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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23.3.1~31 한국 사람이요? 일본 사람이요?

by 이성근 2023. 4. 2.

비난받지 않는 자들 송기호 변호사 경향 : 2023.03.01.

이재명 방탄의 개미지옥양권모 편집인 경향 : 2023.03.01.

철학자와 전쟁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경향 : 2023.03.01.

이재명 체포에 왜 언론은 안달일까 손석춘 칼럼니스트철학 미디어오늘 : 2023.03.01.

책임감은 느끼는데 책임 질 사람은 없다한동훈 화법의 역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경향 : 2023.03.01.

코로나백신 피해자의 눈물버려진 법치, 어물쩍 정치 황필규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한겨레 : 2023.03.03.

'당정분리' '당정일체', 모두 실패한 까닭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 프레시안 : 2023.03.03.

우크라이나 전쟁의 두 가지 시나리오 존 페퍼 |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한겨레 : 2023.03.05

얍실하거나 뻔뻔하거나 박병률 경제부장 경향 : 2023.03.06.

누구를 위한 전기요금 인상인가 채효정 오늘의 교육편집위원장 경향 : 2023.03.06.

능력주의가 도덕주의가 될 때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경향 : 2023.03.06.

수모(受侮)를 견디는 힘 유시민 작가 시민언론 민들레 : 2023.03.06.

윤석열 정부 1, 거대한 퇴행을 목도하다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 한겨레 : 2023.03.07.

신권위주의, 외로운 이들을 사로잡는 지배전략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한겨레 : 2023.03.07.

중 배터리업체, 포드와 손잡고 IRA 우회상륙우방이 봉인가 김양희 | 대구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한겨레 : 2023.03.07.

언제까지 성장의 노예로 살 것인가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경향 : 2023.03.08.

구속성반도체 지원의 함의 김유진 워싱턴 특파원 경향 : 2023.03.08.

거짓말하는 대통령 박충구/ 전 감신대 교수ㆍ 생명과 평화윤리 연구자 시민언론 민들레 : 2023.03.08.

검사가 와도 사교육은 못 잡는다 오창민 논설위원 경향 : 2023.03.09.

삶과 시가 뒤엉켜 완성되는 인생 변주곡 이병곤 | 제천간디학교 교장 한겨레 : 2023.03.09.

민주당에서 무너지는 민주주의, 고생이 많다 정희준 문화연대 집행위원 | 프레시안 2023.03.10.

 

탈식민주의 혹은 겹-식민주의 홍성일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미디어오늘 2023.03.11.

술 취한 삼촌같은 대통령 박영환 정치부장 경향 2023.03.13.

이재명 사건 관전법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경향 2023.03.13.

이재명 리스크에 가린 윤석열의 진짜 위기 박찬수 ㅣ 대기자 한겨레 2023.03.13.

사과하지 않는 가해자를 용서하라니, 염치없는 국가 이금규 | 법무법인 도시 변호사 한겨레 2023.03.13.

국치 그 치욕이 되풀이되는가 고정휴 |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명예교수 한겨레 2023.03.13.

윤석열과 기시다의 저녁밥 손석춘 칼럼니스트철학자 미디어오늘 2023.03.13

공정·법치 외치던 윤 대통령은 어디로 숨었습니까 최신형 정치부장 뉴스토마토 2023.03.13.

다시 생각하는 이중화, 고령화, 민주주의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경향 2023.03.14.

일할 를 정해주는 이중빈곤의 사회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경향 2023.03.14.

낄 때 빠지고 빠질 때 끼는 정권 이기수 논설위원 경향 2023.03.15.

한국, 의사가 많은지 적은지 팩트체크를 해보자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한겨레 2023.03.15.

·일관계 개선, 이제라도 야당부터 설득하라 성한용 | 정치부 선임기자 한겨레 2023.03.15.

낮은 지지와 권력 독점의 불비례민주공화국이 위험하다 박명림 연세대 정치학과 교수 경향 : 2023.03.16

반성과 사죄 없는 해법은 또다른 가해에 불과하다 김명인 | 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문학평론가 한겨레 : 2023.03.16

국민이 대통령입니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경향 : 2023.03.17.

오호통재라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 경향 : 2023.03.17.

희망은 과거로부터 온다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경향 : 2023.03.18.

일본 언론들이 걱정해주는 윤석열 대통령 권태호 | 논설위원실장 한겨레 : 2023.03.20.

미국 폭스뉴스재판을 주목하는 이유 제정임 |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장 한겨레 : 2023.03.20.

이인규의 글로리유시민 작가 시민언론 민들레: 2023.03.20.

 

법원은 영장 자판기인가 권태호 | 논설위원실장 한겨레 : 2023.03.21.

홍보부족이라고? 시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송현숙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경향 : 2023.03.23

특권 중산층의 지배를 넘어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경향 : 2023.03.23.

인플레이션 전쟁의 희생자들 김준기 뉴스콘텐츠부문장 경향 : 2023.03.23.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의 교훈 윤석헌 | 전 금융감독원장 한겨레 : 2023.03.23.

왜 어떤 '사익 추구 행위''공익'이라 불릴까 류하경 변호사 | 프레시안 2023.03.23

은행 위기와 대마불사 자본주의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경향 : 2023.03.24.

한국 사람이요? 일본 사람이요? 김진우 정치에디터 경향 : 2023.03.24.

예수 장사꾼과 정치 거간꾼 김택근 시인·작가 경향 : 2023.03.25.

일본이 언제나 우리에게 '재앙'인 이유 김창훈 칼럼니스트 | 프레시안 2023.03.25.

평화 중재자로 거듭나려는 중국, 미국의 선택은? 문정인 | 연세대 명예교수 한겨레 2023.03.26.

윤 대통령은 사람 대접하기가 그리 어려운가 정남구 | 논설위원 한겨레 2023.03.26.

조금 알면 더 용감한 표본윤석열 손석춘 칼럼니스트철학자 미디어오늘 2023.03.27

외교와 결단, 그리고 민주적 통제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경향 : 2023.03.28.

철인왕 윤석열의 위험한 순교자주의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경향 : 2023.03.28.

왜 과로사한 대통령은 없을까? 신영전 | 한양대 의대 교수 한겨레 : 2023.03.28.

유학생은 한국 대학의 인가 이봉현 | 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한겨레 : 2023.03.28.

포항 해변에 영국 코만도 부대가 나타난 이유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프레시안 : 2023.03.28.

민주당, 무엇이 문제이며 무엇을 해야 하나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시민언론 민들레 : 2023.03.28.

돈과 예술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경향 : 2023.03.29.

10억엔과 방사능 오염수 송기호 변호사 경향 : 2023.03.29.

조선일보가 쓰고 있는 '새로운 윤리학 이명재 에디터 시민언론 민들레: 2023.03.29.

혁신은 없고 헛발질만 하는 민주당, 이재명의 길은? 정희준 문화연대 집행위원 | 프레시안 2023.03.30.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결단' 내려야 한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 프레시안 2023.03.31

탄핵, 행정부 견제 위한 헌법상 책무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 경향 2023.03.31.

정의 실현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목숨 걸고 해야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경향 2023.03.31.

 

 

 

비난받지 않는 자들

우리 사회에는 저지른 잘못에 비하여 지나치게 너그러운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가혹하게 탈탈 털리고 항변마저 외면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계층들은 뻔뻔하게 굴어도 당연하게 여겨지고, 어떤 집단들은 순백의 눈처럼 깨끗해야만 한다. 지적의 운동장이 평평하지 않다는 사실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피부에 와 닿는다. 나는 이중 기준의 카르텔이 식민주의에서 비롯했다고 생각한다.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되었다가 취소된 정순신 전 검사를 보자. 그의 아들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들의 학교폭력 당시 정순신은 검사였다. 학폭 피해자 학생의 아버지가 제주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피해자를 빨갱이라 불렀다고 조사된 아들에 대한 처분을 막기 위해, 정순신 검사는 당시 직접 학교폭력위원회에 참석했다. 보도에 의하면 학교폭력위원회가 조사한 사실에 대해 반성보다는 변호하였다고 한다. 변호사를 선임하여 대법원까지 소송을 하였다. 이렇게 시간을 끄는 과정에서 학폭 피해자 학생은 고통 속에 병원을 다녀야 했고,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였고 극단적인 시도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정순신을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한 대통령은 대통령실을 통해 인사 검증에 아쉬운 점이 있다고만 했다. 정순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제대로 비판하지 않았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몰랐다고 했다. 경찰청장은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했다. 공적 책임자 그 누구도 정순신의 행위를 제대로 비판하지 않는다. 정순신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인권감독관을 지냈다. 그러나 그는 청소년기에 학교 폭력을 당하여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 학생을 배려하고 존중하지 않았다. 그는 인권의 수호자인 공직자로서 행동하지 않았다. 법 기술자로, 소송으로 시간을 끄는 전략을 선택하였다. 이는 피해자를 더 고통스럽게 하였다.

 

전 국민의힘 의원이었던 곽상도는 어떠한가? 그는 아들이 받은 퇴직성과급 50억원에 대하여 무죄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50억원의 성과급을 정당화할 만한 중대한 질병이 발병되지도 않았고 지나치게 과다하다고 판단했다. 곽상도의 알선의 대가로 아들에게 50억원을 지급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기는 한다고 판결문에 썼다. 그러나 무죄 판결했다. 그 이유는 하나이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아들이 받은 것을 곽상도가 직접 받은 것이라고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검찰이 무죄가 나올 정도로 허술한 증거를 제출했다는 의미이다. 이제 무죄가 선고된 곽상도는 더 이상 비난해서는 안 되는 사람처럼 대우받고 있다.

 

도이치 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관련으로 검찰로부터 조사 소환을 받았지만 이에 응하지 않고 있는 김건희 여사도 비난해서는 안 될 사람으로 대우받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해서는 도망과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음에도 한사코 신체적 자유를 박탈하고 구금하려고 시도하면서도 50억 클럽에 대해서는 제대로 수사조차 하지 않고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죽을 때까지 가혹하게 화살을 쏘면서도, 어떤 이들에게는 무딘 화살조차 겨누지 않는다.

 

국민을 나누고, 이중 기준을 들이대는 뿌리는 일제 식민주의이다. 일제는 조선 사람을 둘로 나누었다. 그들에게 복종하는 자들과 저항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후자를 불령선인으로 부르고, 낙인찍었다. 같은 조선 사람이라도 후자에 대해서는 가혹한 탄압을 가했다. 심지어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에서도 조선 사람을 죽일 때에 불령선인이라 부르며 정당화했다. 이 사람들은 일본국 국민이 아니므로 이들에게는 어떠한 비난과 처분을 해도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친일파들에게는 많은 특혜를 주어 포섭했다. 식민지는 이중 기준의 카르텔이었다.

 

내가 정순신 사건에서 가장 섬뜩했던 것이 빨갱이라고 학교 친구를 불렀다고 조사된 사실이다. 이 말에는 피가 흐른다. ‘빨갱이라는 낙인으로 국민을 나누고 또 나눈 시대가 있었다. 그렇게 몰려 수많은 국민들이 죽임을 당했다. 민족상잔과 냉전은 피로 쓴 이중 기준의 시대였다. 그리고 이 카르텔이 아직 해체되지 않았음을 정순신의 아들인 고등학생의 입에서 나온 빨갱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다.

 

이제 드러내고 인정하자. 비난의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다고 소리 내어 외치자. 어떤 계층에 대해서는 그들의 잘못을 당연하게 여기고 심지어 그들과 심리적으로 동조화하려고 하면서도 어떤 계층에 대해서는 가혹한 비난을 퍼붓는 우리 안의 식민주의를 마주 보자. 우리도 모르게 중독된 집단적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 잘못을 해도 관대하게 대우받아도 되는 특권이란 없다.

송기호 변호사 경향 : 2023.03.01.

 

 

이재명 방탄의 개미지옥

헌정사상 첫 제1야당 대표 체포동의안은 가결 같은 부결로 끝났다. 지도부가 장담한 압도적 부결과는 딴판이다. 늘 단일대오와 침묵의 소용돌이에 익숙해진 더불어민주당으로선 가히 충격적인 결과다.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도 161표의 반대표가 나왔다. 민주당 의석만도 169석인데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은 심지어 찬성(139)이 반대(138)보다 많았다. 민주당이 자부하는 단일대오가 무너진 셈이다.

 

한동훈 법무장관은 이번에도 15분에 걸쳐 체포동의 요청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사기적 내통” “단군 이래 최대 손해등의 자극적 표현이 아니라 민주당 의원들의 곤욕을 건드린 대목은 이런 부분이다. “지금까지 설명해드린 어디에도 민주당 대표 이재명의범죄혐의는 없다. 오직 성남시장 이재명의지역토착비리 범죄혐의만 있을 뿐이다.”

 

애초 체포동의안의 압도적 부결을 담보하는 네 개의 허들이 존재했다.

 

먼저 대체 불가능한 지배력을 가진 이 대표가 직접 나섰다. 연달아 기자회견을 하고 규탄대회도 개최했다. 소속 의원 전원에게 친전도 보내고, 비명계 의원들을 일대일로 만나기도 했다. 둘째, 계파를 떠나 검찰 수사의 부당성과 무도함에 대한 분노가 폭넓게 형성돼 있다. 전방위적인 야당 의원과 문재인 정부 인사들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지켜보면서 첫 둑이 무너지면 안 된다는 공감대도 있었다. 셋째, 강력한 팬덤 정치의 자장이다. 강성 당원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이재명 체제에 반기를 들었을 때의 후과를 감당해낼 의원이 많지 않다. 넷째, 가장 강력한 방어막은 연말이면 시작될 총선 공천이다. 공천권에 절대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 대표의 지위와, 강성 권리당원의 힘을 감안하면 공천권은 대오 이탈을 제어하는 가장 무서운 압박이다.

 

어떻게 지금까지 조용한 정당을 견인해온 이 네 개의 허들이 무너져 반란(?)의 문이 열렸을까.

 

아마도 이 대표 체제에서 방탄 프레임에 갇혀 꼼짝달싹 못하고 발버둥 칠수록 빠져드는 개미지옥 같은 상황”(조응천 의원)이 방아쇠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 대표를 겨냥한 검찰의 법집행은 집요하게 계속될 게 뻔하다.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대장동과 성남FC 사건은 곧 불구속 기소할 테다. 지난해 9월 기소된 선거법 재판은 3일부터 시작된다. 이 대표는 수시로 재판정에 나가야 하고, 중계되는 재판이 민주당의 다른 이슈를 압도할 터이다. 쌍방울그룹의 변호사비 대납과 대북 송금 의혹, 백현동과 정자동 개발 의혹 사건 등에 대한 검찰의 소환과 구속영장 청구도 언제든 대기하고 있다.

 

1야당 대표를 향한 무자비한 수사는 야당 탄압이라는 명분이 맞는데 딱히 여론에 호소되지 않는다. 이 대표 사법 리스크를 초래한 모든 혐의들이 시기나 내용 모두 당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윤석열 검찰정권의 폭주가 계속되어도 전통적 대여 전략인 민주·반민주의 구도가 세워지지 않는다. 민주당이 민생을 외치고,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고, 메시지를 던져도 울림이 적다. 여론이 야당의 버팀목인데 이재명 사법 리스크가 장기화되고 피로감이 쌓이면서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묶여 당의 대응이 방탄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아무리 민생과 경제 분야로 전장을 옮기려 해도 쉽지 않다. 검찰정권의 민낯을 보여준 정순신 인사참사에도 윤석열 정부는 아무런 반성과 문책, 쇄신도 없이 넘어가려 한다. 미증유의 이태원 참사 대처도 그랬다. 윤석열 정부가 실정과 독주에도 흔들리지 않고 막가도 되게 만드는 건 역설적으로 도덕적 권위와 신뢰가 훼손된 이재명 야당의 존재다.

 

68년 역사를 가진 민주당은 야당 때 그 역사적 몫을 다했다. 민주화도 그랬고, 정권교체도 이뤄냈다. 국회에서 압도적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 민주당이 왜 이렇게 윤석열 정부의 독주, 독단, 독선을 제어하고 견제하지 못하는가, 민심이 묻고 있는 지점이다.

 

당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방탄의 개미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야당의 견제 역할도 내년 총선도 어려울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충격적인 체포동의안 표결 결과로 표출됐다. 개미지옥 탈출의 키도 이 대표가 쥐고 있다. ‘민주당의 산증인인 권노갑 고문이 체포동의안 표결 전에 이 대표에게 다음엔 떳떳하고 당당하게 당대표로서 책임 있는 행동으로 솔선수범 선당후사의 정신을 발휘해줬으면 한다고 했다고 한다. 그 시간이 오고 있다.

양권모 편집인 경향 : 2023.03.01.

 

 

철학자와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지 꼭 1년이 되는 시점을 전후로 거의 모든 매체가 이 문제를 연일 크게 다룬다. 지금의 전황과 앞으로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물론, 이번 전쟁에 직접 관여하는 국가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에 대한 분석이 주된 내용을 이룬다. 언론인, 정치인, 군사문제 전문가, 정치학자와 경제학자, 러시아와 동유럽지역 전문가 등 실로 다양한 인물들이 이 문제를 놓고 매일 갑론을박을 벌인다.

 

최근 발표된 유럽의 두뇌집단의 하나인 외교에 관한 유럽회의’(ECRR)15개국에서 2만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의 흥미있는 결과는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보여주고 있다.

 

설사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영토를 잃더라도 전쟁은 빨리 끝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설문 대상 미국인의 21%, 영국인의 22%, 9개국 유럽연합의 30%만 동의했다. 전쟁이 장기화하여 많은 인명의 손실이 우려되어도 우크라이나는 그의 영토를 되찾을 때까지 싸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각각 34%, 44%, 38%나 동의를 표시했다.

 

그러나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 설문 대상 인도인의 54%, 중국인의 42%, 튀르키예인의 48%가 동의했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각각 30%, 23% 그리고 27%만 긍정적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서방과 그 밖의 세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서로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푸틴의 러시아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인 정서가 강한 미국과 유럽에서 지금 전쟁을 종식하라는 목소리는 곧장 푸틴을 위한 선전과 선동이거나 아니면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평화주의자의 공허한 넋두리로 치부되기가 십상이다.

 

지난 210, 독일에서 1970년대부터 여성운동에 앞장섰던 알리스 슈바르처와 좌익당의 원내총무를 지냈던 사라 바겐크네히트는 평화를 위한 선언을 발표했다. 독일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계속 지원해서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말고 핵 재앙의 위험을 막기 위한 협상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취지에 이미 65만명이 공감하고 서명했다.

 

하지만 이는 푸틴에 대한 항복선언에 지나지 않다는 강한 비판과 비난 여론은 이에 못지않게 거세다.

 

바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공공(公共)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불리는 철학자 유르겐 하버마스는 지난 215, 독일의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협상을 위한 하나의 변론이라는 긴 기고문을 발표했다.

 

하버마스 기고문 싸고 열띤 논쟁

이 글에서 그는 독일을 포함한 서방 측이 우크라이나에 전투무기를 제공하면서도 우크라이나만 협상 가능성을 결정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일관성이 없고 무책임하다고 비판한다.

 

아울러 우크라이나는 결코 패배해서는 안 된다는 도덕적인 주장과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는 꼭 승리해야 한다는 자기 이해의 추구 사이에 걸려 있는 애매함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또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의 궁극적인 목적이 전쟁 바로 전날인 2022223일의 상태회복에, 아니면 푸틴 정권의 교체에 있는지, 푸틴에게 분명하게 전달되지 못했던 점도 비판했다. 전쟁이 장기화하고 쌍방의 희생이 커지면 커질수록 협상은 더 어렵게 되고 이로 말미암아 핵 참화까지 몰고 오는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 하루라도 빨리 쌍방의 체면을 동시에 살리는 타협에 독일을 포함한 서방이 나설 것을 그는 촉구하였다.

 

이 글에 대한 반향은 역시 뜨거웠다. 연일 언론에서 이 글을 두고 찬반의 논평과 논쟁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를 종합적으로, 또 합리적으로 생각하게 하여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뮌헨 안보회의에서 정치인들의 그 많은 발언보다 훨씬 유익하다고 평했다.

 

다른 편에서는 이와 반대로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물론, 냉엄한 현실정치를 모르는 철학자의 순진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위에 언급된 안보회의를 작년까지 주관했던 독일의 전 주미대사 볼프강 이싱거는 하버마스를 존경하지만 그에게는 우크라이나를 위한 감정이입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주독 대사였다가 현재 우크라이나의 외무차관인 안드리 멜리니크는 하버마스를 푸틴을 옹호하는 도덕적 파산자라고까지 공격했다.

 

흡사 낭떠러지 앞을 거니는 몽유병자처럼 보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처하는 독일을 포함한 서방세계에 대해서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이의 해결책을 모색한 이 글은 곧 활용될 수 있는 가전제품의 사용설명서와 같은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면 하버마스는 누구인가. 단행본만 해도 60권이 넘는, 그의 방대한 저서는 50여개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국내에서도 그의 중요한 저서 10여권이 이미 번역 소개되었다. 19964월에는 2주 동안 한국을 방문, 학자들과의 토론과 대중강연도 가졌다. 나는 20대 때 그의 문하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행운을 누렸다. 2003년 가을에 37년 만에 귀국했지만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되는 곤욕도 치렀다. 그때 그의 적극적인 구명운동은 나와 우리 가족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한마디로 그는 엄청난 지적 관심을 지닌, 자유스러운 사상가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자신의 사려 깊은 세계 안에만 안주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 글의 힘을 빌려 이성적인 공론의 세계를 꾸준히 확장시켰다. 세계사적 의미가 있는 큰 사건들을 극도로 정제되고 균형 잡힌 그의 글이 다루지 않은 적은 거의 없었다.

 

50년대 동서냉전으로 굳어진 권위주의적인 정치문화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 전 세계를 흔들었던 1968년의 저항운동, 독일 통일, 유럽통합, 발칸분쟁, 정보사회, 코로나19 팬데믹과 기본권 등에 관한 그의 견해는 시의적절하게 논쟁의 화두를 제공했으며 보통 놓치기 쉬운 많은 문제를 항상 생각하게 하였다.

 

한반도 평화 되씹게 하는 메시지

그는 철학, 사회학, 정치학, 심리학, 법학, 종교, 과학과 기술, 정보사회 등 학문세계가 다루는 거의 모든 영역을 폭넓게 그리고 깊이 있게 연구했다. 이의 결과는 공론장에서 항상 활발한 논의와 토론의 대상이 되었다. 너무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오늘날의 학문세계에서는 보기 힘든 그의 거대한 사상체계다. 그래서 하버마스는 보통명사 철학자가 아니라, 고유명사 철학자로 불린다.

 

우크라이나 전쟁문제와 관련된 그의 글에 많은 비판과 비난이 쏟아지고, 심지어는 저열한 인신공격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는 하버마스의 철학적 기조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물론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그의 글에서 이를 쉽게 알아내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가 수십년 동안이나 천착해온 철학적 관심의 궤적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의 중요한 출발점과 만나게 된다. 바로 그의 담론(談論)윤리. ‘네가 하고자 꾀하고 있는 것이 동시에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있도록 행하라는 칸트의 절대적 도덕 명제는 개인에 기반을 둔 윤리다. 이와 달리 그의 담론윤리는 사회성원 간의 의견 차이와 이에 따른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일정한 논증의 규율을 좇아서 이성적이고 보편적인 합의에 도달하는 소통과정을 강조한다. 대체로 개인의 자율성이나 정의와 같은 규범을 윤리의 기초라고 보는 철학자들은 사회성원 간의 열린 합의 과정을 강조하는 담론윤리의 한계를 비판하고 있다.

 

지난 주말 이틀 동안에 걸쳐 베를린에서는 우크라이나의 전쟁승리를 위해 더 많은 무기지원을 요구하는 측과 이를 반대하는 측이 각각 주최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푸틴과의 협상은 아예 불가능하다는 주장과 그래도 협상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선 정치의 현장이었다.

 

이 전쟁이 장기화하는 소모전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지만, 1년이 지난 지금도 출구전략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중국이 중재에 나섰지만, 이 전망도 현재로서는 밝지 않다. 이러한 현실 앞에 하버마스도 푸틴과의 협상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올해 6월이면 만 94세를 맞는 노철학자의 절제된 글은 여전히 이성에 기초한 소통의 힘을 믿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는 날이 갈수록 전쟁의 위험한 파도가 몰려드는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고 평화체제를 세우는 데 있어서 자신을 뒤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메시지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경향 : 2023.03.01.

 

 

이재명 체포에 왜 언론은 안달일까

이재명 체포. 못해서 안달이다. 윤석열과 한동훈의 검찰만이 아니다. 언론, 특히 신문방송 복합체들이 도드라진다.

 

그런데 어떤가. 서울중앙지검 반부패·공안 수사1·2·3부가 죄다 수사에 나서고, 275차례나 압수수색해서 내놓은 영장청구서에는 정작 확실한 물증이 없다. 나는 지난 칼럼에서 검찰과 이재명의 주장이 전혀 다른 만큼 언론은 확인된 사실만 보도하고 그에 근거해 논평해야 옳다고 썼다(안철수가 적이라면 이재명은?). 그 뒤 나온 영장청구서를 보며 이재명 죽이기에 앞 다툰 언론들이 적어도 자중하길 기대했다. 하지만 신중은커녕 물증도 없이 제1야당 대표를 체포하겠다는 검찰에 아무런 비판도 없다. 불구속수사의 원칙도 실종됐다. 한동훈은 대기업 회장을 예로 들었지만, 그들과 달리 물증도 없고 증거인멸 가능성도 없다. ‘단군이래 최대 손해라는 부르대기는 영장청구서의 내로남불과 함께 검찰이 정치적 수사를 했다는 판단을 굳혀준다.

 

지금 이 시점까지 검찰 수사로만 본다면, ‘해석의 다툼여지가 너무 크다. 이재명의 정치적 비중도 큰 만큼 불구속 기소가 마땅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떳떳하다면 영장심사 받으라는 권력의 언어를 고스란히 사설로 받아쓰는 언론들을 보라. 검찰공화국의 먹구름이 짙은 상황에서 곽상도 아들의 50억 수수가 무죄라는 사법부의 영장 심사를 과연 신뢰할 수 있을까.

 

신방복합체들은 심지어 여론 왜곡도 서슴지 않는다. 체포동의안 투표를 앞두고 조선일보 여론조사전문기자 겸 데이터저널리즘팀장은 이재명 탓에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도 흔들린다고 주장했다. 한국갤럽을 비롯한 대다수 조사는 여당 지지율이 높았지만 민주당은 예외적으로 유리한김어준표 조사를 믿고 싶은 듯하다그 대가는 내년 총선에서 혹독할 수밖에 없다고 훈계했다. 총선이 가장 큰 관심인 민주당 의원들을 흔드는 기사들이다. 투표 당일엔 이낙연·정세균·김부겸정부 3인방, 심상치 않은 움직임기사를 내보냈다.

 

중앙일보 정치디렉터도 도긴개긴이다. 여권이 진정으로 체포동의안 통과를 바랄까 묻고 천만의 말씀이라고 단언한다. 총선까지 사법 리스크를 극대화하면서 재판 국면을 질질 끌고 가 선거를 유리하게 이끌겠다는 것이란다. 그때 민주당이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고 유능한 인재를 영입해 봐야 재판 이슈에 가리기 십상이라며 민주당은 서서히 말라간다고 단정한다. “이미 당 지지율은 국민의힘에 역전을 허용했다며 당연한 결과란다. 도표까지 넣어 한국갤럽 정기여론조사에서 지난해 가을부터 엎치락뒤치락 하던 여야의 지지율이 최근 들어 갑자기 확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보라. 조선과 중앙이 인용한 한국갤럽 여론조사는 칼럼들이 나온 그날 오히려 민주당 지지율이 껑충 뛰어 국힘당을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잘못된 예측임이 드러난 셈이다. 그럼에도 최근까지 중앙일보 주필이던 이하경은 투표 당일 아침 이재명의 마지막 승부수칼럼에서 민주당에 민심은 썰물처럼 떠나고 있다면서 여론조사 결과 정당 지지율은 곤두박질쳐서 국민의 힘과 두 자릿수 차이로 벌어졌다고 썼다.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지 못한 걸까? 아니면 모르쇠를 놓은 걸까.

 

조선과 중앙이 민주당의 총선 참패를 걱정하는 모습은 기막히다. 정말 그들이 그것을 우려할까. 그야말로 천만의 말씀이다. 투표를 앞두고 그런 기사를 내보내는 까닭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민주당 의원들을 흔들거나 그들의 이탈에 명분을 주기 위해서다.

 

결국 민주당에서 이반표가 무더기 나왔다. 나로선 예상했던 일이다. 투표 다음날 두 신문은 민주당 이탈을 대서특필했다. 검찰에게 영장재청구를 부추기기도 했다. 새삼 냉철히 자문해볼 때다. 이재명 죽이기에 저토록 안달일까. 그의 기본사회론과 민생정책이 권력과 자본의 이해관계에 현실적으로 가장 위협적이어서가 아닐까.

손석춘 칼럼니스트철학 미디어오늘 : 2023.03.01.

 

 

책임감은 느끼는데 책임 질 사람은 없다한동훈 화법의 역설

정치인이나 정부 고위직이 어떤 일에 잘못이나 책임을 인정할 때 보통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거나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국민의 질타를 겸허히 수용한다는 의미이고, 나아가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까지 내포한 표현들이다.

 

윤석열 정부 최고 실세로 꼽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화법이 다르다. 검찰 출신 정순신 변호사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지 하루 만에 사퇴했다. 그에 대한 검증을 맡은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이 한 장관 소관이다. 그는 기자들이 부실 검증에 관해 묻자 결과적으로 그렇지만, 제가 관장하고 있는 기관에서 있었던 것이고 국민께서 우려를 많이 하니 당연히 정무적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정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과 소송전이라는 아빠 찬스’, ‘2차 가해전력을 걸러내지 못한 게 결과적으로자신의 일이고, 그에 따라 정무적 책임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하지만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아니다라고 신속 분명하게 선을 긋고, 오히려 책임감을 갖고 더 충실하게 일하겠다고 했다. ‘내 잘못만은 아닌데, 아무튼 미안해하는 게 맞는 거 같다는 얘기로 들린다. ‘학교폭력 근절로 초점을 옮기려 하며 인사 실패에는 입 꾹 다물고 있는 대통령실에 비하면 그나마 낫다고 해야 할까.

 

정순신 사태에는 검찰공화국꼬리표를 단 윤석열 정부의 본질적 특성들이 집약돼 있다. 정부는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2년 전 탄생한 경찰 국가수사본부장에 검사 출신을 앉혀 경찰의 자존심을 짓밟으며 검찰의 수사권 장악에 열을 올렸고 그 과정에서 인사 추천(복두규 대통령실 인사기획관, 이원모 인사비서관), 검증(한동훈 장관,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임명(윤 대통령)에 이르는 검찰 끼리끼리인사 시스템의 한계를 노출했다. 검찰 출신이라 느슨한 잣대가 작동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구조다. 더구나 2018년 언론보도로 정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당시, 윤 대통령(지검장)과 한 장관(3차장), 정 변호사(인권감독관)는 서울중앙지검에서 함께 근무했다.

 

한 장관 등은 정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논란을 몰랐다고 하지만, 유명 자율형 사립고를 다니다 전학한 정 변호사 아들의 학적 기록을 보고 그때라도 이유를 살폈다면 알았을 일이다. 하지만 학교폭력과 아빠 찬스의 민감성을 몰랐거나 간과했고, 결과적으로 이 정부의 무딘 공감능력 수준을 보여줬다. 인사검증을 맡은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은 지난해 6시행령 꼼수비판 속에 설치된 조직이다. 대통령실 민정수석실은 없애고 해당 기능을 법무부에 맡겨야겠는데, 여소야대 국회 구조에서 입법은 어려우니 시행령과 규칙을 고쳐서 탄생시킨 조직은 1년도 안 돼 취약점을 드러냈다.

 

가장 문제는 역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정부의 태도다. 이번 일은 경찰청과 법무부, 대통령실 어딘가에 책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윤희근 경찰청장은 추천권자로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로 아무런 실권 없음을 실토했고, 한동훈 장관은 정무적 책임감이라는 말로 실질 책임에서 비켜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인사 실패에 대한 최소한의 유감 표명이나 문책 없이 교육부에 학교폭력 근절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하면서, 이번 사태의 중요한 한 측면에는 등을 돌리고 있다.

 

정순신 사태는 젊은 세대와 부모 세대에게 분노와 허탈감을 주고, 윤 대통령이 내건 공정과 상식의 허상을 일깨웠다. 국민에게 큰 상처를 줬으면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누군가는 잘못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그에 걸맞은 말이나 행동이 있어야 한다. 지난해 이태원 참사 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책임론이 제기되자 윤 대통령은 책임은 있는 사람에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라며 이 장관을 감쌌다. 정순신 사태는 이태원 참사에 비하면 책임 소재가 훨씬 단순 명확하지 않은가.

 

오는 9일로 당선 1년을 맞는 윤 대통령이 지금까지의 구조와 관성에 변화를 줄 걸 기대하긴 어렵다. 1야당이 리더십 위기로 정부 견제 능력을 잃은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하지만 힘 못 쓰는 야당이 우습다고 차곡차곡 쌓여가는 국민 마음마저 쉽게 봐선 안 된다.

황준범 | 정치부장 한겨레 : 2023.03.01.

 

 

학폭 가해자들의 적반하장을 내버려 둘 것인가

아들 학교폭력을 무마하기 위해 당시 고위직 검사인 아빠가 부린 법기술을 보고 온나라가 들끓고 있다. 정치권은 최상위 아빠 찬스를 사용한 학교폭력으로 규정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필자 또한 이 사건의 가해 당사자가 우리나라 최고 명문대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하다. 그 대학 학생들은 허탈감, 무력감, 자괴감을 토로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세상에 던지는 파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학교폭력에 대응하는 새로운 틀을 제시했다. 학교폭력 가해자는 잘못을 반성해서는 안 된다. 피해자에게 용서를 빌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으로 동원해 버티기에 돌입해야 한다. 최종심인 대법원까지 무조건 다투어야 한다. 져도 상관없다. 학교폭력 가해자 승리 답안으로 시간 갉아먹기를 제시했다. 참 무섭다.

 

경험적으로 많은 학교폭력 사건에서 가해자는 언터처블이다. 학교도 선생도 건들 수 없는 존재다. 이유가 가족의 재력일 수도 있고, 사회의 권력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와 함께 연대할 학생이 있을까? 단연코 없다. 그래서 피해자는 마지막으로 학교에 폭력을 신고한다. 그런데 여기에 또 다른 문제가 숨어 있다. 가해자가 소송으로 학교폭력이 아니라고 다투면 가해자가 아니다. 버젓이 학교에 다닐 수 있다. 가해 학생이 개선장군이 되는 순간이다. 국가도 학교도 피해 학생 편이 아니라 가해 학생 편에 서 있는 꼴이다. 결국 피해 학생은 아무도 자기를 도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옥보다 더 무서운 공포와 인격이 무너지는 상실감에 빠져들게 된다.

 

혹자는 학교폭력에서도 가해자의 모든 권리를 지켜주어야 하고, 사법 시스템에서 허용하고 있는 제도를 이용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 주장이 일리가 있으려면 가해자가 소송으로 다투는 동안 완벽하게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또 향후 대법원에서 가해자로 확정된 경우, 반드시 책임을 묻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학교폭력에서 피해자 보호는 가해 인정 여부와 관계없이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하루 24시간 함께 지내야 하는 기숙학교에서 발생한 학교폭력의 공포는 차원이 다르다. 학교폭력예방법 제16조에 규정된 피해 학생 보호조치는 턱없이 부족하다. 보호조치의 하나인 일시보호는 가해 학생 조치가 전학 이상으로 결정된 경우, 가해 학생이 학교를 떠날 때까지 학교전담경찰관이 피해 학생을 보호하도록 바꾸어야 한다. ‘전문가 심리 상담치료가 필요한 경우 그 비용은 해당 학교에서 전액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 학교에 무한 책임을 부과할 때 학교는 힘 있고 돈 있는 가해 학생 편에 서지 않을 것이다.

 

다음으로 이번 학교폭력 사건은 가해자의 명예훼손, 모욕, 따돌림에 의해 정신적 피해가 발생한 사건이다. 고약하게도 형법상의 명예훼손죄는 반의사불벌죄이며, 모욕죄는 친고죄다. 학교폭력 피해자는 트라우마 때문에 가해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거나 해당 사실을 경찰에 고소하려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학교폭력을 아동복지법 위반 사건으로 다루면 상황이 달라진다. 아동복지법은 누구든지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를 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아동이 다른 아동에게 아동복지법 제17조 위반을 한 경우 처벌할 수 있다고 대법원 판결에서 명확히 밝혔다.

 

마지막으로 과거 학교폭력을 소송을 통해 미래로 끌고 간 경우, 그 미래에서 과거 학교폭력을 소환하면 된다. 아주 쉽다. 입시요강에 한 줄 넣으면 된다. “입학 후 합격자가 학교폭력 가해자로 밝혀지면 입학을 취소할 수 있다라고 말이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경향 : 2023.03.01.

 

 

코로나백신 피해자의 눈물버려진 법치, 어물쩍 정치

2021226일을 시작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2년 넘게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의료기관 등이 신고한 예방접종 뒤 이상반응은 사망 수천건을 포함해 약 50만건, 피접종자 등이 예방접종 피해보상을 신청한 사례는 약 10만건에 이른다. 이들 중 소수만이 보상이나 지원을 받았고 대다수는 여전히 피해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과연 법치, 공정, 상식에 부합할까.

 

감염병예방법상 피해보상을 위한 백신 접종과 피해의 일반적인 인과관계에 관해서는 2014년 대법원 판례로 확립된 법리가 있다. 대법원은 예방접종의 사회적 유용성과 국가 차원의 권장 필요성, 예방접종으로 인한 부작용이라는 사회적 특별손해에 대한 상호부조와 손해분담, 부작용 발생 메커니즘에 대한 지식 부족 등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사회정책적 요소들에 기초해 대법원은 예방접종 피해보상의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돼야 하는 것은 아니고, 일정한 요건 아래 규범적으로 판단돼야 한다고 분명히 했다.

 

, 예방접종과 장애 등의 발생 사이에 시간적·공간적 밀접성이 있고 피해자가 입은 장애 등이 당해 예방접종으로부터 발생했다고 추론하는 것이 의학 이론이나 경험칙상 불가능하지 않으며 장애 등이 원인 불명이거나 당해 예방접종이 아닌 다른 원인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정도의 증명이 있으면, 예방접종과 장애 등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해서는 특별히 추가로 고려해야 할 사항들도 있다. 코로나19 백신은 역대 어떤 백신보다도 단기간에 개발되고, 완화된 승인, 허가 심사를 거쳤기 때문에 그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됐다고 보기 어렵다. 또 당국도 코로나19 백신 접종으로 야기될 수 있는 이상반응 양상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상당 기간 단순한 권유를 넘어 사실상 백신 접종을 강제하는 상황이 지속했다.

 

정부는 시간적 개연성이 있고 관련성이 의심되는 질환이라고 하더라도 인과성 관련 자료가 충분하지 않으면 인과성을 부정한다. 다만 법적 근거 없이 보상기준에는 훨씬 못 미치는 부분적 지원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대응은 대법원의 확립된 법리에 반한다. 인과성 인정 요건을 너무 좁게 해석해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대한변호사협회 발표나 질병관리청이 의뢰한 한국사회보장법학회의 연구에서도 뚜렷하게 확인된다. 정부는 피해가 백신보다는 다른 이유에 의한 가능성이 더 높은 경우는 아예 지원 대상에서조차 배제하고 있는데, 이 역시 달리 판단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난해 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2법안소위에서 대법원 판례를 사실상 그대로 가져온 법안을 두고, 질병관리청 국장은 그 규정에 따르면 소송 대응이 어렵고 그 기준대로 보상하면 과다보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얼마 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는 관련 질의에 한덕수 국무총리는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과학이라는 표현을 다섯번이나 써가며 태도 변화 가능성을 강력하게 부정했다. 이들 모습에서 법치주의의 부정, 이를 이해하거나 지키려는 의사나 능력의 부재, 수많은 피해자들의 피눈물을 본다.

 

국회에서는 재작년부터 관련 법안이 쏟아졌다.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살리는 내용이 대부분이고, 상당수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 전향적인 인과관계의 추정이나 입증 책임의 전환을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법안들이다. 지난해 초 국회 보건복지위 제2법안소위에서는 계속해서 소극적인 태도만 보이는 질병관리청에 맡길 게 아니라 여야 의원들이 소소위원회를 구성해 단일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1년 가까이 아무 소식이 없더니, 지난해 말 여야 단일안 얘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시 질병관리청이 안을 마련해 올 것을 결의했다.

 

사회정책적 접근, 규범적 접근을 통해 확립된 법 기준에 못 미치거나 혹은 이를 부정하는 법 집행을 방관하는 국회는 최소한의 의무를 저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지. 피해자를 시혜나 위기관리 대상으로 간주할 때 문제 해결은 요원해진다. 쓰러진 법치를 세우고 진정성과 의지를 가지고 정당한 용기를 발휘하는 정치가 그렇게도 힘든가. 정부와 국회의 스스로의 책임에 대한 무지나 부인, 회피 속에서 수많은 백신 피해자들의 고통과 울분이 매일매일 무겁게 쌓이고 있다.

황필규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한겨레 : 2023.03.03.

 

'당정분리' '당정일체', 모두 실패한 까닭

균형 무너진 당정관계의 예정된 경로

대통령제 국가에서 집권연대 내의 당정 관계 설정은 권력 운용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다. 당권-대권 분리와 함께 당정 분리는 권력 분산은 물론이고 삼권분립과 헌법적 원칙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이는 과거 재정·인사·공천권 등을 가지고 당을 일사불란하게 통제한 '제왕적 총재'와 집권당 총재를 겸함으로써 여당과 국회를 통제한 '제왕적 대통령'의 폐단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정 분리의 이러한 의미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집권당과 대통령실의 분리와 협조의 경계는 모호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은 가장 강력한 의제설정자이며 집권당과 대통령의 관계가 마냥 분리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한편 당정 일체는 권력 간의 건강한 견제와 비판을 원천적으로 막는 결정적 약점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당정 사이의 관계를 여하히 설정하느냐는 그 자체가 정치의 핵심일 수밖에 없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정 분리를 '내가 당을 지배·통솔하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당정 분리 독트린'으로 표현할 정도로 일관되게 추구했다. 하지만 당시 집권당이던 열린우리당의 정치적 자율성을 제고하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본래 당정 분리는 대통령이 집권당을 장악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대통령에 대한 당의 영향력 역시 차단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결국 당과 대통령의 관계 자체를 단절시키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당정 분리라는 명분으로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는 의제에 대해 당의 주장을 반영할 수 있는 통로가 봉쇄됨에도 불구하고, 결국 여당은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을 뒷받침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들게 된다. 관점에 따라 당정 분리는 역설적으로 여당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노무현 정부 때 국가보안법과 대연정 이슈가 그 대표적 사례였다. 당시 당정 분리를 요구했던 열린우리당은 청와대에 당정 관계의 복원을 요구했고, 청와대는 당정 분리 원칙 훼손을 이유로 당의 요구를 거부했다. 결과적으로 당정 분리는 처음의 취지와는 달리 집권당이 대통령의 정치적 결정에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니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국민의힘 경선에서 불거진 '윤심' 논란은 대통령실과 여당과의 관계 설정에 관한 문제로 환원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당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경선 룰 개정과 경선 후보들에 대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정 일체를 통해 당과 정부의 상호협조를 강조하는 것과 맥락이 닿아있다.

 

만약 대통령실이 미는 김기현 후보가 대표로 선출되지 못할 경우, 국민의힘 '친윤' 그룹은 지도부 붕괴를 시도할 수도 있다. 최고위원의 분포에 따라 이 시도가 여의치 않을 경우 여권 내 대통령의 리더십 훼손은 불가피하고, '친윤 대 비윤' 대립 구도가 심화되면서 당에 원심력이 작동될 수도 있다.

 

당정 분리와 당정 일체 중 어느 한 쪽만 취할 수는 없다. 둘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지 않으면 당정 분리와 당정 일체의 단점만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정 일체는 노무현 정권 때의 당정 분리에서 나타난 문제를 해소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동안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의 관계나 '친윤' 그룹의 일련의 행태들로 미루어 볼 때 집권당의 자율성의 부재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집권연대 내에서 여당의 영향력이 대통령실에 작용하지 못하고, 여당이 일방적으로 대통령실에 의해 규정되는 상황이 된다면 외관상으로 대통령이 여당의 총재가 아니더라도 '제왕적 대통령'의 행태가 재연될 수 있다. 대통령실이 당 경선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총선 때 여당 대표를 통해 공천에 개입한다면 권력 간 균형이 깨지고 권력의 건강한 작동이 원천적으로 제약될 수 있다.

 

국민의힘 경선 과정이나 최근 여권 일각에서 당의 명예대표직과 관련한 언급이 나온 것으로 볼 때 대통령실이 여당에 대한 통제력 제고에 나설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당정 분리가 가지고 있는 함정도 면밀하게 들여다봐야 하지만, 당정 일체라는 명분으로 대통령의 권력이 여당에 공천권을 통해 과도하게 행사된다면 총선에서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이 차기 총선에서 패한다면 식물정권으로 전락할 수 있다. 대통령실과 '친윤'의 성찰이 필요한 이유이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 프레시안 : 2023.03.03.

 

 

우크라이나 전쟁의 두 가지 시나리오

지난달 26(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북부 하르키우 카멘카(카미얀카)의 한 마을에 있는 주택들이 포격으로 파괴돼 있다. 카멘카/AF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지났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는 기념할 게 없다. 그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부를 축출하거나 우크라이나 영토 전부를 러시아로 병합하지 못했다.

 

1년간 러시아군은 6~7만명이 전사하고 20만명 가까이 부상했다. 탱크는 절반 가까이 잃었는데, 한달에 150대를 잃지만 유일한 탱크 공장은 20대만 보충해줄 수 있다. 징집병을 더 모으려는 노력은 전국적 반발을 만났다. 러시아인들은 준비 안 된 징집병들을 사선으로 계속 밀어넣는 우크라이나 전선을 고기 분쇄기라고 부른다.

 

러시아 경제는 제재 때문에 붕괴하지는 않았으나 상황이 안 좋다.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2% 축소됐다. 외국 기업 수백곳이 철수하거나 운영을 중단했다. 푸틴 정부는 화석연료 같은 원재료 수출로 경제를 지탱하고 전쟁 자금을 충당하지만 이는 지속 가능한 전략이 아니다.

러시아인 50~100만명이 푸틴의 정책에 항의하거나 징집을 면하려고 나라를 떠났다. 엑소더스(대탈출)가 푸틴의 반대자 수를 줄이기는 했지만 러시아에서 가장 창조적인 사람들이 사라졌다. 원자재 중심의 경제를 다변화하지 못하고 두뇌 유출까지 겪는 것은 전쟁 수행을 위해 미래를 저당잡히고 있다는 뜻이다.

 

외교 정책 측면에서 보면, ‘러시아의 세계를 확대한다는 푸틴의 결심은 이를 저지하겠다는 세력의 연합을 키울 뿐이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신청했다. 나토의 동진에 대한 분노 자체에는 정당성이 있지만, 그는 서구가 동맹을 확대하고, 군사비를 늘리고, 우크라이나 같은 나토 비회원국들과 협력을 가속하게 만들었다. 푸틴은 유럽 극우 정당들의 지지도 거의 잃었다. 그의 비유럽 동맹들조차 흔들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유엔총회 결의에 단 7개국만 반대했다.

 

이 모든 실패에도 불구하고 푸틴은 전쟁에 집착한다. 적어도 돈바스 지방 전체와, 2014년에 합병한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연결하는 우크라이나 남부 지방을 원한다. 그는 인구 규모 덕에 러시아가 소모전에서 이길 것이라고 믿는다. 최대 100만명의 러시아인이 나라를 떠나기는 했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인구의 20%가량인 800만명이 외국으로 대피했다. 또 푸틴은 서구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가 감소하면서 군사 원조도 고갈될 것이라고 본다. 미국과 유럽 여론조사에서는 전폭적 군사 원조에 대한 지지가 약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무기 제공이 당장 영향을 받지는 않지만 앞으로 그렇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젤렌스키는 가능한 한 많은 첨단 무기를 빨리 확보하려고 한다. 우크라이나가 진창이 사라지는 봄의 어느 시점에 개시하려는 2차 반격에 많은 게 달렸다. 우크라이나군이 돈바스와 크림반도 사이에 쐐기를 박는다면 크림반도를 고립시키고 점령군을 몰아내는 데 유리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이런 경우는 1995년 크로아티아군이 세르비아군을 점령지에서 몰아낸 사례에 빗대 크로아티아 시나리오라고 부를 수 있다. 크로아티아군의 폭풍 작전은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끝낸 평화협정으로 이어졌고, 세르비아인들의 지지를 잃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는 5년 뒤 선거에서 패했다.

 

다른 시나리오는 한국 같은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한국전쟁처럼 첫해에 점령 지역 변동이 컸다. 그다음에는 한국전쟁의 이후 2년처럼 본래 경계선 주변에서 교착에 빠져 전투를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마지못해 휴전에 동의할 수 있다.

 

둘 중 어느 시나리오로 갈지는 알기 어렵다. 1년간의 전쟁이 보여준 가장 중요한 특징이 있다면 예측 불가능성이다. 러시아는 실제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우크라이나는 이를 격퇴해 거의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어쩌면 전쟁의 두번째 해에는 침략자는 처벌받고 피해자는 정당한 자리를 되찾는 가장 놀라운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런 평화를 위해서는 분명히 싸울 가치가 있다.

존 페퍼 |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한겨레 : 2023.03.05

 

 

얍실하거나 뻔뻔하거나

()감원이 아니라 ()감원’. 요즘 금융권에서 금융감독원을 이렇게 부른다. 윤석열 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검사 출신 이복현 금감원장은 취임 이후 광폭행보를 보였다. 금리를 높여라 내려라, 금융지주 수장 이런 사람은 된다 안 된다, 일일이 하나하나 이 원장은 코멘트를 했다.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SM 사태도 빠지지 않았다. 그는 상점(회사)을 지켜줄 종업원(이사)을 구하는데 그 종업원이 물건을 훔치는 습관이 있다면 이건 안 된다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자산운용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얘기했다. 가장 힘이 셌다던 이헌재 전 금감원장도 이렇게까지 주요 사안에 대해 대놓고 언급하지는 않았다.

 

금융사에 감독서비스를 제공하고 분담금을 받아 운영되는 금감원은 공무원 조직이 아니다. 금융감독 기능이 주어져 반관반민이라 부른다.

 

이복현 원장에 가려 정작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진짜 관료금융위원회는 보이지 않는다. 금융위원장의 존재감이 이렇게 없는 모습, 금융당국 출입 20년 만에 처음 본다.

 

증권가 찌라시에는 이 원장이 총선에 출마하고, 그 자리에 다시 검사 출신이 온다는 얘기까지 돌고 있다. 금융권 인사 몇명에게 물어보니 전혀 근거 없는 소리겠느냐는 반응이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높으신 분들만 알겠지만 적어도 금융권 여론이 이렇다.

 

경상도 말 중에 얍실하다는 말이 있다. 야비하다는 뜻과 비슷하다. 진보정권은 앞에서는 정의로움을 강조하지만 뒤에서는 자신의 실속을 챙긴 얍실한이들이 많았다. 문재인 정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민들은 실망했고, 그 반사이익으로 윤석열 정부가 탄생했다. 시민들이 윤석열 정부에 요구한 것은 공정의 실천이었다. 공정은 시대정신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확실히 뒤에서 얘기하지 않는다. 앞에서 할 말을 다 하고 있다. 시원시원하게 호통도 잘 친다. 그렇다면 20233월은 20223월보다 공정해졌을까?

 

정부의 등쌀에 밀린 KT가 구현모 대표의 연임 의결을 취소하고 4명의 전·현직 내부인사로 차기 후보군을 추리자 국민의힘은 기자회견을 열고 인선 작업을 중단하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실은 백브리핑으로 거들었다. 당정이 미는 인사는 윤 대통령 캠프 출신의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과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의원으로 알려졌다. 민간기업에 대한 간섭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있어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내부 카르텔을 깨겠다며 당당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내가 권력을 가졌으니 뭐가 문제냐는 식 아니냐조금 더 나가면 꼬우면 정권을 갖든가로 들린다면서 혀를 내둘렀다.

 

금융지주 CEOKT 대표 인선 과정에서 당정이 한 발언 수준으로 진보정권에서 개입이 이뤄졌더라면 어땠을까. 단언컨대 보수야당은 자유시장경제를 파괴시키는 빨갱이” “공산당이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을 게 틀림없다.

 

노골적이긴 검찰 인사도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 기금위원회 산하 상근전문위원으로 검찰 출신 한석훈 변호사를 임명했다. 국민연금의 투자기업 주주권을 자문하는 기구라 주로 금융 및 회계 전문가가 맡아왔던 자리다. 비판여론에 복지부는 규정에 따른 것이라며 당당하다. 경찰 국가수사본부 본부장에 검찰 출신 정순신 변호사가 임명됐다가 아들 학교폭력 논란으로 취소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국민정서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앞서 교육부와 고용노동부에는 현직 검사가 임명되거나 파견됐다. 주요직에 자리 잡은 검사들은 대개 윤 대통령과 직간접 인연이 있다는 특징이 있다.

 

민간회사에 대한 개입도, 검찰 출신 인사 기용도 부조리를 뿌리 뽑겠다는 깊은 뜻이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가는 자신의 신념윤리를 폭력과 강권력으로 이행하려 하는데, 폭력과 강권력의 무자비함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 무자비함의 희생자는 결국 자신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라를 정의롭게 만들겠다는 검사적 시각이야 갸륵하지만 5년 뒤를 생각한다면 한번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2일까지 조사한 결과를 보면 윤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 이유로 공정·정의·원칙을 꼽은 비율은 11%에 불과했다. 시민들의 기대치가 낮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얍실함뻔뻔함’. 공정은 이 둘 사이에서 한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박병률 경제부장 경향 : 2023.03.06.

 

 

누구를 위한 전기요금 인상인가

전기요금 인상을 둘러싼 열띤 논쟁이 기후환경운동 진영 안에서 진행 중이다.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요금 인상이 과연 그 목표를 실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나는 회의적이다. 가격을 올리면 수요가 줄어든다는 건 원론적인 가설이지만 현실에선 종종 어긋난다. 가스 전기 유류세 등 에너지 요금 상승은 가장 많이 쓰는 계층엔 큰 압력이 되지 않는 반면 적게 쓰는 계층일수록 고통과 비참을 수반한다. 필수재의 요금이 오르면 한계 소비층은 다른 데서 소비를 줄인다. 이 정책의 목표가 원가 인상을 요금에 반영하라는 시장의 상품화 요구가 아니라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공공성을 지키는 데 있는 것이라면, 일괄 요금 인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전체 소비량을 줄이는 데는 덜 효과적이면서 에너지 불평등을 심화하는 데는 더 효과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옥스팜 자료에 따르면 19902015년간 누적탄소배출량 중 소득 상위 10%가 전체 탄소배출량의 52%를 배출한 반면 하위 50%는 단 7%만을 배출했다. 202120대 기업은 국민 전체 1500만가구가 쓰는 전기량보다 10%를 더 썼다. 그중에 1위는 삼성전자로, 1개 기업이 쓴 전력량(25.8TWh)이 서울시민 전체가 쓴 가정용 전력사용량(14.6TWh)보다 거의 두 배에 가까운 1.76배에 달한다. 하지만 전력사용량이 많은 기업일수록 전력단가는 더 낮아 삼성전자를 비롯하여 상위 5개 기업이 내는 전기료는 당해 전체 산업용 전기료 평균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의 소비와 요금을 연동시키겠다는 정책이라면 우선 향해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게다가 지금 전기요금 인상 압력은 어디서 가장 크게 오는지도 잘 살펴봐야 한다. 전기를 공공재가 아니라 상품으로 보라는 시장의 압력이다. 특히 전기요금 현실화를 계속 압박하는 건 주식시장이다. 영업 실적과 재무구조가 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치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금융이 산업을 호령하고, 산업이 금융을 위해 돌아가는 금융화 시대의 거꾸로 선 경제는 에너지 산업에도 똑같이 작동하고 있다. 한국전력이 목표 주가에 도달하고, 투자자들이 불안하지 않게 적자를 해소하고 이익을 낼 수 있도록 국가가 개입하라는 것이다. 에너지 요금을 정치적 논리로 풀지 말라는 말은 그 뜻이다. 국민이 아니라 투자자 눈치를 보라는 말이다.

 

적자에 가려진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전력산업의 소유구조와 지배구조다. 한국전력은 국가(정부, 한국산업은행)51%의 지분을, 해외 투자자 등 민간자본이 49%의 지분을 소유한 주식회사. 수익이 발생하면 투자자들에게 지분만큼 배당이 돌아간다는 뜻이다. 투자자들의 요구는 이익이다. 기업이 영업 이익을 내려면 매출 상승이나 원가 절감이 있어야 한다. 한전의 매출 상승은 곧 전력 소비 증가를 의미한다. 게다가 그동안 우회적 민영화 방식으로 SK, GS, 포스코 등 대기업이 참여한 민자 발전사들이 전력 시장에서 야금야금 점유한 비율이 40%에 달한다. 최근 한전 적자의 큰 원인 중에는 민자 발전사로부터의 전력 구매비용 상승이 있다. 한전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동안에도, 이들 발전사들의 영업이익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요금 인상은 전력 소비를 줄이는 환경주의적 목표가 아니라 금융자본과 에너지 기업의 돈벌이에 더 기여한다.

 

적어도 공공정책이라면 기업이나 시장, 투자자의 현실이 아니라 민중이 처해 있는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 나오는 전기요금 현실화는 누구의 현실에서 출발하고 있는가. 고금리 인플레이션 속에 실질소득은 감소하고, 실업과 노동 불안정성은 증대되며, 시민권과 노동권은 공격받고 약화되고 있는 현실, 그나마 빈약했던 사회복지도 하나씩 와해되는 가운데, 전통적인 공동체적 상호부조도 깨어진 지 오래인 이런 현실에서, 공공요금을 일제히 올리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금 에너지 요금 인상은 강력한 인플레이션 촉진 정책에 다름 아니다.

 

지금까지 기후정의운동은 저렴한 에너지를 대표적인 기후 부정의로 지목하고 비판해왔다. 그 이유는 저렴한 에너지 뒤에 저렴한 노동, 저렴한 토지, 저렴한 자원, 저렴한 식민지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에서 저자들이 밝히는 것처럼 저렴화의 본질은 저비용이 아니라 폭력에 있다. 그 비판은 생명을 상품의 회로에 집어넣어 싼값의 상품으로 둔갑시키는 폭력의 구조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원가를 반영한 적정 가격이 그 폭력을 없앨 수는 없다. 생명과 노동을 존엄하게 할 수도 없다.

채효정 오늘의 교육편집위원장 경향 : 2023.03.06.

 

 

능력주의가 도덕주의가 될 때

우리 모두 안다.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인성이 좋다는 것이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을. 하지만 대다수 우리는 이 평범한 사실을 종종 잊어먹는다. 왜 우리는 이 평범한 사실을 잊어버리는 걸까? 능력주의에 대한 숭배는 종종 그 원인이 되기도 한다.

 

능력주의라는 용어를 만든 이는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다. 2034년이란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한 소설 <능력주의의 부상>(1958)에서 처음 이 용어를 썼다. 영은 능력(merit)이 지능(IQ)과 노력(effort)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이 둘 중 노력은 능력주의 사회에서 성공하는 대다수에게 필수적인 기본값이다.

 

노력이 기본값이기에 성공의 여부를 가르는 실질적 요인은 지능이다. 이런 이유로 영이 그리고 있는 미래사회에선 5년마다 지능을 측정하는 시험을 누구나 볼 수 있다. 쉽게 말해, ‘노력재능중 제한된 기회로 진입해 성공을 거두는 데 더 중요한 요인은 재능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능력주의는 전혀 다르게 드러난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대다수는 그 이유를 댈 때 재능대신 자신이 열심히 노력했다고 말한다. 실제 성공한 대다수는 자신의 성공이 노력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이런 이유로 소수자 우대정책으로 성공한 이들이 이 정책의 폐지에 가장 적극적 세력이 되기도 한다. 미국의 정치인 워드 코널리가 대표적 사례다.

 

이런 인간의 성향과 조응하는 능력주의는 현실에서 노력주의로 변모하는 경향이 있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누군가 실패했다면 그 이유는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거나 게으름이란 악덕의 늪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능력주의는 노력한 자들만이 자격이 있다는 일종의 도덕주의로 변신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공부를 잘하는 것이 부모의 자랑이 되는 사회라면 능력주의는 도덕주의로 변모하기 더욱 쉽다. 부모의 자랑이 되는 자식만큼 착한자식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공부 잘하는 아이는 성실한 아이고, 그 성실한 아이가 착한 자식으로 성공하는 가장 전형적인 방식이 고시합격이다. 문제는 이 공부 잘하는 성실하고 착한 자식들이, 고시에 합격했다는 이유로 자신이 누리는 권력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때로는 남용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박권일은 <한국의 능력주의>에서 한국형 능력주의의 특징을 시험을 통한 지대추구로 정의한다. 난도 높은 시험을 한 번 통과하면 평생 특권을 누린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특히 사법) 고시 합격자들에 주목한다. 1956년에 창간된 고시계라는 잡지에 실린 방대한 합격기를 탐구한 박권일은, 고시 합격자 대다수가 학교 외에 다른 사회적 경험이 전혀 없이 고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인간을 우열화하는 관점과 선민의식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한다고 지적한다.

 

이에 더해 이들 대다수가 내가 열심히 해서 고시에 합격했으니 마음대로 그 권력을 행사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갖고 있어 거의 필연적으로, 평범한 국민들을 무시하고 민주주의를 냉소하는 엘리트가 양산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박권일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우리나라에서 고시란 과소한 민주주의 교육이 과도한 능력주의 신화와 결합할 때 어떤 괴물이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 거대한 사회실험이다. 지금 (특히 사법) 고시 출신의 권력 엘리트들의 대다수가 권위주의 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냈다는 점에서 이런 주장은 더욱 설득력이 있다.

 

아들의 학폭 사태로 취임 하루 전 국가수사본부장에서 물러난 정순신은 박권일의 주장과 일치하는 전형적 사례다. “검사라는 직업은 다 뇌물받고 하는 직업이다” “판사랑 친하면 재판에서 무조건 승소한다는 아들의 발언은 검사출신 아버지를 통해 배운 한국형 능력주의 세상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뿐만 아니다. 능력주의자 아버지는 아들에게 반성하는 마음과 태도 대신, 1년여에 걸친 소송전을 통해 피해자를 어떻게 법으로 마지막까지 몰아붙일 수 있는지 가르쳤다. 그사이 가해자인 아들은 서울대에 진학하고 피해자는 졸업 이듬해까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거나 자퇴 후 해외로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아주 잠시라도 시험 잘 보는 아이가 성실한 아이니까 착한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 착각에서 깨어나야 한다. 능력주의를 불신하라는 말이 아니다. 능력주의를 도덕주의로 착각하지 말란 말이다. 현실에선 우리가 착하다고 칭찬해 왔던 그 능력 있는 아이들이 세상을 망치는 주범일 수도 있다.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경향 : 2023.03.06.

 

 

수모(受侮)를 견디는 힘

이재명 대표에 보내는 '잔인한' 고언과 응원

민주당 대통령후보 국민경선을 앞두고 있었던 2002년 초, 노무현 후보는 선거캠프에서 자원봉사하던 내게 충청권 순회 일정 동행을 권했다. 이인제 후보가 대전광역시의 지구당사를 순회하는 날이었다. 충청권에서 독자적으로 당원을 불러 모을 역량이 없었던 노무현 선거캠프는 대전의 지구당위원장들과 협의해 이인제 후보가 떠나면 곧바로 해당 지구당사를 방문하는 곁불 쬐기작전을 준비했다. 우리는 첫 번째로 방문할 지구당사에 미리 도착해 입구가 보이는 곳에 차를 세우고 기다렸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이인제 후보가 나오지 않았다. 우리 쪽 당원이 전화로 그가 자리를 비켜주지 않을 것 같다고 상황을 전해주었다. 한 시간을 헛되이 기다린 다음 발길을 돌린 노무현 후보는 쓸쓸한 어조로 내게 말했다. “정치는 중요하고 귀한 일인데, 정치인의 일상은 참 남루해요. 이건 뭐 아무것도 아니지요. 정치로 무언가를 이루려고 한다면, 이런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수모를 견뎌야 합니다. 정치가 그래요. 하하.”

 

정치인과 유권자 간의 정보 불균형

정치란 무엇인가? 넓게 보면 국가의 기능과 권력의 작동 방식에 영향을 미치려는 개별적, 집단적 활동이다. 민주주의 사회의 모든 시민은 이런 의미의 정치를 할 수 있으며 실제로 투표, 정당 가입, 집회 및 시위 참여, 댓글달기 같은 정치활동을 한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시장, 도지사, 군수, 또는 지방의회 의원이 되어 국가의 기능을 바꾸고 권력의 작동방식을 변경하는 일을 직접 하려면 정치를 직업으로 삼고 선거에 출마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사람을 우리는 직업정치인이라고 한다.

 

직업정치인은 정치인으로서 대의(大義)’에 헌신하며 직업인으로서 소리(小利)’를 추구한다. ‘대의는 정치적 이상과 사회적 선을 실현하는 것이고, ‘소리는 공직이나 당직 등의 지위를 챙기는 일이다. ‘대의를 완전히 외면하면 대중의 신임을 얻기 힘들고, ‘소리를 완전히 무시하면 남 좋은 일만 하게 된다. 지금부터는 주로 대의에 헌신하는 사람을 정치인’, 주로 소리를 챙기는 사람을 정치업자라고 하자. 이 글에서만 편의상 그렇게 나눈다. 직업정치인은 모두가 정치인인 동시에 정치업자이고, ‘정치인이던 사람이 정치업자로 변하기도 하니, 그 둘을 두부모 자르듯 가를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의 정치판에 두 부류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직업정치인은 자신이 어느 쪽인지 정확히 알지만 유권자는 그렇지 않다. 주로 소리를 탐하는 정치인도 겉으로는 대의에 헌신하는 시늉을 하기 때문에 유권자는 정치인이 하는 말을 믿지 않는다. 정치 서비스의 공급자인 정치인과 수요자인 유권자 사이에 정보 불균형이 있다는 말이다. 유권자는 정치인을 불신한다. 모든 직업정치인을 정치업자로 여기며, 말과 행동으로 분명한 반증(反證)을 제시하는 경우에만 대의에 헌신하는 정치인으로 인정한다.

 

수모를 견디는 방법

정치업자는 수모를 잘 견딘다. 수모(受侮)남한테 모욕을 당하는 것이다. 식당이나 백화점 직원들은 진상고객도 웃으며 상대한다. 좋아서 그러는 게 아니다. 생업과 일자리를 지키려고 모멸감을 억누르면서 수모를 견디는 것이다. 나는 그런 젊은이들을 안쓰러워하고 존경한다. 산다는 것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는다. ‘정치업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들을 경멸하지 않는다. 지역구 행사가 있거나 선거운동을 하는 날 아침, 그들은 간과 쓸개를 빼서 베란다에 널어두고집을 나선다. 아무리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유권자와 다투지 않는다. 웃으며 좋은 말로 응대하려고 노력한다. 늦은 밤 집에 돌아와 베란다의 간과 쓸개를 걷어 다시 장착하고 혼잣말로 누군가를 욕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덜어낸다. ‘정치업자는 수모를 견디는 힘이 뛰어나다.

 

반면 정치인은 그 힘이 약하다. 자신이 대의를 위해 헌신한다는 확신이 강할수록 더 심한 모멸감을 느낀다. 다시 말하지만 유권자는 모든 직업정치인을 일단 정치업자로 여긴다. 대중에게 정치가로 인정받으려면 오랜 시간 수모를 견뎌야 한다. 대의를 위해 작은 이익을 버리면서도 현실 정치판에서 밀려나지 않고 생존해야 한다. 수모를 견디는 능력이 없이 진보 정치의 지도자가 된 사람은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어떤 수모를 견뎠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2년 대선에서 낙선한 후 민주당 대표를 하는 동안 경쟁하는 정당뿐 아니라 안철수박지원 등 민주당 내부의 반대세력에게 비열한 모욕을 숱하게 당했다.

 

나는 십 년 정도 직업 정치를 했다. 국회의원과 장관을 했다. 그러나 수모를 견디는 힘을 기르지는 못했다. 나는 정치로 살아가려고 정치를 하지 않았다. 정치를 위해서 정치를 한다고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주관적으로 그랬다는 말이다. 대중은 나를 정치업자로 여겼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나는 그런 시선을 오래 감당하지 못했다.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기자들이 쏟아내는 적대적인 비판을 참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는 정치가 매우 중요하고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직업으로 정치를 선택한 분들을 존중한다. 하지만 나한테는 정치가 너무 힘든 일이었다. 존경받지도 못하고 행복하지도 않은 활동이었다. 대의에 헌신하는 훌륭한 인생보다는 즐거운 일을 하는 나다운 인생을 찾고 싶었다. 나처럼 수모를 견디는 힘이 약한 사람은 정치를 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 정치를 하고 싶다며 의견을 물으면 거의 언제나 말리곤 한다.

 

이재명 조리돌림

요즘은 방송 뉴스와 포털 뉴스를 보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글이 막혀서 딴짓을 해야 할 때는 유튜브의 낚시, 바둑, 음악 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 국회의 체포동의안 처리, 검찰이 기소한 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 체포동의안 찬성표와 무효표를 둘러싼 민주당의 내부 갈등에 대한 보도를 보고 싶지 않다. 거의 대부분이 친윤석열 성향을 보이는 언론의 저질 기사를 보는 게 괴롭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을 동원해 이재명 대표를 조리돌림하고 있다는 정도는 뉴스를 꼼꼼히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대통령이 검사 시절 한 말을 빌리자. 그는 수사권으로 대선 경쟁자를 욕보이는 정치 깡패 짓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가인가 정치업자인가? 그가 어떤 정치적 대의에 어떤 방식으로 헌신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대통령의 권한으로 자신과 가족의 이익을 지키는 모습은 너무나 뚜렷하다. 그래서 정치업자에 가깝다고 본다. 국힘당과 그 전신인 정당 소속 대통령 가운데 정치가에 가까웠던 경우는 김영삼 대통령뿐이지 않나 생각한다. 국힘당이 당사에 자당 소속 전직 대통령의 사진을 걸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국민에게 정치인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 정당이 윤석열 대통령의 사진을 당사에 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번 칼럼에서 나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에 대한 무한수사를 진행하는 이유와 관련해 감정설전략설을 거론했다. 국회의 체포동의안 부결 이후 상황은 전략설시나리오를 따르고 있다. 대통령은 체포동의 요구서를 국회에 또 보낼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 분열 전략이 지난번보다 더 강력한 효과를 낼 가능성은 높지 않다. 체포동의안을 가결하려면 민주당 국회의원 가운데 무효표가 아니라 찬성표를 던지는 사람이 지난번보다 열 명 넘게 많아야 한다. 자폭테러로 민주당을 혼돈상태에 빠뜨리기로 마음먹거나 민주당을 나가 신당을 만들 각오를 하지 않은 한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민주당의 비주류 국회의원들은 지난번 체포동의안 처리 때 이재명 대표에게 수모를 안겨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들은 대부분 정치업자여서 신당을 만들 배짱도 없고 총선에서 독자 생존할 능력도 없다.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라. 현 시점에서 야권의 대선후보는 실질적으로 이재명 하나뿐이다. 민주당원과 민주당 지지층의 압도적 다수가 이재명을 지지한다.

 

생존이 승리인 투쟁

내가 이재명 대표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 수모를 견디는 힘을 잃지 말고 정치적 법률적으로 생존하는 것이다. 내가 똑같은 상황에 있다면, 대표직을 내려놓는 데 그치지 않고, 국회의원직도 사임하고 아예 정치를 떠날 것이다. 이 문장을 어떤 기레기가 왜곡 인용해 제목 장사를 할지도 모르겠다. “유시민 충격발언: 내가 이재명이라면 당장 정치를 떠날 것!” 이렇게 말이다. 나는 사석에서도 기레기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내 말을 그런 식으로 왜곡해서 기사를 쓰는 기자가 혹시 있을지도 모르겠기에 예외적으로 썼다. 정말 그런 짓을 한다면 기레기라는 말도 부족한 기레기 중의 기레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말을 해야만 하는 언론 현실이 참담하다.

 

나는 수모를 견디는 힘이 모자라서 정치를 떠났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인간 이재명은 수모를 견디는 힘이 뛰어나다. 다른 능력도 뛰어나지만 그 힘도 있어서 여기까지 왔다. ‘깻잎 한 장 차이로 대선에서 졌기 때문에 당하는 오늘의 수모를 견딜 힘이 그에게 있다고 나는 믿는다. 불체포특권을 포기하지 말고, 재판정을 드나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당대표와 국회의원의 권한을 충분히 행사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가하는 조리돌림을 인간적 정치적 법률적으로 견뎌내기 바란다. 정치인 이재명은 생존이 곧 승리인 싸움을 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민망하다. 나는 요즘 강물이 맑으면 얼굴을 씻고 물이 탁하면 발을 담그는 식으로 산다. ‘이재명의 싸움을 논평할 자격이 되느냐는 힐난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누구도 이재명의 싸움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을. 역사의 진로를 한 정치인의 생존 여부에 거는 게 무척 불합리하다는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역사가 늘 합리적으로 나아가는 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지 않는가. 인간 이재명에게는 잔인한 일이지만, 그 사람 말고는 누구도 그 짐을 질 수 없다. 그러니 달리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잘 싸우라는 말이라도 건네야지.

유시민 작가 시민언론 민들레 : 2023.03.06.

 

 

윤석열 정부 1, 거대한 퇴행을 목도하다

독일 방송에서 가장 정치적이고 지적인 장르는 코미디다. 특히 공영방송 코미디 프로는 정치의식의 수준을 보여준다. 촌철살인의 예리한 지성과 신랄한 풍자의 언어로 권력의 위선과 부패를 통렬하게 꾸짖는다.

한국에도 그런 프로가 있다면, 윤석열 대통령 당선 1년은 정치코미디의 황금기였을 것이다. 이처럼 무궁무진한 코미디 소재를 제공한 대통령이 있었던가. ()자 손바닥, 천공 스캔들, 바이든-날리면 참사, 도어스테핑 사고, 이준석-유승민-나경원 사태까지 그야말로 코미디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지난 한해를 단순히 사건사만으로 돌아보는 것은 위험하다. 사건의 저류에 흐르는 불길한 구조적 변화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당선 1년은 무엇보다도 선진국대한민국의 토대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성숙한 민주 사회 실현이 얼마나 지난한 길인지를 가르쳐줬다. 지금 한국 사회는 거대한 퇴행의 궤도에 진입해 있다.

 

첫째, 신자유주의의 부활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조종이 울린 이후 신자유주의의 폐허를 복구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이 오늘의 세계다. 동북아도 예외가 아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의 공동부유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신자본주의모두 이런 세계적 흐름의 일환이다. 미국에서도 급진적 분배정책이란 평가를 받은 바이든 예산이 세상을 놀라게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만 사망한 신자유주의가 오히려 부활하고 있다. 부자 감세와 노조 탄압 등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은 세계적인 흐름에 완전히 역행하는 것이다.

 

둘째, 수구의 귀환이다. 역사의 지평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수구보수들이 다시 속속 돌아오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면되던 날, 그의 집 앞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서 수구의 놀라운 생명력에 할 말을 잃었다. 박근혜 탄핵으로 정치 무대에서 퇴출당한 수구가 지배권력으로 재등장하고 있다.

 

셋째, 냉전의 회귀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에 휩쓸리고 있다. 내일 전쟁이 터진다 해도 놀라울 것이 없을 정도로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과거 냉전시대로 완전히 돌아간 형국이다. 신냉전 국제질서 속에서 동북아에 전운이 짙어지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는 낡은 냉전적 사고에 사로잡혀 상황을 악화일로로 몰아가고 있다.

 

넷째, 역사의 역행이다. 특히 일본과의 관계에서 역사의식을 망각한 행태를 보인다. 역사적 화해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반성 없는 화해는 거짓 화해다. 지금 윤석열 정부가 일본에 보이는 태도는 전혀 미래지향적이지 않다. 미래를 지향한다는 것은 과거를 성찰한다는 것이다. 성찰 없는 화해는 굴욕감과 저항감을 남길 뿐이다.

 

이처럼 윤석열 대통령 1년 동안 신자유주의는 부활하고, 수구는 귀환하고, 냉전은 회귀하고, 역사는 역행했다. 거대한 퇴행이 거듭됐다. 그러나 이런 퇴행들보다도 더 우려스러운 것이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후퇴다.

 

대한민국은 위대한 민주혁명의 나라라고 하지만, 본질에서 보면 지금도 여전히 독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군사독재에서 자본독재로 넘어가더니 이제는 아예 검찰독재로 나아가고 있다. 민주주의란 기실 이 과정을 화려하게 분식하는 장식품에 불과하다. 이런 과정은 폭력의 지배’(Autocracy)에서 자본의 지배’(Plutocracy)를 거쳐 기술관료의 지배’(Technocracy)로 이행한 것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현재 한국 사회는 기술관료 중에서도 법기술자가 지배하는 단계이며, 이는 동시에 자본의 지배심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검찰은 자본지배의 가장 충직한 마름이기 때문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는 또 다른 측면에서도 관찰된다. 거의 모든 영역에서 민주주의가 뒷걸음질 치고 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나 민주당 팬덤정치에서 볼 수 있듯이 정치민주화가 퇴보하고 있으며, 불평등 심화와 노동탄압이 보여주듯이 경제민주화가 퇴각하고 있고, 불공정과 차별의 심화에서 사회민주화의 퇴조를 볼 수 있으며, 권위주의의 심화와 혐오의 확산에서 문화민주화의 후퇴를 목도하게 된다.

 

이제 이 거대한 퇴행을 멈춰 세워야 한다. 더는 이 정부의 거친 역주행을 용납할 수 없으며, 무능한 야당의 만성적 무기력을 용인할 수 없다. 이제 시민사회가 움직여야 한다. 나라를 망치고 있는 거대 양당의 기득권 정치계급을 대체할 새로운 정치세력을 구축해야 한다. 거대한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 한겨레 : 2023.03.07.

 

신권위주의, 외로운 이들을 사로잡는 지배전략

우크라이나 침공을 포함해 최근 러시아의 상황을 지켜보는 외부자들이 놀라는 한가지 사실이 있다.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 힘든 푸틴의 높은 지지율이 그것이다.

러시아인 평균 가용 소득은 2012년 이후 침체해 거의 늘지 않고 있다. 근로자 평균임금은 과거 저임금 국가였던 중국에도 추월당했다. 게다가 푸틴 정권이 일년 넘게 자행해온 우크라이나 침공도 성공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다. 러시아군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는 전체의 16%에 불과하며, 그 점령지를 지키는 일조차 러시아군에는 버거운 과제다. 이렇듯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만한 성과가 없는데도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다수 주민이 상대적 가난 속에서 허덕이고 정권이 벌인 침략전쟁이 고전을 면치 못해도, 23년 동안 초장기 집권을 이어온 푸틴의 지지율은 무려 83%.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한 독재가 이처럼 민심을 잡은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그 비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푸틴 독재의 성격부터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많은 관찰자는 푸틴을 옛 소련 시스템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려 한다. 하지만, 푸틴 독재는 유일당인 공산당의 통치방식과 전혀 다르다. 푸틴에게는 보수적 집권정당 통합러시아당이 있지만, 그 당은 중국 공산당이나 북한 노동당과 달리 대중동원의 장치나 관료를 위한 등용문으로 그다지 기능하지 않는다. 푸틴의 국가는 소련·중국·북한식 당국가가 아니라 신권위주의 독재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헝가리 오르반 정권과 튀르키예(터키) 에르도안 정권, 인도 모디 정권이 신권위주의의 많은 특징들을 공유한다. 실질적인 양당제 국가인 한국에서는 특정 정치세력의 장기 집권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이지만, 강경보수 세력이 일부 신권위주의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당국가 체제 나라들은 보통 일체의 정보 흐름을 면밀히 관리하면서, 집권당 공식이념을 거스르는 정보의 유통은 철저하게 차단한다. 이와 같은 면밀한 관리가 불가능한 인터넷시대의 신권위주의 정권들은, 대신에 유권자 다수를 정서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담론을 온·오프라인으로 구축·유포해 다수의 자발적 추종을 끌어낸다. 재야세력의 주장에 접근이 가능해도 정권의 담론을 스스로 선택하고 지지하게끔 유권자들의 고정관념과 공포, 집단 콤플렉스와 편견을 십분 이용한다. 그리고 필요하면 그 공포와 편견에 부합하는 가짜 팩트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나는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뒤 침략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해외파 러시아 고학력자들과 여러 차례 격론을 벌였다. 해외에 거주하며 외국어에 능통한 그들은 침공을 비판하는 해외 언론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러시아를 늘 노리는 흉악한 서방서방에 부화뇌동해 러시아를 공격하려는 우크라이나 나치”, 옛 소련 영토 회복필요성, 그리고 러시아에서의 초강력 중앙집권의 중요성에 관한 친푸틴 언론의 이야기를 반복했다. “우크라이나에서의 미국의 생화학무기 실험실 운영등 친푸틴 언론들이 만들어낸 가짜뉴스까지 인용하면서 말이다.

 

결국 러시아의 어용 정보관리자들은 많은 러시아인이 가지고 있는 구미권에 대한 열등감·원한·공포라는 서방 콤플렉스와 소련 몰락에 대한 설욕의지, 주변 국가들의 민족주의 발흥에 대한 반감 등을 교묘하게 이용해, 다수에게 먹힐 만한 흉악한 서방과 착한 러시아의 대결이라는 거대 서사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유포한 셈이다. 이 서사를 믿는 다수 러시아인은 상대적인 빈곤 속에서 자국 군대가 전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신권위주의 정권이 벌이는 침략행위를 지지한다.

 

전통적으로 당국가들은 피치자들의 충성심을 확보하기 위해 사회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한때 소련 모델을 따랐던 북한도 1950년대 후반 인민들에게 무상교육·무상의료를 제공했다. 3세계 나라들 가운데 최초였다.

 

이와 달리 신권위주의 국가들의 복지정책은 소극적이다.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지출 비중은 약 12%, 산업화한 국가 중에서 복지후진국에 속하는 한국과 비슷하다. 신권위주의 국가들은 대신 노동자 등 피치자 사이 연대를 파괴해 원자화된 개인이 각자도생식으로 생존을 위해 분투하도록 하고, 어용 언론의 매혹적인 메시지에 홀로 노출되도록 한다.

 

계속되는 노조 파괴, 활동가 투옥 등 정권의 극심한 탄압 속에 러시아 전체 노동자의 3.5%만이 국가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민주노조에 속해 있다. 민주노총에 전체 노동자들의 6% 정도가 소속돼 있는 한국보다 노동운동 방해와 탄압이 더 심한 셈이다. 아울러 비정규직 등 불안정고용에 시달리는 노동자 비율 역시 약 46%로 한국(37.5%)보다 높다. 한마디로, 저복지와 불안정노동, 개인의 원자화 속에서 무력해진 개인들이 호소력 높은 민족주의적 메시지에 포획된 게 신권위주의 사회다.

 

다행히도 정치권력 교체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한국에서는 제도로서의 신권위주의와 거리가 멀다. 하지만 현재 강경 보수정권이 벌이는 정책이나 그 정책을 옹호하는 우파 언론들의 논지를 보면, 러시아의 비참한 현실이나 별반 차이가 없기도 하다. 노조에 대한 지속적 공격이나 불안정고용을 줄이는 것에 무관심한 정권의 태도는 푸틴 정권의 정책과 별 차이가 없다. 푸틴의 거대 서사 중심에 영원한 적서방과 미국이 있다면, 한국 극우들의 혐오장사 중심에는 노조 때리기나 관제 간첩조작, 반북 선동 등이 있다는 차이가 있다. 푸틴의 서사에서 중앙집권적 권력이 차지하는 위치를, 한국 극우담론에서는 시장능력이 점하고 있다.

 

결국 가난한 러시아 젊은이들 다수가 복지비용이 아닌 군비 증액과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듯, 많은 가난한 한국 청년들도 사실상 대물림되는 집안 자원에 좌우되는 능력에 따른 격차를 긍정한다. 러시아인 못지않게 많은 한국인은 자신의 계급적 이해관계와 정반대되는 세계관을 갖고 있다. 자본주의 위기 시대의 디스토피아인 신권위주의의 위험으로부터 한국 또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한겨레 : 2023.03.07.

 

 

중 배터리업체, 포드와 손잡고 IRA 우회상륙우방이 봉인가

미국 자동차회사 포드가 35억달러를 투자해 2026년부터 미시간주에서 전기차 40만대분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생산하되 기술과 장비, 인력은 중국 배터리회사 닝더스다이(CATL)가 제공한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무늬만포드 생산인 셈인데,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보조금 수혜를 노리며 외국인투자심의도 비켜 가려는 꼼수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발표 당일 마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이 정부에 꼼꼼한 심의를 요구하고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에너지 및 천연자원위원장)도 계약서를 살펴보자고 벼르니, 아직 결말을 예단하긴 이르나 빅뉴스가 터진 게 분명하다.

 

우선 조 바이든 정부의 위선이 도마 위에 올랐다. 포드 전기차 담당 부사장은 발표 당일 이번 투자는 국내 투자라고 강조하며 백악관과 행정부의 그간의 지원에 사의를 표했고, 에너지부 장관은 바이든의 업적이라고 치켜세웠다. 미시간 주정부도 2500개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며 10억달러 지원을 약속했다. 중국 공산당의 트로이 목마가 될 수 있다며 포드-닝더스다이 공장 설립을 막은 버지니아 주지사는 공화당 대선 후보 욕심에 버지니아의 이익을 날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인플레이션감축법은 북미 전역을 보조금 수혜 대상으로 명시하지만, 만일 미국이나 미국계 회사가 아니었어도 백악관이 지원에 나섰을까. 캐나다에서는 미국 정부가 캐나다에는 화웨이와의 결별을 강요하며 닝더스다이와 손잡은 포드의 위선”(<더 레코드> 223일치)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미국의 중국위협론에 빨간불이 켜졌고, 이제 누가 누구와 싸우는 건지 혼란스럽다.

 

미국의 위선을 비판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바탕에 있는 냉혹한 질서를 읽는 힘이다. 인플레이션감축법과 비슷한 시기 발효된 반도체과학법은 반도체 선진국인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지만, 인플레이션감축법의 전기차 배터리는 미국이 후진국이고, 이번 사태를 통해 자국 간판산업의 기후 전환과 경쟁력 제고가 급하다는 점을 드러냈다. 포드 창업자 헨리 포드의 증손자인 윌리엄 포드 회장은 닝더스다이가 자사의 리튬인산철 배터리 내재화를 도울 것이라고 반겼다. 중국에서는 핵심기술의 대미 유출을 우려한다지만, 실은 포드의 중국 진출 50년 만에 중국 배터리 업체의 미국 진출이라는 쾌거에 환호한다. 미국의 자존심에 금을 낸 역사적 순간이다.

 

-중 전략경쟁의 숨은 주역 시장도 소환된다. 경쟁사들보다 적자가 심한 포드가 재기 발판을 마련하려면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보다 값싼 리튬인산철 배터리에 눈 돌려야 했는데, 리튬인산철 최강자인 닝더스다이와 손잡으며 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 쪽 한국 기업들에 견제구도 날렸으니 일석이조가 됐다.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37%를 차지하는 1위 업체 닝더스다이도 포화 상태로 향하는 중국을 벗어나 장기적 시각으로 미국 시장 내 교두보를 마련하면서 최대 고객 테슬라를 견제해 일거양득이 됐다. 중국 언론 <차이나 타임스>가 이번 발표를 밸런타인데이의 국제결혼에 비유한 게 통렬하다.

 

이번 사태는 최근 재편 중인 세계 경제 질서를 신냉전으로 보는 시각에 죽비를 내리친다. 선별적 진영화로 국익을 극대화하는 보호주의 진영화시대임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또 미-중 전략경쟁이 국가에 시장까지 얽힌 고차 방정식임을 알렸다. 투자 발표 이튿날 2.7% 상승으로 마감한 포드 주가는 시장이 이를 미-중 전략경쟁 시대의 묘수로 읽었다는 박수갈채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불확실성이 고조될 것을 예고한다.

 

종류가 다른 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에 주력하는 한국 기업들은 당장의 피해는 없다고 방심할 일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리튬인산철 배터리가 확산하며 관련 특허를 독점한 중국 기업이 미국 시장에 안착한다면, 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 시장도 잠식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이나 미국 기업의 중국 진출은 여전히 기대 난망일 것이다.

 

미국은 우방의 대중 반도체 수출은 막으면서 닝더스다이에 빗장을 풀었다. 이런 식이라면 우방은 미국 주도 신뢰가치사슬구축을 신뢰하기 힘들다. 우방이 봉인가. 중국이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며 노골적인 중국 봉쇄 책략을 설파하지만(<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 마이클 베클리·핼 브랜즈) 정작 그 길에 들어서 제 코가 석 자인 자국 민낯은 못 보나 보다. 부디 <미국은 어떻게 실패했는가>를 읽을 일은 없기를.

김양희 | 대구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한겨레 : 2023.03.07.

 

 

언제까지 성장의 노예로 살 것인가

중국이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5% 안팎으로 잡았다. 지난해보다 0.5%포인트 낮은 것으로, 19914.5% 이후 32년 만의 최저 목표치라고 한다.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저성장을 걱정하고 있다. 비관적 전망이 잘 들어맞아 닥터 둠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최근 발간한 <초거대 위협(MegaThreats)>에서 글로벌 경제가 부채 위기와 금융 붕괴,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 등 위기에 직면했다고 경고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성장률은 2.6%로 전년(4.1%)에 비해 1.5%포인트 하락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최근 2년간 성장률 5.6%, 2.9%보다 낮다. 한국 성장률이 2년 연속 OECD 평균보다 낮은 것은 1992년 가입 후 처음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이 1.6%로 지난해보다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민간 연구기관에서는 더 낮게 잡기도 한다. 3년 연속 OECD 평균에 못 미치는 저성장에 빠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내총생산(GDP)1년 전에 비해 어느 만큼 늘어났는지 따지는 성장률은 국가들 간 경쟁의 성적표로 인식되고 있다. 성장률이 높아야만 그 정부가 좋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한국 정부도 낮은 성장률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국가미래전략 구상을 발표하면서 창조적 파괴와 혁신을 지속해 끊임없이 우리 경제의 성장경로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세계 최저 출생률과 급속한 고령화, 적은 이민자 등 저성장의 요건은 모두 갖추고 있다. 노동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킬 기적이 생기지 않는 한 생산량을 늘리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전문가들이 내놓는 저성장 탈피 해법은 대동소이하다. GDP는 말 그대로 생산물의 총합이니 보다 많은 상품을 생산해 판매하는 것이다. 잠재성장률을 높이고 수출을 늘리는 게 기본이다.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산업구조를 기술·지식 집약형으로 바꿔야 한다. 한국산 제품 경쟁력을 강화하고 수출 시장과 품목을 다변화해야 한다. 기업은 고용과 투자를 확대하고, 정부는 세제 혜택 및 규제 완화로 적극 지원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성장률은 2.6%로 전년(4.1%)에 비해 1.5%포인트 하락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최근 2년간 성장률 5.6%, 2.9%보다 낮다. 한국 성장률이 2년 연속 OECD 평균보다 낮은 것은 1992년 가입 후 처음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이 1.6%로 지난해보다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민간 연구기관에서는 더 낮게 잡기도 한다. 3년 연속 OECD 평균에 못 미치는 저성장에 빠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내총생산(GDP)1년 전에 비해 어느 만큼 늘어났는지 따지는 성장률은 국가들 간 경쟁의 성적표로 인식되고 있다. 성장률이 높아야만 그 정부가 좋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한국 정부도 낮은 성장률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국가미래전략 구상을 발표하면서 창조적 파괴와 혁신을 지속해 끊임없이 우리 경제의 성장경로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세계 최저 출생률과 급속한 고령화, 적은 이민자 등 저성장의 요건은 모두 갖추고 있다. 노동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킬 기적이 생기지 않는 한 생산량을 늘리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전문가들이 내놓는 저성장 탈피 해법은 대동소이하다. GDP는 말 그대로 생산물의 총합이니 보다 많은 상품을 생산해 판매하는 것이다. 잠재성장률을 높이고 수출을 늘리는 게 기본이다.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산업구조를 기술·지식 집약형으로 바꿔야 한다. 한국산 제품 경쟁력을 강화하고 수출 시장과 품목을 다변화해야 한다. 기업은 고용과 투자를 확대하고, 정부는 세제 혜택 및 규제 완화로 적극 지원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고성장 가도를 달리게 된다면 뭐가 달라질까. 생산이 증가하면 일자리가 늘어나고 임금도 올라갈 수는 있다. 하지만 GDP가 늘었다고 시민 삶의 질이나 행복감까지 높아진다고 볼 수는 없다.

 

경제학자들의 연구를 보면 소득과 행복은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다. ‘이스털린역설은 1인당 국민총생산(GNP)과 행복도는 관련성을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담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는 미국 시민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소득이 많아질수록 삶에 대한 만족도는 높아지지만, 행복감은 연봉 75000달러를 넘어서면 멈춘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빈곤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소득을 얻기까지는 행복도가 높아지지만, 이후에는 소득이 늘어나도 행복과 이어지지 않는다.

 

유엔 세계 행복보고서를 보면 2021년 한국 순위는 전체 146개국 중 59위였다. GDP 기준 세계 10위권 선진국에 진입했음에도 행복 순위는 한참 떨어진다. 행복보고서가 처음 나온 2012년 한국 순위는 11위였으나 2016년 이후 줄곧 50위권이다. 한국의 1인당 GDP201224000달러에서 202133000달러로 증가했다. 그 기간 행복보고서의 한국 점수는 큰 변동이 없었다. 소득이 늘어도 시민의 행복은 늘지 않고 있다.

 

성장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할 때가 됐다.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수상한 아브히지트 바네르지·에스테르 뒤플로 MIT 경제학과 교수 부부는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에서 경제학자들이 유용한 답을 제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해 어떻게 이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의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여야 한다고 말했다.

 

과잉 생산이 불가피한 성장 추구는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를 부추겨 지구를 병들게 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성장하지 못하면 곧 망할 것처럼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 성장에서 벗어나 시민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최근의 저성장 국면은 성장 패러다임의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기회다. 분배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공공재를 확충해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힘써야 한다. 성장이라는 괴물의 노예로 살아갈 수는 없다.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경향 : 2023.03.08.

 

구속성반도체 지원의 함의

예상대로 디테일했고, 예상을 뛰어넘어 노골적이었다.

미국이 반도체지원법(CHIPS Act)에 따른 보조금 지급 시 국가안보 기여도를 가장 중시할 것이라는 점은 예견된 바다.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은 보조금 신청·심사에 관한 세부지침 발표를 닷새 앞두고 한 연설에서 “(반도체법은) 근본적으로 국가안보 구상이라고 말했다.

 

상무부가 지난달 28(현지시간) 발표한 반도체법 보조금 지원 공고는 미국이 표방하는 산업정책의 안보전략화의 실체를 가늠하게 한다. 75쪽 분량의 문서는 미국에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를 한 기업들에 대한 각종 요구사항을 담았다.

 

군사용 첨단 반도체 안정적 공급, 국방부의 반도체 생산시설 접근 허용, 초과이익 공유, 재무·생산 관련 상세 자료 제출, 보육지원 계획 마련. 의무조항부터 우대나 권고, 고려 사항 등 요구의 수준은 각기 다르다. 이달 중 발표될 중국 투자 제한 가드레일기준이 그러하듯 결국엔 상무부와 개별 기업이 맺는 협약이 관건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보조금 지급 명목으로 여러 조건을 붙인 구속성’(strings attached) 지원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미국이 반도체 보조금 규제를 까다롭게 만든 의도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미국 내 반도체 생산과 연구·개발에 무려 527억달러(70조원)의 보조금을 나눠주는 만큼 납세자 세금 보호 차원에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도 기업에 비용을 전가한다” “반도체와 무관한 정책 의제 실현 수단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지난해 10월 반도체법,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미국의 새로운 산업정책을 둘러싼 비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 글로벌 경제를 힘이 곧 정의자연상태로 전락시킨다는 지적이 있지만, 이는 바이든 정부의 비전이 아닙니다.”

 

정말일까. IRA의 전기차 보조금 차별 조항에 자극받은 유럽연합(EU)맞불보조금 도입을 공언했다. 미국이 반도체 제조업 부활에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하기로 하자 한국, 대만 등에선 산업 공동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2차 세계대전 전후 자유시장과 경쟁, 규범에 입각한 경제질서를 설계한 미국은 중국 등이 흐트러뜨린 을 다시 세우기보다는, 안보 고려를 내세워 을 투사하는 데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

 

국제 개발협력에서 구속성 원조가 비판받는 까닭은 수원국 주민의 삶의 질 향상보다 공여국의 경제적 이익 확대라는, 본질에서 벗어난 목적을 앞세운다는 점 때문이다.

 

산업정책은 각 나라의 주권 사항이므로 미국의 구속성 반도체 지원이 본래 취지에서 어긋났다는 식의 비판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대미 투자금액의 5~10% 수준의 보조금과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지원 내용이 기업들엔 매력적인 조건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반도체법 보조금 심사 기준 발표 이후 더욱 자명해진 미국의 의도, 그리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미국의 숨은 셈법을 간파하고 치밀하게 대응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미국 좋은 일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김유진 워싱턴 특파원 경향 : 2023.03.08.

 

거짓말하는 대통령

2차 세계 대전의 종료와 더불어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지배가 세계 도처에서 서서히 막을 내리고 수탈과 억압을 받던 식민지국이나 민족들이 독립을 쟁취하여 형식적으로는 자주권을 되찾은 듯했다. 그러나 식민 지배에 의하여 수탈당해 온 식민지인들은 약육강식의 시대가 지나가고 공존의 시대가 온 것이라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식민지배 역사가 길면 길수록 식민지 지식인들은 대부분 식민 지배세력에 편승하여 부역했기 때문에, 비록 해방되었다 할지라도 식민 잔재를 청산하고 온전한 자주독립을 일구어낼 정치적 역량과 인적 자원이 메말라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제국주의에 의해 지배받는 동안 식민지에서는 독립적이며 자주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은 대부분 포악한 지배세력에 의하여 걸러지거나 제거되었기 때문에 국가 사회를 제대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을 가진 지도력이 거의 부재했다. 지식인, 법관, 군대, 경찰, 행정 등 모든 영역에서 자주적 역량이 거의 초토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식민지 후기 사회는 식민 지배의 연속선상에 놓이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사회에서도 국가 사회의 사회정치적, 그리고 지적 역량이 35년 동안 일본 제국주의 지배를 존속시키는 데에 바쳐졌기 때문에 사실상 민족 배반자들에 의한 지배와 역사 해석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민족 배반자들이 갉아먹은 자주적 정치역량

이런 형편에서 해방 후 새로운 민주국가를 형성해 나가야 할 시점에 심각하게 다가온 문제는 “‘일제 잔재의 청산인가, 아니면 과거의 연속선상이어야 하는가라는 문제였다. 결국 외세에 의하여 해방이 주어지고, 이어 우리의 주체적 결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외세에 의하여 민족 분단이 일어났다. 새로운 외세, 미국의 지배 구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미군정과 이승만은 일제 부역자들을 다시 기용하여 나라를 세우는 방편을 택했다. 일제의 지배를 받아들였던, 일제의 지배를 위하여 일하던 지식인들, 민족 배반자들이 청산되기는커녕, 오히려 해방된 조국에서도 다시 지배 계층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비록 외적으로 해방이 되었어도, 내적으로는 여전히 식민 지배의 도구였던 자들에 의한 지배가 지속된 셈이다. 이 세력은 일제의 침략을 우리의 무능의 결과로 해석하고 민족의 주체적 역량을 폄하함으로써 일제하에서 그들이 누리던 특권을 돈독하게 지켜왔다. 이런 후기 식민지적 현실에서 지식인과 자본가 그리고 권력층은 본질적으로 그들의 권력과 특권, 부를 지키기 위해서 국가 공동체의 이익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먼저 도모하는 습성을 가진 이들이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식민 후기의 정황을 가진 대부분의 신생 독립국에서 장기간에 걸친 독재가 이어졌다. 부도덕한 권력과 자본, 그리고 외세와의 결탁을 통해 독재자들은 식민지배자들과 다름없이 동족을 억압하고 착취하면서 자신들만 살찌우는 길을 택했다. 이들의 구호에는 언제나 '자유'가 들어갔다.

 

이런 후기 식민시대 현상은 민주적 정치 역량이 결핍된 사회에서 더욱 극심하게 일어났다. 식민 상황에서 해방된 이후, 등장한 것은 제국주의자들이 키워놓은 독재자였고, 독재자는 민족의 주체적 정치세력을 좌파, 공산주의자라는 프레임을 사용해 축출하거나 법적으로 살해하기도 했다. 그들은 민족 주체세력을 걸핏하면 이념몰이를 통해 추방하거나 처단함으로써 자국의 자주적인 정치 역량의 성장을 국가안보와 연동시켜 가로막았다. 남미에서도, 대한민국에서도, 대만에서도, 그리고 심지어 남아공에서도 있었던 일이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친미 독재 정권을 근 40년간 겪었다.

 

미결된 일본의 불법 식민 지배와 배상 문제

일제의 식민 지배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에 있어서 이승만 정권은 그래도 일본에 대하여 사과와 배상이 없는 한 교류를 할 수 없다는 강고한 입장을 견지하였다. 윤보선 정권은 196112월 일제 식민 지배 35년 동안 끼친 피해에 대하여 122000만 달러 보상을 청구하였으나,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196512월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를 받기로 하고 대일청구권을 값싸게 포기하였다. 민족 구성원에 대한 각종 인권유린의 문제, 35년 동안 일제가 우리 민족의 진보와 성장의 기회를 불법적으로 가로막은 죄, 그 긴 기간의 수탈과 범죄에 대한 보상이 고작 3억 달러로 처리된 것이다. 그런데도 박정희는 1965622일 대일청구권을 포기하며 이렇게 국민을 위협했다.

 

군인이나 학생이나 공무원이나 정치인이나 위법자는 가차없이 처단하라는 것이 국민의 소리인 줄 나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후기 식민지 사회가 지닌 또 하나의 비극은 이렇듯 정권을 잡은 자들이 권력을 독점하기 위하여 민족의 자긍심과 존엄성을 아주 쉽게 팔아버리는 데 있다. 20181030일 대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박정희 정권은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 보상금 3억 달러의 일부인 약 9.7%를 사용하여 총 83519건에 대해 총 9187693000원의 보상금만 지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중 피징용사망자에 대한 청구권 보상금으로 총 8552건에 대하여 1인당 30만 원씩 총 256560만 원을 지급했을 뿐이다. 또한 이 판결에 따르면 일본은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공식 인정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일본의 강점,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 의무 자제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도 일본은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자기네 교과서에 기재해 놓고서 우리가 강점하고 있다고 그들의 자식들에게 가르치고 있고,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함으로써 동해에 대한 일본의 상징적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형편이다. 35년간 무력으로 점령하고 지배했던 제국주의적 침략 행위에 대하여 사과도 없고 배상도 없는 일본, 남의 나라 땅을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며 자식들에게 가르치는 일본, 이런 일본이 과연 우리와 미래를 함께 할 수 있는 것인지 우리는 근본에서 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사죄와 배상이 없는 관계 회복 주장은 거짓말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20233·1절 기념사에서 놀랍게도 이렇게 공표했다.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일본은 지금도 우리 땅을 넘보고 있고, 우리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고서도 배상할 생각도 하지 않는 나라다. 따라서 인류 보편가치를 공유하고 있다고 결코 말할 수 없다. 수틀리면 예고 없이 경제 제재를 가하여 우리의 경제 안보를 위협하기도 했다. 이런 나라가 어떻게 협력적 파트너인가? 우리 국민의 인식과 너무나 거리가 먼 대통령의 주장, 국민 편이 아니라 식민 지배자 편에 서서 하는, 명백한 거짓말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박충구/ 전 감신대 교수ㆍ 생명과 평화윤리 연구자 시민언론 민들레 : 2023.03.08.

 

 

검사가 와도 사교육은 못 잡는다

육군 소장에서 일약 최고 권력자가 된 전두환이 민심을 얻기 위해 들고나온 정책이 과외(사교육) 전면 금지였다. 박정희 정권 때 실시한 중학교 무시험제와 고교 평준화도 따지고 보면 사교육을 줄이기 위한 방편이었다. 해방 이후 한국의 교육정책 역사는 사교육과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방송(EBS)에서 학원 강사를 불러 대학수학능력시험 강의를 하고, EBS 교재와 연계해 수능 문제를 출제한 것도 모두 사교육을 줄이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윤석열 정부도 사교육을 잡겠다고 나섰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초··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은 26조원으로 전년보다 10.8% 증가해 2년 연속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학생 수는 4만명이 줄었는데 사교육비는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영향이라고 해도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입시 개편 같은 교육정책으로 사교육 줄이기는 불가능하다. 특히나 경쟁을 지향하는 이주호 교육부체제에서는 사교육이 늘망정 줄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출세한 사람이라도 자녀가 대학에 못 가거나 정규직이 못 되면 그 순간 인생이 낭떠러지로 추락한다. 서민들은 계층 상승을 꿈꾸며 박봉을 사교육에 털어넣고, 중산층 역시 그나마 갖고 있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사교육에 올인한다. 조국이 자녀의 스펙을 만들기 위해 표창장을 위조한 것이나 정순신이 아들의 학교폭력 행위에 소송을 거듭하며 잔머리를 쓴 것도 한편으로는 이런 불안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세상엔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있다. 학벌과 학력도 한때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수능은 반복해서 치르면 점수가 올라간다. 돈을 들여 스펙을 쌓고 컨설팅을 받으면 수시모집 합격 가능성은 올라간다. 사교육과 입시경쟁은 동전의 앞뒤처럼 불가분의 관계다. 입시는 일종의 선별 과정이다. 이른바 의치한수약대와 SKY대에 진학하는 사람은 2만명으로 정해져 있다. 서울 4년제 대학과 지방의 거점 국립대·교육대 정원은 10만명 안팎이다. 비정상적이고 비효율적인 경쟁이 벌어지지만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사교육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학부모는 등골이 휘고 학생들은 책걸상에 몸을 고정시킨 채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런데도 모두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남을 믿지 못하니 나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죄수의 딜레마 같은 상황이다. 모든 사람이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다. 사교육업체들은 불안을 마케팅 재료로 활용한다. 개미지옥처럼 알면서도 빠져드는 것이 사교육 선행학습이다. 요즘은 초등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의대 진학반까지 생겼다고 한다.

 

해법은 판을 엎고 게임을 중단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사교육을 안 하거나 못하게 하는 것이다. 1980년 과외 전면 금지 조치는 신군부를 증오하는 사람들조차 지지했다. 그러나 과외 금지 조치는 2000년 헌법재판소에서 기본권 침해로 위헌 판결이 났다. 한동훈·이복현 같은 무소불위의 검사 출신이 나서도 법과 관치로 사교육을 때려잡을 수 없다. 그러는 사이 사교육은 이미 막강한 권력으로 부상했다. 입시학원의 수능 배치표 한 장에 서울대 의대부터 지방 전문대학까지 전국의 모든 대학과 학과가 한 줄로 세워진다. 1년에 수백억원을 쓸어담는 일타강사들은 선망의 대상이 돼 드라마의 주인공으로도 나온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다. 사교육 성행에 따른 저출생이 역설적으로 사교육에도 쇠퇴를 가져올 것이다. 한 해 신생아가 100만명이던 시대와 25만명인 시대는 경쟁의 강도가 다르다. 앞으로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더 귀해지고, 미약하나마 학생 개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중시하는 풍토가 조성될 것이다. 사회의 생산을 담당하는 기업들의 변화도 감지된다. 학벌 좋은 사람을 뽑는 것이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기업일수록 학벌보다 성과와 능력을 중시한다.

 

사교육은 교육정책만으로 잡을 수 없다. 능력 위주의 채용 관행이 정착되고 이에 대한 학부모들의 믿음이 있어야 한다. 복지가 탄탄하고 사회안전망이 촘촘해질수록 사교육 수요는 줄어든다. 굳이 교육정책을 쓴다면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 원론적인 방법밖에 없다. 세계 어디나 사교육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는 양질의 공교육 시스템과 학교 교사들이기 때문이다.

오창민 논설위원 경향 : 2023.03.09.

 

삶과 시가 뒤엉켜 완성되는 인생 변주곡

부러웠어, 너의 껍질/ 깨뜨려야만 도달할 수 있는/ 진심이 있다는 거.’

개학식. 강당에 모인 아이들에게 잠깐 발언할 짬이 내게 주어졌다. 프로젝터를 켰다. 미리 준비한 시 한편을 차분히 읽는다. 시가 노래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맞혀보라고 말한 터였다. 시구는 연이어 흐른다. ‘자꾸 잊어, 너도 누군가의 푸른 열매였다는 거/ 세상 그 어떤 눈도 그냥 캄캄해지는 법은 없다는 거.’ 첫번째 손 든 아이는 수박이라 했고, 두번째 아이가 호두라 답했다. 그렇다. 그 시는 안희연의 호두에게였다.

 

“‘누군가의 푸른 열매였다는 구절을 읽으면서 아차 싶었어. 인터넷에서 호두열매를 입력했지. 호두가 건조되기 전에는 이렇더라.” 매실처럼 싱그러운 열매 사진이 화면에 떴다. 아이들은 우와하고 나지막한 탄성을 내질렀다. “58년 동안 호두를 보았고, 껍질 깨뜨려 맛나게 먹어왔어. 하지만 갈색 호두에게 초록빛 청춘이 있으리라 단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어. 이 시를 읽기 전까지는 말이지. 갑자기 세상 모든 호두에게 부끄러웠고, 미안해지더라.” 여기까지만 할까 하다가 어쩔 수 없는 선생인지라 한마디 덧댔다.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지? 어떤 사물을 색다르게 보고 싶어? 그러면 시를 읽어봐. 아니, 더 나아가 너희들이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언어의 세계를 확장해보렴. 이번 학기 목표를 그렇게 정하고 열심히 살아보자.”

 

런던에서 공부할 때 온갖 종류의 문서와 마주쳤다. 돈을 벌면서 살아남아야 했기에 공문서부터 화물선 설계 계약서,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B) 핸드북에 이르기까지 내 읽기 목록은 한층 다양했다. <가디언>을 주말판까지 구독하던 열독자였다. 원문의 난이도에 따라 달랐지만, 집중력과 시간을 투입하면 그런대로 읽을 만했다. 하지만 난공불락의 영역이 있었으니 바로 영시였다. 그때 깨달았다. ‘아하, 어떤 언어든지 그 말로 쓰인 시를 읽고 이해한다는 것은 그 언어의 정점을 간파해 잘 다룰 수 있다는 걸 뜻하는구나.’ 그러니 다음 세대에게 무엇인가 전수해야 한다면 한국어의 꼭짓점을 찍고 있는 분야, 즉 시를 가르치지 않을 수 없다. 시는 국어교과를 넘어서서 문명교과라 본다.

 

한 학기에 한번은 가방에 시집 30권쯤 담아 교실로 들어간다. 한 아이당 시집 3권을 무작위로 안긴다. “너희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표현을 하나씩 골라봐. 자세히 읽을 필요는 없어. 이해하려고도 하지 말고. 그냥 책장을 넘기며 눈으로 글자를 쭈욱~ 촬영하다가 , 이거다싶은 대목이 있으면 표시해 두길.”

 

어느 날 몹시 파랑치던 물결이 멎고/ 그 아래 돋아난/ 고요한 나무 그림자처럼/ 당신을 닮은 그리움이 생겨났습니다’(이성복, ‘비단길1’). , 최근 연애 시작한 거야? 아뇨. 그냥 누군가를 막연히 좋아하기 시작하면 멋지겠다는 상상을 하고 있었어요.

 

하므로 저술가들은 용서받지 못한다/ 그들은 질문하며 발뺌했기에’(장정일, ‘텅 빈 껍질’). 질문받는 게 여전히 싫은가 보네. 그보다는 발뺌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콕 박혔어요. 요새 제가 좋아할까 미워할까 망설이게 하는 애가 있는데, 걔가 꼭 그러거든요. 내 물음에 대답은 하지 않고 자꾸 딴청만 피워요.

 

최근 시인들은 소통 부재와 의미 전달의 불가능성, 일상에 배어 있는 무의미와 무관심을 퉁명스레 노래한다. 나처럼 시를 통해 서정성과 통찰력을 얻고자 하는 독자들이 줄어든 모양이다. 어쨌든 위와 같은 방식으로 수업하다가 신기한 발견을 했다. 아이들은 의미가 흐릿한 난해시 가운데서 자기 마음에 드는 표현을 더 많이 찾아낸다. 시어와 아이들의 삶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신비롭게 만나는 것이다. 마치 이집트 상형문자를 글자가 아닌 그림으로 파악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러면 어떠랴. 시어와 아이들 마음이 우연히 만나 시가 자기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잠시라도 느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시의 세계로 우리를 깊이 이끄는 탁월한 안내자 신형철 교수는 <인생의 역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를 읽는 일에는 이론의 넓이보다 경험의 깊이가 중요하다고. 우리는 어떤 일을 겪으면서, 알던 시도 다시 겪는다고. 시 문외한인 우리 아이들이 신 교수의 성찰을 입증한다. 삶과 시는 이렇게 만나기 시작해 평생을 뒤엉켜야 한다.

이병곤 | 제천간디학교 교장 한겨레 : 2023.03.09.

 

민주당에서 무너지는 민주주의, 고생이 많다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에 대한 결정을 내릴 시간이다

배신자, 첩자 7, 색출, 처단, 제거, 살생부, 내전, 반란, 훌리건, 홍위병, 폭력, 증오, 영구제명, 문자폭탄, 차마 눈 뜨고 못 볼 악질적 댓글과 문자들...

 

요즘 민주당을 언급하며 거론되는 표현들이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무려 80% 정도의 소속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져 부결됐음에도 지지자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소수의 이탈자마저 색출, 처단하겠다고 온 사방을 떼로 몰려다니며 공포감을 조성하고 집단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 강경파 지지자들은 상상력까지 발휘하여 자기편이 아니면 닥치는 대로 의심하고 올가미를 씌운다. 퇴임 후 경남 양산에서 농사짓고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국민의힘과 내통한 '첩자 7'에 올려 처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쯤 되면 도대체 어떤 정신상태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 대표가 "내부를 향한 공격이나 비난을 중단해주시길 부탁드린다"며 나서야 했으나 별무효과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현역 의원들이 이를 합리화하고 오히려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용민 의원은 한 인터뷰에서 지지자들의 이탈자 색출은 "매우 정당하고 정의롭다"면서 "당내 배신자들"을 색출하는 것은 "당원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각자의 양심과 상식에 따라 투표를 한 동료 의원들을 '배신자'로 못 박아버린 것이다.

 

참고로,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당연히 그 자유는 보호받아야 한다. 특히 헌법재판소는 "비이성적, 비윤리적, 반사회적인 양심을 포함해 모든 내용의 양심이 양심의 자유에 의해 보호된다"고 판례에 적시하고 있다. 그리고 양심의 자유는 침묵의 자유도 포함한다. 지금 지지자들의 사상검증과 자백강요는 헌법정신에 반할 뿐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침탈행위이다.

이재명 지지자들 사이에서 돌고 있는 민주당 첩자 '7적들' 포스터.

 

민주당, 어쩌다 이 지경

이들 과격한 지지자들은 민주당의 오래된 문제다. 2016년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박원순 등 대선주자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자 각 지지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애정을 다른 후보에 대한 인신공격적 비난과 모욕으로 증명하려 했다. 그 중 유명했던 쪽이 이른바 '문빠''손가혁'이었다.

 

사실 문재인은 2016년 자신의 팬클업에 '선플운동'을 제안하기도 했고, 20171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동지들에게 절박한 마음으로 호소합니다"라는 글을 올려 자제를 당부하기도 했다. 이재명도 자신의 열혈 지지세력인 손가혁으로 인해 비난을 받게 되자 2017년 대선 이후 결국 손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민주당의 '고질병'이 되었다. 지난해 전당대회 당시 우상호 비대위원장이 "인신공격, 흑색선전, 계파 분열적 언어를 엄격하게 금지하겠다"면서 "특히 '수박'이라는 단어를 쓰는 분들은 가만히 안 두겠다"고 엄포를 놓았으나 이마저도 결국 허사가 됐다. 문재인이 퇴장하고 난 지금 과거 여러 후보들에게 분산되었던 강성 지지자들이 이재명 아래 결집한 듯하다. 당연히 당이 휘청일 수밖에 없다.

 

당이 이렇게 지지자들에게 끌려다니게 된 이유는 민주당 인사들이 이들을 방조하고 때로 조장한 탓이다. 의원들이 자신의 정치적 계산에 따라 이들을 도구로 활용하며 이들에게 자신의 존재에 대한 효능감을 키워줬다. 대표적 사례가 2020년 총선 당시 위성정당 창당, 2021년 서울·부산 재보궐선거 등 스스로의 약속을 뒤집어엎을 때이다. 이들이 동원되어 당헌·당규 개정을 가능케 했다.

 

이제 '민주당의 운명은 내가 결정한다'는 사명을 장착한 이들이 직접 플레이어로 나섰다. 과거 문자폭탄은 주로 경쟁상대나 반대파를 공격할 때 쓰였다. 그런데 최근엔 당 지도부를 향한 폭탄도 난무한다. 2021년 당 지도부가 법사위원장 자리를 (전례에 따라 야당인) 국민의힘에 배정하자 송영길 대표와 윤호중 원내대표는 문자폭탄세례를 받았다. 윤 원내대표는 '역적'이 되었다.

 

지금 민주당은 지지자들에게 점령당한 꼴이다. 진중권 교수는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군중은 일단 불이 붙으면 통제가 안 된다... 그들을 세뇌시켜 써먹는 이들은 결국 그 군중에 잡아먹히게 된다"며 민주당의 처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는 강성 지지자들에 대해 "정치 훌리건들이 그들과 다른 생각을 배격하면서 전체주의처럼 행동"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손흥민 선수에게 인종차별적인 행동을 한 관객에게 첼시 구단은 경기장 출입 금지 처분을 내렸다""당원권 박탈 등 강력한 조치를 내려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팬덤의 기원, 그리고 '정치 팬덤'의 문제

그렇다면 이들의 행태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문화인류학자 존 스토리는 팬덤을 산업사회 대중문화의 보편적 현상으로 간주하면서 주로 무력한 계층과 종속적 사람들에게 보편적 문화 취향이라고 했다. 이들은 (팝음악이나 스포츠 등) 사회의 지배적 가치체계에서 벗어난 문화형태에 몰입한다. 즉 팬덤이란 제도적으로 공인받은 공식문화(official culture)가 아닌 그 바깥의 빈 곳을 채우는 문화인 것이다.

 

팬들은 자신의 상황에 맞게 새로운 문화를 생산할 뿐 아니라 이를 재가공하여 팬 공동체와 공유한다. 그런데 팬덤의 중요한 기능은 이것이 대중의 문화적 결핍(또는 외로움)을 채우는 경로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무언가에 몰입한다는 것은 결핍의 해소를 위한 노력이다. 하지만 이것이 심해지면 사생결단이 되기도 하고 또 스토킹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팬덤의 속성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의 주장에 대한 단호함이고, 이 단호함은 종종 사회적 공격성을 띠기도 한다. 팬덤은 공식문화 영역 밖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저항적이고 도전적일 수밖에 없다. 또 팬들은 자기들의 팬덤 대상이 공식문화 범주에서 평가절하되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그래서!) 반론에 주력하고, 반박할 사례를 긁어모아 합리화에 몰입하기도 한다. 팬덤의 또 다른 주요 속성은 대중이 누군가의 팬이 됨으로써 또래 집단이나 팬 공동체 내에서 자존심과 즐거움을 얻는 원천으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팬덤 안에서 그들은 (비록 계급의 상승은 아닐지라도) 즐거움과 존중을 보상받는다.

 

이렇듯 팬 공동체에 들어가면 유대감, 즐거움, 자존감을 얻게 되는 동시에 공격적 성향을 띠게 된다. 지금 민주당 강경파 지지자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팝음악이나 스포츠 등 오락 팬덤과 정치 팬덤은 구분해야 한다. 오락은 감정의 영역이지만 정치는 이성의 영역이다. 정치인에 대한 맹목적 팬덤은 위험하다. (fan)의 어원이 광신도(fanatic)이다.

 

민주주의, 민주당에서 고생이 많다

당을 접수한 듯 행동하는 이들은 지금은 아예 토벌군이 되어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직접 척결하겠다고 한다. 반란()에 대한 보복이다. 그러나 '처벌'은 법과 규정을 따라야 한다. 보복은 사적 응징이다. 마땅히 근절되어야 한다. 자신의 언어로 설득이 안 되고 스스로 논리가 서지 않는다 해서 협박, 처단, 보복하겠다는 것은 당연히 민주주의에 반한다.

 

특히 처단, 척결을 주장하는 이들은 상대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169명의 국회의원이 있는데 왜 획일적 사상과 단일한 양심을 강요하는가. 거기에서 벗어나면 배신자인가? 전체주의적 사고다. 나만 옳다는 생각이다. 박정희 시대에 보던 풍경이다.

 

이제 민주당 의원들은 국민 눈치가 아닌, 이른바 '개딸'들의 눈치를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솔직히 이야기해보자. 많은 친명계 의원들은 이탈표를 던진 비명계 의원들에 대해 '공천 때문'이라고 폄하한다. 묻고 싶다. 그 친명계 의원들이 '이재명을 지키자'라고 외치는 것 역시 공천 때문 아닌가?

 

민주당, 이제는 판단해야

민주당(지지자들)이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다. 민주당 강경파 지지자들을 지칭하는 '훌리건'은 원래 영국 프로축구 팬에서 유래된 단어다. 1970~80년대 영국경제가 침체에 빠지면서 양산된 도시의 젊은 남성 실직자들과 노동자은 팀에 대한 충성을 앞세워 원정경기까지 쫓아가 난동을 부렸고 유혈사태까지 빈번했다. 이들은 영국축구, 아니 영국의 골칫거리였다. 당시 영국축구를 묘사하자면 "슬럼경기장에서, 슬럼사람들이 관전하는, 슬럼경기"였다. 결과는? 당연히 중산층이 외면하게 됐고, 영국 프로축구는 유럽에서도 3류 리그로 추락했다.

 

그런 영국 프로축구가 최고의 명품 '프리미어리그'로 새롭게 태어난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영국 정부는 대대적인 훌리건과의 전쟁에 나섰다. 이들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중산층이 다시 경기장을 찾을 수 있었다. 동시에 진행된 구단의 노력은 혁신적이었다. 이제까지 팀에 대한 충성심을 면죄부 삼아 폭력을 일삼고 구단을 망치는 ''과 과감하게 결별하고 구단의 경기를 즐기고 응원해줄 '고객(customer)'을 선택한 것이다. 이를 위해 경기장 폭력의 시발점이 되었던 입석공간을 없애고 이를 지정좌석으로 채웠다.

 

또다른 전략은 '중산층' 여성과 아이들이 찾을 수 있는 경기장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가족마케팅이다. 그 핵심은 바로 안전과 다양한 상품이었다. 결국 프로구단이었음에도 생존을 위해 팬과 결별하는 과감한 결정, 그리고 중산층을 끌어들이기 위한 지속적 노력이 영국 프로축구를 세계 최고의 '프리미어리그'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민주당은 이미 오래 전 상황파악이 끝났다. 강성 지지자들을 충분히 이용할 만큼 이용했고 이들에게 끌려다닌지 오래 됐다. 이젠 결정을 해야 할 시간이다.

 

하나 더. 유명 연예인들이 경호원을 고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신이상 괴한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팬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 조심해야 한다.

정희준 문화연대 집행위원 | 프레시안 2023.03.10.

 

 

탈식민주의 혹은 겹-식민주의

20231월 일본을 찾은 외국인 방문객의 숫자는 150만 명인데, 이 중 56만 명이 한국인이다(여행신문 <한국인 일본여행객 또 신기록! 156만 명 돌파>(216)). 2022년 말 일본 여행사 HIS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연말연시 가장 가고픈 해외여행 도시로 서울을 꼽았다(부산은 4위다.) (서울경제 <하와이 꺾었다일본인 연말 최고의 여행지꼽은 이곳>(20221129)). 2022년 도쿄 신오쿠보 일대 한국인이 운영하는 점포수는 634곳으로 2017년에 비해 60%가 증가했다(연합뉴스 <“한류 재점화에도쿄 코리아타운, 역대 최대 634개 점포>(2022912)). 서울 홍대 상권의 경우 일식 요식업 점포수는 2021160개 남짓으로 2011년에 비해 35.3%가 늘었다(서울경제 <서울 한식당 10년간 1만 곳 문 닫을 때, 일식 759·중식 103곳 늘었다>(2021524)). 지난 1월 초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202335일 한국 누적관객 381만 명을 기록하며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중 가장 높은 흥행 순위에 올랐다(조선비즈 <‘더 퍼스트 슬램덩크관객수 381만 명 돌파해 일 애니메이션 1위 올라>(35)). 20232월 말 기준, 일본 넷플릭스에서 최다 시청된 10개 콘텐츠 중 7개가 한국에서 제작되었다(한국경제 <“이러다 싹쓸이 하겠네Z세대, 한국에 푹 빠진 이유>(226)).

 

관광·음식·영상물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최근 한일 간 대중문화 풍경은 흡사 데칼코마니가 연상될 정도다. 서로 부지런히 오가고 즐겁게 주고받았다. 특히 젊은 층은 동시대 문화감수성을 공유하며 수평적이고 호혜적인 관계를 구축했다. 상대에 대한 호기심과 선의가 기본 바탕이다. 피해의식과 우월감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지 않다면 광화문에서 자주 보는 한복을 입은 일본인을, 교토에서 쉽게 마주치는 기모노를 입은 한국인을 설명할 길이 없다. 지배와 피지배경험을 가진 두 나라가 이처럼 대등하고 우호적으로 문화 교류를 하는 일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대체로 식민본국의 힘의 우위와 그에 저항하는 피식민국의 반작용이 작동한다. 물론 간혹 소란이 발생한다. 우경화된 목소리를 낸 창작자가 고발되고 식당 등에서 받았던 멸시가 폭로된다. 그러나 전체 대중문화 교류를 가로막지는 못한다. 상대를 완전히 부정하는 극일이나 혐한은 한일 젊은이들의 문화교류와 거리가 멀다. 각국의 엇비슷한 경제력과 개성을 바탕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가운데 이들은 식민주의 이후 혹은 식민주의를 벗어난 다채로운 양국 공존의 가능성을 일상 속에서 모색 중이다.

 

문화연구 이론 중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는 식민본국과 피식민국 사이의 혼종성, 입체성, 양가성 등을 강조하며 두 나라의 단순 대립을 보다 다층적으로 분산하고자 노력하였다. 예컨대 영화 <미나리>(정이삭 감독, 2020)가 보여준 이민자의 정체성 혼란과 미국다움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랄지, <용길이네 곱창집>(정의신 감독, 2018)에서 가시화된 남한·북한·일본 어디에도 속하기 어려운 디아스포라의 뿌리 내릴 수 없음에 대한 감각은 탈식민주의가 자주 천착한 주제이다. 탈식민주의는 민족주의나 식민주의의 충돌만으로는 놓치는 변방 주체를 복원해 그들에게 말 할 수 있는 목소리를 부여했다. 탈식민주의의 대표 이론가 가야트리 스피박이 그의 논문 <하위주체는 말할 수 있는가>에서 힌두교의 과부순장풍습 사티를 끌고 온 것도 같은 이유이다. 스피박은 야만적 악습을 철폐한다는 영국 식민주의자, 인도의 독립을 주창하는 남성 민족주의자 사이에서 곤경에 처한 여성 과부를 등장시켜 식민주의와 민족주의의 대립을 해체하는 탈식민주의 공간을 열어젖혔다. 그에게 식민 혹은 피식민의 경험은 독립과 자유와 같은 문제뿐만이 아니라 여성 생존 문제와도 결부되었다. 이를 지엽적이거나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는 해방과 자주는 또 다른 폭력으로 군림할 가능성이 농후한 거짓 말장난이다.

 

지난 36, 윤석열 정부는 강제징용에 대한 일본의 배상 책임을 명시한 한국 대법원 판결을 뒤집는 제 3자 해법안을 암시했다.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느꼈던 첫 번째 감정은 분노이다. 명백히 존재하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침묵시켰기 때문이다. 정부만이 유일한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는 오만함에 말문이 막혔다. 더불어 장학금 등을 마련해 미래세대·청년세대를 위해 쓰겠다는 교육적 대안에는 절망감이 커졌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호혜적이고 수평적으로 작동하는 한일 젊은이의 일상적 대중문화 교류는 허상이거나 퇴행이란 말인가. 자신들의 해결책만이 정당하고 나머지 시민사회 실천들은 논외로 치부하는 것은 비민주적일뿐더러 국민 위에 군림하는 식민주의다. 윤석열 정부는 식민주의의 모순을 또 다른 식민주의로 덮을 작정인가.

홍성일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미디어오늘 2023.03.11.

 

 

술 취한 삼촌같은 대통령

2016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워싱턴포스트가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진행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묘사할 단어를 고르라고 했더니 술 취한 삼촌이 거론됐다. 가끔 명절에 집에 찾아오는 술 취한 삼촌처럼 볼 때마다 고개를 가로젓게 되고 말하는 걸 듣기도 싫은 후보였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거짓말쟁이로 묘사했다. 정치적 술수로 살아왔고 권력욕에 사로잡힌 인물이란 취지다. 이들 중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미국 시민들의 난감함을 알 수 있었다.

 

지난 한국 대선 상황도 이와 비슷했다. 여야 유력 후보 둘의 이미지도 트럼프, 힐러리와 닮아 있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술 취한 삼촌 같았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거짓말쟁이 같았다. 이 후보는 윤 후보를 무식(無識)’이라고 공격했고, 윤 후보는 이 후보에게 무법(無法)’이란 꼬리표를 붙였다. 정파성이 약한 중도층은 정말 투표하기 싫은 선거였다. 선거 결과 미국처럼 술 취한 삼촌이 간발의 차이로 선택됐다. 그리고 대선 1년이 지난 지금도 시민들은 대통령과 거대 야당 대표가 된 두 사람을 보며 한숨을 쉬고 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은 무시하고, 여당은 힘으로 억누르고, 남의 문제는 파헤치고, 본인 문제는 외면하는 정치를 하고 있다. 이 대표는 비리 의혹으로 끝없는 검찰 수사를 받으며 사법 리스크에 갇혀 있다.

 

술 취한 삼촌이 보이는 몇 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 품위와 운치가 없다. 반말이 대부분이고 욕도 입에 뱄다. 유연성은 영에 가깝고 편견과 아집은 무한대로 수렴한다. 그래서 보는 사람들이 불편하다. “정말 보자마자 반말을 하더군요. 놀랐습니다.” 윤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는 한 기업인의 전언이다. ‘바이든-날리면논란 때 대안적 사실설명보다 더 놀라운 것은 대통령 입에서 나온 이 새끼들이었다. 왜 쓰는지 모를 영어 단어도 특징이다. 윤 대통령 주요 일정 뉴스를 보면 어그레시브’ ‘체인지 싱킹등 굳이 필요 없는 짧은 영어들이 등장한다. “‘내셔널 메모리얼 파크라고 하면 멋있는데 국립추모공원이라고 하면 멋이 없어서라고 생각하는 대통령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둘째, 남의 허물에는 추상같고 자신의 잘못에는 인자하다. 반성이나 염치가 없다. 그래서 부끄럽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전두환 미화발언으로 논란이 되자 버티다 못해 찔끔 사과하고는 다음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애완견에게 사과를 주는 사과는 개나 줘라라는 의미로 해석될 조롱성 사진을 올린 바 있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마찬가지다. 숱한 정책·인사 실패에도 진정성 있는 사과 한 번 없었다. 책임을 피하고 잘못을 덮는 데 급급했다.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한 이가 아들 학교폭력 문제로 물러나도 사과하지 않는다. 1야당 대표를 잡겠다며 300번 넘게 압수수색을 하면서 본인 배우자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에는 침묵한다.

 

셋째, 나는 맞고 남들은 다 틀렸다는 식이다. 양보나 협치는 없다. 그래서 피곤하다. “한 시간이면 혼자서 59분을 얘기합니다. 다른 사람 조언 듣지 않습니다. 원로들 말에도 나를 가르치려 드냐며 화부터 냅니다.” 윤 대통령 대선 캠프 대변인을 지낸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의 글이다. 절대 신임을 받는 윤핵관들이 윤 대통령을 어떻게 대할지 짐작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여당 전당대회에 거침없이 개입하고, 새 당대표가 뽑히는 행사장에 가서도 화합 같은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노동조합 등 반대 세력은 개혁 대상으로 몰고, 정부 요직에는 검사 친위부대를 앉힌다. 야당과는 대화하고 타협할 생각이 아예 없다. 집권 10개월이 지나도록 야당 대표와는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넷째, 보기 싫은 현실은 외면한다. 힘들고 욕먹어도 공동체를 잘 운영해보겠다는 의지가 안 보인다. 관리나 통치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무책임하다. 지난여름 수도권에 기록적 폭우가 쏟아지던 날 윤 대통령은 일부 아파트가 침수되는 것을 보면서 그냥 퇴근했다고 아무 문제의식 없이 털어놨다. 지난해 핼러윈 축제 때는 용산 이태원 압사 참사로 159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장관도 경찰청장도 책임지지 않았다. ‘미래지향적·일관계라며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요구는 외면한다.

 

운치와 염치가 있고 협치와 통치에 유능한 그런 대통령을 볼 수 있을까. 아니 그런 완벽한 현실은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제발 다음 명절에는 술 취한 삼촌이 우리 집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영환 정치부장 경향 2023.03.13.

 

 

이재명 사건 관전법

개념은 힘이 세다. 어떤 개념이 생성되어 통용되기 시작하면 사물과 현상을 보는 시선을 한쪽으로 끌고 간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나 성인지 감수성이란 말의 위력을 보라. 법의 영역에서도 전통적 해석론을 벗어나는 새로운 개념의 창출이나 도입은 새로운 법적 효과를 낳는다. 헌법재판소가 처음 선보인 숨쉴 공간이란 개념은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례에서 차용한 것인데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되었다.

 

개념은 잘못 수용되어 부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대법원 판결로 폐기된 반성적 고려라는 개념은 한시법의 소급적용을 일부 배제하여 처벌을 면하게 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독일 형법의 해석론에서 유래한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엉뚱하게도 법이 바뀌어 처벌할 수 없게 된 행위를 처벌하는 데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법 개정 시의 재판시법주의라는 원칙을 망가뜨린 전력이 있다. 특검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죄를 적용하려고 들고나온 경제공동체라는 개념은 아직도 의심스럽다.

 

어떤 사실이 일단 이런 유의 개념에 포섭되면 경계선상의 행위를 처벌하거나 처벌하지 않는 법현상이 생겨난다. 공동정범에 관한 해석론 중 공모기능적 행위지배등의 개념은 자칫하면 애먼 사람을 잡는 데 쓰일 수 있다. 거꾸로 배임죄는 미국이나 프랑스에선 형법에 없는 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적용이 위험할 정도로 확대되었기에 이를 막는 경영 판단이라는 개념이 대법원 판결로 자리 잡았다. 이런 개념들은 때로 양날의 칼이다. 처벌을 면하게 하려는 개념이든, 처벌하려는 개념이든 간에 어떤 사실이 여기에 포섭되면 다른 생각 없이 바로 그에 따른 효과를 주고 포섭되지 않으면 허투루 반대의 효과를 줄 수 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국회의 체포동의안 부결로 기각되었다. 구속영장청구서에 적시된 혐의사실은 크게 보아 성남시와 성남도시개발공사의 내부비밀을 알려줘 민간사업자들에게 이익을 얻게 해준 행위(이해충돌방지법·부패방지법 위반),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적정 배당이익 대신 확정이익만 배당하게 해 공사에 손해를 입힌 행위(배임), 네이버 등 사업자들로부터 인허가 관련 편의를 봐주는 대신 성남FC에 후원금을 내게 한 행위(3자 뇌물제공) 등으로 되어 있다. 그중 이해충돌방지법 등 위반 혐의에서는 이 대표가 정보 제공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배임 혐의에 대해 이 대표는 사업자들과의 결탁행위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대장동 사업에서의 여러 결정은 지방자치단체가 개발이익을 환수하기 위해 내린 합리적 정책 판단에 기한 것이었다는 주장을 편다. 3자 뇌물제공 혐의에 대해서는 문제의 돈이 후원금이 아니라 광고비라는 등의 항변을 내세웠다.

 

이 대표의 주장 중 사실에 관한 부분은 증거로 가려지겠지만, 주목할 것은 법리적 쟁점에 대한 판단이다. 이해충돌방지법 등 위반 혐의에서는 정보 제공 사실이 있더라도 그것이 사업자들의 이익 취득과 사이에 형사책임을 지울 만한 상당인과관계에 있는지가 문제다. 배임 혐의에서 이 대표의 주장처럼 확정이익 방식을 택한 것이 경기변동에 따른 손실 가능성과 사업의 안정성을 고려한 결과였다면, 경영 판단에 유사한 정책 판단의 개념이 방호벽으로 등장할 것이다. 3자 뇌물제공 혐의에서는 근본적으로 이런 문제가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어느 기업으로 하여금 행정목적 달성에 필요한 어떤 사업을 후원하거나 조장하기 위해 제3자에게 돈이나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게 하는 행위는 적극적 조장행정작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부패 방지를 위한 뇌물죄를 적용함이 타당한지 여부다. 장차 법정에서는 부정(不正)함 또는 대가성과 이를 부인하는 적극적 조장행정행위라는 개념이 맞설 것이다. 이런 다툼은 넓게 보아 죄형법정주의의 현대적 과제에 관계되어 있다. 즉 처벌법규의 해석과 적용에서 엄격주의를 택할지 아니면 이를 완화하는 방향을 택할지의 문제인 것이다.

 

개념어는 그 생성의 경위나 배경과는 별개로 이론상 중립적이다. 그러나 모든 언어는 맥락 속에서만 올바로 기능하는 것이다. 사건을 전체적으로, 때로는 전복적으로 보지 않고 개념만을 연역하여 그 안에 사실을 구겨넣다 보면 판결은 종종 엉뚱한 결론으로 향하게 된다. 이런 개념이 누구나 알 만한 이야기를 어지럽게 색칠하여 법망을 빠져나가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지, 반대로 법률용어로 감싸 놓아 어지간해서는 알아채기 어려운 공적 폭력을 누구도 알 수 있게 드러내어 처벌을 면하도록 기능할지는 결국 판사의 혜안에 달려 있다. 그것은 이를테면 텍스트와 콘텍스트를 동시에 읽어내는 능력이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경향 2023.03.13.

 

이재명 리스크에 가린 윤석열의 진짜 위기

요즘 윤석열 대통령은 이재명 리스크에 따른 반사이익을 충분히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주말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은 34%로 전주보다 2%포인트 떨어졌다. 일본의 강제동원 책임을 면제해준 역대급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 지지율 하락을 막은 건 선방이라고 여권에선 자평한다. 더 기분 좋은 건 국민의힘 전당대회 결과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도 볼 수 없던 대통령의 노골적 개입 속에 오로지 윤심만 내세운 김기현 대표가 선출되고 최고위원도 친윤일색으로 꾸려졌다. 앞으로 대통령을 축으로 한 보수층 결속은 더욱 강해져, 내년 4월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여권 전체를 휘감고 있다.

 

그러나 이재명 리스크에 가렸을 뿐 윤석열의 진짜 위기가 사라진 건 아니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더욱 또렷해진다. ‘은행은 공공재라는 대통령 발언이나, 벌써부터 선거를 의식해 공공요금은 물론이고 소주값 인상까지 억제하는 보수 정권의 이율배반적 행태는 단적인 예다.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감명을 받았다는 밀턴 프리드먼의 시장만능주의적 가치는 포퓰리즘 행태와 법의 외피를 쓴 검찰권 남용 속에 이미 실종됐다. 시장을 중시한다는 정부 아래서, 민간·공공 부문 모두 검찰을 수족처럼 부리는 대통령을 두려워한다.

 

총선이나 대선을 앞두고 포퓰리즘 정책을 하지 않은 정권이 어디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래도 과거 정권은 어느 정도 선을 지켰다. 윤 정권은 이 선을 손쉽게 뛰어넘는다. 여기에 정책 방향과 내용은 몹시 불분명하고 혼란스럽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올 한해 금리를 올리겠다고 공언하는데, 대통령 말 한마디에 앞다퉈 대출금리를 내린 우리 은행들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정부 요구가 일시적 금리 인하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은행 설립 등 산업구조 재편까지 거론하는 게 아닌가 의구심이 커지는 게 시장의 현실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일관성 있는 유일한 기준은 바로 인적 교체다. 지난해 말부터 정부 기류를 읽고 신한을 비롯해 엔에이치(NH)농협·우리·비엔케이(BNK)까지 줄줄이 금융지주사 회장들이 자진 사퇴했다. 이 자리를 누가 채울지 익히 예상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런 인적 교체가 국가의 총체적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유능한 라인업을 짜는 것과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케이티(KT) 이사회가 뽑은 최고경영자 후보를 뒤엎고 그 자리에 77살의 모피아 출신 대선 공신을 앉히겠다는 것을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직 권력의 야수 같은 속성만 느낄 뿐이다.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장에 반세기 전 노동운동을 했던 극우 인사를 앉힌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런 모습으로 어떤 노동개혁을 추진하면서 경제위기를 극복해 나갈지 국민들은 믿음을 가질 수가 없다.

 

과거 군사정부 시절엔 육사 출신이 정·관계 주요 자리를 휩쓸다시피 했다. 지금은 검사 출신이 요직을 거의 싹쓸이하며 내년 총선에서 대거 정치판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군사정부가 정보·수사기관의 감시와 폭력으로 공포감을 조성했다면, 지금은 검찰 수사라는 칼날이 정치·경제 전반을 얼어붙게 한다. 현 정부의 사퇴 압력을 거부했던 어느 고위 공직자가 언제 검찰 수사가 들이닥칠지 몰라 두렵다고 하는 건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신악(新惡)이 구악(舊惡)을 뛰어넘고, 새로운 검사정부가 과거 군사정부의 뺨을 치는 격이다.

 

윤 대통령은 곧 일본과 미국을 방문할 계획이다. 어떤 성과를 거둘지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미국 요구를 받아들여 한··일 군사협력 강화에 온 힘을 쏟으면서 한편으론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나 반도체 지원법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건, 우파 정권으로선 보기 힘든 경험인 것이 분명하다.

 

지지율이 덜 떨어진 것에 자족할 때가 아니다. 임기 1년차 대통령 지지율이 30%대에서 줄곧 벗어나지 못하는 걸 무섭게 받아들여야 한다.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권력에 대한 국민의 냉정한 평가가 거기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니가 하면 개입이지만 내가 하면 정의라는 검사 특유의 독선이 사람들의 마음을 멀어지게 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장을 가득 메운 열기와 정반대로, 윤석열 정권은 총선 승리를 장담하기 힘든 가시밭길로 이미 접어들었다. 결국 선거의 성패를 가르는 건, 야당도 여당도 아닌 대통령 자신에 대한 평가다.

박찬수 ㅣ 대기자 한겨레 2023.03.13.

 

사과하지 않는 가해자를 용서하라니, 염치없는 국가

전남 진도가 고향인 내 친구의 아버지는 10년도 더 전에 이웃에게 빌려준 돈을 지금까지도 못 받아 속상해하신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픈 내 친구가 내게 무슨 방법이 없겠냐고 묻는다. 공소시효! 10년이 다 지나기 전에 변제기(채무를 이행해야 할 시기)를 유예해 준 채무변제 각서 한 장 있다기에 거짓말로 변제기를 유예받은 것도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형사고소했다. 그러나 검사는 친구의 아버지도, 돈 떼먹은 그 사람도 한 번 불러보지도 않고, 왜 돈 안 갚느냐고 추궁 한 번 없이 사건을 무혐의 처분하고 말았다.

 

불기소 결정문에는 혐의없음이라고 쓰고 그 옆에 괄호 열고 증거불충분이라고 분명히 씌어있건만, 돈 떼먹은 그 이웃이란 사람은 마치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고개 빳빳이 들고 다니고, 친구 아버지는 죄인처럼 동네 고샅에서라도 그 사람 마주칠까 봐 무섭다. ‘주겠지, 주겠지하며 기다린 세월이 10년이 넘어 이제서야 고소했건만 무혐의라는 면죄부만 받아줬으니, 친구 아버지는 고소한 것조차 바보 같은 짓이었다며 자괴감과 후회 속에 나날이 주름살만 더해가고, 자식은 더욱 죄스럽다. 그 사람 단 한 번이라도 죄송하다’, ‘반드시 갚겠다,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면, 아니 그마저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오다가다 마주치면 고개 숙이며 미안한 표정이라도 지었으면 이토록 속상하지는 않았으리라.

 

용서(容恕). 글자 그대로 너와 같은 마음으로 너를 품고 포용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가해자의 진정 어린 사과가 있어야 피해자도 가해자의 마음과 하나 되어 품고 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염치 있는 사람의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가 있으면 그 마음에 동화돼 그 사람을 품어 용서하게 되고, 그래서 피해자의 아픔도 치유되고 가해자의 죄의식도 덜어져서 화해가 이뤄지고, 다시 예전처럼 다정한 이웃이 되는 것,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한다.

 

돈 떼먹은 사람은 사과는 고사하고 검사로부터 무혐의 받았다며 더 뻔뻔해지고, 반대로 자신이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오히려 의기소침해진 친구 아버지를 보면서 염치와 사과, 용서와 화해라는 만고의 진리, 착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공식과도 같은 삶과 사람에 대한 자세와 태도가 부재한 현실이 아쉽고, 서럽고, 분하다.

 

일본의 강제징용은 역사적 사실이고, 가해자 일본이 진심으로 사과하면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그 마음을 받아들여 가해자를 용서하고 화해가 이뤄지고, 그러면 일본과 우리는 다시 좋은 이웃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틀렸는가? 그렇게 믿는 것이 잘못인가? 독일은 되고, 일본은 안 되는 것이 우리 탓인가, 일본 탓인가? 학교폭력의 가해자라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옳은가? 피해자를 탓하고 변명하고 소송하고 숨기고 시간 끌기가 옳은가?

 

사과하지도 않는 가해자를 용서하라고 그 누구도 피해자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나약한 피해자를 향해 그럴 것이 아니라 그럴 힘이 있거든 용기를 내서 힘센 가해자를 향해 사과하라고 요구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것이 염치를 아는 사람의 도리이며,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책임 있는 자세일 것이다.

이금규 | 법무법인 도시 변호사 한겨레 2023.03.13.

 

 

국치 그 치욕이 되풀이되는가

부끄럽다. 참으로 부끄럽다.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이자 이 나라의 역사를 가르쳤던 선생으로서 차마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돌이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20세기 초 한반도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21세기에 들어와서 다시 일어나고 있다. 한 세기 전, 대한제국의 고종과 순종은 국가를 자기의 소유물처럼 생각하고 일본에게 제국의 주권을 넘기는 대신 일신의 안일을 도모했다. 이때 망국의 대가와 그 치욕은 목숨과 재산을 바쳐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백성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백성들은 9년 뒤 왕이 아닌 국민이 주권자가 되는 나라를 세웠다.

 

3·1운동의 역사적인 의의는 비단 공화정부의 수립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힘이 곧 정의가 되는, 그리하여 문명의 이름을 내걸고 약소민족을 침탈했던 제국주의 시대의 종언을 고하고자 했던 데 더 큰 의의가 있었다. 대내적으로는 군주 주권을,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를 청산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3·1운동은 이중의 혁명이었다. 수천, 수만 명이 일제의 가혹한 탄압에 희생당했다. 우리는 그 소중한 역사적 유산 위에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부정하는 행위들이 지금 이 순간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발단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다. 그는 104주년 3·1절 기념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3.1운동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과연 그러한가? 청일전쟁, 러일전쟁, 이른바 만주사변, 중일전쟁, 그리고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이 그들의 군국주의 침략역사를 진정으로 반성한 적이 있었던가? 일본은 미국에게만 고개를 숙였을 뿐 일본의 침략과 지배의 직접적인 희생자였던 아시아 국가와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사죄와 배상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일본이 어떻게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는 말인가. 여기서 보편적 가치란 또 무엇을 일컫는가? 그것이 자유와 인권, 또는 평화라면 이웃 나라에 대한 침략과 지배의 역사를 부정하는 나라와 어떻게 이들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는 말인가.

 

잘못된 역사 인식은 잘못된 결정을 낳는다. 일본은 과거사는 물론이고 현재 교착 상태에 빠진 한·일 관계의 모든 책임을 한국과 한국인에게 돌리고 있다.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은 오히려 한발 더 나아가고 있다. ‘유사시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도 공언하고 있다. 그들이 군사대국화의 길로 들어섰다는 우려와 비판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일제 침략전쟁에 강제 동원됐던 한국인들에 대한 배상을 한국 기업들이 책임지게 하겠다고 나섰다. 도대체 무슨 권한으로 그리하겠다는 것인가? 국가의 일차적 책임은 국민 개개인의 안전과 행복 그리고 인권을 보호하는 데 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자기의 모든 것을 던진 투쟁 끝에 얻어낸 강제동원 희생자들의 정당한 법적 권리마저 외면하고 있다. 그러면서 미래지향적인 결단이라고 내세운다.

 

이러한 태도의 밑바탕에는 개인보다 국가가 우선이라는, 따라서 국가의 결정에 개인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전체주의적인 사고가 깔려 있다. 일본의 군국주의가 그러했다. 민권보다는 국권이 항상 먼저였고, 그 결과는 침략전쟁에서의 패망이었다. 우리가 이러한 역사로부터 배워야 하는 교훈이 있다면, 국민 개개인의 생존과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국가만이 그 존재 의의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떠받드는 종복이지 국민 위에 군림하는 통치자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고정휴 |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명예교수 한겨레 2023.03.13.

 

 

윤석열과 기시다의 저녁밥

윤석열과 기시다. 316일 도쿄에서 이야기 나누고 저녁밥 먹기로 했다. 윤이 한국인을 강제 동원한 일본 전범기업에 내놓고 면죄부를 준 직후다. 경제를 위해서라고 부르대지만 민생도 아니거니와 납작 엎드린 자세다.

 

더구나 3·1절에 사뭇 당당히 저지른 굴욕은 매국노 의식과 맞닿아있다. 그는 오늘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 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언죽번죽 주장했다. 내 귀를 의심했다. 한국사의 정체성과 타율성이 뼈대인 식민사관에 뼛속까지 물든 윤똑똑이 아닌가. 윤석열이 기시다에 아예 침략의 면죄부를 선물한 꼴이다. 이쯤이면 문창극이 땅을 칠 일이다. 박근혜가 총리로 지명했지만 식민사관이 담긴 언행이 드러나 내내 버티다가 물러났다. 총리와 달리 윤석열은 대통령이어서 무사하다. 외려 기시다 만나러 부부 동반 도쿄행이다.

 

역사에 도무지 성찰이 없기는 일본총리도 도긴개긴이다. 기시다는 “1998년 한일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며 자못 여유롭다. 그가 언급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통절한 반성과 사죄가 들어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오부치 이후 아베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역사 왜곡을 무시로 저질렀다. ‘군함도전시관을 찾아 강제동원은 이유 없는 중상모략이라고 눈 부라렸다. 이어 스가는 종군위안부에서 종군을 지우는 각의 결정을 내렸다. 기시다가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대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언구럭부린 까닭이다.

 

윤석열의 망언에 비판여론이 일자 정진석을 비롯해 국힘당 우쭐대기들이 나섰다. 일제에 한껏 부닐던 조선일보와 함께 먹머구리 끓듯 결단을 칭송한다. 식민사관에 찌든 그들은 역사를 정치모리배 중심으로 보고 있다. 조선 왕조는 물론 썩어문드러졌다. 하지만 민중도 그랬을까. 전혀 아니다. 조선은 스스로 근대화의 길을 열 수 있었다. 바로 동학혁명이다. 그 깨어있는 민중을 대량학살한 자들이 일본군이다. 1995년 일본 홋카이도대학 인류학 표본교실에서 남도의 동학혁명군 유골이 방치된 채 발견됐다. 진상규명 과정에서 학살에 가담한 일본인 일기가 나왔다. 우금티 전장만이 아니었다. 동학 민중들을 샅샅이 뒤져 학살했다. 체포해 죽인 방법도 적었다. 대부분 현장에서 즉각 총살했다. 착검한 총으로 돌격하듯 찔러 죽였다. 개머리판과 몽둥이로 때려죽였다. 불에 태워 죽였다. 실제로 일본 병사들은 모두 죽여라고 명령 받았다. 앞으로 나라를 강탈할 때 가장 큰 방해가 될 깨어있는 민중을 이참에 모두 죽이겠다는 의도로 저지른 극악한 범죄, 반인륜적 제노사이드다.

 

그렇게 학살된 민중은 30만 명에 이른다. 동학만이 아니다. 그 뒤에도 민중은 줄기차게 싸웠다. 박은식은 의병 피살자 10만 명에 무고한 민중들의 학살은 통계조차 없다고 기록했다. 현대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은 의병을 사로잡으면 포로로 대우하지 않았다. 곧장 살해했다. 의병이 나온 마을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애먼 민중들을 집과 함께 불태웠다. 그럼에도 민중의 항전은 1945년까지 끊임없이 이어졌다. 숱한 학살이 뒤따랐다.

 

올해도 내 강의실에는 일본인 유학생이 10여명 들어온다. 나는 그 젊은이들에게 과거의 일본제국과 오늘의 일본은 다르다고, 다만 일본 지배세력은 독일과 달리 지금도 성찰이라곤 없어 한일 관계에 먹구름이 짙다고 일러왔다. 두 나라 민중이 소통과 사귐으로 미래를 열어간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전제가 있다. 있는 그대로 역사 교육이다.

 

윤석열과 기시다는 안보협력 강화와 한미일 연합훈련 확대를 협의한단다. 도긴개긴 둘에게 들을 귀 있을까싶지만 춘향전을 인용해 쓴다. 둘의 저녁식탁에 기름진 음식은 동학과 의병의 살, 술은 생때같은 민중의 피임을 단 한순간만이라도 떠올리기 바란다.

손석춘 칼럼니스트철학자 미디어오늘 2023.03.13

 

공정·법치 외치던 윤 대통령은 어디로 숨었습니까

천공 의혹 때마다 '뒷짐 정치'로 일관하는 윤석열 대통령

"그대의 신기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 오묘한 계획은 땅의 이치를 다했노라. 전쟁에 이겨서 그 공은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을지문덕 장군의 여수장우중문시)

 

"언제까지 천공 타령이냐. 황당무계한 의혹까지 제기했다." 본지의 지난달 28일자 <천공 최측근 신경애 "바이든 방한 전 허창수 미팅보고서 만들어 대통령께">라는 제하의 단독 보도 직후 대통령실이 내놓은 첫 반응입니다. 그러면서 "수사가 이미 진행 중인 만큼 결과가 나오는 대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신종 '권력형 겁박'입니까. 윤석열 대통령에게 묻겠습니다. 그래서 무속인 천공 조사는 안 하는 겁니까. 못하는 겁니까. 천공 얘기만 나와도 알레르기 반응을 하는 대통령의 태도도,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중언부언하는 대응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대선 후보 시절 공정과 상식, 법치를 외쳤던 윤 대통령은 어디로 숨었습니까. 대한민국에서 천공이란 존재는 치외법권이자, 성역입니까. 대통령실의 천공 대응은 연역적 사고와 경험적 추론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입니다. 단언컨대, 법치주의에서 '현대판 소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천공 의혹은 왜 잦아들지 않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윤 대통령과 연결고리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실 관저 이전부터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조문 회피, 이태원 참사 연속 조문, 미국·멕시코 접경지대의 난민특구 지정 의혹까지. 이쯤 되면 벗겨도 의혹만 나오는 '저주에 걸린 양파' 같습니다.

 

여권 내부에선 현 정부에 대한 의혹 제기 때마다 '배후론'을 주장합니다. 혹자는 '탄핵 시즌 2'를 위한 범야권의 계략으로 평가 절하합니다. 둘 다 틀렸습니다. 제아무리 '정치적 공학'의 외피를 뒤집어써도 이 주장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윤 대통령이 극도로 초조해진 걸까요. 대통령실이 꺼낸 것은 '고발과 '겁박'입니다. 언론인에겐 고발, 언론사엔 겁박을 일삼고 있습니다. 지난달 3일엔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본지 기자 3명을 고발했습니다. 적반하장입니다. 뻔뻔함의 극치입니다.

 

'황당무계하다'는 반응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엔 언론과 야권이 제기하는 천공 의혹은 '가짜뉴스'라는 전제가 깔렸습니다. 취임 이후 천공과 만난 적이 없다는 윤 대통령의 말을 공리로 여기니, 대선 후보 시절 전 정권을 비판할 때 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프레임에 스스로 갇혔습니다. 지금 대통령실의 대응은 확증편향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닌지요.

 

확증편향에 빠지니, 남은 것은 선택적 정의와 선택적 의심뿐입니다. 계속되는 것은 윤 대통령의 '뒷짐 정치'입니다. 평생 검사의 길만 걸어서일까요. 정치적 결자해지보다 검·경 수사 결과와 법원 판단을 우선시하는 리걸 마인드(법적 사고)만 엿보입니다.

 

독일의 정치학자 막스 베버는 "정치는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서서히 뚫는 작업"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정치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법적 사고를 뛰어넘는 정치적 결단입니다. 의혹 제기 때마다 진영논리 뒤에 숨는 정치는 윤 대통령이 구체제로 규정한 반지성주의입니다. 권력 사유화 의혹의 정점인 천공 논란에 뒷짐으로 일관하는 것은 지적 암흑 상태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노름판 타짜와 협잡꾼이 판치는 '현실판 아수라'와 무엇이 다릅니까. 19876월 민주항쟁으로 완성된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최신형 정치부장 뉴스토마토 2023.03.13.

 

 

다시 생각하는 이중화, 고령화, 민주주의

8년 전에 경향신문에 썼던 칼럼을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장기 추세를 뒤집어라” 201558일자). 그 글에서 나는 세 개의 거시 트렌드가 한국 사회의 발목을 잡고 있는데, 그것은 각각 이중화, 고령화, 현행 민주주의의 한계라고 썼다. 이중화란 조금 복잡한 학술 용어이지만, 익숙한 단어로 바꾸면 양극화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이 하나하나가 모두 풀기 어려운 과제이지만, 더 고약한 것은 이 세 트렌드가 서로의 발목을 잡고 있어서 문제를 풀어내기가 더욱 어렵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어렵더라도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한국은 더 이상의 도약이 어렵고 서서히 침몰할 것으로 보았다. 이 문제를 풀어내기까지 남은 시간은 약 7년이라고 예측했는데, 근거는 고령화로 인해 부양률의 급상승이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2022년까지를 기준으로 한 것이었다. 이 문제를 풀고 장기 추세를 뒤집는 것은 박근혜 정부와 다음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썼는데, 8년이 지나고 되돌아보니 다음 정부란 문재인 정부였다. 당시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24명이었는데, 불과 7년 사이 작년에는 0.78명이 되었다.

 

오래전 칼럼을 다시 보게 된 계기는 한 대화모임으로부터 발제를 요청받았기 때문이었다. 이 모임은 종교, 언론, 대학, 시민사회, 정치, 기업 등 사회 각 분야에서 한국 사회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고민하는 원로들께서 생각이 다르더라도 서로를 존중하며 수십년간 이어온 대화의 장이다. 나는 9년 전인 2014년에도 이 모임의 초대로 이중화, 고령화, 민주주의라는 제목의 발표를 한 적이 있었다. 이 발표문이 앞서 언급한 2015년 칼럼이 되었고, 같은 해 책으로 출판되기도 하였다. 9년 만에 같은 모임에 나가 발제를 하려니 그때 내가 했었던 진단과 예측은 어떻게 되었는지 스스로 정리해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불행히도 이 세 가지는 하나하나가 모두 나빠지는 변화를 겪었다. 이중화(혹은 양극화)와 고령화가 더 나빠진 것은 예상했던 그대로이지만, 민주주의의 위기는 조금은 방향을 바꿔서 진화했다. 대화모임에서 발표하고 칼럼을 쓰던 2014~2015년은 박근혜 정부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철 지난 권위주의 체제의 여러 문제점들을 한 개인의 존재 속에 응축하고 있는, 어찌 보면 운명적 한계를 지닌 사람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국정농단 사태로 그가 탄핵되고 장미대선을 치르게 됐을 때, 민주화 이후 어쩌면 처음으로 이념과 정파를 넘어 다수 국민의 정치적 에너지가 하나로 모이게 됐을 때, 당선이 확실시되던 문재인 후보가 좀 더 담대하게 국민통합적인 자세를 취했더라면 이중화와 고령화의 문제를 정치가 풀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내내 남았다. 그는 탄핵이라는 역사의 우연으로 인해 이 일을 할 수 있는 위치에 놓였던 유일한 대선후보였지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문제의식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다른 선택을 한 것일까. 일말의 불안감을 가진 유보적 지지 정도가 내가 취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세금을 정당한 정책수단이 아니라 특정 계층에 대한 징벌의 수단으로 휘두르는 모습을 보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고, 강성 지지자들을 말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면서도 내내 침묵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선택이 때로는 비겁하다는 것도 확인했다. 2022년 또 한 번의 대선이 다가오면서 이재명 후보는 한층 더 노골적인 편 가르기와 포퓰리즘을 대선 전략으로 삼았다. 비록 당선에 아슬아슬하게 실패하고 지금은 사법 리스크라는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그 과정에서 문 전 대통령보다 더 강력한 강성 지지층을 얻은 그의 대응 전략은 더 확실한 편 가르기와 포퓰리즘이다. 지난 8년간 한국 정치는 포퓰리즘으로 진화한 것이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그 과정에서 사회적 연대의 가능성이 8년 전보다도 훨씬 더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연대와 사회적 합의를 앞장서 주창해야 할 진보 정치세력이 오히려 편을 가르고 그것을 포퓰리즘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과 생각이 다른 국민들은 연대의 가치를 믿지 않게 되었다. 가뜩 풀기 어려운 이중화와 고령화 문제의 해법을 정치가 앞장서서 망쳐버렸으니 해결할 길은 8년 전보다도 더 바늘구멍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대안으로 제시해오던 사회적 합의가 설 자리는 사라지고, 차선의 대안이라야 사회계약이 될 것이다. 현 정부가 자신있게 개인과 자유를 외치는 사회적 배경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경향 2023.03.14.

 

일할 를 정해주는 이중빈곤의 사회

지금 네가 이러고 있을 때야?” “지금 우리가 이러고 있을 때입니까?” 주제와 상황은 다를지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봄 직한 말일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을 가장 많이 들은 연령대는 아마도 성인이 되기 직전의 청소년과 성인이 된 지 얼마 안 된 청년이다. 그들에게 현재는 더 좋은 대학을 준비할 ’, 더 좋은 직장을 준비할 ’, , 불평하지 말고 미래를 위해 인내할 이다. 하지만 대학에 가고, 졸업 후 취업한다고 해서 과연 기다리던 가 쉽사리 나타나지는 않는다. 경제적 여건과 배경에 따라 의 결과는 다르게 실현되곤 한다.

 

시간에 대한 정의는 물리적 사실을 넘어선다. 미국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시간을 문화연구의 대상으로 보며 크게 모노크로닉한(monochronic, 단일적인) 시간과 폴리크로닉한(polychronic, 다원적인) 시간으로 구분 지었다. 홀은 서구(특히 미국)의 경우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으로 받아들이며 스케줄에 따른 계획적 삶을 중요시한다고 말한다. 반면,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시간을 으로 받아들이며 다양한 인간관계가 중심이 된 삶을 중요시한다고 설명한다. 더 나아가 미국인은 시간의 흐름을 직선으로 이미지화해서 시간을 지배하고 관리하며 절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보았다.

 

반면, 홀은 인디언(특히 호피족의 경우)영원한 현재를 산다라고 보았다. 그들에게 시간은 이고, 그 점은 곧 토지와 계절의 변화에 따라 반복되는 현재로 경험되었다. 그들의 삶의 중심에는 미래의 스케줄이 아니라 종교가 중심이 되었다. 여기서 종교란 계절마다 개최되는 신성한 의례와 성인식과 같은 입문 의례를 뜻했다. , 인위적 시간표가 아닌 자연스러운 환경과 사람의 변화에 따른 성스러운 환대의 일상이었다. 그들에게 미래의 스케줄을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는 강박증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 한국의 로 돌아와 보자. 한국인의 삶은 인디언보다 홀이 묘사한 미국인의 모노크로닉한 시간과 매우 닮았다. 어쩌면 시간관념에 있어서만큼은 미국인보다 더욱 미국인다울지도 모른다. 잡히지 않는 미래의 를 위해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목표를 세우고 채워나가기 바쁘지 않은가. 성인이 되어간다는 축복보다는 이름보다 앞에 적힐 대학의 명패가 더욱 우상시된다.

 

그렇게, 명예로운 를 위해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살기를 종용하지만, 그로 인해 항상 시간이 부족한삶에 익숙해진다. 최근 한국 사회를 시간빈곤’(시간 자원의 부족), ‘이중빈곤’(경제 자원 및 시간 자원의 부족)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시도들은 모두 이러한 모노크로닉한 시간관념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중앙대 이승윤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최근 논문에서 한국의 여성 노동자, 비숙련 서비스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가 이중빈곤에 취약하다고 지적한다. 기존 국내연구에서도 시간빈곤은 여성과 저학력 집단에서 공통적으로 가장 취약하다고 보고된다. 결국 경제적 빈곤을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노동에 할애해야 하는 사람들이 다시금 시간빈곤에 빠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시간빈곤이란 절대적인 시간의 양도 부족하지만, 시간의 질도 열악한 상태를 말한다. , 시간에 대한 주권(재량시간)도 부족하다는 뜻이다. 언제 일을 하고 언제 휴식을 취할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삶 말이다.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시간에 대한 스케줄은 대부분 사회가 정해준 에 따라 크게 좌지우지된다. 사회는 학교에, 입시에, 취업에, 그리고 성과에, 인생 과업에 충실할 를 결정해 준다. 최근 정부는 36근로시간 개편 방안을 발표하며 새로운 를 제시했다. 골자는 기존 주당 52시간 노동의 제한을 없애고 연장근무 한도 규정을 확대 개편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업과 노동자가 서로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더 많이 일할 라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결정이 노동자의 실질적 임금 수준의 확대와 삶의 질 개선에 얼마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바지할지 우려스럽다.

 

이미 한국 사회는 충분히 시간빈곤 및 이중빈곤에 빠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더 많은 노동시간의 자율적 선택이란 시간빈곤의 악순환은 물론 건강의 손상으로 귀결될 가능성도 커질지 모른다. 왜 한국 사회는 시민에게 재충전할 를 허용하지 않는 것일까. 계절이 바뀌는지도 모른 채, 자녀의 졸업식에도 참석하지도 못한 채, 우리는 도대체 누구의 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경향 2023.03.14.

 

낄 때 빠지고 빠질 때 끼는 정권

윤석열 대통령 당선 1년이다. 임기 초반에 이 정권은 MB 시즌2로 불렸다. MB 시절의 사람들이 복귀했고 자유시장주의, 규제완화, 감세 등을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아마 낮은 대통령 지지율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정권이 지지율에 민감한 것은 당연하지만 문제는 끊임없는 좌충우돌이라는 거다. 한국사회 누구도 현 정권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할 것이다. 지난 2월 윤 대통령은 YS의 개혁정신을 이어받겠다고 했다. 그 후 일본 강제징용문제에서는 ‘DJ-오부치 선언의 계승을 얘기했다. 그러나 은행의 약탈적 영업이라는 언어까지 동원함으로써 시장에서는 박정희·전두환보다 더 무서울 수도 있다고 한다. 노태우·노무현·박근혜만 아직 등장하지 않았을 뿐이다.

 

자기들이야 진정한 실용주의라고 주장하겠으나 지금까지만 보면 스텝이 꼬여도 한참 꼬였다. 이렇게 스탠스가 꼬이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번째, 현 정권은 전 정권의 정책과 반대로 가는 것이 기조이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어느 정도는 당연하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너와는 다른 길기조는 위험하다. 그것이 재벌은 문제가 없고 은행·통신 등 주인 없는 기업이 문제라는 코미디 같은 논리를 생산하게 된다. 개혁은 지지율을 위해서 필요한데 전 정권에서 재벌개혁을 했으니 우리는 그 반대로 은행·통신 개혁을 하겠다는 것이다. 두번째, “너와는 다른 길기조는 중앙정부는 책임을 지지 않고 모든 문제의 책임을 민간에 떠안기는 것으로 나타난다. 전 정부가 국가를 빛 더미로 만들었다는 논리를 계속 밀고나가야 되기 때문에 모든 문제의 해결에서 중앙정부는 일단 빠지고 본다.

 

대규모 추경이야 물가안정 기조에 따라 조심스러웠다 치더라도 핀셋정책으로 할 수 있는 미세재정동원도 모든 옵션에서 제외한다. 급기야 강제징용피해자 배상도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자금이 투입된 포스코, KT, KT&G 등 민간기업의 자발적(?)기여로 풀겠다는 발상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낄 때 빠지고 빠질 때 끼는 정부의 탄생이다.

 

정권이 스탠스가 꼬이면 자기만 비틀거리지 않는다. 보자. 대통령, 장관, 한은 총재 등은 말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은이 기준금리를 낮추면 향후 경기침체와 싸우겠다, 금리를 올리면 향후 경기위축을 감안하고라도 물가를 잡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던지는 거다. 그러면 시장이 이 신호에 반응해서 행동한다. , 시장금리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정책이 먹히지를 않는 것이다. 이래서 통화정책은 해머(Hammer)라 불린다. 한은이 크게 때리고 나머지는 시장의 반응에 따라서 정책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것이다. 과연 현 정부는 시장에 무슨 신호를 주고 있는 것인가? 돌아보면 작년 중반부터 이복현 금감원장은 시중은행 금리인하를 공개적으로 자주 언급했다. 이 발언이 시원하다고 일부 호응을 얻었으나 당시 한은은 적극적인 금리 인상 신호를 시장에 주고 있었다. 이복현 원장은 시장에서 금감원장이 아니라 윤핵관 검사로 읽는다. 이 점이 중요하다. 통화정책의 금리 인상 기조를 대통령이 나서서 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현 정권은 법·제도를 통한 정책 실현이 아니라 민간에 대한 검치 압박으로 원하는 것을 얻겠다는 것으로 시장에서 읽는다. 그러면 시장의 반응은? 생색낼 수 있는 거 몇 개 하고 이 시기가 지나가기만을 바라게 된다. 현 정권 초반에 재벌들이 급하게 무려 1000조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계획을 냈던 것을 상기하기 바란다. 보험 들었다 시간 지나고 깨면 그만이다.

 

현 정권의 문제는 향후 주식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얼마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상근전문위원으로 검사 출신이 임명되었다. 이 위원회는 국민연금의 투자기업 주주권을 자문하는 기구로 주로 금융·회계 전문가가 맡아왔는데 여기에 비전문가 검사가 임명된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국민연금의 주주행동주의는 지배구조개선을 통해 국민연금의 투자수익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실증적 근거가 뒷받침되었던 것이지 단순히 정치적인 논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전 정권의 국민연금 주주권리활동을 기업 옥죄는 사회주의정책으로 비판했던 것이 현 정권이다. 심지어, 현 정권은 작년 7월 원화가치 급락에 기재부가 국민연금에 환율방어에 나서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필요하다면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하는 환율안정화에 국민연금의 돈을 이용하는 것은 국민연금의 독립성에 대한 침해이자 연금수익률에 해를 끼치는 행위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너와는 다른 길로 가다가는 국민노후자금 날아간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 경향 2023.03.15

 

윤석열의 1, 정순신만 괴물입니까

2022310,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 회견에서 집권 각오를 내놨다. “오직 국민 뜻에 따르겠다.” “진보와 보수의 대한민국은 따로 없을 거다.” “성별로 갈라치기 한 적 없다.”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다.” “참모 뒤에 숨지 않고 정부 잘못은 솔직하게 고백하겠다.” 지켰는가. 아니거나 아직이다. 돌이켜보면, 지켜진 문답도 있다. “(대장동 수사?) 그런 모든 문제는 시스템에 의해서 하는 게 맞지 않겠나.”

 

2023310, 대통령 국정지지율(한국갤럽)1주 새 2%포인트 내린 34%를 찍었다. 피해자가 거부한 일제 강제동원 3자 변제안MZ세대도 반대한 69시간 노동제의 후폭풍이다. 69시간제는 대통령의 보완 지시가 떨어졌지만, 대선 때 “120시간이라도했던 건 그였다. 대한민국 정치는 주 단위로 호흡한다고 한다. 여론조사 때문일 게다. 하나, 대통령의 갤럽 숫자는 9개월째 23~37% 벽에 갇혀 있다. 여론지표상 소수정부다. 수도권·중도층·2050이 비토하는 그 무엇, 적폐와 의구심과 울화가 쌓인 것이다.

 

#만사검통의 나라 = “클린스만(새 축구대표팀 감독) 자리도 공 잘 차는 검사가 오나 했다.” 페이스북에서 본 조소(嘲笑)가 꽤 많이 돌았다. 검사가 벌써 20여개 정부조직의 70여개 고위직을 꿰찼단다. 법률가가 널리 포진한 게 법치국가라 한 대통령 말이 현실이 됐다. 매섭게들 썼다. 보수·진보 논객 가릴 것 없이. 학폭 아들에게 법기술을 쓴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낙마는 시한폭탄이 터진 거라고. 검찰이 경찰까지 거머쥐려다 체한 거라고. 대통령의 낙점이니 인사검증은 설렁설렁 했을 거라고. 정순신만 괴물인가? 내부의 거악엔 관대하고, 끼리끼리 끌어주고, 무오류의 오만에 젖은 만사검통(萬事檢通)’의 정신세계가 참사로 터졌을 뿐이다. 직접수사권을 되찾은 검사는 예나 지금이나 힘이 세다. 저잣거리엔 검사들이 떡검’(뇌물)·‘색검’(성비위)보다 더 듣기 싫어한다는 개검’(정치검사) 소리가 차오른다. 김건희 여사와 칼 치켜든 검사들만 태워 달리는 카툰 윤석열차가 꿰뚫어본 대로다.

 

#뒤로 가는 윤석열 숫자’ = 작년 소비자물가는 5.1% 뛰고, 사교육비는 그 두 배(10.8%) 올랐다. 작년 4분기에 시작된 역성장(-0.4%)은 올 1분기로 이어지고, 무역은 12개월째 적자다. 5년간 ‘60조 부자감세라는데, 500대 기업의 55%는 올해 사람을 뽑지 않는다. 청년은 58%가 부모와 살고, 34%번아웃을 경험했단다. 국민 19%는 도움 청할 이 없는 사회적 고립자라고 했다. 잿빛 숫자만 넘치고, 사회는 각자도생하고, 가족은 돌봄·재생산을 멈췄다. 그 총합이 합계출산율 0.78일 게다. 먹거리 많고 안전한 곳에서 새끼 낳는 동물과 사람이 다를 리 없다. 외환위기 때처럼, 정부·기업만 살아나오고 국민은 눈물짓는 코로나19 끝이어선 안 된다. 그 희망을 보지 못한 1년이다.

 

#사라진 사과·협치 = 대통령의 사과는 전환점이다. 문책은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하나, 윤 대통령은 야당을 XX이라 하고, 이태원 참사·정순신 사태 뒤에도 사과·문책이 없었다. “소수의 이권 카르텔이 권력을 사유화했다고 문재인 정부를 찌른 말은 이제 그를 향한다. 정치도 1년째 서 있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는 만나지 않고, 국회는 삿대질과 힘대결만 한다. 총선 뒤 출구가 열릴까. 개헌선(200패스트트랙선(180)을 넘긴 당이 없으면 국회는 협치 룰을 따라야 한다. 대통령과 여야가 민생 경쟁하는 걸 본 지 참 오래됐다.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작년 5월 윤 대통령이 바이든 미 대통령의 방한 선물로 받아 집무실에 놓아둔 팻말이다. 일본과의 강제동원 협상을 결단이라 한 대통령의 유튜브 쇼츠에 이 팻말이 등장했다. 대통령은 숲속 갈림길에서 한쪽을 택한 시인 프로스트를 떠올렸을지 모르겠다. 반대로, 김구 선생이라면 눈 내린 들판을 어지러이 걷지 말라는 시를 읊어줬을 듯싶다.

 

매달 넷째주 토요 휴무(2002)5(2004)52시간(2018)으로 한 발씩 내디뎌온 세상이 과로사회로 돌아갈지, 위안부 합의 8년 만에 또 굴욕을 맛볼지, 미사일·전략무기 날아다니는 한반도가 안녕할지 맘 졸이는 봄이다. 잘못 끼운 첫 단추는 지난한 역사가 된다. 정순신 사태를 문책 안 한 대통령이 강제동원만 책임지겠다는 것도 반쪽이다. 누가 대통령을 겸손케 하고 신중케 하고 협치하게 할 수 있을까. 국민밖에 없다. 윤석열의 1, 당신이 꿈꾼 나라입니까.

이기수 논설위원 경향 2023.03.15.

 

한국, 의사가 많은지 적은지 팩트체크를 해보자

의사가 부족해 대한민국 의료체계가 붕괴하고 있다. 대학병원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없어서 입원실을 줄이고, 응급환자는 의사가 없어서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돌다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하고 있다. 의사 대신 환자를 진료하는 소위 피에이(PA) 간호사’(진료 간호사)1만명에 달하고, 지방 대학병원에서는 교수로 채용한다고 해도 지원자가 없는 상황이 늘고 있다.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 의사 분포를 개선하는 데 적어도 몇년, 배출을 늘리는 데는 10년 이상 걸린다. 늦을수록 대한민국 의료체계는 지방, 응급, 중증환자 같은 약한 고리에서 시작해 빠른 속도로 연쇄적으로 붕괴할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의사들은 여전히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며 의대 정원을 늘리는 데 반대한다.

우리나라의 인구 1천명당 의사 수는 2.5(한의사 제외 1.9)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3.6)3분의 2 수준이고, 한의사를 제외하면 2분의 1 수준이다. 의과대학생 수도 오이시디 평균의 58%에 불과해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는 더 커질 것이다. 현재 부족한 의사 수가 약 3~5만명인데, 최근 연구에 의하면 2035년까지 약 27천명이 더 부족해질 것이라 하니 앞으로 부족한 의사 수는 6~8만명이다. 의사들은 이런 명백한 통계조차 의사 수 부족의 근거로 볼 수 없다고 한다. 왜 그럴까.

 

우선, 우리나라는 아프면 쉽게 전문의 진료를 받을 수 있기에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 7명 가운데 1명은 위중한 입원환자를 제대로 진료할 수 없는 의료취약지에 산다. 의료취약지란 55개 중진료권 가운데 종합병원이 없어 입원환자가 제대로 진료받기 어려운 곳을 말한다. 이들 의료취약지 입원환자 사망률은 전국 평균보다 1.3배 높고, 이로 인해 매년 약 1만명이 더 사망한다. 뇌졸중이나 급성심근경색 같은 중증 응급환자 10명 중 1명은 진료할 의사가 없어서 다른 병원으로 전원되고, 이렇게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할 가능성이 커지는 중증 응급환자가 연간 3만명이 넘는다. 의사들이 말하는 좋은 의료접근성은 대도시 거주자, 경증환자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둘째, 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에 지금 의사를 늘리면 미래에는 의사가 너무 많아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병원 이용이 많은 노인 인구 증가를 고려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의사가 필요하다. 진료비 기준으로 추정해보면, 노인 인구 증가로 2035년까지 의사는 5만명 더 필요하지만, 전체 인구 감소로 줄어드는 의사 수요는 1만명에 불과하다.

 

셋째, 우리나라 의사들이 외국에 비해 환자를 더 많이 진료하기 때문에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고 한다. 우리나라 의사 1명이 진료하는 외래환자 수가 오이시디 평균보다 3.8배 많다는 통계가 근거다. 하지만 우리나라 의사는 진료시간이 짧다. 평균 외래진료 시간이 5분인데, 유럽(15)3분의 1에 불과하다. 진료시간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의사 진료량은 14% 더 많을 뿐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전체 의사 가운데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 비율이 높다는 주장도 한다. 진료의사 비율이 오이시디 평균보다 10%포인트 정도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높은 진료의사 비율과 많은 의사 진료량을 모두 고려해도 우리나라 의사 수는 오이시디 평균의 4분의 3에 불과하다.

 

넷째, 의료제도가 다르면 필요한 의사 수도 다르다는 주장이다. 맞는 말이지만,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오이시디 가입국들보다 더 많은 의사를 필요로 한다. 병상이 과잉공급된 지역에서도 병원과 병상을 자유롭게 늘릴 수 있고, 의료행위마다 진료비를 받는 행위별 수가제는 과잉진료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의료이용을 유발하는 실손보험, 의사들의 기득권 지키기로 도입하지 못하는 피에이 간호사 제도 등도 마찬가지다. 더 많은 의사를 필요하게 만드는 나쁜 의료제도를 뜯어고쳐야 하고 의사 수도 늘리는 게 답이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한겨레 2023.03.15.

 

·일관계 개선, 이제라도 야당부터 설득하라

윤석열 대통령이 16일과 17일 실무 방문 형식으로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다. ·일 정상 간 셔틀 외교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상대국을 1년에 한번씩 방문하는 형식으로 시작됐다.

 

201112월 노다 요시히코 총리 시절 이명박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마지막으로 끊겼다. 2012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한-일 관계가 악화했기 때문이다. 임기 말 추락하는 국정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외교를 국내 정치에 끌어들였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 회고록에서 취임 전부터 임기 중 독도를 방문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일 관계는 우리 대통령에게 늘 어려운 문제였다.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일본 때문이다. 외교는 상대가 있다. 우리만 잘해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가능했던 것은 김대중 대통령 덕분이기도 하지만 오부치 총리 덕분이기도 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재임 중 한-일 관계가 악화한 원인을 중국의 부상 앞에 미국이 일본과의 동맹을 강화할 필요성이 커지면서 이에 편승한 일본의 우경화는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리가 있다.

 

둘째, 국민감정이다. 일본에 대한 우리 국민의 생각과 정서는 미묘하고 복잡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 관계는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다수다. 그러나 지난 36일 정부가 발표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해법에 대해서는 잘못된 결정이라고 평가하는 국민이 더 많다. 일본의 태도 변화 없이 한-일 관계를 개선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수 국민이 반대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사안의 심각성을 의식한 듯 대통령실 인터넷 홈페이지에 쇼츠(짧은 동영상)를 두개나 올렸다. 윤석열 대통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한-일 관계 개선 노력이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는 알 수 없다. 두개의 걸림돌이 있다.

 

첫째, 야당의 강한 반대로 인한 여론 악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번 합의를 삼전도 굴욕에 버금가는 외교사 최대 치욕이자 오점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15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윤석열 정부 대일 굴욕외교 저지를 위한 기자회견을 했다.

 

둘째, 일본의 호응 여부가 불투명하다. 기시다 총리는 혐한 정서가 강한 극우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알맹이 없는 환대로 두루뭉술하게 넘기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극우파는 “4년 뒤 한국 대선에서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 합의가 또 깨지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일이 꼬인 것은 전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잘못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 관계를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는 선의로 이번 일을 추진했을 것이다. 그러나 외교는 대통령의 선의만으로 성공하기 어렵다.

성과를 내려면 4년 뒤 대선에서 정권이 바뀌어도 우리나라 대일 정책 기조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일본이 어느 정도 믿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민주당을 설득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이번 합의를 지킬 것이라는 정치적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승계하겠다고 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쉽게 만들어진 합의가 아니다. 김대중 자서전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한일 파트너십 선언의 성취는 역사가 증명할 것이다. 나는 다만 최상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정교하게노력했음을 밝힌다.”

나의 일본 방문이 나름의 성과를 올린 것은 우리의 민주적인 정권 교체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국민을 설득하고, 언론을 설득하고, ·야 정당을 설득한 것은 수평적 정권 교체의 위력이었다.”

 

정교하게라는 단어에 홑따옴표를 붙인 것이 이채롭다. 김대중 대통령은 외교 분야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식견을 가진 정치인이다. 그런 김대중 대통령도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정교하게노력했다. 언론을 설득하고 야당을 설득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도대체 뭘 했나? 이미 늦었지만, 이제라도 언론과 야당을 간곡히 설득하기 바란다.-일 관계 개선은 그래야 성공할 수 있다. 불도저처럼 밀어붙인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성한용 | 정치부 선임기자 한겨레 2023.03.15.

 

낮은 지지와 권력 독점의 불비례민주공화국이 위험하다

(2) 왜곡된 제도에 버려진 민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는 헌법 정신과 조문으로 표현된 우리들 나라의 실제 체제인 동시에 목표요 이상이다. 뿌리이자 줄기이며 바탕이자 기둥이다. 따라서 현실과 정신에서 이 말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의 두 근본 원리와 원칙에 기반하여 작동되어야 함을 뜻한다.

 

그 뿌리와 기둥은 누구도 벗어나면 안 되는 근본 합의이며 정언명령이다. 요컨대 민주와 공화의 원리를 벗어나면 대한민국의 존재 이유와 목적에 위반된다. 거기에서 멀어질수록 나라는 흔들리며 길을 잃는다. 끝내는 소멸과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국가소멸이라는 미증유의 위기에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민주공화국으로부터 너무 멀리 일탈하였기 때문이다.

 

근대 민주공화국들의 출범을 전후로 민주공화의 원리는 실제 나라의 구성과 운영에서 각각 주권권한’, 그리고 국민정부로 구체화되었다. “주권(sovereignty)은 국민에게, 권한(authority)은 정부에!”라는 원리를 말한다. 이는 주권은 시민에게, 권한은 대표에게!”와 같은 말이다. 민주주의와 민주공화국에 대한 사유와 실천의 도정에서 이 원리는 확고한 근거를 갖는다.

 

이때 주권은 민주의 원리를, 권한은 공화의 원리를 표상한다. 따라서 전자는 국민·민중·시민이 주체이며, 후자는 국가·공화국·정부가 주체가 된다. 주권을 갖는 국민이 권한을 정부에 부여함으로써 입법권·행정권·사법권이 구성된다. 입법권·행정권·사법권의 권()은 주권이 아니라 단지 권한을 말한다. 권한(權限)은 문자 그대로 주권으로부터 부여받은 정부 권력이 미치는 법적으로 한정(限定)된 범위를 뜻한다. 권한이 주권을 초월할 수도 침해할 수도 없는 이유다.

 

그런데 근대 이후 국민의 주권으로부터 부여받아 정부를 운영하는 권한은 자유의사를 갖는 시민의 선출로 구성되는 대표에 의해 행사되었다. 따라서 가능하면 모든, 또는 더 많은 국민 주권을 반영할 수 있을 때 정부의 역할과 권한 행사는 국민 의사에 근접하거나 비례한다. 민주공화국을 구성하기 위한 대표 선출의 제일 원칙이다. 주권 평등의 원리인 11표를 말한다. 또한 모든 개별 주권을 반영하려는 11(one vote, one counting) 원리가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다.

 

가능한 한 다양하고 많은 국민의 의사와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정부의 권한은 최대한 분립되고 견제될 필요가 있다. 이점이야말로 1인 독점 및 인치(人治)에 기반한 군주국가·독재국가와, 권력분립 및 법치에 기반한 민주공화국의 결정적인 차이였다. 민주공화국을 뜻하는 근대 이후의 민주주의를 대의민주주의·대의공화국·의회민주주의로 표현한 까닭이다.

 

그러나 한국의 주권과 권한의 논리와 현실은 민주공화국 원리에서 크게 일탈해 있다. 그리고 이 점이야말로 국가소멸 흐름의 최고 원인의 하나다. 나의 주권과 목소리가 제도적으로 반영되지 않는 나라에서 나의 요구와 이익을 증진시킬 정상적인 방법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권의 행사를 통해 정부와 대표를 구성하는 두 중심 기제인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를 보자.

 

먼저, 대통령 선거의 국민 주권 반영 비율을 보면, 민주화 이후 대통령 8명의 평균 득표율은 유효투표 대비 44.65%, 선거인 수 대비 34.03%였다. 유효투표의 절반 이상인 55.35%가 반대표 내지는 사표다. 전체 선거인 수 대비로는 겨우 3분의 1의 지지에 불과하다. 민주화 이후 2위와의 최대 표차(22.52%)를 기록한 이명박 대통령조차 선거인 수 대비 득표율은 간신히 30%를 넘었다(30.52%). 탄핵 직후였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각각 41.08%, 31.6%를 득표했을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2위 득표자와 가장 작은 0.73%포인트 차로 당선되었다. 대통령 8명 전체 평균 표차 비율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초박빙이었다. 유효투표 대비 절반 이상을 득표한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 유일했다(51.55%). 선거인 수 대비 득표율도 최고였다(38.93%). 그러나 2위와의 표차는 3.53%포인트로 평균 표차인 8.06%포인트의 절반에 불과하다. 국제비교를 보더라도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대통령제 민주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불비례적인 선두권을 형성한다. 우리의 국회의원 선거에 비해서도 압도적인 불비례성이다.

 

승자 독식과 권력 독점 철폐돼야

낮은 득표율 못지않게 더욱 심각한 점은 다른 데 있다. 낮은 주권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통령은 주권의 위임을 훨씬 초과하는 권력의 절대반지를 낀다는 점이다. 한국 대통령은 대통령제의 원형으로 불리는 미국 대통령에게는 없거나 그가 크게 제약을 받는 개헌안 발의권·법률안 제출권·예산권·인사권·감사권을 전부 갖고 있다. 이른바 초과 대통령(super-president), 과대 대통령(hyper-president), 제왕적 대통령이다.

 

즉 한국은 대통령의 낮은 득표율에도 불구하고 승자독식 및 대권독점으로 인해 자신에 대한 지지자보다 더 많은 반대 유권자의 의사를 반영할 통로와 가능성이 완전 봉쇄되어 있다. 권력독점으로 인한 심각한 주권 배제인 것이다. 이렇게 낮은 주권 비율로 당선된 대통령들은 당선과 함께 거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 오직 입법을 통한 권한 행사만 제약받을 뿐, 인사·정책·예산·감사는 물론 정당·국회·법률·교육·복지·노동·외교에 관한 국정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제왕과 같은 대권을 휘두른다.

 

정책결정권 하나만으로도 막강한 권력을 갖는 한국 대통령이기에, 법과 제도를 통하여 견제되지 않는다면 그는 사실 선출된 제왕에 가깝다. 따라서 이렇게 낮은 국민 지지로 당선된 대통령들이 승자독식으로 인해 주권 초월적인 대권을 휘두르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민주공화의 원리에 위배된다. 대권은 민주공화국의 회복을 위해 반드시 철폐되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전임 대통령 탄핵이 당시 보수여당 의원 62명과 중도정당 의원 38명의 탈()진영적 결단으로 가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선거 직후, 광장과 의회의 탄핵연대를 이탈하여 즉각 진영독식으로 돌아갔다. 26·29선언이나 김대중-김종필 연합, 또는 노무현의 대연정 정신을 이어받는 통합정부 수립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를 진영대결의 수렁에서 벗어나게 하리라는 기대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구호는 광장과 탄핵에서 멈추고 다시 진영과 독식으로 회귀한 것이다.

 

위임받은 주권을 초월한 독식은 국민 모두의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정확히 알고 있다. 그는 대선 출마 시점에 자유민주주의에 유비하여 두 번이나 강조한다. “승자독식은 절대로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2021629일 대선 출마선언문 및 712일 대담) 촛불연대의 승리(2017)0.73%포인트 차 승리(2022)에도 불구하고 계속 승자독식을 반복하고 있는 오늘의 한국은 자유민주주의가 절대로 아닌 것이다.

 

한국은 민주공화와 대의민주주의의 근본 원리에 비추어 주권도 공화도 낙제점이다. 주권의 반영은 너무 독식하며 권한의 행사는 너무 독점한다. 따라서 민주의 원리도 공화의 원리도 계속 위축되고 있다. 가능한 한 모든, 또는 많은 국민의 위임을 통한 민주 주권의 원리와, 국민이 양도한 주권의 정도만큼만 한정된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는 공화 정부의 원리에 모두 위반되는 것이다.

 

주권 왜곡도 이런 왜곡은 없다

한국의 주권과 민의는 선거 때마다 반복해서 민주공화의 원리에 맞는 권력분립과 권한배분, 다양성과 다원성을 표출해주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출발부터 낮은 지지와 독점적 대권 사이의 불비례적 충돌과 괴리로 인해 원천적으로 심각한 갈등요소를 내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의 지지에 걸맞은 정도의 권한만을 행사하거나, 나머지 반대 유권자의 민심을 연합과 연립을 통하여 연대한다면 대화와 타협을 통한 갈등 완화와 나라 안정, 진영을 초월한 공통의제의 공동집행과 높은 성취는 강조할 필요도 없다. 국민통합과 국정의 연속성도 크게 높아진다. 승자독식과 대권 독점을 폐절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다음으로 국회의원 총선을 보자. 우선 13(1988)부터 21(2020)까지 9번에 걸친 총선의 평균 사표(死票)49.3%에 달한다. 유효표는 단지 50.7%에 불과하다. 산 표와 죽은 표가 비슷한 것이다. 대선보다는 낮지만 우리들 주권의 절반은 행사 즉시 사표가 되는 것이다. 대선과 총선을 결합하면 모든 정부와 여당은 각각 절반 이하의 주권과 민심으로 권력과 정책을 완전 독점·독식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주권 왜곡도 이런 왜곡이 없다.

 

또한 제1당의 득표율과 의석률 차이는 평균 9.9%포인트였다. 최근 들어 제1당은 매번 평균 30석을 표심을 왜곡하여 초과의석으로 가져갔던 것이다. 두 번(2004, 2016)의 총선을 빼면 대부분(1988, 1992, 1996, 2000, 2008, 2012)은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제도 왜곡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그러나 진영전쟁에 가까운 권력투쟁을 치르는 두 거대양당은 민주공화국 원리의 붕괴에는 늘 공조를 하고 있다.

 

21대 국회의원의 경우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에서 49.9%의 득표율로 64.43%에 달하는 163석을 차지하였다. 14.53%의 의석이나 초과 당선되었다. 반면 미래통합당은 41.5%의 득표로 33.2%84석을 차지하였다. 지역구 득표율 차이는 8.4%포인트에 불과하나 의석수 차이는 무려 79석에 달한다. 게다가 이 두 당은 대표성과 비례성을 철저히 위반한 비례 위성정당을 통하여 각각 17석과 19석을 더 차지하였다. 21대 의회의 압도적 불균형은 제도 왜곡일 뿐 실제의 민의를 반영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쓴 채 지역구 득표율과 (위성)정당 득표율을 함께 고려하여 단순 평균 득표율을 계상하더라도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의 평균은 41.62%에 불과하다. 그러나 전체 의석수는 180석으로 60%에 달했다. 무려 18.38%, 55석을 표심을 초과하여 차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 비례성·대표성·민주성을 완전히 파괴한 주권 왜곡이었던 것이다.

 

만약 민심이 그대로 반영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였을 경우 각각 10%7%에 근접하였을 제3당과 제4당의 의석수는, 거대 양당 독점으로 인해 실제로는 고작 2%1%에 불과하였다. 주권 왜곡과 위성정당으로 인해 민심의 다원성과 다양성을 반영해야 할 다당제의 싹조차도 파괴하였던 것이다. 국제비교를 보더라도 유효 정당 수가 많을수록 민주주의지수가 높다. 주권과 선거, 민주와 공화의 본질에 비추어 당연하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한국에서 유효 정당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였다. 그만큼 강고한 진영정당 체제로 전이해왔음을 의미한다. 개별 주권의 자율성과 민심의 다양성은 계속 배제되고 억압되어온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의 문제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의 주권을 양도받아 정부를 구성하는 두 대표 기구인 대통령과 의회는 모두 민주공화국의 원리에서 크게 일탈하고 있다. 만약에 공화국이라면 그것은 다만 진보독식, 보수독식에 따른 절반의 진보공화국이요 절반의 보수공화국일지언정 명실상부한 민주공화국은 아닌 것이다.

 

죽어가는 민주공화국 정신과 원칙을 살려내야 한다. 민주와 공화, 주권과 권한 원리의 중대한 결격 요인을 근본적으로 환골탈태시키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소멸을 향하여 계속 질주할 것이다. 이 뿌리와 기둥을 바로 세우지 않고서 민주공화국을 살릴 길은 없다. 완전한 제도 왜곡으로 인해 버려지고 무시되고 죽어가는 국민의 뜻과 주권을 다시 살려내지 않고 국민의 생명과 나라를 살릴 길은 없다.

 

공동체 전체의 민심이 곧 주권이고 대의이며, 민주이고 공화()이다. 껍데기만 남은 정신과 원리를 실제 작동하는 제도와 현실로 살려내어 다시 생기를 불어넣고 힘차게 박동하게 해야 한다. 헌정제도와 현실정치의 불비례적, ()민주공화적, ()대의적 독식·독점·독임을 혁파하지 않는다면 나라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 민주공화국이 소멸에서 회복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물줄기를 되돌릴 가능성도 크지 않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박명림 연세대 정치학과 교수 경향 : 2023.03.16

 

 

반성과 사죄 없는 해법은 또다른 가해에 불과하다

지난 36일 윤석열 대통령은 일제하 강제징용노동 피해자들에게 해당 일본 기업들이 배상해야 한다는 2018년 대법원 최종판결을 무시하고,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의 혜택을 받은 한국 기업들에 의한 이른바 3자 변제로 대체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이를 이웃 일본과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맺어나가기 위해 지지율 1%를 각오하면서 내린 어려운 결단이라고 자평했다고 한다. 이 난데없는 선언은 나를 포함한 많은 국민을 당혹과 분노에 빠뜨렸다. 피해 당사자들이 이런 해결책에 동의했는가, 사법부의 최종판결을 행정부가 뒤집을 수 있는가, 이 사건의 본질이 과연 배상금 몇푼을 받아내는 데에 있는가, 이 문제가 대통령이 서둘러 결단을 내려야 할 정도로 촌각을 다투는 문제인가. 잠깐만 생각해봐도 상식적인 의문들이 꼬리를 문다.

 

윤 대통령은 16일 일본을 방문해 한-일 정상회담을 열었고, 4월 말에는 미국을 국빈방문해 한-미 정상회담을 열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아마도 이 황당한 해결책은 한-일 관계 개선을 통한 한··일 동맹 강화라는 현 정권의 외교정책을 관철하는 나름의 승부수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상식적인 의문이 뒤따른다. 이 강제징용과 관련한 한-일 갈등이 한··일 동맹 강화로 가는 행로에 그 정도로 결정적인 장애물이었는가, 그리고 과연 한··일 동맹 강화라는 목표가 대법원 판결을 뒤집고 국민 여론을 등지면서까지 서둘러 이행해야 할 만큼 그렇게 시급한 것인가 같은 의문들이다.

 

윤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이 결단을 두고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른 것이라 자화자찬하고 있다지만 나로서는 한-, -미 정상회담을 위해 조급하게 저지른 무책임하고 경솔한 외교적 투기이자 미국과 일본 두 나라에 바치는 굴욕적 진상품으로만 느껴진다. 아무리 대통령이라지만 이런 초헌법적 권한까지 위임받은 것은 아니다. 이것은 명백한 직권남용이며 탄핵받아 마땅한 범죄행위에 가깝다. 게다가 그는 다른 날도 아닌 3·1절에 우리가 잘못해서 식민지배를 받았다는 언설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2차 가해를 저지른 사람이다. 용서할 수 없다.

 

국민국가 간의 평화와 선린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것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 사회에 미치는 미증유의 악영향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특히 작은 갈등도 언제든 분쟁으로 치달을 수 있는 물리적 거리 안에 있는 이웃 국가 간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일 관계도 마찬가지다. 비록 식민지 침략-피지배라는 고통스러운 과거가 가로놓여 있기는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오랜 역사 속에서 서로 다양한 정치, 사회, 문화적 교류를 통해 애증 속에서도 서로 떼기 힘든 두터운 관계를 맺어왔으며 두 나라의 국력 규모로 볼 때 서로 어떤 성격과 수준의 관계를 맺는가에 따라 동북아는 물론 세계 전체의 미래를 능히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일본에 익숙하고 일본을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다. 학술문화 교류의 일환으로, 또는 관광 목적으로 10여차례 일본을 다녀왔고 어설픈 수준이나마 일본어를 독해할 수 있으며 간단한 생존회화도 가능하다. 일본의 문학과 사상이 내 독서와 생각의 총량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적지 않으며 뜻을 같이하는 일본인 친구도 여럿이다. 2011년에 일어난 3·11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 나는 남다른 고통과 연민으로 가슴 아팠으며 진심으로 일본과 일본인을 위해 기도했다. 지금도 주위 누구든 일본과 일본인에게 단세포적인 적의와 인종주의적 편견을 드러내면 서슴없이 반박할 준비가 돼 있다. 그러나,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식민지배와 전쟁범죄, 그리고 그것을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는 현재의 일본 주류 지배세력의 행태에는 어떤 용서도 타협도 해줄 생각이 없다.

 

한 민족의 다른 민족에 대한 식민지배는 약한 대상에 대한 폭력이 죄가 아니라 약한 것이 죄라는 전도된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폭력이나 학교폭력 등과 똑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폭력들에는 그것이 행사되는 순간 우선 피해자는 열등하다는 인격적 차별이 고착되며, 사후에는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자책과 트라우마를 일으키며, 이는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죄 없이는 절대 해소되지 않은 채 유·무형의 2, 3차 가해를 불러온다는 구조적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피해자의 고통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가해자 역시 평생 양심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그 잘못된 가해의 기억을 지우기 위한 정신의 왜곡으로 일그러진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하면서 조선인은 열등하기 때문에 지배받아 마땅하다는 논리를 내세웠고, 우리는 대내외의 격렬한 민족해방투쟁을 전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자학과 열등의식의 고착과 내면화를 피할 수 없었으며, 우리가 부족하고 잘못해서 식민지배를 받아 마땅했다는 자발적 2차 가해를 저지르면서 깊은 트라우마에 갇힌 채 살아왔다. 이런 집단적 심상체험이 우리 개개인의 영혼을 얼마나 피폐하게 했는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게다가 실패한 친일 청산과 가해자 일본의 거듭된 과거 부정은 이렇게 아물지 않은 상처를 끝없이 다시 덧나게 했다.

 

피해자의 상처받은 영혼은 가해자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사죄를 접하기 전에는 결코 해방될 수 없다. 그것이 우리가 과거에 얽매여 산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는 이유이다.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그에 상응하는 피해 보상은 가해자가 감수해야 하는 무한책임이다. 그 책임의 경감이나 해소는 오로지 피해자의 용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말뿐인 사죄도, 사죄 없는 물질적 보상도 피해자를 해방시킬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가해자 자신도 진정으로 용서받거나 이 가해-피해의 프레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이 과거사의 징그러운 업보로부터 어서 빨리 해방돼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이 반복되는 저주로부터 해방돼야만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민주 세계의 정상적 구성원으로 거듭날 수 있으며,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일본의 진정한 반성과 사죄를 전제하지 않은 한-일 관계에 관한 어떠한 해법도 또 다른 가해에 불과하다. 대통령의 결단? 개에게는 미안하지만 개도 웃을 일이다.

김명인 | 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문학평론가 한겨레 : 2023.03.16

 

국민이 대통령입니다

요즘 들어 집권당과 내각에서 뜬금없이 노무현 대통령을 소환하는 일이 잦다. 노동자의 휴식권과 안전권을 무력화하는 장시간 노동의 물꼬를 여는 노동유연화 정책을 밀어붙이는 절차로 노사정 협의가 아닌 전문가 중심의 자문기구를 중심으로 삼으면서 뜬금없이 노무현 정부의 방식이라고 정당화했다. 국민들 다수가 반대하는 일본 전범기업의 강제동원 배상문제에 대한 정신승리식해법에도 노무현 어록을 소환하기도 했다. 전당대회가 대통령의 대표 지명대회로 전락했다는 비판에도 노무현도 그랬다면서 시대착오적인 당정일체론을 강변하기도 했다. 전체적 맥락이나 배경은 거두절미한 채 평소에는 제대로 존중하지도 않던 이전 정부와 대통령을 여론을 위한 방패막이로 활용하는 것은 속절없이 순진한 국민들의 시선을 흩트려서 당장의 위기만 모면해 보려는 얄팍한 정략적 술수에 불과하다.

 

사사건건 국민 다수의 뜻을 거슬러 민주화의 역사를 퇴행시키고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의 자긍심을 깔아뭉개는 정책을 막무가내로 펼칠 때 정작 소환되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참여정부를 표방하고 내건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는 구호이다.

 

이 구호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 제1조의 국민주권원리를 달리 표현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곰곰이 곱씹어 본다면 많은 것이 함축된 것으로 읽힐 수 있다.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에도 제왕에 비유되는 최고국가권력의 상징이다. 그 대통령이 선출된 공무원인 아무개가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이라는 선언은 대통령직을 편견과 아집과 정략에 휘둘리기 쉬운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나라를 위해 봉사의 기회를 준 국민의 의지와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여 수행하겠다는 겸손과 절제의 공화정신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노동정책이나 한·일관계나, 당정일체론이나 모두 다 의 결단이 아니라 우리의 결의여야만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일 수 있음을 설파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와 우리의 일차원적 구별이 곧 구체적인 특정 국가정책의 방향을 제시해주지는 못한다. 국민주권의 대원칙은 주권자인 국민은 한 사람의 자연인이 곧 주권자인 군주국과는 달리 단독행위자로 실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허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은 단일한 의사를 가지고 법이 부여한 권한을 일관되게 행사하는 현실적인 단일체가 아닌 것이다. 국민은 다양한 생활세계에서 나름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 생활인들의 추상적 통일체로 헌법에 의해 의제될 뿐이다. 국민들이 개개의 양심에 따라 주관을 가지다 보니 모두가 동의하는 정책이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다. 하나 됨을 강조하는 총화통합의 이상은 다원적인 정치현실에 필연적인 갑론을박, 백가쟁명을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하고 외면하려는 선동적 구호에 불과하다.

 

결국 각양각색인 국민을 우리 대한국민으로 묶어 주는 민주공화국의 블랙박스는 바로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통해 끊임없이 대화하고 타협하는 대의와 협치의 과정이다. 다양성과 다원성을 실체로 하는 개인으로서의 국민을 허구적인 상상의 통일체로 묶어두기보다 그때그때 구체적인 현안을 두고 무엇이 우리 공동체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확보해 줄 수 있을지를 의논하고 협의하면서 실사구시적인 실용적 합의를 헌법원칙에 어긋나지 않게 도출하도록 공론을 허용해야 한다.

 

대화나 타협은커녕 헌법이 보장하는 단결권이 무색하게 노사관계의 중요한 당사자를 노폭이라는 사회의 공적으로 규정하고 얼렁뚱땅 근로조건의 근간을 바꾸려는 접근은 근로조건의 결정에는 인간의 존엄을 특별히 더 강조하고 노사당사자의 자율성을 최우선적 가치로 삼는 헌법정신에 역행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해자의 사실인정과 진정 어린 사과를 요구하는 피해자의 정당한 호소와 이를 기꺼이 인정한 대법원 판결을 폄하하면서 실체도 불분명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의 복원에만 매달리는 대통령의 고독한 결단은 국민을 대통령으로 삼기보다는 통치의 대상으로 폄하하고 권력분립의 헌법원칙을 훼손하는 반민주공화적 행태이다.

 

원칙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실용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쉬운 과제가 아니란 걸 모르지 않는다. 쉽지 않기 때문에 수천만명이 참여하여 직접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는 게 아닌가? 주어진 권력이라고 조자룡 헌 칼 쓰듯이 막무가내로 쓰지 말고, 제발, 가장 기본적인 헌법원칙이라도 잘 지켜주길 바라는 게 주권자 국민을 구성하는 모든 국민들의 작은 바람이 아닐까.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경향 : 2023.03.17.

 

오호통재라

오호통재((嗚呼痛哉)! 202336일은 대한민국 외교사상 가장 고통스럽고 통탄할 날이다. 윤석열 정부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지속해 온 역사 문제, 전쟁 성노예 문제, 일제 징용 피해 보상 문제 등 일본과의 갈등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백기 항복을 선언했다. 일본의 역사적 책임, 배상, 보상 여부에 대한 논란과 그간의 외교적 과정은 불문하고 관계 개선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단호한 언명이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이에 숨죽이고, 일부 당파적 지식인들은 벌써 박정희 대통령이 단행한 일본과의 국교 수교와 같은 역사적 결단 혹은 시대적 소명을 담았다고 찬양하기까지 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 해법을 미래지향적 한·일 협력을 위한 결단이라고 했다.

 

36일에 나온 해법으로, ·일관계와 관련한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과연 풀리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협력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일부에서 우려하는 바와 같이 미·일 동맹의 종속국, 혹은 망국으로 가는 길에 우리는 들어선 것일까? 아직 그 결말을 이야기하기에는 이를지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간 한국 정부가 매달려 온 한·일 관련 주요 분쟁들이 한국의 일방적인 백기 항복, 일본 외교의 완벽한 승리로 결말지어졌다는 사실이다. 이 길이 대한민국의 생존 혹은 보다 나은 길로 가기 위한 일순간의 고통과 치욕을 감내하는 역사적 결단이 될지는 아직 아무도 확신하지 못한다. 이 순간은 분명 이 치욕과 고통의 날에 대한 참회와 반성이 필요한 시간이다. 어찌 이러한 사태에 이를 정도로 내몰렸을까? 환호작약할 시간은 분명 아니다. 환호작약하는 이들이 지성사를 지배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이 참사는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일단은 한국 외교의 가벼움이다. 김대중 대통령 이후 우리 역대 정부는 대부분 국제관계나 외교를 가벼이 취급했다. 종종 국내 정치의 하부변수로 취급했다. 이 분야의 자리는 그 전문성 여부를 떠나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당파적 지식인들에게 배분하고, 그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박근혜 정부 말기 민의를 철저히 무시한 조급한 일본과의 합의, 문재인 정부 시기 죽창가로 잘 알려진 대일 인식, 그리고 국제정치 현실과 동떨어진 자기 승리의 확신으로 이어진 과정에 대한 역사적 책임과 고통스러운 성찰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두 번째는 일본의 전략적 시야의 변화이다. 과거 일본의 주요 위협은 북방으로부터 왔고, 한반도는 일본을 향한 단검과 같은 존재였다. 따라서 역대 일본 정부는 한국과의 관계를 중시했다. 그리고 미국의 맹방이자 대륙 세력의 팽창을 억제하기 위한 동반자라는 인식이었다. 그러나 이제 일본의 전략적 시야는 한반도를 넘어 인도·태평양으로 향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과 더불어 일본에 대한 주 위협은 한반도가 아니라 인도·태평양 전역에서 오고 있다. 한국의 전략적 위상은 전례 없이 약화되었다. 이는 202111월 미국에서 개최된 한··일 외교 차관급 회의에서 일본이 미국의 면전에서 한··일 공동 기자회견을 거부한 데서 잘 읽힌다.

 

세 번째는 일본의 지역적 리더십 부재이다. 외교에서 일방적 승리는 대체로 추구할 목표가 아니다. 그 국가가 존재하는 한 역사적 경험과 기억은 계속될 것이고, 그 대가는 반드시 치르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일관계에서 완벽한 승리를 추구했고, 이를 관철시켰다. 문재인 정부 시기 섣부르게 죽창가를 외쳤지만, 정권 후기에는 일본과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나름 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대통령의 공약으로 내걸고 그 노력을 배가시켰다. 그러나 일본은 단호했다. 양보나 체면치레를 위한 공간을 일절 허용하지 않았고, 완벽하고 일방적인 승리를 추구했다. 성공했다. 이 승리가 과연 한·일관계나 역내 일본의 리더십에 도움이 될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역사적 부담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네 번째는 당면한 국제정세에서 한국이 처한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이 그만큼 높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국제관계 구조의 변화와 한국 외교안보의 무능이 결합한 결과이다. 북한의 핵무장과 미·중 전략경쟁의 확대는 전례 없는 위기의식을 가져왔다. 미국의 IRA나 반도체법에서 드러난 최근 움직임을 보면 동맹을 배려할 여지는 거의 없어 보인다. 자국의 이익 보호에 급급하다. 일본은 이미 중국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적 동반자로 확고히 자리매김했지만, 한국에서는 이러한 미국의 전략 구상에서 배제될 수도 있다는 위기 위식이 팽배하다.

 

구한말 가쓰라·태프트 밀약과 한국전쟁 직전 단행한 에치슨라인의 망령이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새로이 형성되는 미국 중심의 공급망 네트워크에서 한국이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일본은 이 구상에서 한국을 배제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대한민국의 미래에는 북한의 핵공격보다 새로운 국제 공급망 형성에서 소외되는 상황이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역사적 책임과 국내 정치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희망하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조치를 단행했다. 현 국제정치 상황을 미국이 제시한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이라는 신냉전의 시야로 해석한다면 같은 민주주의 진영인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인식이다.

 

마지막으로 이 조치의 수습은 간단치 않다. 강대국의 압박에 일방적으로 굴복한 선례는 한국 외교에 두고두고 부담으로 남을 것이다. 추후 중국은 이 구도를 차용할 것이다. ·중관계는 윤 정부에 최대의 도전이 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이후 중국과의 관계 모색을 위한 노력은 배가되겠지만, 현재 윤 정부의 주류 국제정세 인식과 역량이 중국과의 관계를 감당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3·6 조치의 결말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윤 대통령은 3월에 실로 오랜만인 대한민국 대통령의 일본 방문, 4월 미국 국빈 방문을 진행한다. 역사상 최대의 치욕적인 조치를 단행한 이후 어떠한 성과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미래에 대한 엄청난 투자를 국가적 실리와 역사적 책임에 대한 진지한 고뇌 없이 상대의 자비에 대한민국의 운명을 맡기고 단행한 것인지, 아니면 이에 대한 합당한 보상과 실리를 안고 돌아올지에 따라 이 조치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책임 여부는 달라질 것이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 경향 : 2023.03.17.

 

 

희망은 과거로부터 온다

노인들이라고 해서 너무 얕보지 말고,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동냥해서 (주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하면 사람이 아니지.” 94세인 양금덕 할머니의 담담하지만 단호한 선언이다. 미쓰비시중공업으로 강제동원돼 17개월 동안 일하고 한 푼도 받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이후에 일본군 위안부가 아니었느냐는 의혹의 눈길 속에서 평생을 살아온 이의 말이기에 심상하게 들을 수 없다. 정부는 한·일관계의 미래를 위해 제3자 변제를 통해 강제동원 배상 문제를 풀겠다고 했다. 당사자들은 그런 돈이라면 한 푼도 받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분들에게 중요한 것은 몇 푼의 돈이 아니라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인정과 사죄다.

 

피해자들의 아픔은 세월이 지났다고 수그러들지 않는다. 엄연히 있었던 사건 자체를 부정하거나 무화시키려는 이들로 인해 그들의 아픔은 더욱 생생해지고 있다. 존재를 부정당하고 있다는 사실만 해도 기가 막힌데, 그들 편이 되어주어야 할 정부가 오히려 그들을 역사 발전의 장애물로 여기고 있는 것 같기에 더욱 서럽다. 이러한 역사 인식은 부당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 이를 데 없다. 썩은 토대 위에 새로운 집을 지을 수는 없다. 과거는 무질러버린다고 하여 사라지지 않는다. 베트남 전쟁에 동원되었던 어떤 분은 자신을 나름대로 이성적이고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그들을 가리켜 더러운 전쟁에 동원된 용병이라고 말하는 이들을 보면 살의가 느껴진다고 고백했다. 자기들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것 같다는 말일 것이다.

 

성경은 위대한 인물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감추지 않는다. 사람들이 믿음의 본으로 인정하는 이들의 허물과 잘못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음의 조상으로 여기는 아브라함은 어여쁜 아내 때문에 생긴 위험에서 벗어나려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다. 출애굽 사건의 주역 모세는 격분에 못 이겨 애굽 사람을 때려 죽였다. 다윗 임금은 충실한 부하의 아내를 겁탈한 후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워 그 부하를 사지에 몰아넣었다. 예수의 가장 가까운 제자 베드로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세 번씩이나 스승을 모른다고 부인했다. 성경은 어떤 인간도 이상화하지 않는다. 자기 속에 있는 한계와 모순을 자각하는 이들은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정죄하거나 배제할 수 없다.

 

창녀에게서 태어난 길르앗 사람 입다는 본처의 자식들에게 쫓겨나 세상을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쫓겨난다는 것, 그것은 설 땅을 잃었다는 것이고 또한 취약해졌다는 뜻이다. 그의 주변으로 동류의 사람들이 몰려와서 큰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어느 날 암몬 족속이 쳐들어오자 길르앗 장로들은 입다에게 사람을 보내 자기들의 지휘관이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입다는 울분을 속으로 삼킨 채 그들의 요구에 응해 암몬과의 싸움에 나선다.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신 앞에 서원을 한다. 승리를 거두게 도와주신다면, 자기 집 문에서 맨 먼저 맞으러 나오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었다. 입다는 그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었고 기쁜 마음으로 귀향했다. 그런데 그를 맞이하기 위해 누구보다 먼저 달려 나온 이는 외동딸이었다. 가슴이 무너져 망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버지를 보며 딸은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러곤 아버지에게 두 달만 말미로 달라고 청한다. 처녀로 죽는 몸, 친구들과 함께 산으로 가서 실컷 울고 싶다는 것이었다. 성경은 그 사건의 결말을 생략하는 대신 이스라엘 여인들이 매년 산으로 들어가 희생된 여인을 애도하며 나흘 동안 슬피 우는 관습이 생겼다고 전한다. 이 관습은 억울하게 죽어간 이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다시는 그런 폭력적 사태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발터 베냐민은 역사철학테제에서 승리자의 마음에 빙의된 사람들의 폭력성을 지적한다. 그는 지배자 중심의 사고는 억눌린 자들을 양산하게 마련이라면서, 역사 속에서 비상사태가 예외적 일이 아니라 상례가 된 까닭은 그 때문이라고 말한다. 억울한 이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원한을 풀어주는 일이야말로 희망의 뿌리다.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이 꿈꾸었지만 실현하지 못했던 일들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그들을 역사 속에 정초하는 일이다. 청산되어야 할 과거를 묻어버린다고 과거의 악행이 사라지지 않는다. 신원되지 않은 한은 거듭거듭 현재 속에 모습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민담에 자주 등장하는 원혼들의 이야기는 바로 그런 진실을 암시한다. 역사의 봄은 요원하기만 하다.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경향 : 2023.03.18.

 

일본 언론들이 걱정해주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지난 16일 도쿄 정상회담에 3자 변제안을 들고 갔다. 일본은 깜짝 놀랐다. 이렇게 하면 한국 국내 정치에서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우리(일본)로서는 학수고대하던 해법이라고 말했다고,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전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구상권 행사를 상정하지 않고 있다2018년 대법원 판결을 부정했다. 계류 중인 소송에 대해서도 추후 확정판결이 나와도 3자 변제를 하겠다며, ‘일본에’ “걱정 말라했다. 행정부 수장이 미래 사법부 판결을 무시한 것이다. 이것이 미래인가.

 

국내 정치의 안 괜찮음을 감수하고서 기대한 건 최소한의 사과가해 기업의 미래기금 참여였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는 역사 인식에 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로 계승 확인한다고 모호하게 말했다. ‘김대중-오부치대신 “199810월에 발표했던이라 했다. ‘강제동원옛 한반도 출신 노무자 문제라고 표현했다. ‘통석의 염수준이다. 김 차장은 일본의 공식 사과가 20차례 넘는다고 했다. 사과를 하면 뭐 하는가, 그다음에 뒤집으면 앞의 사과가 유효한가.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철회했다. 201810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자, 일본은 20197월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을 대상으로 수출 규제에 나섰고, 8월에는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한국을 배제했다. 이에 한국은 9월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했다. 이번에 일본은 수출 규제만 풀었을 뿐, 화이트리스트 복원은 추후 협의한다 했다. -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은 완전 정상화하기로 했는데, 일본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것이다. 이것이 국익인가.

 

정상회담 뒤,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은 당국자말을 인용해 정상회담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 이행, 다케시마(독도) 문제 등이 언급됐다고 보도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의제로서 논의된 바 없다고 애매모호하게 말하지 말고, 사실이 아니라면 일본 언론을 상대로 소송을 하라. 한국에서 하던 것처럼.

 

여기에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후쿠시마 해산물 수입 규제, 2018년 해상자위대 초계기 갈등 등 청구서만 줄줄이 대기 중이다. 가는 말이 고우니, 오는 말이 험한 것이다. 이를 호구라 한다. 일본 언론들이 윤 대통령을 걱정하며 일본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너무 궁지에 몰아넣지 말고, ‘호응좀 해주라고.

 

경색된 한-일 관계를 풀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국민이 누가 있겠는가. 언제까지 일본과 원수처럼 살 것인가. 그러나 이런 식은 아니다. 왜 이렇게 서둘렀을까. 426일 미국 방문 전에 매듭지어 미국에 칭찬받고, 5월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도 초청받고픈 탓 아닌가, 추정할 뿐이다. 시간에 쫓기면 협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 해법, 한국 사회의 거센 반발에 부닥쳐 작동 불능 상태에 빠진 201512월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보다 더 형편없다. 당시 일본은 사과했고(‘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함’,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함’), 10억엔의 기금을 출연했고, 당시 외무상 기시다가 방한했다.

 

일본이 이번에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배상도 할 것이라는 발표를 기대한 한국인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통령이 일본 총리에게 요구라도 했어야 되는 것 아닌가. 판을 깨라는 게 아니다. 이럴 수밖에 없었다면, 피해자들과 국민들에게 설명이라도 더 했어야 되는 것 아닌가. <요미우리신문>에는 9개 면에 걸쳐 인터뷰했는데, 그 정성의 반이라도 국내에 쏟아야 했던 것 아닌가. 정상회담 직전까지 예측도 못 하고 일본의 성의공수표만 날리고, 이제 와서 호텔 직원들 몇명 박수 친 걸 환대라 포장하니, 측은하기조차 하다. 왜 피해자인 우리가 일본인의 마음을 얻지 못해 안달이어야 하는가.

 

높은 자리에 있으면, ‘정보가 모인다. 그러면 자신이 내리는 모든 결정이 옳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자리능력을 혼동하는 것이다. 권위적이기까지 하면 다들 입을 닫는다. 그래서 자세를 낮추고 전문가, 그리고 반대하는 이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민의힘 지도부 만찬에서 누군가는 부담을 지고 정리하고 가야 한다. 비난이 두려워 아무것도 안 하면 국익에 도움이 되겠냐고 했다. 이런 말은 박수 칠 준비가 돼 있는 국민의힘 앞에선 굳이 할 필요가 없다. ‘부담은 보이는데, 어떤 국익을 얻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최소한 이번 사태를 성과로 포장하지 말아달라.

권태호 | 논설위원실장 한겨레 : 2023.03.20.

 

미국 폭스뉴스재판을 주목하는 이유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학교폭력 가해자인 박연진은 왜 없는 것들은 인생에 권선징악, 인과응보만 있는 줄 알까?”라며 입꼬리를 비틀어 웃는다. 이 드라마가 폭발적 반응을 얻은 이유 중 하나는 이렇게 돈의 힘으로 징벌을 피하고 떵떵거리던 악당들이 결국 대가를 치르며 파멸하는 모습을 통쾌하게 보여줬기 때문일 테다. 그러나 학교와 경찰이 내팽개친 인과응보의 정의를 피해자가 사적 복수로 구현한 이야기에 열광하는 우리를 돌아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사법·행정 등 현실의 공적 제도에 관한 불신이 그만큼 커 보여서다.

 

장르는 다르지만, 미국인들도 사법제도가 과연 인과응보를 구현할 수 있을까궁금해하며 한 드라마를 주시하고 있다. 다음달 시작되는 미국 최대 보수언론 <폭스 뉴스> 대 투표기기 제조사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의 명예훼손 재판이 그것이다. 폭스 뉴스는 2020년 대통령 선거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패배로 끝난 뒤, 트럼프 진영이 제기한 투표부정 음모론을 사실인 것처럼 보도했다. 특히 도미니언이 소프트웨어를 조작해 선거 결과를 바꿨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내보냈다. 근거는 없었다. 도미니언은 트럼프 지지자들의 협박을 받고, 평판이 추락하고, 투표기기 판매에 타격을 받자 약 2조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뉴욕 타임스><워싱턴 포스트> 등에 따르면 도미니언은 애초 승소를 기대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언론자유를 강력히 옹호하는 미국에서는 언론사에 실질적 악의’(actual malice)가 있었다는 분명한 증거가 없는 한, 명예훼손 책임을 묻지 않아서다. 실질적 악의의 구성 요소 중 하나는 사실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보도한 것이다. 이를 증명하는 것은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만큼 어려우니 처벌도 어렵다. 그런데 놀랍게도 도미니언이 폭스 뉴스의 머릿속을 들여다본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폭스 뉴스 관계자들이 주고받은 이메일과 문자 등을 입수한 것이다.

 

대주주인 루퍼트 머독과 진행자 터커 칼슨 등 폭스 뉴스 수뇌부와 제작진은 부정선거 주장을 사석에서 미친 소리’ ‘거짓이라고 말하면서도 방송에서는 사실인 것처럼 떠들었다고 한다. 대선 직후 이 방송이 잠깐 트럼프의 패배를 인정했을 때 트럼프 지지자들이 더 극우적인 매체로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시청률과 수익을 위해 음모론을 밀기로 한 것이었다. 심지어 한 기자가 트럼프의 투표부정 주장을 검증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자 터커 칼슨은 회사 주가를 떨어뜨린다며 그를 해고하라고 말했다. ‘사업 전략으로 음모론을 키운 폭스 뉴스는 도미니언만 곤경에 빠뜨린 것이 아니라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회 점거로 헌정까지 위태롭게 했다고 비판받는다.

 

수집된 증거를 바탕으로 폭스 뉴스가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지만, 장담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제러미 피터스 뉴욕 타임스 기자는 배심원 중 한명만 폭스 뉴스 편을 들어도 도미니언이 패소할 수 있다그러면 아무리 허위정보를 퍼뜨려도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는 선례가 되고, 언론사는 거짓말 면허증을 갖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폭스 뉴스는 막강한 변호사 군단을 동원하고 있다. 피터스 기자는 폭스 뉴스가 이긴다면 사법제도 자체가 불신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폭스 뉴스는 코로나19 방역을 저해한 보도 등으로도 비난받았지만, 상업적인 성공을 지속했다. 다만 이번에는 또 다른 투표기기 업체도 3조원 넘는 손해배상 소송을 냈기 때문에, 패소하면 회사가 존폐의 갈림길에 설 수도 있다.

 

폭스 뉴스의 인과응보 여부는 미국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한국에도 시청률, 클릭, 광고 수익, 사주의 이해 등을 위해 사실을 비틀고 과장하거나, 명백한 허위주장까지 하는 매체들이 있다. 광고나 사업 협찬 등을 대가로 기업 비리에 눈감아, 독자·시청자를 배신하는 언론사도 있다. 언론사가 거짓말 면허증을 가질 수 없도록 사법제도가 작동하는 것, 독자·시청자 신뢰 회복을 위해 언론 내부를 개혁하는 일은 한국에서도 절실한 과제다. 안타깝게도 이를 위한 움직임은 아직 충분한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꼬리 잡힌 여우(폭스)’에게 합당한 인과응보가 내려지는 것이 그 과제를 일깨울 하나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제정임 |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장 한겨레 : 2023.03.20.

 

이인규의 글로리

영어 글로리(glory)’는 맥락에 따라 영예(榮譽), 부귀(富貴), 광휘(光輝) 등 여러 뜻으로 쓴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는 무엇일까? 나는 자랑또는 존엄으로 해석한다. 돈 많고 키 크고 잘 생겼고 나이스한 하도영은 박연진의 자랑이다. 문동은은 모든 가해자가 가졌거나 가지려 한 글로리를 파괴함으로써 존엄을 확인했다. 자신의 글로리를, 박연진은 남한테 내보인 반면 문동은은 혼자 간직했다. 삶의 무게추를 박연진은 타인의 시선에 두었고 문동은은 자신의 내면에 두었다. 그런 점에서 하도영은 문동은과 같은 유형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이스한 행동을 하는 것이 하도영의 글로리다. 그래서 충실하지 않은 아내와 생물학적으로는 남의 딸인 예솔을 비현실적일 정도로 나이스하게 대한다. 나는 등장인물이 저마다 추구하는 글로리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그 드라마를 보았다.

 

무협지 같은 회고록

이인규 씨가 회고록을 냈다. 제목은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이고, 부제는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이다. 출판사 조갑제닷컴의 발행인 조갑제 씨는 젊을 때 글 잘 쓰는 기자로 이름을 날렸고 나이 들어 극우 논객으로 변신한 인물이다. 이인규 씨는 책 후기에 조 씨가 원고를 윤문(潤文)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어떤 내용을 담은 어떤 문장이 조 씨의 작품인지, 알 만한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전직 검사의 흔한 회고록은 아니다. 서문부터 부록까지 529쪽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과 무관한 것은 27쪽부터 90쪽까지가 전부다. 부록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개요>는 용어와 문장과 내용 모두 검찰 수사기록 요약 보고서라고 할 만하다. 개인의 기억력과 메모에 의지해 쓸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중수부장 직을 사임할 때 수사기록 사본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는지, 혹시 검찰 관계자가 보관하고 있는 수사기록을 제공한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본문 장르는 무협지에 가깝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검사의 임무는 법을 위반한 사람을 찾아내고 법정에서 범죄행위를 증거로 입증함으로써 법이 정한 벌을 받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무협지의 주인공은 나쁜 놈 중에서도 힘센 나쁜 놈을 처단하려고 검사가 되었다고 한다.(26) 그는 1985년 서울지검에서 검사의 첫걸음을 뗐다. 그때는 전두환이 대통령이었다. 힘세고 나쁘기로는 한국현대사에서 단연 으뜸인 사람이다. 그렇지만 이인규 씨가 전두환과 그 패거리를 처단하려고 애쓴 흔적은 없다. ‘힘센 나쁜 놈이 누군지에 대해서 이인규 씨는 그때도 지금도 헌법이나 상식과 크게 다른 관념을 지니고 있다.

 

어쨌든 경동고와 서울법대를 나온 그는 명문고 인맥이 판치던 검찰조직에서 학연지연혈연으로 얽힌 이들의 청탁을 거절하는 청렴성과 원칙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는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특수부 에이스가 되었고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자리까지 올라갔다. 회고록에서 SK 최태원 회장 구속(2002)부터 대선자금 수사(2003)를 거쳐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2009)까지 힘센 나쁜 놈을 처단한 자신의 업적을 깨알같이 자랑했다. 정홍원우병우홍만표한동훈박영수 등 함께 활약한 훌륭한 검사는 실명을 밝혔다. 검찰을 완전 정의로우며 오류라곤 없는 조직으로 묘사했다.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데 필요한 때만 검찰의 작은 잘못을 슬쩍 비추었고 관련 검사 이름은 익명 처리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랑뿐인 나 때는회고록이다. 그가 검사로 재직한 전두환노태우 시대에 무고한 시민을 수도 없이 구속하고 기소한 검찰의 조직범죄와 성폭력뇌물수수증거조작 등 검사의 범법행위에 대해서는 어떤 반성도 성찰도 없다.

 

검사의 글로리

회고록 제목은 이인규 씨의 글로리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대한민국 검사’, 그리고 표지의 저자 이름 뒤에 적은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그의 글로리다. 246개월 동안 검사로 일한 이인규 씨는 노무현 대통령이 목숨을 끊은 일로 20097월 사직했다. 무려 14년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도 여전히 검사라는 지위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중수부장이라는 직함으로 자부심을 드러낸다. ‘법률가라든가 변호사같은 것은 이인규의 글로리가 될 수 없다. ‘검사중수부장은 내면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언어가 아니다. 타인에게 자랑하고 과시하는 데 적합한 표식이다. 인간 이인규는 그런 점에서 문동은이나 하도영이 아니라 박연진과 같은 과에 속한다. 내면의 가치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끄는 것을 글로리로 여긴다.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회고록은 아니었으나 윤석열 대통령과 검사정권의 행태를 이해하는 데는 유용했다. 그들은 1980년 전두환의 신군부와 비슷한 확신을 지니고 유사한 감정을 느끼면서 권력을 휘두르는 중이다. “기업인과 정치인을 비롯해 사회의 힘센 자들은 모두 잠재적인 범죄자다. 시장권력과 정치권력으로 국민을 약탈해 사리사욕을 채운다. 이것을 바로잡아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세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능하고 청렴한 검찰조직과 검찰에서 능력을 기른 전직 검사뿐이다. 우리는 사심 없는 엘리트로서 힘센 나쁜 놈들이 장악하고 있던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고 있다.”

 

<한겨레21>이 최근 인용 보도한 참여연대와 법무부의 자료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는 검찰왕국 건설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법무부장관을 포함해 검사 출신 국무위원이 4명이고 국무총리 비서실장부터 국민연금기금 운용위원회 상근 전문위원까지 검사 출신 차관급 공직자는 9명이다. 인사비서관에서 국제법무비서관까지 대통령실에 근무하는 검사 출신 비서관은 7명이다. 외교부와 국제기구 등 법무부 이외 기관에 파견나간 현직 검사가 50명이 넘으며, 검사 아닌 검찰공무원도 10명이나 파견 근무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 몫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후보로 주로 전직 검사를 추천하고, 김기현 체제를 통해 영남을 비롯한 국힘당 강세 선거구에 검사 출신 국회의원 후보를 밀어 넣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돈과 정보와 권력이 있는 자리에 이름과 얼굴은 다르지만 생각과 감정은 이인규 씨와 똑같은 사람을 찾아 임명하고 있다. 이인규 씨도 조만간 한자리 받을지도 모르겠다.

 

노무현의 글로리

회고록 부제에 이인규 씨는 이런 주장을 담았다. ‘나는 노무현을 죽이지 않았다.’ 그의 심정을 이해한다. 글로리를 되찾으려면 그렇게 말해야 한다. “나는 노무현을 죽인 정치검사가 아니다. 평생 힘센 나쁜 놈을 처단한 대한민국 검사다. 노무현은 힘센 나쁜 놈이었다.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박연차에게 뇌물을 받았다. 그가 자살한 것은 변호인 문재인의 무능과, 죽으라고 몰아세운 <한겨레><경향신문> 등 진보언론 때문이다. SBS논두렁시계보도는 검찰이 아니라 국정원이 한 짓이다.”

 

그의 주장 가운데 그나마 다툴 가치가 있는 사실에 대해서는 노무현재단의 입장문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나머지는 사실 공방을 할 가치도 없다. 예컨대 박연차와 면담하면서 노 대통령이 했다고 그가 주장하는 말들은 지어낸 것이다. 자정 가까운 시간에 이루어진 짧은 면담은 영상녹화실에서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자신과 문재인 대통령의 증언 중에 어느 것이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이인규 씨는 누구보다 잘 안다.

 

적어도 내게는, 이인규 씨의 노력이 쓸데없었다. 나는 그가 노무현을 죽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노무현의 얼굴에 침을 뱉었을 뿐이며 이명박 정권의 망나니 노릇을 검사의 일로 착각했을 따름이다. 그가 본 힘센 나쁜 놈은 그런 일로 목숨을 끊지 않았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수모를 견디며 비굴하게 살아가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검사 이인규는 노무현을 죽이려 하지 않았다.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할 수도 없다. ‘이러면 죽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박연진이 문동은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검사 이인규는 인간 노무현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찌 미필적 고의를 품었겠는가.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의도하지 않았던 오류에 대해 죽음으로 책임진 행위로 받아들인다. 정치는 때로 짐승이 되는 수모를 감수하면서 야수의 탐욕과 싸워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는 사업이다. 그것이 노무현의 글로리였다. 그는 수모를 견디지 못해 목숨을 끊는 사람이 아니다.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기 위해 야수의 탐욕과 싸워나갈 벗들에게 짐이 아니라 힘이 되려고 그런 방식으로 삶을 마감한 것이다. ‘나는 이렇게 나의 글로리를 지키겠다. 슬퍼하지도 말고 누구를 원망하지도 말라.’ 대통령의 마지막 글을 나는 그렇게 읽었다.

 

이인규 씨에게 말하고 싶다. “맞습니다. 그대는 대한민국 검사였습니다. 그 사실을 그대만의 글로리로 간직하십시오. 당당히 얼굴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십시오. 그러나 굳이 타인의 동의를 구하지는 마십시오. 노무현의 글로리를 알아보았고 그의 죽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그대의 얼굴과 이름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노무현의 죽음을 해석하려고도 하지 마십시오.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그대는 노무현의 글로리를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유시민 작가 시민언론 민들레: 2023.03.20.

 

법원은 영장 자판기인가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입구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바야흐로 압수수색의 시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어떤 날은 하루에도 여러 건씩 압수수색 소식이 들려온다. 통계적으로도 압수수색영장 청구는 201110만여건에서 202239만여건으로 늘었다. 현 정부 들어선 정치적 색채를 띤 사건들에서 압수수색이 부쩍 늘었다.

 

특히 주목되는 게 경기도청 압수수색이다. 김동연 지사는 지난 16일 에스엔에스에서 검찰이 3(22) 동안 92개의 피시와 11개의 캐비닛을 열고 63842개의 문서를 가져갔다고 했다. 경기도는 김 지사 취임 뒤 여덟달 동안 전임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수사로 13차례나 압수수색을 당했다고 한다. 압수수색의 새로운 진화를 보는 듯하다. ‘K-압수수색이라고 전세계에 알려도 될 만한 일이다. 일반 영장과 뭐가 다른지 궁금하다. 국가권력이 어디든 치고 들어가 무제한 압수수색할 수 있었던 일반 영장의 야만성을 이성의 통제 아래 가두고자 한 게 현대 영장주의 원칙이다. 이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돌아볼 때가 됐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해 김 지사의 컴퓨터까지 압수수색당한 장면이 상징적이다. 수사 대상자인 이 전 부지사는 20201월 퇴직했고, 김 지사는 20227월 취임했다. 그사이 도청도 이전했고, 새 지사의 컴퓨터도 새로 설치했다. 김 지사 컴퓨터는 사건과 어떤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실제로 경기도 대변인은 압수수색은 15분여 만에 종료됐는데 검찰이 단 한 개의 파일도 가져가지 않았다고 했다.

 

형사소송법 원칙이 지켜졌는지 의문이다. 압수수색은 해당 장소에 압수할 물건이 있음을 인정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하여할 수 있다. 피의자가 아닌 제3자의 경우 이 조건이 더욱 엄격하게 요구된다. 그런데 압수수색영장 심사 과정에서 김 지사 컴퓨터에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한 어떤 물건(파일)이 있을 것이라는 소명이 이뤄졌을까. 상식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실제 압수된 파일도 없었다. 검찰은 경기도가 이재명 지사가 쓰던 피시를 폐기했다고만 할 뿐 기록이나 근거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압수영장을 집행했다고 해명했다. 사정이 그렇다면 다짜고짜 현 지사의 새 컴퓨터를 뒤질 게 아니라 전 지사가 쓰던 컴퓨터를 찾아내 압수수색하는 게 상식에 맞지 않을까.

 

김 지사는 압수수색영장은 자판기가 아니다라며 “(검찰이 주인인) ‘()주국가의 실체를 똑똑히 봤다고 비판했다. “법치라는 이름을 내세운 새로운 형식의 독재 시대가 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도 했다.

 

영장 자판기라는 말은 법원으로선 가장 치욕적인 비칭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런 표현이 낯설지 않게 된 현실은 그만큼 영장심사의 엄격성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는 반증이다. 이런 점에서 대법원이 압수수색영장 심사 과정에서 수사기관 관계자나 제보자 등을 불러 의문스러운 사항을 직접 물어보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것은 국민의 불신을 더는 한 걸음이 될 수 있다. 디지털 정보를 압수수색할 때 사용할 검색어를 영장에 기재하도록 한 것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전인격이 고스란히 담긴 휴대전화를 비롯한 디지털 정보를 검색어 제한 없이 들여다보는 것이야말로 현대판 일반 영장에 다름 아니다.

 

구속영장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형사절차 단계별로 요구되는 혐의의 입증 정도는 수사 개시(단순한 혐의)기소(충분한 혐의)구속(현저한 혐의)유죄판결(확신)’로 요약된다(이주원 <형사소송법>). 구속을 위해선 매우 높은 유죄의 가능성이 입증돼야 한다는 것인데, 2015년부터 20206월까지 5년 반 동안 구속됐다가 무죄로 풀려난 사람이 905명에 이른다(최기상 민주당 의원, 대법원 제출 자료). 법원이 구속영장을 심사할 때 혐의 입증 정도와 구속 필요성을 더욱 엄격히 따져야 함을 보여준다.

 

최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출국금지 사건, 윤미향 의원 사건 등이 대부분 무죄 판결을 받음으로써 검찰이 씌운 거짓 프레임을 깨뜨린 것은 법원이 객관적 심판관으로서 제 역할을 한 사례다. 그러나 최종 판결은 물론 압수수색·구속영장 단계에서부터 사법통제 기능을 더욱 철저히 수행해야만 폭주하는 검주국가에서 법치가 그나마 숨쉴 수 있을 것이다. 검찰이 무죄추정 원칙, 불구속 수사·재판 원칙을 무력화시키며 여론몰이 수사로 누군가를 제물로 만들 때 인권과 정의의 잣대로 수사권 남용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유일한 국가기구가 법원이기 때문이다.

박용현 논설위원 한겨레 : 2023.03.21.

 

일본 언론들이 걱정해주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지난 16일 도쿄 정상회담에 3자 변제안을 들고 갔다. 일본은 깜짝 놀랐다. 이렇게 하면 한국 국내 정치에서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우리(일본)로서는 학수고대하던 해법이라고 말했다고,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전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구상권 행사를 상정하지 않고 있다2018년 대법원 판결을 부정했다. 계류 중인 소송에 대해서도 추후 확정판결이 나와도 3자 변제를 하겠다며, ‘일본에’ “걱정 말라했다. 행정부 수장이 미래 사법부 판결을 무시한 것이다. 이것이 미래인가.

 

국내 정치의 안 괜찮음을 감수하고서 기대한 건 최소한의 사과가해 기업의 미래기금 참여였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는 역사 인식에 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로 계승 확인한다고 모호하게 말했다. ‘김대중-오부치대신 “199810월에 발표했던이라 했다. ‘강제동원옛 한반도 출신 노무자 문제라고 표현했다. ‘통석의 염수준이다. 김 차장은 일본의 공식 사과가 20차례 넘는다고 했다. 사과를 하면 뭐 하는가, 그다음에 뒤집으면 앞의 사과가 유효한가.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철회했다. 201810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자, 일본은 20197월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을 대상으로 수출 규제에 나섰고, 8월에는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한국을 배제했다. 이에 한국은 9월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했다. 이번에 일본은 수출 규제만 풀었을 뿐, 화이트리스트 복원은 추후 협의한다 했다. -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은 완전 정상화하기로 했는데, 일본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것이다. 이것이 국익인가.

 

정상회담 뒤,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은 당국자말을 인용해 정상회담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 이행, 다케시마(독도) 문제 등이 언급됐다고 보도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의제로서 논의된 바 없다고 애매모호하게 말하지 말고, 사실이 아니라면 일본 언론을 상대로 소송을 하라. 한국에서 하던 것처럼.

 

여기에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후쿠시마 해산물 수입 규제, 2018년 해상자위대 초계기 갈등 등 청구서만 줄줄이 대기 중이다. 가는 말이 고우니, 오는 말이 험한 것이다. 이를 호구라 한다. 일본 언론들이 윤 대통령을 걱정하며 일본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너무 궁지에 몰아넣지 말고, ‘호응좀 해주라고.

 

경색된 한-일 관계를 풀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국민이 누가 있겠는가. 언제까지 일본과 원수처럼 살 것인가. 그러나 이런 식은 아니다. 왜 이렇게 서둘렀을까. 426일 미국 방문 전에 매듭지어 미국에 칭찬받고, 5월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도 초청받고픈 탓 아닌가, 추정할 뿐이다. 시간에 쫓기면 협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 해법, 한국 사회의 거센 반발에 부닥쳐 작동 불능 상태에 빠진 201512월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보다 더 형편없다. 당시 일본은 사과했고(‘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함’,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함’), 10억엔의 기금을 출연했고, 당시 외무상 기시다가 방한했다.

 

일본이 이번에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배상도 할 것이라는 발표를 기대한 한국인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통령이 일본 총리에게 요구라도 했어야 되는 것 아닌가. 판을 깨라는 게 아니다. 이럴 수밖에 없었다면, 피해자들과 국민들에게 설명이라도 더 했어야 되는 것 아닌가. <요미우리신문>에는 9개 면에 걸쳐 인터뷰했는데, 그 정성의 반이라도 국내에 쏟아야 했던 것 아닌가. 정상회담 직전까지 예측도 못 하고 일본의 성의공수표만 날리고, 이제 와서 호텔 직원들 몇명 박수 친 걸 환대라 포장하니, 측은하기조차 하다. 왜 피해자인 우리가 일본인의 마음을 얻지 못해 안달이어야 하는가.

 

높은 자리에 있으면, ‘정보가 모인다. 그러면 자신이 내리는 모든 결정이 옳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자리능력을 혼동하는 것이다. 권위적이기까지 하면 다들 입을 닫는다. 그래서 자세를 낮추고 전문가, 그리고 반대하는 이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민의힘 지도부 만찬에서 누군가는 부담을 지고 정리하고 가야 한다. 비난이 두려워 아무것도 안 하면 국익에 도움이 되겠냐고 했다. 이런 말은 박수 칠 준비가 돼 있는 국민의힘 앞에선 굳이 할 필요가 없다. ‘부담은 보이는데, 어떤 국익을 얻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최소한 이번 사태를 성과로 포장하지 말아달라.

권태호 | 논설위원실장 한겨레 : 2023.03.21.

 

 

홍보부족이라고? 시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장난 지금 나랑 하냐.” 최근 69시간 노동을 둘러싼 논란을 보며 오래전의 이 유행어가 떠올랐다. 정부가 운을 떼고, 바람몰이를 하고 위원회를 조직해 안을 만들어 입법예고까지 한 정책이 뒤집힐 판이다. 정부안의 공식 명칭은 근로시간제도 개편방안’.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 일주일 120시간 노동을 거론한 이후, 취임 직후인 지난해 6월부터 착수해 현 정부가 야심차게 밀고 있는 소위 노동개혁 1호 법안이다.

 

지난해 말 이미 69시간안이 나왔고, 노동계 의견 수렴이 없었다는 비판에도 밀어붙여 지난 6일 공식 발표됐다. 그 후엔 모두가 아는 대로 난리통이다. 역풍에 놀란 윤 대통령은 발표 8일 만에 재검토를 지시했다. “60시간 이상은 무리라고도 했고, 노동 약자의 여론을 더 청취해 방향을 잡겠다고 한다. 개편안은 다음달 17일까지 40일간 입법예고를 거쳐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지만, 앞으로의 향방은 알 수 없다. 근로기준법 개정안 통과의 키는 여소야대 국회가 잡고 있다.

 

정부안의 핵심은 현재 주 단위, 최대 52시간(법정 40시간, 연장 12시간)으로 제한한 노동시간을 노사 합의에 따라 월·분기·연 단위로도 운용할 수 있도록 하고, 1주일에 69시간까지(6일 기준) 허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69시간제로 통칭된다. 정부는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도입하고, 연차휴가까지 더하면 제주 한달 살기도 가능해진다고 홍보한다.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자는 얘기다.

 

정부가 강조하는 정책 취지는 근로자의 선택권, 건강권, 휴식권 보장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사의 시간주권을 돌려주는 역사적인 진일보라 평가했다. 취지대로라면 노동자들이 당연히 환영할 텐데, 반대로 비판이 빗발치고 있다.

 

내용부터 추진 과정 모두가 문제이지만, 시민들이 가장 어이없어하는 지점은 취지가 정확히 전달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설명 부족” “오해” “가짜뉴스를 운운하는 정부·여당의 태도다. “근로자들에게 혜택을 주려고 하는 정책이었는데 주 최대 69시간이라는 극단적이고 별로 일어날 수 없는 프레임이 씌워져 진의가 잘 전달이 안 됐다”(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 “가짜뉴스와 세대 간 소통 부족 등으로 근로시간제도 개편이 장시간 근로를 유발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임이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민의힘 간사).

 

오해라고? 천만에, 그 반대다. 시민들은 일터에서의 오랜 경험으로 현실과 규정의 괴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정부안의 취지를 정확히 꿰뚫고 있고, 현실에선 어떻게 구현될지도 직감한다. 노동자들은 이번 개편의 본질이 노동자의 선택권·건강권 보장이 아니라, 사용자가 원할 때 노동자에게 몰아서 일을 시킬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개편안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그 이상 근무하면 건강에 치명적이라고 경고한 주 55시간을 훌쩍 넘어, 산업재해 관련법상 과로사 인정 기준인 ‘4주간 1주 평균 64시간 노동까지도 허용한다. “그렇게 일하면 죽는다는 기준선을 노동시간 상한으로 잡고서 어떻게 건강권, 휴게권을 보호하겠다는 궤변을 늘어놓을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백번 양보해 선의의 취지였다고 치자. 취지대로 정책을 구현할 준비는 얼마큼이나 됐는가. 정부안대로 근로기준법이 통과될 경우, 일을 몰아 시킬 수 있는 사측의 권리는 법안에 깨알같이 명시돼 있는 반면, 노동자 보호 대책은 69시간을 일할 때 11시간의 연속 휴식이 있어야 한다뿐이다. 지난 6일 정부안 발표에 대한 언론사들의 우려와 비판 기사에 노동부는 설명자료를 내 과로사회 회귀 등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정작 노동자 보호 대책 부분엔 연구 착수” “마련할 것” “계획” “논의 예정이라는 말들만 넘치고, “적극적인 감독행정으로 제도가 악용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는, 안 지켜도 그만인 다짐뿐이다. 이런 정부를, 대책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이번 노동시간 개편안은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이후 70년간 유지된 주 단위 노동시간을 월, 분기, 연 단위로 풀어 노동형태의 근간을 흔드는 대대적인 변화다. MZ세대뿐 아니라 모든 직종, 모든 세대 남녀 노동자와 그 가족, 사회 전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런 중요한 정책에 하루가 멀다 하고 정부·여당의 입장이 이랬다저랬다 한다. 대통령과 대통령실, 주무부처 장관의 말이 다르다. 준비가 안 됐으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 국정은 장난이 아니다.

송현숙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경향 : 2023.03.23

 

특권 중산층의 지배를 넘어

물가와 금리 상승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지만, 작년에도 사교육비가 크게 증가하여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다 한다.

 

재미 사회학자 구해근의 책 <특권 중산층 - 한국 중간계층의 분열과 불안>(국역본 202211)은 이에 연관된 하나의 중요한 분석을 내놓는다. 구해근은 부유한 나라 한국에서 어떤 새로운 계급 분화가 진행되어 중산층이 와해되고 재구조화하는지를, 특히 신흥 특권 중산층에 초점을 맞추어 보여준다. 이를 통해 조국 사태에서부터 한동훈·정순신 등의 특권층이 벌인 교육 농단과 그 전후 맥락을 더 잘 볼 수 있다.

 

세대로는 586, 지역으로는 강남, 직업으로는 전문직 등으로 표상되는 그 계층은 라이프스타일, 교육 계급투쟁, 글로벌 전략 등을 통해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구별짓기이상의 전방위적이고도 새로운 계급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 투쟁의 무시무시한 효과가 부동산과 사교육 거품, 그리고 세계 최저의 출생률과 최고의 자살률인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와 결부된 한국인의 정신상태와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데도 무척 중요한 이야기를 덧붙여두었다. 그는 신흥 특권 중산층이 지극히 물질주의적, 가족이기주의적, 성공지상주의적이라 전제한 뒤, 그런 특권 중산층의 자식교육, 소비, 라이프스타일 등이 일반 중산층은 물론 전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모방욕을 부르지만, 그들이 도덕적·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확보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일견 모순도 내포한 진단에서 추출할 힌트가 많다. 특권 중산층의 행태와 문화적 장악력은 생존주의적 공포와 욕망에 허위를 칵테일한 것이다. 많이 배우고 수십억원짜리 아파트에서 살며 특권적 기회를 독점하는 자들 스스로도, 물질지상적이고 허위적인 욕망과 조장된 불안 때문에 정신없이 돈을 모으고 자식새끼들에게 물려주려 허겁지겁 산다. 그 정신적 공허와 빈곤이 강남 문화. 그것은 ‘Yuji’처럼 지극히 우스꽝스럽지만 동시에 명품과 표피적 성공과 글로벌로 치장된 휘황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빚어놓은 불안과 계급투쟁의 정치적·제도적 기제들은 무섭고 파괴적이다. 교육과 계급유지에 관련된 엄청나게 높은 경제적 문턱과 그것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의 신화의 허구를, 평범한 사람들은 모르지도 존경하지도 않지만, 거부하지도 못하고 있다. 즉 이 동의와 모방은 자발적이고 내재적인 것이 아닌 일종의 강요 혹은 문화적 압력에 의한 것이며, 생존주의와 뒤엉킨 것이다.

 

그래서 상층의 영어유치원-국제학교-특목고-의대-SKY-글로벌 대학서열체제 외에도, 각 단계와 과정마다에 차별과 트로피를 심어놓았다. ‘들은 마치 도토리 키재기하듯 경쟁과 차별의 문화를, ‘이게 아닌데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공포와 분노로 따라 가고 있다.

 

이에 저항하는 다른 주체성을 생성하거나 불안을 완화하는 대안을 만들지 못하면, 출생률이나 자살률에 대한 정책도 겉돌 수밖에 없고 K민주주의의 위기도 지속될 것이다.

 

만약 이 사회가 공동체라면 부정한 부는 물론, (정당성의 외관을 걸치고 있다 해도) 지나친 부나 지나친 소비에 대해서 분노해야 한다. 그런 과도함은 그 자체로 함께 사는 삶과 지구환경을 모욕하고 침해하는 사회적 병리이자 정신적 빈곤의 표징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가 짐승계 아니라 사람다운 공동체라면 자식 사랑도 한계나 규범이 있어야 한다. 가족이기주의를 인륜으로 혼동하면 조국·정순신·최순실뿐 아니라 그보다 더한 횡포도 정당화되고, 결국 사회는 증발한다.

 

그동안 우리 담론장은 능력주의 비판에 힘을 기울여왔다. 능력주의가 지배이데올로기의 한 핵심임이 사실이며, ‘공정보다 불평등 자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은 다 옳다. 그런데 왠지 현장에서는 잘 먹히지 않는다. 기득권을 가진 상층부는 그 구조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다수는 그 구조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허무를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순신과 Yuji 등의 사례에서 보듯 이 사회의 특권층은 평범한 시민들이 누리지 못하는 특권, 부정, 억압과 전문 기술을 수단으로 삼고 있기에, 형식적(?) 공정의 가치조차 구현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까 공정에의 열렬하고 계속적인 대중의 요청이 불평등 완화의 요구와 만나는 지점들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능력주의 너머의 세계를 보여주는 구체적 정책과 경험의 공유가 절실하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경향 : 2023.03.23.

 

 

인플레이션 전쟁의 희생자들

백수(白壽)를 앞두고 있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병원에서의 암 치료를 중단하고 집에서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이 평생 도덕적 신념을 현실 정치에 구현하는 데 노력했던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카터는 200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가 노벨상을 받은 것은 대통령으로서의 업적 때문이 아니다. 퇴임 이후 펼친 민주주의와 인권 증진 활동, 국제 분쟁 해결, 공중보건 개선과 경제·사회적 개발 촉진 등의 공로가 수상 이유다. 역대 최고의 전직 대통령이라는 찬사를 받는 그이지만 재임기간(1977~1981)의 정치는 미국 유권자들의 인정을 받지 못해 재선에 실패했다. 그를 좌절시킨 결정적 계기는 인플레이션이다.

 

1970년대 미국은 인플레이션의 시대였다. 1960년대 중반 린든 존슨 행정부가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대대적 재정지출에 나서고 베트남전쟁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으면서 물가 상승이 본격화됐다. 그럼에도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물가 안정 조치에 소극적이었고,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이 강타하면서 인플레이션율은 1979년 두 자리 숫자(13.3%)까지 치솟았다. 물가 급등으로 지지율이 떨어지자 카터는 측근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불리는 폴 볼커를 연준 의장으로 지명했다. 볼커는 취임하자마자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무자비하게 올렸다. 기준금리가 1980620%까지 치솟았다. 요즘 한국의 대부업체에서나 나오는 법정 최고금리 수준이다.

 

최대 희생자는 늘 가난한 사람들

오일쇼크에 볼커쇼크까지 겹친 미국 경제는 급속히 침체됐다. 기업들이 도산하고 실업률이 10%대를 기록하며 노동자 수백만명이 일자리와 집을 잃고 희생양이 되었다. 해외에서도 희생자들이 나왔다. 미국 자본을 대거 유치했던 멕시코, 브라질 등 중남미 국가들은 미국의 금리 상승으로 외채가 부풀려지고, 세계적 경기 침체로 주력 상품인 원자재 수출도 위축되면서 외채상환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해야 했다. 중남미 잃어버린 10의 시작이다. 볼커의 초고금리 정책은 많은 희생자들의 고통을 밟고 결국 효과를 봤다. 카터를 이기고 미국의 새 대통령이 된 로널드 레이건은 1983년 인플레이션에 대한 승리를 선언했다.

 

지금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창궐하는 인플레이션의 원인도 1970년대 상황과 오버랩된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저물가, 저성장이 지속되면서 세계 주요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엄청난 돈을 풀어 경기부양을 시도했다. 인플레이션의 씨가 뿌려진 것이다. 여기에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기업과 소상공인, 국민 개개인에게 지원된 막대한 보조금이 불쏘시개가 되면서 2021년 중반부터 물가가 뛰기 시작했다. 1970년대 인플레이션의 결정타가 오일쇼크에 따른 공급 충격이었다면 이번에는 지난해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그 역할을 했다.

 

최대 희생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가난한 사람들이다. 1970년대 미국에서는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이고, 지금 한국에서는 세계 최대 수준의 가계부채를 안고 있는 서민들이다. 서민들은 급등하는 물가로 인한 생계비 상승과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한국은행이 올려놓은 금리로 인한 이자비용 증가라는 이중의 고통을 받는다.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1%대로 추락하고 기업들은 비용 절감 등 비상경영 체제로 전환하고 있어 서민들의 고용 증대와 소득 증가는 난망하다. 실제 올해 들어서도 3월까지 수출 감소세와 무역수지 적자가 이어지며 한국 경제는 성장동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월까지 취업자 수 증가폭이 9개월 연속 둔화되는 등 고용 사정도 악화되고 있다. 여기에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유탄을 맞은 실리콘밸리은행(SVB)이나 크레디트스위스(CS) 등 미국과 유럽 일부 은행의 위기가 금융시스템 전체로 번진다면 한국 경제가 받을 충격은 배가될 것이다.

 

경기와 금리인상 사이 딜레마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은 필연적으로 취약계층을 더 고통스럽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재정정책을 통해 고용과 소득 측면에서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것이 절실하지만 재정건전성을 추구하는 현 정부 정책 기조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은도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 경기가 더 악화될 것 같고, 경기 회복을 위해 금리 인상을 자제하면 물가가 자극될 것 같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계절은 봄으로 가고 있지만 한국 경제와 서민들 앞에는 차가운 겨울이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김준기 뉴스콘텐츠부문장 경향 : 2023.03.23.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의 교훈

지난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시에 본사를 둔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전격 폐쇄됐다. 하루 전인 9일 하루에만 420억달러가 빠져나가면서 인가자인 캘리포니아주 금융당국(CDFPI)이 폐쇄를 결정했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파산관재인으로 임명돼 파산 절차에 돌입했다. 파산 당시 자산규모 미국 16위인 이 은행은 총자산이 2120억달러(277조원)에 달했는데, 총예금 1754억달러의 93%가 예금보험 보호 대상이 아닌 비부보예금이었다.

미국 내 은행 파산 행렬은 8일 샌디에이고 실버게이트은행의 자진 청산에서 시작해 10일 실리콘밸리은행 폐쇄를 거쳐, 12일 뉴욕 가상자산 전문 시그니처은행 폐쇄로 이어졌다. 계속해서 미국에서 자산규모 14위 샌프란시스코 퍼스트리퍼블릭은행에서도 대량 예금인출이 발생해 제이피(JP)모건체이스 등 미국 11개 대형은행이 300억달러의 예치금을 지원했다. 이 덕분인지 지역은행들 주가가 일시 반등했지만, 스타트업 생태계에는 자금조달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의 영향은 유럽으로도 확산했다. 15일 자산규모 세계 9위인 글로벌투자은행 크레디스위스(크레디트스위스·CS)가 내부통제 문제점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단소송을 당하면서 주가가 폭락했고, 이어 예금 대량인출이 발생했다. 이에 스위스 중앙은행이 71조원의 구제자금을 투입했고 정부 주도로 스위스 최대 은행인 유비에스(UBS)에 인수됐으나 시장의 불안은 여전하다.

 

한편 지난 12일 미국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 및 마틴 그루언버그 연방예금보험공사 회장이 실리콘밸리은행의 부보예금과 비부보예금 전액을 지급보장한다는 공동합의문을 발표했다. 지난 22일 연준은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을 밟으면서 지속적 인상이 필요할 수 있다는 표현을 삭제했다.

 

198310월 출범한 실리콘밸리은행은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로부터 예금을 받고 대출 및 투자를 해 혁신생태계 형성·발전 지원에 특화한 지역은행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은 한동안 타 업종 대비 우량한 실적을 거뒀는데, 이에 실리콘밸리은행은 예금이 증가했고 수익성도 양호했으며 실리콘밸리 소재 은행 중 최대 예금고를 자랑하기도 했다. 그런데 호경기 속에 투자자들이 줄을 서면서 자금 여유가 생긴 스타트업들의 대출수요가 줄어 실리콘밸리은행은 여유자금을 국채, 모기지, 정부 보증채 등에 투자했다. 이런 상황에서 연준의 긴축정책이 상황을 뒤바꿨다. 실리콘밸리 경기가 식으면서 자금 유치가 어려워진 스타트업들이 예금 인출을 늘렸는데, 이에 응하려고 보유 국채를 매도한 것이 손실을 발생시켰고 이를 메꾸기 위해 증자계획을 발표해 주가 폭락과 지난 9일 대인출로 이어졌다.

 

경제잡지 <포브스> 메이슨 기자의 실리콘밸리은행에 대한 보도가 흥미롭다. 그간 실리콘밸리은행은 스타트업들에 매우 우호적이었는데 이 때문에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뒤 지역사회에 은행을 살리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한다. 실리콘밸리은행은 스타트업 계좌 개설 때 통상적인 최소 예치금을 요구하지 않았고 은행 중 유일하게 스타트업에 신용라인을 개설해줬으며, 이를 통해 고객들과 관계금융을 형성·유지하면서 신용데이터 수집 노력을 계속했다는 것이다. 특히 고객들의 은행 업무를 신속히 처리하는 등 초짜 스타트업들이 필요로 하는 은행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줘 만족도가 높았다고 한다. 은행의 유동성 관리 소홀은 잘못이지만 고객들의 은행 평가는 나쁘지 않다는 얘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오바마 행정부 시절 제정된 도드-프랭크법에서는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사(SIFI)에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과 순안정자금조달비율(NSFR) 준수 및 종합적유동성측정평가(CLAR) 적용을 요구했다. 그런데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경제성장·규제완화 및 소비자보호법(EGRRCPA)을 시행하면서 도드-프랭크법 적용 대상을 축소해 실리콘밸리은행과 같은 중형은행들은 유동성 측정, 평가 및 보고 의무가 면제됐다. 이런 규제완화가 실리콘밸리은행 등에 파산의 문을 열어놓은 것이다.

한국에서는 지난 2월 은행이 이자이익으로 보너스 잔치를 한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질타가 있은 뒤, 금융위원회 산하에 은행권 개선 티에프(TF)’를 꾸려 개선방안 마련에 부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이 국내 은행권에 주는 시사점과 교훈을 살펴본다.

 

첫째, 실리콘밸리은행은 비록 금리상승과 부실경영 등으로 파산했으나, 국내 은행이 주목할 만한 강점을 지니고 있었다. 정보와 금융 이력이 부족한 스타트업들과 관계금융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려 노력한 점이다. 금융의 본질에 투철한 지역은행으로 중개 역할에 충실한 점 본받을 만했다.

 

둘째, 실리콘밸리은행은 위험분담에서 국내 은행들과 대비된다. 국내 은행은 대출금리를 시장금리에 연동시키는 방식으로 이자이익을 취하면서 차주에게 금리부담을 떠넘기는데, 향후 신용위험 확대로 이어져 고객을 파산으로 이끌 수 있다. 반면 실리콘밸리은행은 스타트업 지원 과정에서 발생한 잉여자금으로 구입한 장기채 가격이 금리상승으로 인해 하락하면서 유동성 문제가 생겼다. 금융경력이 일천한 스타트업에 중개 역할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위험을 은행 주주들이 떠안은 셈이다. 어느 쪽이 고객중시 경영일까.

 

셋째, 실리콘밸리은행의 흥망을 지켜보며 주목할 점은 이 은행의 초기 성공은 고객에 대한 남다른 관계금융 서비스 제공이 이끌었고, 말기의 실패는 겸영이 허용한 장기채 보유가 원인이었다. 이에 비춰 디지털전환 경제에서 전통적 대출 방식만으로는 스타트업 등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어렵다는 국내 일반은행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높지 않다. 비이자수익을 대하는 금융사들의 태도도 이해하기 어렵다. 고객요구 충족을 위한 서비스 제공에서 비이자수익이 창출되는 게 아니라, 비이자수익 확대를 위해 펀드와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모습이다.

 

넷째, 미국 정부가 실리콘밸리은행의 예금 전액 지급보장을 선언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역은행의 스타트업 생태계 지원 역할이 고려됐을지 모르지만, 예금보장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예금 지급보증 한도(5천만원) 증액 논의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한도 증액은 금융활동 결과에 대한 예금자의 불안감 해소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바로 이 때문에 금융사의 위험부담행위 사전 감시에 소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산업을 더 건전하게 만드는 대안 모색이 바람직한데, 예금보험료 차등 적용을 확대하는 차등보험료 실효성 제고 방안을 고려할 수 있겠다.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사태의 귀추가 주목되는데, 그간 파산 은행의 중개 역할과 위험관리 실패 사유에도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윤석헌 | 전 금융감독원장 한겨레 : 2023.03.23.

 

 

왜 어떤 '사익 추구 행위''공익'이라 불릴까

칼럼 연재를 요청받아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열고는 '나는 무슨 자격으로,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하는 시간을 잠시 가졌다. 변호사라는 직업 활동과 연관된 글을 쓰기로 해서 그렇다. 그래서 '공익'과 관련된 쑥스러운 고민을 그대로 한번 적어보기로 했다. 앞으로의 글은 아무래도 사람들이 일컫는 '공익' 또는 '인권'과 연결되는 사건 이야기가 될 텐데 첫 번째 글에서는 이에 대한 생각을 적어본다.

 

'공익·인권변호사'로 소개될 때가 종종 있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사건의 양으로만 보면 소위 말하는 '공익', '인권' 사건이 아닌 '사익', '이권' 사건을 더 많이 다루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말하는 '공익'도 결국 누군가의 '사익', '이권'이다. 장애인의 사익, 성소수자의 사익, 아동의 사익, 난민의 사익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것을 '공익'이라고 부르는가? 단어 자체를 문언 그대로 해석하자면 '모두의 이익'이란 뜻인데 과연 누구에게나 이익이 되는 보편타당한 '공익'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나는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의 사익을 위해서는 비장애인의 양보가 필요하다. 성소수자의 사익이 곧 이성애자의 이익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특정 사회 구성원의 사익 추구 행위가 아닌 '환경운동' 정도 되면 어떤가? 개발도상국에는 이익이 되지 않기에 실제로 그들은 환경운동을 적극 반대한다. '선진국 너희는 몇십 년 동안 화석연료 태워서 경제발전 해놓고 우리는 왜 이제 못하게 하는가'라는 식이다.

 

이렇게 보면 '공익'이란 허위의 개념이다. 그러나 '공익'이라는 표상이 우리에게 주는 어떤 이미지 즉 의미의 '이데아(idea)'는 분명히 있다. 그래서 오래 고민한 결과 부족하지만 이렇게 정리해봤다. 아마도 사회에서 통용되는 '공익'이란, '사회적 약자의 사익 중 현재의 공동체 다수가 그 추구 행위를 허용하는 사익'이라고.

 

이를테면 우리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공익이라고 한다. 반면 노동조합의 임단협 투쟁을 공익이라고 부르려면 좀 주저하게 된다. 노동자의 투쟁은 '노동운동'이되 공익 활동이라고 하려니 좀 이상하다. 소송의 경우도 장애인 인권 사건, 아동 인권 사건은 '공익·인권 사건'이지만 노동3권 사건은 그냥 노동 사건이지 공익·인권 사건이라고 하기에 뭔가 개운치가 않다. 노동3권 역시 다른 인권과 마찬가지로 헌법에 명시된 보편적 기본권인데도 그렇다. 특정 사회 구성원의 사익 추구 행위 간에도 이렇게 차이가 있다.

 

왜 그럴까. 앞에서 나는 '공익' 개념을 사회적 '허용' 여부와 연결 지어 정의했다. 그렇다면 이제 '허용'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내 생각에는 '시스템 자체를 건드리는지 여부'가 그 기준인 듯하다. 즉 사회체제, 하부구조 또는 국가 운영방식 자체를 위협하는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삼는 게 아닐까. 다시 말해 지배세력이 볼 때 정치경제적으로 '위험하지 않으면' 그들은 공익이라 부르는 것을 허용한다. 사람들은 동정하고 박수쳐 응원하기도 한다.

 

정리하자면, 사회에서 통용되는 '공익'이라는 개념은 '사회적 약자의 사익 중 현재의 공동체 다수가 위험하지 않다고 보아 그 추구행위를 허용하는 사익'이다.

 

이렇게 정의되는 공익 개념의 틀 안에서 하는 활동도 대단히 중요하다. 현재 우리 공동체가 '공익'이라고 인정하는 것을 열심히 추구하여 쟁취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다만 시간과 공간의 차원을 한 단계 높여서 역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류의 공익 활동은 '공익의 범위'를 확장하는 최전선 투쟁이었다. 만들어진 경기장 안에서의 경기를 넘어서 경기장 자체를 더 넓히는 공사(工事).

 

노예해방운동 당시 노예들은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짐승으로 취급받아 매질을 당했다. 여성참정권 투쟁 당시 여성에게 일어난 일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조선의 반상차별 철폐를 외친 '상놈'들은 그야말로 대중으로부터도 상놈이라고 욕먹었고 죽임을 당했다. 해당 시대, 해당 공동체에서 '공익'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나 그들이 가장 '이기적'인 목적으로 '과격한' 방식을 사용하여 처절히 투쟁해 승리했을 때 그 시점을 우리는 역사의 한 단계 발전이라고 지금의 교과서에 서술하고 있다. 이기적이고 과격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고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노예제가 철폐되고 여성이 참정권을 얻고 반상계급이 철폐되었을 때 봉건제에서 공화제로, 고대에서 근대로, 계급사회에서 민주사회로 발전한 것이다.

 

'공익·인권변호사'로 불리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만큼 안전하고 평화롭게 사회의 존중을 받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지배계급이 허용하지 않은 '공익'을 추구하다 '위험한 변호사', '법을 무시하는 변호사', '반사회적 강성 변호사', '길거리 변호사', '피고인이 된 변호사' 이런 비아냥과 무시를 당하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렵고 개인적인 삶이 대단히 불안정해지며 시종 불쾌감과 스트레스가 엄습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익·인권'이라고 세상이 불러주든 말든 개의치 않고 불의한 사회 시스템에 의해 피해를 입고 있는 계층계급과 연대하여 그들이 겪는 문제의 근본적 원인인 구조 자체를 공격하여 역사를 한 단계 더 진보하게 하려는 변호사, 활동가가 많다. '공익·인권'의 개념을 확대하기 위해 세상을 상대로 인정투쟁을 벌이고 있는 훌륭한 '사익·이권' 투쟁가들을 응원한다. 그들에게 역사적으로 많이 빚졌고 지금도 마찬가지다.그들에게감사하며연재를시작해보고자한다.

류하경 변호사 | 프레시안 2023.03.23

은행 위기와 대마불사 자본주의

은행 위기는 자기실현적(self-fulfilling) 속성을 가진다. 은행의 실제적 상황과는 관계없이 예금자들이 은행에 대한 신뢰를 거둬들이면 그 자체로 은행은 파산한다. 은행의 기본적인 비즈니스는 예금을 받아 대출을 하는 일인데, 예금자들이 한꺼번에 인출하면 버텨낼 수 있는 은행이 없다.

 

은행의 위기는 경제 시스템 전반의 위기로 비화되곤 한다. 은행은 돈의 흐름을 중개하는 경제의 혈관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은행이 힘들어지면 대출이 중단되고, 빌려준 자금을 회수하게 된다. 돈이 돌지 않는 금융시장의 경색은 실물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줘 급격한 경기 하강을 유발하게 되는데, 금융이 매개가 된 이런 일련의 악순환이 시스템 리스크이다. 혹여 은행이 파산하기라도 하면 혼란은 배가된다. 2007~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과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과정에서 경험했던 그 난리통이 시스템 리스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개별 은행의 위기가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되는 것을 막는 것은 중앙은행과 관료들의 책무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의 수장이었던 벤 버냉키는 2019<금융위기에 대처하기(Fire Fighting)>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버냉키의 근심으로 가득 차 있다. 개별 금융기관의 위기가 생기면 정책 당국자들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강력한 정책을 써서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데, 2019년 당시에는 위기 때 쓸 수 있는 중앙은행의 정책 재량권이 너무 제한적이라는 것이 버냉키의 생각이었다. 버냉키는 1920년대 대공황을 깊이 연구한 경제학자이다. 자신이 중앙은행 수장으로 있던 2008년의 금융위기가 대공황 이후 가장 참혹한 경기후퇴(great recession)를 불러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근심이 이해되기도 한다.

 

인플레 억제보다 금융안정 선택

그렇지만 버냉키의 걱정은 기우에 그쳤다. 버냉키의 책이 발간되고, 이듬해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국면에서 주요 중앙은행들과 정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파격적인 정책을 썼다. 양적완화를 넘어 특정 경제주체를 정부와 중앙은행이 사실상 지원하는 질적 완화 정책이 시행됐고, 현금의 직접 지원 등 파격적인 보조금 정책도 잇따랐다.

 

역병의 전 세계적 확산이라는 미증유의 위기에 대한 불가피한 대응이기도 했지만, 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어져 온 우리 시대 자본주의의 특징적 한 단면이기도 했다. ‘대마불사혹은 파산 없는 자본주의가 그것이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은 관료와 중앙은행에 큰 트라우마를 남겼다. 부주의한 행동을 한 경제주체가 자신의 행위에 대가를 치르는 건 시장논리로 보면 합당한 일이었지만, 그 파장이 너무도 컸다.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경기 침체였기 때문에 차라리 구제금융을 통해 리먼브러더스를 살리는 선택을 하는 게 옳았다는 판단을 했을 법하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AIG·시티그룹·BOA 등의 대마(大馬)들은 공적 지원을 받고 줄줄이 살아남았다. 앞서 언급한 버냉키의 책은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화들짝 놀란 정책 당국자들이 다른 대마를 살려내는 과정에 대한 생생한 기록에 다름 아니다.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관료들의 매뉴얼은 확고하게 정립돼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공적 재원으로 민간 금융기관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발이 클 수 있어, 외견상으로는 민간에서 자구책을 찾는 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파산 위기에 몰렸던 크레디트스위스(CS)는 자국의 경쟁자 UBS에 인수됐고, JP모건 등 미국의 11개 대형 금융기관들은 파산 위험이 부각되고 있는 퍼스트리퍼블릭뱅크(FRB)에 무담보로 300억달러를 예치하기로 했다. 공멸을 막기 위한 동업자 의식의 발로일 수도 있지만, 100% 민간의 판단으로만 진행되는 과정은 아닌 것 같다. UBS는 크레디트스위스 인수 과정에서 돌출될 수 있는 부실에 대한 스위스 정부의 보증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은 바이든 행정부의 실세 경제 관료인 브레이너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과 회동을 가졌다.

 

연방준비제도도 BTFP(Bank Term Funding Program)라는 은행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민간은행은 유동성이 부족할 경우 기존에 보유한 우량 자산을 담보로 중앙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데, BTFP는 은행이 보유한 담보를 시가가 아닌 액면가로 평가함으로써 쉽게 돈을 빌릴 수 있게 만든 제도이다.

 

위기는 막지만 장기 활력은 저하

대부분의 금융위기는 경제에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함으로써 해결된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로 유동성 공급이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모르는 소리다. 작년 가을 영국에서도 금리가 상승해 주요 연기금들이 치명적 손실을 입을 위기에 내몰리자,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이 양적완화를 실시해 돈을 풀었다. 당시 영란은행은 금리를 공격적으로 올리고 있었고, 보유 중인 국채를 시장에 팔아 유동성을 줄이는 양적긴축 시행을 예고하고 있었지만, 금융 시스템이 흔들리자 과감히 돈을 풀었다. 흡사 과열을 막기 위해 에어컨을 켜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보일러를 가동해 온도를 올려놓는 꼴이었다. 향후에도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억제보다는 금융 안정을 선택할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시스템 리스크가 나타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다만, 이 과정에서 글로벌 경제는 구조조정의 지연과 인플레이션 압력의 지속이라는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다.

 

파산은 어떤 측면에서는 자본주의의 자정 과정이기도 하다. 리스크 관리에 실패한 플레이어에게 책임을 물어 시스템의 기강을 세우고, 비효율적인 경제주체들이 퇴출됨으로써 시스템의 효율은 개선된다. 2008년 이후의 주류 자본주의는 대마의 파산을 막음으로써 위기 발생은 막고 있지만, 장기적인 활력은 떨어지는 길을 걷고 있다. 또한 금융 안정을 위한 유동성 공급 조치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지속시킬 것이다. 금주 발표된 영국의 2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10.4%나 상승했다. 작년 가을 영란은행의 미니 양적완화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강화시키는 데 영향을 준 결과일 수 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경향 : 2023.03.24.

 

 

한국 사람이요? 일본 사람이요?

일본 특파원으로 있던 2019630일의 일이다.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취재를 마치고 도쿄행 열차를 탔다. 일본 신문들을 훑어보다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 1면에 눈길이 딱 멈췄다. 일본 정부가 7월부터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동원(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경제 제재를 발동한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을 규제하고, 화이트리스트(수출 관리 우대국)에서 한국을 제외키로 했다는 것이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G20 의장국으로 자유·공정·무차별적 무역을 외친 일본이 그에 역행하는 조치를 내놓은 것이다.

 

주도면밀하게 준비된 것이었다. 일본 정부는 이미 2개월 전 대응 방침을 정하고 한국이 가장 아파할 조치를 찾았다고 한다. 이후 일본 정부는 한국 때리기와 의도적 냉대를 이어갔다. 확인도 되지 않은 전략물자의 북한 유출설을 흘렸다. ·일 통상당국의 첫 실무회의는 도쿄 경제산업성의 창고 같은 회의실에서 열렸다. 고노 다로 외무상은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의 말을 중간에 끊고 무례하다고 면박을 줬다.

 

4년 전 일을 꺼낸 건 지난주 도쿄 한·일 정상회담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128년 역사의 경양식집에서 윤 대통령이 좋아하는 오므라이스에 맥주·소주를 곁들여 2차까지 한 것을 두고 이례적 오모테나시(극진한 접대)”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런데 이게 호들갑 떨 일인가. 세상에 공짜밥은 없다.

 

이례적 오모테나시의 배경은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말에 나온다. 정부안을 전하자 일본 측이 깜짝 놀라며 학수고대하던 해법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와 피고기업의 사죄와 배상을 뺀 안이니 일본으로선 생큐였던 셈이다.

 

이례적 오모테나시의 맞은편엔 이례적 외교가 있다. 외교는 50을 주고 50을 받는 거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강제동원은 없었다는 일본 입장을 헤아린 일방적인 양보안을 내놓았다. 일본이 나머지 반을 채울 거라는 물컵론도 외교사에 남을 거다. 윤 대통령이 역설한 그랜드바겐’(일괄타결)도 없었다.

 

이러니 일본은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을 거다. 일본 언론은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에게 한·위안부합의, 독도 문제, 후쿠시마 수산물 문제 등을 거론했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실이 뒤늦게 왜곡 보도에 유감을 표했지만 사후약방문이다. 일본의 뒤통수 외교는 수출규제 때 이미 경험하지 않았나. 대비하지 않았다면 무능한 것이다.

 

그래 놓고 방일 성과를 홍보하느라 해괴한 말들을 내놓는다. 대통령실은 일본인 마음을 여는 데 성공했다고 했다. 피해자가 가해자 마음을 열어야 하는 상황으로 뒤집어 놓고 성공이라 자랑하니 어이가 없다”(유승민 전 의원). 여권에선 식민지 콤플렉스를 거론하고, 윤 대통령은 당당하고 자신 있게 대하자고 했다. 지금 일본을 당당하고 자신 있게대하지 않는 이들이 누구인가.

 

강제동원 문제는 피해자의 존엄성 회복의 문제이자, 국가의 역할을 묻는 문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보편 원칙을 뒤집고, 과거사 반성은커녕 한국 대법원 판결에 경제 제재로 앙갚음한 일본에 면죄부를 줬다. 피해자의 권리와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고 얻겠다는 국익이란 뭔가. 최고 통수권자가 지켜야 할 선을 지키지 못했을 때 그 국익조차 제대로 지킬 수 있나. 되레 한국 사회의 역사 왜곡과 갈등을 부추기고, 안보·경제적 리스크를 키울 우려가 있지 않나.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일본에 당당하고 자신 있게 맞서온 국민들에게 역사관을 바꾸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반일을 외치며 정치적 이득을 취하는 세력이 있다고 갈라치기를 하고, 일본 야당과 비교하면서 한국 야당이 부끄럽다고 했다. 지금 누가 누구를 부끄러워해야 하나.

 

일본의 수출규제 발표 나흘 전인 2019627.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는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의 도쿄 본사 앞에서 “73년이 지나도록 일본은 사죄 한마디 없는데 눈물로 보내온 이 한을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라고 호소했다. 윤 대통령의 방일 전후로 양 할머니는 다시 물었다. “한국 사람이요 일본 사람이요?” “어느 나라 대통령이요?” 23분간 자신의 말만 일방적으로 했던 윤 대통령이 답할 차례다.

김진우 정치에디터 경향 : 2023.03.24.

 

예수 장사꾼과 정치 거간꾼

다음은 자신을 목사라 칭하는 전광훈이 묻고 집권당 수석최고위원 김재원이 답한 것이다. “김기현 장로를 밀었는데, 세상에 헌법에 5·18정신을 넣겠다(고 한다). 그렇다고 전라도 표가 나올 줄 아느냐. 전라도는 영원히 10프로(이다).” “그건 불가능하다. 저도 반대다.” “(그렇다면) 전라도에 립서비스하려고 한 것이냐.” “표 얻으려면 조상 묘도 파는 게 정치인 아니냐.” “내가 (국회의원) 200석을 만들어주면 당이 뭐 해줄 거냐.” “최고위에 가서 보고하고 목사님이 원하는 걸 관철시키겠다.”

 

시간이 지났지만 악취가 가시지 않는다. 분노가 솟구치고 서글픔이 밀려든다. 인간에 대한 아주 작은 예의라도 있다면 저런 말을 뱉을 수 있을 것인가. 종교도 정치도 결국 사람을 사람으로 섬기자는 것일진대 저들은 무엇 때문에 목사가 되고 정치인이 되었는가. 5·18민주화운동과 전라도는 저들에게 무엇인가. 하늘도 노할 얘기를 들으면서도 그 앞에서 박수를 치는 사람들은 또 누구인가.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민주화투쟁을 조롱하고, 어렵사리 이뤄낸 사회적 합의를 짓이겼다.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는다고 했던 목사와 신도들의 표를 예매하겠다는 정치 거간꾼은 그렇게 눈을 껌벅이며 웃음을 날렸다. 은밀한 거래가 들통났음에도 두 사람은 무탈하다. 교계(개신교)와 정치권은 흡사 이웃집 낯익은 개를 본 것처럼 조용하다. 작은 일에 나만 분개하는지 몇 번을 자문해봤다. 곱씹을수록 엄청난 일이었고, 그래서 절망한다. , 많은 교회들은 저렇게 권력과 어울리며 찬송가를 부르고 있구나. 정치권에는 표를 얻는다면 조상 묘도 파는 자들이 우글거리고 있구나.

 

허세를 부리며 권력과 야합하는 무리를 한국교회는 지켜보고만 있다. 아마 자신들도 이미 권력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성서를 벗어나 세상과 타협하는 목사들, 그들을 따라 교회 밖에서 고함치는 신도들. 목사들이 신도 숫자를 헤아리며 권력과 흥정하며 거래하고 있다. 예수를 포장하여 제멋대로 팔아먹는 자, 예수의 탈을 쓰고 거짓말로 선동하는 자는 예수 장사꾼이다.

 

이대로 가면 신도들이 자신의 성향에 맞는 목사와 예배당을 찾아 이리저리 몰려다닐 것이다. 보수하나님, 진보하나님을 모셔놓고 구호를 외칠 것이다. 목사의 설교는 극히 세속적이라서 가슴에 닿기 전에 머리에서 부서질 것이다. “시원하고만. 하고 싶은 말을 목사가 대신해주네.”

 

으뜸 가르침이기에 종교가 오염되면 세상일에 분노할 수가 없다. 의분(義憤)이 사라진 자리에는 체념이 자라난다. 예수는 성전에서 이것저것을 사고파는 장사꾼들을 쫓아냈다. 환전상들의 책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뒤엎었다. 사랑의 예수일진대 단순히 장사꾼만을 겨냥해서 성전 시위를 벌였을 리가 없다. 그 뒤에 있는 불의한 큰손들을 향한 호통이었다. 예수가 꾸짖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마가복음 11: 17)

 

한국교회도 권력, , 집단이기라는 귀신을 모셔놓고 아멘을 외치고 있다. 그러니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설 공간이 없다. 김재원, 전광훈 같은 사람들의 망언에 함께 분노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들을 비호하는 배후가 막강하기 때문이다.

 

권력에 저항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예수는 잘못된 권력을 비판하다가 정치범으로 몰렸다. 정치를 꾸짖으니 왕이 미워했고, 사제와 로마의 앞잡이들이 증오했다. 그러므로 십자가 처형을 당했고 다시 부활했다. 십자가는 의로운 저항과 희생의 상징이다. 하지만 요즘 교회는 십자가보다 부활을 강조한다. ‘이적의 예수만을 부각시킨다. 저항은 두렵고 희생은 힘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십자가 없는그리스도를 섬기고 있다. 부활절이 돌아오고 있다. 오늘 잘 살아있음이 내일의 부활이다. 한국교회는 권력을 상대로 한 암표장사를 걷어치우고 부활하라. 죽어서 부활하지 말고 살아 있을 때 부활하라.

 

부활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 못지않게, 아니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교회가 현세에서 부활을 사는것이다. ·권력이 아니라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 가난한 사람이 세상의 핵심이며 교회에서 존중된다는 것, 결국 인류 역사는 선이 악을 이긴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교회가 현실에서 실천하고 보여주어야 한다.”(김근수 <슬픈 예수>)

김택근 시인·작가 경향 : 2023.03.25.

 

 

일본이 언제나 우리에게 '재앙'인 이유

"일본, 도덕성을 매개로 한 공동체라는 '보편성' 확보에 실패했다"

한미일 군사동맹이 성큼 다가오는 것 같다. 군사동맹이라는 분명한 목표가 아니라면 강제징용배상을 비롯한 과거사 문제가 이렇게 졸속으로 해결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필자에게는 한일정상의 만남이 군사동맹을 위한 사전포석으로 보였다. 사안의 심각성이 커지자 서울대 민주화교수협의회가 윤석열 정부를 성토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민교협은 성명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한일관계는 장기적으로 더 악화되고 불안정해질 것이며, 한미일 군사협력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한미동맹이 미일동맹의 하위동맹으로 편입되어 대한민국의 자주성이 크게 훼손될 것이다. 이것은 이미 글로벌 중견국가로 도약한 대한민국의 선택지가 될 수 없다."(관련 기사 : 서울대 교수들 "굴욕 강제동원 해법, 최소 존중도 없다)

 

일본의 맹목적인 미국 추종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아베를 위시한 일본의 우익은 미국에 앞서 인도태평양전략을 구상했다. 미국은 원폭을 차치하고도 단 이틀간의 공습만으로 민간인 10만명을 사망케 했다. 반면에 중국은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수천만의 희생자를 낳았다. 그런 피해자 중국을 향해 미국이 중국 봉쇄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도 전에 미리 인도태평양전략을 설계한 것이다. 혹시 일본은 뼛속부터 전쟁국가였던 것은 아닐까? 아시아지역을 대재앙으로 몰아넣었던 일본의 전쟁광기가 외부에서 이식된 민주주의의 외피 속에서 잠시 감추어져 왔던 것은 아닐까? 만약에 그 광기가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외부로 걸어 나오게 된다면 동아시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일본에는 언제부터 전쟁유전자로서의 '호전성'이 각인된 것일까? 한일 군사동맹이 가시화되는 지금이야말로 일본의 생래적 야만성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할 때가 아닐까? 도대체 일본은 왜 한국에 대해 오만하고 중국에 대해 적대적일까?

 

근대 일본의 호전성의 배경에는 한 사람이 있다. 일본의 1만원권 화폐의 주인공인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다. 그는 개화기에 <문명론의 개략>이라는 책을 써서 일약 일본의 정신적 지주로 인정받게 된 인물이다. 문제는 그의 문명론이 당시 유럽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였던 유럽중심주의를 그대로 차용했다는 데에 있었다. 김상준 경희대 교수의 저서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 (김상준 지음, 아카넷 펴냄)에 따르면 후쿠자와의 책은 19세기 영국의 역사학자 헨리 버클의 <영국문명사>나 프랑스의 역사학자 프랑수아 기조의 <유럽문명사>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유럽만이 제대로 된 문명이고 유럽의 외부는 유럽의 계도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우월한 서구와 열등한 비서구의 이항대립이 이들의 논리를 관통하는 시각이었다. 유럽중심적 관점을 일본에 차입하여 후쿠자와는 자신의 논리를 구축했다. 그는 일본에 서구적 개인관, 국가관을 전파한 인물로 추앙받는다. 일본 학계에서 천황으로 통했던 마루야마 마사오가 숭배하는 후쿠자와의 본 모습은 어떠했을까?

 

후쿠자와가 쓴 글들을 보자. (김상준의 상기 책에서 인용) "대만 야만인은 금수와 같은 자로 사람 두서넛 잡아먹는 것은 보통이고" "조선인은 미개한 백성이다. 극히 완고하고 어리석으며" "지나 인민의 겁약하고 비굴함은 실로 터무니없고 그 유례가 없다" "지나, 조선 이 두나라 그 고풍구습에 연연하는 마음은 백천년 옛날과 다르지 않으며 도덕마저 땅바닥에 떨어지고 잔혹·불염치는 극에 달해도 여전히 오만하여 자성의 마음이 없는 자와 같다". 그의 말은 <외교론>에서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다. "세계 각국이 서로 대치하는 것은 금수가 서로 잡아먹으려는 기세로, 잡아먹는 자는 문명의 국민이고 먹히는 자는 미개한 나라이므로 우리 일본국은 그 잡아먹는 자의 대열에 서서 문명국민과 함께 좋은 먹잇감을 찾자."

 

국부로 추앙받는 사상가의 이웃 국가를 향한 시선은 저열하기 짝이 없다. 그런 사람이 설파한 문명개화가 제대로 된 '문명'일 리가 없다. 다시 김상준의 설명이다. "(후쿠자와-필자주)는 자신이 본 '서구근대'의 본질이 힘에 의한 지배에 있음을 파악하고 있었고, 이러한 힘에 의한 지배를 '문명화''개화'라고 부르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후쿠자와였기 때문에 대만, 조선, 중국 침공 등 연이은 일본의 무력 팽창 행위를 항상 아주 적극적으로 지지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를 앞장 서서 거리낌 없이 부추기고 선동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조선의 선비들이 서구와 맹목적 서구화를 추구하던 일본을 인의(人義)를 모르는 금수(禽獸)라칭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국제관계에서의 평화론을 '몽상'이라 치부한다. 평화론을 몽상이라 외면하면서 힘에 의한 해결을 '현실주의'라 생각한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들의 '현실주의''현실적'이지 않다. 아니 그런 '현실주의'는 특정 상황에서의 '현실주의'에 지나지 않았다. 근대 유럽이 맞닥뜨린 상황이 그러했다.

 

김상준에 따르면 200년간의 평화상태가 지속된 17~18세기 동아시아와 달리 유럽은 폭력으로 점철된 특이한 경로를 통과했다. 16세기 초 종교개혁 이후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까지 유럽은 근 300년간 전쟁 상태였다. 종교개혁이 촉발한 유럽의 내전은 30년전쟁에서 절정에 이른다. 30년전쟁을 정리한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에도 스페인 왕위 계승권 전쟁, 스웨덴과 러시아 사이의 북방전쟁, 오스트리아왕위계승전쟁, 7년 전쟁이라 불리는 제2차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 전쟁 등 유럽은 수백년간 아비규환 상태였다. 전쟁 참여자만이 아닌 일반인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죽이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지상에 펼쳐진 지옥이었다.

 

김상준은 근대 유럽이 경험한 상호적대의 경험을 제국주의적 팽창의 핵심 동력원으로 생각한다. 김상준의 말이다. "저는 유럽 근대가 이렇듯 구교와 신교 간의 깊은 불신과 증오의 내전 상태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이후 세계사에 지울 수 없는 깊은 흔적을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유럽 전체를 휩쓸고 지나간 내전은 나와 우리 안이라는 선 밖의 인간에 대한 불신을 깊게 만들었다. 내부의 전쟁이 일단락되면서 유럽은 제국주의적 팽창을 향해 폭주하기 시작한다. 인간이 아닌 비인간이었던 '선 밖의 그들'은 다른 종교신자에서 토착 원주민으로 바뀌어 갔다. 유럽인들의 호전적 심성은 이제 피식민지 민중들을 향해 제한없이 투사되었다. 이것이 유럽이 자랑하는 근대계몽의 확장이었다. 외부를 적대하면서 자본주의가 격화시킨 내부의 갈등을 간신히 억제할 수 있게 됐다.

 

유럽의 '타자를 향한 적대감'은 그대로 일본에 차입되었다. 후쿠자와가 숭배한 유럽의 문명개화의 이면에는 이런 스토리가 존재했다. 일본 특유의 칼의 문화와 접촉하면서 호전성은 더욱 강화되었다. 유럽의 제국주의적 심성이 일본에 그토록 철저히 이식된 데에는 외부에 호응하는 내부적 요인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그것을 '유교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기독교 신앙이 신자 개개인의 도덕적 반성을 촉발시키는 근원적 힘이었듯이 유교는 유교적 공동체 내부에서 도덕적 향상심을 불러일으키는 동력이었다. 기독교 신앙의 시작과 끝은 개인으로 수렴된다. 이 사실을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책 <죽음에 이르는 병>(쇠렌 키르케고르 지음 세창출판사 펴냄)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기독교는 모든 개인이, 남자든 여자든, 하녀든 장관이든, 상인이든 이발사든, 학생이든 혹은 그 밖의 어떤 사람이든 모든 사람은 각자가 지금 하나님 앞에 현존하고 있다고 가르친다."

 

기독교에는 개인, 가족, 공동체 그리고 국가를 '도덕성'으로 연결하는 관점이 부재한다. 연결이 끊어진 상태를 의식적으로 이어붙이려고 철학자 헤겔은 인륜성이라는 개념을 고안해 낸다. 그는 개인을 넘어서는 공동체와 국가를 연결하는 새로운 차원의 도덕성을 숙고했다. 반면에 동아시아 유교의 근본은 천하가 모두의 것이라는 천하위공(天下爲公)에 있었다. 유교는 개인의 도덕적 정체성을 공동체, 국가, 천하로 연결지으려 했다. 유교에서 개인은 원자적 개인이 아니다. 유교는 조상숭배를 통해 원초적 도덕감을 고양하고 이 도덕감에 의거해 도덕성의 공시적 확장을 도모한다. 이 공시적 확장이 천하인 것이다. 모두가 도덕군자가 되지는 못할지라도 이런 도덕성기획에 따라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도덕성에서 발원하는 염치는 가지게 되었다. 일본이 한국과 갈라지는 결정적 지점이 바로 유교적 심성의 유무이다. 일본의 한국철학 연구자 오구라 기조는 자신의 책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오구라 기조 지음 모시는 사람들 펴냄)에서 "한국은 '도덕지향성 국가'이다"라고 선언한다. 도덕지향적 삶이 꼭 도덕성을 담보하는 삶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지향성의 단계를 통과해야만 도덕적 향상도 가능해지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도덕성을 매개로 개인의 내면에서 출발하여 공동체, 국가, 천하로 이어지는 보편성의 지반을 확보한 한국과 달리 일본은 그 '보편성'의 확보에 실패했다. 그러하기에 일본은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한 반성을 버거워한다. 반성이 성립하려면 반성 이전에 반성의 주체인 확고한 자아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보편성의 지반이 마련되지 않았기에 일본인에게는 그들만의 정체성이 없다.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이 <윤리 21>(가라타니 고진 지음, 도서출판b 펴냄)에서 지적했듯이 일본인은 마을공동체 '무라'를 넘어서는 보편성을 내면에 확보하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간의 상호 감시만이 이들의 도덕적 행위를 산출하는 가냘픈 지지대다. 이 상황에서 내가 존중하지 않는 대상으로부터의 감시와 견제를 무시하는 것은 나의 권리가 된다. 한국이 요구하는 '진심 어린 사과'를 수행할 도덕적 정체성을 담지한 주체가 부재하기에 그들의 '사과'는 한국인에게 늘 공허하게 들린다.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의 재가동을 계기로 한일은 군사동맹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이 협력은 위험한 협력이다. 협력의 상대가 도덕적 고양을 국가적 차원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일본이기에 더욱 그렇다. 어지러운 세상이다. 이런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서 한 가지 사실만은 기억해두자. 일본은 언제나 우리에게 '재앙'이었다는 것을.

김창훈 칼럼니스트 | 프레시안 2023.03.25.

 

 

평화 중재자로 거듭나려는 중국, 미국의 선택은?

221일 중국공공외교협회와 베이징대가 공동 주최한 란팅’(블루룸) 포럼에 화상으로 참여했다. 란팅은 중국 외교부 기자실 회의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기조연설자로 나선 친강 외교부장은 지난해 4월 보아오포럼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제안했던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GSI) 개념 문건을 발표하면서 여섯가지 원칙과 20개의 구체적인 협력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지에스아이 구상이 세계 안보 문제에 관한 중국적 대안이자 세계 갈등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청사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건에 담긴 여섯가지 원칙은 공동, 포괄, 협력, 지속가능한 안보 비전을 견지하고, 각국의 주권과 영토 완전성을 존중하는 동시에, 유엔 헌장의 목적과 원칙을 준수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자국의 안보를 위해 타국의 안보를 침해하지 않으며, 대화와 협의로 분쟁을 해결하고, 전통·비전통 영역에서 안보를 지켜야 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세부 협력 방안으로는 강대국 간 조율과 긍정적 상호작용 촉진, ‘핵전쟁은 이길 수 없으며 해서도 안 된다는 공동 인식의 유지, 우크라이나 위기와 같은 지역적 문제의 정치적 해결, 아세안(ASEAN) 중심의 안보협력 지원 등이 제시됐다.

 

낯익지 않은가. 흡사 미국 민주당 외교정책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자유주의 노선을 연상케 할 정도다. 조 바이든 민주당 행정부가 중국 견제를 위해 공세적 현실주의 행보에 나서고 있는 지금, 베이징은 오히려 자유주의 담론을 정책으로 내걸어 차별화를 시도하는 셈이다. 말 그대로 역사의 아이러니다.

 

필자는 두가지 문제점을 제기했다. 하나는 보편적 국제규범과 국제법에 기초한 구상을 중국 특색으로 포장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점, 다른 하나는 실행 가능성의 한계였다. 과거 시진핑 주석이 내놓았던 아시아 안보구상등 여러 제안 가운데 제대로 실행된 것은 없었던 만큼, 이번 제안이 실행 가능하겠느냐는 물음이었다. 중국 쪽 인사들은 전자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후자의 경우 곧 가시적 조치가 있을 것이니 지켜보라고 말했다.

 

310가시적 조치가 무엇인지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 정부 중재로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국가안보 책임자가 베이징에서 회동한 뒤 양국이 외교관계를 복원하고 2개월 안에 상대국에 대사관을 다시 열기로 합의했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2016년 사우디 정부의 시아파 성직자 사형 집행을 계기로 국교가 단절된 지 7년 만이다.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와 시아파의 종주국인 이란은 지역 패권을 두고 적대적 경합을 벌여왔고, 예멘, 시리아 등지에서 대리전쟁을 치러왔다. 이번 타결이 중동 평화에 큰 호재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 이후 중동 평화의 중재자를 자처해왔던 미국을 곤혹스럽게 만든 한 수였다.

 

베이징의 이런 행보는 중동에 그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전쟁 1주년이었던 224일 중국은 현 사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12가지 요구가 담긴 평화안을 공개했다. 각국의 주권 존중, 즉각적 휴전과 종전 촉구 및 평화협상 개시, 인도주의적 위기 해결, 일방적 제재 중단, 전후 재건 등을 포함한 이 평화안은 중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도 평화의 중재자 이미지를 확보하겠다는 야심이 깔렸다. 이를 위해 시진핑 주석은 320일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었고, 우크라이나 쪽과도 소통을 지속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영토 반환, 전범 처리, 전후 복구와 전쟁 배상 문제에 관한 충분한 논의 없이 휴전이 성사되기는 어렵다. 사실 이번 시진핑-푸틴 정상회담도 평화 중재보다는 양국의 전략적 밀착으로 귀결됐다. 그렇지만 유엔이 무기력에 빠지고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중재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베이징이 먼저 발 빠르게 중재자를 자임하고 나섰다. 비록 휴전과 종전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지만, 중국 지에스아이 외교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하겠다.

 

흔히 중국 외교를 전랑 외교라고 부른다. 거칠고 공격적인 외교 행태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가 인도·태평양 전략과 가치 동맹을 내걸고 진영 구축을 시도하는 최근의 빈틈을 노려, 베이징은 오히려 세계 평화와 안정을 위한 중재 외교를 적극적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세계는 미국의 동맹과 우방만으로 구성돼 있지 않고, 분쟁과 갈등은 주로 미국의 영향권 밖에서 발생하고 있다. 중국의 지에스아이 외교 행보가 미국의 외교적 지도력에 커다란 도전이 될 수 있는 이유다. 미국도 이제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새로운 외교적 발상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문정인 | 연세대 명예교수 한겨레 2023.03.26.

 

 

윤 대통령은 사람 대접하기가 그리 어려운가

20028,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장 이금주 할머니 댁에서 김혜옥 할머니를 만났다. 그날 들은 말이 <한겨레21>나는 걸었다, 그들은 울었다’(421)라는 제목의 기사로 남아 있다. “할머니는 가슴에 새겨둔 한을 토하듯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열세살 때였어. 어느 날 교장이 학생들을 모아놓고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여학교도 갈 수 있다고 하더라고. 내가 제일 먼저 손을 들었지. 부모님은 반대하셨지만, 일본인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계셨던데다 내가 우기니까 어쩌지 못하셨어. 부모님은 나를 전송하면서 자꾸 우셨지만 그땐 그 이유를 몰랐지.”

 

열세살 소녀는 나고야의 미쓰비시중공업 소속 공장에서 비행기 부품에 페인트칠을 하며 1년여를 보냈다. 늘 배가 고팠다. 한토진(반도인)이란 멸시를 받는 것도 서러웠다. 가슴 부풀게 했던 여학교는 고사하고 월급 한푼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해방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후유증으로 결핵을 앓았다. 근로정신대를 일본군 위안부로 보는 오해 때문에 할머니가 겪은 숱한 고통을 나는 차마 기사에 다 담지 못했다. 그날 나는 가슴 한구석에 차오르는 부끄러움 때문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57년이나 지난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내는 게 무슨 소용이 있냐는 생각이 뇌리 한구석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팔팔 살아 있는 현재를 나는 왜 아득한 과거라고 생각했던가라고 나는 반성했다.

 

강제동원 피해 배상 소송은 1992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시작됐다. 소송에 참여한 김혜옥 할머니는 끝내 명예회복을 못 하고 2009년 돌아가셨다. 이금주 할머니는 2021년 돌아가셨다. 그분들은 왜 그토록 오랜 세월을 손해배상 소송에 매달렸던가? 나는 그날 이렇게 들었다. “우리도 사람이잖아! 그들이 잘못했다는 걸 인정받고, 사과받고 싶어.”

 

정부가 강제동원 기업에 배상을 명령한 대법원 판결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어버리고, 한국 기업이 참여하는 3에 의한 배상 방침을 최근 밝혔다. 이는 피해자들이 단지 돈 때문에 싸워왔다고 못박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김혜옥 할머니와 같은 공장에서 일한 양금덕 할머니는 동냥해서 주는 것 같은 돈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사람을 사람대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사람이라면 그 말 뜻을 이해할 것이다.

 

여기저기서 말리고 우려하는 이가 많았음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결정을 밀어붙였다고 한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생각하면 절망적이다. 돌이켜 보면 윤 대통령의 언행에선 인간에게서 존엄성을 제거하고, 그저 시장 가격에 쓸 수 있는 노동력으로 보는 관점이 진작부터 묻어났다.

 

20217월 정치 참여를 선언한 그는 <매일경제>와 한 인터뷰에서 스타트업 청년들의 바람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 상황에 따라 간혹 그런 선택을 선호할 사람이 있을지라도, 제도적으로 그걸 바라는 노동자는 없다. 그것은 노동자들에게 타이밍(1970~80년대에 많이 팔린 졸음예방약)을 먹여가며 일을 시키던 꼰대고용주들의 향수일 뿐이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라고 하기에는 노동시간이 너무 길고, 장시간 무리한 노동 속에 산업재해가 말도 못하게 많이 일어나는 나라다. ‘52시간 상한도 아직 자리를 잡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주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게 법을 고치겠다고 했다. 반발이 거세자 ‘60시간 이상은 무리라고 말을 바꾸고, 여론의 화살을 고용노동부로 돌리려 하고 있다. 20207월 타이밍 정이 27년 만에 재출시됐는데, 대통령은 그 약을 팔아주고 싶은 것일까.

 

분위기가 뜨면 취하는 사람도 나온다.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 최근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허용하는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전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주장했던 것인데, 윤 대통령 앞에서 탬버린을 친 것이라고 본다. 그는 이 법이 실현되면 싱가포르와 같이 월 100만원 수준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사용이 가능해진다고 했다. 싱가포르에서 하고 있다고 차별받는 신분의 창출이 정당화될 순 없다.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려 한다. 공동발의자로 서명했던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이정문 의원은 철회했다. ‘실무상 혼선이었다는데, 아닌 것 같다.

정남구 | 논설위원 한겨레 2023.03.26.

 

조금 알면 더 용감한 표본윤석열

무식하면 용감하단 말은 괜히 나오지 않았다. 살면서 누구나 그런 이를 마주쳤을 터다. 그런데 조금 알면 더 용감하다. 줄줄이 나타난 무리를 보라.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에서 한일합방은 누구의 잘못이냐하는, 예스냐 노냐 하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자면서 우리가 힘이 없어서 당한 것이란다. 그는 문헌학 박사다. 그 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던 정진석은 제발 좀 식민지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잔다. 그는 기자 출신이다. 중앙일보 두 원로의 기억 속 일제칼럼은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와 박정희 비서실장 김정렴을 내세운 뒤 역사를 알지 못하면 일생 어린이로 남는단다. 정말이지 참 용감하다. 일제에 강제동원 당한 국민의 절실한 요구를 받아 협상해야 할 상황에서 우리 잘못임을 고백한다? 그래놓고 통 크다며 에헴 하는 작태들이야말로 식민지 콤플렉스아닌가.

 

그 표본은 아무래도 대통령 윤석열이다. 도무지 개전의 정이 보이지 않는다. 31절 기념식에서 식민사관에 찌든 사고를 스스로 폭로하며 자부심 가득했다. 비판 여론도 쇠귀에 경 읽기다. 우리의 최대 독립운동 기념일에 허튼 소리를 한 뒤 일본 총리 기시다와 만난다고 으스댔다. 기시다와 최소한 건들건들 논의하지 않기를 바라며 지난 칼럼에서 그가 회담에 진지하기를 촉구했다(윤석열과 기시다의 저녁밥).

 

하지만 우려한 대로다. 도쿄까지 날아가선 폭탄주 마시고 빈손으로 왔다. 31절 망발과 함께 내놓은 강제동원 면죄부에 여론이 악화되자 기시다와 만나면 마치 상응하는 조처가 있으리라 내비쳤다. 하지만 기시다는 윤석열처럼 순진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해 인내하며 쓰고 있다. 외교에서 순진은 멍청이라는 뜻임을 일제의 침략사에서 뼈저린 교훈으로 삼아야 했다. 정확히 말하면 빈손도 아니다. 다 내주고도 기시다에게 되레 종군위안부 합의 이행이나 방사능수산물 수입 따위의 을 맞았다. 일본 언론은 독도까지 언급됐다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윤석열은 되레 당당하다. 심지어 국민에게 훈계한다. 언구럭이 이명박, 박근혜 뺨칠 정도다. 귀국한 뒤 국무회의에서 일본은 이미 수십 차례 사과했다고 되뇌었다. 그 인식의 문제점은 지난 칼럼에서 썼기에 줄인다. 그는 곧이어 중국을 들먹였다. 노골적인 편향외교를 하면서 중국 사례를 든 것도 뜬금없거니와 맥락도 틀렸다.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는 1972년 일본과 국교 정상화 공동성명에서 중일 양국 인민의 우호를 위해 전쟁 배상 요구를 포기했다면서 중국인 30여만 명이 희생된 난징대학살을 잊어서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 여러분, 이제는 일본을 당당하고 자신있게 대해야한다고 부르댔다. 기막히다. 국민 대다수를 어리보기로 본 발상 아닌가. 아니, 우리 민중이 언제 일본을 당당하게 대하지 않았단 말인가. 굴욕외교 비판을 듣고서도 도쿄에 날아가 빈손으로 온 자신에게 속닥일 말 아닌가.

 

중국은 난징학살을 겪었지만 35년에 걸친 식민지 수탈을 당하지 않았다. 난징학살은 일제의 강점 이전에 동학민중과 의병 수십만 명 대학살과 견줘야 옳다. 더구나 중국은 일제에 부닐던 자들을 말끔히 청산했다. 한국은 어떤가. 친일세력이 견고한 기득권층을 이루며 자자손손 호의호식하고 있다. 일제의 국토 강점은 민족 분단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남북대화는 사실상 포기한 채 평양을 적으로 단정 짓고 일본과 군사협력에 기 쓰고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격동하는 국제정치판에서 한낱 장기판의 졸이 된 형세다. 겨레의 앞날에 두꺼운 먹장구름이다.

 

조금 알아 더 용감한 대통령 문제는 굴욕 외교와 안보 불안에 그치지 않는다. 노동시간 논란에서 보듯이 이른바 노동개혁엔 철학이 없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타파를 읽고 정규직 노동조합 탄압을 행한다. 민생 우선을 읽고 대기업 우선을 행한다. 경제를 노상 내세우지만 대중국수출이 크게 줄며 무역적자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쪼끔 아는 지식으로 국민을 훈계하는 저 용감무쌍함에 시름만 깊어가도 과연 괜찮을까.

손석춘 칼럼니스트철학자 미디어오늘 2023.03.27

 

 

외교와 결단, 그리고 민주적 통제

대통령실은 이번 대일 외교를 대통령의 결단에 따른 것이라고 홍보한다. 지지율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국익과 미래를 위해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고뇌와 인간적 면모를 강조하는 것도 좋지만 지도자의 결단이 사회적 합의를 초월할 수는 없다. 대일 외교처럼 민감한 사안은 국내적 합의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여야 한다.

 

특히 이번 사안은 국가 간 협약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느냐라는 인권 논의의 핵심 쟁점을 다루는 것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대법원이 인정한 청구권 당사자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한 대통령의 결단은 피해자의 자유를 배반하게 된다. 과거와 달리 결단은 민주적 외교의 범주가 아니다. 민주주의 체제라고 해서 비상적 통치행위가 없을 수 없지만, 강제동원 문제처럼 오랫동안 쟁점이 된 사안에 비상적 상황을 들이대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포퓰리즘 정치나 권위주의 체제에서나 지도자의 결단이 추앙된다.

 

결단의 외교는 민주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합리적이지도 않다. 국내 여론을 이유로 외교정책 레벨에서 상대방을 설득하는 게임의 논리는 외교가의 상식이다. 결단을 강조하게 되면 그런 국내 여론으로 상대를 압박할 명분이 사라진다. 정부가 주장하는 미래를 위해서도 합리적이지 않다. 한번 결단을 강조하게 되면 앞으로 모든 외교에서 대통령은 자신의 결단과 싸워야 한다. 중견국 한국의 외교는 운신의 폭이 더 좁아지게 되었다. 오늘의 긴장된 한·일관계를 만든 이명박 외교를 돌아보자. 2012년 친일 외교 비판이 거세지자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느닷없이 독도를 방문했다. 그는 조용한 외교와 실효적 지배론을 통해 영토권 문제를 지켜온 독도를 분쟁 지역으로 만들어 놓는 빌미를 제공한 장본인이다. 대통령의 지그재그식 독단에 대해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반론이 들끓었다. 그런 구태는 영웅주의 서사이긴 하나 백번 천번 양보해도 합리적 외교의 사례는 아니기 때문이다.

 

합리성의 견지에서 보면 찻잔 채우기론은 또 다른 논란의 대상이다. 우리가 물을 반 잔 채웠으니 일본이 반 잔 채울 거라는 상호주의는 한·일관계에 대한 일본의 시각이 훨씬 근본주의적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순진한 기대이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고 소재·부품·장비 사업에 대한 제재를 가한 것은 단순한 힘겨루기가 아니다. 그 불신은 위안부 합의나 징용 배상과 같은 역사 문제도 아니고 골대 옮기기와 같은 협상의 기싸움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라는 데 본질적 난점이 있다.

 

201812월 발생한 초계기 사건은 한국이 유엔 대북 제재를 제대로 집행하지 않는 비법적 국가라는 일본의 의심과 한국의 대북 협력 정책이 충돌한 대표적 안보 갈등이었다. 북한 선박 구조를 둘러싼 광개토함과 일본 초계기 간의 저공비행론과 레이저 조준설 간의 갈등을 한국이 해프닝으로 간주한 것과는 달리 일본은 전쟁 가능한 한·일관계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사건이라고 규정지었다. 그에 따른 보복 조치가 바로 20197월의 소··장 제재였던 것이다. 일본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이나 동해 탈북 선원 북송사건 등으로 한국의 안보 수장들이 재판을 받고 있는 사건의 연장선에서 당시 초계기 사건의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추론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명백한 내정간섭이요 한국 군부에 대한 굴욕의 강요이다. 일본으로서는 전통적이고 정상적인(?) ·일관계 복귀를 위한 필수 과정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로서는 군부의 자존심과 국체가 걸려 있는 아찔한 비탈길 싸움이 된다.

 

일본이 외교적으로 완승했지만, 한국 친구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표정 관리가 필요하다고 일본 친구들은 말한다. 우리 대통령께서는 미래를 향한 외교에서 이기고 지고의 논법을 갖다 댈 일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아직은 받지 못하고, 주고만 온 협상인 인상이 강해 국내의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어음은 아니 입장권은 받았다. 4월 미국 국빈 방문, 5월 히로시마 G7 정상회의 참석 등 굵직한 외교 일정이 확정되었다. 여기서 채워질 나머지 반 잔의 내용에 관심이 가는 것은 그래서이다. 하지만 일본이나 미국이나 경제 사정을 보면 제 코가 석자이다. 북한발 안보 위기에 일본이나 미국이나 역시 뾰족한 수는 없는 듯하다. 뭔 선물이 있을지 두고 볼 일이지만 자칫 사과는 더 큰 굴욕으로 이어진다는 강대국 외교의 본질을 확인한 3월로 기록될까 걱정이 앞선다. 외교·국방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사회적 합의라는 대의에 빈말을 일삼아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떠올릴 때다.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경향 : 2023.03.28.

 

 

철인왕 윤석열의 위험한 순교자주의

굴욕적 한·일 정상회담으로 여론이 싸늘하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일관계 개선은 여론과 관계없이 옳은 일이고 꼭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므로 여론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일본인의 마음을 여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자랑한다. 이완용이 나라를 바치고 일본인의 마음을 여는 데 성공했다고 자화자찬하는 꼴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이미 지지율이 10%로 떨어져도 한·일관계를 개선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뉴스를 보자 떠오른 것이 2007년 마치 순교자처럼 노무현 정부라는 친북좌파에 의해 존폐의 위기에 처해 있는 나라를 구하기 위한 구국의 일념에서 대선에 출마한다는 박근혜(당시 의원)의 선언을 듣고 썼던 글이다. “순교자주의란 여론 등과 상관없이 자신이 옳은 일을 위해 순교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서 종교인에게는 중요한 덕목일지 모른다. 그러나 정치인의 경우 민주화투쟁 등에 있어서 필요할 때도 있지만 민심에 반하고 틀린 것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해 무데뽀로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성향이다.”

 

그렇다. 윤 대통령이 강제징용 문제 등에 대해 굴욕적 양보를 했다는 사실도 문제지만, 이번 회담이 걱정스러운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첫째, 그가 굴욕적 양보를 여론에 반하면서 순교자 자세로 조국과 민족을 위해 내린 구국의 결단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그만두고 정치를 시작할 때부터 지지율이 1%까지 떨어지더라도 할 건 하겠다면서 언급했던 게 한·일관계의 정상화라는 대통령실 측근의 말은 소름이 끼친다.

 

복잡한 한·일관계와 국제정치 문제를 체계적으로 공부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고 평생 사건 조사·기소 등 검찰업무에 전념해온 그가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정치를 시작하며 지지율이 떨어지더라도 한·일관계를 정상화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이를 보면 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해 일본이 우리를 근대화시켜줘서 고맙다고 일본 총리에게 무릎 꿇고 큰절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 독도를 양보하겠다고 각서를 쓰지 않은 것이 그나마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또 다른 우려는 윤 대통령이 비판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순교자주의에 빠져 굴욕적 양보를 한 이유이다. 이는 미국이 이를 바라고 있고 정부의 표현을 빌리자면 북핵 등 최근 엄중한 한반도 및 지역, 국제정세 속에서살아남기 위해 미·일과의 동맹을 본격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번 양보는 미·일동맹 대 중국의 경쟁, 북핵 위기 속에서 우리는 확실하게 미·일 편에 서겠다는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윤 대통령이 대선 토론회에서 우리 땅에 유사시에 (자위대가) 들어올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한 것은 단순히 말실수가 아니라 진심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생존이 걸린 사활의 문제로 미·일동맹에 전력투구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는 정치권과 학계, 나아가 시민사회에서 많은 논쟁을 통해 합의를 만들어내야 하는 주제이지, 검찰 출신의 초보정치인, 그것도 24만표 차이로밖에 이기지 못한 대통령이 자기도취적 순교자주의에 의해 무데뽀로 밀어붙일 문제가 아니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사형시킨 민중들의 지배체제인 민주주의를 우매한 다수에 의한 우민정치라고 비판하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아는 철학자가 지배하는 철인왕체제를 옹호했다. 윤 대통령 역시 과거에 연연하는 우매한 다수 민중과 달리 자신은 무엇이 국민들을 위한 것이며 무엇이 국익인지를 아는 철인왕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윤 대통령 임기 초기 가장 위험한 대통령은 민심을 무시하면서도 국민을 위한다는 소명의식에 충만해 엉뚱한 방향으로 국민을 이끄는 대통령이며 지금같이 할 바엔 차라리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 그나마 국민을 위하는 길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문제는 대통령을 제어해야 할 정치권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당은 내시정당에 불과하고, 더불어민주당은 다수 의석에도 불구하고 당대표의 사법리스크로 별로 힘이 실리지 않는다.

 

여론 역시 지금은 치욕적인 양보로 들끓고 있지만 조금 있으면 기소, 재판 등 이재명 사법드라마에 묻히고 말 가능성이 크다. 주저하는 측근들에게 윤 대통령이 정치 9처럼 했다는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어차피 할 것 아니냐. 그러면 미리 매를 맞는 게 낫지,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할 것인가?” 답답한 일이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경향 : 2023.03.28.

 

 

왜 과로사한 대통령은 없을까?

대통령의 일상은 고되다. 30분 간격으로 일정이 잡히고, 수시로 국가 존망이 걸리는 중요한 문제를 다뤄야 한다. 큰 사고라도 터지면 새벽에도 일어나야 하고 순간순간 말 하나 행동 하나 긴장의 연속이다. 하루 24시간이 근무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주 52시간(6일 기준 하루 8시간40) 이상 근무를 제한하는 현행 근로기준법이 가소로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쉬자며 법정근로시간 연장을 꺼내 든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그런데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왜 과로사한 대통령은 없을까? 이승만 90, 윤보선 92, 박정희 61, 최규하 87, 전두환 90, 노태우 88, 김영삼 87, 김대중 85, 노무현 62. 퇴임 대통령의 사망 나이다. 이명박(82), 박근혜(71), 문재인(70) 대통령은 현재까지 살아 있다. 한 사람 빼고 재임 중 숨진 대통령은 없다. 그 한 사람도 금요일 저녁 738분 연회 자리에서 사망했으니, 법적 다툼의 여지가 있을 수 있으나, 근로기준법상 근무연관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적어도 과로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노동자는 다르다. 지난해 국회 자료에 따르면, 2017~2021년 과로사한 노동자는 2503명이다. 해마다 500명 안팎이 과로로 목숨을 잃는다. 물론 이는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거나 제외된 1인 자영업자, 택배기사, 플랫폼 종사자 등을 뺀 최소 수치다.

 

이 궁금증에 답을 준 유명한 연구가 있다. 정부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영국의 화이트홀 연구. 이름은 정부기관이 밀집한 런던의 거리 이름에서 따왔다. 연구 결과는 남녀 모두에서 연령을 보정하고도 낮은 직급에 종사하는 것이 관상동맥질환 발생에 유의한 영향을 주는 것(교차비 1.5)으로 나타났다. 결정 권한과 노력-보상의 불균형이 영향을 미친 결과였다. 그나마 이들은 어쨌든 안정적인 공무원이었으니 불안정 노동을 하는 이들과 격차는 더 클 것이다.

 

부연하면 대통령이나 재벌 회장은 언뜻 보면 바빠 보이지만, 그들은 언제든지 자기가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고, 일을 미룰 수 있으며, 노력에 따른 유·무형의 보상이 충분히 이뤄지기 때문에 아플 가능성이 작다. 그러고 보니, 서울로 잦은 출장을 다녀야 하는 국회의원은 힘들겠다 했더니 그때가 쉬는 시간이지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차! 나처럼 관용차를 타보지 못한 사람은 미처 생각할 수 없던 말이었다. 그 국회의원은 차 안에서 잠을 잔 시간도 자신의 근무시간에 포함시킬 것이다. 반면 퇴근시간이 언제 갑자기 연장될지, 언제 호출 올지 몰라 무작정 기다려야 하고 노력한 만큼의 보상도 받지 못하는 이들은 같은 시간 일을 해도 훨씬 힘들다. 따라서 대통령의 노동시간은 노동자의 시간과 비교될 수 없다.

지난 211천명이 넘는 직업환경의학 분야 학자와 의사 등으로 구성된 대한직업환경의학회는 노동부의 근로시간 개편방안이 뇌심혈관질환, 안전사고 등 그렇지 않아도 오랫동안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산업재해를 대폭 증가시킬 것이라고 반대 의견을 밝혔다. 또한 정부의 야간근로 건강보호 방안 등은 실효성이 없으며 노동시간 감축이라는 세계적 추세에도 어긋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한국 근로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1915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네번째로 길고 미국(1791시간), 프랑스(1490시간) 등과 비교도 안 될 만큼 길다.(2021년 기준) 스웨덴처럼 하루 8시간 이상 운전을 금지하고 운전 뒤 11시간 이상 쉬어야 하는 기준을 가진 나라도 많다.

 

1960년생인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63살이다. 칭송받든 받지 못하든 대통령이 임기 중에 사망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비극이다. 부디 장시간 노동에 과로하지 마시라. 1998년과 2000년 출산휴가를 받은 파보 리포넨 핀란드 총리처럼, 2000년 자녀 출산을 앞두고 2주 휴가를 떠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처럼, 윤 대통령도 긴 법정휴가를 떠나시라. 그렇다고 우리나라 정치와 경제가 망가지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8시간 자고, 8시간 일하고, 8시간 가족, 친구들과 쉬고 즐기는 것은 천명이다. 하루 8시간 노동은 전세계 노동자들이 피 흘려 얻은 것이고 엄혹한 일제강점기에도 죽을 각오로 외쳤던 노동자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무엇보다 건드린 자는 반드시 망한다는 노동자의 역린이다. 그러니 줄이면 줄였지 법정 노동시간 늘리지 마시라. 무엇보다 세상에서 제일 나쁜 대통령은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하는 나쁜 대통령임을 잊지 마시라.

신영전 | 한양대 의대 교수 한겨레 : 2023.03.28.

 

 

유학생은 한국 대학의 인가

3년 만에 코로나 부담을 털고 개강한 대학가에 봄의 생기가 돈다. 그런데 비대면 수업을 할 때는 가라앉아 있던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바로 외국인 유학생 급증에 따른 수업과 학생 지도의 난맥상이다.

 

대구의 ㄱ 사립대 사회계열 대학원 수업. 강의실에서 얼굴 보고 하는 수업인데도 말이 아닌 필담이 오간다. 교수가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을 열어 수업 내용을 적으면 학생들은 얼른 번역기를 돌려 무슨 뜻인지 파악한다. 질문이나 대답도 번역기를 돌려 한국어로 올린다. 이 수업은 중국, 중앙아시아 등에서 온 유학생 3명을 포함해 5명이 듣는데 유학생이 한국어를 거의 알아듣지 못한다. 담당 교수는 학생이 영어라도 하면 영어 강의를 하겠는데, 그도 어려워 궁여지책을 냈다그래도 외국인 학생들이 있어서 대학원이 유지된다고 말한다.

 

서울과 경기도의 접경에 있는 ㄴ 사립대 경영대학은 학부 정원에 육박하는 수의 유학생이 정원외로 입학했다. 대학 전체로 올해 외국인 학생 입학이 부쩍 늘었는데, 취업을 고려해서인지 경영대에 특히 쏠렸다. 교수, 학생 모두 난감한 상황이다. 한 교수는 맡은 과목 중 유학생이 80% 이상인 수업도 있다그간 토론식으로 수업을 이끌어왔는데, 질문도 이해 못 하는 유학생이 많아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이라고 했다.

 

팬데믹으로 잠시 주춤했을 뿐 한국 대학에 오는 유학생은 해마다 늘었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대학에 다니는 유학생(학위과정·교환학생)167천여명이다. 1년 사이 9.6% 증가한 것인데, 입국이 자유로워진 올해는 더 늘었을 것으로 보인다. 지방대는 학부의 10~20%, 대학원은 90%까지 유학생이 점유하고, 서울의 큰 대학에도 2~6천명씩의 유학생이 있다. 나라별로는 중국(40.4%), 베트남(22.7%), 우즈베키스탄(5.2%), 몽골(4.4%), 일본(3.4%) 순이다.

 

한국이 선진국이고, 음악·드라마 등 문화의 매력도 강해 한국 대학에 오고 싶어 하는 외국인이 많다. 하지만 재정을 둘러싼 대학과 교육부의 일치된 이해를 빼놓으면 반쪽짜리 설명에 그친다. 학령인구가 줄고 등록금도 2011년 이후 동결되다시피 하면서 대학은 정원 충족과 재정난 타개의 돌파구를 유학생 유치에서 찾았다. 교육부도 옆문을 열어줬다. 2023년까지 유학생 20만명 유치를 내걸고 유학생의 정원외 입학을 허용하고, 유치 실적을 대학평가에도 반영했다.

 

유학생이 늘어나는 것을 색안경 끼고 볼 일은 아니다. 다양한 문화가 섞인 캠퍼스가 한층 건강하고 창의적일 수 있다. 이들이 졸업 뒤 한국에 남아 재능을 발휘할 수도 있고, 귀국해서는 지한파로 든든한 울타리가 될 수도 있다. ‘공공외교가 따로 없다. 실제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논문을 쓰는 외국인 학생도 많다.

 

문제는 공부할 준비가 안 된 학생까지 마구잡이로 받아 적응 실패, 중도 탈락, 불법 체류 등의 부작용을 낳는 것이다. 지방의 일부 대학은 정원 미달이 현실이 되자 총장 등 보직 간부가 겨울방학 동안 중국,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등을 돌며 학생 유치에 나서는 추세다. 몇몇 대학은 브로커를 끼고 학생을 모집해 온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교육부는 한국어능력시험 3급 등 입학 기준을 제시하지만, 이 정도로는 수업을 따라가기 어렵고, 이마저 권고 사항이어서 샛길이 많다. 실상은 적지 않은 유학생이 한국어 실력을 거의 늘리지 못하고 졸업장을 받는다.

 

일부 대학은 수업 내용을 필기해 전해주는 한국 학생 도우미를 지정하고, 유학생만 모아 한국어와 기초 교양 수업을 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유학생이 학업에 열의를 보이지 않으면 뾰족한 수가 없다. 수도권 대학의 한 교수는 수업 중에 스마트폰만 보고, 시험은 문제를 반복해 써내고 나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 학생과는 조별 과제에서 협조가 안 돼 갈등이 증폭된다. 이러다 보면 자칫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자랄 수 있다. 유학생도 게토화되어 지내는 생활이 즐거울 리 없고, 한국에 대한 불만을 안고 귀국할 수도 있다.

 

학령인구 감소는 대학에 생존의 문제다. 정원은 47만명인데 입학 자원은 올해 40만명, 내년 39만명으로 감소한다. 서울의 큰 대학도 이젠 유학생 유치에 팔을 걷고 있다. 이렇게 뽑고 책임지지 않는 것을 대학의 국제화라 포장할 수 없다. 교육부는 체계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

이봉현 | 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한겨레 : 2023.03.28.

 

 

포항 해변에 영국 코만도 부대가 나타난 이유는?

한반도, 미국 동맹국들의 군사 훈련 연습장 되나

320일부터 시작되어 43일까지 실시될 예정인 '쌍용훈련'은 여러 모로 주목을 끌고 있다. 우선 규모부터가 '역대급'이다. 2018년 이전에는 주로 여단급으로 실시됐으나 5년 만에 다시 실시되고 있는 훈련은 사단급으로 확대됐다.

 

또 독도함과 '작은 항공모함'으로 불리는 미국의 마킨 아일랜드함을 비롯한 함정 30여척, 각종 헬기와 F-35B 등 항공기 70여대, 그리고 상륙돌격장갑차 등 50여대 등이 동원되고 있다. 입체전력을 총동원해 유사시 북한의 주요 거점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훈련을 통해 입증해보이겠다는 것이다.

 

영국 해병대의 코만도 1개 중대가 처음으로 훈련에 참가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미국이 추구해온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유엔사 활성화 계획, 그리고 영국과 일본이 올해 초에 체결한 '원활화 협정'(RAA)과 논리적인 연결고리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22일 경북 포항시 북구 한 해안에서 영국 해병대 '코만도' 병력이 한국 해병대원과 함께 고무보트(IBS)를 타고 상륙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한국, 미국, 영국 수색부대는 연합작전 수행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22일부터 23일까지 포항 해안 일대에서 연합 수색 훈련을 실시했다. 연합뉴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한반도 '역외' 작전에 주한미군의 투입 옵션을 강화하기 위해 2000년대 초반부터 미국이 꾸준히 추구해온 전략이다. 핵심적인 목표는 대만 유사시 미국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주한미군도 동원할 수 있다는 데에 맞춰져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미국의 고민거리가 있다.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이 차출되면 한반도에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20215월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 사령관의 인준 청문회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되었다.

 

공화당의 한 상원의원이 '주한미군이 대만으로 전개되면 북한이 도발할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던지자 러캐머라는 "한국군과 유엔사가 대응할 것"이라고 답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유엔사 활성화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연결고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일본은 오스트레일리아에 이어 영국과도 원활화 협정을 맺었다. 상호간의 군대 파견을 용이하게 만들기 위한 조치이다. 그런데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는 대표적인 유엔사 전력 공여국들이고 유엔사 후방기지는 일본에 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은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출동을 원활하게 하고, 이들의 공백을 영국 등 유엔사 전력공여국들의 군대 파견으로 메워 대북 군사태세를 유지하는 방식이 강구되고 있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이번 쌍용훈련에 영국군이 참여하고 오스트레일리아는 참관단을 파견한 것이 심상치 않게 여겨지는 이유이다.

 

역대급 쌍용훈련에 고무된 탓인지, 군 당국은 "힘에 의한 평화를 구현"하고 "대한민국을 방어하기 위한 연합방위태세를 더욱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이에 강력 반발하면서 '핵 무인 수중공격정'을 선보였다. 유사시 미국 항공모함 전단이나 연합상륙작전 부대의 접근을 '거대한 방사능 해일'을 일으켜 저지하겠다는 것이다. 안보 딜레마가 격화되고 있는 것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은 한미동맹의 성격을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을 상대하는 방향으로 바꾸고 싶어하고 또 차곡차곡 추진해왔다. 미국의 핵심적인 동맹국들인 영국과 일본 등도 이에 가세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한국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동참하고 훈련장을 내주면 우리의 운명은 급격히 타자화될 수밖에 없다. 주한미군이 대만 유사시에 개입하는 순간, 우리도 그 전쟁에 휘말릴 위험이 매우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시급히 강구되어야 할 것은 우리 영토·영해·영공을 발진기지로 삼으려는 미국 군사력에 대한 주권적 통제 방안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한 주권국가로서의 당연한 권리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프레시안 : 2023.03.28.

 

 

민주당, 무엇이 문제이며 무엇을 해야 하나

시대적 과제 대담하게 감당하라

지금의 제1야당 민주당은 169석이나 되는 확실한 과반수 의석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한 존재감을 갖지 못한다. 민주당이 상대하는 윤 대통령이 취임 이래 30%대 지지율에 묶여 있는 최약체 대통령인데도 그렇다. 민주당 지지율도 좀처럼 40%를 확실히 돌파하지 못한다. 심지어 사고뭉치 윤 대통령을 옹위하는 국힘당에 밀리다가 요즘에야 대일굴욕외교와 주69시간 탄력근로허용정책으로 역전됐다. 도대체 왜 이러며 무엇이 문제인가?

 

민주당은 2020년 총선에서 대승을 거둬서 무려 180, 재적의석의 60%를 얻었다. 1당이 기록한 사상 최대 의석이었다. 특히 지역구에서 163석을 얻어 84석을 가져간 미래통합당을 압도했다. 정당투표에서는 민주당(위성정당) 33.4%, 미래통합당(위성정당) 33.8%, 정의당 9.7%, 국민의당(안철수) 6.8%, 열린민주당 5.4% 순이었다. 민주당은 위성정당 소동으로 정당투표에서 미래통합당보다도 적은 33.4%를 얻었지만 의석은 60%나 얻었다. 만약 위성정당 소동이 아니었다면 열린민주당이 안 생겨났을 테고 그 표가 모두 민주당으로 갔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의 정당득표율은 사실상 40%로 보는 게 맞지만 여전히 의석점유율 60%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지역구득표율을 비교해보면 민주당이 얼마나 의석을 횡재했는지가 더 드러난다. 민주당은 49.9%, 미래통합당은 41.5%를 얻었지만 지역구의석수는 66%(163) 34%(84)으로 더 벌어졌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이 20대 여소야대 국회에서 당시 새누리당-미래통합당이 일관되게 보여준 끝없는 몽니와 비토에 질린 데다 마침 문재인 정부가 효과적인 코로나방역으로 전 세계 언론으로부터 칭송을 받을 때였다. 20대 국회에서 간신히 통과한 준준연동형 비례대표선거제도를 국힘당이 위성정당으로 짓밟고 민주당마저 방어용 위성정당으로 무력화해서 과거와 똑같이 소선거구제(253, 84%)와 병립형비례대표제(47, 16%)로 치러진 총선이었다. 여기서 민주당은 정당투표에서 33.4%(실질적으로 40%)를 득표했을 뿐이나 뚜껑을 열고 보니 의석의 60%(180)을 받았다. 모두가 깜짝 놀란 민주당의 압승이자 소선거구제의 불비례성이 가장 두드러진 총선결과였다.

 

의석수보다 당지지율 따라 단기적 대응

문제는 21대 국회 들어서 민주당 지지율이 단 하루도 국회의석점유율만큼 올라간 적이 없었다는 데 있다. 당지지율과 의석점유율이 큰 차이가 날 때 당의 행태에 더 결정적인 것은 당지지율이다. 정당은 여론의 반응과 추이를 의식하며 정치적 행위를 선택하기 때문에 입법권 기타 국회 권한을 행사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의석수가 아니라 당지지율이다. 의석수로는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지지율을 더 떨어뜨릴 것으로 예상되는 정치적 선택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리기 때문이다. 요컨대, 당지지율로 뒷받침되지 않는 의석수는 지금의 민주당 의석이 그렇듯이 금세 허수로 전락한다.

 

게다가 169석쯤 되는 거대정당은 하나의 입장으로 통일되기 어렵다. 내부적으로는 지도부의 입장에 20~30% 정도의 반대와 이견이 있는 것은 민주정당으로서 건강한 징후이기도 하다. 당지도부에 대한 입장차 외에도 169명 가운데는 개혁 강도와 실현가능성에 대한 온도차가 있게 마련이다. 여기서도 20~30% 정도는 얼마든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이 부분을 줄이는 게 지도부의 역량이다. 국회가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켰을 때 부결 표는 138표에 지나지 않았다. 민주당에서 30표 넘게 반이재명 표가 나왔다는 뜻이다.

 

나는 이 표결결과를 보면서 민주당이 저항과 논란이 심한 개혁성이 강한 입법안을 밀어붙일 때는 30표보다 더 많은 이탈 표가 나오겠구나 싶었다. 특별한 스타성이 없는 일반 의원들의 경우 당지지율이 재선가능성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당지지율을 중단기적으로 떨어뜨릴 시끌벅적한 개혁입법에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볼 때 민주당이 앞으로 내부토론을 치열하게 진행해서 해묵은 개혁입법에 150표 이상을 묶어내지 못하면 향후 남은 1년 동안 패스트트랙에 태우는 방식으로 개혁입법을 추진하기가 난망할 것으로 예상된다.

 

야대 국회를 이끄는 민주당이 윤 대통령의 명백한 권력남용 행태를 철저하게 응징하거나 중단시키는 데 실패한 이유도 당지지율이 낮은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대통령의 권력이 그만큼 막강하고 거침없이 행사되는 탓도 있고 야대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그만큼 전략적이지 못하고 내부사정이 복잡한 탓도 있다. 분명한 것은 윤석열 정권은 자신의 법적 권한을 최대한 행사하는 반면 민주당은 이상민 장관 탄핵소추를 제외하고는 야대 국회의 법적권한을 행사하기보다 거의 전적으로 언어차원의 정치적 대응, , 규탄과 비난, 조롱으로 그쳤다는 사실이다.

 

당지지율이 탄탄하지 못해서 단순히 의석수를 믿고 법적 권한을 행사했다가는 우려되는 역풍을 견디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의원들이 너무 많았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이 장악한 야대 국회는 윤 대통령이 만들어낸 정치검찰 세상과 시행령 통치, 인사와 외교안보 참사를 효과적으로 저지하거나 응징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야대국회는 헌법기관장 인사동의권, 장관() 인사청문권, 국무위원 해임건의권, 정치검사 탄핵권 등 다양한 인사통제권을 동원해서 야대 국회의 본때를 보여줬어야 했다.

 

민주당은 입이 닳도록 정치검찰의 선택적이고 자의적인 ()수사와 ()기소를 규탄하면서도 정치검사 탄핵소추권을 한 번도 발동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과정에서 공약한 중요입법안들을 패스트트랙에 태우지 않았으며 윤 대통령의 시행령에 의한 입법우회를 눈 뜨고 지켜볼 뿐 사후에라도 입법권을 행사해서 응징하고 바로잡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의 여당 시절에 비난했던 야당 행태를 야당이 되고나서 그대로 답습하는 내로남불 모습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기후위기나 정치개혁 등 마땅히 앞장서야 할 시대적 과업에서 누가 봐도 진정성 있게 앞장서지 못하는 모습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

 

민주당이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최소한 2018년 문재인 촛불헌법안의 취지에 부합하는 개혁입법을 21대 국회에서 해냈어야 했다. 공무원, 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입법이 하나의 보기다. 2022년 대선에서 여야 후보가 공통공약으로 내걸은 개혁입법도 반드시 잊지 않고 입법했어야 했다. 나아가서 진보진영의 해묵은 10대 개혁입법의제를 골라 과감하게 입법해냈어야 했다. 국가보안법 7조 폐지안, 노랑봉투법안, 내놔라내파일법안 등이 보기다. 대선 당시 철석같이 공약했던 정치개혁안도 구체화하는 입법을 해냈어야 하고 최소한 위성정당 금지조항은 진즉 만들어냈어야 했다.

 

'촛불헌법안'에 맞는 개혁입법 해냈어야

민주당은 최소한 선거구제 개편 기타 정치개혁안은 국회의원이 당사자로서 이해충돌성격을 갖기 때문에 미니시민으로 구성된 중립적인 시민의회에 맡기겠다고 선언할 수 있었다. 소속 시도지사와 시군구장을 통해 향후 숙의적인 시민의회나 시민배심을 민주주의적 문제해결수단으로 적극 활성화할 방침이라고 천명할 수 있었다. 그에 따라 민주당 지자체장들이 기후위기대책과 교육대전환을 공통주제로 삼아 시민의회를 선보일 수 있었다. 누구도 하지 않았지만 아직도 늦지 않았다.

 

민주당은 범여권의 대선불복 프레임과 입법독주 프레임을 이른바 역풍과 후폭풍 프레임으로 내면화해서 부자 몸조심모드를 유지했다. 윤 정권의 권력남용을 입법권, 국정조사권, 해임건의권, 탄핵권 등 국회의 법적 권한을 행사해서 무섭게 응징하고 중대한 입법과제를 담대하게 처리함으로써 진보진영의 신뢰와 희망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민주당 내부에선 아직도 20244월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상대방의 잘못을 물고 늘어지는 정도의 소극적 대응이면 족하다는 입장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윤 정권의 정치적 실수와 정책적 악수가 끊이지 않는 마당에 야당이 할 일은 자근자근 말 펀치를 날리며 야금야금 민심을 얻으면 되지 무리하게 개혁입법을 밀어붙이며 법적 권한을 휘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1년만 꾹 참고 기다리면 내년 총선에서 무능한 윤석열 정권을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데 굳이 모험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인 셈이다. 게다가 내년 총선은 정권심판선거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굳이 논란 많은 개혁으로 실점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논리다.

 

본래 당면한 선거승리를 정치목적으로 삼는 현실논리에서는 시대와 국민이 요구하는 중대과업을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해내겠다는 정치적 의지와 전략, 구상이 설자리를 찾기 어렵다. 이런 소극적인 논리는 총선이 지나고 나면 다시 지방선거와 대선 승리를 겨냥해서 동일한 얘기를 하게 마련이다. 민주당 다수파의 손님 실수에 기대는 무난한 선거승리론은 정치의 임무를 사실상 기성질서의 치안과 관리에 한정한다는 점에서 지독하게 보수적이고 현상유지적인 정치논리다.

 

상대 실수 기대는 선거승리론에 갇혀

뿐만 아니다. 이런 논리는 자칫하면 여론조사결과라는 표층민심을 등에 업고 구조개혁의 시점을 무한 연기하며 종국에는 그 실현가능성을 부정하는 개혁포기 주장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작지 않다. 이른바 저항이 심하거나 민감한 개혁입법을 민주당이 21대 국회에서 하나도 해내지 않은 사실은 민주당의 상당수 국회의원이 이런 구조개혁포기론에 포획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선거공학을 앞세우는 정치적 함정에 빠지고 나면 여론의 눈치를 살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위와 같은 민주당의 지배적 논리에 따르면 손님 실수덕에 2024년 총선에서 승리해서 과반수 의석을 다시 확보한 후에도 지방선거와 대선을 앞둔 야당의 입장이 계속되기 때문에 국회선진화법의 각종 장애물을 뚫고 선제적으로 개혁입법을 추진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손님실수는 이어질 게 틀림없지만 그 사이에 우리나라를 살릴 도끼자루는 더 썩을 게 틀림없다. 위와 같은 현상유지 논리는 선거전략의 관점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나라 유권자들은 손님실수에 기대는 소극적인 정당에 선거승리의 기쁨을 안겨주지 않는다. 특히 민주당에 대해서는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을 통해 모든 정치권력을 몰아줬는데 도대체 뭘 했느냐는 지지자들의 원망이 심하고 다시 의석을 몰아줘도 잘할 것 같지 않다는 의심이 강하다. 민주당이 개혁의 진정성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 다음총선에서는 막판에 이상한 대중심리기제가 작동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무리 밀어줘도 아무것도 못한 민주당을 또 밀어줘서 윤석열 정부를 계속 식물정부로 만들기보다는 여소야대 국회 때문에 아무것도 못한 윤석열 정부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번에는 국힘당을 한번 밀어주자는 식으로 대중심리가 작동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다음 총선에서 국힘당을 밀어서 국회다수파를 만들어줄 경우 윤석열 정부가 무슨 짓을 할지 불안한 유권자들도 적지 않지만 더 많은 유권자들은 이번에도 민주당의 야대 국회가 계속되면 윤석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차라리 윤석열 정부가 일을 할 수 있도록 국힘당을 밀어주자고 할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윤석열 정권의 '뻘짓'이 계속된다고 해서 민주당 지지율이 저절로 높아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여러 전선에서 상대방의 실수를 비판한다고 해서 민주당 지지율이 높아지지도 않는다. 심지어는 이재명 방탄이 풀린다고 민주당 지지율이 자동 반등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민주당이 개혁진정성과 공약이행의지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민주당 지지율은 답보를 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민주당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크다는 점을 인정해야한다.

 

'야대 국회 피로감' 의외의 총선결과 낳을 수 있어

그 뿌리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주당이 그때그때 현안에 대응하는 것 외에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진정성 있게 강령적이고 개혁적인 뭔가를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정치개혁을 생각해보자.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 대선후보 시절 여러 차례 정치개혁 의지를 피력했다. 민주당은 작년 5월초 이재명 후보의 다당제 정치개혁안을 임시전당대회를 열어서 추인하기도 했다. 그 사이에 김동연이 민주당으로 넘어오고 안철수가 국힘으로 넘어간 탓에 다당제의 주체들이 사라지고 정의당은 당세가 현저히 약해지는 등 사정변경이 발생했다. 그렇다고 이재명 대표가 침묵을 지키고 있을 일은 아니다.

 

예컨대, 이재명 대표가 이번에는 위성정당금지조항을 입법해서 위성정당을 원천봉쇄하고 2024년 총선을 현행 선거법의 준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치르자고 제안할 수 있다. 총선이 1년도 안 남은 현 상황에서는 각 당이 선거제도 개편안의 유불리를 상당부분 예측할 수 있어서 아무리 좋은 안이 나와도 여야합의가 어렵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선거구제 개편과 정치개혁 논의를 21대국회가 책임을 지고 진행하되 2028년 총선부터 적용하자고 제안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선거제도와 정치개혁 추첨시민의회 조직과 운영을 공신력 있는 학회에 의뢰해서 본격적으로 깨어 있는 국민의사를 확인해보고 그에 기초해서 종합적인 정치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할 수 있다.

 

개혁의지의 진정성 안 보여주면 지지층 이탈 많아질 것

결론적으로 민주당의 문제는 시대의 과제를 도전적이고 전투적으로 감당함으로써 지지율 상승기회를 잡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나마 있는 지지율도 까먹을까 겁내며 현상유지에 만족한다는 데 있다. 절대과반 의석에 따라오는 입법권과 국정조사권, 탄핵권 등 여러 권한을 대담하게 사용해서 때로는 극적으로 정치의 온도와 속도를 높이는 대신 소소한 현안대응을 둘러싼 입씨름에서 승리하는 데 자족했다. 민주당은 중앙정치를 통해서건 지자체들을 통해서건 기후위기, 저출산 노령화, 지역균형발전, 경제양극화 등 시대적 의제를 붙들고 진정성 있게 대처하는 역량을 보이지 못했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를 조금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도무지 시대적 과제를 감당하려는 정치적 기획이란 것이 보이지 않고 도무지 기득권을 내려놓는 자기희생이 없으며 도무지 새롭고 혁신적인 구석이 없다. 정말 시간이 없다. 지금 당장 비상한 용기를 내고 개혁의지의 진정성을 보여주지 않으면 민주당과 헤어질 결심을 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질 게다. 선택은 그대들의 몫이다.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시민언론 민들레 : 2023.03.28.

 

 

돈과 예술

포르투갈의 남쪽 해변마을로 이주하고 나서 자동차로 2시간 반 정도 걸리는 리스본을 둘러보려는 계획이 코로나19로 말미암아 차질이 생겼다. 바다와 더불어 지내는 조용한 삶에도 때로는 도시가 불러오는, 또 다른 정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럽 예술의 중심도시 중 하나로 부상한 베를린과는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이베리아반도의 한구석에서 그 나름대로 가꾸어 왔던 문화와 예술의 모습을 보고자 우선 택한 곳은 켈루스트 굴벤키안’(1869~1955)의 이름을 지닌 음악당과 박물관이다.

 

마침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곡가 진은숙의 첼로협주곡과 유대인이라 미국으로 망명 길을 떠나야만 했던 오스트리아 작곡가 알렉산더 폰 쳄린스키의 <서정적 교향곡> 연주가 있어 음악당을 먼저 찾았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의 시를 주제로 삼은 이 곡은 중국 당나라 이태백의 시를 주제로 삼았던, 그의 경쟁자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대지의 노래>에 대한 하나의 화답이었다.

 

검은 금이라고 불리는 석유로 일어선 미국의 억만장자 존 록펠러는 잘 알려진 이름이지만 같은 종류의 사업에서 성공한 굴벤키안은 생소한 이름이다.

 

스위스 출신의 극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1921~1990)의 희곡 <노부인의 방문>(1956)의 주인공 이름은 당대 유럽의 억만장자 세 사람(무기상 자하로프와 선박왕 오나시스 그리고 굴벤키안)의 이름을 합성한, ‘자하나시안이다.

 

실연의 설움을 안고 고향을 떠나서 뒤에 고급 창녀로 거부가 된 그녀는 고향 사람들에게 자신을 배신했던 옛 애인을 살해하는 대가로 10억마르크를 희사하겠다고 제의한다. 처음에는 이 비인도적인 제의에 분개하고 거절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마음은 돈으로 쏠렸다. 그들은 차기 시장 물망에까지 오른 옛 애인의 구명운동을 외면하고 그의 살해에 동조하면서 자신들의 변심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한다. 자하나시안은 심장마비로 죽은 옛 애인의 시체와 함께 고향을 떠난다는 줄거리다. 인간은 도덕과 양심도 포함해서 무엇이든지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그린 비극적 희극이다.

 

굴벤키안, 공공 목적 박물관 세워

굴벤키안은 튀르키예의 이스탄불에서 아르메니아 출신의 석유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런던의 킹스 칼리지에서 석유공학을 공부했고 후에 영국시민권도 취득했다. 1895년부터 본격적으로 석유채굴사업에 뛰어들었으나 다음해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학살로 전 가족이 이집트로 피신했다.

 

그는 1907년 석유회사 로열 더치와 셸이 합작, 새로 설립된 회사의 5%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어 미스터 5%’라는 별명을 얻었다. 1912년에는 이라크에 설립된 튀르키예 석유회사 설립에도 5%를 투자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붕괴하고 이라크가 영국의 통치에 들어가자 굴벤키안은 자신의 석유채굴권을 끈질기게 요구해서 관철했다. 이 지역에서 새로운 유전이 발견되면서 그는 계속 5%의 권익을 누릴 수 있어 막대한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젊은 시절부터 예술작품에 관심이 있었고 프랑스와 영국에서 교육받았던 그는 사업관계로 유럽을 누비면서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6400여점의 예술작품을 수집했다. 1942년 주로 파리에 소장했던 이 작품들을 2차 세계대전 때 중립국이었던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옮겼다.

 

그의 유언에 따라 예술, 교육, 과학의 연구지원과 자선사업을 총괄하는 굴벤키안 재단1956년에 설립되었고 박물관과 음악당은 1969년에 개관했다. 석유채굴사업으로 시작해서 모았던 재산을 2019년에 완전히 정리했다.

 

독일의 전 총리 메르켈이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제1굴벤키안 인도주의 상2020년 당시 17세였던 스웨덴의 젊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에게 수여되었다. 이 당찬 소녀는 상금 100만유로를 기후와 환경 위기에 대응하는 여러 프로젝트에 기부할 것임을 밝혔다. 화석연료로 엄청난 부를 모았는데, 그로 말미암아 생긴 재앙에 대한 하나의 사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약 1000점의 작품 가운데 중국과 일본과 달리, 아쉽게도 한국의 작품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먼저 떠올린 것이 얼마 전에 읽었던 이건희 컬렉션에 대한 기사였다. 20214, 삼성가가 23000점에 달하는 이건회 개인소장의 고미술품과 국내외의 근현대 미술작품을 국가에 기증했다는 내용이다.

 

1960년대 중반까지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국립현대미술관이나 당시 초라한 느낌만을 내게 남겼던 덕수궁 석조전의 국립중앙박물관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보니 이번 기증은 세기의 기증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번 기증 목록에는 들어 있지 않았지만, 그는 현대 추상화 가운데 작품 한 점에 보통 5000만달러 이상으로 거래되는 마크 로스코(1903~1970)의 작품도 소장하고 있었다. 상상을 초월한 고가의 작품들이 무슨 목적으로 어떻게 구매되었는지에 대한 의혹의 눈길이 따랐으며 삼성가의 비자금 관리와 탈세의 한 편법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사회적인 공분도 자아내기도 했다.

 

미술작품은 수집가의 관심과 취향도 중요하지만, 오늘날 글로벌 예술시장은 2700여명에 달하는 억만장자의 구매력에 의해서 많이 좌우된다. 러시아, 중국 그리고 아랍세계의 큰손들은 자산증식의 목적과 과시욕으로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내고 고가의 미술품을 경쟁적으로 사들인다. 한국을 두 번이나 방문했던 무하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2017년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세상의 구원자를 무려 45000만달러에 사들였다. 역사상 가장 비싼 가격의 그림이었다. 이전 소장자는 러시아의 거부 드미트리 리볼로프레프였다.

 

이건희와 삼성새 예술공간 기대

1979년 돈과 예술의 관계를 독일의 전위작가 요셉 보이스(1921~1986)는 서독의 10마르크 지폐 20장에 간단히 자본=예술이라고 쓰고 서명했다. 자신의 작품이 터무니없이 고가로 미술 시장에서 거래되는 현실에 불편한 심기를 표현했지만, 이 지폐 역시 고가로 거래되는 예술작품이 되었다.

 

전면에 우체국 소인이 찍힌 그레이엄 벨의 전화기 발명 100주년의 기념우표를 붙이고 자신이 서명한 2달러 지폐를 1976년에 작품으로 내놓았던 미국의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1928~1987)은 보이스와 달리 돈과 예술의 관계를 적극 평가했다. “돈벌이는 예술이다. 노동은 예술이다. 좋은 비즈니스는 최고의 예술이다라고 그는 주장했다.

 

어떻든 돈과 예술은 동전의 앞뒤와 같은 관계이기에 예술작품의 가격은 동시에 이의 가치를 입증하게 되고, 파는 자와 사는 자는 시장에서 만나게 된다. 돈으로 도덕과 양심까지도 살 수 있는 세상에 예술작품을 사고파는 것이 문제가 될 리 없다. 10조 원에 육박한다는 환산가치를 지닌 작품들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결단이 비록 면피성이었을지라도 비난받을 일만은 아니었다.

 

조국이 없었던 경계인굴벤키안이 그의 말년을 보냈던 리스본에 공익사업 목적으로 자신의 소장품을 위한 사립박물관을 세웠지만, 이건희 컬렉션은 국가에 기증되었다. 따라서 국가의 문화행정이 이를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관리하는 문제가 먼저 제기된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안에서 문화영역이 지니는 공공성이 시장의 논리에 의해서 축소되거나 훼손되면서 문화와 예술의 개념도 모르는 사이에 변질하는 위험을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경고한 적이 있다. 이런 점에서 이건희 수집품을 국가나 공공기관이 관장하는 것이 바람직한 성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나 변화와 창의성에 둔감하고 타성에 젖은 문화행정과 관료주의가 오히려 득보다 실을 가져올 위험은 더 크다. 단지 이건희삼성의 경제신화와 연동된, 이른바 명품 보존이 주목적이 되는 또 하나의 예술공간이 탄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는 크고 작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수도 없이 많다. 이 가운데 문화와 예술의 역동성을 느끼게 했던 곳이 과연 어디였던가를 종종 묻는다. 단순히 역사가 길고 전시 공간이 넓어 관람자가 많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다. 문화와 예술체험의 성장과 확충을 통해 더 인간적인 세계를 함께 준비할 수 있는, 그러한 새로운 공간이 나름대로 기다려지기 때문이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경향 : 2023.03.29.

 

 

10억엔과 방사능 오염수

왜 그들은 일본에 돈을 돌려주지 않을까? 문재인 정부 시절에 외교부 고위 관료들을 만났을 때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물음이었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한다며 10억엔을 주었을 때, 그 돈을 직접 받은 당사자는 화해치유재단이었다. 그런데 재단은 2019121일자로 해산했다. ·일 협의가 위안부 피해자의 뜻과 다르고 국제인권법과 어긋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외교부 관료들은 돈을 일본에 돌려주라는 할머니들의 요청을 거절했다. 그들은 화해치유재단 해산이라는 국내절차까지만 동의했을 뿐이었다. 돈을 일본에 돌려주는 본격적인 국제 관계에는 요지부동이었다.

 

10억엔은 어디에 있는가? 여전히 재단 계좌에 있다. 해산된 지 4년이 넘은 재단의 청산 관리인은 아직도 잔여 재산분신청을 여성가족부에 하지 않고 있다.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 해결 징표인 10억엔이 한국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일본의 의도는 관철되었다.

 

윤석열 정부의 이른바 강제동원 해법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관철된 일본의 구상이다.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했다고 집단적으로 굳게 믿고 있는 일본 우익들의 일관된 계획이다. 나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한국 대통령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위안부 합의를 이행하라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이번 한·일 정상회담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10억엔을 받은 후, ·일관계는 역전되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역사정의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한국의 대통령 스스로 이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조차 그저 과거라고 말할 뿐이다.

 

10억엔 이후, 일본에 한국은 국제법을 지키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한국 민주주의가 성취한 2018년 강제동원 위자료 대법원 판결에 대하여, 일본은 한국을 국제법을 위반하는 나라로 항상 낮추어 불렀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한국을 국제 수출통제 규범을 지키지 않는 나라로 취급했다. 일본은 이를 고쳐준다는 명목으로 한국에 수출규제를 하였다. 그러자 마침내 한국 대통령 스스로가 대법원 판결이 잘못이라고 말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이 먼저 수출통제규범을 정비했고, 일본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를 스스로 취하했다. 그리고 일본의 조치를 기다리게 되었다.

 

해제되지도 않은 일본 수출규제를 해제라고 하는 한국 대통령의 거짓말은 이제 새롭지 않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이제 한·일관계는 구조적으로 역전되었다. 일본에 한·일관계는, 국제법을 지킬 줄 아는 일본이 국제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한국을 고쳐주는 관계가 되었다. 이 틀은 일본의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출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일본은 자신의 계획대로라면 4월에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을 시작하고, 5월에 이를 국제원자력기구(IAEA), 주요 7개국 회의(G7)에서 국제적으로 승인을 받으려 한다. 5월에 일본을 찾겠다는 한국의 대통령으로부터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중단을 들어줄 일본 총리는 없다. 한국이 방사능 오염수의 가장 큰 이해관계 당사국이면서 방사능 오염수 방출에 이의를 제기하면 일본은 국제규범에 맞게 행동하라고 한국에 요구할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환경정의를 저버린 오염수 방출 국가인 일본이 오히려 한국을 가르치려 들 것이다.

 

일본과 미국은 전쟁을 통해 성장한 나라들이다. 일본은 미국에 철저하게 항복을 했지만 미국이 쇠퇴하면 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려고 할 것이다. 왜 일본은 끊임없이 독도를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는가? 일본이 독도를 강점한 1905년 러일전쟁 시기 일본의 아시아 패권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본 우익의 미래 구상에 한국은 동맹을 하려는 나라가 아니다. 지금 한국의 대통령은 이 모순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능력이 없다. 그는 한국이 미국에 지나치게 가깝게 갈 경우 한국이 일본의 밑으로 들어갈 위험을 모른다. 누군가 그의 머리에 심어 놓은 단어 북한 핵이 그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재임 중 북한 핵 능력은 더 강화되었고 핵위협은 더 악화되었다. 그의 이른바 핵무기 평화론이 오히려 핵전쟁의 위험을 키우고 있다.

 

다시 외교부에 요구한다. 역사정의야말로 한·일관계의 초석이다. 안중근 의사의 표현을 빌리면 동양평화의 토대이다. 위안부 문제 해결로 받은 돈 10억엔을 돌려주어야 한다. 대일관계에서 강제동원 문제가 아니라 위안부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국력에 걸맞게 역사정의를 세우고 국제평화에 이바지해야 한다. 10억엔을 돌려주고 일본을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제소할 준비를 착실하게 진행해야 한다.

송기호 변호사 경향 : 2023.03.29.

 

 

조선일보가 쓰고 있는 '새로운 윤리학

지배 공고화 넘어 과거를 바꾸고, 도덕률을 바꾸려 한다

 

지난 26일 서울 효창공원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순국 113주년 추모식은 어느 해보다 비통한 분위기였다.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해 빈 무덤(허묘) 앞에서 올리는, “내가 죽거든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라고 했던 안 의사의 유언을 지켜주지 못한 죄스러움과 자책은 어느 해인들 그렇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올해의 추념에는 더욱 지극한 비감이 서려 있었다. 어느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이제 그만 고집 부리시고 고국으로 돌아오라고 통절하게 얘기했지만 100여 년간 타국의 구천을 떠도는 의사의 유해를 찾는다고 한들 안 의사의 혼백이 과연 지금의 대한민국, 2023년의 대한민국에 돌아오고 싶어 할 것인가.

 

이미 안중근의 이름으로 안중근을 욕되게 하는 일들이 행해지고 있지만,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라는 일본의 무도한 주장이 일본이 아닌 한국인들에 의해서 나오는 일이 조만간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미 일장기가 서울의 도심에서 한국인들의 손에 의해 펄럭이는 초현실적 장면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 2023년 대한민국 3월의 풍경이다. 대일 굴종과 예속을 선도하는 망언과 망상과 망동이 고개를 쳐들고 있고, 서울의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언론이 그 같은 굴종과 망언들을 미래로의 결단으로 칭송하고 있다. 다른 어디보다도 언론이, 그리고 다른 어느 언론보다도 대한민국을 이끄는 신문 조선일보가, 그 굴종과 굴욕의 현실을 선동하고 응원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벌이고 있는 일이며, 대한민국의 언론이 벌이고 있는 일이며, 언론을 이끄는 신문 조선일보가 벌이고 있는 일이다. 대일본 굴욕과 굴종의 길로 치닫는 윤석열 정부에 대해 3월 내내 친윤 친일 보도를 쏟아내며 조선일보가 앞장서고 있는 일이다.

 

'3.1절의 자식' 조선일보의 배신

19103월 안 의사 순국으로부터 113, 2023년 해방된 지 77년이 된 대한민국의 현실, 그 기막힌 일들이 다른 때도 아닌 3월인 것에 역사의 아이러니, 통분스런 아이러니가 있다. 자주독립을 선언했던 3.1절과 안 의사의 순국이 있었던 3월에 이 절통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3월의 자식인 조선일보가 벌이고 있는 일이라는 점이 역사의 아이러니를 더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3월생(192035)이다. 그것은 창간일이 그렇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그 탄생이 3.1절의 결실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조선일보는 3.1절 한국 민중의 저항에 놀란 일제가 이른바 문화통치라는 이름으로 내 준 선물이었다. 문화통치가 한편으로는 강압과 탄압이었지만 다른 한편 회유였던 것의 한 선물이 조선일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일제의 통치전략에 따른 당근책이기 전에 먼저 조선 민중의 피와 희생으로 얻어낸 쟁취였다. 조선일보는 3.1운동을 아버지로 둔 3월의 자식인 것이다.

 

태생에서부터 그 모체가 된 대정실업회의 이름이 일본 천황의 연호인 대정(大正)을 딴 데서 보여주듯 출발부터- 몇 년간의 예외적인 사회주의 논조를 제외하고- 친일 행각으로 일관했던 것이야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기가 막히는 것은 '3.1운동의 자식' 조선의 배신보다도 그 배반과 패륜이 한 번도 단죄되지 않고 오히려 보상을 받아 왔다는 것이다. 그 전도된 현실의 하나는 박정희 정권에 의한 굴욕적 한일 국교 정상화로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차관이 조선일보 일가에 주어져 코리아나 호텔의 건립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일본 황군 출신의 독재자 박정희와 친일 언론 조선일보 간의 독재정권에서의 권언의 추악한 유착이었다. 서울 한복판을 관통하는 세종대로 보도 앞으로 비죽이 내민 이 건물의 오만은 죄과에 대해 징벌 대신 포상을 받은 그 득의양양의 표정에 다름아니다.

 

면면한 조선일보의 친일과 독재에의 유착은 지난 수십 년간의 강철동맹에서 이제 한층 더욱 굳건해지고 있다. 지난 3월 한달간 펼쳐진 권력의 폭주의 한 양상은 TV조선과 관련된 방송통신위원회에 대한 집요한 수사와 구속으로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방송 장악과 함께 특히 조선일보에 대한 불이익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의 협박이며 선포와도 같다.

 

이 같은 공세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권언동맹으로 기득권을 공고화하는 것, 그럼으로써 영구지배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인가. 그러나 지금의 유착과 공세는 단지 그에 머물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21세기의 황국 신민'으로, '정신적 식민지'로 지배하려 하려는 것이다. 일제의 총칼 대신 펜이라는 칼로 한국 국민들을 다스리려 하는 것이다.

 

'정신적 식민지'로 영구지배 전략

그러나 더욱 무서운 것은 권력의 강고화, 그것이 아니다. 그보다 한국사회를 향해 조선일보가 시도하고 있는 것의 진정한 본질은 '새로운 윤리학'을 쓰려고 하는 것이다. 그 새로운 윤리학의 내용은 '순응하라'는 것이다. 불복종은 포기하라는 것이며, 저항하지 말라는 것이며, 숨 죽이고 살라는 것이다. 힘 있는 것이 정의이며 이기는 것이 정의다, 라는 새로운 정의의 기준을 세우려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반인간적 보도에서 보였듯이 지난 세월호 참사 때 그랬듯이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구경거리로 즐기라는 것이 이 새로운 윤리의 끔찍한 교리다.

 

이 새로운 윤리학은 그러나 그것이 근원적으로 결코 윤리가 될 수 없는 것이어서, 차라리 윤리의 폐기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새로운 윤리학이 아니라 윤리 자체를 없애려는 것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금 조선일보가 제시하는 한국사회의 미래다.

 

자연의 시간은 과거로부터 미래로 흐르지만 인간의 현실에서의 시간은 많은 경우 오히려 미래에서 과거로 흐른다. 어떤 미래를 그리느냐가 역으로 과거를 결정 짓는 것이다. 20233월에 벌어지고 있는 일은 100년 전으로 되돌아가 19193, 19103월에 있었던 일을 바꾼다. 미래가 현재를 바꾸고 다시 그것이 과거를 바꾼다.

 

202035일 조선일보는 창간 100년 사설에서 지난 100년간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겠다고 말했다. '비장한' 말은 지난 100년간의 승리의 개가이자 다음 100년간의 승리의 호언이기도 했다. 지난 100년이 무엇이 될 것인가. 그것은 한국사회가 다음 100년을 어떤 미래로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미래와 과거가 어떤 미래, 어떤 과거가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제인 것이다. 20233월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한국사회의 응답을 지난 100년의 그 어느 때보다도 긴박하게 묻고 있다

이명재 에디터 시민언론 민들레: 2023.03.29.

 

혁신은 없고 헛발질만 하는 민주당, 이재명의 길은?

이재명의 길, 문재인의 길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검찰의 끈질기고도 전방위적인 수사는 정치 탄압, 정적 제거, 야당 죽이기 맞다. 비명계 의원들이 '성남시장 때의 일'이라며 굳이 당이 나설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전혀 동의하기 어렵다. 그가 당하는 고초는 윤석열 대통령에 맞섰던 민주당 대선 후보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 민주당 분란은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 대선 패배 직후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보궐선거에 출마했고, 또 다수 의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당대표에 출마했다. 주변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성남시장 당선 이후 경기지사를 거쳐 대선후보까지 '거침없이' 정치적 성장을 거듭한 때문인지 대선 패배 후에도 그는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고 결국 분란의 빌미를 제공했다.

 

정치적 판단에 정답은 없다. 결국 쟁점은 당대표로서 당무를 잘 이끌고, 특히 대선 기간 약속했던 당 혁신을 완수할 의지를 가졌느냐, 또 민주당을 실력 있는 강한 정당으로 만들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이 대표가 제1당의 리더가 되어 민주당이 첫째, 당 혁신, 둘째, 대여 투쟁, 셋째, 실력 있는 정책정당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비명계의 반발은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혁신의 목소리는 간 곳 없고, 소속 의원들은 연이어 헛발질만 국민에게 선보였다. 모든 것은 돌고 돌아 지도자의 책임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새 당직 인선, 변화의 발판이 될 것인가

27일 이재명 대표는 당직 개편을 단행했다. 당의 통합을 위해 비명계 의원들을 대거 발탁한 탕평인사라는 평이다. '호남''친문'에 대한 배려라는 분석도 있고 또 당내 686세력과의 연합이라는 의견도 있다. 반대로 이 대표에게 쓴소리를 할 '진짜 비명계는 없다'는 평가절하도 있다. 어쨌든 탕평인사를 통해 일단 분란은 잠재웠고 퇴진 요구도 당분간 잠잠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재명의 앞길은 무난할 것인가.

 

이번 당직 개편을 종합하면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된다. 당 혁신은 한 걸음 더 멀어졌다는 것이다. 위기에 처한 이 대표가 결국 선택한 통합과 화합, 다른 말로 절충과 타협은 결국 민주당을 '현상유지' 정당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재명의 앞길은 무난할 것인가.

 

민주당의 현주소

대통령은 나라 안팎에서 사고를 치고 정부는 종횡무진 엇박자에 대통령실은 온갖 혼선을 주워담기에 바쁘다. 그래서인지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내년 총선을 희망적으로 본다. 국민이 바라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니 그럴 만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국민이 민주당을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대단한 착각이다.

 

지난 대선 유권자들은 사상 최약체 대선 후보이자 '11망언 제조기'였던 차관급 출신 정치신인을 대통령 자리에 앉혔다. 사실 국민의힘에서 누가 나왔더라도 당선됐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 무능한 문재인, 민주당이 미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민주당은 유능한 정당으로 변모했는가?

 

수년째 지리멸렬한 당이 지금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문제는 사실 이 대표 혼자 감당해야 할 책임은 아니다. 현재 당에 정치혁신위원회 등 20여 개의 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제대로 활동하는 위원회가 하나라도 있나? 이상민 행안부 장관 탄핵을 부르짖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놈의 탄핵은 도대체 어떻게 되었는가?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상민 탄핵도 마무리 못한 자들이 지금은 한동훈 법무부장관 탄핵을 떠들고 있다는 점이다. 저 철없고 대책 없는 국회의원들을 데리고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특히 심각한 것은 지금 민주당엔 방향도, 목표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문재인 정부 시절 민주당 지지도는 단 한 번도 대통령 국정지지도를 앞지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새정치민주연합 포함)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선, 다시 2020년 총선까지 초유의 4연승을 거뒀다. 문재인 덕에 배지도 달았고 그 덕에 먹고 살았다. 그런데 2020년 최대 다수당이 된 이후 어떠했나. 2021년 서울·부산 보궐선거 포함 벌써 3연패다. 지금 민주당은 '꼼수 정당'이 된지 오래고, 소속 의원들은 카메라 앞에서 한동훈 장관과 김건희 여사 망신 주기 위한 말재주 경연에 여념이 없다. 국민과 고민을 함께하기 보다는 자신이 등장한 유튜브 조회수에 더 뿌듯해하는 족속들이다.

 

혁신의 이유

12일 홍준표 대구시장은 "자격 없는 국회의원 물갈이"를 언급하며 "영남 전체의 교체율을 50% 정도로 맞춰야 전체 평균이 35%를 맞춘다"고 내년 국민의힘 총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틀렸다. 우선 지난 21대 총선에서 TK 25개 지역구 중 16개 지역구(64%)의 공천자가 바뀌었다. 또 내년 국민의힘 공천에 검사 출신과 기재부 출신 공무원들이 대거 입성할 것으로 보인다. 명실상부한 '윤석열당'이 되어야 하기에 공천 물갈이율은 35%를 훌쩍 넘길 것이다. 서울 강남과 영남이 지역구인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은 오금이 저릴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국민의힘 공천쇄신에 긴장하는 또 다른 집단이 있다. 바로 민주당 의원들이다. 집권여당이 공천 물갈이로 나오면 야당이 이에 맞설 전략은 더 센 공천 물갈이 외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의 달인 YSDJ가 총선 때마다 새로운 인물, '젊은 피'를 찾아 나선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 최대 수혜자가 바로 지금은 할아버지가 된 686들이고.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공천쇄신에 나서면 민주당의 미래는 암울하다. 복수의 전문가가 예상하는 민주당 의석수는 120~130석으로 일치한다. 추가 관전 포인트는 국민의힘이 과반인 150석을 넘느냐이다. 흔히 사람들이 '아무리 배가 불러도 디저트 들어갈 배는 따로 있다'고 하듯 국민의힘이 아무리 헛발질을 해도 민주당에 대한 평가는 이와는 별도로 축적된다. 당연히 싸늘하다.

 

민주당이 실력 있는 정당, 국민의 신뢰를 얻는 정당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례가 있다. 우선 문재인 당대표 시절. 20152월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에 선출된 문재인은 4월 재보선에서 참패하자 비노-비주류의 퇴진 요구에 직면했다. (그해 연말 분당사태에 이르기까지 문재인이 겪어야 했던 퇴진 요구는 지금 이 대표가 당하는 것에 비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의 길, 김종인의 길

위기상황에서 문재인이 택한 길은 당 혁신이었다. 5월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그 이전 민주당은 7년간 6개의 혁신안을 만들었으나 모두 내부 반발에 부딪혀 쓰레기통에 처박혔었다. 그러나 '김상곤 혁신위'11차례에 걸쳐 혁신안을 당헌, 당규에 반영하며 관철시켰다. 지금의 윤리 관련 조항들이나 공천 시스템이 모두 그때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문재인은 기존 민주당 터줏대감들과 멀어지기도 했다. 박지원, 김한길, 정세균, 손학규, 김두관, 이종걸, 박영선, 천정배, 정동영, 원혜영에 호남 중진들로부터 반발이 거셌을 뿐 아니라 '극좌적,' '수구패권주의,' '2의 박근혜'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연말엔 소속 의원 67명이 "총선 공천 권한 일체를 선거대책위원회에 위임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호남 중진들이 탈당 조심을 보이자 박지원, 이종걸 등은 당의 화합을 강조하며 문 대표의 퇴진을 요구했다. 그러나 문재인은 묵묵부답 혁신의 길로 들어갔다.

 

그렇지만 통합을 위한 노력도 병행했다. 그해 7월 당직 개편에서 문 대표는 자기 사람을 단 한 명도 쓰지 않았다. 대표 비서실장엔 김한길과 가까운 박광온 의원을 임명했고 핵심인 조직본부장엔 박지원의 측근인 이윤석 의원을 앉혔다. "김한길계가 문재인호 당직 장악"이라는 기사가 나올 정도였다. 과거 여의도정치의 문법은 당연히 서로의 지분을 보장하며 나눠먹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재인은 차라리 자리를 비워둘지언정 거래에 나서지 않았다. 결국 문재인의 복심이라던 윤건영 의원도 당에 들어오지 못했고 비서실 부실장을 공석으로 남겼다. 금번 조정식 사무총장의 유임이 아쉬운 이유다.

 

이렇듯 문재인은 내 줄 것은 내주면서도 혁신을 확실하게 밀어붙였고 결국 당대표 취임 1년 이내에 모든 것을 마무리했다. 이를 통해 얻은 것은? 바로 리더십의 명분이었다. 이로 인한 여론의 지지는 덤이다. 문 대표가 당시 비주류 측과의 갈등 과정에서 대표직 재신임을 거는 등 때로 강경하게 나아갈 수 있었던 것도 혁신이 문 대표에게 확실한 주도권을 가져다 줬기 때문이다.

 

다음 사례는 문재인 대표가 물러나며 영입한 김종인이다. 분란이 끊이지 않고 집단탈당까지 벌어졌던 민주당이 확 달라졌다. 과거 민주당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며 '전제군주'라는 세간의 평까지 있었지만 강력한 리더십으로 민주당을 작지만 강한 정당으로 변모시켰다. 특히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친노의 상징인 이해찬은 물론 유인태, 정청래, 강기정, 전병헌, 김현 등을 공천 배제해 난리가 나기도 했다. 결과는? 참패가 예상되던 총선에서 민주당은 새누리당을 누르고 제1당에 올랐다.

 

국민은 실력 있는 정당을 원하고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일부 지지자들이 선명성을 요구하지만 선명성이라는 것도 실력이 전제되지 않으면 우유부단, 우왕좌왕으로 귀결된다. 지금의 민주당이 그렇지 않은가. 지지자들 장단에 춤을 추며 자기가 판 벌여놓고서는 그 판 마무리도 하지 않은 채 또 우르르 몰려다니며 새로운 판 벌이자고 춤을 추는 저들을 국민이 어떻게 신뢰하겠는가.

 

무려 169명의 국회의원을 보유한 거대 정당이기에 지금 민주당의 무능함은 더욱 빛을 발한다. 결국 지금 민주당의 문제는 표면적으로는 대표의 사법 리스크 때문이라고 이야기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당 자체가 방향도, 목표도, 실력도 없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재명의 길은 무엇일까. 이 당을 계속 끼고 갈 것인가. 그러면 대권이 오는가

정희준 문화연대 집행위원 | 프레시안 2023.03.30.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결단' 내려야 한다

적대적 공생을 강화하는 제1야당의 행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단행한 당직 개편으로 민주당 내에서 쇄신 요구는 당분간 잦아들 전망이다. 정책위의장, 전략기획위원장, 지명직 최고위원, 대변인 등을 비명계 인사로 교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적 쇄신의 핵심은 조정식 사무총장 유임 여부였지만 사무총장은 유임됐다는 점에서 이번 인사에 대해 비명계 일각에서 '탕평을 빙자한 미봉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민주당 문제의 핵심은 이재명 대표의 거취다. 이 대표가 기소된 이후 당무위원회는 당헌 80조의 예외조항을 적용하여 이 대표의 당직을 정지하지 않았다. 검찰 수사가 '정치 탄압''정치 보복'이라는 이유에서다. 민주당 주류가 언제까지 이 대표의 여러 혐의들을 모두 '검찰공화국''사법사냥'으로 치부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이 대표가 대선에서 승리했다면 그에 대한 검찰 수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법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위험한 발상이기도 하다. 본질은 재판에 회부된 이 대표가 과연 검찰의 공소장에 적시된 혐의를 정말로 저질렀는지 여부다. 그러나 이는 법원의 판단 이전엔 모두 각자의 주장에 그칠 뿐이다.

 

정치와 법치가 병존하는 게 민주주의의 통치 원리이고 각 영역은 조응할 수도, 전혀 별개로 작동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절차적 정당성을 상징하는 총선은 법적 영역이 아니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내년 총선 때까지 법원의 최종 판단은 내려지지 않을 것이다. 유권자들은 이 대표의 혐의에 대해서 각자의 정치적·법률적 판단을 가지고 투표장으로 향할 것이다.

 

만약 총선 때까지 민주당이 이 대표와 거리를 두지 못하고 이 대표의 대표직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선거를 치르면 민주당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구도에서 선거를 치르게 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국민의힘이 표면적으론 이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지만 이 대표가 대표직을 유지해 내심 민주당이 사법리스크의 족쇄가 되기를 바라는 이유다.

 

민주당 대표의 사법 문제는 단순히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적대적 공생을 기본 구도로 하는 한국 정당체제에서 이 대표의 대장동·백현동 등 각종 혐의가 여야 공방의 블랙홀이 되고 정책과 현안들에 대한 토론과 협의가 실종되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다. 이 대표와 친명계는 자신들에게 제기되는 비판 여론의 화살을 돌리고 국면을 전환하기 위하여 국민의힘 등 여권에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내고 이에 맞서는 국민의힘의 야당 공세 역시 더욱 가팔라지는 악순환의 구도이다.

 

여러 주장과 관점이 난무하지만 모든 걸 감안한다 해도 이 대표가 자신의 거취에 대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불과 23만 표 차이로 패배했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당에 더 이상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 물론 이 대표 기소에 대해 야당 탄압 수사이므로 반대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51.6%에 이르는 여론 조사도 있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 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 25-27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6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 포인트)

 

그러나 내년 총선 때까지 사법부의 판단도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법리스크를 계속 안고 간다면 민주당은 대안정당과 제1야당으로서 여권을 견제 심판할 명분을 찾을 수가 없다. 집권 후 여권의 여러 실책과 무능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정당지지도는 여당과 엎치락뒤치락 한다. 최근 한일 정상회담의 비판여론과 주 최대 69시간 근로 문제로 인한 반사이익으로 국민의힘과 접전을 보이는 정도다.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에 대한 이탈표가 예상외로 많았다는 사실은 본질과는 거리가 먼 당직개편으로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선행지표에 다름 아니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공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저자들은 '모든 성공적인 민주주의는 비공식적인 규범에 의존한다'며 강력한 민주주의 규범을 민주주의의 성공 요인으로 꼽는다. 이는 '제도적 자제'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더구나 성문화된 당헌에 명시된 조항의 예외 적용은 규범을 깨는 행위이다.

 

미국의 워싱턴 대통령은 "권력을 기꺼이 내려놓음으로써 권력을 얻었다"는 진리를 깨달았다고 한다. 자제의 규범이 민주주의 유지에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례이다. 이 대표가 진정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제의 규범을 통하여 결단을 통한 자기희생을 보여줘야 한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 프레시안 2023.03.31

 

 

탄핵, 행정부 견제 위한 헌법상 책무

대통령제 국가에서 입법부와 사법부는 행정부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압도적인 힘을 지닌 행정부가 독주하면, 입법부와 사법부가 통제할 방법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고위공무원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며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대통령이 인사권자로서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별로 없다. 대통령과 대통령이 임명하는 고위공무원은 한통속이기에 대책도 별로 없다. 심지어 범죄를 저질러도 행정부에 속한 경찰이 수사하지 않고, 검찰이 기소하지 않으면 단죄할 기회조차 없다.

 

다행히 우리 헌법은 이럴 때 쓰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 바로 탄핵이다. 고위공무원의 위헌·위법 행위를 따져 국회의 소추와 헌법재판소 심판을 통해 파면하는 제도다. 헌법과 법률의 규범력을 확보하려는, 곧 민주헌정 질서를 위한 안전장치다. 노무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 때문에 시민들에게도 익숙한 제도다. 그렇지만 실제 탄핵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박 전 대통령만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것은 아닐 텐데도 그렇다. 탄핵은 헌법 제정 이후 75년 동안 작동하지 않았던 사실상 사문화된 제도였다.

 

대통령을 제외한 고위공무원 탄핵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의 발의와 과반수 찬성으로 소추할 수 있다. 지금이라면 더불어민주당 의석만으로 고위공무원에 대한 탄핵소추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제외하곤 탄핵소추를 받은 고위공무원은 없었다. 국회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탓이다.

 

탄핵은 국회의 권한이지만 동시에 책무다. 그러니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고위공무원이 있는데도 탄핵소추가 없었다면, 그건 국회의 직무유기다. 직무유기는 공무원이 정당한 이유 없이 직무수행을 거부하거나 직무를 유기할 때 적용하는 형법 범죄다. 그만큼 심각한 일이다.

 

윤석열 정권이 남발하는 이른바 시행령 통치는 법률에 어긋나는 시행령으로 법률을 무력화시키는 전형적인 위헌·위법 행위다. 검찰 수사권을 늘리려는 꼼수나 행안부 경찰국 신설 등은 모두 시행령만 바꿔 진행한 일이었다. 국정을 좌우하는 전·현직 검사들이 그래도 법을 안다는 점을 감안하면, 죄질이 나쁜 위헌·위법 행위다. 이런 일을 벌인 사람들인 법무부 장관이나 행안부 장관과 책임 있는 자리에서 일하는 검사들은 모두 탄핵 대상이다.

 

문제는 탄핵 대상은 많은데, 실제로 탄핵을 추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거다. 지금 이 순간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탄핵소추하면, 그의 국회의원 출마를 도와줄 거라는 식의 정치적 셈법에만 신경쓰는 것 같다. 탄핵은 면밀하게 검토하되 탄핵 대상이 되면, 탄핵소추를 하면 그만이다. 탄핵심판은 헌법재판소의 몫이니 국회는 국회의 일만 하면 된다.

 

경찰청장도 탄핵대상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번 총경 인사에서 행안부 경찰국 설치와 관련한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을 빠짐없이 좌천시키는 보복 인사를 했다. 아무 잘못이 없기에 징계조차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일부는 복수직급제를 활용해 총경 계급을 경정 계급의 보직으로 쫓아냈지만, 어떤 사람은 법령의 근거조차 없이 경감 계급으로 쫓아내기도 했다. 경찰청장이 법령의 근거도 없이 위법 부당한 인사를 자행하는데, 국회는 이를 견제하기 위한 가장 실효성 있는 헌법상 권한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이야 정부의 잘못을 감싸기 급급하다 쳐도, 연일 검사 독재를 규탄하는 더불어민주당이 헌법이 보장하는 쓸모있는 제도를 회피하는 까닭을 모르겠다.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조작한 국가정보원 직원들은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지만, 검사들 중에 기소된 사람은 없었다. 이런 대목이 바로 검찰공화국의 면모다. 이 중 검찰을 그만두고 대통령실 요직을 차지한 사람은 탄핵대상이 아니라 어쩔 수 없다지만, 현직 검사로 일하는 사람은 지금이라도 탄핵소추를 할 수 있다. 검사도 탄핵당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기면, 검사의 불법적 준동도 막을 수 있다. 이게 일벌백계의 원리다.

 

국회의 탄핵소추 자체가 없는 것은 법리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당의 의지와 태도의 문제다. 정권은 빼앗겼지만, 국회 다수당으로서 별로 아쉬울 게 없다는 웰빙 정당으로서의 자기만족이 아니라면, 민주당은 위헌·위법 고위공무원에 대해 당장 탄핵에 나서야 한다. 말로는 검사 독재라며 윤석열 정권을 비판하면서도, 관심은 온통 내년 총선에서의 정치생명 연장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야당 의원들의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 경향 2023.03.31.

 

 

정의 실현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목숨 걸고 해야

세상은 고 전두환씨 손자의 비자금 관련 폭로로 분노와 좌절에 휩싸여 있다. 손자는 수많은 비리 의혹을 알렸다.

 

그런데 그 폭로가 사실이라도 대한민국 법제에선 그 비자금을 추징할 수 없다. 전두환씨 사망으로 인해 추징의 문이 굳게 닫혔기 때문이다. 법이 왜 이 모양인가? 잠시 분노와 좌절은 접어두자. 현재의 문제점을 살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미래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전씨에 대해 비자금을 추징할 수 있는 법은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이다. 2013년 법이 개정되면서 전씨의 비자금임을 알고 취득한 제3자에 대해 추징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법 개정 이후 검찰은 대대적인 수사를 진행했다.

 

1997년 확정 판결 시 받은 추징금 2205억원이다. 이 중 2022년 현재 검찰은 58.2% 환수하여 922억원이 미납된 상태이다.

 

그런데 202111월 전씨 사망으로 추징의 문이 닫혔다. ‘재산형 등에 관한 검찰 집행사무규칙에선 당사자가 사망하면 집행불능으로 사건을 종결처리 한다. 첫 번째 문이 닫힌 것이다.

 

이에 검찰은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에 착안하여 현재 살아있는 제3자가 취득한 재산에 대해 추징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대법원에서 불허하였다. 형사소송법 제478조에선 몰수 또는 조세, 전매 기타 공과에 관한 법령에 의하여 재판한 벌금 또는 추징은 그 재판을 받은 자가 재판확정 후 사망한 경우에는 그 상속재산에 대하여 집행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상속재산에 추징할 수 있다는 특별규정이 없어 형사소송법 규정을 따라 상속재산에 추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대법원이 내렸다. 추징의 문이 완전히 닫힌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의견은 좀 다르다. 법은 몰수의 경우만 상속재산에 집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몰수와 추징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범죄로 금괴를 받은 경우 그 금괴가 있다면 몰수를 그 금괴를 팔아서 돈으로 가지고 있다면 추징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사소송법 몰수에 추징을 포함하는 것은 금지되는 유추가 아니라 허용하는 확대해석으로 볼 수 있다.

 

다행히 지금 국회엔 형법 제478조 개정안이 올라와 있다. 이 법이 통과되어도 전씨에 대해 소급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다시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전씨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최고위층의 도덕성을 높이고, 불법 재산 형성을 막기 위해서 이 법안은 반드시 통과되어야 한다.

 

전씨에 대한 추징이 불가능하다면 다른 추징 방법은 전혀 없는 것일까?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먼저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범죄수익을 은닉하면 처벌한다. 또 범죄수익은 몰수의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현재 전씨의 범죄수익을 알고 은닉하면 처벌한다. 다만 공소시효가 7년이다. 공소시효는 은닉행위를 할 때부터 진행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은닉행위를 계속범으로 본다면 공소시효가 진행되지 않는다. 대법원의 판단을 한번 받아보자. 해볼 만하다.

 

다음으로 외국환거래법에 따르면 지급 방법 신고 위반 등으로 취득한 외국환이나 증권, 귀금속, 부동산 및 내국지급수단은 몰수 또는 추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손자에게 불법 송금한 외국환 등이 있다면 기부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가 몰수 또는 추징해야 한다.

 

현대사에서 ‘5·18 민주화운동이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다. 정의 실현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목숨 걸고 해야 가능하다. 그래야 신뢰받는 정부가 될 수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경향 2023.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