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탄소중립 계획 탓에 7년 뒤 국내산업 나락으로”
그린벨트, 애처로운 수난
1.5도 지키려면, 가스발전소 해마다 10기씩 퇴출시켜야”
기후 대응 없이는 채용, 투자 유치, 판매”도 어렵다는 스웨덴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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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들도 온실가스 감축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 실적 나눠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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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부 탄소중립 계획 탓에 7년 뒤 국내산업 나락으로”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기후대응 글로벌 삼각 파고가 한국 덮치는 중
2020년대 가장 중요한 5년 허비하고 있어
최소한 산업 부문 감축 목표는 원상복귀해야”
단언컨대 2030년이 되면 국제 무역 규범이 탈탄소 무역규범으로 완벽하게 옮겨갈 것입니다. (이대로라면) 우리나라 기업과 산업, 경제가 기후변화에 대응을 못해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불행한 상황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환경경제학자’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최근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계획’을 평가하며 “너무 안이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정부는 기업이 처한 당장의 ‘현실’적 어려움을 이유로 산업부문 온실가스 배출 감축량을 줄여줬지만, 홍 교수는 이런 근시안적 대책으로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까지 줄이겠다고 국제사회에 한 약속(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을 지키기 어렵게 될 뿐만 아니라, 달라지는 세계 무역환경 속에서 우리 기업들이 뒤쳐지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는 진단을 내놨다. 경제학을 전공한 홍 교수는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역임하는 등 경제·산업과 기후·환경을 연결하는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인터뷰는 지난 22일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제1차 탄소중립 기본계획을 전체적으로 어떻게 보셨나요?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가 단독으로 발표한 게 아니라 관계부처 합동으로 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어요. 윤석열 정부의 기후변화, 에너지, 탄소 정책의 일차적인 결정판을 국민에게 내놓은 것이거든요. 기후정책이 단순히 에너지∙환경 정책이 아니고 산업∙경제 정책과 직결되는 문제인데, 이 문제의 심각성이나 인식의 정도가 매우 낮다, 관심이 별로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내용 때문인가요?
“기후변화라고 하면 환경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2020년대 글로벌 시장의 흐름은 글로벌 기업 차원에서 아르이100(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 글로벌 금융기관과 기관투자자들은 이에스지(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 유럽연합 같은 국가 차원에서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로 나타나고 있어요. 이 삼각 파고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겠다는 명분으로 한국 경제를 향해 동시다발적으로 밀려들고 있어요. 그런데 이번 계획을 보면 그런 것들(삼각 파고)에 대한 심각성은 별로 없고, 2030년까지 기존 엔디시의 부문별(전환∙산업∙수송∙건물 등) 감축 목표에 조정을 가한 정도예요. 기후문제가 산업 정책이자 경제 정책이고, 앞으로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데도 말이에요.”
(아르이100은 기업 활동에 필요한 전력의 100%를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생산된 전기로 사용하겠다는 자발적인 글로벌 캠페인, 이에스지는 기업의 친환경 경영, 사회적 책임, 투명한 지배구조 등을 의미한다. 탄소국경조정제도는 탄소비용이 반영되지 않은 수입품에 대해 유럽연합 생산제품과 동일한 수준의 탄소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정부는 아직 기술개발이 안 돼 있다고 합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미국, 유럽이 탈탄소로 가고자 하는 노력과 진정성, 기업들에 주는 정책 시그널(신호)를 보면, ‘이미 많이 앞서가고 있는데도 더 강력하게 (탈탄소를) 추진하겠다’는 것이거든요. 결국은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 강화하겠다는 겁니다. ‘우리나라로 와라. 우리나라에 투자해라, 세제 혜택 주겠다. 일자리 만들어달라’는 시그널을 엄청나게 주는 거예요. 이 정부는 친기업 표방하지 않습니까? 시장 목소리 귀 기울이겠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목소리를 귀 기울인 것인지 의구심이 듭니다. 정부는 산업계의 목소리를 담았다고 하는데, 정말 산업계가 이걸 원할까요? 아니면 정부가 아르앤디(R&D)나 금융∙재정적 지원을 강하게 하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정책적 노력으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시그널을 주는 것을 원할까요? 일부 기업이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다른 기업들엔 그것을 기회 삼아 탈탄소 경영으로 가는 데 더 힘낼 수 있는 시그널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이번 계획은 2050 탄소중립(온실가스 순 배출량 0) 이행으로 가는 여정에서 후퇴인가요, 진전인가요?
“그거(탄소중립)까지 생각 안 한 것 같아요. 안타까운 점은 이 정부가 2022년부터 2027년까지 5년 임기라는 겁니다. 임기 끝나고 3년이면 2030년이 돼요. 2030년 엔디시 목표를 달성하려면 2017년 5월부터 시작하는 차기 정부가 전체 감축량의 75%를 줄이고, 현 정부는 25%만 줄이겠다는 건데요. 이거는 누가 봐도 상식에 어긋나고 무책임하게 느껴져요.”
―차기 정부로 떠넘겼다는 거죠?
“의도적으로 (다음 정부) 맛 좀 보라고 한 건 아닐 텐데 너무 안이합니다. 이 정부가 2020년대 가장 중요한 5년에 자리 잡고 있잖아요. 단언컨대 2030년 되면 국제 무역규범이 기존 전통적 세계무역기구(WTO) 자유무역 규범에서 탈탄소 무역 규범으로 저는 완벽하게 옮겨간다고 봐요. 지금 그 이행기에 있거든요. 이 흐름이 앞으로 10년 되면 정착이 되는 건데 유럽연합 탄소국경조정제도가 2032년이면 완전히 정착하거든요. 2020년대 가장 중요한 중간 기간을 차지하는 윤석열 정부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정부의 정책 공감대를 확 높여줘야, 그다음 정부가 탄력을 받고 적극적으로 에너지 전환, 녹색산업 정책을 끌어갈 수 있어요. 여기서 정책 우선순위를 낮춰서 기업들은 허덕이고, 그러다가 못 참고 견딜 수 없어서 많은 당근을 제공하는 미국으로 생산기지와 직접투자를 이전하게 되면, 다음 정부가 설사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더라도 너무 늦지 않겠어요? 우리나라 기업과 산업과 경제가 기후변화 대응 못 해서 다시 약해지는,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런 불행한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는 거죠.”
―2030 엔디시 달성(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에 견줘 40% 감축)은 가능할까요?
“2030 엔디시 목표는 국제사회에 공언한 것이고요. 파리협정에서 말하는 후퇴 불가의 원칙이 있어요. 그래서 국제사회에 그냥 우리 잘못했으니 덜 줄이겠다고 도저히 말할 수가 없어요. 단순히 기후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신인도 문제이니까요. 그런데 이 결정적 기간에 연평균 2% 정도만 약하게 약하게 줄이다가, 갑자기 2028년 돼서 모든 기술이 다 들어오고, 타성에 젖어 있는 산업계가 2018년부터 전체 감축량의 75%를 확 줄일 수 있다고요? 저는 그런 식으로 정책 움직이는 거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부터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경제성과 사업성은 부족하지만 탄소감축의 핵심 기술이 각 산업 부문에 퍼져 있거든요. 어떻게 정책적 시그널을 줘서 기업에 기술개발 유인을 제공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인데, 기술이 준비 안 돼 있다고 치부한 것은 현재의 위중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너무 안이하고 안타까운 모습이에요. 연금개혁, 노동개혁뿐만 아니라 기후∙에너지 산업으로 연결되는, 이 정책의 우선순위를 확 끌어올려야 합니다.”
환경단체 회원들이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수립 등에 대한 공청회에서 기습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백소아 기자
―그런데 산업부문 온실가스 감축량이 810만톤(14.5%→11.4%) 축소됐습니다.
“우리나라는 제조업 강국(국내 총생산 대비 28% 비중)이라고 하잖아요. 당연히 전기, 에너지 소비가 많다고 하는데, 이 단순한 논리도 바꿔야 해요. 독일, 일본은 제조업 비중이 작나요? 20% 이상입니다. 독일은 제조업 경쟁력 유지하면서도 탄소배출 줄이고자 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거든요. (2021년 문재인 정부의 2030 엔디시 상향안에 견줘) 2년 사이에 산업부에서 산업 부문 감축 목표를 10%포인트나 줄였는데, 정말 같은 공무원들 아닙니까? 그 사이에 다 바뀌었나요?” (산업부는 지난 2월 탄소중립녹색성장위에 산업 부문 감축 비중을 14.5%에서 5%로 줄여달라고 요청했고, 결국 11.4%로 결정됐다)
―선진국들은 어떻게 합니까?
“철강이 에너지 많이 쓰고 오염물질 배출도 많기 때문에 사양산업이지만 독일은 철강산업을 지금도 합니다. 독일에 탄소차액계약제도(CCfD·Carbon Contracts for Differences)라고 있어요. 탄소 배출이 많은 철강산업 같은 경우 탄소 배출권을 살 수도 있고, 수소환원제철(화석연료 대신 수소를 사용해 철을 생산하는 혁신적인 기술) 기술을 개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수소환원제철을 개발하는 데 돈이 굉장히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려요. 그러니까 기업 입장에서 ‘5∼10년 투자하기 보다는 그냥 배출권 사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이런 선택을 방지하기 위해 일정 가격을 정해놓고 배출권 가격이 그보다 비싸지면 정부가 차액을 보전해줄 테니 기업은 열심히 기술개발을 하라고 하는 것이죠. 기업 입장에서는 개발에 따른 비용의 불확실성이 확 줄어들잖아요. 철강회사들이 스스로 탄소배출을 줄이고자 하는, 새로운 기술개발 유인에 대한 강력한 시그널이 제공되는 것이죠. 이런 게 하나의 예입니다. 정부가 많은 투자액이 들어가고, 기술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산업에 대해 좀 더 현명한 방식으로 지원 정책을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기업들 입장에서 이런 이야기가 와 닿을까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전자·자동차·석유화학 기업들은 이미 탈탄소 문제의 심각성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빅4(삼성·에스케이·현대차·엘지)가 다 아르이100 선언한 게 우연이 아니에요.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고, 안 할 수 없는 상황이 돼서 한 거죠. 우리나라 기업들이 애플이 무섭겠습니까, 정부가 무섭겠습니까. 애플이 자발적으로 (탄소 저감을) 압박하고 있고, 글로벌 기업은 그런 리스크에 완전히 노출돼 있어요. 이에스지도 기관투자자들이 본다는 건데, 요새는 이에스지에서도 탄소배출로 이야기하는 ‘이’(E)가 대세이기 때문에 기업들은 다 느낍니다. 대한상공회의소 보세요. 얼마나 적극적으로 이에스지를 장려합니까. 대한상의 회장이 석유화학 핵심인 에스케이 회장입니다.
애플이 국제분업 관계에 있는 반도체 생산기업들에 탄소배출 어떻게 하는지 제출하라고 하잖아요.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이 이러고 있습니다. 다만 중소기업들, 중견기업들은 노출이 적죠. 그러나 삼성전자 포함한 우리나라 글로벌 대기업들이 국내 중소 중견기업과 협력관계로 연결돼 있습니다. 부품 생산하는 삼성전자의 수많은 협력사가 전기를 어떻게 쓰는지 봐야 하는 거예요.”
―산업계 중심으로 국외 감축분을 확대하고, 국내 감축분을 축소하자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국제감축은 불확실성이 높아요. 국제감축 어디까지 인정해줄 것인지, 해당국이 투자국에 감축분을 다 내줄 것인지, 아예 인정을 안 할 것인지 정해진 게 없어요. 그 나라들도 엔디시를 줄여야 하잖아요. 국제감축에 너무 의존하다가 오히려 탄소감축의 진정성이 떨어지는 거 아니냐는 인상을 줄 수 있어요. 국제감축을 하지 말라는 건 아닌데, 국내에서 안 줄이고 해외에서 하면 안이한 태도로 느껴지게 마련이에요.”
―기후변화와 관련해 산업 정책이 중요해지는 흐름인데요.
“최근 대구시가 산업단지에 지붕형 태양광을 깔겠다는 3조원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중요한 건 산단에 입주한 업체들이 자기 지붕에 태양광을 깔 수 있도록 계약을 맺어줘야 해요. 그래야 태양광을 설치하고 전기를 공급할 수 있잖아요. 임대료도 적정한 수준이어야 하고, 그밖에 여러 유인이 필요하겠죠. 그런데 정부가 산업계에 탄소 감축하라고 하지도 않고, 재생에너지에 별로 신경도 안 쓰고, 원전으로 간다는 정책 신호만 주면, 공장주들이 한다고 할까요. 공장주들이 안 한다고 하면 이 사업 성공 못 하거든요. 이창양 산업부 장관부터 가서 공장 주인들을 만나 설득해야 해요. 이런 시그널 줘야 기업들이 숨통 트이는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 으쌰으쌰 잘하잖아요. 어퍼컷도 좀 하고, 힘 실어줘야죠.
이게 성공하면 대구 산단에 원전 1기보다 더 큰 1.5기가와트(GW) 정도 되는 태양광 설비가 설치되는 거예요. 혹시 압니까? 글로벌 기업들이 대구 근처에 공장 짓고 바로 재생에너지 받으려고 할지. 수도권에만 공장 자꾸 짓지 말고 지역에 공장 지으면 얼마나 좋아요. 이게 기후, 에너지, 산업이 연계된 정책인 거죠. 보수 정부이기 때문에 솔직히 기후정책의 첨단은 바라지 않아요. 그래도 최소한 에너지∙산업 정책은 우리나라 기업을 위한 거잖아요. 이건 첨단으로 달려야죠. 케케묵은 원전 대 재생에너지 논쟁만 하고 있을 거예요? 확실한 것부터 했으면 좋겠어요. 재생에너지 한다고 이 정부 욕 안 해요. 지금 보수의 본산 대구가 하겠다는 것인데요.”
―다음 달에 확정될 탄소중립기본계획에서 보완해야 할 점이 있을까요?
“이미 숫자를 내버렸으니 기대하기 쉽지 않지만, 최소한 산업 부문의 감축 목표는 원상 복귀해주십사 요청합니다.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포함한 정책적 노력을 적극적으로 제공하겠다는 시그널을 주면 좋겠어요. 아르이100 관련해서 기업들이 너무나 바라는 거니까, 그 정도만 산업부가 해줘도 너무 고맙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민도 기자 key@hani.co.kr
그린벨트, 애처로운 수난
숲이 울창하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무성한 나뭇잎이 햇빛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낮에도 어두컴컴하다.
우리나라에 그런 곳이 있었다. 이중환(李重煥 1690∼1752)의 택리지(擇里志)에 나오는 글이다.
“…14살 때 선대부께서 강릉 수령이 되었다. 운교에서 강릉부의 서쪽 대관령에 이르는 길은 모두 수목으로 덮여서 우러러보아도 태양이 보이지 않았는데 약 사흘 동안의 노정이 그러했다.…”
운교는 강원도 평창의 운교리다. 숲이 하늘을 덮는 바람에 사흘 동안 걸어도 해를 볼 수 없는 삼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많던 나무는 슬그머니 사라지고 말았다. 요즘 용어로 ‘개발’ 때문에 모두 잘려나가거나, 태워지고 만 것이다.
“…그러던 것이 수십 년 전부터 산야가 모두 개간되어 농사터가 되고 마을이 서로 잇닿아 작은 나무 한 그루도 없게 되었다.… 장마 때면 홍수가 나고 산이 무너져 흙이 한강으로 흘러드니 강이 점차 얕아지고 있다.…”
택리지는 18세기 중엽의 글이다. 그러니까 18세기 초까지만 해도 강원도에는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거진 삼림이 있었던 것이다.
농민들은 나무를 기르기도 어려웠다. 오히려 있던 나무도 잘라 없애야 했다. 공무원의 ‘수탈’ 때문이었다.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은 ‘반계수록(磻溪隧錄)’에서 지적했다.
“…뽕나무나 과실나무가 있으면 예사로 장부에 올려서 징수한다. 관용으로 쓰기도 한다. 나무가 이미 죽어서 없어졌어도 징수가 그치지 않는다. 백성은 고충을 견딜 수 없다. 저절로 자란 나무가 있어도 베어 없애기 급급하다. 관가에서 알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나무의 수난은 계속되고 있다. 도로에 밀리고 아파트 단지에 꺾이고 있다. 제법 자랄 만하면 잘려나가고 없다. 그 때문에 그린벨트는 점점 얇아지고 있다.
이 얇아진 그린벨트를 윤석열 정부가 더욱 옥죄려 하고 있다. ‘국가첨단산업벨트 조성계획’이다. 국가산업단지를 만들기 위해 그린벨트와 농지 규제를 ‘최고 수준’으로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그 산업단지의 면적이 자그마치 4076만㎡에 이르고 있다.
산업단지의 필요성에 대한 반론은 있기 힘들다. 그렇더라도 그린벨트의 완화 또는 해제를 당연시하는 것은 문제다. 반대도 없지 않을 것이다.
경기도의 경우는 용인 일대 710만㎡가 후보지로 선정되었다는 발표다.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들겠다고 했다. 경기도의 그린벨트는 2021년 말 현재 1131.705㎢로 최초 지정 당시의 1302.080㎢보다 13.1%인 170.375㎢가 줄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줄어든 그린벨트가 분당신도시 면적 19.6㎢의 8.7배나 되었다. 그랬는데 더욱 오그라들게 생겼다.
그린벨트에 대한 ‘압박 선고’는 이미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연초의 신년사에서 내린 바 있었다. “개발제한구역의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서 실생활에서 체감 가능한 지방 발전 시대를 열겠다”고 한 것이다.
과거 이명박 정부는 그린벨트 해제 논리를 이렇게 밝히기도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서울 근교의 그린벨트에는 비닐하우스만 가득하더라.…”
이미 훼손되었으니 그 비닐하우스 자리에 아파트를 세워도 무방하지 않겠느냐는 ‘합리화’다. 원상 복구하겠다는 마음과는 아예 담을 쌓았던 것이다.
뉴스클레임
1.5도 지키려면, 가스발전소 해마다 10기씩 퇴출시켜야”
기후솔루션∙클라이밋애널리틱스 ‘가스발전의 종말’ 보고서
“올해 연말까지 18기·2034년까지 모든 발전소 문 닫아야”
엘엔지(LNG) 발전기가 설치된 울산 남구의 울산화력발전소. 연합뉴스
파리협정의 1.5℃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당장 올해 말까지 서울 노원열병합발전소와 경기 분당복합화력발전소, 제주 한림복합화력발전소 등의 가스발전소 18기를 폐쇄해야한다는 연구가 나왔다.
기후단체인 기후솔루션과 독일의 기후정책 연구소 클라이밋 애널리틱스는 27일 ‘가스발전의 종말:2035년까지의 에너지 전환 보고서’에서 2023년 말까지 가스발전소 101기 가운데 18기를 폐쇄하고, 이후 매년 약 10기의 가스발전소를 퇴출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앞서 같은 연구진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비싼 가스발전의 미래는 없다’ 보고서의 후속편이다. 파리협정은 2015년 약 200개 국가가 인류 생존을 위해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2℃ 아래로 억제하고 1.5℃ 이상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을 목표로 내걸고 있는데, 당시 보고서는 2030년 발전 부문이 2022년 대비 90%의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분석하며 2034년까지 가스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고, 2023년 이후의 가스발전소 건설 계획은 철회돼야 한다는 지적했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지역별 가스발전소의 구체적 퇴출 로드맵을 담았다. 두 단체는 운영 비용이 많이 드는 순서대로(경제성 시나리오), 단위 발전량 당 대기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순서대로(환경성 시나리오) 가스발전소 퇴출 순서를 매겼다.
경제성 및 환경성 시나리오에 따른 호기별 가스발전 퇴출 순서. 기후솔루션 제공
두 시나리오를 분석한 결과 현재 가동 중인 101기의 발전소 가운데 서울 노원열병합발전소, 경기 분당복합화력발전소, 제주 한림복합화력발전소 등 총 4GW(기가 와트) 규모의 18기 발전소가 2023년 말까지 폐쇄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2023년 말 기준 가스발전 총 설비 용량인 43.5GW를 2034년까지 퇴출하기 위해서는 매년 약 4GW의 용량을 퇴출해야 한다고 봤다. 이는 매년 약 10기의 가스발전소를 꺼 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연구진들은 가스발전을 확대하기보다는 재생에너지 보급에 무게를 둔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를 집필한 라라 웰더 클라이밋 애널리틱스 연구원은 “한국은 중국, 일본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스(LNG)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라며 “1.5℃ 탄소 예산에 따른 가스발전 퇴출경로를 이행한다면 온실가스 감축 이외에도 전기요금 하락, 건강 편익, 에너지 안보 확보 등의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올해 1월 확정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통해 2036년까지 노후 석탄발전소 28기(14.1GW 규모)를 폐쇄한 뒤 같은 용량의 가스발전소를 건설하고 거기에 더해 9.3GW 규모의 가스발전소 추가로 건설하는 계획을 내놨다. 조규리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과도한 가스발전 설비증설은 높은 가스 가격과 공급망 불안정 등으로 인해 향후 좌초자산을 늘리고 에너지 안보를 위협할 것”이라고 했다.
기민도 기자 key@hani.co.kr
기후 대응 없이는 채용, 투자 유치, 판매”도 어렵다는 스웨덴 ‘기업’
탄소중립은 탄소(온실가스)를 배출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조처를 해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일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불가피하게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흡수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더 높아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탄소중립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어떻게든 ‘가야 할 길’이다. 한국 정부는 이미 2050년까지 탄소중립에 이를 것이라고 공언했다. 2030년까지는 2018년 총배출량 대비 순 배출량을 40% 감축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목표를 더 강화할 수는 있지만, 완화할 수는 없다.
정부는 지난 21일 발표한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에서 산업계의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기존의 2018년 대비 14.5%에서 11.4%로 줄였다. 산업계의 부담이 너무 크다는 이유였다.
다른 나라도 그럴까. ‘녹색전환 선진국’으로 꼽히는 스웨덴은 1990년부터 2017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은 71% 늘리고 탄소 배출량은 26% 줄였다.
초록색 도장이 칠해진 볼보 트럭의 ‘대형 전기 트럭’
스웨덴 예테보리 볼보 트럭 공장 내 대형 전기 트럭들이 지난 13일 주차돼 있다. 강한들 기자
높이 4m, 너비 2.55m, 길이 16.5m. 지난 13일(현지 시간) 육중한 외양을 한 볼보트럭의 대형 전기 트럭이 스웨덴 예테보리에 있는 공장 내를 ‘조용히’ 달렸다. 내연기관 트럭처럼 그르렁거리는 굉음은 들리지 않았다. 랄스 몰텐손 볼보트럭 환경·혁신 디렉터의 설명이 이어졌다. “고객의 기대보다 한 발짝 앞서나간다면 회사에 큰 이익이 될 수 있다. 기후 대응, 지속가능성에서 우리는 선두에 서야 한다.”
볼보트럭을 비롯한 스웨덴 녹색전환연합 기업들은 단기적, 장기적 목표를 나누어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있다. 이들에게 기후위기 대응은 국제 사회의 ‘약속’을 이행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회사의 ‘이익’을 만들어내는 정책이다.
과학기반목표’ 따르는 스웨덴 기업들…3년간 온실가스 50% 줄이는 곳도
기업들은 한국의 취재진에게 ‘지속가능성’을 소개하며 하나 같이 ‘파리협약’을 말했다. 주로 과학 기반 목표 이니셔티브(SBTi)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을 약속하고,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SBTi에 가입하는 기업들은 해당 기업·금융기관은 파리기후협약에 따라 지구 평균 온도를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나 2도’ 상승으로 제한하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기업은 향후 5~10년 사이의 단기 목표와 함께 10년 이상을 포괄하는 장기 목표도 제시해야 한다. 이 목표는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 범위에 따라 스코프 1~3으로 구분된다. 스코프1은 해당 기업 내에서 연료 연소 등으로 인한 직접 배출이다. 스코프2는 해당 기관이 산 열, 전력 등의 사용으로 인한 간접 배출, 스코프3은 조달·공급망, 제품 이용단계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포함한다.
원심분리기를 이용한 폐수 처리 등을 하는 기업 ‘알파라발’은 2020년 스코프 1~2에서 4만3762t, 스코프3 공급망에서는 32만5000t, 스코프3 이용 단계에서는 2000만t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알파라발은 올해까지 스코프 1,2 범위의 온실가스를 50%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2030년까지는 스코프 1,2에서는 아예 온실가스스 배출량을 0으로, 스코프3에서는 온실가스를 2020년 대비 50%로 줄일 계획이다.
건설 장비, 전동 공구 등을 만드는 아트라스콥코는 2030년까지 ‘지구 온도 상승 1.5도’ 목표 달성을 위해 스코프 1,2 범위에서는 2019년 대비 46%, 2도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스코프3 범위까지 28%를 줄이기로 약속했다.
년 안에 전기 트럭 판매 비중 2% → 50% 높인다?
버스와 트럭을 만드는 스카니아는 2025년까지 스코프 1,2에서 온실가스를 2015년 대비 50% 줄일 계획이다. 스코프 3에서도 20%를 줄인다. 스카니아는 2022년까지 공장 지붕을 태양광 패널로 덮고, 공장 석유 보일러를 전기 히트 펌프로 바꾸고, 공정 효율을 높여 이미 44%를 줄였다.
야콥 테르노 스카니아 지속 가능한 수송 디렉터는 “스코프 1,2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스코프 3까지 포함한 목표는 정말 어려운 목표지만,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전력화된 자동차 판매를 늘리고, 운전자의 운전 습관에 대한 지도를 통해 달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볼보트럭은 2030년까지 판매하는 트럭의 50%를 전기 트럭으로 채울 계획이다. 스웨덴 내에서는 전기 트럭 판매 비중이 적어도 70%는 될 것이라 본다. 2023년 기준 볼보트럭 판매량 중 전기 트럭이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하다. 매년 약 1.6배씩 규모를 키워야 달성할 수 있다. 랄스 몰텐손 볼보트럭 환경·혁신 디렉터는 “세계적으로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본다”라며 “우리는 선두에 서고자 하는 고객을 찾을 것이고, 다른 국가들에 ‘가능하다’라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볼보는 2040년까지 스코프3 범위에서도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전기 트럭 판매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다. 소비자가 화석 연료로 생산한 전력을 쓸 수 있다. 화석 연료로 만든 전기를 쓰는 소비자에게는 아예 볼보트럭을 팔지 않겠다는 심산일까. 랄스 디렉터는 “석탄 화력 발전소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곳에서 전기 트럭을 판매하면 우리 기후 목표에 좋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라며 “제품을 판매하지 않는 것도 확실히 고려하고, 그 나라에서 재생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는 기업과 협력도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웨덴 기업들이 유달리 ‘도덕적’이어서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적인 것은 아니다. 여기서 ‘사업 기회’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스카니아의 야콥 디렉터는 “우리가 진정 지속 가능한 회사로 여겨지지 않으면 몇 년 안에 우리가 필요한 인재와 투자자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며 “단기적 수익과 장기적 목표 사이에 갈등이 없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한국도 ‘녹색 산업 정책’ 필요해”
스웨덴 기업의 강력한 녹색전환 뒤에는 스웨덴 정부의 ‘기후 대응 정책’이 있다. 2017년 스웨덴 의회는 2045년까지 탄소중립을,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70%의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을 통과시켰다. 스웨덴 정부는 다양한 학자·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독립기구 기후정책심의회를 설치해 정부 정책이 기후 목표와 일치하는지 수시로 확인한다. 스웨덴 정부는 매년 예산안에서 온실가스 배출량 추세, 직전 해의 주요 기후 정책 결정, 필요한 추가 조치 등을 담은 기후 보고서를 낸다. 심의회가 2022년 3월 낸 보고서는 “다음 기후 정책 실행 계획은 가속화를 위한 계획이어야 한다”며 정부의 거버넌스 개선, 주요 부문 목표 강화, 기후 투자 강화 등을 담았다.
산업계도 역할을 했다. 정부가 주도해 2015년 만든 ‘화석 없는 스웨덴’ 이니셔티브는 정부, 기업, 지자체, 기관 사이 가교 구실을 하며 관련 정책을 발굴한다. 이니셔티브는 2018년에는 항공, 시멘트, 콘크리트, 철강 등 9개 산업 분야, 2019년에는 건설 자재, 난방, 해양 등 4개 산업 분야, 2020년에는 농업, 전력, 승용차 등 9개 산업 분야의 자발적 탄소중립 로드맵을 정부에 제출했다.이시셔티브는 2021년 22개 산업 분야가 제출했던 로드맵을 재점검했다
지난 14일 한국 취재진과 간담회에서 기업들은 “스웨덴이 선두주자로 기후와 관련한 정책을 수립하고 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안나 셀싱 알파라발 지속가능성 최고 책임자는 “스웨덴이 앞서 나가면서 우리도 선두 주자가 될 수 있고, 세계에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며 “정치권이 업계 전반이 협업해 변화를 만들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인플레이션방지법(IRA)은 ‘기회’라고 봤다. 니클라스 닐로스 볼보건설기계 지속가능성·공공 부문 부사장은 “미국 투자에 대응해 유럽연합(EU)도 유사한 정책을 내고 있다”라며 “한국에서도 비슷한 (녹색 산업) 정책을 내지 않으면 한국에 위험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탄소중립 정책이 ‘후퇴’하는 것에는 우려했다. 닐로스 부사장은 “생산 과정, 배송 시간 등이 중요한 만큼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라며 “한국 사회가 스웨덴이 하는 것처럼 전환기에 움직이지 않는다면, 탄소 배출량 감축 관점에서 경쟁력이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나 셀싱 최고 책임자는 “야심 찬 목표가 없다면 전환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향 강한들 기자
시민단체 "유전자변형 돼지호박 정보 공개해야…보상책도 필요“
소비자·농민·환경단체들이 유전자 변형 주키니 호박(돼지호박)의 국내 유통을 두고 정부에 정보 공개를 요구했다.
GMO반대전국행동, 환경농업단체연합회, 전국먹거리연대 등은 27일 입장문을 통해 "해당 사건과 관련한 정보가 공개되고 있지 않은 것이 문제"라며 "어떤 경로를 거쳐 유전자 변형 종자가 들어왔고 어떤 회사가 수입했으며 그 과정에 정부는 제대로 역할을 했는지, 또 2015년부터 얼마만큼의 양이 시중에 유통되었는지 등을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농민과 국민에 대한 보상 대책을 수립하고 동시에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유전자 변형 주키니 호박이 주변 작물이나 환경으로 퍼져 생태계 교란을 일으키지 않게 강력한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 "정부는 GMO(유전자 변형 생물) 관리 관행과 체계를 전면적으로 쇄신해 걱정 없는 농사 환경을 마련하고 국민들이 GMO 우려 없는 밥상을 차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날 정부는 국내에서 승인받지 않은 유전자 변형 주키니 호박 종자가 2015년부터 국내에서 유통됐다면서 해당 종자의 판매를 금지하고 회수했다고 밝혔다. 다만 미국, 캐나다 등에서는 해당 종자가 인체에 유해하지 않으며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일반 호박과 같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신선미 기자
미승인 유전자변형 주키니호박 8년이나 유통⋯정부, 수거ㆍ폐기조치
2015년부터 최근까지 유통
정부, 재배 중인 주키니호박 전수 조사
LMO 음성 확인 후 내달 3일부터 출하
국내서 승인 받지 않은 유전자변형 주키니호박이 8년이나 유통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이미지투데이
국내에서 승인을 받지 않은 유전자변형 주키니호박이 8년이나 유통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해당 종자의 판매를 금지하고 수거ㆍ폐기 조치에 나섰다.
국립종자원은 국내에서 생산된 주키니호박 종자 일부가 승인되지 않은 유전자변형생물체(LMO)로 판정됐다고 26일 밝혔다.
현재 전국 3500여농가에서 재배 중인 주키니호박에 대해서는 이날 오후 10시부터 출하를 잠정 중단시키고, 농협을 통한 전수조사를 거쳐 LMO 음성이 확인된 경우에만 4월3일부터 출하를 재개하기로 했다.
소비자와 유통업체가 보유하고 있는 주키니호박에 대해서도 판매를 중단하고, 29일부터 내달 2일까지 정부가 전량 수거ㆍ매입한다. 주키니호박을 원료로 사용한 가공식품도 판매를 잠정 중단하고 수거ㆍ검사한 뒤 이상이 없을 때만 판매를 허용한다.
국립종자원은 올해부터 국내에서 신품종 등록을 위해 출원하는 주키니호박 종자에 대해 LMO 검사를 시행해왔다.
이번 검사에서 국내 A기업이 새로 개발해 출원한 주키니호박 종자가 LMO로 판정됐는데, 해당 종자는 B기업이 판매한 종자를 사용해 육종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국립종자원이 주키니호박 종자 121종과 애호박종자 126종 전체에 대해 검사를 진행했고 B기업의 주키니호박 2종이 LMO로 확인됐다.
종자 2종은 B기업이 미국에서 승인된 종자를 수입해 국내 검역 절차 등을 밟지 않고 육종해 판매한 것으로, 2015년부터 최근까지 유통된 것으로 파악됐다.
김상영 기자 supply@nongmin.com
가지치기 사각지대 아파트단지…흉물처럼 몸통만 남은 나무들
지난 22일 경기 광명시의 주공 12단지 아파트에서 가지치기 작업이 한창이다.
“다른 지자체의 가로수 가지치기 가이드라인을 보여줘도 우리는 아파트단지라서 적용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지난 22일 오전 10시 경기 광명시 철산동에 있는 주공 12단지 아파트에서 시끄러운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고가사다리에 오른 작업자가 전기톱으로 나무를 자르는 소리였다. 잘려나간 나무 중에는 봉오리가 맺힌 벚나무도 있었다. 아파트 주민인 한미주씨는 “길에서 흉물스럽게 잘려나간 나무들을 보며 ‘이건 아니다’ 싶었는데, 집 앞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니 당혹스럽다”고 했다.
가지치기가 끝난 나무는 가지와 줄기 윗부분이 모두 잘려나간 채 큰 줄기만 남았다. ‘두절’로 불리는 이런 방식은 국제수목학회(ISA)가 삼가라고 하는 가지치기법이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이 공개한 <2022 올바른 가지치기를 위한 작은 안내서>는 줄기와 가지의 윗부분을 뭉텅 잘라내면 나무의 에너지 생산능력이 심각하게 훼손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가지와 잎을 지나치게 잘라내면 직사광선을 막아주던 잎이 갑자기 사라져 나무껍질이 화상을 입고 나무가 죽기도 한다고 경고한다.
최근엔 지자체들도 가로수 관리 규정을 만들어 과도한 가지치기를 규제하는 흐름이다. 하지만 아파트에서 자체적으로 하는 가지치기에는 행정력이 미치지 못한다. 아파트에 적용되는 공동주택 관리규약에는 가지치기 등 조경 관리에 관한 규정이 없다.
최진우 가로수시민연대 대표는 2021년 6월에 열린 ‘가로수 가지치기 개선방안 모색 정책토론회’에서 “문제는 법령이나 조례에 의해 관리되는 공공 가로수보다 상가 앞 공개 공지(빈터), 사유지, 학교 담장, 아파트에 있는 나무들이다.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아파트단지의 가로수에 대해서도 별도의 관리 규정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경기연구원은 지난해 아파트 녹지 활용과 관련된 보고서에서 “경기도 아파트의 총 녹지 면적은 47.7㎢(여의도 16배)로 전체 조성 녹지의 23%를 차지한다”며 “아파트 녹지가 가지는 그린 인프라로서의 공공성에 주목하고, 중앙정부, 지자체, 민간이 각각 책임 있는 모습으로 아파트 녹지 지원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당시 경기연구원은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을 통한 명확한 녹지 관리 규정 마련, 경기도 공동주택단지 수목 관리 지침 마련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글·사진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가덕신공항 토지보상법 법사위 통과…30일 본회의 처리
‘노란봉투법’은 심의 보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7일 전체회의를 열어 가덕도 신공항 조기 착공을 위해 토지 보상 시점을 앞당길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가덕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공항의 착공 과정에서 신속한 보상 추진을 위해 ‘가덕도신공항 건설에 관한 기본계획’ 수립시 토지·물건 및 권리를 수용 또는 사용할 수 있는 사업인정(사업인정 고시)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울러 주변개발예정지역을 반경 10㎞에서 추가로 확대·지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가덕신공항 특별법은 오는 30일 본회의에서 최종 표결에 들어갈 예정이다.
한편, 이날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은 여야 이견 속에 심의가 보류됐다. 이 법안은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전세 사기를 방지하기 위해 공인중개사와 감정평가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공인중개사법·감정평가사법 개정안도 심사 보류됐다. 또 비상장 벤처기업·스타트업에 복수의결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은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의 이의 제기에 따라 다음 전체회의 때 추가 논의를 거쳐 처리하기로 뜻을 모았다.
김태경 기자 tgkim@kookje.co.kr
“시기·기준따라 멋대로”...제2공항 전략평가 ‘조류충돌 위험’ 왜곡·조작 의혹
제2공항 비상도민회의, 전략환경평가 조류충돌 위험성-법정보호종 문제 점검
겨울철새 영향 배제하고 여름철만 조사...흑산도-새만금 사업과 위험기준 상이
27일 오전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 조류충돌 위험성 조사 문제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제주 제2공항 강행저지 비상도민회의. ⓒ제주의소리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 상에 제시된 '조류 충돌 위험성' 조사가 미흡하게 이뤄졌을 뿐만 아니라, 평가 기준이 왜곡·조작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제주 제2공항 강행저지 비상도민회의는 27일 제주참여환경연대 교육문화카페 자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와 기본계획 상의 조류충돌 위험성과 법정보호종 문제에 대해 집중 점검했다.
비상도민회의는 먼저 조류 충돌 가능성을 분석하기 위한 조사 및 보완조사가 부실하게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2021년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가 반려된 이후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진행된 추가 조사 역시 형식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관련 지침 상 조류 충돌가능성 분석은 △종별 개체군 △취식·휴식·번식지 위치 △공간이용 정도 △공항부지를 가로지를 정도 △이착륙 경로를 가로지를 정도 △종별 비행행동 등을 조사해 각각 5등급으로 나누고 종합해 평가해야 한다.
국토부가 제2공항 예정지를 두고 실시한 조류 충돌가능성 조사는 2017년 9월, 2018년 1~2월, 2019년 8월·11월, 2020년 1~5월, 2022년 4~6월 등이다.
이 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 시기와 방법에 따라 '우점종'이 상이하게 갈렸다. 2017년 9월 조사에서는 조류 군집을 대표하는 우점종 1위가 참새, 2위가 중대백로로 집계됐다. 황당하게도 조사된 참새는 25개체, 중대백로는 11개체에 그쳤다. 표본으로 삼기에는 너무나 적은 수치다.
이듬해인 2018년 1월과 2월 실시된 조사에서는 1위 홍머리오리 3075개체, 2위 흰뺨검둥오리 1875개체로 나타났고, 2019년 8월과 11월 조사에서는 1위 홍머리오리 3333개체, 2위 괭이갈매기 1413개체였다. 유일하게 겨울철에 이뤄진 2020년 1~5월에 실시된 조사에서는 1위는 제비 1만501개체, 2위는 오리류 7950개체로 파악됐다.
겨울철 철새가 많은 시기에 조사가 진행되자 결과가 뒤집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국토부가 2021년 전략환경영향평가 반려 결정 이후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실시된 추가 조사 역시 2022년 4월부터 6월 사이에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는 점이다. 해당 조사에서는 우점종 1위 직박구리 1541개체, 2위 제비 1029개체에 불과했다.
특히 국토부는 이 과정에서 조류에 GPS를 부착해 고도 등 이동성을 조사했다고 했지만, 조사 대상이 4종 10개체에 불과해 계획부지 주변 조류들의 이동성을 제대로 평가하기에는 턱없이 적은 숫자였다. 적어도 충돌 위험성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심각도가 높은 겨울철에 조사를 진행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충돌 심각성에 대한 평가 기준도 왜곡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충돌 위험성 평가는 크게 '충돌 가능성'과 '충돌 심각성'으로 분류된다. 개체의 크기가 작고 군집해 있는 조류는 '충돌 가능성'은 높지만 '충돌 심각성'은 낮은 개체로, 크기가 큰 조류는 '충돌 가능성'은 낮지만 '충돌 심각성'은 높은 개체로 판단된다.
실제 흑산도, 새만금은 물론, 제2공항 보완용역 등에도 조류 충돌 평가 기준으로 '개체의 신체적 크기나 집단으로 무리를 이뤄 생활 및 이동하는 종을 피해 가능성이 높은 종으로 선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충돌 심각성의 기준을 이번 전략환경영향평가 본안에서는 '국내 전체 공항에 발생한 조류 종별 총 충돌건수 중 피해건수로 산정하므로 지난 14년간 충돌사고 사례가 없는 종은 표현에서 제외된다'고 기준을 바꿨다.
즉, '충돌 가능성'이 적은 종을 온전히 배제하면서 '충돌 심각성'에 대한 평가가 뒤바뀌었다. 제2공항 예정 부지인 성산리에서 빈번히 목격되는 갈매기, 가마우지, 왜가리 등은 평가에서 제외됐다.
그 결과 조류 충돌의 심각성 평가 비교에서 흑산도, 새만금 등의 사업에서는 '매우심각', 내지 '높음'으로 평가된 갈매기류 등의 조류는 제2공항 사업에서만 '매우 낮음'으로 평가됐다. 매, 황조롱이, 멧비둘기 등도 흑산도 사업에서는 '매우 심각'으로 분류됐지만, 제2공항 사업에서만 '낮음', '매우낮음'으로 분류됐다.
항공기와 조류가 충돌하는 버드스트라이크는 항공 안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조류가 창문에 부딪힐 수도 있고, 비행기 엔진에 조류가 들어가면 항공기 추락까지 위협하는 등 대형사고로 이뤄질 수 있다. 개체의 종류에 따라 보편적이고 균일해야 할 평가 기준이 평가 방법에 따라 전면 달라진 셈이다.
법정보호종의 수 역시 미흡하게 조사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부가 제2공항 일대에 대한 조사에서 발견된 조류 법정보호종을 취합하면 대략 20종 내외지만, 비상도민회의를 비롯한 지역 주민들이 직접 조사한 법정보호종 조류만 32종을 넘어서고, 앞서 발간된 '성산의 새' 책자에 수록된 종까지 포함하면 40종까지 확대될 수 있다.
국토부 전략환경영햐평가에서는 두견이와 저어새가 언급됐으나 대책은 없이 현황만 나열됐고, 긴꼬리딱새, 팔색조, 황조롱이 등에 대한 대책은 존재하지 않았다.
비상도민회의는 "조류 충돌 가능성을 조사하기 위한 조사는 여전히 부실했고, 위험성에 대한 평가 역시 왜곡 조작됐다"며 "허술한 평가에 대해 전면 재검토가 이뤄져야 하고, 항공 비행 안전을 담보하며 조류와 서식지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의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주의 소리 박성우 기자 (pio@jejusori.net)
‘원안 추진’ 대저대교 공청회 찬반 ‘팽팽’
“환경친화적” vs “재검토” 격론
욕설·고성 오가며 시민 퇴장도
28일 열린 대저대교 공청회. 강서구청 제공
부산시가 대저대교 건설을 올해 안에 원안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뒤 첫 주민공청회가 마련됐다. 원안대로 추진하되 대체습지 조성이나 먹이 주기 등을 통해 철새 서식지를 보호할 수 있다는 의견과 원안 추진에 원론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 등이 나왔다.
시는 28일 오전 10시께 강서구청에서 ‘식만~사상 간 도로건설공사(대저대교) 환경영향평가 초안 주민공청회’를 열었다. 대저대교는 전체 도로(식만~삼락) 8.24km 중 1835m 다리다.
이번 자리는 시가 대저대교 기존 노선을 올해 안에 착공하겠다고 밝힌 뒤 열린 첫 공청회다. 시는 큰고니와 큰기러기 등 조류 비행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줄이기 위해 교량 형식을 45m 높이 사장교(주탑에 케이블을 달아 교각을 지지하는 형태)에서 25m 평면교로 바꾸거나, 약 43만㎡ 규모의 대형 습지를 조성해 대체서식지 개념의 철새 쉼터를 조성하는 대안을 검토하고 있다.
공청회에서는 도시의 성장에 맞춘 인프라 마련이 필요한 만큼 습지 조성 등 생태계 안정 대책을 통해 충분히 환경적 가치를 보존해 나갈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부산시 문화재위원회 이종남 전문위원은 “무분별한 다리 놓기는 곤란하다. 공간이 너무 협소해지지 않도록 철새가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맥도나 삼락 둔치에서 효과를 본 습지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하다”며 “습지를 늘려 주면 새는 더 많이 온다. 포유류, 파충류 등 동물도 덩달아 많이 번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무턱대고 다리를 계속 놓는 것은 곤란하겠지만 먹이 주기부터 습지관리 등을 잘 해 준다면 한두 개 정도는 더 놔도 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대저대교 원안에 따른 철새 서식지 영향이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면서 기존 도로 여건을 바꾸는 등 다른 대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경성대 김해창 교수는 “개발 행위가 실질적으로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많이 나와 있어야 한다. 그런 것에 대한 전반적인 소명이 시에 부족하다”며 “또 앞으로 부산시 인구 300만 명도 지키기 힘든데, 도로 필요성도 고민해 봐야 한다”고 전했다.
2021년 환경부가 권고한 4가지 대안노선이 아닌 원안대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환경영향평가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 교수는 “같은 국가기관으로서 부산시장이 앞서 4개 안 중에서 가장 안 좋은 안을 냈다가 그것까지 철회하고 원안대로 하겠다는 상황을 환경청은 어떻게(받아들일지 의문이다)”라고 밝혔다.
28일 대저대교 건설 환경영향평가 주민공청회에 앞서 오전 9시 환경단체 측은 부산시의 공동조사 협약 파기와 일방적 건설 계획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낙동강하구 대적대교 최적노선 추진 범시민운동본부 제공
이날 공청회는 약 2시간 만인 낮 12시께 마무리됐다. 토론이 이어지던 중 객석에서 욕설을 하고 고성을 지르던 시민 2명은 퇴장당했다.
손혜림 기자(hyerimsn@busan.com)
전력 남아돌아 원전 출력 낮추는데…‘원전 확대’ 필요한가?
봄철 수요 감소·태양광발전 증가로 이례적 출력 제어 확인
전력 남아돌아 원전 출력 낮추는데…‘원전 확대’ 필요한가?
윤 정부 들어 가동 늘려…계획대로 추진 땐 과잉 공급 부작용 우려
정부 해법은 친환경 발전 축소…내달부터 전남·경남 태양광 중단
봄철 전력 수요가 줄어든 데다 태양광발전 증가로 전남 영광 원자력발전소가 출력을 낮춘 것으로 드러났다. 전력이 과잉생산되면서 송배 전망이 이를 감당하지 못해 정전이 발생할 수 있어서 이례적으로 원전발전을 줄인 것이다. 정부가 다음달부터는 전남·경남 지역 태양광발전을 중단하거나 줄이기로 하면서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자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28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영광 한빛 원전은 지난 26일 일부 원전의 출력을 낮춰 운전했다. 지난 19일 한빛 1~3호기, 6호기 등 4개 원전의 발전 출력을 정상치보다 10~25% 줄여 운전한 데 이어 올해 들어 두 번째 출력 조절이다.
원전 출력 감소는 설비 고장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이뤄진다. 그러나 최근 전력 공급량이 수요를 웃돌자 명절 연휴에 한정해 출력을 줄여 운영했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전력 수요가 급감하면서 올해 처음으로 연휴가 아닌 시기에도 원전 출력을 줄였다”며 “현재와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원전 출력 감소가 빈번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앞으로 봄과 가을철에는 주말마다 원전 출력을 줄이는 조치가 발생할 수 있다”며 “(그런데도) 이번 정부 들어 원전 가동을 늘린 때문에 태양광발전을 줄이는 조치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는 다음달 1일부터 전남과 경남 지역 태양광발전을 중단한다는 계획이다. 자연 현상에 좌우되는 태양광·풍력 발전이 늘어날수록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보장하지 못해 일정 부분은 출력제어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맑은 날이나, 바람이 많은 날에는 재생에너지 발전이 늘어나 원전을 계획대로 돌릴 경우 수요에 비해 전력 공급이 과도해 전력계통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출력제어는 전력계통 불안정을 막으려는 조치인 만큼 태양광발전 사업자에 대한 보상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반면 태양광발전 사업자들은 정부가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날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봄철 계통 운영방안 신재생사업자 설명회’에서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자들은 “보상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태양광발전을 중단하려고 한다”며 “제주도와 같은 일이 전남과 경남에도 벌어질 수 있다”고 반발했다.
이미 제주도에서는 태양광·풍력 발전을 중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제주도에서는 2015년 출력 제한 명령이 3회 내려진 데 이어 해마다 횟수가 늘어나 지난해에는 동일 명령 빈도가 132회나 됐다. 출력제어가 빈번하게 이뤄지면서 도산하는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자들도 점차 늘고 있다.
출력제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비수도권과 수도권을 잇는 송전선로 건설과 에너지저장장치(ESS) 보급이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막대한 비용이 걸림돌이다.
원전 출력을 잇달아 줄이면서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에도 영향이 미칠지 주목된다. 향후 원전 출력 감소가 빈번하게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경제성도 떨어져 ‘값싼 원전’이라는 장점이 퇴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향 박상영 기자
부모라는 이유로…자녀의 성별을 선택해도 될까
질환의 개념으로 본 성 선택
시험관 아기 절차 중에 촬영한 난모세포. 출처: 위키피디아
얼마 전에 미국의 한 연구진이 아기의 성별을 선택하여 인공수정 시술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발표했다. 방법 자체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아기의 성별은 정자가 X, Y 중 어느 염색체를 가졌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X염색체가 염기쌍이 더 많기 때문에 무겁다. 그렇다면 무게로 둘을 구분하여 난자와 착상시키면 부모가 원하는 성별의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연구진은 해당 기술을 인공수정에 적용해 약 80%에 가까운 성공률로 원하는 성별의 아기를 얻는 데 성공했다.
이전의 성감별 술식처럼 어느 정도 태아가 태중에서 성장한 다음에 성별을 구분하여 특정 성별을 낙태(강제적인 절차이므로 일부러 이 표현을 선택한다)하는 것이 아니니, 지금 방식은 훨씬 윤리적 부담이 덜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다. 반대로 이전에는 낙태와 그에 따른 위험부담을 부부가 감수해야 하므로 성감별이 어려운 일이었는데, 정자 무게 측정이라는 상대적으로 쉬운 방식으로 아기 성별을 결정할 수 있으니 오히려 문제라고 보는 분도 있을 것이다.
둘 다 그럴듯한 주장이라면, 한번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성감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주장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한쪽에는 낙태 술식이 부여하는 윤리적 부담이 놓여 왔다. 낙태 술식은 그 자체로 생명(또는 생명에 준하는 무엇)을 파괴한다는 부담을 진다. 반면 정자를 무게로 선택하는 것은 술식 자체의 부담을 없앤다. 간단히 말하면, 정자의 무게를 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문제가 될 부분은 없다.
그러나 생물학적 문제가 사라지더라도 여전히 고민은 남는다. 애초에 자녀의 성을 선택할 권리가 부모에게 있는 것일까? 성을 선택하는 행위는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 개인적 차원에서, 부모가 자녀의 성별을 선택하는 것은 다른 성별을 원치 않는다는 견해를 표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즉, 성 선택을 한 부모는 특정한 자녀만을 자녀로 받아들이겠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부모가 자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부모의 윤리적인 태도라고 믿는다. 둘은 상충하며, 성 선택은 비윤리적인 견해 또는 태도로 분류될 가능성을 지닌다.
둘째 공동체적 차원에서, 부모가 자녀의 성별을 선택하면 해당 집단의 성비가 한쪽으로 편향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 사회를 포함하여 여러 사회가 과거 성감별을 통해 현재 편향된 성비를 보이고 있으며, 이는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물론 “성비 편향이 사회 문제를 야기한다”라는 명제는 결과적으로 검증되어야 하며, 성 차별적 관습이나 문화로 인한 폐해와 성비 편향의 사회적 악영향은 다른 범주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결혼이나 직업 등의 영역에서 성비 편향이 일으키는 여러 문제를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후자가 다소 인구학적, 경제적 문제이고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의 해악이 명백하므로 그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은 별다른 고찰이 필요하지 않다. 반면 전자는 어떤가. 특정 성별을 선호하는 부모의 관점 또는 태도는 실천을 통해 자녀에게 전수되고, 이는 자녀의 정체성이나 자존감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을 넘어 가족의 존재 양태를 위기에 빠트릴 수 있다는 주장은 얼핏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너무 과도한 추론인 것은 아닌가. 게다가 이런 주장은 더 나은 삶을 위한 개인의 선택권을 다수 부정하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미 우리는 어느 정도, 원하는 자녀를 그리며 배우자를 선택하는 경향성을 지닌다. 유전적으로 선택하는 것에 한계가 있더라도, 우리는 “맹모삼천지교”를 굳게 믿으며 자녀의 교육 환경을 설정하고, 이런 실천은 강남의 집값을 뒷받침하는 제일의 원인을 제공한다. 전자의 주장은 이런 자녀 양육에 대한 개입 모두가 잘못이라고 말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성을 선택하는 순간, 삶의 경험이 바뀐다
그렇지 않다. 우리는 성 선택이 윤리적으로 잘못이라고 말하면서도, 지금까지 해 왔던 여러 행동을 부정하지 않을 수 있다. 여기에서 명확한 구분을 위해 필요한 개념이 질환이다. 다시금 정리를 위해 두 개념을 구분해 보면, 질병(disease)이란 생물학적 원인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신체적, 정신적 기능의 제한 또는 고통이다. 질환(illness)이란 주로 그런 질병으로 인하여 개인에게 주어지는 생활 경험이다. 단 질환은 꼭 질병으로 인한 것일 필요는 없다. 질병이 없어도 질환이 있을 수 있다. (단, 우리는 질병과 질환을 병의 종류에 따라 이미 결합하여 사용하는 경우들이 있다. 정신질병이라고 하는 것은 어색하다. 여기에선 개념으로서 질병과 질환을 구분하는 것이지, 지금의 명명법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출분증(drapetomania)을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이전에도 소개한 적이 있지만, 가장 극명한 예시이므로 다시 한번 활용하고자 한다. 미국의 의사 새뮤얼 카트라이트는 1851년 발표한 논문에서 흑인 노예에게만 발생하는 특이한 질병 ‘출분증’을 설명하고 있다. 카트라이트가 보기에 흑인 노예는 독립적으로 생존이 불가능하므로, 백인 주인 밑에서 견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그들에게 가장 좋은 일이다. 문제는 흑인 노예에게 어떤 이상이 발생하여, 이들이 주인으로부터 도망치려는 경향성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카트라이트는 이것이 흑인의 생물학적 특징에 기초한 질병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은 자유를 향한 열망이다. 그러나 카트라이트로 인하여 질병으로 이름 붙여진 자유의 열망은 흑인 노예들에게 질병으로 인한 경험을 부여했다. 흑인 노예들은 특별히 관리되어야 했고, 저녁이 되면 다른 노예들과의 접촉을 금지당했다.
영화 <노예 12년>에서 자유인이었던 솔로몬 노섭은 납치되어 노예로 팔려 간다. 그는 끔찍한 생활을 견디며 도망치려 시도하지만, 그의 노력은 성공하지 못한다. 이것이 질병일 수 없음에도 의사에 의해 질병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그 다음에 주어지는 것은 질병의 관리와 그에 따라 변화한 삶이다. 출처: 다음 영화
다시 말해, 질환은 보건의료로 불리는 우리의 의과학적 실천으로 인하여 규정, 규약, 제한되는 우리 삶의 경험을 말한다. 그것은 주로 우리가 아플 때의 경험을 가리키며, 질병으로 인하여 놓친 기회들, 떠나보낸 시간들, 안타까움과 함께 오히려 질병으로 인하여 나에게 주어진 반대급부들로 구성된다. 이를테면 나는 수련의 시절부터 발생한 오래되고 심한 어깨 부위 통증으로 인하여 계속 의사로 생활하며 진료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편 해결을 위해 여러 노력했고, 그 중 하나로 상당 기간 요가를 배우며 그 과정에서 여러 경험을 얻고 몇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몸의 불편함과는 별개로, 그 경험들은 나에게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질병(예컨대 근골격계질환)을 생각함에 있어서 나는 질환을, 그로 인한 나의 경험들을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한편, 의과학적 실천의 변화는 질환을 만들거나 없앤다. 예컨대 인공호흡기, 급식관 등의 발명은 연명의료라는 실천을 우리에게 부여하였고, 그로 인하여 생애 말기 질환과 돌봄이라는 경험이 새로이 나타났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숨을 쉬기 어렵거나 음식을 삼키지 못하는 환자는 곧 사망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환자들의 생명을 약간의 기간이라도 붙들 수 있고, 그런 붙드는 행위가 한편으론 환자와 함께 할 시간을 연장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불필요한 괴로움을 초래한다. 무엇보다 연명의료 행위가 수행되는 병동에서 환자, 의료진, 가족들은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시간들을 경험하게 된다. 생명을 붙드는 기계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경험. 그렇기에 그 경험에는 존중과 주목이 필요하다. 이전의 방식으로 고려하는 것은 그 경험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같은 논리가 성 선택 실천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정자의 무게를 달아 아기의 성별을 선택하게 되면, 그 의과학적 실천은 우리의 경험을 변화시킨다. 아무런 문제도 없다면 좋겠지만, 나는 그것이 새로운 질환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원치 않는 성별” 정도로 부를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문제 또한, 나는 경험에 기초해서 풀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 선택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아니다
다시 원래 제기했던 문제로 돌아가자. 성 선택 기술이 생겼다. 이 기술을 도입하면 우리는 자녀의 성별을 꽤 높은 확률로 정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인구학적 고려를 떠나서도 이것이 윤리적으로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은 성 선택으로 발생하는 경험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것은 부모로 하여금 상당히 명시적으로 자녀에게 그 존재 이유가 어떤 생물학적 특징이라는 경험을 부여하게 된다. 간단히 말해, 내가 이 기술로 아들을 낳는다면, 나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셈이다. “너는 남자라서 우리 가족이 되었다.”
나는 나의 어떠함으로 인하여 가족의 지위를 얻고 싶지 않다. 물론 나는 부모님의 자랑이 되길 원하기에 최대한 노력한다. 나는 자녀의 기쁨이 되길 원하기에 헉헉대면서도 많은 일을 해 나간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지닌 특성으로 인해 가족에게 긍정적 평가를 취득하는 문제이며, 내가 지닌 특성으로 인해 가족에서 배제되는 것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우리가 자녀를 교육하는 것 또한 그에 따라오지 못하는 자녀라면 자녀로 인정하지 않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같은 것이 아니다. 자녀 교육을 위한 환경 제공은 자녀에게 더 나은 미래를 주기 위한 노력일 뿐이다. 물론, 언제나 과도함이 해악을 부르는 경우가 있지만 말이다.
따라서 나는 그것이 낙태로 인한 생명 살해를 수반하지 않는다 해도, 성 선택을 반대한다. 나는 주어진 어떤 자녀든 그 자체로 사랑하길 원한다. 성 선택은 선택받지 못한 성별도, 심지어 선택받은 성별도 질환으로 만들 것이며, 그로 인하여 자녀들에게 주어질 경험이 나는 그리 달갑지 않다. 이미 우리는 젠더 편향으로 인해 벌어진 수많은 일들을 경험해 왔다. 그 경험에서 배운 것들을 의학적 선택에 적용하지 않을 이유는 무엇인가.
김준혁/연세대 교수·의료윤리학자 junhewk.kim@gmail.com
고의 살포 농약에 멸종위기 독수리, 큰기러기 떼죽음
큰기러기 7마리가 지난달 14일 전북 김제시에서 농약 중독으로 집단폐사했다.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 제공
올해 2월 이후로 발생한 야생 조류 집단폐사 9건 중 5건의 사인이 농약 중독이었다. 세상을 떠난 새 무리에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독수리, 큰기러기도 포함됐다.
환경부 소속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이하 관리원)은 지난달 발생한 야생조류 집단폐사 9건을 분석한 결과를 29일 공개했다. 관리원은 한 장소에서 5마리 이상의 조류가 죽으면 조류 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 검사를 한다. 고병원성 AI에 걸린 조류는 폐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검사 결과가 ‘음성’이면 농약 중독 검사로 넘어간다.
야생조류가 집단폐사한 9건 중, 원인이 농약 중독인 사례는 5건이었다. 이 중 2건은 지난 13일 관리원이 발표했던 ‘올겨울 야생조류 집단 폐사’에 포함됐던 사례다. 농약 중독이 아닌 4건은 고병원성 AI이 원인이었다.
지난달 14일 큰기러기(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7마리의 집단폐사에서도 같은 농약 중독이 확인됐다. 지난달 17일 울산 울주군에서 집단 폐사한 떼까마귀 16마리에서는 폐사체의 소낭(식도) 내용물에서 카보퓨란 농약 성분이 치사량 이상으로 검출됐다.
농약으로 인한 야생조류 집단 폐사는 농약을 먹은 개체뿐 아니라, 상위포식자로 이어질 수 있다. 독수리는 병들어 죽어가거나 죽은 동물을 먹이로 삼는다. 지난달 13일에 경남 고성에서 집단 폐사한 독수리(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7마리의 소낭 내용물에서 카보퓨란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농약 중독으로 폐사한 야생조류는 총 194마리다. 그중 큰기러기(13마리), 독수리(12마리), 흑두루미(5마리), 새매(2마리) 등 멸종위기종은 총 32마리였다.
농약은 ‘고의’로 살포됐을 가능성이 크다.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 관계자는 “통상 농사에 쓰는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이어야 새가 죽을 수 있다”며 “고의 살포라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경향 강한들 기자
버드나무 260그루 뜯겨나갔다…“전주시의 생태 참극”
전주천·삼천 무차별 벌목
전주천 남천교 주변에서 버드나무가 잘려져 있는 모습. 전북환경운동연합 제공
전북 전주지역 환경시민단체가 전주시의 전주천·삼천 버드나무 벌목을 비판하고 나섰다.
‘지속가능한 하천관리를 촉구하는 시민단체’는 29일 오전 전주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주시장은 전주 시내를 관통하는 전주천과 삼천의 자연경관과 생태계를 훼손한 무차별적인 버드나무 벌목에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전북환경운동연합, 생태교육센터 숲터, 전북생명의숲, 시민행동21 등 8곳 환경시민단체가 참여했다. 김원주, 박형배, 신유정, 이국, 이보순, 채영병, 최서연, 한승우 의원 등 전주시의회 의원 8명도 함께 했다.
전주지역 시민단체와 시의원 등이 29일 오전 전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북환경운동연합 제공
이들은 “전주천과 삼천은 지난 20여년 동안 시와 시민, 시의회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생태하천이자 전주시의 자랑이다. 버드나무와 억새 군락은 한옥마을과 함께 전주를 빛나게 하는 존재다. 하지만 전주시는 최근 어떠한 협의도 없이 버드나무를 무차별적으로 벌목했다. 생태 참극을 벌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전주시는 하천 통수면적 확보를 통한 홍수 예방을 이유로 수백여 그루의 버드나무를 잘랐다. 하지만 홍수 예방 효과에 관한 조사와 기준 마련을 하지 않았다. 더욱이 생태하천협의회나 환경단체와 협의도 없이 해당 사업을 밀어붙였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벌목에 대한 전주시장의 공식 사과 △‘물환경 보전을 위한 활동지원 조례’에 따른 수질 및 수생생태계 보전 책무 준수 △하천 벌목에 대한 자연하천 관리기준 마련후 사업 추진 등을 요구했다.
전주지역 시민단체 등이 29일 전주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북환경운동연합 제공
전주시는 올해 2~3월 일정으로 ‘전주천·삼천 재해예방 수목 제거 및 준설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천 둔치와 호안에 자생한 수목이 무분별하게 방치되는 등 하천 범람과 제방 붕괴를 막기 위해 정비를 한다는 것이다. 수목제거 작업에는 사업비 1억5천만원을 투자해 그동안 버드나무 등을 전주천 구간(약 7㎞)에 120그루, 삼천 구간(약 6㎞) 140그루가량을 제거했다.
전주시 관계자는 “기후변화로 최근 국지적인 집중호우 빈도가 증가하고 있다. 이는 경기도, 강원도 등 다른 지역도 비슷하다. 꽃가루 알레르기에 대한 민원제기가 있고, 토사가 쌓여 통수 단면 확보가 안 되는 측면 등 시민재산과 인명 보호가 최우선이라는 판단으로 사업을 추진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퓨마의 비밀스러운 삶…사냥한 사체로 ‘텃밭’ 일궈
단골 사냥터서 사냥→사체 분해→식물 번성→초식동물 증가 순환
퓨마 12마리 연간 10만㎏, 대왕고래 분량 고기 공급
485종과 먹이그물로 연결…생태계 엔지니어 구실도
발굽동물을 사냥한 퓨마. 나뭇가지 등으로 덮어놓고 며칠 동안 찾아와 먹는다. 닐 와이트 제공.
아메리카 대륙의 최상위 포식자인 퓨마가 교묘한 사냥전략 덕분에 생태계를 살찌우고 영양분 순환에 기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잠복 사냥하는 퓨마가 죽인 초식동물의 사체가 토양을 비옥하게 해 식물이 풍부해지면 다시 초식동물이 모여드는 일종의 ‘사냥 텃밭’이 형성된다.
고양이과 야생동물 보호단체인 판테라의 마크 엘브로크 박사 등은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핵심구역으로 하는 옐로스톤 광역 생태계에 서식하는 퓨마에 위성추적장치를 달고 이들이 사냥한 발굽동물 사체 172곳의 토양과 식물을 조사한 결과 이런 사실을 알아냈다고 과학저널 ‘경관 생태학’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위성추적장치를 단 퓨마의 사냥터. 사체는 분해돼 토양과 식물에 영양분을 공급한다. 닐 와이트 제공.
숨어있다가 접근하는 엘크 등 발굽동물을 기습하는 퓨마는 사냥에 유리한 곳을 정해 놓고 그곳에서만 사냥하는 습성이 있다. 이런 곳에 사체가 몰리고 이들이 분해되어 영양분이 풍부한 핫스폿이 형성돼 식물이 잘 자란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퓨마의 사냥터는 전체 서식지의 4%로 매우 한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이 이런 사냥터 토양의 질소 함량을 측정한 결과 사체에서 분해된 질소 함량이 주변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퓨마가 사냥으로 공급하는 먹이 사체의 양은 ㎢당 44.1㎏, 그로 인한 질소 공급량은 ㎢당 1.4㎏에 이른다고 논문은 적었다.
연구자들은 “퓨마 12마리가 1년 동안 만들어 내는 사체는 10만㎏이 넘는데 이는 지구 최대 동물인 대왕고래에 상당하는 양”이라고 밝혔다.
퓨마 사냥터의 순환 얼개. 아래에서 위로 사냥한 사체가 분해돼 식물이 번성하면 초식동물이 모이고 다시 사냥이 이뤄져 생태계를 살찌운다. 미셸 페지올 외 (2023) ‘경관생태학’ 제공.
엘브로크 박사는 판테라 보도자료에서 “연구를 통해 퓨마의 비밀스러운 삶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는데 그들의 행동과 자연에 대한 기여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며 “(옐로스톤 광역 생태계의) 퓨마는 매일 100만㎏의 고기를 생태계에 제공해 토양과 식물의 질을 높이고 수백종을 먹여살리며 생태계의 건강을 지켜준다”고 말했다.
잡은 먹이를 그 자리에서 먹어치우는 늑대와 달리 퓨마는 숨기는 습성이 있다. 퓨마는 사냥한 먹이의 3분의 1만 자기가 먹고 나머지는 여우 등 청소동물 차지가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퓨마의 사냥터에서 접근해 먹이를 노리는 여우. 대표적인 청소동물이다. 닐 와이트 제공.
이런 식으로 퓨마가 먹이그물로 연결된 동물은 485종에 이르는 것으로 이 단체가 참여한 지난해 연구에서 밝혀졌다. 예를 들어 퓨마는 딱정벌레 215종에 먹이와 서식지를 제공하는 ‘생태계 엔지니어’이다.
연구자들은 퓨마 한 마리가 9년 남짓의 수명 동안 이처럼 영양가가 풍부한 토양으로 이뤄진 일시적 핫스폿을 약 482곳에 만드는 것으로 추정했다.
엘브로크 박사는 “야생동물을 사랑하고 야생 서식지를 지키는 일에 관심 있다면 이번 연구는 아메리카의 최상위 포식자인 퓨마를 보전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퓨마는 아메리카 28개 국에 서식하는데 목축에 해가 된다는 이유 등으로 죽여 개체수가 줄고 있다. 미국에서는 서식지 상실과 로드킬, 질병이 주요 감소 원인이라면 남미에서는 이에 더해 목장에서의 보복 살해와 먹이 부족 등이 위협 요인이다.
인용 논문: Landscape Ecology, DOI: 10.1007/s10980-023-01630-0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TK신공항 비판 중앙지에 ‘발끈’ 홍준표… 지역지 “洪이 옳아”
국민일보 1면, TK신공항 특별법 부실 심사 비판
홍준표 “제대로 취재도 않고…가짜뉴스 정정하라”
洪 거든 영남일보 “수도권 언론이 딴지 걸어” 반발
국민일보 편집국장 “시장과 검증언론의 입장 차이”
대구·경북(TK) 신공항 특별법 심사가 부실하다는 국민일보 보도에 홍준표 대구시장이 “페이크 뉴스”(Fake news·가짜뉴스)라며 정정을 요구했다. TK 지역지는 홍 시장 반발을 크게 인용하며 국민일보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홍 시장은 지난 28일 페이스북에 국민일보 조간 1면을 비판했다. 그는 “제대로 취재도 해보지 않고 거꾸로 TK 신공항법을 가덕도 신공항법을 베낀 법이라고 모욕적인 페이크 뉴스를 사실인 양 보도한 국민일보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국민일보는 28일자 1면에 기사를 싣고 “국회 통과를 앞둔 TK 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부실 심사 논란에 휩싸였다”며 “이 법은 ‘문안 베끼기’에 전례 없는 예외 조항이 담겼지만 여야 합의로 지난 2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통과했다. 여야가 TK신공항과 광주군공항을 연계 처리키로 하면서 국회 심사가 겉핥기식에 그쳤다는 지적”이라고 보도했다.
국민일보는 “TK신공항특별법은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의 문안을 그대로 카피했다”는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언을 인용한 뒤 “실제로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특별법 내용을 보면 가덕도신공항특별법과 내용이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국민일보 보도에 홍 시장은 TK신공항 특별법은 3년 전 자신이 만든 공항특별법안을 기초로 대구시가 다시 수정 보완해 작년 주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라고 주장했다. 가덕도신공항 특별법, 광주공항 특별법의 모태는 자신이 발의한 법안이라는 것이다.
▲ 국민일보 28일자 1면.
홍 시장은 “제대로 취재해보고 정론지답게 잘못된 페이크 뉴스는 정정보도하라”며 “TK 신공항은 대구시가 주관하고 경북도와 협력해서 추진하는 기부대 양여 사업”이라고 덧붙였다.
TK 지역 신문도 홍 시장을 거들고 나섰다. 중앙일간지가 다 된 밥에 재를 뿌리고 있다는 논조다. 영남일보는 29일 사설 제목을 <가덕도 베낀 것이라고? 洪 시장 ‘발끈’한 건 당연>으로 짓고 “9분 능선을 넘은 대구경북신공항 특별법에 ‘다 된 밥에 재 뿌리기’식의 막판 저지레 작태가 매우 불편하다”고 털어놨다.
영남일보는 “중앙일간지는 사설과 기사를 통해 계속 어깃장 놓고 일부 야당 정치인도 마찬가지 언설을 내뱉고 있다”고 비판한 뒤 “(TK 신공항 특별법이) 다 된 것처럼 마음을 놓아선 안 된다. 딴지 걸기엔 머뭇거리지 말고 그때그때 확실히 대응해 돌발 변수의 싹을 잘라야 한다. 홍 시장의 즉각 반박은 그런 의미에서 적절했다”고 평가했다.
▲ 영남일보 29일자 사설.
영남일보는 이어 “수도권 중심 1극 체제는 어리석은 국가전략”이라며 “TK신공항은 소모성 포퓰리즘이 아니다.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고 덧붙였다. 이 신문은 2면 <“TK신공항, 가덕도法 베꼈단 건 가짜뉴스”>에선 “TK신공항에 대한 수도권 언론과 정치권의 ‘딴지 걸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라며 “철저하게 수도권 논리에 입각해 지방공항에 반대하고 있다. 국가균형발전은 안중에도 없다”고 주장했다.
국민일보는 자사가 충분히 지적할 만했다고 강조했다. 노석철 국민일보 편집국장은 29일 통화에서 “홍 시장 주장은 대구시장으로서 할 수 있는 발언이라고 이해한다”면서도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등 충분히 지적할 만한 사안이 있었다. 반드시 추진해야 하는 시장의 입장과 이를 검증하는 언론 입장에 차이가 있다. 그런 차원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
오염수’ 버려도 ‘벚꽃놀이’
지난 9일, 한 시민단체가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12주년을 앞두고 방사성 오염수 해양 방출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었다.
이 단체는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한지 12년 지났지만 핵사고의 재앙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며 “후쿠시마에서 잡힌 농어에서 방사성 물질 세슘이 1㎏ 당 85.5Bq(베크렐)이 검출되는 등 해양 생물 오염이 심각하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오염수’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있다. ‘처리수’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슬그머니 바꿨다. 오염수 방류에 따라 생길 수 있는 인체나 환경에 대한 우려도 ‘풍평(風評·후효)’이라며 넘기고 있다. ‘풍평’은 풍문이나 소문 등을 의미하는 일본어라고 한다. 오염수를 끝내 바다에 쏟아버릴 참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올해도 ‘벚꽃놀이’다. 코로나19로 중단되었다가 4년 만에 돌아온 진해군항제에는 벌써부터 인파가 몰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서울시는 다음달 4일부터 9일까지 ‘제17회 영등포 여의도 봄꽃축제’를 전면 개최한다고 밝히고 있다. 서울시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에는 묘한 방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추첨 벚꽃구경’이었다. 추첨을 통해 3500명만 벚꽃을 구경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벚꽃놀이’에 빠졌을까. 5000년 역사 중에 100년밖에 되지 않는다.
일제는 강제합병 이듬해인 1911년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키고 수천 그루의 벚나무를 심었다. 나무가 제법 자란 1924년부터 야간에 공개했다. ‘밤 벚꽃놀이’는 이때부터였다.
일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에나 벚꽃을 심도록 했다. 관공서, 큰길가, 유원지 등에는 벚꽃이 넘쳤다. 관할관청에서 책임지고 가꾸도록 했다.
당시에는 ‘거부감’도 컸던 듯했다. 작가 염상섭(廉想涉 1897∼1963)은 이렇게 꼬집고 있었다.
“… 요사이 조선에서도 벚꽃놀이가 풍성풍성한 모양이다.… 조선색과 사꾸라색이 어울릴지 나는 명언(明言)할 수 없다.… 벚꽃은 조선의 하늘같이 청명한 자연색에서는 제 빛을 제 빛대로 내지 못할 것이다.… 조선의 유착한 기와집 용마름 위로나 오막살이 초가집 울타리 이로 벚꽃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암만해도 ‘식민 사꾸라’라는 것이다….”
지금은 그런 껄끄러움도 없다. 한일 정성회담을 굴욕외교라고 성토하고 위안부 할머니가 사과 한마디 듣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도 ‘벚꽃놀이’만큼은 별개다.
몇 해 전 보도에 따르면, 전국에서 ‘벚꽃’을 주제로 하는 축제가 22개나 된다고 했다. 이 가운데 77.3%인 17개는 축제 이름에 ‘벚꽃’을 명기하고 있었다.
아예 ‘일본 원정 벚꽃놀이’까지 즐길 정도다. 여행사들이 벚꽃 투어, 벚꽃 기획전 등의 관광 상품을 ‘특가 판매’로 내놓은 것이다. 일부 상품은 ‘완판’이라고 했다. 심지어는 일본 지진 당시 일본 사람들이 벚꽃놀이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걱정해주는 보도까지 있었다.
‘사쿠라’라는 벚꽃의 일본어는 우리말 ‘사그라지다’에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활짝 피었다가도 비가 조금만 내리면 곧바로 사그라지는 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사쿠라’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뉴스클레임 문주영 편집위원
“부산 동서고가로를 하늘 숲길로 만들자”
부산그린트러스트, 30일 1차 세미나 개최
서울역 고가공원 등 국내외 활용사례 소개
인근 주민들, “30년간 피해… 철거 원한다”
30일 오후 ‘부산동서고가 하늘숲길 포럼 1차 세미나’가 부산그린트러스트 주최로 부산 부산진구 부산시민운동지원센터에서 열렸다. 사진은 두 번째 발제를 맡은 부산대 건축학과 우신구 교수의 모습. 이재찬 기자 chan@
향후 노선폐지가 확정된 부산 동서고가로를 활용(부산일보 3월 14일 자 3면 보도)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는 첫 세미나가 열렸다.
부산의 시민사회단체 부산그린트러스트는 30일 오후 부산시민운동지원센터에서 ‘부산 동서고가 하늘숲길 포럼 1차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부산 동서고가와 도시를 바꾸는 시민의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첫 발제를 맡은 조경민 다른도시 대표는 서울역 고가공원인 ‘서울로7017’의 추진 과정에 대해 상세히 발표했다. 서울로7017의 경우 사업 초창기 주민들의 큰 반발에 부딪혔다. 주민과 함께 논의 테이블을 만들고 수백 차례의 논의를 이어간 끝에 합의점을 찾을 수 있었다고 그는 소개했다. 조 대표는 “동서고가로의 철거 여부를 시나 국토부에 맡겨놓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생긴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본다. 어떤 결론이 나든 이 자리는 역사적인 자리가 될 것”이라면서 “이번 세미나를 기점으로 논의가 뜨겁게 달아오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부산대 건축학과 우신구 교수는 국내외의 활용 사례를 상세히 소개했다. 동서고가로의 존치, 철거, 활용 시 장단점에 대해서도 짚었다. 우 교수는 “동서고가로는 국내에서 가장 긴 도심 고가도로 인데다 그 폭도 가장 넓다. 만일 활용을 하게 된다면 세계 그 어떤 사례보다 가장 큰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면서 “정답은 없고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은지를 함께 고민해보는 자리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발제 이후에는 학계·연구기관·환경단체·주민대표 등의 토론이 이어졌다. 부산연구원 오동하 선임연구원은 “동서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드러냈다. 허운영 당감동 어린이도서관장은 “차가 중심인 도시에서 사람이 중심인 도시로 가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세미나에는 동서고가로 인근 주민들도 참석해 목소리를 냈다. 당감동 주민이라고 밝힌 한 주민은 “지난 30년간 동서고가로 인해 인근 주민이 가장 많은 피해를 봤다. 앞으로 주민의 이야기를 더 다양하게 담으려면 가장 피해를 본 주민들이 많은 곳으로 와서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의견을 냈다. 또 다른 주민은 “부산진구 주민은 대부분 철거를 원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주민이 원하지 않으면 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면서 “동서고가로 철거나 활용 등에 대해 부산시의 정책 방향은 어떤지가 궁금하다”라고 말했다.
한편, 부산그린트러스트는 앞으로도 분기별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동서고가로의 활용방안에 대해 시민과 함께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어갈 계획이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벚나무, 왕벚나무, 일본 왕벚나무…대체 뭐가 다른 거야?
제주 왕벚나무는 자연잡종, 일본 왕벚나무는 재배종
유전연구로 다른 부계 확인돼, 논쟁은 안 끝나
100년 넘게 이어온 원산지 논란…국립수목원 추가 연구
크고 화사하게 일제히 피어나는 왕벚나무는 종간 잡종으로 탄생했다. 한국과 일본의 왕벚나무는 모계는 같지만 부계는 다른 나무가 잡종을 이뤄 태어난 것으로 밝혀졌지만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흐드러지게 벚꽃을 피우는 나무를 뭉뚱그려 벚나무라 부른다. 그러나 꽃은 비슷해도 다 같은 벚나무가 아니다. 산에는 ‘벚나무’란 이름의 나무를 비롯해 여러 종의 야생 벚나무가 산다. 길거리와 공원에서 꽃구경의 대상인 벚나무도 ‘왕벚나무’ ‘일본 왕벚나무’ ‘소메이요시노벚나무’로 다르게 부르고, 한라산에 자생하는 벚나무 이름도 ‘왕벚나무’와 ‘제주왕벚나무’로 제각각이다. 헷갈리는 벚나무 이름의 배경에는 수십 년째 계속되고 있는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의 왕벚나무 원산지 논란이 깔려 있다.
산에 사는 진짜 ‘벚나무’
산에 사는 벚나무. 야생종이다. 유태철,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도심보다 늦지만 산을 희끗희끗 물들이며 야생 벚나무도 곧 핀다. 낮은 산지에서 만나는 야생 벚나무는 주로 잔털벚나무와 벚나무이다. 산에서 만나는 벚나무를 보통 ‘산벚나무’라고 부르지만 그 이름의 주인공은 정작 백두대간의 높은 산에만 산다. 꽃과 잎이 함께 나기 때문에 공원에서 보는 벚나무처럼 화사하지는 않다. 올벚나무는 남해안이나 제주도 산지에서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 벚나무 속에는 200여 종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14종이 자생한다.
헷갈리는 ‘왕벚나무’
요즘 길거리와 공원을 장식하는 벚나무는 ‘왕벚나무’이다. 나무 이름을 안내하는 팻말에 대개 그렇게 적혀 있다. 나무를 좀 아는 이에게 물으면 ‘일본에서 개량한 소메이요시노 품종이며 그 기원은 제주 한라산에 자생하는 왕벚나무’라는 답이 돌아올 것이다. 실제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제주도의 우리나라 특산 벚나무 자생지에는 ‘왕벚나무 자생지’란 팻말이 서 있다. 그러나 산림청 국가표준 식물목록에는 일본산 소메이요시노벚나무의 국명을 ‘왕벚나무’로 자생 왕벚나무의 이름을 ‘제주왕벚나무’로 적고 있다.
장인이 만든 소메이요시노벚나무
소메이요시노벚나무(이하 일본 왕벚나무)가 왕벚나무가 되기까지에는 복잡한 역사적 과정이 놓여있다. 먼저 일본 왕벚나무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아보자. 일본 왕벚나무의 원산지는 아직 모른다. 단지 에도시대(1603∼1868년)에 식목 장인들이 많이 살던 소메이 촌(현 도쿄도)에서 빨리 자라고 꽃이 크고 화려한 품종을 개발했고 이것이 전국에 퍼졌다. 현재 가장 오랜 일본 왕벚나무는 도쿄 코이시가와 식물원에 1877년 심은 개체로 150살로 추정된다. ‘소메이요시노벚나무’란 이름은 1900년 ‘일본원예학회지’에 처음 실렸다. 이듬해 국제학회지에 신종으로 발표했지만 원산지도 모르고 그저 야생 벚나무의 하나로 추정했다.
그러나 현재 정설은 소메이요시노벚나무는 올벚나무와 오시마벚나무(왜벚나무)의 종간 잡종으로 만들어진 재배종이다. 일본을 상징하는 나무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에 퍼졌지만 종자가 아니라 접붙이기 등으로 증식하기 때문에 유전적으로는 모두 동일한 클론이다.
한라산 왕벚나무와 ‘제주 기원설’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프랑스인 선교사였던 에밀 타케(1873~1952) 신부는 제주에서 다량의 식물과 씨앗을 채집해 유럽 등 여러 나라 식물원과 박물관에 보냈는데 1908년 한라산 관음사 일대에서 왕벚나무를 발견했다. 이 표본을 받은 독일 베를린대 쾨네 교수는 1912년 이를 소메이요시노벚나무의 변종으로 학계에 보고했다.
타케 신부는 일본에서 활동하던 포리 신부에게 제주 왕벚나무 표본을 일부 보냈는데 이를 본 일본 교토대 고이즈미 교수가 소메이요시노벚나무와 같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란다. 일본에서 못 찾던 원산지가 조선에 있었던 것이다. 그는 제주도를 현지조사해 1932년 제주에서 일본 소메이요시노의 자생지를 확인했다며 제주 왕벚나무의 변종 지위를 종으로 격상했다. 그는 나아가 일본의 소메이요시노벚나무는 제주에서 옮겨진 것이란 주장도 폈다. 왕벚나무의 ‘제주 기원설’은 일본이 학자가 먼저 제기했다. 고이즈미 교수는 일본 식물분류학계의 권위자이기도 했고 당시는 일제강점기여서 제주가 일본의 일부라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제주 기원설은 학계에 자리 잡았다.
우리 손으로 처음 제주에서 왕벚나무 3그루를 발견했다는 내용의 ‘동아일보’ 1962년 4월 19일 치 신문. 네이버 라이브러리 갈무리.
해방 이후 전국에 심어진 벚나무는 일본의 상징으로 여겨져 수난을 당했지만 1960년대 들어 우리 손으로 제주에서 왕벚나무를 추가로 발견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동아일보’는 1962년 4월 19일 “왕벚나무 원산지는 제주도”란 제목의 기사에서 박만규 과학관장 등으로 이뤄진 식물자원조사대가 한라산에서 왕벚나무 3그루의 자생지 발견해 이런 결론 얻었다고 보도했다. 이후 발견은 이어져 현재 제주에 자생하는 왕벚나무는 200여 그루에 이른다. 일제 유산이란 꺼림칙하던 느낌이 사라지면서 진해 등에는 베어냈던 벚나무를 다시 대대적으로 심기도 했다.
DNA 연구가 부른 새로운 논란
제주 봉개동의 자생 왕벚나무. 국립수목원 제공
1990년대 들어 나무의 세부적인 형태뿐 아니라 디엔에이(DNA)를 분석하는 유전연구가 활기를 띠면서 왕벚나무 원산지 논쟁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소메이요시노벚나무가 올벚나무를 모계로 왜벚나무를 부계로 탄생한 잡종이란 사실도 이렇게 밝혀졌다. 2007년 미국 농무부의 한국인 연구자들은 한국과 일본 왕벚나무를 모두 채취해 연구한 결과 “두 종이 유전적으로 구별된 다”고 밝혔다. 이승철 성균관대 교수팀은 2014년 ‘미국 식물학회지’에 실린 논문에서 “제주 왕벚나무는 올벚나무를 모계로 하고 벚나무 또는 산벚나무를 부계로 하는 자연잡종으로 탄생했다”고 밝혔다(▶관련 기사: 때 되면 한-일 원산지 논쟁, 벚꽃에게 물어봐!).
왕벚나무의 유전체를 처음으로 해독해 기원을 밝힌 연구도 나왔다. 국립수목원은 명지대·가천대 연구자와 함께 제주 왕벚나무는 물론 일본 도쿄대 부속 코이시가와 식물원의 왕벚나무 표본을 확보해 분석했다. 2018년 ‘게놈 바이올로지’에 실린 논문에서 “완전한 유전체를 비교한 결과 제주 왕벚나무와 일본 왕벚나무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서로 다른 식물”이란 결론을 내렸다(▶관련기사: 한·일 ‘벚꽃 원조’ 논란 끝? 제주 왕벚나무 ‘탄생의 비밀’ 확인). 이 연구에서 제주 왕벚나무와 일본 왕벚나무는 모계는 같은 올벚나무이지만 부계는 제주에서는 벚나무나 산벚나무 일본에서는 일본 고유종인 왜벚나무로 밝혀졌다.
‘왕벚프로젝트 2050’
왕벚프로젝트 2050 회원들이 지난달 진해 군항제 예정지의 왕벚나무 수종을 조사하고 있다. 왕벚프로젝트 2050 제공.
일련의 연구 결과 한국과 일본의 왕벚나무가 다르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자생종을 보급하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지난해 결성된 사단법인 ‘왕벚프로젝트 2050’(회장 신준환 동양대 교수)은 전국의 공원과 공공시설, 가로수 등에 일본 왕벚나무 대신 제주산 왕벚나무로 바꿔 심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신 회장은 “전국의 일본 왕벚나무를 당장 베어내자는 것이 아니라 이제 자연 수명이 다해가고 있는 만큼 자생 왕벚나무로 교체해 나가자는 것”이라며 “국회, 현충원, 유적지, 군사시설 등에서부터 바꿔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단체가 지난달 진해 군항제를 앞두고 여좌천·경화역·중원서로 일대에서 조사한 결과 심어진 왕벚나무의 96%가 일본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여의도의 벚나무 636그루를 모두 조사한 결과도 94%가 일본 왕벚나무였다. 왕벚프로젝트는 앞으로 군산, 경주, 구례, 부산, 영암, 제주, 하동 등 벚꽃 명소와 현충원, 왕릉, 유적지 등의 벚나무 수종을 연차적으로 조사해 나갈 예정이다.
끝나지 않은 원산지 논쟁
서울 여의도 윤중로에는 해마다 많은 인파가 왕벚나무 꽃을 즐기러 모인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그러나 국립수목원의 연구가 논란을 종식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국정감사 등에서 ‘왕벚나무가 일본 원산이란 주장을 받아들여 결과적으로 생물 주권을 넘겨줬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제주도의 반발도 컸다. 국립수목원의 연구에서 유전체를 분석한 제주 왕벚나무는 5그루였는데 그중 하나인 관음사 왕벚나무가 일본 왕벚나무와 유전체가 동일하다는 특이한 결과가 나온 것도 논란을 불렀다. 수령 130∼140년인 관음사 왕벚나무는 대표적인 제주 자생의 왕벚나무로 제주 향토유산 3호로 지정돼 있고 국립산림과학원이 후계목을 육성 보급하고 있는 나무이기도 하다. 이를 두고 학계 일부에서는 ‘왕벚나무의 자생지는 제주가 유일하고, 일본 왕벚나무는 재배종이어서 다양한 요소가 섞여들어 갔을 것이기 때문에 제주 기원의 벚나무가 재료로 쓰였을 수도 있다’며 제주 기원설을 주장하고 있다.
논란이 이어지자 국립수목원은 23일 “왕벚나무의 기원에 관한 연구를 3년 동안 추가로 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와 제주도는 물론 한국산림과학회와 한국식물분류학회 등 학계에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요구한 데 따른 조처이다. 최경 국립수목원 산림생물다양성연구과장은 “이번 연구에서는 제주는 물론 일본 현지조사와 인문·역사학적 연구도 할 예정”이라며 “제주 기원, 일본 기원, 제3국 기원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왕벚나무의 기원을 둘러싼 의문을 해소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뿐 아니라 해남 등 전남의 왕벚나무 자생지도 조사하겠다”고 덧붙였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녹조 독소 쌀? 어물쩍 넘기지 말고 공개조사 하라
“쌀과 채소에서 녹조 독소 검출됐다”
반복되는 환경단체 발표에 소비자 불안
문제없다는 정부… 누굴 믿어야 하나
이달 13일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에서 낙동강과 영산강 인근 논에서 구입한 쌀의 녹조 독소 성분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제공
국내에서 생산된 일부 쌀에 녹조 독소가 들어 있다는 환경단체 조사 결과가 최근 공개됐다. 작년에도 비슷한 결과가 발표됐고, 재작년엔 쌀 말고 상추에서 같은 독소가 나왔다고 했다. 쌀과 상추 같은 농산물이 정말 오염됐다면 심각한 일이다. 유통 구조상 특정 지역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런데 정부는 번번이 큰일 아니라는 설명만 되풀이하며 넘겼다. 올해도 아무 일 없듯 지나가선 안 될 일이다. 매일 우리 밥상에 오르는 먹거리 아닌가.
2021년 여름 환경운동연합과 부경대 연구진은 녹조가 발생한 낙동강 물을 가져다 수경재배 장치에 채우고 상추를 키웠다. 그 상추의 성분을 분석했더니 잎에서 ‘마이크로시스틴’이 나왔다. 녹조 강물에 많은 시아노박테리아(남세균)가 만들어내는 유해 성분이다. 분석이 정확했다면 강물에 있던 마이크로시스틴이 농작물로 흡수됐다고 추정할 수 있을 텐데, 당시 정부는 그럴 가능성을 낮게 봤다. 하지만 환경부 물환경정보시스템 질의응답 사이트에 있었다는 ‘과일과 채소의 독소 흡수 기작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란 문구가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이듬해 봄에도 환경운동연합은 낙동강과 금강 인근에서 생산된 쌀, 배추, 무에서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현지 농가에서 구입한 농산물을 효소면역측정법으로 분석한 결과였는데, 정부는 분석기법의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효소면역측정법은 마이크로시스틴이 가진 특정 화학구조에 결합하는 효소를 측정해 마이크로시스틴이 있는지 판단한다. 녹조와 관계없는 다른 물질에 유사한 구조가 있어도 마이크로시스틴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계가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다른 방법으로 분석했다며 올 초 결과를 내놨다. 쌀, 무, 배추 어디서도 마이크로시스틴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료 속 마이크로시스틴을 분리해 정량하는 액체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법을 썼다고 했다. 그런데 분석용 농산물을 녹조 우려 지역의 미곡종합처리장, 전국 마트에서 구입했다. 재배할 때 녹조 강물이 이용됐는지 확인이 어려운 시료를 굳이 사용한 이유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보편적으로 유통되는 쌀이 오염됐는지를 확인해야 해서”란 이유를 들었다.
두 달 뒤 환경운동연합은 식약처와 같은 기법으로 분석한 결과를 보란 듯 발표했다. 낙동강과 영산강 23개 지점에서 생산된 쌀 중 7개에서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다고 했다. 정부와 환경단체가 각기 다른 시료로 한 분석을 앞세워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으니 소비자는 혼란스럽다. 환경단체는 농산물의 마이크로시스틴 검출량을 미국 캘리포니아주나 프랑스의 섭취 허용량 기준과 비교해 생식 독성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는데, 정부 설명에 따르면 해당 기준을 적용해도 될지 검증이 필요하다. 어느 쪽을 믿어야 하나.
녹조 독소 성분이 농산물과 인체에 미칠 영향을 파악하는 건 쉽지 않다. 남세균은 물속에 균일하게 분포하지 않는다. 깊이나 바람 방향 등에 따라 농도가 달라 어떻게 채수하고 어떻게 공급하느냐에 따라 데이터가 차이 날 수 있다. 농작물을 어디서 가져다 어느 부분을 시료로 쓰는지도 실험에 영향을 미친다. 일회성 말고 장기간 분석 역시 필요하다. 한 녹조 연구자는 “원하는 데이터가 나오도록 설계하고 입맛에 맞는 결과를 취사선택하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논란을 끝낼 방법은 명확하다. 정부와 환경단체, 전문가가 함께 공개적으로 조사하면 된다. 다행히 그럴 움직임은 보인다. 올여름 녹조 피는 시기에 조사를 시작하려면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그런데 조사 방식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올해는 꼭 결론을 내야 한다.
임소형 논설위원 겸 과학전문기자 precare@hankookilbo.com
게바라의 길’에서 환경 혁명 꿈꾸는 ‘21세기의 체’를 만났다
노동효의 지구둘레길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남미 여행
아르헨에서 칠레 발디비아행
‘육식’과 거리 먼 해산물 천국
“케이블카 문제, 환경법원으로”
청년들, 환경보전 뜨거운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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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발디비아의 강변시장 전경.
20세기말 로버트 레드포드는 월터 살레스 감독에게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영화화를 제안했다. 월터는 3년간 2차례에 걸쳐 체 게바라의 행로를 따라갔고, 체의 친구·가족과의 인터뷰, 체의 <나의 첫 번째 큰 여행>과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알베르토의 <체와 함께 한 남미여행> 등을 종합하여 5년 만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2004년 한국에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개봉됐다. 평론가들은 ‘실재했던 체’와 ‘영화 속의 체’가 다르다고 불평했다. ‘책으로 읽은 체’와 ‘영화 속의 체’를 비교하며 ‘체는 이런 청년이었다’고 강변했다. ‘서울 안 가본 사람을 서울 가 본 사람이 못 이긴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그들도 남아메리카를 직접 종주하며 길 위의 청춘들을 만나면 월터 살레스의 시선에 공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체 게바라가 가장 설렜던 순간
집 떠난 체와 알베르토는 모터사이클이 부서지기 전까지는 무모하고 철딱서니 없는 청년에 불과했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고 부르지만 바이크 여정은 짧고, 칠레에서 바이크를 버리고 난 후 변화의 단초가 풀린다. ‘두 사람만 올라탄 여정’에서 트럭, 버스, 두 발로 이동하며 ‘민중과 함께 탄 여정’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경로 중 체가 가장 설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처음으로 아르헨티나에서 칠레로 국경을 넘는 날이었을 것이다. 국경을 넘기 전 마지막으로 묵은 도시는 산카를로스데바릴로체. 안데스 아래 호수들이 꽃잎처럼 내려앉은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지나며 체는 다짐했다.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지치면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안데스산맥 호숫가에 정착할 것이다.’ 두 사람은 바이크를 선박에 싣고 바릴로체를 떠났다. 여정은 국경 넘어 페우야, 오소르노, 발디비아로 이어졌다.
나는 2016년 10월, 아르헨티나의 바릴로체에서 칠레의 발디비아까지 버스를 타고 단번에 갔다. 체가 지났던 국경은 폐쇄되고 231번(칠레에선 215번) 도로가 새로 생겼기 때문이다. 안데스를 넘는 사이 설산이 진눈깨비를 흩뿌렸다. 오소르노 화산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카예카예강, 카우카우 강, 크루세스 강의 합류 지점에 자리한 발디비아에 닿았다. 칠레에서 오래된 도시 중 하나였다.
체가 발디비아에 도착했던 날은 도시 설립 기념행사 기간이었다. ‘발디비아 주간’이라고 부르는데 축제는 2월 초부터 2월 말까지 이어진다. 지금도 이 기간엔 식민지 시절 시위를 재현한 행사를 비롯, 공예품 시장, 강의 여왕을 뽑는 미인대회 등 전통행사가 열린다. 체는 축제의 흥에 취한 시민들의 환대 때문인지 칠레인의 친절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그리고 신문사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여행계획을 꽤 거창하게 떠들었던 모양이다. 테무코에서의 인터뷰까지 더해져 일약 스타가 되었으니까. 나비효과처럼 미래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을까? 체는 허풍으로 받은 환대와 감탄과 칭찬과 관심에 보답하기 위해 '체의 길'을 갔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예약한 호스텔은 독일식 목조 주택이 늘어선 거리에 있었다. 배낭을 던지고 밖으로 나왔다. 칠레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뒤 유럽인이 경제·문화에 긍정적 영향을 줄 거라는 판단으로 독일에 이민자 유치 사무소를 열었다. 수천명의 독일인을 비롯해 오스트리아, 헝가리인이 발디비아에 정착했다. 지금도 발디비아에선 독일 옥토버페스트와 유사한 맥주 축제가 열린다.
산카를로스데바릴로체를 둘러싼 안데스 산맥과 호수들.
젊음 넘치는 대학도시
‘강변수산시장’으로 향했다. 바다사자들이 거슬러 와 강가에서 졸고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탓에 바다인지, 강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시장은 “이전에 보지 못한 온갖 상품들이 가득했다. 다양한 먹거리를 파는 시장…모든 것이 아르헨티나와 달랐다”던 체의 일기와 바뀐 게 없었다. 태평양에서 잡은 싱싱한 생선과 조개류가 놓인 좌판 사이 아주머니가 해산물 스튜를 팔고 있었다. 홍합, 조개, 생선이 들어간 스튜 두 그릇을 단숨에 먹어 치웠다. 아르헨티나산 육고기만 먹다가 칠레산 해산물을 먹으니 살 것 같았다.
늦은 오후로 접어들자 젊은이들이 거리를 채웠다. 인구 16만, 한국의 충남 당진시와 비슷한데 아우스트랄종합대학교를 비롯해 산세바스티안, 산토토마스 등 여러 대학과 연구소가 있는 대학도시였다. 10대부터 20~30대 청년이 주축인 젊은 도시였다. 일몰 후 숙소로 돌아오니 나올 때와 달리 숙박객들로 가득했다. 하나같이 명찰을 달고 있었다. 단체관광객인가? “대학 행사에 참석하러 온 사람들이야.” 호스텔 주인이 귀띔해 주었다. 대부분 20~30대였고 금세 친해졌다. 그들은 나를 ’로’라고 불렀다. “로, 내일은 어디 갈 거니?” “코랄만에 다녀오려고” “멋진 곳이지, 식민지 시대 요새도 놓치지 마. 시간 나면 식물원에도 가.” “어디에 있는데?” “아우스트랄대학에 있어. 휴식하기 정말 좋은 곳이야!”
아침에 일어났을 때, 청년들은 콘퍼런스에 참가하러 나간 후였다. 코랄만으로 향했다. 해변 정류소에 버스가 섰다. ‘쓰나미 대피로’ 표지가 있었다. 인류가 지진을 관측한 이래 가장 센 리히터 규모 9.5 지진이 발생한 곳이 발디비아였다. 해안선을 따라가자 ‘안개의 성’이란 요새가 나타났다. 17세기 스페인 정복자들은 네덜란드 해군과 영국 해적을 막기 위해 대포 방어시스템을 구축했다. 스페인 군복 차림의 안내원이 식민지 시절 무용담을 주먹 불끈 쥐고 소리쳤지만 나는 졸음이 쏟아졌다. 내가 보기엔 스페인이나 네덜란드나 영국이나 약탈자이긴 마찬가지였으니까.
아우스트랄대학교로 갔다. 여의도 1.3배 면적의 테하섬에 있었다. 절반은 공원과 녹지고, 절반은 대학건물, 기숙사, 카페, 주택가가 뒤섞인 하중도였다. 중앙도서관 뒤에 식물원이 있었다. 저무는 햇살에 나뭇잎 반짝이는 오솔길을 지났다. 연못엔 연꽃들로 가득했다. 도서관을 나온 학생들이 벤치로 와서 담소를 나눴다. 나무 그늘 아래 청년들이 바비큐를 구워 먹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우스트랄대학교 안의 식물원
“케이블카로 국립공원 파괴한다니…”
숙소로 오니 콘퍼런스에 다녀온 청년들이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로, 우리와 같이 한잔 하자!” “좋지!” 맥주를 사 들고 술자리에 동참했다. 국제환경 콘퍼런스에 참가한 젊은이들이라선지 환경에 관한 대화가 이어졌다. 난 한국에선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놓으려는 시도가 반복된다’는 말을 꺼냈다. 다들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산티아고 대학원생인 영국인 제이슨은 “국립공원이면 개발사업을 할 수 없고, 개발사업을 하면 국립공원이 아니잖아?”라고 말했다. (여행 당시인 2016년 한국에선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를 둘러싼 논쟁이 뜨거웠고 환경부는 올해 2월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통해 이 사업을 허가했다)
나는 제이슨에게 되물었다. “그럼 알프스의 그 많은 케이블카는 뭐니?”
“알프스의 경우 환경에 대한 관심이 낮던 20세기에 설치한 케이블카가 대부분이야. 게다가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여러 나라에 걸친 산맥이다 보니 관광객을 타국에 뺏기지 않으려고 경쟁적으로 놓은 측면도 있어. 한국이 국경이 잇닿는 나라와 경쟁하는 것도 아닌데 자국의 국립공원을 파괴하려는 건 이해가 안 돼.”
일본계 브라질인 카밀라가 말을 이었다. “할머니 고향에 간 적이 있어. 후지산 등산로에 케이블카를 놓지 않는 건 경외감 때문이야. 일본 최고 산을 쉽게 오를 수 있는 곳으로 만들 순 없다는.” “아르헨티나도 마찬가지!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산을 돈벌이에 이용할 순 없지!” 아르헨티나 멘도사에서 온 디에고가 말했다. “관광수입도 중요해. 그러나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은 편의시설, 잘 보전한 자연으로 트래커를 불러들여. 케이블카를 놓는다면 환경법원에 제소해야지!” 처음 듣는 단어였다. “환경법원이 뭐니?”
“이번 콘퍼런스도 환경법원이 주최한 거야. 환경 파괴, 과도한 개발, 공기·수질오염 등 환경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상급 법원이야. 판사가 법률에 대해선 잘 알겠지만 자연, 생물, 해양 문제에 관해선 전문가가 아니니 올바른 판단을 하긴 쉽지 않아. 그래서 과학전공자와 법률가가 파트너십을 이룬 환경법원을 따로 둬.” “한국에도 환경부가 있긴 해.” “그건 행정부잖아. 정치인이나 정당에게 백년, 아니 천년의 지구환경을 맡길 순 없어. 정부 성향과 상관없이 삼권분립 된 사법부에 환경법원을 따로 둬야지.” 칠레 대학원생인 페데리코가 말했다.
“다른 나라에도 환경법원이 있니?” “1980년 호주의 뉴사우스웨일즈에서 처음으로 설립된 뒤 뉴질랜드, 영국, 캐나다, 미국, 프랑스 등으로 확산됐어. 현재 40여개 나라에 환경법원이 있지.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야.” 얘기를 듣던 제이슨이 덧붙였다. “사안별 환경운동도 중요하지만, 환경법원처럼 건강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어.”
호스텔 마당에서 토론이 이어졌다. 지구 반대편의 일이지만, 어느 곳이든 지구였기 때문이다. 토론은 해양오염, 플라스틱 쓰레기로 가지를 쳤다. 청년들의 열띤 목소리를 듣는 사이, 체 게바라가 멕시코시티에서 피델 카스트로 등 혁명가들과 벌이던 논쟁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한 기분이었다. 문득 21세기의 체 게바라는 지구환경을 위해 싸우는 활동가 중에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 지구 어느 곳에서 철부지 여행자가 파괴되어가는 지구환경을 목격하면서 또 다른 존재로 변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또 다른 체 게바라다.
글·사진 노동효 여행작가
기후 악당, 나만 아니면 돼?
봄꽃이 벌써 다 폈다. 개나리, 진달래에 이어 벚꽃도 3월에 개화했다. 서울에선 지난 25일 벚꽃이 공식 개화해 지난해보다 10일, 평년보다 14일 앞당겨졌고 2021년보다 단 하루 늦어 역대 두 번째로 빨랐다.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 했던 대학생들의 우스개는 옛말이 됐다. 4월 들면 꽃이 떨어지기 시작해 이내 벚꽃은 ‘있었는데 없었다’가 될 것이다. 그러고는 금세 여름이다. 5월부터 여름인가, 올여름은 또 얼마나 더울까. 딴건 몰라도, 북극 빙하가 빠르게 녹고 있음은 알 만하다.
남부지방에선 지난해부터 이어진 50년 만의 역대 최악 가뭄이 악화일로다. 곳곳의 저수지 바닥이 메말라 쩍쩍 갈라졌고, 물이 부족해 모내기도 못할 판이다. 주민들은 장기간 단수와 제한급수로 일상생활의 고통을 겪고 있다. 그 극심한 가뭄이 중부지방으로도 확산하고 있어 더욱 우려스럽다. 기후변화로 인해 가뭄이 더 잦고 강해진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 이젠 연중 해소되지 않는 상시 재난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비가 오지 않으면 답이 없는 현실. 이 또한 기후위기가 일상에 닥쳤음을 체감할 수 있는 일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최근 공개한 제6차 종합보고서를 보면 지금 절박한 기후위기 상황을 알 수 있다. 전 세계 1000여명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이 보고서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인류의 교과서로 불린다. 이번 6차 종합보고서는, 현재 추세라면 2040년 이전에 지구 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상승할 것이라는 관측을 담았다. 지구 생태계가 회복 불가능한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시기가 이전에 예측됐던 2052년보다 10년 이상 앞당겨진다는 경고다.
그래서 보고서는 ‘감축’을 누차례 강조한다. 지구 기온을 높이는 온실가스 배출을 당장 급격히 감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1.5도 상승을 억제하려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감축해야 하는데, 이는 세계 각국이 제시한 감축목표를 모두 달성해도 불가능한 수치이기 때문이다. 파국을 막을 골든타임이 8년밖에 남지 않은 터라 깊고 빠른 감축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런 보고서가 나온 다음날 한국 정부가 처음 발표한 탄소중립 기본계획은 더 강화된 감축 대책을 마련하라는 IPCC의 주문에 한참 어긋난다.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18년 대비 40% 감축’으로 유지하되 산업 부문의 감축률을 14.5%에서 11.4%로 낮춘 것이 핵심인데, 목표치를 높이고 독려해야 할 판에 부담을 낮춘 것은 목표 달성에 역행하는 처사다. 정부는 산업계의 현실 여건과 실현 가능성을 고려했다고 한다.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이번 조치가 산업계에 감축을 느슨히 해도 된다는 분위기를 조성할까 걱정된다.
문제는 산업계 감축분을 대체할 방안이 원자력발전 확대 외에는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해외 조림 등 국제 사업이나 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 기술 등으로 감축한다는 것인데 모두 결과가 불확실하다. 언제 상용화될지도 모르는 신기술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
정부가 처음 내놓은 연도별 감축목표 또한 ‘눈 가리고 아웅’ 격이다. 윤석열 정부 임기 중에는 연평균 2% 정도씩 줄이다가 다음 정부 시기에 급격히 감축량을 늘리는 식으로 총감축량의 75%를 다음 정부로 미룬 것이다. 2028년 이후엔 신기술이 상용화될 것이라고 면밀히 예측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전형적인 ‘님트’(NIMT·Not In My Term)의 행태다. “내 임기 중에는 아니야”라는, 무사안일에 무책임이다.
기후위기는 공포와 겁박으로 풀어나갈 문제가 절대 아니다. 일각에서는 화석연료 탈피가 불가능해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은 허황된 얘기라고 주장한다. 온실가스 감축 정책으로 경제적 이익이 발생하는 시기가 2080년쯤이라 지금의 젊은 세대와 무관할 것이라고도 한다. 탄소중립 목표가 과장된 데이터로 포장된 과도한 수치로 불안만 키운다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설령 그렇다 쳐도, 결국에는 눈앞에 닥친 기후위기에 대처할 방책을 무시하거나 회피하는 것에 불과하다.
목표 수치는 최우선이 아닐 수 있다. 관건은 방향과 구체적인 이행 계획이다. 당장 급격한 감축이 절실하다는 당면 과제에 모두 공감하고 책임 있게 실천해야 한다. 정부는 이행 계획을 부단히 점검해 탄소중립 목표 달성 의지를 보여야 한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유행어를 떠올리게 해선 안 된다. 기후위기는 폭탄을 돌리는 복불복 게임이 아니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고속도로냐 철도냐, 독일 연정 앞에 놓인 길 [기후위기 대응 선진국 독일의 고민 ①]
독일 연립정부는 3월6일 내각회의에서 기후 보호 목표 달성 의지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산업계를 대변하는 자민당과 그렇지 않은 녹색당의 의견이 엇갈린다. 여론도 나뉘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8월 독일 최대 에너지 기업인 유니퍼의 무연탄 화력발전소가 재가동하는 모습.ⓒEPA
3월6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연립정부 내각에 참여하고 있는 사민당·녹색당·자민당 인사들과 함께 독일이 재생에너지 전환과 거대한 경제 변혁의 길로 나아갈 것임을 선언했다. 3월5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비공개 내각회의 마무리 기자회견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이번 회의는 내각에 참여하는 정당 사이의 차이를 조율하고 정부의 큰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쥐트도이체 차이퉁〉 보도에 따르면, 회의에 참석한 정부 인사들은 독일이 석유·가스 등 화석에너지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하면서, 이런 도전 과제가 현실적으로 충분히 달성 가능하다는 점을 설득하려 했다. 숄츠 총리 또한 ‘우리 앞의 과제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이번 회의를 통해 성공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부총리이자 경제기후장관인 로베르트 하베크는 정부가 거대한 일자리 프로그램을 추진할 것이며 녹색에너지 산업 투자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향후 10년 동안 계속 독일이 세계경제의 중심에 서 있을 것이라고 발언했다.
사민당·녹색당·자민당 연립정부는 2021년 12월 “더 많은 진보를 감행하다”라는 모토로 출범했다. 새로운 정부의 연정 합의서에는 기후 보호가 정책 전체를 가로지르는 핵심 과제임이 명시되어 있었다. 녹색당은 기후 보호를 당의 중심에 두고 있다. 연정에 참여하는 다른 정당 또한 기후 보호가 독일이 당면한 최우선 과제 중 하나임을 인정했다. 기존 기민당·사민당 연정하에서 2019년 만들어진 기후보호법을 새 정부가 실행해야 하는 의무 또한 분명히 했다.
2019년 만들어진 최초의 기후보호법은 독일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뤄야 하며 2030년까지는 1990년 대비 탄소배출량을 55% 감축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또한 기후보호법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산업 분야별로 2030년까지 감축할 탄소배출량 또한 규정하고 있었다. 여기에 유럽연합 ‘탄소배출권 거래제도(ETS)’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난방과 교통 분야 연료까지 포함해 2021년부터 이산화탄소 1t당 탄소 가격 25유로를 부과했다. 이후 가격은 점차 상승해 2025년에는 55유로, 2026년에는 최대 65유로까지 올릴 예정이었다.
‘위헌’ 판결 받은 최초의 기후보호법
하지만 2021년 4월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는 기후보호법의 이산화탄소 감축 목표 관련 규정은 탄소 감축의 책임을 지나치게 미래세대에 전가하고 있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최종 목표에 비해 2030년까지 정해진 감축 목표량이 적은 데다 2030년 이후의 계획은 명시돼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였다. 결국 헌법재판소 결정을 통해 2019년 기후보호법의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는 법적으로 최소 기준치도 충족하지 못한 것이 되었다. 이에 따라 2021년 6월 개정안이 만들어졌다. 개정안에 따르면 독일은 1990년 대비 2030년까지 최소 65%, 2040년까지는 88% 탄소배출량을 감축해야 한다. 그리고 2045년에는 탄소중립에 도달해야 한다. 또한 이 개정안에서는 2023년부터 2030년까지 분야별 연간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상향 조정했으며 2031년부터 2040년까지의 감축 목표도 수립했다.
지난해 4월6일 녹색당의 로베르트 하베크 경제기후장관은 재생에너지 정책 패키지를 발표했다. 약 600쪽에 달하는 내용이었다. 정책 패키지에는 재생에너지법, 해상풍력에너지법 등 총 56개 법안 변경과 조처가 담겨 있었다. 하베크는 “재생에너지 확장은 공공의 최대 관심사이며 국가의 안보 문제가 되었다”라며 재생에너지 정책을 발표했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의해 발생한 에너지 위기가 해외 자원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확대의 필요성을 가져왔다면서, 에너지 전환이 곧 국가안보라고 강조했다.
3월6일 비공개 내각회의를 마친 크리스티안 린드너 독일 재무장관, 올라프 숄츠 총리, 로베르트 하베크 경제기후장관(왼쪽부터).ⓒREUTERS
새 정책 패키지를 통해 2030년까지 전체 전기 사용량의 8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던 사민당·녹색당·자민당 연정의 목표가 공식화되었다. 정책 패키지의 핵심은 재생에너지 확장 속도를 가속화하는 것이었다. 에너지원별로 2030년까지 발전 용량 목표치가 발표되었다. 대표적으로 육상 풍력발전의 경우 매년 10기가와트(GW) 규모 설비를 확보해 2030년까지 총 115GW의 발전설비를 갖추는 계획이 확정되었다. 재생에너지 발전 인프라의 건설 공사를 지연시키거나 어렵게 하는 각종 절차나 규제를 완화하는 것도 정책 패키지의 주요 내용 중 하나였다.
숄츠 정부의 2022년 기후 보호 정책은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공급 위기가 정책의 추진을 어렵게 만들었다. 독일은 에너지 안보를 위해, 운행을 중단한 석탄발전소를 지난해 다시 가동했다. LNG 가스 공급을 위한 터미널도 처음으로 만들었다. 2022년에 완전히 중단하기로 했던, 마지막 남은 3개 원자력발전소의 운행 역시 2023년 4월15일까지 연장되면서 독일의 탈원전 계획 또한 차질을 빚었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투자와 실행이 필요한 시점에 독일 정부는 기존 에너지 공급원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연정 참여 정당 사이의 인식 차이 또한 정책을 추진하는 데 방해 요소였다. 특히 교통부가 정부의 기후 목표 달성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교통 부문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핵심 분야이기 때문에 녹색당은 연정 합의 과정에서 교통장관직을 가져오고자 했다. 하지만 자민당의 강력한 요구로 교통장관 자리는 자민당에 돌아갔다. 기후위기 대응보다 산업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민당의 경우 고속도로 속도제한 도입, 대중교통 강화와 자가용에 대한 불이익,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 등에 부정적이다. 교통부는 기후보호법이 명시하고 있는 교통 부문 탄소 감축 정책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국제 평가기관 저먼워치와 기후연구단체 뉴클라이밋 연구소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2023 기후변화 대응지수’에서 독일은 63개 국가 중 16위를 차지했다(한국 60위). 한 해 전보다 3단계 떨어졌다. 독일은 기후 정책 평가에서는 과거보다 좋은 점수를 받았지만 재생에너지와 교통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에서 저조한 점수를 얻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며 발표했던 목표를 생각하면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부딪치는 자민당과 녹색당
3월4일 독일 전역에서 청소년·청년 기후위기 대응 운동인 ‘프라이데이 포 퓨처’와 공공서비스노조 페르디의 공동 파업 시위가 있었다. 이날 독일에서는 240개 넘는 집회가 신고되었으며 페르디 소속 대중교통 노조가 파업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정부가 대중교통을 확대하고 교통 전환을 통해 기후 보호 목표를 달성할 것을 촉구했다. 또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 정책 실행 계획이 부족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함부르크 프라이데이 포 퓨처의 대변인인 안니카 크루제는 개개인이 자가용을 소유하는 현재의 생활방식과 작별해야 한다고 시위 현장에서 외쳤다.
3월3일 베를린에서 대중교통 확대 및 교통 전환을 촉구하고 있는 ‘프라이데이 포 퓨처’ 시위 행렬.ⓒAFP PHOTO
독일 국립과학아카데미 레오폴디나 또한 3월5~6일 진행된 비공개 정부 내각회의를 겨냥해 연립정부 참여 정당 사이의 싸움을 멈추고 기후 보호 정책 실행에 속도를 낼 것을 요청했다. 특히 레오폴디나는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 정부가 과감하게 실행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3월6일 마무리된 내각회의의 참석자들은 독일 정부의 기후 보호 목표 달성 의지를 분명히 표명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정책 실행에는 여전히 분쟁의 요소가 남아 있다. 자민당이 주도하는 교통부는 고속도로망의 확장을 원하는 반면, 녹색당은 철도 중심의 대중교통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한 합의는 없었다. 난방시설 전환 또한 논쟁의 중심에 있다. 하베크 경제기후장관은 2024년부터 가스 또는 석유 난방시설의 신규 설치를 금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베크는 이를 위해 기존 난방시설을 히트펌프로 교체하는 비용을 정부가 지원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전기로 작동하는 히트펌프는 냉매를 이용해 난방과 냉방을 같이 할 수 있는 장치다. 독일에서는 화석연료를 이용한 난방시설의 대안으로 주목받으며 설치량이 증가 중이다. 하지만 자민당은 하베크 장관의 요구에 반대하고 있다.
독일의 기후 보호 목표 달성을 어렵게 만드는 연립내각 사이 의견 차이는 시민들의 여론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자동차에 대해 독일 시민들의 의견이 나뉘는 게 대표적이다.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2월25일 발행된 표지 기사에서 자동차를 둘러싼 독일 시민 간의 문화투쟁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기후 보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현재 15%인 대중교통 비중이 2030년 24%, 2045년 47%로 상승해야 하지만 자가용에 관한 ‘이데올로기적 분열’이 건설적 대화를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한편에서는 자가용을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악마화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동차를 독일 산업과 개인 자유의 상징으로 바라본다고 〈슈피겔〉은 전했다.
시사인 프랑크푸르트∙김인건 통신원
국토균형발전, 철 지난 잔소리인가?
럼에도 '균형'이 중요한 이유
우리나라 국토에 관한 계획 및 정책 수립의 기본이 되는 국토기본법에는 국토의 균형있는 발전에 대해서 여러차례 언급하고 있으며, '국가균형발전 특별법'과 같이 법의 명칭 자체에 균형이라는 말이 사용되기도 한다.
자주 듣는 말은 그 자체로 당연한 것이 되기 쉽다. 즉 표현 자체가 정당성과 힘을 가지게 되는 현상, 담론화 현상이 나타난다. 반면 이러한 '~해야한다' 와 같은 표현을 너무 자주 듣게 되면 잔소리가 되기도 하며, 이를 반박하거나 뒤집어보고 싶은 심리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말은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 이러한 잔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특히 균형발전은 규제이며 자유로운 시장경제에 역행하고 경제의 활력을 저하시킨다는 논리가 이러한 반발심리에 더해지면, 국토의 균형발전 논리는 이념적이고 고루하며, 국가발전의 발목을 잡는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젊은이와 기업이 모두 수도권에서 일하고 싶어하니 인구절벽 시대에 수도권 규제는 무의미하다는 기사를 보고 놀란 적도 있다.
규모의 경제, 집적의 이익 그리고 불이익
그렇다면 국토의 균형발전은 당위나 이념에만 근거한 것일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당연하게도 우리 국토가 모두 같은 방식으로 같은 수준으로 발전할 수는 없다. 지역은 고유한 잠재력을 지니며 각각의 잠재력을 바탕으로 성장해나간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과 물자가 모여들어 일정한 인구 규모에 도달하면 도시가 형성되고, 인구가 더욱 늘어나면 운영의 효율성이 높아지는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고, 비슷하거나 연관된 산업 등이 모여들면 집적의 이익이 생긴다. 교통시설, 병원, 학교, 관공서 등은 모두 최소한의 인구가 있어야 효율적으로 운영이 가능하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에 도로를 만드는 것은 사회적 낭비이며, 학교에는 최소한의 학생이 있어야 교사가 배치될 수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공간과 장소는 이러한 최소한의 인구 그리고 규모의 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고, 공공시설이 아닌 소비시설과 서비스 시설은 규모의 경제가 달성되는가를 살펴보기 위해 상권분석과 같은 조사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규모의 경제가 늘 경제적 효율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너무 많은 인구가 한정된 공간에 모여있게 되면 이를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한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최근 경부고속도로 동탄역 구간이 직선화되어 서울 방향이 개통되었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경부고속도로 동탄 나들목부터 동탄분기점까지 4.7km 구간을 직선화하고 동탄역 주변 1.2km 구간은 지하화하여 동탄1, 2 신도시가 지상으로 연결됐다.
공학적 측면에서는 다른 의견이 있겠지만, 필자는 이 구간에서 고속도로가 운전에 영향을 줄 정도로 곡선인지 인식하지 못했다. 물론 분리된 동탄 신도시가 연결된다면 주민의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겠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는 효용이 큰 사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언론 보도를 검색해보니 해당 구간의 공사비가 7000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서울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는 교통량이 워낙 많아 차량 1대당 편익은 크지 않아도 전체적으로 보면 투자비용을 상회하는 효용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7000억이라는 금액은 너무 많아서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기획재정부가 발간한 올해 예산개요를 살펴보니 코로나로 인한 소상공인·자영업자 채무조정 예산이 약 2800억, 예비군 예산 2600억, 국가의 핵심전략기술인 2차전지 연구개발 예산 1500억, 고등학교 무상교육 9000억, 55만 명의 노인을 위한 맞춤돌봄서비스 예산이 5000억 정도이다. 4.7km 구간을 직선화하고, 1.2km 구간은 지하화하는 7천억 이라는 돈은 이정도의 액수인 것이다.
또 다른 서울과 수도권의 과밀로 인한 비용의 예는 최근 유행인 도로의 지하화이다. 1988년 개통된 서부간선도로는 정체로 악명이 높았으며 5200억 원을 들여 지하화했고, 동부간선도로는 2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자하여 지하화를 계획하고 있다.
경부고속도로 기흥~양재 구간의 지하화에 3조 8000억 원이 든다는 보도가 있었으며, 서울시는 한남동~양재 구간도 지하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확한 추계는 어렵지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남동~양재 구간의 공사비는 몇 조 원 수준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다고 한다. 엄청난 예산이다.
혹자는 일부 사업은 국비가 아닌 민간자본투자 혹은 지자체 예산으로 하는 것이니 신경쓰지 말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누구의 돈인가가 아니라 그렇게 쓰는 돈이 효율적인가 하는 것이다. 서부간선도로를 지하화해서 교통체증이 사라지고, 동부간선도로, 경부고속도로 등을 지하화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 이야기의 결말을 우리는 안다. 교통이 원활해지면 교통량이 늘어나고 똑같은 문제는 늘 반복된다는 것을.
수도권 확장에서 나타나는 외부효과, 자산증가, 불로소득의 문제
최근 GTX 등 광역교통망에 대한 기사도 쏟아지고 있다. 경기도에서 서울 도심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대심도열차는 서울로의 출퇴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 거주자들의 편익을 증대시킬 것이다.
그러나 기사나 블로그 등을 검색해보면 통근자들의 편익만큼이나 GTX역이 건설되는 지역의 부동산에 관련된 내용도 많다. GTX역이 들어서면 "GTX ○○역까지 도보 10분"과 같은 부동산 개발광고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즉 서울로 이동하려는 사람은 더욱 늘어나고, 수도권은 확장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광역교통망은 부동산이라는 자산의 가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자산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입지이며, 입지에서도 교통연결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은 경제나 부동산을 전공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를 다시 생각해보면 나의 부동산 자산가격의 상승은 나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나의 노력과 무관하게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나의 자산가치가 상승하는 것이며 이를 외부효과라고 하며, 불로소득으로 이어진다.
지방의 쇠퇴와 수도권의 인구증가는 좋은 일자리 문제만은 아니다. 수도권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다른 지역보다 부동산 가치의 증가라는 기분 좋은 외부효과를 누릴 가능성이 높으며, 이러한 자산 가치의 증가는 광역교통망 확충과 같은 정부의 예산투자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 계획된 GTX 노선 이외에도 d,e,f 건설과 같은 소위 '희망회로'는 오늘도 열심히 돌아간다.
▲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GTX 이미지. ⓒ경기도
목이 말라도 바닷물을 마실 수는 없다
수도권의 밀집과 서울의 광역화를 추진하는 정책이 제어되지 않고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는 현상은 우려스럽다. 더욱이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넘어선 상황에서 수도권에 대한 투자는 갈수록 제어받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정책이란 결국 유권자의 표를 바탕으로 추진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위에 언급한 GTX 이외에도 지하철 3호선, 7호선, 9호선도 경기도 외곽으로 조속히 연결해 달라는 목소리가 높다.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는 중요한 사안이지만 걱정이 앞선다. 이러한 정책들은 서울의 집중도를 높이고 과밀화로 이어지며 이는 비효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과연 현재 이러한 국토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적 의제는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다. 최근 10여년 간 지방의 자생력, 지역 맞춤형, 컨텐츠 등의 이야기만 무성한데, 결과적으로는 지방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보라는 무책임에 가깝다.
수조원이 투자되는 광역교통망 공사가 수도권에 하나도 아니고 여러 군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에서 좋은 정책이 있으면 공모제나 심사를 통해 몇 십억 원 지원해주겠다는 식의 해결방식은 한계가 있다.
국토균형발전은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비용과 효율의 문제이며 예산과 자산의 문제이다. 즉 그렇게 돈을 쓰는 것이 장기적으로 효율적인 것인가에 대한 판단에 근거한다. 지금 당장의 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해서 펴는 정책은 목이 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이 감당할 수 없는 비효율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서울은 이미 초과밀 상태이며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수도권 확산이 일어나고 있다. 단순 계산을 해보면 만약 세계 모든 인구가 서울 수준의 인구밀도에서 산다면 한반도의 2.3배의 면적만 있으면 충분하다. 또한 인도의 14억 인구도 제주도를 제외한 남한 면적이면 충분하다. 이래도 국토의 균형발전이 철 지난 잔소리일까?
지상현 경희대학교 지리학과 교수/ 프레시안
섬나라 학생들이 띄운 '기후정의'…ICJ, 기후 대응 '법적 권고' 한다
유엔 총회 결의안서 취약국 기후변화 영향 ICJ 의견 요청…2019년 남태평양 학생단체 첫 제안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의 법적 의무를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제시하도록 하는 결의안이 유엔(UN) 총회에서 채택됐다. 2019년 남태평양 섬나라 학생들의 제안으로 시작된 결의안은 기후 변화가 취약국에 미치는 악영향에 주목해 향후 기후 정의 실현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29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통과된 "기후 변화에 관한 국가의 의무에 대한 ICJ 권고적 의견 요청" 결의안은 ICJ에 온실가스 배출로부터 기후 및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국제법에 따른 의무"를 명확히 제시할 것을 요청했다. 결의안은 또 기후와 환경에 심각한 해를 끼친 국가가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은 국가, 특히 지리적 환경과 개발 수준으로 인해 기후 변화에 취약한 섬나라 등에 져야 할 "법적 책임"에 대해서도 ICJ에 자문했다. 결의안은 같은 항목에서 ICJ에 기후 및 환경에 해를 끼친 국가가 현재 및 미래 세대에 져야 할 법적 결과에 대한 의견도 요청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총회 연설에서 "기후 정의는 도덕적으로 필수불가결할 뿐 아니라 효과적 기후행동의 전제"라고 강조했다.
결의안이 온실가스 배출량은 적지만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는 크게 입고 있는 취약국에 주목함에 따라 이들 국가들이 요구해 온 기후 정의 실현이 가까워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제시됐다. <로이터> 통신은 방글라데시 외무장관이 결의안 통과가 취약국에 대한 보상 약속과 실제 지원 사이 격차를 줄일 "결정적 순간"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결의안은 2019년 남태평양에 위치한 솔로몬 제도에 기반을 둔 학생단체 '기후 변화에 맞서는 태평양 섬나라 학생들(PISFCC)'이 처음 제안한 뒤 남태평양 섬나라 바누아투 정부가 주도적으로 다른 나라들을 설득하는 캠페인을 벌이며 수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신시아 후니우히 PISFCC 회장은 "세계가 태평양 청소년들에게 귀를 기울여 행동해 기쁘다"고 밝혔다. 그는 태평양 지역 주민은 "전세계 배출량에 매우 적게 기여"했음에도 사이클론·해수면 상승 등 "기후 위기의 한가운데서 살고 있다"며 "이번 유엔 결의안은 기후 정의를 위한 올바른 방향으로 나라가는 한 걸음"이라고 평가했다.
이스마엘 칼사카우 바누아투 총리도 "역사적 결의안" 통과를 반기며 "우리는 오늘 기후 정의를 위한 커다란 승리를 목격했다"고 말했다.
<로이터>는 ICJ 의견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전세계적으로 2000건 이상이 진행 중인 기후 관련 소송에 주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통신에 따르면 미 컬럼비아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기후 변화 관련 법 강의를 맡고 있는 마이클 제라드 교수는 "ICJ 결정은 급증하는 기후 변화 사건에 직면하고 있는 전세계 법원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ICJ의 판단은 향후 국가 간 혹은 개별 국가 내 기후 관련 조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는 미국은 이번 결의안을 지지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통신은 관련해 바이든 정부 고위 관료가 "우리는 국제 사법 절차가 아닌 외교가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전세계적 노력을 진전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라고 믿는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29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UN)본부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이스마엘 칼사카우 바누아투 총리가 연설하고 있다. 이날 유엔 총회는 '기후 변화에 관한 국가의 의무에 대한 국제사법재판소(ICJ) 권고적 의견 요청' 결의안을 채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프레시안 김효진 기자
톡 토독 톡…” 식물도 스트레스 받으면 소리를 낸다
이스라엘 연구팀, 세계 최초 녹음…‘뽁뽁이’ 소리 비슷
식물 종류, 스트레스 정도 등에 따라 내는 소리 달라
“식물 소리로 물 줄 때 알려주는 센서 등 활용 가능”
식물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사람에게 들리지 않는 고주파로 자기 상황을 알리는 소리를 낸다는 사실이 이스라엘 연구팀에 의해 밝혀졌다.
CNN 등 외신은 3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릴라크 하다니 교수팀이 식물이 내는 소리를 녹음하는 데 처음으로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연구팀은 토마토와 담배, 밀, 옥수수, 선인장, 광대나물 등의 소리를 녹음했으며, 어떤 식물이 어떤 상황에서 내는 소리인지도 분석해 냈다.
고주파 마이크로 선인장이 내는 소리를 녹음하는 장면. Tel Aviv University 제공
연구 결과는 이날 과학저널 ‘셀’(Cell)에 실렸다.
연구팀은 식물이 일반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소리를 내는데, 식물의 종류와스트레스의 성격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또 사람 귀엔 안 들리지만 박쥐나 생쥐, 곤충 등은 이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다니 교수는 “이전 연구에서 식물에 부착된 진동계에 진동이 기록된다는 사실은 밝혀졌지만 이 진동이 공기 중 음파, 즉 녹음할 수 있는 소리가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며 “이 연구는 수년간 이어져 온 의문을 해결한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먼저 조용하고 고립돼 있어 배경 소음이 전혀 없는 지하실에 음향 박스를 설치하고 그 속에 토마토와 담배를 넣은 뒤 10㎝ 떨어진 곳에 20~250킬로헤르츠(㎑)의 고주파를 녹음할 수 있는 초음파 마이크를 설치했다.
연구팀은 음향 박스에 이들 식물을 넣기 전 일부에 5일간 물을 주지 않거나 줄기를 자르는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줘 온전한 식물과 차이를 비교했다.
그 결과 식물들은 40~80㎑의 고주파 소리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이 들을수 있는 최대 주파수는 약 16㎑다.
그 소리는 ‘딸깍’하는 클릭 소리나 비닐이 톡톡 터지는 포장용 에어캡(일명 ‘뽁뽁이’)이 터지는 소리와 유사하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소리를 내는 빈도는 스트레스가 심해질수록 많이 늘어났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식물은 시간당 평균 한 번 미만으로 소리를 냈지만 물을 주지 않거나 줄기를 자른 것은 시간당 30~50차례 소리를 냈다.
연구팀은 밀, 옥수수, 선인장, 광대나물 등도 같은 실험에서 소리는 내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연구팀은 이어 녹음된 소리를 자체 개발한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알고리즘에 학습시켜 식물들이 내는 소리가 식물 종류와 가해진 스트레스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토마토와 담배가 각각 물이 부족할 때 내는 소리가 다르고, 물이 부족할 때와 줄기가 잘렸을 때 내는 소리도 다르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또 이 알고리즘을 배경 소음이 많은 온실 속에 있는 식물들에 적용해 이들이 내는 소리를 확인하고 구분해내는 데도 성공했다.
식물이 소리를 내는 정확한 메커니즘은 불분명하지만 연구팀은 식물 관다발계(vascular system) 안에 기포가 형성됐다 터지는 ‘공동’(cavitation) 현상 때문에 소리가 나는 것으로 추정했다.
하다니 교수는 “식물이 다른 생물체와 소통을 하기 위해 소리를 내는 것인지는 명확지 않지만, 소리를 낸다는 것 자체가 생태학적, 진화적으로 큰 의미를 내포한다”며 “다른 동식물이 이 소리를 듣고 반응하도록 진화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다음에 풀 문제는 이 소리를 누가 듣는지를 밝히는 것이라며 박쥐나 설치류, 곤충들, 어쩌면 다른 식물들도 이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하다니 교수는 “목가적인 꽃밭은 우리가 듣지 못할 뿐 다소 시끄러운 곳일 수 있다”며 “식물 소리를 듣고 물을 줘야 할 때를 알려주는 센서 같은 적절한 도구만 있으면 사람들도 식물 소리 정보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가덕신공항 특별법 마지막 관문 넘었다
30일 국회 본회의서 개정안 의결
올 하반기 토지보상 착수 가능
2029년 개항 예정인 가덕신공항 조기 착공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마지막 문턱을 넘었다. 이에 따라 공항 건설을 위한 실무작업이 속도를 낼 전망이다.
가덕신공항 예정 부지 전경. 이원준 기자
국회는 30일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299명 중 195명이 투표해 찬성 178표, 반대 7표, 기권 10표로 ‘가덕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국민의힘 정동만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의원이 각각 발의한 ‘가덕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은 토지 보상을 신속하게 할 수 있도록 기본계획 수립이 완료되면 곧바로 토지나 건물 등을 수용 또는 사용할 수 있는 ‘사업 인정’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내용이다. 법안이 시행되면 하반기부터 당장 토지 보상에 착수할 수 있을 전망이다.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가덕신공항 조기착공을 위한 관련 법안은 지난 1월 국민의힘 이헌승 의원이 대표발의한 ‘가덕신공항 건설공단 법안’만 남았다. 이 법안은 ▷가덕신공항 건설공단 설립 ▷국가와 지자체 간의 상호 협력 책무 ▷기본계획 고시 후 공단이 공항건설에 관한 연구·기술개발 등의 사업 추진 ▷공단의 주된 사무소 소재지를 부산시로 명시 ▷공단의 비상임이사를 부산시장이 추천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송이 기자 songya@kookje.co.kr
2030부산엑스포와 도시의 미래상
부산 시내 곳곳에 2030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의 부산 유치를 지지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다음 달 부산 실사를 앞두고 지역에는 긴장감도 느껴진다. 부산을 위한 좋은 국제행사라는 생각을 넘어 박람회 유치는 지역을 근본적으로 혁신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부산시민, 특히 우리나라 국민에게 부산엑스포가 갖는 진정한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박람회가 부산에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는가’, ‘우리는 박람회 유치를 위해 무엇을 도시 미래상으로 제시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실제 주변의 시민들은 물론 필자가 접한 전문가들조차 박람회 유치와 도시 발전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는 듯했다.
부산엑스포에 대한 관심은 10여 년 전부터 시작됐다. 당시 부산시는 강서구 ‘맥도’를 개최 예정지로 내세우고 중앙정부에 유치계획서를 제출했다. 맥도 일대는 김해국제공항과 인접하고, 인근 에코델타시티 등의 대규모 개발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외곽 확산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과 주변 개발제한구역 해제를 노린 건설자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 아니냐는 시민사회의 비판도 함께 제기됐다.
2018년 국가사업화가 결정되었지만, 이듬해 강서구가 아닌 북항 재개발이 이루어지던 현재 동구 지역으로 박람회 유치 계획이 변경되었다. 이러한 변경은 오히려 박람회 유치의 정당성을 강화했다. 부산의 숙원인 쇠퇴해 가는 도심 재구조화와 부활을 함께 이룰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1800년대 중반 산업혁명 시기 선진국은 세계박람회 개최를 경쟁하듯 유치하며 자국의 도시 문명을 과시했다. 보통 세계 첫 박람회로 인정하는 1851년 런던박람회에서는 규격화된 주철 구조물과 유리만으로 만들어진 대형 건물인 ‘수정궁’ 등의 선진과학 건축물이 선보였다. 이에 뒤질세라 1889년 파리박람회에선 지금도 파리를 상징하는 에펠탑이 건설됐다.
1893년 시카고박람회는 도시계획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 당시 산업화가 한창이던 시카고에서는 열악해진 도시 환경을 개선하려는 열망이 매우 높았다. 이에 박람회 동안 건물 대부분을 유럽풍으로 건설하고 페인트도 하얗게 칠했다. 일명 백색 도시(White City)라고 불렸다. 극단적이긴 했지만 이런 도시 환경 개선에 대한 열망은 미국 도시계획사에서 유명한 ‘도시 미화 운동(City Beautiful Movement)’의 시발점이 됐다. 토지이용 계획 등 물리적 도시계획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고 미국 전역으로 퍼졌다. 시카고는 물론 다른 미국 대도시들의 현재 번영이 100년 전 시카고박람회의 영향이라는 주장이 여기서 나온다.
이후 100여 년간 세계박람회 개최를 통해 캐나다 몬트리올(1964), 일본 오사카 (1970) 등 많은 곳이 도시부흥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도시 부흥은 각국의 균형발전 성과로도 이어졌다.
금세기 들어 세계박람회는 미래 사회를 선도할 새로운 도시 미래상을 선보이고 있다. 2010년 중국 상하이박람회에서는 녹색도시(Green City)라는 주제가 제시됐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세계박람회에선 도시 미래상의 제시가 주된 주제였다.
그렇다면 부산엑스포가 제시하는 도시 미래상은 무엇인가. 2030부산세계박람회의 주제는 ‘세계의 대전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항해’다. 포괄적이며 미래 지향적인 면이 분명히 있지만 도시의 구체적인 미래상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1893년 시카고의 백색도시에서 2010년 상하이 녹색도시로 이어진 100여 년간의 도시 미래상 변화가 부산에서는 어떻게 제시될지 아직 불분명해 보인다.
부산의 강력한 경쟁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제시하는 도시 비전인 ‘네옴시티’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개최지인 리야드와는 직접 관련은 없어 보이지만, 1400조 원 규모의 도시개발 프로젝트는 그들이 처한 환경을 극복하고 혁신할 구체적인 도시의 미래상을 선보였다. 이 프로젝트는 척박한 사막 환경을 근본적으로 극복하고자 길이 170㎞, 높이 500m의 친환경 수직 도시를 건설한다는 내용이다. 실현 가능성을 떠나 인류의 미래 도시 프로젝트가 될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
부산엑스포도 인류의 미래를 위해 함께 고민해야 한다. 다만, 그 전제 조건이 있다. 부산의 혁신적인 도시 미래상은 부산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도 기여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사우디에 비해 우리의 강점은 역시 민주주의 시스템이다. 몇몇 지도자나 소수 엘리트만이 정하는 도시 미래상이 아니라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공유하는 미래상을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이 현재 우리가 가진 강력한 장점이다. 함께 힘을 모으고 부산과 대한민국, 그리고 인류의 미래를 준비할 시기다.
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
다른 나라들도 온실가스 감축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 실적 나눠줄까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으로 톺아보는 탄소중립 녹생성장 기본계획
향후 20년의 ‘기후위기 대응’ 방향을 결정할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이 이르면 오는 4월 중순 확정된다. 과학자들이 2030년까지 급격히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이 향후 수백, 수천 년을 좌우할 수 있다고 말할 만큼 기본계획은 현재·미래세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경향신문은 기후환경단체 플랜 1.5와 함께 정부가 지난 21일 발표한 기본계획 중 국제감축, CCUS 등 감축 수단을 꼭 써야 할지, 현실성은 있는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으로 따져보기로 했다.
① 온실가스 국제감축에 2030년까지 최대 12조원 예상, 여기에 써야 할까요?
② 다른 나라들도 온실가스 감축해야하는데, 우리나라에 실적 나눠줄까요?
③ 과학자들은 ‘감축’이 아니라는 CCU를 계획에 넣어도 될까요?
④ 영국도 1000만t 탄소포집 한다는데, 우리나라는 어려울까요?
⑤ 그래서, 대안이 뭔데?
환경운동가들이 기후위기를 촉발한 선진국들이 손실을 본 개발도상국에 보상할 것을 촉구하며 ‘지불’이라는 글자가 쓰인 손바닥을 펼쳐 보이고 있다. 샤름엘셰이크 | AP연합뉴스
정부 계획대로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온실가스 국제감축분으로 3750만t을 확보하려면 최대 12조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돈을 들이면 목표한 감축분을 다 살 수는 있는 것일까.
국제 사회는 기후 위기 앞에서도 냉정하다. 자국의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가 우선이다. 한국 정부가 나서도 국제 감축 실적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 플랜 1.5가 확보한 정부기관 보고서는 현 정부가 고려하는 국제감축 방식을 ‘매우 위험한’ 방법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 환경부는 온실가스 국제 감축 거래 규정을 수립하며 ‘자국의 NDC 목표 달성에 지장이 없어야 해외 이전이 가능하다’는 조건을 달았다. 앞서 2021년에는 배출권 발행을 잠정 중지하기도 했다.
권경락 플랜 1.5 활동가는 “국내 기업과 정부의 투자에도 인도네시아 미래 배출량에 따라 감축 실적 이전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라며 “인도 등 파리 협정 6조에 따른 국제 협력을 자국 NDC에 명시한 많은 국가와의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7)에 참여한 전 세계 환경·인권운동가들이 지난해 11월 12일(현지시간)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정부는 지난 3월21일 브리핑에서 “교토 체제에서 사업을 진행했던 온실가스 국제 감축량이 2000만t 이상인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온실가스 국제감축량을 교토의정서 체제였던 2013~2020년과 파리협약 체제인 그 이후로 구분한다.
원칙적으로 교토 체제에서 진행했던 온실가스 국제 감축분을 2030년 NDC에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독일, 영국, 프랑스 등 32개 국가는 2019년 교토체제에서의 감축 실적을 2030년 NDC에 사용하지 말자고 합의한 ‘산호세 원칙’에 가입했다. EU·스위스·일본도 2021년 제26차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COP26) 협상 과정에서 2021년 이전의 감축이 파리협정 체제에서 인정 받더라도 구매·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한국환경공단이 낸 ‘파리협정 하 국제 감축 실적 확보방식 마련 및 양자 협력 체계 구축 지원’ 보고서는 교토체제에서의 해외 투자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분을 NDC에 ‘국제감축’으로 활용할 때를 ‘매우 위험’하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국제 사회의 비난에 대응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활용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봤다.
교토체제에서 계약했던 해외감축이 2021년 이후 계속 발생할 수도 있다. 국제감축분은 국내 배출권거래제에서 기업이 사업장 밖에서 감축 활동을 한 것을 인정받는 제도인 ‘상쇄 배출권’으로도 활용된다. 상쇄 배출권의 한도는 전체 배출권의 5%다. 배출권 거래제에서의 연간 배출허용 총량을 최소에 가까운 5억t 정도로 가정한다면, 기업이 직접 상쇄배출권으로 사용할 감축 실적은 연간 2500만t 정도로 예상된다. 2021년에서 2030년까지 10년간 상쇄배출권 수요는 총 2억5000만t 정도 되는 셈이다.
2021년부터 2030년까지 국내, 해외에서 진행되는 교토체제 하에서의 국제감축 실적을 합친 감축량이 약 1억9240만t이다. 박지혜 플랜 1.5 변호사는 “정부는 계속 기존 사업으로 국제감축분을 어느 정도 확보했다고 주장하는데 현재까지 교토체제에서 확보한 물량은 2021년부터 2030년까지 1억9240만t에 불과해 기업의 상쇄배출권 수요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향 강한들 기자
난방비 폭탄? 화석연료의 진짜 가격을 묻는다
화석연료가 보낸 경고장 ①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의 폭탄이 우리에게도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난방비 폭탄'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한파가 한풀 꺾이자 가가호호 날아든 것은 폭등한 가스요금 고지서였다. 정치권은 연일 공방을 벌이며, 난방 에너지라는 필수재 가격 상승의 책임이 상대 정당에 있다며 악다구니를 쓰고 저마다 시민들의 부담완화를 위해 지원책을 공약하고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평가하면 난방비 급등의 책임은 거대 양당 모두에게 있고, 단기적 지원책으로 이를 해소할 수도 없다. 무의미한 정쟁이다. 실상 올해의 난방비 고지서는, 화석연료 에너지의 저렴한 공급을 무리하게 고수하던 우리 사회에 언젠가는 날아들 '진짜' 청구서였다. 말하자면 펑펑 쓴 채무가 만기된 것이고, 이제 이자까지 쳐서 갚아야 한다는 상환 통지서가 날아든 것이다.
난방비 상승의 원인
좁게 보면 작금의 난방비 상승의 직접적 원인은 러-우 전쟁으로 촉발된 국제 가스 가격의 상승이다. 22년 상반기, 러시아로부터 가스 공급이 44%가량 감소한 유럽이 역외 수입을 늘리면서 유럽 내 수급 문제는 일시적으로 안정화되었지만, 가격 불안정은 지속되었다. 21년 1월 1일 $6.8 MMBtu(Million Metric British thermal unit. 천연가스 거래 시 주로 사용하는 열량 단위)였던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22년 8월 26일 기준 $99 MMBtu까지 뛴다. 아시아 지역 역시 이러한 동향에 영향을 받아, 21년 1월 1일 $14.3 MMBtu였던 천연가스 가격이 22년 8월 29일에는 $70 MMBtu 수준으로 올랐다.
우리도 이 영향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국가에너지통계종합정보시스템의 가격정보에 따르면, 2021년 8월 액화 천연가스 수입단가는 톤당 535달러였던 데 반해 2022년 수입단가는 톤당 1470달러였다. 이러한 국제 가스 가격의 급등은 가스공사의 재정 건전성을 먼저 위협했다. 2021년 1조7656억이던 가스공사의 미수금은 22년 6월 5조4011억까지 치솟았다. 22년 12월 기준으로 약 9조 원의 미수금이 누적된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전력의 적자가 30조 원 수준이니 국내 에너지 공기업들은 사실상 파산 수준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가스공사의 미수금 누적이나 한국전력의 적자 심화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구조적으로는 국제 에너지 가격을 원가에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는 우리의 시스템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우선, 도시가스의 경우 전기 원료비 연동제에 따라 가스공사가 국제 에너지 가격과 환율 등을 고려해 요금 조정안을 정부에 제출한다. 정부는 이를 심의하는데,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이를 유보하거나 조정할 수 있다. 즉, 물가 안정 등을 이유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상승해도 가스요금은 인상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생활 필수재인 에너지에 매겨지는 공공요금의 가격 조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특수한 경우, 공기업이 필수재를 원가 이하로 제공하는 것도 불가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원가 이하로 가스를 공급하는 것을 가스공사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는 데 있다. 상술했듯 미수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가스공사의 사채 발행도 법적 한도에 이르러 더는 불가능하다. 그러니 정치권의 논의는 자연스레 가스공사의 사채 발행 한도를 늘려주는 법률 개정을 하거나, 전력산업기반기금 등의 예산을 털어 가스공사의 부채를 탕감해주자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러나 가스공사에 대한 단기적 구제책으로 본질적 문제가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그것은 가스공사보다 먼저 재무적 한계에 봉착해 있던 한국전력(누적적자 30조 원)의 사례를 보도한 기사를 참고하면 더 명약관화해진다.(☞ 관련 기사 : <동아일보> 2022년 11월 12일 자 '한전, 9월까지 21조8000억 적자… 올해 누적 30조 될 듯')
외형상 한국전력은 전기를 판매하는 회사고, 전력 생산은 발전공기업이 맡고 있다. 하지만 실상 발전공기업이 모두 한전의 자회사인데다 전력 시장 구조상, 한전이 발전소로부터 전기를 구매할 때는 발전사들의 이윤을 보장해주게 되어있는 반면 한전이 소비자들에게 전기를 팔 때는 이윤 보장이 되지 않는다. 전기요금 역시 한전이 초안을 산정하여 산업부로부터 요금 조정 인가를 받게 된다. 그런데 전기요금의 경우 연료비 연동제 도입이 가스요금보다 늦었던 데다가 역대 정부가 번번이 요금 인상을 반대하면서 영업 적자와 부채가 불어왔다. 난방용 천연가스나 전기나 공공요금 인상을 저어하는 역대 정부의 정치적 입장 탓에 원가 반영이 난망한 것이다.
그럼 한전도, 가스공사도 사채 한도를 늘려줌으로써 공기업 부채비율을 늘리는 것으로 문제가 해소될까? 그 늘어난 부채는 향후에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투여해서? 전력산업기반기금 자체가 전기요금에서 3.7%의 비율만큼을 걷은 세금이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격이다.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는 현재도 매년 200억 원 이상 석탄공사 같은 부실공기업의 재무 상태 악화를 완화하기 위해 출자금을 사용하고 있다. 국민들이 직접 요금으로 내지 않을 뿐이지 결국 세금이 공기업 부담을 완화에 사용된다는 점에서 건전한 재정구조가 아니다.
▲난방비 폭탄을 맞은 각 가정들이 실내 난방온도를 낮추고 겨울을 보내고 있다. ⓒ함께사는길
화석연료에 목매는 한국의 에너지 소비
그러나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에너지요금 산정 구조나 공기업 운영 방식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바로 화석연료 의존성이 과도하게 높은 에너지 소비 현황이다. 우선 에너지요금 산정에 있어서 원가를 반영하는 일보다 더뎠던 것이 환경 비용을 책정하는 일이었다. 2022년에서야 전기요금에 기후환경요금이 책정되긴 했지만 'RPS비용 단가, ETS비용 단가, 석탄발전 감축비용 단가'가 그 산정 기준이었다. 환경 정책에 수반되는 비용이 전기요금 고지서에 '기후환경요금'으로 표시되기 시작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환경 비용이란 화석연료 및 핵에너지 의존성이 높은 에너지 시스템으로 인해 기후·생태계에 발생하는 악영향이 계산된, 말 그대로의 환경적 '비용'에 상응하는 값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에너지비용은 지나치게 싸게 책정되어왔다.
2020년 '에너지총조사보고서'의 통계로 볼 때, 한국의 최종에너지 소비는 석유(51.5%), 전력(20.6%), 석탄(13.2%), 천연가스(11.4%) 순으로 화석연료 비중이 압도적이다. 최종에너지 소비의 20%를 차지하는 전력마저도 석탄과 천연가스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비중이 60%가 넘는다.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에 직격탄을 맞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이다. 난방비나 전기요금만이 아니다. 러-우 전쟁 개전 직후 유류비도 경유와 휘발유 모두 리터당 2000원대로 치솟았다. 산업·수송·건물까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이 화석연료에 저당 잡혀 있는 것이다.
더욱이 화석연료의 국제 가격은 향후에도 안정화되기 어렵다. 생산국에서 발생하는 전쟁 등의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도 기후위기 시대에 화석연료 가격은 끊임없이 인상될 일만 남았다. 유럽에서는 22년 12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도입되었고, 주요국에서 모두 탄소세 도입이 진행되었거나 준비되고 있다. 탄소 배출량에 대한 이러한 정책적 제재는 화석연료 가격의 필연적 인상을 부른다.
지난 5년간의 동향을 보면, 석탄의 선물 시세는 20년 4월 28일 $40 Short ton으로 최저였다가 22년 3월 8일 $458까지 치솟았다. 원유 역시 브렌트유 기준으로 20년 4월 21일 $19 bbl이었던 것이 22년 3월 8일 $127를 기록(에너지경제연구원 '세계에너지 시장 인사이트' 참조)했다. 물론 전쟁의 여파가 가격 변동의 가장 결정적 요인이었고 단기적으로 다시 하락 추세에 있지만 전망은 어둡다. 이미 발전단가를 기준으로 미국, 영국, 독일 등 주요 국가에서 화석연료보다 재생에너지가 값싸지는 '그리드 패러티Grid parity'가 현실화했다. 국제적 투자운용사 등 금융계도 석탄 산업 투자 제한을 시작으로 화석연료 산업으로부터 단계적으로 철수할 모양새다. 요컨대 화석연료로부터 얻은 에너지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지금의 체제를 유지한다면, 에너지 요금은 불가항력으로 계속 상승하게 될 것이고 올겨울과 같은 '에너지 요금 폭탄' 논란이 반복될 것이다. 그때마다 시민들에게 수조 원 규모의 지원금을 푸는 방식이 지속가능할 수 없다.
해답은 하나뿐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원료 가격의 변동으로부터도 자유롭고, 환경적 리스크도 적은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는 것이다. 물론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에너지전환을 하더라도 중단기적으로 에너지요금의 합리화를 통한 에너지 공공성 강화는 필수불가결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부수적인 제도 시정에 가깝다.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시설과 시민이 늘어나는 만큼 화석연료가 발생시키는 백해무익한 비용 리스크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또 하나는 에너지 효율화와 수요관리다. 가정용 에너지의 약 40%가 냉난방에 사용되는데, 경제적 하위 계층이 이때 발생하는 에너지비용의 타격을 가장 심하게 받는다. 그 이유는 하위 계층이 높은 에너지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적은 탓인 것에 더해, 그들 주거 시설의 열효율이 낮기 때문이다. 단열이 안 돼 '밑 빠진 독 물 붓기'식의 냉난방 에너지 사용을 할 수밖에 없고 실제 누린 온기보다 비싼 비용을 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에너지 복지 차원의 지원책 마련과 별개로, 건물 에너지 효율 개선을 위한 예산을 추가 편성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기후정의 관점에서 주거 질 개선과 같은 복지 정책과 연계해 건물 에너지 효율화 제도를 '리디자인'해야 한다.
우리는 아주 뒤늦게 화석연료의 진짜 가격을 확인했다. 이제 이 난방비 고지서를 손에 쥐고 날림 대책이 아닌 본질적 시스템 정비를 시작해야 할 때다.
권우현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장[함께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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