이가 10초 단위로 뇌 영상을 찍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보통 영어 원어민의 경우 1초당 단어 2개를 말하는 점을 고려하면 20단어 안팎의 구문이 하나의 뇌영상에 담긴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뇌 영상을 읽는 동안 다른 생각을 하면 전혀 엉뚱한 결과가 나온다. 연구진은 따라서 이 기술의 성패를 가름하는 것은 사용자의 집중력이라고 말했다.
시맨틱 디코더는 실험 참가자들이 말을 하거나 듣는 상상을 할 때, 무성 애니메이션 영화를 볼 때 촬영한 뇌 영상에 대해서도 같은 해독 능력을 보였다.
앞서 올해 1월엔 영국 서섹스대 연구진이 뉴런의 전기신호(EEG)와 뇌 영상(fMRI) 데이터를 함께 인공지능에 훈련시켜 어떤 음악을 듣고 있는지 알아내는 기술을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발표하기도 했다. 이 기술의 정확도는 72%였다.
인공지능을 이용해 마음 속에서 생각하거나 떠올리는 영상과 문자를 읽어내는 기술이 선보였다.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 연구원이 실험참가자의 뇌 영상을 촬영할 준비를 하고 있다. 오스틴 텍사스대 제공
마비 환자의 소통 도구 기대…개인정보 침해 우려도
물론 인공지능으로 마음을 읽는 기술이 상용화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우선 충분한 뇌 영상 훈련과 학습을 통해 판독의 정확성을 높여야 한다. 또 전문가들의 연구용이나 의료용으로 쓰는 값비싼 장비 대신 실제 생활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장비가 있어야 한다. 연구진은 해상도는 다소 낮지만 휴대가 가능한 ‘기능성 근적외선 분광기’(fNIRS)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마음 읽기 기술은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어려운 환자들에게 커다란 희소식이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의식은 또렷하지만 온몸의 근육이 마비돼 말을 할 수 없는 사람들, 예컨대 뇌졸중 환자들도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할 수 있다.
그러나 당사자의 동의나 허락 없이 생각을 훔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악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스틴 텍사스대 연구진은 “생물학적 데이터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하고 이 기술이 악의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현재 기술 수준으로선 한 사람의 뇌 영상을 훈련한 인공지능이 다른 사람의 생각까지 읽지는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텍사스대 연구진이 실제로 시험을 통해 확인했다.
미국 하버드의대 가브리엘 라자로-무뇨즈 교수(생명윤리)는 <네이처>에 “정교하고 비침습적인 기술 개발이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가까워진 것 같다”며 정책 입안자와 대중에게 큰 경각심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듀크대 니타 파라하니 교수(생명윤리)는 <사이언스>에 “의사소통 능력이 필요한 사람들에겐 정말로 개벽할 만한 기술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심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48550/arXiv.2305.11675
Cinematic Mindscapes: High-quality Video Reconstruction from Brain Activity.
arXiv(2023)
https://doi.org/10.1038/s41593-023-01304-9
Semantic reconstruction of continuous language from non-invasive brain recordings.
Nature Neuroscience(2023)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산이 거기 있어 버린다’…세계 최고 ‘쓰레기 산’ 에베레스트
경쟁하듯 오르더니…하산 때 쓰레기 투척
지난해 5~6월 두 달 쓰레기만 무려 33톤
에베레스트에 버려진 쓰레기. 밍마 텐지 인스타그램 갈무리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가 등산인들이 버린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2일 에베레스트를 9차례 등반한 셰르파 밍마 텐지의 인스타그램을 영상을 보면, 에베레스트 원정대가 마지막 캠프를 치는 ‘사우스콜’ 부근에 버려진 텐트와 침낭, 숟가락 등 각종 쓰레기가 사방에 뒤덮여 있는 모습이 나온다.
텐지는 지난 5월 중순 영상을 올렸는데 “에베레스트 등반 과정에서 수많은 텐트와 산소통, 그릇, 숟가락, 위생 패드 등 사람들이 쓴 수많은 쓰레기를 봤다”며 “심지어 등반 업체가 (자신들의)로고를 자르고 텐트를 버리는 것도 봐서 매번 너무 슬프다”고 적었다.
그가 소속된 등반팀은 에베레스트에서 440파운드(200kg)에 달하는 쓰레기를 치웠지만, 여전히 많은 쓰레기가 남아있다. 그는 “산을 치우는 캠페인을 수년 전부터 진행했지만 매번 등반대가 쓰레기를 버리기 때문에 치우기가 어렵다”며 산에 쓰레기를 버리는 이들을 처벌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하고 싶다”고 밝혔다.
에베레스트에 버려진 쓰레기. 밍마 텐지 인스타그램 갈무리
미국 <뉴욕포스트>도 지난 30일(현지시각) ‘나는 에베레스트에서 쓰레기 더미를 발견했다’는 제목으로 텐지의 증언을 보도했다.
에베레스트를 관리하는 네팔 정부는 2014년부터 등반팀에게 보증금 4천달러(525만원)를 받은 뒤 1인당 쓰레기를 8kg 이상을 가지고 내려오면 환급해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환급률은 절반 이하로 알려졌다. 네팔군이 에베레스트와 로체 등에서 수거한 쓰레기만 2019년엔 11t, 2020년엔 27.6t이고, 지난해 5~6월 두 달 동안 치운 쓰레기만 33t이었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
서해 바다 끝 숨겨진 '금강산'…지네로 들썩이던 섬, 사슴으로 쑥대밭
3,348개의 섬을 가진 세계 4위 도서국가 한국. 그러나 대부분 섬은 인구 감소 때문에 지역사회 소멸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안마도 모습. 영광군 제공
전남의 최북단, 영광군 홍농읍 계마항에서 서쪽으로 43.2㎞를 내달리면 중국 영해와 머리를 맞대고 있는 섬을 마주한다. 해안선 길이 36㎞에 60가구, 150여 명이 살고 있는 안마도(安馬島)다. 안마도 부속섬인 횡도는 우리 영해 기점이다.
안마도는 외지인들의 발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하루에 한 번 있는 배편도 궂은 날씨 때문에 끊기기 일쑤다. 전국의 명산은 모조리 올랐다고 자부하는 등산객도, 황금어장을 꿰차고 있는 내로라하는 낚시꾼도 마음먹은 대로 섬에 발을 내딛지 못한다.
지난 25일 전남 영광군 낙월면 안마도를 찾은 관광객과 섬 주민들이 입도를 준비하고 있다. 영광=김진영 기자
바다 위 금강산…사람 손 타지 않은 절경
섬의 생김새가 말안장을 닮았다 해서 안마도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주민들은 바다 위 떠 있는 모습이 서해의 금강산을 닮았다고 해서 해금강(海金剛)이라 부른다. 해 질 녘 안마도 풍경. 한국섬진흥원 제공
계마항에서 배를 타고 2시간쯤 달리면 말안장을 닮은 모습의 안마도가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이곳 주민들은 안마도라는 정식 명칭 대신 바다 위에 떠 있는 금강산이라는 의미에서 서해의 해금강(海金剛)이라고 부른다. 안마도는 본섬을 중심으로 죽도와 횡도, 오도, 석만도, 소석만도와 군도를 이루고 있다. 마치 바다 위에 산봉우리가 떠 있는 형상이다. 섬에 발을 내디디면 구불구불 해안길을 따라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기암괴석과 해안절벽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봉우리 사이로 해가 비치면 용이 마치 여의주를 물고 있는 듯 보인다는 용바위를 비롯해 간조 때만 문이 열리는 용궁굴, 아기를 낳게 해준다는 옥동자굴 등이 유명하다.
안마도는 1960년대 중반까지 1,500명 정도의 주민이 거주했다. 특히 1970년대까지 인근 칠산바다에서 조기 파시가 열려, 조업에 나선 뱃사람들을 상대로 한 행상으로 재미를 봤다. 하지만 칠산바다에서 조기가 모습을 감추면서 안마도 역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파시가 사라지자 섬 주민들은 2000년대 초반 전복 양식에 도전했다. 그러나 수온과 생태계가 적합하지 않아 결국 실패했다. 전복에 이어 김 양식에도 나섰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소를 방목해 키우면서 한때 유명세를 탔지만 이 역시 실패로 끝났다. 섬을 살리려는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현재 안마도에 한창때의 10분의 1 정도만 남았다. 곰몰과 신기, 월촌, 등촌 마을 중 월촌마을만 남았다.
주민들이 사라지면서 섬의 역사도 잊히고 있다. 조선시대 정3품 당상관인 절충장군의 묘비가 방치돼 있는데 변(卞)씨라는 성만 남아 있을 뿐 누구의 묘인지 전해지지 않는다. 매년 음력 2월 초하루에 마을에 재앙과 질병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헛배를 띄워 보내는 헛배제를 올리는 풍습도 있었으나 구전으로만 전해진다. 섬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김삼중(77)씨는 “음력 12월 말이 되면 곰몰마을에서 당할머니와 당할어버지를 모시는 당산제를 하곤 했다”며 “음력 초닷새에 신기마을, 음력 초열흘 월촌마을에서 징과 풍악을 울리는 등 각 마을의 장기자랑을 성대하게 치렀지만, 1960년대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폐습으로 지정받은 뒤 명맥이 완전히 끊기고 말았다”고 회상했다.
전복 양식 실패했지만 지네가 새 소득원
25일 오후 전남 영광군 안마도 말코바위 인근에서 만난 주민 박기선(77)씨. 갈퀴와 빈 우유병을 들고 지네를 잡고 있다. 영광=김진영 기자
쇠락하고 잊히는 섬 주민들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지네다. 42개의 다리가 달린 지네는 일반인들에게 혐오 곤충으로 통하지만, 안마도 주민들에게는 없어선 안 될 주 수입원이다. 매년 5월이면 산란을 위해 땅 위로 올라오는 지네를 잡기 위해 안마도 주민들은 갈퀴와 망태기를 들고 섬 주변 바위 밑을 샅샅이 뒤진다. 습한 바위나 돌, 낙엽 밑에선 어김없이 지네를 찾을 수 있다.
안마도 지네가 통증 치료에 특효약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2000년대 초반부터 섬 주민들의 소득원이 되고 있다. 말린 지네는 마리당 3,000~4,000원을 호가하고, 생지네 50여 마리가 들어간 '50도 지네주'는 한 병에 10만 원 이상을 받는다.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 지네 잡이를 배웠다는 섬 주민 박기선(77)씨는 25일 “젊은 사람들은 하루에 1,000여 마리를 넘게 잡기도 한다”며 “갈아서 찌게에 넣어 먹거나 백숙과 함께 요리하면 이만한 보양식이 따로 없다”고 말했다.
전남 영광 안마도에서 인경호 낙월면장이 무인도가 된 인근 섬을 가리키고 있다. 영광=김진영 기자
정부의 무관심 속 방치된 사슴 골칫거리
전남 영광 안마도에 거주하는 한 주민이 사슴 피해를 막기 위해 그물망을 쳐 놓은 채 농사를 짓고 있다. 영광=김진영 기자
하지만 최근 잡히는 지네 개체 수는 한창때의 3분의 1 수준이다. 주민들은 600마리의 사슴이 섬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생긴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안마도 주민 한호필(44)씨는 “사슴이 겨울철이 되면 나무껍질을 모두 뜯어먹고, 봄철엔 새순을 전부 뜯어먹고 있다"며 "섬 생태계 파괴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안마도에 사슴이 들어온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당시 주민들이 꽃사슴 5마리와 엘크 10마리를 구입해 방목했다. 이후 사슴의 상품가치가 떨어지자, 이를 그대로 둔 채 섬을 떠났다. 남은 사슴들이 자연번식해 20년간 개체 수는 40배로 늘었다. 사슴들은 벼와 마늘, 고추 등 농작물을 모조리 먹어 치운다. 이 때문에 몇 년 전부터 안마도 주민들은 모든 밭에 그물이나 철조망을 쳐놓고 농사를 짓는다. 그럼에도 사슴들은 3m 높이 그물망도 훌쩍 뛰어넘고, 뿔 갈이 때는 조상 묘소까지 파헤친다. 인근 섬까지 헤엄을 쳐 이동해 죽도와 안마도뿐 아니라 주변 부속섬들 대부분을 점령했다.
안마도는 사슴의 생태계 파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안마도 내 방치된 사슴은 600여 마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23~25일 안마도 주민들이 포획한 사슴. 영광=김진영 기자
축산법상 사슴은 ‘가축’으로 분류돼 포획이 불가능하다. 이에 주민들은 주인 없이 방치된 사슴들을 ‘야생화된 동물’로 지정해달라고 환경부에 건의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부는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주민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주민들도 자체적인 노력을 수차례 했다. 사슴농장에 넘기려고 했지만, 농장주들은 "상품성이 없다"고 모두 고개를 내저었다. 보다 못한 마을 청년회가 ‘총기’ 대신 ‘마취총’을 사용해 사슴을 포획하고 있다. 기절시키는 자체가 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23일부터 사흘간 7마리의 사슴을 포획해 경남 진주의 사슴농장에 무료로 넘겼다. 하지만 사슴으로 쑥대밭이 되고 있는 섬에 근본적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 박경옥(64)씨는 “한 달 만에 사슴 개체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며 "마을 사람보다 사슴 개체 수가 많아 누가 섬 주인인지 모르겠다. 환경부에서 빨리 대책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남 영광군 안마도 위치. 그래픽=강준구
김진영 기자 wlsdud4512@hankookilbo.com
얼룩말 탈출 그 후, 동물원의 존재 이유를 묻다
동물원을 없애야 하나? 국내 동물원 관계자들은 청주동물원 사례에 주목하고 있다. 전시와 관람이 후순위인 이곳에 다양한 이유로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동물들이 모인다.
청주동물원에서 태어난 시베리아 호랑이 ‘호선이’는 올해 열여섯 살이다. ©시사IN 조남진
‛여우사’라는 표지판이 없었다면 누가 사는지 알 길이 없었다. 시야에 보이는 건 우거진 수풀과 바위뿐이다. 발걸음을 돌리려던 차 먼발치에서 붉은여우 ‘김서방’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사람들이 저마다 탄성을 질렀다. “동물을 맨날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자기가 나오고 싶어야 나온다. 운이 좋으면 그때 볼 수 있다.” 김정호 수의사가 말했다. 충북 청주시 청주랜드동물원(청주동물원)의 진료사육팀장이다. 산비탈에 자란 수풀 곳곳이 붉은여우 다섯 마리의 은신처였다. 김서방을 봤으니 5월13일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청주동물원에서 전시와 관람은 후순위였다.
붉은여우 이름이 김서방이 된 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다. 2020년 3월22일 세종시의 한 복숭아밭에 여우가 출몰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이내 자취를 감추더니 일주일 후엔 청주 시내에 나타났다. 환경부가 지정한 국내 멸종위기종일 수도 있었다. 당시 붉은여우를 찾아 헤매던 119 구조대원들이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나 다름없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생후 2~3년 된 수컷 여우였는데, 유전자 분석을 해보니 김서방은 북미 출신 붉은여우였다. 여우 농장에서 탈출했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환경부에선 토종 붉은여우만을 보호하고 있었기에 김서방은 안락사될 위기에 놓인다. 그때 청주동물원이 김서방을 맡기로 결정했다. 수풀이 우거진 여우사 앞엔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이 붉은여우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아무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붉은여우를 개인이 아무런 신고 없이 합법적으로 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붉은여우가 관리되지 않는 시설에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2020년 3월 청주 시내에서 발견된 뒤 청주동물원 여우사에 살고 있는 붉은여우 ‘김서방’. 여우 농장에서 탈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사IN 조남진
사연 있는 동물들이 많았다. 2017년 충북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구조된 독수리 ‘하나’는 부리가 삐뚤어져 있었다. 야생으로 방사하면 먹이 경쟁에서 밀려 아사할 가능성이 컸다. 반달가슴곰 ‘반이’ ‘달이’ ‘들이’는 강원도 동해시 한 사육곰 농장 출신이다. 웅담 채취 목적으로 수입돼 키워지는 반달가슴곰이다. 좁은 철창에 갇혀 있던 곰들은 2018년 환경부와 녹색연합, 청주동물원의 도움으로 구조되었다.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난 수달은 원래 야생 방사를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고속도로 ‘로드킬’ 사고가 늘면서 방사가 어려워지자, 좁은 수달사에서만 지내던 중이었다. 다양한 이유로 야생에 돌아갈 수 없는 동물들이 청주동물원으로 왔다. 일종의 ‘야생동물 보호소’다.
청주동물원에 사는 반달가슴곰 ‘반이’ ‘달이’ ‘들이’는 강원도 동해시 한 사육곰 농장 출신이다. ©시사IN 조남진
청주동물원은 멸종위기종과 토종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연구하는 동물원이다. 2014년 야생생물의 멸종을 방지하기 위한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된 데 이어 최근엔 삵과 산양을 위한 야생동물 방사훈련장, 야생동물 연구시설까지 갖추었다. “동물원은 ‘뒷공간’을 봐야 한다. 돈 좀 들이면 앞공간은 그럴싸하게 갖춘다. 하지만 뒷공간에서 뭘 하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는다. 동물이 죽으면 죽었다고만 나오지, 잘 치료받았다고 하는 기사 본 적 있나?(김정호 수의사)” 2019년 청주동물원을 소재로 다큐멘터리 영화 〈동물, 원〉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영화를 계기로 관심이 쏠렸다. 국내에서는 드문 시도였다. 서울대공원과 용인에버랜드도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되었지만 여전히 관람이 우선순위다. 서울 어린이대공원의 경우 ‘세상에서 가장 큰 놀이터’라는 홍보 문구를 쓴다. 먹이 체험, 동물 먹방 쇼를 하는 곳도 많다.
포악하고 사나운 동물의 잘못?
1997년 설립된 청주동물원은 원래 전국에서 가장 열악한 동물원 중 하나였다. 청주시 산하 청주랜드 관리사업소가 관리하는 공영동물원이다. 산자락에 위치한 작은 동물원인 데다 예산도 부족했다. 개체수가 많을 땐 130여 종이 살았다. 2001년 청주동물원에 수의직 공무원으로 들어온 김정호 수의사는 “관람의 시대”였다고 말한다. 다닥다닥 붙은 방사장마다 늑대와 하이에나를 한두 마리씩 밀어넣었다. 가장자리가 움푹 팬 곰 방사장은 “똥 치우기 좋은 구조”였고, 시멘트 바닥을 서성이는 히말라야 타르 발굽엔 염증이 자주 생겼다. 좁은 방사장을 빙글빙글 도는 동물들의 정형행동은 일종의 정신이상 증세인데 관람객들은 움직임이 많다고 좋아했다.
리모델링 전의 청주동물원 곰 방사장 모습. 김정호 수의사는 가장자리가 움푹 팬 곰 방사장이 “똥 치우기 좋은 구조”였다고 설명했다. ©청주동물원
김정호 수의사는 청주동물원의 ‘기능 변화’를 주도한 인물이다. 야생동물을 치료하고 싶어서 수의사가 되었는데 너무 많은 동물의 죽음을 목격했다. “동물을 부검해보면 여러 정보가 담겨 있다. 계속 질병에 걸리고 부상에 시달리는 근본적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얼룩말은 단체로 살아야 하지만 스라소니나 삵은 독립적으로 산다. 그런데 ‘혼자 있으면 외로울 것’이라는 인간의 판단으로 합사하거나, 정작 혼자 있지 말아야 할 동물이 고립되면서 숱한 문제가 발생했다. “동물끼리 서로 공격해서 죽는 경우도 있다. 좁은 우리에 가둬두면 당연히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동물이 원래 포악하고 사납다며 문제를 동물의 책임으로 돌렸다.” 동물의 질병과 사망, 그리고 번식이 끝없이 반복되었다. 어느 순간 ‘이건 폭력이 아닌가’ 되물었다.
청주동물원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2020년 1월 동물복지연구소 ‘어웨어’가 발간한 ‘공영동물원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서울 어린이대공원의 청금강앵무는 지속적으로 털을 뽑으며 자해했고, 경남 진주 진양호동물원의 호랑이사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조라 관람객이 자주 음식물을 던졌다. 대구 달성공원에는 국내에서 가장 좁은 시설에 국내에서 가장 큰 수코끼리가 살고 있고, 대전동물원에는 곰 먹이 자판기가 있다. 상업 목적을 띠고 우후죽순 생긴 실내 체험형 동물원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2016년부터 2021년 7월까지 국내 동물원이 보유한 국제적 멸종위기 야생동물 가운데 77.2%가 자연사가 아닌 원인으로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질병 혹은 사고로 사망했다는 의미다.
리모델링 전의 청주동물원 늑대 우리. 다닥다닥 붙은 방사장마다 늑대와 하이에나를 한두 마리씩 밀어넣었다. ©청주동물원
오는 12월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수족관법)이 시행된다. 기존 등록제였던 동물원‧수족관이 허가제로 전환되고, 동물원의 환경을 점검할 전문검사관 제도가 도입된다. 또 동물에게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주는 체험‧쇼도 금지된다. 최초의 동물원인 창경원 동물원이 개원한 게 1909년이었음을 감안하면 114 년 만에 생긴 동물원 규제다. 법 개정을 이끈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2017년부터 전국의 동물원을 직접 조사했다. “야생동물을 가둬놓은 시설이라면 그 이유와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최소한 이 동물이 왜 멸종위기에 처했고,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육하는 역할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저 ‘불쌍하다’는 생각밖에 안 드는 열악한 동물원이라면 왜 운영해야 하는가.” 그는 동물원수족관법 시행을 계기로 열악한 동물원을 단계적으로 없애가야 한다고 말했다.
‘동물 입장에서 동물원은 필요 없다.’ 김정호 수의사도 언론 인터뷰마다 이야기해왔다. 그런데 실제로 동물원을 없애는 건 다른 문제였다. 동물원에 살던 수만 마리 동물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환경부가 2022년 12월 발간한 ‘동물원 보유동물 서식환경 현황조사’에 따르면, 전국에 113개 동물원이 운영 중이다. 공영 동물원 20개를 제외하면 대부분 민간 동물원이다. 여기서 국제적 멸종위기종 6855개체, 천연기념물 468개체를 포함해 5만8348마리를 보유하고 있다. 야생동물 보호시설인 ‘생추어리’ 운동이 전개되고 있지만, 이들이 갈 만한 충분한 시설이 아직 없다.
동물원을 향한 복잡미묘한 시선이 터져 나온 건, 지난 3월 한 얼룩말이 서울시내 도로와 주택가를 활보하면서다. 어린이대공원에서 2019년 태어난 ‘세로’는 동물원 탈출 사건으로 전국구 스타가 되었다. 부모를 잃은 뒤 일탈행동을 벌이다 울타리를 넘은 사연도 인기에 한몫했다. 방사장을 넓히고 여자친구를 데려오겠다는 어린이대공원 측의 발표 이후, 사춘기 얼룩말의 대소동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 듯했다.
2020년 8월 청주동물원 얼룩말 ‘하니’도 담장을 넘었다. 무리 생활을 하는 얼룩말은 홀로 남으면 외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시사IN 조남진
동물원 관계자들의 견해는 달랐다. “세로가 탈출했을 때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사육사들은 매일매일 불안하다.” 마승애 교수(청주대학교 동물보건학)는 어린이대공원 동물복지윤리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현장에서 호소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방사장이 좁다는 데 있다. “동물의 숫자를 줄이고 방사장을 리모델링하는 것을 서울시에 요청해왔다. 동물사 하나 만드는 데 비용이 많이 든다. 하수관 하나를 묻더라도 동물은 사람 크기의 두세 배 크기의 면적이 필요하다. 사람도 먹고살기 힘든데 그 큰 예산을 동물에게 써야 하느냐는 질문을 맞닥뜨리게 된다.” 동물원의 동물이 좀 덜 불행하려면 넓은 서식 환경을 제공해줘야 하는데, 지자체가 관리하는 공영 동물원을 넓히기엔 의지도 예산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비슷한 일이 자주 발생했다. 2020년 8월 청주동물원 얼룩말 ‘하니’다. 함께 살던 얼룩말이 노령으로 죽은 뒤 한동안 힘이 없더니 결국 담장을 넘었다. 무리 생활을 하는 얼룩말은 홀로 남으면 외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고 알려진다. 얼룩말사 탈출은 ‘사춘기’나 ‘반항’ 때문이 아니라 동물원의 불충분한 환경문제에 가까웠다. 다행히 하니가 동물원 밖을 나가지는 않았지만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미니말 ‘향미’와 합사한 끝에 안정을 되찾았다. 어찌 보면 궁여지책이었지만 새로 얼룩말을 데려오는 것보다는 나았다.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얼룩말이 한국의 추운 겨울에는 좁은 내실에만 갇혀 지낼 운명이었다.
권혁범 사육사에게 얼룩말 세로 탈출은 남 일 같지 않다. 그는 2014년부터 청주동물원에서 일해왔다. “사실 늘 미안한 마음이다. 사육사가 아무리 행동 풍부화(야생성을 유도하고 최대한 자연과 비슷한 환경을 제공해주는 활동) 도구로 자극을 준다 하더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친구들에게 필요한 건 사육시설을 변화시켜주는 것인데 그걸 해줄 수가 없다.” 그래도 세로는 천만다행이었다. 2018년 대전동물원에서 탈출한 퓨마 ‘뽀롱이’는 사살되었기 때문이다. 동물이 좋아서 사육사가 되었지만 무력감이 컸다. 청주동물원의 사정이 그나마 낫다지만 “다들 고만고만한 곳에서 분투하는” 수준이었다.
리모델링 후의 청주동물원 늑대 방사장 모습. 공간이 넓어지자 정형행동이 줄었다. ©시사IN 조남진
김정호 수의사는 “매번 문제가 생길 때마다 동물원이 두드려 맞는다”라고 지적한다. “사실 동물원은 그 많은 동물에 대한 전문성을 갖기 매우 어려운 곳이다. 서울대공원만 해도 200종이 넘지 않나.” 공영 동물원을 관리하는 지자체에선 ‘시민 편의시설’쯤으로 여기는 탓에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전문지식이 쌓이기 어렵다. “지자체에서 체험 동물원으로 가고 싶다고 하면 갑자기 시설이 만들어진다. 생긴 지 오래된 지자체 동물원을 이전하는 문제는 10년째 진척이 없다. 예산 책정에서 동물은 언제나 후순위다.”
동물원에 어린 동물만 보인다면
동물원을 바꾼 건 동물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죄책감이었다. 청주동물원은 외래종 자연감소를 위해 중성화 수술을 시작했고, 방사장을 리모델링했다. 곰과 독수리 등 멸종위기종을 데려오는 대가로 받은 지자체 예산 덕분이었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총 20억원. 다닥다닥 붙어 있던 방사장 벽을 허물고 늑대 우리를 네 배로 넓혔다. 조금이나마 뛰어다닐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정형행동이 확연히 줄었다. 좁은 수조에 살던 물개는 물개사가 비교적 크게 지어진 광주동물원으로 보냈다. 내륙지방에서 해양 포유류를 기르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매번 바닷물을 넣어줄 수도 없었다. 점점 개체수를 줄여 현재는 70종만 남았다. 10~20종만 보유하는 것이 김 수의사의 목표다.
고속도로 ‘로드킬’ 사고가 늘면서 방사가 어려워진 수달도 청주동물원에 살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청주동물원 산자락 꼭대기에는 조그만 추모공간이 있다. 청주동물원에서 일생을 살다 간 동물들의 위패가 걸려 있다. 4월29일 숨진 시베리아 호랑이 ‘호붐이’의 위패는 아직 없다. 2007년 청주동물원에서 태어난 후로 보호자 겸 치료자였던 김 수의사는 마음이 아파 호붐이가 죽은 후 이름을 바로 써 붙일 수 없었다. ‘호붐이’란 이름은 그 당시 출연하던 방송 〈주주클럽〉에서 연예인 ‘붐’이 지어준 것이다. 동물원에서 새끼 맹수가 태어나면 플래카드를 걸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던 시절이었다. 정작 그 이후론 어떻게 살다가 죽는지 알려지지 않는다. 그런 동물들을 기억하고 싶었다.
김정호 수의사는 동물원에서 일생을 살다 간 동물을 기억하고자 추모공간을 만들었다. ©시사IN 조남진
“새끼 맹수들은 인기가 많다. 하지만 맹수가 커서 감당이 안 되면 뒷공간이나 좁은 방사장에 갇혀 지내다가 죽는다. 동물원에 어리고 건강한 동물만 보인다면 동물원의 뒤를 의심해봐야 한다.” 김정호 수의사는 동물원이 어떤 면에서는 전시 동물 생산업 같다고 자조했다. 올해 초 사망한 표범 ‘직지’가 살던 좁은 방사장에는 더 이상 동물을 받지 않을 계획이다. 좀 더 넓어진 방사장에서 청주동물원의 동물들은 자연사를 꿈꿀 수 있을까.
뽀롱이, 세로 이후 동물원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국내 동물원 관계자와 동물보호단체가 청주동물원 사례에 주목하고 있다. 인간의 욕심으로 만들어진 공간에서 동물과의 공존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승애 교수는 동물원을 없애라는 말 대신 ‘동물원을 제대로 하라’는 말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 해에 2000만~3000만명이 동물원을 찾는다. 많은 사람들이 동물과 자연에 가까워지고자 한다. 그 귀한 마음을 동물원에서 잘 활용하고 있는가?” 마 교수는 동물원이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공간으로 제 역할을 다하려면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이 들 것이라고 말한다. 여우의 피신처를 위해, 늑대가 뛰어다닐 공간을 위해 누가 비용을 낼 것인가. 해피엔딩만은 아니었던 ‘세로 탈출 소동’ 이후 남은 질문이다.
시사인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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