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주년 맞은 제주 4.3 ‘응어리진 가슴 안고 살아가는 유족들
‘4·3 75주년 학살 광풍 속에서도 생명 고귀함 있었다…무고한 희생 막은 ‘의인들
“이불 가져올게, 기다려”…6살 아이는 무덤가에서 사흘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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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주년 맞은 제주 4.3 ‘응어리진 가슴 안고 살아가는 유족들
제주 4.3 75주년을 하루 앞둔 2일 제주도 제주시 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표석에서 유가족 이옹여(87세) 할머니가 아버지 이인봉씨 추모를 마치고 앉아 있다. 문재원 기자
제주 4.3 75주년을 하루 앞둔 2일 제주도 4.3평화공원에는 이른 아침부터 유가족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유족들은 소쿠리에 제사용품을 챙겨 각명비와 행방불명인 표석 앞에서 제사를 올렸다. 하루 아침에 부모·형제를 잃은 이들은 평생 응어리진 가슴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제주 4.3 75주년을 이틀 앞둔 1일 제주도 제주시 4.3평화공원 각명비 앞에서 유가족인 안순생(100세) 할머니와 아들내외가 제사를 지내고 있다. 안 할머니는 4.3으로 남동생 둘을 잃었다. 문재원 기자
유가족인 오무열(74세) 할머니가 각명비에서 아버지 오봉윤씨 이름을 찾고 있다. 문재원 기자
오무열(74세) 할머니는 각명비 앞에서 제사상을 준비하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가 외가에서 나를 낳으시고 아버지가 보러 오시는 길에 잡혀가 죽었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아버지가 나 보러 올 일도 없었을 텐데...”
제주 4.3 75주년을 하루 앞둔 2일 제주도 제주시 4.3평화공원 각명비 앞에서 유가족인 오무열(74세) 할머니가 제사를 올리고 있다. 문재원 기자
각명비에는 동네별로 희생자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제주 4.3 75주년을 하루 앞둔 2일 제주도 제주시 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표석 인근에서 한 유족이 희생자 표석을 찾고 있다. 문재원 기자
제주 4.3 75주년을 하루 앞둔 2일 제주도 제주시 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표석에서 유가족이 추모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행방불명인 표석에는 시신을 찾을 수 없는 4007기의 희생자 표석이 빼곡하게 놓여 있었다.
제주 4.3 75주년을 하루 앞둔 2일 제주도 제주시 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표석에서 유가족들이 추모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4·3 75주년 학살 광풍 속에서도 생명 고귀함 있었다…무고한 희생 막은 ‘의인들’
강순주씨 여러번 잡혀가 예비검속도
죽음 앞두고 문형순 서장 명령 거부로 살아
1948년부터 1954년까지 이어진 ‘4·3사건’으로 제주는 당시 인구의 10분의 1가량이 희생됐다. 학살 광풍이 무섭게 몰아쳤지만,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무고한 이웃과 주민을 구하려는 의로운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의 노력은 당시는 물론 후세에까지 인권과 생명의 고귀한 가치를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강순주씨는 4·3 당시 문형순 서장의 학살 명령 거부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박미라 기자
■ ‘죽음의 문턱에서’
강순주씨(91)는 4·3 광풍 속 수차례 죽음의 문턱을 오간 끝에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제주 서귀포 표선면 자택에서 지난달 26일 만난 강씨는 “기가 막힌 시대였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어린시절 부모와 함께 일본으로 넘어갔다가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귀향의 기쁨을 누리는 것은 잠시였다. 1948년 4·3 피바람이 몰아쳤다. 16살이었던 강씨는 중산간에 살았던 탓에 토벌대에 끌려갔다. 첫번째 구금에서는 곧바로 석방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잡혀갔다.
강씨는 제주항 앞에 있는 주정공장에 수용돼 모진 고문을 받으며 자백을 강요받았다. 강씨는 “자백하라면서 매달고 전기고문하고 카빈총으로 총살하겠다며 눈앞에 들이대고, 비참하고 극단적인 고문이 이어졌다”면서 “조서에 도장을 찍으라고 하는데 아무런 활동한 사실이 없었기에 버텼다”고 말했다.
끝까지 버틴 그는 집행유예 3년을 받고 풀려났지만 시대는 그를 계속 괴롭혔다. 1950년 예비검속(혐의자를 미리 잡아놓는 일)이 실시되자 강씨는 또 끌려갔다. 정부는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보도연맹 가입자와 요시찰자, 입산자 가족 등을 불순분자라며 예비검속했다. 강씨 역시 예비검속으로 성산포경찰서에 붙들려 갔고 “이번에는 진짜 죽는구나”라며 희망의 끈을 놓았다고 했다.
문형순 성산포경찰서장은 재임 당시 예비검속자 총살 명령에 대해 ‘부당하므로 불이행한다’라며 명령을 거부해 200여명의 주민 목숨을 살렸다. 제주경찰청에 그의 흉상이 설치돼 있다. 박미라 기자
문형순 성산포경찰서장이 예비검속자 총살 명령 공문에 ‘부당하므로 불이행’ 이라는 글을 쓴 후 주민의 목숨을 살렸다. 제주4·3평화공원 기념관 내 전시물.
학살 광풍 속 김익렬 연대장 등 4·3의인 다수
4·3으로 인권·생명·평화 소중함 후세까지 전달
■ ‘4·3 의인, 제주판 쉰들러 리스트’
제주·서귀포·모슬포·성산포 경찰서 등 제주도내 4개 경찰서에는 예비검속으로 수백명씩 구금됐다. 예비검속된 이들 중에는 좌익단체 활동 이력이 없거나 입산활동 경력이 없는 경우가 다수 포함되는 등 사실상 뚜렷한 기준이 없었다. 하지만 예비검속자들은 그해 7~8월 제주읍과 서귀포모슬포 등에서 바다에 수장되거나 총살해 암매장되는 등 대대적으로 학살됐다. 다만 성산포경찰서만은 달랐다.
문형순 성산포경찰서장이 계엄사령부 총살 명령을 거부하면서 강씨를 포함한 상당수가 목숨을 건졌다. 제주주둔 해병대 정보참모 해군 김두찬 중령은 1950년 8월30일 성산포경찰서에 예비검속자를 총살하고 결과를 보고하라고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문 서장은 무고한 주민을 죽이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꼈다. 해당 공문에 ‘부당함으로 미이행’이라고 쓴 후 명령을 거부했다. 덕분에 강씨를 포함해 200여명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문 서장은 성산포서장으로 부임하기 전인 1949년 모슬포 경찰서장으로 근무할 때도 주민 100여명을 훈방했다.
강씨는 “계엄이 선포된 엄혹했던 시절 본인의 목숨이 위험할 수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우리의 목숨을 구해주셨다”면서 “당시 문 서장님이 우리를 풀어주면서 ‘나라에, 사회에 도움이 되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여러분의 할 일이다. 사회에 나가서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밝혔다. 그는 문 서장에게 보답하기 위해 해병대에 지원했고 나라를 위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문 서장님 덕분에 목숨을 건진 이후 단란한 가정을 일구고 살아왔지만 생명의 은인인 문 서장님은 가족도 없이 쓸쓸히 돌아가셨다”면서 “살아있는 동안이라도 보답을 해야겠다 싶어서 매년 설과 기일인 6월20일, 추석에 문 서장님 묘지를 찾아 제사를 지내고 경찰청에 세워진 흉상에 꽃바구니를 놓고 있다”고 말했다.
문 서장은 1953년 경찰 퇴직 후 제주에서 대한극장 매표원 등으로 일하다가 1966년 향년 70세 나이로 유족 없이 제주도립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평안남도 출신인 문 서장은 제주시 오등동에 있는 평안도민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강씨는 “문 서장님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셨던 애국자이자 4·3 당시 수많은 목숨을 구하신 훌륭한 분인데 여전히 야산에 누워 계신다”면서 “문 서장님 같은 분을 더 좋은 곳으로 모시고 기억해야 할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 저도 나이가 들고 기력이 약해져 언제까지 문 서장님을 찾아뵐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그래서 제 마음이 더 아프고, 나라와 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경찰청은 2018년 문 서장을 올해의 경찰 영웅으로 선정하고 추모 흉상을 제주경찰청에 세웠다. 하지만 국가유공자로는 선정되지 못했다. 네 차례에 걸쳐 문 서장에 대한 국가유공자 신청이 접수됐지만 입증자료 부족 등을 이유로 통과하지 못했다.
제주4·3사건 당시 무고한 주민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나선 이들은 또 있다. 김익렬 9연대장은 무장대 총책 김달삼과 평화협상을 진행하며 유혈사태를 막고 4·3의 평화적 해결에 나서려고 노력한 군인이다. 하지만 방해 세력에 의해 평화협정은 깨졌고 강경 진압작전을 거부한 김 연대장은 미군정으로부터 해임됐다.
이외에도 1948년 11월1일 함덕리 평사동 모래밭에서 주민 6명을 총살하려는 토벌대에게 ‘신원을 보증할테니 죽이지 말라’고 만류하다 함께 희생된 한백흥·송정옥씨가 있다. 경찰이지만 최대한 주민 희생을 막기 위해 노력한 장성순·김순철·방상규·강계봉씨 등도 다른 사람을 위해 목숨을 내건 ‘4·3의인’들이다.
강순주씨와 독립유공자 한백흥 지사의 후손은 의인들의 뜻을 받들고, 4·3이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확산시키는 디딤돌이 되기를 바라며 자신들이 받은 국가보상금을 4·3유족회에 기부했다. 이들 외에도 4·3의 완전한 해결과 미래세대를 위해 국가보상금을 유족회와 마을 등에 쾌척하는 기부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다.
4·3 발발 초기 김익렬 연대장은 유혈사태를 막고 평화적으로 4·3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제주4·3평화기념관 내 전시물. 경향 박미라 기자
“이불 가져올게, 기다려”…6살 아이는 무덤가에서 사흘 울었다
4·3 후유장애인 양수자의 ‘4·3 트라우마’ 앓이
온 가족 몰살되는 현장 목격하고 자신도 다쳐
1949년 훈련을 받고 있는 제주읍 노형리 민보단원들. 이승만 정부는 민간인들을 ‘민보단원’으로 편성해 군경 토벌작전에 동원했다. 1949년 4월1일 제주도 민보단원은 5만명에 이르렀다. 제주4·3평화재단 제공
눈에 훤해요. 6살에 그 광경을 직접 보고 당했는데 어떻게 잊겠어요? 눈에 박혀 있어요.
3월27일 제주시 일도2동 집에서 만난 양수자(81)씨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날’을 생각하면 숨이 차오른다. 그에게 4·3은 75년 전의 죽은 과거가 아니라 살아 있는 현재다. 가족의 몰살을 목격한 6살 아이는 평생 숨이 턱턱 막힌 채 살아왔다.
깨어나면 그날의 일들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텔레비전에서 4·3 소식이 들리기만 하면 심장이 떨려온다. 2020년 3월 뒤늦게 4·3 후유장애인으로 인정받아 “이제 조금은 살 것 같다”고 하지만, 여전히 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이제는 눈물도 말라버렸어요. 여러 사람이 모인 곳은 외면하고 싶을 때가 많아요. 생각하면 숨이 콱콱 막혀요. 살아온 것 자체가 너무 숨이 막혔어요.”
1949년 2월3일. 군 토벌대가 노형리 외곽 소나무밭(지금의 제주고 부근)에 얼기설기 엮은 양씨 가족의 피신 움막에 들이닥쳤다. 지금은 제주 최고의 번화가가 된 노형리는 ‘리’ 단위에선 제주도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마을이다. 제주4·3평화재단이 펴낸 <제주4·3사건 추가진상조사보고서1>(2019)을 보면, 제주읍 노형리는 사망자 370명, 행방불명자 156명, 수형자 11명, 후유장애자 1명 등 538명의 4·3 희생자를 냈다.
노형리는 1948년 11월19일과 20일 사이 9연대 군인들에 의해 초토화되기 시작됐다. 계엄령이 내려진 지 이틀 만이었다. 마을이 불타고 주민들이 죽어갔다. <노형동지>(2005)는 노형리 6개 자연마을 가운데 양씨 가족이 살던 정존마을에 4·3 무렵 61가구 260여명이 거주했으나, 이 가운데 120여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한다. 희생된 이들 가운데는 양씨의 이모(어머니 여동생) 일가족도 있었다. 이모네는 시할아버지부터 자식까지 4대가 한꺼번에 몰살당했다.
제주4·3평화공원 내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각명비. 노형리 희생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각명비에는 양씨 가족의 이름이 보인다. 허호준 기자
양씨 가족이 살던 정존마을 초가도 불에 탔다. 할머니(김사일·당시 64살), 아버지(양우빈·27살)와 어머니(현경옥·29살), 언니(양정자·10살), 여동생(양신자·4살), 그리고 생후 2~3개월 된 남동생 등 모두 7명이 한집에 살고 있었다. 할머니는 초가가 불탄 뒤 1948년 12월10일 밭에서 일하다 토벌대의 총에 맞아 숨졌다.
갈 곳이 없게 된 여섯 식구는 정뜨르비행장(제주공항) 인근 할머니 댁을 찾아갔다. 그러나 할머니의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동네 주민들이 막아섰기 때문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피난 온 양씨 가족에게 산에서 내려온 ‘산폭도’라며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집이 불타기 전 미리 왔으면 됐는데, 늦게 왔다는 게 이유였다.
추운 겨울 발걸음을 옮겼다. 언제 어디서 군경이 나타나 잡아갈지 몰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양씨와 언니는 걷고 동생들은 업거나 안고 집안 소유의 노형리 외곽 소나무밭으로 갔다. 양씨는 “아버지가 아무리 사정해도 산폭도라며 들여보내 주지 않아 우리 소나무밭까지 갔다. 그곳에 움막을 지어 살았다”고 말했다. 주변의 소나무를 베어 얼기설기 엮어 바람을 피할 정도의 조그만 움막이었다. 그 안에서 여섯 식구가 하루하루를 살았지만,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겨울의 한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한기보다 더 무서운 일이 찾아왔다.
1949년 2월3일 낮, 토벌대가 움막에 들이닥쳤다. 아버지가 잠시 나간 사이였다. 그날의 일을 6살 아이는 눈으로 보고 기억했다. 그리고 평생 그 기억의 고통에서 달아나려 했다. 달아나려 할수록 기억은 더 그를 옥죄어왔다.
“처음에는 어머니를 쏘았어요. 총으로 쏴서 맞지 않으니까 세 번을 쏘았어요. 세 번째 쏘았을 때는 총알이 목에 맞았습니다. 목에 맞으니 피가 튈 거 아닙니까? 피가 팍팍 튀면서 우리 몸이 피범벅이 됐어요.”
토벌대는 총으로 쏘고 칼로 찔렀다. 언니는 다리에 총을 맞아 눈 위에 나동그라진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토벌대는 언니가 죽은 줄 알고 그냥 방치했다. 아버지가 돌아온 뒤 언니를 치료하려고 인근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갔으나, 그 집도 그날 저녁 불에 탔다. 언니의 주검은 찾지 못했다. 여동생은 움막 안에 앉은 상태로 죽어 있었다.
양씨는 왼쪽 옆구리에 칼을 맞아 잠시 기절했다가 깨어났다. 눈을 떠 사방을 둘러봤다. 더 큰 충격이 다가왔다. 생후 2, 3개월밖에 안 돼 이름도 짓지 못한 남동생이 목이 잘린 채 움막 안에 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양씨는 그때 토벌대가 한 말을 기억한다. “갔다가 와서 살아 있으면 다시 죽여버리겠다.”
“그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지금도 옆에서 말하는 것 같아요. 우리 언니, 동생들, 어머니 죽이는 것을 어린 나이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까 그 장면들이 지금도 훤하게 보이는 거예요. 아버지도 독자, 남동생도 독자였어요. 이제 갓 태어난 아기가 얼마나 귀여웠겠어요?”
2월3일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러나 그것으로 가족의 비극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울부짖으며 죽은 아내와 자식들의 주검을 수습한 아버지는 더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칼에 찔린 딸만이라도 살려야 했다. 아버지는 어린 양씨를 업고 겨울철 그 움막에서 삼성혈까지 눈 내린 길을 걸어 내려왔다. 직선거리로는 6㎞가 채 되지 않지만, 당시로서는 3시간은 족히 걸어야 했던 거리였다. 그것도 언제 어디서 토벌대와 서북청년단이 들이닥칠지 모를 일이었다. 삼성혈 옆 무덤가에 다다르자 아버지가 어린 딸에게 말했다.
“이불 가졍 오켜. 이디 이시라.”(이불을 가져올 테니 여기 있어라) “아버지, 나도 가젠(갈래).”
제주4·3 당시 토벌대에 초토화된 뒤 1950년대 재건된 제주읍 노형리 모습이다. 제주4·3평화재단 제공
딸이 보채자 아버지가 아이를 안고 같이 잠을 자는 척했다. 제주의 무덤은 방목한 소나 말의 출입을 막기 위해 대개 장방형의 돌담(산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양씨가 깨어나 보니 옆에 있던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와는 그것이 마지막 이별이었다.
아이는 더럭 겁이 났다. 매섭게 추운 날씨였다. 조그만 차롱(대바구니)에 삶은 보리쌀과 게다짝(일본 신발)에 할머니 집 주소가 적혀 있었다.
아이는 그 산담 안에서 사흘을 밤낮 울었다. 눈이 내리고 또 내렸다. 추위로 몸은 시커멓게 변해갔지만, 혼자 산담 옆에서 사흘을 버티며 울었다. 아버지가 올 것 같아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아무도 없는 무덤가 산담 옆에 앉아 울어대는 아이. 울음은 추운 겨울의 바람소리 사이를 타고 퍼져나갔다. 그러다 울음이 그치면 적막이 찾아왔다. 적막은 저승과 이승의 어디쯤 있는 것 같았다.
“그때 감시막이 있었던 것 같아요. 감시초소를 지키던 사람이 찾아왔어요. 짐승 소리인지, 사람 소리인지 무슨 소리가 난다고 찾아온 거예요. 와서 보니 놀라지 않았겠습니까? 하도 울어대니 몸이 붓고, 시커멓게 변해 귀신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모습이었던 거예요.”
제주4·3 당시 토벌대에 의해 온 가족이 희생되는 속에서 살아난 양수자씨. 허호준 기자
주민들은 게다짝에 쓰인 주소를 보고 아이를 할머니 집으로 데려다줬다. 할머니 집에서 양씨는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했고, 이유 모를 갖은 구박을 받았다. 차라리 보육원에 맡겨졌으면 고생을 덜 했을 거라고 했다. 식사도 눈치를 보며 해야 했다.
“밥을 먹으면 많이 먹는다고 구박했어요. 남박세기(나무바가지)에 밥과 국을 퍼서 고팡(창고)에 숨겼다가 할머니가 외출하면 그걸 씹어먹지 않고 꿀꺽꿀꺽 삼켰어요. 지금도 밥을 5분 이상 먹지 못해요. 그렇게 살았어요.”
7살 때부터 아이는 밭에 검질(김)매러 다녔다. 혼자만 가서 조팥(조밭) 검질을 맬 때가 훨씬 편했다. 혼자서 콩을 갈 때는 덥거나 지치면 드러누워서 쉬기도 했지만, 할머니와 함께 가면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양씨는 “콩밭 검질맬 때는 더울 때다. 더워서 일어서면 골갱이(호미)로 와싹 때려. 일어서면 버릇 난다면서 일어서지 못하게 말이야. 그렇게 일어서서 바람 쐬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기절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또래의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은 부럽지 않았다. 부럽다는 것은 사치였다. 하지만 글을 배우고 싶었다. 양씨의 표현에 따르면 ‘눈이 벨라지게(벌겋게)’ 배우려고만 했다. 정뜨르의 한 교회에 다녔다. 10살 무렵부터 다닌 교회는 결혼하기 한 해 전인 19살까지 다녔다. 할머니는 “여자가 밥할 줄만 알면 되고, 솥뚜껑만 열 줄 알면 된다”며 다니지 못하게 했지만 용케도 다녔다.
할머니는 새벽 3~4시가 되면 깨워 밥을 짓게 했다. 쇠먹이러 갔다 오고, 구루마(마차)를 끌고 가 촐(꼴)을 실어다가 집에다 놔둔 뒤 양씨는 조그마한 널빤지를 하나 갖고 교회 부설 야간학교로 달려갔다. 중학교 2학년까지 다녔다. 그렇게 글을 익혔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중학생들과 함께 수학 수업을 들을 정도였다. 월 회비 5원을 내기 위해 남의 집 쇠먹이러 가서 콩이나 보리를 줍거나,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가 팔아서 돈을 마련했다. 남는 돈은 저축해 결혼 밑천으로 삼았다.
지난해 5월28일 제주4·3생존희생자후유장애인협회가 주최한 ‘한마음기행’ 행사에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양수자씨. 제주4·3트라우마센터
양씨는 아버지가 무척이나 그리웠다.
“냇가에 물을 길으러 가다가 아버지 닮은 사람이 다가오면 아버지인가 하는 마음에 뒤를 졸졸 쫓아갔어요. 그러다가 할머니 집 골목을 넘어가면 ‘아버지가 아니었구나’ 하며 실망하고 다시 물을 길으러 가기를 여러 차례 했어요. 20살 무렵까지 그랬던 것 같아요.”
할머니는 “어디 갔다 이제 왔느냐”며 “배토라진 가매기질 했다”(배가 뒤틀린 까마귀 노릇 했다)며 구박했다. 몇번이나 꿈속에 나타난 아버지한테 울면서 이야기를 했지만, 아버지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날은 베개가 왈탕하게 젖었다. 베개에 머리를 묻고 우는 울음은 목구멍에서 심장으로 내려가 응어리졌다.
아버지는 삼성혈 인근 무덤가에서 양씨와 헤어진 뒤 군경에 붙잡혀 제주주정공장에 수용됐다가 무죄로 석방됐다고 했다. 그러다 누군가의 손가락질로 다시 붙잡혔다. 아버지는 1949년 7월 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형을 받고 서울 마포형무소에 수감됐다가 한국전쟁 뒤 행방불명됐다.
2021년 3월16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4·3 수형 희생자 335명에 대한 직권재심에서 아버지가 무죄를 선고받았다. 양씨는 4·3 당시 아버지가 형무소에 끌려간 사실은 고모부를 통해 들었지만, 얼마나 형을 받았는지는 몰랐다. 그날 양씨는 법원에서 재판장에게 “아버지가 행방불명돼 돌아가신 것은 알았지만 무기징역이라는 말은 처음 들었다. 너무 가슴이 아파 터질 것 같다. 무죄를 선고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석에 있는 4·3 후유장애인 양수자씨의 아버지 양우빈의 표석. 허호준 기자
팍팍한 환경에서도 부모에게 못 한 효도를 한다고 경로당에서 12년 동안을 밥을 짓는 등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2020년 3월 4·3 때 입은 부상 때문에 후유장애인으로 인정됐고, 당시 숨진 온 식구가 4·3 희생자로 인정됐다.
이제 그의 마음이 풀어졌을까. 양씨의 트라우마는 여전히 깊다. 4·3평화공원에 처음 갔을 때는 눈물만 나고 숨이 탁탁 막혀 걷지를 못했다. 옆도 돌아보지 않고 와버렸다. 그래도 이제는 조금 익숙해지고, 눈물도 조금은 말라 살 것 같다고 했다.
“사람들 모여 있는 데 가기도 싫고, 텔레비전에서 4·3 이야기가 나오면 꺼버려요. 4·3 트라우마센터에서 오라고 해도 가기 싫었어요. 그때 일이 너무 생생해서 잠자다 깨면 그 생각이 먼저 나는 거예요. 이제는 익숙해질 법하지만, 그날의 일은 평생 잊지 못해요.”
75년 전 제주읍 노형리 정존마을에 살았던 아이는 지금도 매일이 4·3이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오늘도 보수가 할퀴는 ‘제주 4·3’
올해로 75주년을 맞는 ‘제주 4·3’에 대한 보수진영의 왜곡과 폄훼가 심각하다. 3일 열리는 4·3 추념식을 앞두고 제주도 곳곳에 ‘4·3은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하여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라는 우리공화당 등 명의의 현수막이 걸렸다가 자치단체에 의해 철거됐다. 당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서북청년회의 재건단체는 추념식 당일 제주 집회를 예고했다. 역사적 평가가 마무리된 사건의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상처를 덧내는 언행을 당장 멈춰야 한다.
4·3은 1947년 3·1절 제주 기념식장에서 경찰 발포로 민간인 6명이 숨지며 시작됐다. 1948년 4월3일 남로당 무장봉기를 거쳐 1954년 9월21일까지 무장대·토벌대 간 충돌, 토벌대 진압 과정 등에서 민간인 2만5000~3만명이 희생된 현대사의 비극이다. 사건은 오랫동안 묻혀졌다가 2000년 들어서야 특별법이 제정돼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의 길이 열렸다.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2014년 박근혜 정부가 국가기념일로 지정함으로써 진보·보수 정권을 막론하고 국가 책임을 인정한 사안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첫 4·3 추념식을 앞두고 벌어진 역사 왜곡과 폄훼는 여권이 진원지라는 점에서 우려를 키운다.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지난 2월 제주를 찾아 “4·3사건이 김일성 지시로 촉발됐다”고 주장했다. 사건 진상조사보고서와 역사학계가 축적한 연구 결과를 뒤집는 주장인데도 이렇다 할 근거는 들지 않았다. 그의 발언은 7년7개월간 복잡다기하게 진행된 사건의 성격을 ‘제주도민이 김일성에 부화뇌동해 이승만 정권의 진압을 자초했다’는 식으로 인식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악의적이다. 태 의원은 4·3단체들의 사과 요구에 “사과할 사람은 김정은”이라며 주장을 거두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이 임명한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은 4·3을 ‘폭동’이며 ‘반한·반미·반유엔·친공투쟁’이라고 한 과거 주장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당선인 신분으로 추념식에 참석했던 윤석열 대통령은 3일 추념식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 1일 대구를 방문해 프로야구 개막식에서 시구하고 서문시장을 찾았던 윤 대통령이 이틀 뒤 열리는 행사를 ‘해외 순방 준비’ 등 일정상의 이유를 들어 불참하는 것도 석연치 않다.
윤 대통령이 “4·3의 아픔을 치유하고 상흔을 돌보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던 당선인 시절의 약속대로 악의적인 역사 왜곡을 방치해선 안 된다. 여전히 피해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이 사건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화해와 치유에만 집중해도 모자란다./경향 사설
미 군정, 직접 ‘제주도 작전’ 내려…사령관 “내 사명은 진압뿐”
미군 대령의 진압 책임자 부임…경비대·경찰 통솔
정부 수립 이후 군사고문단·미사절단 등으로 개입
1948년 6월 제주도에서 경비대 11연대장을 비롯한 장교들과 미군 고문관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제주4·3이 발발한 때는 미군정기(1945년 9월8일~1948년 8월15일)다. 2003년 정부의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는 결론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당시 제주도에 다녀온 진압 주체들의 책임과 함께 미군정 당국과 미군사고문단에도 책임을 묻고 있다.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정부를 대표해 여러 차례 추념식에 참석해 국가폭력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그러나 또 다른 책임의 한 주체인 미국의 반응은 여전히 없다. 4·3 당시 미국이 생산한 각종 문서는 미국이 4·3의 진압 과정에 깊숙하게 개입했음을 보여준다.
1948년 4월3일 무장봉기가 발발하자 딘 군정장관은 제주도 민정장관 맨스필드 중령에게 ‘제주도 작전’이라는 제목의 전문(1948년 4월18일)을 보내 경비대(국군의 전신)를 작전통제하에 두고 진압작전에 사용하도록 했다. 열흘 뒤에는 주한미군사령부 작전참모부 슈 중령이 제주도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함께 있던 미 6사단 20연대장 로스웰 브라운 대령은 주한미군사령관 하지 중장이 내린 ‘경비대 즉각 활동 개시’ 등의 지침을 전달했다. 이 가운데 하나는 미군은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같은 해 5월10일 총선거에서 제주도 내 2개 선거구의 투표가 참여자 과반 미달로 실패하자 미군정은 같은 달 중순께 브라운을 제주도 군·경을 통솔하는 진압 책임자(최고 지휘관)로 파견했다. 그의 파견은 한달여 전 ‘미군 개입 금지’를 지시한 하지 사령관의 명령과 배치됐다. 미군 대령이 진압 책임자로 나선 것은 제주도 사태에 대한 미군의 직접 개입을 의미한다. 당시 국내 신문들은 “하늘에는 미군 정찰기, 연안에는 미군함, 육상에서는 미군 지프가 질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제주도에 배치된 미군 연락기. 미군이 조종한 이 연락기는 중산간에 피신한 주민들을 찾아내는 등의 역할을 담당했다.
브라운은 “원인에는 흥미가 없다. 나의 사명은 진압뿐이다”라며 토벌작전을 강화했다. 경비대는 5월22일부터 6월30일까지 주민 5천여명을 검거했다. 신문들은 ‘제주도는 울음의 바다’라며 제주 상황을 전했다. 브라운 대령의 작전결과는 주한미군사령부 정치고문관을 통해 미 국무부에 보고됐는데, 엄격하게 비밀로 취급해야 하는 육군 문서 사본으로 국무부 안에서도 제한된 범위 안에서만 회람하도록 했다.
정부 수립 이후에도 미국의 직간접적 개입을 보여주는 기록은 곳곳에 나타난다. 주한미사절단 특별대표 무초는 11월3일 국무부에 “제주도 공산주의자들을 뿌리뽑지 못하는 (한국) 정부의 무능력으로 긴장감이 남아 있다”는 긴급전문을 보냈다. 뒤이어 11월17일 제주도 지역에 계엄령이 선포됐다. 4·3 시기 학살은 1948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주한미임시군사고문단장 로버츠 준장은 이범석 국무총리에게 서한(1948년 9월29일)을 보내 “경비대의 작전통제권은 여전히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로버츠는 초토화 작전이 한창이던 같은 해 12월18일 국무총리에게 서한을 보내 제주도 주둔 송요찬 9연대장을 “제주도민들의 적대적 태도를 우호적이고 협조적 태도로 바꾸는 데 상당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언론과 대통령의 성명을 통해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추천한다”고 했다. 이에 국방부 총참모장 채병덕은 사흘 뒤 로버츠에게 답신을 보내 “송 중령과 미 고문관이 힘든 임무를 수행하는 데 훌륭한 능력을 보여주었다”며 “로버츠의 건의에 따라 대통령이 성명을 발표할 수 있도록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1949년 5월 제주도를 방문한 딘 군정장관(왼쪽)과 제주도 민정장관 맨스필드 중령.
주한미사절단 관리들은 로버츠에게 “제주도 (상황)에 대한 적극적인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1949년 3월10일)고 했고, 다음날 로버츠는 “한국의 대통령과 국무총리에게 제주도 작전에 대한 강력한 서한을 보냈다”고 회신하는 등 의견을 조율했다. 이 과정에서 사절단 대표 무초 특사는 국무부에 “소련 에이전트(스파이)들이 큰 어려움 없이 제주도에 침투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전문(1949년 4월9일)을 보냈지만, 이를 입증할 증거는 없었다.
무초는 같은 해 10월13일 “제주도 작전이 엄청나게 성공적이어서 공산폭도들이 어떤 방식으로도 회복 불가능하게 됐다는 것을 보고하게 돼 기쁘다”고 타전했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에도 미국 관리들은 제주도 사태의 전개에 관심을 가져 제주도를 시찰하고 경찰 내 미고문관의 배치, 정찰초소 설치와 즉각적인 공격을 건의했고, 상당 부분 수용됐다.
4·3 관련 석·박사 논문을 쓴 존 메릴 전 미국 국무부 동북아국장은 “4·3은 미국 역사상 잊히고 알려지지 않은 매우 비극적인 사건”이라며 “미군은 당시 제주도에서 있었던 일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8일 미국 워싱턴 우드로윌슨센터에서 ‘제주 4·3: 인권과 동맹’이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 허호준 기자
‘4·3’, 미국 사회 공론화 어떻게 하나
제주 4·3이 일어난 지 75년이 됐지만 미국 정부의 책임을 규명하는 일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진실을 밝히라는 목소리에도 미국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4·3 진상규명 요구가 분출하기 시작하자 당시 시민사회에서는 미국의 책임을 규명하고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는 선언적 의미의 요구였고, 그 뒤 미군정이 생산한 많은 문서를 통해 미국의 역할 등 직간접적 개입이 어느 정도 드러났다. 4·3 관련 단체들은 70주년을 맞은 2018년부터 미국의 사과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지만, 여전히 미국은 묵묵부답이다.
지난해 12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4·3 심포지엄’에서 존 메릴 전 국무부 정보조사국 동북아국장은 “4·3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객관적 사실이다. 어떤 식으로든 미국 쪽의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1977년 제주에 잠깐 체류했던 경험을 언급한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는 “제주도민의 고통과 희생을 기억하고 존중하는 것 이외에도 더 큰 목표를 이루는 데 4·3과 제주도의 의미가 있다”며 “미국이나 한국 정부가 단 한번의 조처로 모든 고통과 상처, 잘못을 위로하고 보상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계적으로 조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 성향으로 알려진 이성윤 미국 터프츠대 교수도 “미국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4·3에) 연민과 존중을 보인다면 한-미 동맹은 보다 강력하고 가까워질 수 있다”며 “4·3평화공원을 방문하는 등 낮은 단계부터 시작하면 된다. 지금 시점에서 (미국 정부의) 공식 사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주한미국대사관 관계자가 희생자들과 연대해 발언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며 단계적 접근을 제시했다.
그러나 미국에는 4·3을 연구하는 학자는 물론, 4·3에 대한 기초적 이해를 갖춘 정치인들도 매우 드물다. 이 때문에 4·3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선 미국 의회 등 정치권을 상대로 한 설득과 함께 정부·민간 차원의 홍보 활동, 언론을 통한 공론화 작업 등이 동시적으로 펼쳐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4·3 유족들은 “4·3과 관련해 미국의 개입을 보여주는 여러 증거가 나왔다. 이제는 미국이 입장을 표명할 때”라며 “이를 위해 먼저 미국 사회에서 4·3이 알려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제주대의 현직 교수는 “미국의 학계가 모르고, 정치인들은 4·3을 더욱 모르는데 사과할 수는 없지 않으냐. 우선은 미국 사회에 4·3과 미국의 관계를 알리는 게 우선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4·3연구소도 “미국 사회에 4·3을 알리는 노력의 하나로 미국 대학 내에서 4·3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이뤄져야 한다”며 “한국과 미국 연구자들의 공동연구를 통해 4·3의 진실을 규명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75주년을 맞아 우선 주한미국대사관 관계자들이라도 추념식에 참석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아기주검 치켜든 ‘서북청년단’의 제주 상륙...누가 ‘우익폭력’ 부추기나
집권 1년 만에 1948년으로 돌아간 제주
지난 4월 1일 아침 7시 30분쯤 ‘성산포 터진목’의 모습이다. ‘제주4.3사건추가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이곳에서 213명에 이르는 주민들이 학살됐다. 제주4.3 당시 성산면, 구좌면, 표선면 관할했던 특별중대는 1948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약 4개월 동안 30여 차례 붙잡아 온 주민들을 고문·취조한 뒤 이곳 성산포 터진목으로 끌고 가 즉결 처형했다. 2023.04.01. ⓒ민중의소리
1일 오전 7시쯤, 제주도 성산포 광치기해변 끝자락 ‘해녀의집’ 앞에서 만난 주민에게 물었다. “여기 학살터가 어디에요?” 해변의 바람을 쐬던 그는 휴대전화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열고 어디까지 걸어야 하는지 푸석푸석한 손으로 콕 짚어 알려줬다. “원래 여기가 당시 다리가 없었는데, 여기에서 죽이고 시신을 바다에 버렸다고 하더라고요.” 예상치 못한 설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눈 뒤 헤어지는 데, 그는 해맑게 웃으며 인사했다.
“자주 찾아와 주세요.”
그가 짚어준 곳까지 갔더니 정말 안내 표지판이 나왔다. 표지판은 빽빽한 방풍림 사이로 난 오솔길을 가리켰다. 나지막한 언덕이어서 건너편이 보이지 않았다. 나무그늘이 짙게 깔린 호젓한 언덕길을 지나자, 광활한 해변과 바다가 펼쳐졌다. 갓 성산일출봉 위로 떠오른 해는 바다의 무수한 물결을 따라 부서지며 반짝였다. 이승만 대통령 초상화 강매를 거부했다는 이유, 남편과 아들을 도피시켰다는 이유 등으로 끌려온 2백여명의 섬사람들이 숙청당하기 전 바라봤을 풍경이었다. 섬사람들의 피를 마신 모래와 바다이지만, 지금은 매해 1월 1일 전국 각지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찾는 곳이자, 여름이면 아이들이 헤엄치며 노는 곳이기도 했다.
이날 아침에도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풍광에 젖어 산책하는 연인과 관광객이 해변에 기다란 그림자를 그렸다.
지난 4월 1일 아침 7시 30분쯤 ‘성산포 터진목’의 모습이다. ‘제주4.3사건추가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이곳에서 213명에 이르는 주민들이 학살됐다. 제주4.3 당시 성산면, 구좌면, 표선면 관할했던 특별중대는 1948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약 4개월 동안 30여 차례 붙잡아 온 주민들을 고문·취조한 뒤 이곳 성산포 터진목으로 끌고 가 즉결 처형했다. 2023.04.01. ⓒ민중의소리
① 서청으로 구성된 ‘특별중대’ 학살극
이승만 초상화 강매 거부 청년들 총살당해야만 했나
제주4·3 당시, 이곳 성산면을 관할했던 ‘특별중대’는 서북청년회(서청) 단원으로 구성됐다.
서청을 빼고 제주4.3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들이 왜 그토록 잔혹했는지가 연구의 주제가 될 정도다. 서청은 이북에서 넘어온 반공청년들의 단체다. 해방 이후 이북에서는 ‘토지개혁’과 ‘친일숙청’ 등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자본가와 일본군·친일경찰 출신 등이 이를 피해 월남했다. 재산을 잃고, 민족반역자가 되어, 혈혈단신으로 도망치듯 월남했기에 이들 중에는 극렬한 반공주의자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 남쪽은 극심한 실업난과 식량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었기에, 이들은 목숨을 부지했더라도 궁핍할 수밖에 없었다. 이승만 대통령 등은 이들의 처지를 이용했다. 1947년 3월 1일 기념행사에서 경찰의 발포로 주민 6명이 죽고 8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한 이후, 제주도 사회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지자, 서청 단원 또는 서청 출신 경찰들이 제주도로 투입되기 시작한 이유였다.
하지만 서청의 투입은 제주도를 파국으로 몰았다. 제주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던 이들은 이승만 대통령과 조선일보 사장 등의 후원, 미군정의 경무부장 조병옥 등의 비호를 받으며 거리낌 없이 만행을 저질렀다. 별다른 봉급을 받는 것도 아니었던 서청 단원들은 제주도민에게 강매하거나, 강제모금 등을 취했다. 이 과정에서 주민을 대상으로 폭력과 테러 행위도 저질렀다. 실제 공산주의자든 아니든 “빨갱이”라고 여기면 테러의 대상이었다. 미군정이 관심을 가질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2500명 구금, 경찰에 의한 ‘김용철·양은하 고문치사 사건’과 ‘박행구 즉결총살 사건’ 등이 발생했고, 이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극단적인 투쟁을 불렀다. 또 이는 무장봉기 세력을 진압하기 위한 학살과 보복의 반복을 낳으며 제주도를 피의 섬으로 물들였다.
서청 단원으로 구성된 특별중대 또한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성산국민학교에 주둔하며 수많은 학살을 저질렀다. 1948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약 4개월 동안 30여 차례에 걸쳐 붙잡아 온 주민들을 고문·취조한 뒤, 이곳 ‘성산포 터진목’으로 끌고 와 즉결 처형했다. 아들과 남편을 산과 일본 등으로 도피시켰다는 게 이유였다. 이 아름다운 풍경에 줄줄이 세워놓고 총살시켰다. 시체는 바다에 버렸다. 이승만 대통령 초상화 강매를 거부한 청년 30여명을 학살한 경우도 있었다. 제주4·3평화재단이 펴낸 ‘제주4.3사건추가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이렇게 터진목에서 죽은 제주도민은 213명이었다.
지난 3월 31일 찾은 외도지서 터다. 외도지서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자유총연맹 등 보수단체의 지원으로 세운 비석이 없었다면 이곳이 외도지서 터인지 알 수 없었다. 비석 뒤편으로는 가냘픈 동백꽃이 심겨 있었다. 2023.03.31. ⓒ민중의소리
② 외도지서 서청 출신 이윤도와 ‘절뒤’
“젖먹이가 죽은 엄마 앞에서 바둥거리자...”
서청이 제주도에서 저지른 악행을 전부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사례 중 하나는 ‘서청 출신 경찰 이윤도의 학살극’이다.
지난달 31일 이윤도가 근무했던 외도2동 외도지서 터를 찾았다. 지금은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별다른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아서, 자유논객연합 등 보수단체 지원으로 세워진 표지석이 없으면 이곳이 4·3 당시 외도지서였는지 알 수 없었다. 비석 뒤로는 작은 동백나무 하나가 폭낭(팽나무의 제주 방언) 옆에 꼭 붙은 채 심겨 있었다. 성한 동백꽃은 한두 개뿐, 나무는 힘겹게 꽃을 피우려 애쓰고 있었다.
중산간 마을 주민이었다가 친인척의 도움으로 외도지서 특공대원이 돼 목숨을 부지했던 고치돈 씨는 이윤도의 학살극을 1999년 제민일보 4·3취재반에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이윤도의 학살극은 도저히 잊을 수 없다. 그날 지서에서는 소위 ‘도피자 가족’을 지서로 끌고 가 모진 고문을 했다. 그들이 총살터로 끌려갈 적엔 이미 기진맥진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이윤도는 특공대원에게 그들을 찌르라고 강요하다가 스스로 칼을 꺼내더니 한 명씩 등을 찔렀다. (...생략...) 그때 약 80명이 희생됐는데 여자가 더 많았다. 여자들 중에는 젖먹이 아기를 안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이윤도는 젖먹이가 죽은 엄마 앞에서 바둥거리자 칼로 아기를 찔러 위로 치켜들며 위세를 보였다. (...생략...)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지난 3월 31일 외도에서 ‘절뒤’라고 불리는 곳을 찾아다녔다.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아서 찾기 힘들었다. 여러 사람이 이곳이었을 것이라는 추정만할 뿐이었다. ⓒ민중의소리
외도지서에서 근무하던 이윤도 등은 ‘도피자 가족’들을 잡아다 ‘절뒤’라 불리는 곳으로 끌고 간 뒤 학살했다. 그중 ‘이완영 일가족 학살 사건’은 1960년 4·19 혁명 직후 구성된 국회 양민학살조사특별위원회에 외도 주민들이 신고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1949년 2월 14일 외도지서는 이완영(40)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의 아버지(67)·어머니(63) 그리고 아내(41), 10대 자녀 둘, 8살·7살·3살 자녀 셋, 며느리(22)와 생후 10일된 손자를 죽창으로 죽였다는 내용이었다. 이완영은 일가족을 잃은 뒤 약 1달 만에 토벌대에 붙잡혀 형무소에 수감됐다가 1950년 1월 옥사했다. 아무리 야만의 시대라지만, 생후 10일된 손자까지 잔인하게 죽여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찰 뒤편’이라는 의미의 이곳 학살터 ‘절뒤’도 가보았으나, 현재 아스팔트 도로가 깔리고 건물이 세워져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담장 너머로 분홍빛 풀또기(장미과 관목)꽃만 만개해 있었다.
지난 4월 1일 ‘조천지서 앞밭 학살터’를 찾았다. 동네 주민들은 “저곳”이라며 손으로 가리켰다. 하지만 그곳은 이미 새 건물이 세워져 있었고, 그 옆에 노는 땅은 잡초만 무성했다. 이 땅 도로 건너편에는 지구대가 하나 있었는데, 지구대가 있는 자리가 조천지서 터였다. ⓒ민중의소리
③ 서청 출신 경찰들 있던 조천지서·삼양지서
흔적은 없지만, 주민들이 손으로 가리킨 곳
지난 1일 성산포 터진목 학살터를 방문했다가 시내로 돌아오며 조천지서 터와 삼양지서 터도 들렸다. 이곳에서도 4·3 당시 서청 출신 경찰이 근무하면서 잔인한 학살극이 벌어졌다.
당시 조천지서 경찰들도, 가족 중 한 명이라도 집에 없으면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도피자 가족’으로 간주하고 지서 근처 창고에 잡아넣었다. 그렇게 잡힌 126명의 ‘도피자 가족’은 조천지서 인근 ‘조천지서 앞 밭’이란 곳에서 집단 총살당했다. 희생자 126명 중 10살 미만 유·아동은 26명이었다. 총살당한 김군선의 손녀와 방상규의 아들 등 3명은 겨우 1살이었다.
‘조천지서 앞밭’은 새 건물이 올라간 상태였고, 공터로 남은 곳도 풀만 무성했다.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주민들은 어느 곳에서 섬사람들이 무참히 살해당했는지 기억한다는 듯 “저곳”이라며 한곳을 가리켰다.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주름 깊은 한 주민은 “저기 하얀 차 세워진 곳 있지예? 저기가 예전에 사람들 막 죽인 곳이우다”라고 말했다.
삼양지서 터도 비슷했다. 새 건물이 세워져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고, 오래된 것은 울타리 쳐진 폭낭뿐이었다. 폭낭은 성인 두 명이 팔 벌려 껴안아도 다 감싸지 못할 정도로 컸다.
삼양지서에는 악명 높은 서청 출신 경찰 정용철이 근무했다. 지난 1일 찾은 삼양지서 터에는 별다른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커다란 고목만 있을 뿐이었다. ⓒ민중의소리
이윤도 뛰어넘는 삼양지서 정용철
삼양지터에서 근무했던 서청 출신 경찰 정용철은 이윤도 못지않게 잔인했다.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에는 제주경찰 10기생으로 4·3 당시 삼양지서에서 잠시 근무했던 김제진 씨와 대한청년단 분대장이었던 고봉수 씨의 증언이 담겼다.
김제진 씨는 정용철의 학살극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서청 출신 정 주임은 너무 잔인했다. 여자들 옷을 벗겨 더러운 행위를 하는 것도 봤다. 그 추운 겨울날 옷을 벗긴 채 망루 위에 오랜 시간 앉혔다. (중략) 그러다 날이 밝으면 삼양지서 옆 밭에서 수십명씩 잡아다 죽였다. 차라리 총으로 쏘아 죽일 것이지, 그 마을 대동청년단원들에게 창으로 찌르도록 강요했다.” 4.3 당시 제주의 청년들은 좌익으로 몰려 죽지 않기 위해 대동청년단원과 같은 보수단체에 가입해 서청 출신 경찰의 손발이 되기도 했는데, 서청 출신 경찰들은 이같이 같은 마을에 살던 이웃을 살해하게끔 종용하다 시원치 않으면 자신이 직접 죽였다.
고봉수 씨가 증언한 정용철의 학살극은 상상조차 힘든 수준이었다. “하루는 아침에 정기보고를 하러 지서에 갔더니, 남편이 입산했다는 이유로 젊은 여자 한 명이 끌려와 있었다. 그런데 정 주임은 웬일인지 총구를 난로 속에 넣고 있었다. 그러고는 젊은 여자를 홀딱 벗겼다. 임신한 상태였다. 정 주임은 시뻘겋게 달궈진 총구를 그녀의 몸속으로 찔러 넣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정 주임은 그 짓을 하다 지서 옆 밭에서 머리에 휘발유를 뿌려 태워 죽였다. 우리에게 시신 위로 흙을 덮으라고 했는데, 아직 ... (생략)”
이날 희생된 여성은 21세의 김진옥. 당시 산으로 피신했던 김태생의 아내였다. 김태생은 이날 아내와 부모를 잃었고, 이튿날 처조부를, 이후 며칠 만에 장모와 처제까지 잃었다. 김태생은 한국전쟁 참전용사다.
이토록 잔인했던 정용철에게도 연정을 품은 여성이 있었다. 정용철과 같은 서북청년회 단원으로 경찰이 되어 제주에 파견 갔던 김시훈은 그를 다음과 같이 떠올렸다고 한다. “성격이 좀 이상해서 자기 비위에 거슬리면 당장 총을 끄집어내 쏘려고 했다. 당시 경찰관이 사람 하나 죽이는 것은 파리새끼 죽이는 것처럼 간단했다. 그런데 그도 ‘이옥’이라는 처녀에게 반해 면회도 하던 사람이었다.”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는 이 같은 정용철의 양면성을 짚으며 “서청 단원들도 어쩌면 역사의 희생자일지 모른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누가 그들의 처지를 이용했는지 밝히고 있다. 보고서는 “문제는 서청을 사주한 자들”이라며 “왜 서청 단원들이 경찰로 둔갑해 제주에 파견됐으며, 어떻게 처음부터 경위로 특채될 정도로 우대받았는가? 이에 대해 미군보고서는 이승만의 결정에 따라 과격한 반공주의자로 주목받는 서청 단원을 경찰로 만들었으며 지원자를 늘리기 위해 단원 20명을 모아오면 그중 일부를 특채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4월 1일 ‘조천지서 앞밭 학살터’를 찾았다. 동네 주민들은 “저곳”이라며 손으로 가리켰다. 하지만 그곳은 이미 새 건물이 세워져 있었고, 그 옆에 노는 땅은 잡초만 무성했다. 이 땅 도로 건너편에는 지구대가 하나 있었는데, 지구대가 있는 자리가 조천지서 터였다. ⓒ민중의소리
4월 3일 추념식 찾는 서북청년단
75주년 4·3 추념식 장소 앞 집회신고
지난 3월 31일~4월 1일 이틀 동안 이곳을 돌아본 이유는 제주도민이 ‘서북청년회’라는 이름에서 느끼는 고통과 상처가 어떤 것인지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기 위함이었다. 이날 돌아본 제주4·3 터에서 벌어진 서청의 학살은 극히 일부이지만, 이것만으로도 제주도민이 서청이라는 이름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당선된 태영호 의원이 제주4·3 역사를 다시 수십 년 전으로 되돌리는 ‘북한 지령설’을 서슴지 않고 꺼내고, 여당도 구두경고로 이를 묵인하더니, 극우정당들이 제주도 전역에 태 의원의 주장을 그대로 옮긴 현수막을 달기에 이르렀다.
서북청년단 정함철 씨는 지난 3월 23일 제주동부경찰서에 오는 4월 3일 75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이 열리는 제주4.3평화공원 앞 등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했다. ⓒ서북청년단이 카페에 공개한 집회신고서와 과거 집회 사진
그리고 그 서청의 의지와 정신을 잇겠다는 단체가 ‘서북청년단’이란 이름으로 오는 4월 3일 제주도를 찾는다. 4월 3일 오전 제75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이 열리는 제주4.3평화공원 앞에서도 서북청년단 깃발을 흔들며 집회를 하겠다고 옥외집회 신고서도 접수한 상태다. ‘서북청년단 구국결사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정함철 씨는 2일 제주도로 향하며 서북청년단 페이스북 페이지에 “좌익(거짓과 어둠)의 해방구로 전락한 제주도민들의 병든 양심이 치유되기를 소망한다”고 썼다. 서청이 행했던 일들이 자랑스러운 일이라는 듯.
이에 일각에서는 정권이 바뀐 지 1년 만에 1948년으로 돌아간 것 같다는 한탄이 나온다. 학살터를 돌고, 시내의 한 카페로 이동하던 중 만난 한 택시기사는 최근 극우정당의 현수막과 서북청년단 집회예고 등에 대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현수막을 보면 기분이 안 좋다. 아마 제주사람이면 다 그렇겠지. 근데 방법이 없다. 훼손하면 우리가 잡혀가니까. 제주사람이 한 거라면 말이라도 할 텐데, 외부인이...다른 해에는 이런 적 없었는데, 누가 시킨 것 같다.”
이승훈 기자 lsh@vop.co.kr
4·3 추념식서 난동 부린 ‘서북청년단’…“어디라고 여길 와”
극우단체 찾아와 역사 왜곡 발언
유족·시민단체 격렬 항의하며 충돌
3일 오전 75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들머리에서 서북청년단 회원들이 시위를 하려고 하자, 유족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출입을 막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너희들이 어디라고 여길 와. 나도 죽창으로 죽여봐!”
4·3 역사 왜곡 발언을 해온 극우단체 등장에 제주 4·3 유족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의 눈시울을 붉어졌고 가슴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
‘서북청년단 구국결사대’ 회원들은 3일 75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인근에서 시위를 예고했다. 4·3 관련 단체들은 “사죄할 것이 아니라면 너희가 올 곳이 아니다! 4·3학살주범 서북청년단은 즉각 떠나라!”, “4·3왜곡 극우보수세력 규탄한다!” 등의 문구가 적힌 펼침막을 들고 맞대응 집회를 열었다.
3일 오전 75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들머리에서 서북청년단 회원들이 시위를 하려고 하자, 유족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막고 있다. 백소아 기자
승합차를 탄 서북청년단 회원들이 오전 7시 반께 평화공원 들머리에 도착하자, 4·3 유족들과 시민사회 단체 회원들은 이들을 막고 격렬하게 항의했다. 경찰은 서북청년단과 4·3 관련 단체 회원들을 분리하고 충돌을 막았다. 박영수 제주4.3희생자유족회 감사와 시민사회 단체가 중재에 나서자 소강상태를 보이기도 했다. 언론 인터뷰 도중 서북청년단 회원들의 역사 왜곡 발언이 이어지자 다시 출동하기를 반복했다.
3일 오전 75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들머리에서 서북청년단 회원들이 시위를 하려고 하자, 유족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막고 있다. 백소아 기자
제주도 곳곳에는 ‘제주4·3사건은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해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다’라는 펼침막이 우리공화당 등 4개 정당과 자유논객연합 등 1개 단체의 명의로 내걸렸다. 지난 2월 13일 제주에서 열린 국민의힘 당대표 및 최고위원 후보 합동연설회에서 태영호 최고위원 후보는 “4·3은 명백히 김일성 일가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라고 주장했다.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을 앞두고 보수정당과 단체의 역사 왜곡 발언들이 이어졌다.
2003년 정부가 펴낸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는 북한이나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설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규정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4.3 희생자 추념식에 다시 나타난 서북청년단... 대체 왜
항의와 반발 받고 현장 떠난 서청 재건위... 역사를 안다면 이래선 안 된다
2023년 서북청년단(아래 서청)이 다시 제주에 나타났다. 그것도 제주도민에게 가장 슬프고 엄숙한 4월 3일 희생자 추념식이 열리는 평화공원 앞에 등장했다.
▲ 서북청년단은 즉각 떠나라 3일 제주 4.3 75주년 추념식이 예정된 제주 4.3평화공원 어린이교통공원 앞 네거리에 내걸린 현수막. 서북청년단이 이날 집회를 예고한 가운데 이에 반대하는 제주도민들이 내건 현수막이다. 서북청년단은 4.3 때 군경과 함께 제주 도민을 불법학살한 당사자다.ⓒ 심규상
▲ 제주시 오라2동 교차로에 걸려있는 제주4.3 왜곡 현수막.ⓒ 제주의소리
3일 오전 7시 30분쯤 제주4.3평화공원 앞 도로에 서청 단원들이 탄 승합차가 도착했다. 그러자 제주시민사회단체가 차량을 막았고, 양측의 충돌을 우려한 경찰이 출동했다.
오전 8시 40분 제주시민사회단체의 거센 반발로 차량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던 서청 승합차는 유족회의 설득으로 행사장 앞 도로에서 떠났다. 그러나 서청은 과거 서청 사무실 터와 제주시청 앞에서 계속 집회를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제주에 상륙한 서청, 그들의 끔찍한 만행
제주도민에게 서청은 공포의 대상이자 아픔을 떠올리게 하는 트라우마의 상징이다. 4.3 사건 당시 육지에서 온 경찰들의 만행이 주요 원인으로 꼽힐 정도로 잔혹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육지경찰'은 서청을 뜻한다.
▲ 4·3진상규명을 위해 발간된 '서북청년단 만행' 관련 자료
제주에 서청이 등장한 것은 1947년이다. 3월 1일 경찰의 발포로 민간인이 사망하고 시위와 총파업이 벌어진다. 당시 도지사로 부임하는 유해진은 서청 단원 7명을 경호원 자격으로 데려온다. 이를 계기로 서청 단원들이 대거 제주로 들어온다.
이승만 정권의 비호를 받는 서청의 만행과 횡포는 제주도 전역에서 발생했다. 이들은 무전취식은 기본이며 이승만 사진과 태극기 등을 강매하며 돈을 뜯어냈다. 4.3사건 당시 고성리와 난산리 주민 33명이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서청의 이승만 대통령 초상화 강매를 거부한 고성리 청년들에 대한 보복 학살이었다
서청은 처녀를 겁탈해 현지처로 삼거나 배급 식량이나 구호 물품을 제멋대로 가져가기도 했다. 구호 물품을 더 달라는 요구를 제주도 총무국장이 "서청은 구호 대상이 아니다"라며 거부하자 린치를 가해 그를 죽게 만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무실로 사용하는 적산가옥을 통째로 갖기 위해 제사상에 오줌을 떨어뜨리고 이를 항의하는 집주인을 폭행하기도 했다. 서청은 당시 제주의 유일한 신문이었던 <제주신보>도 강제로 접수했다.
서청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유일한 논리는 '빨갱이'라는 말이었다. 서청 제주도위원장 안철은 "제주도는 한국의 작은 모스크바"라며 방첩대에 이를 입증하겠다고 했다.
서청의 '빨갱이 척결'을 받아들인 이승만과 미국은 이들을 경찰과 군인으로 만들어줬다. 로버츠 미 군사고문단장은 한국군 3개 대대를 주로 서북청년회 단원으로 충원시켜 강경진압작전의 핵심으로 만들었다.
4·3 사건 당시 조천지서 앞에서 벌어진 집단학살 사건은 서청 출신 '응원 경찰'이, 성산포 터진목 집단 학살은 서청 단원으로 구성된 '특별중대'가 벌인 만행이었다. 서청은 민간인 학살, 중산간 초토화 작전, 예비 검속 등을 주도했고, 제주 도민을 공포와 죽음으로 몰고 갔다.
서북청년단 재건위 "안두희의 김구 처단은 의거"
▲ 서거 직후 김구 선생 1949년 6월 서거 직후 김구 선생 모습. 배후세력이 누구인지는 끝까지 미궁에 빠졌으나, 양식있는 시민이라면 상식처럼 다 알고 있다.ⓒ 이영천(경교장 전시물 촬영)
"서북청년회는 북한에서 월남한 사람들 가운데 특히 혈기왕성한 청년층이 '반공'을 표방하면서 만든 청년단체였다. 그러나 말이 청년단체이지 하는 짓은 정치깡패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들을 비호하던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조차 나중에는 진저리를 칠 정도의 비인간적 테러집단이 바로 서북청년회였다." (민족문제연구소회보 2014년 11월호)
김구 선생을 살해한 안두희는 서청 출신이다. 안두희는 월남 후 서울에 온 지 석 달 만에 서청 부위원장인 김성주와 만나 서북청년회 서울 본부 직속인 종로지부의 사무국장이 됐다.
당시 김성주는 "이승만의 지시를 받아 내가 안두희를 시켜 백범을 죽였다"고 자랑하고 다녔고, 심지어 안두희 공판일에는 법원 앞에서 '안두희는 민족의 영웅'이라는 전단을 살포하며 석방을 요구하기도 했다.
2014년 배성관 당시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장은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에 "반공단체인 서북청년단원 안두희씨가 김구를 처단한 것은 의거"라는 글을 올렸다. 1949년 김구 암살범 안두희를 옹호했던 서청 김성주의 주장과 똑같다.
서청은 정치 깡패를 넘어 테러 조직으로 봐야 할 정도로 암살과 기습 사건 등을 주도한 집단이다. 이런 테러 조직을 후원한 것은 이승만과 친일 기업, 우익 정치인들이었다.
화해와 상생 위해? "오늘만큼은 제발 자제해 달라"
제주도민에게 4.3희생자 추념일은 단순한 국가 행사가 아니다. 제주도 전역에서 한낱 한시에서 올리는 제삿날과 같다. 제주도민 중에 4·3 사건에 연루됐거나 희생자를 찾는 것은 흔하디 흔한 일이다.
이런 날에 서청이 제주에 왔다는 것은 제주도민에게는 아픔을 강제로 끄집어내는 잔인한 일이다. 특히 서청은 유족회와 만난 자리에서 자신들은 '화해와 상생을 위해 왔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믿기는 어렵다. 정함철 서청 구국결사대장은 제주에 오기 직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좌익해방구의 심장부에서 휘날리는 서청의 깃발 아래 어떤 역사가 쓰여지는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기 바란다"는 글을 올렸다.
서청과 대화를 나눈 유족은 "내 아버지도 서청의 강압적인 요구를 거부하다 끌려가 사흘 동안 매를 맞았다"면서 "오늘만큼은 서청 깃발이나 퍼포먼스를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부탁을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여전히 '빨갱이 척결'을 '애국'으로 생각하는 극우 집단을 이용하는 정치인들이 있기 때문 아닐까.
오마이뉴스 임병도(impeter)
유사동맹’에 말려든 한국의 안보, 한미동맹이 지켜줄까?
전북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 현지언론 때아닌 ‘색깔론’ 논란
전북 지역언론은 어떻게 보도했나
불필요한 정쟁 유발하는 기사 이어져
민주당 무공천 방침 거슬러 논란인 박지원 지지 발언 비판 목소리 전해
전주을 재선거에 가려진 ‘군산시 시의원 재선거’ 분석한 전북의소리
4·5 전북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가 3일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전북지역의 언론에서 후보들의 시대착오적인 색깔론 공방을 그대로 전하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념 공방’ ‘색깔론’과 같은 단어를 기사 제목이나 부제목에 넣어 유권자에게 필요한 정보보다는 불필요한 정쟁을 유발해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기사들이다. 오는 5일 재선거는 이상직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이 박탈돼 실시하는 선거다.
▲ 전북도민일보 기사 사진 갈무리.
새전북신문은 지난달 28일 기사 <전주을 ‘현수막 전쟁’…전과-이념 공방>에서 “전주시을 재선거가 폭력 전과 이력에 이어 이념 논쟁으로 번지는 등 독특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도내 정치권과 유권자들은 ‘윤석열 정권 심판’과 ‘노조 좌파 간첩’ 논쟁 대결을 숨죽여 보게 됐다”고 했다. 같은 날 <이색 현수막 눈길>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는 “전주 시내 백제도로 곳곳에 이색 현수막이 대거 내걸려 시민들의 관심을 끌었다”며 ‘진보가 무엇인가, 사회주의 공산혁명이 진보인가?’라고 적힌 국민의힘 당원 명의로 결린 현수막 사진을 내보냈다.
▲ 새전북신문 기사 갈무리.
▲ 새전북신문 기사 갈무리.
새전북신문은 ‘색깔론’을 제목으로 강조한 보도를 이어갔다. 지난달 29일 기사 <전주을 재선거 ‘색깔 논쟁’ 점화>에서 “4·5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가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 조짐”이라며 “운동권 진보당에 전주를 뺏길 수는 없다. 자랑스러운 전주를 반미 투쟁기지로 만들 수 없다. 전주의 대변화를 가로막는 진보당에 강력 경고한다”고 말한 무소속 임정엽 후보의 기자회견 발언을 전했다. 그러면서 “‘반미 구호가 난무할 수 있는 근거론 진보당의 대선 공약인 ‘한미연합훈련 중단’, ‘한미방위조약 폐기’, ‘주한미군 단계적 철수’, ‘국가 보안법 폐지’등이 있다’고 지목했다”고 했다.
▲ 새전북신문 기사 갈무리.
사설에서는 ‘색깔론’ 공격을 받는 강성희 진보당 후보가 정체성을 밝히는 게 색깔론을 잠재우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새전북신문은 지난달 31일 사설에서 “빨갱이 논쟁은 과거 독재정권이 민주인사를 탄압하려 쓰던 수법이다. 그러나 이번 논쟁의 본질은 헌재로부터 해산당한 통합진보당과의 연관성, 진보당의 대선 공약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것”이라며 “주민대표인 국회의원을, 그것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데 제기하는 유권자의 당연한 질문이다. 이에 대한 답을 하는 게 되레 불필요하고 전근대적인 색깔론을 잠재우는 일”이라고 했다. 언론이 색깔론 정쟁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 새전북신문 사설 갈무리.
전북일보도 지난달 29일 기사 <전주을 재선거에 소환된 ‘이념 논란’>에서 “전주을 재선거에 북한 미사일 도발과 관련한 당 정체성을 다룬 ‘이념론’이 소환됐다”며 지난달 24일 JTV전주방송 주관 토론회에서 임정엽 후보가 강성희 후보에게 북한 미사일 발사의 정당성을 묻는 내용을 자세하게 전했다. 또 임 후보가 진보당과 북한의 관계를 언급하며 진보당의 정체성을 비판했는데 이를 자세히 전하는 등 전주을 지역 현안과 무관한 내용을 보도했다.
▲ 전북일보 기사 갈무리.
민주당 무공천 방침 거슬러 논란인 박지원 지지 발언, 어떻게 보도했나
이번 전주을 재선거는 이상직 전 민주당 의원의 의원직 박탈로 치러지기 때문에 민주당에서는 후보를 내지 않았다. 그러나 박지원 민주당 고문이 민주당에서 탈당한 임정엽 무소속 후보를 지지하면서 당 안팎에서 이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임 후보는 자신이 당선되면 복당하겠다는 뜻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전북일보는 지난달 30일 <내년 총선 전주을 민주당 주자들 ‘좌불안석’>에서 “‘4월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한 22대 총선 주자들이 이번 선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라며 “최근 민주당 박지원 고문이 무소속 임정엽 후보를 공개 지지하면서 민주당 주자들 사이에서 파열음이 감지되고 있다”고 했다. “당 고문이 특정 무소속 후보 지지한 것은 해당행위”라는 이덕춘 변호사 발언이나 “민주당이 빠졌지만 이번 선거만큼 민주당의 그림자가 강한 선거도 드물다”는 한 전북 출신 의원의 발언도 함께 전했다.
▲ 전북일보 기사 갈무리.
전북도민일보도 지난달 28일 기사 <민주 박지원, 무소속 후보지지 ‘당내 후폭풍’>에서 “전주을에서 차기 총선을 준비중인 정치인들도 박 전 국정원장의 무소속 후보 지지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며 “민주당은 당헌·당규에 따라 재선거에 공천을 하지 않았다. 당의 고문인 박지원 원장의 무소속 후보지지 발언은 부적절하다”는 목소리를 전했다.
▲ 전북도민일보 기사 갈무리.
혼탁해진 선거판이 유권자들의 외면을 자초했다며 유권자들의 참여를 독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전북도민일보는 지난달 28일 기사 <전주을 재선거 ‘유권자 무관심’ 그대로>에서 “후보자들의 공약과 경력 등이 담긴 선거 공보물이 아파트 우편함 속에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며 “재선거에 대한 전주을 유권자들의 무관심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 전북도민일보 기사 갈무리.
아울러 “유권자들의 무관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정치권에 대한 실망감이 반영된 결과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라며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가 치러지게 된 원인도 유권자들의 이런 반응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라고 했다. “지역 일꾼으로 뽑아 놓은 국회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낙마하면서 치러지는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가 유권자들의 무관심속에 사상 최저 투표율을 기록할 경우 자칫 대표성 상실 논란 마저 우려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사설에서도 “전국 유일의 재선거인 이번 선거판이 혼탁해지면서 유권자들의 외면을 자초했다”며 “민주당이 재선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무공천한 가운데 지역과 무관한 인사의 출마를 비롯해 특정정당의 중앙당차원의 총력 지원,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일부 입지자들의 민주당계 유렵 후보자 낙선을 위한 조직적 정략적 타후보자 밀기 등 정책과 인물 대결 대신 조직과 정략적 선거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 전북도민일보 사설 갈무리.
전주을 재선거에 가려진 ‘군산시 시의원 재선거’ 분석한 전북의소리
유권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 보도들도 보였다. KBS 전주방송총국은 지난달 20일 <‘전주을’ 출사표 6명…재산·범죄기록 살펴보니> 보도에서 각 후보들의 재산과 범죄 관련 기록들을 상세히 소개했다. KBS전주방송총국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전북언론 돋보기-패트롤전북jj’ 3월23일과 30일 방송에서는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 여론조사 결과와 선거 후보자 법정 토론회를 분석하며 네거티브전으로 가고있는 선거 경향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전했다.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조선일보 “외교 조약도 통제, 헌법 위의 민주당”
민주당 법안에는 “대통령 거부권 행사 유도, 부담 안기겠다는 계산”
전기·가스요금 인상 연기에 ‘국민 여론 의식’, ‘정당 개입’ 지적한 언론들
윤석열 지지율 30%에 한겨레 “윤 대통령 무거운 책임 느껴야 해”
조선일보가 지난 1일 <외교 조약도 통제, 헌법 위의 민주당>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아침신문 1면 머리기사에 실었다. 기사는 “대통령의 대법원장 임명권을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해 위헌 논란을 빚은 더불어민주당이 최근까지 국가 체계와 근간을 흔드는 법률안을 계속 발의하고 있다”며 국민의힘에서는 “그렇게 좋은 법안이라면 민주당이 여당이던 문재인 정권 때 왜 만들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나온다고 전했다.
▲ 조선일보 1면 기사 갈무리.
조선일보가 지적한 법안은 6가지다. 민주당 설훈 의원이 발의한 ‘조약 체결 절차 법안’, 김승원 의원이 발의한 “‘대통령의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족’은 대통령의 특별사면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사면법 개정안’, 최기상 의원이 발의한 대통령의 대법원장 임명권을 제한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 진성준 의원이 발의한 대통령의 국가인권위원 지명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 최강욱 의원이 발의한 의뢰인과 주고받은 의사 교환의 내용을 담고 있는 물건은 변호사가 검찰의 압수 수색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 민주당 출신 무소속 민형배 의원이 발의한 감사원이 중요 감사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감사원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 조선일보 5면 기사 갈무리.
조선일보는 이들 법안이 헌법에 배치되고 입법·사법·행정의 삼권분립 위배 측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제1야당을 배제한 채 선거법 개정을 강행 처리했고,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는 ‘검수완박’법 역시 지난해 거대 의석을 가지고 밀어붙였다”며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헌법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며 입법 폭주를 하고 있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사설에서도 비판을 이어갔다. <대선 지자 대통령 인사·사면·행정·외교 제한 법 쏟아내는 민주당>이라는 제목의 사설은 “더불어민주당이 각종 포퓰리즘 법안에 이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제한하는 법안을 줄줄이 추진하고 있다”며 “국회 다수 의석에 각종 꼼수를 써서 입법 폭주를 해 온 민주당이 이젠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까지 침해하려 한다. 입법권 남용이자 대선 불복이라는 비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 조선일보 사설 갈무리.
아울러 “(민주당은) 불법 파업을 조장한다는 ‘노란 봉투법’, 화물연대에 특혜를 주는 안전운임법, 공영방송 사장 임명을 야당에 유리하게 바꾼 방송법 등 지지층이 좋아할 법안을 줄줄이 밀어붙이고 있다”며 “민주당도 이런 사리에 맞지 않는 법이 그대로 시행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유도해 정치적 부담을 떠안기겠다는 계산일 것이다. 그러니 법안이 헌법에 맞는지 여부엔 관심도 없다”고 했다.
전기·가스요금 인상 연기에 ‘국민 여론 의식’, ‘정당 개입’ 지적한 언론들
국민의힘과 정부가 지난달 31일 2분기 전기·가스 요금 인상을 잠정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1일 대다수 아침신문들은 1면에서 해당 소식을 전하며 ‘한국전력공사(한전)과 한국가스공사의 적자 구조 해소를 위해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면서도, 국민 여론을 의식해 요금 조정 시기와 인상 폭에 대해 판단을 미뤘다’고 지적했다. 정당이 사실상 전기·가스요금 결정 과정에 개입하는 상황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 경향신문 3면 사진 갈무리.
경향신문은 1면 기사 <여론 눈치에…전기·가스료 인상 ‘급제동’>에서 “전기·가스 요금 인상 불가피성을 강조하던 정부가 인상을 보류한 것은 시민 반발을 우려한 여당이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라며 “윤 대통령이 당정협의 강화를 주문한 후 민심을 전달하는 여당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고 했다.
▲ 경향신문 1면 기사 갈무리.
3면 기사 <난방비 악몽에 여당서 “스톱”…한전·가스공사 ‘적자’ 방치>에서는 한전과 한국가스공사 적자 폭에 대한 우려를 전했다. 기사는 “금융투자업계는 지난해 30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한 한전이 올해에도 적자 폭이 10조원대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특히 2분기 요금 인상이 물 건너가면 적자는 더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 경향신문 3면 기사 갈무리.
이전까지는 부처 간 협의로 결정됐던 전기·가스요금 결정 과정이 정치적 이해가 더 반영될 당정 협의로 넘어가면서 요금 인상이 더 어려워진 점도 지적했다. 기사는 “전기요금은 전기사업법에 따라 한전이 조정안을 작성한 후 산업부에 신청하면 산업부 산하 전기위원회의 심의·의결 절차를 거쳐 산업부가 최종 인가한다. 이 과정에서 물가안정법에 따라 산업부가 미리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거친다”며 “그러나 당에서 사실상 전기요금 인상폭에 개입하면서 ‘옥상옥’ 구조가 됐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인상 보류 결정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1면에서 이어지는 3면 기사 <김기현, 전기료 인상 보류 주도…전문가 “정치적 입김 차단해야”>에서도 “전문가들은 정치권에서 여론을 앞세워 에너지 가격 결정에 개입하는 것에 우려를 나타냈다”며 “여당에서 개입하면서 경제 논리 대신 정치 논리가 더 크게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치적인 이유로 요금 현실화를 외면하면 에너지 공기업의 재무 구조가 악화돼 결국 국민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 중앙일보 3면 기사 갈무리.
조선일보는 1면 기사 <전기·가스요금 인상 연기>과 이어지는 4면 기사에서 “전기·가스 요금 인상 불발은 경제 정책과 관련, 정부와 여당이 처한 딜레마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평가”라며 “국민의힘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때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에도 인위적으로 전기·가스 요금을 억제하면서 한전과 가스공사의 손실 규모를 천문학적으로 키웠다. 지속 가능한 구조로 정상화하려면 요금을 인상할 수밖에 없지만, 그에 따른 부정적인 여론을 모두 윤 정부가 감당해야하는 상황’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30%로 떨어진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에 대한 우려도 영향을 미쳤다고 덧붙였다.
▲ 조선일보 4면 기사 갈무리.
동아일보는 6면 기사 <與, 전기-가스료 인상 제동…정부 “계속 미루면 국민부담 더 커져”>에서 “여권 내에선 이번 결정을 두고 윤 대통령 지시 이후 정책 주도권이 정부에서 당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며 “하지만 국민의힘은 올해 초 난방비 폭탄 논란 당시 ‘문재인 정부 때 가스비 인상을 미룬 포퓰리즘 정책 때문에 그 폭탄을 지금 정부와 서민들이 다 뒤집어쓴다’고 비판한 바 있다. 총선 표심을 의식한 집권여당이 비슷한 태도를 반복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고 했다.
▲ 동아일보 6면 기사 갈무리.
윤석열 지지율 30%에 한겨레 “윤 대통령 무거운 책임 느껴야 해”
지난달 31일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30%로 떨어졌다는 한국갤럽 여론조사가 나왔다. 지난해 11월 30%를 찍은 후 4개월 만의 최저치다. 갤럽 조사에서 부정평가에는 ‘외교’(21%)와 ‘일본관계·강제동원 배상 문제’(20%)가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됐다.
한겨레는 6면 기사 <굴욕외교·인사파동에 윤 대통령 지지율 30%로 ‘뚝’>에서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굴욕 외교’ 비판에다,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 전격 교체를 둘러싼 논란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사설에서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 크고 작은 외교 실수가 끊이지 않았지만, 이달 들어서는 그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이런 상황을 초래한 데 대해 누구보다도 윤 대통령이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한다. 부처나 실무진이 외교 채널로 협상을 하면 윤 대통령이 ‘모든 책임을 진다’고 큰소리치며 조급하게 결말을 짓는 태도가 외교를 더욱 혼란스럽게 해왔다”고 비판했다.
▲ 한겨레 6면 기사 갈무리.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집권 1년도 안 된 대통령 지지율로는 처참한 수준이며, 이 상태로는 국정동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국민들이 외교부터 민생·소통까지 국정 전반에 대해 아주 박한 점수를 매기고, 집권 10개월 된 대통령의 신뢰와 기대도 뚝 떨어진 걸로 풀이된다”고 했다.
▲ 경향신문 사설 갈무리.
아울러 “국정 실패→지지율 하락의 악순환에 빠진 여권이 여론 눈치를 보느라 누차 예고했던 전기·가스 요금 인상을 미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5월 이후로 늦춰지게 됐다. 정부 각 부처에선 대통령실에 정책·현안 보고를 미루고 있다고 한다”며 “외교참사와 주 69시간 근무제 논란 등이 발등의 불이 된 여권에 비상등이 켜진 셈이다. 국정의 축이 제대로 서고 굴러갈지 국민적 의구심과 불안도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이재명 시장 집무실 CCTV가 가짜?…"검찰 또 조작 수사“
정진상 전 실장 측 "검찰이 유동규 확성기냐" 반박
"가짜 CCTV설은 논박할 가치조차 없는 허위주장"
많은 언론서 성남시장 집무실 CCTV 영상 보도해
"유동규 수시로 바뀌는 언행, 검찰이 확대·재생산“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의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29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유씨는 2019년 9월∼2020년 10월 정씨에게 6000만원의 뇌물을 준 혐의로 함께 기소됐다. 2023.3.29.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 집무실에 설치했던 폐쇄회로(CC)TV가 실제로는 아무 작동을 하지 않는 '모형'이었다고 검찰이 주장한 데 대해 정진상 전 대표실 정무조정실장 측은 "검찰이 유동규 확성기냐"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정 전 실장 측 변호인은 30일 입장문에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는 검찰의 행태가 재판정에서도 반복되고 있다"며 "범죄혐의자 유동규의 망상에 근거한 '가짜 CCTV'설이 대표적"이라고 지목했다.
지난 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조병구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정 전 실장의 뇌물 등 혐의에 관한 첫 공판에 피고인으로 출석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은 오전 공판 뒤 기자들을 만나 "성남시청에 CCTV를 뒀다는 건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최소한 시장실에 있는 건 가짜고 제가 알기로 비서실에 있는 CCTV도 가짜가 있다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또 "시청 업무실에 있던 CCTV는 말하자면 견본품처럼 연결도, 녹화도 안 되던 가짜"라며 "당시 시장도, 정씨도 이를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언론을 통해 집중적으로 보도됐다.
이에 대해 정 전 실장 변호인은 "검찰은 이런 '아무말대잔치'를 맘껏 해보라고 유동규를 풀어준 것인가?"라며 "유동규의 가짜 CCTV설은 논박할 가치조차 없는 허위주장"이라고 단언했다.
이미 수많은 언론에서 성남시장 집무실 CCTV 영상을 보도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은 과거 역대 민선시장들이 모두 뇌물수수로 구속된 불명예를 씻어내고 부패와 청탁을 근절하겠다는 차원에서 시장 집무실에 CCTV를 설치했다. 이에 MBC, SBS 등 언론에서 실제 작동하고 있는 시장 집무실 CCTV 영상을 공개한 바 있다.
2011년 6월 13일 MBC 보도. 맨 아래 화면은 MBC 기자(왼쪽)가 이재명 시장(오른쪽)을 만나고 있는 모습을 TV 카메라(왼쪽 위)와 CCTV(오른쪽 아래)로 각각 촬영한 화면.
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위원장 박범계)도 입장문을 내고 "더 큰 문제는 검찰이 유동규의 이런 허위주장을 재판에서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이원석 검찰총장부터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 고형곤 제4차장검사,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반부패수사1부 엄희준 부장검사, 정일권·최재순 부부장검사까지 검찰에 묻는다. 유동규의 허위주장, 제대로 검증한 게 맞나?"라고 따졌다.
대책위 지적대로 검찰 역시 유 전 본부장과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가짜 CCTV설을 본격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했다. 검찰은 당시 오후 공판에서 "확인 결과 CCTV는 회로가 연결되지 않아 촬영 기능이 없는 모형으로 비서실 직원도 모형이라고 알고 있다"고 했다. 이어 "촬영된다고 해도 정진상 자리를 비치는 게 각도상 불가능한 자리"라며 "이런 내용은 담당 공무원을 통해 모두 확인된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대책위 측이 검찰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정진상 전 실장 압수수색 영장에서 유동규가 CCTV에 녹화되지 않기 위해 계단을 이용해 정 전 실장 주거지까지 이동해 금품을 건넸다고 적시했다. 하지만 대책위가 해당 아파트 출입구 바로 앞에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는 점 등 반박 증거를 제시하자 공소장에서는 슬그머니 해당 대목을 삭제했다는 것이다.
대책위는 "검찰은 반성의 기미도 없이 정 전 실장 공소장에도 유동규의 일방적 진술을 그대로 적시했다"며 "유동규가 경기도청 사무실로 찾아가 정 전 실장에게 금품을 전했다는 것인데, 대책위의 검증 결과 도처에 CCTV가 가득해 유동규가 CCTV를 피해 돈을 건넬 수 없는 구조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CCTV에 녹화되지 않기 위해 계단을 이용해 정 전 실장 주거지까지 이동해 금품을 건넸다고 주장한 유동규가 CCTV가 가득한 경기도청사는 근무시간에 찾아가서 뇌물을 건넸다고 주장한다"며 "유동규의 행동은 그의 말만큼 수시로 바뀌고 있는데 국가기관인 검찰이 이에 호응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스럽다"고 했다.
정 전 실장 측과 대책위는 "검찰이 해야 할 일은 범죄혐의자의 허위주장을 확대·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검증을 통해 진실을 가려내는 것"이라며 "범죄혐의자의 허위주장을 고장 난 라디오처럼 반복하는 것 자체가 검찰이 '짜 맞추기식 조작 수사'를 일삼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강조했다.
김호경 에디터 시민언론 민들레
개딸'은 어떻게 '광기 어린 팬덤'으로 낙인 찍히는가
수구언론과 국힘, 야당 일각의 집요한 악마화
개딸에 핍박받는 소수? 정당한 비판에도 강변
대선 때 청년여성, 기층 대중 나서 통쾌한 반격
주류적 프레임 의심하며 민주당 개혁입법 압력
당초 의도와 달리 정치적 역효과만 낳는 경우도
포악한 권력 맞서 광범한 연대 구축, 힘 모아야
더불어민주당 김종민·이원욱 의원이 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토론회를 준비하며 발제자인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와 대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원욱 의원,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 박진 교수, 김종민 의원. 2023.3.14. 연합뉴스
'개딸(개혁의 딸)'이라는 단어로 상징되는 현상과 흐름이 한국정치의 모순과 역동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가 되고 있다. 한때 새로운 가능성과 기대를 불러모으는 것처럼 쓰이던 단어와 개념이 지금은 낙인과 혐오의 주문으로 변화하고 있다. 민주당에서 현 지도부와 대립하는 정치인들은 "개딸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최근 국민의힘과 <조선일보> 등은 '개딸'을 통제되지 않는 괴물 집단처럼 묘사하는 글들을 계속 쏟아내고 있다.
사실, 지난 대선 때 처음 등장한 '개딸' 현상은 한국사회의 주류적 흐름과 담론을 뒤집는 통쾌한 반전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이재명은 기득권 카르텔과 족벌언론의 협공 속에서 온갖 부정적 딱지와 '비호감'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형수 욕설' 논란 등 때문에 여성들 속에서 거부감이 더 컸다.
민주당은 지자체장 성폭력 사건들과 '586 중년남성 꼰대 정당'의 이미지 때문에 여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억강부약'을 말하던 정치권의 대표적 아웃사이더 이재명은 민주당 대선후보로 주류화되면서 개혁적 성격이 더 희미해졌고, '펨코' 등을 기웃거리고 반페미니즘 역풍에 타협하려 하면서 여성 유권자들과 거리가 더욱 멀어졌다.
보수우파는 '최악의 비호감 대선' 구도를 만들어 상대 후보의 확장성을 차단하는 한편, 자신들은 안철수까지 포함한 '최대연합'을 이루고 성별 갈라치기를 통해서 청년(남성)들을 끌어들여서 '세대를 포위'하면 필승한다는 계산으로 움직였다. 이런 흐름에 파열구를 내기 시작한 것이 바로 대선 막판에 등장한 '개딸' 현상이었다.
'이재명 악마화' 등이 가장 집요하게 유포되던 공간들 속에서 청년여성들을 중심으로 그토록 강력하던 주류적 프레임을 의심하고 거부하는 목소리가 등장했다. 그것은 기득권 카르텔이 일으킨 다양한 역풍과 갈라치기에 몰리던 기층 대중의 의미 있는 반격이었다. 이재명 후보는 TV토론에서 지자체장 성폭력 사건들을 사과했고, "구조적 성차별이 왜 없다는 것이냐"고 윤석열 후보를 몰아붙였다.
이것이 왜 진보정당보다 민주당 후보를 통해서 나타나게 됐는지는 따로 분석과 평가가 필요한 일이지만, 이 현상이 조금만 더 일찍 더 크게 나타났다면 대선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이 현상은 윤석열 후보가 0.73% 차이로 가까스로 승리하고 나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청년여성들을 중심으로 수십만 명의 새로운 당원이 민주당에 가입했고, 민주당 당사 앞에서는 '민주당은 할 수 있다'며 개혁 입법을 촉구하는 집회와 행진이 계속됐다.
최근 헌법재판소도 그 정당성과 유효성을 인정한 '검찰 수사권 축소 법안'은 이 과정에서 통과될 수 있었다. 그것은 민주당 주류세력이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180석 가까운 의석에도 의지를 보이지 않던 일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기층의 압력이 민주당 주류세력과 지도부를 압박하거나 교체하면서 더 많은 개혁 입법을 요구하고 윤석열 정부에 맞선 강경 투쟁을 주문할 가능성이 커졌다.
근래, 보수우파와 족벌언론들의 집요한 '개딸' 낙인찍기와 공격은 이런 배경에서 해석될 수 있다. 보수우파들은 초기에는 개딸의 상징이었던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의 학벌이나 출신 등을 문제 삼으며 공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지현 씨가 '개딸'과 갈라서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그 틈을 비집고 이간질하면서 박지현 씨를 추켜세우며 그의 주장을 '개딸' 공격의 무기로 이용하고 있다. 박지현 씨는 최근에도 "민주당은 개딸과 완전히 절연해야 한다"고 주장해 언론에서 앞다퉈 기사를 쏟아냈다.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청년 당원들이 6일 국회 소통관에서 민주당이 나아가야 할 길이란 주제로 열린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3.3.6. 연합뉴스
물론, 어디서든 소수의 극단적 흐름은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정치인을 향해서 막말과 욕설을 퍼붓고 괴롭히기까지 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문제는 그 소수 집단이 마치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과장하면서 '악마화'하는 데 있다. 그래서 '개딸'은 이제 '민주당뿐 아니라 한국 정치를 망치고 있는 광기 어린 팬덤'을 상징하는 코드명이 됐다.
민주당 내부에서 뭔가 과도하고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면, 실제로 그들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들인지와 상관없이 '개딸'이라고 딱지가 붙여지고 있다. 여성차별적 편견까지 결합시켜 혐오를 부추기면서 낙인찍고 있다. 반면, 보수우파와 족벌언론들은 윤석열 정부를 지지하는 일부 극우적 청년남성 집단에 대해서는 결코 '광기 어린 팬덤정치'라는 프레임과 낙인을 설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MZ의 목소리'라고 포장해 준다.
더불어서 우리는 여기서 사회적으로는 누군가를 괴롭히는 다수파와 주류에 속하는 사람이 특정한 공간에서는 공격 당하는 소수파가 되는 것을 나누어서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 먼저 중요한 것은 누가 사회적으로 다수파와 주류의 편에 있고, 누가 소수파와 비주류의 편에 있는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정치검찰과 족벌언론들의 일방적 정치탄압과 조리돌림 속에서 야당 대표가 무조건 사퇴하고 체포 위험을 감수하라고 압박하는 것은 사회적 주류세력의 편에 서는 것이다. 그리고 권력의 다수파와 주류인 정치검찰과 족벌언론 등이 상대에게 쏟아붓는 공격은 야당에서 내부적 소수파를 향해 가하는 공격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즉 진정한 마녀사냥과 조리돌림은 여기서 벌어지고 있다. 이런 것에 침묵하거나, 심지어 권력의 탄압에 힘을 실어주면서 자신이 '핍박받는 소수'라고 강변하는 사람들을 납득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민주당에서 대표 사퇴와 검찰수사 협조를 주장하는 사람은 '검찰공화국에 굴복한 배신자'라고 비난받고 있다.
현재로서는 그렇게 비난받는 사람들이 민주당에서 비주류이고 소수파가 된 것이 사실이다. 야당 지지자들은 상대방을 언론과 포털을 동원해 좌표 찍어서 괴롭히고, 압수수색하고, 영장을 치고, 구속하고 이럴 힘이 없으니 강한 표현의 비난에 더욱 매달리게 되고, 정치적 비판은 감정적인 비난과 막말로까지 발전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면 몰리는 정치인은 '이것은 마녀사냥이고 조리돌림이다'라고 반발하게 되고, 그것이 낳는 내부적 갈등과 불신은 심각한 분열로 발전하고, 족벌언론들은 그걸 이용해 '개딸들의 광기 어린 팬덤 정치가 민주당을 망치고 있다'며 또 공격의 명분과 이간질의 기회로 삼게 된다.
결국 반동적 권력과 정치검찰, 족벌언론들에 맞서서 타협하고 후퇴하자는 잘못된 주장을 비판하면서 더 강력한 저항을 구축하겠다는 의도와 달리, 그것은 내부적 불신과 갈등과 분열을 키우면서 연대와 투쟁을 더 어렵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아무리 동의할 수 없는 잘못된 주장이라고 해도 정치적 비판과 토론을 통해 대응해야만 한다. 지나친 감정적 매도, 인신공격, 무분별 의혹 제기, 막말과 욕설, 명단 작성, 좌표 찍기, 조리돌림, 딱지 붙이기, 강제 태그, 사이버불링 등으로 공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검찰과 주류언론이 자행하는 공격만큼은 아니겠지만 마찬가지로 정의로운 방식이 아니고, 정치적 역효과만 낳는다. 포악한 권력에 맞서서 강력한 저항과 광범한 연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견을 존중하는 토론과 설득, 비판과 반박 속에서 함께 생각과 힘을 더 크게 모으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
전지윤 사회운동가·'연속성과 교차성' 저자 시민언론 민들레
이탈리아·스웨덴 이어 핀란드도…유럽내 '우향우' 바람 가속
핀란드 중도우파·극우정당 1, 2위…불가리아서도 친러 극우당 선전 경제 악화·고물가 속 反이민·反기후대응 기치로 인기몰이
핀란드 총선에서 2위로 약진한 핀란드인당의 리카 푸라 당수 [EPA=연합뉴스]
핀란드 총선에서 중도우파 국민연합당이 중도좌파 집권당을 제치고 극우 정당도 약진하면서 유럽의 '우향우'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극우 정당들은 코로나19 장기화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경제성장률이 둔화하고 물가가 급등하는 등 서민 경제가 악화한 가운데 반(反)이민과 친환경 정책 반대 등을 기치로 내걸어 대중적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2일(현지시간) AFP·AP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날 핀란드 총선에서는 중도우파 국민연합당이 200개 의석 중 최다인 48석, 극우 핀란드인당은 46석을 각각 차지하게 됐다. 산나 마린 총리가 이끄는 집권 사회민주당은 43석 확보에 그쳤다.
핀란드인당은 이민 제한과 유럽연합(EU)에 대한 과도한 공여 반대, 탄소중립 정책의 완화, 반엘리트주의를 주장하는 등 전형적인 극우 정당의 행보를 보여 왔다. 마린 총리는 선거 기간 핀란드인당을 '인종차별주의자'로 공격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전반적으로 이번 핀란드 총선 결과는 최근 이탈리아와 스웨덴 선거처럼 오른쪽으로의 변화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핀란드의 이번 총선 결과는 이웃 나라 스웨덴에서 벌어진 상황과 비슷하다.
지난해 9월 스웨덴 총선에서는 집권 중도좌파연합이 우파연합에 패배했고, 이후 우파연합의 중도당과 기독교사회당, 자유당과 연정을 출범했다.
백인 우월주의와 빈이민을 내걸어 극우로 분류되는 스웨덴민주당은 연정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총선 득표율 20%를 넘겨 73석을 보유한 제2 정당으로서 총 103석의 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날 치러진 불가리아 총선에서도 극우 정당이 약진했다.
친서방 개혁 성향 정치 블록과 중도우파 블록의 접전을 벌이면서 명확한 승자가 나오지 않아 정국 혼란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친러 성향의 극우 부흥당이 14.2%의 높은 득표율로 선전해 연정 구성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졌다.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이탈리아에서는 '100년 만의 극우 성향 총리'가 집권 중이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지난해 총선에서 극우당 이탈리아형제들(FdI)의 승리를 이끌며 베니토 무솔리니의 집권 100년 만에 극우 성향 정부를 재탄생시켰다.
또 지난달 네덜란드 지방선거에서는 온실가스를 억제하려는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반기를 든 신생 우익 포퓰리즘 정당 농민-시민운동당(BBB)이 압승을 거뒀다.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6월 총선에서 정통 보수정당 공화당(LR)을 제치고 우파 간판 정당이 된 마린 르펜의 극우당 국민연합(RN)이 건재하다.
국민연합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연금 개혁으로 강한 저항에 부딪힌 사이 지난달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집권 연합(22%)을 제치고 26%의 지지율을 얻어 1위를 차지했다.
유럽 정치 지형이 계속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는 원인으로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다시 증가하고 있는 불법 이민자들,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난과 물가 급등 등으로 일반 유권자들의 불만과 위기감이 커진 것이 지목된다.
네덜란드 BBB당 의장이 자신의 돼지농장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당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정부의 친환경 규제인 질소 배출 감축 정책에 반대하는 기치를 내걸어 승리했다.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서민들은 당장의 생활고를 해소하기를 바라는데, 기성 정당이 인도주의나 민주주의적 가치, 기후 대응을 위한 각종 규제 등에 매여 있다는 비판이다. 현 상태에 분노한 국민들이 기성 정치권으로부터 진지한 변화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극우 정당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것이다.
기성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기존 가치를 고수하는 가운데 포퓰리즘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만큼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윤리공공정책센터(EPPC)의 헨리 올슨 선임 연구원은 지난달 말 워싱턴포스트(WP)에 쓴 칼럼에서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나 네덜란드 정부 등이 타협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이런 비타협적인 태도가 유럽의 포퓰리즘 정서를 강화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현상에 분노한 사람들은 내부 개혁 가능성이 없을 것 같을 때 당연히 극단 정당에 눈을 돌린다"며 "서방은 20세기를 정의한 사회민주주의 시대와 비슷한 포퓰리즘의 시대를 겪고 있으며, 적응에는 인내심을 넘어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밤, 여전히 암흑…평양·산업단지 등은 다소 밝아져"
38노스·美스팀슨 센터, 북한 야간 위성사진 비교 분석
북한의 야간 이미지 위성사진
북한을 촬영한 야간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북한 전역은 여전히 암흑 상태지만 평양과 일부 산업단지 주변은 과거에 비해 다소 밝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의 북한전문 웹사이트 '38노스'는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 센터와 함께 3일 서울 중구 통일과나눔 재단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찍은 한반도 야간 사진의 변화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마틴 윌리엄스 스팀슨 센터 연구원에 따르면 1992년부터 2013년까지 위성사진에 찍힌 북한의 야간 모습엔 큰 변화가 없지만, 2015년과 비교해 2021년엔 평양 주변이 더 밝아졌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추진 중인 평양시 사동구역과 화성지구 아파트 단지 주변은 다른 지역에 비해 야간 조명이 밝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북한이 이른바 '백두혈통의 뿌리'로 중요시하는 삼지연시 역시 2014년에는 매우 어두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밝아졌다고 윌리엄스 연구원은 설명했다. 이 역시 삼지연과 주변 도시들에서 아파트 개발사업이 진행된 것이 영향을 미쳤다.
또 평양 인근 순천을 비롯해 함흥, 룡성, 남포 등 산업단지의 경우에는 도심보다 오히려 야간 조명이 더 밝았다. 밤에 불이 켜져 있다는 것은 컨테이너 부두가 야간에도 계속 운영 중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그러나 탈북민 인터뷰 등으로 판단해보면 북한의 전반적인 전력 상황은 여전히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평양 시내에는 하루에 6∼8시간 정도 전력공급이 되지만 국경 지역 주민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 메시지를 들어야 하는 1월 1일 하루에만 전력이 공급된다고 증언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38노스는 북한의 야간 이미지는 미얀마 등 다른 개발도상국과 비교하더라도 여전히 어두운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38노스는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과 평안북도 영변 핵시설 등 군사시설에 대해서도 분석했지만, "야간 조명이 특별히 밝지는 않았다"며 특이 동향은 없었다고 밝혔다.
다만 38노스는 전날 영변의 주요 핵시설에서 강한 활동이 포착됐다며 실험용 경수로(ELWR)가 거의 완성돼 작동 상태로 전환된 것으로 보이는 활동이 발견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제니 타운 스팀슨센터 연구원은 기자회견에서 "실험용 경수로의 냉각시스템을 테스트하는 상황으로 보이지만 정식 가동이 임박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고 평가했다.
한편 타운 연구원은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에 대해서는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 상황을 볼 때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는 상태"라면서도 김 위원장이 핵무기 대량생산을 언급한 점으로 볼 때 핵실험 단계는 지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홍제성 기자
6명 눈물의 삭발식 "윤 대통령, 양곡관리법 거부 말라"
4일 '대통령 거부권 행사' 시사... 민주당, 전국 농어민위원회 주최로 결의대회
▲ 더불어민주당 백혜숙 농어민위원회 부위원장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열린 ‘대통령 거부권 반대 및 쌀값 정상화법 공포 촉구 결의대회’에 참석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반대하며 삭발하고 있다.
삭발을 한 여섯 명 중 백혜숙 당 농어민위원회 부위원장은 유일한 여성이었다. 그는 '도시농업'에 관심을 갖고 사회적기업을 운영했고, 지난해까지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전문위원을 지낸 '농업 전문가'다. 백 부위원장의 단발머리는 금세 싹뚝 잘라져나갔고, 어느덧 파르라니 깎인 머리가 드러났다. 삭발 시작부터 끝까지 몸을 떨면서 서럽게 울었던 그는, 그러면서도 내내 구호를 함께 외쳤다.
이날 백 부위원장뿐 아니라,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인 신정훈·이원택 의원, 김상민 전북도당 농어민위원장, 쌀전업농나주시지회 소속 정병기씨, 여주농민회 소속 전주영씨가 양곡관리법 개정안 거부를 반대하며 삭발에 동참했다.
대통령실의 거부권 행사 시사에... '삭발 투쟁'으로 맞선 민주당
▲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이원택 의원, 김상민, 백혜숙 농어민위원회 부위원장 등 농민들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열린 ‘대통령 거부권 반대 및 쌀값 정상화법 공포 촉구 결의대회’에 참석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반대하며 삭발하고 있다.ⓒ 유성호
이처럼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통과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검토하는 정부에 '삭발 투쟁'으로 항의하며,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된 양이 3~5%가 되거나, 혹은 쌀값이 지난해 대비 5~8% 하락할 경우, 정부가 초과 생산 분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에게 양곡관리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를 건의한 데 이어, 대통령실 관계자마저 3일 "여론 수렴이 어느정도 됐다"라며 "4일이든 11일든 적절한 시일 내에 처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라며 사실상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이에 민주당 전국농어민위원회는 농민단체와 함께 국회 앞에서 '대통령 거부권 반대 및 쌀값정상화법 공포 촉구' 결의대회를 열고, 정부를 강하게 압박했다. 지난 30일 수산단체와 함께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반대 및 대일 굴욕외교 규탄대회'를 연지 4일째만에 또다시 국회 내에서 당력을 모은 것이다.
결의대회 사회를 맡은 한석우 전국농어민위원회 부위원장은 "작년 한 해 동안 쌀값은 45년만의 최대치인 25%가 폭락했다. 쌀값 빼놓고선 모든 것이 올랐다"라며 "그러나 정부·여당은 쌀값 정상화를 위한 법 개정에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쌀값정상화 법은 포퓰리즘'이라며 가짜뉴스와 거짓선동으로 일관해왔다"라고 지적했다.
한 부위원장은 "민주당이 진행한 양곡관리법 개정안 즉각 공포 촉구 성명'에는 지난 3일 동안 현장에 계신 농민 1만 4631명과 246개 농민단체가 서명과 투쟁의 결의를 밝혔다"라며 "윤석열 대통령은 농가 소득 보장을 위한 쌀값 정당화법을 즉시 공포하라"라고 말했다.
"국민 다수는 거부권 행사 반대... 윤 대통령은 국회 존중하라“
박홍근 원내대표 또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정부의 의무 수매에 앞서 콩·조 등 타작물의 재배를 지원해서 벼의 생산 면적을 줄이고 식량 자급률을 높이겠다는 것"이라며 "정부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서 예외조항도 뒀고, 각계각층 의견을 수용해서 국회 의장 중재안도 반영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정부·여당은 이런 대승적 차원의 조정안·양보안에마저 오로지 '답정너 거부권'만 들이밀며, 농민을 겁박하고 야당과 대결하러 한다"라며 "용산 출장소를 자처한 여당은 입법부임을 포기한 채 진작부터 윤석열 대통령 심기경호에만 나섰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여태껏 관심도 없다가 정작 우리 쌀 산업을 위기로 몰아넣은 장본인은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여당"이라며 "어제 대통령실은 갑자기 농민단체들의 여론을 수렴했다고 언급했지만, (그게) 어떤 단체들인지도 제대로 밝히지 못한다. 아무리 진실을 가리려고 해봐야 국민 다수는 거부권 행사를 반대하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엄중히 경고한다. 농민과 국민의 뜻을 받들고 법을 통과시킨 국회를 존중하길 바란다"라며 "농민 생존권과 식량 주권을 지키는데 어떠한 양보와 타협도 있을 수 없다. 헌법과 법률이 국회에 부여한 책무와 권한을 다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성명을 통해 민주당은 "'쌀값 정상화법'의 한 축인 쌀 시장격리 의무화는 농가소득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며, 이 법의 근본적인 취지는 정부가 적극적인 쌀 생산조정을 통해 국민에게 필요한 쌀만 생산해 쌀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에 있음을 정확히 밝힌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어이 윤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우리는 230만 농민과 함께 쌀값 정상화와 식량안보를 지키기 위해 윤석열 정부에 단호히 맞서 싸워나갈 것이다"라고 결의를 다졌다.
▲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전국에서 상경한 251개 농민단체 농민들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열린 ‘대통령 거부권 반대 및 쌀값 정상화법 공포 촉구 결의대회’에 참석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반대하며 즉각 공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오마이뉴스 박정훈(twentyrock
윤석열 정부, '쌀값 폭락' 책임 또 떠넘기나
사회적 고통'의 렌즈로 지역 불평등 보기
쌀 가격 45년 만의 최대 폭락. 50년 만의 최악 가뭄. 숫자가 가리거나 미처 드러내지 못하는 고통들이 있지만, 그 숫자 사이사이로 배어나올 수밖에 없을 만큼 지금 농민과 남부 지방 주민의 고통은 절박하다.
재작년 말과 작년 여름부터 이어졌다는 쌀값 폭락과 가뭄은 사실 한 두 해를 넘어선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다. 언론이고 정치권이고,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숫자를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듣는 척이라도 하는 상황은 바로 이 고통을 야기한 본질의 일부다. 언제나 뒤늦고 지엽적인 기술적·관료적 대응들은 농민과 지역주민을 분노와 무력감에 몰아넣으면서 그들의 고통을 악화시키고, 또 재생산한다.
쌀값 폭락과 양곡관리법
지난 3월 23일 정부·여당의 반대 속에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현행 양곡관리법이 규정한 쌀 시장격리(정부 매입) 조치가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지난해 9월 산지 쌀값이 재작년 최고 가격보다 약 30% 폭락해 통계조사 45년 만의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는데, 정부가 뒤늦게 시장격리 대책을 발표한 후에야 쌀값이 반등한 경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한시적으로 시행한 타작물 재배 지원 사업을 제도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쌀 공급과잉 구조를 해소하고 사료작물 등 타작물의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더불어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했다는 정부·여당과 언론의 말은 절반만 진실이다. 표결에 참여한 266명 의원 중 찬성 169표에는 정의당, 기본소득당 표가 함께다. 전농(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업인 단체도 반대한다는 정부·여당의 말은 절반의 진실은커녕 사실 왜곡이다. 양곡관리법 개정을 덮어놓고 반대하는 여당, 한참 후퇴한 법안을 만들고 만 야당을 모두 비판하며, 생산비를 반영하는 쌀 최저가격제, 농업에 대한 국가 책임 강화를 쟁취하겠다는 게 전농의 입장이다.
본회의 통과 후 국무총리가 무려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이번 정부 최초일 뿐 아니라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흔치 않은 사건이다. 최초 개정안이 발의된 후 1년 넘게 정쟁이 반복되는 동안 정부가 보여준 가장 적극적 행보로 보인다는 데서, 정작 그 내용은 개정안 반대, 정부의 시장개입 최소화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부조화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도 공식화했다.
"개정안은 시장의 수급 조절 기능을 마비시킵니다... 이 조치[쌀 시장격리]는 시장이 제 역할을 못 하는 긴급한 상황에 한해, 최소한의 수준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공급과잉이 더 심해지고 가격은 더 떨어질 것입니다."
"개정안에 따른 재정부담은 연간 1조 원 이상입니다… 농업 경쟁력 강화와 청년 농업인 육성에 써야 할 재원을 남아도는 쌀 매입에 쏟아 부으면 농촌의 혁신은 더욱 멀어집니다."
"시장 원리를 거스르는 '포퓰리즘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개정안으로 인해 정말 공급과잉이 더 심해지고 가격은 더 떨어지는지, 연간 1조 원 이상의 재정 부담을 야기할 지에 관해 여러 언론이 '팩트 체크'를 벌였다. 모든 언론의 결론은 사실상 '아니다'라는 것. 불충분한 방안이라는 점, 수요량과 생산량을 모두 조정하는 보다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식량대책이 필요하다는 진단과 비판은 공통적이다.(관련 기사 : <KBS NEWS> 2022년 10월 2일 자 '[팩트체크K] 쌀 매입 의무화하면 생산 오히려 늘어난다? 아니다?', <투데이신문> 2022년 10월 28일 자 '[팩트체크] 쌀 자동시장격리 도입하면 연평균 1조원 국가 재정 낭비된다?', <매일경제> 1월 20일 자 '[팩트체크] 남는 쌀 정부 매입 의무화하면 쌀값 떨어진다?')
'팩트 왜곡'을 넘어 더 문제적인 것은 이것이다. 세계화라는 미명 하에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이후 한미FTA를 비롯한 수많은 자유무역협정으로 농업·농촌을 고사킨 역사는 고스란히 무시하고, 경쟁력과 혁신, 심지어 청년을 호명하면서 초과 생산량을 결정하는 모든 책임을 농민에게 돌리는 것.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따라 매년 40만 톤(t)의 쌀을 의무 수입하고 있다. 연간 소비량의 10%를 훌쩍 뛰어넘지만, 쌀 소비량이 줄어도 의무 수입량은 줄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욱 문제다. 2005년 이래 쌀 초과 생산량은 연평균 17만 톤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40만 톤을 넘었던 건 2008년과 2009년, 단 두 차례다. 2019년과 2020년에는 도리어 수요량보다 생산량이 적어 문제가 되었으며, 농식품부는 올해도 쌀 수요량 대비 생산량이 28만 톤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농은 정부가 농업에 대한 국가 책임을 망각하고 만능 주문인양 스마트팜과 푸드테크만 염불처럼 외고 있다며, 지난해 9월 정부가 뒤늦게 발표한 일회성·선심성 시장격리야 말로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했다.
가뭄과 제한 급수
농민의 시름을 더하는 것은 광주·전남 등 남부 지방의 가뭄이다. 모내기철이 돌아왔지만, 지난해 여름부터 이어진 50년 만의 최악 가뭄으로 농업용수는 물론 도서지역 주민은 식수, 생활용수마저 부족하다. 560여명이 사는 전남 완도군 넙도에서는 1년 가까이 1주일에 무려 '6일 단수 1일 급수(!)'를 시행하는 중이다. 인구 2300명의 소안면, 3650명의 금일읍도 주 2일 급수를 이어오고 있다.
언론에서는 이대로 가면 대도시 광주에서도 30년 만에 제한급수를 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하지만, 1년 가까이 빨래도 샤워도 줄이고, 가족 모두가 1주일간 먹고 씻을 물을 욕조와 대야에 받아야 하는 넙도 주민의 고통 역시 전혀 당연한 일이 아니다. 만일 같은 상황이 서울에서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아니, 서울에서 벌어지는 것이 상상이나 가능한가?
50년 만의 최악 가뭄이라고는 하지만, 완도군만 해도 이미 2013년부터 폭염과 가뭄에 따른 제한급수 시행과 함께 근본적 대책 필요성을 거론했다. 2019년이 되어서야 국비 지원을 받아 식수원 개발 사업을 시작했고 넙도의 경우 4월 중 해수 담수화 시설이 준공된다고 한다. 지금의 가뭄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유지운영 예산 부담을 이유로 한 수원지 폐쇄, 중앙-지역, 지역-지역 간 조정된 상시대응 체계 부재 등이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지역 불평등을 야기하는 사회적 힘
'사회적 고통' 관점은 인간에게 고통을 야기하는 '사회적 힘'에 주목한다. 고통은 개인에서 발생하지만 또한 사회 안에서, 사회적으로 발생하며 신체적·정신적 차원과 동시에 정치적·경제적·역사적·제도적·문화적 차원을 지니고 있다. 개인의 고통은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사회적 고통이 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사회적 고통은 단순히 개인적 고통의 합이 아니다. 결과이자 원인이며,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사회적 과정이기도 하다. 사회적 고통 관점은 개인-사회라는 이분법을 넘어, 각 개인이 경험하는 고통의 총체성을 파악하고자 한다.
농촌과 비수도권 지역의 고통은 도시와 농촌,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 불평등과 착취 관계, 이를 조장하거나 방치한 중앙(국가)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사회적 고통'의 관점에 부합한다.
쌀 작황이나 강수량에는 분명 자연적 요인이 있지만 쌀과 물의 수급 불균형이라는 결과는 차라리 사회적 현상에 가깝다. 기상현상조차 기후위기로 인해 변동 폭이 커지고 예측 불가능성도 높아졌다는 진단이 나온 지 오래다.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사실 자체는 예측되었다. 이른바 '불확실성의 확실성'. 하지만 그에 걸맞은 대비는 없었다.
전남 지역을 예로 들더라도 농업이 지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전체 농업 중에서도 벼농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농사로 먹고사는 사람이 많지만 노인 인구의 비중이 높고, 고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익숙하고, 기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벼농사에서 타작물 농사로 이전이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벼농사는 다른 작물에 비해 농업용수 수요량도 많다.
쌀 가격 역시 시장기전에 의한 결정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양곡관리법에 따른 쌀 시장격리제도는 기존의 쌀 목표가격제도를 중지하는 대신 도입되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밀, 옥수수 국제 가격이 폭등하자 언론과 정부가 나서 식량안보를 부르짖었던 것이 엊그제지만, 경제위기로 모든 물가가 인상되는 와중에 생산비는 폭등하는데 산지 쌀값은 도리어 폭락했다. 쌀은 언제나 물가관리의 희생양이었다.
사회적 고통 관점은 신체적이고도 정신적인 건강 문제, 나아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보건과 의료, 돌봄의 문제를 사회 구조적 결정요인이라는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건강 불평등'의 문제 인식에도 부합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보건의료를 둘러싸고 지역이 경험하는 불평등과 부정의에 접근하는 우리의 관점 역시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너무나도 손쉽게 '의료격차'와 '의료취약지'를 호명하고 있지 않은가? 비수도권 농촌 지역에서 의료가 '취약'하고 수도권 도시 지역에 비해 '격차'가 발생하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기원에 대해서는 눈감고,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대응 대신 단지 병원 하나, 의과대학 하나 더 짓는 일회성·선심성 대응만 상상하도록 강제하고 있지 않은가?
정부는 필수·지역의료를 강화한다고 하면서 그 수단은 '공공정책수가'와 '지역수가'만을 제시하고 있다. 공공정책수가를 지급한다고 해서 민간 공급자들이 지역으로 찾아갈까? 의료를 이용할 인구도, 돈도 부족하고 나와 내 가족이 누릴 인프라도 부족해 안중에도 없던 지역이, 공공정책수가만으로 평생 살고 일할 만한 지역으로 여겨질까?
도리어 필수·지역의료 강화 정책이 취약지역의 필수의료를 망가뜨리고 나머지 지역과의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도 높다. 민간 중심 의료공급체계를 그대로 둔 채 수가만 지원한다면 민간의료조차 취약한 지역은 지원을 받으려 해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역이 살 만하지 않으면 사람은 사라지고, 민간에 의존하는 지역의료 역시 당연히 난망이다. 제 아무리 민간병원과 의사에게 돈을 쏟아 부어도 미봉책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비수도권 농촌 지역의 불평등이 사회적 고통인 만큼, 건강과 보건의료의 지역 간 불평등도 사회적 고통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정부가 생산자로서, 혹은 '이해당사자'로서 농민·지역주민을 어떻게 대하는지부터 문제제기의 대상이다. 의료계와 수차례 '의료현안협의체'를 가지는데 들이는 품의 다만 몇 퍼센트(%)라도 지역주민과 농민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해야 하지 않을까.
시민건강연구소 |프레시안
“과거는 봉인되었고 미래는 봉쇄되었다”
박영수 차명지분 의혹...김만배 "천화동인·화천대유는 박영수 돈으로 설립"
① 2015년 4월, 박영수가 화천대유로 보낸 5억 원..."화천대유 및 천화동인1호 자본금으로 쓰였다"
② 단순 대여금 아닐 가능성...김만배 "박영수가 대장동 사업에 생색을 낼 수 있는 외형 만든 것"
③ 김만배 "하여간 (박영수 5억은) 정리가 됐다"...그러나 돈 갚은 내역 없어 지분으로 챙겨준 의혹
④ 은행권 컨소시엄 관여 등 2021년에 박영수 혐의 자세히 확인한 검찰, 강제 수사는 왜 안 했나
뉴스타파는 대장동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증거기록 40,330쪽을 확보해 대장동 비리의 실체를 파헤치는 보도를 진행 중이다. 그중 하나가 박영수 전 특별검사와 대장동 업자들과의 유착 의혹이다.
뉴스타파가 관련 의혹을 보도한 지 두 달 만에, 검찰이 박영수 전 특검을 압수 수색했다. 박 전 특검은 대장동 업자들이 사업 초기에 은행 컨소시엄을 구성할 때 도움을 주고, 시가 200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요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2021년 9월부터 대장동 사건을 수사했다. 그런데 뉴스타파 취재 결과, 검찰은 수사 초기부터 박영수 관련 혐의를 자세하게 조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장동 업자들이 박영수의 로펌 사무실에서 사업을 준비하고, 은행권 연결을 청탁해서 실제로 이뤄지는 등 박영수가 적극 개입했단 대장동 업자들의 진술을 확보한 것이다. 그러나 압수수색 등 강제 수사는 없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40,330쪽 대장동 수사 증거기록을 분석한 결과, 대장동 사업을 이끈 '화천대유자산관리(이하 화천대유) 및 천화동인'의 설립 자본금을 대준 당사자가 박영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까진 박영수가 김만배에게 5억 원을 빌려준 것으로만 알려졌지만, 단순한 '대여'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기록 곳곳에 나온다. 박영수가 대여금 명목으로 돈을 보냈을 뿐, 실제론 지분을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https://newstapa.org/article/W05j0
봉지욱 뉴스타파
윤석열, 북한에 1원도 주지 말라고 했지만…통일부, 민간단체 대북 지원 승인
2억 4000만 원 상당의 영양 물자 반출 승인…통일부 "일관되게 인도적 지원 추진할 것"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에 단돈 1원도 주지 말라고 했지만 통일부는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민간단체의 대북 지원을 위한 물자 반출을 승인했다.
4일 기자들과 만난 통일부 당국자는 "3월 (민간단체의) 대북 인도지원 물자 반출과 관련해 신규 1건을 승인했다"며 승인 품목은 "2억 4000만 원 상당의 영양 물자"라고 전했다.
다만 통일부는 단체 이름과 물품 수량, 지원 경로 등 세부 사항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 당국자는 "민간단체의 입장과 성사 가능성 등을 고려해 구체적인 사항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지원이 정부가 아닌 민간단체가 추진하는 것이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 28일 국무회의에서 "통일부는 '북한 퍼주기'는 중단하고 북한이 핵개발을 추진하는 상황에서는 단돈 1원도 줄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하라"고 말한 것과 다소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정부의 직접 지원을 중단하라는 것이고 민간 차원의 지원에는 다른 기준이 적용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이 당국자는 "정부는 인도적 지원을 일관되게 추진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며 "단체의 신청이 있는 경우 요건에 부합하면 물자 반출을 승인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이번 승인은 올해 들어 처음 이뤄진 대북 인도적 물자 반출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민간단체의 인도적 물자 반출은 총 6번 승인됐다.
프레시안 이재호 기자
임은정 vs 한동훈, 누가 부적격 검사인가 2
문재인 정부는 왜 임은정 검사를 검찰개혁의 견인차로 발탁하지 않았나?
박근혜 정권 기간 동안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검찰 안에서 외친 임은정 검사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을 때 자신이 검찰개혁에 쓰여지기를 원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윤석열 검사로 대표되는 특수부 검사들을 선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에 윤석열을 임명한 이유에 대해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수사, 그리고 공소유지를 잘 해낼 수 있는 적임자라고 생각해서'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 이유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문재인 정부의 검찰 인사는 윤석열 사단의 독식이었다. 최강욱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그 이유의 단초를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의 존재'로 들었다.
"박형철 민정수석실 반부패비서관이 검찰 인사에 많은 영향을 줬다"
박형철은 윤석열이 팀장이었던 국정원 댓글 수사 당시 부팀장이었다. 박형철이 민정수석실 반부패비서관으로서 검찰 인사에 많은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에 대한 약속을 굉장히 우선적으로 생각하면서 인사 추천과 검증을 철저하게 분리하겠다라는 기조를 끝까지 유지했습니다. 근데 검찰 인사와 관련해서는 담당 비서관이 반부패비서관이었어요. 박형철 비서관은 윤석열의 심복이나 다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
최강욱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임은정을 발탁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도 ‘청와대가 검찰의 의견과 입김에 휘둘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검찰 조직 내부에서는 검찰 안에서 개혁을 외친 여성 검사들을 조직 부적응자로 모는 분위기가 계속됐는데, 그걸 거르는 역할을 해야 할 반부패비서관은 윤석열의 심복이었고, 달리 검증하는 노력도 부족했다고 말했다.
끊임없이 어떤 자리에서든, 임은정 검사뿐만 아니라 검찰 조직의 문제점에 대해서 이대로 두면 안 된다라고 국민 앞에 좀 알리고자 했던 여성 검사들을 조직 부적응자로 몰고, 조직의 화합을 해치는 사람으로 몰고, 본인들의 어떤 인사상 이익을 위해서 문제를 침소봉대하고 있다, 여성이라는 그런 특성을 악용해서. 이런 식으로 계속 언론에다가도 흘리고 검찰 조직 내부에서 그런 분위기가 계속돼 왔죠. 그리고 그런 것들을 사실은 비판적으로 걸러내고 어떤 말이 맞는것인가 하는 노력을 청와대가 할 수 있었어야 되는데 그런 점이 부족했던 거죠.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
임은정이 받아들일 수 없었던 두 번의 제안
임은정은 문재인정부 시절 두 차례 자신의 신상에 대한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을 받았다.
첫번째는 윤석열의 측근이었던 윤대진 씨가 법무부 검찰국장일 때 제안한 ‘외국유학'이었다. 임은정은 “윤대진이 유학을 권하면서 ‘유학 갔더니 너무 행복하더라. 해외에서 개인의 행복을 찾고 돌아왔을 때 검찰이 개혁이 안됐으면 그 때 다시 하면 되지 않냐’고 했다. 그 때 ‘아, 이 사람들은 검찰 개혁할 생각이 없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두번째는 조국 법무부 장관이 취임한 뒤 이용구 법무실장으로부터 받은 제안이다. 이용구 실장은 임은정에게 “조국 장관님이 당신을 쓰시려고 하는데 검찰에서 극구 반대한다. 검찰에서 조건을 걸었는데 이걸 꼭 좀 승낙해달라. 조건은 sns 중단, 칼럼 중단, 고발 취하다"라고 했다고 한다. 임은정은 그 제안도 거절했다. 자신의 이름을 이용하려고 할 뿐 검찰 개혁에 대한 자신의 의견과 방안을 채택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느꼈다는 것이다. 당시 임은정은 비위 사건을 저지른 검사들과 사건을 덮은 책임자들을 고발한 상태였다. 임은정은 검사들의 잘못을 일반 국민과 똑같이 처벌하도록 하는 것이 검찰개혁의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판단했다.
결국 임은정은 문재인 정부 시기에도 검찰 내에서 핍박 받으며, 홀로 개혁을 위한 노력을 해야 했다.
이명박, 박근혜에 이어 문재인 정권에서도 승승장구한 한동훈
한동훈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검찰의 핵심 보직을 거쳤다. 2009년에는 권재진 민정수석에 의해 발탁돼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이 됐고, 2011년에는 법무부 장관이 된 권재진에 의해 요직 중 요직인 검찰과의 이른바 '1-0', 즉 부장검사 이상 인사 담당자가 됐다. 2013년부터 2년 간 그는 대검찰청 정책기획과장으로 검찰총장을 보좌하는 핵심 역할을 했다. 이 때 한동훈은 집중관리대상 검사를 선정하고 평가자료를 수집하는 등 검사 블랙리스트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잣대로 보면 촛불로 세워진 정부에서 청산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이력이지만, 특수부 검사들이 득세한 문재인 정부에서 한동훈은 오히려 승승장구했다. 국정농단을 수사한 특검에 윤석열 수사팀장 산하로 들어간 한동훈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 대검 반부패부장으로 많은 수사를 직접 하거나 지휘했다.
한동훈이 수사 과정에서 보인 문제점
한동훈은 수사 주체로서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무리한 수사를 한다는 비판도 많이 받았다. 문화일보에 따르면 적폐수사의 1심 무죄율은 일반 재판의 5배에 이른다. 조국 전 법무장관 가족 수사에서도 인사청문회가 끝나기 전에 한 최초의 기소 내용은 법원의 무죄판결을 받았다. 첫 기소가 윤석열 총장 등 검찰의 정치적 의도에서 나온 무리한 기소였다는 비판이 가능한 부분이다.
한동훈은 또 언론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서초동 편집국장'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가 서울중앙지검 3차장일 때 그의 사무실에는 기자들이 은행 번호표 뽑듯이 들어가곤 했다고 한다. 한 현직 검사는 "그가 한가지 기삿 거리를 여러 기자들에게 줘서 기자들이 항의한 적도 있다고 알고 있다. 언론을 이용하는 행태가 좀 무리한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동훈은 법무부 장관에 지명된 뒤 낸 사직서에서 ‘외압이나 부탁 같은 것에 흔들린 적이 없었다'고 적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제대로 검증해야 할 대상일 뿐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2018년 그가 지휘한 민간인사찰 사건 재수사에서 권재진 민정수석을 불기소한 것이 대표적이다. 권재진은 한동훈을 청와대로 데려갔다가 법무부 검찰과로 데려온 장본인이다. 권재진은 2010년 MBC PD수첩에 의해 민간인사찰 사건이 처음 알려졌을 때부터 사건의 핵심으로 의심받은 몸통급 인물이다. 한동훈이 지휘한 2018년 수사에서 검찰은 권재진 밑에 있던 민정1, 2, 공직기강 비서관을 모두 기소했다. 그러나 유독 권재진 민정수석만은 불기소했다. 권재진은 참고인 조사에서 ‘휘하 비서관들이 한 일을 나는 몰랐다'고 진술했고, 수사팀은 이를 수용했다. 판사마저 재판에서 권재진의 말을 믿을 수 있느냐고 반문할 정도였다.
민간인사찰사건 변호인이기도 한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권재진 민정수석의 지시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은 당시 검사들도 사석에서 다 인정한 얘기다.”라고 말했다.
보스의 보호막 안에 있었던 탄압 피해자 한동훈?
한동훈은 인사청문회에서 자신을 권력의 탄압을 받은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독직폭행'을 당했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그러나 그가 언급한 ‘독직폭행'의 가해자인 정진웅 부장검사는 대법원에서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한동훈이 조국 사건 이후 좌천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이때 그는 평생 처음으로 권력과 불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때도 권력과 홀로 맞서 싸운 것이 아니라 윤석열이라는 든든한 보스의 보호막 안에 있었다. 한동수 대검찰청 감찰부장은 인사청문회에 나와 윤석열 검찰총장이 한동훈을 보호하기 위해 매우 무리한 행동을 했다고 증언했다.
누가 '검사 선서'대로의 삶을 살았는가?
검사들은 ‘검사 선서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21344호)에 따라 검사로 임관할 때 ‘검사 선서'를 하고 서명해 보관하게 돼 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검사 선서 중
임은정과 한동훈, 두 검사 중 누가 검사 선서에 어울리는 삶을 살았는가?
프레시안 최승호
https://newstapa.org/article/qhKKe
‘세수 펑크’ 예견에도 “건전재정” 정부 입장 반복한 언론
법인세 등 각종 감면 정책으로 재정악화 예견됐지만
언론은 ‘지출 축소’에 집중… 건전재정 모순 지적 없었다
‘세수 펑크’ 수치 발표 이후에도 “허리띠 더 졸라매야”
1, 2월 역대 최대 규모 세수 감소로 재정에 ‘빨간불’이 들어왔지만 정부가 예산안 편성지침을 발표하자 대부분의 언론이 정부 발표대로 ‘건전재정’을 강조했다. 종합부동산세, 법인세 등 각종 감세 정책으로 건전재정 기조에 모순이 있다는 것이 일찍이 지적됐지만 이를 언급한 신문은 소수였다. 대부분은 이전 정부를 단순 비판하며 “무분별한 현금복지가 줄었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서 ‘2024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지침’을 의결했다. 예산안 편성지침은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각 부처는 이를 참고해 예산을 짜고 기획재정부에 제출하게 된다. 본래 700조 원 정도의 예산이 전망됐지만 정부는 670조 원 안팎의 예산 지침을 확정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세금이 한 푼도 낭비되지 않도록 강력한 재정 혁신을 추진해 건전재정 기조를 견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 지난달 29일 세계일보 16면 기사.
▲ 지난달 29일자 서울신문 4면 기사.
대부분의 신문도 정부 발표대로 ‘건전재정’에 방점을 찍었다. 세계일보는 지난달 28일 기사 <2024년 예산 670조 예상… 허리띠 졸라매 국방·약자 복지 강화>에서 “지역사랑상품권 등 현금성 지원 사업과 불투명하게 관리되는 보조금을 집중적으로 구조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재량지출도 10% 이상 줄인다는 계획”이라며 “이렇게 허리띠를 졸라맨 돈으로 국방·치안 등 국가 기본기능 강화와 청년 일자리 창출 등에 중점 투입”한다고 했다.
서울신문도 <건전재정 방점 찍은 尹 “재정누수 차단”… 양곡법은 거부권 수순> 기사에서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확장재정’ 기조에서 완전히 유턴해 재정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건전재정’ 기조를 견고히 할 방침”이라고 했다. 경제신문도 같았다. 한국경제는 관련 기사에서 “엄격한 재정 총량 관리로 건전 재정 기조를 견지하는 기본 방향”이라고 했고, 매일경제는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지만 민심을 얻기 위한 퍼주기식 복지는 없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건전재정은 세출과 세입, 두 부분으로 평가해야 한다. 지출만 줄인다고 건전재정이 달성될 수는 없다. 허리띠를 졸라매도 세입이 더 줄어들면 재정 여건은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해 소득세,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등 각종 세금 감면 정책을 폈다. 반도체 투자세액공제 규모를 늘리는 ‘K-칩스법’도 내년 법인세 감소 요인 중 하나다. 이를 언급하지 않고 재정의 지출 측면만을 강조한 것은 정부 입장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 기획재정부 2023년도 조세지출 기본계획 갈무리.
▲ 지난달 29일자 국민일보 8면 기사.
언론 보도에서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이날 국무회의에선 ‘2023년도 조세지출 기본계획’도 같이 의결됐다. 올해 정부가 깎아주는 국세가 역대 최대 규모인 70조 원에 육박한다고 전망된 것이다. 하지만 정부 발표 당시 이러한 건전재정 기조의 모순을 지적한 신문은 국민일보, 한겨레 등 소수에 불과했다. 국민일보는 지난달 29일 <기금 운용에도 ‘건전재정’… 줄어드는 세수가 변수>에서 “올해 세수 상황으로는 건전재정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했고, 한겨레도 지난달 29일 “각종 감세 정책을 밀어붙인 탓에 재정 여건은 되레 나빠질 전망”이라고 했다.
지난달 31일과 2일, 기획재정부가 ‘국세수입현황’을 공개하자 그제서야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가 흔들린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올해 1~2월 누계 국세 수입은 54조200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15조7000억 원 급감했다. 같은 기간 기준 전년 대비 역대 최대 감소 폭이다. 한국일보는 3일 사설에서 “이대로라면 4년 만에 세수 결손이 확정적”이라며 “결국 악화한 경제 상황에서 감세를 앞세운 긴축재정 기조는 ‘정책 실패’라 할만하다”고 했고, 경향신문은 16면에 <건전재정 외치던 정부 세수 구멍에 ‘진퇴양난’> 기사를 냈다.
▲ 지난 3일 경향신문 16면 기사.
▲ 지난 3일 한국일보 사설.
대부분 신문은 ‘세수 결손’ 우려에도 정부의 감세를 지적하기보단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례로 한국경제는 1일 사설 <심상찮은 세수 부족…성급한 증세론보다 경기 활성화가 답이다>에서 “지금 상황에서 경계할 것은 성급한 증세론”이라며 “지금 정부로서는 재정지출의 씀씀이를 재점검하면서 허리띠를 죄는 게 먼저”라고 했다.
▲ 지난 3일자 조선일보 사설.
▲ 우리나라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2021년 기준 51.3%로 OECD 평균 121.6%보다 현저히 낮았다. 자료=IMF Fiscal Monitor 2021
조선일보는 3일 사설 <세수 16조 감소, ‘퍼주기 국정’ 멈추라는 경고>에서 “국가부채와 재정적자 비율을 일정 수준 이하로 관리하는 재정준칙을 법제화해 정부의 의무 사항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기획재정부 입장을 대변했다. 국민일보, 세계일보, 서울경제 등도 예산 지침 발표 이후 ‘재정준칙 법제화’를 주장하며 지출 감소를 통한 건전재정을 요구했다.
이런 가운데 장하준 런던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달 30일 MBC 라디오에서 “우리나라가 국제적으로 볼 때 재정 상태가 제일 좋은 나라 중에 하나”라며 “정부부채 GDP 비율이 30%대고 40%대 되는 나라도 별로 없다”고 말했다. OECD 등 국제적 시각에서 보면, 국가 재정을 더 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국내에선 지출 축소 얘기만 나온다는 것이다.
IMF가 2021년 발간한 재정점검보고서(Fiscal Monitor)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2021년 기준 51.3%로 OECD 평균 121.6%보다 현저히 낮았다. 주요국들은 대개 100~150% 선의 부채 비율을 보였다. 이탈리아 (154%), 미국(133%), 스페인(120%), 캐나다(109%), 영국(107%) 등이 그랬다. 그 외에 일본(256%), 그리스(206%)가 유난히 높은 비율을 가졌고, 아일랜드(57%), 뉴질랜드(52%), 스위스(42%), 스웨덴(39%) 등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비율을 유지했다. “건전재정”을 외치던 주요 언론은 주목하지 않는 대목이다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똑같은 기관총 경호, 文은 ‘공포조장’ 尹은 ‘문제없음’
민주당 “4년 전 과잉 경호 비판했던 기사, 이번에는 찾기 힘들어”
야당‧전문가 인용하며 ‘경호수칙 위반’ 언급했던 언론은 어디갔나
탁현민 “의전‧경호는 정치적 공격과 비난의 범주 밖에 있어야”
▲4월1일자 채널A 보도화면 갈무리.
“문재인 대통령께서 대구 칠성시장 방문 시 경호원들이 옷에 감췄던 기관총이 보였다고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보수 언론이 대서특필하며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대구 서문시장 방문 시 경호원들이 아예 공개적으로 기관총을 들고 다녔다. 그러나 과잉 경호를 비판하는 기사는 물론이고 보도한 언론을 찾기 힘들다.” (서은숙 민주당 최고위원, 3일 최고위 모두발언)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했다. 윤 대통령이 걸어가는 가운데 경호원들이 기관총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잡혔다. 이를 두고 ‘과잉 경호’를 비판하는 기사는 5일 현재 단 한 건도 없다. 이는 4년 전 보도 태도와 매우 대조적이다.
2019년 3월24일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제보를 받았다며 몇 장의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3월22일 대구 칠성시장에 나타난 문 대통령 옆에 있던 경호원이 기관단총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 의원은 “사실이라면 섬뜩하고 충격적”이라며 “경호수칙 위반”을 주장했다. 이에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경호원이 대통령과 시민들을 지키고자 무기를 지닌 채 경호 활동을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직무수행이고 세계 어느 나라나 하는 경호의 기본”이라며 “이전 정부에서도 똑같이 해온 교과서적 대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기사가 쏟아졌다.
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 따르면 그해 3월24일과 25일 이틀간 ‘문재인’, ‘기관총’ 으로 검색되는 기사는 83건으로, 하 의원 주장과 청와대 입장을 배치하며 ‘논란’으로 다루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조선일보는 “시민들 사이에 섞인 경호처 요원이 기관단총을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외부로 노출한 채 경호를 한 것은 시민들이 보기에 공포심을 줄 수 있다”는 익명의 야당 관계자 입장을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전문가들은 구체적인 테러 첩보가 입수되지 않았는데도 경호원이 기관단총을 노출하는 것은 이례적이며, 적절치도 않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기관단총을 시민들 앞에서 노출한 것은 경호수칙을 어긴 것이라고 했다”고 보도했다.
▲2019년 당시 언론보도 제목들.
같은 날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이 “기관단총 무장 경호원을 대동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며 경악할 일”, “이 정권의 입장에서는 대구 칠성시장이 무장테러 베이스캠프라도 된다는 것인가”, “기관 총신 노출 위협 경호로 공포를 조장하겠다는 대통령의 대국민 적대의식에 아연실색할 따름”, “기관총이 아니고서는 마음 놓고 대구를 방문하지 못하겠다는 대통령의 공포심만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논평을 내자 언론은 <한국당 “대구 시장이 무장테러 캠프?…靑경호원 기관총 노출 경악할 일”>(동아일보), <민경욱 “靑경호원, 기관단총 노출해 공포 조장...이게 ‘낮은 경호’인가”>(조선일보)와 같은 기사로 논란을 확산시켰다.
결국 청와대는 2008년 이명박 대통령, 2015년 박근혜 대통령 근접 경호팀이 기관단총을 몸에 지니거나 손에 쥐고 있는 사진까지 공개하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과잉 경호’ 프레임은 휩쓸고 간 뒤였다. 헤럴드경제는 3월25일자 사설을 통해 “청와대가 불필요한 총기 노출에 대해 사과하고 앞으로 주의하겠다는 유감 표시 한 마디면 일과성 해프닝으로 끝날 사안이었다. 그런데 청와대가 ‘발끈’하며 과민하게 대응하면서 판이 커지는 양상”이라고 썼다. 25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북한과는 싸울 일 없다고 GP까지 파괴하는 정권이 우리 국민들에게는 기관총을 들이대고 있다”라고 주장하자 언론은 이를 또 중계 보도했다.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 경호원들이 자동소총과 각종 무기를 휴대한 사진이 공개되었다. 그러나 이 사진에 대한 매체들의 태도는 (4년 전과) 사뭇 다르다”며 “대구가 테러기지냐며 분노하던 목소리도 이번에는 들을 수 없다”고 썼다. 탁현민 전 비서관은 “내로남불의 문제를 제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켜져야 할 원칙에 시비를 걸고 그것으로 정치적, 상업적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거기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한마디씩 더하는 아마추어들은 덤”이라며 “의전이나 경호는 정치적 공격과 비난의 범주 밖에 있어야 한다”고 썼다.
정철운 기자
모든 게 최저임금 탓’ 만악근원설 또다시 반복하는 경제지
경제지의 적은 경제지? 스텝 꼬인 최저임금 보도
초단시간 일자리도, 구직자 척박한 삶도 최저임금 탓
독일 1년 새 25% 인상, 영국은 1만7000원 “역부족”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내년 최저임금 심의 요청하면서 최저임금위원회가 가동하기 시작했다. 보수 경제지도 관련 보도에 시동을 걸고 있다. 해마다 최저임금 때리기 보도가 반복되지만, 최저임금을 각종 경제 위기 요인으로 내세우다 자사의 과거 보도나 해외 최저임금을 다룬 보도와 모순된 주장을 내놓는 경우도 속속 눈에 띈다.
“초단시간 노동자 급증, 최저임금 탓”…작년 말엔?
한국경제신문은 지난달 26일 1면 <소주성 후폭풍…‘알바 난민’ 사상 최대>로 최저임금 보도 신호탄을 알렸다. 최저임금 탓에 초단시간 노동자가 늘었다는 주장이다. “최저임금 급등에 부담을 느낀 소상공인이 고육지책으로 ‘초단기 알바’를 고용하면서 지난해 초단기 근로자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했다. 한국경제는 지난해 주당 근로시간이 1~14시간인 취업자가 157만7000명으로 전년 대비 6만5000명 늘었다며 집계를 시작한 이후 가장 높았다고 덧붙였다.
매일경제도 노동계가 최저임금 12000만원 인상을 요구한 뒤 5일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인상되면 ‘쪼개기 알바’ 등 초단기 일자리가 범람하고 임금 인상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며 같은 수치를 댔다.
▲3월27일 한국경제 1면
초단시간 노동자 급증이 최저임금 탓일까. 4개월 전 이들 경제지를 포함한 언론은 다른 요인을 짚었다. 정부가 초단시간 일자리 급증을 주도했다는 지적이다. 공공일자리 사업 대부분이 주 15시간 미만의 일자리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취업자를 산업별로 보면 사업·개인·공공서비스 및 기타 분야 주 15시간 미만 취업자가 93만5000명으로 가장 많았다. 지자체의 노인일자리 등 공공일자리에 여기에 포함됐다.
한국경제도 지난해 11월 마찬가지 지적을 했다. <‘초단시간 근로자’ 180만명 역대 최대…공공일자리서 ‘폭증’>에서 초단시간 근로자가 “거의 180만 명에 육박”한다며 “급증세는 사회간접자본 및 기타서비스업 분야와 공공서비스업 등이 주도한 것으로 나타나 국가가 초래한 현상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고 했다. “초단시간 근로자를 양질의 일자리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3일 한국경제 보도
사용자들이 근로기준법상 사각지대를 악용해 최저임금 제도에 ‘노동시간 쪼개기’로 대응하는 현실은 문제다. 그러나 이를 노동권 보호로 해결할 대상이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 반대 이유로 제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주 15시간 미만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퇴직금과 주휴일, 연차휴가, 초과근무 가산임금, 육아·출산 및 직장내 괴롭힘, 일부 산업안전보건법도 적용 받지 않는다.
구직자 삶이 척박해져? 실업급여 기준이 최저임금
최저임금 탓에 구직자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삶이 척박해졌다는 주장도 등장했다. 한국경제는 “최저임금이 1만원에 육박하면서 구직자의 삶은 척박해졌다”며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한 근로자도 2021년 321만 명으로 전년 대비 25만 명 늘었다”고 했다. “수능을 마치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바짝 벌고 싶었는데 여기저기 면접만 보다 시간을 허비했다”는 익명의 구직자 코멘트를 인용했다.
사업주들이 채용을 회피하려 해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논리다. 학계는 최저임금이 각종 지원·보장 제도의 기준으로 쓰이는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지적한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구직자엔 직장 다니던 이들도 포함되는데, 실업급여의 하한액이 최저임금에 곱한 숫자로 정해진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퇴사한 구직자들의 생계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라고 했다. 고용노동부 고용행정통계에 따르면 올해 2월 실업급여 지급자 수는 63만 283명이다.
경총 받아쓰기 시작, 국제면엔 “1만7000원으로 부족”
경영계가 최저임금 심의 시작을 앞두고 낸 보도자료 ‘받아쓰기’ 현상도 나타났다. 경총은 지난 2일 보도자료를 내 지난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 비율이 12.7%라고 했다. 최저임금이 너무 높아 인상하면 곤란하다는 얘기다. 동아일보, 매일경제, 서울경제, 세계일보, 중앙일보, 한국경제 등 일간지가 이를 보도했다. 보도자료를 보면 경총은 “2019년 이후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 수와 미만율이 감소추세를 보이고는 있다”면서도 “최저임금 수준이 매우 높아져 노동시장 수용성이 저하된 것”이라고 했다.
▲네이버 포털 경총 최저임금 관련 보도자료 검색 결과
▲3일 세계일보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임금 체불을 이유로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주장해온 법치를 거스르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시급제 일자리인 공공 노인일자리 사업 임금을 법정 최저임금(9160원)에 못 미치는 9000원으로 책정한 탓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 세계일보는 경총 보도자료를 기사화한 3일 국제면에선 다른 주장을 내놨다. <영국, 세금·공과금 이달부터 대거 인상> 에서 “영국노총(TUC)은 물가상승률에 맞춰 최저임금이 이달부터 10.42파운드(약 1만7000원) 인상됐지만, 가계 부담을 줄이기엔 역부족이라고 일간 가디언을 통해 전했다”고 했다.
▲3일 세계일보
해외도 줄줄이 최저임금 인상 흐름
다른 나라들의 최저임금 인상 흐름은 어떨까. 독일은 최근 1년 새 수차례에 걸쳐 최저임금을 25% 인상했다. 1년 전 시간당 9.6유로에서 12유로(1만 6900원)으로 인상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이끄는 신호등(사회민주당·자유민주당·녹색당) 연립정부의 핵심 공약을 따라서다.
영국의 경우 10.42파운드(1만 7000원)으로 인상했다. 그러나 영국노총(TUC)은 전기‧가스와 수도 요금, 지방세 인상을 감안하면 가계 부담을 줄이기 역부족이라며 강하게 불만을 밝히고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4일 "일본에선 총리가 직접 나서 국가 최우선 정책 목표로 물가상승률을 뛰어넘는 임금인상을 독려하고 일본 기업들도 30년 만에 4%대 인상을 단행했다"고도 했다.
▲양대 노총의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들이 4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24년 치 최저임금으로 1만2천원을 요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물가상승에 공공요금 인상, 임금불평등 악화
한국도 코로나19와 살인적인 물가 상승, 낮은 최저임금 인상률로 임금 불평등이 심화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임금을 받는 소득자의 상위 5%는 소득 액수가 절대적으로 증가했지만 그 밑은 같은 수준이거나 오히려 떨어졌다"며 “올해 GDP 증가율인 2.26%와 물가상승률 5.1%만 더해도 7.7%를 넘어서는 상황이고, 최근 불평등이 악화한 상황을 개선하려면 최저임금 인상해야 한다는 것이 인상 요구의 주된 논거”라고 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국세청 천분위 소득자료(2012~2021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근로소득 상위 5%의 경계값(구분선)은 9800만 원에서 1억 500만 원으로 액수가 7.1% 증가했다. 근로소득 점유율도 올랐다. 반면 하위 반면 하위 50%의 근로소득 점유율은 2019년 20.2%까지 증가했다가 2년 연속 감소해 2021년 19.9%였다. 근로소득 하위 20%의 소득 대비 상위 20%의 비율(근로소득 5분위 배율)도 2019년까지 감소세였다가, 2020년부터 2년에 걸쳐 15.1배로 도로 늘었다.
한국의 경우 단순 물가상승률 전망치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더한 뒤 취업자 증가율 전망치를 빼는 방식으로 기계적으로 인상률을 적용해왔다. 그러나 노동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 등을 인용해 최근 2년간 물가상승률(7.7%)이 최저임금 인상률(6.6%)를 앞질러 노동자 실질임금이 저하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양대 노조는 4일 내년 최저임금으로 월 250만 원에 해당하는 시급 1만 2000원을 제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최저임금(9620원)에서 24.7% 인상한 수준이다. 양대 노조는 “지난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5.1% 증가했다. 대표 공공요금인 난방비는 40% 올랐고 전기료는 20%, 수도세는 71%, 대중교통요금은 30% 이상 뛰었고 인상이 예고됐다”며 “생존을 위한 요구”라고 밝혔다.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4·3 왜곡세력에 눈감고 역사까지 왜곡한 보수신문·경제지
민주언론시민연합
75주년을 맞은 4·3희생자 추념식이 ‘견뎌냈으니, 딛고 섰노라’는 주제로 4월3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렸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불참으로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신 추념사를 읽었으며, 여당 지도부는 일부 참석하고 야당 지도부들은 총출동해 극명한 대비를 보였습니다.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의 상징인 4·3희생자 추념식에 역사를 왜곡하는 현수막이 걸리고, 서북청년단이 난입해 이념 논쟁으로 번지고 있는데요. 과거를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려는 움직임이 4·3항쟁에도 시도되고 있습니다. 4·3희생자 추념식 언론 보도를 살펴봤습니다.
‘격 낮은 기념일’, 대통령 ‘불참’ 감싼 조선일보
2022년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처음 4·3 추념식을 찾았던 윤석열 대통령 및 국민의힘 당대표와 원내대표 등 지도부는 올해 추념식엔 불참했습니다. MBC <대통령 ‘불참’… 이례적 추념사>(4월3일 신수아 기자)는 “추념사는 한덕수 총리가 대독했는데, 제주 지역 발전을 약속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 추념사로는 다소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추념사는 “2분가량으로 매우 짧았고, 추모는 ‘국가의 의무’라”고 반복했지만, 희생자 지원 같은 “구체적 방안은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는데요. JTBC <대통령도 여당 대표도 ‘불참’>(4월3일 채승기 기자)도 “일정 때문이라지만 보수 지지층 다지기”라며 “이념적으로 민감한 4·3 이슈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행보 아니냔 해석”이 나온다고 보도했습니다.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사에 이념적 해석을 덧붙여가며 정치권이 불참하는 것도 문제지만, 언론에는 윤 대통령의 불참을 감싸는 보도가 등장했습니다. 조선일보 <5월엔 5·18, 6월엔 민주항쟁...여야 ‘달력 정치’에 달마다 지뢰밭>(4월4일 원선우·김승재·김상윤 기자)은 “매년 특정 일을 계기로 똑같은 공방을 무한 반복하는 한국식 저질 ‘달력 정치’의 한 단면”이라고 비난하며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보면 한국에서 가장 격(格)이 높은” 5대 국경일에서도 대통령의 참석이 달라지는데 “‘4·3희생자 추념일’은 이보다 격이 낮은 ‘기념일’에 해당”해 “대통령 참석은 의무 사항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같은 논리로 보자면, 3월24일 ‘서해 수호의 날’ 역시 기념일로 대통령 참석은 의무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낭독하며 울먹였고, 조선일보 <윤 “북도발 절대 잊어선 안돼”>(3월25일 김동하 기자)는 이를 1면에 주요하게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같은 날 기사 <이대표는 불참… 정치권 “야, 선거 없으면 기념식 패싱”>(3월25일 박국희 기자)에서 야당의 불참을 비판했는데요. 대통령의 기념식 참석은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던 조선일보는 ‘서해 수호의 날’의 야당 불참은 비판하며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대통령의 기념식 참석은 의무인지 아닌지를 따질 것이 아니라 참석 자체로 ‘아픔의 치유와 사회 통합’의 의미가 있기에 중요한데요. 1면 머리기사 제목으로 썼듯 기념식을 ‘편가르기 도구로 과거사를 전락’시키고 있는 것은 조선일보 스스로가 아닌지 되돌아볼 일입니다.
4·3 왜곡세력에 입 닫은 TV조선·채널A·MBN
4·3항쟁은 수많은 희생자를 남긴 아픈 역사로 미 군정기부터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까지 7년여에 걸쳐 반란 세력을 진압한다는 목적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대대적으로 희생됐습니다. 올해 추념식에는 20여년 만에 처음 극우단체들이 나타나 4·3 역사를 왜곡하며 희생자와 유족에게 상처를 남겼는데요. KBS <추념일에도 왜곡 시도...도민들과 ‘충돌’>(4월3일 신선민 기자)는 “4·3을 강경 진압했던 ‘서북청년단’과 같은 이름의 단체가 추념식 현장에서 도민들과 충돌”을 벌였으며 “제주 전역엔 ‘4·3은 공산 폭동’ 현수막이 내걸”려 “유족들에게 상처를 안겼”다며 “4·3사건은 2003년 정부 보고서를 통해 ‘국가폭력’에 의한 사건임이 실체로 밝혀졌고, 희생자는 최대 3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지적했습니다.
▲ 4월3일, 제주 4·3 왜곡 세력을 보도한 KBS
SBS는 팩트체크보도 <“제주 4·3 사건은 공산 폭동” 또 꿈틀… 사실은?>(4월3일 이경원 기자)에서 제주 4·3사건은 “6년간 1만 명 가까운 무고한 양민이 좌익으로 몰려 학살된” 사건으로 “공산 폭동이라는 말은 양민 학살 문제를 덮는 것은 물론 피해자를 폭동 주체로 만드는 표현으로 읽혔”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김일성이 지휘권을 가진 남로당 중앙당이 기획, 지시했다는 ‘중앙당 기획설’”은 정보기관에서 조작한 것으로 “고 백선엽 장군 등 당시 군 지도부, 권위 있는 4·3 학자들도 남로당 중앙당 개입은 없었다고 증언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주장하고 있는 김일성 개입설은 “직접 증거라기보다는 김 씨 일가가 4·3을 정치적 선전에 이용한 사례에 가깝”다고 짚었는데요. SBS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반론은 명확한 사실을 근거로 책임감 있게 제기”해야 한다며 역사 왜곡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TV조선·채널A·MBN은 4·3 추념식을 방해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세력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TV조선·채널A는 윤 대통령의 추념식 행사 불참에 대해 짧게 보도하는 데 그쳤으며, MBN도 2건의 보도 모두 정치권의 추념식 관련 입장만 전하는데 할애했습니다.
보수신문·경제지, 극우단체 패륜행위 보도 안해
신문에서도 극우단체의 4·3 추념식 방해 행위를 보도하는 모습이 엇갈렸는데요. 보수신문과 경제지는 극우단체의 패륜적 행위를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와 매일경제, 한국경제는 ‘서북청년단’ 난입과 ‘4·3 공산 폭동’ 현수막 설치를 언급한 기사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비판받아 마땅한 보수단체의 행태를 무보도로 덮어버리는 보수신문과 경제지의 무책임한 태도가 다시 반복된 것입니다.
반면, 한국일보 <75년 전 토벌대 ‘악명’...추념식까지 어지럽힌 서북청년단>(4월4일 김영헌 기자)은 “서북청년단은 70여 년 전 4·3 당시 ‘토벌대’로 불리며 수많은 제주도민 학살에 관여”하며 악명을 떨친 단체로 과거 서북청년단 등을 동원한 군정경찰의 토벌 작전이 제주에서 일어났다고 짚었습니다.
한겨레 <사설-대통령부터 줄줄이 4·3 불참, 극우 의식 거리두기하나>(4월4일)도 추념식에 “4·3 당시 양민학살에 앞장섰던 ‘서북청년단’ 이름을 딴 극우단체까지 나타났”다며 “정부·여당이 4·3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잘 알기에 이들도 이런 행동에 나설 수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유족들의 반발에도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4·3을 공산주의 폭동이라고 폄훼한 김광동 씨”를 “아랑곳 않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에 임명했”으며,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4·3 유가족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이승만의 공을 기리자”는 주장을 계속하는데 ‘국가의 책임과 치유’, ‘유가족들의 명예회복’이란 대통령의 약속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냐고 되물었습니다.
조선일보·한국경제, ‘남로당 무장폭동이 시작’ 거짓 색깔론 주장
한국경제는 “북한과 남로당에 의한 폭동이라는 본질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며 희생자를 기리는 것과 동시에 정부 탄생을 막으려 한 남로당의 폭동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설-“잊혀지고 싶다”던 문재인, 제주서 다시 편가르기 나서나>(4월4일)에서 “4·3사건에 대해 이념적 잣대를 확증편향적으로 들이대면서 사회를 분열시키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며 오히려 제주를 찾은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
조선일보는 <4·3사건, 폭동 진압 과정서 무고한 희생자 발생>(4월4일 유석재 기자)에서 “당시 대한민국 정부의 과잉 진압으로 제주도민의 큰 희생이 일어났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면서도 “제주 4·3사건을 ‘제주도민이 통일정부 수립을 꿈꾸다 희생당한 사건’인 것처럼 해석하면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시작은 남로당의 무장폭동이었다”며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 350명이 제주도 내 12개 지서 등을 공격하면서 4·3사건이 발발했”는데, 목적은 “5·10 총선거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무산”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4·3항쟁, 경찰 과잉진압으로 인한 주민 사망이 도화선
▲ 4·3 역사 페이지 갈무리. 사진=제주4·3평화재단
그러나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 및 보수언론이 주장하고 있는 북한과 남로당 제주도당으로 인해 4·3이 촉발됐다는 주장은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기술된 사건의 정의와 배치됩니다.
4·3특별법에서 4·3사건은 경찰의 3·1절 발포사건을 발단으로 남로당 반란과 극우단체의 민간인 과잉진압으로 확산됐다고 기술됐습니다.
<제주4·3평화재단>도 4·3은 1947년 3.1절 행사에서 경찰 발포로 주민 6명이 사망한 사건을 시작으로 민·관 합동 총파업이 시작되자, 서북청년단이 제주에 들어와 ‘빨갱이 사냥’을 한다는 구실로 테러를 일삼아 민심을 자극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남로당 제주도당은 한반도 분단 위기 속에 5.19단독선거에 반대투쟁하고, 군정경찰과 서북청년단에 저항하며 무장봉기를 일으켰는데요.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남로당 제주도당의 반란 행위는 불순세력의 음모로 판단돼 미군과 군정경찰의 강경 토벌작전이 일어나게 되고 결국, 무고한 도민들이 집단 희생된 것입니다.
한국일보 <사설-제주 4·3 75주년, 상처 덧내는 여당>(4월4일)은 “4·3 피해자와 유족들은 오랜 세월 ‘빨갱이’ 시선이 두려워 피해 사실을 드러내고 말하지도 못했”는데 “다시 제주 곳곳에 ‘4·3은 공산폭동’이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며 “극우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여당 지도부가 일조해서야 되겠나”고 일갈했는데요. 보수언론은 북한과 남로당을 강조하며 색깔을 덧씌우기 이전에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극심했던 4·3 희생자들의 상처가 아물 수 있도록 역사를 바로 알리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국회에서 벌어진 ‘4·3 왜곡 세미나’
3월30일 국회에서 국민의힘 서병수 의원실이 주관하고 보수단체 4곳이 공동주최한 4·3사건 세미나에 대해 JTBC <4·3 양민 학살에 “베트콩도 마찬가지”>(4월3일 배양진 기자)는 “4·3 양민 학살 과정을 베트콩 소탕 작전에 빗대는 발언”이 나왔다고 보도했습니다. 구충서 변호사는 “‘공산 폭동을 진압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양민 학살 과정을 베트콩 소탕 작전에 빗”대고, “빨갱이도 있는 거고 그런 거죠.”라며 역사 왜곡을 서슴지 않았는데요.
같은 세미나를 보도한 오마이뉴스 <지금 윤 정권에서 무슨 일 일어나고 있나… 이상한 세미나>(3월31일 김종성 기자)에 따르면 현장에 참석한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박인환 변호사는 “4·3을 공산주의 폭동으로 규정했”으며 더 나아가 “공산세력의 대한민국 건국 방해 활동이 그 본질이고, 안타까운 희생자의 발생은 부수적·우발적이라는 점에 대하여는 논란의 여지가 없음”이라고 발표문에 기술해 “4·3 때의 민간인 학살을 두둔하기까지 했”습니다. 또 다른 참석자인 전민정 제주4·3사건재정립시민연대 대표는 희생자·유족 명예회복을 위한 법률이 “반국가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고 주장한 뒤 “4·3 바이러스가 화해와 상생이라는 위선의 옷을 입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시스템에 침투하여 헌법 이념을 파괴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진정한 희생자에 대한 2차 가해”라는 무책임한 막말을 늘어놓았습니다.
왜곡을 지적하지 않으면, 역사가 된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북한이 5.18민주화운동에 개입했다는 왜곡된 주장이 사라지지 않고,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하며 일본군 성노예와 일본에 의한 강제노동은 없었다며 역사를 지우려는 친일 세력의 목소리가 여전합니다. 제주 4·3은 1947년 미군정 시기 3.1절 기념식에 미군정 기마경찰이 어린이를 치고도 후속 조처를 취하지 않자 도민들의 항의하면서 발단됐고, 무장대와 토벌대의 무력충돌로 10세 이하 어린이부터 70세 이상 노인까지 무자비하게 학살된 사건입니다.
경향신문 <전국 대학생들 추모 동참 “기억하고 행동하겠다”>(4월4일 전지현 기자)는 전국 39개 대학 총학생회·역사동아리가 각 대학에 추모 현수막을 게시하며 4·3을 추모한 소식을 전했는데요. 학생들은 “4·3에 대한 색깔론과 역사 왜곡을 비판”했으며, 고준혁 제주대 총학생회 4·3연대국 부장은 “4·3은 좌우가 아니라 인권 유린의 측면에서 봐야 할 문제”라고 강조습니다. 보수신문과 경제지는 이념에 사로잡혀 역사를 왜곡하고 사실상 허위사실 유포에 가담하는 행태를 중단해야 할 것입니다.
- 모니터 대상 : 2023년 4월 3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 TV조선 <뉴스9>(평일)/<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뉴스7>(평일)/<뉴스센터>(주말), 2023년 4월 4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기사
민주언론시민연합
〈조선일보〉 일본어판, 유족 혐오 수출하나
조선일보〉 일본어판 2월13일자 칼럼. '"안전은 자신들에게도 책임"이라고 반성하는 일본 사회, 사고를 정쟁의 도구로 삼는 한국 사회'라는 제목이 적혀 있다. ⓒ〈조선일보〉 일본어판 갈무리
2월13일자 〈조선일보〉에 최원국 도쿄 특파원의 칼럼이 실렸다. 칼럼은 이태원 참사가 2001년 일본 아카시시 육교 압사 사고와 비슷하다고 짚는다. 그런데 의외의 전개가 이어진다. 칼럼은 “두 나라는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점이 더 두드러진다”라며, “참사 이후 일본 여론은 ‘경비 당국은 물론 행사 참가자를 포함해 시민들 모두 안전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많았다”라고 주장한다. 참사 직후 일본 주요 일간지에 실린, “안전에 소극적이었던 스스로를 반성하는” 일본 시민들의 멘트를 나열하더니, 이태원 참사는 “정쟁의 도구가 돼버렸다”라고 개탄한다.
도쿄 특파원이어서 오사카 서쪽인 아카시시 근처에 가서 취재하거나 유족들이 지난해 낸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칼럼이 칭찬한 사고조사위원회 보고서가 충실히 작성된 것은 아카시시 참사 유족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덕분이다. 축제에 간 사람들을 탓하는 논리는 2005년 민사재판에서 유족이 전면 승소한 것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주최 측이 있는 행사였음에도 주최 측인 아카시시뿐 아니라 경찰의 책임도 인정했다. 아카시시는 매년 사고 날마다 유족을 불러 신입 직원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다.
이태원 참사를 맞은 나라의 ‘1등 신문’이 친절하게 일본어로 번역한 도쿄 특파원의 칼럼은, 오는 7월 참사 22년을 맞는 아카시 유족에게 비수를 던지는 듯하다. 기실 이 신문의 유족 혐오는 세월호 참사 때도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조선일보〉 일본어판 사설은 일본 유튜버들이 세월호 유족을 혐오하는 재료로 쓰인다.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들의 찢어지는 가슴을 기자가 느끼지 못한다면, 그 아픔을 기사로 제대로 옮길 수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비인간적인 기자 모습이다. 아니, 기자로서 실패한 것이라고 나는 단언할 수 있다.” 기자 준비생 시절 밑줄 그으며 읽던 책 〈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에 나오는 말이다. 소중한 이를 잃고 세상을 더 안전하게 바꾸고 싶다는 소망은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며 나라를 가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묻는다. 참사를 정쟁의 도구로 삼는 자는 누구인가.
프레시안 전혜원 기자
윤석열 정부 들어, 언론이 더욱 부끄럽습니다
오늘은 제67회 ‘신문의 날’입니다. 4월 7일은 최초의 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이 창간된 날로, 이날을 1957년 한국신문편집인협회가 신문의 날로 정했습니다. 신문의 사명과 책임을 자각하기 위해 신문 단체가 중심이 되어 해마다 기념행사를 해오고 있습니다.
영원한 언론인으로서, 올해 신문의 날을 맞는 우리의 심정은 그 어느 때보다 참담합니다. 언론에 대한 신뢰가 바닥이다 보니 시민들은 걸핏하면 기자를 ‘기레기’·‘기더기’라고 조롱합니다. 더욱이 윤석열 정부의 작심한 길들이기로 언론 상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나빠졌습니다. 땅바닥이 끝인 줄 알았는데, 바닥마저 갈라져 땅속으로 한없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우리 언론의 참담한 현실을 잘 보여주는 단면으로 두 가지 사례를 꼽겠습니다. 한일 정상회담 보도, 그리고 윤미향 의원 관련 보도입니다.
지난 3월 16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정부는 일제하 강제 동원 피해자 문제 해결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이른바 ‘제3자 변제’-일본의 요구를 100% 받아들인, 굴욕스럽고 반민족적인 내용입니다. 더욱이 법과 조약에 관한 한 최고의 해석 권한과 집행력을 지닌 대법원의 판결을, 행정부가 공개적으로 부정했습니다. 위헌적이고 반민주주의적인 조치입니다.
무엇보다 이 방안은 반인권적입니다. 30년 가까이 한일 두 나라에서 힘겨운 재판 투쟁을 통해 쟁취한 피해자의 권리를 정부가, 보호하기는커녕 짓밟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조·중·동을 비롯한 주요 신문들은 윤 정부의 이런 조치를 ‘미래를 위한 대승적 결단’이니 ‘한일 새 시대의 개막’이니 하며 호도했습니다. 반대하는 대다수 국민을 ‘배타적 민족주의와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으로 몰아붙였습니다. 앞장서 비판해야 할 정부의 억지 주장을 신문이 대변한 겁니다. 객관적인 사실조차 외면하는 이런 보도는 ‘언론이길 포기한 신문’의 모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윤미향 의원 관련 보도는 우리 언론의 민낯을 제대로 보여줍니다. 바로 검찰 발 받아쓰기와 반성하지 않는 오만입니다.
진보와 보수 가릴 것 없이, 거의 모든 신문은 검찰 등 수사기관이 흘려주는 정보를 최소한의 검증도 없이 받아썼습니다. 인격 살해나 다름없는 보도로 평생 일본 ‘성노예 할머니’를 위해 헌신해온 윤 의원을 악마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1심 재판에서, 윤 의원은 사실상 검찰이 기소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어쩌면 받아쓰기 악습으로 ‘마녀사냥’식 보도를 되풀이해 온 한국 언론에 대한 유죄 선고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판결과 다른 이런 보도에 대해 인권을 중시한다는 진보 언론을 포함해 단 하나의 신문도 사과도, 반성도 하지 않았습니다. <뉴욕타임스>, <아사히신문> 같은 해외의 권위 있는 언론 같으면 달랐을 겁니다. 오보를 되짚어보고 반성하는 검증 보도와 더불어 관련자를 엄중히 문책했을 겁니다.
우리는 신문의 날을 맞아, 언론의 자유를 ‘언론사주의 자유’ ‘언론인의 자유’로 착각한 채 ‘사회의 목탁’과 ‘소금’의 역할을 저버린 언론에 한 목소리로 자성을 촉구합니다. 땅에 떨어진 언론의 신뢰 회복을 위해 긴급히 다음 조치를 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1. 대통령실과 검찰 등 권력기관의 발표를 익명으로 받아쓰는 보도를 당장 중단하라.
2. 받아쓰기의 폐해가 극심한 검찰 기자실을 폐쇄하고, 법조기자단을 해체하라.
3. 잘못된 보도에 대해 철저한 사후 검증 및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라.
4. 사주나 권력·자본과 한몸이 돼 기득권층의 이해를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반민족·반서민·반민주적 보도를 즉각 시정하라
2023년 4월 7일
언론비상시국회의(언론탄압 저지와 언론개혁을 위한 언론비상시국회의)·동아투위·조선투위·80년해직언론인협의회·언론광장·새언론포럼
https://www.youtube.com/watch?v=5xZysAFGN8c
윤석열퇴진 집회 극단 '경험과 상상' 공연 '4.3 초혼(招魂)’
순식간에 독후감 쓰는 챗GPT에 골머리···일본, 교육현장 AI지침 검토
챗GPT 메인 화면 갈무리.
일본 문부과학성이 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이 교육 현장에서 일으킬 부작용을 우려해 관련 가이드라인(지침) 검토를 시작했다고 요미우리와 아사히 신문 등이 6일 보도했다. 순식간에 작문 숙제를 완성해주는 것은 물론 번역, 수학문제 풀이까지 대신 해 줄 수 있는 AI가 학생들의 학습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경계심이 높아지면서 AI사용과 관련한 교육 지침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일본 문부과학성은 ‘챗GPT 교육현장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 위한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문부과학성은 국내외 사례를 검토하고 전문가 의견을 모아 챗GPT 사용 유의사항 등을 제시할 계획이다.
챗GPT는 미국 오픈AI가 지난해 12월 출시한 딥러닝 기반 언어 생성 프로그램이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해 실제 사람과 이야기하듯 대화를 이어간다. 빅테크들은 저마다 생성형 AI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AI 기능을 검색 엔진 빙과 웹브라우저 엣지에 추가했고, 구글은 대화형 AI 바드(Bard)를 내놨다. 어도비는 텍스트를 기반으로 표절 없는 이미지를 생성하는 AI 파이어플라이를 선보였다.
하지만 이같은 AI의 발전이 교육현장에서는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학생들이 독후감, 에세이 등의 과제를 낼 때 고난이도의 글을 몇 초 만에 뚝딱 생성해주는 AI를 이용하면 실력을 쌓을 수 없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요미우리는 챗GPT에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에 대한 독후감을 만들어 달라고 지시했더니 ‘갈등과 고뇌를 겪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상대를 이해하는 소중함을 배웠다’는 문장이 순식간에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미국 미시간대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안토니 오만 교수는 최근 문법이 완벽하고 아이디어도 재밌어 눈길을 끈 에세이가 알고보니 챗GPT로 작성된 것이었다고 아사히신문에 말했다. 그는 “철학은 논리적인 학문이라 AI와의 ‘궁합’이 좋다”며 “점점 에세이를 인간이 썼는지, AI가 썼는지 판단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아사히는 한 조사에서 학생의 90%가 챗GPT를 과제 작성에 활용했다는 보고도 나왔다며 부정행위에 대한 우려로 챗GPT와 같은 AI프로그램을 교내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옥스포드대와 케임브리지대, 프랑스 파리정치대학 등도 챗GPT 이용을 금지했고, 미국 시애틀의 일부 공립고는 교내에서 챗GPT 사용을 제한했다. 호주 대학들은 학생들이 답안 작성 과정에서 AI의 도움을 받지 못하도록 출제 방식 자체를 변경하기로 했다.
교육현장에서 AI ‘금지령’이 이어지자 개발사들은 AI를 활용한 부정행위를 AI로 잡아내는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오픈AI는 지난 1월 챗GPT를 포함해 AI가 작성한 텍스트를 식별해주는 프로그램을 무료 출시했다. 최근 메릴랜드대 연구진은 AI 언어모델이 만든 문장에 워터마크를 적용해 처음부터 AI가 생성한 문장임을 나타내는 프로그램을 무료 공개했다. 표절 감지 업체 턴잇인(Turnitin)도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물이 챗GPT 등으로 대필됐는지 여부를 판별해 주는 AI 감지기능을 출시했다.
경향 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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