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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2023.2.1~28 적(敵)개념의 과잉시대

by 이성근 2023. 2. 28.

역사와 싸우려는 대통령 송기호 변호사 경향 : 2023.02.01.

()개념의 과잉시대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경향 : 2023.02.01.

조희연 재판과 한국 사회의 시대착오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 한겨레 : 2023.02.01.

방송장악, 이제 대통령실이 직접 나설 참인가 이채훈 전 MBC PD 미디어오늘 2023.02.02.

손희정 문화평론가 경향 2023.02.02.

연금전문가들은 왜 의견이 갈릴까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경향 2023.02.02.

무인기 사태에서 드러난 윤석열 정권의 자업자득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한겨레 2023.02.02.

김명인 | 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문학평론가 한겨레 2023.02.02.

윤 대통령은 이 되고 싶은 건가 - 눈 떠보니 후진국 4

입만 있고 귀는 없는 사회 박현 | 논설위원 한겨레 2023.02.02.

나라 구하다 죽었냐고? 재난은 신의 영역이 아니다 김민성 한국인권학회 이사 | 프레시안 2023.02.02.

사설] 노동자 임금격차, ‘산업 이중구조가 본질이다 한겨레 2023.02.02

생태위기 시대, 해를 주지 않는 의료 박기헌 치과의사 (webmaster@idomin.com) 경남도민 20230202

기준금리 내리면 집값이 반등할까?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민중의 소리 2023-02-02

그토록 치밀하고 친절한 적, 소선거구제 구혜영 정치에디터 경향 : 2023.02.03.

고발 사건 처리, 왜 경찰과 검찰이 다를까 승재현 한국형사 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경향 : 2023.02.03.

그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채효정 오늘의 교육편집위원장 경향 : 2023.02.06.

박정희 신앙의 미래 한승훈 | 종교학자·한국학중앙연구원 한겨레 : 2023.02.06.

강희철 논설위원 hckang@hani.co.kr 한겨레 : 2023.02.06.

이상민은 꺼져주세요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경향 : 2023.02.07.

고 임보라 목사와 다음 소희’, ‘어른 김장하 박미향 | 문화부장 한겨레 : 2023.02.07.

최대 다수당이 장외투쟁? 민주당 지지율이 낮은 이유 정희준 전 동아대 교수 | 프레시안 2023.02.07.

사법독재의 시대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시민언론 민들레 2023.02.07.

검찰정권과 언론, 그리고 지록위마(指鹿爲馬) 김은규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전북일보 2023.02.07.

지하철 무임승차로 눈치보는 노인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경향 : 2023.02.08.

대통령은 부디 칼을 거두시라 김태일 장안대 총장 경향 : 2023.02.09.

반헌법적 '삼권통합' 정권 이승환 뉴미디어부장 (hwan@idomin.com) 경남도민 : 2023.02.09.

국민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게 먼저다 .문용식 아프리카TV 창립자, 전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장 시민언론 민들레: 2023.02.09.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경향 : 2023.02.10.

금산분리 완화라는 판도라의 상자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경향 : 2023.02.10.

론스타 사태: 모피아가 무너뜨린 금융감독 윤석헌 | 전 금융감독원장 한겨레 : 2023.02.10.

 

돈의 논리에 빠진 한국사회 <박이대승 정치철학자> 주간경향 2023.02.13.

다크투어리즘과 이태원 참사 문주영 전국사회부장 경향 2023.02.13.

포스코·곽상도 판결 유감 박경신 고려대 교수·오픈넷 이사 경향 2023.02.13.

곽상도 사건의 판결을 보는 법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경향 2023.02.13.

건설노조 마녀사냥하는 정부, 건설자본에 휘둘리는 언론 박석운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 / 미디어오늘 2023.02.13.

비상시국회의에 바란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경향 2023.02.13.

두 아버지, 가만한 슬픔과 전략적 표정 안영춘 논설위원 한겨레 2023.02.13.

일본 표류하게 만든 근대의 가을’, 한국은 더 혹독하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 경향 2023.02.15.

경향 사설 은행들의 성과급·퇴직금 잔치, 사회적 책임은 잊었나 송경호 연세대 정치학과 BK21교육연구단 박사후연구원 경향 : 2023.02.15

800원 대 50억원의 정의론 조형근 | 사회학자 한겨레 : 2023.02.15.

누가 마른 여자되기를 강요하는가 이유진 | 토요판 선임기자 한겨레 : 2023.02.15.

한 설움이 가면 다음 봄꽃들이 피어나 김병익 | 문학평론가 한겨레 : 2023.02.16.

앞으로 10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 한겨레 : 2023.02.16.

군인·탱크 많다고 전쟁 이기나?34년째 콩알세는 국방백서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한겨레 : 2023.02.17.

사법 전쟁 치닫는 '3류 정치', 대통령부터 달라져야 한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프레시안 : 2023.02.17.

헌법이 밥 먹여 주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경향 : 2023.02.17.

우크라 전쟁 1, 한국전쟁 70‘21세기 애치슨 라인은 박민희 논설위원 한겨레 : 2023.02.19.

.통일은 도둑처럼 오지 않는다 김연철 | 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 한겨레 : 2023.02.19.

불로소득자본주의와 은행 돈잔치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경향 2023.02.20.

북한 왜 이럴까? 답은 한미에 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 프레시안 2023.02.20.

검찰의 ''이재명 4895억 배임', 수사가 사람을 따라가고 있다 이석배 단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 프레시안 2023.02.20.

불로소득자본주의와 은행 돈잔치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 경향 2023.02.20.

빈곤과 불평등 없는 세상 향한, 기억과 행동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 경향 2023.02.20.

말뿐인 정부의 체계적 관리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 경향 2023.02.20.

용산 대통령실에서 다음 소희를 상영하라 김영희 | 편집인 | 한겨레 2023.02.20.

불체포특권에 관한 헛소리 유시민 작가 시민언론 민들레 2023.02.20.

 

국민은 대통령 부하가 아니다 강병한 정치부 차장 | 경향 2023.02.21.

불체포특권과 민주주의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 경향 2023.02.21.

기분에 좌우되는 법과 원칙 변재원 작가·소수자정책연구자 | 경향 2023.02.21.

재계와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몰염치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 경향 2023.02.21.

정의로운 기억을 가진 자들이 길을 막는다 이상헌 |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 한겨레 2023.02.21.

검심 가득이재명 구속영장, 김건희 수사는? 손원제 | 논설위원 | 한겨레 2023.02.21.

글로벌 대학, 글로컬 대학뭔 소리니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 경향 2023.02.21.

국민을 살해한 국가 손아람 | 작가 | 한겨레 2023.02.22.

-' 환상의 짝꿍 강기석 민들레 상임고문 시민언론 민들레 2023.02.22.

‘20년짜리 진보정치한 사이클이 끝났다 최병천 <좋은 불평등> 저자·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 경향 2023.02.23.

눈 떠보니 후진국 5윤 대통령 철 지난 신자유주의타령 박현 ㅣ 논설위원 | 한겨레 2023.02.23.

국민은 피곤하다 조홍민 사회에디터 | 경향 2023.02.24.

다음 소희, 유최안, 김건희특권은 누가, 책임은 누가 강수돌 |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 한겨레 2023.02.24.

법 기술자들의 나라 박용현 | 논설위원 | 한겨레 2023.02.26.

무엇을, 누구를 위한 독자 핵무장론인가 문정인 | 연세대 명예교수 | 한겨레 2023.02.26.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정부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 경향 2023.02.27.

윤폭과 핵관의 힘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경향 2023.02.27.

이재명의 꿈이 불편한 이들 최배근 건국대 교수 시민언론 민들레 2023.02.27.

무법과 특권 공유한 정순신 부자세도정치 시절이 그랬다 오수창 서울대 역사학부 교수 한겨레 :2023-02-28

한동훈 장관처럼 박민식 처장도 이주현 | 이슈부문장 한겨레 :2023-02-28

이재명 체포동의안 이탈표는 환난의 예고편일 뿐 강희철 | 논설위원 한겨레 :2023-02-28

정순신 파동이 보여준 검찰공화국의 미래 김민아 논설실장 경향 :2023-02-28

법무부 장관의 논리학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경향 :2023-02-28

 

 

역사와 싸우려는 대통령

존경하는 사람과 한 시대를 같이 사는 일은 감사하다. 새해에 진주 문화방송의 <어른 김장하> 영상을 보았다. 돈은 똥과 같아서 한 곳에만 모아 놓으면 악취가 나지만 밭에 고루 뿌리면 좋은 거름이 된다는 그의 철학에 피부로 공감했다. 어린 시절, 선친께선 똥장군의 무게를 무릅쓰고, 조금이라도 밭에 더 고루고루 똥을 뿌리기 위해 무진 애쓰셨다.

 

한 시대의 어른을 직접 뵙는 일은 더욱 감사하다. 한국 포도 농사의 선구자 김성순님께서 새해 좋은 글을 보내 주셨다. 그는 한 농민의 고백이라는 글에서, 그가 대구사범학교 3학년에 맞은 8·15 해방을 이렇게 썼다. “백지 상태에서 갑자기 맞은 해방, 어두운 방 안에 갇혀 있던 사람이 갑자기 대낮 거리 한복판에 세워진 것과 다름없었다.” 1949년에 김구 선생이 흉탄에 쓰러진 후, 청년 김성순은 분단 반대 전단을 돌렸다고 감옥에 갇힌다. 1951년에 구사일생으로 옥에서 나와 공군과 육군에서 7년간 군 복무를 한다. 그리고 1960년 김천에 캠벨포도 묘목 400주를 심는다. 그리고 평생 농업과 생명 운동에 헌신하였다.

 

나는 두 어른의 삶에서 대한민국 역사의 힘을 본다. 그들은 우연히 나타나지 않았다. 1919, 우리 민족은 3·1 독립운동을 이어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반포하였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과 민주공화제 정체성을 성취하였다. ‘대한민국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 계급이 없이 평등함을 선언하였다. 종교, 언론, 저작, 출판, 결사, 집회, 통신, 주소 이전, 신체 및 소유의 자유를 확인하였다. 차별없는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세웠다. 이미 1919년에, 일본 식민주의자들과 천황주의자들보다 더 문명사적으로 진보한 대한민국이 성립하였다. 김장하들과 김성순들은 이러한 정신사적 품 안에서 탄생했다.

 

대한민국 대법원이 2018년에 내린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판결은 역사적 사건이다. 1919년 대한민국의 민주공화제를 제대로 실현하려는 역사의 산물이다. 대법원은 일본 기업들이 불법적인 일제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하여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선언하였다.

 

전 일본변호사회 회장 우쓰노미야 변호사도 2019년에 발표한 일제강제동원문제의 과거 현재 미래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은 국가 간 협정에 의하여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일본 정부의 해석이고 최고재판소의 판결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피해자가 대법원 판결을 집행하려는 것을 한사코 막으려고 한다. 만일 정부의 계획대로 이번 피해자 대법원 판결 집행이 좌절된다면, 앞으로 일본은 이를 철저히 관례로 이용할 것이다. 아직 일본기업을 상대로 소송조차 하지 못한 수많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있다. 이들의 권리를 한국 정부가 앞장서 막는다면 역사와 싸우는 것이다.

 

일본의 전략은 무엇인가? 한일청구권협정을 한국법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한국 안에서 한국 법원을 지배하는 한국 국내법 질서로 만들어 한국 속에 내면화하려고 시도한다. 윤석열 정부가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 집행을 막으려고 하는 것 자체가 이러한 일본의 전략에 동조하는 것이다. 역사와의 싸움이다.

 

왜 한국 정부의 노력에도 진전이 없는가? 강제동원이라는 본질을 일본이 끝내 부인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이 판결문에서 사용한 강제동원이라는 표현 자체를 강력하게 거부한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2015년 박근혜 정부의 이른바 불가역적인위안부피해자 해결 합의라는 것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일본은 위안부 피해의 강제성을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일본은 2019년 일본이 반도체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을 제한하여 한국의 대법원 판결을 억누르려고 시도했다.

 

일본 수출 규제 이후, 나는 2가지 해결 방법을 제안하였다. 첫째 대법원 판결의 신속한 집행이다. 강제동원 가해 일본 기업에 배상을 명령한 그 어떠한 대법원 판결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그 집행이 좌절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한국 정부의 주도적 조치이다. 소송조차 하지 못하고 마냥 나이 들고 세상을 떠나시는 강제동원 피해자를 포함하여, 지금까지 어떠한 피해 배상도 받지 못한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의 눈물을 정부가 닦아 주어야 한다. 참으로 오랜 시절, 이들의 희생을 외면한 도의적 책임이 한국 정부에 있다. 국가가 위로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리고 피해자의 동의를 받아 피해자의 청구권을 정부가 양도받아서 일본과 사죄와 배상을 포함한 포괄적 해결을 논의해야 한다. 그것이 이땅의 김장하들과 김성순들과 함께 사는 길이다.

송기호 변호사 경향 : 2023.02.01. 

 

 

()개념의 과잉시대

그동안 끈질기게 우크라이나가 요구했던 독일산 전차 레오파르트 2’의 우크라이나 반출을 독일 정부는 지난 125일 공식적으로 허락했다. 우크라이나 확전에 독일이 끌려들어 갈 위험을 우려해서 공격용 무기 제공에 신중했던 사민당 출신의 총리 숄츠가 국내외의 압력에 결국 손을 들었다.

 

미국의 압력도 강했지만, 연정의 파트너인 녹색당과 자민당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숄츠는 독일을 포함한 나토가 참전국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독일이 레오파르트 2의 반출을 우여곡절 끝에 허가한 그날로 우크라이나는 지원무기의 희망목록에 신형 전투기 유러파이터, 전투함과 잠수함 등을 올렸다.

 

여기서 나는 반전평화에 지금까지 어느 당보다 가장 중요한 가치를 부여해왔던 녹색당이 우크라이나에 무기공여를 가장 강력하게 지지하는 행보에 눈을 돌리게 된다. ‘녹색당이 이제 전차당이 되었느냐’, 녹색당의 상징적 인물의 하나였던 페트라 켈리(1947~1991)를 떠올리며 페트라 켈리가 무덤에서도 등을 돌릴 것이라는 비난과 비판의 소리도 들린다.

 

독일이 80년대와 오늘날 해결해야 할 과제와 이의 해결방식 사이에는 사실 많은 차이가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말미암은 에너지 문제로 종래의 탈원전정책에 손질을 가했고, 얼마 전에는 갈탄을 사용한 발전소 건립도 허가해서 탄소 중립화를 가장 앞장서서 주장했던 녹색당의 정체성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를 두고 많은 논쟁을 낳았다.

 

이 모든 질문에 한결같이 나오는 답은 실용주의다. 원칙에만 묶여 있지 않고 유연성을 발휘해, 변화하는 현실에 적응하면서 원래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지연되는 탄소 중립을 빨리 실현하기 위해서도 우선 갈탄을 사용하는 화력발전소의 건설을 허가해야 한다는 논리, 유럽의 평화를 위해서는 먼저 우크라이나의 전쟁수행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가 그렇다.

 

1999년 봄, 2차대전 후 처음으로 독일이 세르비아와 코소보 사이의 전쟁에 나토 연합군의 성원으로 전쟁에 참여했던 사민당과 녹색당 연정 때 외무부 장관도 녹색당의 요스카 피셔였다. 당시 이 결정 때문에 당내에서 많은 갈등이 있었는데 이번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문제와 관련해서는 이상하게도 조용하다.

 

반전의 가치 깬 독일 녹색당 의아

이러한 차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국제정치적 지형도의 변화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침략전쟁을 감행한 러시아와 이에 저항하는 우크라이나의 존재를 사실상 적국과 동맹국 관계로 보고 있는 데 있다. 물론 나토의 동진정책도 하나의 원인이었지만 이것만으로는 침략전쟁의 명분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외교적 방법을 통한 문제 해결보다는 우선 피해자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가 급선무의 과제이고 전투무기의 지원도 따라서 당연하다는 것이다.

 

지금 녹색당의 지지율에 근접하고 있는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의 지지자들은 이와 반대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이 유럽을 러시아와 싸우도록 해서 유럽의 강자인 독일의 영향력을 통제하기 위한 세계전략의 하나로 보고 있다. 음모론적인 시각이라고 볼 수 있지만, 독일의 극우세력이 대러시아 민족주의를 담고 있는 푸틴주의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독일의 우크라이나 무기지원을 둘러싸고 관여하는 나라들이 모두 극도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녹색당 출신의 외무부 장관 안날레나 베어보크가 한 발언이 큰 파장을 나았다. 우크라이나에 레오파르트 2를 공여하겠다는 방침을 공표하기 바로 전날, 스트라스부르의 유럽평의회에서 베어보크는 우리는 러시아에 대항해서 전쟁하고 있지, (우리 사이에) 서로 싸우는 것은 아니다라고 발언했다. 여기서 우리는 물론 유럽연합을 의미한다.

 

이 발언에 대하여 러시아 외무성은 즉각적으로 독일은 한편으로는 우크라이나에서 참전국이 아니라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유럽국가들은 지금 러시아와 전쟁 중이라고 했다.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당신들 스스로는 이해하고 있는가라고 반박했다.

 

미숙한 젊은 외무부 장관의 큰 실언이라지만 이미 알려진 비밀을 발설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서 얼마 전에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외국 순방 중에 남긴 발언이 떠올랐다. ‘형제국의 안보는 바로 우리의 안보다.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적은 이란이고, 우리의 적은 북한이다라는 발언에 대하여 이란은 전적으로 무지하다’ ‘심각하게 주시하고 있다는 표현으로 곧 항의했다.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적이 이란이라는 말은 이 두 나라와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제3국의 통치권자로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실언이었다. 이란은 이를 남한과 아랍에미리트연합 사이에 있었던 이미 알려진 비밀에 대한 하나의 확증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실언에는 현재의 남북한 사이의 심각한 적대 관계를 단순하게 다른 나라에도 그대로 투영시켜 이 두 나라도 사정은 우리와 마찬가지거나, 아니면 비슷할 것이라는 추론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는 그러나 사실관계에 배치된다.

 

서방 측이 주도하는 경제 제재 아래서도 이란에 아랍에미리트연합은 중국 다음의 최대 수입국이고, 한국에 이은 다섯 번째의 수출국이다.

 

이렇게 복잡한 국제관계에도 러시아, 중국, 이란 그리고 북한이 오늘 날 거의 의심할 바 없는 국제사회의 적으로 인식되는 일반적인 현상의 본질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의 하나로서 나치 독일의 대표적인 공법학자 카를 슈미트(18861985)<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떠올리게 된다.

 

이에 따르면 국내정치에서 언급되는 정적이나 국제관계에서 규정되는 적국을 막론하고,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것의 본질은 적을 전제한다는 것이다. 적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정치가 있을 수 없고, 이는 종교적, 윤리적, 심미적, 경제적인 정의의 밖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적과의 투쟁 속에서 살아야 하는 자는 적이 살아 있어야만 그의 존재가치가 있다는 역설을 지적한 니체의 궤적을 쫓고 있다. 따라서 전쟁을 반대하는 전쟁을 해야만 하는 평화주의는 정치 없는 세계를 지향하기 때문에 애초부터 성립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보복 악순환은 우리를 장님 만들어

냉혹한 정치적 현실주의의 이런 기조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함께 유럽의 전통적인 보수주의나 신보수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이제 자유주의와 이른바 실용주의적인 평화주의 안에도 자리를 잡게 되었다. 식민지, 분단, 전쟁, 군사독재 그리고 이에 저항한 강렬한 투쟁도 있었지만, 한국의 정치에는 기본적으로 이런 슈미트류의 보수적 혁명이 요구하는 결단주의와 초법주의가 하나의 큰 흐름을 이루고 있다. 윤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적인 북한과 남한의 종북세력의 온상인 노동운동에 대해서 단호하게 대처하는 결단력과 추진력을 높이 사는 것도 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다. 이런 현실을 일종의 정서적 내전상태로서도 볼 수도 있지만, 스페인 내전에서 보였던 반파시스트 공화파와 프랑코가 이끈 국민파 간의 유혈투쟁을 뒷받침했던 그런 과격한 정서는 아니다. 그러나 선과 악, 빛과 어둠의 두 세계로 모든 것을 갈라 보는 마니교적인 정서가 사회 전반에 걸쳐 흐르고 있기에 대화와 소통공간의 확충을 대다수가 절실히 바라고 있다.

 

이해관계의 심도에 따라 내 편과 네 편을 갈라 끼리끼리 뭉쳐 싸우는 가운데 국내정치에서 흔히 입에 올리는 적이나 정적은 관습적인 적의 개념에 속한다. 그러나 남북관계에서 자주 등장하는 적 또는 주적은 그러한 개념이 아니라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파괴하는 것도 포함하는 절대적인 적개념이다.

 

신자유주의가 증폭시킨 강자와 약자 사이의 심한 갈등, 신냉전이 몰고 온 전쟁까지도 불사하는 지구촌의 패권 경쟁의 구조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를 지금 찾기는 사실 힘들다. 그런데 한국의 사회갈등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산출한 정치, 경제 그리고 사회분야를 종합한 갈등지수에서 가맹국 가운데 제일 심각하다. 게다가 남북 간의 오랜 군사적 긴장과 북핵문제가 이와 엉켜 있다.

 

이런 위기의 상황이기에 가상의 적이거나 현실적인 적에 대한 경멸과 증오의 소리는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눈에는 눈이라는 식의 보복과 복수의 악순환은 우리 모두를 장님으로 만든다는 마하트마 간디의 경고를 잊어서는 안 된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경향 : 2023.02.01.

 

 

조희연 재판과 한국 사회의 시대착오

지난 127일 서울중앙지법은 해직 교사 5명을 부당하게 특별채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에게 징역 1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조 교육감은 전교조 출신 특정 교사 채용을 위해 교원 임용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조 교육감은 해직자 특별채용은 사회적 화합을 위한 적극적 행정의 일환으로 해직자가 제도권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사회적 정의라고 생각했다면서, “제도 개선으로 마무리됐어야 할 사안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수사하면서 잘못된 경로를 밟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임용 절차상 문제를 지적하고 조 교육감은 임용의 사회적 의미를 강조하는 형국이지만, 나는 조희연 재판에서 퇴행성과 기형성 그리고 보수성을, 한마디로 대한민국이 여전히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사회인지를 뼈저리게 절감한다.

 

첫째, 조희연 재판은 한국 사회의 극단적 퇴행성을 보여준다. 이번 재판의 근원사건은 교사의 해직이며, 해직의 사유는 공직선거법 위반이다. 간단히 말해, 정치활동이 금지된 교사들이 정치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해직된 것이다. 우선 이 해직 사유 자체가 지극히 시대착오적이다.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을 박탈하고 있는 현행법은 한국 민주주의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악법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38개국 중에서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을 완전히 박탈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선진국일수록 교사의 정치 참여가 활발하다. 독일의 경우 국회의원의 13% 안팎이 교사이다. 교사는 독일 의회를 구성하는 직업군 가운데 법률가 다음으로 많은 의원을 배출하는 직군이다. 핀란드 의회는 교사 비율이 20%를 상회하기도 한다. 오이시디 가입국들의 교사 의회 진출 비율은 평균 10% 안팎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회엔 교사가 한명도 없다. 과거 교사였던 이가 두명 있을 뿐이다.

 

선진국일수록 교사의 정치적 활동과 사회적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군사독재자가 박탈한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을 복원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시대착오적 악법을 근거로 교사를 해직하고, 그들을 구제한 교육감을 단죄하는 역사적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둘째, 조희연 사건이 공수처가 기소한 첫번째 사건이라는 사실도 어처구니없고, 우리가 얼마나 기형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공수처는 알다시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약자로,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의 범죄를 척결하기 위해 설립된 부패수사기관이다. 그런데 조희연 사건이 과연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의 범죄인가. 부당한 권력을 수사하라고 천신만고 끝에 만들어놓은 공수처에서 권력의 부당한 탄압으로 해직된 교사들을 복직시킨 사건을 제일 먼저 문제삼은 것은 한국 사회의 숨은 본성을 드러내준다. 강자와 동일시하고 약자를 혐오하는 현상은 파시즘의 전형적인 행태이다. 이러한 행태가 사회 일반에서뿐만 아니라 권력기관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은 이 사회가 아직도 후기 파시즘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셋째, 조희연 재판은 한국 사법부의 보수성을 다시금 환기한다. 과연 왜곡된 과거,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것이 불법적인 일인가. 켜켜이 쌓인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형식논리적 인식을 넘어서는 역사적 성찰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이번 재판을 보면서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이 재연되는 것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사건의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따지지 않고 기계적으로 내리는 판결은 타당하지도, 정당하지도 않다.

 

조희연 재판과 판결을 보면서, 몇년 전 법무부에서 했던 강연이 떠올랐다. 당시 장관 이하 법무부 고위관료들을 대상으로 했던 강연에서 나는 무사유는 범죄다라는 한나 아렌트의 유명한 명제를 특히 강조했다. “무지는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무사유는 용서할 수 없다. 무지는 지식의 부정이지만, 무사유는 의미의 부정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유하지 않는 판사들이 히틀러의 파시스트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한 결과 인류에 대한 최악의 범죄가 합법적으로 자행됐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길어낸 참혹한 진실이다.

 

조희연 판결은 사안의 의미에 관한 깊은 사유 없이 법률 지식을 기계적으로 적용해 내려진 잘못된 판결이다. 정치적으로 부당하며, 역사적으로 위험한 판결이다. 지식만 있고 사유가 없는 엘리트가 지배하는 나라의 미래는 암울하다. 사법부는 기능적 법 기술자가 아니라 성찰적 법 해석자가 되어야 한다. 법의 영혼은 정의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 한겨레 : 2023.02.01.

 

방송장악, 이제 대통령실이 직접 나설 참인가

방통위 감찰 사령탑 대통령실

 

대통령실이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관계자를 직접 불러 감찰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문재인 정부 시절 임명된 유시춘 EBS 이사장 선임 과정이 적절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라고 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공직자 업무태만 등 공직기강을 세워야 하는 부분을 방치한다면 그게 업무태만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안에 대해 어느 쪽이 옳은지 굳이 시비를 따지고 싶지는 않다. 먼저, ‘업무태만을 거론한 대통령실 관계자에게 묻는다. 물가 상승과 서민들의 생활고, 위기에 처한 남북관계, 순방외교 도중 불거진 부적절한 발언 등 최근 현안에서 대통령실은 업무태만이 없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숱한 현안이 산적한 이 상황에서 공영방송 길들이기에 이토록 많은 인력과 시간을 쏟아붓는 게 국민에게 칭찬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언론과 싸우느라 허송세월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푸념이 나온다는 사실을 대통령실은 모르는 것인가?

 

방송 현안에 대통령실이 직접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방통위와 KBS에 대해 줄기차게 감사를 벌여왔다. TBS 예산지원 중단과 사장 교체는 서울시와 서울시의회의 소관이지만 같은 흐름 속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방통위를 여러 차례 압수수색하고, 실무 국장과 과장을 구속하고, 종편 재허가 심사에 참여한 교수를 범죄 피의자로 취급하는 등 방송 탄압에 앞장서 왔다.

 

이제 대통령실이 직접 감찰에 나선 것은 결국 그동안 검찰과 감사원은 행동대(行動隊)였고, 실제 사령탑은 대통령실이었다는 추론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번 감찰이 EBS 이사장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은 방송장악의 손길이 방통위, KBS, MBC, TBS, YTN을 넘어 EBS까지 확산했음을 보여준다. 이 정부는 사실상 이 나라의 모든 공영방송을 장악하려고 두 팔을 걷어붙였다는 걸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방문진 감사, 새 사장 선임 앞둔 MBC 흔들기

새해 들어 이러한 방송 탄압이 하루가 멀다고 이어지고 있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다. 15일 한동훈-채널A 검언유착을 보도한 KBS 기자 기소 111일 종편 재허가 심사의 실무를 맡은 방통위 차모 과장 구속 115날리면보도한 MBC에 정정보도 청구 126일 방송문화진흥회 현장 감사 시도 130일 대통령실의 방통위 직접 감찰 21일 방통위 양모 국장 구속까지 비상식적인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이 가운데 MBC 방송문화진흥회 감사는 국민감사청구를 받아들인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2월 새 사장 선임을 앞둔 MBC 흔들기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법원은 방통위 양모 국장에 대해서는 111구속할 사유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는데, 검찰은 129일 다시 그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여 결국 21일 만인 21일 구속영장을 받아내는 집요함을 과시했다. 방통위 간부에 대한 구속 수사의 종착점은 결국 한상혁 방통위원장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공영방송에 대해 이 정도이니, 작은 매체에 대한 탄압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더탐사민들레등 정부에 밉보인 시민언론에 대한 압수수색과 기자 소환조사가 백주에 일어났다. 118일 통일TV의 갑작스러운 송출중단은 “30년 케이블TV 역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그 직후에 벌어진 천공법사 KT IPTV 진출은 통일TV 송출중단과 인과관계가 있는지 밝혀지지 않았고 일단 그의 강연 편성이 제외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듯 했지만, 실제로 그가 주관하는 행사 중계는 여전히 살아있다. 정말 해괴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최고 권력자와 그 일가의 심기를 거스르면 공영방송이든 인터넷 언론이든, 아무도 무사할 수 없다는 게 드러났다. 오죽하면 130일 대통령 부인의 과거 주가조작 관여 의혹을 다룬 KBS 1TV <더라이브> 게시판에 이제 더라이브 압수수색?”이라는 댓글이 달렸을까. 이는 많은 사람이 우려해온 검찰 공화국의 맨얼굴이며, 국민 겁박이자 독재 회귀가 아닐 수 없다.

언론이 질문을 못하게 하면 나라가 망한다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이 모든 일의 배후에 대통령실이 존재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와 권력은 원래 욕먹고 비판받으며 일하는 것이다. 듣기 좋은 말만 듣겠다고 고집하면 정치권력은 귀가 먹고 눈이 멀어 필연적으로 부패하게 된다. 정치권력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비판하는 것이 언론이고, 특히 공영방송이다. “언론이 질문을 못하게 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던 최승호 뉴스타파 PD의 절규를 굳이 인용해야 하는가?

 

정부는 물론 이 모든 조치를 법에 따라 실시하는 모양새를 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처럼 적나라한 폭력으로 방송을 장악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걸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정 세력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법을 일방적으로 적용하면 그건 법이 아니라 사회적 흉기가 될 수 있다. 검찰과 감사원이 방송사를 제집처럼 드나들며 조사하는 행태는 군부독재 시절 경찰병력이 군홧발로 방송사를 짓밟은 것과 무엇이 다른가? 대통령실이 방통위를 직접 감찰하는 것은 과거 청와대 쪼인트와 무엇이 다른가?

 

평범한 한 사람의 국민인 나는 이 정부의 브레이크 풀린 질주에 제동을 걸 힘이 없다. 멈추라고 아무리 외쳐도 소귀에 경 읽기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 정부가 추구하는 방송장악, 그 종착점이 어디일지 내 머리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방송장악 기도는 결국 국민의 저항에 부딪힐 것이며, 필연적으로 이 정부의 불행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간곡히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실은 방통위에 대한 부당한 감찰을 중단하라!

검찰과 감사원은 방송장악의 하수인 노릇을 중단하라!

정부는 일체의 방송장악 기도를 중단하라!

이채훈 전 MBC PD 미디어오늘 2023.02.02.

 

 

마스크와 헬라세포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됐다. 지난 3년간 마스크가 우리에게 무엇이었는지 되돌아보게 됐다. 마스크는 가장 저렴하면서도 신뢰할 만한 방역 도구였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때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변주되기도 했으니까. 마스크 대란 때는 인간의 생명에는 무관심한 비정한 시장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었다가, 공적 마스크가 등장했을 땐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한 획일적인 인구관리의 현장이 되었고, ‘마기꾼(마스크+사기꾼)’ 같은 유행어를 통해서는 외모평가를 쉽게 하는 문화가 펼쳐지는 스크린으로 다가왔다. 한국인의 시민성과 공동체 의식이 드러나는 광장이기도 했다.

 

나에게 마스크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이 외화된 사물이었다. 누군가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방법으로는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을 수 없다는 깨달음과 나의 건강과 안녕을 당신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믿음이 스며들어 있었다. 산처럼 쌓이는 마스크 쓰레기는 인간이 다른 종과의 연결을 어떻게 갉아먹고 있는지 더 선명하게 보여주었지만 말이다.

 

문득 시작된 마스크 단상은 레베카 스클루트의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으로 이어졌다. 책은 신비로운 헬라세포를 둘러싼 의학의 역사와 그 세포를 남긴 헨리에타 랙스의 삶, 그리고 그의 가족들을 취재한 내용을 드라마틱하게 엮어 낸다. 1951, 30대 초반의 흑인 여성 헨리에타는 존스 홉킨스 병원에서 자궁경부암 치료를 받던 중 8개월 만에 사망한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담당 의사는 그의 암세포를 채취해 조지 가이 박사에게 넘기는데, 가이는 이를 이용해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세포 배양에 성공했다. 그것이 바로 24시간마다 자생적으로 분열하고, 늙지도 죽지도 않으며, 무한히 증식하는 불멸의 세포 헬라다.

 

이후로 헬라세포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스클루트가 책을 마무리하던 2009년까지 약 60년 동안 20t의 헬라세포가 생산되었고, 관련 논문 6만여편이 쏟아져 나왔다. 연구자들은 사람에게는 할 수 없었던 각종 실험들을 헬라를 대상으로 진행했다. 덕분에 소아마비백신과 자궁경부암백신을 비롯해 각종 난치병 치료제가 개발된다.

 

그러나 헬라가 얼굴과 이름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은 대체로 무시되었고, 그게 누구인지도 오랫동안 숨겨져 있었다. 심지어 헨리에타의 가족들조차 20년간 헬라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헬라로 인해 가능했던 다양한 과학적 성취에는 백인 중심 의학의 흑인에 대한 착취와 연구윤리 문제가 얽혀 있었다.

 

가족들에게 그 소식이 전해진 건 헬라의 놀라운 능력 때문이었다. 1970년대 초, 헬라가 그동안 공기 등을 통해 다른 세포들을 오염시켜 왔고, 전 세계 실험실에서 사용되는 대체의 세포들이 이미 또 다른 헬라세포가 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의사들은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헨리에타의 DNA가 필요해졌고, 마지못해 가족들에게 연락하게 된다.

 

헬라는 수많은 생명을 살린 기적이다. 동시에 대지의 여신 가이아처럼 홀로 단성생식하면서 세계를 낳은 뒤 언제라도 다시 집어 삼킬 수 있다고 위협하는 태초의 어머니와도 같은 신화적 존재이기도 했다. 헬라는 오염을 통해 과학자들의 오만을 비웃고, 가족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릴 길을 찾아냈다. 마스크에서 헬라로 생각이 뛰어버린 건 다양한 의학적 지식을 통해 이미 나의 일부로 존재하는 헨리에타와 나 사이의 보이지 않는 연결이라는 화두 때문이었다. 지금은 이처럼 과학적이면서도, 영적인 이야기가 필요한 시기 아닌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 떠났다가 26개월 만에 경향신문 독자들께 다시 인사를 드린다. 그 시간들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연결과 의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부족하겠지만 그 이야기들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잘 부탁드린다.

손희정 문화평론가 경향 2023.02.02.

 

 

연금전문가들은 왜 의견이 갈릴까

국회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가 요청받은 1월 말까지 연금개혁안을 만들지 못했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올리지만 소득대체율에서 유지인상을 두고 첨예하게 의견이 갈렸다. 사실 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형성된 평행선이다. 왜 이리 연금전문가들은 소득대체율을 두고 의견이 갈릴까?

무엇보다 국민연금의 미래 재정에 대한 평가가 다르다. ‘유지론은 미래 재정이 무척 불안하다고 본다. 올해 국민연금기금이 900조원을 넘지만 2055년에는 소진되고, 현재 20세인 신규 가입자가 연금을 받는 2070년대에는 당시 연금지출을 가입자 기여로만 충당할 경우 보험료율이 35%에 이른다.

 

여기서 논점은 세대 간 형평성이다. 우리 손주들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은 우리와 같은 40% 소득대체율을 적용받으면서 보험료는 몇 배를 내야 한다. 유지론이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인상하면서도 소득대체율은 올릴 수 없다고 단언하는 이유이다. 비록 소득대체율을 더하지는 못하지만 현세대의 책임인식으로 보험료율 인상 동의를 구하자고 말한다. 노후소득보장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국민연금을 넘어 기초연금, 퇴직연금 등 다층연금으로 보완하자고 대답한다. 이미 의무제도로 세 연금이 존재하므로 노후소득보장의 시야도 계층별 다층연금체계로 확대하자는 제안이다.

 

인상론은 국민연금 미래 재정을 그리 심각한 상황으로 보지 않는다. 2080년대 국민연금 지출은 최대로 많아져도 GDP 9.4% 수준이다. 현재도 OECD 회원국의 연금지출 평균이 GDP 9%이고 2060년에도 10.4%를 전망한다. 다른 나라들이 이미 GDP 10% 수준에서 관리하고 있으므로 우리도 이를 감당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필자가 수치를 보완하면, 외국 수치가 공적연금 지출이므로 우리도 국민연금 외에 특수직역연금, 기초연금을 포함하면 미래 연금지출은 14% 수준으로 추정된다.

 

여기서도 논점은 지출의 절대 수준보다는 현재와의 격차이다. OECD 회원국들은 현재 공적연금 보험료로 평균 18.4%를 내고 있고 다양한 연금개혁으로 미래에도 연금지출을 평균 GDP 10% 수준으로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현재 우리는 소득의 9%만 보험료로 내고 있고 GDP 대비 공적연금 지출은 3%대 수준이다. 결국 미래 GDP 10~14%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게 아니라 지금부터 기여 확대의 힘겨운 사다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소득대체율 인상이 이를 더 어렵게 한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이에 대해 인상론은 미래에는 보험료 부과 대상소득을 넓히고 국고 지원도 결합하자고 제안한다. 질문에 답하기보다는 어떤 소득에 추가로 부과하고 당시 국고지원은 얼마나 가능한지의 주제로 초점을 넘긴다.

 

좋은 잠을 꺼내먹어요

한편 국민연금 재정개혁의 목표 지표에서도 두 의견이 상이하다. 유지론은 현재 신규 가입자가 나중에 연금을 받을 기간까지 재정안정을 도모한다. 앞으로 70년 후에도 2년치 연금지급액을 확보하는 ‘70년 적립배율 2가 장기 재정목표이다. 청년들에게 당신도 받을 수 있다는 증표를 보여주려니 고강도의 재정안정화가 뒤따른다. 인상론은 기금소진연도의 연장을 강조한다. ‘더 내고 더 받으며기금소진연도까지 뒤로 늦추는 개혁안을 제안한다. 언뜻 선명한 재정안정화로 보이지만, 기금소진연도의 착시 효과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민연금은 내는 보험료와 받는 급여에서 장기 시차가 존재하는 제도이다. 보험료 인상은 곧바로 연금재정을 늘리지만, 소득대체율 인상은 계좌에서만 계상되다가 은퇴 이후 실제 지출로 구현된다. 즉 기금소진연도만 보면 소득대체율 인상의 효과가 발생하는 후반 기간을 제대로 진단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안도 더 받는 만큼 더 내는 것이어서 현행 40% 소득대체율의 재정 부족은 그대로 놔두는 방안이었으나 기금소진연도가 뒤로 가니 마치 재정안정화처럼 보였을 뿐이다. 인상론의 대답이 필요한 대목이다.

 

연금전문가들의 이해가 왜 이리 다를까? 연금 선진국들은 나름의 연금재정 방법론을 정립하여 미래 재정을 평가하고 있건만 우리는 재정진단에서 연금개혁 지표까지 각각이다.

 

이런 현실에서, 전문가들이 단일안을 만들 수 있을까? 애초 진단과 기준이 다르다면 절충하여 차이를 가리기보다는 시민들에게 논점을 명확히 보여주는 게 생산적이지 않을까? 연금개혁이 한번으로 끝나지 않을 연속개혁이라면 이번에 시민들이 토론하며 연금 인식을 높이고 현세대 책임을 이야기하도록 말이다. 전문가들이여, 모든 질문에 응답할 수 있도록 더 논리와 논점을 분명히 하라, 그리고 시민들이 판단하게 하자.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경향 2023.02.02.

 

무인기 사태에서 드러난 윤석열 정권의 자업자득

126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확인된 북한 무인기 사태에서 드러난 군의 무능한 대응을 다시 살펴보자. 우리 군에는 긴급 사태가 발생하면 각급 제대와 유관기관이 동시에 상황을 공유할 수 있도록 현대적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그런데 지난해 1226일 무인기 출몰 때 군의 고속지령대, 고속상황전파 시스템, 군사정보통합처리체계(MIMS)는 전혀 가동되지 않았다. 그 대신 유선전화로 군단은 군사령부에, 군사령부는 합참에, 합참은 공군작전사령부에 정보를 전달하는 수직적 보고체계만 가동됐는데, 정작 무인기 방어 책임이 있는 수도방위사령부는 이 사실조차 몰랐다. 시스템은 디지털화돼 있는데, 실제 소통은 아날로그식으로 이뤄졌다는 얘기다.

 

지난해 이태원 참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가 재난 상황을 신속하게 전파하기 위해 구축된 국가재난정보망(NDMS)은 참사 직후 전혀 가동되지 않았고, 등산을 간 경찰청장과 숙소에서 휴식하던 행정안전부 장관에게는 제대로 보고조차 되지 않았다. 이태원 파출소장은 용산경찰서장에게, 경찰서장은 서울경찰청에, 서울경찰청은 경찰청에 보고하기까지 금쪽같은 시간이 허비됐다.

 

그 이튿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한 데 이어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었다며 경찰기동대를 배치하지 않은 이유를 둘러댔다. 이 역시 멀쩡한 디지털 시스템은 가동되지 않고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소통을 고집하는 관료 행정이 빚어낸 현상이다.

 

4차 산업혁명을 말하는 21세기에 이런 현상은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왜 군과 경찰은 상하와 좌우가 동시에 같은 데이터를 보고 판단하는 통합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걸까. 이미 동시 전파, 동시 판단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는데도 말이다.

 

높은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앉아 있는 고위직들은 문화적으로 지체된 국가의 위험분자들이다. “나는 보고나 받고 통제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바로 그들이 자신의 권력을 규정하는 방식이다. 이러니 국가가 아무리 많은 재정을 투입해 시스템을 구축한다 한들 제대로 가동될 리 없다. 시스템이 있는지도 모르고 전화로 보고만 받는 고위직들은 위계 서열의 반석에서 절대 내려오지 않고 면책되며 권력의 보호를 받는다.

 

국회의 추궁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1950년대식 보고 철저기강 확립여부만 따지는 피상적 접근만 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박근혜 대통령에게 청와대 위기관리 요원이 뛰어가서 보고했느냐, 자전거를 타고 가서 했느냐, 문서로 보고했느냐, 전화로 했느냐는 식의 논란이 이어졌다. 인터넷이라고는 구경도 못 한 저개발국에서나 있을 법한 현상이다. 이런 문화 지체가 최근 재난 사태의 진정한 배후가 아니겠는가.

 

이 역시 윤석열 정부의 자업자득이다. 3년 전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재조사한다며 군의 군사정보통합처리체계에서 무단으로 정보를 삭제한 혐의로 전직 국방장관까지 구속하지 않았나. 이런 걸 뻔히 목격한 군인들이 왜 정보통합체계에 유용한 군사 정보를 입력하겠는가. 시스템 관리를 잘못하면 문책당할 판이니 중요한 정보라도 나만 알고 있거나 직속상관에게만 보고하면 그만이다. 나중에 문제점이 적발되면 심각한 사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둘러대는 게 차라리 낫다. 이것이 군 조직에서의 정보 독점과 보고 지연의 진정한 이유다. 정치 보복을 하니 군인들이 위기 상황에서도 소신껏 판단하지 않고 몸을 사리는 거다. 이에 약이 오른 용산이 과오자를 색출한다며 군 하급자들을 윽박지르지만, 문제는 더 악화한다.

 

이런 상황에서 올봄에 서해나 동해에서 남북 간에 국지적 충돌이 발생한다면 국가는 어찌 될까. 비상사태에서도 군 조직은 서로 협조하지 않고 시스템은 여전히 먹통이며 사태 파악은 지연된다. 작전 요원들은 위기 뒤 책임 추궁을 먼저 걱정한다. 대통령과 안보 참모들은 2010년의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때처럼 자신이 뭘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소위 엘리트 공황상태에 빠진다. 윽박지르고 책임을 전가하면서 자신의 위신만 세우는 정치권력의 무능 위에서 마침내 국가는 실패한다. 진정한 위협은 국지전 발생 가능성보다 아무에게나 을 남발하는 강경주의자들의 무능력이다.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한겨레 2023.02.02.

 

 

입만 있고 귀는 없는 사회

계묘년 새해가 왔다. 올해가 마침 토끼해라고 하니 토끼의 가장 큰 특징인 귀에 관한 이야기로 운을 떼기로 하자.

 

사람이 왜 입은 하나인데 귀는 둘인지 아느냐? 그건 내 말을 하기 전에 우선 남의 말을 잘 들으라는 뜻이다라는 말을 예부터 종종 들어왔다. 한갓 속담인지 아니면 어떤 현인의 말씀인지 모르겠으나, 가끔 혼자 생각하며 되새겨본다. 과연 나는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인가, 하고. 독선과 아집이라는 말이 유난히 도드라지게 들리는 요즘 세상에 우리 모두 한번쯤 새겨야 할 말 아닌가 싶다.

 

모두가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세상이다. 여기엔 내 편, 네 편이 따로 없다. 모두가 자기만 가장 아프고 괴롭고 옳다고 한다. 만인이 다 아는 대통령부터 이름 없는 필부에 이르기까지, 이 점에서는 분열 없는 국민통합이 이뤄져 있다. 나아가 자기와 생각과 처지가 같은 사람들끼리만 뭉쳐 서로 공감하고 의기투합하면서, 생각이나 처지가 다른 사람들과는 말도 안 섞는 것은 물론 조롱과 혐오와 배척의 언어를 맘껏 던지며 사실상 전쟁 상태를 기꺼이 유지하고 있다. ‘내로남불은 만고의 보편법칙이 되며, 내 편이 하는 일은 팥으로 메주를 쒀도 아름다운 연금술이고 상대편이 하는 일은 콩을 심어 콩을 수확해도 음모와 의혹의 협잡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떤 규준과 척도도 나에게 불리하고 남에게 유리하면 한갓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로 전락한다. 게다가 상대주의나 다원주의를 넘어 이제는 탈진실의 시대 아닌가. 객관적 진실이나 진리 같은 것은 애당초 없다는 듯, 그저 내가 알고 믿고 좋아하는 것만 절대적 진실이고 진리이니, 남의 말을 듣고 그 생각을 이해하는 데에 공들일 이유가 없다.

 

이처럼 목하 한국 사회는 오로지 입만 하나 살아 있고 두 귀는 없는 이상한 사람들의 세상이 돼가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다른 무엇으로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한 개별자로서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비슷한 이해관계나 의사를 가진 사람들과 집단, 당파를 이루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경쟁하고 충돌하고 심지어 적대하는 것은, 사회 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것이기도 하고 나아가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한쪽의 생각과 이해의 절대성이라는 것은, 다른 쪽의 생각과 이해의 절대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서만 존중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상대주의와 다원주의라는 민주주의의 가치는 이 상대적 절대성이라는 모순과 배리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성립한다. 좋은 세상이란 아마도 언젠가 기적처럼 도래할 어떤 유토피아가 아니라, 이런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여러개의 다름과 차이들이 무한히 경합하고 충돌하면서 어떤 잠정적 합의 상태를 거듭해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살아 있는 세상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지금 이런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 막혀 있다. 모두가 들을 귀를 잃어버린 사람들처럼 살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과 돈을 갈구하는 정치가들이나 장사꾼들, 생각하는 것보다 먹고사는 것이 먼저인 보통의 대중들이 그런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래서는 안 되는 부류인 언필칭 지식인들조차 이렇게 입만 있고 귀는 없는불통의 세계에 빠져들고 있다. 대학의 기능화, 아카데미즘의 고립화와 미디어 생태계의 변화로 인해 지식과 담론의 사회적 유통과 교환, 검증 체계가 붕괴한 탓이 크겠지만, 지식사회의 담론 지형을 일부나마 엿볼 수 있는 사회관계망서비스를 관찰하면 이런 현상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모두가 메아리 없는 산속에서 자기 할 말만 하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며 대화와 토론 대신 무시와 매도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2019조국 사태를 고비로 이른바 범진보 지식인 사회가 심각한 분열을 겪은 뒤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하고 있는 것 같다.

지식장의 분열은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니라 다양성의 생성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환영해야 할 일이다. 새로운 지식과 담론의 탄생은, 그럴 만한 사회적 변화의 반영이며 닫힌 사회의 숨통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그 기원이 의심스럽고 논리가 부실하다고 해도, 다른 견해나 담론의 존재, 탄생을 매도하고 적대하는 것은 지적 파시즘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치 사회적 진영논리가 지식장까지 강력하게 침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신자, 관종, 파시스트, 어용, 대깨문, 명빠, 토착왜구. 정제되지 않은 낙인찍기가 정당한 논거나 증빙도 무시된 채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난무하고 있다. 그리하여 자칫하면 이런 매도를 당할지 모른다는 거리낌이 생각 있는 지식인들의 말문까지 닫게 하고 있다. 이는 또 다른 야만이며 무형의 분서갱유라고 할 수 있다.

 

대화와 소통이 무엇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동어반복의 지적 마스터베이션은 잠시 멈추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불편한 자리를 먼저 마련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 마침 귀가 큰 토끼의 해가 시작됐으니 이제 먼저 상대방 말에 귀를 기울이는 연습부터 시작하자. 상대방의 말을 충분히 듣고, 그다음에 내 입을 열도록 하자. 그리고 서로의 같음과 다름을 가늠하고 그것들이 어디서 왔는지 토론하면 서로 이해하고 공감할 접점이 생길 것이다. 그러면 이 공감의 접점들을 확대해 공동의 담론으로 만들어가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며, 이렇게 마련된 공동의 담론은 이 무한 적대의 시대를 넘어서는 매우 유용한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제도언론이나 학술기관이 나서도 좋고, 가능하면 어떤 사회적 기구 같은 게 만들어지는 것도 필요하다. 어떤 형식으로든, 이를테면 과거사 인식, 정치 양극화, 586 기득권, 공정성 담론, 남북 관계, -일 관계, 노동 문제, 젠더 갈등, 세대 갈등, 기후위기 같은 지식장의 분열과 적대를 낳는 여러 민감한 주제들과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한 미래체제 구축과 같은 주제들에 관한 대립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계급장을 떼고 만나 허심탄회한 대화와 유의미한 접근을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 낭비적이고 위험한 적대적 정체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김명인 | 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문학평론가 한겨레 2023.02.02.

 

 

윤 대통령은 이 되고 싶은 건가 - 눈 떠보니 후진국 4

10년 전 타계한 헬렌 토머스 미국 통신 기자는 백악관 기자실의 전설로 불린다. 1960년부터 2010년까지 50년간 백악관을 출입하며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부터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10명의 대통령을 취재했다. 그는 30년간 백악관 브리핑실의 상석인 첫째줄 중앙에 앉아 날카롭고 공격적인 질문으로 역대 대통령들을 불편하게 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가 쓴 책 <백악관의 첫째 줄>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내가 첫 질문을 하고자 일어설 때면 몸으로 이런 것을 느꼈다. 카터 대통령은 움찔’, 레이건 대통령은 웅크리기’,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오 노!’라고 말하는 걸.”

 

그는 기자들은 권력자에게는 무례해도 용서가 된다고 자주 말했다. 대통령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게 기자의 특권인 동시에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는 1996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기자들)는 이 사회에서 대통령에게 정기적으로 질문을 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는 왕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견제받지 않는 대통령은 왕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자로 변신할 수 있다는 경고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의 타계 소식을 듣고 낸 애도 성명에서 헬렌은 나를 포함해 대통령들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한 사람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이 얘기를 길게 소개한 이유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요즘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언론은 물론이고 어느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으려 하고, 견제를 해도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한 태도다. 야당에 대해선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취임한 지 9개월째가 됐건만 제1야당의 대표는 물론이고 원내 지도부조차 만나지 않고 있다.

 

이런 대통령은 지금껏 처음 겪는다. 역대 대통령들은 해외 순방을 다녀온 뒤에는 여야 대표를 초청해 순방 결과를 설명하는 게 관행이었다. 치열하게 다투고 있었더라도 그렇게 만난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민생과 시국 현안을 논의하곤 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이번 순방 뒤에도 여당 지도부만 관저에 초대했다. 야당 대표가 피의자이니 안 만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수사와 정치는 엄연히 별개이고, 별개여야 한다. 대통령이 제1야당을 만나지 않는 것 자체가 수사와 정치를 한몸처럼 여긴다는 방증일 수 있다. 상대 당을 인정하는 건 대의민주주의의 기본 중의 기본인데 이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날로 불어나는 대출이자와 치솟는 난방비 등으로 도탄에 빠진 서민층을 구하려면 국회 다수당과 협치가 필수적인데도 아예 상대도 않겠다니 황당하다. 윤 대통령은 언론과도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거리두기를 이어가고 있다. 통상 전 언론을 대상으로 하는 신년 인터뷰조차도 한 언론사하고만 하고는 그걸로 끝이다. 기자들로부터 불편한 질문을 받고 싶지 않아서일 게다. 지금 우리나라는 영락없이 정치 후진국으로 전락한 모습이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견제와 균형이다. 입법·행정·사법부의 3권 분립과 제4부로서 언론의 감시 기능, 여기에다 행정부 내에서도 견제 장치가 작동해야 민주주의가 구현된다. 어느 한사람이 독주를 하면 탈이 나게 돼 있다. 국정 운영이나 정치적 경험이 거의 없는 경우라면 그럴 개연성은 더 높아진다.

 

윤 대통령은 새해 들어서도 아랍에미리트(UAE)의 적은 이란이라고 실언을 해 불필요한 외교적 논란을 초래했다. 또 북한의 공격에 대해 ‘100, 1000배 보복전략을 주문해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반도체기업 세액공제 확대안은 정부안을 토대로 여야 합의로 연말에 국회를 가까스로 통과했지만, 대통령 한마디에 기획재정부는 말을 바꿔 지원액을 더 늘리겠다고 한다. 빠듯한 재정 여건 속에서 고금리와 난방비 급등 부담이 커진 서민층 지원 등 재원을 긴급히 더 투입해야 할 일들은 많아지고 있는데 재벌을 지원하는 데만 인색함이 없어 보인다.

과연 대통령실 참모나 내각 관료 중에 대통령의 잘못된 발언이나 판단에 ’(No)라고 용감하게 말하는 이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현대 정당정치에서는 대통령이 실정을 할 때는 대통령을 배출한 여당이 중심이 되어 견제하고 교정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당대표 선출 과정을 보면 그런 기대는 아예 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나경원 파동은 정당민주주의를 대통령이 여당 대표를 지명했던 20년 전으로 후퇴시켰다.

 

<역사의 종언> 저자로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저서 <정치질서와 정치부패>에서 민주적인 정치 체제를 판단하는 잣대로 국가, 법의 지배, 민주적 책임성 세가지를 들었다. 그는 국가를 통치자가 가족·친구 등 사적 인연을 통해 다스리고 강력한 엘리트 계층에 포획되는 가산제적 국가와 정부 요직에 재능과 역할 위주로 인재를 선발·기용해 국정을 운영하는 선진적 국가로 구분했다. 법의 지배는 다른 모든 시민에게 법을 평등하게 적용해도 최고 권력자에게 적용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봤다. 민주적 책임성은 정부가 특정 이해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공익에 복무하도록 요구하는 체계를 말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의회가 한다고 했다. 그는 성공적인 현대 자유민주주의 정치의 경이로움은 국가가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지만 법과 의회에 의해 제한받고 합의적 방식으로 권한을 집행하는 정치질서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며, “국가가 강력한데 견제를 받지 않으면 독재가 된다고 경고했다.

 

윤 대통령의 통치 방식을 이 세가지 기준으로 판단하면 어떤 결론이 나올까.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과 사정기관의 요직에 측근 검사들을 배치해 인사·정보·수사·감찰 등을 장악했으며, 행정안전부 장관을 비롯해 여러 공공기관장에 고교 후배나 고시 준비 때 인연을 맺은 이들을 기용했다. 또한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을 뒷받침하는 녹취록 등 증거가 나왔는데도 검찰은 김 여사에 대한 소환조사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의회와 관련해선 제1야당 지도부를 대화 상대로 대하지 않고 있다. 지금 한국 민주주의는 백척간두 위에 서 있음이 분명하다.

박현 | 논설위원 한겨레 2023.02.02.

 

 

나라 구하다 죽었냐고? 재난은 신의 영역이 아니다

그들은 왜 이태원 '참사'를 부인하는 걸까

나의 삶이 누군가의 기억이 된다는 것은 실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탄생을 기리고 세상과의 작별을 애통해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필자에게 매년 돌아오는 1030일은 조금 특별한데, 바로 필자가 태어난 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년 생일에는 즐거울 겨를도 없이, 일어나 눈을 뜨자마자 믿을 수 없는 참사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나의 생과 대비되는 허망한 죽음들 앞에서 그저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떤 재난이 사회적 참사인가

정부는 참사 직후 용산구를 재난안전법에 따른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피해자에 대한 장례비와 치료비 등을 제공했다. 이 모든 조치는 이 사건이 사회적 재난의 성격을 가진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동법은 '사회적 재난의 책임은 국가에 있다'고 명시한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하고 상당히 긴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사회엔 아직도 '행사'의 책임 소지를 두고 공방이 오가고 있다.

 

사회적 재난은 인간의 부주의나 고의로 인해 발생한 재난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폭우나 산사태로 인해 사람이 다쳤을 때, 사고 당시에는 자연의 무서움을 탓할 수 있겠지만 이후 사건 해결 과정에서 관계 당국의 부주의나 태만이 존재했음이 확인된다면 이는 인재, 즉 사회적 재난이 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2014년 세월호 참사와 같이 명백하게 인간의 부주의나 고의로 발생한 사건뿐만 아니라 2011년 우면산 산사태와 같이 외견 자연재해로 여겨지는 사건들도 사회적 재난으로 분류된다.

 

과거에 재난은 신의 영역으로 인지되었지만, 이제 재난은 인간의 영향 아래 놓여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산업과 기술의 발전으로 지구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력이 막강해짐에 따라, 전문가들은 기후붕괴와 같은 생태계의 변화도 인간이 초래한 재난이라 진단한다. 가령 2022년 파키스탄 국토의 1/3을 물속에 잠기게 만든 최악의 홍수, 20204개월간 발생한 호주의 초대형 산불 역시 사회적 재난이라 할 수 있다.

 

이태원 참사가 인재였다는 증거 또한 속속 밝혀지고 있다. 좁은 골목길에 불법증축이 이루어졌고, 사고 당일에는 인파 사고를 방지할 충분한 인력이 배치되지 않았다. 시민들의 안전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재난 관련 기관들의 명령체계에도 문제가 존재했다. 다시 말해 이태원 참사는 인간의 부주의가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사회적 재난인 것이다. 그런데 이를 이해하고 나서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왜 어떤 사람들은 위 사건들이 사회적 재난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걸까?

 

"여보시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오." 세 가지 부인 기제

'부인(denial)의 사회학'으로 저명한 인권사회학의 개척자 스탠리 코언의 말을 들어보자. (스탠리 코언 (2009).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조효제 옮김. 창비) 그에 따르면 개인 차원의 부인은 어쩌면 건강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한 순기능일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위협에 직면한 사회 전체에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코언은 사회에 존재하는 부인 기제를 어떤 것을 부인하느냐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한다.

 

우선 엄연한 사실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거나 진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문자적(literal) 부인이 존재한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현장조사에서 "저는 그날 이태원에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다"고 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태도에서 이러한 부인 기제가 잘 나타난다. 문자적 부인은 고의적 거짓 여부와 상관없이 사실을 시인하려 하지 않는 태도를 의미한다.

 

둘째,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지 않지만 사건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는 해석적(interpretive) 부인이 있다. 한 극우단체는 이태원 광장에 설치된 시민분향소 앞에서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가 정치적 목적으로 야당과 손을 잡았다'고 단정하며 희생자들에게 폭언을 일삼았다. 바로 이 같은 태도에서 해석적 부인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외부세력과 결합한다면 더 이상 선량한 피해자로 볼 수 없다'는 논리를 취했다. 해석적 부인을 하는 이들은 전문용어를 쓰거나 프레임을 만들어 사건의 성격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셋째, 사실이나 통상적 해석은 받아들이되, 사건에 따라오는 심리적·정치적·도덕적 함의를 부정하거나 축소하는 함축적(implicatory) 부인이 존재한다. 피해자들에게 치료 또는 장례비용이 이미 지급되었고 어느 정도 보상이 되었으니 '현 상황에서는 책임자 파면과 처벌보다 진상규명이 우선이다'라고 주장하는 태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여기에 해당되는 이들은 참사 자체는 인정하지만 참사를 시급히 조처해야 할 도덕적인 사건으로 여기지 않거나, 참사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공감하기를 꺼린다.

 

함축적 부인이 극단으로 치달으면 사건의 함의에 침묵하는 태도로 진화한다. 사건 해결에 대한 의지와 당사자의 직접적인 참여가 있어야 가능한 지휘부 수사 및 책임자 처벌보다, 피해자 참여 없이 피상적인 진상규명만을 우선시하는 정치권 및 사고 책임자들의 태도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각각의 부인은 사건에 대한 사회심리적 상태에서 기인한다. 문자적 부인은 무지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고, 스스로 도저히 진실을 인정하기 힘겨울 때도 발생할 수 있다. 해석적 부인은 어떤 사실이나 사건 자체를 정말 이해하지 못한 결과일 수 있고, 도덕적·법적 책임을 회피 또는 이용하기 위한 행위에서도 초래될 수 있다. 함축적 부인은 정치적·도덕적·심리적 불안을 덜기 위한 계산적 행위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위 논의를 정리해보자. 모든 부인은 인지, 감정, 도덕성, 행위와 관련돼 있다. 다시 말해, 부인은 타인에 대한 공감의 결여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부인'은 어떻게 '시인(acknowledgement)'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 시인은 공감을 행동으로 이끌어 내는 사회적 기반 조성을 통해 가능하다.

 

재난 상황에서 지켜져야 할 열 가지 인권 원칙

부인의 기제가 작동하는 사회에서, 재난에 대한 정부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재난은 발생 그 자체로 인권의 상실을 초래한다. 따라서 모든 재난 대응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해야 함은 물론, 그 전 국면에서 인간 존엄과 인권 보호가 중시되어야 한다. 재난 상황은 질병, 경제적 곤궁, 나아가 불처벌, 피해자 비난 문화 등으로 전이될 수 있기에 이를 저지하기 위한 인권적 제도와 절차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인권에 기반한 접근'은 공감과 시인을 바탕으로 한 인도적 재난 대응의 핵심이 된다.

 

재난 피해자 등 사회적 약자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해온 사회학자 유해정은 재난상황에서 지켜져야 할 10가지 인권 원칙을 제시한다. (유해정(2020) <재난 피해자들의 인권침해 경험연구>. 민주주의와 인권, 20(2): 129-168.)

 

신속하고 책임 있는 대피, 구조, 수습에 관한 권리, 재난 시 필요한 지원을 받을 권리, 재난 및 피해자와 연관된 모든 의사결정과 정보를 제공받고 진실을 알권리, 재난 및 인권침해자에 대한 책임 묻기를 통해 정의를 실현할 권리, 보상을 포함한 체계적 피해회복과 생애주기에 맞춘 치유에 관한 권리, 기억과 추모의 권리, 철저한 재발방지 및 안전에 관한 권리, 공정하고 책임 있는 언론을 만날 권리, 이 모든 과정에 의미 있게 참여하고 협의하면서 차별 없이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존중받을 권리가 그것이다.

 

주목할 점은 모든 권리의 이행이 재난의 책무 주체인 국가의 변화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이다. 재난에 인권이 통합된다는 것은 안전 패러다임의 재구성을 의미한다. 피해자 권리에 대한 사회적 공감, 이를 바탕으로 한 피해에 대한 국가의 책임 있는 태도는 재난 해결의 첫걸음이 된다.

 

사회적 재난에 대한 국가 책임이 이루어지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독일의 사례를 살펴보자.

1972년 독일에서는 제20차 하계 올림픽 대회가 개최됐다. 대회가 한창이던 어느 날, 팔레스타인 테러단체 '검은 9월단'은 독일 주최 측의 허술한 보안을 뚫고 올림픽 선수단 숙소에 침입했다. 이 일로 유대인 선수단 11명과 독일인 경찰 1명이 살해됐다. 끔찍한 테러이자 사회적 참사인 이 사건을 두고 독일 정부도 수십 년간 유가족과 갈등을 겪었다. 유족들이 진실을 알 권리, 진상규명에 대한 책임, 합당한 배상액 등과 같은 문제가 오랜 기간 이들을 갈등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사건 발생 50년 후인 202295, 정부와 유가족의 극적 합의 끝에 뮌헨 올림픽 테러 50주기 추모식이 개최됐다. 이 자리에서 독일연방대통령의 연설 첫 시작은 피해자의 이름을 호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독일 정부는 '이스라엘-독일 역사가위원회'를 구성하여 과거사를 정리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지금은 이태원 참사 피해자에 대해 '인권에 기반한 더욱 특별한 보호와 정책'을 수행할 때이다. 기억하자. 재난으로부터 피해자들을 구하는 일,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은 국가가 피해자들의 상황에 인권을 기반으로 접근할 때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은 누군가에게 잊혀질 수 없는 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비로소 시작된다.

김민성 한국인권학회 이사 | 프레시안 2023.02.02.

 

 

사설] 노동자 임금격차, ‘산업 이중구조가 본질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등의 해법을 모색할 고용노동부의 상생임금위원회2일 발족식을 열고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임금의 공정성 확보와 격차 해소, 임금체계 개편 방안 등이 논의될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 노동시장의 뿌리 깊은 병폐인 불평등·불공정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겠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줄곧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기득권 노조탓으로 돌리는 등 왜곡된 인식을 드러내온 터여서 우려가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상생임금위원회는 이정식 노동부 장관과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공동위원장을 맡는 구조다. 장관이 직접 챙겨야 할 만큼 시급한 과제로 여긴다는 뜻일 게다. 위원회는 이날 발족식에서 원·하청 간 임금 격차 실태조사, ·하청 상생모델 개발 등의 활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동시장의 격차 실태는 이미 충분히 드러나 있다.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는 데에도 사회적 합의가 어느 정도 이뤄져 있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방향성이다. 진단이 잘못되면 올바른 처방이 나오기 어렵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는 그동안 노동계에서 줄기차게 요구해온 사안이다. 그런데 노조에 대한 적대감을 여과 없이 드러내온 윤석열 대통령이 거듭 언급하면서 오히려 오염된 측면이 강하다. 윤 대통령이 노조 혐오와 -노 갈라치기를 위한 불쏘시개로 이 말을 오용해왔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노 간 착취 구조로 바꿔치기하는 화법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의 이런 인식이 위원회의 향후 논의 과정에서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이날 발족식에서 이재열 공동위원장은 이중구조의 주된 원인은 대기업과 정규직 노조의 하청·비정규직에 대한 상생 인식과 성과 공유의 부족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노조 탓을 복명복창했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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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산업의 이중구조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자명하다. 하청 노동자 등 노동 약자착취의 근본 원인은 대기업·원청의 중소기업·하청 착취 구조에 있다.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 사용자와의 교섭을 절박하게 요구해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연대의식이 갈수록 옅어지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지만, 이중구조의 원인을 노조 탓으로 돌리는 건 왜곡에 가깝다. 진정 상생을 원한다면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금지 등 경제민주화를 구현하는 것이 우선이다. 한겨레 2023.02.02

 

생태위기 시대, 해를 주지 않는 의료

탄소배출 주요 원인 꼽히는 의료산업

기후재난 대처 위한 제도 개선 동참을

 

해를 주지 않는 의료라니? 의료는 사람 살리는 일 아닌가? 사람을 살리는 의료행위 속에 기후위기 요인들이 있다면 어떤가, 이런 요인들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계 탄소배출에서 의료산업의 비중은 5위라 한다. 탄소배출의 주된 원인은 일회용품과 포장지·의료폐기물·운송 등이다. 2011년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제1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7)에서부터 기후-건강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한 단체가 있다. '해를 주지 않는 보건의료(Health Care Without Harm·HCWH)'라는 이름의 이 국제단체는 202110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총회(COP26) 기간 중 보건의료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협정을 제안, 50여 개국의 동참을 이끌어 냈다. 이 단체는 세계보건기구와 세계은행 등의 국제기구 권고안과 영국 국영의료시스템(NHS)의 탄소저감 정책들을 비교 분석해 보건의료 부문에서 탄소감축 7가지 로드맵을 제안했다.

 

의료보건연구단체 '건강과 대안'에서 나온 논문을 참조해 한국에 적응해 보면 다음과 같다.

 

쓸모없는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깨끗한 재생에너지로 100% 전환해야 한다. 병원은 24시간 불이 켜져 있고, 경쟁하듯 값비싼 기계를 더 많이 수입해 밤새 돌린다. 지역거점 병원들은 지역사회 재생에너지를 사용해 에너지 분산과 전환을 주도해야 한다. 병원 건물을 지을 때도 탄소배출 제로, 자연채광, 환기를 설계하고 병상을 과도하게 늘려 밀집되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 대형 주차장과 장례식장도 탄소배출을 늘린다. 15분 친환경 도시처럼 병원 이용을 위한 장거리 이동을 줄이고 병원 내 차량은 친환경 차량으로 교체해야 한다. 또한 건강하고 신선한 지역 먹거리를 이용해야 한다. 이동을 늘리는 글로벌 먹거리, 기업형 가공육은 되도록 줄여야 한다. 불필요한 의약품 사용을 줄이고 명확한 효과가 입증된 약품을 처방하는 '녹색 처방전(green prescription)'을 실천해야 하며, 의료폐기물 관리를 개선하는 순환경제의료를 시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윤보다 생명을 우선하는 건강보험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적자에 기반한 왜곡된 건강보험 시스템은 과잉진료를 유발한다. 의료인은 감염병 등 기후위기로 초래되는 질병을 치료하면서도 기후위기에 관심을 가지고 연대해야 한다. 생물학적 의학지식을 넘어 기후생태 위기를 극복하고 적응하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마을단위의 '로컬택트(Local+Contact)'라는 말이 유행이다. 일상화한 재난에 민첩하게 대처하려면 지역 내 위기에 대한 일상적 조기 경보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이는 촘촘한 지역사회 기반의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거버넌스 위에서야 실제로 가능하다.

 

세계보건기구는 2021년 특별보고서에서 기후변화를 인류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로 규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충분한 지역 공공의료는 필수이며 지역 활성화를 위한 중심기관의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은 인구 1000명당 병상 수가 13.2개로 OECD 평균의 세 배이지만 공공의료 병상 수는 1000명당 1.2개에 불과하다. 공공의료와 지방자치를 강화해야 할 재난의 시대에 현 정부는 오히려 공공의료와 지방을 죽이는 정책을 펴고 있다. 지방 공공병원 건립계획들이 백지화되고 있다. 생태위기의 시대이다. 무조건 서울의 빅5 병원에 달려가기보다 지역 공공병원과 동네 1차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하는 소박한 삶, 소박한 죽음, 녹색 죽음에 대한 사유가 이제 필요하다.

박기헌 치과의사 (webmaster@idomin.com) 경남도민 20230202

 

 

기준금리 내리면 집값이 반등할까?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후 9개월 동안 전력을 기울인 경제정책 중 대표적인 것이 집값 떠받치기다. 윤 정부는 세제, 대출, 청약 등 정부가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의 전 부문에 걸쳐 시장정상화 조치들을 형해화시켰다. 명분은 그럴 듯 하다. 경착륙 저지! 윤석열 정부의 시도는 성공할 수 있을까?

 

연준 피벗이 올해 일어날 수 있을까?

먼저 한 가지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 주식, 부동산 등의 자산시장은 연착륙에 성공한 경험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 그것이다. 자산시장에 참여하는 시장참여자들은 자산시장이 대세상승 할 때는 자산시장의 펀더멘탈을 본질가치 이상으로 과대평가하며, 자산시장이 대세하락할 때는 자산시장의 펀더멘털을 본질가치 이하로 과소평가하는 패턴을 항상 반복한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다.

 

추정컨대 윤석열 정부는 이른바 연준 피벗(미 연준이 통화정책을 긴축에서 완화로 전환하는 것)이 올 하반기에는 가능할 것으로 보고, 연준 피벗이 일어나면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내릴 여지가 생긴다고 판단하는 듯 싶다. 아울러 윤 정부는 기준금리가 내려가면 시장금리도 내려갈 테고 그렇게 되면 부동산 시장에도 자금이 들어올 것이니, 그때까지 부동산 시장이 하락하는 속도와 낙폭을 최대한 줄이면 시장이 빨리 반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다.

 

확실히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하락 추세에 있다. 또한 최근 증시, 환율, 채권수익률 같은 선행지표들을 보면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상단 기준 5% 수준에서 동결되고 하반기에는 인하될 것이라는 데 시장의 컨센서스가 형성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파월 연준 의장이 수차 강조하듯 미국의 서비스물가지수는 여전히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 고용이 견조하고 임금상승도 견고한 때문이다. 물론 곧 경기침체가 올 것이고 필연적으로 대규모 감원이 발생할 것이라 서비스물가지수도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지만, 미국 소비자물가지수가 연준의 목표치인 2%대로 빨리 내려올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소비자물가지수가 4~5%대에서 횡보한다면 연준이 기준금리를 과감히 내리기가 어려울 것이다.

 

기준금리를 내린다고 시장이 추세적으로 반등할 에너지가 있나?

백보를 양보해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해 안에 내리고 한국은행도 따라간다고 가정해 보자! 그럴 때에도 고민할 대목이 많다. 기준금리가 어디까지 내려갈지, 내려가는 속도는 또 얼마나 빠를지를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금리의 향방이 예측불허인데 더해 추세적으로 반등할 에너지를 시장이 가지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예컨대 전월 2일 주택금융공사(HF)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전국의 주택구입부담지수(주택구입부담지수는 중간소득가구가 표준대출을 받아 중간가격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의 상환 부담을 나타내는 지수로, 주택구입지수가 100이라면 소득의 25%를 주택 구입 원리금 상환에 사용한다는 뜻이다)89.3으로,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4년 이후 가장 높았다. 서울 역시 주택구입부담지수가 214.6으로 통계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서울의 주택구입부담지수는 실로 충격적인 수준인데, 소득의 절반 이상을 주택 구입 원리금 상환에 충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전국의 주택구입부담지수는 직전 대세상승기의 최고치였던 20082분기 76.2, 서울의 주택구입부담지수는 직전 대세상승기의 최고치였던 20082분기 164.8을 각각 아득히 넘어서고 있다.

 

전국 주택구입부담지수 주택금융연구원

 

통상 서울의 경우 주택구입부담지수 130140(소득에서 주담대 상환 비중 3335%)선을 주택구매가 가능한 적정 수준으로 평가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금리인상에 따른 대출이자 상환 부담이 증가했다 해도 서울 등의 집값은 여전히 구매가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이라 할 것이다.

 

여전히 터무니없이 높은 주택 가격, 19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대출, 이미 시장에 들어간 ‘2030 영끌러등을 감안할 때 기준금리가 완만하게 인하되는 시점이 올해 중이라고 해도 시장이 강하게 반등하기란 여의치 않아 보인다.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민중의 소리 2023-02-02

 

 

그토록 치밀하고 친절한 적, 소선거구제

나경원 전 의원이 결국 전당대회 출마를 포기했다. 그가 끝까지 돌파하길 원했다. 검찰 정권이 정치를 만만하게 대하지 않길 바랐고, 권력의 완력에 무너진 여당 전대가 제자리를 찾길 바랐다. 팜파탈이나 여장부 아니면 버티기 어려운 여성 정치도 성장하길 바랐다. 그러나 그는 주저앉았다.

 

나경원 사태는 유신 시절 코털 사건을 연상케 한다. 1971년 야당이 오치성 내무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키자 박정희 대통령 명령을 받은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김성곤 공화당 의원 등의 코털을 뽑아버린 사건이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의 유승민 원내대표 제거 사건도 있었지만 나경원 사태는 그때와 비견할 수 없는 막장 드라마다. 권력의 탄압을 넘어 여당 전체를 집단적으로 줄 세운 모습은 정당 민주주의 붕괴라 불러도 될 만하다. 한 정당 안에서도 내 편 아니면 적으로 구분짓는 현상이 심각해졌다. 정치 전반적으로 혐오와 불신이 구조화된 상황에서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집권여당 전체가 공천이라는 권력의 불심검문에 속수무책으로 걸려들고 말았다.

 

대통령이 여당 정치에 관여할 수는 있다. 다만 민주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전제가 중요하다. 대통령과 당이 동등한 위치에서 의견을 주고받는 게 삼권분립 취지에도 맞는다. 그러나 여당 전당대회는 룰 변경, 임명직 해임등 권력의 꼼수 개입이 난무했다. 여당 초선 의원 50여명은 권력 친위대를 자처했다. 보수를 대표하는 중진에게 정치적 사기라고 공격하는 충격적인 장면도 등장했다. 정권 초반 대통령 힘이 막강할 때 치러지는 총선에서 공천 눈도장 찍기에 나선 것이다. 총선 때마다 초선 60~70%가 물갈이되는 국회가 반복되지만 교체 지수가 높을수록 정치의 퇴행 속도는 그만큼 빨라졌다.

 

초선 여성 의원들은 돌격대를 불사했다. 최고위원에 도전한 전직 여성 의원은 무릎까지 꿇고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호소했다. 초선 쿠데타를 주도한 것도 여성 의원이라고 한다. 정국 혼란기면 유난히 여성 의원들의 과잉 행동이 도드라진다. 여성은 다수지만 여성 정치인은 대표적인 정치적 소수라서다. 남성적 질서가 지배하는 정치판에서 생존을 걱정해야 하고, 선거 시기엔 남성들보다 더 민감하게 권력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중진 의원들도 보이지 않는다. 선당후사, 타협과 조정은 선수로만 말할 수 없는 중진 정치의 권위를 가리킨다. 중진연석회의를 비롯해 탄핵 당시 대통령 퇴진을 건의한 새누리당 상임고문단, 분당 과정에서 문재인 대표에게 비상대책위원회를 제안한 새정치민주연합 중진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나경원 사태에선 다선은 있고 중진은 없었다. 여당 중진들은 윤핵관을 제어하지도 않았고, 제어할 만한 정치력도 없었다. 오히려 정치생명 연장을 위해 권력의 심기를 더 세심하게 살피는, 부끄러운 어른 노릇을 불사했다.

 

좋은 잠을 꺼내먹어요

좋은 정치를 꾸는 것마저 도전이 필요한 지경까지 왔다. 좋은 뜻과 좋은 사람만으론 좋은 정치가 불가능하다는 게 확인되고 있다. 정치의 악마적 요소를 통제하기 위해서라도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때마침 시스템을 바꾸라는 경고음이 켜졌다. 대통령도 중대선거구제를 언급했다. 중대선거구제가 되면 초선 의원들도 소신 정치를 할 수 있다. 2등 안에만 들면 지도부에 밉보여도 당당해진다. 여성 정치도 여성보다 더 약자인 소수자 대표성을 인식하는 정치가 자리잡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무릎 꿇는 일도 사라질 것이다.

 

선거제를 바꾸면 중진들도 긴장하게 된다. 소선거구제에선 인지도를 앞세워 신인들을 제압했지만 4~5인 지역구에선 내부에서도 경쟁해야 한다. 그간 영호남 다선 의원들이 큰 정치인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유도 일당독재 소선거구제 때문이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지역의 중진들은 선수를 쌓아봐야 골목대장 이미지를 피하지 못했다. 큰 꿈을 꾸는 중진들은 수도권을 다음 승부처로 택했다. 대선 주자로 도약하려면 수도권에서 당선돼야 한다는 이유였다. 소선거구제는 이처럼 수도권 정치 강화에도 한몫했다.

 

물론 중대선거구제가 좋은 정치를 위한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가 달라질 수 있다면 뭐라도 해야 할 때 아닌가.

 

소선거구제는 87체제 이후 36년 동안 정치 곁에 머물렀다. 정치는 병들어갔다. 이젠 갈라서야 한다. 나경원 사태가 지난 세월 그토록 치밀하고 친절했던 소선거구제에 이별을 선언하는 최후통첩이길 바란다.

구혜영 정치에디터 경향 : 2023.02.03.

 

 

고발 사건 처리, 왜 경찰과 검찰이 다를까

존경하는 원로 법조인께서 느닷없이 전화를 주셨다. 떨리는 마음으로 받았다. 대뜸 검찰의 불기소처분과 경찰의 불송치결정에 대한 불복절차가 다른가?”라고 물으셨다. 직감적으로 관련 법체계 흠결을 지적하고 있는 말씀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해의 편의를 위해 2가지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국가기관에서 피해자 보호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직장상사에게 위력으로 성폭행을 당한 동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해당 직원은 피해자에게 의사를 물었고, 피해자는 성폭행 사실을 경찰에 알리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다. 이에 해당직원은 경찰에 직장상사를 업무상위력에 의한 간음죄로 고발했다. 그런데 경찰이 해당 사건을 증거불충분으로 불송치결정을 했다. 고발인은 어떠한 방법으로 다툴 수 있을까?

 

다음으로 고위공무원이 지위와 권한을 남용하여 특정인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하위공무원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사실이 들어났다. 이에 시민단체가 고위공무원을 검찰에 직권남용죄로 고발했다. 그러나 검찰이 해당 사건을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을 했다. 고발인이 다툴 수 있는 절차는 뭘까?

 

먼저 업무상위력에 의한 간음죄에 대해 내린 경찰의 불송치결정은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이의신청으로 다툴 수 있다. 즉 불송치 통지받은 사람이 이의신청을 하는 경우, 사법경찰관은 지체 없이 검사에게 사건을 송치해야 한다. 그런데 이의신청권자에 고발인이 없어 문제가 발생한다.

 

202259일 형사소송법을 개정하면서 고발인을 이의신청권자에서 삭제했다. 아동학대사건 혹은 성폭력사건이 발생한 경우 신고의무자의 고발에 대해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했을 때 고발인이 다툴 수 있는 방법이 사라진 것이다. 다만 신고의무자의 고발에 한해 경찰 수사사건 심의 등에 관한 규칙(예규)’에 따라 수사심의신청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고위공무원의 뇌물사건을 시민단체가 경찰에 고발한 경우, 신고의무자의 고발이 아니라 이마저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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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직권남용죄에 대해 내린 검찰의 불기소처분은 검찰청법에 규정된 항고 및 재항고로 다툴 수 있다. 즉 불기소처분에 대해 고발인은 검사가 속한 고등검찰청 검사장에게 항고를 할 수 있다. 고등검찰청 검사장이 항고를 기각하면 검찰총장에게 재항고를 할 수 있다. 법에 명시적으로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해 고발인이 2번 다툴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검찰총장이 재항고를 기각하는 경우, 고발인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기본권 침해를 이유로 본안심리를 진행했었다. 다만 최근에 고발인의 헌법소원에 대해 자기관련성을 부정해 각하를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고발인의 입장에선 경찰의 불송치결정은 단심과 같다. 다툴 방법이 없다.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해 고발인에게 다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것과 사뭇 다르다. 이에 대해 경찰의 불송치결정에 대해 고소하지 않은 피해자도 이의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에 고발인이 제외되어 있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고소하지 않은 피해자가 경찰의 불송치결정이 난 후 뒤늦게 나서서 이의제기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경찰의 불송치결정에 대해 고발인에게 다툴 수 있는 방법을 보장하는 것은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정의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적어도 신고의무자가 한 고발에 대해선 이의신청을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법 개정이 어렵다면 헌법재판소는 경찰의 불송치결정에 대해 고발인이 제기한 헌법소원을 보장해야 한다. 경찰·검찰이 내린 똑같은 불기소 결정이다. 당연히 다툴 수 있는 방법도 같아야 한다. 달라선 안 된다.

승재현 한국형사 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경향 : 2023.02.03.

 

 

그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난방비 폭탄이 떨어진 가운데, 기후위기 대응책으로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조금씩 들려온다. 주로 시장과 기술적 방법에 의존하는 자유주의 기후환경담론이 생산하는 논거들은 이러하다. 한국의 전기요금이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턱없이 싸기 때문에 소비가 줄어들지 않고, 에너지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전달하는 데도 방해물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런 이야기들은 일면의 사실을 말하지만 진실을 구성하는 데는 실패한다. 유럽과 미국의 높은 전기요금은 에너지 시장을 자유화한 결과다. 자유화가 에너지 기업들의 경쟁을 촉발하여 저렴한 공급과 질 높은 서비스를 만들어낼 것이라던 신자유주의 미담은 소수 대자본의 에너지 독점과 대규모 에너지 빈곤층의 양산이라는 비극으로 끝났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에너지 소비가 감소하고 탄소배출이 줄어든 가장 큰 이유도 탄소배출산업을 외주화했기 때문이다.

 

여당과 야당이 서로 책임을 미루고 싸우면서 지원금 같은 임시적 조치로 땜질에 급급한 상황에서, 환경운동 진영에서 나오는 전기요금 인상 주장은 일견 포퓰리즘에 굴하지 않는 정직한 직면처럼 보인다. 그런데 요금 인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종용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국제 시장 동향, 국내 산업, 기업 위기, 성장 위기, 국가 위기 같은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전문가들은 그런 이야기를 전하며 국민과 시민, 민중과 노동자에게 책임 분담을 요구한다. 이런 서사는 자본주의가 야기한 경제상황을 마치 어쩔 수 없는 자연의 필연처럼 묘사하면서, 시장 질서를 자연의 질서처럼 받아들이도록 만들고 우리를 그에 적응해야 하는 수동적 대상으로 만든다. 하지만 경제 법칙이 무슨 절대적 법칙도 아니거니와, 시장 법칙을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으로 삼고 사회에 대해 기획 투사하는 건 매우 위험하며 정치적인 문제다.

 

가격을 올려 수요를 낮춘다는 발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 번 생각해보자. 그건 비싸면 안() 쓸 것 아니냐는 말이다. 이와 같은 시장의 규율은 누구에게 가서 작동하고 누구를 비참하게 만드는가. 물이 부족하니 물값을 올려 수요를 통제하고, 식량이 부족하니 식품가격을 올려 적게 먹게 만들자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정책은 구매력에 따른 불평등과 양극화를 초래하고, 실제 낭비 계층의 사치성 소비는 줄이지 못하면서 줄일 것이 없는 이들의 생존을 위한 소비부터 먼저 조일 것이다.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유류세 인상으로 자동차가 줄어든 도로에서 이대로 계속가면 좋겠다고 환호를 지르는 부유층에게 가격 인상이 강제 수단이 될 리는 만무하다. 부자의 전기와 빈자의 전기를, 사치의 전기와 생존의 전기를 구분해야 한다. 물론 이에 대해 빈자에 대한 지원책도 항상 나오는 이야기다. 하지만 자본에 의한 에너지 독점과 상품화 구조를 건드리지 않는 에너지 바우처와 같은 저소득층 지원 대책은 토지를 뺏고 빵을 배급하는기만적 시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지원은 결국 세금이 저소득층을 경유해서 에너지 기업의 수익으로 돌아가는 경로를 만들 뿐이다.

 

다른 수단은 없는가? 민중의 이야기 속에는 시장이 봉쇄한 방법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이번 폭탄을 그나마 덜 세게 맞은 집들은 하나같이 창호와 단열을 이야기한다. 태양광 발전시설을 단 집들도 괜찮았다. 그러면 우리는 이야기의 시작점을 바꿔야 한다. 가가호호 단열이 잘된 주택과 태양광 보급, 지역 에너지 공사를 통한 지역난방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더 춥고 더 취약한 곳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런 리모델링도 민자 투자와 개발 방식으로 되면 결국 세금으로 부양하는 녹색 성장과 기업 살리기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핵심은 시장을 중심으로 한 논의를 민중의 삶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일자리를 나누는 것은 좌파가 꾸준히 제기하고 있는 노동정책을 통한 기후위기 대응이다. 필수 업종 외에 야간 영업시간을 단축하고 사람들에게 자신과 서로를 위한 돌봄의 시간을 돌려주는 것은 돌봄 정책인 동시에 에너지 정책이다. 에너지 개발의 이름으로 자연에 대한 폭력적 수탈도 멈춰야 한다. 수탈에 투입되는 에너지도 막대하다.

 

그러나 자본권력은 이 대안들을 강력하게 저지한다. 자본의 축적과 성장에 정면 배치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반자본주의를 말하지 않는 녹색 대안들은 민중을 기만하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해야 할 근본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지원금의 액수와 방식, 요금인상률 따위를 둘러싼 지루한 논쟁을 하다 시간이 다 갈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누구의 이야기인가를 물어야 한다.

채효정 오늘의 교육편집위원장 경향 : 2023.02.06.

 

 

박정희 신앙의 미래

 

박정희 대통령 102돌 숭모제가 열린 20191114일 오전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추모관에서 참석자들이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영정에 큰 절을 하고 있다. 구미시 제공

 

박정희 신앙은 20세기 한국 정치문화의 부정적인 유산 가운데 하나다. 여기서 신앙이라는 용어에 풍자나 조롱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종교연구자에게 있어 이것은 뭔가 신성하게 여겨지는 것과 관련된 사람의 믿음이나 상상력, 실천 같은 것을 객관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다. 한때 박정희 신앙은 한국의 산업화와 경제발전 성과를 한 사람의 치적으로 집중시키는 대중적인 공민종교(civil religion)였다. 민주화 이후 21세기 초까지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정희는 한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역대 대통령으로 꼽혔다.

 

물론 과거 독재자에 대한 종교적 숭배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이것은 주로 비교적 최근까지 왕정 통치를 경험하였고, 근대 이후 정치발전이 더뎠던 지역에서 폭넓게 나타난다. 왕정은 통치자와 그 가문에 대한 신화와 의례를 통해 지탱되는 정치체제다. 왕가의 시조는 신성한 운명을 타고난 영웅적인 인물이고, 그 권위는 혈통을 통해 전승된다. 물론 다른 정치집단에 비해 통치자 가문이 특별히 잘났다는 걸 객관적 지표로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교육 과정에서 위대한 지도자의 집안을 신성화하는 신화를 머리에 새기고, 평생에 걸쳐 그에 충성을 맹세하는 의례를 몸에 새기는 작업이 필요하다.

 

한국의 경우에는 500년 이상 지속됐던 왕가가 20세기 초까지 남아 있었고, 비교적 고전적인 왕정 전통을 가지고 있는 식민제국의 통치를 수십년이나 받았다. 왕정은 하나의 구조이고, 구조는 공백을 채우려 하는 특성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시기 일본과 만주국을 근대국가의 모델로 여기고 있던 박정희는 천황국체가 사라진 공백의 자리에 조국민족을 채워 넣었다. 그것은 왕정식 혈통 숭배를 근대국가에 그대로 이식한 북한 체제 등에 비하면 분명 덜 노골적이었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에 교육을 받았던 세대에게 국민교육헌장이나 국기게양식은 황국신민서사나 동방요배의 너무나 익숙한 대체물이었을 것이다.

 

종교사적으로 박정희 신앙의 흥미로운 지점은 민주화 이후 그런 제도적 기반들이 약화한 뒤에도 박정희에 대한 종교적 숭배의 정서는 더욱 강화됐다는 것이다. 독재자가 시민저항이 아닌 암살로 최후를 맞게 되면서, 풍요와 번영을 가져다줬다는 기복적 지도자 서사에 비극적 영웅신화가 덧씌워졌다. 대놓고 박정희의 외모, 말투, 슬로건을 모방하는 정치인들이 인기를 끄는가 하면, 21세기 이후에는 박정희의 혈통을 내세운 정치인이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박정희 신앙에 관해서는 신학적인 연구서까지 나와 있다. <신이 된 대통령>이라는 이 책의 저자는 박정희의 사위인 신동욱이다. 책은 각 종교전통의 인물 숭배 사례, 전국 각지 사찰에서의 박정희, 육영수 영정 봉안 현황과 관련 의례들, 그리고 신에 대한 종교학적 논의들의 요약으로 구성돼 있다. 대부분의 이론적내용은 인터넷 자료 같은 것을 그대로 붙여놓은 수준이지만, 답사 내용만은 상당히 충실하다. 여기에 의하면 박정희 부부는 여전히 각종 불당, 명부전, 신중단, 영전각 같은 다양한 공간에서 신도들의 공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종교전통에서 적통에 해당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2세대 교주들이 흔히 겪는 카리스마 계승 전략의 실패를 겪었다. 대선과 탄핵 정국 동안 주목받은 박근혜의 개인적인 종교는 아마도 최태민 일가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을 우주론과 영적 세계에 대한 독특한 인식으로 이뤄져 있다. 물론 이는 그를 지지한 이들의 박정희 신앙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공감을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정치적 몰락의 한 요인이 되었다. 오히려 이런 형태의 신앙은 종교 비슷한 수상한 무언가가 최고 권력자의 주변에 있으면 위험하다는 인식이 오늘날 정치문화에까지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최근 박정희 신앙은 박정희 생가에 있는 의례 공간인 숭모관을 대규모로 확장, 신축하려는 경북 구미시의 계획이 알려지면서 새삼 주목받고 있다. 시민단체들의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은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이곳에 방문해 박정희 대통령의 추모관이 너무 협소하다며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지난 세기의 산물인 기괴한 종교현상을 자연적으로 쇠퇴해 가도록 둘지, 공적 영역으로 복귀시킬지 한국 사회가 결정해야 할 시기가 왔다.

한승훈 | 종교학자·한국학중앙연구원 한겨레 : 2023.02.06.

 

 

아파트 공화국25글자 이름

야금야금 길어지던 아파트(공동주택) 이름이 얼마 전 스물다섯 글자를 채웠다. 가장 긴 이름 전국 신기록은 전남 나주에 있는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 빛가람 대방엘리움 로얄카운티 1(2)’가 세웠다. 흡사 고난도 암기력 시험 같은 기나긴 이름을 두고는 진작부터 시어머니 방문 방지용이라는 우스개가 있었는데, “그럼 시어머니가 시누이까지 앞세워 찾아온다는 반론 아닌 반론도 있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지극히 한국적인 이 현상은 세상 둘도 없는 아파트 공화국의 산물이다. 우리나라 아파트 역사는 1932년 건립된 서울 충정로 충정아파트’(당시 이름 도요타아파트’)를 효시로 친다.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민간 아파트인 종암아파트(1958)를 거쳐 대한주택공사가 1962년 옛 마포형무소 터에 지은 마포아파트(현 마포삼성아파트)는 세계에서 유일한 한국형 아파트 단지의 시작을 알렸다.

 

공업화·도시화로 서울 인구 집중에 가속이 붙자 박정희 대통령은 건설입국구호 아래 아파트 지구 지정제를 도입했다. ‘영등포 동쪽이라는 뜻의 영동’(지금 강남)이 아파트 숲으로 변모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택지개발 촉진법대한민국을 아파트 밀림으로 만들었다.”(노주석, <서울특별시 vs 서울보통시>) 우리나라 전체 주택 중 공동주택은 78.3%, 공동주택 거주자는 일반 가구의 63.3%나 된다.(통계청, 2021년 인구주택총조사)

 

1990년대까지 아파트 작명 공식은 압구정 현대처럼 동네+건설사 이름이 대종을 이뤘다. 1998년 분양가 자율화로 브랜드 전쟁이 시작되자 공식은 동네+브랜드조합으로 바뀌었다. 이어 파크’, ‘팰리스’, ‘써밋같은 펫네임’(애칭)을 끼워넣은 동네+브랜드+펫네임형태가 도입되며 이름은 갈수록 길어졌다. ‘있어 보이는외래어 조합이 집값에 유리하다는 비속한 발상도 한몫했다.

 

1990년대 전국 평균 4.2자에 불과하던 이름이 20199.8자로 갑절 넘게 늘었다. 좋은 말만 골라 반죽하다 보니 래미안개포루체하임처럼 이탈리아어(루체)와 독일어(하임)가 뒤섞인 국적불명 이름도 생겨났다. 최근엔 레트로 열풍의 여파인지 자정작용의 결과인지 알 수 없지만, ‘반포르엘처럼 간결한 90년대식 이름도 다시 등장하고 있다.

강희철 논설위원 hckang@hani.co.kr 한겨레 : 2023.02.06.

 

 

이상민은 꺼져주세요

0·29 이태원 참사는 핼러윈데이를 맞아 이태원을 찾은 시민들이 인파에 떠밀리다 압사당한 사건이 아니다. 압사의 위험을 대비하지 못한 국가가 구조 신호마저 무시하다가 수습에 실패한 사건이다. 생명권 보호에 실패한 국가가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국가 책임은 너무 추상적인 말이라 누구더러 어쩌라는 것인지 모호하다. 책임지는 국가를 아직 만나보지 못한 우리의 현재다.

 

국가는 재난참사로부터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예방과 대비, 대응과 수습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진상규명은 시스템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평가의 방향이 중요하다. 재난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구체적 순간들에는 구체적 인물들이 등장한다. 수사는 이들의 과실을 따지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현장에서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었다면, 우리의 생명은 어떤 공무원을 만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는 말이다. 그것은 권리가 아니며, 시스템이 없다는 말과 다름없다.

 

현장이나 112상황실에 있던 경찰관 중 한 명이라도 상황을 간파하여 신속한 보고와 개입이 이루어졌다면, 이태원 참사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임을 묻는 방향은 달라야 한다. 거기 누가 있더라도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스템의 역할이다. 상급자일수록 일선 공무원들이 놓칠 수 있는 부분을 미리 점검하고 먼저 물어볼 줄 알아야 한다. 앉아서 보고하는 대로만 들으라고 앉힌 자리가 아니다. 보고가 늦어 긴박한 상황을 알지 못했다는 변명은,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하급 공무원들에게 떠넘기는 못된 습관이다.

 

행정안전부는 재난안전 시스템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는다. 국정조사에서 이상민 장관은 압사사고가 법에 미리 규정되지 않아 대비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법에 규정되어 있었더라면 대비하기 수월했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재난이 미리 자신의 모습을 법에 그려줄 수는 없다. 낯선 재난이 닥치더라도 대비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라고 재난안전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법의 미비로 인한 대비 어려움은 현장에서 고군분투한 이들의 호소일 수 있어도 행안부가 변명할 거리는 아니다. 이상민 장관은 중대본 설치가 촌각을 다투는 문제는 아니라고도 했다. 자신이 보고받은 시점은 긴급구조통제단장의 지휘 아래 응급조치가 가장 중요한 때라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 행안부 장관은 구조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구경만 하면 되는 때였을까? 특히 이태원 참사에서는 소방과 경찰의 협업을 극대화하기 위한 중대본 역할이 긴요했다. 응급실 이송, 영안실 연계, 시신의 인도와 유가족 지원 등이 촌각을 다투는 문제라는 점도 따로 강조하고 싶다. 재난참사는 존엄과 권리가 무너져내리는 사건이다. 붕괴를 막는 데 지체할 여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특수본 수사가 비켜가고 여유롭게 국정조사에 출석한 이상민 장관은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고 말했다. 할 수 있는 것을 다했는데도 결과가 이렇다면 자신은 쓸모없는 사람이었다는 고백일 뿐이다. 한편, 장관의 자리에 누가 앉아 있든 제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하는 시스템이 실패한 사건이기도 하므로 우리는 국가의 재난참사 대비 기능을 새롭게 세워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그 일을 이상민 장관에게 맡길 수 없음은 분명하다.

 

부족함과 잘못을 시인할 줄 모르는 상급자는 무책임이 구조화되는 시스템을 만든다. 시스템의 누구든 더 책임질 역량을 키우기보다 덜 책임질 명분을 쌓도록 길들이기 때문이다. 그 아래서 똑같은 사고는 막을 수 있을지언정 또 다른 참사는 막을 수 없다. 그러니 100일 추모대회에서 유가족협의회 부대표가 했던 말을 한 번 더 전해야겠다. “이상민 장관님 제발, 꺼져주세요!” 제대로 된 진상규명의 출발선이자 책임지는 국가의 시작이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경향 : 2023.02.07.

 

 

고 임보라 목사와 다음 소희’, ‘어른 김장하

지금 한국 사회에는 악당(빌런)이 넘쳐난다. 지난 4일 고인이 된 임보라 목사의 부고 기사에 입에 담기조차 부끄럽고 폭력적인 악성 댓글들이 달렸다. 급기야 장례위원회가 포털 기사의 댓글 노출 및 댓글 기능 중단을 각 언론사에 요청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평생을 성소수자 차별 철폐와 평화운동에 몸담은 이가 음험한 온라인 악당들의 먹잇감이 되다니, 참담하고 개탄스럽다. ‘당쟁에만 몰두하며 이런 악당들이 판치도록 방관하는 정치인들도 별반 다를 바 없는 악당들이다.

 

신혼부부나 20~30대 청년들의 돈을 갈취한 또 다른 악당 빌라왕들이 얻어간 부당수익은 수천억대에 이른다. 피해자들이 입은 상처는 경제적 손실만이 아니다. 더는 이 사회 시스템을 믿을 수 없게 됐다.

 

최근 수년간 한국 드라마 시장의 대세가 복수극이 된 건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학교폭력 가해자들 응징에 나선 <더 글로리><돼지의 왕>, 자신의 삶을 회귀해서 복수에 나서는 주인공 이야기인 <어게인 마이 라이프>, 곧 시즌2가 시작되는 <모범택시><천원짜리 변호사>, 최근 인기 상승 중인 <법쩐> 등은 악당이 활개 치는 현실이 반영된 복수 콘텐츠다.

 

하지만 과거 복수극에 견줘 뚜렷한 차별점은 악인이 법에 따른 처벌을 받고 마는 권선징악이 아니라, 피칠갑도 마다치 않는 살벌한 사적 복수가 스토리의 근간이라는 점이다. 시청자들은 과거라면 논란이 됐을 복수의 정당성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괴물을 이기려면 괴물이 돼야 한다는 주인공에 공감하며 사적 복수의 완성에 지지를 보낸다. 대중문화는 한 사회의 바로미터다. 악당들의 악행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희망은 있는 걸까.

 

영화 <다음 소희>와 다큐 <어른 김장하>에서 미력하게나마 새로운 가능성을 본다. <다음 소희>2017년 전주의 한 콜센터로 실습 나간 17살 고등학생의 극단적인 선택을 모티브 삼은 실화 배경 영화다.

 

고교 졸업반 소희(김시은)는 부푼 꿈을 안고 콜센터로 실습 나가지만 실적 압박, 임금 착취, 죽음조차 하찮게 취급하는 조직문화 등 가혹한 현실에 혹사당하며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간다. 끝내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지는데, 형사 유진(배두나)이 이 사건 수사에 나선다. 배두나는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날것 그 자체로소리치며 애도하는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 연기했다고 했다. “더 나은 세상이 됐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고, “작은 목소리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영화들을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정주리 감독은 전작 <도희야>에서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아동폭력 문제를 꼬집은 바 있다. 배두나는 작은 목소리를 큰 함성으로 만드는 데 동참하기 위해 <도희야> 제작에 노 개런티로 참여했다고 한다. 현실 악당들의 추악한 행태를 집요하리만치 스크린을 통해 까발리고 추적하는 정 감독과, 흔쾌히 이 여정에 동참한 배두나는 희망의 작은 불씨 같은 존재들이다.

 

다큐 <어른 김장하>의 한 장면. MBC경남 제공

 

한편, 지난해 마지막 날과 새해 첫날 방송된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MBC 경남)는 뒤늦게 화제가 되면서 유튜브 조회수가 폭발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선행을 평생 실천한 진주 한약방 남성당주인 김장하 선생의 삶을 다뤘다. 사학재단 헌납, 여성쉼터 지원, 장학금 제공 등 그의 선행은 아픈 사람으로 벌어들인 돈이니 병든 사회를 고치는 데써야 한다는 평소 철학에 따른 것이다.

 

한사코 인터뷰를 마다하는 그를 세상에 끄집어낸 이는 김주완 전 <경남도민일보> 기자. 감동을 증폭시킨 이들은 김현지 피디와 제작진. 다큐 유튜브에 좋아요를 누르고 에스엔에스(SNS)에 상찬을 남긴 이들과 김주완 기자, 제작진은 분명 악당들이 두려워해야 할 존재들이다.

 

본래 고 임보라 목사의 추모문화제는 6일 장례식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다가 돌연 연기됐는데, 그 이유가 빈소의 규모에 비해 조문객 수가 매우 많아서란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란 고정희 시인의 시가 생각나는 건, 임 목사의 여백이 다음 소희어른 김장하, 추모객이 함께하기에 차고 넘칠 정도로 넓고 깊기 때문이다. 여백이란 또 다른 탄생이다. 악당들을 처치할 어벤저스가 아직 우리 사회엔 넘친다.

박미향 | 문화부장 한겨레 : 2023.02.07.

 

 

최대 다수당이 장외투쟁? 민주당 지지율이 낮은 이유

윤석열 퇴진' 보다 필요한 것은 '686 퇴진'

민주당에겐 참 신묘한 재주가 있다. 압도적 다수당이 되면 정권을 빼앗긴다. 2004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고 2007년 대선에서 역대 최다표차로 참패했다. 2020년엔 위성정당 포함 무려 180석이라는 거대 정당이 됐음에도 2년 후 대선에서 역대 최약체 대선 후보였던 정치신인 윤석열에게 정권을 갖다 바쳤다. 그렇다면 국민의힘 쪽은? 2008년 총선(153)2012년 총선(152)에서 연이어 완승을 거두고도 김종인을 불러 앞세우고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선점해 2012년 대선 승리도 가져갔다.

 

민주당이 대규모 장외집회에 나섰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 이후 6년 만이라고 한다. 그런데 169석을 보유한 압도적 다수당이 거리로 나가는 모습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진보 정당까지 아우르면 180석이 넘는다. 집안의 장남이 집을 나간 꼴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민주당에 없는 것, '문제 해결 능력'

집회엔 백 명 넘는 민주당 의원들이 참석했다는데 무대 단상에 올라 "이재명을 지키자"는 발언을 이어갔다고 한다. 사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는 그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맞섰던 대선후보가 아니었다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야당탄압이라는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야당탄압'을 최대 다수당인 민주당이 자기 입으로 떠들며 국회 밖 거리로 나가는 풍경은 납득이 되질 않는다.

 

그 외에도 많다. 일례로 민주당은 오늘에서야 이상민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참사 발생 백일이 넘어서다. 특히 그 간의 과정을 보면 한마디로 우왕좌왕이었고 여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눈치보기였다. 압도적 다수당이 되면 정권을 빼앗기는 민주당의 특성 외에 또다른 특징이 바로 결정장애다. 이것도 문제고, 저것도 문제라며 말들은 참 많이 하는데 도대체 결정을 하지 않는다. 국민도 지쳤고 유족도 지쳤다.

 

추진력도 없다. 장관 해임이건 여사 특검이건 온갖 주장은 난무하는데 진행이 되질 않는다. 2018년 국민의힘 김성태 원내대표는 길바닥에서 단독으로 무기한단식농성에 들어갔다. 폭행도 당하고 '혼수성태'라는 놀림도 받았지만 결국 드루킹특검을 이끌어냈다. 우왕좌왕하던 민주당은 지난 2일이 돼서야 따뜻한 국회 건물 안에서 55명이 조를 짜 돌아가며 농성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제 와서 그 농성은 왜 하는지 모르겠다. 뭔가 눈치가 보여서?

 

국민의힘 상대하다 안 되니 지지자들에게 달려가

민주당이 거리로 나가고 농성을 시작하는데 그 이유가 잘 보이지 않는다. 왜 국회에서 정부를 상대로, 대통령실을 상대로 투쟁하지 않을까. 상대해보니 망신만 당해서 국회 밖으로 나간 것인가? 상대방이 생각보다 세니까 결국 자기들 이야기를 잘 들어줄 지지자들에게 달려간 것일까? 윤석열 정부가 그렇게 문제가 많다면서 왜 민주당은 자기들 직장인 국회에서 멋지게 싸우지 못할까?

 

당대표 선거를 앞둔 국민의힘은 지금 격랑에 휩싸였다. 권력투쟁이다. 노선투쟁과 동시에 세대투쟁에 돌입했다. 당대표 및 최고위원 선거에 도전한 천하람, 허은아, 김용태, 이기인은 최고 실세들인 이른바 윤핵관의 퇴진을 거침없이 입에 올리고 있다. 이들에게 전당대회 패배는 정치인으로서 죽음을 의미하는 공천탈락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생명을 놓고 일전을 치르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조용하다. 문재인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정부였음에도 역설적으로 민주당에서는 당내 발언의 자유가 사라졌다. 역시 공천 때문인가? 당내 최대 기득권 세력인 686 의원들 때문인가? 이미 오래 전부터 민주당 내 신진 정치인들 사이에선 이들에게 밉보이면 공천 받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어왔다. 이들에게 잘 보이면? '90학번대 초반'까지는 공천을 줄 거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들이 후배들에게 한다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너희들은 아직 젊잖아." 요즘 대기업 CEO30대다.

 

요즘 대기업 CEO30, 민주당은?

요즘 민주당을 놓고 "여당 같다," "배가 불렀다," "배에 기름이 잔뜩 끼었다"는 지적이 많이 나온다. 왜 이렇게 됐을까. 지금의 민주당은 2004년 총선에 기반한다. 정치민주화의 상징인 '87체제'의 세례를 받은 686들이 대통령 탄핵 역풍의 은혜에 힘입어 대거 국회에 들어왔다. 이른바 탄돌이들이다. 시간이 지나 왕년의 맹주들이 사라지자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이들이 기득권을 형성했다. 결국 민주당의 앞길은 '87체제'를 넘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느냐, 그리고 당내 '04체제'를 종식시킬 수 있느냐이다.

 

결정장애, 우왕좌왕, 추진력 부족을 모두 합해놓으면 그건 '무능'이다. 지금의 민주당은 '문제 해결 능력'이 없다. 국민들은 다 안다. 윤석열 정부가 저렇게 망나니짓을 쉴 틈도 없이 해대고 국민의힘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저토록 아수라장이 돼도 민주당 지지율이 국민의힘 지지율을 앞서지 못하는 이유를.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한 말씀 드린다.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고 싶으신가? 그렇다면 다음 총선을 통해 저 무능한 민주당을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실력 있는 정당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어쩌면 '윤석열 퇴진' 보다도 '686 퇴진'이다.

정희준 전 동아대 교수 | 프레시안 2023.02.07.

 

사법독재의 시대

검찰과 법원의 협업 없이 윤석열의 집권이 가능했을까?

 

시간의 자오선을 거꾸로 돌려서 복기해보자! 윤석열 대통령을 가능케 한 두 개의 국가기관은 단연 검찰과 법원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에 언론의 공헌을 누락시키면 매우 불공정한 일이겠지만, 논공행상(論功行賞)에서 언론이 검찰과 법원의 위에 자리하긴 어려울 것이다.

 

검찰총장 윤석열이 국힘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두말할 것도 없이 조국 일가에 대한 강제수사 및 기소, 정경심 교수에 대한 유죄판결이었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검찰과 법원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문명국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국가형벌권에 관해 전부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강력한 권한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이 이른바 조국 사태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의 의지를 얼마나 충실히 이행했는지는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이 있다. 조국 일가에 대해 사실상 무제한에 가깝게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해 준 곳도, 정경심 교수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해 준 곳도, 정경심 교수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린 곳이 모두 법원이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즉 이른바 조국 사태당시 검찰총장 윤석열의 의지는 법원을 통해 궁극적으로 관철된 것이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정경심 교수 사건과 최근 조국 전 장관에 대한 1심 판결 선고는 속한 진영이 어디건,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건 간에 정말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대한민국 헌법과 형사소송의 대원칙이 송두리째 위협받고 있다는 느낌을 물씬 주기 때문이다.

 

정경심 사건 판결과 조국 사건 판결은 '무죄추정의 원칙', '의심될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원칙, '입증책임의 원칙', '증거재판주의 원칙', '위법수집증거배제 원칙',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원칙' 등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피고인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공들여 만든 원칙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무죄추정유죄추정에게, 검사의 유죄 입증책임이 피고인의 무죄 입증책임에게, '의심될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의심될 때는 피고인에게 불리하게'에게 각각 자리를 빼앗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다.

 

정경심 사건과 조국 사건을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사실 한 가지는 검찰과 법원이 힘을 합치기만 하면 대한민국에 범죄자가 되지 않을 사람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건 정치의 사법화를 넘어선 일상의 사법화이며 사법독재의 전조(前兆)이기도 하다.

 

검찰권과 사법권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긴절

주지하다시피 87년 체제는 열광과 낙담, 민주정부로의 정권교체와 반동 정부로의 퇴행이라는 영겁회귀에 갇혀 있다. 이는 민주당의 실력부족과 의지박약에도 상당부분 기인하지만 본질적으로는 87년 체제, 더 정확히 말하면 6공화국 헌법의 내재적 한계에도 일정 부분 연유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윤석열의 집권을 선거의 외피를 쓴 연성쿠데타의 성공이라고 규정할 때 문재인 정부의 한심함과는 별개로 검찰, 법원 등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사실상 전무했던 6공화국 헌법의 공백에서 가능했던 측면이 분명히 있다. 6공화국 헌법은 군부독재의 재현 예방에만 골몰한 나머지 법복 입은 귀족들이 법을 무기로 법치주의를 참칭(僭稱)하면서 주권자의 주권을 일상적으로 강탈하는 것을 저지할 장치가 사실상 부재했다.

 

87년 헌법은 법관들에게 너무나 많은 권한과 재량을 부여했다. 군사깡패들의 위세에 눌려 법관들이 제 역할을 못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유일한 주권자인 국민들은 사법권을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하도록 해주면 법관들이 스스로 알아서 기본권 보장과 민주적 기본질서 수호의 최후 보루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믿었다.

 

기대가 환멸로 바뀌고, 믿음이 배반에 자리를 내주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권자들이 피투성이 싸움 끝에 군사깡패들과 인간백정들과 반란군 두목들을 축출하고 민주적 기본질서를 회복시키고 법원에 사법권을 속하게 만들자, 민주화에 손톱만한 기여(기여는커녕 훼방만 놓았다)도 하지 않은 법관들이 민주화의 과실을 독식하며 사법권을 마치 사유물처럼 여기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하여 헌법의 주요 기본원리 중 하나인 법치주의는 '법의 지배'가 아니라 '법관의 지배'로 완벽히 전락했다. 헌법기관도 아니면서 초헌법적 기관으로 군림 중인 검찰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근래 우리가 신물나게 경험 중인 것은 직업법관들로 구성된 법원에게만 사법권을 속하게 할 경우, 직업검사들로 구성된 검찰에 검찰권을 독점시킬 경우, 어떤 파멸적 결과들이 초래되는가이다. 법원의 구성·재판 과정·법관에 대한 탄핵 등 사법의 전 과정에 대한 주권자의 민주적 통제가, 검찰의 구성·검찰의 권한 조정·기소 과정·검사에 대한 탄핵 등의 검찰권 구성 및 행사의 전 과정에 대한 주권자의 민주적 통제가 담보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사법독재의 굴레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법률로 가능한 것은 그것대로, 헌법개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그것대로 각각 준비하고 추진해 법원에 속한 사법권과 검찰에 속한 검찰권을 원래 주인인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 알량한 시험 한 번 합격한 것으로 웃기지도 않는 신() 행세를 하고 있는 법관과 검사들에게 너희들도 어김없이 진흙으로 만들어진 보잘것없는 인간임을 상기시켜 줘야 한다.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시민언론 민들레 2023.02.07.

 

 

검찰정권과 언론, 그리고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진시황제가 죽자 환관 조고가 권력을 좌지우지하며 권세를 과시하는 과정에서 나온 고사성어이다. 권세를 부리며 진실을 농락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얼마나 권세가 무서웠으면 사슴을 사슴이라 못하고 말이라고 해야 했을까.

 

이번 정권 들어 대통령을 위시한 통치 권력과 언론의 갈등이 자주 불거지고 있다. 그럴 때 마다 대통령과 그 주변 권력의 대응은 날카롭고 위협적이다. 비속어 보도 관련 MBC에 대한 외교부 소송, 법무부 장관 명예훼손 이유로 KBS 기자 불구속 기소,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한 시민언론 민들레 압수수색, 장관 자택방문 취재한 시민언론 더탐사에 대한 압수수색과 기자 구속영장 청구, 역술인의 대통령 관저 개입 의혹 보도 한 뉴스토마토와 한국일보 기자에 대한 형사 고발 등.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진위를 따지며 대응하기 보다는 감사, 고소고발, 압수수색, 구속영장 청구와 같은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검찰정권의 면모를 언론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몇 가지 효과들이 나타난다. 첫째는 의혹이나 잘못에 대한 사실 관계 이슈가 특정 언론사의 문제로 전환된다. 이슈가 바뀌는 것이다. ‘바이든/날리면과 비속어 사용 문제로 불거진 MBC 압박이 대표적이다. 전용기 탑승 배제, 감사원의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조사, 외교부의 소송이 이어졌다. 여기에 정부여당이 사장퇴진 요구, 광고배제 종용, 편파언론 낙인찍기 등으로 가세했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된 애초의 이슈는 이미 저만치 지나가 있다.

둘째는 언론의 위축 효과이다. 다수의 언론사가 동일 이슈를 다루었건만, ‘최초 보도를 빌미삼아 특정 언론사만을 겨냥한다. MBC에 대한 압박이 그러했고, 뉴스토마토와 한국일보 기자에 대한 형사고발 역시 같은 방식이다. 속칭 한 놈만 팬다는 식의 대응이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할 말 못하는 언론은 없겠지만, 자기 검열과 같은 위축 현상이 나타난다.

 

셋째는 전략적 봉쇄 효과이다. 고소고발, 압수수색, 구속과 같은 법적 행정이 진행되면 심리적 경제적 부담과 비용이 수반된다. 구속이나 기소가 되면 순식간에 일상이 파괴되고, 해당 언론사와 언론인에 대한 낙인효과까지 일어난다. 특히나 소규모 언론사의 경우에는 향후 언론사 운영과 취재 활동에 막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언론 활동 자체가 봉쇄되는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언론윤리의 문제로 접근하면 될 사안들마저 압수수색, 구속영장 청구로 대응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효과들은 권력의 입장에서 보자면 흐뭇할 수 있겠지만, 언론자유 및 민주주의의 측면에서는 매우 위험스럽고 불행한 일이다. ‘자유를 강조하는 대통령이 이러한 비판들에 귀 기울여야 하건만,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하다.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어떤 고통이 따르는지 보여주어야 한다며 언론 대응을 주문한 대통령의 발언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옥죄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줄 세우기, 길들이기가 현 검찰정권의 언론관이다. 그렇다면 언론 역시 고민해야 한다. 감시견이 될 것인지, 애완견이 될 것인지. 사슴을 보고 사슴이라 말 못하는 지록위마의 사태까지 가지 않아야 한다. 시민사회가 눈 부릅뜨고 지켜보며, 함께 할 일이기도 하다.

김은규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전북일보 2023.02.07.

 

 

지하철 무임승차로 눈치보는 노인들

한국의 노인은 가난하다. 전체 노인 중 소득수준이 중위소득의 50% 미만 비율인 빈곤율은 202038.9%였다. 노인 빈곤율은 2011년 이후 줄곧 40%대 초중반이었다. 그나마 개선돼 처음 40% 밑으로 내려간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3.5%(2019년 기준)의 약 3배로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급증하는 노인 셋 중 한 명은 빈곤이라는 절벽에 맞닥뜨리는 게 현실이다.

 

‘58년 개띠가 올해부터 만 65세 이상인 노인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보통 1955~1963년에 태어난 이들을 가리킨다. 출생인구가 급증해 100만명가량인 58년생은 베이비붐 세대의 대표적인 연령대다. 노인 인구는 내년에 1000만명을 넘어서고, 내후년에는 전체 인구의 20%를 돌파한다. 총인구는 202051836233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이미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통계청 예측을 보면 2070년에는 1418만명(27.4%) 급감한 37655867명에 그치게 된다. 반면 노인 인구는 같은 기간 두 배가량인 1747만여명으로 불어난다. 인구의 46.4%65세 이상이 차지한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58년생이 노인에 진입한 올해 초부터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논쟁이 뜨겁다. 그들은 고교 진학 때 본고사가 폐지돼 뺑뺑이로 학교를 배정받았고, 성년이 돼서는 유신정권 몰락과 5공화국 탄생 등 격변을 지켜봤다. 1980년대 경제호황을 이끌었지만, 40대에 들어서자마자 외환위기를 맞아 등떠밀려 조기퇴직당한 세대다. 2년 차이로 정년연장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58년 개띠가 변화의 소용돌이에 또 휩쓸리고 있다.

 

지하철은 노인에게 큰 복지 서비스다. 웬만한 곳은 다 연결되고, 쾌적하고 편리한 데다 무료다. 노인들이 지하철을 타고 서류나 작은 화물을 배달하는 실버택배도 있다. 서울시내 요금은 거리에 따라 7000~11000원이고, 서울 중구에서 천안까지는 3만원이다. 요금의 70%가 배달원 몫이다. 노인 30여명이 일한다는 한 실버택배 회사 대표는 한 달에 200만원 정도 버는 이도 있다고 전했다.

 

노인 무임승차에 대한 논란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는데, 서울지하철 적자가 계속 불어났기 때문이다.

 

서울교통공사 재무제표를 보면 2017~2019년 당기순손실이 각각 5000억원대에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는 해마다 1조원 안팎으로 급증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노인) 무임승차 등 때문에 지하철 적자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2021년 서울지하철을 공짜로 이용한 승객이 2574만명으로 전체의 15.9%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이들로부터 받지 않은 요금은 2784억원이다. 무임승차의 83%는 노인이었다.

 

서울지하철 노인 무임승차는 201922만명을 웃돌았으나 202016만여명, 202117만여명으로 감소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이동이 줄어든 영향으로 보인다. 그런데 서울지하철 적자는 노인 무임승차가 줄어들기 시작한 2020년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전체 적자에서 무임승차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7~2019년에는 60%대에서 2020년 이후는 20%대로 낮아졌다. 무임승차를 없앤다고 해서 그만큼 요금수입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가 경영실패를 덮기 위해 적자의 원인을 노인 무임승차로 돌리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무임승차를 핑계삼기 전에 경영에 어떤 잘못이 있었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물론 고령화 시대를 맞아 노인 연령기준을 높이는 문제는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됐다. 실버택배 회사 대표조차 실버택배원 연령을 당초 65세에서 75세까지로 했었는데, 요즘에는 80세 넘은 노인도 일 잘한다. 70세 정도로 올려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교통연구원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지하철 무임승차는 노인의 활동을 증가시켜 자살 및 우울증, 교통사고 등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의료비와 기초생활급여 예산 등을 절감시키고, 관광 활성화에도 기여한다. 이들 편익을 합한 경제적 효과는 2012년 기준 3360억원으로, 무임승차 비용보다 훨씬 크다. 적어도 취약계층에는 무임승차 혜택이 사라지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사회는 과거의 협력 시스템을 벗어나 각자도생을 모색하는 길로 빠져들고 있다. 스스로 살길을 찾으라며 노인들까지 내몰아서는 안 된다.

 

강한 국가의 환상

오늘날 우리는 강한 국가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난방비 폭탄이 투하되면, 국가는 난방비를 지원하여 국민이 느끼는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에너지 가격이 오르고, 강력한 한파로 사용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해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그 원인이 지정학적 질서의 변화이든 아니면 기후변화이든, 국가는 우연적 위기도 해결해야 한다. 설령 운전자가 주의를 기울이지 못해 사고가 났더라도 도로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국가는 일정 부분 보상을 해야 한다.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이나 기후 재앙을 극복하고 국민에게 안전한 삶을 보장하려면 강한 국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통상 강한 국가를 말할 때 일반적으로는 처벌과 제재의 부정적 권력을 생각하지만, 이제 우리는 군대와 경찰보다는 병원과 어린이집을 생각한다.

 

우리는 국가가 어떻게 오늘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 그 역사성을 거의 망각한 것처럼 보인다. 그 결과 미래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대안이 상실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문제에 대한 논의와 대화가 정확하지 않아 핵심 문제는 건드리지 못하는 유령 토론이 된다. 사람들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국가를 소환하고 또 국가는 이에 부응하듯 상투적으로 국민을 말하지만, 어떤 국민이고 누구의 국가인지 그 실체는 모호하다. 국가와 국민이라는 개념이 뒤죽박죽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람들은 화물연대 집단 운송 거부 사태에서 보듯이 불법 시위에 대해서는 단호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강한 국가를 요구한다. 거짓, 선동, 폭력 세력과는 절대 타협해서는 안 되며 이를 바로잡지 못하면 국가가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강한 국가를 대변한다. 반면 난방비 지원을 중산층과 서민까지 확대하라는 그의 단호함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종종 약한 국가의 모습을 보인다. 평상시에 에너지 수급 체계 상황, 소아과 의사 부족 사태, 보육시설의 미비에서 보듯 기반시설을 제대로 구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곤경을 해결할 뿐만 아니라 이런 곤경이 아예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조치를 취하는 국가는 강한 국가의 다른 버전일 뿐이다. 이 국가는 제재하기보다는 예방하고, 범죄화하기보다는 보호한다는 점에서 강하다.

 

어느 정권에서도 국민은 없었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강한 국가의 두 가지 버전을 각각 정치적 스펙트럼의 좌우에 배치하여 이해했다. 우파의 보수정권은 전통적으로 시정하고 처벌하고 사람들이 지켜야 할 규칙을 제시하는 강한 국가를 요구해왔다. 반면, 좌파의 진보정권은 우리의 삶 깊숙이 들어와 촉진하고 강화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강한 국가를 추구해왔다. 제재보다는 통합, 불신보다는 신뢰, 경찰보다는 학교, 재정의 긴축보다는 확대라는 정치적 수사학은 겉보기와는 달리 훨씬 더 크고 강한 정부를 요구한다.

 

두 정치 세력이 국가에 대한 이해에서만 다른 것이 아니다. 그들은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평가하는 데서도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그들은 모두 국가의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민주주의 교과서를 읊어대지만, 그들이 국민을 대하는 태도는 너무나 다르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가 말하는 일반 의지’, 즉 국민의 단일한 공적 의지는 단지 추상과 상상으로만 가능하다. 국가와 국민은 오직 선거일에만 연결될 뿐, 국가는 대체로 국민과 분리되어 관료제를 통해 전문적으로 운영되고 국민을 통치할 뿐이다. 우리가 요구하는 강한 국가가 실제로는 국민과 분리된 국가라는 의심이 여기서 싹튼다. 보수적 의미에서 국민을 제재하는 강한 국가만 우리의 삶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다. 진보적 의미에서 국민의 이익을 선제적으로 보호하는 국가도 포퓰리즘으로 우리의 삶의 토대를 파괴한다. ‘누가 난방비 폭탄의 주범인가?’라는 소모적 말싸움은 실체가 없는 허깨비 논쟁인 이유이다.

 

어느 정권에서도 국민은 없었다. 국민과 분리된 국가에서 진정으로 국민이 참여하는 국가로 나아가려면, 우리는 국가에 대한 이해를 바꿔야 한다. 한때 기반시설을 건설하고 건설 경기를 부양함으로써 경제를 활성화하는 국가가 강한 국가로 여겨졌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 대표적이다. 좌파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러한 기조는 바뀌고, 국가는 복지에서 강한 정부를 표방하였다. 그러나 경제성장 둔화와 물가 상승의 조합, 오래 지속되는 노동 분쟁 및 파업의 물결과 결합하여 국민의 삶이 나아지지 않자, 우파는 이를 예방 국가를 불신하고 행정 국가를 장려하는 데 이용하였다.

 

문제는 이러한 강한 국가의 전환으로 발생하는 부작용이다. 사람들은 더욱더 행정 국가의 직접적인 효과를 기대한다. 국민은 소위 일하는 정부가 우리에게 가져다줄 이익이 무엇인지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난방비 지원은 어느 정도인지, 서민뿐만 아니라 중산층에도 지급되는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우리 지역에 어떤 시설이 들어서는지, 그것이 혐오시설인지 아니면 자산 가치를 높여줄 유익한 시설인지만 논란이 된다. 국가가 모든 것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면 할수록, 국민은 자신의 삶과 사회를 바꾸기 위해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국가만 쳐다본다. 국가는 어떤 경우에도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일종의 보험회사가 된다. 국가가 우리의 삶에 간섭할 정도로 강해져야 한다면, 그 결과는 역설적으로 권위주의적 자유주의이다. 우리가 자유롭게 살기 위하여 강한 국가의 통제와 제재를 자발적으로 원하기 때문이다. 자기 이익의 확대에만 관심 있는 신자유주의가 거꾸로 강력한 국가의 통제를 원한다는 것은 실로 역설이다.

 

정치 참여해야 비로소 국민이 된다

강한 국가는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 그렇다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실현하는 국민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공적인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지만 함께 해결하려 할 때만 정치적 공간이 생기며, 그곳에 비로소 국민이 존재한다. 모든 문제를 관료적으로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강한 국가를 원한다면, 국가는 단순한 행정기구로 전락하고 우리 사회는 그렇게 탈정치화된다. 정치 공간에서 국민은 사라지고, 국민이 없는 관료적 지배는 독재가 된다.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에 의하면 관료에 의한 익명의 지배는 아무도(nobody) 지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독재적이다. 우리는 정작 재난 사태와 위기 상황에는 아무도책임지지 않는다고 국가를 비난하지 않는가?

 

국가로부터 분리된 국민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정치를 되살려야 한다. 우리 국민이 우파적인 관점에서 단순히 통제의 대상이 되든가 혹은 좌파적인 관점에서 단순히 보호의 대상으로 전락하면, 우리 역시 아무도 아닌 사람’(nobody)이 된다. 정치적으로 행동할 때 비로소 우리는 국민이 된다. 그런데 최근의 두 사건이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 사회는 심각하게 탈정치화되고 있다. 우리처럼 정치에 관심이 많은 나라도 없다고 반박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정치를 소비하는 것일 뿐 실제로 정치적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는 난방비 폭탄과 관련한 논의에서 드러나듯 모든 책임을 국가에 전가하는 현상이다. 한겨울에도 방 안에서 반팔 차림으로 지내는 데 익숙한 것은 아닌지, 기후변화 때문에 에너지 소비를 줄이려는 노력은 하였는지, 기후변화의 피해는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가혹한 것은 아닌지에 관한 성찰적 논의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이 전 정부 탓이든 아니면 제때에 대처하지 못한 현 정부 탓이든, 모든 게 국가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공적 문제에 대한 논의가 없다면, 정치도 없고 국민도 없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당의 민주화가 위태롭다는 사실이다. 한쪽에서는 강한 정부를 위해 대통령과 함께할 수 있는 당대표가 선출되어야 한다는 명분으로 특정 정치인을 배제하는 비민주적 행태가 자행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위기에 처해 있는 당대표를 구하기 위해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부정적 팬덤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모두 강한 국가를 위해 강한 정당을, 그리고 강한 정당을 위해 강한 지도자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시민과 당원을 단순히 수단으로만 보는 것이다. 정당이 다양성을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민주적이지 않다면, 허울만 민주적일 뿐인 우리 사회의 어느 곳에도 국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강한 국가의 환상에서 벗어나 우리가 정치적 문제에 관여하고 직접 참여할 때 비로소 우리는 국민이 된다. 우리가 바로 국가이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경향 : 2023.02.08.

 

 

대통령은 부디 칼을 거두시라

정월 보름 달빛을 받아 칼이 차갑게 번득인다. 이미 여러 사람을 친 칼이다. 이준석을 자르고, 나경원을 베고, 안철수를 찔렀다. 비빔밥이라는 화려한 개념으로 잡탕 정당을 한 그릇에 담으려 했던 이준석도, 몸 아끼지 않고 정치 현장을 누볐던 보수정당의 오랜 지킴이 나경원도, 정권교체에 자신의 마지막 남은 중도정치 자산을 다 털어 넣었던 안철수도, 바람을 가르는 칼날에 풍비박산했다. 강호 무림의 최고 칼잡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솜씨다. 칼끝을 겨누기만 했을 뿐인데 유승민은 깊은 내상을 입고 주저앉았다.

 

칼은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앞 정부의 대통령은 물론 비서실장, 국가안보실장, 국정원장, 장관, 청와대 정책 참모,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에도 칼끝이 왔다 갔다. 어떤 이는 칼 등에 맞아 멍이 드는 정도이고 어떤 이는 칼날에 살짝 스쳐 피만 조금 비칠 정도지만 어둠을 가르는 칼의 궤적이 공포인 것은 분명하다. 그 칼끝이 종국에는 대통령 후보였던 야당 대표 이재명을 겨냥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두려움은 끝이 없다. 칼이 파고드는 자리도 거칠 게 없다. 앞 정부의 정책, 인사, , 판단, 민간단체의 활동 등 모든 곳에 날이 시퍼런 칼이 닿고 있다.

 

대통령의 권력 자원은 크게 세 가지다. , , 말이다. 물리적 힘이 있어야 하고, 인민의 삶을 추스를 경제적 힘도 있어야 하며,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는 설명의 힘도 있어야 한다. 칼은 꼭 필요한 권력의 수단이라 하겠다. 국가는 폭력의 독점기관이며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하지 않는가? 따라서 대통령이 칼을 쓰는 것 그 자체를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은 공정해야 한다. 꼭 사용해야 할 데 써야 한다. 정당성의 옷을 입은 폭력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 대통령이 쓰고 있는 칼은 걱정스럽다. 공정한가? 필요한가? 적절한가? 여러 가지 질문을 받고 있다.

 

이준석을 날려버리고 나경원의 무릎을 꿇리더니 안철수마저 으로 몰아붙이자 보수진영 내부까지 술렁이고 있다. 그럴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대통령이 당의 일에 이렇게 벌거벗고 덤비는 건 근 몇십년 정치사에서 보지 못한 장면이다. 칼의 은 현란하다고 할지 모르나 그것이 칼의 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을 헤집고 드는 칼날도 걱정이다.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고 법을 어기면 성역 없이 처벌받아야 하지만, 의뭉한 칼 놀림은,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있으니 저럴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민주당은 피를 흘리며 칼날을 맨손으로 잡고 서 있는 형국이다.

 

칼자루를 쥔 쪽이 여럿이라는 점도 주목할 일이다. 검찰, 감사원 등 강제적 국가기구들이 망라하여 나서고 있다. 이 기구들이 정치적으로 오염되어 있다는 비판이 강력하다. 대통령이 총장으로 머물렀던 검찰, 원장이 정치판 진입의 디딤돌로 삼았던 감사원이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의심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칼의 잠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함부로 쓰지 말라는 것이다. 절제가 으뜸 덕목이라는 얘기다. 일전에 조선의 나폴리로 불리는 경남 통영을 둘러보았다. 여행의 백미는 조선 후기 해군 총사령부라 할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이다.

 

출입문의 현판 지과문(止戈門)’이 일행의 눈길을 끈다. 멈출 지(). 창 과(). 칼을 내려놓자, 싸움을 그만하자 이런 뜻이다. 초전 박살 같은 구호만 보아 온 터라 전쟁 지휘 본부 출입문에 붙은 글자로는 뜻밖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곧 그 말이 칼 쓰는 사람들의 진정한 꿈을 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가 무()의 파자(破字)라는 것도 전쟁 지휘부를 드나드는 사람들의 생각을 짐작하게 했다. 제대로 된 무()는 칼을 쓰지 않는 경지라 하겠다. 해군 지휘 본부의 객사 현판은 세병관(洗兵館)이다. ‘은하를 길어와 무기를 씻는다.(挽河洗兵)’ 출입문 현판의 취지와 다르지 않다.

 

칼은 절제해야 하고 그것을 쓰지 않는 것이 칼의 꿈이라 하겠다. 한때 조선 제일의 검으로 불렸던 대통령도 그러한 칼의 잠언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칼을 쥔 팔뚝의 힘으로 탈탈 털어성공한 대통령은 없다. 지금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건 먹고사는 걱정을 덜어주고 지친 이를 위로해 주는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자신이 칼을 쓰는 이유가 충분히 있다고 할지 모르나 과하다. 대통령은 칼을 거두어야 한다.

김태일 장안대 총장 경향 : 2023.02.09.

 

 

반헌법적 '삼권통합' 정권

"피고인을 징역 19월에 처한다. 다만, 이 판결 확정일부터 3년간 피고인에 대한 형 집행을 유예한다. 피고인에게 보호관찰을 받을 것과 8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한다."

 

징역 4년을 구형받은 피고인을 구원하는 판결이다. 예상 밖 선고에 법정이 술렁인다. 구형을 뒤집은 법적 근거는 '자수'였다. 의뢰인에게 헌신적인 변호사 최수연과 우영우 모두 놓친 기본적인 법리다. 집안 따지고 지인 찬스에 관대하던 판사가 만들어낸 반전이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6화는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드라마 16화 가운데 이 6화만 늘 찜찜했다. 징역 4년을 선고해도 마땅했다. 명민하고 가슴 따뜻한 젊은 변호사들도 이미 포기한 상황이었다. 이들을 타박하던 판사가 굳이 마음을 쓰지 않았다면 피고인은 딸을 홀로 남겨둔 채 4년을 갇혀야 했다. 절박한 피고인을 구한 것은 판사 재량이다. 따뜻한 판사 재량은 가두지 않아도 될 사람을 가두기도 하는 사법권력과 같은 얼굴이다. 사법권이 그렇게 무섭다.

 

윤석열 정권은 출발부터 사법권을 든든한 배경으로 삼았다. 대선 승리로 행정권을 접수한 윤석열 대통령은 장관과 정부 요직 인사로 이 나라 행정 주도권이 어디에 있는지 적나라하게 공표했다. 검찰 출신을 행정과 법무, 정보, 금융 요직 곳곳에 심어둔 지금 '검찰 공화국'은 비유가 아닌 과장 없는 묘사다. 최근에는 교육부 장관 보좌관까지 검사를 보내 사법 산하 행정 영역을 더 키우고 있다.

 

행정권력을 접수한 사법권력은 이제 입법권력까지 노골적으로 탐낸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과정에서 드러나는 욕망이다. 공식적으로는 대통령 뜻과 무관하게 여당 대표 선출 방식이 바뀌었다. 그 여파로 결국 유승민 의원이 정리됐다. 또 대통령 뜻과 무관하게 혼쭐나던 나경원 전 의원은 나서니 마니 하다가 '용감하게'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 와중에 대통령 뜻과 무관하게 초선 의원 50명이 나 전 의원을 질타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입법기관으로서 자존심은 야당과 싸울 때나 꺼내 쓰면 된다.

 

김기현 후보에게 마지막 경쟁자로 남은 안철수 후보는 대통령 뜻과 무관하게 공산주의자를 존경한다며 조리돌림 당한다. 당 대표 선거가 당 대표 지명처럼 흘러가면서 사법권을 휘두르는 행정권은 조곤조곤 입법권을 접수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 정권은 대통령 뜻과 무관하게 '삼권통합'을 지향하는 듯하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40, 66, 101조에서 입법권·행정권·사법권을 정의하면서 '삼권분립' 원칙을 확인한다. 삼권통합은 엄연히 헌법 정신을 거스른다. 이 정권이 유난히 약점을 드러내는 삼단논법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삼권분립은 헌법 정신이다. 이 정권은 삼권통합을 지향한다. 이 정권은 반헌법적 정부다. 이해가 안 되면 외우면 된다.

이승환 뉴미디어부장 (hwan@idomin.com) 경남도민 : 2023.02.09.

 

 

민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게 먼저다

문재인 정부, 잘한 것이 더 많았음에도 몇 가지 뼈아픈 실패

윤석열 정권의 무능과 무책임이 도를 넘었다. 급기야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생때같은 젊은이들 158명이 참사를 당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권은 진심 어린 사죄 한마디 없고, 책임지고 사퇴하는 공직자 한 명이 없다. 오히려 피해자와 유족을 모욕하고 협박하는 실정이다.

 

외교 안보는 더 걱정이다. 남북관계는 물론이고 러시아, 중국을 넘어 이란까지도 틀어졌다. 이 정권은 입만 열면 대북 선제공격을 내뱉는다. 정부가 앞장서서 섶을 지고 불구덩이에 뛰어들면, 결국 타죽는 것은 불쌍한 국민들 아니겠는가?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듯이, 외교무대에서 품격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많은 국민이 대통령을 바깥에 내놓기가 부끄럽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대통령의 존재에 모욕감을 느낀다.

 

그 사이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국민은 각자도생의 삶에 내몰리고 있다. 난방비 폭등으로 전 국민이 충격을 받고, 고물가와 고금리로 소상공인들은 생업을 포기해야 할 실정이다. 무역수지는 11개월째 적자이고, 경제성장률은 일본보다 더 낮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거리에 나붙은 국민의힘 플래카드를 보라. ‘국민 모두의 나라로 정상화!’ ‘정상화라니광주시민을 학살하고 만든 전두환 군사정권의 정당 이름이 민주정의당이었다. 민주정의당의 후예답게 이들은 후안무치하고 몰염치하다. 이 모든 게 불과 1년도 되지 않은 기간에 벌어진 일들이다. 앞으로 4년 동안 우리 국민이 얼마나 더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할지 두렵기만 하다.

 

윤석열 정권에 대한 비판은 쉽다

윤석열 정권의 문제점을 지적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상대에 대한 비판은 원래 쉬운 법이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윤석열 정부가 잘못하면 할수록, 국민의 머릿속에서는 오히려 정권을 빼앗긴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에 대한 원망이 커진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권이 잘못하면, 문재인 정부가 오히려 욕을 먹는다. 억울하지만 안타까운 현실이다.

 

지난 대선 기간 내내 윤석열 후보의 선거 구호는 정권교체한가지였다. 국민은 손바닥에 ()’자를 쓰고 나온 한심한 인간을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그만큼 정권교체를 더 원했고, 그만큼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미워했다. 윤석열 정권은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정치, 잘못된 정책, 잘못된 인사가 낳은 결과물이다.

 

너희들이 정치를 잘 했으면 정권을 빼앗겼겠냐

윤석열 정부가 무능하고, 무도하고, 무책임하다고 치자. 그런 자들에게 정권을 빼앗긴 민주당 너희들이 더 한심해

 

이게 국민들 생각이다. 수백만 국민들이 기나긴 엄동설한의 추위를 뚫고 이루어낸 촛불혁명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덕분에 집권에 성공했고, 한때 자랑스럽게 촛불혁명정부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국민은 총선에서 180석이 넘는 의석을 몰아주었고, 지방선거에서 압도적 승리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불과 5년 만에 국민이 쟁취해준 정권을 무뢰배 같은 자에게 통째로 반납해버린 결과가 되고 말았다.

 

검찰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는 허망하게도 완벽한 검찰공화국이 되어 돌아왔다. 자유는 특권층만 보호받는 자유가 되었고,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바닥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 공정과 상식은 길거리에 나뒹구는 비닐봉지처럼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쓰레기 신세가 되어버렸다.

 

이런 꼴을 보려고 그 추운 겨울에 촛불을 들었나

죽 쒀서 개 주었네

 

검찰개혁 하다가 검찰공화국 만든 문재인 정부

국민들의 허탈감, 상실감, 배신감이 이토록 크고 깊다. 국민들의 가슴 속 깊이 얼마나 많은 원망과 분노가 자라고 있겠는가? 지지자들은 얼마나 절망하고 있겠는가? 정권을 빼앗긴 잘못은 역사의 죄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 주요 인사들은 국민의 야박한 평가가 억울할 수 있다. 흔히들 지나간 정권을 평가하는 데에 공칠과삼이라 하지만, 나는 공구과일 (功九過一)’ 정도로 매우 높게 평가한다. 문재인 정부는 대한민국이 나아갈 큰 틀의 국정운영을 매우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첫째, 한반도 위기 관리에 성공했다. 평화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까마득히 잊었지만, 북미 간의 치킨 게임이 절정에 달하던 최악의 위기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끈질긴 중재로 협상의 물꼬가 트였다. 하노이의 노딜은 통한스럽지만 반세기 넘는 분단이 하루아침에 해결되겠는가? 한반도 평화는 모든 것의 초석이다. 남북이 이만큼이라도 대화를 통해 가까워진 것은 다음 기회의 성공을 더 높이는 발판이 될 것이다.

 

둘째, 코로나 위기의 성공적 관리다. 이는 전 세계가 이구동성으로 칭송하는 바이다. 방역 위기 대응은 전 세계에 K-방역 신드롬을 가져올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가장 신속한 역학조사 시스템과 안정적인 환자 관리 시스템을 갖추었다. 확진자수 대비 사망자수는 세계에서 독보적으로 적었다. 코로나가 가져온 경제위기 또한 한국판 뉴딜로 성공적으로 관리했다.

 

셋째, 대한민국의 품격을 최고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세계 최고의 문화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 ‘KOREA’는 세계 일류의 국가 브랜드가 되었다. 단군 이래 문재인 정부 시절만큼 국격이 상승한 적이 없다. 한번 높아진 국가의 품격은 갈수록 무형의 빛을 발할 것이다.

 

큰 틀에서의 성공적인 정부 운영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대선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심판을 택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국민들은 문재인 정부에 행정부 권력, 의회 권력, 지방정부 권력 등 줄 수 있는 모든 권력은 다 주었다. 정부를 운영할 최상의 환경을 만들어준 만큼 국민의 기대치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국민이 부여해준 권력을 제대로 쓰지 못한 잘못에 대해 더 엄격한 심판을 내린 것이다. 전략, 정책, 인사 측면에서 몇 가지 실패가 뼈아프다.

 

잘 한 것이 더 많았음에도 몇 가지 뼈아픈 실패

정부 구성의 첫 단추부터 반성할 필요가 있다. 촛불혁명은 대한민국 정치에서 국힘당 세력을 영원히 왜소화시키는 결정적 계기로 삼아야 했다. 박근혜 탄핵은 민주당 혼자서 이뤄낸 것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 말대로 진정한 촛불혁명 정부가 되려면 탄핵에 찬성한 모든 정치세력과 함께 연합정부를 구성했어야 했다. 만약 그랬다면 국힘당 세력이 기사회생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촛불혁명을 정권획득 차원으로 왜소화시켜버렸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촛불혁명의 승리는 민주당 내 협소한 정파의 이권이 되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 초기 주도세력의 탐진치 (貪瞋痴)가 모든 문제의 출발은 아니었는가?

 

협소한 정파적 정권의 한계는 결국 인사의 실패로 나타났다. 창조론자를 중소벤처 정책의 장관으로 삼을 뻔하기도 했다. 실력 있는 전문가보다는 정파적 친소관계에 따라 무능한 정치인이 주요 직책을 맡았다.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이 시간만 보내는 사이에 개혁과제들은 모두 뒤로 미뤄졌다. 그중에 가장 문제가 바로 사정기관의 인사였다. 역대 정권에서 이번처럼 감사원장, 검찰총장 인사가 엉망이 된 적이 있었던가. 윤석열 총장의 경우 임명 과정도 문제였지만, 대통령의 인사권에 항명하는 초유의 검찰 쿠데타 상황을 묵과한 것은 더 큰 문제였다. 이로써 권력의 위엄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정권이 끝날 무렵 박근혜는 사면하면서도 정경심 교수, 김경수 지사는 끝내 사면하지 않았다.

 

부동산 정책은 유주택자, 무주택자 할 것 없이 온 국민의 분노를 샀다. 이미 노무현 정부 때 정책에서 실패했던 인물이 다시 기용돼 똑같은 잘못을 반복했고, 결국 처절하게 실패했다. 현금 부자만 부동산을 사게 만드는 대출규제 정책, 전세 가격을 오히려 올려놓는 임대차 정책, 다주택자를 죄악시 하는 부동산 세금 정책, 부동산과 연계한 정무직 공무원 인사정책 등 희대의 정책이 쏟아졌다. 28번 반복된 누더기 정책들은 정책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게 만들었다. 더구나 일부 청와대 인사들의 부동산 내로남불 행태는 얼마나 국민들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했는가!

 

소상공인 코로나 재난지원금은 예산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존재 이유와 직결된 문제였다. 코로나 방역을 위해 국가의 명령으로 영업제한을 강제당한 소상공인들에게 피해를 보상해주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도리라 할 것이다. 그러나 소상공인들이 그토록 절실히 원했던 재난지원금은 경제부총리의 반대로 끝내 지급하지 못했다. 다수 서민의 희생으로 실현되는 재정건전성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예산이 없어서 지급 못한다던 재난 지원금은 대선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지급됐다. 정권이 바뀌자 경제 관료들의 손으로 50조가 뚝딱 만들어진 것이다. 경제관료들 하나 통제 못하면서 뭐 하려고 권력을 잡은 것인지

 

검찰과 경제관료들을 통제하지 못한 무능

문재인 정부는 권력의 행사에서 우유부단했다. 윤석열 총장은 해임하고, 경제부총리는 경질했어야 했다. 권력이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국민들은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은 문재인 정부를 무능하고 위선적이라고 판단했다. 사랑이 배신당하면 그 사랑보다 더 큰 미움이 싹튼다. 최근까지 여론조사에서 현 정권에 대한 부정 의견이 60%에 가까와도 민주당 지지도는 30%대에 고착되어 있다. 윤석열 정권도 싫지만 민주당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권이 검찰 권력을 남용하고 막가파식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아무리 분탕질을 쳐도 국민들이 쉽사리 민주당으로 마음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에서 과연 민주당이 이길 수 있을까? 윤석열 정권의 실정에 분노한 민심이 민주당에 저절로 돌아올까? 이를 기대하는 것은 입 벌리고 누워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꼴이다. 국민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고 정권을 빼앗긴 잘못을 근본부터 되돌아보지 않는 민주당에게 국민의 신뢰가 돌아올 리 만무하다.

 

국민들은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의 자기 만족적 평가에 분노하고 있다. ‘졌지만 잘 싸웠다’(졌잘싸)라거나 퇴임시 역대 최고의 지지율을 기록했다고 자랑해서는 안된다. 정권을 빼앗겨 큰 충격을 받은 지지자들에게, 또 다시 거리로 내몰리고 있는 국민들에게 졌잘싸, ‘역대 최고 지지율이니 하는 자기 위안이 무슨 가당키나 하는 말인가?

 

문재인 전 대통령이 2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자신의 사저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등 당 지도부가 나서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2023.1.2 [공동취재] 연합뉴스

자기만족으로는 국민의 신뢰 못 찾아온다

 

기조를 바꿔야 한다. 국민 앞에 한없이 겸손한 자세로 말해야 한다. 민주당과 후보는 막판까지 추격했지만 졌다, 문재인 정부는 최선의 노력을 다 했으나 국민들 기대에 미흡했다로 바꿔야 한다. 민주당 내부에서 반성과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와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를 어렵게 한다. 소위 친문과 친명, 정부와 민주당 · 후보가 꼼짝달싹할 수 없도록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족한 점을 반성하자고 하면, 강성 친문 지지자들이 벌떼 같이 달려든다. 당과 후보의 문제를 제기하면 강성 이재명 지지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든다.

 

이런 형국에서 반성의 목소리는 내부총질로 비난받고, 지지자들로부터 고립된다. 정부에서 주요 역할을 맡았던 어느 누구도, 설사 반성을 하고자 해도, 자신이 모셨던 대통령께 누가 될까 봐 먼저 나설 수가 없다. 나아가 보수언론과 국힘당에서는 내부반성의 목소리를 내부분열로 왜곡 포장한다. 이래저래 반성의 목소리는 안팎으로 돌팔매질을 당하는 신세가 된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모든 것의 출발이다. 국민의 응어리를 풀어주어야 한다. 지난 과오에 대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절차가 선행되어야 한다. 필자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잘 안다. 필자를 포함해서 문재인 정부에서 조금이라도 영예를 누렸던 사람들의 자기 반성이 있어야 한다. 영예와 권한을 더 크게 누렸던 분들부터 더 크게 반성해야 함은 물론이다. 촛불혁명을 완수하지 못한 잘못, 윤석열 정권을 탄생시킨 잘못, 그 결과 국민들을 고통과 불안에 빠지게 한 잘못, 국가의 미래를 위험하게 한 잘못을 우리 스스로 인정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지도를 보고 가면 길을 잃을 수 있지만, 하늘의 별을 보고 가면 길을 잃지 않는다고 했다. 정치에서 바라보아야 할 하늘의 별은 국민이다. 상대의 잘못과 실정을 비난해 반사이익만을 좇는 정치는 국가를 병들게 한다. 정세의 유불리를 따지고 내부총질이라는 변명으로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정치는 비겁한 눈가림에 불과하다.

 

아픔을 직시하는 것이 용기다.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은 국민의힘이나 윤석열 정권에게 복속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기는 길이다. 민주당은 무뢰배 집단같은 국힘당과 비교경쟁하지 않아야 한다. 민주당은 잘못하는 민주당과 경쟁해야 한다. 더 나아져야 한다.

 

민주당이 잘못을 사과하고 성찰하는 것은 고통받는 국민들 앞에서 무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 총선 승리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윤석열 정권에 분노하면서도 민주당에 마음을 주지 않는 국민들에게 민주당의 진심어린 각오를 보여드려야 한다. 그것이 진짜 용기다. 그것이 진짜 정치 발전이다. 다음 선거 승리를 위한 첫 발걸음이다.

 

문재인 정부 내부 성찰의 시작은 대통령부터

문재인 대통령께 감히 부탁드린다. 대통령이 이 모든 사태의 가장 큰 당사자이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내부 성찰의 물꼬를 터주길 바란다. 대통령의 성찰은 민주당의 내재적 갈등을 최소화하고, 지지자들에게 신뢰를 회복하는 결정적인 모멘텀이 되리라 믿는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 대통령 자신조차도 이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천명해주길 바란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사의재에 모여 지난 정부의 정책을 변호하기에 앞서, 문재인 정부의 주요 인사들은 사과부터 하시라. 잘못된 정책과 인사에서 책임이 큰 분들은 정치 은퇴를 선언하시라. 앞으로 당과 국가의 정책에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천명하시라. 지난 정부에 대한 성찰, 사과, 책임자의 퇴장이 민주당 혁신의 출발이 될 것이다. 언제까지 국힘당과 적대적으로 상호의존하는 진영논리에 안주할 것인가..

 

문재인 정부의 주요 책임자들이 진솔하게 성찰하면, 국민들은 문재인 정부의 공과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평가로 화답할 것이다. 촛불혁명 덕분에 민주당은 집권할 수 있었듯이, 국민의 성원으로 다시 일어설 것이다. 민주당이 반구제기(反求諸己)의 정신으로 스스로 잘못부터 인정하고 찾아 고치는 각고의 노력을 한다면, 다시 민주당을 믿어주리라 생각한다. 국민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쌓인 한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것이 모든 것의 출발이다. 지금 국민은 우리의 선택을 지켜보고 있다

.문용식 아프리카TV 창립자, 전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장 시민언론 민들레: 2023.02.09.

 

 

류미(ed**)-BEST "촛불혁명을 완수하지 못한 잘못, 윤석열 정권을 탄생시킨 잘못, 그 결과 국민들을 고통과 불안에 빠지게 한 잘못, 국가의 미래를 위험하게 한 잘못을 우리 스스로 인정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200퍼센트 공감합니다. 문프 지지자였고, 아직도 존경은 합니다만.. '책방지기' 운운하시는 거 보면 혼자 신선놀음 하시는 듯하여 씁쓸해요..ㅠㅠㅠㅠ 국민은 하루하루가 이 지경인데...

 

백주(wn**) -BEST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문재인 대통령덕에 한국인임이 자랑 스러웠습니다 막말하는 시위자들을 방치 할 때도 선비시라 온전한 자유아래 민주주의가 꽃핀다 생각하시나보다 조국일가의 패가망신도 악법을 지키시려보다 이해하고 이해 했습니다

독립운동가의 피 민주화 운동가의 한 쉬지못한 노동자의 꿈이 밀어드린 촛불정권인데 일만 열심히 하신거 같네요 역사적 소명 없이 어찌 무뢰배 윤이 대통령 되는 걸 눈으로 보기만 하셨는지 국민도 예측한 지금의 미래를 문대통령님 이하 민주당 모든 분들은 설마 하셨나요?

지금도 설마설마 하고 바라보기만 하시는 지요 이러다 군사권 넘긴 이승만 처럼 통치권을 미국에 넘길 것 같은 불안감까지 드는데 여전히 반성은 안하고 선비로만 계실 건지요?

역사적 소명을 깨닫고

 

이미(65**) BEST 윤정권의 사악함은 상상초월입니다. 겪어보기 전까지 이 정도일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사기 친 놈이 잘못이지 사기당한 사람 몰아세우지 맙시다

강윤(mo**)-사기 1번은 용서하지만 2번 당하면 본인 책임, 3번 당하면 굥범입니다.

차라(ro**)- 대통령이 사기를 당했다는 논리라면 굥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이미 그자리에올리기전에 문통은 알았을겁니다. 만약 그런 확인조차 안해서 사람들 말만 믿고 임명해서 굥을 키웠다면 문통은 허수아비 대통령이란 말밖에 안됩니다.

이건 사기로 비유해선 안되는겁니다. 기사는 잘한거 인정하며 잘못했던 부분을 얘기하는건데 이게왜 사기당한 사람을 오히려 몰아세우는건가요.

 

법의 정신

아들이 퇴직금 명목으로 50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 나왔다. “담당 업무, 액수를 볼 때 50억원은 이례적으로 과하지만 아들이 받은 성과급을 곽 전 의원이 받은 것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점에서 뇌물수수에 관한 공소사실은 무죄로 판단한다.” 재판부는 일상의 상식 차원에서 볼 때 분명 50억원의 성과금은 이례적으로 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법 형식을 따라 따져볼 때 뇌물로 판단할 증거가 명백하지 않다고 단언한다. 일상의 가치 판단과 재판부의 사실 판단이 어긋난다. 이러한 어긋남은 법을 일상의 사회적 삶과 괴리된 법 기술로 보는 도구주의적 시각을 드러낸다. 법의 형식 합리성을 기술적 차원에서 세밀하게 따질 뿐 법이 사회적 삶의 실질적 요구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에는 애써 눈감는다. 사회적 삶에서 유리된 법은 현실권력에 복무하는 법 기술자의 도구로 전락한다.

 

현재 한국사회에는 법 도구주의가 불러일으킨 냉소주의가 일상에 널리 퍼져 있다. 공수처법을 한번 보자. 검찰의 권력을 공수처에 나누어주면 두 기관이 경합하고 균형을 이루면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것이다. 이러한 순진한생각은 사실 법이란 강자의 정의일 뿐이라는 냉철한현실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강자의 정의가 폭정으로 치닫지 않도록 그 힘을 쪼개어 서로 경합시키자. 실제로 현실화한 대가는 쓰라리다 못해 아프다. 일거리가 더 많아진 법 기술자가 정치마저 모조리 장악했다. 법 기술자는 도구적, 전략적, 냉소적 행위자다. 그에게는 법 기술을 얼마나 교묘하게 활용하여 상대방을 패퇴시켜 승리하느냐가 지상과제다. 아무리 좋은 법을 만들어도 원래 취지를 교묘하게 비틀어 자기 정파의 이득을 극대화한다. 국회선진화법과 정당명부제가 대표적인 예다. 법 기술자의 통치는 부당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승인할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세상으로 변할 수 없다는 냉소 바이러스를 온 사회에 퍼트린다.

 

사람들은 분통을 터트린다. 정치가 후져도 너무 후지다. 자기 정파 이득을 보편적 선으로 포장하는 저 뻔뻔함 좀 봐라. 시커먼 속이 훤히 다 보인다. 에잇, 소인배야! 푸념하고 정치를 멀리한다. 이렇게 되면 법 기술자는 더 좋아한다. 삐뚤어진 엘리트 의식으로 똘똘 뭉친 법 기술자 클럽이 주거니 받거니 정치를 제멋대로 주무른다. 기술자의 세계관은 단순하지만 자기 분야에서는 유식하다. 단순무식한 자가 통치하면 금방 허점이 들통난다. 하지만 단순유식한 자가 통치하면 다르다. 기술적으로 세련되고 촘촘해서 도전하기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문제를 제기하면 단순하지만 유식한 지식을 총동원해 공방을 벌이자고 덤빈다. 그러면 그 유식한 지식이 뒷받침하는 단순한 세계의 폐쇄성에 시퍼렇게 질린다.

 

법 기술자가 싫다고 성직자에게 정치를 떠맡길 수는 없다. 그러면 더 끔찍한 사회가 올 수 있다. 신비한 성채에 둘러싸인 전제군주제. 그 속을 가늠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너무 성스러워 누구도 비판할 수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법의 정신>에서 몽테스키외는 이에 대해 답한다. 민주주의 공화정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분명히 하면서도 공동체의 이해관계를 우선하려는 의지에서 나온다. 자신의 좁다란 이해관계를 초월해서 보편적인 연대를 추구할 수 있는 시민의 문화역량이 민주주의 공화정의 핵심이다. 형식 민주주의는 항상 법치를 앞세우지만, 사실 법치는 군주제의 본성이다. 법은 군주의 자의적 권력행사를 통제하기 위한 장치다. 법치가 없으면 일반인은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민주주의 공화정은 다르다. 설마,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한가? 법 기술자의 단순유식한 법치가 구축한 폐쇄성을 시민의 초월적 문화역량으로 고비고비마다 열어젖힌 역사가 한국 민주주의 공화정이 쌓아올린 법의 정신이라는 것을.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경향 : 2023.02.10.

 

 

금산분리 완화라는 판도라의 상자

금융위원회(금융위)는 올해 업무보고에서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규제기관인 금융위가 본연의 목적을 망각하고, 금산분리 완화가 우리 경제에 미칠 부작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매우 우려스럽다.

 

금산분리는 금융·비금융 회사를 동시에 지배하는 것을 금지하는 제도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은행의 비금융회사 지배와 비금융회사의 은행 지배는 은행법에서 금지되고, 보험회사 등 비은행 금융기관들도 개별법에 따라 부수업무, 위탁업무 및 자회사 출자 규제에 대한 제한을 받고 있다. 이런 금산분리 규제는 거의 모든 선진국들이 채택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금융기관이라는 본질에 있다. 금융기관들이 고객의 예치금을 자산으로 운용함으로써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고, 금융기관의 부실은 경제위기로 전이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금융기관의 건전성과 소유지배에 대한 규제 그리고 금융소비자 보호를 통해, 사전적으로 이런 위험을 관리하는 것이 금융규제기관 본연의 임무이고, 은행의 시스템 리스크가 훨씬 크기 때문에 더 엄격한 금산분리를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산업자본(비금융회사)의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는 비대칭적이다. 공정거래법상의 지주회사체제에 속하지 않는 산업자본은 비은행 금융기관을 소유할 수 있으며 의결권만 제한받고 있다. 그런데 지주회사체제에 속하지 않는 산업자본이 비은행 금융기관을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현행 법체계에 오히려 맹점이 있다. 이 맹점은 이미 동양그룹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2012년 금융권 대출이 완전히 끊긴 동양은 고금리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발행을 대폭 늘려 연명하기 시작했고, 결국 동양그룹에 남은 자금조달 창구는 경영진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동양증권뿐이었다. 2013년 금융당국은 10월부터 증권사가 투자부적격 등급 계열사의 채권을 파는 일을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했고, 새 규정 시행을 하루 앞둔 930일에 동양·동양레저·동양인터내셔널 3개사는 동시에 법정관리 신청을 공시했으며 101일에는 우린 걱정 말라던 동양시멘트와 동양네트웍스도 뒤따랐다.

 

동양증권 제주지점의 한 직원은 102제 고객님들 돈을 꼭 상환해주십시오라는 내용을 담은 유서를 남긴 채 차 안에서 번개탄에 불을 붙였다. 금융감독원은 동양증권을 통해 동양그룹 CP와 회사채를 매입한 개인투자자가 약 41000명이고 피해금액은 16000억원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2의 동양그룹 사태는 여전히 발생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1940년에 이미 투자회사법(Investment Company Act)을 통해, 금융이나 비금융 상관없이 자회사 지분을 50% 미만으로 가지는 지배회사는 투자회사에 준하는 규제를 받도록 한 바 있다. 이런 입법 정신을 최소한이나만 반영해, 금융기관을 지배하는 비금융회사에 대해 그 금융기관과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는 입법이 필요하다.

 

금산분리 규제의 맹점은 보험업법에도 있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에 거의 모든 자산을 몰빵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보험업법 감독규정은 여전히 건재하다. 계열사 위험이 보험회사로 전이되는 것을 막는 보험업법의 행위 규제가 유명무실한 것이다. 동양증권의 위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사회적·경제적 파급을 불러올 것이 명약관화한 리스크 관리를 국회도 금융위도 방관하고 있다.

 

금융환경이 바뀌면, 이에 따른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와 시스템 리스크에 대한 평가를 우선시하는 것이 정상적인 금융규제기관의 모습이다. 그러나 핀테크 육성을 핑계로 인터넷전문은행을 허용하면서도, 이로 인해 야기될 금융 위험에 대한 관리는 없었다. 금융 위험을 방관하면서 도입한 인터넷전문은행이 과연 핀테크 산업 육성에 도움이 되었는가? 금산분리 완화가 금융회사의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면, 이미 금산분리가 적용되지 않고 있는, 비지주회사 재벌 소유의 보험회사나 증권회사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금산분리 완화는 결국 지배력 전이를 통해 내수시장에서 손쉬운 돈벌이만 유인할 것이다. 이런 유인기제는 금융기관의 본연의 경쟁력을 오히려 약화시키고, 금융-비금융 복합 리스크는 확대하는 부작용만 낳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금산분리 완화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 아니라, 금융기관을 지배하는 비금융회사에 대한 규제 강화와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입법하는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경향 : 2023.02.10.

 

론스타 사태: 모피아가 무너뜨린 금융감독

지난해 8월 말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투자자국가분쟁해결(ISDS) 중재판정부가 론스타 사건 판정문을 발표했다. 한국외환은행이 론스타펀드에 매각되고 20, 론스타가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에 제소하고 10년 만이다. 판정문에는 모피아(재무부+마피아, 금융관료)가 무너뜨린 금융감독이라는 한국 금융의 민낯이 자세하게 드러나 있다.

200310월 외환은행을 13834억원에 인수한 론스타는 20122월 이를 하나금융에 39157억원에 매각해 엄청난 이익을 얻었다. 그럼에도 소송을 제기한 건 탐욕일까 또는 오만일까. 중재판정부는 청구금액 467950만달러 가운데 21650만달러만 한국 정부가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2003년 매각 당시 외환은행은 독일 코메르츠방크, 수출입은행 및 한국은행이 공동 대주주였기에 정부가 매각을 주도했다. 정부는 은행 부실을 핑계로 은행법시행령을 우회통로로 사용해 론스타의 한도초과보유 주주 자격을 인정하고 외환은행 지분 51% 취득을 승인했다. 그런데 몇가지 문제가 생겼다. 첫째, 외환은행 비아이에스(BIS) 자기자본비율이 8%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주가가 급등했고 헐값매각 논란이 이어졌다. 이와 관련해 변양호 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과 이강원 외환은행장 등이 배임 혐의로 기소됐는데, 훗날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한다. 둘째, 은행법시행령 해석이 자의적이고 은행법 제2조 위반이며 상위법인 금융산업구조개선법을 넘어서는 재량권 남용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검찰은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 셋째, 론스타의 비금융주력자 여부 판단이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이는 금융감독위원회 소관으로 당시 김석동 금감위 감독정책1국장이 검사 조사에서 재경부 유권해석에 따른 것이라 했으나, 금감위 부실감독을 자인한 것일 뿐이다. 그 뒤 론스타의 산업자본 여부에 대한 금융당국의 판단은 오락가락과 묵인이었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금융감독체계를 개편했다. 재경부 금융정책국과 금감위를 합해 금융위원회(금융위)를 설치하고 금감원을 지도·감독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금융산업정책과 금융감독정책이 재경부와 금감위로 분리됐을 때는 역할 분담과 책임 소재가 분명했으나, 개편 뒤 두 기능이 금융위 단일 조직에 모이면서 산업진흥(금융산업정책)이 감독(금융감독정책)을 압도하며 견제와 균형을 잃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모피아가 포진한 금융위가 과거 잘못을 인정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20101125일 론스타는 하나금융과 매매계약을 체결한다. 그러나 외환은행과 외환카드 합병 과정에서 주가조작 혐의로 론스타코리아 유회원 대표가 기소됐고 이에 금융위 승인도 미뤄졌다. 유 대표의 대법원 유죄 확정판결 뒤인 20111118일 금융위는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 상실을 발표하고 동일인 한도 초과분 41% 매각명령을 내렸다. 금융당국은 “10년 말 기준 론스타펀드의 일본 내 골프장운영회사(PGM) 등 비금융계열사 자산 합계가 2조원을 초과해 산업자본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시민단체 등이 요구한 징벌적 조건 없이 매각명령을 내렸다. 또다시 핵심을 비켜간 것이다.

 

그리고 2012127일 금융위 정례회의에서 ‘11년 말 골프장 매각으로 론스타의 산업자본 문제가 해소됐다며 하나금융에 지분매각을 승인했다. 이에 론스타는 외환은행 지분 51% 전체를 39157억원에 하나금융에 매각하게 된다. 금융위가 론스타를 산업자본으로 볼 수 없다는 그간의 감독 실패를 끝내 인정하지 않고 론스타의 속먹튀’(속이고 먹고 튀기)를 도와준 것이다.

 

중재판정부의 다수의견은 론스타의 하나금융 매각 과정에서 드러난 금융위의 관망(wait and see) 정책이 가격 인하를 목적으로 추진돼 국제투자보장 협정상 공정공평대우 의무를 위반했다고 봤다. 이는 정당한 규제권 행사가 아니며 금융위 고유의 사적이익(its own institutional self-interest) 추구로 판단했다. 하나금융의 인수자 적격성이나 감독당국의 건전성 규제 목적과 무관하고, 정치인들과 대중의 비판을 피하려는 부당한 가격개입이자 투자자에 대한 신의성실원칙 준수 실패로 보았다. 한편 중재판정부는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유죄 확정판결로 론스타가 수시적격성 부적격이었던 것이 가격 인하에 영향을 준 것을 인정했다. 결국 론스타의 청구액 대부분을 기각하고, 론스타와 하나금융이 처음 계약 체결가격과 실제 매매가격 사이 차액의 50%21650만달러씩을 각자 부담하도록 판결했다.

 

정부는 판정부 결정과 관련해 아직 구체적인 대응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관련해서 시민단체 등과 법무부 사이에 비금융주력자 이슈를 놓고 이견이 존재한다. 시민단체 등은 아이에스디에스가 국내법상 무자격 인수자에 대한 관할권이 없어 이제라도 비금융주력자 이슈를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무부는 정부가 론스타가 산업자본이 아니라고 이미 공표했고 그런 견해를 유지해왔는데, 이제 뒤집으면 정부정책의 비일관성이 드러나 정부의 자의적 법 집행논리를 입증하게 된다고 반박한다. 그런데 설혹 정부의 비일관성이 드러나더라도, 그간 잘못이 있었다면 이제라도 바로잡는 게 옳지 않을까. 향후 국내 금융감독과 금산분리 원칙의 정립을 위해서도 말이다.

 

배상금이 대외적 문제라면 대내적으로 책임규명의 문제가 남아 있다. 이를 밝히기 위해 지난 113일 국회에서 열린 정당·노조·시민단체 공동기자회견에서 정의당 심상정 의원 등이 제안한 국정조사가 설득력을 지닌다. 이번 정부 총리와 경제팀 수장 다수가 론스타 사태와 연관돼 있다는 지적 또한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이들이 론스타 대응팀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잘못이다.

 

론스타 사태가 한국 금융에 던지는 교훈으로 마무리한다.

 

첫째, 한국 경제 급성장에 모피아의 공이 컸다 해도 외환위기 책임이 절대 가볍지 않다. 외환은행의 부침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러나 이제 한국 경제가 선진경제로 진입하는 상황에서 모피아 영향력을 줄이고, 판정문이 지적한 적법한 규제권으로 금융질서를 이끄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둘째, 금융감독기구가 바른 소리를 낼 수 있도록 금융감독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금융위의 산업정책 기능은 기획재정부로, 감독정책 기능은 금감원으로 각각 통합해 금융감독의 견제와 균형을 강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론스타 사태는 비금융주력자 규제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특히 요즘 빅테크의 금융업 진출이 가시화하는 상황에서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허용에 신중해야 함을 시사한다. 단 국제화 시대에 국적보다 행태가 중요하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윤석헌 | 전 금융감독원장 한겨레 : 2023.02.10.

 

 

돈의 논리에 빠진 한국사회

한국에서는 하루건너 사건 사고가 터지고, 언론과 여론은 현재를 따라가기에 바쁘다. 과거는 곧 잊히고, 미래를 내다볼 여유는 없다. 가끔 제 자리에 멈추어 현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미 알려진 사실 몇 가지를 재확인하자.

 

한국은 살 만한 곳인가?

한국 경제는 급속히 성장해왔다. GDP는 세계 10위권에 근접했고, 1인당 GDP2000년에 비해 세 배 가까이 올라 유럽연합 평균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은 말 그대로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OECD 최신 통계를 보면, 한국의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율은 38개국 중 34위다. 사회 보장에 관한 지표도 대체로 낮은 수준이다. 빈곤율은 높은 편이고, 특히 노인빈곤율은 가입국 중 가장 높다. 소득 불평등(지니 계수)도 큰 편에 속한다.

 

성별 임금 격차는 지난 30년간 세계 1위를 기록 중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OECD 가입국 중 독일에 이어 두 번째이고, 성차별 정도를 나타내는 사회 제도와 젠더 지수(SIGI)도 높은 편이다.

 

산재 사망률은 가입국 중 최상위권에 속한다. 부상, 질병, 장애로 일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한 공공 지출은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심각하다. 안정적 노동과 불안정 노동의 분리는 일반적이지만, 한국처럼 사회문화적 신분제마냥 작동하는 곳을 찾기는 어렵다.

 

자살률은 압도적 1위다. 합계출산율은 2018년 이후로 0점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치다. OECD가 제공하는 1960년 이후 통계에서 합계출산율 1.0 이하를 기록한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의 사회적 지표가 나쁘다는 사실은 전혀 새롭지 않다. 주목해야 할 것은 통계 수치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한국사회의 반응이다.

 

한편에는 이런 지표의 의미에 무관심한 이들이 있다. 해외에 나가보니 한국만큼 안전하고 편리하고 살기 좋은 곳이 없더라는 사람을 종종 본다. 상당한 자산 또는 안정적 소득이 있는 사람, 차별의 경험과 거리가 먼 사람은 한국의 현실을 굳이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성, 빈곤 노인, 장애인, 아픈 사람, 비정규직 노동자 등에게 한국은 사람 살 곳이 못 된다. 더구나 이 사회에는 일종의 추락 지점이 존재해서, 그곳을 지나면 나락으로 떨어져 빚의 올가미에 잡혀버린다.

 

다른 한편에는 한국사회의 문제를 오로지 돈의 논리로 이해하는 이들이 있다. 앞서 나열한 지표는 사회 보장 강화와 노동시장 개편을 요구하지만, 이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별로 없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 민주화부터 문재인 정부의 포용적 성장까지 사회적 삶의 문제는 경제성장이라는 박정희식 패러다임으로 환원된다. 과거 진보정당이 주장했던 무상교육, 무상의료와 이재명 대표가 제안한 기본소득도 돈의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회 보장 강화=국가가 돈 많이 주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는 정치인뿐 아니라 다수 시민의 기본 인식이기도 하다. 돈으로 환산 가능한 이익과 혜택이 사회 보장을 평가하는 첫 번째 척도로 작동한다. 사회 서비스 영역 강화, 사회적 시민성과 권리에 기초한 사회 정책, 노동시장과 사회 보장의 통합체로서의 복지국가 등은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다.

 

2021년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 결과가 언론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조사 대상 17개국 중 유일하게 한국인만이 물질적 행복을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로 선택했다고 한다. 이는 가족, 건강, 사회, 직업 등을 선택한 다른 나라와 분명히 대비된다. 이 결과가 단순히 한국인은 돈에 집착한다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 돈이야말로 삶의 다양한 가치를 실현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믿음이 반영된 결과 아닐까. 국가의 존재 이유는 부자 나라가 되는 것이고, 개인의 첫 번째 목표도 부자가 되는 것이다. 돈이 많아지는 것이 사회와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인식된다.

 

사회적 재생산의 중단

돈의 논리에 따르면 자신에게 얼마짜리 이익이 돌아오는지가 삶의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그럼 굳이 사회 보장을 지지할 이유가 사라진다. 나에게 이익이 될지 불이익이 될지 불확실하고, 자신이 가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1년 한국종합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혜택을 줄여야 한다에 대한 찬성 의견이 크게 늘었다. 최근 몇 년간 대중의 여론을 주도한 것은 사회 보장을 강화하고 불평등을 완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내 개인의 자산과 소득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공정에 대한 요구는 그 믿음을 실현하기 위한 공정한 규칙을 마련하라는 의미였다.

 

돈이 많아지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은 한심한 착각이다. 다른 문제는 돈으로 대충 틀어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인구 감소는 해결하지 못한다. 그동안 수백조원을 쏟아부었다는 저출생 대책은 목적부터 불분명하다. ‘애 낳으면 돈을 주겠다는 수준으로 시행되는 정책도 적지 않다. 전례 없는 0점대 합계출산율은 한국이 인간을 낳고 기를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국가 경제가 성장하고 나 개인이 부자가 돼도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이는 돈의 논리와는 전혀 다른 논리와 가치를 요구한다. 주거는 부동산 시장의 문제가 아니고, 노동과 고용은 소득의 문제로 환원되지 않는다. 한국사회는 아직도 인간적 삶의 기본 조건에 관한 진지한 성찰을 시작하지 못했다.

 

각자도생은 현 상황을 표현하기에 너무 부족한 말이다. 공동체가 무너져 개인이 각자 살길을 모색하는 것인가, 혹은 자산과 소득 증가만을 추구하는 개인들이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는 것인가? 이러한 개인은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이기적 존재가 아니라 부자가 되는 것 말고는 삶의 다른 방식을 상상할 수 없는 강박적 존재에 가깝다. 이들은 자신이 경제적 삶에 몰두할 뿐,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가 어떠해야 할지는 생각하지 못한다. 결국 사회는 재생산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여기저기서 점진적 소멸이 시작되고 있다. 물론 소멸의 영향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이제 그나마 나은 곳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번에도 부자가 되는 것이 승리를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선택될 것이다. 한국사회가 부자 되기의 강박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자기 소멸이라는 정해진 미래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

<박이대승 정치철학자> 주간경향 2023.02.13.

 

 

다크투어리즘과 이태원 참사

다크투어리즘은 잔혹한 참상이 벌어진 역사적 장소나 재난·재해 현장을 둘러보며 반성과 교훈을 얻는 여행을 말한다. 유대인 대학살 현장이었던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대표적이다. 죽음을 터부시하는 한국사회에선 다소 낯선 방식의 체험여행이지만 최근 몇년 전부터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제주도가 전국 처음으로 2020다크투어리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항일운동, 제주 4·3사건 등을 중심으로 여행 프로그램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광주전남연구원도 최근 지역에 일제강점기 잔재와 5·18 민주화운동 사적지 등 다크투어리즘 관련 자원이 288곳에 달한다라며 이를 활용한 관광 콘텐츠를 적극 개발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00일이 좀 넘었다. 국정조사는 끝났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참사 책임자로서 국회에서 탄핵됐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로 인한 갈등과 국민 분열은 현재 진행 중이다. 서울광장 분향소 설치를 놓고 유가족들과 서울시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보면 한국 사회가 참사, 특히 추모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가 확연히 드러난다.

 

분향소 위치를 놓고 양측 사이에서 오갔던 협의 과정을 보면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서울시가 지난해 말부터 유가족 측 대리인과 협의해 참사 발생 지역 인근에서 장소를 물색해왔고, 그렇게 제안한 곳이 녹사평역 지하 4층이었지만 유가족 측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반면 유가족 측은 추모제를 앞두고 서울시와 분향소에 관해 논의했지만 별 언급이 없어 광화문광장 인근 세종로공원을 분향소 장소로 요청했고, 서울시가 이를 거부한 후 갑작스레 녹사평역을 제안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양측의 입장에는 간극이 존재하지만 분명한 것은 서울시가 참사 책임 지자체로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을 대하는 자세에서 타협이나 양보의 의지가 크게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대신 법과 원칙을 앞세우며 강경 대응하고 있다. 오신환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유가족들을 향해 그 배경이 무엇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고, 급기야 서울시는 지난 10일 분향소의 서울광장 설치에 대해 시민 60%가량이 반대하고 있다는 설문조사를 발표하기도 했다.

 

사석에서 만난 서울시 관계자들 역시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관련 법과 근거가 없기 때문에 서울광장 또는 광화문광장에 분향소나 추모공간 등을 설치하도록 내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서울시의 이 같은 태도는 보수층 지지를 얻는 데 효과가 있을지는 몰라도 문제 해결은커녕 사태만 더 악화시키고 있다.

 

추모의 사전적 의미는 죽은 사람을 그리며 생각하는 것이다. 기실 추모 행위에는 수많은 내포적 의미와 사회적 신호가 담겨 있다. “추모시설은 생존자와 유족에게 치유와 회복의 공간이며 더 나아가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약속하는 사회적 합의의 장치라는 김명희 경상국립대 교수의 말처럼 추모를 통해 시민들은 반성하고, 당국은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한걸음 더 다가가게 된다.

 

지난 수십년간 적지 않은 참사들을 겪었음에도 계속해서 참사가 이어지는 데는 제대로 된 추모 공간이 없었던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들어설 예정인 세월호 추모 공간 ‘4·16생명안전공원의 경우 공사 전 주민들 사이에서 반대가 극심했다. 우리 사회에서 그간 추모 시설은 혐오 시설로 인식돼 왔다.

 

그런 점에서 전남 진도군이 올해 7월 문을 여는 국민해양안전관을 중심으로 세월호 기억의 숲과 진도항의 빨간 등대등을 묶어 다크투어리즘 상품으로 구상하고 있다는 소식은 눈에 띈다. 안산시도 향후 4·16생명안전공원에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위한 시설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휴식·문화·교육 공간을 마련해 주민 화합을 추구하는 등 추모를 통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태원 참사 분향소 설치와 관련해 서울시도 행정상 원리·원칙만을 내세울 게 아니라 유가족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둘로 쪼개진 시민들을 화합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총리 시절 국내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난민과 이민자 수용에 적극 나섰던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최근 유네스코 평화상을 받은 뒤 이렇게 말했다. “대화는 약자가 아닌 강자의 무기입니다.” 강자로서 약자에게 먼저 손 내미는 서울시를 기대해본다.

문주영 전국사회부장 경향 2023.02.13.

 

 

포스코·곽상도 판결 유감

곽상도 판결에 대한 불만이 높다. 조국 판결과도 비교되고 있다. 아무리 전자는 입증이 더 까다로운 뇌물죄를, 후자는 대가성을 따지지 않는 청탁금지법을 다뤘다고 하지만 왜 검찰이 조국에 대해서만 청탁금지법을 예비로 기소하여 유죄를 얻어내고 곽상도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또 제3자뇌물죄 기소도 하지 않아 결국 재판부가 실제 돈을 받은 아들의 경제적 독립을 이유로 무죄를 내리도록 방기했다. 물론 제3자뇌물죄는 부정한 청탁이라는 추가요건이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대통령으로 인해 롯데가 혜택을 얻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낸 것만으로도 유죄가 내려졌음에 비추어보면 곽상도에게도 당연히 적용할 수 있었다.

 

이 상황을 예방하지 않은 법원도 비난받고 있다.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피고인에게 법리 선택의 문제로 무죄가 내려질 것 같으면 각종 신호를 보내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하도록 해온 선례를 깼다. 판결의 주체로서 법원에 쏟아질 비난을 피하는 이점도 있는데도 유독 곽상도 사건에서는 그런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버스요금 600원 판결과 함께 금권재판의 풀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온 한국 사법부에 다시 한번 실망하게 만든 판결이 작년 12월에 내려졌다. 포스코인터내셔널(포스코)에 대해 미얀마 짝퓨섬 농민들이 제기했던 토지보상소송이 6년 만에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으로 최종 종결되었다. 위 토지는 미얀마 영해 내의 가스전을 포스코가 개발하여 매장가스를 육지로 끌어올리는 기지를 건설하는 부지였고 미얀마 정부는 영해 내 가스개발을 조건으로 포스코가 지배지분을 가진 가스개발콘소시엄의 20% 지분을 받았다. 이에 따라 포스코는 매년 순이익 3000~4000억원을 올리면서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있는 군부의 비자금의 510%를 조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소송은 해외기업들이 저개발국의 독재정부에 유착하고 지원하는 행태에 대해 독재피해자들이 직접적으로 책임을 묻는 국제적인 공익소송운동의 사례였다.

 

법원의 행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포스코는 법원의 문서제출명령에도 불응하는 등 토지보상기준을 공개하지 않았음에도(산식만을 공개하고 식에 대입된 값은 공개하지 않음) 1심 법원은 자백을 의제하기는커녕 국제재판관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여 소를 각하하였다. 머나먼 미얀마에서 여러모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피고의 소재지까지 와서 소를 제기했는데도 재판관할이 없다는 상식이 벗어난 판결로 3심 중의 1심을 까먹었다.

 

대법원이 심리를 하지 않아 실질적으로 최종심이 된 2(구회근, 박성윤, 김유경 판사)국제재판관할문제는 정정했지만 토지매입의 주체가 미얀마 국유기업(MOGE)일 수 있다는 이유로 패소판결하였다. 황당한 것은 2심 법원은 실제로 토지매입의 주체가 미얀마 정부라는 판단을 내리지 않고 그렇게 볼 여지가 있다고만 하였다. 매매 당시의 토지등기부 기재사항만 확인해도 될 일인데(미얀마에서는 토지이용권 소유자만 등기부를 열람할 수 있음) 법원은 그런 노력도 없이 여지만 보고 포스코의 승리를 선언한 것은 재판을 끝까지 하지 않은 일종의 직무유기로 보인다.

 

물론 2심 법원은 이번 소송의 핵심주장(20092010년 군사독재 당시 이루어진 토지매매는 미얀마 정부의 강압하에 이루어졌다)에도 판시를 하긴 하였다. “(원고의 증거들은) 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달리 증거가 없().” 정말 단 한 줄이다.

 

그러나 소송이 제기된 이후 농민들이 줄곧 원했던 것은 토지매입 당시 강압의 당사자였다가 양심선언을 한 지역행정기구의 의장과 함께 한국까지 와서 재판에 출석하여 강압의 사실을 증언하는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2020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그리고 2021년에는 군부의 신쿠데타 때문에 출석이 불가능해졌다. 이에 굴하지 않고 원고 측은 인터넷 화상장치 등을 이용해 진술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2심 법원은 별다른 이유 없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런 절차적 부당성이 재판기록에 다 나와 있는데도 대법원은 심리불속행을 하였다.

 

수많은 기업들이 미얀마 투자를 철회하고 있는 상황에서 2013년부터 포스코는 군부의 돈줄을 묵묵히 자임해왔고 이 돈을 받고 자라온 군부는 20212월에 신쿠데타를 일으켜 결국 소송원고들이 재판에서 진술하지 못하였고 법원은 이들의 진술을 기다리지 않고 포스코에 승소판결을 안겨주었다. 이보다 더 명징한 유전무죄 무죄유죄가 또 있을까?

박경신 고려대 교수·오픈넷 이사 경향 2023.02.13.

 

 

곽상도 사건의 판결을 보는 법

곽상도 전 의원에 대한 판결이 선고되자 거의 모든 주요 일간지에 검찰이나 재판부를 비판하는 사설이 실렸다. 내용은 대략 두 가지인데, 하나는 검찰의 수사가 미진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재판부의 판단이 비상식적이라는 것이다. 곽 전 의원에 대한 뇌물 관련 공소사실은 그의 아들이 받은 50억원의 퇴직금을 두고 법률적으로는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그가 국회의원의 직무에 관해 뇌물을 받았다는 수뢰죄이고 다른 하나는 금융기관 임직원의 직무사항 알선에 관하여 뇌물을 받았다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상의 알선수재죄이다.

 

퇴직금 50억원(기소된 뇌물 액수는 세금 등을 뺀 나머지 25억여원)을 실제로 받은 사람은 곽 전 의원 자신이 아니라 그의 아들이다. 그런데 검찰은 곽 전 의원을 제3자 뇌물제공죄가 아닌 수뢰죄로 기소했다. 해석론상 공무원과 실수령자의 관계에 비추어 실수령자의 수령을 공무원의 직접 수령과 같다고 평가할 수 있으면 수뢰죄가 성립한다고 하는데, 이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관련 대법원 판례의 판시는 이렇다. “공무원이 직접 뇌물을 받지 아니하고 증뢰자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뇌물을 공여하도록 한 경우, 그 다른 사람이 공무원의 사자 또는 대리인으로서 뇌물을 받은 경우나 그 밖에 예컨대 평소 공무원이 그 다른 사람의 생활비 등을 부담하고 있었다거나 혹은 그 다른 사람에 대하여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다는 등의 사정이 있어서 그 다른 사람이 뇌물을 받음으로써 공무원은 그만큼 지출을 면하게 되는 경우 등 사회통념상 그 다른 사람이 뇌물을 받은 것을 공무원이 직접 받은 것과 같이 평가할 수 있는 관계가 있는 경우에는 형법 제130조의 제3자 뇌물제공죄가 아니라 형법 제129조 제1항의 뇌물수수죄가 성립한다.” 재판부는 207쪽의 판결문 중 16쪽을 할애하여 곽 전 의원과 아들이 뇌물죄의 공범관계에 있는 것도 아니며 아들은 결혼하여 독립적인 생계를 유지해 왔다고 인정하고, 따라서 퇴직금을 곽 전 의원 본인이 받은 것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판례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일각에선 조국 전 장관의 딸이 장학금을 받은 것이나 김성태 의원의 딸이 KT에 취업할 기회를 얻은 것은 본인이 뇌물을 받은 것으로 인정되지 않았느냐며 이번 판결을 비난한다. 그러나 위 두 사건에서는 모두 딸들이 독립된 생계를 유지한 게 아니라고 하여 그런 판단이 나온 것이다. 가족관계가 있더라도 생계를 같이 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법률상 취급을 달리하는 예는 법의 여러 분야에서 종종 있다. 재판부의 법리 판단이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법률을 개정하거나 대법원 판례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생각해 볼 수 있는 다른 죄는 제3자 뇌물제공죄다. 이는 뇌물을 실제로 받는 사람이 공무원 자신이 아닌 제3자인 경우에도 공무원을 처벌하는 것인데, 여기엔 부정한 청탁이라는 요건이 더해져 있다. 하지만 수사기관의 입장에서는 이 점을 입증할 증거를 찾아내기가 어려울 수 있다. 이 사건에서 검찰은 수뢰죄로 기소할 때 유죄판결을 얻어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듯하다.

 

알선수재죄로 기소한 것을 보면, 이 죄의 구성요건은 금융회사 등의 임직원의 직무에 속하는 사항의 알선에 관하여 금품이나 그 밖의 이익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한 사람 또는 제3자에게 이를 공여하게 하거나 공여하게 할 것을 요구 또는 약속한 사람이다. 그러나 법원은 곽 전 의원이 하나은행에 알선행위를 한 증거가 없다고 보았다. 이 대목에서는 진실이 그러했을 수도 있지만, 검찰의 수사가 미진해서 알선행위의 존재를 밝혀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이 점에서 검찰을 비난할 소지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설령 그런 증거가 있었다고 해도, 검찰은 문제의 퇴직금 50억원을 곽 전 의원이 직접 받은 것과 같이 평가할 수 있다고 주장하여 기소한 것인데, 그러한 동일성 평가가 인정되지 않는 이상 이 죄에서도 어차피 무죄판결은 피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검찰의 정공법은 부정한 청탁의 입증에 주력하여 곽 전 의원의 아들이 제3자로서 뇌물을 받은 것으로 기소하는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저러나 곽 전 의원 때문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이유로 50억원이라는 거액을 아들에게 주었을까 싶은데도 그가 죄책을 면한 것은 법감정에 어긋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3자 뇌물제공죄가 별도로 있더라도 상식과 법감정을 존중해 수뢰죄에서의 동일성 평가를 확대하는 쪽으로 판례를 변경할지, 아니면 죄형법정주의를 고수하면서 현재와 같은 엄격해석론을 유지할지는 최종적으로 대법원이 결정할 사항이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경향 2023.02.13.

 

 

건설노조 마녀사냥하는 정부, 건설자본에 휘둘리는 언론

 

원희룡 장관의 건설노조 때리기발언 및 경찰 특별단속 관련 조선일보() 경향신문(아래) 기사 제목. 사진=이미지 진보당 부산시당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자극적인 발언을 받아쓴 보수언론 기사 제목 갈무리.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경찰이 지난해 128일부터 1계급 특진을 포상으로 내걸고 건설노조 200일 특별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검거 시 1계급 특진이라는 포상에 혈안이 된 일선 경찰은 경쟁적으로 마구잡이 수사를 진행 중이다. ‘건설 현장 불법행위 피해사례 긴급실태조사명목으로 건설현장 소장들에게 공통의 양식을 배포하면서 진술서 작성을 종용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사업장에서는 노조와 건설회사 간에 이미 고용 합의가 돼 건설인력이 투입되는 상황에서 경찰이 개입하여 고용 합의가 된 것은 어떤 직종이고 또 고용 합의가 안 된 것은 어떤 직종인지를 확인하면서 교섭 과정에서 협박은 없었는지를 물어보고 경찰이 작성한 진술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한다고 한다. 또 다른 건설 현장에서는 현장 내에서 레미콘 차량과 스카이크레인 간에 접촉 사고가 발생했는데, 노조 간부가 해당 현장의 위법행위를 고용노동부와 구청에 산업안전법과 대기환경법 위반으로 신고하자, 경찰이 도리어 신고가 협박에 해당한다며 노조 간부를 출석시켜 조사한 일도 있다고 한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들은 노조 비리가 분양가 상승 원인”, “경제에 기생하는 독”, “월례비, 전임비 3년간 1,686억 뜯겼다”, “건설노조 노조비 횡령은 빙산의 일각등으로 계속 쏟아내는 국토부 장관의 자극적인 발언을 마냥 중계방송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노동조합법에 의해 적법하게 설립된 노조의 조합원인데도 이 사람들은 사업자로, 또 건설기계 노조를 사업자단체로 취급하며 노조가 임금 협약 요구안(표준 임대단가 인상안)을 제시한 것을 공정거래법상 사업자단체의 부당행위로 취급하며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다.

 

이런 보도만 보고 있으면 마치 건설노조가 부패 비리 집단이고 또 심각한 건설 비리의 원흉인 것처럼 착시 현상이 생길 정도다. 국토부 장관의 발언이 사실관계에 부합되는지, 아니면 사실과 다른 일방적 주장에 불과한지 여부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채, 연일 마녀사냥식으로 건설노조 매도만 난무하는 언론보도가 참담하다.

 

건설현장 실태, 하루에 한 명 꼴로 사망한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압도적으로 산재 사망률이 높은 국가다. 20221년간 산재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644명으로, 그중 53.0%에 달하는 341명이 건설 현장에서 사망하고 있다. 건설 현장에서만 하루에 거의 한 명꼴로 사망하고 있는 셈이다. 사망사고의 양상도 추락, 끼임, 부딪힘 등 재래식 사망재해가 전체의 65.3%에 달하고 있다. 이런 반복성 재해는 건설 현장에서 기본적인 안전조치만 취해진다면 상당수가 능히 예방될 수 있는 재해 유형이다.

 

경실련의 발표(2021720)에 따르면 2017~2020년 사이에 30평 아파트 건축비가 25천만 원 상승했지만, 인건비는 300만 원 상승하여 무려 83배 차이가 났다고 한다. 이렇게 분양가 상승 원인이 건설사 폭리에 있는데도, “노조 비리가 분양가 상승 원인이라고 혹세무민 수준의 거짓말을 일삼는 국토부 장관의 발언을 검증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받아쓰기만 하고 있다. 기가 막힐 지경이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형성된 한국의 건설인력시장은 이른바 오야지”, “십장중심의 인력공급체계로 돼 있다. 그러다보니 다단계의 불법 하도급 체계를 거치면서 부실시공과 부정부패가 만연하는 현장이 되었다. 대형 건설사들이 이윤을 독식하고, 현장 건설노동자들은 저임금과 불안정 고용 상태로 하루하루 목숨을 건 위험한 노동을 하고 있다.

 

건설노조 조직화로 건설현장 고용구조 투명화 기대

그런데 건설노조 조직이 활성화되고 조합원숫자가 75천 명에 달하게 되면서 건설 현장이 변하기 시작했다. 민주노총 건설노련 산하에 ()전국건설기능훈련센터가 설립되고 전국 10여 개 지역에서 무료 취업 알선센터, 건설기능학교 등이 운영되면서 건설 현장에서 중간업자(시다오케)를 배제하는 건설 현장 고용구조 투명화, 합리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건설노조 조합원과 철근콘크리트업체 등 전문건설업체 간에 시공팀 단위의 직접고용구조가 만들어지고 전국적인 임금·단체협약이 체결되면서, 1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도 8시간 노동체제로 변화를 이뤘다. 적어도 건설노조가 투입된 현장에서는 부실시공이나 부정부패가 근절되고 안전 작업이 정착되면서, 산업재해가 크게 감소하는 성과를 보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점차 건설 현장에 매년 임금인상이나 1년 이상 근무할 경우 퇴직금 지급이 생기며, 젊은 사람들도 일할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로 변하는 희망이 생겼다.

 

정부는 노사 간 단체협약에 따라 지급되는 노조전임비(타임오프) 등을 마치 노조의 부정부패와 비리라고 매도하지만, 노조법에 따라 모든 노조에서 실시하고 있는 노조전임비(타임오프) 지급울 비리에 포함해 매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조합비 횡령 사건은 민주노총 건설노조에서 생긴 게 아니라, 한국노총에서 제명된 모 노조의 사례에 불과한데도 싸잡아서 민주노총 건설노조를 매도하는 분위기 조성용으로 악용하는 것 역시 부당하다.

 

타워크레인 현장에서의 이른바 월례비문제는 당연히 근절돼야 하지만, 그 실상을 제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월례비는 연장근로수당의 성격이나, 복수 하청업체 간 우선 작업을 바라는 급행료 성격 또는 표준 양생기간을 불법적으로 단축하기 위해 제공하는 금품 성격도 있다고 한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타워크레인에 대한 원청 책임성을 강화하고 안전 작업을 현실화하는 것이 이런 월례비를 근절시키는 확실한 방법이라고 정부의 정책 개선을 꾸준히 주장해왔다. 내부적으로는 이런 불법적 불법·위험작업을 엄격히 금지하고 안전작업지침 준수를 요구해 왔는데, 이것이 타워크레인 임대사들이 민주노총에 대한 고용차별을 행하는 주된 이유가 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민주노총 건설노조 매도하는 이유

윤석열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이 성공하게 된다면, 건설 현장은 건설자본의 숙원인 건설노조 없던 시절로 회귀하고 말 것이다. 불법 다단계 하도급 체제 아래 시공 능력 경쟁이 아니라 인건비 후려치기식 경쟁이 난무할 것이다. 이로 인해 부실시공과 위험작업이 더욱 일반화되고, ‘건설 현장 산재사고 감소라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비원(悲願)은 영영 실현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이런 역주행 상황을 막고 건설 현장에서 투명성과 합리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부 정책을 획기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대기업의 불공정거래를 규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정거래법을 자영업자의 성격도 일부 갖고 있다는 구실로 건설기계 노동자나 화물운송 노동자들에게 얼토당토않게 들이대면서 탄압하는 행위, 공정 채용 절차를 구현하기 위한 채용절차법을 악용하여 건설노조를 탄압하는 정책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대신 노동조합 등을 통한 건설기능인력 양성이나 무료 취업 알선 기능을 더욱 활성화하고, 건설 기능인력 등급제 등을 시행하여 능력과 자격에 따른 공정한 채용 절차를 확립해야 한다. 이에 기반하여 노사 간 자율교섭을 통한 고용안정과 생산성 향상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합리적인 건설인력 정책 방향이다.

 

이와 관련하여 자본주의가 첨단화된 사회인 미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하이어링 홀(hiring hall) 시스템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는 건설사용자와 노동조합이 운영하는 하이어링 홀을 통해서만 건설인력을 수급할 수 있도록 하는 협약(PLA)이 합법적으로 보호되고 있다. 노조나 사용자가 비조합원을 고용과정에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는 대신, 비조합원은 노조 가입 또는 조합비에 상응하는 기금을 납부하여 건설노동자의 교육훈련에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건설자본이 소유하고 있거나 건설자본에 사실상 휘둘리고 있는 언론기관들을 보라. 건설자본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면서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 정책을 도리어 선동하고 있는, 실로 우려스러운 저널리즘의 위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부당한 상황을 그냥 방관하고만 있을 것인가. 공영언론과 독립언론, 그리고 양심적인 언론인들과 시민언론 운동의 분투를 기대한다.

박석운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 / 미디어오늘 2023.02.13.

 

 

비상시국회의에 바란다

참가할 거예요?” 며칠 전 오랫동안 사회운동을 같이해온 선후배 몇명이 모여 민주화운동 원로 등이 제안한 윤석열 정부의 검찰독재와 전쟁위기를 막기 위한 비상시국회의에 대해 논의했다. 의견은 일치했다. ‘검사대통령의 막무가내식 국정운영, 검찰의 기소권 행사 형평성 등에도 불구하고 검찰독재는 정치학적으로 아직까지는 과한 표현이지만, 노동탄압, 민주주의 후퇴, 시장만능적 정책과 민생위기, 대통령의 호전적이고 단세포적인 사고와 거친 언술로 인한 남북관계와 외교위기등을 고려할 때 시국회의에 공감한다. 하지만 윤 정부만 비판하는 시국회의로는 안 된다는 의견이었다. ‘촛불 트라우마때문이다. 수많은 국민이 어렵게 쟁취한 촛불항쟁을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다 말아먹고 불과 5년 전 탄핵당했던 세력에 권력을 내줘 소위 검찰독재정권을 탄생시킨 것에 대한 분노와 허탈감 때문에 다시는 비슷한 일이 생겨선 안 된다고 다짐했는데, 이번 일이 그런 것 같다는 우려다.

 

민주화운동세력은 헌신적 투쟁으로 우리 사회 발전과 민주화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이들에게 크게 빚졌다. 하지만 적어도 촛불항쟁에 관한 한, 이들은 공신이면서도 촛불의 실패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 촛불 당시 적지 않는 세력들은 거리로 달려 나온 시민들이 바랐던 새로운 공화국’(제왕적 대통령, 국민들로부터 분리된 정치, “돈도 실력헬조선을 넘어선)을 위한 개헌 등 근본적 개혁이 이뤄질 때까지 싸워야 한다고 외쳤다. 특히 낡은 정치와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에 관한 한, 민주당도 냉전세력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 근본적 제도개혁이 필요했다. 하지만 운동의 주류는 박근혜가 탄핵되자 광장 철수를 결정했다. 이 결정으로 촛불의 실패는 어느 정도 예정된 것이었다.

 

그뿐 아니다. 탄핵은 민주당 혼자 한 것이 아니고 가장 적극적이었던 정의당, 안철수의 국민의당, 유승민의 바른정당 등이 함께 이룬 것임에도 불구하고, 능력도 없는 민주당이 권력욕에 취해 촛불정신이자 시대정신인 촛불연정을 내동댕이쳐버리고 승자독식주의로 나갔지만, 제동을 걸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무능과 탐욕, 내로남불로 민심과 멀어지고 있을 때도, 침묵하거나 상당수는 오히려 문 정부를 두둔했다. 민주당이 2020년 총선에서 거대정당독점을 완화시키고 소수세력의 정당한 정치적 지분을 주기 위해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도 이를 헌신짝처럼 짓밟고 위성정당을 만들었을 때도, 그렇게 만든 170의석으로 제대로 된 개혁법안 하나 못 만들 때도, 죽비를 들지 않았다.

 

그 결과가 바로 대선 패배와 소위 검찰독재정권이다. 민주화운동세력은 어렵게 이룩한 촛불항쟁이 허무하게 실패하고 소위 검찰독재정권이 들어서게 만든 주범인 민주당의 공범, 곧 종범이다. 그뿐인가? 민주당이 촛불을 말아먹고 5년 전 탄핵당한 세력에게 정권을 헌납한 뒤에도 뼈를 깎는 반성이 아니라 졌잘싸라는 도취에 빠졌지만, 이때조차도 회초리를 들지 않았다. 민주당이 자기도취에 빠져 대선패배에 책임이 있는 이재명 후보와 송영길 당대표를 지역구를 바꾸면서까지 공천했다가 지방선거와 보궐선거에서 참패했을 때도, 혁신을 촉구하는 대신 침묵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국민이 만들어준 촛불항쟁을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한 대국민사과와 석고대죄다.

 

놀랍게도, 윤 정부의 한심한 국정운영과 폭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 지지율이 민주당보다 높다. 윤 정부가 못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더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시국회의에는 윤 정부 비판만이 아니라 민주화운동의 자기반성, 민주당 비판과 혁신요구, 위성정당 금지와 다당제 등 정치교체대선 공약 실행촉구가 들어가야 한다. 설사 비상시국회의가 많은 지지를 받는다 하더라도, ‘중도층’, 대선에서 정의당, 국민의힘 등을 찍은 사람들의 지지를 끌어내지 못하는 한, 이는 보여주기식 자기만족일 따름이다.

 

아니 잘못하면 의도와 정반대로 민주당이 현실에 안주하게 만듦으로써 지난 선거의 비극을 반복하는 데 일조할 수도 있다. 특히 이 글 같은 충언검찰독재에 대항하는 단일대오를 해치는 양비론’, 이준석에 대한 윤 대통령의 조롱처럼, ‘내부 총질로 치부한다면 말이다. 윤 정부의 폭주를 제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민주당 등 대안세력의 혁신이다. ‘촛불의 비극을 반복해선 안 된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경향 2023.02.13.

 

 

두 아버지, 가만한 슬픔과 전략적 표정

 

7일 튀르키예 남동부 카흐라만마라시에서 메수트 한제르가 지진으로 무너진 아파트 잔해에 깔린 15살 숨진 딸의 손을 놓지 못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왼쪽), 대장동 개발사업에 도움을 주고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8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진은 정적이다. 재난 보도 사진으로는 드문 경우다. 바닷가에서 엎드린 자세로 숨진 채 발견된 세살배기 시리아 난민 알란 쿠르디의 사진 이후 처음인 듯하다. 튀르키예 대지진의 폐허 한가운데, 무너져 앉은 아버지의 몸가짐과 표정은 가만해 보인다. 그의 왼손이 붙든 또 하나의 창백한 왼손은 잔해 더미에 가린 열다섯살 딸의 몸에서 온기가 빠져나간 지 이미 오래임을 일러준다. 사진은 그 하염없는 시간을 순간으로 포착함으로써, 자신의 숨결을 피붙이에게 불어넣을 수 없는 데서 오는 슬픔의 심연이 고요의 바다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그 고요함을 품고, 사진의 형상과 구도는 익숙한 이미지를 길어 올린다. 피에타다.

 

미켈란젤로가 평생에 걸쳐 제작한 마리아와 예수의 <피에타> 4연작과 케테 콜비츠가 자신과 전사한 둘째 아들을 재현한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 그리고 아들 전태일의 영정을 붙들고 있는 이소선 선생의 사진은 죽은 자식을 품은 산 어미의 보편적 형상을 하고 있다. 그 보편성은, 받아들일 수 없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죽은 자식을 대신해 살아갈 수도 없는 존재가 수락해야만 하는 삶과 죽음의 뫼비우스적인 슬픔이다. 그런 슬픔이 가만한 자세로 포착되는 건 우연일 수 있겠으나, 성과 속의 경계마저 넘어서는 슬픔의 보편성이 자연재해 앞이라고 해서, 또 어미가 아닌 아비 앞이라고 해서 멈춰 서진 않을 터이다.

 

여기 또 한장의 사진이 있다. 검찰 출신에 전 재선 국회의원인 곽상도가 뇌물죄 1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취재진 앞에 선 장면이다. 동적이지 않으나, 정적이지도 않다. 그 어정쩡함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집약된다. 그 표정은 특유하되, 선천적이라고만 보기도 어렵다. ‘강기훈씨 유서 대필 사건수사팀에 몸담은 검사로서, 강씨가 재심 무죄 확정판결을 받고, 수사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있었음이 확인됐을 때도 그는 그저 떨떠름해했다. 그렇다면 그의 떨떠름함은 제 허물을 가리려고 머리만 덤불 속에 처박는 장두노미’(藏頭露尾)식 몸짓이자, 엘리트 기득권층이 곤경에 처했을 때 구사하는 전략의 일환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다만 이번의 떨떠름함에는 새로운 사정이 추가됐다. 대장동 주역들이 아들에게 준 퇴직금 50억원의 규모가 비상식적일지라도, 이들 부자는 경제공동체가 아닐뿐더러, 아비 보고 준 돈이라는 증거가 없어 무죄라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그 고차방정식은 뜻밖의 고민을 던진다. 50억원은 개평도 없이 아들에게 귀속돼도 좋은가. 50억원에 대한 자신의 기여마저 부정당해도 괜찮은가. 떨떠름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재판부의 법리는 이성계와 이방원처럼 권력() 앞에서는 부자유친 따위 안중에도 없는 봉건 세습 권력의 습속과 깊이 닿아 있다. 곽씨 부자로서는 왕조급의 신분상승을 했다. 그의 사진 또한 덩달아 어진급이 아닌가.

 

튀르키예 아버지의 사진과 곽상도의 사진은 보는 이에게 영원히 닿을 일이 없을 것 같은 파토스적 거리감을 준다. 그러나 둘은 한 가슴속에서 동시에 발현되는 투사 대상이다. 적어도 내 경우는 그렇다. 곽상도가 무죄를 선고받던 날, 미용노동자인 큰딸이 마지막 예약 손님을 배웅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인근 음식점에 갔다. 9시였다. 술기운에 기대어 풀어놓는 그날 하루 고단했던 일들을 듣고 있노라니, 내 몸이 하릴없이 쪼그라드는 듯했다. 최저임금 이하의 수련 과정 3년을 거쳐 특수고용 노동자로 생계를 꾸려가는 딸에 대한 가만한 연민이 어느덧 50억원과는 너무도 먼 내 경제력에 대한 자책으로 귀환하고 있었다.

 

우리 사회가 아직도 세습 사회라는 방증은 지체 높은 재벌가의 성채 안에만 있는 게 아니다. ‘강남 8학군이라는 인문지리학적 2부 리그야말로 곽상도가 되지 못한 중간계급 어미·아비의 가장 치열한 세습의 각축장이다. 그 가슴속에서 튀르키예 아버지의 사진은 비극적 정화의 장치로 한시적 쓸모를 다하고, 곽상도의 사진은 공정과 정의의 이름으로 규탄하면서도 무의식적인 준거가 되어 일상을 지배하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기도 한다. 그 각자도생의 끝에서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집단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을까. 너무나 다른 두장의 사진을 나란히 응시하다 보니 문득 두려운 생각이 엄습한다.

안영춘 논설위원 한겨레 2023.02.13.

 

 

일본 표류하게 만든 근대의 가을’, 한국은 더 혹독하다

고도성장 이후의 대안 모색에 대해 일본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

최근 극장가에 '슬램덩크' 바람이 불었다던데, 나는 '슬램덩크'가 인기를 끌던 무렵의 일본 사회를 돌아본 책 한 권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요나하 준의 <헤이세이사 1989-2019: 어제의 세계, 모든 것>(이충원 옮김, 마르코폴로, 2022)이 그 책이다.

 

요나하 준은 1979년생인 역사학자인데, 이미 <중국화하는 일본: 동아시아 '문명의 충돌' 1천년사>(최종길 옮김, 페이퍼로드, 2013)라는 저작이 우리말로 소개된 바 있다. 교수로 있다 사직하고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는 이력도 이채롭지만, 전작 <중국화하는 일본>을 읽으면서도 재기 넘치는 저자라는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제목의 '헤이세이'는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쇼와' 이후 그리고 현 '레이와' 이전의 연호다. 아직도 천황이 있어서 연호를 쓰는 일본인들의 시대 감각은 우리에게는 영 낯설게 느껴진다. 어쨌든 '헤이세이'는 우리에게는 제6공화국 시기와 거의 겹치는 1990년대부터 2020년경에 이르는 세월을 뜻한다.

 

<헤이세이사>는 일단 독서를 시작한 뒤에는 좀처럼 눈길을 뗄 수가 없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살아온 지난 몇 십 년과 같은 시기에 바로 옆 나라가 겪은 이야기들이니 관심과 감흥이 없을 수가 없었고, 더구나 정치, 경제부터 사상계와 대중문화까지 종횡무진하며 일본 사회의 가까운 과거를 돌아보는 저자의 폭넓은 시야와 이를 뒷받침하는 필력에 끌려들어 가지 않을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리감을 느낀 대목도 적지는 않았다. 실은 일본 저자들의 책에서 흔히 느끼는 점인데, 역사서나 사회과학 서적에서조차 마치 일본 문학 특유의 사소설(私小說)을 연상시키는 지나치게 사적인 감상이 돌출한다. 요나하 준은 이런 성향이 특히 심했다. 어떤 사상가들에 대한 평가는 설득력이 있다기보다는 마치 저자의 성벽을 위악적으로 드러내려는 수단처럼 다가왔다. 게다가 마루야마 마사오로부터 AKB48(일본의 여성 아이돌 그룹)에 이르는 다양한 주인공들에 대한 만화경 같은 서술이 어지럽고 산만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럼에도 <헤이세이사>의 독서 경험은 감점보다 득점이 더 많았다. '슬램덩크'의 경기 장면들에 등장하는 놀라운 슛처럼 나의 뇌리에 꽂힌 한 문장 때문이었다. 후반부인 472쪽에서 저자는 신음처럼 한 문구를 토해낸다.

 

"'근대의 가을'이구나."

이 한 문장을 통해 일본의 지난 한 세대 동안의 시간과, 한국이 살아내야 할 앞으로의 시간이 한꺼번에 육박해왔다. 뜻밖의 두려운 깨침이었다.

 

헤이세이 시대 동안 '근대의 가을'을 살아온 일본 사회

공교롭게도 내가 <프레시안>의 이 지면에 지난 몇 년간 올렸던 칼럼들 중 일부를 모아 몇 달 전에 낸 책 제목이 '근대의 가을'이다(장석준, <근대의 가을: 6공화국의 황혼을 삽니다>, 산현재, 2022). 혹시 표절 아니냐는 의심을 받겠다 싶을 만큼 똑같은 문구다. <근대의 가을><헤이세이사> 국역본보다 먼저 나온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그러나 이것은 표절이 아닐 뿐더러 단순한 우연의 일치도 아니다. 나는 칼럼집 제목을 '근대의 가을'이라 정하면서, 자본주의의 유례없는 압축 성장 이후 복합 위기(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의 절벽 앞에 마주한 한국 사회의 현재 시간이 마치 가을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가을은 봄과 여름에 했던 일들을 마냥 계속할 때가 아니다. 자신을 깊이 돌아보고 새로운 방향을 고민해야 할 때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겨울에 하루라도 더 빨리 대비해야 할 때다.

 

나는 이렇게 한국 사회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을 '가을'이라 비유했던 것인데, <헤이세이사>의 저자 요나하 준은 일본 사회가 이미 살아온 시간에서 '가을'을 떠올렸다. 일본인들은 헤이세이 연간에 지금 한국인들이 마주한 시험들에 벌써 맞닥뜨렸던 것이다. 한국이 몇 십 년 차이로 일본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 같다는 이야기는 아주 오래 된 가설인데도 나는 '근대의 가을'이라는 비유 또한 이 가설과 무관할 수 없음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셈이다.

 

따져 보니, 영락없이 그렇다. 1980년대 말에 일본은 고도성장의 정점에 있었다. 21세기에 중국의 성장에 쏟아진 전 세계의 주목과 흥분은 실은 20세기 말에 일본을 대상으로 예행연습을 거친 것이었다. 이때 일본 사회 분위기는 각종 경제 지표를 놓고 일본을 제쳤다고 자화자찬하며 삼성 반도체와 첨단 무기 수출, K-팝 열풍 등을 열거하는 지금 우리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 1990년대 초에 버블 붕괴가 시작됐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마치 커다란 경제 위기가 닥쳤던 것처럼 느껴지지만, 막상 당시에는 일본 경제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절감한 이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버블 붕괴는 한국의 1997년 외환 위기나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처럼 극적인 모습을 띠지는 않았다. 이게 오히려 문제였다. 헤이세이 초기에 일본은 '근대의 가을'에 접어들었지만, 많은 일본인들은 이를 명확히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역사의 계절 변화에 무감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치열한 노력들이 있었다. 이 시기를 장식한 수많은 사상가들, 논객들이 600쪽이 훨씬 넘는 <헤이세이사> 지면 곳곳에서 명멸한다. 그 중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되는 주요 인물들은 대표작이 우리말로 대부분 번역돼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에토 준, 가라타니 고진, 아사다 아키라, 아즈마 히로키, 우치다 타츠루, 오구마 에이지 등등. 요나하 준은 이 중 많은 이들이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흐름에 편승해 당대 일본 사회를 제대로 진단하는 데 실패했다고 냉정하게 평가하지만, 어쨌든 최근 몇 십 년 동안 일본은 그래도 사색하는 이가 부족한 사회는 아니었다.

 

가령 같은 시기 한국 사회와 비교하면, 어떠한가? <헤이세이사> 속 숱한 이름들에 대응할 만큼의 사상가들이 이 시기 한국에도 있었던가? 정확히 말하자면, 이 비교는 잘못됐다. 우리는 가을에 접어든 한국 사회에 앞으로 일본의 가을에 필적할 만큼의 사상가들이 있을지 물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 궤적을 돌아보면, 이 물음의 답은 썩 긍정적일 수 없다. 가을을 가을답게 살기에 우리의 지적 준비는 그리 풍성하지 못하다.

 

초점을 정치에 맞추면, 일본과 한국의 이러한 대비는 더 극명해진다. 지금에 와서는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 정치를 얕잡아 본다. 실제로 아베 신조의 제2차 집권 이후에는 퇴행적인 면모가 두드러진다. 여기에다 지난 세기에 자유민주당이 장기 집권했다는 사실을 단순하게 짜 맞추면, 일본이 1당 독재 국가나 되는 듯한 착시나 오판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이런 '결과' 이전에 이러한 결과와는 그 색깔이 전혀 달랐던 기나긴 '과정'이 있었다. 1990년대 초 냉전 붕괴 직후에 일본 정치는 다른 어느 자본주의 중심부 국가보다 더 생명력 있게 꿈틀거렸으며 역동적으로 전환을 모색했다. 한국에 김영삼, 김대중 정부가 차례로 들어서며 제6공화국식 민주화가 진행되던 그 동안에 일본에서는 사뭇 파괴적이기까지 한 정치 개혁 노력이 계속됐다.

 

수십 년간 지속된 중선거구제를 의회가 스스로 소선거구-비례대표 병립제로 바꿨고(아이러니하게도 현재 한국 사회의 고민과는 정반대 방향이다), 기존 정치의 양대 축이었던 자유민주당과 사회당이 표류하거나 결국은 내파되는 사태까지 겪었다. 그러고는 마침내 비-자유민주당 세력들의 연합인 민주당이 2009년에 정권 교체를 성사시키기까지 했다.

 

(<헤이세이사>는 워낙 관심의 폭이 넓다 보니 이런 정치 역정을 상세히 설명하지는 않는다.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나카노 고이치, <우경화하는 일본 정치>[김수희 옮김, AK, 2016], 요시미 슌야, <헤이세이, 일본의 잃어버린 30>[서의동 옮김, AK, 2020] 등이 더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에 찬물을 끼얹기라도 하듯 2011년 돌연 도호쿠 대지진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태가 덮쳤다. 일본에 '근대의 가을'은 너무도 빨리 혹한의 겨울로 돌변했다.

 

진실은 이러했다. 일본인들은 노력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다만 그런 노력으로도 충분하지 않을 정도로 가을은 험난한 시험의 시간이었다.

 

이제 막 가을에 접어든 한국 사회는?

이런 일본의 전례를 직시할수록 마음이 무거워진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근대의 가을'에 이제 막 접어든 한국 사회의 상황은 헤이세이 초기 일본보다 준비 상태가 더 낫다고 할 수 없다. 당시 일본에 모자라거나 비어 있던 것은 지금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공백과 결핍으로 나타난다. 예컨대 일본에는 기업별 노동조합 체제에 안주한 노동을 비롯해 시민사회 내에 특별히 지적-도덕적 지도력을 펼칠 구심점이 없었다. 그런데 이것은 현재 한국도 마찬가지다.

 

다만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일본이 가을을 보낸 헤이세이 연간은 전 세계 차원에서는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 시대였다. 특히 헤이세이기의 2/3에 해당하는 1990년대와 2000년대, 20년간은 그 전성기였다. 이런 전 지구적 분위기가 일본의 가을을 크게 규정했다.

 

물론 일본은 자본주의 중심부 국가들 가운데에서 신자유주의의 표준형으로부터 가장 많이 벗어난 나라다. 외환위기라는 격변을 통해 급격히 이 대열에 합류한 한국과는 다르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이라 하더라도 세계적 대세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이 대세 바깥에서 고도성장 이후의 대안을 찾기는 어려웠다. 우파뿐만 아니라 좌파의 잔존 세력 역시 마찬가지였다.

 

반면에 한국은 신자유주의의 전성기가 지나고 그 반작용으로 복합 위기의 시대가 시작된 시점에 가을에 접어들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기에 일본이 방황하던 동안에 한국은 오히려 상승세를 탔으며 이 마지막 장기호황마저 끝난 지금에 와서는 가을의 시간을 무엇보다 신자유주의기에 대한 반성과 비판, 대안 모색으로 보내야 하는 처지다. 과연 이 차이가 지나간 일본의 가을과 다가온 한국의 가을이 상당히 달라지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인가?

 

한데 이 차이는 오히려 한국이 겪어야 할 시간이 일본의 헤이세이기보다 훨씬 더 위험천만한 세월이 되도록 만들 수도 있다. 복합 위기는 21세기 인류에게 전에 없던 시련을 예고하고 있고, 이제 막 성장의 호시절을 끝낸 한국인들은 그 고통을 더욱 가중된 형태로 느껴야 할지 모른다. 더구나 복합 위기 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것은 기후 위기다. 한국인들이 지금 손 놓고 바라보기만 하는 기후 급변은 마치 일본인들에게 도호쿠 대지진이 그랬던 것과 같은, 인간이 어찌 할 길이 없는 재앙, 역사적 출구의 완전한 봉쇄로 엄습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 도대체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하는가? 우리가 헤이세이 시기 일본의 전례에서 교훈을 얻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한국이 이제 일본을 앞서기 시작한다는 단꿈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일본인들은 그나마 진지하게 노력했지만 우리는 아직 시도조차 않고 있는 일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착수해야 한다. 내가 보기에 그 일이란, 다름 아닌 정치 개혁이다.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신현재 기획위원 | 프레시안 2023.02.14.

 

은행이란 무엇인가되묻는다

예전 한 칼럼에서 추석이란 무엇인가를 되물었다. 추석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냐만 그 칼럼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추석이 한국사회 온갖 갈등의 집합체가 되어버린 현실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필자도 따라해 보자. 은행이란 무엇인가? 은행 모르는 사람 없고 은행의 잘잘못 따지자는 것도 아니다. 갑자기 은행이 현 정권의 핵심개혁대상이 되어버린 이 상황이 황당하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과거 정부투자기업 내지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되면서 소유가 분산된 기업들은 소위 스튜어드십이라는 것이 작동돼야 한다며 소유가 분산된 기업의 모럴해저드를 지적했다. 거기에 은행은 국방보다도 중요한 공공재적 시스템이라고까지 말했으며, 이번주에는 은행 고금리로 인해 국민들의 고통이 크다며 은행의 성과급 등 돈잔치 대책마련을 지시했다. 이뿐만 아니다. 이번달에 현 정권의 핵심이라 불리는 이복현 금감원장은 금융지주·은행 이사회와 직접 소통에 나서겠다고 했다. 명분은 그럴듯해보이나 언제나 대통령의 발언은 그 자체가 다가 아니다. 이면을 살펴보자.

 

우선, 소유가 분산된 주인 없는 기업의 지배구조가 문제라는 논리는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지배구조 문제의 핵심은 언제나 재벌이었는데 전경련 등 재벌총수를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집단이 한 30년 전에 만들어 낸 거다. 재벌은 오너(owner)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고 주인 없는 기업들이 문제가 더 많다는 분노돌려막기이다. , 이 구닥다리 논리를 또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삼성전자 지분율이 1.63%이다. 미미한 지분으로 기업을 좌지우지하다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게 소위 그들이 주장하는 주인 있는 기업이다. 그리고 오너? 현재의 삼성이 아직도 1936년 이병철이 마산에서 창업한 쌀집인 줄 아는 걸까? 제프 베이조스, 마크 저커버그 등에게 창업자(founder), 대표이사(CEO), 지배주주(controlling shareholder)라는 표현을 쓰지 한국적 맥락의 주인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게 다양한 주주로 구성되어 있는 상장 주식회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이다.

 

그리고 윤 대통령이 은행을 분노의 타깃으로 만드는 동안 시장질서의 파수꾼인 공정위는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중이다. 지난달 공정위는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을 축소하겠다고 발표했다. 공시대상기업집단이란 대기업집단에 공정거래법에서 정한 각종 공시의무를 부과하는 것으로, 총수일가의 사익편취행위(윤 대통령님, 이게 진정한 모럴해저드입니다!) 등 불공정 관행을 차단하는 주요 수단이다. 공정위가 2022년에 지정한 공시대상기업집단은 총 76개인데,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변경할 경우 그 대상은 많게는 20개까지 감소한다. 민영화된 주인 없는 기업, 즉 은행·KT·포스코 등은 때려잡고, 중견재벌 총수들은 자유롭게 해주겠다는 거다.

 

현재의 논란은 한국사회에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한국 사회에 있어서 민영화란 무엇인가”. 한국의 보수정권은 언제나 사기업은 효율적, 공기업은 비효율적이라는 시장자유주의로 민영화를 추진해왔다. 그런데 이런 정권에서 은행은 국방보다도 중요한 공공재란다. 원론적 논쟁은 다 접고 이번처럼 은행·KT 등을 인사개입을 통해 흔들면 한국식 민영화는 이렇게 정리될 것이다. “한국에서 민영화는 잘되어봤자 은행이다.”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민영화를 추진하지만 결국 인사권으로 뒤에서 팔 비틀면서 민영화된 기업에 개입하는 것이 시장관행이 될 것이고 그 책임은 온전히 현 정권에 있다.

 

갑자기 현 정권이 은행·KT 등의 지배구조개혁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를 모르겠다. 그것도 규율의 핵심부서인 공정위는 무력화하고 금융위도 아닌 금감원 수장이 말로 정치적 존재감을 키우면서 말이다. 지지율이 낮은 정권이 고금리에 대한 분노에 올라타서 정치적 효능감을 제법 느낀 모양인데 개혁의 대상을 재벌에서 은행으로 바꾼다고 없던 정권의 철학이 정립되지 않는다.

 

목표를 분명하게 하시라. 한국 주식시장의 디스카운트를 걱정한다면, 정말 지배구조개선을 원한다면 주인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문제를 꼬아 놓으면 언론과 전문가들은 소유가 분산된 기업의 지배구조는 이래서 문제라며 한마디씩 할 것이다. 또 국민연금이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 개선 문제를 얘기하면 연금사회주의고 은행·KT·포스코 등에 개입하면 건전한 스튜어드십이 될 것이다. 추석에 친척들이 갑자기 과도한 관심을 보이며 결혼은 이래서 좋다는 말에 누구도 감동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라.

이창민 한양대 교수 경향 2023.02.15.

 

 

경향 사설 은행들의 성과급·퇴직금 잔치, 사회적 책임은 잊었나

금리 상승기에 엄청난 수익을 거둔 은행들이 돈잔치를 벌이고 있다. 14일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성과급 총액은 13823억원으로 전년(1193억원) 대비 35.6% 증가했다. 퇴직자들에게는 법정 퇴직금 외에 특별 위로금을 얹어 1인당 적게는 6~7억원, 많게는 10억원 이상이 주어졌다고 한다. 주주 배당도 늘렸다. 2021년 기준 국내 17개 은행의 배당액은 7조원이 넘는다.

 

금융사들이 혁신 등으로 기존에 없던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수익을 거뒀다면 칭찬받을 일이다. 그러나 근래 금융사들의 수익은 전적으로 기준금리 인상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금리 덕에 앉은 자리에서 수십조원을 벌어들인 것이다. 더구나 은행들은 예대금리 차에 따른 마진을 챙기는 것은 물론이고, 대출금리는 빨리 올리고 예금금리는 느리게 올리는 꼼수까지 동원해 수익을 극대화했다. 지난해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의 이자 이익만 396800억원이다.

 

금융은 공공성이 강한 정부 면허 사업이다. 은행이 부실해져도 안 되지만 수익만 좇아 고리대금업자 같은 행태를 보여서도 안 된다. 인플레이션 방지를 위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뜻밖의 횡재를 거뒀다면 고금리로 고통받는 대출자들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사회 지도층 인사와 명망가들로 구성된 금융지주와 은행의 이사회는 시민들에게 박탈감과 실망감을 안긴 돈잔치 결정에 거수기 노릇만 했다. 내부 감시나 통제, 자정 노력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의 돈잔치로 국민들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은행들은 관치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이번 사안은 자업자득의 성격이 강하다.

 

당국은 은행의 예대금리 산정 및 운용 과정을 철저히 감독해 은행의 부당한 이자 이익을 줄여야 한다. 부동산 폭등 시기에 빚을 내 집을 산 2030세대 영끌족이나 코로나19 사태를 대출로 버텨온 영세 자영업자들은 이자 부담에 하루하루 피가 마르고 있다. 은행은 고금리 상황에서 사상 최대의 수익을 거둔 것을 자기 성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은행도 주주가 있는 민간 기업이다. 그러나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당시 벼랑에 놓인 은행들을 살린 것은 다름 아닌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공적자금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세계시민주의는 실패한 걸까

베트남 냐짱에 왔다. 밤늦게 출발해 새벽에 도착하는 고된 비행 일정이었다. 고통 받는 아이들, 불안한 부모들, 그걸 지켜보는 나머지. 승객은 이렇게 세 종류로 나뉘었다. 초등학생 둘에 부모님까지 모신 우리 일행은 이 모두에 해당됐다. 다섯 시간 남짓 공중에서 펼쳐진 혼돈의 카오스 대 환장 파티가 끝나고 비로소 호텔 침대에 몸을 뉘었다. 피곤이 극에 달했지만, 낯선 온도와 냄새, 오토바이 엔진과 경적 소리에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모든 고통에 이유가 있듯, 온 가족이 사서 고생한 의미가 있길 바랐다. 아이들에게 넓은 세상을 경험시켜주고 싶다. 즐거운 경험을 다양하게 했으면 한다. 외국어 앞에 주눅들지 않고, 외국인 친구도 쉽게 사귀었으면 좋겠다. 낯선 음식도 가리지 않고, 다른 문화에도 쉽게 적응했으면 한다. 그렇게 자라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자유롭고 멋진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이런 바람과 욕심이 뒤섞인 잠꼬대를 하며 겨우 잠들었다.

 

지금도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세계시민으로 키우기를 희망하며 여행, 유학, 이민까지 사서 고생하고 있다. 이런 부모들의 희망과 기대 자체가 어쩌면 일종의 전 세계적 유행처럼 느껴진다. 특히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세계화를 경험한 세대에게 세계시민은 유토피아적 공상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미래였다. 신세계시민주의 담론이 쏟아져 나오던 당시에는 머지않아 지구상 모두가 국민 국가의 경계를 넘어 세계시민으로 살아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사뭇 다르다. 1400605개의 다른 가능성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작금의 상황은 실패한 미래에 가깝다. 지금 유행하고 있는 것은 세계시민주의가 아니라, 그 반대편에 있는 민족주의의 대두, 이주민이나 외국인에 대한 혐오, 국경 통제에 대한 요구, 그리고 이를 실현해주겠다 공언하는 권위주의 정권이다. 에티엔 발리바르는 오늘날 지구적 시민사회라는 이념이 지구적 내전이라는 현실로 귀결되고, 테러와 반테러 전쟁, 지역 블록들 간의 지정학적 대립, 국지적 전쟁 등 폭력이 확산되면서 지구적인 규모에서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지구적 디스토피아로 귀결되었다고 말한다.

 

어쩌다 우리는 꿈꾸던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에 살게 됐을까? 지구적 규모의 혼돈의 카오스 대 환장 파티는 언제쯤 끝이 날까? 세계시민주의는 과거의 실패한 유산에 불과할까? 과연 우리 아이들은 세계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한상원 교수(충북대학교 철학과)가 지난해 6월 출판한 논문 세계시민주의의 자기반성: 부정변증법적 비판은 이러한 질문들에 하나의 단초를 제공해준다.

 

연구는 1990년대 이후 등장한 신세계시민주의가 일종의 자기모순에 빠졌으며, 특히 경제와 정치, 두 가지 측면에서 결함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요컨대, 경제적 측면에서는 초국적 자본의 세계화 전략과 혼합되면서 역설적으로 배타적 민족공동체와 보호주의에 대한 갈망을 낳았고, 정치적 측면에서는 초국가적 제도에 의한 탈주권적 민주주의를 강조하다보니 민족국가 단위의 민주주의까지 부정적으로 보게 되면서 결국 민주주의 주체가 불분명해지게 됐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는 세계시민주의의 이상이 오늘날 우리가 처한 지구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오히려 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과거의 실패를 조롱하거나 세계시민주의의 이상을 냉소적으로 보기보다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자기반성적으로 숙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세계시민주의가 내재적으로 자기초월을 이룩하고 잠재적 진리내용을 실현하게 될 때, 비로소 우리 아이들은 세계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모든 고통에 이유가 있듯, 과거의 실패에 의미가 있길 바란다.

송경호 연세대 정치학과 BK21교육연구단 박사후연구원 경향 : 2023.02.15

 

 

800원 대 50억원의 정의론

몇건의 판결이 세상에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6일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21(재판장 임정엽)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 인근에서 희생자를 조롱하는 펼침막을 내걸고 유족을 모욕한 극우보수단체에 대한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는 이유다. 9일에는 대전지법 형사항소2(재판장 최형철)201812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씨가 일하던 당시 원청업체 대표에게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1심에서 유죄였던 본부장에게도 무죄를 선고했고, 함께 기소됐던 이들도 대부분 감형해줬다.

 

그리고 하이라이트.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재판장 이준철)는 아들을 통해 50억원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은 전직 국회의원 곽상도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아버지를 보고 준 50억원이라는 증거가 넘치는데, 구체적인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았고 아들이 독립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이런 판결이 요 며칠 사이 일은 아니다. 라임 사건과 관련해 서울 강남 유흥주점에서 접대받은 전·현직 검사 네명은 모두 건재하다. 둘은 기소조차 안 됐고, 다른 둘은 무죄가 선고됐다. 권력형 범죄, 기업 범죄,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법의 관대함은 끝이 없다. 반면 힘없는 서민에 대한 판결은 추상같다. 지난해 11월 대법관에 임명된 오석준 판사는 2011, 800원을 횡령한 버스기사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한 바 있다. 50억원은 무죄고 800원은 유죄다. 이게 법이냐?

 

법이 강자를 편든다는 인식은 역사가 오래다.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 철학자 트라시마코스도 그랬다. 그는 소크라테스가 싫었다. 제 생각을 말하기보다는 질문으로 상대의 무지를 깨우치려는 상투적인 시치미 떼기 술법”(산파술)을 혐오했다. 올바름에 관해 대화하던 소크라테스에게 마치 야수처럼, 혼신의 힘을 가다듬어 찢어발기기라도 할 듯이덤벼들었다. 트라시마코스가 말했다. 법이란 법을 만드는 사람에게서 연원하는 것이오. 지배자는 자신들에게 편익이 되는 법을 제정하고 공표하며 위반하는 자를 처벌하지요. 결국 올바른 것은 더 강한 자의 편익으로 귀결되고 마는 법이오.

 

소크라테스는 테크네(기술)의 비유를 들어 반박한다. 항해술을 가진 선장은 선장인 한 승객의 이익을 실현하지 않겠소? 의술을 가진 의사도 의사인 한 환자의 이익을 실현하지 않겠소? 마찬가지로 그가 다스리는 자인 한은 자신에게 편익이 되는 걸 생각하거나 지시하지 않고, 다스림받는 쪽 그리고 자신이 일해주게 되는 쪽의 편익이 되는 걸 생각하거나 지시하오. 플라톤이 <국가>에서 소개하는 이 일화는 법이 누구의 편인가를 둘러싼 논란의 유구한 역사를 보여준다.

 

50억원 판결에 판사가 누구냐며 난리가 났다. 검사부터 문제였다고도 한다. 판사나 검사가 문제라면 사람을 바꾸면 된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법률 조항들이 문제일 수도 있다. 게으른 국회의원들을 생각하면 답답해지지만 어쨌든 고치면 된다. 사람과 법률 둘 다 바꿔야 한다면, 그래야 한다. 어쩌겠는가? 정 안 되면 인공지능(AI)도 있다. 하지만 문제가 훨씬 심각할 수도 있다. 법조인이나 법률 조항이 아니라 법 자체가 문제라면 말이다. 사실 서민의 생활세계에서 법은 본래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의 편이다. 법 자체가 강자의 무기다. 고지식한 소크라테스보다는 현실주의자 트라시마코스의 손을 들어주고 싶어지는 것이다.

 

트라시마코스는 법이 딛고 서야 할 정의나 올바름의 기초 같은 추상적 가치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 누가 법을 만들고 실행하느냐는 실재로부터 주장을 펼친다. 그의 주장을 이어가다 보면 놀랍게도 현대 법률과 법학의 근간이 되는 법실증주의와 만나게 된다. 이 사고방식은 오직 실재하는 법규범만 논할 뿐, 법의 기초가 되는 정의나 윤리 같은 추상적 가치에 관해서는 침묵한다. 법을 둘러싼 불평등도 외면한다. 침묵으로 강자를 편드는 논리다.

그의 논리를 잇는 또 다른 노선도 있다. 법이 강자의 편이니 스스로 강자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19세기 말~20세기 전반에 강한 것이 정의라는 우승열패의 사상이 팽배했다. 바로 사회진화론이다. 오죽하면 약자의 편이라는 사회주의운동조차 영향을 받았을까? <야성의 외침>, <강철군화> 등으로 큰 성공을 거둔 미국의 좌파 작가 잭 런던이 좋은 사례다. 그에게 노동자계급과 사회주의의 승리는 자본가계급과 자본주의보다 더 강하다는 과학적 사실에서 비롯한다. <미다스의 노예들>(1901)이라는 작품에서는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하여 자본가들에게서 돈을 뺏는 지식인 프롤레타리아 테러조직이 등장한다. 한 자본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 이런 방법들로 당신은 살아남은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결과를 탓하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 스스로도 꼭 같은 자연법칙을 인지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묻는다. 당신과 우리 중 누가 주어진 사회관계 속에서 살아남게 될 것인가? 우리 생각엔 우리가 더 강한 자인 것 같다.”

 

법이 힘 관계의 산물이자 강자의 도구라는 사고방식의 극단에 파시즘, 전체주의가 있다. 여기서 지배의 기술에 불과한 법은 힘 속으로 용해된다. 나치의 지도자 원리에서 지도자의 말은 모든 성문법에 우선한다. 법이 강자의 편이라고 냉소하던 이들이 이제 지도자에게 열광한다. 정치적 냉소주의와 파시즘적 열광의 뿌리는 같다.

 

법인류학자 알랭 쉬피오는 <법률적 인간의 출현>에서 법을 권력에 이용되는 도구로 국한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전체주의의 특징이라고 경고한다. 이런 체제 아래서 법은 모든 구속력을 잃어버리고,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이용된다. <전체주의의 기원>을 쓴 한나 아렌트의 통찰도 무겁다. “전체주의의 지배로 향하는 길 위에 내딛는 필수적인 첫걸음이 바로 인간에게서 법인격을 죽이는 것이다. 정의라는 개념 없이 법을 순수한 힘 관계 속에서 인식하는 순간 정의는 사라지고 우리는 힘의 노예가 된다.

 

법이 강자의 편이라고 비판하기는 쉽다. 대통령실조차 국민이 납득하겠느냐50억원 판결을 비판했다는 소식이다. 소가 웃을 일이다. 법이 강자의 편이라는 비판이 종종 냉소로, 체념으로 귀결되는 이유다. 법이 강자를 편든다고 비판하지 말자는 말인가? 아니다. 법이 강자의 편이 되게 만드는 기울어진 현실에 대한 비판이 더 절실하다는 말이다. 이 아찔한 기울기를 용납할 수 없다는 정의 감각이 절실하다는 말이다. 800원 대 50억원의 아득한 대비 속에서 새겨야 할 정의론은 바로 이것이다.

조형근 | 사회학자 한겨레 : 2023.02.15.

 

 

누가 마른 여자되기를 강요하는가

05 _거식증

임옥희는 논문 은유로서의 거식증에서 거식증이 언어로 포착할 수 없는 것을 소통하려는 여성의 육체언어라고 보았다. 박탈감, 상실감, 결여, 슬픔을 나타내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 거식증 환자들은 날씬한 몸을 강요하는 시선에 순응하는 유순한 몸인 동시에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몸이 된다.

아이는 먹지 못한다. 너무 굶어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몸이 애처롭다. 계속 먹지 않으면 심장이 멈출 수도 있다고 의사는 말했다. 결국 부모는 입원 치료를 결정했는데, 수액을 맞기 시작하자 아이는 공포에 질려 자지러지게 울었다. 살찔까봐 두려워서. 최근 텔레비전의 한 상담 프로그램에서 본 10살 여자아이 이야기다.

여자들이 말라가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거식증(신경성 식욕부진)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171661명에서 20212201명으로 늘었다. 2021년 거식증 환자의 75%(1648)는 여성이고 이 중 10대는 25%(418)에 이르렀다. 더 충격적인 건 10대 여성 거식증 환자의 절반 이상(210)10~14살 어린이라는 점이다. 한국에서 거식증으로 병원을 찾는 이가 소수라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상황은 더 심각할 수 있다. 정확한 조사와 통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에서는 여성의 5~10%가 평생 한번은 거식증에 걸린다고 하고, 영국은 거식증 환자를 250만명 이상으로 추정한다.

 

흔히 거식증이라 일컫는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먹는 것과 관련해 어려움을 겪는 섭식장애의 대표적 질환이다. 때로는 지나치게 먹는 신경성 폭식증으로 바뀌기도 한다. 거식증 환자는 살찌는데 공포를 느끼며 음식을 제한하고 체중을 감량한다. 흔히 저체온, 저혈압, 무월경, 우울증까지 동반한다. 거식증은 완치가 어렵고 치사율이 약 5%에 이르러 정신질환 중 가장 사망률이 높다.

 

한국의 10대 여성 청소년들이 거식증을 동경하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다. 사회연결망서비스에서 ‘#프로아나’ ‘#뼈말라’ ‘#자극짤등을 검색하면 놀랄 만큼 앙상한 여성 신체 사진을 만날 수 있다. ‘프로아나’(프아, pro-anorexia )는 거식증을 찬성한다는 뜻의 초절식 또는 초절식인을 뜻한다. 장기간 먹지 않고 살을 빼는 조임은 물만 먹는 단식이나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는 먹토로 이뤄진다. 장원영, 아이유 등 여성 아이돌 사진은 프아들의 살빼기 욕구를 자극하는 자극짤로 인터넷에 떠돈다.

 

프로아나의 최종 목표는 키에서 몸무게를 뺀 키빼몸120 이상 되는 것이다. 한국 성인여성 평균키 160라면 몸무게가 40을 넘어서는 안된다. 너무 심한가? 하지만 오래전부터 한국 사회의 이상형이야말로 배짝 마른 여성들이었다. 1989년 이미 미스코리아 입상자들의 평균 키는 173.6, 몸무게는 51.3로 이들의 키빼몸122를 넘었다. 오래 전부터 한국 사회는 뼈말라몸매를 미인의 조건으로 꼽았던 셈이다. 피골이 상접한 해골 모델같은 대중문화 속 여성 이미지는 실제 여성의 몸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거식증 환자에게 식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먹방에 과몰입한다. 식욕에 못 이겨 입이 터지면그때부턴 걷잡을 수 없이 먹는다. 그리고 토한다. 프랑스 임상의사인 자크 마이에는 거식증 환자에게 가장 큰 두려움이 음식을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거식증을 다룬 미국 영화 <투 더 본>에서 여성 환자들은 조금만 먹어도 토한다. 20살 주인공 엘런은 뼈만 남은 몸으로 쉼없이 윗몸일으키기를 한다. 마이에는 과도한 육체활동과 지적인 과잉활동도 거식증의 증상이라고 보았다.

 

유전적 요인, 우울증, 노이로제 등 거식증 원인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다.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거식증을 연구한 미국 학자 수전 보르도는 거식증 환자들이 을 업신여기는 서양철학 전통 위에 서있다고 설명한다. <참을 수 없는 무거움>에 나타난 보르도의 분석을 종합하면, 플라톤부터 데카르트까지 서구 남성 철학자들은 이성과 정신이 육체적인 것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았다. 거식증 환자는 자기만의 왕국에서 독재자가 되려 한다. 미국 에세이스트 캐럴라인 냅은 <욕구들>에서 거식증에 걸린 자신에 무한한 자긍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몸은 진압해야 하는 나라이며, 몸의 욕구들은 뿌리뽑아야 하는 적군들이었다고 그는 썼다. 굶기를 통해 몸이라는 불결하고 오염된 자아, 여성적 자아를 더 위대한 정신과 지성으로 지배하는 나 자신은 불굴의 투지를 지닌 남성적인 승리자가 된다는 것이다.

 

반면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여성은 성적 탐욕과 방종을 상징한다. ‘남자 잡아먹는 여자는 가부장제의 가장 큰 적이다. 보르도는 15세기 마녀사냥 교본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의 이야기를 꺼낸다. 마녀는 문란한 성욕으로 요술을 부리며 아이들을 한 솥 가득 삶아 먹고 악마와 동맹을 맺는다. 식욕을 참지 못해 먹는 여성이 마녀라면, 식욕을 참고 제 살과 피와 뼈를 남편과 아들들에게 먹이는 여성은 어머니가 되고 여신이 된다. (아들 오백명을 먹이려다 솥에 빠져 죽은 제주 설문대할망 설화 같은 이야기는 세계 곳곳에 비슷한 버전이 있다.)

 

임옥희는 논문 은유로서의 거식증에서 거식증이 언어로 포착할 수 없는 것을 소통하려는 여성의 육체언어라고 보았다. 박탈감, 상실감, 결여, 슬픔을 나타내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거식증 환자에겐 특히 여성의 흔적을 없애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여자아이들이 살찌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어린아이에 머물러 2차 성징을 늦추려는 이유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살이 없는 여성의 몸은 중성적이다. 섹슈얼리티가 삭제된 해골 같은 몸은 성폭력의 위협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거식증을 겪은 이들은 무월경을 훈장처럼 여기기도 한다. 이렇게 거식증 환자들은 날씬한 몸을 강요하는 시선에 순응하는 유순한 몸인 동시에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몸이 된다.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거식증을 상담한 것으로 유명한 정신분석가 겸 페미니즘 활동가 수전 오바크는 모든 사람의 몸에는 가족의 이야기가 남긴 은밀한 각인이 찍혀 있다고 본다. 그는 섭식장애가 부모-자식간 분리와 의존에 관한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몇몇 전문가들은 거식증 이슈가 욕망이 좌절돼 자식들에게 지배적인 어머니와, 이를 외면하는 아버지 사이에서 발생할 확률이 높다고 분석한다. 캐럴라인 냅은 자신의 거식증 중심에도 분명 불행한 부모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거식은 좀 더 본질적으로 여성 전반이 직면한 허기, 응답받지 못한 갈망, 세계와 어긋난 자아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았다. 굶기를 통해 여자들은 인생을 끈질기게 압박하는 슬픔, 내면의 욕망과 허기를 없애버리려 한다는 것이다. 어떤 여성이 이런 허기의 연장선상에서 마냥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같은 여성들이라고 모두 거식증을 이해하려 들지는 않는다.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다이어트가 여성의 정치적 힘을 빼앗는다고도 말한다. 허약한 인구는 다스리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식증을 경험한 여성들은 무력함을 강조하거나 자본주의와 가부장적인 명령에 순응해 살을 빼고자 한다는 식의 비판을 강력히 거부한다. 남성의 눈에 들기 위해 굶는 것이 아님을 밝히려 스스로 레즈비언이라고 커밍아웃하는 이들도 있다. 오늘날 연구자들은 거식증과 프로아나 당사자들을 가부장제 질서에서 탈주하면서도 적극 교섭하는 주체적인 존재라고 분석한다. (‘프로아나: 몸 정치성의 교란’, 류지현 조윤희 원용진, 2021)

 

최근 1~2년 동안 섭식장애를 겪은 당사자들의 책이 국내에 여러권 출간됐다. 오는 24일부터 32일까지 서울 독립서점들에서 거식증을 경험한 당사자, 전문가 등이 강연과 토크를 하는 섭식장애 인식주간행사도 열린다. 행사를 주관하는 잠수함토끼 콜렉티브<삼키기 연습>의 저자 박지니씨 등 섭식장애 당사자들의 모임으로, 잠수함 속 희박한 공기를 알려주는 토끼처럼 섭식장애 인식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보르도는 거식증 환자를 기이한 병의 희생자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주는 우리 문화를 짊어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그 자신 사춘기 시절 거식증을 앓았던 미국의 사회비평가 나오미 울프는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에서 거식이 오히려 미친 현실에 맞서 자기를 방어하려는 마땅한 항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거식증 경험자들은 환자가 아니라 이 사회의 정치범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거식은 정치적 진정제라기보다 치료제에 가까울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극단적인 마른 몸을 아름답다고 보는 시선, 날씬한 여성에게만 주어지는 기회, 몸이 큰 여성을 비난하고 수치심 주기. 이 모든 것이 여성을 굶주리게 한다. 점점 더 많은 여성이 굶는다는 건, 점점 더 세상이 나빠지고 있다는 신호다. 위험한 건 굶는 여성이 아니라 굶기는 사회다.

이유진 | 토요판 선임기자 한겨레 : 2023.02.15.

 

 

한 설움이 가면 다음 봄꽃들이 피어나

지난해, 내가 존경하는 분들이 유달리 많이 작고하셨고 그래서 그분들을 추모하는 마음이 간곡했다. 그럼에도 그 한풀이는 밝은 새해의 첫 글로 미루었다. 먼저 가신 분들이 나와 한 또래 나이들이어서 바로 나 자신을 미리 조문하는 듯 묵지근한 느낌에 눌리기도 했지만, 한 해가 지고 있다는 우수에 젖어,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말로나 글로나 세상 이야기를 나누고 싶던 분들을 다시 뵐 수 없다는 생각에 아득해 있었다. 그처럼 허망해하는 나를 달래준 것이 정우현의 <생명을 묻다>였다. “과학이 놓치고 있는 생명에 대한 15가지 질문이라고 표지에서 밝힌 것처럼 생리학, 유전학에서 형이상에 이르기까지 생명에 관련된 뭇 물음들에 따뜻한 마음으로 접근하는 그의 책에서 나는 내 앞의 어두운 함정을 다시 보고 새로 생각할 수 있었다.

 

가령 살아가는 데 잠이 꼭 필요하듯이 죽음도 생명에게 꼭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그의 말에서 나는 육체의 소멸을 넘어 생명의 본원을 가리키는 손짓을 보았고 누군가는 죽어서 살아 있는 자들에게 길을 터주는 것” “생명은 죽음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지혜에서 생명의 법칙을 읽었다. “‘있음에서 풀려나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그것이 바로 죽음이다라며 모든 생명이 죽음의 잉태를 통해 태어나는 순환-지속의 과정임을, 종교를 넘은 과학에서 해탈로 다가가는 자연의 도리로 수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정서의 변화 속에서 내가 지난해 먼저 가신 분들에 대한 회상의 무거움을 새해 밝은 봄기운의 환하고 싱싱한 쪽으로 견뎌, 바꿀 수 있었다.

 

대학생 시절 <사상계>에서 진지한 서양 지성으로 익힌 글들로 나를 깨우쳐준 분이 불문학자 정명환 선생님이었고 그분의 첫 비평집을 내가 일하던 출판사에서 간행할 수 있었기에 자주 뵙지 못해도 친근한 스승으로 모셔왔다. 그분은 우리 지식사회에 서구 인문학을 자양으로 들여오면서 후진적인 우리 지성계를 세련시켜주셨다. 서광선 선생님은 우리 샤머니즘적 기독교를 지성과 화해를 위한 신학으로 발전시킨 신학자였다. 6·25 때 목사였던 아버지가 참혹하게 학살당한 모습을 보고 복수를 작심했지만 하우스보이에서 미국 유학생이 되어 신학자로 귀국한 뒤 민중신학으로 그 지향을 개척하셨다. 같은 교외 도시에 살면서도 메일로만 소통한 내게 서 목사님은 2년 전의 성탄에 환호와 소음의 축제가 아니고 조용히 문 닫고 식구들만 모인 가난한 식탁 위의 촛불 앞에 감사기도를 드리는 믿음과 사랑으로 축복의 말씀을 주셨다.

 

이어령 선생님은 분명 우리 문화계에서 가장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진 분 중 한 분이어서 그분의 때 이른 작별은 더욱 안타깝다. 대학생 때 우상의 파괴로 기성 문단을 요란하게 흔든 선생은 서울 올림픽에서 소년의 굴렁쇠로 개막한 뛰어난 상상력을 발휘했고 일본인을 축소지향형인간으로 분석해 왜인을 놀라게 한 탁월한 문화비평가였다. 선생님을 처음 뵙기는 1966년 남정현의 <분지> 사건 재판에 피고 측 증인으로 나왔을 때였다. 문학작품이 북에 이용되게 했다는 검사의 비난에, “장미는 자신을 위해 뿌리를 뻗는 것이고 그걸 파이프로 만든 것은 인간이란 촌철살인의 반론에 말이 막힌 검사가 분별을 잃고 선생에게 당신 군대 갔다 왔어?” 하고 엉뚱한 질문으로 분기를 터트리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남정현 작가의 변호인이 한승헌 선생님이었다. 당시 소장 변호사였지만 그분부터 황인철 홍성우 등의 인권변호사란 이름이 번지기 시작했는데, 시인으로서의 그의 문재도 유명했지만 사석에서 그분과 자리를 함께하면 즉흥적으로 만드는 그의 재치와 유머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치적 불의에 대한 그의 단호함은 의연했다.

 

유머는 역사학자 김동길 선생님에게도 방창했다. 김옥길 이화여대 총장님의 동생인 김 박사는 시국에 대한 야유 섞인 비판으로 청중을 사로잡는 분이다. “이게 뭡니까란 말로 유신 시절의 억압당한 세태를 야유하면서 그가 전공한 미국사에서처럼 우리 사회도 정치적 자유를 향유하고 싶은 소망이 막힘 없이 시원한 목소리의 강연에 담겨 있었다. 한일협정 반대 시위부터 한 세대 동안 유신 정치 억압에 가장 강렬하게 저항한 시인 김지하도 청년 시절부터 여러 고비를 잘 넘겨왔음에도 끝내 지난해 이승을 떠났다. 유신을 앞둔 박정희 정권의 억압 체제에 담시 <오적>으로 폭탄을 던진 김지하의 젊은 시절은 그 문학적 반항 때문에 군부 체제의 가장 혹독한 희생자가 되었다. 그의 비판과 저항은 우리 현대문학사의 가장 뜨거운 증례였고 문학과 문학인이 독재자의 억압 아래 어떻게 고통받아야 했고 또 반항해야 하는지 보기를 보여준다. 그런 그도 생명사상에 젖은 후기의 조용한 생애에 다가온 검은 그림자를 피할 수 없었다.

 

나는 그의 빙모 박경리 선생님 작고하신 빈소에서 조용히 침묵으로만 추모의 자리를 지키던 자그마한 여성을 눈여겨보았다. 나중에 기회가 닿아 인사를 드릴 수 있었던 그분은 파리에서 활동하는 화가 방혜자 선생님이었다. , 무한, 우주, 근원 등 인간의 영원한 아프리오리를 주제로 추상화를 그리시던 방 선생님과의 메일이 문득 끊기더니 몇 달 후 그의 작고 소식이 들어왔다. 조용히 말을 아끼며 인간의 원초에 대한 형이상학적 주제를 형상화하던 방 선생님이 선물하신 한 점 작품이 내 설움을 다듬는다. ‘三百六十日三百六十花開’(삼백육십일삼백육십화개)의 글씨가 쓰인 김지하의 매화 그림과 이 그림은 함께 그 두 화가와 이별한 것이다. 여기에 나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에게 더불어 추모의 인사를 바친다. 내가 출간할 수 있었던 그의 뛰어난 난장이 연작들은 우리 근대화로의 역경을 치르던 시대에 가장 아름다우면서 슬픈 벽화가 되어 그 시절의 아픈 정서를 따듯한 설움으로 되새겨준다.

 

이렇게, 80대 정신들이 이해에 잇달아 세상을 떠났다. 그분들은 전쟁과 변란, 갈등과 혼란이 난만했던 한 세대 동안 그 암울한 미래를 어떻게 열어야 할지, 우리 지적 정서를 어떤 모습으로 다듬어야 할지 고민해온 지성들이었다. 이제 그분들이 비운 자리에 새로운 세기의 새로운 정신들이 들어설 것이다. <생명을 묻다>가 깨우쳐준 대로 죽음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예비한다. 이 빈자리에 다시 새로운 생명들이 돋고 자랄 것이다. 한 설움이 가면 다음 봄꽃들이 새로 피어나 세상을 싱싱하게 만들듯. 그 환생을 밝게 받아들이기로 하자. 그렇게 가고, 가면 또 오리니, 이 거듭되는 세상의 끝없는 이어짐이 이어지리라.

김병익 | 문학평론가 한겨레 : 2023.02.16.

 

앞으로 10

130, 미국 스탠퍼드대와 콜로라도주립대 연구팀이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지구 기후모델을 시뮬레이션한 결과가 발표됐다. 지금부터 전세계가 탄소배출을 줄이려 얼마나 노력하는지와 상관없이 2033~2035년 사이 지구 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1.5상승할 가능성이 크다는 결과다. 이대로 간다면 2030년대 중반 전후 1.5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던 20222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제2실무그룹 보고서(2그룹 보고서) 내용과 비슷하지만, 좀 더 충격적이다. 지금부터 탄소배출을 크게 줄이든 그렇지 않든 앞으로 10년쯤 뒤엔 1.5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연구진은 파리협정의 목표였던 1.5가 아니라, 2.0상승을 막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이미 1.5상승을 막을 시점은 지났다는 의미다. 2021년 지구 온도는 산업화 이전 대비 1.1높았다. 0.4더 올라가는 데 불과 10여년의 시간밖에 없다는 말이다.

 

지구 전체 온도가 1.5오르면 우리나라엔 무슨 일이 일어날까? 2그룹 보고서에 따르면, 기상이변이 잦아지고, 한 해 태풍 피해가 최대 17조원에 달하며, 온열질환으로 사망자가 늘어나고, 조개는 자취를 감추고 어류 생산량은 절반으로 줄어들 수 있다. 서울은 세계 주요 도시 중 홍수 위협을 가장 크게 받을 것이며, 부산 인천 울산도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피해를 보기 시작한다.

 

어디 이뿐일까? 기온이 1오를 때마다 세계 식량 생산은 10%씩 감소한다고 한다(데이비드 월리스웰스, <2050 거주불능 지구>). 가뭄과 산불, 홍수와 태풍,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침수로 식량을 생산할 수 없는 농경지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식량자급률이 20%밖에 안 되는 우리나라는 식량의 80%를 수입해 와야 한다. 그런데 지구 전체 식량 생산이 줄어들면 식량 수입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고, 먹거리 가격은 점점 더 치솟을 것이다.

 

지난해 여름 우리나라는 남부에서는 가뭄으로, 중부에서는 홍수로 몸살을 앓았다. 2020년에는 54일 동안 비가 그치지 않았다. 이런 기상이변이 한 해가 아니라 해마다 계속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총인구 대비 농가인구 비중은 4.3%로 독일 미국 일본 등에 비해 훨씬 적고, 농가 경영주의 평균연령은 67.2살이다. 그렇지 않아도 농업인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인데, 점점 더 많은 농민이 농업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2그룹 보고서 전망대로 어류 생산량이 절반으로 줄어들면 어민들도 어쩔 수 없이 바다를 포기해야 한다. 나라 안팎에서 식량 공급이 원활하지 않게 되면 밥상에서부터 양극화는 심각해질 것이고 사회 갈등은 깊어질 것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충격은 폼페이 최후의 날처럼 오지 않는다. 어느 날 화산이 폭발해서 인식조차 못하는 사이에 다 같이 한꺼번에 죽음을 맞이하는, 그런 게 아니다. 그런 거라면 우리는 위기를 완화하고 적응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날짜만 모를 뿐 모두 죽을 테니까.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잦은 기상이변이 재난을 일상화하고, 되풀이되는 재난 속에서 기존의 불평등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사회의 토대가 무너져 내리며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탱해왔던 시스템이 하나둘 마비돼가는 그런 모습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서 당장 지금부터 기후위기가 가져올 구체적인 위험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나누고 적응을 준비해나가야 한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은 위기를 완화하기 위한 노력과 피할 수 없는 위험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으로 나뉜다. ‘2050 탄소중립처럼 탄소배출을 줄여나가는 것은 위기 완화를 위한 노력에 해당한다. 이미 닥친 기후위기에 적응하는 것 또한 계획과 준비가 필요하다. 정부는 기후위기가 야기할 위험과 관련해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을 모아 정기적으로 정보를 취합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추출해 시민들에게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기후재난에 대비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구해야 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3월 중으로 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2023~2042)’을 발표한다고 한다. 여기에는 이미 가시화하고 있는 기후재난에 대한 적응 계획이 체계적으로 담겨야 한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 한겨레 : 2023.02.16.

 

 

군인·탱크 많다고 전쟁 이기나?34년째 콩알세는 국방백서

윤석열 정부의 첫 국방백서가 지난 16일 나왔다. 국방백서는 1967, 19682차례 나왔다가 1988년 다시 발간됐다.

1970년대, 1980년대 나오지 않던 국방백서는 왜 20년 만인 1988년 다시 나왔을까?

 

언론인 리영희 선생 글 때문이었다. 리영희 선생은 1988년 월간지 <사회와 사상> 9월호에 ·북한 전쟁능력 비교연구란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리 선생은 우리 사회에서 건국 이후 진지한 이론적·실증적 검토 노력 없이(또는 허용되지 않은 까닭에) 일반적 믿음처럼 고정관념화 되어버린 북한의 소위 군사력 우위론 또는 전쟁 감행(‘남침전쟁’)론을 분석적·실증적 방법으로 그리고 비판적으로 검토했다고 밝혔다.

 

논문은 군사력과 그것을 지탱하는 종합적 생산력 및 경제력의 군사 전용 효과, 그리고 전쟁에 개입하는 국제적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남북의 군사력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인적·물적 생산력, 경제체제와 구조, 과학과 기술, 정신문화적 범주의 자원과 능력 등을 고려한 종합적 전쟁수행능력에서는 남한이 북한보다 월등히 우세하다고 평가했다.

분단 이후 군부독재 정권은 장기집권을 하려고 북한의 군사적 우월성을 과장 선전해, 남침에 대한 공포·불안의식을 키워왔다. 리영희 선생의 논문은 남침 위기론으로 얼어붙은 우리 사회 내면의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 같은 구실을 했다.

 

1980년대 후반 국방부에서 정책업무를 담당했던 인사의 설명이다. “리영희 교수 논문이 나온 뒤 이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학자, 군인 등을 소집했다. 분단을 이유로 남북 군사 정보를 감추던 종래의 군사 기밀주의로는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안 내던 국방백서를 다시 내기로 했다. 석 달 동안 작업해 198812360쪽 짜리 <국방백서 1988>을 급하게 발간했다.”

 

하지만 이 국방백서가 리영희 선생의 주장을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 남북한 병력과 육해공군 주요 무기체계 및 장비 규모를 단순하게 양적 비교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리영희 선생은 군사력뿐만 아니라 경제력, 국제환경, 경제체제와 구조, 과학과 기술, 정신문화적 범주의 자원과 능력까지 고려한 종합적 전쟁수행능력을 분석했다. 리영희 선생은 남북 무기 수를 나열하던 단순수량 비교방식’(bean counting·콩알 세기)을 뛰어넘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를 반박하겠다고 국방백서를 급히 펴낸 국방부가 병력 및 무기 보유량만을 단순 비교만 했던 것이다. 이후에도 국방백서는 양적 비교 방식으로 남북 군사력을 평가하고 있다. 군사력을 실질적으로 평가하려면, 병력과 무기 양적 비교뿐만 아니라 장비 성능, 훈련 수준 같은 질적 비교와 경제력 등 전쟁수행능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2022 국방백서중 남북 군사력 현황은 남북 병력, 주요 무기를 양적비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취임 초 남북간 병력 수, 항공기, 탱크 등의 수를 단순 비교해 놓고 우리 군사력이 북한보다 휠씬 약하다는 국방부 보고를 듣고는 대통령을 바보 취급 하는가 싶어 불쾌했다고 한다. 2004년 봄 청와대는 남북 군사력 비교와 남북 전쟁수행능력 비교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국방연구원(KIDA)에 맡겼다.

 

이 연구 결과에 따라 예산이 줄어들 것을 걱정한 육해공군은 우리가 열세한 것으로 해달라고 국방연구원에 로비했다. 20046월 국방연구원은 육군은 북한에 열세, 해군과 공군은 대등하거나 우세하다는 보고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다시 회의를 열어 실질적인 남북 전쟁능력을 비교할 수 있는 분석 모델을 만들어 납득할수 있게 보고하라고 몇차례 지시해으나 끝내 이행되지 않았다.

 

콩알 세기남북 군사력을 설명하는 방식은 1988년에 이어 이번에 나온 ‘2022 국방백서에서도 반복됐다. 이에 따라 지난 16일 국방백서가 나오자 국군 50vs 북한군 128, 북한군 병력 남한보다 2.5’, ‘국군 전차 2200여대로 4300여대인 북한의 절반 수준같은 기사도 34년째 되풀이됐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한겨레 : 2023.02.17.

 

사법 전쟁 치닫는 '3류 정치', 대통령부터 달라져야 한다

대선 연장전 끝내고 '포용의 정치' 물꼬 틀 때

정치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정치 없이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제도적 관점에서는 권력구조와 상관없이 입법부에서만 법을 개정하고 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의회의 행정부 감시 견제 기능도 의회의 존재 이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 밖의 광의의 정치에 해당하는 관료의 행정 행위는 차라리 부차적이다.

 

한국정치에서 문제적 기구는 정당이 주축이 된 국회다. 결국 핵심은 왜곡된 정당정치다. 정당을 배제한 현대정치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당의 공천이 소수의 당내 파워 그룹의 전유물로 전락한 공천제도의 개혁 없이는 정당의 왜곡된 구조를 바꿀 수 없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공천제도가 정당체제 왜곡의 주범이라 해도 정당의 구조를 바꾸는 작업 역시 긴요하다. 정당의 운영 행태와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정당정치의 정상적 작동은 기대할 수 없다.

 

첫째, 대통령제에서 정당이 강한 기율과 중앙집중적 관료 체제로 운용되는 것 자체가 기형적이다. 국회의원 각자가 헌법기관이면서 대선 캠프에 줄 서는 것도 정치 희화화의 요인이다. 정당이 지도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규정되고 상대 정당과의 적대적 대치를 정당의 생존 요건으로 하는 정치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

 

둘째,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직도 대통령제의 기본 원리와 맞지 않는다. 의회와 행정부의 융합이라는 내각제의 대전제도 없는 권력구조에서 이러한 제도가 운영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셋째, 비례대표의 증원과 중대선거구제 등 선거제도의 개편이 정치개혁의 요소라고 보는 인식도 위험하다. 비례대표는 내각제를 발전시켜 온 유럽의 국가들에게 해당하는 제도이다. 중대선거구제는 오히려 양대 정당의 기득권 정치를 강화시킬 수 있고 비례대표 확대는 정당의 소수의 파워그룹의 권력만을 강화시킬 수 있다.

 

넷째, 헌법상에 부여된 특권인 국회의원의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제한할 수 있는 제도적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는 모든 이가 동의하는 진부한 주장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 밖에도 숱한 제도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지만 위의 몇 가지 사안들은 정권의 성격 및 지향과 무관하게 선결되어야 할 최소한의 필요조건들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대척에는 이러한 암적인 요소들의 작동으로 대치는 더욱 강화되고 정치는 문제해결 능력은커녕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 각자도생의 '전쟁'으로 전락하고 있다. 정치에는 현실주의와 이상주의가 공존한다. 현실적이기만 한 정치도, 이상적이기만 한 정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정치와 이상주의 정치가 상호보완적일 때 양자는 의미를 찾는다.

 

여당과 제1야당의 끝없는 대립은 쟁점과 담론이 거세된 그들만의 박제된 싸움에 불과하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적 혐의와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공방이 정치의 주제가 되는 정치가 정상일 수는 없다. 검찰이 정치를 주도하게 된 결과를 초래한 지금의 상황은 단순히 '정치의 사법화'라는 말로만으로도 설명될 수 없다.

 

우선 집권세력이 포용을 발휘해야 한다. 집권당의 당 대표 경선이 당내 민주주의보다는 당정일체라는 명분으로 경선에 개입하는 행태로 미루어볼 때 야당과의 협치는 상상할 수 없다. 여권이 이 대표 수사와 거리를 두고 당내 경선에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일 때 정치의 공간이 열릴 수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을 여당의 명예대표로 할 수 있다는 여권 일각의 생각은 퇴행적이며 시대착오적이기까지 하다.

 

여당의 의석이 비록 소수이지만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의 권력은 행사하기에 따라 정치개혁과 정치복원에 결정적 규정력을 발휘할 수 있다. 물론 야당이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 때문에 경직되고 당 대표에 종속적 모습을 보이는 것도 문제이지만 일단 '친윤'을 중심으로 당정 관계를 운영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대통령 권력이 개혁에 천착하고 정치 복원에 복무한다면 '합의제 정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역대급 비호감 대선의 연장인 여야의 적대적 관계를 완화시킬 수 있다.

 

정치라고 일컬어지는 일련의 이슈들은 정치적 현실주의의 철학을 받아들인다 해도 투표자가 인내하기에 임계점을 넘고 있다. 이념을 준거틀로 하는 정치적 쟁투도,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한 투쟁도 아닌 3류 정치를 대통령이 나서서 포용과 감동의 정치로 물꼬를 틀 수 없을까. 이제 '똘레랑스'라는 고전적 명제를 시도할 때가 됐다.

 

집권당 경선에 드리운 음영을 거둬내고, 야당이 거부하더라도 야당을 설득하는 진정성을 보인다면 최소한 지금의 적대적 대치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을 때 내년 총선에서 여권의 승리는 언감생심이다. 집권연대에게 필요한 것은 민주당이 '이재명 리스크'를 털어내는 순간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는 현실인식이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프레시안 : 2023.02.17.

 

 

헌법이 밥 먹여 주나?

밥은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권위주의 시절 법학밥학이라고 불린 적이 있다. 법이 그 이념인 정의는커녕 정치권력과 사회경제적 기득권의 지배도구로 전락한 것을 비아냥된 것이다. 목숨이나 부지하고 알량한 생계를 위해 정작 법의 존재이유를 외면한 법률가의 현실을 풍자한 것이었다. 권위주의는 충분히 청산했다고 믿었던 대한국민들이 무도하게 법을 권력의 도구로 남용하는 현실을 바라보는 눈길이 착잡하지 않을 수 없다. 법률가가 밥벌레로 불리는 일이 되풀이되지는 말아야 하기에.

 

한편 밥은 생존과 재화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경제의 핵심 수단을 상징하기도 한다. 고상한 이상을 내세워 탁상공론이나 일삼지 말고 현실에 기대어 민생이나 챙기라는 은유로 밥 먹여 주나?”라는 직설적 표현이 사용된다. 국가와 사회의 기본법인 헌법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인간의 존엄을 향유하기 위한 가치와 원리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실질적으로는 아무것도 직접 손에 쥐여주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밥 먹여 주나?”라는 힐난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러나 헌법이 힐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정작 헌법의 정신을 무시하고 무력화시키려는 세력의 음모론의 일부일 가능성이 높다.

 

헌법에는 개인이 가지는 침해될 수 없는 기본적 인권이 국가의 존재이유임이 선언되어 있다. 법 앞의 평등, 신체의 자유,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재산권은 물론이고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 근로의 권리, 근로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 등 인간의 존엄을 구현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필요한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 이와 같은 추상적인 자유와 권리가 공염불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예시했던 다양한 헌법상의 자유와 권리는 일상생활을 규율하는 법률체계의 토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시민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헌법이 밥 먹여 주나?”라는 힐난에도 불구하고 헌법의 기본적 인권이나 원리를 내세워 밥으로 상징되는 민생이나 경제관계가 일반 시민이 인간의 존엄을 향유하면서 일상을 꾸릴 수 있는 중요한 보루가 된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따른 시장경제질서를 추구하는 경제질서의 핵심을 이루는 재산권의 경우를 보자. 헌법은 원칙적으로 아무 부대조건 없이 자연적 권리로 누리는 다른 자유권과는 달리 재산권의 경우 자연적 권리가 아니라 그 내용과 한계를 법률로 정하는 조건부 권리임을 명문으로 선언하고 있다(23조 제1). 나아가 이런 조건부 권리마저도 그 행사에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행사하여야 하는 헌법적 의무가 부과된다. 한편 공공필요가 있다면 재산권을 박탈하는 수용도 법률에 근거하여 정당한 보상만 한다면 허용된다.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기 위한 토지거래허가제나 주택임대차보호제를 비롯한 토지공개념에 입각한 법제나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인간의 존엄을 기준으로 설정하는 법제, 사립학교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법제, 경제력의 집중과 남용을 규제하는 법제, 국가의 균형발전을 위해 수도권집중을 규제하는 법제, 수익 대비 조세부담을 증가시키는 누진세제 등이 모두 이러한 재산권의 조건부적 성격과 공공복리 적합의무에 따라 헌법적 근거를 가지는 것이다. 흔히들 재산권을 규제하는 법률을 두고 자본주의의 원론을 내세우면서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라는 색깔론을 덧씌워 헌법 위반이라고 목청을 높이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 헌법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억지주장에 불과할 때가 많다.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의 소위를 겨우 통과한 노란봉투법도 헌법상의 기본권을 통해 근로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보장하기 위한 정당성을 가진다. 하청근로자의 원청사용자에 대한 근로관계의 인정이나 헌법이 보장하는 쟁의권의 범위를 극도로 축소시키면서 그 부산물인 손해배상가압류를 오·남용하는 것은 공공복리와 헌법의 기본가치를 존중하는 범위에서 정당하게 보장될 수 있는 재산권을 비롯한 경제적 자유의 헌법적 위상에 비추어 적절히 법률적 조정을 받아야 한다.

 

헌법은 사용자와 같은 재산권이나 경제적 자유를 향유할 국민들과 인간의 존엄이 보장되는 근로관계를 실현한 근로자 사이의 법률관계를 공정하게 조정하는 중요한 지침과 기준을 설정하고 있다. 이럴진대 헌법이 밥 먹여 주나?”라고 쉽게 힐난할 수 있을까? 법률가가 밥벌레가 되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헌법도 그 진가를 제대로 알 때 우리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경향 : 2023.02.17.

 

 

우크라 전쟁 1, 한국전쟁 70‘21세기 애치슨 라인

16일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숨진 병사의 장례식을 마친 뒤 한 여성이 전사자들의 무덤 사이를 걸어오고 있다. 하르키우/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의 빼앗긴 들에 러시아의 봄 대공세가 다가오고 있다. 24일로 러시아가 침공한 지 1년이 되지만, 전쟁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선에 육군 병력의 97%를 투입해 인해전술로 밀어부치며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 우크라이나도 한뼘의 땅도 내주지 않겠다는 자세로 필사적으로 맞선다. 전선은 피와 고통이 가득한 교착 상태다.

 

1950년 한국전쟁에서 서울을 수복하고 압록강까지 나아갔던 한국과 유엔군이 중국군의 참전으로 다시 밀리면서 이후 양쪽이 휴전선 인근에서 고지전을 벌이며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던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다. 전쟁을 일으킨 북한 김일성은 1952년 무렵부터 전쟁을 끝내길 원했지만, 소련의 스탈린은 계속 싸우라며 종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스탈린은 유럽에서 미-소간 전쟁도 벌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고, 미국의 군사력을 한반도에서 최대한 소진시킴으로서 소련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195335일 스탈인이 숨진 이후에야 소련의 정책이 바뀌었고, 그해 727일 휴전협정이 맺어졌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속국화러시아 제국의 위대한 부흥을 시작하겠다는 야심으로 침공을 감행했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의 결사적 항전, 그리고 서방의 군사 지원에 밀려 예상 밖으로 고전하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인구 3, 경제 규모 9배의 핵강국 러시아에게 군사적으로 완승을 거두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국 한국전쟁처럼 우크라이나 땅이 분단된 채 휴전 또는 종전으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 한국전쟁 상황을 되돌아보면 이마저도 매우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도달할 수 있다.

 

한국전쟁에서 협상의 열쇠를 스탈린이 쥐고 있었다면, 이번에는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요한 열쇠를 들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나 중국 전략가들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최대한 힘을 소진하고, 러시아가 중국에 깊이 의존하게 만드는 것을 전략적 목표로 삼고 있을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중국은 미국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러시아와의 공조 전선을 유지하면서도, 중국 기업들이 제재에 저촉되어 서방 시장을 잃지 않도록 세심한 양면작전을 펴왔다. 러시아의 원유와 자원을 값싸게 구매해 이익을 챙기는 한편 러시아가 제재에서 버틸 수 있도록 했다. 스탈린이 유럽에서 벌어질 미-소 전쟁을 대비했던 것처럼, 시진핑 역시 대만해협에서 미-중 대결이 벌어질 경우를 염두에 두고 한수 한수 포석을 두고 있다. 중국 외교 사령탑인 왕이 공산당 정치국위원이 곧 러시아를 방문해 시진핑 주석의 러시아 방문 등을 논의한다. 러시아에 유일하게 실질적 영향력을 가진 중국은 어떻게 움직일까. -중 패권 경쟁, 대만 문제, 동아시아의 미래 질서와 긴밀하게 얽힌 강대국들 간의 복잡한 수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1953727일 판문점에서 열린 휴전협정 조인식. 유엔군 수석대표 윌리엄 해리슨 중장(왼쪽)과 공산군 수석대표 남일 대장이 서명하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떻게 마무리되느냐는 국제질서의 미래에도 중요한 함의를 가지게 된다. 결국 미··러 강대국 간의 거래와 타협이 최종 결정권을 가지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도 어느 시점에서는 고통스러운 선택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여기서 적어도 한국 진보의 입장은 우크라이나인들의 저항을 과소평가하고 러시아와 어서 타협하라는 주장만 앞세우는 것이어선 안된다. 강대국의 일방주의가 관철되지 않고 우크라이나인들의 주권과 자결권이 최대한 존중되도록 연대해야 한다. 강대국들이 팽창 논리로 나아갈 때마다 충돌의 단층선에서 어려움을 겪어온 한반도도 결국은 비슷한 처지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성균중국연구소가 주최한 우크라이나와 한반도에 대한 토론회에서 차태서 성균관대 교수는 현실주의 논리에 따르면, 미국은 충돌이 벌어질 때 어디까지 지키고 어디는 포기할 것인가를 선택하게 된다. ‘21세기 애치슨 라인은 어디에 그어지게 될까, 한반도, 대만, 우크라이나 등 강대국 세력의 접경지대에 있는 이들에게는 매우 두렵고, 중요한 문제가 된다고 했다.

 

세계는 제국들의 충돌과 약육강식 시대로 나아가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경제적으로도 중국-러시아와 미국 모두 진영화와 보호주의로 움직이면서, 수출주도형 한국 경제의 위기가 깊어지고 있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을 앞두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며 위협하고 있다. 모든 변수들이 한국에는 불리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백승욱 중앙대 교수는 계간지 <동향과 전망> 최신호에서 한국 사회가 삼중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는 한국 경제, 정치가 계속 잘 유지되고 전쟁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흔드는 질서의 변화, 둘째는 이 위기에 대처할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한국 정치의 위기, 셋째는 변화를 제대로 분석할 사상의 부재다. 정전 70년 만에 닥쳐온 복합 위기의 폭풍 앞에서, 색깔론과 증오에 빠진 정치, 상대 진영을 적대시하며 갈라선 사회만 보인다

박민희 논설위원 한겨레 : 2023.02.19.

 

 

.통일은 도둑처럼 오지 않는다

흡수통일이라는 흘러간 옛 노래를 들으니, 다시 적대의 시간이 왔음을 알겠다. 남북관계가 좋을 때는 교류와 협력을 말하고, 통일의 과정을 중시한다. 남북관계가 안 좋을 때는 반대로 통일의 결과를 앞세워 현재 정책의 실패를 감춘다. 특히 흡수통일론은 대북 적대 선언이다. 이명박 정부의 통일 항아리, 박근혜 정부의 통일준비위원회도둑처럼 올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윤석열 정부도 같은 길을 가고 있다. 과연 흡수통일이 가능할까?

 

독일 통일의 사례를 들어, 흡수통일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독일 통일에서 흡수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였다. 동방정책을 추진했던 사민당 정부나 통일의 과정을 주도했던 기민당 정부 모두 통일을 강조한 적이 없다. 1989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010월 통일 조약이 맺어지는 순간까지 서독 정부는 급작스러운 통일의 후유증을 완화할 수 있는 단계적인 통일 방안을 선호했다. 통일은 서독의 흡수 의지가 아니라, 동독 주민들의 민주적 투표 결과였다.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물리력으로 흡수하겠다는 것은 폭력이다. ‘평화적 흡수통일론이라는 의견도 있으나, 그 말은 뜨거운 얼음과 같은 형용모순이다. 흡수의 의도는 상대에게 위협이고, 적대적 의존의 명분이며, 결과적으로 권위적인 체제 유지의 기반을 제공한다. 흡수를 말할수록 통일은 멀어진다. 만약에 독일 통일 과정에서 서독이 흡수의 의도를 드러냈다면, 동독 주민들 역시 통일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 체제의 불안을 근거로 흡수의 가능성을 거론하는 의견도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변화하듯이, 북한의 권위적 정치체제도 변화할 수 있다. 다만 경제가 어려워서 정치가 무너진 사례는 드물다. 나아가 북한 정치의 변화와 흡수통일 사이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분단국가인 예멘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도 다른 쪽으로의 흡수로 이어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통일이 쿠데타 세력의 권력을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통일이 도둑처럼 온다면, 그것은 재앙이다. 흡수통일은 가장 비싼 통일비용이 드는 통일 방안이다. 일반적으로 통일비용이란 북한의 소득과 남한의 소득격차를 줄이기 위한 비용이다. 당연히 남북한의 소득격차가 클수록 통일비용이 많이 들고,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 통일비용을 줄이려면 단계적으로 협력의 수준을 높여서 소득격차를 줄이고, 통합의 기반을 넓혀가야 한다.

 

왜 젊은 세대가 통일을 반대할까? 통일이 가져올 이득이 아니라, 부담만 크게 보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통일을 유토피아로 상상했지만, 최근의 소설과 영화는 통일 이후를 부패와 폭력이 난무하는 디스토피아로 그린다. 통일을 서두르다, ‘국가 붕괴로 이어진 예멘의 사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예멘은 전쟁으로 통일을 했을 때,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원한과 복수가 반복되는, 통제할 수 없는 폭력의 세계는 분단보다 못한 비극이다.

 

통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이미 있다. 1989년 노태우 정부 때의 한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은 초당적 합의로 가능했다. 이후 지난 30여년의 세월 동안 약간의 변화는 있지만, 핵심 내용은 그대로다. 통일은 폭력이 아니라 평화적인 방식으로, 갑자기가 아니라 단계적으로, 그리고 상처를 덧내지 말고 상처를 치유하면서 추진해야 한다는 점이 국민적 합의다.

 

시대 변화를 고려하는 새로운 통일론이 필요하다. ‘중립화 통일론은 대한민국의 달라진 국력과 어울리지 않고, ‘두 개 국가론은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민족 담론으로는 젊은 세대를 설득하기 어렵고, 핵을 가진 북한과 남북 연합을 논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화해와 공존의 통일론이 필요하다. 통일은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다. 차이를 인정하고 공통점을 찾으며,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고,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것이 곧 통일이다.

남북통일 이전에, ‘우리 안의 통일도 중요하다. 대체로 흡수통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리 안에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한다.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상대를 인정하고, 제도 안에서 경쟁하며,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는 민주주의가 살아야, 흡수통일론이 강조하는 결과로서의 통일이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통일이 흔들리지 않고 전진할 수 있다. 통일은 도둑처럼 오지 않는다. 농부의 마음으로 땀을 흘려야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미래의 환상이 아니라, 남북관계의 현실을 극복하는 지혜다.

김연철 | 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 한겨레 : 2023.02.19.

 

 

불로소득자본주의와 은행 돈잔치

자산시장 특히 금융과 부동산시장의 규제 고삐가 잡혀 있는지 여하에 따라 경제가 굴러가는 모양새는 매우 다르다. 개발주의, 뉴딜, 사회민주주의 등 다양한 혼합경제의 성공 경험은 자산시장에 대한 나름의 통제 위에서 비로소 가능했다. 통제 고삐가 풀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산시장의 고삐가 잡혀 있을 때 생산-노동경제의 기본틀이 작동한다. 이윤이 지대보다 우위에 선다. 자본은 생산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능자본으로 운동하며 M-C-M가 기본공식이 된다. 자본과 노동은 갈등하면서도 소득을 이윤과 임금으로 나누어 갖는데 그 유형은 다양하다. 비용의 역설을 넘어 자본과 노동이 윈윈게임을 추구할 때 소득주도 성장체제가 나타난다. 반면에 자산시장 고삐가 풀리면 눌려 있던 소유적 자본이 깨어나 자산-부채경제(불로소득자본주의)가 발전한다. 자본은 생산적 가치창출에 집중하지 않고 생산외부에서 소유적 자본 또는 불로소득추구 자본으로 운동하면서 지대추출 또는 불로소득 취득에 몰두한다. 소유적 자본운동의 기본공식은 자산의 소유 및 통제에 기반한 M-A(자산)-MM -M(이자 낳는 자본)의 두 가지다. 이자 낳는 자본, 주식자본, 부동산자본, 지식자본, 플랫폼자본, 외주자본, 자연자본, 세습자본 등의 형태가 활개 친다. 이들은 각종 지대청구권 자체의 강화, 공동자산의 사유화(인클로저의 항구화), 독점적 시장지배, 세습화 등을 통해 지배력 강화를 도모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은행도 변질해 신용창조권을 기반으로 돈을 찍고 부동산담보대출 및 증권화 등을 통해 불로소득을 벌며 거품을 키운다.

 

소유적 자본과 생산적 자본의 관계에서 대립만 보는 것은 잘못이다. 주주와 경영자 동맹에 기반한 민중배제에서 보듯 그들은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협력한다. 자산-부채경제와 생산-노동경제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 어떤 역사적, 국민적 다양성을 보이며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것이 기후생태위기와 함께 21세기 자본연구의 최전선이다. 자산시장의 판도라상자가 열리고 노동도 유연화되면서 사회적 약자들의 살림살이는 부채인간, 세입인간, 반지하인간, 배달인간, 불안정노동인간, 흙수저인생 등의 사슬에 묶인 채 불로소득자본주의의 쓴맛을 보게 된다.

 

저금리-부동산 자산인플레를 구가하던 자산-부채경제의 모순 때문에 부동산경기가 침체되고 고금리시대가 도래하면서 불로소득자본주의 성격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한국에서 특히 이자 낳는 은행자본이 돈방석에 앉았다. 서민, 자영업자, 소상공인, 청년, 취약 중산층들이 고금리로 고통받는 반면 거대 과점은행들이 그들끼리 돈잔치를 벌이고 있는데 이는 약자의 희생 위에 자산계급이 횡재를 챙기는 윤석열판 불로소득-특권자본주의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4대 금융지주는 주로 이자장사로 사상 최대 순이익(16조원)을 거두고 배당금과 성과급으로 뿌렸다. 고금리시대에 편승하면서 예금금리는 통제하는 예대마진전략으로 엄청난 이자수익을 올렸는데 영업이익 대비 이자이익 비율이 90%를 넘는다. 반면 3040대출자는 빚 갚는 데 소득의 40% 이상을 쓴다. 나아가 은행공공성이 붕괴되고 자산불평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제도금융권에서 밀려난 수많은 금융배제자들이 고통받고 있다. 그런데 외국인주주에 25000억원의 배당(전체 배당의 63%)이 빠져 나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4대은행의 외국인지분율은 매우 높다(KB국민 73%). 금융지주들은 총주주환원율(자사주매입포함)30%대까지 끌어올렸는데 이는 외국인펀드의 요구에 충실히 부응한 것이다. 외자와 4대은행 내부자들이 손잡고 돈잔치를 했다는 말이다.

 

은행공공성이 무너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회보호와 건설적 갈등조정을 위해 큰 정부의 책임이 막중하고 새롭게 정책역전(긴축통화정책과 확장재정의 결합)도 일어나고 있는 대전환기에 윤석열 정부가 공공적 책임을 방기하고 시대착오적 줄푸세역주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의 기본 인식이자 정책방향은 문재인 정부가 공공성을 강조하고 과도하게 규제했다면서 낡은 규제를 깨고 금리·배당 등 가격변수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그래 놓고 은행 돈잔치를 비판하고 은행이 공공재라고 하니 어리둥절하다. 신년사에 기득권유지와 지대추구에 매몰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었다. 이 정부야말로 미래가 없는 짓을 하고 있지 않나? 엉뚱한 데 화살을 겨누지 말자. ‘국방보다 더 중요한 은행공공재를 가지고 외자와 경영자들이 돈잔치 하고 있는데 미봉책으로 되겠는가.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경향 2023.02.20.

 

 

북한 왜 이럴까? 답은 한미에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맞대응이 필수는 아냐

오해는 없길 바란다. 필자 역시 북한의 도발적인 언행을 매우 유감스럽고 위험하게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글을 쓴다. 북한의 도발적인 언행의 배경과 의도에 대한 국내외의 아전인수식 해석이 악순환의 골을 더더욱 깊이 파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상당수 언론과 전문가들도 북한이 미사일을 쏘는 등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배경과 원인으로 북한의 경제난을 뽑는다. 일종의 삼단 논법이다. '식량난을 비롯한 경제난의 심화에 따른 민심 이반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려고 일부러 군사적 긴장 고조미국을 압박해 제재 완화 받아내기'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할 부분도 넘쳐난다. 우선 북한의 경제 사정이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 또 제재를 "자력갱생""자급자족"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 삼겠다고 발표한 지도 2년 넘게 지났고, 성과가 나오고 있다는 북한의 자평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위의 3단 논법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북한의 경제 사정이 체제 불안 요인이 될 만큼 악화되고 있다면, 북한 정권은 그 책임을 제재 등 외부 탓으로 돌리면서 내부적으로 이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2020년 이후 제재를 탓하는 주장도 거의 사라졌고, <로동신문> 등 북한 '내부' 매체에서 외부를 비난하는 보도도 확연히 줄어들고 있다. 대신 북한 주민이 접하기 어려운 '대외' 매체를 통해 대미·대남 비난을 이어가고 있다.

 

또 미국의 관심을 끌어내 제재 완화를 받아내려는 것이 도발적인 언행의 목표라면, '필요조건'은 이미 나온 상황이다. 미국은 지속해서 "조건 없이 모든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며 북한에 대화를 제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은 2019년 연말 이후 대화의 문을 3년 넘게 굳게 닫아 걸고 있다. "적대시정책"이 철회되지 않으면 대화에 나설 뜻이 없다면서 말이다.

 

그럼 북한은 왜 이렇게 나오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변은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상당 부분 찾을 수 있다. 미국은 왜 한반도에 전략자산을 전개하고 한미, 혹은 한미일은 연합훈련의 수위를 높이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점증하는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하고 억제가 실패하면 압도적인 대응으로 북한 정권을 끝장내겠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한미일의 군사적 위협을 억제하고 억제 실패 시 핵무기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한미의 군사 행동과 북한의 군사 행동 사이에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이 말로는 비난하고 위협하면서 실제 군사 행동은 자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과거의 북한이다. 핵무력 강화와 발사 수단의 다종화를 통해 '힘의 균형'을 이뤄냈다고 판단한 북한은 작년 9월부터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맞대응을 경고했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매우 유감스럽고 위험하지만, 이게 달라진 북한의 실체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한미의 군사 행동에 대해 북한의 맞대응이 필수는 아니다. 그건 북한이 선택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같은 군사 행동에 한미가 또다시 군사적으로 맞대응하는 것이 필수는 아니다.

 

한미가 군사적인 힘으로 북한을 누르려고 할수록 북한은 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무엇보다도 전쟁 위기까지 초래할 수 있는 위기상황을 예방하려면, 한미가 자제를 선택할 줄도 알아야 한다. 북한이 아무리 우겨도 한미가 압도적인 힘의 우위에 있기에 하는 말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 프레시안 2023.02.20.

 

 

검찰의 ''이재명 4895억 배임', 수사가 사람을 따라가고 있다

검찰의 대장동 사건 영장 청구, 최소한 배임죄는 부적절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영장청구서에 여러 혐의가 적시되어 있지만, 무엇보다 배임액 4895억 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상상할 수도 없는 금액이 대부분의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든다.

 

가장 논란이 됐던 대장동 개발에 대해 언론에 도배됐던 뇌물부분은 사라지고, 검찰은 업무상 배임죄로 판단했다. 이 대표가 금전적 대가를 받았다는 것이 입증이 어려워 적용 법조를 업무상 배임죄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러 논란거리가 있지만 여기서는 배임부분에 한정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검찰의 주장은 전체 개발로 성남도시개발공사(이하 성남도개공)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이 6725억 원이고, 그 중 1830억 원만 확정이익으로 가져와 성남도개공에 4895억 원의 손해를 가하고 이것을 민간이 가져가도록 했으며 이 부분이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언론과 논객들도 액수에 집중하고 있지만, 이미 이 대표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에서 법원은 성남도개공이 환수한 액수가 5503억 원 이라고 판시했다. 검찰이 보도자료까지 언론에 배포한 목적은 이룬 듯하다.

 

국민들은 검찰의 주장을 언론을 통해 접하면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검찰의 주장은 소송에서 확정되기 전에는 소송의 일방당사자의 주장에 불과하다. 이에 반하는 검찰의 이득액 산정은 그 근거가 의심스럽다. 업무상배임죄의 이득액이 50억 이상이면 무기징역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더 중요한 문제는 '배임죄가 성립할 수 있는가' 이다.

 

배임죄는 법률가들에게도 판단이 어려운 죄다. 설령 검찰의 주장대로 판단의 잘못으로 성남도개공에 4895억 원의 손해를 입혔다고 하더라도 바로 배임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경영상의 결정은 원천적으로 위험이 내재하여 있어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더라도 예측이 빗나가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러한 경우에까지 업무상배임죄의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일관된 입장이다.

 

그래서 배임죄가 성립하려면 우선 임무위배에 해당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후에 결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 당시를 기준으로 한다는 점이다. 결정 당시 수집할 수 있는 정보의 범위 안에서 결정의 합리성이 인정되면 임무위배로 볼 수 없고, 배임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대장동 개발은 이 대표가 시장시절 지방채발행을 통해 공공개발로 추진하려다 시의회의 반대로 민관공동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한국경제조사연구원은 이 사업에 대해 '1조 원 투입, 사업기간 8년 동안 3100억 원 수익'이라는 예상치를 제시했다. 부동산 불황기로 성남시의회는 이 개발사업의 수익성을 3000억 원도 무리라고 보고 공공개발을 강하게 반대했었다. 행정안전부도 지방채발행 심사도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자금조달을 민간에게 부담시키는 민관합동개발로 추진됐다. 2015년 성남도개공과 민간사업자는 자본금 50억 원의 특수목적법인(SPC)'성남의뜰'을 설립했다. 성남도개공은 지분율 50%+1, 나머지 지분은 민간사업자가 나누어 갖는 방식이었다. 민간사업자는 모든 사업비를 부담했다.

 

당시 추정한 배당이익은 3595억 원이고, 여기서 성남도개공이 1822억 원을 가져가고, 공원조성사업비 2561억 원을 더하면 전체 6156억 원 중에 4383억 원을 성남도개공이 가져가는 것이었다. 성남도개공은 확정수익을 선택하고 초과수익이 발생하면 포기한 것이다. 만약 4383억 원 이하로 수익이 나는 경우 민간사업자는 손실을 보고, 반대로 초과수익이 발생하면 모두 민간으로 돌아가는 구조다.

 

당시 부동산의 가격이 오를지 내릴지를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지분 이상의 확정수익(대략 추정수익의 71%)을 보장하는 우선주를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확정수익 없이 지분비율에 따른 수익을 주는 보통주를 선택할 것인지는 대법원이 말하는 경영상 결정의 기본사례다.

 

이 판단이 배임죄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결정 당시 우선주 선택이 보통주 선택보다 불리하다는 점을 이 대표가 알고 있었어야 한다. 즉 합리적인 정보에 따라 부동산가격이 폭등할 것을 알고 있었어야 한다. 검찰은 최소한 이 대표가 불합리한 결정을 해야 할 이유라도 증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민간사업자가 많은 수익을 가져가도 배임죄는 성립할 수 없다.

 

검찰이 이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최소한 대장동 사건에 대한 영장청구사유로 배임죄는 부적절하다. 객관의무를 지는 검찰의 수사가 공정한지를 판단하는 아주 쉬운 방법이 있다. 수사대상이 사람인지 행위인지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사람을 따라가는지 증거를 따라가는지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이루어지는 이 대표에 대한 수사가 사람을 따라가고 있다는 의심을 필자만 가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석배 단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 프레시안 2023.02.20.

 

불로소득자본주의와 은행 돈잔치

자산시장 특히 금융과 부동산시장의 규제 고삐가 잡혀 있는지 여하에 따라 경제가 굴러가는 모양새는 매우 다르다. 개발주의, 뉴딜, 사회민주주의 등 다양한 혼합경제의 성공 경험은 자산시장에 대한 나름의 통제 위에서 비로소 가능했다. 통제 고삐가 풀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산시장의 고삐가 잡혀 있을 때 생산-노동경제의 기본틀이 작동한다. 이윤이 지대보다 우위에 선다. 자본은 생산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능자본으로 운동하며 M-C-M가 기본공식이 된다. 자본과 노동은 갈등하면서도 소득을 이윤과 임금으로 나누어 갖는데 그 유형은 다양하다. 비용의 역설을 넘어 자본과 노동이 윈윈게임을 추구할 때 소득주도 성장체제가 나타난다. 반면에 자산시장 고삐가 풀리면 눌려 있던 소유적 자본이 깨어나 자산-부채경제(불로소득자본주의)가 발전한다. 자본은 생산적 가치창출에 집중하지 않고 생산외부에서 소유적 자본 또는 불로소득추구 자본으로 운동하면서 지대추출 또는 불로소득 취득에 몰두한다. 소유적 자본운동의 기본공식은 자산의 소유 및 통제에 기반한 M-A(자산)-MM -M(이자 낳는 자본)의 두 가지다. 이자 낳는 자본, 주식자본, 부동산자본, 지식자본, 플랫폼자본, 외주자본, 자연자본, 세습자본 등의 형태가 활개 친다. 이들은 각종 지대청구권 자체의 강화, 공동자산의 사유화(인클로저의 항구화), 독점적 시장지배, 세습화 등을 통해 지배력 강화를 도모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은행도 변질해 신용창조권을 기반으로 돈을 찍고 부동산담보대출 및 증권화 등을 통해 불로소득을 벌며 거품을 키운다.

 

소유적 자본과 생산적 자본의 관계에서 대립만 보는 것은 잘못이다. 주주와 경영자 동맹에 기반한 민중배제에서 보듯 그들은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협력한다. 자산-부채경제와 생산-노동경제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 어떤 역사적, 국민적 다양성을 보이며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것이 기후생태위기와 함께 21세기 자본연구의 최전선이다. 자산시장의 판도라상자가 열리고 노동도 유연화되면서 사회적 약자들의 살림살이는 부채인간, 세입인간, 반지하인간, 배달인간, 불안정노동인간, 흙수저인생 등의 사슬에 묶인 채 불로소득자본주의의 쓴맛을 보게 된다.

 

저금리-부동산 자산인플레를 구가하던 자산-부채경제의 모순 때문에 부동산경기가 침체되고 고금리시대가 도래하면서 불로소득자본주의 성격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한국에서 특히 이자 낳는 은행자본이 돈방석에 앉았다. 서민, 자영업자, 소상공인, 청년, 취약 중산층들이 고금리로 고통받는 반면 거대 과점은행들이 그들끼리 돈잔치를 벌이고 있는데 이는 약자의 희생 위에 자산계급이 횡재를 챙기는 윤석열판 불로소득-특권자본주의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4대 금융지주는 주로 이자장사로 사상 최대 순이익(16조원)을 거두고 배당금과 성과급으로 뿌렸다. 고금리시대에 편승하면서 예금금리는 통제하는 예대마진전략으로 엄청난 이자수익을 올렸는데 영업이익 대비 이자이익 비율이 90%를 넘는다. 반면 3040대출자는 빚 갚는 데 소득의 40% 이상을 쓴다. 나아가 은행공공성이 붕괴되고 자산불평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제도금융권에서 밀려난 수많은 금융배제자들이 고통받고 있다. 그런데 외국인주주에 25000억원의 배당(전체 배당의 63%)이 빠져 나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4대은행의 외국인지분율은 매우 높다(KB국민 73%). 금융지주들은 총주주환원율(자사주매입포함)30%대까지 끌어올렸는데 이는 외국인펀드의 요구에 충실히 부응한 것이다. 외자와 4대은행 내부자들이 손잡고 돈잔치를 했다는 말이다.

 

은행공공성이 무너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회보호와 건설적 갈등조정을 위해 큰 정부의 책임이 막중하고 새롭게 정책역전(긴축통화정책과 확장재정의 결합)도 일어나고 있는 대전환기에 윤석열 정부가 공공적 책임을 방기하고 시대착오적 줄푸세역주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의 기본 인식이자 정책방향은 문재인 정부가 공공성을 강조하고 과도하게 규제했다면서 낡은 규제를 깨고 금리·배당 등 가격변수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그래 놓고 은행 돈잔치를 비판하고 은행이 공공재라고 하니 어리둥절하다. 신년사에 기득권유지와 지대추구에 매몰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었다. 이 정부야말로 미래가 없는 짓을 하고 있지 않나? 엉뚱한 데 화살을 겨누지 말자. ‘국방보다 더 중요한 은행공공재를 가지고 외자와 경영자들이 돈잔치 하고 있는데 미봉책으로 되겠는가.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 경향 2023.02.20.

 

 

빈곤과 불평등 없는 세상 향한, 기억과 행동

지난 1월 성남에서 모녀의 주검이 발견됐다. 옷 장사를 하던 딸과 함께 살던 어머니의 삶이 추락하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19로 장사가 순탄치 않을 때부터였다고 이웃들은 추정한다. 마스크를 벗는 것으로 코로나19가 종료된 것 같은 지금도 감염병이 초래한 청구서는 누군가의 삶에 새로운 무게를 더하고 있다.

 

이들의 죽음을 두고 정부는 찾아가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 강화를 다시 언급하고 있다. 성남 모녀뿐만 아니라 신촌 모녀, 수원 세 모녀 등 가난한 이들의 죽음마다 왜 발굴하지 못했냐는 질문이 쏟아지고, 정부는 더 열심히 발굴하겠다답했다. 개인정보를 모아 빈곤층을 발굴하겠다는 계획은 9년 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제정된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에 뿌리를 두고 있다. 23종의 정보를 수합하는 것으로 시작한 사각지대 발굴 온라인 정보망은 현재 39, 향후 44종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민감한 정보를 한군데 모아두는 것은 언제나 유출의 위험을 동반하지만 사각지대 발굴이라는 미명은 이에 대한 비판을 어렵게 만들었다. 더불어 이 대책들은 발굴되더라도 사회보장제도가 미비해 실제 지원받을 방도가 없다는 사실이나 단순한 체납정보의 합이 누구에게 어떤 지원이 얼마나 필요한지 분별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현실을 감춘다. 이는 실제 필요한 제도변화에 대한 관심과 요구를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

 

발굴의 효과도 의심스럽다. 2021년 사각지대로 발굴된 고위험군 대상자는 1339000명인데 반해 이들 중 공적서비스로 연결된 이들은 165000,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빈곤층 사회보장제도인 기초생활보장제도로 연결된 대상자는 28000명으로 대상자 중 단 4%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반빈곤, 복지운동 단체들은 발굴하더라도 지원할 수 없는 제도가 문제라고 지적해왔지만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주자만 바꿔 같은 코스를 뛰는 릴레이 경기처럼 왜 발굴하지 못했나’ ‘더 열심히 발굴하겠다는 우문과 우답을 맴맴 돌고 있다.

 

한국 사회 빈곤은 왜 가난한 이들의 죽음으로 표상되는가. 가난한 이들이 겪는 삶의 위기를 사회의 위기로 인식하지 않는 탓이다. 가난한 이들의 삶에 밀려오는 무수한 어려움을 사회의 주제로 다루지 않다가 죽음 이후에야 돌아보기를 반복하지 말자. 발굴이 아니라 빈곤과 불평등을 주조하는 현실을 주목하고, 우리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

 

다음주면 송파 세 모녀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 지 9주기를 맞는다. 송파 세 모녀와 가난 때문에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리며 사회단체들은 오는 24일 추모제를 연다. 추모제지만 떠난 이들과 같은 현실을 사는 이들이 모여 말하는 자리기도 하다. 우리가 듣고 응답해야 하는 목소리가 여기에 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 경향 2023.02.20.

 

 

말뿐인 정부의 체계적 관리

올해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인 노동자의 숫자가 약 11만명이다. 역대 가장 큰 규모이고, 69000명 수준이었던 작년과 비교해도 2배 가까이 늘어난 숫자다. 코로나19 이후 늘어난 한국 사회의 외국인력 수요를 고려한 것이지만, 이렇게 도입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관리와 처우보장도 중요하다. 얼마 전 고용노동부는 고용허가제의 개선 방향을 지적하는 언론보도에 대해 해명하면서 고용허가제는 외국인력(E-9) 활용의 모든 과정을 공공부문이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간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외국인력을 도입하는 제도와 비교하면서 고용허가제는 중앙정부 간 MOU 방식을 통해 외국인 구직자 선발, 입국에서 사업장 배치 및 체류지원, 귀국까지 일련의 과정을 공공부문(지방고용노동관서 및 산업인력공단, 송출국 공공기관)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고용허가제 주무부처의 공식적 입장이라고 하기에는 현실과의 괴리감이 너무 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다.

 

고용허가제는 사업주에게 외국인 노동자의 고용을 허가하는 제도이므로 외국인 노동자는 처음부터 자발적인 구직활동을 전혀 할 수 없다. 노동부가 제공하는 사업장 정보에 의존하여 취업을 지원하고, 회사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겠다고 하면 한국에 입국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자리를 독점적으로 소개하는 노동부가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일이 무엇일까? 간단하다. 외국인 노동자도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소개하면 된다. 외국에서 삶터를 옮겨 와야 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숙소는 잘 갖추어져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 월급과 퇴직금을 도둑맞지 않고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사업장인지 확인해야 한다. 월급을 떼먹는 사업장은 동네 직업소개소에서 아르바이트를 소개할 때도 걸러주는 것이 예의다. 노동부에서 소개한 사업장 정보만 믿고 외국인 노동자가 취업을 하기 때문에 사업주가 제공한 정보에 거짓 정보는 없는지 상황을 점검해야 한다. 점검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사업주에게 신속한 개선과 불이익한 조치를 취하고,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빠른 시간 내 새로운 일자리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내에서 정해진 기간 동안 일할 수 있도록 했다면, 최소한 그 기간 동안 외국인 노동자의 잘못이 아닌 공공기관의 잘못으로 일을 못했다면, 휴업급여를 지급해 소득을 보전해주어야 한다. 이 정도는 해야 체계적으로 관리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2020년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노동자가 사망했다. 근로복지공단은 노동자의 사망이 업무와 관련된 산재로 판단했다. 여주의 농장에서 일하던 캄보디아 노동자는 310개월 동안 일하고 월급과 퇴직금 3300만원을 받지 못했는데, 결국 돈을 받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소송을 하는 동안 한국에 있으면서 일을 하면 불법체류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 순간에도 노동부는 건강보험과 임금체불 대지급금 제도조차 적용되지 않는 영세한 개인사업자에게 외국인 노동자의 고용을 허가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국내 유입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지금 노동부가 정말 제대로 된 체계적 관리를 해주기를 바란다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 경향 2023.02.20.

 

 

용산 대통령실에서 다음 소희를 상영하라

윤석열 정부의 엠제트(MZ)세대 사랑이 요즘 각별하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우리 노동시장이 여전히 후진적 모습에 머물러 있다며 그 피해는 미래세대와 노동시장의 약자에게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뜨거운 사랑을 보내는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다. 두달 전 영빈관에 200여명 청년을 초청해 미래세대가 이권 카르텔에 의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할까우려해 출마했다며 노동 개혁 지지를 당부했다. 역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들을 만나선 노-노 간 비대칭구조가 노동 개혁의 핵심이라며 이는 이중구조가 아니라 착취구조라고 일갈했다. 얼마 전 유튜브 쇼츠 윤석열 대통령의 단짠단짠-MZ 공무원과의 대화 비하인드 컷 공개를 보면, “산업 현장의 불법들이 판을 치게 놔두면 그게 정부고 국가인가” “노조 채용 장사를 국가가 놔둬도 되는 것인가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

 

노동계의 투쟁에 늘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단호한 모습도 한두번이지, 노조가 기업보다 힘이 큰 양 하루가 멀다 성내는 모습은 의아하다.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대통령이 말하는 미래세대가 누구인가라는 대목이다.

 

개봉 중인 영화 <다음 소희>는 엘지유플러스(LGU+) 고객센터 위탁업체인 엘비(LB)휴넷의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다 20171월 저수지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전주의 특성화고 3학년 홍수연양 실화가 모티브다. 서울의 내가 그 사건을 인지했던 건 그해 3월 이후였던 것 같다. 탄핵의 촛불이 전국을 덮었던 때이기도 하지만, 회사, 학교, 노동청, 교육청, 경찰, 어느 한곳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학교·회사·홍양이 맺은 현장실습계약과 회사에서 홍양에게 건넨 근로계약서는 급여도, 하루 노동시간도 달랐다. 2011년 자동차 공장에서 주 70시간 가까이 일하던 현장실습생이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야근과 8시간 이상 근로 등이 금지됐지만, 홍양은 콜 수를 못 채우거나 과책을 이유로 저녁까지 남아 있는 날이 많았다.

 

대통령실은 유튜브 쇼츠 영상을 공개하며 이날 대화에 엠제트(MZ) 공무원이 절반이 넘었다고 강조했다. 유튜브 갈무리

 

영화 속 소희가 일하는 곳의 풍경은 공식 종사자 40만명, 비공식적으론 200만명까지 추산되는 전국 콜센터의 현실이다. 서울 구로의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 산재한 콜센터를 연구한 인류학자 김관욱은 <사람입니다, 고객님>에서 감정노동이란 단어만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그곳의 삶을 보여주며 과거의 공순이가 현재의 콜순이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화장실 가기는 단 1명씩만 허용돼, 수치심을 무릅쓰고 메신저 방에 이라고 써서 의사를 밝히거나 사무실 벽에 걸린 부채를 잽싸게 일어나 쥐어야 갈 수 있는 곳도 있다. 영화에서 소희가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오후 햇살에 끌리듯 가게를 나와 저수지에 이르는 모습은 이 책 가운데 한 여성노동자의 말을 떠올리게 했다. “이 콜센터는 햇빛이 없는데도 블라인드를 내려요. 콜만 열심히 받으면 되지 창밖을 볼 필요 없다는 거예요.”

 

오늘의 현장실습생이 내일의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고 있다. 2009년 설립된 엘비휴넷에 20169월 입사한 홍양은 212기였다. 2주마다 사람들을 뽑은 꼴이다. 2016년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도어 유지보수를 하다 숨졌던 김군도 현장실습생 형태로 은성피에스디(PSD)에 입사했다. 원청의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하청업체에 현장실습생은 갈아 끼우면 되는 값싼 부품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런 그들에게 손을 내민 건 누구였나. 영화에선 배두나가 맡은 경찰이지만, 현실에서 파묻힐 뻔한 홍양의 사건을 공론화한 건 몇몇 언론사 기자들과 지역 시민·노동단체 그리고 민주노총 전북본부 같은 노조였다. 2020년 구로의 한 외국계 보험회사 하청 콜센터가 코로나 집단감염 원흉처럼 찍혔을 때, 그들의 실태를 알리고 지원한 건 원청 회사의 노조였다.

정부는 연일 노조 회계 투명성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을 계기로 기업들의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2018년부터 시행된 개정 외부감사법을 완화하려 하고 있다. 기업들이 회계법인을 자유선임하는 기간을 현행 6년에서 9년으로 늘리거나, 지정감사를 받는 기간을 3년에서 2년으로 줄이자는 안이 금융위원회 연구용역 결과 발표됐다. 기업 비용이 가중된다는 이유다.

 

이렇게 기업 비용을 걱정하는 정부에서 설사 정규직 노조가 이기주의를 내려놓더라도 그 비용이 하청업체나 중소기업으로 제대로 흐를까. 윤 대통령이 진심으로 미래세대를 걱정한다면 대기업의 비용 후려치기부터 경고하는 게 순리다. 하나 더, 대통령의 진심을 보이는 방법이 있다. 용산 대통령실에서 <다음 소희>를 상영하시라. 이 영화를 보고 청년노동자들과 유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시라. 기우겠지만, 극장에서 김건희 여사와 팝콘을 나눠 먹던 사진 같은 이벤트는 없어야 한다.

김영희 | 편집인 | 한겨레 2023.02.20.

 

 

불체포특권에 관한 헛소리

정의당과 민주당 소신파에게 물어보고 싶은 몇 가지

대한민국 헌법 제44조는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명시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현행범인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 국회의원이 회기 전에 체포 또는 구금된 때에는 현행범인이 아닌 한 국회의 요구가 있으면 회기 중 석방된다.” 헌법 제45조는 국회의원에게 면책특권도 부여했다.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 다수의 국회의원이 동의할 경우, 그리고 현행범이 아닌 한, 국회의원은 국회가 열려 있는 동안에는 언제든지 국회에 나와 무슨 말이든 소신껏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독재자들이 여러 차례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반민주적 헌법 개정을 해치웠지만 제헌헌법이 규정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 조항만큼은 손을 대지 않았다.

 

부당한 특권인가?

현역 국회의원을 국회 회기 중에 구속하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1)검찰은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한다. (2)법원은 영장을 심사하기에 앞서 정부에 체포동의요구서를 낸다. (3)정부는 법원의 체포동의요구서를 국회에 보낸다. (4)국회는 체포동의안을 본회의에서 의결한다. 의결 요건은 과반수 출석 과반수 찬성이며 방법은 무기명 비밀투표다. (5)법원은 국회가 체포동의안을 부결하면 구속영장을 기각하고, 국회가 가결한 경우에는 일반적인 절차에 따라 심사해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하거나 구속영장을 발부한다.

 

국회의원 이재명 체포동의안은 단계(4)에 와 있다. 국회가 체포동의안을 가결하고, 영장전담 판사가 구속 필요성을 인정할 경우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구치소에 들어가야 한다.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 인사들은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에게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라고 소리 지른다. 정의당도 여기에 가세했다. 예의 민주당 소신파가 빠질 리 있겠는가. 익숙한 이름들이 이재명 대표를 비난하거나 훈계하면서 영장 실질심사를 받으라고 말한다. 신문과 방송을 불문하고 기자들은 대부분 사실상 정부 여당을 편드는 검찰발 소설을 기사 형식으로 쏟아내면서 이재명을 비난하는 민주당 정치인의 입에 확성기를 댄다. 모두가 익히 보던 풍경이다.

 

나는 국회의원이 헌법의 취지와 달리 불체포특권을 개인비리 방탄용으로 쓰는 경우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불체포특권이 존재 가치가 없을 만큼 불합리하고 부당한 특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은 17세기 초 영국 의회가 처음 만들었다. 엘리자베스 1세의 왕위를 물려받은 제임스 1세가 왕권신수설을 내세우며 왕권 강화에 반대하는 의원들을 마구잡이 잡아 가두었을 때 의회가 왕의 사법권 남용을 막으려고 정부가 마음대로 의원을 체포할 수 없게 하는 법을 제정했다.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은 미합중국 헌법을 거쳐 민주주의 국가에 널리 받아들여졌다.

 

불체포특권은 집행권을 가진 행정부의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 대의기관인 입법부를 보호하려고 만든 제도다. 만약 대통령과 합법적 강제력을 행사하는 법무부행안부 장관 등이 권력을 남용할 위험이 전혀 없다면 이런 제도는 없어도 된다. 그러나 문명의 역사는 권력을 독점하고 오남용하는 성향이 인간 본성의 일부임을 증명했다. 이 성향은 이념의 좌우와 지식의 다과(多寡)를 가리지 않으며 남녀와 노소도 구분하지 않는다. 만약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를 만하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그가 앞으로 우리 국민이 선출할 대통령과 그 대통령이 임명할 법무부장관 역시 같은 반열의 인간일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렇다면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없애자고 주장해도 된다. 그런데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정치인과 언론인 중에 그런 믿음을 근거로 내세우는 경우는 여태 목격하지 못했다. 왜 말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 말하면 대통령이 좋아할 텐데.

 

이재명의 죄?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폐지하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과 정의당과 몇몇 민주당 정치인은 이재명 스스로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라고 요구한다. 대통령과 법무부장관과 여당 국회의원들이 그러는 이유는 누구나 안다. 그들은 정치인 이재명을 제거하고 싶다. 대통령의 뜻을 받드는 검사들은 영장전담 판사들을 다 안다. 대학교 선후배, 고시학원 동료, 연수원 동기 등의 인연으로 서로서로 얽혀 있다. 구속영장을 내줄 가능성이 제일 높은 판사가 이재명 구속영장 심사를 맡을 수 있도록 영장 청구 일정을 맞추면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일단 구속영장만 나오면 만사형통이다. 사실이든 조작한 것이든 수사정보 형태로 흘려보내면 언론이 알아서 보도한다. 여론재판에서 이길 수 있다. 재판 결과야 어찌 되든 상관없다. 이재명을 정치무대에서 끌어내리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무슨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사실과 논리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나 정의당과 민주당 소신파에게는 물어보고 싶은 게 몇 가지 있다. 첫째,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의 무한 수사와 구속영장 청구는 검찰 수사권의 합당한 행사인가, 아니면 정치인 이재명을 제거하기 위한 검찰 수사권의 오남용인가? 만약 수사권의 합당한 행사라고 생각한다면 그 판단과 이유를 분명하게 밝히시라. 나는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사권의 오남용이라고 본다. 그래서 민주당이 체포동의안을 부결하는 것은 헌법 제44조의 취지에 정확하게 부합한다고 판단한다. 이 두 판단 사이에는 중간지대가 없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신중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이재명 대표더러는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만 보면 정신 나간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를 위해 준비되어 있다는 단테의 말을 굳이 적용하진 않겠다.

 

둘째, 이재명의 죄는 무엇인가? 언론에 나온 내용만 보면 성남시장으로서 성남시와 성남시민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한 방식으로 공무를 수행한 것이 죄다. 그가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냈다는 게 아니다. 행정에는 오판이 따르게 마련이고 판단이 옳았어도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이재명이 성남시장의 권한을 이용해 사적 이익을 도모하지 않았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대장동 개발과 성남FC 운영은 공적 업무였다. 시장으로서 시정 운영을 얼마나 잘했는지는 정치적 평가의 대상이지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아니다. 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에서 대법원이 사실로 인정한 것까지 부정한 검찰의 주장이 다 사실이라 가정해도, 100의 성과를 낼 수 있는데도 50밖에 내지 못했으니 감옥에 보내야 한다는 논리는 헌법과 상식에 반한다. 그게 형법상의 범죄를 구성한다면 지방정부 책임자 누구든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다 감옥에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군말 없이 판사한테 가서 영장 실질심사를 받으라고?

 

이 점과 관련해서는 특히 정의당 국회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정의당은 법정에서 부당한 실형선고를 받은 적이 있는 당원과 국회의원과 당직자가 많은 정당이 아닌가. 그대들은 이젠 검사와 판사들이 올바르게 법을 집행하고 적용한다고 믿는가? 도대체 판사를 얼마나 굳게 신뢰하기에, 이재명 대표더러 검찰수사권을 동원해서 정부 여당이 가한 정치적 공격에 대해 헌법이 부여한 제도적 방어수단으로 맞서는 것을 포기하고 판사 한 사람한테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맡기라고 요구하는가?

 

대통령은 왜?

이재명 체포동의안은 부결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의당 의원 6명과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 등이 찬성하고 민주당 의원 수십 명이 찬성표를 던져야 가결될 수 있다. 이론상 불가능하진 않아도 확률은 극히 낮다. 국회 폐회 기간에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해도 잘 되지 않을 것이다. 영장 청구 절차 진행 중에 국회가 다시 열릴 수 있다. 만에 하나 일단 구속하는 데 성공한다 해도 민주당이 헌법 44조에 따라 석방요구안을 제출해 가결하면 다시 풀어주어야 한다.

 

그런데도 검찰이 왜 이토록 집요하게 이재명을 노리는가? 윤석열 대통령이 시켰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 그렇지 않다면 대통령실 인사가 영장 청구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공언하거나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이재명 대표를 범죄자로 간주하는 듯한 언사를 내뱉을 수 없다. 그러면 대통령은 왜 그러는 걸까? 본인이 말하지 않으니 우리가 추리할 수밖에 없다. 동기를 추정하는 가설이 둘 있는데, 어느 게 맞는지 나는 판단하지 못하겠다. 하나는 감정’, 다른 하나는 전략이다. 둘 모두 증명할 수는 없으니 이론이 아니라 가설이라 하자.

 

감정설은 단순하다. 대통령이 이재명을 싫어해서 감옥에 집어넣으라고 지시했고, 검사들은 결과적으로 지시를 이행하지 못해도 최선을 다했다는 인정은 받아야 하기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다. , 그런 가설이다. 이 가설의 최대 약점은 상식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일국의 대통령이 설마?’ 최소한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전략설은 조금 복잡하다. 대망류의 일본 대하소설이나 삼국지같은 중국 고대소설을 즐겨 읽은 사람들은 이 가설에 끌린다. 대통령이 이재명을 반드시 제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 당대표나 차기 대선후보 자리를 노리는 민주당의 야심가들이 희망을 품고 움직일 것이다. 그러면 무기명 비밀투표에서 대량의 찬성표가 나와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될 수도 있다. 민주당은 극심한 내부 분열의 늪에 빨려 들어간다. 잘만 하면 분당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체포동의안이 부결된다고 해도 적지 않는 민주당 반란표를 확인하면 이재명의 당내 권력 기반을 흔드는 효과가 난다. 사실의 근거가 있든 없든, 온갖 사건을 들추어 언론에 정보를 흘리고 구속영장 청구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이재명을 계속 흠집 내면서 내년까지 상황을 끌고 가면 국민이 넌덜머리가 나서라도 이재명이 대표로 있는 민주당을 찍지 않을 것이다. 그럴듯해 보이는 전략설의 최대약점은 경험과 충돌한다는 것이다. ‘설마! 우리 대통령이 그런 작전을 할 정도로 똑똑하다고?’ 윤석열 대통령을 주의 깊게 지켜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그렇게 반문할 것이다.

 

불가지론

나는 그 동안 윤석열 대통령을 이해해 보려고 무척 노력했다. 이젠 포기해야 하나 싶다. 소위 도어 스테핑을 그만두었고, 신년 기자회견도 하지 않았고, 이런저런 행사장에서 내놓는 별 뜻 없는 의례적 발언과 한 문장을 맺지 못하고 다음 문장으로 끝없이 넘어가는 즉흥 연설을 보아서는 도무지 그를 이해할 수가 없다. 한 달에 백억 달러 넘는 무역 적자가 나도 원인이 무엇이며 대책은 있는지 말이 없고,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수준으로 내려간 시점에서 가스 값을 대폭 올리면서도 아무 설명을 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공개 일정을 보면 박수가 많이 나오는 행사 일정을 만드는 꾀 많은 공무원과 행사를 다니면서 자신이 일을 한다고 착각하는 무능 장관이 떠오른다. 대통령은 지금 국가 운영과 국민의 생활을 개선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검찰 수사권을 동원해 야당을 골탕 먹이는 싸움질에만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그래서 나는 한시적으로 임마누엘 칸트 선생의 불가지론(不可知論)에 귀의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윤석열은 연역적 사고와 경험적 추론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차원에 있는 대통령이다. 인간 윤석열과 대통령 윤석열은 나의 주관적 인식체계의 외부에 독립해 존재한다. 내가 인식하는 대통령은 윤석열 그 자체(Yoon an sich)’가 아니라 나의 감성형식과 사유방식으로 인지한 현상(Erscheinung)’에 지나지 않는다. ‘현상윤석열 그 자체는 같지 않다. 우리는 객관적 실재인 윤석열 그 자체를 모른다. 그래서 그가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인지하는 시간과 공간은 인간의 감성형식으로 포착한 현상에 불과하며 사물 자체로서의 시간 공간과 같지 않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이 왜 이재명을 제거하려고 하는지 정색하고 분석 비평하려면 사실의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말이 되는 말을 하나도 하지 않으니 아무 대책이 없다. 두 가설 중에서 나는 감정설에 한 표를 주고 싶은데 확신할 근거가 없다. 칸트 스타일의 불가지론이 비상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받아들였더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진지하게 임하기엔 현실이 너무 어이없을 때는 웃어버리는 게 도움이 된다. 그래서 헛소리인 듯 헛소리 아닌 헛소리 같은 칼럼을 썼다. 외람되오나, 독자들께서 너무 크게 나무라진 마시길!

유시민 작가 시민언론 민들레 2023.02.20.

 

국민은 대통령 부하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말이 짧은 편이다. 공식 회의석상에서는 존댓말을 사용하지만 현장 일정에서는 반말이 가끔 튀어나온다. 지난해 8월 민생 점검을 위해 방문한 서울의 한 마트 현장이 대표적이다. 이 자리에서 아오리 사과를 들고 현장 관계자에게 이거는 뭐야?”라고 했고, “당도가 좀 떨어지는 건가?” “이게 빨개지는 건가?”라고 물었다. 다른 관계자에게는 떡볶이도 좀 사라 그래라는 말도 했다

 

말투는 습관이다. 사례는 적지 않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한 방산업체를 찾았다. FA-50 경공격기 설명을 듣고 관계자에게 폴란드 수출 단가가 대당 얼마야?”라고 물었다. K9 자주포를 보며 탱크와 포를 결합한 무기가 그동안 없었나요? 탱크와 포를 결합한 거잖아. 사실은이라고 했다. 반말투와 경어체를 아슬아슬하게 오간다. 무기체계를 둘러보며 요거는 뭔가?” “이거는 뭘로 쏴?”라고 묻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이태원 참사 현장을 방문해서는 여기에 인원이 얼마나 있었던 거야?” “압사? 뇌진탕 이런 게 있었겠지등의 말을 했다. 윤 대통령은 종결어미로 ‘~구나’ ‘~’ ‘~?’ ‘~?’를 가끔 사용한다. 상대방을 높이는 어미는 아니다.

 

윤 대통령의 반말투를 두고 검사 시절 피의자에게 말하던 습관이 입에 밴 탓이라는 설명이 많다. 검사는 피의자에게 반말해도 되느냐는 의문은 남는다. 친근감을 표현하려는 형님 리더십의 면모라는 옹호도 있다. 형님 리더십의 맹점은 자신은 동생이 아니라 항상 형의 위치에 선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석열이형의 반말은 상대방을 아래로 보는 의 어법이다.

 

윤 대통령이 사석에서 참모(부하)에게 존대하지 않는 것은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반말이 공적인 자리에서 사용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적인 존재이고, 그가 임하는 자리 역시 가장 공적인 공간이다. 요즘 꼰대 상사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반말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의 화법이 눈에 띄게 시정되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그의 말투는 가장 큰 리스크 중 하나였다. 지적이 잇따랐다. 당시 언론학자 강준만 교수는 공개되지 않는 사랑방 잡담회 수준의 언어를 언론 앞에서도 그대로 구사해 자주 화를 자초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주변의 고언과 언론인들의 공개적인 충고가 있었다. 그러나 한때 대통령과 잠시 일했던 분은 다른 사람 조언 듣지 않는다. 원로들 말에도 나를 가르치려 드냐며 화부터 낸다고 했다. 소수의견은 아닌 듯하다.

 

좋은 잠을 꺼내먹어요

정치는 말이 전부이다. 대통령 말투는 그의 통치를 집약한다. 정권교체 동지를 향한 발언, 특정 언론사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 노동조합 때리기, 협치 포기. 배제와 차별의 국정 운영은 대통령 말투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반말투는 윤석열 정부 권위주의적 통치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대통령 반말의 청자는 결국 국민이다. 대통령이 현장에서 하는 말은 모두 글로 기록되고, 영상으로 남는다. 이미 많은 국민이 보고 들었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말을 보고 듣는 국민에게 반말하는 것이다. 국민은 대통령의 부하가 아니다.

강병한 정치부 차장 | 경향 2023.02.21.

 

 

불체포특권과 민주주의

더불어민주당의 스텝이 자꾸만 꼬이는 것은 민주화운동 경험에서 얻어진 정치적 자산에만 매몰되어 매일 실천하는 것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진지하게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쟁취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실천하는 민주주의 말이다. 그렇다고 국민의힘 손을 들어줄 생각도 없다. 당대표를 뽑는 전당대회에서 버젓이 벌어지는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이것이 과연 민주주의 국가의 정당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민주화는 오랜 세월 민주당의 주력 상품이었다. 민주주의적 소양이 부족하다면 더 큰 비판은 민주당 몫이 되어야 한다.

 

민주화운동의 분기점이라면 역시 1987년이다.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정권을 내어줄 때 87년에 태어난 아이는 스무 살이었다. 그래도 열 살은 넘어야 그 시절이 기억난다고 가정하면 서른 살까지는 87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다른 말로 서른 살만 넘으면 온 국민이 87년을 기억했고,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정치적 특권은 지속되었다. 그로부터 10. 두 번의 보수 정부를 거치는 동안 사람들은 나이를 먹었고 새로운 아이들이 태어났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생각지 못한 일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분명 민주 진영사람들이 선의를 가지고 한 일인데, 좀 잘못된 부분이 있기로서 사람들이 절차공정성같은 걸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독재에 부역했던자들에게 이로운 일이 되면 어쩌려고! 87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2017년에는 마흔이 되었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반발이 터져나온 이유이다. 87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2023년에는 마흔여섯이 되었다. 적어도 40대 중반까지의 한국인들에게 민주화운동 출신의 까방권따위는 없다. 선진국답게 매일같이 실천하는 민주주의로 유권자에게 호소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내내 우리 편인데 그럴 리가 없다는 논리로만 일관했다. 당연하게도 내로남불 논란이 일파만파 번졌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불체포특권을 놓고 봐도 민주당은 40년 전 인식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이재명 대표는 불과 1년 전 후보 시절 불체포특권을 없애자고 제안했던 것 때문에 지금 곤욕을 치르고 있다.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니 여당은 신난다고 공격 소재로 삼고 있다. 그런데 말이 달라진 것을 따지기에 앞서 이 대표가 진정한 민주주의자라면 작년에 그런 주장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민주주의 역사에서 의원의 불체포특권은 선거에서 폐지 주장해서 인기 끌기 좋으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삼권분립의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고 자신이 대표하는 유권자들이 대표될 권리를 보장받도록 하기 위해 수많은 고심 끝에 만들어져 온 역사가 있다. 다른 대안 없이 불체포특권만 덜렁 폐지하면 국회의원만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가 대표해야 할 국민들이 피해를 본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 선진국의 경험을 보면 헌법에 보장된 불체포특권 그 자체를 문제 삼는 경우는 거의 없고, 구체적으로 어떤 사안에 적용될 수 있는지 없는지 등에 대해 판례를 통해 정교하게 다듬어 나가는 것이 정석이다. 그렇게 가볍게 선거 때는 없애자고 했다가 본인에게 체포동의안이 날아오니 검찰독재라서 불체포특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민주주의자가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민주당이 자주 헷갈리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자신들의 행동이 곧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이다. 민주주의는 사람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에 속한다. 과거 윤석열 검사가 자신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왜 커다란 울림이 있었는지 돌아볼 일이다. 독재에 항거하는 것이 곧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독재가 있으면 민주주의가 아닌 것은 맞지만, 독재에 항거하는 것이 곧 민주주의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독재 타도가 아직도 중요한 의제라는 시대착오가 또 다른 하나이다. 검찰이 수사권을 남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귀 기울일 국민이 있겠지만, 검찰독재라는 말에 공감할 중도층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불체포특권을 함부로 폐지할 수 없는 것과 똑같은 무게로, 국회가 불체포특권을 원래의 취지에 맞는 경우에만 소중하게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체포동의안 표결에 임하는 국회의원들이 숙고하고 또 숙고해야 하는 이유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 경향 2023.02.21.

 

 

기분에 좌우되는 법과 원칙

며칠 전 전국 73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행정안전부의 비영리 민간단체 전수조사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1월 초 행안부가 전수조사 계획을 발표하며 단체별로 회원 정보부터 회계 자료까지 일괄 제출하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기 때문이다. 비영리 단체를 육성하고 지원하기 위해 개별 단체 정보 현행화를 하겠다는 조사 의도는 언뜻 합리적인 이유를 가진 것처럼 보였으나, ‘기분에 좌우되는 충동적 행동으로 느껴졌다. 가령, 개별 비영리 단체마다 요구하는 자료의 종류와 범위가 다르고, 행정 소통 방식과 제출 시기조차 제각각이었다. 손발 안 맞는 충동의 흔적들뿐이었다. 관청에 이미 제출한 서류를 다시 제출하라 하고, 조사 대상자를 엄밀하게 선정하지도 않고, 전수조사의 법적 근거조차도 마땅히 없는 채 강행되는 기이한 조사 태도는 막대한 행정력이 법과 원칙에 기반하지 않고 기분에 좌우되는 모습이었다.

 

우왕좌왕 전수조사는 계획 없는 급조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1주일 전, 57회 국무회의를 주재한 대통령은 소수의 귀족노조가 다수의 조합원과 노동 약자를 착취하고 약탈하는 구조를 우려하며, 그 해결책으로 노조 회계의 투명성 확보를 주장했다. 이어서 민간단체에 대해 말했다.

 

노동조합과 마찬가지로 국가보조금이 그들만의 이권 카르텔에 쓰인다고 우려하며, ‘회계 사용처를 제대로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투명성을 강조했다. 대통령비서실장, 서울시장, 관계부처 장관이 다 모인 회의에서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는 순식간에 공적 자금을 탈취하는 공공의 악마처럼 묘사되었다. 대통령의 기분이 드러난 후 조사가 급조되었다.

 

행안부 공무원들도 알 것이다. 우려와 현실이 다르다는 점을. 이미 지자체 혹은 정부로부터 국가보조금을 받는 사업은 까다로운 선정 절차를 거치고, 선정 이후에도 담당 공무원과 소통하며 양식에 맞는 회계 처리를 철저하게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보조금 사업 회계는 전수조사 한참 전부터 공적 관리·감독의 대상이다. 만일 대통령 우려처럼 귀족노조이권 카르텔을 키우는 데 돈이 들어갔다면, 관계 법령에 의거하여 제재받고 환수 조치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행정력을 과도하게 남용하고, 조사 대상자를 기준 없이 선정하고, 중복되는 조사 자료를 요구하는 이번 전수조사는 아무리 봐도 기분파. 당장 행정조사의 기본원칙에도 위배되는 법과 원칙에 동떨어진 지침이다. 더구나 공정한 법과 원칙, 투명성과 책무성의 강조 아래 이루어지는 조사가 정작 법과 원칙을 벗어난 수준에서 민감한 개인정보를 수집하거나 감시할 것까지 예고하는 현실을 보면, ‘법치주의가 아니라 기분주의시대에 사는 것 같다.

 

법치주의적 공정성·투명성·책무성이 행정의 최우선 가치라면, 당장 부동산 정책을 담당하는 관계부처의 의뭉스러운 결정부터 전수조사하길 바란다. ‘둔촌주공 구하기에 투입된 특례보금자리론, 미분양 아파트 고가 매입 등에 지출된 세금 수조원이야말로 조사가 필요하다. 왜 건설사 부양에 소진된 막대한 공적 자금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기분이 작동하지 않는 걸까.

변재원 작가·소수자정책연구자 | 경향 2023.02.21.

 

 

재계와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몰염치

참으로 양심도 없고, 염치도 없다. 지난 15일 노조법 제2, 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한 뒤에 나오는 경제계와 정부, 보수언론들의 반응을 보고 든 생각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노조법 2, 3조 개정안이 통과되기 직전에 경제계 6단체(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노란봉투법은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예상대로 개정안이 통과되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노란봉투법은 기업할 의지를 꺾고 기업 경쟁력을 저하시켜 국가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노조법 개정안은 경제와 산업 생태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며, 가장 시급한 과제인 일자리 창출에도 악영향이 우려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제계를 일방적으로 대변해온 한국경제는 치명적 혹 더 붙인 노란봉투법, 끝내 불법파업 조장할 텐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내놓았고, 보수언론들도 비슷한 기조의 사설과 기사를 일제히 실었다. 여기에 더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관훈토론회에서 법치주의와 충돌하는 노란봉투법 입법은 파업 만능주의로 인해 사회적 갈등만 커질 것이라고 말해서 노동부 장관이 재계 대변인이냐는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20일에는 비상경제장관회의까지 열어서 전 정부 차원의 반대를 분명히 했다.

 

경제계 반응은 몰염치의 극치

이처럼 경제계, 보수언론, 정부가 한목소리로 반대 목소리를 거세게 내는 이유는 이번 개정안이 하청, 간접고용, 특수고용 사업장에서 단체교섭을 촉진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합법 파업의 범위를 확대하여 결과적으로 관행적으로 행해지던 손해배상을 지금보다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개정안도 많이 부족하다. 특히 노란봉투법의 핵심 내용인 노동조합원 개인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은 빠져 아쉬운 개정안이다. 그런데도 이 난리들이다. 이런 반응들에는 이 개정안을 어떻게든 저지하겠다는 다급함이 묻어난다.

 

먼저 이정식 장관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장관은 한국노총 사무처장 시절인 2016년 노란봉투법 입법을 위한 국회 기자회견에서 인신구속되고 자유형을 선고받는 것도 억울한데 손해배상 청구 제기·가압류가 밥 먹듯이 발생하고 있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뜻한다고 강력하게 말했다. 파업 노동자를 천문학적인 손배가압류로 옥죄는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한국노총의 간부에서 장관으로 자리를 옮겼을 뿐이데, 자리가 바뀌자 말도 달라졌다. 대통령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의 거부권은 국회를 통과해 대통령에게 넘어온 법률안이 헌법에 위배될 경우에만 해당된다. 그런데 이번에 국회 환노위 소위를 통과한 개정안이 위헌적인 법률안인가? 도리어 헌법 제33조가 보장하는 노동3권을 현실에 맞게 실현하려는 목적의 개정안이고, 이미 대법원과 법원들에서 판례로 축적된 사안들을 부분적으로 수용한 개정안일 뿐이다.

 

경제계의 반응은 몰염치의 극치다. 지금의 손배가압류는 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하청, 간접고용,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 그리고 아직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 2위를 다투는 장시간 노동에 묶어두면서 사용자 편한 대로 노동자들을 부려 먹을 수 있는 노동조건을 강요하고 있다. 경제위기 시에는 고통을 노동자에게 고스란히 전담시켰고, 일자리를 늘리기는커녕 양질의 일자리를 없애고, 저임금의 불안정 일자리로 바꾼 게 경제계가 지금껏 해왔던 방식이다. 중대재해로 사망하는 노동자를 줄이자고 만든 중대재해처벌법의 무력화에도 적극 나서더니 이제는 구시대적인 노조법 조항 몇개를 현실에 맞게 고치자는 개정안마저도 거부한다는 것이니 답답한 노릇이다. 노동자들을 고분고분 말 잘 듣는 무권리 상태의 노예처럼 부리고 싶은 욕망을 가감없이 표출하고 있다고밖에는 볼 수 없다.

 

이제 제발 억지 좀 그만 부리시라

노동개혁은 한국전쟁 직후 제정된 노조법을 고용형태가 다양해진 현실을 반영해 개정하는 것에서부터, 모든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도록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닌가. 이제 그 첫발을 떼었을 뿐이다. 경제계도, 보수언론도, 정부도 이제 제발 억지 좀 그만 부리시라.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 경향 2023.02.21.

 

 

정의로운 기억을 가진 자들이 길을 막는다

나미비아는 아프리카 남서쪽에 있는 나라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아프리카 대륙이 시퍼렇게 달려오는 바다와 만나는 곳에 있다. 땅은 넓으나 사람은 적다. 한국보다 8배 넓은 땅에 사는 사람은 300만이 채 되지 않는다. 나라 이름조차 넓은 곳이라는 뜻을 가졌다.

 

수도는 빈트후크다. 마치 지도를 펴고 동서남북을 꼼꼼히 재어본 뒤에 한가운데 점을 콕 찍어 정한 것처럼, 나미비아의 정중앙에 있다. 빈트후크라는 이름에는 독일어의 흔적이 진하게 배어 있다.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독일제국 식민의 역사는 지금도 도시 곳곳에서 당당하다. 거리 이름은 스트라세’(독일어로 거리’)로 끝나고, 빈트후크의 언덕 위에 있는 고급주택가는 클라인(독일어로 작은’) 빈트후크라 불린다. 작은 지역이지만 알짜배기다. 소수의 힘센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저 밖을 내려다보고 널리 지배하는 곳이다.

 

밤새 날아온 비행기는 따스한 아침 공기를 뚫고 공항에 도착했다. 옅은 안개에 덮여 더욱 한적해진 공항 이름은 나미비아 민족독립투쟁의 시조이자 현 집권당을 만든 독립영웅의 이름을 따랐다. 1990년에 독립했을 때 나미비아는 서둘러 공항 이름부터 바꿨다. 그래서인지, 나랏일 하는 높은 사람들이 나타나면 자그마한 공항은 금세 마비가 된다. 이런 사람들 대부분 독립투쟁의 주역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새까만 차들이 활주로 안으로 달려왔고, 그 뒤로 울긋불긋 차려입은 시민들이 노래하고 춤추며 뒤따랐다. 옆으로는 자동차보다 더 까만 양복을 입은 수십명이 도열했다. 막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들은 그 화려한 출발에 떠밀려 활주로 옆길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외국 관광객들은 신기한 듯 사진을 찍었고, 나미비아 승객들은 투덜거렸다. “정의로운 기억을 가진 자들이 매일 길을 막고 선다는 알 듯 모를 듯 한 말을 했다.

 

서둘러 빈트후크로 달렸다. 첫 약속부터 지각이었다. 운전사는 나보다 더 걱정했던 터라, 마음이 앞서고 차는 뒤따랐다. 쉴 새 없이 농장들이 시원하게 줄지어 지나갔다. 나는 다시 산술적인 고민으로 돌아왔다. 저렇게 넓디넓은 땅에 정작 사람들이 일할 땅이 없고 실업률이 30%에 육박하는 현실을 숫자로 설명하긴 쉽지 않다. 게다가, 엄청난 천연자원 덕분에 나미비아의 1인당 평균소득은 높은 편이다. 우라늄 생산은 세계 4위고, 다이아몬드 생산량도 괄목상대다. 하지만 평균소득만큼 불평등도 높아서 나미비아는 현재 가장 불평등한 나라 중 하나다.

 

노조, 경영자단체, 그리고 시민단체를 먼저 만났다. 일자리와 노동소득 문제에 관한 의견을 차분히 듣고자 만든 자리였는데, 회의는 시작부터 뜨거웠다. 일자리고 뭐고 간에 부정부패부터 척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날 선 공기처럼 팽팽하게 퍼졌다. 물도 없고 전기도 없는데 일자리 정책은 무슨 소리냐는 말도 나왔다. 그리고 내 얼굴을 또렷이 보며, 당신이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따지듯이 물었다. 정부를 설득하라고 쏘아붙였다.

 

나는 얼굴을 붉힌 채 서둘러 정부 건물로 갔다. 높은 분들과의 약속이 줄줄이 잡혀 있었다. 해방독립투쟁의 영웅들이 그려진 대형 그림이 내려다보이는 장소 때문인지, 그들의 목소리에는 자신감과 원대한 꿈이 넘쳤다. 시간을 다투는 짧은 만남에서도 그들은 틈틈이 해방투쟁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프리카 대륙을 기약 없이 떠돌고, 모스크바와 아바나(하바나)에서 공부했던 기억. 경제는 제법 괜찮은데 서민의 삶은 왜 계속 어렵냐는 물음에 그들은 바로 불공정한 세계 질서를 들고나왔다. 제국주의적 행패 때문에 나미비아 광물이 제값을 못 받고, 국제금융체제는 나미비아 같은 약소국으로부터 여전히 돈을 빼앗아 간다고 했다. 물론 그런 면이 있지만 지금 당면한 시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정책이 필요하지 않으냐는 물음에, 이런 국제관행부터 고치지 못하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선언이 되돌아왔다. 그들은 아직 해방투쟁중이었다.

 

뜨겁게 겉도는 말에 지쳤다. 나는 운전사에게 빈트후크 외곽에 있는 비공식 정착촌으로 가자고 부탁했다. 나미비아 곳곳에서 떠밀려 온 사람들이 대규모로 모여 사는 곳이다. 우리 식으로 하면 판자촌인데, 여기 집들은 대부분 양철을 재료로 삼는다. 말하자면 양철촌이다. 정부 공무원인 운전사도 거기서 산다고 했다. 벌써 20년째란다.

빈트후크를 떠나면서 눈에 들어온 것은 현 집권당 중앙당사였다. 10층 정도 되는,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이 건물도 정의로운 기억으로 장식돼 있었다. 독립투쟁이 정당이 되고 그 정당이 30년째 집권하며 정부가 됐다.

 

이 눈부신 건물을 돌아서자마자 양철촌이 시작됐다. 끝이 없었다. 차로 30분을 돌아다녔는데도, 그 일부만 볼 수 있었다. 서너평 남짓한 공간에 나무나 벽돌로 기둥을 세우고 양철로 덮었다. 대부분 전기와 수도가 없다. 늘 건조한 나미비아에 비는 희소식이지만, 이곳에서는 비 소식은 걱정거리다. 비만 오면 침수다.

 

붉은 흙가루 날리는 거리에는 사람들이 넘쳤다. 그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인구조사는 10년 전에 했다. 정부 재정이 부족해 새로운 조사를 하지 못했다.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일자리가 걱정이라는 정부는 정작 현재 실업자가 몇명인지 모른다. ‘양철촌에도 그저 수십만명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그나마 학교와 병원은 있다. 일찍이 러시아와 쿠바가 도왔고, 이후로는 중국이 도왔다. 그래서 어떤 지역은 하바나로 불리고, 제일 규모 있는 학교 이름은 마오쩌둥(모택동) 학교다. 양철촌에 나미비아 정부는 보이지 않고, 외국 정부의 낯선 손길만 있다.

 

늦은 오후 햇살에 양철지붕이 빛날 때 빈트후크로 돌아왔다. 여전히 굳건한 중앙당사를 끼고 양철촌을 등지고 돌아서는 길옆으로는 다시 농장들이 보였다. 운전사는 저 멀리 이쪽저쪽을 가리키며, 저기에 어느 장관의 농장이 있고 그 옆 어디로는 어느 장관의 농장이 있다고 했다. 농장에서 주말을 보내기 위해 그들은 금요일 오후에 길을 나선다고 한다. 그래서 금요일 오후에는 회의가 없을 거라고 귀띔해줬다. 나는 그 장관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해냈다. 그들을 만나 빈곤과 불평등에 관해 자못 진지하게 논쟁을 벌였으나, 그들의 대답은 지금도 끝나지 않은 정의의 옛 기억이었다. 그 기억 때문인지, 양철판처럼 타오르는 바깥의 고통에 대해 둔감했다.

 

운전사는 숙소 앞에 나를 내려주고, 걸어서 양철촌의 집으로 갔다. 빨리 걸으면 한시간 만에 갈 수 있다면서 활짝 웃었다. 해가 곧 지고, 비가 잠시 내렸다. 빈트후크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이상헌 |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 한겨레 2023.02.21.

 

 

검심 가득이재명 구속영장, 김건희 수사는?

태산명동(泰山鳴動)에 서일필(鼠一匹).’ 태산이 들썩였는데, 튀어나온 건 쥐 한마리라는 뜻이다. 중국 고사성어인가 싶어 검색해봤다. 의외로 이런 내용이 담긴 중국 고전은 찾을 수 없는 반면 그리스 이솝우화엔 딱 떨어지는 얘기가 있다는 설명이 많았다. 산이 요동치자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정작 나온 건 쥐 한마리였다는 에피소드다.

 

이걸 로마시대 시인 호라티우스가 시작법을 다룬 시학이라는 시에서 인용했다. 시를 거창하게 시작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대목에서다. “옛 시인(호메로스)처럼 프리아모스의 운명과 거대한 전쟁에 대해 노래하겠다로 시작하지 말라. 그 약속에 부합하는 뭔가를 내놓을 수 있겠나? 산이 산통을 겪고도 태어난 건 우스꽝스러운 쥐 한마리뿐.” 이 끝 문구가 누군가에 의해 태산명동서일필로 번안됐다는 설이다.

혹시나 싶어 요즘 한 인공지능 챗지피티에도 물어봤다. 그럴 수도 있고 고대 중국에서 따로 기원했을 수도 있다는 어중간한 답을 내놨다.

 

어디서 유래했는지를 떠나 우리 사회에선 이 말이 검찰 수사를 비판할 때 쓰는 관용구로 굳어진 듯하다. 특히 현 정권 들어 사용 빈도가 부쩍 늘었다. 검찰이 온갖 명목으로 전 정권 문제를 들쑤시고 있지만 이렇다 할 결과를 내놓은 적은 드물어서일 것이다. 요번에 검찰이 야심 차게 내놓은 이재명 구속영장도 이런 궤도를 벗어나 있지 않다.

 

시정농단’ ‘아시타비’ ‘내로남불’ ‘삼척동자’(증거인멸 시도는 삼척동자도 안다). 이번 검찰 영장 청구서엔 법률 관련 문서에선 잘 쓰지 않는 신조어, 사자성어가 대거 동원됐다. 전체 173쪽 중 마지막 20쪽을 할애한 구속을 필요로 하는 사유대목은 영장이라기보다 정당 논평에 가까워 보인다. 정작 요란하게 예고했던 400억원대 개인 수뢰 혐의는 영장에서 빠졌다. 대장동 사업으로 성남시에 4895억원의 손해를 입혔다는 배임, 관내 4개 기업으로부터 성남에프시(FC) 후원금·광고비 명목으로 133억원을 받았다는 제3자 뇌물 등 기존에 거론됐던 혐의만 담았다. 둘 다 성남시와 축구단에 이익이 돌아간 정책 결정으로 볼 여지 또한 커, 법적 처벌 대상인지를 두고 논란이 큰 사안이다. 뇌물이라는 개인적 이익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배임 혐의는 동기조차 잘 설명이 안된다. 팥소 빠진 찐빵이다.

 

애초 검찰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자신도 뇌물을 약정받은 이익공동체의 수뇌인 것처럼 떠벌리던 것과 딴판이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16일 영장 청구에 대해 충분한 물적, 인적 증거가 확보됐다고 주장했다. 실은 물증을 확보하지 못해 감정적 언어로 영장을 채운 건 아닌지 궁금하다. 자고로 빈 수레가 요란하다.

 

야당 대표 수사에선 태산이 흔들릴 만큼 요란한 검찰이 김건희 여사 의혹 앞에선 찍소리도 못 내고 있다. 만화 <마징가제트> 속 아수라 백작의 두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그 바탕에 윤심이 자리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101심 재판부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유죄 판결 이후 대통령실은 14일까지 세차례나 김 여사 관련 입장문을 냈다. 14일 입장문에선 김 여사는 매수를 유도당하거나 계좌가 활용당한 것일 뿐 주가조작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용산의 이런 노골적 사인을 못 본 척할 간 큰 검찰이 가능할까.

 

판결문을 보면, 과연 김 여사는 당하기만 한 걸까 의심 가는 대목이 적잖다. 재판부는 김 여사 계좌 2개가 주가조작 일당에 의해 운용됐다고 적시했다. 재판부가 유죄로 인정한 통정·가장 매매 102건 중 김건희 계좌거래가 48건이나 됐다. 이 거래들을 김 여사가 직접 했는지는 확정할 수 없다면서도, 다른 공범들에게 일임됐거나 적어도 이들의 의사나 지시에 따라 운용된 계좌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이 사건 공판 검사는 당시 김 여사가 핵심 공범들의 연락을 받아 직접 거래하는 구조였음을 재판 과정에서 제시한 바 있다. 조직 침묵에 맞선 개별 검사의 소리 없는 아우성 아니었을까. 김 여사가 당한 건지, 주체적으로 가담한 건지는 이제 다른 공범들과 똑같이 강제 수사로 가려져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생명과도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검찰은 이제라도 야당 대표 의혹엔 증거·법리로만 말하고, 김 여사 의혹엔 빠릿빠릿 움직여야 한다. 검찰 생명 연장의 다른 길은 없다.

손원제 | 논설위원 | 한겨레 2023.02.21.

 

 

글로벌 대학, 글로컬 대학뭔 소리니

수도권대학은 살아남는다. 지역 거점 국립대 몇몇을 제외한 많은 지방 대학은 오래전부터 재정 적자에 시달려왔다. 등록금에 목을 매는 영세한 지방 사립대는 등록금 동결이 늘 눈엣가시였고, 학령인구 감소는 장차 이들이 쓸 독박이 될 것이다.

 

지역 대학의 몰락이 지방 소멸을 가속한다는 말이 언론을 가득 채웠다. 급기야 돈줄을 쥔 교육부가 2027년까지 비수도권대학 30곳을 글로컬 대학으로 선정해 대학당 5년에 걸쳐 1000억원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전체 426개 고등교육기관 중 수도권과 거점 국립대를 제외하고 30곳만 살리겠다는 뜻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정작 글로컬 대학의 정체를 모르겠다. 사회학자 롤런드 로버트슨이 1980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처음 쓴 이 용어는 세계적 보편성과 지역적 특수성이 존재하는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어떻게 지방대를 글로벌 수준으로 키워 지역 사회와 경제를 이끈다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1000억원이면 지방대가 글로벌 대학이 되는지도 의문이다. 여하튼 연 200억원의 돈 보따리를 따내려면 대학은 대학 간, 혹은 연구소와의 통폐합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은 물론 차별화된 교육과정 혁신과 기업과의 연계 방안 강구 등 할 일이 많다. 연구비 부족에 시달리는 지방대 교수들이 행정까지 떠맡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유에스 뉴스가 선정한 2022년 최고의 글로벌 대학 순위는 미국의 하버드대를 선두로, 아시아에서는 중국 칭화대가 23위로 최상위를 나타냈다. 서울대, 성균관대와 카이스트는 각각 129, 263위 및 282위를 나타냈다. 글로벌 대학의 순위는 연간 연구비 규모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21년 대학 연구비를 보자.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은 약 4조원(31억달러), 하버드·스탠퍼드·코넬 대학은 각각 15000억원을 사용했다. 코넬대학이 자체 부담하는 연구비 규모는 4500억원 정도로, 코넬 연구비의 30% 정도에 해당한다.

 

한국연구재단이 보고한 2022년 대학 연구비 총액은 약 79000억원으로, 연구비 상위 20개 대학이 62.8%의 연구비인 5조원 정도를 썼다. 서울대, 연세대와 고려대를 합친 연구비는 연구비 전체 20%, 16000억원 규모다. 그러나 4년제 대학 교내 연구비 지원율은 전체의 5.4%에 불과하고, 중앙정부와 민간을 합친 연구비 비율이 90%가 넘는다. 정부의 후원금은 물론 든든한 대학 재원 없이 글로벌 대학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대구의 모스크 건립과 관련한 최근의 사건을 보자. 글로벌 대학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재정은 기본이고, 인재를 끌어들이는 훌륭한 교육·문화적 환경이 뒷받침돼야 한다. 다양한 민족적 배경을 가진, 여러 국가에서 온 유학생을 유치하기 위해선 인종차별과 문화적 편견에서 벗어나야만 가능하다. 미국 아이비 대학의 외국 학생 수는 10%를 상회한다. 코넬대의 경우 학위과정 대학원생 수의 53%가 외국 학생이다.

 

교육부의 2022년 교육기본통계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전문대 이상의 전체 재적 학생 수 3117540명 중 외국인 학생 수는 166892(5.4%)이고, 학위과정 학생은 124803(4.0%)으로 더 낮게 나타난다. 학위과정생 중 중국인(48.5%), 베트남인(21.6%) 비율이 70% 이상을 보인다. 글로벌 대학이라면 외국인 학생 비율과 민족 다양성도 고민해야 한다.

 

한국의 어느 대학도 글로벌 대학이 될 수 없다. ·약대 만능주의와 취업이 교육의 목표라면 말이다. 글로벌 대학은 지구 기후 변화를 다루면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는 방법, 빈부 간 격차를 줄이는 윤리적 시장 경제, 새로운 질병에 대한 글로벌 의사 결정 등 글로벌 지도자를 키우는 글로벌 교육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 경향 2023.02.21.

 

국민을 살해한 국가

제주도 4·3 사건의 진압 출동 명령을 거부한 14연대 일부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여수·순천 일대를 점령한 사건.” 국사 교과서에서 단 한 토막으로 다룬 여순 사건의 내용이다. 손을 들어보라. 여순 사건에 대해 이보다 더 자세히 아는 한국인은 몇명이나 될까?

 

여기에 거짓이 담기진 않았다. 모든 역사적 기술이 그렇듯이 불완전하게 정제된 정치적 관점이 담겨 있을 뿐이다. 이 관점은 역사에 대한 이해를 가늠하는 잣대이며, 연쇄적인 질문들의 시발점이 된다. 여순 사건의 피해자는 누구를 말하는가? 반란을 일으켰다가 몰살당한 일부 군인들인가? 아니면 그들에게 학살당한 민간인을 뜻하는가? 그렇다면 몇년 전 국회를 통과한 여순 사건 특별법은 누구를 위한 법인가? 반란을 일으켰다가 몰살당한 군인들인가? 반란군과 싸우다 순직한 국군인가? 혹은 전투 과정에서 희생된 민간인인가?

 

다 잘못된 질문들이다. 최초의 관점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여순 사건을 이야기할 때, 혹은 여순 사건 희생자를 언급할 때, 문제시되는 것은 반란의 성격이 아니며 반란 그 자체도 아니다. 과거 이 사건 조사보고서를 발간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순 사건은 여수와 순천 일대의 민간인이 군경에 의해 집단적, 개인적으로 희생된 사건이고, “반란동조 세력으로 규정된 주민들에게 깊은 피해의식과 상호불신감을 심어준 사건이며, “국가권력에 의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제2전선 지역에서의 민간인 집단희생이기 때문이다. 제주 민간인 진압을 거부하고 반란에 가담한 14연대 군인은 최대 2천여명, 그중 남로당 소속이었다고 알려진 장교는 단 두명이었던 데 반해, 1949년 당시 전라남도 당국이 확인해 집계한 민간인 희생자 수만도 1만명이 넘는다.

 

2006년 발간된 여순사건 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여수와 순천 지역의 확인된 민간인 희생자 2402명 가운데 반란군이나 좌익에 의한 희생자는 458명이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반란군에게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반란에 가담했다는 의심을 받아 경찰과 군인에 의해 살해당했다.

국가권력의 근간이어야 할 법은 광기에 잠식당해 아예 작동하지 않았다. 당시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사례로 광주지방검찰청 차석검사 박찬길 살해 사건을 들 수 있다. 경찰이 검거한 좌익 인사를 사법 절차에 따라 수사하고 가벼운 형벌을 내리려 했던 이 검사는 반군에 협조한 죄목으로 학생 등 20여명과 함께 경찰에 의해 즉결처형당하고 말았다.

 

14연대 반란은 김일성의 지시나 남로당의 조직적 개입이 아닌 일부 하사관 그룹의 돌발행동에 의해 일어났다는 게 역사학계의 통설이다. ‘사실이 아닌 통설인 이유는 사료와 증언을 통해 당시 상황을 추정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반란이 김일성의 지시를 따라 일어났다는 일부 주장처럼, 반란이 우발적으로 일어났다는 학설도 확정이 가능한 사실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할까? 여순 사건의 중요한 쟁점은 반란이 왜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왜 반란군의 머릿수보다 훨씬 많은 민간인이 국가권력에 의해 학살당해야 했는가?”. 반란에 초점을 맞추면 더 중요한 문제가 초점 바깥으로 소실되어버린다. 그런 게 바로 정치적 관점이 역사를 분쇄하는 방식이다. 이 관점은 수천수만의 민간인 희생자 대신 김일성의 지령을 받았을지 모를 단 한명의 적색분자를 쫓는다. 역사를 편리하게 재단하는 태도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최근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이 제주 4·3 학살과 여순 학살이 김일성의 지시를 받은 남로당의 개입 때문에 일어났다고 한마디로 정리했던 것처럼.

 

공산당에 협조한 혐의로 국가가 무고한 국민을 학살한 먼 과거의 사건과, 공산당 때문에 학살이 일어났다는 국회의원의 주장은 뭐가 다른가. 반세기를 건너뛴 정치적 연속체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다. 이달 중순 제주도를 방문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국민의힘 지도부 선거에 임하는 모든 사람이 제주 4·3 사건과 여순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을 촉구했으니, 이 기회에 질문지를 작성해보고 싶다. 김일성 지령설이나 남로당 개입설에 대한 입장은 내 관심사가 아니니 나는 이렇게 묻겠다. “당신은 1948년 여수와 순천, 그리고 제주에서 국가가 국민을 닥치는 대로 살해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는가?”

손아람 | 작가 | 한겨레 2023.02.22.

 

-' 환상의 짝꿍

넷플릭스 드라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덕분에 깐부라는 단어가 한때 유행했지만 그보다는 짝꿍이 우리 정서에 더 어울릴 것 같다. ‘깐부라는 말 속에는 구슬치기나 딱지치기할 때 한 팀을 이루어 뭔가 이익을 도모하려는 계산적인 냄새가 물씬 풍겨나지만 짝꿍이라는 말 속에는 손해나 이익에 대한 고려 없이 그저 형제나 동무처럼 둘이 죽고 못 사는 운명적인 느낌이 막 묻어난다. 다른 이들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시대 검찰과 (이른바 주류) 언론이 딱 짝꿍 사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이익을 교환하는 단계를 넘어 죽고 못 사는 운명적 관계로 보인다는 얘기다.

 

둘 사이가 왜 이렇게 가깝게 됐을까? 나는 큰 이유 하나와 서너 개의 작은 이유가 있다고 본다. 큰 이유는 둘 다 자기들이 보수 기득권세력의 핵심적 지배 머신의 일부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정치는 화려한 듯하나 유권자들 비위 맞추느라 고생해야 하고, 정해진 임기가 있어 고생을 반복해야 한다.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은 늘 교도소 담장 위를 걷지만, 이들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을 어느 쪽으로 떨어뜨리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검사나 기자들이다. 기수문화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만 한다면 검찰이나 언론은 늘 갑질을 할 수 있다.

 

두 직업군의 출신성분이 비슷한 점도 짝꿍의 유인 조건이다. 검찰은 주로 스카이 대학출신들이 장악하고 있고 언론계는 꼭 그렇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른바 주류언론) 정치부 기자들이나 검찰 출입기자들 중에는 스카이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경계하거나 싸우는 것은 잘 모르는 사이에서나 벌어지는 일이다. 비슷한 사람들끼리라면 이해의 범위가 훨씬 넓다. 처음부터 이런 우호적인 관계 속에서, 둘이 힘을 합치면 못 할 일이 별로 없고 협조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깨달음까지 얻게 되면 그것으로 바로 짝꿍 사이가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직업윤리 배반 현상도 한 원인이다.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부여받은 권한을 오로지 자신의 영달과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자들이 도처에 넘쳐나고 있다. 검사(판사)와 기자가 그 대표적인 직업이다. 여기에다 검사는 수사를 하거나 말거나, 기소를 하거나 말거나 자기 마음대로이며, 기자는 기사를 쓰거나 말거나 자기 마음대로라는 직업적 공통점도 있다. 더구나 검사의 힘은 죄 있는 놈 벌 주거나 죄 없는 놈 풀어주는 데서 생기지 않고, 죄 있는 놈 놓아주거나 죄 없는 놈 잡아넣는 데서 생긴다. 기자도 마찬가지. 슬프게도 기자의 힘 역시 진실보도가 아니라 편파 과장 묵살 등 왜곡보도에서 생긴다는 것이 현 대한민국 언론의 현실이다.

 

검찰이 언론을, 언론이 검찰을, 서로의 부도덕한 범죄행위를 막아야 하는데 오히려 공범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피의사실공표죄다. 형법(126)은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상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소제기 전에 공표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해당하는 범죄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이 법률조항이 완전히 사문화되어 버렸다. ‘단독’ ‘특종이란 명칭으로 검찰과 언론의 거래행위에 힘을 못 쓴다. 이는 명백히 언론의 공범행위인 것이다. 범죄를 예방하고 처벌해야 할 검찰이 범죄행위를 저지르고 이를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언론이 공범행위를 하고 있으니 이야말로 무법천지 아닌가 말이다. 이로 인해 한명숙 조국 등 무고한 이들이 처참하게 당했고 지금 목하 이재명이 당하고 있다.

 

이런 범죄집단에게는 자기 직업윤리에 충실하고 역할을 다하고자 하는 기자가 오히려 범죄자로 보이는 모양이다. 검찰과 경찰이 반복적으로 시민언론 더탐사강진구 기자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이른바 주류)언론계에서 규탄성명 하나 나오지 않으니 말이다. 더구나 구속영장에 사회에서 격리하지 않는 한 추가 피해 발생을 예방할 만한 적절한 수단을 강구하기 어려워 구속이 필요하다고 적시했다니 기가 막힐 뿐이다.

 

예전에 두 연인이 마주 앉아 눈을 맞추며 대화를 나누는 것은 막 연애할 때 이야기이고 진짜 사랑할 때는 나란히 앉아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이야기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참 멋진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검찰-언론의 짝꿍 관계는 전혀 멋지거나 그럴듯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둘이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몰라도 계속해서 나란히 앉아 한 방향만을 쳐다본다면 공정과 상식이 무너지고 나라가 골병이 들 게 뻔하다. 언론은 다시 검찰을 마주 보고 호기심 가득한 채(enterprise) 관찰하고(observe) 질문하고(ask) 탐사해야(investigate) 한다. 그것이 바로 강진구 기자가 해 온 탐사보도의 자세다.

 

그럼에도 나는 검찰이나 언론의 자기개혁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검찰개혁은 수사 · 기소권을 확실히 분리하고 공수처 등 대체 세력을 키워 견제하는 방법밖에 없다. 언론 역시 대안언론, 대항언론을 키워야 한다. 그 전제는 역시 정치환경의 변화다.

강기석 민들레 상임고문 시민언론 민들레 2023.02.22.

 

 

‘20년짜리 진보정치한 사이클이 끝났다

20223·9 대선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를 통틀어서도 가장 어젠다가 약한대선이 될 것이라 보았다. 실제로 지난 대선은 탈모약, 쩍벌남, 어퍼컷이 지배했다. 나는 왜 그렇게 예견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20년짜리 한국정치의 한 사이클이 끝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럽의 정치사도 하나의 사이클이 작동했다. 19세기는 자유방임주의 시대였다. 1929년 대공황과 양차 세계대전을 겪는다. 이후 자유방임주의의 폐해 때문에 복지국가가 만들어진다. 이후 복지국가의 폐해 때문에 신자유주의가 만들어졌다. 신자유주의의 폐해 때문에 제3의 길이 만들어졌다.

 

한국 진보세력의 이념적·정서적 원형은 1980년대에 만들어졌다. 특히 ‘1980년 광주가 중요했다. 박정희가 죽으면 군사독재가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더 극악무도한 놈이 등장했다. 저놈의 정체는 뭘까? 저놈을 어떻게 몰아내야 할까? 민주화운동 세력이 구조적 모순과 대면하게 되고, ‘사회과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다. 이념적으로는 급진화된다. 민족주의와 결합된 사회주의를 수용한다. 마침내 19876월 항쟁을 통해 직선제를 쟁취한다. 국내적으로 승리의 기운이 확산될 때, 국제적으로는 사회주의가 붕괴한다. 김영삼 문민정부가 출범한다. 만들어야 할 세상이 사라졌는데, 싸울 대상도 사라진다.

 

한국 진보세력의 전열 정비는 두 가지 사건을 계기로 이뤄진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이념으로 재무장한다. 신자유주의 반대는 도깨비 방망이였다. 자본주의 반대도, 정리해고 반대도, 등록금 인상 반대도 신자유주의 반대한 방이면 다 해결됐다.

 

전열 정비의 다른 축은 민주노동당 창당이다. 1987년 이후 지속된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산물이었다. 200212월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유행어를 남긴다. 노무현과 이회창의 초박빙 선거였음에도 약 100만표를 득표한다. 부유세, 무상의료, 무상교육이라는 정치적 히트상품을 만들어낸다.

 

현재 한국 정치를 지배하는 무상 시리즈의 탄생이다. 2004년 총선에서는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라는 아주 근사한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13.1%의 정당득표율을 기록한다.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고 원내 3당이 된다. 국민들은 왜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에 13.1%(650만표)의 높은 지지율을 보여줬을까? 그것은 한마디로 유럽식 복지국가에 대한 갈망이었다.

 

이후 한국 정치사는 민주노동당 노선의 점진적 수용사()’에 다름 아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종합부동산세는 부동산 버전의 부유세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2009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다. 이를 계기로, 민주당 쪽에서도 유러피안 드림에 대한 모색이 본격화됐다.

 

민주노동당 노선(=유럽식 복지국가 노선)은 지속적으로 확대됐다. 2010년 지방선거는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국민의힘(당시 한나라당)에 유리할 수 있는 안보이슈가 터졌다. 천안함 사건이었다. 민주당 계열은 처음해보는 복지이슈로 붙었다. 천안함 이슈와 무상급식(복지이슈)가 정면으로 붙었다. 결과는, 복지이슈(무상급식)의 완승이었다. 민주당은 경남도지사(김두관), 충남도지사(안희정), 강원도지사(이광재) 등을 당선시켰다.

 

이제, 박근혜 전 대표도 민주노동당 노선을 수용한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당 색깔을 빨간색으로 바꿨다. ‘경제민주화복지국가를 전면에 내걸었다.

 

실제로 영국 노동당이 내걸었던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연상시키는 생애주기별 복지국가를 표방한다. 무상보육과 기초연금을 공약으로 내건다.

 

문재인 정부 역시 민주노동당 노선을 공약한다. 소득주도성장론,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52시간제, 탈원전 등이다. 박근혜 정부는 민주노동당 노선의 1기 정부였고, 문재인 정부는 민주노동당 노선의 2기 정부였다. 양당이 경쟁적으로 민주노동당 노선을 채택했기에, 정의당은 정치적 차별화에 실패하게 된다. 오늘날 정의당이 어려워진 근본 이유다.

 

실언의 왕윤석열 대통령의 탄생은 역설적으로 현재 진보 노선이 과도함을 말해준다. 좋은 것도 과하면 되돌아봐야 한다. ‘20년짜리 진보정치의 공과(功過)를 평가하고, 우리는 이제 역사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야 한다.

최병천 <좋은 불평등> 저자·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 경향 2023.02.23.

 

 

눈 떠보니 후진국 5윤 대통령 철 지난 신자유주의타령

윤석열 대통령은 젊은 시절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책 <선택할 자유>를 감명 깊게 읽었다고 한다. 프리드먼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두로 감세와 탈규제 등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의 보수적 경제정책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이 책은 프리드먼이 정부의 개입을 줄이고 시장 자유를 확대하는 내용의 신자유주의 교리를 10회에 걸쳐 방영했던 티브이(TV) 시리즈를 묶어 1980년 펴낸 것이다. 윤 대통령이 2019년 검찰총장 인준청문회 때 자신의 가치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으로 꼽기도 했다.

그는 20213월 검찰총장을 퇴임했는데, 퇴임 뒤 사석에서 만난 한 지인은 윤 대통령이 이 책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다고 기억했다. 대통령 취임사와 그 이후 각종 연설에서 단골로 강조하는 자유가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유를 강조하는 걸 탓할 일은 아니다. 다만 이것이 국민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부의 각종 정책에 반영된다면 사정이 다르다. 과연 누구를 위한 자유인지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현 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감세와 최근 몰아붙이고 있는 이른바 노동개혁정책이 대표적인 사례다. 두 정책은 <선택할 자유>에도 자세하게 소개돼 있다. 이 정책들이 내건 취지처럼 경제를 활성화하고, 노동 약자들의 삶을 개선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책 설계가 잘못돼 있다면 되레 커다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감세는 주로 대기업·자산가에 그 혜택이 돌아가도록 설계돼 있다. 감세가 일정 조건에서는 투자 유인으로 경제 활성화 효과를 낼 수 있으나 지금처럼 대내외 경제환경이 극도로 불안한 시기엔 투자의 마중물 구실을 하기가 어렵다. 대규모 감세를 단행했던 레이건과 부시 행정부 시절 미국은 물론이고 이명박 정부에서도 그런 효과는 별로 내지 못하고 불평등 심화의 요인이 됐다.

 

고물가·고금리의 여파로 올해 경기침체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선 재정 여력을 최대한 아끼고, 경기침체에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심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서민층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게 올바른 처방인데도 정부는 지난해 부자 감세를 밀어붙였다. 대선 공약을 이행해 지지층에 보답하려는 뜻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판단의 피해가 나타나는 데는 시일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올 초부터 난방비가 폭등하고 공공요금이 들썩이며 서민층과 영세사업자들이 아우성을 치는데도 정부 대책은 너무나 빈약했다. 재정이 부족한 탓이다. 최근 내놓은 민생대책에선 은행과 통신사 등 민간을 쥐어짜 내기에 바빴다. 보수적 경제신문들마저 과도한 시장 개입을 우려할 정도다.

 

노동개혁은 사실상 반노조정책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이런 강경한 노조 때리기정책이 왜 나왔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다. 다만 <선택할 자유>가 의사협회와 같은 고소득 전문직의 이익집단 사례를 들며 노조의 성격을 설명하는 데서 추론을 해볼 수는 있다. 현실을 극도로 추상화해 사고하는 경제학자의 속성상 고소득을 올리는 의사와 날마다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노동자들 처지의 차이는 온데간데없고 그냥 똑같은 이익집단으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노조를 지대 추구집단으로 보는 윤 대통령의 인식도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대통령이 건설노조에 대해 조폭에 빗대어 건폭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하며 강력한 단속에 나설 것임을 천명했다.

 

마치 1980년대 초반 정의사회 구현을 국정목표로 사회악을 일소하겠다며 사회정화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친 전두환 정권을 떠올리게 한다. 총칼로 정권을 탈취한 군인들이 집권 정당성을 얻고자 사회정화 운동을 벌인 것과 그 대상과 방식은 다르지만 본질은 유사하다. 무너져내리고 있는 민생을 추스를 역량이 한계에 다다른 검찰 정권이 추락하는 지지율을 올리기 위한 측면이 강해 보인다.

 

윤 대통령이 무슨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려고 이런 정책을 펴는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정책이 지금의 현실에 맞지 않는다면 어디에 잘못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선택할 자유식 신자유주의 처방은 미국에서도 한물간 지 오래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인해 케인스적 처방이 한계를 드러낸 것을 계기로 신자유주의는 1980~90년대 서구 사회에서 득세했다.

 

그러나 전방위적인 규제완화의 대가는 혹독했다. 금융규제 완화로 신종 금융기법이라는 미명 아래 대출이 마구 풀리며 부동산 버블(거품)을 초래했다. 부동산 버블 붕괴가 조밀하게 얽혀 있는 금융시스템까지 파괴한 결과가 바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신자유주의 모델을 적용해 한계가 드러난 일대 사건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에선 이를 계기로 금융규제 강화로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정반대 현상이 벌어졌다. 2014년 박근혜 정부의 빚내서 집 사라정책이 대표적이다. 주택담보대출은 말할 것도 없고, 전세자금대출도 대폭 완화해 투기세력 갭투기의 먹잇감을 만들어 줬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를 제어하는 데 실패했다. 지금 나타나는 전세사기 피해의 뿌리는 거기에서부터 잉태됐다.

 

최근 현 정부는 은행 과점체제 해소를 얘기하고 있다. “은행은 공공재라는 윤 대통령의 발언 취지는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은행의 탐욕을 제어한다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언급했다는 완전 경쟁식으로 가자는 건 금융업 현실을 너무도 모르는 발상이다. 은행은 마치 인체의 피를 나르는 혈맥처럼 경제시스템의 핵심이어서 리스크 규제가 불가피한 업이다.

은행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이나 불공정 행위는 금융감독 강화로 풀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경쟁을 촉진하겠다는 명분 아래 규제를 대거 풀면 시장은 더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은행 과점체제 개선은 전형적인 금융정책으로, 금융위원회 소관 사항이다. 그런데 금융감독 업무를 맡는 이 원장이 앞장서는 건 월권에 가깝다. 금융정책마저 검사 출신이 쥐락펴락하려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경제·사회·금융정책은 국민들의 삶에 직결된다. 한편으론 시장 자유를 외치면서 다른 한편에선 정부가 과도하게, 그것도 잘못된 접근법으로 시장에 개입하면 큰 화를 초래한다. 검찰 출신의 정권 핵심부가 추진하는 일이라 견제하는 이도 눈에 보이지 않아 더 위험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비상경제민생회의 모두발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부의 정책이 과학이 아닌 이념과 포퓰리즘에 기반하면 국민이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문장의 주어는 기자들에게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야말로 1980년대식 신자유주의 이념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박현 ㅣ 논설위원 | 한겨레 2023.02.23.

 

국민은 피곤하다

물가안정은 역대 정부가 공히 역점을 쏟은 정책 가운데 하나였다. 1970~1990년대 경제 부처는 물론 관공서를 총동원해 물가잡기에 나서곤 했다. 일선 공무원을 중심으로 단속반을 구성하고 음식점·서비스업소를 직접 찾아가 일제단속을 했다. 가격이나 요금을 과다하게 올리면 행정지도를 하고 이에 불응하면 위생검사와 세무조사에 들어가는 등 제재를 가했다.

 

당시엔 짜장면, 설렁탕, 비빔밥 등 음식값은 물론 심지어 다방 커피값까지 물가단속의 타깃이 됐다. ·미용료, 목욕료, 세탁료, 자동차학원 수강료까지 실생활과 관련 있는 대상은 거의 망라했다. 1976년엔 경제기획원 산하에 물가안정위원회를 설치해 특정 분야의 물가를 정부가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공공요금을 결정하기도 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물가가 지난해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더니 이젠 민생을 위협할 수준에 이르고 있다. 난방비와 공공요금이 뜀박질하고 식당 메뉴판과 마트 가격표의 맨 앞자리 숫자가 바뀌기 시작했다. 분식집에서 김밥 한 줄이 5000원에 육박하고 칼국수 한 그릇에 1만원을 넘게 받는 곳이 생겨난 지도 오래다. 서민의 술인 소주 가격도 6000원을 찍을 판이다. 시기만 늦췄을 뿐 버스·지하철 요금도 조만간 오를 예정이다. 치솟는 물가가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1%. 1998년 외환위기 당시 7.5% 이후 2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가 상승의 이면에는 외부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공급망 교란과 원자재 가격 상승, 미국의 금리 인상과 환율 급등,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소비 증가 등 다양한 원인들이 얽혀 있다. 우리뿐 아니다. 치솟는 물가에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내놓는 물가안정을 위한 해법이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7차례 물가안정 대책이 발표됐는데도 체감물가는 여전히 고공비행 중이다. 치솟는 물가를 둘러싼 복잡다단한 요인을 분석하고 체계적인 대응을 해야 하지만 주먹구구 대책이 주를 이룬다. 예를 들면, 난방비 폭탄을 맞게 된 것은 공공요금을 제때 올리지 않은 전 정부 탓이라는 비난으로 퉁친다. 대안을 먼저 생각하기보다 전 정권의 실책으로 책임을 떠넘기는 식이다. 기업 물가 인상 요인을 관리하지 못한 현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데도 말이다.

 

정책의 일관성도 실종됐다.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의 자율성을 부르짖다가, 아니다 싶었는지 기업들을 상대로 통제를 가한다. ‘간담회에선 물가안정을 위한 업계의 협력을 당부하지만 기업으로선 가격을 올리지 말라는 압력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정부의 요청에 누가 용기 있게 못하겠다며 반발할 수 있을까. ‘통신사도 고통분담하라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3사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3월 한 달간 대량의 데이터를 무상 제공하겠다고 발표한 것만 봐도 쉽게 짐작이 간다. 몇달 전까지 기업의 투자 독려를 위해 규제 철폐를 외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고용불안마저 겹치고 있다. 지난달 실업자 수는 1024000명으로 지난해 1(1143000) 이후 1년 만에 다시 100만명을 넘어섰다. 통계청에 따르면 실업률과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더한 경제고통지수가 8.8로 집계돼 역대 1월 기준 최고를 기록했다. 종전 최고인 20101월 기록(8.5)을 뛰어넘었다. 일자리 구하기도 힘든데 물가까지 덩달아 뛰면서 서민의 어깨를 짓누른다. 민생고는 더해가지만 해결할 만한 묘책은 윤곽조차 잡히지 않는다. 정부가 기껏 마련한 ‘××전략회의, ○○대책회의에선 거창한 수치와 장밋빛 청사진이 나오지만 실제 목표를 이룰지는 미지수다. 민생과는 거리가 먼 뉴스들만 난무한다. 재정 투명성을 빌미 삼아 노조 때리기가 연일 지속되고 툭하면 야당 대표 등을 겨냥한 압수수색이 벌어진다.

 

<사기>유림열전을 보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말을 많이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힘써 행하느냐에 달려 있다(爲治者不在多言 顧力行何如耳)”는 구절이 나온다. 한 무제가 신공(申公)이란 학자에게 치세의 근본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자기와 뜻이 맞지 않는다고, 또는 반대편에 섰다고 말과 권력을 동원해 상대방을 몰아붙이기에 앞서 민생을 위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가뜩이나 괴로운데 더 힘들게 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팍팍한 삶에 지칠 대로 지쳤다. 국민들은 피곤하다.

조홍민 사회에디터 | 경향 2023.02.24.

 

다음 소희, 유최안, 김건희특권은 누가, 책임은 누가

사례 1. 2017, 전주의 한 콜센터에서 일하던 특성화고 실습생 홍아무개양이 업무 스트레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전에 아빠에게 아빠 나 오늘도 콜 수 못 채웠어. 퇴근 늦을 것 같아라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그가 일한 분야는 업무 강도가 매우 높은 해지 방어. 나 역시 콜센터 직원과 통화하는 일이 많기에 잘 알지만, 이들은 본의 아니게 고객을 위해 감정노동을 해야 한다. 이는 자기감정 억압일 뿐! 회사 쪽은 실적 압박을 가하고 고객들은 더 싼 곳으로 가려 한다. 얼마나 많은 고객을 확보하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이탈자를 잡느냐가 홍양의 숙제였다. 통신사마다 고객 유치 전쟁이 가속화하면서 애꿎은 그가 희생되었다. 노조가 있어도 그런 경제 전쟁을 막을 순 없었고, 노동부 역시 누구나 다 하는 관행을 못 본 체했다. 심지어 실습생들이 어떤 상황에서 일하는지 세밀히 체크해야 할 학교마저 무심했다. 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지울 수 없었던 홍양의 최종 선택은 자신을 지우는 것이었다. 영화 <다음 소희>(정주리 감독)는 바로 이 현실을 다룬다.

 

사례 2.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는 구호를 내걸고 20226~751일간 옥쇄파업을 한 노동자가 있었다. 유최안 대우조선 하청노조 부지회장이었다. 수주 물량 부족을 이유로 30% 깎인 임금 회복은 물론 하청노조 인정 등을 내세우며 투쟁했다. 그러나 열악한 하청노동자 처지를 널리 알린 것외에는 별 성과가 없었다. 하청업체 사장들도, 원청인 대우조선도, 대우조선 실소유주 산업은행도, 이 전체를 총괄하는 정부도 현장 노동자들의 삶이나 투쟁엔 무관심했다. 그리고 회사 쪽은 쓴맛 좀 봐라라는 듯 하청노조 임원 5명을 상대로 470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 근거는 파업 피해 시수 75만시간×63113=473억원이라 한다. 파업을 부른 현실이 이대로 살 순 없어서였는데, 파업 뒤 현실 역시 이대로 살 순 없게한다. 이런 부당한 사태를 막고자 국회에서 노란봉투법이 계류 중이다.

 

사례 3.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3(재판장 조병구)2023210일 주범 권오수 전 회장 등에게 유죄판결했다. 이 판결문에는 대통령 부인 김아무개씨가 주가조작 행위에 긴밀히 관여했다는 구체적 정황이 담겼다. 검찰이 기소한 통정·가장매매(시세 조종하거나 거래 활성화를 가장하려고 서로 짜고 사고파는 행위) 중 공소시효가 남은 게 130건이었다. 그중 유죄 판정된 것이 102건이다. 흥미롭게도 재판부는 김씨가 직접 연관된 48(48%)을 유죄로 봤다. 김씨의 통정·가장매매는 2010년 연말께 여덟차례 이뤄졌는데, 이 기간 도이치모터스 주가는 3130원에서 4600원으로 46% 올랐다. 같은 재판에서 김씨 모친 최은순의 거래 22건도 고가매수, 물량소진, 허수매수 등 유죄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검찰은 김씨나 최씨를 이 문제로 소환 조사하지도, 기소하지도 않았다. 그 결과 ‘12시에 만나요 주가조작, 둘이서 만납시다 통정매매란 노래가 세계 곳곳에서 퍼진다.

 

사례 4. 2021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2주간 진행된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결과, 한국을 포함한 선진국은 2030년까지 석탄발전소를 없애야 한다. 이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노후 석탄발전소 28기를 액화천연가스(LNG)로 바꿀 계획이다. 경남 하동의 남부발전 역시 석탄발전 8기 중 6기를 2031년까지 점차 엘엔지로 바꾼다. 엘엔지 발전을 중간단계로 하고 그 이후 청정 재생에너지를 전면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는 시간상 세계적 흐름에 맞지 않고, 더구나 엘엔지는 실체가 메탄( CH)이기에 지구온난화를 더 악화할 위험 물질이다. 엘엔지복합발전은 석탄발전보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약 30% 감소한다지만, 대신 이산화탄소보다 온실효과가 80배 이상 강한 메탄을 쓰기에, ‘혹 떼려다 혹 붙이는(CH+2O=CO+2HO)! 엘엔지, 즉 메탄이 이산화탄소보다 80배 이상 고약하다는 것은 미국 환경보호청(EPA) 자료에 근거한다.

 

위 네 사례에 공통점이 있다. ‘무책임의 경제다. 옛말에 돈 나고 사람 났나, 사람 나고 돈 났지라 했듯, 무릇 경제란 사람들이 살자고 하는 활동, 즉 죽임이 아닌 살림의 행위다. 그런데 사례 1에서처럼 기업 간 이윤 경쟁이 학생이나 노동자를 죽인다. 사례 2의 원청에서 하청까지 이어진 긴 고리가 상징하듯, 비용의 외주화, 위험의 외주화, 책임의 외주화가 일어난다. 하청노조는 원청회사와 교섭할 권리마저 부정당하고, 힘겨운 파업 뒤 서글픈 타협에도 불구하고 수백억대 손배소가 뒤통수를 친다. 사례 3검찰 공화국의 산 증거다. 오죽하면 유검무죄, 무검유죄란 신조어까지 나왔으랴? 원래 주식시장 자체가 자본 공화국을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주식시장이 공정하더라도 이윤을 위해 사람과 자연이 희생당할 위험이 크다. 그런데 주가조작은 자본의 관점에서도 무책임한 행위로, 절대 용납이 안 된다. 그러나 검찰 공화국은 그조차 초월하려 든다. 무책임을 넘은 무감각! 사례 4에서는 에너지 문제와 관련해, 표리부동의 논리로 지구를 망가뜨려, 현세대만 속이는 게 아니라 미래세대까지 무책임하게 속이려 든다.

요컨대, 우리는 학생, 노동자, 보통 사람들, 나아가 자연의 권리와 행복을 짓밟고 그 희생을 바탕으로 가진 자나 높은 자들만의 특권을 추구하는 무책임의 경제 속에 산다. 무책임의 경제는 무한정 가능하지 않다. 이를 책임성있게 바꾸는 길은?

 

첫째, 법과 정의, 진실이 바로 서야 한다. 경찰, 검찰, 법원이 바로 서야 하고, 언론과 학계가 바로 서야 한다. 돈과 권력에 중독된 자들이 엘리트로 통하는 세상에선 아무 희망이 없다.

둘째, 엘리트만 욕할 일이 아니다. 많은 우리들 역시 돈과 권력에 중독된 자들을 미워하면서 시나브로 닮아간다. ‘강자 동일시. 뼛속까지 내면화해버린 이것을 철저히 털어내지 않으면, 엘리트 위주의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민주주의를 이루려면 이 병들어선 안 된다.

 

셋째, 힘겹게 쟁취한 민주주의조차 자본의 돈벌이 원리 탓에 망가지기 일쑤다. 따라서 상품, 가치, 노동, 화폐, 자본 등 물신에 지배당한 사회적 관계 전반을 구조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더 이상 사람과 공동체, 자연에 비용, 위험,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 삶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부지런히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실험하고 상상해나가야 한다. 당대가 못다 하면 후대가 이어가면 된다. 삶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니까!

연재강수돌 칼럼

강수돌 |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 한겨레 2023.02.24.

 

 

법 기술자들의 나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던 정순신 전 검사가 지난 25일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로 낙마했다. 피해 학생이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했다니, 이 정도면 피해 학생에게 사죄하고 처벌을 달게 받도록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정 전 검사의 뇌리에는 이 먼저 떠올랐던 것 같다. 그는 전학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재심과 행정소송, 가처분신청 등 가능한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했다. 소송은 대법원까지 이어졌다. 그 기간에 피해 학생이 견뎌야 했던 2차적 고통은 어땠을까.

 

해당 고등학교 관계자의 증언이 기막히다. “대응하는 걸 딱 보니까 아이고, 이게 프로구나일반인은 생각도 못 할 그런 일들을 쭉 단계 단계로.”

이 말을 들으니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때 발언이 연상된다. “여러분이 만약 기소를 당해 법정에서 상당히 법률적으로 숙련된 검사를 만나서 몇년 동안 재판을 받고 결국 대법원에 가서 무죄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의 인생이 절단난다. 판사가 마지막에 무죄를 선고해서 여러분이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다. 여러분은 법을 모르고 살아왔는데 형사법에 엄청나게 숙련된 검사와 법정에서 마주쳐야 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재앙이다.”

 

생각할수록 섬뜩한 말이다. 비록 무죄가 예상되는 사건이라도 수사·기소·재판 등 법 절차를 통해 얼마든지 상대방을 괴롭힐 수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소기의 목적을 위해 숙련된 법 기술을 능수능란하게 펼칠 수 있다는 검사로서의 경험칙이 엿보인다. 비록 전학 처분을 되돌리는 게 정의가 아닐지라도 끝까지 법적 다툼을 이어간 정 전 검사의 프로적인 태도 또한 이런 검찰의 속성이 발현된 게 아니었나 싶다.

 

기실 검찰이 법 기술을 동원하면 상식과 정반대의 세계가 현실로 펼쳐지곤 했으니 이런 태도가 무모하지만은 않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출국금지를 둘러싼 거대한 해프닝을 보자. 한밤에 외국으로 달아나려던 그를 긴급히 출국금지시킨 일은 국민의 박수를 받았다. 그런데 검찰은 어느새 이를 희대의 권력남용·인권침해 사건으로 둔갑시켰다. 사소한 절차적 미비를 침소봉대해 압수수색·소환조사를 벌이며, 김 전 차관을 단죄하기 위해 노력했던 검사와 법무부 간부 등을 죄인으로 몰았다. 지난 15일 이들은 사실상 전부 무죄판결을 받았다.

 

윤미향 의원 사건은 어떤가. 검찰은 준사기 등 8개씩이나 혐의를 붙여 기소했지만 이 중 7개는 무죄판결이 났다. 유일하게 인정된 업무상 횡령도 검찰 기소 금액의 17% 정도만 인정됐다. 검찰은 윤 의원이 일본군 위안부피해자의 치매를 이용해 사실상 사기를 쳤다며 파렴치범으로 몰았지만, 법원은 치매를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 수사 당시, ‘일본군 위안부피해자들을 위해 30년을 일해온 윤 의원의 삶은 부정됐고 함께 헌신했던 손영미 위안부 피해자 쉼터 소장은 압수수색을 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법의 이름으로 누군가는 죽음보다 힘겨운 고통을 받는다. 검찰이 만들어낸 유죄의 가상현실은 적어도 수사·기소·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그 목표물들을 괴롭힌다. 이런 일은 의외로 많다. 2015년부터 20206월까지 수사·기소 과정에서 구속됐다가 최종 무죄로 풀려난 사람이 905명이나 되는 사실은 그 한 단면이다.

 

윤 대통령은 앞의 발언 말미에 덧붙였다. “검찰의 기소라는 게 굉장히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함부로 기소하지 않고, 기소해야 될 사안을 봐주지 않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앞의 두 사건 모두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일 때 벌어진 일이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검찰을 장악하고, 다른 정부 요직에도 법 기술에 능숙한 검사 출신들을 대거 포진하고 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으로 징계를 받았던 이시원 전 검사(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가 그중 한명이며, 정 전 검사 인사검증에 실패한 책임자 중 한명이기도 하다.

 

정 전 검사는 사퇴를 밝히는 입장문에서도 수사의 최종 목표는 유죄판결이라는 말을 했다. 수사기관이 진실 발견이 아닌 유죄판결을 목표로 삼으면 침소봉대, 여론몰이, 심지어 조작 수사가 벌어진다. 그런 인식을 가진 인물이 경찰 수사의 총지휘자로 임명되지 않게 돼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또 어떤 자리에 어떤 법 기술자가 중용될지 알 수 없다. 검찰과 경찰이 또 어떤 법 기술을 발휘할지도 알 수 없다. 나라가 법 기술자들에게 포획됐으니 또 누가 숨죽여 고통을 견뎌야 할지 알 수 없다.

박용현 | 논설위원 | 한겨레 2023.02.26.

 

무엇을, 누구를 위한 독자 핵무장론인가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의 자체 핵 보유가능성 발언 이후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에 관한 논의가 불붙고 있다. 130일 최종현학술원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천명 가운데 76.6%가 한국의 독자 핵 개발 필요성에 동의했다. 215일 국회에서는 국민의힘 최재형 의원실과 동북아외교안보포럼이 공동 주최한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과 한미동맹 강화라는 공개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1970년대 이후 터부시돼온 한국의 핵무장 논의가 깨져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핵무기 보유의 가장 큰 명분은 국가안보다. 국가안보의 목표는 국가의 생존, 번영, 국격을 보장하는 데 있다. 그러나 핵 자강의 길은 국가의 생존을 더욱 위태롭게 하고, 번영을 위협할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크게 훼손하는 역설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핵 자강은 미국의 확장억제를 신뢰하기 어렵고 북핵에는 남핵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은 이익보다 손실이 크다. 북의 핵 무력을 강화해 한반도 핵 군비경쟁을 심화할 뿐 아니라 오인, 오산, 오류에 의한 핵전쟁 가능성을 고조시키기 때문이다. 또 중국과 러시아 극동의 핵전력 증강과 견제를 초래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은 더욱 첨예해질 것이다. 한국을 견제하기 위한 일본의 핵무장 움직임은 한반도를 동북아 핵 도미노의 중심에 서게 할 수 있다.

 

가장 큰 위험은 한-미 동맹의 파국 가능성이다. 핵 자강론자들은 한국의 독자 핵무장이 중국을 견제하는 효과도 있기에 미국이 크게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심각한 오판이다. 워싱턴에는 한-미 동맹 옹호 세력보다는 핵 비확산 세력의 영향력이 훨씬 막강하며 핵무기를 보유한 한국이 과거처럼 미국에 순종적일 것으로 믿는 이들 또한 극히 드물다. 따라서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이 한-미 동맹을 강화해줄 수 있다는 희망적 기대는 허구에 가깝다. 핵 자강에 수반되는 한-미 동맹 균열과 동북아 위협 환경의 악화는 우리에게 최악의 안보 시나리오다.

 

핵 자강론자들은 흔히 인도와 파키스탄의 사례를 들면서 핵무장을 하더라도 국제사회의 제재 압박을 견딜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또한 과도한 아전인수다. 한국의 농축이나 재처리 행위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과정에서 발각되는 순간 국제원자력기구는 바로 한국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해 각종 제재를 논의하게 된다. 2004년 한국의 일부 원자력 과학자들이 0.2g이라는 소량의 우라늄을 실험 삼아 비밀 농축한 후과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우리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미국, 영국 같은 동맹 우호국이 제재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가. 그에 더해 미국, 일본, 유럽연합(EU)의 독자 제재, 특히 미국의 금융제재는 수출 중심 구조인 한국 경제를 순식간에 초토화할 수 있다. 오랜 기간 수입 대체 전략을 추구했던 인도나 파키스탄과는 그 충격의 수위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가장 확실한 결과 중 하나는 한국의 원자력 산업이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게 되리라는 점이다. 인도나 파키스탄과 달리 한국의 원자력 산업은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해왔다. 한국은 1954년 제정된 미 원자력법 123조에 의거해 미국이 이전한 핵물질, 기자재, 기술을 핵무기 개발 등 군사적으로 전용하는 일이 금지돼 있고, 이를 위반하거나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 규정을 어길 경우 이전물을 즉각 미국에 반환하게 돼 있다. 더불어 원자력공급그룹(NSG)은 한국에 원료 공급을 중단하게 된다. 한국이 은밀하게 핵무기 개발 사업을 추진하면 원자력 산업의 마비는 물론 평화적 이용 목적의 원자로 수출도 불가능해진다.

 

핵 자강의 길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전제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국격 또한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 가운데 최초로 엔피티를 탈퇴한 나라가 되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이후 한국이 누려왔던 국제 무대에서의 대북 도덕적 우위는 사라질 것이고, 대신 엔피티 국제 질서를 파괴한 불량국가라는 오명을 피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다수의 핵 자강론자들이 독자 핵무장이 아니면 무기력한 굴종만이 우리에게 남은 갈래길인 것처럼 말하지만 그 선택이 우리의 생존, 번영, 국격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이다. 워싱턴이 그 어느 때보다 동아시아의 전략적 가치를 중시하고 있고 확장억제 제공을 거듭 확인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한-미 연합전력구조 또한 건재하다. 대화와 협상을 통한 외교적 타결의 길도 아직 남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왜 핵 자강이라는 자충수를 고집하는지 사뭇 이해하기 어렵다.

문정인 | 연세대 명예교수 | 한겨레 2023.02.26.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정부

지난주 통계청이 2022년 인구동향 통계를 발표한 후 출산율 문제가 또다시 뉴스를 뒤덮고 있다. K출산율은 몇 년째 세계기록을 갈아치우는 중이다. 이쯤 되니 과연 어디까지 내려갈 것인가 손에 땀을 쥐고 신기록 레이스를 지켜보게 된다. 이렇게 경쟁자 없는 레이스를 펼치는 동안 정부가 손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책을 수도 없이 내놓았고, 16년 동안 지출한 예산도 280조원이 넘는다. 이 정도면 세금 낭비나 배임 혐의로 전방위 압수수색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지만, 다들 바쁘시니 그건 어려울 것 같다. 통계청 발표 이후 대통령실은 백화점식정책을 지양하고 효과가 있는 정책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지난 20년을 돌이켜보면 처음 듣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쨌든 잘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사례로 든 정책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자녀 돌봄과 병행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재택근무를 활성화하겠다는 것 말이다. 재택근무는 집에서 회사 업무를 한다는 것이지, 집에서 내 마음대로 시간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코로나19 유행 동안 재택근무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디지털 노동감시 문제도 같이 부상했다. 회사는 집에 있는 노동자가 사내 메신저에 접속해 있는지, 업무용 노트북의 클릭이 중단되지 않는지 모니터링하고, 심지어 근무지 이탈 여부를 GPS 기술을 통해 감시하기도 했다.

 

이런 치밀한 감시 없이 일정한 산출물만 만들어내면 되는 이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낮에 아이를 돌보거나 집안일을 하는 시간만큼 다른 시간, 이를테면 잠자는 시간을 쪼개서 업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돌봄과 가사노동 자체의 부담이 덜어지지 않는 이상, 재택근무는 그나마 분리되어 있던 회사 업무와 집안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이중 부담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부담은 보통 여성의 몫이다. 코로나19 유행 시기의 재택근무가 여성 노동자에게 불균등한 부담을 초래했다는 연구 결과도 이미 여럿이다.

 

어느 분야보다 자율성이 높은 학계에서조차 상황은 비슷하다.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면서 국제적으로 여성 연구자들의 논문 출판과 연구비 수주 규모가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어린 자녀가 있는 초기 경력의 연구자에게 더 치명적이다. 현재의 신체적·정신적 부담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경력 전망에도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박근혜 정부 시절, ·가정 양립을 내세우며 경력단절 여성 등 전일제 근무가 곤란한 사람을 위해 시간선택제 공무원 임용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부족한 인력으로 아슬아슬하게 돌아가는 K일터에서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하기는 쉽지 않았다.

 

또한 팀원으로서 소속감을 느끼기도, 경력 개발을 하기도 어려웠다. 제도 시행 5년이 되지 않아 절반 넘는 인력이 떠났고, 정부도 채용 규모를 줄이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모두의 노동시간을 줄이고 일자리를 나눈다면, 고용률은 높아지고 노동 강도는 훨씬 낮아져서 남녀를 불문하고 일·가정 양립이 훨씬 쉬워질 것이다. 일터에 사람 여유, 시간 여유가 있어야 아파도 쉴 수 있고, 급한 집안일로 조퇴하는 것도 가능하다. 국내외의 주 4일제 근무 실험은 노동생산성도 높아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정부의 선택지에 없다.

 

오히려 노동시간을 늘리는 기이한 노동개혁에 매진 중이다. 대체 어느 평행우주인지 모르겠으나, 더 오랜 시간 일하지 못해 속상해하고, 겨우 11시간 연속 휴식 정도는 없어도 일주일에 64시간 노동을 거뜬히 해내는 철의 노동자들로 가득 찬 그곳에 정부의 영혼이 사로잡혀 있다.

 

한쪽에서는 일·가정 양립을 촉진하겠다고 분주한데, 다른 쪽에서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노동시간 연장에 매진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가르침을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 경향 2023.02.27.

 

윤폭과 핵관의 힘

지난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노란봉투법을 통과시켰다. 그동안 노란봉투법 제정의 시급함은 여러 안타까운 소식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2002년 두산중공업이 65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해 조합비와 임금, 살던 집까지 가압류당한 노조 간부 배달호씨가 목숨을 끊었다. 2011년에도 한진중공업이 158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해 노조 조직차장 최강서씨가 극단의 선택을 했다. 2014년 쌍용차 파업 참가 노동자들에게도 4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이 내려졌고, 이로 인해 파업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제한하는 법 제정을 위해 시민들의 자발적 모금 운동이 벌어졌다. 노란봉투법은 19·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모두 폐기됐고, 21대 국회에서도 임기 종료 1년을 앞두고서야 간신히 환노위를 통과했다. 모금 운동이 시작된 지 10년 만에 이루어진 것으로 환노위가 근무 태만으로 비난받을 일이다.

 

그런데 국민의힘 의원들은 표결 당시에도 항의하다 퇴장한 데 이어 더 늦기 전에 노란봉투법을 멈춰라라고 촉구하고 있을 뿐 아니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게다가 한 의원은 현장에서의 노사 갈등과 불법 파업을 조장함은 물론 국가 경제에 끼칠 심대한 폐단과 사회적 악영향이 불 보듯 뻔하다는 터무니없는 논리를 폈다. 노조가 국가 경제를 망친다고 악마화하는 대통령의 논리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던 날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아직도 건설 현장에서는 기득권 강성 노조가 금품 요구, 채용 강요, 공사 방해 같은 불법 행위를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다며 엄정 조치를 지시했다. 건설노조를 조폭에 비유해 건폭으로 지칭하기까지 했다. 국민의힘이 대통령의 논리를 반복하듯 검경은 곧바로 특별수사단을 출범시켰다. 윤폭이 깃발을 들자 검폭, 경폭과 당폭이 부리나케 튀어나가는 꼴이다.

 

윤 대통령의 노조 공격은 노조 회계의 투명성 강화를 명분으로 회계 장부 제출을 요구한 데에서 이미 시작됐다. 고용노동부 장관과 국토교통부 장관도 곧바로 과태료 부과, 정부 보조금 제외, 조합비 세액공제 원점 재검토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압박했다. 불법 행위가 있으면 그 사안에 대해 법에 따라 수사하고 처벌하면 된다. 노조 전체를 공공의 적으로 돌려 바람몰이를 하는 것이 정부의 수장으로서 할 일인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이 정상화된다면 기업 가치도 올라가고, 우리 자본 시장도 엄청나게 발전할 것.” “공정한 경쟁을 통해 노조는 노조답고, 사업주는 사업주답게 제대로 된 시장경제 시스템을 만드는 게 우리가 올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 최근 노조와 관련해 윤 대통령이 한 말들이다. “노조의 정상화” “공정한 경쟁” “노조답고” “사업주답게라는 말들은 그 자체로 좋은 말이다. 그러나 남의 말을 인용하려면 전체 맥락을 봐야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 윤 대통령의 이어진 발언은 국가가 더 이상 노조에 물러서면 기업은 어떻게 되고 경제는 어떻게 되느냐” “기업인들이 지금 우리 정부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명백하다. 윤석열 정부의 국가는 노조로부터 기업을 보호한다. 정상, 공정, 다움의 기준이 사업주의 이익을 따르고 있음이 드러난다. 이제 다시 해석해 보면, ‘노조의 정상화노조의 무력화, ‘공정한 경쟁사업주에 유리한 경쟁으로 읽힌다. ‘노조답고, 사업주답게노조는 주는 대로, 사업주는 마음대로로 들린다. 노동자도 보고 있다!

 

또한 윤 대통령은 건폭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엄정 단속해 건설 현장에서의 법치를 확고히 세우라단속이 일시적으로 끝나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조에 대한 공격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든다. 노란봉투법은 윤석열 정부의 대()노조 전쟁 한가운데에서 환노위를 통과했다. 이제 공은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갔다. 국민이 아니라 대통령만을 바라보는 핵관의 힘이 버티고 있어 전망이 밝지 않다.

 

국민이 약하면 정치가 날뛰고, 노조가 약하면 사업주가 날뛴다. 사업주가 독자적으로 노조를 상대하지 못하고 정부의 비호를 받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노조가 강한 것인가? 손해배상으로 노조 간부가 죽어 나가는 나라인데 말이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양쪽의 공격을 함께 받으면 심대한 타격을 입는다. 노조가 불법 행위를 했으면 처벌받아야겠지만, 정부가 노조를 순치하려 한다면 노조 전체가 합심하여 대항하고 국민들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국민의 대부분은 노동자이므로 노조가 약해지면 국민도 약해지기 마련이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경향 2023.02.27.

 

 

이재명의 꿈이 불편한 이들

조봉암 사법살인 연상케 하는 이재명 구속영장

증거는 물론이고, 내용도 부실한 검찰의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은 64년 전 사법살인을 한 죽산 조봉암의 경우를 연상케 한다. 죽산의 변호인단은 대법원의 재심을 청구하였으나 청구 다음 날 기각 당했다. 죽산 조봉암이 하루라도 살아 있는 것이 불편했던 이들의 합작(?)으로 재심 청구를 기각하자마자 사형을 집행했다. 당시의 (정치)검찰은 인간 백정에 불과하였고, 1심 재판부를 제외한 나머지 재판부는 부역자 역할에 충실하였다.

 

세월이 흘러 52년이 지난 후인 201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만장일치로 죽산 조봉암에 무죄를 선고하였다. 문제는 무죄가 났다고 죽산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죽산을 죽인 이들이 처벌받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죽산을 제거한 이들은 분단 속에서 특권을 누리는 이들로서 죽산이 대통령이 되면 자신들의 특권이 없어질 것을 두려워했다. “선거에서 이기고 개표에서 졌다라는 외신기자들의 평가처럼 죽산이 정권을 잡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죽산 제거에 이승만과 자유당, 당시 야당인 한민당 등 광범위한 기득권 세력이 동참하였던 배경이다.

 

이재명 핍박은 2의 조봉암만들기

죽산이 자신을 한국적 진보주의자로 규정한 이유는 국민이 진짜 주인인 나라를 만들겠다는 민주주의 신념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죽산이 추구했던 대한민국은 해방 후 조소앙 등 이 땅의 애국지사들이 만들려 했던 나라였고, ‘죽산의 꿈은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억강부약과 대동세상을 자신이 정치하는 이유로 내세우는 이재명의 꿈으로 이어지고 있다. 변방의 정치인이었던 이재명이 국민으로부터 선택된 이유는 귀족 의식에 찌든 대부분 정치인과 달리 (힘이 없다고 오랫동안 짓밟혀온, 그래서 자신의 권리인지조차 모르고 사는) 국민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구습의 혁파와 싸우는 정치를 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제도화된세습사회가 만들어졌다. 구조화되고 제도화된 세습사회의 모습은 돈의 흐름과 배분에서 확인된다. 2020년과 21, 시중 통화량이 697조 넘게 증가했지만, 이 중 21%만이 실물경제에 투입되고 나머지는 자산시장으로 흘러갔다. 그 결과 국민순소득은 103조 원이 증가한 반면, 국민순자산은 31배가 넘는 3239조 원이 증가했다. 특히 부동산자산이 2825조 원 증가했다. 한국 사회가 부동산 건설을 매개로 특권층 카르텔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한국 사회의 실상은 불평등에서 최고 선진국(?)인 미국과 비교하면 쉽게 이해된다. 같은 기간 미국에서 풀린 통화량 중 43%가 실물경제에 투입되었고, 순자산 증가는 순소득 증가의 15배 정도였다. 경제적으로 소득보다 자산이 중요한 의미를 가질 때 그 사회는 세습성을 띠게 된다. 한국과 미국의 더 큰 차이는 한국은 부동산자산 증가가 주식가치 증가의 3배였던 반면, 미국은 반대로 주식가치 증가가 주택가치 증가의 3배에 달했다는 점이다. 한국은 미국보다 훨씬 세습성이 강한 자산 중심의 경제구조, 그것도 사회적 해악이 큰 부동산자산 중심의 경제구조를 갖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 땀 흘리고, 혁신을 추구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인구 소멸은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자산 증식 재테크 연구(?)가 많은 국민의 일상이 된 배경이다.

 

'난방 양극화'를 보여주는 사진.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서울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왼쪽)과 서울 시내의 한 아파트 단지(오른쪽). 온도가 높을수록 붉은색, 낮을수록 푸른색을 나타낸다. 2023.1.27

 

기본사회제도화 추구로 버전업된 이재명의 꿈

한국의 특권층은 세습사회를 용납하지 않는 민주주의와 양립 불가능하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노무현의 꿈은 세습사회와 특권층의 해체였기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기본사회로 상징되는 이재명의 꿈은 정치개혁을 넘어 특권층 해체에 대한 사회경제의 제도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대한민국에서 힘(특권)은 돈에서 나온다. 돈의 배분을 다루는 곳이 금융이다. 금융은 돈의 배분을 의미하는 금전융통의 준말이다. 오늘날 금융(finance)을 사적 영역의 금융과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지만, 공적 영역에서의 금융도 존재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재정(public finance)이라는 용어가 바로 공적 영역에서 금융에 해당한다. 모두 돈의 배분을 다룬다.

 

인간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삶의 방식을 선택했을 때부터 사회 구성원 모두 생산물의 배분부터 사회를 운영하기 위해 만든 시스템이나 제도 등의 이용에서 최소한의 권리를 갖는다. 최소한의 권리가 부정될 때 다수의 국민은 생존 위기에 내몰린다. 오늘날 화폐경제에서 생산물은 소득으로, 돈의 배분과 관련된 시스템과 제도는 (중앙은행과 시중은행으로 구성되는) 은행시스템과 금융제도의 모습을 띤다. 생산물 배분에서 사회 구성원의 최소 권리가 기본소득이고 은행시스템 이용에 대한 최소 권리가 기본금융이다.

 

국민이 진짜 주인이 되는 사회의 제도화를 추구하는 것이 이재명의 기본사회개념이다. 기본사회의 양대 축인 기본소득과 기본금융은 재정과 금융에서 국민의 최소한의 권리를 찾아주겠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을 재정 민주주의, 기본금융을 금융 민주주의로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이다. 돈의 배분에서 국민의 권리를 정상화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돈의 배분에서 다수의 국민이 배제되고, 소수에게 집중될 때 특권층이 만들어지고 사회의 세습성은 강화된다. 많은 사람은 돈의 배분과 민주주의가 무슨 관계가 있냐고 말한다. 그만큼 많은 국민이 자신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잊고 산다.

 

민주주의 11표 원리를 무력화하는 모피아 늘공들

일찍이 (현대 자유주의의 시조로 불리는) 존 스튜어트 밀(1849)조차 한 사회의 생산물 배분에서 가장 먼저 노동력의 유무와 관계없이 공동체 구성원의 최소 생계에 필요한 부분을 할당하고, 나머지를 각 개인의 기여에 따라 배분할 것을 주장하였다.(In the distribution a certain minimum is first assigned for the subsistence of every member of the community, whether capable or not of labor. The remainder of the produce is shared in certain proportions to be determined beforehand, among the three elements, Labor, Capital and Talent.)

 

(인간 생존을 위해 함께 이룩한) 모든 생산물은 사회 몫개인 몫으로 나뉜다. ‘사회 몫의 크기와 사용처 등은 11표 원리에 따라 결정되는 정치 영역에서 결정되고, ‘개인 몫의 배분은 11표 원리에 따라 결정되는 시장 영역에서 결정된다. 돈의 힘이 지배하는 시장 영역에 정치가 개입하지 않으면 불공정과 불평등이 만연할 수밖에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기울기가 최대한 평평하게 되도록 시스템과 제도 등을 설계하는 것과 불평등을 완화하도록 재정을 운용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무엇보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기울기를 평평하게 만드는 일은 공정경쟁을 기본원리로 삼는 시장경제의 가치와 부합한다. (시장과 민주주의의 관계는 지난해 125일자 글 불확실성의 시대와 노동 혐오, 그리고 경제비상사태를 참고) 그런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재정은 특권층의 논리로 운용되고, 특권층에게 유리하게 은행시스템 및 금융제도가 설계되어 있다. 잘못된 운용과 설계를 정상화하지 않는 한 극단적인 불평등과 세습사회의 공고화 등은 막을 수가 없다.

 

그럴려면 첫째, ‘사회 몫에 해당하는 재정 자원의 편성과 운용 등은 선출직 공직자가 선거 과정에서 국민에게 공약을 제시하여 승인받고 공직자가 된 후 공약의 취지를 최대한 살려 실행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재정 자원의 편성과 운용 등에 대한 권한은 재정 관료가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 기재부의 막강한 권한과 (민주정권에서 사실상 내치를 담당하는) 국무총리의 수족인, 심지어 (경제 분야와 관련해서는) 머리 역할도 하는 국무조정실장은 사실상 기재부 출신의 당연직 몫이다. 이는 정부조직법 27조의 기재부 권한에서 비롯한다. 게다가 대통령실(청와대)에 들어간 이른바 '어공'들이 관료와 충돌할 때, 관료들이 언론의 지원을 받아 어공을 축출하고 기재부 출신을 중심으로 '늘공'이 청와대도 장악한다. 헌법상 최고 기관인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재경 관료에 포획되는 배경이다.

 

주지하듯이, 또 다른 선출 권력인 국회도 예산 편성에서 증액이나 비용이 들어가는 새로운 사업을 추가할 수 없다.(헌법 57) 예산 배정으로 나머지 정부 기구와 국회의원 등을 통제하고, 세제로 국토부의 부동산정책을 휘두르고, (금융 관련 업무를 보던 재경 관료가 장악하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통해 금융 정책으로 부동산 건설과 금융회사 등을 지원 사격한다. 재경 관료들은 퇴임 후 은행 등 금융(관련)조직이나 로펌 등의 요직으로 자리를 옮기고, 때로는 다시 공직으로 재진출하기도 한다. 이른바 회전문 인사.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사유화하여 조직의 이익을 추구하는) 모피아가 (언론과 더불어) ‘부동산 카르텔의 핵심 역할을 하는 배경이다. 정치검찰과 더불어 모피아의 해체가 대한민국에서 시대 과제로 부상한 이유이다.

 

부유층 감세로의 회귀를 막을 수 있는 전 국민 토지배당

따라서 재경 관료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가능하도록 법과 제도의 개편과 더불어 재정 관료의 권한을 최소화하는 세제 개편이 필요하고, 이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 기본소득 개념이다. 우리 실정을 반영한 대표적 기본소득 방안이 우리 사회 불평등의 최대 요인이자 세습성을 강화시키는 토지 부동산자산에 대해 국토보유세를 부과하고 이로부터의 수입을 국민 배당금으로 국민 모두에게 1/N로 배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한 기대효과는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 재정 민주주의 취지에 부합한다. 세금을 거둔 후 그 세금을 바로 국민에게 배당해줌으로써 재경 관료의 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게다가 보수정권으로 바뀐 후 부유층 감세로의 복귀를 어렵게 한다. 토지부동산 부유층에 대한 감세가 대다수 국민이 받아왔던 토지배당금 수입의 감소로 이어져 감세 저항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소수의 토지 부동산 자산가층으로부터 대다수 국민에게 소득 이전을 통해 불평등을 크게 개선할 수 있고, 일하는 계층에게 부담이 집중되는 소득세 중심의 세제를 보완함으로써 세대 갈등을 완화할 수 있으며, 부동산 투기에 따른 기대 불로소득을 낮춤으로써 투기 완화에도 기여한다. 토지배당을 지역화폐로 나누어 주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특히 저소득층일수록 혜택이 크기에 저소득층의 최저임금에 대한 의존을 낮출 수 있고, 그 결과 최저임금 인상률을 둘러싼 을과 을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 노동소득 이외의 추가 사회소득의 발생으로 많은 국민이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시도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삶의 질의 향상과 혁신 활성화 등을 기대할 수 있다.

 

은행시스템의 공공성과 기본금융

둘째, 민주주의가 취약한 사회일수록 기울어진 운동장이 많다. 이른바 갑질 문제가 제기되는 관련 분야 대부분이 기울어진 운동장의 문제를 내포한다. 그런데 국민 대다수는 우리 사회 대표적 을의 문제가 은행시스템과 금융제도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역사적으로 은행자본의 본격적인 성장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함께 가치를 보증한) 국가법정화폐를 사용하면서 시작되었다. 많은 국민은 (시중은행이 발행하는 자기앞수표처럼)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지폐(한국은행권)가 채권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이용한다. 미국에서는 연준이 발행하는 달러 지폐를 채권을 의미하는 빌(bills)이나 노트(notes)라 부른다. 초기 은행들은 자신이 보유한 금의 규모 내에서 각자의 은행()(은행화폐)을 발행하고 각 은행권의 가치는 금에 의해 보증되었다. 그 결과 은행권 발행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행자본은 (전쟁비용 조달의 압박을 받는) 정부에게 (만기가 되면 연장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사실상 만기 없이 이자만 받고 돈을 빌려주는 대신, 납세자 국민은 은행이 발행하는 은행화폐로만 세금을 내게 하는 특혜를 얻어냈다. 이른바 중앙은행의 원조로 불리는 영란은행의 탄생 과정이고, 교과서에 중앙은행을 은행의 은행이자 정부의 은행으로 표현하게 된 배경이다. 한국은행이 발행한 지폐(채권)는 국가의 경제력으로 가치(상환능력)를 보증(뒷받침)한 것이지만, 여기서 국가는 대통령도 아니고 그렇다고 국가 살림을 담당하는 기재부장관도 아니고, 국가 경제력의 토대인 세금을 내는 국민이다. 따라서 국민은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화폐에 대한 최소한의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

 

이처럼 한국은행이 발행한 채권(지폐)에 대해 국민 전체가 가치를 공동으로 보증했는데 한국은행 이용은 은행과 정부만 할 수 있다. 국민에게는 의무만 지우고 권리를 배제한 것이다. 사인 간 계약관계에서 부담만 지우고 권리를 주지 않는다면 계약은 성립될 수 없다. 왜 은행만 (한국 사회에서 가장 낮은 금리인)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를 이용하고, 유동성이 부족할 때 사실상 무제한의 유동성까지 지원받는 혜택을 누리는가? 왜 신용대출 이용 소비자 중 20% 가까운 국민이 시중은행을 이용하지 못하는 현실을 당연한 것처럼 용인해야 하는가? 은행이 누리는 혜택까지 확대하지 않더라도 대한민국 모든 국민은 허용 가능한 가장 낮은 금리로 최소한의 신용을 이용할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고, 이것이 이재명이 말하는 기본금융 개념이다.

 

(중앙은행과 시중은행으로 구성하는) 은행시스템의 성격 결정은 정치의 영역이다. 법적으로 은행업은 정부의 인허가 사업인 배경이다.(금융위원회법 17) 최근 윤석열 정권이 은행은 공공재, 은행의 공공성, 은행의 사회적 책임, 금리 개입 등을 떠들 수 있는 것도 이런 법적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은행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이란 다름 아닌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돈의 배분에서 기본적 권리를 보장해주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원하는 국민 모두에게 신용등급 1등급자에게 적용하는 금리로 일정 신용(: 1000만 원)을 매달 이자만 상환하며 사실상 무기한 이용하게 해주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매달 상환해야 할 이자(: 수만 원)는 아르바이트만 해도 충분히 상환할 수 있는 금액이고, 돈을 사용할 필요가 없는 사람은 예금이자보다 높은 금리를 상환하며 신용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신용등급 1등급자도 이 돈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 은행을 이용하는 것이나 차별성이 없기 때문이다.

 

공연한 우려, 사회적 이득이 그득한 기본금융

기본금융에 대해 걱정거리(?)를 찾기 위해 애를 쓰는 분들이 많은데 이들의 가장 큰 우려는 상환 실패 시 부실 문제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각의 가장 큰 문제는 기본금융을 사회의 부담으로 본다는 점이다. (기본소득이 사회의 생산물에 대한 국민의 최소한의 기본권리이듯이) 기본금융은 (국민 모두의 보증으로 작동이 가능한) 국가법정화폐와 은행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최소한의 기본권리다. 사회적 부담 역시 기우에 가깝다.

 

첫째, 금리가 최대로 낮아졌기에 상환 실패 가능성이 작아졌을 뿐 아니라 능력이 되는데도 고의로 상환을 거부하고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신용불량자를 선택할 사람은 없다. 게다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이자를 상환하지 못할 경우) ‘일자리 국가보장제로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자리에 우선 연결해줄 수 있다. 최악의 경우에는 국가 재정에 편입되는 한국은행 수익으로 메꾸면 된다.

 

반면, 기본금융은 사회적 이득이 너무 많다. 기본금융 규모만큼 은행과 금융회사의 자금 수요가 줄어듦으로써 이자율 인하 경쟁을 유도하여 은행 등 금융회사의 과도한 금리 장사를 억제하고 소비자 이득이 크게 증대한다. 급전이 필요한 소비자가 고금리 자금을 이용하는 2금융권(저축은행, 카드사, 캐피탈사, 보험사, 증권사 등)이나 대부업체 등이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런데 금융회사 유지를 위해 소비자 국민이 희생할 수는 없다. 오히려 대출 감소에 직면한 2금융권의 혁신을 자극할 수 있다. 무엇보다 기본소득과 더불어 많은 국민은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시도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고, 특히 창업 청년들은 5인이 모이면 5000만 원의 시드머니를 확보할 수 있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이자를 상환하지 못하는 경우 위기가구 발굴의 신호로도 활용할 수 있다.

 

기본소득 및 기본금융과 더불어 (반영구적인 장기공공임대 성격을 갖는) 기본주택은 주택 매입이 어려운 국민의 주거 불안을 해소시키는 반면 민간주택과 주택금융에 대한 수요를 줄임으로써 건설자본과 금융자본에게는 피해를 입힌다. 이처럼 이재명이 정치생명을 걸고 추진하는 기본사회는 국민 복리를 크게 증대시키고 대한민국 사회를 활력적으로 만든다.

 

반면 기본사회가 제도화되면 특권층 카르텔의 이익은 근본적으로 훼손되고, 세습사회는 제도적으로 해체된다. ‘이재명의 꿈을 우리 사회의 특권층이 불편해하고, ‘이재명의 세상을 사력을 다해 막으려는 이유이다. 무엇보다 연이은 실정으로 윤석열 정권의 유지가 위협을 받고, 국민은 갈수록 생존 위기에 내몰리는 상황에서 이재명 시대의 도래가 시간문제라는 특권층의 불안이 검찰과 사법부, 언론이 역할 분담으로 이재명 죽이기를 사생결단하는 배경이다.

최배근 건국대 교수 시민언론 민들레 2023.02.27.

 

무법과 특권 공유한 정순신 부자세도정치 시절이 그랬다

아빠 아는 사람 많다”, “검사라는 직업은 다 뇌물 받고 하는 직업이다”, “판사랑 친하면 재판에서 무조건 승소한다

 

이번에 국가수사본부장이라는 고위직에 임명됐다가 사퇴한 이의 아들이 고등학생 시절 검사 아버지를 자랑하면서 친구들에게 한 말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주변에서 검사가 뇌물 받는 직업이라고 말하면 검사 아들은 불같이 화를 내야 마땅하지 않을까? 검사 아들이라면 아버지가 아는 사람이 많거나 판사랑 친해서 재판에서 승소한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능력이 출중하고 열심히 노력해 매번 재판에서 이긴다고 자랑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다. 조선후기 특권층의 시각을 적용해 보면, 이런 발언의 맥락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조선시대 과거제는 열심히 노력하면 국가의 관료가 될 관문을 평민들에게까지 열어주었으니 전근대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공정한 제도였다. 하지만 경쟁이 문자 그대로 시행된 것은 물론 아니다. 문과의 경우 기본은 3년마다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식년시였는데, 그 시험은 지방 선비들도 미리 대비할 수 있고 초시·복시·전시의 단계를 착실히 밟아 급제자가 결정됐다. 그에 비해 부정기적으로 갑자기 시행되는 별시는 중앙의 선비들에게 유리했고, 때로는 단 한번의 시험으로 급제자를 정할 정도로 절차나 채점과정이 매우 소략했다.

 

그렇다면 원래 절차에 충실하고 좀더 공정한 경쟁을 통과한 식년시 급제자가 우대받았을까? 아니다. 부귀한 가문의 자제는 대개 별시를 통해 관직에 올랐다. 조선후기 특권 계층이 보기에, 자기 실력으로 경쟁을 거쳐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이들은 지닌 것 없는 비루한 무리일 뿐이었다. 특권층은 능력만으로 진출한 인물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 자체를 수치로 여겼다.

부귀한 검사의 아들이 말한 내용은 전근대 특권 계층의 생각과 정확히 일치한다. 능력이나 공정을 자랑하지 않고, 사람을 많이 알아 끼리끼리 네트워크를 이루고 그것으로 목적하는 바를 얻는다는 사실을 자랑한다. 뇌물 받는 행위는 감춰야 할 부끄러움이 아니라 그러고도 멀쩡할 수 있는 특권의 상징이다. 나아가 그 사실을 대놓고 말할 수 있고, 그것이 자랑이 되는 것이 진짜 특권이다. 철없는 아이의 말이었을까? 아니다. 지적 능력이 가장 뛰어난 고등학생들 사이에 오고 간 이야기다. 제도권 교육에서는 그래도 공정한 경쟁을 가르쳤을 텐데, 그것을 사뿐히 뛰어넘어 불법·무법의 특권을 자랑하도록 배울 수 있는 곳은 부모와 함께하는 가정밖에 없다.

 

우리 사회 특권층은 자신들의 특권을 감추기보다 대놓고 자랑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역사의 전철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조선후기 지배층의 특권은 19세기 세도정치로 귀결됐다. 보통 알려진 바와 달리 세도정치 아래서 주권자 국왕의 권위는 끝 간 데 없이 높아졌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형식일 뿐 내실은 전혀 없었다. 또한 세도정치의 담당자들은 권력을 독점하면서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했다.

 

오늘날 우리 국가체제의 한 축인 자유의 가치와 권위는 끝 간 데 없이 높아졌다. 그러나 그것은 오로지 구호일 뿐이며 자유의 내실과 고민은 사라졌다. 대통령이 임명한 국가수사본부장의 과거 소송사건은 검찰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는데 대통령실은 몰랐다고 한다. 국가권력의 최고 엘리트 인물은 온 국민이 분노할 행적에도 불구하고 정부 핵심의 고위직을 차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모든 행동은 조선 말기 세도정치 때와 일치한다. 한 시대의 가치를 오로지 말로만 앞세우고 그 내실을 허문다. 나라의 권력을 독점했지만, 세상 돌아가는 실상과 괴리돼 있다.

19세기 세도정치는 조선의 낡은 체제가 붕괴해 가던 과정이었다. 지금 무너지는 것은 특권 계층일까, 나라일까?

오수창 서울대 역사학부 교수 한겨레 :2023-02-28

 

한동훈 장관처럼 박민식 처장도

지난 2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사이에 작은 설전이 벌어졌다. 한국전쟁 때 재일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해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곽동의가 왜 보훈보상금을 받지 못하냐는 김 의원 질문에 박 처장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했기 때문이라고 답하며 논쟁이 시작됐다.

 

곽동의가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로 지정된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민통, 한통련의 전신)에서 활동한 것을 박 처장은 문제 삼았다. 군사독재 정권 때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과 연대해 일본에서 민주화운동을 벌였던 한민통은 1977재일동포 유학생 김정사 간첩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조직이다. 신군부가 내란음모 사건으로 김대중에게 사형을 선고할 때도 한민통의 수괴라는 혐의가 붙었다.

 

김 의원이 박정희 정권 때 김대중에게도 유죄 혐의를 씌우지 않았냐며 친김대중 활동 한 분한테 친북의 굴레를 씌워서 국가유공자 대우를 하지 않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자, 박 처장은 곽동의와 김대중 케이스는 전혀 맞지 않는다. 자신이 부정하는 대한민국으로부터 유공자 인정을 받아 보상금 받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맞섰다. 결국 정무위 야당 쪽 간사인 김종민 의원이 한 사람의 명예나 정체성을 그렇게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며 다시 근거를 따져보자고 중재에 나서며 논쟁은 마무리됐다.

 

이날은 조용히 넘어가는 듯했으나, 사실 이는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다. ‘어긋난 법과 정의라는 역사적 맥락이 있다. 곽동의와 한민통에 색깔론이 씌워진 것은 1970년대 곽동의가 방북해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는 자수간첩 윤효동의 거짓주장과 김정사 간첩조작 사건 때문이었다. 하지만 윤효동이 곽동의를 북한에 데려갔다고 주장한 시기에 곽동의가 일본에 있었다는 물증이 확인됐고, 진실화해위원회는 2010년 김정사 간첩사건이 수사기관의 강압으로 조작됐다고 결론 내렸다. 이에 근거해 김정사 또한 2013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김정사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한민통은 반국가단체가 아님을 명확히 판시하지 않았고 이에 한민통에 붙은 빨간딱지는 말끔히 떨어지지 않았다.

 

법적인 낙인은 씻겨지지 않았지만, 노무현 정부 들어 곽동의는 정치적으로 복권된다. -일 회담 반대 운동으로 입국이 금지됐던 그는 200440여년 만에 고국을 찾아 김대중을 만났다. 이듬해엔 6·25 참전을 증명하는 서류를 갖춰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고 보훈처는 이를 받아들여 2006년부터 매달 100만원가량을 지급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때인 20107월부터 보상금 지급은 끊기고 만다.

 

보훈처는 지급 중단 사유로 품위유지 의무 위반규정을 들고 있지만, 곽동의는 국가유공자의 품위를 손상했다고 공식적으로 판단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국가보안법을 반하여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된 경우 보상금 지급에서 제외하도록 했지만, 곽동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은 사실이 없다.

보훈처의 판단엔 그해 6월 말 <조선일보> 보도가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누굴 위한 보훈인가 6·25 참전 용사에겐 월 9만원 반국가단체 간부에겐 월 100만원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이로부터 13년이 흘렀지만 <조선일보>는 변함없다. ‘반국가 활동한 인사에 보훈지원 중단야 의원 재심사해야”’(2023223일치)라는 기사로 다시 한번 한민통=반국가단체임을 주장했다.

 

지난해 6월 법무부는 박정희 정권의 대표적인 간첩조작 사건인 인민혁명당 사건 피해자 이창복을 상대로 초과 지급된 국가배상금을 반환하라며 물렸던 96천만원의 이자를 포기했다. 원금 5억원만 받으라는 법원 권고를 받아들여 빚 고문을 중단한 것이다. 당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법무부는 오직 팩트·상식·정의의 관점에서 국민의 억울함을 해소하려 노력할 것이고, 국민의 억울함을 해소하는 데에 진영논리나 정치논리가 설 자리는 없다.”

품위유지 의무규정을 엉뚱하게 적용해 보훈보상금 지급을 거부하고 있는 보훈처에도 이 말을 돌려주고 싶다. “팩트·상식·정의의 관점에서 판단해달라. 진영논리나 정치논리를 동원하지 말아달라.”

이주현 | 이슈부문장 한겨레 :2023-02-28

 

이재명 체포동의안 이탈표는 환난의 예고편일 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부결됐다. 찬성표가 반대표보다 많았지만, 가결 정족수 미달로 국회 담장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찬반 표의 분포가 깊고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결과에는 무엇보다 정치인 이재명에 대한 민주당 의원들의 냉정한 평가가 담겼다. 오랜 표단속과 총력 여론전에도 불구하고 다수 이탈표를 막지 못했다. 정치 언어가 신뢰와 공감을 얻으려면 듣는 이에 대한 존중말하는 사람의 인격성이 필수(박상훈 <정치적 말의 힘>)라는데, 이 대표는 너무 멀리 벗어났다. 구속영장을 사법살인이라 부르고, 검찰을 깡패와 강도에 빗댄 격한 언사가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졌을지 의문이다.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답변(57%)유지’(27%)를 압도하고, ‘구속 수사해야 한다는 응답자(49%)가 반대(41%)보다 많았다는 여론 흐름(지난 24, 한국갤럽)이 표결 결과와 무관할 리 없다.

 

오는 말이 험한데 가는 말이 곱겠냐고, 그는 말하고 싶을 것이다. “지방자치 권력을 사유화한 시정농단 사건’”, “국민의 신뢰를 극단적으로 훼손한 내로남불, 아시타비의 전형같은 구속영장의 일부 표현은 적절하지 않았다고 법조인들도 지적한다. 구형 때 어울리는 말이라는 뜻이다. 가령 12·12 5·18 사건의 주범인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한 논고문에는 국민주권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 “반국가적·반역사적 범행같은 최상급 수사와 단정적 평가가 다수 들어 있다. 그러나 구속영장은 달랐다. 구체적 혐의사실을 나열한 뒤 “~한 자로서 도주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는 자임으로 간결하게 끝난다. 이번에는 재판도 하기 전에 논고부터 앞세운 모양새가 됐다.

 

내로남불이 법률상 구속 사유는 아니지 않나. 구속영장은 판사 앞에서 피의자의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를 입증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원래 법률 요건에 맞게 건조하고 담백하게 쓴다. (전엔) 감정이 드러나는 세간의 용어를 법정 안에 들여오지 않았다. 지휘부가 사전에 걸렀어야 한다.”(고검장 출신 변호사) 그렇다고 이 대표의 거친 말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체포동의안은 부결됐지만, 이 대표의 실존적 환난은 지금부터다. 검찰은 머잖아 그를 기소할 것이다. 대장동과 위례 재개발, 성남에프시(FC) 세 건에 대해서다. 구속영장에 포함되지 않았던 정진상씨 등 측근을 통한 수뢰 혐의는 배임의 동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기소 단계에서 포함할 공산이 크다. 재판이 집중심리로 진행되면 이 대표도 스스로 기록을 파악하고 거의 매주 법원에 나가 피고인석에 앉아 있어야 한다. 불구속 상태로 무죄를 다투는 피고인이라 재판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재판에는 돈이 많이 든다. 이 대표는 경기지사 때 2년 동안 재판에 시달렸다맷집을 자랑한 적이 있지만, 이번 사건은 그때와 차원이 다르다. “2개 특수부가 거의 1년 동안 진행한 재수사라 기록이 수만쪽 이상일 것이다. 1건만 유죄가 나도 정치생명이 끝날 내용들인데, 추가 기소까지 예고돼 있다. 제대로 대응하려면 법원 출신 시니어 변호사부터 주니어까지 최소 5~6명 이상으로 팀을 만들어 전적으로 매달려야 한다. 변론 비용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 될 수밖에 없다. 충실한 방어권 행사는 전적으로 변호사 비용에 비례한다.”(대형로펌 파트너 변호사)

 

게다가 수사 중인 사건이 3(백현동·정자동·대북송금)이나 된다. 이 사건들도 결국엔 법원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앞서 허위사실 유포로 기소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이 오는 3일부터 시작된다. 이 대표의 심적 고통과 시간·비용 부담은 갈수록 커지게 돼 있다.

 

정치적으론 민주당 의원들의 인내심이 관건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8월 방탄 논란을 무릅쓰고 기소 시 당직 정지규정(당헌 제80)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손질했다. 하지만 이 대표 재판과 수사가 민주당에 대한 관심을 압도하고, 당 지지율이 계속해서 국민의힘과 격차를 벌리며 우하향 곡선을 그린다면 사정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내년 4월 총선에 가까이 갈수록 의원들의 손익계산은 냉정해질 수밖에 없다. 요컨대 이재명을 얼굴로 내세워 2024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비켜 가기 어렵다. 이번 이탈표는 예고편에 해당한다.

이재명의 묵시록은 이제 막 시작됐다.

강희철 | 논설위원 한겨레 :2023-02-28

 

정순신 파동이 보여준 검찰공화국의 미래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연세대 학위수여식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윤 대통령은 기득권 카르텔을 깨고, 더 자유롭고 공정한 시스템을 만들고, 함께 실천할 때 혁신은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분은 우리나라의 미래라며 산업현장의 노사법치 확립 등 노동, 교육, 연금의 3대 개혁은 여러분의 꿈과 도전에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기 위한 것이라고도 했다.

 

최근 집중 타깃으로 삼아온 노동조합을 기득권으로 상정하고, 미래세대를 노조에 일자리를 빼앗긴 약자로 대비시키려 한 것 같다. 노동자 내부의 격차를 부풀려, 노동자 대 사용자라는 노동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려는 언설이다. 혹시 며칠 전까지는 먹혔을지 모른다. 더 이상은 아니다. 지금 한국 사회의 최대 기득권이 누구인가. 길을 막고 물어보라. 열 명 중 아홉 명은 검찰이라 답할 것이다. ‘정순신 아들 학폭 사태는 결정적 분기점이 되고 있다.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2차 가해-국가수사본부장 임명 과정은 기득권이란 무엇인가를 선명히 보여준다.

 

기득권은 지식·금전·시간 등 자원이 풍부하다 = 가해자 정씨는 20175월부터 20181학기 초까지 동급생 A씨에게 돼지XX” “빨갱이XX” 같은 언어폭력을 되풀이했다. A씨가 학교에 신고하자, 학교 측은 정씨에게 강제전학 등 처분을 내렸다. 정 변호사는 재심 청구, 행정소송, 징계효력 집행정지 신청 등 갖가지 법적 수단을 동원해 아들의 전학을 막으려 했다. 소송이 대법원까지 이어지는 1년간 A씨는 가해자와 마주치며 고통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했다. 법조계 이너서클을 파헤친 <불멸의 신성가족>에는 한 철학자의 말이 나온다. “학벌중심사회에서 상류계급이 예전에 비해 훨씬 더 자기중심적이고 뻔뻔해져가고 있다.” 적확하다. 정 변호사 부부는 지금도 아들을 구할 수 있는 자원이 있는데 손놓고 있으란 말이냐?’며 억울해할지 모른다.

 

기득권은 욕망을 제어하지 않는다 = 201811KBS가 이 사건을 보도했다. 가해자 아버지의 실명은 나가지 않았지만 고위직 검사임은 적시됐다. 평범한 시민은 소송에서 지고 언론 보도까지 나갔으면, 더 이상의 공적 욕망은 접게 마련이다. 아들이 무사히 서울대에 들어간 걸로 만족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대통령과 가까운 ()기득권은 다르다. 정 변호사는 경찰 2인자인 국가수사본부장에 당당히 지원한다. 검사 출신이 국수본부장에 지원하면 언론의 주목을 받을 걸 모르지 않았을 터다. 그는 대검찰청 부대변인을 지내는 등 검찰 내에서 공보 분야 전문가로 꼽혔다.

 

기득권은 뒷배가 든든하다 = 5년 전 KBS 보도 당시 정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이었다. 윤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였다. 대통령실과 법무부는 부인하지만, 윤 대통령과 한 장관 모두 학폭 사건을 인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정 변호사는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의 1차 검증, 검사 출신 이시원 비서관이 이끄는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의 2차 검증을 사뿐히 통과했다. 공식 추천권자인 윤희근 경찰청장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고만 할 뿐 사과하지 않은 건 대통령실·법무부를 향한 소심한반발일지 모르겠다.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2018)에 썼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 1년 동안 이뤄진 규범 파괴는 전임자들 경우와 차원이 달랐다. 트럼프 취임 후 미국 사회는 정치적 일탈을 정의하는 기준을 하향 조정했다. 지금 미국인들은 예전엔 스캔들이라고 생각했을 사건에 익숙해지고 있다. 규범은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연성 가드레일이다.”

 

검찰 출신 대통령이 낙점하고, 검찰 출신 법무부 장관과 공직기강비서관이 검증하면 어떤 인사가 이뤄지는지 시민은 목격했다. 학폭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일삼은 인사가 전직 검사란 이유만으로’ 3만명이 넘는 국가 수사경찰의 수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검증이라 부를 수 없다. 끼리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는 내부거래일 뿐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9개월 사이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행동 규범을 줄줄이 깨뜨렸다. 검찰공화국을 만들고, 여당 대표 경선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출입기자의 전용기 탑승을 거부했다. 레비츠키·지블랫은 말했다. “일탈의 용인은 끔찍한 결과를 낳는다.”

김민아 논설실장 경향 :2023-02-28

 

 

법무부 장관의 논리학

조건 명제를 다룰 때 범하기 쉬운 가장 간단한 논리적 오류는 전건 즉 앞 조건문을 부정하는 논법이다. 소위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하거나 부정한답시고 앞 조건을 부정하는 조건문을 만들기 쉬운데, 그것은 대표적인 오류 논법인 전건 부정의 오류. 요즘엔 형식논리학을 많이 다루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건 부정의 오류는 논리학에서는 근본의 근본에 해당하는 문제다. 조건문 즉 <if “p clause” is true, only in that case “q clause” is true.> 라는 조건 문단이 성립될 때, 바로 그 전건(앞 조건문) ‘p 구절이 참이 아닌 상황을 제기할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그것이 후건, ‘q 구절의 참 거짓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 이를 무리하게 연결시키는 경우 그것은 궤변이고 논리적 오류이다. 종종 논리학에 무지한 저질 논쟁에서나, 그것이 오류임을 아는 권력자가 무지한 비권력자를 겁박할 때 전건부정법이 사용된다.

 

얼마 전 이재명 야당 대표가 대선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말하자, 법부무 장관은 대선에서 이겼으면, 권력을 동원해 사건을 못하게 뭉갰을 것이라는 말로 들린다고 반박했다. 논리 언어와 자연 언어의 차이 때문에 단순화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명백한 전건 부정 논법이다. 대선 패배와 검찰의 재소환 요구를 연결시킨 이 대표의 조건문 자체의 참 거짓을 다투려면, “표를 더 받는다고 있는 죄가 없어지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는 대항 논법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장관은 한발 더 나아가 전건부정논법에 기댔다.

 

한동안 깔끔한 법률가의 이미지로 의원들을 호통쳐 온 한 장관에게 환호하는 국민들이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여러 순배 논쟁이 오가며 소위 지저분한 쟁점들이 도마에 오르면서 장관의 논리 패턴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인상이다. 그 일이 있은 얼마 후 본회의 장에서 김민석 의원과의 설전 과정에서 법무부 장관은 또 다른 속내를 드러냈다. “제가 의원님의 질문에 대해서 그 프레임 안에서만 답해야 하는 것은 아니죠라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정가에는 상식인 코끼리를 생각하지마라는 레토릭을 떠오르게 하는 답변이었다. 상대편의 언어를 써서 그의 의견을 반박할 때, 청중들의 머릿속에서는 상대편의 프레임이 더 강해지는 한편 나의 주장은 약화된다는 조지 레이코프의 저서 이야기다. 코끼리는 공화당 즉 보수의 상징이다. 공화당을 반대하는 진영이라면 이 프레임을 벗어나는 담론을 사용해야 한다는 프레임 이론의 담론법을 떠올리는 정치적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장관이 종종 사용하는 불퇴전의 논쟁이 논리를 생명으로 삼는 법률가라서가 아니라 정파적 승리를 위한 프레임 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실토하는 순간으로 비추어졌다.

 

장관은 의원의 질의에 답하는 과정에 질문의 프레임을 수용할 의무가 없는가? 논리학이라는 것은 합의된 프레임 안에서 진실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그 경계를 넘나드는 것은 수사학의 영역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일부 사상가는 수사학을 악마의 대화법이라고 비판하곤 했다. 하지만 수사학과 정치 담론을 통해 리더십을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필자 역시 논리학과 수사학 즉 정치 담론을 대립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법무부 장관의 프레임 논법에서 국민들은 진실한 정치 공동체를 향한 수사와 담론보다는 뫼비우스의 띠를 본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한반복되는 미꾸라지 논법과 피장파장 논법에서 국민들이 정상적인 국정 운영의 잘잘못을 가리기란 참으로 어렵다. 스타 장관이 국민의 시선이라는 궁극의 프레임을 망각하고 정쟁에 빠져들면 그 피로도는 모두에게 부메랑이 된다. 책임정치는 공중 분해된다. 지난 정부 탓도 정도를 지나치면 피장파장의 오류에 불과해진다.

 

이번 정부에서 우리는 역대급으로 많은 율사들을 보고 있다. 그들이 낡은 정치를 개혁할 것이라는 기대도 컸다. 그러나 정순신 변호사 인사 실패 건은 법률적 권리가 정치적 책임보다 앞서는 한국 율사들의 정치의식을 보여주는 듯해서 씁쓸하다. “절차적 정의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실체적 진실을 해치는 것이 아닌 한 문제 될 것이 없고, 사법 전문성을 통해 사익을 추구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의 행사일 따름인데 그것이 왜 문제가 될까?” 혹시라도 인사 담당 기관이 이런 대전제를 공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 주무 장관이 곧잘 강조하던 자신의 프레임이 사실은 공공성 보장이 아니라 전문가 체제의 사적 이익을 보호하는 장치였던 것이었을까? 이래저래 그의 논리학은 검증대에 오르게 생겼다.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경향 :2023-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