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위기 속 탈핵 결심한 독일…“이젠 안심”-“다른 나라가 비웃어”
가속을 멈춰라, 달팽이처럼 기어서 가자
8% 떨어져도 쌀 안 사겠다고? 농민 죽으라는 소리
산양·노루·담비 위 최상위 포식자가 나타난다
광주 첫 민간정원 '휴심정'...수목 28종·초화류 25종 등 22만본 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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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룰라, ‘기후변화 공동성명’ 채택…‘탈달러’ 무역 강화키로
“오염수 방류” 일본에 한 방 먹인 독일
기록적 폭설로 난리 겪었던 美서부…이젠 산지 쌓인 눈녹아 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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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위기 속 탈핵 결심한 독일…“이젠 안심”-“다른 나라가 비웃어”
낮 12시, 광활한 포도밭 한가운데에 있는 독일의 마지막 원자력발전소 ‘네카르베스트하임 2호기’에서는 수증기가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불씨가 사라진 재에서 마지막 연기가 피어오르는 듯했다. 전날만 해도 발전소는 거대한 수증기를 내뿜었다.
15일(현지시각) 공식적으로 가동이 중단된 독일 남서부 바덴 뷔르템베르크주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네카르베스트하임 2호기에서 수증기가 희미하게 피어오르고 있다. 네카르베스트하임/노지원 특파원
2023년 4월15일(현지시각) 0시를 기해 독일 남서부 바덴 뷔르템베르크주에 있는 네카르베스트하임 2를 비롯한 독일 내 원자력발전소 3기가 모두 멈춰 섰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날 발전소 앞 주차장에는 500명 넘는 시민과 반핵 활동가가 모였다. 독일이 마침내 ‘탈핵’을 이룬 날을 다 함께 기념하기 위해서다. 이날 시위는 축제에 가까웠다. 경찰차 서너 대는 건너편에서 차를 대고 기다릴 뿐이었다. “이제 안심이 된다”며 사람들은 밝게 웃었다. 서로 먹을 것, 마실 것을 나누고 사진을 찍었다. 환경단체가 설치한 무대에서는 밴드의 공연이 이어졌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돗자리에 앉힌 뒤 함께 점심을 먹었다.
15일(현지시각) 오후 독일 남서부 바덴 뷔르템베르크주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네카르베스트하임 2호기 앞 주차장에서 원전 가동 중단을 기념하는 시위가 열렸다. 축제 분위기가 났던 이날 시위에서 시민과 활동가들이 박수를 지며 환호하고 있다. 네카르베스트하임/노지원 특파원
삼 남매를 데리고 슈투트가르트에서 수잔(42)은 “역사적인 날에 일부가 되고 싶었다”며 “안심이 되긴 하지만 여전히 폴란드, 프랑스 등 주변 나라에서 새 원자로를 짓는 점이 우려스럽다.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핵폐기물 이야기가 나오자 밝던 낯빛이 금세 어두워졌다. “핵 쓰레기는 아주 오랜 기간 남습니다. 어떻게 핵발전이 녹색 에너지인가요?”
15일(현지시각) 오후 독일 남서부 바덴 뷔르템베르크주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네카르베스트하임 2호기 앞 주차장에서 원전 가동 중단을 기념하는 시위가 열렸다. 한 활동가가 아이들과 함께 핵 발전소에 연결돼 있던 모형 전기코드를 뽑아 태양광 패널로 옮겨 꽂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네카르베스트하임/노지원 특파원
15일(현지시각) 오후 독일 남서부 바덴 뷔르템베르크주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네카르베스트하
“5, 4, 3, 2, 1.” 무대에 오른 활동가들은 원자력발전소에 연결돼 있던 모형 전기 코드를 뽑아버렸다. 어른은 아이들과 함께 코드를 태양광 패널로 옮겨 꽂았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독일의 탈핵을 기념하는 시위는 이곳뿐 아니라 마지막 남은 원전인 엠슬란트, 이사르 2호기가 있는 링엔과 뮌헨, 그리고 수도 베를린에서도 열렸다. 이날 가동 중단된 원전 3기는 향후 해체될 예정이다.
독일의 탈핵 선언과 원전 가동 영구 중단 약속은 지난해 유럽을 덮친 에너지 위기 앞에서 한때 흔들리는 듯 했다. 1976년부터 약 50년 동안 반핵 운동을 해 온 독일 최대 환경단체 분트(BUND) 활동가 고트프리트 메이슈틸마는 “독일은 원전 없이도 충분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심지어 올해 석 달 동안 풍력 발전으로 만든 전기를 원전이 많은 나라 프랑스에 팔았다”고 지적했다.
15일(현지시각) 오후 독일 남서부 바덴 뷔르템베르크주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네카르베스트하임 2호기 앞 주차장에서 원전 가동 중단을 기념하는 시위가 열렸다. 주차장 곳곳에 체르노빌,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 핵 발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기록물이 전시됐고, 시민들은 역사적 사실을 다시 한 번 주의깊게 읽었다. 네카르베스트하임/노지원 특파원
이날 시위에 탈핵에 찬성하는 이들만 모인 건 아니었다. “46년 동안 이산화탄소(CO2) 배출이 없는 저렴한 전기를 제공해줘서 감사하다. 다른 나라는 우리를 비웃고 있다”고 튀빙겐에서 온 줄리안은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앞으로 10∼15년 동안 재생에너지가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며 “원전을 닫으면 더 많은 양의 석탄을 태워야 하는데, 기후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이들이 원전 폐쇄를 원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알리고 싶어 나왔다고 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상당수 시민이 핵발전소 가동을 당장 멈추는 데에 부정적이다. 지난 11일 독일 여론조사기관 인사(Insa) 조사 결과 응답자의 52%가 남은 원전 세 곳의 가동 중단이 “잘못됐다”고 답해 “옳다”는 응답 37%보다 15%포인트 앞섰다.
15일(현지시각) 오후 독일 남서부 바덴 뷔르템베르크주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네카르베스트하임 2호기 앞 주차장에서 원전 가동 중단을 기념하는 시위가 열렸다. 네카르베스트하임/노지원 특파원
지난해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으로 겨울을 앞둔 유럽에 ‘에너지 위기’라는 태풍이 몰아쳤다. 독일은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까지 천연가스 소비량의 절반 이상(55%)을 러시아에서 수입했고, 러시아는 서방이 경제 제재를 하자 독일을 포함한 유럽 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세계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고, 독일 시민들은 적어도 두 배 이상 오른 에너지 요금 청구서를 받아들고 충격에 빠졌다. 정부도 고민에 빠졌다. 1980년 반핵 운동을 동력 삼아 창당한 녹색당이 포함된 독일 ‘신호등’ 연정이 고심 끝에 원전 세 곳을 이달 중순까지 예비전력원으로 남겨뒀던 이유다. 이 밖에도 독일 정부는 미국과 중동 등에서 천연가스를 수입하기 위해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을 4곳을 추가 건설하기로 했다.
15일(현지시각) 오후 독일 남서부 바덴 뷔르템베르크주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네카르베스트하임 2호기 앞 주차장에서 원전 가동 중단을 기념하는 시위가 열렸다. 이날 시위 현장에는 어린이들이 공으로 핵 발전소를 넘어뜨리는 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네카르베스트하임 2호기 원전 모형이 공에 맞은 뒤 쓰러지고 있다. 네카르베스트하임/노지원 특파원
1969년 첫 상업용 원전 가동 이후 54년 만에 독일 내 모든 원자력발전소가 폐쇄되며 비로소 탈핵이 완성된 듯하지만, 핵발전이 남긴 유산을 청산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원전 해체 작업을 안전히 마치고,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최종 저장소를 찾는 일 등 과제도 여전히 남아있
스테피 렘케 독일 연방 환경·자연보호·원자력 안전·소비자 보호부 장관은 13일 “탈원전은 우리나라를 더 안전하게 만들지만, 원전이 남긴 유산을 없애는 수십 년의 도전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라며 “핵 (폐기물) 저장 시설에 대한 해결책을 계속 연구하고 재생에너지 확대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라고 했다. 독일 내 원자로에서 2만7000㎥ 규모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발생했고, 콘라드 저장소에도 약 30만㎥ 규모의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있다. 독일은 2030년까지 독일 내 사용 전력의 80%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할 계획이다.
네카르베스트하임/노지원 특파원
가속을 멈춰라, 달팽이처럼 기어서 가자
IPCC 보고서에도 등장한 탈성장, 암스테르담 등에서 ‘진가제’ 실험도 이어져
바깥 원은 자연적 한계, 안쪽 원은 사회적 기초인 ‘도넛 경제’ 실현해야
탈성장 진영의 상징인 달팽이의 겉껍데기는 한 바퀴 더 자라면 16배 커진다. 그래서 일정 크기에 이르면 달팽이는 몸을 더 키우지 않는다. 경제의 성장도 그래야 한다는 게 탈성장론이다. REUTERS 연합뉴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내의 식료품점에선 2020년 말부터 다소 독특한 영수증을 볼 수 있다. 제품 가격 표시에 탄소발자국, 토지 영향, 공정임금 같은 항목이 추가됐다. 암스테르담 시민 예니퍼르 드라우인(30)이 한 매장에서 고른 호박 영수증에도 낯선 항목들이 보였다. 킬로그램(㎏)당 6유로센트의 탄소발자국, 농업의 토지영향세 5유로센트, 공정임금 4유로센트. 드라우인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과의 인터뷰에서 “이것들은 모두 평소 아무도 지급하려 하지 않거나 인식조차 못하는 우리 일상에 추가되는 비용”이라고 말했다. 암스테르담시가 도입한 이른바 ‘진가제’(True-price Initiative)다. 시민의 일상이 무엇에 기반했는지 쉽게 알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도넛 경제’ 채택한 도시가 늘고 있다
암스테르담시 정부는 2020년 4월 코로나19 회복 전략이자 정책 기준으로 ‘도넛 경제’ 모델을 채택했다. 식료품 영수증에 탄소발자국을 표기하고, 모든 건설 프로젝트에서 지속가능성을 중심에 둔다. 건축 자재엔 ‘재료 여권’을 적용해 철거 때 재사용한다. 계단이나 창문에 쓰인 자재가 만들어지고 쓰인 이력을 기록해놓고 나중에 건물이 철거된 뒤 내용연수가 남은 자재를 재활용하는 것이다. 또 시정부가 직접 고장 난 노트북을 수거해 수리한 뒤 나눠주거나 옷수선점을 운영한다. 도시 내 모든 물자에 순환경제 원칙을 적용해 환경과 자원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배제를 줄인 시민의 ‘좋은 삶’(Well-being)을 보장하는 것이 목표다.
도넛 경제 모델은 덴마크 코펜하겐과 벨기에 브뤼셀, 뉴질랜드 더니든, 캐나다 너나이모 등이 채택했거나 검토 중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0년 출간한 책 <렛 어스 드림>(Let Us Dream)에서 도넛 경제가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하는 바티칸의 고민에 도움을 줬다며 “팬데믹 관점에서 경제에 대한 새로운 사고가 필요했다”고 언급했다.
도넛 경제는 이른바 ‘탈 성장’(Degrowth) 진영에서 제출한 여러 정책 대안 중 가장 유의미한 것으로 평가된다. 영국 옥스팜의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가 만든 것으로, 레이워스는 같은 이름의 책을 2017년 펴냈다. 국내에선 2018년 번역돼 나왔다. 도넛 경제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전세계 주요 도시의 네트워크인 C40이 레이워스에게 정책모델로 개발을 요청해 만들어지기도 했다.
도넛 경제의 개념도는 바깥과 안쪽에 두 개의 원이 있어 도넛 모양이다. 바깥 원은 자연적 한계, 안쪽 원은 사회적 기초를 뜻한다. 인류 활동이 이 두 원 사이, 즉 도넛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바깥 원인 자연적 한계는 9개 지표로 측정한다. 독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 책임자인 요한 록스트룀이 2009년 만든 지표다. 해양 산성화, 기후변화, 오존층 파괴, 대기오염, 생물다양성 손실, 토지 개간, 담수 고갈, 질소·인 축적, 화학적 오염이다. 안쪽 원은 인류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평등과 자유, 정의가 보장되도록 하는 12개 지표를 적용했다. 보건, 교육, 소득과 일자리, 평화와 정의, 정치적 발언권, 사회적 공평성, 성평등, 주거, 각종 네트워크의 접근권, 에너지, 물, 식량이다. 2015년 유엔이 ‘지속가능 발전목표’에 적시한 우선적 과제에서 도출한 것들이다. 이것이 최소한도로 보장되는 수준에서 다시 자연적 한계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게 도넛 모델의 기본 취지다. 탄소발자국을 표기한 영수증 등 암스테르담의 시책도 이런 취지를 따른다.
중요한 건 크기가 아니다
도넛 경제가 부상한 데는 당면한 기후위기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 파리기후협정에 따른 1차 목표(온실가스 2010년 대비 45% 감축) 시한이 불과 8년밖에 남지 않았지만, 지구상 온실가스는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부정적 전망도 많아졌다. 세계경제포럼은 2023년 1월 발간한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에서 ‘향후 10년간 인류를 위협할 문제’로 기후 완화(Mitigate) 실패를 1위로 꼽았다. 2위는 기후 적응(Adaptation) 실패, 3위는 극단기후다. 위협할 문제로 모두 ‘기후’를 꼽았다.
조사에 응한 1천 명의 세계 각 분야 전문가들은 파리기후협정에서 제시한 지구 기온 상승폭 1.5도 선을 지키려는 인류의 노력이 향후 10년 내 결국 실패할 것으로 봤다. 그도 모자라 변화한 기후에 적응하는 것조차 실패하며, 일상이 된 극단기후에 인류가 그대로 노출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본 것이다. 결국, 현 상황이 매우 비관적이라는 것이다.
영국 옥스팜의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 레이워스가 만든 도넛 경제 모델은 탈성장 진영에서 제출한 여러 정책 대안 중 가장 유의미한 것으로 평가된다. 레이워스는 같은 이름의 책을 2017년 펴냈고 국내엔 2018년 번역돼 나왔다. DEAL 제공
‘기후가 아니라 체제를 바꾸자’(System Change, Not Climate Change). 십수 년째 이어진 세계 기후정의운동에서 반복되는 구호 중 하나다.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도 2019년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 연설에서 “어떻게 감히 당신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하나도 바꾸지 않고 기술적인 해결책만으로 이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척하냐?”고 물었다. 위기의 근본 원인은 결국 인류 공동체가 먹고사는 방식 그 자체, 즉 ‘체제’에 있기 때문이다. 2019년 시민사회단체 연대기구 성격으로 만들어진 한국의 ‘기후위기비상행동’도 2021년 국회에 기후정의기본법 제정을 요구하며 “기후위기 대응과 기후정의 실현을 중점에 두는 방향으로 사회경제체제를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장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탈성장의 고민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고민의 바탕에는 근본적으로 닫힌계라는 지구가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은 ‘우주선 지구호의 경제학’(1966년)에서 “지구를 일종의 우주선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했다. 지구 밖은 에너지의 원천 태양을 제외하면 어둠뿐이다. 인류의 경제활동 규모가 행성 내 모든 생명체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커졌으니, 이제 그 크기의 적정함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장을 멈추거나, 더는 성장에 연연해하지 말자는 것. 탈성장 진영의 상징인 달팽이가 그렇다. 달팽이의 겉껍데기는 한 바퀴 더 자라면 16배 커진다. 그래서 일정 크기에 이르면 달팽이는 몸을 더 키우지 않는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그렇다. 성체가 되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중요한 건 크기가 아니니까. 경제의 성장도 그래야 한다는 게 탈성장론이다.
이때 저량(Stock)과 유량(Flow)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욕조 안 물을 생각하면 쉽다. 순간순간 달라지는 수위가 저량이다. 틀어놓은 수도꼭지에서 욕조로 흘러드는 물의 양과, 다시 배수구로 빠져나가는 양의 차이가 유량이다. 우린 주로 당장 눈에 보이는 저량만 생각한다. 저량이 계속 느는 게 성공이자 행복이었다. 하지만 욕조 안 물은 끊임없이 새로 유입되고 배출된다. 유량이 지나치게 많거나 적으면, 욕조 안 물도 언젠가 넘치거나 사라진다. 지구 생태계 내에서 이뤄지는 인류의 경제활동도 마찬가지다. 인류의 경제는, 인류가 가져다 쓰고 버리는 원재료와 폐기물을 지구 생태계가 재생하고 흡수하는 수준 내에서 제한돼야 한다. 건강한 신체를 위해 몸에 들고 나는 에너지의 균형을 맞춰야 하듯이.
IPCC 보고서에도 등장한 탈성장
그러나 지난 20세기 인류는, 그전 천 년 동안 사용한 에너지의 10배를 한 세기 만에 썼다. 18세기까지 인류의 경제 규모는, 해마다 0.05% 정도만 성장했을 뿐이다. 인구가 조금씩만 늘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1950년대부터 해마다 3.7%씩(1950~2010년) 커졌다. 인류 역사에서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미국의 기후학자 윌 스테픈은 이를 ‘거대한 가속’이라 불렀다. 탈성장은 인류가 지구 생태계에서 마구 가져오고 내뱉은 물질과 에너지의 흐름을 살펴야 한다는 주장이다.
탈성장은 조금씩 주요 담론으로 부상하고 있다. 기후위기에 관한 한 가장 과학적 권위를 갖는 조직인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보고서에도 탈성장이 등장했다. IPCC 산하엔 세 개의 실무그룹이 있는데, 인문사회과학자들이 참여한 2·3실무그룹이 2022년 발간한 보고서(6차)에서 처음 탈성장이 언급됐다.
김현우 탈성장과대안연구소 소장은 “IPCC의 지난 5차 보고서(2014년)가 인간의 책임과 닥쳐올 위험에 초점을 맞췄다면, 6차 보고서는 처음으로 시스템 전환의 필요를 다뤘다. 주로 수요 측면, 흡수원에 대한 내용이 늘었는데 그러면서 탈성장이나 식민주의, 자본주의, 권력관계를 처음 언급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경제를 성장시키지 않거나 탈성장, 혹은 포스트성장을 하는 접근법만이 2도 이하의 기후 안정화에 도달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일부 연구가) 확인했다”고 말한다. 다만 IPCC 6차 보고서의 ‘정책결정자를 위한 요약본’에는 이런 내용이 빠져 있다.
이런 주장에 자연스러운 반응이 있다.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냐’는. 물론 넓은 범위의 탈성장 진영이 내세우는 주장에는 산업문명 자체를 부정해야 한다는 것도 있다. 하지만 핵심 주장은 아니다. 탈성장론은 지금까지 끊임없이 성장을 추동해온, 국내총생산(GDP)으로 대표되는 성장중심주의의 한계가 뚜렷하니(기후위기) 이를 인간과 지구 생태계 모두에 좋은, 새로운 체제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탈성장의 핵심 개념은, 탈성장론자인 독일의 경제사학자 마티아스 슈멜처가 말한 ‘사적 충분성’과 ‘공적 풍요로움’이란 말에서 잘 드러난다. 개인은 ‘과시적 소비’에 집착하지 않고 기본적 필요를 채우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관점으로 삶의 태도를 바꾼다(사적 충분성). 그리고 동시에 넘치는 재화와 서비스를 공유자원으로 만들어 더러 부족할 수 있는 개인의 필요를 보완한다(공적 풍요로움). 결국 지구로부터 가져오는 에너지와 물질을 낭비하지 않고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중요한 건 생산과 소비의 균형
실제 지금도 많은 영역에서 엄청난 규모의 낭비가 발생한다. 섬유산업만 놓고 보면, 현재 운영하는 지구상 모든 섬유 재료의 12%는 생산과정에서 버려지거나 유실된다. 73%는 소비 뒤 매립되거나 소각되고, 단 1% 미만이 새 옷을 만드는 데 다시 쓰인다. 글로벌 패션산업은 전세계 온실가스의 2%를 배출한다. 날마다 쌓이는 막대한 양의 음식물도 그렇다. 세계 인구의 13%가 영양실조 상태지만, 정작 전세계 식량 공급량의 3%만으로도 이들의 배고픔을 덜 수 있다. 세계 식량의 30~50%가 유통 과정에서 버려지거나 쓰레기로 사라지지만, 먹지 않는 음식 10%만으로 지구상 굶주림을 해소할 수 있다. 문제는 분배와 낭비에 있다. 계획적 진부화, 과시적 소비 등이 다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 생태주의 사상가이자 <녹색평론>의 발행·편집인이던 김종철 전 영남대 교수도 유작이 된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2019년)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건강한 경제가 유지되자면 중요한 것은 생산력의 크기나 경제 규모나 1인당 국민소득 따위가 아니다. 생산과 소비의 균형이다. 생산·유통·소비 과정이 사이클을 그리면서 원활하게 돌아갈 때 경제는 안정성을 유지하고 사회는 평화로워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영국의 생태경제학자인 허먼 데일리는 인류가 쓰는 에너지와 물질의 처리량을 통제하자는 제안을 한다. ‘처리량’이란 인간의 경제와 지구 생태계 사이 오가는 에너지·물질의 유량을 1년 단위로 정리한 것인데, 이를 확인해 관리하자는 것이다. 실제 생태경제학자들이 이미 관련 지수를 개발했고, 유럽 통계국 등은 해마다 ‘물질흐름계정’(Material Flow Account)을 작성한다. 이 계정에선 국내에서 추출하거나 외국에서 수입한 에너지·물질의 총량과 함께, 쓰이고 난 뒤 대기와 흙 속으로 배출된 배기가스, 어딘가에 흩어지고 축적된 것, 수출된 것의 양을 확인할 수 있다. 추출되고 수입된 물질의 총량은, 배출되고 흩어지고 축적되고 수출된 물질의 총량과 같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전경. 암스테르담은 2020년 4월 코로나19 회복 전략이자 정책 기준으로 ‘도넛 경제’ 모델을 채택했다. 식료품 영수증에 탄소발자국을 표기하고, 모든 건설 프로젝트에서 지속가능성을 중심에 둔다. REUTERS 연합
문제는 ‘우리를 오직 성장으로 추동하는 숫자’, GDP다. 1949년 미국을 시작으로 각국이 도입한 GDP는 꾸준히 그 한계를 지적받았다. 1972년 로마클럽이 발간한 보고서 <성장의 한계>를 공동 집필한 미국의 환경학자 도넬라 메도스는 GDP를 두고 “인류가 찾아낸 가장 어리석은 목표”라 했다. 존 F. 케네디의 동생이자 미국 법무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케네디는 “GDP는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측정한다”고 했고, GDP 개념을 만든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사이먼 쿠즈네츠조차 “국민소득(GDP를 의미)이란 한 국가에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만 포착한 것”이라 했다. 그는 “여기에는 일상생활에서 사회와 가정 경제가 스스로를 위해 생산한 어마어마한 가치의 재화와 서비스가 모두 빠져 있다. 국민소득이란 지표로 한 나라의 후생을 추론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1934년 쿠즈네츠가 미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 ‘국가 수익, 1929~1932’)며 GDP 맹신을 경고했다.
인류가 찾아낸 가장 어리석은 목표
그래서 대안지수가 꾸준히 요구됐다. 특히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본격화됐다. 부탄은 2008년 헌법에 GDP 대신 국민총행복지수(GNH)를 정부의 성취 목표로 명시했다. 아이슬란드도 2019년 GDP보다 ‘좋은 삶’에 초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대안지수는 이미 많이 개발됐다. 생태발자국, 참진보지수, 인간개발지수, 환경성과지수, 행복지수 등이 대표적이다. 계산 방식을 보면 GDP의 한계가 또렷하다. GDP는 오염이 생성되고 정화될 때 두 번 다 증가한다. 반면 참진보지수(GPI)는 오염이 발생하면 줄어든다. 빈곤 등 사회 부정 요인도 그렇다.
기후위기가 본격화하면서 탈성장은 점차 주목받는다. 막연하고 공상적인 단계에서 실질적 대안으로 떠오른다. 탈성장론자인 프랑스 경제학자 세르주 라투슈 파리11대학 교수는 탈성장이 “과잉소비로 비만의 위협에 노출된 시대에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검소한 생활을 선택하는 치료법”이라면, 경기침체는 “기아로 죽게 될 가능성이 있는 강요된 다이어트”라고 비유했다. 김현우 소장은 “탈성장은 하나의 청사진이나 지침이 아닌 초대장으로, 여러 색깔과 방식이 있을 수 있다. 함께 가감 없이 토론하고 자극하고 구체적 대안을 모색하고 시도하려는 초대다. 탈성장으로 세계를 통일하는 게 목표가 아닌, 여러 대안의 모자이크로 성장중심주의를 상대화하고 비판하는 게 주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한겨레21 박기용기자
[탈성장 사전] 도넛 경제란?
도넛 경제: 영국 옥스팜의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가 만든 것으로, 각각 자연적 한계(바깥쪽)와 사회적 기초(안쪽)를 뜻하는 두 개의 원으로 그린 도식으로 설명된다. 인류 활동이 이 두 원 사이, 도넛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탈성장 진영에서 제출한 여러 정책 대안 중 가장 유의미한 것으로 평가된다.
탈성장(Degrowth): ‘성장 지양’, 혹은 ‘적정 성장’으로도 번역된다. 도넛 경제 말고도 생태경제학자인 허먼 데일리가 주창한 ‘정상상태 경제’, 탈성장 국제회의에서 2018년 만들어진 ‘좋은 삶 경제동맹’(WE-ALL·Well-being Alliance)이 제안한 정책과 실천 방안도 관심받는다. 자본주의 자체를 극복해야 한다는 생태사회주의적 견해도 있다.
사적 충분성(Private Sufficiency)과 공적 풍요로움(Public Abundance): 개인은 기본적 필요를 채우는 것만으로 충분하며, 넘치는 재화와 서비스를 공유자원으로 만들어 부족할 수 있는 개인의 필요를 보완하는 제안. 공적 호화로움(Public Luxury)이라 말하기도 한다.
계획적 진부화: 상품 판매를 촉진하려 기업이 기존 상품을 일부러 쉽게 고장 나게 하거나 노후화하는 일.
참진보지수(GPI): 국내총생산(GDP)의 대안 지수 중 하나. GPI=Cadj+G+W-D-S-E-N로 계산한다. 소비(Cadj)와 자본(G), 복지(W)는 더하고 개인의 방어적 지출(D), 사회적 자본에 부정적 활동(S), 환경 악화 비용(E), 자연 자본에 부정적 활동(N)은 뺀다. 이렇게 계산하면, 지속해서 증가하는 GDP와 달리 GPI는 계속 머물러 있다.
8% 떨어져도 쌀 안 사겠다고? 농민 죽으라는 소리
2023년 4월3일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열린 쌀값 정상화법 공포 촉구 결의대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신정훈·이원택 의원과 농민단체 대표들이 삭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쌀은 우리 국민 한 사람이 연간 56.7㎏(2022년 기준)씩 먹는 ‘주곡’이다. 정부는 연간 쌀 생산량의 10% 안팎인 30만~50만t을 매년 쟁여놓는다. 수급 불안, 천재지변 등 비상시에 대비(양곡관리법 제2조)해 쌀 등 양곡을 사들이는 ‘공공비축제’다. 양곡의 매입 물량과 시기는 정부가 재량껏 판단했다. 2022년 3월 쌀값이 한 해 전보다 10% 이상 하락했고, 급기야 9월 45년 만에 최대 폭인 24.9% 급락했다. 농민들 속이 타들어가도 손 놓고 있는 정부에 대고 농민단체 등은 ‘매입 기준을 법으로 정하라’고 요구했다.
2023년 3월23일 야당(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쌀값이 전년도 대비 5~8% 떨어지는 등의 경우엔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의무 매입한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12일 뒤 4월4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고, 4월13일 국회 재투표에서 재의안이 부결(찬성 177, 반대 112, 무효 1)됐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을 재의결하려면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박흥식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의 말이다. “8% 떨어져도 쌀을 안 사겠다는 거잖아요. 5%에서 많이 양보해 법안을 만든 건데. 농민은 죽으라는 거예요.”
쟁점1. 초과 쌀 의무 매입은 자유시장 무시?
“‘시장’의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막대한 혈세를 들여 모두 사들여야 하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고 윤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 배경을 설명했다. ‘주곡’이고 완전 자급에 가까운 자급률(2021년 84.6%)을 유지한다는 정책목표에 맞춰 쌀값은 ‘시장’에 전적으로 맡기지 않는다. 너무 비싸면 가계 부담이, 너무 싸면 농업 기반이 붕괴될 수 있다. 그래서 정부는 공공비축제를 활용해 쌀을 방출하거나 매입하면서 가격을 조정한다.
“쌀값은 수요·공급만으로 설명이 안 됩니다. 2022년 9월25일 정부가 90만t을 매입하겠다고 발표했음에도 잠시 올랐다가 계속 떨어지는 게 그 증거예요. 시장에 쌀 재고가 부족한데도 쌀값이 떨어지는 기현상이 벌어집니다. 쌀값은 정부가 결정합니다. 시장은 쌀이 언제 방출돼 쌀값이 떨어지지 않을까, 정부 눈치를 보게 됩니다.” 엄청나 전국쌀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실제로 통계청 산지쌀값(도정한 쌀 20㎏의 도맷값)은 정부의 쌀 90만t 매입 계획 발표 뒤 2022년 10월 한 달 찔끔 오른 뒤 계속 하락했다. 2023년 4월5일 산지쌀값은 4만4585원으로 한 해 전보다 4.8%, 2년 전보다 23.8% 떨어졌다. 농림축산식품부 ‘민간 쌀 재고량 통계’를 보면 2023년 3월10일 기준 쌀 재고량도 94만1179t으로 한 해 전보다 27.0% 적다. 시장에 쌀이 부족한데도 농협·미곡종합처리장 등 도매상들이 쌀을 사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문제는 쌀값 안정으로 농민 이익을 보호해야 할(헌법 제123조) 농식품부가 뒷짐 지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는 점이다. 쌀값 하락폭이 극심하던 2022년 8월10일 농식품부는 대통령 업무보고 때 쌀값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8월2일 농식품부 국회 업무보고에서 쌀값이 떨어지는 데 대한 국회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진 뒤의 업무보고였다. 이후 양곡관리법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도 ‘쌀 의무 수매=혈세 낭비’라는 점을 강조했다. 농민단체들은 ‘쌀값이 떨어질 땐 느긋하고 올랐을 때 발 빠른’ 정부의 태도에 대한 학습효과가 시장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
또 정부의 공공비축미 매입·방출 기준인 ‘양곡수급안정대책 수립·시행 등에 관한 규정’(농림축산식품부 고시)에서 공공비축미 매입은 ‘할 수 있다’는 가능 조항이지만 방출은 일정 조건이 되면 반드시 팔아야 하는 ‘의무 조항’이다. 공공비축미 관리 체계는 자유시장·농가소득 보장보단 물가안정이라는 정책목표에 치우쳐 설계됐다.
쟁점2. 쌀 과잉은 농사 거저 지으려는 농민 때문?
‘2022년 쌀값 대폭락’을 바라보는 정부와 농민의 시각차는 매우 크다. 농민은 수요 대책 부족 등 농정 실패를, 정부는 농민이 쌀 생산을 줄이려 하지 않는 것을 각각 근본원인으로 본다.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은 2022년 10월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쌀값이 떨어져도 쌀농사가 줄지 않는 이유’에 대해 “벼는 다른 작물에 비해 자동화가 잘돼 노동력이 적게 든다. 1ha 농사를 짓는 데 110시간만 투자하면 된다. 풀타임으로 (1년에) 10~11일만 일하면 된다는 얘기다. 농사짓기 쉽고 소득률도 상당히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엄청나 정책위원장은 “농민을 쌀 과잉생산해서 문제를 일으킨 죄인으로 취급해 문제에 접근하는 것 같다”며 “다른 농작물에도 기계를 지원하고 안정적 가격을 보장하면 되지 않냐”고 꼬집었다. 박흥식 전 전농 의장은 “정부가 소비량을 어떻게 늘릴지 고민하지 않고 생산하는 농민 탓만 한다. 요즘 여당에서 ‘1천원 아침밥’을 띄우던데 그런 쌀 소비 지원책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양곡관리법에 반대하는 논리로 갖고 온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양곡관리법 개정안 분석’ 보고서도 논란이다. 보고서는 “매년 1조원 이상의 예산이 추가로 들어가는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분석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4월11일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보고서는 쌀 생산량 및 재배면적 감소율은 과소 추정, 단위면적당 생산량은 과다 추정한 부실·과장 보고서”라고 주장했다. 한 예로 최근 10년간 쌀 재배면적은 연평균 1.52% 줄었지만, 이 보고서는 향후 연 0.54%씩 재배면적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경실련은 지난 20년간 추세를 바탕으로 쌀 매입 비용이 연간 598억원일 것으로 추산했다.
쟁점3. 생산량이 많은 벼품종은 재배하지 마?
“고품질 쌀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 다수확 품종 재배를 축소해나갈 계획이다.”(3월8일 농식품부 ‘쌀 적정생산 대책’)
정부는 쌀 생산 줄이기 총력전에 나선 모양새다. 농식품부는 2023년 1월부터 ‘쌀 적정생산 추진단’을 구성·운영했다. 이 과정에서 ‘신동진’ 품종 등 10a(1000㎡)당 570㎏ 이상 소출이 나는 벼품종을 2024년부터 공공비축미 매입 제한 품종에 추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신동진’은 2022년 기준 전북 지역 재배면적은 6만㏊로 지역 전체의 53%에 이른다. 전북농업인단체연합회는 2월20일 기자회견을 열고 “맛과 품질이 입증돼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신동진을 단순히 수확량 때문에 퇴출한다니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농식품부는 신동진 퇴출 시기를 2026년까지로 유예한다고 물러섰다.
신원식 전북 농식품축산생명국장은 “농식품부 발표는 너무 갑작스럽고 선택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며 “생산량을 줄이는 방향엔 공감하지만 설득보다는 강제와 금지로 정책을 실현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생산량을 줄이는 것으로 친환경적인 다른 방법이 있다. 곽현용 한살림생산자연합회 사무처장은 “친환경 쌀은 기존 쌀 대비 생산량이 70~75% 수준이다. 친환경농업을 늘리면 쌀 과잉도 해결되고 시류에도 맞는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임산부 친환경농산물 꾸러미’ 사업을 폐지하고, 친환경 농가가 줄어드는 걸 방치한다. 농업정책에 대체 어떤 관점이 있는 건지 의문”이라고 했다. 2020~2022년 친환경농업 관련 인증 농가는 5만9249가구에서 5만632가구로 줄었고, 재배면적도 8만1826ha에서 6만9815ha로 감소했다.
쟁점4. 가루쌀로 수입밀 대체까지 1석2조?
정부는 2023년 2월 기존 논에 콩·조사료·가루쌀을 심으면 ㏊당 50만~430만원을 지급하는 ‘전략작물직불제’ 시행을 발표했다. 특히 쉽게 빻아지는 것이 특징인 ‘가루쌀’을 2022년 100㏊ 규모의 전문 생산단지 규모를 2026년 4만2100㏊까지 대폭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가루쌀을 심으면 쌀 생산도 줄이고 수입밀도 대체하는 1석2조 효과가 난다고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3년 4월12일 ‘쿠팡’에서 100g당 수입밀(곰표) 가격은 188원, 국산밀(해표)은 416원, 쌀가루(대구농산㈜)는 632원이다. 더욱이 쌀가루를 밀가루로 쓰려면 글루텐을 첨가해야 하는 등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 정부 지원 없이 가루쌀이 시장의 선택을 받을지 의문스러운 대목이다.
김경아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사무총장은 “쌀가루는 밀가루를 대체할 수 없다. 시장성이 없어 우리밀로도 못 따라가는 수입밀을 비싼 가루쌀로 대체하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무턱대고 쌀 경작지만 줄이면 된다는 식이라 이런 대책이 나온 것 ”이라고 꼬집었다.
‘전략작물직불제’ 예산은 1121억원, 가구당 평균 지원액도 250만원 수준이다. 쌀 농가 유인책으로 충분하지 않다. 조경희 김제시농민회장은 “3년 전 끝난 비슷한 성격의 ‘논 대체 사업’(논 타작물 재배 지원사업)의 평균 지원액이 ㏊당 340만원이었다. 논에 콩 등을 심으면 쌀농사를 할 때보다 인건비와 비룟값 등 생산비가 더 든다”고 말했다.
쟁점5. 정말 구조적인 쌀 과잉 맞나?
과연 구조적인 쌀 과잉이 맞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불과 3년 전인 2020년만 해도 태풍과 장마 등의 영향으로 쌀 생산량이 수요량 대비 30만t 정도 부족해 ‘비축 물량 부족’이 우려돼 당시 정부가 긴급대책 마련에 나섰다. 국내외 이상기후가 잦아진 환경에서 식량 위기에 대비해야 할 필요성은 더 커진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 따라 2014년부터 매년 쌀 40만8700t을 수입하는 저율관세할당물량(TRQ·관세율 5%)도 논란이다. 2022년 ‘쌀값 대폭락’의 원인이 된 2021년 쌀의 과잉생산량(생산량 - 수요량)은 27만t 정도였다. 2022년 과잉생산량도 15만t가량이다. 일껏 국내에서 쌀 생산을 줄이고는 외국에서 쌀을 더 받아 ‘잉여 쌀’을 만드는 셈이다. 농민단체들은 정부가 WTO 재협상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흥식 전 의장은 “수입쌀 중 4만t가량이 밥쌀용이다. 정부가 외교적으로 풀어야 한다. 현재 5만t 정도 하는 해외 원조 물량도 상황에 따라 늘리는 등 다양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산양·노루·담비 위 최상위 포식자가 나타난다
빗장 풀린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 예정지 르포
멸종위기 동물의 안식처이자 생태계의 정점… 공사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는 생태교란 우려
드드드드드드드드드득. 고요한 산속에서 전동드릴 소리가 난다. 조금 더 올라가자 더 크게 들린다. 가까이서 들어보니 나무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다. 목탁 두드리는 소리를 3배 정도 빨리 재생한 듯하다. 진원지를 향해 귀를 내밀었다. 더 멀리, 깊은 곳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딱따구리예요.” 앞서가던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이 뒤돌아서서 말했다. 귀에 신경을 집중하고 산을 올랐다. 드드드드득.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적막한 산, 겨울의 끝자락에서 오랜만에 사람을 마주한 설악산이 들려준 첫 소리였다.
2023년 3월21일, <한겨레21>은 국립공원공단의 허가를 얻어 입산 통제 기간에 녹색연합과 함께 설악산국립공원을 찾았다. 오색 케이블카 상부 정류장 예정지 끝청봉을 향해 걸었다. 한계령 휴게소, 한계령 삼거리, 서북 능선을 따라 끝청봉에 올랐다. 끝청봉에서 정류장 예정지를 거쳐 지주들이 세워질 곳을 따라 걸었다. 녹색연합에서 서 위원을 포함해 3명이 현장 모니터링에 나섰고, 국립공원공단 직원 1명도 동행했다.
3월21일 설악산 한계령 삼거리에서 휴식하는 답사대 주변에 동고비 여러마리가 날아왔다. 녹색연합 박은정 자연생태팀장이 손에 과자를 올려 놓자 날아와 먹고 있는 동고비.박승화 선임기자 eyeshoot@hani.co.kr
빙하기에 남하한 동식물이 자리잡은 설악산
새벽 6시30분 한계령 휴게소(해발 약 900m)에서 산으로 들어온 지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해발 1200m) 잣나무 군락이 일행을 반겼다. 겨울철 옷을 벗어 밋밋한 갈색이 대부분인 나무들 사이에서 짙은 청색 잎이 눈에 띄었다. 잣나무 사이사이로 고산지대에서 사는 하얀색 껍질의 사스래나무가 보였다. 조금 더 올라가자 분비나무 군락이 등장했다. 주목도 보이기 시작했다. 서 위원은 “설악산의 1000m 넘는 고도에서 가장 많은 개체가 잣나무와 분비나무”라고 말했다.
설악산은 백두대간의 허리 구실을 담당한다. 빙하기부터 남쪽으로 내려오는 북방계 식물의 이동통로이자 생태계의 정점을 이루는 지역이다. “과거 빙하기부터 북쪽의 추위를 피해 내려온 빙하기의 유물이 설악산 1300m 이상 고도에 그대로 남아 있어요. 눈잣나무와 주목, 눈측백, 사스래나무 등 이 일대에만 국한돼 자라는 식물이 많습니다. 한반도의 자연사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보여주는 결정적인 기후변화의 증거종들이에요.” 공우석 기후변화생태계연구소 소장의 말이다.
서북 능선을 타고 5㎞ 정도 지났을까. 눈측백 군락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서 조금 더 올라가니 끝청봉에 다다랐다. 설악산 대청과 중청을 지나 서북 능선이 끝나는 지점에 있다 하여 ‘끝청'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 해발 1610m의 봉우리다. 반대편의 가리봉과 주걱봉이 한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돌려 보면 오색리를 사이에 두고 점봉산이 버티고 있다. 점봉산을 바라보던 시선이 어느 능선에 멈춰 섰다. 끝청에서 직선거리로 약 500m 떨어진 곳. 그곳에 이날 산행의 출발점이 있었다. ‘오색 케이블카' 상부 정류장이 들어설 곳이다.
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은 2023년 2월27일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삭도(케이블카) 설치사업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한 조건부협의 의견을 강원도 양양군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발표 불과 25일 전, 환경부는 2030년까지 전 국토의 30%를 국립공원 등 보호지역으로 선정한다고 밝혔다. 2022년 12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제15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COP15) 합의안에 따른 것이다. 총회에서 2030년까지 전 지구의 30%를 보호구역으로 정한다고 합의했다.
지어진 적 없는 ‘케이블카’는 41년간 지방자치단체의 서류에 ‘숙원사업’으로 존재했다. 양양군은 “지역의 자원을 활용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일념으로 지치지 않고 밀어붙였고, 환경단체와 시민은 “설악산 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줄 것”이라며 의지로 항전했다.
1982년 정부는 강원도의 케이블카 설치 건의를 받아 문화재청에 문화재 현상변경을 신청했다. 문화재청은 불허했다. 이후 1990년대 양양국제공항 개항을 준비하던 양양군은 절차를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당시는 자연공원법 시행령 중 ‘공원자연보존지구에서 허용되는 최소한의 공원시설'에 케이블카는 2㎞ 이하로 규정됐다. 양양군에서 원하는 구간은 2㎞를 초과하는 구간이었기 때문에 법 개정이 먼저 필요했다. 양양군 주민들은 2000년대 초반 삭도추진위원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규제를 풀기 위해 노력했다. 찬성하는 주민들은 국회와 환경부 등에 거리 제한 완화를 위해 탄원서 등을 제출했다. 2010년 첫 변곡점이 생겼다. 정부가 자연공원법 시행령을 개정한 것이다.
40년간 막아냈던 사업 뚫린 두 번의 변곡점
“2000년대 초반까지는 케이블카를 설치해야 한다고 말은 많이 했지만 실제 덤벼들지는 못하고 있었어요. 근데 법 개정으로 제한이 5㎞로 늘어난 거예요. 이제 (케이블카 사업 요구가) 봇물 터지듯 나왔고 그때부터 저도 본격적으로 반대 투쟁을 시작했어요.” 녹색연합 및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의 박그림(75) 대표가 말했다. 박 대표의 알몸 시위는 오색 케이블카 반대의 상징이 됐다. 환경청과 강원도청 앞에서 노숙 농성을 하고 가방 속에 접을 수 있는 피켓을 들고 다니며 시도 때도 없이 1인 시위를 했다.
자연공원법 시행령 개정 이후 양양군은 본격적으로 사업 추진에 나섰다.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위원회에서 번번이 부결됐지만, 양양군은 그때마다 케이블카 구간을 변경해 다시 신청했다. 2014년, 박근혜 정부가 오색 케이블카를 정책과제로 선정하며 분위기가 반전됐다. 국립공원위원회는 2015년 8월 7개의 부대조건을 달아 승인 결정을 내렸다. 오색 케이블카 추진 과정의 두 번째 변곡점이었다.
‘변곡점’을 만든 보고서는 과정에서 논란이 됐다. “양양군은 해당 보고서에서 산양이 살지 않고 훼손도 없을 거라 했어요. 113차 국립공원위원회 회의 중간에 민간위원 일부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이의를 제기하자 결국 조건을 걸어요. 양양군의 거짓말에 의해 논의가 시작됐는데, (허가부터 하고) 증명을 하라는 조건이 붙은 거예요.”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가 말했다.
실제 2015년 양양군이 제출한 변경안을 보면, 오색~끝청 하단 노선과 관련해 “특이식생 및 멸종위기 야생동물 주요 서식지가 아닌 지역으로 환경적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자연친화적 공원환경 조성에 기여할 수 있는 노선으로 평가된다”고 적혀 있다. 또 “오색삭도 인근에 분포하는 법적보호종의 경우 직접적인 서식지 훼손이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립공원위원회에서 승인이 나자, 양양군은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시작했다. 반대 주민을 배제하고 공청회를 열었다. 2016년 3월18일 1차 공청회가 파행되고, 2차 공청회가 4월29일 열렸다. “군 공무원들을 다 동원해서 공청회가 아니라 성토대회를 연 것 같았어요. 공무원들이 방청객처럼 앉아서 케이블카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공격하고 그랬어요.” 양양군 간곡리 주민 조용명(70)씨가 말했다. 박그림 대표는 양양군수에게 대화하자며 군청 앞에서 수일 동안 농성했지만 끝내 만날 수 없었다. 양양군은 되레 박 대표 등을 퇴거불응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그러는 사이 양양군은 환경영향평가 보완 통보를 받고 보완서를 제출했다.
2019년 환경부가 환경영향평가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양양의 행정심판 청구에서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양양군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2022년 4월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오색 케이블카 사업이 정책과제에 포함됐다. 2023년 2월27일, 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은 △산양 등 법정보호종에 대한 공사 전·중·후의 모니터링 △법정보호식물 및 특이식물에 대한 추가 현지조사 △상부 정류장 구간 규모 축소 방안 강구 등의 조건을 달아 ‘조건부 협의' 의견을 통보했다.
케이블카 설치한 국립공원 모두 환경훼손
“설악산은 우리가 이렇게 함부로 할 존재가 아니에요.”(박그림 대표) ‘국립공원', ‘백두대간 보호지역 핵심구역',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별도관리지역',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 ‘천연보호구역'. 다 설악산에 붙은 이름이다. 이 온갖 보호막이 무용지물이 될 시간은 불과 8개월 남짓. 끝청봉에서 사업 예정구역을 향해 내려갔다.
200m 남짓 이동하자 이전 상부 정류장 부지가 나왔다. 해발 1480m. 2015년 국립공원위원회에서 조건부 승인 결정을 내렸을 때 예상 부지로 정했던 곳이다. 잣나무와 분비나무들 사이로 아직 치우지 않은 밧줄과 깃발이 보였다. “설악산의 전형적인, 아고산대 생태계 전형이라고 볼 수 있어요. 분비나무가 발달했고 잣나무도 같이 보이죠. 그리고 양호하게 잘 자라고 있어요. 나무가 두껍고, 남한에서 이런 자생 잣나무는 이 오색코스밖에 없어요.” 서 위원이 말했다. 양양군도 이런 문제 제기가 지속되자 아고산대 원형 보존을 이유로 상부 정류장 위치를 더 밑으로 조정했다.
15분가량 더 내려가니 끝청과는 확연히 경관이 달랐다. 나무가 빽빽했다. 잣나무가 군데군데 보였다. 바위 옆에 가장 곧게 솟은 잣나무를 가리키며 서 위원은 “최소 150년에서 200년 정도의 수령”이라고 말했다. 해발고도 1430m. 다시 보이는 빨간 깃발엔 ‘변경 상부 정류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공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턱에 날 상처가 목에 났다고 영향이 없나요? 몇 미터 고도 차이가 문제가 아니에요. 고산이나 아고산대는 낮은 곳과 달리 상처를 입으면 회복 속도가 더뎌요. 공사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생태계를 되돌릴 수 없는 길로 가는 겁니다.” 국립생태원은 환경영향평가서 재보완 검토 의견에서 “상부 정류장의 위치는 하방(아래로) 이동했으나, 개발 면적(2743㎡→3634㎡) 및 훼손 수목(1267주→1721주)은 오히려 증가했다”고 평가했다.
3월21일 오색케이블카 상부 정류장 예정지 표지 깃발을 확인하고 있는 국립공원공단직원.박승화 선임기자 eyeshoot@hani.co.kr
홍석환 교수가 2021년 써낸 <환경에 대한 갑질을 멈출 시간>에 따르면 오색 케이블카 사업 예정구역의 나무들은 전국에서 평균수령이 가장 높은 수준이다. 천연기념물 노거수 수림대 8개 지역의 상위 3주 수령 평균이 72년에서 153년 사이로 조사된 것에 비해 오색 케이블카 사업지역의 상위 3주 평균수령은 210년이었다. “열악한 자연환경에서도 엄격히 보호되는 국내 대표적인 보호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령의 나무들이 즐비하게 있는 그야말로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극상림이다.”(<환경에 대한 갑질을 멈출 시간>) 수령이 전부가 아니다. “본 사업지역은 자연환경의 보전 및 복원이 원칙인 생태 자연도 1등급에 해당하는 양호한 식생이 77.28%를 차지하고 있다.”(국립생태원 재보완 검토 의견)
실제 케이블카가 설치된 이후엔 2차 피해까지 발생한다. <국립공원연구지>에 2021년 게재된 ‘국립공원 삭도 운영 구간의 탐방객 이용 특성 및 훼손 영향’을 보면 “국립공원 내 삭도를 설치한 경우 정류장과 노선 지주대 등 일차적인 개발로 생태계가 훼손되고, 종점 정류장 일대 등에서 2차 훼손이 발생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연구에 따르면 국립공원 내 케이블카를 운영하는 설악산 권금성과 내장산, 덕유산 모두 3~6등급(0∼1등급 ‘건전’, 2∼3등급 ‘약’, 4등급 ‘중’, 5∼6등급 ‘강’) 사이의 환경 피해를 본 것으로 조사됐다.
1971년 권금성 케이블카가 운영되기 전인 1960년 최구현 사진작가가 찍은 설악산 권금성의 모습(왼쪽)과 2010년 박그림 녹색연합 공동대표가 찍은 모습. 정상에 있던 나무와 식물, 흙 대부분이 사라진 모습이다. 녹색연합 제공
멸종위기 1급 산양의 18%는 설악산에 서식
일각에서는 케이블카로 산을 이용하는 것이 등산하는 것보다 환경을 더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을에 단풍철이 되면 사람들이 줄을 지어서 올라가거든요. (케이블카하고,) 밟아서 훼손하는 것하고 어떤 게 더 훼손되겠습니까. 저희는 오히려 케이블카를 만드는 게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2023년 2월28일 문화방송(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한 말이다.
김 지사의 말엔 전제 조건이 빠졌다.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대신 기존 탐방로를 없애야 가능한 주장이다. 홍 교수는 “정상으로 가는 탐방로 중 3곳만 막아도 케이블카를 찬성하겠다”며 “등산객과 케이블카 이용객은 다르다. 탐방로를 막는다고 하면 지역주민부터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양군 쪽은 탐방로 폐쇄와 관련한 <한겨레21>의 질문에 “등산로 폐쇄 권한은 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에 있다”며 “2012년 삭도 계획을 신청하며 등산로 폐쇄 계획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상부 정류장 예정 지점을 지나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된 산양 배설물이 무더기로 관찰되기 시작했다. 한계령 휴게소에서 끝청봉까지 7.7㎞를 오는 동안 산양 배설물을 단 두 번밖에 목격하지 못했지만 상부 정류장 예정지부터 4번 지주 예정지까지 약 1.5㎞ 구간에서 산양 배설물을 50여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일부 배설물은 낙엽에 가려 다른 일행이 밟고 지나간 뒤에야 발견되기도 했다. 관찰된 장소는 26곳이었다. 절벽 옆이나 낭떠러지 인근에선 1~3m 간격으로 배설물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된 담비와 삵의 배설물도 확인했다. 딱딱하게 굳은 삵의 배설물을 반으로 잘라보니 미처 소화되지 못한 먹잇감의 털뭉치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3월21일 끝청 인근에서 발견한 산양의 배설물.박승화 선임기자 eyeshoot@hani.co.kr
케이블카 사업 구역은 산양의 “핵심 서식지”(박그림 대표)다. 국립생태원의 우동걸 박사도 “주로 산양은 암벽지대가 많은 험준한 산악지대에 분포하는데 설악산은 그런 조건을 갖췄다”라고 말했다.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 산양 개체수는 1630마리로 파악된다. 이 중 약 18%인 297마리가 설악산에 서식한다. 이날 녹색연합은 4번 지주 예정지역 부근에 설치한 카메라 두 대를 회수했다. 카메라가 설치된 나무 바로 앞에서도 산양 배설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녹색연합의 카메라는 2021년 10월부터 2023년 3월21일 회수될 때까지 인근에서 움직이는 동물을 찍었다. 현장을 찾기 불과 4일 전에도 산양이 카메라 앞을 지나갔다. 사진 속 산양의 모습은 다양했다. 바위 위에 앉아 쉬는 모습부터 뛰어가는 역동적인 모습도 담겼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산양도 있었고, 두 산양이 나란히 앉아 쉬는 모습도 포착됐다. 산양 외에도 노루와 담비, 하늘다람쥐가 같은 공간에서 카메라에 찍혔다.
약 3.3㎞에 이르는 구간의 6개 지주는 이들의 삶의 근간을 뒤흔든다. “멸종위기종은 변화에 굉장히 민감해요. 심지어 심장부를 교란하는 거잖아요. 거기에 지속적으로 소리와 냄새라는 오염까지 발생하게 될 겁니다.”(홍석환 교수)
정부 산하 환경평가기관 검토의견서에도 이런 지적이 담겨 있다. “사업계획지역은 전반적으로 산양 서식에 적합한 환경으로 판단되며….”(국립생태원) “사업대상지 노선을 중심으로 담비, 산양 등 멸종위기 야생동물이 출현하고 있음이 확인됨… 삭도 시설물 설치 공사나 삭도 이용 등 인위적인 간섭으로 산양, 담비 등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훼손될 수 있으므로….”(국립공원공단)
기존 등산객에 케이블카 탐방객까지 몰리면
“훨씬 더 무서운 건 대청봉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예요.” 박그림 대표가 말했다. “지주나 8인승 케이블카 53대 운영 등 문제를 다 없다 쳐도 이게 정말 무서워요.” 반대하는 이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케이블카 상부 정류장과 대청봉까지 가는 탐방로의 연계 가능성이다.
양양군은 자연공원법 시행령 개정 이후 2011년 처음 케이블카 사업을 신청하며 오색~대청 구간으로 계획서를 냈다. 이후 부결되자 관모능선으로, 다시 끝청으로 바꿨다. “그게 애초 계획이니까요. 그렇지(대청봉까지 연결되지) 않으면 사업할 게 뭐가 없잖아요. 일단 케이블카를 놓으면 거기 타고 올라가서 대청봉으로 넘어갈 거예요, 사람들이.”(주민 조용명씨)
덕유산국립공원은 1990년 케이블카가 만들어져 운행을 시작했는데, 케이블카 상부 정류장인 설천봉에서 정상인 향적봉까지 거리가 552m에 불과했다. 많은 사람이 상부 정류장에서 향적봉으로 향했고 새로운 등산로가 생겨났다. 이 때문에 주변 일대가 환경피해도 4등급 훼손을 입었다. 오색 케이블카의 상부 정류장 산책로에서 끝청봉까지 거리는 약 500m다. 30분정도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일단 끝청에 도달하면, 대청봉까지는 만들어진 탐방로가 존재한다.
양양군 쪽은 <한겨레21>의 질의에 대한 서면 답변서에서 “상부 지역은 폐쇄형으로 설계해 기존 등산로로 접근이 불가능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박그림 대표는 제대로 이뤄질 리 만무하다고 예상한다. “말장난이에요. 이미 양양 전체 여론은 이미 대청봉까지 가는 거예요. 심지어 끝청에서 대청까지 모노레일을 놓겠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요. 일단 설치되고 나서 여론이 어떻다, 민원이 있다 이런 식으로 핑계를 대면 시간문제죠.”
강원도·양양군 “원샷 해결해 연내 착공”
오색 케이블카 건설을 위한 첫 삽을 뜨기까지 아직 남은 절차가 있지만, 강원도와 양양군은 속도를 내고 있다. “앞으로 11개 인허가 및 심의 절차를 최대한 신속히 밟고 원샷으로 해결해 연내 착공하겠습니다.” 김진태 지사가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 조건부 협의 의견 통보 이후 브리핑에서 한 말이다. 양양군은 2023년 11월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3년 3월21일. 약 13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남설악탐방지원센터 입구로 나와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 위에 발을 디뎠을 땐 이미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고요한 산속 어딘가 사람을 피해 잠시 숨어 있던 산양이 다시 움직일 시간이다. 딱따구리는 여전히 나무를 두드리고 동고비는 지저귀고 다람쥐는 바스락거리는 낙엽 위를 지나갈 것이다. 머지않아 사그라질 소리다.
양양(설악산)=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광주 첫 민간정원 '휴심정'...수목 28종·초화류 25종 등 22만본 식재
광주광역시는 광산구 도천동에 소재한 '휴심정'을 광주 첫 민간정원에 지정했다고 16일 밝혔다.
광주시에 따르면 '휴심정'은 대형 카페와 함께 조성된 정원으로 지난 2월 산림청 산하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의 사전인증제도 검토를 거쳐 광주시에 등록 신청서를 냈으며, 광주시 심의를 거쳐 지난 3월 말 제1호 민간정원으로 등록됐다.
민간정원은 '수목원·정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른 정원 종류 중 하나로, 법인·단체 또는 개인이 조성해 운영하는 정원이다. 지난 2015년 국내 첫 등록을 시작으로 2022년 말 현재 전국에 총 90개의 민간정원이 등록돼 있으나, 광주시에서는 그동안 신청자가 없었다.
광주 첨단지구와 수완지구 사이 도천저수지변에 위치한 민간정원 '휴심정'은 지난 2005년부터 조성됐으며, 카페, 아트스페이스, 레스토랑이 결합된 복합 문화공간인 세컨드원으로 재탄생해 지난 2021년 5월 문을 열었다.
등록면적은 총 6710㎡로, 수목 28종(교목 22종, 관목 6종)과 다양한 초화류 25종 약 22만본이 식재돼 있다. 사계절 개화시기를 고려한 수종 선정으로 1년 내내 꽃을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휴심정'은 개장 이후 약 42만명의 방문객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또 '2021 아름다운 문화도시 공간상' 수상에 이어 올해 광주시 제1호 민간정원에 지정되는 등 광주의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정강욱 광주시 녹지정책과장은 "제1호 민간정원 등록을 시작으로 '내★일이 빛나는 광주'에 걸맞은 녹색도시의 정원문화가 일상 환경 곳곳에 확산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일반에게 공개되는 민간정원을 등록하려면 정원 전체면적 중 녹지면적이 40% 이상이고, 기본 편의시설을 갖춰야 한다. 민간정원에 등록되면 산림청과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에서 전문 컨설팅, 자생식물 분양, 민간정원 네트워크 멤버십 제도 등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파이낸셜뉴스 광주=황태종 기자
일본 정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G7 지지 획득 실패
독일 등 유럽 반대…환영성명 안 내
“IAEA의 안정성 검증 지지”만 언급
주요 7개국(G7) 기후·에너지·환경 장관 회의가 일본 삿포로에서 15~16일 개최됐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에 보관 중인 방사성 물질 오염수를 올해 여름 바다로 방류할 예정인 가운데 우호적 여론을 만들기 위해 주요 7개국(G7)의 ‘환영 성명’을 추진했으나 실패했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주요 7개국(G7) 기후·에너지·환경 장관들은 16일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회의를 열고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성명에는 후쿠시마 원전에 대해 “원자로 폐로 작업의 꾸준한 진전, 과학적 근거에 기초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함께하는 일본의 투명한 노력을 환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후쿠시마 오염수 바다 방류와 관련해선 “국제원자력기구의 안전성 검증을 지지한다”고 명시했다.
주요 7개국 참가자들은 후쿠시마 원전의 폐로 작업에는 환영 입장을 밝혔지만, 오염수 바다 방류에 대해선 국제원자력기구의 검증을 지지한다고만 언급했다.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상은 독일, 이탈리아 장관과 함께 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주요 7개국이 “(후쿠시마) 처리수의 바다 방류를 포함한 폐로의 착실한 진전, 과학적인 근거에 기초한 일본의 투명한 대처에 환영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옆에서 듣고 있던 슈테피 렘케 독일 환경장관은 “원전 사고 후 도쿄전력이나 일본 정부가 노력한 것에는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처리수 (바다) 방류를 환영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니시무라 경제산업상은 공동 기자회견 뒤 기자들을 만나 “내가 조금 잘못 말했다”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아사히신문>은 “주요 7개국의 지지를 얻어 후쿠시마 처리수 바다 방류를 원활하게 진행하겠다는 의도였지만 공동성명에는 ‘환영한다’는 문구를 담지 못했다”고 전했다.
한겨레 도쿄/김소연 특파원
시진핑-룰라, ‘기후변화 공동성명’ 채택…‘탈달러’ 무역 강화키로
14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 앞에서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악수를 하고 있다. 베이징/AFP 연합뉴스
중국과 브라질이 14일 베이징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기후변화 관련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선진국의 책임을 요구했다. 두 나라는 또 달러 대신 자국 통화를 활용한 무역을 강화하기로 했다.
15일 중국 외교부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의 회담 결과를 바탕으로 양국이 14개 항의 ‘중국·브라질 기후변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성명을 보면 “기후변화는 우리 시대가 직면한 최대 도전 중 하나이며, 이 위기에 대응하는 것은 공평하고, 번영을 향유하는 인류 운명공동체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선진국은 온실가스 배출에 대해 역사적 책임을 지고 2050년 이전에 ‘기후 중립’을 실현하고, 기후 행동 강화 및 기후 자금 제공에 솔선해야 하며, 개발도상국의 발전권과 정책 공간을 존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후 중립은 ‘탄소 중립’으로도 불리며, 온난화를 유발하는 탄소 배출량을 신재생 에너지 발전 등 탄소 감축·흡수 활동을 통해 상쇄해 실질적인 순 배출 총량을 영(0)으로 만드는 것을 뜻한다. 중국과 브라질은 고위급 조율·협력 위원회 산하에 환경·기후변화 분과위원회를 설립하기로 했다.
중국과 브라질은 또 49개항으로 이뤄진 ‘중국·브라질 전면적 전략 동반자 관계 심화에 관한 공동성명’을 채택해, 경제·외교·금융·환경 등 여러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특히 양국은 성명에서 “경제와 재정·금융 영역에서의 대화를 심화하고, 현지 화폐 무역을 강화하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달러 패권’에 대한 도전으로 보인다. 지난해 기준 양국 무역 규모는 1505억 달러(약 195조원)에 달한다. 앞서 두 나라는 지난달 말 양국 간 교역에서 결제 화폐로 자국 통화를 쓰는 데 공식 합의했고, 중국은 이 합의에 따라 브라질 업체들이 중국에서 만든 ‘국경 간 위안화 지급 시스템’(CIPS)을 이용하도록 했다.
양국은 또 ‘산업 투자 및 협력 촉진에 관한 양해각서’에 서명하고 인프라, 물류, 에너지, 광업, 농업, 공업 및 첨단 기술 등 분야에서 양국 기업의 상대국에 대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기로 했다.
룰라 대통령은 지난 12~15일 중국을 방문해 시 주석과 중국 권력 서열 2위 리창 국무원 총리, 3위 자오러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과 각각 만났다.
한겨레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오염수 방류” 일본에 한 방 먹인 독일
일 “G7도 환영” 아전인수…독 장관이 즉각 반박하자 “실수” 정정
일본이 주요 7개국(G7) 환경장관 회의에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관련 환영 성명을 내려다 참가국 반대로 실패했다. 일본은 이후 기자회견에서도 주요국이 오염수 방류를 환영한다고 발표했다가 독일 측의 반발로 발언을 정정했다.
G7 환경장관들은 16일 회의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원자로 폐로 작업의 꾸준한 진전, 과학적 증거에 기초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함께하는 일본의 투명한 노력을 환영한다”며 “IAEA의 독립적인 후쿠시마 원전 검증 절차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이 국제사회와 긴밀히 소통하면서 투명한 태도로 계획을 진행할 것을 권장한다”고 덧붙였다. 당초 일본은 공동성명에 오염수 해양 방류를 환영한다는 문구를 포함시키려 했으나 참가국의 반대로 일본 정부 의도대로 되지 못했다고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상은 공동성명의 의미에 대해 “오염수 바다 방출을 포함해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둔 일본의 투명성 대응이 환영을 받았다”고 설명하다가 독일 측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옆자리에서 듣고 있던 슈테피 렘케 독일 환경장관(사진)이 독일의 탈원전 사실을 언급한 뒤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의 노력에 비상한 경의를 표한다”면서도 “오염수 방류에 관해서는 환영한다고 할 수 없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니시무라 경제산업상은 기자회견이 끝난 후 기자들에게 자신의 발언에 실수가 있었다며 정정해야 했다.
한편 독일은 지난 15일 자정(현지시간)을 기점으로 원자력(핵)발전소 가동을 중단했다. 렘케 장관은 탈원전과 관련된 언론 기고문에서 “탈원전은 독일을 더욱 안전하게 할 것”이라며 “탈원전으로 더는 방사능에 고도로 오염된 핵폐기물이 생산되지 않는다는 점도 다행스럽다”고 밝힌 바 있다. 경향 이윤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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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 오르며 해빙 본격화…농경지 침수 이어 주거지까지 위험수위 주민들 '제방쌓기' 등 대비 분주…"해빙 피해 가을까지 갈 수도“
미 캘리포니아주의 산지에 쌓인 눈이 녹아 침수된 툴레어 호수 인근 마을© 제공: 연합뉴스
지난 겨울 이상기후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지에 두껍게 쌓인 눈이 최근 본격적으로 녹기 시작하면서 인근 지역에 침수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고 CNN 방송과 현지 매체들이 16일(현지시간)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시에라네바다 산맥 서쪽 캘리포니아주 센트럴밸리에 있는 툴레어 분지와 인근 도시 코코란 일대에 침수 피해가 특히 큰 상황이다.
툴레어 분지는 한때 호수였으나 100년 전 물이 빠진 후 인근 주민들이 농토로 개간해 아몬드, 피스타치오 등 다양한 농작물을 재배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미 서부에 10여차례 이어진 폭우와 폭설로 이 지역에 물이 다시 차오르기 시작했고, 최근 한 달 사이 인근 산지에 두껍게 쌓여있던 눈까지 녹기 시작하면서 농지가 거의 물에 잠겼다.
이곳 주민들은 농작물을 수확하지 못해 큰 경제적 피해를 본 데 이어 호수 수위가 점점 높아지면서 주거지까지 침수될까 봐 걱정하고 있다. 주민 마르티나 실리는 "모든 농작물이 완전히 물에 잠겨 못 쓰게 됐고, 사람들은 생업을 잃었다"며 "정말 무섭다"고 말했다.
지난달부터 캘리포니아에 큰비는 그쳤지만, 흐린 날씨와 예년보다 낮은 기온 탓에 산지의 눈이 잘 녹지 않다가 이달 들어 기온이 오르면서 본격적으로 눈이 녹아내리고 있다.
이 지역을 관할하는 킹스 카운티의 데이비드 로빈슨 보안관은 "올해 봄 기온이 최근까지 매우 느리게 올라 그나마 운이 좋았던 것"이라며 "우리는 이제 더위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우려했다. 시 당국과 지역 단체들은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대규모 인력과 장비를 동원해 주거지 둘레에 23.3㎞ 길이의 제방을 쌓고 있다.
LA타임스는 산지의 눈 해빙에 따른 피해가 올가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캘리포니아주 수자원부 분석 자료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거의 모든 강에 물 유입이 오는 9월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특히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 내려오는 튤(Tule) 강과 컨(Kern) 강의 올해 연간 수량은 예년 평균 대비 각각 4.3배, 3.7배에 달할 것으로 관측됐다.
연합뉴스) 임미나 특파원
독일 ‘원전 전면 폐쇄’에도…세계 41개국 원자로 412기 가동중
독일이 15일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계획대로 모두 중단했지만 세계 각국의 원전 의존도는 여전히 높다.
15일(현지시각) 독일이 마지막 남은 핵발전소 3기를 폐쇄하는 가운데 환경단체들이 수도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원전에 반대한다는 뜻의 모형을 설치한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세계 원자력 산업 현황 보고서(WNISR)에 따르면 이달 기준 전 세계 41개국에서 원자로 총 412기가 가동 중이다. 원자로 대부분은 1968∼1986년 사이에 유럽, 미국, 옛 소련, 일본 등에서 건설됐고 이들 원자로의 평균 수명은 31년이다. 2021년 기준 원자력은 전 세계 전기 생산량의 9.8%를 차지한다. 독일에 앞서 이탈리아가 탈원전을 했지만, 영국·프랑스·폴란드·핀란드 등은 원전을 유지하거나 새 원전을 지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원전 이용에 적극적인 대표적인 국가인 프랑스는 현재 원자로 56기를 운영 중이며 국가 전력 수요의 3분의 2를 원전으로 감당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520억유로를 들여 차세대 원자로 6기를 새로 건설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1980년 이후부터 원전 건설을 시작한 폴란드는 1986년 옛 소련 체르노빌원전 폭발 사고 뒤 건설을 중단했다. 하지만 지난 2014년 신규 원자로 6기 건설 계획을 채택했고, 이 계획에 따른 첫 원자로는 2024년 가동될 예정이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자로를 보유한 나라다. 상업용 원자로가 92기나 된다. 미국 원전은 지은 지 평균 41.6년으로 세계에서 가장 노후화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전력 공급원이라며 원전을 중요시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원자로 57기를 운용 중이고 21기를 추가로 건설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41기를 새로 지었다. 현재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저장할 수 있는 곳이 없지만 고비 사막이 후보지로 거론된다. 인도에는 원자로 19기가 있고 추가로 8기를 짓고 있다. 인도 역시 고준위 핵폐기물을 보관할 최종 저장 시설이 없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를 겪은 당사자인 일본은 사고 뒤 탈원전 정책을 채택했지만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세계 에너지 위기 그리고 전세계 탈탄소 움직임을 계기로 탈원전 정책을 사실상 뒤집는 정책 대전환을 하고 있다. 노후 원자로를 대체하는 형식으로 새 원자로를 짓고 최대 60년인 기존 원전 가동기간을 안전성 심사 기간은 가동기간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가동 기간을 실질적으로 연장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네카르베스트하임/한겨레 노지원 특파원
한국은 요주의 국가? 윤 대통령 때문에 망신살 뻗쳤습니다
RE100 홈페이지에 떠 있는 두 개의 태극기 민망
대통령님을 위한 반도체 특강, 오늘 강의는 지난 대선 토론회에서 이재명 후보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해 망신을 샀던 바로 그 단어, RE100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그 당시 워낙 화제가 됐으니까 RE100이 뭔 지는 이미 잘 아실 거라 생각했는데, 대통령님이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기존 30.2%에서 21.5%로 8.7%포인트로 낮추는 걸 보고 아직도 RE100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신 것 같아 이렇게 따로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RE100은 Renewable(재생) Electricity(전기) 100%의 줄임말입니다.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량의 100%를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목표로 시작된 국제 캠페인인데, 영국의 다국적 비영리기구인 '더 클라이밋 그룹(The Climate Group)' 주도로 2014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캠페인이기 때문에 회원 가입도 자발적으로 이뤄지며 이걸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유엔이나 세계무역기구 WTO 같은 곳에서 불이익을 주지도 않습니다.
연간 100GWh 이상, 전력을 많이 소비하는 기업 또는 세계 1000대 글로벌 기업이 RE100 주요 참여 대상 기업들입니다. 이미 가입한 회사를 보면 미국의 애플,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등 우리에게 익숙한 회사가 많습니다. 일본의 소니와 엡손도 회원사이며, 독일의 BMW와 지멘스도 가입되어 있습니다. 2023년 4월 현재 전 세계적으로 401개 기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습니다.
올해 1월에 발간된 RE100 2022년 연차보고서에 의하면 그 RE100 회원 기업들의 연간 전력 총 소비량은 376테라와트시(TWh)로, 이는 전 세계 전력 소비량의 1.5% 수준이자, 세계에서 12번째로 전력을 많이 소비하는 영국 전체의 연간 전력 소비량보다도 더 많습니다. 그 중 49%인 184TWh를 재생에너지로 사용했습니다. 2016년의 32%에 비하면 크게 증가한 숫자입니다. 캠페인의 성과가 있는 겁니다.
한국 회원사들, 재생에너지 사용율 2% 불과
한국에서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KT, 네이버 등 29개의 기업이 RE100에 참여했습니다. 참여 기업 수로만 보면 미국, 일본, 영국 다음인 세계 4번째입니다. 그럼 한국 회원사들의 재생에너지 사용량은 얼마나 될까요?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회원사들은 일년에 2만 981GWh(기가와트시)를 사용하면서 재생에너지로 400GWh를 충당하여 재생에너지 사용율은 고작 2%에 불과했습니다.
▲ RE100 2022년 연차보고서 요약 페이지.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가 가장 시급한 나라가 한국이라고 적었습니다. ⓒ RE100.org
그래서 보고서는 맨 앞 요약 페이지에 한국(2%), 중국(32%), 일본(15%) 및 싱가포르(26%)가 재생에너지 사용이 가장 시급한 나라라고 적어 두었습니다. 한국의 2%는 32%의 중국과 26%의 싱가포르와 나란히 적어 준 게 민망할 정도로 낮은 수치입니다.
RE100은 국제협약도 아니고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하는 캠페인이니까 그냥 이거 안 하면 안 되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니까 남들 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늘리는 중에 우리 정부만 8.7%포인트나 줄여버린 거 아닌가요? 그런데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생각입니다. 삼성, 현대, SK 같은 재벌 기업들이 왜 거기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재생에너지 사용계획을 발표했을까요? 이거 안 하면 사업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애플이 글로벌 공급망에 2030년까지 탈탄소화를 촉구한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애플의 공식 공급망 업체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 애플
지난해 10월 애플은 자사 홈페이지에 "Apple, 글로벌 공급망에 2030년까지 탈탄소화 촉구"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올렸습니다. 소제목은 "Apple은 Apple 관련 생산의 탈탄소화를 위한 협력업체와의 협력을 가속화하고, 청정 에너지 및 기후 솔루션에 대한 투자를 전 세계로 확대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전체 내용을 쉽게 요약해 드리자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 회사로부터는 아무 것도 사지 않을 수 있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고작 애플 하나 때문에 우리 나라 에너지정책을 손볼 수 없단 생각을 하시나요? 독일의 자동차 회사 BMW는 2018년부터 배터리 공급사에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현재 삼성SDI가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는데 한국에선 조건을 맞출 수가 없어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해외 공장에서 만든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 삼성전자 2022SUSDP RE100 가입을 선언하고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사용 100%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 삼성전자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삼성전자도 작년 9월 RE100 가입을 선언하고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사용 100%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삼성전자의 재생에너지 사용율은 얼마일까요? 삼성전자가 펴낸 '2022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보면, 2021년 한 해 삼성전자가 사용한 재생에너지는 5278GWh로, 전체 에너지 사용량 대비 17% 수준에 그쳤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특이한 점은 삼성전자 해외 사업장의 경우 재생에너지 사용율 100%를 달성한 곳이 여럿 있다는 겁니다. 미국, 유럽, 중국의 사업장들은 이미 재생에너지로 100% 대체했습니다. 브라질에서는 90%가 넘고, 멕시코에서도 71%가 넘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의 낮은 재생에너지 사용율이 그 17%의 주된 이유라는 거고 그걸 달성하기 위해 2050년까지 그 긴 세월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 삼성전자는 미국과 중국 사업장에서 이미 재생에너지로 100% 대체했습니다. 한국 사업장 때문에 전체 재생에너지 사용률이 20%가 안되는 겁니다. ⓒ 삼성전자
얼마 전에 대통령님은 용인에 국가산단을 조성하고 삼성이 거기에 300조 원을 들여 웨이퍼 팹 다섯 개를 지을 거라고 발표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반도체 팹은 엄청난 양의 전기와 용수를 사용합니다. 그 전기는 어디에서 끌어오실 건가요? 원자력발전소? 석탄화력발전소? 그럼 안 그래도 낮은 삼성전자의 재생에너지 사용율은 또 떨어질 겁니다.
거기에 파운드리 팹을 다섯 개를 지어 놔도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겠다며 자발적으로 RE100 회원사가 된 기업들(애플, 메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은 RE100을 달성하지 않은 삼성전자에 반도체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죠. 기후위기를 막겠다고 RE100에 가입해 놓고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회사의 부품을 계속 사용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오래 유지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자사의 목표를 달성한 회사들은 공급사에도 RE100 기준을 맞추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할 겁니다.
삼성전자, 과연 어디에 투자할까
삼성전자가 RE100을 달성하지 않아도 그들에게서 주문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됩니다. 제품을 공급받는 기업들은 재생에너지를 사용해서 제작할 것을 요구하는데 그게 회사 단위가 아니라 공장 단위인 경우가 많거든요. 재생에너지 사용율 100%를 달성한 미국이나 유럽에 공장을 짓고 거기서 제품을 생산하면 고객사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겁니다. 미국과 유럽의 정부가 바라는 미래가 이런 것일 수도 있겠네요.
▲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미 텍사스주에 향후 20년 동안 2,000억 달러(약 260조 원)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 11개를 짓는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 월스트리트저널
실제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삼성전자가 미 텍사스주에 세제 혜택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향후 20년 동안 2000억 달러(약 260조 원)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 11개를 짓는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미국에서는 260조 원을 들여서 팹을 11개나 지을 수 있다는데 한국에서는 왜 300조 원을 들여서 팹 5개 밖에 못 짓는지, 2022년 1분기 영업이익이 6천억 원에 불과해서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빌려야 하는 삼성전자가 어떻게 그 많은 투자금을 감당할 수 있을 지 같은 건 여기서 따져보진 않겠습니다.
대신 대통령님께 묻겠습니다. 20년이라는 같은 기간 동안 한국에 팹 5개를 짓고, 미국에 팹 11개를 짓겠다고 하는 삼성전자가 투자금이 부족하거나 시장 상황에 따라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디를 선택할 것 같은 가요? 대통령님이라면 RE100을 만족하는 미국과 2050년이나 되어야 겨우 맞출 수 있는 한국 중에서 어디에다 팹을 짓겠습니까?
▲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에서 열린 디스플레이 신규투자 협약식에서 주제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게 좀 감이 오시나요? 정부가 재생에너지를 제때에 공급해 주지 않으면 한국 기업들이 해외 유수의 고객들로부터 주문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기업이 우리 나라에 공장을 짓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겁니다. 취임 후 지난 1년 동안 보여주신 실망스러운 모습 때문에 더 이상 대통령님께 많은 걸 바라지는 않습니다. 해외 유수의 기업 유치를 못한다고 뭐라 하는 것도 아니구요. 하지만 최소한 우리 기업들을 외국으로 내쫓는 경우는 없어야 하지 않을까요?
대통령님. 이 지점에서 원자력을 온실가스 배출 없는 친환경 그린에너지라고 반박할 생각은 접어 두시기 바랍니다. 환경부는 지난해 원자력 발전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그린 택소노미)에 포함시키며 원자력 발전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RE100이 대상으로 하는 에너지는 풍력, 태양광, 수력, 바이오매스 등이고 여기에 원자력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대통령님이 즐겨하는 것처럼 RE100 사무실에 가서 원자력도 포함시키라고 압수수색 해가며 협박을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 RE100 홈페이지 첫 화면에 있는 세 개의 보도자료. 그중 두 개가 한국의 재생에너지 사용을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 RE100.org
시간 되시면 RE100 홈페이지에 한번 가 보세요. 첫 화면에 보도자료가 세 개 떠 있는데 그중 두 개가 한국의 재생에너지 사용을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이 기사를 쓰게 된 RE100 2022년 연차보고서 출간에 대한 내용이구요. RE100이 보기에 재생에너지 관련해서 한국이 가장 요주의 국가입니다. 썸네일로 태극기가 있어서 반가웠는데 내용을 읽어 보고 민망했습니다.
RE100이 뭔지 몰랐던 그 때는 그래도 대통령 후보 시절이라 망신만 당하고 끝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대통령이잖습니까. 그리고 이젠 RE100이 뭔지, 재생에너지가 뭔지, 이거 제 때 못하면 우리 기업들 어떤 일을 당할 지 잘 알지 않습니까. 용인에 300조 반도체 팹 짓겠다는 발표 전에 거기에 쓸 재생에너지 어떻게 공급할 건지부터 생각하셨어야죠. 지금이라도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재생에너지 사용과 기후위기 대응, 지금 시작해도 늦습니다.
이봉열 오마이뉴스
TK신공항 국비 투입 1.4조라더니… 교통망 건설에 자그마치 14조
시도 국책 사업 재원 규모 1위
가덕신공항 건설비보다 많아 파장
“국비 지원 규모 적다” 주장 무색
TK(대구·경북)신공항 조감도. 부산일보DB
경북도가 대구·경북(TK)통합신공항 건설과 관련, 국가사업인 ‘연계 교통망’ 건설에 14조 원을 투입할 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TK신공항 민간공항 사업비가 1조 4000억 원 규모인데 부대 사업 성격인 연계 교통망 건설에 10배가량 더 들어가는 셈이다. 이는 가덕신공항 건설비보다 많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17일 발표한 ‘2023 민선 8기 전국 시장·도지사 및 교육감 공약실천계획서(로드맵) 평가’ 자료에 따르면 민선 8기 전국 시장·도지사 공약사업 가운데 재정이 가장 많이 필요한 국책사업(국가사업)은 경북의 ‘신공항 연계 광역교통망 건설’ 사업이다.
TK신공항 건설에 맞춰 연계 교통망을 건설하는 이 사업에는 14조 1443억 원의 재원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국책사업 가운데 재정 규모 2위인 가덕신공항 건설 사업비 13조 7584억 원보다 많은 규모다.
경북이 TK신공항을 매개로 14조 원 규모의 연계 교통망 건설을 국가사업으로 추진하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논란이 예상된다. TK정치권은 그동안 TK신공항 관련 논란에 가덕신공항을 ‘방패’로 사용해 왔다.
가덕신공항에 비해 TK신공항 국비 지원 규모는 적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연계 교통망 건설 사업비가 이처럼 막대하게 소요된다는 점에서 그동안의 주장이 무색해졌다.
한편 매니페스토본부의 분석에 따르면 부산시는 전국 7개 특별·광역시 가운데 단체장 공약사업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재정의 국비 비율이 가장 높다.
민선 8기 박형준 부산시장의 공약사업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54조 5479억 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국비가 30조 4450억 원으로 55.8%를 차지했다. 서울시는 국비 비율이 9.5%에 그쳤고 대구가 25.4%, 인천이 39.1% 등을 기록했다.
김종우 기자 kjongwoo@busan.com
EU 의회서 ‘탄소국경조정제도’ 법안 통과…2026년부터 관세
10월부터 탄소배출량 보고 의무화
유럽연합. AFP 연합뉴스
유럽연합(EU)으로 철강·알루미늄 등 주요 제품군을 수출하는 전세계 기업들은 오는 10월부터 탄소배출량을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2026년부터는 이들 제품에 대한 ‘탄소 국경세’ 부과가 시작돼 한국의 수출 기업들도 영향을 받게 될 전망이다.
유럽의회는 18일(현지시각)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법안을 찬성 487표, 반대 81표, 기권 75표로 가결 처리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이날 투표는 지난해 12월 탄소국경제도 도입을 위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이사회, 유럽의회 간 3자 협의 타결안을 토대로 진행된 의회 차원의 마지막 절차로, 유럽연합 회원국 이사회의 최종 승인만 남겨두고 있다.
탄소국경제도는 유럽연합 역외 기업들이 철강·알루미늄·비료·전기·시멘트·수소제품 등 6개 품목을 유럽연합으로 수출하는 경우, 제품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배출량을 추정해 관세를 부과하는 정책이다. 관세 수준은 정해진 탄소배출량 초과량에 대한 배출권을 사고파는 제도인 유럽연합 탄소배출권거래제(ETS)를 가이드라인 삼아 책정된다.
유럽연합은 다만 법안이 시행되는 올해 10월1일부터 2025년 12월 말까지는 전환(준비) 기간으로 삼아, 관세 대신 탄소배출량 보고 의무만 부여된다. 이후 2026년부터 2034년까지 단계적으로 탄소 관세가 부과된다.
이날 통과된 법안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배출량에서 55% 줄이고, 2050년까지 배출량 제로에 도달하겠다는 유럽연합의 기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유럽의회에선 또 이날 탄소배출권거래제 확대 개편안도 가결됐다. 확대 개편안은 탄소배출권거래제 적용을 받는 산업군의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치를 2005년 대비 43%에서 62%로 끌어올리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목표치가 상향되면서 현행 톤당 80∼85유로인 배출권 가격은 약 100유로(14만원 상당)까지 오를 것으로 보인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그들이 서울 시내 가로수 1500그루를 기록하는 이유
서울환경연합 ‘가로수 시민조사단’
나무 크기·건강 상태 데이터 수집해
대기오염저감·탄소흡수 등 분석 예정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효자로에서 가로수 시민조사단이 가로수의 둘레를 측정하고 있다. 김송이 기자
“둘레가 3m38이네요. 이 나무가 효자로에서 가장 클 것 같은데요.”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전문위원이 지난 15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효자로의 플라타너스 나무 둘레를 재고 있는 가로수 시민조사단 10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세 사람이 10m 길이 줄자를 나눠들만큼 나무 둥치가 컸다. “나무가 큰 만큼 잘 측정해야 해요. 그래야 가로수의 가치를 제대로 측정할 수 있어요.” 최 위원이 말했다.
서울환경연합 ‘가로수 시민조사단’은 이날 최 위원의 인솔 아래 경복궁 담장을 따라 청와대 앞 효자동 삼거리까지 이어지는 효자로의 가로수 상태를 둘러봤다. 가로수 크기와 건강 상태 데이터 수집을 목표로 오는 6월까지 이어질 조사의 첫 번째 현장실습이었다.
조사단은 효자로에 있는 나무 약 300그루의 수종·높이·수관(가지와 잎이 달린 부분) 폭·수관 손실 정도 등을 측정하는 방법을 배웠다. “수관 기저고는 바닥에서 나뭇잎이 달려 있지 않은 부분까지 재는 거예요. 이 나무가 환경적 기능을 발휘할 최적의 덩치를 찾기 위해서 재는 겁니다.” 최 위원이 나무 한 그루당 써야 하는 조사 항목을 설명하자 조사단의 고개가 연신 위로 들렸다. 모두 도로 표지판 위로 솟은 나무 꼭대기를 바라봤다.
효자로는 주변에 궁궐·청와대가 있어 가로수가 비교적 잘 가꿔진 편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도로 표지판에 걸려 반대쪽에만 잎이 난 나무, 커다란 플라타너스 두 그루 사이에서 자라고 있는 어린 은행나무가 보였다. 최 위원은 “지금은 괜찮지만 5년 후 가운데 나무가 더 자란 뒤에는 어떤 나무를 남길지 선택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무 한 그루마다 크기와 건강 상태를 관찰하느라 평소 25분이면 걷는 왕복 1.4㎞ 거리를 걷는 데 75분이 걸렸다.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효자로에서 가로수 시민조사단이 ‘트리스’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가로수의 높이를 측정하고 있다. 김송이 기자
이날은 조사가 시작된 오전 10시부터 비가 내렸다. 종로구에 살며 효자로를 자주 거닐었다는 조영남씨(66)는 어깨에 우산을 받친 채 스마트폰에 깔린 ‘트리스’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나무 높이를 측정했다. 조씨는 “가로수가 있는 것만 알았지, 이렇게 오래 올려다보긴 처음”이라며 “가로수를 집중적으로 알게 되는 계기가 생기니 좋다”고 했다.
조사단원들은 주변에서 가로수가 훼손되는 것을 보고 조사단 활동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경기 안양에서 온 김미화씨(50)는 “동네 가로수가 ‘닭발치기’를 너무 심하게 당해서 나무껍질도 벗겨지고 곰팡이가 슨 모습도 봤다”면서 “이번 활동을 통해 나무 건강 상태를 보는 방법을 배워가면 우리 동네에서도 뭔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이성직씨(33)도 아끼던 집 앞 은행나무가 지난 3월 굵은 가지만 남겨둔 채 가지치기된 모습을 보고 활동을 결심했다. 이씨는 “성북구청에 민원을 넣었는데, 다른 민원 때문에 가지치기를 했다더라”면서 “창문을 열면 보이는 풍경이 너무 처참해서 한동안 괴로워하다가 ‘뭐라도 해보자’ 싶어서 조사단에 참가했다”고 했다.
이들은 도심과 나무의 공존을 넘어 나무의 권리를 고민했다. 조경회사에서 근무하는 박모씨(28)는 “도시공간을 디자인할 때 가로수의 건강권이 우선순위에 놓이기 어렵다”면서 “어떤 나무가 건강한 나무인지 이해라도 하면 차선책이라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먈했다.
이날 현장실습은 서대문구 연세로와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14일 노원구 가로수길에서도 진행됐다. 70명의 시민조사단은 앞으로 두 달간 서울 4개 지역에서 최대 1500그루 가로수의 데이터를 만들기로 했다. 서울환경연합은 이 데이터를 토대로 국립산림과학원의 도움을 받아 가로수 한 그루당 대기오염저감, 탄소흡수, 에너지절감 등 효과를 분석할 예정이다.
경향 김송이 기자
대기질 개선 위한 파리 시의 승부수
대기오염 위협이 프랑스에도 퍼지고 있다. 파리 시는 “대기오염으로 인한 조기 사망자 수가 매년 2500명으로 예상된다”라고 밝혔다.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한 당근과 채찍 정책을 추진 중이다.
대기오염 위협이 유럽에도 퍼져 나가고 있다. 지난해 10월 유럽환경청(EEA)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유럽 41개국에서 52만여 명이 대기오염으로 조기 사망했다. 이 가운데 초미세먼지(PM 2.5)로 인한 조기 사망자 수는 약 42만8000명. 인구가 가장 많은 독일에서는 대기오염이 원인이 돼 8만1160명이 숨졌다. 이탈리아(7만9820명), 영국(5만2240명), 폴란드(4만8690명), 프랑스(4만5840명)가 뒤를 이었다. 유럽환경청은 각국에 환경 개선을 촉구했다.
ⓒ시사IN 최예린
유럽연합은 대기오염 기준을 심각하게 어긴 불가리아와 폴란드를 유럽사법재판소(ECJ)에 제소한 바 있다. 이제 그 화살이 프랑스로 향하고 있다. 프랑스는 2005년 이후 미세먼지(PM 10) 기준치를 늘 초과했다. 파리·리옹·마르세유 등 주요 지역이 미세먼지 일일 한계치 50㎍/㎥를 지속적으로 넘어섰다. 프랑스 환경장관 니콜라 율로는 지난해 9월 “유럽의회에 공식 보고서를 전달할 2018년 3월까지 대책을 세우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전국의 도지사를 불러 상황을 듣고 개선 로드맵인 대기 보호 계획(PPA)을 구상하기도 했다.
인구 220만명이 넘는 수도 파리도 대기오염이 심각하다. 파리 시는 “시민 90%가 오염된 공기 속에 살고 있으며, 이로 인한 조기 사망자 수가 매년 2500명으로 예상된다”라고 밝혔다.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한 당근과 채찍 정책을 동시에 추진해왔다.
그의 대표적인 채찍 정책은 배출가스 표시 등급제도인 크리테르(Crit’Air)이다(〈시사IN〉 제503호 ‘프랑스는 디젤차를 믿지 않는다’ 기사 참조). 디젤차 제조 시기와 배출가스 양에 따라 총 5등급으로 나눈 스티커를 의무적으로 부착하게 하고, 대기오염 정도가 심한 날에는 일정 등급 이상 차량의 도심 진입을 제한한다. 이달고 시장은 단순히 며칠간 진입을 제한하는 것을 넘어 2019년까지 크리테르 4등급(2001~2005년 생산), 2022년까지 크리테르 3등급(2006~2010년 생산)에 해당하는 디젤차의 도심 진입을 막아 2024년에는 “파리에 더 이상 디젤차가 다니지 않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당근 정책도 병행했다. 디젤 자동차 소유주에게 인센티브를 주었다. 예를 들면 연간 400유로(약 52만원)에 달하는 나비고(프랑스 정기 교통권) 카드 지원금과 1년 벨리브(파리 자전거 대여 서비스) 정기 이용권을 지급하거나 또는 새로운 친환경 이동수단(전기차·자전거·전기 오토바이) 구매를 위해 지원금 400유로 및 50유로 상당의 오토리브(전기자동차 대여 서비스) 정기권용 지원금을 택할 수 있도록 했다. 전기차를 이용하는 시민에게는 무료 주차장을 제공했다. 파리 시는 오래된 디젤 트럭을 없애고 환경친화적 차량을 마련하는 업체에 지원금도 제공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파리 시는 중장비 회사일 경우 한 대당 최대 9000유로(약 1180만원)까지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난관에 봉착한 정책도 있다. 가장 큰 논란은 센 강 오른쪽 기슭의 보행자 전용도로 문제다. 2016년 9월 이달고 시장은 파리 시의 핵심 도로 중 한 곳인 강변고속도로 일부의 차량 통행을 금지하고 보행자 전용도로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 2월21일 파리행정재판소는 무효 판결을 내렸다. 자동차 소음공해, 대기오염 가스 배출이 차량 전면 통행금지라는 행정행위를 뒷받침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자 이달고 시장은 3월8일, ‘대기오염 배출 감소와 공중보건 향상’이 아니라 “세계 문화유산 보존”을 이유로 차량 통행금지를 제안했다.
ⓒEPA
일드프랑스(파리를 둘러싼 지역)의 도지사 발레리 페크레스가 안 이달고 시장을 비판하고 나섰다. 센 강 오른편의 3.3㎞, 즉 일드프랑스 지역 주행거리의 0.16%만을 차지하는 도로에 차량 통행을 금지한다고 해서 대기오염도가 현저히 낮아지겠냐는 것이다.
보행자 전용도로에 대한 대중적 지지는 높다.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Ipsos)가 3월2~6일 18세 이상 파리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5%가 센 강 오른편의 보행자 전용도로에 찬성했으며, 66%는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한 차량 통행 축소에 우호적이었다. 파리 시 동서를 잇는 주요 통로가 막히더라도 환경 개선을 선택한 것이다.
이달고 시장이 3월19일 제시한 ‘파리 (대중)교통 전면 무료화’ 정책도 논란거리다. 그간 파리 시는 대기오염 수치가 높은 날에는 대중교통을 공짜로 이용하도록 했는데 평상시에도 전면 무료화를 하겠다고 밝혔다. 파리 시의원 알렉상드르 베스페리니는 “비용을 누가 전부 지불할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그는 대중교통 전면 무료화가 파리 시민들의 세금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파리 시는 일단 오는 6월부터 월 소득이 2200유로 이하(2인 기준 월 3400유로 이하)인 65세 이상 시민들에게 우선 나비고(정기 교통권) 카드를 무료로 나누어줄 계획이다. 이달고 시장은 전면 무료화 정책을 추진하기에 앞서 국내외 전문가들에게 정책 효과에 대한 연구를 맡기겠다고 밝혔다.
‘난방 미세먼지’ 배출의 88%, 장작 때문
파리를 대표하는 자전거 대여 서비스인 벨리브도 사업자 변경 문제로 삐걱댄다. 2007년부터 10년간 운영해온 JC드코가 사업을 그만두고 벤처기업 스모벤고가 벨리브를 맡으면서 1400여 개였던 자전거 대여소가 330여 곳으로 줄었다. 스모벤고는 더 가볍고 튼튼한 자전거를 제공하고 총 자전거 중 30%를 전기 자전거로 대체하겠다며 운영권을 따냈다. 하지만 설치 지연으로 파리 시민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파리 시는 스모벤고에 벌금 100만 유로(약 13억1000만원)를 부과하고 이용자들에게 1월 정기 요금 환급, 3시간 무료 체험 서비스, 3월까지 가입비 50% 할인을 제공하기로 했다. 스모벤고가 5월 초에야 자전거 설치를 완료할 수 있다는 입장이어서, 비판의 목소리는 계속 나온다.
이달고 시장은 지난 2월 한 인터뷰에서 “대기오염 개선 정책이 결실을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2016년에 비해 4.8% 줄어든 파리 시내 자동차 통행량이 근거였다. 그러나 대기오염 감시소인 에어파리프(Airparif) 조사에 따르면, 차량만이 미세먼지 원인은 아니었다. 파리에서 자동차 통행으로 인한 미세먼지 발생은 28%이고, 26%는 난방 기구에서 발생했다. 놀랍게도 전체 난방의 5%에 지나지 않는, 장작을 이용한 방식이 88%의 ‘난방 미세먼지’를 배출한 것이다. 이를 두고 세골렌 루아얄 전 환경장관은 일드프랑스 지역에서 장작을 이용한 난방을 금지하는 법안을 냈으나, 2015년 파리행정재판소는 ‘지나친 규제’를 이유로 무효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시사인 파리∙이유경 통신원 2018.04.11.
일본산 수산물이 온다, 일본발 오염수가 온다
멍게는 시작에 불과하다. ‘일본’ ‘수산물’ ‘안전’과 같은 키워드가 지금보다 더 첨예한 이슈로 떠오를 계기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방사능 오염수 배출로 국산 수산물이 입을 타격도 불가피하다.
3월31일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경남 통영시에서 열린 ‘수산인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바다의 파인애플’이라 불리는 수산물이 있다. 일본어로는 호야(ホヤ), 일본 내 최대 생산지는 미야기현이다. 연간 1만2000t을 생산한다. 이 중 7000t이 한국으로 수출되었다. 2013년 9월 한국 정부가 일본 8개 현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내리기 전까지의 일이다. 미야기현 연안에서 잡히는 호야 7000t은 이제 모두 폐기 처분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일으킨 도쿄전력이 ㎏당 단가를 정해 호야 생산자에게 보상을 진행한다.
호야는 한국어로 멍게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 정계 지도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논의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고 알려졌지만 대통령실은 부인했다는, 그 논란의 수산물이다. 멍게는 한동안 한·일 양국, 국내 여야 간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수입 재개 요청을 받아들였다, 아니다’, ‘멍게라는 단어가 나왔다, 안 나왔다’ 등을 두고 진실게임과 정쟁이 불거졌다. 멍게는 시작에 불과하다. 원래도 뜨거웠던 ‘일본’ ‘수산물’ ‘안전’과 같은 키워드들이, 지금까지보다 더 첨예한 이슈로 떠오를 계기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났다. 2013년 8월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원전 냉각수 탱크에서 방사능 오염수 300여t이 바다로 유출되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한국 정부는 2013년 9월부터 일본 후쿠시마·아오모리·이와테·미야기·도치기·군마·이바라키·지바 등 8개 현에서 생산된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일본은 강하게 반발했다. 2015년 5월 세계무역기구(WTO) 소송까지 진행하며 한국에 수산물 수입 재개를 압박했다. 이후 4년간 이어진 무역분쟁에서 한국이 최종 승소했고 지금까지 규제 조치가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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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일본산 수산물이 아예 수입되지 않는 건 아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 통계를 보면, 원전 사고가 발생한 2011년 이후부터 일본산 어패류 수입량은 급감했지만 그래도 3만t 수준은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수입액 기준으로는 지난해 1억7414만 달러로 201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그림 〉 참조). 가장 많이 들어오는 어종은 가리비(2022년 기준 1만1970t), 돔(5570t), 패각(3347t) 등이다. 일본산 우렁쉥이(멍게)도 지난해 3025t이 국내로 수입되었다. 일본 21개 현 중 8개 현 수산물만 들어오지 못할 뿐이다.
수입산 멍게 98%, 방어 100%가 ‘일본산’
어떤 어종들은 일본산이 우리나라 수입산 수산물 비중의 전부나 대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해양수산부 수산정보포털의 통계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기준 한국에서 유통되는 수입산 가리비(1만1970t/전체 1만6092t)의 74%, 수입산 돔(5570t/8990t)의 62%, 수입산 가오리의 46%(740t/1612t)가 일본에서 수입된 물량이었다. 수입산 멍게(3025t/3072t)는 98%, 수입산 능성어는 99%(72.8t/73.9t), 수입산 방어(2693t)와 수입산 병어(410㎏)는 100%가 일본 원산지다. 한국무역통계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2020년 기준 중국-타이-베트남 다음으로 많이 일본의 수산물을 수입하는 국가다.
ⓒ시사IN 최예린
일본산 수산물은 국내 수산시장·마트·음식점 등 곳곳에서 유통되지만 소비자들이 잘 모르고 사먹는 경우도 다반사다. 음식점에서 반드시 원산지를 표기해야 하는 수산물 품목은 이제껏 15가지(넙치·조피볼락·참돔·미꾸라지·뱀장어·낙지·명태·고등어·갈치·오징어·꽃게·참조기·다랑어·아귀·주꾸미)에 불과했다. 농수산물의 원산지 표시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으로 오는 7월부터는 멍게·방어·가리비·전복·부세(조기) 등 5개 품목도 원산지 표시가 의무화되었다. 횟집에서 제공되는 방어와 멍게도 이제 ‘일본산’ ‘중국산’ 등 원산지를 공개해야 하는 것이다.
모두 정직하게 표기되지는 않는다. 지난해 10월 해양수산부가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실(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2년 8월까지 일본산 수산물을 국내산 등으로 속여 판매하다가 적발된 것이 403건에 이르렀다. 최근 일본산 수산물 수입에 대한 우려가 늘어나자 경기·인천·경남 등 일부 지자체는 수산물 원산지 표시 지도·단속과 수산물 방사능 검사를 강화하는 방안 등을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를 가라앉히기 위해 3월30일 언론 공지를 통해 “후쿠시마산 수산물이 국내로 들어올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다가오고 있다. 지금까지는 방사능에 오염된 일본 수산물이 걱정이었다면, 이제는 그 수산물을 둘러싼 바닷물 전체를 걱정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이 초읽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는 지금도 하루 100t씩 방사능 오염수가 쌓여가고 있다. 녹아버린 핵연료를 냉각시키는 처리수에다 원자로 건물에 흘러 들어가는 빗물·지하수까지 더해져, 2023년 2월 현재 132만t의 오염수가 모여 있다. 원전 부지 내 탱크 1000개 안에 담아놓고 있는데 전체 용량의 96%가 찼다. 일본 정부는 올봄과 여름 사이부터 이 처리수를 바다에 내보내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탱크 속 물을 다 내보내려면 적어도 30년 이상이 걸린다.
4월5일 시민방사능감시센터와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가 '2022년 일본산 농·축·수산물 방사능 오염실태'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일본 측은 한국 등 주변국의 이해를 구하고 있다. 지난 3월16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에 대한 한국의 이해와 협조를 요청했다. 3월17일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도 윤 대통령을 만나 비슷한 발언을 건넸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자국민조차 아직 설득하지 못한 상황이다. 어업인들의 반발이 가장 격렬하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2015년 후쿠시마 어업협동조합연합회와 “관계자의 이해 없이는 (처리수의) 어떠한 처분도 하지 않는다”라는 약속을 하고 그 내용을 문서로 남겼다. 약속을 깬 일본 정부를 향해 어업인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일본원자력문화재단이 지난해 9~10월 전국 15~79세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국민 51.9%가 ‘(오염수) 방출에 대해 국민의 이해를 얻지 못했다’라는 문장에 동의했다. ‘어업을 중심으로 한 관계자의 이해를 얻을 수 있을 때까지는 (방출)해서는 안 된다’에도 42.3%가 동의했다. 반면 ‘국민의 이해가 얻어지고 있다’는 6.5%, ‘관계자의 이해를 얻지 못해도 (방출)해야 한다’에는 5.6%가 동의했다.
일본 정부는 대부분의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는 다핵종 제거 설비(ALPS)를 통해 방사성 물질 농도를 기준치 이하로 낮춰 방출하기 때문에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가 일으킬 해양·수산물 방사능 오염도가 미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본 바깥의 생각은 다르다. 도쿄대학 세키야 나오야 교수는 지난해 3월 일본·한국·중국·타이완·싱가포르·러시아·독일·프랑스·영국·미국 등 10개 국가 20~60대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둘러싼 국제 의식조사를 벌였다. ‘처리수가 방출되었을 경우 후쿠시마산 식품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응답은 일본을 제외한 국가에서 60%를 넘었다. 한국 93%, 중국 87%, 독일 82%, 프랑스 77%, 타이완 76%, 미국 74%였다. 일본에서는 응답자의 36%가 ‘(매우) 위험하다’고 답했다.
일본 후쿠시마현 원자력발전소에 마련된 방사능 오염수 탱크, 약 132만t을 보관 중이다. ⓒREUTERS
자국민도 설득 못한 ‘오염수 방출’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에 대한 일본의 양해 요청에 세 가지 기준(①국제기준 검증 ②과학적 방식 ③한국 전문가의 참여)을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이미 일본 편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다는 평가를 받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조사해 안정성에 문제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이를 받아들일 확률이 높다.
수산물은 수입을 금지해서 국내 유입을 차단할 수 있지만 흐르는 바닷물은 막을 수가 없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은 일본산뿐 아니라 한국 수산물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난 2월 한국해양과학기술원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시뮬레이션한 결과에 따르면, 후쿠시마에서 방출한 오염수는 4~5년 뒤 본격적으로 한국 해역에 유입될 것으로 예측된다. 연구진은 방사능 물질은 바닷물에 희석돼 분석기기로 검출되지 않을 정도의 미미한 양일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이 분석 결과는 일본 측이 공개하는 데이터를 모두 신뢰한다는 전제 아래 나온 것이다.
실제로 영향이 미미하다고 쳐도, 먹을거리에 대한 두려움은 과학을 넘어선 심리적 문제다. 국산 수산물이 입을 타격도 불가피하다. 지난해 11월 제주연구원이 발표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에 따른 피해조사 및 세부 대응계획 수립 연구’에 따르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3.4%가 “후쿠시마 오염수가 방류되면 수산물 소비를 줄이겠다”라고 답했다.
수산업계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출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적극적으로 반대에 나섰다. 예정된 방출 시기가 코앞에 다가온 지금은 오히려 조용하다. ‘최악의 상황’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고 반쯤은 포기한 상태다. 김성호 한국수산업경영인중앙연합회 회장은 “지금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사실상 너무 없다. 방출하지 않으면 정말 좋겠지만 개인적으로 방출을 막을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다만 오염수 방출 이후 국내 수산업계가 입을 손해를 최소화할 정부 대책을 요구했다. “국민들이 수산물을 멀리하지 않도록 국가에서 대책을 빨리 세워줘야 한다. 소비 급감 대책과 더불어 어업인 지원정책, 안정적 조업 대책, 경영안정자금 대책도 절실히 필요하다. 지금도 이미 너무 늦었다.”
시사인 변진경 기자
가덕신공항 매립·건설 동시시공 특별법 발의
종합사업관리 용역 발주 법제화…최인호 의원 “조기 개항 관철”
더불어민주당 최인호(사하갑, 국토교통위원회) 의원은 18일 가덕신공항 건설 ‘종합사업관리 (PgM, Program Management) 용역 발주’를 법제화한 ‘가덕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의원. 연합뉴스
대규모 복합 공사는 통상 단계별로 사업이 이뤄지는데, 최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PgM을 통해 복토·절토·활주로·방파제 건설 등 여러 프로젝트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동시 진행이 가능한 부분을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한다. 공사 기간을 단축하고 안전성도 확보한다는 취지다.
가덕신공항 건설사업은 해상 매립 등 공사 난도가 높고, 2029년 조기개항이란 목표 달성을 위해 엄격한 공정관리가 필요하다. 기존 개별 건설사업관리 (CM, Construction Management) 또는 감리로는 통합 관리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국토교통부도 지난달 가덕신공항 설명회에서 사업 지연을 방지하기 위해 PgM을 오는 8월 가덕신공항 기본계획 수립 후 설계 단계부터 적용한다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앞서 인천국제공항건설사업 (1,2 단계 ) 등 대규모 국책사업에서도 이같은 PgM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국토위 교통법안소위원장인 최 의원은 “가덕신공항 건설의 종합사업관리를 통해 해상 매립 및 접근 교통시설 건설 등이 차질없이 동시에 진행될 수 있다”며 “개정안 통과로 2029년 개항이 차질없이 진행돼 수도권 집중 완화 및 국토의 균형발전에도 기여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가덕신공항 조기개항 추진에 앞장서며 국민의힘 정동만 의원과 함께 ‘가덕신공항 부지 조기 보상안’ 발의 및 국회 통과를 주도한 바 있다.
한편 국민의힘 이헌승 의원이 지난 1월 발의한 ‘가덕신공항 건설공단법’은 다음 달 국토위에 상정, 심의될 예정이다. 국토위 상정이 늦어진 것은 공단설립은 제정법이어서 자료 작성에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원호 기자 cho1ho@kookje.co.kr
'100조 규모' TK신공항 건설 사업, 남의 잔치판 안 된다
대구경북 경기 반등 '대역사' 지역 자본·업체 만반의 준비
역외업체 들러리 전락 우려…경쟁서 밀리지 않게 해야
17일 오전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경북신공항 특별법 국회 통과 기념 전 직원 조회'에 참석한 홍준표 대구시장이 박수를 치며 대구경북신공항 특별법이 제정된 것을 축하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대구경북신공항 특별법이 통과되면서 앞으로 대구경북 일원에서 펼쳐질 신공항 관련 토목 건설 사업이 60조~100조원에 달할 겁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신공항 특별법 통과 이튿날인 지난 14일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이렇듯 침체한 대구경북 경기를 반등시킬 대역사(大役事)가 눈앞에 다가오면서 지역사회에서는 '남의 잔치'가 되지 않게끔 지역 건설업계가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18일 시청 산격청사에서 열린 산하기관장 회의에서 "대구도시개발공사는 제2국가산단 사업시행 및 신공항 건설 특수목적법인(SPC) 설립에 주력하고, 특히 대형 국책 토건사업에 지역 업체가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차질 없이 준비할 것"을 지시했다.
홍 시장은 지난주 열린 간부회의에서도 "신공항 건설 사업대행자 선정 때 공항 건설 경험이 있는 메이저 업체를 적극 발굴하고, 지역 건설업체와 지역 자본이 최대한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해 달라"고 했다. 이에 지역 경제계에서는 신공항, 대구도시철도 4호선(엑스코선) 건설 등 대형 프로젝트에 지역 자본과 지역 건설사의 역할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을 모은다. 하지만 또다른 일각에서는 '지역 업체의 역량 부족으로 수도권 공룡 기업들의 들러리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대구 건설업체 ㈜서한의 주주 김주형 씨는 "서한은 시가총액이 14일 기준으로 1천69억원에 불과하다. 5년 연속 대구 건설업계 매출 1위 업체의 주가라고는 믿을 수 없이 초라한 규모"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공시 자료를 보면 지난해 12월 수주 잔고가 1조3천320억원인데 시가총액이 여기에 12분의 1 수준밖에 안 된다"면서 "지역 건설업계가 신공항 특별법 국회 통과라는 호재를 맞았는데도 주가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대구경북에서 이뤄질 대규모 공사가 지역 업체의 몫이 아니라고 예단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지역 건설업계는 이러한 우려를 잘 알고 있으며, 기우에 그치게 하겠다는 각오다.
노기원 ㈜태왕 대표이사 회장은 "앞으로 대구경북에서 많은 개발 프로젝트가 시작된다"면서 "업계는 시의 역할만 기다려서는 안 되며, 지역 건설업계도 역량을 키우고 한마음으로 합심해야 지역이 살길을 모색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이번만큼은 지역 업체가 어떠한 룰에서 경쟁을 하더라도 역외 업체에 밀리지 않게 만반의 준비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7일 오전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경북신공항 특별법 국회 통과 기념 전 직원 조회'에 참석한 홍준표 대구시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대구 매일신문 홍준표 기자 pyoya@imaeil.com
공원화 입길 오른 부산 동서고가로, 철거에 무게 실려
부산진구 이어 사상구도 철거 주장 전망
부산시, 내달 안으로 정책 방향 결정
[부산=뉴시스] 하경민 기자 = 부산 동서고가로. yulnetphoto@newsis.com
지난달 한 시민단체가 부산 동서고가로를 공원화하자는 제안에 대해 관련 지자체들이 잇따라 철거를 주장하고 나서 처리결과가 주목된다.
19일 사상구 관계자에 따르면 시민단체가 발제한 동서고가로 공원화에 대해 반대 입장 표명을 준비하고 있다. 사상구 관계자는 "동서고가로 철거는 사상구민들의 오랜 염원이다. 고가도로로 인해 도심이 단절됐고, 주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오랫동안 피해를 겪었다"며 "조만간 구에서 고가도로 공원화 반대 입장을 표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부산진구는 동서고가로가 철거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동서고가도와 직접적으로 얽혀있는 두 지자체와 주민들이 모두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어 고가도로 철거에 무게가 실리는 모양세다.
특히 부산시가 내달 안으로 동서고가로에 대한 정책 방향을 결정한다는 방침을 세운 뒤 나온 움직임이어서 더 주목된다.
1994년 개통된 동서고가로는 부산의 두 번째 도시고속도로로 남구 감만사거리에서 시작돼 부산진구 서면을 지나 사상IC를 통과하는 총 14.8㎞ 규모의 도심 고가도로다. 이 도로는 남해고속도로 제2지선에서 부산 시내로 접근성을 높여주고, 컨테이너 물동량 수송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새롭게 추진 중인 '사상~해운대 고속도로(대심도)'와 겹치는 구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국토부는 부산 서부의 남해고속도로 제2지선과 동부의 동해고속도로(부산~울산)를 연결하는 총 길이 22.8㎞의 '사상~해운대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우선협상대상자로 GS컨소시엄을 선정하고, 지난달부터 협상을 벌이고 있다.
사상~해운대 고속도로가 오는 2029~2030년께 완공된다면 동서고가로의 절반에 달하는 사상~진양램프(약 7㎞) 구간은 폐도된다. 국토부는 관련 예산으로 1025억원을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부산그린트러스트는 지난달 국내외 고가도로와 폐철도 공원화의 성공사례를 들며, 부산의 역사를 품은 동서고가로에 '하늘공원'을 만들어 랜드마크로 조성하자는 의제를 던졌다.
이 단체는 주요 성공 사례로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과 프랑스 파리 프롬나드 플랑테 등을 제시했다. 두 곳 모두 오랫동안 철길로 사용되다 폐선된 뒤 공원으로 조성돼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또 서울시가 이를 벤치마킹해 서울역 고가도로를 공원으로 탈바꿈한 '서울로 7017'은 도심 주민들의 휴식지와 주변 도보관광 네트워크를 구축해 성공했다는 것이 부산그린트러스트의 설명이다.
[서울=뉴시스] 서울로 7017.(사진=서울시 홈페이지)
부산그린트러스트 관계자는 "부산 도심 내부에 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긴 선형의 녹지 공간이 없다"며 "동서고가로가 공원으로 활용될 때 어떤 효과가 있는지, 공원화가 된다면 지역 주민들에게 어떤 리스크가 있는지, 그 리스크를 뛰어넘을 방법이 있는 지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늘공원 반대론자들은 뉴욕과 서울 사례는 상업 지역이지만 부산은 주거 밀집구역이라 상황이 다르다고 반박하고 있다. 김영욱 부산진구청장은 "고가도로 인근 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집 앞에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자리 잡고 있어 경관이 저해되고 빛 공해와 소음공해, 사생활 침해 등의 피해를 입고 있는데도 철거 대신 하늘공원 조성을 계속 주장한다는 것은 지역 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는 사상~해운대 고속도로 관련 국토부 협상에 발맞춰 내달 안으로 정책 방향을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시 관계자는 "국토부 사업 계획에 따르면 사상~진양램프 구간 폐도 관련 철거비 예산이 반영돼 있고, 시가 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협의돼 있다"며 "국토부 협상에 발맞춰 내달 안으로 (사상~진양램프 구간) 어떻게 결론을 내릴지 정해야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5월 이후 실행계획이 서면 갈등이 양상되기 전 최대한 빨리 결정을 내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폐도 계획에 포함되지 않는 동서고가로 구간에 대해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된 바는 없다.
◎공감언론 뉴시스 kwon97@newsis.com
산업계 눈치 본 탄소중립계획, 산업계가 진짜 반길까
정부가 공개한 제1차 탄소중립계획이 비판을 받고 있다. 산업 현장의 의견을 반영했다지만 이견이 쏟아진다. 오히려 기업들 사이에서 탄소중립에 적극 대응하는 움직임이 나온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환경부 주요 관계자가 기자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부처가 최전선에 있지 않습니다.” 3월21일 공개된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안)’(이하 탄소중립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참이었다. 기자가 “환경부가 최전선에 있지 않다고요?”라고 되묻자, 그는 “각 부처의 입장이 있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조율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논란이 되는 이슈가 어떻게 조율됐는지 그 경위와 함의를 모른다고도 했다.
뜻밖의 반응이었다. 2020년 문재인 정부가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을 선언한 이래 환경부는 탄소중립 실천의 핵심 부처다. 정부의 각종 공식 문서에도 여러 차례 적시된다. 그런데 환경부가 최전선에 있지 않다고?
어쩌면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국가계획을 수립하는 데 환경부가 그저 ‘one of them(여럿 중 하나)’일 뿐이라는 관계자의 ‘고백’은 지난 몇 주간 시민사회, 경제계 그리고 정치권을 달군 논란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쇳말 같은 것이었다.
3월21일 마침내 제1차 탄소중립계획(안)이 공개됐다. ‘마침내’라는 부사를 쓴 이유가 있다. 지난해 3월25일 시행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은 1년 안에 그 실행 계획을 마련하도록 명시했다. 올해 3월25일이 기한이다. 공개 시점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무성한 뒷말을 낳더니 법정 시한을 겨우 나흘 남겨놓고서야 ‘초안’이 발표된 것이다. 기한 내 계획 수립은 이미 무산됐다. 그리고 이 초안을 발표하자마자 후폭풍이 일었다.
시작은 공청회였다. 3월22일 열린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 공청회’는 시위로 얼룩졌다. 기후환경단체 활동가 10여 명이 “국가 계획이 애들 장난인가?” “탄녹위는 부끄러운 줄 알라”고 항의하며 단상 앞을 점거했다. 한 활동가는 “기후위기 대응에 실패하는 대책을 국가위원회가 만든다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소리쳤다.
■ 시점·절차·내용 모두 문제
이들의 분노에는 이유가 있었다. 시점, 절차, 내용 모두 문제였다. 정부의 탄소중립계획(안)은 공청회 하루 전날인 3월21일 〈조선일보〉를 통해 먼저 알려졌다. 공청회 하루 전날 정부안을 덜컥 흘려놓고 부랴부랴 공청회를 진행하는 꼴이었다. 정부안 공개 전날엔 기후위기 대응에서 국제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기구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6차 종합보고서를 발표했다. 인류가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파국적 결말을 돌이킬 수 없다는 국제 보고서가 발표된 때 하필이면 한국 정부의 탄소감축 계획이 공개된 것이다.
3월22일 탄소중립기본계획 공청회장 앞에서 활동가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김흥구
가장 큰 문제는 내용이었다. 쟁점이 많고도 많지만 핵심 논란은 한 가지로 모인다. 산업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크게 줄여줬다는 점이다. 2021년 문재인 정부 때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발표했을 때에는 2030년 산업부문 감축 목표가 2018년 대비 14.5%였다. 이번 계획에서는 11.4%로 3.1%포인트 줄었다.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 산업부문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발전부문과 함께 국내 배출량의 절대량을 차지한다. 2018년 기준 산업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억6000만t으로 수송(9800만t), 농축수산(2400만t) 부문에 비해 압도적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가장 노력을 기울여야 할 분야에 대해 오히려 편의를 봐준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산업부문 감축 목표가 크게 후퇴했음에도 전체 NDC는 문재인 정부 때와 같다는 점이다.
이렇다 보니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연도별로 보면 매우 기형적인 모양이 된다(〈그림 1〉 참조). 현 정부 임기 안에선 매년 1000만t 안팎 완만하게 줄어나가던 배출량이 임기 이후부터 가팔라진다. 특히 2029년에서 2030년 사이에 1년 동안 1억t 가깝게 줄어든다. 마법 같은 추이다. “현 정부 임기 내에는 느슨하게 하다가, 그 뒤로는 나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목표”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 나라의 탄소중립계획은 왜 중요한가. 2015년 파리협정에 따라 지구온난화를 막으려는 세계적인 약속, 즉 ‘신기후체제’가 본격 가동됐기 때문이다. 말로만 탄소감축을 선언했던 과거와 달리 일정한 ‘강제성’이 부과됐다. 내년인 2024년부터 파리협정 당사국들은 ‘격년투명성보고서’라는 것을 2년마다 유엔에 제출해야 한다. 한 나라가 탄소감축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다른 나라에 얼마나 돈을 투자하고 기술을 이전했는지 등을 유엔이 검증한다. 국가 탄소중립계획은 국제사회의 검증에 대비하는 ‘뼈대’나 마찬가지다. 뼈대가 어떻게 세워지느냐에 따라 신기후체제에서 한국의 위상이 달라진다.
국가 탄소중립계획을 최종적으로 수립하는 곳은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다. 문재인 정부 때는 ‘탄소중립위원회’라는 이름이었으나 윤석열 정부 때 ‘녹색성장’ 네 글자를 추가했다. 위원회에는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기획재정부, 기상청 등 20개 부처가 참여한다.
현재 위원장은 김상협 카이스트 부총장이다. 〈매일경제〉, SBS에서 일했던 언론인 출신으로 원희룡 제주도지사 시절 제주연구원장에 임명됐다. 탄소중립계획 공개 이후 기후환경단체 쪽에서 ‘공공의 적’이라며 비판하고 있지만 사실 그리 간단한 인물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때 대통령실 녹색성장환경 비서관을 맡아 녹색성장 계획을 지휘하는 등 기후·에너지 분야에서 꾸준히 중책을 맡아왔다.
다시 3월22일 공청회장으로 돌아가보자. 김상협 위원장은 기후환경단체 활동가들의 시위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렇게 입을 뗐다. “제가 딸 둘, 아들 한 명을 둔 부모입니다. 제가 위원장이 아니었다면 젊은 분들이 외치는 함성, 분노, 좌절에 공감을 표시했을 겁니다. 여러분의 함성은 정당하나 정부안이 밀실에서가 아닌 오랜 진통 끝에 도출된 것만은 알아주십시오.”
■ 3분의 1 수준으로 후퇴한 산업부
김상협 위원장이 말한 ‘오랜 진통’이란 무엇일까. 결국 산업부문의 온실가스 감축을 두고 벌어진 진통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 부처로 따지면 환경부와 산업부 사이에서 불거진 진통이다. 탄소중립계획이 공개되기 겨우 8일 전인 3월13일 이런 소식이 알려졌다. 산업부가 2030년 산업부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18년 대비 기존 14.5%에서 5%로 대폭 낮춰야 한다는 의견을 탄녹위와 환경부에 제출했다는 것이다. 기존 목표치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철강, 석유화학 등 관련 업계의 의견을 청취한 결과 5%밖에 감축할 수 없다는 것이 산업부의 입장이었다. 감축 목표가 너무 낮아 탄녹위도 골머리를 앓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니까 탄녹위가 공개해 논란이 불거진 산업부문 감축 목표(11.4%)는 애초 산업부의 의견(5%)보다는 훨씬 나아간 셈이다. 물론 2021년 목표치보다 크게 후퇴했다는 점에서 기후위기 대응에서 낙제점이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여기서 환경부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산업부의 역주행을 막기보다는 결과적으로 수수방관한 꼴이 됐다. 앞서 “우리 부처가 최전선에 있지 않다”라는 환경부 주요 관계자의 말은 그런 점에서 자조에 가깝다. 환경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 와서 보면 문재인 정부 때 제시한 14.5% 목표치가 너무 무리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말은 산업계에서 줄기차게 주장해온 말이지만, 적어도 환경부가 할 말은 아니다. 이쯤 되면 현 정부 탄소중립계획에서 환경부가 정말로 핵심 부처가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
탄녹위와 환경부의 무기력함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메시지를 줬다. 지난해 10월 윤 대통령은 탄녹위 위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탄소중립이라는 것이 우리 산업의 부담으로 작용해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그다음 달인 11월17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한국을 방문해 9조원이 넘는 투자를 결정한다. 이른바 ‘샤힌 프로젝트(Shaheen, 아랍어로 ‘매’를 의미)’다. S-OIL(에쓰오일)이 울산광역시 온산국가산업단지에 대규모 석유화학제품 공장을 짓는 사업이다. S-OIL은 국내 기업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에너지 회사인 아람코(Aramco)가 최대주주다. 윤석열 대통령이 3월9일 샤힌 프로젝트 기공식에 직접 참여했을 만큼 공을 들인 사업이다. 실제 울산 지역에서는 일자리 창출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는 언론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문제는 샤힌 프로젝트가 어마어마한 탄소배출 사업이라는 점이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에 따르면, 샤힌 프로젝트로 인해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연간 300만t으로 추산된다. 탄소중립계획에 따라 윤석열 정부가 2023~2024년에 감축해야 하는 전체 배출량이 800만t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다. 결국 현 정부의 산업부문 감축 목표가 크게 줄어든 배경에 샤힌 프로젝트가 있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지난해 9월 탄소중립과 에너지 정책 세미나에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기업의 탄소중립을 위해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 산업계가 이 계획을 마냥 반길까
정작 궁금한 것은 지금부터다. 산업계는 이번 탄소중립계획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탄소감축 목표를 줄여줬으니 마냥 좋아할까? 물론 철강, 석유화학 같은 탄소 다배출 업계는 당장 숨을 돌릴 수 있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그러나 속내는 복잡하다.
사실 산업계는 어느 누구보다 더 탄소감축에 민감하다. 5년마다 바뀌는 정부보다 더 절박하게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유럽과 미국이 각각 탄소국경세(CBAM),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무기로 ‘세계경제의 질서’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명분으로 타국의 탄소배출 산업에 과거 존재하지 않았던 페널티를 주고 있다.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곳은 철강업계다. 당장 올해 10월부터 시행되는 CBAM의 직격탄을 맞는다. 에너지 및 환경정책 싱크탱크인 사단법인 넥스트의 추산에 따르면, 2032년에 한국 철강업계는 유럽연합(EU)에 5억5000만 달러(약 7200억원)를 탄소국경세로 지불해야 한다. 이는 한국 철강산업의 탄소배출량과 EU 탄소배출권 가격을 바탕으로 계산한 수치다.
더욱 심각한 것은 CBAM이 수입품의 탄소배출량 계산에서 간접 배출도 포함하겠다고 밝힌 점이다. ‘간접 배출’은 생산공정에서 발생하는 직접 배출 외에 그 과정에서 사용한 열과 전력으로 인한 배출량까지 계산에 넣겠다는 것이다. 포스코가 독일 폭스바겐에 자동차용 강판을 수출했다고 치자. 이 강판을 만들 때 쓴 전력이 탄소배출이 많은 화력발전인지,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인지 따지겠다는 것이다. 아직 재생에너지 비중이 낮은 한국으로서는 날벼락 같은 일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축으로 세계경제의 질서가 뒤바뀌면서 국내 산업계는 나름대로 발 빠르게 움직여왔다. 포스코의 경우 이미 2020년 12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문재인 정부가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바로 다음 날 같이 발을 맞췄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2030년 10%, 2040년 50% 감축을 목표로 ‘탄소중립 담당 상무’직을 신설하고 탄소를 덜 배출하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개발해왔다.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다. SK케미칼의 경우 2030년까지 50%, 한화솔루션은 35%, 금호석유화학과 롯데케미칼도 20% 이상 탄소감축을 선언하며 관련 기술 개발 등에 박차를 가해왔다. 결국 현 정부의 탄소중립계획이 기업에 헷갈리는 ‘신호’를 준 셈이다. 기후환경단체 ‘플랜1.5’의 박지혜 변호사는 “기업의 탄소감축 행동에 찬물을 끼얹었다”라고 비판했다.
윤석열 정부의 ‘신호’는 예기치 못한 파장을 불러올 수도 있다. 국내 대기업 대다수는 그룹의 계열사로 속해 있다. 한 그룹 안에 탄소 다배출 기업이 있는가 하면 기후위기 대응 기업도 있다. 예컨대 SK그룹에는 정유회사인 SK에너지와 함께 재생에너지를 개발하는 SK E&S가 있다. LG그룹에는 LG화학과 함께 친환경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LG에너지솔루션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대기업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현 정부가 기업의 눈치를 보느라 탄소감축 목표치를 낮춰줬는지 모르겠지만, 그룹 차원에서는 솔직히 혼란스럽다. 목표치를 줄여주면 그룹의 어떤 계열사에게는 좋겠지만, 재생에너지 쪽을 개발하는 다른 계열사는 정부가 다른 비전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 걱정하게 된다. 결국 그룹 차원의 탄소감축 플랜을 짜는 것이 어려워진다.”
■ “저탄소로 가면 편익 2347조원”
기사를 마무리하고 있는 4월5일 주목할 만한 자료가 발표됐다. 국내 대표적인 경제단체에서 발표한 자료다. 대한상공회의소 임진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 원장은 시민단체인 에너지전환포럼 5주년 기념 토론회에 참석해 놀라운 수치를 공개했다. 한국이 ‘저탄소 사회’로 전환할 경우 그에 따른 편익이 2100년까지 무려 2347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태양광·풍력 발전, 배터리 등 신기후체제 아래서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는 데 따른 편익이다.
천문학적 수치는 사실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굴지의 경제단체에서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을 수치를 통해 촉구하고 나섰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2월28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400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68.8%가 탄소중립 추진이 기업 경쟁력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는 긍정적 평가가 34.8%에 불과했으나 1년 새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그림 2〉 참조).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1년 사이 탄소중립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인식하는 기업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밝혔다.
탄소중립계획 공개 이후 각계 비판이 이어지자 탄녹위는 의견수렴 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법정 시한을 한 달 넘겨 4월 하순께나 계획이 수립될 전망이다. 탄소중립과 녹색성장,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던 탄녹위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시사인 이오성 기자
지리산 자락 소나무 1만 그루 베어내는 이유…골프장 다지기?
0일 전남 구례군 산동면 관산리 인근 산에 소나무 수십그루가 베어져 있다. ‘지리산골프장을 반대하는 구례 사람들’ 제공
전남 구례군 산동면의 지리산 자락에서 수상한 벌채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병충해에 약한 소나무숲 대신 편백숲을 조성하기 위한 작업이라는 게 토지 소유주들 설명이지만, 사실로 믿는 이들은 많지 않다.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골프장 조성을 위한 정지 작업’으로 의심한다. 벌채가 이뤄지는 구간에선 15년 전에도 구례군이 민간업자와 함께 골프장 건설을 추진하다 주민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20일 ‘지리산골프장을 반대하는 구례 사람들’이 공개한 ‘산동면 좌사리 일원 입목 벌채허가 및 신고수리 내역’을 보면, 구례군은 지난 2월3일부터 이달 말까지 좌사리·관산리 인근 산 16개 필지에 대한 벌채 신고를 허가했다. 이곳의 땅 주인 4명은 21만㎡에서 소나무 1만600여그루를 베어내겠다고 신고했다.
문제는 이곳이 지리산국립공원 경계와 겨우 200m 남짓 떨어진 곳으로, 삵과 수달 등 멸종위기 동식물이 서식하는 환경부 고시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땅 주인들은 소나무를 베어내 팔고 2026년 2월까지 편백을 심겠다며 벌채 허가를 받았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선 베어낸 소나무를 파쇄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주민들은 벌채 구역이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추진되다가 무산된 골프장 사업지와 겹친다는 점을 주목한다. 산림이 우거져 있으면 골프장 허가를 받기 쉽지 않으니, 다른 이유를 내세워 일단 나무부터 베어내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환경부가 고시한 ‘골프장의 중점 환경영향평가 항목 및 평가방법 등에 관한 규정’을 보면, 생태·자연도 1등급 해당 여부와 멸종위기 동식물 서식 여부를 중점 평가항목으로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 말 개정된 산림자원법이 시행되는 6월부터는 20만㎡ 이상을 벌채하려면 민관 합동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대규모 벌채 자체가 쉽지 않아진다.
2013년 전남 구례군이 고시한 골프장 예정 터. ‘지리산골프장을 반대하는 구례 사람들’ 제공
구례군이 지난달 23일 ㈜피아웰니스, ㈜삼미건설과 ‘구례온천 시시(CC) 조성사업’(가칭)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은 것도 의심을 키우는 대목이다. 구례군은 침체된 산동면의 온천지구 활성화를 위해 1000억원을 들여 관산리 일대 150만㎡에 27홀 규모의 골프장을 조성하려고 한다. 업무협약에 따르면 피아웰니스는 시행, 삼미건설은 시공을 맡고 구례군은 사업 인허가 등 행정절차를 지원하게 된다. 그런데 벌채가 이뤄지는 땅 소유주 가운데 2명이 피아웰니스 임직원이고, 나머지 2명도 임직원의 가족과 지인이다.
윤주옥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대표는 “골프장 조성에 유리하도록 미리 벌채하고 작업로 등을 확보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구례군은 업무협약을 즉시 파기한 뒤 추가적인 산림 훼손을 막고 원상복구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현주 구례군 산림경영팀장은 “협약은 아무런 강제성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골프장 추진과 벌채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피아웰니스의 입장을 듣기 위해 사무실로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
지난 2월부터 이달 말까지 진행되고 있는 전남 구례군 산동면 관산리 일원 소나무 벌채 구역. ‘지리산골프장을 반대하는 구례 사람들’ 제공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신개념 놀이터’로 ‘어린이 친화도시’ 기대
동구, 수정공원일대 2만㎡ 조성
친환경·모험·체험공간 등 꾸며
청년인구 유입, 인구증가 도모
접근성 위해 셔틀버스도 검토
오는 7월 준공을 앞두고 있는 부산 동구 초대형 놀이터 내 모험 놀이터 전경. 동구청 제공
인구감소지역으로 소멸 위기에 놓인 부산 동구에 ‘신개념 놀이터’가 생긴다. 숲 속에 다양한 체험 공간을 갖춘 대규모 놀이터 조성을 통해 청년 인구 유입효과 등을 가져오겠다는 게 동구청의 계획이다.
구청은 동구 수정동에 위치한 수정산가족체육공원 일대에 약 2만㎡(6600평)의 초대형 놀이터를 7월 준공을 목표로 조성 중이라고 20일 밝혔다. 2021년 5월 착공한 이 놀이터는 같은 해 12월 준공을 목표로 했으나 행정절차 이행 과정에서 준공이 지연됐으며 현재는 진입도로 개설공사 중이다. 조성 예산은 특별교부세 7억 원과 특별교부금 25억 6000만 원, 구비 64억 4000만 원 등 총 97억 원이다.
신개념 놀이터는 넓고 다양한 공간을 특징으로 한다. 2만 1989㎡ 규모에 달하는 놀이터 안엔 원목으로 조성된 집라인을 배치한 생태 놀이터, 롱슬라이드 등을 배치한 모험 놀이터, 친환경 에너지 휴식공간인 에너지 놀이터 등의 공간이 들어선다. 조성이 완료되면 구청이 관리 주체가 된다. 특히 아이들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생태 놀이터’가 눈에 띈다. 나무에 구멍을 뚫어 솔방울을 넣은 ‘곤충 호텔’을 통해 아이들이 알을 낳고 생활하는 곤충들을 관찰할 수 있게 한다. 이 밖에도 기존의 정형화된 놀이기구가 아닌 아이들이 창의력을 발휘해 놀이를 개발하고 즐길 수 있는 시설을 확충할 계획이다. 놀이기구엔 어린이 안전성이 검증된 원목 제품을 사용한다. 신개념 놀이터의 정식 명칭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구청은 지난달 27일부터 14일까지 명칭 공모전을 진행해 460여 개의 후보작을 받았다. 이를 토대로 다음 달 10일 정확한 명칭을 결정할 예정이다.
산 속에 위치한 놀이터인 만큼 낮은 접근성은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놀이터는 수정산가족체육공원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에 조성돼 체육공원 입구로부터 어른 걸음으로 약 10~15분 정도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구청은 접근성을 높일 대안으로 셔틀버스 운영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대규모 놀이터 조성은 고령층이 많아 인구 소멸 위기에 놓인 원도심 동구가 어린이들을 위한 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디뎠다는 의미를 가진다. 동구는 서구, 중구와 함께 인구감소지역으로 선정된 곳이다. 하지만 북항 재개발 사업과 2030 세계 박람회 유치 희망, 주거환경정비사업 추진 등 호재로 약 8000여 세대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실제로 동구는 2021년 합계출산율이 부산 16개 구·군 중 4위(0.74명)였으며, 지난해에는 6위(0.74명)로 부산 원도심 중에서는 높은 편에 속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타 구·군으로의 인구 유출을 방지함은 물론 타 구·군에서도 동구를 찾는 등 지역사회 활성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구청 관계자는 “아이들이 층간소음 걱정 없이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할 예정”이라며 “바다가 보이는 친환경 놀이터라는 매력을 가진 곳인 만큼 많은 시민들의 이용을 바란다”고 말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 어린이를 위한 도시가 되기 위해 도시안에 저런 시설이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안전하게 놀기 위해 산으로 가는 것인데
4월부터 45도 폭염…심장마비 13명 ‘불타는 아시아’
19일 연일 폭염이 이어진 미얀마 양곤에서 한 시민이 뜨거운 햇빛을 피하기 위해 우산을 쓴 채 걸어가고 있다. 양곤/AFP 연합뉴스
동남아시아·인도·중국 일부 지역이 4월부터 40℃ 넘는 기록적인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선 사상 최고 기온 기록을 갈아치웠고, 인도에선 수십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시엔엔>(CNN)은 18일(현지시각) 기상역사학자 막시밀리아노 에레라를 인용해 라오스의 관광 도시 루앙프라방의 기온이 42.7℃까지 치솟아 기상 관측 이래 4월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타이에서도 북서쪽 도시 탁의 기온이 지난 15일 45.4℃까지 올라 최고 기록을 새로 썼다. 방콕은 체감기온이 50.2℃에 이를 것이란 예보도 나온 상태다. 타이 당국은 이달 초 몇몇 지역에 고온에 따른 건강 주의보를 발령했다. 미얀마에서도 중부 사가잉 지역의 도시 칼레와가 17일 44℃에 이르는 등 전례 없는 4월 더위에 신음하고 있다.
뜨거운 열파는 중국 남부에서도 관측되고 있다. 베트남 국경과 가까운 위안양에선 18일 기온이 42.4℃를 기록하는 등 12개 성의 기상관측소 100곳 이상에서 4월 최고기온을 갱신했다.
인도·파키스탄·네팔·방글라데시 등 서남아시아도 며칠째 40℃를 넘나드는 뜨거운 열기로 고통을 겪고 있다. 인도 기상당국에 따르면, 기상관측소 48곳에서 18일 42℃가 넘는 폭염이 기록됐다. 동부 오데사에서는 수은주가 44.2℃까지 치솟았다.
폭염에 쓰러지는 사람도 속출했다.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주에선 공공행사에 참여했던 13명이 더위에 심장마비를 일으켜 숨졌다. 뭄바이에선 한 행사에 10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가 50~60명이 더위에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고온이 이어지자 트리푸라, 서벵갈 등 몇몇 지역에선 학생들의 건강을 우려해 이주에 휴교령을 내렸다. 또 인도 노동부는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조치에 나설 것을 각 주 당국에 권고했다.
인도에서 우기를 앞둔 4월에 기온이 오르곤 한다. 그러나 최근 몇년 새 뜨거운 열기가 더 자주 찾아오고 더 강력해지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지구의 기후 변화로 봄철 더위가 강력해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폭염은 당분간 더 이어질 것으로 예보되고 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국내 최고령 300년 된 목련이 한라산에 피었습니다
▲ 국내 최고령 300년된 한라산 자생 목련이 한라산에서 활짝 피었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수령이 300년 된 한라산에서 자생하는 국내 최고령 목련이 활짝 피어 주목받고 있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는 최근 한라산에 자생하는 국내 최고령 목련의 개화를 확인했다고 20일 밝혔다.
최고령 목련은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운 한라산 계곡부에 자생하고 있다. 크기는 가슴높이 둘레 약 2.9m, 높이 15m이며, 수령은 약 300년으로 추정된다. 인근에 10여그루가 군락을 이뤄 함께 자라고 있다. 100년된 목련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봄을 알리는 나무 중 하나로 꼽히는 목련(Magnolia kobus DC.)은 목련과(Magnoliaceae)의 대표 종으로 우리나라 제주 한라산과 일본에 분포하는 낙엽활엽교목이다.
우리가 주변에서 관상수로 심어 흔히 보는 목련은 중국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라산 자생 목련은 중국 원산의 백목련과는 다른 종으로 잎 보다 흰색의 꽃이 먼저 핀다는 점이 유사하나 꽃의 아래쪽에 연한 붉은빛이 돌고 한 개의 어린잎이 달린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 한라산 자생 목련.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임은영 국립산림과학원 아열대산림연구소 박사는 “한라산 1000~1100m 고지대에서 자생 목련이 군락을 이뤄 자라고 있다”면서 “한반도에서 자생하는 유일한 목련이어서 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위치는 공개할 수 없어 양해바란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체군이 적고 자생지 환경이 급격하게 변해감에 따라 생존을 위협받고 있어 종과 자생지 보존이 시급하다”면서 “올해는 꽃을 피워 수목의 건전함을 확인할 수 있었으나 자생 목련의 아름다움과 자원으로서의 가치를 다음 세대까지 향유하기 위해서는 후계림 조성과 활용을 위한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 박사는“한라산에 분포하는 자생 목련은 약 200개체 미만으로 어린나무 발생 역시 드문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자생 목련의 보존·보급 기반 조성을 위해 지속적인 개체군 모니터링 및 대량증식 기술개발 연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목련은 순백을 상징해 오랫동안 관상수로 사랑받았으며, 꽃나무 중 4위의 시장 규모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꽃봉오리, 잎, 나무껍질, 씨앗은 약으로 쓰여 왔고, 목재와 신탄재(숯이나 땔나무로 쓰는 나무)로써의 가치도 높은 식물자원이다. 꽃봉오리는 비염과 호흡기 질환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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