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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23.3.31~4.30 극우세력과 친일파가 동거하는 위험한 나라

by 이성근 2023. 5. 1.

노란 조끼 시위와 네덜란드 농민당이 던지는 물음 한겨레 2023.03.31.

고등어와 소고기, 멍게

분노하는 민중과 대인의 정치 경향 : 2023.04.01.

고기 싫어하면 진보? 경향 : 2023.04.01.

414, 세종으로 가자 경향 : 2023.04.02.

.이상한 저출생 대책 회의 경향 : 2023.04.03.

윤 대통령의 위태로운 나르시시즘 한겨레 : 2023.04.03.

무서운 윤석열 시민언론 민들레 2023.04.03.

자살론으로 본 한국 사회 경향 : 2023.04.04.

진짜 문제는 개딸이 아니다 경향 : 2023.04.04.

통한의 제주 4.3 중부일보 2023.04.04.

종교는 어떻게 범죄가 되는가 한겨레 2023.04.04.

슬로푸드: “좋은, 깨끗한, 공정한음식 한겨레 2023.04.05.

성장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경향 2023.04.05.

정상외교 리스크 극복의 길은 경향 2023.04.05.

검찰주의자들의 멋진 신세계경향 2023.04.06.

과거의 망령은 꺼져라 경향 2023.04.06.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이여 경향 2023.04.06.

농민을 거부한 대통령을 거부한다 경향 2023.04.06.

돈을 푼다고 되겠나, 살 만한 세상이 돼야지 경향 2023.04.06.

나는 종이다 경향 2023.04.07.

신문의 날에 확인하는 신문 부재, 언론 부재 현실 시민언론 민들레 2023.04.07

깡패만 잡고 있는 대통령, '검찰 공화국''피로감'이 몰려온다 프레시안 2023.04.08

미륵은 오지 않는다 경향 2023.04.08.

일반인 등장예능 프로그램의 불편함 미디어오늘 2023.04.08.

103세 철학교수의 참 이상한 철학 미디어오늘 2023.04.10.

노동시간 개편이라는 코미디 경향 2023.04.10.

생명의 가격계산하는 정부 경향 2023.04.10.

누가 MZ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아닌 걸로 하자 경향 2023.04.10.

<국부론>보이지 않는 손은 몇 번 나올까 매일노동뉴스 2023.04.10.

핀란드 10년여 살아보니6년째 행복도 세계 1위인 이유 한겨레 2023.04.10.

 

설명하지 않는윤석열 정권, ‘미국 도청도 뭉갤 텐가 경향 2023.04.11.

길복순의 세계를 멈춰야 한다 한겨레 2023.04.11.

4·3 70, 정의를 묻는다 시사인 2023.04.11.

미국 CIA가 확인시켜준 윤석열 리스크한겨레 2023.04.11.

일하는 실업자의 비애 경향 2023.04.11.

시험 공화국의 짙은 그늘 한겨레 2023.04.11.

바이든의 미소에 속고 있다 경향 2023.04.12.

‘100만원 외국인 가사도우미법안 단상 한겨레 2023.04.12.

진보정치 개편을 바라는 동상이몽 매일노동뉴스 2023.04.12.

한국인의 정치과잉경향 2023.04.13.

누가 이 비를 멈추게 할 것인가 경향 2023.04.13.

취한 위정자들의 나라 한겨레

극우세력과 친일파가 동거하는 위험한 나라 시민언론 민들레 2023.04.13.

정치의 사법화와 검찰화, 민주주의의 근간을 잠식한다 경향 2023.04.13.

LMO 주키니 호박, 악마의 유혹이었나 경향 2023.04.13.

윤석열식 역사 거꾸로 세우기, 이승만 숭배의 우회로 뚫기 프레시안 2023.04.15.

지방소멸이 불러올 언론 변화의 급물살 경향 2023.04.17.

글로벌 금융위기는 아는데 식량위기는 모르는 이유 시사인 2023.04.17.

안산·세월호·노동운동을 보는 심상치 않은 시선 한겨레 2023.04.18.

대법원장 후보추천위라는 민주당의 코미디 한겨레 2023.04.18.

4대강 보에 물 많다고 물 부자 될까 한겨레 2023.04.19

대통령이 해야 할 말오염수 방류는 지구 침략이다경향 : 2023.04.19.

, 혁명이여 경향 : 2023.04.19.

도둑을 도둑이라 못하고 경향 : 2023.04.19.

4·19 혁명의 경제이념 경향 : 2023.04.19.

타짜들 설치는 부동산 시장도박판 만한 규율도 없나 한겨레 : 2023.04.19.

언어가 아닌 몸으로 소통하는 기후위기 대안 프레시안 2023.04.20.

무능외교’ ‘굴욕외교비판할 때가 아니다 한겨레 2023.04.20.

 

윤 대통령, 국빈 환대에 벌써 취했나 오마이뉴스 23.04.21

기후테크, GPT에 물었더니 경향 : 2023.04.21.

진보의 경제정책, 그 대안을 이야기하자 프레시안 2023.04.21.

'전광훈'·'돈봉투', 이런 정치는 적대적으로 공멸한다 프레시안 2023.04.21

월드컵대교 자전거도로는 언제? 경향 : 2023.04.22.

완벽하게 정치가 부재한 세계 경향 : 2023.04.22.

대통령이 풍차 향해 달려가는 돈키호테가 되어가고 있다 프레시안 2023.04.22.

가진 포탄 미국에 다 내주고 거덜 난 한국 안보한겨레 2023.04.23.

아태에서 인태로의 전환, 맹목적 수용이 답인가 한겨레 2023.04.23.

쑨원의 민생, 정치권의 민생 경향 2023.04.24.

음모론은 어떻게 사라지나 경향 2023.04.24.

방미 대통령이 꼭 읽어야 할 워싱턴 고별사한겨레 2023.04.24.

장제원에서 심상정까지팔 걷은 국회, 전세사기 멈출 수 있을까? 프레시안 2023.04.24.

기후위기 극복 과정에서 노동자의 고통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 민중의소리 2023-04-24

돌봄의 준시장화는 국가 의제가 아니다 프레시안 2023.04.24.

석열아, 더 많이 들어라품성에 호소? 미디어오늘 2023.04.24

'일본 무릎' 발언엔 "주어가 없다"?전국민 영어번역 평가 하나? 프레시안 2023.04.25.

윤석열의 1, 막 던지다 길 잃었다 경향 2023.04.26.

일본은 해양법 법정에 서야 한다 경향 2023.04.26.

눈먼 자들과 눈뜬 자들 경향 2023.04.26.

미래 실종과 소모사회 경향 2023.04.26.

윤석열 정부의 '대환장 외교', 다 계획이 있었구나 프레시안 2023.04.26.

전세금 9000만원 vs 연봉 1억원 경향 2023.04.27.

검사들만의 특권 경향 2023.04.28.

선진경제 빛 속에 깃든 어둠부의 편중 심화된 반민주공화국 경향 2023.04.28.

대통령의 계급투쟁 한겨레 2023.04.28.

코로나 이후, 사회적경제와 사회적 자본의 역할 프레시안 2023.04.28.

정원도시, 그 이후 경향 2023.04.29.

미국의 패권주의와 브레이크 없는 욕망 경향 2023.04.29.

마른 몸에 대한 욕망, 뚱뚱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미디어오늘 2023.04.29.

기업 이익도 한반도 미래도 못 챙긴 윤 대통령의 가치외교한겨레 2023.04.30.

삼포세대는 어쩌다 민지(MZ)가 되었나 한겨레 2023.04.30.

윤석열 대통령 방미 성과와 남··미의 동상이몽 프레시안 2023.04.30.

 

 

 

노란 조끼 시위와 네덜란드 농민당이 던지는 물음

지난 15일 실시된 네덜란드 지방선거 결과는 참으로 뜻밖이었다. 창당한 지 3년밖에 안 된 정당이 무려 20% 가까이 득표하며 제1당으로 급부상했다. 당 이름은 농민-시민운동’(농민당). 2019년부터 빈발한 농민시위를 기반으로 결성된 정당이다. 농민시위는 주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가축 사육 마릿수를 줄이려 한 정부 결정에 반대하며 일어났다. 농민당의 주된 정책 역시 급격한 기후위기 대책에 맞서 기존 농-축산업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축산업 감축 정책을 시행한 것은 중도우파인 자유민주국민당이지만, 농민당이 진짜 적으로 지목하는 세력은 따로 있다. 2010년대에 빠르게 성장하여 현재 5% 안팎 지지를 받는 동물을 위한 당’(동물당)이 그들이다. 좌파 성향인 동물당 핵심 정책은 동물권 보호와 기후위기 대응이며, 채식을 선호하는 대도시 젊은 여성들이 주된 지지 기반이다. 동물당은 축산업을 포기하자는 캠페인에 앞장섰고, 동물당과 축산업 농가의 충돌은 일종의 문화전쟁으로 비화했다.

 

기후위기에 맞서 생태 전환을 부르짖는 이들에게 현재 네덜란드 정치 상황은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중도우파 정부의 과감한 축산업 감축 계획에서도 알 수 있듯이, 네덜란드는 전 세계에서 그나마 진지하게 기후위기에 맞서는 국가 중 하나다. 그런데 자본가나 부유층이 아니라 자영농들이 이에 반대해 들고일어났다. 기후위기 대응을 지지하는 대도시 중산층과 이에 맞서는 소외지역 서민의 대립 구도가 대두했다.

 

사실 이런 구도는 이번에 네덜란드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2018년에 프랑스에서 시작된 노란 조끼 운동역시 비슷한 구도를 보였다. 탄소배출 절감을 내세우며 정부가 탄소세를 인상하자 주로 지방 소도시에 거주하는 서민들이 노란 조끼를 입고 시위에 나섰다. 겉만 보면, 이 역시 정부의 기후위기 대책에 서민들이 반발하는 격이었다.

 

최근 우리말로도 번역된 프랑스 경제학자 뤼카 샹셀의 <지속 불가능한 불평등>은 이러한 구도 이면에 숨은 진실이 무엇인지 밝힌다. 토마 피케티의 막역한 동료이기도 한 샹셀은 경제적 불평등과 환경위기가 긴밀히 얽혀 있으므로 두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젊은 학자다.

 

샹셀은 프랑스 정부가 처음에는 아주 낮은 세율의 탄소세를 도입하고는 오랫동안 서민들을 위한 별다른 보상책을 강구하지 않은 사실에 주목한다. 그러고 나서는 하필 유가 상승 국면에 탄소세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탄소세는 올리면서 부유세는 폐지했다. 가뜩이나 불평등에 불만이던 대중이 들고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노란 조끼 운동 사례나 최근 네덜란드 정치 상황은 기후위기 대책에 반드시 전제돼야 할 대원칙을 일깨워준다. 과감한 기후위기 대응은 이 위기에 가장 커다란 책임을 지닌 최상층 집단에 그에 비례하는 부담을 부과하는 것으로 시작돼야 한다는 원칙이 그것이다. 물론 현재의 기후급변에 제대로 맞서려면, 대자본이나 부유층만이 아니라 모든 계층이 무거운 짐을 함께 짊어져야 한다. 하지만 더 큰 책임을 지닌 집단에 부담을 정의롭게분배하지 않는 한, 대중에게 이 무거운 짐을 함께 지자고 설득하기는 불가능하다. 샹셀의 지적처럼 모든 사회집단이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비용을 각각 합당한 몫으로 짊어지게 하지 않는다면, 환경정책은 늘 그 근본부터 재고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진지한 기후위기 대응은 반드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단호한 공격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평균 기온이 시시각각 상승하는 상황에서 문화전쟁에나 빠져드는 것은 기후급변을 부채질하는 또 다른 불의일 뿐이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먼저 기후위기 주범들에게 그에 상응한 책임을 물리는 것, 혹은 그러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샹셀의 결론처럼, 21세기에 사회국가 건설과 기후위기 대응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과제다.

장석준 |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한겨레 2023.03.31.

 

고등어와 소고기, 멍게

고등어는 억울했다. 7년 전 고등어는 주방이 아니라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환경부의 보도자료가 빌미가 됐다. 주방에서 쓰이는 요리 재료별 오염물질 발생량을 조사했더니 고등어 구이를 할 때 미세먼지(PM2.5) 농도가 가장 높았다는 내용이었다. 삼겹살, 계란 프라이, 볶음밥 등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고등어가 미세먼지 주범이냐는 비아냥이 연일 쏟아졌다. 비흡연 여성의 폐암 발병이 높은 이유 중 하나가 주방 요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임을 알리며 환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던 환경부는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고온의 튀김이나 볶음, 구이에서 발생하는 미세 분진인 조리흄(cooking humes)’이 사회 문제화한 게 얼마 되지 않는다. 조리흄은 입자 지름이 100(나노미터) 이하로, 머리카락 굵기의 1000분의 1 정도다. 최근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폐암 확진을 받은 학교 급식 종사자는 60명에 이른다. 이들의 폐암 유병률은 10만명당 135.1명으로, 국가 암 등록 통계상 유사 연령의 5년 유병률(122.3)보다 10.5% 높다. 고등어가 단독범은 아닐지라도 조리 시 미세 분진 위험성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셈이다.

 

일본산 멍게는 사줄 수 있어도 대한민국 농민이 생산한 쌀은 사줄 수 없다는 것인가.” 일본산 멍게가 이웃나라 정치권으로 소환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퍼주기 굴종 외교라고 비판하는 더불어민주당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묵인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민주당은 엊그제 규탄대회를 열고 국회의원 삭발식까지 단행했다. 이재명 대표는 대통령실 공식 부인에도 연일 거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먹을거리의 안전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과학적 근거 없이 감정을 앞세워 몰아붙일 일은 아니다. 오염수 방류의 영향이나 멍게 등 수산물 실태에 대한 조사 요구가 이성적이다. 이명박정부 초기 광우병 사태에서 이미 경험하지 않았나. 먹으면 뇌에 구멍이 숭숭 뚫릴 수 있다는 선동으로 국민 감정을 자극한 이들은 지금 미국산 소고기를 입에 대지 않는지 묻고 싶다. ·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를 위해 미국산 소고기를 소환했듯 일본산 멍게가 애꿎게 반일의 불쏘시개로 쓰이지 않을까 걱정이다.

박희준 논설위원

 

 

분노하는 민중과 대인의 정치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의 첫 토요일에 국방부 앞에 가서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지를 위한 집회에 참여했다. 훈련을 위해 미국의 막강한 군사 자산이 한반도 주변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컨트롤타워가 없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무기가 쌓일수록 평화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북한과 극한 대립하는 미국은 백성들끼리 총기로 매일 내전을 치르고 있으면서도 남의 나라를 침략하거나 전쟁에 개입하고 있다. 전범국 독일도 통일되었는데 80년 가까운 남북분단이 지속되는 것은 한반도가 강대국들이 설치한 이해관계의 사슬에 꽁꽁 묶여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삶의 문제에 자신의 주체적인 결정권이 없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솟았다.

 

집회가 끝나고 참가자들은 서울시청 광장까지 행진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분향소에 국화꽃을 올리며 묵념했다. 액자 속 얼굴들을 보니 가슴이 미어지며 눈물이 흘렀다. 부모와 친구들은 얼마나 비통해할까. 슬픔이 분노의 강이 된 참담함을 위정자들은 이해할까.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한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를 보고 손을 잡았다. 뭐라도 말을 건네야 하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비명횡사한 자식을 가슴에 묻은 고통에 무슨 말이 위로가 될까. 광장 동쪽에서는 대일 굴욕외교 규탄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재명·이정미 등 야당대표들의 연설이 이어졌다. 대중들 틈에 섞인 나는 예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위한 촛불집회와는 공기가 전혀 다름을 느꼈다.

 

그것은 본질적 분노였다. 가진 것 없어도 자기반성 없는 일본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던 백성들의 자존심을 뭉개버렸다는 배신감, 견고하게 구축해온 사회질서가 정의의 사도를 자청한 법기술자들의 탐욕으로 무너지는 충격에 의한 좌절감, 자본 권력에 포획된 정부가 기업의 이윤창출을 위해 인간다운 삶을 누려야 할 노동자들을 기계처럼 대하는 야만성에 대한 분개의 마음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 분노는 인간 실존의 존엄성을 비꼬며 부정하는 악에 대한 직선적인 감정이자 횡행하는 부조리·불의를 모두 불태워버리겠다는 화염이었다.

 

전무후무한 무혈혁명에 성공한 대중들 자신이 새 권력을 창출하고 있고 있었다. 엘리아스 카네티가 <군중과 권력>에서 말하듯 광기를 발하며 성장을 원하는 군중의 열기가 바로 적을 파괴하는 거대 에너지임을 느꼈다. 자율의 심리적 마지노선을 넘어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율이 일었다. 민주주의의 한계는 여기까지인가. 야욕의 정치가들이 선거공학으로 민중을 분열시키고, 권력을 잡아 자신들의 욕구 분출을 가능케 하는 이 체제가 위기에 처해 있다. 독선과 독주에 항거하는 백성들이 광장으로 나오는 현실이 증거다.

 

대통령퇴진 촛불행동이 진행되는 장소로 갔다. 정치가들에게 속은 대중들의 분노의 함성이 천둥처럼 울렸다. 그 소리는 대인의 정치가를 구하는 민중의 갈망이었다. 미국·중국·러시아·일본의 주변 강대국을 오케스트라처럼 지휘하며, 정의와 평화의 길로 안내하는 대인의 지도자는 없는가. 분단과 대결의 무모함을 북한과 함께 단칼로 베어낼 수 있는 결단의 정치가는 없는가. <찬도그야 우파니샤드>(임근동 옮김)에서처럼 그가 바로 나다라고 말할 수 있는 대도무문(大道無門)의 포용적인 위정자는 없는가.

 

깨달음의 책인 <무문관(無門關)> 1칙은 조주구자(趙州狗子)라는 공안이다. 한 스님이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조주선사는 없다라고 대답했다. 경전에선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하는데 이 무슨 말인가. 물음에 대한 답이 아니라 질문자의 분별 의식을 타파한 것이다. 분별하는 마음은 선택하게 되고 집착에 빠진다. 집착은 파당과 대결을 낳는다. 만물과 하나 된 무념의 경지에서 대자비가 샘솟는 대도를 성취한 대인은 삿된 마음을 바루는 정의의 활인검을 쓴다. 성현들은, 의로움을 추구하는 대인에게는 이로움도 따라오지만, 이로움만 추구하는 소인은 의로움은커녕 이로움도 잃게 된다고 한다.

 

권좌에 앉은 소인배의 정치가들은 백성들에게 사죄해야 한다. 주권자인 백성들을 비분강개토록 하고 국록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안으로는 민심을 분열시키고, 밖으로는 국격을 실추하고도 그 자리에 있다면 백성을 모독한 것이다. 민중의 한이 서린 잔인한 4’, 피눈물로 세운 민주주의와 평화를 짓밟는 자는 무덤 속 의사와 지사들도 부활하여 용서하지 않으리라.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경향 : 2023.04.01.

 

 

고기 싫어하면 진보?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더 글로리> 열여섯 편을 하루 반 만에 정주행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면서 김은숙 작가가 마지막까지 복잡하게 꼬아놓은 단서를 놓치지 않으려고 온 신경을 집중하다 보니 머릿속을 리셋한 듯 자잘한 일상사는 홀랑 지워졌다. 명불허전, 이름이 널리 알려진 데는 이유가 있다. 폭력이 인간의 영혼을 파괴한다는 보편적 주제와 함께 돈이 최고라는 물질적 세계관,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잔인한 태도, 첨단 디지털 문화와 무당굿이 공존하는 압축 근대에 이르기까지 익숙하면서도 낯선 한국의 모습이 펼쳐졌다. 지나치게 단순한 선악 구도를 현실이 아닌 우화로 이해한다면, 흡인력이 큰 작품이다.

 

그런데 며칠 지나자 주인공 문동은(송혜교 분)의 온몸에 화상 자국을 남긴 잔인한 학교폭력이 아니라 그가 김밥을 먹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첫 장면부터 복수의 대상인 연진(임지연 분)의 집을 바라보면서 김밥을 먹더니 복수를 준비하는 힘든 시간을 김밥으로 버텨내는 장면들이 계속 나왔다. 마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서 소금이 안 들어간 음식(맛이 없어서 자신의 고난을 잊지 않도록 해주는 음식)을 먹어야 복수에 성공할 수 있는 것처럼 김밥을 먹었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김밥은 최고로 효율적인 음식이기도 하다. 바쁜 업무에 쫓기는 직장인들은 김밥천국에서 끼니를 때우고, 학생들에게는 편의점 삼각김밥이 주식이니 한국인의 솔푸드라 할 만하다.

 

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 몸의 세포는 음식을 재료로 삼아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진다. 피부는 35일마다 바뀌고 간의 교체주기는 한 달이다. 사는 곳마다 풍토와 식재료가 다르기에 다른 음식을 먹으면서 다른 문화를 일구어왔다. 예컨대 인구가 많은 인도에서 소를 못 먹게 한 이유는 채식에 비해 많은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몸이 가벼운 만큼 영성이 강한 문화가 형성되었을 터이다. 냉장고와 수입식품 덕분에 제철음식과 향토음식의 개념이 사라진 지금, 음식에서 중요한 건 재료보다는 시간이다. 인스턴트, 레토르트, 밀키트, 배달음식, 집밥 등등.

 

봄이 되자 주변의 지인들이 텃밭 농사를 시작했다. 미래의 귀농을 착실히 준비하는 지인은 텃밭을 하면서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유기농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제대로 배워두려고 농부학교에 등록했다고 한다. 다른 지인은 아이가 태어나면서 기후와 환경 문제에 관심이 생겼고, 가족과 텃밭을 가꾸며 퍼머컬처(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는 영농방식)를 공부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불안의 시대, 자기 손으로 뭔가 키워서 먹는다는 건 위안을 준다. 무엇보다 인간은 오랫동안 자연과 더불어 살아왔기 때문에 본원적인 끌림, 생명애(biophilia)가 있다는 게 생물학자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의 통찰이다.

 

이들의 사연에 솔깃해져 얼마 전 나도 텃밭을 보러 갔다. 서울시나 구청이 운영하는 텃밭은 경쟁률이 너무 높아서 일찌감치 포기하고 북한산 자락에 사설로 운영되는 텃밭이 있기에 탐색차 나섰다. 텃밭 사무실이 비어있어 지나가는 주민에게 물어보자 저 앞 고깃집으로 가보라고 했다. 게르 모양의 텐트가 여럿 모여있는 고깃집(실제로는 고기를 파는 캠핑장)의 주인이 텃밭 주인이었다. 텃밭에서 키운 채소를 가져다 고기를 구워 먹는 편의시설이었다. 채소가 자랄수록 고기도 많이 소비될 터이다.

 

그러던 중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생태전환교육의 일환으로 채식급식(기후급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교사 모임에서였다. 진보 쪽 노옥희 울산시 교육감이 갑자기 타계한 이후 보궐선거가 진행되는데 보수 쪽 후보가 고기급식을 내세워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좀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라 유튜브를 찾아보니 정말이었다. “후보님 뭐 하세요?” “치킨 먹고 있습니다.” “후보님 고기 좋아하세요?” “, 물론이죠.” “그럼 우리 아이들에게 일률적인 채식을 강요하는 비건급식 어떻게 생각하세요?” “맛있는 고기급식 마음껏 먹이겠습니다!”

 

, 이제는 고기를 먹는 일도 정치적 대립구도가 되었구나. 고기를 좋아하면 보수, 고기를 싫어하면 진보. 도시농업과 채식급식을 약속했던 시장과 교육감의 시대가 지나가니 고기가 돌아오는 건가? 비건급식이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 자신의 몸과 동물의 권리, 기후위기를 생각하면서 채식 위주의 식단을 짜는 채식선택제가 맞다. 이것이 채식 가운데서도 가장 엄격한 단계인 비건급식이라는 말로 둔갑했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고기는 필요하지만 조금 덜 먹어도 좋겠다. 어른들도 텃밭 채소 그대로 먹으면 어떨까. 고기 싸 먹는 상추쌈 말고.

한윤정 전환연구자 경향 : 2023.04.01.

 

 

414, 세종으로 가자

2000년대 초반 나는 독일 남부의 한 도시에 떨어졌다. 처음에 가장 낯설었던 건 캄캄한 밤이었다. 가게는 너무 일찍 문을 닫았고, 심지어 대학 도서관도 일찍 문을 닫았다. 나중에 강제폐점법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 때문에 특수업종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업장이 6시 혹은 8시 이후에 영업을 할 수 없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정부가 어떻게 이렇게 영업할 권리를 통제할 수 있는 건지 의아했다. 심지어 밤 시간을 뺏긴 것처럼 억울하기도 했다. 어느 날, 불만을 토로하는 나에게 독일 친구가 이유를 설명해줬다. “안 그러면 가게들은 서로 문 닫는 시간을 점점 늦추다가 새벽까지 장사를 할 거야. 그럼 어떤 노동자들은 밤에도 일을 해야겠지. 하지만 그 사람도 밤에는 쉬고 싶을 거고, 집에는 함께하고 싶은 가족이 있고, 일을 마치고 만날 수 있는 친구도 있을 거잖아.”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도 생각해보라는 말에 부끄러워 얼굴이 달아올랐다

 

변명하자면 나는 밤새도록 불야성을 이루는 도시에서 왔고, 자라는 동안 노동자를 생각하는 좋은 국가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이후 독일에서도 반노동적 신자유주의 정책이 추진되었고 이와 같은 노동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점차 무너졌지만, 당시의 경험은 정부가 왜 필요하고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최근 69시간 노동전기요금 인상’, ‘100만원대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그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강제폐점법은, 지금과 같은 기후위기 시대에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와, 영업시간과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정책이 어떻게 동시에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돌봄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정책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지금 당면한 노동, 에너지, 돌봄과 재생산 위기는 따로따로인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연결되어 있다.

 

현재의 노동정책은 노동자의 시간으로부터 에너지를 최대한 뽑아내는 정책이다. 노동자로부터 에너지를 뽑아내어 소진시킨 후 버리는 방식은 자연으로부터 자원을 추출하고 고갈시키는 방식과 똑같이 닮았다. 회복과 재생을 위한 정책은 어디에도 없다. 정부에서 내놓은 ‘69시간 노동은 마치 과거로의 회귀로 보이지만 오늘날 자본이 요구하는 것은 산업자본주의 초기와 같은 대규모 노동집단에 대한 장시간 노동체제가 아니라 유연하고도 탄력적인 노동력의 적시조달체제다. 법정노동시간을 최대한 늘리고자 하는 것은 그래야 노동력 조달에 탄력성이 그만큼 늘어나고 그 안에서 필요할 때 그때그때 맘껏 갖다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거대한 불안정 무권리 노동의 저수지를 만들고, 여기에는 자본이 언제든 길어 올릴 수 있는 잉여 노동력과, 무가치하게 부스러지는 대기 노동 시간이 고인다. 세계에는 그런 가난한 웅덩이들이 곳곳에 있다. ‘100’에 가사도우미를 수입해오겠다는 동남아, 그곳의 여성노동자들도 세계적 불평등이 만들어낸 그런 웅덩이 중 하나다.

 

잉여화된 인구의 거대한 저수지는 한국에서도 도처에 나타난다. 이 웅덩이에 던져진 사람들이 아이들마저 여기에 던져 넣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이 불안과 고통을 내 대에서 끝내자가 미래에 대한 최선의 책임 윤리가 되어버린 것이 지금 한국 사회다. ‘인구 위기라는 출생률 저하는 반노동적이며 불평등한 사회에 대응하는 노동계급의 자생적 재생산 파업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잉여 노동력과 대기노동시간을 통해 노동자의 에너지와 시간을 이중으로 착취하는 체제는 자기와 타인을 돌볼 시간을 완전히 파괴한다. 잠시의 여가마저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훔쳐간다. 오늘날 시간 착취는 노동의 질을 악화하고 노동 강도를 강화하며 공동체를 해체하는 기술이다.

 

언제부턴가 우리의 일과는 끝나는 법이 없다. 노동과 노동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고 끝도 시작도 없는 노동이 영원히 반복된다. 혼이 쏙 빠지고, 풀리지 않는 피로에 절어 매일을 살아간다. 나는 이제 멈추고 싶다. 혼자 멈출 수는 없지만 함께 멈출 수는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하도록 만들려면 시민의 저항과 직접행동이 필요하다. 회복과 재생, 돌봄을 위한 시간은 이제 노동자만이 아니라 지구를 위해서도 절대적인 요구다. 414일 금요일 세종에서 기후정의 파업을 한다. 이 무자비한 속도와 강도를 멈추고 더 늦기 전에 우리가 서로를 살릴 시간을 만들기 위해, 하루를 멈추고 사람들이 모인다. 나도 하루를 멈추고 가려고 한다. 갈 수 있는 사람들, 함께 가자.

채효정 오늘의 교육편집위원장 경향 : 2023.04.02.

 

.이상한 저출생 대책 회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그랬을 거다. 국민의힘 정책위원회가 저출생 대책이랍시고 검토했다는 자녀 3명인 20대 남성의 병역 면제안건은 단순한 의견을 넘어 초벌구이는 되었기에 외부에 알려졌을 거다. 상식적이라면 비슷한 소리가 등장하자마자 ? 누가 알까 봐 부끄럽다!”라는 한탄과 함께 버려졌어야 하지만 아니었을 거다. ‘올해의 가장 수준 낮은 아이디어가 오갔을 회의실을 상상해 본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꾸려진 위원회에서는 저출생을 논하면서도 투박한 공정론을 전면에 내세웠을 거다. 그것에 심취했던 누군가가 툭 내뱉었겠지. “기존의 저출생 정책은 여성만 특혜를 얻는 식이었어!” 여자는 권리만 말하고 의무는 모른다는 말에 익숙했던 옆사람이 맞장구를 쳤겠지. “맞아. 회사에는 출산을 벼슬처럼 여기는 여자들이 많아. 뼈 빠지게 돈 버는 건 남편들인데 말이야.” 이를 논리적이라고 여겼던 건너편 아무개가 추임새를 넣겠지. “남성들이 역차별받는 정책 말고, 남자에게도 혜택을 주자고!”

 

 

그리고 군대 이야기가 생뚱맞지만 자연스레 이어졌을 거다. 진정한 성평등은 여성도 군 복무를 해야 한다는 고통의 평준화 정책이 시원하게 튀어나왔을 거다. 괴상한 기계적 평등론이 꼬이고 꼬이면서, 직업군인을 선택한 여성이 출산하면 1억원을 주자는 황당한 말이 실제로까진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목 끝에서 맴돌았겠지. 아무 말 대잔치가 나름 교통정리 된 결과가, 출산한 남자 군 면제라시켜주자는 발상이었을 거다. 형평성이라는 단어가 양념으로 사용되었겠지.

 

이 기운, 누구도 제어하지 못했을 거다. 아니, 제어할 누구도없었을 거다. 그나마 존재하는 대책마저 왜곡되었음이 분명하다. 육아휴직을 남성이 사용하는 게 어려운 사회의 고정관념을 따지면서 저출생의 본질에 접근하기는커녕 왜 여성육아휴직을 하느냐는 독특한 주장이 당당했을 거다. 이때도 역시나, ‘여자는 휴직이라도 챙겨 먹지, 남자는 일하고 와서 애까지 봐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하는 동조자가 있었을 거다. 생각은 자유다. 하지만 그 생각과 저출생 대책은 상극이다.

 

저출생 문제는 육아하는 사람의 고충을 줄여주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연애하고 결혼하고 출산에 이르도록 하는 흐름이 자연스러워야 가능하다. 지금껏 이를 사랑을 고차원적으로 다루면서 가정을 숭고하게 묘사하는 식으로 접근했다. 하지만 사랑이 넘치는 가정은 남편은 남자답게, 아내는 여성스럽게라는 성별 고정관념을 연료로 굴러갔다. 불평등을, 불평등이 아니라고 여기면 가족은 화목했다. 희생을, 희생이 아니라고 생각해 경력단절을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로 받아들이면 다른 가족들이 무탈했다.

 

이게 당시에는 안정적인 출생률로 이어졌지만 지금에는 저출생의 강력한 원인이 되었다. 성차별은 존재한다는 인식이 바로 저출생 문제의 출발점인 이유다. 하지만 구조적 성차별은 없으니여성가족부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대통령을 도와주겠다는 위원회에서 저출생의 원인을 어찌 알겠는가. ‘나의 어머니는 평생 주부로 살면서도 불평한 적이 없는데 요즈음은 왜 그러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그 회의실에 없었을까?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경향 : 2023.04.03.

 

 

윤 대통령의 위태로운 나르시시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게 항상 따라붙은 논란 중 하나는 그가 자기애적 성격 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를 갖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런 의구심은 민주당과 언론에서만 제기한 게 아니다.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로버트 코스타 기자가 2021년 함께 펴낸 책 <위기>(Peril)에는 트럼프 집권 초기 공화당 하원의장이던 폴 라이언이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 중 하나였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라이언은 도덕관념이 없고 장사꾼 같은 사람을 상대하는 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심리학까지 영역을 넓힐 수는 없었다. 그때 공화당 후원자인 뉴욕의 부유한 의사가 전화를 걸어 자기애적 성격 장애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며 그런 사람을 잘 다루는 방법과 이에 관한 여러 편의 의학 저널 링크를 라이언에게 보냈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201848살의 젊은 나이에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표면적 이유는 자녀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지만, 트럼프 대통령과의 불화가 그를 정치에서 손 떼도록 했다고 언론은 분석했다. 라이언의 일화를 떠올린 건, 요즘 윤석열 대통령의 행동에서 종종 흡사한 징후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승욱 닛부타의숲 정신분석클리닉 대표는 윤 대통령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꼭 닮았다. 심리학적 측면에서 한국의 트럼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르시시즘은 연못에 비친 자기 모습에 반해 스스로 물속에 뛰어들어 숨진 그리스 소년 나르키소스에서 유래했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은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아름답다)는 확신을 가질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 역시 자신을 사랑하고 칭송하고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다. 이런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가까운 사이라도 가차 없이 내친다. 오랜 친분의 나경원 전 의원이 대통령 뜻을 어기고 당대표 출마를 하려 하자 가혹할 정도로 정치적 압박을 가한 것이나, 정치 입문 이후 윤 대통령의 외교안보 멘토 역할을 해온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을 전격 경질한 건 그런 예로 보인다.

 

반면에 자신을 칭찬하고 충성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데 익숙하고 또 좋아한다. ‘윤핵관들이 여론의 비판에도 건재한 이유, 숱한 잘못과 논란에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를 이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프로야구 개막식 날 서울 잠실 또는 고척이 아니라 저 멀리 대구까지 내려가 시구하는 것은 대개의 정치 지도자들이라면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환호성에 목마른 내면의 불안감을 짐작할 수 있다.

 

자기애적 성향이 강한 이들은 자신의 성과가 훼손되는 것을 참지 못한다. 스스로의 잘못을 돌아보기보다 비판하는 상대방을, 비록 그게 국민일지라도, 공격하는 데 온 힘을 쏟는다. 지난달 21일 윤 대통령이 텔레비전 생중계로 23분간 한-일 정상회담 성과를 강조한 건 상징적이었다. ‘어려운 한-일 관계 현안을 내가 풀었다는 잘못된 자기 확신과 과욕이 뜬금없는 국무회의 라이브 연설로 나타난 게 아닐까. 국민 자존심의 상처보다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가 나는 걸 못 견뎌 하는 대통령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성향은 아마도 28년간의 검사 생활을 통해 발아하고 강화됐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검찰만큼 자기애가 강한 조직도 드물다.

 

정치인에게 나르시시즘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대통령의 성공을 추동하는 강한 동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양날의 칼과 같다고 심리학자 댄 매캐덤스는 트럼프의 마음이란 글에서 말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나 존 에프 케네디 같은 역사적 평가를 받는 대통령은 대개 강한 나르시시즘을 갖고 있었다고 그는 분석했다. 그러나 자기애가 국가 지도자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려면, 국민을 설득하고 소통하려는 노력과 함께해야 한다. 루스벨트나 케네디와 트럼프는 여기서 갈렸다.

 

지금 용산 대통령실은 어떤가. 블랙핑크 행사 때문에 정부의 외교안보 사령탑을 갑자기 날리는 게 정상이냐고, 그게 정말 사실이냐고 많은 국민이 궁금해하는데, 대통령과 참모들은 한마디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다. 대구 서문시장에서 윤 대통령 부부에게 쏟아진 박수를 지지층 결집이라 여기는 일차원적 사고로는 국민 마음에 진정으로 다가갈 수 없다. 트럼프는 트위터 팔로어 수에 집착했는데, 대통령 부부는 인스타 셀럽 같은 멋진 사진이 얼마나 많이 공유됐는지에만 관심이 있는 것일까?

박찬수 | 대기자 한겨레 : 2023.04.03.

 

무서운 윤석열

대통령 무능이 IMF 같은 재난 부를까 겁나

우리나라의 2022년 거시경제지표 몇 가지를 2021년과 비교해 보자. 경제성장률은 4.1%에서 2.6%로 하락했다. 1인당 명목 국민총소득(GNI)4.3% 늘어난 4220만 원이었으나 달러 기준으로는 35373달러에서 32661달러로 줄었다. 연평균 달러 환율이 1144원에서 1292원으로 12.9% 올랐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와중에도 3000을 찍었던 종합주가지수는 2500 선으로 떨어졌다. 연간 경상수지 흑자는 852억 달러에서 298억 달러로 감소했다. 7월 이후 계속 적자를 낸 탓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비롯한 국제기구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3년 경제성장률은 세계경제성장률 2.6%보다 현저히 낮은 1.5% 안팎이 될 전망이다. 한때 전년 대비 9%까지 올랐던 물가상승률은 4% 수준에서 고착되는 양상이다. 올해 1월 경상수지는 월 기준으로는 역사상 최대인 45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는데, 이번 주 통계가 나오는 2월 경상수지도 확실한 흑자를 내기는 어려울 듯하다.

 

대통령의 헛소리

윤석열 대통령은 내수 활성화 대책을 논의한 329일 제15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경제상황을 진단하고 해법을 내놓았다. 왜곡했다고 시비를 걸지 몰라서 대통령의 참모들이 내용을 정리해 대통령실 홈페이지에 올린 보도자료를 요약했다.

 

공급망 교란, 원자재 가격 상승, 고금리, 국제금융시장 불확실성, 교역대상국의 경기둔화 등 대외 경제여건 악화로 인해 수출이 부진하고 경제가 어렵다. 위기에는 민생안정이 가장 중요하다. 물가 안정과 자영업자소상공인 지원에 최선을 다했다. ‘수출과 수주의 확대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경제를 외교의 중심에 두고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라는 자세로 뛰었다. 이제 민생안정수출 확대노력에 내수 진작을 더해야 한다. 음식숙박관광을 팬데믹 이전으로 되돌리고 외국인 관광객을 늘리려면 비자 제도를 개선하고 항공편을 늘리고 관광과 문화를 연계하고 전통시장을 문화상품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정부지자체민간이 함께 비상한 각오로 뛰자.”

 

지난해부터 경제가 어려워졌고 주요 원인이 대외 경제여건 악화라는 것은 다툴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물가안정과 자영업자소상공인 지원 등 민생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무엇을 했으며 어떤 성과를 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가 없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으로 뛰어 수출과 해외수주를 확대했다는 건 한마디로 헛소리. 경상수지가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한 것이 오로지 윤석열 정부의 잘못은 아니지만, 대통령은 문제를 해결한 게 아니라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

 

최근 경상수지 적자의 주요 원인은 중국 수출 부진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작년 5월 한중수교 이후 처음으로 대중 경상수지가 적자를 냈다. 그후 1년도 되지 않은 기간에 한국의 최대 무역흑자국이었던 중국이 최대 무역적자국으로 바뀌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그 사실을 모른 척하고 친윤언론은 보도를 하지 않는다. 대통령과 정부가 아무 실익 없이 탈중국을 외치며 미국의 중국봉쇄 정책에 끼어든 결과라는 지적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무슨 대책을 내놓겠는가.

 

시늉뿐인 대책

윤석열 대통령이 알면서 거짓말을 했다는 게 아니어서 헛소리라고 했다. 아마도 참모가 써준 말씀자료를 영혼 없이읽었을 것이다. 그걸 어떻게 아는가? 비상경제민생회의라는 이벤트의 성격을 아는 사람은 다 그렇게 본다. 윤 대통령이 주재하는 공개회의는 정보를 나누고 생각을 모으는 절차가 아니다. 대통령의 정책 참모와 공무원들이 협의해 만든 정책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형식으로 언론에 공개하는 이벤트다. 정말 토론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비공개로 한다. 장관들이 다투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경제부총리와 법무부·문화체육관광부·농림축산식품부·산업통상자원부·국토교통부·해양수산부·중소벤처기업부의 장관, 금융위원장, 관세청장이 참석한 것은 토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통령의 위세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보고한 내수 활성화 대책을 보면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또는 허무개그라는 말이 떠오른다. 아래 대책의 내용 역시 내가 정리한 게 아니라 대통령실의 보도자료를 요약한 것이다.

 

대규모 이벤트와 할인행사 연속 개최 지역관광 콘텐츠 확충 근로자 등의 국내여행비 지원을 확대 연가 사용 촉진 K-ETA(전자입국허가서) 한시 면제 동남아 외국인 한국관광 활성화 소상공인 지원 강화 먹거리 등 핵심 생계비 부담 경감

 

언론은 국내여행비 지원 사업을 야단스럽게 보도했다. 회의에서 보고한 대책 중에서 정부 재정을 투입하는 사업은 그것 하나뿐이고 나머지는 다 지자체와 민간기업의 몫이거나 돈이 들지 않는 비예산사업이라 그랬을 것이다. 여행경비 지원이 국내여행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사업의 규모다. 저임금 노동자 백만 명에게 숙박비 3만 원을 지원하고 최대 19만 명에게 휴가비 10만 원을 주는 그 사업의 예산은 6백억 원이다.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이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시늉만 하는 것이다.

 

2022년 대한민국 국내총생산(GDP)이 얼마인가? 2150조 원이다. 6백억 원은 국내총생산의 0.0028%. 재정지출은 소위 승수효과를 낸다. 최근 총저축률이 3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니까 승수효과를 넉넉하게 3이라 하자. 경제학 교과서에 따르면 이 정책은 1800억 원 규모의 총수요를 창출해 경제성장률을 0.0084% 올릴 것이다. ‘비상경제민생회의라는 거창한 이름을 걸고 코끼리 비스킷도 못되는 사업을 내놓다니, 최소한의 수치심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국민경제와 민생이 아니라 경제정책에 전적으로 무지한 대통령의 심기를 돌보는 데 필요한 사업 아이템일 뿐이다. 무언가 하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혼자 만족하라는 것이다. 의미 있는 정책인지 판단할 능력이 없는 윤석열 대통령은 참모들이 그런 목적으로 써준 말씀자료를 그대로 읽은 것 말고는 한 일이 없다.

 

어두운 경제전망

대통령이 수출 확대와 내수 진작을 경제활성화 방안으로 제시한 것은 옳은 이론에 토대를 두고 있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말씀자료를 써준 사람은 케인즈주의자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정직한 경제전문가는 아니다. 틀리지는 않지만 온전하지도 않은 말씀자료를 올렸다. 왜 그렇게 판단하는지 경제학원론 수준의 국민소득 결정 방정식으로 설명하겠다.

 

Y = C + I + G + (X-M)

 

Y:국민소득, C:민간가계의 소비지출, I:기업의 투자지출, G:정부지출, X:수출, M:수입

 

여기서 중요한 건 사회의 총수요를 보여주는 방정식의 우변이다. 케인즈주의자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게 아니라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고 본다. 수입이 수출보다 많으면 총수요가 감소하고 국민소득은 줄어든다. 작년 하반기에 경상수지(X-M)가 심각한 마이너스를 기록했기 때문에 대통령은 수출 확대를 강조했고 영업사원을 자임했다. 그런데 그는 경상수지 적자의 주요 원인이 대중 무역적자라는 사실을 감추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정말 몰라서 그랬다면 더 큰일이다. 중국 정부의 정치적 결정에 따라 생긴 현상이니 정치적 해법이 필요한데,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미국과 일본의 하청업체가 되어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를 풀 방법이 없다. 경상수지 적자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정부지출(G)은 정부와 국회가 결정한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편성한 예산으로 일했고 올해 처음으로 자신들이 세운 예산으로 사업을 하는 중이다. 2023년도 국가예산은 639조 원 수준으로 증가율이 지난 정부 때보다 현저히 낮았다. 정부는 보수정권답게 소극적 재정정책을 편다. 민주당의 반대 때문에 마음껏 하진 못했지만 법인세와 종부세 등 일부 부자 감세를 했다. 그런데 올해 1월과 2월 두 달 동안 불경기와 부동산 거래량 감소 등으로 인해 국세 수입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16조 원이나 적게 걷혔다. 그러니 국채를 발행해 조달한 재정으로 추경을 편성하는 방안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방정식 우변의 정부지출(G)은 늘어나기 어렵다.

 

부자감세를 추진한 논리는 기업의 투자지출을 북돋운다는 것이었는데, 법인세를 크게 인하한 이명박 정부 때도 그런 효과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제학 교과서에 따르면 기업의 투자지출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소 중에 결정적인 것은 이자율이다. 그런데 미국이 물가를 잡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쓰면서 세계 모든 나라에서 이자율이 올랐다. 이자율이 제로에 가까웠던 시기에도 투자에 소극적이었던 기업들이 이런 고금리 시대에 법인세를 내렸다고 해서 투자에 나설 가능성은 없다. 고금리가 지속되는 한 우변의 투자지출(I)은 증가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1997년의 악몽

방정식의 우변을 키우려면 민간가계의 소비지출(C)을 늘리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무엇이 소비지출을 결정하는가? 경제학 교과서에 따르면 시장소득에서 세금과 사회보험료 등을 뺀 가처분소득이다. 가처분소득에서 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을 가리키는 소비성향은 소득이 낮을수록 높다. 그래서 정부가 저소득 근로자에게 숙박비와 여행경비를 지원하는 정책을 낸 것이다. 방향은 옳다. 규모가 장난 수준이라 하나마나여서 그렇지.

 

왜 옳은 정책을 장난 수준으로 할까? 제대로 하려면 이념적 정치적으로 자기 자신을 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간가계의 소비지출을 진작하기 위해 중산층과 서민의 가처분소득을 늘리는 것은 민주당의 정책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 보편 복지, 지역화폐, 최저임금 인상, 무상급식,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기초연금 도입, 노인장기요양보험 설립 등 민주당 정부의 주요 정책은 서민과 중산층의 가처분소득을 올려주는 데 초점을 두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은 정도 차이가 있었을 뿐 방향은 같은 정책을 썼다. 이명박박근혜윤석열 대통령은 그런 정책이 나라를 망친다고 주장하면서 권력을 잡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 보수의 정책노선을 줄푸세로 정리했다. 세금은 이고 규제는 , 정책 피해자가 반발하면 법질서를 운다는 명분으로 때려잡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정확하게 그 길을 가고 있다. 국회를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어서 마음먹은 만큼 속도를 내진 못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나라 안팎에서 조롱받고 있다. 아무 이유도 없이 굴종적인 태도로 임했던 한일정상회담, 블랙핑크 만찬공연 보고 누락을 이유로 미국 국빈방문을 앞두고 외교안보팀을 폭파한 일 등으로 1층에 있던 국정수행 지지율이 지하로 내려가는 중이다. 그런데 나는 그를 조롱하지 못하겠다. 윤석열 대통령은 우스운 사람이 아니라 무서운 사람이다. 경제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무지와 무능과 태만이 1997년과 비슷한 재난을 불러들이는 게 아닌가 싶어서 겁이 난다. 박정희도 전두환도 무섭지 않았던 내가 윤석열 대통령을 무서워하다니!

유시민 작가 : 시민언론 민들레 2023.04.03.

 

 

자살론으로 본 한국 사회

한국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있다. 누군가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보도는 하루가 멀다고 언론에 등장한다. 혼자 사는 어르신도, 가난을 견디지 못한 모녀도, 학교폭력 피해 학생도,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도 목숨을 버린다. 도덕적 흠결이 드러난 정치인도, 횡령 혐의를 받는 기업인도, 악성 댓글에 시달리던 연예인도 목숨을 버린다.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한 야당 정치인의 주변 인물들 중에는 벌써 다섯명이나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무엇이 한국인들로 하여금 이리도 서둘러 목숨을 버리도록 하는가.

 

한국의 높은 자살률은 국제 학계와 언론의 주목을 받은 지 이미 오래됐다. 2020년 기준 한국의 자살률은 10만명당 24.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부동의 1위다. 2등인 리투아니아가 20.3, 3등인 슬로베니아가 15.7명이니 한국의 자살률이 얼마나 높은지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노인 자살률은 80세 이상의 경우 10만명당 61.3명이고, 70대에서도 41.8명이라는 충격적인 수치를 보여준다. 청년들의 자살도 증가하는 추세다. 학계와 언론이 꼽는 자살의 위험요인은 정신건강, 경제적 어려움, 혼인상태, 사회적 고립, 총기와 같은 자살도구에 대한 접근의 용이성, 술이나 약물 의존성 같은 것들이다. 하나하나 일리가 있는 분석이지만 여전히 무언가가 비어 있는 느낌이다. 이것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무엇, 더 깊은 곳에 어떤 요인이 있다는 예감 같은 것이다.

 

미국의 자살방지 캠페인에 등장하는 한 중년 남자는 자살 충동이 드는 순간을 이렇게 설명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창밖을 보면서 생각해요. 이걸로 충분해. 더는 못하겠어.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어.” 이 순간을 넘기지 못하면 충동이 시도로 이어질 가능성은 현격히 높아진다. 그러나 불행히도 뇌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뇌는 일반인에 비해 훨씬 유연성이 떨어지고 부정적으로 변한다고 한다. 지금의 괴로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 거라거나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들은 왜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힐까. 아마도 한국 사회의 어떤 정신적 위기와 맞닿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자살에 대한 사회과학적 연구라면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을 떠올리게 된다. 뒤르켐은 자살을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 숙명적 자살이 그것이다. 사회에 통합되지 못하고 홀로 고립됨으로써 택하게 되는 이기적 자살은 1인 가구가 대세가 된 한국에서 흔히 발견되는 유형이다. 특히 노인의 경우 평생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가족의 연대가 붕괴하고 가난과 병마 속에 홀로 남은 자신을 발견할 때 이기적 자살이라는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게 된다. 슬픈 것은 노인층에서 이타적 자살조차 나타난다는 점이다.

 

자식 세대는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유교적 관념에서 벗어난 지 오래건만, 자식에 대한 부모의 의무를 끝내 저버리지 못한 노인들은 자식의 부담이라도 줄여주고 싶어서 자살을 택하기도 한다. 경제의 고도성장과 더불어 모든 것이 압축적으로 변해온 한국 사회에서 규범의 혼란으로 인한 아노미적 자살도 많은 것이 당연하다. 개인들은 복잡하게 얽힌 사회적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대부분의 사회구성원들이 동의하는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규범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급격하게 변동하는 사회에서는 어제 당연했던 것이 오늘은 당연하지 않게 되고, 그 도덕적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아노미적 자살을 택한다. 코로나19와 경기침체의 와중에 하루아침에 달라진 처지를 무어라 정의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의 선택이다. 과도하게 강요된 규범으로 인한 숙명적 자살은 아노미적 자살의 반대말이다. 특히 정치인이나 연예인처럼 대중 앞에 발가벗겨진 사람들의 경우 공인이라는 핑계로 잔인하게 사생활까지 들춰내며 무결점을 강요하는 세태는 숙명적 자살을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모두가 가해자이고 동시에 피해자이다. 한국에서 당신이 40세가 되기 전에 혹시 사망한다면 가능성 높은 원인 1위는 자살이다. 전 연령 평균을 내더라도 자살은 5번째 원인이다. 당신은 당뇨나 알츠하이머, 후천성면역결핍증으로 사망할 확률보다 자살로 사망할 확률이 더 높다. “이걸로 충분해.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어라는 생각은 당신을 포함해 누구에게도 올 수 있다. 잠시라도 미움을 내려놓고 주변을 돌아보자.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경향 : 2023.04.04.

 

 

진짜 문제는 개딸이 아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연일 개딸’(개혁의 딸)로 대표되는 강성 팬덤에게 내부 공격 자제를 읍소하고 있다. 지난해 5세계사적인 의미의 새로운 정치 행태라고 치켜세우며 댓글 정화 작업을 독려했던 그였다. 인식이 바뀐 걸까. 이 대표의 최근 입장을 살펴봤다.

 

먼저 개딸이 자신의 진짜 지지자가 아닐 수 있음을 시사했다. “우리 지지자가 아닌 사람이 변복해서 공격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포함된 수박 7포스터에 대해 저쪽에서 파견한 사람들이 한 게 아닐까라고 했다. 개딸 공격 타깃의 부정확성도 언급했다. 자신의 체포동의안 가결·무효 투표 명단에 대해 시중에 나와 있는 명단은 틀린 것이 많다. 5명 중 4명이 그랬다고 해도 5명을 비난하면 1명은 얼마나 억울하겠냐고 했다. 명단 배포와 좌표 찍기 자체가 아니라 정확성이 문제라는 식이다. 4명에 대한 비난은 온당하다는 뜻인가.

 

이 대표의 핵심 입장은 개딸들이 외부 공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총구를 바깥으로 돌리자고 했다. 내부 공격은 상대 진영이 가장 바라는 일이고 집안에 폭탄을 던지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우리 안의 차이가 있다고 한들 상대와의 차이보다 크겠냐는 것도 이유다. 다른 당 인사에게는 문자폭탄을 보내고, 욕설 전화를 하고, 18원짜리 후원금을 쏘고, 자택 앞 비난 시위를 해도 된다는 것인가.

 

지난해 개딸들을 사랑한다고 했던 이 대표는 왜 이제 와서 내부 총질 자제를 호소할까. 그는 누가 손해인가. 제 개인이 아니라 민주당, 그리고 민주진영 전체라고 했다.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 개딸의 행태는 다르지 않다. 이 대표 주장대로라면 개딸은 지난해에도 민주당과 민주진영 전체에 손해를 입혔다. 달라진 것은 이 대표의 처지이다. 체포동의안 무더기 이탈표 사태 이후 개딸이 그의 정치생명을 위협한다는 진단이 당내에서 나왔다. 개딸이 내부를 공격할수록 2차 체포동의안 가결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개딸은 그대로지만 개딸에 대한 이 대표의 유불리 계산이 변한 것이다.

 

그렇기에 개딸의 문제는 이 대표 주장처럼 총구의 방향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개딸의 행위가 민주주의에 해롭기 때문이다. 내부든 외부든 다른 의견을 적대시하고, 공격하고, 탄압하는 집단적 행태를 지적해야 한다. “이럴 때 가장 미소짓고 있을 이들이 누구인지 상상해보라는 이해득실의 관점으로 자제를 호소한다면, 이 대표의 상황이 바뀌면 또 해도 괜찮다는 뜻으로 들린다.

 

이 대표는 개딸에 대해 좋은 뜻으로 시작했는데 혐오 단어로 바뀌고 있다. 억울하실 것 같다너무 많이 오염됐다고 했다. “연구해서 바꾸면 어떨까 싶다며 명칭 변경을 언급했다. 이름을 바꾸고 외부로 총구를 겨누는 것이 해법일 수는 없다.

 

어디에나 극단적인 부류는 있다. 그들의 힘은 이를 활용하려는 세력으로부터 나온다. 정당과 정치인이 이에 의존하지 않으면 그들의 힘은 자연스레 사라진다. 개딸을 오염화한 장본인은 민주당 지도부와 편승하는 의원들이다. 개딸 논란의 진짜 문제는 개딸이 아니다. 그들에게 단호하게 라고 말하며 절연하지 못하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다.

강병한 정치부 차장 경향 : 2023.04.04.

 

 

통한의 제주 4.3

어제가 43, 제주 4.3사건이 일어난 지 75년이 되는 날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대표와 최고위원들이 대거 4.3추념식에 참석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작년 당선자 신분으로 참석했다는 이유로 불참하고 그 대신 대구에 와서 보수 정치인의 성지, 서문시장을 또 방문하고 프로야구 시구를 했다. 제주 4.3사건은 학교 역사 시간에 가르치지 않아 오랫동안 파묻히고 잊혔던 사건이다. 4.3 사건의 발단이 된 것은 19473.1절 기념식이었다. 제주 북국민학교에서 열린 19473.1절 기념식에는 제주 역사상 최대 인파인 3만명의 시민이 모였는데 ‘3상회의 결정 즉시실천’, ‘미소공동위원회 재개등의 슬로건이 나왔다. 이는 이승만과 미군정이 추진하는 남한 단독정부를 반대하고 남북 통일정부를 구성하자는 정당한 요구였다. 미군정의 방침에 반하는 표어가 등장하자 미군정은 과잉대응 하였고, 평화적으로 시위하는 시민에게 경찰이 발포하여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상을 입은 불상사가 일어났다. 당국이 발포에 대해 당연히 사과해야 함에도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처벌, 색출이라는 강경책으로 치닫자 시민들의 분노는 커졌다. 당시 제주도민들은 해외에서 귀환한 동포 6만명의 구직난, 콜레라의 창궐, 극심한 흉년, 생필품 부족과 물가고, 친일경찰의 존속, 미군정 관리들의 부패, 이승만의 욕심에 의한 남한 단독정부 추진 등 여러 가지 겹친 문제로 불만이 팽배해 있었다.

 

3.1절 사건에 대한 분노는 3.10 총파업과 학생들의 동맹휴학으로 나타났다. 도지사가 항의의 뜻으로 사임했고, 일부 경찰들조차 항의에 동조하였다. 미군정은 이때라도 사과하고 수습했으면 좋았을 텐데 사과 대신 제주도를 빨갱이 섬이라고 규정하고는 철저한 탄압, 체포에 나섰다. 경찰의 힘만으로 안 되니 악명 높은 테러단체인 서북청년단까지 섬에 투입하여 무자비한 진압에 나서는 바람에 제주도에 피바람이 불었고, 제주도민들은 억장이 무너질 지경이었다. 앉아서 당하느냐 맞서 싸우느냐의 선택밖에 없었다. 194843일 새벽 남로당 제주도 군사부장 김달삼이 이끄는 5백명의 유격대가 11개 지서와 서북청년단를 습격하여 친일경찰과 악질 극우파들을 응징살해했다. 이것이 제주 4.3 사건의 시발이다.

 

4.3 사건의 진압 책임자 중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려고 한 유일한 온건파라고 할 수 있는 9연대장 김익렬 중령은 유격대장 김달삼과 담판을 벌여 중요한 4.28 합의를 이뤄냈다. 4.28합의의 내용은 72시간의 전투중지, 무장해제와 하산이 이루어지면 주모자들의 신변보장 등 세 가지로서 이것이 사건의 평화적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인 429일 미군정장관 딘 소장이 제주도에 날아와 대책회의를 열었는데 이 회의에서 김익렬 중령은 강경파 조병옥과 대립해 멱살잡이까지 하며 싸운 뒤 해임됐다. 당시 경찰 총수 조병옥 경무부장은 "제주 상공에서 기름을 붓고 섬을 몽땅 불태워 버려야 한다"고 막말을 한 사람이다. 결국은 강경파가 득세하여 앞뒤 가리지 않는 무차별 진압에 나선 결과 섬은 생지옥이 됐다. 1954년 사태가 종결될 때까지 당시 제주도민 30만명 중 최소 3만명이 목숨을 잃었으니 제주도민 중에서 일가친척 중 희생자가 없는 집이 드물 것이다. 1980년 광주도 그랬고 대부분의 민중항쟁이 그렇지만 얼마든지 대화와 순리로 풀 수 있는 것을 강경파들이 파국으로 몰고 가는 경우가 많다.

 

유격대장 김달삼은 19488월 하순 황해도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인민 대표자회의에 참석차 월북하여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됐다. 그는 19498월 게릴라대원 3백명을 이끌고 남하하여 경북 일대에서 유격전을 전개하다가 19509월 강원도에서 국군에게 사살됐다. 그의 나이 27세였다. 그는 남제주군 대정면 출생이지만 대구와도 인연이 깊다. 어릴 때 부모를 따라 대구로 이주해서 살았고, 대구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해방 후에도 대구에 사는 형 집에 기거하면서 1946년 대구 10월 항쟁에 가담했다.

 

나는 학생 시절에 4.3 사건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고, 내가 배운 역사 교과서에는 아예 나오지도 않았다. 20대 후반에 미국인 존 메릴이 쓴 제주도의 반란이라는 논문을 읽고 이 사건을 처음 알게 됐다. 요즘은 좋은 책이 많지만 그때만 해도 한국 현대사는 불모지였다. 내가 학교에서 배운 한국사는 삼국시대, 고려사에서 끝나거나 잘 하면 임진왜란, 동인, 서인 하다가 끝나기 일쑤였다. 물론 고대사, 중세사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현대사다. 그런데도 왜 현대사를 이렇게 소홀히 취급하는지 이상하지 않은가. 현대사 공백은 이승만, 박정희 정권이 자신의 치부를 감추려고 일부러 안 가르쳐 생긴 게 아닐까 의심이 든다. 그러다 보니 대학을 나오고 다른 면에서는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도 한국 현대사를 몰라 때로는 무지몽매하고 판단력이 이상한 경우를 더러 본다.

 

2003년 내가 참여정부에서 일할 때 청와대 수석회의에 제주 4.3 사건이 안건으로 올라왔다. 그때만 해도 사람들은 4.3이 뭔지 잘 몰랐다. 나는 책 읽은 게 기억나 대통령이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할 것을 강력 건의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해 1031일 제주도에 가서 4.3사건에 대해 역사상 처음으로 공식 사과하고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사실 나는 노대통령이 다음 해 4.3 추모제에서 사과할 것으로 예상하고 그때는 만사를 제쳐놓고 대통령을 수행해서 제주도에 가야지 하는 마음속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예상을 깨고 반년 앞서 사과가 나온 것이다. 그날 저녁 뉴스를 보니 노대통령이 사과를 하자 장내가 술렁거렸다. 방송국 기자가 행사 참석자에게 마이크를 갖다 대며 소감을 묻자 어느 아주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생전에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습니다." 순간 내 마음이 찡해오면서 대통령이 사과하기를 정말 잘했구나 싶었다. 그날이 내가 노무현 대통령 밑에서 일한 2년 반 기간 중 가장 기쁘고 보람 있는 날이었다. 국가폭력에 희생된 제주 3만의 억울한 영령의 명복을 빌고, 길고도 긴 통한의 세월을 살아온 유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 중부일보 2023.04.04.

 

 

종교는 어떻게 범죄가 되는가

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종교와 관련된 범죄나 스캔들은 탐사저널리즘의 이상적인 소재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종교에 관한 이야기 속에는 낯설고 기이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과 폐쇄적인 집단, 그 내부에서 자행되는 학대나 폭력 같은 자극적인 소재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가 일으킨 열풍은 이례적이다. 이 새로운 매체는 고도의 전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공중파 방송 심의규정에서 자유로우며, 대상 교단들의 법적 대응이나 물리적인 반발을 돌파하는 데에도 유리했다.

 

그러나 자극적인 개별 사례에 집중하는 것보다 중요한 문제들이 있다. 종교는 어떻게 반사회적이거나 불법적인 행위를 정당화하는가? 그리고 왜 그런 종교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은 그런 주장을 의심하는 대신 무비판적으로 동조하며 도리어 외부 사회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가?

 

우선 몇가지 오용되는 개념들을 정리해보자. 다큐멘터리에서 다루어진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아가동산, 만민중앙교회 등은 흔히 이단’, ‘사이비등으로 불린다. 이들 단어는 <논어><맹자> 같은 유교 경전에도 나오지만, 실제로는 그런 고전적 표현을 활용한 근대 번역어다. 이 맥락에서 이단(heresy)이란 특정한 종교 전통에서 정통 교리를 따르지 않는 분파를 가리킨다.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다원적인 종교 환경에서 이 말은 교단 내부에서는 사용될 수 있을지 몰라도 공적인 용어로서는 부적절하다.

한편 사이비종교란 식민지 시기 법률용어인 유사종교(類似宗敎)의 통속적 변형이다. 그것은 공인된 종교가 아닌, “종교 비슷하지만 아닌단체들을 멸시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정상적이고 건전한종교를 제도적으로 규정하는 체제라면 모를까,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는 적합하지 않은 개념이다. 해당 종교인들이 법적 처벌이나 사회적 비난을 받는 이유는 그들이 종교가 아닌 것을 종교인 척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종교를 이용해 나쁜 일을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왜 사회적 차별의 시선을 감수하면서까지 전통적인 주류 교단 대신 수상하고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종교에 가담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냐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신자들의 결핍이나 교단의 세뇌를 원인으로 지목하는 설명이 많다. 그러나 그런 이론은 교육 수준이나 사회경제적 지위가 비교적 높은 신자들의 존재나, 그들이 상당 부분 자발적으로 세뇌를 받아들이는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나는 종교경험이라는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새로운 종교운동은 이론이나 관행에 호소하기보다는 강렬하고 신비로운 체험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험의 특징은 개체적 자아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신성이나 우주, 공동체 성원들과 강렬한 일체감을 느끼는 데 있다. 이것은 심오한 진리에 대한 직관이나, 무조건적인 사랑의 감정이나, 신체적, 정신적 고통의 감소 등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일상적인 감각이나 상식, 언어 너머에 무언가 있다는 확신을 주기 때문에 세속화, 합리화된 현대 사회에서도 종교가 지속되는 근거가 된다.

 

물론 그런 체험에 대한 수요는 기존 종교들에서도 충족될 수 있다. 그러나 기성 종교 제도의 전통적인 교리와 의례에 진부함을 느끼다가, 낯선 집단에서 강렬한 신비체험과 친근한 공동체를 처음 경험하는 이들도 있다. 종교경험은 언어로 표현되기 어려운 속성 때문에 어떤 믿음과 실천의 체계와도 연결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종교는 극단적인 선행도, 극단적인 악행도 정당화할 수 있다. 만약 신성함에 대한 감각이 카리스마적인 개인에 대한 숭배와 연결된다면 인간은 그 사람에게서 신을 보게 된다. 강제 노역이나 성적인 착취까지도 초월성에 대한 헌신과 구분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종교를 이용하는 범죄자들은 그런 상징조작의 달인들이다. 따라서 그들을 이단으로 지정하거나 신자들을 색출하는 일은 선의의 피해자를 줄이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외부로부터의 공격이 진리에 대한 사악한 세력의 박해로 허위 표상되기 때문이다. 또한 종교를 이용한 착취나 폭력은 기성 종교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은 지도자의 카리스마나 신앙공동체의 일치를 강조하는 한편, 그것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빈약한 조건에서 흔한 현상이다. 해로운 것은 새로운 종교가 아니다. 비판받지 않는 종교 권력이다.

한승훈 | 한국학중앙연구원 종교학전공 교수 : 한겨레 2023.04.04.

 

 

슬로푸드: “좋은, 깨끗한, 공정한음식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1986년 봄,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 큰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의 다국적 패스트푸드 기업 맥도날드가 로마 도심 스파냐 광장에 매장을 열었다. 사건이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에게 영어식 발음인 스페인 광장으로 알려진 이곳은 로마 시민들이 사랑하는 도심 산책로 가운데 하나이자 로마를 찾는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는 명소다. 주위에 이탈리아 정통 음식점들도 많다.

 

매장이 문을 열기 전 로마시와 협상이 있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시민들 반대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매장 안에 지중해식 샐러드코너를 마련하는 것도 개장 허가 조건 중 하나였다고 한다. 당시 로마에 살고 있었던 나는 문화탐방하는 마음으로 그곳을 둘러봤는데, 실제 매장 입구에 샐러드 코너가 있었다. 그 샐러드 코너는 추후 맥도날드에 이득이 될 것이었다. 전세계에 퍼져 있는 맥도날드 매장을 위해 그 코너를 미리 적용해보는 계기가 됐을 테니 말이다.

맥도날드 패스트푸드를 반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로 아이들이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아이들의 입맛과 호기심을 만족시켜주는 데에 맥도날드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당시 이탈리아의 문화변동이 패스트푸드 사업이 진출할 통로를 열어줬다는 점이다.

 

1980년대 초 시작된 파니나로(paninaro) 운동이 그것이다. 1960~70년대 유럽 대학의 학생운동은 사회·정치적 개혁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것이 잠잠해지고 70년대 석유파동 이후 경제적 풍요와 함께 중고등학교 사춘기 청소년들 사이에서 퍼진 것이 파니나로다. 그들은 특별한 패션과 대중음악을 좋아하고 자기들만의 언어로 소통하며 간편식으로 이탈리아식 샌드위치인 파니니’(panini)를 즐겼다. 파니니는 미국식 햄버거와 다르고 파니니를 패스트푸드라고 할 수 없지만, 맥도날드가 시장조사를 하면서 이런 문화현상을 놓쳤을 리 없다.

 

다른 한편 맥도날드의 로마 진출은 이탈리아에서 슬로푸드 운동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슬로푸드는 패스트푸드가 없었으면 나오지 않았을 말이다. 이탈리아 사람에 의해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운동이지만 영어로 이름 지어진 이유다. 패스트푸드가 국제어가 된 이상 슬로푸드도 국제어가 됐다.

그런데 이 말들에 담겨 있는 빠르다느리다는 수식어는 오히려 두 말의 진의를 제대로 파악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 같다. 일부 사전에서는 바로 이 수식어에 초점을 맞춰 단어를 정의한다. “패스트푸드는 주문하면 즉시 완성돼 나오는 음식을 이르는 말로서, 햄버거, 프라이드치킨, 피자 따위를 이른다든가, “슬로푸드는 천천히 시간을 들여 만들고 먹는 음식을 일컫는다고 정의한다.

 

패스트푸드든 슬로푸드든 음식을 조리하는 속도에 한정하거나 특정 음식을 지칭하는 말로 이해하려고 하면, 되레 이것들을 제대로 알 수 없게 된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피자가 패스트푸드라고 하면 매우 억울해할 것이다. 식재료에서 굽는 방식, 그리고 식탁에서 그 맛을 음미하는 풍속을 보면 슬로푸드에 가깝다. 햄버거도 통밀빵에 제대로 공급받아 구운 고기, 그리고 신선한 채소로 만들면 패스트푸드가 아니다. 반면 전통 음식이더라도 어떻게 생산되고, 어떻게 조리되고, 화학적으로 무엇을 얼마나 가미하는지에 따라 패스트푸드가 될 수 있다.

 

말의 기원에서도 그렇듯이 슬로푸드를 알려면 먼저 패스트푸드를 살펴봐야 한다. 탐사 전문 기자인 에릭 슐로서는 20여년 전에 쓴 <패스트푸드 네이션>에서 패스트푸드가 무엇인지 알려면 그 음식들이 어디서부터 왔고,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그 음식들이 만들어내는 길고 짧은 파급효과는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한다고 했다. 곧 매장에서 고객 주문에 응답하는 서비스의 속도 이면에 있는 모든 과정, 그 음식이 소비자의 건강과 우리 삶 전반에 미치는 영향까지 알아봐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패스트푸드의 핵심 식자재인 육류를 빠르게 많이 생산하기 위해 발생하는 노동력 착취와 산업재해, 대규모 축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 식자재의 위생 상태 등도 패스트푸드를 정의하는 요소가 돼야 한다고 했다.

 

슬로푸드는 패스트푸드에 저항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이 운동을 창시하고 계속 추진하고 있는 카를로 페트리니는 슬로푸드의 원칙을 세 가지로 표현한다. “좋은, 깨끗한, 공정한음식이다. 이 세 단어는 간단하지만 그것이 함의하는 바는 포괄적이다.

슬로푸드는 좋은 식재료로 만들어진 음식일 뿐만 아니라 생산지의 문화적 차이에 주목하고, 지속가능한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며, 생산과정에서 공정함을 담보해야 한다. 농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착취해 만들어지는 음식, 자연을 파괴하면서 만들어지는 음식은 슬로푸드가 아니다. 슬로푸드는 식탁 위에 놓인 음식이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지는지, 식재료를 생산한 이들은 누구이고 어떻게 생산됐는지를 고민하는 개념이다. 곧 페트리니의 슬로푸드는 음식문화를 그 뿌리에서부터 개선하고자 한다. 패스트푸드의 획일성을 넘어 우리 식탁과 삶의 생물다양성, 문화다양성, 지역다양성 및 지속가능성을 지켜나가는 운동을 지향한다.

 

패스트푸드가 현재라면, 슬로푸드는 과거를 회복하고 현재를 치유하며 미래를 지향한다. 음식이 환경문제와 밀접한 것만 보아도 슬로푸드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지만, 현재의 기득권으로서 패스트푸드는 힘이 세다.

 

슐로서의 저서를 각색해서 만든 동명의 영화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일하던 앰버는 축산업의 실상을 알고는 학교 동료들과 힘을 합쳐 소들을 풀어주기로 한다. 그들은 목장의 울타리를 부수고 소들을 밖으로 내보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소들은 그 안에서 맴돈다. 앰버는 외친다. “너희들! 자유를 원하지 않니?” 그래도 소용없다. 포기한 앰버가 묻는다. “나는 소들이 왜 울타리 안에 갇혀 있으려 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동료가 답한다, “거기 있는 게 편하니까 그랬겠지 뭐, 때 되면 밥 주고, 게다가 유전자변형 사료가 풀보다 맛있기 때문 아니겠어.”

편한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에 대한 메타포로는 너무 잔혹하지만, 현대인의 음식문화, 그 정곡을 찌르는 장면이다. 슬로푸드에 있는 천천히라는 말이 각별히 떠오른다. 진정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느리더라도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김용석 | 철학자 : 한겨레 2023.04.05.

 

 

성장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놀랄 만한 뉴스가 없는 날이 없다. 주말 곳곳에서 발생한 산불이 두려움을 주더니, 월요일부터는 국제유가 급등 소식이 다소 잦아들던 인플레이션 불씨를 살렸다. 앞서 글로벌 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가 유동성 위기를 겪다가 다른 회사에 넘어갔고, 도이체방크도 위기설이 증폭되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그 여파는 한국에 고스란히 전해져 금융시장을 흔들었다. 도처에 시한폭탄이 도사리고 있다.

 

신문 기사에는 폭탄과 같은 군사 용어 사용을 자제하려고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흔한 용어가 됐다. 인터넷 포털 네이버에서 4일 오후 폭탄으로 뉴스를 검색하니 1일간 올라온 관련 기사만 200건가량이었다. 세금·난방비·문자·분담금·할인·부동산 PF·역전세·공급·갭투자·범칙금·부실 등 폭탄 종류도 다양하다.

 

서울 인왕산 인근 주민들은 지난 2일 발생한 산불에 대해 40여년 만에 처음이라며 놀랐다고 한다. 이날 전국에서 34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이는 역대 세 번째 기록이다. 올해 들어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은 평년에 비해 50% 이상 많다. 최근 지속된 건조한 날씨 탓으로, 기후변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한국뿐 아니라 지구 전체가 겪는 현상이다.

 

지구 환경과 경제 현장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난무하고 있다. 서구 학자들은 현재 지배적 경제 시스템인 자본주의가 한계에 이르러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자본을 확대재생산해 이익을 늘려가며 성장하는 자본주의는 무분별한 채굴로 지구 천연자원 고갈을 초래한다. 화석연료를 비롯한 자원의 채굴과 사용을 줄이지 못하면 인류는 조만간 생사 기로에 놓일 수밖에 없다.

 

탄소를 내뿜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한결 환경친화적인 전기차로 바꾸는 등 기술혁신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일부는 주장한다. 재생에너지와 탄소 저감 등 친환경 기술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는 그린 뉴딜이 한 예다. 그러나 성장을 전제로 한 그린 뉴딜은 자본가에게 새로운 이익 추구의 기회가 될 뿐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기후변화는 기술혁신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지구를 망치고 있다. 영국 환경경제학자 팀 잭슨은 <성장 없는 번영>에서 자본주의 아래에서 진행되는 기술혁신이 기후변화를 멈춰줄 것이라는 단순한 상정은 환상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금융은 증식을 거듭하는 괴물이다. 한국 국내총생산(GDP)1990200조원에서 20212072조원으로 10배가량 늘었다. 반면 금융시장 규모는 같은 기간 158조원에서 5662조원으로 36배 급증했다. 2004년 서울에서 30평대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려면 노동자 월급 18년치를 고스란히 모아야 했다. 지난해에는 36년치로 늘었는데, 이는 금융시장 확대에 따른 자산거품 영향과 무관치 않다.

 

과거 금융은 실물경제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 산업의 혈맥으로 불렸다. 지금은 각종 파생상품으로 이익을 최대화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 투자기회 확대라는 명분이 있지만, 금융을 통해 늘어나는 부는 대부분 거대 자산가에게 돌아갈 뿐이다. 일부 글로벌 은행이 위기에 처하는 것은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실타래처럼 얽힌 금융상품의 복잡한 구조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탈성장과 새로운 경제체제 논의가 활발한 것은 성장이 정점을 지나 갈수록 자본주의 모순이 불거지기 때문이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칼럼집 <사회주의 시급하다>에서 자본주의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지구 자원을 고갈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피케티는 자본주의를 극복할 새 방식으로 참여적이고 지방 분권화된, 연방제 방식이며 민주적이고, 또 환경친화적이고 다양한 문화가 혼종돼 있으며, 여성 존중의 사상을 담은 사회주의를 제시했다.

 

유엔은 2021년 한국을 선진국으로 공식 인정했다. 최근 50년간 지구상에서 한국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한 자본주의 모범 사례는 없다. 환경오염과 불평등 심화 속도도 그만큼 빨랐다. 하지만 앞으로도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경제를 떠받쳤던 수출은 지난달까지 6개월 연속 감소했고, 13개월째 무역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급격한 인구 감소와 주력 산업 침체 등 성장동력마저 약화하고 있다. 한국도 이미 성장의 정점을 지나고 있는지 모른다. 성장 없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포스트 자본주의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 경향 2023.04.05.

 

 

정상외교 리스크 극복의 길은

최근 한국 정상외교를 둘러싼 논란을 그저 관전하는 처지이지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한국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의사를 배제한 채 일본이 학수고대하던 해법”(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을 내놓았는데, 일본은 호응조치는커녕 독도, 위안부 합의, 후쿠시마 오염수 등의 청구서를 내밀었다. ‘12년 만의 셔틀외교 복원으로 자화자찬한 한·일 정상회담의 적나라한 성적표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 취임 2년차인 올해 정상외교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외교안보라인 난맥으로 시작 전부터 불안한 4월 말 미국 국빈방문, 5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한··3자 회동에 이어 가을부터 유엔·주요 20개국(G20)·아세안 등 다자 회의도 줄줄이 예정돼 있다. 정상외교를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니 결국 중꺾마정신이라도 빌려 사태를 복기해야만 해결의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인위적인 외교 시간표 설정이 야기한 조급증, 굴절된 역사인식, 피해자보다 일본 측 입장을 두둔하는 발언 등 문제를 꼽자면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국가 간 외교관계와 협상의 기본 상식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야말로 가장 위태로워 보인다. 동맹끼리도 국익 앞에선 치열하게 다투는 법인데 대통령은 일본과 무엇을 주고받는 협상을 원하지 않았다”(김태효 1차장)고 했다. 애초부터 협상 의지가 없었으니 원칙도 팽개치고 실리도 놓친 참담한 결과가 나온 것인가.

 

한껏 밀착하고 있는 한··3국 가운데 미·일 정상이 지닌 공통점이 있다. 4년여 외무상을 지낸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외교 행보를 내치 부진의 돌파구로 삼을 만큼 자신감이 있다. 50년 전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됐고 상원 외교위원장, 부통령을 거치며 외교 분야에서 관록이 붙은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 역사상 가장 외교에 해박한 대통령으로까지 거론된다. 반면 검사 출신으로 군사·외교 정책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은”(헤리티지재단 보고서) 윤 대통령은 취임 전까지 한반도의 지정학적 도전을 고민하거나 외교 무대에서 국익을 대변할 필요가 없었다.

 

외교 경험의 부재는 확증편향 없이 참모들과 허심탄회하게 소통해 해법을 모색했더라면 장점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본과 끝까지 협상해야 한다는 실무진의 건의를 결단으로 압도했다는 일화, 의전·외교비서관과 안보실장 연쇄 경질과 주미대사 공백까지 이어진 사태를 보면 참모 용인술마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일 정상회담 참사를 빚은 태도가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반복됐다가는 외교안보 전략의 틀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성공적인 국빈방문은 안보실 파동에도 결국 무산됐다는 K팝 스타 초청 공연이 아니라 북핵 위협과 반도체법·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같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중 전략경쟁 등 복합위기에서 국익을 극대화할 발판을 마련했느냐 여부가 결정한다.

 

통 큰 양보는 당내 정적을 포용하거나 야당과 협치할 때 보여주면 된다. 우리에겐 경제·군사력은 물론 문화의 힘으로 세계 속에 당당히 선 한국의 위상에 걸맞은 정상외교를 누릴 만한 자격이 있다.

김유진 워싱턴 특파원 : 경향 2023.04.05.

 

 

검찰주의자들의 멋진 신세계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달라지고 있다. 최고의 시절이고 최악의 시절이다. 지혜의 시대이고 어리석음의 시대다. 어떤 이에겐 희망의 봄이지만 다른 이에겐 절망의 겨울이다. 목청 높은 권위자들은 작금의 상황을 양극단으로만 평가하며 헌법과 현실의 불일치를 비판한다. 그러자 검찰주의자들이 되레 개헌안을 들고나온다. 그들의 주장을 간추리면 아래와 같다

 

우선 정당제를 규정한 헌법 제8조를 수정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당민주주의 훼손이라는 비판까지 무릅쓰면서 여당인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했다. 내년 총선에 검사를 여당 후보로 공천하기 위한 수순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8조를 다음과 같이 고치면 윤 대통령의 행동은 시빗거리가 안 된다. ‘정당은 그 목적·조직과 활동이 검찰적이어야 하며, 검사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은 평등하다. 그러나 검사들은 더 평등하다. 검사들은 비리 의혹이 제기돼도 수사를 받지 않고, 죄를 지어도 가벼운 처벌만 받는다. ‘대장동 사건에 연루된 전직 검사 박영수·김수남·곽상도 등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에 평등권을 규정한 제11조를 현실에 맞게 고친다. ‘검사를 제외한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직업공무원 제도를 명시한 제7조도 수정한다. 임관하자마자 3급 대우를 받는 검사는 일반 행정부 공무원과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검사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다.’

 

최근 전직 검사들이 무더기로 재벌·대기업에 취직했다. 전 검찰총장은 삼성그룹 계열사 사외이사를 꿰찼고, 전 대검 차장도 대기업 이사회에 둥지를 틀었다. 한국 사회에서 검사만큼 다재다능한 인재는 없다. ‘보이지 않는 손의 개입과 검찰 수사로 공석이 된 KT 대표이사직을 포함해 검사들이 원하는 직장, 원하는 직위에 갈 수 있도록 헌법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 이에 직업선택의 자유를 규정한 제15조의 주어를 검사로 바꾼다. ‘모든 검사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

 

17조 사생활과 비밀의 자유, 18조 통신의 자유도 검사를 주어로 서술한다. ‘모든 검사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모든 검사는 통신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 이로써 검언유착 논란이 일었던 채널A 사건’, 검사 출신 의원과 현직 검사 간 유착 의혹이 제기된 고발사주사건의 핵심 증거가 담긴 한동훈 법무부 장관 휴대전화를 수사하지 못한 것은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 국회나 헌법재판소에도 전혀 굴하지 않는 한 장관의 위상을 감안해 제71조도 수정한다.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법무부 장관이 최우선적으로 그 권한을 대행하고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한다.’

 

지난 1년 동안 대통령실과 국가정보원·법무부의 주요 보직이 검사로 채워졌다. 검사 출신인 홍준표와 김진태는 각각 대구시장과 강원지사가 됐다. 국가보훈처장, 법제처장, 금융감독원장,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교육부 법무보좌관, 국민연금 상근전문위원에도 검사 출신이 임명됐다. 공무담임권을 명시한 제25조는 다음과 같이 고친다. ‘모든 검사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담임권을 가진다.’

 

그래도 혹여 검사의 인권과 수사·기소권이 침해될 수 있으므로 제37조를 다음과 같이 수정한다. ‘검사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검사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이렇게 하면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서 낙마한 정순신이 추후 중용되더라도 뒷말이 나오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대통령 선출 절차를 명시한 제67조를 고친다. ‘대통령은 검사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검찰을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검사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검사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69)

오창민 논설위원 : 경향 2023.04.06.

 

 

과거의 망령은 꺼져라

얼마 전 30세 전에 아이 셋을 낳으면 군을 면제해주겠다는 논의 때문에 세상이 시끌시끌했다. “이제 남자도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된 줄 몰랐다는 재치 있는 비꼼부터 돈 많은 집이나 가능할 것이라거나 군 면제 받겠다고 아이를 입양했다가 파양하는 사건이 생길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이미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결혼에 유의미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나오고, 아파트 한 채 분양받아보겠다고 아이를 입양했다가 파양하는 사건도 있는 나라에서 모두 생길 법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비관적 전망을 떠나 나는 이 아이디어가 섬뜩했다. 20세기 전반 군국주의와 전체주의의 망령이 휩쓸던 때의 사고방식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20세기 전반, 젊은 남성은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으로 규정되었다. 여성은 어머니로서 아들이 전장에서 멸사봉공하더라도 담대하게 행동할 것이 요구되었고, 아내로서는 낳아라 불려라, 국가를 위하여!”라는 슬로건 아래 최대한 많이 아이 낳기를 장려 당했다’. 그리고 미혼의 여성은 전쟁터의 군인을 위안하기 위해 보내졌다. 인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국가를 위해 복무하는 존재로 사람을 규정하는 전체주의 사회에서 남성은 군인으로, 여성은 성과 출산으로 묶어 임무를 부여한 것이다. ‘서른 이하 아이 셋=군 면제라는 발상 역시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섬뜩함을 느낀 지점이었다.

 

일하는 시간 논란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섬뜩했다. 처음엔 일주일 120시간씩 일할 자유를 운운하더니 진지하게 검토하고 나서는 69시간이라는 방안이 나왔다. 그러다 법정 과로사 기준 시간을 넘긴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는지 슬쩍 9시간을 깎았다. 이만큼 깎아도 6일 동안 하루 10시간씩 근무해야 하는데, 이렇게 일할 자유도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1시간 점심시간까지 더하면 11시간을 일터에 붙잡혀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다르게 일할 수 있는 자유가 없다는 점, ‘이렇게 일 시킬 자유와 권력이 누군가에게 너무 과도했기에 이를 규제해온 것이 산업혁명 이후 지금에 이르는 흐름이라는 점 등은 무시당했다.

 

오래 일할 자유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강제의 범위를 매우 협소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질질 끌고 와 족쇄라도 채워 가둬놓고 일하는 정도가 되어야 강제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강제징용에 대해서도 강제도 아니고 징용도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강제의 범위를 이렇게 협소하게 생각하니,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데 거침이 없어진다. 월급 100만원에 값싼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쓰자는 발상은 그러한 착취적 태도의 연장이다. 그 외국인은 (자국의 어려운 경제 형편 때문에) 싼값에라도 기꺼이노동을 제공할 것이니 우리가 그렇게 써도 된다고 생각한다. 한발 더 나아가 그렇게라도 써주는 우리 덕분에 그들이 이익을 보고 있다는 시혜적 태도까지 갖게 되기도 한다. 이런 발상에는 50, 100년 전에 우리가 바로 그 외국인 처지였다는 역사적 통찰도, 보편적 인권에 대한 감수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작금의 논란은 참담하다. 이 발상은 백년은 족히 된 전체주의적 사고요, 지극히 착취적이며 퇴행적인 사고다. 우리가 역사의식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러한 퇴행성을 눈치채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누구에게 공감하며 연대하는지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아픈 과거 속에 큰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공감하며 연대의식을 느끼는 것은 그들이 단지 우리민족의 과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은 현재와 미래의 우리거나 다른 민족이기도 하며, 인간 보편이 누려야 할 삶의 모습을 일깨워주는 존재기도 하다. 그러기에 역사의식을 지닌 우리는 질문한다. “모든 인간은 행복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동의합니까?”

장지연 대전대 혜화리버럴아츠칼리지 역사문화학전공 교수 : 경향 2023.04.06.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이여

제주 4·3을 두고 나라가 떠들썩하다. 이해할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분명한 사회적 합의가 있지 않은가? 새삼 논란을 벌일 이유를 모르겠다. 우리나라 최고 주권기구인 대한민국 국회가 이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고, 사법부는 판단에 이를 적용하였으며,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는 이를 집행하였다.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만들어진 것은 20001월이었고 그것에 따라 작성한 ‘4·3사건 진상 보고서를 국가가 공식적으로 채택했다. 그 후 특별법은 수차례 부분 개정과 전면 개정 등을 거쳐 최근까지 내용이 보완되고 있으며,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진상규명, 명예회복, 피해보상 등이 진행됐다.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더 다듬어야 할 대목은 있다 하겠으나 이를 되돌리려는 왈가왈부는 있을 수 없다.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녘의 땅/ 어둠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소란 때문인지 올해 동백꽃 잎은 유난히 붉어 보인다.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리죽임과 죽음이 엇갈리는 참혹한 지옥을 헤맸던 경찰가족과 산사람가족은 이미 통곡의 세월을 건너 역사적 화해를 했다. 함께 손잡고 상생의 세상을 만들자고 나섰다. 그런데 당사자도 아닌 정치인들은 왜 이 난리인가?

 

이 혼란의 중심에는 안타깝게도 윤석열 대통령이 있다. 그는 대통령 후보자 시절 제주 4·3 추념식에 참석했다. 그의 국민통합 행보는 박수를 받았다. 그의 연설은 평범했으나 울림을 주었다. “우리는 4·3의 아픈 역사와 한 분, 한 분의 무고한 희생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4·3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온전한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지금 그 약속이 아직도 유효한가?’라는 질문을 받고 있다. 제주 4·3 추념식에 윤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은 탓에 그가 한 말의 진정성이 의심을 받고 있다. 그의 추념식 불참에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대통령은 추념식에 불참할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야유와 탄식이 쏟아지고 있는가? 그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줄곧 국민통합의 반대 방향으로 줄달음치고 있다는 현실 때문이다. ‘검찰공화국이라는 민망한 별명, 그 완력으로 정치판을 탈탈 털고 있다는 평가, 소통과 공존의 정치를 통한 국민통합 약속은 물 건너간 지 오래라는 지적 등이 사실이고, 이런 이유로 윤 대통령의 신뢰가 땅에 떨어지고 있는 상황인데 여기에 불을 지르는 일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과거사 문제를 다루는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에 김광동을 임명하였는데 그는 5·18을 왜곡하는 견해를 계속 강변하여 논란의 불을 지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제주 4·3에 김일성이 개입을 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여 불씨에 기름을 부어버렸다. 국민의힘 수석 최고위원 김재원도 5·184·3의 의미를 폄훼하는 발언으로 폭탄급 자해를 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이런 논란의 당사자에 대해 분명하게 조치를 하지 않고 있어 불길이 잡히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에 대한 기대의 끈을 완전히 놓고 싶지는 않다. 윤 대통령이 한 4·3에 대한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다 믿고 싶다. 윤 대통령이 이념적으로 극단적인 세력에 휘둘리지 않고 다른 정치·사회 세력들과 함께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피해보상에 계속 성의를 다해 줄 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제주 4·3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앞으로 할 일이 많고 그것은 기왕의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 양성주 사무처장과 한국사회과학연구회 허상수 이사장은 ‘4·3의 이름을 제대로 찾고, 국가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이루어져야 하며, 미국의 역할과 책임규명도 더 진전되어야 하고, 희생자 가족과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활동 피해자에 대한 지지도 필요하고, 세대 전승 및 교육사업도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잠들지 않는 남도, 제주 4·3정의로운문제 해결은 일제강점기 역사적 진실 파악은 물론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 그리고 군부독재 시기 인권유린 사태에 대한 진상규명 및 책임 추궁에 이정표가 될 것이다. 그래서 제주 4·3에 대한 역사적 진실 추구는 계속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 여야와 진보·보수를 넘어 공감대와 협력을 만들어가는 게 좋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인권, 평화, 자유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문명국가임을 보이는 징표가 아니겠는가? 윤 대통령은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국민통합은 덤으로 얻는 가치가 될 것이다.

김태일 장안대 총장 : 경향 2023.04.06.

 

 

농민을 거부한 대통령을 거부한다

끝내 윤석열 대통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7년 만에 행사된 대통령 거부권의 대상이 절박한 농민들의 민생법안이란 사실에 분노가 치솟는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국회 입법권에 대한 무시를 넘어 농민들의 생존권과 식량주권에 대한 포기선언이나 다름없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민주당이 7건의 개정안을 발의하고, 6개월 넘게 법안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단 한 건의 대안도 제시하지 않았다. 입법 논의를 사실상 보이콧한 것이다. 또 최근엔 마치 충성경쟁이라도 하듯 장관과 총리, 여당 대표에 이르기까지 법안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과장된 우려만 일삼으며 거부권 합창을 반복해 왔다

 

마치 지침이라도 내려온 듯 이들의 논리는 앵무새처럼 한결같다. 이미 일부 언론과 전문가 등이 문제를 제기한 국책연구기관의 보고서를 금과옥조처럼 떠받들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보고서는 개정안이 소위를 통과한 지 16일 만에 급조된 것이며, 한 번도 검증되지 않은 허점투성이 보고서에 불과하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만성적인 쌀의 과잉생산을 적극적인 재배면적 관리와 생산 조정을 통해 해소하자는 양곡관리법의 핵심 취지엔 눈을 감은 채, 소방시설처럼 돌발상황을 대비한 안전장치와 같은 의미의 시장격리 제도를 두고 무조건 매입’ ‘무제한 수매라며 끊임없이 거짓선동을 해 왔다.

 

양곡관리법은 국무총리의 주장처럼 남는 쌀 강제매수법이 아니라 과잉생산 방지법이며 남는 쌀 방지법이다. 이미 여러 차례 정부 정책으로 성공한 사례도 있다. 이명박 정부는 3년간(2011~2013)의 생산조정을 위해 연평균 506억원을 투입해 생산과잉을 해결하고 17만원대의 쌀값을 유지한 반면, 박근혜 정부는 3년간(2014~2016) 늦장 시장격리에 연평균 5000억원 넘게 투입하고도 쌀값 대폭락을 피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생산단계부터 다른 작물 재배를 권장해 쌀 과잉생산을 사전에 해결함으로써 폭락한 쌀값을 정상화시킨 바 있다. 이러한 저비용 고효율정책은 오히려 시장격리 최소화법으로 정부가 쌍수 들고 환영해야 할 대안이다.

 

이런 개정안의 취지와 쌀의 중요성을 국민은 이해하고 공감했지만, 정부는 매몰차게 외면했다. 정부의 대대적인 홍보전에도 불구하고, 양곡관리법에 대한 찬성 여론이 66.5%에 이르고, 거부권 행사를 반대하는 여론도 55.2%로 찬성보다 20%포인트 가까이 높았다.

 

대통령을 향한 민심과 농심의 명령이 이런데도, 정부가 거부권 행사의 명분으로 삼고 있는 농업계 의견수렴의 실체는 더욱 경악스럽다. 제출한 자료를 보니,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간담회 참석자가 고작 58명이라고 한다. 개별 접촉은 있어도, 공개적인 의견수렴은 없었다는 자백이다. 참석자도, 반대 단체도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그 흔한 여론조사도 실시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의 비정함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국한되는 게 아니다. 농촌소멸과 지방소멸이라는 위기 앞에 하나가 되어도 모자랄 농민들을 지도부와 현장으로 갈라치고, 쌀농사 짓는 농민들과 다른 작목을 재배하는 농민들 간의 갈등을 부추겼다. 정부가 할퀴고 간 깊은 상흔의 뒤처리조차도 농민들의 몫으로 떠넘겨 버렸다.

 

민주당은 거부권 행사로 모든 것이 물거품 되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원안보다 후퇴했다는 비판까지 감수하며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받아들였다. 이것이 국민의힘이 운운하는 입법 폭거의 진실이다. 대화와 타협을 실종시킨 주체는 바로 정부와 여당이다.

 

윤석열 정부의 거부권 행사는 입법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을 넘어 국민의 삶과 쌀값 정상화에 대한 포기선언이다.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쌀값정상화TF 팀장 : 경향 2023.04.06.

 

 

돈을 푼다고 되겠나, 살 만한 세상이 돼야지

0.78. 이 숫자, 암울하기 그지없다.

 

지난해 대한민국 합계출산율(가임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자녀 수)인데, 역대 최저치다. 정신차려 보니 출산율 세계 꼴찌다. 이미 수십년 전에 인구위기 경고장을 받았는데, 단박에 되돌리려니 뭘 해도 약발이 안 먹힌다.

 

징후는 곳곳에 있었다. 숱한 위기 징후를 외면했을 뿐이다. 인구 부족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는 영국 옥스퍼드대 데이비드 콜먼 교수의 예측쯤은 SF영화에나 나올 허황된 얘기로 듣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대로라면 노인들만 북적거리는 나라에 살게 될 것이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지난달 28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가 내놓은 반전 없는 저출생 대책을 살피자니 옛날 생각이 났다.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정부는 산아제한 정책을 강력히 밀어붙였다. 요즘 와서야 인구 부족이 문제가 됐지, 그 시절에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은 개념 없는국민이 되는 일이었다. 아예 숫자까지 못 박은 국가의 출산 지침을 온 국민이 잘도 따랐다. 정책은 목표를 넘어 초과 달성에 이른다. 합계출산율은 19832.06명까지 떨어졌다. 이때 이미 한 사회가 현재 인구 규모를 유지하기 위한 마지노선인 2.1명이 무너졌다. 한국이 저출생 사회로 진입하는 서막이었다.

 

사정이 이러하면 겁을 먹었어야 했지만, 정부의 산아제한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그때, 우리는 그 위험 신호를 알아챌 문제의식이 부족했다. 정부도 사태 파악을 못했다. 출생률은 계속 떨어졌다. 대응이 필요했지만 정부는 1996년에야 출산억제책을 거둬들였다. 저출생 문제에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 것은 인구 유지선이 무너지고 20여년이 지난 참여정부 때다. 유럽 등에 비하면 출발이 10~20년 이상 늦은 셈이다.

 

정부는 20042월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를 발족했고, 다음해 5월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했다. 그 법에 따라 시작된 게 5개년 단위의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이다.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한 야심찬 계획이었건만, 결과만 보면 대실패다. 한국은 인구수축 사회에 진입했다. 지역소멸, 국민연금 고갈 등 인구위기 징후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런 상황을 해결할 가장 손쉬운 방법은 출생률을 높이는 것이다. 왜 아이를 안 낳을까? 이제까지 추진한 정부의 저출생 대책은 전부 이 질문에서 시작했다. 그에 대한 답으로 부모급여, 신혼부부전용 주택자금 대출 같은 지원 방안이 나왔다. 보육 부담을 덜어 일과 가정의 양립을 돕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리만으로는 끝도 없이 추락하는 출생률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일자리와 육아·주거 등 출산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에서도 대통령 임기에 맞춰 성과가 나올 것만 찾다 보니 제대로 된 정책은 나오지 않았다. 역시나 이번에 저고위에서 논의된 방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영원한 건 절대 없다더니. 이젠 1인 가구가 대세이고, 부와 가난이 대물림되는 사회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은 더 이상 결혼을 필수로 여기지 않는다. 이성 부부와 두 자녀로 구성된 4인 가족의 신화는 저문 지 오래다. 인구감소가 피할 수 없는 미래라면 묻고 싶다. 한국에서 한국인만 살아야 할까. 아이는 꼭 정상 가족에서 태어나야 할까.

 

그런 면에서 저출생 문제는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 다만 낡은 현실을 깨기 위한 혼신의 발버둥이 필요하다. 한데 정부의 흐름은 이와 역행한다. 여성가족부는 가족 형태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에서 발의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에 반대 입장을 냈다. 동거 및 사실혼 부부, 위탁가정도 법률상 가정으로 인정받게 하겠다던 입장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뒤집은 것이다. 정부가 0.78이라는 숫자에 절박함이 있는 건지 의문이다.

 

인구 쇼크에 속수무책인데 뭐라도 해야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일이 아니다. 저고위가 올해 안에 저출산·고령사회 대책을 추가로 내놓을 계획이라고 한다. 철학자 에릭 호퍼의 혁명이 변화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변화가 혁명을 가능케 하는 것이라는 아포리즘을 되새기자.

 

필요한 것은 윤 대통령 주문대로 유례없는 특단의 정책이지 대통령의 결심이 아니다. 그 결심에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들이자는 시대착오적인 방안은 제발 없기를 바란다. 얼마 전만 해도 주 최대 69시간을 둘러싼 논란으로 아까운 봄날을 날렸다. 답은 명확하다. 살 만한 세상이 돼야 한다는 것

이명희 논설위원 : 경향 2023.04.06.

 

나는 종이다

넷플릭스 다큐 시리즈 <나는 신이다>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신이 배반한 사람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문장 그대로 해석하면 신이 사람들을 배반했다는 것이다.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데, 다 보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정통교회에 가면 목회자는 자신을 만유의 주(Lord of all)’인 신의 뜻을 대신 전파하는 (servant)’이라고 낮춘다. 신도들은 주의 종 말씀에 의지해서 신이 약속한 구원을 추구한다.

 

그런데 이곳 이단교회는 다르다. 목회자가 자신을 주되신 신이라고 선언하고, 자신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약속한다. 사람들은 이 약속을 믿고 눈앞에 살아 있는 주를 섬기고 있다. 한국 사회에 자칭 만유의 주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이 이렇게나 많다니! <나는 종이다>로 제목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부제는 주가 배반한 사람들.’

 

더 놀라운 것은 자칭 구세주의 모습. 서슴지 않고 막말과 쌍욕을 내뱉는다. 교리는 또 어떤가? 나를 구세주로 믿으면 천국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 수준이 이런데도 모두 아멘으로 화답한다. 가족을 버리고, 세상을 등지고, 헌금하고, 헌신한다. 어쩜 저럴 수 있지? 눈살을 찌푸리다가 막말과 쌍욕을 입에 달고 사는 정통 교회의 주의 종도 떠올랐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일제강점기 이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여덟 글자로 단순 교리를 전파한다. 자신이 구세주라고 말만 안 할 뿐, 사실상 구세주 역할을 하며 절대 권력을 휘두른다. 헌금을 바치라고 한다. 현금이 없으면 빚을 내서 바쳐라. 다들 아멘으로 화답한다.

 

이쯤 되면 뭐가 이단이고 뭐가 정통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구세주 믿으면 천국. 불신자는 지옥, 아멘.” 주술화된 교리로 신도를 꼬드기고 협박한다. 구세주를 자처하든 구세주 대행자 노릇을 하든, 모두 주술사다. 초일상적 힘을 조작해 현실 세계에서 통하는 실제 목적을 얻으려고 한다. 초일상적 힘은 신과 접속한 신비한 체험에서 나온다. 실제 목적은 부귀영화를 누리며 무병장수하는 것. 현세에서는 이를 얻을 수 없으니 내세에서 영생불멸하면서 누리자! 이게 주술사가 약속하는 구원의 실제 내용이다. 나의 초일상적 힘을 믿고 따르면 구원받을 수 있다. 이 말에 넘어가 구세주를 믿으면 구원받기는커녕 종이 된다.

 

일찍이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구원 종교의 초월성에 주목했다. 구원 종교는 부당한 현실을 초월하는 예언을 한다. 베버는 예수의 가르침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누구나 사랑하라는 말씀은 매우 추상성이 높은 성스러운 가치다. 이를 실천하면 할수록 당연히 좁은 혈족윤리에 갇힌 현실과 불화하고 충돌할 수밖에 없다. 혼자 실천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래서 교회가 필요하다. 교회는 구체적인 타자와 사랑에 빠져 있는 현실과 충돌하며 보편적인 타자를 사랑할 수 있도록 초월 윤리를 가르치고 실천한다.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베버는 이러한 보편적 형제애 윤리가 혈족, 인종, 신분, 젠더, 섹슈얼리티, 계급, 장애 등 온갖 불평등을 주조하는 사회적 범주를 깨치고 민주주의 사회를 열었다는 점을 분명히 알려준다. 보편적 형제애 윤리를 실천하면서 인류는 줄기차게 작은 자를 존엄한 인간으로 만들어 왔다. 예수가 참으로 인류의 구세주인 이유다. 하지만 아직도 이 땅에는 작은 자가 너무나 많다. 길을 잃어 영혼이 갈급하다. 이런 작은 자에게 예수를 실천하면 그와 나 모두 종이 아니라 인간이 된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 경향 2023.04.07.

 

 

신문의 날에 확인하는 신문 부재, 언론 부재 현실

7일은 언론인들에게 명절과도 같은 날, ‘신문의 날이다. 매년 이날이 되면 이 기념일의 제정 취지처럼 신문의 사명과 책임, 언론의 자유와 언론인의 품위에 대해 돌아보는 행사들이 펼쳐진다.

 

그중의 하나인 표어 공모에선 나를 움직인 진실 세상을 움직일 신문이 대상으로 뽑혔다. 하루 전날인 6일 열린 기념식에선 대통령이 축사를 보내왔다. “자유민주주의는 인쇄 기술이 불러온 신문의 탄생과 보편화를 통해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신문인들의 노력은 우리의 헌법 정신이자 번영의 토대인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원동력이다.” ‘진실’ ‘세상을 움직이다’ ‘헌법정신’ ‘민주주의의 원동력등의 말에 담긴 신문과 언론에 대한 우리 사회의 높은 기대와 바람, 칭송과 찬사는 올해에도 어김없다.

 

그러나 이런 찬사와 예찬이 드러내는 것은 지독한 역설이다. 무언가의 존재가 오히려 그것의 부존재를 드러내는 역설이다. 뭔가를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그것의 결여를 드러내는 역설이다. 신문이 있으나 신문이 없고, 언론이 있으나 언론이 없는 참담한 현실이다.

 

대통령의 기념사는 그 말 자체로는 전적으로 온당하다. 그러나 그 말이 온당할수록 그것은 현실과 충돌한다. 그 말이 맞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에서 그 말 자신이 짓밟히고 유린되며 조롱당하는 결과가 되고 있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대통령, 그런 대통령과 권력을 칭송하느라 바쁜 언론. 권력과 정부의 2중창과 동맹 속에서 신문은, 언론은 실종되고 있는 것을 더욱 분명히 확인하게 되는 신문의 날이다.

 

언론이 활발할수록 '언론'이 죽는 현실

 

검찰독재와 민주주의에 대한 무차별적 위협, 파국적 경제 위기, 전쟁 위험을 자초하는 대북 긴장 조장, 친일 굴종 외교참사 등 부도덕하고 무도 무능한 정부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로 인해 어느 때보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해진 상황이다. 그러나 실제의 현실은 어느 때보다 언론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 권력에 대한 노골적인 칭송과 찬양이 범람한다. 지금처럼 언론이 활발할 때가 없었지만, 지금처럼 언론이 죽어 있을 때가 없었다.

 

언론비상시국회의의 성명에 담긴 개탄이야말로 더욱 지금의 현실을 요약하고 있는, 신문의 날의 더욱 실질적인 기념사가 될 만하다.

 

영원한 언론인으로서, 올해 신문의 날을 맞는 우리의 심정은 그 어느 때보다 참담하다.”

 

더욱이 윤석열 정부의 작심한 길들이기로 언론 상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나빠졌다. 땅바닥이 끝인 줄 알았는데, 바닥마저 갈라져 땅속으로 한없이 추락하고 있다.”

 

신문의 날에 돌아보는 지금의 한국언론의 현실은 위의 성명처럼 이미 바닥이었던 것에서, 더 밑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의 유력 신문들이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의 비틀기와 오도를 넘어선 새로운 양상이다.

 

우리가 매일의 신문에서 보고 있는 것은 사실에 대한 것, 즉 어떤 사안에 대해 사실이냐 아니냐를 다투는 것을 넘어선 것이 돼가고 있다. 사실에 대한 다툼이 아니라 상식자체가 부인되고 있으며, 몰상식으로의 대체, 상식과 반상식 간의 역전이 이뤄지고 있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졌던 가치와 덕목과 규범들이 신문에 의해, 언론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

 

지극히 당연한 규범으로 확립돼 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던, 그러기에 우리 사회가 지탱돼 오고 그 기반 위에서 앞으로 나아가게 했던 상식과 보편이 허물어지려 하고 있다. 신문과 언론에 의해 무너지려 하고 있다.

 

미국 사회에서 언론의 기능에 대해 심층적으로 논의한 범사회적 기구 허친스 위원회는 1947년 그 결과를 자유롭고 책임 있는 언론이라는 결론으로 내놓으면서 좋은 저널리즘이 되기 위한 미디어의 역할의 첫 번째로 그날 일들에 대한 진실되고 포괄적인 이해를 제시했다. 지금 한국의 언론에서 시민들은 신문을 통해 포괄적인 이해, 총체적인 시야를 가질 수가 있는가.

 

구한말 조선 민중의 대변기관이었던 대한매일신보는 그 이름을 신문이 아닌 신보(申報)’로써, 새로운 소식을 알리는 것과 함께 백성들이 뜻을 펼치는 수단으로서 자신의 소명을 내세웠다. 지금 한국의 신문들은 국민들의 뜻을 펼치는 마당이 아니라 자신들의 말로써 여론을 덮고 시민들의 말을 막고 있다.

 

신문지면에서 매일 펼쳐지는 문란(文亂)과 언란(言亂)

한국 언론의 후진성은 로이터 저널리즘연구소가 매년 조사하는 신뢰도 지수에서 46개 국 중 몇 년째의 확고한 최하위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아시아 지역에서 최상위권이었던 언론자유지수에서도 올해에는 다시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의 급락으로 돌아갈 것으로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 자유지수의 현실은 그것이 전적으로 떨어진 것만이 아니어서 더욱 파행적이다. 즉 어느 한편에는 자유의 위축, 억압이지만 다른 편에서는 무제한의 자유와 비호를 받는 양면의 현실이다. 집권 세력에 대해 쏟아내는 낯 뜨거운 보도들은 권력과 언론 간의 유착을 넘어 권언(勸言)의 일체화를 보여준다.

 

한국 최대 부수를 자랑하는 신문들의 지면이 매일같이 펼치고 있는 것은 문자의 난, 문란(文亂)과 말의 난, 언란(言亂)에 다름아니다. 검찰이라는 공권력에 의한 검란(檢亂)과 함께 말과 글의 권력에 의한 언란이 매일 한국 사회를 난도질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 20여 년 전 어느 신생 인터넷 매체가 출범과 함께 선포한 말은 시민도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이제 이 선언은 이렇게 바뀌어야 마땅하다. “시민이라야 기자다.” ‘시민이 돼야비로소 기자가 될 수 있다. 시민이 되지 못하면 기자가 되지 못한다, 로 바뀌어야 마땅하다.

 

시민의 소양과 덕목을 갖추지 못하고서는 기자가 될 수 없다. 어떤 전문적 기능과 지식, 경험이 있더라도 시민으로서의 교양과 규범을 결여해서는 기자로서의 결격 사유라고 해야 마땅하다. 지금 한국 언론이 보이고 있는 부실과 추락과 불신의 근본 원인이 거기에 있다. ()시민, ()시민들이 언론인집단을 이루고 있는 것에 많은 원인이 있다.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의 조사가 드러낸 주요한 결과 중의 하나는 뉴스기피 현상이었다. 그것이 비단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지만 새로운 소식을 알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때 한국의 언론은 사람으로서의 본성까지 바꿔버리고 있다. 많은 시민들이 뉴스를 끊고 언론으로부터 도피하려 한다. 이들을 양심적 언론거부자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문과 언론이 언론사, 언론인들만의 것이 아니며 공공의 것이라고 할 때, 그것은 시민에게 언론의 주인됨으로서의 권리와 함께 그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신문의 날이 이른바 언론인들만의 명절이 될 순 없는 이유, 그래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론의 언론화는 언론의 시민화에 의해 이뤄질 수 있듯이 시민의 시민화로써 또한 이룩될 수 있다. 언론() 자신에 의한 신문의 신문다움, 언론의 언론다움의 전망이 파탄에 이른 현실에서, 그러므로 신문의 날은 시민의 언론화의 요청을 확인하는 날로 삼을 것이 요청되는 것이다. 언론에 대한 거부가 아닌 주인으로서의 참여가 신문을 바꾸고 언론을 바꾼다는 것을 절실하게 확인하는 날이어야 한다.

이명재 에디터 시민언론 민들레 2023.04.07

 

깡패만 잡고 있는 대통령, '검찰 공화국''피로감'이 몰려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왜 '깡패 때려 잡기'에만 몰입하고 있을까?

윤석열 정부가 잘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이 있다.

 

잘 하는 것은 '범죄와의 전쟁'이다. 실제 윤석열 대통령은 "마약과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말도 한 바 있다. 이건 '전쟁'이다. '나쁜놈'을 때려잡는 '정의파 검사'의 서사는 흠 잡을 데가 없다. 명분과 당위성에서 그 자체로 완벽한 스토리고, 관전자에겐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윤 대통령의 발언과 그의 충실한 측근 한동훈 법무부장관의 발언에는 공통점이 많다. 특히 '깡패'라는 말을 쓰는 걸 좋아한다. '깡패 잡지 말란 거냐'는 윽박지름에 감히 대꾸할 사람은 없다. 이건 10계명에 준하는 격언이자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한 문장이다. 이런 류의 문장을 자주 사용하는 배경엔 상대에 비해 도덕적 우위를 점하려는 심리가 작용한다. 모두가 동의할 만한 악한 적을 설정하고, 비난을 쏟아 붓고 때려 잡는다. 여기에 토를 달면 "깡패 잡지 말란 거냐"는 말이 돌아온다. 이 지점에서 대화는 종료될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는 특히 깡패 수사에는 진심인 것 같다. 이걸 위해 행정부는 빠르게 검찰 조직처럼 재배열된다. 정부가 때려잡겠다는 건 크게 세 부류다. 첫째, 마약 조직, 둘째, 노동조합(건폭 포함), 셋째, 간첩이다. '깡패'는 이 모든 '나쁜 짓을 하는 무리'의 상징어다. 그리고 묘하게 이 세 종류의 사건은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마약수사는 깡패 수사로 이어지고, 깡패 수사는 건폭(노조) 수사로 번지고, 노조 수사는 간첩 수사로 흘러간다. 사건의 교집합을 만들어 물고 물리는 수사를 벌이는 걸 보면, 대대적인 사정 정국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특수부 검사 출신들이 용산과 법무부에 포진해 있고, 경찰청은 경찰국 신설을 통해 행정안전부의 통제, 궁극적으로 대통령의 통제를 받도록 설계됐다.

 

"도대체 깡패, 마약, 무고, 위증 수사를 검찰이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한동훈 법무부장관), "마약과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윤석열 대통령)

 

마약 조직은 사회 정화 사업의 일환이 된다. 윤 대통령은 청소년에까지 마약이 스며든 현실을 개탄하며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마약 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라고 지시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마약 범죄에 대해 "최선을 다했다는 말로 부족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야 한다"고 했다. "미국처럼 아이들에게 학교 갈 때 '너 마약 하지 마라'고 얘기하는 것이 일상화될 수도 있다"고 경고도 했다. 이 마약수사에 어느 정도 진심인지, 이태원 참사 유족들에게 '마약 부검' 제안까지 했다. 논란이 있지만 이태원 참사 때 경찰은 질서 유지보다 마약 범죄 적발에 더 열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핼러윈 당일 마약 범죄 예방 활동을 위해 형사를 배치했다고 밝힌 바 있다. 같은 시간, 사람들은 도심 한복판에서 압사로 쓰러져갔다.

 

"노조 부패도 공직 부패, 기업 부패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척결해야 할 3대 부패 중 하나", "건폭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엄정하게 단속하라"(윤석열 대통령)

 

'노조 때리기'는 이 정부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다. 화물연대 파업을 강경진압하고 지지율 상승을 맛 본 대통령은 나아가 '건폭'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깡패 잡는데 무슨 말이 필요하냐'는 완전무결한 명분은 이번에도 작용했다. 잠재적 범죄를 위한 것인지, 노조의 회계 장부를 들여다보겠다고 나섰고, 일선 경찰과 검찰은 '건폭 검거' 실적 올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언론은 그들이 던져 주는 '실적'을 받아적고 있다. 이 작전의 목표가 어디 쯤인지 알 수 없지만, 대강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김문수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광주글로벌모터스를 방문했습니다. 감동받았습니다. 노조가 없습니다."

 

감동적으로 노조가 없어질 때까지 '건폭 척결 작전'을 수행하는 게 최종 목적일 수는 없을 것이지만, 이 행정부의 장관급 인사가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노사정의 화합 대신 '노조가 없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는 인식을 내비치는 부분에선 어떤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나라에 간첩이 이렇게나 많나"(윤석열 대통령)

노조 수사와 연결된 게 최근 간첩 잡기다. '노조에서 활동하는 간첩'은 북한의 지령을 받아 윤석열 정부의 비판 문구를 적어 들고 광장에 나가 '체제 전복'을 꾀하는 중이다. 북한 지령에 따라 F-35 스텔스기 도입 반대 운동을 벌였는 '청주 간첩단 사건'을 보고받은 윤 대통령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수사권을 부활시킨 국정원을 컨트롤타워로 경찰, 방첩사령부 등 군경이 총동원돼 전국을 뒤지고 있다.

 

한발 더나아가 국방부는 방첩사령부(옛 기무사) 관련 시행령에 방첩사에 정보 수집 및 작성, 배포 등을 요청할 수 있는 기관으로 '중앙 행정기관의 장'을 명시하려 하고 있다. 쉽게 말해 국토부장관, 행안부장관, 문화부장관 등 일선 장관들이 간첩 정보를 공유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건 행정부 자체가 거대한 수사 조직이 된다는 걸 의미한다. 아니 검찰청 산하에 행정부를 통째로 집어 넣었다고 표현해도 되겠다.

 

대통령의 '간첩 척결' 의지에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당내 '종북 세력 척결 특별위원회' 설치를 검토했다가 슬그머니 말을 흐리는 중이다. 아마도 민심이 '간첩 때려 잡는 게 우선'은 아니란 판단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눈치를 볼 줄 아는 건 그나마 여당 정도다. 용산은 행정부의 모든 수사권을 총동원한 것도 모자란 것인지, 급기야 통일부에 자국민을 대상으로 '심리전'까지 주문하는 지경에 이른다. '심리전'은 적을 상대로 쓰는 말이다. 대통령이 국민을 ''으로 간주한 건 아니겠지만, 이 묘한 발언으로 통일부가 진땀을 빼는 중이다. 대남 정보를 취급하는 통전부에 대한맞대응을 통일 정책을 수립하는 통일부에 주문한 것도 해프닝에 가까운데, 공무원들은 대통령의 엉뚱한 발언을 부인하지 못해 심리전을 '북한 인권 대국민 홍보'라고 해석하며 곁눈질 중이다.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이 완전무결한 말을 자주 쓰는 이유는 사실 그 외에 다른 일을 잘 하기 어려울 때 변명이 쉽기 때문이다. '한동훈식 화법'이 최근 화제인데, 이 화법은 '도덕적 우위'를 통해 이의 제기를 차단하는데 매우 편리하다. 예를 들면 이런 대화가 가능하다.

 

"경제가 어렵습니다."

"그럼 깡패 수사 하지 말란 말인가."

"남는 쌀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럼 간첩 수사 하지 말란 말인가."

 

물가가 치솟고, 무역수지가 곤두박질 치고, 출생율이 하락하고, 굴욕 외교 논란이 일더라도, '깡패 수사''마약 수사'를 안해야 할 이유는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과 그의 충실한 '거버먼트 어토니'들의 메시지가 '범죄와의 전쟁'에 집중되는 건 너무나 또렸하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까. 윤석열 정부는 외교, 경제 등 다른 분야에선 그다지 점수를 잘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럴수록 대통령은 더욱 '당위성''정의구현'에 몰입하는 것 같다. 범죄와의 전쟁은 그리 어렵지 않다. 얼마나 잘 잡느냐, 얼마나 많이 잡느냐, 얼마나 더 처벌을 강하게 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런 스타일은 정치에서도 나타난다. 정치는 주로 대통령의 고독한 결단으로 이뤄지고 있다. 강제징용 해법이 그렇고, 양곡관리법의 거부권 행사가 그렇다. 강제징용 해법을 너머 채워야 할 물잔은 상대방에게 떠넘기고 스스로 손 발을 묶어버렸다. 양곡관리법 대안은 여당의 '밥 한공기 다 먹기' 운동 아이디어로 밑천이 드러났다.

 

'정의 구현'에 몰입하고 있는 대통령은 야당을 만나지 않는다. 야당 대표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여의도식 해석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렇다고 169석 야당의 여소야대 현실을 타조가 머리 박듯 외면할 수 없는만큼 뭔가 해법을 내야 한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법을 만드는 게 정치다. 농사를 지을 때도 씨를 뿌리고, 날씨 예보를 보고, 둑을 만들고, 거름을 줘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은 칼을 뽑아들고 잡초만 계속 베고 있다. 이 잡초 베기가 언제 끝날 지도 모른다. 범죄와의 전쟁이 끝날 거였으면 노태우 정부 때 끝났을 터, 지금 대통령은 해야 할 일을 미루고 가장 쉬운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것도 일종의 '나르시시즘'이 아닐까. 정의를 독점하고 깡패를 때려잡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는 것.

 

대통령실이 직접 나선 '사정 정국'은 피로감으로 다가오고 있다

행정부 자체가 거대한 검찰청인 '검찰공화국'에서 벌이는 범죄와의 전쟁에 대한 피로도가 누적되고 있는 모양새다. 더 이상 지지율은 '깡패 잡는 대통령'에 호응하지 않고 흘러내린다. 소위 '약발'이 떨어졌다. 그런데도 이 전쟁은 언제 끝나는 것인지 알 수도 없다. 요컨대 사람들에게 희망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남은 것은 너저분한 범죄자의 나뒹구는 공소장들이다.

 

재보선에서 패배했는데, 대통령은 웃으며 '검찰총장'처럼 도열을 받고 있는 사진이 찍혔다. 민생 사정 정국, 이게 윤석열식 정치의 처음과 끝이라면 유권자들의 실망은 계속될 것이다.

박세열 기자 : 프레시안 2023.04.08

 

 

미륵은 오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천년 이상 메시아를 기다려왔다. 대표적 메시아 신앙 기독교가 전래된 것은 100여년 남짓이지만 메시아 신앙은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존재했었다. 바로 미륵이다. 한국에 미륵의 흔적은 차고도 넘친다. 미륵의 이름을 딴 절에서부터 이름난 절의 미륵전에는 미륵불이 모셔져 있고, 이름 모를 산기슭과 길가에 늘어선 돌부처 또한 미륵이다.

 

바닷가에 흔한 마을 이름인 매향리(埋香里)는 향을 묻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갯벌에 향나무를 묻는 매향은 미륵신앙의 중요한 의식으로 미륵이 오실 먼 훗날 묻었던 향나무를 파내어 향을 사르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요즘 몇몇 방송에서 매향리를 매화향 가득한 동네로 소개하던데 적어도 바닷가 매향리들은 오랜 옛날 향을 묻었던 곳이다.

 

미륵신앙은 삼국시대에 유행한 불교의 전통으로 미륵부처가 이 세상으로 와서 사람들을 구원하고 좋은 세상을 만들어 줄 거라는 믿음이다. 삼국의 대립이 격화되는 과정에서 민초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사람들은 암울한 현실에서 자신들을 구원할 미륵을 기다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 미륵은 메시아, 즉 구세주다.

 

미륵(彌勒)은 인도어 마이트레야(Maitreya)에서 유래했다. 마이트레야는 미트라(Mitra)에서 파생된 말인데, 미트라는 인도의 힌두교,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에서 빛의 신(태양신)’으로 섬기던 신의 이름이다. 태양은 매일 지고 매일 떠오른다. 밤이 되면 어둠에 힘을 잃지만 아침이 되면 되살아나는 것이다. 태양의 이러한 속성은 죽었다가 살아나는 부활과 어두운 세상을 빛으로 구원할 구세주라는 상징으로 연결된다.

 

한국에서 기독교가 빨리 전파된 이유도, 최근 방영된 <나는 신이다>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구세주를 자처했던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인들은 1500년 동안이나 구세주를 기다려 온 사람들이니까. 그러나 미륵신앙은 신앙의 영역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미륵의 구원은 종교의 영역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고난의 세상을 바꿔줄 이를 원했다.

 

미륵신앙이 뿌리를 내린 후로 한국에서는 예전부터 나라가 어지럽고 백성들의 삶이 어려워지면 자신이 미륵이라고 주장하는 인물들이 나타났다.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와 조선 숙종 때의 여환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정치와 종교의 영역이 명확하지 않았던 시대에 미륵은 곧 세상의 주인, 왕을 의미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래된 욕망의 흔적은 현대에 와서도 그 자취를 남기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은 대통령이 바뀌면 나라의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줄 거라 믿는 듯하다. 한 사람의 정치인에게 자신들의 욕망을 모두 투사하고 그가 당선된 뒤에도 현실이 그다지 나아지지 않으면 그놈이 그놈이라며 이내 그 일을 해 줄 다른 이를 찾는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왕조시대의 왕도 그런 권력은 없었다. ‘싹 다 갈아엎기를 반복했던 현대사 때문일까.

 

아니, 현대사의 한복판에서도 한국인들은 미륵을 찾고 있다. ‘싹 다 갈아엎기의 원조이자 그 결과로 한국의 성장을 이루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아직도 어딘가에서 반인반신(半人半神)’으로 추앙받고 있는 사실은 지금이 갯벌에 향나무를 묻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지금은 1500년 전이 아니다. 민초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구세주를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던 시대와 지금을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현대 사회에서 스스로의 운명을 이끌고 나가는 주체는 자신이며 사회와 국가는 그러한 개인들의 의지와 합의로 구성되고 운영되며 또 그래야 한다.

 

미륵은 오지 않는다. 아니 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시점은 누구도 알 수 없으며 그것이 누구인지도 아무도 모른다. 알면 또 어떡할 것인가. 종말이 다가온다며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자신의 전 재산을 천국에 예금 의탁하듯이 갖다 바칠 것인가. 자신이 구세주라고 믿는 이에게 몸도 마음도 의사결정도 의탁한 채로 이용당하다가 버려질 것인가. 아니면 구세주의 일등공신으로서 당신이 바꿀 세상의 이권을 내게 달라 청탁이라도 할 것인가.

 

미륵신앙은 옛날부터 현실의 간난고초를 잊게 해 주었던 우리의 믿음이다. 그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할 일이 구세주를 기다리는 일이어서는 안 된다.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 어렵고 혼란스럽지 않은 때가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이 혼란에는 내가 기다리는 미륵이 내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 줄 거라는 오래된 욕망이 자리 잡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 경향 2023.04.08.

 

 

일반인 등장예능 프로그램의 불편함

일반인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짝짓기 프로그램은 일찍이 <사랑의 스튜디오>가 있었고, 때로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러브하우스, 신장개업), 때로는 보고 배울만한 이웃이(이경규가 간다)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 이혼, 연애가 예능의 대세 장르가 되면서 일반인 출연자들은 예능 프로그램의 으로 떠올랐다. 여러 계약 관계에 얽혀 있는 연예인의 경우 발언과 행동에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에 반해 일반인들은 행동에 제약이 자유로워 리얼리티 장르적 재미를 더 잘 충족시켜 줬기 때문이다.

 

일반인이 주인공인 연애 리얼리티가 인기를 끌면서, 언제나 그랬듯 비슷한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그리고 후발주자들은 더 자극적이고, 더 노골적인 설정으로 차별화를 꾀하려 했다. 초반 연애 리얼리티가 만남과 썸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과거 연인이었던 이들이 함께 출연해 새로운 인연을 찾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환승연애), 이혼한 부부가 다시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우리 이혼했어요). 갈등 상황에 놓인 부부가 전문가에게 일상을 보여주며 상담받는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 결혼과 이혼 사이)도 있다.

 

사랑과 연애, 결혼의 마냥 달콤한 모습이 아닌, 이별과 갈등과 같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이를 극복하거나 털어내는 모습까지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분명 긍정적이다. 문제 상황에 놓인 출연자들의 갈등을 통해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공감 혹은 직·간접적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대의도 있다. 하지만 관음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도록 편집된 갈등, 방송이 끝난 뒤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출연자에 대한 배려 없는 편집 등은 남의 불행을 재미로 소비한다는 지적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너무 가볍게 다뤄도 문제다. 방송국 카메라 앞이 아니라 한시라도 빨리 가정법원으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사연들, 연애가 아닌 치료가 필요해 보이는 이들이 예능의 탈을 쓰고 깃털처럼 가볍게 시청자에게 다가온다. 시청자들의 비난과 민원이 쏟아지면서 프로그램이 3주 결방되고, 그 주인공이 불구속 입건돼 조사받게 된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 의붓딸 성추행 논란(20221219일 방송분)은 그나마 긍정적 사례인 셈이다.

 

무엇보다 성인인 출연자들은 스스로 출연을 결정한 것이지만, 부부 갈등을 소재로 다룬 경우 그 자녀들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신원이 노출되고 그 기록이 TV와 인터넷을 통해 영구히 남게 된다. 미성년 자녀의 경우 모자이크 처리돼 방송되기는 하지만, 부모의 얼굴을 통해 주변인들은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부모와 함께 노출된 어린 자녀들이 성장한 뒤 트라우마를 겪게 될 수도 있다. 성인이라 해도 TV 전파력을 실감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의 경우 당하기 전까진 이후 후폭풍을 예측하지 못할 확률도 높고 말이다.

 

여러 플랫폼과 채널이 경쟁하는 시대에, 눈에 띄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극에 쉽게 무뎌진다. 그저 시청자의 말초적인 관음증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차별화를 꾀한다면 다음은 더, 그다음은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제작해야만 한다.

 

결국 브레이크 잡아야 할 이들은, 콘텐츠의 생산자들이다. 일반인의 사생활이나 인격은 한 번 쓰이고 말 예능의 소재가 아니라는 자각. 방송이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인격체를 다루고 있다는 책임감이 필요하다. 이미 말초적 즐거움에 잔뜩 노출된 시청자들을 점잖은 콘텐츠로 만족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말이다.

김윤정 칼럼니스트 미디어오늘 2023.04.08.

 

 

103세 철학교수의 참 이상한 철학

100세 넘게 살며 글 쓰고 강연 다니면 축하할 일이다. 다만 그 글과 말이 편향되거나 사실과 다른 억지를 편다면 그 반대다. 김형석 명예교수가 대선 정국에서 낡은 색깔론을 펴며 선거에 개입할 때 우려를 전했다(‘101세 철학자의 끝 모를 흑백논리, 21920).

 

충정으로 권해도 소용없기에 그 뒤 침묵했다. 그런데 최근 일주일새 두 편을 기고한 칼럼은 충격적이다. 중앙일보 칼럼(20대 일본 유학서 깨달은 것 왜 열심히 일해야 하나” 331)과 동아일보 칼럼(과거의 연장으로는 국가적 후진성 극복 못 한다, 47)이 그것이다.

47일 동아일보 김형석 칼럼.

 

중앙일보 칼럼에서 그는 일본 유학에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 국민이기에 게으른 우리 민족을 지배하고 살았구나, 하는 죄책감이었다고 썼다. 그는 당시 우리 민족은 너무 나태했다고 단언한다. 대체 그는 물론 중앙일보도 역사의식이 마비된 걸까. 그가 일본 유학할 때 수많은 젊은이들이 독립운동을 벌였다. 우리 민족이 너무 나태했다? 일제에 강제동원 된 동포들이 고통스레 일할 때 조선인은 일하지 않는다고 깨닫는 철학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옳은가. 당시 민중들은 착취와 수탈에 맞서 일제에 항거했다.

 

예서 그치지 않는다. 노동조합에 색깔을 칠한다. 박정희가 공산국가의 노동조합은 정권을 쟁취할 때까지는 파업과 반정부 투쟁을 한다는 사실과 정권을 쟁취한 후에는 절대로 파업이나 정치비판은 못 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허락하지 않았단다. 야만적 노조 탄압의 정당화다. 칼럼마다 문재인이 친북좌파라는 그는 국민의힘 정부와 국민에게 주어진 과제가 무겁다고 강조한다. 결론은 적게 일하고 많이 놀기 위한 인생이 아니란다. 눈여겨 볼 것은 윤석열이 노동시간과 대일 굴복외교로 지탄받는 상황에서 이 글을 썼다는 점이다.

 

동아일보에 기고한 칼럼은 문재인이 친북적 과오를 범했다면서 그 결과로 나타난 사건 중의 하나가 일본 미쓰비시회사와 징용 문제 배상 사건이라고 부르댄다. 그의 논리적 비약은 그 사건이 자연 발생보다는 정부가 의도적으로 조작한 느낌이라는 데서 극에 달한다. 나름의 근거를 제시한다. “지금 이재명을 대표로 하는 더불어민주당의 발언과 주장이 바로 그 사실을 뒷받침한다나. 정치모리배들보다 더한 색깔론이자 음모론이다. 그는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들윤석열 정부가 일본과의 공존 정책을 찬성하는 이유와 명분을 높이 평가한다고 결론 짓는다. 지금 윤석열을 비판하는 사람은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들이 아니란 말인가. 문재인 정부가 언제 일본과의 공존을 반대했단 말인가. 곳곳이 허수아비 오류.

 

그가 유학가서 일본에 감탄할 때 도쿄의 뜻있는 유학생들은 항일비밀결사를 조직했다. 메이지대학의 김종백은 국내로 들어와 조선민족해방협동당을 결성하고 경기 북부의 국망산에서 무장항쟁을 준비했다. 혹시라도 그들을 좌파로 몰 생각은 아예 말기 바란다. 그럴까싶어 일부러 좌파 아닌 독립운동을 예로 들었다. 해방을 앞두고 체포된 김종백은 끝내 일제의 고문으로 옥사했다. 김형석 교수가 군부독재의 인권 유린에 모르쇠 놓을 때 수많은 젊은이들이 민주화운동에 나서 죽고 다치고 감옥에 갔다. 혹시 그는 내심 그 모두에 색깔을 칠하고 있는 걸까.

 

일부 언론은 그가 4월혁명에 교수시위를 주도한 듯 보도했고 그도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직한 자세가 아니다. 4월혁명의 교수시위를 주동한 이는 연세대 철학과 교수가 맞지만 김형석이 아니라 정석해다. 조중동 신방복합체가 내내 밀어주어서일까. 이제 일제 강점기에 생게망게한 죄책감까지 버젓이 공언한다. 도무지 부끄럼이 없다. 외교와 민생에 실정을 거듭하는 권력을 비호하는 모습도 남세스럽다. 더 큰 문제는 역사에 대한 호도, 동시대인들에 대한 오도다. 일본의 지배세력이 독도가 자기 땅이라는 주장을 한층 노골화하고 있어 더 그렇다.

 

70년째 철학교수이름 아래 활동하는 그의 철학은 참 이상하다. 색깔론, 음모론, 식민사관은 철학이 아니다. 철학이 비판할 대상이다.

손석춘 칼럼니스트철학자 미디어오늘 2023.04.10.

 

 

노동시간 개편이라는 코미디

근자에 있었던 노동시간 개편을 둘러싼 혼란은 윤석열 정부의 문제를 압축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찬찬히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6일 노동시간 개편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개편안이 주 최대 69시간노동을 허용한다는 비판이 나오자 윤 대통령은 16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고 했다. ‘주 최대 60시간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자 20일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개인적 생각에서 말씀한 것이지 가이드라인을 주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한)을 씌우는 게 적절하지 않으면 윤 대통령이 굳이 고집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윤 대통령이 21일 국무회의에서 주당 60시간 이상의 근무는 건강 보호 차원에서 무리라고 하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 대통령실 참모가 대통령의 지시를 개인적 생각이라고 깎아내리는 것도, 대통령이 다시 내 생각은 변함없다고 말하는 것도 처음 본다. 외관만 보면 대통령과 참모가 정책을 놓고 공개적으로 노선투쟁이라도 벌이는 것 같다.

 

이 정부가 노동시간 개편을 놓고 혼선을 빚은 건 처음이 아니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지난해 623일 주 52시간제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연장 노동시간의 관리 단위를 주 단위에서 월 단위로 바꾸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이튿날 출근길문답에서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 “보고받지 못했다고 했다.

 

정부가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것은 애초에 설정한 정책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말인즉슨 일할 때 집중적으로 일하고, 쉴 때 집중적으로 쉬자는 것이지만, ‘일이 몰릴 때는 주 52시간 제약 없이 일하자는 게 정책의 속뜻이라는 걸 모두 안다. 한국은 노동시간이 많기로 악명 높은데, 거기에 더해 일이 몰리는 주에 더 일하게 하자고 하니 외신들도 놀라서 쳐다본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스타트업 청년들을 만났더니, 52시간 제도 시행에 예외조항을 둬서 근로자가 조건을 합의하거나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토로하더라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이 말이 정부가 노동시간 개편을 추진하는 데 방향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윤 대통령은 60시간 이상은 무리라고 한다. 노동시간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인식이 교정된 셈인데, 문제는 대통령실과 노동부는 여전히 대선 후보 윤석열의 발언을 지침으로 여기는 것 같다는 점이다. ‘대선 후보 윤석열대통령 윤석열의 갈등이랄까.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는 게 대통령실 참모들과 노동부 관료들의 속내일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억울해할 것도 없다. 이제 와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는 윤 대통령도 매한가지일 테니까.

 

정책 추진 과정도 문제투성이였다. 노동시간 개편은 충분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함에도 노동계와 진지하게 대화하지 않았다. 노동 현장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도 않았다. 이른바 MZ세대와 기성 노조를 갈라치는 소재로 활용하려다 도리어 정부가 고립되는 촌극을 빚었다. 대통령실, 노동부, 여당 간 정책 조율 기능은 실종됐다.

 

노동시간 개편만 그럴까. 민감한 외교 사안일수록 자국 내부 협상이 중요하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일제 강제동원(징용) 배상 문제 해법으로 ‘3자 변제안을 일방적으로 제시했을 뿐 피해자 측과 사전에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았다.

정제혁 사회부장 경향 2023.04.10.

 

 

생명의 가격계산하는 정부

기업윤리와 관련해 유명한 일화가 있다.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가 1970년 출시한 자동차 핀토사건이다. 핀토는 추돌 시 쉽게 폭발하는 치명적 결함이 있었다. 이로 인해 500명 이상 사망했다. 포드는 살인 혐의로 기소됐는데, 재판에서 회사가 결함을 알고도 판매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들은 소위 비용-편익 분석을 했다. 판매된 1250만대를 수리하면 한 대당 11달러, 13700만달러의 비용이 예상됐다. 그대로 팔면 180명이 죽고, 보상금으로 1인당 20만달러 등 총 4950만달러의 비용이 예상됐다. 사망보상금을 지급하는 게 이득이었던 것이다. 비용-편익 분석을 사람 목숨에까지 극단적으로 적용한 이런 일은 단지 과거 한 몰지각한 기업의 사례일까?

 

울산과 광주 공공병원 설립 계획이 좌초될 위기에 처해 있다. ‘비용 대비 편익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공공병원의 편익을 어떻게 계산할까? 한국개발연구원(KDI) 표준지침에 따르면 응급사망을 막는 것의 가치는 그 사람의 노동생산성과 같다. 그 계산법은 기대수명에 평균임금을 곱한 값이다. 이에 따르면 30대 환자의 가치는 41093만원이고, 80대 이상 노인의 가치는 487만원이다. 여기에 사망자 가족의 슬픔의 가격을 더한다. 슬픔은 얼마일까. 사망의 슬픔은 11607만원, 중상은 3370만원이다. 응급치료를 하면 사망자를 중상자로 만들어 그 차액인 8237만원의 편익을 얻는다. 종합하면 한 사람을 살리는 데 적절한 비용은 22569만원이라고 한다. 기획재정부가 정한 생명의 가격이다.

 

광주와 울산은 광역시·도 중 유일하게 공공의료원이 없다. 이 지역들은 코로나19 환자가 늘어날 때마다 다른 지역 공공의료원에 병상을 달라고 사정해야 했고, 수백명의 환자들이 타지에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평소에도 울산은 7대 특별·광역시 중 연령표준화 사망률이 가장 높고, 광주는 응급·심뇌혈관 질환 골든타임 내 진료율이 가장 열악하다. 민간병원들이 있지만 감염병 치료도 필수진료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계산하지 않는다. 이런 지역에서 고통받는 사람 그대로의 가치를. 지방에서 암에 걸리면 서울로 올라가 수개월을 거주해야 하고 산부인과가 없어 출산의 위험 부담을 져야 하는 사람들이 겪는 불편과 두려움, 권리 차별을 해결하는 문제는 그들의 편익에 들어가지 않는다.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생명에는 가격을 매기면서도, 정작 사람들이 감당하는 고통과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미래를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은 따지지 않는다. 사람을 살리는 일도 오직 경제에 이익이 될지만을 따져 묻는다.

 

정부는 지난 3년 동안 민간병원에 코로나19 치료를 요청하며 4조원을 쏟아부었다. 이 돈이면 의료원 20개는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복지는 민간에 넘겨 준시장화해야 한다는 나라에서 이런 비효율은 장려된다. 반면 공공병원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염원은 이들의 잔여 노동능력으로 생명의 가치를 셈하는 비정한 계산에 짓밟힌다. 이것이 우리가 공공병원 비율이 단 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이며 필수의료가 붕괴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이유다. 광주와 울산에 공공병원을 짓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우리 모두의 생명도 지킬 수 없다.

전진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 경향 2023.04.10.

 

 

누가 MZ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아닌 걸로 하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모든 정책을 MZ세대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발언을 했다. 청년세대를 지칭하는 단어 ‘MZ’는 시장 트렌드 분석이나 미디어의 소비를 넘어 이제는 정치권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한다. 69시간 근로제와 국민연금 개편 논란에도 ‘MZ노조’ ‘MZ세대MZ 프레임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MZ가 호명되는 용례를 살펴보자. 능력주의 및 공정한 보상을 중시하는 세대로 특징지어지며, 청년담론을 한 차례 휩쓴 바 있다. 최근에는 양대 노총의 관행을 거부한다는 소위 ‘MZ노조의 출범이 부각되기도 했다. 예능에서는 업무시간임에도 이어폰을 꽂고 일하는 버릇없는 캐릭터로 조롱받기도 한다. 다양하게 소비되기에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개인주의’ ‘경쟁에 익숙함’ ‘개성 강함등으로 정리할 수는 있다.

 

1990년생으로서, 그러한 경향을 보인다는 것에 딱히 반박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MZ를 호명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경험한 어떤 기억을 지우려 하거나, 심지어 새까맣게 잊은 것처럼 구는 것은 기가 차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믿다가 세월호에서 수많은 생명이 우리 곁을 떠나갔다. 수영에 능숙한 학생이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했지만, 개인의 능력과 무관하게 양보한 사람은 살지 못했다. 단지 거리를 걷고 있었을 뿐인데, 행정과 안전 시스템이 붕괴된 탓에 서울 이태원에서 159명이 목숨을 잃었다. 어디 그뿐일까. 청년 절반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나라에서 하루에 일곱 명은 산재사고로 퇴근하지 못한다. 반지하나 고시원에 산다는 이유로 재난의 위협 속에 시달려야 한다. 무책임한 국가의 방치 속에 아무런 잘못 없이 전세금을 날린 세입자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사회에서 가르쳐준 것은 개인주의나 개성이 아니다. 살아남으려면 나 혼자서라도 잘해내야 한다는 생존본능에 가깝다. 위협과 아픔의 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외면하는 공동체나 국가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더욱 서글픈 사실은, 어디에 기댈 곳이 없어서 혼자 살아남기를 선택한 청년들에게, 정치가 버팀목이 되기보다 생존의 영역과 가장 관계없는 사람들만 ‘MZ’로 불러내서 자기들끼리 신나게 떠들고 있다.

 

MZ로 호명되는 사람들과 내가 기억하는 시간이 다르다면, 그냥 나는 MZ가 아닌 걸로 하겠다. 부모의 자산으로 자기 집을 소유하는 데 성공한 청년에게 반지하 침수나 전세금 미반환의 위협은 먼 나라의 이야기일 것이다. 69시간을 일했으니 회사에 휴가를 달라고 요구하는 비정규직 청년은 우리 사회에 존재할 수 없다. 청년과 무엇을 하고 싶다면, ‘어떤청년인지부터 명확히 밝히자. 비정규직과 프리랜서 노동자, 깡통전세와 지옥고의 세입자, 비수도권 지역의 청년들을 빼놓고, MZ퉁치는것은 그저 철 지난 청년팔이에 불과하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경향 2023.04.10.

 

 

<국부론>보이지 않는 손은 몇 번 나올까

수적으로 소수인 자본가들(masters)이 단체를 만드는 것은 누워 떡 먹기다. 법이나 정부 당국은 노동자단체를 금지한다. 하지만 자본가단체를 금하는 법이나 정부는 없다. (중략) 자본가들은 단체를 만들지 않는다고 보통 생각하지만, 이는 무식한 상상이다. 노동의 임금을 가라앉히기(sink) 위해 자본가들은 언제 어디서나 소리 내지 않고, 끊임 없이 일관되게 자신들의 단체를 만들고 있다.”

 

얼핏 보면 칼 마르크스(1818~1883)<자본론>에 나오는 말 같지만, 실은 아담 스미스(1723~1790)<국부론>에 나오는 말이다. <국부론>을 번역한 김수행 교수는 역자 서문에서 스미스가 지적하는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국부론>에서 단 한 번 상권(비봉출판사 번역본) 552쪽에서 언급될 뿐이라고 말한다.

 

조선에서 정조가 국왕이 된 1776<국부론> 초판이 나왔고, 3(1784)에서 상당한 부분이 추가됐다. 스미스 생전에 5(1798)까지 나왔다. 잉글랜드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된 게 1760년 무렵이고, 미국 독립전쟁이 발발한 해가 1776년이다. 조선에서 27세 정약용이 관직에 진출한 1789년 프랑스혁명이 발발했다. 그 이듬해인 1790년 스미스가 죽었다.

 

김수행 교수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은유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사회철학은, 사회적 이익을 증진시키는 한도 안에서 개인에게 사적 이익을 추구하게 하는 것이 옳다라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개인이 자기의 이익을 추구할 때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사회의 이익도 증진된다는 스미스의 주장을 돌려 말하면, 사회의 이익을 증진하지 않는 개인의 사익은 보이지 않는 손의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미스의 생각은 자연적 자유’(natural liberty)를 통해 개인이 자신의 상태를 개선하려고 자연스럽게 노력하는 것을 지지하는 동시에 사회 전체의 안정을 위협하는 개인의 자연적 자유의 행사는 제한돼야 한다로 집약할 수 있다.

 

그 연장선에서 김 교수는 독점자의 사적 이익은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손은 작동하지 않으며따라서 독점자가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연적 자유는 제한돼야한다고 주장했다. “현재의 부르주아 경제학은 독점자본이나 다국적자본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엄청나게 훼손하고 있는데도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스미스를 모독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요즘 <국부론>을 자주 들춰 본다. 그때마다 이 책이 자본가를 위한 게 아니라 노동자를 위한 거라 생각하게 된다. 모두 5편으로 이뤄진 <국부론>에서 가장 재미난 부분은 임금과 이윤과 지대의 원천인 노동 문제를 분석한 1편이다.

 

산업혁명 태동기에 활약했던 스미스가 보기에 새롭게 창출되던 국부”(the wealth of nation)의 원천은 노동의 생산력이었다. 그리고 노동의 생산력은 노동의 분단”(the division of labour), 즉 분업(分業) 덕분에 최대로 개선됐다. 그래서인지 스미스는 <국부론>의 첫 장을 노동의 분단즉 분업으로 시작한다.

 

미개한 사회에서 한 사람이 하던 일을 진보한 사회에서 몇 사람이 나눠 하는분업은 노동자 각자의 숙련도를 높이고, 시간을 절약하며, 기계의 발명과 결합하면서 한 사람이 많은 사람의 일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분업은 다시 기계를 통해 결합노동”(joint labour)으로 변형되면서 각종 생산물을 증가시켜 국부를 키운다.

 

스미스는 각 사람의 천부적 재능의 차이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작다면서 상이한 직업에 종사하는 성인들이 발휘하는 매우 상이한 재능은 많은 경우 분업의 원인이 아니라 분업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철학자와 평범한 짐꾼의 차이는 천성(nature)보다는 습관, 풍습, 교육 같은 후천적 요인에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누구는 양질의 노동을 하고 누구는 저질의 노동을 한다면, 이는 개인 탓이라기보다 사회 탓이 된다.

 

노동의 분단, 즉 분업이 확립되면서 모든 사람은 노동 생산물을 교환하며 생활하게 됐다. 그리고 물물교환의 어려움은 하나의 상품을 화폐, 즉 돈을 선정하게 만들었다. 처음엔 가축과 소금과 조개 같은 물건이 돈이 됐다. 이후 금과 은 같은 금속이 돈이 됐다. 금속의 순도와 중량을 표시하는 각인이 도입되면서 돈은 상업의 매개수단이 됐고, 주화제도가 확산되면서 물건이 교환되는 가치를 측정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화폐의 기원과 이용의 역사를 설명한 스미스는 가치”(value)가 물건의 효용을 표시하는 사용가치”(value in use), 그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가지게 되어 다른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인 교환가치”(value in exchange)라는 두 가지 특성을 가진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모든 상품의 교환가치를 측정하는 척도로 노동을 내세웠다.

 

노동은 모든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지불되는 최초의 가격, 또는 최초의 구매화폐이며 세상의 모든 재부를 구매하는 데 최초로 사용된 것은 금이나 은이 아니라 노동이다. 그리고 노동은 유일하게 보편적이고 유일하게 정확한 가치의 척도이며, 모든 시기와 장소에서 상이한 상품들의 가치를 비교할 수 있는 유일한 표준이 된다.

 

모든 가치는 노동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스미스의 생각은 재화와 용역의 모든 가치는 노동에서 비롯한다는 노동가치설(labour theory of value, LTV)로 발전했다. 노동자가 가져가는 임금, 자본가가 가져가는 이윤, 지주가 가져가는 지대의 원천에 노동이 있다는 노동가치설의 길을 열어 제친 아담 스미스는 정치경제학자이자 도덕철학자로서 산업혁명 이후 노동문제(Labour Questions)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최초의 사상가이기도 했다.

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 : 매일노동뉴스 2023.04.10.

 

 

핀란드 10년여 살아보니6년째 행복도 세계 1위인 이유

지난달 20일 유엔 산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공개한 ‘2023 세계행복보고서를 보면, 한국인들이 스스로 매긴 행복 평가는 5.951점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35위였고, 전세계 137개국 가운데 57위였다. 미국은 15, 일본은 47, 중국은 64위였고, 핀란드가 6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왜 핀란드 사람들은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할까? 우리나라보다 특별히 경제적 생활 수준이 높지도 않고, 군사적으로 강력해 주변국들 위협이 없는 것도 아니고, 100년 남짓 짧은 역사에 문화적으로도 풍부한 자원을 가진 것도 아닌 북유럽의 작은 나라가 왜 행복한 나라일까? 10년 넘게 핀란드에 사는 한국인 입장에서 본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첫째, 모두는 평범하고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북유럽 공통의 문화·도덕적 규범이라 불리는 보통 사람들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10여개의 법칙이 있는데, 간단히 줄이면 사람은 모두 평범하며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는 것이다. 여기 사람들은 자신의 성취를 자랑하지 않고, 다른 이들을 가르치려 들지 않으며, 자기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르다틀리다를 명확히 구분하며, 상대의 취향을 존중하며,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크게 관심이 없다.

 

둘째, 자기 인생을 산다. 사람들은 흔히 돈, 권력, 명예, 유명세를 좇으며 산다. 이 평범하고 보편적 욕망을 위해 우리는 치열하게 살아간다. 10대에는 좋은 대학에 가려 경쟁하고, 20대는 더 열심히 노력해 좋은 직장을 가지려 하고, 30·40·50대는 좋은 아파트, 좋은 차,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통장 잔고, 해외여행에서의 멋진 인스타 사진 등을 위해 경쟁하듯 같은 인생을 산다. 그러나 이런 인생 말고 자기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핀란드에는 많다. 보다 철학적 이야기는 차치하고, 아주 쉬운 질문을 해보자. “우리는 과연 취미가 있는가?” 여기서 취미란 그냥 한가한 시간에 틈틈이 하는 게 아니라 일부러 시간, , 노력 등을 쏟아부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말한다. 핀란드에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내 주위에도 야생동물 사진을 찍는 것이 취미인 사람은 아프리카 케냐에 매년 여행을 가고, 나이 많은 연구원은 특이한 새 소리를 듣기 위해 오지에서 며칠을 잠복하고, 정원 가꾸기가 취미인 사람은 자신의 정원에 아치형 다리를 놓고 싶어 여름 휴가 한 달 내내 토목학을 공부한다. 모두가 각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셋째, 사회복지의 나라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핀란드는 복지국가다. 이 복지국가는 많은 세금으로 동작한다. 언젠가 한국 신문에서 초등학생들이 원하는 꿈 가운데 하나가 건물주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런데 핀란드에서는 건물주를 꿈꾸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노동하지 않고 얻은 소득에는 세금이 많이 붙기 때문에 일반 개인이 자산으로 건물을 소유하는 것이 경제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세금을 내는 핀란드에서는 부자가 되는 것이 어렵지만, 또 잘 되어 있는 복지 때문에 가난해지기도 어렵다.

그래서 행복한 나라의 사람들은 모두가 평범하고, 평등하다하는 도덕적 규범 속에 부자들이 기꺼이 많은 세금을 내고, 모두가 각자 자기 인생을 살아간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나라를 행복한 나라로 만드는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김해식ㅣ핀란드 국립과학기술원 박사 한겨레 2023.04.10.

 

설명하지 않는윤석열 정권, ‘미국 도청도 뭉갤 텐가

블랙핑크를 좋아한다. 유튜브에서 뚜두뚜두뮤직비디오가 기록한 20억뷰, ‘킬 디스 러브17억뷰에 기여했다. 최근 팬으로서 의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을 경질했는데, 블랙핑크·레이디가가 미국 합동공연 문제가 경질 배경으로 거론돼서다. 다수 언론에 따르면, 질 바이든 미 대통령 부인이 제안한 블랙핑크·레이디가가 행사 보고가 수차례 누락됐다고 한다. 대통령실은 비슷한 보도가 이어지며 기정사실화하자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공연은 대통령의 방미 행사 일정에 없음을 알려드린다는 한 줄짜리 공지를 냈다. 당초 추진됐다가 무산된 건지, 아예 추진되지 않은 건지, 무산됐다면 왜 무산된 건지 설명이 없다. 결론적으로, 공연이 김성한 전 실장 경질과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도 알 길이 없다. 시민은 외교안보 사령탑이자 대통령의 50년 지기(知己)가 하루아침에 잘린 까닭을 여전히 모른다.

 

윤석열 정권의 핵심적 특징은 설명하지 않는 권력이라는 데 있다. 이슈가 발생했을 때 시민이 요구하는 설명을 내놓지 않는다. 혹은, 뜬금없는 해명을 내놓곤 충분히 설명했다고 주장한다. ‘바이든·날리면발언, ‘학폭 개입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임명, 69시간 노동, 강제동원 해법,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논란 등이 그 사례다. 진솔한 사과는 언감생심, 사실관계조차 명확히 드러난 사안이 없다. 내각도 따라간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권리를 돌덩이에 비유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의원들의 지적에 오해한 거다. 똑바로 듣는 게 중요하다고 외려 훈계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의원 질의에 답하는 대신 질문을 거꾸로 던지는 반문 화법을 구사한다.

 

검찰권력의 핵심은 누군가를 재판에 넘길 수 있는 권한보다, 재판에 넘기지 않을 수 있는 권한(기소편의주의)에 있다고들 한다. 잘못된 기소의 경우 무죄가 선고되고,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씨 보복 기소에서처럼 공소권 남용판결이 날 수도 있다. 검찰의 자의적 불기소를 견제하는 수단도 있기는 하다. 검사가 고소·고발 사건을 불기소했을 때, 결정이 타당한지 고등법원에 묻는 재정신청이다. 그러나 2013년부터 20226월까지 전국 고법에 접수된 재정신청의 인용률은 0.63%에 불과했다(지난해 10월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자료). 윤 대통령과 참모들이 설명하지 않는 권력이 된 것은 검찰권력의 특성과 일맥상통한다. 검사에게 기소하지 않을 권한이 있듯, 권력자에겐 설명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듯싶다. 굳건히 버텨주는 30% 콘크리트 지지층도 으로 여길 터다. 무엇보다, 설명하지 않으면 반박당할 일도 없다. 윤석열 정권은 공론장 기능을 사실상 무력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를 즐겨 인용한다. 그렇다면 잊어선 안 된다. 민주국가 지도자의 책임에는 설명할 책임(accountability)’이 포함된다는 것을. 대통령실은 지난해 6월 취임 한 달 치적을 홍보하며 출근길 (문답을 통해) 국민의 궁금증에 수시로 답하는 최초의 대통령이라 자찬했다. 지금의 윤 대통령은 형식 면에서나 내용 면에서나 국민의 궁금증은 한사코 외면하는대통령이 됐다. 출근길 문답은 중단하고, 새해 기자회견과 순방 중 기내간담회는 건너뛰었다. 대신 국무회의나 비상경제민생회의 석상에 앉아 하고 싶은 말만 생중계로 내보낸다.

 

윤석열 정권이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 국가안보실 논의 내용을 도청한 정황이 드러났다. 소셜미디어에 유출된 기밀문서에는 당시 김성한 안보실장과 이문희 외교비서관이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정책을 두고 나눈 대화가 생생히 묘사돼 있다. 공교롭게도 이 대화 이후 두 사람은 경질됐다. 윤 대통령 방미를 2주 앞둔 대통령실은 상황 파악이 끝나면 필요시 미국 측에 합당한 조치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사건을 과장·왜곡해 동맹관계를 흔들려는 세력이 있다면 국민들로부터 저항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야당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연계해 공세를 펴는 데 대한 반응으로 보인다. 동맹 간 신뢰는 중요하다. 그러나 주권과 국익, 시민의 안전을 앞설 수는 없다. 2021년 미국이 유럽 정치인들을 도청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해명을 촉구했다. 윤 대통령은 미국에 사과를 요구하고 국민에게도 충분히 설명할 텐가. 아니면 이번에도 뭉갤 텐가.

김민아 칼럼니스트 경향 2023.04.11.

 

 

길복순의 세계를 멈춰야 한다

소설가 김훈은 책이나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것을 졸렬한 짓이라 했다. 그 짓을 해보려 한다.

영화 <길복순>을 봤다. 보는 내내 몰입이 잘 안됐다. 청부살인업자가 평범한 회사원 또는 엔터테인먼트업체 소속 연예인처럼 묘사된 모든 장면과 대사가 너무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낯설게하기가 감독이 노린 것일 테고, 이 영화의 세계관이기도 하다

 

일본 야쿠자 두목과 목숨 건 일전을 벌여 살인 업무를 완수한 뒤 퇴근(?)해 마트에서 카트를 끌며 무심히 장 보는 싱글맘, 떡볶이집에서 직장 애환을 나누고 위로하다 이직과 승진(?) 앞에 갑자기 죽고 죽이는 피비린내 나는 혈투를 벌이는 상황이 영화 끝날 때까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감독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 삶 자체가 하루하루 목숨 건 투쟁이고, 마트에서 장 보려면 누군가를 죽여야 할 만큼 악착같이 살아야 하고, ‘관계를 앞서는 세상에서 우린 살고 있다. 영화는 외에도 에이스 명성을 유지하고픈 길복순의 허위의식도 드러낸다. ‘에이스 킬러가 복순의 정체성이다. 직장인에게 월급보다 인정욕구와 자존감이 우선일 때가 적지 않은 것처럼.(이를 애사심 또는 장인정신이라고 스스로에게 스스로가 속기도 한다.)

 

대중문화는 사회 현실을 반영한다. 가상화폐 투자 실패로 법률사무소 직원이 대학 동창인 주류회사 직원에게 청부살해를 의뢰하고, 이 직원과 배달업체에서 함께 일했던 30살 남성이 빚 갚으려 뛰어든 강남 납치살해도 비현실적 현실이다. 대치동 학원가에서 학생들에게 마약 음료를 먹이는 것도 비현실적이지만, 평소에도 이곳에선 수험생 대상으로 에너지드링크 등 각성 음료 시음행사가 일상인 게 현실이다.

 

이처럼 살아온 결과가 합계출산율 0.78, 노인빈곤율 39%, 자살률 24.1(인구 10만명당 자살자),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다. 목숨 걸고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누군가가 나를 책임져준다는 믿음이 없는 사회, 내가 누군가를 책임지겠다는 의사가 없는 사회에서 각자도생이 창궐하는 건 당연하다. 이런 사회에선 관대함이 사라지고, 힘이 최고의 가치가 된다.

1750년 파라과이에서 일어난 실화를 그린 영화 <미션>(1986)에서 스페인 관료들은 원주민 학살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원주민들은 셋째 아기를 낳으면 죽인다는 점을 들었다. 그래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자 예수회 신부들은 백인들의 노예사냥을 피해 도망가려면 부모가 한 아이씩 둘러업고 뛰어야 한다. 셋째까지 안고 가려면 온 가족이 다 붙잡힌다. 노예가 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항변한다. 270년 뒤 한국은 그때 파라과이 원주민보다 덜 미개한가.

 

최근 정부는 69시간제를 들고나왔다. 극단적 사례라고 항변하지만, 설명이 어눌한 건 애초에 개인이 아닌 기업이 원할 때, 기업이 원하는 만큼 일 시키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를 노동 개혁이라 한다. 죽기살기로 살아가는 곳에서 무슨 혁신이 일어날 수 있나. 몇년 전 미디어 스타트업 기업인 퍼블리의 박소령 대표를 인터뷰하면서 서울대 졸업생들이 스타트업에 많이 가는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박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서울대 졸업장이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하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그러니까 모험을 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회사가 망해도 다른 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러니까 질러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사람들한테 스타트업 하라고 얘기하는 건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가 서울대를 나올 순 없다. 사회가 개인의 서울대가 되어줘야 한다.

 

196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과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개들을 별도 수용한 뒤, 가벼운 전기 충격을 계속 줬다. 첫번째 그룹에는 조작기를 누르면 전기 쇼크가 멈추도록 했다. 두번째 그룹에는 조작기를 눌러도 아무 변화가 없도록 했다. 24시간 뒤 낮은 울타리를 친 우리로 옮겨 똑같이 전기 충격을 줬다. 첫번째 그룹은 금세 울타리를 넘어 도망갔다. 두번째 그룹은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전기 쇼크가 올 때마다 짖기만 했다.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다. 전기 쇼크는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해 온몸으로 참아내며 고통만 호소할 뿐이다. 우리도 ‘24시간이 다하기 전에 쇼크를 멈춰야 한다. <길복순>의 세계를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 두번째 개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권태호 | 논설위원실장 한겨레 2023.04.11.

 

 

4·3 70, 정의를 묻는다

19484·3으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원통함을 풀지 못한 희생자가 많다.

말하지 못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누군가 대변해주어야 한다.

 

19484·3으로부터 참으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4·3을 헤쳐 나온 분들에게는 지금도 잔혹한 그날이 어제 같기만 할 것이다. 그때 경험담을 들려주는 어르신들의 입은 떨림으로, 눈에서는 마르지 않는 눈물이, 심장은 터질 듯이 박동을 더해갈 따름이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떠난 대로, 남은 사람들은 남은 대로, 깊은 기억 속에 각인된 지워지지 않는 이 70년 질곡의 세월은 고통의 깊이가 얼마나 헤아릴 수 없는 상처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어느 날 잡혀가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과 자식들, 처녀라는 이유로 죄도 없이 치욕적인 수난을 당하고 죽음을 맞아야 했던 여성들, 이름도 짓기 전에 비명에 간 어린아이들, 재판도 없이 무슨 죄가 있는지도 모른 채 어디론가 끌려가 땅에 파묻히고 바다에 수장되어 죽어간 숱한 사람들, 아버지를 대신해서 자식들을 죽이고 자식들을 대신해서 그 아비를 죽이며 남편을 대신해서 그 아내를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무고한 이웃을 죽창으로 찔러 죽이라고 강요하는 만행의 시간들이었다.

 

전쟁도 아닌 와중에 25000~3만여 명이 희생되었으니, 이 엄청난 죽음을 어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저 밥 짓고 밭에 나가 일하고 하루하루의 소소한 희로애락 속에 살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세월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낮에는 경찰이 무섭고 밤에는 산사람이 무서워서,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두려움에 몸서리쳐지고 지옥이 따로 없었다는 증언들은 4·3의 비극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참혹한 것이었는지 웅변하고 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무자비하고 잔혹해야 했는가? 전국 어디서나 일어섰고 제주에서도 똑같이 일어선 19473·1절 기념대회는 뭐가 잘못됐으며, 어린 소년을 말굽으로 치고 지나치는 기마경관에 대한 항의가 대체 무슨 잘못이기에 군중을 향해 총질을 해댔는가? 조국의 분단은 안 된다며 단독선거와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한 건 무슨 죄였으며, ‘빨갱이사냥에 혈안이 된 공권력의 불의와 탄압에 맞선 정의로운 저항 또한 무슨 과오였는가? 그래서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이 모든 공권력의 잘못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자는 제주 사람들의 움직임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진상 규명 운동은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군부독재의 이름으로 철저하게 속박당하고, 작가와 시인과 학생들과 의로운 제주 사람들은 다시 고초를 겪고 오랜 시간 침묵을 강요당해야 했다. 19884·3 40주년이 돌아오고, 199850주년이 다시 와도 세월은 멈춰 있는 듯, 그 억울함은 누구로부터도 치유받지 못했다.

 

김대중 정부(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해에 “20세기에 일어난 일을 21세기로 넘길 수 없다!”라는 도도한 진상 규명의 열기가 199912월 숱한 고난 끝에 제주4·3특별법을 만들어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국에서 힘을 모아주었던가? 악인이 있으면 귀인도 있는 법, 대한민국의 1%밖에 안 되는 제주의 아픔을 위해 정의롭고 선한 많은 분들이 함께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김흥구 4·3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무속 행위.

 

20031015일 제주 4·3의 진실을 담은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가 정식 정부 보고서로 채택되었다. 보름 후에 희생자 유족들과 제주 사람들이 그렇게 목말라하던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대한민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다. 2006년 대통령이 4·3위령제에 처음 참석했다. 모두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때의 일이다. ‘대한민국 만세!’ ‘대통령님, 감사합니다!’란 외침과 감동을 얻는 데는 반세기가 넘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4·3평화공원도 조성되기 시작했고, 희생자들은 그 영원한 안식처를 찾게 되었다.

 

20084·3 60주년, 대대적인 기념행사였다. 기념사업위원회가 꾸려지고, 4·3으로 섬을 떠났던 사람들이 4·3으로 다시 제주 땅을 밟았다. 그분들의 입에서 터져 나온 감동, 그 이유는 하나였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세상이 이렇게 바뀔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랬을 것이다. 조국의 나쁜정치 때문에 고향을 등졌던 사람들이 이제는 조국의 정부 이름으로 고향에 초대된 것이다.

 

이제 4·3 70주년, 4·3 당시 20세 청년이었다면 이제 아흔을 바라본다. 70주년은 4·3을 직접 체험한 세대들의 마지막 10년 주기라고 한다. 더 이상 시간이 흐르기 전에 지금 해야 할 일,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자문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지금까지의 진상 규명 운동 성과 위에 무엇을 하나 더 쌓아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정명(正名)’

가장 가슴에 남는 것은 이 사건과 모든 죽음에 대한 정당한 해석이다. 70년 전에 죽은 어린아이의 영혼들이 살아 있는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 모진 세월 속에 죽음을 강요당했고, 살아서 통곡의 세월을 보낸 모든 희생자와 그 유가족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얼마 전 나는 제주4·3평화공원 위패 봉안소를 찾았을 때, 방명록에 희생자들에게 영원한 안식을!”이라고 쓰지 못하고, “저희에게 힘을 주소서!”라고 썼다. 그건 통상적인 위로의 메시지 이상으로 망자를 살아 있는 영으로 대하고, 그들이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망자가 대화할 수 있다면, 꼭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지 않겠는가.

김흥구 노꼬메 오름에서 보는 제주 중산간 풍경과 비석 없는 무덤들.

 

오름은 4·3 때 무고한 양민들이 학살된 비극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해방 정국에서 제주 사람들은 시위도 항의도 평화적으로 했다. 최소한 4·3 발발 직전까지 제주 사람의 폭력으로 유명을 달리한 경찰이나 서청(서북청년단), 군인이 단 한 사람도 없는 이유다. 제주 사람들 손에 피가 묻지 않았으니, 평화적으로 모든 사태가 수습될 수도 있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사태는 대량학살이라는 최악의 길로 가고 말았다. 그래서 해방 조국을 통치하던 그때 미군정은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고, 미국의 책임을 묻고 싶지 않겠는가. 이승만과 경무부장 조병옥 등은 대체 무슨 근거로 제주를 붉은 섬으로 매도하고 그렇게 혹독하게 탄압을 해야 했는가? 그때의 위정자들에게 불법·탈법의 과도한 학살 책임을 어찌 묻고 싶지 않겠는가. 일단의 보수 세력은 지금도 70년 전 그때처럼 폭동이니 폭도니 하며 4·3을 폄훼하는 온갖 언설을 내뱉고 있다. 4·3을 왜곡하고 혐오 발언을 하는 행위에 대해 그 책임을 단호하게 묻는 과거사 처벌법이 만들어졌으면 하지 않을까?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정명(正名)’이 아닐까 싶다. 70년 전 제주의 4·3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이제는 제대로 된 이름을 찾아달라고 하지 않겠는가. 시위와 항의 대열에 참여했든 안 했든, 제주 사람들 대부분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생각할 줄 알고, 판단도 했을 것이다. 불의와 탄압이 있었으니 거기에 저항했고, 조국통일이 옳은 길이니 단독선거와 단독정부에 반대했다. 제주 곳곳에서 시위와 항의가 있었고, 많은 동네 사람들이 여기에 참여한 건 그 때문이다. 민족의 염원과 간절한 민심을 아랑곳하지 않는 검은 야욕에 맞섰을 뿐이다. 민족의 지도자 김구와 김규식도, 전국의 동포들도, 그렇게 떨쳐 일어났기 때문이다.

 

만일 제주 사람에게 죄가 있었다면, 우리 민족 수백만명, 혹은 그 이상이 모두 죽어 마땅한 죄인이란 소리가 되지 않겠는가. 정의는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 우리가 망자들에게 마땅히 돌려줘야 할 몫, 그것을 돌려주는 것이 70주년을 기점으로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70년 전 그때 일을 온당하게 평가하고, 그 억울함을 씻어주는 해원(解寃)’. 만일 망자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면, 바로 이것이 아니겠는가. 이 모든 것의 끝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르는 보복과 혈투가 아닌, 참된 평화와 정의여야 함을 70년 전 제주는 간절하게 소망하고 있다.

이규배 (제주국제대 교수·제주4·3연구소 이사장 시사인 2023.04.11.

 

 

미국 CIA가 확인시켜준 윤석열 리스크

현실은 첩보영화보다 더 냉혹하고 극적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한국 외교안보 최고위 당국자들이 미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요청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도청해 미 국방부에 보고했다. 누군가 이 기밀문서를 몰래 찍은 사진 파일을 온라인에 퍼뜨렸고, 전세계가 한국 국가안보실의 대화를 생생하게 엿듣게되었다.

 

3월 초, 이문희 당시 외교비서관은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에게 미국에 제공하는 포탄이 우크라이나로 갈 가능성이 있다면서, “한국이 명확한 입장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해 이 문제를 압박할 것을 우려한다고 말한 것으로 문서에 등장한다고 <뉴욕타임스> 등은 보도했다.

 

이들은 왜 한미 정상통화를 걱정했을까. 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한국의 원칙을 일관되게 밝힌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미국 국빈방문을 한껏 기대하고 있는 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에 포탄 지원하겠다. 책임은 내가 진다고 덜컥 약속해버리는 상황을 예상한 것 아닐까. 일제 강제동원 피해와 한일관계에 대해, 외교안보 당국자들이 성급한 해법을 만류했는데도 윤 대통령이 결단으로 포장해 밀어붙인 것을 떠올려보자. 윤 대통령의 독단은 이제 한국 외교의 핵심 리스크.

 

그나마 신중론을 폈던 김성한 실장과 이문희 비서관 등은 지난달 말 블랙핑크 공연 무산이라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모두 물러났다. 이제 국가안보실의 막강 실세는 김태효 1차장이다. 외교가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하루에도 대여섯번 김태효 1차장을 독대한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이명박 정부에서 한일 안보 협력을 과속으로 밀어붙이다 물러났던 김태효 1차장은 이번에는 훨씬 더 멀리 나아가고 있다. 한일 정상회담 뒤인 318일 그는 <와이티엔>(YTN)에 출연해, “일본과 무엇을 주고받는 협상을 원하지 않는다며 일본이 학수고대하던 해법을 먼저 제안했음을 거침없이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을 포함해 글로벌 사회가 2018년도(에는) ‘한국이 과거와 다른 행보를 보인다이렇게 생각했었다면, 지금은 한국이 도덕적으로 그리고 명분상 국제사회에서 새로 태어났구나이런 느낌을 갖게 하고 싶다고 했다.

 

그가 보여준 윤석열-김태효 외교 독트린은 이런 것이다. 우선, 문재인 정부 외교 정책에 대한 무조건 반대(ABM)가 중요한 기준이다. 둘째, 그가 한국 여론을 설득하러 나온 자리에서도 계속 일본과 미국을 향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일본과 엇나가는 외교를 했지만, ‘새로 태어난윤석열 정부는 미·일이 믿을 수 있는 외교를 하겠다는 다짐이다. 셋째, ‘신중론은 배제되고 김태효 1차장의 강경론을 대통령이 내가 책임진다고 밀어붙이면서, 한국 외교의 안전 장치가 무너지고 있다. 넷째, ·일은 이제 남이 아니니 치열하게 밀고 당겨 주고 받는외교 대신, 대통령 부부의 의전과 행사가 중심이 되는 외교의 사유화가 벌어진다.

 

미국·일본의 국익에 한국의 국익을 일체화시킨 반작용으로 대중국 외교 실종도 더욱 심해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나타난 제국주의적 위협을 보며 많은 나라들이 미국과 안보 협력을 강화하면서도, 동시에 미국의 보호주의·일방주의를 경계하면서 복합적 외교를 펼치는 것과 동떨어진 흐름이다.

 

일본 외교라도 한국이 제대로 따져봐야 한다. 지난 1~2일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이 중국을 방문해 대만 해협과 동중국해에서 중국의 긴장 고조 행위를 비판하고, 중국이 스파이 혐의로 붙잡고 있는 일본인 석방을 요구했다. 표면적으로는 구체적 결실 없이 이견이 팽팽했다. 하지만, 리창 총리, 왕이 중앙정치국 위원, 친강 외교부장 등 중국 외교의 최고위 인사들이 모두 하야시 외무상을 만나 장시간 의견을 주고 받았다. 중국이 경제 회복을 위해 대외 환경을 개선하려는 의도를 파고들면서, 일본은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하고 기회를 확대하려 한다. 일본은 미국의 핵심 동맹으로 국제적 위상을 강화하면서도, 여러 방향으로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다.

 

북핵·미사일 문제가 심각할수록 한국도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 정책을 완전히 포기한 것인지, 중국을 통해 북한을 움직일 여지는 있는지, 전략적 탐색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대중국 무역적자 급증은 자급자족을 강조하는 중국의 정책 변화가 주요 원인이지만, 한중관계를 관리해 충격을 줄여야 한다. 대만해협 위기 가능성도 직접 판단하고 대비해야 한다. 지금 한국 외교에 전략은 있는가. 미국과 일본을 따르면 한국의 난제들이 해결된다는 것이 국가 전략일 수는 없다.

 

김태효 1차장은 11일 미국을 방문해 한미 정상회담 의제를 최종 조율한다. 이번에도 주고 받는 협상없이, 반도체를 비롯한 핵심 사안에서 미국이 학수고대하던과감한 양보를 한다면 한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박민희ㅣ논설위원 한겨레 2023.04.11.

 

 

일하는 실업자의 비애

경제는 어렵고 일자리는 없다고 하는데 실업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통계청이 발표한 2월 고용동향을 보면 실업률은 3.1%로 전년 동월 대비 0.3% 하락했다. 실업자가 100명 중 3명에 불과하다면, 먹고살기 힘들다는 국민의 목소리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주목해야 할 통계가 또 하나 있다. 2022년 단순노무종사자가 4045000명으로 2013년 통계작성 이후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무려 511000명이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취업자 수는 966000명 증가했는데, 늘어난 일자리의 절반 이상이 음식배달, 택배, 가사, 경비 노동자 등으로 구성된 단순노무종사자다. 대부분 플랫폼 노동자이거나 구인·구직 플랫폼에서 일자리를 찾는 비정규직, 초단시간 노동자들이다.

 

외환위기 직후 실업자들은 양복을 입고 공원 벤치를 서성이거나 조끼를 입고 쓰레기를 줍는 공공근로를 했는데, 2023년 실업자들은 휴대폰을 들고 온라인 플랫폼 역사에 모여 흩뿌려진 일감을 줍고 있다. 음식배달, , 대리기사들은 최근 일감이 없어 길바닥을 서성이며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이들은 일감을 잡는 순간 실업자에서 취업자로 변신한다. 일감을 기다리는 실업의 시간이 일하는 시간보다 긴, 노동하는 실업자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한눈이라도 팔면 일감경쟁에서 패배해 장기실업자가 되므로, 계속해서 휴대폰을 뚫어져라 쳐다봐야 한다.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시간은 줄고 긴장된 상태로 일감을 찾는 노동시간은 하염없이 늘어난다. 이쯤 되면 인간이 플랫폼을 이용해 일을 하는지, 플랫폼이 인간을 이용해 휴대폰 충전과 데이터 수집을 하는 건지 헷갈린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채용됐는지 해고됐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디지털공장을 돌리는 원료로 활용되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가 실시간으로 취업과 실업을 반복한다면, 단시간 노동자들은 주 단위, 하루 단위로 취업과 실업을 반복한다. 2월 고용동향통계에 따르면 주 17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노동자는 무려 225만명이다. 주휴수당을 받을 수 없는 주 15시간 미만 노동자는 특별히 초단시간 노동자라 부르는데 20229179만명을 기록했다. 일하는 시간이 실업시간보다 짧으므로, 초단시간 노동자보다는 단시간 실업자라고 부르는 게 사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노동시간을 쪼개면 소득과 휴식시간도 쪼개진다. 쪼개진 노동시간에 맞춰 출퇴근 시간 역시 분산되므로, 일하는 시간과 소득은 감소하는데, 휴식과 여가 시간도 줄어버리는 역설이 발생한다. 주말 14시간 근무나 3.5시간씩 주 4일 근무나 노동시간은 같지만, 4일 출근할 경우 통근 시간은 늘고 사용할 수 있는 휴일은 줄어드는 것이다.

 

일하는 실업자 내지 단시간 실업자는 눈에 보이지 않아 정책에서 배제되고, 전통적 사회보장제도로 보호하기도 힘들다. 정부가 구직급여 반복수급자를 잡는 데 혈안이 돼있는 동안 변화된 산업구조에서 생산된 새로운 실업자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개혁을 한다며 MZ69시간 노동을 논할 때가 아니다. 부분실업급여 등 새로운 사회보장제도를 설계하고, 건당으로 일하는 도급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등 달라진 실업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박정훈 배달노동자 경향 2023.04.11.

 

 

시험 공화국의 짙은 그늘

우리는 대개 선진국이라는 용어를 구미권 국가들에 사용하곤 하지만, 사실 산업혁명 이전 세계에서는 동아시아야말로 선진권이었다. 종이나 금속활자, 화약, 그리고 로켓과 지폐 등 주요 발명품들을 독점했던 것부터 그 선진성의 한 측면이었다. 그런데 동아시아의 선진성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한나라에서 기원전 134년부터 시작되고, 신라가 788년에 독서삼품과의 형태로 수용한 시험을 통한 공무원 등용 제도는 그 당시 세계의 어느 다른 지역에서도 시행되지 않았다. 유라시아의 다른 제국인 비잔티움이나 아랍 칼리파국, 아니면 사산왕조 등에서 공무원 등용은 주로 집안의 신분이나 인맥으로 이뤄졌지만, 동아시아는 일찌감치 보다 객관적인 등용·고과 기준을 도입했다.

 

그에 비해 유럽의 시험제는 한참 후발이었다.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은 유럽에서 최초로 1219년 학위취득 시험 제도를 정비했지만, 그건 필기시험도 아닌 구두시험이었다. 유럽 대학에서 최초의 필기고사는 15세기에 이르러서야 도입돼 18세기에 일반화한다. 공무원 등용 시험은 유럽에서 프로이센이 1748년 최초로 도입했는데, 당시 참고 모델이 바로 계몽기의 유럽인들이 흠모했던 청나라의 과거제였다.

 

고려에서 958년 과거제가 처음으로 실시된 이후 한국 땅에서 시험을 통한 인재 선발이 중단된 시기는 거의 없었다. 갑오개혁으로 과거제가 폐지되자 의정부의 전고국, 문관전고소 등 신식 과목 위주의 공무원 시험을 주관하는 부서들이 곧 생겼다.

 

일제도 일본 내지에서 시행 중인 공무원 시험제를, 조선인 엘리트 포섭 차원에서 그들에게 개방했다. 일제 강점기 동안 조선인 385명이 보통문관시험에, 134명이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했고 이들 대부분은 조선총독부 등에서 벼슬길에 올랐다. 이들은 차후 대한민국 공무원 집단의 골간을 이룬다. 일제 시절 문관시험제는 1949년 고등고시령이 제정됐을 때 그 기본 준거틀이 되기도 했다. 한국의 공무원 시험제는 그 시작부터 식민지적 과거와의 단절보다 지속성이 더 짙었던 셈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시험공화국이다. 3살 아이들이 레벨테스트를 거쳐 영어유치원에 들어간다. 세계에서 3살 유아가 입시를 보는 나라는 과연 한국 말고 있을까? 한국인의 각종 시험 응시는 초로의 나이까지 지속되기도 한다. 공무원시험 합격자 통계를 보면, 간혹 50대 합격자들이 눈에 띈다. , 한국인이라면 인생주기 대부분을 시험 준비와 함께 보낼 확률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보기 드문 대학교수 신분의 신격화 역시 시험공화국이란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상당수 시험 출제 위원들도, 수험생이 봐야 하는 참고서들을 출판해 돈을 버는 이들도 바로 대학교수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시험이라는 통과의례를 운영·관리하는 극소수 엘리트와 시험 합격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대다수로 양분된다. 물론 이 두 그룹 사이의 관계란 처음부터 평등할 리 만무하다.

 

시험으로 채용되고 승진하는 일본 경제관료들이 경제개발의 사령탑 역할을 했던 일본 공직사회를 연구한 차머스 존슨(1931~2010)발전 국가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했다. 이후 많은 연구자가 한··중 내지 대만과 싱가포르의 능력주의적 관료제와 시험에 따른 채용·승진 심사를 찬탄했다. 오로지 시험성적으로 뽑히고, ‘개천에서 난 용’, 즉 빈한한 환경에서 자란 자수성가형 인재까지 포함한 관료조직이 기득권층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율적일 수 있으며, 그만큼 사익이 아닌 공익을 위해 합리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이 찬사의 골격이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학자들도 공유하는 이 동아시아의 능력주의적 관료제에 대한 호평은 물론 합리적인 구석이 있다. 시험제는 어떤 부작용이 있더라도 관직 매매나 인맥 채용, 아니면 정파적 이해관계에 의한 정략적 관직 나눠먹기등에 비해 그야말로 선진적인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야당 지도자인 소년공 출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신자유주의 도래 이전 시험공화국의 능력주의적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시험을 통해 선발된 공무원들이 기득권이 아닌 공익만을 챙긴다는 이야기는 헛된 기대에 불과하다. 신자유주의 도입 이후에는 더욱더 그렇다. 각종 시험을 통과해 드디어 고위직 공무원이 되는 이들 중에서, 기득권과 관계없는 사람들을 찾기는 이제는 쉽지 않다. 지난해 전국 로스쿨 합격자의 54.2%가 스카이(SKY: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출신이었고, 스카이 재학생의 절반 이상은 연 1억원 이상 소득을 올리는 가정 출신이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소년공도 부유한 가정 자녀들이 고가 사교육을 받아 명문대를 거쳐 고위직에 오르는 시스템에 끼어들기란 이제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재벌들 수사를 진행했던 검사들이 전관 변호사가 돼 재벌 대기업들에 영입되는 상황은, 능력주의처럼 보이는 시험제가 국가 조직의 사실상의 사유화를 전혀 막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시험공화국은 공정한 적이 없으며 공정할 수도 없다. 예나 지금이나 시험 합격 여부는 응시자의 노력뿐 아니라, 그 가정이 가지고 있는 재력이나 문화자본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이다. 한데 이와 동시에 겉으로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인재 선발 방법으로 보이는 시험에 대한 맹신은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의 이념적 헤게모니를 크게 강화하고 있다. 모든 것이 시험 합격으로 결정되는 사회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포함한 약자의 비극은 쉽게 노력 부족으로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험공화국의 지배 이데올로기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란 그저 정규직 공채에 합격하지 못한 무능력자이고, 그에 대한 차별대우는 공정·능력주의 담론으로 정당화된다. 물론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비정규직의 양산 그 자체가 이미 공정을 저버리는 행위지만 말이다.

 

유아기부터 노년까지 시험을 봐야 하는 곳에서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이용하는 능력주의 담론에 희생되는 약자들마저도 이 담론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기모순적 모습을 볼 수 있다. 시험 본위의 한국적 능력주의란 이젠 차별과 착취를 합리화하는 논리에 불과하다는 게 사회적 통념이 돼야 이 사회에서 명실상부한 진보도 가능해질 것이다.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한겨레 2023.04.11.

 

 

바이든의 미소에 속고 있다

무너진 한·미 동맹을 재건하겠다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한국의 동맹 중독은 한층 심각해졌다. 미국 CIA가 대통령실을 도청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미국을 향한 항심(恒心)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서울 도심에 걸린 현수막엔 ·미 동맹 완성글귀가 선명하다. 보수층의 맹목 지지라는 고정값에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좌초, 대중 여론 악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노회함이 가세한 결과다.

 

방위비 분담금을 한꺼번에 5배 올리며 한국을 겁박한 트럼프 대통령 때 한국에선 반미감정이 똬리를 틀었다. 대학생들은 미국대사관저 담장을 넘었다. 트럼프의 좌충우돌에 진저리가 난 한국인들은 바이든에 안도했고, 그의 미소에 저항력을 잃었다.

 

미소는 공짜가 아니었다. 바이든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립서비스로 한국 기업들에서 막대한 대미 투자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발등이 찍혀 있다. 현대차는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의 최대 피해자가 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보조금을 받으려면 수십조원을 들인 중국 공장의 첨단화를 포기하라는 미국 반도체법 앞에서 머리를 감싸매고 있다. 필수 원자재의 중국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봉쇄여파로 한국의 대중 수출은 10개월 연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미국은 지난해 한국에 투자하려던 대만 반도체 기업을 설득, 7조원 규모 투자를 가로챈 적도 있다. 자국 경제를 위해 이웃 국가를 가난하게 만드는 것을 근린궁핍화라고 한다면 바이든의 보호무역·산업 정책은 동맹궁핍화(Beggar thy alliance)’ 전략이다.

 

바이든은 2021년 첫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판문점선언을 포함시켜 한국의 평화세력을 안도케 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전략적 무시로 한반도 평화를 대중 전략의 하위 의제로 격하시켰다. 그의 관심은 한··3각 안보협력에 쏠렸고, 전제조건인 한·일관계 복원을 줄곧 요구해왔다. ‘굴욕비판을 받는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 배후가 미국임은 바이든이 기다렸다는 듯 성명을 내고 환호한 데서 알 수 있다. 미국이 박정희의 방미 전제조건으로 협상 타결을 압박하던 1965년 한일기본조약 때와 판박이다.

 

··일 군사협력체제는 오바마 행정부가 시동 건 아시아 재균형’, 즉 중국 포위전략의 주요 수단이다. 미국은 2015년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한 뒤 한국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종용했다. 위안부 합의 몇달 뒤 사드가 배치됐고, 이어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이 체결됐다. ·일관계 개선과 한··일 군사협력이 세트로 움직이니 머잖아 군수지원협정이 뒤따를 것이다. 협정이 체결되면 예컨대, 부산항에 들어온 일본 군함에 탄약을 실어주는 일이 현실화된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 대규모 연합군사훈련이 빈번히 실시되며 한반도 긴장이 한껏 높아졌다. 한반도가 최첨단 무기들의 테스트베드이자 반중 국가들의 다국적 훈련장으로 개방되고 있는 현실이 참담하다. 지난달 하순부터 2주간 실시된 한·미 연합훈련에는 영국 해병대가 상륙훈련에 처음 참가했다. 대만 유사시 주한·주일미군 출동에 따른 공백을 자위대와 협력관계인 영국군이 메우기 위한 연습의 성격이니 한반도가 대만과 인계철선(tripwire)으로 엮이는 셈이다.

 

개방형 통상국가 한국은 탈냉전 이후 안미경중(安美經中) 노선으로 평화와 번영을 이뤘다. 하지만 안보와 경제를 일치시키려는 미국의 신전략이 등장했고, 정부가 맹목 추종하면서 외교안보와 경제 양쪽에서 자율성을 잃어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과 중·러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벌이고, ·일의 구애 대상인 인도가 러시아 원유를 대량 구매하는 진영파괴·실리 행보와 극명히 대비된다. 아무리 한반도가 지정학적 저주라고는 해도 외교적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는 있다. 국익 관점에서 동맹을 객관화하는 작업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요즘 한국은 경제가 정점이던 1980년대 후반 일본을 떠올리게 한다. 세계 시장을 석권하던 일본 반도체 산업은 미·일 반도체 협정 이후 쇠락했고, 미국 수출경쟁력을 위해 엔화 가치를 올린 플라자 합의 이후 경제에 거품이 끼었다 터지며 장기불황을 겪었다.

 

두 계란(안보와 경제)을 한 바구니(미국)에 담아야 하는 한국의 장래에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윤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어떤 결과를 몰고 올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바이든의 미소와 환대를 국익과 바꿀 순 없다.

서의동 논설위원실장 경향 2023.04.12.

 

 

‘100만원 외국인 가사도우미법안 단상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잠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일한 적이 있다. 당시 같은 연구실을 쓰던 스웨덴 출신 방문교수와 종종 남아공 생활에 관한 얘기를 나누곤 했다. ‘복지천국에서 왔으니 남아공 생활이 불만족스럽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웬걸 정반대였다. 스웨덴에서보다 훨씬 넓은 집에 살면서, 주말마다 와인농장에 딸린 고급 레스토랑에서 외식하고, 싼값에 여행도 더 자주 다닐 수 있는 삶을 만족스러워했다.

 

그 말에 수긍이 갔다. 스웨덴이나 내가 공부했던 영국에선 중산층의 삶이 저소득층보다 압도적으로 좋다고 할 수 없다. 땅값이 비싸 웬만큼 부자 아니면 넓은 집에 살기 어렵다. 높은 인건비와 서비스 요금 탓에 외식은 부담스럽고, 집이나 차 수리도 대부분 직접 한다. 반대로 소득이 낮아도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높은 최저임금에 무상의료, 주거급여, 실업수당 등 각종 복지제도가 갖춰져 있고, 괜찮은 식자재를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선택지도 다양하다. 돈이 많으나 적으나 삶의 질은 어느 정도 균등하다.

 

반면 남아공은 중산층과 빈곤층 사이 격차가 크다. 낮은 인건비 때문이다. 남아공 최저시급은 25랜드(1700), 우리 돈으로 한달 30만원이 채 안 된다. 서비스업 물가가 낮아 외식비도 저렴하고, 집안일에 사람을 써도 부담이 덜하다. 어느 정도 소득이 있으면 남아공에선 제법 여유롭게 살 수 있다. 스웨덴보다 남아공이 지상천국에 더 가까운지, 유럽의 은퇴한 연금생활자들이 남아공에 꽤 많이 살고 있다.

 

하지만 선택받은 계층에 속하지 않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낮은 인건비는 노동자의 몫이 그만큼 적다는 뜻이다. 최저임금 월 30만원가량에 약간의 정부보조금을 더해도 생계유지가 어렵다. 빈곤층은 무허가 판자촌 타운십의 좁은 집에서 다닥다닥 모여 산다. 공공서비스가 미비해 제대로 된 교육이나 진료를 받을 수 없다. 선택받은 자들이 천국을 누리는 동안 그 밑을 떠받치는 이들은 지옥을 산다.

 

이들의 삶도 개선되긴 한다. 대신 매우 더디다. 노동자에게 더 많은 몫이 배정될수록 선택받은 자들의 삶은 덜 윤택해지기 때문이다. 남아공에서는 불과 4년 전에야 최저임금제가 도입됐다. 그렇게 낮은 최저시급이건만 재계는 시장 논리를 내세워 저항했다. 나쁜 조건에도 일할 사람이 넘치니 사용자로선 임금을 더 줄 이유가 없다. 경영효율화, 노동유연화, 자유시장경쟁 등 미사여구를 동원해 귀한 분들천한 것들을 분리하고 좋은 일자리는 더 좋게, 나쁜 일자리는 더 나쁘게 만든다.

 

얼마 전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등이 ‘100만원 외국인 가사도우미법안을 발의했다. 아이 둘 키우는 아빠 처지에서 솔깃했다. 직장에서의 격무에 이은 집안에서의 육아 부담을 덜기 위해서도, 몇년째 휴직 중인 아내가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서도 값싼 돌봄노동자의 존재가 도움이 될 것 같다.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일자리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본국에서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을 기회가 된다니 마다할 이유가 있나 싶다.

 

그런데 자꾸 남아공 생각이 나는 건 왜일까. 외국인이란 이유로, 본국에서보다 더 나은 대우라는 이유로, 우리 출산율 제고가 시급하다는 이유로 같은 일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더 낮은 임금을 주는 게 옳을까. 지난해 6월부터 가사도우미도 인증기관을 통해 계약하면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법이 시행 중이다. 또 국제노동기구(ILO)가사노동자협약11조는 가사노동자도 최저임금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같은 협약 제8조에는 외국인도 예외가 아니라고 못박아뒀다. 우리나라 가사노동자가 힘겹게 인정받은 권익의 개선을, 국제협약에 반해가면서까지 외국인에게만 적용 안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선택받은 소수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희생 위에 행복을 누리는 곳을 발전한 사회라 할 수 있을까. 스웨덴에서 오신 그 교수님도, 본인의 만족도와 별개로 남아공이 스웨덴보다 더 나은 사회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참고로 저임금 가사도우미 제도가 활성화된 홍콩(0.75, 2021년 기준)과 싱가포르(1.02)의 합계출산율은 우리나라(0.88)와 함께 세계 최하위권이다. 단순히 육아 비용이 더 적은 곳보다는,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곳에서 아이 낳고 키울 생각이 더 커지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럴 것 같다.

장영욱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한겨레 2023.04.12.

 

 

진보정치 개편을 바라는 동상이몽

민주노총이 이달 24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정치방침과 총선방침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이양수 부위원장 등 인사들은 이 안을 어떻게든 통과시킬 태세다. 일각에서는 현재의 대의원 구도상 통과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고, 다른 일부는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견한다.

 

지난 215일 칼럼에서 밝혔듯, 민주노총 총선방침()은 많은 과정을 누락하고 있다. 본안은 초안에 비해 좀 더 다듬어졌음에도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천의 공백을 면밀한 분석과 대안보다는 의지주의로 덮고 있다. 다분히 기술적인 방안에 치중했기 때문에 상층부의 공상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정치방침()을 두고 이야기해 보자.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당위성과 목표·방향 등을 설명하는 1~3항에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한데 진보 민중세력 및 진보정당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고 노동중심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진한다고 서술된 4실현경로는 정치방침()과 총선방침()이 상정하는 녹색당이나 정의당에서 공감을 얻을 수 없는 서술에 가깝다. “노동중심성이라는 오래된 테제를 염불 외듯 반복하는 것으로는 한참 부족하기 때문이다. 노동 착취와 식민지 수탈, 초국적자본에 의한 주변부 자원 수탈, 생태계 파괴를 통한 기후위기 등으로 이뤄진 오늘날의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려면 단순히 기존의 계급 착취에만 시선을 가둬선 안 된다. 젠더 지배와 인종주의, 제국주의를 아우르는 폭넓은 시야와 연대를 통한 대항 헤게모니를 구축해야 한다. 양경수 위원장안은 이런 문제의식 자체를 결여하고 있다. 협소한 시야로는 한국 사회와 여론지형에 제대로 개입하는 당을 만들 수 없다.

 

4항은 원안 수정으로 넘어간다고 치자.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다. 5항의 문구는 여러 진보정당이 각자도생하는 방식이 아니라 진보정치세력이 대단결 하는 노동중심의 진보정당 건설을 통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진한다인데, 이것과 4항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실제로는 4항 이후 여러 단계의 실천을 거쳐야만 5항의 실현이 가능한데, 이런 과정을 깔끔하게 누락하고 있다. 이를 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이번 임시대의원대회에 상정된 정치방침안은 중앙집행위원회에서조차 동의를 얻지 못해 위원장 직권으로 상정된 안이다. 다수 산별노조 위원장들의 동의도 얻지 못한 상황에서 조합원 여론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며 안을 밀어붙이는 것은 대의원수를 많이 확보했다고 확신하는 다수파의 패권주의로 비칠 수밖에 없다. 제도정치에서도 이런 시도는 비난받기 십상이다.

 

실제 2007년 민주노동당을 선도 탈당해 이후 진보신당을 건설한 그룹은 당시 위기의 원인을 자주파의 패권주의에 있다고 평가했고, 누구도 이런 평가를 정정한 바 없다. 2012년 선도 탈당했거나 잔류했던 그룹들 중 통합진보당 건설에 함께했던 모든 그룹이 경험한 상처도 아직 아물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제대로 된 논의 없는 밀어붙이기는 이런 트라우마를 소환할 수밖에 없다.

 

이양수 부위원장이 지난 221일자 <매일노동뉴스> 기고문에서 밝혔듯, 민주노총은 지난 10여년간 노동자 정치세력화 실패에 대한 평가를 되풀이해 왔다. 그렇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여러 차례 평가를 되풀이했음에도 진보정당운동이 여전히 위기에 빠져 있고 노동자 정치세력화 프로젝트가 요원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노동운동 내 각 그룹이 교통 없이 평가해 왔기 때문이다. 평가는 수없이 했지만 각 정당들의 평가가 제각각 다르고 교집합이 거의 없다. 심지어 당 안에서도 견해차를 드러내는 것은 물론 스펙트럼이 폭넓게 분포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평가가 충분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둘째, 지난 실패에 대해 민주노총 내에서도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다. 경험 많은 상층부 활동가나 간부들이야 지겹게 들은 이야기겠지만, 대다수 조합원들은 매우 충격적이었던 10여년 전의 실패를 돌아볼 기회가 없었다. “하나로 뭉쳐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말만 공허하게 맴돌 뿐이다.

 

셋째,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단순히 정당을 만드는 문제나 선거 방침에 국한되지 않음에도 10년 동안 정치세력화를 둘러싼 사업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복수의 진보정당으로 분열된 상황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변화된 상황에 맞게 노동자들의 정치활동이 어떻게 전개돼야 하는지 등을 담은 갱신된 정치세력화 프로그램이 지속돼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발생한 공백을 갑작스러운 연합정당 건설로 이룰 순 없다.

 

실제 연합정당은 가능하지도 않다. 녹색당 당원 다수는 아예 그럴 마음이 없고, 정의당은 각종 계획이 중구난방으로 나오고 있지만 당 내에서 제대로 된 토론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 심지어 정의당 내에는 진보정당 하지 말자”(조성주)라거나, 보수정당들 내의 자유주의자들을 묶는 구상을 갖는 이들도 혼재한다. 양경수 위원장안이 통과되더라도 진보당 외에 다른 진보정당들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제로고, 이러한 조건에서 노동중심의 진보대연합 정당이라는 비전은 거짓말이다.

 

통과를 밀어붙이려는 사람들도 이러한 사실을 모르지 않다. 그럼에도 왜 진지하고 성찰을 담은 정치세력화 대신, 이 안의 통과를 밀어붙이려는 것일까? 현실적으로는 민주노총의 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관철하고자 하는 의지라고 볼 수 있다. 민주노총 내에는 다른 진보정당 당원도 많은데, 이것이 무리하게 관철됐을 때 어떤 내부 갈등이 폭발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사실 반대만으로 대안을 말할 순 없다. 그러니 이라도 내놓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책임 있는 자세라고 볼 수도 있다. 애석하게도 단결과 진정한 전진을 위해선 통과시키기 어려운 안이지만 말이다. 그러니 이번 안은 쓰라린 마음으로 부결돼야 하지만, 그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지역과 현장에서부터 정치세력화를 재생시키고, 다른 입장과 평가들이 솔직하고 진지하게 교차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논쟁을 시작해야 한다. 이를 밑거름 삼아, 시민사회운동과 함께하는 새로운 정당 건설 등 제대로 된 정치방침을 수립해 중장기적인 한국 사회 변혁의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그럴 책임과 힘이 오늘날 민주노총과 사회운동 모두에게 있다.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매일노동뉴스 2023.04.12.

 

 

한국인의 정치과잉

410일 아침, 유력 일간지에서 놀라운 1면 톱기사를 봤다. ‘정부 심판 vs 거야 심판, 집권 2년 중간평가 총선이라는 제목이다. ‘4·10 총선 1년 앞으로라는 부제가 보였다. 참 대단하다. 1년 남은 총선 기사가 1면 톱에 오를 나라는 아마도 한국뿐일 거다. 나도 역사학 분야 중에서 정치사를 전공하고 있고, 정치기사도 탐독하는 편이지만 이 기사에는 놀라고 말았다. 정말 한국인들은 선거 하고 싶어서 2000년 동안 어떻게 참고 지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인의 정치과잉이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술자리 등 사석에서 정치얘기는 고정메뉴다. 최근 들어 진영논리가 강화되는 바람에 , 정치얘기는 하지 맙시다하며 서로 눈치 보는 분위기가 생겼지만, 같은 진영끼리 모이는 자리에서는 여지없다.

 

해당 기사를 보고 놀란 맘을 달래고 있던 차에 페친 박재항님의 포스팅을 보고 말았다. 그분이 자주 들르는 목욕탕에서 어느 날 60대 중반 남성이 혼잣말로 계속 정치 욕을 하더란다. 그다음에 갔을 때도 또 그러길래 보다 못한 70세 정도의 이발사 분이 먹을 거를 주며 조용히 타일렀더란다. 그랬더니 이 욕쟁이 양반이 잘 먹고 음료도 잘 마셨어요. 이제는 안 그럴게요. 미안하구먼요라며 사죄의 뜻으로 자기가 먹은 그릇 설거지를 하더라는 얘기. 훈훈하게 마무리돼 다행이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어딘지 일종의 격렬함이 있는데, 그 격렬함에는 또 코믹한 구석이 있다고 한 일본의 역사소설가 시바 료타로의 지적이 떠올랐다(<한나라기행>).

 

그러고 보니 승객이 가득한 지하철에서 예수 믿으세요~~” 말고도, 큰 목소리로 정치 비판을 하는 분들을 본 적이 있다. 시장통 상인들이 신문을 덮고 한숨을 내쉬며 나라가 걱정이여하던 장면도 기억난다. 한국인은 외로움도, 무료함도, 부족한 술자리 안주도 정치로 때우는 듯하다. ‘한국 사람은 한 명 한 명이 정치평론가라는 말도 있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미디어의 정치과잉 보도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신문이나 방송들은 정치뉴스라면 뉴스가치를 제대로 따지지 않고 과도하게 보도한다. 외국 같으면 주간지 가십에나 나올 법한 뉴스도 유력 일간지들조차 열심히 게재한다. 전 대선 유력 주자가 장인상 때문에 귀국한 일도 친이낙연계 결집 신호탄 되나라며 뭐 대단한 의미가 있는 양 취급해준다. 전직 소방관 출신 야당 초선의원이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한 것도 불출마 선언이라고 제목을 뽑는다. ‘정계은퇴 선언이라고 안 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경제계에서는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의 신경영 발표 정도나 돼야 겨우 선언대접을 받는다(프랑크프루트 선언).

 

몇 해 전 장례식장에서의 일이다. 문상객들이 열띤 정치토론을 하고 있는 와중에, 한 중견정치인이 멀리서 나타나자 모두 그를 바라보느라 토론이 멎었다. 살펴보니 우리 테이블만 그런 게 아니었다. 그 정치인은 테이블을 돌며 악수를 청했고, 방금 전까지 그 당을 욕하던 사람들도 모두 공손히 손을 맞잡았다. 신문방송에서 자주 보던 사람이니 막상 눈앞에 나타나면 아우라가 다른 것이다. 우리 언론들이 이런 정치인들의 광채를 만들어주었고, 그 맛이 사람들이 기어이 정치를 하려고 하는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나는 일본생활을 오래했지만 이 같은 모습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구한말 한국을 찾은 일본인들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정치과잉을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일본에는 많다. 식민지기에는 다른 건 몰라도 정치는 조선인이 한 수 위라고 한 일본인도 있었고(김동명 <지배와 저항 그리고 협력>), 시바 료타로도 위의 책에서 한국인의 정치애호에 대해 거듭 언급한다. 내년 초쯤에는 총선 100일 카운트다운이 일제히 시작될 것이다. 이렇게나 좋아해주는데 정치도 이제 보답 좀 하자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경향 2023.04.13.

 

 

누가 이 비를 멈추게 할 것인가

교육을 통해 누구나 팔자를 고치고 계층 상승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주로 1960년대 이후 인구가 급격히 팽창하고 경제성장이 그 뒤를 받쳐주던 시대의 산물이다. 당시에는 경제성장이 창출하던 일자리를 채워줄 풍부한 인구가 공급되었고, 학교는 졸업자들을 좋은 일자리에 배치하는 심판 노릇을 했다. “소 팔아서 대학 보낸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지만, 교육에 대한 사적 투자는 그들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는 공평한 게임으로 보였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반전되고 있다. 인구는 줄고, 경제성장은 둔화되며, 질 좋은 일자리는 쉽게 늘지 않는다. 경제성장률이 높을 때는 노동 소득이 자본 소득보다 높을 수 있고, 이때는 교육-취업-계층상승의 사다리가 열릴 수 있지만,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노동 소득이 자본 소득을 넘어서지 못하는 상황에서라면 교육사다리의 수익률은 결코 예전 같지 않게 된다. 게다가 삼성전자 등 일부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총생산(GDP)80% 이상을 차지하면서도 고용은 10%에 머무는 경제구조가 일상화되면서 소수의 억대 연봉자와 다수의 최저임금 근로자가 갈리는 양상이 나타난다.

 

이제 교육경쟁의 평균 수익률은 고점을 찍고 내리막으로 향하고 있다. 오직 교육사다리의 상위 20%만이 그나마 이 게임의 수익을 누리는 형편이 되었다. 웬만큼의 사교육비를 들여서는 예전 같은 교육투자 수익을 얻기는 어려우며, 부모세대가 경험했던 활황기 교육시장만을 생각하면서 아이들을 무조건 과잉경쟁으로 몰아넣는 것은 시대착오가 되었다. 돌아보건대, 결코 모두가 승자로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과잉교육경쟁의 패자들일 뿐이다.

 

하지만 상황이 이럴수록 교육의 과잉경쟁은 미친 게임이 되어간다. 한계수익률이 떨어질수록 교육경쟁에서 빈부의 차이가 결과에 더욱 확연히 영향을 미치며, 부의 분포가 곧 교육기회 수혜의 분포가 된다. 경쟁이 심해지면 질수록 게임을 더욱 공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비정상의 정상화 현상이 일상화된다. 수능 중심의 정시전형이 늘어나고, 입시관련 서류를 위조하며, 온갖 스펙을 만드는 일이 난무한다. 공정하게 평가하기 어려운 내용과 능력은 교육과정에서 지워진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핵심은 교육경쟁이 가져다주는 수익의 원천이 성적을 만들어내는, 상대적으로 양화된 서열 우위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교육내용과 상관없이 단지 평가에 의한 서열에 의해 발생하는 이익이다. 교과내용은 서열 생산을 용이하게 하는 지식들, 즉 정답과 오답이 분명한 것들로 선별된 것들이다.

 

이런 현상이 상시화되면서 한국 교육은 서열화 평가의 포로가 되었다. 평가가 교육을 이끄는 본말전도 현상, 다시 말해서 평가라는 꼬리가 교육이라는 몸통을 흔드는(wag the dog) 현상이 교육 전체를 장악하게 된 것이다. 과잉경쟁 상황 속에서 평가의 공정성을 유지하려고 하니 결국 정답 맞히기 학습이 무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부모들의 지나친 자식 사랑이 엔진에 기름을 공급하듯 이 메커니즘을 영속화시킨다.

 

한편, 이 게임의 여파는 상대적으로 심각하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그렇게 열공수련(?)을 하면서 학습한 지식이 의외로 학생들의 인격과 자존심을 파먹고 있었다는 것이다. 서열 우위라는 허상은 늘 타자준거적으로 자신을 비교 대상으로 삼도록 만들었다. 모든 학습은 타자, 즉 평가자의 시각에서 수행되며, 자기준거적인 삶과 주체성은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서열이 낮아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늘 자신을 차갑게 평가하는 시각을 의식하며 자신을 감시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한번도 자신을 따뜻하게 보듬는 내면의 나의 모습이 수면 위로 올라와 크게 숨 쉬게 해 주는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서열 우위를 점하기 위한 학습은 단지 정답을 찾는 기술이며, 정답이란 서열화 게임을 위해 고안된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사회에서 정답은 불필요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창의성은 정답 너머에 있는 무엇인가를 찾는 능력이며, 정답은 과거의 지식을 모방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기 때문이다. 서울대 김세직 교수는 <모방과 창조>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그는 한국 경제가 모방 중심 경제에서 창조 중심 경제로 변해야 하는 것처럼, 한국 교육도 모방에서 창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혹은 한국 교육이 모방 중심적이기 때문에 한국 경제도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듯하다. 미국의 록밴드 시시알(CCR)이 노래했듯이, 누가 이 비를 멈추게 할 것인가?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경향 2023.04.13.

 

 

취한 위정자들의 나라

권이 취해 돌아가고 있다. 곳곳에서 삐거덕 소리가 요란한데도, 나는 안 보이고 안 들리니 문제없다는 태도다. 눈치도 안 보고 설명도 안 한다. 하고픈 말만 고함치듯 한다. ‘꼰대취객이 딱 이런 모습일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언론에도 공지하지 않은 비공식 술자리를 떠들썩하게 열었다. 최측근 장관과 윤핵관, 시도지사들이 한 줄로 도열해 대통령을 환송했다. ‘조폭 술자리 같다는 비판이 들끓자, 대통령실은 야당 출신 시도지사들도 함께했다민생 협치의 상징이라고 해명했다. 협치 대상 1호인 야당 대표와는 취임 1년 다 되도록 한번도 만나지 않은 대통령이 할 말인가?

 

이번이 아니라도 윤 대통령의 음주 사랑은 유명하다. 그 정신없다는 대선 기간에도 애주가인 윤 후보의 저녁 회동에서 술자리가 있을 경우를 대비해 오전 일정은 비교적 여유 있게 잡아온 편이라는 캠프 관계자 언급이 <동아일보>에 보도된 바 있다. 취임 직후 서초동 자택에서 출퇴근할 때 집 근처에서 심야 술자리를 이어가다 불콰한 얼굴로 취객들과 사진을 찍은 적도 있다. 이 때문에 몇번 아침 지각이 전날 술자리 후유증 아니냐는 구설을 자초했다. 지난 방일 때도 1차 사케, 2차 소주·맥주를 들이켰다.

 

적당한 음주는 커뮤니케이션을 북돋운다. 그러나 윤 대통령 취임 뒤 술자리는 거개 자기편, 편한 이들과 가졌다는 특징이 있다. 정작 격의 없는 소통, 기탄 없는 논의가 오가야 할 자리는 만든 적이 거의 없다. ‘윤핵관은 돌아가며 관저로 불러 오·만찬을 했지만, 이준석·이재명·이정미는 초대 명단에 없었다. 술을 도구로 활용한다기보다 취기 자체를 즐기려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불렀다.

 

음주를 동반한 협상 스타일에 대해서도 우려가 나온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최근 <시비에스>(CBS) 라디오에 출연해 “(윤 대통령이) 뭔가를 협상을 할 때 공통점이 마지막에 술을 마시고 뭉개는 방향으로 가는 게 있다저도 울산 회동 때 그냥 간단하게 3개 조항을 합의하고 바로 술 마시기 회식을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시다(일본 총리)와도 아마 저녁을 두번 먹고 그런 게 그런 맥락 아닌가 싶다약간 리스크가 있다고 봤다. 사실 걱정이라고 했다.

 

술로 악명을 떨친 국가 지도자로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있다. 미국 방문 도중 한밤중에 영빈관인 블레어 하우스 밖에서 팬티 차림으로 서성이다 백악관 경호 요원에게 포착됐다. “뭐 하고 계시냐는 요원 질문에 혀 꼬인 소리로 피자가 먹고 싶어서라고 웅얼거렸다고 한다. 아일랜드를 방문했다가 취해 잠든 채로 비행기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되돌아간 적도 있다. 대통령의 알코올 남용이 국정 최대 리스크였던 생생한 반면교사.

윗물에 술내가 진동하는데, 아랫물이 맑을 리 없다. 요즘 집권세력 전반에서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다. 최근 산불 사태 와중에 김영환 충북도지사는 술자리에 참석했고,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한가로이 골프연습장을 찾았다. 이런 무책임이 없다.

 

대통령실에선 국가안보실장과 외교비서관, 의전비서관이 줄줄이 교체됐다. 백악관 만찬 때 블랙핑크공연과 관련한 보고 누락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보고 누락은 문제다. 하지만 이 때문에 국빈방문을 앞두고 안보실이 뒤집어진 것은, 사실이라면 더 어처구니없다. 워낙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다 보니 블랙핑크에 관심이 큰 누군가의 불만이 인사 배경 아니냐는 권력 암투설마저 회자된다. 대통령실은 설명 없이 뭉개기로 일관하고 있다.

 

집권여당도 나사가 단단히 빠졌다. 김재원 수석최고위원은 ‘5·18 정신 헌법 전문 게재 반대’, ‘전광훈 천하통일’, ‘4·3 폄하3연속 헛스윙을 했다. 당내 극우세력에 아부하는 발언들이다. 그런데도 김기현 대표는 한달 셀프 자숙을 권고하고 말았다. 전광훈 목사는 지난 전당대회에서 김기현·김재원을 밀었다고 주장한다. 김 대표도 한때 전 목사를 이사야 같은 선지자라고 추앙했다. 지금 돌아가는 꼴은 그런 관계가 살아 있다고 볼 수밖에 없게 한다. 당 민생특위 위원장인 조수진 최고위원은 밥 한 공기 다 비우기를 쌀값 대책이라고 들고나왔다. 대통령의 양곡법 거부권 행사가 정책 대안 없는 무책임한 행위였음을 폭로한 게 어쩌면 성과일지도.

 

술과 권력에 취한 집권세력의 노랫소리가 드높다. 국민의 원성 또한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는 사실만은 잊지 말기 바란다.

손원제 ㅣ논설위원 한겨레

 

 

극우세력과 친일파가 동거하는 위험한 나라

지금 한국 사회에는 세 개의 극단 세력이 준동하고 있다. 하나는 검찰 권력의 준동이고, 둘은 극우파의 준동이며, 셋은 친일파의 준동이다. 극우파나 친일파와 달리 검찰은 정부 조직이어서 극단 세력이라 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극단 세력의 준동이라 하는 것은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고 초법적인 편파수사로 극단적 수사 행태를 보이는 까닭이다.

 

검찰 권력의 준동은 야당의 정적 제거와 전 정부 인물 잡아들이기를 위해 엄청난 수사력을 투입하고 걸핏하면 압수수색을 일삼는 데서 드러난다. 이재명 대표 관련 압수수색은 불과 1년 동안 무려 339회에 이른다고 당사자가 폭로했다. 일제강점기에 자행된 일경들의 독립운동가 수사도 이토록 지독하지 않았다. 언론사 '더탐사'를 넉 달 동안 11차례 압색한 것도 언론사상 유례가 없는 횡포이다. 반면 김건희 '박사'의 주가조작 혐의에 대해서는 소환조사조차 하지 않고 있다.

 

윤석열 정부 초기에는 검찰 출신들이 정부 요직을 석권하여 검찰공화국인가 했는데, 검찰의 자의적이고 일방적인 불공정 수사를 보면 어느새 검찰독재의 마각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입법부와 사법부를 무시하는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독선적 정치행태도 초법적이지만, 검찰 출신 법무장관 한동훈의 시행령 정치도 위법적이어서 삼권분립의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았다. 그러므로 윤 정부의 검찰은 일찍이 없었던 공권력의 준동이라 할 만하다.

 

극우세력 준동 부추기는 검찰독재 정권

윤석열 정권이 시작되자 검찰권력에 이어 극우세력도 준동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극우들이 드세게 준동하는 것은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는 까닭이다. 극우 유튜버가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받는가 하면, 극우 유튜버 누나와 극우정당 대표가 대통령실 직원으로 채용되었다. 대통령은 극우세력을 은밀하게 대통령실로 끌어들이는가 하면, 더 노골적으로는 극우인사들을 정부 요직에 발탁까지 한다.

 

극우집단의 태극기 집회에 나가서 막말로 선동한 김문수를 '경사노위원장'에 임명한 것이 그 본보기이다. 그는 토론회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을 '총살감'이라 했을 뿐 아니라, 환노위 국감에서는 '확실한 김일성주의자'라고 극언을 해 국감장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다. 민주노총을 '김정은 기쁨조'라고 하는 천박한 망언도 서슴지 않는 자이다. 그의 말대로 문재인이 김일성주의자라면, 문재인이 임명한 검찰총장 윤석열은 김일성주의자의 심복 노릇을 한 자란 말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기자들의 질문에 "노동 현장을 잘 아는 분"이라고 그를 추켜세웠다. 노동 현장을 바라보는 극우적 시선은 대통령 또한 김문수와 다르지 않다. "화물연대 파업은 북한 위협과 마찬가지"라는 극단적 발언은 북한과 노조를 동일시하는 극우파의 심사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문제는 대통령이 김문수의 말은 물론 자기 말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김문수의 말을 이해하면, 김일성주의자 밑에서 검찰총장을 역임한 대통령 자신은 김일성주의 정부의 핵심 권력자였다는 뜻이다. 따라서 말뜻을 알아차렸다면 그를 요직에 임명할 수 없다. 더군다나 북한과 화물연대를 동일시한 자신의 발언은 심각한 북한의 위협을 한갓 화물연대 파업 수준으로 물타기 한 셈이다. 그러므로 극우의 논리로 해석하면, 윤 대통령은 김일성주의 정부의 공권력 수장이자, 북한의 위협을 옹호한 종북좌파라는 혐의를 벗어날 길이 없다.

 

누구도 극우주의자 전광훈을 손절 못하는 처지

한국 극우는 노동조합이나 정치적 반대 세력을 아무런 근거 없이 북한의 지령을 받은 것처럼 매도하거나 빨갱이라는 굴레를 씌우기 일쑤이다. 가장 대표적인 집단이 태극기부대이다. 그들은 군복에 선글라스를 쓴 차림으로 종북좌파 척결과 빨갱이 처단을 부르짖고 총살과 교수형을 외치며 대중을 선동한다. 5.18 광주민주항쟁을 북한이 개입한 반란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제주 4.3사건을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으로 비방한다.

 

그런데 윤 정부는 극우들에 동조하는 것을 넘어 아예 날개까지 달아주고 있다. 노조를 '김정은 기쁨조'로 모욕한 김문수를 '경사노위원장'에 임명한 것처럼, 4.3사건을 공산주의 세력의 폭동이라고 폄훼한 김광동을 '진실화해위원장'에 임명함으로써, 극우들의 준동을 더욱 부추겼다. 대통령 스스로 제주 4.3 추모식에 참석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야구장이나 서문시장에는 가도 4.3 추모식에는 엉뚱한 핑계를 대며 가지 않았다. 대통령의 이런 인사 행태나 약속 파기를 볼 때, 5.184.3을 극우의 시선으로 비뚤게 인식하는 것이 분명하다.

 

국민의힘 인사들도 극우세력에 편승함으로써 기득권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극우주의자 가운데 가장 날뛰는 자가 전광훈 '목사'인데, 국민의힘 당대표는 물론 최고위원도 전광훈을 우러러 칭송한다. 김기현 대표는 일찍이 전광훈을 "이사야 같은 선지자"라고 추켜세웠고, 김재원 최고위원은 대통령의 5.18공약을 부정한 전광훈의 주장에 맞장구친 것은 물론, 전광훈을 우파의 '천하통일꾼'으로 우상화해서 거듭 물의를 빚었다.

 

전광훈은 문재인을 잡아넣지 않으면 윤석열을 탄핵하고 한동훈은 자기 손에 죽는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정부 여당 내 힘있는 자들은 그를 제지하기는커녕 손절조차 못하고 있다. 결국 윤 정권은 극우주의자 전광훈의 아류라는 말이다. 당 대표와 최고위원뿐만 아니라, 국민의힘 지도급 인사인 황교안, 오세훈, 나경원 등도 태극기 집회에 나가서 극우집단의 선동에 편승한 이력이 있다. 그러므로 정부 여당의 극우 성향은 몇몇 사람의 예외 현상이 아니라 집단적 경향성을 띠고 있어서 더욱 우려되는 상황이다.

 

집단적 경향성 띠고 있는 정부여당의 극우 성향

더 문제인 사실은 한국의 극우들이 국가와 민족을 우선하는 우익적 가치와 반대되는 활동을 한다는 점이다. 국익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극우들은 국수주의 경향성을 띠기 마련인데, 한국의 극우들은 거꾸로 일본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일본 국익에 이바지하는 친일외교를 하는 까닭이다. 윤 정부의 친일외교로 한국인들은 굴욕감으로 참담해 하는 반면, 일본인들은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는 상황이다. 한일 양국의 여론이 반대 방향으로 요동친 것이 구체적 증거이다.

 

한일정상회담 이후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은 가파르게 올라 40%에 이르고,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30%까지 하락했다.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도 일본인은 긍정이 65%인 반면, 한국인은 부정이 56%로 상반된 결과를 낳았다. 한 마디로 일본의 이익에 부합하는 반민족적 친일외교를 한 까닭이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은 성공적인 국익외교라고 우기는 걸 보면, 권력 중독 현상에 빠진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일본 언론은 기시다가 독도 영유권을 거론했다고 보도하고, 그것을 입증하듯 일본 초등교과서 또한 독도를 일본 고유영토로 서술했다.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하는 순간 일본은 우리의 적이다. 자국 영토를 침탈하려는 국가야말로 가장 확실한 적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기시다가 독도를 언급하는 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도 적국과 군사동맹까지 운운하고 있으니 제 정신인가. 정상적 우익정부라면, 외교부의 항의를 전달하는 자리에서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맞대응한 일본 총괄공사를 즉각 추방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대일외교를 보면 전혀 우익 정부답지 않다. 초등학생들에게 우리 영토를 자국 영토라고 가르치는 일본을 어떻게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협력하는 파트너"라고 할 수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보수우파든 진보좌파든 자국영토를 수호하는 것은 군통수권자로서 대통령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의무이다. 그럼에도 윤 정부는 보수우파의 핵심 가치조차 무시할 뿐 아니라, 도리어 일본 극우들의 주장에 부화뇌동하고 있다. 그러므로 윤 정부는 매판적 친일정권으로 규정되어 마땅하다.

 

·일 양국 극우들이 한 통속인 해괴한 현상

친일 성향의 윤 정부가 들어서자, 친일파들 또한 기다렸다는 듯이 일본 극우 뺨치는 준동을 하고 있다. 엄마부대 주옥순은 독일 베를린까지 날아가 평화의 소녀상 철거 시위를 벌인 탓에 독일인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윤 대통령 지지자 이장우 목사는 다른 날도 아닌 3.1절에 보란 듯이 일장기를 게양한 것도 모자라, 다시 일장기를 들고 소녀상 앞에서 친일시위를 이어가는 뻔뻔함을 보였다. 강제징용 3자 변제안이 발표되자, 김영환 지사는 대통령의 통 큰 결단을 환영하며 "기꺼이 친일파가 되겠다"고 버젓이 친일파를 자처했다. 대통령의 3자 변제안이 사실상 친일 행위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보수우익들의 친일 행각은 식민지배가 합법이라고 우기는 일본 극우와 사실상 한통속이다. 한국 극우가 일본 국우와 한통속이라는 것은 심각한 모순 현상이다. 왜냐면 두 나라의 극우는 서로 자국 이익을 두고 강대 강의 극단적 대척점에서 다투는 것이 정상인 까닭이다. 그럼에도 윤 정부나 극우들은 일본 극우에 맞서서 국가 이익과 민족 가치를 적극 추구하기는커녕, 오히려 일본에 대한 자진 굴복으로 국가 주권을 모독하고 민족 자존감을 크게 훼손했다. 그러므로 윤 정부는 진정한 보수우익이 아니라 보수우익의 탈을 쓴 매판정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일제 식민주의에 종속되어 있는 친일정권을 보수우익이라 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말로만 국익을 읊조릴 뿐, 애국 보수정권으로서 우익적 가치를 챙기는 면모는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매판권력이 장악한 친일정권은 보수의 핵심 가치를 저버린 허수아비 정부이다. 따라서 허점을 감추고 기득권을 누리기 위해 극우파에 편승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극우파와 친일파가 동거하는 해괴한 매판정권이 만들어진 것이다.

 

도청에 항의는커녕 협의하겠다는 '숭미' 정부

윤 정부가 부추기는 극우와 친일세력은 남북화해와 교류협력을 단절하여 분단체제를 고착화시키는 한편, 남북 사이의 군사적 대치를 고조시키는 위기 상황을 조성하였다. 윤 정부 들어서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남한의 한미군사훈련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처럼 계속되고 있다. 전쟁 연습의 일상화 못지않게 위험한 것이 극우와 친일의 일상화이다.

 

유럽의회 의장 마르틴 슐츠(Martin Schulz)는 극우의 진정한 위험성은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던 금기의 한계가 조금씩 허물어져서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극우파와 친일파의 준동이 민감하게 인식되지 않고 점차 둔감해지면서 일상화되는 현상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그러므로 극우파와 친일파의 준동을 예민하게 주목하고 감시해야 한다.

 

 

한미정상외교를 앞두고 '친미'가 아니라 아예 '숭미'로 갈 조짐마저 보인다. 미국의 불법 도청으로 대통령실이 털렸는데도 정작 당사자는 미국 옹호에 골몰하기 때문이다. 도청에 '항의'는커녕 '협의'하겠다는 대통령실의 숭미적 태도는 국익보다 사익을 챙기는 매판권력의 한계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트럼프의 주한미군 분담금 요구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맞서서 꿋꿋하게 국익을 지켜냈던 문재인 정부를 생각하면, 보안정보까지 탈탈 털리고도 머리를 조아리는 윤 정부는 미국 가서 뭘 더 내주고 올까, 국민적 우려부터 앞선다. 친일 매판정권은 곧 숭미 매판정권이다.

임재해 안동대 명예교수. 전 한국민속학술단체연합회장 시민언론 민들레 2023.04.13.

 

 

정치의 사법화와 검찰화, 민주주의의 근간을 잠식한다

민주주의와 사법주의 ()

오늘날 누구도 한국 사회를 민주국가로 이해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특별히 삼권분립, 주기적 선거, 복수정당제, 언론자유가 헌법과 제도상으로 보장되는 한에 있어 한국을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되지 않는 국가로 의심한다는 것은 전연 불가능하다. 그러나 속살을 보면 이 민주공화국이 중대한 파열과 침식에 직면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의회정치, 나아가 정치, 더 나아가 국정의 사법화·검찰화·형사화를 말한다.

 

민주주의에서 사법과 검찰의 독립은 중요하다. 법치의 보루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립을 넘어 검찰·사법의 논리가 정치·의회·국정의 영역에 침투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법은 본시 이중적이다. 근본 출발원리는 인권 존중, 정의 실현, 법치, 약자 보호, 형평과 저울의 역할이지만, 현실에서는 불가피하게 승패 판정, 유죄-무죄, 흑백논리, 합법-불법의 양자택일 지반 위에 움직인다. 둘 모두 법의 본질이다. 따라서 다수주의, 다수결과 소수 존중, 대화와 타협을 원리로 삼는 민주주의와는 자주 충돌한다. 법이 민주주의의 범주 내에서 법치를 위한 역할에 그쳐야 하는 이유다.

 

첫째, 한국 정치는 이제 거의 모든 정치 의제와 사안, 절차와 과정이 사법화와 검찰화하고 있다. 마치 국정과 국민 의사의 최후 심급으로서 그들의 최종 판정을 받아야만 정치적으로도 정당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늘날 심각한 진영갈등을 초래한 주요 정치·사회·경제·인권·외교 의제와 사안들 중 검찰·사법·헌재에 물어보지 않은 것은 드물다. 다수 국민대표의 결정조차 극소수 수사 검찰과 담당 판사·재판관들의 판정에 합당과 부당, 합법과 불법 여부가 맡겨지고 있다.

 

그것은 의회의 의안 통과 과정과 입법 내용부터 정부 정책 결정의 절차와 세부사항에까지 이른다. 민주공화국의 정치와 정부, 의회와 정당으로서 중대한 직무유기이자 궤도 이탈이 아닐 수 없다. 일찍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시도, 대북송금 특검, 대통령 후보(이명박)에 대한 청와대의 고발을 계기로 정치의 사법화가 초래할 문제점을 지적할 때 주목한 정치인들은 없었다.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그 자체가 정치의 사법화였음을 몰랐기 때문이다.

 

둘째, 사법과 검찰 인사들의 의회 진출을 포함하여 법조 엘리트들의 국정 과점(寡占)과 국민 과대대표가 두드러진다. 오늘날 정당들은 진영대결과 사법 대응을 위해 더욱 많은 법률가를 필요로 하고 또 불러들이고 있다. 비중과 역할도 급속히 팽창하고 있다. 물론 그 절정은 검사 출신 대통령의 출현이다. 그러나 전례없는 검사 출신 대통령의 출현은 특정 개인의 정치 참여 의지의 여부를 넘어, 민주화 이후 진행돼온 정치의 사법화·검찰화라는 구조적 흐름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적 승패가 정의와 불의로 전치

대통령선거의 법률가화와 법조인화(法曹人化)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민주화 초기에는 법률가 출신 후보가 단 한 명도 없었으나, 점차 변호사·판사·검사 출신 정치인의 증가를 거쳐,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선 아예 양 진영 모두 법률가들이 최종 후보로 선출되고 경쟁하고 당선되었다. 윤석열 후보는 검사에서 후보와 대통령으로 직진하였다. 그의 등장과 당내 경선 승리와 대통령 당선은 국민들의 반정치·반정당 정서가 얼마나 강력한가를 보여주는 동시에, 이전 정부에서 보여준 적폐청산 논리와 역할로 반대진영을 제압해주기를 바라는 열망을 반영한 것이었다. 지금은 여야 대표도 모두 법률가 출신이다. 이제 법률가 경력은 국가공직과 국민대표로 가는 가장 빠른 통로가 된 것이다.

 

셋째, 관습과 습속, 마음과 태도로서 민주주의 원리의 중대한 후퇴다. 민주주의에서는 민심이 하늘이다. 민심의 지표는 선거이고 선거로 선출된 대표들이다. 최고 이론과 실천을 보여준 인류 선현들이 하나같이, 민주공화국의 제일 원리를 국민대표 우선’ ‘입법부 우위라는 일치된 견해를 보여준 까닭이다. 국민대표로 구성되는 입법부 우위의 원리가 지켜지지 않을 때는 국민주권도, 민주주의도, 공화국도, 따라서 민주공화국도 생장하고 번성한 사례가 없다. 국민의 주권과 의견을 반영한 체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패배한 진영 누구도 선거와 민심을 하늘로 받들지 않는다. 민주선거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내면의 습속과 정치행태에서 민심의 승패는 더 이상 천근의 무게를 가지지 않는다. 문제는 선거 이후에도 합법 대 불법, 정의 대 불의, 유죄 대 무죄의 의식과 대결이 연장된다는 점이다. 두 진영은 물론이고 그들의 지지세력 역시 동일한 의식에 싸여 있다. 우리 진영의 패배는 정의의 패배이자 불의한 세력의 승리일 뿐이며, 선거 승리는 곧 합법과 불법의 준거이기에 칼과 칼잡이의 장악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불의한 패자는 관용과 악수의 상대이기는커녕 국정동반자일 수조차 없다. 구속과 처벌의 요구가 선거와 민주주의를 대체한다. 서로 상대를 볼 때 불법 후보끼리 경쟁한 셈이 되는 것이다. 승리한 자는 합법이 되고 패배한 자는 불법이 된다. 국민적 지지에 따른 정치적 승패가 법적 기준인 합법과 불법, 정의와 불의로 전치가 되는 것이다. 위험한 반민주·반공화의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인간사 일반의 개인 갈등에서조차 송사를 통한 법적 판결은 내면 승복을 하지 않게 만든다. 우리가 법문 이전의 타협과 법 이전의 조정과 합의를 중시하는 이유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습속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세상만사와 국정을 법대로 처리하려는 마음이다(이 문제와 법치는 다른 것이다. 이 점은 다음에 살펴본다). 군부권위주의 시기 억압과 저항이라는 양자택일의 구도를 지나, 민주주의 실천의 과정에서 항상 어느 정도는 시끄럽고 인내와 관용이 필수적인 대화와 타협에 염증과 짜증이 나자 이제는 공적 조정과 합의 사안들조차 판검사를 통한 일도양단의 승패사회, 우적(友敵)사회로 귀결되고 있다.

 

실제로 나라정치에서 법률가 출신 정치인들이 양쪽 모두에서 정치 양극화의 선두에 서 있다는 점은, 정치의 사법화가 초래하는 대화와 타협의 실종, 곧 정치 붕괴와 악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치의 진영화와 양극화, 사법화와 검찰화는 의회와 정치의 안과 밖에서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진행되어온 것이다. 국정의 중심 의제와 논란, 심지어 개인 선호와 증오감조차 법무 영역을 맡은 인물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크게 잘못된 것이다. 앞 정부에서 가장 논란이 된 영역과 인물들은 거의 전부 법무·민정·검찰 부문이었다. 지금도 같다.

 

대결정치의 악순환 고리 끊어야

문제는 사법주의와 검찰주의가 적용되면 안 되는 국정영역까지 핵심 인사들의 배치가 넘쳐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군부권위주의 이래 처음이다. 대통령실 국가 최고 정무 사안, 일반 관료 인사, 경제와 금융, 국민 권익, 국가 정보, 국무조정 영역에 이르기까지 검찰 출신들이 실로 광범하게 포진해 있다. 규모와 비중 모두 놀라게 된다. 세계 어느 민주국가와 한국 정치의 어느 시기에 이토록 많은 법률가와 검사, 사법주의가 국정의 최고 심부로 들어온 적이 있었는지 묻게 된다. 이것은 개인적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한국 정치의 객관적 현실이다.

 

그리하여 공적 부문조차 법적 고소·고발과 대응이 폭증하고 있다. 고소·고발의 주체도, 대상도 모두 정부와 정당을 포함한 공공 부문이다. 국가와 공공영역이 권력에 따라 서로 원고와 피고가 되는, 그러다가 선거결과가 바뀌면, 원인 행위와 사법 주체는 전혀 사라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법절차도 따라서 중단 또는 무화시키는, 희극도 아니고 비극도 아닌, 웃지 못할 가장 반법치적인 희비극이 민주공화국과 법치 시대에 이어지고 있다. 정치를 위해 동원되었던 법과 법률가들, 사법주의와 검찰주의의 극단적인 반법치적·반민주공화적 역기능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고도 법치를 말할 수 있는 법률가들이 있을까? 이는 민주주의는 물론 법치 자체의 중대한 후퇴를 상징한다.

 

한국의 정치와 국정은 지금 너무도 깊숙하게 입법과 대표의 논리가 아닌, 사법과 검찰의 논리에 침식되어 있다. 문제는 정치의 진영화와 사법화가 상호 상승과 상호 악화의 길을 걸어왔다는 점이다. 진영대결과 사법주의의 동시 강화와 동시 악화를 말한다. 의회민주주의와 민주공화국의 생장과 발전을 위해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안 된다. 선 대 악의 진영논리 확인과 강화를 위한 수단과 통로로서 검찰과 사법이 필요하고, 또 정치적 공존과 타협이 아닌 사법적 승패와 상대 제거를 위해 더욱 정치를 사법화·검찰화하는 대결정치의 상호 악순환인 것이다. 오늘날 절정을 보여주고 있는 사법주의·검찰주의는 진영대결의 귀결인 동시에 원인인 것이다. 그것은 대화와 타협에 실패한 진영정치·진영대결의 의뢰처이자 피난처인 동시에 판정자이자 해결사인 것이다.

 

문제는, 정치의 사법화에 관한 한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시기의 의회중심 정치 이후의 진보·보수가, 표면적인 공격과 방어의 횟수나 정도 차이에도 불구하고, 의식과 행태 면에서는 거의 차이를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앞 절반의 시기는 적폐청산을 통해 민주화 이후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검찰의 권력과 영향력을 키워주었다. 법과 칼을 통해 사람을 자르고 가두고 처벌하는 적폐청산보다는, 제도개혁과 타협을 통한 적폐극복이 좋으며 영향이 길고 깊다는 주장은 그들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임기 전반 적폐청산의 성공에 임기 후반 검찰개혁의 실패는 이미 내장된 것이었다. 권력의 일반 논리에 비추어 실패는 불문가지였다. 정치에서 힘의 작용은 자주 물리세계와 같다. 작용을 위해 팽창시킨 힘은 반작용에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그것은 물리의 법칙일 뿐만 아니라 권력의 법칙이기도 하다. 나와 우리 진영을 위한 상대 진영 청산을 위해 최대한 키워준 검찰의 힘을, 검찰개혁을 통해 빼겠다는 의도는, 권력의 법칙에 반하는 접근이 아닐 수 없다. 적폐청산 성공과 검찰개혁의 실패는 한 쌍이었던 것이다. 검찰정권을 산생한 기저는 이미 적폐청산에서 잉태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대화와 타협, 연립과 연합을 주장하면 두 진영의 답은 같다. “적폐청산 후에!” “처벌 후에!”라는 답변으로 응답한다. “청산 대상과의 대화는 없다.” “최소한 XX는 감옥에 보낸 후에 연합을 해도 해야 한다.” 그러니 양쪽 모두 타자의 처벌과 제거, 자기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대선은 기필코 승리해야 한다. 선거가 사법의, 선거 승리가 처벌 집행과 회피의 통로이자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말을 바꾸면 국민 의사와 민주주의가 실제의 행위자들과 일부 투표자들에게는 검찰권과 사법권(행사)의 통로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부끄럽지만 우리들 내면 의식과 정치 현실의 엄연한 단면이다. 정치의 증발이자 실종이다. 정치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즉 내게 악마처럼 보이는, 생각과 가치가 다른 마성(魔性)과의 계약이라고 본 인류의 가장 고전적인 정의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때 계약은 악마 같은, 악마처럼 보이는 나와 다른 사람들 및 집단과의 타협과 공존을 말한다. 즉 정치는 계약인 것이다. 계약은 함께 약속한다, 공유한다, 함께 묶인다는 말에서 연유하였다. 따라서 어느 쪽이든 이탈하면 계약은 파기되고 공동체는 무너진다.

 

갈등 제도화 실패 약속 정치실종

지금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사회계약의 최고 핵심으로서의 정치계약은 사라졌다. 계약과 약속으로서의 정치를 복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민주공화국의 안정과 발전을 위한 계약 중의 계약, 최고 계약은 단연 정치계약이다. 그것이 근대와 의회민주주의의 출발이었다. 인류 선현들은 그러한 사회계약·정치계약의 산물을 공화국이라고 불렀다. 국민이 직접 참여하여 선출한 대표들에 의한 타협과 계약으로 정치와 나라가 이루어질 때 그것은 민주공화국이 되었다. 요컨대 사회계약과 정치계약의 부재와 파기, 즉 계약과 약속으로서의 정치의 부재와 위축은 민주공화국의 위기를 의미한다.

 

한국 사회와 정치는 이제 사법화와 법적 판결을 통한 구속력을 갖지 않는 한, 어떤 공적인 계약도 약속도 (선거) 공약도 과장이자 선동이며 가짜이자 위선인 사회가 되었다. 이보다 더 뚜렷하게 사회와 정치 계약의 내면적 작동원리와 자율성의 붕괴를 보여주는 것도 없다. 계약은 곧 타협을 말한다. 그것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가능하게 했던, 근대 사회의 대표적 중심 원리의 하나인 이른바 약속과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정치의 본령인 갈등의 제도화는 곧 (악마와의) 갈등의 상호 엮임과 계약화를 의미한다. 상대를 계약의 대상이 아닌 청산과 처벌의 대상으로 인식할 때 공화와 약속으로서의 정치는 실종된다. 작게는 한국의 의회주의와 정당, 크게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정치, 더 크게는 한국의 민주공화국은 향후 이러한 일도양단의 사법주의·검찰주의로부터 어떻게 거리를 두고 직립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법의 원리는 민주주의와 충돌할 뿐만 아니라, 그조차도 민주공화국의 부분 역할로 존재할 때만 작동 가능하다.

 

국가는 한 개인과 직위, 한 부문과 조직, 한 논리와 가치가 자기 영역을 넘어 전체로 과대대표되면 반드시 큰 탈이 난다. 특히 견제와 균형 원리를 넘어 다른 부문까지 과도하게 장악하면 그것은 모두 그 조직과 나라 전체의 심각한 위기로 연결되었다. 발전과 번영의 절정에 있던 조직과 나라들도 이 점에서 예외는 없었다. 진영논리와 정치의 사법화·검찰화가 결합되었을 때 정치는 물론 사법 및 검찰, 그리고 끝내는 민주주의와 민주공화국이 위험한 이유다. 그렇다면, 민주공화국을 위해 정치와 국가의 사법화와 검찰화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박명림 연세대에서 정치학 교수 경향 2023.04.13.

 

 

LMO 주키니 호박, 악마의 유혹이었나

짜장면과 짬뽕에 들어가는 설겅설겅한 푸른 호박이 돼지 호박이라고 부르는 주키니 호박이다. 애호박과 달리 과육 중심부까지 단단하고 씨앗이 없어 짜장밥이나 볶음밥에 넣는 용도로 알맞아서다. 어릴 때 엄마가 짜장밥을 해줄 때 넣던 호박이어서 시장에서 주키니 호박을 집어들면 별식인 짜장밥을 해준다는 신호여서 내겐 추억의 짜장 호박이다. 주키니 호박은 가정용으론 소비가 많지 않아도 식당이나 급식시설, 가공식품업체 같은 곳에서 대량 구매가 많은 채소다. 이런 주키니 호박이 지금 사람 속도 썩이고 저도 썩고 있다.

 

지난달 26일 농림축산식품부가 주키니 호박 씨앗 2종이 우리나라에서 승인되지 않은 유전자변형생물체(LMO)라며 거래와 출하를 갑자기 중지시켰다. LMO는 많이 들어본 GMO(유전자변형식품). 주키니 호박 출하가 한창인 데다 방역 조치도 풀려 외식수요도 높아진 때, 이미 따놓은 호박을 그대로 멈추라 하니 농민들은 어이없고 시장도 혼란에 빠졌다. 농가가 선택한 주키니 호박 종자가 LMO인지 아닌지 판정 날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 했다. 하지만 호박이 사람 말을 알아들을 리도 없어 야속하게 쑥쑥 잘도 자랐다. 주키니 호박 출하가 막히자 대체품인 애호박 쪽으로 소비가 쏠려 애호박값이 오르고, 이웃사촌 오이 가격도 함께 뛰어 사 먹는 사람도 괴로웠다. 전국의 주키니 호박 생산농가는 500여곳. 그중 생산량의 61%가 경남에 몰려 있다. 경남의 농가들이 얽혀 있으니 지역 정치권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지만 흩어져 있는 타 지역 농가는 물어볼 곳도 마땅찮아 우왕좌왕이다. 지난 3일부터 LMO 종자가 아니라는 판정을 받은 주키니 호박 출하가 재개되었지만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바닥 값인데다 소비자들은 먹어도 되나 싶어 뜨악하다.

 

강원 홍천의 한 농민은 문제가 된 홍익바이오의 가야금종자로 5년간 주키니 호박 농사를 지었다. 5년 정도면 관록이 붙을 때다. 올해도 씨앗 9봉지를 사서 모종을 길러 3000평 밭에 4500주의 주키니 호박을 심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국립종자원에서 모종을 모두 가져가 폐기했다. 큰일이라며 가져가더니 이후 별말 없어 농민이 여기저기 항의 끝에 종자회사에서 씨앗 9봉지 값과 모종값 일부만 돌려받았다. 모종 기른 시간에 대한 보상은 없었다. 작물에 맞게 밭의 틀도 잡아 놓았고 모종을 심어 가꾸면 되는데 갑자기 다른 농사를 궁리해야 하니 골치였다. 깨나 잡곡으로 바꾼다고 한들 5년간 손에 익은 작물도 주키니 호박이었고, 타 작물 시장은 어떤지, 판로는 뚫을 수 있을지 소주 한 병 마시며 고민하다 결국 주키니 호박으로 다시 돌아가노라며.

 

호박은 흰가루병이라는 바이러스병이 골치다. 이파리에 밀가루를 뿌린 듯 흰가루가 내려앉아 작물 전체가 메말라버린다. 홍익바이오의 가야금대금주키니 호박 종자가 이 병에 강하게 육성된 품종이다. 2015년 당시 농민들이 주요 독자인 농업 매체와 지방의 공영방송에서도 가야금종자를 친환경농업이 가능한 종자라며 잔뜩 띄웠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내병성이 강한 호박품종 개발을 지원했고, 홍익바이오라는 회사와 강원도농업기술원, 경희대가 공동연구를 수행한 쾌거여서 농민들은 믿었다. 정부까지 나서 만든 종자이니 신원보증이 확실하지 않은가. 홍천의 농민은 강원도농업기술원을 믿었고, 열 번 칠 살균 농약을 두 번만 쳐도 잘 자라는 가야금종자도 매력적이었다. 농약 치는 일은 농민 자신의 몸을 해치는 일이며 땅의 건강도 해치는 일이다.

 

그런 농약을 여덟 번이나 줄였으니 주키니 호박 종자 가야금’, ‘대금은 끝내 악마의 유혹이었나. 이번 사태는 민간 종자회사가 유전자변형 씨앗을 몰래 들여와 국가의 돈까지 끌어다 2015년부터 농민들에게 잘 팔아먹은 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썩은 것은 창고에 쌓인 주키니 호박만은 아닌 것 같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경향 2023.04.13.

 

 

윤석열식 역사 거꾸로 세우기, 이승만 숭배의 우회로 뚫기

보수의 뿌리, YS도 아니고 이승만 택한 정부

북한의 주체사상은 역설적으로 주체 없음을 드러낸다. 주체가 없으니 우상화에 집착한다. 우상화는 우상 없음을 폭로한다. 외국인들 앞에서 기이한 제례를 당당히 보여주고, 누가 봐도 허구에 가까운 김일성 신화를 자랑스레 보여주고 거기에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들 앞에서 북한 사람들은왠지 모르게 당당하다. 주체와 자존심을 거대한 국가 사상(상징) 체계로 만든 그들의 위업이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이승만을 띄우려 한다. 역설적으로 보수정통성의 허약함을 보여준다. 서울 남산의 이승만 동상은 평양 만경대 김일성 동상보다 더 먼저 건립됐다. 이승만 생일 80주년을 맞이해 추진한 이승만 동상은 1956년 서울 종로 탑골공원과 남산 조선신궁 터에 세워진다. 최소한 우상화는 남한이 한발 앞서 나갔다. 이승만 동상은 19604.19,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끌어내려졌다. 지금은 머리만 남아 서울 어딘가에 쓸쓸하게 모셔져 있다.

 

국가보훈처는 460억 원을 들여 이승만 기념관을 만들겠다고 한다. 기념 시설로는 노무현의 네 배, 박정희의 두 배다. 이승만기념관은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에 근거해 추진하는 게 아니라 국가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에 따라 추진된다. 이승만의 독재를 우회하는 방식을 찾아 낸 게 '독립운동가' 신화인 셈이다. '독립운동가' 이승만 평가에 대한 반박거리도 시중엔 차고 넘친다. 그러면'한미동맹을 이승만이 만들었다'고 다른 우회로를 뚫는다. 게으른 독립운동과 독재에 대한 비판을 우회해신화화 한 것은 '한미동맹의 창시자'라는 서사다. 한미동맹 자체를 신성화, 종교화하고 이를 숭상하는 것이다.   

 

주체사상이나 한미동맹의 신화나, 주체 없는 주체, 자주성 없는 서사는 남북 양측이 사이좋게 공유하는어떤것이다.

 

원래 국민의힘(과 그 전신 정당들)을 주축으로 하는 보수 세력의 정치적 상징은 약 20여년 간 박정희였다. 그 박정희 신화는 박근혜 탄핵 사태를 거치면서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박정희 마케팅'은 이제 특정 지역 외의 곳에선 그다지환영받지 못한다. 게다가 이른바 MZ세대는 박정희에 대한 빚도 없다.

 

노무현 정부 시절 본격화된 박정희 신화는 조갑제 등 보수 논객을 중심으로 짜여졌다. 이명박, 박근혜 정치권력은 그걸 적극적으로 띄웠다. 박정희의 인기가 올라갔다. 이명박은청계천이나 4대강에 '박정희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나는 걸 즐겼다.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이니 말할 것도 없었다. 박정희 신화가 각광을 받을 때엔 이승만의 자리같은 건 없었다. 존경할만한 독립운동가는 많았고, 이승만은 독재를 하다 쫓겨난 인물이었다. 그 이승만 동상을 끌어내린 건 박정희였다. '혁명 군인' 박정희에게 이승만이란 '앙시앙 레짐'은 철거 대상이어야 했다. 박정희는 '혁명 재판'으로 이승만 정권 실세들을 처단했다. 그런 연유로 박정희 신화와 이승만 신화와 양립할 수 없는 긴장감이 서려 있다. 이승만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찬밥 신세였던 이유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를 지나 다시 보수 정부인 윤석열 정부가들어섰다. 박정희는 이미 만신창이가 됐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는 갑자기 이승만을 찾기 시작한다. 박진 외교부장관은 이승만 탄생 148주년 기념식에서 대한민국 번영의 근간이 한미동맹이라며 "지난 70년의 우리 역사는 이승만 대통령님의 혜안이 옳고 또 옳았음을 여실히 입증해 주고 있다"말했다.

 

이승만의 '업적'이라는 한미동맹 신화의 핵심은 '자유민주주의'. 윤석열 대통령은대선출마선언문에서"(문재인) 정권은 () 우리 헌법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에서'자유'를 빼내려 합니다.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고 자유는 정부의 권력 한계를 그어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요 전제입니다"라고했다.안타깝게도 윤석열 대통령이 말한 자유민주주의와 이승만(과 그 추종자들)의 자유민주주의의 의미는 같지 않다.우리 헌법의근간인'자유''민주주의'냉전시절'멸공'의 기치 아래 언어의 해석을 독점한 자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오염시켰다.정치초보인대통령은자신이생각하는'자유''민주주의'과거독재정권반공 '자유민주주의'뒤섞어 버린다.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떼어 놓고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두 글자가 결합되면 한국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해석의 독점을 발생시킨다. 반공의 상징이자 북한 공산주의의 대항어로서, 북진 통일의 뉘앙스가 진하게 배어있다.'자유민주주의'반대하는아니라'자유민주주의' 해석을 독점한 자들이 전유한 냉전 대결적 의미를 거부하는 것이다.이승만의자유민주주의는냉전적보수주의의산물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보이는 가치관에서 혼란을 느낄 때가 많은데, 주로 단어의 맥락을 제거하고 자신이 해석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때 그렇다.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자유, 민주당이 주장하는 자유와, 정의당이 주장하는 자유, 우파의 자유와 좌파의 자유도 그 의미는 모두 다르다. 존 로크의 자유와 애덤 스미스의 자유,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 볼테르의 자유, 밀턴 프리드만의 자유도 모두 차이가 있다. 영국의 자유와 미국의 자유, 프랑스의 자유, 독일의 자유가 다 다르다. 지금 윤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는 정부의 권력 한계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이승만식의 반공적 자유민주주의로 흐르고 있다. '멸콩 챌린지' 같은 유치한 이벤트는 그 징후였다.이걸 뭉뚱그려 '자유'의 해석과 권위를 독점하려는 사람들은 자신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반자유주의자'라고 윽박지른다. 자유를 해석할 자유를, 자유를 위해 박탈하는, 그것은 자유인가.

 

이승만과 자유민주주의를 이어주는 것이 '한미동맹'이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는 '한미동맹' 하나다. 한미동맹이 중요하긴 해도 이건 '가치'라고 보기에도, '철학'이라고 보기에도 어려운 국가간의 계약일 뿐이다. 그런데 여기에 신성을 부여하고 나면 나머지는 모두 부수적인 게 되어 버린다. 대통령 지지율 하락을 견인했던 강제동원 해법도 한미동맹을 위해 두 세 스텝 앞서서 포석을 둔 것으로 정부 스스로 내린 해석을 교시하고 있다. 미국과 외교를 위해 일본 외교 난맥을 뚫고, 일본 외교 난맥을 뚫기 위해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을 무력화했다. 절규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목소리는 먼 한미동맹 앞에서, 가까운 외교 전쟁 앞에서 '콜레트럴 데미지'일 뿐이다.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의 '도청'마저 "악의가 없다"고 포장하는 이 강력한 의지는 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연이은 정치 실패 속에서 지지층마저 흔들리는 가운데 찾아낸 것이 이승만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지금 대통령은 역사를 새로 쓰려 하고 있는 것 같다. 강제동원 해법의 '고독한 결단'에서도 엿보인다. 이미 평가가 끝난 이승만에 한미동맹의 신화를 덧씌워 대한민국의 뿌리를 새로 쓰려 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하지만 이승만기념관건립은 역설적으로 이 정권의 허약성을 보여주는 징후다.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않는 걸 윤석열 정부는 하고 있다. 왜 역대대통령들이 이승만 평가에 박했는지 한번 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도 존경한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은 '역사 바로세우기'를 통해 이승만의과를명확히했다. YS의 차남 김현철 씨는 2015'교과서 국정화' 파동 때 국정교과서 추진 세력들을"독재자 이승만 박정희를 미화시키기 위해 기를 쓰는 현정권과 관제언론들, 보수의 탈을 쓴 수구세력들"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이승만기념관 건립은 역사 거꾸로 세우기다.

 

윤석열 정부가 떠들썩하게 홍보하고 있듯이 올해는 한미동맹 70주년이다. '미래로 가자'는 구호가 난무하지만, 동시에 올해는 한반도 분단 70주년이기도 하다. '한미동맹의 신화화' 속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인류 역사에서전쟁의 폐허를 만들어왔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잘 짜여진 질서들에 의해서였다

박세열 기자 프레시안 2023.04.15.

 

지방소멸이 불러올 언론 변화의 급물살

2015년 일본 도쿄대학교 마스다 히로야(增田寬也) 교수의 일본 지방소멸 경고가 한국에도 현실화되고 있다. 당시 마스다 교수는 2040년까지 일본 1799개 기초단체 중에서 49.8%가 소멸한다고 경고했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 지방소멸에 대한 논의가 촉발되었고, 일본 못지않게 위험 징후가 큰 한국도 지방소멸 문제가 본격화되었다.

실제 한국의 지방소멸 속도는 상당히 빠르다. 2024년께 65세 이상 고령층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수 있다고 전망하는 학자도 많다. 취약한 인구구조는 국가 및 지역 경쟁력을 약화하고 경제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 이에 정부도 지방소멸대응기금을 마련하여 올해부터 소멸위기에 처한 지방자치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지방소멸 위기상황이 경제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위기로 확산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언론의 위기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있다. 지방소멸 위기에서 한국 언론이 직면한 문제는 첫째, 수도권과 지방의 정보 불평등 심화이다. 지금도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언론사가 많고, 뉴스 비중도 높아서 지역의 정보 불평등은 심각하다. 내가 태어난 지방, 내가 사는 지역의 뉴스는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지방이라는 공간의 정보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무형문화유산도 위협받고 있다. 지역 마을문화, 전승되는 놀이, 사투리의 구수함은 이제 사라질 것이다.

 

둘째, 인구 감소에 의한 지방소멸로 자연스럽게 지역언론시장은 위축될 것이다. 뉴스의 소비자가 줄어들고 있어서 지역 언론사들은 존재 기반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이 반복된다면 지방소멸지역언론 위기정보 불평등 심화지방의 인구유출지방소멸 가속화란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셋째, 지역언론 붕괴는 한국 언론 전반의 위기로 확장될 것이다. 지역의 뉴스 생산구조가 무너진다면 현재의 언론사 분업구조와 뉴스 공유 네트워크 역시 무너진다. 그러면 중앙 언론사 역시 더욱 큰 비용을 내고 지방 뉴스와 정보 생산에 나서야 한다. 즉 지방소멸이 불러일으킬 언론 환경의 변화는 자칫 한국 언론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방소멸에 직면한 한국 언론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있을까? 아쉽게도 지방소멸의 파고가 워낙 크기 때문에 근본적 해법은 쉽지 않다. 완화 내지는 지연만이 가능할 것이다. 그만큼 지방소멸 속도가 빠르고 사회적 영향도 클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첫째, 중앙 언론사의 지역 비중 확대가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영국 BBC2021318일 발표에서 ‘Out of London’ 정책으로 뉴스 인력을 전국으로 이전할 것을 밝혔다. 이에 BBC TV와 라디오뉴스의 주요 부분이 런던 외부로 이전한다. 물론 언론사의 이전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소외되었던 런던 이외 지역뉴스를 중앙언론사도 발굴하고 이를 전국에 알리겠다는 시도이다. 심각한 지역정보와 뉴스의 부족을 해소하는 데 일정한 도움이 될 것이다.

송경재 상지대 사회적경제학과 교수 경향 2023.04.17.

 

 

글로벌 금융위기는 아는데 식량위기는 모르는 이유

2007~2008년에 금융위기만 있었던 게 아니다. 그즈음 세계적 식량위기가 있었다. 기상이변, 중국발 수요 증가 등으로 곡물 가격이 급등했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바이오 연료를 지원하겠다고 결정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바이오 연료 생산에 옥수수 등이 쓰인다).

 

곡물 가격이 오른 정도로 끝난 게 아니다. 2007년 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 카메룬, 세네갈, 모리타니, 코트디부아르, 이집트, 모로코 등에서 동시다발으로 폭동이 일어났다. 2008년에는 볼리비아, 예멘, 우즈베키스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에서 폭동이 이어졌다. 모두 식량 가격이 폭등해서 벌어진 일이다. 예컨대 200712월에 멕시코에서는 토르티야 시위가 있었다. 토르티야는 옥수수를 반죽해 만든 둥글고 납작한 형태의 빵이다. 이렇게 멕시코는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는데, 옥수수가 바이오 연료의 원료로 각광받으면서 문제가 생겼다. 초국적 곡물 메이저 기업들이 바이오에너지 산업에 진출했고, 이는 곡물가 폭등으로 이어졌다. 옥수수 가격이 크게 오르자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연일 시위를 벌였다. 결국 멕시코 정부는 가격 상한선까지 설정해야 했다.

 

금융위기에는 민감한데, 식량위기에는 둔감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에 그런 일이 있었나. 기억이 흐릿할 수도 있다. 이유를 꼽자면, 쌀이 주식이기 때문이다. 국내 곡물 자급률이 20% 수준에 불과하지만 쌀 자급률이 90%를 넘기 때문에 세계적 식량위기를 장바구니 물가 상승정도로 체감하고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식량이 모자라면 수입하면 되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식량위기 조짐이 보이면 나라마다 수출을 제한한다.

 

정치는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를 조정하는 게 본령이다. 이견이 있으면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갈등을 조정한다. 그런데 정부는 국회에서 양곡관리법 논의가 시작된 지 1년이 넘도록 해법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윤석열 대통령의 1호 거부권이다. 이런 쌀 정치’, 정말 밥값은 하는 건가.

차형석 기자 시사인 2023.04.17.

 

안산·세월호·노동운동을 보는 심상치 않은 시선

2019년 경기도 안산에서 청년 노동자들을 위한 공개 특강을 했는데, 며칠 전 어떤 이가 새삼스레 당시 해묵은 홍보 포스터와 보수언론의 사설을 엮어 인터넷에 내가 볼 수 있도록 올렸다. 사설을 훑어보니 2018년 안산지역 한 시민단체가 세월호특별법에 따라 지원받은 사업비를 불온한 활동에 썼다는 내용이다. 사설에서는 그런 일을 한 사람들을 천벌을 받을 사람들이다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굳이 그 사설과 내 강연 포스터를 엮어서 내가 볼 수 있도록 올려준 이의 눈에는 그 행사에 참여한 내가 바로 그 천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처럼 보였던 듯싶다.

 

포스터의 홍보 문구를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안산 청년들을 위한 노동 이야기, 웹툰 <송곳>의 주인공인 구고신 소장의 실제 모델인 하종강 교수를 만나 청년들의 가려진 노동에 대해 듣다.” 문구 그대로 우리 사회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온갖 비정규직 노동을 하는 청년 노동자들의 삶에 관한 내용이 강연의 중심이었다. 그 행사를 주최한 단체가 세월호특별법에 따른 사업비 지원을 받았는지는 아는 바 없다. 그런데 그 정도의 활동이 과연 천벌을 받을 만한 일인가?

 

문제는 최근 이렇게 이상한 기운을 접하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는 것이다. 지방 소도시 시청 강당에서 우리나라 노동인권 실태에 관한 강의를 했다. 대면과 원격 강의를 동시에 진행하는 방식이어서 강의가 끝난 뒤 인터넷 게시판으로 질문을 받았다. 올라온 첫번째 질문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 “전교조가 특정 사상을 전파함에도 합법화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질문은 근 20년 만에 받아보는 것 같다. 보수정권이 들어선 뒤 움츠려 있던 극우세력이 서서히 용기를 얻으며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는 싸한 느낌이 등 뒤를 훑고 지나갔다. 그들로서는 흡사 거대한 반격이다. “전교조가 특정 사상을 전파하지도 않거니와 만에 하나 개인적으로 그런 소신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이유로 수만명이 가입한 실체가 있는 조직을 불법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고 교과서적인 답변을 하고 넘어갔다.

 

안산이 어떤 도시인가? 노동자 밀집도가 전국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하는 곳이고 세월호 참사라는 우리 시대의 크나큰 아픔을 품고 살아가야 하는 도시다. 비록 무늬뿐인 직함이지만 안산노동대학 학장을 맡고 있어 자연스레 안산지역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에 관심을 갖고 있고 안면 있는 지역 활동가들도 여럿이다.

9년 전 세월호가 침몰한 날에도 안산 단원구에 있는 근로자종합복지관에서 노동자들과 행사를 진행 중이었고, 당연히 그날 행사 참여자 중에 세월호 희생자 관련자들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에스제이엠(SJM) 노동자가 무장한 용역직원에게 폭행당해 피 흘리고 있다. 트위터(@dongchimiheang)

 

작업장에 들어갈 때 휴대폰을 수거함에 넣고 들어가야 해서 아이의 마지막 전화를 받지 못했어요.” “점심시간에 식당 텔레비전 뉴스에서 사고 소식을 보기는 했지만 회사 일은 다 끝내고 가야 하는 줄 알았어요.” “진도실내체육관에 갔더니 작업복 차림의 부모님들이 많더라고요. 옷 갈아입을 새도 없이 허겁지겁 내려온 거죠. 그 옷을 며칠 동안이나 못 갈아입었어요.” 그런 말들을 들으며 누가 가르쳐줄 것도 없이 세월호 사건은 노동자들의 도시에서 노동자들의 자녀들이 당한 참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안산 거리에서 세월호 공식 추모행사가 처음으로 열려 수만명이 모였던 날, 상가 화장실에서 우연히 만난 작업복 차림의 청년이 꾸벅 인사를 하며 말했다. “에스제이엠(SJM)입니다.” . 그 무렵 가장 혹심하게 탄압당했던 사업장이었다. “가장 혹심하게 탄압당했다는 말로는 그 노동자들이 당한 고통을 만분의 일도 표현할 수 없다. 얼굴이 온통 피범벅으로 뒤덮여 눈 코 입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 천인공노할 폭행을 자행한 용역회사 이사는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당당하게 말했다. “종북세력을 때려잡는다는 사명감으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70년 넘도록 분단 상황에 놓여 있는 한국에서만 할 수 있는 생각이다. 한국에서만 그런 것을 빌미로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것이 가능하다. 보수세력은 그렇게 마음대로 탄압할 수 있었던 시대가 그리운 것일지도 모른다. “천벌을 받을 사람들에게는 그 정도의 폭행이 충분히 가능하고 사람들이 그것을 쉽게 용납하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노동운동 등 양심 세력을 빨갱이로 몰아 쉽게 제압하는 그런 시대가 다시 올 수도 있다.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뜻이다.

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한겨레 2023.04.18.

 

 

대법원장 후보추천위라는 민주당의 코미디

대법원은 힘이 세다. 4년 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사법적 운명을 가른 것은 말 3필과 대법원이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20198월 이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을 깼다. 난다 긴다 하는 초호화 변호인단도 별 소용이 없었다. 파기환송 자체보다 이유가 이 회장과 삼성을 멘붕에 빠뜨렸다. 34억원쯤 되는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말 3필이 뇌물로 간주되면서 횡령 총액이 크게 늘었다. 집행유예 가능성이 사라진 것이다. 이 회장은 20211월 파기환송심에서 전합 취지대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적 운명을 바꾼 것도 대법원이다. 20207월 전합은 이 대표(당시 경기도지사)의 원심을 무죄 취지로 깼다. 항소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고 벼랑 끝에 섰던 이 대표는 반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이 대표 부부가 예정에 없던 노래방까지 같이 가서 얼마나 좋아하던지.”(변호인단의 한 사람) 대법원이 정치인 이재명을 살렸다.

강렬한 기사회생의 추억때문일까. 민주당이 얼마 전 묘한 법률 개정안을 냈다. ‘대법원장후보추천위원회’(추천위)를 대법원에 신설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다. 헌법에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104)고 돼 있다. 그런데 대통령이 추천위가 뽑은 후보 ‘3인 이상중에서 1명을 지명하도록 임명권을 제한하겠다는 것이 법안 요지다. 입법이 된다면 오는 9월 퇴임하는 김명수 대법원장 후임 인선부터 적용된다.

 

곧 물러날 김 대법원장이 추천위원 11명 중 7명을 골라, 사실상 후임 대법원장 후보군 선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상식에 반한다고 여러 언론이 썼다. 위헌 논란도 불가피하다. 다수 의석의 힘으로 국회를 통과한다 해도 윤석열 대통령이 수용할 리 만무하다.

 

추천위가 그렇게 좋은 제도라면, 민주당 집권기에 도입할 수 있었다. 야당이 반대했을 사안도 아니다. 하지만 6년 전 문재인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자신이 점찍은 전수안 전 대법관에게 먼저 간곡한 청을 넣었다. 그러고도 승낙을 얻는 데 실패하자 플랜비(B)로 박시환 전 대법관을 지목했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의 민정수석 혹은 비서실장일 때부터 자신과 성향이 맞는 두 사람을 잘 알았다. 박 전 대법관은 노 대통령 탄핵 사건 변호인단의 일원이기도 했다. 대통령의 각별한 지시를 받은 청와대 ㄱ비서관이 서울 청계산 인근 음식점으로 박 전 대법관을 불러내 한나절 넘게 읍소하고 압박하며 설득한 사실은 제법 알려져 있다. 그러고도 뜻대로 되지 않아 ‘3순위로 지명한 사람이 당시 춘천지방법원장이던 김명수 전 우리법연구회장이다.

 

지난 대선 때 민주당이 만들어 뿌린 이재명 정책공약집에도 추천위는 들어 있지 않다. ‘의 임명권과 의 임명권을 대하는 자세가 이렇게 극과 극인 경우 사람들은 내로남불이라고 부른다. 윤 대통령이 지명할 대법원장 후보자가 마음에 안 들면 청문회에서 따지고 투표로 부결시키면 된다. 민주당은 그럴 권리와 넘치는 의석을 가지고 있다. 민주화 이후인 1988년 노태우 정부 때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가 부결한 선례가 있어, 정치적 부담이 큰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추천위 입법을 들고나온 것일까.

 

서초동과 정치권 일부에선 3~4개월 뒤쯤 가시화될 차기 대법원장 후보군 이름이 돌고 있다. ㅇ헌재 재판관, ㅇ대법관, ㅇ고법부장 등인데, 하나같이 윤 대통령이 아주 오래전부터 잘 아는 사람들이다. 민주당이 그들 아닌 대법원장을 바라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이미 기소됐거나 앞으로 기소될 이재명 대표, 노웅래 의원 그리고 전대 돈봉투사건의 민주당 의원들까지 결국은 대법원 판단을 받게 돼 있다. 차기 대법원장 임기와 겹친다. 그 대법원장은 전합을 구성하는 대법관 13명 중 9명의 임명제청권을 행사하게 된다. 물론 전합 재판장도 맡는다. 그래서 민주당의 추천위 카드는 이해충돌의심과 무관할 수 없다. 발의자의 면면에서도 민주당의 의도가 배어난다. 44명에 이 대표는 들어 있지 않지만, 정성호, 박찬대, 김성환, 박홍근, 진성준, 천준호, 장경태 의원 등 친명실세와 지도부가 즐비하다.

 

여당 반대로 입법이 불발돼도 민주당은 손해 볼 일이 없다. 영문을 모르는 국민들 눈엔 윤 대통령의 또 다른 몽니로 비칠 테니.

강희철 | 논설위원 한겨레 2023.04.18.

 

 

4대강 보에 물 많다고 물 부자 될까

오늘 아침 나는 이 위대한 인류의 업적을 처음 본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이곳에 와서 댐을 보았고 댐에 압도당했습니다.”

 

1935년 미국 콜로라도강 후버댐 앞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은 길이 남을 연설을 했다. 후버댐은 높이 220m가 넘는 당시 세계 최대의 댐이었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승리를 상징하는 증거였다. 옛 소련 스탈린이 말했듯, 당시 사람들은 바다로 흘러가는 물은 버려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댐의 매끄러운 곡선과 회색빛 콘크리트의 육중함에 아름다움을 느끼던 시절이었다. 소설가 월러스 스테그너는 1946년 이렇게 썼다. “콘크리트의 미끈한 절벽과 저 거대한 발전소미국만의 것으로 보이는 육중하고도 부드럽고 능률적인 아름다움이 댐의 구석구석 드러나 있다.”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고, 아름다움의 가치도 마찬가지다. 지금 후버댐은 자연을 착취하던 시대를 증명하는 기념비로 서 있다. 그런데, 70년이 흘러 바다 건너 한국에서 후버댐의 미학이 부활할 줄이야!

 

4대강 공사가 한창이던 20092011, 기자 명함 하나 쥐고 4대강 공사 현장을 돌아다녔다. 그때 4대강 사업을 찬성 혹은 반대하는 사람들이 지닌 미학적 가치가 다르다는 걸 확인했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대개 강에 물이 차고 배가 다니는서구적 풍경을 이상향으로 생각했다. 큰비가 들 때마다 황톳빛을 드러내는 모래밭과 습지, 둠벙은 정비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아름답고 소중하게 생각한 것들이었다. ‘불규칙한 자연, 지배할 수 없는 자연은 참을 수 없어!’ 멀쩡한 강을 16개 댐()으로 막은 4대강 사업의 미학이었다.

 

물론 4대강을 재자연화하기로 한 게 미학적 문제 때문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매년 여름 낙동강을 중심으로 녹조가 핀 게 가장 컸다. 문재인 정부는 20194대강 보 처리 방안을 발표했다. 요약하자면, 금강과 영산강 보는 개방하거나 해체하고, 낙동강과 한강은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최근 들어 광주·전남 지역 가뭄을 계기로 4대강 논쟁이 다시 불붙는 모양새다. 지난달 말부터 윤석열 대통령이 가뭄 극복을 위해 그간 방치된 4대강 보를 적극 활용하라고 세차례나 주문하면서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가 보를 개방해서 가뭄이 악화했다는 생각을 확인받고 싶었던 것 같다. 윤 대통령 첫 발언 사흘 뒤인 지난 3<조선일보>영산강의 보 개방 이후 광주시민이 40일간 쓸 수 있는 물(1560t)이 손실됐다고 주장했다. 보를 닫았을 때 최대수위 7.5m에서 보를 열었을 때 수위를 빼면 나오는 물 손실량이란다. 사실을 호도하는 주장이다. 보를 닫아 보기에 물이 많은 것사용할 수 있는 물이 많은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보를 닫아 저류량을 늘리더라도 이를 용수로 공급할 시설이 없으면, 가뭄 해갈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우리나라 내륙·산간 지역에서는 가뭄이 빈발한다. 반면, 4대강 유역에서 가뭄 때문에 취·양수가 끊긴 적은 한번도 없다. 따라서 4대강 보에 강물을 가둬 가뭄에 활용하려면, 수십장거리 도수관로를 지어 내륙 깊숙이 보내야 한다. 그런 사례가 하나 있다. 금강 백제보의 강물을 충남 서부 보령댐까지 보내는 길이 21의 도수관로다. 허나 경제성이 떨어진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600억원 넘게 들인 이 도수관로의 용수 공급량이 미미해 재무적 타당성이 없다는 보고서를 냈다. 학계에서도 가성비가 떨어지는 장거리 도수관로보다도 지천을 중심으로 취·양수장을 설치하거나 저수지를 짓는 분산형 대책이 더 효율적이라고 본다.

 

윤 대통령의 거듭된 주문에도 환경부는 4대강 보 활용방안을 못 내놓고 있다. 기껏 내놓은 게 농림축산식품부가 이미 추진 중인 영산강 죽산보나주호 간선수로의 도수관로 건설 사업인데, 이마저도 죽산보 수문을 열어도 양수가 가능해 4대강 보 활용과는 관련이 없다. 환경부는 3단 펌프를 이용하면 강물을 최대 10보낼 수 있다고도 했다. 보에 물을 담지 않아도 양수는 가능하니, 이 역시 보 활용과는 관련 없는 대책이다.

 

윤 대통령 재촉에 한화진 환경부 장관도 기자브리핑을 자청하고 금강 백제보를 방문하는 등 덩달아 바빠졌다. 하지만 ‘4대강 보가 가뭄에 좋다고 이야기만 할 뿐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속지 마시라! 강에 물이 많다고 물 부자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런 허풍이 녹조 가득한 지금의 우리 강을 만들었다.

남종영 | 기후변화팀 기자 한겨레 2023.04.19.

 

 

대통령이 해야 할 말오염수 방류는 지구 침략이다

이 글을 마감할 무렵, 18일자 경향신문 1면 보도다. “일본은 7개국(G7) 환경장관 회의에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관련 환영 성명을 내려다 참가국 반대로 실패했다. (중략) 슈테피 렘케 독일 환경장관은 오염수 방류에 관해서는 환영한다고 할 수 없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니시무라 일본 경제산업상은 기자회견이 끝난 후 자신의 발언에 실수가 있었다며 정정해야 했다. 한편 독일은 지난 15일 자정을 기점으로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중단했다

 

일본의 거짓말을 그 자리에서 반박하는 외교는 독일만 가능한가. 전통적으로 국제정치는 상급 정치(high politics)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매체의 발달로 사람들은 국가 대표지도자의 실체를 깨달았다. 불이익이 있을 경우, 언제든지 자국 지도자 대신 다른 나라 시민과 연대한다. 1980년대부터 생태주의, 여성주의 국제정치학은 개인적인 것(the personal)이 국제적인 것이다라는 인식에서 기존의 국제정치에 도전해왔지만, 당대는 도전이랄 것도 없게 되었다. 코로나19는 국가 단위를 뛰어넘었다. 일상이 전 지구화된 것이다. 개인의 삶은 글로벌 경제에 의해 좌우된다. 중국의 피자 소비가 늘어나면 치즈 원가가 상승하고 한국의 관련 산업은 타격받는다.

 

한국처럼 식민주의를 경험한 국가 중에서 독립 후 친제국 세력이 집권하면 후기 식민주의가 시작된다. 반민특위의 실패는 한국 현대사의 상징이다. 이승만, 박정희 체제와 관련하여 정치학자 심아정은 2013년 호세이대학(法政大學) 박사학위 논문에서 중요한 지적을 했다. 그는 1965년 한·일 회담이 국제정치학에서 중요시하는 국익이나 합리성 모델이 아니라 국가 지도자들 간의 의리, 인정, 정체성에 의해 결정되었음을 증명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교섭 상대를 이 아닌 우리로 생각했다. 일본 육사 출신에 만주군 경력의 박정희와 일본 정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세력 사이의 이른바 만주국 라인이 국가를 대표했다. 개인적 친분이 국제로 둔갑한 경우다.

 

그러나 1917년생 박정희와 1960년생 윤석열의 일본에 대한 인식은 다르고 달라야 한다. 2011311, 일본 동북부 지방을 강타한 대규모 지진과 그로 인한 쓰나미로 원자력 발전소에서 방사능이 누출되었다. 이는 최고 위험 단계로 1986년의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동급이다. 오늘날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의 발단이다. 대통령실은 부인하고 있지만 최근 윤 대통령이 방일 과정에서 한국 국민의 이해를 구해나가겠다는 발언이 일본 사회의 언론플레이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없다. 이번 정권의 외교에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에 대해 단 한 번도 우려나 유감, 반대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2의 만주국 라인?

예전 광우병 파동의 악몽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산업 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미국 정부에서 광우병을 확진했음에도 광우병 의심소라고 보도한 곳은 한국밖에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미국은 20084, 죽은 소, 죽어가는 소, 병든 소, 주저앉는 소(다우너 소)의 뇌와 척수라도 30개월 미만이면 동물 사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시행했다. 이 경우 가축들 간의 교차 오염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이미 강대국들은 자국의 오염 물질을 다른 지역에 투기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굶주리는 중국 인민의 이미지가 무색하다. 중국은 세계 1위의 음식물 쓰레기 배출국으로 연간 가정에서만 9165t, 식품 서비스 산업은 1800t을 배출한다. 인구는 인도보다 적은데 음식물 쓰레기는 33%나 많다. 가정에서만 한 해 1250조원을 낭비하고 있다. 다급한 중국 정부는 먹는 방송(먹방)을 금지하는 등 노력하고 있지만, 중국이 아프리카의 값싼 땅을 매입하여 쓰레기를 버린다는 사실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다.

 

탈원전국 독일도 가나와 세네갈에 쓰레기를 수출한다. 쓰레기를 수입한 나라들은 해양에 버린다. 영토의 의미는 변화 중이다. 수출입이라는 합법적 절차를 통해 지저분한 일(dirty work)’을 다른 나라에 전가하는 새로운 형식의 무역이 횡행하고 있다. 독일이 홀로코스트에서 가장 극단적인 살상 행위를 독일인도 유대인도 아닌, 동유럽의 소수 민족 중에서 징발한 트로우니키스(Trawnikis) 대원들에게 맡긴 역사를 연상시킨다(이삼성, <20세기의 문명과 야만>)

 

윤 대통령, 세계적 지도자 될 기회

모든 사안이 지구적이고 환경 문제는 그 핵심에 있다. 후쿠시마 강진 당시 원전 문제가 제기되기 전에 세계 시민들은 희생자들을 애도하면서 힘내라, 일본! 힘내라 도호쿠(동북 지역)!”를 외쳤다. 이러한 응원에도 불구하고 정작 일본의 지진 담당 장관인 이마무라 마사히로 부흥상(復興相)지진 발생지가 도쿄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말했다가 비난받고 사퇴했다. 이런 사람, 어디에나 있다. 자국 장관도 지역 차별 발언과 함께 재난지역(도호쿠)을 버린 마당에, 일본이 무엇을 망설이겠는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인접국(한국, 중국, 러시아, 대만 등)의 문제가 아니다. 희석 방류로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다. 원전 오염수는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태평양의 육지가 북구의 빙하로 사라지고 있다. 적도 부근 태평양 중간 지역에 위치한 키리바시 공화국(Republic of Kiribati)33개 섬으로 이루어진 인구 11만명의 작은 나라다. 이 아름다운 나라는 지금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가라앉고 있다. 산호섬으로 이뤄진 키리바시는 평균 해발고도가 2m에 불과해 지금 같은 속도로 해수면이 상승하면 2050년쯤에는 바다 밑으로 가라앉게 된다. 키리바시 국민 전체가 기후난민이 될 상황이다. 2000년대 당시 대통령이었던 아노테 통은 국민들을 주변 국가에 이주시키고, 자국의 이익을 포기하면서 환태평양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200840에 달하는 이 지역을 해양보호공원으로 선언하고 어획 및 기타 채굴을 금지했다. 키리바시의 재정이 원양 어선의 입어료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익을 포기하면서까지 환경을 지킨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일본의 아킬레스건이다. 내가 윤 대통령이라면 전 세계를 향해 이렇게 말하겠다. “일본은 자국에서 일어난 문제는 자국에서 해결하라. 방류는 지구 침략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한·일관계가 나빠지거나 일본이 한국에 쳐들어올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일 동맹은 한·일 전쟁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주일미군과 주한미군이 출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일본 정부를 비판하면 오염수 공포에 떨고 있는 지구 시민의 지지를 받고, 일본은 고립될 것이다. 또한 자국의 오염은 자국이 책임지는 선례가 될 것이다. ‘과학기술 왕국일본은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마련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 후보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이번 정부의 태생 비화나 윤 대통령의 자질 문제에 관심이 없다. 지금이라도 잘하면 된다. 어쨌든 일본은 후쿠시마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이는 지구의 운명이 달린 문제다. 이 상황에서 한국은 중요한 포지션에 있다. 우리의 발언은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현 정권은 이처럼 좋은 국위 선양의 기회를 날려버리고 일본 여론의 협박과 국내 지지율 하락에 시달리고 있다. 정치권부터 일본의 방류 움직임에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경향 : 2023.04.19.

 

, 혁명이여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마다/ 그날 스러져 간/ 젊음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연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

 

이영도 시인의 진달래에 어김없이 4월은 온다. 1980년대 대학가의 4월은 늘 이 노래로 물들었다. 1960419. 남한에서 일어난 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에서 일어난 최초의 시민혁명이었다.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최고 권력자를 끌어내린 역사적 사건이었다.

 

국가보훈처가 앞으로 3년간 460억원의 예산을 들여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관을 건립할 계획이라 한다. 대한민국의 초대3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국가보훈처 지원사업 대상으로 삼을 만한 국가유공자인가? 논란은 현재까지도 이어진다. 이승만 1기 정부(19481952)는 광복 후 친일 청산이 주요한 시기였다. 일제강점기 때 자행된 친일파를 처단하기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19491월에 업무를 시작했으나, 그해 6월 이승만은 반민특위에 경찰력을 투입하고, 10월에는 반민특위와 법안을 모두 폐기한다.

 

독일 정부의 나치 부역자 청산은 현재진행형이다. 1945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은 나치와 유대인 학살 관련자에게 책임을 묻는 국제 군사재판이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20219월 독일 함부르크 법원이 포로수용소 소장의 타자수였던 96세의 할머니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이나, 20226101세의 전직 나치 간수가 징역 5년을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새로운 출발은 과거의 오점을 깨끗이 없애야 가능한 것이다. 친일파 청산의 기회를 날린 이승만의 중대한 실수였다. 그의 집권 기간에 국민이 준 권력은 국가의 살인적 폭력으로 바뀐다. 여수·순천 관련 사망자만 3400여명에 이르고, 제주 4·3사건의 14000여명 참혹한 주검 앞에 이승만의 책임은 피할 수 없다.

 

이승만 3기 정부(19561960)1960315일 제5대 부통령 선거에 자유당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한 개표 조작 사건이 벌어진다. 선거 당일 마산에서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의거가 발생하고, 이어 411일 시위 도중 실종되었던 마산상고 입학 대상이었던 김주열의 시신이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발견되어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된다. 이승만은 마산 의거를 공산주의자 책동이라 간주하고 마산에 계엄령을 선포한다. 부정선거를 눈감는 그에겐 국가보안법과 반공만이 유일한 신념이었다. 이승만의 자유민주주의는 반공의 편에 서는 것이었다. 419일 서울 지역 대학생들이 총궐기하고, 수많은 초··고생과 도시빈민을 포함한 다양한 시민들이 동참한 시위는 경찰의 유혈 진압으로 절정에 이르고, 계엄령은 전국으로 확대된다. 만일 계엄군이 이승만 정권에 동조해 무력 진압에 나섰다면 대한민국의 역사 시계는 거꾸로 돌아갔을 것이다.

 

역사는 아직도 이승만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남겨두고 있다. 그가 국가유공자였는지, 퇴출당한 독재자인지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남산에서 25m 높이의 이승만 동상을 끌어내린 민중의 뜻이 무엇이었는지 읽어야 한다. 전직 대통령이라 기념관을 만든다면 행정안전부가 주무 부처다. 미화하지도 말고 사실 그대로의 기록물을 보여주면 된다. 국가유공자와 독재자 평가는 관람자인 민중의 몫이다.

 

민족대표 33인 중 최린은 독립운동가였으나, 이후 변절하여 조선총독부 자문기관인 중추원에서 고위 관리로 일했다. 후손들이 기억하는 그는 독립운동가가 아닌 반민족 행위를 한 친일파로서의 최린일 뿐이다. 선행이 악행을 가릴 수는 없다. 악행은 선행을 온전히 가린다. 다시 이 사월에 신동엽을 읽는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경향 : 2023.04.19.

 

 

도둑을 도둑이라 못하고

미국이 용산의 대통령실을 도청했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 곧바로 오래전 한 장면을 떠올렸다. 1996년 군 장성 인사 직후로 기억한다. 김동진 국방장관이 기자들에게 이상한 일을 당했다고 말했다. “엊그제 미군 고위 장성을 만났는데, 나에게 한·미 군 현안에 대해 이런 말을 했느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은 자신이 며칠 전 한국군 고위 장성과 단둘이 장관실에서 나눈 대화 내용이라는 것이었다. 바로 우리 둘이 나눈 대화를 어떻게 미군이 아느냐고 했더니 그 장성은 자신은 그 누구에게도 발설한 적이 없노라고 했다는 것이다. 김 장관은 그렇다면 미군이 내 방을 도청했다는 말인데라며 얼굴을 굳혔다. 그렇지 않아도 국방부 구청사 2층 끝에 있던 장관실은 미군 부대 쪽을 향하고 있어 안테나만 이쪽으로 돌리면 도청이 가능하다는 말이 있었다.

 

김 장관이 왜 이런 민감한 사안을 기자들에게 토설했을까? 설마 미군이 자신을 도청하겠느냐고 생각해 무심코 털어놓았던 게 아닐까. 아니면 확실한 증거는 없어 정식 항의는 못하지만 미군을 향해 경고의 의미로 기자들에게 말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당시 군 고위 관계자 여럿이 미국의 도청 가능성을 언급했다. 다만, 증거가 없을 뿐이었다.

 

미국 정보기관이 국가안보실 관계자들의 대화를 엿들었다고 폭로된 지 열흘이 지났다. 이번 사건은 명확하다. 한국의 당국자들이 설마설마해온 미국의 도청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여러 정황을 종합해볼 때 이는 오래전부터 일상적으로 한국의 주요 기관에 대한 도청이 이뤄졌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대응이 상식을 벗어나고 있다. 사실 확인은 하지도 않은 채 처음부터 미국이 도청했다는 증거가 없다거나 공개된 정보 상당수가 조작됐다고 했다.

 

그러다 미국 주방위군 소속 공군 일병에 의해 폭로됐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악의에 의한 도청은 없었다고 했다. 미국 관리들이 큰 누를 범했다며 무척 미안해했다는 말까지 전했다. 도둑질을 당하고도 도둑이라고 하기는커녕 그들을 이해하고 감싸기 바쁘다. 미국 관리들보다 더 미국을 걱정하는 듯하다. 바닥까지 자존감이 떨어진 한국민들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수행에 실망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2013년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미국에 의해 자신이 도청당했다고 하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공식 항의했다. 그런데 한국은 정반대였다. 미국을 방문한 김태효 안보실 1차장은 ·미가 이 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신뢰 관계를 갖고 더 내실있게 정상회담을 만드는 데 의기투합했다고 했다. 불법 도청을 한·미 정상회담 의제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은 물론, ·미 정보협력을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수준으로 강화한다고 했다. 대통령실의 비상식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우리와 함께 도청을 당했다는 다른 나라들은 아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며 이를 비판하는 야당과 국내 언론을 비판했다. 국익을 위해 침묵하라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우리를 도청했어도 과연 이렇게 대응할 것인지 묻고 싶다.

 

윤 대통령이 다음주 미국을 국빈방문한다. 미국은 윤 대통령을 극진하게 대접할 것이다. 북핵 대응을 위한 미국의 안전보장을 한층 더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에서 한국 기업에 대한 배려도 언급할 수 있다. ·하원 합동 연설은 윤 대통령을 한껏 고무시킬 것이다. 하지만 도청에 대한 진사의 대가로 급조된 선물이 얼마나 내실이 있을까.

 

이번 도청은 근래 한·미관계에서 가장 심각한 사건이다. 윤 대통령은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불법 도청에 대해 엄중히 항의하고 책임있는 조치를 요구해야 한다. 아무리 화려한 언어로 포장해도 미국의 분명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 없으면 이번 방미는 굴종 외교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도청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해 김태효 1차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미국과 일본을 일방적으로 두둔하고 한··일 군사협력을 강화한다는 발상의 주체인 김 차장을 외교안보팀 사령탑에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그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한 비슷한 일은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 70주년을 맞은 한·미 동맹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발전할 수 있다. 미국에 대해 할 말은 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방미와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한다면 그 후과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중근 논설고문 경향 : 2023.04.19.

 

 

4·19 혁명의 경제이념

다시 419일이다. 그러나 먼지 때문인지, 우울 때문인지, 그날 감격의 분위기가 아련하다. “새로운 신화 같은, 젊은 다비데군()의 모습이 가물가물하다. 앞이 잘 안 보이는 지금, 질문을 던져보자. 4·19는 혁명인가? 4·195·16 군사정변에 의해 쓰러졌는가? 혁명은 자멸한 것인가?

 

필자의 관점에 의하면, 4·19체제적 혁명이다. 4·19를 계기로 정치적 민주주의는 물론 자유주의, 국민주의(민족주의), 발전주의라는 경제이념이 본격적으로 표출되었다. 4·19를 계기로 국민경제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고, 국내적 정치·경제 체제가 세계체제-분단체제에 연결되어 작동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는 미국의 군사적·경제적 원조에 의존하는 시대였다. 1950년대 한국은 전쟁을 겪으면서 미국에 의존하는 안보체제를 수립했다. 그러나 정치·경제 부문에서 안정적인 체제를 형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정치적 권위주의 아래에서 정부는 재정의 절반 정도를 원조에 의존하는 상황이었다.

 

1950년대에 이미 국내체제 형성의 기반이 마련되었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이승만 정권(레짐)1958년 부흥부 산하에 산업개발위원회를 조직했고, 19604월 경제개발 3개년 계획안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1950년대와 1960년대는 경제이념상으로 연속성보다는 단절성이 강하다. 1950년대는 기본적으로 원조에 의해 지탱되는 체제였다. 이승만 정권이 경제개발계획 수립을 추진한 것도, 미국이 원조 감축과 자립요구로 정책을 변경한 때문이다. 1960년대에는 장면 정권이나 박정희 정권 모두 경제적 자립을 강하게 의식했다.

 

4·19 혁명은 국민적 차원의 정치·경제 체제를 형성하는 국가 의지의 기반이 되었다. 4·19 이후 성립한 장면 정권은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청산하고 경제 제일주의를 내세우면서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고자 했다. 이때 경제개발계획의 핵심 내용은, 관치경제를 청산하고 자유경제 질서를 확립해간다는 것, 안정 농가와 중소기업을 적극 육성한다는 것이었다.

 

4·19의 국민적 저항이 일어난 데에는 이승만 정부의 신익희·조병옥 등의 자유주의, 조봉암 등의 진보주의 세력에 대한 탄압도 원인이 되었다. 이승만 정권 붕괴 이후 성립한 장면 정권은 정치적으로는 분열적이었으나, 경제정책 구상은 자유주의와 진보적 민족주의의 정책연합의 성격을 지녔다고 여겨진다.

 

장면 정권의 붕괴는 내부 분열과 외부의 반란이 결합된 전형적인 사례이다. 당시 민주당은 이재학 등 자유당 온건파와 연합하지 않았다. 민주당 내에서는 신파·구파의 치열한 권력투쟁 끝에 신파의 장면 총리 세력이 내각 인사를 독점했고, 민주당 구파는 신민당으로 분열해 나갔다. 또한 장면 정권과 학생·혁신계 세력은 통일운동과 반공법·데모규제법 문제를 둘러싸고 격렬하게 적대했다.

 

장면 정권의 정치적 분열과 협소한 권력 기반은 중도적·공화적 경제정책을 추진할 능력을 소진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정희·김종필 등 군부 소외 세력이 결집하여 5·16 군사정변을 일으키자 장면 정권은 지지력을 잃고 힘없이 무너졌다.

 

4·19 혁명의 자유주의, 민족주의, 발전주의 경제이념은, 5·16 군사정변, 박정희 정권 수립, 한일협정 체결을 거치면서 성장주의 우위의 체제로 귀결되었다. 4·19 혁명이 혁명 체제를 그 자체로 공고화하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5·16 이후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세력은 분열했고, 혁신계 진보 세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1963년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은 박정희의 민족주의를 의심한다면서 반공적 자유주의 공세를 펼쳤다. 19646·3 항쟁에서는 한일회담을 반대하며 야권과 민족주의 세력이 결집했지만, 정권 붕괴의 위기는 계엄령 선포와 미국·일본의 지지로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4·19 혁명은 이후 자신의 흔적을 체제 안에 남겼다. 한국은 한일협정을 계기로 세계체제의 자본주의 진영과 연결되는 성장주의 산업화 체제로 나아갔다. 이 성장주의 체제 안에는 국민국가의 국내체제를 구성하는 자유주의·국민주의(민족주의)의 경제이념이 내장되었다. 4·19의 동력이었던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세력은 박정희 정권에 치열하게 저항했다. 박정희 정권은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일부를 성장주의의 요소로 흡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성장주의 체제는 성장의 한계가 체제 위기를 가져온다. 지금은 세계체제의 분리가 시도되면서 한국의 성장주의가 벽에 부딪힌 상황이다. 위기 속에서, 전환의 기회와 4·19의 부활, 자유주의·민족주의·세계주의의 공화적 균형을 다시 생각해본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 경향 : 2023.04.19.

 

타짜들 설치는 부동산 시장도박판 만한 규율도 없나

영화 <타짜>에는 도박판에서 승부를 조작하는 자의 손목을 자르려는 장면이 나온다. 현실에서는 도박과 신체를 해하는 행위 모두 불법이지만, 도박판에도 규칙 위반에 대한 벌칙이 존재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불법적인 도박판과 달리, 주식시장은 정부가 설립한 국가기관이 시장의 규율을 담당한다. 이를 위해 자본시장법은 주가에 인위적인 영향을 미치는 모든 시세조종 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한다. 또 이를 적발하기 위해 한국거래소는 주식시장의 이상 거래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금융감독원과 검찰은 이상 거래가 확인되면 조사나 수사에 나선다. 수사 결과, 혐의가 인정되면 검찰은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원에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면 당사자에게는 징역 5년 이상(이익액 50억원 이상) 등 중형이 선고된다. 여기에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는 주식시장의 불공정 행위에 부과하는 과징금을 상향하는 개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이런 모든 규율은 선량한 투자자가 시장에 진입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시장은 어떤가? 우리 부동산시장은 미래세대가 안심하고 가정을 꾸릴 터전을 제공하고 있는가? 부동산 광풍이 불었던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부동산시장에는 선량한 거래자를 보호할 규율이 크게 부족했다. 특수관계자들이 매매가격을 높여 신고한 뒤 이를 사후에 취소하는 방식으로 시세를 조종하고, 대단지 아파트 거주자들이 특정 가격 이하로 거래가 이뤄지지 못하도록 짬짜미(담합)해온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런 행위는 주식시장, 심지어 불법적인 도박판에서조차 엄격히 규율되지만, 국민의 생존권과 직결된 부동산시장에서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부동산시장의 중요성이 주식시장과 비교해 절대 낮지 않고, 이런 부동산시장의 불공정 행위를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국회와 정부는 사실상 방기에 가까운 무관심한 태도를 보여왔다. 여기에 언론은 투자자들에게 전국의 저가 아파트와 빌라를 찍어주며 주거 사다리의 가장 아래 단에 있는 이들의 생존 터전조차 투기판이 되도록 일조했다.

최근 국토교통부는 2021년 이후 아파트 계약을 체결한 뒤 해지한 2099건을 조사해, 집값을 띄우기 위해 허위로 매매 신고한 사례가 확인되면 최고 3천만원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만시지탄이나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을 수억원씩 상승시켜 다수의 부동산에서 이익을 본 자들에게 이 정도의 처벌이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부동산시장은 통화정책으로부터도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물가상승 지표의 하나로 모니터링하고 있는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부동산 가격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지수의 주거비용에 전·월세 가격이 포함돼 있지만, 집값 움직임을 제대로 반영하기에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몇만원 오르는 전기요금 동향에는 민감한 통화당국이 수억원씩 오르는 집값 동향에는 둔감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광풍이 지나자 부동산 거래 관련 금융, 세제, 분양 규제는 5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정부는 코로나 대유행 기간 중 부동산 가격 상승이 국제적인 유동성 과잉 때문이라고 주장하더니, 이제는 거품 낀 부동산시장의 경착륙을 피해야 한다며 특례보금자리론 39조원을 투입하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에 정책금융 28조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런 조치는 최소한의 거래량 유지와 경제적 파국을 막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대대적인 부동산 관련 규제완화가 언젠가 다시 지난날의 투기 광풍을 재연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정부는 이제라도 부동산시장 거래 규율을 최소한 주식시장 수준 또는 그 이상으로 강화해야 한다.

 

최근 잇따른 전세대출 사기 피해자들의 극단적 선택에서 볼 수 있듯이, 규율이 없는 시장에 대출을 확대하면 선량한 국민이 사기꾼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언론 또한 서민 주거안정에 좀 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투기꾼들이 시장을 교란하면 집 없는 기성세대뿐 아니라 젊은 세대들까지 미래 부채를 부담해야 한다. 이런 속에서 결혼이나 출산은 미뤄질 수밖에 없다. 부동산시장에 공정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대한민국을 책임질 젊은 세대의 미래 또한 없다는 점을 명심하자.

안재환ㅣ인하대 경영학과 교수 한겨레 : 2023.04.19.

 

 

언어가 아닌 몸으로 소통하는 기후위기 대안

광주비엔날레, 그리고 414 기후정의파업

그간 기후위기를 넘어서는 데 언어는 중요한 무기로 간주되어 왔다. 기후위기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분야는 기후위기의 과학적 근거를 비전문가들도 이해하게끔 전달해 대중이 기후위기 대응에 동참하도록 이끌 방안을 연구한다. 사람들이 에너지 절약 행동에 동참하도록 설득하는 캠페인 메시지를 만들고, 복잡한 에너지 문제를 몇 가지 주장으로 쉽게 요약해내고, 토론을 통해 서로 다른 생각들을 모아나가는 데 언어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간 언어라는 무기는 생각보다 효과적이지 못했다. 기후위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개인들은 자신을 압도하는 문제 앞에서 기후 우울에 빠지곤 했다.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은 기후위기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편향적인 정보를 전달했다. 언어에 기반한 공론장이 좁아지는 와중에 정부와 기업은 생태파괴를 녹색성장이라는 말로 포장했다. 기후위기를 전달하는 말(텍스트 또는 기호)들은 혼란스럽게 제멋대로 배치됐다.

 

누군가는 기후위기에 대한 말들이 보이지 않는 정치 담론에 의해 배치됐다고 본다. 이에 따르면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더 나은 담론을 기획하여 담론 투쟁에 나서야 한다. 나도 이러한 주장에 십분 동의하지만, 무언가 석연치 않다. 어쩌면 우리가 사용하던 언어 및 이성 중심의 사회과학 언어가 그 자체로 한계를 가진 것은 아닐까? 나를 비롯한 뭇 생명들의 존재 자체가 위협되는 새로운 조건에서 기존 세계의 언어가 힘을 잃어가는 것은 아닌가?

 

당신의 몸을 미래에 데려간다면

언어의 위기 시대에 비즈니스 분야에서는 행동경제학적 전략이 유행이다. 온라인 쇼핑몰이나 배달앱은 "첫 구매 시 99% 할인", "첫 구매 시 1만 원 할인" 등의 파격 혜택(?)을 제공한다. 합리적 소비자인 나에게 이는 굉장한 이득일 것 같다. 그렇다면 쇼핑몰은 손해일 텐데 왜 이런 프로모션을 하는 걸까? 예상할 수 있다시피, 이는 상당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인혜택을 받으러 앱 회원에 가입하고 해당 쇼핑몰에서 구매하는 경험은 머리뿐 아니라 신체에 각인되어 휴리스틱(Heuristic) 경로를 만든다. 첫 번째 구매는 어색했지만 머릿속에도 몸에도 경로가 이미 생겼으므로 두 번째부터는 굉장히 쉽다. 이러한 전략은 당신의 몸을 미래에 데려다 놓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다준다(이 문단에서 언급한 행동경제학, 휴리스틱, 신체에의 각인 (또는 체현), 체험의 효과는 각기 뿌리가 다른 이론에서 빌려온 것임을 밝힌다.).

 

기후위기가 도래한 미래에 가볼 수 있다면 어떨까? 이런 엉뚱한 질문에 답하기에 이달 7일 개막한 광주비엔날레가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광주비엔날레는 전 세계 현대 미술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예술 축제이다. 이번 제14회 광주비엔날레의 본 전시 이름은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생태적인 '전환과 회복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전시된 현대 미술 작품들은 그동안 사회과학자들이 말로 다투어왔던 주제들을 감각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꾼 것이다. 3세계가 인식하는 식민주의, 우리가 몸의 언어를 잃어온 이유, 자연과 사회의 분리가 의미가 없는 이유 등 환경사회학 연구자들이 끙끙대는 지점을 작품들은 보고, 만지고, 냄새 맡고, 들을 수 있는 의 언어로 바꾸어놓았다. ‘예술알못인 나도 개막일에 들렀다가 그 재미에 이끌려 사흘을 광주에서 보내고 왔다.

 

기후위기를 몸에 새길 수 있는 대표적인 전시는 '세대 간 기후 범죄재판소 : 멸종전쟁'이었다. 세대 간 기후 범죄재판소(CICC, Court for Intergenerational Climate Crimes)'세대 간 기후범죄법'에 근거하여 설치된 재판소다. 한반도의 동지들은 멸종한 동식물 동지들과 함께 기업과 정부를 기소한다. 기업과 정부는 멸종전쟁을 일으킨 전범이다. 관람객은 전범재판이라는 상상적 경험 속에 참가한다. 나는 머지않은 미래에 미리 가본 것 같다. CICC라는 이름에서는 세계 유일의 전범 재판소인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연상된다. 예술 퍼포먼스에서는 참호, 모래주머니, 철조망의 전쟁 설치물, 재판을 진행하는 법학자(라다 드수자), 국내 생태기후투쟁 현장에 참여한 증인들의 현재성 등이 뭉개진다. 기후위기 거버넌스가 모두 실패하는 경우 결과적으로 우리가 전쟁 상태에 가까워질 것임을 직면하게 만드는 이 힘의 정체는 언어가 아니라 몸으로 느껴지는 미술관의 찬 공기와 모의법정의 엄숙한 분위기이다(이미 2019년 호주 국립기후복원센터 보고서는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전쟁기의 대응수준에 준하는 전지구적인 자원 동원이 필요하다고 제시한 바 있다.).

 

상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경험을 제공하는 또 다른 사례는 이번 4.14 기후정의파업이었다. 4.14 기후정의파업은 세종정부청사 건물들 주위를 도는 행진으로 진행되었다. 세종정부청사에는 수십 개의 건물이 연이어져있다. 정부청사관리본부는 "과거의 관료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디자인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시위대의 눈에는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관료집단처럼 느껴질 뿐이다. 금요일 오후에 모인 4000명은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국토교통부 건물을 충분히 에워쌀만한 규모였다. 산자부 울타리에 피켓을 붙이며, 환경부 앞에서 연기를 피우며, 경찰들이 정한 선을 넘으며 "사람들이 더 모이면 정부관료체제를 멈추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불온한 상상이 시위대 사이에 피어오른다. 4.14 기후정의파업에서 그 어떤 주장보다 파괴적이었던 지점은 정부청사를 따라 걷던 참가자들의 몸에 새겨진 경험과 건물 사이에 피어난 상상력에 있지 않을까.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몸의 역할

많은 기후위기 연구논문은 서론에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언급하며 시작된다. 어떻게 언급해야 기후위기를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현 상황을 언어라는 그릇에 담는 것이 앞으로도 가능할까? 언어에는 문법과 지식체계에 맞아야 한다는 규율이 작동하기에 상상을 구체화하는 힘이 부족하다. 언어가 학식자 계층과 기존 질서에 유리한 것도 상상력을 제한하는 데에 이바지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진지한 대응을 하자고 언어로만 대중을 설득하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를 가진다.

 

따라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몸의 역할에 주목한다. 존재의 위기 시대에 가장 현실적인 현실인식을 위해서는 몸으로, 함께,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상상이 절실하다. 이성의 언어와 복잡한 사회과학이 기후위기를 어떻게 다루어야하는지 제시하는 데에 난항을 겪고 있는 이 때에, 예술과 시위는 우리가 언어의 함정에서 나와야 한다고 재촉한다.

박선아 인류세연구센터 박사후연구원 | 프레시안 2023.04.20.

 

 

무능외교’ ‘굴욕외교비판할 때가 아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영국의 한 통신사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 가능성을 언급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 정부는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면 러시아도 북한에 무기를 공급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런 러시아 정부 반응에 대통령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미 정상회담을 1주일 앞둔 419일에 벌어진 일들이다.

 

대통령의 무기 지원 발언은, 미국 정부가 한국 대통령실을 도청했고 미국 정부의 요구로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는 문제를 논의한 게 도청 내용에 포함된 사실이 공개되고, 뒤이어 우리 군의 해외 무기반출 정황이 속속 확인되고 있는 시점에 나온 것이다.

 

이대로 한-미 정상회담이 진행된다면, 한국 정부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은 공식화될 뿐만 아니라, 앞으로 4년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의 요구에 모든 것을 내놓으면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자초하고, 나아가 5천만 국민의 안전과 생계를 전에 없던 위험에 빠뜨리게 될 것이다. 일단 국회가 국정조사안, 무기 제공 결정 및 해외 반출 승인 과정 책임자 탄핵안 발의 등 조처를 해나가면서, 정상회담에서 대통령이 무슨 약속을 하든 돌이킬 수 있는 최소한의 발판을 마련해두는 게 시급하다. 교전국에 살상 목적의 무기 제공은 현행 법률 위반이므로 명분은 현재 상태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미-, -중 갈등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세계에서 한국 정부의 외교 정책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관한 시민적 동의를 묻는 다양한 공론장이 열려야 한다. 국회, 정당뿐만 아니라 학계, 언론, 시민단체, 동네 모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간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5천만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논의해봐야 할 때다.

 

대통령과 대통령실, 관련 장관들에게 위임해두고 이런저런 권고를 하면서 여유롭게 지켜볼 때는 지났다. 대통령이 돌출적인 발언과 행동을 하면 대통령실이 나서서 숨기기에 급급하고, 정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한 채 엉뚱한 소리나 하는 총리를 지켜보며 1년이 흘렀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한국 정부의 외교 정책을 누가 결정하는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사이 한국 정부의 외교는 대일, 대중, 대러, 대미 정책 모든 영역에서 민주화 이후 지난 35년 역대 정부가 유지해온 공통 궤도를 한참이나 벗어나버렸다. 미국 정부가 국제 군사분쟁에 한국 정부를 개입시키려 했던 시도는 늘 있었다. 미국 정부의 압박으로 김대중 정부 때는 아프가니스탄에, 노무현 정부 때는 이라크에 파병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끝까지 지켰던 것은 평화적 목적이라는 명분이었고, 그 명분을 고수하면서 전투병 파병은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지난 수십년 역대 정부들이 차곡차곡 쌓아온 외교적 성과를 한꺼번에 무너뜨리고, 교전국에 살상무기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강대국 어느 일방에 휩쓸리지 않고 실리외교를 추구해온 것도 지난 35년 역대 정부의 공통 궤도였다. 북방 정책으로 대중·대소 수교를 이뤄냈던 것은 노태우 정부였고, 중국과의 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킨 것은 이명박 정부였다. 사드 배치를 받아들이면서 중국과 긴장 관계를 만들기도 했지만, 미국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 주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을 결정한 것이 박근혜 정부였다. 역대 정부들이 중국과 러시아가 좋아서 그랬던 게 아니다. 국민의 안전과 생계를 위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중국과 러시아를 적으로 돌려 5천만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현안에 관해 어떤 태도를 취하든 일본 정부와는 군사적 거리를 유지했던 것도 역대 정부의 공통된 노선이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일본 정부와 함께 군사훈련을 하거나 군사정보를 교환하는 일에 전혀 거리낌이 없다. 역대 정부들이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군사적 밀착을 어떻게 해서든 피해왔던 것은, 5천만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정부의 외교는 무능외교’ ‘굴욕외교라는 단편적 비판이나 희화화의 대상이 될 단계를 뛰어넘었다. 전 국민이 나서 진지하게 우리의 미래를 걸고 현 정부에 물어야 한다. 이 사태를 어떻게 책임질 건가?

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 | 한겨레 2023.04.20.

 

 

윤 대통령, 국빈 환대에 벌써 취했나

우크라 무기 지원, 미 국빈 방문 앞둔 '선물'인듯... 동맹이라도 할 말은 해야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 문건에는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이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과 관련, "지금 와서 방침을 바꾸면 대통령 국빈 방문과 맞바꿨다고 인식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가 왜 고민을 했는지는 윤석열 대통령이 외신 인터뷰에서 무기 지원의 길을 열어둔 언급으로 실마리가 풀렸다. 우크라이나 살상무기 지원은 다음주 미국 국빈 방문에 대한 '선물'일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도청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때 대통령실의 어이없는 해명을 보며 이상하다 했다. 상식적으로 피해자가 가해자를 두둔할 때는 뭔가 말 못할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엄청난 보상을 받는 등 반대급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보상이 국가의 이익이 아니라 대통령 개인에 대한 환대라면 도저히 믿고 싶지 않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불길한 예감이 맞는 듯하다.

 

2011년 이명박(MB) 전 대통령 미국 국빈 방문도 그랬다. 당시 언론은 '13년 만의 국빈 방문' '한국 대통령 사상 최초 펜타곤 브리핑' '13년 만의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 등 상찬을 쏟아냈다. 미국은 자신들이 '매우 친미적인 대통령'으로 표현했던 MB에게 최고의 환대를 베풀었다. 그 보답으로 MB는 미국 무기를 무려 14조 원어치 사주는 '통 큰 답례'를 했다. 미국의 융숭한 대접에 취해 ''이 되기로 자처한 셈이다.

 

'대한민국 영업사원 1'의 능력

윤 대통령의 이번 국빈 방문도 비슷한 모습이 연출될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 의장대 사열과 수백 명의 주요 인사가 참가하는 국빈 만찬, 상하원 합동연설, 하버드대 강연 등 최상의 예우가 윤 대통령을 기다릴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은 12년 만의 국빈 방문에 의미를 부여하고 화려한 행사 장면을 전하는 데 바쁠 것이다. 물론 우리 지도자가 미국을 방문해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하물며 국익이 충돌하는 국가 간 외교 관계에서 일방적인 선의는 세상물정 모르는 이들의 얘기다.

 

미국의 국빈 초청은 철저히 실리를 따져 이뤄진다. 준비에 엄청난 비용과 인력이 투입되고 미국 대통령도 바쁜 일정 중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쉽게 자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취임 3년을 맞는 바이든 대통령의 국빈 초청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 이어 윤 대통령이 두 번째다. 미국이 예우를 갖추려는 것은 무언가 받아내려는 게 크다는 것을 뜻한다. 엄청난 규모의 실익을 놓고 벌이는 외교관계에서 의전에 따른 예우란 순진하고 한가한 얘기일 뿐이다.

 

그래서 국빈이란 예우를 걷어내고 이번 정상회담의 손익계산서를 냉철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 한국에 가장 원하는 건 중국 견제다. 윤 대통령은 <로이터>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에 대해 "힘에 의한 현상변경은 절대 반대한다"고 밝혔다. 한미 정상회담에선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일본을 정보 공유 확대 대상국에 포함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 '속도전'에 매진하겠다는 거다. 미국의 도청 문제는 정상회담 의제에서 배제할 방침이라고 하고, 윤 대통령이 언급했듯이 우크라이나 포탄 지원도 공식화할 것이다.

 

반면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건 뚜렷이 손에 잡히는 게 없다. 현재 한국이 원하는 건 미국의 반도체법 지원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우리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에서 핵심 의제에 오르지 않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불확실성이 해소됐기 때문"이라는 건데 말이 되는가. 실제 현대차와 기아차가 생산하는 차는 미국의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빠졌다. 안보 문제는 북핵에 대응해 누차 거론됐던 핵확장 억제 강화에 그칠 전망이다.

 

미국의 요구는 죄다 수용하면서 한국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요구하고 얻을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등 경제 관련 진전은 잘 안 보이는데, 오히려 미국에 갈 경제사절단은 매머드급이라고 자랑한다. 이들이 미국에서 또 얼마나 많은 투자 계획을 쏟아내고 올지 걱정이 앞선다. '대한민국 영업사원 1'라는 윤 대통령이 방패막이를 해줘야 하지만 기대난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첫 국빈으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초청했다. 한동안 불편했던 프랑스와의 화해를 위해 극진한 환대를 베풀었다. 하지만 마크롱은 대놓고 "미국에서 IRA가 논의될 때 누구도 내게 전화하지 않았다. 내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며 불만을 표출했다. IRA가 동맹국에 큰 타격을 가할 수 있는데도 바이든 행정부의 일방적 강행을 비판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8일 국무회의에서 "한미동맹은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관계가 아니다"고 했다. 아무리 굳건한 동맹이라도 할 말은 하는 마크롱 대통령의 용기를 배우기 바란다.

#이충재 오마이뉴스 23.04.21

 

 

기후테크, GPT에 물었더니

살아온 시간보다 남은 시간을 계산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노년기라 한다. 유한한 시간 안에서 환경운동가가 효과적으로 성과를 내려면 뭘 해야 할까. 기후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꼭 필요한데 아직 우리나라에서 물결이 일지 못한 분야가 무엇일까. 기후테크가 아닐까? 기후테크(Climatetech)는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기술 분야를 말한다. 탄소배출 감소, 친환경 에너지 생산, 지속 가능한 농업 및 축산업, 자원 효율성 향상을 위한 기술들이다. 예컨대 태양광 및 풍력 발전, 친환경 교통수단, 에너지 저장 기술, 탄소 포집 및 저장 기술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시급한 기후테크는 에너지 전환 기술이다. 이는 화석연료에서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려는 것으로 대규모 배터리 저장 시스템 및 스마트그리드(지능형 전력망) 기술 등이다.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과 깨끗한 에너지 생산을 돕는 동시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후테크 활성화를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무엇인가. 인식 개선이다. 기후문제의 심각성과 기후테크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교육과 정보공유가 필요하다. 시민과 기업, 정부 등 모든 이해관계자가 함께 기후대응의 중요성과 신기술의 필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신기술 개발과 연구가 가능하고, 기업과 정부의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다. 또한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제도와 지원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 해외 기후환경단체들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을까.

 

미국의 비영리단체 ‘Cleantech Open’은 기후테크 창업가들에게 교육, 멘토링, 네트워킹 등을 지원해 창업 생태계를 발전시키고 있다. 캐나다의 ‘BDC Cleantech Practice’는 기후테크 기업을 발굴·투자해 투자자들이 기업의 지속 가능성과 환경적 가치를 고려할 수 있도록 돕는다. 덴마크의 ‘Climate-KIC Nordic’은 지역 기업들과 대학, 연구소 등과의 협력을 통해 기후테크 분야가 혁신할 수 있도록 교육과 혁신 정보를 제공한다. 스웨덴의 ‘Swedish Cleantech’는 기후테크 분야의 정보를 제공하고, 환경에 대한 인식 개선을 목표로 하는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기후테크를 본격적으로 언급하는 환경단체는 없는 것 같다.

 

비영리의 활동뿐 아니라 시민의 인식에 영향을 주는 것은 미디어다. 기후변화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문제이므로, 많은 해외 언론 및 통신사에서 이에 대해 중점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주요 언론 및 통신사로는 BBC, 가디언,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로이터, AP뉴스, 알자지라 등이 있다. 특히 BBC‘Our Planet Matters’라는 섹션을 마련해 기후변화와 환경 문제에 대한 다양한 기사와 보도를 제공하며, 가디언도 ‘Climate Change’라는 섹션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국내 언론사 중 일부도 다루고 있지만 부족하다.

 

눈치채셨겠지만 이 글은 필자가 묻고 챗GPT가 답한 것이다. 칼럼의 역할 중 하나가 새로운 기술이나 방향을 소개하는 것이라고 챗GPT가 말해주었다. 역대 칼럼 중 가장 쓰기 쉬웠으나 받아쓰는 필자가 필요하겠나. GPT가 마음을 읽을 줄 안다면 환경운동은 말보다 행동이라 할 텐데.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경향 : 2023.04.21.

 

 

진보의 경제정책, 그 대안을 이야기하자

신자유주의 넘어야 위기 극복한다

코로나19 감염 확산 이후 세계경제의 위기적 상황은 몇 년째 지속되고 있다. 팬데믹에 휩쓸려 손상된 글로벌 공급망은 경제회복 지연에 중미갈등이 더해지면서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재편되는 중이다. 특히 우크라이나에서 발발한 전쟁과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로 신냉전의 서막이 오르면서 세계경제는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격랑 속으로 빠르게 휩쓸려 들어갔다.

 

시선을 한반도로 옮겨오면, 허망하기 짝이 없는 가치 동맹의 이름으로 미국 패권주의가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제해 역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형국이다. 미국에 이어 일본마저 상전으로 모시려는 윤석열 정권은 도탄에 빠진 민생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능한 모습만 연출하고 있다. 아예 대놓고 부자와 재벌만 위하고 전 정권 탓만 한다. 미국의 이해관계에 예속된 경제정책으로 인해 한국경제는 방향을 상실하고 표류 중이다.

 

위기 속 표류하는 한국경제

위기는 또 다른 위기로 이어진다. 가뜩이나 기술 수준에서조차 중국에 따라잡히는 마당에 미국과 윤석열 정권의 일방적 외교는 그간 한국경제의 성장을 견인해온 중국과의 남은 경제관계마저 위태롭게 한다. 그 결과가 무역수지 적자의 구조화로 나타나고 있다. 남한 자본주의는 지금 갈 길을 잃었다. 그러니 진짜 위기다. 그런 판국에 국내적으로는 자영업자 부채 부담이 전혀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발 위기 우려마저 심심찮게 터져 나온다. 그동안 가계 빚을 늘리며 급등했던 주택가격은 깡통전세로 돌아와 벼랑 끝에 내몰린 서민들을 덮친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은 진보정치로 향한다. 우리 자신은 어떤가. 노동 중심의 진보정치는 윤석열 정권과는 다른 어떤 경제운영 방식으로 민중의 삶을 지킬 수 있을까. 작금의 위기적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정책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을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진보정치의 경제정책 틀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진보정치의 대안은 무엇인가

이와 관련해 20216월 국제노동기구(ILO)에 의해 채택된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인간 중심 회복의 지구적 요구"에 대한 제109차 총회 결의는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총회 결의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국가적 고용 대책으로 모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기회가 제공되는 일자리 중심적인 회복"이 요구되며 경제정책은 불평등을 타파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진보적 경제학자들은 이 총회 결의를 보편적 기본권과 노동권을 최우선에 놓고 지구의 생태 한계를 존중하는 경제운영의 새로운 지배구조에 대한 것으로 적극 해석한다. 이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신자유주의로부터의 완전한 방향 전환이 요청되며 경제의 규칙을 다시 새로 써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실 이 시대가 경험하고 있는 심각한 불평등 확대의 이면에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운영이라는 정책적 요인이 작용해왔다. 거시경제정책의 목표가 과거에는 완전고용으로 집약되었다. 반면 신자유주의 정책 체제에서는 물가안정을 목표로 독립된 외양의 중앙은행 전문가들이 결정하는 통화정책이 거시경제 관리에 있어 주인공 역할을 한다. 통화정책이든 재정정책이든 준칙을 미리 정해 재량의 여지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생각도 신자유주의의 특징이었다.

 

그와 같은 정책 패러다임은 노동자들한테 불리했다. 이른바 물가안정목표제가 채택된 나라에서 노동소득분배율(국민소득 가운데 노동자들의 몫)은 뚜렷이 하락했다. 그 과정에서 임금 격차 확대도 뒤따랐다. 경제 침체의 영향이 누구에게나 똑같지는 않아 대개 저임금 노동자들부터 임금이 깎이고 일자리가 없어지곤 해서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불평등의 원인이다

특히 물가 상승이 주로 원자재가격 상승 등 공급 측 요인에 기인하는 현상으로 자리 잡으면서 신자유주의적 경제운영은 경기의 진폭을 의도적으로 키우는 나쁜 방식을 택했다. 최근 경제상황처럼 공급 측 요인 때문에 물가가 오르고 경제가 부진에 빠지면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올려 대응한다. 이는 경제가 침체하면 이자율을 올려 경제를 더 가라앉게 만드는 것이므로 결국 경기의 진폭을 키우는 셈이다. 도대체 그들은 왜 그러는 것일까.

 

물가를 잡기 위해서라면 고용은 어느 정도 포기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가를 잡아야 자산가들이 보유한 막대한 금융자산 가치를 지켜줄 수 있어서일까. 중앙은행은 물가가 오를 것 같으면 재빨리 이자율부터 올린다. 그래야 금융자산 가치 하락을 이자수입 증가로 메울 수 있다. 그러니 오늘 정책 당국자들은 실업자를 얼마나 늘려야 물가상승률을 원하는 수준으로 낮출 수 있을지 계산하는 게 일이다. 실업자가 목표만큼 늘지 않으면 걱정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관심을 재정정책으로 옮기면, 신자유주의는 감세와 긴축의 소극적 재정 운영의 수호자로 나선다. 그러면서 재정적자를 줄이고 국가채무비율을 떨어뜨리는 것을 목표로 내세운다. 지금 윤석열 정권이 딱 그 모양새다. 그들은 왜 재정준칙을 밀어붙이려고 할까. 그 이유는 이 정권이 재벌과 부자들만 위하는 정권이라서다. 부자들 세금 안 내게 하려는 것이다. 정부가 재정을 쓰기 시작하면 세금을 많이 내야 하니 재정준칙을 만들어서 애초에 재정 쓰는 것부터 막겠다는 의도다. 그러니 남한의 재벌과 졸부들은 재정준칙이 얼마나 고맙겠는가. 그래서 그들이 이번에도 근로장려금부터, 무주택 근로자 주택자금 특별공제 같은 서민 복지 예산부터 기획재정부 조세특례 심층평가 대상에 올려 깎자는 것 아닌가.

 

좁고 험한,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길

진보정치의 경제정책은 이런 신자유주의에 맞서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진보정치는 그것을 넘어서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노동 중심 진보정치만의 경제정책 비전을 준비해 시민 앞에 제안하자. 진보적 거시경제운영 원리를 당당히 설명하자. 그 과정에서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이론적 기초가 되는 주류경제학에 대한 도전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그 길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민중의 경제적 존엄을 지켜내며 신자유주의를 전복하는 제대로 된 길이라고 믿는다. 아무리 좁고 험하더라도 그 길을 피해갈 수는 없다.

나원준 경북대 교수 | 프레시안 2023.04.21.

 

 

'전광훈'·'돈봉투', 이런 정치는 적대적으로 공멸한다

3지대가 출현한들

대통령실과 집권여당, 1야당의 현재의 상황은 과연 정치가 지속가능하겠는가 하는 근원적 문제를 제기하게 한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원리인 대표성과 책임성은 물론이고, 반응성조차 작동하지 않는 최악의 정치구조들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27%까지 추락했다.(11~13일 한국갤럽 조사.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여권의 지지기반인 대구·경북에서조차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섰다. 박근혜 탄핵 때의 지지율이 25% 정도임을 감안하면 지금의 대통령 지지율은 임기말이 아니라는 시기적 요인만 제외한다면 사실상의 레임덕 수준이다. 이러한 지지율로는 국정을 밀고 나갈 동력 자체를 얻을 수 없다.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 지금의 여권은 사실상 국정을 운영할 내적 에너지와 인식 등을 가지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취임 초에 대통령실 이전이라는 소모적 이슈로 정치력을 낭비하고 불필요한 정쟁을 야기했다. 이후 이준석 전 대표 배제로 여권의 자중지란을 자초했고 곧 이어 터진 이태원 참사에서 사건과 관련된 고위공직자 어느 누구도 최소한의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강제동원 해법으로 제시한 '3자 변제' 방안은 일본 측의 상응하는 호응의 부족으로 후폭풍과 비판 여론에 직면하면서 저자세 외교 논란을 불러왔다.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 의혹에도 주권국가로서의 당당함을 보여주지 못했다.

 

집권여당은 최고위원들의 시대착오적 퇴행적 발언으로 실언 파문에 휩싸이고 전광훈 목사가 보수진영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듯한 발언 등은 여당이 강성보수에 휘둘리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으로 비추어 볼 때 여권의 국정 능력을 원점부터 재검토 하지 않으면 상황은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

 

입법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이어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 사건'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송영길 전 대표의 측근들이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보도들과 녹취 파일의 존재로 미루어 볼 때 사건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조차 어렵다.

 

당의 전현직 대표가 모두 사법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않은 지금의 야당 역시 정상적인 정당 활동을 하기에 도덕적 권위 자체를 상실했다. 대안정당과 수권정당의 존재감은커녕 과연 지금의 야당이 정통 민주당의 맥을 잇는 정당인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의 '돈봉투 사건'이 만약 사실이라면 이는 표를 돈으로 사는 행위로써 민주주의 운영의 기본 매커니즘인 선거를 형해화시키고 정당정치의 근간을 흔드는 매표(買票) 정치가 아닐 수 없다. 표심을 왜곡하고 민심을 교란하는 매표행위는 공공의 적일 뿐 아니라 대의제 자체를 부정하는 최악의 사건으로서 당내 선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정치는 이미 감내할 정도의 수준을 넘어섰다. 여야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상대 정당의 실축을 토대로 당의 생명을 연명하는 형국이다. 전형적인 '공생'의 정치이지만 이 공생은 상호 존중과 절제의 바탕 위에 성립되는 공존이 아니다. 갈등을 조정하기커녕 갈등의 생산자로 기능하고, 가치를 배분하기보다 눈앞의 실리와 이익의 탐닉에 몰두하는 현재의 정치는 민주주의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정치권의 공식은 뻔하다. 선거가 임박하면 여야 정당 모두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또 표를 구걸할 것이다. 여야 정당의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하지만 이 상태로 선거를 치르기 어렵다고 판단한 양당이 비대위를 꾸린다고 정치판이 바뀔 수는 없다.

 

유권자의 아래로부터의 압박이 필요할 때다. 3세력의 공간 등이 넓어져야 한다는 명제도 구태하기 마찬가지다. 3정당의 존재는 1995년의 자유민주연합(자민련), 2016년의 국민의당이 있었으나 이는 당시 김종필과 안철수의 대선주자급 인물과 충청 및 호남이라는 지역기반으로 가능했다. 3세력의 존재가 정치판을 바꾸지는 못했다. 다양성으로 양대 거대 정당의 갈등을 완화한다는 사전적 의미만 있을 뿐 정치혁파와는 거리가 있다. 3지대가 출현한들 지금의 비리와 모순 덩어리의 정치판을 개혁할 수는 없다.

 

국회의원의 특권 등을 과감히 폐지하고 각종 불합리한 관행을 없애고 공천에서의 과감한 개혁 등을 누가 주도할 것인가. 이러한 제도적 개선 역시 입법을 통해서 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유권자의 압도적 압력에 의해서 바꿀 수밖에 없다.

 

2016129일의 박근혜 탄핵은 국민의 압박에 국회의원들이 굴복한 사례다. 이러한 정치적 에너지가 발현되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대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쓰이면 나라에 목숨을 바칠 것이요, 쓰이지 못하면 들에서 농사짓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다."(이 충무공 전서) 이러한 결기와 당당함이 왜 우리 정치인들에겐 없는 것일까.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 프레시안 2023.04.21

 

 

월드컵대교 자전거도로는 언제?

서울중심주의와 학벌주의가 내 등을 떠밀어 서울로 오게 되었다. 서울에 살게 되며 가장 놀란 건 버스와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고, 차가 너무 밀린다는 것이었다. ‘지역출신의 보편적인 경험이다. 서울에 부모의 집도, 부모가 얻어 주는 집도 없는 처지로 떠돌면서 가는 데마다 일할 곳을 찾았다. 10년 동안 서대문에서, 당산에서, 강남구청에서, 공덕에서 다시 서대문으로 옮겼다. 그때마다 버스정류장과 지하철역의 위치, 그 동네에 다니는 노선에 따라서 이게 같은 서울인가 싶었다. 자기 동네가 서울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답답했다. 그래서 사회학적 관점이 들어간 페미니스트 지리학 연구들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한 국가와 도시의 교통 인프라는 정말로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이따금 지역에 내려갈때면 9호선을 타야 했다. 고속터미널역까지 사람들의 어깨와 어깨 사이에 머리가 끼여 발이 동동 뜨는 기분으로 이동했다(알고 보니 9호선은 이명박 정부의 민간 투자로 탄생했다). 당산과 합정 사이 양화대교를 다니는 5714번 버스도 많이 탔다. 버스는 매일같이 기어다녔다. 구두 신은 발로 서서 가면서 꾸역꾸역 도로를 메운 자동차들을 모두 조그맣게 만들어서 집어 던지는 상상을 했다(알고 보니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유람선을 띄우겠다며 다리를 뜯고 있었다).

 

괴로움의 원인을 모르면 병이 난다. 파 보니 이런 걸 알게 됐다. 전 세계 많은 도시에서 교통체계의 핵심은 걷기와 자전거 타기다. 원래는 생활반경 구석구석을 다니며 이용하는 수단이 먼저고, 나중에 멀리 가는 수단이 고려되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거꾸로다. 이동수단에서 자전거가 차지하는 비율은 2% 안팎으로 박살 나 있고, 먼 권역을 잇는 데 적합한 대형 교통수단이 거의 전부다.

 

이 고통의 핵심은 한강이다. 한강은 1981‘88 서울 올림픽유치를 계기로 전두환 정부가 시작한 한강종합개발사업으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현재 평균 1.2정도 되는 넓은 폭은 그때 한강을 직선으로 파내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다른 국가에서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의 다리는 대부분 사람이 건널 수 있다. 한강은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다. 도시의 사이즈가 어디에 맞춰져 있는지는 권력자가 무엇을 중요하고 하찮게 생각하는지가 완벽히 반영된 정치적인 문제다. 한강 다리는 자동차로 가면 그러려니 하지만, 인간이 걷다 보면 극단적 선택자로 의심받기 마련이다. 누구나 구조적으로 지하철과 자동차로만 한강을 건너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가 한창이다(왠지 트럼프가 떠오른다). 한강을 몹시도 사랑하는 오 시장에게 기대하는 것은 한강 다리마다 보행자, 자전거도로를 완비하는 것이다. 10년 전 그는 빨간색 쫄쫄이를 입고 자전거 전용도로로 출근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광진구 자양동에 살았고, 광진교는 22개 한강 다리 중 딱 네 곳에 설치된 자전거도로가 있다. 나도 지옥철을 벗어나 자전거로 출근하고 싶다. 올림픽대교 포함 6곳에 2021년까지 자전거 전용도로가 만들어진다고 발표된 후 오늘까지 기약이 없다. 사람 본능이란 게 알고 나면 열받고, 그러면 뒤집고 싶어진다. 그래서 월드컵대교 자전거도로는 언제 생겨요?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경향 : 2023.04.22.

 

 

완벽하게 정치가 부재한 세계

총선이 1년 남은 요즘, 학생들을 보면서 두려운 고민이 생겼다. 과연 이 학생들에게 투표를 하라고 나는 말할 수 있을까? 꼭 맘에 드는 후보가 없더라도 투표는 시민의 민주적 권리이자 의무이니,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차선도 없으면 차악에라도 투표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학생들은 둘째치고,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스스로도 답하기가 어렵다.

 

얼마 전 이 나라에 지금 필요한 중요 과제들에 대해 논의하다가 정치적 의제화는 어떻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다. 300명 국회의원 명단을 놓고 들여다봤다. 다섯 손가락은커녕 세 손가락을 꼽기도 어려웠다. 참담했다. 우리의 논의는 거기서 멈췄다.

 

정치인이 국가적 과제를 실현하려면, 의지만 갖고는 부족하다. 정치적 신념과 철학은 기본이고, 뜻을 같이할 동료들을 규합할 수 있는 정치력도 필수적이다. 자기 당에서 인정받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정당 의원들에게도 존중받는 실력과 인품이 있어야 한다. 대중적 인지도도 중요하다. 그런데 없다. 저 덕목을 두루 갖추기는커녕, 한두 가지를 갖춘 사람도 찾기가 어렵다. 정당의 상황은 더 나쁘다. 더불어민주당은 왜 존재하고, 국민의힘은 누구를 위해 일하며, 정의당의 정치적 비전은 무엇인지, 정치학자인 나도 설명하기가 어렵다.

 

전당대회는 정당의 비전과 정책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정당정치의 근간이다. 민주당의 전당대회에서는 돈봉투가 돌았고, 끼리끼리 묶어서 찍을 번호를 돌리는 유치찬란한 일이 서슴지 않고 자행되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룰을 바꾸고 경쟁자들을 찍어내서 치른 지명대회였다. 과연 지금 이 나라의 정당에서 자유로운 토론과 경쟁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좋게 말해 계파고 열성지지자이지, 패거리 문화와 팬덤만 남은 정당이 어떻게 국가와 입법부를 책임지겠는가.

 

정치혐오가 그리운 시대가 됐다. 정치를 다루면 언론 기사도, 유튜브도, 페이스북도 외면당한다. 온 국민이 정치 박사여서 정치학 박사가 필요없는 나라라고 농담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정치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지쳤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주식 얘기나 하자고 말을 돌린다. 빙하를 향해 가고 있는 배를 돌리는 건 포기하고, 각자 구명조끼를 챙기자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타락한 민주정이란 이런 것인가, 생전에 지옥을 본다는 말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모든 것이 노골화되고 뻔뻔해진 세상이다. 한 발짝만 들어가면 아비규환인데, 세상은 고요하다. ‘그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처럼, 이 사회는 침묵 속에서 무너지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가 한없이 늘어나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데도, 정부·여당은 전 정부 탓을 하고, 원내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은 수수방관을 할 뿐이다. ()은 죽고, ()만 남았다. 원래 공이란 없고, 그것을 말하는 자는 위선자라는 비웃음만 남았다.

 

혐오할 가치조차 없어진 정치라면, 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승만 기념관을 노골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대통령은 4·19 기념식에서 피로써 지켜낸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거짓 선동과 날조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들에 대해 경고했다. 국정지지율을 발표하는 여론조사 기관들을 압수수색이라도 하겠다는 뜻일까?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자유35번이나 외쳤다는데, 이 글을 쓰는 나는 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일까?

 

이것은 완벽하게 정치가 부재한 세계다. 정치가 사라진 자리엔 권력투쟁만이 남았다. 정치 뉴스의 대부분에 실은 정치는 없다. 누가 무슨 자리를 차지하고, 누가 공적 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하는지만 남았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는데, 새로운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상태, 이것은 그라운드 제로’ ‘인터레그넘의 시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정치의 부재와 시간의 공백을 메울 새로운 정치세력의 부재가 뼈아프다. 선거제도 개혁이 어려운 이유도, 그렇게 개혁을 한들 누가 새로이 당선될 것인가에 대해 국민의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20년 전, 지금 민주당의 첫 틀이 형성될 때는 정치생명을 건 정풍운동이 있었다. 새누리당에서 유승민이 원내대표가 되어 부자들은 돈이 많아 주체를 못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이 과연 보수입니까라고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어디서도 새로운 희망을 찾기 어렵다.

 

괜찮다. 총선까지는 아직 1년이 남았다. 학생들에게 투표장에 가라고 말할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러나 새벽이 지나야 아침이 오고,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온다. 나는 아직 기다려 볼 테다. 찬란한 슬픔의 봄을.

이관후 정치학자 경향 : 2023.04.22.

 

 

대통령이 풍차 향해 달려가는 돈키호테가 되어가고 있다

러시아가 '물컵 절반'을 채우지 않길 바라는 외교

"6·25 전쟁 당시 수많은 국가가 우리나라에 도움을 주지 않았느냐."(윤석열대통령,20국민의힘지도부와만찬에서)

 

굳이 따지자면 6.25 때 우크라이나(구소련)는 북한의 편에 선 적국이었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북한을 위해 싸운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하는 걸 6.25 때 국제 원조와 유엔군 참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군사 지원을 시사한 윤 대통령의 발언을 '한미 동맹' 공고화를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분석하려는 접근이 있는 것 같다. 그런 해석 자체가 무리수라는 걸 윤 대통령과 용산은 연이은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왔다는 윤 대통령의 6.25 언급은 그가 전쟁을 이상주의와 낭만주의로 접근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자유''자유 세계의 연대' 같은 무형의 '가치'를 취임 때부터 강조해 온 윤 대통령은 국제 관계를 '정의''의리'로 이뤄진 가상의 세계로 설정한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실이 향후 우리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이 "러시아의 행동에 달렸다"고 말한 것도 전쟁 불개입 조건을 상대의 '선의'에 걸어버린 셈인데, '물컵 나머지 반잔'으로 상징된 대일 외교에서 우리가 목격한 바대로 나이브함, 그 연장선 위 어디쯤에 윤 대통령의 인식이 존재하는 것이다. 다른 점은 러시아가 '물컵 나머지 반잔'을 채우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만약 외교적 실리주의를 택했다면, 굳이 대통령이 외신 인터뷰에서 '군사 지원 시사'를 전 세계에 공표할 필요가 없다. 군사 지원과 관련된 '용산의 고민'은 미국의 기밀 문건 유출로 이미 세상에 알려졌고, 실제 미국에 포탄을 빌려주고 폴란드에 포탄을 수출하고 있는 정황도 드러난 바 있다. 대통령이 ''을 하지 않았어도 지금 한국은 미국의 의도를 읽고 또 반응하고 있는데, 대통령은 굳이 ''을 꺼내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4강 중 2(중국, 러시아) 관계에서 불필요한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노태우 정부에서 시작한 30년 북방외교의 일관성과 원칙을 뿌리부터 흔들었다. 이런 건 선전포고를 앞둔 국가 지도자의 행동이지, 7000킬로미터 떨어진 타국의 전장과 관련해 강대국들의 이익이 얽힌 냉엄한 '외교판'에서 취할 행동이 아니다.

 

듣기 평가에 이어 읽기 평가도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 러시아가 발끈하자 대통령실은 19일 밤 언론 공지를 통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의 언급은 가정적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윤 대통령의 로이터 인터뷰 내용을 정확히 읽어볼 것을 권한다"고 했다. 설마 읽을 줄 몰라서, 인터뷰 내용을 해석하지 못해 발끈했을까. 대통령실은 러시아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언급하자 "러시아 당국이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해서 한국 입장에 대해 코멘트를 했다"고 말했다. 전쟁에 개입할 것이냐 말 것이냐 갈림길 앞에서 말장난을 하고 있다. 북한에서 '남조선이 도발하면 핵으로 응수하겠다'고 하면 그때도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코멘트 하지 않겠다'고 할 것인가?

 

용산의 반응과 정부의 반응에 온도차가 확연히 느껴지는 것도, 로이터 발언이 대통령의 '호기'에 의한 것이라는 가설을 뒷받침해 준다. 윤 대통령의 발언 이후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발 더 나아가 "앞으로 한국이 어떻게 행동할지는 러시아에 달렸다"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국방부는 "(우리 정부의 기존 입장과)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제 대통령실에서도 (살상 무기 지원은 없다는 지난 1년간의) 정부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설명드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용산이 상황 변화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는데, 국방부는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한다. (용산) 아래(부처) 손 발이 잘 안 맞는다.

 

민간인 대량 살상은 앞으로 발생하지 않을 것이란 말인가? 이미 민간인 사망자가 2만 명을 넘어섰다. 그래놓고"러시아당국이일어나지않은"대해코멘트한다고대꾸했다. '민간인 대량 살상'은 몇 명 수준인지, '전제 조건' 자체도 모호한데 "정확히 읽어보라"고 한다. 이러니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말(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이 나오는 것이다.

 

대통령의 주변엔 직언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19일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후 "이미 민간인 대량학살은 벌어졌다"는 지적이 나왔는데도, 20일 여당 지도부를 만나 "우크라이나에서 대규모의 민간인 학살이 발생하면, 방어용 무기 지원에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정부 내에서는 러시아의 제재 우려에 대해 "약소국 러시아가 강대국 한국을 제재하나"(김현욱 국립외교원 미주연구부장)라는 말도 나왔다. 대통령은 과연 국제 사회와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있는가?

 

'물컵 반잔'을 기다리는 외교에서, 이젠 '선제 도발' 외교로 가고 있다. 일단 내지르고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는 외교는 대일 외교에서 충분히 봤다. 그런데 이게 가장 우려하는 형태로 또 다시 등장한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이 '사고'를 쳤는데 아무도 '사고'라고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불안감은 더 커진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우리 군 전력의 북한 집중을 흩트러 놓을 수도 있는 문제다. 당장 국방부는 2019년 있었던 러시아 군용기의 동해 카디즈(방공식별구역) 침범같은 사태에 대응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 이상의 도발에도 대비해야 한다.

 

결국 윤 대통령은 우리 '안보 전략'의 입지를 줄이고 있다. 말 한 마디가 '국민 안전'이라는 포괄적 안보 개념을 좁혀 놓았다. 한반도를 둘러싼 4강 중에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자극하는데정부말대로라면아직우리는"나토이상의"방어구조를갖추지못하고있다.미국이한국에'나토식핵공유'프로그램을제공할지여부도결론나지않았다. 현재 한반도 안보 상황은 변한 게 없는데, 대통령이 입을 열자 실익 없는 일들이 연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외교적 발언은 치밀한 내부 조율을 거쳐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적 지지를 등에 업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없는 외교적 발언은 '도발'이거나 '허세'. 그런데 대통령실은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 가능성을 언급하기 전, 국민적 이해를 구한 적이 없다. 이 역시 '대일 외교'에서 본 바대로다.

 

1600년대 초 돈 키호테가 활약하던 시절 기사도는 우리로 치면 6.25 전쟁이나 일제 시기 독립 투쟁의 유물 같은 것이다. 전장에 총과 포탄이 등장하며 기사들이 칼 차고 말 타고 수행하던 전쟁의 시절이지나가던 때, 기사도 문학에 빠진 돈 키호테는 칼 차고 말 타고 세상에 튀어 나온다. 앙상한 말 한마리에 올라 우스꽝스런 농부 산초를 종으로, 동네 여성을 '공주'로 술집을 ''으로 여긴 채 위대한 모험을 떠난다. 철 지난 대의와 로망의 과대 망상에 빠져 풍차를 향해 돌진하던 돈 키호테는 말년에 이성을 찾고 현실을 직시하게된다.

 

세상이 난폭해지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은 '돈 키호테'가 되어 가고 있다.

박세열 기자 | 프레시안 2023.04.22.

 

 

가진 포탄 미국에 다 내주고 거덜 난 한국 안보

곡사포에 쓰이는 155. 육군 페이스북

우리 군이 유사시를 대비해 저장해놓은 전시 비축 탄약을 대량으로 미국에 대여했다는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면 국방부 장관과 육군참모총장은 당장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북한의 장사정포 위협에 맞서 대화력전 임무를 수행하게 될 우리 군의 핵심 전력인 155포탄을 유럽으로 가져가는 걸 군 지도자들이 용인했다면 이는 심각한 직무유기다.

 

국정감사 때마다 한국군의 전시 비축 탄약 부족, 특히 155포탄 부족 문제는 단골 주제였다. 이 포탄은 미군 기준대로라면 적어도 전시 30일분을 저장하고 있어야 하는데, 실제 우리 군에는 일주일치밖에 저장돼 있지 않다. 전쟁이 나면 부족한 탄약은 동맹국으로부터 조달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현재 미국에는 재고 포탄이 바닥났고 심지어 지난해 말부터는 한국에 저장해놓은 미군 비축탄마저 우크라이나로 반출했다. 그렇다면 우리 군이 저장해놓은 비축탄은 전시를 대비하는 마지막 물량이기 때문에 하늘이 두 쪽 나도 건드려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난 3월 말부터 비축탄을 무려 33만발이나 긴급히 유럽으로 빼돌렸다면, 지금 육군 후방 탄약창 3곳의 탄약고가 비워졌다. 전시 초기에 사용할 일선 전투부대 저장량은 며칠분에 불과한 상황에서, 이는 지상군이 유사시에 대화력전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는 뜻이다. 전쟁이 나면 북한의 장사정포로부터 대책 없이 두들겨 맞아야 한다는 소리다. 이 나라 안보 책임자들은 이를 모를 리 없지만, 포탄을 미국에 수출한 것이 아니라 대여한 것이므로 한반도에 문제가 생기면 돌려받을 작정이었다고 둘러댈 것이다. 군사장비라면 몰라도 소모품인 포탄을 어떻게 돌려받겠다는 건가. 한마디로 안보가 거덜 날 판이다. 누가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반드시 그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이런 무모한 포탄 대여는 오직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실행됐다. 지난해 9월부터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우리에게 무기 지원을 요청한 바 있고, 올해 1월에는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이 직접 서울을 방문해 포탄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전혀 응답하지 않던 정부가 마치 개학을 앞둔 학생이 밀린 방학숙제를 하듯이 긴급히 포탄 지원에 나선 배경은 4월 말 열릴 한-미 정상회담이다.

 

포탄 지원은 단순히 우리 군사 대비태세에만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하는 게 아니다. 지난해 10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할 경우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파탄 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 북한과 러시아는 급격히 밀착되며 전략적 연대를 다지는 상황이다.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지원하면 당연히 북한도 이 기회를 노려 러시아에 포탄과 미사일을 지원할 것이며, 이는 한반도 냉전을 유럽에 수출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우리 정부가 미국의 압력으로 멀리 떨어진 유럽의 분쟁에 개입하는 신냉전 질서를 추종하게 되면, 더 가까이 있는 대만해협에서 위기가 발생할 경우에도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이 점을 면밀하게 관찰하며 우리를 예방적으로 견제하려고 할 것이다. 최근 서해에서 실탄 사격을 하는 중국군 군사훈련이 증가하는 배경에는 주한미군과 한국군에 대한 경고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

 

동해에는 러시아 잠수함이 출몰하고 서해에는 중국군의 총성이 들리는 낯선 주변 정세는 대한민국이 동과 서로부터 동시에 압력을 받는 대압착의 시대에 진입했음을 알려준다. 자체 안보에 내실을 도모하기는커녕 가진 포탄을 다 내주며 무모하게 강대국 정치의 판에 휘말리는 대한민국의 처지를 이해해줄 나라는 없다. 포탄을 지원하더라도 주변을 살피고 안보 공백 대책을 세우든지 했어야 했다. -미 정상회담이 코앞이라고 가진 것 다 내주는 삼류국가를 누가 존중해주겠는가.

 

지난 3월 우리는 호의를 기대했던 일본으로부터 차갑고 모멸적인 시선을 받은 바 있다. 우리와 독도 영토 분쟁까지 불사하며 동해에서 해양 세력권 구축에 나선 일본은 한국을 협력 파트너라기보다 여전히 견제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 아닌가. 미국은 한국이 포탄을 지원했다고 반도체와 배터리, 전기차 분야에서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 생각은 전혀 없는 듯하다. 파격적인 국빈 대우라는 이면에 영혼까지 털리는 대한민국의 외로운 처지만 더 선명해질 정상회담이다.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 한겨레 2023.04.23.

 

 

아태에서 인태로의 전환, 맹목적 수용이 답인가

이제 아시아·태평양 시대는 가고 인도·태평양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한국과 미국은 물론 유럽 국제회의에서도 흔히 듣는 이야기다. 지정학적 개념으로서의 인태가 지리적 개념인 아태를 압도하는 형국이다. 정말 아태 질서는 끝났는가? 동의하기 어렵다.

 

지역질서의 급격한 변화는 강대국 간 큰 전쟁이나 혁명과 같은 강대국 내부의 정치변동 결과로 나타난다. 나폴레옹 전쟁에 따른 빈 체제, 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연맹 체제, 2차 세계대전 뒤 미-소 대결과 냉전 체제, 소련 해체에 따른 탈냉전 질서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기존의 아태 질서가 아직 건재한데도 일본 아베 전 총리가 제안하고 미국의 트럼프-바이든 대통령이 구체화한 인태 전략과 그에 따른 새로운 지역질서가 아주 짧은 시간에 지배적 패러다임으로 등장했다는 것이 의아할 뿐이다.

 

1990년대 초 냉전이 끝나자 미국 중심 단극체제 아래서 새로운 지역분화가 일어났다. 유럽연합이 먼저 독자적인 경제권을 구축했다. 이에 질세라 미국도 캐나다와 멕시코를 규합한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를 만들었고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호주)가 주도한 아태경제협력체(APEC·아펙) 결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아시아·태평양 시대가 열리는 계기였다.

 

탈냉전 시대 아태 질서는 여러 면에서 긍정적이었다. 아시아와 남·북미, 태평양 연안 21개 국가가 참여하는 아펙은 자유무역을 표방하는 열린 지역주의의 대표적 사례로 자리 잡았다. 선진국과 개도국의 견해 차이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보완으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아세안자유무역지대(AFTA), 다양한 양자 자유무역협정이 생겨났다. 그뿐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을 연계하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도 출범하면서 지역 간 자유무역 질서의 초석을 다지기도 했다.

 

매년 열리는 아펙 정상회의는 최고위급 정치안보 협의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아세안 주도 아래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하는 아태지역 안보 협의는 다자안보협력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기도 했다. 서로 다른 정치체제와 가치지향에도 불구하고 역내 교류와 협력이 활성화됐고 나름대로 전략적 공감대도 형성돼 왔다. 90년대 이후 아태지역이 누려온 평화와 번영은 바로 이런 대륙과 해양 세력을 포괄하는 지역질서의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태 전략은 자유롭고 열린’(미국) 혹은 평화로우며 번영하는’(한국) 인도·태평양을 지향하면서 포용·신뢰·호혜를 협력의 원칙(한국)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아태 질서와는 크게 상충한다. 당장 그 하부 체제라 할 한··3국 군사공조, 쿼드, 오커스, 나토의 외연 확대 등만 봐도 그렇다. 본질에서 인태 전략은 태평양-인도양-대서양을 연결하는 미국의 전통적 해양전략으로 중국의 현상변경 시도와 영향력 확대를 억제하기 위한 지정학적 포석이다. 따라서 배타성을 전제로 한 동맹과 집단방위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가치외교라는 이분법적 명분을 활용한다. 민주주의 국가들의 연합을 통해 중국·러시아·북한 등 권위주의 국가들의 축에 공동으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경제 분야에서도 인태경제프레임워크(IPEF)라는 닫힌 지역주의를 특징으로 한다. 미국은 통상과 기술 분야에서 중국과의 탈동조화(decoupling)에 동맹과 우방의 참여를 종용하고 있다. 리쇼어링, 니어쇼어링, 프렌드쇼어링 같은 말들이 함축하듯, 인태 전략의 목표는 결국 중국 배제다. 국제통화기금(IMF) 최근 보고서는 이런 지정학·지경학적 진영화가 세계 경제에 치명적 타격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을 실존적 위협으로 간주하는 미국과 일본의 시각에서 보면 인태 전략은 충분히 타당해 보일 수 있으나, 역내 여타 국가들의 이해관계와 생각은 크게 다를 수 있다. 두 질서 사이의 양자택일이 가져올 부수적 피해가 매우 크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게다가 아태 질서의 묘비명을 쓰기에는 아직 순기능이 많아 보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인태 질서로의 전환을 맹목적으로 수용할 뿐, 그 전환의 적절성에 대한 학문적, 정책적 논의는 미미하기 짝이 없다. 과연 아태와 인태 질서 사이 공존과 조화의 접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가. 인태 전략에의 편승이 가져오는 지역 수준의 손익계산은 어찌 되는가. 특히 한국과 같은 반도국가가 대륙을 떠나 해양전략에 전적으로 동참하는 게 바람직한가. 한국은 오랜 기간 아태 질서의 최대 수혜자였다. 이제 치열한 토론과 논쟁을 통해 우리 스스로의 답을 찾아가야 할 시점이다.

연재문정인 칼럼

문정인 | 연세대 명예교수 | 한겨레 2023.04.23.

 

 

쑨원의 민생, 정치권의 민생

국민당은 민생주의에 대해 두 가지 방법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지권을 평등하게 만드는 것이며, 두 번째는 자본의 쏠림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쑨원의 민생주의 설명이다. 중국 국민당을 이끌었던 중국 혁명의 아버지 쑨원은 민족주의, 민권주의, 민생주의를 내세웠다. 흔히 이것을 삼민주의라고 부른다. 쑨원은 일제에 맞서 공산당과의 적극적 협력을 만들었고, 결국 두 차례에 걸친 국공합작이 있었다. 쑨원의 후계자인 장제스는 결국 대만으로 밀려났다. 쑨원 사후 공산당과 국민당 모두 쑨원을 계승한다고 주장했다. 그만큼 중국인에게 쑨원의 의미는 각별하다. 나중에 쑨원의 부인 송경령은 중국 공산당 당원이 되었고, 사망 직전 중국 공산당 명예주석이 되었다. 주은래는 그녀를 손부인이라고 각별히 예우했다. 중국과 대만 모두 쑨원에 대한 일종의 상징 투쟁이 벌어졌던 것 같다.

 

외국에서는 거의 안 쓰는데, 한국 특히 정치권에서 독특하게 즐겨 쓰는 용어가 두 개 있다. 서민과 민생이다. 의미를 살려 영어로 번역하기가 아주 까다롭다.

 

서민은 아무 벼슬이나 지위가 없는 사람을 뜻하는 조선시대 용어다. 민중이라는 말이 빨갱이 용어로 낙인찍히면서 오늘날에는 민중 대신 서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경제적 주체 혹은 정치적 주체로서의 의미를 철저히 배제한 수동적 객체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용어 자체가 봉건주의 시대에서 나온 것이다 보니, 역사적 주체로서의 의미는 용법상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지난 대선 이후 정치권 특히 여당에서는 서민의 일부를 연령으로 떼어내 미래 세대라고 부르고 있다. 특권이 없다는 것과 투표할 때 외에는 주체가 아니라는 의미가 같다. 쓰는 사람들은 청년 서민정도의 의미로 쓰는 듯하다.

 

민생은 쑨원의 민생주의에서 왔다. 그렇다면 한국의 정당들은 쑨원 국민당의 후계자들인 것일까? 민주당은 대만 국민당과는 상관이 없지만, 여당인 국민의힘은 어떻게 보면 이념적으로 같은 계열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쑨원과는 별 상관이 없는 이재명이 사법위기를 넘어가기 위해 내건 용어가 민생이었다. 국민의힘 역시 전당대회를 통해 김기현 대표가 선출된 후 민생119’라는 이름의 특별위원회를 만들었다.

 

내용으로 보면 여야가 말하는 민생은 쑨원의 민생과는 상관없다. 토지와 농민 문제 해결과 자본 독점 완화가 민생주의 양대 축인데, 그런 핵심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비켜갈 때 주로 민생이라는 용어를 쓴다. 농민이 민생주의의 기본 축인 걸 생각해보면, 양곡관리법에 대해 별다른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그냥 거부권만 행사하는 국민의힘은 쑨원식 민생과는 좀 거리가 먼 것 같다.

 

민생을 기존의 용어와 비교해보면 DJ대중경제와 민주당의 을지로위원회 정도가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 집권 이후에는 대중경제가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다. 경제적 을 보호하기 위한 민주당의 을지로위원회는 자영업자의 어려움과 함께 어느 정도 자리는 잡은 것 같다. 국민의힘에는? 역시 부자 정당 이미지대로 약자들에 대한 정치활동의 흔적은 별로 없고, 정치적 위기 때 잠시 민생을 얘기하다 말았던 것 같다.

 

쑨원의 민생주의에서 주체성을 뺀 민생이라는 독특한 한국식 용어가 전성기를 맞게 된 것은 국민들의 정치 불신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정당의 정치 행위는 해롭거나 자기 이익주의로 보고, 그게 아닌 민생을 주로 해달라는 것이 정치평론계의 암묵적 합의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주체를 빼고, 구조를 뺀, 그리하여 정치적 의도가 없는 순수한 민생이라는 것은 경제학에서는 허구적 개념이다. 누군가 손해를 보지 않고 누군가 이익을 볼 수가 없는 상태, 흔히 파레토 최적이 선진국 경제의 기본 상태다. 누군가 이익을 보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가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다른 선진국에서 민생이라는 개념을 안 쓰는 것은 이 개념이 신화적이면서 동시에 허구적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이념과 상관없는 경제 주제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저출생 문제, 자살 문제가 그렇다. 지방 공항이나 케이블카 같은 것은 토건주의와 관련되어 있는데, 여야가 따로 없이 다시 토건으로 달려가는 시기, 이마저 민생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럼 뭐가 남나? 구조적 접근 없이 가볍게 처리하고 넘어갈 수 있는 천원의 아침밥정도 남는다. 그것도 시범사업 규모를 넘어 점심과 저녁 문제 그리고 모든 대학 규모로 가면 해법이 어려워진다.

 

주체 문제를 피하고 구조적인 것도 피하고, 그렇게 가볍게 처리할 수 있는 경제 문제는 별로 없다. 오죽하면 경제시스템을 복잡계라고 부르겠는가?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싫다면 생활경제정도로 어깨에 힘 빼고 가볍게 접근해도 좋을 것 같다. 눈에 힘 딱 주고 민생이라고 한다고 구조적 경제 문제가 저절로 풀리는 것은 아니다.

우석훈 경제학자 | 경향 2023.04.24.

 

 

음모론은 어떻게 사라지나

당신은 속고 있다. 당신이 아는 사실은 조작된 것이다. 당신이 몰랐던 그들이 은밀하게 세상사를 조작하고 있다. 흔한 음모론이다.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믿을 수 없다고 부정하고픈 마음은 인간의 본성에 속한 것일지 모른다. 세상사 음모가 끝도 없다지만 당신이 음모론의 피해자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미국 케이블 뉴스 방송사인 폭스는 2020년 미국 대통령선거가 조작됐다는 음모론을 퍼뜨려왔다. 투개표 결과를 조작한 당사자로 지목된 투개표 업체인 도미니언은 폭스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벌인 끝에 거액의 합의금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음모의 당사자로 지목된 불명예를 합의를 통해 해소한 것이다.

 

폭스의 패배 소식을 들은 미국 시민들은 환호와 아쉬움을 동시에 표했다. 환호는 부단히 선거조작론을 퍼뜨려 현 정부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수준을 넘어 미국 민주정에 대한 불신을 일군 음모론자에 대한 처벌이 정당하다는 판단에서 나왔다. 아쉬운 이유는 복잡하다. 음모론자의 궤변과 변명이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공판을 통해 확인하고, 그들에게 징벌적 배상을 명령하는 배심원 판결을 목격할 기회를 놓쳤다는 게 그중 하나다. 판결이 아니라 합의가 이뤄지면서 시민들은 음모론자로부터 어떤 후회나 사과 표명도 들을 기회를 잃었다.

 

실로 정의가 이루어지는 방식이 이와 같다. 악당은 민활하여 거리낌이 없건만 처벌은 느리고 답답하고 타격감도 없다. 불법은 불리하면 즉각 꼬리를 내리고 비굴한 타협을 구하지만 정의는 이겨도 어떤 글로리도 없다는 듯 겸양한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길. 악당이 그렇듯이 정의도 쉬지 않기를 우리는 바랄 뿐이다. 과연 음모론이 그렇듯이 폭로와 고발을 동원한 담론투쟁과 소송도 계속되고 있다.

 

도미니언은 애초에 폭스만 음모의 진원지로 지목했던 게 아니었다. 우파 방송인 원아메리카네트워크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도왔던 루디 줄리아니, 시드니 파월, 마이크 린들 등 정치인들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 소송이 줄줄이 남아있다. 폭스도 도미니언으로부터만 소송을 당했던 게 아니다. 또 다른 미국 대통령선거의 투개표체계 사업자인 스마트매틱도 폭스를 상대로 거액의 명예훼손 소송을 벌이고 있다.

 

민주정이 허약하다는 진단과 상시적 위기에 빠졌다는 개탄이 유행한 지도 이미 오래다. 민주정의 취약함을 개탄하는 자들이 반드시 민주주의자란 법이 없다. 민주정을 돕겠다고 염려한다고 해서 반드시 민주정을 돕는 결과를 낳는다는 법도 없다. 허약한 민주적 절차에 대한 염려가 지나쳐 비민주적 행정명령이나 반인권적 처벌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역설함으로써 민주주의 위기론을 현실로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게 역설 아닌 역설이다.

 

실로 개탄인지, 선동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주장을 내세우며 민주적 권위의 원천인 유권자의 선택을 거부하는 일이 민주적 정당성을 훼손하고 있다. 유권자 명부를 조작하고, 표를 매수하고, 유효표를 내다버리고, 개표결과를 조작한 세력이 있다는 음모론이 대표적이다. 음모론의 가증스러운 진짜 의도는 민주적 규칙과 절차 자체를 의심스러운 것으로 만들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데 있으므로, 이런 음모론에 정색하고 대꾸하는 일 자체가 민주정의 작동을 둔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다. 순박한 무지인지, 간교한 술책인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음모론을 제기하는 그 입을 막을 도리가 없다. 진지한 분노인지, 장사꾼의 계략인지 진정한 의도를 숨기면서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그 몸짓에 대처할 다른 방법이 없다. 강건한 민주정이란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얼토당토않은 음모론에 대응하기 위하여 음모론자들이 문제 삼는 바로 그 민주적 규칙과 절차를 작동해야 한다고 믿는 자들이 다수인 사회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경향 2023.04.24.

 

 

방미 대통령이 꼭 읽어야 할 워싱턴 고별사

바둑에서 먼저 돌을 깔고 두는 걸 접바둑이라 부른다. 알파고와 겨뤘던 이세돌 9단은 석점을 깔면 인공지능 아니라 신과 대국해도 아마 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접바둑은 승패를 가르는 데 절대적이다.

보통 접바둑은 실력이 모자라는 하수(下手)에게 혜택을 주어 호각을 이루기 위한 대국 방식이다. 그런데 반대로 상수(上手)에게 미리 돌을 깔고 바둑을 두게 하면 어찌 될까. 26(현지시각)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이 꼭 그런 접바둑처럼 보이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지난달 열린 한-일 정상회담은 이번 한-미 회담에까지 영향을 끼쳐, 첫수를 이미 바이든에게 내준 거나 마찬가지다. 도쿄 회담에서 우리가 얻은 건 하나 없이 한-일 관계 개선과 이에 기반한 한··일 안보협력만 잔뜩 강조해놓았으니, 미국은 이걸 기준으로 삼아서 정상회담 성과를 내려 할 게 분명하다. 구체적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압박하는 전선에서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할 것이다. 우리 정부의 대응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며칠 전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하고 중국이 가장 민감해하는 대만 문제를 건드린 건 예고편으로 보인다.

 

반대급부로 윤 대통령이 얻을 수 있는 건 북핵 확산 억제를 위한 강력한 한-미 공동 대응일 것이다. 지난 17일 현대·기아차를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한 미 재무부 발표에서 보듯, 세계적 차원의 중국 견제가 본질인 공급망 문제에서 미국이 한국에만 특별한 혜택을 주기란 쉽지 않다. 윤 정부는 한-미 동맹 70주년에 맞춘 미국의 극진한 환대를 부각하려 하겠지만, 국내에선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에게 의전과 행사의 초점이 맞춰지며 논란을 부를 우려가 작지 않다. 가장 중요한 외교 일정인 미국 국빈방문을 앞두고 대통령실의 의전·외교비서관이 줄줄이 날아간 건 그런 징조가 아닐까.

 

한국식 핵 공유와 같은 대북 강경책은 양날의 칼이다. 북한의 거센 반발을 부르며 한반도 긴장을 높일 게 확실하다. 북한 반발이 두려운 게 아니라, 그래서 윤 정부가 얻으려는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는 게 문제다. ··일과 북··러가 격렬히 마주치는 동북아 최전선에 한국이 위태롭게 놓이는 게 윤 정부 외교의 목표인가.

 

미 정보기관의 대통령실 도청 문제를 우리가 먼저 나서 아무것도 아닌 일로 덮어버린 건 두번째 돌을 미국에 내준 거와 다를 게 없다. 미 국방부 유출 문건은 한국 대통령실 내부 동향의 출처를 신호정보’(SIGINT)라고 명확히 적었다. ‘신호정보는 도·감청을 뜻한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감청은 아니다” “악의를 가졌다는 정황은 없다며 오히려 미국을 감싸기에 급급했다. 윤 정부에 자존심까지 기대하진 않더라도, 최소한 미국 압박에 대응할 카드로 이걸 활용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하다. <뉴욕 타임스>미국과 긴밀한 동맹을 열망하는 윤 대통령은 (도청 문제로) 바이든 대통령과 외교적 대립을 하는 데엔 거의 관심이 없다고 평했다. 이게 곧 미국 정부의 시각일 터이다. 그러니 두 수나 접고 두는 정상회담 바둑을 어찌 이길 수 있으랴.

 

워싱턴 정상회담 전에,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고별사를 한번 읽어보길 윤 대통령에게 권한다. 두번의 임기를 마치고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워싱턴은 고별사에서 이렇게 당부했다. “특정 국가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이나 열정적 애착 모두를 배제해야 합니다. 특정국에 대한 반감은 우발적 분쟁이 발생할 때 모욕과 상처를 주기 쉽습니다. 악의와 분노로 자극받은 국가는 때때로 최선의 정책적인 계산과는 다르게 정부를 전쟁으로 몰아갑니다. 마찬가지로 특정국에 대한 열정적인 애착도 여러 문제를 야기합니다. 이런 정서는 실제로는 공동 이익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마치 가상의 공동 이익이 있으리란 환상을 가능하게 합니다. 한 나라의 적개심을 다른 나라에도 불어넣어 그 나라의 분쟁과 전쟁에 동참하게 만듭니다.”

 

이 글은 18세기 말 신생국 미국이 유럽 대륙과 거리를 둬야 한다는 사조가 강한 시절에 쓰였다. 하지만 주변 강대국과 외교의 균형을 잡아야 하는 지금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윤 정부는 신념에 갇혀 현실을 보지 못하는네오콘(신보수주의자) 같다. 북한과 중국·러시아를 손쉽게 적으로 돌리고 미국·일본과 공동 운명체라는 환상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가져올 현실의 어려움은 미국이 베푸는 잠깐 동안의 환대로는 가릴 수 없다.

박찬수 | 대기자 | 한겨레 2023.04.24.

 

 

장제원에서 심상정까지팔 걷은 국회, 전세사기 멈출 수 있을까?

전세사기 보호 및 방지 법안

전세사기라는 개념은 누구나 아실 겁니다. 세입자가 임대인과 전세임대차계약을 체결했는데, 만기에 그 임대차보증금을 임대인으로부터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고 거리로 나앉게 되는 것이지요.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주택의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려는 임차인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집주인과 공인중개사는 전세계약을 체결할 당시에 부동산 등기부를 떼어봤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혹은'선순위 근저당(: 5000만 원)이 있지만, 부동산 가치(: 15000만 원)가 근저당과 임차보증금(: 7000만 원)을 합한 금액을 충분히 넘기 때문에(15000만 원 > 5000만 원 + 7000만 원) 걱정 말고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라'고 합니다. '설령 부동산 값이 10% 빠져도 문제 없다'고 말합니다. 집주인이 '우리 집만 100채가 넘는다'고 자랑도 합니다. 임차인은 집주인의 자금능력과 말을 믿고 계약을 체결합니다.

 

막상계약기간이 끝나서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하는데, 집주인이 보증금을 못 주겠다고 합니다. 갚을 채무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임차인이 당황해서 사정을 알아보니, 이미 이 집에 안분(按分)해 부과된 종합부동산세(종부세) 1500만 원을 모두 체납한 상태고, 경매가 진행될 거라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게다가 부동산가격 하락으로 담보가치는 1억 원으로 내려앉은 상황입니다.

 

이 경우 임차인은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우선 주택임대차보호법시행령에 따라파주에서는 최대2800원이소액임차최우선변제금액으로보장됩니다.나머지7200원 중 1500만 원은국세우선원칙(국세기본법35)에 따라종부세로, 5000만 원은선순위근저당으로 배당됩니다.결국 임차인이 돌려받을수 있는 돈은소액임차최우선변제금액2800원에종부세·선순위 근저당 배당 뒤남은700원을더해3500원입니다.보증금을7000원으로가정했으니절반을날리게셈입니다.

 

이해를 위해 알아두실 것이 세금과 임대차보증금 간우선순위입니다. 국세·지방세는 세금이 발생한 '법정기일'이 임대차 확정일자보다 앞선 경우 임대차보증금보다 우선해 경매에서 배당을 받습니다. 하지만, 경매로 넘어간 임대차목적물에 부과된종부세·상속세·증여세·지방세(통칭 '당해세'라고 표현합니다)는 법정기일과 상관없이 징수기관이 배당받을 수 있지요. 그러하기에, 임대인이 당해세를 체납하고, 도주하면 임차인이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을 길이 막막한 상황이 되는 것이죠. 이런 경우가 지금 부지기수인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소위 '전세사기'의 구조입니다. 경기하강에 따른 부동산 가치의 하락이 있자 건물의담보가치만으로 전월세보증금이 커버되지 못하고 세금,선순위 담보의 실행으로 귀중한 보증금을 잃게 되는 사태이지요.

 

아예 처음부터'실소유자(건축주)-바지사장(명의상 임대인)-공인중개사' 3자가 보증금을 떼먹을 목적으로 작당하고, 바지사장을 내세워 임차인과 계약 체결 후 보증금을 받고 도주한 사례까지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런 사례가 전국에서 속출하고 있습니다. 많은 세입자분이 억울하게 고통을 호소하고 계십니다. 목숨을 끊으신 분도 여럿 있으니 매우 안타깝습니다.

 

전세사기 피해자 백이슬씨가 20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인근에서 열린 전세사기 대책 관련 대통령 면담 요청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떠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종부세와 같은 국가의 조세 채권이 이런 상황에서도 임차인의보증금 채권보다 앞서게 해야할까요?

 

당정도 이 문제를 인식해 지난해 91'전세사기 피해방지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이어같은 달28'주택임대차보호법·세법상의 후속조치'를 발표했습니다.크게 세 가지 방안이었습니다. ① 임대인이국세등을체납한사실을계약단계에서 임차인에게의무적으로제시하게하고(이는 올해 418일 시행되었습니다), 임대인이 변경되어도 기존 임대인이 체납한 세금 한도 내에서만 전세금·임차보증금보다 우선 배당하도록 하고(새 임대인이 임대차 확정일자보다 앞서 체납한 세금이있어도 이것이 전세금·임차보증금에 앞서 배당될 수 없게 한 것이죠) 경매나 공매가 되더라도, 당해세 금액만큼은 국가가 배당받지 않고, 임차인이 주택임대차보증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반영해 올해 47일 국세기본법(박대출 의원안), 330일 주택임대차보호법(정부안, 위원회 대안 처리)이 모두 개정되었습니다. 의원안도 그 취지를 반영한 뒤상당수가 대안반영폐기 처리되었지요.

 

이런 개정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문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세 징수권은정부가 포기하는 것으로 정하였는데, 지방세(재산세) 징수권은 아직 포기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죠. 이에 대해서는 심상정 의원이 지난 1월 지방세 징수권을 포기하는 법안을 발의했었는데요. 부랴부랴 법안이 또 발의되었습니다. 장제원 의원이 비슷한 법안을 418일 발의한 것이죠. 이 법은 조만간 통과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남는 문제가 있습니다. 경매·공매에서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살던주택이 경매·공매로 넘어가게 되었을 때 세입자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요? 대체해서 살 집을 쉽게 구할 수 있을까요?

 

상황이 복잡하기에 해결책도 다양하게 등장합니다.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임차인의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을 전문기관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같은 데서 매입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고 임차권을 행사하자는 안(심상정 의원안)부터 시작해서,임차인이 전세사기주택을 우선 매입할 수 있게 하자는 안, 전세사기주택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매입하고 공공임대로 전환해 임차인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안 등 다양한 안이 제안되고 있습니다. 현 당정은전세사기 주택을공공기관에서 매입하는 안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으나, 사태가 심각하다 보니 기류가 조금씩 변하는 듯 합니다.

 

전세사기 문제의 배경에 놓인가장 큰원인은 급격한 부동산가격의 상승과 하락에서 비롯한 주택시장의 불안정입니다. 언제까지 돈 없는 서민들이 높은 전세금을 주고(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리스크는 전세금액이 높을수록 커집니다)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게끔 만들어야 할까요? 임대인 우위의 정보 비대칭(2023년까지도 임차인은 임대인의 납세 내역 및 변제능력을 제대로 알 수가 없었습니다. 임대물건의 정보가 제대로 공시되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게다가 전세보증금반환채권보증보험도 임차인이 스스로 그 보증 비용을 부담해야 하지 않습니까?) 리스크 높은 수백 채의 주택 매입 행위에 대한 행정제재 방치, 주택가격의 지속 상승을 전제로 유지되어 온 전세시장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번 전세사기 사태를 계기로 주택시장의 공공성을 높이고, 임차인 보호 제도를 구축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가뜩이나 주택가격의 상승으로 고통을 겪는 중산층과 서민들이 더 상처받지 않도록, 여야정이 머리를 맞대고 보다 촘촘하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여야 간에 전세사기의 책임을 놓고 다투는 정치공세는 매우 보기 안쓰럽습니다.

박지웅 변호사 | 프레시안 2023.04.24.

 

기후위기 극복 과정에서 노동자의 고통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

기후위기와 정의로운 전환 노동자들의 가치가 보장받는 통합적인 접근

지난 420일 저녁 상상마당 홍대 시네마에서 녹색연합이 기획 제작한 환경 다큐멘터리 영화 석탄의 일생상영회가 있었다. 석탄은 과거엔 난방용 연료로 그리고 현재까지도 전기를 생산하기 위한 연료로 사용되고 있다. 이 영화는 석탄의 채굴과 운송, 석탄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과정, 그리고 각 과정에서 기후위기 및 환경파괴와 관련하여 노동자와 주민들이 당하는 피해와 고통 등을 다른 부분까지 총 4부로 구성되었다. 상영시간은 45분이었다.

 

이 영화는 기후위기 대처의 긴급성에 대해 충격을 주는 방식으로 다루지 않았다. 충격을 주는 방식보다는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태도에 대해 도전하는 방식을 택한 것 같았다. 사실 기후위기 문제의 긴급성엔 이미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 중 ‘4부 외부화부분이 주는 관점이 마음에 남는다.

외부화란 외부로 떠넘긴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매우 이기적으로 우리의 풍요로운 삶과 이익을 위해서 환경과 지역, 그리고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노동자들에게 환경 파괴에 대한 피해를 떠넘기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 삶의 윤택함을 위해 석탄을 채굴하는 광부들은 진폐증과 같은 직업병, 생명의 위협을 받는 작업환경과 같은 문제에 노출되었다. 그리고 그 책임은 광부들이 떠안았다. 광산지역의 환경문제는 어떤가?

 

또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전력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안전문제에 노출되어 있다. 기업은 전기를 값싸게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를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그뿐일까? 생산된 전력 대부분은 대도시와 기업에서 소비하는데 전력생산 과정서 일어나는 환경 파괴는 발전소가 세워진 그 지역의 주민들이 고스란히 떠안는다. ‘외부화라는 관점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불평등한 구조를 형성해왔는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생각 없이 이기적으로 사는지를 성찰하게 한다.

 

생태 문제는 관계의 문제이다. 관계는 서로의 경계가 존중될 때 깊어지고 발전한다. 경계를 무시한다는 것은 타인을 내가 원하는 대로 강요하고 조정하는 것이다. 이럴 때 관계는 깨진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인 나는 세상 모든 피조물, 심지어 하찮아 보이는 피조물도 하느님께서 만들어 놓은 창조질서를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이는 하느님과의 수직적인 관계이다. 이런 관계를 사는 사람은 당연히 수평적으로 나의 이웃과 다른 피조물의 경계를 존중하며 산다. 이런 관계가 바로 생태적 관계이다. 그러나 하느님과의 관계가 어긋나면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도 어긋나게 된다. 마찬가지로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가 어긋나면 하느님과의 관계도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이익과 편리함이 자연이든 사람이든 누군가에게 희생을 강요한다면 이는 경계를 존중하는 태도가 아닌 폭력이고 하느님과의 관계도 깨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기후위기는 우리에게 비폭력이라는 삶의 근본적인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이 영화는 석탄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어 실직에 내몰린 광부들의 아픈 경험을 이야기하고, 기후위기를 이유로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할 경우 수많은 실직자가 발생하고 그 가족들이 겪어야 할 생계의 위협과 고통을 예상한다. 그러므로 그들을 위한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하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한때 국가는 석탄 노동자에게 산업 역군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주며 쉴틈없이 광산 갱도에 투입했다. 그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후엔, 석탄의 수익성을 이유로 갑작스럽게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을 발표하여 석탄 노동자들을 실직자로 만들었다. 이런 정부 발표로 노동자들의 미래는 불확실해졌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가치를 철저히 이익의 관점에서 평가한다. 우리 사회는 자원의 수익성에 따라 그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가치도 달리 본다. 예전엔 산업 역군이라고 치켜 올리다가, 하루아침엔 애물단지 취급하는 매우 위계적인 사회이다. 산업전사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한 석탄 노동자들이 느꼈을 당혹감 혹은 자괴감은 어느 정도였을까? 그리고 자본주의의 이런 모습은 그 자체로 얼마나 큰 폭력인가?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전기를 소비하도록 유혹한다. 그리고 그 수요에 맞춰 값싸게 전기를 공급한다. 이 상황에서 석탄화력발전 노동자들이 자신이 일하는 현장이 기후위기의 주범이라고 한다면, 그들도 석탄노동자처럼 당혹감과 자괴감을 느낄 것이다. 게다가 석탄화력발전소 전력 생산 현장에 투입된 이들은 저임금을 받으며 산업재해의 위험에 노출된 상태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이런 처우를 받는 와중에 기후위기의 주범인 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받는다면, 그들이 설 자리는 어디에 있을까? 단지 기후위기를 외치는 것만이 정의로운가?

 

기후위기의 주범이라는 이유로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할 경우 엄청난 수의 실직자가 발생 된다. 문제는 예상되는 실직자들에게 어떻게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할 것인가다. 노동자들의 삶을 위해 그리고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여기에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관점이 들어간다. 우리 사회는 자본의 이익을 위해 어떠한 해결책도 없이 석탄화력발전소의 폐쇄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미 정리해고로 노동자들의 삶이 짓밟히는 모습을 여러 차례 봐 왔다. 이런 결정은 비인간적이며 일방적이다. 그래서 매우 폭력적이다.

 

생태문제는 관계의 문제라고 했다. 관계는 경계가 존중될 때 발전한다.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 바로 정의이다. 그러므로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노동자들의 삶을 희생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의 삶도 보장하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가치를 존중하고 그들과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야 하고 우리 사회와 사회 구성원 각자가 무엇을 희생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자는 또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외부화의 대상이 되고 말 것이다.

김정대 예수회 신부 민중의소리 2023-04-24

 

 

돌봄의 준시장화는 국가 의제가 아니다

윤석열 정부의 준시장화,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사회서비스라는 말이 있다. 사회보장기본법 제3조 제4호는 사회서비스를 "국가·지방자치단체 및 민간부문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 국민에게 복지, 보건의료, 교육, 고용, 주거, 문화, 환경 등의 분야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고 상담, 재활, 돌봄, 정보의 제공, 관련 시설의 이용, 역량 개발, 사회참여 지원 등을 통하여 국민의 삶의 질이 향상되도록 지원하는 제도"라고 한다. 이를 근거로 사회서비스 이용 및 이용권 관리에 관한 법률(사회서비스이용권법)은 사회복지사업법상의 사회복지서비스와 보건의료기본법에 따른 보건의료서비스를 사회서비스로 정의하고 있다. 한편 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는 이를 "일반적 의미에서 개인 또는 사회전체의 복지증진 및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사회적으로 제공되는 서비스로서 공공행정, 사회복지, 보건의료, 교육, 문화를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돌봄이라는 용어는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 점점 더 많이 사용되어 오고는 있음에도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의되지 않았다. 때문에 개념이나 범위가 어떠한지 알기도 쉽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1월 보건복지부로부터 새해 업무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돌봄의 준시장화에 따른 경쟁시스템을 언급하였다. 여기에 사회서비스의 산업화, 돌봄 과학화와 테크놀로지 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는 왜 돌봄 준시장화를 말하는가

언급한 바와 같이 돌봄이 무엇인지는 정해진 바가 없으며, 사회서비스도 역시 명확하게 무엇이다 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다만 사회서비스이용권법을 근거로 하면 사회복지서비스와 보건의료서비스가 사회서비스다. 그렇다면 이 법에 따른 사회서비스와 돌봄을 구분하기 쉽지 않다(이하에서는 양자를 혼용하여 사용하고자 한다).

 

한편 준시장 또는 유사시장(quasi-market)은 미국의 경제학자 윌리엄슨(Williamson)에 의해 처음 사용된 용어다. 그는 공공행정이나 재정에 있어서는 기존의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자유시장에서와 같은 효율성을 얻을 수 있도록 설계된 공공부문의 제도적 구조로서 정책결정자에 의해 생성되는 자유방임형의 교환형태를 준시장이라고 했다. 준시장은 행정 등과 같은 공공부문에서 자유시장에서와 같은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국가의 정책결정자에 의해 설계된 제도라는 특징을 가진다. 이는 공법학에서 말하는 사화(私化)이론과 유사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한국의 돌봄구조는 어떤가. 사실 국민기초생활제도나 기초연금 등 공공부조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가 준시장시스템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먼저 공급주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민간에 의해 서비스가 제공된다. 이때의 민간에는 사회복지법인 등 비영리법인도 포함된다. 독일이나 일본이 사회복지법인 등을 공공으로 취급하는 것과는 다르다. 때문에 공공주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낮다. 다만 이용자의 선택지 보장에 따른 서비스 질 강화는 장기요양보험제도 도입 시 정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 중 하나다. 많은 민간기관이 들어서면서 선택권 강화에 따른 공급자간 경쟁이라는 면에서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용방식과 재원에서도 준시장시스템이 적용된다. 조치방식을 제외한 대부분, 즉 장기요양, 어린이집,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병원 등 많은 서비스가 이용자의 의사에 따라 기관을 선택하고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 재원은 주로 세금이나 사회보험료로 충당한다. 현금방식인지 바우처(Voucher)방식인지에서 차이는 있지만 이용자 본인이 일정액의 비용을 부담한다는 점에서 같다. 나아가 조치방식이든 현금방식이든 바우처방식이든 역시 제공주체 대부분은 민간이다. 조치방식이라고 해서 경쟁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이미 대부분의 돌봄영역이 준시장화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돌봄 준시장화 지시는 사회서비스원의 기능이나 역할축소 돌봄에 대한 정부예산억제 기업 등의 진출을 위한 진입장벽 완화 다른 사회서비스에의 확대·적용 등을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복지부는 금번 업무보고에서 우선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상 중산층과 취약노인을 대상으로 유료서비스를 시행하겠다고 한다. 현재 노인맞춤돌봄서비스는 조치방식에 따른 무료서비스다. 주로 사회복지법인과 같은 비영리법인이 수탁을 받아 권역별로 운영하고 있는 비경쟁시스템이다. 그런데 여기에 기업 등이 참여하도록 하고, 경쟁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재원만 다를 뿐 장기요양과 전혀 다를 바 없게 된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돌봄정책과는 확연히 다른 것으로 생각된다. 이때는 준시장화보다는 공공성, 나아가 공공화가 중요한 의제였다. 그 결과로 등장한 것이 사회서비스원이다. 준시장화를 무조건적으로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동안의 결과로 볼 때 돌봄의 민간공급이 서비스 질을 높여줬는지는 의문이다. 돌봄에서의 경쟁시스템과 서비스 질이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불분명하다는 얘기다. 일본의 경우 콤슨(COMSN) 사건을 겪으면서 오히려 민간공급을 제한하고 정부·지방자치단체나 사회복지법인과 같이 경제적 상황이나 이익 등에 좌우되지 않는 공공주체가 서비스제공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콤슨 사건은 COMSN, Inc 사가 20002월부터 5월까지 50억 엔의 광고선전비를 사용하고, 같은 해 전국에 1208개의 사업소를 확대 설치하였지만 결국 6월 사업소를 약 40퍼센트(%) 줄인 731개소로 조정하고 4400명의 직원 중 약 1400명이 퇴직한 사건이다. 콤슨사는 200710월 지원금 횡령 등 비리사건으로 48년 만에 폐쇄명령을 받고 문을 닫았다. 이 과정에서 '개호난민'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공급주체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참여하게 하고 경쟁시스템도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하기 위해서는 적정한 이윤이 보장되어야 한다. 개인이 진입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복지를 돈을 쓰는 문제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복지재정 확대 고민은 없어 보인다. 저예산 저복지의 대표적인 국가가 우리나라다. 장기요양만 하더라도 도시든 농촌이든 인력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높은 노동강도에도 불구하고 턱없이 낮은 임금이 주요한 요인이다. 법으로 인건비 지급비율을 정해놓고 있는데도 그렇다. 때문에 기업 유인효과도 크지 않아 보인다.

 

과학화와 테크놀로지는 준시장화의 문제가 아니다

윤 대통령은 "돌봄이 과학화되고 많은 테크놀로지가 들어가면 사회서비스가 고도화된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과학화나 테크놀로지가 준시장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사회서비스는 제도다. 제도는 국가에 의해 설계되고 시행된다. 이는 비록 민간이 공급주체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공공성을 갖는다는 의미다. 즉 이용자가 누구인지, 누가 어떤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할지, 비용은 얼마인지, 공급주체의 진입·규제·퇴출 등과 관련된 시스템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모두 법으로 결정한다는 얘기다. 때문에 돌봄기술 적용의 최종적 판단과 책임은 정부에 있다. 보편적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누구라도 돌봄이나 사회서비스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돌봄에 경쟁 체제를 도입하자는 대통령의 생각은 마치 소득이 충분한 사람만이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으로 오해할 여지도 있다.

 

나아가 돌봄 과학화가 현재 상황에서 적절한지도 의문이다. 언급한 바와 같이 제도적 복지의 핵심은 보편성이다. 따라서 과학화 이전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표준화이며, 그 필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표준화를 통해 서비스의 질을 일정 수준 담보하는 것이 고도화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표준화가 되었다는 말은 과학화가 함께 이루어졌다는 의미를 지닌다. 여기에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접목하여 누구에게라도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어야 한다.

 

복지국가원리를 생각하며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고 선언하고, 이에 따른 의무를 국가에게 부여하고 있다. 이것이 국민의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는 복지국가원리의 핵심이다. 이때의 기본권에는 이용자가 국가·지방자치단체에 적절한 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 이용자가 자신이 선택한 서비스 제공기관으로부터 서비스를 받을 권리, 일정 소득수준 이하의 이용자나 그 부양의무자가 비용납부의무를 지지 않을 권리 및 서비스 보장의 권리와 이용자가 자유롭게 복지서비스의 해지 내지 해제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 등을 포함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돌봄이나 사회서비스는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분야가 아니다.

 

사회서비스는 공공성을 바탕으로 한다. 국가는 국민의 권리실현을 위한 공적 책임을 가지고 있다. 사회서비스의 조화로운 실현을 위한 구체적 방법은 준시장인지 아닌지라는 성격과 관계없이 공공의 목적 달성을 위한 요소로서 기능하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어떤 형태의 기관이 사회복지서비스의 공급주체로서 이 시장에 진입할 지 여부는 각자의 의지나 입장에 따른 문제에 지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의제는 준시장화나 여타의 것이 아니라 이용자의 보호 및 권리보장을 위해 어떠한 역할을 수행할지, 적정한 재정 확보를 통해 이용자와 공급자간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 규제메커니즘을 어떻게 설정함으로써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을 확립할 것인지 등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많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장봉석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이사 | 프레시안 2023.04.24.

 

 

석열아, 더 많이 들어라품성에 호소?

석열아, 먼저 손 내밀고 더 많이 들어라.” 월간 신동아가 기사와 표지에 붙인 흥미로운 표제다. “서울법대 79학번 동기들이 바라본 대통령 윤석열’ 1부제를 달았다. 그 아래 표제도 눈에 띈다. “품성으론 최고의 대통령감이다.

 

안보는 경제와 이어진다. 이미 중국으로 수출이 급감해 경제가 휘청대고 있다. 러시아로 수출까지 크게 줄 때 대체 경제는, 더구나 민생은 어찌 되겠는가. “과거 수많은 대통령이 노동 분야는 건드리지도 못했는데, 시작한 것만으로도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이어진다. 고시에 몰입한 서울법대생들의 한계, 그들이 편입된 이 나라 기득권층의 사고가 뚝뚝 묻어난다.

 

잘못된 방향을 옳다하며 문제는 디테일이라 부르댄 내용도 가관이다. 더러는 홍보 미흡을, 더러는 커뮤니케이션 조직 문제를 지적한다. 동기들은 입을 모아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오해라고 말했다. 앞으로 나아지리라는 근거로 꼽는 품성은 생게망게하다. 어느 기관장이라는 동기는 윤석열이 고시생이라 벌이가 없을 때 모은 용돈으로 결혼을 축하한다며 호텔에서 밥을 샀단다. 용돈을 모아 호텔에서 밥 살 조건을 갖춘 청년이 얼마나 될까.

 

윤석열의 거친 모습공의에서 비롯됐다는 말도 나온다. “권력·재산 등 세속적 욕구에 관심 없는 사람이란다. “인간성만 놓고 보면 누구보다 잘할 사람이란다. 심지어 원래 불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란다. 전두환의 품성을 찬양한 언론들이 겹친다. 오월의 민중들을 학살한 전두환이 군림한 1980년대에 민주화 시위를 벌인 청년들에게 고시생은 낯설었다. 물론 개개인의 사정이나 나름대로 세운 뜻도 있을 테니 획일적 평가는 옳지 않을 성싶다. 다만 그들이 내놓고 공의를 들먹인다면 너무 남우세스럽지 않을까. “원래 불의와 거리가 먼 사람80년대 내내 고시만 파고들 수 있을까. 딱히 그의 사랑에 말곁 놓고 싶지 않지만, 수백억대 부잣집 외동딸과의 결혼은 세속적 욕구에 관심 없다는 평가와 잘 어울릴까.

 

신동아 20235월호

포탈 뉴스에 뜬 표제를 보고 기사를 읽었다. 고언을 했으리라는 작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순진한 착각이었다. 변호사와 현직 법관인 동기들은 윤석열의 1년에 방향성은 맞지만 디테일이 아쉽다며 한미동맹 공고화를 통한 국가안보 정상화를 높이 평가했다. 서울법대 동기들이 모두 그리 생각하지는 않으리라 믿고 싶지만 기사화 된 발언은 일치한다.

 

기막히다. 미국 정보기관으로부터 도청을 당하고도 항의는커녕 백악관보다 먼저 해명에 나서는 윤석열 정권의 비굴한 모습이 한미동맹 공고화란 말인가. 지난 1년 윤석열이 벌여온 외교는 한미동맹 공고화가 아니라 예속화다. 지난 정부에서 마치 국가안보가 비정상이었다는 듯이 기정사실화하는 주장도 억지다. 오히려 미국과 일본에 굴욕외교를 벌이고 중국과 러시아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대통령이 거침없이 공언해 국가안보가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굳이 따따부따하는 까닭은 친구들의 고언이 쓴소리가 아니라 자신의 품성을 착각하는 달콤한 소리가 될 수 있어서다. 그의 오만을 풍선처럼 부풀려줄 가능성도 짙다. “지지율에 일희일비말라거나 현재 설정한 국가 어젠다들이 좋으니 국민을 더 잘 설득해서 밀고나가라는 말은 국민을 설득 대상인 어리보기로 여기는 발상이다.

 

문제는 홍보나 커뮤니케이션 조직이 아니다. 윤석열의 편협한 사고와 국정 방향이다. 대학 시절부터 소신 꺾는 것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증언은 우려를 더한다. 국정방향 또는 소신이 얼마나 얄팍한 지식을 기반으로 설정되었는지 자기 성찰이 가장 중요한 시점이기에 더 그렇다. 동기들 권고보다 경청할 말은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민중의 언어다. 민심을 거스르는 언행은 소신이 아니다. 민심 앞에 지는 것이 대통령 덕목이자 의무다. 후보시절 약속한 머슴의 자세다. 동기들 당부를 곱새기길 권하며 그대로 옮긴다. “석열아, 먼저 손 내밀고 더 많이 들어라.”

손석춘 칼럼니스트철학자 미디어오늘 2023.04.24

 

 

'일본 무릎' 발언엔 "주어가 없다"?전국민 영어번역 평가 하나?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대통령의 인식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무릎' 발언에 대해 일부 언론이 번역을 잘못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번역을 잘못한 언론이 어떤 언론이고, 어떤 기사인지 특정하지는 않았다.'전국민영어번역평가'시작됐다.

 

24일 윤 대통령의 <워싱턴포스트> 인터뷰 내용이 전해지자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다음과 같은 논평을 냈다.

 

"오늘 일부 언론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 내용에 대해 '100년 전 역사 때문에 일본 용서 구해야 한다는 인식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이 공개한 한국어 인터뷰를 보면 윤석열 대통령은 유럽의 미래지향적 협력을 강조하며, 주어를 생략한 채 해당 문장을 사용했다. 그리고 해당 문장은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것은 (일본이) 받아들일 수 없다'로 해석해야 한다. 바로 뒤에 '이는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이것이 상식적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어느 나라 대통령이냐'며 또다시 핏대를 세웠다. 심지어는 '일본을 대변하냐', '무슨 권한으로 일본의 침탈과 식민지배에 면죄부를 주냐'는 등 황당한 비약을 통해 질 나쁜 선동까지 이어갔다. 소속 의원들이 가짜뉴스를 만들어 검찰에 송치된 지 채 반나절도 되지 않아 또다시 대통령 발언의 진상을 확인하지 않고 선전선동에 앞장섰다."

 

그런데<프레시안>을 비롯해 <연합뉴스> 등 거의 모든 언론은 윤 대통령의 해당 인터뷰 발언에 대해 정확한 번역을 제공하고 있다.

 

유 수석대변인이 인용한 "100년 전 역사 때문에 일본 용서 구해야 한다는 인식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문장은 '일본' 뒤에 한국어 '' 조사가 빠져 마치 일본의 용서를 구한다는 것처럼 해석된다. 그러나 이렇게 번역한 언론이 어떤 언론인지 유 수석대변인은 말하지 않았다.이런식의번역을언론사가있는지,검색창에문장을집어넣어도나오지않았다.어떤커뮤니티에서누군가왜곡했는지여부는없지만,수석대변인은분명'일부언론'이라고했다.

 

, 각설하고, 유 수석대변인이 '주어가 없다'는 고 말한 것은 대통령실이 공개한 한국어 원문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유럽에서는 참혹한 전쟁을 겪고도 미래를 위해 전쟁 당사국들이 협력하고 있습니다. 100년 전의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는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설득에 있어서는 저는 충분히 했다고 봅니다"(대통령실이 밝힌 윤 대통령 발언)

 

"100년 전의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는 문장에 '일본이' 주어로 생략돼 있어 '일본이 무엇인가를 받아들일 수 없다'로 해석하는 게 맞다는 것이수석대변인의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워싱턴포스트> 영문 기사에서 인용된 발언과 다르다. <워싱턴포스트>가 인용한 윤 대통령의 인터뷰 발언에는 'I' 즉 주어가 있고 그 주어는 윤 대통령이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체는 윤 대통령이다.

 

<워싱턴포스트>가 윤 대통령 '단독 인터뷰'를 통해 전한 영어 원문은 다음과 같다.

"Europe has experienced several wars for the past 100 years and despite that, warring countries have found ways to cooperate for the future," he said. "I can’t accept the notion that because of what happened 100 years ago, something is absolutely impossible [to do] and that they [Japanese] must kneel [for forgiveness] because of our history 100 years ago. And this is an issue that requires decision. In terms of persuasion, I believe I did my best."

 

성문종합영어를참고하면 윤 대통령은 "I can’t accept the notion", "나는 그러한 관념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러한 관념이 어떠한 관념인지는 동격접속사 'that' 이하 절이 말해 준다. 'that' 이하 절은 접속사 'and'를 사이에 두고 두 가지가 동시에 나열됐다. '어떤 관념'이냐? 첫째는 "100년 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 무엇인가(를 하기에)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100년 전 우리의 역사 때문에 그들(일본인들)(용서를 구하기 위해) 반드시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개의 'notion', 즉 관념을 '', 즉 윤석열 대통령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유 수석대변인의 논평으로 돌아가보자.

"해당 문장은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것은 (일본이) 받아들일 수 없다'로 해석해야 한다"

 

뭔가 이상하다. 일본이 무릎꿇어야 한다는 것을 윤석열 대통령이 받아들일 수 없다로 해석하는 게 정확하다.

 

만약 유 수석대변인의 말대로 '대통령실이 공개한 한국어 인터뷰'가 정확하다면, <워싱턴포스트>가 오보를 낸 것이다. 그런데 유 수석대변인과 대통령실은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 나온 윤 대통령의 '주어가 생략되지 않은 발언'은 지적하지 않는다.

 

한국 언론 탓을 한다? 한국 대통령이 '미국 언론''단독 인터뷰'를 했으니 한국 언론은 그 발언을 들을 기회조차 없었다. 그러니 한국 언론은 <워싱턴포스트>에 소개된 윤 대통령의 '영어로 번역된 발언'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는 '2중 번역'의 한계에 갇히게 될 수밖에 없다.

 

사실 유 수석대변인의 말이나, 대통령실이 공개한 한국어 발언 내용이나, <워싱턴포스트>가 전한 윤 대통령의 '영문 워딩'이나 뜻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100년 전 일어난 일을 두고 '일본에 용서를 구하기 위해 무릎 꿇으라고 하는 것'(that 절 이하)을 본인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는 건 변함 없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대통령의 인식'이다.

전 국민이 성문종합영어를 다시 꺼내 읽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바이든-날리면' 사태에서 '듣기 평가'가 유행하더니,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시사'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는 발끈한 러시아에 "정확히 읽어보라"'읽기 평가' 문제를 냈다. 그리고 이번엔 중고등학교 영어 해석 교실이다.

 

유 수석대변인은 왜 어디인지도 모를 '일부 언론'을 언급하며 "소속 의원들이 가짜뉴스를 만들어 검찰에 송치된 지 채 반나절도 되지 않아 또다시 대통령 발언의 진상을 확인하지 않고 선전선동에 앞장섰다"고 주장하고 야당을 비판하는 것일까?

 

유 수석대변인 말대로 일부 언론이 '가짜뉴스'를 만들었다고 하면 대다수의 언론이 '진짜뉴스'를 보도해도 '어딘가에 가짜뉴스가 섞여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진짜뉴스를 오염시키는 방법은 '우물에 독(가짜뉴스)을 탔다'는 유언비어처럼 좋은 게 없다. 이런 의도가 아니길 바란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방미 일정 중에 미국 하버드대에서 연설을 한다. "윤 대통령은 국정 철학 중 하나인 '자유'를 키워드로 가짜 뉴스와 거짓 선동이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고, 국제사회의 연대와 법치의 실현을 통해 맞설 것을 역설할 것으로 알려졌다."(뉴스1421일자)

 

'가짜뉴스와거짓선동''가짜영어번역'넣어주길바란다.

박세열 기자 | 프레시안 2023.04.25.

 

 

윤석열의 1, 막 던지다 길 잃었다

정권 심판 대 거야 심판.’ 지난 10일자 조간신문 1면에 꽤 많이 등장한 제목이다. 내년 4·10 총선의 여야 맞구호이고, 오늘의 국회를 압축한 여덟 글자다. 때마침, 21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같이 32%를 찍었다. 한 주 전 36%로 솟은 민주당이 다시 빠졌다. 여권이 외교·막말로 죽 쑤는 중에 거야엔 돈봉투 불씨가 지펴졌다. 여론의 진폭은 수도권·중도층에서 크다. 윤석열 대통령 국정지지율도 한 달째 27~31%에 갇혀 있는 여권에는 빨간불, 1야당엔 노란불이 켜진 걸 게다. 시소 타는 민심은 어느 쪽에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올해 첫날, 대통령은 세 화두를 던졌다. 노동·연금·교육이다. 전국선거도 없는 해, ‘3대 개혁으로 국정을 굴리겠다는 신년사였다. 그로부터는 용두사미다. 노동개혁은 주 69시간제 돌부리에 걸렸다. 대통령이 각별히 챙긴 MZ노조까지 과로사회 개악안이라 맞서자 추동력이 뚝 끊겼다. 연금개혁은 민간자문위가 보험료율·소득대체율 이견만 적시한 맹탕 보고서를 내고 표류 중이다. 회심의 교육개혁 카드라던 교육전문대학원은 발표 넉 달 만에 접었다. 세 개혁뿐인가. 부자감세하다 나라 곳간이 비고, 수출은 7개월째 뒷걸음치니, 환율이 춤춘다. 대통령은 일본에 과거사 사과를 강요 말자고 또 염장 지르고, 대통령실은 미국 도청 문건에 위조·악의가 없다고 지레 굽신거린다. ·러와 갈라선 격랑은 보는 대로다. 내우(內憂)가 깊을지, 외환(外患)이 클지 막상막하일 정부다.

 

여당도 참 오래 헤맨다. 윤심이 세운 대표는 윤바라기로 살고, 사고뭉치 최고위는 바람 잘 날이 없다. 4·35·18을 폄훼한 김재원, 김구 선생을 저격한 태영호, ‘밥 한 공기 다 먹자한 조수진은 역풍을 맞고, 강원·충북지사의 산불 속 골프·음주는 뭇매를 맞았다. ‘가뭄에 물 보내자한 민생특위는 봄비 내린 후 개점휴업해왔다. 3대 개혁은 늦춰지고, 쌍둥이(재정·무역) 적자는 커지고, 외교는 억장 무너진 1. ··대는 설익고 고집하고 오판한 것까지 막 던지다 길을 잃었다.

 

국무회의 풍경은 여럿이다. 문재인 정부에선 회의 후 대통령을 뒤따라가 요긴한 말을 전한 꼬리밟기가 있었다. 저마다 뭔가 끄적거린 박근혜 정부에선 적자생존이라 했고, 지금은 듣자생존이란 말이 돈다. 1시간 회의서 혼자 59분 말했다는 대통령에게 손들고 직언할 이가 있을까. 관가에선 대통령실 보고를 늦추려 한다는 말도 들린다. 지지율이 추락한 용산 심기가 좋을 리 없고, 그 땜에 정책이 뒤틀릴까봐서다. 여당 눈치보다 전기요금 결정이 함흥차사 된 걸 지켜본 여파일 테다. 정치에서의 하루하루는 관행이 된다. 뒤통수 맞은 어음 몇개 받고 끝낸 일제 강제동원 협상을 대통령은 결단이라 했다. 독단이다. 눈엣가시 정치인을 다 내쳐 여당의 이견과 역동성을 누른 것도 그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 집권당 1호 당원을 자처한 다변 대통령이 책임질 몫만 시나브로 부풀고 있다.

 

여야는 지금 웃는다. 서로를 믿는다고. 총선엔 경제와 민생, 윤석열표 3대 개혁, 한반도 평화와 4강 외교, 검찰국가가 다 오를 것이다. 그즈음 대통령 지지율은 몇%일까. 이재명은 어느 위치에서 총선을 뛸까. 3지대는 존재감이 있을까. 그 승부의 추는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와 돈봉투 수사, 국회 패스트트랙을 타면 연말연시 가동될 ‘50억 클럽·김건희 여사 쌍특검에서 먼저 분기점을 맞는다. 여야는 부산 EXPO 유치, 민생 추경, 현역 의원 공천율, 강성 팬덤, 윤석열 정부 1년 통계도 주목할 게다. 서로를 악마화하면, 총선도 차악·차차악 경쟁이 될 수 있다. 하나, 야당 비판은 집권당 득점이 되지 않는다. 야당도 반사이익만으론 이길 수 없다. 분열하는 쪽이 지고, 혁신·감동이 있는 쪽이 이긴다. 그 키를 여권의 윤석열, 야권의 이재명이 먼저 움켜쥐었다.

 

검사가 가장 못하는 게 뭘까요?” 검찰 고위직 출신 모 변호사는 이렇게 묻고, “경청이라 했다. 쪽지 보고만 익숙한 26년 검사의 DNA가 대통령 몸에 뱄을 거라고 봤다. 어찌보면 그도 예외다. 요 근래 저잣거리 밥상에선 대통령 얘길 하는 이를 만나기 힘들다. 박한 지지율에서 보듯 논외(論外)가 됐다는 뜻이다. 그 민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부자·보수 편먹고, 대통령이 외치는 자유는 때로 공허하다. 올해 395개 상품·서비스 가격이 올랐고, 실질소득은 줄고, 금융기관 대출이 힘든 자영업자가 173만명에 달한다. 1년 전도 지금도 세상의 갈증은 민생이다. 민주주의 위기는 자유가 아닌 삶의 위기에서 시작된다.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 경향 2023.04.26.

 

일본은 해양법 법정에 서야 한다

저장 탱크는 97%가 찼다. 133t이나 되는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는 계속 차오른다. 후쿠시마 제1원전은 12년 전에 멈추었다. 그러나 원전 주위와 아래를 흐르는 지하수는 끊임없이 방사능 오염수가 된다. 도시바 원전 설계자였던 고토 마사시 박사가 지난 21, 서울 강연에서 강조하였듯이, 일본 정부는 탱크에 가득 찬 오염수를 바다에 버릴 궁리만 할 뿐, 미래에 끝없이 새로 늘어날 오염수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마찬가지다. 이 기구가 가장 최근에 낸 지난해 11월의 4차 보고서의 그 어느 페이지에도 계속 늘어날 오염수에 대한 구체적 문제 제기는 없다. 이 기구는 본디 원자력 이용을 뒷받침할 목적으로 설립됐다. 이 기구가 하는 오염수 평가 재검토라는 것은 202178일에 일본 정부와 체결한 협력 약정에 따른 것이다. 유엔해양법 협약의 권위 있는 공식절차가 아니다. 게다가 이 약정을 보면, ‘어떻게 일본을 지원할 것인가를 범위로 한다고 명확하게 밝혔다. 더욱이 재검토 기준은 바로 국제원자력 기구 자신이 만든 것이다. 이 정도면 국제원자력기구의 재검토라는 것이 얼마나 원자력 산업과 일본에 치우쳐 있는지 알 수 있다.

 

국제원자력기구에 한국 국민의 염려를 모두 맡겨도 되는가? 바다를 지키는 헌법인 유엔해양법협약 국가로서의 국제법적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태평양도서국가포럼(PIF) 소속 18개 나라들이 그러하듯이, 일본에 이웃 나라에 해를 끼칠 어떠한 행동도 해서는 안 되고, 국제법적 의무를 다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일본 오염수 문제에 대해 포괄적이고 독자적인 방사능 영향평가를 진행해야 한다. 환경과 에너지 분야 전문가들로 영향평가팀을 만들어 자료를 확보하고, 의견의 근거를 다져야 하며 그 내용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이 글에서 비로소 처음 밝히는 사실이지만 한국은 20214월부터 올해 2월까지 다섯 차례, 일본에 오염수 자료를 요청했다. ‘안전성 검증 체계’ ‘측정 평가핵종 재선정 판단 근거등을 질의했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일본은 한국에 어떤 내용의 자료를 보냈을까? 한국 정부의 분석 결과는 어떻게 나왔나? 아무도 알 수 없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도 꽁꽁 비밀로 묶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이 오기 전, 국제원자력기구는 오염수 방출에 문제가 없다는 최종보고서를 낼 것이다. 일본은 지금 그 보고서가 나올 날짜만 세고 있다. 그리고 오염수를 태평양에 버릴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의 보고서는 확실한가? 보고서는 방사능 노출 기준치 이하의 저선량은 안전하다는 전제를 하고 있다. 그러나 기준치 아래의 저선량은 위험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더욱이 국제원칙인 편익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일본의 오염수 투기에는 방사능 위험성을 능가할 편익이 없다.

 

일본은 탱크를 더 건설해 오염수를 계속 보관할 수 있는 기술과 돈이 있다. 국제사회를 위해 사고 원전의 통제와 안전 확보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12년이 지난 지금도, 녹아버린 핵연료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일본의 원자력규제위원회에 1호기 격납고 바닥에 구멍이 났을 가능성이 보고된 것이 이번주의 상황이다. 이처럼 오염원 자체에 대한 안전통제 확보가 급선무이다. 오염원 상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지금은 오염수를 바다에 버릴 때가 아니다. 1993년 당시 러시아가 900t의 핵폐기물을 일본 근해에 버린다고 분노했던 자신을 기억할 때이다.

 

만일 끝내 일본이 오염수를 투기한다면, 일본이 설 곳은 국제해양법재판소 법정이 될 것이다. 일본은 유엔해양법 협약상, 해양 생태계를 보전할 국제법적 의무가 있다. 자신의 영역 안에서 저지른 일로 이웃 나라의 바다에 어떠한 해를 끼쳐서는 안 될 관리책임도 진다.

 

윤석열 정부에 요구한다. 일본에서 받은 자료와 분석 결과를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정부의 입장과 근거를 밝혀야 한다. 그리고 국제사회와 함께 일본을 국제법정에 세울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것이 유엔해양법 협약을 적용하는 틀로 바꿀 방법이다. 국제원자력기구가 아니라 유엔해양법 협약의 권위를 갖는 국제 환경기구가 오염수 투기 위험성을 분석할 유일한 방법이다.

 

일찍이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21년 일본을 국제법정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원자력 산업과 대일관계에 포획된 관료들은 딴전을 피웠다. 바다는 세계 시민의 것이다. 만일 윤석열 정부가 끝까지 제소를 거부한다면, 한국 시민사회는 국제적 협력으로 나아갈 것이다. 일본을 국제법정에 세울 권한 있는 나라가 한국만은 아니다.

송기호 변호사 | 경향 2023.04.26.

 

 

눈먼 자들과 눈뜬 자들

문학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하는 문학사회학은 작가의 삶과 그의 창작 생활을 지배하는 사회적 배경이나 시대정신에 먼저 눈을 돌리게 된다. 그러나 같은 시대를 살았으면서도 다른 문학세계를 형성한 경우를 우리는 자주 보게 된다. 또 작가의 사회적 배경과 역사적 상황은 비록 다를지라도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문제 제기는 물론, 때로는 시대를 앞지르는 고민을 담아 그려내는 작가와 작품을 발견하기도 한다.

 

포르투갈로 3년 반 전에 이주했을 때 이곳의 문학과 예술세계에 대해 나도 사실 어두웠다. 국민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1888~1935)나 전설적인 파두가수 아말리아 호드리게스(1920~1999), 그리고 199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조제 사라마구(1922~2010)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이 거의 모두였다.

 

2020년 봄부터 지구촌을 온통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은 코로나는 포르투갈도 비켜가지 않았다. 죽은 듯이 고요한 거리와 해변에 나다니지 말고 집에 머물라는 순찰차의 경고 소리만 괴기한 여운을 남겼다. 바로 이때 떠올렸던 소설이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1995)였다. 그의 소설이 마치 코로나 사태를 예견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어느 날 오후, 차를 운전하던 한 남자가 신호를 기다리던 중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사건 이후 안과 의사를 포함해서 그와 접촉한 모든 사람은 눈이 멀게 된다. 시야가 모두 하얀색으로 뒤덮여 버리는 백색 실명으로, 정부는 이를 전염병으로 선포하고 눈먼 자들을 모두 격리 병동에 강제 수용하기에 이른다.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는 남편을 돌보기 위해서 가짜 환자로 잠입, 이 수용소의 충격적인 모습을 직접 목격한다. 경비병들은 자신들도 전염될까 봐 수용자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수용자들 가운데 억압과 폭력의 구조가 형성되면서 비인간적인 만행을 저지르는 무리가 나타난다. 의사의 아내는 이들 중 우두머리를 가위로 찔러 살해하고 격리 병동에도 불을 지른다. 병원 밖으로 수용되었던 사람들은 뛰쳐나갔지만, 이를 지키던 군인들은 이미 사라졌다. 이들도 이미 눈이 멀었던 것이다. 눈이 먼 사람들은 먹을 것을 찾아 시가지를 헤매고 오물과 쓰레기 더미 속에서 생활한다. 눈이 보이는 의사의 아내는 남편과 몇 사람을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다. 어느 날 기적처럼 맨 처음으로 눈이 보이지 않게 된 남자부터 시력이 회복되고 이어서 다른 사람들도 점차 시력을 되찾는다.

 

정치 문제점 들춘, 작가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었던 의사 부인이 이들과 함께 식사하면서 독백조로 눈이 먼다는 것은 선과 악이나 옳음과 그름을 가릴 수 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눈이 멀어서 보지 못하는 것도 의미하지만, 동시에 이성을 잃어 적절한 분별이나 판단을 못하는 행위를 지적하는, 우리말 맹목(盲目)’의 뜻풀이를 하는 것 같다.

 

도대체 이러한 맹목으로 한 사회가 어떻게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느냐는 질문과 함께 우리가 비록 죽음을 피할 수는 없지만, 맹목적이어서는 결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으려는 눈뜬 장님이 넘쳐나는 세상을 향한 작가의 경고이기도 하다.

 

그러면 사라마구는 누군가. 포르투갈 중부의 조그마한 농촌마을 아지나가에서 가난한 농업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돈이 없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기술학교를 나와 자동차 정비공이 되었다. 그 후 독학으로 문학세계와 접촉하면서 평론가·번역가·기자·잡지 편집인 등으로 활동했으며 살라자르 독재체제와 이의 강력한 지지세력의 하나였던 가톨릭 교회와는 항상 갈등 속에서 살았다.

 

1969, 당시 금지되었던 포르투갈 공산당에 가입해 사망할 때까지 당원으로 남았다. 1974425일 청년 장교단이 주동이 되었던 카네이션 혁명으로 40여년에 걸친 독재체제는 무너졌고, 사회도 민주화되었다. 하지만 보수세력이 집권하는 동안 늘 갈등을 빚었던 그는 스페인령 카나리아제도의 작은 섬 란자로테로 망명’, 그곳에서 87세에 사망했다.

 

리스본의 역사적인 알파마 구역에 있는 조제 사라마구재단건물 앞 그의 재가 뿌려진 땅에 고향에서 옮겨 심은 100년 된 올리브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이 나무 밑에는 그러나 그 의지는 대지의 것이기에 하늘의 별로 향해 올라가지 않았다, 그의 소설 <수도원의 비망록>(1985)의 마지막 구절이 새겨진 묘석 판이 박혀 있다.

 

그는 착취와 가난으로 병들었던 포르투갈 농업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한 공동체의 건설, 팔레스타인의 독립, 세계화의 강력한 한 축인 유럽연합과 국제통화기금에 대한 비판 등에 이르는 참여의 행보와 비판의 목소리를 숨을 거둘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작가이자 시민으로서 정치적 발언과 행동은 자신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는, 정치인들은 조직화한 거짓말쟁이에 지나지 않았다고 보았다. 그가 현실 정치와 항상 충돌하면서 문제의식을 마술적인 사실주의의 문체로 승화시킨 소설 중에는 <눈뜬 자들의 도시>(2004)도 있다. <눈먼 자들의 도시>의 후속편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4년 전에 창궐했던 백색 실명으로 말미암아 지옥과 같은 날들을 경험했던 도시에서 치러지는 선거로 시작된다. 투표 결과는 그러나 70%가 백지 투표였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믿었던 당국은 이 결과를 무효로 하고 두 번째 투표를 시행한다. 결과는 전보다 더 나쁜, 백지 투표 83%였다. 유권자 어느 누구도 사전에 이런 투표행위를 모의하지 않았는데도 결과가 그렇게 나타났다.

 

눈뜬 자와 눈먼 자 사이, 서울은?

정부는 이 도시에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마치 무정부적인 혼란이 있는 것처럼 언론을 통해 가짜뉴스를 흘리면서 주동자의 색출에 혈안이 되어 많은 시민을 납치하고 감금한다. 비록 선거로 선출된 정부라고 할지라도 권력 유지를 위해서는 스스로 민주주의와 법치국가의 원칙마저도 파괴한다.

 

집권자들은 과거의 백색 실명과 지금의 백지 투표 사이에 분명히 연관성이 있으며 이번 사태를 획책한 주동자도 있다고 확신한다. 용의선상에 떠오른 몇 인물들 가운데는 과거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았던 의사의 아내도 들어 있다. 그러나 사실관계를 조사하기 위해 정부에서 파견한 한 조사관은 이 같은 혐의가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자세한 보고서를 검열을 피해 한 신문에 공개하자 그는 물론 의사의 아내도 암살되고 만다. 이 같은 테러를 기획한 내무부 장관은 시민의 반수 이상이 이미 거리에 나섰고 나머지도 이에 곧 합세할 것 같다는 급한 정보를 총리에게 보고한다. 그러나 총리는, 모든 일은 가족과 같은 우리끼리 하는 것이라고 대답하며 그를 즉각 해임하고 법무부 장관을 그의 후임으로 임명한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눈먼 개인의 도덕적 파산과 연대성의 붕괴를 주제로 삼았다면, <눈뜬 자들의 도시>는 지난날 아귀다툼했던 백색 실명자들이 민주주의의 파산에 대해 함께 저항하는 모습을 그렸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이 도시가 어디인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눈뜬 자들의 도시>에 묘사된 여러 정황은 이 도시가 리스본이라는 것을 알린다. 그러나 이 같은 도시가 이 지구 위에 어디 리스본뿐이겠는가.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일정 기간 통치권력을 위임받은 정치가일지라도 많은 경우 한 번 차지한 특권을 계속 지키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다 시민의 적극적인 저항에 부딪혀 결국 권좌에서 쫓겨난 사건들이 서울에서도 발생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최근 들어 서울이 눈먼 자들의 도시인지, 아니면 눈뜬 자들의 도시인지, 헷갈리게 하는 소식들이 자주 들린다. 물론 승자독식의 제왕적인 권력구조도 문제지만, 일단 당선만 되면 모든 행위가 정당화된다고 믿는 정치인들의 사고방식이 더 문제다. 소통과 협치는 선거전에서나 필요한 용어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는 오로지 열혈 지지자들만이 찾는 이벤트가 될 수밖에 없다.

 

내로남불식 마구잡이 정치판에 유권자의 대다수가 정치가는 물론 정치 자체도 혐오하고 등을 돌린다. ‘촛불혁명의 열정이 이렇게 냉소로 돌아온 근본 원인에 대한 철저한 통찰과 반성 없이, 어떻게 <눈뜬 자들의 도시>처럼 백지 투표를 위해 유권자들이 스스로 투표장을 찾겠는가.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 경향 2023.04.26.

 

 

미래 실종과 소모사회

청년세대에게 미래는 실종 상태다. 국회미래연구원이 수행한 연구를 보면 청년세대는 미래는 지금보다 더 좋아질까?” “개인의 힘으로 미래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등의 물음에 20대는 6.5%, 30대는 10%만 동의했다. 이는 40대가 21.9%, 50대가 24.5%, 60대 이상이 37.1% 동의한 데 비해 매우 낮은 수치다. 20, 30대가 미래를 낙관하지 못하고 기대하지도 않으며 미래를 빚어가는 데 몹시 회의적이라는 얘기다. 청년세대에게 미래는 이젠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장년세대는 낮지 않은 사회적 불안에 휩싸여 있다. 사회적 불안은 전쟁이나 소요, 사회적 차원의 불평등 악화, 갈등의 심화, 실업 증가 등으로 사회구성원 대다수가 겪게 되는 불안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장년세대는 우리 사회가 불안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 평균적으로 불안하다고 응답했다. 45~54세 집단의 불안도가 55~64세 집단의 불안도보다 높기도 했다.

 

사회적 불안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한 몸을 이룬다. 살아갈 미래가 더 많이 남은 연령층의 불안도가 더 높은 이유이자 미래 희망이 더 적은 이유다. 청년세대는 일자리와 주거 문제, 기성세대의 불공정, 경쟁 지상주의 등을 미래 실종의 주원인으로 꼽았다. 그들은 이를 터널에 비유했다. 터널이 얼마나 남았는지, 터널의 끝이 또 다른 터널의 시작은 아닌지 등 어느 하나 투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미래가 불투명할수록 사회적 불안은 더 커지고 미래에 대한 희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청년세대에게 미래가 실종된 까닭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를 개괄할 때 피로사회니 위험사회 같은 표현이 곧잘 사용되었다. 헬조선, 금수저·흙수저, 기울어진 운동장, 유리천장, 열정페이 등도 우리 현실의 부조리, 불공정,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다. 이념·지역·세대·젠더 갈등은 오히려 격화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개인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은 부정적 요인에 의해 생명과 생활이 소모될 수밖에 없는 총체적 소모사회임을 말해준다.

 

하여 미래를 걱정하면서 지금을 낭비할 수 없다는 청년세대의 말은 한없이 무겁다. 우리 사회의 미래도 더불어 상실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경향 2023.04.26.

 

 

윤석열 정부의 '대환장 외교', 다 계획이 있었구나

국익과 반대로 가는 윤석열 외교, 도대체 왜?

바이든 날리면' 논란으로 시작된 윤석열 정부의 '외교 재난'은 해가 바뀌어도 일관되게 좌충우돌 하며 '국익'의 반대방향으로 내달리고 있다. 러시아, 중국과의 관계를 일거에 '적대적'으로 만들어버렸고 '자해외교'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외국의 외교·안보 전문가나 언론이 어리둥절해하고 있고, 국내 친미 보수주의자들조차 어안이 벙벙해하고 있다.

 

이번 '방미의 초점은 우크라이나와 중국'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제공과 양안 분쟁시 참전은 결국 공식화되는 것인가? 이게 국익에 득이 되는가? 경제와 무역은 어찌할 것인가. 현지에 있는 우리 기업들은? 우리 교민과 주재원의 안전은?

 

외국만 나가면 지지율이 급락해왔는데 이번에도 지지율 급락 정도는 '개는 짖는 법'이라며 넘길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다. 짧게는 '?' 길게는 '도대체 왜?'

 

김태효의 독주

"서머라이즈(요약)를 엄청 잘 해. 윤석열 귀에 쏙쏙 들어가게 설명할 거야."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에 대해 한 정치학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대통령과 초등학교 동창인 김성한 전 안보실장은 외교와 안보에 무지한 대통령을 가르치려 들어 윤 대통령이 짜증을 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한다. 반면 김태효는 깍듯하게 대하며 귀에 쏙쏙 들어오게 정리해주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결국 상관인 김 실장은 경질되고 그 부하였던 김태효가 실권을 장악했다.

 

그나마 신중론자였던 김성한이 쫓겨났다는 사실은 우리의 외교·안보분야에서 '강성 안보주의자' 김태효의 독주에 제동을 걸 장치가 사라졌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안보주의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국제정치학에서 안보 전공자들은 안보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안보결정론자들이다. 이들은 그래서 안보를 위해서는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해도 된다는 사고를 장착하고 있다.

 

이런 부류의 학자들의 판단 기준은 오직 '힘의 논리'. 그래서 국가의 '특성'보다는 국가의 '사이즈'가 더 중요하고 그 때문에 이들은 '동맹제일주의'를 표방한다. 이들에겐 당연히 미국, 일본과의 동맹이 최고다.

 

특히 이들에게 국민정서나 감정, 자존심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최근 국민이 경악하는 정부의 외교 노선에 대해 그는 "그런 측면에서 전혀 놀랄 이야기가 아니야"라고 정리한다. 김 차장이 과거 논문에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개입'을 버젓이 쓴 것 역시 전혀 놀라울 게 없다.

 

그 스승에 그 제자?

주목할 인물이 있다. 바로 김 차장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스승이었던 이상우 신아시아연구소 이사장이다. 김 차장이 이명박 청와대에서 재직할 당시 그는 국방선진화추진위원장,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의장 등을 지낸 인물로 보수정권에서 국정원장, 부총리 등 하마평이 올랐던 인물이다. 지금은 김 차장이 신아시아연구소 부소장을 지낼 정도로 두 사람은 오래고 끈끈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2017년 문재인 정부 당시 이 이사장의 <더스쿠프> 인터뷰 내용이 이목을 끈다. "지금 우리나라는 임진왜란 직전이나 대한제국이 망했을 때와 같다"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면 미국 편을 들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매우 노골적이고 단순하다. "미국 쪽에 줄을 서라. 중국이 이만큼이나마 우리를 대접하는 건 우리가 미국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고 "미국이라는 줄이 끊어지면 바로 밟으려 들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그는 "전시작전통제권도 우리가 받으면 안 된다"면서 심지어 "전쟁이 나면 우리가 이길 수 없다. 전쟁을 지휘할 만한 사람도 없다"고까지 단언한다. 사실 '고집'을 넘어선 '억지'에 가까워 보이긴 한다. 그럼에도 그 '억지'가 미국과의 동맹을 '생과 사'의 문제로 보고 미국에 '구걸외교'를 불사하는 저들의 논리적 기반임을 알게 해준다.

 

2017년 인터뷰에서 그나마 부분적으로라도 현실적 인식이 작용하는 듯했던 이 이사장은 윤석열 집권 후 노골적으로 이념화된다. 20229<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념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끌고 나가는 리더쉽"인데 "군사력보다 더 중요한 게 이념"이고 바로 "이념이 동맹의 기준"이라는 주장을 편다. 단적으로 대한민국에 지금 필요한 것은 '이념''동맹'이고 당연히 미국과의 동맹이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오직 한미동맹! 이를 위해 한일동맹!

 

여기서 그는 현재 우리가 목도하는 '대한민국 외교재난'의 심장을 꿰뚫는 주장을 한다. "한국도 미국이 필요로 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놀라운 말이 이어진다. "'우리는 미국 편'이라고 선을 딱 긋고" 가야 한다면서, "중국 눈치 보고 양다리 걸치기는 자살행위"라는 것이다.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언급도 있다. 그는 "중요한 것은 미래... 과거에만 매어서 어떻게 하겠냐"면서 다시 한 번 놀라운 말을 한다. "보상할 것이 있으면 민간 차원에서 하고, 나머지는 국가 간에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내치에 대한 언급도 주저하지 않는다. "중도 확산이라는 말을 자꾸 하는데 잘못된 얘기"라며 "타협하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주장한다. "과감하게 잡아넣을 사람 잡아넣고, 수사할 사람 수사하고, 자기를 지지하는 세력으로 좌파를 포위해야" 하는데 "그걸 안 하니까 지지율이 떨어지는 거"라는 것이다. 지지율 올리려면 더 세게 수사를 해야 한다는 뜻 아닌가.

 

다 계획이 있었구나

그의 발언과 현 대통령실 정책 결정 간 싱크로율이 90%는 넘어서는 듯하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대혼란 뿐 아니라 국내 정치에서 많은 이들이 가졌던 "도대체 왜?" 또는 "이게 뭐지?"라는 질문이 거의 해소된다. 동시에 아수라장 같아 보이는 윤석열 정부의 '대환장 국정'도 사실은 상당한 수준의 단단한 기초 위에 서 있음을 알게 해준다. 그 논리적, 합리적 적절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지금 대한민국 국정과 외교·안보는 이념형 학자들의 신념을 구현하는 실험 공간으로 전락했다. 그들은 오직 한미동맹만을 바라보며 실험을 진행하고 있고 이를 위해 한일동맹을 확고히 하려 한다. 그러고 보니 지금 대한민국은 '미국이 필요로 하는 나라'가 되기 위한 몸부림을 치는 듯하다.

 

심각한 문제는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실험결과를 위해 다른 모든 것들을 희생시키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 안전, 지정학적 안정, 한반도 평화, 국가경제, 해외진출 기업, 교민의 신변, 강대국의 보복 등 수많은 변수들을 무시하고 오직 자신의 신념을 밀어붙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이나 양안 문제 개입 그 자체가 윤석열 정부의 목표는 아닐 것이다. 그들이 정말로 얻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한미동맹으로 얻으려는 게 무엇일까? 혹시 핵인가? 국내 여론 조성도 대충 끝난 듯하다. 전문가들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혹시 아는가. 될 때까지 퍼줄지.

 

이념으로 가득 찬 학자들이 나라를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다.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과학자들이 빌런으로 등장해 세상을 혼란에 빠트리는 영화를 많이 본다. 결론은 대동소이하다. 결국 평범한 사람들이 맞서 싸워 빌런을 응징하고 세상은 평화를 되찾는다.

정희준 문화연대 집행위원 | 프레시안 2023.04.26.

 

 

전세금 9000만원 vs 연봉 1억원

엄마, 2만원만 보내주세요.” 지난 14일 스스로 생을 마감한 전세사기 피해자 20대 청년이 그 며칠 전 어머니에게 전화해 이 말을 꺼낼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고교 때부터 공장에서 일하며 어렵게 마련한 보금자리에서 쫓겨나야 하는 날벼락에 밤이고 낮이고 괴로워했을 것이다. 수도요금 6만원을 내지 못해 나붙은 단수 예고장은 힘겨웠던 삶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지난 두 달 사이 20~30대 전세사기 피해자 3명이 빈곤과 절망 속에서 삶을 등졌다. 이들의 전세보증금은 7000~9000만원이다. 누구는 이 중 얼마라도 돌려받을 수 있었을 테지만 누구는 한 푼도 건지지 못할 사정이었다.

 

다른 한쪽에서 한국 사회는 바야흐로 평균 연봉 1억원 시대가 열리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액 100대 상장사(금융업 제외) 중 평균 연봉이 1억원을 넘긴 이른바 ‘1억 클럽에 들어간 기업은 35개로 전년(23)보다 12개가 늘었다. 2019(9)에 비하면 4배 가까이 급증했다. 하나·KB국민·신한·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도 지난해 모두 처음으로 1억 클럽에 가입했다. 대기업 계열 비상장사나 알짜 중견기업, 은행 외 금융사들까지 찾으면 1억 클럽 멤버들은 훨씬 더 많다. 어딘가에는 전세사기로 날아간 수천만원 때문에 목숨을 던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1년에 이들의 전세금보다 많은 급여를 받는 직장인들이 있는 곳, 바로 지금 대한민국이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불평등이 확대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생산량이 많아질수록 사유화할 수 있는 재화도 늘어난다. 불평등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불평등은 약 1만년 전 인류가 수렵채집사회에서 농경과 목축 사회로 전환되면서 본격화돼 고대 국가와 중세 봉건시대, 근대 세계로 이어져 왔다. 극심한 불평등에 끝내 폭발한 민란, 반란, 혁명이 수도 없이 일어나 천지가 혼란에 빠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나라가 전복돼 온 것이 인류의 역사다.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오래전부터 국가가 나섰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채무자와 보증인들을 빚에서 해방시키는 왕의 명령이 주기적으로 내려졌다. 중국에서는 북위부터 당나라 시대까지 귀족들의 대토지 점유를 막기 위해 백성들에게 토지를 공평하게 분배하는 균전제가 실시됐다. 나라에 세금을 내고 노역과 병역을 제공할 백성들을 보호·유지하기 위한 조치들이다. 이 원리는 지금의 시장경제 체제에도 유효하다. 성장과 발전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 초래하는 불평등이 사회를 분열시키고 불만을 폭발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가 역할을 해야 한다. 바로 복지 국가다. 복지를 통해 불평등의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은 시장경제를 더욱 역동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학자들은 현대사회에서 불평등을 좌지우지하는 요소로 조세와 재정, 노동시장, 기업규제, 교육 등을 꼽는다. 세금이 낮아질수록, 정부의 재정지출이 줄어들수록, 노동조합의 교섭력과 기업규제가 약화될수록, 교육격차가 심해질수록 불평등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에서 불평등이 가장 완화됐던 시절은 전쟁 동원으로 인해 세율이 치솟고(소득세 최고세율이 94%까지 올라갔다), 정부의 지출과 규제가 늘고, 노조의 힘이 강력했던 제2차 세계대전 직후다. 이들 요소 모두 정치, 정부 정책에 의해 결정되는 것들로 양면성을 갖고 있다.

 

인플레이션 전쟁의 희생자들

세금 인하는 가처분소득을 늘려 소비를 증대시킬 수 있지만 부자들에게 혜택이 집중되고 정부 재원이 줄어들게 한다. 재정 지출 축소는 재정건전성은 높이지만 복지 지출을 축소시킬 수 있다. 노조 활동 억제는 임금 부담을 줄여 기업의 수익을 높일 수 있지만 노동자들의 소득을 떨어뜨려 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다. 규제 완화는 기업 활동을 지원해 경제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기업의 과도한 이윤과 소비자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민주주의 정부라면 양방향의 장단점을 잘 저울질해야 한다. 하지만 현 정부의 정책은 한쪽으로만 기울어져 있다. 세금과 재정 지출은 줄이고 규제는 풀면서 노조를 압박한다. 모두 불평등을 확대할 개연성이 높은 방향이다.

 

가난은 인간을 총체적으로 파괴한다.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센딜 멀레이너선 교수는 실증 연구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은 단지 돈 걱정을 하는 것만으로도 하룻밤을 꼬박 지새운 상태보다 더 심각한 인지능력 상실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가난은 인간의 자기절제 능력을 감소시켜 더욱 충동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거다. 전세사기 피해자의 빈소 앞 조화에는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라는 문구가 적혔다. 그 가난과 불평등을 막지 못한 국가에, 우리에게 잘못이 있다

김준기 뉴스콘텐츠부문장 | 경향 2023.04.27.

 

 

검사들만의 특권

검사는 다른 공무원과 달리 여러 특권을 누린다. 영수증조차 필요 없다는 특수활동비만이 아니다. 시작부터 3급 대우다. 행정고시, 외무고시 출신이 5급부터이니, 아주 남다른 대접이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경찰관이 되면 경감 계급부터 시작한다. 6급 대우다. 같은 시험에 합격했어도, 경찰관은 6, 검사는 3급 대접이다. 검사만 이토록 특별히 대접할 까닭은 없다

검찰청은 경찰청, 국세청 등 다른 외청과도 사뭇 다른 대접을 받는다. 외청장 중에 검찰청 수장만 장관급 대우다. 훨씬 더 많은 인력을 지휘하는 경찰청 수장도 차관급이고, 다른 청장들도 모두 차관급인데도 그렇다. 검찰청에는 유독 차관급 고위직도 많다. 현재 49명의 검사가 차관급 대접을 받고 있다. 왜 검사만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도 없고, 법률 근거도 없다.

 

검찰은 기관과 보직 이름도 희한하다. 기관 이름에는 고()자와 대()를 넣어 폼을 잡는다. 법원을 의식한 행태지만, 3심제를 운영하는 법원과 달리 수사와 기소를 한 번밖에 안 하는 검찰이 이러는 건 그냥 폼 잡기에 불과하다. 대경찰청, 대국세청이란 이름이 이상하다면, 대검찰청이란 이름이 자리할 공간도 없을 거다. 국민이 직접 뽑은 국회에도 대()자를 넣지 않는데, 검찰만 유독 대단한 명칭을 고집하고 있다.

 

대개 기관장 이름은 경찰청 기관장이 경찰청장인 것처럼 기관 이름에다 장()자를 붙여서 만든다. 그러나 검찰만은 기관장 이름을 검찰총장이라고 부른다. 거느린다는 의미를 강조하는 것일 텐데, 군대가 아니고선 공무원에게 이런 이름을 붙이지는 않는다. 게다가 검사 출신 대통령 시대를 맞았으니, 검사들의 위세가 대단하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검사 출신을 임명할 때도 그랬다. 경찰청 고위 책임자를 임명하는데, 경찰청은 인사 검증에 끼지도 못했다. 인사 검증은 검사 출신이 도맡았다. 그야말로 검사독재적 면모다.

 

윤석열 정권에서 검사들은 단박에 여러 분야 전문가가 되었다. 금융, 보훈, 통일, 연금, 감사 등 전문 분야를 일일이 거명하기도 멋쩍다. 여태껏 이렇게 많은 분야에서 만능활약을 펼쳤던 것은 육사 출신 하나회 장교밖에 없었다. 1980년대에 견줄 만한 퇴행이다

 

검사를 판사에 빗대기도 하지만, 검사의 특권은 판사를 넘어선다. ‘대장동 50억원 클럽만 해도 그렇다. 고위 법관 출신은 한 명뿐이지만, 검사 출신은 잔뜩이다. 그래서인지 수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이런 걸 흔히 전관예우라 부르지만, 정확하게 표현하면, ‘전관비리’ ‘전관부패일 뿐이다. 검사 출신은 전관비리를 통해 엄청난 돈을 벌기도 하지만, 기업의 사외이사로 활동하는 경우도 많다. 경영진의 일탈을 감시하고 법률적 조언을 하는 게 아니라, 경영진을 위한 바람막이 역할, 거수기 역할에만 충실하다.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을 했던 사람도 재벌 대기업의 사외이사를 한다. 염치도 없다.

 

여태까지의 특권보다 더 심각한 것은 국민이 위임해 준 수사권, 기소권, 형 집행권을 제 맘대로 쓴다는 거다. 정치적 반대자를 제거하기 위해 수사권을 남용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적을 범죄자로 둔갑시켜, 손발을 묶어버리는 건 이젠 너무 익숙한 행태다. 마치 사냥하듯 상대를 몰아붙인다. 몇십만원짜리 혐의도 놓치지 않고 파고든다. 피의사실 공표는 엄연한 범죄인데도 언론을 활용해 이런저런 유치한 소설을 불러주기도 한다. 반면 집권세력의 범죄는 짐짓 모른 척한다. 의도적으로 수사를 축소해 범죄를 감싸준다. 여야 사이에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조차 없다. 그야말로 안하무인이다

 

남을 단죄하는 게 일이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다. 검사가 동료 검사를 단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게다가 검사는 한 몸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검사동일체원칙은 법률에서는 사라졌지만, 실제에서는 가장 강력한 검찰의 작동원리다. 특권의식으로 뭉친 사람들이 내부적으로도 똘똘 뭉쳐 있으니 위험하기 짝이 없다.

 

검찰에 대한 일상적인 통제는 법원만이 할 수 있지만, 무차별적 압수수색 영장 발부를 보면, 견제는커녕 군사정권 시절의 통법부역할에서만 맴도는 것 같다. 형사사법절차는 법원이 아니라, 사실상 검찰이 주도하고 있다. 그래서 국회 역할이 중요하다. 국회 차원의 입법을 통해 검사가 누리는 특권을 제한하고 검찰이 국민을 위한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법 왜곡죄신설, 탄핵제도 활성화, 검찰청법 개정 등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부족한 것은 국회의 의지뿐이다.

오창익인권연대 사무국장 | 경향 2023.04.28.

 

 

선진경제 빛 속에 깃든 어둠부의 편중 심화된 반민주공화국

왜 극단적 양극화로 치닫나

최근 들어 최절정의 기세가 약간 꺾이고는 있지만, 길게 볼 때 한국 경제는 오래도록 지속적인 초고속 발전과 번영을 보여주었다. 한국의 기술과 상품은 세계 공급망의 선두권에 서거나, 정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들이 적지 않다. 세계 어디를 가든 한국 물품이 없는 곳을 찾기란 힘들다. 해외여행 도중 아주 드물게 한국 상품이 보일 때마다 신기한 듯 눈길을 주곤 했던 경험은 어느덧 한 세대 전의 이야기가 되었다.

한국의 어떤 기술력은 세계 경제에 심대한, 또는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세계의 해당 산업을 앞서 이끌고 좌우하기도 한다. 날로 심각해지는 미·중 대결의 한복판에 한국 반도체가 놓여 있다는 점만 보아도 한국의 한 산업, 한 기술, 한 상품, 한 기업이 크게는 국제질서와 패권경쟁, 그리고 작게는 세계 산업 흐름과 공급망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정도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경제는 약소국·중진국·중견국을 거쳐 이제는 선진국과 선도국을 말하는 단계에 진입해 있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발전 자체와 함께 전광석화와 같은 그 속도의 빠름에 있다. 즉 약소국 단계도, 중진국 단계도, 중견국 단계도 모두 매우 짧고 빠르게 통과했다는 점이다. 2021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한국을 개발도상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다. 이러한 변경은 이 기구 설립 이후 한국이 유일했다.

 

한국 경제는 원조경제단계나 후후발산업화’(late-late industrialization) 경로는 말할 필요도 없고, 더 이상 수입대체 산업화따라잡기 발전모델이 아닐뿐더러 그것들을 훨씬 넘어서고 있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자주 언급되는 말로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전자·반도체·배터리·스마트폰·바이오 헬스·미래 자동차·조선·해운·철강 산업의 기술과 경쟁력은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이제 제조업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들 중 최선두권이다. 국제특허 출원에서도 한국은 세계 선두권이다. 한국의 혁신지표나 디지털 지표들은 거의 항상 세계 최상위권이다. 주요 경제지표에서 한국의 앞에 서 있는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한국은 세계 10위 경제대국이 분명하다. 수출과 무역은 그보다 더 앞선다. 군사력도 이제는 세계 6~7대 군사강국으로 평가받는다. 오래도록 국력을 평가하던 두 지표인 경제력과 군사력, 즉 전통적인 국가 평가의 핵심 기준인 부국강병에 관한 한 한국은 절대적으로 성공한 국가임에 틀림없다. 부국도 강병도 모두 그러하다. 그것은 추호도 의심할 수 없다. 불과 두 세대 전 한국은 가난에 허덕이고 원조를 받는 나라였으나, 이제 주요 7개국(G7)에 초청받는 것은 익숙하며 선진국으로 불리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고속 성장과 고속 불평등 병진

지표상 어느 부분은 G7의 일부 나라들을 종종 제치기도 한다. 이를테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 또는 구매력 기준 1인당 GDP의 경우가 그러하다. 모두 한국의 놀라운 경제 발전 덕분이다. 한 나라가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이후 이토록 빨리, 이렇게 지속적으로 발전한 사례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것도 특별히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그러한 성취를 이루었다는 점에 한국은 자랑할 만한 역사를 가졌음에 틀림없다. 민주주의를 통해 선진국 대열에 성큼 합류한 사례는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말 빛의 속도로 발전한 것이다. 오늘의 인류 가능성을 보려면 한국 사회를 보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 경제는 빛의 밝기만큼이나 어둠도 깊다는 점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지금 두 개의 현실, 두 개의 한국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고속 성장의 이면에 고속 불평등이 놓여 있음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고속 성장과 고속 불평등의 병진을 말한다. 한국 사회는 초고속 발전과 함께 거시적으로 사회의 거의 전 영역, 전 부문, 전 세대, 전 계층, 전 지역에 걸쳐 불평등이 악화되어 왔다.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소득불평등은 개선되지 않았다. 개선되기는커녕 더 나빠졌다. 소득분위별 가구당 가계수지를 보면 하위 계층의 소득은 거의 증가하지 않거나 약간만 증가하였음에 비해 상위 계층은 막대한 폭으로 증가해 왔다. 부자들의 소득은 더욱 늘어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은 거의 늘어나지 않거나 더 줄어드는 소득불평등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 번영의 한 객관적 단면이자 속살인 것이다.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한 중요한 요인은 임금소득의 차이다. 주지하듯 한 사회의 경제가 성장을 하게 되면 단지 상층 부자들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부는 함께 증가한다. 그것이 곧 발전과 성장의 의미다. 그러나 빠른 발전·성장과 함께 한국 사회에서 부자와 빈자의 격차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때 증가는 곧 분배의 악화를 의미한다. 고소득층에의 소득 집중은 놀라울 정도인 것이다.

 

한국 사회의 상위 0.1%, 1%, 10%의 임금소득은 재빠르게 증가해 왔다. 소득 상위 0.1%가 전체 개인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76, 1997(외환위기 직전), 2021년 각각 2.39%, 2.17%, 5.85%를 기록하였다. 1976년에서 1997년까지 20년 동안 거의 차이가 없거나 약간 개선되던 수치는 2007년에 처음 5%를 넘긴 이후 2021년에는 1976년의 거의 2.5배에 달하고 있다. 같은 시기 소득 상위 0.5%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5.52%, 5.30%, 9.38%로 증가하였다. 상위 0.1%의 소득점유율과 유사한 양상으로, 2007년 처음 6%를 돌파한 이후 이제는 10%에 근접하고 있다. 같은 시기 상위 1%의 경우 각각 7.88%, 7.76%, 11.70%로 증가하고, 상위 5%는 각각 17.73%, 20.22%, 25.08%로 증가하였다. 번영의 속도 못지않게 부의 집중과 불평등이 악화되었음이 확연하다. 다른 말로 하여 소득의 상위 계층 집중과 하위 계층 감소가 함께해왔음을 알 수 있다.

 

임금·자산 불평등이 중요한 요인

실제로 월평균 근로소득의 추이를 보면 악화의 심각성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소득 10분위별 가구당 가계수지의 2003년과 2022년의 전체 평균’ ‘1분위’ ‘10분위를 각각 보면 놀랄 만한 수치가 나온다. 전체 평균(2인 이상) 근로소득은 20031707657원에서 20223909167원으로 2배 이상 증가하였다. 그러나 1분위는 같은 기간 196814원에서 282592원으로 44%가량 증가하였다. 절대 액수도 아주 미미하다. 반면 10분위는 4136106원에서 10121081원으로 2.5배 늘었고 절대 액수도 막대하게 증가하였다. 증가 비율 자체가 1분위의 5배에 달한다. 근로소득 격차가 비율과 액수 면에서 기록적으로 확대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2인 이상이 아니라 1인 이상을 기준으로 삼으면 격차는 더욱더 벌어진다. 전체 평균, 1분위, 10분위가 2022년 현재 각각 312910, 94887, 8833642(이전소득은 추후 논의)이다. 월평균 근로소득이 10분위는 1분위의 거의 100배에 육박하는 것이다. 성장과 발전의 과실은 명백히 부익부 빈익빈, 다익다 소익소(多益多 少益少)로 귀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흐름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즉 더욱 나빠지고 있다.

 

그리하여 2021년 기준 OECD 내에서 한국보다 1인당 GDP가 높으면서 상위 1% 소득점유율이 더 높은 국가는 이스라엘, 미국 두 나라밖에 없다. 상위 1%의 소득점유율이 최상위권인 칠레·멕시코·튀르키예·콜롬비아·코스타리카는 OECD 내에서도 1인당 GDP가 가장 낮은 국가군이다. OECD 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못사는 나라들이다. 따라서 적어도 (한국이 속한 잘사는) OECD 국가들을 기준으로 살펴볼 때는 불평등한 국가들이 평등한 국가들보다 더 잘살지 못한다는 점이다(이 문제는 뒤에 다시 살펴본다).

 

공화국의 공동복리 의미 되새길 때

자산의 불평등 역시 계속 악화되어 왔다. 실제로 가계소득의 중간값 대비 평균값보다 가계자산의 중간값 대비 평균값은 불평등이 훨씬 더 심각하다(물론 가계자산 불평등도의 경우 한국은 OECD 평균보다는 나은 상태이기는 하다). 실제 소유 현황을 보면 매우 심각하다는 점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대한민국 국토의 총 70%를 민간이 소유하고 있는 현실에서 소득 상위 10%(10분위)77.2%를 차지하고 있으며 상위 20%90%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80% 국민들은 민간 소유의 10%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 가계자산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토지와 주택을 중심으로 하는 부동산 자산인데 이 정도의 극심한 불평등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불평등(지니계수)은 총자산 0.5836, 금융자산 0.6402, 실물자산 0.6491, 부동산자산 0.6655, 거주주택자산 0.6684에 달한다(국토연구원, 2020/2021). 같은 해(2020) 한국의 처분가능소득 기준 불평등(지니계수)이 비록 스웨덴(0.276)·캐나다(0.280) 보다는 높으나 미국(0.378)·영국(0.355)보다는 낮은 수준(0.331)이라고 해도, 부동산 불평등지수(0.6655)는 무려 두 배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높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부동산 불평등은 최악이다. 소득 차이는 즉각 더 크고 더 긴 주거 차이로 연결된다. 최저임금의 약간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해 최저임금으로 서울에서 중위가격 아파트를 구매하는 데는 학업 이후 한 사람의 생애 모든 기간(201737, 202043)이 걸리게 되었다. 소득분위별 서울 중위가격 아파트 구매 소요 기간을 보면, 1분위는 72, 5분위는 10년이 걸린다(경실련, 2020). 1분위와 5분위가 무려 62년의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 1분위의 경우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두 번이나 살아도 서울 중위가격 아파트 한 채를 사지 못한다는 비극적인 얘기가 된다. 우리가 초등학교 때부터 인간 생활의 3요소, 또는 3필수요소라고 배우는 의식주의 하나인 집 문제에 대해, 미래의 청년들과 태어날 세대에게 우리는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국에서 소득 하위 10%에 속하는 가구가 평균소득 가구로 이동하는 데는 무려 다섯 세대의 기나긴 기간이 필요하다. 이는 오랜 시간 발전해온 OECD 국가들의 평균보다도 더 길다. 국가의 번영과 발전은 곧 구성원들에게 더 많은 기회의 창출을 의미한다고 할 때, 이토록 빠르게 발전하는 한국의 이 지표는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솔직히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자랑해온 하나의 인간공동체로서 말이다. 국가의 빠른 번영의 과실의 누적에 맞추어, 삶의 수준과 부의 심각한 편중 및 고착 현상도 마찬가지로 빠른 시간 내에 난공불락으로 견고해진 것이다. 즉 너무 나빠진 것이다.

 

이제 한두 세대 내에는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거의 완전히 막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빠른 발전의 성과를 함께 나누면서 발전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해답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즉 길이 있다. 그럼에도 경제가 계속 발전한 지난 시기 동안 우리의 불평등은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온 것이다. 지금까지와 같은 정책으로는 이 문제는 해결은커녕 더 악화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길을 묻다

민주주의의 법치 규율에 정치 사법화의 해법이 있다

여기서 강조하려는 것은 빛과 어둠의 불가피한 공존이 결코 아니다. 즉 우리의 오늘의 현실은 빛을 위한 당연한 어둠이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 찬찬히 안을 들여다보면 찬란한 빛이 낳은 짙은 어둠이라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빛 속에 어둠이 들어 있다. 우리는 이제 빛의 발전이 낳은 구조적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치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근대에 들어와 인류가 처음 공화국을 불러올 때의 이름은 ‘common wealth’였다. 그것은 재화행복을 포함하여 귀족과 평민, 주인과 노예, 부자와 빈자가 모두 함께 복리를 누리는, 요컨대 공동 복리를 뜻했다. 본래 의미와 지혜 역시 같았다. 절정의 선진을 구가하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오늘을 보며 우리는 지금 그 이름값의 내실을 엄히 따져 묻게 된다.

박명림 연세대 정치학 교수 | 경향 2023.04.28.

 

 

대통령의 계급투쟁

제조업 전도사장하준 영국 런던대 교수는 최근 펴낸 책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에서도 탈산업사회 담론의 허구성에 대한 실증적인 논박을 이어간다. 예를 들어 금융과 서비스업에 특화한 선진 경제의 사례로 거론되는 스위스나 싱가포르가 실은 제조업이 가장 발달한(1인당 제조업 부가가치 세계 1·2) 산업화 국가들이라는 근거를 제시한다. 경제가 발전하면 임금이 올라 제조업이 쇠퇴하므로 서비스업 중심으로 성장을 이어가야 한다는 탈산업화 논리가 근시안적 편견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겉으로 보기에 스위스의 제조업은 명품 시계나 초콜릿 정도이고, 싱가포르는 그마저 떠오르는 게 없지만, 두 나라는 경제학에서 생산재라 부르는 기계나 정밀 장비, 산업용 화학 물질 등 소비자 눈에 보이지 않는 중간재를 주로 만든다. 금융이나 경영컨설팅, 디자인 같은 서비스업은 제조업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제조업과 함께 성장하는 산업이다.

 

장 교수의 지론대로 제조업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짝퉁영국제를 만들어 팔던 후발산업국가 독일이 유럽 경제의 견인차가 되고, 만성적 저성장과 자산 디플레를 수십 년 겪고 있는 일본이 여전히 버티는 이유도 제조업이 탄탄해서다. 독일이나 일본과 달리 미국과 영국에서 제조업이 빠르게 몰락한 원인은 미국과 영국이 쌍두마차로 이끌었던 신자유주의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과 영국의 마거릿 대처는 무자비한 반노동 정책으로 제조업 기반을 무너뜨렸고, ‘작은 정부를 모토로 재정 긴축과 복지 축소를 통해 사회안전망을 흔들었다.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 공세로 약해진 건 사실이지만, 노동이사제로 대표되는 독일의 노동 존중 전통과 일본의 종신고용이 상징하는 안정적인 노동 환경이 제조업을 지키는 데 더 유능했음을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미국이 중국과의 디커플링과 리쇼어링 정책을 통해 산업시설을 다시 국내로 불러들이는 것은 중국 견제나 공급망의 안정성 확보뿐 아니라 제조업과 노동(고용)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기축통화와 군사력, 드넓은 시장을 배경으로 군사작전하듯이 제조업 살리기를 밀어붙이고 있다. 이제 러스트 벨트는 옛말이고, 공장과 연구소가 잇따라 들어서며 활기를 띠고 있다고 한다. 영국은 미국 같은 힘이 없으니 하층 노동자들의 일자리라도 지키려고 브렉시트를 감행한 것이다. 브렉시트를 원한 것은 영국 자본이 아니라 노동자들이었다.

 

미국과 영국의 최근 행보의 공통점은 노동자의 희망사항을 국가 정책과 일치시키려 노력한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은 자본과 노동을 대립 개념으로 보지 않고, 상생의 관점에서 제조업을 강화하는 산업정책을 펴고 있다. 미국 반도체과학법에 노동자의 보육 지원 의무가 포함된 것이 좋은 예다. 미국 정부가 세금을 지원할 테니, 외국 기업들은 노동자의 자녀를 책임지라는 얘기다. 사회안전망이 약한 미국 정부의 고육지책인 셈이다. 반도체 생산시설 접근 허용과 초과이익 공유 등 독소조항으로 세계의 반발과 우려를 부르는 법안이지만, 미국 노동자들은 환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영국의 경우 감세와 복지 축소를 추진했던 리즈 트러스 총리가 되레 실각으로 몰린 걸 보면, 영국에서 신자유주의가 어떤 신세인지 알 수 있다.

 

신자유주의가 내부의 적으로 규정했던 강성 노조는 낮은 생산성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다.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신자유주의는 효율성이란 미명아래 단기 이익에 치중하는 주주자본주의에 빠졌고, 기술개발과 투자를 게을리하며 제조업의 몰락을 가속화했다.

 

신자유주의의 파탄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이미 기정사실화됐지만, 여전히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대통령이 선두에서 노동계 때리기에 여념이 없다. 같은 노선이었던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도 지금 정부처럼 공정위까지 동원할 정도로 악랄하진 않았다. 미국 노총은 며칠 전 한-미 정상회담에 즈음하여 발표한 성명에서 한국 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의 노조 탄압은 미국의 노동자 권리 지원과 증진을 위한 바이든 대통령의 모든 노력과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 한국 정부가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과 노조결성권의 온전한 행사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민주국가들의 공동 행보를 주도하거나 무역파트너로서 우호적인 조처를 누릴 수 없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최악인 것은 단지 반노동적이어서만은 아니다. 무식한데 무식한 줄 모르고, 시대의 변화에 대한 통찰은커녕 철지난 이데올로기로 나라와 국민의 운명을 절벽으로 몰고가는 위험한 정부라서 최악이다. 그가 강조하는 자유란 신자유주의적 계급투쟁의 이념적 레토릭에 불과하다는 걸 이제 알만한 사람은 안다.

 

확신에 찬 시대착오는 외교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그는 현재의 국제 정세를 냉전 시대의 자유(서방)세계공산독재세력의 투쟁으로 이해하고 있다. 오랜 검사 생활로 몸에 밴 대결적 신념으로 세상을 편가르고, 중국·러시아와 다툼을 자처한다. 이들과의 대결을 글로벌 수준의 계급투쟁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한국의 대통령은 홀로 20세기와 싸우고 있다.

이재성 논설위원 | 한겨레 2023.04.28.

 

 

코로나 이후, 사회적경제와 사회적 자본의 역할

사회적경제법 추진이 필요하다

최근 영국의 싱크탱크 레가툼 연구소(Legatum Institute)가 발표한 ‘2023 레가툼 번영 지수(Legatum Prosperity Index)’에 따르면 한국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지수 순위가 전체 167개국 중 107위로 매우 낮게 나타났다. 동아시아-태평양 국가 18개 국가 중에서도 우리나라는 15위로 하위권이다.

 

레가툼 연구소는 사회적 자본의 항목에 대해 특정 국가에서 개인적 관계, 사회적 관계, 제도에 대한 신뢰, 사회규범, 시민의 참여가 얼마나 강력한지 측정한 것이다. 한국의 사회적 신뢰가 무너졌다고 볼 수 밖에 없다. 하버드 대학 퍼트넘(Putnam) 교수는 그의 저서 나 홀로 볼링(Bowling Alone)”에서 미국의 통계자료를 통해 공동체가 활성화되면 더 행복해지고, 교육 성취율도 높아지고, 범죄가 줄어들고, 사회는 더 건강해진다는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을 증명하였다.

 

사회적 자본과 사회적경제 간에는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사회적경제는 사회적 자본의 토대를 필요로 한다.1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볼로냐 협동조합은 400개가 넘는다. 인구 약 39만 명의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도시로 협동조합의 도시이다. EU 상위 소득 10위의 도시다. 1970년대 오일쇼크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도 해고 대신 일자리를 공유하고 고통을 나눈 것인데 볼로냐의 실업률은 이탈리아가 재정위기를 겪던 2011년에도 국가 평균의 절반 수준이었다. 한 협동조합에서 실업자가 생기면 다른 협동조합에서 그 실업자를 고용하는 형식으로 협동조합 안에서 고용불안을 해소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협동조합은 고용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의 협동조합은 사회적 자본의 토대 위에 서 있고 그 뿌리는 역사적으로 매우 깊은 근원을 가지고 있다. 볼로냐 시가 주도인 에밀리아 로마냐(Emilia Romagna) 주는 이탈리아에서 협동조합이 가장 발달한 지역이다. 퍼트넘 교수는 사회적 자본의 관점에서 이탈리아 지역을 시기별로 시민참여 정신의 근원을 분석했다. 특히 볼로냐를 포함한 이탈리아 북부 지역은 공공의 이익을 함께 추구하고 다양한 구성원들이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형태의 높은 수준의 시민 참여가 나타났음을 밝혔다. 시민공화제, 길드 등 결사체의 연결, 사회적 참여와 연대 등의 신뢰는 북부 지역의 뚜렷한 특징이었다는 것이다.

 

에밀리아-로마냐 주에는 소기업으로 이루어진 100개가 넘는 클러스터들이 형성되어 있고, 이 안에서 다양한 협동경제가 활성화되어 있다. 그리고 이 협동경제는 지역공동체 안에 뿌리내리고 있는 사회관계망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고, 이러한 사회적 자본이 협동경제, 나아가 사회적경제에 튼튼한 토양이 되었다.

 

네트워크, 규범, 신뢰 등을 포함한 사회적 자본을 정교하게 개념화시킨 퍼트넘 교수의 분석이 사회적경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신뢰와 시민적 연대와 참여를 가장 중요시하여 조직 활동이 신뢰를 증진시킨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자본은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사회적 참여와 의사결정 과정의 기반을 제공하기 때문에 사회적경제 활동에 필수적이다. 또한 사회적 경제는 사회적 상호 작용 및 집단 행동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자본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이는 사회적 가치 창출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사회적 자본과 사회적 경제는 상호 연결되고 강화되며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인 사회를 구축하는 데 필요하다.

 

코로나 이후, 지역공동체 회복과 사회 및 경제 회복력을 위해서 정부와 국회는 사회적경제법 제정을 통해 통합적인 사회적경제 생태계 조성을 지원해야 한다. 사회적경제는 우리가 당면한 시급한 두 가지 문제, 즉 코로나 19로 인해 더 극심해진 저성장과 양극화를 해결 할 수 있는 대안적 경제 모델이다. 또한 무너져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사회적 자본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윤석열 정부는 하루빨리 사회적경제법을 추진해야한다.

지용승 우석대 교수(ESG 국가정책연구소 부소장) | 프레시안 2023.04.28.

 

 

정원도시, 그 이후

전남 순천에서는 국제정원박람회(10월 말까지)가 열리고 있다. 지난 주말, 그곳을 찾았을 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정원을 즐기고 있었다. 시내를 가로질러 순천만으로 빠져나가는 하천 양쪽의 넓은 땅에는 나무, , 꽃으로 가꾼 아기자기한 정원과 호수, 개울, 온실, 그리고 한국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 스페인, 중국, 일본 등 다양한 국가 정원이 조성됐다. 위치상 도심과 해안을 연결하는 중간지대인 셈이다. 방문객 중에는 연인, 가족, 단체로 온 노장층이 눈에 띄었다. 특히 초로의 여성들은 정원박람회의 주인공이었다. 꽃들 사이에 쪼그려 앉거나 심지어 나란히 엎드려 턱을 괴고 사진을 찍는 장면은 영락없이 10대 소녀 시절로 돌아간 모습이었다. 목표 방문객이 800만명인데 한 달도 안 돼 200만명을 돌파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인간이 상상하는 낙원은 정원이라 한다. 성경에서 아담과 이브가 살던 곳도 정원이고, 동양의 무릉도원 역시 정원이다. 임사체험을 했던 사람들이 고백하는 천국 역시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정원의 모습이다. 대부분 아파트에 사는 우리에게는 정원보다 공원이 익숙한데 공원이 공공의 장소인 데 비해 정원은 훨씬 오래되고 인간과 가깝고 친숙한 곳이다. 자연에 가해진 인간의 힘은 농토와 정원을 일과 휴식이라는 리듬으로 구성해왔다.

 

지난 24일 열린 순천국제에코포럼에서는 흥미로운 발표를 접했다. ‘자연과 사람: 염소, 정원사, 혹은 보호자?’라는 제목으로 영국 신학자인 데이브 브클리스 박사가 들려준 내용이다. 성경에서 사람은 지구를 지키고 가꾸는 청지기로 부름받는다. 그러나 지구를 지배하는 오만한 주인의 자리에 앉은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가이아 가설의 주창자인 제임스 러브록은 인간이 지구의 청지기가 되기를 바라기보다 차라리 염소가 정원사로서 성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자연에서 인간의 위치에 대한 관념은 지역, 문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조지나 메이스는 자연 그 자체’ ‘사람보다 자연’ ‘사람을 위한 자연’ ‘사람과 자연이라는 네 가지로 정리했다(2014년 사이언스지). ‘자연 그 자체사람보다 자연은 생태중심적 사고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사람보다 자연은 사람을 지구의 기생충으로 바라보거나 지구의 절반에서 사람이 철수해야 한다는 반구제(半球制) 주장처럼 좀 더 나아간 생각이다.

 

우리는 사람을 위한 자연이라는 관념에 젖어 있지만, 지금은 사람과 자연’, 더 정확하게는 자연 속의 사람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자연 속의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한국의 여느 지방 도시처럼 순천에는 다양한 시대가 중첩돼 공존한다. KTX 순천역에 내리면 원도심이다. 자동차들이 돌아가는 로터리, 낮은 건물마다 자리 잡은 음식점·빵집·카페 등 작은 가게들이 있고, 옛날 건물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나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청년몰에서는 도시재생의 노력이 느껴진다. 조금만 더 가면 국밥집이 즐비한 아랫장(시장)인데, 마침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라 시골 할머니들이 나물과 채소 등속을 바닥에 잔뜩 펼쳐놓았다.

 

변 쪽으로 내려가다가 깔끔하게 정비된 신도심과 박람회가 열리는 국가정원을 만나게 되지만, 곧장 시간이 정지한 듯한 순천만이 나온다. 끝없는 갈대밭이 펼쳐진 갯벌에는 칠게와 짱뚱어가 살고 있고, 용산 전망대에 올라가면 고요한 남해가 펼쳐진다. “해는 이곳에 와서 쉰다고 시인 곽재구가 노래했던 와온해변도 있다. 갈대밭 인근 순천문학관에서는 <무진기행>을 쓴 소설가 김승옥과 동화 <오세암>의 작가 정채봉의 눈에 비친 순천만과 그들의 문학세계를 소개한다. 차분한 자연에서 태어난 순정한 문학. 그런데 순천이 준 여운 때문에 서울로 돌아와 순천을 검색하자 뜻밖의 뉴스가 나온다. “생태도시, 정원도시의 성공을 바탕으로 5대 핵심전략 사업인 우주산업, 바이오, 디지털, ESG 경영, 웰니스 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순천시의 야심 찬 청사진이다. ‘자연 속의 사람이라는 가치가 사람을 위한 자연과 여전히 갈등하는 상황이다.

 

순천의 고민은 여느 도시와 비슷할 것이다.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젊은이들을 끌어들여 인구를 늘리고 도시를 발전시키는 것. 그러나 우주산업, 바이오, 디지털보다는 진짜 정원도시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는 정원에서 출발해 도시를 만들었고, 이제 두 장소가 만나기 시작했다. 정원 같은 미래 도시는 경제보다는 아름다움이 우선일 것이다. 아름다움은 작고 느리다. 순천의 제1호 국가정원이 그런 본보기가 되면 좋겠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 경향 2023.04.29.

 

 

미국의 패권주의와 브레이크 없는 욕망

다음의 나라는 어디일까. 세계 최대 석유 소비국, 세계 군비지출의 반을 차지하는 나라, 세계 800여곳의 군사기지 보유국, 전쟁을 일으키거나 분쟁에 개입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나라, 중남미·아시아·아프리카 국가의 내정을 간섭해 온 나라, 세계 기축통화를 보유하며 맘대로 찍어낼 수 있는 나라, 국제형사재판소 비참여국, 정보를 얻기 위해 동맹국 도청도 개의치 않는 나라, 한반도에 세계 최대 군사기지를 가진 나라. 미국이다.

 

미국은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에는 너무나 많은 얼굴을 한 나라다. 세계 인구의 5%밖에 되지 않지만 세계 모든 언론에서 이 나라가 언급되지 않는 날은 없다. 오직 힘 하나로 오대양 육대주에 성조기를 휘날린다. 세계 최고 수준인 아카데미즘에 기반해 첨단 예술과 산업을 견인한다. 미국 정치계에 진출할 만큼 한국인들도 활약하고 있다. 다양한 민족·문화·종교가 뒤섞인 에너지가 용광로처럼 끓어오른다. 아메리칸드림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악의 축이야말로 미국이라며 핏대를 세우기도 한다. 분명한 점은, 미국은 무소불위의 국가라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노선은 미국 우선주의혹은 미국 예외주의에 방점이 찍혀 있다. 예방전쟁이라며 유엔 결의 없이 아프가니스탄·이라크를 침공해도 국제사회는 제재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산업 특징인 군산복합체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적들을 만든다. 냉전시대에는 공산주의, 2000년대에는 테러, 지금은 중국·러시아를 패권 경쟁자로 삼는다. 동맹국들엔 편들기를 강요한다.

 

역설적이게도 미국의 적은 자신이다. 공격 대상이던 후세인, 오사마 빈라덴, 알카에다, 탈레반은 미국이 후원한 사람이자 조직이었다. 인류의 집단자살 수단인 핵무기도 처음 만들었다. 히로시마·나가사키에서 핵무기의 위력을 확인한 각 나라는 자위권을 위해 앞다퉈 갖고자 한다. 이젠 보유수만큼이나 미국 자신에게도 겨눠지고 있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군사적 치외법권을 누리고 있다. 백지수표나 다름없는 한·미 상호방위조약 덕에 맘대로 군대를 끌어들이고 사람을 죽여도 거의 무죄다. 1871년 강화도를 무력으로 침략한 이래, 가쓰라-태프트 밀약에 의한 미·일 상호 간 필리핀과 조선의 식민지 승인, 1945년 해방과 독립을 강탈한 점령군 진출, 그리고 제주4·3을 비롯한 수많은 백성이 희생된 국가폭력의 배후는 미국임이 밝혀지고 있다.

 

전문가들이 분석하듯 미국이 중동에 군사력을 쏟아붓는 것은 자원 쟁탈을 위해서다. 2003년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부시가 이라크전쟁을 밀어붙이는 까닭은 미국의 군수산업과 석유회사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미군기지는 외계인 침략을 방어하거나 분쟁을 해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에너지 소비국가 미국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교두보다. 미국은 전 세계 석유 소비량의 4분의 1을 쓴다.

 

노엄 촘스키가 <불량국가>에서 말하듯 미국이 말하는 자유는 인권과 관계가 없다. 패권 유지를 위해 비도덕적 상행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전투차량의 일부는 미국 포드사가 제조한 것이었다. 자크 파월이 <자본은 전쟁을 원한다>에서 제시하듯 IBM, 스탠더드 오일, GM, ITT 등은 나치 독일에서 엄청난 수익을 올린 전범기업들이다. 그 뒷배를 누가 봐줬겠는가. 미국 패권주의는 오직 자신의 이권을 위한 것이다.

 

고작 250년 역사의 나라가 어떻게 상시적인 전쟁국가가 되었을까. 아메리칸 인디언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미국은 이웃 나라 시민의 숱한 목숨을 앗아간 전쟁을 지원하거나 직접 참여해왔다. 염치와 절제를 잃은 미국의 폭주로 인류의 미래가 불안하다. ‘유네스코 헌장전문에는 전쟁은 인간의 마음에서 생기므로 평화의 옹호는 인간의 마음에서 건설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명기되어 있다. 그러나 철학자 사르트르 식으로 말하자면, 미국의 욕망(실존)은 평화(본질)에 앞선다.

 

사회 질서를 제어했던 종교의 절대적 세계관이 무너진 근대 이후 서구문명의 한계, 그 자리를 자본과 힘이 차지해 약육강식의 야만성이 판치는 세상을 미국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만물을 화육시키는 천지의 도()와 덕()을 본받으며 평화를 갈구하는 한국은 허구의 가치동맹에서 벗어나 오히려 미국의 정신적 멘토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역사에서 보듯 힘으로 쌓은 제국은 반드시 붕괴된다. 의식은 물론 정치·경제적으로 다원화되어 가는 지구촌에서 독불장군 미국은 점점 경원시되어 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 경향 2023.04.29.

 

 

마른 몸에 대한 욕망, 뚱뚱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지난 달, 배우 기네스 펠트로(Gwyneth Paltrow)점심으로 사골국(bone broth)을 자주 먹는다고 한 것에 대해 미국의 유명 모델인 테스 홀리데이(Tess Holliday)사골국은 적절한 식사(suitable meal)가 아니라고 비판했다.

 

기네스 펠트로는 점심으로 주로 수프(soup)를 많이 먹는데 사골국도 자주 먹는다고 했다. 곰탕이나 설렁탕처럼 소면이나 밥을 말아먹는 게 아니라 그냥 국물만 마신다는 느낌이 확실했다. 사골국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아무런 영양가가 없다. 사골국은 칼슘이나 다른 영양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지 않다. 사실 그냥 물만 먹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적절한 식사가 아니라는 말은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다. 기네스 펠트로는 저녁은 거의 야채로만 먹는다고 했는데, 테스 홀리데이는 이에 대해 탄수화물은 악마가 아니고 지방은 나쁜 게 아니라고 말했다.

 

테스 홀리데이는 기네스 펠트로가 섭식장애(eating disorder, ED)를 미화(glorifying)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도 섭식장애가 있다고 말하며, ‘뚱뚱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세상에 이런 메시지가 계속 전파를 탈 수 있도록 시간과 공간을 내어주고 있다고 말하며 사람들에게 기네스 펠트로처럼 먹는 것을 적절한 것, 괜찮은 것으로 생각하게끔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기네스 펠트로(Gwyneth Paltrow)와 테스 홀리데이(Tess Holliday). 사진=flickr

 

섭식장애는 정신장애의 유형 중 하나로 많은 사람을 자살로 내몰고 있다. 섭식장애는 개인에게 매우 위험하지만 이 사회는 섭식장애를 조장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마른 몸을 강요한다. 그냥 강요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마른 몸은 당연하고도 마땅하게 갖추어야 할 인간의 조건으로 자연스럽게 제시되어 있다. 뚱뚱한 사람, 체격이 큰 사람은 게으른 사람, 나태한 사람,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 자기 관리 못하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편견은 뚱뚱한 사람이 프로페셔널(professional, 전문적)하지 못하다, 일을 잘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생각으로도 이어진다. 이런 사회에 섭식장애 환자가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남성에게도 외모에 대한 기준이 강요되지만, 여성에 대한 외모의 기준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훨씬 더 촘촘하다. 그래서 더욱 위험하고 해롭다. 섭식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 여성의 비율은 남성보다 4배나 높다. 보건복지부의 발표에 따르면 섭십장애 진료인원의 성별 점유율은 남성이 18.9~23%, 여성은 77~81.1%. 20대 여성의 섭식장애 진단율은 20대 남성에 비해 9배나 높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1020대 여성 중 병원에서 처방을 받아야만 하는 향정신성의약품(식욕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용도의 약물)을 트위터 등의 sns를 통해 구입하여 복용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는 소식들이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거식증을 뜻하는 애너렉시아(anorexia)와 찬성을 뜻하는 프로(pro-)의 합성어인 프로아나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기도 하다. 마른 몸을 위해 극단적인 방법으로 극심한 다이어트를 하며 그런 모습을 인증하는 게시물을 올리면서 해시태그로 사용하고 있다. 많이 굶고, 무언가를 먹었다면 토해낸다. 변비약이나 이뇨제를 먹어서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비워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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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 홀리데이는 자신이 정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아직 답은 없어도, 그가 쏘아 올린 이 논의는 중요하다. 자기 자신의 몸을 긍정할 수 없으면 자기 자신을 긍정할 수 없고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도 없다. 체격에 대한 차별(size-ism), 뚱뚱함에 대한 혐오(fat phobia)에 관한 논의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몸에 대한 긍정 운동(Body positivity movement)은 모든 몸을 인정하고 긍정하자고 이야기한다. 몸의 크기(size), 모양, 피부, 성별정체성, 젠더표현, 장애여부 등과 상관없이, 획일적인 미적 기준에 저항하고 모든 사람의 몸을 존중해야 한다는 운동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몸 긍정 운동을 폄훼, 비하, 조롱하는 사람들은 뚱뚱한 것도 아름답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라며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훼손한다고 조롱하고 PC(Political Correctness)주의자들이 세상을 혼미하고 혼란스럽게 한다고 조롱한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도 테스 홀리데이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과 전 세계에서 그를 욕했다. 마치 테스 홀리데이가 기네스 펠트로에게 당신은 아름답지 않고 나만 아름답다고 말한 것처럼 이야기가 왜곡됐지만, 테스 홀리데이는 그런 말은 한 적이 없다. 테스 홀리데이는 기네스 펠트로에게 아름답지 않다고 하거나 마른 몸이 잘못됐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마른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골국물만 마시거나 야채만 먹는 것은 적절한 식사가 아니라는 것, 섭식장애를 유도하고 찬양하는 미디어의 악영향에 대해서 말했을 뿐이다.

 

몸 긍정 운동을 비하하는 사람들은 ‘PC주의자들과 몸 긍정 운동 덕분에 너같이 뚱뚱한 사람도 아름답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나도 아름답고 너도 아름답다고 해야지, 왜 자기만 아름답다고 하고 마른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냐며 조롱한다. ‘Inclusion(포함)을 주장해서 모든 몸의 형태가 포함되게 해줬으면 너도 모두를 포함해야지 너는 왜 마른 사람들을 배제(exclusion)하기 위해 공격하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를 훼손하고 있으며 염치없는 짓이고 꼴 보기 싫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관종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관심을 받아야 자신이 계속 플러스 사이즈 모델을 하며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에, 이제는 뚱뚱한 사람들이 마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말을 하는 시대가 됐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양성과 포함 운동(Diversity and Inclusion Movement)이 만들어낸 괴물이자 폭력이라고 하는 사람도 발견된다.

 

테스 홀리데이의 건강을 걱정해 주는 사람도 수없이 많이 등장했다. ‘아름다운 건 둘째 치고 너무 아플 것 같다’, ‘저렇게 뚱뚱하면 아플 텐데 왜 자신의 건강을 챙기지 않고 저러고 사는지 모르겠다’, ‘건강하고 날씬하게 다이어트 하며 관리하면서 사는 사람을 비난하면서 자신의 욕심과 배를 불리며 살고 싶을까?’ 이런 말들이 난무했다.

 

그러나 건강을 걱정하는 말하기로 몸을 규제하고 규정하는 것은 함정이다. 체격이 큰 사람, 뚱뚱한 사람은 전부 다 건강하지 않고 마른 사람, 날씬한 사람은 전부 다 건강할까? 내 가족 중에는 아주 마른 당뇨병 환자도 있고 날씬한 고혈압 환자도 있다. 그들은 매일 약을 하나씩 먹으며 관리를 해야만 하는 만성질환자들이다. 이 사회가 기준 삼는 아주 날씬하고 마른 체형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 사회는 몸매는 자기 관리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마른 몸에 대한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다. 무언가를 먹을 때, “먹으면 안 되는데라는 죄책감을 느끼며 몸매만 생각하며 살게 된다면, 우리는 자신의 몸과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획일적인 미적 기준을 강요, 강제하는 외모지상주의 사회는 우리의 몸을 지배한다. 우리의 몸을 지배하면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삶도 지배할 수 있다.

 

획일적인 미적 기준이 누구에게 이로운가 생각해 보자. “여성스러운 몸이라는 것은 함정이다. 누가 여성은 아담하고 마르고 가벼운 몸을 가져야 한다고 정해주는가? 여성에게 강조되는 몸은 누구를 위한 몸일까? 김연경 선수, 장미란 선수는 여성스럽지 않은 몸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듣는 사회다. 누가 여성스러운 몸의 기준을 만들었는가. 누가 누구의 몸을 규정하고 있는가. 여성들에게 작고 마른 몸을 가지고 싶게 만드는 것은 가부장제 사회다. 여성이 마르고 작고 날씬해야 통제하기 쉽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로맨틱한 장면에서는 남성의 품에 폭 들어오고 쉽게 들어 올릴 수 있는 가벼운 몸이 이상적인 여성의 몸으로 표현되지만 이는 과정을 통해 여성의 몸은 통제하고 지배하기에 쉬운 몸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획일적인 미적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우리가 몸의 크기, 피부 등에 신경 쓰면 쓸수록 그것이 누구한테 이로울까? 평생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우리는 다이어트에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쓰게 된다. 단백질 보충제, 다이어트 식품, 헬스 PT(Personal Training, 개인훈련), 바디 프로필(body profile) 촬영 등에 돈과 시간을 쓴다. 지방 흡입 수술을 하기도 한다. 피부도 마찬가지다. 피부에 어떠한 흠도 점도 털도 있으면 안 된다고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레이저를 맞으러 피부과에 가야 한다. 값비싼 화장품을 사기도 한다. 나의 삶을 잘 살기 위한 나의 몸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전시되기 위한 몸을 만들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몸의 다양성(body diversity). 사진=gettyimagesbank

 

몸의 다양성(body diversity)이나 몸 긍정 운동(body positivity movement)은 누가 건강한지 아닌지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체격이 큰 사람, 뚱뚱한 사람 그리고 다양한 피부색과 장애 등을 가진 사람의 몸들이 배제되고 차별당하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장애와 질병을 가지고 있지 않은 마른(날씬한) 몸을 표준이자 기준으로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을 배제한다. 몸의 모양이나 크기 또는 기능에 따라 배제, 차별, 억압, 폭력을 경험하게 된다. 어떤 사람에게는 비행기, 버스, 전철에서 좌석의 크기가 너무 작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전철이나 버스를 아예 타지 못하기도 한다. 취업 등의 임금노동과 관련된 일 그리고 친교나 네트워크 등의 사회 활동에서 불이익을 경험하거나 아예 배제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노력이나 자기관리와 같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제도와 문화)의 문제라는 것이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투자하는가? 강요된 투자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나의 삶은 어떨까 생각해 보라. “자기 관리라는 이름으로, “건강이라는 미명으로 우리를 옥죄던 획일적인 미적 기준에 도전하고 저항하자.

 

아침 인사가 외모칭찬이었다면, 친구들이나 동료들과 외모 이야기밖에 할 말이 없다면, 이제는 변화해 보자. 서로가 서로를 획일적인 기준 맞춰서 살게 하는 것을 멈추고 주변 사람들과 더 깊은 대화를 나누고 더 풍성한 관계를 누리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미디어오늘 2023.04.29.

 

 

기업 이익도 한반도 미래도 못 챙긴 윤 대통령의 가치외교

윤석열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과 다른 별종의 지도자인 것 같다. 박정희 정권 이래 지난 60여년간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자신의 기질과 상관없이 대외정책에서 한반도 정세의 안정을 기하는 방향에서 노력하였다. 중국·러시아와 수교를 성사시킨 노태우 정권 이래 지난 30여년간 두 나라가 우리를 건드리지 않는 한 그들을 자극하여 스스로 한반도 정세의 불안을 가중시킨 대통령은 없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다르다. 그는 강경 일변도의 대북정책에 만족하지 않고 미국과 눈높이를 맞춘 가치외교를 내세워 중국·러시아를 자극하며 불안을 키우고 있다. 단순히 미국의 압력 때문으로 보기에는 너무 적극적이고 거침이 없다. 마치 세계를 다시 냉전시대식의 진영 간 대결로 몰고 가는 신냉전 전사처럼 보일 정도다. 그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뒤에 우리 국민이 떠안을 위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윤 대통령의 이번 미국 방문에서도 그 면모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한국 외교가 국익을 위해 넘지 않았던 선을 거침없이 넘었다. 방미 기간 내내 가치 기반의 외교를 강조하고 중국·러시아 관련 문제를 언급하며 두 나라와 대립하는 지점에 명확히 섰다. ·미 정상 공동성명에는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미국이 원하는 미국의 언어가 그대로 담겼다. 반면에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한국의 특수한 사정을 양해하는 어떤 종류의 문구도 없었다.

윤 대통령은 중국·러시아가 미국 다음으로 한반도 운명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나라들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두 나라는 헌법상 대한민국 영토와 국경을 맞댄 초군사 강국이며, 우리의 삶을 규정하고 있는 한반도 정전 체제에 책임이 있는 나라들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윤 대통령보다 덜 똑똑하고 자유의 가치를 몰라서 대만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애쓴 것이 아니다. 그 길이 한반도 평화를 지키고 국민의 안전을 도모하는 데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중국은 한국의 제1위 교역국가이기도 하다. 단순 계산으로 지난 20년간 우리나라의 대중 무역수지 흑자 총액은 같은 기간 전체 무역흑자의 90% 정도를 차지했다. 러시아도 중요한 경제협력 국가로 부상 중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가치외교가 노골화하면서 중국과 러시아에서 우리 기업들의 신음 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시진핑 주석이 412일 광저우시의 엘지(LG)디스플레이 공장을 방문한 직후 윤석열 대통령의 중국 견제 발언이 나와 우리 기업들이 크게 걱정하고 있으며, 러시아에서는 현지에 진출해 있던 현대자동차가 철수를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기업의 애로를 해소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영 갈등의 전위대로 나서서 그들을 더 궁지로 몰아넣고 있는 느낌이다.

 

과연 냉엄한 국가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국제정치의 장에서 국익은 무엇인가? -중 갈등 속에서도 프랑스는 에어버스 160대를 중국에 판매하는 실리를 챙겼다.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만든 쿼드(QUAD)의 핵심 국가인 인도는 대러시아 제재 물결 속에서 미국의 눈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값싼 러시아 원유의 최대 수입국으로 떠올랐다. 아마 자유라는 가치에 올인하는 윤석열 정부에게 이런 모습은 실리 추구보다 배신적 행위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가치외교는 가치동맹을 지향한다. 필자는 오래전에 <한겨레> 칼럼에 ‘‘가치동맹과 가치공유의 차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2012.8.1) ·미가 가치를 공유한다는 사실과 가치동맹이 된다는 말은 다른 뜻이다. 한국과 미국은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으며 그 실현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 그러나 가치외교가 지향하는 가치동맹은 이를 넘어서서 자유민주주의라는 공동의 가치 아래, 나와 반대되거나 다른 이념을 지닌 국가에 대항하여 배타적 동아리를 만든다. 국가들 간 가치의 수렴은 장기간의 접촉과 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순리라 생각되지만, 안타깝게도 가치동맹이 현실화되고 있다.

 

가치동맹의 합창이 커질수록 한반도의 긴장도 비례해서 고조될 것이다. 미국은 가치를 기치로 구심력과 원심력이 혼재했던 중국-러시아-북한 관계를 한통속으로 몰아가고, 그 방패로서 동맹급의 한··일 군사·정치협력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울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북한에 대한 압도적인 군사적 제압? 윤석열 정부는 이것이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북한의 특성과 국제역학상 아무리 강력한 확장억제 전력을 구비해도 그에 상응한 북한의 도발만 강화시킬 뿐 굴복은 불가능하다. 반면에 한국이 입을 안보·경제적 손실은 분명해 보인다. 한반도 평화는 큰 도전에 직면하고 그 여파로 한국 경제는 안보 리스크까지 더해져서 크게 타격을 받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가치외교는 당장 대북제재 체제를 크게 동요시킬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북한 핵도발로 인한 제재 조치의 중심에는 중국이 있었다. 북미 교역과 남북 교역 등이 제로인 상태에서 대북제재는 북한 대외무역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해왔다. 이 대북제재가 미-중 갈등 속에서 점차 이완되어 왔는데, 이번에 윤 정부의 가치외교가 결정타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방문에서 윤 대통령이 미국에 내준 것은 분명한 데 비해, 얻은 것이 무엇인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북핵 대처와 관련해서도 여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미국으로부터 전술핵무기 공유 정도는 받아내야 한다는 의견이 컸으며, 정부도 마치 핵공유를 얻어 올 것처럼 큰소리쳤다. 그러나 핵공유는 간데없고 이전 정부가 미국과 협의하여 발전시켜온 한-미 확장억제 체제를 업그레이드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다. 사실 확장억제의 가장 중요한 근간은 그 체제의 정교화가 아니라 양국 간 신뢰이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말의 성찬으로 이루어진 확장억제 체제를 얻으려고 미국한테 스스로 핵무장 의지를 명시적으로 부정하는 큰 선물을 내주었다.

 

한편 우리 국민이 윤 대통령에게 크게 기대한 것은 미국의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인한 우리 기업의 불이익을 만회하는 것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첨단 기업들이 거대한 중국 시장의 손실을 감수하고 미국 주도의 국제공급망 생태계 구축에 동참했으나, 결과가 역설적으로 한국 기업 죽이기로 나타난 것이 이 법안들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이 동맹의 역설을 해결할 만한 어떤 구체적인 양보도 얻어내지 못했다.

 

윤 대통령은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이 법안들을 만든 의회 지도자들에게 문제의 해결을 호소했어야 했으나 유감스럽게도 침묵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면 미국에 대한 찬사와 장밋빛 카펫이 깔린 한-미 관계도 말해야 하지만, 더불어 미국 투자 한국 기업들의 애로와 우리 국민의 우려를 솔직히 전달하고 미국의 전향적인 조치를 마땅히 요청했어야 했다. 윤 대통령은 미국 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과 현대차 공장이 만들어낸 일자리를 자랑스럽게 열거하며 호혜적 한-미 협력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이 기업들이 처한 위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실속 없이 끝났다. 행사는 요란했으나 가치외교에 가려 국익도 한반도의 미래도 보이지 않았다. 향후 미국이 부과한 제약 조항으로 우리 기업의 주름살은 여전히 깊게 패어 들어가고, 한반도의 긴장은 더 높아질 것 같다. 그리고 이 긴장은 윤석열 정부가 가치외교의 기치를 내려놓고 외골수 외교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가라앉기 어려울 것이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한겨레 2023.04.30.

 

 

삼포세대는 어쩌다 민지(MZ)가 되었나

제가 20대일 때는 청년을 삼포세대로 부르더니, 지금은 엠제트’(MZ)라고 불러요. 전자가 굉장히 불행하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세대로 호명된 데 비해, 후자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소비 지향적인 세대로 통하더군요. 저는 달라진 게 없는데, 청년에 대한 시선은 왜 이렇게 바뀐 걸까요?”

 

지난 24나이·세대·시대를 주제로 열린 두산인문극장 강연장. 1992년생이라고 밝힌 청년이 던진 질문이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했다는 삼포세대는, 2015년을 전후해 청년세대에게 붙은 이름표였다. 고단한 청년들의 삶을 빗대, ‘헬조선·각자도생·노오력이 화두로 떠올랐던 시절이다. 질문자는 서른을 갓 넘긴 청년이다. 그가 20대를 지나오는 동안 엠제트로 호명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청년세대를 단일한 특성을 가진 집단으로 묶어내려는 세대담론은 지난 십수년간 끊임없이 등장했다. 비단 한국에서만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미국의 밀레니얼이나 일본의 사토리’, 중국의 바링허우등이 대표적이다. 2000년 이후 성인이 된 1980년대생에 대한 세대 호명이 유독 많았다. 새 천년으로의 전환기에 대한 의미 부여가 남달랐던 영향이다. 이후 제트(Z)세대(1990년대 중후반 이후 출생자)로 한번 더 선이 그어졌다. 1970년대 태어난 엑스(X)세대의 자녀들로, 스마트폰·유튜브와 함께 자랐다고 해서 디지털 네이티브로도 불린다.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엠제트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19년 무렵이다. 밀레니얼과 제트를 합친 것으로, 10대부터 40대 초반까지 매우 넓은 범위의 연령대를 하나의 세대로 묶었다. 처음에는 주로 기업들의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됐다. ‘○○(제품명)에 빠진 엠제트따위의 기사가 무수히 양산됐다. 정치권에선 2021년 국민의힘이 전당대회에서 이준석(1985년생) 대표를 선출한 것이 분기점이 됐다. 특정 정당에 대한 충성도보다는 그때그때 이슈에 따라 지지 의사를 드러내는 2030에 대한 공략은 정치공학적으로도 중요한 화두가 됐다.

 

엠제트 담론이 정치권과 기업의 전략적 도구로 쓰이면서, 청년들의 현실을 반영하기는커녕 왜곡할 소지가 커졌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1990년 이후 종합일간지, 경제지 18, 방송사 4곳의 기사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 2012년 이후 세대갈등 담론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이후로는 불평등의 원인을 세대 간 경쟁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큰 폭으로 늘었다. 전체 취업자의 0.7%에 불과한 ‘50대 대기업 정규직 노조원이 청년실업·비정규직 문제의 원인이라는 도식적 인과관계만 앞세우는 식이다. 실제로 정부·여당은 지난 3월 주당 최대 69시간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근로시간 개편안엠제트가 원하는 방향이라며 밀어붙이려다, 거센 반발 여론에 한발 물러선 바 있다. 당정이 엠제트 노조라고 이름 붙인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조차 장시간 노동을 부추길 수 있다며 정부안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갈수록 청년세대 내 계층화가 굳어질 조짐을 보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세대담론의 폐해는 훨씬 더 심각해 보인다. 같은 연령대는 삶의 조건도 비슷할 것이라는 착각에 기반한 세대주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탓이다. 19~34살 청년 패널을 고용·소득·사회적 보호 수준에 따라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눈 뒤, 2008년부터 2020년까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추적 조사한 결과(이승윤 중앙대 교수)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 비정규직으로 일하거나 시간당 중위임금(소득)3분의 2 이하를 버는 경우, 4대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으면 불안정한 상태로 간주되는데, 해당 기간에 평균적으로 불안정성이 지속되는 약 46%의 집단과 안정성이 이어지는 26%의 집단으로 양극화되고 있었다.

 

여야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엠제트용 정책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천원의 아침밥과 교통·통신비 지원, 학자금 이자 면제 등등. 각각의 정책 하나하나가 불필요하다고 따지는 것이 아니다. 당장 청년 유권자의 환심을 사느라 민원성 이슈에 치우치다 보면, 좀 더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할까 걱정스럽다. 2010년대 이후 청년 당사자 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이미 정책 담당자들의 책상 서랍에는 고용·주거를 비롯한 청년정책 의제가 쌓여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론 이들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정체불명의 엠제트를 좇느라, 청년의 삶에서 더 멀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황보연 | 논설위원 한겨레 2023.04.30.

 

 

윤석열 대통령 방미 성과와 남··미의 동상이몽

윤석열 '가치 외교', 급변하는 국제 정세 대처하기 어렵다

가치외교의 성적표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426'워싱턴 선언'을 발표했다. 북핵 위협이 현실화하는 가운데 나온 조치라는 점에서 시의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미는 '워싱턴 선언'에서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모든 가능한 핵무기 사용의 경우 한국과 이를 협의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핵협의그룹(Nuclear Consultative Group/NCG) 창설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는 윤 대통령이 방미 전 언급한 'NATO 이상의 강력한 대응'과는 거리가 멀다. NATO의 핵계획그룹(Nuclear Planning Group/NPG)은 유럽에 전진 배치된 미국 전략자산의 공동 운용 논의, NATO 회원국의 핵투발수단 제공 등을 내용으로 한다.

 

이와 달리 한·미가 합의한 핵협의그룹은 "유사시 미국 핵 작전에 대한 한국 재래식 지원의 공동 실행 및 기획이 가능하도록 협력"하고 "한반도에서의 핵억제 적용에 관한 연합 교육 및 훈련 활동"을 강화하는 것이다. '워싱턴 선언' 그 어디에도 미국의 핵자산 운용에 대한 한국의 참여와 발언권은 명문화되어 있지 않다.

 

대통령실은 '워싱턴 선언'에 대해 "사실상 미국과의 핵공유"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에드 케이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국장은 27일 미국 국무부에서 열린 한국 특파원단과 브리핑에서 "핵공유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언급했다. 핵공유에 대한 정의는 핵무기의 통제(control of weapons)와 관련되며, '워싱턴 선언'은 그렇지 않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상 의무와 한·미 원자력협정의 준수를 재확인했다. 일각에서 제기되어온 자체 핵무장론, 핵추진 잠수함 확보,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등 우리가 북핵 위협 상쇄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잠재적 카드를 모두 '셀프 봉쇄'한 셈이다.

 

대통령실과 미국 측은 '워싱턴 선언'의 내용을 중국 측에 사전 통보했다. 유엔안보리에서 북한의 핵무장을 비호하고 있는 중국에게 한국은 NPT를 준수할 것이며, 확장억제는 중국의 이해관계를 손상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양해를 구한 셈이다.

 

결국 북핵 위협 앞에서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얻은 것은 사실상 핵협의그룹이라는 구속력 없는 형식상의 기구 하나인 셈이다. '워싱턴 선언' 직후 미국 카토연구소의 더그 밴도우 수석연구원이 "미국의 공허한 승리"라고 평가한 이유다.

 

·감청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져가는 가운데 안보의 핵심 컨트롤 타워까지 '털린' 대통령실의 입장은 미국 옹호 일색이었다. 일부 국가가 도·감청 내용의 불확실성과 조작설을 제기하는 배경을 이유로 대통령실은 도·감청은 없었다는 입장을 서둘러 발표해 논란을 자초했다. ·미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악의는 없었다"는 대한민국 외교사에 남을만한 발언을 남겼다. 윤석열 정부 가치외교의 일면이다.

 

출범 1년을 넘긴 윤석열 정부 가치외교의 성적표는 어떠한가? 윤석열 정부의 대북 강경책과 한·미 동맹 및 한·일 군사협력 강화 기조는 탄력을 받고 있지만, 북핵 위협은 증대하고 있으며 군사적 긴장은 고조되고 있다. 북한은 우리의 항구, 비행장, 그리고 주요시설을 모의 핵공격 하는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북한은 정전협정 이후 최초로 속초 앞 해상에 미사일을 발사했으며, 12월에는 대통령실 상공까지 무인기를 침투시켰다. 최근 북한은 우리의 항구에 초강력 해일을 발생시킬 수 있는 핵무인수중공격정의 기폭실험까지 실시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한국기업을 직격했으며, 미국의 대중 수출규제 강화 속에 삼성전자와 SK는 최악의 실적표를 받아들었다. 미국의 웨스팅하우스는 한국형 원전의 체코 수출에 발목을 잡고 있다. 대한민국 외교안보의 현실이다.

 

화성-18형의 명암

2023413일 북한은 고체연료 로켓엔진을 장착한 화성-18형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콜드런칭 방식으로 발사했다. 콜드런칭은 미사일을 압축공기로 발사관 밖으로 일정 정도 밀어올린 뒤 공중에서 점화하는 방식인데 이는 발사 시 화염과 후폭풍으로부터 발사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북한은 첫 고체연료 로켓엔진 ICBM 시험발사에서 대출력 로켓엔진 성능, 단 분리, 조종체계 등을 검증했다.

 

<노동신문>"전략무력의 끊임없는 발전상을 보여주는 위력적 실체"라고 평가했으며, 김정은 위원장은 한·미를 향해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게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고체연료 ICBM은 준비시간이 크게 줄어들며, 기습발사에 유리하다. 우리 킬체인(kill chain)의 무력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이미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의 고체연료 로켓엔진 및 콜드런칭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북한은 2016년 수중에서 콜드런칭 방식으로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북극성의 사출에 성공했으며, 2019년에는 SLBM 북극성-3을 고도 910km까지 고각 발사해 준중거리 미사일 능력을 입증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은 현재까지 ICBM의 정상 각도 발사를 시도하지 못했으며, 이번 화성-18형도 마찬가지였다.

 

평양 순안공항에 집중된 ICBM 발사라는 지적을 의식한 듯 북한은 평양 외곽에서 화성-18형을 발사해 야지 기동 및 기습발사 능력을 의도적으로 부각시켰다. 그러나 화성-18형 발사 장소는 조경이 잘된 정원과 아스팔트 포장 도로임에 비추어 일반적인 야지가 아닌 김정은 위원장의 특각 또는 다른 시설로 추정된다.

 

또한 이동식 발사대가 지나간 콘크리트 다리를 흙으로 위장한 정황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화성-18형 발사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ICBM의 기술적인 제약을 아직 해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북한이 위력을 과시한 핵탄두 탑재 가능한 무기체계는 지대지 전술탄도미사일, KN-23, KN-24, KN-25, 핵무인 수중공격정 해일, 순항 미사일 화살-1, 2, 극초음속 미사일, 화성-12, 15, 17, 18 등이다. 핵무기 선진국인 미국보다 더 다양한 핵전력을 개발·운용하고 있는 셈이며, 결국 이는 개발과 군수지원 및 유지에 보다 많은 비용이 소요됨을 의미한다.

 

북한의 경제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핵전력이며,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원투자의 왜곡 및 인민경제의 위축이 불가피하다. 소련이 미국과의 전략무기 감축협정에 합의했던 이유는 군비경쟁을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사정 때문이었다.

 

북한의 지속적인 미사일 발사로 경제문제 해결은 더 요원해지고 있다. 올해 들어 북한은 알곡생산고지 점령을 최우선 경제 목표로 설정했으며, 전세계가 위드코로나로 전환하는 상황에서도 방역을 국가 최우선 사업으로 내세우고 있다.

 

416일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 참석 하에 화성지구 1만 세대 살림집 준공식을 성대히 치렀지만 더 시급한 경제부문의 자원투입을 희생시킨 결과라는 평가다. 핵무기를 중심으로 하는 국방력 강화와 자력갱생노선,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 우상화가 지속가능한 북한의 발전노선일 수는 없다. 최근 북한은 국제제재라는 동병상련의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하고 있지만 양국 간 협력의 여지는 한계가 있다. 시간이 갈수록 북한 내 상황이 더 어려워질 것이 자명하다.

 

바이든 정부의 빈손

20214월 말 출범 100일 만에 바이든 정부는 대북정책 재검토(review)를 끝내고 '조정된 실용적 접근'(a calibrated practical approach)을 공개했다. 당시 바이든 정부는 자신들의 대북정책이 트럼프 정부의 빅딜전략과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정책과 차별화되며 강한 억지, 외교, 동맹을 근간으로 대화를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후보시절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핵능력 축소 수준에서도 북미 정상회담이 가능하다고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집권 2년이 지난 바이든 정부는 그 어떤 북·미 접촉도 성사시키지 못했다. 바이든 정부는 북한에게 조건 없는 대화 제의를 반복했지만 북한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북한은 이미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영변 핵시설의 영구 폐기와 대북제재 해제 간 교환이라는 조건을 제시한 바 있다. 이미 하노이에서 실패를 경험한 북한이 원하는 것은 구체적인 협상의 조건이었다. 그동안 미국의 '조건 없는 대화'와 북한의 '조건 있는 대화' 간 간극을 줄이지 못한 셈이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이 미국 본토 공격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평가했으며, 화성-18형 발사에 대해서도 초기 단계로 평가했다. 한반도가 북한의 다양한 핵탄두 탑재 가능 단거리 탄도미사일의 위협에 직면한 반면 미국 본토는 아직 과녁이 되지 못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유럽의 안보위기와 북한의 핵위협 고조를 명분으로 미국은 한·미동맹 강화와 한··일 군사협력의 확대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의 보수정권은 한·미동맹에 강한 친화력을 보이고 있으며, 일본은 안보전략을 바꿔 보통국가를 향해 잰걸음을 걷고 있다.

 

북핵 위기 때마다 한반도로 전개되는 미국의 전략자산은 중국에 대해서도 영향이 있으며, 중국이 민감해하는 서해와 남중국해에서 한·미 연합 훈련이 수시로 실시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북핵 문제로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이 탄력을 받고 있다.

 

미국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남··미 관계의 교착과 강대강 대치국면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빠르게 핵능력을 고도화하고 있으며, 언젠가 미국 본토 공격능력을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또한 북한의 고조되는 핵위협 때문에 한국 내 자체 핵무장 여론이 빠르게 확산되는 추세다. 금년 초 여론조사의 경우 국민 4명중 3명이 자체 핵무장을 지지했다. 20234월 말 현재 바이든 정부의 대북 성적표는 빈칸이다. 그 후유증은 점차 현재화해 한반도를 넘어 결국 최종적으로 미국의 고비용구조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국익을 위한 '행동하는 동맹'?

202212월 바이든 정부의 첫 국빈으로 미국을 방문했던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금년 4월 초 중국을 국빈 방문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같은 시기 중국을 방문해 베이징에서 시진핑 주석과 3자회담을 가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방중을 통해 프랑스가 에어버스 160대를 중국에 팔기로 합의했다. 또한 대중국 매파로 통하는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함께 우크라이나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관여를 촉구하는 효과도 거두었다.

 

시진핑 주석은 427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하고 협상이 유일한 출구라는 점을 설득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중국 방문 열흘 뒤 집권정당 연합 소속 프랑스 의회단이 대만을 방문해 라이 칭더 부통령을 면담하고 마크롱의 친서도 전달했다. 이것이 프랑스식 국익외교다.

 

우크라이나는 중국에 항공모함을 판매하고 각종 군사기술을 제공해 인민해방군 현대화에 기여했다.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에 활용한 것으로 알려진 RD-250 로켓엔진은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된 것이다. 그 우크라이나가 미국과 유럽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있으며, 우리에게도 무기공급을 요청하고 있다. 국제정치에서 영원한 동맹도 적도 없으며 오로지 국익만 있을 뿐이다.

 

신냉전이라는 용어가 회자될 만큼 국제정세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미동맹은 오랫동안 한반도의 안보에 기여했으며, 향후에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동맹에만 의존하는 방식으로 험난한 국제정세를 헤쳐 나가기 힘들다.

 

인류가 국가를 형성한 유사 이래 모든 외교의 핵심은 국익이며, 이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 피아를 가리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동맹은 국익을 위한 수단일 뿐이며 결코 목표가 될 수 없다. 동맹은 국익의 실현을 위해 활용하는 것이지 국익과 상치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을 냉철하게 평가하고 향후 한국 국익을 위한 외교안보의 길을 좀 더 진지하게 모색할 일이다. 미국의 요구를 100% 수용하는 것이 한·미동맹을 견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제 한국은 외교안보의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해 국익을 실현해 나가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5월 히로시마 G7회의에서 좀 더 성숙한 외교안보의 행보를 보여주어야 하며, 히로시마 한··일 정상회담이 실속 없는 가치외교에 봉사하는 것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신중하게 준비할 일이다.

 

··미 모두가 엉뚱한 길 위에서 헤매고 있는 것으로 비쳐진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동맹과 강대 강 대치라는 플랜 A에만 의존하고 있는데,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역할을 제대로 찾고 당면한 국가적 난제들을 헤쳐 나가기에는 크게 부족하다.

 

북한이 파국으로 치닫는 경제를 외면하고 핵무기와 국방력 강화에 자원을 지속적으로 투자한다면 김정은 정권의 미래는 어두울 뿐이다. 바이든 정부는 '워싱턴 선언'으로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하거나 한국 내 자체 핵개발 여론이 사그라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반도 군사적 대치의 장기화는 우발적 충돌의 가능성이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북핵문제를 둘러싼 남··미의 동상이몽은 한반도 핵위기와 군사적 긴장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그 중심에 대한민국이 자리하고 있다. 시급히 북핵문제 해결의 입구를 형성해야 하며, 대화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모든 채널을 가동해 남북, ·미 간 대화를 재개해야 하며, ·미가 최고위급 특사 파견을 통해 북한을 견인해내는 것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시급한 것은 남··미 모두의 고비용 구조로 작용하고 있는 강대강 군사적 대치를 대화국면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427일 미국 의회에서 '자유의 동맹, 행동하는 동맹'이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자유의 나침반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화 없는 자유가 있을 수 없다. '행동하는 동맹'이 한반도의 평화와 자유를 향해 진정한 행동에 나설 때다.

평화재단 | 프레시안 2023.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