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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23.3.27~.4.1 알아서 퍼줬더니 동해에 죽도가 날아들었다

by 이성근 2023. 3. 27.

윤석열 정부 굴욕외교’·69시간 노동개악규탄”···주말 서울도심 대규모 집회

대기업들 너도나도 평균연봉 1억원대’...커지는 부익부 빈익빈

금융 8713만원 vs 교육 4272만원"업종·규모따라 임금격차 더 커졌다

'인간 사냥' 강제동원 200, 그중 20만이 죽었다"? 무슨, 살아 있는 게 다행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의 짧고도 길었던 사랑 이야기

대통령, 언론에 "우리도 핵무기 만들 수 있다"고 말한 이유는?

제주 4·3은 남로당 폭동강연에서울대생들 제주 4·3 사건 왜곡 강연 반대

서해수호의 날, 조선일보의 강제동원 피해자와 서해용사 유가족 갈라치기

국회와 헌재 위에 검찰이 있다?

임은정 vs 한동훈, 누가 부적격 검사인가1

'부산EXPO' 북항 재개발 입찰 담합 의혹공정위, 롯데건설 조사나섰다

소득보다 빨리 늘어난 직장인 대출 평균 5000만원 넘었다

'일본 퍼주기' 윤석열, 북한에는 '단 돈 1''퍼주기' 말라? 실제 퍼준 적도 없다

김건희 여사 일괄 무혐의’, 주가조작 수사에 영향 줄까

원하는 동반자와 살아갈 권리, 그렇게 가족이 된다

알아서 퍼줬더니 동해에 죽도가 날아들었다

여성단체들 박원순 전 시장 민주열사묘역 이장은 2차피해 가중

박 전 시장 묘, 41일 민주열사 묘역으로 이장

광주 찾은 전두환 손자 "죄책감 커서 이런 사죄한다"

조현천 전무사령관과 계엄 문건

 

지식재산권 무역수지 무역적자 전환

핵심산업 제조업 중국 무역작자 전환 주도

대한상의 제조업 경기전망

세계경제에서 미국과 중국의 비중

미국채 보유액 규모 변화 및 뱐화율 22.1~23.3

22년 죽국 중앙은행의 금 매입 비중

 

윤석열 정부 굴욕외교’·69시간 노동개악규탄”···주말 서울도심 대규모 집회

주말인 25일 서울 도심에서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식 일제 강제동원 해법안과 주 69시간 노동시간 재편 등을 비판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전국민중행동과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민주노총 등 869개 노동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5일 서울광장 인근에서 대일 굴욕외교 규탄 범국민대회를 열고 있다. 문재원 기자© 경향신문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230분부터 서울 대학로에서 ‘2023 노동자 대투쟁 선포 전국노동자대회를 진행했다. 주최 측 추산 13000여명이 참여했다.

 

조합원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민생, 민주, 노동, 평화 등 전 사회적 영역에서 최악의 사태에 이르렀다며 대투쟁을 선포했다. 이들은 정부의 노동시간 제도 개편안과 노동조합 회계자료 제출 요구, 건설노조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 등을 규탄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하나같이 노동자 민중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더 많이 일하라는 대통령, 물가 인상에 공공요금 폭탄을 던지는 대통령, 역사를 부정하고 굴욕외교를 일삼는 대통령에게 민중의 삶은 무엇이냐고 말했다.

 

양 위원장은 정부와 여당은 민주노총을 부정부패 집단으로 몰아세우더니 건폭이라 칭하며 폭력 집단으로 매도하고 이제는 간첩이라며 공안 몰이에까지 나섰다이대로 살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총파업을 비롯해 윤석열 정권과 전면 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박홍근 원내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와 869개 노동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5일 서울광장 인근에서 대일 굴욕외교 규탄 범국민대회를 열고 있다. 문재원 기자

 

민주노총은 임금과 고용, 공공성 강화, 노동 개악 분쇄 등 4가지 의제를 세워 오는 5월 총궐기와 7월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했다. 민주노총 집회로 혜화역 인근 대학로 6개 차선 중 4개 차선이 통제돼 주변 도로가 정체됐다. 이들은 집회를 마친 뒤 종로5가 교차로에서 을지로입구를 거쳐 서울시청까지 행진했다. 행진으로 해당 구간 2개 차로가 통제됐다.

 

이날 오후 서울시청 인근에서는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전국민중행동, 촛불전환행동 등이 주최한 대일 굴욕외교 규탄 범국민 대회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한일 정상회담을 망국 외교로 규정하고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안 폐기를 요구했다.

 

단체들은 강제동원 문제뿐 아니라 독도, 일본군 위안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한미일 군사협력 등으로 시민의 분노가 갈수록 확산하고 있지만 정부는 미래세대와 경제안보를 운운하며 왜곡과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집회에 참석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권력을 위임받은 윤석열 정권은 이번 한일정상회담에서 퍼주기만 하고 받아온 건 하나도 없다고 일갈했다. 이 대표는 과거에 얽매여서는 안 되지만, 과거를 규명하고 잘못을 지적해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국민이 나서야 한다. 이 잘못과 질곡을 넘어 희망의 나라, 주권자의 나라, 국민이 주인 되는 나라를 함께 만들어 달라고 했다.

 

집회에는 민주당에서 박홍근 원내대표 등 지도부와 소속 국회의원, 당원들 다수가 참석했다. 정의당도 이정미 대표 등이 자리했다.

 

이정미 대표는 윤 대통령이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배타적 민족주의와 반일을 외치며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존재한다고 말한 데 대해 착각하지 말라대한민국 국민은 모든 분야에서 일본과 교류를 확대하고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일본을 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민중행동과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민주노총 등 869개 노동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5일 서울광장 인근에서 대일 굴욕외교 규탄 범국민대회를 열고 있다. 문재원 기자

 

앞서 이날 오후 2시부터 종로에서는 전국농민회총연맹이 지난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정부의 농산물 수입 확대 기조에 반대하며 전국농민대회를 개최했다.

 

보수단체들의 집회도 이어졌다. 자유통일당과 신자유연대는 각각 광화문과 삼각지역 앞에서 맞불 집회를 열었다.

경찰은 집회 참가자들이 차로 전체를 점거할 경우 해산 절차에 돌입하고 이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면 현장에서 바로 검거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경복궁 앞 삼거리부터 광화문 네거리까지 양방향 일부 차로를 통제하고 가변차로를 운영했다.

서울경찰청은 교통 혼잡에 따른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집회 행진 구간 등에 교통경찰 약 240명을 배치했다.

 

전국민중행동과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민주노총 등 869개 노동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5일 서울광장 인근에서 대일 굴욕외교 규탄 범국민대회를 열고 있다. 문재원 기자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대기업들 너도나도 평균연봉 1억원대’...커지는 부익부 빈익빈

SK스퀘어·LG·DL2억원 돌파정유 1.51.7억원대

 

삼성전자·SK하이닉스 1.3억원대‘1억 클럽매년 증가세

글로벌 경기침체와 공급망 위기 속에서도 지난해 직원 평균 연봉이 1억원을 넘긴 대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평균 연봉이 2억원을 넘어선 기업도 나왔다. 반면 중소기업의 평균 보수는 대기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데다 격차는 더 벌어져 빈익빈 부익부가 확대되는 모습이다.

 

26일 각사가 공시한 사업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등기임원을 제외하고 미등기임원은 포함한 SK스퀘어 직원 84명의 평균 연봉은 21400만원이었다. 1인 평균 급여액이 62천만원에 이르는 미등기임원 12명을 제외하고도 직원 평균 연봉도 15702만원에 달했다. SK스퀘어는 202111SK텔레콤에서 인적분할해 출범한 투자전문회사다. 연간 사업보고서 공시 첫해 평균 연봉에서 SK텔레콤(14500만원)을 제쳤다.

 

또 지난해 LG그룹 지주사 LGDL그룹 지주사 DL의 직원 평균 연봉이 각각 2100만원으로 집계됐다. 전년과 비교하면 LG13500만원에서 48.9% 뛰었고, DL18800만원에서 6.9% 올랐다.

 

SK스퀘어처럼 LGDL도 직원 수가 각각 197, 41명으로 적어 평균 연봉이 높게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이어 지난해 실적이 급증한 정유업계 연봉이 상위권에 포진했다. S-OIL(에쓰오일)17107만원, SK에너지 15700만원, GS칼텍스 15397만원, SK이노베이션 15300만원 등이다. 에쓰오일의 경우 급여 수준이 2021년 평균 11478만원에서 49% 상승했다. GS칼텍스와 SK에너지도 각각 전년 대비 19.8%, 45.9% 올랐다.

 

지난해 보수에는 2021년 실적이 반영됐다. 코로나19 여파로 실적이 부진했던 2020년 대비 2021년 실적이 크게 개선되면서 성과급이 증가한 영향이 크다.

 

또 일진디스플레이(17200만원), LX홀딩스(17200만원), HD현대(15407만원), 하이트진로홀딩스(15100만원) 등이 평균 연봉 15000만원을 넘었다.

 

평균 연봉 1억원 초·중반대 대기업은 상당히 많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3500만원으로, 반도체 경기침체 여파로 2021년의 14400만원보다는 소폭 감소했다. 다른 삼성 계열사로는 삼성SDS 13100만원, 제일기획 12700만원, 삼성물산 12500만원, 삼성엔지니어링 12000만원, 삼성SDI 11600만원 등이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평균 연봉은 삼성전자와 비슷한 13385만원으로, 전년의 11520만원 대비 16.2% 늘었다. 그 외 SK 계열사는 SK지오센트릭 14900만원, SK엔무브 13600만원, SKC 12800만원, SK디스커버리 12300만원, SK11800만원, SK가스 11300만원, SK아이이테크놀로지 1800만원, SK디앤디 1500만원 등이다.

 

LG전자는 지난해 처음 직원 평균 연봉이 1억원을 돌파했다. 전년 9700만원에서 11200만원으로 15.5% 증가했다. LG 계열사 중에는 LG화학(12000만원)LG유플러스(11000만원) 등이 1억원을 웃돌았고 LG에너지솔루션은 9900만원으로 1억원에 육박했다.

 

현대차(1500만원), 기아(11200만원), 현대모비스(1800만원), 현대제철(1700만원), 현대위아(1200만원)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도 1억원을 넘겼다.

 

이처럼 연봉 1억원 클럽에 가입하는 대기업은 해마다 많아지는 추세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액 100대 비금융업 상장사 중 사업보고서를 공개한 85개사를 조사한 결과 직원 평균 연봉이 1억원을 넘는 기업은 20198, 202010, 202121곳으로 늘었다.

 

다만 사업보고서상 급여 총액에는 미등기 임원 등이 받는 고액 보수와 스톡옵션 행사 차익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한 평균 연봉 산출은 이른바 평균의 함정에 빠지거나, 실제 대다수 직원들 보수와는 괴리가 생길 수 있다.

 

대기업 평균보수 563만원, 중기는 266만원으로 2.1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일반 중소기업과 대기업 직원 사이에 보수 격차는 날로 커지는 추세다. 앞서 통계청이 올 2월 발표한 ‘2021년 임금근로일자리 소득(보수) 결과를 보면, 202112월 임금근로자의 평균 소득은 333만원으로 1년 전보다 4.1%(13만원) 증가했다. 소득순으로 줄 세웠을 때 정중앙에 위치한 중위소득250만원으로 전년 대비 3.3%(8만원) 올랐다. 임금근로자의 절반(49.8%)은 월급이 250만원 미만이었다. 10명 중 2.35명은 월급이 150만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대기업 근로자들의 월평균 소득은 563만원으로, 전년보다 6.6%(35만원) 늘었다. 중소기업은 2.9%(8만원) 증가한 266만원이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월평균 소득 격차는 297만원으로 대기업 소득이 중소기업의 2.1배가 넘었다. 전년(270만원·2.04)에 비해 격차가 커졌다.

대기업의 소득 인상 폭도 중소기업의 2배가 넘게 컸다. 인상액으로 따지면 중소기업의 4.3배였다.

경향 이재덕 기자

 

금융 8713만원 vs 교육 4272만원"업종·규모따라 임금격차 더 커졌다

경총, 2022년 기업 규모 및 업종별 임금인상 특징 분석

코로나19 기간 근로자 임금은 올랐으나 인상률 및 인상액은 천차만별인 것으로 나타났다. 성과급 등 특별급여의 격차가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2022년 기업 규모 및 업종별 임금인상 특징 분석을 보면, 상용근로자 연평균 임금총액(정액 급여와 특별급여를 더한 값의 평균, 초과 급여 제외)2020~2022년 동안 10.7% 올랐다. 2022년의 경우 4650만원으로 전년(4423만원) 대비 227만원(5.2%) 올랐다.

임금 구성 항목별로는 지난해 특별급여 인상률이 전년(2021) 대비 10.4%로 정액 급여 인상률(4.5%)보다 6.1%P 높았다.

 

사업체 규모별 임금인상률도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300인 미만 사업체 지난해 연평균 임금총액은 4187만원, 300인 이상은 6806만원이다. 최근 3(2020~2022)간 각각 392만원(10.3%), 618만원(10%) 올랐다. 지난해 인상액 및 인상률은 300인 이상이 더 높다. 구성 항목별로는 정액 급여 인상률은 300인 미만이, 특별급여 인상률은 300인 이상이 더 높았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가장 크게 오른 업종과 낮게 오른 업종 간 격차는 인상액 기준 1454만원, 인상률 21.1%P에 달한다. 지난해 금융·보험업의 연평균 임금총액은 8713만원이다. 2019(7419만원) 대비 1294만원(17.5%) 인상돼 가장 높은 인상액과 인상률을 기록했다. 교육서비스업은 20194432만원에서 20224272만원으로 연 임금 총액이 160만원(-3.6%) 줄었다.

업종별 인상액·인상률 격차도 정액 급여보다 특별급여에서 더 두드러졌다. 최근 3년간 교육서비스업 정액 급여는 69만원(1.8%), 특별급여는 91만원(19%) 각각 줄어들었다. 금융·보험업의 경우 정액 급여 634만원(12%), 특별급여 660만원(31.2%) 인상 됐다.

오규민 기자 moh011@asiae.co.kr

'인간 사냥' 강제동원 200, 그중 20만이 죽었다"? 무슨, 살아 있는 게 다행"

일제의 강제동원 무엇이 문제인가 ()

일본은 중일전쟁(1937)을 벌이면서 많은 전시 노동력이 필요해지자, 식민지 조선인들을 강제로 전선이나 탄광으로 내몰기 위한 악법들을 잇달아 내놓았다. 국가총동원법(19384)으로 전시 총동원 체제를 다져 나갔다. 이어 국민징용령(19397)이 나오고 그해 10월부터 식민지인 조선과 타이완에서 이 법이 적용됐다. 그 뒤로도 일제는 잇따라 여러 관련 법령들을 내놓았고, 근로보국대, 여자근로정신대 등의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을 끌고 갔다. 1938년 국가총동원법이 나온 뒤 나온 전시 악법과 조치들에 관한 글을 일부 옮겨본다.

 

[193877일 국민정신총동원 연맹이 결성되고 국민정신총동원 근로보국운동에 관한 건(193871)이 통첩되어 각 지역에서 근로보국운동이 시작됐다. 19411123일 국민근로보국 협력령은 근로 능력이 있는 국민 전부를 국가의 중요한 업무에 동원 시킬 목적으로 칙령으로 공포됐고, 194112월 조선에 실시되었다. 1944823일 여자정신근로령이 공포실시되어 이미 시행되고 있던 여자 근로정신대에 대한 법적 근거가 부여되었다](강혜경,전시총동원체제기 여성의 강제동원과 사실 규명의 과제,문화기술의 융합v.7, no.1, 2021).

 

일제강점기의 강제적 군 입대는 육군특별지원병제(19384), 해군특별지원병제(19437), 학도지원병제(194310), 징병제(19444) 등으로 이뤄졌다. 이들 법령들 가운데는 지원이란 이름이 붙어 있었지만, 일제가 식민지 조선의 인력을 효율적으로 수탈하려는 치밀하고도 냉혹한 올가미들이었음은 말할 나위 없다. 우리 민족은 일제 침략전쟁의 도구로 이용당하며 이른바 '9년 전쟁'(1937년 중일전쟁부터 1945년 패전까지 벌어졌던 전쟁)의 살벌했던 암흑기의 억압과 착취를 견뎌내야 했다.

 

날줄과 씨줄로 촘촘히 엮은 강제동원 체제

일제가 강요했던 국가총동원은 서구의 총력전의 일본판()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독일은 물론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그 전쟁들이 19세기의 전쟁들과는 비교가 안되는 새로운 전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행기 공습을 비롯해 전선이 후방과 전방이 따로 없는 상황에서 전쟁을 이기려면 한 국가가 지닌 자원과 인력을 모두 쏟아 부어야 했다. 그래서 이른바 총력전’(total war)의 개념이 나왔다. 문제는 일제의 침략전쟁 부담을 우리 한민족이 오롯이 받아내며 희생을 강요당했다는 것이다.

 

일제는 식민지 조선의 성인 남성뿐 아니라, 여성과 아이들까지 강제로 동원하였다. ‘전쟁국가 일본의 국가총동원 체제 아래에서 여성과 어린이 노동력은 성인 남성 못지않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일제는 특히 여성 노동력 동원 없이 오로지 남성만으로 전쟁을 벌여나가기란 현실적으로도 어렵다고 여겼다. 식민지 조선 여성들은 근로보국대, 여자근로정신대 등의 이름으로 동원되었다. 군수품을 만드는 미쓰비시중공업의 공장에서 일하던 다수의 여성들이 한반도에서 끌려간 여자근로정신대원들이었다.

 

일제의 강제 동원 형태는 동원된 조선인들이 어떤 분야에서 일했는가를 기준으로 노무 동원(노동자, 군속, 근로보국대, 근로정신대 등) 병력 동원(군인, 군속), 성 동원(일본군 위안부’) 등으로 나뉜다. 또한 모집 형태로 보면, 할당 모집(, 면 단위의 지역별 동원인원 배분 지정) 국민 징용 관 알선(행정기관, 조선노무협회, 기업 등이 서로 조율해 노동력 차출) 등 크게 3가지다. 모집 형태의 이름만 다를 뿐 국가 권력이 폭력적으로 식민지 조선인들을 협박해 강제 동원하고 수탈했다는 점에서 전혀 차이가 없다. 날줄과 씨줄로 촘촘하게 엮어 꼼짝 못 하도록 이중 삼중의 강제동원 체제를 짠 셈이었다.

 

일제는 군대와 기업(광산이나 공장)이 필요한 인력을 정부(내무부와 군, 경찰)가 기획·조정·배당하고 조선총독부와의 조율을 거쳐 조직적으로 전시 동원체제로 묶었다. 하부조직인 식민지 조선의 행정력(군청, 경찰서 등)이 충실하게 악역을 맡아 민초들을 쥐어짜고 닦달했음은 물론이다. 하부 조직의 일꾼들은 징용장 같은 문서를 들고 농촌으로 어촌으로 인간 사냥에 나섰다.

일본 시모노세키 해안가에서 애절하게 아버지를 부르는 강종호씨. 부친은 멀리 남양군도로 강제동원 됐다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사흘 동안 서류 불태운 도조 히데키

문제는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근거될만한 자료들을 의도적으로 없애버린 탓이다. 전시내각을 이끌며 진주만 기습을 감행함으로써 전선을 태평양과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넓혔던 자가 도조 히데키(1884-1948)였다. 1945815일 히로히토의 항복 선언 발표 뒤 집중해서 한 일이 다름 아닌 그의 전쟁범죄를 입증할 문서들을 소각 폐기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의 모습을 전하는 일본 작가의 기록을 옮겨본다.

 

[(도조 히데키)가 열중한 작업은 메모와 노트를 태워버리는 것이었다. 육군상 및 수상 재임 중에 작성한 집무 메모는 개인 비망록이 아니라 일본 역사를 이어가는 중요한 자료가 될 터였다. 그것들을 모두 마당에서 불태웠다. 연기는 사흘 동안 마당에서 피어 올랐다](호사카 마사야스, <도조 히데키와 제2차세계대전> 페이퍼로드,2022, 584).

 

전쟁범죄 기록을 담은 문서들은 없애거나 빼돌린 것은 것은 도조뿐 아니었다. 주요 전쟁범죄자들이라면 모두 그랬을 것이 뻔하다. 전쟁지휘부였던 대본영과 육군성, 해군성을 비롯한 군부와 정부 관공서의 주요 문서들이 파기되거나 빼돌려졌다. 맥아더 장군의 미군 점령군이 도쿄에 닿은 것은 194592일 도쿄만 요코하마 항구 가까이에 머물던 미주리 호에서 항복문서 서명을 받은 뒤였다.

 

도조를 비롯한 일제의 전쟁지도부가 그들의 전범 자료들을 없앨 시간은 충분했을 것이다. 서류를 불태운 자들은 또 있다. 일제가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 눈앞에 현실화되자,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노예노동을 강요했던 전범 기업들도 그들에게 불리한 자료들을 없애버렸다.

 

재일사학자 박경식의 선구적 연구

일제 말기에 얼마나 많은 식민지 조선 사람들이 강제 동원의 희생양이 됐을까. 전쟁범죄를 입증할만한 주요자료들이 불태워지고 뒤로 빼돌려린 상황에서 연구자들 한계를 느끼기 마련이다. 그나마 남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일제의 강제동원 규모가 어느 정도였나를 추정할 뿐이다. 강제동원 문제를 일찍부터 다뤄온 재일동포 사학자 박경식(1922-1998)은 이 분야의 선구적인 연구자로 꼽힌다. 1965년에 그가 처음 써냈던 책에서 관련 내용을 옮겨본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에 징용된 사람이 100, 조선 내에서 동원된 사람이 450, 군인, 군속 37만 등 합계 약 600만 명이 끌려갔다. 그중에서 군인, 군속이었던 사람은 1953년 현재 22만 명이 돌아왔지만, 15만 명은 행방불명 상태다. 태평양전쟁에서 전사한 사람 가운데 3분의 2는 유골을 찾을 수 없다고 하는데, 그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포함되어 있다. 징용되어 탄광이나 비행장 등에서 사망한 사람은 일본 본토에서만 적게 잡아도 6만 명이 넘는다. 후생성에는 4만에 달하는 조선인 희생자의 명부가 있다고 들었으나, 일본 정부는 한일회담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일부러 공표하지 않고 있다](박경식,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 고즈윈, 2008, 17).

 

박경식은 일본과 동남아 등 한반도를 떠나 강제 동원된 사람이 150만 명이 넘는다고 분석했다. 그 내역은 군함도(하시마)를 비롯한 석탄광산 60, 미쓰비시중공업을 비롯한 군수공장 40, 토건 30, 금속광산 15, 항만운수 5만 명 등이다. 박경식의 선구적인 노작이 한국에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일제의 침탈이 어느 정도 규모였는지 짐작은 했지만, 구체적인 통계 숫자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1944년 나고야 공장 숙소에 도착한 근로정신대 소녀들. 썸앤썸 제공

 

최소 200만 명의 노예노동

강제동원과 관련된 다른 통계자료들도 있다. 2015년에 임무가 끝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국무총리 소속)란 긴 이름의 위원회가 내놓은 통계는 780만 명에 이른다. 여기엔 노무자 753(해외로 나간 노무자 105만 포함), 군인 21, 군무원 6만 명이 포함된다(정혜경, <일본의 아시아태평양전쟁과 조선인 강제동원>, 동북아역사재단, 2019, 111쪽 참조). 일본 대장성 관리국이나 후생성 조사국, 내무성 경보국, 조선총독부 등 일본 정부의 공식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나온 780만 명이란 숫자는 정확한 것은 물론 아니다.

 

정혜경(ARGO인문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일제 말기의 강제동원 연구 분야에서 여러 역작을 펴내온 연구자다. 국무총리실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서 10년 넘게 일했다. 정연구위원은 780만 명이 중복 동원에 포함된 연인원 숫자라 본다. 피해자 1인이 동원 지역과 유형에 따라 통계에 이중삼중으로 잡혔다는 것이다. 위원회가 전산화한 자료(DB)에는 180만 명의 이름이 담겨 있다. 현재 한국 정부가 추산하는 강제동원 피해자 숫자는 200만 명쯤이다(정혜경, 110-111쪽 참조).

 

일제 말기 식민지 조선의 인구는 어느 정도였을까. ‘식민지 시기 조선의 인구 동태와 구조를 분석한 박경숙의 논문(한국인구학32권 제2, 2009)에 따르면, 1940년 조선인 인구가 2,600만 명쯤이었다. 강제동원된 규모가 200만이라면, 13명 가운데 1명 꼴로 강제 동원된 셈이었다. 그 무렵의 한 가족 구성원이 5명쯤이었다 치면, 집 건너 한 집에서 가족 가운데 누군가는 강제 동원으로 끌려갔던 셈이 된다. 강제 동원에 관한 한 일본쪽 자료는 최대치보단 최소치를 채택한 것으로 여겨지기에,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강제동원에 끌려가 희생된 소년소녀들

[1942년 초봄, 면서기가 와서 덕종에게 쪽지를 주면서 여기서 고생하지 말고 일본 공장에 가서 일하면서 편히 있다 오라고 했다. 징용장이라 했다. 면서기가 쥐어준 징용장을 들고 면사무소에 갔다. 일본 사람이 앉아서 손을 만져보더니 옆 사람에게 말했다. “이런 아이까지 데려가야 하나!” 그러면서도 집에 가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면에 모인 사람은 한 30명 정도였다. 수동에서 온 박 아무개라는 아이도 덕종 또래였다](정혜경, <아시아태평양전쟁에 동원된 조선의 아이들> 섬앤섬, 2019, 67-68)

 

위에 옮긴 글은 덕종이란 이름의 소년이 일제가 발부한 징용장을 받은 사정을 진술한 내용이다. 호적에는 1932년으로 적혀 있던 덕종이 징용장을 받을 무렵 나이는 만 9살이었다. 1929년에 태어났으니 실제 나이는 만 12살이었다지만, 그래도 어린이였다. 하지만 면사무소에서 만난 일본인 관리는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덕종 소년은 부산에서 배를 타고 시모노세키를 거쳐 일본 오이타현 사가노세키 제련소로 끌려갔다. 다른 두 명의 조선인 소년과 함께 무거운 광석들을 광차(鑛車)에 담아 분쇄기 앞까지 옮기는 일을 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곳에서 백인 포로들이 일본군의 감시를 받으며 중노동을 하는 모습들도 봤다. 힘든 탄광 일을 견디다 못해 탈출하려다 붙잡혀 죽도록 매를 맞는 모습들도 보곤 했다. 소년의 머리에 새겨진 살벌한 기억들은 평생 잊지 못할 뇌상(腦傷)으로 남았을 것이다.

 

'죽음의 섬' 하시마 탄광의 소년광부

죽음의 섬군함도(하시마) 탄광에서도 소년 광부들이 혹사당했다. 나가사키 항구에서 18km 떨어진 하시마는 탈출이 불가능 해 죽음의 섬이란 악명을 얻었다. 군함처럼 보인다 해서 군함도란 이름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졌다. 그곳에도 14, 15, 많아야 16살이던 소년 광부들이 있었다. 소설 <군함도>의 작가 한수산이 만났던 서정우도 16살에 군함도로 끌려왔다(배를 주리며 중노동에 시달리다 병에 걸린 서정우는 어렵사리 하시마를 벗어났지만, 나가사키의 미쓰비시조선소에서 일하던 194589일 원자폭탄을 맞아 몸을 다쳤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기획한 역작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을 읽어보시길 권한다).

 

여기서 분명히 드러난 사실은 위의 덕종이나 정우 또래의 많은 소년 소녀들이 징용으로 강제동원돼 탄광이나 군수공장에서 힘들게 일했다는 것이다. 그 숫자는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전쟁범죄의 희생자들이라는 점은 틀림없다. 현장을 온몸으로 겪었던 이들의 증언은 빼도 박도 못할 전쟁범죄의 산 증거들이다.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연합아동기구(UNICEF)는 일찍부터 18세 미만의 소년노동을 비난해왔다. 특히 ILO1919년에 창립된 이래 꾸준히 소년노동 문제에 관심을 제기해 왔다. 1945년 이전에 ILO가 정한 미성년 노동제한 규정은 이즈음의 18세 규정과는 달리 15세 미만이었다. 물론 당시 일본도 ILO 협약을 비준한 가입국이었다. 일제의 잣대는 달랐다. 1941년 일제가 발표한 근로보국대 동원 연령은 남녀 14세 이상, 1944년 국민근로보국협력령에서 동원 연령도 14세 이상이었다. 19454월 패전이 가까이올 무렵 나온 국민근로동원령은 12세 이상으로 더 낮아졌다. 따라서 일제가 침략전쟁을 벌이면서 어린 소년소녀들을 강제 노역에 마구 동원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신일철주금 도쿄 본사 앞에서 강제동원과 노예노동을 비판하는 시위 모습. 민족문제연구소

 

"한반도 출신 희생자 21~22"

일본이 벌인 침략전쟁에 강제동원됐던 식민지 조선인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을까. 안타깝게도 그 숫자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글 앞에서 살펴봤듯이, 일제가 패전 무렵 많은 자료들을 의도적으로 없애버린 탓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나 연구자들은 사망 또는 행방불명으로 8.15 뒤 한반도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규모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연구자들의 사망자 추정치는 20만에서 많게는 60만으로 크게 차이가 난다.

 

재일 사학자 박경식은 군인과 비전투원인 민간인 합쳐 최소 30, 최대 50만쯤이 사망한 것으로 봤다. 김민영(군산대교수)<일제의 조선인노동력 수탈연구>(한울출판사, 1995)에서 조선인 노무자 사망자 43, 군인·군속 사망자 12, 합쳐 55만 명쯤으로 추산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보건복지부의 용역을 받아 만든 <1995년도 해외희생자 유해현황 조사사업 보고서>는 사망자를 26만 명에서 36만 명으로 추산했다(허광무·정혜경·김미정, <일제의 전시 조선인 노동력 동원> 동북아역사재단, 2021, 537-538쪽 참조).

 

일제 말기에 멀리 타지(일본과 동남아시아)로 강제동원 됐다가 희생된 식민지 조선사람들의 숫자를 정확히 헤아리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인식표(군번줄)을 지닌 군인 사망자 숫자도 제대로 파악하기 쉽지 않은데, 탄광이나 공장에서 개별적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규모 파악은 더욱 어렵다. 동북아역사재단에서 2021년에 펴낸 역작 <일제의 전시 조선인 노동력 동원>3인 공저자의 한 사람인 정혜경 연구위원(ARGO인문사회연구소)은 지금까지 나온 강제동원 희생자(사망자와 행방불명자) 추정치가 대체로 높게 잡혀 있다고 여긴다. 그는 희생자 규모를 21~22만 쯤으로 추정한다. 설명을 들어보자.

 

"한인 희생자의 다수는 일제말기에 징용으로 끌려갔던 군인과 군무원(포로감시원 같은 비전투원인 군속)들이다. 일본 후생성 자료를 보면, 일제말기 식민지 조선 출신의 군인과 군무원 합쳐 27만 여명이 동원됐다. 후생성이 적용했던 조선인의 사망 및 행방불명 비율(55.9%)을 조선인 군인과 군무원에 적용할 경우 15만 명을 조금 웃도는 숫자가 나온다. 여기에 노무자로 탄광이나 공장에서 일하다 죽은 사람들을 더 하면 강제동원 사망자(행불자 포함)는 최소 21만 명에서 22만 명에 이른다"

 

정연구위원에 따르면, 위 추정치엔 한반도 안에서 강제 동원됐다가 죽은 사람들의 숫자는 포함돼 있지 않다. 또한 8.15 뒤 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오다가 풍랑 사고 등으로 죽은 사람들의 숫자도 마찬가지로 미포함이다. 한반도 안에서의 강제동원 희생자를 더하고, 일제가 뒤로 빼돌려 숨겨놓았던 자료를 포함해 미발굴 자료가 뒤늦게 드러나면, 일제의 침략전쟁에 강제동원돼 숨진 희생자 숫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전쟁 사망자 통계는 어떤 전쟁이든 늘 논란이 된다. 추정치에서 편차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소련 양쪽의 침공과 나치의 유대인 박해로 엄청난 고난을 겪었던 폴란드의 경우도 그렇다. 일반적으로 폴란드의 희생자 규모가 600만이고, 여기엔 유대인 300, 비유대인 300만이 포함됐다고 알려진다. 하지만 이 숫자를 놓고도 정확성 논란이 따르고 있다.

 

일본은 아시아태평양 전쟁에서 흔히 300만 명의 사망자를 냈다고 말한다. 군인과 민간인 사망자 숫자를 합쳐서다.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태평양전쟁(1941) 전몰자가 군인·군속 합쳐 213만이고, 여기에 민간인 사망자 70여만을 합치면 285~290만 명쯤에 이른다. 여기에 중일전쟁(1937)으로 죽은 일본군 19만을 더하면 사망자 합계는 300만 명을 넘어선다.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추정치다. 분명한 것은 야스쿠니 신사에 갇힌 조선인 전몰자가 21000명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돈은 무슨? 살아 있는 게 다행"

"돈 많으면 가지고 도망간다고, 그래서 돈을 안 줘”(유제철, 가고시마현 소재 제련소). “돈도 못 받았어. 안 줘. 뭐 집으로 부쳐준다 어쩐다 말로는 해도 하나도 안 부쳤더만”(김상태, 사가현 소재 메이지 광업 다테야마 탄광). “돈은 구경도 못 했어. 밥만 먹고 살아 있는 것만으로 다행으로 생각했어”(이천구, 후쿠오카현 소재 야하타 제철소). “월급이 없는데 어떻게 돈을 부쳐, 월급을 한 푼도 못 탔는디”(이사형, 도쿄 소재 미쓰비시제강소). “집으로 부쳐 달랬으니까, 집으로 부친 줄만 알았죠. 근데 아버님이 한 번도 안 받았대요"(엄정섭, 동경 소재 이시카와지마 조선소).

 

위에 옮긴 글은 2005년 무렵 '국무총리 소속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발간한 <강제동원 구술기록집>(2006)에 실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증언들이다. 이들은 하나 같이 임금을 떼였다고 증언했다. 모집, 관알선, 징용 등 동원 방식에선 각자 달라도 임금을 못 받았다는 말은 똑 같았다. '살아있는 게 다행'이란 말에서 고통의 무게가 전해지는 듯하다.

 

일본 전범기업들은 이들 피해자들의 '미수금'과 그동안 입었던 피해에 대해 손해 배상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더구나 일본 후생성에는 미불금이 어느 정도인지 자세하게 남아있다(허광무·정혜경·김미정, 554쪽 참조). 그런 의무를 나는 모르쇠하며 80년 가까운 긴 시간을 끄는 야비한 모습이 자칭 '문명국가' 일본의 모습이다.

 

강제동원이 '합법적인' 정책?

안타깝게도 오늘의 일본은 1910년 합병조약이 체결 당시엔 합법이었다는 주장 아래 일제 식민통치의 합법성을 내세운다. 일제 말기의 강제동원도 법에 따른 것이라며 전쟁범죄 자체를 부인한다. 필요에 따라선 사과할 듯하다가 금세 태도를 바꾼다. 이를테면 군함도(하시마) 탄광의 경우가 그렇다. 2015년 하시마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과정에서 사토 구니 유네스코 일본대사는 "많은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뜻과는 달리 강제로 끌려와 혹독한 조건 아래서 노동을 강요당했다"고 인정했었다. 그러면서 등재 내용에 강제동원 피해 사실을 넣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정작 세계유산 등재에 성공한 뒤 일본이 보인 행태는 달랐다. ‘언제 그런 약속을 했느냐는 투다. 우리 한국의 피해 당사자와 유족들을 화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지구촌 사람들을 언짢게 했다. 2021년 유네스코로부터 경고를 받았지만, 대충 넘어가려는 눈치다.

 

일본 정부와 기업들, 그리고 법원들은 한국인 강제동원을 합법적인 정책의 일환이라고 우기며 사죄와 배상에 소극적이다. 독일과는 참 다른 모습이다. 한국에서 '3자 변제안'이 나왔다고 좋아하지 말고, 오히려 이런 상황을 역이용하는 것을 어떨까. "늦었지만 피해 당사자와 유족들을 향한 사죄와 배상으로 과거사를 털어내렵니다"라는 변신은 일본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계속)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프레시안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의 짧고도 길었던 사랑 이야기

김마리아(왼쪽)가 미국에 머물 당시, 상하이에서 돌아온 안창호(가운데)를 환영하며 찍은 사진. 독립기념관 제공

 

사랑은 곧잘 비극적이다.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이룰 수 없는 사랑, 이뤄져서는 안 될 사랑 등등. 사랑의 작대기들은 맞아떨어지는 경우보다 그렇지 않을 때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비극의 크기 또한 각양각색이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만 남긴 채 가물가물 추억 속에만 걸쳐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평생에 지울 수 없는 화인(火印)으로 마음속을 갈라 흐르는 은하수로,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으로 또박또박 새겨지는 사랑도 많다. 1944313일 해방을 한 해 앞두고 숨져간 여성 독립운동가 김마리아(1892~1944)와 조선 사회주의 운동의 맹장 김철수(1893~1986)의 사랑도 그중 하나였다.

 

김마리아는 그 집안이 일단 빼어났다. 1883년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 소래마을에 한국 최초의 개신교회인 소래교회(솔내교회라고도 한다)가 세워진다. 이 교회 설립에 가산을 털어 보탠 사람이 김마리아의 아버지 김윤방이었다. 말이 1883년이지 갑신정변이 일어나기도 전이다. 그 시절에 개신교를 받아들일 정도면 조선 팔도 누구에게 견주어도 개화한인사였으리라. 그러다 보니 집안사람들 이력도 범상치 않다. 김마리아의 고모부는 우사 김규식이고, 친척들 중 독립운동가가 수두룩했다.

 

김마리아 역시 독립 의지에 불탔다. 일본 유학 중 2·8 독립선언 현장에 참여한 뒤 젊은 날의 이광수가 사나운 문장으로 포효한 2·8 독립선언서를 품고 조선에 돌아온다. 현해탄을 건너는 그는 기모노를 입고 있었다. 독립선언서를 기모노의 허리띠(오비)에 숨겼던 것이다. 19193·1운동에 뛰어들었다가 투옥되고 석방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김마리아는 대한민국 애국부인회회장으로 독립운동 일선에 나선다. 하지만 애국부인회는 곧 일제 경찰의 사냥감이 된다.

 

옥고를 치르는 김마리아에게 상상을 초월한 고문이 퍼부어졌다. 매달아놓고 고춧가루 물을 퍼붓는 고문 때문에 그녀는 평생 귀와 코에 고름을 달고 살았다. 일본 경찰과 그 하수인들은 생식기에 화침(火針)을 놓는 만행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김마리아는 그 고통을 버텼고 재판정에서는 오히려 결기를 빛낸다. 공판정에서 일본 검사는 심문 당시 김마리아의 반역(?)을 이렇게 폭로하고 있다. “가증한 것은 본직에게 심문을 당할 때에 오연히 나는 일본의 연호(年號)는 모르는 사람이라하면서 서력 일천구백 몇 년이라고 했다(동아일보1920611).”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하늘 같은 일본 검사에게 나 너희들 연호 몰라하고 내뱉는 여성.

 

고문 후유증으로 집행유예를 받고 요양 중이던 김마리아는 선교사의 도움으로 임시정부가 있던 상하이로 탈출한다. “병에 울고 있는 김마리아가 어디를 가랴. 멀리 간다 한들 시내에서 뺑 돌겠지(동아일보192185).” 안심하고 있던 일본 경찰의 뒤통수를 여지없이 휘갈기는 영광의 탈출이었다. 1923년 상반기, 상하이에서는 국민대표회의가 열렸다. 임시정부의 개조냐, 창조냐를 놓고 치열한 격론이 벌어진 이 회의에서 김마리아는 비운의 사랑을 만나게 된다. 고려공산당 상하이 파견 대표 김철수였다.

 

이때에도 김마리아의 몸은 온전치 못했다. “그는 한자리에 오래 앉아 있지를 못했다. 30분을 못 넘겼다. 의자에 앉아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가만히 견디지를 못했다. 빈자리를 찾아 옮겨 앉아야 했다. 때로는 자리에 앉았다가 서 있기를 반복했다(한겨레21임경석의 역사극장).” 하지만 그 와중에 김마리아는 같은 개조파(상하이파 고려공산당)의 일원으로 열변을 토하는 나이 한 살 아래의 김철수를 범상치 않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이 서른을 넘어 홀로였던 김마리아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사람들은 많았다. “어떻게든 좋은 남자를.” 발 벗고 나선 사람은 도산 안창호, 그리고 다름 아닌 김철수였다. 둘은 나이 지긋하고 인품 좋은 노총각 장진영을 찾아냈고 장진영 본인도 김마리아에게 평안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동의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김마리아는 완강히 거절했다. 안창호가 사정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때 제주도 출신 흥사단원 양한라와 2·8 독립선언 주동자 정광호가 끼어든다. 그들이 내민 카드는 엉뚱하게도 김마리아 시집보내기 공동위원장(?) 격이던 김철수였다. “우리가 보기에는 김마리아는 김철수에게 마음이 있습니다.” 그들은 곧장 김마리아의 마음을 확인해본다. 놀랍게도 그녀는 수줍게 승낙했다(독립운동 열전 1임경석 지음)”.

 

김철수도 김마리아에게 끌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견결한 사회주의자였다. 그리고 고향에 본처를 두고 도시의 신여성을 자연스럽게 연인 삼아 중혼(重婚)도 서슴지 않던 당시의 얼굴 두꺼운 남자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나한테 시집오면 첩이 된다. 내가 승낙하면 두 여자에게 죄를 짓는 일이 된다.” 그러나 김마리아의 마음은 어지간히 뜨거웠다. 그녀는 이렇게 마음을 전해온다. “혁명운동 하는 동안 같이 사는 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운동을 포기하고 고국으로 돌아가 편히 살려 하신다면 갈라서도 좋습니다(위의 책).”

 

김마리아 사진을 벽에 붙여둔 김철수

혁명운동, 즉 독립운동 할 때 동반자로 사는 것으로 만족하며 이 험난한 역사가 평탄해진다면 본부인에게 돌아가도 상관없다는 간절한 소망. 하지만 김철수는 끝내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 둘이 결혼한다면, 운동 일선에서 벗어나 어디 가서 교원질이나 하면서 살 수도 있고. 기혼남의 첩 신분이 되는 것이니 그녀를 모욕하는 것이다.”

 

결혼 거절 의사를 명확히 전달받은 후 김마리아는 앓아누웠다고 한다. 실연의 상처였을까. 그때 문병을 갔던 김철수는 머리 풀고 창백한 얼굴로 자신을 응시하던 그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한다. 해방 후 김철수는 남로당 박헌영과 격렬히 대립하다가 좌익 운동을 포기한 채 평생 초야에 묻혀 산다. 32녀 중 대부분의 자식이 분단과 전쟁 와중에 제명에 살지 못하거나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비극 속에서도 그는 나이 아흔넷까지 장수하다가 1986년 세상을 떠났다. 말년의 그는 옛 동지 김동삼, 그리고 김마리아의 사진을 벽에 붙여두고 용서하라는 말을 되뇌며 살았다고 한다. 김철수의 토로를 연작시로 쓴 이용범의 작품 일부다. “마리아는 나와 혼담이 있었습니다/ 결국 마리아는 죽고 말았습니다/ 많이 울었습니다/ 슬펐습니다/ 그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리하여 수십 년간 가슴에 마리아 사진 넣고 다녔습니다/ 원체 안쓰러워서.”

 

일제의 고문으로 평생 후유증을 앓던 김마리아는 마지막 순간 극심한 고통 속에 떠났다. 간호하는 사람들조차 세상에 무슨 미련이 있는가. 어서 주님의 품에 안기시오(조선일보1957718)” 하며 절규할 정도였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숨결이 순하게 낮아지며 눈을 곱게 감고 일그러져서 씰룩씰룩하던 입이 바르게 다물어지고 형용할 수 없이 사납던 얼굴에 화기가 돌며 기쁨에 충만한 웃음이 방긋이 입가에 떠돌아졌다라고 한다. 마치 그의 가장 행복스럽던 청춘 시절의 어느 한 날을 가져온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김마리아는 상하이의 격렬한 회의장에서 마주쳤던, 반듯하고 교양 넘치는 공산주의자 김철수를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이루어지지 않았을망정 너무나 절실했고, 나중에는 어찌될망정 그 순간 뜨겁게 함께하고 싶었던 자신의 열망을 돌아보며 미소를 지은 것이 아닐까. 김마리아는 그렇게 아프게 살다 갔지만 향후 40년 가까이 김철수의 가슴에 살아 있었다. 평범한 사랑조차 힘겹고 여러 겹의 장벽을 넘어야 했던 시대의 공산주의 혁명가와 독실한 개신교인의 만남은 짧았지만 한편 그토록 길었다.

시사인/ 기자명김형민 (SBS Biz PD

 

대통령, 언론에 "우리도 핵무기 만들 수 있다"고 말한 이유는?

극우로 기우는 윤석열 정부의 위험천만 '불장난'...'자체 핵무장론' 띄우는 대통령과 여권

여권에서 '핵무장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과거'자체 핵무장론' 발언이재조명 받고 있다.'극우 여론'에 윤석열 정부가 호응하고 있는 모양새다. 4월 방미를 앞두고 '핵무장론', 혹은 '전술핵배치론'관련해여론을보는모습도감지된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방일을 앞두고 일본 <요미우리> 신문과 단독 인터뷰에서 '한국에서는 일부에서 핵보유론이 제기되고 있다. 핵확산 방지조약(NPT)과 미국의 '확대억지'에 대한 생각은'이라는 질문을 받고 "우리 과학기술에서는 얼마든지 단시간에 북한 이상의 핵무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 왜 만들지 않는가 하는 여론의 목소리 가 많이 있다"고 말해 주목을 받았다.

 

물론 전제는 "기본적으로 NPT 체제를 존중한다"고 했지만, '우리도 얼마든지 단시간에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뉘앙스의 말을 언론, 특히 일본 언론과 같은 외신을 통해 강조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일본인들이 보는 신문에 '우리도 핵무기 만들라는 여론이 있다'고 공언한 셈이었다.

 

여기에 윤 대통령이 지난 1'일본은 6개월이면 (핵무장이) 된다'는 발언을 한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동아일보>27일자 보도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국방부, 외교부 업무보고 당시 국내외 핵무장 여론에 대해 "우리 과학기술로 앞으로 빠른 시일 내에(자체 핵을 보유할 수 있다), 일본은 6개월이면 된다고 하고"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6개월' 발언은 당시 대통령실이 공개한 발언록에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한다. 4월 방미를 앞두고 '자체 핵무장' 여론에 불을 지피는 듯한 모습으로 해석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당시 업무보고 마무리 발언에서 "(북핵) 문제가 심각해지면 대한민국에 전술핵 배치를 한다든지 우리 자신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그렇게 되면 우리 과학기술로 더 빠른 시일 내 우리도 (핵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었다.

 

물론 윤 대통령은 <요미우리> 신문 인터뷰에서도 NPT 체제를 언급하며 핵무장론 자체에는 회의적 입장을 전했다. 그는 "확대 억제를 더욱 충실히 하고, 미국의 핵자산의 운용과 정보 공유에 있어서 어떠한 참가 기회를 보장되는지 등(을 검토해), 북한의 핵의 위협에 대처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우선 적인 판단"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서는 지속적으로 '자체 핵무장'을 강조하는 강경 발언이 난무하고 있다. 온갖 '극우적 발언' 등이 난무했던 전당대회 과정에서도 '핵무장론'이 나왔다. 지난 223TV 토론 과정에서 김기현 대표는 "윤석열 정부에선 우리가 주도하는 진짜 평화를 만들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핵무장을 통해 힘의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시적 핵무장' 등 비현실적 발언 등을 해 왔던 태영호 최고위원은 20일자 <매일신문> 인터뷰에서 "북한이 어제(19) 공중핵폭발실험을 했다""경제보다 안보가 우선이다. 또 종국엔 자체 핵무장으로 가야 한다. 미국을 설득해서 자체 핵무장을 통해 핵균형을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 놓았다.

 

1000만 서울시민을 책임지는 오세훈 서울시장도 지난 1"우리와 미국이 같이 펴고 같이 쓸 수 있는 '능동적 핵우산' 전략이나 독자적 핵무장까지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홍준표 대구시장 등도 '자체 핵무기 보유론' 등을 강조해 온 강경 성향의 인물들이다.

 

4월 방미를 앞두고 '자체 핵무장' 등을 주장해 온 국내 '극우 여론'불을 지피는 듯한 모습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여론에 호응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자체 핵무장론이나 전술핵 재배치는 '한반도 비핵화'의 대원칙을 허무는 것이어서 국내외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프레시안 박세열 기자

 

제주 4·3은 남로당 폭동강연에서울대생들 제주 4·3 사건 왜곡 강연 반대

서해수호의 날, 조선일보의 강제동원 피해자와 서해용사 유가족 갈라치기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324일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8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윤석열 대통령이 324일 제8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2연평해전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전으로 전사한 장병 55명의 이름을 부르며 추모의 뜻을 밝혔습니다. 윤 대통령은 조국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분들을 기억하고 예우하지 않는다면 국가라고 할 수 없다국민과 함께 국가의 이름으로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켜낸 위대한 영웅들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실 일본에 사과 요구하는데, 북한엔 왜 사과 요구 못하나

2연평해전은 2002629일 연평도 근해 북방한계선 부근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 고속정에 대한 북한 해군 경비정의 기습 공격으로 일어난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입니다. 천안함 피격 사건은 2010326일 백령도 서남방 해상에서 경계 작전 임무를 수행하던 대한민국 해군 소속 천안함이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한 사건입니다. 연평도 포격전은 20101123일 북한이 연평도를 향해 포격하자 대한민국 해병대가 피격 직후 북한 영토를 향해 대응사격을 가한 사건입니다. 정권에 따라 대북정책 기조는 변화를 거듭했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전이 북한의 무력도발로 일어난 사건이라는 일관된 입장을 표명해왔습니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324일 서면 브리핑에서 서해수호 도중 전사한 장병의 유가족들이 대통령실 관계자에게 일본에 사과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있는데 북한에는 왜 사과를 요구하지 못하느냐아들들의 희생을 퇴색시키지 않으려고 지금까지 큰소리 한번 내지 못했는데 이제야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대통령실이 해당 발언을 전한 것은 강제동원 배상안과 한일정상회담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했는데요. 경향신문, KBS, YTN, 뉴데일리, 연합뉴스, 뉴스1, 뉴스핌, 뉴스토마토, MBN, 매일경제, 이데일리, 조선일보, 세계일보가 해당 소식을 전했습니다.

 

조선일보 일본에 사과 요구한 사람들, 왜 북한엔 못하나

325, 서해용사 유가족 발언 왜곡해 강제동원 피해자와 서해용사 유가족 갈라치기 시도한 조선일보

 

다른 언론들은 제8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 풍경을 전하며 함께 전하는 수준이었지만, 조선일보는 대통령실 서면 브리핑 내용을 큰 제목으로 싣고 강조했습니다. <서해용사 유족들 일에 사과 요구한 사람들, 왜 북엔 못하나”>(325일 김동하 기자)에서 서해용사 유족들이 일본에 사과 요구한 사람들, 왜 북한엔 못하나라고 발언했다고 전한 것인데요.

 

대통령실이 전한 유가족 발언은 식민지배로 인한 한국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에 일본 정부가 당연히 사과하고 반성해야 하듯, 북한의 무력도발로 인한 서해용사와 유가족들의 아픔과 고통에 북한이 당연히 사과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 보도제목만 보면 서해용사 유가족들이 일본 정부에 식민지배 사과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향해 왜 일본엔 사과를 요구하면서 북한엔 사과를 요구하지 못하느냐며 꾸짖는 발언을 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합니다.

 

민언련 보고서 <518로 진보와 보수 싸움 붙이는 조선일보 칼럼 WORST 3>(2019726)518민주화운동으로 진보와 보수 갈라치기를 시도한 조선일보 칼럼을 비판한 바 있습니다. “(518을 천안함이나 세월호 등과 엮어) 어떤 세력은 518과 세월호를 지지하고, 또 어떤 세력은 천안함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서 이익을 얻는 쪽은 누구냐고 물으며 이런 갈등의 이익은 정치권과 그들과 결탁한 언론이 보면서 정작 고통 받는 건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들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는데요.

 

강제동원 피해자와 위안부 피해자를 비롯해 일본 정부의 식민지배를 겪은 사람들의 고통, 그리고 대한민국 서해를 수호하던 중 전사한 장병과 유가족들의 고통은 진보와 보수로 구분될 수 있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며 따라서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모두의 아픔과 고통은 충분히 공감받고 존중받아야 마땅합니다. 이념의 문제가 아니고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사안을 갈라치기하며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언론의 책무가 아닙니다. 피해자의 아픔을 이용한 왜곡과 선동일 뿐입니다.

 

- 모니터 대상 : 2023324~25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검색된 제8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 관련 기사

민주언론시민연합

 

강제지워 가해의 역사 희석독도는 고유 영토억지 강화

일 교과서 149통과

 

모든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령’ ”

일본 초등학생이 내년부터 사용할 사회 교과서에 독도(다케시마)는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억지 주장이 더욱 강화됐고, 조선인 강제동원 및 위안부 관련 문제에서는 강제성이 없었다는 역사수정주의 입장이 유지됐다. 임진왜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일본의 가해 역사는 희석시켰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28일 검정심의회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초등학교 교과서 149종의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일본은 우기고 일본 정부가 28일 발표한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에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강화됐다. 사진은 독도 설명에서 현행 한국에 점거돼라는 표현을 한국에 불법으로 점거돼로 바꾼 도쿄서적 지도 교과서. 연합뉴스

한국은 초치하고 일본 정부가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한 2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로 초치된 구마가이 나오키 주한 일본대사관 대사대리가 승강기에 오르고 있다. 성동훈 기자 zenism@kyunghyang.com

 

징병 표현은 병사로 참가

끌려왔다 동원으로 수정

의도적으로 강제성누락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초등학교 사회 과목에서는 일본 영토에 대한 교육이 더욱 강화된다. ‘일본 영토라는 표현만으로는 아동에게 오해를 줄 우려가 있으므로 영유권 주장에 관한 표현을 더욱 명확히 하라는 검정심의회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도쿄서적은 지도 교과서에서 “(독도가) 한국에 점거돼 일본은 항의를 하고 있다는 부분을 “(독도가) 한국에 불법으로점거돼 일본은 항의를 하고 있다로 수정했다. 사회 교과서에서도 한국이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다는 문구를 “ ‘70년 정도 전부터한국이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다로 바꿨다.

 

일본은 임진왜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가해국으로서의 역사도 대폭 희석했다. 초등학교 3~6학년이 사용할 사회 교과서 12종과 3~6학년이 함께 보는 지도 교과서 2종에서 일제강점기에 많은 조선인이 자발적으로 일본군에 참여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내용이 추가됐다.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 점유율 1위인 도쿄서적은 6학년 사회 교과서에서 조선인 남성은 일본군의 병사로서 징병됐다는 기존의 표현을 조선인 남성은 일본군에 병사로 참가하게 되고, 후에 징병제가 취해졌다로 변경했다. 교과서에 실린 사진 설명도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에서 지원해서 병사가 된 조선의 젊은이들로 바꿨다. 점유율 2위인 교육출판의 6학년 사회 교과서도 일본군 병사로 징병해 전쟁터에 내보냈다는 기술을 일본군 병사로서 전쟁터에 내보냈다로 교체해 징병이란 단어를 의도적으로 누락시켰다.

 

강제노동과 관련해서는 강제성을 희석한 내용이 추가됐지만, 내용이 크게 바뀌진 않았다. 도쿄서적은 다수의 조선인과 중국인이 강제적으로 끌려왔다는 기존의 기술에서 끌려왔다동원됐다로 교체했다. 그나마 도쿄서적은 강제’ ‘동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다른 교과서에는 그런 표현이 아예 없었다.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내용 아예 빼거나 대폭 축소

 

일본문교출판은 6학년 사회 교과서에서 올해 100주년이 되는 간토 대지진을 상세히 설명한 칼럼을 삭제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등의 헛소문이 유포돼 많은 조선인이 살해됐다는 내용이 사라지고, 관련 내용도 대폭 줄었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은 2008년부터 본격화했지만, 2014년 아베 신조 정권이 근현대사와 관련해 정부의 통일된 견해가 있는 경우 그것에 근거해 기술한다고 교과서 검정 기준을 바꾸면서 더욱 노골화됐다. 실제로 올해 일본문교출판은 6학년 사회 교과서 검정 신청본에서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적으면서 일본의 영토라는 기존 표현을 사용했으나 검정 과정에서 아동이 일본 영토에 대해 오해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라는 지적을 받고 일본의 고유 영토로 고치고서야 검정을 통과했다.

 

일본 정부는 20214종군위안부라는 말이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오해를 부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위안부라는 표현만 쓰게 했으며, 조선인을 강제로 노역시킨 것에 대해서도 강제연행또는 연행으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히며 징용을 쓰는 것이 적절하다고 각의에서 결정한 바 있다.

 

정부의 입장과 다른 기술이 검정 과정을 통과할 리 없는 만큼 교과서 업체와 집필진은 아예 정부 방침에 어긋나는 표현들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결국 정부 입장을 반영해야 하는 교과서 검정 기준이 바뀌지 않는 한 교과서 역사 왜곡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경향

 

 

국회와 헌재 위에 검찰이 있다?

'일국의 장관'은 헌법재판소에 지지 않는다

323일 헌법재판소는 한동훈 장관이 신청한 검찰 수사권 조정 권한쟁의 심판 결정을 내렸습니다. ‘위장 탈당등 법안 심사와 표결 과정에 위헌적 요소가 있지만, 개정안 입법 자체는 유효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이 수사권 및 소추권을 행정부 내 특정 국가기관에 독점적으로 부여하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검찰 수사권 축소는 검찰의 비대한 권한을 제한하기 위함이라는 점도 짚었습니다.

 

327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관련 공방을 이어갔습니다. 민주당은 정부가 검찰 수사권 복구를 골자로 하는 시행령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 이후 여소야대 국면에서 협치 대신, 국회 동의 없이 정부가 독자적으로 개정할 수 있는 시행령 정치를 선택했습니다. 국회가 통과시킨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시행령으로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 하며 무력화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헌재 결정에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되레 입법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을 사과하라며 맞섰습니다. 국회의 입법권은 물론이고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불복하는 모양새입니다. 국민의힘도 민우국(민변·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 카르텔이 내린 결정이라며 헌법재판소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한동훈 장관의 총선 차출론도 다시 떠오르는 모양새입니다. 서울 강남·송파·용산·종로 등 구체적인 출마 지역까지 거론됩니다. 국민의힘 일각의 기대처럼 한동훈 장관은 중도, 젊은 층(MZ 세대), 수도권 민심을 잡을 히어로가 될 수 있을까요

 

이재명 리더십 시험하는 개딸

더불어민주당이 327일 당 지도부 개편을 단행했습니다. 새롭게 지도부에 입성한 송갑석, 김민석, 한병도 의원은 비명계 혹은 친문계로 꼽힙니다. 하지만 총선 공천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무총장은 친명계로 꼽히는 조정식 의원을 유임시키면서 당내에서는 엇갈린 평가가 나옵니다. 이재명 대표는 큰 폭의 당직 개편을 요구하는 의원들이 만족할 만한 결과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당직 개편은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하는 건 아니다라고 답했습니다.

 

1인 시위, 문자 폭탄, 제명 요구 등 이른바 개딸로 불리는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공세 역시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정치인에게 지지층이란 필수적인 존재지만 이런 지지자들의 움직임을 두고 민주당에 지금 가장 필요한 건 개딸과 헤어질 결심”(박용진 의원)과 같은 평가도 나옵니다. 개딸을 태극기 부대에 비교하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나옵니다. 이같은 당 분위기는 당헌 80조 예외 적용으로 당 대표직을 유지하게 된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장일호 기자, 최한솔·김진주 PD

 

 

임은정 vs 한동훈, 누가 부적격 검사인가1

임은정 대구지검 부장검사가 2016년에 이어 두번째로 검사 적격심사에 회부됐다. 임 검사는 32일 법무부의 심층 심사를 받았고 가까스로 통과했다. 임은정 검사가 적격심사에 회부된 것은 검찰왕국이라 불리는 이 시대에 과연 누가 검사로서 적격이고, 누가 부적격인가?’하는 질문을 불러 일으켰다. 뉴스타파는 임은정 검사의 적격심사를 계기로 임은정과 그를 검사 적격심사에 회부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검사로서의 삶을 비교해보기로 했다.

도가니 검사' vs ‘엘리트 검사'

임은정은 2001년 검사로 임관됐다. 임은정의 회고에 의하면 당시 검찰의 조직 문화는 부장검사들이 스폰서의 카드를 들고 다니는 수준이었고, 여검사들은 성추행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고 한다. 2003년 경주지청에 근무하던 임은정은 부장검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할 뻔 하기도 했다. 임은정은 해당 부장검사에게 사표를 요구해 관철시켰다. 당시의 경험은 임은정에게 성폭력 피해자들의 심정을 이해하도록 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고 한다. 임은정은 성폭력사건 전담검사로서 실력을 인정받아 검찰총장상을 받기도 했고, 2009년에는 엘리트 검사들이 배치되는 법무부에 배치됐다.

 

한동훈도 2001년 검사가 됐다. 그는 일찍부터 수사 실력을 인정받아 특수부 수사를 많이 담당했다. 특히 2003년부터 대선자금 수사팀에서 일하면서 많은 특수통 선배들과 교분을 쌓았다. 한동훈은 2009년 권재진 민정수석에 의해 발탁돼 청와대 민정1비서관 산하 행정관이 된다. 한동훈은 그로부터 2년 간 (2009.9-2011.9) 청와대에 근무했다. 이 시기 정권 심층부에서 이명박 측근 권재진의 지휘를 받던 그가 검찰 수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한동훈은 법무부 장관 청문회 당시 검찰에 연락하는 역할을 맡지 않았다'고 진술했는데, 취재진은 그가 검찰 수사에 관한 연락을 많이 했다'는 증언을 입수했다.

 

한동훈은 2011년 권재진이 법무장관이 되면서 법무부 검찰과로 발령받는다. 그가 맡은 직책은 검찰과의 '1-0'이라 불렸는데, 이는 부장검사 이상의 인사를 담당하는 직무였다. 취재진이 접촉한 당시 법무부 검사는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 행정관 출신이 바로 법무부 검찰과로 와서 검사 인사를 담당하는 것에 일선 검사들 사이에 반감이 컸다고 했다. 참여연대 조사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4년까지 청와대에 파견 갔다가 검찰로 돌아온 41명 중에서 법무부 검찰과로 돌아온 검사는 권재진 민정수석 당시에 검찰과로 돌아온 조상준 전 국정원 기조실장과 한동훈 장관 2명 뿐이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권력자 입장에서는 한동훈 검사를 통해서 적절하게 검찰을 통제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그를 요직에 배치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죄구형 검사' vs ‘블랙리스트 관리자'

2012년 법무부는 우수한 여성 검사를 다수 발탁했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는데 임은정을 서울중앙지검에 배치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당시 보도자료를 기초한 사람은 한동훈 법무부 검찰과 검사였다. 임은정은 법무부에 있을 때 PD수첩 사건, 한명숙 사건 등 온갖 흉흉한 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이 어떻게 검찰을 바꾸는 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서울 중앙지검에 근무하면서부터 검사 게시판에 자주 글을 써서 검찰 내부에 좀 더 자유로운 토론을 조성해보려는 노력을 했다. 그러다 그는 2012년 말 윤길중 재심 사건을 맡아 무죄구형을 하면서 결정적으로 검찰 내의 이단아가 된다. 임은정은 당시 부장검사의 백지구형을 하라'는 지시를 따를 수 없다고 이의제기를 했다. 부장검사는 그를 직무배제 시키고, 다른 검사를 배정했다. 그러나 임은정은 재판정으로 가 검사 출입문을 닫아 걸어 검사들의 출입을 막은 후, 재판정에서 무죄구형을 한다. 이 사건으로 검찰은 임은정에게 정직 4개월 징계를 내렸다. 임은정은 징계취소소송 끝에 2017년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법원은 백지구형은 정당하거나 적법한 구형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2017년 문무일 총장의 과거사 사과 후, 검찰은 적극적으로 재심 사건에서 무죄구형을 하기 시작했다.

 

임은정의 무죄구형은 검찰의 변화를 가져왔지만 개인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 찾아왔다. 임은정은 2013년부터 법무부, 검찰의 집중관리대상 검사가 된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2012년 한동훈이 검찰과에 있을 때 집중관리대상검사 지침'을 만든다. 지침에 따르면 비위 발생 가능성이 농후하거나, 지침 지시를 위반하거나, 근무 태도가 불성실하거나, 정신질환이 있으면집중 관리대상이 될 수 있었다. 임은정이 제기한 국가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법원은 집중관리대상 지침이 위헌, 위법적인 지침이며 임은정을 집중관리대상 검사로 지정해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부당한 감시를 시도했다'고 판결했다. 임은정은 2016년 검사 부적격심사 대상이 됐는데 집중관리대상 검사로 지정된 것이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검사 평가자료 수집, 관리 등에 관한 지침'(대검예규 599) 대검 기획조정부장이 집중관리대상 검사 선정과 평가자료 수집에 관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예규는 기획조정부 산하 정책기획과(과장 한동훈)가 운영하고 있었다.

임은정은 당시 자신에 대한 평가자료를 수집하고 법무부에 송부하는 등 실무적인 역할을 당시 한동훈 대검찰청 정책기획과장이 했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 대검이 운영하던 검사 평가자료 수집, 관리 등에 관한 지침'은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이 집중관리대상 검사 선정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평가자료를 수집해 법무부에 송부하도록 하고 있다. 당시 한동훈은 기획조정부장 산하 정책기획과장이었는데, 바로 정책기획과가 검사 평가자료 수집, 관리 등에 관한 지침'을 이행하는 과였다. 따라서 한동훈 과장이 임은정을 집중관리대상 검사로 지정하고, 평가자료를 수집해서 부적격 검사로 심사에 회부되는 데 실무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것은 매우 논리적인 귀결이다.

 

지난 327일 국회에 출석한 한동훈 법무부장관

뉴스타파는 한동훈 장관에게 검사 블랙리스트(집중관리대상 검사)를 관리했는지, 임은정 검사가 리스트에 있었는지 직접 물었다. 한동훈 장관은 법무부에 서면으로 질의해달라고 요구했다. 뉴스타파는 28일 법무부로부터 서면 답변을 받았다.

 

법무부는 집중관리대상 검사제도는 명확한 지침에 기반하여 근무평정, 징계, 비위전력 등 객관적인 자료를 기초로 검사의 복무기강을 확립하기 위해 실시되었던 제도로, 정치적 이념이나 사상 등 자의적인 기준으로 특정인에게 불이익을 가할 목적으로 작성된 소위 문체부 등 블랙리스트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고 답했다. 법원(1)에서도 집중관리대상 검사 선정 및 관리지침과 제도의 목적의 정당성은 인정했고, 법무부는 향후 항소심에서 위 지침과 제도의 적법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법원은 임은정 검사가 낸 국가배상소송 1심에서 집중관리대상검사 관리 지침은 법률 명확성 원칙,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원고(임은정)의 공무담임권을 침해했다고 인정되므로 위헌, 위법하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피고(법무부)가 원고(임은정)을 집중관리 대상검사로 지정하고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집중감찰을 한 행위는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원고(임은정)은 상시적인 집중감찰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하면서 위자료 1천만원을 인정했다.

 

법무부는 또 한동훈 장관이 했음이 분명한 이른바 '검사 블랙리스트 관리자'로서의 역할에 대한 뉴스타파의 질의에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최승호/ 뉴스타파

 

 

'부산EXPO' 북항 재개발 입찰 담합 의혹공정위, 롯데건설 조사나섰다

정부가 2030년 부산EXPO 유치를 추진하고 있죠. 만약 유치에 성공하면 부산의 북항 재개발지구에서 열리게 됩니다. 현재 공사가 진행중인데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이곳에서 롯데건설의 입찰 담합 의혹을 두고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최연수 기자]하늘에서 바라본 부산 북항에 공사가 한창입니다.

연안부두 일대 46만평을 재개발하는 '북항 재개발'은 총 사업비가 9조원에 이릅니다.

롯데건설은 노른자위로 평가받는 상업지구 3구역의 시공을 맡아 공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달 초, 이 공사를 하고 있는 롯데건설에 대해 현장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2018년 해당 구역 입찰을 담당했던 당시 롯데건설 팀장을 불러 조사했습니다.

 

당시 입찰에선 한 회사의 독점을 막기 위해 컨소시엄을 바꿔가며 입찰에 참여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공정위는 롯데건설이 특정 구역 시공사로 입찰에 참여하면서 다른 구역에서도 효성중공업과 짜고 몰래 입찰에 참여했는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사전에 공모했다면,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보는 겁니다. 현재 롯데건설은 효성중공업이 따낸 구역의 지분 70%를 나눠 받아 단독으로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A/북항 재개발지구 3구역 현장반장 : 시공사는 롯데지요. 효성이요? 저는 없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롯데건설은 "앞서 검찰이 무혐의 처분한 사안"이라면서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공정위는 사전에 공모했다는 의혹이 담긴 녹취록 등을 확보하고 관련자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앵커]담합 의혹의 핵심은 업체들이 사업을 낙찰받기 이전부터 미리 짰는지 여부입니다. 그런데 롯데건설 담당 팀장이 4년 전 검찰 조사에서는 '사전에 합의했다'고 하고서는 최근에 공정위 조사에서 말을 바꿨습니다.

 

[유선의 기자]검찰이 2019년 작성한 '내사사건 처분결과'입니다. 롯데건설 팀장이 201810"효성중공업에 '낙찰을 받으면 공동 시공을 하자'고 제안했고, 효성이 받아들였다"고 진술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해당 팀장은 최근 공정위 조사에서 "효성중공업이 낙찰을 받은 직후인, 201811월에 합의해 시공에 참여했다"고 진술했습니다.

 

4년 전 검찰 진술과 '합의 시점'이 바뀐겁니다. 이 공사를 발주한 부산항만공사 측은 롯데건설 팀장의 진술에서 달라진 '합의 시점'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효성중공업이 낙찰을 받은 후에 롯데건설이 합의해 들어왔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롯데건설이 발주처 모르게 효성중공업과 사전에 짜고 2개 구역 입찰에 모두 참여했다면, 담합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사 측은 업체들끼리 이런 식으로 몰래 짜고 '껍데기' 컨소시엄을 만들어 입찰에 중복 참여한다면, 경쟁 입찰 자체가 망가지기 때문에 이를 엄격하게 금지시켰다고 설명했습니다.

 

공정위는 당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최근 부산항만공사 측에 2018년 입찰 관련 자료를 요청해 받아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JTBC는 롯데건설 측에 해당 팀장의 진술이 왜 바뀌었는지 물었는데,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해 왔습니다.

JTBC 유선의 기자

소득보다 빨리 늘어난 직장인 대출 평균 5000만원 넘었다

2021년 임금근로자 부채

소득보다 빨리 늘어난 직장인 대출 평균 5000만원 넘었다

전년보다 340만원 증가

통계 작성 이후 최다 금액

 

2021년 직장인이 받은 평균 대출 금액이 처음으로 5000만원을 넘어섰다. 저금리에 부동산·금융 자산 가격 상승세가 맞물려 투자를 위한 빚투가 늘어난 탓으로 풀이된다. 대출 증가율은 소폭 둔화됐지만 빚이 증가한 속도는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빨랐다.

 

28일 통계청이 낸 ‘2021년 일자리행정통계 임금근로자 부채를 보면 202112월 말 기준 임금노동자들이 금융기관에서 빌린 평균 금액은 5202만원으로 전년 대비 7%(340만원) 늘었다. 직장인 평균 대출액이 5000만원을 넘어선 건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17년 이후 처음이다. 이번 통계는 사업자 대출을 제외한 전세·학자금·생활비 대출 등 개인 명의 대출만 집계했다.

 

대출액 증가는 2021년 당시 상승세였던 자산 시장과 저금리가 이끌었다. 주택·주식 투자 열풍과 1%대 낮은 금리가 맞물려 투자 목적으로 낸 빚이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대출 종류별로 보면 주택 외 담보대출(1731만원)11.4%로 가장 많이 증가했고, 신용대출(1301만원)과 주택담보대출(1953만원)이 각각 4.9%, 5.6% 늘었다. 주택 외 담보대출은 29세 이하 연령서 증가 폭(22.8%)이 가장 컸고, 30(15.3%), 40(11.5%)에서도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통계청은 당시 전세가격 상승에 따른 전세 관련 대출 확대가 주택 외 담보대출 증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주택 외 담보대출은 예·적금 담보대출, 유가증권 담보대출, 토지·상가 담보대출, 보금자리론, 학자금대출, 전세자금대출 등이 포함된다.

 

대출 증가율만 놓고 보면 역대 최고치를 찍었던 전년(10.3%)에 비해 소폭 둔화됐다. 금융당국이 20217월부터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대출 규제를 강화한 영향으로 보인다.

 

차진숙 통계청 행정통계과장은 대출 규제 강화로 연체 가능성이 낮고 상환 능력이 높은 대상으로 대출이 이뤄졌다취약계층에 대한 원리금 상환유예 조치 등 각종 대책이 나오면서 연체율도 하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은행권 대출 규제 강화 여파로 비은행권 대출이 급증했다. 2021년 비은행 평균 대출은 1850만원으로 전년 대비 10.1%(170만원) 늘어난 반면 은행 평균 대출은 5.4%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저소득 임금노동자의 비은행 대출 비중이 두드러졌다. 소득 3000만원 미만 임금노동자는 전체 평균 대출액 2496만원 가운데 1222만원(49%)을 비은행권에서 받았다. 소득 30005000만원 미만은 37%, 50007000만원 미만은 31%, 70001억원은 26%를 비은행에서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소득 증가율은 대출 증가율에 미치지 못했다. 2021년 임금노동자의 월평균 소득은 333만원으로 전년 대비 4.1%(13만원) 늘었다. 2022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전국 1인 이상 가구의 실질소득은 1.1% 감소했다.

경향 반기웅 기자

 

'일본 퍼주기' 윤석열, 북한에는 '단 돈 1''퍼주기' 말라? 실제 퍼준 적도 없다

[분석]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 중 가장 많이 '퍼준' 정부는 이명박 정부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에 '퍼주기'를 하지 말라며 "단 돈 1"도 주지 말라고 통일부에 당부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지난해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의 담화를 통해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을 거부한 바 있다. 받을 생각도 없는 상대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겠다는 말을 굳이 꺼낸 배경을 두고, 북한에 대한 혐오 정서 조장을 통해 지지층의 결집을 이끌어내려는 국내 정치적 수요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28일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윤 대통령이 비공개 국무회의 중 권영세 장관으로부터 북한인권보고서 관련 보고를 들은 후 "북한 인권의 실상을 공개하는 것은 국가 안보에도 매우 중요하다. 국가의 정당성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주기 떄문"이라며 "통일부는 앞으로 '북한 퍼주기'는 중단하고 북한이 핵개발을 추진하는 상황에서는 단돈 1원도 줄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하라"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우선 윤 대통령의 이 발언은 사실과 다른 측면이 있다. 2022년 정부는 당국 차원에서 북한에 1원도 준 적이 없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남한에서 북한으로 반출된 대북지원은 7236000만 원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모두 민간단체에서 실시한 지원이었다.중단해야'퍼주기'자체를하지않고있는것이다.

 

정부가장많이퍼준정부는이명박정부

'퍼주기'라는 것의 기준이 무엇인지 명확하지는 않으나, 국가통계인 '인도적 대북지원 현황 총괄'에 따르면 2011년 이후 남한 정부 차원에서 북한에 수십만 톤의 식량이나 비료 등 대규모의 지원은 고사하고 2018년 한 해를 빼고 직접 지원한 적이 없다. 2018년의 경우 12억 원의 직접 지원이 있었으나 이는 산림병충해를 막기 위한 약제였다.

 

물론 정부가 국제기구나 민간단체에 기금을 지원하고 이 기구나 단체가 북한에 지원함으로써 우회적인 지원도 가능하나, 이 역시 이명박 정부 이후로 그 규모가 계속 축소돼왔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첫 해에 438억 원을 정점으로 2009년에는 294억 원으로 축소됐고 2010년의 경우 당국차원의 지원이 183억 원, 민간단체 기금 지원이 21억 원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2011년 이후로는 200억 원을 넘겨본 적이 없다.

 

2011~2014년은 국제기구를 통해서만 지원이 집행됐는데 1165억 원, 1223억 원, 13133억 원, 14141억 원 이었다. 2015년의 경우 민간과 국제기구 합해서 140억 원을 지원했고 2016년에는 2억 원에 불과했으며 문재인 정부 집권 첫 해인 2017년에는 윤 대통령의 말대로 '1'도 지원되지 않았다.

 

이후 2018년 위에서 언급한 것 외에 다른 지원은 없었고 2019106억 원, 2020125억 원, 20215억 원 등으로 이명박 정부 시기의 지원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대통령실 및 정부 주요 인사가 이명박 정부 때 인사들로 채워져 사실상 이명박 정부 시즌 2의 인상이 강한 현 윤석열 정부에서 북한에 '퍼주기'를 하지 말라고 하지만, 정작 지난 세 정부 중에 가장 많이 북한에 '퍼준' 정부는 이명박 정부였다.

 

이명박 정부 때는 북한의 핵이 지금처럼 고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원이 가능했던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의 1차 핵실험은 2006, 2차 핵실험은 2009년이었다. 핵이 고도화되지 않았을 뿐, 핵과 관련한 이슈가 아예 없었던 시기는 아니었다. 결국 윤 대통령이"'북한 퍼주기'는 중단"하라고지시했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에는 중단할'퍼주기'없는상황이다.

 

북한, 윤석열 정부의 '지원' 진작에 거부

윤 대통령의 이날 발언이 공허한 또 다른이유로 이미 지난해 81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당 부부장이 본인 명의의 담화를 통해 윤석열 정부의 지원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김 부부장은 이날 담화에서 "'담대한 구상'으로도 안된다고 앞으로 또 무슨 요란한 구상을 해가지고 문을 두드리겠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절대로 상대해주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혀둔다"라고 못을 박았다.

 

그는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라며 "북남문제를 꺼내들고 집적거리지 말고 시간이 있으면 제 집안이나 돌보고 걱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담대한 구상'은 윤 대통령이 지난해 8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밝힌 내용으로 북한이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그에 맞춰 대규모 식량 공급, 발전 및 송배전 인프라 지원, 항만과 공항 현대화 프로젝트 등 각종 지원을 실행하겠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북한은 '담대한 구상'에 대한 거부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인도적 지원을 정치적 상황을 포함한 제반 여건과 연계시켜 거부하곤 했다. 가장 최근인 2020년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창궐한 이후에는 사실상 외부로부터의 물자 반입을 차단시켰다.

또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인 2017년의 경우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을 구실로 민간단체의 대북지원을 거부했으며 2014년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며 한동안 지원을 받지 않았었다.

 

이처럼 북한은 외부의 지원, 특히 '인도적' 지원에 대해 여러 조건을 붙여 수령 여부를 판단해 오고 있다. 이같은 북한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정부가 '퍼주기'를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해도, 윤석열 정부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북한이 이를 받을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인 예측이다.

 

이렇듯 이명박 정부 이후 남한 정부가 북한에 '퍼주기'를 한 적도 없고, 현재 남북관계에서 북한이 남한의 지원을 받을 가능성도 극히 낮은 상황에서 뜬금없이 등장한 윤 대통령의 '퍼주기' 발언은, 북한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가지고 있는 지지층들을 결집시키기 위한 국내 정치적인 수요에 의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시기적으로 봤을 때도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대법원으로부터 받은 확정 판결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피고인 일본 기업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입장문을 발표하는 등 일본에 '퍼주기'를 하고, 1주 최대 노동시간 관련해 오락가락하는 입장을 보이면서 지지율에 대한 위기감을 느낀 윤석열 정부가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북한 혐오' 카드를 꺼내든 것이라는 분석이 타당해 보인다.

 

대통령이 국내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북한을 이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적어도 대통령의 주장이 정확한 사실에 입각해 있는지, 그리고 자신이 했던 말 또는 원칙과 배치되지 않는지 정도는 살펴보고 말하는 성의는 보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 재임 시절 대통령의 발언을 실시간 '팩트 체크'하면서 검증했던 미국 언론사들의 전철을 밟고 싶지는 않다. 이건 국격의 문제이기도 하다.

프레시안 이재호 기자

 

 

김건희 여사 일괄 무혐의’, 주가조작 수사에 영향 줄까

검찰이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들에 대해 일괄 무혐의처분했다. 남은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관여 의혹. 그런데 무혐의 처분된 사건 일부가 주가조작 의혹과도 연결된다.

검찰이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를 향한 긴 침묵을 깼다. 김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들에 대한 수사 결과를 최근 무더기로 쏟아냈다. 처분 결과는 일괄 무혐의였다. 검찰 손에 남은 김 여사 관련 형사 사건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하나다. 그런데 무혐의 처분된 사건 일부는 주가조작 의혹과 가깝게 얽혀 있다. 이번 처분 결과가 주가조작 의혹 사건 처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장검사 김영철)32일 이른바 코바나컨텐츠 협찬 의혹도이치파이낸셜 주식 저가 매수 의혹’, ‘삼성전자 7억원 뇌물 의혹등에 대해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20209월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과 황희석 전 열린민주당 최고의원 등이 검찰에 고발한 지 25개월 만이다.

 

앞서 김건희 여사는 전시 기획사 코바나컨텐츠를 운영하면서 전시회를 열고 기업들로부터 부정한 협찬을 받았다는 의혹을 샀다. 이번 검찰 처분 대상이었던 코바나컨텐츠 주관 전시회는 2018알베르토 자코메티전2019야수파 걸작전’. 각각 기업 10곳과 17곳이 협찬했다. 당시 야수파 걸작전협찬사 중 일부는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윤 대통령은 2018년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냈다. 2019년에는 검찰총장으로 임명됐다. 유력한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에게 수사 편의를 바라고 보험용 협찬을 했다는 내용이 고발장에 담겼다.

 

시사IN이 사세행으로부터 입수한 검찰의 불기소 이유서를 보면, 검찰은 기업들이 코바나컨텐츠에 협찬을 하는 대신 전시회 입장권과 광고 효과 등 반대 급부를 얻어간 정상 협찬금이라고 판단했다. 협찬한 기업 일부(도이치모터스, 컴투스·게임빌(현 컴투스홀딩스), 신안저축은행, 삼성카드)가 당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는 의혹은 사실로 확인됐다. 모두 불기소 처분을 받고 사건이 종결됐다. 검찰은 당시 수사팀과 협찬사 등에 대한 소환과 강제수사 등을 벌인 결과 사건은 정상적으로 처리됐다라며 형사사건 등과 관련한 직무 관련성이나 부정한 청탁, 대가성을 판단할 만한 증거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도 밝혔다.

 

검찰은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파이낸셜 주식 저가 매수 의혹에 대해서도 정상 거래라는 결론을 내렸다. 도이치파이낸셜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의 전주였다는 의혹이 불거진 도이치모터스의 계열사다. 사세행은 김 여사가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으로부터 대량의 도이치파이낸셜 주식을 시세보다 낮은 헐값으로 사들여 금전적 특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2013년과 2017년에 두 차례 이뤄진 김건희 여사의 주식 거래를 수사했다. 불기소 이유서를 보면, 김 여사는 20171, 20억원 규모의 도이치파이낸셜 주식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김 여사는 250만 주를 1주당 800원에 샀다. 비슷한 시기 다른 주주들은 이보다 높은 가격에 주식을 매수했다. 20168미래에셋캐피탈은 주식을 1주당 1000원에 샀고 우리들휴브레인201621주당 1500원에 진행한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검찰은 김건희 여사가 산 주식과 미래에셋캐피탈, 우리들휴브레인이 산 주식은 종류가 다르다고 밝혔다. 김 여사가 매수하기로 계약한 주식은 보통주, 다른 주주들이 매입한 주식은 수익 보장에 의결권까지 부여된 우선주였다는 것이다.

 

김건희 여사의 2013년 주식 거래도 정상 거래로 검찰은 판단했다. 김 여사는 20137월 권오수 전 회장으로부터 도이치파이낸셜 주식 40만 주를 1주당 500, 2억원에 샀다. 검찰은 “20137월 김 여사가 유상증자에 참여해 보통주를 액면가에 인수했다. 다른 참여자들도 같은 금액으로 주식을 매입한 사실이 인정된다라고 밝혔다.

 

 

검찰은 김건희 여사가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가운데)으로부터 도이치파이낸셜 주식을 저가 매수해 특혜를 봤다는 의혹에 대해 '정상 거래'라고 판단했다.김흥구

 

삼성전자 7억원 뇌물 의혹2010년 삼성전자가 김건희 여사 소유의 서울 서초구 아크로비스타에 7억원의 전세권 설정 계약을 하고 4년간 빌려 쓴 것이, 당시 대검찰청에서 일하던 윤 대통령에 대한 청탁이 아니냐는 게 골자다. 검찰은 삼성전자 내부 자료와 계좌 거래내용 등을 분석한 결과 김 여사가 전세금 7억원을 받았다가 계약 해지 후 이를 돌려줬다고 판단했다. 당시 같은 평형대 전세 시세도 7억여 원이었고, 삼성전자 외국인 임원이 실제로 사택으로 사용했다는 점을 볼 때 뇌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세 가지 의혹 모두 무혐의

검찰은 이번 처분으로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형사사건을 대부분 털어냈다. 남은 사건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관여 의혹이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코바나컨텐츠 협찬 의혹도이치파이낸셜 주식 저가 매수 의혹무혐의 처분이 주가조작 의혹 수사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동안 김건희 여사와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은 경제적 이익을 주고받았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김 여사는 대규모로 도이치모터스와 도이치파이낸셜 주식을 샀고 시세 차익을 냈다. 권 전 회장은 코바나컨텐츠 전시회에 빠짐없이 협찬했다. 그는 도이치모터스 1심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김 여사 전주의혹은 부인하고 있다. 김 여사 측도 단순 투자였다는 입장이다. 검찰의 무혐의 처분으로 주가조작 관여 동기 또는 대가일 수 있는 정황 일부도 탄핵된 만큼 주가조작과 관련한 김 여사 수사 결과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게 법조계 분석이다.

 

검찰은 무더기 무혐의 처분과정에서, 기업과 관계자 등을 압수수색하고 소환조사를 하면서도 의혹의 또 다른 핵심 관계자인 김 여사는 한 번도 소환하지 않고 서면조사만으로 수사를 끝낸 사실이 드러나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국회에서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코바나컨텐츠 협찬 의혹 등과 관련해 특검이 추진 중이다. 특검 법안을 낸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의견을 맞춰가고 있다.

 

조만간 검찰이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관여 의혹에 대한 수사 결과를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검찰은 수사 인력을 보강하고 김 여사 관여 의혹을 확인하고 있다. 주가조작 가담자들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김건희 여사 소환조사 가능성도 열어뒀다. 검찰 관계자는 최근 수사 대상이나 방식에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겠다. 김 여사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검찰 안팎에선 봐주기 수사’ ‘부실 수사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고 윤석열 대통령의 특검 거부 명분에도 힘을 싣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시사인 문상현 기자

 

원하는 동반자와 살아갈 권리, 그렇게 가족이 된다

나영정 가족구성권연구소 정책팀장

한국에서 개인이 가족에 의존하지 않고 살기란 쉽지 않다. 가족을 중심으로 거의 모든 사회·경제 제도가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가족에 돌봄·양육·부양·간병 등 사회 재생산과 관련된 대부분의 책임을 부과해놓고 많지 않은 혜택도 가족을 통해 배분한다. 이것은 태곳적부터 그랬다기보다 국가 주도 경제 발전에 편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가족 보호의 밖에 있는 사람이 늘어나고 인구 위기가 운위되는 걸 보면, 그 가족을 둘러싸고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해 보인다. 문제의 핵심을, 소임을 다한 제도적 가족주의에서 찾아야 한다는 얘기를 오래전부터 해온 사람들이 있다. 가족구성권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들은 가족 해체론자가 아니다. 다른 여러 이유로 가족이 이미 해체되기 시작한 현실을 직시하고 다양한 가족을 적극 끌어안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지난 20년간 가족 형태는 크게 변했다. 2000년 전체 가구 중 15.5%였던 1인 가구는 202133.4%로 늘었다. 1·한부모·부부 2인 등 다양한 형태의 가구(53%)가 부부·미혼자녀(대가족 포함)로 이뤄진 가구(47%)를 앞질렀다. 하지만 국가는 여전히 부부와 미혼자녀로 이뤄진 가족을 중심으로 세상과 정책을 보는 관점을 고집한다. 그 결과 가족을 경유해 제공되는 사회복지 시스템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시설에 수용된 장애인이나 아동, 미혼모, 최근 건강보험공단 상대 재판에서 승소한 소성욱·김용민씨 같은 동성 부부가 대표적 사례다. 15년 이상 가족구성권 운동을 해온 나영정 가족구성권연구소 정책팀장은 그러한 구멍이 소수자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라고 했다. 정상가족을 위한 혜택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엔 이성 동거 가구, 중년 1인 가구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나 팀장을 지난 23일 서울 은평구 사회경제적허브센터에서 만났다.

 

- 개인적으로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요.

“40대를 지나는 제게도 계속 질문거리입니다. 유년 시절 원()가족으로부터 보호받아야 되는 상황에서, 이것이 주어진 관계라는 점에 답답함을 느꼈어요. 거기서 빨리 벗어나 내가 선택한 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원가족이 제게 베푼 돌봄과 부양의 가치를 인정해요. 다만 지금은 그걸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에게 돌려줄지 고민해요.”

 

- 스스로 가족을 구성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하우스메이트,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사는데요. 제 애인은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조금 이상한 형태의 가족이라 할 수 있죠. 집에는 고양이를 함께 돌보고, 밥도 같이 먹고, 집안일도 같이하는 하우스메이트가 있는데, 가장 친밀한 사람은 멀리 있는 상황이에요. 원가족과도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요. 그 모두를 가족으로 부를 수 있다고 봅니다.”

 

- 가족구성권은 무엇인가요.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살아갈 권리예요. 2005년 호주제 폐지 후 대체입법을 논의하며 나온 개념인데요. 저는 당시 장애여성 공감이란 단체에 있으며 시설 문제에 관심을 가졌어요. 가족이 거부하는 장애인들이 결국 시설에 수용되는데, 이들이 시민으로 출현하지 못하도록 막는 게 결국 정상신체를 중심으로 한 정상가족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고 봤어요. 어쨌든 대체입법 논의 중에 진보진영이 주장한 출생·국적·혼인 등 목적별 신분등록제는 채택되지 못했고, 지금처럼 통합된 가족관계등록 제도가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가족을 경유해야만 내가 누구인지, 살아 있는지, 한국인인지 증명할 수 있죠. 가족관계등록부를 보면 본인·배우자·자녀가 죽 뜨는데, 이게 바로 가족이고 당신 신분을 증명하는 거라고 계속 상기시켜 주거든요. 호주제 폐지 후 주류 여성운동은 다른 의제로 넘어갔지만, 정상가족 틀에 맞지 않아 불화하는 존재들은 다시 운동을 시작해야 했어요.”

 

그래서 2006년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 제안으로 가족구성권 연구모임이 꾸려졌다. 프랑스 시민연대계약법(PACs) 등 해외 사례를 연구하고 국내 가족 관련 법제·인식을 추적했다. 연구모임은 2019년 가족구성권연구소로 확대됐다. 한국 가족의 독특성은 민법 779조에 집약돼 있다. 호주제 폐지 후 신설된 이 조항은 가족이 무엇인지 정의하지 않은 채 가족 범위를 배우자·직계혈족·형제자매,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배우자의 직계혈족·배우자의 형제자매로 나열했다.

 

가족을 혼인과 혈연으로 이뤄진 관계로만 본다는 규정이 생긴 거죠. 민법에 이런 규정을 둔 나라가 많지 않아요. 다른 법률에서 이 민법 조항을 준용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 범위 밖 관계들을 배제하는 결과로 이어졌어요. 저희 연구소가 2019년 국내 1400개 법률 중 가족을 언급하는 240여개 법률을 살펴봤어요. 1차적으로 돌봄과 부양 책임이 가족에게 있는데 그게 어려운 경우엔 국가가 보조하겠다는 게 굉장히 많았어요. 가족을 유지하는 것이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고, 그걸 따라야만 올바르고 정상적인 시민으로 간주하겠다는 거죠.”

 

📌[플랫]비혼공동체와 안정감

📌[플랫]피 한 방울 안섞인 상삼리 4인방의 같이 사는 재미

동성 커플 소성욱·김용민씨가 지난 221일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달라며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뒤 기뻐하고 있다. 김희진 기자

 

- 이번 동성 부부 판결은 그 공고함에 균열을 낸 사건이군요.

소수자 평등권 차원에서 큰 진전입니다. 동성혼 법제화 운동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겁니다. 하지만 여기에 그쳐선 안 됩니다. 왜 건강보험을 부양자-피부양자 관계를 따져서 줘야 하는지 물어야 해요. 소득 없는 사람도 과도한 지역 가입자 비용을 냅니다. 직장 가입자 중심으로 건보 제도가 설계돼 있어 생긴 불평등이죠. 동성 부부 둘 다 지역 가입자라면 어떻게 할 건가요. 둘 다 정규직이라서 부양자·피부양자 관계를 인정 받을 실익이 없다면 이 차별은 중요하지 않을까요. 정규직 가장·배우자·자녀라는 가족 모델과 그걸 토대로 한 기업 복지로 인해 이런 차별이 생겨난 겁니다. 부양자·피부양자 관계를 증명하지 않아도 건보료를 자기 소득에 맞게 내고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죠.”

 

📌[플랫]동성커플 건강보험 자격인정 세상은 변하는 중, 당연한 평등권 인정받았다

가족을 통한 사회 운영은 점점 더 도전받고 있다. 1인 가구 증가가 잘 보여준다.

예전에 1인 가구는 결혼이 늦어지는 청년층 얘기였는데 지금은 이혼하든 사별하든 애초 결혼하지 않든 비혼 비율이 40~64세에서 높아졌죠. 1인 가구 중 이 연령대가 40% 가까이 됩니다. 더 큰 문제는 청년과 노년 1인 가구입니다. 이들은 소득 면에서 중년보다 열악해요. 중년 세대는 정규직 경력이 있거나, 프리랜서라도 자신을 건사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요. 그에 비해 처음부터 나쁜 일자리에서 시작해 계속 혼자 살아가는 청년 세대는 중년 비혼들만큼 만족감을 누릴 수 없을 거예요. 또 노인 빈곤율·자살률이 높은 이 나라에서 노년 1인 가구도 존엄하게 살지 못하는 것 같아요.”

 

- 왜 혼인에서 이탈하는 걸까요.

내가 원가족의 돌봄을 받아 성장한 것은 알겠는데 부모가 나이 들었을 때 그걸 내가 모두 갚아야 한다는 압박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부모들도 노후에 자녀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길 원치 않을 거예요. 부모들도 공적 지원 제도 안에서 자녀들과 역할을 배분한다면 모두들 지금보다 여유가 생길 거고요. 많은 사람이 결혼을 두 사람의 만남이 아니라 내 가족이 전부 심사받는 느낌으로 해야 하는 것도 원치 않아요.”

 

- 혈연·혼인에 의하지 않은 비친족 가구 증가는 잘 드러나지 않는 듯합니다.

통계 내는 방식 때문입니다. 저도 인구주택총조사에 응하면 1인 가구로 나오거든요. 누군가와 함께 살고 있고, 돌봄과 생계 부담을 나누고 있음에도 그래요. 1인 가구, 동거 가구, 시민 결합에 대한 지원 정책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없기 때문에 통계를 내지 않는 겁니다. 현실에 등장한 새로운 유형의 가구를 알아야 사회가 보호해야 할 사람들을 파악할 수 있어요.”

 

- 비친족 가구는 어떤 차별을 받나요.

연구소에서 조사해보니 가장 많이 나온 것은 의료 관련이에요. 내가 이 사람과 함께 살고 있고 서로 중요한 사람인데, 입원·수술 동의를 할 수 없고 중환자실에 못 들어가는 거죠. 내가 수년간 간병을 했음에도 연락도 안 되던 가족이 갑자기 나타나면 나는 배제되는 거죠. 그렇게 해서 사랑하던 사람이 죽어도 애도의 주체가 될 수 없어요. 주거 안정성도 문제예요. 가족 안에 있다고 주거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아주 조금 있는 주거복지 정책에 접근하려 할 때 가족이 아니면 차단되는 게 많아요. 임대아파트에 이성 동거나 동성 커플은 함께 신청할 수 없고, 주택자금 대출을 받을 때도 불이익이 있어요.”

 

- 어떤 입법 조치가 필요할까요.

민법 779조를 시급히 삭제해야 합니다. 그 가족 범위 밖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으니까요. 동성혼 차별을 해소하되, 결혼하든 안 하든 결혼에 수반된 ‘1000가지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차별금지법, 생활동반자법 제정도 중요하고요. 내가 죽게 됐을 때 연명의료 결정권, 재산 처분권 등을 원가족이 아니라 내가 지정한 1이 할 수 있게 하는 제도도 절실합니다.”

 

- ‘내가 지정한 1은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요.

개별 법에 명시하면 됩니다. 국회의원들이 이미 자기들 관련된 건 그렇게 하고 있어요. 공직선거법에 예비후보자의 배우자와 직계존비속만 명함을 돌릴 수 있었는데, 여기에 배우자가 없는 경우 예비후보자가 지정한 1이 할 수 있도록 했어요. 정치인들은 자기 이익이 걸린 문제엔 물샐 틈이 없죠. 이 제도는 국가 비용이 발생하지 않으면서도 시민 복리를 증진하고 사회적 위험을 줄일 수 있는데 도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든 아동 기본권 보장

공감대 강한 사회일수록 출생률 올라가

젊은층 혼인서만 해법 찾는 정치권이 문제

 

그는 가족구성권 운동이 가족 범위를 늘려나가는 접근이라기보다 권리 배분을 가족 아닌 개인 단위로 하는 데 방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가족인지 아닌지 계속 판단해야 한다면 배제되는 사람이 계속 나올 거예요. 그래서 이 운동을 동성 부부 문제로 국한하지 않게 되는데요. 이성도 동성도 결혼하지 않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환영받는 시민은 비싼 결혼식 비용을 대고 집을 살 수 있는 소비 능력이 있는 시민들이지 그게 동성인지 이성인지 가리지 않아요. 동성 부부도 돈이 많다면 결혼이 환영받을지도 몰라요. 물론 동성 부부에 대한 명백한 차별을 해소해야 하지만요. 돌봄·부양·간병·양육은 그걸 가족으로 이름 붙이든 안 붙이든 사회적 재생산을 위해 필요해요. 최대한 많은 관계를 가족으로 호명하기보다 실제 그런 행위를 하고 있는 다양한 관계들을 사회적으로 인지하고 지원하는 것이 필요해요. 그게 다양한 곁이 가능한 사회로 가는 길입니다.”

 

- 인구 위기 대응에 배치되진 않나요.

한국인 머릿속에는 출생도 죽음도 가족 안에서 하는 게 정상이었죠. 그런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지 않아요. 저출생·고령화 해법이 완전히 달라져야죠. 하지만 달라진 적이 없어요. 계속 젊은층을 혼인시켜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만 하고 다른 해법에 관심을 안 기울이는 정치권 문제가 가장 큽니다. 우리가 이미 소개한 해외 사례가 많아요. 진보적인 가족 정책이 시행된 나라에서는 많은 아동이 결혼 밖에서 태어나더라도 차별받지 않고 시민으로서 권리를 누려요.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든 아동은 기본권을 누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강한 사회일수록 출생률이 올라갑니다. 그런데 한국은 가족 밖 아동을 정말 말도 안 되게 대접해왔어요. 시설에 보내거나 해외입양 보내거나, 그 존재를 아예 없애는 방식을 취했어요.”

 

- 낙태죄 헌법불합치 후 4년이 지나도록 국회는 후속 입법을 하지 않고 있는데요. 정치권에 얼마나 기대할 수 있을까요.

경제 중심의 국가 기조와 인구 정책이 문제입니다. 국가로선 현 질서를 유지하는 게 기득권에 도움이 될 겁니다. 돌봄을 사회화하면 국가 책임이 커지게 되는데, 그걸 최대한 저지하는 역할을 정치권이 하고 있어요. 정치권이 굉장히 시장 논리로 움직여요. 진보정당 일부를 제외하고,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죠. 이러한 경제 논리가 가족 생활과 재생산 영역을 파괴해왔어요. 그게 지금의 가족 문제이고 인구 문제입니다. 낙태죄 논란 때도 봤지만 생명을 정말 위계화하고 도구화하잖아요. 정치가 어쩌면 이렇게 일반 시민의 삶에 관심이 없을 수 있을까요. 모든 법을 만들 때 설득 논리가 경제에 이롭다는 걸로 수렴됩니다. 이번에 한 의원이 발의한 외국인 가사도우미 법안을 보며 깊은 절망감을 느낀 여성들이 많아요. 그동안 우리가 해온 돌봄과 아이 양육을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길래 저렇게까지 할까 싶을 거예요. 그런 식으론 저출생 해결 못해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며 서로 돌보고, 출산이나 입양으로 얻은 자녀를 키우는 것, 혼자 살더라도 편한 사람들과 자유롭게 교류하며 사는 것. 이 모든 게 꼭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지 않아도 되는 사회. 이상론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싶어 하는 게 현실이다. 그 흐름을 막기 어렵고, 제도 밖 사람이 많아질수록 어느 시점엔 무게의 추가 기울 것 같다. 어쩌면 개개인의 마음속에서는 벌써 기울었을지도.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han.kr

 

알아서 퍼줬더니 동해에 죽도가 날아들었다

2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일본 초등 사회과 검정교과서 내용 분석 전문가 세미나가 열렸다. 사진은 여전히 동해를 일본해로,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국경을 표시한 일본 교과서.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29일 낮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 건너편에서 열린 제1589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한 참가자가 외국인에게 수요시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여성단체들 박원순 전 시장 민주열사묘역 이장은 2차피해 가중

박 전 시장 묘, 41일 민주열사 묘역으로 이장

시대의 흐름을 거꾸로 돌리려는 이들의 시도

2020710일 서울대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를 찾은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서울시 제공

 

여성단체, 양대노총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묘가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으로 이장되는 데 대해 무의미한 행보로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가중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밝혔다.

 

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의전화·민주노총·한국노총 등 90개 단체는 31성평등과 여성인권 빠진 민주화운동, 민주주의는 없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이같이 말했다.

 

2020년 성추행 의혹으로 피소당하자 극단적 선택을 한 박 전 시장은 생가와 선영이 있는 경남 창녕에 묻혔다. 하지만 2021920대 남성이 박 전 시장의 묘를 훼손한 사건이 발생했고, 이후 유족이 이장을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시장 묘는 다음 달 1일 오후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으로 이장될 예정이다. 민주열사 묘역에는 전태일 열사를 비롯해 박종철 열사, 문익환 목사,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 등 150명이 묻혀 있다.

 

이들 단체는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은)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를 통해 성희롱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유족 측에 의해 인권위 결정 취소 소송이 제기되었고, 지난해 111심에서 인권위 결정이 타당하다는 판결을 받은 상황이라며 그동안 피해자는 끊임없는 2차 피해에 시달려야만 했다. 성폭력 문제제기에 대한 부정은 박 전 시장 지지자와 유족의 일관적인 행보였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에는 민주열사묘역으로의 이장이다. 이 행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새삼 궁금하지 않다. 성폭력 문제제기 이후 훼손된 명예의 복구를 민주진보의 이름으로 실행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묻는다. 민주열사 묘역 안장 기준은 무엇인가, 무엇이 민주화운동인가, 민주화운동에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 성평등은 의제가 아닌가, 이는 누가 판단하고 누가 결정하는가라고 했다.

 

이들 단체는 박 전 시장 사건은 우리 사회 소위 진보진영의 성인지 인식과 실천에 대한 근본적 성찰의 필요성을 던졌다. 사건 발생 3년이 되어가는 지금은 그 필요성에 얼마나 응답했는가 돌아보고 점검할 때다. 이에 응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시대의 흐름을 거꾸로 돌리려 하는 이들의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그러나 수많은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만들어온, 이에 조응한 우리 사회 성평등의 가치를 지키려는 시민들의 움직임은 결코 거스를 수 없다고 밝혔다.

한겨레 김지환 기자

 

박원순 전 시장 묘소, 모란공원으로 새벽 이장

당초 알려진 시간보다 앞당겨 이장

여성단체들, 국민의힘 피해자에게 2차 가해

()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묘소가 1일 경남 창녕에서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으로 이장됐다. 연합뉴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묘소가 1일 경남 창녕군에서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으로 이장됐다. 당초 이장은 이날 오후에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른 새벽 시간에 일찌감치 이뤄졌다. 국민의힘은 피해자에게 2차 가해라며 반발했고, 앞서 여성단체들도 강하게 비판했다.

 

모란공원 관계자는 1일 경향신문과 통화에서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이장이 완료됐다고 말했다.

 

민주열사들을 모신 모란공원으로 이장한다고 알려진 이후 현장에서 마찰이 있을 것을 우려해 이른 새벽에 이장을 완료한 것으로 보인다. 모란공원은 사설 묘역으로 유해 안장에 대한 조건은 별도로 없다.

 

박 전 시장의 묘는 전태일 열사 묘역 뒤쪽에 자리 잡았다.

유족들과 지지자들은 이날 오후 3시부터 추모식을 진행했다. 고인의 배우자인 강난희씨는 추모식이 끝나고 참석자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정말 많지만, 차차 할 수 있게 하겠고 참석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만 말했다.

경남 창녕에서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으로 이장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묘소 주변에 추모 물품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고인은 2020년 성추행 의혹으로 피소당하자 극단적 선택을 했고 생가와 선영이 있는 경남 창녕에 묻혔다. 이후 20219월 한 남성이 박 전 시장의 묘를 훼손한 사건이 발생했고 유족들이 모란공원으로 이장을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의전화·민주노총·한국노총 등은 지난달 31성평등과 여성인권 빠진 민주화운동, 민주주의는 없다는 제목의 공동 성명을 내고 무의미한 행보로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가중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도 이날 논평을 내고 민주화 성지를 모독하는 일이며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행하는 것라고 말했다.

경향 임지선 기자

광주 찾은 전두환 손자 "죄책감 커서 이런 사죄한다"

전우원 씨, 5.18 유족과 만나유족 "용기 내서 고맙다" 화답

전두환 씨의 손자 전우원 씨(27)31일 광주를 찾았다. 그는 할아버지의 잘못을 5.18 유족들에게 대신 사과했다. 유족들은 눈물을 쏟으며 전 씨의 방문을 반겼다.

 

전 씨는 이날 오전 10시 광주 서구 5.18 기념문화센터 리셉션 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유족과 피해자의 만남' 행사에 참석해 일가족의 잘못을 대신 사과했다.

 

전 씨는 "제 할아버지 전두환 씨가 5.18 학살의 주범"이라며 "전두환 씨는 5.18 앞에 너무나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고 말했다. 전 씨는 이어 할아버지의 집권으로 인해 "(한국이) 민주주의 발전을 도모하지 못하고 오히려 민주주의가 역으로" 흐르게 됐다고 덧붙였다.

 

전 씨는 자신이 "양의 탈을 쓴 늑대들 사이에서 평생 자라왔다"며 자신의 가족들을 '늑대'에 비유했다. 전 씨는 아울러 "저 자신도 비열한 늑대처럼 살아왔다""가족들에게 (5.18) 물으면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폭동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전 씨는 "저 같이 추악한 죄인에게 소중한 기회를 주신 모든 분께 감사 말씀 드린다""더 일찍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이어 자신이 "의로워서가 아니라 죄책감이 커서 이런 행동(사죄)을 한다"고 밝혔다.

전직 대통령 고() 전두환 씨의 손자 전우원 씨가 31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5·18 유가족인 김길자 씨를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두환 씨 일가가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와 유족에게 사과의 뜻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 씨는 "군부독재 속에서 두려움을 이겨내고 용기로 군부독재에 맞선 광주시민 여러분은 영웅"이라며 "우리나라의 빛이고 소금이신 모든 분의 아픔을 깊게 해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전 씨는 "앞으로 회개하고 반성하는 마음으로 살겠다"5.18과 관련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일에 관한 조사에 응하겠다고 밝혔다. 전 씨는 한편 "광주에 온 저를 따뜻하게 대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며 광주시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행사에 참석한 유족들은 용기를 내 광주를 방문해 고맙다며 전 씨를 환영했다.

 

이날 행사에는 유족 대표 김길자 씨, 총상 부상자 김태수 씨, 피해자 김관 씨 등이 참석했다. 김태수 씨는 3공수여단의 광주교도소 공격 당시 총을 맞았다. 김관 씨는 5.18 당시 군부에 구금돼 풀려난 후 부상 피해를 안고 살아왔다.

 

5.18 당시 고교생으로 사망한 고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씨는 전우원 씨의 사과를 받으며 그를 안고 위로했다. 김 씨는 "(전우원 씨가) 이런 결정을 하기까지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광주를 제2의 고향으로 여겨달라"고 말했다.

 

정성국 5.18공로자회장은 "(손자가) 할아버지의 잘못을 대신 사과하기 위해 광주를 방문한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고 전 씨를 격려했다.

 

전날 광주에 도착한 전 씨를 맞이한 광주시민들 역시 전 씨를 향해 고맙다는 반응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8일 미국에서 귀국한 전 씨는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38시간여 동안 조사 받은 전 씨는 전날 새벽 광주에 도착했다.

 

이날 전 씨는 5.18 기념문화센터 방문 후 5.18 기념공원의 피해자 추모 공간을 찾고, 이어 광주 북구의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할 예정이다. 아울러 전 씨는 5.18 최초 사망자로 알려진 고 김경철 열사와 사망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고 전재수 군, 아직 시신을 찾지 못한 행방불명자 묘역 등을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행방불명자 묘역에는 현재 5.18 전체 실종자 78명 중 69명의 가묘가 있다. 이와 관련해 전 씨는 현재 가족 중 친모가 유일하게 자신의 결정을 지지했다고 밝혔다. 가족들로부터 계속 연락이 오고 있으나 두려워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전직 대통령 고() 전두환 씨의 손자 전우원 씨가 31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묘지 내 1묘역 고 김경철 열사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레시안 이대희 기자

 

사죄 나선 전두환 손자 돕는 5·18 단체 환영 아냐, 지나친 의미 부여 말아야

전우원씨 행보에 조심스러운 반응

일가 전체 면죄부·진정성 등 우려

 

전직 대통령 고() 전두환 씨의 손자 전우원 씨가 30일 낮 광주 서구 쌍촌동 거리에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5·18민주화운동 단체가 사죄를 하겠다며 광주를 찾은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씨의 행보를 두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씨의 사죄는 돕겠지만 그를 환영한다거나 전씨 일가를 대표한 사죄등으로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30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전씨는 31일 오전 5·18단체 관계자들과의 간담회를 시작으로 5·18민주묘지 참배 등 공식 일정에 나선다. 5·18기념재단과 공법단체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공로자회)는 그의 요청에 따라 사죄 일정을 돕기로 했다.

 

전씨의 광주행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차이가 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씨는 이날 통화에서 왜곡되지 않은 순수한 젊은이(우원씨)의 용감한 언행과 행동은 우리가 보호해야 한다그의 발자취가 마약 같은 것에 묻혀가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전태삼씨를 비롯한 5·18부상자회·공로자회 일부 회원들은 마약 투약 혐의로 지난 30일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조사를 마치고 나온 그를 향해 광주행을 격하게 환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5·18단체는 전태삼씨와 5·18부상자회·공로자회 일부 회원들이 전날 보인 행보에 대해서는 단체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황일봉 5·18부상자회 회장은 환영하지 않더라도 할아버지를 대신해 사죄하겠다는데 오지 말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다만 조심스럽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기봉 5·18기념재단 사무처장도 손자 전씨에 대해 환영한다고 하면 엎드려 절받기식 사과가 아니냐는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사과를 하러 온 사람의 말을 듣고 진정성을 확인해 보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그의 행보가 자칫 전씨 일가 전체에 대한 면죄부로 비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전씨 손자 중에 이런 용기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버젓이 살아있는 이순자씨와 장남 전재국씨 등은 아무런 사죄도 하지 않고 있는데 손자의 독단적 행보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이어 부모 입장에서 그의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돼 격려하고 위로하는 차원에서 도울 뿐이지, 그를 영웅시하던가 용서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의 행보에 대해 진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 5·18진상규명위원회 관계자는 마약 투약을 인정한 손자 전씨의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행위와 발언에 5·18단체와 시민 전체가 놀아나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면서 그가 부디 진정 어린 사죄를 하고 그 마음이 전씨 일가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자 전씨는 미국 뉴욕에 체류하던 지난 13일부터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씨 일가의 비자금 의혹 등을 폭로하며 5·18에 대해 사죄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28일 입국 직후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그는 29일 오후 755분쯤 석방돼 곧바로 광주를 찾았다.

경향 고귀한 기자 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