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드리운 ‘미분양 악몽’…그때는 대형, 지금은 지역 양극화
23.3월3주 정당지지도
개인 봉사는 입시 도움 안 돼… 도내 학생 봉사 3년 새 84% ‘뚝’
위안부 합의? 독도?…한일 회담서 실제 나온 말은
일본에 ‘선물’ 건네고 짐보따리만 받아온 윤 대통령
‘조선 멸시론자’ 인용하며 “미래로” 외친 윤 대통령
한반도로 밀려오는 전쟁의 기운... 윤 정부는 뭐하나
자유·인권·법치 한꺼번에 날린 '강제동원 해법’
정의구현사제단, 尹퇴진 시국 미사…전주서 첫 신호탄
1,000원에 아침밥 사 먹을 수 있는 41개 대학은...
경남-부산 통합, 왜 지금인가
한국 ‘주 69시간’에 전 세계 놀랐다…잇따라 외신보도
‘검사의 영장청구권’, 헌법에 어떻게 들어갔나
'에나·단디·배끼·보도시' 진주 지역어 빠르게 소멸
구속영장 청구된 한상혁 방통위원장 “억울하지만 사법절차 존중할 것”
윤석열의 소부장 강소기업 육성 폐기
일본의 ‘조선학교’를 아십니까
'이재명 대표직 유지' 후폭풍…"민주당 의원으로서 부끄럽다“
제주4.3을 폄훼하는 이들에게 전하고픈 당부
다시 드리운 ‘미분양 악몽’…그때는 대형, 지금은 지역 양극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달리
대형 주택 적고 60~85㎡ 규모 많아
올해 전체 물량도 당시의 절반 수준
“실거주 수요 있어 리스크 낮을 것
대구·경북지역 위기로 끝날 수도”
조정기에 접어든 부동산 시장에 ‘2008년의 악몽’을 불러온 미분양 폭탄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휩쓸고 간 2008년은 전국 미분양 주택이 역대 최고인 16만가구를 넘어섰던 해다. 올해 1월 미분양 주택은 약 7만5000가구로, 절대량 자체는 2008년의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대구 등 지방 미분양 증가세가 가파르고, 고금리·고물가로 건설사 줄도산 우려가 커진다는 점은 닮아 있다.
그때 미분양엔 있고, 지금 미분양엔 없는 것도 있다. 바로 ‘국민평형’(전용면적 84㎡)보다 큰 대형 주택이다. 2008년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앞두고 건설사들이 ‘밀어내기 공급’한 대형 주택은 전체 미분양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짧게는 4년, 길게는 10년 넘게 ‘악성재고’ 신세를 면치 못했다. 당시 대형 주택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던 데는 건설사들의 수요·공급 예측 실패도 있지만, 저출생과 핵가족화라는 생활패턴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측면도 컸다.
일각에선 “최근 미분양의 70% 이상이 실거주자 수요가 많은 60~85㎡ 규모로 상대적인 리스크는 (2008년보다) 낮을 것”(2023 KB부동산보고서)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경향신문은 2008년과 2023년 전후 규모별 미분양 주택 현황을 비교해봤다.
■ “2년 살아보고 반품하세요”
부동산 활황기였던 금융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대세’는 85㎡ 초과 대형 주택이었다. 건설사 입장에선 더 비싼 값을 매길 수 있는 대형 주택이 수익성 면에서 더 나은 선택이었다. 수요자들도 ‘이왕이면 큰 주택’이라는 심리가 있었다. 정부 역시 광교·판교 등 수도권 신도시 공급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건설사들이 분양가상한제 적용(2007년 9월 이후)을 피하기 위해 ‘밀어내기 분양’에 나서면서 중대형 평수의 과잉공급이 본격화됐다. 2007년 상반기만 해도 미분양의 95%는 지방이었으나, 하반기부터는 수도권 미분양 물량도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 수석연구원은 “2007년 상반기 인허가를 받은 주택은 분양가상한제 적용에서 면제되다보니 2008년 전후 분양한 주택은 고분양가 논란이 컸다”며 “이명박 정부가 ‘반값주택’으로 불린 보금자리주택을 강남 등 수도권에도 공급하면서 민간분양 인기가 더 식었다”고 했다.
20일 국토교통부의 미분양 현황 통계를 보면 2007년 11만2254가구였던 미분양은 2008년 16만5599가구로 정점을 찍은 뒤 2009년 12만3297가구로 감소했다. 이 중 전용면적 60~85㎡ 주택 비율은 47.7%→42.2%→38.8%로 점차 감소한 반면, 85㎡ 초과 주택 비율은 47.2%→53.4%→56.5%로 늘었다.
2010년 분양시장이 활기를 되찾기 시작하면서 중소형 미분양은 빠른 속도로 줄었다. 반면 수도권에 집중 공급된 대형 평수는 이후로도 한동안 애물단지로 남았다. 1~2인 가구가 늘어난 데다 전용면적 59·84㎡도 ‘방 3개·화장실 2개’ 구조로 효율화되면서 굳이 큰 평수를 선택할 유인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건설사들은 중대형 평수에 한해 20~30% 분양가 할인, 발코니 확장 무료 옵션, 중도금 무이자 혜택을 제공하며 ‘재고 처리’에 나섰다.
현대건설과 GS건설이 시공한 경기도 용인 ‘수지성복힐스테이트&자이’는 분양 개시 후 무려 10년이 넘도록 물량을 털어내지 못하며 ‘악성재고’로 남았다. 계약 2년간 살아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시행사가 되사주는 파격 마케팅까지 동원했지만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미분양 증가로 유동성 위기를 겪던 동부건설은 2013년 월 230만~800만원의 생활비 지원(남양주 도농센트레빌), 건설사 보유분에 한해 전세계약(인천 계양센트레빌)이라는 특단의 조치까지 동원했다. 대형 미분양은 정부의 주택대출 규제완화에 공급 자체가 줄어든 2014년이 되어서야 사실상 소진됐다.
■ 2023년 애물단지는 소형 미분양?
이후로는 85㎡ 초과 대형 평수 물량 자체가 빠르게 사라지며 전용면적 59·84㎡ 구조가 사실상 세팅됐다. 2023년 1월 기준 전국 미분양의 73.3%는 실수요가 많은 60~85㎡ 주택이다. 85㎡ 초과 대형(11.8%), 40~60㎡ 소형(11.7%), 40㎡ 이하 초소형(3.2%)이 그 뒤를 이었다.
업계에서는 평형별 양극화가 심했던 2008년 이후 미분양과 달리, 최근의 미분양은 지역별 양극화가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대구·경북 미분양 아파트는 전체 미분양의 30%를 차지했다. 반면 부산·제주·서울·광주·세종의 미분양은 모두 합쳐도 전체의 10%를 넘지 않았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중요한 것은 공급 대비 수요”라며 “2008년과 달리 서울·수도권은 수년간 주택 공급이 워낙 부족했고, 정부도 공공주택 공급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이 아니어서 대구·경북발 미분양이 전국으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미분양이 적은 서울에서도 정부의 아파트 규제를 피할 수 있는 ‘대체 투자 상품’으로 인기를 끌었던 소형 주택은 애물단지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1월 서울 민간 미분양 주택의 68%는 전용면적 60㎡ 이하 소형 주택이었다. 그중에서도 전용면적 40㎡ 이하 초소형 주택이 전체의 33%를 차지했다.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의 경우 전체(342가구)의 27%가 40㎡ 이하였다. 업체별 현황을 뜯어보면 2인 이상이 실거주하기 힘든 비좁은 면적임에도 주변 아파트 시세를 훌쩍 뛰어넘은 ‘배짱 분양가’를 책정한 도시형생활주택이 대부분이다.
신세계건설이 마포구 노고산동에 지은 도시형생활주택 ‘빌리브드에이블’은 신촌역·서강대역 더블 역세권임에도 전용면적 38~49㎡ 분양가가 7억8000만~13억7000만원에 달해 지난해 4월 계약 마감 후 현재까지 95%가 미분양 상태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아파트를 대체할 수 없는 소형 오피스텔은 부동산 호황기에 투자 수요를 타고 우후죽순 생겨났지만, 지금 같은 시장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최근에는 2인 가구도 중소형 이상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삶의 질에 대한 기준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이라고 했다.
경향 심윤지 기자
개인 봉사는 입시 도움 안 돼… 도내 학생 봉사 3년 새 84% ‘뚝’
14~19세 자원봉사자 감소세
2019년 51만명→2022년 8만명
교육부 대입제도 변경하면서
고등학생 자원봉사자가 대학입시에서 봉사활동 비중이 줄면서 대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될 경우, 봉사 문화가 위축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복지관이나 봉사시설 사이에 나오고 있다.
16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도내 14~19세 자원봉사자 수는 △2019년 51만3403명 △2020년 17만1679명 △2021년 10만2937명 △2022년 8만408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코로나19 이전보다 84.3% 감소한 수치다. 20대의 경우 2019년 17만4135명이 자원봉사를 한 반면,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되면서 2020년 9만8281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이후 2021년 11만5755명, 2022년 14만606명으로 느는 추세다.
각 지자체 자원봉사센터에서 운영하는 청소년봉사단도 감소해 폐지하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창원시의 경우, 2018년에는 120명이 활동했지만 현재 60명으로 절반가량이 줄었다. 김해시 역시 2018년 170명이었지만, 현재 30명으로 큰 폭으로 감소했다. 사천시는 모집에 어려움이 있어 폐지하기도 했다.
경남자원봉사센터는 대입제도에서 봉사활동 비중이 크게 줄어든 점을 주된 이유로 분석하고 있다. 2019년 말 교육부가 발표한 ‘대입 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에 따라 학생들은 봉사 활동 시간과 자기소개서를 정규 교육 과정 외의 활동은 대입 생활기록부에 반영할 수 없게 됐다. 즉 학교에서 정해준 봉사만 대입 생활기록부에 반영이 가능하고, 개인 봉사는 안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복지기관이나 봉사시설에서는 아쉬움이 크다. 창원의 한 사회복지관은 봉사자가 줄면서 관련 프로그램을 폐지해야 하는지 고민 중이다. 복지관 사회복지사는 “대입제도 변경 후 학생 봉사자가 많이 줄어 청소년 대상으로 진행하는 봉사 프로그램 운영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학생들이 할 수 있는 봉사활동들을 만들어 각 학교에 제안서를 보냈는데 대부분 거절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박동일 이웃사랑나눔회 사무국장은 “대입제도 변경 이후 고등학생 봉사자가 3분의 2 정도는 준 거 같다. 코로나19 확산 문제도 있겠지만, 대입 제도 변경 발표 후 확실히 많이 줄어든 편”이라며 “이는 단순 일손 부족 문제가 아니다. 입시 때문에 하는 봉사라도 어린 나이에 봉사를 시작해야 성인이 돼서도 봉사의 중요성, 뿌듯함을 알고 봉사 활동을 할 수 있는데 이점에서 봉사문화가 사라질까 걱정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학생들이 자원봉사를 안 해주면 많은 복지기관이 자생 단체에 기대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고 덧붙였다.
장수용 내서종합사회복지관 관장은 “다른 연령층 봉사자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에 고등학생 자원봉사는 거의 없어졌고, 학교 단체 봉사활동도 사라져가고 있다”며 “점차 봉사하는 문화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과 걱정이 크다. 대입 문제를 떠나 일선 학교에서 단체 봉사활동 계획을 마련해줬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경남자원봉사센터는 고등학생 자원봉사자 수 감소가 향후 전체적인 봉사 문화 위축이 될까 우려해 대응책을 세우고 있다. 센터는 개인 봉사활동은 대입에 인정이 안 되는 점을 고려해 교과 연계형 봉사활동을 마련해 교육청에 요청하고 있다.
전지선 경남자원봉사센터 센터장은 “코로나19와 대입제도 때문에 청소년 자원봉사가 많이 줄고 있다”며 “청소년기 봉사활동은 평생 봉사로 이어질 수 있고, 사회적응, 인성, 희생정신을 만들어주기에 무척 중요하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이 문제 해결에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준혁 기자 pjhnh@knnews.co.kr
위안부 합의? 독도?…한일 회담서 실제 나온 말은
위안부·후쿠시마 수산물·초계기, 의견교환 한 듯
독도·사도광산, 일본 요구 전달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오후 일본 도쿄 긴자의 오므라이스 노포에서 친교의 시간을 함께하며 생맥주로 건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16일 정상회담에서 독도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한-일 간 민감 현안에 대해 대체 어떤 얘기를 나눴을까. 이에 대한 한-일 당국의 해명이 엇갈려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기 힘들지만, 양국 정부의 설명과 언론 보도를 묶어 어떤 논의가 이뤄졌는지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대화 내용을 재구성해 볼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해, 두 정상은 △위안부 합의 △후쿠시마 등 수산물 수입 △2018년 말 발생한 ‘초계기 갈등’ 등 양국 간 세 가지 민감 현안에 대해 의견을 주고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독도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정부 설명대로 이날 화제로 오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앞선 3대 현안에 논의가 이뤄졌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일본 언론이 정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두 정상의 대화의 내용을 매우 상세히 보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케이신문>은 20일 일본 정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합의 △후쿠시마 등 수산물 수입 △초계기 갈등에 대한 사실 인정과 재발 방지 등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이 보도를 보면, 기시다 총리가 초계기 문제에 대해 언급하자 윤 대통령은 “이것은 서로 신뢰 관계에 문제가 생겨 발생했다. 앞으로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 서로의 주장을 조화시켜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신문은 윤 대통령의 이 답변에 대해 “한국 정부는 그동안 레이더 조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면서 “윤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사실관계를 부정하지 않았다”는 해석을 덧붙였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주장처럼 한국의 함선이 일본 초계기를 향해 사격통제레이더를 쐈다는 사실을 윤 대통령이 사실상 인정한 것처럼 보도한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런 갈등이 발생한 이유가 양국 간에 신뢰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을 뿐 일본의 주장을 수용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신문은 나아가 위안부 합의와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등에 대해선 “기시다 총리가 요구했지만 진전이 없었다”고만 전했다. 기시다 총리가 이 문제를 꺼내 들었지만, 윤 대통령이 반응하지 않았거나 일본이 원하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18일 <한국방송>에 출연해 위안부 문제 등이 “의제로 논의된 바 없다”면서 “정상간 대화는 공개할 수 없다”는 애매한 입장을 보였다. 애초 두 나라가 위안부 문제를 의제로 삼진 않았지만, 기시다 총리가 즉석에서 이 얘기를 꺼냈음을 암시하는 말이다.
이 가운데 국민적 관심도가 높은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선 기시다 총리가 당시 외무상으로 2015년 12월 합의 내용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 임했었다. 그런 이유로 2021년 10월 총리에 오른 뒤에도 줄곧 합의 이행을 주장해왔다. 일본은 이 합의의 이행과 관련해 한국 정부가 2018년 11월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했고, 일본 대사관 앞의 ‘평화의 소녀상’도 철거하지 않는 등 합의를 지키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또 국제사회에서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는 것도 합의 위반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철폐 역시 국민의 건강권과 직결되는 먹거리 문제이기 때문에 여론의 반응이 민감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일본 정부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에 맞서 한국이 힘겹게 역전 승소한 사안이어서 양보가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독도와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강제동원이 대규모로 이뤄졌던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문제는 이날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산케이신문> 역시 이날 보도에서 “기시다 총리가 (독도·사도광산 문제와 관련해) 개별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다만, 앞으로 일본 정부가 이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나설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기시다 총리의 측근인 기하라 세이지 일본 관방부장관은 16일 정상회담 뒤 일본 기자들과 진행한 비공개 브리핑에서 △독도 △위안부 △초계기 △수산물 수입규제 등의 현안에 대해 어떤 대화를 주고 받았는지 묻는 질문에 “한-일 현안에 대해서 잘 대처해 나가자는 취지를 밝혔다. 이 사안들 중에는 다케시마(독도) 문제도 포함된다. 아울러 위안부의 문제도 한일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요구했다. 레이더(초계기)는 우리 나라 입장에 따른 발언을 했다. (수산물 수입규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고 말했다. 발언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지만, △위안부 △초계기 △수산물 수입규제에 대해선 분명히 언급했고, 독도 문제는 이날 꺼내 들지 않았지만, 앞으로 양국이 논의해야 할 주제로 인식하고 있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dandy@hani.co.kr
일본에 ‘선물’ 건네고 짐보따리만 받아온 윤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지난 16일 도쿄 정상회담 이후 관계 개선의 순풍은커녕 독도·위안부 합의 등 해묵은 현안이 물 위로 떠오르고 한국 사회의 반발 여론이 격화하며 오히려 역풍이 거세지고 있다. 일본에 현물로 선물을 잔뜩 안기고, 어음과 청구서만 오히려 받아들고 온 ‘일방 외교’라는 비판이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19일 브리핑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됐다는 평가가 한국, 일본, 국제사회에서도 공통되게 나온다”고 자평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귀국 다음날인 18일에도 ‘방일 결과 설명 자료’를 내어 △양국 관계의 미래 지향점 확인 △경제안보와 미래첨단산업 등 전략적 협력 지평 확대 △수출규제 조치 철회 △셔틀 외교 재개 등을 강조했다. 같은 날 박진 외교부 장관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텔레비전에 출연해 윤 대통령 방일의 ‘성과’를 부각하려 애썼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일 양국 정부에서 발표한 내용과 언론 보도를 비교해보면 외교 협상의 결과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저울추가 일방적으로 기운다.
우선 윤 대통령은 이번 회담의 최대 현안인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해 ‘제3자 변제안’과 “구상권 행사를 상정하지 않고 있다”는 발표로 피해자들의 대일 배상 요구가 적법함을 인정한 2018년 한국 대법원 판결을 무력화했다.
이에 대한 기시다 총리의 반응은 회담 뒤 사과·배상을 직접 입에 담지 않은 공동기자회견 발언에서 나왔다. 기시다 총리는 “옛 한반도 출신 노무자 문제”라는 표현으로 강제동원의 강제성을 정면 부인했다. 더구나 “역사인식에 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로 계승하고 있음을 확인한다”는 기시다 총리의 발언도 명확한 사과가 아니다. ‘역대 내각의 입장’엔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밝힌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뿐만 아니라, “뒷세대의 아이들에게 사과를 계속할 숙명을 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아베 담화’(2015년 8월14일)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일본 쪽엔 ‘사과 없음’, 한국 쪽엔 ‘간접 사과’로 비치는 조처다.
일본 정부는 2019년 7월 이후 고수해온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불화수소·불화폴리이미드·포토레지스트)의 대한국 수출규제를 풀었고, 한국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철회했다. 하지만 일본은 간편 수출 절차를 허용한 ‘화이트리스트’는 즉시 복원하지 않고 추후 협의한다고 밝혔다. 더구나 “(수출규제 3대 품목의) 국내 공급이 안정적으로 됐다. 소재·부품·장비 100대 품목의 대일 수입 의존도는 많이 감소했다”는 산업통상자원부의 평가에 비춰, 수출규제로 판로가 막힌 일본 기업과 국산화에 성공한 한국 기업 가운데 어느 쪽이 진짜 수혜자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지소미아(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완전 정상화”를 선언했고, 국방부와 외교부는 후속 절차를 밟고 있다. 일본 쪽이 줄기차게 요구하던 일이다.
이와 함께 한·일 재계 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게이단렌)가 16일 각 10억원씩 모두 20억원 규모의 ‘한일·일한 미래 파트너십 기금’을 창설한다고 발표했다. 사과와 배상이 없는 ‘제3자 변제안’에 대한 한국 시민사회의 반발을 억누르려 ‘미래’를 명분으로 급조한 기금인데, 구체적 사업계획과 기금에 참여할 일본 기업도 정해지지 않은 전형적 개문발차다.
일본 언론을 통해 알려진 회담 내용은 양국 관계의 새로운 불씨를 예고하고 있다. 회담 직후 <교도통신>과 <엔에이치케이>(NHK) 등 일본 언론은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일-한 위안부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요청하고, “다케시마(독도를 일컫는 일본 표현)를 둘러싼 문제에 대해 일본의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런 일련의 보도는 16일 회담 직후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가 익명을 조건으로,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한테 △“다케시마” △위안부 합의 △레이더 문제 △(후쿠시마 핵사고 오염수) 수산물 수출입 규제 문제에 대해 “우리(일본) 입장에서 언급했다”고 언론에 설명한 데 따른 것이다. 사실상 일본 정부의 공식 발표를 근거로 한 보도다.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반응은 모호하다. 일본 언론의 보도가 잇따르자 박진 외교부 장관은 18일 <한국방송> 뉴스에 나와 독도·위안부 두 문제는 “의제로서 논의된 바 없다”고 밝혔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같은 날 <와이티엔>에 나와 “회담에서 오고간 정상들의 대화는 다 공개할 수 없다”고 얼버무렸다. 결국 “논의되지 않았다”는 정부 설명은, ‘기시다 총리가 독도 등과 관련해 일본 정부 입장을 밝혔으나 윤 대통령은 그와 관련한 한국 정부의 공식 견해를 재확인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읽힌다. 한-일 관계에 오래 관여한 외교 원로는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고 했다는 일본 언론 보도에 제대로 된 반박을 내놓지 못하는 윤석열 정부의 행태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조선 멸시론자’ 인용하며 “미래로” 외친 윤 대통령
“대통령 역사인식 문제” 비판
일본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도쿄 게이오대에서 열린 한일 미래세대 강연에서 일본 학생들을 상대로 강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연설하며 “조선은 원래 일본 영토”라고 주장한 침략론자의 발언을 인용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윤 대통령은 방일 이틀째인 17일 일본 게이오대를 찾아 대학생 170여명 앞에서 ‘우리의 미래를 위한 용기’라는 제목으로 연설했다. 윤 대통령은 메이지 시대 사상가인 오카쿠라 덴신(1862~1913)의 “용기는 생명의 열쇠”라는 말을 인용하며 “한·일 양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용기”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하종문 한신대 교수(일본학)는 이날 <한겨레>에 “오카쿠라 덴신은 전형적인 한국 멸시론과 침략론의 소유자이고 식민지배에 적극 찬성한 인물”이라고 전해왔다.
실제로 오카쿠라는 1904년에 펴낸 <일본의 각성>에서 “조선반도는 원래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 최고의 전설에는 우리 아마테라스오미카미의 동생이 조선에 정주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 나라의 초대 국왕 단군은 어떤 역사가의 견해에 따르면 그의 자식이었다고 한다”고 적었다.
책에는 또 “(진구황후의 조선 정벌 이후) 우리 연대기는 8세기까지(즉 500년간) 식민지 보호의 기록으로 채워져 있다” “(에도 시대의 조선통신사는 도쿠가와 쇼군의 임명 때마다) 조공하는 국왕으로서 경의를 표하기 위해 사절을 파견해 왔다” “조선반도를 어느 적국이 점령한다면 일본에 육군을 쉽게 투입할 수 있는데, 그것은 조선이 비수처럼 일본의 심장부를 겨누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은 원래 일본의 영토”라는 내용이 담겼다.
하 교수는 “대통령과 보좌진의 역사인식과 일본 시각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로서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한반도로 밀려오는 전쟁의 기운... 윤 정부는 뭐하나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제언
유라시아 대륙 서쪽에서 형성된 전쟁의 기운이 유라시아 대륙 동쪽에 있는 대만을 지나 한반도까지 밀려오고 있다.
지난해 8월 펠로시 전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직후 중국은 '대만 포위' 군사 훈련을 감행하는 등 대만을 둘러싼 긴장이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이런 긴장을 이용해 일본은 군사 재무장에 나서고 있다.
일본은 중국의 위협을 명분으로, 2027년까지 5년간 43조 엔(약 410조 원) 규모의 막대한 방위비를 투입할 예정이다. 그리고 대만 유사 사태를 대비해 신속한 대처 능력을 갖추기 위해 자위대에 적 군사 시설을 타격하는 미사일 부대를 만들고, 대만과 110㎞ 거리의 요나구니섬을 자위대 F-35 전투기 이·착륙이 가능한 군사 거점으로 강화할 예정이다.
한마디로 한반도 주변 4대 강대국이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가 편을 먹고 전쟁 직전의 상황에 들어갔다. 아니, 사실상 유라시아 서편에서는 미국과 러시아가 이미 전쟁을 감행하고 있다. 대만 주변에 작은 불꽃 하나만 일어도 큰 산불이 일어날 것만 같다.
우리에게 더 심각한 문제는 우크라이나와 달리 대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미국의 군사동맹인 한국과 일본은 어떤 형태로든 전쟁에 관여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 입장에서 주한미군이 대만 전쟁이나 위기에 동원될 경우 한국의 선택과 상관없이 한반도의 전역화(戰域化)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 김정은 "핵전쟁억제력 강화로 적들에 두려움 줘야"…ICBM 참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훈련을 현지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7일 밝혔다. 통신은 "평양국제비행장에서 발사된 대륙간탄도미싸일 '화성포-17'형은 최대 정점고도 6,045㎞까지 상승하며 거리 1,000.2㎞를 4,151s(초)간 비행하여 조선동해 공해상 목표수역에 탄착되었다"고 밝혔다. 2023.3.17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북한의 핵 무력 강화 및 미사일 무력 시위는 한반도의 안보 위기와 불안을 그 어느 때보다 고조시키고 있다. 이 칼럼을 쓰고 있는 시간(3월 16일)에도 북한은 동해상에 '화성-17형'으로 추정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1발을 발사했다. 3월 14일에 KN-23 추정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2발을 발사한 지 이틀만이다. (북한은 19일에도 동해상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1발을 발사했다.)
북한은 올해 들어 1월 1일 600㎜ 초대형 방사포(KN-25) 1발 발사, 2월 1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2월 20일 600㎜ 초대형 방사포 2발, 3월 9일 근거리탄도미사일(CRBM) 6발 발사, 3월 12일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SLCM) 2발 발사 등 7번에 걸쳐 장·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북한과 한국 합참의 주장이 엇갈리는 2월 23일 미사일 발사는 제외).
북한의 무력 시위에 대응이라도 하듯 3월 13일, 한국과 미국은 한미연합훈련 '자유의 방패'를 시작했다. 이번 훈련은 11일 동안 20여 개의 실기동 연습을 집중적으로 진행하는 역대 최대 규모와 최장 기간 훈련이다.
현재 남·북한과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의 긴장은 신냉전체제로 구조화되고 있다는 데 그 심각성이 매우 크다.
북한은 3월 1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소집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8기 제5차 확대 회의에서 "현 정세에 대처하여 나라의 전쟁 억제력을 보다 효과적으로 행사하며 위력적으로, 공세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중대한 실천적 조치"를 결정했다고 밝히며 미사일 발사를 이어가고 있다. 북한의 이 발언은 미사일과 핵무기를 레버리지(leverage)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말하는 "현 정세"는 남·북과 주변 4강이 군사적 대결 국면으로 치닫고 있고, 여기에 북한이 대처해서 전쟁 억제력을 핵과 미사일로 갖겠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공포의 균형' 전략을 통한 전쟁 억제는 신냉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긴 설명이 없더라도 신냉전이 한국은 물론 세계에 큰 부담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따라서 현재 한국 정부의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위기 관리일 것이다.
구냉전도 끝내지 못했는데 신냉전까지
유라시아를 둘러싼 전쟁과 무력 충돌 위기와 북한의 무력 도발이 만나 전략적 문제, 즉 한반도를 경계선으로 미·일·한 대 중·러·북의 신냉전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남·북한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이지만 국제정세가 강력하게 투사하는 이중 구조이자, 이 두 구조가 상호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입장에서 신냉전 질서는 오랜 기간 북한을 압박해 온 국제사회의 제제와 고립에서 벗어날 좋은 기회일 수 있다. 중국만 해도 북한 핵과 미사일에 비판적이었는데, 현재 상황이 미·일·한 대 중·러·북의 신냉전 구도로 흘러가면 중국은 북한에 대해 관대할 수밖에 없다.
한편 북한은 국제사회 제재와 고립에서 벗어나고자 중국·러시아와 외교·군사 협력 강화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으며, 결국 신냉전 구도가 형성·강화될 것이다. 이것은 곧 한반도의 지속적인 안보 불안을 더욱 가중하고, 국방 예산과 주식 시장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더욱 커지는 등 우리의 일상과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확대정상회담에 참석한 모습. ⓒ EPA=연합뉴스
우리는 무력 충돌을 억지하기 위해서나 만약의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서 군사안보 태세를 튼튼하게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묘수는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 나무를 심는 것이다.
그러나 평화 체제는 어느날 갑자기 소나기 내리듯 오는 것이 아니다. 신뢰와 환경이 마련되는 만큼 평화 체제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공고한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런 과정을 수반한 단계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단계적 접근은 평화 유지(peace-keeping), 평화 만들기(peace-making), 평화의 구조화(peace- building)가 그것이다.
평화 유지는 전형적인 소극적 평화 확보의 개념으로 군사력을 통한 도발의 억제를 의미한다. 군사적 억지(deterrence)와 동맹 강화가 이를 가능케 한다.
평화 만들기는 평화 유지보다는 한 단계 위 개념이다. 신뢰 구축이 평화 만들기의 핵심 개념인데 경제·사회·정치적 신뢰 구축의 단계를 거쳐 군사적 신뢰 구축이 이루어져야 평화 만들기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넓게 보면 평화 만들기 또한 불안정한 상황을 관리한다는 면에서 소극적 평화 유지책이라 할 수 있다.
평화의 구조화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다. 이는 분쟁의 구조적 원인을 없앤 것이다. 적대적 쌍방이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거나 선린 관계가 형성되어 추구하는 목표에 충돌 여지가 없어지면 분쟁은 구조적으로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단계적 접근에서 알 수 있듯이 평화는 소극적 의미에서 적극적 의미로 확장할 수 있다. 그동안 한반도 평화 체제를 군비 통제, 북미·북일 관계 개선, 동북아 안보협력 등 '안보레짐'이나 북한 비핵화와 연결한 경제협력 등으로 협소하게 봤다.
그러나 평화 체제의 범위는 국가안보 측면뿐만 아니라 인간 안보와 같이 개인과 인간 사회를 위협하는 다양한 요소에 대처하는 방안으로 확장할 수 있으며, 이런 적극적인 평화 개념과 평화 만들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평화의 개념을 단순히 전쟁의 부재라는 의미에서 사용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행위자와 수준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각종 폭력과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으로 파악하고 차별·불평등의 해소와 함께 전염병·기후위기·재해·생물권 보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논의가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안보레짐에만 매몰된다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 있는 한국의 운신의 폭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정부로 참여 주체도 국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 한국에 필요한 평화 만들기는 적극적인 평화 개념에 입각한 접근이어야만 한다.
이런 적극적인 평화 개념에 입각한 평화 만들기는 다양한 영역에서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하다. 그리고 시민의 힘과 참여로 만드는 평화는 국제 무대에서 우리 정부의 자율성과 레버리지를 강화하는 역할을 할 것이며, 정부는 때론 적극적으로 때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여유와 선택지를 갖게 될 것이다.
성공의 열쇠는 신뢰, 시작은 대화
남·북 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나 우리의 안녕과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 우리의 노력이 집중해야 할 지점은 평화 만들기다. 그러나 평화 만들기는 남·북의 신뢰가 기반이 되어야 가능한데 현재 남·북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남·북 간에 신뢰 구축이 어려운 이유는 북한의 마음이 안심되어야 신뢰 형성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신뢰 구축을 통한 평화 만들기는 현 정부가 주창하고 있는 대북정책과 한반도 평화 관리가 성공하기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하다.
적극적인 평화의 출발점은 대화이며 대화는 상호 신뢰형성뿐만 아니라 당면해서 한반도 위기 관리를 위한 총체적 신뢰와도 직결된다. 적극적인 평화가 좋은 것은 현재와 같이 정부와 당국 간 대화가 막혀 있을 때에 다양한 주제와 영역, 주체들의 만남과 대화, 협력과 협업을 통해 여론과 상황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과 같은 경제 협력마저도 현재 세계 정세와 구도가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코로나, 휴전선 지역 공동 방역, 기후 변화 공동 대응 등 인도적 측면이나 민간 협력을 위한 대화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대화를 시작하는 자세로는 다양성의 존중이 가장 중요하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정치·군사적 해결도 중요하지만, 결국 남한과 북한 주민들의 마음의 분단, 정신적 갈등과 적대감의 해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에게 통일과 평화를 대비하는 마음의 근간은 바로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철학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나와 다른 것을 불편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오히려 소중히 여기는 가치, 차이를 차별하지 않고, 오히려 사회적 풍요와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야할 길은 명확하다. 한반도 전쟁 반대, 핵무기도 핵 위협도 없는 한반도와 세계, 제재와 압박이 아닌 대화와 협력으로 갈등 해결, 군비 경쟁 악순환 종식과 시민 안전을 위한 중단 없는 평화가 그것이다. 그리고 평화 행동이 절실한 시점이다. 평화 행동을 전략적으로 준비하고 실천에 옮기며 민간을 지원하는 것이 현재 정부가 해야할 첫 번째 의무이자 과제일 것이다.
시민들 역시 현재 첨예한 정세와 상황이 우리와 나의 일임을 자각해야만 한다. 지금 우리 앞에 벌어지는 긴장은 TV 화면을 통해 보이는 CNN의 보도가 아니다. 영구적인 평화가 오지 않았기에 한반도의 운명은 세찬 바람 속의 촛불이 아닐 때가 없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긴장과 전쟁 위기의 기로에서 늘 평화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던 힘은 평화의 마음을 놓지 않은 시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난경에 들었다 하여도 평화의 마음을 놓지 않고 세상에 평화를 불러오는 주인된 시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깨어있고 행동하는 시민과 평화 전략을 세우고 추진하는 정부가 절실한 오늘이다.
* 필자소개 : 서울디지털대 교수, 코리아연구원 이사, 민주평통 상임 위원으로 2001년 첫 평양 방문과 이어진 40여 차례의 방북 이후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가는 활동을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윤창원(bdyun)
자유·인권·법치 한꺼번에 날린 '강제동원 해법’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3월6일 윤석열 정부는 ‘강제동원 판결 해법’을 제시했다. 두 달 전 외교부가 공개 토론회에서 밝힌 안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강제동원 배상 판결, 정부의 해법에 일본은 빠져있다’ 기사 참조 https://www.sisain.co.kr/49444).
정부 최종안의 핵심은 한국 재단(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돈을 지급하는 것이다. 포스코 등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수혜를 입은 한국 기업이 자발적으로 낸 돈으로 기금을 마련할 예정이다. 사안을 채권·채무와 같은 돈 문제로 협소화해 마무리 짓겠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밝힌 ‘제3자 변제’ ‘대위변제’ ‘병존적 채무인수’와 같이 낯선 법률 용어가 가린 한 줄은 명징하다. 애초에 이 사건의 시발점인 일본이 쏙 빠졌다는 사실이다. 일본 기업의 참여는 명시되지 않았다.
추후 일본이 동참할 수도 있으니 ‘개문발차(버스 문을 열어두고 출발한다는 뜻)’ 식으로 한국 정부가 나서 강제동원 판결을 매조지겠다는 뜻이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은 일제강점기 조선인을 강제 노동에 동원시킨 일본 기업의 책임을 명시했다.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를 피해자에게 줘야 한다는 결정이다.
당시 일본의 반발이 이 사건을 제자리걸음하게 했다. 지금껏 일본은 식민지 지배가 불법이라거나, 조선인 노동자와 ‘위안부’를 강제동원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시인한 바 없다. 대법원 판결 또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당시 한국에 독립 축하금 성격의 돈을 건넸기에 개인의 청구권이 없다는 논리다.
정부안이 발표된 3월6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1998년 10월에 발표된 (김대중·오부치) 일·한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역대 내각의 입장’에는 강제동원 문제가 이미 해결됐다고 주장한 아베 총리 시기도 포함된다.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의 사과로 간주하기 어려운 발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가 가칭 ‘미래청년기금’을 공동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알려졌다. 이 또한 일본 피고 기업의 참여와는 거리가 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해법을 낸 이유를 박진 외교부 장관이 3월6일 밝혔다. “정부는 최근 엄중한 한반도 및 지역·국제 정세 속에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인 일본과 함께 한·일 양국의 공동 이익과 지역 및 세계의 평화 번영을 위해 노력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윤석열 대통령 또한 같은 날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강제징용 판결 문제 해법을 발표한 것은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고 자평했다. “지지율 1%가 나오더라도 할 일은 하겠다” “어차피 할 것 아니냐. 그러면 미리 매를 맞는 게 낫지, 내년 총선 앞두고 할 것인가”라는 윤 대통령의 전언이 ‘관계자발(發)’로 함께 보도됐다.
강제동원 판결 해법이라는, 윤석열 대통령이 오랜만에 보여준 통치행위는 생각보다 많은 지점을 노출한다. 윤 대통령이 강조해온 법치, 자유, 인권, 민주주의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대하는 그의 태도에 관한 것이다. 어떤 핵심 조건(이번 사안에서는 가해자의 반성과 사과)이 없더라도, 특정 정책은 ‘지도자가 결단하면’ 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이번 해법에 대한 비판을 ‘어차피 맞을 매’라고 생각한다는 점도 살펴볼 구석이 많다.
일본이 정당한 것처럼 주객전도
윤석열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강제동원 판결을 ‘반일(反日)’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본다. 정부안에 대한 비판을 쉽게 ‘반일 선동’이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일본과의 협력을 강조했다.
ⓒ연합뉴스
조성렬 전 주오사카 총영사는 이러한 인식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금 윤석열 정부가 만든 상황은 마치 우리가 국제법을 위반했고 일본이 정당한 것처럼 주객을 전도시켰다. 우리 대법원 판결이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놓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를 다룬 것임에도, 마치 이를 위반한 판결을 내렸기에 한국 정부가 그것을 수습해서 해법을 가져와야 한다는 게 일본 프레임이다. 그걸 그대로 수용했다.”
강제동원은 전시 범죄로, 보편 인권의 문제다. 가해자 자리에 일본이 아니라, 미국·중국·러시아·영국 등 당시 주변국 어느 나라가 들어가도 이 사건의 본질이 전범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피해자들은 가짜 취업 조건에 속아 근무를 시작했다. 그것이 거짓임을 깨달은 다음에도 그만두지 못한 채 강제 노동을 해야 했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감시당했고, 도망가고 싶다고 말한 사실만으로도 두드려 맞았다. 실제 도망갔다 잡혀와 보복을 당하기도 했다. 회사가 지급했다는 임금은 저금됐다는 말만 들었지 직접 만져본 적도 없었다. 결국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해방을 맞이했다. 그조차도 운이 좋아 살아남은 경우다. 강제 노동 중 미군의 공습으로 숨진 이들도 많았다. 강제동원 판결은 이러한 전시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
송두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정확히 이 지점을 지적한다. 3월7일 그가 발표한 성명서는 현재 윤석열 정부 해법에서 일본이 빠진 게 왜 문제인지 인권의 언어로 설명한다. 가해자의 반성 없이는, 그 누가 아무리 좋은 대책을 내놓아도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의미다.
“강제동원 피해의 배상 문제는 단순히 금전적인 채권·채무 문제가 아니다. 인권침해 사실의 인정과 사과를 통한 피해자의 인간 존엄성 회복과 관련한 문제다. 일본 기업과 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등 불법행위를 인정하고 피해자와 그들의 가족에게 사과하는 것은 피해 회복과 화해,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 설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유엔총회가 2005년 채택한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행위와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행위의 피해자 구제와 배상에 대한 권리에 관한 기본원칙과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배상에는 사실 인정과 책임 승인을 포함한 공식적 사죄, 피해자에 대한 기념과 추모, 모든 수준의 교육에서 위반행위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포함되어야 한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3월6일 강제동원 피해 배상에 대한 해법을 발표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무엇보다 강제동원 피해 당사자가 반발하고 있다. 2018년 대법원 판결 당사자 중 생존해 있는 3명(양금덕·김성주·이춘식) 모두 명확하게 정부안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정부의 최종 발표를 들은 양금덕 할머니는 “동냥처럼 주는 돈은 받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고 사죄할 사람도 따로 있는데 (이런 식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 노인들이라고 해서 너무 얕보지 마라. 반드시 (일본이) 사죄를 먼저 한 다음에 다른 모든 일을 해결해야 한다.”
자유와 인권 등 양국의 공동 이익을 위한다는 윤석열 정부의 한·일 관계 개선안이 낳은 모순이다. 가장 자유와 인권이 필요했던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자유는 국가라는 대표적 공권력에 대항하기 위해 개인의 권리를 지키는 차원에서 발전해온 개념이다.
윤석열 정부 관계자들의 대법원 판결에 대한 부정적 태도는 ‘법치’에도 의문을 품게 만든다. 관련 언설이 잦았다. 3월6일 정부 해법 발표 이후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가 한 발언이다. “우리가 대법원 판결을 부정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지만, 어쨌든 국제법적으로, 그리고 1965년 한·일 양국 정부의 약속에 비추어보면 2018년 대법원 판결은 일본으로서는 한국이 합의를 어긴 것이라는 결론이 된 것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비슷한 발언을 한 바 있다. 지난해 9월28일 아베 전 총리 국장 참석차 일본을 방문한 한 총리는 기자들과 만나 “국제법적으로 보면 일반적으로 이해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난 건 사실이고, 그것 때문에 대한민국의 신인도에 손상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40년지기’로 불리는 석동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은 “일본에 반성이나 사죄 요구도 이제 좀 그만하자”라고까지 주장했다. 그는 대법원 판결을 “무식한 탓에 용감했던 어느 대법관 한 명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하지도 않고 외교부나 국제법학회 등에 의견조회도 하지 않은 채 얼치기 독립운동(?) 하듯 내린 판결 하나로 야기된 소모적 논란과 국가적 손실이 너무나 컸다”라고 비판했다.
정확하지 않은 이야기다. 2012년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에서 파기환송된 다음,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확정된 판결이다. 그사이 사법 농단이 벌어졌다. 당시 양승태 사법부는 박근혜 정부 요청에 따라 강제동원 소송을 지연시키거나 결과를 바꾸려 했다는 의혹을 샀다. 그 대가로 상고법원 설치와 법관 해외파견 확대 등을 거래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해당 사건을 수사 지휘했던 이가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이다.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왼쪽)·김성주 할머니가 3월7일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법원 판결은 신성불가침이 아니고,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 새 판례로 재해석될 수 있다. 민사 판결은 두 당사자(원고·피고)에 의해 조정될 수도 있다. 하지만 둘 다 조정안에 참여하길 원치 않은 상황에서, 이미 확정된 판결을 존중하라는 말은 법치까지 갈 필요가 없는 얘기다. 입법·행정·사법과 같은 삼권 분립의 개념을 더할 필요도 없다. 검찰총장 자리에서 정치권으로 직행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법치’를 정치인 윤석열의 주요 키워드로 내세운 바 있다.
게다가 법원 판결에 대한 정부 관계자들의 공개적인 부정 반응은 결과적으로 한국의 협상력까지 떨어뜨렸다. 협상 테이블에 참여한 적이 있는 한 전직 외교관은 이번 정부의 최종안을 낸 과정을 ABC 학점 중 C 학점이라고 평가했다. “원래 결론과 시한을 정해두고 하는 협상은 실패하게 되어 있다. 우리 패를 다 보여주고 상대방에게 뭘 해달라고 하면, 될 것도 안 된다. 입장 바꿔 생각해봐라.”
세계를 제대로 보고 있는가
남관표 전 주일 대사의 지적도 비슷하다. 3월7일 더불어민주당 평화·안보대책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그는 “외교는 51대 49의 결과를 놓고, 서로 자기가 51이라고 말하는 게 교섭의 일반적인 관행이다. 그런데 이번 정부안을 보면 과연 우리가 무엇을 얻었나? 더 큰 문제는 우리 정부가 외교 교섭에서 이런 식의 자세와 역량을 가지고 대일 문제를 처리해 나간다면 앞날은 정말 어두울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가 유행시킨 “좋아 빠르게 가”와 같은 일처리에 외교부 내부에서도 불만이 나왔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며 속도 조절을 주문한 원로 그룹의 조언에도 윤석열 대통령의 강제동원 해결 의지가 확고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윤 대통령의 소신이 “지지율 1%가 나와도 해야 할 일”이라는 발언으로 외화되었다.
이에 대해 한 전직 외교관은 무책임하거나 위험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왕조시대 임금이라면 국민이 뭐라고 생각하든지 간에 자기가 다 책임지고 결심해서 할 수도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국민 1%가 찬성하면, 그건 하면 안 되는 정책이다. 모두가 다 반대하는데 혼자 선지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결정이란 게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없다. 국민을 설득하고 납득시키지 못하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해야지, 그걸 어떻게 하나. 위험한 말이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손 든 이)가 2018년 대법원 승소에 대한 소감을 밝히고 있다.ⓒ시사IN 신선영
남는 질문은 하나다. 이렇게까지 해서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복합 위기와 심각한 북핵 위협 등 안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미·일 3자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라는 것이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3·1절 경축사다. “104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기에 이제는 변화하는 세계사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된 일본과 잘 지내야 한다는 논리다.
그로부터 닷새 후 내놓은 강제동원 해법은 이러한 윤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세계 정세 대응의 연장이다. 과연 그럴까.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한·미·일 vs 북·중·러 구도’에 적극 편입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도, 베트남, 남미, 유럽 등을 보면 굉장히 복잡하게 움직인다.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구도는 국제정치의 실제 현실이라기보다는 가상 현실에 가깝다. 이에 매몰돼 있다가 실제 현실의 생존 게임에서 부적응자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우리는 지금 제대로 세계를 보고 있는가?”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 발표 이후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의 3월 방일, 4월 방미 계획을 밝혔다. 한·일 정상회담과 한·미 정상회담을 연속으로 가진 다음,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 초대받아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는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이 시기에 맞춰 발표된 강제동원 해법이라는 게 외교가의 정설이다. 정부의 발표 직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례적으로 한밤 성명을 내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3월6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이번 윤석열 정부의 해법이 “한·일 양국만이 아니라 미국에도 이익이 될 것이다”라고 논평했다.
그러는 사이 피해자만 다시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3월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연 93세의 강제동원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원망을 힘겹게 쏟아냈다. 기자회견을 마무리하며 사회자가 끝으로 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김 할머니는 청중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로 인해 (여러분들이) 오래 고생하신 덕분에 역사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일본은 잘못된 것을 반성을 해야 하는데, 조금도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안 합니다.”
시사인 김은지 기자
정의구현사제단, 尹퇴진 시국 미사…전주서 첫 신호탄
전북 전주서 시국 미사 <강제동원 배상안> 맹비난
"헌법 위반, 개인 권리 침해, 배임 강요, 직권 남용"
"전북 전주 시작으로 교구별 시국 미사 봉헌할 것"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은 20일 오후 7시 전북 전주시 풍남문광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국 미사를 열었다. 남승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삼일절 기념사><강제동원 배상안>은 일본 극우들의 망언·망동에 뒤지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굴종, 굴신으로 겨레에게 굴욕과 수모를 안긴 죄가 너무나 무겁다. 오늘 대통령의 용퇴를 촉구한다"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은 20일 오후 7시 전북 전주시 풍남문광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국 미사를 열었다.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윤석열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시국미사가 열린 풍남문 광장 한복판에는 "매판매국 굴욕굴종 검찰독재 윤석열, 퇴진을 멸령한다"라고 쓴 대형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이 광장을 가득 메운 많은 시민, 신부는 '윤석열 퇴진', '윤석열을 타도하자', '일본 영업사원 1호 윤석열 탄핵'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박수를 치며 구호를 외쳤고 개인 인터넷 방송자들이 실시간으로 현장 상황을 공유했다.
강론(설론)은 천주교 전주교구 김진화 신부가 맡았다. 김 신부는 "광화문 촛불 혁명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리며 더 이상 이렇게 만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또 이렇게 만나게 되어 마음이 착잡하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삼일절 기념사에서 식민지배 정당성을 주장하며 또다시 일본에 굽신거리며 사과를 구걸했다"고 말했다.
사제단은 성명을 통해 "윤석열 정부가 청사에 길이 빛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했고, 이태원 참사로 퇴진 목소리가 드높아졌을 때도 기대를 접지 않았지만, 오늘 대통령의 용퇴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사제단이 윤 정권이 헌법을 위반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고 주장하는 주된 용퇴의 사유에 대해 일본과 체결한 <강제동원 배상안>을 문제 삼았다.
무대 위에 오른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 남승현 기자
"세 가지 팔을 꺾다"
사제단은 "그(윤석열 대통령)는 대법원이 거듭 타당하다고 판단한 일본 전범기업들이 강제노역 피해자들에게 배상토록 확정했던 판결을 무효화했다"며 "삼권분립을 무참히 파괴하고, 역대 어떤 행정부 수반이 사법부의 판결 이행을 가로막았던가. 더욱이 그는 징용 배상판결을 고의로 '지연'시켰다는 이유로 대법원장을 구속했던 검사였으면서 대통령이 돼서는 최고법원의 역사적 판결을 무위로 돌렸다"고 말했다.
사제단은 이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팔을 비튼 죄'로 규정했다. 이어 "끌려가서 강제노역에 시달렸고, 돌아와서는 손해배상청구권이라는 지당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해서 평생 한을 품어야 했던 노인들의 팔을 꺾었다"며 "대통령의 통치권에는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권능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 아무 상관도 책임도 없는 우리 기업들이 배상금과 지연 이자를 물도록 하느라 팔을 비틀었다"며 "헌법은 대통령에게 마구잡이로 기업에 막대한 손해를 지정할 권한을 허락한 적이 없다. 그는 배임을 강요했고, 이는 있을 수 없는 직권남용"이라고 말했다.
촛불과 피켓을 들고 있는 시민들. 남승현 기자
"속으면 안 된다"
"한국, 징용배상 조치 착실히 실행할 것으로 기대한다", "강제동원은 없었다. 이미 끝난 문제", "가장 가까운 동맹국간 협력의 획기적인 장이 열렸다"
이른바 '제3자 변제안'에 대한 일본과 미국 측의 반응에 사제단은 "대한제국의 대신들로서 매국의 대명사가 된 을사오적도 국권을 넘기면서 비슷한 말을 했다"고 말했다.
사제단은 "한일협정이 만들어낸 '한미일 공조체제'에서 우리는 안보의 성장이라는 득과 함께 한반도의 분단과 미일 의존체계를 영속화하는 실도 겪었다"며 "문제는 언제까지 그래야 하느냐 하는 것인데 전임자들이 애써 이룩한 화해와 교류협력의 성과를 비웃는 대통령은 한사코 일본에 기대고, 미국에 업혀 지내려 하고 있다. 미래를 외치지만 친일과 반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슬픈 과거로 우리를 잡아끄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피켓을 들고 미사에 참여한 시민. 남승현 기자
"그에게 실격을 자신에게 삼일정신을"
"그는 헌법 준수와 국가 보위, 평화적 통일과 자유, 복리, 민족문화 창달을 위해 노력한다는 약속을 심하게 어겼다. 역사적 퇴장을 명령한다"는 사제단은 그를 지칭하며 이렇게 표현했다.
"가혹한 강자독식을 더 나은 미래로 믿으며 서민 생존권을 무시, 노동자들을 적으로 대하고 파업을 '북한 핵 위협'처럼 여기며 4·19이래 수많은 사람이 목숨 걸고 쟁취한 민주주의를 경시하며, 검찰의 권능을 악용해서 정적 제거에 몰두하고 편중인사로 일명 '검찰 공화국'을 수립하며, 이태원 참사에서 보았듯이 공권력을 일신의 안위를 위해 오남용하며, 사죄도 사과도 하지 않고 사사건건 진실을 감추고 남을 탓하며, 7·5남북공동성명이라는 원칙을 깨고 전쟁불사에다 핵무장까지 주장함으로써 불안감 긴장을 고조시키며, 극소수의 특권 유지 확대를 위해 남녀노소 각계각층을 벼랑으로 내몰려, 탄소중립이라는 인류공동의 과제를 외면하고 한사코 원전강국으로 재도약하자는 시대착오적인 사람."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오후 일본 도쿄 긴자의 오므라이스 노포에서 친교의 시간을 함께하며 생맥주로 건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제단은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점진적인 성취로 이룩되며 심각한 중단이나 퇴보는 언제든 있게 마련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분단기득권 세력의 기사회생, 재집권으로 역사가 후퇴하고 있다"며 "6·15공동선언, 10·4선언으로 전진하다가도 이명박 박근혜 시대의 정체와 역진이 있었고 촛불들의 뜨거운 참여와 수고로 판문점 선언, 9월 평양선언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사제단은 "양심을 지닌 시민이라면 진영을 막론하고 힘을 합치자"며 지킬 것을 지키고, 고칠 것을 고쳐서 이룰 것을 이루는 역사의 현장에서 모두 만날 것을 촉구했다.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은 이날 전북 전주를 시작으로 교구별 시국 미사를 봉헌할 예정으로, 구체적인 순서와 방법에 대해서는 비상시국회의를 통해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북CBS 남승현 기자
1,000원에 아침밥 사 먹을 수 있는 41개 대학은...
20일 천원의 아침밥 사업이 시작된 고려대 학생회관 내 구내식당에서 판매하는 천원의 아침밥 사진. 뉴스1
농림축산식품부는 고물가로 식비 부담을 느끼는 대학생들을 위해 1,000원에 양질의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천원의 아침밥’ 사업을 41개 대학으로 확대한다고 20일 밝혔다.
이번 사업은 젊은층의 아침식사 습관화와 쌀 소비 확산을 위해 농식품부와 대학이 함께 지원하는 것으로, 학생이 내는 1,000원에 정부 지원 1,000원과 대학의 자율부담금을 더해 운영된다. 사업 기간은 3~12월이다. 다만 각 학교 사정에 따라 운영 개시일이 다르다.
전한영 농식품부 식량정책관은 "천원의 아침밥 사업 확대 등 세대별 맞춤형 쌀 소비 문화 형성을 지원해 쌀 수급 균형 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사업 규모는 지난해 28곳에서 올해 41개 대학, 68만5,000명 규모로 대폭 확대했다. 참여 대학은 아래와 같다.
◆올해 천원의 아침밥 사업 시행 대학
세종= 변태섭 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경남-부산 통합, 왜 지금인가
지금 경남도는 부산과 행정통합이란 초대형 숙제를 안고 있다. 전임 김경수 지사가 주도해온 부울경특별연합 추진에 부정적이던 박완수 현 지사가 불쑥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다. 박 지사는 특별연합이 특별한 권한도 실익도 재정 지원도 없으면서 업무만 떠안고 서부경남권 소외를 불러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광역지자체 통합은 법령도 미비됐고 가장 민감한 통합 청사 위치부터 공무원 구조조정까지 난제투성이란 걸 행정 전문가인 그가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왜 던졌을까. 어려워도 꼭 가야 할 길이란 소명감 때문일까, 아니면 초선으로 막 시작한 경남 도정에서 특별연합을 걷어내기 위해서일까? 경남도는 "진정한 부울경 메가시티는 행정통합"이라는 논리도 폈다. 이에 김 전 지사는 '옥중서한' 형식을 빌려 "(특별)연합 없는 (행정)통합은 기초공사도 하지 않고 집 짓겠다는 격"이라고 직격했다. 어쨌든 행정통합은 동남권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경남도는 올 상반기 여론조사에 이어 시도 의회 간 협의와 조례 제정이 순탄하게 진행된다면 주민투표 시행, '부울경 특별자치도 설치 특별법' 제정을 거쳐 2026년 지방선거에서 통합 자치단체장을 선출한다는 일정까지 내놓았다. 지난달엔 양측 실무추진위 첫 회의가 열렸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게 빠졌다. 시민사회와 전문가 그룹에 의한 공론화 과정이다.
여론조사를 해보고 찬반 의견이 갈리고 여론이 분열되면 추진 중단을 선언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도청 쪽에서 나온다. 사실 박 지사가 처음 행정통합안을 제시했을 땐 워낙 갑작스러워 경남은 물론 부산에서도 긴가민가하는 분위기였을 것이다. 부산에서는 "행정통합은 특별연합 대체재로 추진할 수 없고, 2026년 통합 완성은 과욕"이란 지적도 나왔다. 부산시는 2030 세계엑스포 유치에 신경이 집중된 상황이다. 공식적으로는 박형준 시장이 통합 제안을 수용, 박 지사와 공동 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울산은 독자 노선을 선언했다. 마침 먼저 진행됐던 대구-경북 통합 논의 중단 소식이 들려왔다.
특별연합이든 행정통합이든 목표는 하나일 것이다. 국가적으론 균형발전이요, 지역적으론 수도권 일극 체제에 맞선 동남권 경쟁력 확보 아닐까. 최근 수도권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조성 계획 발표에서 보듯 중앙정부는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때론 싸워야 할 대상임을 다시 확인시켜줬다.
한때 한 지붕 아래 대가족으로 살았던 부울경. 성년이 돼 한 집에선 못 살겠다고 줄줄이 분가했던 부산과 울산. 각자 문패도 달고 브랜드도 따로 가졌다. 이제 마을 전체가 살기 어려워졌다며 흩어졌던 가족들이 다시 합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진영과 이념을 넘어 지역 생존법을 함께 모색해야 할 절박한 시기다. 행정에서는 새 과제의 장단점을 솔직히 털어놓고 시민들의 자발적 의견과 참여를 구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 점에서 경남도는 먼저 부산과 행정통합, 왜 지금 해야 하는지 친절히 설명해야 한다. 최종 선택은 도민과 시민이 한다.
정학구 전 언론인 (webmaster@idomin.com)
한국 ‘주 69시간’에 전 세계 놀랐다…잇따라 외신보도
한 서울대 학생이 21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학생회관 앞에서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비서공)’의 주69시간 노동시간 개편안 철회 요구 대자보를 읽고 있다. 전지현 기자
한국 정부가 추진한 ‘주 69시간제’ 근무에 대한 외신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앞서 호주 언론이 이와 관련해 과로사 문제를 지적한 데 이어 미국, 영국, 스페인 등 세계 각국 언론에서 이를 조명하고 있다.
22일(현지시간) 미국 NBC 방송은 ‘주 69시간 근무? 그렇게는 못 살아, 한국 청년들은 말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주 최대 69시간 노동을 골자로 하는 한국의 노동법 개정안과 관련한 논란을 보도했다. NBC는 “한국에서 주당 노동시간 상한을 52시간에서 69시간으로 늘리는 방안이 젊은 노동자들의 극심한 반발을 불렀다”며 한국 청년들의 반응을 직접 인터뷰하여 생생히 전했다.
NBC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 세계적으로 노동에 지배되는 과거의 삶으로 돌아갈 의향이 있는지 재고하고 있다면서 “악명 높은 장시간 노동의 일중독 문화가 있는 한국의 경우 과도한 노동과 관련한 우려가 특히나 심각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 노동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021년 기준 1915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네 번째로 많다. 한국보다 노동시간이 많은 나라는 멕시코, 코스타리카, 칠레로 모두 중남미 국가 뿐이다. 2011년 우리나라 노동시간은 연 2136시간으로 당시 OECD 1위였고, 2017년까지는 2위를 유지하다가 중남미 국가들이 OECD에 가입하면서 그나마 순위가 낮아졌다. 미국과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 노동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각각 1791시간과 1490시간이다.
NBC는 한국에는 초과근무가 일상화돼 있고 일을 끝내도 상사보다 먼저 퇴근하기 힘든 데다 퇴근 후엔 회식까지 참석해야 해 과로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고 짚으면서 최근 직장인을 위한 ‘낮잠카페’가 한국에서 성행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자살률이 10만명당 26명으로 선진국 중 가장 높고, 합계출산율이 작년 기준 0.78명으로 세계 최저인 것을 언급하면서 “일중독이 공중보건 측면에서도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이 21일 국회 환경노동위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부착한 ‘대통령은 칼퇴근 노동자는 과로사’라고 적힌 피켓 앞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질문을 듣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외신에서 한국의 주 69시간제 논란을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미국 CNN방송·워싱턴포스트, 영국 가디언, 스페인 엘파이스, 호주 ABC방송 등 세계 각국의 언론에서도 한국의 노동시간 연장 문제를 이미 보도한 바 있다.
미국 CNN 방송은 지난 20일 “노동자의 정신 건강과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동시간 단축이 전 세계 곳곳에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적어도 한 국가는 이를 놓치고 있는 것 같다”며 한국의 노동시간 연장 문제를 전했다.
CNN은 한국 노동자들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과로사’로 매년 수십명이 목숨을 잃는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한국의 청년들이 노동시간 상한 확대에 반대하는 이유를 소개했다. 이어 심장마비, 산업재해, 수면부족 운전 등으로 목숨을 바친 ‘과로사’ 사례 수십 건에서 이런 장시간 노동의 이면이 여실히 드러난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지난 17일 “한국 정부가 주 69시간제 도입 결정을 재검토할 방침”이라며 청년층의 반발을 소개했다. 현행 주 52시간제에서도 주 70시간 이상 일하는 초과근로자나 보상 없이 빈번히 잔업한다는 노동자 사례를 전하고, 주 69시간제 정책이 분노의 촉발제가 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장시간 노동이 “저출생 극복 방향과 맞지 않고, 자랑이 아니다”라는 전문가의 비판도 전했다.
이 매체는 앞서 지난 11일에도 한국의 주 69시간제에 관한 보도를 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낮은 출산율과 높은 자살률을 전하면서 사회적 문제와도 결부시켰다. WP에 따르면 세계보건기구(WHO)는 장시간 노동이 뇌졸중과 심장병 위험 증가와 연관이 있다면서 “주당 55시간 이상 일하는 것은 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한다”고 밝혔다.
영국 가디언은 15일 청년들의 반발로 한국 정부가 주69시간제 정책을 재고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친기업성향으로 여겨지는 윤석열 대통령이 고용주에게 더 많은 노동유연성을 제공하기 위해 노동시간 연장을 지지했다”고 전했다.
이어서 한국의 노동시간은 OECD 평균보다 199시간, 독일보다 566시간 더 많다고 전했다. 이러한 장시간 노동은 “지난해 수십개의 기업이 주4일제를 시험 도입한 영국을 포함해 다른 주요 경제국들의 흐름과 다르다는 비판을 받는다”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작년 3300명이 6개월간 주4일제 시범 운영에 참여한 결과 이직과 병가는 줄어든 반면 생산성은 떨어지지 않아 대부분의 회사가 이를 계속 시행하고 있다.
스페인 엘파이스 역시 17일 일중독 문화로 유명한 한국에서 주69시간제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커지자 정부에서 정책을 재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호주 ABC 방송도 14일 이와 관련한 논란을 집중 조명하면서 과로사를 한국어 발음 그대로 ‘kwarosa’로 표현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23일 호주에서는 주4일제 근무를 처음으로 공식 시행했다./ 최서은 기자
‘검사의 영장청구권’, 헌법에 어떻게 들어갔나
수사권 축소 입법이 가능한 이유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영장청구권은 ‘검사’에 부여된 헌법상 권한이지만 이를 바탕으로 헌법이 수사권을 (검찰법상) 검사에게 부여한 것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다수의견)
“검사의 영장신청에 관해 규정한 헌법 조항은 공익의 대표자이자 인권옹호기관의 지휘에 있고 법률전문가의 자격을 갖춘 ‘헌법상 검사’에게 ‘헌법상 수사권’을 부여한 것이다.” (소수의견)
검찰의 수사권을 축소한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둘러싼 헌법재판관 9명의 의견이 5대4로 팽팽히 갈렸습니다. 23일 헌재가 2022년 국회에서 통과한 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이 유효하다는 결정을 내릴 때 말입니다. 특히 수사권·소추(기소)권이 헌법상 검사만의 권한인지를 두고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의 해석이 엇갈렸습니다.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헌법 제12조 제3항)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을 할 때에는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헌법 제16조)
검사의 수사권이 헌법상 권한이라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등의 주장은 영장신청권을 검사에게 부여하는 헌법 제12조 제3항 및 제16조로부터 출발합니다. ‘검사의 영장청구권’을 명시한 헌법은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검사의 영장청구권은 어떻게 헌법에 들어가게 됐을까요?
한국 검찰의 막강한 권력은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인신구속의 권한을 수사기관에 부여했던 일제강점기 형사 제도에서 비롯됐습니다. 조선총독부가 1912년 ‘조선형사령’을 공포하면서 검사와 사법경찰관(경찰)이 피의자를 일정 기간 붙잡아놓고 강제수사할 수 있는 권한을 보장했습니다. 법관에 의한 영장주의가 들어온 것은 해방 후 미군정 시대였습니다. 1948년 3월 공포된 미군정법령 제176호를 보면, 검사와 사법경찰관 기타 어떠한 관헌이라도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하지 않고는 인신을 구속할 수 없다고 규정했습니다. 다만 이 규정에서 영장청구권은 누구에게 있는지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습니다.
결정적 변화는 5·16 군사쿠데타를 기점으로 발생합니다. 1961년 형사소송법을 개정하면서 구속영장 및 압수수색영장 규정에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빠지고 대신 “사법경찰관은 검사에 청구하여”가 들어갑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판사의 구속영장을 받아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검사뿐 아니라 사법경찰관에게도 영장신청권을 주고 있던 것을, 1961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검사가 판사의 구속영장을 받아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다”로 개정했습니다. 영장신청권자를 검사로 한정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제5차 개정헌법(제3공화국 헌법)에는 “체포·구금·수색·압수에 있어 검찰관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는 규정이 들어갔습니다. 검사의 영장신청권이 형사소송법에서 헌법으로 격상된 것입니다.
헌법상 검사의 영장청구권을 검사의 수사권으로 확대할지를 두고 헌재의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은 엇갈리게 해석합니다.
다수의견(유남석·이석태·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
“헌법상 검사의 영장청구권은, 종래 빈번히 야기되었던 검사 아닌 다른 수사기관의 영장신청에서 오는 인권유린의 폐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서, 수사과정에서 남용될 수 있는 강제수사를 ‘법률전문가인 검사’가 합리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도입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헌법개정권자는 영장신청의 신속성·효율성 증진의 측면이 아니라 수사기관의 강제수사 남용 가능성을 경계하는 맥락에서, 법률전문가이자 인권옹호기관인 검사로 하여금 제3자의 입장에서 수사기관이 추진하는 강제수사의 오류와 무리를 통제하게 하기 위한 취지에서 영장신청권을 헌법에 도입한 것으로 해석되므로, 검사의 영장신청권 조항에서 검사에게 헌법상 수사권까지 부여한다는 내용으로 논리 필연적으로 도출된다고 보기 어렵다.”
소수의견(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재판관)
“‘헌법상 검사’의 영장신청은 그 자체로 ‘헌법상 수사권’의 행사에 해당하고, 이는 영장주의가 적용되는 강제수사에 관해 구체적으로 개별적인 수사 활동의 기능적 목적과 방법상 한계를 법관 이전에 준사법기관인 검사가 선행적으로 판단하도록 함으로써 기본권침해의 발생 가능성을 통제하는 의미가 있다.”
“검사의 영장신청에 관해 규정한 헌법 제12조 제3항 등은 공익의 대표자이자 인권옹호기관의 지휘에 있고 법률전문가의 자격을 갖춘 ‘헌법상 검사’에게 ‘헌법상 수사권’을 부여한 조항이라 할 것이다.”
검사의 영장신청권을 근거로 검사의 수사권이 헌법상 권한이라는 한 장관 등의 주장을 헌재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수사권은 검사의 헙법상 권한이 아니며, 수사권과 소추권이 행정부 중 어느 ‘특정 국가기관(검찰)’에 전속적으로 부여된 것으로 해석할 헌법상 근거가 없다고 헌재가 판단한 것입니다. 실제로 검사뿐 아니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나 경찰, 해양경찰, 군검사, 군사경찰, 특별검사 등 행정부 내에 다양한 이들에게 수사권이 부여되고 있습니다.
한 장관 등은 ‘검사의 수사권과 소추권은 헌법상 권한’이라는 전제로 권한쟁의심판을 헌재에 청구하고 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을 무시하고 검사의 수사 범위를 재확대하는 시행령 마련해왔는데, 헌재 결정으로 그 전제가 산산이 조각난 것입니다. 헌재가 수사권과 소추권을 입법으로 조정·배분할 사항이라 밝혔기에 국회는 절차만 제대로 밟는다면 검찰의 수사권을 축소하는 그 어떤 법률도 만들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형사제도에 뿌리를 둔 검찰의 막강한 권력이 이제는 견제 받을 수 있을까요?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에나·단디·배끼·보도시' 진주 지역어 빠르게 소멸
경상대 박용식 교수 "학생들이 지역어 사용 부끄러워하는건 교육·행정 실패"
시의회서 '지역어 부흥 정책' 위한 기초조사·보존방법 발표
'에나(진짜), 단디(확실하게), 배끼(공연히), 보도시(겨우)…"
경남 진주 지역에서 주로 사용하는 지역어가 급격히 소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경상대 국어문화원장인 박용식 교수 등 4명이 조사한 '지역어 기초조사 및 보존방법에 대한 연구'에서 밝혀졌다.
박 교수는 지역 초·중·고등학생과 대학생, 성인 등 모두 302명을 대상으로 서면 조사한 결과 진주의 대표적 지역어인 '에나'는 초등학생은 80% 이상, 중학생은 60% 이상이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단디'의 경우 전 연령층에서 40%가량이 사용하는 데 그쳤다.
'배끼'와 '보도시'는 초·중·고등학생은 거의 안 쓰거나 쓰더라도 10% 미만에 불과했다.
대학생과 성인도 사용한다고 대답한 경우가 20%를 넘지 않았다.
박용식 교수는 지난해 11월에 이 사업에 선정되어 4명의 연구원(강현주, 박동한, 박성희, 김국진)과 함께 약 3개월 간 조사했고, 그 조사 결과의 자세한 내용을 이날 발표한 것이다.
박 교수는 "진주 지역의 초ㆍ중ㆍ고등학생과 대학생, 성인 등 모두 302명을 대상으로 서면 조사한 결과, 진주의 대표적 지역어인 '에나'의 경우 초등학생은 80% 이상, 중학생은 60% 이상이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라고 답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했다.
반면, '공연히'를 뜻하는 '배끼'와 '겨우, 빠듯이'를 뜻하는 '보도시'는 초ㆍ중ㆍ고등학생은 거의 안 쓰거나 쓰더라도 10% 미만으로 사용한다고 답했으며, 대학생과 성인도 사용한다고 대답한 경우가 20%를 넘지 않았다.
지역의 대표적인 의문법인 '어디 가노? (많이) 무웄나?'의 경우 상대적으로 낮은 사용 비율을 보였으며 이와 같은 표현 대신 '어디 가?, (많이) 먹었어?' 형을 전 계층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어인 '어디 가노?, (많이) 무웄나?'는 고등학생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고 대학생과 성인들은 그다음인 점이 특징적이다.
이러한 양상이 나타나는 원인에 대해 박용식 교수는 "우리 지역 학생들이 같은 동네에서 컸던 자기 또래들과 지낼 때는 거리낌없이 사용하다가 사회에서 다른 지역어를 쓰는 사람을 만나면 자기가 써 오던 말을 스스로 부정하면서 표준어에 가깝게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박용식 교수는 "우리 지역에서 나서 우리 지역의 학교를 다니고 또 성장해서 다른 지역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우리의 지역어가 '선물'이 될 것인지 '장애'가 될 것인지는 우리 지역민들이 우리 문화의 자긍심을 얼마나 가지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그는 "따라서 지역의 후속 세대들이 지역을 외면하면 지역의 미래는 없으며, 지역의 학생들이 지역어 사용을 부끄러워한다면 그것은 교육과 행정의 실패이다. 진주도 늦기 전에 '지역어 부흥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날 세미나는 경상대, 진주시의회, 진주문화연구소, 역사진주시민모임 등이 공동 주최했고, 조창래 진주참여연대 상임대표, 진주문화연구소 김중섭 이사장과 남성진 소장, 허정림 진주시의회 기획문화위원장 등 의원들이 참석했다.
박 교수는 "우리 지역 학생들이 같은 동네에서 컸던 자기 또래들과 지낼 때는 거리낌 없이 사용하다가 사회에서 다른 지역어를 쓰는 사람을 만나면 자기가 써 오던 말을 스스로 부정하면서 표준어에 가깝게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우리 지역어가 '선물'이 될 것인지 '장애'가 될 것인지는 우리 지역민들이 우리 문화의 자긍심을 얼마나 가지느냐에 달려 있다"며 "지역의 학생들이 지역어 사용을 부끄러워한다면 그것은 교육과 행정의 실패"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날 시의회에서 '지역어 부흥 정책'을 강조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합뉴스) 최병길 기자/ 오마이뉴스 윤성효(cjnews) 2019-02-18
구속영장 청구된 한상혁 방통위원장 “억울하지만 사법절차 존중할 것”
일본의 ‘조선학교’를 아십니까
일본에는 ‘조선학교’가 있다. 북한 정권이 예산을 지원하고,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가 운영한다. 김일성·김정일 사진을 교실에 걸어두고 북한식 사상을 배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당연히 ‘북한학교’라고 표현할 법도 한데, 우리는 이를 여전히 ‘조선학교’라고 부른다.
그건 조선학교의 뿌리가 북한 사람이 아니라, 분단 전 일본으로 징용 간 ‘조선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1세대 재일조선인으로 불리는 이들이다. 10명 중 8명의 고향이 지금의 남한이었다는 이들은 생업을 위해 해방 이후에도 일본에 남게 되고, 우리말과 역사를 가르칠 학교가 필요함을 체감한다. 일본 현지에서 혹독한 식민 지배를 몸소 경험했으니 차별이 불 보듯 뻔할 일본학교에 자기 딸, 아들을 보낼 수는 없었던 셈이다.
▲ Apple TV+ 드라마 ‘파친코’ 포스터.
1세대 재일조선인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지난 해 세계적으로 흥행했던 드라마 ‘파친코’가 재현했듯, 이들은 자신들을 “바퀴벌레라고 부르는” 일본인들의 지독한 멸시와 차별을 견뎌야 했다. 재일조선인 2세대이자 조선학교 출신인 양영희 감독 역시 자신의 책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에서 어머니로부터 늘 “조선인은 더럽다, 그런 소리 들으면 안 돼”라며 옷 매무새를 단정히 하라는 당부를 듣고 컸다고 돌이켰다. 그런 와중에 북한 정권이 학교 운영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의 조선학교 학생들은 결국 남한에서 태어난 선대에 의해, 일본으로 이주한 가족을 두고, 북한식 교육을 받게 된 아이들이다. 역사의 비극 때문에 좀처럼 공존하기 어려워 보이는 복잡한 정체성을 지니게 된 아이들을 국내에 제대로 소개한 최초의 다큐멘터리가 2007년 개봉한 김명준 감독의 ‘우리 학교’다. 홋카이도에 하나뿐인 조선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의 삶과 생각을 가까이에서 들어보는 촬영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운파상을 수상했다.
▲ 영화 ‘60만번의 트라이’ 스틸컷.
이후 개봉한 박사유·박돈사 감독의 ‘60만번의 트라이’(2014)와 이일하 감독의 ‘울보 권투부’(2015)는 스포츠라는 대중적인 테마 안에서 조선학교 학생들을 주목한다. 오사카 조고 럭비부의 전국대회 준비 여정을 쫓는 ‘60만번의 트라이’는 사람간의 편을 가르지 않는 ‘노사이드 정신’으로 귀결되고, 도쿄 조고 권투부의 중앙대회 출전 준비 과정을 다루는 ‘울보 권투부’는 ‘자존심을 걸고 싸우는 삶’을 역설한다. 이는 역사의 질곡 안에서 형성된 조선학교 학생들 특유의 세계관과도 맞닿아 있다.
22일 개봉하는 ‘차별’은 사회적 이슈를 작품으로 끌고 온다. 일본 정부는 2010년부터 외국인학교를 포함한 모든 고등학교의 수업료를 지원한다. 이 고교무상화정책에서 오직 조선학교만이 배제돼 있다. 다큐는 2012~2014년에 걸쳐 오사카, 아이치, 히로시마, 후쿠오카, 도쿄 등 5개 지역에서 ‘조선학교 차별은 부당하다’는 내용의 소송이 제기되지만 결국 전부 패소하고야 마는 현실에 주목한다.
▲ 영화 ‘차별’ 스틸컷.
북한 정권의 지원을 받는 조선학교 아이들의 이야기를 왜 알아야 하느냐, 고 반문할 수도 있다. 다만 언급한 다큐들이 그런 불편한 눈길을 보내는 이들이 익히 많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우리는 일본인이 아니기에 우리말을 쓰고 우리 역사를 배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는 학생들의 면면을 담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차별’을 공동연출한 김도희 감독이 “이 아이들이 일본 학교에 가면 일본 말로 된 ‘위안부는 매춘부고 독도는 일본 땅이다’와 같은 일본 역사를 배워야 한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미디어오늘/ 박꽃 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
'이재명 대표직 유지' 후폭풍…"민주당 의원으로서 부끄럽다"
이상민 "무리에 무리 거듭, '예외'로 대표직 유지 지질해" vs 우상호 "끝났다. 더 얘기하면 토 다는 것"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당 대표에 대해 당헌상 '기소 시 직무 정지' 예외 조항을 적용한 것을 두고 내부 비판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에 있는 의원으로서 부끄럽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이상민 민주당 의원은 24일 한국방송(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전체적 과정이 당 대표 지위와 관련된 것인데 원칙을 관철하지 못하고 예외로 마치 쫓기듯 지질한 모습을 보였다"며 "무리에 무리를 거듭하고 원칙이 아닌 예외로 당 대표를 유지하는 것이 별로 상쾌하지 않다"고 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 대표의 기소 소식이 전해진 22일 당일 당무위원회를 소집하고 이 대표 거취 문제와 관련해 '기소 시 직무 정지'를 규정한 당헌 80조 1조의 예외 조항인 동조 3항(정치탄압 등이 인정되는 경우 징계 처분 취소)을 적용했다. 일부 비당권파 의원들은 당무위가 기소 당일 개최된 점, 직무 정지 절차가 생략된 점 등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며 '방탄 당무위', '답정 당무위'라고 비판했다.
이 의원도 "뭔가 쫓기듯 허겁지겁 형식적 절차를 밟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정당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며 "아주 씁쓸하고 저 자신부터 민주당에 있는 의원으로 부끄럽다는 생각"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는 "당헌 80조는 지금 문재인 전 대표 때 당의 혁신 방안으로 대국민 약속을 하면서 여러 가지 구설수에 있는 사람은 당직을 맡지 않도록 한다는 기본 정신을 견지하려고 하는 조항"이라며 "예외적으로 아주 신중하게 아주 협소하게 적용해야 할 그 부분을 적용해서 이재명 대표가 당대표직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과연 당당한가라는 점에서는 저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주 도덕적 정당성 면에서도 우위에 있어야 할 더불어민주당으로서 보유해야 할 자세인지. 국민들의 시선의 기준에서 보면 별로 그렇게 개운치가 않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검찰이 분명히 무리한 수사. 별건 수사를 남발한다든가 수사 절차상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고 여러 가지 무리한 과도한 표적 수사를 하고 있는 것은 틀림 없다"면서도 "그러나 이 대표의 사법적 의혹이 검찰의 과도한 수사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재명과 관련된, 어쩌면 진실 규명이 필요한 사법적 의혹이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대표를 향해 "본인의 사법 리스크 때문에 당에 엄청난 먹구름을, 부정적 이미지를 끼치고 있고 민생에 올인(all in)해야 하는데도 당 대표 건에 올인하는 자기모순적 부분이 있다"며 "이 대표가 자신의 신상에 관해 거취 정리가 필요하다"며 대표직 사퇴를 촉구했다.
그는 "가능하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며 "이 대표가 사법적 의혹에 집중해서 무고함을 밝히고 당은 당대로 빨리 다른 후속 체제를 갖춰 민생에 올인한다든가 국회 회기에 전념하는 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그게 하루이틀 뚝딱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걸 질질 끌 성질은 아니"라고 밝혔다.
이 대표 외 다른 대안이 없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공당에서 대안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겠느냐"라며 "이 대표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면 그것은 공당이 아니고 1인 정당"이라고 반박했다.
반면 우상호 의원은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비명계) 그 분들도 검찰이 무리하게 수사를 했고 정치적 탄압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전부 다 인정한다. 다만 우리 당이 절차적으로도 엄밀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말씀"이라며 "제가 볼 때는 크게 앞으로 대표에게 퇴진하라는 문제는 거론하실 분이 별로 안 계신 것 같다"고 주장했다.
우 의원은 "말씀하실 분이 계실 것 같은데 제가 볼 때는 한 두세 분 정도다. 우리가 162명인데 이 문제와 관련해서 얘기할 수 있는 분은 두세 분"이라며 "거의 끝났다고 보시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무위 결정도 내렸고 어제 의총에서도 얘기를 했는데 앞으로 더 얘기하면 이제 토 다는 게 돼서 본인들도 쑥스러울 것"이라고 비명계를 겨냥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도 이날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제가 수요일 목포에서 시민들과 소통해보니 '도대체 민주당이 하는 게 뭐냐, 증거도 없는 이재명 대표에 대해서 그렇게 무차별하게 공격을 하면 뭉쳐서 싸워야지, 비명 친명이 어디 있고 수박이 어디 있냐' 하다가 7시간 만에 최고위 당무위 열어 당헌 80조 해석을 해 놓으니까 '이번에 민주당이 잘했다. 저렇게 제대로 해야지 무슨 소리냐' 하는 정서도 있다"고 이 대표에게 힘을 실었다.
박 전 원장은 전해철 의원이 당무위 표결에서 기권하고 퇴장한 데 대해서도 "중진이 좀 넘어가 주는 것도 좋다"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한편 이 대표는 이날 울산을 찾아 지역 민생 현장을 살핀이다. 이 대표는 2주 전 경기도 민생 현장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전 경기도청 비서실장의 부고로 인해 지역 일정이 전면 중단됐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울산시당 대회의실에서 열린 현장최고위원회에서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 전반을 비판했다. 이 대표는 "일본에는 퍼주고, 미국에는 한없이 양보하고, 중국에는 당하는 이런 정책으로는 수출 회복이 불가능하다"며 "오직 대한민국 국익을 중심에 두고 통상 전략을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후쿠시마 농수산물 수입 금지 부분은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멍게가 있었나 없었냐'가 아니라 후쿠시마 농수산물 수입 문제를 논의했나 안 했나가 중요하다. 정상회담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4월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우리 국민의 우려가 매우 높다. 이번 회담마저 '퍼주기 외교 시즌 2'가 돼서는 절대로 안 된다"며 "반도체지원법, IRA법 같은 우리 미래가 걸린 외교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대한민국 경제를 조금이라도 회복시키기 위해 제대로 된 외교에 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프레시안 서어리 기자
추남-서어리, 이명선 이 둘이 프레시안에 있는 한 프레시안 회복은 불가능할 듯. 전에 프레시안이 좌파 교양지라고 하신 독자 분이 있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creativethingpeople이것은 명백하게 이 재명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정치적 핍박을 받는 일입니다. 이런 일에 저항하지 못하고, 핍박을 그대로 당하도록 놔두는 것이 부끄러운 일 아닐까요? 전두환 대통령 때 김 대중 대통령이 감옥에서 고초를 받고, 사형 선고도 받았을 때,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고 김대중 대통령이 사형 선고를 받도록 놔두는 것이 옳았을까요? 여러분. 법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정의롭지 않은 사람들이 법을 이용할 때, 그것은 절대악입니다
제주4.3을 폄훼하는 이들에게 전하고픈 당부
4.3기념위 " 4.3은 세계인의 기록이자 역사"… 배우 박해일도 "유네스코 유산에 등재돼야" 호소
4.3사건법에 따르면,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뜻한다.
해당 법에는 "국가는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회복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시행하고, 누구든지 공공연하게 희생자나 유족을 비방할 목적으로 제주4.3사건에 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희생자, 유족 또는 유족회 등 제주4.3사건 관련 단체의 명예를 훼손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강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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