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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23.5.1~31 너희나 퍼마셔라"

by 이성근 2023. 5. 31.

우리의 집은 투자상품이 아니다 경향 : 2023.05.01.

폭스뉴스와 편집증적 세계관 경향 : 2023.05.01.

바이 바이~ ‘아메리칸 파이한겨레 : 2023.05.01.

양심까지 일임하진 맙시다 한겨레 : 2023.05.02.

대통령 생각을 외신을 통해 아는 게 정상인가 ddr@donga.com : 2023.05.02.

폭력적 성장에 감춰진 돌봄노동 경향 : 2023.05.02.

()는 사람을 곤궁하게 만든다 경향 : 2023.05.02.

누가 충성을 강요하는가 경향 : 2023.05.02.

건강이 신()이 되어버린 사회 경향 : 2023.05.04.

글 쓰는 인공지능사용 설명서 경향 : 2023.05.04.

개 식용은 개인의 취향이고 문화라는 사람들에게 한겨레 : 2023.05.05.

글로벌 동맹과 글로벌 하청 국가 한겨레 : 2023.05.05.

시카고가 예고하는 21세기 묵시록 한겨레 : 2023.05.05.

멜로드라마로 전락한 한국형 핵공유 한겨레 : 2023.05.05.

K팝 아이돌 생태계에서 '''아이돌'은 어디에 있나 프레시안 2023.05.05.

대통령의 방미외교는 '사실상' 성공했고, 우리 외교는 희망을 잃었다 프레시안 2023.05.05.

'연봉 36' 공고에도 지원하는 의사가 없다 김찬기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 프레시안 2023.05.05.

SMR은 서울에 짓자 경향 2023.05.05.

미국은 왜 아름다운 나라가 되었나 경향 2023.05.06.

오늘 점심에 밥을 먹나요쌀값의 정치경제학 경향 2023.05.06.

5, 이팝나무꽃 필 무렵 한겨레 2023.05.07.

대미 경제사절단이 조공이 안되려면 한겨레 2023.05.07.

언론 죽이는 정치세력정체 프레시안 2023.05.08.

윤석열의 비극?’ 경향 2023.05.09.

'데이터 편향'과 시민의 권리 경남도민일보 20230509

미국과 한국의 탈중국이 다른 줄 모르는 대통령 시민언론 민들레 20230509

한국 대통령의 좌충우돌은 위험하다 경향 2023.05.10.

 

신뢰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통치 경향 2023.05.11.

검찰정권 1, 옛 소련 검찰의 그림자 한겨레 2023.05.11.

음주운전 1년 시민언론 민들레 2023.05.11.

신동진쌀이 처한 슬픈 운명? 경향 : 2023.05.12.

지역 자산 토대로 마을소멸 극복해야 경남도민: 2023.05.12.

유물론의 즐거움 경향 : 2023.05.13.

취업 중심 교육의 함정경향 : 2023.05.13.

정부 1, '음모론'과 싸우다가 '메타 음모론'에 포획되다 프레시안 2023.05.13.

천벌 같은 건 없다 시민언론 민들레 2023.05.15.

우크라이나에서의 남북전쟁 |한겨레 2023.05.14.

전환기의 도전과 위험한 반동정치 경향 2023.05.15.

출범 1년만에 구멍뚫린 나라살림부자감세 패착, 증세를 권고한다 한겨레 2023.05.15.

'김남국 사태'로 알게 된 12억 내고 400억 번다는 코인의 세계 프레시안 2023.05.15.

침대 축구같은 정치 경향 2023.05.16.

정무직 1인분의 밥값 경향 2023.05.16.

밀정, 지배체제의 모세혈관이자 기획하는 파괴자 한겨레 2023.05.16.

한국인의 전례없는 친미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한겨레 2023.05.16.

우리는 왜 시국법회 야단법석을 여나? 시민언론 민들레 2023.05.16.

의원들 돈벌이가 그깟 전대 봉투뿐인가 한겨레 2023.05.16.

남 탓과 어퍼컷으론 아무것도 못한다 경향 2023.05.17.

새로운 동맹의 풍경, ·미 동맹을 다시 생각한다 경향 2023.05.17.

국민의힘 광주행, 진정성이 안 느껴지는 이유 경향 2023.05.18

정권 역주행에 브레이크 거는 방법 한겨레 2023.05.18.

노동자 유언’ 50년 역사와 그 너머 한겨레 2023-05-19

한국 상대 일본의 완벽한 승리, 과학을 오염시키는 데 성공하다 프레시안 2023-05-20

 

윤석열 정부 가치외교 1, 성적표는? 한겨레 2023-05-21

타락한 진보는 깨끗한 보수조차 못 된다 경향 2023-05-22

알이백이 뭐죠? , ‘시에프백’! 프레시안 2023.05.22

법 기술자의 시대에 기억해야 할 이름 한겨레 2023.05.22

원희룡 장관, 그렇게 살지 마시라 경향 2023.05.22.

익숙한 길 걸을수록 고립될, 진보운동 경향 2023.05.22.

나이 차별금지한국과 다른 EU 경향 2023.05.24.

학문의 위기, 인간다움의 위기 경향 2023.05.24.

사죄와 화해 경향 2023.05.24.

돈과 정치권력, 그리고 침묵 시민언론 민들레2023.05.24.

-미 간 역설적 가치동맹과 그 비용 한겨레 2023.05.24.

그럼에도 모일 자유가 중요한 이유 한겨레 2023.05.24.

종교가 된 원전, 사탄이 된 재생에너지 한겨레 2023.05.25.

정의가 없는 국가는 거대한 강도 집단 시민언론 민들레 2023.05.25.

자유를 모독하는 대통령 경향 2023.05.26.

한국은 군주제? 대통령 말 한마디에 모든 게 바뀌다니프레시안 2023.05.26.

윤석열 대통령이 외치는 자유, 누구의 자유인가 시민언론 민들레 2023.05.27.

너희나 퍼마셔라" 시민언론 민들레 2023.05.27.

기후위기의 우울과 희망 경향 2023.05.27.

군축으로 기후정의 희망제시할 지도자는 없는가 한겨레 2023.05.27.

'권위주의' 윤석열 정부, '스핀 독재' 시대가 도래했다 프레시안 2023.05.27.

한국의 트럼프와 추종자들은 다양성이 위험하다고 말한다 미디어오늘 2023.05.28.

자해적 광고언제까지 모른 척할 건가 미디어오늘 2023.05.28.

가난한 집 문을 두드리는 노동자들 경향 2023.05.29

미친 등록금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 경향 2023.05.29

왜요, 이걸요, 지금요?” 경향 2023.05.29.

하인을 거느리는 가족국가 경향 2023.05.29.

희망 없는 세상, 미친놈만 살아남는다면 한겨레 2023.05.29.

4·3, 그날의 화염도 이처럼 붉었나팽나무는 기억하리라 한겨레 2023-05-30

오늘도 무사히김해공항을 걱정하는 이유 한겨레 2023-05-30

간호법 갈등이 드러낸 의료계 카스트 한겨레 2023-05-30

한국 경제, 고성장 과거를 잊어야 산다 경향 2023-05-31

혁신과 평등, 진보의 좁은 길 경향 2023-05-31

한국이 올인하는 인·태 전략은 안녕한가? 한겨레 2023-05-31

한국도 외로움 담당할 장관이 필요하다

 

 

 

 

우리의 집은 투자상품이 아니다 

결혼하고 처음 얻은 전셋집 집주인은 집이 여섯 채라고 자랑했다. “그거 불법 아닌가요.” 집을 보고 나와서 나는 부동산 아저씨에게 불안한 마음으로 물어보았다. 중개업자는 껄껄 웃더니, 법이 바뀐 지 언제인데 그런 소릴 하냐며 집주인 할머니가 은행 다니다 퇴직한 양반이라 이런 쪽으로 똑똑하시다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세입자에겐 많은 선택지가 없어 결국 그 집으로 들어갔지만 사는 내내 꺼림칙했다. 민간 임대주택 사업의 법적 근거인 임대주택등록법은 1994년에 처음 도입됐다. 그로부터 몇년이 지난 때였지만 여전히 부동산 투자라는 말보다 땅투기란 말이 더 익숙하고, 집으로 돈 버는 임대업자는 돈으로 돈 버는 사채업자만큼이나 부정적인 시선을 받던 때였다.

 

30년 만에 꺼림칙했던 것들은 합법적 투자 방법이 됐다. 건물을 사고팔면서 시세차익으로 큰돈을 번 연예인들은 지탄을 받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재테크의 금손이고 고수로 불렸다. 유명인들만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도 내 집 마련에 간절했다. 집을 사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낸 건 정책과 시장이었다. 오른 전셋값 때문에 점점 외곽으로 밀려나고, 월세 내고 나면 월급이 반토막이 나고, 집세 때문에 살던 집에서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하는 설움을 겪다 보면, 악착같이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동권을 악화시키고 공공복지를 취약하게 만들면서, 정부와 은행, 미디어는 빚내서 집 사라고 합창을 했다. 각자 삶은 각자 책임지라는 신자유주의 정책하에, 한국인들에겐 집 한 채가 연금이고, 보험이고, 노후대책이 되었고, 부채는 우리의 목줄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정부 정책은 계속 주택 시장에 주택 공급을 늘리는 정책을 유지했다. 사람들이 집이 없어 집을 못 사는 게 아닌데도, 더 많은 집을 짓는 것이 늘 정책의 1순위였다. 그 많은 집은 다 누가 샀을까? 2022년 상위 100명이 소유한 집은 22000여채(총가치 29534억원)였다. 한 사람이 226채의 집(295억원 가치)을 소유한 것이다.

 

주택공급정책은 건설기업과 금융자본, 부자들의 배만 불렸다. 집을 아무리 지어도 돈이 없는 사람들은 집을 사지 못한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무주택자 전·월세 주택 공급 방안으로 민간임대사업자 등록을 장려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구매력 있는 사람들이 집을 많이 사서 주택 시장에 전·월세 물량 공급을 늘리도록 유인한다는 명목으로, 민간임대주택 등록 사업자들에게 각종 세제와 금융지원을 제공하고 규제를 풀어줬다. 우리가 아는 대로 정책은 대실패했다. 정책은 철회됐지만, 사람들은 갭투자를 배웠고, 거기서 빌라왕이 태어났다. 윤석열 정부는 이 제도를 부활시키고자 한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대규모 전세사기는 주택 상품화와 시장화에 매진했던 부동산 정책의 끝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참사다.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은 정책과 시장이 자행한 폭력이며,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살인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주택 시장에는 금융화라는 또 다른 위험한 뇌관이 장착되어 있다. 월세 시장을 키운 결과, 주택임대 시장은 대기업의 새로운 먹거리가 되었다. KT, SK, GS, 신세계 등 국내 유수 대기업을 비롯하여 KB국민은행과 NH농협 등 금융기관까지 여기에 뛰어들었다. 대기업이 수백~수천 가구의 주택을 소유하고 임대장사를 하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주택 시장과 금융 시장의 연동이다.

 

대기업 주택임대 사업은 대부분 리츠(REITs)라 불리는 부동산 투자회사를 통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리츠는 투자자를 모집해서 부동산 같은 실물자산에 투자하고 거기서 나오는 수익금을 투자자에게 배당한다. 투자자들이 원하는 것은 임대료와 자산가치의 단기 상승이다. 오늘날 주택, 에너지, 식량 등 실물 투자는 대기업과 금융자본의 자산운용 포트폴리오에서 점점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며, 혼합된 파생상품으로 만들어진다. 전세사기는 앞으로 닥쳐올 거대한 재난의 아주 작은 꼬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긴급한 피해 대책과 함께, 앞으로의 더 큰 재난을 막기 위한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 ‘전세사기는 주택의 상품화, 시장화, 금융화의 결과다. 2021년 임대료 폭등에 분노한 베를린 시민은 3000채 이상 주택을 소유한 부동산 기업의 임대주택 24만채를 강제 수용하여 공공임대로 전환하는 주택사회화 법안을 과반수로 통과시켰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살아가는 집이 더 이상 부자들의 재산증식 수단이나 투기상품이 되어선 안 된다는 목소리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하자

채효정 오늘의 교육편집위원장 경향 : 2023.05.01

 

 

폭스뉴스와 편집증적 세계관

대선 조작설을 퍼뜨린 폭스뉴스가 투표기 업체인 도미니언에 1조원이 넘는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하기 불과 닷새 전이었다. 미국 캔자스시티에서 부모님 심부름으로 동생을 데리러가던 16세 흑인 소년이 주소를 착각해 엉뚱한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가 총에 맞는 사건이 발생했다. 집주인인 84세 백인 남성 앤드루 레스터는 현관 밖에 낯선 흑인 소년이 서 있는 것을 보자마자 총을 두 발 쐈고, 그중 한 발이 유리를 뚫고 소년의 머리로 날아갔다. 소년은 중상을 입었지만,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레스터는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도대체 왜 레스터는 집 밖에 낯선 이가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린 소년에게까지 다짜고짜 총을 쏜 것일까.

 

그는 폭스뉴스 중독자였다. 그의 손자는 현지 언론인 캔자스시티스타와 인터뷰하면서 예전에는 할아버지와 사이가 좋았지만, 그가 폭스뉴스 같은 극우 케이블 채널을 보는 데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5~6년 정도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할아버지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폭스뉴스 패널들이 아버지 없는 흑인 가정이 이 나라에 범죄가 존재하는 이유라면서 네 집을 지키려면 스스로 총을 들고 맞서 싸워야 한다는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를 끊임없이 외쳐댔던 것이 떠오르자, ‘할아버지라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폭스뉴스의 대선 조작설과 코로나19 음모론을 완전히 믿으면서 우익의 토끼굴로 더 깊이 빠져드셨어요. 24시간 내내 공포와 편집증의 뉴스 사이클 속에 사셨습니다.”

 

폭스뉴스는 1996년 첫 방송을 시작할 때만 해도 별 영향력 없는 여러 케이블 뉴스 채널 중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주의 노선으로 전환한 후 2000년대 초반에는 공화당 지지자 3분의 1 이상이 시청하는 채널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현재 폭스뉴스의 프라임타임 평균 시청자 수는 220만명으로 MSNBCCNN을 합친 것보다도 많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CNN, CBS, NBC, 뉴욕타임스 등 다양한 소스를 통해 뉴스를 접하지만, 상당수 공화당 지지자들은 지역 TV채널과 폭스뉴스 단 두 곳만 보기 때문이다.

 

이는 공포와 편집증의 뉴스 사이클이라는 레스터 손자의 표현처럼, 공포를 조장하는 뉴스를 24시간 내보내 시청자를 끌어모은 덕분이기도 하다. 테러에 대한 공포, 무슬림에 대한 혐오, 이민자에 대한 분노. 흑인 범죄자가 당신의 집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며, 동성애가 청교도정신 위에 세워진 미국의 근간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편집증.

 

그래서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정치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다. 그는 폭스뉴스가 착실히 쌓아올린 편집증적 세계관을 가장 잘 구현해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불법 이민을 막는 것뿐 아니라 아예 장벽을 건설하겠다고 약속했다. 테러 단체와 연관됐을 것으로 의심되는 무슬림뿐 아니라 모든 무슬림의 입국을 막겠다고 선언했다.

 

폭스뉴스가 만든 세계관은 이제 거꾸로 폭스뉴스까지 위협하고 있다. 가디언은 도미니언과 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폭로된 폭스뉴스 내부 e메일과 문자 등을 통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폭스뉴스가 스스로 만든 괴물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 폭스뉴스가 처음부터 대선 결과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폭스뉴스는 격전지였던 애리조나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승리를 선언하고, 트럼프의 거짓 주장에 대한 팩트 체크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자 시청자들은 오히려 폭스뉴스에 화를 내면서 다른 극우 채널인 원아메리카뉴스로 갈아타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폭스뉴스의 편집증적 세계관에 중독된 사람들이 어떻게 선거 시스템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미 연방통신위원회는 1987년까지만 해도 방송사들에 전파 사용을 허가하는 대가로 반드시 뉴스를 보도할 때 반대 견해를 소개하도록 하는 의무를 지웠다. 그러나 이 원칙은 언론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의견에 따라 폐기됐다. 다양한 채널과 인터넷 매체의 등장으로 더 많은 시각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어느 한 매체에 균형성을 요구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뉴스 소비자들은 다양한 의견을 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곳을 찾아 채널을 바꾼다. 그리고 이를 조장해온 미디어는 다시 이를 바탕으로 생존전략을 짠다. 이것이 어디 미국만의 문제일까.

정유진 국제부장 경향 : 2023.05.01.

 

 

바이 바이~ ‘아메리칸 파이

윤석열 대통령이 아메리칸 파이를 불렀다고 해서 유튜브를 찾아봤다. 한 소절 부르기로 하고 어 롱 롱 타임 어고~”(a long long time ago)로 시작해 일곱 소절까지 나아갔지만, 빠르고 흥겨워지는 대목 직전에 끝나 아쉬웠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봤다. 특유의 미소를 씨~익 지으며 바이바이 미스 아메리칸 파이~”(bye-bye, Miss American Pie) 해줬더라면?

돈 매클레인이 1971년 발표한 이 노래는 1959년 전설적인 록스타 버디 홀리의 죽음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곡으로 알려져 있다. 1960년대 미국 사회를 잘 은유한 서사시여서 2016년 미국 의회도서관이 국가기록물로 지정하기까지 했다. 매클레인이 직접 쓴 자필 가사 원본은 2015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20만달러(14억원)에 팔려나갔다.

 

8분이 넘는 노래인 만큼 가사는 무척 길다. 노랫말을 추려 보자. 음악이 죽은 날, 말라버린 제방과 술 마시는 노인들, 로큰롤과 죽음, 추락하는 새, 아이들의 비명, 연인들의 울음, 꿈을 잃은 시인들. 버디 홀리를 비롯해 밥 딜런, 비틀스, 존 레넌, 엘비스 프레슬리, 롤링 스톤스, 재니스 조플린 등이 은유되는데, 신나는 음률에 맞춰 떠올리기는 어려운 노랫말이다.

 

이 난해한 단어들을 엮어낸 은유를, 정작 매클레인은 자세히 풀어주지 않았다. 다만 1960년대 미국에서 벌어진 일들을 통해 병들어가고 있는 미국의 흥망성쇠를 담으려 한 가사라고 짚었다고 한다. 가수가 거듭 작별을 고하는 대상은 아메리칸드림이라는 풀이도 있다. 미 의회도서관은 밝고 활기찼던 1950년대 미국 정치와 대중음악이 1960년대 들어 암울해지는 상황을 보여주는 노래라고 평했다.

 

미국의 1960년대는 어땠는가. 백인 중산층 중심 사회질서가 모순을 드러내고 흑인과 여성이 권리를 되찾기 위해 일어선다. 진보에 기운 대통령 존 에프 케네디는 1963년 암살당하고, 인종차별에 맞서온 마틴 루서 킹 목사는 1968년 백인우월주의자의 총탄에 쓰러진다. 미소냉전이 가속화하고 급기야 베트남 전쟁에서는 잔혹하고도 무능한 미국의 민낯이 까발려진다. 미국은 안팎에서 모두 밀리고 있었다.

 

60년이 지난 지금의 미국은 어떨까. 그토록 강조해온 동맹국 대통령마저 도청하고 거리낌 없이 자국이기주의적 산업정책을 펼친다. 동맹국의 경제마저 쥐고 흔들려 한다. 한국 기업들이 낭패를 겪든 말든 미국 안중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패전국 일본의 뻔뻔한 과거사 대응을 승전국 미국이 거들고 식민피해국 한국은 거듭된 의문의 1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기소와 잇단 총기난사 참사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겠다.

 

은유는 단일한 해석에 기대지 않는다. 은유의 힘은 모호성에 있다. 은유는 외교적 언사에 활용돼 전략성을 띤다. ···일에 둘러싸여 분단된 채 핵을 머리에 이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전략적 모호성을 방패 삼아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을 수밖에 없다. 의미심장한 가사를 경쾌한 곡에 담아 부를 때 쏟아진 박수갈채 뒤에는 함부로 대할 상대가 아닌데라는 평가가 보태져야 하는 게 아닐지 모르겠다.

 

아쉽다는 것이지, 노래로 양국의 70년 우정을 돈독히 하고 온 부분까지 비난하는 대열에 동참하고 싶진 않다. 영상을 보면, 윤 대통령은 국내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흐뭇하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주요 인사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다. 자국 지도자가 타국에서 환대받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길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그의 전매특허로 통하는 도리도리가 조금 거슬렸지만, 허스키한 목소리도 노래와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

 

그러나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열심히 국익을 챙기고도 부당하게 비난받고 있다고 스스로 여긴다면, 왜 그런지 곱씹어보는 게 적절한 태도일 것이다. 엄중한 국제정세 가운데 한국 대통령의 방미가 의미하는 바를 생각하면, 현찰 주고 어음 받아온 지도자를 국민이 반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후폭풍이 불어올 기미는 더욱 뚜렷해지고, 미국의 환대마저 의심스러워지고 있다. “음악이 죽은 날”(the day the music died) 이후에는 바이바이해봤자 별 소용 없을 텐데, 걱정이다.

김진철 | 문화부장 한겨레 : 2023.05.01.

 

양심까지 일임하진 맙시다

주식투자는 자기 책임 아래 하는 것이다.’

주식투자 전문가들이 주식투자를 처음 하는 주식 초보자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는 조언이다. 스스로 판단해서 종목을 골라야 단기간의 주가 변동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차분히 기다릴 수 있다.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종목을 장기간 보유해야 수익을 낼 확률이 높다. 하지만 주식 시장에선 이런 상식을 잘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최근 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에서 문제가 된 일임매매도 그중 하나다.

 

일임매매는 금융회사에 돈을 맡기고 알아서 주식을 매매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원래는 주식 수량과 종목, 매매 방법 등을 돈을 맡긴 전주가 결정하도록 돼 있지만, 실제로는 금융회사에 통째로 맡기는 경우가 많다. 이를 포괄적 일임매매라고 하는데, 사고는 보통 여기서 많이 난다. 고수익을 내게 해주겠다는 은근한 사탕발림에 넘어가 모든 것을 위임했다가 주가 폭락으로 대규모 손실을 보게 된다. 또 특정 종목의 주가를 띄우는 데 일임매매가 악용되기도 한다. 이를 막기 위해 금융위원회에 투자일임업자로 등록된 사업자만 일임매매를 할 수 있도록 했지만, 현실에서는 잘 안 지켜진다. 이번 사태의 핵심 인물인 라덕연 투자자문업체 대표도 일임업 허가를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주가조작 의혹은 삼천리·선광·하림지주 등 8개 종목이 지난달 24일부터 에스지증권을 통해 매물로 쏟아져 나와 나흘 동안 연속 하한가를 기록하면서 불거졌다. 이 종목들은 뚜렷한 호재 없이 1~3년 새 주가가 꾸준히 올랐는데, 서로 짜고 주식을 사고팔면서 주가를 끌어올리는 통정매매를 해온 것으로 당국은 보고 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주가가 뛰었지만, 금융당국의 경보음은 울리지 않았다. 더욱이 금융당국은 지난달 초 뒤늦게 제보를 통해 사건을 인지한 뒤에도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27일에야 검찰의 압수수색이 이뤄졌는데, 이미 주가조작 일당은 보유 주식을 대량으로 처분한 뒤였다.

 

이번 사태에 연루된 이들은 모두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투자업체 대표도, 그에게 투자를 일임한 연예인들도 각자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의 손실이 난 잔고를 공개하면서 억울하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투자금을 맡긴 자산가들도 도덕적 책임을 피하긴 어렵다. 주가조작에 실탄을 제공해 선량한 피해자를 양산했기 때문이다.

이춘재 논설위원 cjlee@hani.co.kr 한겨레 : 2023.05.02.

 

대통령 생각을 외신을 통해 아는 게 정상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줄곧 국내 언론이 아니라 외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밝혀왔다. 당선 후 첫 인터뷰를 워싱턴포스트와 했고 3월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치 닛케이 등 일본 언론과 인터뷰했다. 지난달 방미 전후로는 NBC 워싱턴포스트 로이터를 통해 12년 만의 미국 국빈방문에 임하는 생각을 공개했다. 이전 대통령도 외신과 인터뷰를 했지만 이 정도로 일방적이진 않았다.

 

왜 이런 선택을 하는 걸까. 대통령 주변의 말을 종합하면 메시지를 원하는 방향으로 내보내기 쉬울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라고 한다. 까칠한 질문을 던질 국내 언론보단 메시지 컨트롤이 용이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국민은 외신을 통해 윤 대통령의 생각을 충분히 잘 알고 있나. 대통령실도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방미 전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나온 일본 무릎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필자는 외신 인터뷰 일변도의 메시지 전달에 3가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첫째, 국민이 모국어로 대통령 생각을 접하지 못한다. 인터넷 번역 프로그램이 있다지만 주요 사안에 대한 미세한 뉘앙스와 호흡까지 전할 수 없다. 한 글자 차이로 전혀 다른 결과를 내는 외교안보 이슈는 더욱 그러하다. 윤 대통령이 방미 전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처음 밝힌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가능성은 러시아와의 관계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 메시지를 국민들은 영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우리말로 재번역해 접했다.

 

둘째, 대통령의 깊이 있는 답변을 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 외신 기자들이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도 한국 언론만큼 대통령을 관찰하고 감시할 수는 없다. 워싱턴에 파견된 한국 특파원들이 밤낮으로 일해도 뉴욕타임스 같은 현지 언론보다 백악관 정보가 부족한 것과 마찬가지다. 외신들도 무슨 일이 터지면 한국 언론을 통해 대통령과 주변을 취재한다.

 

셋째가 가장 심각한데, 국내 여론과 대통령 간에 간극이 생기는 디커플링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한국 언론이 다루는 대통령 말은 일방적으로 쏟아낸 회의 발언이 대부분이다. 권력자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국민과 대화하고 설득하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대표적인 메시지 실패 사례인 ‘69시간 근로논란, 워싱턴선언의 NCG(핵협의그룹)가 사실상 핵공유인지를 놓고 감지된 한미 간 온도 차도 언론을 통한 충분한 대국민 소통이 부족한 것과 무관치 않다.

 

윤 대통령은 이번 방미에서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국내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국정 현안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게 맞다. 일부 언론의 보도 행태에 비판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까칠하고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국내 언론과 제대로 된 인터뷰를 계속 피하는 건 윤석열답지 않다. 이번에 만난 바이든이 부통령 시절 8년간 함께하며 형제로 부르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20171월 퇴임 기자회견 한 대목을 마지막으로 소개한다. 이런 게 글로벌 스탠더드 언론관이기 때문이다.

 

언론인 여러분이 쓴 기사가 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우리(권력과 언론) 관계의 본질이다. 여러분은 아첨꾼(sycophant)이 아니라 회의론자(skeptics)여야 한다. 나에게 거친 질문(tough questions)을 던져야 한다. 언론이 비판적 시각을 던져야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은 우리도 책임감을 갖고 일하게 된다. (중략)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차기 정부에서도 집요하게 진실을 끄집어내서 미국을 최고의 상태로 만들어 달라.”

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 : 2023.05.02.

 

폭력적 성장에 감춰진 돌봄노동

오래전 교통사고로 한동안 정형외과 병동에 입원한 적이 있다. 의료진의 노고를 실감한 계기가 됐다. 외래진료만 받을 때는 의사나 간호사가 하는 일을 잘 몰랐다. 먹고 자고 치료받느라 그들에게 24시간 온전히 나를 맡기면서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 것이다. 밤이 되면 병동에서는 온갖 사건이 벌어진다. 비교적 멀쩡한 것 같던 환자들은 밤마다 자기를 봐달라고 아우성친다. 간호사가 가장 먼저 달려오고, 쪽잠 자던 당직의사도 뒤통수에 까치집을 지은 채 불려나온다.

 

복합골절로 양팔과 한쪽 다리에 깁스를 했으니, 입원 초기에는 혼자 뒤척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발가락 움직임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감각이 둔해질 때가 간혹 있었다. 깜짝 놀라 내 발이 제대로 붙어 있는지 확인하고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아봐야 했다.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에는 산소호흡기, 견디기 어려운 통증에는 진통제 신세를 수시로 져야 했다. 까탈스러운 요청에도 의료진은 인내심과 배려를 잃지 않고 돌봄을 제공했다.

 

한쪽 다리를 절단한 노인이 같은 병실에 있었는데,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쯤 한밤중에 침상에서 소변을 보고는 간호사를 소리질러 호출했다. 그때마다 간호사는 시트를 갈고, 노인의 환자복을 벗겨 물수건으로 몸을 씻긴 뒤 갈아입혔다. “다음에는 그러지 마세요라며 노인을 다독였다. ‘백의의 천사는 소설 속 표현일 뿐이라고 여겼던 생각을 바꾼 것은 그 무렵이었다.

 

간호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의료법에서 간호인력 관련 조항을 독립시킨 법이다. 간호사, 전문간호사, 간호조무사 등의 업무 영역을 규정하고, 근무환경·처우를 개선하는 내용을 담았다. 2005년부터 입법을 시도해 18년 만에 제정 결실을 본 것이다. 대표적 돌봄 노동자인 간호사가 적절한 보상을 받는 법적 장치가 마련됐으니 환영할 만하다.

 

그런데 의사를 중심으로 한 의료단체와 국민의힘 반발이 거세다. 보건의료 단체들은 무기한 단식에 들어가면서 파업을 예고했다. 간호법 통과 때 표결에 불참했던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기로 했다. 대선 후보 시절 대한간호협회를 방문해 간호법 제정을 돕겠다는 취지로 말한 적이 있는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약속을 저버렸다는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의사단체 등은 간호법이 의료 협력체계를 무너뜨리게 된다며 반대한다. 장기적으로는 의사의 지도 없이 간호사가 단독으로 의료행위를 하거나 개원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을 보면 간호사는 현재 범위를 넘어서는 업무를 할 수 없다. 다만 법이 만들어졌으니 향후 시행령 등을 통해 영역을 확대할 여지는 있다.

 

의사들로서는 현재 자신들만 할 수 있는 의료행위나 의료시설 설립을 장래에 간호사와 나눠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을 걱정하는 것이다. ‘밥그릇 싸움과 다르지 않다. 의사나 검사, 변호사, 정치인 등 권력과 부를 독점적으로 차지한 집단일수록 밥그릇 지키기에 열중한다. 간호법 표결 때 국민의힘은 간호사 출신,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의사 출신 의원이 당론을 거스르는 투표를 했다. 어느 측면에서 보는가에 달라지기는 해도 당론에는 전체 국민의 복리 증진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다. 그러나 당론에 반해 투표한 의원들에게는 소속 집단의 이해가 가장 중요할 뿐이다.

 

한국의 건강보험은 모든 시민이 고르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 같은 사회주의적 특성으로 의료 서비스를 공공재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전체의 90%를 민간에서 공급하는 만큼 민간재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서비스 공급자이자 사용자인 병원과 의사는 비용을 줄이고 수익을 늘리는 데 골몰한다. 의료 서비스 산업이 성장하는 데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임상병리사, 요양보호사 등 돌봄 노동자의 역할이 컸다.

 

라즈 파텔 미국 텍사스대 연구교수는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에서 자연··노동·돌봄·식량·에너지·생명 등 7가지 저렴한 것들 덕분에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됐다고 주장한다. 저렴하다는 의미에 대해 파텔 교수는 적은 보상을 주고 동원하는 폭력이라고 규정했다. 그 결과 인류가 직면한 것은 극단적인 불평등과 기후변화, 금융불안 등이다.

 

자연과 인간에 턱없이 적게 보상하며 유지해온 폭력적 성장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최대의 이익을 내기 위해 최소의 비용만을 지불해온 관행을 바꿔야 한다. 간호법 제정이 다른 분야 돌봄 노동자들에게도 정당한 권리와 보상을 쟁취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경향 : 2023.05.02.

 

 

()는 사람을 곤궁하게 만든다

시능궁인(詩能窮人)”이라는 말이 있다. 시가 시인을 곤궁하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송나라 때 구양수는 이를 부정하고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 즉 곤궁해진 뒤에 시를 잘 짓게 되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시인이 영달을 누리는 경우가 별로 없고 부귀를 누리다 보면 좋은 시가 나오기 어려워지는 실제의 경험들은 이 두 말의 차이를 무색하게 만든다. 결국 시와 곤궁함은 무엇이 원인이랄 것도 없이 맞물려 있는 셈이다.

 

인문학 역시 사람을 곤궁하게 만든다. 드물긴 하지만 이른바 역사 덕후도 있고 여전히 철학이나 문학에 매력을 느끼는 학생들도 있다. 하지만 사회 전반의 시선은 차갑다. 풍요로운 삶을 위해 인문학필요하다는 데에는 대부분 동의할 뿐 아니라 멋있는 말로 포장하여 강조하기까지 하면서도, 자신의 자녀나 지인이 인문학을 지망하는 것은 우려스러워한다. 첨단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영달을 누리며 살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선 중기 문인 장유는 시능궁인에 대해 반론을 펼쳤다. 공자는 합당한 자리를 얻지 못한 채 죽었으니 곤궁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후세 사람들은 공자를 소왕(素王)이라고 부르며 만세의 사표로 삼아왔다. 어느 왕도 공자처럼 세대를 넘어 진정한 영달을 누린 이는 없다. 아무리 대단한 부귀를 누린 사람이라도 다 죽으면 썩고 잊히는데 곤궁하게 산 시인들은 지금까지 기억되며 그 향기를 끼치고 있으니, 시야말로 사람을 영달하게 만드는 셈이라는 논리다.

 

그러니 장유의 말처럼 먼 훗날 나의 이름이 기억되리라는 소망만으로 인문학의 가시밭길을 감내하라고 권할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공자의 언행을 보며 자신을 성찰하고 깨달음을 얻어온 것은 누구나 당연시하던 통념을 근본부터 흔들며 새로운 발상과 질문을 통해 가려졌던 것들을 드러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깊이 있는 인문학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의지와 실력이 있는 이들이 곤궁함을 걱정하지 않고 그 길에 몰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사회와 국가의 역할이다. 그리고 이는 현세의 영달을 꿈꾸는 분야들에 비해 매우 적은 비용으로도 충분한 일이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경향 : 2023.05.02.

 

 

누가 충성을 강요하는가

조직을 사랑한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이 말 때문인지도 모른다. 당시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특별수사팀장에서 배제된 여주지청장 윤석열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검 국정감사에서 한 이 유명한 말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다. 위법한 지휘와 감독은 따를 필요가 없다는 소신을 당당하게 펼치는 모습에서 공정과 법치의 희망과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속 시원하게 들리는 이 말의 속뜻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문제는 공정과 법치를 실천하는 주체가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말이 항명과 하극상이라며 반발하는 사람들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으면 조직이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니 조직을 사랑하느냐고 따져 묻는 말에 그는 대단히 사랑한다고 답한 것이다. 한때 윤석열 대통령에게 커다란 정치적 자산이 되었던 이 말이 이제는 그를 공격하는 수단이 된 것을 보면, 이 말의 뜻이 처음부터 애매했거나 아니면 맥락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지는 단순한 정치적 수사였는지도 모른다. 조직과 사람은 정말 대립하는가? 조직을 사랑하면서도 사람에게 충성할 수 있는가? 사람에게 충성할 수 있도록 만드는 조직은 어떤 것인가?

 

이런 질문을 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말을 떠올린 것은 드라마보다 천박하게 더 드라마틱한 현실 정치 때문이 아니다. 벚꽃이 한창이던 어느 날 진해군항제에 동원된 어느 공무원이 터뜨린 불만 섞인 목소리가 이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 계기였다. 축제 기간 2000명 넘게 차출된 공무원은 대부분 6급 이하로 차량 통제, 주차 관리, 관광 안내뿐만 아니라 불법 주정차나 노점상 단속 업무도 했다. 정식 업무 이외에 자신의 직무와 전혀 관련이 없는 이런 일을 하는 것도 짜증나는데 단순 복무 점검이라는 이유로 감시까지 당한다고 느끼니 공무원들의 불만이 폭발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된다.

 

이들의 불만은 지극히 간단하다. 일상 업무도 과다한데 축제 업무까지 도맡느라 본래 해야 할 일을 제때 처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차출된 공무원은 대체로 하루 8시간 일하는데 정상 초과 근무는 하루 최대 4시간까지만 인정되기 때문에 근무시간 대비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 공짜 노동을 즐겁게 하겠는가? 무임금 차출이 단지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MZ세대 공무원의 불만은 다음과 같은 말로 극명하게 표출된다. “이 조직에 들어오겠다고 발버둥친 내가 바보다.”

 

변한 것은 세대가 아니라 시대

그렇다면 MZ세대 공무원은 사람뿐만 아니라 조직에도 충성하지 않는 것인가? MZ세대는 일한 만큼 정당한 보상을 받는 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직장인이든 공무원이든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물론 기성세대는 이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수당이나 특별수당을 바라기는커녕 까라면 까식의 조직문화에 익숙한 기성세대에게 MZ세대 공무원의 주장은 낯설 뿐만 아니라 부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기성세대가 공무원에게는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MZ세대는 헌신하는 만큼 공정하게 대우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조직에 무조건 충성하는 것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게 아니라는 의심이 묻어 나온다.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사명감이나 관료제적 위계질서만으로 공무원 조직을 운영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공무원에게 요구하는 봉사(奉仕)’는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쓰는 것을 의미한다. 봉사는 글자 그대로 받들고 섬기는 것이다. 회사는 구성원들이 기업이라는 조직을 받들고 섬기기를 바랐다. 국가도 마찬가지로 공무원들이 국가라는 관료제 조직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기를 바란다. 국가든 기업이든 모두 조직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직의 궁극적 목표는 구성원들 개개인의 융성이 아닌가? 공무원들의 봉사 대상인 국민의 행복이 국가의 과제라고 한다면, 공무원 역시 국민의 한 사람인데 어떻게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희생과 헌신을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현대인들은 회사를 더 이상 평생직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MZ세대는 아무리 연봉이 높은 좋은 직장이라고 해도 자신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직장을 그만두거나 옮긴다. 한때 우리는 자신을 직장과 동일시한 적이 있었다. 삼성에 다니면 자연스럽게 삼성인으로, 현대에 다니면 현대인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했다. 이런 문화가 붕괴한 것이다. 지금은 워라밸이라는 용어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처럼 현대인들은 자신의 삶을 중심에 놓는다. 21세기의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개인주의가 드디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변한 것은 사실 세대가 아니라 시대다. 시대가 근본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에 기성세대의 가치와 MZ세대의 가치가 충돌하는 것이다. 기성세대가 소속감과 성취감을 중시하는 집단주의에 젖어 있다면, MZ세대는 자율성과 의미에 기반한 개인주의를 선호한다. 기성세대는 MZ세대가 일은 하지 않고 보상만 바란다고 불만이지만, MZ세대는 자신의 삶에 의미 있는일을 원할 뿐이다. 일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없는을 싫어하는 것이다. MZ세대 공무원들이 불만을 터뜨리는 이유도 간단히 말하면 의미 없는 일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MZ세대, 정치에도 등 돌릴까 걱정

많은 MZ세대 공무원들이 그동안 신의 직장이라 불렸던 공직사회를 떠나는 현상은 시대와 사회가 변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개인주의로 무장한 새로운 세대가 조직에 충성하도록 만들 수 있는가? 회사에 헌신하면 헌신짝이 된다고 생각하는 개인들은 언제 조직에 충성하는가? 이 물음에 답하려면 21세기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충성은 강요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충성은 본래 임금이나 국가에 대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을 의미한다. 충성은 어떤 개인이나 조직에 대한 강력한 지지의 감정이다. 우리는 감정을 강요할 수 없다.

 

어떤 조직에 대한 감정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애국심이다.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특정한 민족이나 국가에 대해 가지는 소속감과 유대감이 바로 애국심이다. 애국심은 여전히 국가의 조직과 통일성을 유지하는 강력한 정치적 자원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살아갈 곳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애국심을 강요할 수 없다. 국민에게 애국심을 요구하려면, 국가는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가치를 대변하고 사회의 기본 구조가 정의로워야 한다. 우리가 대한민국에 애국심을 갖는 이유는 대한민국의 헌법정신 때문이지 단순히 이 땅에 태어났기 때문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헌법정신에 충성한다고 말할 수 있다.

 

국민에게 충성을 요구하려면, 조직을 구성하는 원칙이 투명하고 정의로워야 한다. <정의론>의 저자 존 롤스가 정의의 일차적 주제는 권리와 의무를 배분하고 사회 협동체로부터 생긴 이익의 분배를 정하는 사회의 기본 구조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무원들이 정상 업무 이외의 일을 위해 차출되는 이유가 분명하고 그러한 일에 대한 보상이 공정하게 주어진다면, 공무원들이 불만을 터뜨리거나 공직사회를 떠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조직을 더 이상 가족이나 마을 공동체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혈연, 지연, 학연이 유대감을 강요하는 사회는 자유롭지 못한 사회이다.

 

우리가 충성할 수 있는 조직은 오직 정의로운 조직이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은 조직이 헌법정신에 따라 정의로워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조직이 정의롭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역사적 경험에서 정의롭지 못한 조직은 언제나 충성을 강요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우리는 충성의 역설을 간파할 수 있다. “충성을 강요하는 조직은 정의롭지 못하다.” 이 점에서 우리는 많은 MZ세대 공무원이 공직사회를 떠나는 현상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자유로운 토론은커녕 다른 의견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우리의 정치문화로 인해 MZ세대가 정치에도 등을 돌릴까 두렵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경향 : 2023.05.02.

 

 

건강이 신()이 되어버린 사회

조인성, 이성민, 김남주, 황정민, 이병헌, , 공유, 이선균, 전지현, 지성, 이정재, 송중기, 유재석, 정우성. 이들의 공통점은? 얼마 전에 치러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과 관련이 있냐고? 아니다. 힌트로 BTS, 트와이스, 손흥민, 임영웅, 김호중, 박재범, 김신록, 그리고 아이유를 추가하면? 정답은 약 광고에 출연하는 톱스타 혹은 라이징 스타이다. 얼마 전 나는 흑백영화 같은 30초짜리 광고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그게 관절 영양제 광고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싸잡아 약 광고라고 하면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확히 말하면 광고에 등장하는 비타민, 유산균, 오메가3, 진통제, 자양강장제, 뇌 영양제, 눈 영양제 등이 모두 의약품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 광고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일반의약품과는 구별되는, 이른바 건강기능식품이다. 의약품은 질병의 예방과 치료가 목적이고, 건강기능식품은 몸의 기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지만 나 같은 일반인은 그냥 인터넷으로 살 수 있는 것(건강기능식품)과 살 수 없는 것(의약품)으로 구분하는 게 이해하기 더 쉽다. 어쨌든 건강기능식품 시장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6조원이 넘는 규모로 성장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장의 확대를 견인하는 것이 얼리 케어 신드롬(Early care syndrome)’이라는 분석이다. 예전에는 자식들이 부모를 위해 홍삼이나 비타민 등을 구매했다면 이제는 자신의 건강에 갓생’(God과 인생을 합친 신조어) 투자하는 ‘MZ 헬스케어족이 꼼꼼한 정보 분석을 통해 스스로 영양제 N을 산다(경향신문 411일자)는 것이다. 얼마 전 외국에 사는 아들이 잠시 귀국하면서 ○○제약의 프로폴리스와 밀크씨슬을 사 간다고 해서, 평상시 아들답지 않은 디테일에 놀란 적이 있다. 그런데 아들의 친구들도 술자리 대신 헬스장이나 단백질 음료를 더 좋아한다고 하니 건강에 진심인 게 아들만은 아닌 모양이다.

 

그러나 갓생트렌드만으로 이런 셀프 메디케이션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28바이오헬스 분야의 세계 시장 규모는 약 2600조원에 달한다면서 바이오헬스 산업을 제2의 반도체 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보건복지부도 디지털 헬스케어를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청진기와 임상적 진단 대신 신체를 데이터로 만들고, 이것을 바이오센서 등으로 모니터링하며 디지털 앱을 통해 원격 상담과 처방을 받는 세상을 열겠다는 것이다. 조만간 나의 소셜미디어에는 최근 검색한 양말과 포기김치 광고 대신 내가 스스로 입력하거나 병원에서 제공한 헬스 정보가 빅데이터로 처리돼 매일 내가 먹어야 하는 음식과 영양제, 취약한 신체 부위, 건강검진 시기 등을 알려줄지도 모르겠다.

 

미국 의사 아널드 렐먼은 의료가 아픈 사람이 아닌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새로운 소비시장을 창출하는 방식을 의산복합체 전략으로 규정했다. 전쟁이 무기를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 무기를 만드는 군산복합체가 소비시장으로 전쟁을 필요로 하듯, 의산복합체도 개인의 건강에 대한 소박한 염려,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보자는 다짐 등을 몽땅 집어삼켜 많은 사람들을 건강 이데올로기의 신봉자’ ‘데이터교의 신도’ ‘제한 없는 소비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완벽하게 지워지는 것은 인간은 예외 없이 생로병사를 겪는 유한한 존재이며 결코 의료적 차원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또 건강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의료기술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빈곤, 차별, 주변화, 일자리 부족 등 사회적 불평등의 결과라는 사실도 감춰지고 있다.

 

서울 힐튼호텔 옆 쪽방촌인 동자동 주민은 대부분 건강이 나쁘고, 고혈압·관절염·당뇨병·정신질환 등을 앓고 있지만 의료적 돌봄을 받지 못해 기대수명도 낮다(<동자동 사람들>). 그러나 문제는 <병든 의료>의 저자 셰이머스 오마호니의 말처럼 건강주의는 어떤 강압과 강제가 아니라 의료와 헬스케어가 늘어날수록 선이라는 폭넓은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것이며, 디지털 사회의 능력 있는 구성원이라는 확신에 찬 거대한 인구집단의 자발적 협력으로 유지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무의식이 되어버린 건강 신()을 배반하는 이교도가 될 수 있을까? 디지털 사회의 능력 있는 구성원인 내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자신 없는 질문이다.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경향 : 2023.05.04.

 

 

글 쓰는 인공지능사용 설명서

그림 그리는 인공지능(AI)은 근사하지만 글 쓰는 인공지능은 별 볼일 없다고, 몇주 전 나는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생각이 바뀌었다. 글 쓰는 인공지능이 퍽 요긴하다고 이제 나는 주위에 말하고 다닌다. GPT-4를 써보려고 돈 내고 결제도 했다. GPT를 사용해보시라고 독자님께도 권할 생각이다. 글 말미에 유용한 정보도 알려드릴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글 쓰는 인공지능 때문에 사회 전체가 뒤집어질 것처럼 부풀려 이야기하는데, 나는 그럴 것 같지 않다. 글 쓰는 인공지능은 문자 메시지 정도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렇다고 작은 변화는 아니다. e메일과 문자 메시지가 보급되면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몇배로 일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 인공지능을 이용하는 사람이 남보다 일을 많이 하고, 인공지능을 다루지 못하는 사람은 일자리를 지키기 어려워질 터이다. 자본주의란 그런 것이니.

 

그렇다면 글 쓰는 인공지능을 창작과 업무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주위 분들께 물었다. 어떤 사람은 인공지능에 회의 기록을 넘기고 회의록을 대신 써달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인공지능에 초벌 번역을 맡긴다. 어떤 사람은 PDF 문서를 요약시킨다. 나로 말하면 자료의 수집과 정리에 사용한다. 역사 만화와 역사 글을 짓기 전에 인공지능에게 자료 검토를 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모든 경우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한다. GPT는 모든 분야에 대해 어중간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의 경우, 인공지능은 도움이 안 된다. 내가 인공지능의 대답에 대해 팩트 체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잘 아는 분야도 도움이 안 된다. 인공지능의 어중간한 대답쯤은 나도 이미 알기 때문이다. 내가 어중간하게 아는 분야에, 내가 모르는 한두 가지 지식을 인공지능이 아는, 아주 한정된 경우에만 인공지능은 도움이 된다.

 

이런 점에서 문자 메시지와 비슷하다. 아무 때나 문자 메시지를 쓰지는 않는다. 전화를 하거나 직접 만나 이야기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온라인으로 화상 회의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문자 메시지를 보내도 될 때는 따로 있다. 우리는 이럴 때만 문자 메시지를 쓴다. 그래도 일손이 준다. 품이 덜 든다.

 

인공지능도 그렇다. 쓸모 있는 경우는 따로 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 어떤 인공지능을 쓸지, 누구에게나 권해드릴 기준은 없다. 사람마다 경우마다 그때그때 다르다. 이 감각을 몸에 익히려면 인공지능을 자주 써봐야 한다. 어떤 보조 프로그램을 쓸지도 하나하나 써보며 익혀야 한다.

 

나는 요즘 이렇게 작업한다. 자료 찾을 때 AIPRM을 쓰고, 팩트체크에 웹챗GPT를 이용한다. 페이지 요약에 리더GPT를 사용하고, PDF를 요약할 때는 챗PDF라는 사이트에 들른다. 집필할 때는 클로바노트를 쓴다. (검색해보시길.) 몇주 사용하면서 알게 된 정보다. 독자님께도 나는 권한다. 창작이며 업무며 인공지능을 써보시라고 말이다. 직접 써보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써야 할지 알 수 없으니.

김태권 만화가 경향 : 2023.05.04.

 

 

개 식용은 개인의 취향이고 문화라는 사람들에게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동물보호법 개정법이 지난 427일 발효했다. 오랜만에 개정된 동물보호법은 이 시대의 가치와 국민 정서를 반영하는 등 전향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논란이 많은 개 도살 문제에 대해 정부가 공권력을 동원할 수 있는 근거를 두었으니 정부는 이제 음식물 쓰레기를 개에게 먹여 키우고 참혹하게 도살하는 개 농장에 대해 대대적인 단속을 해야 할 것이다.

 

보신탕이라고 부르는 개고기는 동물성 단백질이 부족했던 시절부터 있어왔던 식습관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반려동물과 생활하는 가구가 늘어나고 TV 동물농장과 같은 프로그램의 인기에 힘입어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20대 국회에서도 개 도살을 금지하자는 동물보호단체의 주장에 부응해서 개식용금지법이 발의됐지만 제대로 심의하지 못하고 폐기됐다. 다행히 이번 21대 국회는 동물보호법을 개정해 개 농장과 개 식용에 대한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핵심은 개정법 제10조 동물학대 등의 금지 조항에 담겼다. 10조는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사람의 생명·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 방지 및 시행규칙으로 정하는 정당한 사유 없이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시행규칙 제6조는 허가, 면허 등에 따른 행위를 하는 경우와 동물의 처리에 관한 명령, 처분 등을 이행하기 위한 경우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축산위생법에 의해 정당한 허가와 면허를 얻어 도축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동물을 임의로 도살할 수 없게 됐다. 개 농장과 보신탕 식당이 임의로 개를 도살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사실 개정된 동물보호법이 발효하기 전에도 개 도살은 불법이었다. 축산위생법에 의하면, 개는 위생도축 대상이 아니라서 정부의 허가를 받은 도축장은 개를 도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개 농장과 보신탕 식당은 제멋대로 개를 도살해 왔고 지자체는 손을 놓고 있었다. 축산법이 1973년 이후 개를 가축으로 포함시켜 이런 난맥상을 초래한 측면도 있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20대 국회에선 개를 가축에서 제외하자는 법안이 제출됐으나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압도적인 국민 여론에 힘입어 개정된 이번 동물보호법은 개 도살이 불법임을 분명히 해서 이런 논란을 해소했다. 그럼에도 개 농장과 보신탕 업주들이 저항을 하고 있으니 한심하고 불쌍한 일이다. 또한 일부 언론이 개 식용 금지는 파시스트 발상이라는 기상천외한 논리를 펴고 있다.

 

지난 427일 한 경제신문에는 개 식용 금지법이라는 오버라는 기자 칼럼이 실렸다. 칼럼은 온갖 동물학대로 점철된 개 식용 문제에 문화상대주의를 들이대며 한국의 개 식용 문화가 비난하거나 금지할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이 이미 내려졌다고 썼다. 이번에 발효된 동물보호법이 개 도살을 동물학대로 규정했음을 모르고 쓴 것인가.

 

개 식용은 개인의 취향도 아니고 문화도 아니다. 개 도축은 과거에도 불법이었는데 그 불법을 방치해서 개 농장이란 흉측한 사업을 초래했던 것이다. 한 농장에서 개 천여마리를 키우는 대형·기업형 농장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거저 가져다 먹이는 구조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모르면 쓰거나 말해서는 안 된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한겨레 : 2023.05.05.

 

 

글로벌 동맹과 글로벌 하청 국가

지난해 5월 한-미 정상회담 직후, 미국에서 오래 생활한 언론계 선배가 내게 물었다.

 

“‘아이 트러스트 유’(I trust you)가 무슨 뜻인 거 같아?”

뭐긴요, 믿는다, 신뢰한다 그런 말이겠죠.”

그거보단 말한 대로 하는지 지켜보겠어라고 해석하는 게 더 맞을걸.”

 

아이 트러스트 유는 윤석열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떠나면서 건넨 말이다. 다수 국내 언론은 깊은 신뢰의 표현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듣고 보니 동맹국 정상에게 한 작별 인사로는 어색한 것도 같았다.

 

1년 가까이 흘러, 지난달 26일 나온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읽으면서 선배의 해석이 그럴싸했음을 깨달았다. 공동성명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환영” “지지” “평가했다는 대목이 쭉 이어진다. 칭찬 자체는 나쁠 게 없다. 그런데 이런 평가 대상은 한국의 3민주주의 정상회의개최, 아시아·태평양 안보 역할 확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협력,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 -일 관계 개선과 군사협력 등이다. 미국이 한국에 바라고 종용해온 것들이다. 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을 평가한 대목은 별로 없다.

 

결국 공동성명은 한국의 행동이 미국의 세계 전략에 얼마나 부합하는지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이 1년 전 표현한 신뢰에 충실히 부응했다. 그런 면에서 공동성명은 숙제 검사 비슷했다. 숙제 노트에는 참 잘했어요라고 쓴 고무도장이 찍혔다.

 

한국 정부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을 끌어당기려는 미국에 박자를 맞춰왔다. 이달 말에는 첫 -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도 개최한다. 이런 형식의 정상회의는 지난해 9월 미국이 처음 개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달 22일 파푸아뉴기니에서 태평양 도서국 정상들을 다시 만난다. 한국이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에 발 벗고 나선 것도 맥락이 비슷하다. 중국을 누르고 패권을 지키려는 미국의 의중에 복명복창하는 모습이다. 옆에서 돕는 정도가 아니라 그대로 따라 하는 게 일반화됐다.

 

이 모든 게 대통령실이 사실상의 핵 공유라고 설명한 워싱턴 선언의 대가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백악관이 곧장 반박하면서 대가로 받은 물건의 가치는 크게 깎였다. 미국에서조차 수천떨어진 심해에서 잠항하다 탄도미사일을 쏠 수 있는 전략핵잠수함을 한국에 기항시키는 게 군사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냐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전략폭격기와 한국 전투기의 연합훈련도 과연 새로운 내용인지 와닿지 않는다. 한반도 상공에 뜬 미국 전략폭격기를 한국 전투기들이 호위하는 장면은 이제 식상할 정도다.

 

얼마 전 만난 미국 국방부 출신 인사는 한국에서는 보수정권이 들어서면 전략자산을 전개해달라고 요청하고,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그 반대라고 했다. 국내 정치 수요에 따라 한국 정부의 요구가 오락가락한다는 냉소가 담긴 말이다.

 

세계적 문제를 풀기 위해 미국과 협력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기후위기, 전염병, 빈곤 등 공공선을 위해 힘을 합칠 분야도 많다. 하지만 미국의 전략적 의도에 따르는 지나친 코드 외교는 한국을 하청 국가로 만들 뿐이다.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이 갈수록 더 미국이 하자는 대로 하겠다는 다짐으로 들리는 이유다.

이본영 | 워싱턴 특파원 한겨레 : 2023.05.05.

 

시카고가 예고하는 21세기 묵시록

세계 노동절(51)이 며칠 전이었다. 노동절의 유래는 미국의 한 도시와 긴밀히 얽혀 있다. 18865월 시카고 헤이마켓 광장에서 벌어진 폭발사고를 빌미로 노동운동 지도자들에게 사형을 선고한 사건이 노동절의 발단이었다. 그만큼 시카고는 19세기 미국 노동운동의 본산이었다.

 

이후에도 이 도시는 미국, 아니 전 세계 사회운동의 중심지 가운데 한 곳이었다. 1960년대 흑인해방 운동과 반제국주의 좌파 이념을 결합하며 맹활약한 블랙팬서당 안에서도 가장 활기 넘치던 곳은 젊은 지도자 프레드 햄프턴이 이끌던 시카고지부였다. 햄프턴은 가난한 흑인과 라틴계, 백인 노동자들에게 인종갈등 대신 자본주의에 맞선 단결을 호소했다. 체제는 이 외침에 총알 세례로 답했지만, 아무튼 20세기에도 시카고는 각성한 민중의 거점이었다.

 

한달 전 시카고는 온 세상에 또 다른 역사적 뉴스를 알렸다. 228일 실시된 시장선거 1차 투표에서 민주당원 두명이 1, 2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다른 선거들과 달리 정당공천 제도는 없고 결선투표는 있기에 벌어진 광경이었다. 그런데 두 후보 중 폴 발라스는 민주당 주류 성향이지만, 흑인 교사 출신인 브랜든 존슨은 그렇지 않았다. 존슨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활발한 투쟁을 벌여온 교원노조에서 정치적으로 성장했다. 게다가 2016년 대선부터 줄곧 버니 샌더스나 엘리자베스 워런 같은 진보파 후보를 지지했다.

 

놀랍게도 존슨은 44일 결선투표에서 52.16%를 얻어 1차 투표에서 1위를 한 발라스를 누르고 당선됐다. 이는 2016년 버니 샌더스 돌풍 이후 미국 민주사회주의그룹 소속 연방하원의원들이 등장한 것만큼이나 중대한 변화의 신호다. 뉴딜 이후 공화당 후보가 한번도 시장에 당선된 적이 없고 레이건 시대에도 여성, 흑인 시장을 배출한 시카고라지만, 그런 역대 시장 가운데에서도 존슨은 가장 좌파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근 들어 부흥하고 있는 노동운동이 배출한 당선자라는 점이 돋보인다.

 

그러나 드라마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시장선거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15일 밤 시카고 도심에서 갑자기 폭동이 일어났다. 느닷없이 천여명이나 되는 청소년들이 모여들어 불을 지르고 자동차를 뒤집는가 하면 지나가는 시민을 이유 없이 폭행했다. 소셜미디어에 나돈 도시를 장악하자는 메시지를 보고 모여든 10대들이었고, 화면에 잡힌 모습을 보면 다수가 흑인이었다. 언론은 이를 인종갈등 문제로 다뤘다.

 

사건이 나자 다들 시장 당선자의 입을 쳐다봤다. 교사인데다 흑인인 존슨은 흑인 10대들의 예기치 않은 폭력 앞에 난처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파괴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 못 박으면서도 소외된 공동체의 청소년들을 악마화해서는 건설적 해법을 찾을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인종갈등으로 몰아가려는 흐름에는 분명히 선을 그은 셈이다.

 

미국 진보-사회운동 세력이 모처럼 거둔 승리를 무색케 하는 이번 사태는 멀고 먼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21세기에 여러 나라에서 좌파에게 닥칠 어려운 시험을 예고한다. 오랫동안 좌파는 승리의 그날이 오면 역량과 규율을 갖춘 노동계급이 낡은 질서를 물려받아 새로운 세상을 정연하게 열어갈 것이라 내다봤다. 개혁파든 혁명파든 모두 진보란 그런 모습이리라 믿었다.

 

그러나 21세기 변혁세력이 마주할 광경은 존슨과 지지자들이 직면한 곤혹스러운 처지에 더 가까울 것이다. 자본주의 질서가 갈가리 찢어놓고 활력과 잠재력을 고갈시킨, 폐허에 가까운 사회가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제껏 소망했던 것과 달리 좌파가 집권하고 난 다음 착수해야 할 과제는 완성이나 번영이 아니라 구조재건’, ‘회복쪽에 가까울 것이다. 붕괴 중인 사회를 가까스로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과업 말이다. 시카고 진보파가 선거 승리 뒤 맞이한 시련을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우리 모두 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장석준 |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한겨레 : 2023.05.05.

 

멜로드라마로 전락한 한국형 핵공유

지난주 한·미 정상이 내놓은 워싱턴선언의 핵심은 한-미 핵협의그룹(NCG) 신설이다. 이를 두고 정부와 여당이 2의 한-미 상호방위조약”, “-미 핵동맹 체결이라고 홍보하는 데 굳이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없다. 없던 협의체가 하나 생겼으니 성과라고 우기는데 반박해서 무엇하랴.

 

단 이 협의체가 무엇에 써먹는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선언문에는 북한의 핵 위협 정보를 공유하고 확장억제 전략을 토의하기 위해 설립한다고 밝히고 있다. 말 그대로 이 협의체는 핵전쟁을 수행하는 주체가 아니라 차관보급 협의기구에 불과하다. 모름지기 핵무기가 동원되는 전쟁을 수행하려면 군에는 새로운 작전계획과 전쟁 교리, 무기체계와 지휘통제시스템이 필요하다. 한반도에 핵무기를 운용하는 데 필요한 특수인가 요원과 핵 저장시설이 있는지 확인하고, 유사시 동원할 핵무기가 무엇인지도 사전에 정해놓아야 한다.

 

이러한 군사적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새로운 구상과 계획도 없이 분기마다 차관보가 만나 회의를 한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한반도에서 핵전쟁을 기획하는 핵심 주체는 누구이며, 핵전쟁을 수행해야 할 상황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어떤 절차를 통해 누가 핵 사용을 건의하고 결정하는 것인가. 재래식 전쟁을 수행하는 지금의 한미연합사령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모든 게 의문이다.

 

물론 선언문은 전략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 간의 역량 및 기획 활동을 연결하기 위해 견고히 협력한다고 표방하며 미국 전략사령부와 함께 수행하는 새로운 도상훈련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수사의 이면에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데 핵무기의 역할을 축소시키겠다는 바이든 정부의 비확산 정책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핵확산금지조약은 더욱 철저히 준수된다는 서약이 있다. ·미가 공동으로 핵전쟁을 기획하고 결심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핵 정책에 상당한 변화가 전제돼야 하는데, 미 정부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 더 분명한 사실은 미국이 한반도에서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를 개발해 배치할 의도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지금 미 본토에 저장돼 있는 100여발의 중력 핵폭탄은 구형 전략폭격기에 탑재해 10시간 넘게 비행해 한반도에 와도 중국과 러시아에 의해 전 항로가 탐지된다. 현대전에서 스텔스 기능이 없는 구형 폭격기로 접근해 핵폭탄을 투하한다는 발상 자체가 상식 밖이다. 미국의 새로운 스텔스 전략폭격기 B-21은 아직 개발이 완료되지 않았고, 얼마나 생산할지도 모른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집권 초 저위력 핵순항미사일이나 잠수함발사 전술핵미사일 개발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현재 미국에는 한반도 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로 불리는 무기는 존재하지도 않으며, 미 정부는 아예 전술핵무기라는 용어 자체도 위험하다며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전술핵이 없다면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탄의 수백배 위력의 전략핵무기 트라이던트를 잠수함에서 발사한다는 걸까? 너무 위력이 강해서 사실상 쓸 수 없는 핵무기다. 미 오하이오급 잠수함은 핵무기 접수를 금지한 비핵화 공동선언 때문에 핵을 탑재하고 우리 항구에 기항할 수 없다. 미 본토에서 북한을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하면 어떤가? 북극 항로를 통해 오는 미사일은 북한에 도착하기 이전에 중국과 러시아 영공을 통과해야 한다. 3차 세계대전의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핵무기를 포함한 확장억제는 실체가 없는 선언적 차원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피해 가기 어렵다. 설명하기 불가능한 워싱턴선언을 두고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사실상 핵을 공유한 것으로 국민들이 느끼시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둘러댔다. 정상회담 이전부터 정부는 한국형 핵 공유정보동맹 체결이라는 초대형 블록버스터 예고편을 마구 틀어댔다. 바로 그 순간에 미국은 중국에 워싱턴선언의 내용을 미리 알려주며 중국에 대한 핵 위협은 없다고 양해를 구한 모양이다. 핵 공유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김 차장을 두고 백악관 국장이 직접 나서 핵 공유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사실상 미국에 혼쭐난 거다. 멜로드라마로 변질된 한-미 정상회담을 보고 중국은 미소 짓고 있을 거다. 이제는 핵에 대한 망상과 집착을 버릴 때다. 안보 현실은 변하는 게 없는데 상실감만 커지기 때문이다.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한겨레 : 2023.05.05.

 

 

K팝 아이돌 생태계에서 '''아이돌'은 어디에 있나

엔터 플랫폼이 '팬질'까지 지배한다면?

신인 그룹 피프티피프티는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에서 <큐피드>6주 연속 1위를 차지하고 핫 100 차트에서 41위를 기록하는 등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특히 맴버 시오는 연습생 시절을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의 구절을 곱씹으며 견뎠다고 한다. 다재다능하고 실력까지 있는데다가 인성도 뛰어난 아이돌의 이미지는 단순한 상업주의의 비판을 넘어서는 감동을 자아내기도 한다. 지난 26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태양은 성실함을 자신을 가수로 만든 초심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연습생 시스템에 대한 많은 논란과 비난이 있지만, 자신의 꿈을 향한 노력은 쉽게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문제의 개선을 위해서는 문화산업적 특성과 구조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최근에는 자연스럽게 아티스트라고 일컬어지는 아이돌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항상 너그러웠던 것은 아니다. 박진영은 1994년 모 방송국 국장이 의상을 지적하면서 "연세대를 졸업한 가수니 딴따라처럼 옷을 입지 말라"고 하자 보란 듯이 자신의 2집 제목을 '딴따라'로 지었다고 한다. '딴따라'는 하층 서커스 단원을 지칭하는 영어에서 유래해 무대에서 공연하는 연예인을 경멸적으로 지칭하는 용어였다. 아이돌의 등장은 보수적인 대중음악계에 충격이었다. 탄탄한 팬층을 기반으로 신화를 만들어 세간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이수만이 1999HOT를 두고 라이브도 못하는 게 가수냐는 언론의 비판에 엔터테이너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 이후 아이돌은 만능 엔터테이너로 불리며 가수 이상의 재능과 끼가 존재함을 증명했다. 2010년대 집중된 해외 팬덤의 증가는 서구 언론의 비판으로 이어졌다. 연습생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재능 계발을 장려하며 브랜드와 스타 이미지를 강조하는 동시에 아이돌의 사생활을 엄격하게 통제해 효율적인 운영을 도모하는 아이돌 시스템은 지나친 아이돌의 상품화, 음악적 장르의 획일화를 조장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중음악의 장르와 스타일에 다양성이 부족하고 획일화된다는 비판은 1940년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표적 학자인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문화산업(culture industry)'이라는 개념을 처음 언급하면서 등장한 논리다. 미학적, 장르적 차원의 음악에 치중한 유럽 중심적 사고는 다양한 취향을 바탕으로 능동적 소비를 하는 현대 대중의 등장과 함께 비판받았다. 경제성장을 위한 문화정책 용어로서의 문화산업(cultural industries)이라는 변경된 의미에서 볼 수 있듯 예술과 문화의 상품화는 더는 부정적 은유가 아니다. 유네스코의 창의 경제 보고서도 상품화 과정이 반드시 문화적 표현의 퇴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역설적으로 유럽 및 아시아의 다양한 국가에서 K-pop 성공의 문화 산업적 특성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국 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또 하나의 대표적인 비판인 아이돌은 예술성과 창의성이 부족하다는 인식 역시 2010년대부터 등장한 빅뱅과 BTS 등 개성과 예술가적 자아가 강한 아이돌의 등장으로 다소 누그러들었다. 과거 아이돌의 의견이나 개성과 무관하게 기획사의 강제적인 하향식(Top-down) 브랜딩 방식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기획사들이 개인 정체성에 기반을 둔 진정성 중심 브랜딩 전략으로 전환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특히 빅히트 시절의 방시혁은 BTS의 데뷔과정과 연습생 시절 프로듀서 피독과 함께 각 맴버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키워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도록 장려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여자)아이들 리더 소연이 다음 앨범의 콘셉트를 설명하는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는 모습이나 스트레이 키즈의 프로듀싱팀 3RACHA가 앨범 전체의 작사와 작곡에 참여한 사례는 변화한 아이돌의 예술적 창작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최근 SM의 인수전에서 드러난 산업계의 변화는 많은 우려를 제기하게 한다. SM 3.0의 핵심전략인 IP 다각화는 앨범, 음원, 공연, 출연 등 아티스트 비즈니스 중심의 1IP 비즈니스 모델에서 굿즈, IP 라이선싱, 영상, 팬 플랫폼 등 2IP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하고 집중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MD(merchandise)상품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어온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수익전략이다. 그러나 SM의 새 전략에서 원천IP인 아티스트의 관리를 개선하겠다는 언급 수준은 매우 빈약하다. IP는 지적재산(Intellectual Property)이라는 뜻으로 원래는 특허나 상표권 또는 저작권의 보호를 위한 법률용어다. 마블 스튜디오가 어벤저스와 같은 만화 캐릭터의 개발과 수익화를 설명하며 이 용어를 쓰자 이후 국내 미디어 업계도 사용하고 있다. 두드러지게는 트랜스 미디어 스토리텔링 전략을 위한 용어로 등장했다. 그런데 아이돌과 캐릭터는 다르다. IP로서의 아이돌의 캐스팅, 데뷔, 그리고 관리는 수익성에 기반을 둔 주주이익 중심 의사결정에 의존하며 너무 강한 개인의 개성은 다양한 상품화를 위해 지양된다.

 

2일 하이브는 최대 IP(지식재산권)인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군 복무에 따른 팀 활동 휴식에도 멤버들의 솔로 활동 호조 등에 힘입어 올해 1분기 실적이 해당 분기 기준 역대 최고치를 달성했다. 하이브의 올해1분기 영업이익은 525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41.7% 증가했다. 매출은 4106억 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44.1% 증가했다. 당기순이익은 498억 원으로 62.5% 늘었다. 사진은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연합뉴스

 

아티스트와 유통사가 개별 계약을 처리하는 구조에서 회사는 아티스트로부터 IP 다각화에 대한 전반적인 허락을 구해야 하고 매번 새로운 계약으로 저작권을 연장하고 그에 따르는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전속계약과 360도 계약의 특성상 아이돌은 협상력을 갖지 못한다. IP 다각화와 수익화 전략에 따라 기획사가 1IP 사업(음반/음원/공연/출연)인 아티스트 중심 비즈니스 모델에서 2IP 사업(MD, IP라이선스, 영상, 팬 플랫폼)으로 전환과 집중을 한다면 분명 수익은 커질 것이다. IP 다각화는 회사의 아이돌에 대한 통제와 지배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하이브와 SM의 플랫폼 제휴 역시 산업계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최근 SM 아티스트의 위버스 입점이 성사되었고, 하이브는 위버스에 프라이빗 채팅 기능을 추가한다고 발표했다. 두 회사의 전략적 제휴는 기능적 플랫폼 통합이나 지분 교환을 통한 합병에 따라 지배력의 양적 증가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플랫폼 비즈니스의 특성상 선도 기업은 초기에는 확장성에 몰입하고 후기에는 폐쇄성, 상업화의 전략을 취한다. 팬덤은 다양한 형태의 편의와 즐거움을 누리겠지만, 플랫폼 중심의 팬덤 커뮤니케이션은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연대나 창조적 재생산의 주체로서 본연의 지위를 잃고 그 결과 K-pop 팬덤의 사회적 기능 제한으로 이어질 수 있다.

 

2000년대 음반산업(recording industry)으로 불리던 음악시장(music industries)이 디지털화하면서 실물 앨범 판매량이 감소했고, 그 결과 많은 음반사가 폐업했다.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은 스타 중심의 시장 구조로 전환하여 소장품으로서 실물 음반의 가치를 유지하는 전략을 취했다. 음악 중심에서 스타 중심의 시장구조로의 전환에 성공한 K-pop 산업은 글로벌 음악 시장이 구독제 스트리밍 서비스로 재편되었음에도 앨범 중심 음악 제작과 실물 음반의 구매 소장품으로서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었다. 팬으로서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굿즈를 소유하거나 좋아하는 아이돌을 지원하기 위해서 또는 이벤트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굿즈를 구매하는 행위 자체는 새로운 구매 경험을 제공한다. 음반이 소장품으로서 가치를 여전히 지켜간다는 점도 K-pop 산업의 양적 성장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반면, 과도한 구매를 자극하는 노골적인 마케팅이나 품질에 맞지 않는 굿즈의 가격 책정 등 부작용을 낳는 것도 현실이다. 일부 연예기획사가 친환경 소재와 디지털 포토카드와 같은 대체재를 제품에 도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최근 K-pop의 지속 가능 성장 논의가 불거지고 있다. 그러나 지속 가능 경영이 무엇인지는 뒷전으로 보인다. 지속 가능 경영이란 '조직과 이해관계자와의 의사소통을 증진'하고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지속 가능성을 추구함'을 의미한다. 적절한 성장과 유지는 지속 가능성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가 아이돌을 아티스트로 부르지만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반대로 팬의 의미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K-pop 산업은 주주 중심 자본주의의 전략적 위험, 아이돌의 자기 정체성 문제, 팬덤의 역할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함으로써 보다 포용적이고 지속 가능한 K-pop 생태계를 위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아이돌의 브랜드와 이미지 관리가 주주 가치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를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 엔터테인먼트사의 IP 전략과 플랫폼화는 아이돌에 대한 통제와 지배력을 강화한다,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상장기업으로 주주 중심의 자본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팬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넘어 문화산업 생태계를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플랫폼화된 커뮤니티는 팬들의 유입과 이탈을 더욱 어렵게 만들면서 아티스트와 팬 모두 수동적인 역할에 머무르도록 강제한다. 너무 이상적인 기대일지 모르지만, 진정한 K-pop의 지속가능성장은 내수 기반의 중소 생태계로의 분산화와 팬덤의 자생적 커뮤니티에 기반을 둔 탈구조화로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

이동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방문연구원 | 프레시안 2023.05.05.

 

 

대통령의 방미외교는 '사실상' 성공했고, 우리 외교는 희망을 잃었다

한국 보수의 앙상한 '대안 외교'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의 방미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윤석열 대통령은 연극을 보고 배우들과 뒷풀이를 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는 신중했다. 펠로시 의장은 대만·싱가포르·일본 등 동아시아 주요 국가를 돌면서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등 국가 정상들을 만났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 의전 서열 3위인 그를 패싱했다.

 

강단 있던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 스타일은 지금 완전히 바뀌었다. 미국에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 줬다. 미국이 원하는 건 네 가지였다. 한국은 핵을 가져선 안되고, 한국은 미국에 투자해야 하며, 한국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양안 관계에서 우리 편을 들어야 한다. 네 가지 모두 실행됐다. 미국에 완벽한 외교적 승리를 안겨 주는 게 윤석열 정부의 목표였다면 이건 달성됐다.

 

일부 언론은 그러나 여전히 윤석열 대통령의 '워싱턴 선언'을 폄훼하고 있다. '일부 언론' 중 하나인 <조선일보>27일자 사설 '한미 핵 협의그룹 창설, '한 핵 족쇄'는 강화됐다'에서 "한국민의 불안을 근원적으로 해소할 조치는 이번에도 없었다. 나토식 핵 공유의 기본은 핵탄두가 나토국 공군 기지에 있다는 것으로, 이번 한미 협의와는 완전히 다르다. 한미 간에 어떤 문서나 약속이 나와도 미국이 워싱턴과 뉴욕이 핵 공격을 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서울을 보호해줄 것이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되지 못한다"고 혹평하며 "결국 핵 협의 그룹 창설을, 한국 핵무장과 전술핵 재배치 포기와 맞바꾼 모양이 됐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나아가 "한미 동맹은 우리 안보의 초석으로 이는 앞으로도 바뀔 수 없다. 다만 우리를 지키는 쪽은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만은 잊지 말아야 한다"는 묘한 말까지 던졌다.한국 보수가 떠받드는신화, 한미동맹이 만들어 내는 차가운현실 앞에서 씁쓸한 입맛을 다시는 <조선일보>.윤석열 대통령은이런 짓을 했을까.

 

오해하지 말자.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방미 외교의 '사실상' 유일한 성과는 '워싱턴 선언'이다.

 

애초 미국이라는 국가가 갖고 있는 제 1의 원칙은 '미국은 핵을 공유하지 않는다'이다. 그리고 1968년 전 세계 185개국이 핵무기 보유를 포기한 NPT(핵확산금지조약) 가입에 동의한 이후로 미국의 핵심 전략은 '미국 이외에 어떤 국가도 더 이상 핵을 가져선 안된다'이다. 그걸 깬 나라는 몇 개 없다. 북한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핵을 공유할 수 없다'는 제 1원칙이 불변하는 한 한국이 어떤 걸 요구한다고 해도 미국은 구색을 맞추면 되는 일이었다.

 

남북 화해 무드가 한창이던 201810월 트럼프 행정부의 미 국무부는 갑자기 '한미 워킹 그룹'을 발족시킨다. 대북 제재 준수과 남북 협력 사업 문제 조율 등을 협의하기 위한 실무단인데,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한국 정부의 대북 과속을 시스템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단속반'의 성격이 될 것"이라고 했다. 진보 진영에서도 같은 주장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부인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전망은 딱 들어 맞았다. 한국은 북한과 독자 사업을 미국과 협의해야만 했고,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보다 한발 더 나가려 하는 남북의 '통제되지 않는' 행보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다. '한미 워킹 그룹'은 남북 관계 제동기 역할을 했다.

 

윤석열 정부가 합의했다는 한미 양국 간 핵협의그룹(NCG)은 비슷한 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한국의 독자 핵무기 개발 욕망을 자신의 품 속에서 합법적으로 제어할 수단을 얻었다. 한국이 NPT에 잔류하는 선언도 받아냈다. 한국은 이제 핵 개발도, 전술핵 재배치도 '사실상' 포기했다. 윤석열 정부는 스스로 '우리의 핵개발 욕구를 제어해달라'고 요구한 것과 다름 없다. 애초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에도 대북 핵 억지력 소통을 위해 출범한 EDSCG(한미 외교·국방 고위급 협의체)가 있었다. 그런데 한국은 '핵 문제'만을 콕 찝어 한미 '핵 협의 그룹'을 만들어 자승자박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매우 중요한 지점이 있다.윤석열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의 원칙을 미국으로 하여금 재확인하도록 만들어줬다는 점이다.

 

'한반도 비핵화'의 재확인, 윤 대통령과 그의 행정부는 이처럼 중요한 성과를 거두고도 정 반대 방향으로 확대 해석하느라 바쁘다. '사실상 핵공유'라는 희한한 조어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진짜 성과를 숨기고 '북한 종말' 과 같은 호전적인 용어를 동원해 단 한번도 변한 적 없는 미국의 '핵우산 정책'이 변했다고 힘주어 말한다.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부터 재확인한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원하는 걸 다 내 주고 말의 성찬을 대가로 받아 한국 내 정치적 선전 효과에 매달리는 한국 정부가 참으로 희한하고, 또 고마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이같은 빛나는 성과의 문제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단순한 원칙(소극적으로 보면 한국은 아무 행위를 하지 않아도 되는) 재확인에 막대한 외교력과 비용을 투자했다는 것이고, '한반도 비핵화'라는 단순한 원칙(적극적으로 보면 북한의 핵 포기를 견인해야 하는)을 진전시키기 위한 '미래 플랜'이 단 하나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한의 핵포기를 위한 노력의 장이 되여야 할 방미 외교 무대가 '한국의 핵포기'를 선언하는 장으로 변한 셈이다. 노력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걸 얻어내는 데 진력을 다 하느라 정작 중요한 것은 놓쳐버렸다. 아니 애초에 '북핵 문제 해결'보다 '한미일 동맹'을 향해 내달려 오고 있던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을 위시한 윤 대통령의 외교 참모들에게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평화 외교'를 못마땅해 하던 보수 진영이 짜 낸 아이디어는 '북한도 하면 우리도 한다''핵 무장'의 앙상하고, 실현 가능성 없는 플랜이었다. 한국 외교가 수십년 견지해 온 '한반도 비핵화'의 원칙을 간단히 허물고자 내놓은 '미래 아젠다''핵무장' 수준이라면 이 정부의 외교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앞으로 남북간 긴장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중국과 러시아를 적대시하는 것은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북한을 설득할 동력마저 꺼버리는 일이다. 미국을 향해 내달렸지만 미국은 '더 다가오지 말라'고 하고 주변 열강은 한국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고 있다.대체무슨일이벌어지고있는것인가.

 

한국 경제는 지금 내리막이다. 자원도 없구 수출에 기대어 살아간다는 이 나라가 주변국들을 자극하는 대결적 외교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무역수지 적자는 14개월째 계속되고 있고,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기구는 한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1.5%로 잡았다. 한국은행 역시 전망치 하향 조정을 예고했다. 물가상승률은 둔화됐다고 하지만, 이미 오를대로 오른 물가에 서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1호 세일즈맨'은 미국의 '1호 바이어'가 되어 돌아왔다. 경제 성과는 불투명하고 미국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은 활기차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 재확인은 환영하지만, 민심이 점점 가물어가고 있는 상황은 개선된 게 없어 보인다. 우린 과연 누굴 위해 외교를 하는가?

 

대통령의부른노래 돈 맥클린의'아메리칸파이'는 미국의 황금기를 추억하는 '송가'."음악이죽은 날, 바이 바이 아메리칸 파이" 가사에서 또다른무엇인가, 이를테면 '평화 외교''죽은'씁쓸하게 회상하는'페어웰(farewell song)'처럼들리기도한다.음악은듣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심성을불러일으킨다는점에서위대하다.

박세열 기자 | 프레시안 2023.05.05.

 

 

'연봉 36' 공고에도 지원하는 의사가 없다

"지역 의사 유출은 식민주의의 결과"

최근 경남 산청군 보건의료원의 내과 전문의 구인난이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36000만 원의 연봉과 다섯 차례나 채용이 무산된 사정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지만, 의사 인력 확보는 산청만의 고민이 아니다. 주로 광역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지방의료원은 대부분 도 지역에 분포하는데, 전체 35개 기관 중 정원을 충족하는 곳은 11곳뿐이다.

 

임금을 많이 준다고 해도 비수도권 농어촌 지역에서 일할 의사를 찾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까지 원인을 '개인 수준'에서 찾는 경우가 많았다. 젊은 의사들이 필수 진료과 전공을 기피해서, 의과대학생이 지역 출신이 아니라서, 자녀 교육 문제 때문에, 문화적 인프라를 포기할 수 없어서 등. 또는 지역 의료기관의 열악한 근무조건을 탓하기도 한다. 모두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려면 구조적 요인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공통의 뿌리는 도시와 농어촌 간,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관계에 있다. 수도권에 대형병원 분원이 6000병상 넘게 증설되면 지역 인력난이 심화하리라 예측하는 일에 대단한 이론적 뒷받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바로 가기 : <라포르시안> 28일 자 '수도권 대형병원 몸집 키우기 경쟁...'지방 의료소멸' 가속화한다')

 

지역 간 관계라는 관점으로 생각해보기 위해 푸에르토리코의 의사 유출 문제를 지배와 종속관계, 곧 식민주의 관점에서 분석한 연구를 참고할만하다.(바로 가기 : 떠나는 의사들: 푸에르토리코의 식민성과 의사 유출) 푸에르토리코는 미국의 속령으로 400년간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다가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의 결과 미국에 양도된 인구 310만의 섬 지역이다. 20세기 초부터 푸에르토리코 주민들에게도 미국 시민권이 주어졌지만 완전한 정치적 권리가 허락되지는 않았고 문화경제적 식민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보건의료 영역에서는 의사, 특히 전문의가 미국 본토로 유출되는 문제가 심각하다. 푸에르토리코에서 근무하는 의사는 200914500명에서 20209000명으로 빠르게 감소했고, 푸에르토리코 의사협회는 20228월 기자회견을 열어 보건의료체계 붕괴를 경고했다. 소개한 논문의 연구진은 의사 유출의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한 의사 26명과 온라인 심층면담을 진행하고 푸에르토리코 의료 현장을 관찰하는 방법으로 자료를 수집했다.

 

연구 결과는 세 가지 범주로 정리했다. 첫째, 이주한 의사들은 푸에르토리코가 사회 전반적인 위기 상황에 봉착한 지 오래라고 인식했다. 지역 경제는 본토 기업에 종속된 시장이 되어 막대한 대외 부채를 떠안았고, 빈곤율과 실업률이 치솟았다. 푸에르토리코의 물가는 본토보다 비쌌는데, 이는 모든 상품을 값비싼 미국 선박을 통해 수입해야 한다는 식민적 의무와 관련되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2017년 불어닥친 허리케인이 이미 취약한 인프라를 파괴한 데다가 본토에서 오는 자원과 도움은 불충분했고 연방정부는 피해 규모를 축소했다.

 

둘째, 푸에르토리코의 보건의료체계가 나쁜 정치와 민간보험사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인식이 의사들의 이주를 부추겼다. 푸에르토리코 정부는 보건의료를 책임 있게 관리하지 않았고 보건부 장관은 정치적 셈법을 따라 임명되었다. 관리의 부재 속에 본토 민간보험사의 영향력이 점차 커졌는데, 이들은 푸에르토리코에 본토보다 적은 수가를 보상했다. 지불보상액을 과소책정한 것은 민간보험사뿐 아니라 연방정부의 메디케어도 마찬가지였다. 의사들은 보상액 격차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으며, 이런 상황은 정부의 인력 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푸에르토리코 정부는 의사 유치를 위해 소득세를 감면하는 정책을 펼쳤지만, 이는 연방 의회가 지명한 재정관리위원회에 의해 중단되고 말았다. 재정관리위원장은 본토 민간보험사에서 일했던 사람이었다.

 

셋째, 신규 의사가 지역에서 전문의 훈련을 받고 싶어도 그러기 어려웠다. 푸에르토리코의 4개 의과대학 중 3곳이 학비가 비싼 민간 대학이었고, 고액의 학자금 대출을 떠안은 졸업생들은 높은 임금을 찾아 본토로 떠나야 했다. 정부는 대학에 대한 재정 지원을 감축했고, 대학병원은 수련 프로그램을 유지하기 버거워졌다. 푸에르토리코의 의과대학 졸업생 400명 중 195명만이 지역에서 전문의 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 수련을 위해 본토로 떠난 의사가 다시 돌아오기도 쉽지 않았다. 민간보험사는 푸에르토리코의 신규 의사 진입을 막았고, 푸에르토리코 의사는 본토보다 더 번거로운 방식으로 보험료를 청구해야 했다.

 

보건의료체계 붕괴를 경고한 푸에르토리코 의사협회는 몇 가지 권고를 제시했다. 레지던트 수련을 위한 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민간보험사는 신규 의사 진입을 허용해야 한다. 세금 감면으로 의사에게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권고안은 논리적이지만, 연구진은 오랜 기간 고착되어 온 구조적 문제를 풀려면 규범적인 접근을 넘어서야 한다고 보았다. 즉 미국 본토와의 식민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는 의사 유출을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푸에르토리코 의사들이 본토로 이주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연방정부가 지역의 사회 인프라 재건을 외면했기 때문이고, 본토 민간 기업이 지역 경제를 포획했기 때문이며, 불공평한 무역 정책으로 지역의 상품과 서비스가 더 비싸졌기 때문이고, 신자유주의 정책이 지역 내 교육훈련 여건을 나빠지게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지역 의사들뿐 아니라 환자와 주민, 정치인, 사회과학자가 함께 모여 식민 관계를 극복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연구진의 제언이다.

 

21세기 한국에 공식적인 제국이나 식민지는 없다. 하지만 주로 수도권에서 사용할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해안 지역에 발전소를 만들어야 한다면, 도시 주민에게 공급하기 위해 농산물 가격을 낮게 억제해야 한다면, 농어촌 주민의 중증응급의료 필요는 대도시로 나가 해결해야 한다면,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진다면 실질적인 식민 관계는 실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산청군 보건의료원의 의사 인력 문제는 산청의 문제이되 '산청 문제'가 아니다.(관련 기사 : <강원일보> 317일 자 ''지방대 문제'는 없다') 보건의료를 넘어 사회, 경제, 문화, 정치를 수도권 중심주의로부터 탈식민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구조적 해법에 다다를 수 있다. 의사 인력 문제를 두고 공공의대를 어느 지역에 유치할지 경쟁하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의 요구를 한 데 모아 기존 권력관계에 균열을 낼 방법을 모색하는 일이 아닐까?

 

*서지 정보

- Varas-Díaz, N., Rodríguez-Mader, S., Padilla, M., Rivera-Bustelo, K., Mercado-Ríos, C., Rivera-Custodio, J., Matiz-Reyes, A., Santiago-Santiago, A., González-Font, Y., Vertovec, J., Ramos-Pibernus, A., & Grove, K. (2023). On leaving: Coloniality and physician migration in Puerto Rico. Social Science & Medicine, 115888.

김찬기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 프레시안 2023.05.05.

 

 

SMR은 서울에 짓자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의 한 결과로 미국 뉴스케일파워와 두산에너빌리티 등 한국 기업들의 드림팀이 경북에 SMR(소형 모듈 원자로) 프로젝트를 본격 추진한다는 소식이다. 17만여의 부지에 원자로 6개를 세트로 2028년부터 건설을 시작하고 2030년까지 462의 설비를 완성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윤 정부의 원전 생태계 복원 방침에도 불구하고 신한울 3, 4호기 재개와 노후 원전 수명 연장 말고는 새로 추가되는 사업이 없었던 셈인데, 정말 원전 산업이 다시 부흥하는 조짐이 될지 기대가 모아지는 것 같다.

 

원전 산업계는 SMR이 기존 3세대 원전에 비해 크기가 작아서 유연한 운전이 가능하고 사고 확률도 낮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전력 수요가 많은 대도시에도 세울 수 있고 다양한 용도로 활용 가능하다는 것이다. 탄소중립 과제 앞에서 수용성이 낮은 대형 원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저탄소 발전원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하지만 SMR의 전망이 마냥 밝지는 않다. 뉴스케일이 이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기업이라고는 하지만, 정작 뉴스케일이 미국 아이다호에 건설 중인 SMR 타운은 난관들에 봉착해 있다. 우선 기존 원전보다 저렴하다는 주장과는 달리 아이다호 프로젝트의 예상 비용은 애초 MWh55달러로 설정되었지만 이제는 89달러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대량 제작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공기가 지연되면서 비용이 급증한 것이다. 이는 기술과 시장이 성숙되기 전에 모든 발전원이 겪는 운명이지만, 2030년에 아이다호에서 SMR이 완공된다 하더라도 이용자들이 가격을 부담할 수 있을지 우려를 낳고 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이 원자로 설계의 안전성에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고, 이러한 기술적 미비점도 보완되어야 했다. SMR이 기존 원전보다 전력 생산량에 비해 핵폐기물을 더 많이 발생시킨다거나 가동 인력과 비용이 더 들 것이라는 비판도 불식되지 못하고 있다.

 

뉴스케일은 폴란드와 루마니아에도 SMR 건설을 추진 중이다. 요컨대 뉴스케일은 자신이 완료하고 검증하지 못한 기술을 한국에 파는 협의를 진행한 것이고, 한국의 기업들과 중앙정부 그리고 경북도는 여기에 환호하고 있는 상황이다. , 그렇게 장점이 많은 기술이라면 한국이 세계적인 상업용 SMR 시험장이 되는 과감한 결정을 못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뉴스케일과 함께하는 SMR은 서울에 짓는 것이 올바를 것 같다. 어차피 경북은 자체 전력 소비량이 많지도 않고 굳이 수소 생산을 위해 원자로를 활용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전력 수요량뿐 아니라 열 공급을 함께할 수 있는 이점을 감안하면 SMR은 당연히 먼저 서울에 들어서야 한다. 6기만 건설할 게 아니라 서울시 25개 자치구에 하나씩 지어도 좋겠다.

 

서울 시민들이 핵에너지의 안전성과 유용성을 직접 눈으로 보며 경험하는 효과도 있지 않겠는가. 사실 한국에서 첫 상업용 원전 부지를 검토하던 1965, 부산 고리 외에도 행주산성 앞이 유력한 후보지였다. 유사시 북한의 공격 우려로 결국 부산시로 첫 원전을 넘기고 말았지만 이제 SMR이라면 서울이 경북에 뺏길 이유가 없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 경향 2023.05.05.

 

 

미국은 왜 아름다운 나라가 되었나

미국은 한자로 아름다울 ()’를 쓴다. 아름다운 나라라는 뜻이다. 다른 나라도 그럴까? 일본은 쌀 ()’자를 쓴다. 우리나라도 쌀 미자로 미국을 표기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아름다울 미(), 미국으로 바뀌었다. 우리나라는 왜 미국에 아름답다는 의미를 덧붙였을까. 1910년 을사늑약으로 조선의 종묘사직은 종말을 맞았다. 망국은 엄청난 충격이었기에 사람들은 조선이 망한 이유를 찾아야 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 때는 사회진화론에 근거를 둔 제국주의가 한창이던 시기였기에 자연스럽게 조선이 망한 것은 힘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도출됐다.

 

조선은 왜 힘을 갖지 못했나? “조선은 유교 나라였습니다.” 조선이 망한 것은 유교 때문이라는 답이 나왔다. 그러면 어떻게 힘을 기를 수 있을까?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유교를 대신할 대안으로 대두된 사상이 기독교와 공산주의다. 당시 한국인들에게 기독교는 단지 종교가 아니었다. 나라를 지탱하던 유교를 대체할 사상이자 개인들의 정신세계에 안정을 줄 질서, 그 자체였다. 더구나 부강한 서양 제국들은 대부분 기독교 국가였고, 따라서 기독교=부국강병이란 도식이 성립됐다.

 

공산주의도 마찬가지다. 세계는 19세기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초기 자본주의의 역기능에 몸살을 앓고 있었고, 그 해결책의 하나로 제국주의가 시도되었으나 제국주의의 폐해 또한 심각해지던 상황이었다. 똑같이 생산해서 똑같이 나누자는 공산주의는 새 시대를 이끌 사상으로 받아들여졌으며 러시아와 소비에트 연방, 중공의 위세는 그러한 생각을 굳히게 만들었다. 공산주의가 소련과 중공으로 대표되었다면 기독교라는 새 질서를 대표하는 나라는 미국이었다. 미국은 국제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강대국으로 프로테스탄트(개신교)의 나라였다.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한국인들은 미국을 통해 기독교(개신교)를 접해왔다. 구한말 한국에 왔던 많은 선교사는 거의 미국인이었고, 이들은 신학문을 가르치는 학교와 병원 등을 세워 한국의 근대화에도 많은 이바지를 한 바 있다.

 

분단과 6·25, 냉전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한국 현대사는 두 사상의 축을 기독교 쪽으로 기울게 했다. 공산주의를 내세운 북한이 한반도의 공산화를 목표로 전쟁을 일으켰고, 거의 공산화될 뻔했던 남한은 기독교를 대표하는 나라 미국이 참전하면서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진영에 참여하면서, 또 여러 가지 정치적 이유에 의해 공산주의는 거의 사장되고 말았다. 6·25와 이후 미국의 군사적·경제적 지원은 한국인들 입장에서 미국이 가진 이미지들이 한층 증폭되는 계기가 됐다. 재조지은(再造之恩)이라 했던, 임진왜란 때의 명나라가 연상될 정도였다. 쌀 미()자가 아름다울 미()가 될 만도 하다. 그런데 미국에 대한 좋은 감정 저변에는 기독교가 있다는 사실은 잊기 쉽다.

 

미국과 기독교는 한국의 민초들에 의해 조금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미국과 기독교가 결합된 하나님의 나라로서의 미국이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일정 부분 선교사들의 역할이기도 한데, 선교사들은 조선사람들을 기독교화하기 위해 쉬운 전략을 사용했다. 미국의 발달한 문명과 풍요를 보여주고 기독교(개신교)를 믿으면 미국처럼 잘살게 된다고 한 것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였다. 유교와 유교적 질서를 버리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에게 기독교는 그야말로 새 질서로 다가왔다. 기독교 세상에는 양반도 노비도 없고 남녀차별도 없으며 배움과 풍요가 가득한 것처럼 보였다. 미국이 하는 일은 다 옳고 미국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우리도 잘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새 질서를 받아들였다. 세계에 유례없는 남한 기독교 성장의 원동력은 여기에 있다. 한국인들은 잘살기 위해 기독교를 열심히 믿는 것만큼 미국을 따라가려 했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 유학을 다녀왔다는 것, 미국에 연줄이 있다는 것은 부귀와 권세를 보장받는 일이었다. 그렇게 미국은 한국인의 마음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것이다.

 

여기까지가 대략 1980년대까지의 일이다. 지금은 2023년이다. 지난 40여년 동안 세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우리나라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으며 미국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누군가는 그런 일들이 관심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을 몰라서는 안 되는 사람이 있다. 불행히도 그런 일들을 잘 알아야만 하는 사람이 정작 그런 일들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이것이 한 사람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큰 불행이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경향 2023.05.06.

 

 

오늘 점심에 밥을 먹나요쌀값의 정치경제학

카톨릭농민회와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로 이뤄진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 길회원들이 20234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농업 포기 선언과 다름없다며 윤석열 정권을 향한 농민들의 거부권 행사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

 

민주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문제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은 크게 4가지로 나뉜다. 시장 가격기구, 이해집단 간 교섭, 공공관료(정부)에 의한 결정 그리고 다수결을 통한 정치적 의사결정이 그것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 중에 어떤 방식을 적용하는 편이 민주적이면서도 동시에 전체 사회구성원에게 파레토 최적’(사회 자원의 가장 적합한 배분 상태)에 근접한 결과를 가져다주는 효율적인 선택일지 결정해야 한다.

 

한국에서 쌀은 특수한상품이다. 2021년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에서 농림업 부가가치생산액(34280억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1.64%에 불과하다. 우리는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개방 협상 타결(WTO 출범) 이후 해마다 시장 쌀값을 둘러싼 농민과 정부, 정치인 사이의 갈등과 타협을 대면한다. 쌀은 기초식량작물·식량안보라는 특수성과 쌀농민 소득안정이라는 경제 요인, 선거에서 표라는 정치적 이해가 얽히고설키면서 시장과 정치가 충돌하는 상품이다. 한쪽에선 가격조정기구로서 시장의 논리가 작동하고, 다른 쪽에서는 쌀 가격을 지지하려는 국가의 제도·정책이 개입한다.

 

경제학자 밥 로손은 1980년에 펴낸 책에서 갈등은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에서 풍토병처럼 항상 발생한다고 말했다. 가령 노동과 자본 사이에는 사용할 생산기술, 하루 노동시간, 그리고 분배몫을 어떻게 정할지를 놓고 늘 갈등이 생긴다. 한 영역에서의 갈등은 다른 영역의 갈등에 영향을 미치고, 모든 갈등은 가격(상품·노동)에 영향을 미친다. 국가의 자원(재정) 배분과 농민 소득분배몫을 둘러싼 쌀값 갈등 역시 모든 자본주의 경제가 맞닥뜨려온 시장과 제도 사이의 오랜 논쟁을 함축하고 있다.

 

쌀농가는 생산비와 물가 수준을 감안할 때 쌀값이 80kg(정곡)당 대략 20만원은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2000년대 중반에 농업경제학자들은 국내 쌀과잉을 고려할 때 완전경쟁시장이라면 쌀 균형가격은 80kg1012만원선이라고 추정했다. 농산물도 시장거래 상품이고 쌀 소비량이 해마다 급감하지만, 쌀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농업·농촌은 시장 교환가격만으로 측정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환경적 의미를 비롯한 여러 지속가능성 가치를 내포한다.

 

농업 분야에 투입되는 국가보조금은 변동·고정·전략작물 직불금을 위시해 연간 7~8조원에 이르는데, 농업이 생산해내는 부가가치를 돈으로 따지고 그 시장가치에 비례해 자원을 배분하는 것은 곤란하다. 몇백 평에 불과한 쌀 소농에게 지불하는 각종 보조금은 농사짓는 일의 가치를 사회가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의미도 담고 있다. 단지 농부라서가 아니라 대부분 가난한 노인 농가라는 점에서 사회가 도와야 할 이유도 충분하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정부의 쌀 초과생산량 매입의무 부과) 파동을 놓고 한쪽에서는 과잉쌀 강제 매입은 시장의 수급 조절 기능을 무력화하고 벼 재배 면적을 오히려 늘려 과잉생산과 쌀값 하락을 더 부추기게 될 것이라 말한다. 다른 쪽에서는 과잉쌀을 의무 격리하는 처방이 받쳐줘야 쌀값 폭락을 막고 농가 소득 안정을 높여 쌀농사 기반을 지켜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격변동으로 자원이 신축·효율적으로 배분돼야 하며 균형가격이 왜곡되면 시장의 가격 신호가 뒤틀려 인간 선택행동에서 선호·유인이 뒤바뀌게 된다는 쪽과, 시장가격의 급변동을 제약하는 제도가 기회주의적 행동이나 시장 불확실성을 완화해 시장 실패를 치유하고 오히려 경제·사회적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쪽, 이 둘 사이에 쌀값의 정치경제학이 있을 것이다.

조계완 선임기자 kyewan@hani.co.kr | 한겨레 2023.05.06.

 

 

5, 이팝나무꽃 필 무렵

조선어학회가 우리말을 조사·연구하던 1930년대 쌀밥을 이밥이라 했다. 전라남도에서는 니팝이라 했다. 니팝나무는 꽃송이가 사발에 퍼담은 쌀밥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배고픈 사람의 눈이 아니라도 그 꽃잎은 눈부시게 하얀 쌀 같아 보인다. 니팝나무는 발음하기 좋게 곧 이팝나무로 이름이 바뀌어 사전에 실렸다. 수백년 살아남은 고목이 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팝나무들은 순천, 광양, 고창, 진안 등 전라도와 김해, 양산, 포항 등 경상도에 다 있다. 쌀 생산이 많은 곡창지대에 자생지가 많았던 게 우연 같지가 않다.

 

꽃 모양이 마치 좁쌀(껍질 벗긴 조)로 지은 밥처럼 보인다는 조팝나무는 4월부터 꽃을 피운다. 이팝나무꽃은 그보다 조금 늦게 핀다. 1980518~27일 광주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려 피 흘려 싸우던 사람들을 조용히 지켜보던 게 바로 이팝나무다. 그 인연을 살려 19945·18묘지를 새로 조성할 때 묘지로 가는 길 양편에 3에 걸쳐 이팝나무 가로수 길을 조성했다. 그 길에서 보면 하얀 꽃에 덮인 이팝나무는 마치 소복을 입은 것 같아 보인다.

 

‘5월 광주항쟁을 상징하는 그 꽃은 오늘날 가로수로 전국에서 인기가 아주 높다. 산림청 집계를 보면, 2021년 현재 우리나라 가로수는 왕벚나무(112만그루), 은행나무(104만그루), 이팝나무(72만그루) 차례로 많다. 서울시에도 20118874그루이던 이팝나무 가로수가 201917639그루로 늘어났다. 전체 가로수의 5.8%, 은행나무,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 느티나무, 벚나무에 이어 다섯번째로 많다. 2011년에는 회화나무, 메타세쿼이아가 이팝나무보다 더 많았는데 제쳤다. 은행나무, 회화나무, 메타세쿼이아가 줄어든 자리를 이팝나무로 다 채웠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이 심고 있다.

 

그런데 기후변화는 이팝나무의 개화 시기도 점점 앞당기고 있다. 서울에선 이제 4월 하순이면 이팝나무꽃이 활짝 핀다. 그렇다고 ‘5월 꽃의 이미지가 약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행히 이팝나무는 꽃이 20일 넘게 간다. 427일 광주를 찾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광주항쟁을 북한 간첩이 선동한 폭동이라고 했다. 그런 넋 나간 소리에 밀리지 않도록, 피로써 이 나라 민주주의를 지켜낸 이들을 기억해야 할 이팝나무꽃 필 무렵이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 한겨레 2023.05.07.

 

 

대미 경제사절단이 조공이 안되려면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동행한 경제사절단은 122명이다. 역대 대통령의 첫 방미를 기준으로 보면, 6년 전 문재인 정부(52)10년 전 박근혜 정부(51) 때의 2배가 넘는다. 15년 전 이명박 정부(26)와 비교하면 무려 5배다. 삼성·에스케이 등 4대그룹 총수와 6대 경제단체장이 모두 참여한 것은 2003년 이후 20년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한국은 경제발전 과정에서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경제사절단을 함께 보내 해외 수주, 수출 상담, 투자 유치를 위한 좋은 기회로 활용했다. 과거 조선이 중국에 사신을 파견하는 연행을 적극 활용한 것과 비슷하다. 단순한 외교 행위에 그치지 않고, 경제와 문화 전반에 걸쳐 선진문물을 접하고 수입하는 창구로 삼았다.

 

하지만 한국이 선진국으로 올라서면서 사정은 많이 달라졌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재벌 대기업은 정부 못지않은 자체 네트워크와 인맥을 자랑한다. 굳이 경제사절단에 목을 맬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2030년 엑스포 부산 유치를 위해 최근 외국에 다녀온 한 인사는 외국의 대통령, 수상 등이 투자 유치를 위해 한국 대기업을 만나게 해달라고 매달리는 것을 보면서, 우리 대기업의 위상 변화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미-중 갈등 이후 안보와 경제를 연결짓는 경제안보가 국제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부상하면서 경제사절단의 득실에 대한 전략적 재검토가 긴요해졌다. 미국은 한국 기업을 중국 봉쇄에 동참시키기 위해, 중국은 이를 막기 위해 힘겨루기를 한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 비중이 40%에 달하고, ·중 시장 모두 포기할 수 없는 한국에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통상환경이다.

 

더구나 미·중 경쟁에서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 불확실하다. 승자가 판가름나려면 수십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우리의 최선은 미-중 갈등의 최전선에서 가능한 멀리 떨어져, ‘미국 없는 중국시장중국 없는 미국시장에서 최대한 실리를 챙기는 것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안보와 경제를 철저히 분리하는 정경분리 정책이 필수다. 그레이엄 앨리슨 미 하버드대 교수가 말한 투키디데스의 함정’(기존 무역강국과 신흥 무역강국 간의 전쟁 가능성)에 휘말릴 위험을 최소화하려면 미·중과 역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중국이 미 기업 마이크론의 반도체 판매를 금지할 경우 한국의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가 중국의 반도체 부족분을 메우지 말아 줄 것을 미 정부가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고 <파이낸셜타임즈>가 윤 대통령의 방미 직전에 보도했다. 미국이 확장 억제의 대가로 경제적 청구서를 내미는 것은 진작부터 경계했던 일이다.

 

윤 정부로서는 기업의 비즈니스에 정부가 간섭하는 것은 자유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난다고 정경분리 원칙을 분명히 할 기회였다. 하지만 미국 도청사건 때처럼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대신 미-중 경제전쟁의 총알받이가 될 위험성이 있는 삼성과 에스케이까지 포함한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미국으로 향했다. 맹수(미국) 앞에 먹잇감(한국 기업)을 갖다 바친 꼴이라고 하면 지나칠까?

 

윤 정부의 대응이 이런 수준이니 방미 경제성과와 관련해 한국이 현금을 주고, 미국으로부터 어음을 받았다는 혹평이 나오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정부여당과 보수언론이 세일즈 외교 대성공이라고 선전하는 것은 가짜뉴스에 가깝다. 미국 기업의 59억달러 투자 결정과 50건의 양해각서 체결은 소리만 요란한 빈수레에 불과하다. 투자는 이미 발표한 것을 재탕하거나, 통상적 수준의 향후 투자 예상치를 합산 발표했다. 양해각서는 구속력 없는 문서일 뿐이다. 2011년 이명박 정부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의 양해각서만으로 10억 배럴의 원유를 확보했다고 정상외교 실적을 부풀렸다가 나중에 들통이 나서 국민의 공분을 샀다.

 

윤 대통령과 테슬라의 최고경영자인 일론 머스크 간 기가팩토리(생산공장) 투자 협력 논의도 말잔치에 가깝다. 미국 언론은 이미 연초에 테슬라가 인도네시아에 기가팩토리 건설을 위한 합의에 근접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기업을 옥죄는 인플레이션감축법과 반도체과학법의 독소조항에 대한 시정도 이뤄지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도리어 한국에서도 일자리를 만든다고 딴전을 피워 한국 국민을 기가 막히게 했다.

 

반면 한국 대기업들은 10조원 규모의 배터리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이미 한국은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2년간 1000억달러(133조원)의 대미 투자 선물을 안겨준 바 있다. 윤 대통령이 미 의회 연설에서 한국 대기업들이 미국에 쏟아부은 투자와 일자리 창출 효과를 세세히 언급하며 박수와 환호성을 받을 때 국민은 다시 한번 기가 막혔다.

 

선진국의 경우 국가정상이 외국을 방문할 때 대규모로 기업들을 동반하는 일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경제단체의 한 간부는 미국 대통령, 일본 총리, 중국의 국가주석이 방한할 때 자국 기업인을 대규모로 동행하는 것을 본 적 있느냐고 되물었다. 정부가 국가와 기업 이익을 생각한다면 정경분리 원칙을 분명히 하고, 그동안 관행처럼 이어져 온 대기업 중심의 대미 경제사절단을 구조조정해야 한다. -중 경제안보 정책의 조공품이 될 수 있는 대기업은 원칙적으로 배제하고, 독자적인 네트워크 역량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 앞에서 폼 잡을 생각이 아니라면, 더구나 미국에 조공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경제사절단의 구조조정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미 과거 정부에서 전력이 있다. 이명박 정부 때까지는 경제사절단에 상위 대기업만 참여했다. 박근혜 정부가 처음으로 중소·중견기업을 경제사절단에 포함시켰고, 문재인 정부도 이를 따랐다. 이번 경제사절단에도 중소기업이 70%를 차지한다.

 

방미에 동행한 경제6단체가 지난 1일 주요 신문 1면에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 성과를 환영한다는 지지광고를 냈다. 전경련은 사절단 참여기업 대상으로 성과 조사 결과 매우 만족 또는 만족이라는 응답이 90%에 달한다는 보도자료도 내놨다. 부정적 평가가 우세한 여론조사 결과와 딴판이다. 경제단체들은 국익과 회원사 이익에 충실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대기업 중심 대미 경제사절단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는커녕 권력의 눈치를 보고 국민여론과 동떨어진 주장을 한다. 전경련이야 정경유착 사태 이후 잃어버린 재계 위상을 되찾기 위해 무리한다고 하지만, 다른 경제단체까지 중심을 못잡는 것은 딱한 노릇이다. 윤 정부가 검찰권력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경제계가 공포 분위기인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윤 정부의 임기가 끝난 이후 어떻게 뒷감당을 하려는지 걱정이다.

곽정수 |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 한겨레 2023.05.07.

 

 

언론 죽이는 정치세력정체

KBSMBC는 방송이 아니란다. 조선일보가 아예 사설 제목으로 KBSMBC방송 아닌 정치 세력으로 규정하고 나섰다(54). “공공재인 전파를 이용해 정치 행위를 한다고 단죄한 근거가 흥미롭다. 윤석열의 미국 방문에 심각한 편파 방송을 했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됐단다. 여러 단체를 늘어놓으며 대한민국언론인총연합회를 앞세웠다. 사설은 대한민국언론인총연합회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마치 무슨 대표성이라도 있는 듯이 서술했지만 전혀 아니다. 지난 3월 창립할 때 공영방송 흔들기에 앞장선 박대출과 박성중을 비롯해 집권당 의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선일보 54일 사설 친야 117명에 친여 15명 부른 KBS·MBC방송 아닌 정치 세력

 

KBSMBC가 정치세력이라는 사설을 보며 실소를 머금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할까 무척 궁금했다. 언론이 아니라 정치세력이라는 말은 3대 신방복합체, 그 가운데 조선일보에 가장 어울리지 않은가. 방송을 정치세력이라 되술래잡은 다음날 신문을 보자. 1면 팔면봉에 이재명, 어린이날 메시지에 배신당하면 순수함 사라져’”라고 적은 뒤 곧장 아저씨, 그런데 배신이 뭔가요?”라고 비아냥댔다. ‘팔면봉은 조선일보가 자랑하는 연재물로 1면에 중요한 뉴스 몇 개를 골라 아주 짧은 문장으로 촌평하며 촌철살인의 맛을 제대로 보여주는칼럼이라고 자부한다. 독자들 반응도 예상대로다, “어린이가 주인공인 이날에 그 많은 말 가운데 배신이라니정말 정서 결핍의 인간을 본다라고 거침없이 쓴다. 하지만 이재명은 소년·소녀 시절에 오늘을 열심히 살면 나와 내 가족에게 더 나은 내일이 올 거라고, 내가 꿈꾸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굳게 믿었고, 저 또한 그랬다성실한 하루하루가 배신당하는 삶을 살다 보면 순수한 마음은 사라지고, 때 묻은 어른의 마음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고 썼다. ‘어른들에게 어린이들이 행복한 나라를 함께 만들자는 호소다.

 

그 다음날은 고문 강천석이 민주당에 상식신뢰가 동행하던 옛날이야기제목으로 칼럼을 썼다. 그는 지금의 민주당이 기자로서 40년 넘게 가까이 또는 멀리서 지켜봐 온 옛 민주당 자식이나 손자가 아니다라며 옛 야당 지도자에겐 사적 또는 공적 인간관계에서 넘지 않는 어떤 선이 있었다. 그 바탕이 타고난 성품과 가정에서 닦은 소양이라고 부르댔다. 민주당의 입법과 정책 활동 초점은 항상 이재명 지키기란다. 전형적인 조선일보 논리다. 얼핏 보면 마치 조선일보가 옛날 민주당에 긍정적인 보도라도 한 듯싶다. 하지만 아니다. 나 또한 기자 시절부터 40년째 지켜봤지만 민주당에 우호적인 조선일보 기사는 기억에 없다. 더구나 지금 민주당에 민생 입법과 정책이 없는 것도 전혀 아니다. 조선 신방복합체를 비롯한 언론이 모르쇠를 놓고 이재명 죽이기에만 골몰할 뿐이다. 총선을 겨냥해 민주당의 분열을 노리는 선동은 조선 신방복합체에 넘쳐난다.

 

조선일보는 두 공영방송에 대해 정권이 바뀌면 간부진이 마치 여야 교대하듯이 바뀌곤 했다이번 경우 정권이 바뀌었는데 사장 등이 바뀌지 않았다고 문제 삼는다. 정권 따라 사장이 바뀌는 과거가 좋다는 뜻인가? 그러지 않아도 언론자유지수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저널리즘 철학에 비춰보면 KBSMBC 뉴스는 과거와 견주어 성숙했다. 아직 아쉬움이 적지 않지만 조선을 비롯한 3대 신방복합체와 달리 우리 사회의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으려는 모습은 긍정적이다. 그나마 두 공영방송이 최소한의 몫을 하며 윤석열 정권의 폭주를 견제하고 있다. 그 공영방송을 정치세력이라 훌닦는 조선일보야말로 오래전부터 정치세력으로 자리하며 저널리즘을 망가트린 주범이다. ‘죽은 저널리즘의 상징이 공영방송 죽이기에 눈 뻘겋다. 지금의 공영방송 수준마저 망가질 때 윤석열이 불러온 민생, 민주, 민족의 3대 위기는 마냥 커질 수 있다. 한국 언론을 죽이는 정치세력의 정체를 새삼 직시하고 경계할 때다. 조선일보는 언론이 아니다.

손석춘 칼럼니스트철학자 프레시안 2023.05.08.

 

 

윤석열의 비극?’

0년 같은 1.’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을 맞아 드는 생각이다. 정말 지난 1년은 길었다.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윤 대통령은 2년 전 정치에 입문하며 보수와 중도, (문재인 정부에서) 이탈한 진보세력까지 아우르는정치와 존엄한 삶에 필요한 경제적 기초와 교육의 기회가 보장되고 승자 독식이 아닌 민주주의를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한 국민통합진보적 민주주의는 지난 1년 동안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극우주의, 그것도 오랫동안 정치권에서 연마된, 뿌리와 관록을 가진 세련된 극우가 아니라 정치초년생의 선무당같은 조야한 극우적 독선만이 난무했다.

 

이태원 참사로부터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난무하고 있는 노동운동 등에 대한 공격, 국민의힘을 상명하복의 유사 검찰조직으로 만들고 있는 정당 민주주의 후퇴 등 그 예는 끝이 없다. 윤 대통령은 지난 주말 어린이날을 맞아 세계 최고의 양육환경을 만들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159명의 젊은이들이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다 정부의 대응 실패로 목숨을 잃었지만 제대로 된 문책조차 하지 않으면서, 무슨 세계 최고의 양육환경인지, 웃기는 일이다. 노동자들의 권리 역시 검폭’(검찰+조폭)을 동원한 건설노동자들에 대한 건폭’(건설+조폭)공격 등으로 후퇴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직장인들이 윤 정부의 노동정책에 낙제점인 43점을 줬겠는가?

 

정말 걱정은 국제정치다. 정권이 바뀌고 문제를 바로잡으면 되는 국내 정책과 달리, 외교와 국제정치는 여러 나라들이 관련돼 있는 만큼 정권이 바뀐다고 문제를 바로잡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윤 정부는 미래를 내세운 일본에 대한 굴욕적인 외교와 복잡한 동북아의 정세를 고려한 균형외교를 헌신짝처럼 던져 버리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는 미·일과의 동맹 강화로 중국과 러시아와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그 결과, 한반도는 신냉전의 화약고로 변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윤 대통령이 무리하게 미·일 동맹으로 돌진하는 것은 북핵 때문이라는 점이다. 북핵은 심각한 문제이고, 북한이 민중들을 굶겨 죽이면서 핵개발에 전념하고 있는 것은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북핵은 북한의 강함이 아닌 약함의 증표이며 생존을 위한 최후의 몸부림이다. 북핵의 오랜 역사와 동북아의 복잡한 세력관계를 고려할 때 이런 해법으로 미·일 동맹에 모든 것을 걸 것은 아니다. 지난 1년간의 역사적 퇴행과 외교 불장난을 볼 때, 역사는 이 시대를 윤석열의 비극이라고 평가할 개연성이 크다. 물론 연인원 1600만명의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박근혜와 극우정권을 탄핵시킨 촛불항쟁을 5년 만에 말아먹고 일개 검사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것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점에서 윤석열의 비극은 근본적으로는 문재인의 비극’ ‘민주당의 비극이지만 말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이렇게 사고를 치면서 민주당은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국민의힘보다 앞서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한·미 정상회담의 영향으로 다소 오르긴 했지만,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압도하고 있다.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으로 역전되기는 했지만, 민주당의 지지율은 지난 두 달간 국민의힘을 앞섰다. 주목할 것은, 돈봉투 사건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권 견제론이 지지론보다 10%포인트 이상 높다는 사실이다.

 

윤 대통령의 진짜 비극은 그가 실정으로 민주당의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 아니 민주당을 퇴행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다음 대선에서 정권교체 가능성이 낮아지고 정권교체를 해봐야 촛불 말아먹은 문재인 정부처럼 기대할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지방선거 참패에도 제대로 된 자기반성, 혁신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정부패 기소 당직자 직무정지 등 정당개혁들을 후퇴시키고 있다. 윤 정부가 당초 약속했던 국민통합 등 개혁을 제대로 수행해 국민의 박수를 받고 있다면, 민주당은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집단최면에서 벗어나 뼈를 깎는 혁신에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연일 사고를 치자 민주당은 그 덕으로 지지율이 높아져 국민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들도 뒷걸음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정치권을 발전적 경쟁, 혁신경쟁이 아니라 퇴행경쟁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남은 4년을 윤석열의 비극이 아니라 윤석열의 축복으로 변화시킬 묘책은 정녕 없는 것일까?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경향 2023.05.09.

 

 

'데이터 편향'과 시민의 권리

자신이 놓인 사회가 어떤 꼴을 갖추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깊이 따져 묻고, 나름의 방향을 제시하려 분투하는 사람이 철학자인 것 같다. 나는 철학자요, 라고 하지 않아도 누구나 적어도 자기 삶에서만큼은 제각각 철학자이고 실천가다. 세 사람이 길을 걸으면 그중에는 내가 미처 몰랐던 걸 알게 하는 사람, 스승이 있다고 한다. 타자로 인한 낯선 경험이 나를 일깨우는 메시지가 되고 조언이 된다는 말일 것이다. 요즘은 '모여서' 길을 '걸을' 일이 드물고 인터넷에서 '편하게' 알려주니, 함께 어울려 경험을 나누는 일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휴대전화를 이용해서 기존에 연결된 인터넷 기반 미디어 서비스를 보며, 내가 선택한 매체나 인구 집단임에도, 동시대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일 거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대통령 선거나 지자체 선거같이 사람들 관점이 숫자로 드러나는 결과를 볼 때 그 착각의 늪이 얼마나 깊은지 새삼 놀란다. 내가 보는 정보들이 '나의 선택'이라는 범주의 한 부분이고, 내가 검색하는 정보들은 실재가 아니라 이미 '가공된' 거대한 정보 덩어리 어느 한 귀퉁이일 수 있음을 무심결에 놓치는 것이다. 과학기술 음모론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것으로 유통되는 정보가 '데이터 편향'-이론을 세우는 데 바탕이 되는 자료가 한쪽으로 치우친 결과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식이나 정보의 편향은, 실은 '디지털 시대'에 갑자기 나타난 문제가 아니다. 인류 역사에서 백인-남성-비장애인-이성애자를 기준으로 하여 생겨난 문제들이 무수히 지적되어온 바 있다. 여성주의 과학자 도나 해러웨이(1944~ )'상황적 지식'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며, 보편적이라고 가치 부여하는 남성 편향의 지식을 비판한다. 지배적인 과학 관행에서 유통되어 온 지식은 객관적인 지식이 아니라 남성을 기준으로 한 '부분적 지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지식을 생산하는 주체의 위치를 고려하지 않은 편향은 왜곡을 만들고 왜곡은 차별의 근거가 되었다.

 

이렇게 볼 때 무엇을 기준에 둘 것인가, 어느 것을 우선할 것인가는 매우 정치적인 선택이 된다. 필요한 곳에 힘을 보탤 수 있지만 반대로 편향을 강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나 또한 그 지향에 가까워진다. 경남도민일보는 '약한 자의 힘'을 신문사의 운영 방침으로 표방하고 있다. 기업의 역대 매출 성과와 그 기업의 열악한 노동환경 중에 어느 부분을 비중 있게 다룰 것인지 예측할 수 있게 한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언론으로 시민은 기대하고 지지를 보내게 된다. 내가 후원하는 단체들은 '여성 인권과 시민권, 성평등'을 지향하는 곳이다. 그들과 연대하며 성평등 관점의 실천 활동을 우선에 둔다.

 

'안 보여서', '모르고' 그랬다는 사람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못 보았을 뿐이지 이미 있었던 것과 부딪쳐서 상처를 입을 수 있다. 또는 알지 못하고 한 행위가 상대를 다치게 할 수도 있다. 사회는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시민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시민은 사회구성원 누구라도 위험에 빠질 수 있는 것들을 정부가 보완하도록 요구할 권리를 가진다. 하지만 시민이 권리를 요구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정부는 의무를 회피하기 쉬워진다. 시민의 권리는 각자가 알아서 할 개인의 문제로 축소된다. 시민은 '알 권리'가 사라진 것조차 모르게 된다. 분투하는 시민들의 삶과 경험이 더 연결되길 바란다.

손제희 여성평등공동체 숨 이사 경남도민일보 20230509

 

 

미국과 한국의 탈중국이 다른 줄 모르는 대통령

설픈 미국 흉내 내기, 경제 파국으로 내몬다

대학선생 생활 30년 넘게 하는 동안 요즘처럼 수치감과 자괴감이 자주 든 때도 없었다. 두 가지만 소개한다. 첫 번째 수치심과 자괴감을 안겨준 것은 지난달 26일 윤석열-바이든 공동기자회견에서 미국 <LA Times> 코트니 기자의 (백악관 홈페이지에 걸려 있는) 질문이었다. “바이든, 당신의 최우선 경제 과제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미국 국내 제조업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신이 내세우는 규칙, 다시 말하면 중국에서 (반도체) 칩 제조를 확대하는 것에 대한 미국의 반대가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당신은 (내년) 선거를 앞두고 국내 정치를 위해 중국과의 경쟁에서 핵심 동맹국(한국)에 피해를 주고 있지 않나?” 질문 내용만 봤다면 한국 기자가 바이든에게 질문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 기자들은 대통령 부인과 셀카 찍을 일에만 몰두했던 모양이다. 성공했다면 가문의 영광(?)이 될 사진이니 눈에 띄는 곳에 걸어놓기를 권하고 싶다.

수치심과 자괴감은 국민의 몫

두 번째 수치심과 자괴감을 안겨준 것은 최근 외국 친구로부터 윤석열을 선택한 한국 사람들이 참 순진하다는 말이었다. 외국 친구의 말은 한국민이 참 어리석다라는 말과 다름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한국을 연구하는 친구의 눈에 비친 한국 사회는 한국 검사들이 스토리를 만들어주고, 이를 언론이 받아쓰고, 많은 사람이 언론이 만든 허상을 좇는다는 것이다. 부부가 평생을 같이 살아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선거가 임박해 갑자기 대중 앞에 등장한 선출직 정치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충분히 알기란 불가능하다. 그럴 때 선택의 기준은 그 사람이 살아온 직업 등 살아온 삶으로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한 직업을 오래 가진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이른바 직업병이다. 초등학교 선생을 수십 년 한 사람에게서는 상대를 대할 때나 말할 때 자기도 모르게 상대를 어린애 취급하는 모습이 비치고, 대학교수도 상대를 학생 취급하는 버릇이 있다는 우스갯말(?)이 있다.

 

검사의 직업병을 생각해보았다. (다른 나라의 검사와 달리) 한국 검사는 세속 세계의 제사장이다. 한국 검사는 자신만이 세속 세계의 선과 악을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대한민국 검사는 몇 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 의혹에 대해 명명백백한 증거를 눈앞에 제시하지 않는 한 부인(거짓말)을 한다. 둘째, 증거가 나오면 침묵으로 일관하며 ()무시한다. 한 식구인 검찰이 수사와 기소하지 않을 것을 믿기 때문이다. 셋째, 실제로 수사를 깔아뭉개거나 대충한다. 이를 따지고 들면 이미 지난 일이며 알고 있는 일이라고 2()무시한다. 예를 들어, 뉴스타파와 뉴스버스 등의 보도에 따르면 김건희 주가조작 의혹 및 이와 관련하여 (김건희가 직접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매수했고 주가조작범인 이아무개 씨의 거래도 김건희가 직접 컨펌했으며, 투자손실이 난 후 이 씨와 절연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해명, 그리고 (김만배 자금이 투입된) 김만배 누나의 윤 대통령 부친 집 매입에 대해 우연한 거래라는 해명 모두 거짓말이었고 이는 공직선거법 위반임에도 불구하고 한동훈은 이미 알고 있는 일이고 지난 일이라며 국민을 ()무시하고 있지 않은가.

 

주지하듯이 한국 검사의 일반적 특징은 강제 수사권과 기소 독점권의 편의적 시행이 가능한 데서 비롯한다. 문제는 이러한 권한의 사용을 개인적 특혜를 넘어 타인에 대해, 특히 정치적 목적을 위해, 폭력적으로 행사하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는 점이다. (그 결과 사법 질서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초래함으로써) 검찰 자신이 사회질서와 기강의 파괴자가 되고 있다. (개인 혹은 조직의) 사적 이득을 위해 검찰 권한을 폭력적으로 남용하는 정치검찰을 사회가 경멸하는 이유이다. 이들은 자신이 좌표를 찍은 사람에게는 없는 범죄도 만들고 별건수사(이른바 먼지털이 수사)도 서슴지 않고, 수십~수백 차례의 압수수색과 소환 등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남용하여 심지어 죽음으로 내몰기까지 한다.

 

이 정도면 자신들을 세속 세계의 제사장이라 착각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윤석열 대통령이 제1야당 대표 이재명을 만나지 않는 이유가 중대범죄 혐의자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맘만 먹으면 누구든 혐의자로 둔갑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대한민국 검사의 사고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이들에게는 국민의 생각은 필요 없다. 오직 자신들의 결정을 널리 알리고 지지해줄 언론이 필요할 뿐이다. 그렇다보니 외국인 친구의 눈에는 이처럼 검찰이 좌표를 찍고 범죄도 가공하여 언론에 유포하고, 이를 받아쓴 보도 내용을 신봉(?)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이 순진하게비친 것이다.

 

검사정권 1년 만에 파국 맞은 한국 경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의 실질 총소득은 1년 전에 비해 186000억 원 줄어들었다. 그리고 올해 1분기 실질 GDP는 지난해 3분기 수준에 6000억 원 이상 미치지 못한다. 민간소비나 설비투자도 각각 2000억 원과 6000억 원 이상 미달한다. 특히 수출은 26000억 원 이상 미달한다. 유일하게 증가한 것은 정부지출이다. 지난해 3분기에 비해 27000억 원이나 늘었다. 하반기 예산을 당겨쓰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재정적자는 신기원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 2월까지 발표된 기재부의 재정지출에 따르면 지난해 5월부터 올해 2월까지 (정부의 모든 수입에서 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73.7조 적자였고,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기금수지를 제외한) 관리재정수지는 103.8조 적자였다. 윤석열 정부에서 재정적자 규모가 얼마나 끔찍한 수준인가는 다음 표에 정리한 코로나 팬더믹 기간과 비교하면 쉽게 이해된다.

 

일자리는 어떠한가? 통계청에 따르면 취업자 증가분 중 60세 이상 취업자 증가 규모가 100%를 넘는다. 60세 미만에서는 취업자가 감소하고 있음을 뜻한다. 윤석열 정권이 시작된 지난해 5월만 해도 50%가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계속 증가하여 올해 2월과 3월에는 각각 132%117%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청년층 취업자는 지난해 11월부터 줄어들기 시작하여 올해 2월과 3월에는 각각 13만 명과 9만 명이 줄어들었다. 아래 그림은 지난 1년간 일자리가 얼마나 악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파국은 한국 경제를 미국 안보의 하위개념으로 설정할 때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중국 수출이 곤두박질치고 대중 무역수지가 적자로 전환된 결과 지난해 2분기부터 수출의 성장기여도가 마이너스(-)로 전환하였고, 4분기에는 민간소비의 성장기여도도 마이너스(-)로 전환하면서 코로나 팬데믹의 충격이 있었던 2020년 상반기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윤석열 정권 출범 직전까지 (상해 봉쇄가 있었던 4월을 제외하면) 중국 수출은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였고, 반도체 수출 감소는 8월부터 시작하였다. ‘중국 자급화를 끌어대는데 이는 후진타오 정권 때부터 진행되었으니 갑작스러운 중국 산업구조의 변화를 핑계 대는 것은 너무 유치하다. (사실에 부합하지도 않고 입에 옮기기도 유치한 혼밥 타령은 차치하고) “지난 정부에서 친중(親中) 정책을 폈는데 중국에게 얻은 것이 무엇이 있느냐는 대통령의 심기(?)를 배려한 비겁한 주장이다.

 

한국 경제를 미 안보의 하위 개념으로 보는 검사 세계관

윤석열 얘기에 대해 지하철 내에서 한 여성분이 옆에 있는 분에게 문재인 때는 중국 교역에서 손실은 보지 않았잖아라고 반문한다. 그런데 오늘은 이 점에 대해 논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늘은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 즉 한국 경제를 미국 안보의 하위 개념으로 스스로 편입시킨 것이 검사 윤석열의 가치관과 세계관에서 비롯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지난 1년간 윤석열의 외교를 보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도 국민이 이해해 보려고 무던히 애쓰는 최초의 대통령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가치관과 세계관을 기준으로 하면 윤석열 대통령의 행태는 쉽게 이해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가치관과 세계관은 한국 검사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검사의 가치관은 사람을 범죄자와 비범죄자로 구분한다. 직업 중 특히 검사가 세상을 선과 악, 흑과 백 등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기 쉬운 이유다. 윤석열의 가치관과 세계관은 그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용어인 자유와 자유민주주의, 연대 등에서 드러난다. 그에게 자유는 선이고 백인 반면, ‘이나 은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나 공산주의다. 그런 점에서 윤 대통령의 자유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닌 반공주의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반면 반공주의는 이분법의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즉 윤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는 다름 아닌 (자기의 주장만이 진리라고 믿고 자신과 다른 생각은 부정하는) 절대주의 세계관이다.

 

또한 윤 대통령이 자유와 함께 강조하는 연대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연대가 아니라 미국이 만든 규칙과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세력을 공산주의나 전체주의 등으로 규정한 후 이들을 제압하기 위한 반공(자유) 진영의 연대를 의미한다. 따라서 반공주의자 윤석열에게 미국은 이고, 북한은 최고의 이다. 이러한 사고의 연장선에서 미국이 만든 규칙과 국제질서에 문제를 제기하고, 북한을 굴복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중국과 러시아 등을 윤석열은 사실상 의 세력으로 규정한다. 세계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국제 사회가 연대해 제재할 것을 반복적으로 말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적 지원을 확대하고 인도-태평양 전역에서 그리고 대만해협을 넘어 남중국해에서 자유 수호 역할을 확대하겠다고 국제 사회에 약속한 배경이다.

 

윤 대통령의 많은 발언이 (미국 헤게모니 유지를 위해) 중국을 공격하는 워싱턴 정치인들이나 일본 극우 정치인들과 정확히 일치하는 이유도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누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을 향해 한미가 워싱턴 선언에서 핵 기반으로 안보 협력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이의를 제기하고 비판하려면 핵 위협을 줄여주든가 적어도 핵 위협을 가하는 데 대한 안보리 제재라는 국제법은 지켜줘야 한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에게만 가혹한 탈중국 피해

그런데 세상은 선과 악, 흑과 백으로 단순히 구분되지 않는다. 많은 희생을 치르고 오늘날 국제 사회의 대다수 지식인은 이분법과 흑백론이 시대착오적이고 위험한 세계관이란 점에 동의한다. 무엇보다 윤석열은 부정확한 정보에 기초해 단정하는, 한 나라 지도자에게 매우 위험한 말버릇을 갖고 있다. 아마도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누리던 버릇에서 연유할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 사실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비틀어 중국을 압박할 수 있다고 해서 한국도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중국을 상대할 때 사실에 기초하고 중국의 공격거리를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관리하고 통일을 만들기 위해서는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의 협조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국에 대북 제재 동참을 요구하는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 중국은 바로 중국은 국제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 한반도 문제의 책임은 북한의 합리적 안보 우려를 무시하는 미국에 있[,] 안보리의 북한 관련 결의는 제재 조항만 있는 게 아니라 대화 지지, 인도적 지원, 제재 완화의 가역(되돌릴 수 있는) 조항도 있다며 반박과 동시에 안보리의 북한 관련 결의를 전면적이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집행해야 한다"고 훈수까지 덧붙였다. 중국의 주장은 북한 제재의 근간이 된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1718호에 기초한다. 중국을 이렇게 관리한다는 것은 북한 문제를 힘의 대결로 풀겠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렇게 되면 한반도에서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탈중국으로 입을 피해의 정도에서 한국은 미국과 비교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지난해 2~5월 초까지 원/달러 환율과 달러 지수의 상관계수는 0.95로 달러 강세(약세)는 원화 약세(강세)를 의미하였으나 올해 같은 기간 상관계수는 0.12로 관계가 사실상 사라졌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탈중국 강화의 결과 달러 지수와 위안/달러 환율의 상관계수는 지난해 0.78로 달러 강세(약세)는 위안화 약세(강세)와 일치하였으나 올해에는 0.28로 관계가 크게 약화, 마찬가지로 사실상 관계가 없어졌다. 반면, /달러 환율과 위안/달러 환율의 상관계수는 지난해 0.79에서 올해는 0.85로 더 강화되었다. 즉 위안화 강세(약세)는 원화 강세(약세)가 되고 있다.

 

이처럼 경제에서 미국의 탈중국한국의 탈중국은 같이 움직이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의 어설픈 미국 흉내 내기가 한국 경제를 파국으로 밀어 넣는 이유이다. 한국에서 세속 세계의 제사장 역할은 가능할지 몰라도 세계 자유를 수호하는 세계 경찰 놀이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한다.

최배근 건국대 교수 시민언론 민들레 20230509

 

한국 대통령의 좌충우돌은 위험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특이하다. 대통령이 돼서도 특이했지만 그전에도 특이했다. 그는 기업인이었다. 연방 상·하원 의원, 주지사 등 정치경력은 없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있었던 것 같다. 1999년 중도정당인 개혁당에 들어가 대통령 출마를 고려했다. 2000년대에는 정치적 성향이 민주당과 거의 일치했다는 평가가 있고, 실제로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민주당 소속이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의 현재 이미지인 사방과 싸우며 좌충우돌하는 강한 자(strong man)’의 모습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질문을 던져보자. 그는 왜 변했을까? 이 질문은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해당된다. 대통령이 되기 전 주요 정치경력은 없고, 문재인 전 대통령 등 민주당에 호의적이었으나, 현재 좌충우돌하는 강경보수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진보에서 보수로 옮겨가는 사람은 흔하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해석을 트럼프에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는 2000년대 전에 이미 부동산 억만장자였다. 1946년생이니 2000년대에 이미 60대였다. 60대에 민주당에서 70대에 공화당으로 옮겨가는 게 나이 때문은 아닐 것이다. 뭔가 사건이 있고 이유가 있어야 사람은 변한다. 2000년대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사건은 젊은 수습생들을 그의 회사에서 1년간 경쟁시킨 뒤 직원으로 발탁하는 <어프렌티스>라는 NBC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그는 넌 해고야(You’re fired)”라는 말을 2004년부터 2015년까지 방송에서 떠들었는데 이게 대박이 났다.

 

<어프렌티스>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그를 좌충우돌하는 강경 보수로 만들었다는 것은 필자의 가설이지만 그리 황당하지만은 않다. 2017년 미국 한 유력 언론의 보도에 트럼프 대통령의 하루 일과가 나온다.

 

오전 530분쯤 눈뜨자마자 TV부터 켜고 강경보수 성향의 폭스 뉴스 등을 본다. 그런 뒤 아이폰을 집어들고 트윗을 날린다. 적어도 하루에 4시간 TV를 보고,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헤드라인에 자기 이름이 나오면 기뻐하고, 나오지 않으면 우울해한다. 트럼프에게 트위터는 자기를 끌어내리려 음모를 꾸미는 언론과 싸우는 아서왕의 명검 엑스칼리버와도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의 탄약은 다른 언론에서 구한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가는 사람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언론, 즉 대중의 관심에 목말라한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관종의 기질은 있다. 그러나 이게 과하면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항상 자기 얘기를 하고, 자기를 쳐다본다는 망상에 이르게 된다. 감정은 여려지고 상처만 늘어가니 지금 내 편에게는 무조건 엎어지고, 지금 다른 편에겐 엑스칼리버를 마구 휘두르게 되는 것이다. 이게 좌충우돌하는 사람들의 이면이다.

 

미국은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상관없이 위대한 미국을 위협하는 중국 앞에서는 일치단결한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의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마저 미국 벤처캐피털이 중국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도 틀어막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는 것을 보면 좀 무섭기도 하다. 이런 미국을 방문해서 윤 대통령은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고 강철동맹을 외치고 돌아왔다. 자기편이라 생각하고 엎어지고 온 것이다.

 

그런데 차분하게 생각해 보자. 미국의 1990년 국내총생산(GDP)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19.8%(세계 평균 37.9%)에서 201926.3%(세계 56.3%)가 됐다. 이 수치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미국은 무역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도 않고, 세계화의 대열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2008년 금융위기 때에도 일시적 달러 약세를 겪다가 다시 강세로 돌아서는 그런 국가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 대통령이 전 세계 국가를 상대로 선전포고도 하고, 싸움도 하는 것이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경제적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중국과의 싸움에서 물러나지 않겠다고 한 것은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경제적 파급효과가 크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저임금 공익위원 계산식, 폐기가 답

한국은 GDP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199050.8%에서 201975.8%로 커졌고, 매번 작은 이슈에도 환율을 걱정해야 하는 나라이다. 이런 나라의 대통령이 미래를 걱정한다면서 일본과 스크럼을 짜서 GDP 규모가 11배인 중국에 싸움을 걸고 있다.

 

윤 대통령은 미래세대의 장기적인 경제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단기적인 정치적 이익을 위해 한국 내 반중 정서에 올라 타고 있는 형국이다. 윤 대통령에게는 언론의 관심보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 경향 2023.05.10.

 

 

신뢰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통치

10여년 전, 스웨덴의 어느 대학교에 방문교수로 있을 때였다. 연구실을 배정받고 방 열쇠를 받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열쇠로 내 방뿐만 아니라 그 층의 대부분 방들을 열 수 있었다. 그 사회에서는 그만큼 내부자들 사이에 신뢰가 형성돼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었다. 신뢰는 소통, 연대, 협력과 함께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기본 전제이다. 사회적 자본은 경제적 자본과 함께한 사회의 미래를 좌우하는 양 날개이다.

 

여기 한 가지 흥미로운 통계가 있다. 지난 3월 한국경제연구원이 영국의 레가툼 번영지수 보고서를 인용해 공개한 자료를 보면, 한국의 번영지수는 전체 167개 국가 가운데 29위로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 가운데 교육 부문과 건강 부문이 각각 3위에 올라 있었고, 경제의 질 부문에서는 9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반면 유독 사회적 자본 지수에서만 107위라는 극단값을 보여줬다.

 

또한 이 보고서의 거버넌스 지수에서 한국은 30위 정도로 나름 상위권이지만, 그 하위 요소인 공적 기관 신뢰지수는 무려 100위에 머물면서 전체적으로 거버넌스 지수를 끌어내렸다. 그중에서 경찰 신뢰도는 10년 전 124위에서 현재 63위로, 금융 및 은행기관은 121위에서 33위로 제법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사법체계와 법원에 대한 신뢰도는 전체 167개국 가운데 155위로 거의 바닥을 찍었다. 게다가 10년 전 146위에서 순위가 더욱 내려왔다. 참고로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한국 사법시스템의 사회적 신뢰도는 35개국 가운데 34위를 기록했다. 요컨대 법 체계는 전통적으로 한국에서 가장 신뢰받지 못한 부문이었던 셈이다.

 

이런 불신에도 한국은 법조인들이 점령하는 국가가 돼 가고 있다. 21대 국회에는 법조인 46명이 입성했으며, 지난해에는 최초로 검사 출신 대통령이 탄생했다. 그에 따라 행정부 전체에 장차관, 혹은 비서관 등의 이름으로 검사·변호사 출신들이 다수 전면 배치되었다. 이뿐 아니라 기업과 민간 부문에도 검사·변호사 출신들이 깊숙이 진입해 있다. 송사가 난무하는 사회에서 법무 검토는 이제 모든 기관과 조직의 필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방송과 대중매체에 자주 출연하는 시사평론가들도 주로 변호사들이다. 한국은 이제 법조인들이 지배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나는 이런 현상 속에서 세 가지 염려를 하게 된다. 첫째, 수십 년 동안 가장 신뢰받지 못하는 집단이 국가의 가장 강력한 권력을 점유해가는 현상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자신의 전문 영역을 떠나 정치의 영역으로 나갈 자격을 가지려면 우선 자신이 몸담았던 사법체계를 개혁하고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굳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외칠 필요도 없이 자명한 일이다. 윤석열 정부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다른 게 아니라 자신이 몸담았던 사법체계로 인해 실추된 사회적 신뢰와 국가 가치를 스스로의 개혁을 통해 회복하는 일이다.

 

둘째, 윤 정부 출범 이후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이 법치주의이다. 대통령이나 장관들의 입에서 자주 법대로 한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중국 춘추시대에 유가와 법가의 통치이념 비교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처럼, 예와 덕이 빠진 법치주의는 사회를 피폐하게 할 뿐이다. 사람을 존중하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하면서 법만 외치는 사회는 법이 인간 위에 군림하는 사회이다. 법만으로는 결코 인간끼리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법이 삶의 구석구석을 장악해가는 사회에서 인간 대 인간끼리의 사회적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송사가 만사가 되고, 사회적 신뢰를 비웃듯이 뇌물, 횡령, 사기, 무고 등과 같은 사건들이 폭증한다. 이럴 경우, 미국 서부시대처럼 이라는 총을 서로 쏴대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고, 누구나 총 한 자루쯤 갖고 있어야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사회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셋째, 법의 가장 큰 맹점은 법 없이도 살 만한 선한 사람들을 법이 앞장서서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은 언제나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의 편이며, 법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보듬어주지 않는다. 특히 못 배운 사람들에게 법은 비정할 정도로 차갑고 냉정하다. 공공의 정의가 무너진 사회에서 법은 그 시스템의 맨 끝단에 위치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법으로는 양극화된 사회를 치유할 수 없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 지지도가 회복되지 않는 것은 단지 외교적 말실수나 불통의 이미지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들을 배출한 법가를 제가(齊家)’하지 못한 원죄가 크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경향 2023.05.11.

 

 

검찰정권 1, 옛 소련 검찰의 그림자

옛 소련의 검찰은 특이했다.

일차적 임무는 각급 행정기관이 행하는 조처의 적법성을 감시·감독하는 것이었다. 검찰의 임무를 규정한 법에 수사지휘나 기소 역할은 오히려 후순위로 언급됐다. 이들의 감시·감독 대상에는 정부 부처를 포함해 거의 모든 기관이 망라됐다. 검찰은 필요하면 이들 기관을 방문해 어떤 자료든 요구하고 살펴보고 대면조사도 할 권한을 가졌다. 불법이라고 판단하면 시정명령을 하고 수사도 했다.

 

사법 영역에서도 검찰의 힘은 막강했다. 수사를 지휘하는 것은 물론 모든 법 집행 기관의 활동을 총괄 조정했다. 구속과 압수수색, 감청 등에 대한 결정권도 행사했다. 판사의 행위를 감시하는 등 재판 과정과 결과에 대한 적법성 검토 권한까지 가졌다. 검사는 법정에서 판사나 변호인보다 우월한 지위를 점했다.

 

이렇게 검찰은 매우 특수한 위상과 정치적 영향력을 누렸다. 검사는 정치적 엘리트로서 공산당 조직의 일원이었지만 법관들은 그렇지 않았다. 검찰은 위계구조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었다. 옛 소련은 이러한 검찰을 통치 수단으로 삼아 행정부와 사법부 전체를 통제 아래 두는 일원적 체계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 검찰을 프로쿠라투라’(Prokuratura)라고 불렀다. 프로쿠라투라 시스템은 옛 소련의 위성국가인 동유럽에도 이식됐고 동구권 사회주의 붕괴 이후에도 잔재가 남아 있었다. 이들 국가가 유럽연합에 가입할 때 이 기형적 검찰제도가 도마에 올랐다. 유럽연합 자문기구인 법을 통한 민주주의 유럽위원회’(베니스위원회)는 여러차례 의견서와 보고서를 내 문제를 지적했다.

베니스위원회는 정부 기관에 대한 감시·감독 권한과 관련해 프로쿠라투라는 조직이 너무 거대하고 막강한 권한을 지녔으나 투명하지 않은 기관이라며 이런 기관이 최고 권력자의 영향 아래 있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 및 법의 지배와 양립 불가능하다는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검찰의 권한과 책무는 범죄의 기소와 형사법 체제를 통한 공익의 옹호에 한정돼야 한다는 원칙을 상기시키고 프로쿠라투라의 감독 기능은 행정법원, 헌법재판소, 여타의 독립적 감독기구 등으로 분산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사법 영역에서 과도한 검찰권에 대해 일부 국가들에 이런 체제의 영향이 남아 있다검찰이 책임지지 않는 제4부가 될 위험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압수수색, 구속 등의 절차는 절대적으로 법원의 통제 아래 둬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검찰 편향으로 인해 영장이 사실상 자동발부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인권에 대한 위험이자 사법부의 독립성에 대한 위험이기도 하다고 비판했다.

검찰의 독립성을 적극 옹호하는 베니스위원회이지만 프로쿠라투라 식의 무소불위 검찰은 철저한 비판 대상이었다.

 

그동안 검찰개혁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우리가 긍정적으로 참고할 만한 외국의 사례가 많이 언급됐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1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 오히려 최악의 사례를 검토하는 게 현실적으로 더 시사점이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현 정부 1년을 평가하는 여러 토론회에서 한결같이 지적된 게 검찰 출신 특정 집단의 정부 장악이다. 대통령실은 물론 국무총리실, 국가정보원, 금융감독원, 국가보훈처 등 국정 전반의 요직을 이들이 잠식해가고 있다. 인사 라인도 마찬가지다. “범정부 기관에 검찰 네트워크의 영향력이 확산됐고 사법과 법조에 대한 검찰의 영향력은 최대화됐으며(유승익 한동대 연구교수, 참여연대 토론회) “다른 권력기관들은 검찰공화국의 조력자로 전락하였다. 경찰은 무력화되었고, 국정원은 과거로 회귀하였으며, 감사원은 정적 제거의 선봉을 자처하고, 법원은 방관자 또는 소극적 견제에 그쳤다”(이창민 변호사, 민변 토론회). 검찰 출신 특정 집단이 국정 전면에 나서 일원적 통치 체계를 형성하고 검찰 조직은 이들과 한몸처럼 움직이고 있다.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의 의혹에는 눈감은 채 정치적 반대자를 겨냥한 수사에 노골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검찰의 질주를 사법부가 통제할 수 있느냐, 견제할 기관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갈수록 물음표가 커진다. 프로쿠라투라의 그림자가 스친다.

 

윤 대통령은 미국 하버드대 연설에서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심각한 도전은 독재와 전체주의라고 했다. 프로쿠라투라는 그 독재와 전체주의가 사랑한 검찰상이다. 우리가 조금도 다가가서는 안 될 위험한 유산이다.

박용현 I 논설위원 한겨레 2023.05.11.

 

 

음주운전 1

은 사람들이 그의 1년을 이렇게 저렇게 평가한다. 놀랍다. 한 것이 없는데 평가를 내놓을 수 있다니. 지난 1년 그는 밤낮으로 음주운전을 했다. 음주운전을 두고 코너링이 좋니 어쩌니 평가하는 것 자체가 우습고 민망한 일 아닌가.

 

달라질 줄 알았다. 5천만을 태우고 달리니 달라질 줄 알았다. 모범운전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안전운전은 하려고 애쓸 줄 알았다. 달라진 건 없었다. 그의 손은 핸들을 놓쳤고 그의 발은 페달을 놓쳤고 그의 눈은 목적지를 놓쳤다. 어디로 가십니까, 물으면 빠르게 가겠다고 대답했다.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이 모는 차의 엄중한 무게를 이해하지 못했다. 차에 기름이 달랑달랑해 경고등이 켜져도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전 운전사가 기름을 헤프게 써서 그런 거라고 우겼다. 우김은 1년 내내 지속됐다.

 

그는 가지 않아야 할 길을 달렸다. 누구도 경험한 적 없는 희대의 역주행이었다. 일본 가랑이 아래로 지나갔고 미국 지갑 속으로 들어갔다. 승객들은 모멸감을 느꼈다. 일본은 그의 입에 오므라이스를 넣어줬고 미국은 그의 손에 노래방 마이크를 쥐어줬다. 그의 입은 바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입이 바쁜 거라 했던가. 또 그들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넘치게 술을 따라줬다. 달콤한 독배였다. 님아, 그 잔을 마시지 마오. 승객들은 술잔을 말리다 하나둘 지쳐 쓰러졌다.

 

그는 과속방지턱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덜컹. 덜컹.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가 깨지고 어깨가 부서졌다. 그리고 죽었다. 그는 용산의 죽음은 내 운전과 무관하다고 강변했다. 노동자의 분신엔 압수 수색으로 대답했다.

 

왜 저렇게 폭주하는 걸까. 차 안을 찬찬히 살폈다. 어라, 그 흔한 내비게이션이 없다. 내비게이션이 있어야 할 자리엔 어지러운 부적 하나가 붙어 있다. 왕이라고 쓰여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는 부적이 가리키는 대로 달리는 거다. 하늘에 구멍이 뚫려도 그는 부적하고만 대화하며 달린다. 신앙이다.

 

조수석에 앉은 그녀도 음주운전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스릴을 즐기는 것 같다. 인생이 아슬아슬 위태위태 스릴이었으니까. 오늘도 그녀는 거울 보며 얼굴에 뭔가를 찍어 바르기에 바쁘다. 사진 찍기에 바쁘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얼굴이 바쁜 거라 했던가. , 그런데 자세히 보니 조수석이 아니다. 뒷좌석이다. 그녀는 음주운전 하는 그를 자신의 운전사쯤으로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탄 이 차는 앞으로도 4년을 더 달려야 한다.

 

공포에 떨며. 치욕에 떨며.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차례로 스러지는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음주운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과연 그에겐 장롱 면허증이라도 있긴 있는 걸까. 면허증 없이 운전석에 앉는 것도 그가 늘 거품 물고 떠벌이는 그 자유라는 것일까. 오늘은, 아니 오늘도 술 한잔 마셔야겠다. 그만하시게.

정철 카피라이터 시민언론 민들레 2023.05.11.

 

 

신동진쌀이 처한 슬픈 운명?

취반식미검정은 밥을 먹어보고 맛··향 등을 품평하는 과정으로 평가단에 들어가 온갖 밥맛을 본 적이 있다. 기준이 되는 표준품종쌀을 두고 다양한 품종의 밥을 먹어보니 누구는 씹힘성에, 누구는 윤기에, 또 누구는 부드러움에 제각각 가점을 줄 뿐 못난 쌀은 없었다. 쌀의 민족답게 한국은 쌀 품종 개발도 잘하고 쌀농사 기술도 세계 최고이다.

 

1980년대까지 정부미라 불리며 맛은 없어도 양은 많은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 농사와 일반미 농사를 따로 짓기도 했다. 통일벼는 국가가 수매하는 지정품종이었으므로 소득의 기반이긴 해도 밥맛은 끝내 좋은 점수 주기 어려워 영세민이나 군인들이 먹는 싸구려 취급을 할 때도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나락을 싣고 와 경기도에서 방아를 찧어 경기미로 속여 파는 쌀세탁도 감행했으나 이젠 그땐 그랬지의 추억담이다. 지금은 경기미가 아니어도 지역마다 맛있는 쌀이 있다.

 

2022년 말 기준으로 강원도에는 오대’, 경기는 참드림’, 경남은 영호진미’, 전남은 새청무’, 전북은 신동진쌀이 잘 맞는다며 볶음밥에 어울리는 품종, 김밥에 어울리는 품종까지 세심하게 구분해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천까지 해 놓았다. 쌀은 각 지역의 토질과 날씨에 따라 잘 맞는 품종으로 세심하게 개발돼 최소 10년에서 15년 정도 심어 보고, 망쳐 보기도 하면서 잘 정착시킨다.

 

신동진 품종은 호남평야를 품고 흐르는 동진강에서 이름을 딴 전북의 대표 품종으로 1992년부터 개발해 1999신동진(익산438)’으로 이름을 얻어 호남평야 일대에 보급됐다. 쌀알도 굵고 비료는 덜 들어가 친환경농업에도 어울리고, 맛도 좋아 정부가 농가에 적극 권했다. 2000년부터 재배가 늘다가 2004년에 비료가 많이 들어가 벼가 쓰러져 큰 피해가 나기도 했다. 신동진은 비료를 적게 주는 소비품종으로 적절한 거름양을 가늠하는 시간이 필요해서다. 그래도 신동진은 미덕이 많은 품종으로 민관 협력으로 전북을 대표하는 브랜드쌀이 되었다. 쌀알이 굵어 다른 품종과 섞이면 티가 나서 속이기 어려워 단일 품종쌀의 격에도 딱 맞아 2009우수품종상도 거머쥐었고, 소비자 인지도도 높다. 2020년 농촌진흥청에서 펴낸 <지역에 스며든 우리 품종 이야기>를 보면 딸기 설향과 사과 홍로와 더불어 신동진이 꼽힐 정도로 국가와 농민, 소비자 모두가 사랑하는 쌀이다.

 

그러다 쌀도 많은데 자꾸 쌀농사를 지어 팔아달라 한다며 양곡관리법으로 정치싸움이 난 뒤, 느닷없이 신동진 퇴출카드가 나왔다. 다수확에서 고품질 쌀 생산으로 전환을 하겠노라며 다수확 품종인 신동진의 공공비축 매입을 2024년부터 느닷없이 중단하겠다며 말이다. 이에 황당무계하다는 농촌의 반발에 겨우 2026년까지 유예 결정이 났다. 당연히 쌀에도 품종 교체주기가 온다. 단일 지역에 한 품종만 오래 심다 보면 병에 적응해 피해가 나고 기후위기도 큰 변수여서 과학자들은 다음 선수를 키워내느라 애를 쓴다.

 

신동진의 다음 주자는 참동진’. 벼의 흰잎마름병을 잘 견디도록 개발했고, 신동진의 장점은 그대로 물려받은 차세대 선수다. 다만 농사는 일 년에 한 번 지을 뿐이니 변화무쌍한 날씨에 적응은 잘하는지, 거름은 얼마나 줘야 하는지, 맛은 어떤지 살필 시간이 필요하다. 심었다가 망치면 농가가 피해를 입기 때문에 더뎌도 차근차근 가보는 것이 보급 품종의 길이다. 그런데 2025년까지는 참동진으로 갈아타라고 급하게 등을 떠미는 형국이다. ‘다수확품종이라던 신동진은 10a536, 참동진은 540이라고 농진청 보고서에도 나오는데 어쩌라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한국 쌀은 이미 고품질인 데다 수확량도 많다. 이는 과학의 승리요, 농민 노력의 산물이건만, 쌀농사 그만 지으라고 솔직히 말은 못한 채, 애먼 신동진 쌀만 잡도리를 하고 있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경향 : 2023.05.12.

 

 

지역 자산 토대로 마을소멸 극복해야

지역소멸을 걱정하면서 행정과 주민은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농촌정책에 수동적으로 끌려가고 있다. 지역을 살린다며 시설을 유치하거나 건물만 지어 놓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에른스트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명제는 지역이 오랫동안 축적한 유무형 자산 파악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행동이다. 시골 마을에서 사라진 제비 둥지 한 개를 되살리는 작업이 마을을 살리는 단초가 된다고 하면 모두 웃을지도 모른다. 창녕 이방장터에서 작년 가을, 경남교육청 우포생태교육원이 강남 가는 제비 6마리에 추적기를 달고 발목에 은빛표시를 하였다. 어제 발목에 표시한 제비 한 마리를 발견하였다. 오늘은 2마리를 더 발견했다.

 

참 위대한 비행을 하고 온 강남 제비는 어디에서 겨울을 나고 돌아왔을까? 지난해에도 밀양에서 출발한 제비의 무게는 대략 16g이다. 추적 장치인 '지오로케이터'의 무게는 0.45g 정도, 제비는 이것을 달고 12000거리를 날아 돌아온 것이다. 밀양을 출발한 제비는 제주도와 오키나와, 필리핀, 인도네시아 섬들을 거쳐 호주 대륙까지 날아갔다. 그러더니 다시 북상해 필리핀 루손섬에서 겨울을 보내고 대만과 중국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왔다. 경남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교사모임'의 최초 확인이자 새로운 기록이다. 이 단체 회원인 김철록 우포생태교육원 연구사는 "제비는 이동하는 그 길을 기억하고, 그 길을 따라서 월동지와 번식지를 오가는 것으로 확인된다"고 말한다. 지난 4년 추적 결과를 종합하자 제비의 강남길은 중국 양쯔강이나 베트남이 아닌 태평양 주요 섬들로 나타났다.

 

우포늪을 비롯한 인근 4개 면 소재지를 대상으로 아이들과 학부모가 제비관찰학습을 진행하고 있다. 따오기 복원, 제비 관찰 일지 등을 작성해 그림책과 영상 등 예술문화활동으로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제비 관찰을 위해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제비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1970~80년을 살아온 삶을 나누게 된다.

 

최근 농촌 재생사업에서 가장 취약한 점은 지역 사람을 만나고, 그 삶 속에서 생태문화자산을 찾아 주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사업구조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앙정부 프로젝트에 편승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예산 확보와 건축물 건립 등에 대한 욕심 탓에 자생적으로 지속가능한 축적된 지역 자산을 토대로 내용 중심 공동체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한편 제비 마을 근처 우포늪에는 항암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오래전부터 마름 열매인 물밤과 가시연은 각종 암에 효능이 있고 강장제로 이용됐다. 또 죽과 묵으로 허기를 채워주었다. 지금은 위암 치료제로 이용되고 있다. 이러한 소재들을 활용해 마을·학교가 전문집단과 힘을 모으면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최근에 '국제슬로푸드생물다양성재단'이 인증하는 '맛의 방주'도 대량생산·세계화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종자와 음식을 기록하고 알리기 위한 국제 프로젝트다. 선정 기준은 자국 내 품종(식물종, 토착동물 등)이거나 전통적 방식으로 수확, 가공되는 야생 품종 또는 가공된 음식이어야 한다. 이런 전통 농업유산과 자연 자산 등을 문화적·예술적 활동 영역으로 넓히는 융합적 기획이 필요한 때이다. 소멸되어 가는 마을을 되살리는 방안은 지역 자산을 중심으로 주민과 지자체·학교·전문가들이 힘을 모으는 데 있지 않을까.

이인식 우포자연학교 교장 경남도민: 2023.05.12.

 

유물론의 즐거움

마르크스주의는 혁명론이나 경제이론으로서는 힘을 잃었지만, 사회를 바라보는 기본적 시각으로서는 유용함을 잃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곱씹어볼만한 마르크스의 관점은 인간의 본질은 사회적 관계의 앙상블’(<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인간의 본질이나 본성을 통해 사회현상을 설명하거나 판단하려는 시도를 해체하고 전복한다. 예를 들어 여성의 본성이 3K(아이, 부엌, 교회)에 적합하므로 기능을 이에 고정시켜야 한다고 규정한 나치라든가, 신이 부여한 불변의 본성(nature)을 전제하고 동성애가 이를 거스른다는 이유로 혐오하는 보수적 기독교에 대한 경종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생 인류는 7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원시생활을 하던 시절과 사실상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음에도 살아가는 방식이 엄청나게 달라졌다. 남한과 북한은 유전자뿐 아니라 문화도 공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과 몇십 년 사이에 크게 다른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다. 인류의 잠재적 유연성이 얼마나 폭넓은지를 보여줌과 아울러, ‘참된 인간성이나 고유의 민족성등을 상정하는 본질주의적 접근의 한계를 잘 드러낸다.

 

두 번째로 들여다볼 만한 마르크스의 관점은 자본가를 의인화된 자본으로 간주한다’(<자본론>)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속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구조라는 것이 존재하며, 그러하기에 이를테면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를 자본가의 탐욕에서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최근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이른바 특권 중산층의 탐욕으로 인해 교육경쟁이 촉발·심화되었다는 담론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특권 중산층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고 이들과 싸우는 것이 우선 과제라는 그릇된 실천적 결론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돌이켜보면 학벌사회의 폐해를 강조하며 그 결론으로 서울대 폐지를 내세운 사람들이 있었다. 전형적으로 구조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주장이다. 학벌이라는 것이 나타난 근본 원인은 대학의 서열화이고, 서열화의 핵심은 교육의 질의 차이이며, 교육의 질이 다른 가장 중요한 원인은 재정 투입의 격차에 있다. 이 구조를 그대로 둔 채로 서울대를 없애면 연세대와 고려대가 서울대의 역할을 대신하게 될 뿐이다. 허망하지 않은가? 과열된 교육경쟁의 원인이 이른바 적폐라는, 즉 특정 집단의 욕망이나 특정 대학의 존재 때문이라는 주장은 경쟁을 신비화하고 경쟁의 원인에 대한 구조적 분석을 가로막는다.

 

능력주의 비판론도 비슷한 위험을 안고 있다. 능력주의를 조세·복지를 반대하고 불평등을 당연시하는 정당화 이데올로기라고 이해한다면 이를 경계하는 것은 타당하다. 하지만 능력주의를 조직의 구성원리라고 이해한다면 이는 불가피하며 심지어 긍정적이다. 국민 세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면 능력있는 공무원이 필요하며, 시장경쟁 상황에 놓여있는 민간기업은 능력있는 신입사원을 요구한다. 능력주의는 구조적으로요청되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접근은 특히 정책 설계자에게 유용하다. 민주주의의 속성상, 사람들의 욕망이나 태도를 나무라는 식의 접근은 위험하다. 유권자의 반감을 불러일으켜 선거에서 표를 잃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제도를 변경하여 변화를 꾀하자는 설득전략이 현명하다. 예를 들어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청년들을 책망하기보다 철저하게 제도 개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얼마 전 조정훈 의원이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육아 도우미를 외국에서 받아들이자고 제안한 바 있다. 나는 이런 아이디어가 나름 의미가 있으며 전면 도입은 어렵더라도 일부 지역에서 시험적으로 실시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조 의원은 이 법안을 홍보하는 글에서 천문학적 예산과 함께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제도와 지원 정책이 쏟아져 나왔다. 다 소용없었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을 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만 찾아봐도 이것은 틀렸다.

 

아동수당, 보육지원, 육아휴직 등 직접적인 저출생 대응예산이라고 할 수 있는 가족지원 예산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보자. 한국은 1.37%OECD 평균(2.11%)에 한참 뒤처진다(2019년 기준). 평균치로만 끌어올려도 차액이 출생아 1명당 5000만원 이상 돌아가는 액수다.

 

마침 헝가리에서 현금성 지원을 통해 출생률을 끌어올린 것이 화제가 되고 있다. 영어의 ‘materialism’은 철학 용어로는 유물론이라고 번역하지만 일상 용어로는 물질주의라고 번역한다. 재앙적인 출생률에 대응하기 위해 보다 즐거운 유물론적인 태도로 거리낌없는 물질주의를 시행하기를 권한다.

이범 교육평론가·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경향 : 2023.05.13.

 

취업 중심 교육의 함정

어느 때부터인지 취업이 주요한 교육 목표로 자리 잡았다. 어린이집에서 가는 잡월드 견학을 시작으로, ··고 재학기간에는 취업을 위한 발판인 명문대학 진학을 위해 내달리다, 대학에서는 또다시 입사지원서에 적을 다양한 활동(공모전, 인턴 등), 자격증, 어학능력시험, 학점 따기가 펼쳐진다. 마치 취업이라는 결승점에 도달하기 위한 미션이 끝없이 쏟아져 내리는 게임 속에 있는 듯하다.

 

내가 일하는 대학도 신입생 세미나커리어 탐색과 설계와 같은 수업과 학생 면담을 통해 진로 설정 및 취업을 돕도록 강조한다. 다른 대학도 비슷하겠지만,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대학 재정이 취약할수록 취업 중심 교육은 더욱 심해질 거라 짐작한다. 취업률이 신입생 모집을 위한 주요 전략이고, 신입생 모집률에 따라 대학의 존폐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학생들도 대학 교육을 취업을 위한 도구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대학 교육 현장에서 느끼는 취업 중심 교육의 가장 큰 부작용은 공부를 통한 자기 성장의 기쁨보다 경쟁으로 인한 좌절감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취업을 위한 공부는 다른 이와 경쟁해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지 못하면 물거품이 된다. 면담에서 반복적으로 듣는 학생들의 고민은 다른 애들은 이미 하고 싶은 것을 잘 알고 그에 맞춰 많은 활동을 한 것 같은데, 저만 뒤처져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지도교수로서 삶은 각자 자신의 경로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니,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신경 쓰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만들어 나가는 데 집중하기를 권한다. 공부를 자신의 성장을 위한 것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서 기쁨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경쟁적인 사고 틀에서 벗어나도록 제안해주는 것 자체가 학생들의 불안을 다소 덜어주는 듯하지만, 학생들의 현실을 모르고 주절거리는 공자님 말씀이나 꼰대질은 아닐지 매번 조심스럽다.

 

답답한 마음에 신입생 세미나에서 서울대 김영민 교수의 <공부란 무엇인가>를 읽고, 저자가 생각하는 공부와 자신이 생각하는 공부는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에 대해 작성하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공부의 목표를 자기 성장을 통해 성숙한 시민이 되는 것으로 제안하고, 이를 위한 적극성과 체력을 강조하며 구체적인 공부 기술도 알려준다. 내 예상과 달리, 학생들의 반응은 대단히 호의적이었다. 그중에 한 학생은 자신들이 수동적인 인간이 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나에게 공부는 사회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학생들을 경쟁의 구도에 몰아넣은 것이 수동적인 인간이 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정보를 남에게 알려주지 않으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혹은 자신이 힘들거나 귀찮은 상황에 처하게 될까 일부러 자신의 능력을 다 발휘하지 않는 것이라고.” 또한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경쟁과 창의성 사이의 모순도 지적한다. “나는 공부를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창의성을 가지고 남들이 못하는 걸 하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힘든 일을 하라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이 학생의 진술은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수동성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는 듯하다. 취업 중심 교육은 대학이 산업에서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하지만 취업 중심 교육의 함정은 표면적으로는 새로운 산업에서 요구하는 창의성과 협업 능력을 강조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를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쟁에 기반한 공부는 창의성은 물론이고 서로의 성장을 도모하기 어렵다. 반면에 라는 좁은 틀에서 벗어나 서로의 생존을 지지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교육은 창의성과 협업 능력을 키운다. 따라서 산업에서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과 상치되지 않는다.

채석진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경향 : 2023.05.13.

 

 

정부 1, '음모론'과 싸우다가 '메타 음모론'에 포획되다

 

1년째 언론·야당·여론에 '어퍼컷'만 날리고 있는 정치

음모론과 싸우다 보면 음모론에 잡어먹힐 때가 있다. 한 두가지의 음모론에 반박하다 보면,어느 순간모든 걸음모론으로 치환해 버린다.이제 세계는 음모론이 판치는 거대한 '메타 음모론'적 세계로 전환된다. 이 세계 속에서 음모론과 음모론 아닌 것의 구분은 의미 없다. 이미 세상 전체가음모론에 물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주년, 지금 집권 세력의 풍광은 드라마틱하게 흐르고 있다.갈등의 고조를 향해 내달리는 음모론 소설 속 주인공들 같다. 윤석열 대통령은 1년 전에 문 닫은 문재인 정부와 싸우고 있고, 대통령의 최측근들은 '대야 투쟁'을 넘어 시민단체와의 싸움에 나섰다. 그들에 따르면 네이버는 조작됐고, 여론조사는 믿을 게 못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주년을 지나오며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 방역정책을 두고 "정치방역"이라고 비판하며 "합격점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의사협회의 6차례에 걸친 건의에도 불구하고 중국인 입국을 통제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했다. 중국인 입국을 막았으면 정말 전 세계를 휩쓴 '팬데믹'에서 대한민국만 벗어날 수 있었을지의문이나 아무튼 그건 '정치 방역'이었다. '정치 방역'2020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에 쓰라린 패배를 안겨줬던 것은기억하지못하는같다.그리고이어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국방 정책에 대해 "정치이념에 사로잡혀 국방체계가 골병이 들었다"고 주장했다.'골병'1치료하지못한것은윤석열정부다.아니,'골병'이라는진단을내리는 데에만 1년이걸린모양이다.

 

윤 대통령 주변의 측근들 근황은 이렇다. 그가'체리 따봉'을 보낼 정도로 가까운 장예찬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가 열리지 않은 상황을 두고 "제가 지난 며칠 동안 페이스북으로 제기한 김남국 민주당 의원 코인 의혹을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했다면 훨씬 더 파급력이 컸을 것"이라며 "민주당을 공격할 거리가 산더미 같은데 최고위원회가 휴업인 상황이 너무 안타깝고 아쉽다"고 말했다. 장 최고위원에게 정치란 반대 세력을 "공격"하는 것이다. '공격 정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인데, 하긴 이 정부가 최초의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하려 했던 인물은 "수사의 최종 목표"가 사회 정의가 아니라 "기소"라고 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누가 뭐래도 '대야 투쟁'의 선봉장이다. 이젠 투쟁의 전선을 시민단체로까지 넓혔다. 참여연대가 '윤석열 정부 1년 교체해야 할 공직자' 1위로 자신을 지목하자 입장문을 내고 "민주당 정권 5년 내내 한쪽팀 주전 선수로 뛰다가 갑자기 심판인 척한다고 국민들께서 속지 않을 것"이라고 반발했다. 법무부장관이 아무런 인사권도 없는 시민단체와 말싸움을 하고 있다.

 

인사에도 변화가 있을 조짐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이 교체를 검토하고 있다는 장관은 세 명이다. 문화체육관광부 박보균 장관, 고용노동부 이정식 장관,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이다. 교체 고려 이유가 흥미롭다. <중앙일보> 편집인까지 역임한 박보균 장관은 가짜뉴스를 막지 못했고, KBS, MBC 등 공영방송의 '좌편향'을 시정하지 못했다는 게 이유라고 한다. 이정식 장관의 경우 '최대 주 69시간' 논란이 일었던 노동 개혁안과 관련해 반대 여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이유라고 하고, 조규홍 장관은 간호법 국회 처리와 관련해 여론을 관리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라고 한다.

이 모든 건홍보 부족 탓이다. 그리고 악의적 언론 탓이다.

 

이런 인식은 여당의 언론관과도 맥이 닿아 있는데, 정부 여당은 갑자기 '네이버 때리기'에 나섰다.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9일 네이버에 '윤석열'을 검색하면 노출된 '관련도순' 뉴스 페이지 8페이지가 "윤 대통령 비판과 비난 기사가 도배 일색"이라고 했다. "이렇게 취임 1년 된 대통령을 향해서 비판과 비난 기사를 도배하면 이것을 본 우리 국민들이 윤 대통령을 객관적으로 혹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건 아마 기적에 가까울 것"이라고 한다. 이철규 사무총장은 "'윤석열'을 검색하는데 '안철수' '유승민'이 나오고 제3자가 비판하는 기사가 (윤석열 검색) 관련도순에 들어가는 것은 조작에 의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조작 의혹을 제기다. 박성중 의원은 12일 네이버에 대해 "아무리 견고하게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설계한다고 한들 친 민주당 세력들이 작정하고 조작하는 어뷰징을 막을 도리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지 않은가"라고 했다.

 

언론의 비난 기사, '친민주당' 세력의 조작, 네이버의 알고리즘의 조작 의혹이윤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의 배경에 깔려 있다는 인식이다. 쉽게 말해 대통령은 잘 하고 있는데 네이버와 언론이 문제란 말이다.지지율이 낮아질 정도로 국정 운영의 질이 문제가 있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의문은 진지한 표정의그들 앞에서 제기하기가 어렵다.

 

일부 여론조사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8"여론조사가 과학적이고 공정하지 않으면 국민을 속이는 행위"라고 주장하며 "표본 여론조사는 표본 설정 체계가 과학적이고 대표성이 객관화돼야 한다. 나아가 질문 내용과 방식도 과학적이고 공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결국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그에 앞서 "(여론조사는) 표본 추출이나 질문지 구성이나 과학적 방법인가에 대해 의문점을 갖는 경우가 굉장히 많기 때문에 참고하는 경우도, 참고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여론조사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대부분 남탓이다. 마치 대한민국 사회가 윤석열 정부를 죽이려 드는 거대한 음모론적 톱니바퀴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음모론' 제기는 김어준 씨만 잘 하는 게 아니다.하긴윤석열대통령은지난미국방문기간의회연설에서 "전체주의 세력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부정하면서도 마치 자신들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인 양 정체를 숨기고 위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이런 은폐와 위장에 속아서는 안 된다"했다.세계관은지금윤석열정부취임1주년을관통하고있다.보이지않는적과싸우고있는노고를일반인은쉬이짐작할수도없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주년의 풍경을 살피면, 내년 총선 전까지 이 정부의 국정 운영 기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앞으로 있을 개각에서 문체부 장관 자리에는 가짜뉴스와 싸울 투사가, 노동부 장관에는 반대 여론도 뒤집을 수 있는 스핀 닥터가, 복지부장관에는 여소야대의 국회 현실도 뚫을 수 있는 인물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공석인 최고위원 한 석에는 장예찬 최고위원 같은 "공격"수 한 명이 더 채워질 수도 있겠다. 네이버 알고리즘 조작 의혹 규명을 위한 압수수색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론조사에서 범보수 대선 주자 선호도 1위를 달리는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정치에 뛰어들지 말라는 법도 없다. 만약 한 장관이 정치에 뛰어들어 성공한다면, 대한민국 정치 역사상 검찰 출신 대통령 연속 2회 달성을 노릴 수 있을지모른다.

 

그런데, 정말 이 모든 게 가능하다고 생각할까?

음모론의최종 진화 형태는음모론에맞선다고 믿는자들이'역음모론'의 세계를 창조해 스스로 그 세계에 걸어들어가는 것이다. 김재원최고위원은안토니오그람시의'진지론'수입해 와 국민의힘(보수 진영)의 입장에서 재해석 한다. 나라를전복하려는'좌파세력'사회 곳곳에 참호를 파고 진지를 구축해 '자유' 이념의 확산을 막고 보수의 숭고한의지를꺾고있다고보는세계관이탄생한다.눈 앞에 보이는 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적'으로 전선이 확장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엔 ''이 들어 있다는 세계관. 요컨대 현 집권 세력은 보이지않는적과싸우고있는셈이다.

 

암울해 보이지만, 방법은 있다. 집권 세력이 음모론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객관화해 보는것이다. 모든 것을 '남 탓'으로 돌리는 것은 책임 정치가 아니다. 특히 취임 1년 된 시점에 '전 정부 탓'을 하는 건 유권자들에게 공감을 얻기 어렵다. 모든 문제를 '진정성을 알아봐 주지 않는 여론 탓'으로, '홍보 부족 탓'으로, 심지어 여론 플랫폼 '조작' 의혹으로 돌리는 것은 현명한 방식이 아니다.보이지않는적과싸우지말고,내부성찰과 자성을 통해스스로를객관화하길진심으로바란다.

박세열 기자 | 프레시안 2023.05.13.

 

 

천벌 같은 건 없다

김남주 평전에서 받은 위로와 격려

아버지의 해방일지김남주 평전이 올해의 5.18문학상을 받는다. 정지아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베스트셀러라 굳이 소개할 필요가 없지만 김남주 평전은 그렇지 않다. 소설평론을 가리지 않고 쓰는 저자 김형수는 꽤 오래 전부터 부여의 신동엽 문학관 관장으로 일해 왔다. 김남주 평전은 그가 문익환 평전소태산 평전에 이어 세 번째로 쓴 전기 작품이다.

 

5월은 어버이날과 어린이날이 있어서 가정의 달이라고 하지만 내겐 아니다. 나는 부모님을 다 떠나보냈다. 내 아이들은 어린이를 벗어난 지 오래다. 아직은 어버이 대접을 받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런 나한테 5월은 역사의 달이다. 광주민중항쟁을 기리고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시간이다. 김남주 평전은 그런 계절에 읽기 좋은 책이다. 김남주의 삶과 죽음이 그렇고, 김남주의 시도 그러하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시인을 평전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세상의 변화 때문에 심란해진 나를 위로했다.

 

자신이 자유로운 존재임을 잊지 않는다면 대통령 자리에 앉은 어떤 남자의 어리석고 기괴한 행위가 너의 존엄을 해치지 못할 거야!”

 

그 위로를 독자들께 전하고 싶다.

광주 5.18 민주공원의 구 묘역(망월동 묘역)에 있는 김남주 시인의 묘. 2009.5.18 연합뉴스

전선(戰線)의 시인

 

김남주는 194510월 전남 해남군 삼산면에서 태어났다. 해남 읍내에서 대흥사 가는 길에 있는 마을이다. 어머니는 동네 지주의 딸, 아버지는 바로 그 집의 머슴이었다. 시인의 외할아버지가 한쪽 눈 시력을 잃은 딸을 말수 적고 성실한 머슴과 맺어주었다. 부모는 평생 글을 몰랐지만 김남주는 시인의 운명을 타고났다. 시인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적은 없었다.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사람과 세상과 삶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문자로 옮겼을 뿐이다. 시인임을 내세우지 않았고 누가 시인으로 대접하면 손사래를 쳤다. 그의 주관적 정체성은 시인이 아니라 전사(戰士) 또는 혁명가였으며, 19942월 췌장암으로 삶을 마감한 때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내게 김남주는 전사가 아니라 시인이다. 살아서나 죽은 뒤에나 다 그렇다. 계간 창작과 비평에 시 여덟 편을 공개한 1974년 여름, 그는 단박에 김지하에 버금가는 당대의 시인으로 떠올랐다. 냉정하게 말하면 시 말고는 세상의 변화에 힘을 보탤 능력이 없었던 사람이다. 그를 가리켜 전선의 시인이라고 한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전선이 아니라 시인에 무게를 둔다. 시인은 어디에 있든 시인이다.

 

시인 김남주는 어떤 전선에서 복무했는가? 적어도 남조선민족해방전선은 아니었다. 남민전 사건으로 197910월부터 198812월까지 9년 넘게 옥살이를 했지만 나는 그 조직을 김남주 시인의 전선이었다고 보지 않는다. 남민전은 온몸 가득 억압과 불평등에 대한 분노를 채운 인간 김남주가 시대의 어둠에 길을 잃고 절망감에 쫓기다 들어섰던 골짜기였을 뿐이다. 그는 자유와 존엄을 찾는 전선에서 싸우면서도 전선의 지형을 잘못 읽었고 싸움의 성격을 오해했다. 아래는 데뷔작 가운데 하나인 시 잿더미의 일부다.

 

보리는 왜 밟아줘야 더

팔팔하게 솟아나던가

잡초는 어떻게 뿌리를 박고

박토에서 군거하던가

곰팡이는 왜 암실에서 생명을 키우며

누룩처럼 몰래몰래 번식하던가

죽순은 땅속에서 무엇을 준비하던가

뱀과 함께 하늘을 찌르려고

죽창을 깎고 있던가

 

청년 김남주는 박정희의 유신쿠데타를 비판하는 지하신문 <함성>을 제작 배포한 일로 체포되어 잔혹한 고문을 당하고 여덟 달 동안 구금되었다가 풀려난 직후 이 시를 썼다. 문단에 데뷔하기 전부터 그는 자유의 전선에서 글로 독재 권력과 싸웠다.

 

자유에 대하여

나는 인간 김남주를 좋아하고 그가 쓴 시를 사랑한다. 사람이 훌륭해도 시가 그만 못한 경우가 있다. 시는 훌륭한데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경우 또한 없지 않다. 김남주는 삶과 시 모두 매력이 있다. 오래 전 시인 윤동주는 쉽게 씌어진 시에서 자신을 이렇게 질책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김남주는 시를 쓸 때는이라는 작품에서 같은 감정을 다른 방식으로 드러냈다. 타고난 시인은 쉽게 시를 쓰고, 그 때문에 스스로를 학대하는 것 같다.

 

시가 술술 나오는구나

거미줄이 거미 똥꾸멍에서 풀려나오듯이

막힘없이 거침없이 빠져나오는구나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나 같은 놈에게

멋도 없고 가락도 없고 서정도 없는 엉터리 시인에게

 

김남주의 시를 읽으면 저절로 윤동주와 이육사 같은 분이 떠오른다. 그런데 다른 점이 있다. 그는 자신을 시인이 아니라 전사로 여겼다. 그래서 시가 쉽게 나오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마음으로 쓰는지 같은 시에 토로했다. 문학사에서 얻을 위상이나 문단의 평가 따위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 자신을 시인이 아니라 전사로 여겼으니 당연한 일이다.

 

시인이여 박해가 극에 달해 있어 아슬아슬

백척간두에 모가지를 걸고 있는 자유대한의 시인이여

전후좌우 살피지 말라 시를 쓸 때는

시를 쓸 때는 어둠으로 눈을 가리고 써라

공포탄으로 귀를 막고 침묵 속에서 써라 내일 아침이면

뜨는 해와 함께 밑씻개가 되기 위하여 오늘 밤에 써라

쓰는 족족 어둠으로 지워가면서 써라 찢어가면서 써라

사후의 부활? 아나 천주학쟁이 너나 먹어라 내던져주고 써라

사후의 평가? 아나 비평가 너나 처먹고 입심 길러라 하고 써라

 

김남주는 도대체 왜 시를 썼는가?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엄을 실현하려고, 같은 세상을 사는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려고 썼다. 나는 그렇게 그를 이해한다. 다음은 시 자유에 대하여의 일부다. 여기에 그는 맹자가 말한 호연지기(浩然之氣)’, 모든 속박을 뿌리치고 스스로 자신을 해방한 자유인의 마음을 터뜨렸다.

 

자유를 내리소서 자유를 내리소서

십자가 밑에 무릎 꿇고 주문 외우며

기도 따위는 드리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대지의 자식인 나는

자유 좀 주세요 자유 좀 주세요

강자 앞에서 허리 굽히고 애걸복걸하면서

동냥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직립의 인간인 나는

왜냐하면 자유는

하늘에서 내리는 자선냄비가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면 자유는

위엣놈들이 아랫것들에게 내리는 하사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시대와 작별하며

 

김남주의 시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어떤 때는 독자를 나무라고 야단치는 것 같다. 예컨대 아래 작품이 그렇다.

 

앉아서 기다리는 자여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똥 누는 폼으로

새 세상이 오기를 기다리는 자여

아리랑 고개에다 물찌똥 싸놓고

쉬파리 오기를 기다리는 자여

-똥 누는 폼으로전문

 

엉거주춤한 자세로 이도저도 아닌 인생을 산 나는 시인의 말을 군소리 하지 않고 듣는다. 그러면서 혼자 말한다. “인간이란 게 본디 그렇게 엉거주춤한 존재더라구요. 난 어떨 땐 앉고 어떨 땐 서고, 어떨 땐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지요. 그래도 그렇게 말해주신 덕분에 내가 그렇다는 걸 알았으니, 고맙습니다.” 그렇다. 김남주의 시는 나를 있는 그대로 보게 하는 힘이 있다. 김남주의 시는 또한 때로 찌를 듯 험하고 날카롭다. 잘못 만지면 다칠 것 같다. 다음 시를 보라.

 

장군들, 이민족의 앞잡이들

압제와 폭정의 화신 자유의 사형집행인들

보아다오 보아다오 보아다오

살해된 처녀의 머리카락 그 하나하나는

밧줄이 되어 너희들의 목을 감을 것이며

학살된 아이들의 눈동자

그 하나하나는 총알이 되고

너희들이 저질러놓은 범죄

그 하나하나에서는 탄환이 튀어나와

언젠가 어느 날엔가는

너희들의 심장에 닿을 것이다

-학살3부분

 

그래도 나는 김남주의 시가 좋다. 김형수가 말한 것처럼, 그의 시는 한 시대의 심미적 표상을 창조했다. 나는 그와 같은 시대를 지나왔다. 그런 시대를 만나지 않았다면 상상만 할 수 있었을 감정을 몸으로 느껴 보았다. 대단한 그 무엇은 아니었을지라도 그 감정을 만났기에 보잘것없는 인생에 작은 의미를 더할 수 있었다. 독재정권의 후예들, 한통속인 언론 종사자들, 그리고 진보진영의 일부 젊은 정치지망생들까지 덩달아 신종 기득권 세력이라 비난하며 함부로 돌을 던져대는 소위 86세대는 다, 고뇌하고 번민하고 분노하면서 자신의 시대를 건넜던 1980년대의 청년이라면 누구나, 시인이 그날 밤을 회상하면이라는 시에 표현한 두려움과 자기 비하의 감정을, 작지만 소중한 성취의 기억을 되살려낼 수 있을 것이다.

 

환청이었을까 어이 학생하는 소리에

환각이었을까 목덜미에 닿을 것 같은 검은 손의 촉감에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발걸음이 빨라졌고

급기야는 뛰기 시작했다

뛰면서 나는 생각했다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칵 뒈져나 버려라 이 겁보야

(중략)

그날 밤 나는

나에게 맡겨진 임무를 성공적으로 끝냈다

아 그날 밤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 하나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그렇다. 김남주의 시는 한 시대의 심미적 표상을 창조했다. 그러나 그는 떠났고 그 시대는 지나갔다. 김형수 시인은 왜 지금 김남주 평전을 쓴 것인가? 인간과 역사와 예술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품격을 지키면서 한 시대와 작별하기 위해서다. 그는 김남주를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김남주의 시를 골라 평전에 실었다. 그의 시와 산문에는 한 시대의 심미적 표상을 넘어 인간 존재의 심연을 드러내는 메시지가 있다. 그것을 챙겨 다음 세대에게 넘겨줌으로써 나와 동갑인 작가 김형수는 우리의 시대와 의미 있게 작별하려는 것이다.

 

나라 안에서는 검찰권이라는 합법적 폭력을 마구잡이 휘두르면서, 국가의 자주와 국민의 자존을 미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 발아래 굴리는 대통령의 행태를 나는 우습게 여긴다. 탱크와 총칼과 최루탄과 고문과 백골단의 몽둥이를 겪은 우리 세대가 보기에 고소고발과 검찰권으로 만사에 대처하려는 정권의 행태는 장난감 총으로 하는 병정놀이와 같다. 197549일 새벽 박정희는 대법원 확정판결 하루 만에 인혁당과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 8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다들 박정희가 천벌을 받을 것이라 했지만 김남주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천벌 같은 건 없다. 이것이 세계의 참모습이다.

그렇다. 윤석열 대통령과 그 오른팔 왼팔들에게도 천벌 같은 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부가 한 시대를 마감하는 적절한 형식일 리도 없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한다. 김남주 시인은 하늘에 대고 무엇인가를 빌 필요는 없다고, ‘직립의 인간으로서 자신의 힘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라고 말한다. 이처럼 당연한 말이 위로가 된다니!

유시민 작가 | 시민언론 민들레 2023.05.15.

 

 

우크라이나에서의 남북전쟁

조선 청년 양경종은 1943년 우크라이나 동부전선에서 소련 군복을 입고, 독일군에 포로로 잡혔다. 그는 앞서 일본군에 징집됐다가 소련의 포로가 됐고, 소련군에서 다시 독일군 포로로, 그리고 독일 군복을 입고 노르망디에서 연합군의 포로가 됐다. 이후 그는 영국 포로수용소를 거쳐 미국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앤터니 비버의 <2차 세계대전>이라는 책 첫머리에 나오는 이야기다. 역사학자는 식민지 청년이 휘말린 믿기 어려운 사연으로 이 전쟁의 세계성을 부각했다.

 

80년이 흐른 현재, 이번에는 한반도의 포탄이 멀고 먼 우크라이나 전쟁터에 등장했다. 정부는 살상무기 지원 불가 원칙을 말하지만, 해외 언론은 포탄 제공 가능성을 보도했다. 이미 미국의 도청 자료에서 밝혀졌듯이 한국 정부는 포탄 지원 방안을 논의했고, 폴란드 총리가 한국 포탄을 전달하는 문제를 한국과 협의했다고 밝혔으며, 정부·여당이 포탄 지원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우회 수출을 포함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을 적대적인 반러시아 행위로 간주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왜 우크라이나에 한국의 포탄이 필요한가? 전쟁이 일어난 지 한해가 지나면서, 이 전쟁은 포격 소모전으로 전환됐다. 지금은 양쪽 모두 포탄 부족에 시달린다. 우크라이나는 3월까지 한달에 11만발의 포탄을 사용했고, 미국과 유럽에 한달에 25만발을 공급해 달라고 요구했다. 미국과 유럽은 포탄 생산능력을 늘리고 있지만, 생산량을 갑자기 늘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은 이스라엘에 보관 중인 포탄을 지원하고, 양산 능력을 갖춘 한국의 155포탄을 원한다.

 

북한도 이 전쟁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북한은 도네츠크와 루간스크(루한스크)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했다. 그리고 이들 지역에 건설노동자를 파견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이들 공화국이 유엔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북한의 건설노동자 수출을 금지하는 유엔 제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러시아가 국제사회의 제재 대상국이기 때문에, 앞으로 북·러 양국의 제재 무력화 시도는 늘어날 것이다. 러시아도 포탄 부족 현상에 시달리면서 북한의 포탄 지원 가능성도 거론된다.

 

지난해 2월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전으로 진입했다. 70년 전 한국전쟁 당시의 수준으로 세계적인 군수보급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결국 전쟁 수행 능력에서 우열이 가려질 것이다. 러시아는 무기 원료에서 탄약공장까지 자급자족할 수 있고, 러시아 경제도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재정안정성을 유지하고 있어서 일정 기간 이상 전쟁 수행 능력을 갖추고 있다. 푸틴은 이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 결국 시리아 내전처럼 잊혀진 분쟁으로 만들려고 한다.

 

미국도 이미 우크라이나에 1천억달러 이상을 지출했고, 총력지원 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나 권위주의 정부가 시간을 가졌다면, 민주주의 정부는 선거라는 시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미국 내부적으로 장기전에 대한 피로감이 나타나고, 공화당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소극적이며, 미국 정부 안에서도 장기전은 부담스럽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재정적자가 늘어나는 만큼, 동맹국에 비용 분담을 요구할 가능성이 커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핵전쟁의 공포도 여전하다. 푸틴은 지난 2월 미국과의 핵무기 감축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중단을 선언했고, 벨라루스에 전술핵무기 배치를 발표했다. 푸틴의 핵 위협은 서방의 개입을 경고하고 러시아의 승리를 자신하는 심리전에 가깝다. 그러나 역사는 말한다. 알제리에서 프랑스가, 베트남에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이,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이, 핵무기가 있어도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다. 물론 러시아가 이 전쟁에서 전술핵이든, 혹은 저위력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세계적인 차원에서 비확산 체제는 붕괴하고, 그만큼 인류를 절멸시킬 핵전쟁의 가능성도 커질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70년 전의 한국전쟁처럼 누구도 승리하지 못한 전쟁으로 변해가고 있다. 남북을 가르는 군사분계선이 동북아 지역을 나누고, 나아가 세계의 분단선으로 자리 잡으면 안 된다. 장기전으로 진입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한반도가 포탄의 무기고로 전락해서도 안 된다. 80년 전 조선 청년 양경종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대국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주권국가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연철 | 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 |한겨레 2023.05.14.

 

 

전환기의 도전과 위험한 반동정치

전환의 시대에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 2008년 금융위기를 분기점으로 신자유주의 광풍은 꺾였다. 탈세계화와 미·중 갈등 시대가 도래한 한편, 다면적 불평등과 부채경제, 고용불안과 빈곤이 초래한 삶의 불안과 사회적 불만 때문에 중도 기득권정치가 약화되고 포퓰리즘이 득세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위기가 휩쓸었으며 지금은 기후위기 비상사태다. 오늘의 포스트신자유주의 국면은 우리가 풀어야 할 세 가지 전환기 도전을 일러 준다.

 

첫째, 사회보호. 이는 신자유주의가 앗아갔고 코로나19 팬데믹이 그 필요를 절실히 일깨운 안전 및 안정의 보장을, 인간 및 자연의 돌봄을 뜻한다. 둘째, 주권. 이는 밖으로는 탈세계화에 따른 새로운 국경 관리 및 공급망 확보, 안으로는 기득권 정치에 의해 공동화된 대중주권의 복원을 말한다. 셋째, 통제. 이 역시 신자유주의적 반동과 코로나19 팬데믹이 일깨워준 것인데 좁게는 망가진 국가능력의 재건, 더 넓게는 정치의 새로운 복원이라는 과제를 의미한다. 이 세 가지 도전을 풀어내는 방식은 나라의 역량과 조건에 따라 다양하다. 예컨대 대응은 권위주의 세력이나 포퓰리즘 세력 또는 새로운 민주적 세력이 주도할 수도 있고, 좌표를 상실한 반동적 퇴행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일찍이 이런 문제 상황을 예리하게 통찰했던 이는 칼 폴라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유시장이 본원적이고 공적 규제는 이차적, 심지어 부자연스러운 것처럼 주장한다. 하지만 폴라니는 자유시장이란 하나의 정치적 기획이자 실천, 이데올로기일 뿐이며 거기에 결코 자연적인 것은 없다고, 자유시장 자체가 엄청난 국가개입에 의해 창출되었다고, 노동·토지·화폐를 무리하게 상품화시킨 시장사회 속의 자유란 허구적 자유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허구적이라 함은 거짓이고 다수 대중은 자유의 실질적 기반이 없음을, 시장에서는 돈이, 자산소유자가, 채권자가, 임대업자가 지배한다는 말이다. 그들은 특권적 자유를 누리지만 노동자, 채무자, 세입자, 흙수저 인생은 사슬에 얽매인다. 폴라니는 오직 쇄신된 민주적 대안만이 탈규제 자유시장주의와 파시즘의 이중적 도전을 넘어 모두를 위한 자유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또한 그는 자유시장 확대와 대항적 사회보호 간의 이중운동이 항구적이며 사회보호운동도 여러 갈래임을 지적했다. 한국도 이 스토리의 예외일 수 없다.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국가능력 및 정치를 재구성해야 한다, 주권을 복원해야 한다는 포스트신자유주의 국면의 새 도전 앞에 한국은 어디로 가고 있나. 이 나라에는 윤석열 정부 아래 거대한 퇴행이 일어났다. 한국은 경제규모 세계 10위권의 선진국이라지만 출생률 최저, 자살률 최고, 노인빈곤율 최고, 산재사망률 최고(OECD 기준)의 병든 나라이며, 취업자 80%2차 노동시장에서 불안에 떨며 일하고 공공임대주택 비율이 4~5%대에 불과한 주거권 빈곤의 나라다. 어느새 계층상승 이동 기회도 좁은 문이 됐다. 이런데도 정부는 사회서비스, 소득보장, 보건의료, 주거정책에서 특혜적 규제 완화와 민영화, 영리화와 산업화를 한층 심화시키는 한편, 비정규직 확대와 주 69시간제, 노조 무력화와 사용자권한 강화정책을 추구했다. 그러면서 재벌특혜와 부자감세를 밀어붙였다. 가진 자, 불로소득자에게 퍼주면서 사회 짓부수기 작업에 매진했다. 부서지는 사회와 단짝을 이루는 것이 무책임 불량국가다. 적극적 재정운용을 통한 공공지출 확대가 시급함에도 대규모 감세와 긴축재정정책에 빠져 올해 세수 결손이 30조원이나 될 정도다. 정부가 스스로 자기 목을 졸라맸다. 하지만 이 작고 무능한 정부는 동시에 노조 때리기에는 크고 강한 검찰국가가 된다.

 

탈세계화와 미·중 갈등시대 주권 재정립의 과제는 어찌 됐나. 남북관계에서는 힘을 통한 평화라는 강경일변도 기조로 전쟁위험을 고조시켰다. ·, ·일관계에서는 아무 줏대도 없이 중·러와 대결하는 미·일동맹 장기판의 졸이 되어 신냉전구도를 심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제3자 변제방식으로 자기 나라와 국민을 버리고 일본 우익의 매국적 대변인 노릇을 했을뿐더러, 한국의 기업 및 국익에 심대한 타격을 가하는 미국의 반도체법 및 인플레이션감축법에 의해 뒤통수를 맞고도 아무 대응도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의 전도사다. 취임사에서 35, 미의회 연설에서 46번 자유를 외쳤다고 한다. ‘허구적 자유’(폴라니)의 깃발 아래 민생을 죽이고 사회를 부수고 나라를 팔고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면서 말이다. 이 위험한 퇴행에 맞서 시민사회운동이 다시 일어서고 있다. 쇄신된 사회생태적 대안만이, 부서지고 갈라진 사회의 발본적 치유와 책임있는 공공국가의 재건만이 모두를 위한 자유, 나라다운 나라를 가져다줄 것이다.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경향 2023.05.15.

 

 

출범 1년만에 구멍뚫린 나라살림부자감세 패착, 증세를 권고한다

20231분기 국세수입은 전년 대비 24조원이 부족했다. 기획재정부는 세정지원 등에 따른 기저효과가 88천억원이라고 했다. 감안해 실질적 세수감소가 15조원이라고 보자. 추세가 연말까지 이어지면 2023년 국세수입은 전년 대비 60조원, 2023년 세입예산 대비로는 대략 65조원이 부족하게 된다. 앞으로 경기침체가 더 진행하면 그 이상 부족할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임 정부 기간 국가부채가 400조원 증가했다고 했다. 2017~20225년 동안 중앙정부 국가부채 증가액은 406조원이었고 국가부채율은 11.4%포인트 증가했으니 틀린 숫자를 제시한 것은 아니지만, 윤 대통령은 전임 정부가 국가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했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중요한 것은 그 시점의 경제사회 상황에 비춰볼 때 더 나은 결정이 가능했었느냐는 것이다.

 

기간별 정부 결산자료를 살펴보자. 문재인 정부 첫 2년인 2018, 2019년 총지출은 소폭(6.8%포인트), 중폭(11.7%포인트) 늘어났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5% 수준의 명목성장률을 염두에 두고 봐야 한다.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과 같은 비율로 증가해 국가부채비율은 2년 동안 제자리 수준에 머물렀다. 오히려 정부 역할이 부족하다는 비판까지 받았다.

 

다음 2년은 코로나19로 인해 완전히 다른 모습이 전개됐다. 모든 것을 제쳐놓고 방역을 위해 필요한 조치와 민생안정을 요구하던 시기였다. 2020, 2021년 전년 대비 13.4%포인트, 9.3%포인트의 지출확대가 이뤄졌으나 통합재정수지 적자의 크기는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 대비 3.7%1.5%에 그쳤다. 미국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한 재정지출이 국내총생산 대비 15%에 달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지출확대는 주요 7개국(G7)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었으며 방역의 효과나 경제에 미친 영향에 있어 한국은 세계적인 모범이 됐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해인 2022년은 윤석열 정부와 나눠 재임하는 기간이었다. 2차례 추경 가운데 1차는 문재인 정부 기간(17조원 규모), 2차는 윤석열 정부 기간(62조원 규모)에 이뤄졌다. 2020~20223년 동안 재정은 전년 대비 65조원, 51조원, 82조원 규모로 중폭 이상 확장했으나 국가부채비율은 국내총생산 대비 6.1%포인트, 3%포인트, 2.4%포인트로 늘어나는 정도가 달랐다. 왜 그럴까? 2020년에는 국내총생산 성장이 취약했으나 2021, 2022년은 탄탄한 성장으로 세수입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국가부채율은 총지출이 늘어난다고 일방적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경제성장이 부족하고 세수입이 줄면 총지출 증가와 함께 국가부채율은 가파르게 올라가지만 역으로 총지출이 늘어도 성장과 세수입이 좋으면 국가부채율은 크게 오르지 않는다. 그러기에 성장률 제고에 유효한 정부지출이라면 단기적으로 부채가 늘더라도 이행하는 것이 올바르다.

 

정부·여당은 더 이상 야당이 아니다. 벌써 출범 1년이다. 전임 정부 탓하기보다 현안과 미래를 생각하라. 무엇보다 대안을 제시해라. 예산안은 의미 없는 숫자의 나열이 아니다. 직면한 경제·사회적 어려움에 대한 해결책이 담겨야 하고 나라의 발전방향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주는 곳이다.

 

지출을 감당할 수 없는 큰 구멍이 세입예산에 존재한다는 것이 이제 명백해졌다. 2023년 세입 부족은 큰 부분 경기침체에 따른 것이나 감세의 영향도 같이 작용했다. 감세 효과도, 경기침체도 예산안과 세법개정안을 제출한 2022년 하반기에 예측이 가능했던 것이다. 부자 감세 세제개편이 커다란 패착이었고 부수 법안을 포함한 예산안 전체가 잘못 고안된 것임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기재부는 수정한 세입 추계를 2024년 예산안 제출 시점에 맞춰 제출하겠다고 한다. 2023년 예산안의 세입경정도 그때 같이 해치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2023년은 아직도 온전하게 남아있다. 재정지출 확대를 위한 추경도 필요하다. 추경을 통해 고물가, 고금리, 공공요금 인상, 고용·주거불안을 겪는 서민과 소상공인들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보듬어줘야 한다. 정부가 역할을 주저할수록 가계부채와 공기업부채가 늘어난다. 2분기에는 국회에서 추경 논의를 진행하고 하반기에는 프로그램들을 집행할 수 있도록 의견을 모아야 한다.

 

피할 수 없는 결정의 시간이 다가온다. 세출·세입의 추경에서 재원을 국가부채로 조달하느냐, 증세하느냐 결정이다. 규모로 보아 다른 대안은 없다. 미래세대와 재정 건전성을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증세를 권고한다.

김유찬 | 포용재정포럼 회장·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한겨레 2023.05.15.

 

'김남국 사태'로 알게 된 12억 내고 400억 번다는 코인의 세계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김남국 의원이 위믹스 뿐 아니라 다수의 신생 코인에 수억에서 수십억 원에 이르는 '담대한 투자'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만들어진 지 한 달도 안 된 이른바 '잡코인'에 거액을 투자하는가 하면 그 액수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서 "자기 돈 아니지 않을까"라는 의문과 내부자 정보에 의한 거래 아닐까 하는 의혹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투자금의 가치가 백억원을 넘나들었다 하고 매수, 매도 기록이 1천 회를 넘어서니 이 정도면 '전문가' 수준도 아니고 '선수' 아니냐는 비난으로까지 이어진다.

 

아무리 일확천금 대박을 노리더라도 '미혹되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의 나이에 접어든 변호사 출신 국회의원이 이런 엄청난 거액을 베팅할 수 있을까? 아무리 이해를 하려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러한 궁금증은 이 업계의 작동방식을 알고서야 이해가 됐다.

아무 것도 묻지 않는다. 12억이면 된다.

한 중소기업의 P 대표. 3년 전 그는 코인 개발회사 대표를 만났다. 코인회사 측은 코인을 설계해주고 상장까지 시켜주는 조건으로 설계비 5억원, 상장피(fee) 7억원을 제시했다. 설계 기간은 한달, 넉넉하게 잡아도 한달 반이면 된다고 한다. 홍콩으로 우회 상장 계획인데 자신들이 소유한 차명계좌, 즉 전자지갑이 16만 개가 넘고 이들을 통해 전산으로 주고받기 때문에 이른바 작전을 하더라도 안 걸린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얼마를 벌까? 최하 200억에서 400억 원까지. 자기들이 200억에서 400억까지 올려줄 테니 그때 팔고 빠지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운 좋으면 그 이상의 초대박도 가능하다. 설계에서 팔고 나올 때까지의 시간은 어느 정도일까? 6~7개월이면 모든 게 끝난다고 한다. 이 바닥은 그야말로 속전속결이다. 떴다방 수준이다.

 

회사의 재무재표나 평판 같은 것은 아무 상관 없다. 다만 개발업자들이 내건 조건이 있긴 했다. 첫째, 바람몰이할 수 있는, 즉 이슈가 될 수 있는 테마를 정하는 것, 둘째, 멋진 코인 이름 만들어오는 것, 그리고 셋째, 코인이 만들어지면 자기들 지분 20%를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만약 400억 원을 번다면 돈 댄 쪽이 320억 원, 설계하고 상장시킨 개발사가 80억 원을 먹는 것이다. 이제야 저 수많은 코인들의 신통 발랄(?)한 이름이 일확천금을 노리는 전주(錢主)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라는 점, 그리고 이 분야가 설계자도 자기 지분을 갖는, 서로 윈윈하는 분야인 것도 알게 되었다.

 

개발사 대표와 임원을 여의도에 위치한 핀테크 스타트업이 밀집된 빌딩에서 만났는데 모두 30대 초중반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개발해 상장한 코인들 레퍼런스를 보여줬다. 한때 재벌급이었던 한 회사가 만든 코인도 확인했다. 그때 알게 된 게 여기는 마음만 먹으면 아무런 제약 없이, 시드머니만 있으면 누구든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일반 주식회사는 자본금에 비례해서 주식의 수가 결정되지만 당시 코인의 세계에선 그런 게 없다. 백만 개, 천만 개 마음대로 찍어내면 된다.

 

그들이 몰빵하는 이유

이들은 P 대표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자신들이 소유한 수퍼카 이야기를 꺼냈다. 한 대가 아니란다. 설마 하니까 사진도 보여주고, 헤어질 때 아예 지하주차장에 데리고 가서 람보기니 아반타도르(8억 원)와 부가티(30억 원)가 나란히 서있는 것을 확인시켜 줬다. 코인개발업에 수퍼카 딜러들이 참여하는 이유가 이것인가 싶다.

 

이들에게 돈이란 그저 숫자일 뿐이다. 그래서 30, 60억 몰빵이 가능한 것이다. 개발업자들은 우선 손해를 볼 일이 없다. 전주만 구하면 된다. 그러다 대박 하나면 세상을 다 얻는다. P 대표 왈 "너댓 개 작업하면 그 중 하나는 대박 아니겠어요?" 설계에 이어 상장도 공식이 있는 듯 말하는 이들을 보면 업빗이나 빗섬에도 아는 사람이 있는 듯했다.

 

새로운 코인을 기다리며 희망을 놓지 않는다

정부가 코인을 제도권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것을 회피하던 그 시기, 젊은이들은 코인에 불이 붙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테마만 보고, 유언비어와 찌라시를 믿고 투자했다. 실패한 이들이 부지기수다. 그러나 이들 개미들은 새로운 코인이 계속 등장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음 코인에 희망을 건다. 개미들은 코인 가격이 올라갔다가 빠진다는 것을 알고 올라타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이슈가 될만한 코인, 차트나 그래프의 흐름이 예전 성공했던 코인과 비슷한 코인을 찾아 헤맸다. "나도 먹고 빠지겠다," "1억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는 희망에 다음에 나올 새로운 코인을 기다리는 것이다. 특히 돈 잃은 청년들이.

 

가상 자산에서 돈 벌어 실물 자산 사는 코인업자들

그렇다면 코인 개발업자들은 지금 무엇을 할까. 그때 돈 벌어서 지금도 계속 가상화폐 쪽에서 일할까? 웃기게도 그들은 가상화폐에서 돈을 벌어서 상가, , 빌딩 같은 실물자산을 샀다. 그들도 코인이라는 게 거품이고 사기성 투기라는 것을 잘 아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 빌딩 사서 월세 받고 지내며 필리핀 카지노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결국 손해를 봤다는 김남국 의원이 사기를 당한 피해자냐, 아니면 내부 정보를 이용한 것이냐 의혹이 분분하다. 이에 P 대표는 "같이 한 거지"라고 답한다. 개발업자는 제작, 상장해서 띄워주기만 하지 매도는 각자 알아서 하는 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P 대표는 결국 코인 사업에 뛰어들었을까? 그는 코인업체 대표를 만날 때 IT전문가인 임원과 동행했다고 한다. 회의가 끝난 후 그 임원은 "저 사람들 말이 거짓말은 아닌 거 같"다면서도, "돈은 벌겠지만, 대표님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이어지는 임원의 말에 결국 P 대표는 생각을 접었다.

 

"엄청나게 많은 피해자들이 생길 텐데요."

정희준 문화연대 집행위원 | 프레시안 2023.05.15.

 

 

침대 축구같은 정치

억울하다니 굳이 따져본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경우보다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가상자산 투자가 여론에 미치는 영향이 더 악성인 이유는 뭘까?

 

일단 경우가 다르다. 이준석 전 대표는 적어도 투자와 관련해선 부정을 의심할 만한 의혹을 받은 일이 없다. 김남국 의원은 돈세탁설부터 로비설까지 온갖 얘기를 다 듣고 있다. 그럼에도 일 뿐이니 억울하다는 얘기인데, 이것도 할 말 많지만 에 대한 얘기는 접어두고 다시 얘기해보자.

 

2030세대의 민주당 지지율이 폭락을 했다는데, 이유가 있다. 이들은 문재인 정권이 가상자산 투자에 호의적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386들이 부동산 및 주식 투자로 크게 돈을 벌어놓고 다음 세대가 돈 벌 기회는 봉쇄했다는 거다. 그런 상황에서 평소 가난을 호소하던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 가상자산 투자로 큰돈을 벌고 심지어 국회 상임위에 출석해서까지 거래에 열중했다니 더 화나는 것이다.

 

젊은 세대 일부가 생각하는 이런 서사는 사실관계만 따지자면 실제와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현실정치를 사실 여부로만 논할 수는 없다. 민주당을 향한 이들의 부정적 인상에는 정치적 실체가 있다는 거다.

 

김남국 의원의 행태는 오늘날 민주당 정치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김남국 의원은 조국 전 장관의 열렬한 지지자로 알려져 있다. “자기 전에 교수님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한 일도 회자된다. 이를 보면 김남국 의원은 방향이 어찌됐든 가치지향형 정치인이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의 책임 소재를 논하는 자리에서조차 코인 거래의 타이밍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이제 김남국 의원은 이익추구형 정치인이다. ‘신념이익의 수단이 된다. 민주당이 정권을 잃는 과정에서 벗지 못한 올가미가 바로 이것이다. ‘검찰개혁이란 자신들을 향한 수사를 무력화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여당의 공격에 제대로 반격도 못한 것을 떠올려 보라. 민주당은 가치지향의 승부라는 무기를 제거당한 상태다.

 

함정에서 빠져나오려면 단호한 자세가 필요하다. 최소한 국회의원이 저런 일에 연루되다니, 소속 당으로부터 크게 혼이 나겠구나하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일도 그렇고 돈봉투 전당대회의혹도 그렇고 당 지도부는 최대한 감싸보겠다는 듯한 태도다. 함정 안에 있는 것에 익숙해진 나머지 빠져나오려는 생각을 못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결국 상대방 실점에 기대는 정치만 남는데, 그게 먹히긴 할까?

 

대통령의 취임 1년 메시지는 자화자찬전 정권 탓이 전부였다. 이런 식의 발언은 깨알같이계속되고 있다. 국정운영에 자신감이 붙은 모양인데 대개 2년차가 그렇다. 대통령실 참모들이 외국 나가면 호평 일색인데 불충한(?) 국내 언론이 알아주지 않는다는 식의 인식을 갖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그러나 보수언론도 이젠 전 정권 탓그만하고 야당을 만나 민생을 논하라고 한다. 그런데도 이런다는 것은 작정하고 하는 거라고 볼 수밖에 없다. 내년 총선을 안정심판구도가 아니라 전 정권 및 거대 야당 심판현 정권 심판으로 치르겠다는 것 아닌지 의심된다. 민주당이 정신을 차리고 유권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면 이런 전략이 먹힐 리 없다. 오히려 자의적이고 독단적이며 편협한 국정 운영이 심판론에 불을 붙일 거다. 그러나 민주당의 태도는 유권자들이 잠시 잊었던 정권교체의 이유를 떠올리게 한다. 대통령과 여당이 원하는 그림 그대로다.

 

꼭 침대 축구로 일관하는 양팀의 경기를 보는 것 같다. 관객이 다 떠나도 90분 내내 누워 있다가 마지막에 한 골 넣으면 이긴다는 거다. 그러나 그것조차 유리한 것은 홈팀이다. 0 1로 진 다음에는 후회해도 소용없는 것 아니겠나.

김민하 정치평론가 | 경향 2023.05.16.

 

정무직 1인분의 밥값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이 레이건 행정부의 국방장관 보좌관으로 재직하던 때의 일이다. 19837월 어느 날 아침 국방부 관련 언론 보도를 살피는데, 워싱턴포스트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해군 병원에서 총상 치료에 관한 연구를 위해 개를 마취시켜 총으로 쏜 후 실험 대상으로 삼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큰일났다고 직감했다. 그 무렵 미사일 배치 문제가 이슈가 되어 있어, 국방장관 캐스퍼 와인버거는 하필 당일 주요 방송사 3곳과 인터뷰가 잡혀 있었다.

 

와인버거가 출근했고, 첫마디는 당연히 대체 이 개한테 총 쏘고 어쩌고 했다는 게 무슨 얘기야?”였다. 직업군인 파월은 장관님, 전시에는 말입니다라며 실험에 관해 설명하려 했지만, 닉슨, 포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모두 장관급 직위를 역임했던 와인버거는 듣지도 않았다. “장관의 명령으로 즉각 폐지라고 해군에 전달하게. 그 프로그램은 끝이고, 재고할 여지도 없어. 내 말 알겠나?”

 

와인버거는 예정대로 방송에 출연했고, 첫 질문은 당연히 미사일이 아니라 개 실험 얘기였다. 그는 딱 잘라 말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혹시 그런 프로그램이 있다 하더라도 즉시 폐지하라고 이미 명령했다.” 나아가 군이 동물을 총상 실험 대상으로 삼는 일은 어떤 이유라도 없다고 단언했다. 언론은 그의 대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개 실험은 더 이상 이슈가 되지 않았다.

 

이 에피소드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와인버거라는 인물 혹은 그의 대응 자체보다, 이를 통해 파월이 얻은 통찰이다. 그는 장관이 사실관계 확인이나 의사 결정에 도움을 받겠다며 군 관계자, 의사, 수의사, 동물권 운동가 등으로 위원회를 구성하지 않고, 이유나 근거가 무엇이든 개를 사랑하는 국민들에게 어떤 설명도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하고 즉시 그 프로그램을 폐지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미디어 대응의 대가인 자신의 상관으로부터, 세상에는 논리를 떠나 건드리면 곤란한 문제가 있는데 혹시 그런 이슈를 건드렸다 해도 신속하게 정면 대응하면 그로 인한 부담을 오히려 부채 항목에서 자산 항목으로 옮길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파월은 회고록에 썼다.

 

언제부터인지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에게 어떤 사안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면 돌아오는 답변이 똑같아졌다. 정부가 이태원 참사에 대응하고 수습하는 과정에서 왜 그렇게 했는지 의문을 제기해도, 대부분의 국민은 평생 만져볼 일이 없는 고액의 가상자산 투자를 한 국회의원에게 문제를 제기해도, 답변은 동일하다. “위법은 없었다아니면 적법하다”.

 

하지만 적법하다괜찮다또는 해도 된다와 같은 뜻이 아니다. ‘바람직하다혹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와도 다른 차원의 판단이다. 국가와 사회의 중요한 사안에 대한 결정을 특정한 법조문을 위반해 법적 책임이 생기는지 여부를 따지는 법적 판단으로 좁히면 곤란하다. 예를 들어, 무죄 추정은 중요한 헌법상 원칙이지만, 형사절차에 적용되는 문제이지 정책 결정이나 정무적 판단, 표를 던지는 유권자의 의사 결정과는 무관하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점은 적법성 여부가 아니다. 설마 국회의원의 가상자산 투자 자체가 위법하다고 생각해서 질문을 하고 있을까. 공직자나 정치인은 적법한 행위 중 공공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결정을 하라고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존재다.

 

위법행위를 하면 당연히 실격이므로, 그들의 어떤 행동이 적법하다는 해명에는 의미 있는 정보값이 거의 없다. 적법의 방패막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다 오히려 논란에 땔감만 제공하는 경우가 늘어날 뿐이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답변을 해서 곧바로 이슈 자체를 수습한 사례가 어떤 것이 있는지, 정치인이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 대응을 한 경우가 언제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무직 공직자는 적법하다” “절차상 문제없다” “원칙에 맞게 하겠다”, 이런 얘기를 하면 안 된다. 이건 기본일 뿐만 아니라, 그런 자리까지 가기 전에 공적 조직의 아래 단계에서 직업 관료가 이미 다 해결하는 문제다. 그 너머의 판단과 결정을 하기 위해 정무직이 있고, 그런 직무를 수행하라고 상당수의 보좌관을 붙여주는 등 경력직 공무원에게는 없는 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국민들의 요구는 그리 대단하지 않다. 보통 사람들은 직급이 올라가고 직위가 바뀌면 그에 부합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애쓴다. 관리자가 되었는데 실무자 때 하던 행동과 판단을 계속하고 있으면 자리를 잃으니까. 마찬가지로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들도 1인분의 밥값은 해주길 기대할 뿐이다.

유정훈 변호사 | 경향 2023.05.16.

 

 

밀정, 지배체제의 모세혈관이자 기획하는 파괴자

사람이 누군가와 경쟁을 시작한 이래 스파이는 존재해 왔다. 스파이는 간첩, 밀정, 세작(細作)의 다른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간첩은 북한이 남파한 비밀공작원을 지칭하며 익숙해진 말이다. 세작이란 말은 개항 이후 사라지고 대신 밀정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사극 드라마나 영화의 대사 속에서 세작이란 표현이 간간이 등장하지만, 21세기 들어 스파이를 다룬 영화나 다큐의 제목은 밀정이 대세다. 이 여파였을까. 작년에 큰 이목을 끌었던 김순호 행정안전부 경찰국장의 학원 및 노동현장에서의 프락치 혐의에 관한 언론 보도 역시 밀정이란 표현을 비중 있게 사용했다.

 

그런데 밀정이란 표현은 한국현대사에서 자주 쓰이지 않았다. 설령 밀정이란 말을 사용했더라도 1945년 이전 일본의 침략과 연관된 내용을 소환할 때 언급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제목에 밀정을 단 최근의 영상물 또한 모두 일제강점기가 대상이었다.

 

북간도 독립운동의 판도를 바꾼 정보

일본은 밀정을 매우 다양하게 운영했다. 기관에서 밀정과 직접 접촉하기도 했지만, 친일단체가 이들을 지휘하거나 밀정이 밀정들을 지휘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사소한 첩보를 제공하는 끄나풀에서부터 결정적 판세를 좌우하는 고급 정보를 팔아먹는 자, 정보팔이를 넘어 사람과 조직을 직접 파괴하는 사람까지 다양했다. 심지어 일진회원이 의병부대에 침투해 염탐한 정보를 흘렸듯이 특히 치명적인 내부의 밀정도 많았다.

 

독립운동가로 위장한 밀정을 통해 내부 정보가 시시콜콜한 사항까지 새어나갔다. 가령 충남 출신 밀정 이정(李楨)은 김좌진이 180정도에 타원형의 얼굴로 흰색의 피부와 예리한 눈을 지녀 사람들이 똑바로 바라볼 수 없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고까지 밀고했다. 김좌진의 비서였기에 가능한 묘사였다. 일본은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김좌진과 또 다른 한 축을 형성한 홍범도를 서로 비교하는 정보 분석까지 시도했다. 홍범도에 대해선 호걸의 기풍이 있으며 김좌진에 비해 재주가 있지 않지만, “부하들에게 신처럼 숭배받는다고 분석했다.

 

둘을 비교하는 분석은 밀정을 통해 수집한 여러 첩보를 간도총영사관에서 북간도 독립군의 세력 판도까지 고려해 정보화했기에 가능했다. 이는 1920년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를 거치는 동안 두 지도자를 축으로 독립군이 재편되는 흐름과 세력 판도 그리고 지도자의 성향을 종합적으로 파악한 결과였다.

 

일본은 몇 단계 업그레이드된 정보를 바탕으로 192010월 중순경부터 이듬해 1월까지 대규모 군사작전을 벌이면서 간도참변이라는 제노사이드를 저질렀다.

 

이때 이주 조선인 5600여명이 죽임을 당하거나 처분당했다. 최소 12227명에서 최대 24000여명이 귀순했다. 귀순자들은 지휘자의 주소를 알려주거나 무기와 탄약 등의 은닉 장소를 특정하고 독립군을 공격하는 일본군을 안내하는 등 개전의 상태가 현저함을 증명해야 했다. 독립군으로서는 탄압의 규모와 정도가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일본 스스로도 독립군의 근거지를 모두 소탕했고 직업적 불령자”, 곧 독립운동가를 북간도에서 쫓아냈다고 자평했다. 한마디로 쑥대밭이 되었다.

 

일본은 이 공백을 틈타 이주 조선인 사회를 장악하고자 민첩하게 움직였다. 간도 침략 도중부터 1년여 만에 조선인민회를 8개에서 18개로 늘렸다. 민회는 이주 조선인 사회를 직접 통제할 수 없는 현실에서 일본의 정책을 보조하는 확실한 수단이었다.

 

기밀비도 늘렸다. 일본 외무성은 만주 조선인에 대한 영사관 경찰의 1923년도 기밀비 예산을 1922년에 비해 56%나 늘렸다. 1922년도 기밀비 가운데 밀정비 비중이 39%로 특별기밀비 다음으로 컸다. 밀정비는 160명의 밀정에게 1년간 매달 50엔을 급여로 주는 예산이었다. 예산 책정 당시 블라디보스토크와 중국 전역의 밀정은 150명이었다. 그중 간도총영사관의 지휘를 받는 밀정이 45명으로 가장 많았다. 1927년 영사관경찰서 순사부장의 월급이 조선인은 35, 일본인은 58엔이었으니 밀정의 급여는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일본은 자신이 바꾼 북간도 조선인 사회의 판도를 굳히는 데 밀정을 매우 적극 이용한 것이다.

 

임시정부를 해산시키려는 교묘한 시도

비슷한 시기 상해임시정부를 파괴하는 공작을 할 때는 이와 달리 교묘하면서도 매우 정치적인 접근법이 시도되었다. 파괴 현장의 중심에 김복(金復)이라는 위장 독립운동가가 있었다. 그는 2010년대 들어 ‘3·1운동의 숨겨진 대부로 평가받으며 평전과 방송으로 급속히 주목받은 사람이다. 하지만 2007년 출판된 조선군사령관 우쓰노미아 다로의 일기가 2019KBS<밀정> 방송으로 큰 주목을 받으며 반전이 일어났다.

 

일기에 따르면, 김복은 1919102일 우쓰노미아 사령관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조선의 자력 독립은 불가능하며 동아 대세인 일본에 의존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두 사람은 1016일까지 모두 다섯 차례 만났고, 임시정부를 파괴하고 독립운동가들의 마음을 돌리는 일에 대해 협의했다.

 

상해로 돌아간 그는 우쓰노미아에게 활동 경과를 알리는 편지를 최소 세 차례 보냈다. 김복은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가를 이탈시켜 해산시키고 여러 지역의 독립운동가를 북경에 모아 조선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김복은 사령관이 직접 컨트롤하는 고급 밀정이었다.

 

그런데 김복의 움직임은 우쓰노미아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있었다. 그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안창호를 따르는 백남칠을 간절히 타일러 배일 조선인의 무리에서 벗어나게했기 때문이다. 위하는 척하며 이탈시킨 것이다. 이를 전하는 정보자료는 김복이 안창호의 부하를 점차 없애려 한다고 분석했다.

 

당시 안창호는 19199월 통합임시정부 구성을 주도했고 11월부터 이동휘를 중심으로 독립전쟁 전략을 짜고 있었다. 김복의 계획은 안창호에 대한 정면도전이었으니 이 정보 분석이 맞을 가능성이 높다.

 

안창호를 고립시키려던 김복은 이듬해 다른 접근을 시도한다. 박은식에게 부탁해 79일 상해에서 안창호를 만난 것이다. 그는 첫 대면에서 안창호의 주관 아래 중국 정부와 공동으로 시베리아에서 6개 사단을 육성할 수 있게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안창호에게 묻지도 않고 신해혁명의 지도자 진형명(陳炯明)과 협력을 이미 약속한 상태라고 밝혔다. 하지만 안창호는 다섯 가지 이유를 들어 계획이 성공할 수 있겠다고 크게 믿지 말라고 말했다. 면전에서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김복의 숨은 의도를 배제한 채 이 제안을 보면, 봉오동전투 승리 직후 새로운 무장독립운동 기반을 마련하려는 방안으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임시정부 해산이란 숨은 목표를 고려한다면 상당한 정치적 계산이 깔린 제안이다. 임시정부가 김복의 제안을 추진하는 순간부터 활동의 무게중심이 6개 사단 양성으로 완전히 옮겨가며 상해라는 운동공간이 붕 뜰 수 있다. 반대로 추진에 실패했을 때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안창호가 입는 정치적 타격은 매우 치명적일 수 있다. 설령 추진한다 하더라도 안창호가 다섯 번째로 우려했던 사항, 곧 볼셰비키와 연계를 잘 못하면 세계로부터 동정을 잃을 수 있는데, 그리되면 임시정부는 고립되어 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다.

 

김복의 말잔치 제안은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19213월까지 남아 있는 안창호 일기에 그의 이름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독립신문은 김복이 북경을 소혈(巢穴), 곧 악당의 근거지로 삼아 활동하는 적 총독부 창귀배(敵 總督府倀鬼輩)의 괴수라는 말이 있다고 보도했다. 김복의 임시정부 해산 계획, 달리 말하면 조선총독부의 파괴 공작은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밀정은 천황 중심의 수직적인 피라미드 구조에서 가장 말단까지 통치가 작동하도록 만드는 모세혈관이자 에너지였다. 밀정 중에는 각지에서 독립운동 판을 뒤엎고 지배에 필요한 흐름을 짜는 파괴 전문 기획자도 있었다. 이들은 항상 저항과 지배가 부딪치는 최전선에 있었다. 파괴 전문 기획자 가운데는 공동체의 공동선을 내세우며 사리사욕을 채우는 자신을 정당화하는 확신범이 많았다. 굳이 밀정이란 말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그때와 비슷한 모습은 오늘날에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래서 밀정에 관한 전문 학술논문 한 편 없는 현실에서 더더욱 기억해야 할 역사에 대한 기록은 파괴 전문 기획자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신주백 역사학자·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 경향 2023.05.16.

 

탄압하면 움츠러들 것이라는 착각

주변의 거듭된 권유를 받은 한 사진작가가 아내의 암 투병을 위해 마련한 사진과 삶, 30년 그 어느 날들전시회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주말인데도 서울 서대문역 부근 고개에서 길이 막혀 한참이나 차가 서 있었다. 문득 2007년 봄 촛불집회가 한창이었을 무렵 그 고개를 넘어 광화문까지 달려갔던 일이 생각났다. 사진 전시회에서 받은 감흥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날 저녁 미국대사관 앞에 수천명의 대오가 모였는데, 내 뒤의 젊은 여성이 하는 말이 들렸다.

 

서대문역이 집결지라는 을 받고 서대문역에서 내렸잖아. 경찰이 어떻게 알고 지하철 출구를 다 막은 거야. 난감했어. 그런데 어떤 언니가 앞에서 금속노조 앞으로 와주세요!’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저 뒤에서부터 달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데그 왜 와다다다하는 군홧발 소리 같은 거 있잖아. 그 발걸음 소리가 지하철 역사 안이 온통 떠나갈 듯 울리더라고. 그러더니 정말 경찰 봉쇄가 뚫리는 거야. 그날 광화문까지 오는 동안 금속노조가 앞에서 경찰 봉쇄를 몇번이나 뚫었어. 우리는 그냥 그 뒤만 따라왔다니까.”

 

미대사관 앞에 그렇게 많은 인원이 모이기는 내 기억으로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금속노조가 그렇게 강력한 힘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만큼 혹심한 탄압을 받았기 때문이다. ‘식칼테러라는 말이 그 탄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용역회사에서 동원된 경비들이 갖고 왔던 살벌한 무기들을 보면 사진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 용역 경비들과 싸워 끝내 이긴 적도 많았지만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조직력에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의 파업 양상이 지나치게 폭력적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에 앞서 훨씬 더 폭력적인 탄압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노동자들의 각목보다 용역 경비들의 식칼이 먼저였다.

 

그 전통을 이어받은 조직이 건설노조다. 한 대학에서 청소노동자들의 허술한 농성 천막을 철거하자, 건설노동자들이 비계용 쇠파이프를 트럭에 싣고 와 튼튼하게 만년묵기농성장을 설치해준 적이 있다. 비계용 쇠파이프들이 트럭에서 마당에 내려질 때 울려 퍼지는 굉음만으로도 보통 사람들은 감히 범접하기 어렵다.

 

그 노동자들을 한번 가까이에서 보자. 건설노조 간부에게 노동조합 활동 하고 나서 달라진 것이 뭐가 있습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다. 늙수그레한 노동자가 답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달라졌지요. 노동조합이 아니었으면 언제 우리가 역사와 사회를 이야기할 수 있었겠소? 노동조합을 알고 우선 우리 자신이 달라졌지요.”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유독 노동조합에 자부심이 큰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노동조합이야말로 자신들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만난 노동자를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준 조직인 것이다.

 

지난 노동절에 분신한 양회동 열사는 늘 자신을 자랑스러운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양회동입니다라고 소개했다. “정당하게 노조 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되지가 않네요라는 유서 내용에 절절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다.

 

지난 12일 새벽 경찰이 건설노조 대전충청세종전기지부 지부장과 사무국장 자택 및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그 사유를 요약해 정리하면 협박 또는 해악 등을 가한 사실이 없지만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않거나 전임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그러한 행동으로 회사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생길 수 있는 정황이 충분히 예상되고, 노조원들의 고용을 촉구하거나 절연복 등 작업복을 제공하는 단체협약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게끔 하는 고압적 요구 형태 등으로 보아 회사 운영에 관한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한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동료 노동자들의 고용을 촉구하거나 작업복 제공을 요구하는 노동조합 활동을 공갈로 취급하는 이런 행태가 양회동 열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열사 분신 며칠 뒤 막연한 사유로 집행된 압수수색은 그렇게 저항한다고 물러설 우리가 아니다라는 권력의 의지를 보여준다. 부당한 권력의 공통점은 선한 의지를 탄압하면 저항이 움츠러들 것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더 많은 투사를 양산할 뿐이다. 가택수색 당하고 구속된 노동자와 그의 동지들이 어떻게 앞으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수많은 양심 세력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하면서까지 안간힘 썼던 군사독재 정권도 끝내 무너졌다.

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 한겨레 2023.05.16.

 

한국인의 전례없는 친미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신자유주의 시대 한국에 붙는 세계 최고내지 세계 최저’, ‘세계 최악이 몇가지 있다. 대표적으로 부유한 나라 중에서 비정규직 근로자(전체 임금 근로자의 약 37%)가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이고, 노인빈곤율(37.6%)이 제일 높은 나라도 한국이다. 합계출산율(0.78)은 세계 최저이고, 자살률(10만명당 23.6)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최악이다.

 

한국의 그 많은 세계 최고중에는 시민들의 대외관에 관한 통계도 하나 있다. 바로 미국에 대한 호감도다. ‘미국에 호감을 갖고 있다고 답변한 응답자는 89%로 아시아에서 단연 최고이며, 세계에서는 폴란드(91%) 다음이다.(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 ‘2022 글로벌 애티튜드 서베이’) 미국의 오랜 동맹국인 이스라엘이나 일본도 미국 호감도는 각각 83%70%로 높은 편이지만, 한국의 폭발적 아이 러브 아메리카”(“사랑해요 미국”)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런 절대적인 미국 호감은 역사적으로 매우 새로운 현상이다. 미국과의 관계란 지나치게 가까우면서도 비대칭적이었던 탓에 종종 반미로까지 번졌던 만큼, 관계 설정에 대한 부담감이야말로 정상에 가까웠다. 이명박 정권의 굴종·졸속 대미외교에 대한 거부감이 촛불 항쟁으로 번진 게 불과 15년 전 일이다. 대미·대일 맹종·졸속은 이번 정권에서 다반사가 됐지만, 이에 대한 국민적 저항은 당시만큼 뜨겁다고 하기 힘들다. 과거와 같은 반미는 사라진 지 오래고, 친미 일변도의 외교에 대한 합리적 비판마저도 쉽게 먹히지 않는 게 최근의 세태다. 도대체 한국인들을 세계 최고의 모범적인 친미주의자로 만든 것은 무엇인가? 그 요인으로 세가지를 꼽아본다.

 

첫째, 세계에서 가진 자로서 한국인들의 새로운 집단 자의식이다. 한국이 세계적으로 고소득 사회가 됐다는 통계는 고물가·고유가·고금리 3현상에 따른 서민들의 고통을 덜어주지 않는다. 한데 아무리 개개인의 삶이 힘들어져도 고통받는 서민들마저 세계적 먹이사슬에서 한국이 차지하게 된 절대 낮지 않은 지위를 곳곳에서 확인하게 된다. 구미권 고학력자들을 포함한 외국인 인구도 계속 늘어나지만, 코로나 이전 한해 국외 여행객 수는 3천만명에 근접했다. 유럽의 선진국들처럼, 한국도 서민들까지 절반 이상 국민이 국외 나들이를 종종 하는 나라가 됐다. ‘못 가진 나라에서 세계사적으로 보기 드물게 많이 가진 나라가 된 만큼 그 위치를 보장해주는 기존의 세계질서를 긍정하고 이를 지키려는 집단의식이 절로 자라나게 된다. 미국의 패권이야말로 기존 질서를 상징하는 만큼, 미국의 패권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 역시 과거와 같지 않을 수 있다.

 

북한·통일에 대한 의식이 크게 바뀐 점 역시 같은 가진 자의 논리로 설명될 수 있다. 북한이 현존 세계질서에서 당분간은 가진 자들의 대열에 합류할 수 없다는 게 다수 한국인에게는 자명한 만큼 20~3061%는 통일이 필요 없다고 응답한다. 그들에게 미국은 그들의 부와 지위를 지켜주는 경찰로, 반면에 북한은 부와 지위를 위협하거나 언젠가 돈을 구걸하게 될지 모를 귀찮고 부담스러운 가난한 친척으로 보일 것이다. 북한 매체들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로 동포의식에 호소하려 하지만, 신자유주의 한국에서 이상 중요한 건 일 것이다.

 

둘째, 미국과 지정학적 대립을 벌이는 글로벌 도전세력들에 한국인들이 별다른 매력 포인트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보수야 역사적으로 친미적이지만, 한국의 진보는 진보의 이상인 환경친화적 복지국가 모델을 중국에서 발견해낼 수 없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지출(10%)은 한국보다 더 낮다. 중국의 당·국가 권위주의는 한국인들에게 한국의 1970~80년대를 연상시키는가 하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아예 일제의 대륙침략 등 가공할 만한 역사적 기억들을 불러일으킨다. “미국이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그래도 중·러에 비하면 낫다는 게 많은 한국인이 공유하는 정서다.

 

셋째, 한국의 언론들이 경제대국 중국에 대한 경쟁의식을 열심히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과 중국은 지역적 분업구조를 이루면서도 많은 완제품 품목 세계시장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반도체 이외에는 한국 기업들이 상대적인 기술 우위를 가진 주요 품목이 거의 남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 언론들은 분업보다 경쟁을 편향적이고 드라마틱하게 강조한다. 그 결과 역시나 세계 최고에 가까운 80%에 이르는 중국에 대한 비호감과 함께 중국과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는 중인 미국에 대한 호감이 꾸준히 늘어난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 한국의 전례 없는 친미화는, 어떻게 보면 되돌리기 쉽지 않은 장기적 경향이다.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기존 세계질서의 덕을 본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다수 유럽 국가에서도 미국에 대한 호감도는 60% 정도는 된다. 중국 모델에 대한 거부감이나 중국에 대한 경쟁의식 역시 당분간은 변수가 아닌 상수로 작용할 것이다. 여기에 한국의 보수언론들은 노골적으로 편향되게 일방적 보도 태도로 혐중·반북·친미의 버블을 키우고 있다.

문제는 이런 장기적 친미화·보수화가 친미 일변도 대외정책이나 통일정책의 사실상 포기로 이어지고, -미 대립 상황에서 징병제의 영구적 유지 등 군사주의의 심화, 심지어는 중-미 무력갈등 때 미국의 개입 요구 압박 등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크다는 점이다. 언론이라면 지정학적 갈등의 한편에 무조건적 충성을 바치며 올인하는 태도는 당연히 경계하고 문제를 제기해야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언론이 소수에 불과하다.

 

미국의 이웃이자 우방 중의 우방인 캐나다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가담하지 않았다. 독일과 프랑스도 미국의 우방·동맹국이지만, -미 갈등의 첨예화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베이징을 방문해 정상외교를 벌이는 등 미국과 사뭇 다른 대중국 태도를 보였다. 한국도 궁극적으로 맹종이 아닌, 한반도 평화와 국익에 바탕을 둔 대미외교를 벌여야 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서는 보수언론이 만들어낸 과도한 친미 거품을 걷어내는 게 우선이다.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 한겨레 2023.05.16.

 

우리는 왜 시국법회 야단법석을 여나?

모든 생명은 폭력을 두려워하고, 모든 생명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이 이치를 자기 몸에 견주어 남을 때리거나 죽이지 말라” (법구경 129)

 

부처님 말씀이지만 누구나 알고 있고 누구나 동의하는 말입니다. 수행을 통해서 깨달아야 알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특정 종교에서만 가르치는 것도 아닙니다. 배우지 않아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양심이라 하고 역지사지하는 능력이라고도 말합니다. 우리가 시국법회를 여는 것은 어떤 사람들이 비판하듯이 종교인이 정치에 참여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만에 우리는 도덕과 상식과 양심이 무너진 사회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바이든 날리면에서 보듯 잘못을 하고도 사과할 줄 모릅니다. 오히려 언론이 가짜뉴스를 만들어 낸다며 호통치고 국민들의 듣기 능력을 무시하고 겁박합니다. 이태원 참사에서 보듯 인간의 슬픔과 아픔에 공감할 줄 모릅니다. 위패도 없고 영정도 없는 행사에 참석하여 짐짓 침통한 표정으로 향을 사르면서 정작 친구와 자녀를 잃은 유족은 만나지도 않고 위로하지도 않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추어야 할 상식과 양심을 대통령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때 검사가 수사권 갖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라고 말해 놓고는 대선 경쟁자였던 야당 대표에게 숱한 압수수색을 자행했습니다. 금융 사기를 일삼아온 장모와 논문을 표절하고 주가를 조작한 아내에게는 한없이 자비롭습니다. 국가의 요직마다 검찰 출신을 임명하고, 독선과 불통의 정치만을 일삼았습니다. 그가 입만 열면 강조해온 공정과 정의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우리는 똑똑히 알 수 있었습니다.

 

중국이 우리의 최대 무역국임에도 미국을 향한 일방적인 외교로 대중국 무역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일본에는 굴욕적인 외교를 펼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일제의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일본의 사과와 배상 없이 한국 기업의 돈으로 해결하는 제3자 변제안을 내세워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뒤바꿔 버렸습니다. 이것은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는 행위입니다.

 

일본이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려는 것을 막아낼 의지도 방법도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시찰단을 보내 면죄부를 주려 합니다. 우크라이나에는 살상무기를 제공해 러시아와 대립하고,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 가담해 중국과 적대하며,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로 한반도를 전쟁위기로 빠트리고 있습니다. 최근 노동절에는 강원도지역 양회동 노동자가 정당한 노조 활동을 한 것뿐인데 윤석열 검사독재정치의 제물이 됐다, 무고하게 구속되신 분들을 풀어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하여 끝내 사망하였습니다. 윤 대통령은 노동자를 조직폭력배와 간첩으로 취급하는 발언을 해왔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이 8일 오전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중단을 촉구하며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광화문을 돌아 일본대사관을 향해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2023.5.8. 연합뉴스

 

우리 출가자와 재가자들은 국민 앞에 참회합니다. 윤석열을 대통령이 되게 만든 원죄가 우리 불교계에 있습니다. 지난 20221, 대선을 코앞에 두고, 엄중한 동안거 기간에, 코로나 방역지침을 어겨가면서, 우리 종단은 승려대회를 강행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정청래 의원이 문화재 관람료를 봉이 김선달에 비유한 것을 문제 삼았지만, 민주당과 정청래의 거듭되는 사과를 받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과거의 종교차별 사례까지 열거하며 스님들 63%가 반대함에도 승려대회를 밀어붙였습니다. 전국 사찰에 인원수를 할당하여 버스를 내려보냈고 강제로 동원된 승려들이 승려대회라는 이름으로 불자들의 민의를 왜곡하였습니다. 승려대회 결과가 윤석열 정부가 근소한 표 차이로 탄생하게 만든 한 원인으로 작동했다고 봅니다. 이 승려대회는 명백한 선거 개입이었고,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이 결탁한 최악의 사례입니다.

 

부처님은 녹야원에서 육십여 명의 제자들에게 최초로 전도 선언을 하였습니다.

수행자들이여, 많은 이들의 이익(hita)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의 행복(sukha)을 위하여, 세상을 연민하여 길을 떠나라!”

 

부처님이 말하는 이익과 행복은 생명을 죽이거나 해치지 않고,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이익을 취하지 않고, 거짓말하고 남을 속이지 않는 양심에서 시작하여 어리석음을 없애는 것까지를 포함합니다. 모든 생명이 행복을 원하고 괴로움을 싫어하는 이치를 자기 자신에 견주어 남의 행복을 파괴하거나 괴롭히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것, 세상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共感)하고 연민(憐愍)하는 것은 정치와 불교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민주공화국의 구성원인 국민의 자격으로서, 많은 이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하여 520시국법회 야단법석을 개최합니다. 승려대회로 정치와 결탁한 것을 참회하고, 많은 이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떨쳐 일어난 자리입니다. 정치권력을 옹호하는 눈먼 호국불교가 아니라 약자를 괴롭히는 자들과 정의롭지 못한 자들에게 죽비를 내려치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자리입니다. 불자님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허정 스님 시민언론 민들레 2023.05.16.

 

 

의원들 돈벌이가 그깟 전대 봉투뿐인가

전당대회 돈봉투살포, ‘거액 코인 거래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와 윤관석, 이성만, 김남국 의원. 이들은 문제가 커지자 모두 민주당을 탈당한 공통점이 있다. 연합뉴스

 

김남국 의원은 몇가지 새로운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세비 말고 국회의원의 기타 등등돈벌이 수단에 코인(가상자산)도 있다는 것, 온라인 코인 거래 정도는 아무 때나 가능할 만큼 의원 생활이 여유롭다는 것, 국회법 등이 케케묵어혹은 일부러 개정하지 않아이해충돌 방지고 뭐고 구멍이 숭숭 나 있다는 것이 그의 노고 덕분에 드러났다.

 

김 의원이 압도적 신스틸러이긴 해도, 국민의 시선을 먼저 붙든 건 전당대회(전대) 때 뿌려졌다는 돈봉투였다. 더불어민주당이 새삼 국민적 관심사로 만들었다. 전대는 꽤 긴 기간 전국을 돌며 치른다. 출마자들은 매번 세 과시용 머릿수가 필요하다. 사람 동원하고 표를 모아야 이긴다. 버스 대절료, 밥값, 수고비가 든다. 결국 돈의 힘이 전대를 움직인다. 하지만 의원들은 절대 자기 지갑을 열지 않는다. 대신 주변에 손을 벌린다.

 

당연히 공돈은 없다. 자리, 뒷배 또는 공천 요구라는 이 붙어 있다. 더욱이 2021년 당시 민주당은 힘센 집권 여당이었다. 전대를 여러차례 치러본 사람이 말했다. “저런 돈 내는 사람들은 거래로 생각하고, 나중에 반드시 대가를 요구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야당 원로도 말했다. “딱 터졌을 때 올 게 왔구나’, 그런 느낌이었다.”(유인태 전 의원)

 

의원 호주머니로 직행하는 뭉칫돈은 출판기념회에서 나온다. 출판기념회 안 한 의원은 별종 취급을 받을 정도다. “후원회가 법으로 금지된 뒤 고안해낸 변칙 후원회라고 보면 된다.” 국회에서 20년 넘게 보좌진으로 일한 사람이 말했다. “의원이 필요한 곳에 바로 쓸 수 있는 현금 조달 방법이 그거다.” 노웅래 민주당 의원의 집 압수수색에서 나온 현금다발 3억원에도 출판기념회 때 받은 돈이 섞여 있다. 정확한 금액을 물었더니 누가 얼마를 내고 사 갔는지는 명단이나 자료가 없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출판기념회를 치러본 다른 의원실 보좌관은 봉투에 달랑 책값만 들어 있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책값 이상의 플러스알파는 의원의 끗발에 달렸다. 그래서 수입 규모도 제각각인데, 한번에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벌어들인다고 한다. 이 또한 누군가는 대가를 바라며 봉투를 준비하고, 누군가는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낸다.

 

출판기념회 수입은 정치자금 모금액 한도와 무관하다. 공개 의무도 없다. 법이 정한 신고 대상도 아니다. 남들 다 내는 세금 한푼도 안 낸다. 과세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이유로 오래 방치됐다. 완벽한 사각지대에 있으니, 이만한 알짜 수입이 따로 없다. 실제로 ㅂ 의원은 몇해 전 체육관을 빌려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계수기까지 동원해 현금을 세더라고 보고 온 사람들이 말했다.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의원 시절 국회 사무실에 카드 단말기를 놓고 시집을 팔다 상임위원장직을 내놓은 바 있다.

 

보좌진 급여 갈취는 일부 의원들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추가 수입원이다. 국고에서 지급된 급여 일부를 후원 명목으로 뜯어간다. 채용 조건으로 대놓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한 보좌관은 채용 면접에 갔다가 ㄴ 의원한테 이런 말을 들었다. “월급에서 매달 50만원씩 나한테 보낼 수 있겠어요? 오케이하면 내일부터 나오시고.” 밤새 고민했다고 한다. ‘나머지 8명 보좌진도 뜯긴다면 월 수백만원인데, 나까지 그래야 하나.’ 그는 ㄴ 의원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ㅅ 의원은 총선 공천심사 때 보좌진 급여 갈취가 들통났다. 탈락 직전까지 몰렸다. 하지만 물불 가리지 않은 동료 의원들의 지원사격에 힘입어 살아남았다. ㄴ과 ㅅ 두 의원은 여전히 현역이다. 그리고 종종 시사 프로에 나와 정치개혁을 역설하곤 한다.

 

하면 안 될 일이란 걸 의원들도 안다. 하지만 스스로 그만두지는 않는다. 이번처럼 검찰발 포탄이라도 터지면 그때만 죽는시늉으로 때우고 넘어간다. 그래서 출판기념회 문제는 이 와중에도 거론조차 없는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올해 초 공개적으로 지적했지만, 지금껏 들은 체 만 체다. 밥그릇 사수만큼은 여야의 배가 척척 맞는다. 국민이 이런 사정을 모르냐 하면 그렇지 않다. ‘정당·입법분야가 2022대국민 부패인식도 조사’(국민권익위원회)에서 1위로 꼽힌 건 우연이 아니다.

 

돈봉투에 이어 김 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됐다. 정당하게 벌지 않은 돈을 생각하며 좌불안석인 국회의원이 한둘일까. 그래서 묻게 된다. ‘김남국이 끝일까라고.

강희철 | 논설위원 | 한겨레 2023.05.16.

 

남 탓과 어퍼컷으론 아무것도 못한다

16일 오전 TV14분간 생중계된 윤석열 대통령의 집권 2년차 첫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보면서 좌절했다. “이념적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 생태계를 되찾고 있다거나 탈원전 정책과 방만한 지출이 한전 부실의 원인이라는 정도는 그러려니 했다. “과거 포퓰리즘과 이념에 사로잡힌 반시장적 경제정책을 자유시장경제에 기반한 민간 주도 경제로 그 기조를 전환한다는 대목도 그런대로 넘겼다. 그런데 지난 정부 5년간 서울 집값이 두 배로 폭등했고 집 한 채 가진 사람은 10배 이상의 세금을 감당해야 했다집값 급등과 시장 교란을 일으킨 반시장 정책은 대규모 전세사기의 토양이 되었다는 대목에서 걸리고 말았다. 남 탓이 목불인견이었다.

 

역점 정책인 3대 개혁에 대한 언급도 참기 어려웠다. “미래세대의 기회를 박탈하는 고용세습 등 (노조의) 기득권을 철폐한다는 말은 명백히 과잉이다. 노조의 폐해가 어떻게 열악한 노동자의 근로환경보다 그리고 매일 위협받는 노동자의 목숨보다 우선 해결해야 할 일이란 말인가. “획일화 정치이념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 교육으로 방향 전환 중이라는 자찬도 우습다. “과거 정부에서 시도조차 않았던 연금개혁착실히 준비 중이라는 말에선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연금개혁은 추계만 수개월째 할 뿐 핵심 내용에서는 한 발짝도 나간 게 없다. “정치 복지가 아닌 약자 복지를 추구한다는 말은 이미 허망해졌다. 간호법을 거부해놓고 어떻게 돌봄을 강화한다는 것인가.

 

윤 대통령은 전 정부를 탓하지만, 그 정책을 실력 있게 뒤집지도 못한다. 국익 중심의 경제외교를 한다면서 중국과 러시아에서 우리 기업의 이익을 훼손하고 있다. 미국에 엄청난 투자를 하면서도 국내 기업들이 불이익을 받는 것에 대해선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 이러니 최근 마약사범이 는 원인을 전 정부의 검찰개혁에서 찾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전 정권에서는 운동권 출신들이 온갖 요직을 차지하고, 이권에 개입했다고 비판해놓고 그 자리를 검사들로 채우고 있다. 결코 남을 탓할 상황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주 국무회의에서 우리 정부의 출발점은 과거 정부에 대한 평가에서 출발한다. 문제의식을 정확히 하지 않으면 변화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는 것과 전 정부의 실책을 끊임없이 비판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남 탓을 계속하는 것은 곧 자신의 고유 정책이 없다는 자백이다. 내가 잘못해도 앞선 정부가 워낙 망가뜨려놓았기 때문이니 이해해달라는 뜻으로도 비친다. 모름지기 대통령은 뚜벅뚜벅 자기 길을 걸어 훗날 역사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전 정부를 탓하는 것을 존립의 근거로 삼는 리더십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정치 지도자를 판단하는 데는 세 가지가 있다. 가치관과 비전, 그리고 경험이다. 가치는 무엇을 먼저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다. 윤 대통령은 노동자의 삶의 조건보다는 노조의 기득권 폐기를 앞세웠다. 비전은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혜안이라고 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권력에 맞서는 결기는 보였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식견은 보이지 않는다. 경험은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에 얼마나 공감하느냐이다. 윤 대통령의 한·일 외교는 전혀 시민과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절망적인 것은 학습 효과와 의지도 별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박상훈의 <정치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진짜 정치 지도자는 시민의 삶을 어떻게 개선할지를 고민한다. 문제의 원인에 대한 진단은 필요하지만, 그것을 개탄하고 비판하는 데 매달려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정치는 너도 옳고 나도 옳다고 생각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쪽저쪽의 의견이 다 일리가 있지만, 현 상황에서 더 좋은 정책이 무엇인지를 경쟁하는 것이다. 더 낫다고 생각한 대안을 내고 상대방을 설득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긍정의 리더십이어야 가능성의 정치를 통해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윤 대통령도 준비가 부족했을지언정 남 탓만 하려고 정치판에 뛰어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젠 남 탓을 멈추어야 한다. 전 정부 탓을 할 시간에 야당 인사들을 만나 설득하고 부딪쳐야 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2년차 국정도 불길하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말미에 국민들께서 나라의 변화를 체감하실 수 있도록 더욱 비상한 각오로 임하라고 국무위원들을 독려했다. 게다가 국회의원 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이중근 논설고문 | 경향 2023.05.17.

 

 

새로운 동맹의 풍경, ·미 동맹을 다시 생각한다

올해는 한·미 동맹 70주년. 1953년에 조인, 1954118일부터 발효된 이 동맹의 정식 이름은 ·미 상호방위조약이다. 구한말부터 한반도는 외세와의 상호 방위(mutual defense)가 무엇인지에 골몰해왔다. 그만큼 한·미 동맹의 전후 맥락은, 우리 근현대사를 상징한다. 1866년 제너럴셔먼호()사건과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를 모두 물리친 조선은, 이후 일정 때보다 더한 미군정을 거쳐 지금은 미국과 글로벌 파트너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 파트너십은 유동적이다. 정확히 말하면 미국의 이익에 달려 있지만, 미국 중심의 유연성도 불변은 아니다. 미국은 베트남, 아프가니스탄에 패배한 나라다. 한국도 선택의 여지가 있다. 정부의 강력한 협상 태도와 이에 걸맞은 미국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국익의 선()을 다르게 그을 수 있다. 국익은 하나가 아니라 게리맨더링 같은 것이다. 국익은 동질적이지 않다. 미국을 이롭게 하면 피해는 서민이 본다.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라면 계산을 잘해야 한다.

 

개자식-이 사람-내 친구는 변화?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 소식을 접하고, 나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다시 평가하게되었다. 물론 그의 일생과 인격 그리고 반공, 반북, 극우 가치관에 대한 나의 입장에 변화가 생겼다는 의미는 아니다. 북진을 원했던 그는 군대와 무기를 건국의 핵심 공공재로 생각했고, 그 공공재를 최대한 유치하기 위해 미국을 협박했다. 그가 얼마나 미국을 괴롭혔는지’, 34대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자신의 일기장에 이승만을 “XXX(son of a bitch”)라고 썼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당시 남한 지배층은 미국을 북한의 방파제로 이용하겠다는 용미론에 사로잡혔다. 미국에 남한은 개입하고 싶지 않은 귀찮은 존재였다.

 

주한미군이 점령군이냐 보호자냐 논쟁은 끝이 없다. 이 지면에서 다룰 분량이 아니다.

국가는 국민들에게 동질적인 국익 개념을 강조하지만 계급, 성별, 지역에 따라 국민 개개인의 삶은 천지 차이다. 새롭지 않은 이야기다. 북한의 지배층도 분단 내내 우리 민족끼리를 외쳤지만, 남한과 뭔가를 도모해 잘해보자는 생각이 없다. 북한 지배층은 남한 정권을 외세의 괴뢰(앞잡이)로 보고, 미국과의 직접적 관계를 원한다. 그렇다면, 주한미군은 분단의 원흉이 아니라 남북 간 전쟁이 나지 않도록 분단의 균형을 잡아주는 안정자(stabilizer)’일지도 모른다. 독일의 경우, 주독미군의 역할 중 하나가 파시스트가 부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독일의 진보 세력은 미군 주둔을 원한다.

 

20013, 조지 부시 대통령(아들 부시)은 미국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에게 외교사에 길이 남을 폭언을 자행했다. 부시는 기자회견 중 말을 끊고, 김 대통령을 이 사람(this man)”이라고 지칭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김 대통령은 9·11 등 세계 정세를 숙고하여, 모든 발언에서 미국을 지지하는 입장을 표했다.

 

이 사람사건 이후 22년이 지난 윤석열과 바이든은 친구가 되었다. 질 바이든 여사의 김건희 여사에 대한 표현을 따라, “내 친구(my friend)”가 된 것이다. 이것이 바이든과 조지 부시의 인격 차이는 아닐 것이다.

 

참고로 그 전의 미·일 회담에서 바이든은 후미오(기시다 일본 총리 이름)” “당신은 진짜(real) 리더이자 진짜 친구라고 표현했고, 기시다 총리는 바이든에게 내 소중한(dear) 친구인 조라고 언급했다. 친구, 이것이 당대 미국의 계획에 딱 들어맞는 한··일 동맹, 즉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한·일 양국의 역할이다.

 

주지하다시피 윤 대통령의 아메리칸 파이열창은 미리 조율된 것이다. 통상 대중가요가 3분 내외인데, 이 노래는 장장 9분가량에 가사 내용도 복잡하고 심오하다’. “레닌이 마르크스를 읽는다는 내용도 나오고, 후렴구의 바이 바이(bye) 미스 아메리칸 파이는 여성을 지칭하는 속어이다. 윤 대통령은 만찬 건배사로 ·미는 훌륭한 친구라고 했고, (내겐) 놀랍게도 바이든은 우리 함께 갑시다(We go together)”라고 말했다. “함께 가자70년 내내 한국이 주한미군을 향해 주야장천 구애해 온 레퍼토리다. 그 말을, 이제 미국이? 나는 토기(吐氣)를 느꼈다.

 

하지만 개자식’ ‘이 사람’ ‘내 친구가 한·미 동맹의 역사는 아니다. 맥락일 뿐이다. 한국 집권세력이 정신을 차리지 않는 한, 한반도는 영원한 미국의 신식민지일 뿐이다. 사막에서나 필요한 아파치 헬기 등 미국의 고철 무기 고가 수입과 미군 주둔에 필요한 엄청난 비용은 온전히 우리의 세금이다. 빌 클린턴의 말대로 남한은 전 세계에서 가장 군사화된 요새.

 

진보와 보수 세력의 한·미 동맹에 대한 논쟁을 떠나, 70년 동맹이면 주권의 일부를 아웃소싱한 관리 국방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미 동맹의 진짜 문제는 공동체의 성장을 가로막는 비상식 여론을 정당화한다는 점이다. 일단 군축, 평화 운동이 어렵다. 군축 이전에 늘 자주(自主)’가 문제가 된다. 정상 국가의 염원은 신기루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다. 성역화된 방위산업체의 문제는 심각성을 넘어 미스터리다. 남북한은 이미 주요 무기 수출국인데 끊임없이 미국 수준의 무력을 원한다.

 

두 번째는 환경운동, 여성운동의 어려움이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막는 데 외세만 한 핑계가 없다. 주한미군 범죄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는 그들이 저지른 엄청난 환경 오염을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기름 유출, 훈련 시 오발 사고 등은 사소하다’. ·미 합동훈련 자체가 전시 상황과 같은 환경 파괴를 가져오고, 북한과의 긴장을 고조시킨다.

 

한국 사회에서 남성다움 규범은 한국 여성과의 관계에서 형성되기보다는 외세와의 관계에서 만들어져 왔다. “강대국은 남성, 약소국은 여성이라는 국력의 성별화는 국제정치 담론의 출발이다. 한국 남성은 실제로외세에 저항하든 그러지 않든, 강대국과의 관계에서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국가를 대표하는 국민(=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이 자신을 도와줘도 모자랄 판에 평등을 요구하니 이해할 수 없다. 구조적 문제로서 성차별을 인식하기 어려운 이유다.

 

세 번째로 성소수자, 장애인, 난민, 노동 문제가 일부 진보 진영이나 야권 지지자에게 나중에 해결할 문제로 취급되는 일 역시 대미 종속이라는 더 큰 문제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의 차별은 민족 차별과 동급이 아니므로 나중에 해결해야 할 사소한 문제라는 고정 관념은 뿌리 깊다. 물론 어불성설이다. 민족 모순? 사회적 약자는 외세의 억압을 안 받는가? 제일 먼저 받는다!

 

주한미군 인식 변화를 국익으로

최근 출간된 엘리자베스 쇼버의 <동맹의 풍경>(강경아 옮김)은 우리에게 한·미 동맹을 새롭게 인식할 것을 요구하는 역작이다. 이 책은 서울의 이태원과 홍대 주변 유흥업소에 진출한 주한미군에 대한 탁월한 분석을 통해 한·미 동맹사를 다시 쓴다.

 

미군정 시기에 쓰여진 채만식, 최정희, 하근찬, 송병수의 소설부터 1980년대 정찬의 <푸른 눈>까지, ‘푸른 눈에 대한 공포는 이제는 기피와 경멸, 무시로 바뀌었다. 한국인은 주한미군의 미국 내 계급을 간파하고 있다. 윤 대통령만 미국을 모른다. 한국의 성장은 필연적으로 주한미군에 대한 인식 변화를 가져왔다. 새로운 동맹의 풍경이요, 다른 단계의 신식민지다. 한국 사회의 미국 욕망은 여전하지만, 주한미군의 지위는 달라졌다.

 

70년간 이루어진 처벌되지 않은 잔혹한 미군 범죄, 남한 전역의 환경 파괴, 안전보장에 대한 현실 인식(“남침보다 강남역 사건이 더 무섭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일상이 전쟁인 현실. 어떤 상황은 변하지 않았지만, 어떤 상황은 변했다. 실제 무엇이 우리 삶을 위태롭게 하는가. 압도적인 자살률 1위 국가에서, 임기가 끝나면 사라질 친구와 우정을 쌓고 온 것 외의 방미 성과를 알고 싶다.

 

<동맹의 풍경>에 나오는 미군의 호소다. “지하철에서 아무도 내 옆에 앉고 싶어 하지 않을 때 어떤 느낌인지 아세요?” 한국 청년은 말한다. “미군과 어울리는 게 실수라는 생각이 들어요. 걔네들은 여자 꼬시는 영어 외엔 할 줄 아는 말이 없더라고요.” 윤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자존감을 배우기 바란다.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 경향 2023.05.17.

 

 

국민의힘 광주행, 진정성이 안 느껴지는 이유

5·18민주화운동 43주년을 맞는 광주에 여야 정치권이 총출동했다. 국민의힘은 소속 국회의원 전원 기념식 참석과 17일 전야제 청년대표단 참석 방침을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통합 메시지와 광주 발전 계획 등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후보 시절 복합쇼핑몰 유치 공약에 이어, 이번엔 어떤 선물꾸러미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의 5·18 기념은 눈길 갈 일이 아니지만, 국민의힘이 5·18에 공들이는 모습은 이례적이다. 국회 공청회에 극우논객을 끌어들여 폭동’ ‘유가족은 괴물집단’ ‘북한군 개입‘5·18 망언들을 쏟아내며 지탄받았던 것이 불과 4년 전이니 말이다. 최근 극우세력과 결탁한 행보로 중도층에 의구심을 안긴 국민의힘으로선 총선을 앞두고 중도층 끌어안기가 급선무다. 득점하기 어려운 외교정책 후폭풍, 쉽사리 회복될 것 같지 않은 경제상황에서 국민통합 메시지를 내놓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고 안전하다. 광주에서 돌파구 마련은 영리한 셈법이다.

 

그러나, 광주를 대하는 정부·여당의 태도에선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우선 잊을 만하면 터지는 망언 릴레이와 솜방망이 징계다. 1년 전 야당은 광주를 찾은 국민의힘에 김진태 강원도지사 후보의 공천을 취소해 진정성을 보이라고 촉구했지만, 김 후보는 도지사가 되어 돌아왔다. 5·18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던 오세훈 서울시장, 전두환에게 세배한 것이 두고두고 흑역사로 언급되는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5·18 폄훼가 정치생명엔 아무 걸림돌이 되진 않았다. 최근 중징계를 받은 김재원 최고위원도 정작 문제의 ‘5·18 헌법 전문 수록 반대발언(312) 직후엔 구두경고와 한 달간 공식활동 중단이라는 셀프징계로 정리되는 수순이었다. 이후 또 다른 실언들에 여론이 싸늘해지자, 지난 10당원권 정지 1징계가 내려졌다. 미루고 미루다 5·18 일주일 전에야 결정한, 1년 남은 총선용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대통령과 정부·여당부터 5·18 왜곡·폄훼에 대해 별 문제의식이 없어 보인다. 상식 수준의 눈높이도 맞추지 못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전두환 대통령이 쿠데타와 5·18만 빼면 그야말로 정치를 잘했다는 분들도 있다며 내란수괴범으로 구속되고 사형 판결까지 받은 범죄자를 옹호하는 대형사고를 터뜨렸다. 주변엔 5·18 관련 구설에 오른 인물들이 맴돈다. ‘5·18은 폭동’ ‘대한민국 성역화 1대장등 망언을 한 노재승씨가 국민의힘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영입되었다가 5월단체들의 강한 반발로 자진사퇴했다.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은 최근까지도 ‘5·18민주화운동에 북한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5·18왜곡처벌법이 위헌이라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대체 대통령과 여당의 5·18 인식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현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과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5·181995광주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됐고 1997국가기념일로 제정됐다. 대법원은 신군부의 12·12군사쿠데타부터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압 과정을 군사반란과 내란죄로 판결했다. 5·18의 역사적 의미와 성격은 이미 오래전 국민적 합의와 법률적 정리가 끝난, 진실이다. 2011년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도 등재됐다. 그러나 43주년인 오늘까지도 5·18을 부정하고 모욕하는 망언과 각종 가짜뉴스들이 활개를 치며 유족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가짜뉴스는 보수정부 시절 극우인사들의 유튜브와 함께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가장 흔한 내용이 북한군 개입설과 5·18 폭동설, 5·18 가짜 유공자설, 각종 지역 비하 등이다.

 

광주시민들이 바라는 것은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으라는 것과, 5·18을 왜곡하는 가짜뉴스 유포자를 처벌하라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요구 아닌가. 민병로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남대 5·18연구소장)대통령이 약속했고, 여야 정치권도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을 담는 것에 거의 이견이 없는 만큼 내년 총선에 맞춰 원포인트 개헌 국민투표도 함께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김종인 비대위원장 시절 정강·정책에까지 5·18 정신을 반영했다고, 거듭났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거슬러 올라가보면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이 만든 민주정의당에 연원을 두고 있는 정당이다. 두고두고 진정성을 증명해야 한다. 쇼 대신 약속을 실천하라. 말한 대로 행동하는 것을 사람들은 진정성이라 부른다.

송현숙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경향 2023.05.18

 

 

정권 역주행에 브레이크 거는 방법

윤석열 대통령 1년이 생생하게 깨우쳐준 한 가지가 있다. ‘대통령 잘못 뽑으면 국운이 흔들릴 수 있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의 숙명이다. 수출 감소, 세수 부족, 치솟는 물가 등 경제와 민생은 악화일로다. 일방통행과 독주로 국민 분열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외교에선 간·쓸개 내주고 뺨 맞는 마이너스의 손을 구현하고 있다.

 

애초 대선 때도 윤 대통령의 국정 비전과 능력엔 의구심이 컸다. 강경 보수층의 묻지마정권탈환 욕망과 전 정부의 집값 폭등, 내로남불에 성난 민심에 올라탄 결과가 준비 안 된 어통령’(어쩌다 대통령)의 탄생이었다.

 

대통령이 되면 달라지지 않을까했지만 헛된 기대였다. 초반 두어차례 통합·협치를 언급했지만, 립서비스였다. 벌써 두번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 입법권을 무력화했다. 검찰권력을 앞세워 전 정부와 야당 대표만 전방위로 수사했다. 김건희 여사와 처가 비리 혐의엔 줄줄이 면죄부가 발부됐다. 권력기관 사병화다. 이명박을 필두로 한 자기 진영 부패 사범들에겐 사면과 벌금 면제 은사를 베풀었다. 반면, 최대 주 69시간까지 노동시간을 늘리려 했고, 노조와 시민단체를 비리 온상인 양 몰아가고 있다. ‘××’ 같은 욕설을 쓰고서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이를 보도한 언론을 부당하게 탄압했다.

 

민주주의, 공정, 균형감. 우리 사회가 어렵사리 세워온 가치의 기둥들이 위협받고 있다. 17일 참여연대 토론회에선 군부통치 이후 민주화된 한국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 모든 퇴행이 불과 1년 만에 벌어졌다.

 

그나마 아직까진 우리 사회가 힘겹게나마 버텨내고 있다. 5·186월항쟁, 촛불을 만들어낸 우리 국민의 저력이 정권의 역주행을 일정 선에서 저지하고 있다. 국민들은 30% 안팎 국정지지율로 정권의 폭주에 지속적으로 경고를 보내고 있다. 여소야대 국회도 이상민 탄핵소추’, ‘대장동 50억클럽·김건희 주가조작쌍특검 패스트트랙 지정 등 견제구를 넣고 있다.

 

11개월도 채 남지 않은 다음 총선에서 정권 견제를 택하겠다는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5일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에선 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37%)보다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49%)12%포인트 더 높았다(95% 신뢰수준, 표본오차 ±3.1%포인트). 내년 총선은 정권 중간평가의 의미를 지닌다. 퇴행이 가속화할지, 저지될지가 판가름 난다.

 

다만 이런 흐름이 불가역적이진 않다. ‘정권 견제민심이 더 높지만 압도적이진 않다. 가령, 같은 조사에서 대통령 국정지지율은 긍정 33%, 부정 57%였다. 국정을 부정 평가하면서도 총선에서 야당을 찍지는 않겠다는 사람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얘기다. 야당 역시 정도 차이는 있지만 불신 대상임을 말해준다.

 

여론 흐름은 여권 또는 야권이 바뀔 경우, 돌발적 내·외부 충격이 가해질 경우 모두 달라질 수 있다. 여권, 특히 대통령이 기조와 태도를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돌발 변수를 논외로 한다면, 야당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얼마나 출렁이느냐에 따라 국정 부정 평가층이 실제로 총선에서 민주당을 찍을 것인지가 좌우될 것이다.

 

김남국 의혹을 다루는 민주당의 태도,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에 우려가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재명 사법 리스크자체는 검찰의 부실한 대장동 공소장 공개로 상당히 감소했다. 반면, 김남국 의혹에 단호하게 대응하지 못한 미온적 태도가 민주당에 대한 도덕적 분노를 유발하고 있다.

 

가난 코스프레, 오락가락 해명, 무책임한 탈당, 15천만원 세비를 받으면서 코인 거래 사익 추구에 몰두한 점. 김 의원의 행태는 하나같이 공정의 가치를 건드린다. 현대 뇌과학에선 공정성을 호모 사피엔스 분노의 감정선과 직결되는 본능적 감각기제로 본다. 유전자 수준에서 분노를 유발하는 인물을 찍기는 어렵다. 이런 인물조차 단칼에 도려내지 못하는 정당을 정치적 대안으로 지지하기는 더 어렵다. 유권자들은 썩은 사과를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더 주목하기 때문이다. 현대 정치가 공정과 도덕적 분노에 세심하게 대응해야 하는 이유다.

 

야당의 실패로 정권에 역주행 면허를 내준다면, 크나큰 역사적 과오가 될 것이다. 담대하고 신속한 윤리적 쇄신으로 응답해야 한다.

손원제 l 논설위원 한겨레 2023.05.18.

 

노동자 유언’ 50년 역사와 그 너머

제가 오늘 분신을 하게 된 건, 죄 없이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라니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아.”

 

51노동절’, 노동자가 하루 쉬며 1830년대 이후 200년간 이어져온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권 확대 역사를 기억하는 날. 그런데 이날 양회동(50)씨가 분신, 이튿날 운명했다. 그는 건설노조 강원지부 활동가로, 책임감이 강했다. 현장 소장도 의견은 다를지언정 악감정은 없었고, 양씨는 회사와 노조 간 다리 역할을 했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대통령과 검찰이 건폭”(건설현장 폭력), “공갈딱지를 붙이니, 하늘 끝까지 억울했다. 차라리 나 하나 죽어동료들 누명을 벗기려 했을까.

 

노동자가 자결로 자본과 권력에 저항한 역사는 길다. 50여년 전 197011월 서울 청계천 봉제공장 재단사 전태일(당시 22)은 근로기준법이 짓밟힌 현실에 분신 항거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가 유언이다. 당시 노동법은 한자투성이라 나에게 대학생 친구 하나가 소원이었다. 차비를 아껴 여동생 같은 시다(보조원)들에게 풀빵을 사주던 사람, 그런 그가 동료들과 만든 게 바보회였다. 그러나 스스로 바보임을 안 순간, 그들은 바보를 넘어섰다. 근로기준법을 하나씩 공부했고, 깨칠수록 세상의 부조리에 경악했다. 그의 분신은 자본과 권력에의 항거였지만, 동시에 바보같이 일만 하는 무지렁이들을 깨우는 죽비였다.

 

그 뒤 우리는 숱한 전태일을 거듭 본다. 19715월 한영섬유 노조원 김진수(22)는 사쪽 폭력에 산화했고, 1976~78년 동일방직 여성들은 똥물 세례도 감수하며 사람임을 외쳤다. 1979년 김경숙(21)은 와이에이치(YH)무역의 노조 파괴에 저항하다 투신했다. 5·18 광주항쟁 직후 노동자 김종태(22)는 노동자와 광주시민은 같은 운명이라며 이대 앞에서 노동3권 보장” “유신잔당 물러가라” “비상계엄 해제하라고 외친 뒤 분신했다. 19863월엔 기계공 박영진(26)이 분신 항거했다. 그 일기장엔 모두 정당한 대가를 받고 인격 대우를 받는 세상, 그런 세상은 노동자 스스로 깨어나 함께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했다.

 

199112월 신발공장 미싱공 권미경(22)‘30분 일 더 하기를 강요하던 회사와 어용노조, 구사대에 저항하며 3층 옥상에서 투신했다. 그 팔뚝에 쓴 유서는 나를 그대들 가슴속에 묻어주오. 그때만이 우리는 완전한 하나가 될 수 있으리. () 내 이름은 공순이 아닌 미경이라 했다. 19955월 현대차 양봉수(28) 노조원은 라인 속도 증가에 반대하다 부당해고된 뒤 분신 저항했다. 그 직후 대우조선 박삼훈(40)도 사쪽의 신경영 전략, 동료 간 경쟁과 감시, 집회 억압에 항거, 분신했다. 유서엔 가진 자만 판치는 세상, 우리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했다. 19961월엔 간호노동자 김시자(35)가 분신했는데, “(민주노조 압살) 선례를 남기면 안 되기에사쪽의 부당징계와 어용노조에 항거했다. 199910월 씨티은행 명동지점장 안재원(35)은행만을 위해 일한 결과, 너무 많은 걸 잃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다. 바보 같은 아빠의 삶을 살지 마라며 한강에 투신했다.

 

20031월 두산중공업 배달호, 10월 한진중공업 김주익·곽재규, 200412월 한진중 비정규직 김춘봉도 사쪽에 항거, 자결했다. 20098월 쌍용차 대량해고 투쟁 때는 선풍기 소리가 경찰 헬기처럼 들리던한 노동자가 형사를 믿은 내가 바보였다. 살려준다는 말에, 복직시켜준다는 말에, 가정을 살릴 생각에, 내가 동료를 팔아먹은 죽일 놈이라 양심 고백 뒤 자결을 꾀한 적도 있다.

 

2012년 한진중 최강서 노조원은 사쪽의 158억원 손배소에 항거, 자결했다. 20155월 포스코 사내하청 이지테크 노조원 양우권은 해고자 복직 및 정규직 전환 문제로 힘든 투쟁 중 끝내 절망했다. 유서엔 똘똘 뭉쳐 끝까지 싸워 정규직화 소송, 해고자 문제 꼭 승리하시라. 멀리 하늘에서 연대하겠다했다. 그리고 최근 건설노동자 양회동이 있었다. 그는 동료들에게 ○○의 검찰독재 정치, 노동자를 자기 앞길에 걸림돌로 생각하는 못된 퇴진시키고,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꼭 만들어달라했다.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 활동하는 건 노동·생활조건 향상을 위해서다. 우선은 무한 자본증식을 꾀하는 회사, 노동법을 무시하는 경영에 분노한다. 사쪽에 빌붙어 떡고물을 탐하는 어용노조나 구사대도 밉다. 자본의 친구인 국가(입법, 사법, 행정)도 낯설다.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리영희 선생은 언론과 지식인은 반공 이외의 가치나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고 일갈했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나서서 자기조직화를 하고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악법과 부당해고, 산재와 손배소, 차별과 편견 등에 목숨걸고 싸운다.

 

1970년 전태일에서 2023년 양회동까지 유서는 한결같다. ‘노동자도 사람답게 살자!’ 이 소박한 희망을 외면하는 사회경제 시스템을 계속 믿고 따라야 하나? 얼마나 죽어야 세상이 바뀔까? 물론, 노동자들은 당장 살길이 막막하니 어쩔 수 없이매일 출근한다. 그나마 살아서퇴근하면 다행! 살아서 출근, 살아서 퇴근하는 것으로 족한 게 자본주의 삶인가? 좀 더 욕심부려, ‘남부럽지 않게잘살면 성공일까? 그러나 50년 이상 쌓인 노동자 유서들은, 그 글귀들 훨씬 너머를 통찰하고 실천하기를 요청한다. 여기에 인생을 걸자!

 

6세기 베네딕도 수도원의 기본 철학 기도하고 일하라는 결코 노동의 신성함을 찬미한 게 아니다. 이는 오히려 영과 육, 지와 행, 주와 객의 일체화를 지향한다. 일체주의정신에 따르면 우리는 더 이상 자본·권력 패러다임의 포로일 순 없다. 왜냐면 자본은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생명(노동, 자연)을 제물 삼기 때문! 여기서 나는 베네딕도 철학을 살짝 틀어, “일하고 기도하라” “읽고 연대하라를 새긴다. 마음도 가난했던 권정생 선생은 <빌뱅이 언덕>에서 좀 더 사람다워지기 위해책을 읽어야 하고 대통령 되기 전에 먼저 사람다워져라했다. 독서도 성찰도 않는 대통령에게 기댈 게 없는 것처럼, 민초들 역시 마찬가지다. 짧은 인생살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할지 집합적 성찰과 연대 없이 참자유는 없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겐 대학생 친구보다 공부하는 바보회가 필요하다. 우리 가슴속 열사들의 눈물에 응답하려면!

강수돌 |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한겨레 2023-05-19

 

 

한국 상대 일본의 완벽한 승리, 과학을 오염시키는 데 성공하다

"방사능 오염수 바다에 버리는 게 가장 싸다" 여기에 무슨 과학이 있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국 국민의 이해를 구해나가겠다."

 

일본 정치인이 아니고 윤석열 대통령이다. 후쿠시마 제1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이 발언은 일본 <교도> 통신 보도로 알려졌다. 지난 317일 윤 대통령이 도쿄에서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를 접견하면서 한 말이다. 이미 결론이 내려진 것처럼 들린다. 그리고 지금 정부는 시찰단을 꾸려 일본에 보내려 한다. 한덕수 국무총리에 따르면 시찰단의 성격은 이렇다. "한국의 역할은 일본과 IAEA의 검증 과정을 전문가의 입장에서 믿을만한지 보는 것"이고 "일본이 하는 것을 전혀 믿지 않으니 시료를 하나 뜨고 그 자리에서 검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일견 복잡하게 보이지만,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간단하다. 오염된 물을 바다에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정화 처리를 했느냐, 인체에 해가 있느냐에 앞서, 누구라도 오염된 물을 바다에 버려선 안 되며, 그런 행위를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렇게 하지 말라고 반드시 말해 줘야 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도 했다'면서 앞으로 누구나 오염된 물을 바다에 버리려고 할 것이다.

 

그런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이 만든 방사능 오염 폐기수를 바다에 버리는 걸 용인하려 하고 있다. 예측 불가능한 문제도 아니다. 왜냐하면 일본 후쿠시마의 1066개 탱크에 보관된 137만 톤의 오염수는 현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스스로도 '처리수'(그들의 표현에 의하면)의 완벽한 정화가 불가능하다고 인정하고 있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다섯 가지의 처리 옵션을 건의했다고 한다.  ①깊은 지층에 주입 해양방출 증발 후 대기방출 수소에 변화를 준 후 대기로 방출고체화 또는 겔(용액이 굳은 것)화 후 지하 매설 방식 등이었다. 5지선다 중 일본 정부가 찍은 건'해양 방출'이었다. 한국의 국책기관인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초청한 옥스퍼드 대학 웨이드 앨리슨 교수는 그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오염수를) 식수, 농업, 공업용수로 쓰지 않고 해양방류를 하는 이유는 안전문제 때문이 아니라 비용이 가장 저렴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 예상대로이 물을 바닷물로 100배 희석해 30년간 내보낸다면 27400만 톤을 바다에 버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30년 후에는 또 다른 2억 톤 이상의 오염수가 발생하는데, 이것도 바다에 버릴 가능성이 높다.

 

비용이 저렴하니 해양에 쓰레기를 투기한다는 수준의 논리를 두고, '당장 1리터의 오염수를 마실 수 있다'느니,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느니, '알프스 처리 시설은 믿을 만 하다'느니, '오염수가 아니라 처리수로 불러야 한다'느니 하는 논란은 사치에 가깝다.

 

"이번 일이 전례가 되면 다른 국가가 방사성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는 것을 막을 명분이 없다.(미국 우즈홀해양연구소 연구원), "해양을 쓰레기 투기 지역으로 활용하는 것은 지속가능성에 위배된다는 국제적 합의가 존재한다."(로버트 리치몬드 미국 하와이대 교수) 등 과학자들의 이 간단한 논리를 넘어설 수 있는 이유는 현재까지 없다.

 

인체에 해가 없든 있든 인류는 역사상 단 한번도 이런 거대한 규모의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겠다'고 공표해 본 적도 없고, 실제로 바다에 버젓이 버려 본 적도 없다. 공식적으로 일본 정부의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 프로젝트에 한국이 들러리를 선다는 건, 인류가 만들어 온 윤리적 프로토콜을 버리고 '혼돈'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걸 방조하는 일이다.

 

이 간단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정부다. '해양 쓰레기 투기'를 반대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시찰단을 일본이 받아들인 것은 일본 외교의 승리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정부는 이제 오염수 방류에 앞서 '한국의 시찰을 받았다'는 명분 하나를 더 얹게 된 셈이다. 한국이 요구하는 걸 받아들인 모양새를 취한 것도 물론이거니와, 일본 측은 현재 시찰단이 '검증'을 하는 게 아니라고도 선을 그어 놓았다.

 

특히 문제는 시찰단이 다녀온 이후에 벌어질 일들이다. 시찰단이 낼보고서에 '방류는 적절치 않다'고 적거나, '방류해도 괜찮다'는 내용을 담거나, 둘 모두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전자는한국의 '과거사 문제 제기 포기'로 개선되고 있다고'믿고' 있는'한일 관계'에 찬물을 끼얹게 되는 것이고, 두번째는 일본의 완벽한 승리를 축하해 주는 행위가 될 것이다. 무난한 것은 정치적 고려를 끼워 넣어 '방류 적절성에 대한 판단 유보' 정도 수준이겠다. 그러나 이 경우엔 '왜 갔느냐'는 질문에 답을 줄 수가 없다. 그때 이미 일본은 '한국의 시찰까지 받았다'며 국제사회 만방에 오염수 방류의 정당성을 선전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후에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로 한국이 손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한국은 이 말 앞에 가로막힐 수 있다. "당신들, 직접 시찰했었잖소." 이걸 대비해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하나다. 후쿠시마 오염수와 처리수 시료를 각각 확보하는 일이다. 현재로선 이 방법만이 오염수 방류 이후 벌어질 예측 불가능한 일들에 대해 우리 외교가 레버리지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하지만 "한국만 별도의 시료를 채취하겠다고 요구하는 것은 과도하다"(한덕수 국무총리)는 수준이 한국 관료들의 인식이다. '일본 대변인 같다'는 비판이 왜 나오겠는가. 우린 알 권리마저 스스로 박탈하고있다.

 

일본의 보수 주간지 <주간현대>는 한국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비판적 여론이 높고, 윤석열 정부의 '비토층'60%를 돌파해, 출범 1년 만에 정부가 궁지에 몰렸다고 진단했다. 한 자민당 관계자는 "이 시찰단을 제안한 것은 일본 측이다. 기시다 정권으로서는 '친일'적인 윤석열 정권이 쓰러져서는 곤란하기 때문에 선물을 건네려고 했는데, 오히려 역효과였던 것은 아닐까"라는 우려를 표했다고 보도했다. 한일관계 개선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상대'가 있는 외교적 언어와 행위는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전략적 모호성'을 미덕으로 삼는다. 그런데 지금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의 들러리를 서려는, 윤석열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선명 외교'는 거의 자충수에 가깝다. 일본이 검증단을 받아들였다며 환호했던 이 정부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참으로절망적이기까지하다. 여당 사람들은 후쿠시마 오염수의 안전성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바다에 무언가를 버리면 안된다'초등생수준의명제에'과학'들이밀며겁박하는꼴이다.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의충격과 비극을TV생생히목격한(일본인누군가에겐경험으로 느껴진)불과12전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를 두고 벌이는 기억력 짧은 인간들의 논쟁들 속에서, 핵발전의 환상에사로잡힌 세력이 만들어 낸거대한 메타포가 읽힌다. 풍요와 죽음을 상징하는 ''이 가진모순 속에서 '값이 싼' 방식을 택하는 것, 그리고 그걸 우려하는 사람들을 '비과학적'이라 멸시하는 세상.어쩌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핵발전이 '값이 싼 것이어야 한다'는 그들의 논리를 공고히 해주고 있는 것 같다. 그게이 정부와 일부 보수 언론이 바라는 것이 아닌가. '원전만이 살 길'이라는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값 싸고 허망한지, 언젠가 깨닫길 바라며 이 슬픈 블랙코미디를 감내해야 하는 게 우리의 일이다.

 

재앙을 대하는 방식도, 재앙의 부산물을 처리하는 방식도 틀렸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해양 쓰레기 투기에 들러리가되어간다.

박세열 기자 | 프레시안 2023-05-20

 

 

윤석열 정부 가치외교 1, 성적표는?

지난 4월 말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자유를 향한 새로운 여정이라는 제목의 연설로 마무리됐다. 연설에서 윤 대통령은 반지성주의와 전체주의 등으로 자유와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져 있다고 진단하며, 한국이 미국과 더불어 가치 외교의 선봉장이 될 것을 천명했다. 도덕적 외교 지도자로서의 지향점이 분명히 드러난 연설이었다. 연설 이후 대담에서 사회를 본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물론 일반 청중도 윤 대통령의 가치 외교에 찬사를 보냈다.

 

유명한 국제정치학자이자 클린턴 행정부에 참여하기도 했던 나이 교수는 2020년 출간한 <미국 외교는 도덕적인가>(원제목 ‘Do Morals Matter?’)에서 2차 세계대전 뒤 미국 역대 대통령의 도덕적 외교 리더십을 의도, 수단, 결과라는 세 가지 기준의 채점표로 평가한 바 있다.

 

첫째, 의도의 적실성이다. 지도자가 제시하는 도덕적 비전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더불어 이런 비전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위험을 최소화하고 국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얼마나 신중하게 처신했는가이다. 둘째, 외교정책의 수단으로 무력을 얼마나 분별력 있고 비례성에 맞게 행사했는가이다. 그리고 무력행사에 있어서 국내외 법과 제도를 준수하고 타국의 권리를 존중했는가 하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국민적 합의와 수용, 타국의 이익에 대한 범세계적 고려, 그리고 진심 어린 설득의 논리로 대내외적 신뢰를 구축해왔는가를 외교정책의 결과에 대한 평가기준으로 제시했다.

 

이 평가기준으로 볼 때, 윤석열 정부 지난 1년의 외교·안보정책 성적표는 어떤가? 이제 집권 1년을 갓 넘긴 정부에 나이 교수의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윤 정부의 외교·안보정책 기본 방향은 이미 설정돼 있고, 빠른 속도로 이행 중이다. 잠정적 평가가 충분히 가능하다.

 

우선 의도의 적실성 여부를 살펴보자.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보편 가치를 외교정책의 기조로 삼아왔다. 자유, 민주주의, 인권, 법치와 규칙에 기초한 국제질서에 대한 강조가 이어졌다. 이런 가치 정향은 매력적이지만, 지도자의 신중성이라는 관점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미국과 가치의 일체화를 추구하면서 중국, 러시아, 북한을 과도하게 적대시하거나 워싱턴보다 더 근본적인 비타협적 태도를 내세운다면 현실적으로 한국의 안보와 번영에 미치는 손실은 클 수밖에 없다. 가치와 국익을 조화시켜야 한다는 신중함이라는 덕목에서 보면 좋은 성적을 받기 어렵다.

 

둘째, 수단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은 지난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짜 평화로 규정하고 힘에 의한 평화만이 유일한 해법이라 강조해왔다. 자체 억제력 증강과 함께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연습, 미 전략자산 전진 배치, 확장억제의 강화에 상당한 공을 들여왔다. 반면 위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거나 전쟁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예방 외교 노력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북핵 위협에 한··일 공조 대응은 강조하고 있으나, 협상 재개를 위한 다자 외교 노력은 없었다. 외교정책의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무력의 과시 혹은 사용과 외교적 해법 사이에 심각한 불균형이 있음을 시사한다.

 

나이 교수는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국민의 신탁을 받아 외교정책을 대행하는 자리이며 따라서 국민적 합의가 필수라 말한다. 그러나 윤 대통령에게는 지도자의 결단만 있고 국민적 합의를 수렴하는 과정은 없어 보인다. 야당을 포함한 정치사회와의 협의 실패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특히 민주주의 연합권위주의 축이라는 편가름 외교에서 한국이 중추적 역할을 하겠다는 대목은 크게 문제시된다. 그런 진영 논리는 세계와 지역 질서를 크게 해치고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상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일본과의 정상 외교가 보여주었듯, 대국민 설득 노력 부재와 일방적 행보, 잇단 메시지 관리 실수는 대통령에 대한 신뢰와 정통성을 큰 폭으로 훼손했다.

 

나이 교수의 평가기준으로 볼 때,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1년 외교·안보정책에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당장 북한과 군사적 충돌에 이른 것은 아니고, 중국과 러시아가 아직은 명시적으로 적대적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기에 낙제점은 면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향후 가치와 국익을 슬기롭게 조화시키지 못하고, 위기 안정성과 예방 외교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지 못한다면, 외교·안보정책의 실패는 자명해 보인다. 정교한 설득 노력과 국민적 합의 구축 없이 남북 관계가 악화하고 급격히 진영 외교의 늪으로 빠져들 경우, 그 후과는 상상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문정인ㅣ연세대 명예교수 | 한겨레 2023-05-21

 

 

타락한 진보는 깨끗한 보수조차 못 된다

진보의 도덕성이 다시 화제다. 돈봉투 사건에 이어 김남국 의원의 가상자산 투자 건이 도마에 오른 것이 계기다. 이태원 참사 관련 국회 상임위 회의 중에 김 의원이 코인을 거래하는 정황이 포착되면서 논쟁은 더욱 격화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진보 인사들로부터 진보라고 꼭 도덕성을 내세울 필요가 있나’ ‘욕망 없는 자, 김남국에 돌을 던져라’ ‘진보는 돈 벌면 안 되나등의 옹호론이 나온다.

 

진보와 도덕성이라는 두 개념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전통적 가치를 지키며 기성 질서를 유지하려는 입장이 보수라면, 약자를 위해 미래 지향적 가치를 추구하며 기성 질서를 혁신하려는 입장이 진보다. 그러므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은 현재의 가치와 질서에 대한 태도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오늘날, 독재 정치 시기의 잣대를 적용할 수는 없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그 가치와 질서는 정치 경제적으로 넓게 보면 자본주의이며 좁게 보면 신자유주의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양당 중심의 카르텔 정당 체제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힘이 보수, 정의당이 진보라는 데에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민주당에 대한 판단은 관점에 따라 다르다. 자본주의적 가치와 질서를 기준으로 한다면, 민주당은 보수다. 정치적으로도 양당 중심제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역시 보수다. 협의의 정치 경제적 시각에서 볼 때만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신자유주의를 수정하려 한다는 점에서 진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민주당은 구체적 정책에서 진보적 성격을 띠지만 총체적으로는 보수적 성격을 띤다고 보는 게 논리적이다.

 

도덕성 문제는 또 다른 문제다. 민주당을 보수로 규정한다면, ‘진보는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라는 논쟁은 불필요하다. 보수는 도덕적이 아니어도 된다거나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에도 흔히 깨끗한 보수로 불리는 도덕적 보수가 있듯이 진보에도 타락한 진보로 불리는 비도덕적 진보가 있다.

 

도덕성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인간의 동등한 기본적 존엄성과 관련된 추상적 도덕성과 특정한 시대와 장소에서 나타나는 구체적 도덕성이 그것이다. 추상적 도덕성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 보수는 모든 인간의 동등한 존엄성을 보장하는 적절한 방법을 전통적 가치와 질서에서 찾는 반면, 진보는 그 방법을 약자를 위한 새로운 가치와 질서에서 찾는다. 이 목표를 올바른 방법으로 추구해 나간다면 깨끗한 보수나 진보일 것이고, 올바르지 않은 방식으로 추구한다면 타락한 보수나 진보일 것이다.

 

보수가 당대의 구체적 도덕과 제도를 존중하는 것과 달리, 진보는 구체적 도덕에 얽매이지 않는다. 구체적 도덕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도덕적이거나 타락했다고 규정할 수는 없다. 보수가 진보를 폄훼하는 논리일 뿐이다. 진보는 외려 그런 공격에 의연히 맞서 당당히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보수가 도덕성을 더 중시하고 진보는 관습이나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진보는 도덕적이어야 한다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은 국민의힘 같은 보수의 다수가 타락한 보수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마음속에 보수가 그렇지 뭐라는 자조 섞인 체념이 자리 잡았고, 그 반사 효과로 진보에 강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의 최근 행태는 이 자조 섞인 기대조차 저버리게 한다. 특히 국회 상임위 중에 코인을 거래하는 모습은 도()보다 돈을 따지고 덕()보다 떡을 챙기는 행태로 보인다. 자조 이후에 오는 너마저라는 절망은 앞선 실망보다 훨씬 크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진보는 돈 벌면 안 되나라는 얘기는 본질에서 벗어난 강변이다. 진보도 돈을 벌어야 하고 잘 벌면 더 좋다. 다만 각인이 모두 함께 잘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오직 자신의 부를 추구하면서 사회적 차원에서만 공동의 발전을 외친다면, 그것이야말로 수박이며 타락한 것이다. 청빈 진보를 주장하는 것은 보수가 진보의 성장을 막기 위해 씌운 프레임에 가깝다. 아니면 진보 스스로 당대의 윤리인 구체적 도덕에 맞추어 자기 포장이나 자기 최면으로 사용하는 수사에 불과하다.

 

게다가 동등한 존엄성이란 추상적 수준의 도덕성마저 저버리고 진보와 보수를 사익 추구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의 타락한 인간이나 타락한 정치인일 뿐. 이번 사건의 본질은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과 타락의 문제다. 타락한 진보는 깨끗한 보수도 될 수 없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경향 2023-05-22

 

 

알이백이 뭐죠? , ‘시에프백’!

이재명: 지금 그럼 RE100은 어떻게 대응하실 생각이십니까?

윤석열: , 다시 한 번.

이재명: RE100.

윤석열: RE100이 뭐죠?

 

지난 대선 후보 방송 토론회 때의 한 장면이다. 한 명은 묻고 한 명은 못 알아듣는 이런 상황은 이후 토론 내용인 ‘EU택소노미에서도 똑같이 반복되었다.

 

상당수 사람은 알이백이라 부르는 이 용어에 대해 그때 처음 들었을 것 같다. 우리말로 번역하려는 노력이 너무 부족하다. 영국에 있는 다국적 비영리기구인 클라이밋 그룹은 2014년 재생가능에너지, renewable energy100% 사용하는 기업을 만들자는 민간 캠페인을 시작했다. 재생100 정도로 불러도 무방한데, RE100이라는 단축어로 국내에 소개되면서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게 됐다.

 

알이백이라고 부르는 이 민간 캠페인은 꽤 성공했고, 점점 더 태풍의 핵이 되어가고 있다. BMW와 볼보 같은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재생에너지 100%로 만든 제품들을 요구하면서 한국 부품사에 예약 취소가 잇따른다. 애플이 2030년까지 재생100 달성 목표를 세우면서 SK하이닉스, 대상 등 애플과 관련된 기업들도 난감해졌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델(Dell)을 비롯해 참여 기업이 점점 늘어나면서 더 커져나가는 모양이다.

 

한국도 정부 차원에서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다. 한국형 RE100을 만들기 위한 시도를 했지만,흐지부지됐다. 아주 냉정하게 보면, 기업은 정부가 관심이 없어 대응이 어렵다며 한발 물러나 있었고, 정부는 재생100은 모른다고 하는 대통령실의 눈치를 보는 동안 1년이 지났다. 자동차 부품 제조업이나 전자부문 그리고 점차적으로 유럽에 수출하는 대부분의 제조업이 이제 곧 이 세계적 흐름의 파장 안으로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통상 분규로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게 민간 캠페인이고 기업들이 자체 목표를 정해 협력사에 요구하는 형식이라서 WTO가 나서기에 애매하다. 비관세무역장벽이고, 외국 업체라서 차별대우를 하는 게 아니라서 자국민대우 위반에도 해당사항이 없다. 미국 IRA(인플레이션감축법)에 대한 대항으로 프랑스 등 유럽도 같은 방식으로 보조금 차별 도입을 검토하는 중이다. 탄소세 등 좀 더 강도 높은 국가별 환경 규제도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맨날 무역으로 먹고사는 국가라고 하면서, 정작 이런 새로운 트렌드에 대해서는 그동안 뭘 준비했나 싶다.

 

여기까지가 언제나 한발 늦은 한국 기업들의 환경 대응이라,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RE100은 모른다고 했던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들이 에너지당국과 기업의 목을 비틀어 내놓은 대응은 너무 어이가 없다. RE100에 대응해 CF100, 카본 프리라는 것을 하겠다는 게 공식 대응이다. 재생에너지는 전 정권이 하던 것이니 기분 나빠 못하겠고, 그 대신 원전으로 확 나가겠다는 게 정부가 나름대로 제시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이다. ? 구글이 한다는 게 유일한 명분이다. 구글의 새로운 프로그램은 24시간 내내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상황을 만들겠다는, 보다 나아간 프로그램이다. 많은 미국 업체가 그렇듯 다양한 노력 중에 원자력도 하나의 수단으로 구글이 원자력을 포함시킨 건 사실인데, 그것을 보고 한국 정부는 그럼 우리는 원자력만”, 이렇게 구글 프로그램을 왜곡했다. , 좋다. 어차피 원전 중독자인 대통령이 재생100CF100, 원전100’으로 하겠다고 한들, 누가 말리겠는가. 재판 중인 야당 대표는 그럴 겨를이 없고,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공회의소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어렵다. 게다가 재생에너지 관련 법까지 고쳐서 재생에너지 관련 예산까지 원전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데, 서슬 시퍼런 원전 중독 대통령을 누가 말리겠는가. 안 그래도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정부 방침에 고분고분하지 않는 사람들은 전부 인사조치하겠다고 발표하지 않았나.

 

원전 중독자들이 모여 있는 대통령실에 대고 지금 무슨 얘기를 해봐야 그게 들리겠는가. 원전도 안전하고, 원전오염도 안전하고, 오염수가 아니라 처리수라고 하는 사람들인데! RE100 필요 없고, 한국에서는 전부 CF100으로 하라고 이상한 정부 주도형 프로그램이 힘쓰는 시대다. IRA와 관련해 제일 큰 잘못을 한 것은 결국 현대자동차다. 당사자 문제인 만큼 누구보다 이 법 통과에 대해 신경 썼어야 했다. 외교부나 산업통상자원부가 게을렀다고 해봐야, 결국 손해는 업체만 본다. 이 사건으로 책임지는 공무원은 물론 사과하는 공무원은 한 명도 없었다. RE100도 마찬가지다. 정권은 영원하지 않지만, RE100은 영원하다. 더 강해지면 강해지지, 뒤로 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한마디만 더. 자꾸 구글도 한다는데, 구글은 미국 회사다. 자동차 부품이나 포스코 철강에 환경기준을 들이대는 회사는 유럽 회사들인데, 구글 핑계가 한국 내부에서나 통하지 유럽에서 통하겠는가? CF100은 한국 제조업의 유럽 수출을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우석훈 경제학자 | 경향 2023-05-22

 

윤석열의 수상한 민주주의

나라가 시나브로 나락에 빠져들고 있다. 건설노동인의 분신이 상징하듯 민생, 민주 위기가 날로 깊어간다. 미국과 일본에 찰싹 달라붙어 남북관계의 긴장은 높아가고 중국과 러시아 시장은 닫혀간다. 그럼에도 도무지 성찰이 없다. 오월항쟁 기념식에서 그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는 안팎의 도전에 맞서 투쟁하지 않는다면 오월의 정신을 말하기 부끄러울 것이라고 언죽번죽 부르댔다.

 

생게망게하다. 지금 누가 민주주의 위기를 안팎에서 불러오고 있을까. 대통령이 나서서 반정부투쟁을 선동하는 걸까. 앞뒤를 살피면 그의 깜냥이 읽힌다. 오월 정신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실천을 명령한단다. 나는 그의 자유민주주의관에 곰팡내가 퀴퀴하다며 독서 부족에 자성을 촉구한 바 있다. 하지만 이제 그 수준이 아니다. 권력을 쥔 자가 투쟁을 다짐한다. 그것도 민주 영령 앞에서다. 그의 민주주의가 수상한 까닭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실과 여당, 용춤 추는 언론인과 교수를 비롯한 먹물들은 찬사를 읊으며 국정철학운운한다. 철학이 한껏 조롱받는 꼴이다.

 

그는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하는 자들로 누구를 되술래잡았을까. 야당과 노동조합, 시민단체를 겨냥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앞서 4·19혁명 기념식에서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들을 콕 집어서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행세를 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며 거짓과 위장에 절대 속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오월민중항쟁 때 대학생이던 그가 80년대 내내 무엇을 했는지 까맣게 잊었을까. 오월을 들먹이며 민주주의 위기에 투쟁하지 않는다면 부끄러울 것이라거나 실천하는 용기를 주문하는 모습은 남세스럽다. 대체 무슨 용기일까. 박근혜의 유체이탈은 저리가라다. 그는 대선 후보시절에 80년대 학생운동을 싸잡아 빨갛게 칠했다. 묻고 싶다. 학생운동이 없었다면 군부독재가 퇴각했을까? 6월대항쟁에 나선 이 땅의 민중들이 죄다 좌파인가? 말 나온 참에 분명히 짚자. 20235월 현재 자유민주주의를 말끝마다 부르대는 그를 비롯해 대통령실과 장차관, 신방복합체들, 그들과 손잡고 매문을 일삼는 교수들 가운데 자유민주주의가 군부독재에 질식당할 때 입 한번 벙긋한 자가 있는가. 내가 그들의 자유민주주의를 믿을 수 없는 이유다.

 

과거만이 아니다. 지금도 온전한 자유민주주의자라면 할 일이 있다. 누가 보아도 좌파가 아닌 영국의 정치학 교수 던리비와 드라이젝은 자유민주주의 주창자이지만 그 결함에 눈감고 있지 않다. 결핍의 지표들을 구체적으로 꼽는다. 먼저 자본이나 기업 중심의 정책으로 나타나는 자유민주주의 결핍이다. 민주주의 또는 다원주의 이름을 내걸지만 실제로는 기업 특권을 보호하고, 자본시장의 이해와 비위를 맞추는 결함도 있다. 미디어에 의한 선거 왜곡도 빠지지 않는다. ‘안보를 내세우거나 이념적 편향과 법적 책략으로 민주적 권리를 제약하는 결함도 있다. 사회운동과 시민사회 요구를 외면하는 정부 행태도 주요 결핍이다.

 

그렇다. 그가 자유민주주의자라면 그 결함들 해소에 온 힘을 기울여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는 물구나무선다. 현대 자유민주주의 철학이 지적한 결핍을 되레 확대한다. 민주노총을 탄압하며 자본의 비위를 맞춘다. 오월의 민주묘지에서 ‘AI’산업적 성취를 강조한다. 그가 건폭으로 매도한 건설노동인이 죽음으로 항의했음에도 성찰이라곤 전혀 없다. 부익부빈익빈은 커져간다. 병사 월급에서 간호사법까지 대선 공약들을 무시로 뒤집으면서도 민주주의를 외친다. 그의 신념은 1980년대 그랬듯이 지금도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 조중동 신방복합체, 특히 조선이 퍼트리는 낡은 인식 틀로 자신도 모르게 미국, 일본의 이익을 대변하며 민생 경제와 국가 안보를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 감히 오월 정신까지 언구럭 부린다. 그래서다. 정중히 경고한다. 대한민국, 우리의 나라를 더는 나락으로 몰아넣지 말라

손석춘 철학자·<우주철학서설> 저자 프레시안 2023.05.22

 

 

법 기술자의 시대에 기억해야 할 이름

1987년 방콕에서 열린 동남아 지역 민간 인권단체 회의에 참석했을 당시의 황인철 변호사(왼쪽)와 조영래 변호사 모습. 문학과지성사 제공

 

공사다망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참여연대와 공방을 주고받았다. “저는, 5년 내내 정권 요직에 들어갈 번호표 뽑고 순서 기다리다가, 정권 바뀌어 자기들 앞에서 번호표 끊기자마자 다시 심판인 척하는 건,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퇴고를 거듭했을 문장엔 참여연대가 시민들의 윤석열 정부 1년 평가를 전하며 제기한 검사 통치문제에 대한 답은 없고 메신저에 대한 비난의 날만 번득였다. 이기기 위해 어떤 방법도 마다치 않는 조선 제일검다운 방식일까. 야당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다. 변호사 출신 김남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코인 투기 의혹 대응에선 정치인의 책임감보다 법 기술만 도드라진다.

 

공직자나 법조인의 품위, 도덕, 책임감 따위는 공자님 말씀이 된 시대라 할지 모르지만, 얼마 전 기림비 제막식에 참석했던 고 황인철 변호사(1940~1993)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법 기술자의 기준이라면 황 변호사는 우직하다 못해 한심한 사람일지 모른다. 20여년 변호사 인생에서 재판에서 승소를 한 사건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1974년 민청학련 재판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피고인의 무죄를 확신한다. 그러나 그에게 유죄판결이 떨어지리라는 것도 의심치 않는다. 변호인의 입에서 이런 말이 토로될 지경에 이르면, 도대체 이 재판의 의미는 무엇인가.”

 

박정희 쿠데타가 있던 1961년 고등고시에 합격한 뒤 전도유망한 판사였던 그는 1970년 변호사로 나섰다. 아내 최영희씨는 가난한 시골 국민학교 교사 집안의 9남매 장남이었던 남편이 아들이 판사가 됐지만 바뀐 게 없다는 어머니 편지를 받고 며칠을 울며 고민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가족을 위한 길, 하지만 그는 누구도 변호에 나서지 않는 청년들의 처지를 듣고 동기 홍성우 변호사 등을 설득해 민청학련 사건에 뛰어든 뒤 이돈명, 홍성우, 조준희 변호사와 함께 인권변호사 4인방의 길을 가게 된다. 70년대 지학순 주교 사건, 김지하 반공법 위반 사건부터 90년대 부천서 성고문 사건, 박종철 사건, 윤석양 사건에 이르기까지 그의 변론 사건은 민주화 역사 그 자체였다.

 

민주화에 공헌했으니 그를 지금도 기리자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길지 않은 53년 삶을 이토록 많은 일로 이끈 힘이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해보고 싶다. 그는 평생의 벗인 문학평론가 김병익의 권유에 계간 <문학과 지성>의 원고료를 대고, 필화 사건에 대비해 편집인을 맡으며 문인들과 깊은 교류를 나눴고, 김수환 추기경의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등에서 활약했고, 아들이 자폐증 판정을 받고 나선 집안마다 숨기기 급급하던 당시 처음으로 전국자폐아부모회와 사회복지법인을 만들었으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창설을 주도하고, 한겨레신문 초대 감사를 맡기도 했다. 사건으로 인연을 맺은 수많은 이들을 조용히 지원한 사례는 끝이 없다.

1993년 김수환 추기경이 황인철 변호사의 장례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어려움이 왜 없었겠는가. 정의로운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이들이 모두 선한 것도 아니었을 터다. 시대에 맞선 용기만큼이나 약자를 향한 따뜻한 마음,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깊은 존중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1993년 직장암으로 떠난 그의 장례미사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그분에게 있어 정의를 추구하는 것은 바로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인간 사랑은 불의의 편에 서 있는 사람까지 사랑으로 감싸 안을 만큼 진실되고 모범적인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황 변호사의 강단 있되 비난하지 않고 조용히 호소하는 듯한 변론은 상대방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2014<조선일보> 기획에서 전직 대법관이 뽑은 최고의 변호사에 그가 꼽히거나, 재조 법조인들이 대거 장례식장을 찾았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김병익 선생은 1995년 추모 문집에서 그는 숱한 불의들과 투쟁했지만 전투적인 투쟁가가 아니었고,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운동의 앞장에 섰지만 운동가는 아니었으며, 그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적극적인 행동을 스스로 다 했지만 행동부터 앞서는 행동주의자는 아니었다훼손당한 인간의 권리를 위해 싸워오면서도 그 때문에 그의 품성이 훼손당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온 고결한 정신이라고 표현했다.

지난 10일 대전시 유성구 세동 황인철 변호사의 생가터에 황 변호사의 타계 30년을 맞아 형제 등 가족들과 문학과지성사 등이 뜻을 모아 세운 기림비 모습. 대전/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그는 김재규의 항소이유 보충서를 직접 썼고 수많은 사건을 꼼꼼히 기록했지만, 자료가 뿔뿔이 흩어져 유고집조차 없다. 그 흔한 에세이 하나 쓰지 않았다. 정현종 시인의 조시 ‘‘무죄다라는 말 한마디와 김병익 선생의 추모글이 뒤에 적힌 기림비 전면엔 30년 전 막내아들이 그린 아버지 얼굴과 황 변호사의 자필 서명만이 새겨졌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법이 다시 권력의 도구가 되어가고 상대에 대한 존중 없는 법 기술의 정치가 난무하는 요즘, 많은 말 많은 글보다 삶으로 세상을 적셨던 사람, 그런 사람이 법조인이었다는 사실이 무척 사무친다.

김영희 I 편집인 한겨레 2023.05.22

 

 

원희룡 장관, 그렇게 살지 마시라

노동절인 지난 1일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분신해 이튿날 숨진 건설노동자 양회동씨 유서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죄 없이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되지가 않네요. (중략) 먹고살려고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억울하고 창피합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자존심’ ‘억울하고 창피하다는 말이 가시처럼 눈에 박힌다.

 

이들에게 자존심은 무엇인가. 30년 경력 레미콘 노동자 강종식씨(53)3년 전 건설노조에 가입했다.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총파업 결의대회가 열린 지난 16일 경향신문과 만난 강씨는 이전에는 안전에 대해 누구도,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았다고 했다. 노조에 가입한 뒤에야 산업안전보건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됐다고 했다. “30년 일하면서 오른 임금은 1만원이 전부인데, 노조에 가입한 3년 동안 18000원 올랐다고 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건폭몰이 이후 달라진 현장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건설사 사무소에 자유롭게 출입하며 대화를 나눴었는데, 지금은 잡상인 취급을 한다. 건폭몰이가 대화에 가림막을 친 것 같다. 전에는 현장에서 대우해주고, 노동법에 저촉되는 부분은 못하게 했다. 지금은 불법을 자행하게 만든다. (사측이) 원하는 걸 안 하거나 손해를 끼치면 건폭이라는 말이 돌아온다.” 이들에게 자존심이란 대화와 교섭의 상대로 존중받는 것, 그로써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을 지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것이 깡그리 부정되고 시정잡배나 조폭처럼 취급당할 때 억울하고 창피하다.

 

노동자의 자존심. 노동자도 인간이라는 것. 노동자도 저마다 인간의 존엄과 품위, 감정과 표정을 갖고 있다는 것. 이 당연한 사실의 몰각이 반노동의 시작과 끝이다. 건설노조원들을 자존심, 억울함, 부끄러움과 같은 인간적 감정이라고는 없는 절대악, 투쟁기계로 여기지 않았다면 건설 현장의 제도적 허점이나 관행에는 눈을 감은 채 전세사기 수사보다 많은 현상금(1계급 특진)을 걸고 무분별하게 사냥에 나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세상사는 보려고 해야 보이고, 사람은 그 안에 있는 인물의 구체적인 표정이 그려질 때 무언가를 제대로 보려고 하는 법이다. 정부가 건설노동자들에게서 인간의 표정을 보았다면, 혹은 상상했다면 지금처럼 통째로 범죄집단 다루듯 하지는 않을 것이다. 노조를 참칭한 이들의 범죄를 처벌하되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개선하려고 노사와 머리를 맞댈 것이다. 노동자의 비인격화야말로 건폭몰이의 배경이자 결과이다. 건폭몰이는 건설 현장을 모른다는 점에서 무지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맹목적이며, 다른 사람의 눈을 가린다는 점에서 악의적이다.

 

건설노조 간부가 분신을 방조했다는 조선일보 기사는 이런 태도의 극단적인 사례이다. 조선일보는 분신 현장에 있던 노조 간부가 양씨의 분신을 말리지 않았고, 양씨 빈소에 적힌 상주가 건설노조 위원장 한 명이며, 양씨 부고장에 적힌 후원금 계좌의 명의자는 전국건설노조라고 보도했다. 건설노조를 분신을 방조한 집단, 죽음을 투쟁의 불쏘시개이자 수익 수단으로 삼는 패륜 집단으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쉽게 읽힌다. 그러나 경찰의 말만 들어보더라도 분신 방조는 사실이 아니다. 양씨 빈소에 적힌 상주도 양씨의 친형과 건설노조 위원장이고, 부고장에 후원금 계좌 명의자를 전국건설노조로 한 것은 유족이 동의한 것이다.

 

노조를 악마화하는 조선일보의 행태가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 사람의 죽음에 관한 일이라는 점, 다른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살해하는 일이라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확인 취재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그 폭력성과 오만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조선일보도 갓 입사한 수습기자들에게 이런 식으로 기사 쓰라고 가르치지는 않을 것이다. 노조에 대한 편견과 예단을 잠시 누르고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 접근했으면 나오지 않을 기사였다. 시급성이 있는 것도 아니니 당사자들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보고 쓰건 말건 판단해도 될 일이었다.

 

괴물이 된다는 게 별것 아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으면 그게 괴물이다. 조선일보 보도에 맞장구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한때의 민주화운동 경력을 훈장처럼 내세우면서, 그렇게 정치하면,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것이다.

정제혁 사회부장 경향 2023.05.22.

 

 

익숙한 길 걸을수록 고립될, 진보운동

진보운동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규탄, 심판, 퇴진을 구호로 내걸고 시민들을 광장과 거리로 부르고 있다. 더욱이 내년 총선은 윤석열 정부 중간평가로서 정치지형 재편의 기점이 된다. 이에 야당을 비롯해 양당 구도가 반영된 진영의 한 축으로서 진보운동 또한 정부·여당을 향한 공세를 높여갈 것이다. 진보운동은 지난 시기 거대한 대중운동을 떠올리며 대중의 분노를 모아내는 데 주력할 것이다. 이는 진보운동이 매 국면 택해왔던 익숙한 길이다. 기존의 진영논리에 입각하여 연합이나 전선을 형성하는 식이다.

 

진보운동에서 익숙한 길이 반복되는 이유는 민주 대 반민주 구도 속에서 연합으로 대응해온 관성 탓이 크다.

 

하지만 진보운동이 그 관성에서 오래도록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대중운동의 승리적 서사때문이다. 민주화의 열망이 달성돼 간다는 목적론적 흐름으로 각각의 국면이 서사로 엮이는데 오월 광주와 6월항쟁, 2016년 촛불운동은 핵심적이다. 그러면서 광장촛불은 하나의 신화로 굳어지기도 한다. 그 신화 속에서 시민은 불안과 공포를 겪다 각성한 존재로, 광장의 정치를 통해 해방을 경험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다중지성과 민주주의의 담지자로 선명히 그려진다. 하지만 이들이 그린 신화에는 대안 없음에 무력감·패배감을 느끼거나, 반복되는 광장이 주는 환멸에 발을 돌리는 시민은 등장하지 않는다. 운동이 설득하지 못한 바깥의 시민도 마찬가지다. 단순화된 진영 구도로 환원할 수 없는 주체들의 복잡성이나 양가적·역설적 성격 등은 누락된다. 또한 광장이 무엇 때문에, 어떤 과정으로 사그라들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서 오직 주체의 역량만으로 모든 것을 달성했다는 자기확신은 강화되고 정세는 상대화되거나 단순화된다. 나아가 서사에 기입되지 못한 패배의 사건들은 망각된다. 잊혀진 19915월 투쟁이 그렇다.

 

요컨대 진보운동은 승리적 서사를 내면화하면서 의지주의적 경향에 사로잡혔고, 성찰과 분석을 잃어버렸다. ‘분석의 부재와 의지의 과잉’(백승욱 교수)에 처한 진보운동은 연합적 사고에 기반해 대중을 동원하는 익숙한 길을 반복할 뿐이다. 안타깝게도 그것의 후과는 진보 자체의 퇴행이다.

 

오늘날 진보운동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공세에 앞서 그동안 반복된 대결을 패배의 관점으로 곱씹고 재해석해야 한다. 이를테면 2016년 촛불광장에 대해 대중에 대한 찬양을 멀리하고 민주당으로의 수렴, 연합의 해체라는 결과론적 해석에 머무르지 않으면서 운동, 대중, 통치집단 등 행위주체 간 역량과 역관계를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성찰과 분석 없이 정부의 퇴행이나 부정적 힘에 기대 시민을 동원하는 진보운동은 아무것도 생성해내지 못할 것이다. 진보운동은 익숙한 길을 걸을수록 자족 속에 고립될 것이다.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 경향 2023.05.22.

 

 

나이 차별금지한국과 다른 EU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7개월 된 딸을 유아차에 싣고 지하철 내 유아차 공간에 탄 적이 있다. 아이가 아아소리를 내자 나와 아내는 바로 !’ 하며 아이의 행동을 제지했다. 그러자 아주머니 두 분이 우리 가족을 향해 다 들릴 정도의 큰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요즘 애 데리고 지하철을 타. 우리 OO이는 저런 거 보면 애 안 낳겠다고 해.” 그동안 아이와 함께 해외에 거주하며 대중교통 이용에 아무 문제가 없었던 우리 부부는 마치 아이를 데려오면 안 되는 곳에 데려간 몰상식한 부부가 되었다. 이 경험은 최근 우리나라의 노키즈존논쟁과 묘하게 겹쳐졌다.

 

노키즈존을 둘러싼 논쟁에선 업주의 자유와 아동 차별, 두 가지 논리가 강하게 충돌한다. 영업의 자유는 헌법에서 보장한 직업 선택의 자유, 재산권 보장을 근거로 내세울 수 있다. 아동 차별의 경우, 헌법의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조항으로 논리를 뒷받침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노키즈존 논쟁에서 아동 차별 쪽에 손을 들어주었다. 위원회는 노키즈존 운영이 아동권리 침해라고 주장하며 어린이가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영업의 자유보다 우선한다고 밝힌 바 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역시 공공장소에서 어린이가 공간을 이용하는 데에 제한을 받는 것을 권리 침해라 보고, 구체적으로 우리나라의 노키즈존 증가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는 등 우려를 표한 바 있다.

 

공공장소에서의 행동이 익숙지 않은 어린이들과 이들을 관리하지 못하고 방치한 일부 부모들로 인해 영업 피해를 경험한 업주들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노키즈존은 어린이뿐 아니라 다른 차별을 허용하고, 강화시킨다는 점에서 더 큰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우선, 어린이들이 노키즈존을 통해 나이가 입장 거부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접하게 되면 차별을 학습하게 될 우려가 있다. 또한 노키즈존은 다른 종류의 OO으로 이어져 차별을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킬 수 있다. 이러한 차별 행위는 세대 갈등을 부추길 우려가 있으며, 사회구성원의 배타성을 강화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노키즈존의 확산을 억제하고, 반대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제주도 의회는 노키즈존 금지 조례안을 추진한 바 있다. 노키즈존과 같은 차별 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의 차별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유럽연합 국가들은 차별금지법에 나이를 차별금지 사유로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가인권위원회법도 나이를 차별금지 항목에 포함하고 있어 별도의 차별금지법은 불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해당 법에는 노키즈존과 같은 새로운 혐오표현 등에 대한 차별판단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약점이 있다.

 

노키즈존을 없애기 위해서는 차별금지법이 만들어 갈 제도적 토양 위에 노키즈존을 둘러싼 행위자들인 보호자와 , 업주도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보호자는 어린이들을 책임감 있게 양육하고, 공공장소에서의 예절 교육에 힘써야 한다. 업주도 어린이들을 분리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의 대상으로 여기고, 관용과 이해로 이들을 대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우리는 서로를 가로막는 벽을 낮추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넘치는 사회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경향 2023.05.24.

 

 

학문의 위기, 인간다움의 위기

인문학은 인문과 분명하게 다르다. 물론 공통점도 있다. 그렇다고 그 둘이 같다고 할 수는 없다. 인공지능(AI)과 인간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 하여 그 둘을 같다고 할 수 없음과 같은 이치다.

 

인문은 인간의 무늬라는 뜻이다. 여기서 인간은 다른 존재와 확연하게 구분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가리킨다. 인간다움을 갖춘 인간을 뜻한다. 따라서 인문은 인간다움의 무늬이고, 핵심은 인간다움이다. 인문학은 이러한 인간다움이 공부 대상인 학문이다.

 

그러다 인문학이 사회과학·자연과학 등과 같은 분과학문의 하나로 축소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문학은 인간다움 전반을 다루지 않고 소위 순수학문에 속한다는 것을 주로 다룬다. 그래서 오늘날의 인문학은 인문과 사뭇 다르다. 인간다움에는 순수학문의 공부 대상, 이를테면 권력이나 금력(金力), 장수로 대변되는 세속적 가치와는 거리를 둔 지향도 들어 있지만, 실은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 공학 등도 엄연히 인간다움의 구현이라는 점에서 그 소산 또한 인문에 속하기 때문이다.

 

근자에도 인문학 위기론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필자 또한 인문학자이지만 위기론이 처음 제기된 한 세대쯤 전이나 지금이나 그다지 동의하지는 않는다. 위기에 처한 것은 인문이지 인문학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한 세대쯤 전인 지난 세기 1990년대는 전 지구화, 신자유주의 등의 물결이 우리를 본격적으로 삼키기 시작한 시절이었다. 이후 30년 가까이 그러한 물결은 날로 거세졌고, 디지털 대전환 등이 가세하면서 사회는 날로 금력 추구에 휩싸였다. ‘---()’의 풍조가 기세를 더해갔고 즉시적으로 별 도움 안 된다는 이유로 인간다움의 가치는 뒷전으로 밀렸다.

 

학문도 마찬가지다. 지식기반사회가 꾸준히 진척됨에도 학문과 그 기반인 앎의 가치는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인문학 위기론에 이어 언제부터인가 사회과학의 위기니 기초과학의 위기 같은 목소리가 솟구치고 있다. 지역대학의 위기도 심화 일로에 처해 있다.

 

하여 위기가 있다면 그건 학문 전반의 위기가 있을 따름이다. 이를 인문학의 위기로 축소하는 건 타당치 못하다. 인문학 위기론이 학문의 위기, 나아가 인문 곧 인간다움의 위기를 은폐하고 왜곡하고 있기에 그러하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경향 2023.05.24.

 

 

사죄와 화해

2010년부터 시행된 일본의 고교 무상화 정책에서 유일하게 배제된 조선 고급학교가 2013년에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긴 법정투쟁을 기록해 일본사회에서 일어나는 재일동포의 차별문제를 고발한 다큐멘터리 영화 <차별>이 있다. 지난 322일 국내에서 개봉했고, 4월 말부터는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뮌헨, 암스테르담에 이어 다른 유럽 주요 도시에서도 순회 상영되고 있다.

내가 사는 포르투갈에서는 이 영화를 볼 수 없어 영화의 시놉시스와 주요 영상의 편집을 보았다. 북한과 총련을 연관 지어 교육을 받을 인간의 보편적인 기본권을 제약하는 일본 정부의 행동양식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이 영화의 상영을 지원하는 한 인사가 주독 일본 영사관에서 암암리에 이의 상영을 여러 가지로 견제하기 시작한다고 알려왔다. 이미 독일 여러 도시에서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시키는 외교적인 압력을 해당 독일 기관에 공공연하게 행사했던 일본 정부인지라 특별한 소식은 아닐 수도 있다.

 

영화 상영 후에 진행된 토론에서도 일본 영사관 측에서 보낸 것으로 여겨진 일본인과 독일인은 일본이 교육의 기회균등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훼손한 것이 아니라 일본인을 납치했던 북조선을 추종하고 일본사회에 동화하지 않는 그들이 문제라는 식으로 토론의 논지를 폈다는 것이다. 그 인사는 또 유럽 주요 도시에 주로 유학 목적으로 체류하는 젊은 세대의 이 주제에 대한 관심은 실망스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20~30대가 특히 경제적 이해를 증진한다는 점에서 최근의 한·일관계를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세대라는, 국내 현실의 반영이다.

 

그럼에도 과거사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지향적으로 나가야 한다는 의견보다는 일본이 먼저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반성을 바람직한 한·일관계의 방향이라고 여기는 분위기는 여전히 강하다.

 

·일관계의 정상화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외국의 사례로 전후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독일과 폴란드 사이의 관계가 자주 거론된다. 윤석열 대통령도 얼마 전 독일과 프랑스가 양차 세계대전을 통해 수많은 인명을 희생했지만, 지금은 유럽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고 강조하면서 한·일관계도 이처럼 과거를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당위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먼저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와 한국과 일본 간의 관계를 등치시킬 수 있는 전제가 바로 서 있어야 한다. 올해 122, 전후 독일과 프랑스 간의 관계 정상화의 초석을 놓은, 서독의 아데나워 총리와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이 서명한 엘리제 조약60주년을 맞았다.

 

당시 프랑스는 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의 성원이었지만 서독은 분단된 패전국의 한 부분이었고 두 국가 사이에는 전쟁이 남긴 감정의 골도 상당히 깊었을 때였다. 드골이 아데나워에게 화해의 손을 먼저 내밀 수 있었던 것은 승자가 보여 줄 수 있는 아량이기도 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동기는 전후 서유럽이 미국과 미국의 트로이의 목마인 영국에 철저히 종속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전략의 한 고리로 서독을 먼저 끌어안았다.

 

그러나 서독이 이런 전략에 끌려다니는 것을 우려한 미국과 영국, 그리고 서독의 유보적인 태도 때문에 조약체결 직후에도 프랑스와 서독 간의 불협화음이 있었고 조약이 비준되자마자 무효가 됐다는 평가까지 있었다. 아데나워가 두 나라의 관계를 가시가 있지만 계속 봉오리를 맺고 꽃을 피우는 장미에 비유한 것처럼, 과거의 숙적은 애증의 부침을 겪으면서 유럽통합의 중심이 되었다.

 

·, 애증 부침 속에 관계 발전

독일과 프랑스의 이 같은 관계발전을 한·일관계 정상화의 모범으로 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두 나라가 지녔던 전제조건들이 한·일관계의 그것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먼저 프랑스와 독일은 각각 자기의 과거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하면서 서로 만났다. 적법성의 문제가 제기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지만, 프랑스는 나치독일과 협력했던 비시정부 시기(1940~1944)의 이른바 조력자를 우선 처벌했는데 1만명 정도가 사형, 10만명 정도가 범죄 행위의 경중에 따른 처벌을 받았다. 일제 식민지 지배체제에 적극 협력했던 반민족행위자들이 해방 후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우리 스스로 자문하게 하는 대목이다.

 

미진한 일본의 과거의 극복논의와 비교해서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독일의 과거 청산은 그러면 어떤 모습이었는가.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으로 시작된 독일(서독)탈나치화는 기본적으로 점령국 미국의 유럽 전후 질서의 정립이라는 틀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나치에 적극 가담했던 13000명가량의 인물에 대한 재판과 처벌이 있었지만, 프랑스 자신이 자국의 나치 조력자를 숙청한 것에 비하면 오히려 미미했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아이히만 재판과 함께 홀로코스트의 진실이 밝혀졌고, 전후 보수정치의 근간을 흔들었던 ‘68혁명은 사회 전반에 걸쳐 과거 청산에 대한 새로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것이 198558, 종전 40주년을 기념해 당시 서독 대통령 바이체커가 연방의회에서 행한 연설이었다. 이날이 전쟁의 패배를 기억하는 날이 아니라 나치의 반인륜적인 폭압에서 해방된 날임을 강조하면서 독일 국민의 집단적인 범죄는 아니지만, 이 무거운 유산을 받아들이고 더 낳은 미래를 위해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그는 강조했다. 바로 이 점에서 독일과 일본이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태도는 물론, 이에 따른 과거의 극복이나 청산 문제를 대하는 데 적잖은 차이가 드러난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점령국이었던 미국의 책임이 크다. 히틀러를 중심으로 한 나치즘의 핵심적인 권력구조를 해체했던 미국은 일본에서는 점령통치의 수단으로서, 또 극동에서 소련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일본 군국주의의 핵심인 일왕제의 해체를 보류했다.

 

화해의 관건은 사죄의 진정성

태평양 전쟁을 총지휘했던 도조 히데키를 포함한 14명의 A급 전범의 영령이 봉안된 야스쿠니 신사에 총리와 각료가 참배하거나 공물을 봉납하는 일이 최근 기시다 정부에서도 지속하고 있기 때문에 주변국의 강한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종전이 군국주의에서 일본이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왕을 위한 성전과 이의 패전을 슬픔과 아쉬움 속에서 기억하는 날이 되었다.

 

1970127, 춥고 음산한 겨울날에 바르샤바의 유대인 게토 위령비 앞에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비에 젖은 채 찬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나치 독일이 행한 범죄행위에 사죄하는 장면은 이와는 다른 기억 정치의 모습을 보였다. 당시 이러한 사죄의 표현 형식이 지나쳤다는 독일 내의 비판도 많았고, 또 사죄에 뒤따르는 구체적인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폴란드 측의 불만도 컸다. 하지만 말로써 다 표현될 수 없는, 브란트가 보여준 사죄의 진정성은 두 나라 사이의 화해뿐만 아니라 후에 냉전의 장벽을 허무는 동방정책의 결실을 위한 큰 자산이 되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라는 주기도문의 고백이 종교적인 의미에서만 아니라 정치적인 과제의 해결에도 큰 의미가 있다고 일찍이 한나 아렌트는 주장했다. 브란트도 폴란드와 화해를 추동했던 자신의 동기가 바로 이 기독교적인 의미의 사죄였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동아시아의 문화적인 맥락에서는 절대자인 신을 전제하지 않고도 인간과 사회의 관계체계를 순환시키는 기본을 공자는 ()’라고 표현했다. 글자 그대로 서로 같은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한다는 해결 불가능성까지도 전제하는 근본주의적인 접근보다 훨씬 현실주의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일본이 이미 수차례에 걸쳐 사죄했으니 우리도 이제는 미래를 향해 과거를 함께 넘자고 이야기하지만 그러한 사죄의 진정성을 많은 국민이 아직도 느끼지도, 또 믿지도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경제협력과 미·중 갈등, 그리고 북핵문제만을 앞세운 현실주의적인 논거만으로 많은 국민의 마음이 한·일 간의 진정한 화해의 방향으로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움직일 수 있겠는가.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경향 2023.05.24.

 

 

돈과 정치권력, 그리고 침묵

인간은, 특히 비범하고 훌륭한 인간은 악마에게 끊임없이 유혹받고 시달린다고 예수 시대 사람들은 생각했다. 세상에 공식 등장하기 전, 예수는 악마의 매력적이고 치명적인 유혹에 시달렸다.

 

악마는 40일 굶은 예수에게 돌을 빵으로 변하게 해보라고 유혹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지 못하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예수는 받아친다. 빵이 1순위가 아니고, 하느님과 관계가 최우선이라는 뜻이다. 빵 없는 고통을 예수가 모르거나 무시해서가 아니다. 자발적 실업자가 된 예수는 빵 없는 설움을 실컷 겪었다. 빵으로만 살지 못한다는 말은 빵, 즉 돈이면 다 된다는 사람을 질책하는 말이기도 하다. 가난한 사람들의 배고픔을 달래려고 빵 기적을 행한 예수는 정작 자기 배고픔을 줄이는데는 기적을 쓰지 않았다. 기적은 부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쓴다.

 

돈과 권력이라는 악마의 유혹

예수에게 악마의 둘째 유혹은 정치권력이었다. 하느님이 정치권력을 마치 악마에게 선물한 것처럼 악마는 주장한다. 정치권력은 하느님이나 백성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악마에게서 나오는 것처럼 악마는 우긴다. 정치권력은 하느님이나 백성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악마에게 복종하는 것처럼 행세한다. 정치권력은 권력자 멋대로 행사해도 되는 것처럼 악마는 처신한다.

 

악마는 예수에게 당신이 내게 엎드려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하고 마지막으로 유혹한다. 하느님을 버리고 돈, 권력, 악마를 숭배하라는 요구다. 하느님 없이, 돈과 권력만으로 인간이 부닥친 모든 문제를 해결하라는 유혹이다. 이렇게 유혹받는 예수 이야기는 예수에게만 던져진 질문인가, 아니면 모든 인간에게 해당되는가.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유혹으로 돈, 권력, 악마 숭배가 언급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예수는 세상에 공식 등장한 후에 돈, 권력, 악마라는 세 가지 유혹에 시달렸다. 그런데, 예수가 겪었던 또 다른 유혹이 사실 하나 더 있었다. 세상에 공식 등장하기 전에 예수는 은둔과 침묵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시달렸다. 역사와 현실에 무관심한 채, 오직 자신과 하느님 관계에 몰두하는 유혹 말이다. 기도, 묵상, 성서 공부 등 명분 좋고 도피하기 쉬운 핑계는 많고 또 많았다. 은둔과 침묵은 돈과 권력처럼 강력하고 치명적인 유혹이다.

 

예수는 은둔과 침묵이라는 유혹과 치열하게 싸웠고 결국 이겨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촛불시민은 어떤 유혹에 빠질 수 있을까. 나 혼자만, 우리 가족만, 내 종교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악의 난동을 그저 구경만 하고, 한숨만 쉬며 자포자기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저항하는 시늉만 하다가 적당히 발 빼려는 유혹에 시달릴 수 있다. 민주주의와 평화에 대한 신념을 단념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악마의 또 다른 유혹 침묵

악마가 예수를 유혹하듯이, 예수 시대 부자들과 권력자들과 지식인들은 예수를 유혹했다. 악마에게 엎드려 절하라고 악마가 예수를 유혹했다면, 악마에게 저항하지 말고 안락한 길을 걸으라고 예수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를 유혹했다. 예수 시대 부자들과 권력자들과 지식인들이 예수를 유혹하듯이, 우리 시대 부자들과 권력자들과 지식인들과 종교인들이 착하고 정의로운 촛불시민을 유혹하고 있다. 돈과 권력이라는 악마에게 무릎 꿇으라고, 검찰 독재에 저항하지 말고 포기하라고 시민들을 유혹하고 있다.

 

예수가 소극적으로 악마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견디어낸 것은 아니다. 악마, 부자들과 권력자들과 지식인들, 안락한 길을 걸으려는 종교인들에게 예수는 "악마여 물러가라" 호통쳤다. 그리고 예수는 적극적으로 악마에 저항하고 투쟁하여 승리했다.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 있는 한, 악은 절대로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 지식인들의 소름 끼치는 이기주의와 방관이 있는 한, 윤석열 검찰독재는 결코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일을 볼 때 쉽고 어려운 것이나 성공하고 실패할 것을 먼저 보기보다는 그 일이 옳은 일인가 그른 일인가 먼저 볼 것이다.” 1932년 만해 한용운 스님 말씀이다. “죽음으로서 진실을 이야기하려고 했던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짐승만도 못한 세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박정희, 전두환 군부독재의 총칼에도 굽히지 않았던 우리 시민들은 파사현정의 깃발을 높이 들어야 될 때입니다.() 윤석열을 끌어내리는 것이 바로 파사현정입니다.” 명진 스님은 불교시국법회에서 외쳤다.

 

악마와 싸우지 않는 사람이 곧 악마

남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면, 자기는 돌에 맞아 죽는다!” 양회동 열사의 모친은 절규했다. “나라의 주권과 국민의 안전을 보호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자는 더 이상 대통령의 자리에 앉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기독교장로회 총회는 선언했다. “설마 저러다 말겠지라거나 나와 무슨 상관인데하는 것은 망국적 재앙을 키우는 위험천만한 방관이다. 거리의 촛불도, 골방의 기도도 좋다. 맨 앞이 아니라도 된다. 곁이라도 좋고 맨 뒤라도 괜찮다. 함께 하기만 하면 된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성명서 말씀이다.

 

윤석열 정권, 부자들과 권력자들과 지식인들, 안락한 길을 걸으려는 종교인들에게 우리는 악마여, 물러가라~’ 호통쳐야 한다. 예수처럼 우리도 악마에 저항하고 투쟁하여 악마를 몰아내자고 나는 말하고 싶다. 악마와 싸우다 보면 스스로 악마가 된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악마와 싸우지 않는 사람이 곧 악마가 되고 만다.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장 시민언론 민들레2023.05.24.

 

-미 간 역설적 가치동맹과 그 비용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은 징크스처럼 일어난다. 지난 21일 중국이 자국 기관과 기업들에 미국 마이크론사 반도체 사용을 금지시켰다. 그러자 미국은 바로 동맹국들과 협력해 대응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때 동맹국은 반도체 주요 수출국인 우리나라를 가리킨다. 지난 4월 말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 직전, 중국이 미국산 반도체 수출을 제한할 경우 한국이 그 부족분을 메우지 못하도록 미국이 한국에 요구하고 있다고 외신이 전했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미-중 반도체 전쟁에 우리나라가 말려드는 것이었다. 우리로서는 가장 피하고 싶었던 시나리오였다. 불행히도 현실이 됐다.

 

기술전쟁에서 지금까지 미국은 일방적으로 중국에 무역 및 투자 제한 조치를 했다. 중국은 특별한 보복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몇달 전부터 미국산 반도체 보안 심사를 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보복을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달 19~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끝나자 중국은 행동에 나섰다. 이것은 아마도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일 것이다. 중국의 행동은 앞으로 미국 중심의 동맹에 균열을 가져올 것이다. 동맹국들이 모두 경제적으로 중국과 긴밀히 얽혀 있기 때문이다.

 

소위 가치동맹의 경제적 성격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같은 군사적 동맹과는 다른 것이다. 나토는 동맹국에서 전쟁이 발생하면 함께 참전해 동맹국의 안보를 책임지는 집단 안보동맹이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가 가치동맹의 이름으로 추진하는 대외 경제정책의 목적은 동맹국 경제적 이익의 집단적 확보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자신의 공급망을 강화하고 중국을 억제하며, 노동자 보호라는 미국 민주당의 정치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동맹국을 활용하려는 것이다.

 

지난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제이크 설리번이 브루킹스연구소에서 한 연설에서 정책 목표를 분명히 밝혔다. 바이든 정부 정책 방향에 관한 가장 분명하고 체계적인 설명으로 평가받는 이 연설에서 설리번은 붕괴한 미국의 산업 기반 회복이 궁극적 목표라고 말했다. 미국의 전통 산업은 쇠퇴하고 미래를 이끌 전략 산업도 부족하다고 평가한 다음 그런 산업 붕괴의 근저에는 단순화된 시장경제 논리가 있다고 했다. 즉 감세와 규제 완화, 민영화, 무역 자유화가 산업의 공동화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낙수효과에 기댄 보수적 정책들이 미국 노동자의 경제적 기반을 허물고 경제 불평등을 심화시켰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트럼프와 같은 인물이 등장해 민주주의까지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바이든 정부는 이런 과거 정책을 뒤집고, 대신 경제의 공급망과 포용성 강화를 위해 노동자 계층을 위한 무역정책을 실시하겠다고 한다.

 

설리번의 연설에 따르면 바이든 정부가 지향하는 가치와 정책 방향은 윤석열 정부와 정확히 반대다. 윤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낙수효과를 거론하며 감세에 나섰다. 불평등 완화와 포용성 강화는 정책 목표에서 사라졌으며, 빈말로도 언급하지 않는다. 정반대의 가치를 지향하는 두 정부가 그 어느 때보다 강고한 가치동맹을 맺고 있는 것은 역설적이다. 이런 역설이 가능했던 것은, 미국이 필요로 했던 것은 가치의 일치가 아니라 자기 목표 달성을 도와줄 수 있는 동맹국이었기 때문이다.

 

설리번의 연설이 끝나자 청중석에서 질문이 나왔다. “미국은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동맹국이 필요하지만, 이 정책은 불가피하게 동맹국의 이익을 침해할 것이다. 이것은 모순적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것은 우리를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미국의 경제적 이익이 우리의 경제적 이익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 이익이 침해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미 동맹이라는 이름 속에 계속 덮어둘 수는 없게 됐다. 미국 공급망이 강화된다고 해서 우리 공급망이 강화되지는 않는다. 공급망 강화와 분산을 위해 우리는 중국도 필요하고 동남아시아도 필요하다. 중국 견제가 미국에는 절실할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정학적 안정과 자유로운 무역 환경이다. 대중국 중간재 수출이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우리는 중국의 소비재 시장이 필요하고, 그래서 중국과의 조화로운 관계가 필요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 중심 동맹의 응집을 가져왔다면, 중국의 반발은 그 균열을 가져올 것이다. 지금부터는 철저히 우리의 이익을 위한 시간이 돼야 한다.

박복영 | 경희대 교수·전 청와대 경제보좌관 한겨레 2023.05.24.

 

 

그럼에도 모일 자유가 중요한 이유

길바닥에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되죠. 이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심지어 위법입니다. 경범죄처벌법은 이런 경우 10만원 이하 벌금을 내도록 하고 있습니다. 나라마다 처벌 수위는 다릅니다. 싱가포르에선 170만원가량을 내야 한다고 합니다. 프랑스 파리에선 88000원 정도라고 하네요. 나라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대부분 벌금형입니다. 감옥에 가지는 않아요. 딱 그만큼의 잘못, 이라고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것이죠.

사람이 모이면 더러워집니다. 먹고, 마시고, 배설하니까요. 축구장, 야구장에서 경기가 열리는 날 많은 경우 몇만명 관중이 모입니다. 그래도 깨끗하죠. 그만큼의 인원을 감당할 시설이 있기 때문입니다.

 

도로와 인도는 차량과 사람이 오고 가라고 만들어진 시설입니다. 많은 사람이 머물며 뭔가를 하라고 만든 곳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모이라고 만든 야외 광장이라 해도 수용 가능한 인원을 넘어서면 버겁습니다. 쓰레기통은 넘치고, 화장실 앞으론 줄이 길게 늘어섭니다. 그리고, ...지게 됩니다. 지난 16~17일 서울 광화문~시청 일대에서 진행된 민주노총의 12일 집회도 마찬가지였어요. 3만명 안팎이 모였습니다. 민주노총은 청소업체와 계약을 맺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깨끗했다면 좋았겠지만 잘 안됐습니다.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딱 그만큼만요.

 

헌법은 모일 자유를 보호합니다. 헌법이 어떤 자유를 보호한다는 건, 그 자유를 누리는 것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파생되는 피해는 감내하겠다는 뜻입니다. 사람 3만명이 모이면 더러워집니다. 불가피합니다. 야구장에 모일 순 없으니까요. 이런 경우 벌금을 부과할지언정 모일 자유는 해치지 말라는 게 헌법의 명령입니다. 어쩔 수 없는 것 때문에 본질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피해를 감내하면서도 헌법이 모일 자유를 보호하는 건 그만큼 중요한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국정농단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던 20161029, 서울 청계광장에서 첫 규탄 집회가 열렸습니다. 막 집회가 시작했을 때 현장엔 4000명 정도가 모여 있었습니다. 촛불집회의 역사는 그 숫자가 1만명, 10만명, 100만명으로 바뀌어간 역사입니다. 그 숫자가 끝내 ‘4000’에 머물렀다면, 온라인에서 댓글 수십만개가 달렸다 해도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어떤 의견을 표현하기 위해 다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행위에는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유의 힘이 있습니다. 더럽다고, 혐오감을 준다고 하지 마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헌법이 모일 자유를 특별히 보호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것이 대체로 약자의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표현의 자유를 말할 때 헌법 제211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를 인용합니다. 그러나 두 권리는 엄연히 다릅니다. ‘언론·출판의 자유는 보통 엘리트들의 자유입니다. 글을 쓰고 읽을 수 있는, 문자라는 수단을 통해 의견을 전파할 수 있는 이들의 자유입니다. 반면 집회·결사의 자유는 약자들의 자유입니다. 몸뚱어리와 목소리만 가진 민중이 의견을 알릴 유일한 방법입니다.

 

부르주아 계급과 노동자 계급이 손잡고 완성한 프랑스혁명 초기, 부르주아지들은 권력을 손에 쥐자마자 언론·출판의 자유만 남긴 채 혁명 동지였던 노동자들의 집회·결사의 자유를 없애버렸습니다. 이렇듯 약자의 권리, ‘모일 자유는 늘 연약합니다. 위태로워요. 쉽게 공격의 대상이 됩니다.

 

지금 정부와 여당도 바로 그 지점을 연일 직격하고 있습니다. “불법 집회 전력이 있는 단체는 집회를 불허하겠다”(윤희근 경찰청장), “물대포 없애고 수수방관하는 물대응으로는 난장 집회를 못 막는다”(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등의 발언이 이어지더니 야간 집회·시위를 금하도록 법을 바꾸겠다는 엄포까지 나왔습니다.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은 경찰과 관계 공무원들은 (시위대의) 불법 행위에 대해 엄정한 법 집행을 해줄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습니다. 일련의 말잔치들이 겨냥하는 대상은 명백합니다. ‘약자들의 권리예요. 그다음은 어디일까요? 둑은 일단 무너지기 시작하면 와르르 무너집니다. ‘자유대한민국에서, ‘자유가 위험합니다.

김원철 | 사회부장 한겨레 2023.05.24.

 

 

종교가 된 원전, 사탄이 된 재생에너지

대한민국에서 원전은 종교가 되었다. 믿음 천국, 불신 지옥이다. 원전은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니 청정에너지이고, 하나님이 보우하사 영원토록 안전할 거라고 신도들은 믿는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원전 폭발은 믿음이 부족한 인간에게 신이 내린 계시이며, 후쿠시마 오염수는 마셔도 되는 수준이다. 2031년이면 가득 차기 시작할 핵폐기물 임시저장시설은 목사님의 성추행보다도 위험한 금기어다. 탈원전은 천벌 받을 배교 행위다.

원전교교인들에게 재생에너지는 적그리스도다. 특히 태양광은 중금속으로 토양을 오염시키고 햇빛을 반사해 눈을 아프게 하며 아름다운 산을 망치는 최악의 이단이다. 재생에너지 찬양은 지옥의 찬송가다. 탈원전이라는 배교 행위와 함께 재생에너지 찬양이라는 지옥의 찬송가를 부른 문재인은 사탄이다.

 

그런데 이교도의 눈으로 보면,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장기적 과제로 탈원전을 선언했을 뿐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굳이 꼽으라면, 2012년 설계 수명 30년이 다해 가동 중단했으나 박근혜 정부가 재가동했던 월성 1호기를 설계 수명 6년이 지난 시점에서 뒤늦게 폐쇄한 것뿐이다. ‘조기 폐쇄는 원전교 신자의 방언이다. 문재인 정부는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막지 못했고, 고리 2호기의 수명 연장 역시 막지 못했다. 그런데도 원전교 신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비용이 47조원이나 된다며 허수아비를 때린다.

 

이 신흥종교의 제사장은 <조선일보>. 윤석열 대통령은 1호 열성 신도이자 제정일치 시대의 집정관이다. “탈원전, 이념적 환경 정책으로 신성을 모독하는 악의 무리를 향해 복수의 칼을 휘두른다. 0.73%포인트 차이라도 선거에서 이겼으니 공약을 이행하는 것까지 나무랄 생각은 없다. 하지만 기후 변화와 에너지 전환이 지구와 인류의 운명이 걸린 필사의 어젠다가 된 상황에서 다른 나라들의 행보를 알고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처럼 재생에너지를 악마화하고 원전에 올인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마지막 남은 원전 3기를 지난 416일 역사에 묻고, 탈원전 시대에 본격 돌입한 독일은 2035년까지 국가적 차원에서 아르이(RE)100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2021년 기준 전력 생산량의 41%인 재생에너지 비율을 태양광 중심으로 10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유럽연합(EU)2021피트 포(Fit for) 55’에서 에너지 소비 기준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40%까지 확대하기로 했는데, 2년 만인 지난 342.5%로 목표치를 높였다.

 

유럽이 너무 멀게 느껴지면 가까운 대만은 어떤가. 대만 역시 진보(민진당)와 보수(국민당)가 탈원전과 친원전으로 엇갈리고 있지만, 2016년 민진당 집권 이후 98% 공정률을 보이던 제4원전 공사를 중단하고 탈원전을 선언했다. 국민투표를 거치는 등 거센 논란 끝에, 남아 있는 원전 3기의 수명이 끝나는 2025년 연장 없이 탈원전을 완료하기로 했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해 우리나라에선 한국 전기차의 보조금 수혜 여부에만 관심이 있지만, 실은 사상 최대의 기후변화 대응 투자 방안을 담고 있다.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저장에만 1280억달러(170조원)를 투자한다. 원자력에도 투자하지만 재생에너지의 4분의 1 수준이다.

 

문재인 정부 때 재생에너지에 6조원을 투자했는데도 한국은 여전히 재생에너지 후진국이다. “우리나라의 태양광을 비롯한 재생에너지 비율은 20년째 오이시디(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최하위. 한화그룹 누리집에 올라와 있는 세계는 이미 태양광 시대라는 캠페인성 홍보물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오히려 후퇴했다.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치를 문재인 정부 때보다 8.7%포인트 낮춘 21.5%로 내렸다. 윤 대통령의 어법대로라면 태양광 모듈을 생산하는 한화솔루션은 이념적 환경기업인가.

 

원전교라는 사이비 종교가 윤석열이라는 비타협적 원리주의자를 집정관으로 둔 것이 국내 교세 확장에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세계의 보편적 흐름을 거스르는 퇴행적 교리가 나라의 경제와 운명을 나락으로 몰아가고 있다. 아르이100이라는 혜성이 육안으로 보일 만큼 가까이 와 있는데, 시에프(CF·Carbon Free)100이 우리를 구원해줄 거라고 원전교인들은 굳게 믿고 있다. 통성기도 끝에 그들은 넷플릭스 영화처럼 외칠 것이다. “돈 룩 업”(Don’t Look Up).

이재성 | 논설위원 한겨레 2023.05.25.

 

 

정의가 없는 국가는 거대한 강도 집단

오월의 정신을, 오늘의 정의로!” 올해 5.18민중항쟁 기념식 주제이다.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는 43주년 기념행사의 주제를 밝히면서,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희생했던 5.18정신을 이어받아 정의로운 오늘을 만들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해석했다. 5.18정신을 오늘의 정의로 만들어가자는 것은 현재 우리 사회가 정의롭지 못한 사회라는 현실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왜냐하면 정의가 결핍된 시대일수록 정의에 대한 요구가 커지기 때문이다.

 

마이클 샌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국에서 베스트셀러로 주목받을 때는 박근혜 정권 시절이었다. 친박인사들이 득세하고 문고리 3인방이 대통령을 좌우하며, 최순실 국정농단이 문제되던 시기이다. ‘친박무죄 반박유죄란 말이 나돌 만큼 사법 정의도 신뢰를 잃었다. 박정희 군부독재를 미화하려고 국사교과서를 국정화 하는 역사왜곡까지 밀어붙이던 암흑기였다. 따라서 어느 때보다 정의에 대한 갈망이 컸다. 결국 시민들의 촛불시위로 박근혜는 탄핵되고 18개 범죄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아 수감되었다. 정의를 짓밟은 데 따른 응분의 징벌이다.

 

친윤의 면죄부 수사와 반윤의 무차별 수사

지금 새삼스레 정의가 소환되는 것도 정의가 위기에 처한 까닭이다. 윤석열 정권은 불과 1년 만에 박근혜 정권 막바지를 뺨치는 위기 국면에 이르렀다. 친박들처럼 윤핵관들이 설치는 것은 물론, 문고리 3인방처럼 안보실 차장이 대통령실을 좌우하고, 최순실처럼 천공의 국정농단이 논란거리이다. ‘친박무죄 반박유죄와 같이 지금은 친윤무죄 반윤유죄란 말이 공공연하다. 조용한 내조를 공언했던 김건희 박사는 국정개입에 본격적으로 나서서 권력서열 1위 행세를 할 뿐 아니라, 대통령도 대놓고 국정파트너라고 함으로써 ·김 공동정부로 일컬어지는 괴상한 정국이 조성되었다.

 

제왕적 대통령 행세를 하는 윤석열 정부의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정의가 빛을 잃게 마련이다. 여당과 검찰조직이 대통령 휘하의 직속기관처럼 움직이면서, 수사 정의와 사법 정의는 물론 인사 정의, 사회 정의, 경제 정의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우선 법 적용부터 공정해야 한다. 법은 모든 국민에게 같은 기준과 원칙으로 적용되어야 마땅하다. 가장 명백하고 가장 원칙적인 사법 정의만 제대로 이루어져도 우리 사회는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로 가게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친윤무죄 반윤유죄라는 말이 설득력을 지닐 만큼 사법 정의 이전에 수사 정의부터 설자리를 잃었다. 형평성의 수사 원칙마저 무너진 탓이다. 친윤수사가 착수조차 못하는 성역으로 존재하는 반면, 반윤수사는 기소를 전제로 한 기우제식 강제수사가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친윤의 면죄부 수사와 반윤의 무차별 수사가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윤 대통령은 총장 시절 수사권으로 보복하면 깡패라고 했는데, 야당 대표 이재명에 관한 무차별 수사는 깡패 수준의 보복이 아닌가 묻고 싶다.

 

수사 정의는 딴 나라의 꿈같은 이야기

친윤수사는 면죄부 수사답게 한결같이 불송치 또는 불기소로 가고 있다. 김건희 박사의 허위 경력 기재 사건 불송치를 비롯해서, 코바나컨텐츠 뇌물성 협찬 의혹 불기소,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수사 뭉개기, 그리고 장모 최은순의 100억대 잔고증명 위조사건 불송치, 공흥지구 개발특혜 의혹 불송치 등이 모두 그런 보기들이다. 대통령 관저 선정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천공도 친윤인 덕분에 소환조차 못하는 성역으로 존재한다. 대통령 취임식에 장모 최은순 수사경찰관을 콕 집어 특별 초청한 사실은, 대통령 권력이 수사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을 입증한 구체적 사실이다. 그러므로 수사 정의는 딴 나라의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현 정부에서는 수사 정의뿐 아니라 사법 정의도 사라지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대법원이 판결한 강제징용에 대한 일본기업의 배상결정을 대통령이 뒤집어엎은 사실이다. 대통령이 개인과 기업 사이의 민사소송 판결에 끼어든 것부터 잘못인데, 더 나아가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한국 기업이 대신 변제토록 한 것은 삼권분립 위반이자 사법 정의를 정면으로 묵살한 행위이다.

 

실제 재판 과정도 문제적이다. 현직 부장검사 박은정이 이게 재판이냐? 저를 증인으로 불러달라!”고 요구할 정도로 법무부의 소송 대응이 정치권력에 휘둘리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판사 사찰문건 전달 지시와 채널A 사건 감찰 및 수사 방해에 관해서는 이미 서울행정법원에서 직권남용의 중대 비위로 판정한 바 있다. 그럼에도 정권교체에 따라 원고 윤석열, 피고 한동훈구도가 되자, 법무부가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바람에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므로 윤 정부에서 사법 정의는 진작 물 건너간 셈이다.

 

정부는 기득권이 아닌 사회적 약자 편에 서야

인사 정의는 장관 임명에서부터 편중 인사로 빗나갔다. 군부독재 시기 군인들이 그랬듯이 현정부에서는 검찰 출신들이 정부 요직을 장악한 까닭에 검찰독재라는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 박근혜 정권의 문고리 3인방처럼 지금 정부에서는 검찰 수사관 출신들이 대통령실 문고리를 장악하고 있다. 후보 시절 대통령은 전두환을 찬양하면서 적재적소의 인재 등용을 표방했는데, 검찰 업무와 무관한 기관에도 검찰 인사로 도배를 했다. 총리 비서실장을 비롯하여 금감원장,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민주평통 사무처장도 검찰 출신이며, 심지어 서울대학병원 감사도 검찰 수사관 출신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까지 검찰 출신을 임명했다가 자녀 학폭 사실이 드러나 사퇴 소동을 빚었다. 법무장관이 검찰 출신인 것은 물론, 그 휘하의 인사정보관리단까지 모두 검찰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윤 정부 인사는 오로지 검찰에 의한’ ‘검찰을 위한’ ‘검찰의인사인 까닭에, 인사 정의가 제대로 실현될 리 없다. 그러므로 대통령에 의한 정부 인사가 아니라 검찰총장 윤석열에 의한 검찰 인사로 착각할 지경이다. 오죽하면 축구국가대표팀 감독도 검사로 임명하라고 할까.

 

사회 정의는 차별 없는 대등사회를 겨냥하며 공동선을 추구해야 실현된다.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보장하는 것이 공동선이다. 그러자면 정부는 으레 기득권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 편에 서야 한다. 불편부당한 것이 공정인 것 같지만, 주어진 처지와 상황을 무시한 기계적 공정은 사실상 불공정이다. 갑과 을 사이의 문제라면 정부는 당연히 을의 편에 서야 공정하다. 부당한 가해가 일어났을 때, 정부는 피해자 편에 서야 정의가 실현된다. 억압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 편에서 억압하는 사람을 제지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그런데 윤 정부는 사회 정의와 거꾸로 치닫고 있다. 을의 편에 서기는커녕 오히려 공권력을 동원하여 갑질하기 일쑤이다. 시민언론 더탐사를 여러 차례 압수수색한 것은 의도적인 갑질이다. 게다가 정부는 피해자보다 가해자 편에 서서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예사로 한다. 일본기업의 강제징용으로 평생 고통을 겪어온 피해자의 마지막 희망을 꺾어버리고 가해자 일본기업에 면죄부를 준 것이 2차 가해다. 노사문제에 정부가 나서서 중재하기는커녕 오히려 사용자 편에서 노조를 억압함으로써, 노조원이 노동절에 분신하는 사상 최악의 사태까지 빚었다.

 

경제 정의는커녕 빈곤층을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아

사회 정의 못지않게 경제 정의도 악화된 상황이다. 경제 정의의 기본은 균등분배에 있다. 재벌중심 경제체제에서는 소득불평등이 심화되고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악화되기 마련이다. 특히 재벌의 세습체제는 북한의 권력세습처럼 3대로 이어지면서 한국 경제권력을 지속적으로 독점하고 있다. 경제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경제 정의는 실현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윤 정부는 오히려 대기업과 가진 자들의 배를 불리는 일에 더 골몰하고 있다. 국민들은 물가 급등으로 고통 받고 있는데, 재벌기업의 법인세 인하는 물론 부자들의 종부세 무력화까지 시도한 터이다. 많이 가진 자가 세금을 많이 내고 적게 가진 자는 적게 내는 것이 공평과세인데, 과세부터 불공정을 심화시키고 있다. 부족한 세수에 따른 적자를 메우기 위해 전기료와 가스요금을 대폭 올림으로써 도리어 서민들의 주머니를 넘보는 형국이다.

 

경제 정의를 실현하려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의식주와 의료, 교육 및 교통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 절대 빈곤을 추방하고 서민들의 복지 정책을 확대해야 하는데, 현 정부는 거꾸로 복지예산을 대폭 삭감하여 취약계층의 민생복지를 방치하고 있다. 휴지 줍는 노인들의 공공 일자리 예산을 비롯해서 저소득층 위기 가정에 대한 예산과 어린이집 확충, 노인요양시설, 장애인 복지시설 관련 예산을 두루 삭감했다. 경제 정의는커녕 빈곤층을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고 있다.

 

정의가 없는 대통령은 강도 집단의 우두머리

독선적인 대통령 권력이 정의가 설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 탓에 어느 영역의 정의 하나 제대로 실현되는 것이 없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어느 때보다 정의가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은 입만 열면 자유를 외치면서 뒤로는 시민들의 집회자유를 제한하는 야간집회 금지 입법을 획책하고 있다. 이처럼 표리부동한 위선적 정권에 정의를 기대하는 것은 산에 가서 물고기를 구하는 격이다.

 

정의는 거짓과 위선을 가장 싫어한다. 정의는 진정성이라는 토양 위에서만 성숙하게 자란다. 거짓을 일삼는 대통령에게 진정성이 있을 수 없다. 대통령이 간호협회를 찾아가 처우개선을 약속하고도 공약한 적 없다고 발뺌하거나, 대통령이 잘못한 말을 주어가 없다며 거짓으로 둘러대는 대통령실에서 무슨 정의를 찾을 수 있겠는가. 대통령이 빈 모니터를 바라보거나 백지를 들고 있는 사진을 내보내며 마치 중대한 업무를 보는 것처럼 홍보하는 가짜뉴스 정부에서 어떤 정의를 기대하겠는가.

 

철학자 키케로(Marcus T. Cicero)국민은 온갖 사람들이 모인 군중이 아니라, 정의에 관한 공통된 인식과 공동의 이해관계에 의해 연합된 결사체라고 했다. 국민이 곧 정의의 결사체라는 말인데, 하물며 국민을 이끌어가는 대통령이란 자가 정의롭지 못하다면 최소한의 국민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셈이다.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는 신국론에서 정치적 악을 해소하는 최고의 처방은 정의라고 주장하며, “정의가 없는 국가는 거대한 강도 집단이라고 규정했다. 정의가 없는 국가가 강도 집단이라면 정의가 없는 대통령은 강도 집단의 우두머리란 말이다. 대통령이 성역을 만들어 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틀어막고 있는 것은 사실상 정치적 악을 조장하는 일이자 정의를 깔아뭉개는 일이다.

임재해 안동대 명예교수. 전 한국민속학술단체연합회장 : 시민언론 민들레 2023.05.25.

 

 

자유를 모독하는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란 말을 즐겨 쓴다. 집착이다 싶을 정도인데,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당선 직후에는 그러지 않았다. 당선 소감은 모두 2052자인데 자유란 말은 5번뿐이었다. 410자에 한 번씩이었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언급이 3번이고,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로 거듭나겠다라는 식의 다짐뿐이었다. 오히려 무엇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지키는 안심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거나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고 국정 현안을 놓고 국민들과 진솔하게 소통하며, “참모 뒤에 숨지 않고, 정부의 잘못은 솔직히 고백하겠다고 다짐했다.

 

당선될 때와 취임할 때는 매우 달랐다. 취임사는 2626자인데 자유란 말을 35번이나 썼다. 75자에 한 번씩이다. 당선 소감에 비하면 5.5배가 늘었다. 어떤 단어를 자주 쓴다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게다가 자유란 말은 대한민국 헌정 질서의 핵심 개념이기에 대통령이 자유를 강조하는 건 권장할 만한 일이다. 대통령이 인권, 평화, 자유 등 긍정적인 개념어를 자주 사용하면, 그만큼 국정 전반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를테면 김대중 대통령이 법무부 업무보고를 받으며 인권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던 게 그런 차원이다. 김 대통령의 말은 검찰청을 외청으로 두고 있으며, 교정, 소년 보호, 출입국 관리를 맡은 법무부 직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국민의 인권을 철저하게 보장하라는 국정 철학을 제시한 거다.

 

윤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처럼 자유를 강조했다면,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는 편협한 극우적 이념과 닮았다. 냉전시대의 낡은 이념에 사로잡혀 자유란 단어에만 집착하는 것 같다. 사람마다 자유에 대한 이해가 다를 수 있겠지만, 대통령이라면 극단적인 이념에 치우치거나 편협한 의미로 자유를 입에 올리면 안 된다.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는 대한민국 헌법이 기준이어야 한다.

 

헌법은 윤 대통령만큼 자유란 말을 자주 쓰지는 않는다. 모두 14324자 중에 21번이니, 빈도로 치면 682자에 한 번씩이다. 빈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헌법에 나오는 자유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확고히 한다거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겠다는 다짐, 그리고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양심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등 인권을 확인하는 것들이다. 공권력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말하는 식의 자유는 헌법 어디에도 없다. 어쩌면 헌법 전문과 제4조에 규정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얼핏 비슷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이때 말하는 질서는 전체주의, 권위주의 세력이 말하는 질서와는 전혀 다르다. 헌법이 규정하는 질서도 권력이 국민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법의 지배가 법률로 국민을 다스린다는 게 아니라, 권력자나 권력기관을 법의 지배 아래 두겠다는 주권자의 의지의 표현인 것과 마찬가지다. 집권세력은 국민이 정부의 지침을 잘 따르며 질서정연하게 살길 바라겠지만, 이런 식의 질서는 국민에게 강요할 수 없는 무례이며, 자체로 인권침해다.

 

헌법에 규정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은 국민주권주의 원칙이다. 국민의 능동적 정치 참여, 자유로운 투표, 반대 의견의 자유로운 형성 등을 뜻한다. 곧 대한민국의 헌법 질서는 대통령은 물론 어떤 국가권력이라도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함부로 제한할 수 없으며, 검찰이나 경찰은 물론 대통령이라도 맘대로 할 수 없는 질서를 뜻한다.

 

헌법이 규정하는 자유도 그렇다. 대통령에게 있어 자유란 어떤 특정한 이념에 치우친 이데올로기로서가 아니라, 국민이 선출한 일꾼답게 국가권력을 잘 통제해서, 국민의 권리를 제대로 보호하라는 거다. 이를테면 경찰을 통제해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철저하게 보장하고, 특정 사건에 대해 반복적으로 수백번씩 압수수색을 할 정도로 검찰이 준동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는 꼭 필요한 경우에만 최소한의 범위에서, 다른 대안이 없는 아주 특별한 최후의 경우에 제한적으로 진행하도록 견인하는 데 있다. 자유는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스스로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고, 취임 선서의 첫 번째 약속처럼 헌법을 준수하기로 모든 국민에게 약속한 사람이 지켜야 할 신성한 책무이기도 하다. 그러니 대통령이 나서 자유를 모독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대통령에게는 대통령다운 말과 행동이 필요하다. 그 기준은 물론 대한민국 헌법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경향 2023.05.26.

 

 

한국은 군주제? 대통령 말 한마디에 모든 게 바뀌다니

정치의 실패를 감추기 위한 집회시위의 자유 탄압

524일 저녁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황당한 상황에 처했다. 한국지엠의 불법파견 소송에 관해 대법원의 빠른 판결을 요구하며 대법원 앞에서 노숙농성과 선전전을 해왔는데 갑자기 경찰이 펜스를 치고 막았기 때문이다. 매주 창원공장과 부평공장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돌아가며 12일 농성을 해왔는데 경찰은 그날 갑자기 막아섰다. 지난주에도 했는데 갑자기 안 된다니, 황당했다. 그날 노숙농성이나 선전전에 어떤 물리적 폭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한국지엠 불법파견 소송은 기존 사건과 다를 게 없다. 기존 자동차 불법파견 판례가 있어서 오래 걸릴 일도 아니다. 미루는 것 자체가 정치적이고 친기업적이다. 2010년 대법원에서 현대차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자동차 공정에서 비정규직으로 사용하는 것은 불법 파견이라고 판결한 지 벌써 13년이나 지났다. 파견법에 따르면 제조업에서는 파견을 사용할 수 없도록 되어 있지만 대기업인 현대기아차나 한국지엠은 비정규직 파견을 썼다. 그 결과 대기업들은 막대한 이윤을 얻었다. 같은 일을 해도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절반 임금을 받고 차별적 대우를 받았다. 대법원 판결을 받고 여러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다시 말해 대법원에 판결내용에 압력을 가할 내용이 전혀 없다. 대법원 앞 문화제나 노숙은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숙농성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멀리 창원에서 오는 노동자들은 저녁에 선전전과 아침 선전전을 하고 지역으로 내려가야 그나마 멀리서 온 역할(보람)을 다했다. 그런데 대통령의 노숙농성 금지 한마디에 차별받고 착취 받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차단됐다.

 

대한민국은 군주제?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모든 게 바뀌다니

523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 후 건설노조의 12일 노숙농성을 강경 진압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이 노숙농성은 안 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집시법에 보장된 야간집회를 금지하겠다며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집회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야간집회 금지조항인 집시법 10조는 이미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광우병 의심 미국산 쇠고기반대 촛불집회(이하 2008촛불집회)가 밤새 이루어진 후인 2009년과 2014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바 있다. 헌법 제21조 제2항의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조항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4년 헌재는 "'일출시간 전, 일몰시간 후'라는 광범위하고 가변적인 시간대의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금지하는 것은 오늘날 직장인이나 학생들의 근무·학업 시간, 도시화·산업화가 진행된 현대사회의 생활형태 등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정도를 넘는 지나친 제한을 가하는 것이어서 최소침해성 및 법익균형성 원칙에 반한다"고 했다. 1962년 집시법 제정부터 48년간 존속했던 야간집회금지 조항이 헌재의 결정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헌재의 결정이 10년이나 지난 2013, 과거 퇴행적인 야간집회 금지를 하겠다 하니 대통령이나 여당인 국민의힘의 입장은 인권 퇴행적이 아니라 말할 수 있는가.

 

더 심각한 것은 대통령의 한마디에 경찰들의 조치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525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회에 대통령의 노숙 금지와 경찰의 강경대응 주문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아무리 대통령제라고 해도 법 집행 기관인 경찰은 대통령의 주문이 그동안의 경찰이 취해온 정책과 맞는지, 헌법과 실정법에 맞는지를 검토하고, 실제 집회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를 보고 판단하고 정책을 추진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러한 검토는 전혀 없이 경찰은 대통령 지시 바로 다음 날인 524일 집회주최자에게 노숙은 안 된다는 입장을 전했다. 군주제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그리고 525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회에서 경찰은 과잉 대응했다. 100명이 안 되는 사람들이 하는 문화제에 세 배가 넘는 경찰력을 동원해 강제 해산했다. 그들이 폭력을 사용한 것도 아니다. 그저 문화제를 하려 했을 뿐이다. 문화제는 집회신고 의무가 없기 때문에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도 경찰은 무리하게 문화제를 막으려고 법적 근거도 없이 음향방송차를 견인해갔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작은 음향기구로 문화제를 하는 노동자들을 강제로 해산했다. 2012년 대법원 판결에 따라 미신고집회일지라도 강제로 해산할 수 없음에도 경찰은 물리력을 사용했다.

 

경찰 해산훈련이라니! 백남기 농민의 사망을 우리는 기억한다

인권 후퇴적 상황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알아서 정권에 충성하는 경찰은 25일 경찰의 '불법집회 해산 및 검거 훈련'을 재개했다고 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이날 서울경찰청 산하 경찰기동대 9개 중대와 경기북부·인천·강원경찰청 소속 기동대 13개 중대가 불법집회 해산훈련에 투입됐다.

 

201511월 민중대회에 참가한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사망한 후 관련 훈련은 사라졌다. 유엔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도 이 문제에 대해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경찰 스스로 경찰의 인권기준을 뒤로 돌린 것이다.

 

백남기 농민의 사망사건은 경찰폭력의 심각성만이 아니라 박근혜 통치의 야만성을 상징한다. 백남기 농민의 사망사건은 아무리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제라고 하더라도 폭력적일 수 있음을 전 세계 시민에게 보여준 사건이다. 우리는 기억한다. 통치의 야만성이 국민의 생명을 앗아간다는 것을. 그것은 이미 이태원 참사에서도 드러났다. 경찰 해산훈련은 다시 과거의 야만 통치로 가겠다는 의미다.

 

정치의 실패를 집회시위 탄압으로 돌파하려는 정권

이렇게 윤석열 정부가 집회시위에 대한 강경 조치를 하는 이유는 정부 정책이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집회시위 탄압으로 만회하려는 것이다. 잘못된 정책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고 있다. 더는 못 살겠다고 거리로 나와 '제대로 된 정치를 하라'고 사람들이 외치고 있다. 이를 힘으로 해산한다고 물러나라는 외침이 사그라들겠는가.

 

이 정부는 물가폭등, 강제징용과 '일본군위안부' 등 인권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대일외교정책, 후쿠시마 방사능오염수를 방류하겠다는 일본에 동의하는 정책, 노동시간을 더 연장하겠다는 정책, 물가는 오르는데 최저임금은 안 올리겠다는 정책, 성차별 문제가 현존함에도 성평등 전담기구를 없애겠다는 정책 등으로 신음하고 있는 민중들의 목소리를 안 듣는다.

 

심지어 159명의 사람들이 이태원에서 희생되었음에도 대통령은 여태 공식 사과 한마디 없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사퇴하지도, 파면되지도 않았다. 정당한 노동자의 단체 협약을 '공갈협박'으로 몰아 과잉 수사하다가 건설노조의 양회동 열사가 사망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누가 집이나 일터에서 가만히 앉아있겠는가. 더구나 한국은 3권 분립국임에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가 의결한 양곡법 등을 막는 초헌법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니 국민의 원성을 낳을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으니 물러나라고 외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여러 번 언급했듯이 집회시위의 권리에는 '개인 인격 발현의 요소이자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요소라는 이중적 헌법적 기능'이 있다. 민주주의는 모름지기 사회구성원의 다양한 목소리가 들리고 이를 합의하고 평등을 구현하는 제도다. 권력자의 목소리에 따라 정책이 결정된다면 이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집회의 자유에 대한 탄압은 민주주의를 돌리기 위한 조치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통치의 문제, 정치의 실패를 집회시위를 탄압한다고 감출 수 없다. 인권의 역사가 그러했고, 박근혜 정권의 몰락이 보여줬다. 수많은 민중이 후퇴한 민주주의를 되돌리려고 거리로 나올 것이다. 전 세계 민중의 역사가 그러했듯이, 집회시위는 윤석열의 반노동, 반여성, 반민중 정치에 균열을 내는 송곳이다. 그렇게 잘못된 윤석열의 통치에 균열을 낼 것이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프레시안 2023.05.26.

 

 

윤석열 대통령이 외치는 자유, 누구의 자유인가

욕망(desire)이란 무엇인가?

욕구(need)는 생리적인 충동으로 무의식이 원하는 것이다. 요구(demand)는 사회적으로 약속된 기호나 상징, 언어를 통해 욕구를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언어는 욕구를 모두 반영하여 표현할 수는 없다.

 

라캉의 생각을 빌자면, 욕구(need)와 요구(demand)의 차이가 욕망이다. 욕망은 자연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것이다. 욕구는 수준(비교급)을 따르지 않지만, 욕망은 수준(비교급)에 반응하는 특성을 지닌다.

 

데이비드 흄은 이성은 욕망의 노예다라고 말한다. 뇌과학과 진화생물학에서 욕망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본성이라고 말한다. 생존과 직결된 욕망은 식욕, 배설욕, 수면욕, 휴식욕 등의 생리적인 욕망과 성욕, 모성욕, 과장욕 등의 번식과 관련된 생식적 욕망그리고 생존과 번식의 성공률을 높이는데 필요한 배타욕(영역 수호역), 공격욕, 도피욕 등의 생태적인 욕망과 인정욕, 공정욕, 지배욕, 복종욕, 경쟁욕, 표현욕 등의 사회적인 욕망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A, 매슬로우는 욕망의 5단계 위계를 말했는데, 생리적인 욕구를 시작으로, 안전, 소속, 존경, 자아실현의 욕구를 말하며, ‘인간 욕망은, 보다 나은 생존 여건의 확보를 위해 끊임없는 욕망을 추구한다.’라고 말했다. 매슬로우의 의견을 정돈해보면 인간의 욕망은 생존을 위한 것이며, 자연선택적 귀결로 형성된 진화의 산물이다.

 

이러한 욕망은 가치판단, 좋다 나쁘다’, ‘선이다 악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생존을 위해 가지는 자연스러운 본성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탐욕이다. 탐욕은 지나치게 탐하는 욕심이다.

 

그것은 모든 종교에서 로 말하고 있다. 가톨릭에서는 칠죄종(교만, 인색, 시기, 분노, 음욕, 탐욕, 나태)의 하나요, 불교에서도 탐진치 삼독(탐욕: 貪慾, 진에: 瞋恚, 우치:愚癡) 가운데 세상 모든 문제의 근원은 인간의 탐욕이라 말한다.

 

식욕, 색욕, 재물욕, 명예욕, 수면욕을 ‘5이라고 하는데, 인간 송사의 근원이 색욕, 재물욕, 명예욕 등 탐욕에서 출발한 노여움어리석음이라고 말한다. 가령 주가조작을 해서 부당한 이익을 얻는 행동이나, ‘양평 공흥지구 개발 비리 사건같은 것은 탐욕에서 비롯된 중죄이지만, 불의한 권력을 통해 이미 면죄부를 받았다. 언론이나 국민 정서법에 심각하게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뭐라 하는 사람도 기자들도 별로 없다.

 

고전 자유주의의 자유와 신자유주의의 자유는 다르다

돈과 자본은 다르다. 돈은 교환가치가치저장의 기능을 한다. 우리가 먹고 쓰는 돈들은 그저 돈이다. 그러나 자본은 돈을 벌어들이기 위한 돈이다. 돈을 벌기 위해 기계를 사고, 공장을 짓고, 물건을 만드는 돈은 더이상 단순한 돈이 아니라 자본이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사회는 자본주의’, ‘자유 시장경제사회라고 말한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300명 중 자본주의를 거부하거나 부정하는 의원은 단 한 명도 없다. 우리는 심각한 문제를 지닌 약탈적 자본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어쩔 수 없이 서로 인정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자본은 피도 눈물도 없어 이윤을 위해서라면 지옥문까지도 따라간다는 매정함을 가진 불한당(不汗黨: 불로 소득자)’이다.

 

그 가운데 금융자본21세기의 가장 지독한 불한당이다. 국부론의 저자 A. 스미스가 자본주의의 동력은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라고 말했다.

 

A. 스미스는 도덕(공정한 관찰자)’이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이기심(욕망)’이 허용되어야 하며, 자유 경쟁에 의한 자본의 축적과 분업(分業)의 발전이 생산력을 상승시켜 모든 사람의 복지를 증대시킨다고 주장했다.

 

여기서도 욕망은 인간이 살아가고 살아남기 위해 가지는 정신 활동이다. 문제는 욕망이 아니라 탐욕이었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손의 작동과 경쟁사회 안에서 도태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자본주의는 사회복지를 시작했다.

 

그러나 21세기 신자유주의의 상징인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는 공정한 경쟁을 위한 균등한 기회 보장, 끝간데 없는 경쟁의 자유를 주장했다. 결과나 조건의 평등을 추구하면 시장을 왜곡하고 자유를 침해하므로 사회정의란 무의미하다고 일축했다.

 

고전 자유주의가 경제적 자유를 위해 국가에 의한 감시를 전제했다면 시장의 감시 아래 있는 국가를 만들려 한 게 신자유주의다. 핵심은 피도 눈물도 없는 경쟁의 자유를 허락한 체계, 더 이상 약자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는 처절하고 비정한 자본의 자유 세계가 바로 신자유주의 세계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민영화를 외치며 공공의료와 중요한 사회간접자본 공항이나 철도, 고속도로, 수익이 많은 국가시설들을 제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외치는 자유는 누구의 자유인가

대한민국 대통령이 요즘 어디를 가나 목에 힘을 주고 외치는 자유는 전셋돈을 사기로 잃고 길바닥에 앉게 된 청년 가장의 자유가 아니요, 노조탄압에 항의하며 노동자들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분신한 양회동 열사의 자유도 아니며, 출산율 세계 최저, OECD 기준 노인 빈곤율 1, 자살률 1, 노동시간 2, 남녀 임금격차 1위를 기록 중인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의 자유도 아니었다.

 

그 자유는 가진 자들의 자유요, 권력자들의 자유요, 대장동에서 50억 원을 뇌물로 받아도 무죄가 되는 자유였다. 주가를 조작해도 수사나 구속이 되지 않는 자유요, 미국에다 반도체, 밧데리 사업 다 가져다 바쳤던 자유요. 후쿠시마 원전처리 오염수 바다에다 내다 버릴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한 자유다.

 

미국에 가서 국회에서 이**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팔려서 어떡하나말할 수 있었던 자유요, ‘바이든날리면이라고 바꿔치기 할 수도 있는 자유였다.

 

일제 전범기인 '욱일기'에 경례할 수 있는 자유요, 전범 기업들 배상금을 우리나라 기업들의 기부금으로 배상하는 변제안을 발표할 수 있는 자유요. “100년 전의 일을 가지고 무조건 무릎 꿇어라! 라고 하는 것을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망발할 수 있는 자유였다.

 

미국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실을 도청해도 터무니없는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요, 원전 한국시찰단을 보내 오염수 방류를 허용해 주는 자유가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유다. 그것은 사실 자유가 아니라 오만이며 방종이다.

 

왜 이런 중대 사안에는 침묵하던 기자들이 인천 구도심 송림동에서 잘 살고 있는 신부를 입질에 올려 불편하게 하는지 참 난감하다.

지성용 신부. 인천 송림동 성당 주임사제 시민언론 민들레 2023.05.27.

 

 

너희나 퍼마셔라"

지금의 60대 후반, 70대 이상이 어린 시절이었던 60여 년 전, 온 국민이 종종 내리는 비나 눈을 피해 다녀야 할 때가 있었다. 선생님들은 어린 우리들에게, 아마도 신문 방송에서도 그랬을 것 같은데, 미국의 핵실험이 있고 난 후 한참 동안은 비나 눈을 맞으며 쏘다니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미국이 남태평양 어느 섬에선가 핵실험을 하는데 그때 폭발과 함께 터져나온 방사능 낙진이 대기 중에 퍼져 있다가 기류를 타고 한반도에까지 와서 눈이나 비에 섞여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놈들아~ 그걸 많이 맞으면 머리털이 빠지고 살이 썩고 눈도 안 보이고 암 같은 병도 생기고 그래, 이놈들아~ 나중에 장가(시집) 가서 애 낳으면 이상한 애 낳기도 하고 그런대~ 할 수 없이 외출할 때도 꼭 우산 쓰고 다녀, 이놈들아~" 우리는 무서웠다.

 

'죽음의 재가 소환한 <토털 리콜> 식 미래

무지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한 윤석열 '3무 정권이 하는 꼴을 보니 일본의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투기를 도저히 막을 수 없을 듯하다. 이 지점에서 떠오른 오래된 기억이 바로 '죽음의 재라 부르기도 했던 핵폭탄 실험에 따른 방사능 낙진에 대한 공포인 것이다. 공기에 퍼져있든 바닷물에 녹아있든 플루토늄 자체가 '죽음의 재라는 것인데 후쿠시마 핵발전의 원료가 핵폭탄의 원료인 바로 그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섞은 것이었다고 한다. 당연히 그 오염수에도 플루토늄이 잔뜩 들어있을 터인데 이제 그 물을 무한정으로 바다에 버린다는 것이다. 비키니섬 상공의 공기가 늘 거기에 멈춰있는 것이 아니어서 방사능이 기류를 타고 전 지구를 덮을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후쿠시마 앞바다 바닷물 역시 한 군데서만 철썩이는 것이 아니어서 해류를 타고 우선은 우리나라 제주 앞바다로, 동해로, 서해로, 드디어 전 세계 바다로 퍼져나갈 판국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보고서에 이에 대한 어떤 지적도 하고 있지 않아 더 큰 불신을 초래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한다.

 

그러니 지금 온 나라가 방사능 공포에 떨고 있는 것이 60여 년 전 그때와 다를 것이 없다. 후쿠시마 오염수가 그때보다 더 두려운 것은 이것이 바다생물을 감염시켜 그중 일부가 우리들의 식탁에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방사능의 체내피폭이라는 것인데 그렇게 체내에 축적된 방사능 물질이 우리 자신의 몸에 이상을 일으킬 뿐 아니라 손상된 DNA를 통해 우리 후손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오래 전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주연한 영화 토탈 리콜의 한 장면- 젖가슴이 세 개 달린 여자, 머리통이 비정상적으로 큰 남자 등등 기형인들이 모여 사는 화성의 식민도시가 떠오른다.

 

솔직히 그럴 리야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전 세계 바닷물이 얼마나 많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생물이 얼마나 다양한데, 인간이 그중 일부를 먹고 간접 피폭될 정도로 후쿠시마 오염수가 독하단 말인가. 지구의 바닷물은 아예 독극물 자체를 풀어놓아도 충분히 해독할 만큼 넉넉하지 않을까? 일본 정부 대변하는데 필사적인 사람들이 "우리 원전에서 나오는 삼중수소만 해도 그 정도는 된다"며 거침없이 자뻑 발언을 서슴지 않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들이 태산처럼 떠받들 태세가 돼있는 IAEA 공식 보고서가 나오기도 전에 이럴 정도이니 자기들이 믿어 의심치 않는 과학적 데이터가 있음에 틀림없다. 그 과학적 데이터의 결론은 "변기의 물과 아리수의 성분은 똑같다."

 

'모르는 것에서 비롯되는 공포

60여 년 전에도 도대체 핵폭탄 실험에서 퍼져나온 방사능 낙진의 양이 얼마나 되길래, 그것이 공기 중에 뒤섞인 채 수십만 리 떨어진 한반도까지 날아올 확률이 얼마나 되길래, 그것이 비나 눈에 섞여 지상으로 낙하할 때 그 농도가 얼마큼이나 되길래, 그걸 얼마나 맞아야 몸에 이상이 생길 만큼 피폭이 되길래 등등 나름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하며 뭇사람들의 무조건적인 무섬증을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들조차도 우산 없이 비나 눈 맞는 것을 즐겨 했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공포는 합리적 이성의 작동이 아니라 모르는 것에 대한 정서적 반응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소처럼 눈과 비를 반갑게 맞을 수 있었던 것은 과학적 설명에 설득된 후가 아니라 미국이 지상 핵폭탄 실험을 더 이상 하지 않으면서부터다.

 

그러나 과학이 귀신을 몰아냈듯이, 데이터나 확률이 포함된 과학이 우리가 모르는 것을 깨닫게 해 주고 공포스러운 대상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을 해소시켜 주는 역할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문제 관련 일본 정부를 대변하는 듯한 한국 정부와 여당이 과학을 동원하려면 더욱 철저하고 세심했어야 했다. 핵폭탄 실험은 1회적이지만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 문제는 적어도 몇십 년, 몇백 년에 걸쳐 녹아내린 핵연료를 식히기 위해 매일 냉각수를 퍼부어야 하고, 여기에 원전 건물로 흘러든 지하수, 빗물까지 녹아내린 핵연료와 만나 생성된 고독성의 오염수까지 지속해서 바다에 흘리는, 언제가 끝일지 모르는 초장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후쿠시마(오염수)시찰단은 국민을 과학으로 설득하려는 바로 그런 의도의 일환으로 꾸려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지난 한 주 시찰단이 벌이는 '버라이어티 쇼를 보면서 한일 양국 정부는 말로만 과학을 내세우지, 실제로 한국 국민을 '과학적으로 설득하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부랴부랴 시찰단을 꾸린 이유가 설사 오염수의 실태를 검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염수 실태와 상관없이 한국 국민을 설득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무엇보다 그 전문성과 투명성, 그것을 따라오게 마련인 신뢰성이 핵심인데 이들이 도대체 현장에서 이틀간 무슨 짓을 하고 돌아왔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육하원칙으로 물어보는 '후쿠시마 (오염수) 시찰단

기자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육하원칙이란 것이 있다. 누가 Who, 언제 When, 어디서 Where, 무엇을 What, 어떻게 How, Why, 기자들이 기사를 쓸 때 반드시 지켜야 할 6가지 필수 요소를 말한다. 그런데 이중 단 하나만 빠져도 사건은 모호해지고 정체는 불분명해지며 당연히 기사는 불합격이다. 언론은 '후쿠시마(오염수)시찰단이 꾸려질 때부터 관심을 갖고, 시찰단이란 명칭에서부터 구성과 활동 계획 등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일부 언론은 현지에 기자까지 파견했다. 그러나 시찰단은 언론의 '육하원칙을 철저히 무시했다. 우선 누가, 무엇을, 어떻게가 '관광버스창문의 베일에 가려진 것처럼 깜깜이다.

 

'누가 Who’ 갔는지를 전혀 알 수가 없다. 시찰단 단장만(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노출됐을 뿐 20명에 이른다는 다른 위원들은 철저히 숨겨져 있다. 이 사람들이 정말 최고 수준의 과학자이고 핵 전문가인지, 생리학자 생물학자 등도 포함됐는지 검증이 불가능하다. '무엇을 What’ 했는지 불확실하다. 방류할 오염수가 안전하게 처리되어 있는지, ALPS 등 처리 설비들의 성능이 어떤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검증하고 왔는지, 그저 어디에 어떤 설비가 있는지를 구경만 하고 왔는지 알 수가 없다. '어떻게 How’도 마찬가지다. 시찰단이 필요한 시료나 자료를 요청했다거나 일본 측이 제공했다는 소리는 전혀 없다. 그저 "'도쿄전력이 잘 설명해 줄 것이다"라는 말밖에 들리지 않는다. '도쿄전력은 검증을 받아야 할 대상인데 그들이 설명을 제대로 해 주었을까?

 

G7 회담이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시찰단이 꾸려졌다는 점과 방대한 오염수가 제대로 처리됐는지를 검증하는데 단 이틀이란 시간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언제 When’도 문제가 있다. 그저 창을 가린 버스를 타고 후쿠시마 일대를 돌아다녔다는 정도의 '어디서 Where’만 분명하다. 그렇다면 시찰단이 'Why’ 다급히 꾸려져 거기에 갔느냐는 물음에도 의문부호만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러고도 일본 관계자들은 "한국에서 이해가 깊어질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후쿠시마 산) 수입물 제한 해제 조치를 요청하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호구가 되니 온 국민이 덩달아 호구로 취급당하는 '느낌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렇게 후쿠시마 핵 오염수에 대한 공포와 정부의 모호한 태도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팽배한 상황임에도 과연 핵 오염수 투기를 용인하고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을 받아들일 것인가. 그리고 국민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나는 이명박 정권 초기를 흔들어 놓았던 '광우병 사태를 되돌아봄으로써 후쿠시마 핵 오염수 전개 과정을 미리 내다 볼 수 있다고 자신한다. 당시 국민들은 단순히 미국산 소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낮다는 정부의 과학적 설명에 설득되지 않았기 때문에 촛불을 든 것이 아니다. 부시의 골프차를 몰며 골프를 친 대가로, 미국인들이 내다 버리는 30개월령 이상 소고기를 들여오는 데 대한 굴욕감과, '값싸고 질 좋은소고기를 마음껏 먹게 됐다고 떠들어 대는 작태에 대한 분노 때문에 유모차를 끌고 길거리로 나섰던 것이다.

 

그때에도 정부 여당 사람들은 광장에서 미국산 소고기 스테이크 먹는 쇼를 했었고, 사람들은 "그래, 미국산 소고기 너희나 실컷 먹어라!"고 했다. 이제 후쿠시마 핵 처리수도 "너희나 실컷 퍼 마셔라!"

강기석 민들레 상임고문 시민언론 민들레 2023.05.27.

 

 

기후위기의 우울과 희망

작은 대화모임에서 한 분이 기후위기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평생 여성운동가로 살아온 그분은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해 일할 때는 투지가 생겼는데 기후위기는 현실을 알고 숫자를 들여다볼수록 무력감을 준다고 했다. 마침 그 자리에 생태심리학 전문가도 있었기에 기후우울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우울은 잠을 못 자거나 의욕이 떨어지는 형태로도, 마음이 조급하거나 쉬지 않고 무언가 계속하는 형태로도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눈 모임의 참가자 대부분이 중장년 여성이었고 우리는 젊은 세대가 주로 겪는다는 기후우울에 전염됐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달 초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2023~2042)이 나온 이후 기후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무력감에 빠졌다. 파리기후협약에 따라 국가별 감축 목표를 정하는 등 사회적 인식이 바뀌던 시기(2021)에 제정된 기본법에 따라 처음 나온 로드맵이다. 기본법 자체도 녹색성장을 내세워 비판이 많았지만, 기본계획은 알맹이가 달라졌다. 산업부문 감축량을 14.5%에서 11.5%로 줄여주고, 현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률은 25%로 하면서 다음 정부에 75%를 넘겼으며,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30.2%에서 21.5%로 낮춘 대신 원전 비중은 23.4%에서 32.4%로 높였다. 이어 탈원전, 이념적 환경정책에 매몰돼 새 국정 기조를 맞추지 않으면 과감한 인사 조치를 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가 나왔다. 그러니 후쿠시마 방류수 허용 움직임은 당연한 일이다. 방류수의 안전을 주장해야 국내에서 원자력을 늘릴 명분이 생긴다.

 

희망은 없을까? 그렇지 않다. 그 한 사례가 기후소송에서의 잇단 승리이다. 현재 진행 중인 기후소송은 6건이다. 기본법이 규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국민의 기본권, 특히 미래세대의 생존권 보호에 미흡하다는 내용으로 헌법재판소에 제기된 헌법소원심판이 3(2020년 청소년 기후소송, 2021년 진보정당과 시민단체 기후소송, 2022년 아기 기후소송)이고, 2021년 기후활동가들의 직접행동으로 인한 형사소송이 3(가덕도 신공항 추진에 반발해 더불어민주당사 진입,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 국제포럼장에서 성명서 낭독, 두산중공업 본사 론사인에 녹색 페인트 투척)이다. 헌법재판소는 길게는 3년간 판단을 미루고 있지만, 3건의 형사소송은 전향적 판결이 나왔다. 청년활동가 2명에게 184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두산중공업의 청구는 기각됐고, 더불어민주당사, 포스코 사건 역시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하며 기소보다 낮은 벌금형이 선고됐다.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 법원은 행정부보다 낫다. (현 정부의 폭주를 막기 위해 헌법재판소의 결단을 기대한다!)

 

역설적으로 시간은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만든다. 정해진 시간에 못 줄이면 변곡점을 넘는다는 게 시간이 주는 두려움 내지 무력감이지만, 거꾸로 시간은 변화를 만든다. 그레타 툰베리의 기후우울에 전염돼 거리로 나섰던 청소년들은 청년으로 성장했다.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에 비하면 별거 아니라고 할지 몰라도, 스펙을 포기한 채 전과자가 된 기후활동가들이 성숙해지면서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미래를 모색하는 모습 역시 뚜렷하다. 부모와 조부모 세대인 중장년의 가슴앓이도 시작됐다.

 

마음을 넘어 영성이 등장하는 기미 역시 느껴진다. 인공지능과 우주여행 시대에 웬 영성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영성이 분명하다. 영성은 정의하기 어려운 것으로 유명한데(중첩되지 않는 영성의 27가지 정의가 있다고 한다) 그 공통적인 요소는 더 넓은 경험의 영역을 만들고 삶의 깊은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며 인간의 전망을 넓히는 것이다. 동물의 슬픔을 알아채는 이들, 쓰레기로 버려진 식물을 구조하고 팔다리가 잘린 가로수를 지키는 이들은 비인간 존재들과 소통한다는 점에서 분명 영성을 가진다. ‘지구는 자기조절을 하는 가이아’ ‘인간은 지구의 마음이라는 말들이 자연스레 오가는 것 역시 영성의 증거라 여겨진다.

 

처음 소개한 대화는 결국 희망으로 마무리됐다. 기후위기가 처음 의제가 된 30년 전 예상대로라면 인류는 지금 멸망했어야 한다. 그런데 생각만큼 나쁘지는 않다. 지구의 자기조절 덕분일 수도, 인간의 영성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희망이 있다. 희망은 목표를 바라보면 절대 나오지 않는다. 높은 산을 오를 때 정상을 바라보면 절망뿐이다. 바로 다음 발자국을 떼어놓을 때 희망이 생긴다.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다는 마음으로 조금씩 관심을 갖고 실천하는 이들은 분명 늘고 있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경향 2023.05.27.

 

 

군축으로 기후정의 희망제시할 지도자는 없는가

외계인보다 무서운 인류의 적

“62년 전 존 에프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바로 이곳에서 핵무기가 인류를 끝장내기 전에 인류가 핵무기를 없애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이제는 기후위기가 인류를 끝장내기 전에 인류가 기후재앙을 막아야 합니다. 35년 전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이곳에서 어떤 나라가 불안하다고 느끼면 다른 나라도 결코 안전해질 수 없다는 취지로 연설하면서 이를 신사고라고 불렀습니다. 이제는 기후환경이 안전해지지 않으면 인류도 결코 안전해질 수 없는 시대입니다. 모든 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기후변화를 그 중심에 둘 수 있는 지구적 차원의 신사고가 절박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사고는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을 비롯한 지구촌의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지도자들에게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는 바이기도 합니다.

 

저는 특히 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군비경쟁과 기후위기의 관계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군사 활동은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세계 군사비는 기후위기 대처에 필요한 소중한 자원을 앗아가고 있습니다. 강대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서로를 적이나 위협으로 간주하면서 기후위기 대처를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국제협력도 뒷전으로 밀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지구에 있는 나라들이 서로 다투다가도 외계인이 침공하면 지구를 구하기 위해 모든 나라가 힘을 합쳐 외계인에 맞서 싸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류의 공동의 적은 무엇일까요? 누구도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기후위기라는 점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여 이 시대에 절박하게 요구되는 신사고는 군비경쟁과 기후위기의 악순환을 끊고 군비 축소를 통해 평화 증진과 기후정의 실현의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데 두어야 합니다. 갈수록 거주 불능의 땅이 되어가고 있는 지구를 둘러싼 허망하고도 위험한 경쟁을 멈추고 인류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삶의 터전인 지구를 살리는 데에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들부터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미국·중국·영국·프랑스·러시아로 구성된 상임이사국들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라 공식적인 핵보유국이라는 특권을 누려왔습니다. 동시에 상임이사국들은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해야 할 책임을 부여받았습니다. 이러한 특권과 책임이야말로 상임이사국들이 군비 축소를 통해 평화와 기후정의 실현에 솔선수범할 수 있는 현실적·도덕적 기반이 되어야 하고, 또 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출발 테이프를 끊겠습니다. 먼저 점차적으로 군사 훈련을 줄여 탄소 배출을 감축할 것입니다. 또 군수 산업체를 신재생에너지를 비롯한 민수 산업체로 전환하면서도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정의로운 전환을 추진할 것입니다. 국방비 감축을 통해 절약한 자원을 탄소 중립과 기후변화 적응에 사용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개발도상국들의 탄소 중립화 노력을 적극 지원할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도 이에 적극 동참해 지구적 차원의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혹자는 군축이 기후위기 대처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고 반문합니다. 저 역시 군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동시에 군축이 탄소 배출 저감, 기후위기 대응 재원 증대, 국제협력의 본격화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기여는 바로 희망 만들기에 있습니다. 냉전 시대에 그나마 불안한 평화라도 지켰던 여러 군축 조약들은 신기루처럼 사라졌습니다. 또 거의 모든 나라가 군비 증강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군축은 불가능하다고들 합니다. 심지어 군축을 제안하거나 추진하는 지도자는 자국에서 여론의 지지도 받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군축의 종말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절망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기후재앙을 막을 수 없다는 비관론이 지구촌을 배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가능해 보인다는 군축을 통해 희망의 근거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미국, 전세계 군사비 39% 차지

베이징에 가면서 미국과 전략 경쟁에 여념이 없는 중국의 전문가들과 무슨 얘기를 나눌까 고민해봤다. 최근 전해진 두 가지 뉴스는 그들을 상대로 탐색적 대화에 나서보겠다는 결심을 굳게 만들어줬다.

 

하나는 2022년 세계 군사비가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는 소식이다. 스웨덴의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올해 423일에 공개한 ‘2022년 세계 군비 지출 동향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전세계 군비 지출 규모는 전년도보다 실질 증가율로 3.7% 늘어난 22400억달러(2982조원)를 기록했다. 2022년 화폐가치 기준으로 환산해도 냉전 시대 군비경쟁이 절정에 달했던 1980년대 중반보다도 약 6500억달러 늘어난 수치다. 이 가운데 미국은 작년에 무려 8770억달러를 군사비로 써 세계 군사비의 39%를 차지했다.

 

또 하나는 향후 5년 안에 지구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상 상승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소식이다. 세계기상기구(WMO)가 지난 17일 보고서에서 이럴 가능성이 66%라고 밝혔다. 앞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지구 온도 상승이 1.5도를 초과하면 50년 빈도의 극한 폭염은 과거보다 8.6, 폭우는 1.5, 가뭄은 2배 잦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세계 도처의 이상기후 뉴스로도 경고는 이미 입증되고 있다.

 

이 두 가지 문제를 함께 봐야 한다는 게 필자의 지론이다. 베이징에서 만난 전문가들에게 세계 시민과 많은 나라들은 중국이든 미국이든 그 어떤 나라든 군비 축소를 통해 세계 평화와 기후정의 실현을 주창하고 주도하는 나라에 베팅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시민도 최근 역대급 황사와 폭염으로 고통받고 있었던 탓일까? 중국의 전문가들도 의외로 관심을 보였고 앞으로도 계속 소통하자고 화답했다.

 

매년 9월에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각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총회가 열린다. 62년 전 케네디는 핵무기를 다모클레스의 칼’(권좌의 천장에 매달려 있는 칼)에 비유하면서 핵군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35년 전 고르바초프는 소련부터 군축에 나서겠다고 선언해 냉전 종식을 향한 대문을 활짝 열었다. 올해는 누가 나설까? ‘흑묘백묘의 심정으로 물어본다.

한겨레평화연구소장 정욱식 한겨레 2023.05.27.

 

'권위주의' 윤석열 정부, '스핀 독재' 시대가 도래했다

'법 기술자'들의 정부,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 가능한 가장 지독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지난 38일부터 재편되기 시작한 여당은 윤석열 정부 '시즌 2'를 예고하며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했고, 4월 원내지도부가 출범하면서 새로운 진용을 완성시켰다. '친윤 강경파'로 평가되는 여당 지도부가 제일 먼저 착수한 것은 언론 길들이기와 집회시위 봉쇄다. '정권 반대파'의 말과 행동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걸 가장 시급하게 느낀 것이라 해석할 수 있겠다.

 

경찰은 25일부터 다음달 12일까지 집회 강제 해산과 검거 훈련에 돌입한다. 민주노총이 정부를 상대로 '1월 총파업'을 결의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 훈련이 목표하는 건 자명해 보인다.경찰청은 훈련 계획을 공지하며 "모든 기동대원의 정신 재무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흡사 전쟁을 앞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과거 정부가 불법 시위에 대해서도 법 집행 발동을 사실상 포기했다"일갈한것과맥이같다.

 

나아가 정부 여당은 24'불법 시위 전력이 있는 단체', '공공 안녕 위협이 명백한 경우' 등에는 집회·시위를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불법시위전력이있는단체의 경우는 집회신고를받지않을 수 있게 하겠다는것이다. 남은 것은 '불법 시위 전력'이 있는 단체를 분류하고 집회 시위 면허증을 박탈하는 일이다. 역시 민주노총은 시험 적용의모범적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야간 문화제를 빙자한 편법 집회를 규제한다고도 했다.박대출 정책위의장은 "12시부터 오전 6시까지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구상을 소급해 적용하면 박근혜 정부 시절 "정부가 법집행 발동을 포기한"촛불집회는 죄다 불법이 된다.

 

윤 대통령의 충실한 심복인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라는 것이 다른 동료 시민들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경우에까지 보장돼야 하는 절대적인 권리는 아니지 않느냐"는 말까지 했다.

 

집회시위 봉쇄와 함께, 언론 길들이기에도나섰다. 박대출 정책위의장과 박성중 의원이 총대를 멨다. 그들은 포털에 '윤석열'을 검색한 걸 근거로 포털 언론 환경이 온통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비판 기사'에 점령당했다고 진단했다. 언론이 편파적이니윤 대통령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여당의 압박에 네이버는 포털제휴평가위원회(제평위)사실상공중분해했다.빠른압박,빠른반응이다. 여기에 나아가 방송통신위원장은 수사를 받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물갈이 해 KBSMBC 사장 인사에 정권이 관여하려 한다는 시나리오는 여의도에서 더이상 비밀은 아니다. 방통위원장에검사 출신이 들어올 수 있다는 말도 들린다.

 

모든것은'엄정한법집행'따른것이며,치의불법도없다고정부여당은주장하고있다.

 

우리가 하는 흔한 착각은 '지금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도 아닌데'라는 말이다.물론 윤석열정부와이승만·박정희·전두환독재정부를단순비교하는무의미한일이지만,유사성을찾아내는무의미하지않은일이다.

 

민주주의를 제약하는 건 30년 전 독재 시절에만 나타나는 일이 아니다. 오늘날의 권위주의 정치는 복합적인 방식으로 진화했다. 주로 포퓰리즘과 결합된 형태로 '''국민'의 이름을 빌려서 자주나타난다.

 

최근 <포린폴리시>에 소개된 책 <스핀 독재자들>(Spin dictators, Sergei Guriev and Daniel Treisman)'공포 독재'와 구분되는 '스핀 독재' 개념을 제시한다. '스핀 닥터(정치홍보전문가를 일컫는 말)'에서 따온 말인 '스핀 독재'는 과거 무력을 주로 사용하는 권위주의와 달리, 정교한 홍보 전략, 메시지 등을 통해 사람들을 따르게 만들거나 산만하게 만들고 법적 수단을 동원해 반대파를 위축시키는 걸 특징으로 한다. 이 책에는 새로운 형태의 이런 권위주의의 선구자로 1959년부터 1990년까지 총리를 지낸 싱가포르의 리콴유를 꼽는다. 그는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의 외피를 유지했지만, 야당 인사들을 체포하는 대신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제기하고, 이런 방식으로 '전과'를 달게 된 반대파들이 공직에나설 수 있는 길을 차단해 왔다. 이를테면 특정 집단의 집회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하면 그 집단은 '불법 집단'이 되고, '불법 집단'이 되면 다양한 방식의 '권리 박탈'이 이어진다. '권위주의'의 고도화다.   

 

한국은아직이런'싱가포르모델'에서벗어나지못한나라인 것 같다. 상징적인 사례가 있다.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5년 타계한 싱가포르 리콴유 전 총리의 장례식 참석을 위해 무리하게 일정을 조정한 것이 주목을 받았었다. 반면 불과 6개월 전 타계했던 전 세계 민주주의의 상징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장례식장에 그는참석하지 않았다. 박권일의 말대로 한국은 여전히 '싱가포르 판타지'에 사로잡힌 나라일 수 있다.

 

<스핀 독재자들>에서 내세우는개념은 주로 푸틴, 시진핑 등을 비판하는 데 사용되긴 하지만, 리콴유의 '싱가포르 모델'과 같은 행태가 교묘히 은폐된 '권위주의 독재 체제'라는 점을 폭로하기도 한다. 여기에, 7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지난 2월 튀르키예 대지진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과 건축물 부실 규제 문제 등 온갖 악재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대통령 당선을 눈앞에 둔 에르도안 대통령도 전형적인 '스핀 독재자'의 유형으로 꼽을 수 있겠다. 저자들에 따르면 '공포 독재' 유형은 1970년대 전체 독재 지도자 집단의 60%를 차지했다가 2000년 이후 10% 미만으로 감소했으나, 그와 함께 '스핀 독재'의 비율은 13%에서 53%로 증가했다고 분석한다.

 

한국과 같이 민주주의가 일정 수준을 달성한 나라에서 에르도안이나 푸틴, 시진핑을 윤석열 대통령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의 수법이 놀랄만큼 유사하다는 점이다. 영국의 보리스 존슨 전 총리나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스핀 독재자'의 특성들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된다. 그들은 '음모론'을 들이밀고 '대안적 사실'이란 말을 만들어내 지지자들을 추동하고, 법적 권한 내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권위주의적 방식의 정책을 편다. 트럼프는 '법적 테두리'를 벗어난 지지자들의 의회 폭동을 부추겨놓고 자신은 아무런 불법적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스핀 독재'는 교묘해지고 있다.

 

안타깝지만 윤석열 대통령도 이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권위주의의 역시 디지털 시대의 외피를 입고, 민주주의의 제도 틀을 해치지 않은 수준에서 '재량'을 극대화 하는 방식을 택한다. '법 기술자' 출신답게 윤 대통령은 여당의 주장처럼 헌법과 현행 법을 단 한글자도 고치지 않고 야간 집회를 '심리적'으로 '사실상' 금지할 수 있는 방안을 반드시 고안해 낼 것이다. 그들이 가장 잘 하는 게 바로 그런 일이니까.

 

얀 베르너 뮐러 프린스턴 대학교 정치학 교수는 20<포린폴리시> 기고글을 통해 포퓰리스트의 특성을 짚었다.

 

"포퓰리스트는 자신들만이 '진짜 국민'을 대표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포퓰리스트들이 끊임없이 암시하듯이, 다른 모든 정치인은 근본적으로 부패하기 때문에 다른 모든 권력의 경쟁자들은 국민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포퓰리스트는 단순히 권력자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특정 타자를 배제하려고 한다. 2014(대통령 선거에 나선 튀르키예의) 에르도안은 당 대회에서 자신과 자신의 당을 향해 '우리가 국민이다'라고 주장한 후 비평가들을 향해 이렇게 물었다. '당신들은 누구인가?'"

 

국민을 대표할 독점권이 있다는 주장. 윤석열 정부와 여당에서도 이런 위험한 모습이 보인다. '진짜 국민'이 아닌 사람들은 국가를 해하려는 자들이고 국익을 저해하는 자들이며, '진짜 국민'의 안락함을 방해하려는 세력이다. 갈라치기다. 윤 대통령은 기업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중소기업인 77%가 현 정부의 정책에 만족한다는 여론조사를 접하고 "그게 진짜 지지율"이라고 했고, 동시에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강제동원 해법을 밀어붙이며 "지지율 1%가 나와도 상관 없다"고 했다. 이 두 발언 사이 어디 쯤에 윤석열 대통령 인식의 좌표가 표류하고 있는 셈이다.현실과인식의간극은 크다. 99%반대파를 상정하고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77%지지파가 있다는 말에 힘을 얻는다.혼란스럽다. 누가 '선수는 전광판을 보지 않는다'고 했던가.

 

낮은 지지율에 허덕이던 정부 여당은 강압적 통치 기제를 작동시키고 '스핀 독재'와 포퓰리스트 전략을 배합해 차용한 것처럼 보인다. 이 모든 것은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가장 지독한 형태가 될 것이다. '법 기술자'들의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해법'들이도출될것이고,그러는와중에'윤석열의국민'아닌국민들은 스스로의'자유'수호하기위해힘든여정에나서게것이다.권위주의는사라지지않는다.단지진화할뿐이다.윤석열정부가그걸보여주고있다.

박세열 기자 프레시안 2023.05.27.

 

 

 

한국의 트럼프와 추종자들은 다양성이 위험하다고 말한다

트럼프가 금지시킨 다양성훈련

2020,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도널드 트럼프는 다양성훈련을 위험한 교육으로 지목하며 다양성훈련 금지 명령을 했다. 트럼프는 이미 미국사회에 성차별과 인종차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다양성훈련은 반미 정치선동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분열조장 개념 교육이라고 주장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주민을 차별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당선이 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주민에 대한 구조적인 차별과 폭력을 없애야 한다는 다양성훈련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는 미국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를 가속화시켰다. 트럼프는 블루컬러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가난하게 된 이유가 미국을 떠난 기업과 아시아인들이 고소득 직업군(의사, 과학자, 엔지니어, 회계사 등) 일자리를 뺏고 있는 것에 있다고 주장했다. 실업과 빈곤은 이주민들의 탓이 아님에도 이는 아주 잘 먹혔다. 근본적인 문제를 발견하고 제대로 된 해결을 하기 위한 노력은 이해를 시키기도 어렵고 실제 해결도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손쉬운 소수자 탓하기가 정치적으로도 이용하기 용이하기 때문에 트럼프는 이를 적극 활용했다. 그리고 근본적인 문제인 저비용으로 노동력을 착취하고자 하는 자본주의의 작동과 분배의 실패, 경제력에 따른 차별을 철저하게 숨겨졌다. 그리고 블루컬러 백인 노동자는 근본적인 문제인 경제구조와 분배의 실패가 아닌,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고 을들의 전쟁이라고도 불릴 수 있는 손쉬운 소수자 탓하기를 선택하면서 진짜 문제의 해결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지지자들의 표가 움직이며 트럼프가 당선되도록 만들었다.

 

소수자 존재 자체를 범죄로 여기는 사람들

근본적인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할 의지가 없기로는 한국 사회도 못지 않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만 하더라도, 당시 경찰은 이 사건을 정신질환과 공용화장실을 원인으로 발표했다. 이는 정신장애인 존재 자체가 잠재범죄자인 마냥 낙인을 강화했고, 진짜 필요한 모두에게 안전한 화장실에 대한 상상을 불가능하게 했다. 동시에 그 어디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하는 페미사이드와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이야기는 없었다. 이 문제는 그들이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없기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경찰 뿐 아니라 정치인도 동일했다.

 

그리고 2022, 한국도 트럼프식 정치로 당선이 된 정권이 탄생했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와 이준석 당시 당대표는 더 이상 여성에 대한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며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 억압, 폭력을 부인하고 당선됐다. 트럼프는 이주민에 대한 차별이 그의 혐오정치의 핵심이었다면 한국은 여성이 가장 핵심 타겟이었으며 그 다음이 장애인, 노동자, 이주민, 성소수자 등이었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도 다양성훈련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물론 이미 수 년 전부터 내 이름이나 한국다양성연구소의 단체명을 검색해서 이런 사람을 불러서 교육하지 말라며 민원을 넣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민원들의 내용은 늘 같았는데 성평등, 성소수자, 이주민, 난민, 무슬림을 다루는 김지학 씨를 부르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백래시 민원은 7~8년부터 시작됐고 그동안 늘 지속돼 왔지만 최근 그 양상과 정도가 이전보다 훨씬 과감해졌다. ‘혐오에 권력이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차별에 대해 말하는 것, 페미니즘, 성소수자, 무슬림 등을 언급하는 것 자체를 문제삼으며 사상강제주입이라는 주장을 한다. 소수자 존재 자체를 범죄쯤으로 여기며, 차별이라는 범죄를 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사상’ ‘강제’ ‘주입이라는 참 옛스러운 말은, 마치 오랜 냉전구도 속에서 이념전쟁을 치르며 공공의 적을 만들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했던 적이 필요한 사람들의 익숙한 플로우가 느껴지기도 한다.

 

누구의 인권은 빼고

얼마 전 한국다양성연구소의 사업으로 한 고등학교에서 약 3시간씩 이틀 동안 다양성훈련을 진행했다. 이 사업이 수행된 이후 혐오세력이라 불리는 이들의 민원은 학교, 교육청, 교육부, 시의회, 시청, 국민신문고 등에 2주일 이상 지속되고 있다. 차별금지를 반대하고, 차별할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과거 노동자 계급(프롤레탈리아), 흑인, 장애인, 여성, 어린이가 배제되었던 자본가 계급(부르주아), 백인, 비장애인, 성인, 남성 중심의 부끄러운 인권의 역사를 배움으로 삼지 않는다. 여전히 누구의 인권은 빼고라는 사고방식이 스스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 여긴다.

 

여성이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사람이라며 투표권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시절처럼, 동일한 방식으로 또다른 소수자를 계속해 억압한다. 사회적 다수자를 위한 그들만의 자유민주주의정치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억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진짜 문제를 외면하는 손쉬운 혐오정치

그럼에도 트럼프 정치가 그랬듯, 윤석열의 차별정치와 다양성훈련에 대한 억압이 힘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이주민들이 당신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하기에는 이주민들이 종사하는 직업이 3D 업종에 치우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주민이 당신의 일자리를 뺏는다고 하기에는 극단을 치닫고 있는 자본주의의 모습을 숨기기가 어렵다.

 

이주민에 대한 비난으로는 자본가들과 정치인들의 욕심과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가려지지 않는다. 이때문에 여성을 첫 번째 타겟으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업과 빈곤을 걱정하는 남성들의 분노를 이용하는 전략은 동일했다. 그래서 그들은 여성들은 어려서부터 남성들보다 똑똑하고 공부도 잘하는데 남성들은 군대까지 갔다 와서 머리도 굳고 여성들보다 공부할 시간도 적으니 여성들이 시험을 더 잘 잘 보니 남성들의 일자리를 뺏아가고 있다는 식의 프레임(생각의 틀)을 만들어 주어 근본적인 문제가 어디서 파악하지 못하고 결국 근본적인 해결책도 찾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주민들은 선주민들의 일자리를 뺏고 난민들은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한국에 오는 위험한 사람들로 만든다. 이주민과 난민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 중 무슬림은 이미 서양국가들에 의해 만들어 진 낙인과 편견을 이용해 테러리스트나 강간범이 될 사람들이라고 부르며 그들을 향한 낙인과 편견을 유지, 강화, 조장한다.

 

케네디가 주목한 다양성교육

한국 사회에서 다양성훈련은 여전히 생소하고 8년 전 한국다양성연구소가 시작한 이후 여전히 한국 다양성연구소와 같은 형태의 다양성훈련을 진행하는 기관은 없는 상황이지만, 미국 사회에서의 다양성 훈련의 역사는 꽤 길다. 인종, 성별, 종교에 대한 억압, 차별, 폭력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시간이 더 길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을 시작한 역사도 더 길기 때문이다.

 

1961, 복지국가 건설과 흑인인권의 신장, 냉전 완화에 노력을 기울여 많은 지지를 받았던 미국의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은 NCCJ(다양성훈련기관)이 조화로운 나라를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발언했고 이는 다양성훈련이 사회적으로 더 크게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오랜 기간동안 다양성훈련은 국가기관, 즉 공무원들에게 필수 교육으로 제공되기도 하고 대학들에서는 1학년 1학기에 필수 교양 과목으로 학생들에게 다양성훈련을 제공하는 학교도 있는 등 사회 전반에 널리 퍼졌다.

 

한국다양성연구소는 이러한 미국에서 발전해온 다양성훈련을 바탕으로 한국사회 현실에 맞게 재구성하고 제공하고 있다. 한국다양성연구소의 다양성훈련의 첫 번째 특징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수많은 사회적 정체성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상호 작용을 하는지 알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다양한 정체성을 함께 다룬다는 점이다.

 

이주민, 난민,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어린이, 청소년, 노인, 저학력, 저학벌, 저소득, 비정규직, 획일적 미적 기준, 가족의 형태 등에 의한 억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누구나 안전하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시민이 될 수 있는 연습을 함께하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근본적인 연결되어 있는 차별의 구조를 이해하고, 자신을 비롯해 이주민 난민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관점을 재정립하고 자신의 역할을 탐색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렇게 공동체의 변화를 이끄는 리더로 초대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주입아닌 능동적 과정

그리고 다양성훈련은 게임, 활동, 대화를 통해 느끼게 된 감정과 발견하게 된 사실을 대화를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배운다는 것이 두 번째 특징이다. 일방적으로, 주입식으로, 강연식으로 가르치는 방식으로 진행하지 않는다. 이렇게 경험을 통해 느끼고 깨닫게 되면 그 학습은 자신의 것이 된다.

 

이런 교수법은 백래시 집단에서 주장하는 사상강제주입이라는게 불가능하다. 애초 주입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사회화 과정에서 주입된 생각을 당연하다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체험형 활동과 서로배움을 통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권력이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그 결과 만들어진 차별과 억압이 누군가의 삶을 망가뜨릴 수 있는지, 자기자신을 어떻게 억압하는지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다.

 

미국도 마찬가지지만, 효율을 중요하게 여겨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육을 목적으로 장시간 반복적으로 만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단시간 짧게 만날 때 한계가 발생하고는 있다. 그럼에도 여러 단계를 나누어 장시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누군가가 경험하는 차별이 당연하다, 자연스럽다,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 차별과 억압이 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해하는 과정, 아래서부터의 변화를 만드는 가능성은 바로 다양성훈련에서 진행된다.

 

다양성훈련은 연결되어 있는 차별을 인지하고,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권력구조를 이해하며, 자신과 우리 모두를 위해서 억압을 해체하는 주체로 초대하는 반억압 작업이다. 사회적 소수자들이 경험하는 사회적 정체성에 대한 억압과 폭력을 이야기하며, 단 한가지의 사회적 정체성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회적 정체성에 의해서 발생하는 교차성(차별을 경험하는 정체성이 중첩될 수 있다는 것)과 상호성(모든 사람은 차별을 경험하는 정체성도 가지고 있고 차별을 할 수 있는 정체성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동시에 이야기하는 것이 다양성 훈련에 가장 큰 특징이자 힘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사회적 정체성마다 그 그룹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미디어오늘 2023.05.28.

 

 

자해적 광고언제까지 모른 척할 건가

근래 언론계에선 난데없이 등장한 손석희 광고가 화제였다. 손석희 전 JTBC 사장 얼굴을 앞세워 실체가 불분명한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 프로그램을 알리는 광고가 인터넷상에 무작위로 뜨면서다.

 

이 광고로 언론인뿐만 아니라 언론사도 적잖이 피해를 봤다. 해당 광고에 JTBC를 비롯해 국내 여러 신문방송사 제호가 무단으로 사용된 것이다.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 일부 언론은 자사의 홈페이지 구성 및 디자인까지 모조리 도용당했다.

 

더 황당한 건 기성 언론() 브랜드를 악용한 광고가 다수의 언론사 웹사이트에 버젓이 노출됐다는 점이다. 그나마 광고가 조악하게 만들어져서 어렵지 않게 사기성을 의심할 수 있었지만, 신뢰가 생명인 언론의 외피를 쓰고 언론사 앞마당에서 불특정 다수를 현혹하려 들어 우려를 자아냈다.

조선일보 CI와 손석희 특파원을 사칭한 광고 배너.

조선일보 홈페이지와 손석희 특파원을 사칭해 만든 광고.

 

문제성 광고가 삽시간에 퍼진 원인은 구글 애드센스(AdSense)에 있다. 애드센스는 웹브라우저 시장 점유율 60~70%를 차지하는 크롬(Chrome)을 등에 업고 디지털 매체 어느 곳에서나 흔히 자리하고 있는 보편화된 광고 상품이다. 대부분의 언론사 웹사이트에도 애드센스가 적용돼 있다. 다만, 알고리즘에 의해 실시간 자동으로 구동되는 프로그래머틱(Programmatic) 방식이라 편의성이 높은 대신 필터링에는 한계가 있다. ‘손석희 사칭 광고가 수차례 기사를 통해 공론화되고, 복수의 언론사가 구글 측에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을 요구했음에도 쉽게 근절되지 않았던 이유다.

 

그럼에도 언론()을 사칭도용하는 광고 문제를 구글 탓으로만 돌리는 것도 언론다운 모양새는 아니다. 웹사이트를 찾는 이용자 입장에선 구글이 운영하는 광고 서비스라는 사실보다 광고를 접하게 되는 장소, 즉 개별 매체의 대응 자세나 관리 의지를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 웹사이트가 뉴스라는 상품을 내놓는 언론의 홈그라운드라면 일반 기업의 홈페이지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관리가 요구된다.

 

그러나 한국 언론계의 온라인 저널리즘 현주소를 보면 광고 수질 관리에 대한 논의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가뜩이나 광고 물량이 없어 먹고 살기도 빠듯한데 이것저것 가려서 받을 처지가 되느냐는 열패감이 기저에 깔려 있다. 광고 퀄리티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훈수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니 손석희 사칭 광고처럼 얼토당토않은 광고가 언론사 앞마당을 휘젓고 다녀도 나 몰라라한다.

 

사실 프로그래머틱으로 돌아가는 애드센스라 해도 문제 있는 소재를 적극적으로 걸러내려고 작정하면 방법이 아예 없진 않다. 애드센스 관리자 계정에 접속해 사이트에 뜨는 모든 광고를 최대한 자주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유사시 직접 차단하면 된다. 자동화된 광고 시스템을 사람 손으로 일일이 관리하는 것이 대단히 비효율적이긴 해도 (언론들이 일제히 비판하는) 구글의 무책임한 태도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데는 충분히 도움 된다. 그런데도 구글과 함께 애드센스로 광고 수익을 공유하는 언론도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으니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는 것이다.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는 저널리즘 혁신은 뉴스 콘텐츠 못지않게 광고도 정보성 콘텐츠로 다루는 것을 포함한다. 온라인 사이트를 방문하는 오디언스가 마주하는 것이 비단 뉴스에만 국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디언스 관계관리, 언론() 브랜딩 측면에서 고객 경험을 해치는 요소요소를 바꿔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새로운 대안을 단박에 내놓지 못하더라도 문제점을 인지하고 해결해 나가려는 태도와 행동을 보일 때 크고 작은 변화도 일어날 수 있다.

 

실제로 해외 선도 언론들은 디지털 경쟁력을 높이는 과정에서 광고 제품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이용자 개개인의 콘텐츠 선호도나 이용 습관을 분석, 관심 가질 만한 광고를 자연스레 매칭하는 것이 대세다. 유효 데이터를 확보하고 적절한 기술을 입혀 뉴스제품을 선보이는 공간에서 광고도 세련되게 노출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시스템을 고도화한다. 프로그래머틱 광고 게재를 중단한 블룸버그 미디어(Bloomberg Media)의 자신감도 이런 노력에서 기인했다.

 

블룸버그는 최근 자사 디지털 플랫폼 재설계 과정을 설명하며 광고 혁신을 첫 번째 사례로 소개했다. 디지털 광고 실시간 입찰(Real-Time Bidding, RTB) 중단, 행동 데이터 고려한 광고 위치 최적화, 프리미엄 KPI(핵심성과지표) 기반 광고 제품군 개발 등을 언급했는데, 이 가운데 RTB는 구글 애드센스와 같은 프로그래머틱 광고의 일종이다.

 

RTB 지양 이유에 대해 블룸버그는 공개 경매(open auction)가 사용자의 프리미엄 경험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이를 제거함으로써 광고주들이 우리 팀을 통해 직접 거래하고 성과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확신한다고 했다. 실질적 속내야 광고주 직거래를 통해 광고 수익을 개선하는 것이겠지만, ‘오디언스를 최우선으로 유지하는 방법(How We’re Keeping Our Audience First)’을 명분으로 내세워 광고 프리미엄화를 꾀하는 방향성만큼은 인상적이다.

공개경매 방식의 광고를 지양하는 블룸버그

 

질 낮은 광고가 즐비한 국내 언론사 웹사이트에 대한 문제 제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기사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성가신 팝업광고, 선정적 이미지로 시선을 낚는 디스플레이형 광고만이 아니라 추천뉴스 카테고리 목록에 교묘하게 끼워 넣어 기사인지 광고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위장광고도 범람하고 있다. 광고를 접하는 오디언스보다 광고로 돈을 버는 언론사-대행사 우선주의의 결과다.

 

사람들이 눈살 찌푸리고 기피하는 공간에 브랜드 광고를 붙이려 하는 광고주는 없다. 해괴한 광고들을 방치한다면 디지털 광고 시장에서 언론사 웹사이트는 골방 신세를 면키 어렵다. 오디언스에 더 나은 프리미엄 경험까진 못 주더라도, 보통의 경험마저 해치는 자해적 광고정도는 걸러내야 한다. 복잡한 이해관계를 따져 남 탓하기 전에 언론 스스로 손해를 감수하는 각오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강미혜 퍼블리시뉴스와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 미디어오늘 2023.05.28.

 

 

가난한 집 문을 두드리는 노동자들

뭐라고요? 밥 굶고 일할 때가 있다고요?” ‘막내 작가로 불리는 젊은 방송작가 얘기였다. 최저임금 수준의 원고료를 받아 방세·교통비·통신비 등을 지출하고 나면 밥값이 부족할 때가 종종 있다는 얘기였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갖춘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귀를 의심했다. 재차 물었다. 그녀는 서글픈 목소리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자식이 방송국 작가가 되었다고 기뻐하는 엄마·아빠들 모습이 떠올랐다. 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방송작가, 대리운전자, 라이더, 제화공, 아파트 경비, 청년 노동자 등을 조합원으로 둔 노조와 공제회가 전태일재단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들은 재단 형편을 잘 안다. 그럼에도 찾아온다. ‘전태일재단은 가난하다. 서울시 소유 전태일기념관을 수탁받아 운영한 뒤로 돈이 많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기념관 예산은 재단 운영에 한 푼도 섞이지 않는다. 재단 운영·사업비는 매달 2500만원인데 정기 후원금은 1700만원에 불과하다. 부족한 재정은 뜻있는 노조와 개인 등의 특별후원금으로 채운다.

 

오죽하면 가난한 집의 문을 두드리겠는가. 노조에도 부익부 빈익빈이 있기 마련이다. 처우가 좋지 않은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노조는 조합비가 적게 걷혀 만성적 재정난에 시달린다. 비정규직·하청·플랫폼·프리랜서 등 불안정 노동자들이 가입해 있는 노조가 그렇다. 방송작가유니온도 운영비 지원을 요청했다. 전태일재단은 선뜻 응했다.

 

올해 초 전태일재단 이사회가 열렸다. 예산안을 심의하며, 이사들이 사무국 직원 임금을 5% 인상하라고 주문했다. 그랬는데 사무국이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임금을 인상할 여력이 있으면 전태일재단 문을 두드리는 노조와 공제회 등에 더 지원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임금을 올리라는 이사들과 올릴 수 없다는 사무국 사이에 실랑이가 이어졌다. 이사들은 사무국의 뜻을 꺾지 못했다.

 

아름다운 청년전태일은 돈이 많아 배곯으며 일하는 열서너 살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준 것이 아니었다. 주머니 속 버스비 30원을 탈탈 털어 풀빵을 사준 뒤 지친 몸을 이끌고 평화시장에서 창동 판잣집까지 4시간 거리를 휘청휘청 걷고 뛰며 퇴근했다. 야간 통금에 걸려 파출소에서 쪼그려 자기도 했다. 전태일은 자신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실천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시다미싱사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그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해 자신을 바치고 산화했다. 전태일재단의 재정운영 원칙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처럼이다.

 

갈수록 전태일재단 문을 두드리는 노동자들이 늘고 있다.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래서 기념사업회 시절부터 40년간 한 차례도 하지 않았던 후원의날 태일이네 문을 열다를 진행한다. 기금은 후원자와 재단 공동 이름으로 불안정 노동 단위에 지원한다. 많은 시민들이 전태일재단 정기 후원회원(www.chuntaeil.org)이 돼 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특별후원에도 참여(우리은행 1005-201-664676 전태일재단)해 주셨으면 한다.

 

불안정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길 바랐던 전태일의 미완의 염원에 손을 잡아주길 바란다. 노동자들이여, 태일이네 문을 더 활짝 열고 들어와 달라.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경향 2023.05.29

 

 

미친 등록금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

대학 등록금이 고등학교 학원비보다 싸고, 펫 유치원보다 싸다며 한탄하는 소리를 들었다. 한국사립대총장협의회 사무처장의 말이라고 한다. 중앙일보는 이 말을 인용하면서 등록금 인상 주장에 힘을 보탰다.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학원 수강료가 대학 등록금보다 비싸고, 강아지·고양이 유치원비가 대학 보내는 것보다 더 비싼 현실을 개탄할 것이다. 하지만 대학 운영자들은 거꾸로 분개한다. 그들은 알고 있을까. 저 말은 대학 운영을 학원 운영이나 반려동물 유치원 운영과 다를 바 없는 영리사업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임을.

 

대학들이 등록금 인상의 근거로 대는 것은 물가 상승이다. 얼마 전 대교협은 반값등록금 정책으로 등록금을 동결한 결과, 지난 10년간 대학 손실액이 2조원이 넘는다는 연구보고서를 내놓았다. ‘2조원은 어떻게 계산한 값일까. 현재 등록금 인상률은 물가상승률의 1.5배 이내로 법정 상한선이 정해져 있다. 대교협 자료집에 따르면, 법정 상한선 최대치까지 매년 등록금을 올렸다면 지난 10년간 벌어들였을 등록금 수입 추정액은 109052억원인데, 실제 등록금 수입은 87470억원이었으므로 차액인 2조원만큼 손해를 본 것이란다.(<고등교육 현안 정책 자문 자료집>) 참 희한한 셈법이다. 거꾸로 대학 강사나 청소 노동자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대학에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대학들이 막대한 재정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하는 기간 동안에도 적립금은 산처럼 쌓여갔다. 올해 2월 기준 사립대 적립금은 총 106202억원이다. 2020년 대학 알리미에 공시된 사립대 적립금은 8640억원이었다. 대부분 등록금을 받아 쌓아온 돈이다. ‘반값이나 동결이라고 말하지만, 대학이 그동안 등록금을 반만 받은 것도 아니고, 등록금을 동결한 것도 아니다. 반값등록금은 이름만 반값일 뿐, 국가장학금을 통한 소득수준별 등록금 보조 정책으로 변형돼 실시되었다. 정부는 국가장학금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학부 등록금 인상을 억제해왔지만, 대학들은 학부가 아닌 대학원과 외국인 학생 등록금은 꾸준히 올려왔다.

 

대학등록금 인상률 억제 정책은 어떤 배경에서 도입되었던가. 2008년 대학등록금 인상률을 물가상승률 2배 이내로 제한하는 법안을 처음 제안한 것은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이었다. 대학등록금이 매년 높은 인상폭으로 가파르게 올랐기 때문이다. 1989년 노태우 정권은 사립대 등록금 자율화 조치를 단행해 대학이 맘껏 등록금을 올릴 수 있게 해줬다. 1989년부터 오르기 시작한 등록금은 1996년까지 7년 연속 매년 10% 이상 증가했다. 1980년대 후반까지 사립대 연간 평균 등록금은 100만원 이하였지만, 1995년엔 323만원이 됐다. 외환위기로 전 국민이 고통을 겪던 시기에도 등록금 고공행진은 멈추지 않았다. 2002년 김대중 정부 말기에는 국공립대 등록금도 자율화됐다. 2009년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미국 다음으로 대학 등록금이 비싼 나라가 됐다. 지금은 세계 5위다. ‘미친 등록금이란 말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2009년 한강에서 고려대생의 사체가 떠올랐다. 등록금 마련에 지치고,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학생이었다. 2010년에도 학자금 대출을 못 갚고 고민하던 대학생들이 잇달아 목숨을 끊었다. 극단적 선택을 한 학생 옆에 복권과 학자금 대출 서류가 놓여 있었다는 이야기, 대학 등록금 납부 마지막 날에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한 모녀의 이야기 등 등록금 자살로 기사를 검색하면 등록금 지옥에서 벌어진 수많은 비극들이 줄을 잇는다.

 

당시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2007232, 2008년엔 332, 2009년엔 249명 등 한 해 수백명의 청년들이 스트레스와 경제적 고통으로 목숨을 끊었다. 청와대 앞에서는 등록금 고통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대학생 추모집회가 열렸고, 2011년 반값등록금 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됐다. 등록금을 대학이 맘대로 올리지 못하도록 한 정책은 이런 죽음의 행렬 끝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가 사회적 타살이라 불렀던 그 죽음은 누구의 책임이었을까? 대학들이 다시 등록금 자율화를 이야기한다. 학생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다. 대학 재정위기를 등록금 인상으로 해결하려는 건 가장 쉬운 방법이자 가장 나쁜 방법이다. 지금 경제상황은 10년 전보다 훨씬 안 좋다. 인플레이션이 삶을 덮치고, 고난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도착한다. 위기를 아래로 전가하는 등록금 인상 말고 다른 대책을 강구하라. 청년들을 죽이고 부모 가슴을 멍들게 했던 미친 등록금의 나라로 우리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채효정 오늘의 교육편집위원장 경향 2023.05.29

 

 

왜요, 이걸요, 지금요?”

대통령 노무현의 시간은 지루했다. 어떤 정책도 단번에 되는 것은 없었다. 제안했다가 안 되면 후퇴하고, 그러다 다시 제안하기를 반복했다. KTX 천성산 터널 공사, 경주 중저준위 방폐장 건설 등 난제들이 그런 과정을 겪었다. 이라크 파병, ·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은 신년연설과 국정연설, 시정연설을 통해 , 이걸, 지금 해야 하는지를 직접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대통령의 연설 뒤에는 항상 나라가 시끌벅적해졌다. 때로는 보수가, 때로는 진보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했다. 지켜보는 국민들은 피곤했다. 뭐 하나 속시원히 해결되는 게 없었다. 대통령이 저렇게 추진력이 없나, 싶었다.

 

그랬기에 이명박 정권이 출범했을 때 살짝기대한 것이 있었다. 정말 필요한 국정과제라면 대통령이 책임지고 밀어붙여도 되는 것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대통령 이명박은 최고경영자(CEO) 리더십을 내세웠고, 롤 모델은 박정희였다. 이런 생각이 짧았다고 깨닫는 데는 몇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취임 두 달 만에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을 추진했다. 미국 대통령 전용별장인 캠프 데이비드를 방문해 골프 환대를 받은 직후였다. 시민들은 식탁 안전을 우려했지만 정부는 , 이걸, 지금 해야 하는지설득하는 데 부족했다. 곧 거센 저항에 부딪혔고, 지지율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대통령은 나 홀로 캄캄한 인왕산 중턱에 앉아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행렬을 지켜봐야만 했다. 미국산 쇠고기는 지금도 30개월령 미만으로 주요 위험 부위(편도, , 척수, 소장 끝, 머리뼈 등)가 제거되어야 수입이 가능하다.

 

두 대통령이 생각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일외교를 보면서다. ·일관계 복원을 향한 윤석열 정부의 행보는 노빠꾸. 현지를 다녀온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시찰단도 그랬다. 누가 위원으로 참석했는지, 어떤 일정으로 갔는지, 무얼 봤는지 지금도 모른다. 일본 주재 한국 특파원들은 이런 시찰단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 현지에서 술래잡기를 해야 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마저 시찰단이 투명하게 운영되지 못한 것에 대해 굉장히 비판받아야 한다시찰단에도 분명 국민 세금이 들어가 있을 텐데 그 명단조차 공개하지 못하는 건 어느 누구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추정해볼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위안부 문제, 강제동원(징용) 피해자 문제에 대한 접근도 비슷하다. 답이 정해져 있으니 따라오라고 할 뿐 적극적인 설득은 부족하다.

 

취임 2년차를 맞은 윤 대통령의 대국민 소통 방법이 달라졌다. 출근길문답(도어스테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자리는 국무회의 생중계로 채워졌다. 설득하고 해명하는 자리가 아닌 일방적으로 지시를 하는 자리다. ‘, 이걸, 지금 하는지궁금한 게 많지만 물을 데도, 답해줄 데도 없다. 들어보니 각 부처도 국무회의 직후 하달된 대통령실 지시사항에 허둥대는 일이 잦다고 한다. 대통령 인터뷰는 미국·일본 등의 외신들과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 껄끄러운 국내 언론은 피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당장 소낙비는 피할 수 있어도 근본 해결책은 아니다. 질문은 잠재됐을 뿐 해소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괴로웠지만 지금 돌아보면 설득의 시간은 축적의 시간이었다. 지독한 갈등을 겪었던 천성산 터널과 경주 방폐장은 정권이 몇번이나 바뀌어도 뒷말이 나오지 않는다. 반면 4대강 사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보 해체와 유지로 갈등을 겪고 있다. 4대강 운하사업으로 추진됐다 변경되는 과정에서 대국민 설득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도 따지고 보면 설득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30년을 내다봐야 하는 에너지 정책이라는 점에서 반대하는 학계와 산업계, 시민들의 의견을 더 적극적으로 들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지금 윤석열 정부는 탈원전을 뒤집는다고 하는데, 탈원전 폐지 역시 지속 가능할지는 자신할 수 없다. 탈원전에 찬성하는 국민들을 설득할 시간도, 노력도, 의지도 부족해 보인다.

 

정권이 추진한 사업은 다음 정권이 뒤엎을 수 없다고 믿은 적이 있다. 그러나 한번 박으면 빼지 못할 대못은 없었다. 반대 여론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 정책은 언제든지 수정되고 폐지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는 엄청난 비용을 치르게 된다는 점에서 권장할 일은 아니다. 설득되지 못하는 시민들은 끝까지 묻는다. “왜요? 이걸요? 지금요?”라고. 그 답을 주지 못하는 이상 시간은 대통령의 편이 아니다.

박병률 경제부장 경향 2023.05.29.

 

 

하인을 거느리는 가족국가

풍요로운 국가에서 미래세대의 인구 감소는 오래된 문제다. 미래세대 인구가 감소하면 여러 측면에서 국가 경제가 어려워진다. 무엇보다 노동인구가 감소한다. 특히 풍요로운 국가에서 성장한 젊은 세대들은 더럽고,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피하는 경향이 있어 하부 경제를 돌리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여기에 더해 노동인구가 줄어드니 연금을 내는 이의 숫자가 줄어들어 사회보장제도를 유지하기도 힘겨워진다.

 

이 때문에 풍요로운 국가들은 대체로 두 가지 방식으로 대응한다. 첫째, 국가 하부 경제를 돌리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싼 비용으로 데려다 쓴다. 둘째, 국내 출산율을 늘리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쓴다. 곤란한 문제는 외국인 노동자로 해결하고 장기적으로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런 대응 방식은 이내 문제점을 드러냈다.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엔 정당성의 문제를, 국내 출산율의 경우엔 효율성의 문제였다.

 

우선 대다수 국가에서 출산율 증가 정책은 별달리 효과가 없었다. 한 국가의 인구를 유지하기 위해선 최소 2.1명의 합계출산율이 필요한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020년 기준으로 이를 넘긴 나라는 이스라엘, 남아프리카공화국, 사우디아라비아밖에 없다. 우리나라 20200.84, 20220.78명으로 유일하게 1명이 안 되는 초저출산 국가다.

 

한편 당장 급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채택한 외국인 노동자 제도 역시 많은 비판에 직면했다. 각 정치공동체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공동체주의자들조차 비난한다. 예를 들어, 마이클 월저는 이 제도로 인해 국가가 마치 하인을 거느리고 사는 가족과 같은 형태가 되어버린다고 일갈한다. 이런 제도는 잘사는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자격만으로 그렇지 못한 국가의 구성원을 하인으로 부릴 자격을 얻는 것이나 다름없다.

 

월저는 만약 이런 제도가 정당성을 얻고자 한다면, 자기 영토 내로 들여오는 모든 노동자에게 손님(guest)’이라는 자격 대신 잠재적시민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누군가는 이 노동자들이 원해서 다른 나라에서 일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들이 원해도 그들을 필요로 하는 국가가 승인하지 않는다면 다른 영토에서 일할 자격을 얻을 순 없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가 그들의 노동력을 원했기 때문에 이곳에 와 있다.

 

그런데도 외국인 노동자들은 일하고 임금을 받는 것 외에 어떤 권리도 행사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국가 권력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수용된 영토 내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규제한다. 그런데도 국가 권력은 이들에게 어떤 견해도 묻지 않는다. 월저에 따르면, 자유로운 공동체는 이런 삶의 방식을 단호히 거부한다.

 

누군가는 월저의 주장을 헛소리로 치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최근 독일의 인구 정책을 보면 월저의 주장은 오히려 힘을 얻는다. 독일은 노동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5년부터 난민을 대거 받아들였다. 2015년에서 2016년 사이 시리아 전쟁으로 생겨난 중동 난민 119만명을 받아들였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엔 121만명을 수용했다. 240만명에 이른다.

 

독일은 난민 1명당 1만유로(1400만원) 정도를 쓰고 있는데, 240만명을 수용했으니 240억유로 정도를 쓴다.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이니 당연히 난민들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게다가 생활비와 학교 교육 지원을 받고, 사회보장제도까지 이용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다. 외국인 중에 배움이 모자란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일정한 직업교육을 받고 독일어를 배우는 과정을 거치면 독일에 쉽게 이민하도록 제도를 개편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출산율 장려 정책으로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가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를 이미 도입한 일본·싱가포르·대만·홍콩의 사례를 보면 이 제도와 합계출산율은 아무 상관관계가 없었다. 정책으로서 전혀 효과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도입하는 방식도 문제다. 이들을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법이 발의되어 있다. 국가가 하인을 거느리고 사는 가족의 형태를 옹호하는 셈이다. 그러면서 배고픈 쪽이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괜찮다는데 무슨 상관이냔 논리를 내세운다. 그럼 우리 내국인들도 배고픈 사람이 괜찮다고 하면 최저임금과 상관없이 노동할 수 있게 허용해야 할까? 한 나라의 주요 정책을 보면 그 나라의 이 보인다. 우리의 이 진정, 이 정도에 불과한 것일까?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경향 2023.05.29.

 

 

희망 없는 세상, 미친놈만 살아남는다면

포털에서 많이 읽은 뉴스기사 목록을 살펴보다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5월 한반도에 찾아온 이례적 고온이나 전세계를 강타한 열파(동남아시아가뭄(아르헨티나폭우·홍수(이탈리아), 그리고 서울 도심에 나타난 마른나무흰개미나 동양하루살이의 증식까진 그러려니 했는데, 메이저리거의 홈런 수 변화도, 불어난 내 뱃살도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모든 변화의 근본에 기후변화가 있다니, 편집국을 아예 기후변화국으로 바꿔야 하는 거 아니야?” 동료와 커피를 마시며 이런 우스갯소리를 나눴다. ‘다뤄야 할 현안이 갈수록 많아진다는 하소연 절반, 위태로운 인류 운명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든이라고 했는지 날리면이라고 했는지 따위가 뭣이 중헌디싶은 맘 절반인 상태에서 나온 농담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1.5~2도 오를 경우, 커피를 생산할 수 있는 토지가 절반 이상 줄어들 것이란 보도가 나왔다. 세계기상기구(WMO)이대로라면 2027(불과 4년 앞!)까지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 기온이 1.5도 상승할 확률이 66%’라고 경고했다. 1.2도가 넘는 순간부터 상승세는 가팔라지고 0.1도 상승할 때마다 약 14천만명씩 생존에 위협을 받게 된단다. 기후위기의 증거하나를 더 얹는 방식의 보도로 세상이 꿈쩍이나 할까. 기후위기의 중대성을 알리기 위해선 그날의 우스갯소리를 그저 넝담!’ 하고 끝낼 문제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다행인 건, 기후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위기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점이다. 안타까운 건, 심각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현재 내 생활 패턴을 바꿀 만큼 사람들의 맘이 급하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해 1월 나온 독일 공영방송 <체트데에프>(ZDF) 여론조사 결과는 사람들의 이런 모순된 감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조사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석탄발전 확장에 반대한다는 응답자가 59%였는데,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서 안정적인 전기 공급을 위해 일시적으로 석탄발전소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은 옳은 정책이라는 쪽에 동의한 사람이 60%로 그와 비슷했다. 우리나라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늦봄 더위에 이어 평년보다 덥고 습한 여름이 올 것이라는 날씨 예보가 나오면 반짝강력한 기후위기 대응이 필요하다는 소리가 나오지만, 미루고 미루다 찔끔 올린 전기·가스요금을 두고선 어떻게 하면 덜 쓸까 궁리하기보다 냉방비 폭탄을 걱정하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1111(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도심 한복판인 프랑크푸르터 토어 네거리 교차로에서 환경운동단체 마지막 세대활동가들이 도로를 막아선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베를린/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이름마저 비장한 기후단체 마지막 세대’(Letzte Generataion)실력행사에 눈길이 간 건 이 때문이다. ‘인류의 멸망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를 자처한 이들은 화석연료 사용 전면중단을 촉구하며, 몇년째 독일 시내 주요 도로에 접착제를 바른 손을 고정시켜 차량 통행을 막는 과격 시위를 벌여왔다. ‘쇼킹한 이벤트로 주목을 끌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논쟁을 촉발할 수만 있다면 족하다는 절박함이 이들의 알리바이다. 지난 24일 독일 검찰과 경찰이 이들의 거점을 압수수색했는데, 하다 하다 이탈리아와 독일을 잇는 송유관을 파괴할 계획을 세웠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경험상 이런 과격한 행동은 박수보다 야유를 받기 십상이다. 비교적 우호적이던 보통시민들마저 등 돌리게 만들 가능성이 더 크 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에게 무조건 미치광이 과격분자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모든 미치광이가 선각자는 아니지만, 남들보다 예민하게 위기를 감지하고 세상을 바꾸려던 선각자들이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던 사례가 종종 있지 않았나. 만일 이들도 그런 선각자라면?

 

희망 없는 세상, 미친놈만 살아남는다.” 문득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포스터에 적혀 있던 카피가 떠올랐다. 핵전쟁으로 인류가 멸망한 22세기를 다뤘는데, 누런 모래 먼지 날리는 황폐한 사막을 배경으로 하는 탓에 기후위기에 관한 영화로 기억하고 있었다. 가까운 미래 어느 날 그때 그 미친놈들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였어야 했어이런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절박한 외침에 좀 더 귀를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정애 | 스페셜콘텐츠부장 한겨레 2023.05.29.

 

 

4·3, 그날의 화염도 이처럼 붉었나팽나무는 기억하리라

제노사이드의 기억

 

이곳을 지나는 길손들이여,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아라. 저 바람에 스석대는 대숲이 있던 집터와 올레, 그리고 마을의 역사와 더불어 살아온 저 팽나무를, 서러운 옛이야기가 들리지 않는가. 다시는 이 땅에 4·3과 같은 서러운 역사가 재발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이 표석을 세운다.’

잃어버린 마을자리왓마을의 팽나무는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2017년에 이어 올해 3월에도 찾았다. 두번 모두 저물녘 동쪽에서 접근했는데 서쪽으로 지는 붉은 해의 황혼 기운을 배경으로 멀리서도 팽나무의 실루엣이 뚜렷했다. 제주어로 폭낭으로 불리는 팽나무는 20m 높이까지 자라고, 제주에서는 마을의 신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4·3사건으로 내려졌던 한라산 금족령(출입금지령)1954921일 해제되면서 강제로 해안마을로 내려와 살던 중산간마을 사람들 상당수는 본디 살던 원주지로 찾아 올라갔다. 하지만 군경 토벌대의 방화로 사라진 집을 다시 짓고, 새로 농토를 개간하며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여전히 중산간지대는 공비출몰 지역이라며 자주 소개됐고, 악몽과도 같은 현실이 벌어졌던 마을로 복귀를 원하지 않는 주민들도 많았다. 4·3사건이 발생 15년이 지난 1962년까지도 원주지로 복귀하지 않은 이재민은 7704세대, 4419명에 달했다. 오랜 난민정착 복구사업에도 불구하고 원주민들이 돌아오지 않아 폐허가 된 마을이 제주섬 여러 곳에 생겨났다. 그렇게 지도에서도 사라진 마을들을 제주에서는 잃어버린 마을이라고 한다. <제주4·3사건 추가진상보고서>(2019)는 잃어버린 마을이 134개라고 밝혔다.(124) 131개 마을은 초토화 작전 때 진압군에 의해서, 3개 마을은 무장대의 방화로 사라졌다.

 

한동안 잃어버린 마을의 흔적을 찾아 여러곳을 헤매고 다녔다. 그 가운데 애월읍 자리왓마을 터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마을은 사라졌지만, 마을의 당산나무였을 팽나무는 살아서 홀로 마을 터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1417-1번지 일대 30여호가 모여 살던 자리왓마을은 19481123~25일 단 사흘 동안 소개됐는데, 대부분의 사라진 마을들이 그랬듯 소개 뒤 이어진 진압군의 초토화 작전으로 폐허로 변했다. 주민들은 마을로 돌아오지 못하고 새로운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2017년 찾은 자리왓마을 중심지였던 왕돌거리에는 제주 특유의 올레와 집터 흔적들조차 거의 사라지고 팽나무 주변에 대나무밭이 조금 남아있을 뿐이다.

 

올해 3월 또다시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 잡은 자리왓마을 팽나무를 찾았다. 이번에도 저물녘에 동쪽에서 접근했는데, 서쪽으로 지는 붉은 해의 황혼 기운을 배경으로 팽나무의 실루엣이 뚜렷했다. 가로등이 없던 시절 그 옛날에도, 외지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 어슴푸레한 저녁 동네 들머리에 우뚝 솟아있는 팽나무를 보노라면 이젠 집이구나 싶어 마음이 놓였을 것이다.

그 팽나무 아래에는 200243일 세운 자리왓 표석이 있었다.

 

이곳은 4·3 와중에 마을이 전소되어 잃어버린 자리왓 마을 터이다. 250여년 전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는데, 30여 가호에 150여 주민들이 밭농사를 지으며 살던 전형적인 중산간마을이었다. 마을 가운데는 서당이 있어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여러 마을 촌장들이 자리왓 팽나무 아래 모여서 대소사를 의논하여 정겹게 살던 마을이었다. 그러나 4·3의 광풍은 이 마을들을 여지없이 세차게 뒤흔들어 놓았으니, 194811월 중순쯤 소개령이 내려지고 주민들이 아랫마을로 이주한 뒤 마을은 잿더미가 되었고, 그 와중에 5명이 희생되었다. () 이곳을 지나는 길손들이여,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아라. 저 바람에 스석대는 대숲이 있던 집터와 올레, 그리고 마을의 역사와 더불어 살아온 저 팽나무를, 서러운 옛이야기가 들리지 않는가. 다시는 이 땅에 4·3과 같은 서러운 역사가 재발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이 표석을 세운다.’

 

검은 표석에 새겨진 사연이었다. 팽나무는 오래전 마을이 평화로웠던 시절의 기억보다 4·3사건 때 사람들의 울부짖음과 비명, 마구 쏘아대는 총소리와 초가집들이 화염에 휩싸인 뜨거운 불길을 더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닐까.

건물 4층 정도 높이 팽나무 둘레가 궁금해져 팔을 펴 끌어안아 보니 3번을 더 펼쳐야 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겉껍질은 거칠었고 손바닥으로 스치기만 해도 표피가 부서져 떨어졌다. 큰 줄기에는 자연스럽게

 

뚫렸는지 새들이 보금자리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주먹보다 큰 구멍이 나 있었다. 가로등도 없고 개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팽나무 주변은 금세 어둠에 젖어들었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몇걸음 걷다가 멈춰 뒤돌아보고 또 좀 걷다 뒤돌아보기를 여러번, 어느새 눈에서 아득히 멀어진 팽나무를 뒤로 한 채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날 멀어져가는 손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슬픈 듯 가지를 살랑살랑 흔들던 자리왓마을 팽나무는 오늘도 잃어버린 마을을 홀로 지키고 있겠지.

김봉규 사진부 선임기자. 한겨레 2023-05-30

 

 

오늘도 무사히김해공항을 걱정하는 이유

19984월 강원도 철원 군부대에서 34일 첫 휴가를 나왔다. 시간이 너무 아까워 김포공항에서 김해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서울역에서 집이 있는 부산까지 기차로 네댓 시간이 걸렸지만, 비행기로는 한 시간이면 넉넉했다. 집도 김해공항에서 가까운 편이었다. 하지만 생애 첫 비행의 감동과 기대는 40여분 만에 공포와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비행기는 세 차례 실패 뒤 가까스로 착륙했는데, 착륙에 실패할 때마다 가슴을 졸이느라 수명이 줄어드는 듯했다.

 

2002415일 오전, ‘소리를 집에서 들었다. 김해공항에 착륙하려고 선회접근을 하다 안개 등 기상 악조건으로 활주로를 찾지 못한 중국국제항공 비행기가 경남 김해시 돗대산에 부닥치며 난 소리였다. 탑승객 167명 가운데 129명이 숨졌다. 이런 경험 뒤 비행기 타는 것을 매우싫어하게 됐다.

 

김해공항은 착륙이 어렵기로 소문난 공항이다. 위치와 기상 조건 때문이다. 김해공항에는 봄여름에 종종 강한 남풍이 부는데, 착륙 때 강한 뒷바람을 받으면 양력이 떨어지고 활주 거리가 늘어난다. 따라서 강한 남풍이 불면 김해공항을 찾는 비행기는 남쪽에서 올라와 활주로를 지나친 뒤 선회해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며 착륙해야 한다. 그런데 김해공항 7~10북쪽에 돗대산과 신어산이 있다. 게다가 김해시의 소음 문제로 남해고속도로 북쪽으로 넘어가면 안 된다. 결국 비행기는 김해공항 북서쪽 김해평야 지역으로 비행하다 김해시와 부산시 경계 지점에서 우선회 착륙한다. 조종사들 사이에서 악명 높다는 선회접근 뒤 착륙이다.

 

선회접근은 왜 악명 높을까. 국토교통부 항공정보간행물 등을 보면, 조종사는 활주로에서 5가량 떨어진 남쪽에서 진입해 공항과 활주로 등을 눈으로 우선 확인하고, 활주로 기준 왼쪽으로 3.6가량 떨어져 활주로와 평행하게 직진 비행한 뒤 활주로에서 1.8가량 벗어난 곳(강서구 가락동)에서부터 우선회를 시작한다. 45도씩 4단계에 걸쳐 180도로 우선회하되, 선회 반지름은 신어산과 김해시 등을 고려해 4~6를 넘으면 안 된다. 시속 220~250를 유지하며 고도를 360m, 270m, 210m, 135m로 점차 낮춘 뒤 활주로와 비행기를 정렬해야 한다. 날씨 등으로 지형지물 확인이 안 되면 무조건 고도를 올려 다시 처음부터 착륙을 시도해야 한다.

 

이때 조종사는 무척 바쁘다. 진입방위·하강각도·하강률·기체안정화·고도·속도 확인, 기체 활주로 정렬 등 계기비행에다가 활주로 유도등·지시등·선회등과 항공장애주간표지·지형·기상 상황 등 눈으로 직접 외부 상황을 시시각각 판단하면서 착륙을 진행한다. 짧은 시간 동안 상황 변화에 따라 여러 판단을 해야 한다. 이 때문에 국내외 여러 항공사는 김해공항을 조종 난이도 최고 등급의 특수 공항으로 지정한다. 중국 상하이항공 등은 조종사들에게 선회접근 뒤 착륙 훈련을 시키고 평가에서 합격해야 김해공항 비행을 허가할 정도다.

 

그런데도 선회접근 관련 항공기 준사고(중대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사고)는 일어난다. 201258일 김해공항으로 선회접근 뒤 착륙하던 비행기가 허가받지 않은 군용 활주로에 착륙했다. 당시 활주로에서 작업 중이던 작업자들은 관제사의 긴급 지시를 받고 황급히 대피해야 했다. 대피 시간이 214초를 넘었더라면 비행기가 차량과 충돌해 대형 사고가 났을 터다. 201997일에도 비행기가 선회접근 뒤 착륙하다 엉뚱한 활주로에 착륙했다. 마침 활주로가 비어 있어 다행이었다. 여태까지 항공 종사자 등의 노력과 빠른 대응, 그리고 운이 더해져 대형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도 착륙하기 위해 김해공항 왼쪽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면 걱정이 앞선다. 병풍처럼 둘러 있는 산 위에서 비행기가 선회하며 고도를 낮추는 모습을 보면 머리카락이 주뼛 선다. 항공 종사자들이 실수하지 않기를, 행운이 있기를 기원한다.

김영동ㅣ영남데스크 한겨레 2023-05-30

 

 

간호법 갈등이 드러낸 의료계 카스트

미국의 언론인이자 작가인 이저벨 윌커슨은 그의 저서 <카스트>에서 인류의 역사상 카스트 체제를 크게 세가지로 지목한다.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어 비극으로 치닫다 진압된 나치 독일의 카스트, 공식적으론 폐지됐지만 좀처럼 사라질 기색 없는 인도의 카스트, 드러나거나 언급되지 않지만 인종을 기반으로 이어져온 미국의 카스트가 그것이다. 카스트는 사람의 가치를 미리 정해진 서열에 따라 구분한다. 누가 무엇을 할 수 있고 가질 수 있는지가 처음부터 정해진다. 지배 카스트는 하위 계급에게 지시하고 단속하고 징벌한다. 그들은 자신보다 아랫단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를 넘보거나 분수 넘게 행동하는 것을 경계한다.

최근 간호법 갈등이 격화되는 과정에서 의료계 카스트라는 용어가 적잖이 등장했다. 맨 윗단의 의사를 중심으로 수직적 위계질서가 공고히 구축돼 있는 의료계의 현실이 카스트를 떠올리게 하는 탓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로 다시 국회로 온 간호법은 30일 재의결 불발로 끝내 좌초됐다. 간호법 1조는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 조항의 지역사회문구가 간호사의 단독 개원 길을 열어줄 것이라며 반대했다. 의료법이나 간호법의 다른 조항을 보더라도 단독 개원 가능성은 없어 보이는데도, 의사단체의 반발은 유독 거셌다. 어차피 지역사회의 방문진료에 큰 관심을 보여온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의사들은 모든 의료행위를 독점하려는 속성을 보이는데, 이는 의사 면허를 통해 작동되는 지대 추구와 관련이 깊다. 우리나라는 의료기관의 90%가 민간 소유라서 의료인의 수익 추구가 당연시된다. 여기에 의사의 진료행위 하나하나에 가격을 매기는 행위별 수가제도가 근간을 이룬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누가 그 행위를 해서 수익을 올릴 것이냐가 민감한 문제가 된다. 간호사가 개원할 우려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의사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한다고 인식하는 것이라고 짚는다. 병원을 차리는 것부터 국민건강보험에서 돈을 받는 일까지, 모든 것이 의사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간호법이 달가울 리 없었을 것이란 해석이다.

 

실제로 의료법에 명시된 의료인의 업무범위 관련 조항은 1962년 개정된 이후 거의 변화가 없다. 의사의 임무는 의료와 보건지도가 전부이고, 간호사도 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포괄적으로 규정한다. ‘의사의 지도하에간호사의 업무는 합법과 불법을 넘나들며 그때그때 정해진다. 한 광역시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조아무개씨는 채혈은 임상병리사의 몫이고 엑스레이 촬영은 방선사의 업무이지만, 병원 쪽은 인건비를 최대한 줄이려고 간호사에게 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의사들이 바쁘면, 간호사가 의사의 아이디를 넣어 대리처방을 하고 환자 경과 기록을 쓰기도 한다.

 

의사단체는 지난해 간호법의 상임위 논의에서도 진료의 보조라는 문구를 반드시 넣어야 한다고 압박했다. 원안에는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명시돼 있었다. 앞부분에 의사의 지도하에라는 문구와 의미가 중복되는 데도, ‘보조라는 문구를 뺄 경우 간호사들이 독자적인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완강히 거부한 것이다. 올해 1월에야 지방자치단체 소속 간호사들이 방문간호 때 혈압·혈당을 측정할 수 있도록 정부 유권해석이 바뀐 것은 이들의 종속적 지위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런 사정 때문에 간호 업무의 전문성에 대한 요구는 나날이 높아지지만, 간호사들은 전문직이라는 자부심 결여가 심각한 수준(2020년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이라고 호소한다. 간호사 1명당 16.3명의 환자(상급종합병원)를 돌볼 만큼 업무량이 과다한데다 직무 만족도가 낮다 보니 5년 내 퇴사율이 50%에 육박한다. 2020년 기준 의사와 간호사의 연간 평균 임금은 각각 23070만원과 4745만원으로 5배 차이가 벌어진다. 직무에 따른 임금 차이를 인정하더라도 직전 10년간 의사 임금의 연평균 증가율은 5.2%, 간호사는 3.8%에 그친다.

 

의료계 카스트가 초래하는 문제는 결국 환자들에게 돌아간다. 대학병원 근무 경험이 있는 박한슬 약사는 서구에서는 환자 중심 의료 개념이 도입되어 팀진료를 매우 중요시한다. 약사들이 약 처방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간호사들이 환자의 연령·상태에 따라 최적의 간호를 제안하는 식이라고 말한다. 국내에선 대등하고 협력적인 관계가 아니라 의사에게 종속된 형태로 모든 업무가 이루어져, 각 직역 간 전문성이 발휘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의료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으려면 공론화가 필요해 보인다. 의사단체의 실력행사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지지 않으려는 정부와 정치권은 의사단체의 눈치 보기에만 급급해왔다.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 구조 자체가 실종된 상태다. 미국 예일대에서 보건학을 가르쳤던 윌리엄 키식 교수는 <의료의 딜레마>에서 접근성과 비용, 품질이라는 서로 상충하며 경쟁하는 세가지 의료의 가치에 대해 언급한다. 하나의 가치를 추구하다 보면 다른 가치를 잃을 수 있다. 이제 우리 사회가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가치는 의료의 질이 아닐까

황보연 I 논설위원 한겨레 2023-05-30

 

 

한국 경제, 고성장 과거를 잊어야 산다

한국 경제가 심상치 않다. 한국은행이 지난 25일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0.2%포인트 내린 1.4%로 조정했다. 전망치를 1.1%까지 낮춘 기관도 있다. 대표적 경제지표인 성장률이 낮아진다는 건 경제 전체의 활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기업 매출과 고용, 개인소득 등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2월 이후 4개월째 경기둔화가 지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심각한 것은 경기순환 사이클의 한 국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가 구조적 장기 침체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출은 더 이상 한국 경제 버팀목이 아니다. 관세청 자료를 보면 51~20일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1% 감소했다. 수출은 8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 무역수지는 15개월 연속 적자가 확실시된다. 10대 수출품목 중 지난해보다 수출이 늘어난 품목은 자동차뿐이다. 2000년 이후 줄곧 흑자였던 대중국 무역수지는 올 들어 4월까지 101526만달러 적자로 돌아섰다.

 

가계부채가 역대 최대폭 감소했다는 한은 발표가 있었지만 전혀 긍정적이지 않다. 1분기 가계신용 잔액은 전 분기에 비해 137000억원(0.7%) 줄어든 18539000억원이었다. 여기에 한국에만 있는 제도인 전세 보증금 1058조원을 합하면 실제 가계부채 총액은 3000조원에 근접한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다.

 

금리 상승으로 대출이자를 갚지 못하는 사람이 늘면서 연체율마저 오른다. 지난 3월 말 기준 은행 연체율은 0.33%3개월 새 0.08%포인트 상승했다. 서민이 많이 이용하는 저축은행 연체율은 1.66%포인트 급등한 5.07%였다. 오는 9월 말에는 코로나19 상환유예 대출 상환이 시작된다. 자영업자와 영세 중소기업 등에 상환을 미뤄준 대출 53000억원은 부실 우려가 크다.

 

외부 환경도 나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 장기화로 국제 원자재값은 고공행진 중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스위스 크레디트스위스(CS) 파산 위험에서 촉발된 금융위기 우려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취약계층의 고통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계층에 빌려주는 소액생계비대출은 연 15.9% 고금리에도 출시 한 달 만에 25000여명이 몰렸다. 대출 용도는 병원비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올해 1분기 해외여행객은 4979386명이었다. 지난해 1분기의 10배 넘게 폭증했다. 병원비가 모자라 안절부절못하는 가난한 사람과 코로나19 통제가 풀리자 해외여행을 떠나는 부자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양극화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 경제는 지난 30년간 가파른 성장을 거듭했다. 천연자원이 없어도 인적자원 투자가 성공적이었고, 낮은 원자재 가격과 중국 시장 확대에 힘입어 활황을 맛봤다. 저금리를 이용해 부채를 지렛대 삼아 경제 규모도 팽창했다. 세계 각국은 한국 경제를 모범생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수출과 산업구조, 금융 등 경제 전 영역에서 익숙했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성장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는 1%대 성장도 장담하기 어렵다. 세계 최고 속도의 인구 감소는 2030년대부터 잠재성장률을 0%대로 떨어뜨리고, 2050년대 이후 마이너스로 추락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대학원 명예교수는 올해 초 펴낸 <초거대 위협>에서 부채, 생산인구 감소, 저금리, 금융불안 등 10가지 위협을 제시했는데, 한국은 사실상 모든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루비니 교수는 최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초거대 위협을 해결하려면 정부의 대응과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루비니 교수는 교육과 건강관리, 연금 등 공공서비스나 부의 불균형을 최소화하려는 정책을 제공하는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인류의 미래가 디스토피아 또는 유토피아 시나리오에 도달할지는 국가 및 국제적 정책 조치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성장이 사실상 한계에 이르렀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른바 잘나갔던 과거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생산량만 늘리는 성장을 꾀할 게 아니라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질적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정부는 최근 경기둔화 속에서 성장에 매달리느라 감세와 공공서비스 축소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장래에 불균형 심화와 민생 파탄이라는 디스토피아로 가는 길이다. 정부뿐 아니라 기업, 가계도 성장정체 시대에 걸맞은 새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경향 2023-05-31

 

 

혁신과 평등, 진보의 좁은 길

실업 및 나쁜 일자리 문제와 겹친 불평등의 심화는 공동체를 해체시킨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같은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유행처럼 포용적 성장을 지향하는 흐름이 출현했던 배경이다. 그러나 그 포용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는 별로 안 보인다. 유행이 지났는지 포용적 성장이 지체되는 원인도 진단되지 않는다. 오늘날 불평등 문제가 경제성장의 동력인 혁신 과정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경제학자들 사이에 합의된 의견 자체도 많지 않다.

 

경제학자들이 혁신과 평등의 관계에 관심을 갖게 된 하나의 계기는 저임금 노동자의 처지를 악화시키는 숙련 편향적 기술진보를 둘러싼 논의가 진전됐다는 것이다. 그 논의에서 기술진보는 불평등을 초래하는 필요악으로 여겨졌다. 그것은 가난을 면하려면 평등은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전통적 인식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었지만 이후 만만치 않은 반론과 마주해야 했다.

 

예를 들어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연구는 현실의 불평등을 기술 요인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노동의 교섭력 약화가 불평등의 더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임금주도 성장론도 유력한 반론이었다.

 

다만 조지프 슘페터의 영향을 받은 내생적 성장이론의 진전된 연구들을 참고하면 혁신이 최상위 부자들한테 부를 집중시키는 효과만큼은 꽤 뚜렷하다. 그에 비하면 혁신 때문에 소득 분포가 전체적으로 불평등해진다는 증거는 미약한 편이다. 오히려 혁신 기업이 노동자들에게 사회적 엘리베이터를 제공해 사회적 지위의 변동성을 높인다는 연구도 보고된 바 있다. 그러나 혁신이 미숙련 노동에 있어 연공서열을 강화하고, 동일 노동에 대한 기업 간 임금 격차를 키울 수 있다는 결과는 해석이 간단치 않다. 혁신의 지속성도 고려하면서 평등을 추구하는 전망은 여전히 좁은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에서 진보적인 정치권력이 국내 자본권력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에 따라 혁신과 평등의 경제성과에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음도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필연적으로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 사이의 관계, 특히 근저에 깔린 권력 지형을 전환하는 과제를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진보적인 정부는 주류 질서를 뒷받침하는 이론과 접근법으로 그와 같은 전환 과제에 임할 수 있을까. 그보다는 기성의 것들과는 다른 대안적 정치경제학 개념 틀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까.

 

경제학자 마리아나 마추카토와 윌리엄 라조닉의 대안적 설명에 따르면 혁신은 경영자나 주주들의 의지에 기초한 선택이기보다는 기업과 정부, 시민사회가 함께 가치를 창조하는 집합적 과정이다. 혁신은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조직적 학습을 거치며 실현된다. 그 과정에서 납세자를 대표해 정부가 자본 집약적이고 위험이 큰 기술 영역에서 기업이 회피하려는 위험을 감수하는 경우 또한 적지 않다. 정부는 혁신의 성공을 위해 새로운 시장을 형성해내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혁신이 이처럼 집합적인 노력의 결실이라는 사실로부터 가치 창조의 방향성과 가치 분배에 있어 지켜져야 할 원칙이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그것은 공공의 목적을 해치는 것이어서는 안 되며,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것이어야 한다. 가치 창조에 기여한 노동자들을 배제하는 것이어서도 안 된다.

 

자본의 궁극적인 이해관계는 혁신 자체가 아니라 얼마나 더 많은 가치를 사적으로 전유할 수 있는가에 있다. 단기 실적을 중시하며 자사주 매입이나 고액 배당으로 내부 자금을 소진해 혁신의 동력을 약화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부자 감세, 재벌 감세 등으로 그들의 몫을 늘려준다고 혁신의 성공이 보장될 리는 없다. 그렇지 않다면 혁신 이론의 선구자 슘페터 자신부터 왜 자본주의의 몰락을 예견했겠는가. 혁신 성과를 홀로 차지한 자본의 기득권이 새로운 혁신을 막을 것으로 봤던 것 아닌가.

 

인공지능이든, 양자기술이든, 수소경제든 기술 변화의 방향과 혁신 성과의 분배는 어떤 운명적인 과정이 아니며 한 사회의 집단적 선택의 결과다. 불평등 역시 사회계급 간 세력 불균형을 반영할 뿐으로 변경 불가능하지 않다. 로베르토 웅거의 대담한 구상에도 불구하고 지식경제의 확산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며 거꾸로 문제의 새로운 공간이 열릴 뿐이다. 그 지식경제의 공간에서 시민들과 정치권력이 어떤 결정을 하는가에 따라 혁신도 평등도 그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바로 그 결정의 길이 머지않은 미래 한국의 진보 정권이 걸을 좁은 길이다.

나원준 경북대 교수·경제학 경향 2023-05-31

 

한국이 올인하는 인·태 전략은 안녕한가?

윤석열 대통령이 519~21일 주요 7개국(G7) 도쿄 정상회의에 이어 29일 열린 ‘2023 ·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1111일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했고, 정부는 1228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로 이를 공식화했다. 미국의 대중국 전략 상징어인 인도·태평양을 보고서 제목에 그대로 가져온 것에서도 알 수 있듯 미-일 동맹 강화에 올인하는 윤석열 정부가 미국의 인·태 전략에 전적으로 편승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인·태 전략의 전제와 주축은 여전히 모호할 뿐 아니라, 오히려 구멍이 나고 있다. 이 전략의 핵심은 중국 포위와 봉쇄에서 인도가 가세한 점이다. ‘쿼드’(Quad)는 미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호주)-인도의 ‘4자 안보대화로 구체화됐다. 미국은 인도양에서 군사·경제적 영향력 확장을 바란다. 이를 잘 아는 인도는 쿼드를 통해 미국의 지원을 챙기면서도, 중국과의 대결에는 엄정한 선을 긋고 있다. ‘꿩도 먹고, 알도 먹는전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미국이 인·태 전략의 한 축으로 지난해 9월 영국·호주와 오커스 동맹을 체결하자, 하르시 바르단 당시 인도 외교부 부장관은 그 조약이 앵글로색슨 국가들의 전략적 동맹이라며 쿼드와는 상관없고, 쿼드 기능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 언론들은 중국을 군사적으로 겨냥한 오커스가 쿼드에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선을 긋는 동시에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호주에 주는 것에 대한 불쾌감의 표현이라고 전했다.

 

<포린 어페어스>에서는 최근 인도에 대한 미국의 잘못된 도박뉴델리는 베이징에 대항하는 워싱턴의 편을 들지 않을 것이라는 기고가 화제였다. 2000년대에 조지 부시 행정부가 원전 기술 제공 등을 통해 미국-인도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로 개선할 때 참가했던 인도 출신의 애슐리 텔리스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이 기고에서 인도는 워싱턴과의 협력이 (인도에) 가져다줄 편익을 평가하나, 그 대가로 어떤 위기 국면에서도 미국을 물질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는 특히 인·태 전략에서 미국이 지향하는 대중국 합동작전을 의미하는 상호작전이라는 개념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기고 뒤 텔레비전에서 텔리스와 토론한 수브라마니암 자이샹카르 인도 외교장관도 동맹을 찾아 전세계를 뒤지는 미국 같은 나라와 (인도)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호주와 일본은 미국과 동맹 관계이지만 인도는 단지 동반자 관계다. 미국-인도는 그런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아르잔 타라포레 스탠퍼드대 연구학자도 인도·태평양에서 최선의 미국 도박이라는 제목의 반론 기고에서 미국은 인도양에서 인도의 군사·경제적 능력 신장에 도움을 주는 것만으로도 최선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인도는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기는커녕 러시아와의 교역을 확대했다. 그런데도 미국은 오히려 인도의 심기를 살폈다. 현재 미국과 인도의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태 전략은 인도보다 중동에서 구멍이 나고 있다. 미국에 이 전략의 전제는 중동 안정이다. 지난 3월 중국이 중재한 사우디아라비아-이란 국교정상화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동 지정학의 격변을 보여줬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사우디는 러시아와 손을 잡고 석유 감산을 주도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확대했다. 미 동맹국이나 탈미 독자행보를 선도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도 최근 재집권에 성공했다.

 

미국이 인·태에서 대중 봉쇄망을 치는 사이 중-러는 중동에서 치고 나오는 모양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미 패권에 최대 위협이라고 지적한 중--이란 연대가 뚜렷해진 것이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7일 사우디를 전격 방문해, 미국과 인도·이스라엘·아랍에미리트연합 간 협의체인 ‘I2U2’를 가동해, 동부 지중해와 페르시아만을 잇는 철도망 등 대형 인프라 건설을 제안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6월 사우디를 방문한다. 미국은 다시 중동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처지다. 중동에서 중--이란을 막아내려던 사우디 등 수니파 보수 왕정과 이스라엘의 스크럼 짜기가 무너지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미국 반도체회사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는 미국의 대중 대결이 빅테크 산업을 망치고 있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미 재계에서도 인·태 전략 부작용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이다. 이처럼 인·태 전략에 대한 우려는 인도-중동-미국 재계 등에서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와 달리 인·태 전략에 올인하고 있다. 대중 무역적자 등 한국을 향해 밀려오는 파고가 더 거세질지 우려할 수밖에 없다.

정의길 | 국제부 선임기자 한겨레 2023-05-31

 

 

한국도 외로움 담당할 장관이 필요하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정호승 시인은 수선화에게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난해 한 여론조사에서 우리나라 성인의 절반 이상이 외롭다고 답했다.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거나 세상에 혼자 남겨진 느낌이라고 했다. 늙고 은퇴한 노년층에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학업에 몰두해야 하는 청소년,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도 외롭긴 마찬가지다. 군중 속에 있어 역설적으로 더 외롭고, 지인들의 SNS를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들은 대부분 외로움을 스스로 해결한다. 혼자 TV를 보고, 잠을 자고, 음악을 듣는다. 누군가를 만나 밥 먹고 이야기도 하고 싶지만 경제적 형편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사회에서 고립돼 외로움이 심해지면 건강에도 문제가 생긴다. 고독의 해악은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같다는 연구도 있다. 그 외로움의 끝은 고독사. 혼자 삶의 마지막 순간을 쓸쓸히 맞은 후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발견된다.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죽음이다.

 

우리나라 인구 중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고령화율은 17%가 넘는다. 고령화가 가장 진척된 일본에는 못 미치지만 진행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1인 가구는 이미 30%를 넘었다. 고독사 위험군은 전체 인구의 3%152만명에 이른다. 고독사는 20213378명으로 5년 사이 40% 급증했다. 전체 죽음의 1%가 고독사라니 놀랍고도 서글프다. 우리 정부는 최근에야 고독사 문제 해결에 첫걸음을 뗐다. 지난 18일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1차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은 일상생활 속에서 고독사 위험군을 발굴할 수 있도록 지역 주민이나 지역밀착형 가게를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제라도 대책을 내놓은 건 다행이지만, 고위험군의 발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2014년 복지 사각지대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은 송파 세 모녀 사건을 돌아본다. 이후 사회안전망 밖의 위험군을 찾아내는 대책이 쏟아졌지만 위기가구로 지정되고도 유사한 죽음들을 막진 못했다. 중요한 건 이들을 찾아낸 후 사회로 끌어내 연결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외로움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질병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고독 문제를 정부 차원에서 대처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65세 이상 1인 가구나 기초생활수급자에 맞춰 있는 대책을 청년층으로까지 확대해야 한다. ‘고독사는 사회적 타살입니다의 저자인 경찰관 권종호씨는 인간의 존엄이 무너진 마지막 순간들을 수없이 보면서 고독사는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해 일어나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은 20181월 세계에서 처음으로 고독을 담당하는 외로움부를 신설해 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 관련 부처 장관이 이를 겸직했다. 전체 인구(6600만명) 중 약 14%900만명이 고독을 느낀다는 보고서가 발표된 게 계기가 됐다. 고독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는 경제 전체에 320억 파운드(52조원)의 손실을 줬다. 영국은 고독 퇴치 예산으로 2000만 파운드(328억원)를 책정했다. 공공의료가 무료인 영국에는 아파서 병원을 찾는 게 아니라 외로워서 의사를 만나러 오는 사람이 20%나 됐다. 의사가 이 사람은 치료가 아니라 사회적 처방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약 대신 지역 활동에 참가하도록 도와준다. 연금생활자와 집 없는 청년이 공동생활을 하게 하고, 퇴직자와 실직한 이들이 목공 등을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은둔형 외톨이라는 뜻의 히키코모리가 일찌감치 사회 문제가 된 일본은 영국을 벤치마킹해 2021년 고독·고립 담당 장관을 신설해 지방창생 장관이 겸직한다. 미국 정부는 최근 외로움과 고립감이라는 유행병보고서를 통해 외로움을 비만이나 약물중독 같은 심각한 공중보건 문제로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로움은 전염성이 강한 사회적 질병이다. 국가 차원의 고독 탈출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할 정도로 심각하다. 이번 정부 정책은 고독사 같은 외로움의 결과에 맞춰져 있는데 그 이면에 있는 원인인 고립감과 외로움을 살펴야 한다. 그래야 고독사를 미연에 막을 수 있다. 해외에 참고할 사례가 많다. 한국도 외로움을 담당할 장관을 만들면 어떨까. 여러 부처에 걸쳐 있는 외로움 관련 정책을 총괄할 컨트롤타워 역할을 위해서다. 복지부 장관이 겸직하는 걸로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

한승주 논설위원 국민일보 2023-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