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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23년7월1일~31일 정권이 바뀌면 우려가 ‘괴담’이 되는 나라

by 이성근 2023. 7. 31.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것 경향 : 2023.07.01.

'극우 유튜버'들과 총선 170석 달성? 대통령의 무운을 빈다 | 프레시안 : 2023.07.01.

그럼 윤 대통령은 반국가 세력검찰총장이었나 한겨레 : 2023.07.02.

일베정치, 차관정치, 공포정치 경향 : 2023.07.03.

재현의 권력과 권력의 재현 경향 : 2023.07.03.

대기업과 시민단체, 누굴 더 믿나? 한겨레 2022-06-15

이권 카르텔과 싸우는 대통령님, 검찰은요? 경향 : 2023.07.03.

윤석열 정부는 왜 극우로 퇴행할까 한겨레 : 2023.07.03.

한국 산재사, 일본 과로사, 미국 절망사 경향 : 2023.07.04.

차라리 인류애라고 해라 경향 : 2023.07.04.

정권이 바뀌면 우려가 괴담이 되는 나라 경향 : 2023.07.05

윤석열 정권 이상 징후가 가리키는 것들 한겨레 : 2023.07.05

보수의 사상전, 그 두번째 화살 경향 : 2023.07.06.

자본의 죽음 충동이 일으킨 후쿠시마 핵폐수 위기 시민언론 민들레 : 2023.07.06.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에 갈 종교인들 시민언론 민들레 : 2023.07.06.

오염수만이 문제가 아니다 프레시안 : 2023.07.07.

헌법을 욕보이는 대통령 인사권 경향 : 2023.07.07.

오염수 방류와 국가의 역할 경향 : 2023.07.09.

생태경제학, 마르크스 이후의 소디 경향 : 2023.07.10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주간경향 23. 07. 10

 

현장에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있다 경향 : 2023.07.11.

압축성장 뒤에 드리운 그늘 경향 : 2023.07.11.

오염수와 사회적 갈등의 본질 경향 : 2023.07.11.

원전 중심 세계관의 충돌을 상정하는 싸움 경향 : 2023.07.11.

알 수 없는 세상 국제 : 2023.07.11.

건강진단, 환경측정과 후쿠시마 괴담한겨레 : 2023.07.11.

학력이 우선이라는 말의 함정 | 프레시안 2023.07.11.

용산 정치의 카르텔 경향 : 2023.07.12

자본주의의 운명 경향 : 2023.07.12.

극단적 선택’, 극단도 선택도 아니다 경향 : 2023.07.12.

남탓, 전 정권 탓, 네이버 탓 한겨레 : 2023.07.12.

인생 100세 시대가 '축복' 아닌 '재앙'인 이유 | 프레시안 2023.07.12.

군함도와 후쿠시마 오염수일본을 믿자고요? 경향 : 2023.07.13.

국민 여러분, 아프면 큰일 나요 경향 : 2023.07.13.

가치와 동떨어진 윤 대통령의 가치외교 경향 : 2023.07.13.

윤석열 정권도 역사가 된다 한겨레 : 2023.07.13.

멧돼지가 나타났다 경남도민 : 2023.07.13.

명품 선망이라는 시대정신 경향 : 2023.07.14.

누구를 위한 헌법 정신인가 경향 : 2023.07.14.

33년 묵은 반헌법적 손배폭탄’, 이대로 둘 건가? 시민언론 민들레 2023.07.15

미국의 기술패권, 어디까지 갈까 경향 : 2023.07.17.

법치경제학 또는 공포경제학 경향 : 2023.07.17.

인류세, 위험에 대한 상상이 필요한 이유 경향 : 2023.07.17.

상후하박 경제, 윤석열 경제가 가는 길 경향 : 2023.07.17.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대통령, 영부인, 참모 한겨레 : 2023.07.17.

2년째 물난리, 국가는 또 없었다 경향 : 2023.07.17.

시럽급여, 적나라한 저소득자 혐오경향 : 2023.07.17.

방사선 피폭 앞에 국경은 없다 경향 : 2023.07.17.

공직자들 탐욕과 비겁이 낳은 괴물 부동산 카르텔시민언론 민들레 2023717

김건희 여사의 가방과 명품쇼핑’, 그리고 우리 언론 미디어오늘 1410호 사설 . 2023718

뉴라이트가 독립유공자를 재심사하는 시대 경향 : 2023.07.19

가치 공동체의 명암 경향 : 2023.07.19

시민단체 부정행위?’ 사실·실체부터 살피고 제대로 비판하라 한겨레 : 2023.07.19.

갈고리즘과 특정 세력의 외압’ : 2023.07.20.

예비타당성조사의 수난 한겨레 2023-07-20

제집 노리는 도둑 있는데, 남의 집 문단속 하러 간 분단 국가 대통령 | 프레시안 2023.07.22.

좌파가 싫어하는 영화의 대박 경향 2023-07-21

K팝 여성 팬의 낮은 인권은 돈이 된다 경향 2023-07-21

왜 집값 못 띄워 안달할까 : 매일노동뉴스 2023-07-22

박근혜 유체이탈’ + MB이벤트’ = 윤석열 국정 경향 : 2023.07.24

국민노후 저버린 윤석열 정부의 이권 카르텔경향 : 2023.07.24.

누가 교육을 죽이는가 경향 : 2023.07.24.

윤 대통령 왕 놀음그 커튼 뒤를 보라 한겨레 : 2023.07.24.

윤석열·김건희를 위해 몸 바칠 사람은 없다 한겨레 : 2023.07.24.

 

종전선언과 반국가세력 한겨레 : 2023.07.30

학생인권 탓하다 개혁의 적기 놓친다 경향 : 2023.07.31.

오송 참사, 학교 비극 그리고 각자도생 경향 : 2023.07.31.

괴담이라는 괴담과 과학 보도 경향 : 2023.07.31.

나는 안 아플 줄 알았다 경향 : 2023.07.31.

우리는 이동관 홍보수석실이 한 일을 알고 있다 한겨레 : 2023.07.31.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것

일본이 다핵종제거설비인 알프스(ALPS)를 통과한 물을 30여년에 걸쳐 태평양에 방류하겠다고 밝히는 시점이 다가온다. 국내에선 때아닌 논쟁이 활발하다. 어떤 이들은 그 물을 처리수라 부르며 인체에 무해하다고 말한다. 국정 고위 책임자들과 원자력 연구자들 가운데는 그 물을 몇 리터라도 마실 수 있다고 장담한다. 그들은 그 물을 원전 오염수라고 부르는 이들이 괴담을 퍼뜨리고 있다고 매도한다.

 

환경운동가들과 의사들은 아직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현실이기에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선 동위원소 세슘-137은 반감기가 무려 37년이고, 세슘은 해양생물 속에 농축돼 그것을 섭취하는 사람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생식 기능이 떨어지고 기형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정부도 이런 위험성을 인지하고, 우리 해역과 수산물에 대한 안전관리 강화를 위해 총 177억원 규모의 예비비를 추가 편성했다고 밝혔다. 어민들과 상인들은 해산물 소비가 줄어들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미묘한 불안감이 우리 삶에 스며들고 있다. 제 아무리 보짱이 굳은 사람이라 해도 불안감조차 물리치기는 쉽지 않다. 소금을 사재기하는 이들도 생기고, 차량을 이용해 소금을 훔치다가 붙잡힌 이도 있다. 아이들의 건강 문제에 예민한 학부모들은 다량의 김을 확보하려 동분서주한다는 소문도 있다.

 

원전 오염수 못지않게 심각한 것이 있다. 거리에 나부끼는 플래카드에 적힌 내용들이다. 대상을 특정하지 않는 분열적 정보가 기관총처럼 우리 가슴을 저격한다. 정당들이 내건 것이든 시민단체가 내건 것이든 부정적인 표현 일색이다. 대립적이고 분열적인 제로섬 사고를 강요하는 정치적 구호를 보며 후련함을 느끼는 사람이 더러 있을지 모르겠지만 국민 대다수는 그런 언어를 폭력으로 경험한다. 그런 텍스트를 접하며 마음이 따뜻해지고 맑아지고 넓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른 이들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동원되는 수사가 우리 시대의 망탈리테를 만든다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이소크라테스는 진정한 설득은 그럴듯한 말에서 나오지 않는다. 말을 통해 전해지는, 그리고 그 생각을 올곧게 만들어주는 품성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정치인들의 말을 사람들이 좀처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뚝별스러운 그들의 언행 속에서 품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 아닐까? 한나 아렌트는 정치란 함께-함의 형식을 탐구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함께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다. 상생의 정치는 꿈에 불과한 것일까?

 

메소포타미아나 그리스 신화의 창세 신화는 폭력으로 물들어 있다. 세상은 신들의 치열한 싸움을 통해 만들어졌다. 세상의 질료는 패배한 신들의 피와 몸이다. 찢긴 몸과 땅에 흐른 피가 세상의 씨앗이라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들은 세상에 만연한 갈등과 전쟁과 폭력의 이유를 설명해주는 데 유용하다. 투쟁은 삶의 불가피한 요소라고 인정하는 순간 세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되고 만다. 그런 세상에서 평화를 꿈꾸는 것은 몽상에 가깝다. 갈등 혹은 전쟁은 승자와 패자를 낳는다. 승자는 오만에 빠지기 쉽고 패자는 속으로 한을 품는다. 보이지 않는 적대감이 친밀한 소통을 막는다.

 

성경이 들려주는 창조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신은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했다. 창조 작업이 순조롭게 이루어진 것을 볼 때마다 신은 보기에 좋다며 기뻐했다. 폭력의 서사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기쁨이 들어선 것이다. 신은 사흘 동안은 뭇 생명들이 살아갈 공간을 만들고 그 후 사흘 동안은 그 공간을 해와 달과 별, 그리고 온갖 식물과 동물로 채웠다. 일곱째 되는 날 신은 안식을 누렸다.

 

성경의 창조 이야기는 과학자들이 말하는 우주 발생론과 경쟁하지 않는다. 창조 이야기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속에 깃든 신비에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아름답다. 그것을 함부로 파괴하거나 남용할 권한을 부여받은 존재는 없다. 인간은 신이 만든 세상에 잠시 왔다 가는 존재일 뿐이다. 인간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자연을 닦달하는 삶은 결국은 공멸로 이어질 뿐이다. 자연도 함께 살아야 할 소중한 이웃이다. 그 이웃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야말로 인간됨의 조건이 아닐까?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경향 : 2023.07.01.

 

'극우 유튜버'들과 총선 170석 달성? 대통령의 무운을 빈다

전광훈은 갔지만, '전광훈 정신'은 용산에 살아 있다

희한하게도 한국 보수 정치인들에게 더 많이 인용되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전'이론은 그들이 말하는 '한국 좌파 운동권'의 주류였던 적이 단 한번도 없었고, 지금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그람시의 이론을 교시로 삼지도 않는다. 최근 국정원이 원훈석 글씨를 '신영복체(어깨동무체)'로 사용한 걸 빌미로 원훈석을 갈아치운 이유도 짐작가는 바가 없지 않다. 신영복이 생전에 '진지전'을 중시했다는 건 잘 알려진 이야기인데, 지금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회 곳곳'의 사람들에게 '당신은 신영복의 교시를 받고 하는 것이오'라고 묻는다면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어떤 사회 현상 속에 강력한 '의지'가 존재한다고 상정하고 가상의 ''을 구체화해 인격을 부여하는 건 음모론자들의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보수 정치인들이 그들이 비판하는 '음모론적 좌파'들 이상으로 '음모론'에 열광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허수아비 때리기'가 보수 진영 소수파의 신경질적 반응이 아니라, 집권 여당의 단골 레파토리 수준으로 격상된 것을 우린 목도하고 있다. 극우 유튜버의 슬로건들은 이제 국정을 논하는 여당 최고위원회의 테이블이나 국가 고위 인사들의공식 발언에도 섞여 올라온다.

 

"문재인이가 간첩이라는 걸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70% 이상의 국민이 문재인이 간첩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박인환 검찰제도발전위원회 위원장)

 

개인의 일탈일 줄 알았으나,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최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69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윤 대통령의 연설을 보면서다.

 

"현재 우리는 많은 도전과 위기에 직면해 있다. 조직적으로 지속적으로 허위선동과 조작, 가짜뉴스와 괴담으로 자유 대한민국을 흔들고 위협하며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자유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고 하거나 자유 대한민국의 발전을 가로막으려는 세력들이 나라 도처에 조직과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

 

사회 곳곳에 위장한 혁명 세력이 대한민국 체제 전복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는 이론은 생소한 것은 아니다. 전광훈 류의 극우 인사들의 주장이다. 이런 논리는'민주화운동기념일'에도 등장한다. 내친김에올 들어 주요민주주의 기념일을 대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를살펴보면독특한기류가발견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우리가 오월의 정신을 잊지 않고 계승한다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모든 세력과 도전에 당당히 맞서 싸워야 한다"'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에 대해 말한 바 있다. 한 달 전인 4.19혁명기념식에도 참석해 "거짓 선동과 날조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들은 전체주의를 지지하면서도 겉으로는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행세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거짓과 위장에 절대 속아서는 안 된다""4.19혁명 열사가 피로써 지켜낸 자유와 민주주의가 사기꾼에 농락당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4.19, 5.18 기념식에 참석해 "자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가짜 민주주의 운동가'를 비난한 윤 대통령은 4.3추모식, 6.10항쟁기념식엔 불참했다. 우연이라기 묘한 시사점이 있다. 4.3'공산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윤 대통령 주변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6.10은 그야말로 '586 운동권세력'의 상징과도 같은 민주화운동 아닌가. 윤 대통령이 생각하는 '합의된 민주화 운동 기념일'은 헌법에 담겨있어 이견이 존재하지 않는 4.19, 대통령 공약으로 '헌법 정신 수록'을 언급한 바 있는 5.18 정도인 것 같다. 우연이라 치기엔 공교롭다. 민주화 운동 기념일도 본인이 가진 모종의잣대로 ''을 나누고 있는 것 아닐까. 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는 만날 수 있지만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만날 수 없는 것처럼.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조화'를 보낼사람과 안 보낼 사람을골라냈다는것처럼.

 

민주화운동 기념일 연설들을 포함해, 최근 윤석열대통령의메시지는 대체적으로일관성을 갖고 있다.그는 지난 427일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의회 연설에서"전체주의 세력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부정하면서도 마치 자신들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인 양 정체를 숨기고 위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튿날 미국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에서 한 연설에서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이들은 민주 세력 인권운동가 등으로 위장하고 있다"주장했다.

 

이런발언은 "전광훈 목사가 우파 진영을 천하통일 했다"는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의 인식과 맥이 닿아 있다.지난 3월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북미주자유민주주의수호연합 주최 강연회에서 김 최고위원은"곳곳에서 이른바 자신들의 정권이 바뀌어도 나는 다음 정권이 등장할 때까지 그대로 남아 내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는 진지전을 계속 하고" 있다며 "공산주의 이론가 중에 그람시의 진지전 이론이 있는데, 그 진지전 이론이 가장 정확하게 적용되는 게 오늘날 한국의 현실이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전광훈 목사는 "현 국내정세는 6.25전쟁 직전의 상황과 같다""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자유우파는 대결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그람시의'진지전'이론을받아들여'공산혁명'위해사회곳곳에'좌파'들이대한민국을호시탐탐노리고있다는말이다.

 

다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보자.

 

"자유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고 하거나 자유 대한민국의 발전을 가로막으려는 세력들이 나라 도처에 조직과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휴전선 너머 존재하는 북한이 만약에 사라진다고 쳐도, '대한민국 체제 위협'은 거의 항구적이다. 대통령의 인식 속 대한민국은 사실상 내전 상태다. 표면적으로 전광훈과 결별했다지만, '전광훈 정신'은 용산에 살아 있다.

 

'문재인은 간첩'이라는 박인환 위원장은 전광훈 목사의 변호사 출신이다. 그는 전광훈 추천 당원을 내보내야 한다는 논란이 일자 "황교안 전 대표나 홍준표 시장은 한 때는 표를 얻으려고 전광훈 목사에 스스로 접근했던 사람 아닌가? 지금 와서 자기 생각에 안 맞다고 몰아내자고 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고 전 목사를 옹호했다. 전 목사가 '문재인 하야 집회'를 하는 도중에 보수 정당을 찍으라고 말했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되자 전광훈 목사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렸다. 여기엔 석동현 변호사도 이름이 올라와 있다. 석 변호사는 윤석열 대통령의 절친으로 잘 알려져 있고, 지금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임명장을 받았다.

 

'문재인은 간첩'이라는 박인환 위원장이나 '양민 학살' 진상규명을 비판한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 등을 정부에 기용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대통령 취임식에 극우 유튜버 안정권 씨가 초청된 것도, 안정권 씨 누나인 극우 유튜버가 대통령실에 채용된 것도, 뉴라이트 김성회 씨가 대통령실 종교다문화비서관에 기용된 것도, 극우 정당 자유의새벽당 출신 강기훈 씨가 대통령실에 근무한 것도, '북한 체제 파괴'를 주장한 김영호 씨를 통일부장관에 내정한 것도 모두 설명이 된다. '문재인이 군인들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지시했다'고 주장한 극우 유튜버가 공무원 교육을 담당하는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에 내정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진지전' 이론대로 '자유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 하는 세력들'이 나라 도처에 조직과 세력을 구축하는 걸 막기 위해 '극우 유튜버'들 대동한 '진지전'을 펴려는 것인가.

 

요컨대 윤석열 정부는 가장 지독한 이념 정권이라고 규정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박근혜도 못한 것을 윤 대통령이 이룬 것이다. 언제부터 그가'전광훈류'음모론에경도됐는지수는없지만,앞으로우리는많은'태극기부대''극우유튜버'들이사회곳곳에,고위공직곳곳에'진지'파고들어앉아있는모습을보게같다.<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윤대통령은내년 총선 목표를 170석으로 잡았다고 한다. 극우 유튜버들을 적극 기용해 중도로 뚜벅뚜벅 나아가며 170석을 달성할 수 있길 바란다. 무운을 빈다.

박세열 기자 | 프레시안 : 2023.07.01.

 

 

 

그럼 윤 대통령은 반국가 세력검찰총장이었나

윤석열 대통령은 언제나 상상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는 특이한 대통령입니다. 지난주에도 가장 뜨거운 정치 뉴스를 생산한 사람은 윤 대통령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이 지난 628일 자유총연맹 창립 기념식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정부를 반국가 세력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인 29일 개각에서 김정은 정권 타도를 공공연하게 주장해온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를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습니

 

두 사건은 긴밀히 연결돼 있습니다. 윤 대통령의 가치관과 정책 노선이 극우로 선회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윤 대통령을 일베 대통령이라고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너무 심한 것일까요?

 

전임 정부 검찰총장과 반국가 세력

윤 대통령이 자유총연맹 행사에서 정확히 뭐라고 말했는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능하면 전문을 한번 찾아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는 내용이 심각한 두 대목만 소개하겠습니다.

 

조직적으로 지속적으로 허위 선동과 조작 그리고 가짜뉴스와 괴담으로 자유 대한민국을 흔들고 위협하며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또 돈과 출세 때문에 이들과 한편이 되어 반국가적 작태를 일삼는 사람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 세력들은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하여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습니다. 북한이 다시 침략해 오면 유엔사와 그 전력이 자동적으로 작동되는 것을 막기 위한 종전선언 합창이었으며, 우리를 침략하려는 적의 선의를 믿어야 한다는 허황된 가짜 평화 주장이었습니다.”

 

이번 발언이 대형 사고인 이유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민주당 정부를 통째로 반국가 세력이라고 지칭했기 때문입니다. 윤 대통령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색깔론으로 민주당을 공격했지만, 문 전 대통령과 민주당 전체를 반국가 세력이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20211229일 경북도당 선대위 출범식 발언이 대표적입니다.

 

좌익 혁명 이념 그리고 북한 주사 이론, 이런 거 배워서 민주화운동 대열에 낑겨서마치 민주화 투사인 것처럼, 지금까지 끼리끼리 서로 도와가면서 살아온 집단들이 이번 문재인 정권 들어서서 국가와 국민을 약탈하고 있습니다.”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전에는 그래도 민주화운동 대열에 낑겨서 살아온 좌익 세력을 분리해서 비난했지만, 이번에는 문 전 대통령과 민주당 전체를 반국가 세력이라고 공격한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문 전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이었습니다. 문 전 대통령과 민주당 정부가 반국가 세력이라면 윤 대통령 자신도 그 당시 반국가 세력의 주요 구성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윤 대통령의 반국가 세력 발언에 대해 국민의힘에서는 일단 주워 담으려는 반응이 먼저 나왔습니다.

 

하태경 의원은 지난 29일 아침 <시비에스>(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이야기하는 반국가 세력이라는 이 센 발언은 국가 안보에 대한 걱정이지, 지난 정부를 간첩 세력이라고 보는 건 아니라는 걸 명확히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국민의힘 고위 당직자도 기자들과 한 비공개 간담회에서 어제 대통령의 반국가 세력 발언은 자유총연맹이란 단체가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자고 만든 단체니까, 청중을 고려한 발언이었다고 본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2연평해전 기념식에 참가한 뒤 기자들이 윤 대통령의 발언에 관해 묻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통령 발언은 정확히 팩트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민주당의 반발을 이해할 수 없다. 종잇조각에 불과한 종전선언 하나로 대한민국의 평화가 온다고 외치면 그것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기자들이 야당을 반국가 세력이라고 한 것은 협치와 거리가 있는 것 아니냐고 묻자, 김 대표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대한민국을 적의 손아귀에 놀아나게 하는 그런 세력이 있다면, 그것은 협치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기자들이 다시 반국가 세력이 제1야당이냐고 묻자, 그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29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제2연평해전 승전 21주년 기념행사에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유족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대출 정책위의장도 윤 대통령을 옹호했습니다.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해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종전선언 노래 부르고 다닌 분들, 이분들을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충신이라고 할까요? 애국자라고 할까요?”라고 빈정댔습니다.

대통령실의 반응은 29일 오후 늦게야 나왔습니다. 기자들이 반국가 세력 발언의 배경에 대한 추가 입장을 물었습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경제 안보가 제일 중요하다. 우리 경제에 해가 되면 반경제 세력이다. 안보에 해가 되면 반안보 세력이다. 둘 다면 반국가 세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정부나 특정 세력을 겨냥한 건 아니고, 일반적인 말씀을 하셨다고 생각한다. 국가 이익에 반하는 안보·경제적인 주장이나 세력이 있는 건 분명하지 않나. 또 하나 생각해 볼 대목은 대통령의 메시지라는 게 티피오(TPO·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에 따라 뉘앙스는 변하기 마련이다. 기자회견 할 때, 국회 연설할 때, 미국 의회 연설할 때, 소르본대 강연할 때, 베트남 학생 만날 때 국정 메시지는 일관되지만, 뉘앙스는 변화를 주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해해달라. 어제는 1954년 직후 반안보 세력으로부터 나라를 구하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만든 조직의 행사였기 때문에, 티피오를 감안해서 듣는 것도 괜찮겠다.”

여러분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습니까? 저는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대통령의 실수를 주워 담으려다 보니 논리가 배배 꼬이는 것 같습니다. 그냥 깔끔하게 표현이 지나쳤다고 사과하면 될 일 아닌가요? 비겁하기 그지없습니다.

 

김영호, 공공연히 흡수통일 주장

문 전 대통령과 민주당이 반국가 세력이라고 한 말은 윤 대통령의 진심이라고 봐야 합니다. 북한과 통일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인식은 놀라울 정도로 극우적이기 때문입니다. 윤 대통령은 문제의 발언 다음날인 29일 개각에서 미리 알려진 대로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를 지명했습니다.

 

김 교수는 유튜브를 통해 공공연하게 김정은 정권 타도와 사실상 흡수통일을 주장해온 극우 뉴라이트 성향 인사입니다. 이런 사람을 통일부 장관에 앉히려는 것은 앞으로 남북 대화를 포기하고 북한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328일 국무회의에서 이런 말을 한 일이 있습니다.

통일부는 앞으로 북한 퍼주기는 중단하고, 북한이 핵 개발을 추진하는 상황에서는 단돈 1원도 줄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하라.”

북한의 인권, 정치, 경제, 사회적 실상 등을 다양한 루트로 조사해서 국내외에 알리는 것이 안보와 통일의 핵심적 로드맵이다.”

단돈 1이라는 표현 때문에 파문이 일자, 통일부가 바로 그날 오후 인도적 지원은 일관되게 추진한다는 기존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진화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앞서 127일 통일부 업무보고 때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만약에 북한이 지금 우리 남쪽보다 더 잘산다면 그쪽 중심으로 돼야 될 거고, 남쪽이 훨씬 잘산다면 남쪽의 체제와 시스템 중심으로 통일이 돼야 되는 게 상식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주변국이나 전세계나 우리 국민들이, 또 북한 주민들도 가능한 한 실상을 정확하게 알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들어도 흡수통일을 의미하는 발언이었습니다. 이때도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130<한국방송>(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흡수통일은 절대로 아니다라고 극구 해명하는 촌극이 벌어졌습니다.

 

유튜브로 배우는 정치와 세상

윤 대통령의 인식은 왜 점점 더 태극기 부대를 닮아가는 것일까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첫째, 철학의 빈곤입니다.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 이념 성향이 별로 뚜렷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뒤늦게 통일·외교·안보에 대해 편향된 지식을 습득하면서 극우 성향으로 급속히 바뀌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이게 다수설입니다.

둘째, 극우 유튜브를 너무 많이 보는 것 같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윤 대통령의 발언 내용과 논리가 극우 유튜버들의 그것과 너무나 닮았다는 것이 근거입니다.

어쨌든 윤 대통령의 이러한 극우 성향과 인식은 앞으로 두고두고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며 커다란 문제를 일으킬 것입니다. 최근 윤석열 정부에 몸담은 인사들의 터무니없는 극우 발언이 잇따르는 것도 그런 조짐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보상은 부정의라고 주장한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 ‘문재인 전 대통령은 간첩이라고 한 박인환 경찰제도발전위원장, ‘군인 마스크를 벗게 한 문재인 전 대통령은 군인을 (코로나19) 생체실험 대상으로 사용하라고 지시한 셈이라고 한 김채환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내정자 등이 당당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들을 왜 발탁하고 교체하지 않는 것일까요? 혹시 윤 대통령 자신도 이들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그건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한겨레 : 2023.07.02

 

 

일베정치, 차관정치, 공포정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한국자유총연맹 제69주년 창립기념행사에서 우리는 올바른 역사관, 책임있는 국가관, 명확한 안보관을 가져야 한다면서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세력들은 북한 공산집단에 대해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요청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 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고 말했다.

 

이튿날 대통령실은 지난 정부나 특정 정치 세력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한발 뺐지만, 문재인 정부가 종전선언을 일관되게 추구했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이 말한 반국가세력은 문재인 정부나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반국가세력에 호응하는 말은 대화와 타협이 아니라 박멸이나 척결이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는 나와 다른 생각의 공존을 인정하는 상대주의적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정책을 폈다고 반국가세력이라고 낙인찍는 건 파시스트의 언어이지 민주주의자, 자유주의자의 언어가 아니다.

 

최근 여권 인사들이 극언을 쏟아낸 것도 우연이 아니다. 국무총리 직속 자문기구인 경찰제도발전위원회 박인환 위원장은 지난달 28일 내년부터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이관되는 것과 관련해 문재인이가 간첩이라는 걸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최근 간첩단 사건이 나오는데 문재인 비호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라며 “(대공수사권 이관까지) 이제 6개월 남았는데 70% 이상의 국민이 모르고 있다. 문재인이 간첩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다고 했다. 김채환 신임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차관급) 내정자는 지난달 6일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에서 “(윤 대통령이) 보다 획기적으로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느린 방법 말고 보다 빠르고 전격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면서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헌법 제76조에 규정된 긴급 명령을 발동하여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세력들을 해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이런 극우적 인식이 여권 내부에서 지배적인 세계관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발맞춰 정부의 왼손에 해당하는 부처나 각종 위원회에 대한 무력화, 희화화 작업도 착착 진행 중이다.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북한 전체주의 체제의 파괴라고 주장하는 극단적 대북 대결론자를 통일부 장관에, “(이태원 참사는) 피해자들이 몰주의해서 스스로 너무 많이 모였다가 참사가 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국가인권위원에 앉히는 식이다. 가히 일베정치의 제도화라고 할 만하다.

 

윤 대통령이 국회 과반 의석을 점한 야당을 대화의 상대로 여긴다면 반국가세력 운운하지 않을 것이다. 내년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노리되, 그전까지는 의회정치를 포기하고 행정부 재량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밀어붙이자는 게 윤 대통령 생각인 것 같다. 그러자면 직업 공무원들을 확실히 틀어쥐어야 한다. 그 방편 중 하나가 장관 대신 차관을 교체하는 이른바 차관정치이다. 위험하고 번거롭기 짝이 없는 국회 인사청문 절차를 피할 수 있는 데다 대통령실과 코드가 맞는 실세 차관을 내려보내 각 부처의 업무를 직할할 수 있으니 꿩 먹고 알 먹는 격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는 공무원들에게는 감사와 수사가 기다린다. 윤 대통령이 수능 난도말 한마디로 수능을 불과 5개월 앞두고 교육부 대입담당 국장과 교육과정평가원장을 날려버린 것은 공직사회에 던지는 강력한 시그널이다. 말을 듣지 않으면 지위고하와 시기에 상관없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구도의 핵심은 감사원이다. 최근 감사원이 핫코너로 급부상한 것은 공직사회를 틀어쥐기 위한 윤석열식 공포정치의 축이 감사원이기 때문이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2015년 남녀 동수 내각을 꾸린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지금은 2015년이니까요.” 시간은 진보의 벡터라는 역사관을 산뜻하게 표현한 것이다. 반면 지금 한국은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가 말한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보여주는 실험장 같다. 1950년대식 아부(윤 대통령에게 입시에 대해 많이 배운다는 교육부 장관), 1960·1970년대식 반공주의, 1980년대의 살풍경이 어른거리는 파업·집회·시위 대응, BTS K콘텐츠의 세계적 성공, AI와 챗GPT가 같은 시공간에 어지럽게 섞인 모습은 그로테스크한 부조리극 같다. 지금은 2023년이고, 여기는 대한민국이다.

정제혁 사회부장 경향 : 2023.07.03.

 

 

재현의 권력과 권력의 재현

일어났던 일을 남김없이 기록한다고 해서 그대로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누가 언제 어떤 입장에서 서술하는가에 따라 서로 대립하는 여러 관점의 이야기들이 있을 따름이다. 그러하므로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는 일종의 환상일지도 모른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낱낱이 쓴다고 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온전히 재현되는 것도 아니다.

 

재현의 근본적 불가능성 같은 철학적 명제를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어떤 정치적 맥락에 놓여 있는가에 따라 할 수 있는 말과 할 수 없는 말이 결정됨을 얘기하고자 함이다. 강자의 언어와 약자의 언어는 결코 같은 힘을 갖지 않는다. 강자의 말이 위에서 아래로 흐를 때, 때로 그것은 분수처럼 흩어지며 최초에 의도하지도 않았던 파급효과까지도 가져온다. 약자의 말은 아래에서 위로 치솟지 못하고 입속으로 삼켜지거나 스러진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정보를 많이 가진 쪽이 그렇지 못한 쪽에 대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권력을 가진 쪽으로 정보가 흘러가며, 실제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가와 무관하게 많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인정된다. 역사적으로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수많은 독재자들이 현지지도교시’, 심지어는 그에 만족하지 않고 어록이나 철학적 저술까지 남기려 했고 남길 수 있었던 까닭이다.

 

수능시험에서 킬러 문제를 배제해야 한다는 권력의 언어가 내뱉어지자 그 권력사다리의 아래쪽에선 문제 해결 과정에 상당한 시간이 요구되거나 실수를 유발한다거나 상당히 고차원적 접근방식을 요구한다는 등의 정의가 만들어진다. 취미모임의 회칙으로서도 추상적이고 엉성한 것들이지만, 내겐 그 문장을 붙들고 모니터 앞에 앉아 야근했을지도 모를 어느 공무원의 퀭한 눈빛이 먼저 떠오른다. 인터넷엔 벌써 간단한 나눗셈으로 풀 수 있는 초등 수학문제를 엉뚱한 이차방정식으로 만들어 푼 다음 초등수학 킬러 문제라며 비아냥대는 패러디가 돌아다닌다.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촘촘히 줄 세우지 말자던 이른바 진보는 킬러 문제가 필요한 듯 주장하고, 변별을 통한 교육의 수월성과 자유경쟁의 원리를 그토록 강조하던 이른바 보수는 어느새 사교육 분쇄에 목숨이라도 건 듯 행동한다.

 

킬러 문항 색출을 위한 위원회 구성이란 모든 객관식 문제에는 반드시 하나의 답이 있다고 믿는 사고구조만큼이나 단편적인 논리의 결과물이다.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의 주역으로까지 등장했던 일타강사들은 공공의 적이 된다. 1980년대 이후 출생이 대부분인 그들을 좌파 운동권세력이라 몰아붙이는 시간 착오에서 비극은 희극으로 바뀐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는 고사성어에나 나오던 일화가 현실에서 재현되는 이 시대, 이 분수효과의 끝이 어디일지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문제는 수능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영역, 정확하게 말하자면 권력이 선별적으로 규정하는 모든 영역에서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기준금리는 올라도 금융감독자의 말 한마디로 은행금리는 내리고, 고위 경제 관료의 발언에 라면이나 과자 가격이 일부지만 실제로 내려가도, 자유시장의 원리를 외치던 그 많은 경제학자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2017년 대통령선거에서 좌우를 가리지 않고 대다수 유력후보들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막상 문재인 정부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결정했을 때 대선 당시 똑같은 공약을 만들거나 적어도 묵인했던 다른 후보 캠프의 경제학자들은 앞장서서 시장논리 침해라며 공격했다. 지금은 그들조차 명백한 시장논리 침해에 침묵하고 있다. 경제학적 의미에서 카르텔이라 부를 근거가 별로 없는 일타강사들의 고소득에 대한 공격에 앞장선 한 보수언론이 앞서 종합부동산세나 법인세 인상 등에 맞서 부자에 대한 증오를 거두라고 일갈했다는 사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역사발전에 그나마 법칙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면, 인간의 자유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변화해간다는 것일 것이다. 밀턴 프리드먼의 이념적 할아버지쯤 되는 프리드리히 폰 비저가 최근 한국에서도 번역된 <권력의 법칙>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그렇지만 누구의,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는 추상적 구호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영역에서 구체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당장에는 그러한 결정을 독점한 것처럼 보이는 그 소수가 결국에는 어떤 식으로건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 그때쯤이면 권력의 재현은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 바로 그것이 재현의 권력을 지닌 이들에게 줄 수 있는 충고이다.

류동민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경향 : 2023.07.03.

 

 

대기업과 시민단체, 누굴 더 믿나?

“‘시민단체하면 사람들은 권력, 정치권, 시민과 동떨어진 그런 걸 떠올리는 것 같아요.” “어디 가서 시민운동 한다고 하면 더불어민주당 쪽이라 생각해요.” “주민들은 시민단체가 관이랑 끈이 있는 사람들, 돈 끌어올 수 있는 사람들이라 보죠.” “사람들한테 신뢰를 얻으려면 시민단체라고 말하면 안 돼요.”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신진욱이 지난해 몇달 동안 연구 목적으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수십명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반복해 들은 이야기라고 한다. <한겨레21> ‘신진욱×이세영의 정치크로스의 모든 내용이 다 알차지만, 특히 왕성한 성찰로 가득한 이 글이 가장 좋았다. 신진욱은 그런 시선에 비친 시민단체는 정치세력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갖거나, 정부지원금으로 연명하거나, 공공사업을 명목으로 이득을 취하거나, 시민이 일군 사회적 자산을 개인 자산으로 삼아 정치권·공공기관에 자리를 얻어 가는 사람들로 그려지는 것 같다고 했다.

 

냉소주의로 단련된 사람들은 코웃음을 칠지 모르겠지만, 사실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다. 이 글에 소개된 한국행정연구원의 2021년 사회통합실태조사 결과는 그런 충격을 수치로 입증해준다. 시민단체보다 신뢰도가 낮은 기관은 국회와 노조밖에 없었으며, 시민단체를 신뢰한다는 응답자 비율(53.4%)이 시민단체의 비판·감시 대상인 금융기관(66.2%), 대기업(56.7%), 정부(56.0%)보다 낮았다고 하니, 이런 시민단체가 왜 필요한 건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왜 이렇게 된 걸까? 고려대 명예교수 최장집은 국가권력과 시민운동이 특혜와 지원을 대가로 정치적 지지를 교환하는 관계가 됐다고 했다. 물론 그런 권력과의 유착에 따라붙는 건 바로 돈이다. 시민단체를 포함한 민간단체에 대한 국고보조금은 201635600억원에서 202254500억원으로 2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문재인 정부 5년간 국고보조금은 20조원을 넘었을 정도로 폭증했건만 관리·감독은 소홀해 온갖 비리가 난무했다.

지난 64일 대통령실이 발표한 비영리 민간단체에 지급된 국고보조금에 대한 감사 결과를 보자. 최근 3년간 지급된 12천여개 사업 68천억원이 감사 대상이었는데, 1865314억원의 부정 사용이 적발됐다고 한다. 이를 빙산의 일각으로 본 윤석열 정권은 내년도 비영리 민간단체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올해보다 30% 줄이고, 부정·비리가 적발된 민간단체의 보조금을 전액 환수하겠다고 밝혔다.

윤 정권의 거친 언어와 일 처리 방식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문제의 본질에 집중해보자.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수 김정희원도 최근 <한겨레> 칼럼에서 이제 정부 비판적 사업은 설령 그 비판이 정당하거나 필요한 것일지라도 보조금이 끊길까, 혹은 신고당할까 두려워 애초에 추진되지 못할 수 있다반면 정부 정책기조에 발맞춘 사업은 우선해서 보조금을 지원받게 될 것이다라고 우려하면서도 칼럼 제목 그대로 진보는 보조금으로 오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시민단체의 생존이 당근과 채찍에 결판나지 않으려면 풀뿌리로부터 자원이 모여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보조금에 기대지 않고 사회운동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힘은 오직 평범한 사람들의 참여뿐이다. 소액이더라도 다수의 풀뿌리 후원이 장기적으로 이어진다는 전망이 있을 때 사회운동은 변절하지 않고 뚝심 있게 지속될 수 있으며, 그 활동기반을 두려움 없이 단단하게 다질 수 있다.”

 

물론 풀뿌리 후원이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기부금 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민단체들의 재원을 갑자기 대폭 줄이겠다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그럼에도 시민단체가 정작 해야 할 일이 기부금 문화의 정착을 위한 노력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해보는 건 어떨까? 정부의 보조금은 정파적 영향을 받기 마련인데, 시민단체가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라도 정파적 투쟁의 선봉에 설 수 있는 가능성도 우려해야 하는 게 아닐까? 아니 이미 그런 현실이 전개되고 있지 않은가.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 대거 정·관계에 진출하는 관행도 정말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이는 그 어떤 장점에도 불구하고 신뢰할 수 있는 중립지대의 소멸이라는 점에서 국가적 비극이다. 이미 두개로 쪼개진 나라의 분열을 심화시켜온 사회를 정쟁의 소용돌이로 몰아가서 얻을 게 무엇이 있단 말인가? 대기업보다 낮은 신뢰도를 가진 시민단체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들을 놓고 차분하되 왕성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강준만 |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한겨레 : 2023.07.03.

 

시민단체는 정말 권력이 됐을까

1세대는 제도화, 엘리트 집단화2000년대 시민사회 다양화됐지만 영향력 낮아져

시민사회요? 요새 아무도 그런 말 안 써요.” “‘시민단체하면 사람들은 권력, 정치권, 시민과 동떨어진 그런 걸 떠올리는 것 같아요.” “어디 가서 시민운동 한다고 하면 더불어민주당 쪽이라 생각해요.” “주민들은 시민단체가 관이랑 끈이 있는 사람들, 돈 끌어올 수 있는 사람들이라 보죠.” “사람들한테 신뢰를 얻으려면 시민단체라고 말하면 안 돼요.”

 

필자가 지난 몇 달 동안 연구 목적으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수십 명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반복해 들은 이야기다. 학문적으로 시민사회라는 개념은 시민의 자발적 결사체의 장, 더 엄밀하게는 시민이 공동선을 위해 활동하는 사회적 공간을 뜻한다. 그런 의미의 시민사회단체에는 사회운동조직, 주민공동체, 협동조합, 소모임 등 실로 다양한 유형이 포함된다.

 

감시 대상보다 신뢰 못 얻는 시민단체

현대의 시민사회 이념은 이처럼 시민이 만나고, 조직하고, 숙의하는 행동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사회적 연대와 자율의 공간을 창출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시민사회’ ‘시민단체’ ‘시민운동은 종종 그와 전혀 다른 의미로 이해된다. 시민과 분리된, 권력에 가까운, 그러면서 시민을 위한다고 말하는 위선적 기득권층으로 인식된다.

 

그런 시선에 비친 시민단체는 정치세력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갖거나, 정부지원금으로 연명하거나, 공공사업을 명목으로 이득을 취하거나, 시민이 일군 사회적 자산을 개인 자산으로 삼아 정치권·공공기관에 자리를 얻어가는 사람들로 그려지는 것 같다. 시민사회 이념과 정반대 이미지가 지금 한국에선 시민사회라는 단어에 부착됐다.

 

물론 이런 부정적 담론은 일부 정치권과 언론의 프레이밍이 만들어낸 면이 없지 않다. 악의적인 사실 왜곡, 시민 활동에 대한 폄훼, 정치적 오용 등 여러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정치공세, 이념공세로 치부하고 방어적 태도만 취하는 것은 시민단체와 그 리더들에 대한 신뢰 하락이 지난 10여 년간 계속됐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정한울 정치학 박사의 논문을 보면 2000년대 초까지 시민에게 가장 신뢰받던 시민단체가 노무현 정부 후반 신뢰를 잃기 시작해 2016년에는 군대, 언론, 경찰보다 신뢰받지 못하는 기관이 됐다. 이런 추이는 응답자의 이념 성향이 진보든 보수든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보·보수를 넘어 신뢰받던 시민단체의 사회적 기반이 매우 좁아졌다.

 

문재인 정부 5년을 지나면서 시민단체에 대한 시민의 신뢰는 더 악화한 듯하다. 한국행정연구원의 2021년 사회통합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시민단체보다 신뢰도가 낮은 기관은 국회와 노조밖에 없었다. 시민단체를 신뢰한다는 응답자 비율(53.4%)이 시민단체의 비판·감시 대상인 금융기관(66.2%), 대기업(56.7%), 정부(56.0%)보다 낮았다.

 

이 충격적인 현실은 비단 시민단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공익활동, ‘사회적기업, ‘비영리단체 등이 모두 그런 의혹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 모든 선한 가치, 진지한 노력이 냉소의 대상이자 위선 징표로 추락할 위험에 처함은 단지 특정 단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가치 실종과 진정성 위기를 시사한다.

 

그러므로 시민사회에 대한 이런 인식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오해인지, 문제가 있다면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지, 왜 그런 문제가 생겼는지, 그리고 오늘날 한국 시민사회의 새로운 긍정적 잠재성은 어디에 있는지 냉정한 분석과 더불어 미래를 위한 진지한 토론이 요구된다.

 

정치권력과 엘리트 네트워크 형성

시민단체가 시민과 유리된 권력집단이 됐다는 인상은 민주화 이후 10여 년 동안 한국 시민사회의 성장을 주도한 단체들의 전문화, 제도화 경향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엘리트 네트워크의 특성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이 단체들의 리더·활동가들과 그에 연계된 진보적 전문가 집단은 정부, 정당, 언론, 법원 등 한국 사회의 제도권력과 때론 충돌하고 때론 협상하면서 복지, 여성, 환경, 인권 등 많은 분야에서 법과 제도 개혁을 달성했다. 그 과정에서 이 단체들의 활동방식과 지식기반은 점점 더 전문화되고 일반 시민은 후원회원에 머물러 변화의 주인공이 되기 어려워졌다.

 

시민운동을 주도한 세력은 흔히 민주화운동 경험이나 대학 운동권 학연으로 이어진 엘리트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 중 적잖은 사람이 이후 정치권으로 나아갔고, 특히 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 고위공직자나 공공기관장이 됐다. 이에 따라 정치권력과 시민사회 사이 한편으론 조직적 긴장관계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적 연계가 공존한다.

 

이런 정부-시민사회 연계는 제도와 정책 발전에 부정적이기만 하지 않다. 시민사회가 발전시킨 혁신 의제는 정부·정당이 시민사회에 적대적일 때보다 우호적일 때 실현될 가능성이 당연히 크다. 하지만 그런 긍정적 기능은 시민사회가 정치에 대해 힘의 우위, 또는 최소한 분명한 자율성을 가질 때 실현될 수 있다. 바로 그 점을 불신하는 시민들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시민사회가 전체적으로 권력화됐거나 정치적 독립성을 잃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21세기 들어 시민의 사회적 활동 장에서 일어난 중대한 변화를 전혀 쫓아가지 못하고 여전히 1990년대 시민단체에 머무른 관점이라 할 수 있다.

 

풀뿌리·페미니즘·주민운동 등 다양화

변화의 구조적 핵심은 전통적인 운동단체뿐 아니라 각양각색의 비영리단체,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풀뿌리 주민단체, 비공식적 소모임과 네트워크가 급증하면서 시민사회 생태계가 매우 다양해졌다는 사실이다. 한때 한국 시민사회를 대표한다고 자부했던 시민단체는 이처럼 분화된 생태계 한 부분으로 그 위치와 역할이 바뀌었다.

 

이 추세에는 2000년대 이후 정치환경과 법적·제도적 조건의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이명박 정부 때 제정·시행된 협동조합기본법과 사회적기업육성법, 박원순 시장 시절 서울시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한 지자체의 민관협력 거버넌스 정책 등이 시민사회 변화를 촉진했다. 진보·보수 정권 할 것 없이 시민을 정부 정책의 중요한 대상이자 파트너로 받아들였다.

 

이뿐만 아니라 촛불시민 모임, 페미니즘 소모임, 주민 독서모임 등 수많은 비공식 커뮤니티가 생겨났다는 사실도 중요한 변화다. 이들은 공식 통계에 드러나지 않는 거대한 미시적 시민사회의 장을 구성한다. 그 토대 위에서 시민은 정치사회적 이슈가 점화될 때 거대 단체에 의존하지 않고 행동할 역량을 갖게 됐다.

 

이런 변화는 시민단체로 절대 축소될 수 없는 한국 시민사회의 발전상과 새로운 잠재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시민 활동의 제도적 장이 점점 더 분화되고 다양화되는 과정에서 과거에 민주화운동을 계승한 시민운동단체들의 문제와 전혀 다른 새로운 문제와 극복할 과제가 생겨났다는 점을 또한 주목해야 한다.

 

우선 시민 활동과 조직형태의 다양화와 분화가 계속되면서, 시민사회의 전체 장 안에서 현 사회질서에 대해 더욱 근본적인 비판과 개혁을 추구하는 운동의 상대적 위상이 과거보다 약화했다. 물론 최근 페미니즘 운동이나 기후행동이 활발해지는 등 의제에 따라 차이와 변화 주기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사회운동 부문의 규모와 영향력이 작아졌다.

 

또한 그동안 빠르게 팽창한 사회적경제나 민관협력 거버넌스처럼 시민사회가 시장 또는 정부 논리와 혼합되는 제도적 접경지대에서 시민사회의 자율성과 정체성이 위협받는 측면이 있다. 한국에서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지원은 정부의 산업·고용·복지 정책으로서 성격이 강했다. 정부가 주도하고 시민은 그에 종속되기 쉬운 구조이다.

 

정부·기업 견제할 역량 키워야

거버넌스 역시 중앙정부-광역-기초단위로 내려오는 상명하달식 민간지원 또는 위탁사업 성격이 많기에 시민 주도적 협치가 실현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구나 중앙정치에서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해 여러 정책이 나와도 공공과 시민의 접촉면에서 공무원은 시민 활동의 가치와 특성을 인식도 인정도 못하면서 성과만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시민단체의 전문화, 제도화, 엘리트 네트워크가 1987년 민주화 이후 급성장한 1세대 시민단체의 내재적 위험을 발생시켰다면, 2000년대 이후 확장된 다양한 새로운 영역은 정부와 지자체, 기업과 주체적 관계를 맺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 기반, 자율적 역량을 발전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22-06-15

 

eas****정부 지원금, 기업 협찬금으로 먹고살고 그러고도 뭔 시민단체냐?

그냥 사회에 기생하는거지. 땀흘려 일하기는 싫고. 가방끈은 길고, 대졸은 넘치고, 나는 엘리트라고 자부하는데, 대학교, 대기업이든 정부든 그럴싸한데 잡도 못구했고. 시민단체로라도 살면서 기회를 엿봐야지. 잘하먄 돈도 벌고 명예도 얻고 , 국회의원도 하고.

 

곰선생 -분석이 너무 형식적이네.. 110년간 나라를 망쳐온 적폐적패들이 시민단체들을 어찌 악용했는 지는 일제부터 면면히 대대로 나와 있는데.. 역사는 파악을 하고 이런 분석을 했을까?? 시민운동을 제대로 설명할 애들이 많지 않은데 누굴 만나서 들었나?? 역사를 모르면 뜬구름이나 잡지.. 그리고 현실과 내부를 파고 들어가야지. 그러면 극우 매국노 뉴라이트 경상도 충청도 서울제국대 연세제국대 등 마피아 쓰레기들의 실체가 나오지.. 시민운동 만들어 놓으면 떼거리로 와서 망치는 쓰레기들.. 예전에 박그네만든 쓰레기들을 그 10년전 쯤 봤었는데.. 신촌에서 시민운동모임이라고 해서 가 보니 극우매국노경충쓰레기들 집회더만..그런데도 정부 부처 공무원놈들이 예산 지원하고 있더군.. 그 근처 학교들 교수쓰레기들도.. 율사 군바리장성 정치인 재벌마누라들 명동사채업자.... 요즘 극우매국노 방송에서 떠들어대는 쓰레기들의 원조 선배놈들도.. 오세훈 이명박 때 서울시민자원봉사센터가 어찌 만들어졌는 지는 아나?? 경실련은? 참연은? 자전거타기하는사기꾼은?? 의겸이도 좀 알텐데.. 영희도.. 선배들한테 물어나 봐라. 90년대부터라도 취재한 애들이니..겉핧기가 많지만 그래도 도움은 될거다.

 

이권 카르텔과 싸우는 대통령님, 검찰은요?

 

대검찰청이 카카오톡 검찰 채널에서 배포한 검찰티콘(검찰+이모티콘). 대검 제공

 

안녕하세요, 저는 검찰티콘입니다. 검찰티콘이 뭐냐고요? 에이, 최신 트렌드에 어두우시군요, 분발 좀 하셔야겠어요. 대검찰청이 최근 카카오톡 검찰 채널을 통해 배포한 이모티콘이랍니다. 검찰을 상징하는 남녀 캐릭터와 함께 국민을 섬기는 검찰’ ‘정의롭군요’ ‘진실’ ‘검모닝(검찰+굿모닝)’ 등의 문구가 담겨 있어요. 25000개를 배포했는데 10분 만에 소진돼 2차로 1만개를 더 배포했답니다. 검찰이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증거라 생각하니 뿌듯합니다.

 

검찰의 존재감이 이렇게 커진 건 역시 윤석열 대통령님 덕이겠죠? 검찰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대통령님께선 꾸준히 검찰 출신을 중용하고 계십니다. 대통령실(비서관급 이상)에만 검찰 출신이 7명입니다. 인사기획관, 총무·인사·공직기강·법률·국제법무비서관, 부속실장이요. 내각에는 법무부·국토교통부·국가보훈부 장관이 있습니다. 통일부 장관은 떠나지만, 대신 장관급 국민권익위원장으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출신이 왔죠. 차관급은 더 많아요. 금융감독원장, 법제처장, 국무총리 비서실장, 국가정보원 기조실장, 권익위 부위원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 1000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상근전문위원 중에도 검사 출신이 있습니다. 중도에 그만뒀다고 빠뜨리면 섭섭해하겠죠? 조상준 전 국정원 기조실장, 정순신 변호사(국가수사본부장 낙마) 얘깁니다.

 

대통령실은 아직도 검찰 출신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김홍일 권익위원장 내정 후 핵심 관계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검사 출신이 많다는 이야기가 타당한지 생각해볼 대목이 있다. 월요일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는 검사 출신이 한 명도 없어 불편할 때도 있다. 수사 관련 보도·현안이 많은데 참석자 중 검사 출신이 없으니까.” 비서관 가운데 많아도 수석 중엔 없다는 말이죠. 그런데 수사 관련 사항을 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논의해야 하는지 궁금해지네요.

 

대통령님은 요즘 이권 카르텔과의 전쟁에 진심입니다. 3일 신임 차관들과 오찬에서 우리 정부는 ()카르텔 정부라며 이권 카르텔과 가차 없이 싸워달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지난달 29일 대통령실 비서관 중 차관 내정자들과 만나서도 약탈적 이권 카르텔을 발견하면 맞서 싸워달라. 정당한 보상으로 얻어지는 권리와 지위가 아닌, 끼리끼리 카르텔을 구축해 획득한 이권은 국민을 약탈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권 카르텔에 대한 그의 관심은 사실 오래됐습니다. 대선 후보 시절 오랜 세월 집권해 이권을 나눠 먹은 카르텔 기득권 세력을 박살 내겠다”(20222)고 밝혔습니다. 취임 후엔 국민을 고통에 빠뜨리는 기득권 이권 카르텔을 확실하게 뿌리 뽑아야 한다”(지난 3), “개혁은 언제나 이권 카르텔의 저항에 직면하지만, 좌고우면하지 않겠다”(지난 5)고 했어요. 최근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킬러 문항논란과 관련해 교육당국과 사교육 산업이 한편(카르텔)이란 말인가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쯤에서 의문을 갖는 분이 생길 겁니다. ‘지금 가장 강력한 이권 카르텔은 검찰 아닌가?’ 법무부·검찰청 외에 금융·통일·정보·인권·연금 분야까지 검사 출신이 진출하고, 이들 대부분이 검찰 내 윤석열 사단이거나 대통령님과 개인적 인연을 맺고 있으니까요. 검찰 시절 한동훈 장관은 대통령님을 석열이 형으로, 대통령님은 김홍일 권익위원장을 이라 불렀다지요.

 

착각하지 마세요. 대통령님 말씀을 새겨보세요. “정당한 보상으로 얻어지는 권리와 지위는 이권 카르텔과 무관합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명언을 남겼잖아요. “(대통령이) 입시 수사를 여러 번 하면서 깊이 있게 고민하고 연구해서, 제가 많이 배우는 상황”(이 부총리), “대통령은 조국 일가 사건을 수사지휘하는 등 대입 제도에 대해 누구보다 해박한 전문가”(박 의장). 대통령님 본인이 후보 시절 이야기한 적도 있습니다. “제가 대통령 업무를 수행하는 데 문제가 없다. 26년 검사 생활을 하며 다양한 분야를 경험했다.”(20219) 수사 좀 해본 검사들은 무불통지(無不通知무소불위(無所不爲)랍니다. 검찰은 카르텔의 예외입니다.

 

국민 여러분, 오늘도 검찰(및 검찰 출신)은 이권 카르텔 척결에 매진하겠습니다. 저희를 믿고 좋은 아침 맞으세요. 검모닝! 윤모닝(윤 대통령+굿모닝)!

김민아 칼럼니스트 경향 : 2023.07.03

 

 

윤석열 정부는 왜 극우로 퇴행할까

이명박 정부 말기,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보가 사석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엠비(MB)를 그리워할 날이 올 것이라고. 민간인 사찰 등으로 정권이 궁지에 몰리는 등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원성이 높았던 터라 그때는 마지막 집착 정도로 들렸다. 그런데 몇년 뒤 불통박근혜 정부에서 그 말이 떠올랐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때, ‘박근혜 정부를 그리워할 날이 오리라고는 또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최근 박근혜 정부는 그래도 이 정도로 난폭하진 않았다는 말을 하는 이들이 점점 생겨나고 있다.

 

지난달 28일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총연맹 행사에 참석해 문재인 정부를 향해 종전선언을 추진했다는 이유로 반국가세력이라 칭했다. 다음날에는 김정은 정권 타도를 주장하는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를 통일부 장관에 지명하고, ‘군인 마스크를 벗게 한 문재인 전 대통령은 군인을 (코로나19) 생체실험 대상으로 사용하라고 지시한 셈이라고 한 유튜버 김채환(62)씨를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차관급)에 임명했다. 그 이전에도 윤 대통령은 김광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 박인환 경찰제도발전위원장, 이충상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등 다양한 극우 인사들을 어울리지 않는 직책에 임명해왔다.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에서도 이런 극우 일변도에 우려하는 이들이 있다. 미약하나마. 무엇이 윤 대통령을 이데올로기의 화신으로 만들었을까. ‘철학의 빈곤 속에 극우 유튜브를 너무 많이 본 걸까’, ‘극우 본색을 드러낸 걸까’.

64주차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36%. 대통령들은 늘 여론조사에 일희일비 않는다고 하지만, 과하게 일희일비한다. 그래서 여론 추이를 보며 발언 수위를 조정하고, 정책을 수정하기도 한다. 이 정도 지지율이면 중도 확장으로 향하는 게 공식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일희만 하고, 일비는 않는 듯하다. 왜 이러는 걸까.

 

한국갤럽 제공

 

나름의 소명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하는 여권 인사들이 꽤 있다. 윤 대통령이 정치 선언을 할 때 부르짖은 말이 검수완박, 부패완판이었다. 국민들이 대통령으로 만들어줬으니 이제 부패 카르텔척결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검사 정체성을 대통령직에 그대로 끌고 온 것이다. 세상은 검사와 범죄자로 나뉘지 않는데, 컬러텔레비전에 흑백 화면만 송출하고 있다. 정치를 모르는데 알려고도 않는다. 정치란 타협과 조정의 산물인데 정치적이란 단어를 술수로 인식하니, 오직 수사에 매진할 뿐이다.

 

두번째로는, 아무도 제어를 못 하기 때문이다. ‘59이란 별명처럼 어떤 회의에서도 혼자 다 말한다는 얘기가 끊임없다. 여기에 검사 시절 습성인 격하고 거친 말로 사람들의 혼을 빼놓으니, 오랜 신뢰관계가 탄탄히 쌓이지 않았다면 감히 앞에서 토를 달지 못한다. 그러니 한쪽 방향으로 폭주하더라도 제지는커녕 대통령에게 많이 배운다며 추임새를 넣는다. 대통령에게 오히려 해가 되고 있다. 대통령실, 국무위원들의 직무유기다. 자기 확신에 점점 빠져들게 되는 구조다.

 

세번째로는, 한국 사회 지배 엘리트의 자장에 매몰돼 있다. “태극기 부대에는 아스팔트 우파들만 있는 게 아니라 교수 출신, 서울대 출신 은퇴자들도 적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다. 실제로 그렇다. 극우 유튜브의 텃밭이 60대 이상 노령 은퇴층이고, 이들 중에는 식자층과 부유층도 적지 않다. 윤 대통령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사람들은 이들이다. 윤 대통령은 그 속에 있다.

네번째로는, 검찰의 존재다. 30%대 대통령에게 여당이 이렇게 꼼짝 못 하는 경우는 정권 초창기임을 고려해도 드문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처럼 당내에 친위 세력이 애초부터 깊게 자리 잡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에게는 역대 어느 대통령에게도 없었던 검찰이 있다. 야당을 향하는 칼날이 언제 나를 향할지 알 수 없는 탓에 한번 더 자제하게 되고, 한번 더 주춤하게 만든다. 군사정권에서 군과 중앙정보부의 역할을 지금 검찰, 감사원 등 사정기관이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진영 양극화로 중간지대가 사라지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지난해 화물연대 총파업 강경대응 이후로 노조 때리기, 일본 외교 문제, 킬러 문항, 오염수 논란에도 지지율이 더 빠지지 않는 걸 보면서 특유의 강공이 유효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듯하다.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지지했던 층 가운데 합리적 중도세력은 상당수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 남은 건 극우 세력과 반민주당 세력이다. 윤 대통령의 방향성이 맘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더불어민주당은 싫은 이들이 윤 대통령에게 볼모 잡혀 있다. 그래서 적절한 극우 행보가 총선에 불리하지 않다는 고려도 깔려 있다. 진짜 극우 행보는 아직 안 온 것 같다.

권태호 | 논설위원실장 한겨레 : 2023.07.03.

 

 

한국 산재사, 일본 과로사, 미국 절망사

지난 623, 27세의 노동자가 홀로 엘리베이터 수리 작업을 진행하다 20아래 바닥으로 추락해 사망했다. 그는 혼자선 작업이 힘들어서 못하겠어요. 도와주세요라며 동료에게 전화한 이후 14분 뒤 추락했다고 전해진다. 노동건강연대에 따르면, 매년 7명가량의 노동자가 엘리베이터 작업 도중 사망했다고 전해지며, 올해는 6월까지 27세 노동자를 포함해 벌써 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4명의 사망원인은 끼임, 떨어진 물체에 외상, 추락, 또다시 추락이었다.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막대한 업무량, 절대적으로 부족한 기한, 그리고 노동조합의 주장에 응답하지 않은 기업이었다.

 

죽은 이의 동료는 익명 게시판에 예견된 인재이고 분명 경영진이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음을 강조했다. 해당 사건은 중대재해처벌법 대상 사건으로 조사가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그 결과 또한 기다려 봐야 하며 그 기간 동안 누군가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말 앞으로 남은 3명이 채워질까 벌써부터 두렵기만 하다.

 

<2146,529>라는 숫자가 제목인 책이 있다. 숫자의 의미는 부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노동자의 죽음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2002산재사망은 기업의 살인이다를 슬로건으로 출범한 노동건강연대는 20221월에 2021년 산재사망자 수의 추정치 ‘2146’, 그중 사고사 및 과로사 수 ‘529’를 제목으로 새긴 책을 발간했다. 책은 그해 발생한 산재사망 기사를 날짜별로 정리해 놓았다. 이 칼럼이 게재되는 2년 전 같은 날짜에도 추락사로 3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책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작은 파편과도 같은 산재사망 기사들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사망 당시의 현장과 업무는 달랐지만 모두 끼이고, 부딪치고, 추락해 사망에 이르렀다. 책은 이 처참한 장면들이 한국 사회에서 20년간 변함없이 ‘1년에 2100, 하루 5~6발생하고 있음을 기억해주길 소망한다. 2021126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고, 2022127일 법이 시행되었지만, 여전히 이 죽음의 레이스는 멈춰지지 않고 있다.

 

한국의 산재사고의 치명률(노동자 10만명당 치명적 산업재해 수)이 가장 높았던 시기는 1994년으로 34.1명에 달했다(통계청 자료). 이후로 감소추세에 있지만,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5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같은 시기 옆 나라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든 문제는 1980년대부터 등장한 과로사였다. 그중에서도 1990년대 들어 과로 자살이 가장 큰 문제로 급부상했다. 일본의 우울증과 과로 자살 문제를 20년간 추적한 의료인류학자 기타나카 준코 교수는 그 원인으로 도저히 감당해 낼 수 없는 수준의 과도한 업무량, 일본문화 특유의 집단을 위한 희생 강요, 그리고 이를 홀로 감당해내야 하는 막다른 현실을 꼽았다. 이로 인해 이른바 국민병이 돼버린 우울증(일명 과로 우울증’)이 노동자 사이에서 확산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 자살을 선택한 노동자가 증가했다고 보았다. 1990년대 경기침체 시기 약 12년 동안 매년 3만명이 넘는 자살 수치와 2.4배가량 증가한 우울증 환자 수치가 이를 잘 대변해준다.

 

필자의 외국인 친구들은 한국의 높은 산재 사망률에 관해 이야기하면 믿지 못하는 표정을 짓는다. 기타나카 교수 역시 미국의 동료들에게 일본에서 과로로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하는 노동자가 많다고 이야기했을 때 그들 역시 믿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미국 경제학자 앵거스 디턴 교수(2015년 빈곤연구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2020년 아내 앤 케이스 교수와 함께 출간한 책에서 미국사회의 절망사(deaths of despair)’를 지적한다. 이들이 주목한 절망사의 원인은 자살, 약물 과다복용, 알코올성 간 질환이다. , 경제적·사회적·심리적 절망으로 인해 좀 더 빠르고 혹은 느린 방법을 통해 미국인이 사망에 이르고 있다고 본다.

 

생각해보면, 얼핏 달라 보이는 한국의 산재사와 일본의 과로사, 미국의 절망사는 어딘가 비슷해 보인다. 그것은 희망찬 미래보다 막막한현실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혁신으로 장밋빛 미래를 예찬하지만, 이 세 종류의 죽음이야말로 지금 인류가 마주한 미래이지 않을까. 디턴과 케이스 교수가 예견한 자본주의의 미래에도 아직 희망보다 절망이 가득해 보인다.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경향 : 2023.07.04.

 

 

차라리 인류애라고 해라

국익(國益)의 뜻은 나라의 이익이다. ‘나라는 뭘까. 사전에는 영토와 사람들로 구성되고, 주권을 통한 하나의 통치 조직을 가진 집단이라고 쓰여 있다. 요컨대 국민과 영토, 주권이라는 3요소로 나라는 이뤄진다. 나라와 국익 얘기를 꺼내는 것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생긴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려는 일본 정부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어서다.

 

오염수는 어떤 식으로든 한국의 국익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오염수를 방류하지 않으면 한국 국익이 보존될 뿐이고, 방류하면 국익은 훼손된다. 여기서 말하는 국익은 국민의 건강이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오염수 방류는 반드시 막아야 할 일이다.

 

반면 미량의 방사능은 국민 건강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으니 설사 일본 정부가 오염수를 방류해도 국익은 훼손되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엄청나게 많은 태평양 바닷물에 섞일 오염수를 두고 호들갑을 떨지 말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1977년 제기한 알라라(ALARA) 원칙을 보면 이런 주장에 의문이 생긴다.

 

알라라 원칙은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 원자력 규제기관이 따르는 국제 규칙이다. 알라라 원칙의 핵심은 합리적으로 달성 가능한 한 피폭량을 낮게 유지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피할 수 있는 방사능은 무조건 피하는 게 좋다는 뜻이다. 컴퓨터단층촬영(CT) 같은 꼭 필요한 상황을 빼놓고는 미량이라고 해서 쪼여도 괜찮은방사능 같은 것은 없다는 의미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이 오염수에 대해 큰 문제 없을 것이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뭘까. ·일관계 개선을 염두에 뒀기 때문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북핵이나 경제 문제에서 협력하려면 일본 정부가 사활을 걸고 있는 오염수 방류를 반대해서는 곤란하다. 게다가 미국은 대중국 전략 차원에서 한·일관계의 복원을 원한다.

 

국익(國益)의 뜻은 나라의 이익이다. ‘나라는 뭘까. 사전에는 영토와 사람들로 구성되고, 주권을 통한 하나의 통치 조직을 가진 집단이라고 쓰여 있다. 요컨대 국민과 영토, 주권이라는 3요소로 나라는 이뤄진다. 나라와 국익 얘기를 꺼내는 것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생긴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려는 일본 정부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어서다.

 

오염수는 어떤 식으로든 한국의 국익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오염수를 방류하지 않으면 한국 국익이 보존될 뿐이고, 방류하면 국익은 훼손된다. 여기서 말하는 국익은 국민의 건강이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오염수 방류는 반드시 막아야 할 일이다.

 

반면 미량의 방사능은 국민 건강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으니 설사 일본 정부가 오염수를 방류해도 국익은 훼손되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엄청나게 많은 태평양 바닷물에 섞일 오염수를 두고 호들갑을 떨지 말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1977년 제기한 알라라(ALARA) 원칙을 보면 이런 주장에 의문이 생긴다.

 

알라라 원칙은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 원자력 규제기관이 따르는 국제 규칙이다. 알라라 원칙의 핵심은 합리적으로 달성 가능한 한 피폭량을 낮게 유지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피할 수 있는 방사능은 무조건 피하는 게 좋다는 뜻이다. 컴퓨터단층촬영(CT) 같은 꼭 필요한 상황을 빼놓고는 미량이라고 해서 쪼여도 괜찮은방사능 같은 것은 없다는 의미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이 오염수에 대해 큰 문제 없을 것이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뭘까. ·일관계 개선을 염두에 뒀기 때문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북핵이나 경제 문제에서 협력하려면 일본 정부가 사활을 걸고 있는 오염수 방류를 반대해서는 곤란하다. 게다가 미국은 대중국 전략 차원에서 한·일관계의 복원을 원한다.

 

하지만 이런 외교적인 목적이 달성된 뒤에도 한번 방류가 시작된 오염수는 멈추지 않고 계속 바다로 나갈 것이라는 게 문제다. 일본 정부 계획으로도 오염수는 30년간 방류된다. 국내 일부 전문가들은 금세기 말까지도 방류가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2023년의 국제 정세에 대응하려는 현세대가 정책 결정에 전혀 참여하지 못한 미래세대에게 방사능이 미량 섞인 바닷물은 건강에 큰 문제가 없으니 안심하라고 말할 권리가 있는지 의문이다.

 

오염수 방류가 해도 될 법한 일이라는 판단이 든다면 괴담을 퍼뜨리지 말라고 할 게 아니다. 차라리 일본에 인류애를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낫다. 일본이 곤란한 일을 겪고 있으니 오염수 방류를 이해해 주자고 국민을 설득하는 게 명쾌하다. 그게 괴담이란 표현을 써가며 오염수 방류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보다 바람직하다.

 

나라의 3요소는 국민과 영토, 주권이라고 했다. 오염수가 국민의 건강을 해칠 가능성이 발생했다. 영해 개념을 포괄하는 영토가 방사성 물질을 품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 주권을 위임받은 정부가 이 정도 방사능은 괜찮다고 말하는 게 온당한지 돌이켜볼 일이다.

이정호 산업부 차장 경향 : 2023.07.04.

 

 

정권이 바뀌면 우려가 괴담이 되는 나라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투기에 대한 안전성 우려를 국민의힘과 보수언론은 괴담 선동이라고 공격한다. A신문은 지난주 광기의 시간, 팩트가 협박당했다기사로 15년 전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 때 분출했던 광우병 우려를 소환해 괴담으로 몰았다. 오염수 우려를 2의 광우병 괴담 선동으로 등식화하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그런데 이 신문을 비롯한 보수언론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만 해도 광우병 우려보도에 적극적이었다. A신문은 2002422일자 과학면 인간 광우병-병걸린 쇠고기 먹으면 감염사망률 100%’ 기사에서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코프병에 걸린 사람은 결국 광우병에 감염된 소처럼 뇌에 구멍이 생겨 100% 사망하게 된다는 국내 의대 교수의 기고를 실었다. 2008년 촛불집회 때 나온 뇌송송 구멍탁구호와 일치하는 주장이다. B신문은 2007323일자 몹쓸 광우병! 한국인이 만만하니기사에서 한국인이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을 경우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미국이나 영국인에 비해 높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는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200312월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나오자 당시 노무현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금지했다. 그러나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과 연계해 압력을 넣자 20061월 월령 30개월 미만 뼈 없는 살코기에 한해 수입을 재개했다. 미국은 2007년 들어 수입 범위 확대 요구를 강화했다. 이 무렵 B신문이 발행하는 주간지는 ? 미국산 늙은 쇠고기 한국만 먹는다고?’ 기사(200774일자)에서 일본은 2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하는 것을 들어 일본 사람들은 사실상 안전한 쇠고기를 먹는데, 우리는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는 쇠고기를 먹는다는 건 난센스라며 ‘30개월 기준도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기사는 인간광우병에 대해 광우병에 걸린 소의 고기를 먹은 사람에게 나타나는데, 이 병에 걸리면 뇌에 구멍이 뚫려 사망한다. (중략) 잠복기도 10~40년으로 긴 편이라고 해설했다.

 

A신문은 200784일자 사설에서 국내 검역 과정에서 검출된 미국산 쇠고기 척추뼈에 대해 소의 뇌··척수·내장처럼 광우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이 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보수언론들은 취재기자 칼럼, 관련 책 소개, 과학특집, 외국 동향 등 다양한 기사로 광우병 우려를 유포했고, 한국 정부의 대응이 미덥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그토록 광우병을 걱정하던 보수언론들이 이명박 정부 들어 논조를 180도 바꿨다. 이명박 정부는 2008418일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30개월 이상은 물론 뇌·척수·머리뼈 등 특정위험물질(SRM)까지 수입하기로 했다. 광우병이 재발해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수입중단 조치를 취할 수 없도록 하는 독소조항까지 미국과 합의했다. 식탁 안전을 도외시한 졸속·굴욕 협상에 시민 비판이 거세지자 보수언론들은 괴담 선동이라고 공격했다.

 

신문이 특정 사안에 대한 견해를 바꿀 수는 있다. 하지만 중대한 사정 변경이 있을 때로 제한하지 않으면 신뢰를 잃는다. 노무현에서 이명박으로 정권이 바뀌던 이 시기 광우병 우려를 불식시킬 획기적인 연구 결과가 없었음에도 보수언론들 논조는 코페르니쿠스처럼 변했다. 보수가 집권했다는 사정 외엔 이유를 알기 어렵다. 정권이 바뀌면 팩트가 바뀌고, 우려가 괴담이 되는 게 대한민국인가.

 

졸속협상 결과에 분노한 시민들이 대거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자 정부가 뒤늦게 미국과 재협상에 나서 쇠고기 수입기준을 30개월 이하로 낮췄다. 시민들의 저항이 국민 건강권을 지켜낸 것이고, 이로써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안감은 잦아들었다. 그럼에도 사태의 전말을 편리한 대로 싹둑 잘라 괴담 프레임을 만드는 것은 부적절하다.

 

현대사회에서는 기술위험이 갈등을 유발하는 일이 많다. 그 배경이 되는 과학지식이 불확실하기 때문인데, 광우병도 유래와 잠복기,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 유전적 특징이 인간광우병 발병에 미치는 영향 등에서 여러 가설이 경합 중이다. 이를 감안하지 않고 대중을 계몽하려 드는 전문가주의는 불신을 증폭시킨다. 계몽에 나선 주체가 신뢰받지 못하면 갈등은 더 커진다(정권을 잡자 오염수에 대한 태도를 180도 바꾼 여권 인사들이 해당된다).

 

오염수 우려는 과학적 불확실성에 더해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미덥지 못한 사고 수습 과정에서 누적된 불신 탓이 크다. ‘괴담은 불신·불확실성과 한 세트다. 보수가 품격을 지키려면 이 점을 깊이 헤아려야 한다.

서의동 논설실장 경향 : 2023.07.05

 

 

윤석열 정권 이상 징후가 가리키는 것들

최근 윤석열 정권의 통치 행태가 뚜렷한 이상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 먼저, 강압 통치 행태가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다. 전 정권, 야당에 대한 수사 몰이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사드 배치 문제에까지 칼날을 번뜩이고 있다. 경찰은 집회·시위에 대한 강제 진압을 을러대는 한편, 대통령이 건폭딱지를 붙인 건설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대대적 수사로 몰아붙였다. 고 양회동씨 분신 참극이 벌어졌고, 한국노총 소속 노동자도 유혈 진압 대상이 됐다.

최근엔 사교육계 일타강사들에게까지 세무조사·수사 칼바람이 일고 있다. 이번에도 대통령이 직접 사교육 이권 카르텔을 지목했다. 실은 자신의 무분별한 수능 개입 발언 파문의 책임을 돌리기 위해서임을 아무도 모르지 않는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우려 목소리마저 괴담으로 몰아 사법 조치를 운운한다. 국민의 삶과 직결된 문제마저 사법 처리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다.

 

강압적 행태가 극우 퇴행과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는 점도 묘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자유총연맹 창립 기념식에서 문재인 정권에 반국가 세력낙인을 찍었다. 국민이 선출한 정부 정통성을 부정하는 자해적 발언이다. 다음날엔 김정은 정권 타도” “자체 핵무장을 주장하는 인물을 통일부 장관에 지명했다. 중국 공산당이 박근혜 퇴진 시위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같은 극단적 음모론을 펼쳐온 유튜버를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에 임명했다. 윤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 출신 박인환 경찰제도발전위원장은 문재인이 간첩이라고 했다.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 김광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까지, 이 정권 들어 극우 주장을 펴는 인사 기용이 너무 쉽고 잦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뉴라이트를 많이 썼고 박근혜 전 대통령도 극우 유튜브 채널을 즐겨 봤다지만,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정권의 이념적 지반이 위축돼 있음을 말해준다.

 

이런 이상 행태가 집권 1년 만에 노골화하고 있다는 것도 연구 대상이다. 권력기관을 앞세운 강압 통치와 이념적 극단화는 모두 정권의 정당성 기반이 취약할 때 동원되는 통치 행태다. 정권이 국민 다수의 동의 위에서 국정을 이끌어갈 능력을 상실할 때 벌어지는 일들인 것이다. 불과 1년 만에 강제력을 동원하고 극단적 강성 지지층을 응집시켜야 정권이 굴러가는 수준에 봉착했다는 징표다. 이런 점에서 강압 통치와 극우 인사는 강한 권력 장악의 신호가 아니라, 정권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사인이다. 윤 대통령이 선거연합을 스스로 해체하고 여권 내 합리적 비판 세력마저 잇따라 쳐내면서 벌어진 후과라고 할 수 있다.

 

현 정권이 약체라는 건 취임 뒤 줄곧 역대 최저 수준의 대통령 국정지지율을 기록해온 사실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지난달 30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 평가는 36%, 부정 평가는 56%로 그 격차가 20%포인트에 이르렀다.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나라에서 대통령의 힘은 권력기관에 대한 장악력 못지않게 국정에 대한 국민 지지를 얼마나 확보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같은 여소야대 상황에선 더더구나 중요한 요소다. 윤 대통령은 이 중요한 힘의 원천이 협소한데다 말라 있다. 그러니 더욱 겨우 움켜쥐고 있는 강제력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럴수록 통치 기반은 더욱 협애해진다는 게 아이러니다.

국정 지지도를 좌우하는 요인은 국정 성과와 소통이다. 윤 정부가 악순환의 아이러니에 빠진 것도 결국 국정 성과를 내지 못하는 무능,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불통 때문이다. 앞에서 본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국정수행 부정 평가 이유로는 외교’(22%),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11%), ‘경제/민생/물가’(9%), ‘독단적/일방적’(6%) 등이 꼽혔다. 1년 넘도록 무능과 불통이 관통하는 키워드다.

 

애초 윤 대통령의 국정 비전 자체가 취약했던데다가, 설령 노동·교육·연금 개혁 같은 추상적 목표를 가졌다 해도 이를 현실화할 정책 능력과 정치적 동의를 이끌어내는 책임윤리가 모두 박약하기 때문이다. 선과 악 이분법으로 세상사를 재단해온 검사의 경험과 시야에 갇혀 있다는 것도 한 요인이다. 주변에 직언하는 레드팀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같은 아부의 달인들만 눈에 띈다. 이런 사람들이 사법 처리 만능 국정을 편들고 부추긴다. 그러나 아무리 권력기관을 동원하고 사법 처리를 부르댄들 국정의 무능과 무책임이 결코 가려질 리 없다.

손원제 | 논설위원 한겨레 : 2023.07.05

 

보수의 사상전, 그 두번째 화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6반국가세력을 말하며 문재인 정부를 겨냥했다. , 대북 적대관을 가진 김영호 교수를 통일부 장관에 지명하고 극우 유튜버 김채환씨를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에 임명했다. 이는 윤석열 정부를 극우로 규정짓게 한 사건이다.

 

그전만 해도 윤석열 정부 성격이 보수인지, 전체주의인지 전문가들조차 의견이 분분했다. 통치 기조는 반문재인을 앞세운 우파 자유주의, 통치 방식은 검찰식 권위주의라는 공감대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취임 2년 즈음부터 극우 인사들이 정권 요직에 중용됐고, 권력 주변에서나 맴돌던 극우적 발언이 권력 중심부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이데올로기를 공유하지 않은 세력을 이권 카르텔로 낙인찍고, 사회적 합의를 거친 중요한 가치가 속절없이 무너졌다. 한 사회학자는 이 현상을 1932년 독일 상황에 빗대며 히틀러 집권 뒤 극우주의자들이 정권 핵심 세력이 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이라고 했다. 속도와 내용 면에서 윤석열 정부의 퇴행은 권력 속성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준비된극우화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어딘가에 뿌리가 있는, 구조적 토대가 존재한다는 것. 사상전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2004년 보수의 경세가 박세일이 쏘아올린 공동체 자유주의에 닿는다. 박세일은 그해 4월 한나라당 17대 총선 당선인 연찬회에서 보수는 정책이 아닌 사상을 준비해야 하고, 사상전에서 이겨야 집권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유와 인권이 근간인 자유민주주의공동체적 가치를 존중하는 공동체 자유주의를 사상전 토대로 제시했다. 보수는 냉전(반공)에서 자유주의(시장), 국가주의에서 공동체주의로 시선을 옮겼다.

 

새롭게 등장한 자유주의연대와 종편이 뉴라이트운동을 주도하며 보수 이념의 전사 역할을 했다. 보수의 토양을 갈아엎은 첫 사상전이었다. 공동체 자유주의는 그해 9산업화 민주화 이후 국가비전은 선진화라는 선진화론으로 진화했다.

 

비록 한나라당은 경제 선진화에 집중했지만, 선진화론은 ‘5·6공 청산’ ‘뉴한나라당 플랜등 수구 정당 청산의 밑거름이 됐다. 이에 그치지 않고 ‘5107 프로젝트’(2007년 대선에서 51% 득표율로 집권)까지 줄기를 뻗쳤고,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는 취임 일성으로 선진화를 국정기조로 삼겠다고 선포했다. 진보진영은 이런 보수의 몸부림을 신자유주의 운동쯤으로 과소평가했다.

 

20년이 흐른 지금, 보수의 첫 사상전이 재무장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징후만으로도 두 번째 사상전이다. 당시 뉴라이트 핵심 멤버들이 윤석열 정부의 정치적 멘토로 부활했다. 공동체 자유주의는 강화된 자유민주주의, 공정으로 변신했다. 정책이 아닌 사상을 준비해야 한다던 박세일의 주장도 재연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새로운 정책 대신 지난해 연말 노동·교육·연금을 3대 국정과제(실상은 부정부패 척결)로 제시했다. 20년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뉴라이트 중심이 엘리트 그룹에서 온라인 극우 인플루언서들로 이동했고, 여권 내부가 권력투쟁에서 벗어나 잡음 없이 움직인다는 점이다. 사정 통치가 가미된 측면에선 역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기획이든 아니든 일사불란하기란 쉽지 않다. 윤석열 정부가 보수의 첫 사상전을 추억거리 정도로 치부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보수의 두 번째 사상전은 처음과 달리 외부를 겨냥하고 있다. 모든 정황이 노무현·문재인 정부 자산을 깡그리 없애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그런데도 더불어민주당과 진보진영은 20년 전처럼 보수의 몸부림을 경시한다. 윤석열 정부를 검찰 정부, 정치 경험없는 세력으로 납작하게 평가하거나, 많은 인사들이 스스로 무너질 거라 총선은 우리가 이겨라는 말을 쉽게 한다. 그러나 사상전은 힘이 세다. 혁명과 반동이 교차했던 지난한 역사에서 사상전은 주도 세력엔 정당성을 부여하는 무기, 약자들에겐 가스라이팅 기제였다. 분단을 겪은 우리는 사회가 후퇴할 때 사상전의 위력이 더 강력했음을 숱하게 경험했다. 야권이 윤석열식 정치를 제대로 판단하지 않고 역사의 진보는 진리라는 도그마에 집착할수록 더 강력한 백래시를 맞게 될 것이다.

 

불교경전 <잡아함경>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는 말이 있다. 어쩔 수 없이 겪는 상처가 첫 번째 화살이라면, 두 번째 화살은 첫 번째 화살로 인한 고통이다. 두 번째 화살의 8할은 내가, 나를 향해 쏘는 경우라고 한다. 어리석으면 두 번째 화살을 맞지만, 지혜로우면 두 번째 화살은 피할 수 있다.

구혜영 논설위원 경향 : 2023.07.06.

 

 

자본의 죽음 충동이 일으킨 후쿠시마 핵폐수 위기

받드는 거둠정신이 가미가제 자본막는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계획을 철회하라!” “대통령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대한민국의 어민들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반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혀라.” “오염수가 그렇게 안전하다면 일본 땅에 묻지 왜 바다에 버리느냐?” “원전 오염수 방류는 생존권을 박탈하는 침략행위나 마찬가지!” “여당은 횟집 먹방에 이은 수조물 먹방그만 하고 국회 청문회에 즉각 응하라!”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7월부터 후쿠시마 핵폐수를 무단 투기하려 하자 한국의 야당과 전국의 어업민, 수산업 종사자, 시민단체와 일반시민들로부터 나온 목소리들이다. 이미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 80% 이상이 핵폐수 방류에 반대한다. 미국 다음으로 IAEA(국제원자력기구, 핵발전소 촉진 기구)에 많은 분담금을 내는 중국 정부 역시 해양 방출 강행을 중단하고 핵오염수 처리를 엄격한 국제 감독에 맡겨라고 요구한다.

 

심지어 일본 후쿠시마현 어업협동조합연합회도 그 총회에서 오염수 해양 방류 반대를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일본 전국어업협동조합연합회 역시 그 이전에 오염수 방류 반대결의를 한 바 있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2015년에 후쿠시마현 어업협동조합연합회에 관계자의 이해 없이는 어떤 처분도 하지 않겠다고 문서로 답변한 바 있다. 그렇다면, 현지 이해당사자들이 반대하는 오염수 방류 강행은 일본 정부가 한 공적 약속조차 배신하는 것!

 

괴담 타령으로 일본 편드는 어처구니없는 한국 정부

더욱 흥미롭게도, 눈만 뜨면 국익을 강조하는 대한민국 여당(국민의힘)과 정부, 대통령은 한국 국민이 아니라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TEPCO)을 대변한다. “방사능 오염수나 핵폐수가 아니라 농도저감시설(ALPS)을 통과한처리수이다” “마셔도 될 정도로 안전하다” “2011년 사고 당시보다 더 안전하다” “넓은 태평양 바닷물과 희석되면 괜찮다등 가당찮은 논리를 편다. 심지어 위험한 핵폐수 방류 반대입장에 대해 국민 불안만 조장하는 괴담이라 한다. 건전한 상식을 괴담이라 하니, 진정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인가?

 

우선, 핵발전소에서 나온 방사능 물질(핵연료봉, 핵폐수 등에서 나오는 플루토늄, 세슘, 삼중수소OBT, 아이오딘 등 1천 종이 넘는 핵종)은 발암 물질이다. 상식을 가진 인간(호모 사피엔스)이라면 발암 물질 노출을 꺼린다. 불가피하게 일을 해야 하는 원자력 노동자들도 철저한 방호 장비로 피폭 예방을 한다. 그래도 결코 안심하진 못한다.

 

20113.11 지진과 쓰나미로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붕괴한 뒤 방사능 오염수(원자로의 핵폭발을 방지하기 위해 투입된 냉각수, 그리고 원자로 내부로 유입된 지하수), 즉 핵폐수는 예전엔 하루 700~800톤씩, 최근엔 140톤씩 발생한다. 매일 그렇다! 그것이 13년째 누적되다 보니, 1100개 탱크(탱크 하나는 대략 4층 건물 크기)에 보관 중인 약 150만 톤의 오염수를 더 이상 육지에 보관할 수 없을 지경이 된 것! (한 보도에 따르면 이 오염수 탱크 자리를 비운 뒤 후쿠시마 원전 내 핵연료봉 등 폐기물을 밖으로 꺼내 적치할 계획)

 

이런 점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핵발전소 자체가 처음부터해선 안 되는 일임을 직감한다. 겉보기엔 깔끔하나 그 건설과정에서부터 엄청난 전기를 쓸 뿐 아니라 핵분열을 이용한 발전 과정과 그 이후 방사능 폐기물의 처리법이 없기 때문! 인간이 자연을 활용해 사는 방법 중 최선의 길은 순환하는 것이다. , ‘밥이 똥이고 똥이 밥이 되는순환형 구조가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의 핵심이다. 그러나 핵발전은 그 원료 채굴이나 핵연료봉을 통한 발전 과정, 그리고 사용후연료(핵폐기물) 등에서 발암성 물질(1천여 핵종)이 나온다. 순환은커녕 암 유발! 고준위 폐기물은 지하 500미터 이하에서 무려 10만 년(!) 보관해야 반감기에 이른다. 사람도 사람이지만, 과연 이 치명적 물질에 노출되는 땅과 바다(인류의 생명원)는 무슨 죄인가?

 

해선 안 되는 일하게 만드는 자본의 죽음 충동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자본의 죽음 충동(death drive)’이 후쿠시마 핵폐수 사태에서 잘 드러난다고 본다. , 이번 사태는 단순히 방사능 물질을 바다에 버리느냐 마느냐 하는 안전 문제가 아니라 자본이 무한정 돈벌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람과 자연을 죽음으로 내몰 뿐 아니라 심지어 스스로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경향성이 핵심이다.

 

첫째, 자본은 원료 채굴과 폐기 과정에서 죽음 충동을 보인다. 에너지를 비롯한 온갖 천연자원을 보라. 그렇게 많은 학자들이 재생가능 자원과 재생불가 자원을 구분한 뒤, 재생불가 자원은 아끼되 재생가능 자원을 적정 활용해 경제를 영위하라고 조언했지만 자본에겐 마이동풍! 오히려 자본은 무소불위의 오만한 태도로 석탄 다음엔 석유, 그 뒤엔 LNG(메탄), 이제는 셰일석유셰일가스로 돌진하며 산업화, 도시화, 세계화를 추동한다. 그 사이 화석연료 자동차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하니, 그 대체물로 전기차를 상품화하고자 충전지에 필요한 콜탄과 리튬 채굴에 광분(생태 파괴, 공동체 해체 동반)한다. 핵폐수는 바다, , 공기의 죽음까지 예고한다. 요컨대, 자본의 무한증식 욕망은 지구가 끝날 때까지, ‘6차 대멸종까지 지속된다.

 

둘째, 자본은 노동력 활용에서도 죽음 충동을 보인다. 자본주의 노동시장의 창출 과정은 그 자체가 기존 공동체 관계의 해체과정(개인 간 무한경쟁 유도)이며, 노동시장과 노동과정에서 성공하려는 노동자들이 과로사나 산업재해로 쓰러질 때까지 인간 노동을 극대 추출한다. 설사 건강한 노동자들이 퇴직까지 아무 일 없이 일한다 하더라도 바로 그 아무 일 없이일하는 자체가 (상품화한 노동력이 아닌) 인격체로서의 삶을 철저히 부정 당함을 뜻할 뿐! 그것은 상품과 자본의 근본 토대가 인간 노동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자본의 무한증식 욕망은 인간 노동력의 물리적 죽음은 물론 사회적심리적 죽음까지 낳는다. 바로 이 점은 후쿠시마 핵폐수 방류와 관련한 일본 외무성(또 대한민국 정치행정)의 대다수 고급 노동력이 보이는 태도에서도 잘 드러난다.

 

셋째, 자본은 그 가치법칙(Wertgesetz) 자체 속에 죽음 충동을 내장한다. 전술한 지구와 노동에 대한 죽음 충동의 이론적 근거도 바로 이것! 가치법칙의 출발점은 상품 가치가 그 상품 생산에 필요한 인간 노동량인 것! 바로 이 인간 노동이 상품 가치를 형성하는데, 한편으로 그것은 원료나 기계 가치의 일부분을 상품 속으로 이전함과 동시에 노동력 가치(임금)만큼 생산한다. 다른 편으론 자본을 위한 잉여가치(이윤)도 생산한다. 누군가 타인 노동력 고용 시 자기 인건비 이상으로 일 할 사람을 찾는 게 바로 이 때문! 자본 입장에서는 잉여가치를 얻지 못하면 굳이 큰돈을 투자, 힘들게 사업할 이유가 없다. , 자본주의 경쟁이란 잉여 획득 경쟁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바로 그 경쟁은 효율성 내지 생산성 경쟁으로 나타나는데, 흥미롭게도 단위 시간당 생산량이 (N배로) 증가할수록 단위 상품 당 내포된 노동량(가치량)1/N로 감소한다. 그 속의 잉여가치량 역시 1/N로 줄어든다. (특히 기술 혁신을 통해) 생산효율이 오를수록 잉여가치가 줄어드는 역설, 바로 이것이 가치법칙 자체의 죽음 충동이다.

 

0으로 수렴되는 잉여가치가 부를 인류의 재앙

자본 입장에서는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효율을 N배로 늘렸으나 그 늘어난 것을 모두 팔아야 비로소 본전치기가 되는 셈이니, 갈수록 죽을 맛이다! 그래서 그 본전 이상의 잉여를 얻기 위해선 지구와 사람을 더 쥐어짜야 할 압력이 생긴다. 그러나 원료 채굴, 인간 노동, 시장 확장엔 한계가 오고 그 사이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는 6차 대멸종까지 예고한다. , 이론적으로 개별 자본은 경쟁력 향상을 위해 그 효율을 무한대로 올릴 압박을 받는데, 그렇게 효율이 무한 상승할수록 단위 상품당 잉여가치는 0으로 수렴한다. (그럴수록 비용 요인을 극단으로 줄여야 하니, 민주주의와 인권이 억압된다) 가치법칙 자체의 죽음 충동!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핵폐수를 지층 주입, 지하 매설, 고체화, 장기 정화 등의 다른 방식 대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란 이름 아래 핵발전소 건설을 촉진하는 국제기구인) IAEA와의 공조 아래 해양 방류를 강행하려는 것도 결국 자본의 가치법칙, 즉 돈 때문이다. 해양 방류에 약 300억 원이 든다면, 다른 대안들은 최소 3000억 원, 최대 4조 원 비용이 든다. 그러니 시민언론 <더 탐사>의 폭로처럼, IAEA의 해양 방류 정당화 대가가 ‘100만 유로(=15억 원)’인 것은 껌값수준이다.

 

그러나 사태의 본질은 단순한 핵폐수 처리 비용 문제를 넘는다. (IAEAADB를 비롯한) 세계 각국 정부나 전문가들, 그리고 에너지자본과 금융자본들(이른바 핵마피아’)에너지 홀로코스트인 핵발전 건설과 확장에 그토록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것도 (그리고 그들로부터 떡고물을 받아먹는 언론들이 기이한 침묵의 대행진을 계속하는 것도) 결국은 자본 입장에서 갈수록 잉여가치 획득이 어렵다는, 가치법칙 자체의 죽음 충동때문이다!

 

받드는 거둠정신만이 자본의 가미가제 특공대막는다

문제 상황에 대한 과학적분석과 대응을 한다는 것은 (인간과 자연,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에 토대하여) 단순히 화학식이나 정밀 측정 내용을 수치로 표현하는 자연과학적 방식만 뜻하는 게 아니다. (물론, 뇌물과 부패로 구린내 나는 가짜보고서를 과학이라 말하는 기만은 제쳐두고라도 말이다!) 참된 과학적 태도란, 자연과학은 물론, 인문사회과학을 융복합통섭함으로써 참된 이치(眞理)와 총체적 진실(眞實)을 밝히는 것이다. 후쿠시마 핵폐수 사태는 해양 무단투기의 (특히 IAEA 최종보고서 관련, ‘100만 유로스캔들로 드러난) 비윤리성과 비과학성을 넘어, 갈수록 코너로 몰리는 자본의 죽음 충동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뿐이다. 결국, 핵폐수 무단투기는 (모두의 생명원인 지구생태계에 대한 무지와 적개심으로 충만한) 21세기판 자본의 가미가제 특공대라 하겠다.

 

과연 누가, 어떻게 이 자학적인 폭력성을 성공적으로 저지할 수 있을까? 나아가, 과연 우리는 자신을 떠받치는 이들을 떠받치라던 북미 선주민들의 받드는 거둠(honorable harvest)’의 문화, (우리를 살려내는 어머니 대지에 대한) 감사와 존중의 문화를 조금씩이라도 회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 전 마을이장) 시민언론 민들레 : 2023.07.06.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에 갈 종교인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문제가 분초를 다투는 상황에 접어들었다. 인류 멸망을 다그치듯, 종말을 가리키는 시계가 무섭게 돌아가는 듯하다. 이런 절박한 순간, 한국의 종교들은 무엇하고 있을까.

 

종교는 태평세월을 노래하고 있는가

자타공인 생명의 종교는 불교 아니던가. 불교계에서 주최한 검찰독재 반대 시국법회는 그동안 두 차례 열렸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해안스님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방사능 오염수 해양 투기를 반대하는 일인 시위를 한 달 넘게 날마다 계속하고 있다. 일부 스님들과 불자들이 동조시위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전국의 대부분 절간은 한마디로 적막강산이다. 조계종 총무원과 본사 단위의 조직적 저항은 찾아볼 수 없다. 불교는, 어느 종교보다 더 먼저, 더 강하게 방사능 오염수 해양 투기를 반대해야 옳지 않은가. 지금처럼 비상한 시국에서는, 하안거 다 취소하고서라도 거리와 광장에 나와서 방사능 오염수 해양 투기를 반대하는 소리를 외쳐야 하지 않는가. 말로만 생명 존중, 글로만 생명 존중 누가 못할까.

 

윤석열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 열심히 참여하는 개신교 성도들과 목사들이 적지 않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방사능 오염수 해양 투기를 반대하는 성명서도 여러 차례 발표하고 기도회를 열고 있다. 그러나 주일예배에서 후쿠시마 핵발전소 방사능 오염수 해양 투기 문제를 언급하고 설교하고 반대하는 목사는 대한민국에 몇이나 될까. 죽은 생명의 부활을 가르치는 개신교가 지금 이대로 처신해도 좋을까.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윤석열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월요시국기도회를 지난 3월부터 전국 각지를 돌며 개최해 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38차 우리 바다(OUR OCEAN) 회의참가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모든 민족의 연결고리인 바다가 비극의 장소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하였다. 625일 한국 주교회의는 생태환경위원회와 정의평화위원회 명의로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방사능 오염수 해양 투기를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제주와 부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그런데 제주교구 어느 신부가 슬픈 소식을 공개했다. 626일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주최 제주 월요시국기도회가 성당에서 열리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당에서 시국기도회를 한다면, 미사를 봉헌하는 제단을 강제로 점거하겠다고 일부 천주교 신자들이 협박했다는 것이다. 예상되는 충돌을 우려해, 할 수 없이 성당 아닌 제주시청 앞 좁은 도로에서 시국기도회를 열기로 결정했단다.

 

26일 월요일 오후 6시쯤 나는 기도회 장소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20여 명의 나이 드신 천주교 남녀 신자들이 시국기도회를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소리쳐 악쓰기 시작했다. 몸싸움 직전까지 가는 소동이 빚어졌다. 옥신각신 하다가 730분에 기도회가 시작되었다. 며칠 후 나는 느닷없이 이런 소식을 들었다. “73일에 열릴 예정이었던 부산 월요시국기도회가 교구 사정으로 취소되었음을 알려드리며 양해를 바랍니다.” 누가 부산 월요시국기도회를 막았을까.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폭군 연산군아, 네 죄가 크다

너처럼 왕에 대해 험담을 하는 백성, 왕에게 잔소리 하는 백성, 왕을 가르치려 드는 백성, 그들을 가두고 격리하고 매질하면, 나머지 아흔아홉이 그 한 명이 되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내게 충성하게 되지. 해서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선 혹독하게 버려지고 짓밟힐 그 한 명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 한 명이 당하는 그 고통이 십만 군사의 위용보다 더 두려운 것이거든. 그러니 무산아야, 너의 오늘 죽음이 나를 위한 것이라 그리 생각하거라.” 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2017)에서 연산군이 한 여악(女樂)을 일벌백계로 다스리며 했던 말이다.

 

그러나, 홍길동의 아내인 가령이 연산군의 귀를 물며 꾸짖는다. “오냐, 짐승에게 찢겨죽은 홍길동은 내 서방이요, 니가 바로 내 서방을 찢어 죽인 짐승이다. 나를 능지하고 육시하여 죽여라. 허나 두고 봐. 나는 죽어도 내 망령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너의 잠자리를 찾아갈 테니. ? 아흔아홉에게 본을 보이려 하나를 폭력으로 다스리겠다고? 니가 아무리 본을 보인들 나도, 내 서방도, 아니 이 나라 조선의 백성도 길들여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절박하다

일본이 국제원자력기구에 백만 유로가 넘는 거액의 뇌물을 주고 일찌감치 최종보고서 결론을 받아 놓았다는 제보를 시민언론 더탐사시민언론 민들레가 보도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일본정부는 신뢰할 만한 설명을 해야 한다. 국제원자력기구 사무국도 답변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과 일본은 방사성 폐기물 해양 투기를 금지한다는 199311월 런던협약에 가입한 나라 아닌가.

 

시민언론 민들레시민언론 더탐사74일 외신기자 합동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적을 기다리듯, 제보자 조르세티’ ‘시민언론 민들레’ ‘시민언론 더탐사는 인류의 재앙을 막으려는 절박한 심정에서 생각하고 행동했을 것이다. 그런 절박함의 아주 일부라도 지금 대한민국 종교인들은 느끼고 있을까. 무너져가는 이 나라를 걱정하며 잠을 못 이루는 스님, 목사, 신부가 지금 우리 곁에 몇이나 될까.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행동하지 않는 종교인 자리

우리 앞에는 두 길 밖에 없다. 귀신 하나를 내쫓았더니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일곱 귀신(마태 12,43-45)과 치열하게 싸울 것인가. 로마군대가 예수를 붙잡아갈 때 나 몰라라 도망치던 제자들처럼(마태 26,56) 친일매국 정권에 비굴하게 무릎 꿇을 것인가. 고통받는 시민들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가시밭길을 걸을 것인가, 무너지는 나라 꼴을 남의 일처럼 구경만 할 것인가. 특히 종교인들에게 묻고 싶다.

 

종교인은 자신의 이익을 떠나, 세상 걱정을 내 걱정으로 삼을 줄 알아야 하지 않는가. 소속 종교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처신한다면, 종교인이 시정잡배와 다를 바 무엇인가. 그런 종교가 이익집단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혼돈의 시대에 중립을 유지한 사람들을 위해 비어 있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다. 그 말을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내 몰라라 했던 종교인들을 위해 비어 있다.”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장 시민언론 민들레 : 2023.07.06.

 

 

오염수만이 문제가 아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를 넘어 탈핵으로

누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날 거라고 예견했을까. 바다로 땅으로 흘러 들어간 방사능 물질에 의한 피폭 피해는 장기간에 걸쳐 일어나므로 그 규모는 아직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일본 정부가 앞으로 30년 혹은 그 이상, 핵폐기물 처리를 포함한 폐로 작업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문제가 되고 있는 오염수 방류 역시 그 과정 중 하나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의 문제는 현존하는 핵발전소의 운영과 그 관리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라는 관점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오염수 방류에는 정당한 이유가 없다

일본 정부는 다른 대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용과 시간을 이유로 방류를 택했다. 이에 대해 정부여당은 '과학'에 기반하여 안전성이 검증되었기 때문에 방류는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야당은 굴욕적인 친일외교의 결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험에 처했다고 비판하며 방류 철회 단식에 돌입했다. 정부여당은 제2의 광우병 사태를 걱정하며 85% 가까운 방류 반대 여론을 민주당이 괴담을 퍼트린 탓으로 돌리고 오염수 방류를 과학 대 비과학의 대결 구도로 몰아간다. 다른 한편, 후쿠시마 원전 항만에서 잡힌 우럭이 기준치의 180배에 달하는 세슘이 검출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마치 집앞 횟집의 우럭 또한 그렇게 될 것이라며 과도하게 위험을 강조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정부는 오염수에 관한 근거 없는 '괴담' 유포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양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관해 일일브리핑을 발표하고 정책뉴스포털에 특별페이지를 개설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전문가'로 구성된 '가짜뉴스 신속 대응 자문단'도 꾸려 선동적 괴담 생산과 전파를 막겠다고 한다. 정부여당이 과학적 판단을 강조하는 것과 다르게 실제 우리에게 오염수를 위험 혹은 안전하다고 판단할 만한 정보나 과학적 근거, 제기된 우려를 해소할만한 충분한 과정은 없었다. 후쿠시마 시찰단의 현장점검 활동은 시료를 채취해 독자적인 검증 없이, 오염수 및 삼중수소를 희석하는 설비의 작동을 살피는 활동에 그쳤다. IAEA(국제원자력기구)3차례 하기로 했던 오염수 시료 분석을 1차례만 하고, 환경 모니터링 결과를 '확증'하기 위해 실시한 환경 시료 분석이 끝나기도 전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계획이 국제 안전기준에 부합한다는 최종 보고서를 발표했다. 대통령실은 즉각 원자력 안전 분야의 대표적 유엔 산하 국제기구인 IAEA의 과학적인 검증결과를 존중한다고 밝혔다.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결과를 납득하기 위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조건도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금 정부는 오염수 방류가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현대사회는 다양하고 불확실한 위험에 둘러싸여 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같은 대형 참사에서부터 기후위기, 코로나와 같은 펜데믹까지 불확실한 위험과 안전사고는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일상적 조건이다. 오염수 방류가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게 일본 정부와 IAEA, 나아가 한국 정부도 공유하는 주장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오염수 방류로 인한 피해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 원전 지역 주민들의 갑상선암 발병과 원전 사이 인과관계가 확정되지 않았다고 원전 지역이 안전하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국가는 사회 구성원에게 미칠 불확실한 위험을 예측하고 이를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만들어가야 한다.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는 진실은 진실이 되지 못하듯, 과학적 진실 또한 사회적 논쟁과 의문과 의심이 경합하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사회적 구성물이다. 그런 최소한의 과정이 전제되지 않는 지금, '과학'을 동원해 오염수 방류를 일본 정부도 아닌 한국 정부가 나서서 적극 찬성할 이유는 없다.

 

오염수 방류만 문제인가

오염수 방류가 별 문제 없다는 쪽에서는 이미 국내외 원전의 정상적인 가동에 따른 삼중수소를 포함한 냉각수가 방류되고 있고, 그 양이 후쿠시마 오염수가 포함하고 있는 삼중수소의 양보다 훨씬 많다며 오염수의 안전성을 역설하고 있다. 실제로 해양 생태계는 핵폐기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194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해양 핵실험은 수십 차례 이뤄졌고, 핵폐기물 해양 투기의 문제도 꾸준히 제기되었다. 1993년 일본이 러시아 해군이 동해에 중고원자로 등 핵폐기물 해양 투기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 정부는 일본 정부가 동해로 핵폐기물을 무단 방류한 사실과 그 양이 러시아의 투기양의 10배에 달한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지난 역사는 핵이 인류와 생태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기 위해 해양 핵실험이나 핵폐기물 해양 투기를 막는 국제적인 합의와 기준을 만들어가는 시간이었다. 이제 해양 핵실험이나 고준위핵폐기물을 해양에 투기하는 일은 금지되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나 일본 정부는 저장 부지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결정했다. 다른 한편 원전을 운영하는 모든 국가가 IAEA 지침에 따라 삼중수소 배출 농도 기준치를 각각 정한 뒤 이에 맞춰 바다에 냉각수를 방류하고 있고, 이러한 국제적 '관례'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의 명분이 되어주고 있다. G7 또한 IAEA의 검증을 지지하면서 중대 원전사고에 따른 오염수의 해양 투기를 국제사회가 승인하는 모양새가 만들어졌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사실상 핵 에너지를 이용하며 해양 생태계로 위험을 전가해온 국제 핵발전 공조 시스템의 결과 그 자체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때로는 어민이 생업의 위기를 겪고, 때로는 발전소 노동자와 주변 지역 주민들이 피폭을 경험하게 된다. 오염수 방류는 핵발전을 운용하면서 인류가 마주하고 있는 보편적인 위험의 단면이자 앞으로 계속해서 마주할 일상적인 위험의 한 양상이다. 오염수 방류는 새롭게 등장하거나 이례적이고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핵발전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부정의한 문제가 오염수 방류라는 형태로 가시화된 것이다.

 

핵발전을 확장하는 힘에 맞서는 계기로

국내에 26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고 3기의 신규 핵발전소가 지어지고 있다. '핵발전 확대'가 기조인 윤석열 정부에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핵발전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이 '안전'하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기회이기도 하다. 핵발전은 확장일로인데, 사용 후 핵연료를 보관하는 고준위 방사능 폐기물 저장시설은 국내에 단 한 군데도 없다. 2030년까지 고준위핵폐기시설을 확보하지 못하면 원전 운영이 어려워질 거라는 전망 속에서 이를 건설하는 사회적 논의는 시작도 못했다. 자연상태로 돌려보내는데 10만년이 걸린다고 한다. 현재 기술로는 땅 속 깊은 곳에 묻어 영구보관하는 것 외에 방법 밖에 없다. 그로 인한 결과는 불확실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건 핵발전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유일한 주장이기도 하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막기 위해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지금 우리가 넘어야 할 것이 그저 방류를 하지 않게 하는 것으로 그칠 수 없는 문제라는 점을 함께 직시하자. 핵으로부터 자유로운 세계에 살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싸움이 될 때, 오염수 방류의 문제도 근본적으로 해결가능하다. 오염수 방류 저지를 넘어 핵발전을 확장하는 힘에 맞서는 투쟁으로 나아가자.

인권운동사랑방/ 프레시안 : 2023.07.07.

 

 

헌법을 욕보이는 대통령 인사권

윤석열 대통령이 또 하나의 어록을 만든 듯하다. 보좌하던 비서관들을 대거 주요 부처의 차관으로 보내면서 대통령이 아니라 헌법의 정신과 시스템에 충성하라고 당부하였단다. 헌법국가를 추구하는 민주공화국 대통령으로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왜 화제가 될까? 말과 행동이 딴판인 유체이탈 화법이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무엇보다 일찍이 차관 통치를 선보였던 MB 정부를 모방한 것부터 헌법정신이나 시스템에 부합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오랜 수험생활 동안 유신헌법과 독재 대통령제를 채택한 5공헌법을 너무 열심히 공부한 탓에 6월 민주항쟁으로 탄생한 현행 헌법을 오독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대통령에게 국가원수 지위를 부여한 현행 헌법 제66조는 유신헌법이나 5공헌법의 해당 조항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로 물려받은 헌법 조항이라도 현행 헌법의 탄생 배경, 국가권력의 위계를 반영하는 조문 편제의 변경이나 대통령과 다른 국가권력 사이의 관계에 관한 다양한 조항이 개정된 점에 비춰 대통령 지위 조항을 유신헌법이나 5공헌법과 똑같이 해석될 수 없다. 현행 헌법에서 독재 대통령제의 삼권초월적 대통령은 있을 수 없다. 입법권 및 사법권과 수평적 권력분립의 관계에 있고, 국무총리 및 국무위원과 수직적 권력분립의 관계에서 서로 견제·균형의 관계를 형성하는 민주공화대통령제의 대통령만 있다.

 

유신헌법은 삼권초월적 회의체를 상설하고 그 의장을 대통령으로 선출하게 하며 국회의원 정수 3분의 1을 사실상 임명할 권한과 법률적 효력을 갖는 긴급조치를 통해 기본권을 제한할 수도 있는 독재적 지위를 부여했다.

 

국가권력의 편제도 대통령-정부-국회-법원 순으로 구성하고 아예 대통령과 정부를 분리된 장에 배치해 삼권초월적 지위를 분명히 했다. 5공헌법은 간선 대통령이 국정 전반에 대한 비상조치권과 국회해산권을 일방적으로 행사하는 독재 대통령제였다. 반면 현행 87년 헌법은 대통령직선제로 개혁하고 긴급권도 국회 통제를 받도록 제도화했다. 권력편제 또한 국회-정부-법원 순으로 민주화했으며 행정부 인사권과 조직은 국회와의 협치를 전제로 할 때에만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다.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의 지위 조항도 유신·5공헌법의 조항과 다르지 않지만 권력구조의 근간이 바뀌었으니 이 또한 달리 해석되어야 한다. 국무총리는 국회 동의를 받아야만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고, 국무위원은 국무총리 제청이 있어야만 임명할 수 있다. 중앙 행정기관인 각 부처 장은 국무위원 중에서 임명된다. 법률상 국무위원은 국회의 인사청문을 받아야만 하므로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은 국회와의 협치를 전제로 중앙 행정기관을 책임지는 지위에 있으며 이를 우회하기 위한 차관을 통한 통치는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셈이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헌법과 법률이 시스템으로 구축한 국가기관의 본질적 기능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인사권의 행사이다. 최근 통일부 장관으로 김정은 정권 타도’ ‘북한체제 파괴등 적대관계에서만 바라보는 이론가를 임명했다. 정부조직법은 통일부 장관에게 통일 및 남북대화·교류·협력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게 하고, 그 상대는 북한이므로 이번 인사는 남북교류를 사실상 무력화할 수 있다. 이런 인사권 남용을 사법절차를 통해 통제하는 데는 현실적 한계가 있겠지만 국가기관의 존재의의를 무력화해 헌법의 위임에 따른 정부조직 관련 입법취지를 거스른 것으로 헌법수호 의무를 소홀히 한 책임을 피하기는 힘들다.

 

이처럼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인사가 너무 빈발하다. “헌법에 충성할공무원의 교육을 담당할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에 윤 대통령이 그토록 문제시하는 가짜뉴스를 양산해온 극우 유튜버를, 진실과 화해를 중요 가치로 삼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에 공공연하게 과거사위의 존립 이유를 부정하거나 소비에트에 비유하는 극우인사를, 사회통합을 위한 협의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장에 반노조 극우 정치인을 임명해왔다.

 

이러한 인사권 남용은 윤 대통령 스스로가 노조를 노폭으로, 시민단체를 국고낭비 이권카르텔, 비판언론을 가짜 뉴스 제조기, 전임 정부와 야당을 반국가세력으로 갈라치기하면서 지지세력 결집에 매진하고 있는 상황과 궤를 같이한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이 충성하라는 헌법은 어떤 헌법인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명문화했으나 독재 대통령제를 채택한 유신헌법인가, 5공헌법인가, 아니면 시민항쟁으로 민주공화대통령제를 성취한 87년헌법인가. 이래저래 헌법을 욕보이는 시대에 시민들이 살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경향 : 2023.07.07.

 

오염수 방류와 국가의 역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를 도쿄를 통과하는 아라카와강에 방류할 수 있을까. 중국이 원전 사고로 발생한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로 처리해 서해에 방류한다면 윤석열 정부는 받아들일까. 방사성 물질을 걸러내 안전하다며 원전 오염수를 태평양에 버리겠다는 일본과 이를 묵인하고 있는 한국 정부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제1원전의 원자로가 파괴됐고 방사성 물질이 유출됐다. 원자로 안의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노심용융이 발생하자 온도를 낮추기 위해 바닷물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최근에도 하루에 90t 정도의 오염수가 발생한다. 10여년간 오염수를 커다란 탱크 1000여개에 모아오던 도쿄전력은 이제부터 알프스라는 필터로 핵종을 걸러낸 후 태평양에 그냥 버리겠다고 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알프스 처리 오염수는 안전기준에 부합한다며 해양 방류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방류가 시작되면 30년 이상 오염수 수백만t이 공유지인 태평양으로 밀려들 것이다.

 

일본의 방류 계획과 IAEA의 보고서는 태평양 연안 국가 시민들의 우려를 불식시킬 만큼 완벽한가. 그렇지 않다. 알프스로 거르지 못하는 방사성 물질에 대한 안전성 논란은 여전하다. 특히 IAEA 보고서는 방사능이 수십년간 차곡차곡 쌓여 태평양 생태계에 미칠 영향은 분석하지도 않았다.

 

동일본대지진 당시 방사능 오염수 300t이 유출된 사실이 2013년 드러나자 한국은 후쿠시마와 인근 8개 현의 모든 수산물 수입을 중단했다. 일본은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고 한국은 1심에서 패했다. 2심에서 한국은 일본 수산물의 방사능 오염을 넘어 생태와 환경의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은 한국이 선택한 위생 보호 수준이 정당한가를 따질 때는 수산물 자체의 방사능 수치에 대한 고려만으로 부족하다. 연간 방사능 노출 1m(밀리시버트)는 상한선일 뿐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방사능 노출량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국가의 노력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WTO는 한국 정부 손을 들어줬다. 이 같은 한국의 입장은 오염수 방류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

 

무엇보다 주변국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오염수를 인류가 공유하는 바다에 버리겠다는 일본 정부의 발상 자체가 문제다. 탱크를 더 짓거나, 시멘트·모래와 섞어 모르타르로 만드는 고형화 처리로 일본 내에서 해결할 수 있다. 그렇게 안전하다면 인공호수를 만들어 일본 땅에 보관하면 된다. 처리 비용을 줄이기 위해 태평양 연안 국가 시민들의 건강과 태평양의 환경·생물다양성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 정상적인 원전의 냉각수 방류는 발전 등 인류의 삶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정당성이라도 있지만 일본 내에서 일어난 원전 사고의 위험을 다른 나라에 전가하려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정부는 IAEA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일본의 해양 방류를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다. 심지어 여당은 국제기구의 평가는 과학이라며 야당과 시민사회의 오염수 방류 비판은 괴담이라고 공격한다. “선동을 위해 국제기구마저 돌팔이 취급하니 대체 어느 나라 정당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는 여당 대변인을 보고 있으면 도대체 당신은 어느 나라 여당 대변인인가라고 묻고 싶다.

 

윤 대통령이 오염수 방류에 태클을 걸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일제 강제동원(징용)에 대한 진전된 사과도 없이, ‘미래를 내세우며 셀프 배상으로 일본 피고기업과 정부에 면죄부를 줬던 때와 유사하다. 한번은 국민적 자존심에 상처를 주며 일본의 과거사 털어내기에 협조했고, 이번에는 국민 건강에 대한 불안감까지 외면하며 일본의 골칫거리 처리를 방조할 모양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에도 불구하고 잇따라 과감한 친일 외교를 이어가는 데는 한·일관계 개선을 통해 더 큰 뭔가를 이루려는 전략적 포석이 깔려 있을 것으로 믿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 대외정책은 시민들의 동의에 바탕을 둬야 한다. 윤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가 열리는 리투아니아를 방문해 기시다 총리와도 만날 것으로 보인다. 이 자리에서 오염수 해양 방류에 반대한다고 분명히 밝히지 않는다면 귀국 후 80%가 넘는 국민의 우려를 외면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국가의 역할을 방기한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박영환 정치부장 경향 : 2023.07.09.

 

 

생태경제학, 마르크스 이후의 소디

생태경제학 고전을 새롭게 읽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단순치 않은 문제를 단순화하거나 아전인수식으로 읽으면 무리가 따른다. 경계해야 할 점이다. 그러면 생태경제학의 어떤 고전이 특별히 주목할 만할까. 기후위기를 초래한 사회적 물질대사의 균열 문제를 생물리학적 과정 자체만 고립적으로 떼내어보지 않고 자연을 전유하는 사회경제형태, 즉 자본주의 형태와 시공간적 비용 전가, 생태·사회적 갈등을 함께 통합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게 가르치는 사회생태 경제학 고전에 주목한다. 안전한 지구, 그다음에 정의로운 지구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지구에서 안전과 정의는 분리 불가능하다.

 

사이토 고헤이의 인기가 대단한데, 이분은 탈성장 코뮤니즘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성장주의와 자본주의를 일심동체로 조준하고 근본 대안을 제시하니 단순명쾌하다. 사이토 고헤이가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이유이겠다. 그런데 그가 소환한 고전이 만년 마르크스가 러시아혁명 문제와 관련해 견해를 밝힌 편지다(자술리치에게 보낸 편지).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문명화 사명을 설파한 이전 견해와 달리 러시아가 자본주의를 건너뛴 혁명의 길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편지를 탈성장 고전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내가 볼 때는 억지다. 문제의 편지에서 마르크스는 선진국으로부터 생산력 이식이 필수적 전제라고 말했다.

 

또 탈성장 코뮤니즘은 시원하지만 복잡한 문제를 과도하게 단순화한다. 성장주의와 자본주의, 불평등이 불가분하게 엮여 있는 건 맞지만 어떤 식으로 엮여 있는지, 그 실타래를 어떻게 풀지는 간단하지 않다.

 

내게 사회생태 경제학의 고전 한 권을 말하라면 프레더릭 소디가 쓴 <, 가상의 부 그리고 부채>(1926)라는 책을 꼽겠다. 소디 이후에는 베블런을 계승한 칼 캅의 <영리기업의 사회적 비용>(1950)이 고전 반열에 올라 있다. 소디는 노벨 화학상 수상자이지만 생태경제학에 대한 그의 기여는 오랫동안 망각되었다. 1980년대에 허먼 데일리(1980), 마르티네즈 알리에르(1987)에 의해 복권됨으로써 주목받게 되었다.

 

소디는 자신의 선학으로 마르크스보다 존 러스킨을 더 중시했는데 러스킨의 한계도 넘어갔다. 그는 자본주의 경제를 삼층구조로 파악했다. 맨 위층이 가상적 부(virtual wealth)’의 경제, 그 아래 2층이 실질적(생산적) 의 경제다. 맨 아래가 위의 두 층을 떠받치며 한계짓는 생물리학적 토대다. 엔트로피 법칙에 종속되는 에너지와 물질의 유량경제, 즉 자연과 사회, 사회 간, 사회 내에 에너지와 물질이 흘러가는 과정인 사회적 물질대사다. 삼층구조론 안으로 들어가면 흥미진진한 게 많지만 간략히 그 의의에 대해 언급한다.

 

첫째, 소디는 게오르게스쿠-뢰겐보다 약 50년 전 열역학 법칙에 대해 체계적으로 말했을뿐더러 뢰겐과 달리 사회적 물질대사 균열을 복층적 자본주의 성장 체제와 통합적으로 파악하는 인식과 이론틀을 보여주었다. 둘째, 가상경제의 실체는 화폐기반 부채경제, 채권자-채무자 관계인데 그 핵심은 부의 일반적·추상적 형태이자 청구권인 화폐의 소유자가 이를 부채로 전환시켜 미래소득 선취권을 갖는 것이다. 불로소득을 이자율로 나누고 100을 곱한 값이 자본으로 정의된다. 민간은행은 부채경제의 핵심기둥이다. 채무자와 공동체를 희생시키는 불로소득 청구권 위에 유산계급과 유한계급이 서식하고 번영을 누린다.

 

셋째, 소디의 삼층구조론에 따르면 생태위기 요인은 이중적인데 위기는 생산적 화석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가상적 경제층위에 의해서도 야기되고 심화된다. 실질경제는 열역학 법칙에 종속되는 반면 가상경제는 무한증식의 수학 법칙을 따르는 모순적 거시동학이 작동한다. 가상경제 팽창은 실질경제와 채무자, 무산자에 불로소득을 청구, 추출하면서 그 지속 가능성을 위태롭게 한다.

 

소디는 가상적 부채경제의 자체 모순(금융위기)뿐만 아니라 미래를 식민화하는 불로소득주의와 생태적 한계의 모순관계를 탁월하게 밝혔다. 이는 피케티가 말한 r(자본수익률)>g(경제성장률) 부등식보다 더 근원을 파고든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론이다.

 

 

넷째, 소디는 화폐개혁 문제에도 집중했다. 부채경제의 지배동맹자인 민간은행의 신용창출권을 폐기하고, 화폐 발행을 공공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오늘날 화폐민주화론의 선구적 논의다. 소디는 죽었지만 그의 사회생태 경제학은 펄펄 살아있다. 소디라면 범죄적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도 결사 반대했을 것이다.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경향 : 2023.07.10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얼마 전 한 아파트 시행사가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라는 광고를 걸었다가 사과하는 일이 있었다. 해당 아파트의 분양가는 100억원에서 4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저런 광고 문구를 생각해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는 사실 역시 놀랍지 않은가?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은 주변 어디에나 널려 있기 때문이다.

 

SNS에는 상류층과 결혼하려는 사람을 모집한다는 결혼 정보 회사 광고가 뜬다. 결혼과 계급 차이는 익숙한 주제지만, 결혼 상대방의 스펙을 하나씩 따지며 인간의 등급을 분류하는 것은 최근의 일이다. 주거지에 따른 차별은 일상적 사건이 돼 별다른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 기괴한 외국어 이름이 붙은 이른바 브랜드 아파트를 보라. 아파트단지 입구에 서 있는 저 흉물스럽고 거대한 아치는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자기 존재 증명 같은 것이 아닌가?

 

이런 사회에서 앞서 말한 광고 문구가 비난받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래도 아직은 불평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기 때문인가? 아니면 단순히 표현의 수위가 문제인가? 혹은 내가 상류층이 되려는 건 괜찮지만, 이미 상류층이 된 이들의 계급 놀이는 봐줄 수 없기 때문일까?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건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일이 대세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평범한 부자가 되기 위한 삶

한국의 불평등은 극단적이고 독특하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불평등 지수는 그 독특성을 표현하기에 불충분하다. 흔히 생각하는 살 만한 삶의 기본 조건을 따져보자. 일단 서울 가까운 곳에 살아야 하고, 자기 소유의 아파트가 필요하다. 자녀의 사교육비 평균을 부담하고, 적절한 여가와 여행을 즐기고, 충분한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부자가 돼야만 이런 조건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가구 순자산 상위 10% 선이 9억원 정도다.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9~10억원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방금 말한 삶의 기본 조건을 누리려면 상위 10% 이상의 자산가가 돼야 한다.

 

이제 한국에는 부유하진 않지만 평범하고 행복한 삶따위의 관념은 존재하기 어렵다.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부자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의 상당 기간이 상위 10%에 들어가기 위한 노력으로 채워져 있다.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대학 들어가고, 좋은 직장 얻고, 자산을 불리는 게 인생의 표준 경로처럼 여겨지지 않는가? 그 노력이 성공하면 어느 정도 여유로운 노후를 보낼 수 있지만, 실패하면 노인 빈곤의 위험에 노출된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지역 불평등, 양극화된 노동 시장, 기이한 부동산 시장, 학벌 차별, 불충분한 사회보장체계 등 불평등의 원인은 다양하다. 이에 관한 분석은 많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 하나가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 한국인의 일반적 욕망은 어떤 세상을 향하는가? 평등한 세상인가, 불평등한 세상인가?

한 아파트 시행사는 홈페이지에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라는 홍보문구를 썼다가 비판받고 사과문을 올렸다. / ‘더 팰리스 73’ 홈페이지 캡처

 

당신은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가?

자산과 소득의 차이는 곧바로 인간 존엄성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상위 10%는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살아갈 수 있는 기준이다. 자산과 소득 수준이 낮아질수록 존엄성이 침해될 위험이 증가한다. 이는 단순히 부자가 빈자를 멸시하는 현상이 아니다. 자산 100억원을 가진 사람이 10억원 가진 사람을 무시하고, 10억원 가진 사람이 1억원 가진 사람을 무시하는 식이다. 더 결정적인 것은 외적 위험이 아니라 내적 위험이다. 한 인간의 가치가 물질적 스펙으로 환원되는 사회에서, 그 누구도 내적 자존감을 온전히 지키기는 어렵다. 따라서 어딜 가나 자기 비하에 빠진 사람이 넘쳐난다.

 

이는 결코 자본주의의 당연한 효과가 아니다. 경제적 불평등에서 인간 존엄성의 불평등이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불평등 없는 나라가 없지만, ‘나보다 아래쪽에 있는 인간을 무시해도 된다는 관념이 한국처럼 일반적인 곳은 드물다. 이런 현상이 현실의 불평등을 심리적으로 내면화한 결과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불평등에 대한 욕망이 현실의 불평등을 낳은 것은 아닐까? 한국의 불평등이 이토록 독특한 것은 다수가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기 때문은 아닌가?

 

불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존재는 확고하다. 어디서나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반면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이들은 찾기 힘들다. 이들이 정치적 힘을 발휘하는 집단 의지로 결집돼 있다는 증거도 발견할 수 없다. 불평등의 원인과 양상을 분석하는 경제학자는 많지만, 평등이란 무엇인지를 다루는 학자는 드물다. 불평등 완화를 주장하는 정치인은 흔하지만, 평등을 정치적 가치로 주장하는 정치인은 극소수다.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슈퍼리치에게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만, 자신이 평등한 세상을 꿈꾼다고 말하는 사람은 만나기 힘들다.

 

평등이란 무엇인가? 사회경제적 상황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모든 시민은 똑같은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고 모든 인간은 똑같이 존엄하다는 원칙, 모든 사람이 모든 타인을 똑같은 시민과 인간으로 대우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원칙이다. 이런 원칙이 최소 수준이라도 합의돼 있었다면, 아이들이 전세 사는 친구를 따돌린다는 언론보도가 나왔을 때 온 나라가 뒤집혔어야 한다.

 

이제 우리 모두 자문해 봐야 한다. 내가 꿈꾸는 것은 평등한 세상인가, 평등하지 않은 세상인가? 평등한 세상을 원한다고는 하지만, 사실 내 아래로는 불평등하고 내 위로는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것은 아닌가? 아래를 향해서는 세상은 원래 불평등하다고 말하고, 위를 향해서는 세상은 평등해야 한다고 외치는 게 지금 한국의 상식 아닌가?

 

부자 되기에만 몰두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평등이라는 원칙을 망각하기 위한 노력이다. 한국의 시민은 불평등한 사회 구조의 피해자일 뿐 아니라 그 사회 구조를 만든 당사자이기도 하다. 불평등 개선이나 완화가 아니라 평등 그 자체를 생각할 수 있을 때만, 한국을 더 인간적인 곳으로 바꾸는 작업이 시작될 수 있다.

<박이대승 정치철학자> 주간경향 23. 07. 10

 

 

현장에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있다

시민단체 활동가로 사는 일은 고단하다. 한때 정부가 69시간 노동제를 도입하려고 할 때 중견 활동가들이 모였다. “69시간만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게 중론이었다. 아침에 눈 뜨고, 밤에 잠들 때까지 활동가들은 일한다. 워낙 일이 넘쳐나고, 활동가는 부족하기 때문에 일은 늘 밀려있고, 쌓여있다. 사건의 피해자들을 만나서 얘기를 듣는 일도 힘들고, 사건을 사회적 의제로 이끌어내기 위한 기자회견, 토론회를 해야 하고, 집회와 농성을 준비하고, 정책도 만들어낸다. 1년 차 변호사, 교수가 토론회 자리에서 발제를 하는 동안 10년 차 활동가는 원고를 사정해서 받고 복사물도 준비해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활동가의 지위가 낮은 곳도 없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욕도 참 많이 먹는 게 활동가다.

 

요즘은 단체에서 활동할 신입 활동가를 구하기도 힘들다. 청년들일수록 기피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뜻이 있는 청년들도 활동가 급여 수준을 얘기하면 돌아선다. 겨우 최저임금을 넘기는 수준의 급여를 받고 시민단체에서 일하려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단체의 사정이 어렵다 보니 활동가는 여기저기서 손 벌리고 돈을 만들어와야 한다. 딱한 사정을 하는 다른 단체에서 후원의 밤이니 정기후원을 부탁하면 지갑을 열어야 한다. 나도 정기후원을 하는 단체만 한때 50곳을 넘겼던 적도 있다.

 

현실 제대로 보고 비판해달라

그렇게 30년을 시민단체 활동가로 살다가 퇴직한 한 후배의 소식을 들었다. 경제적 사정이 아주 안 좋은데 빚까지 져서 힘들다고 한다. 노후를 위한 준비는커녕 당장 먹거리를 해결할 방안이 막막하다는 얘기를 아프게 들어야 했다. 시민단체의 리더로 활동하다 정치권으로 넘어가는 이들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일념으로 고된 활동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묵묵히 현장을 지키는 활동가들이 있다.

 

요즘엔 대통령과 정부가 나서 시민단체 때리기를 하는데 그에 편승해서 숟가락 얹는 인사들의 칼럼이나 글을 많이 본다. 시민단체에 대한 평판이 많이 나빠졌고, 위상도 약화된 것은 맞지만 시민단체를 비판하려면 최소한 정부가 몰아가는 발표에 의존하지 말고 제대로 현실을 보고 비판했으면 한다.

 

먼저 정부가 말하는 민간단체에는 과거부터 관변단체로 지원을 우선적으로 크게 받아온 유명한 단체들도 포함돼 있고, 뉴라이트 계열의 우익 단체들도 포함돼 있다.

 

시민단체에는 몇 년 전에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어금니 아빠같은 사람들이 만들어 사적인 이익을 충당한 그런 단체들도 포함돼 있다. 그러므로 이런 구분 없이 어떤 조사를 하거나 그걸 근거로 해서 시민단체를 매도하는 일은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공산이 크다. 대통령이 지르고, 정부가 국고보조금을 지원받는 단체들을 탈탈 털어서 조사해놓고는 문제가 되는 단체들을 익명처리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로부터 보조금이나 지원금을 받는 경우에도 그렇다. 회계 처리가 지나칠 정도로 까다롭고, 내부·외부감사까지 받아야 한다. 요구하는 행정절차와 서류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소수의 활동가로 유지되는 단체들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래도 필요한 일이니 보조금, 지원금을 받아서 일을 하다 보면 곧 후회를 한다. 돈 있으면 절대 안 하고 싶은 일이다. 그럼에도 회계부정을 저지르는 단체가 있다면 그 노하우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민주주의 사회일수록 시민사회가 강하다. 활성화돼 있고,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 선진국일수록 시민사회를 인정하고, 그들의 말에 경청하며, 협치를 실현한다. 시민단체들의 활동과 성장을 돕는 정부 기관이 있는 나라도 있다. 그만큼 시민사회는 정부나 기업이 할 수 없는 자리에서 일을 한다. 그런 활동가들이 재정을 걱정하지 않고, 가치를 추구하는 활동을 할 수 있으면 그 사회는 더욱 민주화될 것이다.

 

지속 가능한 활동 조건 고민했으면

진보는 보조금으로 오지 않는다고 훈수 두시는 분들은 먼저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을 보시길 권한다. 시민사회도 성찰하고, 재정적 독립을 할 수 있도록 분발해야 한다. 그와 함께 비난에 앞서 시민단체가, 활동가들이 지치지 않고 활동할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활동 조건을 만들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시민사회가 약화되면 그 손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간다는 사실도 함께 생각해달라고 말하고 싶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경향 : 2023.07.11.

 

 

압축성장 뒤에 드리운 그늘

압축성장이란 짧은 기간 동안 이룬 급격한 경제성장을 일컫는다. 주로 정부 주도로 이뤄지는데,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초고속 압축성장으로 서방 강국들을 단기간에 따라잡은 국가이다. 하지만 모든 생명체나 조직이 튼튼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초를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작가 김진경은 한국은 1960년대 이래 30년 동안 서구의 300년을 압축해 따라갔다. 무서운 속도의 서구 흉내내기 속에서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았고 필요한 일로도 간주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초고속 성장하면서 소홀했던 것과 잃어버린 것은 없는지 돌아보는 성찰이 필요하다. 행복지수·저출생 등은 세계 최하위권에서 맴돌고 있고, 자살률·노인 빈곤율 등은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다.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경제가 성장한 만큼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스웨덴 생태환경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행복의 경제학>에서 경제성장이 곧 행복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다. 한국형 위성발사체 누리호를 자체 기술로 쏘아 올린 과학기술력이 있고, K팝이나 영화, 드라마, 뷰티 등 문화력까지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됐다.

 

그런데 유엔이 발표한 세계행복 보고서 2023’에 따르면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137개국 중 57,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에선 35위로 최하위권이다. 글로벌 리서치 업체 입소스(IPSOS)가 공개한 세계행복 2023’ 보고서에도 모든 상황을 종합했을 때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한국인은 57%로 조사 대상 32개국 중 31위다. 한국방정환재단에 따르면 어린이·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 역시 OECD 22개국 중 최하위다.

 

선진국만큼 경제성장을 이루었다고 해서, 그들이 수백 년간 쌓아올린 성숙과 숙고의 경지까지 올라갈 수는 없다. 성숙사회가 되려면 숙고하는 국민이 다수가 돼야 한다. 성숙은 모방이 아니라 사색과 성찰에서 나온다. 성장한 만큼 성숙하지 못해 빚어지는 온갖 사회적 문제는 압축성장의 그늘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1980년대만 해도 연평균 9%에 달했던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최근 들어 갈수록 내리막길을 걷고 있고, 장기적으로는 역성장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개발연구원(KDI)2022년 보고서에서 2023~20272% 수준인 잠재성장률이 현재 생산성 수준이 유지되면 2050년에는 0%까지 낮아질 것으로 추정했다. OECD2021년 보고서에서 한국은 2025년에 1%대 성장에 진입한 이후 20330%대 성장, 2047년부터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압축성장 뒤에는 그늘이 생기고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느리더라도 내실을 다지는 것이 견실한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 그늘을 지우고 겉보다는 속을 알차게 채워야 할 때이다.

정종민 성균관대 겸임교수 경향 : 2023.07.11.

 

 

오염수와 사회적 갈등의 본질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의 해양 투기를) 추진하는 이들은 투기를 해도 해양과 인간의 건강에 안전하다는 것을 만족스러울 정도로 보여주었는가? 대답은 아니요이다.”

 

“(오염수 투기가) 태평양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전자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지난달 22일 실린 해설 기사에 담긴 로버트 리치먼드 미국 하와이대 마노아캠퍼스 해양생물학 교수가 한 얘기다. 후자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지난 525일 게재한 기사에 포함된 미국 우즈홀해양연구소 해양환경방사능센터의 해양방사화학자 켄 뷰슬러의 발언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의 해양 투기와 관련해 신기하리만큼 외면당하고 있는 목소리가 있다. 네이처와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실린 것과 같은 오염수 해양 투기의 안전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과학자들의 목소리다. “기준치에 크게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안전하다” “마시고, 목욕도 하겠다는 등 안전성을 강변하는 과학자나 국제기구, 정치인들의 지나치게 큰 목소리에 가려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다. 정부·여당과 일부 언론들이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해양 투기와 관련해 제기되는 우려를 괴담이라 치부하며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강변할 수 있는 것에도 해외 과학자들의 이러한 경고들이 무시되고 있는 상황이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해외 과학자들의 우려뿐 아니라 지난해 12월 미국 해양연구소협회가 발표한 반대성명, 핵전쟁방지국제의사회(IPPNW)가 지난 515일 발표한 태평양은 방사능 폐기물 처분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성명 등은 과학계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해외 과학자들의 경고에 공통적으로 담겨 있는, 일본의 안전하다는 주장은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지적과 예상치 못한 위험이 존재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12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기사에는 미들베리국제연구소의 저농도 방사능 측정 전문가 페렌츠 달노키베레스가 도쿄전력이 방사능 오염물질 제거에 사용하려는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의 신뢰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오염수에) 무엇이 들었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고 말한 내용이 있다. “도쿄전력은 저장탱크의 4분의 1에서만 소량의 물을 채취해 농도를 측정했을 뿐이며 여과 시스템이 잘 작동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것이다. 미국 해양연구소협회도 성명에서 일본의 안전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적절하고, 정확한 과학적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해양 투기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해외 과학자들의 목소리를 차분히 살펴보면 방사능 오염수 해양 투기의 안전성 문제는 일부의 주장처럼 과학괴담의 대립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일본 정부 입장에 경도돼 과학적 불확실성을 무시하는 과학자, 정치가들의 기만행위와 반대로 상식과 양심을 갖춘 과학자, 시민들의 인류와 해양 생태계의 미래에 대한 우려 사이의 간극이 바로 오염수 해양 투기로 인한 사회적 갈등의 본질일 것이다.

김기범 정책사회부 차장 경향 : 2023.07.11.

 

 

원전 중심 세계관의 충돌을 상정하는 싸움

대학 시절의 일이다. 순대 한 알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누군가 그걸 주워 몇 번 털더니 멀쩡한 순대와 뒤섞었다. 그러고는 괜찮아! 먹어도 안 죽어!”라고 했다. 정상적인 위생관념으로 보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어서 크게 당황했다.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었다는 이유로 죽을 확률이 매우 작은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떨어진 음식을 버리는 것보다는 먹는 게 어떤 사고체계에선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다만 심리적 저항감이 문제인데, 이걸 오염이 되지 않은 음식과 뒤섞어 선별할 수 없게 만드는 걸로 해결한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묘수인데, 또 달리 생각하면 괘씸하기도 하고. 복잡한 기분이었던 기억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 대해 마실 수 있고 수영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걸 보면서 그때의 괜찮아! 안 죽어!”를 떠올렸다. 오염수 방류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사람들은 이런 식의 논법을 즐겨 사용하는데, 바나나와 멸치가 주로 활용된다. 최근에는 세슘 우럭도 한 번 먹는 거라면 문제없다는 취지의 얘기도 나왔다.

 

자꾸 괴담이라고 하니 분명히 말하건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방류된다고 해서 누가 죽거나 건강을 해칠 일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장기간의 오염수 방류가 해양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아직 확실히 모르고, 만에 하나 부정적 영향이 있다면 방류 이후엔 되돌릴 수 없으니, 시간을 두고 남은 의문을 해소한 후에 결정하면 어떻겠느냐고 일본 정부에 말해보자는 거다. 오염수를 임시 저장할 부지도 아직 남아 있다고 하지 않는가.

 

물론 오염수 방류 여부는 일본 정부가 최종 권한을 갖는 것이므로 쇠귀에 경 읽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그런 태도로 접근해야 방류 이후에라도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공동으로 추적·감시·연구하자는 논리의 정당성이 강화되고,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규제와 관련한 쟁점에 있어서도 좀 더 편한 자리에 설 수 있는 게 아닌가?

 

언론에는 자기들만 과학이고 남들은 괴담이란 식의 주장을 펼치는 인사들의 발언이 주로 인용되지만, 모든 과학자들이 그런 태도인 것은 아니다. 전 세계에서 우리만 난리라며 다른 나라 사람들은 바보라서 가만히 있겠느냐고 쏘아 붙이는 이도 있는데, 일본을 비롯한 해외에서 우려가 제기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이 문제를 다루는 해외 언론은 대개 우려와 낙관을 균형있게 소개한다.

 

오히려 한국에서만 반대 의견을 괴담취급하는 데 열을 올리는 일이 벌어지는 이유를 따져야 할 판인데, 총선을 겨냥한 프레임 전쟁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오염수 방류 찬반 전선에는 한·일관계, 안보 및 에너지 정책, 생명과 안전 등에 관한 일반적 불안감이 몰려 있다. 양대 정파가 모든 화력을 집중하지 않을 수 없는 고지인 셈이다.

 

이런 정치적 사정을 걷어내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괜찮아! 안 죽어!”란 말에는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비효율보다는 음식을 낭비하지 않는 효율을 추구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세계관이 반영돼 있다. “삼중수소는 한국 원전에서도 배출된다” “100년간 마셔도 엑스레이 한 번 찍는 것만 못하다라는 주장에서 과학 대 괴담구도의 이러한 본질이 드러난다.

 

앞선 사례에서 삼중수소 배출과 방사능 노출은 전기 생산과 건강 상태 확인을 위해 우리가 감수하기로 한 손해이다. 그렇다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는 무엇을 위해 감수하는 손해인가? 효율성을 극단으로 추구하는 원전 중심 세계관의 정당성을 영속적으로 획득하는 것 외엔 없다. 그러니까 이 문제는 그야말로 세계관의 충돌을 상정하는 싸움이다. 이제 이렇게 물어보자. 당신은 괜찮아! 안 죽어!” 세계의 일원인가? 이 답에 우리의 미래가 걸려 있지만, 낙관할 수 없다. 이게 우리가 직면해 있는 진정한 문제가 아닐까 한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경향 : 2023.07.11.

 

 

알 수 없는 세상

학생 때, 적조 발생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연구를 했다. 진동만 바다 한가운데 억대 가격의 측정기구를 담가두고 매주 가서 채수도 하고 저장된 그간의 관측자료를 담아와서 실험실에서 분석하는 작업이었다. 물론 고된 일정이었지만 연구원들이 서로 힘을 모아 공동의 연구를 해 낼 때의 지적 희열은 사람을 환장하게 했다. 누군가는 이해하기 어려운 하찮은 일이 다른 누구에게는 삶의 동인이 되기도 한다.

 

적조란 플랑크톤이 폭발적으로 번식해 바닷물 색깔까지 붉어 보이는 현상이다. 플랑크톤은 작은 물고기의 먹이가 되지만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너무 많아도 문제를 일으킨다. 플랑크톤이 지나치게 번식하면 물고기의 끈적한 아가미에 잔뜩 들러붙어 수중 호흡을 방해한다. 특정 플랑크톤의 대사산물은 독성을 띠고, 또 엄청나게 번식한 플랑크톤이 일시에 죽어 썩으면서 독성물질을 내뿜는다. 그리고 물속 용존산소를 고갈시켜 주변 수중 생태계를 망가뜨린다. 생물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바다로 만드는 이유다.

 

적조 발생에 관여하는 요인은 어림잡아 수십 가지다. 그 가운데 주된 원인 몇 가지를 찾아내어 상관관계를 파악하려는 연구였다. 발생 원인 인자를 찾아내면 적조 예방, 예측이 가능해진다. 알려진 주원인은 수온을 비롯해 질소나 인 따위의 영양염류 농도, 일조량 등이었다. 과연 이 인자들의 증가가 적조 대발생과 얼마만큼의 상관성을 보이는가가 관건이었다.

 

그런데 측정하고 분석해서 얻은 엄청난 자료를 정리했더니 주요 원인 서너 가지로 엮는 일이 의외로 곤란했다. 줄곧 논문 제출 압력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아무리 꿰맞추어 봐도 난감한 건 마찬가지였다. 자료의 값들이 분산되어 뚜렷한 상관성을 내세울 형편이 못 되었다. 하는 수 없어 별나게 어긋나는 관측값 몇 개를 제외하고 계산했더니 어느 정도 인정할만한 상관성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사실 측정을 하다 보면 오류가 생길 수도 있다. 인정한다. 그러나 이 자료가 과연 측정오류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튀는 자료 몇 개를 덜어낸다는 건 달리 말하자면 일종의 데이터 조작 아닌가. 오류 제거와 내 의도대로 결과치를 맞추는 것의 경계는 모호하다. 갈등이 끓는다.

난관에 봉착해 고민에 숙고를 거듭하다 얻은 깨달음은 결코 자연을 단순하게 판단할 수 없다는 확신이었다. 숱한 요인들이 서로 복잡한 관계를 맺고 우리가 미처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상호작용을 통해 세상이 이루어져 나간다는 사실이다. 빙산의 일각처럼 겉으로 드러난 현상은 내면의 어마어마한 비밀을 감추고 있다. 최첨단 과학 사회를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게 훨씬 더 많다. 자연에 간섭할 때 겸손하고 또 조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구절벽이니 지방소멸 시대니 호들갑 일색이다. 대책기금을 마련해야 하고 인프라를 확충하며 메가시티를 구성해야 한다는 둥 잡다한 해결책을 내놓고 있지만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도도한 흐름을 허접한 몇몇 방안으로는 절대 되돌리지 못한다. 그간 이 좁은 땅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들이삐대고 있었다. 생태적인 삶을, 또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는 당연히 인구가 훨씬 더 줄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경제에만 눈이 돌아가 모든 것을 돈에 귀착시킨다면 지구온난화니 환경재앙이니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초저출산 국가다. 왜 젊은이들이 결혼을 기피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가? 영악스레 계산에 밝고 이문만 쫓을 뿐 국가 백년대계는 안중에 없어서 그런가? 아니다. 이건 알지 못하는 거대한 생태적 흐름이다. 심지어 생물과 무생물이 상호작용하면서 스스로 진화하고 변화해 나간다는, 지구의 신 가이아의 의도라고까지 일컫는 그윽한 흐름 말이다.

 

사소한 것들이 하나둘 모여 마치 큰 물처럼 도도한 흐름을 이뤄 흘러갈 때는 그 무엇도 거역하지 못한다. 백약이 무효다. 여태 내놓은 대책과 또 앞으로 짜낼 정책들은 하나같이 실패할 거라는 게 내 신념이다. 그럼 아무것도 하지 말란 말이냐 묻겠지만, 오히려 이 흐름을 인정하고 순응하여 그 이후의 대책을 마련하는 일에 진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섭리를 모르면 내내 똥 볼만 차다 만다.

구영기 전 생명그물 대표 국제 : 2023.07.11.

 

 

건강진단, 환경측정과 후쿠시마 괴담

198815살 소년 문송면군이 온도계 공장에서 일하다 수은중독 직업병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수은중독 직업병이라고 쉽게 표현하지만 처음 회사 근처 병원에서 감기로 진단받은 뒤 수은중독으로 인정되기까지 몇달 동안 수많은 이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켜켜이 쌓였다. “송면이가 죽었습니다라는 전화를 받고 깊은 밤중에 병원으로 달려갔던 많은 활동가와 보건의료인들 대부분 지금도 여전히 현장에 남아 있다.

 

1991년엔 원진레이온 노동자 김봉환씨가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다. 이 사건 역시 이황화탄소 중독이라고 쉽게 표현하지만, 고인의 관이 놓인 회사 정문 앞에서 137일 동안 집회가 이어졌다. 관을 냉각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으나, 고인에게 정말 송구스러운 표현이지만 주검에서 물이 흐를 지경이 돼서야그 싸움이 끝났다.

 

이 두 사건의 중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단체가 노동과건강연구회였다. 우리 사회 노동재해에 관한 인식이 매우 취약할 때여서 서울 구로시장 근처 허름한 상가 사무실에 걸려 있는 노동과건강연구회라는 간판을 보고 들어와 혹시 개소주나 흑염소 같은 건강식품 파는 곳이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나 역시 노동과건강연구회 회원이었고 내 삶을 통틀어 노동재해 관련한 활동을 가장 열심히 했던 시기였다. 1981군사정권의 필요에 의해 급조됐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졸속으로 도입된 산업안전보건법은 그 내용이 부실해 노동자의 건강을 제대로 담보할 수 없었다. 유명무실한 건강진단 제도가 특히 그러했다. 회사 지정병원에 가서 받는 형식적 건강진단을 통해 노동자의 직업병이 발견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노동조합 노동안전보건 담당 간부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그 건강진단을 좀 더 내실화할 수 있을지 모색하는 활동에 열중했다.

 

환경측정 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소와 달리 회사가 작업을 모두 중단하고 대청소한 뒤 이뤄지는 형식적 환경측정을 통해 작업장의 유해위험요소가 제대로 밝혀지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소음이 발생하거나 분진이 많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적은 금액의 유해위험수당이 지급되기는 했지만 그것도 노동조합이 어느 정도 힘을 갖추고 있는 사업장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당연히 유해위험수당을 인상하고 가능한 한 적용 사업장을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활동에 열중했다.

 

어느 날 우리 모임에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의사라고 소개받은 깡마른 사내가 찾아왔다. 열띤 토론을 잠자코 듣고 있던 그이가 나지막이 말했다. 귀를 기울여야 제대로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건강진단 제도를 폐지해야 합니다. 회사에서 비용을 받는 의료기관이 노동자 건강진단을 제대로 하기는 어렵습니다. 회사가 의무적으로 시행하는 건강진단 제도를 폐지하고 노동자가 비용을 부담하거나 공공기관이 시행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유해위험수당도 폐지해야 합니다.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면서 수당을 받을 것이 아니라 유해하고 위험한 사업장을 없애야 합니다.”

 

내 기억으로 그날 그 자리에서 그 주장에 동의한 사람은 없었다. 나는 이 친구가 제정신인가?’ 싶었다. 돈 한푼 아쉬운 노동자의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인 생각이고 그것이 바로 현장을 모르는 지식인의 한계라고 단정지으며 우쭐해했다.

 

그로부터 30여년 세월이 지난 지금, 건강진단 제도나 유해위험수당 제도는 상당 부분 그의 주장대로 바뀌었다. 그뿐 아니라 석면 사업장의 위험성도, 반도체 공장의 백혈병도, ‘라돈침대의 영향도, 가습기살균제 문제도 적지 않은 세월이 지난 뒤에는 언제나 그의 주장이 옳았음이 밝혀졌다. “피해 사실을 입증하고, 알리고, 더 나아가 사회를 바꾸는 것이 과학자의 책임이라고 믿는 그의 모습을 피해자들의 기자회견장이나 가습기살균제 제조사인 영국 옥시 본사 앞에서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깡마른 사내는 바로 백도명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명예교수다.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기준치의 100배를 넘는 물고기가 잡혀 소위 세슘우럭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슘으로 범벅이 된 물고기는 단순히 표층해수만 들이마시게 해서 생기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세슘새우’ ‘세슘플랑크톤등 먹이사슬의 문제입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백도명 선생의 후쿠시마 괴담을 내가 신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한겨레 : 2023.07.11.

 

 

학력이 우선이라는 말의 함정

모든 학생이 학업에서 성공해야 할까

학생들의 학력이 떨어지는 것을 막고, 일정 수준을 설정하여 '기초학력'으로 삼고, 이를 달성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학습 지원을 하는 것이 골자인 '기초학력 보장법'20219월 제정되었다. 또한 202210, 전국 특정 학년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전수평가하는 '기초학력 진단평가', 일명 일제고사가 부활했다. 학생들의 학력이 저하되는 것을 개선하겠다는 것이 대표적인 이유였다. 물론 교육부에서는 학교에 선택권이 있으므로 '일제고사'가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향한 시험이나 공부 압박, 강요는 너무나 일상적이기에 사실상 일제고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여기에 더해 서울에서는 20233, 기초학력진단평가의 성적을 외부에 공개하는 내용의 기초학력평가 성적 공개 조례가 제정되었다. 서울시교육청이 제소해서 현재 집행 정지 중에 있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지만, 이런 상황들은 '학생이 기초학력을 갖추는 것', '학생들을 공부시키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당연하게 여겨지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학력은 당연히 중요한가

'학력(學力)'은 학습 능력(academic ability), 즉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 (잠재적) 능력을 말하기도 하고, 학교, 혹은 학업적 영역에서의 성취를 이르는 학업 능력(academic achievement)을 말하기도 해서, 정의만 두고 보면 상당히 혼란스럽다. 영어권 국가들에서는 두 가지를 조금 더 엄밀히 분리해서 쓰지만 한국과 일본에서는 같은 한자로 두 의미를 모두 다루고, 한국 교육 정책에서는 후자의 의미로, 주로 학교에서 제공하는 교육의 결과로 얻게 된 성취도(시험 성적)를 이르는 말로 쓰인다.

 

학력, 성적 향상은 통상적으로 '보수 진영에서 주로 강조하는 의제'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실은 '진보 교육감'의 선거공보물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이슈이다. '학생들의 성적을 올리겠다', '공교육이 학생들의 성적을 책임지겠다.' 등 방법을 막론하고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향상을 도모하는 것 자체는 정치성향을 막론하고 긍정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학교는 일대일 교습이 아닌 만큼, 학교의 속도에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은 언제나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내용의 어려움이 문제일 수도 있고, 학생의 환경, 개인적 사고나 사건 등의 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 학교에서 배우는 방식 자체가 개인에게 적합하지 않은 경우 등, 이유와 원인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이에 대한 공교육의 대안은 보충수업, 방과 후 교실, 야간자율학습 등 같은 내용을 반복하여 학습하게 하고 공부의 시간을 늘리는 것이거나, 시험을 더욱 자주 보게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실제 초등학교에서 시험을 없앴을 때, 학생들의 성적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무수했다.

 

학생을 '들들 볶는' 학력 정책

교실에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의, 따라가기 벅찬 난이도의 수업을 들으며 장시간 앉아 있어야 하는 상황은 분명 괴롭다. 때문에 학습 내용의 이해와 성취를 돕는 것은 필요하고, 학생의 생활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현재의 교육 제도에서는 그 기초 학력의 기준과 목적이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 그저 시간이 지날수록 기준이 급격히 상향되고 있을 뿐이다.

 

예전에는 기초학력이 매우 러프하게,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를 이해하는 정도(간단한 사칙연산이나 한글을 말하고 읽고 쓰는 정도, 한국의 정치가 어떤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지 등)를 말했다면, 이제는 기초학력의 정의와 내용을 법의 영역으로 가져와서 각 학교급, 학년별로 촘촘히 설정하고 이를 성취하도록 하겠다고 한다. 범위도 늘어나고, 난이도도 올라가고 있다.

 

이를 가장 눈에 띄게 보여주는 것이 영어 교육인데, 20년쯤 전에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영어를 배우기 시작해서 알파벳, 간단한 단어나 표현 등을 소개하고 짧은 문장이나 글을 읽도록 하는 정도였던 데에 비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시작 학년이 낮아지고, 사회적으로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한국의 수능 영어 문제를 영어권 사람들도 풀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20년간 인류의 뇌가 급격히 발달해서, 현재의 학생들이 예전의 학생들에 비해 더 많은 내용, 더 어려운 내용을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일까? 사회의 변화 때문에 우리는 더욱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을 배우지 않으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일까? 애초에 모든 아동·청소년이 학업적으로 성공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타당한가?

 

생활에 꼭 필요한 영역의 학습에 대해 기준을 설정하고 이를 배우기 어려워하는 학생들을 도와주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사람은 모두가 같은 속도로 배우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초학력 미달'인 학생의 수와 비율을 측정하고 그 증감률을 따지는 것은 그다지 유용한 일이 아니다. 만약 어떤 교수법에 문제가 있어서, 혹은 내용 자체의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 학습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거나 하는 상황에서 평가 자료를 참고해서 교수법을 바꾸거나 학습 난이도를 조정하는 등 교과 과정의 향상에 활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교육 정책은 낮은 성적을 거둔 학생이 곧 문제이고, 이런 모습을 고쳐야 한다고 상정하고 있다. 심지어 학력 진단 결과를 외부에 공개하는 것이 기초학력 미달 비율을 줄이는 방법으로 제시된다는 것은, 학력이 낮은 것을 도움을 받거나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할 일이 아니라 부끄럽고 잘못한 일로 치부하겠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시절 일제고사 점수를 공개하고 성적이 좋은 순으로 햑교에 차등적 인센티브 등을 지급한 결과, 학교는 학습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을 차근차근 돕는 대신, 모든 학생들을 늦게까지 학교에 남도록 강요하고 시험 예상 문제를 풀게 하는 등 학생들을 '들들 볶는' 대처를 했다. 성적을 조작해서 평균을 끌어올리는 식의 방법도 무더기로 적발되었다. 결과적으로 기초학력 미달자 '비율'이 줄어든 것과 별개로, 개별 학생들은 필요한 도움을 받기는 커녕 인권 침해를 경험하게 될 뿐이었다.

 

'기초학력 미달 제로'는 잘못된 표어

시험을 학력 향상의 도구로 쓰는 것은, 학생들이 시험 성적을 올리기 위해 더욱 공부에 시간을 투자할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가능한 일이다. 시험을 보는 행위 자체는 학력 향상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험은 다시 배우는 과정도, 이해를 돕는 과정도 아니라, 단지 학생이 성취한 것을 점수라는 지표로 환산하는 작업에 가깝다.

 

학생들이 성적을 높이려고 애쓰게 되는 이유는, 거둔 성적에 따라 생활의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시험을 못 본, 성적이 낮은 학생들은 학교에서 곱지 않은 시선(매우 둥글게 말하면)을 받고, 양육자에게 혼나거나 용돈 삭감 등 금전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 성적이 입시에 활용되는 것일 때는 더욱 치명적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규격화된 시험 점수가 나쁜 것을 곧 지능이 낮은 거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아서 '머리 나쁜 사람' 취급을 받게 된다. 지능이 낮은 것이나 배우는 속도가 더딘 것을 욕으로 쓰는 것은 차별적이지만, 매우 흔한 게 사실이다.

 

배울 의욕을 높이거나, 배우는 과정이 즐거워서 기꺼이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주지시키고 실패를 벌해서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라도 참고 하도록 만드는 것이 배움이라면, 과연 사회는 이것을 모든 청소년들에게 강요해도 되는 것일까?

 

이미 한국 교육은 실제로 삶이나 직업에 필요한 지식을 전달하는 장이 아니라 윗사람과 제도가 요구하는 바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가르치고, 그 내용에 대한 흥미가 아니라 결과에 뒤따르는 상과 벌을 동기로 삼아 학생들을 더욱 촘촘하게 '변별'하는 도구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초학력이라는 것은 이미 본래의 의미를 잃는다.

 

학력을 높여 주겠다는 말은 학교에서 제공하는 교육의 내용을 학생들이 더 잘 누릴 수 있도록 학생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입시를 잘 치르도록 해주겠다는 선거용 공약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입시는 상대평가이고 모두가 잘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공약은 거짓말이다.

 

기초학력 미달자가 많아진다거나, 학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것은 학교 시스템, 교육 시스템이 학생들에게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는 데에 문제가 있거나, 혹은 학습 내용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워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학력 저하'라는 우려는 기초학력 미달인 학생들에게 창피를 주고 억지로 시험을 위한 공부를 강제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기초학력 미달인 학생의 '비율'을 줄이은 것은 더더욱 개별 학생들의 교육권 보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기초학력 미달 제로"와 같은 표어를 내세우기 이전에, 기초학력의 기준, 그리고 이 기준선이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학생들의 교육권 보장에 도움이 될 지를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코코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활동가 | 프레시안 2023.07.11.

 

 

용산 정치의 카르텔

2023년의 대한민국은 마치 1990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노태우 정권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대통령실 비서관 5명을 중앙 부처 차관으로 보내 범죄와의 전쟁 선발대 인사를 마쳤다. 이어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신임 차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반카르텔 정부임을 자처하고 이권 카르텔과 가차 없이 싸워 달라고 당부했다. 이렇다 할 국정철학이 보이지 않던 정부의 운영 기조가 이권 카르텔의 해체라는 공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검사의 시각에서 본 범죄자와 피의자 인식은 공직사회의 기득권 카르텔을 잘 주시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이에 응답하듯, 지난 9일 대통령실 국정과제비서관 출신인 임상준 환경부 차관 취임 후 신설한 레드팀 첫 회의에서 반드시 혁파해야 할 대상으로 이권 카르텔을 꼽았다. 문제는 이권 카르텔을 규정하는 인식이다. 윤석열 정부의 자유는 규제산업과 신산업 등 시장과 기업의 자유에만 몰두했지, 사회적 약자의 자유는 철저히 외면해 왔다. 건설노조, 시민단체, 민주노총 등 자신들과 이념적 어깨를 나란히 하지 않는 세력은 철저하게 짓밟을, 불손한 이권 카르텔일 뿐이다.

 

지난 531일 전남 광양제철소의 7m 높이 철탑에서 농성하던 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 김준영씨는 경찰이 휘두른 1m 진압봉에 머리를 맞아 피를 흘려야 했다. 공권력은 윤석열 정부가 규정하는 이권 카르텔을 진압하는 수단이 되었다. 감사원은 앞으로 50여명의 감사관을 증원할 계획이라 한다. 이제 공직사회는 열심히 일해서 잡음을 만들기보다는 몸 사리기에 급급할 것이다. 비정상적 충성 경쟁의 정치 카르텔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본다. 윤 대통령은 차관 임명장 수여식에서도 자유민주주의 원칙을 강조하며, “헌법 정신에 충성해달라고 말했다. 정확한 인사 평가를 강조하면서, 자신은 통일부 장관과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에 대북 강경파와 극우 인사를 임명했다. 오래전부터 그토록 부르짖는 윤석열 대통령의 자유가 궁금해졌다. 얼마 전 사회학자 이나미씨의 책 <한국 자유주의의 기원>을 통해 어느 정도의 궁금증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자유를 강조하는 사람은 늘 보수주의자들이다. 보수적 정치가들이 외치는 자유는 기득권 유지를 지키고자 하는 자유일 뿐이다. 자유주의가 강조하는 자생적 질서는 법치의 강조로 나아가게 된다. 자유주의자들이 법과 제도를 통해 견제하고자 하는 건 과거에는 왕권, 현재는 민주주의다. 민중의 강한 권력은 기존의 법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왜 그가 자유를 부르짖고, 늘 법치를 입에 달고 다니는지를. 그리고 법치는 민중의 힘을 억누르는 수단이었음을. 여기서 보수주의자들의 자유가 기득권 유지만을 위한 것이라면, 보수주의는 필요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명쾌한 답을 내린다.

 

정치를 진보와 보수라는 한 마리 새의 양쪽 날개로 보면 보수는 과연 날고자 하는 사상인가? 보수주의는 존재해야 하는 필수적 이념이 아니라 그냥 존재하는 욕망이다. 날개는 변화와 진보를 이루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보수주의는 날개가 아니다. 균형을 위해서는 성찰이라는 날개가 필요하다. 성찰은 진보를 완성한다.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를 숙고하며, 미래의 부작용을 대비한다.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는 성찰하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는 위원회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많은 위원회를 구성하고 다양한 계층의 국민이 참여해 정책을 결정했다. 협치의 정부였다. 협치는 다양한 행위자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윤석열 정부의 방식은 통치다. 통치는 정부에 의한 일방적 지배다. 정치의 카르텔이다. 용산이야말로 카르텔 정치의 옷을 과감히 벗을 때다.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경향 : 2023.07.12

 

 

 

자본주의의 운명

미국·중국의 충돌 분위기가 좀 잦아들었다. 지난 3월 말 유럽연합(EU)디커플링대신 디리스킹을 언급했다. 중국을 적대시하지 않고 과도한 의존을 줄인다는 것이다. 지난 6월 초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이에 동조했다. 이후 토니 블링컨, 재닛 옐런 장관이 중국을 찾았다. 옐런 재무장관은 디커플링을 추진하지 않는다. 이는 양국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 양국 모두 경제가 불안정한 상황이다. 미국으로서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신냉전분위기로 경제 불안을 심화시키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다른 한편 미·중 대충돌은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뿌리째 뒤흔들 수 있는 위험 요소다. 미국과 중국이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함께 묶여 있는 현실이 신냉전으로의 질주를 제약하기도 한다.

 

최근 유재건 교수는 전환적 시대상황을 독해하기 위해 마르크스와 월러스틴의 자본주의 개념을 다시 논의한 바 있다(‘창작과비평’ 200). 그에 의하면, 자본주의의 개념, 탄생, 종말에 대해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세계체제론자들 사이에는 공통점과 함께 차이점이 있다. 이로부터 미루어 생각하면, ·중 갈등에 대해서도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세계체제론자들은 서로 다르게 볼 수 있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본질을 일국 단위에서 형성되는 임노동체제로 본다. 순수한 좌파·우파는 모두 중국의 임노동체제가 미국·일본·한국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볼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체제가 여타 자본주의 국가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라고 보면, ·중 갈등은 이념·가치의 충돌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가치를 기준으로 진영을 갈라야 한다는 것은, 이념적 좌파와 이념적 우파가 공유하는 주장이다. 이에 비해 월러스틴은 시장과 임노동은 자본주의보다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시장은 자본주의보다 더 오래도록 존속할 것이라고 본다. 그가 생각하는 자본주의는 독점적이고 반시장적인 것이다. 19세기 말~20세기 초, 20세기 말~21세기 초의 글로벌화와 기술진보 흐름을 보면 100년 이상의 시간을 더 관찰할 수 있었던 월러스틴이 자본주의의 양상을 더 현실에 가깝게 파악한 것 같다. 그는 자본축적이 세계적 차원의 복합적 사회관계를 매개로 이루어지며, 세계경제 안에 여러 개의 정치체제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세계체제론에서 보면, 세계시장 속에서 미국과 중국의 체제가 매개되어 있다. 세계의 금융 중심 미국은 세계의 공장 중국과 세계체제 속의 샴쌍둥이같은 존재다. 미국이나 중국 모두 분리·자립을 의도하거나 시도할 수는 있다. 샴쌍둥이를 분리하려면, 몸을 반으로 잘라내고 봉합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 분리 수술은 어린 나이, 결합 부위가 좁은 경우에는 성공을 기대해볼 수 있다. 그러나 성인이 된 이후 결합 부위가 넓은 경우에는 수술로 인한 출혈의 위험이 너무 크다고 한다.

 

경제인·현실주의자·자유주의자들에게 디커플링은 황당한 개념이다. 21세기의 세계체제는 해밀턴이나 리스트가 보호주의를 주창하던 18~19세기와는 복잡성의 차원이 다르다. 미국과 중국의 전면 충돌은 국가와 국가의 충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를 의미한다. 과거 냉전시대에는 서방 진영과 구소련 진영이 경제적으로 확연한 디커플링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진전된 글로벌화와 기술진보는 디커플링의 비용을 극도로 높여 놓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핵무기의 등장으로 인해 전쟁의 개념이 바뀌었다. 미국과 중국(또는 러시아)이 핵전쟁을 벌이면 지구는 멸망한다. 글로벌화와 기술진보 역시 세계를 바꾸었다. 한정된 영역을 넘어선 대규모 디커플링은 미국과 중국을 모두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 경쟁이든 협력이든 미·중관계가 질서를 잡지 못하고 충돌하면,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불바다에 빠지고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붕괴와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대해 낙관했다. 현실은 마르크스의 낙관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월러스틴은 마르크스가 논의했던 이행의 실패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 그 역시 현재의 자본주의는 지속되기 어렵다고 하지만, 자본주의 이후 어떤 세상이 올지는 확정되어 있지 않다고 본다.

 

세계체제 속에서 미국과 중국은 어떤 길을 갈까? 1970년대 이후는 중국이 세계자본주의에 편입되는 시간이었다. 중국이 세계체제 안에서 의외의 급성장을 지속하자, 2010년대 들어서는 미·중 양쪽에서 국가 간 경쟁 관점이 떠올랐다. 그런데 충돌이 선을 넘고 질서가 무너지면 세계자본주의는 붕괴한다. 제국의 경험과 꿈을 지닌 그들이 일국적 이념의 몽상을 따라 멸망의 길로 갈 것인가?

이일영 한신대 교수 경향 : 2023.07.12.

 

 

극단적 선택’, 극단도 선택도 아니다

1803년 미국 의회는 나폴레옹으로부터 루이지애나 준주(準州)를 사들였다. 당시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미시시피강에서 로키산맥에 이르는 거대한 지역을 탐사할 책임자로 29세의 메리웨더 루이스(1774~1809) 대위를 임명했다. 타고난 총명함과 추진력을 갖춘 루이스 대위는 지리학, 자연사, 의학, 식물학, 천문학을 공부하여 미국 지도를 만들었다. 그는 선주민 부족수, 그들의 언어, 전통, 기념물, 농업, 유행병, , 관습 등 각 지역의 토양과 지형, 식물과 동물, 광물과 화산 지형까지 성공리에 조사를 마쳤다. 적절한 조증(躁症), 성실성, 진취력, 판단력, 용기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난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탐험 이후 주지사까지 지낸 그는 사망 전까지 2~3년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반복했다. 늘 술에 취해 있었으며 아무 데나 돈을 쓰고 넋이 나간 듯 실수와 무례를 반복했다. 무엇보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책임감 그 자체였던 루이스는 가장 중요한 업무인 탐험 보고서를 쓰지 않았다. 대통령으로부터 계속 재촉받았다. 그는 35세에 끔찍한 방법으로 자살했다.

 

그의 죽음은 수많은 미스터리와 연구를 낳았지만, 학계는 평범한 우울증 환자였다고 결론내렸다. 200년 전, 다방면에 박식했던 토머스 제퍼슨은 이미 알고 있었다. 루이스는 원래 우울증 환자였고, 탐험이라는 대역사(大役事)를 위해 에너지를 총동원하다 보니 우울증세가 보류되었다고 분석했다. 우울증은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유전적 소인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유전되는 우울증이 아니라 여타 질병과 같다는 점이다. 루이스 집안은 친가가 그랬고, 아버지가 우울증 환자였다(<자살의 이해>, 274~294). 우울증 증상 중 하나는 타인으로부터 요구와 독촉을 받았을 때 죽고 싶도록 괴롭거나, 그로 인한 사망이다.

 

누구나 능력과 무관하게 질병에 걸린다. 우울증도 그런 질병 중 하나일 뿐이다. 과학자 김우재에 의하면, 인류는 생물학 연구비의 30%를 암 치료에 사용한다. 우울증과 자살은 심각성에 비해 가장 연구되지 않은 분야일 것이다. 우리는 자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덕분에 자살은 낙인과 금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극단적 선택이라는 말조차 속삭인다.

 

유능한 인물이 자살할 경우 평생 나누어 쓸 에너지를 짧은 시간 다 썼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티베트 의학에서는 소식(小食)을 장수의 기준으로 보는데, 이유는 일반 상식과 다르다. 총량, 즉 인간 한계의 법칙인데 인간에게는 평생 먹을 양이 정해서 있어서 나눠 먹으면 오래 산다는 논리다. 사람마다 기력과 먹을 양이 정해져 있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병에 대해서는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정신은 몸의 일부다

스티브 잡스가 의지가 약해서 암에 걸렸는가. 헤밍웨이의 조울증과 자살은 예술가의 병인가. 우울증도 능력과 환경에 영향을 받거나/안 받거나, 그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다. 다른 질병처럼 그만의 증상이 있고, 다른 질병처럼 같은 환자들 간의 차이도 크다.

 

19세기는 결핵, 20세기는 암, 21세기는 만성질환의 시대라고 한다. 진단할 수 없고 보이지 않는 통증의 시대다. 예전에는 생활의 일부인 우울한 기분과 질병으로서 우울증은 다른 현상이었다. 하지만 우울과 우울증의 경계가 급속히 흐려지고 있다. 우울은 분노의 성별화, 권력관계와 관련된 증상이었다. 남성(‘강자’)의 분노는 폭력으로, 여성(‘약자’)의 분노는 우울로 드러난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전자를 타인에 대한 투사(投射), 후자는 자기 탓으로 돌리는 내사(內射)라고 한다. 한국의 한()의 문화는 분노를 제대로 표출할 수 없는 여성적인 병, 약자의 문화다.

 

예전에는 자살도, 자살 시도에서도 성()의 차이가 컸다. 시도는 여성이 많지만, 실제 죽음에 이르는 경우는 남성이 많았다. 지금은 이 모든 이론이 무용하다. 우울한 남성도 많고 여성의 자살률도 대단히 높다. 연령과 성별, 계층의 구분 없이 주된 사회현상이 되었다.

 

그래서 인간의 반응도 조금은 발전했다. 예전에는 생명 경시운운하며 비난이 거셌지만, 지금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수용하는 편인 듯하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세계 1위인 한국의 자살률은 여전히 실감, 적응이 안 된다.

 

2021년 한 해 13352명이 자살로 사망했다. 80대 이상의 자살률은 20대보다 4배 이상 높다. 한국에서 자살은 10대부터 30대까지 다른 모든 원인을 제치고 사망 원인 1위이며, 40대와 50대에서는 사망 원인 2위이다.

 

202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11.1명이지만 한국은 24.1명으로 무려 13명이나 많다. 증가 속도는 매우 빠르며, 2위와의 격차도 엄청나다. 이 모든 통계는 축소 보고된 것이다. 자살, 성폭력 등은 정확한 통계를 알 수 없는 대표적 분야다. 외국인에게 유일하게 조력 사망을 허용하는 스위스에서도 한국인이 아시아 회원 중에서 1위다(인도나 중국의 인구를 생각해보라).

 

우리 사회에는 자살에 대한 보건 정책이 있는가. 자살에 대한 무지의 첫 단계는 인간의 질병을 신체()와 정신(마음)으로 구별하는 이분법과 정신이 우월하다는 위계다. 그러니 정신이 문제가 있으면 시민권을 상실한다. 마음은 몸이 아닌가? 마음은 몸 밖에 있는가? 암환자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게 하지만 정신병자는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다. 우울증을 다른 질병과 대입해서 생각해보자. “당뇨는 약을 복용하지 말고 의지로 치료해야 한다거나 암은 마음의 감기라는 말은 없다. “우울증에 빠졌다를 암으로 바꿔 보면 얼마나 난센스인지 알 수 있다. 세상에 암에 걸린사람은 있어도, 암에 빠진사람은 없다.

 

극단적 선택은 가능하지 않다

물론 대표적인 표현은 극단적 선택이다. 자살은 선택이 아니다. 혈액암, 근육통성뇌척수염, 코로나, 근위축성측삭경화증(루게릭병)으로 사망한 이들에게 선택했다고 말하는 경우는 없다. 다른 죽음은 애도하면서 왜 자살만 자발적 선택이라고 하는가. 선택은 고르는 것이다. 최소한 두 가지 이상 선택의 여지가 있고, 선택할 의지의 힘,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

 

우울증은 이 의지가 오작동하거나 고장난 질병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일어나야 한다. 인간의 삶은 매 순간 의지에 의해 움직인다. 중증 우울증은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 몸에서 의지가 빠져나간다. 중력이 몸을 잡지 않는다. 영혼(의지)이 몸에서 사라지면 현상은 죽음이다. 자살은 비유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자살골” “자살 행위등이 대표적이다. “자살 충동(death drive)”도 잘못된 번역이다. 드라이브(drive)는 충동이 아니다.

 

선택이라는 말에 극단적이 붙는 것은 더욱 이상하다.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극단적인 환경은 아니다. ‘극단적 선택은 건강한 사람만 가능한 일이다. 자기 의지에 의해 결정할 수 있는 자유로운 상태다. 그러나 이 정도로 건강하고, 이 정도로 자원이 많은 이는 없다.

 

대한민국 국민의 사망 첫 번째 원인이 자살인 상황에서,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은 환자에 대한 낙인을 넘어 사회적 논의를 어렵게 한다. 지나친 음주, 음주 운전, 아동 학대, 원전 오염수 방류를 방관 지지하는 이들의 행위이야말로 극단적 선택이 아닐까. 이 경우는 정말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아픈 사람의 질병사를 왜 극단적 선택이라고 하는가. 이 표현의 전제는 분명하다. 이 말의 배경에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진짜 극단의 무지가 자리 잡고 있다.

 

눈에 보이는 증상이나 장애는 인식이 가능하다. 우울증은 의지가 부족한 상태가 아니라 의지가 고장 나서 생긴 병이요, 자살은 질병사다. 근대 자본주의에서 의지는 중요한 개념이다. 의지는 생산력, 미래 지향, ‘정신 승리(자율성, auto/normy)’ 등 자본주의가 작동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그러나 사람마다 약한 부위가 있듯, 의지 역시 차이가 있다. 또한 사람마다 집중하는 분야가 다른 것처럼 의지 실현의 영역도 다르다.

 

 

자살은 죽을 만큼 아프기 때문에 발생하는 죽음이다. 자살하는 이들은 미래가 불행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아픈 사람의 입장에서 이는 비합리적 신념이 아니라 질병의 증상이다. 이 때문에 자살은 극단적이지도 않고 선택은 더욱 아니다. 특히 중증 우울증 환자는 자살하지 않는다. 선택할 기력이 없기 때문이다.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경향 : 2023.07.12.

 

 

남탓, 전 정권 탓, 네이버 탓

한 독자로부터 문의가 들어왔다. 요즘 네이버에서 뉴스를 봐도 <한겨레>가 잘 뜨지 않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는 것이었다. 3년째 뉴스서비스부(예전 디지털뉴스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나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감하다. 알다시피 포털에서는 한겨레뿐만 아니라 수많은 언론사가 경쟁한다. 이럴 땐 뉴스 배치 알고리즘의 첩첩산중을 뚫고 독자에게 다가가야 하는 임무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꾸지람을 듣는 기분이 된다.

 

일단 그런 독자님들께는 네이버 로그인부터 해주시고, 한겨레 채널을 찾아 구독을 눌러주십사부탁드린다. 마음에 드는 기자 구독도 눌러주시면 좋다. 네이버는 2019년부터 기사를 자체적으로 선정해 배열하지 않고, 구독 기반임을 강조하며 인공지능(AI·에이아이) 알고리즘에 기반한 추천 서비스를 가동하고 있다. 이 알고리즘의 구체적인 가중치 비중을 언론사에 공개하진 않지만, 경험적으로 로그인 기반 해당 언론사를 구독했는지 과거 열심히 읽었던 기사와 연관성이 높은지를 따져 추천한다고 보고 있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구독자가 기존에 본 영상과 비슷한 영상을 추천해주는 것과 비슷하다.

 

구독하지 않고 들어오는 독자들의 경우, 네이버 쪽에서는 20여가지 비개인화 요소들을 통해 분류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클릭 수가 많고 체류 시간이 길수록, ‘좋은 품질 기사 점수를 얻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최근 참석한 네이버의 언론사 디지털 설명회 질의응답을 종합해보면, 언론사가 직접 심층뉴스로 분류했거나 여러 언론이 비슷한 주제를 다뤘을 경우에 가중치를 좀 더 주는 것으로 보인다. 무분별하게 속보를 생산하는 일부 언론사에 대응해 속보 가중치를 다소 낮췄고, 반면 연재물 가중치는 높였다는 취지의 설명도 들었다. 독자들이 많이, 꼼꼼히, 꾸준히 읽을수록, 언론사에서 주요하게 배치했을수록 고품질 기사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추천하도록 설계했다는 이야기다.

 

물론, 기존의 선택 데이터가 쌓여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에이아이는 결코 만능이 아니다. 악의적인 차별·혐오 발언이 다수일 경우, 혐오마저도 학습했던 이루다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다. 다수가 선택했다고 해서 꼭 윤리적인 것은 아니다. 수량화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평가할지도 의문으로 남는다. ‘어떤 뉴스가 좋은 뉴스인가의 기준을 당신은 어떻게 정할 것인가?

여러 가지 의문은 많지만, 실무자로서는 결국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기사를 최대한 많은 독자가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클릭 수를 확보해야 한다는 선택 앞에 놓인다. 순진한 믿음일지 모르겠으나, 좋은 기사는 낚시성(어뷰징) 몰이를 하지 않더라도 결국 독자들이 알아본다고 믿는다. 읽기 쉽고 정직한 제목을 통해, 그 기사로 가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뉴스서비스부의 임무일 뿐이다. 한겨레 뉴스룸의 영업비밀중 하나를 여기서 공개해드리겠다. 당연하지만,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쓴다. 제목은 가능하면 21자 이내로, 그리고 유입 키워드는 최대한 전면에 노출한다. 약어나 한자보다는 키워드 전체를 쓰는 게 적어도 검색에서는 노출에 유리하다.(이건 특히 대통령 관련 기사를 검색하면서 윤석열로 검색하시고는 보수 언론 기사가 위에 뜨지 않는다고 주장하신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께 말씀드린다. 보수 언론은 제목에 한자 을 써서 검색해보시기 바란다.)

 

똑같은 키워드라도 회사 내에서 치열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겨레는 어떤 집단을 멸시하거나 비하하는 표현, 또는 어쩔 수 없이 다뤄야 하는 범죄자의 가해 사실 등 일방적 주장의 경우엔 적어도 제목으로는 뽑지 않으려 노력한다. “건폭” “사교육 카르텔같은 키워드를 계속해서 정부·여당이 며칠째 키워드로 밀어붙일 때도 난감했다. ‘건폭몰이노동단체 탄압으로 풀어 써주거나, ‘사교육과 같은 건조한 키워드를 쓰려고 한다. “반국가세력같은 독특한 키워드를 꾸준히 제시할 때는 달리 대신할 만한 방도가 없어서 최대한 인용을 살려서 쓸 수밖에 없었다.

 

알고리즘, 검색, 에이아이 등에 지치신 독자분들께는 한겨레 앱을 추천한다. hani.co.kr을 찍고 직접 들어오시거나, 한겨레 앱을 깔면 한겨레가 직접 고심을 거쳐 선정한 키워드를 볼 수 있다. 이건 에이아이가 아니라 사람이 한다.

정유경 | 뉴스서비스부장 한겨레 : 2023.07.12.

 

 

인생 100세 시대가 '축복' 아닌 '재앙'인 이유

"'요람에서 무덤까지'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어도"

지난 531일 정부가 '사회보장 전략회의'를 통해 사회서비스를 "시장화"하고 "경쟁체제"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짜증이 났다. 누군가의 말처럼 '인생 100세 시대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무턱대고 시장과 경쟁이 나쁘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시장은 사람들의 욕구와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조합해 가격을 매개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한다. 만약 시장이 없었다면 우리는 상점 앞에 기다란 줄을 서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만능이 아니다. 시장은 늘 가격을 붙일 수 있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돈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의 욕구에 충실하다. 예를 들어 병에 걸려 치료하는 것 보다 예방이 더 비용 효과적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보건소는 모자라고 미용목적의 외과는 넘쳐난다. 이런 상태를 시장의 실패라 부른다.

 

우리사회는 시장실패라 불러도 좋을 만큼 필수적인 사회서비스의 공급부족 상황에 빠져있다. 급격한 고령화나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증가 등으로 돌봄, 보건의료, 교육, 주거분야 등에서 사회서비스의 필요성은 늘어나고 있는데 공급이 충분하지 않다. 증가하는 사회서비스 수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정부의 고민도 여기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 해결방법이 사회서비스의 시장화를 통해 경쟁을 촉진하고 공급을 늘리겠다고 하는 것인데 결과가 좋지 않다. 정부는 20128월 경쟁촉진을 목표로 사회서비스 제공기관을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하는 방식에서 일정 요건 충족 후 등록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시행해 왔다. 제도 시행 4년 후 서비스 제공기관 수는 2170개에서 3875개로 늘었지만 전체 기관의 60~80%는 도시 지역에 몰렸고, 군 지역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은 10~30%에 불과했다. 정책 변화 이후 도시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서비스를 받는 대상자 확보에 어려움이 반대로 농어촌지역에서는 공급기관이 부족해 서비스 사각지대가 생겨났다. 한편 사회서비스 시장화 이후 대부분의 지역에서 서비스 품질 저하가 보고되고 있다. 민간의 공급자들은 비용절약을 위한 경쟁을 해왔고, 그 결과 공급 인력의 열악한 일자리로, 열악한 일자리에서 제공되는 낮은 질의 서비스로 이어져왔다.

 

사회서비스를 시장화 한다는 것은 현재와 같은 사회시스템 하에서는 불가능한 기획일 수도 있다. 물론 사회서비스의 일부는 시장화가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지만 시장은 가격을 붙일 수 있는 것에만, 돈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의 욕구에만 반응한다. 시장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시장의 속성이 그렇다는 것이다. 지난 623일 통계청이 발표한 '무급 가사노동 평가액의 세대 간 배분 심층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유년층(0~14) 돌봄에 투입된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가 132조 원, 노동연령층(15~64)의 가사노동 생산량은 410조 원 규모였다. 무급 가사노동이라는 말 속에 이미 포함되어 있듯 이런 일은 국민계정(GDP)에 포함되지 않으며 무시되어 왔다. 사실 이런 생각은 꽤나 전통이 깊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아담 스미스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마흔 살이 넘어 완성했다는 그의 책 <국부론>의 어떤 구절에도 어머니의 손에 대한 언급은 없다. 사회서비스의 시장화란 결국 마치 그림자나 부스러기처럼 존재하는 것들에 사회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인데 이를 사회서비스의 시장화라고 개념화해서는 성공할 수 없을 것 이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서비스 분야의 수요에 영리기업을 통한 대응이 효과적이지 않다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 기본적으로 시민들에게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은 이윤이 아니라 서비스의 이용이 목적이어야 하며, 동시에 집합적이고 관계지향적인 활동이어야 한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과 달리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경제 조직들은 배당할 필요가 없고, 이용자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가 생산되도록 조정이 가능하며, 제도화 이전에라도 영리기업이나 국가가 제공할 수 없는 서비스의 제공이 가능하다. 돌봄을 목적으로 설립 운영 중인 도우누리사회적협동조합, 전국의 의료사회적협동조합, 공동육아사회적협동조합, 협동조합형 아파트 공동체인 위스테이 별내의 사례는 시장과 경쟁 아닌 다른 방식의 사회서비스 공급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책임졌다는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소한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 서비스는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선언하면 무엇이 이상한가? 최소한 이런 선언이 있은 후에 예산의 제약이 있으니 이렇게 저렇게 정책을 조합하여 추진하겠다고 하면 좋지 않을까? 안 그래도 삶이 불안해 결혼을 할 수도 없고, 결혼하면 얘 키우기 어려워 낳지도 못하고, 이제는 오래 사는 것이 마치 재앙이 된 것 같은 사회에서 저출생, 인구감소 걱정이 가당키나 할까? 이와 같은 지금 우리사회에 필요한 메시지는 사회서비스의 시장화가 아니라 돌봄선언이 먼저다.

강민수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정책기획위원장 | 프레시안 2023.07.12.

 

군함도와 후쿠시마 오염수일본을 믿자고요?

이달 초 일본 규슈 나가사키항 근처의 군함도(일본명 하시마)를 보러 갔다. 일본의 조선인 강제동원과 노동착취 현장인 군함도 탐방은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가 주최한 잊어선 안 될 역사의 현장들-근대 일본에서 한국을 보다답사 여행의 한 순서였다. 아쉽게도 폭우와 높은 파도로 배가 못 떠 군함도 디지털 박물관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가상현실(VR) 체험관에선 군함도 건물들을 VR로 날아다니듯 샅샅이 살피고, 탄광 갱도 구조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벽면 가득 화려한 프로젝션 영상엔 군함을 닮은 작은 섬이 일본 산업화의 원동력이 됐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어느 곳에도 조선인 강제동원 얘긴 없었다. 그러다 전시실 한쪽 영어와 일본어 안내 소책자를 본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누가 역사를 조작하고 있는가. 군함도는 지옥도가 아니다라는 제목, 한국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적반하장이었다.

 

한국에 돌아오니 더욱 기가 막힌 부조리극이 펼쳐지고 있다. 한국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면죄부를 주는 일본 대변인 역할을 자임하는 중이다. 정작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보고서에 일본 요구에 따른 검토로 결과에 책임지지 않겠다고 명시했고,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더불어민주당과 면담하며 결과를 일본이 책임져야 하느냐는 질문에 모두의 책임이라 답했다고 한다. IAEA는 거듭 책임을 빠져나가고 있는데, 우리는 IAEA 보고서를 존중한다며, 일본도 하지 않는 일일브리핑을 날마다 열어 오염수 안전을 강변하고 있다. 정부는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피해를 본 수산업계 지원을 위해 올해 3500억원 상당의 예산 집행까지 결정했다. 일본은 3000억원(초대형 탱크에 오염수 장기저장), 많게는 1조원(오염수를 모르타르처럼 굳히는 방안)을 아끼자고 340억원의 싼값으로 오염수를 투기하려는데, 우린 대변인 역만 하며 10배 많은 3500억원 예산을 짜놓은 판이다. 대체 제정신인가.

 

정부와 여당은 과학 대 괴담프레임으로 몰아가고 있다. 필자에겐 명확한 증거도 없이 확신에 차서 말하는 원자력 전문가들의 태도가 불안하다. 사고 원전 오염수를 해양에 흘려보내는 일 자체가 초유의 일이다. 방류를 시작하면 최소 30년이 걸린다. 미량·저농도 방사능이 장기간 축적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연구된 것은 거의 없다. 불확실한 건 모른다고 말하고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과학이다. ‘무시할 수준이니 먹고 마셔도 된다안전성에 확신이 서지 않으니 조심하자, 오염수를 방류하면 안 된다중 어느 것이 괴담이고 과학인가. 일부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과학의 이름으로 시민들의 불안을 비난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네이처엔 많은 해외 전문가들이 오염수 방류에 심각한 우려를 전하고 있다.

 

IAEA 보고서는 도쿄전력이 제공한 데이터를 토대로 오염수 방류 방식을 검토한 것이다. 그러나 도쿄전력은 잦은 은폐 전력으로 일본 내에서도 불신이 깊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직후 핵연료가 녹아내리는 노심용융(멜트다운)을 두 달 뒤에야 인정했고, 방사성 물질을 걸러내는 핵심 장비인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는 수시로 고장났음에도 제대로 알리지 않았으며, 2013년 알프스 시운전 당시 오염수 정화 수준을 장담했지만 방사성 핵종인 탄소-14를 거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2020년까지 감춰왔다. 1차 처리 후에도 백혈병·골수암 등을 유발하는 스트론튬-90이 기준치보다 최대 2만배 높게 검출된 사실도 지역언론 폭로 후에야 밝혔다.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는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을 어떻게 믿나. 한국 등 인접국들은 감시체제는커녕 핵심 정보 접근권도 없다.

 

0157월 일본은 강제동원 피해자를 기리겠다고 공언하며 군함도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건부 등재에 성공했다. 그러나 등재 후엔 유네스코가 현지조사까지 벌여 약속 이행을 거듭 촉구했지만, 일본은 되레 유네스코 조사단이 당시 징용정책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반발하기에 이르렀다. 국제사회 약속도 헌신짝처럼 던지는 일본이다.

 

지난 3월 한·일 회담 당시 한국이 한 통 큰 양보의 대가는 오염수로 돌아왔다. 왜 백해무익한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우리 국민들이 갈등해야 하나. 진정 국익을 위한다면 일본에 끌려다닐 게 아니라, 여야가 함께 오염수 해양투기를 하려는 일본을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유엔 해양법협약 위반으로 제소하고 방류 금지 잠정조치를 청구해야 한다. ‘국민 건강을 위한최소한의 상식이다.

송현숙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경향 : 2023.07.13.

 

 

국민 여러분, 아프면 큰일 나요

대한민국 의료체계가 붕괴하는 조짐이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과 진료대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번에는 조기 진통으로 병원을 찾은 임신 9개월 산모가 미숙아를 받아주겠다는 병원이 없어 1시간 이상 분만이 늦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그것도 수도권에서 일어난 일이다. 소방방재청 자료에 따르면 이 같은 응급실 뺑뺑이는 지난해에만 약 8200건 발생했으며, 지난 5년 동안 1.6배 늘었다. 안타깝게도 이런 사건은 적어도 앞으로 몇년 동안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지난 10여년간 간신히 버텨 온 응급환자와 중환자 진료체계가 최근 대학병원과 종합병원 의사들이 동네 병·의원으로 대거 빠져나가면서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도 배출되기까지 10년 넘게 걸리니 당장 의료체계가 붕괴하는 것을 막기 어렵다. 최근 의사들이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을 그만두고 동네 병·의원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근본적인 원인이 기형적인 의료체계에 있으니 해결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이제까지 의사와 병원이 반대하는 정책은 아무리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라 해도 해본 적이 거의 없고, 땜질식 처방으로 문제를 덮는 데 익숙한 보건복지부가 과연 의료체계의 판을 새로 짜려고 할까 의문이다.

 

의사가 부족한 상태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텨 온 응급환자와 중환자 진료체계에 회복 불능의 치명타를 날리는 것이 비급여 진료다. 지난 정부에서 동네 병·의원은 도수치료와 피부미용, 초음파 검사, 건강검진 같은 비급여 진료를 크게 늘렸다. 비싼 비급여 진료가 늘면서 동네 병·의원 의사 수입은 대학병원과 종합병원 의사 월급의 거의 2배가 되었다. 대학병원 교수라는 사회적 지위만으로는 연봉이 2억원 더 많고 워라밸이 더 좋은 동네 병·의원으로 의사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지난 5년간 동네 병·의원 의사는 6500명 넘게 늘어난 반면 대학병원과 큰 종합병원 의사 수는 거의 늘지 않았다.

 

복지부는 지난 수십년 동안 비급여 진료를 방치했다. 선진국 의사들은 의학적 근거가 없어 거의 하지 않는 비급여 검사와 치료를 동네 병·의원들이 남용해도 관리하지 않았다. 같은 비급여 검사와 치료를 해놓고도 다른 병원에 비해 진료비를 몇배씩 더 받는 것도 방치했다. 비급여 진료가 폭발적으로 늘어도 관리할 방법이 없는 이상한실손보험도 문제다. 그 결과 동네 병·의원에서는 환자에게 실손보험 있으시죠?”라고 묻고 비급여 진료로 돈을 버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돼 버렸다.

 

의사와 병원에 유리하면 규제하고 의사와 병원에 불리하면 필요한 규제도 하지 않는 뒤틀린 의료제도 역시 의사 부족 문제를 악화시킨다. 응급의료법은 응급의학과 전문의만 응급센터 전담전문의가 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는데 최근 개원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늘면서 응급실에 의사가 부족해지고 응급실 뺑뺑이는 늘고 있다.

 

병원이 자유롭게 병상을 늘리고 진료 범위를 정할 수 있게 허용하면서 의사 수는 자유롭게 늘리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심장병을 진료하는 병원이 환자 수요에 비해 3배 더 많다보니 심장병을 진료하는 의사는 분산되고, 많은 병원이 24시간 365일 심장병 응급환자를 진료하지 못하고 있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동네 의원을 개원할 수 있으면 다른 과 의사도 응급실 전담전문의로 인정해주는 게 맞다. 병원이 자유롭게 병상을 늘리고 진료 범위를 정할 수 있게 허용해줬으면 의대 정원도 자유롭게 늘릴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게 맞다.

 

의사와 병원 말만 듣고 엉뚱한 대책을 남발하는 복지부의 무능력도 의사 부족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 응급환자 수가 미국의 3분의 1, 영국의 2분의 1에 불과하고 경증환자가 외국에 비해 많은 것도 아닌데, 의사들 말만 듣고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는 경증환자 탓으로 돌리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응급실 뺑뺑이의 진짜 원인은 미국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응급실 의사 수와 대학병원이 가진 의사와 병상의 80% 이상을 외래를 통해 입원한, 응급하지도 않고 중증도 아닌 환자를 보는 데 쓰는 병원에 있다. 응급실 전문의 수를 늘리고 응급환자 수에 비례해 병상을 배정하고 응급수술을 할 당직 의사를 배치하는 게 응급실 뺑뺑이의 진짜 해결책이다.

 

아직 시간은 있다.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붕괴하기 전에 의료체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 복지부가 의사와 병원 눈치 보지 않고 비급여를 관리하고, 필요한 규제를 도입하고, 국민과 전문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투명한 공론의 장에서 정책을 결정해 나가길 기대한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경향 : 2023.07.13.

 

 

가치와 동떨어진 윤 대통령의 가치외교

한 중견국가 정치 지도자가 노골적으로 군사 무기와 원자력발전소를 팔겠다고 공언하며 외국에 나가 정상외교를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오로지 돈만 아는 냉혈한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방산이나 원전 시장은 일종의 블랙마켓, 즉 암시장과 같은 논리로 작동한다. 이 시장에서는 거래를 하더라도 조용히 해야 한다. 성과를 거뒀다고 정부가 나서서 대놓고 자랑할 수 없는 시장이다. 이런 품목들은 분쟁을 조장하고 안전을 위협한다는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정부가 전면에 나서지 않는 게 정상이다. 마케팅은 업체가 담당하고 정부는 뒤에서 조용히 지원만 한다.

 

영업사원 1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순방 외교는 방산, 원전, 인프라라는 국익 외교로 포장돼 있다. 출국 전부터 분쟁지역인 폴란드로 달려가 무기와 원전을 팔겠다고 떠들어댔다. 이미 지난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그는 방위산업 세계 4대국으로 도약한다는 거창한 목표를 발표한 바 있다. 그 연설 이후 방산과 원전, 인프라를 패키지로 묶어 수출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지금도 정부 매체들은 이를 집중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전세계에 이런 이상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낯뜨거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세계가 힘들고 피로해하는 상황에서 평화와 협력의 비전은커녕 무기와 원전을 팔겠다니. 이런 게 어떻게 나토 국가들 정서에 맞겠는가. 대통령 자신이 무기중개상이고 원전 영업사원이라니 누가 호감을 갖겠는가. 이런 비호감적인 태도는 부산엑스포 유치전에서 대한민국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서방 지도자들을 가장 짜증 나게 하는 것은 한국이 그 탁월한 무기 생산능력에도 우크라이나 지원은 적당히 회피하면서 오직 파는 데만 관심을 보인다는 거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나토 가입국 국방장관 회의에서 폴란드 국방장관은 우크라이나에 약속한 무기 지원을 회피하며 무기 판매에만 관심 있다며 독일을 규탄했다. 재정이 어렵고 안보 위협이 절박한 동유럽 국가들은 겉으로는 러시아를 규탄하면서 속으로 이익을 셈하는 독일의 이중성에 분노했다.

그랬던 폴란드와 양자회담에서 방산과 원전 영업을 하겠다는 한국 대통령을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지난 4월 한국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미국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공개적으로 표출한 바 있다. 그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 한국에 압력을 넣어달라고 요구했다. 그게 바로 그들의 본심이다.

 

원전에 대한 종교적 신앙을 숨기지 않는 윤 대통령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만나서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인한 생태와 안전 우려를 전달하지 않았다. 우리 대통령에게는 원전 건설이 우선이기 때문에 그 위험과 비용은 부차적인 문제다. 그러니 어떻게 오염수 방류와 관련한 우리 국민의 우려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태평양 도서국들을 가장 짜증 나게 하는 것은 ‘21세기 최대 노상 방뇨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규탄하지는 못할망정 찬성하는 듯한 한국 대통령의 태도다. 더군다나 수산물시장을 방문해 수조의 물을 떠먹는 한국 여당 국회의원은 기가 막혔을 거다. 이런 낮은 품격으로 어떻게 부산엑스포를 유치하겠다는 것일까.

 

대통령과 정부는 항상 가치외교, 이념외교를 말한다. 이익보다 가치를 우선한다는 말을, 다른 나라에서는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극복하고 노동을 존중하며 소수자와 여성을 배려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테다. 그게 국제정치의 문법이다. 실제 지난해 나토 정상회의 전략지침과 올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공동성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기후위기안전’, 그리고 협력이었다. 나토 회의에 참석해 국격을 높였다고 말하는 윤 대통령은 정작 대부분 외면하는 가치다.

 

이 정부의 정상외교는 말로는 가치외교라지만 실제는 진영으로 세계를 가르고 장벽을 세운다. 세계의 보편적인 가치와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 윤 대통령이 정작 자신이 초청받은 회의에서 논의된 의제와 문헌을 읽어보긴 했는지 의문인 이유다. 그 문서를 한번이라도 정독했다면 민주주의, 법치, 인권이라는 말이 뭘 의미하는지, 가치외교라는 말을 왜 엄밀하고 적절하게 사용해야 하는지 깨닫게 될 텐데.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경향 : 2023.07.13.

 

 

윤석열 정권도 역사가 된다

대통령의 위압적인 발언이 거듭되고 있다. 더욱이 전에 없던 유튜브와 에스엔에스(SNS)까지 더해지니 주위가 참으로 어수선하다.

 

나라 밖에서는 남미 콜롬비아 아마존 정글 지대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실종됐던 어린이 4명이 40일 만에 구조됐다. 아이들 어머니와 조종사 등 어른 3명은 사고 당시 숨졌고, 13살 맏이 레슬리와 9, 4, 생후 11개월 막내까지 4남매는 밀림의 계속되는 폭우, 야생동물과 해충의 위험을 이겨내고 과일과 씨앗, 뿌리 등을 먹으며 40일 동안 버티며 생존해 기적적으로 생환한 것이다. 4남매 구조작전을 이끈 콜롬비아 국방부 장관은 레슬리의 정글 지식과 보살핌 덕분에 세 동생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4남매가 위기를 극복하고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데는 여러 요인이 있었겠지만, 그 가운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맏이 레슬리의 리더십이었다. 레슬리의 지혜로운 역량, 곧 뛰어난 리더십이 아니었다면 험난한 밀림에서 돌도 지나지 않은 갓난아이 등이 40일이나 버텨내기는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콜롬비아 국방부 장관이 “13살 레슬리의 용기와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찬사를 보낸 것도 이런 점 때문이다.

 

탁월한 리더십이 절실한 경우가 어찌 이런 때뿐이겠는가. 13살 레슬리의 리더십을 전하는 기사는 민망스레, 한국의 정치 지도자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력을 연상시키며 뇌리를 무겁게 짓누른다. 시민이 159명이나 희생된 이태원 참사 책임을 외면하는 윤 대통령의 모습에서 믿고 의지할 만한 리더십을 기대하기 어렵다. 또 입에 붙은 비속어들 그리고 연설문에서조차 북한 공산집단에 대하여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 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습니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 소통의 정치력은 찾아볼 수 없다. 언급된 사안의 사실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읍소하고’ ‘노래 부르고’ ‘돈과 출세 때문에 반국가적 작태를 일삼는이라는 표현을 연설 원고에 넣어 꼭 대통령의 목소리로 내뱉어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과거 박정희와 전두환 군사정권이 계엄령이나 긴급조치를 발령하면서 위협적이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던 시절의 공안기관들이나 구사했을 언어다.

 

앞서 레슬리의 경우 콜롬비아 국방부 장관이 언급한 것처럼 열대우림에서 생활했던 경험과 그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위기를 극복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폭넓은 경륜보다 잘못을 찾아 벌주는 검찰관 이미지를 과시한다. 인사 정책을 검사나 그 관련 인물들 위주로 수행하고, 권력 행사는 피의자 신문하듯 전횡한다면 책임정치도 신뢰의 리더십도 없다. 정부의 정치하는 문법(文法)은 서초동 검찰의 수사하는 수법(手法)과 차원이 다르며, 검찰 의식만으로 국정철학을 담아내기 어렵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한국 사회의 난제인 대학입시제도도 단칼로 휘둘러서 처리하려 한다. 그 무모함에 우려가 커지자 집권당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검사로 수십년간 수많은 입시부정 사건을 다뤘기 때문에 대입 제도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해박한 전문가라고 윤 대통령을 추어올렸다. 씁쓸하게도 이 발언은 윤석열 정권의 성격을 설명하는 매우 적절한 표현이어서, 장차 역사에서 요긴하게 잘 인용되는 사료가 될 것 같다.

 

전근대사회에서 군주의 발언을 윤발’(綸綍)이라 했는데, 이는 군주의 지시·명령은 실처럼 가늘어도 인끈’(병권을 가진 무관이 매어 차던 사슴 가죽 끈)처럼 귀중하고 동아줄같이 튼튼하다는 의미다. 통치자의 발언은 역사에 기록되고, 흐른 땀을 다시 피부 안으로 밀어 넣지 못하듯이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기에 신중해야 한다고 경계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그를 옹위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역설적으로, 실처럼 빈약한 발언들이 어떻게 동아줄처럼 막강해지는지, 그리고 왜 최고 통치자의 발언을 역사에 기록해야 하는지, 일반적인 역사 상식과는 다른 유형을 살피게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수사를 통해서 역시 대통령직에 관한 해박한 전문가가 돼서인지, 윤 대통령은 역사의식 같은 건 유념하지 않는 듯하다. 역사는 물론이고 발언이나 연설할 때 당장 눈앞에 있는 청중들만 염두에 둘 뿐 카메라 너머 시청자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외교 무대에서 비속어로 막말을 하고도 오히려 이를 보도해 파문을 일으켰다며 적반하장으로 덤터기를 씌운다. 좁은 안목과 짧은 이해력으로 헛다리 짚은 정책을 내세우다가 반대 여론의 후폭풍에 직면해도 그 모두를 다른 사람 탓으로 둘러씌운다. 정권이 바뀌고 한 해가 지나도록 툭하면 지난 정부 탓을 하고, 부처 관료들에게 잘못을 전가해 책임을 묻곤 한다. 결코 잘못이나 오류를 시인하거나 진솔하게 성찰하지 않는다. 탓을 하는 인생은 이미 루저다”(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데, 이 정부는 지난 정부 탓밖에 할 줄 모르는 이미 실패한 정부라는 말인가.

 

대통령이라는 위상을 돋보이게 하는 수단은 강압적인 권력이 아니라 신뢰받는 리더십이다. 또 권력을 앞세운 보복으로 강제하는 침묵이 아니라, 갈등과 다양한 의견을 조화롭게 융합해 저력을 든든히 하는 정치력이어야 한다. 정상 외교차 출국하면서 <문화방송>(MBC) 취재진을 전용기 탑승에서 배제하고, <한국방송>(KBS)에 대한 응징으로 시청료 분리 징수를 강행하는 옹졸함으로 대통령의 위상이 높아지지 않는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민주화운동희생자추모제 후원을 트집 잡아 6월항쟁 기념식 주최를 취소하고 불참하는 일이, 정부 차원에서 농담처럼 자행되는 것도 제대로 된 국가의 권위와는 먼 치졸한 모습이다. 폐쇄적 조직의 보스들은 여의치 않을 때 말을 바꿔 상황을 호도하거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한다.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대신.

 

과거 이승만의 특무대, 박정희의 중앙정보부, 전두환의 보안사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독재정권의 근간이었다. 지금은 검찰이 그 구실을 한다. ‘정치는 잘했다는 전두환을 따라 정권의 희생양을 만들고, 이승만기념관을 만들어 1950년대 극단의 반공 정책을 이어받으려고 한다. 윤석열 정권의 행보는 지나간 역사의 익숙한 기억들을 소환한다. 그렇게 루저의 기시감을 주는 윤석열 정권도 지나간 역사가 된다.

안병욱 | 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 한겨레 : 2023.07.13.

 

 

멧돼지가 나타났다

엄마 옥수수밭에 멧돼지가 다녀갔다. 이것도 건드리고 저것도 건드렸다. 밭 구석구석을 온통 들쑤시며 다닌 모양이다. 멧돼지는 저돌적으로 움직인다. 술 취한 인간처럼 무식하게 파헤친다. 그래서 막기가 더욱 어렵다. 먹이가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나타난다.

 

멧돼지가 방문한 다음 날. 비상이 걸렸다. 이른 시일 안에 수확하지 않으면 애써 지은 일 년 농사를 망칠 수도 있다. 옥수수 농사는 다른 농사에 비하면 비교적 쉬운 편이다. 씨앗 심어 모종 가꾼 후 본 밭에 옮겨 심는다. 무럭무럭 자라나 수염이 거무튀튀하게 변하면 수확할 시기가 가까워진 것이다. 사람은 눈으로 확인하는데 멧돼지는 코로 확인하는 모양이다. 사람보다 더 정확할 정도로 맛있는 시기를 알아챈다. 이때부터는 멧돼지와 보이지 않는 싸움이 시작된다. 사방으로 울타리를 쳐 놓았는데도 어떻게든 뚫고 들어온다.

 

맘 같아서는 멧돼지 집을 압수 수색하고 싶다. 경찰서에 전화해서 강력계 형사들 좀 보내달라고 해볼까. 검찰청에 진정 넣어 압수 수색 영장 발부해 달라고 부탁해볼까.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지나간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현실적 방법은 멧돼지가 방문하기 전에 먼저 수확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아침 일찍 서둘러 옥수수밭으로 향하는데 걱정이 앞선다. 옥수수는 수확하는 것이 제일 힘들다. 일해 본 사람만 아는 고된 노동이다. 한 나무에 하나씩 달린 옥수수자루부터 따야 한다. 완전무장하고 나섰는데도 온몸이 상처투성이로 변한다. 손이 베어져 피가 쏟아진다. 옥수수 잎사귀가 목 부근을 사정없이 베기도 한다.

 

바쁘다는 핑계 대고 도망칠까 궁리도 해본다. 하늘 쳐다보니 태양빛이 무지막지하게 내리쬔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음에는 엄마를 설득해 절대로 많이 심지 않도록 막아야겠다. 농사짓는 면적을 줄여야 한다. 허리 아프고, 다리 아프고 온몸이 다 아픈 상태인데 왜 이리 힘들게 농사를 지으실까. 온갖 생각이 다 든다. 멧돼지 생각하면 붉으락푸르락 머리끝까지 울화통이 치민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엄마에게는 옥수수가 자식이나 다름없는 거구나. 자식처럼 정성껏 키워 몇 푼 안 되는 돈이지만 알뜰살뜰 모아 손자들 용돈 주는 거구나. 엄마의 고된 노동 덕분에 자식들 이만큼 키운 거구나. 그래서 농사 하나하나에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구나. 갑자기 울컥한 마음에 눈물이 핑 돈다. 내가 이만큼 커온 것도 어머니의 고된 노동 덕분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무조건 돈 벌 거로 생각하며 농사지은 게 아니었구나.

 

작년 이맘때도 똑같은 생각이 들어 가격을 알아봤었다. 한 개에 250원이었다. 올해는 조금 올라 500원 정도 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소비자는 여전히 비싼 값을 치러야 먹을 수 있다. 모르긴 해도 두세 배 이상 차이가 나지 싶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어머니·아버지의 노동을 착취하며 살아온 것일 수도 있다. 대한민국 전체가 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발전을 이끌어온 힘이고 원동력이 바로 이 노동이었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도 모르게 헛갈리는 멧돼지 한 마리가 엄마의 고귀한 노동을 훼손하는 일만큼은 없어야 한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인간 멧돼지들이 수두룩하게 판을 치는 것 같다. 부동산 투기 멧돼지, 권력 도취 멧돼지, 부끄러운 줄도 모른 채 무식 자랑하듯 나불거리는 멧돼지들 말이다. 멧돼지와의 전쟁에서 꼭 이겨야 하는 이유다.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전 대표 경남도민 : 2023.07.13.

 

명품 선망이라는 시대정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인 넷플릭스는 매체 특성상 공생관계일 수밖에 없는 인플루언서소재 콘텐츠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왔다. 인플루언서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기 시작한 2010년대 후반, 패리스 힐턴을 비롯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스타들의 명암을 조명했던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아메리칸 밈>(2019), 유명 사진작가의 인스타그램 피드 하나로 깜짝 스타가 된 무명배우의 성장통을 그린 오리지널 일본 드라마 <팔로워들>(2020) 등이 대표적이다

 

인플루언서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은 지난달 30일 공개된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셀러브리티>(사진)에서도 이어진다. 유명 인플루언서인 고교 동창 손에 이끌려 SNS 세계에 입성한 주인공이 빠른 속도로 이름을 널리 알리고 그보다 빠르게 추락하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인플루언서들의 영향력이 한층 막강해진 시대의 풍경을 담아낸다. 공개 직후만 해도 화제성이 그리 크지 않았으나, 2주째인 지난 12일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TV(비영어) 부문 1위에 올라 이목을 끌었다.

 

<셀러브리티> 화제의 중심에는 주인공 서아리(박규영) 캐릭터가 있다. 평소 인터넷과 담을 쌓고 살다가 생계를 위해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게 된 서아리는 마치 SNS 세상의 앨리스처럼 그 낯설고 기묘한 공간을 찬찬히 탐험해나간다. 팔로어 숫자가 곧 돈과 권력이 되는 이 신종 원더랜드에서 인플루언서들은 더 큰 힘을 얻기 위해 유명인과 인맥을 맺으려 물밑 작전을 벌이고, 때론 자극적인 이슈로 화제를 만들어내며, 화려한 볼거리를 끊임없이 전시해야 한다. 그 치열한 전쟁터에서 자신만의 개성과 진심으로 승부하려 했던 서아리조차 점차 요동치는 팔로어 숫자에 집착하게 된다.

 

드라마는 서아리의 성공과 몰락을 통해 우리 시대 신흥귀족으로 불리는 인플루언서들의 노골적인 욕망과 불안을 보여준다. 그들의 운명을 쥐락펴락하는 익명의 팔로어들, 그 군중심리에 대한 비판도 놓치지 않는다. <셀러브리티>의 가장 유의미한 지점은 서아리의 예리한 시선을 통해 SNS 시대 신풍속도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반성을 보여주는 데 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좀 더 유심히 보면 이 작품의 진짜 셀링 포인트는 인플루언서들의 영업전략과 꼭 닮아 있음을 알게 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명품 전시. <셀러브리티>는 서아리가 인플루언서로 성장해가는 과정 곳곳에 화려한 명품쇼를 배치한다. 실제 인플루언서들도 깜짝 등장해 볼거리로서의 역할을 자처한다. 재벌과의 신데렐라 로맨스도 빠지지 않는다. 드라마에서 일생일대의 살벌한 폭로전을 진행 중인 서아리가 가장 상냥한 시간으로 회상하는 장면이 재벌2세 준경(강민혁)과 함께한 슈퍼카 드라이브 신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답답해하는 서아리에게 슈퍼카의 지붕을 열어주던 준경의 배려를, 그녀는 로맨틱하게 회상한다

 

<셀러브리티>에 반영된 명품 선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서아리의 성공 요인에도 명품이 결정적 힘을 발휘한다. 사실 서아리의 유명세는 금수저 출신 배경이 알려진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그녀를 선망한 동창 민혜(전효성)는 인플루언서가 돼 아리와 재회하자 그 배경을 이용해 팔로어를 더 늘리고자 했다. 아리의 집안이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민혜가 그를 손절한 뒤에도, 서아리는 상류층 출신다운 고급스러운심미안 덕에 인플루언서로 살아남는다. 명품을 기준으로 한 계급 구조는 파워 인플루언서 모임에서도 드러난다. 모임의 최상층에는 SNS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데도 인플루언서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명문가 출신 윤시현(이청아)이 있다.

 

<셀러브리티>의 아이러니는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SNS의 허영심을 저격하지만, 실상 더 노골적인 명품 선망으로 점철된 것은 드라마계다. 현재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인기를 얻고 있는 또 한 편의 K드라마 <킹더랜드>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드라마다. 극의 주요 배경은 그냥 VIP도 아니고, 몇 대에 걸쳐 부를 축적해온 VVVIP들만을 상대하는 호텔 라운지다. <킹더랜드> <셀러브리티>에 이어 넷플릭스 한국 시리즈 시청 순위 3위에 올라 있는 <마당이 있는 집>, 4<이번 생도 잘 부탁해>도 상류층 문화가 중심 배경이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명품 선망이라는 시대정신을 부추기는 것은 어디인가.

김선영 TV평론가 경향 : 2023.07.14.

 

 

누구를 위한 헌법 정신인가

검사 윤석열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계기는 201310월 열린 국회 국정감사였다. 박근혜 정권 시절 당시 증인으로 나와 국정원 댓글 사건수사 과정에서 검찰 수뇌부가 압력을 행사했다고 폭탄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던 의원들을 향해 말했다.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도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상관의 지시라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일사불란하게 따르는 검찰 조직문화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은 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시민들은 그의 사이다 발언에 환호했고 윤석열 검사는 일약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대통령 윤석열이 그때 발언을 다시 소환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말 비서관 출신 차관 내정자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나에게 충성하지 말고 헌법정신에 충성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의 성향과 행보를 고려하면 이런 주문은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 법과 질서, 자유민주주의를 늘 강조해온 그로서는 당연한 얘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 대통령, 그리고 윤석열 정부는 진정으로 헌법정신에 충성하고 있을까.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로 시작하는 취임 선서처럼 헌법정신을 지켜나가는 것은 대통령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다. 하지만 지난 1년여간 대통령의 언행을 되짚어보면 헌법정신과 어긋나는 사례들이 적지 않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헌법 21조가 규정하고 있는 언론·출판과 집회 결사의 자유는 윤석열 정부 들어 심각하게 훼손됐다. 윤석열 정부에 비판적이고 불편한 관계에 있는 매체에 대한 뒤끝 작렬이 이어진 것이다. 대표적인 게 지난해 9월 미국 방문 도중 불거져 나온 바이든/날리면 논란이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MBC 사장 등을 대통령 명예훼손으로 형사고발했고, 대통령실은 MBC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불가를 통보했다. 치졸하기 짝이 없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출근길 문답에서 윤 대통령은 전용기 탑승 배제 이유를 묻는 질문에 “MBC가 가짜뉴스로 동맹관계를 이간질하려는 악의적인 행태를 보였기 때문에 대통령의 헌법 수호 책임의 일환으로 부득이하게 행한 조치라고 답했다. MBC 기자가 무엇이 악의적이냐고 재차 질문했으나 답은 없었고, 취임 초 언론과의 소통을 강조하면서 시작한 출근길 문답은 불과 6개월 만에 끝나버렸다.

 

MBC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임명권을 갖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 흔들기는 예상된 수순이었다. 한상혁 위원장을 면직 처분하고 그 자리엔 MB 정권 당시 방송 장악의 장본인인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보를 앉힐 예정이다. 대통령실 권고로 시작한 ‘KBS 수신료 분리징수는 절차상 하자가 수두룩한데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비판적 매체의 쓴소리를 틀어막으려는 속 좁은 보복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한술 더 떠 한 여당 의원은 최근 이슈로 떠오른 서울~양평 고속도로 의혹을 제기한 경향신문 등의 기사를 근거 제시도 없이 가짜뉴스로 몰아붙이며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겁박했다. 정당한 집회를 불법으로 몰고, 야간 시위 금지, 노동자에 대한 폭력적 진압과 체포도 서슴없이 자행했다.

 

대법원장이 대법관 임명 제청을 하기도 전에 특정 후보 2명에 대해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지 대통령실에서 검토했다는 지난달 경향신문 보도는 눈과 귀를 의심케 한다. 이는 삼권분립 원리에 위배되는 것은 물론 사법권 독립을 해치는 위헌적 처사다.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체계 개편에서 시작된 시행령 통치는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 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대응한 정부의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 추진으로 확대됐다.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는 헌법 제40조를 무색하게 한다.

 

차병직 변호사 등이 쓴 <지금 다시, 헌법>에는 헌법의 존재 가치를 서술한 대목이 나온다. “수천 개의 법령은 헌법 아래 있고 헌법은 법들을 지휘하고 감독한다. 헌법이 힘겨우면서도 영예로운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오직 우리의 인간다운 삶에 봉사하기 위해서다.” 유달리 헌법정신을 강조하는 윤 대통령이 되새겨 봐야 할 대목이다.

 

이참에 높은 분들에게 부탁 하나 해볼까 한다. 헌법정신을 지키기 힘들면 차라리 제헌절을 공휴일로 재지정하는 일이라도 해보면 어떨까. 그나마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헌법 제10조와도 부합하니 말이다.

조홍민 사회에디터 경향 : 2023.07.14.

 

 

33년 묵은 반헌법적 손배폭탄’, 이대로 둘 건가?

노동자들의 죽음행렬이 끌고 온 노란봉투법

노조 쪽의 불법쟁의 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 민형사상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적극 활용하라.”

 

노태우 정권 시기였던 199010, 최병렬 노동부장관이 기업들에게 노조 파업에 민사소송으로 대응하라며 내린 지침이다. 이것이 이른바 손배폭탄의 시작이었다. 노태우 정권은 단지 고문하고 잡아 가두는 것만으론 노동자들의 열망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첫 번째 정권이었다. 즉 독재정권이 노동자의 인간답게 살 권리를 가로막기 위해 고안했던 비열한 장치가 바로 손배폭탄이었던 것이다.

 

노동자들의 긴 죽음의 행렬이 끌고 온 법안 노란봉투법

쌍용차 파업 손배소 과정에서 자살 등으로 숨진 해고자와 그 가족들만 무려 31명에 달한다. 지난 30여 년의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하늘의 별이 되었는지 셀 수 조차 없다. 노란봉투법은 수많은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긴 죽음의 행렬이 여기까지 끌고 온, 한이 서린 법안이기도 하다.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대한민국의 최상위 법규범인 헌법 제331항의 내용이다. 대통령의 주장처럼 노란봉투법이 기존의 법체계를 뒤흔드는 법인지는, 모름지기 이 헌법 조항에 비추어서 판단해야 한다. 오늘날 수많은 간접고용 관계에서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원청의 사용자는 면책특권을 누리고 있다. 원청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하청노동자의 파업은 불법으로 규정되며 곧바로 손배가압류 폭탄을 맞게 된다. 헌법상 권리인 단체행동권이 규범력을 가지려면 변화된 현실에 맞게 사용자 범위를 확대해야만 한다.

 

우리 헌법은 단체행동권을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한 권리로 규정하고 있는데, 지난 국회가 쟁의의 대상을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으로 한정함으로써, 실질적으로 헌법에 규정된 노동3권을 후퇴시켜왔다. 그러나 사용자가 단체협약이나 노동법을 위반하면 이에 대해 쟁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에 물을 필요도 없이, 노동권과 노동조합이 제도화된 사회에서 하나의 상식이다.

 

즉 노란봉투법이야말로,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에서 그렇게 좋아하는 대한민국 정상화법안인 것이다. 독재정권이 고안해내고, 정부와 대기업, 그리고 기득권 정치가 야합해 온, 지난 30여 년의 반헌법적인 노동3권 무력화시대를 이제 끝내자는 법이 바로 노란봉투법이다.

 

이젠 반인륜적 손배 만능주의를 멈춰야 한다

"회사가 해도 너무 한다. 이제 이틀 후면 급여 받는 날이다. 6개월 이상 급여 받은 적이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내게 들어오는 돈은 없을 것이다.“

 

2003,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의 유언을 곱씹어 본다. 그의 월급통장에 마지막으로 찍혔던 액수는 겨우 25000원이었다. 정치의 책임 방기가 노동자의 절규로 반복되는 이 비극을 이제는 바로잡아야 한다. 하청 노동자라는 이유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이미 수많은 노동자들은 상시적인 파업권 제약 상태에 있다. 아무리 노란봉투법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이 제약 상태를 뚫고 파업을 하기 위해서는 무임금, 사용자에 의한 직장폐쇄. 영업방해 형사고발 등 온갖 불이익 조치를 각오해야 한다. 2023년의 대한민국에서 노동조합을 한다는 것이 어떠한 각오를 담보해야 하는 일인지, 높고 편안한 책상머리에 앉아계시는 분들은 모르실 수 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는 뜻이다.

 

정치는 파업 만능주의같은 소설같은 이야기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반인륜적 손배 만능주의를 멈춰야 할 책무가 있다. 본회의에 어렵게 부의된 노란봉투법을 21대 국회 임기 내에 반드시 통과시켜야 하는 이유이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상임대표 시민언론 민들레 2023.07.15

 

미국의 기술패권, 어디까지 갈까

지난 68일 미국 백악관은 성적표: 더 강한 공급망과 더 회복력 있는 경제 건설의 2이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제목 그대로 지난 2년간 바이든 행정부가 실행한 공급망 관련 정책의 성과를 점검하고 홍보하는 자료다. 백악관 홈페이지는 지난 2년간 이뤄진 민간투자와 연방정부의 투자를 미국 지도에 표기해 보여준다.

 

여기에 표기된 민간기업의 투자는 모두 5030억달러로, 그중에서 반도체와 전자 부문이 2310억달러, 전기차 및 배터리 1340억달러, 청정에너지 1040억달러 등이다. 민간투자에는 미국기업뿐 아니라 많은 해외기업과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SK이노베이션, 한화큐셀 등 한국기업의 대규모 투자도 포함돼 있다. 민간투자에 더해 미국 전역에서 2250억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가 이뤄졌다. 민간투자와 인프라 투자를 통해 1310만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고 백악관은 홍보한다. 지도에 나타난 민간기업 투자의 상당수는 이른바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 지역에 집중돼 있다. 미국에서 전통 제조업이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해외로 나갔던 기업 활동을 이 지역에서 새로운 형태로 복원하고자 하는 미국 정부의 산업정책이 읽힌다.

 

자국 중심 산업정책과 한계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투자 전략을 바라보는 한국 경제학자의 심정은 착잡하다. 세계화 시대에 미국 경제는 한국 경제와 기업에 기회를 제공하는 열린 시장이었는데, 미국의 산업정책은 이제 한국의 대외·경제정책과 기업 전략에서 중요한 제약조건이 됐다. 트럼프 정부에 이어 바이든 정부에서도 산업 관련 대외정책은 일관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경제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제조업에서 일자리가 없어진 배경엔 디지털 기술의 확산보다는 중국 제조업의 급부상이 더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 감소와 미국 내 정치 지형의 변화가 함께 작용하면서 미국의 대중국 전략은 세계화·개방화를 통한 상호발전에서 기술적 우위 확보와 핵심 제조업 기반을 미국 내에 구축하는 것이 목표인 자국 중심 산업정책으로 전환됐다. 다음 미국 대선에서 정부가 바뀐다 하더라도 미국의 자국 산업 우선 정책기조는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기술패권 전략은 어디까지 갈까. 지난 6월 발표된 백악관의 성적표는 단기적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고 홍보한다. 장기적으로는 어떨까. 과연 미국은 궁극적으로 중국을 제어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성공할 수 있을까. 이는 짧은 칼럼에서 제대로 다루기에는 너무 방대한 주제다. 또한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이기에 단적인 대답은 큰 무리가 따른다. 다만 이번 칼럼에서는 미국 과학기술체제의 특성을 살펴보면서, 큰 질문에 대한 작은 대답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미국의 과학기술 활동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따라서 막강한 힘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기술패권을 추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의 강점인 미국의 과학기술체제 그 자체에 있다. 미국의 과학기술체제는 기초과학 연구-기술개발-산업 및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형 모델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분야에 따라서는 (예를 들어 바이오테크에서는) 이들 셋이 융합돼 작동하지만, 장기적 발전 과정을 조망하는 데는 선형 모델이 여전히 유용하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선형 모델은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태동했다. 19416월 미국의 프랭클린 대통령은 전쟁 수행에 필요한 연구개발 활동을 담당할 과학연구개발실(OSRD)’을 설립하고 배너바 부시(Vannevar Bush)를 실장으로 임명했다. OSRD는 예산과 자원을 무제한으로 활용할 권한이 주어졌고, 실장은 대통령에게만 직접 보고하는 체제였다. OSRD는 약 2500개의 과제를 수행했는데, 원자탄을 개발한 맨해튼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411월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쟁 이후 평화 시기에 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정부의 역할에 대한 자문을 부시에게 요청했다. 부시는 19457월에 회신을 보냈다.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방정부가 대학과 국립연구소에 국방 관련 연구로 막대한 투자를 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보고서를 담았다. 이 보고서가 과학, 끝없는 프론티어’(Science, The Endless Frontier). 여기에서 부시는 기초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초연구는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세 축의, 즉 국가방위와 경제발전과 국민보건의 초석이 된다고 역설했다. 기초연구를 수행하는 대학을 연방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이후에 미국과학재단의 창설로 이어진다.

 

기술혁신 비용과 미국의 딜레마

미국 기술패권 전략의 강점이자 한계는 개방된 기초과학 연구 체제에 있다. 현재 미국의 과학기술체제는 대학, 민간기업, 연방연구소의 3개 축으로 구성돼 있다. 연방정부가 지원하고 대학이 수행하는 기초과학 연구는 대학의 방대한 인적 자원을 활용하고 기반을 넓게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학문의 프런티어를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어떤 나라들에 비해서도 규모와 깊이에서 우위에 있다. 하지만 개방된 과학연구의 특성상 아이디어의 전유는 불가능(1980년 제정된 바이-돌 법에 따라 연방정부가 지원한 연구개발 과제라 하더라도 대학 등 수행기관이 특허를 통해 성과를 전유할 수 있다)하다. 인적 교류를 통한 지식의 교류는 국경을 넘나들며 이뤄진다. 오늘날에는 기초과학 연구가 기술적 성과로 이어져서 특허와 제품 개발로 이어지는 것이 장려되고 있지만, 과학연구는 본질적으로 개방돼 있고, 과학자들도 개방된 연구를 지향한다.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연방정부는 기초과학 연구를 지원하고 있지만, 기초과학 연구는 본질적으로 개방체제를 지향한다. 선형 모델의 첫 단계인 기초과학 연구가 개방돼 있다면, 다음 단계인 기술개발-산업발전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가 어려워진다. 특허 도용은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지만, 아이디어 차용은 제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자원을 연구개발에 투입해 기술혁신을 도모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술혁신에 소요되는 비용은 더 커지게 된다. 현재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 경제가 처한 상황이다. 미국의 기술패권 전략이 세계 연구개발 체제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과연 중국은 미국의 의도대로 제어될까.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서중해 경제학자> 경향 : 2023.07.17.

 

법치경제학 또는 공포경제학

윤석열 정부는 내세우는 뚜렷한 경제정책이 없었다. MB노믹스, 초이노믹스, 소득주도성장 등 역대 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의 용어로 묶을 만한 일관된 흐름을 찾기도 어려웠다. 자유시장경제를 내세웠지만 관치의 입김이 강했다. 감세와 재정건전성을 외치면서도 공공기관 민영화나 작은 정부를 강조하지 않았다. 적극적인 분배는 꺼리지만 그렇다고 성장을 밀어붙이는 것도 아니었다. 단초를 찾은 것은 기획재정부의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이었다. 발표자료를 보면 생경한 단어 하나가 나온다. ‘경제법치. 당연히 경제학 교과서에 없는 용어다. 정부가 내린 정의를 찾아보니 경제 전반에 법에 근거한 공정 시장경제 질서 확립이란다. 이른바 법치경제학이다. 굳이 찾자면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바로 세운다)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을 듯한데 박근혜 정부에서도 노골적으로 경제에 법치를 끌어오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면 윤석열 정부의 경제철학은 모호하지만 경제운영 방법은 일관성이 있다. 경제주체들의 선택을 이끌어내는 데 감찰·사정기관, 세무기관, 감독기관 등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예컨대 대출금리가 높다는 지적이 나오자 금융감독원은 시중은행에 공개적으로 금리 인하를 요구했다. 사교육 카르텔 문제가 불거지자 입시학원에 대해 국세청은 세무조사를, 공정거래위원회는 과장광고 등에 대한 현장조사에 나섰다. 현대차, 카카오페이, 쿠팡, 호반건설 등은 이런저런 이유로 압수수색을 당했다. 그러니까 국세청과 공정위는 민간기업의, 감사원은 공공기관의, 금융당국은 은행과 증권사의 보이는 손이다. 그리고 그 위에는 검경이 있다.

 

나쁜 짓을 했다면 수사당국의 수사를 받는 것이 맞다. 문제는 상식적 수준을 뛰어넘는 사례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사교육 카르텔로 킬러 문항을 지적한 것을 비판한 한 유명 일타강사는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납세자연맹은 만일 국세청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무리하게 일벌백계식 세무조사에 착수하거나 또는 누군가의 압력에 의해 세무조사를 진행한다면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세무조사가 무서워 권력자에 대한 비판을 하기 어렵게 돼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침해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법치의 서슬에 최근 접한 민간기업과 공공기관, 금융사는 바짝 엎드려 있었다. ‘경제법치가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는 정부의 선한 의도(?)와 달리 경제주체들은 현실적인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말이다. 정부의 밀가루와 라면 가격 인하 권고에 업계가 즉각 응한 것은 이 때문이다. 정부는 이어 유업계에도 우윳값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오는 19일께 결정되겠지만 유업계도 정부의 요청을 거절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권 카르텔로 낙인찍힐 경우 앞으로 남은 기간이 괴롭다.

 

경제법치의 상징적인 장면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지난 15일 대한상의 제주포럼 참석이었다. 한 장관은 법무부 장관으로는 이례적으로 경제인 모임에 참석했고, 기업인들은 그와 악수하기 위해 줄을 섰다고 한다. 희한한 것은 시장의 자율경쟁을 강조하던 보수경제학계의 침묵이다. 정부의 노골적인 물가 간섭, 경영 간섭에도 보수경제학자들은 입을 꾹 닫고 있다.

 

하지만 경제법치가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정부 2년차 막강한 힘에 경제주체들이 순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늉만 내는 선에서 그칠 가능성이 크다. 라면업계는 50찔끔가격을 내리는 식으로 정부의 요구에 화답했지만 이 정도로는 소비자가 가격 하락을 체감하기 힘들다. 자본은 권력보다 교활하고, 생명력이 더 길다.

 

이권 카르텔을 혼내는 정의의 사도는 당장 여론의 지지를 받겠지만, 오래가기는 힘들다. 정권은 아무리 길어도 5년밖에 못한다. 힘에 의한 경제운영은 힘의 균열이 생길 때 급격히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 프랑스 대혁명기의 로베스피에르는 민중을 위해 행사하는 공포는 좋은 공포라고 했다. 하지만 좋은 공포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 공포가 나에게 향하는 순간 여론은 돌아섰다. 오히려 그는 자유를 위해 자유를 없앴다”(한나 아렌트)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경제법치가 강조될수록 보이지 않는 손은 위축된다. 그럴수록 윤석열 정부가 강조해온 자유시장경제와도 거리가 멀어진다. 시장이 공포를 느낀다면 더더욱 그렇다.

박병률 경제부장 경향 : 2023.07.17.

 

인류세, 위험에 대한 상상이 필요한 이유

한 주 내내 비가 내렸다. 작년 8월 수해의 기억이 아직 또렷해 웬만한 약속은 미루고 비 피해가 크지 않기만을 기도했다. 비웃기라도 하듯 사흘간 폭우가 집중된 지역에서 더 많은 사고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산기슭이 무너져 내리고, 논과 밭이 물에 잠기고, 댐이 무너졌다. 제방을 밀고 쏟아져 내린 물로 지하도로가 물에 잠기고 여러 사람이 생명을 잃었다. 오늘도 보금자리를 잃고 수용시설에서 밤을 지새울 수재민이 수천명이나 될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코로나19가 왔듯, 이상기후도 그렇게 왔다. 온실가스 배출로 지구온난화가 심각해지고 북극의 빙하가 녹고 있다는 이야기, 떠내려가는 얼음 조각 위에 서 있는 북극곰의 애처로운 모습은 TV에서도 여러 번 보았다. 그러나 바쁜 일상 속에서 북극곰은 순간적인 연민의 대상일 뿐 인간의 미래로는 여겨지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북극곰과 다른 처지가 아님을, 미래라고 미뤄뒀던 상황이 현재로 닥쳐오고 있음을 깨닫고 있다.

 

근대사회에서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었다. 산업화와 도시화 시기 자연은 사회 발전을 위해 개척해야 할 대상이 되었고, 인간은 동물과 다르며 자연법칙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인간 예외주의가 신앙이 되었다. 20세기 중반 훼손된 자연이 인간 삶에 위협이 되자 야생의 자연을 보호하자는 슬로건이 탄생했다. 여전히 인간은 자연과 분리된 우월한 존재였다.

 

2000년 인류세(Anthropocene)라는 말이 등장했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 크뤼천과 생태학자 스토머가 제안한 개념으로, 인간의 활동이 지질학적 변화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시대를 가리키는 용어다. 산업화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과 핵 개발로 인한 방사능물질이 지구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끼쳐 지질학적 변화를 초래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학자들은 기후변화와 생태위기로 인한 지구의 파국 가능성을 염려해왔다.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연료의 사용과 숲의 파괴, 방사능 낙진, 미세플라스틱의 축적, 생물 종의 멸종 등 생태계의 변화는 가까운 미래에 티핑 포인트레짐 체인지같은 급격한 변동의 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과학자들 역시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 라투르는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하고 자연과 사회를 구분하는 경계선은 이제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며, 인간은 과학기술을 사용한 고도의 행위능력을 갖게 되었지만 동시에 파괴된 자연의 역습이라는 고도의 취약성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한다. 자연은 더 이상 인간의 지배에 굴종하는 대상이 아니며, 인간의 파괴 행위에 대한 반격이 시작되었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전형적인 사례다.

 

인간의 자연파괴 행위가 과학기술적 합리성에만 근거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자본주의의 자기증식과 재생산 욕망, 신자유주의 경제의 무한 경쟁과 승자독식 논리는 과학기술의 필요를 넘어 개발과 파괴를 가속화한다.

 

21세기에 부활한 냉전 체제는 미국·일본·유럽과 러시아·중국을 양극으로 한 극단적 대립체제를 구축했고 핵무기 개발의 배경이 되어왔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한다는 목적으로 미국과 일본이 주축이 된 동아시아 반러·반중 동맹체제에서 적극 가담하고 있다. 그 결과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과 같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사안에서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

 

인류세의 미래는 두 방향으로 예측되고 있다. 과학기술에 의한 환경 통제로 문제를 해결해나갈 것이라는 입장과, 고도의 불안정한 기후와 악화된 환경 속에서 인간은 대응능력을 상실해갈 것이라는 입장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30여년간 지속될 경우 그 피해가 어떤 것일지 당장은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아주 작은 어류와 해초류에 어떤 영향을 끼친다면 그것이 먹이사슬을 통해 인간에게도 영향을 끼치지 말란 법은 없다. 또 인간에게만 영향이 없으면 되는 걸까. 인간은 언제까지나 욕망을 끌어안고 비인간, 자연을 파괴할 것인가.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가 IAEA를 앞세워 추진 중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인류세의 지속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궁금하다면 허무맹랑한 상상일까? 인류세의 표본지로 캐나다의 크로퍼드 호수가 지정되었고 그 이유가 호수의 퇴적물에서 발견된 플루토늄, 핵폭탄 실험의 흔적이라는 보도(경향신문 712일자)는 핵 관련 위험에 대한 상상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숙제임을 시사한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경향 : 2023.07.17.

 

 

상후하박 경제, 윤석열 경제가 가는 길

조선은 역사에서 매우 길게 버텼던 나라다. 일반적인 경제사의 법칙으로는 설명이 어려울 정도로 경제적으로는 특별한 국가였다. 중세라고 부르는 일반적인 국가의 특징이 조선에는 적용되지 않아서, 분석도 잘 되지 않는다.

지역의 영주가 농노들을 거느리고, 이들의 연합 정권이 왕조를 만드는 게 일반적인 형태다. 농업 노예, 농노가 존재하는 게 이 시스템의 특징인데, 전형적인 신분제 국가였던 조선에는 노비는 존재했지만, 농노는 존재하지 않았다. 주축 생산 인구들의 신분이 상대적으로 높았고, 안정되어 있었다. 그 힘이 조선을 강하게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전형적인 아래쪽에 후하게 해주는 하후상박 구조다.

 

그 안정성이 임진왜란 이후 붕괴되면서 양반들의 면세가 시스템에 부담을 강하게 주었다. 돈을 벌어 양반이 되는 사람이 늘었고, 상후하박 경제가 되었다. 결국 망했다.

 

많은 국가들은 하후상박, 아래쪽에 후하고 위쪽에 박한 상태를 만들고, 유지하려고 한다. 맹자는 무항산 무항심이라는 말을 했다. 적당한 소득이 없으면, 화가 난다는 말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자본주의가 강해진 결정적 계기가 된 루스벨트의 뉴딜 역시 하후상박을 만든 전환점이다. 자본주의의 특징은 자본에 가까울수록 돈을 벌기에 유리한 것이라서, 적절한 제도적 개입이 없으면 아래쪽은 힘들고 위쪽은 편안한 상후하박 경제가 된다.

 

윤석열 정부에서 경제에 대해 한 조치들은 대체적으로 상후하박으로 한국 경제를 악화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부자들이 주로 내는 종부세를 경감시켰고, 주로 대기업들에 효과가 집중되는 법인세도 인하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나 어려운 사람들 그리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가는 것들을 털어내기 시작하려는 것 같다. 현장에서는 야금야금 예산이 줄어든다고 사방에서 아우성이다.

 

황금거위 배 가르는 일이 개혁?

근로장려금(EITC)일하는 복지라는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낼 정도로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친 제도다. 저소득층이 일을 하면, 여기에 정부가 일부를 보태 소득을 높여주는 것이다. 그냥 노는 사람들의 속사정을 무시한다고 초기에는 반대도 많았지만, 지금은 효과 좋은 제도로 자리를 잡았다. 한국에서는 저소득층의 소득을 제대로 파악하게 해주는 부수적 효과도 있었다. 양극화 완화에는 매우 효과적인 제도지만, 윤석열 경제팀에는 눈 밖에 난 제도가 되었다.

 

주거복지의 핵심인 공공임대 등 주택 공공성 예산도 삭감 예정인 것 같다. 앞선 보수정권도 이런 적은 없었다.

 

물론 어처구니없는 것은 한두 개가 아니다. 연구 분야의 카르텔을 없앤다고 하더니, 연구개발 예산을 일괄적으로 대폭 줄이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가장 강력한 산업정책이 연구 예산인데, 법인세 감소 여파가 기업, 특히 젊은 사람들이 주로 하는 벤처 등 연구개발업에 부메랑이 되는 셈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배를 가르는 일을 개혁이라고 하고 있다.

 

최근에 문제가 된 고용보험은 윤석열 경제가 가는 상후하박 경제로의 구조적 전환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한다. 인간이 만든 제도에는 약점이 있게 마련이다. 시대가 변하면 그걸 보완하고 구멍을 메우는 노력을 하는 게 맞지, 아예 금액을 줄이는 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플랫폼 노동이 늘어나는 등 고용 안정성이 떨어지면서 고용보험의 역할이 더 커져가는 중이다. 특히 영화나 드라마같이 단기 고용이 많은 문화 분야에서 고용보험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점점 더 불완전 고용이 증가할 것이므로, 재원 추가 등 사회적 논의가 많은 제도다. 실업보험의 대상이 되는 것 자체가 이미 경제적 약자라는 의미다. 제도를 개선할 문제를 핑계로 고용보험의 액수를 줄인다는 발상은, 윤석열 경제팀의 사령부가 너무 잘사는 사람들만으로 구성된 것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갖게 만든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 실패 같은 것은 상후하박 경제에 비하면 오히려 사소한 문제다. 그건 다시 되돌릴 기회가 있다. 그러나 서민들이 살기 너무 힘들어지면,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 자체가 망가진다. 실업을 줄이고 고용 안정성을 높여 실업급여를 탈 일이 없는 사회로 가는 게 더 좋은 고용보험 개선책이다.

 

안 그래도 저출생인데, 출산율 낮추는 지름길로 윤석열 정부가 달려가는 것 같다. 상후하박 경제의 미래는 약자 고통과 청년 고통 그리고 자살률 상승 등 정말로 살기 어려운 사회의 도래다. 노무현 정부가 경제에 아마추어라고 욕먹었는데, 그 비유를 쓰면 현 정부는 아마추어급도 아닌 것 같다. 박근혜 정부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우석훈 경제학자 경향 : 2023.07.17.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대통령, 영부인, 참모

노무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도 다 내 책임인 것 같았다. 대통령은 그런 자리였다고 썼다.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시스템으로 위기에 대응해야지, 대통령 한 사람의 행동에 기대는 건 시대착오적이란 말은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그 시스템을 조금 더 민첩하게 움직이게 하는 건 국정운영 사령탑인 대통령과 대통령실이다.

 

·경 포함해서 집중 호우에 총력 대응하라는 윤석열 대통령 긴급 지시가 뉴스 속보로 뜬 건 토요일(15) 오후 4시쯤이었다. 밤새 내린 비와 산사태로 사망·실종자가 잇따른다는 소식이 토요일 아침 온 국민을 깨운 지 한참 지난 뒤였다. 대통령실은 무얼 하고 있었던 걸까. 아무리 유럽과 시차를 고려해도 이런 중대한 사안은 대통령에게 곧바로 보고하고 지시를 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아마 그 시간에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로 향하고 있었을 걸로 짐작된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가는 데) 편도 14시간, 오는 데 13시간이 걸렸다. 이동이 험난했다고 기자들에게 밝혔다. 지난 2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문 때처럼 윤 대통령은 폴란드 국경도시 프세미시우에서 기차를 타고 우크라이나 키이우로 이동했을 것이다. 10시간의 은밀한 기차 이동 중에 윤 대통령은 국내 소식을 전혀 들을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역사적인 전쟁지역 방문을 앞두고 굳이 국내 소식을 대통령에게 알릴 필요가 없다고 참모들은 판단했던 것일까. 어느 쪽이든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뒤늦게 대통령이 화상 회의 등을 통해 수시로 국내 상황을 챙겼다고 애써 강조했다. 하지만 설령 그게 사실일지라도 시민들이 생명을 걸고 수해와 싸우는 와중에 전달되지 않는다면, 그런 정부가 위기에 처한 국민에겐 무슨 소용이 있을까. 대통령의 해외 순방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해외에 있더라도 국민 생명이 걸린 사안은 최우선으로 보고받고 대응하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이태원 참사 때도 그랬지만 이 정부는 그런 데 너무 무심하고 무능력하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자명하다. 대통령실은 우크라이나 방문이 성공적으로 끝날 때까지 온통 신경을 우크라이나에만 쏟았을 것이다. 대통령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하고 싶은 일만 하려고 하니 참모들도 그에 맞춰서 움직였을 것이다. ‘이건 아니다. 국내 상황이 심각해지니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을 누구도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단적인 예가 대통령 부인의 리투아니아 명품 쇼핑이다. 현지 언론 보도를 보면, 김건희 여사는 16명의 경호원과 수행원을 데리고 명품 매장 다섯 곳을 순례했다고 한다. 호객 행위에 의한 단순한 윈도쇼핑(window-shopping)인지, 명품도 여럿 사들였는지 나로선 알 수가 없다. 다만 국내엔 집중 호우 경보가 내려지고 긴박한 우크라이나 방문을 눈앞에 둔 시점에, 대통령 부인이 한가하게 방문국 명품 매장을 둘러보겠다는 생각은 어디서 나온 건지 궁금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극비 방문을 감추기 위해 출발 직전 워싱턴 시내 레스토랑에서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인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김건희 여사의 쇼핑도 그런 작전이었을까? 그렇다면 굳이 호객 행위에 따라 들어갔다는 엉뚱한 변명은 왜 했던 것일까. 중요한 건 그 시점 그 도시에서 대통령 부인의 행동이 부적절하다고 얘기하는 참모가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전후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전쟁지역을 방문하면서 기자들은 제외했어도 부인 김건희 여사는 동행했다. 언론보다는 부부 동반이 더 중요했던 셈이다. 참모들 누구도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지금 용산 대통령실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왜 일정을 취소하고 곧바로 귀국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에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지금 당장 대통령이 서울로 뛰어간다고 해도 상황을 크게 바꿀 수는 없다고 대답했다. 이게 재난을 당한 국민에게 대통령 참모가 할 소리인가. 그에게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오직 대통령 부부만 바라볼 뿐이다.

 

비가 너무 많이 와도 내 탓인 것 같다는 마음가짐으로 국정에 임하는 대통령과 대통령이 상황을 바꿀 수는 없다며 마치 제3자처럼 행동하는 대통령실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지금 우리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대통령 부부와 참모들을 보고 있다.

박찬수 ㅣ대기자 한겨레 : 2023.07.17.

 

 

2년째 물난리, 국가는 또 없었다

세숫대야로 들이붓네.” 물난리 난 16, 부여 고향 친지는 전화 너머로 비가 무섭다고 했다. 예부터 하늘 뚫린 큰비를 세숫대야로 비유했었다. 친지는 그땐 한나절이고, 지금은 온종일 퍼붓는다고 했다. 백마강 벌판의 논·축사·비닐하우스는 다 흙탕물에 잠겼다고 했다. 나흘간 600쏟아졌다니 눈에 선하다. 부여 비는 많이 온 축이다. 아니어도, 이 장맛비는 셌다. 산사태가 노부부·납골당·이주노동자를 덮쳤다. 오송 지하차도에선 수몰 참사가 또 벌어졌다. 50명이 세상 뜨고, ··110곳에 이재민 나고, 여기저기 인재라니, 수해 민심은 펄펄 끓는다.

 

트위터엔 ‘#무정부 상태해시태그가 번지고 있다. 오송 참사와 예천 산사태가 터진 15일 윤석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행 열차에,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폴란드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미국에 있었다. 이태원 참사로 탄핵소추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직무 정지됐다. 공교롭다. 나라 밖이고, 공석이라서 무정부 상태인가. 댓글은 아니란다. 해시태그는 세 뉴스가 전해진 16일 밤 불붙었다. 대통령 우크라이나행은 엠바고(보도시점 유예)가 풀렸고, 김건희 여사의 순방 중 명품쇼핑이 전해졌고, “대통령이 당장 서울로 뛰어가도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없다는 대통령실 고위인사 말이 나왔다. 오송·예천의 악전고투와 나라 밖 세 뉴스가 교차한 그 순간, ‘#무정부폭풍이 일어났다.

 

처음이 아니어서일 게다. 지난해 88일 저녁, 대통령은 침수된 서울 아파트를 보며 퇴근했다. 115년 만의 폭우 피해가 줄잇는 밤에도 서초동 자택에 머물렀다. 재택근무 시비가 인 다음날, 대통령은 신림동 반지하 주택을 찾았다. “어떻게 미리 대피가 안 됐나 모르겠네?” 발달장애 가족 3명이 물 차오른 밤 휴대폰으로 살려달라며 발버둥치다 수몰된 뉴스도 몰랐고, 영화 <기생충>의 반지하 폭우 장면도 잊은 물음이었다. ‘물난리에 대통령이 안 보였다는 혹평 탓일까. 우크라이나행에도 그 기시감이 따라붙는다. 출국 때 호우에 과도하게 선제적 조치 하라해놓고, 대통령은 어긴 격이다. 수해·태풍에 정상외교를 미룬 이탈리아·일본·캐나다 총리와 오래도록 비견될 게다.

 

‘#무정부엔 망언도 끝없다. 대통령이 서울 가도 상황 못 바꾼다니 참모가 할 소린가. 1년 전 비 온다고 대통령은 퇴근 안 하냐”(강승규 시민사회수석)며 뭇매 맞고 달라진 게 없다. “대통령 계신 곳이 집무실이란 박대출 여당 정책위의장 아부는 세월호 때 김기춘 비서실장이, 작년 8월 강 수석도 했다. 단 한분만 무오류·무책임의 성역으로 만들려는 걸 테다. 요설에 싸인 권력자는 부평초처럼 붕 떠가게 된다. 경북이 난린데 골프 친 홍준표 대구시장은 트집 잡지 말라싸우다 매를 번다. 뽑혔든 임명됐든 이 나라 공복들이 이렇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헌법(34) 밖에 살며 다 권력에 취했다.

 

사납고 긴 비가 국토와 만물을 할퀴었다. 그뿐인가. 사람 맘엔 상처를 남겼다. 큰비 오면, 달리던 지하차도나 차 빼러 간 주차장에서 엉겁결에 죽는 나라가 됐다. 그 당혹감과 한을 가늠하기조차 두렵다. 경북 산사태 10곳 중 9곳은 당초 위험분류지가 아니었다. 그곳에 산불 나면 헬기라도 타고 달려오겠다던 대통령은 없었다. 그러곤 산사태 마을 찾아 몇백톤 바위 저도 살면서 처음 본다고 한 말이 공감과 위로가 되었겠는가. 세 가지만 또렷해진다. 나라는 안전치 않고, 정부는 나를 못 지켜주고, 각자도생해야 한다.

 

대한민국 기후 철학은 뒤죽박죽이다. 매뉴얼과 현장이 따로 놀고, 예방보다 복구에만 돈 퍼붓는 헛껍데기 방재다. 서울시가 1년간 사들인 침수 우려반지하 주택은 0.3%에 그쳤다. 10EU 탄소국경세가 선보이는데, 이 정부는 2030년까지 할 탄소감축량 75%를 임기 뒤로 미뤘다. 기후위기를 미래로 보다가, 곧 닥칠 돈으로 알다가, 생명을 위협받는 나라가 됐다.

 

오늘도 TV엔 황토물이 흐른다. 비 그치면 폭염, 민초들은 세간살이 말리고 무너진 둑··축대를 세울 것이다. 농축산물값이 뛰고, 세상 얘기도 재개될 것이다. 일본 원전 오염수 안전을 한국 정부가 선전하고, 대통령 처가 땅에 걸려 15년 된 고속도로 사업이 서고, 실직자는 시럽급여로 놀림받는다. 어느 것도 정부의 미더움은 없다. 민주주의 위기는 삶의 위기에서 온다. 1년 전 반지하촌, 9개월 전 이태원, 오늘 물난리에서 사람들이 거듭 묻는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어디 있는가.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경향 : 2023.07.17.

 

 

시럽급여, 적나라한 저소득자 혐오

나는 혐오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잘 쓰지도 않는다. 현실에 이런 현상이 없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사회의 위계 구조에서 자신들보다 낮은 위치에 있다고, 한마디로 만만해 보이는이들이라고 해서 마구 편견과 공격을 퍼붓는 행태는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걸 일률적으로 혐오라고 이름을 붙이게 되면서부터 누구나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남들을 공격하기 위해 이 말을 남용하고 오용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혐오가 다른 혐오를 줄줄이 새끼치기하는 현상을 너무나 많이 보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지난주 당정협의회에서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겠다면서 내뱉은 말은 분명히 저소득자들에 대한 혐오가 맞다. 우선 이러한 주장을 내놓은 근거가 과연 사실관계와 부합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솟았다.

 

우리나라에서 실업급여를 타는 이들은 시럽 맛을 보려고직장을 그만두는 베짱이들이 아니라 비자발적 실업, 타의로 잘린사람들뿐이라는 점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들이 있지만, 그것들도 알고 보면 사실상 도저히 더 일할 수 없게 된 경우에 불과하다. 심지어 비자발적 실업자들조차 잘 타고 있지 못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실업급여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말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실업급여 수급률은 21.3%에 그치며, 특히 임시직·일용직 등 불안정 노동자의 실업급여 수급률은 15.8%에 불과하다. 게다가 30세 미만의 경우는 6.9%로 더욱 낮다고 한다. 이직이 잦거나 노동 시간 자체가 짧으면 고용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임시직·일용직 중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 이들의 86%실업급여 수급 조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미디어스, 714, 탁종열, “실업급여 말 바꾼 노동부, ‘시럽급여한통속 보수신문”). 그런데 마치 나무에 달린 맛있는 바나나를 따먹으며 이 밧줄 저 밧줄로 옮겨다닌다는 그 시럽 빠는 실업자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래서 근거로 든 숫자를 보다가, 그 계산 방식에 놀랐다. 이 실업급여 하한선 때문에 지난해 수급자 163만명 중 무려 28%에 달하는 45만명이 실업 이전보다 더 많은 액수를 지급받았다고 하지만, 이는 실측이 아니라 세금과 사회보험료로 세전 소득의 10.3%가 빠져나가는 것으로 가정해 추산한 수치일 뿐이다. 이미 여러 매체에서 연소득 2000만원 이하에서는 실효세율이 0.1% 정도로 근로소득세를 거의 내지 않는 데다 사회보험료 또한 두루누리 지원 사업 등이 지난 10년간 시행돼 왔으므로 20% 정도만 내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를 감안해보면 그 비율은 28%가 아니라 기껏해야 5% 남짓일 것이라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이렇게 민감한 사안에 이렇게 파격적인 조치를 하겠다면서 이렇게 허술한 주먹구구의 숫자를 내미는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주먹구구식 셈법에 놀라

둘째, 실업급여의 기능과 성격 그리고 운영에 대한 일체의 고려 없이, 실업급여 지급액 증가의 원인을 전적으로 저임금 노동자들의 도덕적 해이와 타락의 문제로 몰아붙이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실업급여 지급액이 늘어나고 반복적으로 수급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원인은 아주 다양하며, 특히 지금은 기술 패러다임 및 산업 구조의 변화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노동 시장 구조 전체의 급격한 변화에서 나타났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몇 개월 간격으로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는 이들이 늘어난 이유는 시럽급여를 빨아먹는 재미에 중독된탓이 아니라 노동 시장에서 제공되는 일자리의 종류가 더욱 파편화되고 불안정해진 것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토록 온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로봇과 인공지능(AI)이 노동 시장에 던지는 충격을 누구부터 얻어맞게 될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가? 식당에서 매일 마주치는 음식 서빙 로봇을 보면서 어제까지 저 일을 하던 분들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질문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가? 저임금 노동자들 가운데 취업과 실업의 반복 주기가 짧아지고 수급액이 늘어난 이유는 시럽 빠는 재미 중독증때문인지 (저임금 분야) 노동 시장의 구조적 변화 때문인지, 어느 쪽이 더 클 것인가?

 

더욱이 실업급여의 성격과 목적에는 가만히 앉아 생계 유지하는 것만 들어가지 않는다. 이번에 어떤 이가 월급에서는 교통비와 식비 등의 비용 지출도 다 나가게 되는데, 그 월급보다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는 실업급여 액수가 더 많으면 누가 일을 하겠는가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무척 놀랐다. 실업자는 가만히 앉아있는 이들이 아니다. 구직 활동의 증빙을 대지 않으면 그나마 끊어지는 것이 실업급여이므로 수급자들은 직장 다닐 때보다 더 활동적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으고 사람을 만나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원래 일하던 업종에서 좀 더 나은 일자리로 옮기려 한다면 새로 배우고 공부해야 할 것들이 많으며, 이게 다 비용으로 나가게 된다.

 

원래 소득이 높았던 이들은 이런 정도의 비용이야 그냥 저축에서 지출하면 되는 대수롭지 않은 액수일지 모르겠으나, 최저임금 수준의 일자리를 몇 개월 단위로 전전하는 이들에게 그런 넉넉한 저축이 있을 리 없으며 그 낮은 수준의 소득에서는 그런 비용도 큰 부담이 된다. 실업급여는 입에 풀칠하라고 주는 돈이 아니다. 실업을 맞은 이가 다시 노동 시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생계 및 활동자금이다.

 

실업급여 하한선은 이젠 풍전등화

그래서 이번 발언이 적나라한 저소득자 혐오가 드러난 경우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앞에서 말했듯이, 혐오란 사회적 위계의 아래에 있는 만만한 이들에게 갖은 편견과 공격을 퍼부으면서 다른 이들에게도 또 사회 전체적으로도 여기에 동참하라고 선동하는 행위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발언이 나오자 여러 신문·방송에서 저임금 노동자들의 도덕적 해이와 타락을 비난하면서 실업급여 하한선 폐지를 외치는 주장이 넘쳐나고, 최저임금은커녕 실업급여라도 신청해 본 적이 있을까 싶은 무수한 전문가들이 등장해 목소리를 높인다. 물론 여기에 맞서는 목소리도 있지만 잘 들리지 않는다. 이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이익을 자기 문제로 여기며 정말로 전투적으로 옹호하려는 사회적 힘이 보이지도 않는다. 모름지기 그 실업급여 하한선은 이제 풍전등화의 처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가진 것 없는 이들에 대한 혐오는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자주 자행되는 문명의 못된 버릇이다. 행색이 초라하고 말과 행동이 굼뜬 아이들을 집단으로 왕따시키고 혐오하며 즐기는 법은 우리가 초등학교 교실에서부터 익히 배운 습관이니까. 이들의 못난 짓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고 그래서 모두가 힘들다. 따라서 이들에게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는 일이 필요하다는 식의 이야기도 머릿속 깊이 박힌 서사구조이니 쉽게 청중과 신봉자들을 끌어모은다.

 

그래서 하한선이 없어지면 저소득 실업자들의 소득은 20%포인트가 줄어들 것이다. 그게 어떤 크기의 타격인지는 그 소득 수준으로 계속 살아본 이들은 너무나 잘 알 것이다. 이런 생활의 대안은 그저 다니는 직장에서 죽은 듯이 숨죽이고 있든가, 아니면 어떤 일자리든 그냥 빨리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노동 시장의 위대한 자기조정 메커니즘이 작동할 것이며, 비로소 완전고용이 달성될 것이다.

 

시럽급여명품 선글라스를 끼고 해외여행을 가면서 급여를 타러 온다는 등의 자극적 언사가 공직자들, 정치가들의 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것을 보면서 나는 또 한 번 이게 적나라한 혐오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직자 월급으로 명품 핸드백이 말이 되느냐는 말도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떳떳이 대놓고 할 사람이 있을까.

 

<햄릿>의 그 유명한 독백을 보면 우리가 이 지긋지긋한 세상을 살기 싫은 이유가 줄줄이 나열되는데, 그중 하나는 “insolence of office”이다. 내가 아는 한 영문학자는 최근 이 세 단어를 이렇게 번역한 적이 있다. “고위 공직자들은 우리들을 개·돼지로 본다.”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경향 : 2023.07.17.

 

 

방사선 피폭 앞에 국경은 없다

지난 7일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설비에 문제가 없다는 검사 종료증을 발급했다. 이로써 오염수 방류의 일본 내 법적 절차는 끝났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올해 여름 방류 계획을 몇 차례 공언하고 있지만, 당장 7월 방류는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어민 설득에 시간이 필요해서다.

 

중앙정부의 안전 심사가 끝나면 바로 핵시설을 가동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지자체와 사업자의 원자력 안전 협정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나라다. 대표적인 것이 20191, 에히메현 이카타 핵발전소의 철근 하역 트럭 전복 사고이다. 부상자도 없고 발전시설과 상관없는 곳에서 발생한 단순 사고였지만, 사고 발생 이후 3시간이 지나서야 지자체에 상황이 전달됐다. 이카타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시코쿠 전력과 에히메현은 정상 상태가 아닌 모든 상황즉각 통보하기로 협정을 맺었으나, 이를 지키지 못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이렇게 작은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중대 사고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비판이 들끓었다. 결국 이카타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시코쿠 전력 회장, 사장 등 임원들이 임금을 자진 반납하고 공개 사과와 86명의 임직원 징계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오염수 방류를 둘러싸고 일본이 인접 국가들에 국제적 민폐를 끼치고 있지만, 문서와 약속을 중요시하는 일본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오염수 방류의 경우에도 2015년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어민협동조합연합회와 어민 등 관계자의 이해 없이 처분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을 문서로 약속했기 때문에 이를 무시하기는 어렵다. 일본의 연립여당인 공명당 대표의 오염수 방류 시기는 해수욕 시즌을 피했으면 좋겠다라는 발언이나 9월과 10월에 예정된 도호쿠 지방선거도 오염수 방류 시기를 정하는 변수가 될 것이다.

 

천일염 품귀 사태와 야당 정치인들의 단식농성, 일본 현지 방문과 집회 등 한층 고조되던 후쿠시마 오염수 국면이 다소 길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국면에서 핵폐기물을 바다에 버려온 핵산업계의 오랜 관행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와 해법이 나와야 한다. 핵폐기물 해양 투기 문제가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옛 소련은 울릉도 근해를 비롯한 동해에 핵잠수함 원자로와 사용후핵연료 등 핵폐기물을 무단 투기했다. 이 내용은 1993년 러시아의 백서를 통해 알려졌고, 당시 일본 정부는 강력 반발하며 외교채널을 가동했다. 그 결과 1993년 런던협약 제16차 당사국총회에서 핵폐기물 해양투기 전면 금지결의안이 채택됐고, 이 흐름은 준설물 등 7개 폐기물을 제외한 모든 폐기물의 해양투기가 금지되는 런던협약 개정의정서채택까지 이어졌다. 안타깝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역할을 거의 하지 못했다. 당시 우리 정부는 런던협약 가입을 미루고 있다가 동해 핵폐기물 투기 사실이 알려지자 뒤늦게 가입을 추진했으나, 가입신청서 제출 기한을 지키지 못해 결의문이 채택된 런던협약 당사국 총회에는 참가하지도 못했다.

 

30년이 지난 후쿠시마 오염수 국면에서도 답답함은 계속된다. 국내에서는 이순신 장군을 앞장세우며 나라를 지키겠다고 다들 외치고 있지만, 정작 국제사회에서 외교력을 발휘하거나 해법을 제시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30년 전 동해 핵폐기물 투기 사건을 계기로 핵폐기물을 투기(dumping)’하는 것은 명확히 금지돼 있지만, 이번 오염수 문제처럼 파이프라인을 통해 방류하는 것이 투기 행위인지는 애매한 상황이다.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등 법적 대응도 필요하겠지만 국제 협약 개정 없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근본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다. 당장 오염수 방류가 시작된다 할지라도 이를 막을 시간적 여유는 있다. 일본 정부는 30년에 걸쳐 오염수를 방류하겠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1차를 막지 못해도 2, 3차 방류를 막을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진심으로 오염수 방류를 막고자 한다면 지금이라도 국제 협약을 개정하는 절차에 돌입해야 한다. 30년 전 일본 정부가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액체 핵폐기물을 바다에 버려온 핵산업계의 오랜 관행에 맞서야 한다. 우리나라 역시 다섯 군데 핵발전소 부지에서 삼중수소를 비롯한 액체 핵폐기물을 계속 방류하고 있다. 일제 핵폐기물은 위험하고, 국산은 괜찮은가? 핵폐기물의 제조국은 중요하지 않다. 방사선 피폭 앞에 국경은 없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일본과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지구상에 핵폐기물을 계속 버려온 핵산업계와의 싸움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경향 : 2023.07.17.

 

 

공직자들 탐욕과 비겁이 낳은 괴물 부동산 카르텔

민생과 국가경제 무너뜨린 모피아의 재정철학

기재부가 <월간 재정동향> 7월호를 발간했다. 참고로 7월호는 5월까지 재정 내용을 담고 있다. 주요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5월까지 국세 수입 전년 대비 37조 원이 감소하였고. 이를 지출 축소로 대응한 결과 예산 지출 12.7조 원 축소를 포함 총지출을 55.1조 원이나 축소하였다. 55.1조 원은 올해 예정한 5개월 간 총지출의 약 21%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이 정도를 줄여도 될 지출이라면 예산 편성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고. 억지로 줄였다면 그 피해는 누가 볼 것인가.

 

문제는 이렇게 무리한 지출 축소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자가 끔찍하다는 사실이다. 통합수지가 30.8조 원 적자, (통합수지-사회보장성기금수지=)관리수지는 52.5조 원 적자를 기록 중이다. 올해 재정수지와 관리수지 목표치 13.1조 원과 58.2조 원을 이미 추월하거나 거의 근접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국가채무 역시 1~5월까지 5개월 간 55.3조원이 증가하였다. 지난해 5~128개월간 국가채무(중앙정부 재무) 증가액 32.4조 원을 이미 추월한 것이다. 정부가 올해 예상한 국가채무 증가액 70조 원의 약 80%가 이미 달성(?)된 것이다. 윤석열 정권과 모피아의 재정 철학(지난 2회 칼럼들 참고)으로 재정 관리도 실패하고. 무리한 지출 축소로 민생과 국가 경제는 무너지고 있다.

1월에 마지막으로 금리를 인상한 후 한국은행 금통위가 지난주에도 동결 기조를 이어갔다. 명분은 물가 상승률 하락에 기댄 것이지만. 속내는 부동산 시장과 금융 부문을 포함 경제에 충격을 주기 싫은 것이다. 지난 414일 워싱턴에서 이창용 총재는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 등과 논의한 결과를 말씀드리면한국, 캐나다, 호주 등 많은 나라들은 금리 인상을 동결하고 앞으로 물가 추이를 보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기자들에게 설명을 한 바가 있다. 그런데 호주가 5월과 6월 연속 두 차례 금리를 인상하였고, 마찬가지로 캐나다도 6월과 7월 연속 두 차례 금리를 인상하였다.

 

한국은행이 신뢰를 얻지 못하는 이유

기자들 앞에서 제시한 이창용의 전망이 한 달도 되지 않아 빗나간 이유는 중앙은행 임무에 대한 인식 차이다. (호주 및 캐나다와 달리) 한국은행이 금리를 4차례 연속 동결한 배경에는 2.7%까지 하락한 소비자물가 상승률(CPl)이다. 그런데 최근 물가 상승률 하락은 대부분 유가 하락 효과에서 비롯한다.

 

유가 하락이 5월에는 1.0% 포인트(p)를 끌어내렸지만, 6월에는 무려 50%가 증가한 1.5%p나 끌어내렀다. 그런데 유가 하락 효과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으로 회복한) 연말로 갈수록 사라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다시 상승 요인으로 전환할 가능성도 있다) 유가 하락 효과는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률에서 확인된다. 여전히 4%대에 있다. 전체 물가와 유가 하락폭을 합치면 근원 물가와 거의 같은 이유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경우가 캐나다이다. 캐나다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4%였다. 우리 5월 물가가 3.3%였다. 그런데 캐나다 근원 물가 상승률은 우리의 5월 근원 CPI 4.3%보다 낮은 3.7%였는데 한국은행과 전혀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캐나다는 우리와 같이 1월에 금리를 인상한 후 동결해오다가 6월과 7월에 2개월 연속 인상을 하였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4.4%에서 53.4%1%p나 떨어졌고, 근원 물가도 4월에 비해 0.4%p나 하락(한국은 0.3%p 하락)했음에도 캐나다 중앙은행은 여전히 "안정적 물가 회복이 위태로워 2% 목표로 개선되기가 어려울 것으로 우려된다"며 인상을 강행하였다.

 

캐나다 중앙은행은 (호주 중앙은행도 마찬가지이지만) 좌고우면하지 않는다. (자신의 임무를 가락처럼 늘려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한국은행과 달리) 법에서 규정한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금리는 경제적 이해에서 가장 큰 변수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침에도 이들 나라의 중앙은행이 그 나라 국민에게 신뢰를 얻는 배경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2023.7.13 [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혹자는 말할 것이다. 한국의 높은 가계부채 비율과 부동산시장 우려는 금융 불안정 요인이라고. 그런데 이 문제는 호주와 캐나다 역시 한국과 비슷하다. 가계부채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 GDP 대비 호주는 111.8%, 캐나다는 102.4%105.0%의 한국처럼 주요 선진국 중 경제 규모가 비슷한 국가 중 100%가 넘는 나라들이다. 차이가 있다면 캐나다와 호주는 2021년 초부터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하락하고 있으나 한국은 뒤늦은 지난해 3분기부터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락폭도 큰 차이가 있다. 호주와 캐나다가 정점 대비 각각 10.7%p10.3%p 줄어든 반면, 한국은 1.0%p 하락에 불과하다. 이러한 차이를 결정한 가장 큰 요인은 성장률의 차이다. 게다가 캐나다와 호주가 2020년 이후 하락한 반면, 한국이 20213분기 이후부터나 하락한 이유는 인플레의 본격화에 따른 결과로 (가계부채의 분모 크기를 결정하는) 경상성장률이 3%대에서 6%대로 상승한 결과이다. 가계부채의 절대액은 세 나라 모두 줄어든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경상성장률은 20212분기 3.2%에서 3분기에 6.4%, 4분기 6.8%로 두 배 이상 올라갔다.

 

높은 가계부채 비율에서 보듯이 두 나라 모두 집값 상승률이 한국보다 못하지 않았다는 특징을 갖는다. 최근 하락폭 역시 한국과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한국은행의 행보가 다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지금부터 그것을 살펴보자.

한국·호주·캐나다는 모두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를 넘는 나라지만 호주와 캐나다가 2021년 이후 이 비율이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는 반면에 한국은 20213분기 정점을 찍은후 1.0%p 하락에 그치고 있다. 이것은 가계부채의 절대액이 달라지지 않는 가운데 213분기부터 본격화된 인플레로 분모가 되는 GDP가 그때부터 늘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023.7.17.그래픽 민들레

 

통화정책을 왜곡시키는 부동산 카르텔

금리 인상은 (절대 요인은 아니지만) 부동산시장을 냉각시킨다. 앞의 두 나라를 포함 선진국과 한국의 결정적 차이는 신용 팽창기(부채 확장기)에 상승했던 부동산가격이 신용이 위축되며 하락 압력으로 작용하고, 그 결과 신용이 조정(이른바 부채 축소를 의미하는 디레버리징)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지난 50년 이상 중에서 외환위기 때를 제외하고는 가계 신용이 조정된 적이 없다.

 

문제는 1991년경까지 가계 신용은 가계의 소득과 공진화하였다. 그런데 그 이후 30여 년간 가계 소득은 7.2배가 증가했으나 가계 신용은 22.0 배가 증가하였다. 가계 신용(1991=1)의 증가는 외환위기가 발발한 19972.63배까지 상승했 다가 19982.40, 19992.63배로 조정되었으나. 20003.12배로 반등한 후 지난해까지 멈춤이 없었다.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는 13일 금리 동결 후 가계부채 증가가 우리나라 경제의 큰 불안요인이라며 완만한 부채 축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이번 금통위 회의에서도 여러 금통위원들의 가계부채 증가세에 대해 많은 우려를 표시했다...지난 70년 간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줄어든 것은 몇 번의 위기 상황을 제외하고는 없다...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계속 늘어나면 우리 경제의 큰 불안요소로 작용한다... 다만 금융시장 충격 등을 고려해 '완만한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이 필요하다...부동산시장과 밀접한 영향이 있기 때문에 (가계부채를) 단기간에 조정하려고 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며 이른바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했다.

 

한마디로 이창용의 '완만한 디레버리징' 주장은 '어떻게'가 빠진 하나마나한 공허한 소리이고, 결국은 디레버리징을 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이창용식 사고와 태도가 지난 30년 간 가계 신용이 지속해서 팽창한 이유다. 그런 점에서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얘기하는 '완만한 디레버리징' 주장은 솔직하지 못하고 비겁한 말이다. 결국은 내 임기에 폭탄이 터지지 않기만 기도하며 훗날 책임 지적을 대비한 면피성 발언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평가를 듣지 않으려면 현재 금통위원들의 사고와 행위가 적어도 (이창용이 지적한) 과잉 신용을 키워온 과거 통화 당국자들과 뭐가 다른지 설명할 의무가 있다. 그래야만 가계부채에 대한 국민의 불안한 심리가 해소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창용 총재는 '지난 70'을 거론했지만. 사실 1991년경까지 가계부채 증가 속도는 소득 증가 속도와 비슷하게 진행하였다. 1991년 이후 가계소득은 7배 정도 증가했으나 가계부채는 22배나 증가하였다. 부채 증가 속도가 소득 증가 속도보다 3배 이상인 것이다. 1991년 기준으로 외환위기가 발발한 1997년까지 양자의 격차는 51%p까지 벌어졌다. 외환위기 이후 가계부채의 축소로 1999년까지 양자의 격차는 32%p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2000년 이후 양자의 격차는 한 해도 멈추지 않고 확대되어 지난해 양자의 격차는 1469%p까지 벌어졌다.

 

한국의 심각성은 미국과 비교할 때 극명하게 드러난다. 같은 시기에 미국은 금융위기 직전에 145%p까지 벌어졌다가 금융위기 이후 2012년까지 가계부채가 축소되어 양자의 격차는 74%p로 줄어들었다. 그 이후 가계부채가 다시 증가했음에도 소득 증가 속도가 더 커 팬데믹이 발발한 2020년에 64%p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2021년 이후 확대되어 지난해 88%p로 벌어진 상태지만 그럼에도 금융위기 직전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특히 한국의 격차에 비하면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작다. 금융위기 이후 가계부채 조정이 제대로 진행된 결과다.

이러한 격차 차이는 소득과 자산 가치의 격차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미국에서 부동산가격이 본격적으로 재상승하기 시작한 1995년 기준 지난해까지 한국 가계의 부동산자산은 7배가 증가하였으나 미국 가계의 부동산자산은 5배가 증가했다. 가계 소득과 가계 부동산자산과의 격차도 미국이 154%p, 한국이 270%p로 큰 차이를 보인다. 미국이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자산의 가치 조정이 크게 진행되었으나 한국은 조정된 적이 없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한국의 경우 2002년 이전까지는 가계 소득의 증가 속도가 부동산 자산의 증가 속도보다 컸다는 사실이다. 과거 글에서 말했듯이 한국은 자산, 특히 부동산자산 중심의 사회이다.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말이 회자하는 배경이다. 한국 사회의 권력은 돈의 힘이 지배하는 시장으로 넘어간 지 오래되었다.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말은 돈이 부동산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힘이 돈에서 나오고, 돈이 가장 많이 모이고 만들어지는 곳이 부동산이기에 부동산을 매개로 이권 카르텔이 형성된다.

 

이른바 '부동산 카르텔'의 정점에 가장 힘이 센 자본, 즉 재벌자본과 금융자본이 있다. 재벌은 하나 이상의 건설회사를 갖고 있고, 거래 단위가 큰 부동산은 금융을 매개할 수밖에 없고, 은행 등 금융자본의 성장에서 (특히 자본시장이 취약한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은 핵심 담보물이라는 점에서 건설자본과 금융자본은 샴쌍둥이다.

 

이들로부터 이권의 일부를 배분받고 협력하는 또다른 권력이 민간 영역에서 언론권력이고 공공영역에서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사유화하여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검찰과 모피아 권력이다. '부동산 카르텔'은 권력과 신분의 세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특권층 카르텔'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대한민국의 메인스트림(주인)이라고 생각하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을 비웃는다.

시장권력과 결탁해 사적 이익 챙기는 모피아

한국에서는 군부독재가 종식되면서 (경제 운용에서 정부 역할이나 금융의 공적 기능까지 부정의 대상으로 내몰리며)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고, 그 결과 사회적 자산과 사적 자산의 복합체 성격을 가졌던 재벌은 (사회적 자산 성격을 배제한) 사적 자산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재정경제원으로 통합함으로써) 권한이 더 집중된 재정관료는 군부권력을 대신해 시장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한 재벌과 결탁한다.

 

여기에 외환위기를 계기로 월가 자본은 한국 금융 시스템의 재구성을 요구하였고, (민영화를 통해 공적 기능의 성격이 약화된) 금융자본은 (월가를 뒷배로 삼으며) 또 하나 시장권력의 축이 된다. 이 과정에서 재벌자본과 금융자본이라는 시장권력의 이익 실현을 공적 영역에서 뒷받침하고 사적 이익을 챙기는 집단인 모피아가 형성된다. 김대중 정부에서 싹이 튼 모피아는 노무현 정부에서도 승승장구했고. 이들은 정권의 성격과 관계없이 등용되었다. 공직을 물러난 후에는 금융계나 로펌 등에서 (사실상 공직에 있을 때와) 같은 일을 수행하였고, 기회가 되면 다시 공직으로 진출하는 이른바 회전문 인사를 구조화하였다

 

한국 가계부채의 디레버리징은 이리한 구조적 문제를 직시할 때만이 해결할 수 있다. '부동산 카르텔'의 이권 구조가 바로 가계 신용이 지난 30년간, 적어도 내부로부터의 조정이 일어날 수 없게 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즉 한국 사회 특권층의 경제적 이해와 직결된 것이기 때문이 다. 이처럼 '부동산 카르텔'은 부채 조정의 인위적 장애물 역할을 하고 있고, 일반 국민에게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부동산 불패 신화가 심어진 배경이다. 오늘은 지면 제약으로 그 결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수치까지만 소개하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100% 이상인 가계부채가 올해 3월말 기준 GDP25% 수준인 539조 원이 넘는다. '괴물'은 이른바 (부동산 가격의 지속 상승을 전제로 한) ‘폰지 금융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완만한 디레버리징'은 불가능하다. (혹시 가능한 방법을 아는 분이 있으면 가르침을 청한다.) 부채 증가를 억제하면서 디레버리징을 하려면 분모에 해당하는 가계소득이 증가해야 하는데 문제는 과도한 가계부채가 성장률을 낮추는 요인이 된 지 오래되었다는 점에서 어렵기 때문이다. 대부분 전문가나 정치인 등이 떠드는 소득과 일자리 증가 대책 역시 (불행스럽게도) 구호 수준에 불과하다.

 

'거대한 리셋'이 가장 현실적인 전망이다

 

최배근 건국대 교수 시민언론 민들레 2023717

 

김건희 여사의 가방과 명품쇼핑’, 그리고 우리 언론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등 해외순방길에 오른 김건희 여사의 행보와 관련해 많은 언론은 이렇게 보도했다. 평소 친환경을 중시하고 친환경 소재로 만든 합리적인 가격대의 국내 가방을 들었던 김건희 여사이기에 이번 순방길에서도 환경친화적인 국내 제품들을 많이 알릴 것이라고.

 

김건희 여사가 순방길을 떠나면서 순항기 출입문 끝에서 손을 흔드는 사진은 언론의 단골 보도 내용이다. 김 여사가 든 가방이라는 제목으로 사진과 함께 특정 제품의 이름과 가격, 그리고 그 안에서 메시지를 찾는 내용이다.

 

이를테면 파리 순방길에 오른 김건희 여사 사진을 싣고 김 여사가 멘 가방이 화제라며 김 여사가 평소 들고 다니는 가방에 3가지 철학이 담겨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첫째는 국내산 브랜드라는 점. 둘째는 중저가로, 국민들 눈높이를 고려했다는 점. 셋째는 친환경으로 ESG를 추구하는 제품이라는 점이라고 보도한 내용이다

 

패션 본고장인 파리에 국내 대표 브랜드를 들고 갔다며 국내 제품 알리기의 철학이 담겨 있고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 제품을 선택한 것도 지속 가능한 지구 만들기에 동참한다는 철학이라는 식이다. 공식 출고가와 가방 업체 대표의 인터뷰까지 포함된 보도를 보면 마치 김건희 여사를 모델로 한 가방 홍보 보도라고 착각할 정도다.

 

다른 매체는 김 여사가 멘 가방이 또 완판됐다면서 대중은 단순히 선망하던 유명인의 아이템을 모방 소비하는 게 아니라 가치와 신념을 소비로 드러내는 가치 소비에 집중한다는 분석까지 내놨다.

 

김건희 여사가 든 가방은 여러모로 해석될 수 있는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데 그동안 우리 언론 보도 행태는 과유불급의 모습을 보였다. 김 여사가 든 가방 알고 보니 명품이 아니어서 반전이었다는 식의 보도는 ‘K-컬처 영업사원이 되겠다는 김건희 여사의 활동에 큰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다. 오히려 여사의 소탈한 이미지 형성에 언론이 전력투구하고 있다는 인상만 주고 권력과 언론의 관계를 되묻게 한다.

 

이런 가운데 리투아니아에서 김 여사의 명품 쇼핑문제가 현지 언론에 보도되고 대통령실이 부적절한 해명을 내놓으면서 우리 언론도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고 본다. 국내 수해 피해 문제와 대비해 김 여사가 순방길에서 경호원을 대동하고 사적인 쇼핑을 한 것은 대통령실의 정무적 판단이 흐려진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현지 매장의 호객행위로 들렀다라는 대통령실 입장도 화를 키웠다. 당장 이런 해명을 납득할 국민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며 쇼핑 구매 비용 등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라(한겨레)는 지적과 함께 대선 당시 공언했던 조용한 내조가 아니라 권력을 제약 없이 행사하기 위해 제2부속실을 폐지한 것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경향신문)며 여사의 공적 역할에 대한 사실상 제어가 필요하다는 주문이 나왔다.

 

대중은 그동안 김 여사의 가방에 주목했던 우리 언론에도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김 여사를 향한 질타는 우리 언론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철학이라느니 완판이라느니 한껏 셀럽의 반열에 올려놓았던 언론이 명품 쇼핑논란에 말을 얹을 자격이 있느냐 말이다. 김 여사의 쇼핑이 개인 일정을 소화한 것이며 개인 사생활 침해라고 둘러댄다면 얼마나 이중적으로 보이겠는가. 여사의 쇼핑 문제가 큰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럼 김건희 여사 가방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였나라는 반발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이번 문제는 언론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얘기다.

 

이번 기회에 김건희 여사로 인해 국정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점검하고 제2부속실과 같은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영부인으로서 해야될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게 바로 언론이 할 일이다

미디어오늘 1410호 사설 . 2023718

 

뉴라이트가 독립유공자를 재심사하는 시대

강제동원(징용) 피해자가 아닌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외교부 장관, 노동자가 분신하고 과거 노동운동 동료가 경찰 곤봉에 맞아 피를 흘려도 노동 개혁이라는 고용노동부 장관, 여기에 김정은 체제파괴를 주장하는 인사가 통일부 장관으로 내정되는 마당에 백선엽이 친일파가 아니라는 데 장관직을 걸겠다는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의 언설은 놀랍지도 않다. 윤석열 정부의 장관들은 국민과 언론, 야당이 질문하면 대답 대신 장관직을 걸고 나서겠다고 한다.

 

특히 장관급으로 승격된 보훈부의 박민식 초대 장관은 역사왜곡과 독립운동 폄훼의 숙주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62개월(20112~20175) 동안 보훈처장을 지내며 임을 위한 행진곡제창을 금지한 박승춘과 비교해도 박 장관의 행보는 역대급이다.

 

지난 2독립유공자 공적심사 기준을 새로 세우겠다는 보도자료를 내놓은 이후 박 장관과 보훈부 관계자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언론 등을 통해 밝힌 내용을 요약하면 두 가지이다.

 

첫째, 독립유공자, 특히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의 지향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공산주의 국가 건설을 위한 독립운동이었는지를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둘째, 백선엽에 대한 현충원 홈페이지 안장 기록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표현을 삭제하는 것을 포함해 <친일인명사전>과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결정한 1006명의 국가 공인 친일반민족행위자에 관해 해방 이후 공적을 이유로 재평가하겠다는 것이다. 독립유공자에 대한 사상 검증을 하고, 친일파에 면죄부를 주겠다는 게 핵심이다.

 

보훈부는 독립운동 연구자들로 구성된 기존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회로는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역사학자 외에 정치·사회·법조 등 주로 뉴라이트 성향의 인사들이 참여하는 특별분과위원회를 신설하겠다고 했다. 특별분과위원회는 독립운동 연구자들이 포진한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회를 우회해 장관이 지정한 쟁점 안건을 처리하는 하명(下命)위원회가 될 게 분명하다. 지난 37일 국가보훈처가 출범시킨 독립운동 훈격 국민공감위원회의 위원 17명 중 9명이 뉴라이트 인사거나 극우적 역사인식을 보인 인물들이다.

 

보훈부가 촉발한 역사왜곡 논란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과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당시에는 식민지근대화론자와 뉴라이트 인사들이 정권의 비호를 배경으로 왜곡된 역사관에서 집필한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2006),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2008), 교학사 발간 <한국사> 교과서(2013)를 학교 현장에 보급하려다 교사·학생·학부모들의 반대로 실패했다. 급기야 역사교과서 국정화(2015)라는 자충수를 둬 박근혜 탄핵의 단초를 제공했다면, 이번에는 식민지근대화론자와 뉴라이트 학자들이 아닌 정무직 공무원이 단독 질주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박 장관은 초대 보훈부 장관이란 경력을 추가해 내년 총선에 출마할 것으로 보여 보훈부가 촉발한 역사도발이 얼마나 관성력을 발휘할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이종찬 광복회장이 지난달 취임사에서 대한민국 원년은 1919이라고 하자 뉴라이트의 대모 격인 이인호 전 KBS 이사장은 임시정부는 어디까지나 임시정부이지,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권능을 내외로 인정받는 정식 국가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에 이 회장이 당치도 않은 요청을 다시는 나 말고도 누구에게도 하지 마시라고 일갈하면서 윤 대통령 지지 그룹 내에서도 의견 일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공부를 해보면 해볼수록 백선엽은 친일파가 아니라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박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백선엽이 간도특설대로 활동할 당시 만주에는 독립군이 없었고 홍군 내지는 비적들만 있었고 그들을 토벌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을 듣고 있으면 항일독립군을 선비(鮮匪·조선 비적)’ ‘사상비(思想匪)’ ‘공산비(共産匪)’ ‘항일비(抗日匪)’ 등으로 칭했던 일제와 만주 군경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특히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가정부(假政府·가짜 정부)라고 했던 조선총독부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정부가 아니었다는 이인호 전 이사장의 주장 사이에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것일까.

 

이러다간 뉴라이트가 독립운동가 심사를 맡고, 헌법 전문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삭제하자는 망언이 나오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경향 : 2023.07.19

 

가치 공동체의 명암

이번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정상회의에 아·태지역의 한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뉴질랜드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초대되었다. 이를 두고 두 지역은 이미 하나의 가치 공동체에 속한다는 견해와 이는 나토의 아·태지역으로의 확장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일란성 쌍둥이처럼 집단적인 상호방위 체제인 나토와 유럽의 정치와 경제통합을 목적으로 한 유럽연합(EU)은 내용상으로 거의 같은 가치(평화, 민주주의, 자유, 법치)를 공유하는 공동체다.

 

그러나 나토가 19993, 당시 나토 가맹국의 영토 밖이었던 코소보의 분쟁에 유엔의 위임 없이 인도주의적인 개입이란 이름으로 무력개입을 하자 많은 논쟁을 낳았다. ‘우리의 가치를 짓밟는 세르비아의 인종청소를 종식한다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이런 집단행동이 과연 국제법적으로 정당한가를 둘러싼 논쟁이었다.

 

이런 논리를 따른다면 나토 가맹국이 아닌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종속시키기 위해 나토가 직접 군사적인 개입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 최신무기를 지속해서 지원할 것을 약속했지만,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나 이의 일정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나토 가맹국의 어떤 나라도 현재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명분도 이렇게 상황에 따라서 달리 해석된다.

 

나토의 코소보 분쟁 개입을 적극 옹호했으며, 1970년대 중반에 프랑스 지성계를 풍미했던 신철학의 기수 중 한 사람이었던 베르나르 앙리 레비와 푸틴의 유라시아 재건이라는 세계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 알렉산드르 두긴 사이에 20199월 암스테르담에서 공개 논쟁이 있었다. 두 철학자는 토마스 만의 <()의 산()>에 등장하는 인물인 인문주의자며 합리주의자인 제템브리니와 반자본주의적인 근본주의자 나프타에 각각 비유되기도 했다. 이 논쟁에서 레비는 자유와 인권의 보편성을 강조하면서 두긴의 철학이 내건 혁명적인 보수주의도 결국 허무주의며, 파시즘이나 나치즘의 아류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서 두긴은 서방 세계는 자신의 역사적인 경험인 자본주의, 시장경제, 인권, 개인주의, 향락주의를 보편주의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전파한다고 응수했다.

 

서구 보편주의 싸고 끊임없는 논쟁

이 논쟁에 얽힌 현실 정치의 맥락을 잠깐 비켜나서 본다면 이 논쟁도 결국 보편이나 보편주의는 항상 옳은지를 묻는, ‘영원 철학의 오래된 주제를 다루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질문은 또 서구가 식민지의 확장 과정에서 축적한 비서구 사회에 대한 지식체계도 문제 삼았다. 몽매하고 낙후한 사회를 계몽할 수 있는 서구문명이 지니는 보편성에 대한 확신이 결국 식민주의와 인종주의를 정당화하는 논거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서구 중심의 보편주의적 세계해석을 비판하는 상대주의 철학이나 문화 인류학의 반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근본적인 비판은 1960년대에 들어서 제3세계의 민족해방 투쟁과 맞물리면서 본격화되었다. 이는 식민주의자와 인종주의자가 표방한 보편주의 프레임에 따라 열등하고 야만적이라고 굴레 씌워진 자들의 정체성 확인과 자기 긍정, 그리고 이를 위한 투쟁의 결과이기도 했다.

 

식민화된 자들이 식민지 세계에 대한 물음은 결코 관점들 사이에 일어나는 합리적인 충돌이 아니다. 이는 또한 보편적인 것에 대한 논증도 아니다. 오로지 절대적으로 제기되는 특수의 원초적인 주장일 뿐이다라고 알제리 민족해방 투쟁의 이론과 실천에 큰 발자취를 남겼던 프란츠 파농(1925~1961)<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에서 강조했다. 한마디로, 강요하는 보편에 대해서 이에 저항하는 특수의 외침이라는 것이다.

 

이런 탈식민주의 흐름은 그 후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오리엔탈리즘>에서 다시 분명하게 표출되었다. “여러 가지로 낙후하고, 비정상적이고, 비문명적이고 퇴화하였다고 여겨지는 다른 민족들과 함께 생물학적인 결정론과 도덕·정치적인 가르침이라는 안경을 쓰고 자주 아랍인들을 본다. 그래서 이들을 거의 우범자나 정신병자, 여성 또는 가난한 자와 비슷하다고 여긴다.”

 

이렇게 식민주의자와 인종주의자의 눈으로 규정되었던 세계 일부가 겨우 독립을 달성했거나, 아니면 여전히 민족해방 투쟁의 도상에 있었던 19481210, 유엔에서 당시 58개 가맹국 가운데 48개국의 찬성으로 세계인권선언이 통과되었다. 그러나 이 선언의 정식 명칭은 인권의 보편적 선언이다. 동서냉전이 이미 시작된 상황이라 이 선언의 초안을 둘러싸고 정치적인 시민권을 강조한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와 사회경제적 권리를 강조한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사이에 논쟁도 많았다. ‘보편적이라고 했지만, 당시 유엔의 가맹국이 아니었던 이른바 주변부에 속했던 많은 신생국의 목소리는 담겨 있지 않았다. 이를 둘러싼 논쟁은 1990년대에 다시 지펴졌다. 1990카이로 이슬람 인권 선언1990년대 중반 말레이시아 총리 마하티르와 싱가포르 총리 리콴유가 제기했던 아시아적 가치가 촉매 역할을 했다.

 

개인주의에 기초한 서구의 가치만이 보편적일 수 없으며 집단주의에 기본을 둔 가치체계도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요 논지였다. 이 배경에는 석유 파동으로 말미암은 미국과 유럽의 경기 침체와 사회적 갈등과 대비시켜 긍정적으로 평가된 이른바 일본 모델’, 그리고 아시아의 네 마리 용(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으로 묘사된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이 있었다.

 

우리의 가치에 연대와 평화도 귀중

게다가 국제정치의 무대에서 막강해진 중국의 위상도 이런 분위기를 더했다. 그러나 이런 논의도 19977, 아시아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점차 시들해졌고 아시아적 가치와 경제성장 사이의 인과 관계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평가가 뒤따랐다.

 

2020년에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처하는 방식에서 아시아적 가치는 다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문화적 결집성이 상대적으로 강한 한국을 비롯한 일본과 대만 등이 문화적 이완성이 강한 서구나 남미의 국가에 비해서 코로나19 팬데믹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서구와 비서구 사이의 문화적인 긴장과 갈등에 내재하는 가치에 관한 이런 논쟁은 분단으로 말미암은 심한 정치적 이념 갈등 때문에 뒷전으로 밀렸다. 가치 논의의 출발점은 대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와 안보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자신의 자리를 매김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이와 함께 비서구권에서 일본에 이어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뤘다는 자긍심은 과거 일본 메이지유신 시기의 탈아입구(脫亞入歐)’와 비슷한 정서도 낳았다. ‘우크라이나 평화 연대 이니셔티브를 이야기할 정도로 우리도 이제 나토라는 서방세계의 중요한 가치 공동체의 일원이 됐다고 느끼는 분위기가 그렇다.

 

반지성주의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가치 동맹이나 가치 외교는 윤석열 정부의 키워드다. 반지성주의에 대한 비판이 주로 국내 정치를 겨냥한다면 후자는 국제관계에서 지켜야 할 원칙처럼 보인다. 가치 공동체를 이야기하면 개인의 자유와 시장경제를 핵심으로 하나가 된 서방세계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하나의 가치 공동체를 이야기하는 미국과 유럽연합이지만 정치·문화적 차이에서 생긴, 가치에 대한 견해 차이가 작지 않다. 개인의 자유를 절대시하는 미국보다는 사회 성원의 안전을 같이 생각하는 유럽, 또 우파 민족주의 세력이 집권한 헝가리나 폴란드가 유럽연합의 가치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도 가치 공동체의 실상은 꽤 복잡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까닭에 보편적인 이념을 전제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가치 공동체를 차라리 이익 공동체법률 공동체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오히려 실제와 부합한다는 주장도 나오게 되었다. 우리가 공유할 가치에는 개인의 자유와 시장경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연대도 있고 평화도 있다. 그래서 반지성주의와의 싸움 대신에 사회적 연대, 가치 외교 대신에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외교가 지금 우리에게는 귀중한 가치가 아닌가 하고 묻게 된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경향 : 2023.07.19

 

 

시민단체 부정행위?’ 사실·실체부터 살피고 제대로 비판하라

권력과 일부 언론의 시민운동과 시민단체, 활동가를 향한 비판과 압박 수위가 도를 넘고 있다. 사실 확인 없이 시민단체 부정행위로 싸잡아 매도하고, 이 정부의 국고보조금 투명화 정책 성과인 양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정치적으로 편승하고 숟가락을 얹는 사람들에게 고한다.

 

공공이 해야 하지만 공공의 손길이 못 미치는 일, 보편화하기에는 법·정책·예산·실행체계 등의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시범적으로 하는 일, 행정과 시민의 편익과 권리와 공공의 이익을 높이기 위해 전문성을 가진 민간에게 맡기는 일 등에 대한 이해가 있는가. 비영리기구(NPO)인지, 비정부기구(NGO)인지도 구분하지 않으면서 애드보커시(권리 옹호, 정책 제안)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풀뿌리 단체가 어떤 상황에서 누구와 어떤 일을 해오고 있는지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보조금과 지원금을 구분하는지도 궁금하다.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 보조금이든 지원금이든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면서 매도한다. 법에 근거한 전달 체계의 하나로서 사업을 수행하는 회원 조직은 보조금이나 지원금을 받을 수 있지만, 전장연은 임의 조직이라 신청 자격도 없다. 1400억 원이 아니라 1400원도 못 받는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 만한 사람들이 실체를 살피지 않고 비판 기류에 편승하고 있다. 다양한 협회나 단체, 비영리민간단체, 합법적으로 영리사업을 할 수 있는 민간조직을 구분하지 않고, ‘시민단체라는 이름으로 보조금 의혹, 정치화, 신뢰 문제 등의 프레임을 씌워 잘못된 논리를 더욱 강화해간다. ‘민간단체 보조금시민단체 보조금으로 오해하도록 악용하기도 한다.

 

이런 분들께 권하고 싶다. 정부 보조금이나 지원금을 받아 몇 달만 일해보라고. 회계 처리와 감사가 얼마나 치밀하고 까다로운지 혀를 내두르게 될 것이다. 행정 시스템이나 담당 공무원들, 민간의 수준이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세상 많이 변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시민운동의 본령은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정치에 관여하는 것이다. 정치가 바른길을 가도록 감시·비판하고, 약자들을 위해 발언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 모두 정치활동이다. 시민운동·시민단체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일부 인사들이 시민운동과 시민단체의 힘을 발판삼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할 수 있겠지만 일부 개인의 문제로 시민운동·시민단체의 모든 활동이 매도당해서는 안 된다.

 

시민단체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실질적 운영과 활동을 책임지는 활동가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살펴봐 주기를 바란다. 시민단체를 일부 명망가들이 운영한다는 생각이 큰 착각이라는 것을 금방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시민단체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뼈를 갈아 넣어야할 정도로 온 힘을 쏟아부어야 한다. 활동가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아픔을 견디는 사람들의 곁에서 밤과 낮을 꼬박 새워야 하고, 수시로 터지는 사건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긴급한 요청에 소방관들처럼 수시로 뛰어나가야 한다. 길거리에서, 고공 철탑에서, 단식 농성장에서, 강변에서, 산꼭대기에서, 바닷가에서 대책 회의하고, 연구하고 공부하면서 법안과 정책을 만들고 있다. 피해자와 유족을 위로하고, 탄압을 온몸으로 막으려다 기소당해 재판을 받으러 다니면서도 기부자·후원자들에게 정성이 가득 담긴 편지를 써야 하고, 소식지를 만들어 활동을 보고해야 하고, 수시로 내·외부 감사를 받아야 한다. 늘 모자라는 운영비를 채우기 위해 일일 주점, 후원의 밤도 조직해야 한다. 그래도 안 되면 가난한 주머니를 털어 갹출하기도 한다.

 

가만히 서 있어도 머리털이 빠질 정도로 덥고, 장대비가 퍼붓는 날에도, 절망에 빠져있는 어려운 분들 곁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꼭 필요한 곳곳에서 공익을 위해, 우리 모두의 권리와 복지와 안녕을 위해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버티고 있는 활동가들을, 시민운동을, 시민단체를 봐주시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린다.

 

물의를 일으키는 활동가, 문제를 일으키는 미숙한 단체도 일부 있다. 잘못에 대해서는 비판받아야 하고,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 사실과 실체를 제대로 살펴보고, 제대로 비판해주기를 바란다.

송경용 | 성공회 신부·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회연대 위원장 한겨레 : 2023.07.19.

 

 

갈고리즘과 특정 세력의 외압

속이고리즘, 이를테면 선제타였다. 지난 59일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한 말이다. 네이버에서 윤석열 키워드를 치면 비판과 비난 기사가 일색이라며 이건 알고리즘이 아니라 속이고리즘이라고 했다. ‘갈고리즘, 공세를 높인 그의 후속타다. 이달 초 방송통신위원회가 포털 긴급 실태점검에 나선다고 하자 알고리즘이 악마의 도구화하고 있다갈등으로 끌어당기는 갈고리즘이라 했다. 이어 특정 세력의 외압이 있었는지, 조작이 있었는지 빠짐없이 진상을 가려야 한다면서 필요하면 수사당국이 수사에도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은 곧 화자의 생각과 가치, 신념이 담긴 것이니 알고리즘에 대한 여당 고위 인사의 판단은 명확히 보인다. 속이는 것, 국민 갈등을 부추기는 것, 그래서 엄한 수사로 예외 없이 단죄해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다. 속이고리즘, 갈고리즘은 이해를 돕기 위해 재미로 구사한 언어유희 정도가 아닌 것이다. 그가 이런 유의 말바꾸기에 계속 나서 급기야 시럽급여를 운운한 일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품격은 찾아볼 수 없고 협의와 소통에도 등을 돌리는 거칠고 일방적인 말들이다.

 

권력 있는 사람이나 집단의 말은 명령으로 통한다. 속이고리즘과 갈고리즘이란 말이 나온 사이에 벌어진 일만 봐도 단박에 알 수 있다. 여당은 정부가 포털의 뉴스편집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했고, 연일 포털업계를 향한 날선 목소리를 이어갔다. 국회 과방위 여당 간사인 박성중 의원은 네이버가 알고리즘을 엉터리로 학습시켰다고 했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뉴스 포털의 편파성·불공정성에 대한 여론의 비판에 주목한다며 다각도로 대책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전례 없던 포털 실태점검에 착수하며 위법행위를 엄단하겠다고 앞질러 나갔다. 정부와 여당이 합심해 포털 압박 수위를 높여간 것이다.

 

결국 포털 뉴스의 편향성에 관한 시비인데, 이는 새로운 사안이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논란이 있었다. 더불어민주당도 여당 시절 포털의 보수 편향을 비판하며 규제 입법을 추진했다. 그러면 지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바로잡아야 할 문제는 무엇인가. 한편에서 속이고리즘, 갈고리즘으로 간주된 알고리즘을 제대로 아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알고리즘이란 입력된 정보를 가지고 원하는 대답이나 해결책을 얻는 과정을 프로그래밍한 것이다. 돈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해당 음료수가 나오는 자동판매기를 떠올리면 쉽다. 그런데 이런 단순한 기계적 과정이 아니라 가치 판단이 개입하는 알고리즘이라면 오류가 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프로그램을 설계하거나 운영하는 사람이 잘못된 정보나 작동 명령을 입력하는 실수 혹은 고의를 범할 수 있어서다. 문제는 그 고의성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언론 등 사회에 영향이 큰 부문의 알고리즘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투명성과 납득 가능성을 요구하는 게 옳다.

 

 

하지만 지금 정부·여당의 방식은 입맛에 맞지 않는 결과가 나온다는 이유만 앞세워 포털을 해악으로 규정하고 척결하겠다는 식이라 설득력이 떨어진다. 검증되지 않은 가설은 팩트로 여겨지지 않으므로 편향을 유발한 누군가의 고의를 입증하는 게 먼저인데, 이는 강제수사로 될 일이 아님을 알기 바란다. 포털 알고리즘의 입력값인 뉴스 빅데이터는 다양성이 특징이다. 공평성 잣대를 하나만 선택해 알고리즘에 적용한다면 다른 잣대를 가진 쪽은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 모든 집단을 모든 면에서 공평하게 대우하는 해법은 없다는 것이다.

 

포털 알고리즘을 적대시하는 최근 움직임은 윤석열 정부 출범 초부터 정부·여당 비판 보도를 무조건 가짜뉴스로 취급하며 감사·수사를 동원해 언론 장악에 발벗고 나서온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뉴스에다 마음에 들지 않는 뉴스까지 걷어내겠다는 심산이다. 가짜뉴스 타령과 공영방송, 비판 언론 탓에다 포털 탓을 얹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런 포털 뉴스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고 버젓이 말한다.

 

미국과 유럽은 알고리즘에 신중히 접근한다. 인종·젠더 차별 금지와 인권·소비자 보호에 초점을 맞춰 전문가들이 감시·평가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포털에 관여할 대목도 이런 부분이어야 한다. 권력의 힘으로 포털을 쥐고 흔들어 친정부 뉴스 일색으로 바꾸겠다는 정부·여당의 의중이 다름 아닌 특정 세력의 외압이다.

차준철 논설위원 : 2023.07.20.

 

 

예비타당성조사의 수난

재건축이 집을 가진 이들의 로또라면, 예비타당성조사(예타)는 땅 가진 사람들의 로또다. 수도권에서 경축 안전진단 탈락이나 재건축 조합 설립같은 현수막이 돈을 부른다면, 지방에서는 무슨무슨 사업 예타 선정이라는 문장이 마법을 부린다.

 

지방에서는 땅에 붙은 도로가 있느냐, 그 도로가 4m, 6m냐로 적게는 몇배, 많게는 수십배씩 땅값 차이가 난다. 이런 마당에 고속도로나 철도 같은 국가 기간 교통망 사업 소식이 돌기 시작하면, 풍문만으로도 지역 전체가 들썩인다.

 

교통망 사업이라는 게 결국 접근성을 개선하는 사업이고, 접근성이 개선된다는 얘기는 어제까지 쓸모없던 땅이 하루아침에 금싸라기 땅이 될 수 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땅부자들은 물론, 자기 땅 한 뼘 없는 사람들도 혹여 집 주변에 나들목이라도 뚫릴까, 역이라도 생길까 귀를 쫑긋 세우게 된다.

 

이렇게 사업 자체가 근본적으로 물욕을 자극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만큼 나랏돈으로 우후죽순 사업을 벌이거나, 내 집 앞으로 노선을 끌어당기는 일을 막아보자고 문턱을 만든 것이 지금의 예타 제도다. 예타는 나라가 망할 뻔했던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도입됐는데 대규모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의 타당성을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기준에 따라 사전에 검증하는 제도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그래서 예타는 국토교통부 같은 여타 사업 부처가 아닌 기획재정부가 주관한다. 기본적으로 사업 추진의 이익이 투입되는 비용보다 큰지를 수치로 따지기 때문에 문턱이 높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나름대로 국고 낭비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수행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다보니 역대 정부나 정치권에서는 이 예타를 허물거나 우회해 표심을 얻으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벌어졌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부터 5년간 총 603000억원 규모의 사업 예타를 면제했는데, 4대강 사업의 경우 전체 예산 222300억원의 90%에 달하는 197600억원의 예타를 면제시켰다.

 

문재인 정부는 201923개 지역 사업에 대한 예타를 한꺼번에 면제했는데, 이 때문에 비용과 편익을 따져묻지 않은 24조원어치의 사업에 국고가 대거 투입됐다. 13조원 규모의 아동수당이나 코로나19 재난지원금까지 포함하면 문재인 정부의 예타 면제 사업 규모는 100조원을 훌쩍 넘는다.

 

이 같은 예타 우회가 법을 어긴 것은 아니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정부는 균형발전이나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을 위해 예타를 면제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여기서 재난 대응’, 문재인 정부는 균형발전을 아전인수로 떼어내 천문학적인 예타 면제를 얻어냈을 뿐이다.

 

야당일 땐 매번 정부의 예타 면제를 힐난하지만 정치권이 일치단결하는 경우도 있다. 2021년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급물살을 탄 가덕도 신공항이 대표적이다. ‘지역 균형발전, ‘긴급한 대응요건에도 적합하지 않았던 만큼 여야는 특별법을 만들어 예타를 면제할 수 있다는 조항을 끼워넣었다.

 

이처럼 말 많고 탈 많은 예타가 최근 불거진 고속도로 종점 변경 이슈로 다시 불타오르는 모습이다. 2년 전 예타를 통과한 서울~양평 고속도로(고속국도)의 종점이 갑작스럽게 변경되면서 논란이 일자, 국토부가 사업 자체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선언하면서다. 의혹의 출발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고속도로 종점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일가가 소유한 토지가 있는 지역으로 변경됐다는 것이다. 예타까지 끝난 마당에 노선이 변경된 시기도 절차도 모두 미심쩍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그런데 문제가 불거진 후 사업을 재검토하겠다는 결정도 결정이지만, 의혹을 해소하겠다며 쏟아내는 발언들이 더 황당하다. 노선 변경 배경에 의혹이 집중되자 이미 통과한 예타 노선을 두고 경제성을 높이려고 만든 가안(임시안)”이라는 변호가 나오는가 하면, “(예타가 끝나면) 종점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발언이 쏟아진다.

 

나라 곳간을 지키는 최첨단 수문장 같던 예타가 일순간 허술하기 짝이 없는 허수아비로 전락하는 느낌이다. 정부 설명대로라면 앞으로 과연 어떤 국민들이 예타가 꼭 필요하다고 납득할까.

 

무엇보다 재정건전성을 금과옥조로 내세우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예타 노선 정도는 얼마든 변경해도 상관없다는 식의 설명을 쏟아내고 있으니 이 불편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할 따름이다.

 

시럽급여로 드러난 보수의 은밀한 계급투쟁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한국의 인구 문제에 대해 압축성장에 이은 압축소멸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최근 칼럼에서 진단했는데, 나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인용한 잠정적 결론(고임금이 인구를 늘린다)에는 동의하면서도 소멸이나 멸절같은 극단적 수사는 수긍하기 어려웠다. 설령 인구가 지금의 5분의 11000만명으로 줄어든다고 해도 소멸이나 멸절은 아니거니와, 표현을 세게 한다고 극적인 해법이 나오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극단적 표현은 보수언론이 더 자주 사용한다. ‘북핵보다 무서운 인구 재앙’ ‘집단자살같은 비유가 예사로 등장한다. 얼마 전엔 보수지배권력의 이데올로그 노릇을 하는 한 신문에서 일본의 지방 국립대 체제를 부러워하는 칼럼을 봤다. 교토대를 비롯한 명문대가 지방 국립대여서 수도권 집중 현상이 우리보다 한결 덜 하고, 그것이 한국과 일본의 출생률 0.78명 대 1.26명이라는 차이를 낳았다는 내용이었다. 놀라웠다. 그걸 이제야 알았단 말인가. 일본은 옛 제국대학에 뿌리를 둔 도쿄대부터 홋카이도대까지 7개의 지방 국립대가 게이오대와 와세다대 같은 명문 사립대를 능가하거나 대등한 평가를 받는다. 민주노동당이 주창했고,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공약으로 채택했던 국립대통합네트워크’(김종영 경희대 교수의 서울대 10개 만들기도 취지는 같다)가 바로 일본 같은 국립대 중심 체제로 대학 서열화를 완화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도모하자는 구상이었다. 자신들이 애써 무시하고 적극 반박했던 좌파적 발상까지 끌어들일 정도로 인구 감소가 심각해진 것이다.

 

무시하고 반박만 했다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수도 있다. 그들은 입시경쟁 완화와 공교육 정상화를 외쳤던 전교조를 빨갱이 집단으로 낙인 찍고, 권력을 동원해 법외노조로 만들었고, 0교시와 자사고, 일제고사를 도입해 경쟁을 격화시켰다. 서울 집값 떨어질까 봐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고, 청년들의 한 달 월세보다도 적은 종부세를 내기 싫어 세금폭탄론을 날조해 조세저항에 나섰다. 그들의 집단적 탄압과 저항은 당당히 승리했다. 경쟁지상주의와 이기주의라는 소용돌이의 구심력은 어마어마했다. 반대하던 사람들도 죄다 휩쓸려 들어갔고, 그렇게 오늘의 헬조선이 완성됐다.

 

선진국의 출생률 저하를 경제 이론으로 분석한 행동경제학자 게리 베커가 살아 돌아온다면 그동안 한국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어리둥절할 것이다. 그는 자녀가 부모에게 주는 기쁨이라는 효용이 양육에 들어가는 비용을 초과할 때 출산이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거꾸로 말하면, 비용이 효용을 초과할 때 출산을 중단한다는 말이다. 출생률 0.78명이라는 인류사 초유의 수치에서 젊은이들의 터질 것 같은 아우성을 기성세대는 읽어야 한다. 인구가 늘지도 줄지도 않는 2명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절반이 넘는 1.22명이 본능을 억제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양육의 한계비용이 과도하게 높은 것이다.

 

세계 최저의 출생률은 선택이 아니라 강요된 것이다. 한국의 보수지배권력은 자신들이 원인 제공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척하고 있다. <1984>의 조지 오웰식으로 말하면 이중사고’(Doublethink)를 하는 것이다. 이중사고란 두 가지 상반된 신념을 동시에 가지며, 그 두 가지 신념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으로 모순을 모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파놓은 구덩이에서 허우적거리면서도 구덩이를 만든 논리와 시스템을 고수하면서, 아무리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도 효과가 없다며 화를 내고 있다. 양육비 몇 푼 더 준다고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임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처럼 딴청을 피운다. 그들이 성난 얼굴로 돌아보아야 할 것은 자녀를 낳지 않는 젊은 세대가 아니라 경쟁만능주의를 우상화했던 자신들의 과거다.

 

선글라스’ ‘샤넬같은 키워드로 젊은 여성과 실업자에 대한 편견을 유감없이 드러낸 국민의힘의 시럽급여공세는 지나가는 에피소드가 아니다. 저출생·저성장 시대를 맞아 필연적으로 벌어질 사회적 재편을 둘러싼 큰 싸움의 일부라고 봐야 한다. 이들이 과격한 언어로 저출생 현상을 경고하는 저의가 여기 있다. 대통령이 직접 디렉팅하는 건폭과의 싸움을 비롯한 노조 파괴, 복지 퍼주기론, 시민단체와 공영방송 무력화 등은 조연에 불과하다. 지금 대기실에서 분장을 고치고 있는 진짜 주인공은 세금과 연금이다. 저출생·저성장 시대에 재정의 역할은 커질 수밖에 없고 세금도 늘려야 하지만, 입만 열면 나라 걱정인 자칭 애국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세금이다. 이들은 마치 세금의 존재가 깎아주기 위해 있는 것처럼 종부세와 법인세에 이어 양도세와 상속세까지 모든 부자세를 깎자고 조른다. 관리재정수지의 3% 이상 재정적자를 내지 못하도록 법으로 못 박는 재정준칙을 도입하자고 안달복달하는 것도 세금 내기 싫어서다.

 

카르텔이니 킬러규제니 하는 유행어 정치는 이 싸움이 누굴 위한 것인지를 은폐하는 바람잡이다. 속지 마시라. ‘부자들의 계급투쟁은 이미 진행 중이다.

san@hani.co.kr

이재성 | 논설위원 한겨레 2023-07-20

 

 

제집 노리는 도둑 있는데, 남의 집 문단속 하러 간 분단 국가 대통령

38시간 동안의 안보 공백우크라이나행은 해선 안될 결정이었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이 폴란드-우크라이나 국경지대에서 키이우행 열차에 올라탄 것은 현지시간으로 14일 금요일 저녁 8시였다. 폴란드에서 8시면, 우크라이나에선 저녁 9시다. 폴란드와 한국 시차는 7시간차, 윤 대통령이 키이우행 열차에 올라탄 것은 한국 시간으로는 15일 토요일 새벽 3시다.

 

호우특보가 발령된 714일 목요일, 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로 출발하기 전 시점이다. 충남 논산 추모공원 납골당 인근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방문객 4명이 매몰돼 2명이 숨졌다. 그날 논산에는 시간당 50이상의 비가 쏟아졌다. 기상청을 비롯해 모든 언론은 이 비가 주말에 더 쏟아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14일에서 15일로 넘어가는 밤사이 예천군에 231에 달하는 많은 비가 왔다. 14일에서 15일로 넘어가는 새벽은 재해 대비의 골든타임이었다. 오송지하차도 위험성을 처음 인지한 것은 3시간 반 후인 토요일 오전 630분 경. 당시 행복청 직원은 충북도 직원과 세 차례 통화하면서 "미호강 범람 위험이 있고, 이 사실을 청주시·경찰청에도 연락했다"고 말했다. 예천군에 14일 밤 쏟아진 폭우로 약해진 지반은 15일 산사태로 이어졌다. 7명이 숨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원래 15일 귀국할 예정이었다. 갑작스럽게 귀국을 미룬 윤 대통령은 한국시간으로 15일 새벽 3, 열차에 탑승했다. 차량이 흔들려 가끔 마시던 음료가 엎어져 쏟아지는 상황에서 극비리에 우크라이나 영토를 달리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안보 수뇌부인 NSC 의장 대통령과 NSC 상임위원장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NSC 사무처장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모두 이 불안한 열차에 타고 있었다.

 

윤 대통령은 14시간 걸린 극비 호송 작전을 마치고 우크라이나에 도착했고, 그 곳에서 11시간 머물렀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은 우크라이나 행 결정 이유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몸소 눈으로 현장을 확인할 때, 보다 구체적으로 우크라이나 상황을 평가할 수 있고 피부로 느끼면서 현지에 뭐가 필요하고 구체적으로 뭘 협력할지 명확히 식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폴란드로 돌아오는데 13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한국에서는 50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했다.

 

우크라이나로 출발하기 직전, 호우 피해로 사망자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하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있을 때 모든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국정이라는 건 선택의 문제라고 치자. 무엇이 중하고, 무엇이 덜 중한지 판별하는 일이기도 하다. 중한 일을 제치고 다른 일에 착수했을 때, 최소한 거기에선 유권자들이 납득할만한 국익을 뽑아내야 한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행은 중한 일(호우 대응)을 제치고 다른 선택을 한 행위다. 하지만 우리에게 무슨 이익을 남겼는지 알 수 없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뉴스 소비자들이 주로 접하는 뉴스는 TV와 인터넷 포털이다. 중앙안전재난대책본부장(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공석인 상황에서 중대본발로 시시각각 피해 상황이 전해지고 있을 때, 8000킬로미터 떨어진 타국에서 "생즉사 사즉생"을 말하고 있는 뉴스가 어지럽게 섞여 나왔다. 온 국가가 호우 참사로 애도한다는 기사가 뜰 때, 윤 대통령이 외국의 전쟁 희생자를 애도하고 있는 사진이 걸렸고, 산사태의 끔찍한 보도 사진이 쏟아질 시점에 대통령은 이역만리 전쟁 피해 도시의 폐허를 둘러보고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재난 유가족들이 울부짖고 있을 때, 난민 아이의 얼굴을 감싸 쥔 영부인의 사진이 떴다.

 

우크라이나행을 결정한 것을 되돌릴 수 없었다면, 최소한 국내 재난 상황을 의식해 홍보를 미룰 수도 있었다. 호우 피해가 이어질 때는 대통령 홍보 사진을 화상 회의 장면이나 정상회담 위주로 뿌려 의미 부여를 간소화하고, 재난 상황이 수습된 후 우크라이나 일정과 의미를 차분히 브리핑할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대통령실의 정무·홍보 담당자들은 한국의 재난 상황에서, 타국의 재난을 마주하는 대통령 부부의 이미지를 담아 홍보 자료를 무차별적으로 뿌렸다. TV와 뉴스 포털사이트에서 벌어진 건 기이한 대혼돈의 '멀티버스'였다.

 

우크라이나행이라는 선택이 잘못이었다는 점도 지적해 둔다. 첫째,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은 이미 한차례 있었다. 지난 5G7 정상회의가 열린 일본 히로시마에서 양국 정상은 만났다. 이때 이미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한국의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한국 기업의 우크라이나 재건 참여를 요청했다. 그에 앞서 윤 대통령은 특사로 방한한 젤렌스키 대통령 부인 젤렌스카 여사도 만났다. 미국, 일본 등 우리와 밀접한 국가 정상을 제외하고 타국 정상을 두달 간격으로 연쇄 회동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두달 전 만난 대통령을 또 만날 절박한 이유가 있었을까 의문이다. 김태효 차장의 말대로 "몸소 눈으로 현장을 확인"하는 것 이상의 일이었을까? 결국 이건 '전장에 간 대통령'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대통령의 욕심으로 보일 뿐이다.

 

둘째, 심지어 한국은 아직 전쟁 중인 국가다. 북쪽에는 우리의 '주적'이 존재한다. 윤 대통령의 인식대로라면, "반국가 세력들은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하여 유엔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종전선언 추진을 비난하던 윤 대통령은 언제 전장이 될 지 모르는 자국을 두고 8000킬로미터 떨어진 타국의 전장에서 '생즉사 사즉생'을 말하고 있다. 유체이탈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만약에 수해가 없었다고 가정하고 (가정은 의미 없는 일이지만) 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행을 결정했다고 치자. 대한민국 안보 수뇌부가 '열차 왕복 27시간 + 체류 11시간' 동안 우리 군의 호위도 없이 이역만리 타국의 열차 안에서 화상 회의를 하고, 타국의 전장을 둘러보며 '재건 사업' 구상을 하고 있을 때 북한이 도발을 감행했다면 어찌됐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38시간 동안 타국의 전쟁터를 '첩보 작전'하듯 방문한 시점에 한국의 안보 수뇌부는 한국 땅에 존재하지 않았다. 입만 열면 '북한의 위협'을 언급하는 휴전 국가의 대통령이 타국의 교전지역을 방문해 "70년 전 한국"을 떠올리고 있는 상황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70년 전 우크라이나는 소련 소속으로 북한을 도왔다.

 

모든 부분에서 '핀트'가 어긋나 있다. 때와 장소에 맞지 않는 말들이 버젓이 나온다. 우크라이나에서 이순신 장군의 "생즉사 사즉생" 외친 것도 기이하다.

 

분단국가의 특성상, 휴전 국가의 특성상, 한국의 대통령은 타국의 전장에 직접 방문하는 건 삼가는 게 맞다. 이 간단한 사실을 자주 잊는 것 같다. 기시다 일본 총리나, 바이든 미국 대통령, 유럽의 지도자들이 우크라이나를 경쟁적으로 찾아도 '분단국가의 지도자' 윤석열 대통령은 달라야 한다.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저 지도자들의 나라는 자신의 영토에서 전쟁을 하고 있는 나라들이 아니다. 제집 노리는 도둑이 있는데 남의 집 문단속 하러 가는 가장을 어찌 바라봐야 하는가.

 

휴전국인 대한민국 대통령은 대한민국과 11초도 연락이 끊겨선 안된다. 공군1호기도 아니고, 언제 연락이 끊길지 모르는 불안한 열차를 타고 타국 전장을 누비는 대통령의 모습은 오히려 안보 불안을 키운다. 우크라이나에 가선 안되는 세번째 이유로 언급할 '러시아 자극', 앞의 두 가지 이유만으로도 충분해 언급하기조차 사치스러워진다.

 

2000조 재건 사업 '잭팟'과 같은 기사들이 등장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2000조 원은 누가 내는 돈인가? 그 돈은 우리의 것인가? 그에 앞서 북한과 교전 중인 국가에서 '우크라이나 드림'을 꿈꾼다는 걸 대놓고 홍보하는 분단국가의 지도자가 세상에 어디 있나. 기이한 일들의 연속이다.

박세열 기자 | 프레시안 2023.07.22.

 

 

좌파가 싫어하는 영화의 대박

지난 7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개봉한 영화가 화제다. 5년 가까이 창고에 방치되었던 저예산 영화가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것이다. 평범한 액션물 <사운드 오브 프리덤>이 보인 기염의 배경에는 영화적 허구를 압도하는 극우적 음모론이 자리하고 있다.

 

이 영화는 국토안보부 전직 요원으로 인신매매 피해 아동을 구출해온 팀 발라드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아동 성매매라는 부담스러운 소재에다 무명의 멕시코 감독이 연출해서인지 수년간 배급이 막혔었다.

 

넷플릭스마저 거절해 잊혀질 뻔했던 영화가 기적적으로 극장에 걸렸다. 할리우드와 주류 언론은 팀 발라드와 주연배우 짐 카비젤이 공유한 극우적 음모론이 불편해 영화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장기간 배급되지 못했던 불운과 언론의 냉대는 해괴한 음모론의 근거로 활용되며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미국의 일베라 할 수 있는 큐어논(Qanon) 신봉자들은 민주당이 딥 스테이트라는 비밀 권력의 하수인으로 아동 인신매매를 담당하고 있다고 믿는다. 주연배우 카비젤은 큐어논이 퍼뜨린 황당한 음모론에 깊이 경도돼 있다. 극우 음모론자들은 이 영화가 공개되기를 꺼리는 세력이 있어 오랜 시간 배급을 미뤘고, 좌파 언론들이 담합해 묻으려 했으며, 극장 체인 AMC는 극장 냉방장치를 고장내면서까지 관람을 방해했다고 분노했다. 좌파들의 방해 공작을 힐난하며 극장에 가지 않더라도 다량의 티켓을 구매하여 영화의 흥행을 도움으로써 정치적 의사를 표현했다. <사운드 오브 프리덤>을 관람한 관객의 다수는 백인 보수층이다.

 

보수 정치인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캠프에서는 급진 좌파가 보지 않기를 바라는 영화라 선전하며 지지자들에게 티켓을 나눠줬다. 도널드 트럼프도 좌파 언론이 영화에 이념을 덧씌워 방해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카비젤이 참석하는 상영회를 계획하는 등 영화의 성공에 편승해 정치적 이익을 챙기고 있다.

 

극장을 찾은 관객들의 반응은 전반적으로 호평이다. 영화에 둘러진 정치적 외피와 무관하게 구조 플롯을 솜씨 좋게 연출한 준수한 장르영화로 평가되고 있지만 <사운드 오브 프리덤>의 흥행 비결로는 부족하다. 적당히 잘 만들어진 액션물은 차고 넘친다. 배급사 엔젤 스튜디오스의 시류를 읽는 안목 덕에 창고에서 썩고 있던 B급 액션물로 사회적 이슈 몰이와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엔젤 스튜디오스의 대표 재러드 지시는 영리한 흥행 전략으로 <사운드 오브 프리덤>을 팔았다. 미국에서 아동 성매매는 공분을 사기에 충분한 범죄다. 지시는 사람들의 연민과 정의감을 자극하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배급과 홍보 마케팅 비용을 마련했다. 매년 200만명의 아이가 인신매매 피해로 고통당하고 있다며, 선구매 목표액을 200만장으로 정해 140만장을 팔아치웠다. ‘페이 잇 포워드(Pay IT Forward)’ 형식으로 회사나 종교단체에 티켓을 대량으로 판매했다. 여기에 극우 음모론자들이 가세하면서 영화가 대박을 친 것이다.

 

한국에서 <82년생 김지영>이 개봉된 후 성대결 논쟁이 일었다. 이때 여성 관객들이 극장에 가지 않고 티켓 예매로 의사 표현을 했다. 한국의 영혼 보내기현상을 벤치마킹한 것일까. 지시는 카비젤의 음모론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하면서도, 내심 좌우의 정치적 갈등이 표팔이에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했을 것이다.

 

<사운드 오브 프리덤>은 극우의 음모론에 안성맞춤인 소재와 우연이 촉발시킨 오염된 영혼 보내기로 돈을 번 영화다. 영화사에 창의적(?)인 마케팅의 예로 기록될 것이며 자주 악용될 것이다.

서정일 명필름랩 교수 경향 2023-07-21

 

 

K팝 여성 팬의 낮은 인권은 돈이 된다

하이브 소속 신인 아이돌 그룹 앤팀(&TEAM)의 팬사인회에서 얼마 전 보안을 이유로 여성 팬들의 속옷 검사를 해 문제가 됐다. 아이돌 팬을 상대로 한 폭력은 그간 알게 모르게 많았으나, 이번 사건이 유독 K팝 팬덤 전체를 폭발하게 해 공론화에 이른 건, 그 폭력이 발아한 분위기의 공감대 때문이다.

 

내가 그 분위기를 뼛속 깊이 학습한 건 무려 23년 전 일이다. 뉴진스의 모든 멤버들이 태어나기 전. 당시 나는 한 1세대 아이돌의 열성적인 중학생 팬이었다. 어느 날 그들이 출연하는 음악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갔다. 방송국 앞에서 하루 종일 기다리고 입장 커트라인에 들어 설레는 마음으로 녹화를 기다리던 중, 아무 설명도 전조도 없이 경호원에게 멱살이 잡혀 밖으로 끌려 나갔다. 그 남자의 소름 끼치도록 억센 손과 갑작스레 목이 조인 상황에서 발버둥 치던 순간의 다급함, 태어나 처음 당해보는 무차별적 폭력 속에서 느낀 공포와 굴욕감은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까지도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돼 있다. 머릿속에선 교과서에서 배운 천부인권 구절이 둥둥 떠다녔지만 항의하지 못했다. 무서웠으니까. 원래 그런 분위기니까.

 

사건이 일어난 날, ‘속옷 검사라는 충격적인 키워드가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오른 것을 보고 23년 전 그날이 통증처럼 떠올랐다. 특히 성인지 감수성이 높은 MZ세대 팬들이 강압적인 몸수색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에, 그 분위기가 만든 또 한 사람의 피해자로서 모멸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 사건에 대해 K팝 팬들은 분명한 성희롱이며 법적 처벌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소속사는 성희롱은 없었다고 일축하며 보안을 이유로 시행된 보디 체크(Body check)’이므로 정당했다는 식의 사과문 아닌 사과문을 발표했다. 성희롱이 보디 체크라면 멱살잡이는 프리 허그(Free hug)’인가? 분명히 발생한 사건을 기분 탓으로, 강압적 몸수색을 당하며 느꼈을 팬들의 공포와 모욕감을 없던 일로 취급하는 것은 전형적 2차 가해 수법이다. K팝이 전도유망한 미래 산업으로 추앙받으며 기획사 건물이 바벨탑처럼 높아지는 동안, 팬들에 대한 처우는 아이돌 음악이 댄스 가요의 하위 장르로 업신여김을 당하던 시절에서 근본적으로 나아지기는커녕 더 쇠퇴했다.

 

1세대 아이돌 여성 팬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저급 문화에나 빠진 계도해야 할 가부장제의 딸로서 차별받았다. 4세대 아이돌이 산업의 주류가 된 현재는 팬의 연령층이 전 세대로 넓어지고, 장르의 위상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음에도 차별당한다. 여성 팬의 낮은 인권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돌 팬사인회 속옷 검사 사건은 보안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 아니다. K팝 산업이 극도로 자본화되고 비대해진 몸집만큼 더 많은 돈에 침을 흘리며, 팬과 가수의 인간적 교류에 속하던 영역까지 무차별 유료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폐단이다.

 

비슷한 사례로, 구독형 소통 서비스 버블·위버스DM 등이 일반화되고 있지만 구독료만 챙기고 내용은 책임지지 않아 팬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대면 행사인 콘서트와 팬미팅 가격은 팬데믹 이전의 1.5배가량으로 치솟아 등골 브레이커로 불리고 있다. 팬사인회는 음반을 많이 산 순서대로 당첨 커트라인을 정하는 판촉 방식으로, 더 많은 매출을 올리려는 소속사와 아이돌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팬의 이해가 일치하는 화기애애한 고객감동잔치였다. 그러나 팬데믹으로 오프라인 행사가 열리지 못하는 동안, 팬덤 간 초동(발매 후 1주일 동안의 판매량) 경쟁 부추기기가 판촉의 중심이 되며, 국가 기밀 취급에나 어울리는 보안을 이유로 속옷 검사까지 할 정도로 삼엄하고 일방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되고 있다. K팝은 이렇게 돈을 번다. 정치적 발언권이 낮은 여성 팬들의 권리와 행복을 묵살하고, 주주들에게만 활짝 팔 벌린 채로.

 

1970년대 한 록밴드의 투어 여정을 다룬 영화 <올모스트 페이머스>(2000)에는 로큰롤은 살아가는 방식이자 생각하는 방식이다라며 음악의 가능성을 경탄하는 대목이 나온다. 장르는 다르지만, K팝 또한 팬들의 삶과 생각의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때로 폭력의 트라우마로, 때로는 모멸감으로.

최이삭 K팝 칼럼니스트 경향 2023-07-21

 

 

왜 집값 못 띄워 안달할까

지난해 가을 21년 서울살이를 마감하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스무 해 넘게 이별했던 이산가족은 비로소 완전체가 됐다. 어린이집 다니던 큰딸은 20대 후반의 어엿한 직장인이 됐다. 큰딸은 저축과 동시에 부동산 시세에 부쩍 관심이 많다.

 

2001년 내가 처음 서울살이를 시작할 때 부산의 32평 아파트를 팔면, 강남3구는 아니라도 북한산 자락에 24평 아파트를 샀다. 그러나 지금은 부산의 32평 아파트를 팔아도 서울은 고사하고 경기도에 10평 소형아파트도 못 산다. 큰딸은 그때 무리해서 인(in)서울 했으면 엄마아빠 노후는 편했을 거라 말하지만, 나는 그런 욕망에 휘둘리지 않은 게 무척 다행스럽다.

 

20년 동안 앞서거니 뒤서거니 수도권 집값만 잔뜩 밀어올린 원흉은 두 거대 보수정당이다. 그다음 원흉은 언론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집값이 떨어졌다며 규제를 왕창 풀었는데도 조선일보는 지난 220일 경제섹션 1면에 아파트만 규제 풀리니오피스텔 값은 더 떨어졌다는 기사를 썼다. 오피스텔마저도 규제를 다 풀라고 정권을 겁박하는 꼴이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오피스텔은 아파트에 비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건설재벌과 부동산 투기꾼 비위를 잘 맞추니 오래오래 사랑받는 신문이 됐다.

 

조선일보만 그런 게 아니다. 경향신문은 지난 1916면에 급락 걱정 무색하게서울 아파트값, 지난해 2.96% 떨어졌다1년 새 고작 3% 떨어진 아파트값을 걱정했다. 경향은 이 기사에서 지난해 말 서울 아파트 시가총액은 12449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3조원가량 줄었다고 야단이다. 그러나 2021년 말 서울 아파트값은 1년 전에 비해 20%가량 올랐다. 서울의 집값은 1948년 해방 이후 줄곧 이런 식이었다. 20~30년쯤 꾸준히 해마다 10~100%씩 상승하다가 어쩌다 한 번쯤 고작 2~5%쯤 떨어졌다.

 

동아일보는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에 군불을 열심히 지폈다. 동아일보는 지난 152면에 본보기집(모델하우스)에 문의전화 30% 증가둔촌주공 주변 떴다방 등장이란 머리기사를 썼다. ‘떴다방하면 그래도 80년대까진 부동산 투기의 주범이라며 몰아세우기 바빴던 우리 언론은 이제 떴다방마저 반갑다고 꼬리친다. 누구를 위한 언론인가.

 

지난 13일 정부의 부동산 규제완화 정책 발표를 받아쓴 우리 언론은 한결같이 규제 확 푼다며 반겼다. 경향신문은 141면에 분양가 상한·실거주 의무도 폐지, 규제 완화 폭탄이라고 1면 머리기사를 채웠고, 조선일보는 대출·실거주·전매 규제 확 푼다1면 머리기사를 썼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도 기승전문재인정부를 탓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 작은 제목을 문 정부 대못 뽑은 1·3대책이라고 달았다. 부동산이 급등했던 70년 넘는 세월 동안 민주당 정권은 제2공화국을 합쳐도 고작 16년에 불과하다는 팩트쯤은 잊은 지 오래다.

 

우리 언론이 왜 이다지도 부동산 경기부양에 용을 쓰는지 모르겠다. 윤석열 대통령이 확 늘리겠다고 장담했던 공공분양계획이 발표된 6월 초가 돼서야 언론의 속내가 드러났다. 동아일보는 지난 68일 경제섹션 4면에 한강뷰 서울 수방사 부지 등 공공분양올해 1만채 사전청약이란 머리기사를, 중앙일보도 같은 날 같은 지면에 뉴홈(공공분양) 사전청약 3000가구 확대한강뷰 알짜단지도 나와라는 머리기사를 각각 썼다.

 

두 신문이 한강뷰를 극찬한 서울 수방사 부지에 들어설 공공분양 아파트는 18평도 안 되는데 분양가가 9억에 육박한다. 대한민국 청년 중 이걸 선뜻 살 사람이 몇이나 될까. 분양 정보를 담은 광고인지, 홍보인지 모를 이런 기사 뒤엔 건설재벌의 신문광고가 따라붙기 마련이다.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 매일노동뉴스 2023-07-22

 

 

박근혜 유체이탈’ + MB이벤트’ = 윤석열 국정

열흘 전(715)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가 침수돼 시민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순방 중이던 윤석열 대통령은 참사 이틀 후 귀국했지만 오송에 가지 않았다. 경북 예천(17), 충남 공주(18)만 찾았다. 19일엔 부산에 기항한 미국 전략핵잠수함(SSBN) 켄터키함에 올랐다. 20~21일은 대통령실에 머물며 통상적 일정만 소화했다. 주말(22~23)엔 쉬었다.

 

지도자의 메시지는 발화동선을 통해 전달된다. 무엇을 말하는지, 어디 가는지가 관심사와 지향점을 드러낸다. 미국 외 어느 나라 정상도 승선한 적 없는 SSBN에 탈 시간과 에너지가 있었다면, 오송에 갔어야 옳다. 오송 피해자와 유족을 위로하는 일이 북한 정권 종말을 경고하는 일보다 사소한가. 윤 대통령은 오송이나 궁평이란 명칭조차 입에 올린 적이 없다.

 

윤 대통령의 오송 포비아배경을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인재(人災)’ 성격이 뚜렷한 만큼, 책임론과 거리를 두려는 의도일 터다. 윤 대통령은 귀국 후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과 피해를 입은 분들께 위로를 드린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책임’ ‘죄송’ ‘송구는 없었다. 지난해 8월 물난리 때는 그나마 정부를 대표해서 죄송한 마음이라는 표현을 썼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과에 더 인색해진다. 대통령은 무엇이 두려워 책임 회피에 이토록 진심인가.

 

물관리 업무를 제대로 하라.” 윤 대통령이 최근 한화진 환경부 장관을 질타했다. 한 장관은 명심하겠다고 했다. 책임져야 할 대통령이 책임을 떠넘겼다. 기시감(旣視感)이 든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대통령 박근혜가 삼성서울병원장을 불렀다. “확산이 꺾이려면 환자의 반이 나오는 삼성서울병원이 어떻게 안정되느냐가 관건이다.” 병원장은 너무 죄송하다며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사과해야 할 대통령이 사과받았다. 박근혜는 메르스 사태 초기 이런 발언도 했다. “여러 문제점에 대해, 어떻게 확실하게 대처 방안을 마련할지 정부가 밝혀야 한다.” 지난 17일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윤 대통령이 출국 전, 사전 대비를 철저히 하고 저지대 주민을 대피시키라는 지침을 내렸다. 정부가 그 지침을 제대로 이행했는지 점검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대통령은 국가 원수이자 정부 수반이다. 정부와 분리된 초월적 존재일 수 없다. 윤 대통령 집무실에는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라고 새겨진 명패가 놓여 있다. ‘유체이탈식 통치를 이어가려면 이 명패는 책상에서 치우기 바란다. 책임은 선택적으로 질 수 없다.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윤 대통령은 이순신 장군의 생즉사(生則死) 사즉생(死則生)”을 인용하며 연대를 강조했다. 바로 그 시간 오송과 예천에선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당장 생즉사 사즉생정신으로 시민을 살려내야 할 곳은 우크라이나가 아니었다.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2010년 천안함 침몰 후, 당시 대통령 이명박은 건군 이후 최초로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를 주재했다. 대국민 담화는 청와대가 아니라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했다. 임기 말에는 돌연 독도를 방문했다. 두달 전까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추진하다 태도를 바꿔 논란이 됐다. 신중한 고려가 필요한 외교안보 현안에서 이벤트퍼포먼스로 성과를 내보려는 전·현직 대통령의 모습이 닮았다. 윤석열 정부가 MB정부와 복붙(복사 후 붙여넣기)’ 수준이니 딱히 놀랄 일도 아니다. 외교안보정책을 주도하는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MB 청와대의 대외전략기획관을 지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 후보자도 MB 청와대 통일비서관 출신이다. 김대기 비서실장,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사실상 내정된 이동관 대외협력특보 등 MB맨을 모두 나열하기엔 지면이 비좁다. 무엇보다 MB와 윤 대통령의 공통분모는 내가 (사장을·수사를) 해봐서 아는데일 터다. 하지만 그 시대는 지났다. ‘해봐서 안다고 말했다간 꼰대 소리 들을 뿐이다.

 

경험 없이 정치에 뛰어들어 10개월 만에 대권을 거머쥐었다”(지난 6일 청년정책점검회의). 스스로 인정한 대로, 윤 대통령은 어쩌다대통령이 됐다. 주권자의 선택을 받았으니 무경험 자체를 탓할 순 없다. 취임 이후 부단히 학습하고, 전문가 조언을 경청하고, 시민·야당·언론과 소통하면 달라질 수 있었다. 그러나 학습·경청·소통 대신 실패한 전직 대통령들을 레퍼런스로 삼은 것 같다. 굳이 MB·박근혜를 본받아야겠다면 배울 점을 알려드리겠다. MB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 때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아침이슬>을 들었다. 박근혜는 메르스 사태 당시 예정돼 있던 미국 방문을 미뤘다. ‘듣는 척은 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켄터키함을 타러 가며, 리투아니아 명품 쇼핑 논란에 휩싸인 김건희 여사를 동반했다. 김 여사는 핵잠수함이 아니라 수해 현장에 갔어야 한다. 김 여사의 켄터키함 승선은 국민이 실망하든 분노하든 듣는 척도 않겠다는 대통령 부부의 선언이다. 대선 후보 시절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권을 향해 일갈했다. “대통령 임기 5년이 뭐가 대단하다고. 너무 겁이 없어요”. 윤 대통령 임기는? 39개월여 남았다.

김민아 칼럼니스트 경향 : 2023.07.24

 

 

국민노후 저버린 윤석열 정부의 이권 카르텔

지난 19일 보건복지부 등이 주최한 신노년층을 위한 요양시설 서비스 활성화 방안공청회가 열렸다. 그동안 토지와 건물을 사업자가 직접 소유하거나 공공임차해야 한다는 현행 규정을 고쳐 민간 임차로도 노인요양시설 설치를 단계적으로 허용하겠다는 게 골자였다. 지난 5월 참여연대의 질의에 복지부는 정해진 바 없다고 답변했지만, 출입기자단에조차 공지하지 않은 채 공청회 개최를 느닷없이 추진했다.

 

공청회 발표자는 구매력이 있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신노년층이 되고 있으니 이들의 다양한 수요와 선택권 보장을 위해 임차 허용을 통한 시설 공급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본인 선택으로 시설에 입소하는 비율은 채 5%도 되지 않는다. 신노년층의 선택권 보장을 위해 시설 활성화를 하겠다는 것은 그래서 어불성설이다. 대부분 노인들이 바라는 것은 시설이 아닌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이다. 신노년층을 위한다면 활성화해야 할 것은 시설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사회에서의 돌봄, 윤석열 정부에서도 국정과제로 밝힌 커뮤니티 케어.

 

우리나라의 노인들은 불필요하게 시설로 보내지고 있다. 요양시설 대신 보내지는 요양병원 병상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노인인구 평균의 10배 수준으로, 기형적으로 확대된 상태다. 이 때문에 성인 돌봄 지출 규모도 이미 OECD 회원국 평균 수준(GDP 대비 1.5%)에 육박하고 있다. 돈은 선진국 못지않게 나가고 있지만 그만큼 돌봄혜택을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과도하게 팽창된 시설로 재정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노인요양시설의 임차를 허용하는 것은 재앙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임차만으로 시설 개소가 가능하니 무분별한 설치와 폐업으로 입소한 노인과 가족의 혼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 관리감독을 강화해 제재를 받는다 한들 다른 곳에 임차해 다시 개소하면 그만이다. 이렇게 시설이 활성화되면 장기요양보험 재정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자기 집에서 살면서 필요한 돌봄을 받는 것보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비용이 들어가는 시설은 훨씬 재정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령화 문제를 안고 있는 대부분 국가들은 시설이 아닌 지역에서 나이 들도록 하는 것을 정책적으로 지향하고 있다. 그것이 국민들 입장에서도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재정적으로도 지속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진보, 보수를 떠나 학계에서도 합의에 가까운 사항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갑자기 시설 활성화를 들고 나왔을까? 유일하게 찾을 수 있는 이유는 노인요양시설 임차 허용이 새로운 시장을 노리는 국내 보험업계의 숙원사업이라는 점뿐이다. 이는 대규모 자본을 앞세운 보업업계가 위험부담 없이 요양시설에 손쉽게 진출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과도한 특혜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정부가 국정과제를 역행하고, 신노년층은 물론 모두의 노후를 위협하며 국가재정에 악영향을 끼치면서까지 특정 업계에 특혜를 주는 것에 불과한 정책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연일 이권 카르텔을 척결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국민과 국가를 저버리고 이권 카르텔을 만들고 있는 것은 정작 본인들이 아닌지 묻고 싶다.

김보영 영남대 휴먼서비스학과 교수 경향 : 2023.07.24.

 

 

누가 교육을 죽이는가

서울 서초동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충격적 사건이 일어났다. 부임 2년차의 1학년 담임교사였다고 한다. 그동안 악성 학부모 민원에 시달려왔다는 보도는 많은 이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여론이 거세지자 우파 언론과 인사들은 연일 과도한 학생인권이 교권을 실추시킨 탓이라며 학생인권 때리기를 하고 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지난 21일 한국교총 주최의 간담회에서 학생의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우선시되면서 교사들의 교권은 땅에 떨어지고 교실현장은 붕괴되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 대통령실에서는 이 사건을 좌파 교육감들이 주도해서 만든 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인권만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빚어진 교육파탄으로 보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모두 더 힘차게 학생인권을 때리라는 신호다.

 

이렇게 학생인권과 교권을 대립시키며 교사·학생·학부모를 갈라치기 하는 것은 비겁하고도 악의적이다. 책임을 문제 학생과 학부모에게 떠넘기고, 현직 교사가 사망했는데도 그 의미를 헤아리기는커녕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는 모습이다. 역사적으로 권리의 증진은 늘 권리 없는 자들의 권리, 권리를 박탈당하거나 배제된 자들의 목소리로 요구됐으며, 특권을 해체하고 보다 보편적인 권리를 수립하고 확장하는 형태로 이루어져왔다. 여성의 권리, 흑인의 권리, 노동자의 권리가 그러했다.

 

학생인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과정에서 등장했던 그것을 가로막는 익숙한 문법도 알고 있다. 여성의 권리 증진은 남성의 권리를 축소하며, 흑인의 권리는 백인의 권리를 박탈하고, 이주노동자의 권리는 국내 노동자의 권리를 약화한다는 논리 같은 것 말이다. 노인의 권리가 청년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 장애인의 권리 보장이 비장애인 시민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학생인권이 교권을 침식한다는 주장도 이와 다르지 않다. 보편적 권리로서 인권은 사적 권리들 간의 절충된 총합이 아니다.

 

배타적 소유권에 기반한 사적 권리의 개념은 사회적 권력과 지배 관계를 은폐하는 데 유용하다. 강자의 권력과 약자의 권리를 분별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와 강자 간의 권력 관계가 형성된 역사적·정치적 맥락을 보지 않으면, 노동자의 권리와 사용자의 권리가 마치 저울 위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것처럼 표상된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사회적 권력 관계도 마찬가지다.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교사와 학생, 학부모 간의 권력관계는 어떠한가. 서초동에서는 통상 학부모의 사회적 권력이 더 크겠으나, 가난한 지역이거나 지역 농촌 학교라면 대개 교사의 권력이 더 클 것이다. 교사 내부 서열에서 힘 있는 교사는 자기보다 약한 교사에게 힘든 일과 책임을 떠넘기고, 관리자와 교육당국은 회피하고 방관한다. ‘서초동, 나이 어린 2년차 신참 여교사, 1학년 담임이라는 키워드로 조합되는 삼각형은 바로 이런 권력의 구조를 설명한다.

 

역사적·사회적으로 교사·학생·학부모 관계는 어떻게 변화되었나. 지난 30년간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 속에서 특권층의 재력과 권력의 과시는 공공연해졌고 이에 대한 민중적 사회윤리의 제동력은 약화되었다. 신자유주의 교육 구조조정은 경쟁과 불평등을 심화시키면서 학교를 시장화하고 교육을 상품화했다. 그 과정에서 학교는 교육서비스 기관이 되고, 교사는 서비스 제공자가 되었으며, 학생과 학부모는 교육소비자로 차츰 변모했다. ‘갑질 학부모갑질 소비자를 통해서 탄생할 수 있었다. 폐기해야 할 것은 평등하고 민주적인 학교를 만들기 위해 투쟁해온 학생인권운동의 결과물이 아니라 학교를 약육강식의 아수라장으로 만든 신자유주의 교육이다.

 

오늘의 교육에서 주최한 교권 토론회에서 들었던 한 교사의 말을 나는 오래 되새기고 있다. 정말로 교사가 처한 현실을 걱정한다면, 우리의 질문은 어떻게 교권을 강화할 것인가로 바로 가기 전에 지금 학교에서 누가 취약한 존재가 되는가라는 것을 먼저 물어야 한다고. 나이, 성별, 피부색, 외모, 장애, 빈부를 비롯해 주류 다수가 설정한 정상 기준 바깥에 존재하는 비정상으로 규정된 소수자들은 차별과 혐오가 강화될 때 특히 취약해진다. 이는 교사만 아니라 학생도 그러하고 학교만이 아니라 다른 노동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질문을 바꾸면 우리는 문제에 다르게 접근할 수 있다.

 

지금 학교에서 증대하는 차별과 혐오, 폭력의 강도는 무엇 때문인가. 이 과정에서 어떤 존재들이 취약해지는가. 그들이 위험해지지 않도록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지금이야말로 교사와 시민, 교육운동이 앞장서 학생인권 강화를 더 주장하고 싸워야 할 때다.

채효정 오늘의 교육편집위원장 경향 : 2023.07.24.

 

 

윤 대통령 왕 놀음그 커튼 뒤를 보라

요즘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말 한마디로 국가의 큰 결정이 내려지고 정부, 여당, 언론이 어명을 받드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대한민국이 도로 대한제국이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현실을 반영하듯이 사람들의 관심과 비판적 담론들 역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대통령 측근들에게 집중된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우리는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

대통령제의 폐해, 특히 윤 대통령의 일방적인 불통 정치의 문제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심각하다. 그런데 그는 정말로 전능한 왕인가? 아니면 지배계급의 거대한 카르텔이 한국 사회를 한층 더 깊이 장악하는 반동의 역사에서 왕의 배역을 맡은 꼭두각시인가? 우리는 윤석열 시대에 정치의 무대 뒤에서 어떤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윤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그 어떤 대통령보다 독점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정부 정책이 대통령 맘대로 좌우되는 자의적 지배가 만연해 있다. 그런데 유념할 점은 그처럼 엄청난 힘을 휘두르는 대통령이 일관된 철학과 시대진단, 국가비전을 결여한 자라는 사실이다. 그는 보수주의자도, 자유주의자도, 신자유주의자도 아니다. 그는 무슨 주의자로 부를 만한 정신적 깊이가 없다.

 

대통령의 사고는 한국 사회 특권층의 우월의식, 극우들의 세계관, 검사 정체성, 시장만능주의의 어휘들이 무질서하게 뒤섞인 것 같다. 대통령이 그것을 즉흥적으로 내뱉으면 여당과 대통령실, 정부 부처와 검찰·감사원 등 권력 수단이 된 국가기관들이 집행한다. 이런 식이다 보니 대통령의 힘은 사회를 체계적으로 바꾼다기보다, 술 취한 듯 비틀거리게 한다. 무능한 왕의 폭정 같은 것이다.

 

그래서 윤 정부에서 어떤 일관된 노선을 찾기 어렵다. 복지서비스 시장화, 실업급여 축소 주장 등 신자유주의적측면이 있고, 그렇게 규정하는 데 반대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노조 압수수색으로 임금격차 해소하고, 강사 세무조사로 사교육 없애고, 시민단체 보조금 끊어서 기후재난 해결하고, 반국가세력 척결해서 안보 지킨다는 식의 정치 행태는 전통적인 보수정치와 결이 다르다.

 

이처럼 이념도 정책도 없이, 오직 권력을 위해 대중의 불안과 증오를 요리하는 기술이 발달하는 것은 오늘날 우익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상황이 길어지면 종국에는 권위주의 체제로 간다는 사실이다. 이미 공론장의 논쟁, 당사자들의 참여, 협상과 타협이라는 정치 과정은 사라졌고, 그 자리엔 국가가 일방적으로 국민의 삶을 결정하는 구조가 들어섰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억과 감각을 잃어가고 있다. 그것이 진정 무서운 것이다.

 

나아가 권위주의 정치는 약탈적 자본주의를 강화하는 환경이 된다. 한국 사회 특권집단은 무능한 대통령의 과도한 힘을 우려하면서도 자신들의 계급이익을 위해 이용한다. 노동자와 시민의 기본권과 주체성을 이토록 철저히 억압해주는 정권을 왜 마다하겠는가. 권력과 특권의 이 같은 공생은 한국 자본주의를 고도화하는 대신, 야만화한다. 힘없고 돈 없는 국민에 대한 숨김없는 경멸 위에 그들의 궁전이 세워진다. 한국의 계급지배가 이만큼 적나라하고 파렴치했던 적이 있던가.

 

한국 사회의 야만화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극우의 주류화, 주류의 극우화라는 이중적 과정이 계속된다면 한국 사회 지배양식은 더욱 폭력적으로 될지 모른다. 극우 인사들이 대거 공공기관장에 임명되어 국가조직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 과정의 결과가 무엇일지 진실로 우려스럽다. 향후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이 조금이라도 커지면, 사회 곳곳에 모세혈관처럼 퍼져 있는 극우의 참호들에서 개혁세력을 타도하려는 강력한 힘들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통령의 왕놀이가 허락된 무대의 커튼 뒤에선 국가, 자본주의, 시민사회의 거대한 구조적 변화가 진행 중이다. 이를 막을 수 있겠는가. 냉정히 현실을 진단한다면 지금 야당에도, 시민사회에도, 사회 어디에도 이 거센 퇴행의 물줄기를 거슬러 역사를 앞으로 밀고 갈 주체와 역량이 보이지 않는다. 희망 뒤에 겪은 좌절과 배신이 너무 두텁게 쌓였기 때문일까.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일찍이 테오도어 아도르노와 에리히 프롬이 통찰했듯이, 사회의 무기력과 순응주의는 권위주의 지배를 공고히 하고 영속시키는 사회적 토양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세상이 오지 않으려면 우리는 살아 있어야 한다. 사회의 생기가 되살아나는 장소는 멀리 있지 않다. 우리의 공동체와 연대의 끈을 지키는 모든 곳이 곧 다른 미래의 시작이다.

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 2023.07.24.

 

 

윤석열·김건희를 위해 몸 바칠 사람은 없다

1) 2022315일 풍수 전문가이자 관상가인 백재권 사이버한국외대 겸임교수가 김용현 경호처장과 청와대 용산 이전 태스크포스팀장인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과 함께 육군참모총장 공관 답사

2) 2022125일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이 김어준의 뉴스공장’(TBS)에 출연해 국방부 고위관계자로부터 지난 3월 육군참모총장 공관과 서울사무소에 천공이 다녀갔고 공관 관리관인 부사관이 안내했다는 증언을 들었다고 말함(다음날, 대통령실은 김종대 전 의원과 김어준씨를 경찰에 고발)

 

3) 202322<뉴스토마토><한국일보>가 천공 방문 의혹을 전한 인사가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이라고 보도(다음날, 대통령실은 부 전 대변인과 <뉴스토마토>, <한국일보> 기자들을 경찰에 고발)

4) 2023410일 경찰, “육참총장 공관 출입 시시티브이(CCTV) 영상을 다 살펴봤는데 천공이 나오는 장면은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기자간담회)

5) 2023721<한국방송>(KBS), “육참총장 공관을 김용현 처장, 윤한홍 의원과 함께 방문한 사람은 백재권 사이버한국외대 겸임교수라고 보도

 

수면 아래로 잠복했던 천공의 육참총장 공관 방문의혹이 다시 불거졌다. 달라진 건 방문자가 역술인 천공이 아니라, 풍수 전문가 백재권 교수라는 점이다. 백 교수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청와대 이전 작업에도 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천공 의혹 제기 때는 곧바로 고발로 응수하던 대통령실이 이번엔 공식 반응을 내지 않는다. 그때와 지금, 관계자들 반응이다.

 

#대통령실

경호처장은 천공에 대해 일면식이 전혀 없고, 그러니 함께 방문할 일 또한 더더욱 없다.”(2022126, 고위관계자)

천공이 한남동 공관을 둘러본 사실이 전혀 없음을 거듭 밝힌다.”(202322, 경호처)

천공이 이슈가 됐기 때문에 그 부분만 (아니라고) 얘기를 하면 됐다.”(2023723, 관계자)

 

#윤한홍 의원

천공이 누구인지 모른다. 허위사실을 누군가가 터뜨려놓고 그걸 국회에 와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국회) 밖에 나가서 이야기하라. 당당하게 책임질 수 있지 않느냐.”(2023220, 국회 정무위원회)

 

취재에 응하지 않는다.”(2023721, 언론의 확인 요청에)

민간인 풍수 전문가를 대동하고 육참총장 공관을 방문했던 김용현 경호처장과 윤한홍 의원은 역술인 천공이 방문했다는 말에 사실이 아니다. 나는 천공을 모른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이런 경우, ‘그때 방문자는 천공이 아니라, 백재권 교수였다. 백 교수가 방문한 이유는~’이라고 말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김 처장과 윤 의원은 오로지 천공과 같이 가지 않았다고만 말했다. 마치 자신들 단 둘만 간 것처럼. 나중에 문제가 될 때 법적으론거짓이 아닐진 모르나, 사실상 국민을 속인 것이다.

 

공관 이전과 관련해 민간 전문가의 의견을 물을 수 있다. 다만, 그것이 길흉화복을 따지는 풍수라는 점은 민망하다. 대통령 부인이 궁합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는데, 관저 옮길 때 풍수 보는 게 중요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이렇게 몰래 해야 하는가. 또 백 교수의 육참총장 공관 출입기록은 어떻게 되는가. 박근혜 정부에서 최순실(최서원)이 청와대를 수시로 들락날락거렸지만, 방문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나중에 다 드러났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방심하지 말아야 될 게 하나 있다. 대통령을 위해 내 한몸 희생할 공직자는 없다’. 모든 공직자들은 탄핵 여파를 겪거나 봤다. 대통령 충암고 1년 선배가 총괄하는 경호처는 315일 육참총장 공관 출입 시시티브이 기록 하드디스크를 경찰에 넘겨줬다. 경찰이 못 찾거나 덮어주길 바랐을까. 어쨌든 경호처는 기록을 은폐하지 않았다. 나중에 이 문제로 법적 책임을 묻긴 쉽지 않다.

 

출입 영상에서 (천공 아닌) 백 교수의 동행을 확인한 경찰은 지난 4월 기자간담회에서 천공이 나오는 장면은 전혀 없었다고 얘기했다. 액면상 거짓말은 아니라고 우길지 모르겠으나, 다른 민간인의 존재에 대해선 왜 아무 말 안 했을까. 그리고 지금껏 최종 발표를 안 했다. 윤 대통령을 위한다면 방문기록 확인했더니, 민간인 방문자는 없었다고 종결지어야 했다. 그렇게 안 했다. 그냥 몇달 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케이비에스> 보도가 나왔다. 그제서야 경찰은 방문자가 백 교수임을 인정했다. 보도가 얼마나 고마웠을까. 그러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수사를 다 했다고 말했다. 최소한 나중에 경찰이 수사를 덮었다거나, 허위로 꾸몄다거나 하는 식의 추궁은 받지 않게 됐다. 그런데 누가 백 교수를 보냈는지도 조사한 건가. 민간인이 출입통제 구역인 관저 후보지에 들어간 위법 여부에는 군에서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군은 또 뭐라고 할까.

 

윤석열·김건희를 위해 희생할 사람은 없다.

권태호 논설위원실장 한겨레 : 2023.07.24.

 

 

종전선언과 반국가세력

지난 727일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멈춰 선 지 7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1953년 이날 체결된 정전협정 460항은 쌍방의 관계 정부에 정전협정 효력 발생 후 3개월 내에 정치회담을 소집하여 외국 군대의 철수와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 문제를 협의할 것을 건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건의에도 불구하고 정치회담은 실패로 귀결됐고 공식적으로 한반도의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아마도 동족 간 분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분쟁일 것이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정전협정 70주년을 보는 시각도 다양하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70년 된 전쟁을 끝내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상식이자 역사의 소명이라 외치면서 종전선언 채택을 통한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에서도 종전 70주년을 맞아 한국전쟁의 공식 종식을 촉구하는 한반도평화법안이 미 하원에서 발의됐다. 법안을 발의한 브래드 셔먼 민주당 하원의원과 일부 재미동포 인사들은 최근 종전선언을 명기한 2018년 판문점 선언을 지지하는 모임을 개최하고 남북관계 개선 및 군사적 긴장 완화,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관계 개선 등을 주장하고 나섰다.

 

반면 한국 정부는 정전협정 70주년보다 한-미 동맹 70주년에 역점을 두고 있다. 핵을 가진 북한과의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은 어불성설이며 대북 군사적 억제와 한-미 동맹 강화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특히 종전선언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인식은 다분히 적대적이다. 111일 외교·국방부 연두 업무보고 머리발언에서 윤 대통령은 무슨 종전선언이네 하는 상대방 선의에 의한 그런 평화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가짜 평화라고 단정한 바 있고, 628일 자유총연맹 창립 기념행사에서는 반국가세력들은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해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의 이런 비판에는 두 가지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하나는 객관적 사실에 관한 것이다. 200710·4 정상선언에 뒤이은 20184·27 판문점 선언에는, 그해 안으로 종전선언을 채택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이를 위해 3자 또는 4자 회담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종전선언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어나가는 주요한 입구 역할을 하는 장치라는 남북 기본합의서 이래의 기본 전제가 깔린 문구다.

 

2021년 중반 문재인 정부와 바이든 행정부가 합의했던 종전선언 초안의 내용을 봐도 이러한 성격은 분명해진다. 종전선언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끝났다는 정치적·상징적 선언이며 이를 계기로 교착상태의 비핵화 협상을 추동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또한 종전선언 채택과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한반도에 완전한 평화체제가 정착할 때까지 기존의 정전체제와 유엔군사령부를 유지한다는 게 당시 초안의 뼈대인 것으로 안다. 그리고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일방적으로 읍소한 것이 아니고 비핵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상호주의 원칙에 의거해 대북제재를 보다 탄력적으로 운용하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이를 가짜 평화운운하는 것은 사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한 결과로밖에 볼 수 없다.

 

다른 하나는 윤 대통령 발언에 담긴 이념적 흑백논리다. 대통령 말대로라면 종전선언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이뤄내고자 하는 이들은 자유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는 반국가세력이 되는 셈이다. 아무리 대한민국의 대통령제가 승자독식의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고는 해도, 상당한 수의 유권자와 정치세력이 지지했고 전임 정부가 채택했던 정책 방향을 체제의 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본질에서 대통령의 권한은 국민에 의해 위임된 것이고 그에게는 국민적 합의를 통해 외교·안보 정책을 수립, 집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국내 지지세력 결집을 위한 도구로 적대적 이분법을 꺼내 들고 상대를 적대화하는 일은 민주적 숙의 시스템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국가안보 자체를 해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지난 정부에 대한 비판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은 역사적 맥락과 사실관계에 근거해야 한다. 그래야 실사구시의 대승적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섣부른 반국가세력언급이 과연 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안보 정책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지지세력에 보상을 주고, 중도세력의 지지를 확장하는 동시에, 적대세력을 최소화하는 것은 성공적인 민주정치 리더십의 필수적 자질이다. 윤석열 정부의 성공 역시 이에 달려 있을 것이다.

문정인 ㅣ연세대 명예교수 한겨레 : 2023.07.30

 

 

학생인권 탓하다 개혁의 적기 놓친다

초등교사가 교내에서 목숨을 끊은 일이 발생하고 보름이 지났지만, 이 비극을 둘러싼 셈법이 제각각이다. 국회는 법률정합성에 위배되는 법안을 쏟아내고 있고, 교원을 대표한다는 단체들은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는 기회로 삼는다. 교육감은 민원인의 학교 출입을 제한하고 위반 시 형사 고발하겠다는 조례를 입법예고했다. 대통령실 누군가가 학생인권조례를 과거 종북주사파가 추진했던 대한민국 붕괴 시나리오의 일환이라 했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며칠 후 대통령은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자치조례를 개정하라 했다.

 

교권을 강화하기 위해 학생인권조례를 약화시켜야 한다는 납작한 논리는 오히려 제대로 된 교육개혁에 걸림돌이 된다. 교권과 학생인권은 함께 존중을 전제로 하기에 서로 반대말이 아니고, 학생인권조례는 규범이라기보다는 선언에 가깝다. 학생인권조례와 관계없이 교육을 빙자한 폭언이나 억압이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 허용될 수 없음은 이미 상식이 되었다. 정작 악성 민원인은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줄도 모른 채 기분이 상했다고 민원을 넣고 있다. 따라서 학생인권조례를 손보면 교권이 저절로 올라갈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은 진단도 처방도 잘못되었다.

 

실제로 교육 현장은 무엇 때문에 신음하고 있는가. 사건 발생 며칠 후 대한민국 모든 학교가 무너지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한 초등학교 선생님의 글이 큰 주목을 받았다. 세월호 사건 이후 급조된 생존수영 체험학습의 실무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 한 조각의 업무 안에 학교 현장이 여실히 녹아 있다. 12일의 체험학습을 위해 선생님 홀로 50개도 넘는 공문을 작성해 발송하며, 소방과 식수 점검까지 도맡는 그 버거운 현장 말이다.

 

최근 몇년 사이에 교직에 대한 직업 만족도가 수직 하향한 원인은 학생들의 인권이 갑자기 기고만장해진 탓이 아니다. 학교에서 생기는 여러 문제를 교사들의 개인역량으로 틀어막으며 무한개인책임으로 돌리는 불합리한 교육행정방식 때문이다.

 

외부로 손가락을 돌리기 전에, 왜 그 높은 경쟁을 뚫은 신입교원이 너도나도 교직을 떠나는지 내부를 점검해야 마땅하다. 어디에서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가 막혀 있고, 어떤 의사결정구조가 업무폭탄을 야기하는지. 큰 재량과 권한을 가지고 많은 월급을 받는 관리자는 그 과정에서 무슨 역할을 하고 있고, 역할 수행에 실패할 때 과연 어떤 책임을 지는지. 불합리한 업무분장에 허우적대다가 서로를 미워하게 되는 전근대적 조직문화가 있지는 않은지. 이런 것을 찾아 하나씩 고쳐나가야 비로소 바깥의 원인들을 분석하는 의미가 있다.

 

단적으로, 학교 내 아동학대 신고의무를 강화한다고 만들어진 현행 교육부 지침은 교사에 대한 단순 민원에 불과한 일조차도 교장이 경찰에 해당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교사는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의 직장상사가 신고한 아동학대 조사에 나가야 하지만, 갈등을 조정할 책임이 있는 관리자는 신고했으니 이미 할 일을 다 했다며 빠져나가는 구조이다. 이런 부조리를 개선하지 못한 채 자꾸 바깥으로 화살을 돌리는 것은 목적이 있는 왜곡으로 비칠 수 있다.

 

세상 모든 학교에는 규칙을 무시하는 학생과 이기적인 보호자가 존재한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학교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건강한 시스템이 중요한 이유이다. 학교는 수많은 아동이 모여 발달하는 특수한 공동체이기에 경찰이나 법원이 학교로 쉽게 파고드는 방식은 구성원에게 큰 상처를 남기기 쉽다. 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처분을 기재하도록 하면서 이미 소송전이 난무하고 있는데, ‘반항하는 아이라는 낙인마저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한다면 학교 안의 문제는 소송 전면전에 직면하게 된다. 판단과 응징이 아닌 교육 현장의 공동체적 선()을 위해, 내부부터 바뀌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다.

김예원 변호사·장애인권법센터 경향 : 2023.07.31.

 

 

오송 참사, 학교 비극 그리고 각자도생

올여름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감정 키워드는 슬픔과 분노다. 충북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 이은 서이초 교사의 죽음은 슬픔과 더불어 사회적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오송 참사의 경우 모든 당국이 짜기라도 한 듯 수많은 위험 신호를 무시했고, 그 결과 시민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초등 교사의 죽음은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키듯 학교 담장을 넘어 전국에서 파장이 일고 있다. 반면 사회적 비극과 참사를 지켜보는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의 마음가짐은 일반 시민들과는 사뭇 다른 듯하다.

 

오송 참사 발생 후 김영환 충북지사는 합동분향소를 찾아 유족들에게 사과하는 자리에서 내가 현장에 갔어도 상황이 바뀔 것은 없었다. 골든타임이 짧은 상황에서는 어떤 조치도 생명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기시감이 든다. 현 정권에서 유독 자주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앞서 국정 최고책임자인 윤석열 대통령도 국내 폭우 피해가 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일정을 강행하면서 내가 지금 한국에 가봐야 상황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지난해 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라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핼러윈 데이는 축제가 아닌 하나의 현상이라는 박희영 서울 용산구청장의 발언과도 일맥상통한다.

 

재난 발생을 대하는 현 정부의 태도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순식간에 벌어진 자연재해라서 정부 책임이 아니며, 문제의 원인과 배경은 모두 전 정권에서 비롯됐고, 그렇기에 사과는 필요없다는 것이다. 이런 탓인지 행정부는 물론 지자체장들의 설화도 여기저기서 터지지만 제대로 된 반성과 사과는 잘 보이지 않는다. 재난과 비극의 원인과 배경이 무엇이든 이를 정치적 기회로 삼는 것도 특징이다.

 

윤 대통령은 수해 복구를 논의하는 국무회의에서 이권 카르텔에 대한 보조금을 전부 폐지하고, 그 재원을 수해 복구와 피해 보전에 투입하겠다고 말했다. 이권 카르텔이 진보 시민단체들에 대한 보조금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수해 복구와 민간단체 보조금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의아하면서도 신박할따름이다. 다만 가뜩이나 직격탄을 맞고 있는 보조금 옥죄기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예측은 어렵지 않다.

 

서울 서이초 교사의 비극과 관련해 윤 대통령은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자치단체 조례에 대해 개정을 추진하라고 말했다. 학생인권조례를 교권 하락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자 여당·장관·보수 교육감들도 연일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서울·인천·광주·전북·충남·제주 등 7곳에서 시행 중이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종교·성별·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사생활 보장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교권 침해 증가가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라면 해당 조례가 없고, 보수교육감이 줄곧 선출된 지역에서도 교권 침해 사건이 속출하는 현상을 설명할 수가 없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원래 보수 일각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했던 가장 큰 이유는 젠더와 관련된 조항들 때문이었다. ‘진보 교육감 주도로 만들어 놨다니 그냥 뭔가 마음에 안 든다라고 하는 게 더 솔직하고 정확하다라고 일침했듯이 정부는 연관성이 부족한 논리를 들어 평소 눈엣가시였던 학생인권조례를 이참에 없애기로 작정한 것 같다.

 

재난과 사회적 비극에 대해 반성과 실효성 있는 대책마련보다 갈라치기와 정쟁화가 계속되면서 정부에 대한 기대와 믿음은 사그라들고 있다. 국정 2년차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 중반에서 답보 상태에 있는 것은 이에 대한 방증이다. 협치와 연대의 정치가 사라지고, 잇따른 재난 속에서 정부가 적극 나서지 않는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는 빠르게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다. 각자도생의 끝에는 윤 대통령이 취임 당시 약속했던 화합과 통합이 아닌 분열과 사회적 갈등만이 남을 뿐이다.

 

<광기의 리더십>의 저자 나시르 가에미는 좋은 리더십은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차원에서 현 정부의 리더십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모든 나쁜 사건들의 발생을 우연이라고 여긴다면 사전에 대비하고 계획을 짜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부의 존재 이유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문주영 전국사회부장 경향 : 2023.07.31.

 

 

괴담이라는 괴담과 과학 보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한국 정부가 나서서 과학적 사실을 강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현명한 국민은 괴담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대학진학률이 약 8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인, 지성적 한국인들의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괴담타파론이 먹히지 않는 이유는 그것에서 과학이 아닌 정파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던 여당이 정부의 대일 데탕트 외교 후 갑자기 바뀐 태도가 그러하다. 횟집 수족관 물을 마시는 등 당사국도 안 하는 일을 앞서서 하는 선전적 행위도 미심쩍다. 한국 언론들은 원전 운영에서 불가피하게 나온 것이 아닌, 사고 폐기물 방출은 용인할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런데 일부 언론이 우리도 원전 운영 폐기물을 흘리고 있는데 일본 오염수만 문제 삼느냐?”는 식으로 돌변한 것이 의아하다. 지상에 저장해 삼중수소의 자연감소를 기다리라던 언론이 말을 바꿔 방류가 몸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며 훈계하는 것도 미덥지 않다. 우려는 괴담이 아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나폴레옹이 첩자를 만들어 내 처단하듯, 없는 괴담을 있는 것처럼 선전하는 것이 바로 괴담이다. 반대 논의는 위축시키고 지지층만 결집하려는 전략이다.

 

나는 악영향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과학자들의 예측치를 믿는다. 그러나 인류가 처음으로 원전 사고 오염수를 방류하는 일을 놓고 과학 시뮬레이션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도쿄전력이 스스로 한 시료 검사와 자료를 진실이라고 치는 전제라면 더욱 그렇다. 일반적으로 과학적 탐구는 전제를 용인하지만, 현실 적용은 전제 문제를 해결한 뒤여야 한다. 우리는 불안한 마음으로 백신을 맞으며 코로나19 사태를 이겨냈다. 세렝게티 초원에서 풀을 찾아 이동하는 누 떼처럼 악어가 기다리는 강에 뛰어들었다. 그 과정에서 안타까운 희생을 감수했다. 그러나 이번엔 남의 나라 오염수 투기를 감내해야 할 절박성이 없다.

 

과학 저널리즘 연구자들은 언론이 과학 자체의 미시적 관점만이 아닌 맥락도 보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학적 이슈에는 윤리적, 경제적, 정치적, 역사적 맥락이 함께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과학적 증거는 사안의 일부일 뿐이므로 팩트 체크에 의존하는 것만으로는 진실성을 판단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예를 들어, “일본이 자국 영토에 처리장을 만들지 않고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는 것이 정당한가?” 등 윤리적, 정치적 맥락에 대한 고려 없는 과학적 사실 공방은 진실을 호도할 수 있다.

 

한국 언론의 정파적 프레임또한 사회적 숙의를 제한한다. 고려대 민영 교수와 장민영 석사가 코로나19가 창궐하던 시기에 백신에 관한 신문 사설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정치인을 중심으로 한 정파적 프레임이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 건도 정치 공방만 중계하는 기사가 넘친다.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논의할수록 의견이 모이지 않고 오히려 더 극단화하는 현상을 집단 양극화의 법칙이라고 불렀다. 원래 의견보다 극단적으로 변하는 것은 강한 의견을 내는 사람들이 기준점을 제시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따라가면서 의견이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현 이슈에도 언론이 정파적 발언들을 옮기면서 양극화를 부추긴다.

 

지난해 작고한 과학 저널리즘의 거두 샤론 던우디 교수는 사람들이 복잡한 과학적 이슈에 대한 태도를 정하는 데 자신들이 주로 신뢰하는 언론사에 기댄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에서는 공영방송을 포함해 시민 대다수가 함께 신뢰하는 언론이 없다. 정파적으로 나뉜 지형에서 지지자들만의 신뢰를 받으며 사회통합이 아닌 적대와 반목을 강화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괴담 방지책이 아닌 신뢰 언론 조성책이 필요한 이유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경향 : 2023.07.31.

 

 

나는 안 아플 줄 알았다

나는 안 아플 줄 알았다. 나이야 해마다 주워 먹겠지만 하루 세 번 양치질 잘하고, 미세먼지 심한 날 K-94 마스크 잘 쓰면 장수까진 아니어도 무병은 무난할 줄 알았다.

 

반에선 적수가 없어 옆 반까지 팔씨름 원정을 갔었고, 소풍가서 닭싸움을 1등 해서 탄 공책을 다음 소풍 때까지 썼다. 일제 때 징용 끌려갔다가 다친 다리 때문에 아버지가 아들을 제치고 유일하게 기집아를 찾는 순간이 억센 아귀힘으로 다리를 주무를 때였다. 열 추럭을 줘도 안 바꿀 아들을 앉히곤 세상 흡족해 하던 아부지의 무릎은, 내가 수제비 반죽처럼 주무르고 나면 아들이 담싹 올라 앉았다. 나는 한번도 앉아보지 못했던 아부지의 무릎. 그 시절부터 병 뚜껑하나 비틀지 못하는 현재까지 50년의 세월을 난 징검다리 하나 없이 건너뛰어 사대천왕처럼 기억을 지키고 있다.

 

50년도 넘은 기억들로 난 내 건강에 대해 자신하고 있었다. 50년 동안 어찌 살았는지는 까맣게 잊은 채.

 

수술을 하고 암병동에 들어서니 고통을 먼저 겪어 하늘처럼 우러러 뵈는 선배들이 묻는다.

암 소리 듣고 누구 얼굴이 젤로 먼저 생각나대요?”

암환자들은 설명이 없어도 다 알아듣는 질문이다.

 

본데없는 메느리 가르친다꼬 임신 8개월의 메느리를 무릎 꿇려놓고 멫시간을 갈치던 시아배. 메느리가 하는 일은 씨레기 봉다리 묶는 일도 눈꼴시러바 하던 시어매.”

집에만 오면 빨래집게 하나라도 쎄비갈라꼬 눈을 뽈씨는 시누.”

술먹으면 개그튼 남핀놈.”

취직도 몬하고 주식한다꼬 돈이란 돈은 다 까쳐먹은 큰 아들.”

 

라이프 스토리처럼 이어지던 발암요인들을 들으며 난 크레인이 젤 먼저 떠올랐다. 하루에도 사계절이 공존하던 곳. 그런데도 선풍기도, 난로도 없던 곳. 겨울엔 시루떡이 벽돌처럼 얼고, 널어놓은 양말이 동태가 된 채 며칠이 가도 녹지 않던 곳. 장마철엔 담요가 썩던 곳. 호시탐탐 침탈을 노리던 용역 깡패들 탓에 10분을 이어 잘 수 없던 곳. 내려와서라도 몸을 좀 녹일 수 있었더라면 안 아팠을까. 감빵엔 전부 변호사고 판사이듯이 병동엔 전부 의사다. 그들의 말대로 지가 산 세월이 벵을 맹기는기라.” 항암을 마치고 4개월 만에 요양병원에서 퇴원하니 당장 먹을 게 없었다. 입원해있는 동안 두꺼비집이 내려가 다 썩어문드러진 냉장고. 그때서야 깨달았다. ‘난 육십 평생 나한테 밥 한끼 제대로 해준 적이 없구나.’

 

그때 때 되면 밥이 나온다는 귀정사 사회연대쉼터 생각이 났다. 처음 시작할 때 한진중공업 해고자들도 가서 쌍용차, 콜트콜텍, 기륭전자, 현대차비정규직 해고자들 등과 함께 힘 모아 만들었던 곳. 그러나 우울까지 깊었던 나는 곳이 아닌 숨을곳이 필요했다. 면허증도, 차도 없는 내겐 병원 다니는 일이 너무 난망하기도 했고.

 

박성호는 안 늙을 줄 알았다.

20대 초반에 만났던 눈이 땡그랗고 못 하는 게 없는 마을청년회 총무 같은 박성호. 박성호는 진짜 못하는 게 없고, 못 만드는 게 없다. 집회 때면 꽹과리를 치고, 일인시위 땐 피켓을 만들고, 천막농성 땐 천막을 짓고(한진은 천막 잘 짓기로 유명하다. 쳤다 하면 반년이 기본에다 영도 똥바람에도 끄떡없는데다 자동문이 달린 2층 천막을 짓기도 한다), 촌에 집을 혼자 짓기도 하고, 그리고 전국의 민중ㆍ열사 장례식엔 언제나 박성호가 있었다. 1991년 박창수 위원장부터 2023년 양회동 열사까지. 이소선 어머니든, 백기완 선생님이든 부산에서 박성호가 올라가야 비로소 편안하고 원만한 장례가 이루어졌다. 아는 이들은 모두 안다.

 

박성호의 정년 퇴임식 날까지도 그는 일이었다. 지회에서 열어준 정년 퇴임식에 늦게 도착한 주인공이 변명처럼 사유를 말했다. “노옥희 선생님 솥발산에 모시주고 온다꼬 늦었심미다.”

 

그동안 지은 복만으로도 천년만년은 살아야 할 박성호가 심장이 갑자기 안 뛰어서 얼마 전 119에 실려가는 식겁을 했다는 얘길 들으니 내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우리 같은 해고자들, 노동ㆍ사회활동가들, 국가폭력과 자본폭력의 피해자 등이 비용 등 걱정 하나 없이 편히 쉴 수 있는 무료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을 만들어두자고 몇날 며칠을 한진 동지들과 함께 남원 귀정사 비탈을 쉼터로 깎고 다듬었던 박성호. 뇌졸중으로 쓰러진 부산일반노조 정승철 동지 가족을 실고 사회연대쉼터로 바삐 가던, 예전 고무신공장 해고노동자로 우유배달, 기름배달을 하며 부산지역 민주화운동의 산증인으로 살다 간경화로 쓰러진 문민철을 쉼터로 보내 쉬게 하던, 성호. 그가 이젠 쉬어야 할 때가 온 것인가.

 

세상은 쉽사리 안 바뀌고 활동가들은 늙고 병들어 간다. 거리에서의 삶들은 쉬이 끝나지질 않는다. 시국이 이런데 쉬는 건 막연히 불안하다. 쉬려니 수요일의 집회가 걸리고, 주말의 수련회는 누가 준비하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저렇게 짓밟히고, 비정규직이제그만 공동행동이 저렇게 당하고, 건설노조가 저렇게 두들겨 맞는데 어찌 쉬노. 세종호텔이 저러고 있고, 대우버스가 저러고 있고, 세월호도 이태원도 다 마음이 쓰이는데 어찌 쉬노. 그게 우리의 삶이었다.

 

난 내 삶에 후회는 없지만 나 자신에겐 좀 미안하다. 두 군데 갔던 한의원에선 똑같은 얘길 들었다.

 

몸에 기름기가 하나도 없어요.” 비싼 약을 몇 재 먹고 세 번째 갔던 한의원에서도 똑같은 얘길 했다. “몸에 기름기가 있어야 버텨요.”

 

잘 먹일 걸, 따뜻한 데서 재울 걸, 맨날 천날 쫓기듯이 그렇게 동동거리지 말고 좀 천천히 살 걸. 활동가들이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면 좋겠다. 더 늦기 전에.

 

전북 남원 만행산 기슭에 터를 딲은 귀정사 사회연대쉼터가 그런 우리 모두에게 맞춤한 공간이 되면 좋겠다. 잘 먹고, 잘 자고, 천천히 걸을 수 있는 낙원으로.

 

그 귀정사 사회연대쉼터가 10년이 되는 92. 마침 내가 좋아하는 문정현 신부님도 오시고, 정태춘 님의 노래도 들을 수 있다. 성호도 함께 갈 수 있으면 좋을텐데. 10년 전 개원식 날 백기완 선생님이랑 함께 나란히 앉았던 느티나무는 여전하겠지. 10년간 묵묵히 그곳을 지켜 온 이들에게 고맙다는 얘기를 이렇게 전한다. 10년 만에 기금 마련도 한다니 이젠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나가는 곳이 되면 더 좋겠지. 성호도 나도, 우린 철인이어서 안 아플 줄만 알았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경향 : 2023.07.31.

 

 

우리는 이동관 홍보수석실이 한 일을 알고 있다

한겨레는 20179, 이명박 정부의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엠비시(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문건을 입수해 보도했다. 20103월 작성된 이 문건에는 국정원이 문화방송(MBC) 간부들을 사찰하고, ‘좌편향언론인과 프로그램 등을 퇴출하는 공작을 벌인 사실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국정원은 인적쇄신을 명분으로 퇴출해야 할 간부 명단을 작성하고, “노조와 야권에 빌붙은 국장급 간부 교체”, “일선 기자와 피디(PD)도 정치투쟁, ‘편파방송전력자에 대한 문책인사 확대등을 주문했다. ‘인적쇄신의 목표는 김재철 친정체제 확립을 통한 방송 장악이었다. 김재철은 20102월부터 3년간 문화방송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방송 장악의 마름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큰집(청와대)에 불려가 조인트를 까여가며 엠비시 좌파 대청소”(2010,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발언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퇴출 리스트에는 “2007년 대선 때 시사 프로를 통한 비비케이(BBK) 왜곡보도 지시”, “친노조 성향으로 대통령 라디오 연설 공공연하게 반대등의 퇴출 사유가 언급돼 있었다. ‘피디수첩시선집중등을 좌편향프로그램으로 지목하고, 담당 피디는 물론 진행자, 외부 출연자까지 교체하라고도 했다. ‘피디수첩의 경우, “광우병 허위보도등을 문제삼았다. 문건에 제시된 방송 장악 시나리오는 거의 그대로 실행에 옮겨졌다.

 

국정원이 언론 장악 문건을 만든 지 12년이 지난 20224, 탐사보도 전문매체 뉴스타파는 이명박 정부 언론 장악 공작의 지휘자이름을 콕 집어 기사 제목에 불러냈다. 지난 28일 윤석열 대통령이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로 낙점한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보(보도 당시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특별고문)였다.

 

뉴스타파가 누리집에 공개한 이동관 언론 장악 개입 입증 공공기록물자료를 보면, 국정원이 20091224일 작성한 라디오 시사프로 편파방송 실태 및 고려사항문건 첫 페이지에는 ‘12·18 홍보수석 요청자료라고 적혀 있다. 맨 끝에는 배포: 홍보수석이라고 적시돼 있다.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 바로 이동관 후보자다. 이 문건은 좌편향 피디와 진행자들이 4대강 등 국정 현안에 대한 악의적 왜곡보도를 일삼고 있다, 그 대책으로 경영진의 주의 환기, 좌편향 진행자 퇴출, 건전단체·보수언론 주도로 편파보도 문제제기 등을 제시했다. 이 후보자가 국정원에 좌파 대청소방안 마련을 사실상 지시하고 보고를 받았을 개연성을 보여주는 정황이다.

 

국정원이 2010113일 작성한 방송사 지방선거기획단 구성 실태 및 고려사항문건에도 ‘1·7 홍보수석실 요청사항’, ‘배포: 민정수석, 홍보수석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 문건에는 20106·2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방송사가 꾸린 선거기획단에 좌편향 기자들이 침투해 과열·혼탁 선거가 우려된다며 방송사 경영진과 협조, 좌편향 제작진 배제등이 필요하다고 제안돼 있다.

 

최근에는 2017년 국정원 불법 사찰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2010년 국정원이 작성한 엠비시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문건에 대해 홍보수석실이 실질적인 문건 작성 지시자로 추정된다”, “홍보수석실이 국정원을 통해 엠비시 장악 계획을 세운 것으로 판단된다는 내용의 수사보고서를 작성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이 모든 일이 방송 정상화라는 명분으로 진행됐다. 지금도 여권과 보수단체들은 방송 정상화를 부르짖는다. 정권에 불리한 보도에 가짜뉴스낙인찍기, 라디오 패널 좌편향공격, 수신료 분리징수를 통한 공영방송 겁박,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와 한국방송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 등이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일들이다. 최근 1년여 동안 한국의 언론 상황은 이명박 정부 시절로 빠르게 퇴행하고 있다. 이 정도로는 성이 안 찼던 걸까? 2017년 노조 탄압 혐의로 해임된 김장겸 전 문화방송 사장은 최근 국민의힘이 주최한 공영방송 개혁세미나에서 정상화가 이렇게 더딘가라고 한탄했다. 이 세미나에서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고지가 앞에 다다랐다고 했다.(미디어오늘 보도) 이동관 특보의 방통위원장 지명은 그 고지가 뭘 의미하는지 웅변해준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때 대통령이 되면 언론 자유를 확실히 보장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취임 이후에도 틈만 나면 자유를 되뇐다. 그래놓고는 언론 자유를 무참히 훼손한 인물을 방송 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에 앉히려 한다. 더욱이 이 후보자는 윤 대통령 자신의 휘하에 있던 수사팀이 방송 장악 문건작성 지시자로 지목한 조직의 책임자였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정신세계다.

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논설위원 한겨레 : 2023.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