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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2023.1.1.~31 새해엔 알아서 버티셔야 합니다”

by 이성근 2023. 2. 1.

호랑이 권력에 맞서는 토끼의 민중적 슬기 대학지성2023.01.01.

눈 떠보니 후진국 3공정위의 가당찮은 노조 때려잡기한겨레 :2023-01-01

누가 밥 잘해주는 엄마를 투사로 만드는가 한겨레 :2023-01-02

각자도생? 공존이 생존이다 주간경향 2023.1.2.

새해에는, 그러지 않았으면 경향 2023.1.2.

희망이 있다면 경향 2023.1.2.

촛불 부정한 대통령국민의 '헤어질 결심' 민들레 2023 1.2

돼지머리와 무정차 경향 : 2023.01.03.

거꾸로 가는 한국의 공공교통정책 경향 : 2023.01.03.

모두를 위한 무임승차 경향 : 2023.01.03.

서울은 지금 탄소시간으로 2047년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경향 : 2023.01.03.

연평도 보온병의 추억과 윤 대통령의 무지 한겨레 : 2023.01.03.

윤석열, 대통령 왜 됐는지 이제 의문이 풀렸다 한겨레 : 2023.01.04.

대통령이 외롭기를 바란다 경향 : 2023.01.05.

윤 대통령은 약자복지말할 자격 없다 경향 : 2023.01.05.

노동과 자유, 그 아름다움과 무서움 한겨레 : 2023.01.05.

핵 공유에 집착하는 군사적 망상 한겨레 : 2023.01.05.

검사라는 공직 경향 : 2023.01.06.

여러분, 새해엔 알아서 버티셔야 합니다경향 : 2023.01.06.

주권 없는 주권자들을 위하여 한겨레 : 2023.01.07.

강성 노조가 버티는 나라에 테슬라가 공장 지을까 조선 : 2023.01.07.

뉴 노멀'시대, 지역과 사람의 공동체 '올드 노멀' 가치 계승해야 하는 이유이병민 건국대학교 교수 | 프레시안 2023.01.07

누가 추경호 부총리를 경제사령탑이라 할까 한겨레 : 2023.01.08.

한국 건강검진 미디어오늘 : 2023.01.09.

김만배의 기자 돈 거래, 지역언론은 다른가 프레시안 2023.01.10.

의리 저버린 검찰, 배신당한 언론, '배신의 계절'인가 프레시안 2023.01.10.

민심 1유승민과 당심 1나경원의 선택 경향 2023.01.10.

 

한국 집값은 더 떨어지는 게 정상이다 경향 2023.01.11.

반성과 성찰이 없으면 퇴행이 온다 김진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 2023.01.12.

연준에 종속된 반쪽짜리 세계 참세상 2023.01.12

마지막 당부: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한겨레 2023.01.13.

윤석열표 에너지 정책, ‘세마리 토끼다 놓친다 한겨레 2023.01.13.

정부 종전선언이 문제? 윤 대통령 번지수 잘못 짚었다 프레시안 2023.01.13.

신자유주의의 끝물 경향 2023.01.13.

선거제도 개편의 목적 경향 2023.01.13.

주주자본주의 과잉의 어떤 나라 경향 2023.01.13.

과속을 부추기는 사회 경향 2023.01.14.

알고리즘이 권하는 세상, 정치 양극화에 빠지다 한겨레 2023.01.15.

나경원의 '중꺾마', '잔혹복수극'에 쓰러지면 안 된다 프레시안 2023.01.16.

윤 대통령의 독선·독단·독주 정치 한겨레 2023.01.17.

자본주의 지배동맹 VS 민중 참세상 2023.01.17

공안 본색대통령과 동강 난 설 경향 2023.01.18.

당당하고도 끈질긴 인간의 악 경향 2023.01.18.

기대는 증오를 부른다 경향 2023.01.18.

부족장들의 놀이터로 전락한 공론장 매일노동뉴스 2023.01.18

사람됨을 잃은 통치 경향 2023.01.19.

사진 플레이뉴스클레임 2023.01.19.

어떤 속도에 맞춰 살아가야 할까 매일노동뉴스 2023.01.19.

악은 가난이 아니라 불평등에서 나온다 민들레 2023.01.19.

 

윤석열 정부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다 한겨레 2023.01.21.

사회적 연대가 약해져 간다 주간경향 2023.01.30.

처벌만 있고 책임이 사라진 사회 한겨레 2023.01.24.

밥그릇을 지키는 현명한 방법 한겨레 2023.01.24.

윤 대통령, 성급한 방일·방미 꿈 깨야하는 이유 한겨레 2023.01.24.

뉴스공장' 퇴출의 방조자들강준만과 유창선은 왜 틀렸나 민들레 2023.01.25.

대통령의 주적, 국민의 주적 경향 2023.01.25.

대통령과 영업사원 사이 경향 2023.01.25.

공포에서 벗어나기 경향 2023.01.25.

4·3 유복자, 반세기 만에 입 열다 경향 2023.01.25.

힙합은 죽었다 한겨레 2023.01.25.

민주노총의 쓸모 경향 2023.01.26.

기막힌 윤 정부의 교육개혁, ‘담대한 시장화 구상경향 2023.01.26

스스로 빈곤 속에 있으나 빈곤을 혐오하는 시대 프레시안 2023.01.26.

UAE 주적 이란' 논란 덮은 순방 성과 보도 [PD저널 2023.01.26.

방해받지 않는 '자기만의 방’ PD저널 2023.01.26.

풀무질 문 닫았다는 ㅁ일보 논설위원님께 한겨레 2023.01.27.

김건희는 치외법권인가 한겨레 2023.01.27.

어른 김장하가 있어 우린 우리가 되었다 경향 2023.01.28

윤 대통령 극우 질주는 중도층에 대한 배신이다 경향 :2023-01-29

민주당은 이재명 로펌말고도 할 일이 많다 경향 :2023-01-30

난방비 문제와 에너지 대수선 경향 :2023-01-30

부끄러운 문필 공화국 경향 :2023-01-30

집계되지 않는 사람들 한겨레 :2023-01-30

한반도 평화와 대통령의 리더십 한겨레 :2023-01-30

나경원 나오고 또 나오고 공해 수준으로 전락한 정치 뉴스 미디어오늘 1386호 사설

영업사원 윤석열의 글로벌 무지미디어오늘 2023.01.30미디어오늘 2023.01.30

횡재세 경향 2023.01.31.

검찰, ‘아닌 수사를 한겨레 2023.01.31.

러시아 난민들을 환영해야 하는 이유 한겨레 2023.01.31.

 

호랑이 권력에 맞서는 토끼의 민중적 슬기

올해는 공교롭게도 계묘년 토끼띠 해이다. 토끼해가 공교롭다고 하는 것은 토끼의 민중성 때문이다. 지난해 임인년이 백수의 왕 호랑이해라면, 올해 계묘년은 호랑이 권력에 핍박 받으며 수난을 겪는 백성 상징의 토끼해이다. 따라서 계묘년 새해에는 토끼해답게 권력의 횡포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민중운동이 한층 드셀 조짐이다. 왜냐하면 토끼는 호랑이의 일방적 횡포에 순순히 당하지 않고 슬기로 반격을 가해 기존 상황을 역전시키는 능력을 지닌 까닭이다.

 

호랑이해 다음에 으레 토끼해가 짝을 이루며 이어지는 것처럼, 한국 설화나 우화에서도 토끼는 으레 호랑이와 짝을 이루어 출현한다. 토끼와 호랑이는 늘 짝을 이루되, 상생의 짝이 아니라 상극의 짝을 이룬다. 호랑이는 백수의 왕으로서 군주를 상징하는 반면, 토끼는 힘없는 백성을 상징하는 까닭이다. 절대 군주로서 왕의 속성을 지닌 호랑이는 토끼를 보기만 하면 으레 잡아먹으려들기 일쑤이다. 그럼에도 토끼는 결코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지 않는다. 오히려 슬기로 반격하여 호랑이를 죽음의 수렁에 빠뜨린다. 그러므로 호랑이와 토끼의 상하 강약 관계가 뒤집어져서 토끼는 해방되고 호랑이는 곤경에 처하는 반전이 일어난다.

 

토끼가 호랑이의 폭력에서 벗어나는 것은 민중이 왕권의 횡포에서 해방되는 일이나 다르지 않다. 과연 그런 반전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의문이다. 힘으로 맞서서는 결코 왕권을 이길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슬기를 발휘하면 얼마든지 왕권을 무력하게 만들고 민중적 승리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토끼와 호랑이 이야기의 속뜻이다.

 

권력에 맞서는 약자의 슬기는 권력의 욕망을 역이용하는 데서 발휘된다. 권력은 으레 두 가지 욕망을 추구한다. 하나는 권력욕이고 둘은 물욕이다. 실제로 호랑이는 백수의 왕이면서도 더 큰 권력을 숭배한다. 토끼는 그러한 점을 역이용하여 스스로 호랑이보다 더 큰 권력을 자처한다. 호랑이가 의심하자 토끼는 자기 뒤를 따라와 보라고 한다. 호랑이가 토끼 뒤를 따라가자 토끼 앞을 지나던 뭇 짐승들이 두려워서 벌벌 떨고 도망친다. 사실은 토끼 뒤의 호랑이를 보고 도망친 것인데, 호랑이는 토끼의 권력이 더 무서워서 그러는 줄 알고 토끼 몰래 도망치고 만다. 토끼는 권력의 속성을 끌어들여 무지한 호랑이 권력의 횡포를 물리친 것이다.

 

호랑이는 권력욕과 함께 물욕에도 눈이 어둡다. 먹을 것을 앞에 두고도 더 많은 먹을 것을 탐닉하다가 기어코 함정에 빠지게 된다. 토끼는 호랑이의 욕심을 잘 아는 까닭에 자기가 잡아먹힐 위험에 빠지면 으레 더 많은 먹을 것을 제시하여 호랑이의 욕심을 부추긴다. 물고기를 많이 낚아주겠다며 얼음 구멍에 호랑이 꼬리를 담그게 하거나, 참새를 많이 잡아먹도록 해주겠다며 눈을 감은 채 입을 벌리고 기다리게 한 다음 불을 질러서 호랑이를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는다. 토끼를 잡아먹으려다가 더 큰 욕심 탓에 죽을 고비에 이르는 것이 호랑이다.

 

왕과 백성, 권력과 민중의 상하 종속관계가 뒤집어지는 반전 상황은 현실 권력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대통령 임기를 부당하게 연장하여 장기집권하던 독재자는 이승만처럼 쫓겨나거나 박정희처럼 피살되기 마련이다. 군사력으로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과 노태우도 군사반란죄로 징역형을 살았다. 권력의 힘으로 사적 이익을 챙기던 박근혜는 민중들의 촛불시위로 탄핵 당했고 이명박도 구속 수감되었다. 모두 지나친 권력욕과 물욕이 불러일으킨 죄과로서 사필귀정이라 할만하다. 최고 권력자에서 범죄자로 전락한 반전 상황의 배후에는 독재권력과 비리권력에 저항한 학생운동과 시민운동이 있었다.

 

윤석열 정부의 현실 권력에 대한 문제도 심각하다. 문제는 집권하면서 서서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출발부터 심각한 문제로 드러났다. 집권 초부터 두 가지 문제가 불거졌다. 하나는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이고, 둘은 검찰 출신으로 주요 인사를 도배한 사실이다. 대통령 당선자가 정부 수립 이래 대통령 집무공간이었던 청와대를 거부하고 임의로 집무실을 옮긴 일은 처음이다. 관저도 마찬가지이다. 그럼 다음 대통령도 제멋대로 대통령실과 관저를 옮길 수 있다는 말이다. 결국 5년마다 대통령의 뜻에 따라 집무실과 관저를 일방적으로 옮긴다면, 재정 지출과 국력 손실, 국정 혼란이 엄청날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 몫이다.

 

다음은 인사 문제이다. 군사쿠테타로 집권한 박정희와 전두환이 군부출신을 중용한 것처럼, 윤석열 정부는 검찰출신을 대거 중용했다. 법조계뿐만 아니라 경제와 행정, 정보 관련 기관에도 검찰을 집중 배치한 까닭에 검찰독재라는 말이 공공연하다. 군부독재의 잔재를 박근혜 탄핵으로 끝을 내는가 했는데, 새삼스레 검찰독재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이 조성되었다.

 

검찰독재는 단순히 검찰이 정부 요직을 독점했다는 사실에 한정되지 않는다. 검찰인사 독점이 결국 문재인과 이재명 관련 수사를 과도하게 함으로써 보복 수사로 비춰지는 반면, 윤대통령 가족들의 범죄에 관해서는 덮어버린 채 넘어가는 불공정 행태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장모 최은순씨의 범죄는 물론, 부인 김건희씨의 허위이력서, 주가조작, 논문표절 등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엄청난 사건들에 대해서는 아예 수사조차 하지 않거나 혐의 없음으로 종결하고 있다. 나의 죄는 덮어버리는 반면 정적의 죄는 과도하게 파헤치는 것이 검찰독재의 진상이다.

 

최고 권력을 잡고도 검찰권력으로 철옹성을 쌓는 한편, 전정부와 야당, 노조를 적으로 간주하여 공격적 수사를 하는 것은 권력욕 과잉이다. 권력욕에 이어 사적 관계에 있는 인물을 요직에 채용하고, 대통령실과 관저 공사를 맡도록 하여 이권을 챙기도록 하는 것은 물욕 과잉이다. 김건희씨가 목에 걸고 손목에 찬 값진 보석들이 대통령실 말대로 지인에게 빌린 것이라면, 이 또한 지나친 물욕 과잉이다. 지나친 권력욕은 독재로 이어지고 물욕의 탐닉은 부정부패를 낳기 마련이다.

 

조문 없는 조문외교와 이** 욕설 논란으로 빚은 외교 참사 등은 논란거리로 머물다 사라질 문제이다. 그러나 사실 보도를 한 MBC를 취재에서 배제하는 행위는 언론 탄압으로 두고두고 문제될 것이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사전 대응 소홀과 사후 처리의 무책임에 대해서도 쉽사리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부의 존재 이유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한 책임에 대해서는 유족과 함께, 뜻을 같이하는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며 책임자 처벌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재벌기업의 법인세 감세를 서두르는 반면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예산을 축소한다든가, 기업주와 사용자 편에 서서 강경한 노조 탄압을 자행하는 등으로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한층 심화될 조짐이다. 정치는 원래 백성들을 잘 다스리는 일이다. ‘다스리다의 고어 다ᄉᆞ리다’, ‘다ᄉᆞᆯ리다의 어원은 다 살리다이다. 다 살리는 정치를 하려면 못 사는 사람을 잘 살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잘 사는 사람은 더 잘 살게, 못 사는 사람은 더 못 살게 하는 최악의 정치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경인년에 벌어진 호랑이 권력의 폭주에 대하여 계묘년과 함께 출현하는 토끼의 민중적 슬기는 사태를 반전시키는 역습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교수사회도 슬기를 발휘하여 권력의 횡포로 일그러진 학문세계를 바로잡아야 마땅한 한 해가 될 것이다. 지난해는 권력의 위세에 눌려 상습적인 가짜이력서로 대학 강단에 선 강사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명백한 박사학위논문 표절에 대해서도 속수무책이었다. 표절 사실을 다각적으로 검증하여 밝히는 데까지 나아갔으나 학위논문을 취소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뜻있는 교수들이 권력에 정면으로 맞서서 표절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혔으나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교수집단이 가장 무력했던 한 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권력이 워낙 뻔뻔스러운 것은 물론, 대학이 권력의 시녀 노릇을 자처한 데다가 교육부까지 표절논문을 옹호하는 데 맞장구를 친 까닭이다.

 

지금은 마치 학위논문 표절이 없었던 일처럼 잊혀져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맞서려면 역설적 논리로 표절 사실을 일깨우도록 민중적 슬기를 발휘해야 한다. 박사학위의 명예를 끌어와 사실상 그 명예를 무색하게 만들고 오히려 박사학위에 숨겨진 허위를 드러나게 하는 방법이다. 그런 방법 가운데 하나가 여사를 드높여 박사로 호명함으로써 가짜박사를 부각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영부인 김여사가 아니라 영부인 김박사로 꼬박꼬박 호명할 필요가 있다.

 

김박사로 일컬을 때마다 김건희씨는 표절논문으로 학위를 취득한 가짜박사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도록 하는 것이다. 표절 논란이 극심한데도 침묵으로 일관한 영부인 김박사는 최소한의 염치조차 없는 까닭에 이 호명 또한 뻔뻔하게 묵살할 테지만, ‘영부인 김박사호명을 듣는 국민들은 그녀가 사실상 가짜박사라는 사실을 새삼 알아차리게 마련이다. ‘박사라는 명예로운 호명이 실제로는 불명예를 입증하는 호명으로 역설적 기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토끼다운 슬기이다.

 

역법으로 보면, 토끼가 상징하는 묘시 또는 묘월은 한결같이 시작의 시간 또는 새로운 전환의 시기를 나타낸다. 묘시는 오전 5시와 6시로 하루 일과의 시작을 나타내는 시간이고, 묘월은 음력 2월로서 새봄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묘시는 어둠을 물리치고 여명의 아침을 맞이하는 시기이며, 묘월은 죽음의 겨울을 이기고 새싹이 움트는 생동의 계절이다. 역법으로서 계묘년 또한 이전 시기의 어둠과 죽음을 극복하고 광명과 생명의 환희를 맞이하는 전환의 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전환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민중과 더불어 역사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굴리는 일에 대학의 지성들이 힘을 보태야 한다.

 

토끼는 정치적 권력의 약자이면서 민중적 슬기의 강자이다. 횡포를 부리는 호랑이 권력을 슬기로 전복시키는 것이 토끼의 탁월한 역량이다. 인류의 역사는 정치권력의 횡포를 극복하고 민중적 슬기를 발휘하는 방향으로 나아왔다. 이것이 역사적 흐름의 실상이자 역사발전의 방향이다. 따라서 지성인들은 당연히 권력과 금력에 의도적으로 불화하는 것은 물론, 권력과 금력에 소외된 민중과 적극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그럼에도 교수들 가운데는 아직도 학문을 권력에 봉사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사익을 추구하는 데 골몰하는 어용들이 적지 않다. 구체적으로 표절논문을 지도하고 심사하여 학위논문으로 통과시킨 교수들은 어용을 넘어서 표절에 협력한 공범자들이다. 교수사회는 이들부터 단죄하여 대학사회에서 추방해야 마땅하다.

 

교수사회가 사익추구에 매몰되어 공동체의 성숙과 역사발전을 거스른다면 지성인 이전에 예사 시민으로서도 부끄러운 일이다. 계묘년에는 교수사회가 깊이 성찰하고 크게 각성하여 역사적 진보의 이치에 맞게 민중적 슬기를 과감하게 발휘하는 특단의 노력이 기대되는 시기이다. 왜냐하면 지난해에는 권력에 의해 교수사회의 학문적 정당성이 왜곡되고 학위논문의 위상이 만신창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중적 슬기를 역동적으로 발휘하여 정치권력이 제멋대로 날뛰는 것을 막지 못하면 교수사회의 지성은 더 이상 설자리를 잃게 된다. 슬기를 잃은 지성인은 사실상 우매한 집단이나 다르지 않다. 계묘년 새해에는 교수사회의 집단지성이 호랑이 권력을 타도하는 토끼의 지혜처럼 더욱 변혁적으로 빛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임재해(林在海) 안동대 명예교수·민속학 : 대학지성2023.01.01

 

 

눈 떠보니 후진국 3공정위의 가당찮은 노조 때려잡기

공정거래위원회는 흔히 경제 검찰로 불린다. 1980년 제정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에 따라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과 불공정 행위를 막기 위해 설립된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공정위가 하는 일을 보면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대기업보다는 화물연대나 건설노조 등 노조 때려잡기에 혈안이 돼 있는 듯하다.

 

공정위가 노동조합 활동을 공정거래법으로 제재한다는 얘기는 기자 생활 30년 하면서 이번에 처음 들었다. 실제로 화물연대가 2002년 설립된 이후 20년간 파업을 했지만 공정위가 강제 조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정위는 파업이 끝났는데도 조사를 계속하는 집요함을 보이고 있다. 대기업의 부당한 담합을 막는 게 주목적인 공정거래법을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노동자들의 파업에 적용한다는 건 정말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상 사업자단체를 규제할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드는데, 대부분 지입제로 일하는 화물기사들은 명의만 사업자이지 실상은 특수고용노동자(특고). 화주인 기업이 운임을 비롯한 근로조건을 사실상 결정하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노동법상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고자 각종 특고를 양산해놓고 인제 와서는 이들도 사업자이니 공정거래법으로 규율하겠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근대 반독점법의 효시는 1890년 제정된 미국의 셔먼법이다. 당시 석유·철도·철강업 등에서 독점의 폐해가 만연하자 만들어졌는데, 이때는 노조 파업도 기업의 담합과 성격이 유사한 것으로 봤다. 이후 이 조항이 노조 탄압용으로 악용되자 1914년 클레이턴법을 제정해 이를 수정했다. 이 법은 인간의 노동은 상품이나 상업적 거래의 품목이 아니다라며 노조 활동을 반독점법 규제 대상에서 제외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공정위는 미국 기준으로는 1세기, 한국 기준으로도 40년을 거슬러 반독점법을 노조에 적용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노조가 활동 과정에서 불법 행위가 있다면 다른 법률로 처벌하면 될 일인데 굳이 공정거래법까지 동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그것도 법을 좀 안다는 이들이 권부 핵심을 장악한 현 정권이 이런 일을 벌이는 게 더 고약하다.

 

이런 행태는 윤석열 대통령의 왜곡된 노동관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화물연대의 파업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노조 부패척결을 위해 노조 재정을 들여다보겠다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노조의 생명인 자주성은 헌법도 보장하고 있는데 이를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게다가 이를 상장회사들처럼 일반에 공시까지 하겠다고 한다. 불특정 다수를 주주로 삼는 상장회사와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노조는 애초에 같은 반열에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윤 대통령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대해 소수의 귀족노조가 노동 약자들을 착취하고 약탈하는 노노간 착취 구조때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대단히 잘못된 인식이다. 어떻게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고 월 300~400만원 버는 화물노동자들로 구성된 화물연대가 귀족노조인가.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근본적으로 대기업들이 외환위기 이후 비용 절감과 이익 극대화를 위해 하청에 재하청을 주면서 비정규직을 양산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현실 인식이 잘못돼 있는데 올바른 처방이 나올 턱이 없다. 최근 행태는 1980년대 군사정권의 강압적 태도를 연상케 한다. 당시 군사정권은 전투경찰과 백골단(사복 체포조)을 동원해 파업을 강제 진압했다. 현재 검찰정권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법 형식논리를 내세워 옭아맨다는 점에서만 다를 뿐 비타협적으로 제압하려는 태세는 유사하다.

 

윤 대통령이 외치는 자유가 우리 사회에서 시대적 의미를 가지려면 재벌-관료 유착을 구심점으로 한 기득권 카르텔 구조를 깨뜨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예컨대 지금 노조 제압에 나서고 있는 공정위 관료들만 해도 퇴직 뒤에는 대기업이나 로펌에 재취업해 수억원대의 연봉을 받는 게 관행처럼 돼 있다. 이는 공정위가 전속고발권 등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공정위는 남소 우려를 제기하며 전속고발권 폐지에 반대하는데, 진짜 속내는 자신들의 권한이 약화될 수 있어서다. 또한 주요국에서 도입돼 소비자 권익 증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집단소송제의 확대 논의도 대기업 로비와 관료들의 소극적 태도로 10년 넘게 공전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산업 분야뿐만 아니라 금융업 등에서도 만연해 있는 게 2020년대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대기업과 대형 금융회사의 로비와 관료들의 부당한 지대 추구 행위를 없애는 것이야말로 자유시장경제를 꽃피우게 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기득권 유지와 지대 추구에 매몰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지당한 말씀이다. 그런데 개혁의 주 대상은 재벌·관료를 중심으로 한 특권층이어야 한다. 자본주의 역사가 긴 주요국들은 19세기 말~20세기 초중반 자유주의 개혁 과정에서 특권층의 지대 추구 행위들이 많이 걸러졌지만, 고속성장한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했다. 다시 말하건대, 지금 속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가 필요한 이들은 재벌·관료·부유층이 아니라 바로 민초들이다. 새해에는 윤 대통령이 현실을 직시하길 바란다.

박현 | 논설위원 한겨레 :2023-01-01

 

21세기 가장 극렬한 존재투쟁

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시장에 가면 무릎 높이의 좌판을 밀면서 수세미와 나프탈렌 같은 것을 팔던 사람들이 있었다. 바퀴가 달린 넓은 판자를 배 아래에 깔고 사람들의 발밑을 천천히 기어 다녔던 그들을 어른들은 불구자라고 불렀다. 장을 보다 그들을 만나면 엄마는 수건돌리기 게임의 술래처럼 조금 딴청을 피우는 듯한 얼굴로 슬며시 그 옆으로 다가가 돈 통에 1000원짜리 지폐를 넣고는 빠르게 지나갔다. 물건은 사지 않았다. 그들도 분명 뭔가를 팔고 있었으나 사람들은 그걸 구걸이라고 불렀다. 2022년은 놀라운 해였다.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인권운동가들이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각인된 그 비천한 자들의 모습으로 연일 뉴스를 장식한 것이다. 세상은 그들을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라고 불렀다.

 

202112월 이동권, 교육권, 탈시설 등 장애인의 권리를 요구하며 시작된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시위는 꽃 피는 3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선량한 시민을 볼모로 잡는 비문명적 시위라며 공격을 개시하자, 대포 같은 카메라들이 박경석 전장연 대표를 향한 것이다. 대중의 비난과 혐오가 들끓어오르자 지지와 연대의 열기도 함께 끌어올려졌고 급기야 이준석과 박경석의 1:1 티브이(TV)토론까지 이어졌다. 온 세상이 전장연, 전장연하면서 문명이란 무엇인가를 논하고 장애인의 권리와 지하철시위의 옳고 그름을 논쟁하는 아름답고 토할 것 같은 4월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420일 온 국민의 시선이 아침 8시 지하철에 집중되었을 때, 박경석을 필두로 전장연의 장애인 활동가들은 멀쩡한 휠체어에서 내려와 바닥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얼마나 강한지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약한지를 보여주는 난감하고 충격적인 시위였다.

 

장애인들이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커다란 틈을 가까스로 통과하는 동안 열차의 통제실에서는 수십년째 이 열차가 장애인을 태우지 않았음을 알리는 대신 장애인들 때문에 열차가 운행되지 못하고 있음을 알렸다. 이곳은 비장애인 중심 세상의 핵심 시간이자 핵심 공간. 모두가 이 초대받지 못한 자들을 내려다본다. 열차 문이 닫히면 이 시공간에서 완벽하게 사라졌던 존재들이 망령처럼 행진을 시작한다. 오직 어깨와 팔의 힘만으로 마비된 하반신을 힘껏 끌어당기면서 성난 시민들의 발아래를 기어간다. 고개를 치켜드는 것조차 버거운 몸이지만 동냥 그릇 같은 은색 깡통을 목에 건 채 요란하게 끌고 간다. 그 소리는 국가가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은 탓에 타인의 동정에 기대어야만 생존할 수 있었던 모든 비천한 자들을 불러온다. 망령들이 외친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든지 차별받지 아니한다!”

 

비대칭의 몸 위로 모욕과 혐오가 빗발친다. “병신이 벼슬이야?” “이러니까 동정을 못 받지!” 문명인들이 이토록 거칠어진 이유는 지각을 하면 큰일 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먹고사는 주제에 이렇게 남한테 피해를 주면 안 되죠!” 20분을 늦은 여자가 20년을 갇혀 산 여자에게 자신이 입은 피해를 보상하라고 핏대 세우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는 또 다른 여자가 고개를 숙인 채 눈물 흘린다. 다른 쪽에선 경찰과 실랑이하다 넘어진 장애인을 어떤 남자가 쇼하지 말고 빨리 일어나라며 가차 없이 끌어당긴다. 그리고 어른들의 아수라장 속에서 한 소년이 휴대전화를 꺼내 높이 치켜든다. 화면엔 장애인의 시위를 지지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전장연은 지하철이라는 일상의 공간을 단번에 한국 사회의 가장 논쟁적인 무대로 만들었고 놀랍게도 시위는 1년 동안 지속되었다.

 

출근길 지하철이란 노동력을 이동시키는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중요한 컨베이어벨트다. 컨베이어벨트 위의 인간은 걸림돌을 치우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한다. 그 레일에서 가장 먼저 치워진 자들의 이름이 바로 장애인이다. 지하철시위 때문에 갈등이 심해진 게 아니다. 지하철시위가 이전엔 보이지 않았던 억압을 생생하게 보이도록 만든 것이다. 그 억압은 부모가 장애인 자식을 죽이고 자신도 죽을 만큼 엄청난 힘이다. 지하철시위는 21세기 가장 극렬한 존재투쟁이자 우리 사회 가장 밑바닥 존재들의 존엄한 행진이다. 하지만 이들을 비웃듯 전장연이 증액을 요구했던 2023년 장애인 권리 예산 13천억원 중 단 0.8%만이 국회를 통과했다. 12일 전장연은 다시 지하철을 타고, 서울시는 강경대응을 예고했다. 비난과 탄압을 견디고 감당하면서 저항을 포기하지 않은 전장연 활동가들에게 존경과 고마움을 보낸다.

홍은전 | 작가·인권 동물권 기록활동가 한겨레 :2023-01-01

 

 

누가 밥 잘해주는 엄마를 투사로 만드는가

코로나19로 병원 응급실이 부족하던 2021년 겨울,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11, 홀로된 아빠의 집 창밖으로 새해 일출을 바라보다 새삼 이제 우리 엄마는 저 해를 보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이 사무쳤다. 매해 첫날을 함께 해온 건 아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영원히 이 아침을 맞지 못한다는 감각만큼 생생하고 아픈 현실은 없을 것이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50여명이 1231일 밤 1130분 녹사평역 시민분향소에서 함께 새해를 맞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마음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고 이지한 배우의 아버지 이종철씨와 어머니 조미은씨는 지난해 1122일 유족들의 첫 기자회견 이후 가장 얼굴이 알려진 이들 가운데 하나가 됐다.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던이종철씨는 25년 넘은 수입사업을 중단한 채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를 맡고 있다. “돈 버는 게 의미가 없어요, 내겐.” 정신없이 장례가 지나고 지하주차장 차 안에서 목 놓아 울기를 반복하던 어느날, 다른 희생자 아버지와 연락이 닿아 처음 만났다. “이상하죠. 그게 조금은 위안이 되더라고요.”

 

틈틈이 학원강사 일을 해온 조미은씨는 아이들이 집에 오는 시간이면 하던 일을 멈추고라도 챙기러오는 엄마였다고 자신을 말했다. “지한이가 엄마처럼 밥 잘 챙겨주는 엄마는 없다고 늘 말했어요.” 참사 뒤 2주간 괴롭고 무서워 보지 못했던 뉴스들을 뒤늦게 보며 의문은 커갔다. 처음엔 지한씨 할아버지가 소식을 모르는 상황과 아들에 대해 쏟아지는 가짜뉴스에 얼굴을 숨긴 채 인터뷰를 했다. 평범한 삶을 살던 그들에게 악성 댓글은 말 그대로 칼에 찔리는느낌이었다. 그러다 우리가 부끄러울 것도 잘못도 없는데 왜 이래야 하나싶어졌다.

 

조씨는 지난달 국정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영정 앞에서 고운 말 하던 옛날의 엄마는 잊어라, 너의 죽음의 진상이 명명백백히 밝혀질 때까지 유가족들과 함께 투사가 될 것을 맹세했다고 말했다. 얼마 전 국조특위에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가슴을 치며 분노하다가 다시 손을 붙잡고 죄송하다며 읍소했다. “엄마니까. 내가 너무 볼품없고 초라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어요.”

 

지난주 찾은 녹사평역 광장 시민분향소에는 영정 사진마다 핫팩이 붙어 있었다. 201459일 청와대 인근 효자동이 떠올랐다. 아이들 영정이 따가운 봄 햇살에 색이 바랠까, 그들은 손수건이나 천으로 영정을 감싸고 있었다. 당시 경찰은 3호선 경복궁역부터 효자동 주민센터 앞까지 늘어서 세월호 노란 리본을 단 시민들의 통행을 차단했다. 지금은 그러진 않는다. 대신 온갖 플래카드를 펼쳐놓고 사람들만 모이면 확성기를 트는 극우성향 단체가 늘 곁에 있다. 당시 청와대는 유족들의 대통령 면담 요청에 “‘순수유가족이면 만날 방침이라고 했다. 대통령 면담을 요청한 국민제안에 지금 대통령실은 일언반구도 없다.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지한씨 어머니인 조미은씨와 남편 이종철씨가 새해 첫날인 1일 오전 참사 현장인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턴 호텔 옆 골목길을 처음으로 찾아서 오열했다. 처음으로 참사 현장을 찾았다는 조씨는 그동안 무서워서 못 찾았다. 참사 현장을 찾으려고 해도 내 아들과 여기서 숨진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들릴 것 같아서 못 왔다라며 골목길에 주저 앉아 오열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시민분향소를 찾은 정부 인사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유일했다. 비록 극우 단체 인사와의 악수와 무단횡단 사건으로 남았지만, 그의 예고없는 방문이 결코 나쁜 마음에서 나온 일은 아니리라 믿는다. 그랬다면 더욱, 거친 욕을 듣고 그보다 더한 일을 당하더라도, 자리를 지키며 사죄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유족들이 지금처럼 정부로부터 철저히 버림받고 있다는 생각은 덜 했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 그 누구도 이태원 참사가 세월호 참사와 같은 결말을 반복하길 바라진 않는다. 그 마음은 유족들이 가장 절실할 것이다. 누군가는 이들의 발언이 때로 지나치게 직설적이라 할지 몰라도, 사실 정쟁프레임에 휩쓸릴까 유족들은 가슴에 담긴 분노와 의문의 전부를 쏟아내지도 못한다고 했다.

 

·보상 언급이 유족에 대한 모욕이라 하는 것도 자칫 자식팔이같은 비난들이 일말의 진상규명 기회조차 날려버릴까 조심하는 마음일지 모른다. 그런데도 지난달 27일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닥터카 탑승 문제 하나에 매달리는 여당 의원들을 향해 격한 감정을 쏟아낸 조미은씨와 유족들을 두고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같은 편이네, 같은 편이야라고 말하며 국조특위장을 떠났다. 설사 민주당이 여당이더라도, 같은 상황이라면 유족들 분노는 매한가지였을 것임을 조 의원은 정녕 모르는 걸까.

 

파행 속 국조지만 유족 명단 존재를 두고 서울시와 이상민 장관의 상반된 증언이 나왔고, 김광호 서울지방경찰청장의 부인에도 2017년부터 매해 핼러윈데이에 경찰이 인파관리 대책에 따라 이태원에 경비대를 배치해왔음이 확인됐다. 오는 7일 국조가 이대로 종료된다면, 이런 조각은 그저 진실의 파편으로만 남을 것이다.

 

신년사에서 이태원 참사는 언급도 않던 윤석열 대통령은 2<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선 정무적인 책임도 책임이 있어야 묻는 거다라고 했다. 이 정도면 참사와 유족을 없던 사건’ ‘없는 존재로 여기는 듯한 의도적 무시다. 국민을 선택할 수 있는 대통령은 없다. 검찰총장 윤석열을 응원하고 정치경험이 없어도 참모들을 잘 쓰면 된다라는 생각에 대선에서 찍었다던 이종철 대표는 왜 우리를 이렇게 내버려두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단톡방은 이제 109명 국내 희생자의 유가족 190여명이 참여하게 됐다. “연령도, 사는 곳도 워낙 다양하다 보니 생각도 다르다. 하지만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단 한명도 낙오하지 말자고들 다들 말한다.” 지금 유족들을 투사로 만드는 이들은 누구인가.

김영희 | 논설위원실장 한겨레 :2023-01-02

 

 

각자도생? 공존이 생존이다

잊지 않겠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어린이들을 안전하게 보살피려면, 결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걸 2014년 봄에 깨달았다. 그때 뱃속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어린이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모든 게 내 일 같았다. 나의 어린이와 이별한다는 건 단 1초도 상상할 수 없는 최악의 고통이었다. 감정을 좀 묶어둬야 겨우 활동할 수 있었다. 참사가 반복되고 있다. 세상을 등진 어린이와 젊은이에 대한 혐오, 자식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조롱 또한 되풀이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죄 없는 이들을 지켜내려면 더 단단해져야 한다고 다짐한다. 나도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닌데, 어떨 땐 너무 암울하고 길은 보이지 않고 무력감에 빠지는데. 어린이를 보면 거짓말처럼 힘내자버튼에 불이 들어온다. 나 자신을 포기할 순 있어도, 어린이를 포기할 권리 같은 건 애초에 없는 것처럼 느낀다.

 

함께 슬퍼하겠습니다. 함께 분노하겠습니다.’ 녹사평역에 현수막을 걸었다. 정치하는엄마들, 우리는 누구인가? 돌봄을 주고받는 사람들이다. 다들 나처럼 생존에 민감하다. 경쟁이 아닌 공존이 합리적인 생존전략이라고 판단하는 사람들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공존하기 위한 규칙을 정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모두가 주권자가 되기로 합의한 사회에 살고 있다. 소수가 독점한 주권을 나눠 갖고 헌법에 한 자 한 자 새기기까지 인류는 많은 피를 흘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피 흘리는 사람들이 지구 곳곳에 있다. 가진 건 주권밖에 없는 사람들마저 왜 약육강식하기를 선택하는가? 그것이 능력주의이고 공정한 경쟁이라서? 공정해봤자 오징어 게임이거늘, 과반수가 동의하면 게임을 중단시킬 수 있거늘.

 

안전재난, 산업재해, 아동학대, 기후위기. 잇단 죽음과 예견된 죽음들을 보라. 이제라도 각자도생이라는 환상에서 깨야 하지 않을까? 태어나자마자 대진표에 이름을 올려야만 했던 사람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입방아 찧지 마라. 자기 발로 링에 올라선 사람이 어디 있나? 걸음마도 떼기 전에 경쟁을 시작한 사람들에게서 잘못을 찾으려 들지 말고 경쟁시킨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자. 9.24 기후정의행진 즈음에 <지구온난화 1.5> 같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보고서를 처음 읽었다. 세상 보는 눈이 좋아지고 선명한 목표가 생겼다. 나의 딸을 경쟁에 참여시키지 않는 정도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음을 각성했다. 기껏해야 좋은 유년기의 추억을 가진 기후난민이 되겠지. 어떤 나라도, 어떤 개인도 지구온난화 앞에서 각자도생할 수는 없다. 유일한 방법은 연대와 공존이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이야말로 유일무이한 생존전략이다. 경쟁을 말로만 비판하는 사람들 말고, 어린이들과 함께 진짜로 경쟁을 보이콧하는 사람들이 모여 정치세력화하자. 과반수의 동의로 경쟁체제를 종식하자. 공존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공존을 향해 나아가는 길 위에서 우리의 영혼이 먼저 구원될 것이다.

<장하나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 주간경향 2023.1.2.

 

 

새해에는, 그러지 않았으면

새해에는, 자유의 가치가 퍼졌으면 좋겠다. 자유라는 말 옆에 보편적 가치라는 수식이 어색하지 않게 붙는 건, 누가 그 보편에서 배제되었는지를 집요하게 살펴보라는 뜻일 거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평범해서 의식조차 되지 않는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희망사항이다. 이들의 부족한 자유를 채우는 게 사회의 역할이다. 그러니까, 자유라는 말이 많아질수록 평등한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어디든지 갈 수 없는사람들에게 필요한 자유는, 언제든지 이동했던 누군가의 자유를 침해했다면서 저울에 올라가 몇 명 때문에 수천명의 출근시간이 방해받았다는 기계적 평가로 이어진다.

 

새해에는, 인권의 가치가 퍼졌으면 좋겠다. 인권이 어그러진 상황을 침해나 유린 등의 강한 어조로 설명하는 건 그만큼 절대적이라는 의미다. 인권을 강조할수록 혐오의 크기는 당연히 줄어야 한다. 그런가?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존엄성이지만, 한국에서는 여러 자격이 필요하다. 피부색깔·믿는 종교에 따라서, 절대적 보장은 손쉽게 상대적으로 변한다. 특히 성정체성은, 인권이 보장받는 유형이 엄격히 정해져 있어 그게 아니라면 사람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된다. 못생겼다고, 뚱뚱하다고, 성격이 내성적이라는 이유로도 욕을 먹는데 이를 따져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자본주의는 어쩔 수 없으니 스스로 상품 가치를 올려야 하느니 등의 처세술뿐이다.

 

새해에는, 공정의 가치가 퍼졌으면 좋겠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경사를 조금이라도 완만하게 하려는 정치적 행위의 압축일 것이다. 이는 공정하지 않은 조건과 결과들을 끊임없이 보정해야지만 가능하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공정이 외쳐질수록 삶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런가? 한국에서 공정은 시험성적에 대한 온전한 승복에 국한되어 교육과정에 던져야 할 중요한 질문들을 삭제한다.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공부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며 기회의 불평등을 짚는 것과, 시험 좀 못 쳤다고 이런 대우를 받는 게 정당한가를 따지며 결과의 정의로움을 운운하는 건 납작한 공정의 세계에선 불가능하다.

 

새해에는, 연대의 가치가 퍼졌으면 좋겠다. 연대 앞에 사회적이라는 표현만이 어색하지 않고, 또 그것만이 허용되는 이유는 기득권의 힘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약자들은 힘을 뭉쳐야 하고, 약자가 아닌 이들에게도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 연대는 사회를 보다 평등하게 만드는 중요한 연료로 작동한다. 그런가? 노동자들이 뭉치기만 하면 하루아침에 강성노조가 되고 2~3일 파업만으로도 경제를 볼모로 밥그릇 챙기는 기득권으로 대서특필된다. 이들의 손을 잡는 이들은 불온한외부세력에 지나지 않는다. 자유, 인권, 공정, 연대는 대통령이 지난 5월 취임사에서 강조한 말이다. 좋은 말이다. 하지만 저 언어가 넘실거릴수록 정말로 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면 다행이겠지만, 단어만이 존재하면 무슨 소용일까. 자유가 살던 대로 생각하겠다는 당당한 무기가 되고, 인권이 상대적으로 해석되어 혐오를 정당화하고, 공정이 차별의 근거로 활용되고, 연대를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정치용어 안에만 가둬버린다면 폭력은 아름다운 단어 아래에서 더 정교히 우리의 일상을 파고들 것이다. 새해에는, 그러지 않았으면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사회의 뒷모습> 저자 경향 2023.1.2.

 

 

희망이 있다면

어떻게 돌아가셨을지, 이런 너덜너덜한 세상을 두고. 부고를 들을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큰 사람이 가고 나면 빈자리도 크게 느껴진다. 최근에 별세한 천병희 선생과 조세희 선생도 그랬다. 많은 이들이 각별한 추도사를 남겼고, 따라 읽으며 공감한 바도 있지만, 유명 인사들의 죽음 뒤에 으레 따라붙는 한 시대가 끝났다는 식의 패배주의적 평가에는 동의가 되지 않았다. 그건 한 사람의 죽음과 함께 한 시대를 묻어버리는 청산주의적 태도다. 한 시대를 치열하게 건너온 이들은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남은 이들에게 그만큼 치열하게 물려주고 떠난다. 남은 이들은 자신에게 넘겨진 몫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나는 두 분에게는 특히 언어에 대해 큰 빚을 졌다. 서양 고대 문헌을 보고 공부하는 철학, 정치학, 문학 등 전공자들은 천병희 선생의 고전 번역에 기대지 않은 사람이 없다. 나도 고대정치사상 전공자로 고대 희랍어 번역자가 되어 후세대의 디딤돌을 놓는 것으로 그 빚을 조금이나마 갚으려 했지만, 이루지 못하였다. 하지만 지금도 살아남은 문헌연구자들은 하나의 단어를 붙들고 하루를 씨름하며, 한 문장을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 수많은 참고문헌을 뒤지는 고전 번역 작업을 한다. 오직 소수만이 읽을 책이고, 소수에게만 필요한 공부 같지만 이런 기초인문연구는 우리 공동의 사회를 지탱하는 데 필수적인 연구다. 시대와 사회를 해석할 수 있는 풍부한 언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지금 대학 정책이 이러한 인문연구의 토대를 와해시키고 있다면 후학의 실천적 애도는 그에 맞선 저항이어야 할 것이다.

 

조세희 선생의 삶과 글은, 작가는 왜 존재하며 어떤 이들의 옆에 서 있어야 하는가를 아프게 물어온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당신은 누구를 위해 쓰는가.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이들이 두려워하며 품어야 하는 질문을 던져주었다. 현장 없는 글의 위험성을 경계하도록 일깨우고, 현장으로부터 길어 올린 사유와 언어의 깊이를 보여준 사람. 현장문학의 시대는 끝났다는 조사(弔詞)는 지금도 현장으로 달려가는 작가들을 보지 못한다. 우리는 읽고 자란 글의 파동이 되어 그의 물음을 서로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자신이 떠난 자리를 더 많은 작가들이 채우고, 더 많은 문학과 예술이 노동계급의 편에 서기를 선생도 바랄 것이다.

 

나에게 남은 이의 몫중 하나는 인문학의 이유와 지금 필요한 인문정신을 다시 묻는 것이다. 국가가 언어를 발명하여 국민을 세뇌시키던 독재정권의 사상 통제는 자본이 언어를 창조하고 미디어와 시장을 통해 시민을 현혹하고 유통시키는 문화통치 시대로 넘어왔다. 비판인문학, 실천인문학 대신 번성하는 스튜디오 인문학은 연예오락 산업에 소재를 제공하는 콘텐츠 소스로 전락했다. 한편 사회운동은 언어의 계급투쟁이 일어나는 전장이다. 그린뉴딜과 탄소중립은 자유주의 수사학의 전범이라 할 만하다. 굿 거버넌스, 사회적 가치투자, 기업가정신, ESG 등 자본의 신조어들은 자산투자운용사와 시민단체를 넘나든다. 언어의 계급성과 정치성은 다양한 언어의 자유로운 경쟁을 촉구하는 언어시장주의 속에 용해되고, 언어시장주의자들은 우리를 지배하는 권력의 언어들이 강압적이 아니라 패셔너블해졌다는 점을 간과한다.

 

저항자를 패배시키는 질문들도 보다 세련되고 정교해졌다. ‘가능한가?’ ‘현실적인가?’ ‘대안은 있는가?’라는 의문문은 안 된다!’고 직접 금지하는 명령어보다 더 강한 규율을 작동시킨다. 하지만 우리를 지배하는 말을 부수는 말(이라영)’도 끊임없이 재발명된다. 지난해 강력한 파동이 되어 다양한 저항 주체들에게 퍼져나간 이대로 살 수 없다(유최안)”는 저 낡은 신자유주의 구호 “(자본주의 외에) 대안은 없다!”를 뒤엎는다. 한 노동자에게서 시작되어 자본주의와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생명 존재들이 공유할 수 있는 말이 되었다. 학자와 작가들은 이 말속에 사상과 이론과 형상을 불어넣어야 한다. 말을 힘으로 만드는 건 운동이다.

 

순순히 굴종하지 않는 난장이들이 없이는 조세희가 있을 수 없었고, 연극을 부자들의 안마당에서 꺼내 공공축제로 만든 아테네의 데모스가 없이는 천병희를 통해 읽는 고대 그리스 비극도 있을 수 없었다. 우리가 시대의 거장을 경유하여 만나야 할 존재는 바로 그들이다. 희망이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에게 있다. 다 망해버린 세상에서도 어디서 이토록 아름다운 존재들이 나타나는 것인지, 나에게 인문학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물음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채효정 오늘의 교육편집위원장 경향 2023.1.2.

 

 

촛불 부정한 대통령국민의 '헤어질 결심'

아래 표는 G20을 포함한 주요국의 지난해 510일 이후 주식 수익률이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 내내 장식했던 고물가와 국민소득 감소의 지속, 최악의 무역적자, 가계와 기업의 부실 심화, 신용위기의 지속 등 총체적 위기에 놓여 있는 거시경제금융을 생각하면 대한민국이 받은 꼴찌 성적표는 당연한 결과다.

 

첫째, 한국은행이 물가안정의 기준으로 삼는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0(전년 동월 대비)4.8%를 기록한 이후 11, 12월에도 내려오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수준이다. 그도 그럴 것이 11월 대비 12월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률 0.16% 0.13% 포인트가 서비스료(특히 0.11% 포인트가 증가한 개인서비스료) 상승에 의한 것이지, 그동안 물가상승의 주범 중 하나였던 석유는 0.19% 포인트로 오히려 물가안정에 기여하고 있다. 거기다 최소한 올해 상반기는 전기와 가스료 인상, 유류세 정상화 등도 기다리고 있다. 서비스료 중심의 고물가 지속은 극심한 경기침체가 오지 않는 한 당분간 물가안정을 달성하기 어려움을 보여준다. 물가안정 위주의 통화정책 지속을 말한 한은 총재의 신년사가 공허한 이유다.

 

둘째, 한국민 실질소득(GNI)20191824조 원에서 20211892조 원으로 증가했다가 지난해 3분기까지 1878조 원으로 14조 원이나 감소하였다. 고물가와 소득 감소, 즉 지난해 한국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다. 가계 실질소득은 전 계층에서 후퇴하고 있다.

 

셋째, 무역적자는 외환위기 때의 2.3배로 최악의 상태다. 지난해 수출액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지만, 사실상 문재인 정부가 만든 것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6월부터 수출액 증가율은 한 자릿수로 떨어지더니 10월부터는 마이너스(-)가 지속하고 있다.

 

넷째, 서민이나 중소기업 등은 자금 접근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신용 한파는 윗목부터 덮치고 있다.

 

고인 물 사회

이처럼 지난해 윤석열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낙제점이다. 그렇지만 윤석열 정부는 자신의 성적표를 인정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와 노조, 야당의 탓으로 돌리며 5년을 보낼 심산이다. 친일, 노동 혐오, 반북 등은 한국형 극우의 상징 언어들이다. ‘한국형 극우에게 사실이나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정직함도 관심이 없고, 신경 쓰지도 않는다. 이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어 하는 것을 믿을 뿐이다. 친일 청산 실패와 분단구조의 지속, 그리고 그에 따른 취약한 민주주의의 결과물이다.

 

이 구조는 지난 70년 한국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고착화되었다. ‘사실상 3차 대전이나 다를 바가 없었던 한국전쟁이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가 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그런데 정전 70주년이 되는 올해 이 구조에 본격적인 균열이 가기 시작하고 있다. 2010~21년 사이에 시중 통화량은 1956조 원 이상 증가했다. 그런데 2010~11년에는 통화량의 73% 이상이 실물경제로 흘러갔으나 코로나 팬데믹 2(2019~21) 사이에는 21%에 불과했다. 대부분이 자산시장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 결과 2011~12년 사이에 한국 국민의 순자산 증가분은 순소득 증가분의 9배에 불과했으나 지난 2년 사이에는 32배로 벌어졌다. 자산 증가를 주도한 것은 부동산 자산이었다. 가계로 국한하더라도 가처분소득은 96조 원이 증가했으나, 주택 가치는 14배가 넘는 1485조 원이나 증가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땀을 흘려 일하고 싶을까? 부가 부를 낳고, 부가 세습되는 자산가 공화국으로 변한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돈과 사람은 생산활동과 혁신보다 부동산 투자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투자와 일자리 창출의 위축, 생산성 둔화와 (경제력 격차가 교육 격차를 만드는) 강남 8학군식 교육 파행의 지속과 미래 기반의 약화 등을 특성으로 한 고인물 사회가 된 이유이다. 출산 파업과 지방 소멸과 청년의 좀비화는 고인물 사회의 현상들이다.

무너지는 부채 모래성

그런데 고인물에 커다란 돌멩이가 떨어졌다. 인플레와 그에 따른 고금리 기조는 원자재 가격 상승, 차주의 부채 상환 부담 증가, 전세가 하락 건축비 상승과 주택 구입 부담 증가, 다주택 소유 부담 증가 주택 수요 감소와 주택 매물 증가, PF 대출 사업 어려움 증가 주택가격 하락과 주택 수요 감소, 미분양 증가와 PF 대출 부실화 가계와 건설회사와 금융사 부실 증가 부채 축소와 가계소비 위축 기업투자 위축과 구조조정 내수 위축, 임금 정체와 고용 악화, 가계소득 악화 주택 시장 침체와 내수 위축의 악순환이 만들어지고 있다. 부동산 생태계 붕괴가 자영업 등 내수 관련 산업 생태계 약화 등으로 확산하고 있는 배경이다.

 

여기에 수출 환경 악화로 투자 위축은 가속화하고 있다. 문제는 부채 조정(deleveraging) 기간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첫째 이유로 부동산 자산이 다른 자산에 비해 많은 부채를 포함하고 있고, 시장 침체기에 현금화가 어렵다는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20226월 기준 한국의 민간(=가계+기업)부채는 4721조 원으로 GDP 대비 222.1%에 달한다. 일본의 90년대 초 거품 붕괴 당시 GDP 대비 민간부채가 198.9%였다. 게다가 일본은 가계부채가 68.3%에 불과했다. 자산은 오랜 시간 축적된 저량(stock) 개념이기에 자산의 일부인 부채 조정 역시 오랜 시간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90년대 일본의 잃어버린 10보다 더 나쁜 상황이다. 부채 축소는 소득의 증가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소비 축소로 해결하기 어렵다. 투자와 소득 위축이 소비의 공격적 축소를 어렵게 하고, 심지어 주택매각 압력의 증가와 주택가격 하락으로 이어지며 부채 축소의 악순환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른바 대차대조표 불황(balance-sheet recession)’ 개념이 그것이다.

 

좋은 일자리(와 소득)가 창출되는 산업 생태계가 재구성되지 않는 한 이 악순환을 막기는 어렵다. 수명이 다한 한강의 기적위에 건설한 부채 모래성의 예고된 운명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10잃어버린 30으로 이어진 배경이다. 일부 전문가는 금리가 인하로 전환하면 부동산가격도 회복할 것을 예상한다. 그런데 금융 완화는 (부채 축소가 만들어내는) ‘대차대조표 장기불황에 효과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거품 붕괴 당시 6%에 있던 일본의 공정금리(기준금리)93년 말까지 2% 밑으로 내렸고, 95년 말에는 0.5%, 그리고 99년에는 제로금리까지 내렸으나 부동산가격 하락은 막지 못하였다. 미국 연준도 당시 10% 근처까지 있었던 금리를 93년 말에는 3%까지 내렸다. 부채 축소 압력이 지속하는 상황에서 금리가 낮아졌다고 다시 부채를 동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토목건설 중심의 SOC 사업(삽질 프로젝트)도 좋은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다는 점에서 효과가 없다. 토목건설 중심의 일본의 재정정책이 반짝 효과 후 재침체에 빠지며 정부부채 증가로 이어졌던 이유다.

 

민주주의는 마지막 희망

이처럼 부채 모래성을 무너뜨리는 대차대조표 장기불황은 전쟁 이후 70년을 사용한 낡은 집의 붕괴와 교체를 의미한다. 임기 말까지 대략 40%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했음에도 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가격 폭등은 정권 재창출에 치명타로 작용하였다. 윤석열 복수 정치는 이 부동산 분노에 기댔다. 오랫동안 고용-소득-노후의 ‘3() 시대를 살아오다 보니 부동산은 많은 사람에게 희로애락 그 자체였다. 따라서 부채 모래성이 무너지면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낼 것이다. 역사(하늘)는 개개인의 억울함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모든 개인은 사회적 동물이자 정치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고로 군자는 무너지는 집에 들어가 살지 않는다(“危邦不入 亂邦不居”, 論語)고 한 이유이다. 이 과정에서 공적 자원의 사유화를 권력 장악의 목표로 삼는 정권은 특권층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보통 사람을 제물로 삼는다. ‘분노 투표의 부메랑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폐허 위에 새로운 집을 지을 과제에 맞닥뜨릴 것이다.

 

새로운 집을 짓기 위해 한국에 남은 유일한 희망이자 일본과의 차이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라고 부르는 민주주의 유산이다. 한국이 세계적으로 평가받는 분야는 문화와 스포츠 정도다. 의식의 식민지성에서 벗어난 민주화 이후 세대가 이를 주도하는 배경이다. 민주주의를 지켜내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새로운 집을 절대 지을 수가 없는 이유이다. 세계에서 상위 10% 국가군에 속할 정도로 한국 민주주의는 매우 공고하다(스웨덴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

 

한국 민주주의의 불가역성을 만든 사건이 바로 2016년 겨울 박근혜 탄핵이었다. 그런데 연말 특별사면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을 버렸다. 윤석열과 한동훈은 국기문란과 반헌법적 행위라며 중대범죄자로 자신들이 규정한 탄핵 세력을 사면하고 복권시켰다. 국민과 촛불민주주의를 부정한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을 버린 이상, 국민은 대통령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한다. 살아남은 사람, 특히 우리의 자녀들은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권력을 사유화한 정권이 새해 첫날부터 기득권 타파를 외치는 궤변을 언제까지 들을 것인가.

최배근 건국대 교수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2023 1.2

 

 

돼지머리와 무정차

대구 대현동 이슬람 사원을 짓는 골목에 놓인 돼지머리 사진을 봤다. 때를 놓쳐 쓰지 못했지만 말을 잃어 쓰지 못하기도 했다.

 

사원 증축을 둘러싼 갈등은 꾸준히 접하고 있었다. 경북대학교에서 공부하는 무슬림 유학생들이 십시일반 모금으로 비좁은 기도실의 증축을 계획했고 20209월 건축허가를 받았다. 20212월 인근 주민들이 민원을 넣으러 구청에 찾아간 날, 구청은 즉시 공사를 중지하라고 명령했다.

 

느닷없는 통보에 이어 무슬림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현수막과 팻말이 골목에 들어섰다. 대화로 잘 풀어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놓지 않고 혹시나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까 봐 인터뷰도 사양하던 무슬림 유학생들은 7월 법원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해를 넘겨 작년 9월 대법원이 공사중지 처분을 취소시켰다. 돼지머리는 한 달쯤 지나 골목에 등장했다. 이슬람에서 금기시하는 동물을 보여주는 의도는 명백했다.

 

혐오가 무서운 이유는 상대가 겪는 고통의 실질을 행위자가 모른다는 데 있다. 어떤 집단이 존재를 부정당하는 영혼의 살인”(모로오카 야스코)으로 겪는 일이, 행위자에게는 냄새 난다고 말하거나 돼지고기를 먹는 일상의 에피소드일 뿐이다. 그래서 반복될 수 있고 집요해질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상대를 괴롭게 한다는 걸 알기에 벌이는 행위들이다. 상대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몫이라고 여길 뿐이다. 사원을 짓겠다면 감수해보라고, 당신들의 종교를 존중받고 싶다면 우리의 문화를 존중해보라고. 사적 징벌이다. 이런 행위가 용납되지 않는다는 신호가 단호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신호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슬람 혐오를 인식하고 해법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니 대구 북구청은 한쪽 편을 드는 일이라며 거부했다.

 

서울 지하철에서는 신호등이 거꾸로 켜졌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행동이 1년 가까이 이어지던 중이었다. 지난해 128일 무정차 방침이 알려졌고 14일 기어이 삼각지역을 무정차 통과했다.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지역사회에서 함께 사는 그날을 바라며 장애인 권리 예산을 요구하는 행동에 서울시는 시민의 피해와 불편을 방치할 수 없다며 강경 대응을 선포했다. 당연하다는 듯 장애인을 시민으로부터 편 가르는 말에서 이동하지 못하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지 못하는 시민의 피해는 사라졌다. 장애인의 권리에 빨간불을 켜고 비장애인의 권리에 초록불을 켠 것이 아니다. 이동과 교육과 노동과 주거가 모두를 위한 인권이 되지 못하게 빨간불을 켠 것이다.

 

오작동하는 신호등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말하며 노동조합에 부패니 적폐니 하는 말을 쏟아내는 윤석열 대통령은 모든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빨간불을 켰다. 이태원참사 유가족을 앞에 두고 이상민 장관은 촌각을 다투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하니 차라리 신호등을 꺼버리겠다는 태도다. 작년 한 해 벌어진 사건들이 인권을 거스르는 신호로 고스란히 남아 새해를 열고 있다.

 

오작동하는 신호등을 당장 수리할 방법을 알아낼 수 없는 나는 차라리 과거를 기억하기로 했다.

 

신호등보다 먼저 건널목을 만든 이들이 있었다. 10년 전 기도할 작은 공간을 얻어서 기뻐하며 주민들에게 반갑게 인사했을, 지금도 주민들과 다시 안부를 주고받는 이웃이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 20년 넘게 싸우며 지하철역마다 승강기를 만들어온, 15년 가까이 누구든 지역사회에서 어울려 살 수 있게 탈시설 권리를 만들어온 이들. 전장연이 “‘무관심권리의 독이었습니다. 차라리 욕설과 혐오의 무덤에 들어가겠습니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혐오하든 말든 싸우겠다는 오기가 아니다. 건널목에 이어 신호등도 제대로 세우겠다는 선언이다. “연대를 통한 연결과 관계의 공간을 만들어주십시오.” 길을 같이 건너자.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경향 : 2023.01.03.

 

 

거꾸로 가는 한국의 공공교통정책

10년 전 지방으로 이주를 준비할 때 많은 사람들이 운전면허를 딸 것을 권했다. 강연이나 교육 때문에 여러 곳을 많이 돌아다니는 편인데 수도권이나 광역시를 벗어나면 어디건 대중교통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태계를 생각해서 나라도 자가용을 운전하지 않겠다는 고집이 잠깐 흔들리긴 했지만 좀 둘러 가더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하자고 다짐했다. 이주를 하니 지역 내를 다니는 버스가 있지만 노선이 적고 거의 한 시간 간격으로 다녔다. 시외의 경우는 상황이 더 심각해서 자가용으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가 대중교통으로는 보통 두세 시간이 걸렸다. 이것도 환승 시간이 맞는 운 좋은 경우의 이야기이고 운이 나쁘면 네다섯 시간도 각오해야 했다.

 

시외버스 노선 대부분 폐지나 감축

코로나19 이후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아예 시외버스 노선이 사라지는 경우가 속출했다. 우리 지역만 봐도 코로나19 이전에는 동서울이나 인천, 대전, 청주 등으로 오가는 버스가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노선이 사라지거나 감축되어 5분의 1 정도 수준이다. 다른 지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서울로 가는 버스나 인근 지역을 다니는 버스 외엔 대부분이 사라졌다.

 

국토교통부의 대중교통현황조사에 따르면, 2021년의 시외버스 노선 수는 2017년도와 비교할 때 497개나 줄어들었다. 이조차도 하루에 한두 대 다니는 경우를 제외하면 노선 수는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다. 자연히 업체의 보유대수는 줄어서 4년 동안 고속버스의 경우 401대가 줄었고 시외버스의 경우 1637대가 줄었다. 2022년에도 노선과 버스의 수는 계속 줄어들어 수도권을 제외하면 지방에서 지방으로 다니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버스회사들은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승객이 줄고 기름값과 인건비가 올라 경영이 악화되었다는 명분을 든다. 그렇지만 노선이 사라지면 시민들은 자가용을 몰 수밖에 없기에 승객이 더 줄어드는 악순환은 심화된다. 버스회사들은 대안을 마련하려는 노력 없이 정부에 더 많은 보조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하지만 운송원가조차 투명하지 않은 버스회사에 막대한 보조금을 주는 것이 무조건 대안일 수는 없다. 따라서 정부가 지원하되 공공성을 강화시켜야 하고, 요금할인이나 안전투자, 노선 확대 등을 요구해야 하는데 지금은 정부와 버스회사 모두가 무책임하다.

 

버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철도공사 통계를 보면, 2017년과 2021년을 비교할 때 KTX와 새마을호의 운행횟수는 주중 기준으로 각각 66, 20회 늘어났지만, 무궁화호의 운행횟수는 79회나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한국철도공사는 매년 무궁화호를 단계적으로 줄이는 계획을 세우고 있고, 무궁화호 객차를 2028년까지 71대만 남기고 90%가량을 폐차할 예정이다. 그러면 무궁화호를 이용하던 승객들, KTX나 새마을호가 서지 않는 지역의 주민들은 무엇으로 이동해야 할까?

 

지방소멸 조장하며 돈만 뿌리는 정부

20226, 독일은 9유로만 지불하면 한 달간 독일 전역의 버스와 지하철, 트램, 일반열차(고속열차 제외) 등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을 판매했다. 이를 통해 공공교통을 활성화시키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며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전략을 추진했다. 실제로 5000만장이 넘는 티켓이 판매되었고, 대중교통 이용률이 10~15% 증가했다고 한다. 효과가 보이자 스페인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도 이런 정책을 세우고 있는데, 한국은 반대로 가고 있다.

 

정책의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2005년에 제정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은 교통약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그리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할 것을 책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은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2022년부터 매년 1조원 규모로 지방소멸대응기금이 편성되어 사용될 예정이다. 2022년에는 이미 7500억원을 배분했고, 내년에는 총선까지 있으니 아마도 더 많은 예산이 지역에 뿌려질 것이다. 하지만 주민들이 알지도 못하고 효과도 없는 돈을 쓰는 것보다 차라리 전국적으로 공공교통 공영제를 추진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무상교통이면 더더욱 좋고.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경향 : 2023.01.03.

 

 

모두를 위한 무임승차

2023년 계묘년 새해를 며칠 앞둔 지난주 경북 청송에서 나온 작은 뉴스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청송군은 올해부터 모든 농어촌 버스에 대한 전면 무료화 방침을 밝혔는데 연령이나 소득, 거주지 상관없이 누구나 버스를 무료로 타는 게 가능해졌다는 내용이었다. 인구 24000여명의 작은 도시에서 지방소멸을 막고 관광 등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차원에서 낸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한 무상버스 정책은 경기 화성시를 비롯해 안산시·안성시·의왕시 등에서도 시행 중이다. 경북 역시 올해 일부 지역에서 만 70세 이상 노인과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버스 무료 탑승을 실시한 후 2025년부터는 도 전역으로 확대한다는 안을 세운 상태다.

 

지역의 이 같은 소식과 달리 현재 서울·인천·부산·대구 등 대도시에선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가 올해 지하철 무임수송 손실분을 지원하지 않기로 하면서 해당 지자체들이 연내 큰 폭의 지하철 요금 인상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지하철 무임승차는 1984년 도입됐다. 당시만 해도 65세 이상 비율이 전체 국민의 3.8%에 불과해 예산 부담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은 고령인구가 20177115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14.2%를 차지해 유엔이 정의하는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증가 추세를 고려하면 한국 사회는 2년 후 전체 인구 중 노인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문제는 돈이다. 정부와 지자체 간 재원 분담 논의가 지지부진한 사이 각 도시철도공사의 손실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서울 지하철의 적자는 20219957억원, 202212600억원에 이른다. 전국 도시철도 운영 6개 기관의 무임손실액은 2019년 기준 6230억원으로, 전체 이용인원 중 무임승차 비중은 30%를 넘었다.

 

사실 이 문제는 세대 갈등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다분한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해법 마련에 손을 놓고 있다. 정부는 도시철도가 운영되는 특정 도시에서 노인 등 특정 계층만 이용하는 복지정책에 대해선 지원을 할 수 없다는 논리다. 이런 논리라면 특정 이용자에 대한 혜택은 축소해야 하며 무임승차 폐지, 연령 및 할인율 조정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합리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는 사회 전체의 편익을 증가시킨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교통연구원이 2015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하철 경로 무임승차는 노인활동을 증가시켜 자살 및 우울증 감소, 교통사고 감소, 의료비 절감, 관광 활성화 등 총 3361억원의 편익을 발생시킨다고 분석한 바 있다. 반면 비용은 1859억원으로 비용편익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들의 사회활동 증가가 가정의 안녕에 기여하고 지역사회·국가에도 이득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해당 정책의 수혜자가 특정 계층을 넘어 사회 전체라면 비용도 지자체만이 아닌 사회가 나눠서 분담하는 게 옳을 것이다. 초고령사회가 눈앞에 성큼 다가온 현재 지하철 무임승차는 물론 지자체의 무상버스까지 아우르는 보편적 교통복지에 대한 정의와 정책 마련을 위한 논의가 하루빨리 시작돼야 할 것이다.

문주영 전국사회부장 경향 : 2023.01.03.

 

 

지금 탄소의 시간은 2023년이 아니다

지금 당신은 몇 년에 살고 계시는가요? 이제 새해가 밝았으니 모두가 2023년이라고 답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달력, 즉 고대 선조들이 하늘의 별을 보고 만들기 시작한 시간의 정의에 따르면 2023년이 맞다. 그런데 지금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시간의 개념을 조금만 바꾸어 기후변화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지금 2023년이 아닌 다른 시간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달력의 정의에 따르면 지구상 모든 곳은 같은 2023년이지만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공기 중 탄소의 시간은 여러분과 제가 있는 곳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기후변화의 시간, 바로 탄소의 시간에 관해 얘기하려 한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두려워하는 기후위기는 여러분과 제가 사는 지역 탄소의 시간이 다르므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탄소의 시간을 이해하기에 앞서 기후변화의 시간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방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과학자들이 기후변화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밝히고 객관적으로 검증하며, 나아가 기후변화의 미래를 예측하는 과정에 대한 것이다. 보통 기후과학자들은 기후변화를 진단하고 예측하기 위해 지구시스템모델이라는 도구를 이용한다. 지구시스템모델은 지구라는 행성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 즉 공기, , 나무, , 인간 활동, 대기의 흐름, 해류, 빙하 등을 물리적, 화학적, 역학적인 법칙에 맞추어 수학식으로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수학식은 너무도 복잡하여 우리가 손으로 연습장에 풀 수 없어 컴퓨터라는 또 다른 도구의 도움을 받아야만 계산을 할 수 있는 복잡한 방정식들이다.

 

기후과학자는 이러한 방정식들로 구성된 지구시스템모델을 이용하여 지구에서 벌어지는 기후시스템의 변화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진행할 수 있다. 마치 요즘 유행하는 메타버스 게임처럼 컴퓨터라는 가상의 공간 안에 지구를 만들어 놓고 지구를 대상으로 다양한 실험을 해 볼 수 있다. 기후과학자들은 지구시스템모델을 이용한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변화의 원인을 밝힐 수 있었다. 온실가스, 에어로졸, 토지 이용, 그리고 자연변동의 일부 영향 등으로 기후변화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여러 가지 요인 중 대기 중 온실가스 증가가 현재 우리가 경험 중인 기후변화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는 사실 또한 지구시스템모델을 통해 검증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해 다가올 미래의 기후변화를 예측하는 일이 가능하게 되었다. 주요한 원인을 찾았기 때문에 앞으로 이러한 원인 요소들이 어떻게 변할지를 알면 기후변화가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 갈지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기후과학자들은 앞으로 시간에 따른 기후변화 양상을 예측하기 위해, 예를 들면 ‘2030년에는 기온이 얼마나 올라가지?’ ‘2040년에는 한국에 비가 많이 올까?’ ‘앞으로 여름에 태풍이 강해지는 걸까?’ ‘30년이 지나면 한국의 기후가 동남아처럼 바뀐다는데 사실일까?’ 등과 같은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인간 활동으로 인한 탄소 배출에 대하여 다양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다.

 

서울은 지금 탄소시간으로 2047

지금 당신은 몇 년에 살고 계시는가요? 이제 새해가 밝았으니 모두가 2023년이라고 답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달력, 즉 고대 선조들이 하늘의 별을 보고 만들기 시작한 시간의 정의에 따르면 2023년이 맞다. 그런데 지금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시간의 개념을 조금만 바꾸어 기후변화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지금 2023년이 아닌 다른 시간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달력의 정의에 따르면 지구상 모든 곳은 같은 2023년이지만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공기 중 탄소의 시간은 여러분과 제가 있는 곳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기후변화의 시간, 바로 탄소의 시간에 관해 얘기하려 한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두려워하는 기후위기는 여러분과 제가 사는 지역 탄소의 시간이 다르므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탄소의 시간을 이해하기에 앞서 기후변화의 시간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방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과학자들이 기후변화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밝히고 객관적으로 검증하며, 나아가 기후변화의 미래를 예측하는 과정에 대한 것이다. 보통 기후과학자들은 기후변화를 진단하고 예측하기 위해 지구시스템모델이라는 도구를 이용한다. 지구시스템모델은 지구라는 행성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 즉 공기, , 나무, , 인간 활동, 대기의 흐름, 해류, 빙하 등을 물리적, 화학적, 역학적인 법칙에 맞추어 수학식으로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수학식은 너무도 복잡하여 우리가 손으로 연습장에 풀 수 없어 컴퓨터라는 또 다른 도구의 도움을 받아야만 계산을 할 수 있는 복잡한 방정식들이다.

 

기후과학자는 이러한 방정식들로 구성된 지구시스템모델을 이용하여 지구에서 벌어지는 기후시스템의 변화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진행할 수 있다. 마치 요즘 유행하는 메타버스 게임처럼 컴퓨터라는 가상의 공간 안에 지구를 만들어 놓고 지구를 대상으로 다양한 실험을 해 볼 수 있다. 기후과학자들은 지구시스템모델을 이용한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변화의 원인을 밝힐 수 있었다. 온실가스, 에어로졸, 토지 이용, 그리고 자연변동의 일부 영향 등으로 기후변화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여러 가지 요인 중 대기 중 온실가스 증가가 현재 우리가 경험 중인 기후변화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는 사실 또한 지구시스템모델을 통해 검증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해 다가올 미래의 기후변화를 예측하는 일이 가능하게 되었다. 주요한 원인을 찾았기 때문에 앞으로 이러한 원인 요소들이 어떻게 변할지를 알면 기후변화가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 갈지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기후과학자들은 앞으로 시간에 따른 기후변화 양상을 예측하기 위해, 예를 들면 ‘2030년에는 기온이 얼마나 올라가지?’ ‘2040년에는 한국에 비가 많이 올까?’ ‘앞으로 여름에 태풍이 강해지는 걸까?’ ‘30년이 지나면 한국의 기후가 동남아처럼 바뀐다는데 사실일까?’ 등과 같은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인간 활동으로 인한 탄소 배출에 대하여 다양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다.

 

서울은 지금 탄소시간으로 2047

앞에서 언급했듯이 기후변화의 양상은 인간의 인위적 탄소 배출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 인류가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할까에 대한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다. 여기서 시나리오는 말 그대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쓰는 것과 같은 어떤 사건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상의 결과나 그 과정들에 관한 이야기를 뜻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나리오는 영화처럼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탄소와 관련한 많은 분야의 다양한 학자들이 모여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하나의 시나리오를 만들게 된다. 바로 그것이 Shared Socioeconomic Pathways(SSPs), 공통사회경제 시나리오다. SSPs 시나리오는 재생에너지 사용 및 친환경 정책으로 기후변화를 완화시키는 것부터 지금과 같은 무분별한 화석연료 사용으로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마구 높아지는 최악의 기후변화 시나리오 등 5개의 탄소배출량이 다른 시나리오로 구성되어 있다.

 

이제 기후과학자들은 이러한 5개의 각기 다른 탄소배출량을 가상의 지구시스템모델에 입력하고 슈퍼컴퓨터를 통해 계산하면 지금부터 2100년까지 지구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예상할 수 있듯이 우리 인류가 많은 탄소를 배출하면 먼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고 그다음 기온이 올라가게 된다. 이미 많은 분이 뉴스 같은 데서 보셨을 것이다. 가로 방향으로 지금부터 2100년까지 시간이 진행되면 세로 방향으로 온도 값이 우상향하면서 올라가는 그림을. 이 간단한 그림은 지금까지 언급했던 복잡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타나는 값이다. 그렇다면 지구의 기후시스템을 진단하고 예측하는 지구시스템모델이 알려주는 지금은 과연 몇 년일까? 지구시스템모델에 나타나는 2023년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약 420PPM이다. 지금과 같은 겨울철에 약 420PPM의 대기 중 농도는 우리나라 강원도 평창 같은 곳에서 측정되는 값과 거의 유사하다. 반면에 같은 기간 서울 도심 같은 곳은 500PPM 정도로 평창보다 약 80PPM 큰 값을 보인다. 그리고 500PPM은 기후변화의 시나리오에서 보면 약 2047년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농도가 낮은 하와이 마우나로아섬 같은 경우도 이제 막 420PPM을 돌파하였다. 즉 지구시스템모델이 예측하는 2023년 현재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나타나는 곳은 지구상에서 가장 깨끗하다고 알려진 하와이, 그리고 우리나라 같으면 평창 같은 곳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서울은 25년을 앞서가 2047년에 사는 것이다.

 

공단은 도시보다 더 미래에 사는 것

비록 정확한 계산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 전 세계인이 기후의 미래라고 하는 것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양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틀린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탄소의 시차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2023년에 어울리는 탄소를 가진 평창과 그보다 더 먼 미래에 사는 서울을 비교해보라. 서울은 분명히 평창보다 더 나은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수많은 혜택을 보고 있다. 해가 저물고 어둠이 깔리면 평창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반면에 서울은 어떤가, 한마디로 Never sleep city, 잠들지 않는 도시다. 어둠이 밀려와도 막대한 에너지를 이용하여 가냘픈 달빛을 조롱하듯 강력한 인공 빛을 뿜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둠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 도시다. 결국 더 많은 사람, 더 많은 자동차, 더 많은 폐기물, 더 많은 건물, 더 많은 에너지 사용으로 더 많은 탄소를 공기 중으로 뿜어내 서울은 2047년으로 내달려 버린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탄소의 시간을 바로잡아야 한다. 평창이나 하와이처럼 지구상 모든 곳의 탄소 시간은 2023년으로 맞추어져야 한다. 즉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값으로 지구 전체가 일정해지면 되는 것이다. 서울 같은 곳은 더는 대기 중으로 탄소를 배출하면 안 된다. 바로 서울이 탄소중립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건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로 배출이 많이 일어나는 전 세계 대도시 그리고 주요 공단 모든 곳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사실 울산의 화학공단 같은 곳의 일반 대기는 서울보다 훨씬 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다. 즉 탄소의 나이로 보면 공단은 도시보다 더 미래에 사는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탄소의 시간으로 볼 때, 인류가 하나의 시간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도시, 공단 등 주요 배출원이 있는 지역에서 탄소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너무 앞서 가버린 지역의 시간을 되돌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어떤 지역이 얼마나 다른 시간에 살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 국가의 인프라가 부족한 것 같다. 탄소의 시간을 파악할 수 있는 과학적인 모니터링 체계가 구축된다면 우리나라 방방곡곡의 시간 차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모두가 같은 시간을 살아갈 때 기후변화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경향 : 2023.01.03.

 

 

연평도 보온병의 추억과 윤 대통령의 무지

 

연평도 포격 사건이튿날인 20101124일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등이 연평도 주택가에서 보온병을 들고 포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와이티엔(YTN) 화면 갈무리

 

20101123일 오후 234분 북에서 쏜 포탄 수십발이 연평도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초등학생들은 하굣길이었고, 어린이집 원생들은 낮잠 시간이었다. 바닷가에서는 주민들이 굴을 따고 있었다. 교전은 1시간 남짓 이어졌다. 우리 쪽은 민간인 2명과 군인 2명이 숨졌다. 주민 80%가 여객선과 어선에 몸만 싣고 피난길에 올랐다. 민간 거주지역이 공격당하는 사태는 1953727일 정전협정 이래 처음이었다.

 

이튿날 입도한 한나라당의 안상수 대표는 폐허가 된 주택가에서 검게 그을린 원통형 물체 2개를 손에 들고 섰다. “이게 포탄입니다, 포탄!” 예비역 육군 중장인 황진하 의원은 포병여단장 출신답게 이게 76같고, 이거는 아마 122방사포라며 아는 체했고, 공군 중위로 전역한 안형환 대변인도 곡사포 맞네요, 곡사포네 곡사포라고 거들었다. 이들이 자리를 뜬 뒤 원통형 물체는 보온병으로 판명됐다.

 

국회의원 세명의 큰소리는 우스갯거리로 소비되고 말았지만, 실은 전투(나아가 전쟁)란 무엇인지를 사실감 넘치게 보여준 것이었다. 영화 <품행제로>(2002)에서 태권도부원들을 일당백으로 먼지처럼 날려버렸다는 전설의 고교 싸움꾼 중필(류승범)이 막상 숙명의 라이벌과 일전을 치를 때 막싸움의 리얼리즘을 시전했듯이, 포병여단장 출신 베테랑이 보온병을 포탄으로 오인한 것 또한 전투(전쟁)의 판타지를 지우는 리얼리즘이었다.

 

연평도 보온병은 12년 하고 한달 만에 석모도 새떼로 돌아왔다. 새떼를 북의 무인기로 오인한 군이 전투기를 출격시켰고, 그 전투기는 다시 북의 무인기로 오인돼 지방자치단체가 주민들에게 긴급 재난 문자를 보냈다. 전날엔 북의 무인기들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상공을 휘젓다 돌아갔고, 우리 군의 경공격기 한대는 대응 출격하다 곧장 추락했다. 그러나 이틀에 걸친 좌충우돌 또한 기겁할 일보다는 품행제로식리얼리즘의 귀환에 가까웠다.

 

권위 있는 다큐멘터리를 봐도, 매끈한 전쟁 따위는 없다. 유명 지휘관의 판단도 빗나가기 일쑤다. 신중한 전략가였던 영국 버나드 몽고메리 장군은 1944917마켓가든 작전에 들어갔다. 나흘 뒤 라인강 방어선을 뚫고 독일로 입성해 크리스마스 전에 전쟁을 끝낼 계획이었다. 그의 조바심은 1700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연합군 안에서 이런 일은 드물지 않았고, 냉정하게 말해 2차대전 승리는 운칠기삼이었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전쟁에 정작 무지하다. 그것이야말로 전쟁의 가장 위험한 속성이다. 인류가 유구히 발전시켜온 거대한 폭력 기계는 언제부턴가 인간의 관리와 통제 역량을 초과했고, 전쟁의 전개를 가지런히 내다보는 것도 더는 가능하지 않다. 무지 가운데 가장 큰 무지는 무지하다는 사실에 무지한 것이다. 호전주의적 입을 가진 이들일수록 더욱 심하고, 그 입이 최고권력자의 것일 때 재앙에의 무지(불확실성)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 무인기를 격추하지 못한 것에 격노했다. 하지만 책임을 “2017년부터 무인기 드론에 대한 대응 노력과 전력 구축이 제대로 되지 않고 훈련이 전무했다며 문재인 정부로 돌리고, 자신은 드론 부대 설치를 최대한 앞당기겠다고 공언했다. 군 통수권자인 그가 설령 2018년에 이미 드론 부대가 창설됐고 육군에만 3000여대의 각종 무인기가 있다는 걸 몰랐다 해도, 국군의 날 사열에서 열중쉬어구령을 안 내린 것만큼이나 사소한 무지다.

 

윤 대통령은 북에서 무인기 1대 내려오면 2~3대 올려 보내고, 북한에 핵이 있어도 주저하지 말고 응징하라고 지시했다. 혹여 무인기와 핵무기를 동렬로 인식한 데서 나온 것이라면 위험천만한 무지가 아닐 수 없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는 이 발언을 겨냥한 듯 신년사를 갈음하는 전원회의 보고에서 남조선 괴뢰들이 우리의 명백한 적으로 다가선 현 상황은 핵탄(핵무기)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연평도 포격 사건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스마트한 영상으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전쟁의 참상과 함께, 전쟁의 발화점이 그토록 낮은지조차 모를 만큼 우리가 무지하다는 걸 사실적으로 일깨웠다. 2023년 새해, 우리의 생존을 위해 다시금 그 리얼리즘이 더없이 절실해졌다.

안영춘ㅣ논설위원 한겨레 : 2023.01.03.

 

윤석열, 대통령 왜 됐는지 이제 의문이 풀렸다

국정 농단 다 봐준 사면 농단’, 기분대로 꺼내든 확전 불사

우격다짐으로 끼워맞춘 부품이나 장치가 삐거덕삐거덕 억지스럽게 움직인달까. 아귀가 짓뭉개지면서라도 어찌어찌 맞물려 돌아가면 그나마 다행일 텐데, 갑자기 멈춰서거나 터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이런 불안이 박근혜 정권 때도 있었다. 국정 농단이라는 배후의 작동원리가 드러나면서 그 실체를 알게 됐다. 김무성 같은 이는 자의 반 타의 반일지언정 몸으로 제동을 걸기도 했다. 그러니까 당시 우리는 맥락을 알았고 맥락에 저항하는 여권 인사를 보기도 했다. 지금은 대통령의 내맘외에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의 맥락을 도통 못 짚겠다.

 

과거 윤석열과 현재 윤석열 자아통합비아냥도 점잖다

이것저것 막 던져보다 뭐 하나 얻어걸리면 다행인 정치랄까. 철학과 의지는 고사하고 딱히 순서도 없다. 그냥 대통령 마음대로 즉흥적이다. 난데없이 노동·교육·연금 개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언제, 어떻게? 며느리도 모른다. 그냥 먼저 걸린 게 귀족노조 딱지 붙여 무릎 꿇린 화물연대였다. 여기서 재미 봤다고 여기는지 노조 부패를 들먹이며 회계장부를 공개하라 했다. 이어 시민단체를 소환했다. 나랏돈 함부로 썼다고 예산 불투명 오명을 씌웠다. 뜬금없다. ‘내 편(이라고 여길 만한 이)이 마뜩잖아하는 세력을 일단 한번 털어보겠다는 식이다. 이렇게라도 지지율을 올리겠다는 심보인가. 더 떨어질 것도 없으니 밑져야 본전인가.

 

내키는 대로 정치하는 것까지 최고 권력자의 자유라 치자. 경우에 안 맞는 말은 그만 좀 갖다붙였으면 좋겠다. 근면성실하게 뇌물 받아먹고 17년 형기 중 감빵 생활은 들락날락 고작 2년 한 전직 대통령을 풀어주면서 국민 통합이라고 한다. 댓글 공작, 권력형 비리·부패 사범들도 대방출했다. 자기가 잡아 가둔 사람을 풀어준다면 최소한의 설명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과거 윤석열과 현재 윤석열의 자아 통합이라거나 다 끌어모아 당권을 잡기 위한 당원 통합이라는 비아냥조차 점잖을 정도이다.

 

권력을 즐기려면 책임져야 한다. 책임지지 않으면 권력에 취한 것뿐이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은 어느 쪽인가.

 

제일 상석에 앉아 놀고먹고 마시려고

아무도 직언은커녕 보고도 제대로 못하는 눈치다. 위기 때마다 대통령 입에서 나오는 아무 말을 보면 확인된다. 북한의 무인기 침투 다음날 첫 반응은 우리 군을 향한 격노였다. 그리고 전 정권 탓확전 각오였다. 이어지는 국방부와 대통령실의 말은 이치에 안 맞았다. 대통령의 믿고 싶은 대로 보고 좋을 대로 말하기를 빼다박았다.

 

대통령은 우리 군에 드론 부대가 있는 것도 몰랐으면서 전 정권 때 훈련을 안 한 건 어찌 알았을까. 국방부는 북한발 무인기의 항적 경로도 제대로 못 밝히면서 대통령실이 있는 서울 용산 쪽은 굳이 안 지났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우리 무인기를 북한에 침투시키는 식의 보복성 용단을 내린 분은 대통령이라고 이 와중에 깨알 칭송을 내놓았다. 아니 그걸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안 하면 누가 하나.

 

확전을 불사할 만큼 비례성 원칙에 추상같으신 분이 그 비상한 와중에 만찬 행사는 멀쩡히 치렀다. 불요불급한 송년 저녁 식사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까지 불러다 두고 말이다. 한 친구는 그가 왜 대통령이 됐는지 이제야 의문이 풀렸다고 했다. 진실은 의외로 단순하다며 제일 상석에 앉아 놀고먹고 마시려고라는 간명한 답을 냈다. 박근혜 정권 당시 더럽고 치사해도 박근혜보다 오래 살면 그만이라는 대인배 풍모를 내보였던 또 다른 친구는 심장이 쪼그라들었다며 제발 전쟁만 일으키지 말아라라는 새해 소망을 기도하는 소녀 사진과 함께 보내왔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한겨레 : 2023.01.04.

 

 

대통령이 외롭기를 바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최대 격전지인 바흐무트를 예고 없이 방문했다. 우리에게 대통령이 방문하는 격전지란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선거 지역구 정도를 의미하겠지만, 젤렌스키가 방문한 격전지는 말 그대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곳이다.

 

러시아는 와그너 용병은 물론 감옥에 수감 중이던 죄수들까지 바흐무트 전투에 대거 투입했다. 우크라이나군은 1차 세계대전에서나 목격할 수 있었던 참호전까지 불사하며 결사 항전 중이다. 전쟁을 거치며 바흐무트의 인구는 7만여명에서 1만여명으로 줄어들었고, 지금도 하루 수백명의 사상자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바흐무트를 찾은 젤렌스키의 용감함이 기억돼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대통령임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최전선까지 갔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텔레그램을 통해 공개된 당시 영상을 보면 젤렌스키는 병사들에게 메달을 수여하면서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의 명령에 따라 사지에서 싸우다가 내일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그들의 얼굴을, 마치 자신의 머릿속에 각인하려는 것처럼.

 

미드 <지정 생존자>에는 얼굴을 본다는 것의 의미를 알려주는 장면이 나온다. 이 드라마는 국회의사당 폭탄 테러로 대통령과 주요 정치인들이 한꺼번에 사망하는 바람에 별 볼 일 없던 대학교수 출신 장관이 하루아침에 미국 대통령이 된 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기존의 닳고 닳은 정치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그는 이전 대통령들이 하지 않았던 작은 부분까지 신경쓴다. 예를 들면 테러범 생포 지시를 내리면서 작전에 투입될 대원들을 미리 찾아가 격려와 감사를 전하는 것.

 

작전은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불행히도 현장 지휘관인 맥스가 목숨을 잃고 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전직 대통령이 그에게 조언을 한다.

 

나사르 생포 작전 직전에 네이비실을 방문했다지요? 훌륭한 생각이지만 그런 행동엔 대가가 따르지요. 내 결정으로 인해 죽은 이의 얼굴을 안다는 건.”

지휘관이 사망했습니다. 매일 맥스와 그의 가족을 생각합니다.”

최고사령관(대통령)은 단순한 직함이 아니요. 책임이지요. 끔찍한 책임. 이제 누굴 살리고 죽일 건지 결정할 힘을 지닌 거요. 세계에서 가장 외로운 직업이지요.”

 

이 장면을 떠올리면서,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윤석열 대통령도 지금 몹시 외로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통령의 외로움이란 결국 자신이 지닌 힘의 끔찍한 책임을 매 순간 각성하고, 그 힘으로도 누군가를 지켜주지 못할까봐 매 순간 두려워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윤 대통령이 안전 정책을 결정할 때 평생 자식 잃은 슬픔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얼굴 하나하나를 떠올리기 바라며, 주거 정책을 결정할 때는 지난해 여름 집안에서 익사한 서울 신림동 반지하 일가족의 얼굴을 떠올리기 바란다. 장애인 정책을 결정할 때는 발달장애가 있는 6세 아들을 안고 아파트에서 몸을 던진 40대 어머니를 떠올리기 바라며, 산업안전 정책을 결정할 때는 안전기준에 미달한 소스배합기에 몸이 끼여 사망한 SPC20대 직원을 떠올리기 바란다. 그리고 화물 운임 정책을 결정할 때는 하루 16시간을 도로 위에서 보내야 하는 화물 기사와, 무사귀환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매일같이 기도하는 그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리기 바란다.

 

만약 대통령의 머릿속이 우리 편인 여당 정치인과 남의 편인 야당 정치인의 얼굴로 이미 가득 차서, 저 얼굴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지 못해 손쉬운 묶음으로 처리된다면, 그것만큼 비극적인 현실은 없다. 그것은 다시 말하자면 이들 하나하나가 노동세력’ ‘장애인세력같은, 얼굴을 갖지 못한 세력으로 치환됨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구체적인 현실에서 터져나온 절규들은 대통령이 벌이고 있는 정치적 투쟁의 판 속에서 북핵과 다를 바 없는 위협이라는 비유적 삽화로 취급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의 결정이 언제나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순위를 정하다보면 누군가의 기대를 온전히 채워주지 못해 실망케 하는 순간도 올 것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실망할 그들의 얼굴까지도 매일 떠올려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만 대통령은 타협해야 하는 것과 타협해선 안 되는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이 끔찍한 책임을 지고 가야 할, ‘세계에서 가장 외로운 직업이라는 대통령의 무게다.

정유진 국제부장 경향 : 2023.01.05.

 

 

윤 대통령은 약자복지말할 자격 없다

복지시민단체 성원으로서 내가 다짐한 새해의 핵심 과제는 약자복지이다. 굳이 대통령이 주창하는 의제를 다시 꺼내는 건, 정부의 약자복지가 말로만 그치기 때문이다. 보수 정부가 두툼한 복지, 맞춤형 복지 등 최소한 그들이 강조하는 복지는 챙길 줄 알았는데 그 기대가 정부 첫해부터 깨졌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가 제시한 국정과제에서 필요한 국민께 더 두껍게 지원하겠습니다는 나름 의미 있는 선언이다. 지난 10년 보편복지 담론이 부상하면서 복지가 확대되었지만 약자를 위한 복지는 여전히 빈약하다. 이 기간에 전체 복지예산은 평균 8.6% 늘었지만 취약계층 복지의 준거인 기준중위소득 인상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한 고용보험,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에서는 불안정 취업자 상당수가 사각지대에 있고, 지난 몇년 부동산 폭등으로 세입자의 허리는 더 휘었으며, 노인세대는 10명 중 4명이 궁핍하게 살고 있다. 총량에서 복지가 늘었다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가난한 사람의 복지는 지체되는 복지의 불균등 발전이다. 이제라도 약자복지를 두껍게 하겠다는 윤 정부의 선언을 주목했던 이유이다.

 

하지만 정작 정부의 약자복지는 실망을 넘어 분노마저 자아낸다. 어떻게 이러한 복지정책으로 약자복지를 말할 수 있는가. 첫째, 정부는 약자복지의 상징 정책으로 역대 최고의 기준 중위소득 인상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높은 물가에서 실질 구매력도 유지하지 못하는 인상이다. 우리나라에서 기준 중위소득은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비롯하여 다양한 선별복지 급여의 기준선이다. 현재 복지부, 교육부 등 13개 부처, 76개 사업이 기준중위소득에 영향을 받으니 약자복지를 가름하는 척도이다. 정부는 올해 기준중위소득이 2016년 도입 이래 최고 인상률이라고 홍보하지만, 이는 기존에 기준중위소득을 과소산정해왔던 제도 결함을 메우기 위해 2021년에 마련한 조정산식에 따라 정부 출범 이전에 이미 설정된 인상률이다. 만약 정부가 진정 약자복지 의지를 지녔다면, 이 인상률에 머물지 말고 근래 고물가를 반영하여 추가 인상을 추진해야 했으나 그대로 갔다. 그 결과 기준중위소득 인상률이 예전보다 높다지만 고물가 상황에서 올해 가난한 사람의 복지급여 실질액은 오히려 낮아질 수 있다. 이런데도 기준중위소득 인상률을 약자복지의 대표 상품으로 내세우니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듯하다.

 

둘째, 약자복지 정부라면서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대폭 축소했다. 정부가 올해 예산안에서 작년보다 57000억원을 삭감한 예산안을 편성했고 국회에서 겨우 7000억원이 되살아났으니 결국 5조원이 줄어들었다. 어려운 처지에 몰린 세입자들에게 이 5조원은 삶의 보금자리가 사라짐을 의미한다. 대통령은 지난달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지어서 공급하다 보면 중앙 정부나 지방 정부가 상당한 재정부담을 안게 되기 때문에 납세자에게 굉장히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많은 공공임대주택을 짓고 있는가? 당장 민간 전·월세가 힘겨운 사람들이 공공임대주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음을 모르는가? 정말 이러한 인식 수준이라면 대통령은 약자복지를 말할 자격이 없다.

 

셋째, 정부는 노인들이 간절히 원하는 정책인 공공형 노인일자리 사업을 대폭 축소하려 했다. 한국 사회에서 노인은 대표적 약자세대이다. 202018~65세 연령대의 빈곤율이 10.6%인 데 반해 66세 이상은 40.4%4배나 높다. 노인들에게 노인일자리는 월 27만원 소득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이웃을 만나고 자신의 역할을 갖는 자리이다. 작년 전체 노인일자리 수요충족률이 41.8%에 그칠 만큼 노인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무려 노인일자리 6만개를 줄이는 내년 예산안을 편성했다. 고령 노인의 생활과 노인일자리 효과에 대한 몰이해가 낳은 삭감이다. 놀랍게도, 이에 대한 비판이 일자 정부는 선뜻 원상회복을 약속했다. 그 짧은 기간에 무슨 변화가 있었던 걸까, 올해 고용 전망이 어두워지자 고용률 계산에 포함되는 노인일자리 수치가 필요해진 건 아닐까. 이러면 언제든 노인일자리는 다시 축소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에게 노인은 이처럼 가벼운 정책 대상이다.

 

정부의 약자복지에 화가 나는 만큼 새해 각오도 강해진다. 오늘의 약자복지 현실은 한편에선 선악 이분법의 보편·선별 논의가 낳은 그늘이기도 하기에 모두가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힘은 작아도 시민사회 몫을 다할 작정이다. 또한 약자복지가 소중한 만큼 이 단어가 훼손되지 않기를 바란다. 새해에 완전히 새로워지지 않을 거면, 대통령은 더 이상 약자복지를 말하지 마시라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경향 : 2023.01.05.

 

 

노동과 자유, 그 아름다움과 무서움

200년 전 영국 공장들에선 노동자가 매일 15~16시간 유혈 노동을 했다. 이에 하루 10시간 노동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1836년 옥스퍼드대 경제학과 나소 시니어 교수는 “10시간 노동제 시행 때 자본가에겐 한푼도 안 남을 것이라 주장했다. 당시 공장법은 18살 미만 청소년은 11.5시간 이상 노동을 금지했다. 시니어 교수는 여기서 1시간만 줄여도 순이익이 사라진다며 펄쩍 뛰었다. 이게 그 유명한 시니어의 마지막 1시간’!

 

이 이론은 마르크스의 <자본>에서 보기 좋게 논박됐다. 핵심은 노동자의 실노동시간을 고정자본 보전시간, 유동자본 보전시간, 순이익의 시간으로 나눈 방법론 자체가 오류라는 것! , 노동자는 노동의 전 과정에서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을 동시 수행하기에, 노동시간이 줄어도 이윤은 계속 생산된다. 그렇지 않다면, 1800년 무렵 하루 15시간 노동이 1848년 공장법 이후 10시간으로, 1930년대 이후 8시간으로 줄면서 벌써 자본주의가 파산했을 터!

 

그런데 흥미롭게도 2022년 대한민국은 200년 전 당시 영국의 노동시간을 재현하려 한다. 노동 관련 대학교수 12명으로 구성된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지난달 12, 대정부 권고안을 낸 것! 이 연구회는 근로기준법의 탄력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을 현행 최대 3개월에서 향후 365일로 늘리면 주당 최대 69~80시간 노동이 가능하다 했다. 현행 정규 노동은 주 40시간(5일제)이다. 그러나 이들은 일중독장려회라도 되는 듯, 노동시간을 2배나 늘리려 한다.

 

여기서 나는 세계 최초 과로사로 기록된, 1863년 영국 메리 앤 워클리라는 노동자의 죽음을 기억한다. 당시 20살 여성 메리는 귀족용 무도복을 만드느라 하루 16시간씩 일했고, 성수기를 맞아 연속 27시간째 일하다 사망했다. 이런 참사가 1960~70년대 전태일 청계피복 공장, 1980~90년대 자동차 공장에 이어 21세기 한국에서도 반복될까 두렵다. 실은 지금도 매일 참사다.

 

더 놀라운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국무회의에서 민주노총=자유민주주의 파괴 세력=타협 불가 세력으로 규정하고 사실상 배제를 선포한 일! 그 직접적 계기는 안전운임제 연장과 확대를 요구하며 2주일 이상 파업을 감행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 화물연대의 단체행동이었다. 대통령은 화물연대 파업(1124~129) 후속 대책과 관련해 우리 공동체의 기본 가치가 자유라는 데에 동의하는 사람들과는 협치나 타협이 가능하지만, 자유를 제거하려는 사람들, 거짓 선동과 협박을 일삼는 세력과는 함께할 수 없다고 했다. 노동자의 단체행동을 자유를 제거하려는 범죄로 낙인찍은 셈!

 

자유! 좋은 가치다. 그러나 그 본연의 뜻이 무엇인가? 스스로() 말미암는() , 이는 그 어떤 외적 강제 없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느낌과 감정, 생각과 의지, 즉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에 따른 행동이다. 물론, 무책임한 자유는 방종일 뿐! 따라서 내재적 동기에 기초하되 책임성 있는 삶, 이것이 참된 자유다.

 

그러나 이 자유를 권력과 자본은 맘대로 왜곡한다. 예컨대, 1940년대 독일 나치가 유대인, 노조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집시, 성소수자 등 수백만명을 강제로 가두고 노동을 강요한 2만여 집단수용소 입구엔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Arbeit macht frei)라고 씌어 있었다. 지금도 베를린 근교 작센하우젠이나 뮌헨 인근 다하우에 가면 그 생생한 역사를 볼 수 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도 나오듯, 나치의 약속은 새빨간 거짓이었다. 노동은 자유의 토대가 아니라 그 자체로 억압과 죽음이었다!

 

다시 한국을 보자. 현행 노동법을 억지로 우회해 노동시간을 연장하려는 것, 그간 지렁이 가듯 천천히 단축된 노동시간의 시계를 역류하는 것, 노동자의 정당한 단체행동을 업무개시명령으로 분쇄한 것, 느닷없이 노동조합 부패를 한국의 3대 부패라며 노조운동을 부정하는 것, 이 모든 일은 결코 자유로운 사고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자본과 권력이라는 외재적 동기(extrinsic motivation)의 압력일 뿐! 이는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이들이 국민을 위해 일하기보다 자본과 권력을 내면화한 채 그 대리인 역할을 하기 때문.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돈벌이의 자유!

 

윤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영빈관에서 열린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노동시장에서의 이중구조 개선이라든가 합리적 보상체계를 만드는 것, -노 간 착취적인 시스템을 바꿔나가는 것이야말로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진정 노동 가치를 존중한다면 그 접근 방식은 달라야 했다.

 

첫째, 화물연대 파업을 비롯해 모든 노동자 파업을 법으로 제재하기 전에 그 고충과 불만이 뭔지 경청해야 한다. 현장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것이 노동 가치 존중의 첫걸음이다.

둘째, 노동 가치 존중이란 결국 노동자의 삶을 존중하는 것! 그렇다면 노동자들도 인간다운 삶을 누려야 한다. 그 지름길은 잔업수당 없는 노동시간 연장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시간 단축이다. ‘오후가 있는 삶이 가능하면서도 생계불안이 없어야 한다.

 

셋째, 노동 가치를 진심 존중하려면 헌법 33조에 규정된 노동 3, 즉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적극 보장하고, 생산 현장의 민주주의도 이뤄야 한다. 노동 현장에 만연한 갑질 문화, 각종 차별과 불평등 구조, 일방적인 명령과 지시, 양심 배반의 꼼수들, 이 모두를 자주관리기업인 우진교통수준으로 고쳐야 한다.

 

물론, 현 정부에 이런 걸 기대하기보다는 우물에서 숭늉 찾기가 더 쉬울지 모른다. , 근본적으로 보면 자본주의 상품사회는 노동 가치 위에 성립, 지속하는 시스템 아닌가? 따라서 노동 가치 존중은 오히려 자본주의 시스템 유지에 기여한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놀다가 죽었다며 비아냥거린 것도 이 기저의 진실 때문!

 

그렇다면 억압과 차별, 착취와 파괴를 근원적으로 발본색원하는 길은 노동, (교환)가치, 상품, 화폐에 기초한 시스템 원리 자체를 비판·성찰하고 마침내 헤어질 결심을 하는 것! 향후 갈 길은 산티아고 순례길보다 멀다.

 

노동과 자유! 겉으론 아름답고 멋지지만 그 맥락과 근본을 볼수록 무서움이 감돈다. 죽도록 노동하며 자유를 누릴 순 없는 법!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부유한 노예를 위한 긴 노동시간이 아니라 인생의 참주인이 되기

강수돌 |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한겨레 : 2023.01.05.

 

 

핵 공유에 집착하는 군사적 망상

재작년 9월 대선판에 뛰어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미국에 전술핵 배치와 핵 공유를 요구하겠다는 안보공약을 발표했다. 발표 다음날 마크 램버트 미 국무부 부차관보는 윤 후보를 겨냥해 해당 공약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미국의 정책에 대한 무지가 그저 놀라울 뿐이라고 깔아뭉갰다.

 

이런 수모를 당한 기억이 희미해졌는지 윤석열 대통령은 <조선일보>와 한 신년 인터뷰에서 한미가 미국의 핵전력을 공동기획-공동연습개념으로 운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한미가 공동으로 미국의 핵무기 정보를 공유하고, 핵 사용 계획을 작성하며, 핵 사용 훈련까지 한다는 설명을 덧붙이며 윤 대통령은 미국도 상당히 긍정적인 입장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자신의 핵무기 소유권과 사용권, 통제권 일부를 한국과 공유할 것이라는 대통령의 인식은 후보 시절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우선 미국과 핵 사용을 공동으로 기획하려면 한미 핵 공동 기획그룹(NPG)이 구성돼야 한다.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국가들과 전술핵을 공유하면서 운용하고 있는 이 모델을 아시아의 동맹국에도 적용하자는 주장은 예전에도 일부 미국의 학자들 사이에서 나왔다.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핵 기획그룹에 한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인도를 참여시켜 아시아판 나토와 같은 집단안보 체제를 구축하자는 소수 학자들의 주장이 있었지만, 핵 비확산을 금과옥조처럼 신봉하는 미국 정부가 실제로 그런 방안을 검토한다는 소식은 이제껏 누구도 들어본 바 없다. 오히려 이런 주장을 하면 무지하다는 비아냥만 돌아올 뿐이다.

 

더군다나 미국이 다른 동맹국과의 관계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유독 한국에 핵 공유라는 특혜를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는 상식적이지 않다. “핵 없는 세상을 주장해온 조 바이든 대통령이라면 더욱 이를 거부할 것이다. 실제로 바이든은 백악관에서 기자의 한국과 핵 공동연습을 검토하느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라고 답했다. 뒤이어 나온 백악관 해명 역시 한국과 핵을 공유한다거나 공동 핵 정책을 기획한다는 이야기는 없다.

 

윤 대통령 주장대로 한미가 핵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으로 핵무기 투발 모의연습을 하려면 한미 핵 연합부대가 창설돼야 한다. 핵에 대한 접근과 사용은 일반 전투부대가 아니라 핵 접근권을 인가받은 특별한 전문요원만 가능하다. 더 나아가 한국군이 미국의 전략자산 운용에 관여하든지, 아니면 한국군 전투기, 잠수함, 미사일에 핵 사용 코드를 부여해 미국의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어야 한다. 유사시 한반도에 핵탄두를 투입할 수 있는 특수 저장시설과 인가된 요원이 한국 또는 일본이나 괌에 배치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시아에는 그런 미국의 핵 저장시설이 단 한곳도 없다. 한국군이 미국의 핵전쟁 수행부대에 작전통제권을 행사하거나 핵 사용 결정에 참여해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미국으로부터 그런 허가를 받은 전문요원이 없고 미국은 세계 어떤 동맹국에도 이런 특혜를 베푼 적이 없다. 더군다나 한국군 주요 공격무기들은 아예 핵탄두 장착이 불가능하도록 미국으로부터 촘촘한 기술 통제를 받고 있다. 미국이 핵 공유를 하는 나토의 유럽 국가들도 사후 평가에만 참여할 뿐 실제로 미국 핵무기 작전통제권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우리가 미국과 핵 사용을 전제로 한 모의연습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미국의 작전에 관한 사후 평가나 통보에 불과한 수준이지 핵 사용 기획과 결정에 참여하는 공동의 핵 정책 수행체계는 아니다.

 

미국이 보유한 전술 핵탄두 200여기는 유럽 방어를 위해 오래전에 구축한 항공기 투하용 중력 핵폭탄이다. 방공망이 조밀한 한반도에서 전술핵을 사용하려면 폭격기로 핵을 투하하는 것은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함정에서 발사하는 핵 순항미사일이나 잠수함 발사용 전술 핵미사일을 동원해야 한다. 그런데 바이든 정부는 실전에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전술핵 현대화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실전에 사용될 가능성이 큰 전술핵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전술핵을 마치 우리 것인 양 주장하는 그 무지와 망상이 놀라울 뿐이다. 대통령이라면 정확한 현실 인식과 합리적인 안보 정책의 품격을 보여줘야 할 것 아닌가.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한겨레 : 2023.01.05.

 

 

검사라는 공직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관련 수사를 벌이는 검사 16명의 이름과 소속, 사진을 공개했다. 관련 수사 검사는 모두 60명이란다. 민주당 대변인은 야당 파괴와 정적 제거에 누가 나서고 있는지알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필요하다면 문재인 전 대통령 관련 수사 검사 90명의 명단도 공개하겠단다.

 

검사들의 명단 공개에 대해 법무부 장관은 적법하게 직무를 수행 중인 공직자들의 좌표를 찍고, 조리돌림당하도록 선동하는 법치주의 훼손이라고 비난했다.

 

더불어민주당의 명단 공개가 법치주의를 훼손하는지 따지기 전에 먼저 살펴야 할 것은 검사들의 명단은 누구도 공개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하냐는 거다. 검사의 수사와 기소는 국민에게 위임받은 공적 활동이다. 개인의 영달이나 패거리의 이익을 위해 악용해선 안 된다. 공직자의 공적 활동은 공개되어야 하고, 공직자는 자신이 벌이는 공적 활동에 대해 당연히 책임져야 한다. 수사 검사에 대한 명단 공개는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검찰 스스로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이랄 수 있는 야당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명단을 공개할 수 있는 거다. 검찰이 이재명 대표에게 정치보복을 하는 게 아니라면, 검찰 스스로가 떳떳하다면 먼저 검사들의 이름을 밝히면 안 될까.

 

검찰은 내세우고 싶은 사건은 기자들에게 슬쩍 흘리기도 하고, 보도자료를 배포하거나 공개 브리핑도 곧잘 한다. 그러나 부담스러운 사건이 있으면 철저하게 비밀의 장막 뒤에 숨는다. 공직자가 적법하게 직무를 수행한다면서도 이름과 얼굴 등 기본적인 신상을 숨기려고 하는 것은 그저 발뺌에 불과하다.

 

나는 공무를 수행한 적도 없고 공인도 아니지만, 내 이름을 걸고 이 칼럼을 쓰고 있다. 오늘 지면에서 만나게 될 숱한 기사들도 마찬가지다. 기자들은 모두 자기 기사에 실명을 단다. 이를 흔히 바이라인(by-line)이라 부른다. 어떤 기사는 적대적인 반응에 시달리기도 하고, 날마다 얼굴을 맞대야 하는 사람이 불편해할 기사를 쓸 때도 있지만, 그래도 자기 기사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이름을 내걸고 있다. 기자도 물론 공인은 아니다.

 

버스 운전기사도 택시 기사도 모두 자기 이름을 내걸고 일한다. 화장실 청소 노동자도 그렇다. 불편한 게 있거나 뭔가 모자라는 게 있다면 연락해달라고 담당자 이름을 적어둔 곳은 너무나 많다. 사영기업에서 일하는 평범한 노동자들인데도 그렇다.

 

사영기업이 이 정도라면, 국가는 사뭇 달라야 한다. 단지 이윤만을 추구하는 사영기업과 달리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을 모시는 데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는 헌법 제7조의 규정은 공무원이 자기 이름과 얼굴을 숨기며 어둠 속에서 일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비밀정보기관 종사자들만이 예외일 뿐이다. 이런 원칙을 지키는 게 법치다.

 

이재명 대표 사건 수사 검사 60, 문재인 전 대통령 사건 수사 검사 90. 모두 150명의 검사를 두 사람 관련 사건에 투입했다. 놀라운 일이다. 숫자만 엄청난 게 아니다. 검찰의핵심 역량도 문재인·이재명 두 사람의 형사처벌을 위해 총동원하고 있다. 대검 중수부 폐지 이후 특수부 검찰의 핵심 역할을 하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는 온통 민주당 관련 수사에만 골몰하고 있다. 야당 탄압을 위한 수사에도 여당 인사를 슬쩍 끼워 넣는 방식으로 균형을 맞추기도 하는데, 이런 형식적인 꾸밈조차 없다.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그대로 돌진할 뿐이다. 반부패수사부 부장 세 명이 모두 윤석열 사단이다. 문재인·이재명 두 사람이 대한민국 부패의 온상이며 전부라도 된다는 것처럼 검찰의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이럴수록 검찰은 책임 있는 모습, 국민 앞에 떳떳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전직 대통령과 야당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는 명백한 정치보복이고 전형적인 검찰권 남용이다. 대통령 본인은 그렇다 쳐도 대통령 부인이나 장모가 연루된 사건은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것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법의 지배는 법의 이름을 빌려 남을 괴롭히면서도 자신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뻔뻔함의 다른 이름은 아니어야 한다. 법의 지배는 그가 검사이든 대통령이나 법무부 장관이어도 공무원으로서 공직을 수행한다는 기본을 확인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전직 대통령과 야당 대표만이 아니라, 현직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실세도 법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말뜻 그대로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이 지켜지는 게 법치주의의 기본이다. 공직자의 공무 수행은 국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경향 : 2023.01.06.

 

여러분, 새해엔 알아서 버티셔야 합니다

2023년 새해에, 2000년 이후 강산이 두 번 바뀐 신년 벽두에 이런 걱정을 하게 될 줄, 이런 제목의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한층 팍팍해진 일상을 이어가는 일 자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절감하는 하루하루다. 생각이 뻗어가는 대로 열거해 본다.

 

새해엔 최악의 고용한파가 몰아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지난 연말 공공기관을 혁신하겠다며 2025년까지 공공기관 정원을 12000명 이상 줄이는 감축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공공부문을 효율화하고 민간 일자리를 늘리겠다지만 글쎄다. 경기가 안 좋은데 기업 규제를 푼다고 일자리가 늘어날까? 어림도 없다. 과거 사례를 돌아봐도, 현 상황을 봐서도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올해 취업자 수 증가 폭은 지난해 81만명에서 10만명으로 90% 급감이 예상된다. 대책은? 아직이다. 관계부처 합동 일자리TF가 이달 중 내놓겠다는 고용정책을 두고 볼 일이다.

 

구조조정 칼바람에서 살아남더라도, 취업에 간신히 성공하더라도 한국 사회는 다시 과로사회로 접어들 조짐이다. 정부는 주 52시간의 노동시간을 최대 69시간으로 늘리는 노동개혁방침을 내놨다. 2016년 게임업체에서 개발자로 일하던 20대 청년의 과로사는, “일하다 죽는 야만사회를 이젠 끝내야 한다는 공분 속에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을 가져왔다. 그러나 후보 시절 120시간 노동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던 윤석열 대통령은 52시간제 완화는 노동시간 선택권 확대라는 궤변으로, 잉크가 마르지도 않은 정책을 원점 이전으로 되돌리고 있다.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그렇게 일하다간 병들거나 과로사 위험에 노출될 뿐이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2023년에 이 말을 해야 하는 현실이 참담하다.

 

새해엔 버스·지하철·택시 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이 줄줄이 예고돼 있다.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외환위기 이후 2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터다. 코로나19 이후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부채와 자영업자 대출 증가분 560조원은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이다. 정부 대책이 기업 규제 완화에 집중된 사이 시민들은 보호막도 없이 고물가·고금리의 파고에 맨몸으로 맞서야 할 상황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부동산 정책의 초점은 다주택자 규제 완화에 맞춰져 있다. 집을 살 때도, 팔 때도 세금을 깎아주고, 대출한도도 늘려준다. 추가 규제 완화까지 예고돼 있다. 윤 대통령은 1차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다주택자에 대한 과세를 경감해 시장에서 열악한 지위에 있는 임차인들이 저가에 임차를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드리려고 한다며 다주택자 과세 경감이 서민 대책이라는 취지의 상식 밖 주장을 강변했다. 그래놓고 정작 서민들의 버팀목인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단번에 56864억원을 깎았다. 수익이 안 된다는 이유로 전공 선택과 채용을 꺼려 소아과 의사 기근 비상이라는 기사가 대서특필되고 있다. 저출생 시대에 한심한 노릇이다.

 

3년간 12000명의 공공부문 고용 축소로 아낄 수 있는 비용은 최대 연 7600억원이라고 한다. 법인세·종부세 등 부자감세로 줄어드는 5년간 20조원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대통령 본인이 국민들이 숨이 넘어가는 상황”(2022620일 도어스테핑)이라고 진단할 만큼, 경제와 민생의 위기 상황에서 감행한 청와대 이전 비용은 또 어떤가. 496억원이면 충분하다던 주장과는 달리, 연쇄비용까지 더하면 최대 17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까지 나온다. 국민들은 숨이 넘어가는데, 정부는 솔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새천년에는 더불어 잘사는 중산층 중심의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일등만을 위한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약한 사람과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제대로 갖추어야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 일류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습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새천년 신년사는 평화와 인권, 정의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국민적 화합, 남북관계를 강조했다.

 

2023년 윤석열 대통령의 신년사에 통합협치는 없었다. 대신 노동·교육·연금의 3대 개혁 추진 방침과 함께, 귀족노조와 기득권 비판, 노사 법치주의가 거듭 등장했다.

 

세상이 거꾸로 가고 있다. 눈물이 난다. 새해, 모든 책임을 시민 각자에게, 기득권이라 낙인찍힌 노동자들에게 지우려는 으름장에 맞서 어떻게든 잘 버텨내시라.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똑똑히 기억하면서.

송현숙 후마니타스 연구소장·논설위원 경향 : 2023.01.06.

 

 

주권 없는 주권자들을 위하여

화물노동자의 파업, 전장연의 지하철 점거, 학습지 선생님들의 국회 앞 농성, 하청 및 청소 노동자들의 길거리 절규, 대리운전자들의 숨죽인 울음은 주권 없는 주권자들이 바로 우리 이웃에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도 주권의 예외에 해당될 것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일깨운다. ‘헌법1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은 주권자들의 위임을 받은 권력자에 의해 사문화되고 있는 것 아닌가. 토머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근대국가의 주권을 지상의 신이 탄생한 것으로 보았다. 민주주의의 결함은 주권의 단일성에 있다며 철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를 탄핵하고 있다. 핵전쟁은 이러한 주권 독점의 끝판을 보여준다. 어떻게 손끝 하나에 모든 주권을 모을 수 있는가.

 

주권 단일의 신화는 20세기에 인류에게 처절한 고통을 안겼다. 히틀러, 스탈린, 그리고 일본의 천황제가 대표적이다. 남북한의 권력체제 또한 분단의 이익을 공유한 공범에 해당한다. 단일화된 주권의 장에서 벗어나는 자는 탄압을 받았다. 살인과 신체적 폭력은 말할 것도 없고, 영혼의 불순함을 확신범으로 삼는 국가보안법처럼 법체계를 도구로 활용한다. 민주적 제도를 훔쳐 주권을 독점한 자들은 자본의 힘으로 시민을 경제적 이해관계의 분열로 몰아넣는다. 이주노동자들을 생각해보라. 그들의 노동력은 필요해도 그들의 문화는 필요없다. 또한 외국인과 결혼하면 상대의 언어를 서로 배우는 것이 참된 환대다. 그러나 한쪽의 언어는 다수의 문화권에서 부정된다. 결혼은 폭력이 된다.

 

주권에서 제외된 이들이, 인도 역사학자 라나지트 구하가 말하는 서발턴(Subaltern)이다. 하층민, 하층계급을 말한다. 그는 영국의 지배에 저항한 인도 농민들의 봉기를 연구하여 그들의 처지를 역사적으로 복원했다. 서발턴 연구자들은 서발턴 개념을 세계 곳곳의 주변에서 표류하고 배제된 주체 잃은 인민들로 확장했다. 현재는 다방면에서 그들의 주권 회복을 위한 재현의 가능성 논쟁으로 지평을 확대하고 있다. 사실 식민강권통치 아래에서는 모든 백성이 제국의 서발턴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식민모국의 대접을 받는 자와 이에 저항하는 서발턴으로 나눌 수 있다. 한국의 군사정권시대에는 갖은 학대를 당한 노동자와 독재에 항거한 시민들이 서발턴이다. 지금 또한 국가와 자본의 결탁 속에서 주변부로 밀려나는 힘없는 노동자와 농민·비정규직 노동자, 차별받는 여성과 어린이, 방치된 노숙인, 다수의 횡포에 처한 소수자,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서발턴은 현대의 불가촉천민이다. 세상은 더욱 심화된 계급사회다. 사제 계급인 브라만은 돈을 쥔 자다. 돈은 권력을 비롯한 모든 욕망을 살 수 있다. 실제 그들은 돈을 신으로 모신다. 관료와 무사 계급인 크샤트리아는 오늘날 권력을 독점한 정치가들이다. 이들 또한 신종 브라만의 신하다. 돈줄은 정치의 생명이다. 돈으로 획득한 표를 통해 권력의 독점적 재생산에 몰입한다. 지역구민은 자신의 권력을 지탱하는 충실한 하인이다. 평민인 바이샤는 투표하는 하루만 왕이지 나머지 인생은 거꾸로 권력에 지배된 시민들이다. 그들 또한 독점적 주권에 예속되어 있어 언제든 경계의 밖으로 밀려날 서발턴 예비군이다. 서발턴에 다름없는 노예인 수드라는 자신의 생산물로부터조차 소외된 노동자 계급이다. 대학의 시간강사들이야말로 그들이다. 교육에 함께 참여하면서도, 사무직도 노동자도 아닌 회색지대의 투명인간이다. 정치적 발언권 없는 교사들 또한 양심에 반하는 정부 명령에 불복종하는 순간, 국가는 그들을 불손하고 불온한 서발턴으로 내몬다.

 

그들 주권은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가. 인도영화 <강구바이 카티아와디>에서 사창가가 무대인 마피아의 여왕인 주인공은 남성들이 이쪽으로 오는데 왜 사회는 여성들만 단죄하는가라며 항거한다. 욕망으로 너절해진 사회구조를 여지없이 폭로하며 서발턴을 대변한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다중>에서 주권에 도전하는 투쟁들 속에서 삶 자체가 부정될 때, 주권이 삶과 죽음에 행사하는 권력은 무용하게 된다”(조정환·정남영·서창현 번역)고 한다. 자본과 권력, 강자와 다수의 제국은 독점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여 더욱 강하게 저항하고 연대함으로써 물방울이 바위를 깨듯 균열을 내야 한다. 그것이 주권을 빼앗긴 예외자 없이 헌법의 사명인 민주공화국을 구현해가는 유일한 희망이다.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한겨레 : 2023.01.07.

 

강성 노조가 버티는 나라에 테슬라가 공장 지을까

한국의 트럭 운전기사들이 자동차부터 석유화학에 이르는 핵심 수출품에 지장을 주기 위해 주요 항구를 겨냥, 1년도 안 돼 파업에 나서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20221124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화물연대본부(이하 화물연대)의 총파업 소식을 전하면서 “(화물연대) 파업은 세계 경제 성장 둔화가 수출을 억제하고 글로벌 에너지 가격이 인플레이션을 촉진하는 상황에서 국가 경제를 정상궤도에 올리려고 노력하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더 많은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노조의 파업 소식은 국내 언론은 물론 해외 언론의 주요 관심사가 되버렸다. 물류·교통을 인질로 잡고 투쟁에 나서는가 하면 파업 불참 차량에 쇠구슬 테러를 가하는 것이 이른바 동투(冬鬪)’의 작태였다. 한국 노조는 문재인 정부 5년 간 세를 불리며 우리 기업들의 크나큰 리스크로 다가왔다. 노조에 가입한 근로자 수는 2016년 말 1966881명에서 2021년 말 2932672명으로 100만명 가까이 늘었다.

 

화물연대 총파업 개시 전날인 20221123일 윤 대통령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화상 면담을 가졌고, 이 자리에서 한국에 투자해 줄 것을 요청했다. 테슬라가 향후 아시아 지역에 완성 전기차를 생산하는 기가팩토리를 건설할 예정인데 후보지 중 한 곳으로서 러브콜을 보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테슬라를 맞이할 준비가 돼 있을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2021년 기준 시간당 42.7달러로 OECD 38개국 중 29위에 불과하다. 핵심노동인구(생산성이 가장 높은 연령대) 고용률은 75.2%OECD 36개국 중 29위로 집계됐다. 여기에는 청년 교육, 노동환경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등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언젠가부터 국내에선 외국 기업의 대규모 투자 소식이 잘 들리지 않는다. 각종 규제는 물론이고 노동환경이 불리한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인식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기 위한 노동개혁이 필수다.

 

독일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2002년 독일 경제를 회생시킬 노동개혁을 발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2년으로 묶여 있던 파견근로의 허용기간 폐지, 52세 이상은 근로계약 제한철폐 등이 골자다. 영국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 총리는 노동당 정권에 신물이 난 국민들의 기대에 힘입어 노조파업에 면책특권을 보장해 주던 것을 대폭 축소하고 노조도 손해배상 대상에 포함시켜 불필요한 파업을 자제토록 했다. 총리 부임 후 지지율이 추락했지만 개혁 만이 위기에 처한 영국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신년사에서 대한민국의 미래와 미래세대의 운명이 달린 노동, 교육, 연금 3대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면서 가장 먼저, 노동개혁을 통해 우리 경제의 성장을 견인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노동개혁은 시급한 국가적 당면 과제이자 한국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킬 승부수다.

 

노동개혁은 지금까지 한국의 어떤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한 어렵고 힘든 숙제이다. 툭하면 파업하고 떼쓰는 강성 노조가 버티는 상황에서 숱한 난관이 예상된다. 하지만 글로벌 흐름에 역행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는 우리 노조가 더 이상 발목을 잡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우리가 나서 투자해 달라가 아닌 테슬라가 먼저 달려야 공장을 짓고 싶다고 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윤 대통령이 2022년의 대한민국을 지독하게 괴롭혔던 노조병()을 치유하고 계묘년(癸卯年) 새해를 노동개혁의 원년으로 삼기를 바란다.

설성인 사회부장 조선 : 2023.01.07.

의 칼럼을 굳이 싣는 이유는 이따위도 있다는 것을 기록하고 비교하기 위함이다.

 

 

뉴 노멀'시대, 지역과 사람의 공동체 '올드 노멀' 가치 계승해야 하는 이유

저성장시대 지역발전전략과 지리학

올해 세계 경제는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이런 탓에 국내 상황도 그리 밝지는 않다.

 

지난해 글로벌 경제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충격에서 조금씩 벗어나 조금씩 정상화되고는 있지만, 높은 인플레와 대내외 위협요인, 물가상승, 금융 불안 확대로 우리나라는 올해 1%대의 경제성장을 이룰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3% 중후반대를 나타낼 것이라는 저성장-고물가의 전망이 지배적이며, 경제성장의 추가 하락 위험도 상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뉴노멀(New Normal)이 과거와 달리 '새로운 표준'이 점차 일상화되어가는 것을 말한다면, 저성장의 그늘을 이제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오랫동안 지속적인 성장을 해온 시대를 올드 노멀(Old Normal)이라고 한다면 이제 세계 경제는 저성장이 일상화된 뉴 노멀 환경에 놓여있고, 인구 고령화와 디지털 경제와 함께 근본적인 환경 변화로 당분간 뉴 노멀의 시대는 지속될 것으로 판단된다.

 

다른 나라들도 경험하고 있듯이, 저성장, 저출산·고령화, 산업구조 변화 등의 메가트렌드는 우리 지역과 사회에도 유례없는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문제는 '수도권 vs 비수도권'의 격차구도가 '대도시 vs 지방 중소도시'의 양극화 내지 다양한 형태로 바뀌어가며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장상황도 N극화, 파편화될 것으로 예견되고, 소득의 양극화와 사회 갈등과 분열이 주요 현상이 되면서 중간이 사라지는 시대가 예견되고 있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예측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일터로의 복귀를 거부하는 MZ세대(1980~2000년대 초 출생)의 고민도 깊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우리나라 청년의 삶의 만족도는 OECD 회원국 중 최하위이며, 취업을 포기한 청년 니트(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and Training) 비율은 OECD 회원국 중 상위 4위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때, 청년의 최대 관심사는 일자리와 부동산이며, 일자리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어 대학 졸업 이후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1) 이는 저성장과 불확실성의 시대 보수나 복지보다 자신의 성장과 지속가능성, 자기만족도를 중요시 생각하는 최근의 트렌드와도 연관된다.

 

저성장과 지역, 구호를 넘어 삶의 공간으로

문제는 저성장이 지속되거나 정체되는 원인에 대해 지금까지 경제학을 중심으로 물적자본이나 인적자본의 축적, 기술진보 그리고 노동생산성 등에서 그 원인을 찾아왔으나, 오히려 최근에는 경제 외적으로 종교, 지리적 조건, 기후, 사회·문화의 요인 등 다양한 원인들이 제시되고 있으며 복지수요의 증가와 연금 등도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또한, 지역과 관련해서는 더욱 삶의 질과 관련된 특성들이 강조되고 있다.

 

실제 농촌경제연구원이 삶터, 일터, 쉼터, 공동체의 터로 개념화하여 2022년 말 발표한 지역발전지수(RDI)에 따르면, 여전히 도시 지역이 상위권에 포함되었으며, 인구가 많고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생활서비스 지수가 높게 나타나고, 지역경제력 측면에서도 수도권 및 인접 시군의 경쟁력이 강화되는 추세이다.(2)

 

이때, 고령화·저출생 상황에서 신규 인구 유입 정도가 주민활력 지수 순위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나타나, 경제 이외의 관심과 인구 유입 정착 요인 등 삶의 여건을 개선하는 변인이 중요한 작동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보건과 관련된 여건, 깨끗한 자연 환경, 질좋은 일자리, 공동체 기반 유대감 등이 지역의 여건과 특성에 맞추어 지역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보다 섬세한 정책 기획이 필요한 이유다.

 

저성장 시대 구호뿐인 대규모 공장과 일자리 유치보다 지역 맞춤형으로 공동체에 기반한 커뮤니티 비즈니스 활성화, 로컬크리에이터 육성, 창업을 통한 지속가능한 발전, 양적 확장보다 질 좋은 일자리 마련 등이 더욱 중요하다 하겠다.

 

가장 중요한 지역의 일자리와 관련해 국토연구원 분석을 살펴보면 기술진보가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최근 4차 산업혁명이라는 여건변화 속에서 기술진보로 인한 일자리 대체에 대해 비관론과 낙관론이 지속적으로 함께 대두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 경우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경우에도 해당 일자리가 수도권을 비롯한 특정지역으로 집중되어 부정적 효과를 막기 위해 새롭고 좋은 일자리 창출 기반으로서 강소기업에 대한 지원과 비수도권 기업에 대한 우선지원 등 국토균형발전을 감안한 정책 추진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3)

 

2023,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문제는 미증유의 상황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준비를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코로나 이후 예상되는 피해 복구와 불평등 확산을 막기 위해 이전보다 정부의 지출과 역할은 더 커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으며, 동시에 지역에도 도전적 과제와 함께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만, 거기까지는 여력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번 정부 들어 추진되고 있는 초광역권 계획에 대해서도 우려가 많다. 그간 다양한 초광역권 공간전략이 성과가 미미했던 탓도 있는데, 그 이유는 권역 설정이 구상 수준에서 머무르거나, 실제 초광역 수준의 구상을 구체화할 수 있는 계획과 거버넌스 체계, 법적기반, 재정지원이 동반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외 다양한 국가에서도 지역 간 불균형 완화, 지역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형태의 광역화 정책을 추진 중이지만, 이러한 노력은 지역의 충분한 경쟁력이 확보되고 도시 규모에 따른 효율적인 기능분담이 현실적으로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이러한 전략이 잘못될 경우 앞에서 이야기한 뉴노멀의 상황과 함께 대도시권화를 부추기는 악재가 될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 정부에서 그간의 어려움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경제적 여건이 변화하면, 그에 맞는 맞춤형 전략이 나와야 한다. 기본적으로 도시간 연계의 상생전략은 지리학적 이해를 기반으로 해야 하고, 그에 맞추어 법제도의 변화도 수반되어야 하다. 지역별 특성에 맞추어 이익집단의 역할이 적은 신산업정책의 실행과 인력양성, 산업경쟁력의 제고가 일자리 창출과 질적 제고 등과 함께 이루어져야 양극화 없는 성장이 그나마 가능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교육, 유통, 복지 그리고 고용제도가 변경되도록 지역의 합의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지역의 산업 정책강화와 펀더멘탈의 강화전략이 지역을 기반으로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취업 등의 어려움으로 삶의 활력이 떨어지는 지역 청년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더욱 필요하며, 지역이동 유형별로 당면한 문제가 상이하므로 유형별 맞춤형 균형발전 정책이 수요에 기반하여 계획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일자리·주거에 더하여 문화, 보건, 교육, 주거여건, 편의성, 삶의 질 등이 생애주기와 접근성을 고려하여 소프트웨어 차원으로 강화되고 체감도를 높여야 할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정지된' 일상을 경험한 우리가 새롭게 이러한 상황을 이겨나가기 위해서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지역과 사람, 공동체 등 올드 노멀의 가치를 계승하며 새로운 지역발전의 표준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을 지역적으로 연구하는 '지리학'의 근본정신을 다시 올해 되돌아볼 필요가 있으며,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답해야 할 것이다. , 그곳에, 무엇이 있으며, 그래서 그곳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어떻게 되느냐에 대한 설명이 올해 우리 에게 가장 필요하기 때문이다.

 

필자 주석

 

(1) 하수정, 이차희, 심혜민, 이종표, 2022, “청년의 지역이동과 정착”, 국토연구원 국가균형발전지원센터 균형발전 모니터링 & 이슈 Brief 11(2022.11)

 

(2) 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22, KREI 농정포커스 (2022. 12.29), 2022 지역발전지수(RDI)

 

(3) 국토정책 Brief 898, '기술진보와 지역일자리: 대체될 것인가? 지속될 것인가?' (2023.1.2.)

이병민 건국대학교 교수 | 프레시안 2023.01.07

 

 

누가 추경호 부총리를 경제사령탑이라 할까

지난 3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세제 지원 강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반도체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대기업은 8%에서 15%,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올리고, 임시투자세액공제를 올 한해 한시적으로 도입해 투자 증가분에 대해 10% 추가 세액공제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날 추 부총리의 발표는 한국 경제사에 남을 하나의 사건이라 할 만하다. 왜일까?

 

나라살림연구소가 추정한 것을 보면, 반도체 세제 지원 강화 방안을 실행할 경우 삼성전자가 22천억원, 에스케이하이닉스가 5천억원의 추가 세 감면을 받게 된다. 합해서 27천억원의 세수를 줄이는 것이 된다. 38천억원이던 2018년 추가경정예산안보다 조금 작지만, 나라살림 운용에 미치는 영향이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는 규모다. 그런데 이를 새 회계연도가 시작되자마자 추진하겠다고 했다.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율을 6%에서 8%로 올리는 세법 개정안이 올해 예산안과 함께 국회에서 의결된 지 불과 11일 만의 일이다.

 

고쳐야 할 것은 하루빨리 고치는 게 옳다. 그런데 이번 일은 고쳐야 할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 기획재정부는 보도자료에서 과세표준 3천억원 이상에 적용하는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폭이 애초 정부가 주장한 3%포인트에서 1%포인트로 줄어든 것, 여당인 국민의힘이 대기업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율을 6%에서 20%로 올리자고 했으나 8%로 올리는 데 그쳐 경쟁국 대비 투자 지원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다고만 설명했다.

 

우리는 그 지적이 윤석열 대통령에게서 나온 것임을 잘 안다. 윤 대통령은 1230기재부가 관계 부처와 협의해 반도체 등 국가전략 산업에 대한 세제 지원을 추가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달라고 지시한 바 있다. 그 말이 떨어진 지 불과 나흘 만에 세입에 큰 영향을 주는 수준으로 세법을 고치겠다는 건 주먹구구식 나라살림 운영의 적나라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추 부총리가 이끄는 기획재정부는 그동안 우리나라의 반도체 세제 지원이 세계 최고라고 말해왔다. 추 부총리 자신도 1227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 반도체 세액공제는 특히 연구개발(R&D)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고, (다른 분야에서도) 절대 낮지 않은 수준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인세 최고세율은 2012201624.4%(지방소득세 법인분 포함)였고, 2017년부터는 27.5%였다. 실제 낸 법인세를 보면 에스케이하이닉스가 20122021년 사이 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의 17.6%를 냈다. 삼성전자는 19.4%를 냈다. 세 지원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외국 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산업이고, 우리가 전략적으로 키워야 할 분야이니 세 지원을 많이 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 있다. 그러나 얼마나 지원하는 것이 좋으냐는 지원 효과를 고려해서 판단할 일이다. 지원을 늘린다고 투자가 비례해서 늘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필요 이상으로 세 감면 지원을 늘리면 기업 순이익은 늘어나지만 그만큼 정부 세수가 줄어든다. 추경호 부총리가 이끄는 기획재정부가 대기업 투자세액공제율을 6%에서 20%로 올리자는 여당, 10%로 올리자는 야당안을 배척하고 8%만 올리는 법안을 낸 것은 바로 그런 판단에서였던 것이다. 인색해서가 아니라, 세정을 다루는 부처로서 책임감이었을 것이다. 가뜩이나 기획재정부는 재정건전성을 강조하고 있지 않던가.

 

윤 대통령의 지적에 추경호 부총리는 나흘 만에 법 개정 방침을 밝혔다. 야당이 곧바로 그럽시다하고 환영하고 나설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데, 기획재정부는 마치 다 된 것처럼 발표했다. 이를 통해 대통령의 말을 충실히 따르는 장관임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체면을 구긴 일로 끝나지 않는다. 정부 정책이 조변석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말로만 경제사령탑이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추 부총리를 경제정책을 입안하고 집행을 지휘하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의 입을 더 쳐다보고, 경제운용에 대해 원하는 게 있으면 대통령에게 달려갈 것이다. 추 부총리는 왜 시간이라도 좀 끌어보지 못한 것일까?

졍남구 논설위원 한겨레 : 2023.01.08.

 

 

한국 건강검진

건강검진은 연말이면 꼭 하는 숙제다. 직장인 건강검진은 산업안전보건법에 정해진 사업주와 근로자 모두의 의무라 사업장·직종에 따라 1, 또는 2년마다 꼭 수검을 해야 하는데 MBC의 경우 모든 직원이 매년 검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1년 내 언제든 하면 되는데, 꼭 미루고 미루다 연말에 미수검시 과태료 부과같은 공지사항을 보고 나서야 부랴부랴 검사 예약을 하게 된다. 지난해에도 결국 마감을 열흘 앞두고 겨우 검진을 받았다.

 

아직 30대 중반인 나는 대부분의 지표가 양호하게 나왔는데, 한 가지 항목에 형광펜으로 표시가 그어져 왔다. 초음파로 들여다 본 일부 장기에 낭종이 여러 개 관찰되었다는 것이다. 검진 결과를 우선 전화로 상담 받았는데, 이 낭종은 젊은 사람에게도 흔하게 발견되는 것이고 모양을 보아 우려스럽지는 않아 당장 큰 질환이 염려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혹시 모르니 원한다면 해당 과 전문의의 외래 진료를 예약해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매년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1년 만에 내 몸 속에 알 수 없는 종괴들이 갑자기 자라났다니. 덜컥 겁이 나 바로 진료를 예약했다.

 

그날은 하루 종일 휴대폰을 붙들고, 나와 같은 증상을 가진 경우 발전할 수 있는 질병들을 모두 검색해 보았다. 상담사의 말처럼 걱정할 필요 없는 상태가 대부분이었지만 간혹 암 같은 무서운 질병으로 진단되는 경우도 있었다. 내 몸 안의 미확인 종괴들의 존재가 두렵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1년에 한 번씩 의무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아 조기에 발견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에서 강제하지 않았다면, 내 몸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일 다음, 사랑 다음, 그렇게 아주 후 순위로 밀려 한동안 돌보지 않았을 것이 뻔했다.

 

지난주 다섯 명의 소중한 생을 앗아간 과천 방음터널 화재 사건. 감식 결과를 뉴스로 전하며 내가 받은 건강검진표를 떠올렸다. ‘천장 패널:화재 위험(높음)’, ‘환풍구:순환 기능 미흡(우려)’. 이 방음터널이 사람이었다면, 여러 항목에 형광펜 표시가 그어졌을 것이었다. 하지만 조사 결과, 화재가 난 과천 방음터널은 애초에 시설물 점검 대상에 포함조차 되지 않아 안전진단이 이루어진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한 해 이런 일은 수도 없이 많았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공사장에서, 빵 공장에서, 철로에서숱한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여름에는 폭풍과 집중 호우로 몰아친 수마(水魔)가 숱한 사상자를 냈고, 10·29 참사로 온 국민이 비통함에 빠졌다. 다 다른 사고 같지만, 언제라도 탈이 날 문제를 세심히 들여다보지 않아 일어났다는 공통점 속에 있다. 과천 방음터널, 10·29 참사처럼 애초에 살피지조차 않은 문제, 과거 여러 차례 위험 표시를 해왔지만 신경도 쓰지 않은 문제들. 더 먼 과거까지 짚어보면 나열할 수조차 없이 많다.

 

내 몸을 들여다보는 일도 누가 하라고 해야 겨우 하게 되는데, 우리 사회 면면을 다 챙겨 보는 일은 어떠랴. 자주 본다고 봤는데 어떤 질병은 너무 빨리 진행되고, 꼼꼼히 챙겨도 안 보였던 병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갑자기 마주하는 병을 우리는 사고라고는 하지 않는다. 적어도 드러났던 환부는 다시 마주해서는 안 된다. 실은, 나아가 어떤 부분이 보이지 않았는지 끊임없이 살펴야 하는데 아직 우리는 기본도 챙기지 못해 매번 비슷한 고통 앞에서 무너지고 만다.

 

좋은 소식만 전하고 싶은 바람과는 달리, 올해도 전하기 힘든 어떤 비극이 큐시트를 차지할 것이다. 또다시 예방’, ‘사전 조치’, ‘준비같은 것들을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똑같은 뉴스를 할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온몸이 쓰리다. 지난해 우리는 너무 큰 고통을 마주했다. 그러니까 올해는 시작부터 검진을 단단히 하자. 건강검진처럼 꼭 해야 하는 숙제로 정해서 자주, 꼼꼼히 하자. 우리도 모르는 새, 어떤 종양이 차오르고 있을지 모른다.

이선영 MBC 아나운서 미디어오늘 : 2023.01.09.

 

 

김만배의 기자 돈 거래, 지역언론은 다른가

[복지국가SOCIETY] 위기의 지역 언론과 깜깜이 예산

화천대유 김만배의 기자 돈 거래 사건으로 인해 여러 언론사가 윤리강령과 취재보도준칙 위반 소지가 있다며 사과 글을 발표하거나 진상을 자체 조사 중이다. 전북에서는 6.1 지방선거 당시 더불어민주당 전주시장 예비후보에게 금전 지원을 대가로 인사권을 요구한 전주시장 '선거브로커' 사건에 당시 현직이었던 도내 일간지 기자가 연루되어 불구속 기소되는 사건이 발생해 지역사회에 큰 논란이 일었다.

 

정치가 국민의 걱정거리로 전락하면서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의 위상과 역할이 혼란스러운 요즘, 4의 권력인 언론이 중심을 바로잡고 살아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언론을 제4의 권력이라 부르는 건 언론이 막강한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기구이자,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기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언론의 모습은 본래 목적과 의무인 3권의 견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고 하기에는 매우 부끄러운 것이 사실이다.

 

위기의 지역 언론과 지방정부

이런 상황은 광고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지방의 언론 생태계가 특히 열악하다. 다수 지역 언론이 공공기관의 홍보비에 의존하는 경향이 매우 크다. 그래서 지방자치단체의 언론홍보비 운영의 투명성, 공정성은 매우 중요한데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언론홍보비는 지역 언론 생태계를 더욱 망가뜨리고 있다. 이는 지방자치단체 예산 편성과 집행의 문제점에서 기인한다.

 

통상적으로 지방자치단체 예산 대부분은 지방재정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단 1원까지도 어디에 어떻게 쓸지 세부지출 항목을 예산서에 명기하여 지방의회에 제출하고 심의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언론홍보비는 예외적으로 세부지출 항목이 명시되지 않는다. (POOL)성 예산과 같이 통으로 편성되고 단체장의 재량에 따라 집행되고 있어 개선이 필요한 대표적인 사례다. 지방자치단체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겠으나 대개 전라북도와 도의회의 언론홍보비는 한해 20억 원 정도며, 기초자치단체와 기초의회는 15억 원 정도를 편성하여 집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심각한 문제점이 발생한다. 익산시를 비롯한 두 곳을 제외하고 전국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들에 언론홍보비를 집행하는 기준이 되는 조례가 제정되어 있지 않다. 익산의 경우 2015년 초선의원 11명이 전국 최초로 '익산시 언론관련 예산 운용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여 운영하고 있는데 현재까지도 전국적으로 거의 유일한 조례이다. 대부분 지역에서 단체장과 언론사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거나, 또는 언론사들의 반대로 인해서 정치권 스스로 조례 제정을 하지 않거나,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익산시의 경우 조례가 제정되기 이전에는 언론홍보 예산이 각 과별로 편성되어 있었다. 문화관광과 월별 기획홍보 예산 1600만 원은 A언론사 몫, 도시개발과 예산 3000만 원은 B언론사 몫, 농산유통과 예산 5000만 원은 C언론사 몫, 고도문화재과 예산 2000만 원은 D언론사 몫과 같은 형태로 수십 개 과별로 홍보 예산이 편성되어 행정기관과 언론사만 아는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그러던 것을 조례 제정을 통해 홍보담당관 부서에 일괄 편성하도록 하여 업무 효율성, 전문성을 높이도록 조정하였다. 다만 여전히 아래에서 지적하는 한계가 있다.

 

익산시는 홍보비 운영기준에 따라 방송사, 일간지, 주간지, 인터넷신문 등으로 구분하여 예산을 집행하고 있다. 조례 제8(운용결과 공개 등)"시장은 언론관련 홍보예산의 공정성 확보를 위하여 각 언론사별, 금액별 집행내역 운용결과를 홈페이지를 통해 분기별로 공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익산시는 조례를 지키지 않고 개별 언론사가 아닌 방송사, 통신사, 중앙일간지, 지방일간지, 지방주간지, 인터넷신문, 기타매체 등 매체별 총계로만 공개하고 있어 개별 언론사별로 얼마씩 재정을 지원하고 있는지 여전히 알 수가 없다. 그 결과 언론홍보비가 어떻게 집행되었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조례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 행정은 언론관련 예산을 그만큼 비밀스럽게 운영하고 있다.

 

지역언론 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다보니 지방의회는 예산이 어떻게 쓰이는지도 모른 채 예산 심의를 하게 된다. 예산이 통과만 되고 나면 그 이후는 단체장의 마음대로 집행이 가능해진다. 의회의 언론홍보비도 의장의 의중에 따라 집행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물론 자치단체마다 내부적 운영기준이 있긴 하겠지만, 그 기준도 공표되지 않아 고무줄 잣대에 불과하다. 말 그대로 엿장수 마음대로 집행할 수 있는 예산인 셈이다. 그 결과 지역사회에 제대로 된 공론이 형성되지 않고 단체장 입맛에 맞는 보도와 행정의 일방적 홍보만이 가득해진다. 언론홍보비가 현실적으로는 언론 통제, 언론 길들이기 예산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지역언론을 대상으로 하는 지방의회의 권한은 막강하다. 통상 지방의회는 운영제한 규정을 가지고 있어 3년 이상 정상적으로 신문을 발행하는 경우 지원대상 언론사에 포함하고, 사실왜곡, 허위, 과장, 편파보도, 공갈, 금품수수, 명예훼손 등으로 정정보도, 손해배상, 벌금 이상형으로 처벌되는 언론사에는 지원을 제한하는 패널티를 주고 있다. 지방의회가 패널티 규정을 다소 강하게 개정하여 언론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 부분 관련해서는 언론 지원 관련법 규정을 준용하면 무난할 것으로 생각된다.

 

과거에는 지방자치단체별로 사회단체 보조금을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씩 풀성 예산으로 편성하였다. 그 결과 보조금은 단체장이 호주머니 쌈짓돈처럼 자기 입맛대로 특정단체들에 수천만 원씩 지원하는 눈먼 돈으로 전락해 사회적으로 대단히 문제가 컸다. 이에 김대중 대통령 당시 중앙정부가 사전 공모요강 발표, 접수, 심사위원회 심사, 선정, 정산, 평가 등의 절차를 거쳐 운영하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한 바 있다. 이후에도 중앙정부는 제도를 꾸준히 정비하고 있고 이 과정을 통해 사회단체 보조금에 최소한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보장하는 관행이 정착하고 있다.

 

현재 언론홍보 예산은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별로 각자의 규모와 기준에 따라 천차만별로 편성되고 있다. 여전히 그 집행 내역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대표적인 깜깜이 예산이다. 원칙적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자율권이 확대되어야 하겠으나 이와 같이 첨예한 이해관계가 맞물려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안에는 중앙정부가 나서 일괄적으로 적용할 개선책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표준조례안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들이 최소한의 기준을 세우도록 하는 한편으로는 지역의 특성에 따라 자율적인 방안도 창의적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건강한 언론 생태계를 만드는데 크게 일조할 것이다. 아무쪼록 하루빨리 관련 대책이 추진되어 제4의 권력이 제 역할에 충실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임형택 Like익산포럼 대표/ 프레시안 2023.01.10.

 

의리 저버린 검찰, 배신당한 언론, '배신의 계절'인가

검찰의 피의사실 유포에 협조하다 당한 언론

검찰이나 경찰 등 범죄수사를 행하는 사람이 직무상 알게 된 피의사실을 기소 전 공표하면 그건 범죄다. 이는 '무죄추정 원칙'을 지켜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형법 126조는 이를 '피의사실 공표죄'로 규정하여 엄히 금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법을 지키지 않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검사들이다. 희한하게도 법의 수호자라는 이들이 법을 무력화하며 스스럼없이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다. 때로 브리핑을 통해 버젓이, 때로 사무실에서 차를 마시며 은밀하게, 법조출입기자들에게 피의자의 혐의사실을 유포한다. 그러니까 검사들의 범법행위에 파트너가 있다는 얘기다. 바로 기자들은 공범이 되는 것이다.

 

검찰의 피의사실 유포에 협조하다 검찰의 피의사실 유포에 당한 언론

일부 언론에 따르면 대장동 일당의 주역인 김만배가 2019년과 2020년 주요 일간지 기자들과 거액을 주고받은 정황이 드러났다. 간부급 기자들과 9000만 원에서 무려 6억 원에 달하는 돈거래를 했는데 차용증조차 쓰지 않고 돈을 준 경우도 있다. 그 뿐 아니다. 어떤 기자에게는 명품을 선물하는가 하면 복수의 언론사 기자들에게 골프접대를 하며 한 사람당 100만원씩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사실이 어떻게 알려졌을까? 흔히 보는 "검찰이 무엇 무엇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식의 기사다. 즉 검찰발 기사이자 전형적인 피의사실 유포다. 참으로 재미있는 사실은 검찰이 일부 언론사 기자들의 돈거래를 타 언론사 기자들에게 흘렸다는 점이다. 이번엔 기자가 당한 것이다. 피의사실 유포에 적극 협조하던 기자들이 검찰의 피의사실 유포에 당한 것이다. 검찰에게 배신당한 것이다.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우선 정권에 우호적인 언론사에게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사의 문제를 흘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물론 이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대통령과 단독 인터뷰를 했던 조선일보만큼은 이제 확고부동한 '자기편'으로 자리매김한 듯하다.

 

둘째, 대장동 수사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는 '기자들 간 돈 거래'를 검찰이 도대체 왜 지금 깠냐는 점이다. 특히 10일 이재명 대표가 FC성남 광고비 관련 소환조사에 응하기로 결정된 시점에서 말이다. 이 대표를 향한 수사는 오히려 산만해져버렸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검찰이 기자 길들이기에 나선 것인가? 또는 대장동 수사에 진전이 없자 수사팀이 다급해진 것인가? 아니면 이 대표의 돈 거래 흔적이 나오지 않자 기자들 돈 거래라도 까발리려는 것인가?

 

의리를 저버린 검찰, 배신당한 언론

피의자와 기자들 간 돈거래라는 자극적 기사들이 쏟아지는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문제점이 있다. 바로 언론의 '출입처 관행'이다. 김만배와 돈거래를 한 기자들은 과거 함께 법조출입을 하며 친해진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니까 검사와는 피의사실 등의 정보 거래를 하면서 기자들끼리는 돈 거래도 하고 향응도 주고받은 것이다. 이는 아주 고약하고 못된 언론의 관행으로 이어진다.

 

한 공영방송 피디는 기자의 출입처가 정해지고 그 내부사정에 익숙해지면 알면서도 기사를 안 쓰는 경우가 많아진다면서 "두 번 봐주고 한 번 때려요"라고 말한다. 한 번은 왜 때리냐는 질문에 "자기들 존재감은 보여줘야 하니까"라고 답한다. 이런 식으로 기자가 취재 대상과 한 통속이 되다보니 결국 외국에서는 보기 힘든 '피디저널리즘'이 자리잡게 된다. 출입처 사람들이랑 술 마시고 어울리는 기자들이 뻔히 보이는 문제조차 기사를 쓰지 않으니 피디들이 나서서 <추적60>, <피디수첩>을 통해 사회 비리를 고발하게 된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 기자실을 없애고 브리핑룸을 만들려던 시도가 기자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무산됐던 사실은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그렇지만 훌륭한 기자도 출입처 드나들며 이상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출입처 관행은 하루 빨리 없어져야 할 제도라는 것이 중론이다.

 

다른 예를 찾아보자. 2011년 한국 스포츠 최악의 사건으로 꼽히는 K리그 승부조작 사건이 있었다. 60명 가까운 선수들이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영구제명 당하고 감독 포함 무려 세 명을 자살에 이르게 해 프로축구의 존립마저 뒤흔들었던 사건이다.

 

당시 수사가 1차에 이어 2차까지 진행됐는데 당시 교수로 재직 중이던 필자는 기자들로부터 백통 넘나드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특이한 점은 그 중 축구 담당 기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다. 스포츠 분야도 마찬가지. 단 한 명 있었는데 야구 담당 기자였다. 축구 문제인데 왜 축구 기자들은 기사를 안 쓰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걔네들이요, '이러다 축구가 야구한테 완전히 먹히는 거 아니야?' 요즘 이거 걱정해요."

 

출입처에서 취재편의는 물론 향응, 용돈, 해외 전지훈련 동행 등의 혜택을 받으며 취재 대상과 한통속이 되는 수준을 넘어 기자가 침묵의 카르텔에 동화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도 이 경우는 이번에 폭로된 기자들보다는 나은 편이라 해야겠다. 적어도 출입처로부터 배신은 당하지 않았으니까.

 

새해에 찾아온 '배신의 계절'

검사의 권력은 없는 죄도 만들어 뒤집어 씌워 감옥 보낼 때보다 있는 죄를 뭉개고 봐주는 데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 많은 이들이 주장하는 것이 바로 '김건희 여사 특검'이다. 기자도 마찬가지다. 기자의 힘은 '정론직필'의 자세로 비리를 캐고 세상에 알리는 것에도 있지만 출입처 등 친한 사람들 문제점을 봐주고 기사화 하지 않을 때 더 위대해진다. 이것이 심각한 이유는 사실상 거래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언론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검사와 거래하고 동시에 다른 기자들과도 거래하는 요지경. 그리고 검찰의 피의사실 유포에 적극 화답하여 검찰이 원하는 여론 조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검찰의 피의사실 유포에 기자들 스스로 당하는 진풍경. 검찰과 언론은 지금 '배신의 계절'을 지나고 있다.

정희준 전 동아대 교수 | 프레시안 2023.01.10.

 

 

민심 1유승민과 당심 1나경원의 선택

국민의힘 3·8 전당대회를 향한 당 안팎의 시선이 유승민 전 의원과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집중되고 있다. 두 사람의 출마가 최대 변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러 여론조사에서 유 전 의원은 전체 지지율에서 1위를 차지했고,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나 부위원장이 1위를 달렸다. 그런데 이들 민심 1, 당심 1위 후보들이 선뜻 출마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당원투표 결과를 100% 반영하는 당헌·당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30% 반영이 없어지면서 이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던 유 전 의원이 불리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100% 당심 반영으로 기세를 올리던 나 부위원장의 출마가 암초에 부딪혔다. 지난 5일 신년기자간담회에서 저출생 대책으로 제시한 대출 탕감방안에 대해 대통령실이 이례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는 나 부위원장의 전대 출마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윤석열 대통령의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지지율에서 선두를 달리는 유승민·나경원 두 사람이 전대 출마를 망설이는 모습은 윤심(尹心)’을 놓고 얽히고설킨 여당의 현 상황을 잘 말해준다. 김용태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8일 두 정치인을 향해 더 이상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같은 키워드가 정치권에 도배되지 않도록 출마 여부를 빠른 시일 내에 확정해달라고 촉구했다.

 

두 사람의 이력은 보수당의 대표로 손색이 없다. 집안 좋고 학벌 좋은 이들은 미국 유학(유승민)에 판사 경력(나경원)까지 더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대선 후보가 이들을 영입한 이유이다. 이들의 본격적인 정치 데뷔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대선 승리로 첫발부터 삐걱거리는 듯했지만, 200417대 총선에서 둘은 나란히 비례대표로 여의도에 입성한다. 이후 유 전 의원은 친박’, 나 부위원장은 친이의 길을 걷는다. 지난 20여년의 행보를 보면, 유 전 의원이 당의 주류와 다른 길을 선택해 고난을 겪었다면 나 부위원장은 비교적 큰 풍파 없이 무난한 길을 걸었다. 유 전 의원이 원내대표 시절 박근혜 대통령의 정책을 비판하다 친박에서 내쳐지면서 박근혜 정권에서 둘은 비박으로 한데 묶이게 된다.

 

지난 대선에서 유 전 의원은 경선에 출마해 윤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다. 나 부위원장은 친윤쪽에 섰다. 그런데 3·8 전대를 앞두고 두 정치인은 똑같이 친윤의 집중 견제를 받고 있다. 당 안과 밖에서 인기를 얻는 두 사람이 이를 바탕으로 당대표가 되면, 친윤들로서는 급속도로 레임덕에 빠질까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박근혜씨 탄핵 직후 때처럼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윤석열 정부에서 비슷한 처지가 된 셈이다.

 

윤심은 김기현 의원을 향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직 장관 정치인들의 전대 불출마에 이어 윤핵관인 권성동 의원의 불출마 선언, 나 부위원장에 대한 견제, 친윤파들의 김 의원 지지 등 일련의 일들이 이를 가리키고 있다. 내년 총선의 공천을 노리는 현역 의원들이 이런 낌새를 모를 리 없다. 이른바 김장연대’(김기현·장제원)의 세 불리기 여부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이다.

 

하지만 대표 선거가 윤심이나 윤핵관들의 뜻대로 갈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김 의원은 아직도 대중적인 인지도나 인기에서 유 전 의원이나 나 부위원장에 미치지 못한다. 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9일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라는 산도 넘어야 한다.

 

2021년 전대에서는 30대의 이준석 전 대표가 돌풍을 일으키며 나 부위원장을 눌렀다. 대선에서 민주당을 이기기 위한 보수당원들의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됐다. 일찍이 보수당에서 이런 선택은 없었고, 이는 대선 승리로 귀결됐다.

 

올해는 선거가 없는 해다. 내년 총선은 1년이나 남았다. 당장 민심에 구애할 필요가 없는 시기로 판단했을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당심 100% 반영이라는 룰 개정을 밀어붙이고, 영남 출신 후보를 세우기 위한 교통정리에 나선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

 

총선 승리가 화급한 현안으로 닥치지 않은 전대, ‘보이지 않는 손이 특정 후보 지지를 유도·압박하는 독특한 선거판이 벌어지고 있다. 누가 뭐래도 윤석열 정부와 당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지배하고 있다. 이 속에서 보수당의 대표가 되고자 하는 유 전 의원과 나 부위원장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 분명한 것은 이들에게 가해지는 윤심 압박이 커질수록 정당민주주의는 퇴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의 갈 길과 비전에 대한 토론은 없이 줄세우기만 보인다. 국민의힘은 이렇게 대표 선거를 치러놓고 다음 총선에서는 무엇을 내세워 유권자를 설득할 것인가.

윤호우 논설위원 경향 2023.01.10.

 

한국 집값은 더 떨어지는 게 정상이다

집값 하락세에 일단 제동이 걸렸다. 한국부동산원이 지난 5일 발표한 주간 아파트가격 동향을 보면 1월 첫째 주(2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에 비해 0.67% 하락했다. 전전주(-0.74%)보다 덜 떨어진 것이다. 하락폭이 작아진 것은 서울 아파트값이 하락을 시작한 지난해 4월 이후 39주 만이다. 조사 시점은 ‘1·3 부동산대책보다 하루 앞섰지만 대대적인 규제완화를 예고한 영향으로 매물 철회가 늘어나는 등 분위기가 달라졌다.

 

한국 집값은 비싸기로 악명이 높은 데다 등락폭도 크다. 글로벌 데이터베이스 사이트 넘베오(NUMBEO)’ 조사에서는 서울의 집값이 1906만원으로 홍콩(3838만원), 싱가포르(2499만원)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비쌌다. 영국 부동산 정보업체 나이트 프랭크(Knight Frank)’는 지난해 3분기 기준 56개국의 연간 집값 상승률을 조사한 결과 한국이 -7.5%로 하락폭이 가장 컸다고 밝혔다. 앞서 20213분기 기준 한국의 상승률은 26.4%로 두번째로 높았다.

 

한국의 집은 변동성이 커 투기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지대 추구에 매몰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보수층에서 비판하는 이른바 귀족 노조를 지대 추구 세력으로 본 것 같다. 그러나 한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심각한 지대 추구는 부동산 투기다.

 

집값이 얼마나 떨어졌길래 고강도 대책을 내놨을까. 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20221월 고점을 전후한 1년 새 13% 올랐다가 4.9% 하락했다. 물론 송도신도시가 위치한 인천 연수구처럼 2021년 초부터 지난해 1월까지 50% 급등했으나 이후 올해 1월까지 16% 급락한 사례도 있다.

 

고점 기준으로 지난 1년간 상승폭에 비하면 최근 하락폭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집값은 상승했던 속도에 비하면 훨씬 완만하게 하락하는 중이다. KB국민은행의 주택가격동향 자료에서도 급락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전국 아파트값은 지난해 3.12%, 서울은 2.96% 하락했을 뿐이다. 부동산R114가 집계한 지난해 말 기준 서울 아파트 시가총액은 12449000억원으로 1년 새 136000억원(1.08%) 감소하는 데 그쳤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해 한 언론 인터뷰에서 서울의 PIR(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18인데, 10~12 정도로 떨어져야 정상이라며 시장은 (적정)가격을 발견하는 자기정화 기능이 있다는 게 내 소신이라고 했다. 집값이 40%가량 하락해야 하는데, 인위적인 정책 대신 시장의 수요·공급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하겠다는 뜻이었다. 정부는 그러나 네 차례 대책을 통해 갈수록 수요 진작에만 매달리고 있다. ‘집값이 더 떨어져야 한다던 장관의 소신은 사라졌다.

 

1·3 대책은 집 사기를 유도한다. 서울 강남 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수도권 전 지역을 부동산 규제지역에서 풀었다. 규제에서 벗어난 지역의 주택담보인정비율이 늘어나고, 2주택자도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분양가상한제와 전매제한, 실거주 의무 등의 규제도 풀었다. 집값을 끌어올리고,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정부 말대로 무주택 실수요자에게도 집 사기 좋은 환경이 조성됐을까. 아쉽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최근의 집값 급등세는 많은 나라가 비슷했는데, 낮은 금리 영향이 컸다. 이후 집값 하락은 심해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린 탓이다. 무주택자라면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떨어질 텐데, 금리는 아직 정점에 이르지도 않았다. 돈 없는 서민으로서는 경기침체까지 예고된 상황에서 고금리로 대출받는 게 여전히 부담스럽다.

 

다만 자산가와 다주택자에게는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집값 안정과 투기 수요 차단을 위해 다주택자에게 적용했던 규제는 대거 풀렸다. 미분양이 쌓여 자금난에 봉착한 건설업계도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지금 완화한 규제는 나중에 금리가 내림세로 돌아섰을 때 투기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투기가 성행하면 집값이 다시 급등하는 악순환을 초래할 게 뻔하다.

 

1·3 대책 이후에도 집값 하락세가 지속된다면 정부는 후속 대책으로 인위적 부양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시장 흐름을 많이 거슬렀으니 이제부터는 제발 그러지 마시라. 반시장 정책을 편 문재인 정부가 집값 급등 부메랑을 맞았다고 비판하지 않았던가. 시장에 맞서 싸우지 않기를 바란다. 집값은 더 떨어지는 게 정상이고, 무주택 서민은 집 구매에 나설 준비가 안 됐다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경향 2023.01.11.

 

 

반성과 성찰이 없으면 퇴행이 온다

새해를 맞았다. 1년이 채 안 되는 동안 대통령과 여당과 법을 다루는 분들이 보인 모습을 보며 걱정되는 마음이 생겨 그걸 좀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국정운영의 일차적 책임은 대통령과 여당에 있기에 범여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정치적 편향으로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우선 대통령의 그릇이 더 넉넉하게 커졌으면 한다. 민주주의 시대가 아닌 왕정의 시대를 보더라도 성군의 자질은 과거의 적이나 자기에게 반대하는 사람을 대하는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조선의 성군 세종은 홀로 정국을 이끌어 가지 않았다. 세종의 위대함은 자신과 의견이 다른 신하를 기용하고 그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국정을 운영한 데 있다. 명정승으로 알려진 황희에 대해서도 실록에서는 세종이 제정한 많은 제도에 대해 "홀로 반박하는 의논을 올렸으니, 비록 다 따르지 않았으나, 중지시켜 막은 바가 많았으므로 옛날 대신의 기풍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중국 역사상 가장 번영했던 시대 가운데 하나를 이끈 당 태종도 과거의 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위징을 참모로 기용했을 뿐 아니라 그의 쓴소리를 잘 수용하면서 국정을 운영했다. 물론 지금이 왕정 시대는 아니지만, 왕정 시대 사례까지 찾아보게 되는 이유는 형식적인 민주주의제도가 갖추어진 21세기라도 왕정 시대보다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성군 밑에 역사에 이름을 남긴 훌륭한 인재들이 넘쳤던 이유는 그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그런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 지도자의 도량과 품격이다.

 

대통령의 언론관도 근본적으로 바뀌기를 바란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온 국민의 관심과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고 억울한 비판을 들을 수도 있는 자리다. 지난 대선이 과거 어떤 선거보다도 표 차이가 적었던 점이나 한때 20%대로 떨어졌던 국정 지지율에 비추어 보더라도 대통령을 미더워하지 않는 국민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적절하고 합리적인 해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고소 고발로 처리하려는 모습은 아무리 좋게 표현해도 나라를 대표하는 분에게 국민이 기대하는 도량과는 거리가 멀다.

 

여당에는 신뢰를 줄 수 있는 품격을 갖춘 정당이 될 것을 주문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비정상적인 세력들, 예컨대 거짓과 과장을 바탕으로 혐오를 전파하는 자들과 그들의 반지성적인 추종자들하고는 뚜렷이 선 긋기를 바란다. 한 나라의 정국을 책임지는 여당이 그런 세력에 기대고 그런 세력과 연대하려고 한다면 그 정당의 미래도 이 나라의 미래도, 암담해질 수밖에 없다.

 

법치의 개념도 흔들리고 있다. 법을 집행하고 법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적에게는 최대한 엄격하게, 내 식구한테는 법을 비틀어서라도 최대한 관대하게", 그러니까 제 맘대로 법을 적용하는 시스템은 법치라고 할 수 없다. 법치가 법조인의 다스림()은 아니다. 법조인의 치는 아무리 좋게 표현해도 변칙 법치라고 할 수밖에 없으며, 변칙 법치로는 국민 사이에서 깊어 가는 갈등을 극복할 수 없다. 정의와 상식을 지키는 법치가 되기를 바란다. 이는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도, 정파와 정쟁의 문제도 아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걱정은 대통령이나 측근들에게서 반성이나 성찰의 모습이 좀처럼 보이지 않기에 더 증폭되고, 어지러운 국제정세와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새해를 맞는 국민을 더 두렵게 한다. 권력을 가진 분들이 지난해의 경험에서 반성과 성찰의 재료를 되도록 많이 찾아내셨으면 한다. 반성과 성찰이 없으면 퇴행이 찾아오며 정치와 경제의 위기 속에서는 퇴행의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

김진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 2023.01.12.

 

 

연준에 종속된 반쪽짜리 세계

22년 회상, 허울뿐인 상저하고

2022년 연초, 대부분의 경제연구소는 경제전망에 대해 견실한 회복세를 강조했다. 코로나 오미크론 유행이 점차 수그러들면서 선진국 중심의 경제회복세가 세계 경제의 성장세를 이끌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그 예상이 빗나간 건 불과 두 달도 안 됐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 사태가 벌어졌다. 그 후 원유가격의 급상승이 여름까지 이어졌고,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사태에 불을 붙였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연준의 급격한 금리인상은 3연속 자이언트 스텝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고, 그 후 세계 경제는 통화긴축이라는 급격한 변화에 사시나무처럼 부들부들 떠는 상황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정부로부터는 독립적이지만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로부터는 그렇지 않다.” 지난해 8월 한국은행 총재가 인터뷰에서 밝히 내용이다. 이 말을 미국 달러체제의 위상을 대변하는, 그냥 비유적 표현으로만 흘려보낼 수 없는 것은 갑작스러운 통화긴축으로 인한 전 세계 빈자들의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TV와 언론을 통해 미국발 금리인상 이슈는 매일 다뤄진다. 그리고 여기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영끌족을 비롯한 다중채무자와 취약계층 이야기다.

 

견실한 경제회복세라는 경제연구소들의 일 년 전 장밋빛 전망은 어느덧 기억조차 못 할 이야기가 돼버렸다. 이제는 연준이 언제까지 금리인상을 유지할지 그리고 언제 금리인하로 돌아설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채, 저성장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비관론으로 새해를 시작하고 있다.

 

2023년을 내다보는 경제연구소들의 전망은 상저하고로 요약된다. 상반기엔 경기침체로 힘들겠지만, 하반기엔 점차 회복세로 전환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최근 10년 동안 경제를 전망하는 기관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가장 유행하는 단어다. 지금 당장 어렵겠지만 차츰 나아질 것이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위로의 말이지, 뭔가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데이터가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이 매년 반복되는 레토릭이라는 점을 뒤집어 생각하면, 매년 예상치 못한 사건과 정세로 인해 해마다 상저하고가 아닌 상저하저가 계속 지속됐음을 의미한다. 우리도 지난 십여 년의 세월을 생각해 볼 때, 경제가 눈에 띄게 좋아진 기억이 거의 없다.

 

금융경제의 이상한 바로미터

그런데 사람들 머릿속에 유일하게 기억되는, 뜨거운 열기가 돌았던 경제 영역이 있다. 바로 코인, 주식, 부동산이다. 지금 금리인상의 지속 여부에 대한 논란들의 대부분은 가상화폐, 주식, 부동산과 관련된 이야기로 귀결된다. 하락장을 멈추고 언제 다시 강세장으로 전환될지 예측하는 이야기들이 TV 시사 프로그램에서 다뤄진다. 대중들의 금융자산에 대한 경제적 이해관계가 금리정책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연준의장이 기자회견에서 사용한 단어에 따라 금리인상에 대한 매파적 발언이라 인식되면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반대로 비둘기파적이라 판단되면 상승하는 이런 현상은 세계가 연준에 얼마나 종속돼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주식시장이 기업의 미래 가치를 평가하는 지표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차익실현을 위한 투기적 행위의 지표로 작동하는 것은 어제오늘 만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브레이크 없이 더욱 가속화하고 있는 것은 분명 문제다. 저성장, 실업, 소득감소로 인한 경제적 고통에 주목하기보다, 자산시장의 재상승이 언제가 될지에 대중의 이목이 더 집중되고 있는 현상은 금융경제의 바로미터가 잘못 작동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자산시장의 혼돈은 지난 2년여 동안 코로나 위기 대응에서 파생된 금융정책이 낳은 후유증이다. 심지어 금융경제의 적정금리와 실물경제의 적정금리가 분리된 게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온다. 가령 지금의 인플레이션율에 대응하기 위한 실물경제의 금리수준이 5~6%라면, 금융시장에선 이런 수준의 고금리를 감당할 수 없다는 논리다. 이 또한 금융경제의 바로미터가 잘못 작동되고 있음을 실토하는 말인 셈이다. 급격한 금리인상이 가져올 투자감소와 실업, 채무 위기에 집중하기보다 금융시장의 유동성 공급에만 주목하게 된다면, 연준에 종속된 반쪽짜리 세상은 여전히 둘로 나뉜 채 헛돌 것이다. 실물경제의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목적으로 금융정책을 도모하는 것이 경제 교과서에 나온 교리지만, 이젠 사지선다 공무원 시험에나 나오는, 사문화된 이야기가 돼버렸다.

 

둘로 나뉜 세상

미국의 인플레이션율, 연준의 금리인상 대응, 이에 따라 동요되는 각국의 금융정책, 이렇게 이어지는 종속적 관계는 달러체제에 종속된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숙제이기도 하다. 그러면 우리는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낮아질 때까지 기다려야만 할 것인가? 우리에게는 연준과 상대적으로 다른 어떠한 자주적인 대응조치도 취할 수 없는 것인가? 이런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한국이 달러체제에 편승해 국제 무역 질서에서 엄청난 편익을 누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의 지배계급은 북한이 두려워 한미동맹 강화를 외치는 게 아니다. 미국이 만들어 놓은 세계 질서의 품에 찰떡같이 안겨야 무역으로 인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없이 못 산다는 걸 계속 설파한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 위기 이후 십여 년 동안 세상은 점점 둘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트럼프 정권부터 촉발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이제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해가 갈수록 더욱 험난한 대립과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그리고 한국은 갈라진 두 개의 선택지에서 미국을 확실하게 선택하길 종용받고 있다. 한국은행은 정부로부터 독립적이지만 미국의 연준으로부터는 독립적이지 않다는 한국은행장의 말은 달러체제에 종속된 한국의 상황을 매우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이 만들 반쪽짜리 세상에선 우리의 이익도 반쪽, 아니 이보다 더 작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중국과의 무역으로 많은 이익을 누리고 있는 한국이 중국을 배제한 미국의 질서 속에서 과연 같은 편익을 누릴 수 있을지 많은 물음표가 찍힌다.

 

과거 미국은 신자유주의 지배질서에서 중국을 하위파트너로 삼아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다.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게 하고, 전 지구적 공급망 사슬에 종속시킨 미국은 달러체제를 더욱 굳건히 만들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는 이 체제에 심각한 균열을 낳았다. 그리고 더 이상 하위파트너가 아닌 지역의 패권자로서 G2로 인정받으려는 중국과 아시아에 대한 패권을 고집하는 미국이 경제적 영역을 넘어 군사안보적 수준에서 대립하게 됐다. 특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점점 쇠퇴하면서 중국으로의 종속을 더욱 키웠다. 사우디와 중국이 석유거래에서 위안화 결제체제를 만든 사건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달러체제의 근간이 석유거래를 위한 달러 결제망에서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제 둘로 나뉠 세상에서 달러의 위상은 점점 낮아질 것이다.

 

이미 몇 가지 징후를 볼 수 있다. 러시아에 대한 ‘SWIFT(국제자금결제망)’ 퇴출은 러시아에 심각한 타격을 준 것은 맞지만,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국가들이 여전히 러시아와 결제시스템을 유지하면서 미국 지배에서 벗어난 교역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 여기에 달러체제에서 탈출하고 싶은 중국이 포함돼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전 세계적으로 충격을 주고 있지만, 중국은 다르다. 다른 나라와 달리 중국은 코로나로 인한 경기침체를 막고자 오히려 완화적인 금융정책을 취하고 있다. 중국의 코로나 사태가 잠잠해지면, 수요 폭발로 인플레이션에 다시 불이 붙을 수 있다는 전망은 미국발 긴축으로 인한 경기침체 전망과는 사뭇 다르다. 도대체 수요감축과 수요폭발이 동시에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어떻게 가능한가. 어쩌면 우리는 과거 연준이 지배했던 세상이 지금 둘로 나눠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윤석열 정부에 한마디

재정긴축 철회. 이처럼 세상이 급변하고 있는데, 아직도 사문화된 경제교리에 얽매여 재정긴축을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다. 한국은행은 연준에 종속돼 있지만, 한국 정부마저 연준에 종속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긴축적인 통화정책의 후유증을 재정정책으로 치유해야 한다. 몇몇 TV 정치 패널들이 돈을 조여야 하는 중앙은행의 정책을 거슬러 재정확대 정책을 취하면 인플레이션 대응에 효과적이지 않다고 하는데, 지금 한국 사회에서 경제위기의 우선 타깃이 과연 인플레이션인지 되물어봐야 한다. 정부가 지원금을 많이 나눠줘서 인플레이션이 온 것인가? 아니다. 문제는 예기치 못한 전쟁, 미국발 인플레이션, 그리고 이에 대응한 연준의 금리인상 충격이다. 외부적 요인에서 전염된 위기이다. 만약 재정긴축적인 기조가 유지된다면 이후 후유증을 치료하는데 훨씬 큰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다. 더구나 위기로 인한 대중의 불만이 쌓이는 상황에서, 특정 세력을 원흉으로 몰아 위기 상황을 관리하려는 안일한 태도는 버려야 한다. 자신을 싫어하는 국민을 적으로 몰고 국가 대개조를 외쳤던 박근혜 정부의 말로가 어떻게 되었나 떠올릴 때다.

송명관(참세상연구소) 참세상 2023.01.12

 

 

마지막 당부: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부자 되세요!”

 

반백 나이가 되어 20년 만에 귀국했을 때 한국 사회가 나에게 처음 건넨 인사말이었다. 그것은 그 20년 전 갓 서른 나이에 프랑스 땅 오를리 공항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의 경쾌한 발걸음에서 중력이 없는 땅인 듯 느꼈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또 청년 시절 고문당할 공포를 일상적으로 느끼게 했던 그 무겁고 어두웠던 사회 분위기와도 달랐다. 나를 초청한 한겨레신문 출판국의 자동차가 소공동을 지날 무렵 거대한 전광판에 부자 되세요!”가 떴다. 내 시선이 그 전광판에 고정됐고 자동차가 방향을 바꾸었을 때도 계속 지켜보려고 몸을 뒤틀었다. 내가 놓친 게 있겠지. 가령 마음의같은, 그 앞부분을 못 본 것이겠지. 그러나 전광판은 다만 부자 되세요!”를 거듭했다. 민주화와 산업화의 귀결점이 부자 되세요!”였다.

 

20년 동안의 부재가 나로 하여금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만든 탓일까. 아니면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상황을 추체험하지 않아 돈의 위력에 무딘 탓일까. 그 얼마 뒤 이번에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를 곱씹어야 했다. 그리 어렵지 않은 인문학적 상상력이랄까, 이웃에 대한 상상력을 동원했다. 열악한 주거 조건에 처한 사람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를 되뇌어보았다. 그러자 온몸에 밀려왔던 비감이란! 그리고 또 얼마 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으로부터 강연 요청을 받아 울산에 갔을 때였다. 시간이 남아 노조 사무실에서 대기 중이었는데 옆자리에 둘러앉아 있던 노조 간부들은 주식투자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300여 조합원 앞에서 나는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급기야 초등학생들의 입에서 조물주 위 건물주를 희망한다거나 빌거’(빌라에 사는 거지), ‘이백충’(한달 수입 200만원인 벌레)이라는 말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을 즈음, 이번에는 사회주의자와 사모펀드의 조합이 사회 현안이 되어 신문 지면에 등장했다. 주식이라곤 한겨레 주식밖에 없는 나에겐 그 조합 자체가 기이하고 엄중한 것이었는데 대다수 사회구성원에겐 그 사모펀드가 불법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듯했다. 한겨레도 크게 다르지 않아 나는 일종의 위화감을 느껴야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에게 비감보다 분노가 다가왔다. 사회주의가 능욕당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분노를 솔직히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관련하여 쓴 한겨레 칼럼은 독자들에게서 적잖은 비난과 인신공격을 받았다.

 

진보나 좌파를 말하는 것과 진보나 좌파로 사는 것은 다르다. 말할 수 있는 것도 특권에 속하는데, 적잖은 입이 말로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삶은 신자유주의를 산다. 대부분은 부자이기도 하다. 토마 피케티는 신자유주의라는 용어 사용을 꺼려서 신소유주의라는 말을 쓰는데, 그 논지를 따르면 입으로는 ()소유주의를 비판하면서 정작 삶은 ()소유주의를 사는 것이다. 소유주의를 향한 전향이 집단적으로 이뤄졌기에 비판적으로 인식되지 않은 채 대세를 이뤘다. 소유하라. 소유하라. 소유하라. 소유만이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 제로섬 게임의 소유주의에서 벗어나 연대의 가치를 살려야 한다는 인간성의 항체 요구는 취객이 어쩌다 내지르는 헛소리이거나 루저의 자기 위안에 지나지 않게 됐다. 노동의 이중구조, 불평등의 세습구조는 쉽사리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위선적인 문재인 정권과 독선적인 윤석열 정권이 똑같이 어떤 정치철학을 펼치려고 집권했는지 알 수 없는 점도, 그들의 관성에 따라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한 방편의 일환으로 집권했을 뿐이라는 점으로 설명된다. 시민사회운동의 원천도 적잖게 소유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이 경향은 민주당 집권과 함께 강해졌다. 그만큼 운동의 토대와 방향성은 부실해졌다.

 

최근 프랑스 정치철학자이면서 소설가인 가스파르 쾨니그(코에닉)의 디스토피아 소설 <지옥>을 읽었다. 물질주의, 소비사회, 가상현실을 풍자적으로 그렸는데, 천국의 게이트가 열리면 세계의 2만 도시로 여행할 수 있는 공항에 닿고 한도 없이 제공되는 신용카드로 최고급 상점에서 마음껏 쇼핑할 수 있다. 소유의 자유를 한없이 누리지만 공항 바깥으로 나갈 수 없고 다른 공항으로 떠나기 위해 부지런히 예약해야 한다. 그 누구와도 공항 로비에서 스쳐 지나갈 수 있을 뿐 관계를 맺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우주의 허공 속에서 궤도를 따라 도는 두 조각의 먼지처럼 쾌락을 추구하는 궤도에 오른 우리는 너무나 빠른 스케줄을 따라가느라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스쳐 지나갈 뿐이다.” 우리에게 자유를 누리게 한다는 소유주의가 낳은 것 또한 세계 최저 출생률과 세계 최고 자살률을 보이는 헬 조선이라는 지옥도가 아닐까.

 

끝내 냉소와 좌절을 멀리하라고 나 자신에게 지운 다짐은 안간힘으로 어쭙잖게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빌려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라는 어설픈 말을 마지막 한겨레 칼럼에 쓰게 한다. 각자의 삶은 각자가 맺는 사회적 관계의 총화라고 했는데, 오늘 닥친 기후위기는 우리 모두에게 자연과의 관계 재정립을 요구하고 있다. 자연이 인간의 지배, 정복, 소유, 추출의 대상일 때, 인간도 다른 인간의 지배, 정복, 수탈, 착취의 대상이었다. 자유를 지향하는 인간이 최악의 날들을 끝내기 위해 자발적 반란을 끊임없이 일으켰지만 결국은 모두 실패로 귀결됐다. 그렇다면 자연의 비자발적 반란에 마지막 기대를 걸어볼 만하지 않을까. 우군이 된 자연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도 소유주의가 끝없이 밀어붙인 성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자연과 인간, 동물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성장하는 게 아니라 성숙하는 것이다.

 

(부기: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한겨레에서 물러납니다.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최근 한겨레에 닥친 엄중한 사태와 무관하다는 점을 굳이 밝힙니다. 순전히 제 역량의 부족을 절감했기 때문입니다. 돌아보니 귀국 이후 20여년 동안 사내 구성원으로, 외부 필자로 한겨레와 인연을 맺어왔습니다. 불온한 서생의 삐딱한 눈길 탓이겠지만, 진보적 대중지를 표방한 한겨레가 프티부르주아 신문에 가깝게 된 것은 꽤 오래전부터의 일입니다. 법조기자들을 비롯해 출입처에 안주함으로써 초창기에 비해 사회변화를 추동하는 현장에서 한겨레 기자를 만나기가 무척 어려워졌습니다. 그럼에도 한겨레 지면은 저에게 무척 소중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저의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한겨레 독자분들, 함께했던 구성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홍세화 | 장발장은행장·‘소박한 자유인대표 한겨레 2023.01.13.

 

윤석열표 에너지 정책, ‘세마리 토끼다 놓친다

윤석열 정부가 재생에너지 발전 목표를 낮춘 것은 세계적 추세와 정확히 반대로 가는 것이자 한국 경제의 미래를 갉아먹는 일이다. 국제사회에 약속한 탄소 중립 목표를 지키기 어렵게 되고, 빠르게 성장하는 미래 먹거리, 에너지 안보를 함께 놓치는 일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 시대 주류 에너지를 바꾸는 게임체인저가 됐다. 전쟁으로 천연가스와 원유 가격이 급등하자 일부에서 석탄발전소를 재가동하고 원전 건설과 수명 연장을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단기 대응일 뿐, 미국·유럽·중국·인도 등 많은 나라가 택한 돌파구는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대폭 확충하는 것이었다. ‘과속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이런 재생에너지 투자는 지금 세계가 겪는 3중 복합 위기, 즉 기후, 에너지 안보, 경제 위기를 동시에 푸는 열쇠이기도 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해 12월 내놓은 연례에너지동향 보고서에서 각국이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재생에너지가 성장의 터보엔진을 달게 됐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2027년까지 5년간 세계 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이 2400기가와트(GW)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인류가 지난 20년간 설치한 태양광, 풍력 발전소를 5년 만에 추가로 짓는 규모다. 원전으로 환산하면 1GW500기 이상에 해당한다. 태양광 발전용량은 이 기간에 3배가 늘어 석탄을 제치고 가장 규모가 큰 발전원이 된다. 전쟁 직전의 예측에 비해 30%가 늘어난 투자 규모는 각 나라가 얼마나 재생에너지 확충 드라이브를 거는지 보여준다. 파티흐 비롤 국제에너지기구 사무총장은 지금의 에너지 위기가 좀 더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 시스템으로 가는 역사적 전환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분명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탄소 중립이란 숙제만으로는 이렇게 달려들지 않을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이다. 세계 많은 나라에서 태양광, 풍력은 원전, 석탄을 제치고 가장 싼 에너지가 됐다. 1h의 전기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비용(LCOE)을 기준으로 볼 때 2010년부터 10년간 태양광은 85%, 육상풍력은 56% 떨어졌다. 이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는 에너지 안보 문제를 영구히 해결하는 길이기도 하다. 매장지가 한정돼 있고 먼 거리를 수송하는 석유, 가스와 달리 태양과 바람은 어디에나 있는 민주적인 에너지다. 유럽은 지난해 10배까지 오른 전기·가스요금 부담을 재정으로 보조하다 보니, 화석연료 가격 변동과 공급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필요를 절감했다.

 

이제 재생에너지를 포함한 환경기술(ET) 산업은 정보기술, 생명과학기술에 이어 새로운 먹거리로 등장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030년까지 해마다 2조달러가 청정에너지 산업에 투자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청정에너지가 성장과 일자리의 큰 기회가 되고 있고, 글로벌 경제 경쟁의 마당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은 20214월 재생에너지, 배터리, 에너지 효율 향상 등 5대 에너지 신산업의 수출액이 2030년에 120조원, 2050년에 3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현 정부는 이런 세계적 흐름에서 비켜나 있다. 정부는 2030년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를 30.2%에서 21.6%로 내리고 대신 원자력 발전 비중을 23.9%에서 32.4%로 높였다. 이렇게 하면 삼성전자도 가입한 아르이(RE)100’에 맞춰 재생에너지를 기업에 공급하기 어렵고, 유럽 탄소국경세 부과 등 규제 장벽을 넘는 데 어려움이 커진다. 오죽하면 윤 대통령이 구성한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가 지난해 말 재생에너지 등 무탄소 발전 비중을 확대하라는 의견을 냈겠는가.

 

에너지 금융의 흐름이 완전히 바뀌면서 석유·가스 쪽은 투자 부진으로 앞으로도 가격 변동이 심할 수 있다. 발 빠르게 움직인 나라들이 재생에너지 덕분에 느긋해졌을 때 한국만 연료 가격 폭등한전 30조원 적자한전채의 금융시장 교란전기·가스요금 대폭 인상의 악순환을 되풀이할 참인가? 목표를 야심차게 세우고 친환경 에너지 산업에 과감히 투자하면서 수출 증대, 일자리 창출,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꾀하는 전략이 나와야 한다. 그러자고 먼저 나서야 할 산업통상자원부가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자는 환경부의 의견을 세차례나 묵살했다는 소식은 놀랍다. 산업부에는 경쟁국들이 무얼 하는지 모니터링하고 대책을 세우는 공무원이 하나도 없는 모양이다.

이봉현 ㅣ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한겨레 2023.01.13.

 

 

정부 종전선언이 문제? 윤 대통령 번지수 잘못 짚었다

역대급 군비증강 누가했는가

무슨 종전선언이네 하는 상대방 선의에 의한 그런 평화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외교부·국방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한 말이다. 윤 대통령은 상대방 선의에 의한 평화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가짜 평화였다고 이같이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가 종전선언을 앞세워 가짜 평화를 추구했다면, 본인은 힘에 의한 안보를 앞세워 '진짜 평화'를 추구하겠다는 취지이다.

 

하지만 이러한 진단은 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종전선언을 선호한 것은 분명하다. 동시에 문재인 정부 역시 힘에 의한 평화를 강력히 추구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잡힐 듯 했던 종전선언은 결국 무산되었다. 2018년에는 종전선언의 또 다른 당사자인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약속을 뒤집었고 그 이후에는 북한이 흥미를 잃은 탓이 컸다. 반면 문재인 정부 5년간 한국은 사상 최대 규모의 군비증강을 이뤄냈다. 그 결과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세계 12위로 평가받았던 군사력은 2021년과 2022년에는 6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북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안보 상황이 악화된 것도 이러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만약 한미가 북한에 약속했던 것처럼 2018년에 종전선언을 이뤄내고 이를 발판삼아 평화체제와 비핵화 협상을 동시적·병행적으로 진행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겠다는 약속을, 문재인 정부가 단계적 군축을 추진키로 한 합의를 이행하려고 노력했다면?

 

역사에 가정은 부질없다고 하지만, 이러한 질문은 오늘날의 상황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북한의 변심과 핵무력 강화를 향한 폭주는 위와 같은 상황 전개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윤석열 정부는 전임 정부의 성과는 걷어차고 한계는 더 강하게 계승하고 있다. 안보 위기의 책임을 전임 정부에 돌리고 대북 강경 자세를 드높이면서 지지율 상승이라는 정치적 효과에 고무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마저 든다.

 

설상가상으로 오늘날 남북관계는 적개심과 경쟁심, 그리고 전쟁불사론으로 도배되고 있다. 서로를 주적'으로 규정하면서 막말을 주고받는 적개심, 군비경쟁에서 한 치도 밀리지 않겠다는 경쟁심, 나를 건들면 백배·천배로 보복하겠다는 전쟁불사론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이다.

 

그 위험성은 윤 대통령이 11일자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 어떤 오판이 심각한 전쟁상태로 가는 것을 역사상 많이 봐왔다는 발언에 잘 담겨 있다.

 

하여 윤 대통령에게 묻게 된다. 전임 정부의 대북정책을 굴종 외교로 비난하면서 한국형 3축 체계 박차, 한미동맹 및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 등 군사일변도의 접근만 고집하면서 과연 오판을 방지할 수 있느냐고? 군사력을 신봉하는 접근이야말로 오판을 야기해 심각한 전쟁상태로 이어진 것을 역사상 많이 보지 않았느냐고 말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 프레시안 2023.01.13.

 

신자유주의의 끝물

2023년 새해가 밝았다. 안타깝게도 마중물이 아니라 끝물로 첫 칼럼을 시작한다. 신자유주의의 끝물! 지난 칼럼에서 대구 아파트 사례를 들어 지역에 만연한 악덕 자본가 흉내 내기를 지적했다. 가치 혁신 대신 인건비 깎아 이윤을 추구한다. 경비원의 직업 안정성은 물론 아파트 주민의 안전마저도 위협하는 일이다. 왜 그럴까? 왜 하는지도 모르면서 남들도 하는 것 같아 덩달아 끝물에 올라탄다. 이는 대구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 전체가 신자유주의의 끝물에 올라타 위태로운 바닥으로의 질주를 가속화하고 있다.

 

정작 신자유주의를 주창하고 전 세계에 퍼트렸던 영국과 미국은 대놓고 발을 빼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영국과 미국은 반노조, 기업 감세, 시장 제일주의를 핵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왔다. 이제 이런 정책을 그만두었다. 얼마 전 영국 보수당 정부는 철강업체를 국유화했고, 실리콘 칩 디자인 회사가 미국 제조업체에 매각되는 것을 막았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일할 수 없게 된 노동자에게 국가가 대신 나서 임금 80%까지 지급했다. 절정기에는 거의 1000만명이 보조금을 받았다. 미국 조 바이든 정부는 보건·교육에 36000억달러 지출, 노조 권리 확대, 기업 증세와 같은 정책을 추진했다. 법인세 싼 나라만 골라 메뚜기 떼처럼 옮겨 다니는 다국적 기업의 세금 회피를 막기 위해 글로벌 최소 법인세도 도입했다. 좋은 임금의 노조 일자리를 창출해서 일하는 가족을 위한 경제를 만든다며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제정했다. 백악관은 자랑스럽게 선언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역사상 가장 친노동자적이고 친노조적인 대통령이다.”

 

신자유주의가 죽어가고 있는지, 아니면 코로나19 영향으로 잠깐 꺾인 것인지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한창이다. 하지만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 신자유주의 정책이 끝물에 접어들었다는 데에는 모두 동의한다. 세상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한국 정부는 끝물에 한층 더 힘차게 올라타고 있다. 최종기착지는 이미 말라비틀어진 노동을 더욱더 세차게 쥐어짜는 것. 윤석열 대통령의 신년사다. “직무 중심·성과급제로 전환을 추진하는 기업과 귀족 강성 노조와 타협해 연공서열 시스템에 매몰되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차별화돼야 한다.”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속뜻은 섬찟하다. 그나마 최소한의 안정성을 누리는 노동자마저도 귀족노조라 비난해서 불안정한 하층민으로 떨어트리려고 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노동을 유연화하겠다는데, 실제로는 모든 노동자를 밑바닥으로 끌어내리겠다는 결기가 시퍼렇다.

 

도대체 왜 그러는가? 수익성 있는 투자를 지속해서 확보해야 하는 자본가의 영원한 모순을 잠시나마 해소하기 위함이다. 수익성 있는 투자는 가치 혁신이 이루어지는 곳에 있다. 단기 성과 내기 경쟁만 있는 생태계에서는 가치 혁신은커녕 생존조차 어렵다. 일단 인건비 후려쳐서 이윤을 만들어내자. 모든 기업이 앞다퉈 단기 경주에 뛰어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승리한 기업은 신이 날지 모르겠지만, 사회 전체에 가치 혁신이 사라진다. 가치 혁신은 가치에 장기간 헌신하는 사람만이 이룰 수 있다. 가치를 성스럽게 여기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변함없이 가치를 붙들고 헌신한다. 국민 대다수가 불안정한 하층민으로 전락한 하향 평준화 사회에서 가치에 헌신하는 사람이 나올 리 없다. 설사 나온다 해도 직무 중심·성과급제로 달달 볶이는 탓에 삶이 불안해서 장기간 가치에 헌신할 수가 없다. 가치가 성스럽다고 인정되면, 당장 성과가 나오든 말든 가치에 오랫동안 헌신할 수 있게끔 자본주의 시스템을 제대로 정비해야 한다. “대안이 없다며 냉소를 부추기는 자들이 있지만, 역사는 항상 이를 뒤집는다. “노조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며 노동을 주적처럼 대하는 신자유주의의 끝물에서 벗어나는 게 첫발이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경향 2023.01.13.

 

 

선거제도 개편의 목적

새해 들어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이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 검토를 언급했고, 김진표 국회의장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2월 중순까지 복수의 선거제도 개편안을 본회의에 제출하면 국회의원 전원회의에 회부해 3월 중순까지는 내년에 시행할 총선 선거제도를 획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행 선거제도는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로 253석을 뽑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30석 그리고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17명을 선출하는 방식으로, 202021대 총선에만 적용하기로 했던 한시적 제도이다. 준연동형은 정당 득표율에 비례한 전체 의석수에서 지역구 의석수 50%를 제외한 수치로 비례대표 의석수를 결정하고, 병립형은 지역구 의석수와 별도로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수를 정한다.

 

그런데 6분의 5 이상의 의석을 소선거구제로 뽑음으로 인해, 거대 양당은 10분의 1에 해당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거대 양당은 소위 위성정당이라는 꼼수를 통해 준연동형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했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무력화되었다. 따라서 현행 선거제도는 사실상 소선거구제도와 별 차이가 없게 되었고, 선거제도 개편 주장도 여전히 소선거구제도의 문제점에 집중되고 있다.

 

소선거구 선거제의 문제점으로 국민의 지지와 정당 의석 사이의 괴리가 가장 먼저 거론된다. 2020년 총선에서, 거대 양당의 국회 의석점유율은 위성정당의 비례대표 의석을 합하면 94.3%에 이르렀다. 이에 반해, 위성정당을 포함한 양당의 정당 득표율은 79.4%에 불과했다. 결국 소선거구제에서는 거대 양당의 후보가 아니면 당선이 어렵고, 새로운 정치 세력의 등장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또한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거의 모든 의석을 차지하는 지역의 정당 편중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들이 소선거구 선거제 자체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님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소선거구제도가 양당 체제를 지속시킬 수 있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으나, 이런 양당이 상대적으로 낮은 국민의 지지를 받거나, 상대적으로 낮은 지지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정치 세력이 양당을 통해 등장하기 어려운 것은 현재 한국의 정치 문화와 정당의 후보자 선출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에, 새로운 정치 세력들이 기존 정당의 후보자 선출 과정을 통해 진입하고 있다.

 

결국 문제는 현 한국 정당 체제와 소선거구제도의 결합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거대 양당은 오히려 적극적 지지자들만이 후보자를 선출하는 방식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양당의 적극적 지지자들의 공통적 특징은 상대방을 극히 혐오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적극적 지지자들의 지지를 받아 후보로 선출되거나 당권을 잡으려면 이런 혐오를 더욱 조장해야 한다. 이런 정치 과정에서 국가적 정책 대결보다는 인신공격과 지역 개발 공약이 주요 정치 의제가 되고, 대다수 국민들은 정치에 대한 효능감을 상실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선구제는 이런 과정을 통해 선출된 양당의 후보 중에 한 명을 선택하도록 국민을 강요하고 있다. 3의 후보에게 투표하고 싶어도 양당 후보 중 더 싫은 한 명이 당선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이른바 사표 방지심리가 작동하게 된다. 21대 총선의 지역구 투표에서 거대 양당의 정당별 득표율은 91.4%, 위성정당을 포함한 양당의 정당 득표율인 79.4%보다 12%포인트나 높았다. 그런데 통상적으로 양당의 지지율이 70% 수준임을 감안하면, 소선거구제에 기반한 정당 투표에도 역시 사표 방지 효과가 작동함을 유추할 수 있다. 한국 정당체제의 문제를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당위론적 주장에 그칠 수 있다. 결국 선거구제의 개편을 통해 정당이 스스로 문제를 고쳐나가도록 유인해야 한다. 그러나 소선구제만 바꾸면, 이런 정당-선거구제 결합에서 발생하는 정쟁과 무책임한 지역 개발 공약 경쟁을 국가적 과제인 양극화 해소와 탄소중립으로 이행과 같은 정책 경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변화를 유인하기 위해서는 전국 단위의 정당 득표율이 국회 의석수의 대부분을 결정하는 선거구제도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국가적 정책이 선거의제가 되고 공론화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선거제도 개편을 정치권 중심의 닫힌 토론으로부터 시민들이 참여하는 열린 공간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기존 정당과 의원들이 기득권을 강화하는 꼼수로 선거제도 개편을 마무리한다면, 민주주의와 정치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인하는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경향 2023.01.13.

 

 

주주자본주의 과잉의 어떤 나라

미국 증시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애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초우량 기업이다. 작년 9월 말 기준 애플의 자기자본은 506억달러였다. 원화로 환산하면 63조원(·달러 환율 1250원 가정)으로 삼성전자보다 자기자본 규모가 적다. 흥미로운 점은 애플의 자기자본이 계속 감소해왔다는 사실이다. 20179월 말 애플의 자기자본은 1340억달러였다. 5년 동안 자기자본이 62%나 감소한 셈이다. 자기자본의 감소는 일반적으로 부실 기업들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기업이 적자를 낼 때 자기자본이 줄어드는데, 초일류기업 애플은 이와 무관하다. 지난 5년 동안 애플이 벌어들인 순이익은 3666억달러로, 원화로 환산하면 458조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동안 삼성전자가 벌어들인 이익의 3.1배나 되는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애플의 자기자본 감소는 공격적인 주주환원의 산물이다. 애플은 지난 5년 동안 4585억달러를 자사주 매입과 배당을 통해 주주들에게 돌려줬다. 벌어들인 이익보다 더 많은 돈을 주주환원에 썼으니 자기자본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특히 배당보다는 자사주 매입에 더 많은 돈을 썼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4585억달러의 주주환원 중 자사주 매입으로 쓴 금액이 3873억달러에 달했다. 배당은 주주들에게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을 쥐여주는 행위이고, 자사주 매입은 회삿돈으로 자사의 주식을 매입해 소각함으로써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을 높여주는 행위이다. 배당은 일회적 성격을 가진다. 우량 기업들은 대체로 매년 배당을 실시하지만, 과거의 배당이 미래의 배당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반면 자사주 매입 후 소각을 통한 발행주식수 축소는 항구적으로 지속되는 현상이다. 자본은 자기증식의 속성이 있을진대, 초우량 기업 애플은 스스로 자본을 파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나마 애플은 양반이다. 규모가 줄어들고 있지만, 그래도 자기자본이라는 회계적 실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 500개로 구성된 S&P500지수 구성종목들 중 29개는 아예 자기자본이 마이너스이다. 부채가 자산보다 많은 전액 자본잠식 상황인 것이다. 자본잠식인 회사는 상장 폐지를 앞두고 있는 부실기업인 경우가 많은데, 미국을 대표하는 상장사들이 이런 범주에 속할 리는 없다. 자기자본이 마이너스인 기업들의 면면을 보면, 스타벅스·오라클·맥도널드·휴렛 팩커드·도미노피자·홈디포 등이다. 모두 수익성이 높은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우량 기업들이다. 이들은 주주환원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자본 파괴에 애플보다 더 열정을 쏟고 있다. 애플은 곳간에 쌓아놓은 잉여자금을 통해 주주환원을 하고 있는 데 반해 자본잠식 기업들은 빚을 내가면서까지 주주들에게 돈을 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자본의 물적 표현물인 기업을 통해 증식을 꾀하는 시스템인데, 기업에 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다. 기업의 자본 파괴는 역설적으로 이들의 비즈니스 모델이 출중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기업이 자본을 회사에 쌓아놓는 이유는 대규모의 투자가 필요하거나, 예기치 못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완충기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기자본을 줄이고 있는 미국의 우량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지 않은 비제조업 기업들이고, 일상적인 비즈니스에서의 현금흐름이 양호해 굳이 이익을 유보해 놓을 필요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으로 기업의 자본 파괴는 위기를 돌파해 나가는 자본주의의 변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본은 규모가 커지면 대체로 효율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자본이 쌓여 일정 임계치를 넘어서게 되면 추가적인 자본 투입에 따른 산출의 효율이 떨어진다.

 

자본스탁의 규모가 큰 선진국의 성장률이 신흥국보다 떨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인데, 주류 경제학에서는 이를 한계생산 체감의 법칙으로, 좌파 경제학에서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로 설명했다.

 

작년 이후 미국 주식시장은 조정세를 나타내고 있지만, 2021년까지의 미국 증시는 사상 유례없는 장기 강세장을 구가한 바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3월부터 시작된 미국 증시의 강세장은 S&P500지수 기준 154개월이나 지속됐고, 상승률은 608%에 달했다. 상승 기간과 상승률 모두 미국 증시 150년 역사상 압도적인 1위이다. 주가는 이토록 많이 올랐지만 같은 기간 동안의 미국 GDP성장률은 연평균 1.6%에 불과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성장률이 가장 낮았던 저성장의 시대에 주가는 치솟았다.

 

미국의 초일류 기업들은 총량적인 성장 둔화의 시대에 자본을 파괴함으로써 자본의 효율성을 높였다. ROE(자기자본이익률)는 자본의 효율성을 보여주는 지표인데, 당기순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눠서 산출된다. 이익이 늘어나거나, 자기자본을 줄이면 ROE가 상승한다. 전자는 오랫동안 봐온 익숙한 모습이고, 후자는 낯선 광경이다. 미국의 초우량 기업들은 이익도 많이 늘어났지만, 자본을 줄임으로써 자본효율성을 극단적으로 높였다.

 

주주자본주의로 포장된 우량 기업들의 자본파괴는 메인스트리트(실물경제)와 월스트리트(주식시장)의 괴리를 만들었다. 메인스트리트는 총량적인 성장을 반영하지만, 월스트리트는 자본의 효율을 반영한다. 미국처럼 주식 투자가 대중화된 국가에서도 주식투자 인구보다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 이들의 숫자가 더 많다. 실물과 주가의 괴리가 커지면 불평등은 커진다. 온갖 정책이 뒤섞였던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 방지법안(IRA)에 자사주 매입에 대한 규제가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다. 경제 구성원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일은 총량적 성장이지, 자본 효율성이 아니다. 과거에는 성장의 파이를 키우는 일이 자본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이었지만, 최근 미국 자본주의는 자본을 줄임으로써 효율을 높였다.

 

자사주 매입에 1%의 과세를 하는 규제 법안이 아니더라도 미국의 극단적인 주주환원은 지속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금리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빚까지 내면서 자사주를 매입해 자본을 줄이는 행태는 초저금리하에서나 가능했다. 한국과 같은 주주자본주의 결핍의 나라에서 미국의 주주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일이 사치처럼 느껴지지만, 실물경제보다 훨씬 앞서서 달려온 미국 증시의 지난 10여년의 상승세는 지나친 면이 있었다고 본다. 미국 주식시장은 자본파괴를 통해 자본효율을 높이는 자본주의의 변종을 보여줬지만, 향후 수년간은 이에 대한 후유증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경향 2023.01.13.

 

 

과속을 부추기는 사회

10·29 이태원 참사 발생 직후의 출근길은 평소와 달랐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기다리는 줄은 간격을 유지했고, 급하게 몸을 던지듯 전철에 탑승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평소처럼 사람 많은 전철에서 이상하게 숨이 잘 쉬어지지 않더라는 이들도 있었다. 참사는 시민들에게 일상 곳곳에 도사린 위험을 감지하도록 만들었다.

 

일상의 그 위험이란 무엇이었을까. 혹자는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과밀문화를 지적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시민의식 부족이 아닌 구조의 문제다. 일자리도, 문화행사도 서울에 집중되어 있으니 수도권 도심의 일상은 늘 과밀하다. 매일 한 시간이 넘는 출근길을 달려 지각하지 않으려면 몸을 던져 전철을 타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고된 업무와 야근으로 여유롭게 일어나는 아침 따위는 언감생심이다. 이런 조건에서 한국인의 문화나 시민의식만을 탓할 수 없다.

 

서울에 인구가 초집중된 지역불균형, 과로를 조장하는 노동관행 같은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항상 바쁘다. 인파가 몰리면 우회하거나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인파를 뚫고 목적지로 가려고 한다. 이로 인해 만들어진 일상의 속도는 유난하다 못해 위험한 수준이 됐다. 외국인들이 한국 사회의 특징으로 괜히 빨리빨리를 언급하는 게 아니다.

 

참사 발생 직후, “밀어 밀어라며 선동한 남성이 있다는 유언비어가 돌았다. 이를 조사한 경찰은 혐의 없음으로 결론을 내렸지만, 한 가지 되짚어볼 문제가 있다. 왜 사람들은 그런 상황이 충분히 있음 직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것은 이동이 정체된 걸 답답해하며 누가 다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억지로 밀어붙여 속도를 내보려는 빨리빨리의 조급함이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참사는 빨리빨리의 속도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음을 말해주었다. 알려진 것처럼, 참사 희생자 159명 중 102명이 여성이었다. 참사 직후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인파가 밀집된 장소에서 군중 압착 사고를 당할까 걱정되느냐는 질문에 성별로는 여성이, 세대별로는 연령대가 높을수록 걱정된다는 응답이 많았다. 이는 한국 사회의 속도에 모두가 적응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게 아니라, 누군가는 그 속도에 위협을 느끼고 다치거나 뒤처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지금, 그 속도에 가장 절박하게 저항하는 것은 장애인운동이다. 휠체어 이용자가 전철에 타는 동안 잠깐 늦춰지는 속도를 참지 못해, 그동안 한국 사회는 장애인들을 집이나 시설에 가두고 리프트 사고로 죽게 만들었다. 서울교통공사는 장애인의 느린 속도를 탓하며 그들을 버려둔 채 전철을 아예 무정차 통과시켰다. 피곤하다 못해 위험한 일상의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결국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희생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인의 이동권주장이야말로 모든 시민의 안전에 대한 요구일 것이다.

 

이를 두고 장애인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 그들이야말로 유언비어가 아니라 실제로 밀어 밀어를 선동하는 사람들이다. 윤석열 정부와 오세훈 서울시장도 이를 부추겨 시민들을 위험으로 밀어넣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빨리빨리달려 우리가 도달하는 곳은 어디일까. 나는 이태원 참사가 우리가 만나게 될 파국을 예고하는 것 같아 섬찟하다.

최성용 청년연구자 경향 2023.01.14.

 

알고리즘이 권하는 세상, 정치 양극화에 빠지다

<시사기획 창>(한국방송1)은 신년기획으로 2부작 다큐멘터리 <알고리즘 인류>를 방송했다. 1현실을 삼키다편에선 중독경제의 실상을 다루었고, 2민주주의가 위험하다에서는 정치 양극화를 다루었다.

1부는 소셜미디어(SNS)에 긴 시간을 보내는 일상을 비추며 시작한다. 한해 온라인쇼핑 규모가 200조원에 이른다. 온라인쇼핑이 이처럼 급성장한 것은 소비자 개인의 특성을 정교하게 파악해 끈질기게 달라붙는 광고 덕분이다. 플랫폼과 앱은 사용자가 더 많은 시간을 머물게끔 설계되어 있다. 유튜브는 한번 관심을 보인 영상과 관련 있는 영상을 끊임없이 추천한다. 그 속에서 발생하는 광고, 구독, 판매 등의 수익은 고스란히 빅테크 기업의 몫이다. 김병규 교수의 책 <호모 아딕투스>에서 설명하듯, 20세기 초는 제품을 만드는 기술이 귀해서 물건을 만들면 팔리던 제품경제의 시대였다. 20세기 후반은 생산기술이 흔해지고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경쟁했던 관심경제의 시대였다. 지금은 소비자에게 디지털 중독을 일으켜 돈을 버는 중독경제의 시대다. 여기서 중독은 단지 비유가 아니다. 뇌에는 보상을 받을 때 활성화되는 보상회로가 있어서 자극을 받으면 쾌감을 느끼고, 그 자극을 다시 얻고자 한다. 보통 보상회로 자극에는 시간과 노력이 들지만, 스마트폰은 아주 쉽게 자극을 주어 중독을 일으킨다.

 

왜 스마트폰 사용이 보상회로를 자극할까. 스탠퍼드대 의대 중독치료센터 소장이자 <도파민네이션>의 저자인 애나 렘키는 말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서로 공감하고 소통할 때 즐거움을 느끼도록 진화되었고, 소셜미디어를 통한 공감과 소통도 뇌에서 도파민을 분비시켜 중독을 일으킨다고. 애나 렘키가 예전에는 의사들이 담배 광고에 나왔었다고 지적하며 어떻게 담배의 중독성을 모를 수 있었냐고 의아해하지만, 100년 뒤에는 지금 인류가 스마트폰을 아이들에게 아무런 제약 없이 사용하게 했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될 것이라 말한다. 유튜브 닥터프렌즈의학의 역사 마약 편에서 아이들에게 아편을 진정 시럽으로 먹였던 흑역사를 보았을 때만큼 아찔하다.

한국방송 제공

 

소셜미디어는 공감과 소통뿐이 아니라, 공격과 혐오도 부추긴다. 이 역시 진화론적으로 설명된다. 집단 내 힘을 합쳐 다른 집단을 공격하던 부족이 살아남았고, 그 과정에서 쾌감을 느끼도록 인간이 진화했는데, 소셜미디어가 그런 쾌감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은 유럽 중세의 풍습을 재현하는 마을을 보여주면서 마녀사냥이 극에 달했던 시기가 중세의 한복판이 아니라, 근대 과학의 발견과 개혁적인 성취가 일어났던 16세기 르네상스 전후 200년간이었음을 짚는다.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속도의 변화를 겪으며 공격성이 높아진 결과였으며, 이는 오늘날 디지털 마녀사냥이 일어나는 기전과 유사하다. 인공지능에 의한 알고리즘은 중독과 별점 테러 등 피해를 낳지만, 비윤리적인 결과에 대해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런데 알고리즘이 낳은 더욱 심각한 폐해는 따로 있다. 바로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린 것이다.

 

프로그램은 2부에서 펠로시 집 괴한 침입 사건, 의사당 점거 사건, 트럼프를 지지하는 극우 음모론 단체 큐어논등 미국의 사례를 훑는다. 공화당 지지 지역 주민들이 주류언론을 가짜뉴스라고 불신하면서 유튜브를 통해 정치 뉴스를 접한다고 인터뷰하는 대목은 섬뜩하다. 한국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과 한국은 강력한 대통령제와 거대 양당으로 굴러가며, 언론 신뢰도가 낮은 등 유사점이 많다. 승자 독식의 선거 구도에서 51:49의 싸움이 되어버려 잘못을 저질러도 지지세력만 결집하면 된다는 팬덤 정치가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성향에 맞는 뉴스를 소비하면 왜 안 되는 걸까. 확증편향이 강화되어 믿고 싶은 것만 찾아보며, 나만의 세계에 갇히는 필터버블현상에 빠진다. 그 결과 정치는 양극화되고, 기본적인 사실조차 외면하면서 진영이 다른 사람과는 전혀 대화가 되지 않는다. 지지 정당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증오하고, 인간 이하로 보는 비인간화가 일어난다. 거대 양당은 이를 해소하기는커녕, 편 가르기와 혐오를 부추긴다. 표가 나오기 때문이다. 최근 프랑스, 스웨덴, 이탈리아 등에서도 극우 포퓰리즘 세력이 약진하였다. 디지털 민주주의의 출현이라며 환호했던 20년 전의 감격이 무색해졌다.

 

이러한 문제를 깨달은 일부 나라들은 디지털 문해 교육을 강화하고, 통신사업자와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에게 모니터링 및 가짜뉴스 삭제 의무를 부과해 해결을 시도 중이다. 미디어 공간이 공론장의 기능을 회복하고,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인류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한겨레 2023.01.15.

 

 

나경원의 '중꺾마', '잔혹복수극'에 쓰러지면 안 된다

'나경원 사태(?)'의 해체와 재구성

이준석 축출과 유승민 제거에 이어 작금의 나경원 사태(?)를 들여다보면 도무지 이해 안 되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민의힘 계열 정당은 대대로 내부총질 보다는 덧셈의 정치를 지향하는 보수정당 아니었나. 그런데 어쩜 저렇게 같은 당 사람을 상대로 숨통을 끊어놓으려는 듯 살벌한 비방을 쉬지 않고 주고받을까. 왕따에 이지메에 겁박에 모욕주기가 난무하는 아사리판이다. 쉽게 말해 난장판, 개판이다.

 

나경원 전 의원은 서울대 법대 선후배 관계인 윤석열 대통령과 '오빠' '경원아' 하며 지낸 '40년 지기'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대통령실이 "상종 못 할 사람", "애도 아니고" 등의 저잣거리 언어로 면박을 주나. 게다가 사직서 제출하래서 써 보냈더니 이게 웬 일, 해임이라는 중징계로 내쫓아버렸다. 지금 대통령실과 여당은 자신들이 원하는 체제에 동의하지 않고, 이를 위한 지시에 순종하지 않는 불순분자들을 제거하기 위한 소탕작전에 나섰다.

 

다 이유는 있다

윤 대통령과 나 전 의원의 인연은 정말 오래다. 특히 사법고시 준비하던 서울대생 대부분이 신림동에서 공부했던 것과는 달리 이들은 연세대 도서관 등에서 함께 공부했기에 각별할 수밖에 없다. 당시 강북의 부촌인 연희동, 서교동, 평창동 등에 살던 서울대 학생들은 연세대 학생증 하나씩 구해서 연세대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일이 흔했다.

 

또 이미 언론에 알려진대로 나 전 의원의 남편도 서울대 법대 출신이어서 오랜 세월 만남을 유지했을 뿐 아니라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부부 동반 식사를 한 사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과 같은 '잔혹복수극' 같은 사달이 났을까.

 

나경원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겐 모두 각각의 이유가 있다. 먼저 윤 대통령. 그는 대통령실과 행정부를 검사, 기재부 관료, MB정부 출신들 중심으로 채웠지만 당 만큼은 현역 중진 의원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윤핵관으로 일컬어지던 장제원, 권성동 등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한때 거리를 뒀으나 결국 이들 외엔 대안이 없어 재신임 과정을 거쳐 지금의 윤핵관들이 자리를 공고히 하게 됐다.

 

윤 대통령은 당 운영을 당에 맡긴 게 아니라 '대리 통치'하려 했고 그 방편으로 싫든 좋든 윤핵관들을 선택한 것이다. 이들은 주어진 임무도 그럭저럭 수행했다. 시끄러웠지만 결국 이준석도 대표 자리에서 내쫓았고, 논란을 감수하며 '당원 100% 경선'이라는 유승민 방지책도 마련했다. 어찌됐든 계획대로 진행되는 중인데 '자기 정치'하려는 사람이 끼어들어 이 판을 흔드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윤핵관들과 나경원 사이가 좋지 않다는 점도 당연히 감안했을 것이다. 결국 윤석열은 윤핵관을 선택해야 했다.

 

다음은 나경원. 언론 내용을 종합하면 그는 자신의 정치적 중량감이 반영된 자리를 원했으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비상근직이 돌아왔다. 책임도, 권한도 없는 자리이고 예산도 변변치 않은 조직이다. 장관급이라지만 다른 장관들 수준의 병력(?)도 없고 일주일에 한 번 출근해서 결재만 하고 오면 되는 자리이다. 한 언론은 "나 전 의원의 정치적 무게감을 따지면 사실상 방구석에 처박아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작년 말 사면된 김성태 전 의원은 13K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나 전 의원이 장관 자리를 얻기 위해 유력 인사들을 찾아다녔는데 결국 최근 구입한 빌딩이 문제가 돼서 청문회 검증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내각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인사검증 부담이 없는 자리를 배려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설득력이 매우 낮다.

 

원래 재력 있는 집안사람으로 4선에 원내대표를 지낸 나경원이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다는 것은 한국의 정치관행에서 말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청문회 통과가 염려될 때 중진 의원을 지명하는 게 오랜 관행이다. 나 전 의원에게 장관직 주지 않기 위해 찾아낸 알리바이일 뿐이다. 종합하면 윤석열 정부 출범 당시 조각부터 지금 당대표 출마까지 나경원을 배제하기 위한 다각적인 작전이 일관되게 진행 중임을 알게 한다.

 

마지막으로 김건희 여사. 지난 11일 그가 보수의 심장이라는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했다. '선거유세,' '대선행보'라는 말도 있었고 대선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에 가까운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확실히 대통령실 권력은 김 여사도 윤 대통령 못지않게 틀어쥐고 있는 듯하다.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12MBC라디오 인터뷰에서 "요새 김건희 대통령이란 말 참 많이 한다""중요한 인사와 정책, 돈이 다 김건희 여사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최근 미주지역 교민 언론인 <선데이저널> 기사가 많이 회자됐다. 이 기사는 "여당 패권은 윤핵관들이 잡고 있다"면서 "윤핵관은 나 전 의원보다 이름값이나 정치 경력에서 밀리지만" 중요한 것은 "김건희 여사를 형수로 부르며 사이좋게 지낸다"고 한다. 결국 "현 정부의 실세가 누구인지를 추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기사는 나경원이 윤 정부에서 홀대받는 이유로 김건희와의 불편한 관계를 꼽았다. 당선인 시절 부부 동반 식사 자리에서 서울대 법대 동문 3명에 둘러싸여 홀로 비명문대였던 김 여사는 '상당한 모멸감'을 느꼈고 결국 윤 대통령에게 나 전 의원에게 주요 직책을 주지 말 것은 주문했다는 것이다.

 

결국 나경원은 취임식에도 초청받지 못했는데 그는 대통령과의 친분을 신뢰했음인지 이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면서 상황이 악화된 듯하다. 특히 작년 7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건희 여사 팬클럽이 정말 눈에 거슬린다" 직격한 것이 불에 기름은 부은 꼴 아닌가 싶다. 이준석, 유승민 논란 때와 다르게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서 나경원에게 퍼부은 감정 가득한 행태들은 결국 이러한 배경 때문이 아닌가 미루어 짐작케 한다.

 

나경원은 박근혜의 뒤를 이어받을 가능성이 있는 여성 정치인이라는 평을 받아왔다. 그런데 지난 11일 김건희 여사는 서문시장을 전격 방문하며 이를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여지없는 정치행위다. 혹시 자신이 박근혜의 뒤를 잇는 '선거의 여왕'에 등극하려는 속셈은 아니었을까? 혹시 힐러리 클린턴의 길로 나아가려는 것 아닐까?

 

나경원의 앞날은?

나경원은 13일 단양 구인사를 방문하더니 15일엔 서울 동작구 성당 미사에 참석했다. 설 전에 대구를 찾을 계획도 밝혔다. 무엇보다 출마를 대비해 기자들과의 단체대화방도 만들고 대변인도 내정했다는 소식이 속속 언론에 나오는 걸 보면 출마 쪽으로 결심을 굳혀가는 듯하다. 그는 또 대통령에겐 예의를 갖추면서도 핵심 윤핵관인 장제원 의원과는 "2의 진박감별사가 당을 쥐락펴락"하고 있다며 SNS 상 날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전에 볼 수 없던 모습이다.

 

나경원은 국민의힘에서 가장 대중적 정치인이지만 동시에 비호감 이미지도 상당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동정여론과 함께 응원의 소리가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 주말 김기현 의원이 처음으로 당대표 지지율 1위로 뛰어올라 나경원을 누르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으나 나경원이 출마선언을 하면 다시 뒤집힐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나경원은 윤핵관과 대통령실의 협공을 뚫고 당대표 선거에 일로매진할 수 있을까.

 

그것은 전적으로 나 전 의원에게 달렸다. 많은 이들은 나경원이 말을 듣지 않고 출마를 강행할 경우 가족에 대한 수사까지 각오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 패스트트랙 수사는 기소된 상태이고 시민사회단체가 고발한 13건은 이미 무혐의 또는 불기소 처분을 받았지만 검찰이 다시 꺼내 재수사에 들어갈 수도 있다. 가족이 연관된 사학재단은 언제든 감사를 받아야 할 위기에 놓일 수 있고 특히 자녀 관련된 문제들은 수사팀의 의지에 따라 괴로운 시간을 지나야 할 것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두 가지 '중꺾마'

퇴로가 없는 그는 출마의 길로 들어설 것으로 보이지만 또 겁박과 협상을 번갈아 상대해야 할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은 이제까지 정치생활에서 대세를 거슬러 본 적이 없는 나경원은 결국 얻을 것을 얻고 중간에 접을 것이라는 예상을 한다. 그러나 이제까지 윤핵관의 행태나 대통령실의 반응을 종합하면 그럴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판단과 행태는 상식의 수준을 넘어서는 게 아니라 우리 상상의 영역조차 벗어나기 때문이다.

 

결국 나경원의 선택은 간단하다. 가느냐, 마느냐. 그 선택의 관건은 앞으로 닥칠지도 모를 고난을 감내할 수 있느냐이다. 어떤 고난? 멸문지화. 그렇다. 조국 전 장관과 가족이 겪어야 했던 멸문지화다. 물론 윤석열 정부가 조국에 이어 나경원의 가족까지 수사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럴 경우 나 전 의원의 지지율은 더욱 올라가고 윤 정부는 몰락을 자초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까지 포함하여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면 가족까지 파헤쳐 도륙을 내는 위정자 반열에 스스로를 올려 세울 무자비함이 있을까. 게다가 자신을 '오빠'라 부르며 수십 년 친하게 지내던 학과 후배를.

 

나경원에겐 두가지 '중꺾마'가 필요하다. 하나는 '중요한 것은 꺽이지 않는 마음,' 그리고 '중간에 꺾이지 않는 마음.'

정희준 전 동아대 교수 | 프레시안 2023.01.16.

 

 

윤 대통령의 독선·독단·독주 정치

인간은 그리 똑똑한 동물이 아니다. 앞사람의 잘못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 반면교사는 없다. 늘 전철을 밟는다. 그래서 역사는 돌고 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64·13 총선에 무리하게 개입했다. ‘진박 감별사가 공천을 좌지우지했다. 여권은 분열했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졌을 때는 수습할 수 있는 의지도 능력도 잃은 상태였다. 탄핵은 남은 수순에 불과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국정농단 사태의 반사이익으로 집권했다. 그런데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했다. 거기에 조국 사태가 터졌다. ‘내로남불’ ‘편가르기융단폭격을 받았다. 지지층이 분열했다. 5년 만에 정권을 내줬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 저지른 잘못의 반사이익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다음날 국민이 자신을 불러낸 이유, 즉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나라의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라는 개혁의 목소리이고, 국민을 편 가르지 말고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간절한 호소입니다. 새로운 희망의 나라를 만들라는 준엄한 명령입니다. 저는 이러한 국민의 뜻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이런 말도 했다. “국민을 위한 정치, 민생을 살리고, 국익을 우선하는 정치는 대통령과 여당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습니다. 국정 현안을 놓고 국민과 진솔하게 소통하겠습니다.”

말과 행동은 달랐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지 않고 있다. 국민을 편 가르고 있다. 통합의 정치를 외면하고 있다. 의회와 소통하지 않고 있다. 야당과 협치하지 않고 있다. 국민과 진솔하게 소통하지 않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1일 외교부·국방부 업무보고를 받으며 북한이 자유와 인권이 없는 야만 국가라는 점이 드러나면 국제사회가 남북 중에 어디를 지지하겠느냐. 종북 주사파들이 북한 인권 얘기가 나오면 철저하게 막는 것도 북한 인권이 곧 국가 안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지난해 1019일 당협위원장들과 오찬 자리에서는 종북 주사파는 반국가세력이고 반헌법 세력이다. 이들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라고 했다. 쉽게 말해서 북한 인권에 대해 소극적 태도를 취하면 종북 주사파이기 때문에 이들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 노무현 대통령의 평화번영정책,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겨냥한 발언이다. 그러고 보니 윤석열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만나지 않는 이유도 명징해진다.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기 때문도 아니고, 인간적으로 싫기 때문도 아니다. 종북 주사파의 수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오래전에 조짐이 있었다. 20211229일 경북 선거대책위 출범식에서 과격한 발언을 했다. “좌익혁명 이념 그리고 북한 주사이론 이런 거 배워서 민주화 운동 대열에 낑겨서 마치 민주화 투사인 것처럼 지금까지 끼리끼리 서로 도와가면서 살아온 집단이 이번 문재인 정권 들어서서 국가와 국민을 약탈하고 있다.”

 

그때는 시기와 장소를 의식한 과장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보니 아니었다. 그게 바로 윤석열 대통령의 본심이었다. 대통령 머릿속이 이렇게 되어 있으니 눈치 빠른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이 빨갱이 사냥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리라.

 

야당은 그렇다고 치자. 당내 통합을 안 하는 이유는 뭘까? 참으로 궁금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유승민 전 의원의 경기지사 출마를 저지했다. 이준석 전 대표를 쫓아냈다. 유승민·나경원 전 의원이 전당대회에 출마해 대표가 되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162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열가지 중 아홉가지 생각이 달라도 한가지 생각, 정권교체로 나라를 정상화시키고 국민이 진짜 주인인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같이하는 모든 사람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기염을 토했다. 결국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야당은 종북 주사파로 몰고, 당내 반윤석열, 비윤석열 인사들은 두들겨 패서 주저앉히고 있다. 대한민국을 윤석열 왕국으로 만들려는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의 행태를 세 단어로 정리하면 독선, 독단, 독주다. 윤석열 대통령을 찍은 유권자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비극이다.

성한용 } 정치부 선임기자 한겨레 2023.01.17.

 

 

자본주의 지배동맹 VS 민중

양자택일의 문제: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대한민국 관료제가 수행하는 통치행위는 누구를 위해이뤄지고 있는가? 이 질문은 정부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보다 어쩌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 해당 정책의 효과 내지는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당사자들이 거의 초대되지 않는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이하 탄녹위’)는 농·어민, 노동자, 청소년, 여성, 장애인을 비롯한 정부와 기업의 개발 행위로 인해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주민 등 기후위기 최전선 당사자를 위원으로서 초대하지 않고 있다. 지난 문재인 정권의 탄소중립위원회(이하 탄중위’)에서 논란이 됐던 기후위기 주범 산업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은 탄녹위 구성에서 사라졌지만, 이제 그들의 산업을 대변하는 교수·연구원들이 산업계의 빈자리를 메꾸면서 학계·전문가의 비중이 훨씬 더 높아졌다.

 

정책 결정 과정에 있어서 우리가 기후위기 최전선 당사자의 직접 참여를 외쳤던 이유는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것이지, 단순히 자리를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누가 그 자리에 앉아있었는지보다 누구를 대변하는 자리였는지가 더 중요하다.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한 이의 특정 정체성이 해당 정체성의 사람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중산층의 전문가와 정부 관료가 노동자 계층을 위해 활동할 수 있고, 조직된 노동자라고 하더라도 자본과 영합해 지금의 불평등 체제를 유지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라는 질문을 양자택일의 질문으로써 던진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소수의 지배동맹을 굳건히 하기 위해 일하는 정부인가? 다수의 평범하고 다양한 민중을 위해 일하는 정부인가? 이 양자택일의 질문은 이분법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현실에서 일어나는 지배구조를 그려낸다. 권력을 독점하는 이가 한쪽에 있다면, 다른 한쪽은 권력을 박탈당했다. 다만 이러한 지배구조가 종잡을 수 없는 환상처럼 보이는 이유는 지배와 피지배를 나누는 선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아니, 자본주의야말로 환상을 지어내고 교란을 일으키는 체제다.

 

우리 몸의 일부이자 근원인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이로우며, 필수 불가결한 행위라고 자본주의는 가르친다. 지구를 쥐어짜서 이윤을 내는 기업이 없으면 노동자는 죽고 말 거라는 믿음을 자본주의는 강요한다. 따라서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가 산다고 자본주의에 속한 이는 믿는다. 머리(의식)와 몸(계급)의 분리는 혼란을 초래한다. 머리는 권력을 독점한 집단을 대변하고 몸은 그 권력 집단에 의해 힘을 박탈당한다. 몸은 평생 속박된 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나 머리는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정당을 선택한다. 이러한 몸과 머리의 분리로 인해 지배와 피지배를 구분하는 선이 어디쯤인지 가려지게 된다. ‘행동은 의식의 반영이라는 전제하에서 우리에게 남은 실마리는 그가 누구를 위해 행동하는지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실마리마저도 온갖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포진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헝클어지기 십상이다. 자본 권력은 당신이 한 행동은 당신의 계급을 위한 것이라는 자기기만의 덫을 사방에 던져놓았다. 환경운동가와 노동운동가가 그 덫을 밟고 거대 자본이 자연과 노동자를 착취해 얻은 이윤의 부산물을 얻어먹으며 환경과 노동자를 위해 일한다는 자기기만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라. 그들 의식에는 자본 권력이 심어준 정당화 논리가 열심히 작동하고 있다. ‘돈이 어디에서 왔는지가 뭐가 중요해? 어떻게 쓰는지가 중요한 거지!’ 자본 권력의 이러한 책략은 나의 의식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나의 행동이 실질적으로 누구를 위해 기여하는지 분별력을 가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지배구조를 은폐하고 교란하는 자본 권력의 의식화 전략을 폭로하고 저항해야 한다.

 

민주주의라는 허구:

자본 권력을 위해 일하는 정부와 시민단체 그리고 거버넌스

대한민국 정부를 비롯해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 경제를 의탁한 국가의 정부는 자본 권력의 의식화 전략을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거나, 통제하지 않고 있다. 자본 권력은 언론매체를 포함한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고, 시민사회가 계급성을 스스로 혐오하도록 부추겼다. 시민사회 일부 인사들은 시민을 대표해 정부와 민관협치를 추구하는 거버넌스를 만들어 놓고는 정부를 위해서, 나아가 정부를 통제하고 있는 자본 권력의 이익을 위해 활동한다. 그들의 활동은 기업을 감시하거나 견제하는 힘을 만들어내지 못하며, 기업 독점 체제에 통합되는 활동만을 벌인다. 그것들은 대개 개인의 실천 내지는 봉사 영역으로 축소된다. 그 활동 자체가 시민사회 내부에 교란을 일으키고 계급의식을 갖지 못하도록 만든다.

 

가까운 예로 충북지역 환경단체와 거버넌스가 주최한 ‘2022 충북환경인의 날SK하이닉스의 지원을 받았다. SK하이닉스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후위기 주범 기업 중 하나이며, 더군다나 청주 도심 한 가운데에 반도체 공장 증설을 위해 자체적인 LNG 발전소를 짓고 있다. (최근 공장 증설 계획이 사실상 취소됐으나 발전소 건설을 강행하고 있고, 청주시는 이를 내버려 두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 SK하이닉스는 연대와 협력의 말씀을 전하는 자리에 초대됐다. 이날 수년째 발전소 건립을 반대하며 투쟁하고 있는 주민과 단체들의 목소리는 까맣게 지워졌고,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고 환경교육을 하는 이들은 상을 받았다. 교란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보이는가?

 

한편 민주주의의 수단으로 여겨지는 선거제도와 정당제는 다원적인 정치를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2014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미국 정치이론 테스트: 엘리트, 이익 집단 및 일반 시민 Testing Theories of American Politics: Elites, Interest Groups, and Average Citizens’이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은 1982년부터 2002년까지 20년 동안 미국에서 시행된 주요하고 다양한 정책 1,779건을 분석했는데, 산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제 엘리트와 이익 집단이 미국 정부의 정책에 독립적으로 두드러진 영향을 미친 반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일반 시민 내지는 대중은 영향은 미미한 영향을 미치거나 독립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해당 논문은 실제 정치의 장에서 미국의 네 가지 정치 이론 중 자본 엘리트 지배 이론상층 편향적 다원주의 이론이 작동되는 반면, ‘다수결 선거 민주주의다수결 다원주의는 실현되지 않는 현실을 증명했다. 다시 말해 해당 논문은 자본주의 체제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커다란 왜곡을 일으키고 있고, 자본 권력을 중심으로 한 권력 집단이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음을 실증했다.

 

민주주의를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 고도화했다고 평가받는 미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는 국내 민주주의를 진단하는 데도 참고할만하다. 우리는 이미 경제 엘리트들과 재계가 지지하는 법안은 너무나도 쉽게 국회를 통과하지만 노동자, 시민이 요구하는 법안은 국회만 들어가면 멈추고 방해받는 현실을 지켜보고 있다. 국회에 누가 들어가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국회의원들이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살펴보자는 질문을 다시 적용해보면 상황은 좀 더 선명해진다.

 

2020년부터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화물연대의 안전운임제 일몰 폐지와 품목 확대 요구를 비롯해 중대재해처벌법, 근로기준법, 노조법 개정 등에 있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며 논의를 지연시키고 주요 쟁점들을 탈락시키고 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거대양당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사이좋게 근본부터 파괴하고 있다며 법인세 인하가 포함된 2023년 조세와 예산에 대한 밀실 합의를 페이스북에 폭로했다. 거대양당은 민중이 각자 삶의 현장에서 시작한 전선(戰線)을 쪼개고 투쟁과 논의를 지연시킴으로써 현재의 자본주의 독점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선거 제도와 정당제는 민주주의를 담보하지 못한 채 고장 난 기계처럼 방치돼 있다. 다수를 차지하는 민중, 혹은 노동·시민사회는 각자 뿔뿔이 흩어져서 고군분투하고 있거나, 더 이상 투쟁하지 않는다. 정치에 답답할지언정 함께 분노를 모으지 못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기후정의: 자본주의 지배동맹을 폭로하고 반대하자

일찍이 자본주의에 내재한 교란과 기만의 속성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거대 자본이 어떻게 우리의 삶과 생명 그리고 터전을 파괴했는지, 어떻게 우리의 통제력과 권리를 앗아갔는지 폭로하는 단체들이 있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기업감시(CorpWatch)는 그 대표적인 단체다. 기업감시는 21세기를 앞두고 온실가스 깡패 대 기후정의 Greenhouse Gansters vs. Climate Justice’1)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에서 이들은 초국적 자본 권력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고, 인권 침해를 조장하면서 전 지구적인 환경 재앙을 일으키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기후정의를 정의내린다. (보고서의 저자 중 한 명인 케니 브루노Kenny Bruno1996년에 그린워시: 기업 환경보호주의 이면의 진실Greenwash: The Reality Behind Corporate Environmentalism을 앞서 펴내기도 했다.) 기후정의를 설명한 부분을 요약 번역하자면 이렇다. 기후정의는 지구 온난화의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지구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을 계속해서 길러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후정의는 생산 및 유통의 모든 단계에서 온실가스 깡패들이 저지른 파괴에 반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서의 기후정의는 저소득 지역사회, 유색 인종 지역사회 또는 화석연료 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주는 방법이 아니다. 대신 이들이 더 건강하고 공정한 환경에서 일하고 살 수 있도록 정의로운 전환을 강조한다. 기후정의는 모든 국가가 온실가스 배출의 급격한 감소에 참여해야 하지만, 역사적으로나 현재 지구 온난화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선진국이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는 의미다. 개발도상국(‘저개발국가가 정확한 표현이다-필자 주)을 위한 기후정의는 세계은행 및 세계무역기구와 같은 국제기구가 기업주도의 화석연료 기반 세계화에 대한 자금 지원 및 촉진을 중단해야 함을 의미한다. 궁극적으로 기후정의는 화석 연료 기업이 지구 온난화를 일으킨 역할에 대해 책임지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보고서는 온실가스 깡패 기업들이 지구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건하게 만들기 위한 전략들을 다섯 가지 ‘D’로 간파한다. Deny(부인하기)·Delay(질질 끌기)·Divide(분란 만들기)·Dump(다른 곳에 쏟아버리기)·Dupe(속이기). 과학적 사실을 부정하며, 관련 논의와 합의를 지연시키고, 민중 내부를 분열시키고 갈등을 조장한다. 오염·유해 산업을 해외 저개발 국가로 이전시키고 이런 전 과정을 통해 민중을 속인다! 그들은 화석연료 기반 산업이 엄청나게 많은 이들을 고용하고 있고, 경제 성장에 이바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내버려 둬야 한다는 여론을 만든다. 이때 마치 기업은 노동자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경영하는 것처럼 자신의 지위를 드러낸다. 하지만 기업들은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인수·합병 등을 거치며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고 노동자들을 내쫓고 있는 사실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런 분열 전략은 실질적으로 기후정의 운동을 펼치는 데 있어서 노동자·시민사회 내부의 결속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기후정의의 요구는 독립적인 민중의 힘이 기업의 탐욕스러운 파괴 행위와 그들의 속임수,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고 정당화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을 중단하는 데서 생겨난다는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본 권력을 위해 복무하는 정치·경제·언론·교육·문화 등의 집단들은 그들과 지배동맹을 이룬다. 이들을 자본주의 지배동맹이라고 부르자! 우리에게 땅과 식량, 독립적인 노동과 공동체, 우정으로 가득한 세계를 박탈한 것은 다름 아닌 자본 권력과 그들을 위해 말하고 일하는 집단들이다. 기업의 책임은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온난화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에 있고 세계금융기구가 기업의 범죄행위를 부추기고 지원하는 행위를 중단하는 것으로 완료된다. 자본주의 지배동맹이 더 이상 동맹체를 결성할 수 없을 때, 그들이 사분오열 흩어지게 될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전진할 것이다. 우리 함께 자본주의 지배동맹을 폭로하고 반대하자.

 

당신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다시 양자택일의 질문을 당신에게 던진다. 당신은 자본주의 지배동맹을 위해 살 것인가? 민중인 우리 자신을 위해서, 우리의 몸이자 근원인 지구 생명과 터전을 위해 살 것인가? 이는 틀에 박힌 이분법이 아니라 지배와 착취가 작동하는, 살아있는 정치적 현실이 존엄한 당신에게 매일 묻고 있는 질문이다. 아니, 당신의 존엄이 당신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후자를 택한다면 우리가 공동의 전선에 서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의 싸움과 나의 싸움이 존엄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투쟁이라는 진실을 말이다. 화물노동자의 과로·과적·과속의 노동은 나의 과로·과적·과속의 삶과 같은 뿌리에서 비롯됐다.2) 나 스스로를 소진하고 파괴하는 삶은 태워지고 파괴되는 화석연료의 삶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오랫동안 복잡한 속임수와 계략에 혼란스럽고 답답한 시절을 보내왔다.

 

자본주의 지배동맹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절대적 다수를 차지하는 우리가 연대하고 동맹을 이뤄야 한다. 그 첫 시작은 우리 삶과 의식 곳곳에 침입하고 있는 자본주의 지배동맹을 드러내고 반대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들의 폭력과 범죄행위를 투명하게 드러내고 단호하게 반대하자. 그리고 서로에게 지지와 응원을 보내자. 새만금, 가덕도, 제주도 신공항 건설현장에서 투쟁하는 이들, 지리산 산악열차를 반대하는 이들, 석탄발전소·양수발전소·LNG발전소, 핵발전소, 핵폐기물 처리시설, 산업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반대하는 이들, 공장식 축산과 대규모 동물 학살을 반대하는 이들, 나와 동료 노동자·시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이들, 해고 위협에 맞서 싸우는 발전소 노동자와 인간다운 노동할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이들과 함께 모여 동맹을 만들자.

 

자본주의 지배동맹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부정의와는 과감하게 결별하자. 그들에게 결별을 선언하자. 굴욕을 버리고 존엄을 되찾자. 화물연대 파업을 지지하며 발언한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유최안 동지의 말을 기억하자.

 

이길 수 없는 거 알고 있습니다. 해도 안 되는 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알고 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을 위해 팔 하나 정도는 자를 수 있는 정의로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닌 이제 우리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넘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함께해 갈 고민, 그리고 실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나 혼자의 괴로움이 아닌 망설이고 있는 저 지저분한 인간들이 용기를 낼 수 있게, 어떻게든 내 가족 내 새끼밖에 모르는 저 지저분한 인간들이 가슴 속에 거름을 덜어낼 수 있게 여러분들이 우리가 그리고 내가 마중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각주>

1) CorpWartch의 홈페이지(https://www.corpwatch.org/our-history)에는 환경, 경제, 인권에 대해 기업이 어떤 범죄를 자행하고 있는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그리고 드론 전쟁을 통해 어떤 전쟁 이익을 누리고 있는지, 미국 정부와 국회가 대기업의 권한을 견제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도록 했는지 등에 대한 지난 20년간의 활동과 보고서들이 공개돼 있다.

2) “파업하자”, 채효정, 경향신문, 2022.12.5.

박윤준(음성노동인권센터) 참세상 2023.01.17

 

공안 본색대통령과 동강 난 설

설이 코앞이다. 3년 만에 거리 두기 없고 ()마스크도 가까워져 설렌다. 정초부터는 기부한 출향인에게 지역 특산품을 주는 고향사랑기부제도 새로 자리 잡았다. 정지용의 향수나 이은상의 가고파노랫말처럼, 나고 자란 언덕배기·바다·골목을 잊을 이는 없다. 살다 쌓인 말과 그리움과 시름을 안고 저마다 고향·가족·친지를 찾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그 설 공기를 무겁게 하고 낯가리게 하는 대화가 생겼다. 정치다.

 

세태 조사도 흥미롭다. 정치 성향이 다르면 41%는 밥과 술을 먹기 싫고, 44%는 본인·자녀의 결혼도 불편하다고 했다. 지역·남녀·세대·계층보다 지지정당 차이가 가장 큰 분열의 씨앗이 됐다. 이 숫자를 내놓은 조선일보엔 병 주고 약 주냐고, 언론부터 각성하잔 말이 차오른다. 끼리끼리 모인 소셜미디어와 유튜브가 키우는 게 있다. 확증편향이다. 설도 예외 없다. 유유상종하고 내놓는 여야의 설 여론은 올해도 평행선을 달릴 게다.

 

해 바뀌고, 나라에서 팔 걷어붙이는 일마다 찬바람이 인다. 노동개혁은 노조 회계장부공격으로 시동 걸고, 서울시는 법원이 열차운행 5분 지연 시 500만원 내라고 중재한 장애인 시위에 6억원의 손배소를 던졌다. 시민사회 보조금을 전수조사하겠다는 대통령실은 왜 진보단체 일탈만 예시하는가. 동네방네 떠벌리며 간첩단 지하조직을 쫓는 것도 오랜만에 본다. 그러면서 국정원은 정치개입·사찰의 흑역사가 서린 기업 정보담당관(IO)과 인사검증(세평수집) 기구를 부활시켰다. 외교부의 MBC 소송으로, 대통령의 ××’ ‘바이든·날리면청력테스트는 법정에서 이어진다. 이 의뭉스러운 난장을 다 이으면 그려지는 게 있다. 공안국가다.

 

공안은 검찰에서도 가장 오래된 전문 부서다. 공안수사는 해방정국에도 있었다. 공안부2019공공수사부로 개칭됐다. 반성한다고 했다. 서울시 공무원(유우성)을 간첩으로 조작하고, 친여·친기업 잣대로 선거와 노사 갈등까지 개입해 쥐락펴락한 오욕을 벗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달라졌는가. X표를 친다.

 

대통령이 노동·북한·야당과 각 세우니 법무(검찰행안(경찰노동부와 국정원은 물을 만났고, 통일부는 눈칫밥을 먹는다. 이준석·유승민 뒤로 나경원이 세번째다. 대통령이 편먹고 갈라치는 집권당엔 민주주의가 설 땅을 잃었다. 윽박질러 이기면 국민이 끄덕일까.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엔 줄푸세’(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질서 세우기)공안역량 강화가 녹아 있다. 대통령의 공안 본색2년차에 만발한 것이다.

 

좋은 잠을 꺼내먹어요

그렇게 내달리는 세상이 정의롭지도 공평하지도 않다. 36시간 미만 단시간 노동자가 802만명, 주휴수당 없는 초단시간(15시간 미만) 노동자가 158만명을 찍었다. 최고치다. 대통령은 올핸 주 52시간제·파견 둑을 더 풀고 노노 착취도 없애겠단다. 임시·하청·파견직을 더 쓰려는 자본·업주엔 갑의 날개를 달아주고, 그 비정규직 천지에서 터질 을··정의 다툼도 법으로 손볼 심사다. 이것이 개혁인가. 다주택자 매매·세금 족쇄를 풀고, 법인세·종부세는 내렸다. 낙수효과가 있을지, 입법이 될진 더 봐야 한다. 부자감세 후 빡빡한 재정으로 연금·노동 개혁에 나서는 갑론을박도 길어질 게다. 지금 프랑스처럼. 그에 앞서 짚을 게 있다. 정부·기업은 빠져나오고 약자들만 피울움 쏟은 외환위기 전철을 코로나19 끝에 되풀이해선 안 된다.

 

2020년 이맘때다. ‘설 대화의 7대 금기 인물을 썼다. 글 속 친구는 올해도 대전 큰집에 간다고 했다. 조국 얘기로 형과 다시 안 볼 듯 다툰 뒤로 그는 명절 대화에 뺄 사람을 정한다. 3년 전 7명은 문재인·황교안·조국·윤석열·추미애·유시민·진중권이었다. 이번 설엔 ‘7+α라 했다. 윤석열·김건희·이재명·문재인·한동훈·이상민·유승민과 정치 유튜버들이다. 설 평화를 위해 굿럭’, 행운을 빈다.

 

3년 전 미국 심리학회가 트럼프 시대의 명절 다툼 예방법을 내놨다. 입에 올리지 않을 정치인을 함께 정하라 민감한 정치 이슈가 나오면 화제를 돌려라 내가 타인의 견해를 바꿀 수 없음을 인정하라 인신공격은 하지 마라. 이 대화법은 지금도 유효하다. 누군가 툭 던진 말에 불붙는 게 설 상의 정치다. 가뜩이나 살림·일자리·양육도 고단한 시대, 설엔 서로 힘주는 말이 넘치면 좋겠다. 마음 가눌 길 없을 이태원 참사 유족도 헤아리고, 기후·연금·선거제 얘기도 나눠봄직하다. 그러다 싸울 거 같으면, 애당초 안 하니 못한 정치나 끝없을 공안국가 설전은 멈추길 권한다.

이기수 논설위원 경향 2023.01.18.

 

 

당당하고도 끈질긴 인간의 악

악은 참으로 한결같다. 악은 없었던 적도 없었고 약했던 곳도 없었다. 참으로 한결같이 사악했다. 그중 소위 가진 자들의 악은 내놓고 당당했으며 더없이 끈질겼다. 인간의 이러한 악함을 기본으로 놓고 그 위에서 사회를 좋게운영해갈 길을 찾았던 한비자는 신하를 가진 자들의 대표로 제시한 후 이들의 악함을 팔간(八姦)’, 그러니까 여덟 가지 간악함이라는 제목으로 개괄하였다.

 

첫째는 군주와 침상을 같이함으로부터 비롯되는 동상(同牀)’의 간악함이다. 군주의 부인이나 첩 등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는 악함을 말한다. 둘째는 군주 옆에 있는, 곧 내시 같은 측근으로부터 야기되는 재방(在旁)’의 간악함이다. 군주의 심복임을 악용하여 간특한 짓을 일삼는 것을 말한다.

 

셋째는 가족이나 총신처럼 군주가 친애하는 자들로부터 발원되는 부형(父兄)’의 간악함이다. 군주와 특수 관계임을 내세워 악행을 일삼음을 말한다. 넷째는 군주의 재앙을 조장함으로써 초래되는 양앙(養殃)’의 간악함이다. 궁실을 화려하게 꾸미고 백성에게 세금을 무겁게 매기며 군주의 처첩이나 개, 말 등을 사치스럽게 꾸밈이 이에 해당한다.

 

다음은 민맹(民萌)’의 간악함이다. 하찮은 은혜를 베풀어 조정이나 민간에서 자신을 칭송하게 만드는 악행이다. 그다음은 유행(流行)’의 간악함이다. 교묘하게 꾸민 언사나 허황된 궤변으로 삿됨을 자행하는 것이다. 이 둘은 요새로 치자면 언론 장악, 여론 조작 등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일곱째는 자신이 지니게 된 위력을 오남용하는 위강(威强)’의 간악함이다. 예컨대 공권력을 자신의 이해관계 관철에 악용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마지막은 강대국의 위세에 기대어 당리당략을 달성하는 사방(四方)’의 간악함이다. 이를 용이케 하려고 신하는 군주를, 또 조국을 연신 약하게 만든다.

 

왠지 고대 중국에 대한 얘기라고만 느껴지지 않는다. 한비자가 팔간을 언급함은 유능한 군주라면 신하의 이러한 간악함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그렇다고 팔간이 저 옛날 군주제 시절에나 유용했던 통찰은 아니다. 인간의 악은 참으로 당당하고 끈질긴지라 2300여년이란 시간을 관통하며 지금에도 버젓이 행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경향 2023.01.18.

 

 

기대는 증오를 부른다

경제학에 합리적 기대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가계, 기업 등 경제주체들이 가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이용해서 미래를 합리적으로 예측하고 의사결정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말은 정치하고 이론의 완결성은 높을 수 있겠으나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게 돌아가지는 않는 거 같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의 원인이었던 서브프라임모기지대출의 과잉을 놓고 말들이 많았었는데 그 똑똑하다는 미국 은행가들의 기대가 이상했다는 주장이 있다. 그들이 부동산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을 예측했다는 것이다. 부동산 가격만 불패면 불안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줘도 남는 장사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 결과는? 역대급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사람들이 뭔가에 대해 기대를 하고, 그 기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 기대의 대상이 경제이든 조직이든 사람이든 말이다. 문제는 기대에 근거해서 행동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오냐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제법 많다. 첫 번째, 국내 채권시장은 민간회사채가 아닌 국채와 특수채(공공기관, 은행 등) 등이 지배를 하고 있다. 그중 한국전력공사채권 같은 특수채는 시장에서 독특한 기대를 받는다. 공공기관은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 기대가 행동에 반영되어 투자자들이 한전에 싸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시장에서 인기도 많다. 결국 한전은 싼값에 많은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자금이 비효율적으로 쓰인다든가 탄소중립에 반하는 투자에 사용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두 번째, 얼마 전 대표적 진보매체인 한겨레 기자와 김만배 간의 돈거래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웠다. 돈 거래를 한 기자에 대한 비판은 차고 넘친다. 더구나 9억원이니 무슨 말을 하겠나. 연이어 사람들은 한겨레에 대해 상당한 분노를 표출했고 이 근저에는 진보매체에 대한 기대가 자리 잡고 있다. 진보지는 도덕적으로 깨끗할 것이라는 기대이다. 화가 많이 났는지 무려 30년 전인 1991년 한겨레의 보사부기자단 거액촌지 특종까지 소환하며 타락을 비판한다. 근데 필자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궁금했다. 과연 우리는 누군가의 도덕성에 대해 합리적 기대를 하고 사는 것일까? 삶은 자기를 망치는 일의 연속인데 가능한 모든 정보로 판단을 한다면 도덕성에 대한 높은 기대는 형성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한 기대를 한다면 그런 마음은 주관적인 팬심일 가능성이 높다. 팬들은 본질가치보다 그 단체, 그 사람을 과대평가하는 것이 특성이기 때문이다. , 팬들은 평소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지만 이들이 돌아서면 더 무섭다. 과잉기대는 증오를 부르고 그 대상을 한방에 베어버리기 일쑤이다. 이런 사회가 과연 좋은 사회인가?

 

마지막이다. 집권 초반에 윤석열 대통령은 제2MB인 듯 보였는데 요즈음은 아닌 거 같다. 트럼프에 더 가까워 보인다. 트럼프의 특성 중 하나는 모든 기대를 배반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보수공화당의 대통령이지만 주류보수와 여러모로 각을 세운 이단아였고, 트위터를 통해 온갖 외교안보 이슈에 좌충우돌하면서 사람들을 혼란으로 몰아갔다. 그 와중에 일관되게 가져갔던 이미지는 강한 자(strong man)이다. 윤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강한 자의 좌충우돌이 묘한 쾌감을 줄 수 있겠으나 그 외의 사람들에게 이것은 피곤한 불확실성일 뿐이다. 이 불확실성이 커지면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조용히 살면서 눈치만 보게 된다. 가끔 조롱과 분노를 표출하면서. 이런 사회는 생산적이지 않다.

 

우리 사회는 기대를 받는 사람의 책임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책임은 당연하지만 각도를 좀 바꾸어 볼 필요도 있다. 기대를 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일까? 왜 우리는 누군가에 대해 막 엎어지다가 또 순식간에 화를 내며 돌변하는 것일까? 누군가에 대한 합리적 기대를 형성하는 훈련은 되어 있는 걸까? 가능한 많은 정보를 이용해야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으니 결국 상대방에 대해 관심이 크게 없는 사람들이 과잉기대를 할 수도 있겠다. 나를 진심으로 좋아해서가 아니라 나한테 크게 관심이 없어서 팬이 되는 아이러니다.

 

사랑이 증오를 이긴다(love trumps hate).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선거에서 미국 민주당의 슬로건이자 트럼프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생존법이다. 강한 자가 만들어내는 불확실성에 휘둘리지 말고 각자가 관심 있는 영역을 하나 정도 잡는 게 좋겠다. 그게 환경문제일 수도 있고 소액주주권리강화일 수도 있고 뭐든 좋다. 좀 더 적극적이 되는 게 스스로의 정신건강에도 좋을 것이다. 조금만 뒤져보면 할 수 있는 건 분명히 있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 경향 2023.01.18.

 

 

부족장들의 놀이터로 전락한 공론장

김어준씨(이하 존칭 생략)TBS를 나가 새로운 유튜브 채널을 만들자 첫 티저영상 이후 보름 만에 구독자 100만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스스로 진보를 자처하는 그의 지지자들은 크게 고무된 표정이다. 사회적 현안마다 꽤 높은 발언력을 행사하는 김어준의 파워가 새삼 확인됐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유튜브 채널이 며칠 만에 구독자 100만명을 돌파하는 일이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연예인들에겐 비일비재한 일이다.

 

김어준에 대한 지식인들의 평가는 크게 둘로 갈린다. 일부는 그의 음모론적인 방송이 끼치는 해악에도, 철도나 에너지 사영화 같은 사안에 있어서는 비판적인 관점을 유지하기 때문에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게다가 적지 않은 이들이 그의 견해로부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일정하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꽤 일리 있는 말이다.

 

다른 한편, 김어준이 이끄는 강력한 팬덤이 에이미 추아가 규정한 정치적 부족주의(Political Tribes)’에 불과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가 여러 사안에서 잘못된 견해를 유포했기 때문에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견해다. 가령 김어준은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음모론이나 미투운동 시기의 공작설을 유포하는 데 방조 또는 협력했고, 세월호 고의 침몰설을 적극적으로 유포하기도 했다. 사후적으로 이와 같은 음모론들은 논리적으로나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으나, 김어준은 공인으로서 제대로 사과하거나 반성한 바 없다. 그가 하는 방송의 영향력이 매우 큰 만큼 그러한 음모론이 끼치는 파급력과 악영향도 크고, 따라서 김어준이라는 마이크를 경우에 따라 활용할 수 있다는 식의 논리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을 친국힘친민주당둘로 단순하게 나눌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은 김어준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 국힘 이중대따위의 딱지를 쉽게 붙일 것이다. 하지만 김어준식 음모론에 대한 진보적 비판은 다분히 사실과 상식에 기반하고 있다. 과학적 사실을 무시하고 사회 여론을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인플루언서에게 상식에 근거해 비판하는 것마저 부족주의적인 구획으로 나누다 보면 우리의 공론장은 매우 궁핍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세월호 참사 이후 조사 과정이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던 것에는 김어준발 외력설이 끼친 악영향이 크다. 선박 내부 결함이 문제였다는 것이 충분히 드러났는데도 세월호 참사 선체조사위원회의 일부 인사들은 고의 침몰설같은 외력설에 오랫동안 매달렸다. 이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원인 조사를 통한 제도개혁과 멀어지게 했고, 그만큼 우리 사회의 모순에 맞선 사회운동적 대응과도 멀어지게 했다. 사회운동에서 음모론은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지만, 궁극적으로 모순에 맞선 저항에서 음모론이 중심이 되면 사회운동을 좀먹게 할 뿐이기 때문이다.

 

적의 적은 동지인가? 지난 16MBC 라디오에서 새로 런칭한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은 김어준을 인터뷰 대상으로 소환하고, 모종의 연합전선을 형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뉴스인지, 또 하나의 음모론 유튜버인지 정체성이 모호해 보인다. TBS 예산삭감은 분명 정치세력의 언론에 대한 개입이지만, 이를 바탕으로 모종의 동지애를 구성하는 일이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다른 한편, 문재인 정권 시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내로남불을 비판하고, 김어준의 음모론 방송에 조롱적인 비판을 가하며 유명세를 얻은 김경율 회계사는 갑자기 고용노동부 산하의 노동관행 개선 자문단의 단장으로 선출됐다. 아마도 이 자문단은 윤석열 정부가 밀어붙일 노동개악의 비판을 뭉개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면피성 조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단국대 의과대학 서민 교수는 이보다 더 노골적으로 윤석열 정부에 붙은 케이스다. 그는 한창 소위 진보진영칼럼리스트로 활동하다가 진보의 내로남불을 경멸하는 걸 넘어서 아예 반대쪽으로 가더니, 입에 담기 어려운 말들을 내뱉으며 노골적인 부족 찬양에 나섰다. 지난 대선 시기에는 일부 좌파 활동가들조차 윤석열이 자유주의자라고 주장하면서 포퓰리즘 정치에 대응하기 위해 차라리 윤석열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첫 1년을 보고 자유주의를 운운하는 것만큼 이상한 소리는 없다.

 

김어준과 김경율, 서민은 이전보다 더 정확하게 반대편에 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정말 적대하는 양 세력의 반대편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사회운동과 진보정치의 상식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똑같이 정치적 부족주의를 상징하는 부족장들에 불과할 뿐이다.

 

부족장들이 사회 여론을 대변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여론 지형이 더더욱 부족주의적으로 변형된다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안 그래도 요즘 젊은 노동자들이 익명으로 즐겨 이용한다는 블라인드를 보면, 이용자들이 한창 현대차부족·삼전부족·LG부족·스타트업부족·중기부족으로 나뉘어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청소년들은 인터넷 커뮤니티별로 나뉘고, 뉴스 중독층은 김어준 같은 유튜버별로 나뉘어 부족 간 전쟁에 몰두한다. 이제 거의 원시부족들 간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시대에 돌입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조합을 악마 삼아 때리기에 나서자, 젊은 층의 찬성 여론이 적지 않게 나타났다. 부족 전쟁에 몰두한 시선에서 보기에 민주노총은 자신들의 부족을 위협할 또 다른 부족들 중 하나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부족 전쟁에 몰두해 있는 사이, 평범한 사람들의 권리는 끊임없이 후퇴 중이다. 노동조합이 독립적으로 자기 조직을 운용할 권리를 침해받으면 국가권력에 쉽게 종속될 위험에 노출된다. 이는 노동자 권리 후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노동조합 할 권리가 줄어들면 억울하게 떼인 임금과 불합리한 노동조건, 직장내 괴롭힘은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부족장들은 이를 해결해 줄 수 없다.

 

혹자는 꼬우면 더 잘 나가든가?”라며 냉소 어린 시선을 보낼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권리를 지키고 확장해 나가는 것은 부족화된 냉소가 아니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자기 노동권의 확장을 위해 회사와 지역, 세대의 경계를 넘어 어떻게 단결할 수 있느냐에 있다.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 매일노동뉴스 2023.01.18

 

사람됨을 잃은 통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은 알 것이다. 슬픔의 무게는 감당하기 어렵고,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 하물며 남은 삶이 많은 자식이 사고로 생을 마감한다면 부모의 마음은 찢어질 것이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새겨진다. 이태원 참사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심정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백분의 일쯤은 짐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몇 년 전 어머니를 잃은 사람으로서 희생자들과 비슷한 나이의 딸을 둔 아버지로서 하는 말이다.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 유족들에 대한 배려가 인간의 도리라고 믿는다.

 

떠나는 것보다 무서운 건 남는 것이다. 유족들은 상실의 허기를 감당해야 한다. 어머니를 여읜 직후 회사 후배가 읽다가 마음이 힘들면 덮으세요라며 조심스럽게 건네준 책 <슬픔의 위안>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슬픔은 슬프다는 사실을 받아들여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슬프다는 이유 자체로 큰 좌절을 겪었으며 그로 인해 삶이 큰 타격을 입었다고 했다. 그들은 자신이 너무나 당황했기 때문에 당황했다. 이상한 반응 같지만 지극히 일반적인 반응이다.” 돌아보니 사별 후 감정은 당황함과 막막함이었다. 희생자들의 가족들은 춥고 쓸쓸할 것이다.

 

일본 영화 <굿바이>는 죽은 이들을 마지막으로 배웅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첼리스트 다이고는 오케스트라의 해산으로 실업자가 돼 낙향한다. 그가 여행의 도우미라는 신문 구인란을 보고 찾은 곳은 여행사가 아니라, 시신을 수습해 관에 넣는 일을 하는 납관회사였다. 그는 시신을 닦아 수의를 입히고, 얼굴을 화장하는 등 고인을 단정하게 꾸미는 납관사 일에 빠져든다. 첼로를 연주하던 손은 시신을 만지게 됐지만, 죽은 이를 정성스럽게 배웅하는 일이 예술 못지않게 섬세하며 보람된 작업이라고 느끼게 된다.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다이고 일행의 지각에 화를 냈던 한 남성은 이들이 떠날 때 고개를 숙인다. “오늘 아내는 지금껏 본 모습 중에서 제일 예뻤습니다.” 10여년 전 관람한 이 영화의 DVD를 최근 다시 꺼내 봤다. 예를 갖춘 추모, 따뜻한 말 한마디가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집권세력은 참사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시종일관 무례했다. 진심으로 애도하지 않았고, 남은 이들의 슬픔을 헤아리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윗선에 면죄부를 준 채 현장에 책임을 물었고, 국회 국정조사특위는 정부·여당의 비협조로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하지 않았고, 49재 추모제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파면됐어야 마땅한 대통령의 고교·대학 후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자리를 지켰다. 몇몇 여권 인사들은 유족들에게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막말을 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사람됨을 잃은 정치라고 했고, 진중권씨는 책임지겠다는 놈이 한 놈도 없냐. 너희들도 인간이냐고 했다. 공감한다. 지금 우리는 사람됨을 잃은 통치를 목도하고 있다.

 

유족들은 지난 12일 국조특위 공청회에서 버려진 심정을 토로했다. () 배우 이지한씨의 어머니 조미은씨는 독립투사처럼 이렇게 해야 하는 겁니까. 나라가 해주면 되는데라고 했고, 고 박가영씨 어머니 최선미씨는 놀러가서 죽었다고? 우리 청년들은 놀면 안 되나. 놀러오라면서, 축제라면서 홍보하지 않았나라고 했다. 고 유채화씨의 동생은 저희 유가족은 사회에 시끄러운 존재들이 아니다. 한 국민으로서 억울한 목소리를 내는 것뿐이라고 했다. 생존자 김초롱씨는 참사 후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첫 브리핑을 보며 처음으로 무너져 내렸다고 했다.

 

사람들은 장례를 치르면서 인간관계를 돌아보고, 주변의 장례 때 자신이 보였던 무심함과 잘못을 반성하게 됐다고 말한다. 유족들, 이들의 슬픔을 공감하는 국민들에게 윤 대통령 등 정권 핵심 인사들은 어떻게 비칠까. 차가운 셈법은 잠시 작은 이익을 가져다줄 뿐이지만, 공감은 허다한 허물을 덮을 수 있다. 그러나 집권세력은 이런 이치를 외면한 채 정치적 득실을 따지는 데 급급했다.

 

다시 <슬픔의 위안>을 인용한다. “그 사람이 당신에게 소중했듯 당신도 그 사람에게 소중했다. 부디, 때가 되면 이런 의미를 마음에 새겨 슬픔을 이겨내길 바란다. () 세상을 떠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과거에도 의미가 있었지만 지금도 의미가 있다는 깨달음, 어쩌면 이것이 당신의 출발점일지 모른다.” 매정하고, 못난 정권을 대신해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

이용욱 논설위원 경향 2023.01.19.

 

사진 플레이

‘6·25 전쟁때 개성에서 정전회담이 열렸다. 회담을 앞두고 공산군은 회담장에 오는 유엔군 차량에 흰 깃발을 달도록 요구했다. 만약의 경우 적으로 오인되면 공격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공산군 측은 흰 깃발을 단 유엔군의 차량을 부지런히 사진에 담았다. 유엔군이 마치 백기를 달고 항복하러 가는 듯한 사진이 연출되고 있었다.

 

회담장 내에서도 그랬다. 공산군 대표는 높은 의자에 앉았다. 반면 유엔군 대표는 낮은 의자였다. 그 바람에 유엔군 대표는 공산군 대표를 올려다봐야 했다. 유엔군 측이 항의하자 새 의자를 가져와서 바꿔 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사진 촬영이 끝난 뒤였다. 속 보이는 언론 플레이’, 또는 사진 플레이였다. ‘6·25 전쟁때였으니 아득한 과거사였다고 하자. ‘가까운 과거사는 어땠을까.

 

작년 11월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2022 카타르 월드컵 축구대회를 중계하면서 화면에 잡힌 태극기를 모자이크 처리하고 있었다. , 경기장을 둘러싼 광고판에서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5’이오닉6’ 광고를 알아볼 수 없도록 글자를 지웠다고 했다.

 

작년 10월에는 북한 노동신문이 전술핵운용부대의 대대적인 훈련 내용과 탄도미사일 사진을 크게 보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해 연초의 사진을 재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했다. 그렇다면 북한은 대내용 사진 플레이를 한 셈이었다.

 

2018년에도 사진 플레이가 있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노동신문은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북한의 고위급과 함께 북한 예술단 공연을 관람하는 사진을 1면에 비중 있게 실었다. 그런데 사진에서는 문 대통령 혼자 기립해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모두 함께 일어서서 박수를 쳤겠지만, 실린 것은 문 대통령 사진뿐이었다고 했다.

 

사진 플레이는 이렇게 북측의 주특기인 듯싶었다. 그러나, 그렇지도 않았다.

작년 6월 보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문 대통령이 초청국의 정상 자격으로 참석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홍보 포스터를 만들면서 맨 왼쪽에 있던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사진을 잘라낸 단체사진을 사용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가운데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그러면서 사진 한 장으로 보는 대한민국 위상이라는 홍보 포스터에서 이 자리 이 모습이 대한민국의 위상입니다. 우리가 이만큼 왔습니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청와대는 편집 디자이너의 제작 상 실수라고 해명했다는 보도였다.

사진 플레이처럼 보이는 게 지금 또 등장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과 찍었다는 사진이다. 사진은 입만 벌렸다면 거짓말”, “이재명쌍방울 김성태 만난 적이 전혀 없다? 그럼 이 사진은 뭐냐?”는 글도 담고 있다.

 

그러자 김남국 민주당 의원이 급히 해명에 나서고 있다. 온라인에서 퍼지고 있는 사진은 이 대표의 가족사진이라는 해명이다. 사진에서 이 대표와 손을 잡고 있는 사람은 둘째 아들이라고 했다. 온라인에서 유포되는 사진은 가짜라는 것이다.

 

정전회담서부터 따지면, ‘대단한 사진 플레이의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사진을 그대로 믿었다가는 제대로 골탕 먹게 생겼다.

문주영 편집위원 뉴스클레임 2023.01.19.

 

어떤 속도에 맞춰 살아가야 할까

우리는 달리는 자본의 등에 올라탄 지 오래다. 그동안 누군가는 자본을 멈추려 하고, 누군가는 자본의 속도를 늦추려 한다. 그러나 자본은 갈수록 더 매서운 속도로 달리고 있다. 대다수는 자본을 찬양하든, 비판하든, 저주하든 여전히 달리는 자본의 등에 올라타 있다. 속세를 떠난 구도자나 자연에서 자급자족하며 사는 자연인이 아닌 이상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권력은 이미 시장에 넘어 갔다고 말했다. 정치 권력의 정점에 선 자의 자조적이면서도 솔직한 발언이었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흐른 지금, 자본 권력의 파이는 더 커졌다. 행정부·입법부·사법부·언론 등 자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우리가 권리로 정치권력을 선출하는 건지, 자본이 돈으로 정치권력을 사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한 편의 쇼 비즈니스로 전락 중인 선거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푸코가 말했듯, 권력은 대중을 통제하려 들기 마련이다. 과거에는 잔혹한 형벌과 같은 요란스러운 방식을 썼다면 현재로 올수록 교묘해졌다. 통제는 학교·관공서·일터 등 일상에서 미시적으로 이뤄진다. 대중은 통제받는지도 모른 채 통제받고 있다. 특히 플랫폼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콘텐츠를 멍하니 보면서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편향된다. 과거 검색한 제품이 계속해 추천 광고로 뜨기도 한다. 자본이 우리의 일상과 크고 작은 선택을 기록하고 관리하고 유도하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행하는 노동 역시 통제 수단 중 하나다. 어느 나라를 가든 대다수 노동자는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한다. 주말에는 쉰다. 통용되는 복장을 갖추고 정해진 규칙과 관습, 예의와 절차를 따른다. 그리고 체계적으로 구조화된 일을 한다. 조직의 비전과 목표, 역사를 끊임없이 되뇌는 건 물론이다. 또한 노동자는 일터에서 보고 듣거나 경험하는 관심과 배려·협력·연대뿐만 아니라 생존 경쟁, 차별과 멸시, 폭력 등을 알게 모르게 내면화한다.

 

자본이 직조한 세상에 던져진 우리는 자연스레 자본의 속도에 발맞춰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자본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더 빠르게 회전할수록 더 빠르게 증식하기 때문이다. 질주하는 자본의 속도에 발맞춰 사는 건 쉽지 않다. 평범한 사람의 일생은 학업·취업·노동·은퇴 순으로 빈틈없이 짜여 있는데, 어느 단계에서 한 번만 미끄러져도 저만치 뒤처지기 마련이다. 과로나 번아웃으로 힘들어 하는 이를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유와 소통, 연대를 이야기하기에 자본의 속도는 너무나도 빠르다. 자본이 주술을 외듯 자유만 외쳐대는 이유다.

 

심지어 자본을 견제해야 할 노동마저 자본의 속도에 발맞추기도 했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자본은 가속 페달을 밟았다. 금융시장이 개방됐고, 구조조정이 단행됐으며, 비정규직이 양산됐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노동은 눈앞의 밥그릇을 지키기에 급급해 전체 노동 계급적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길 게을리했다. 자본의 경쟁 논리를 기꺼이 따랐고, 여기저기 울타리를 치며 노동자끼리 편을 나눴다. 그렇게 20여년이 지난 지금, 전체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율은 40%를 넘나들고 비정규직 노조조직률은 3%가 채 안 된다.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 임금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가량을 가져간다. 물론 자본의 탐욕과 정치의 실패가 극심한 불평등의 가장 큰 원인이겠으나, 노동 역시 반성할 지점이 만만치 않다.

 

나도 모르게 끈적끈적하게 들러붙은 자본의 습성을 계속해 떨쳐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관성대로 살다 보면 결국 자본의 길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어쩌면 조금 한가한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눈앞의 위기가 산더미다. 돌파하기만으로도 벅차다. 그럼에도 더는 가벼이 여길 수 없다. 자본의 속도에 발맞추기만 해서는 자본이 짜 놓은 판 위에서 아웅다웅할 뿐이다.

 

자본의 속도에서 벗어나는 건 강대강으로 부딪치는 투쟁만큼이나 힘들 것이다. 적이 명확하지 않고, 당장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며, 필요하다면 스스로에게 메스를 겨누기도 해야 한다. 그래도 서서히 침몰하는 배를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결국은 침몰하고 말 테니.

배병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 매일노동뉴스 2023.01.19.

 

악은 가난이 아니라 불평등에서 나온다

못 사는 것이 아니다.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다.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 보유한 개인은 424000(2021)이다. 전년에 비해 3만 명이 넘게 증가했다. 총 금융자산 약 4900조 원 중 이들의 금융자산은 무려 2883조 원에 이른다. 전체 금융자산의 60%.

 

또 이들이 보유한 부동산 자산은 2361조원(2021)이나 된다. 전년 대비 14.7%나 증가했다(KB금융그룹 ‘2022한국부자보고서’). 상위 100명이 보유한 주택수가 28000채가 넘는다. 반면에 우리 국민의 45%는 무주택자다.

 

고급 외제차가 경차보다 훨씬 더 잘 팔린다. 백화점 전체 고객의 0.1%가 백화점 전체 매출 20~30%를 책임진다. 경기침체, 경제위기 뉴스 속에서도 명품가게 줄은 줄어들지 않는다.

 

반면에 폐지 줍는 어르신들의 모습도 갈수록 늘어만 간다. 하루 종일 폐지를 주워도 월 평균 수입이 20만 원이 채 안 된다. 노인 빈곤률과 자살률은 아주 오랫동안 압도적 1위다(OECD).

 

우리나라 노동자 3명 중 1명은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우리나라 비정규직 비율은 OECD 국가 평균의 2배가 넘는다. 이들의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소득 격차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일터에서 떨어져서, 끼여서, 깔려서 죽는 사람이 한 해에 2000명이다. 이들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코로나가 닥쳤다. 전 세계가 돈을 풀었다. 미국은 무려 6조 달러(7200)를 국민들 주머니에 직접 찔러줬다. 전 세계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미친 듯이 올랐다. 부자들 재산은 가만 앉아서 불어난다. 전 국민에게 똑같은 코로나가 닥쳤는데 빈부격차가 벌어진다.

 

이번에는 인플레이션이 닥쳤다. 금리가 올라간다. 부자들 예금 금리도 올라간다. 한 달에 수십조 원이 은행으로 몰려든다. 반면에 서민들 대출 이자 부담도 2~3배 늘어간다. 금리는 똑 같이 올랐는데 한쪽은 자산이 더욱 불어나고, 한쪽은 빚만 더 늘어난다. 인플레이션이 닥쳐도 마찬가지로 빈부 격차가 벌어진다.

 

이러나저러나 가만히 있어도 빈부 격차가 벌어진다.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정부의 존재이유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과시켰다. 의료비와 에너지 가격 지원 등 서민들 복지 예산과 공공투자 위한 증세 법안이다. 대기업 등으로부터 10년간 무려 7500억 달러 추가 세수를 확보하겠다는 법안이다.

 

유럽도 대부분 국가에서 에너지 보조금을 지급했다. 전기와 가스요금 가격 상한제도 실시했다. 재원마련을 위한 횡재세까지 도입했다. OECD 주요 선진국 대부분 증세를 통한 적극적 재정정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코로나와 인플레이션으로 고통 받는 서민들의 삶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서다. 빈부격차와 경제적 불평등을 줄여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과 안정적인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반대다. 완전 거꾸로다. 증세가 아닌 감세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인플레 시대에 감세 정책은 물가 상승을 더욱 부추긴다. 제대로 거꾸로다. 법인세 인하와 부자감세로 향후 5년간 줄어드는 세수가 최소 6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재정건전성을 강조했던 정부가 오히려 재정을 더 악화시킨다. 양두구육 정부다.

 

게다가 올해는 심각한 경기침체가 예상된다. 올해 경제성장률 잘해야 겨우 1% 중반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탈중국선언을 했다. 덕분에 지난해 무역수지는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472억 달러). 올해도 여전히 수출은 어렵다. 애초 예상보다 세입 규모가 훨씬 더 줄어들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공공요금을 올린다. 전기요금이 크게 올랐다. 직전 분기대비 무려 9.5%가 올랐다. 가스요금은 이미 폭탄 수준이다. 버스, 지하철, 택시 등 대중교통 요금까지 모조리 올린다. 이젠 맥주, 막걸리 서민 술값에도 세금을 올린다. 인플레 시대에 정부가 공공요금을 인상하고 있다. 정부가 오히려 물가 상승을 더욱 부추긴다.

 

정부가 돈을 써야 하는데, 서민들이 돈을 쓴다. 올해 예산도 5.2%가 늘어났지만, 사실상 복지예산은 줄었다. 정부가 빈부 격차를 열심히 키우고 있다. 영광스런 대격차 시대를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G7 국가다. UN에서 공식 인정한 선진국이다. 돼지털을 수출하던 나라가 이젠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잘 사는 사람만 잘 사는 나라다. 불평등이 커지면 지속적인 경제 성장과 안정적인 사회는 불가능하다.

 

악은 가난이 아니라 불평등에서 나온다. 그럼에도 정부가 불평등을 조장한다. 불공정을 조장한다. 격차를 키운다. 정부가 없다. 정치가 없다. 국가가 없다.

 

이젠 미래도 없다

임걱정(경제 전문 자유기고가) 시민언론 민들레 2023.01.19.

 

-불행하게도 지금은 그들만의 국가, 그들만의 자유, 그들만의 검찰, 그들만의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그들이 조장한 것도 맞지만, 가장 못 배우고, 무식하고, 가난하고, 나이 많은 사람이 앞장서서 만들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일에 치여 생각할 여유도 없는 가난, 나쁜 놈들의 하수인으로 만드는 무식, 좋은 영향에서 고립되어 조선일보 독극물을 매일 같이 먹고 사는 노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빈곤, 무식, 사리판단 문맹 퇴치 운동을 벌여나가야 할 때입니다.

 

-불평등을 없애자, 부의 편중이 사라지고 옳바른 분배가 이루어지는 나라!

이럼 정말 좋지요! 그런데 불평등으로 유발되는 일들을 왜 이라고 표현하는지?

기득권층의 부의 독점 자체가 악이고,불평등으로 유발되는 각 종 현상, 범죄를 포함해서, 악이라 할 수는 없지요!경제전문가는 설마 불평등에 저항하는 몸부림을 악이라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윤석열 정부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다

정치 불신과 제왕적 이미지 강화

○○○ 정부라는 말이 만든 폐해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정 순헌철고순.”

학생 시절 생각나시지요? 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조선 시대 왕의 순서입니다. 그럼 이건 뭘까요?

 

이윤박최 전노김 김노이박 문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성씨를 순서대로 나열한 것입니다. 정확히 써볼까요? 이승만-윤보선-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먼 미래에 역사가 됩니다. 후세의 사람들은 큰 사건이 터진 시기를 그 당시 대통령의 이름과 함께 기억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삼풍백화점은 김영삼 대통령 때 무너졌고,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대통령 때, 이태원 참사는 윤석열 대통령 때 터졌다는 식이 될 것입니다.

 

MB 때부터 대통령 이름+정부호칭

본래 우리나라에는 정부 수립 이후 시대를 헌법에 따라 공화국으로 구분하는 방식이 있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시기를 1공화국, 4·19 혁명으로 1공화국이 무너지고 들어선 윤보선 대통령-장면 총리의원내각제 시기를 2공화국이라고 불렀습니다. 1961년 박정희 쿠데타로 2년간의 군사정부를 거친 뒤 1963년 개헌으로 들어선 박정희 대통령 시기를 3공화국, 1972년 유신헌법에 따라 6년 임기 종신 집권이 가능한 대통령에 선출된 박정희 대통령 시기를 4공화국이라고 불렀습니다. 1980년 전두환 쿠데타 이후 개정된 헌법은 7년 단임 대통령을 선거인단이 뽑도록 했습니다. 5공화국입니다. 그리고 19876월 항쟁으로 국민이 5년 단임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도록 헌법이 개정됐습니다. 6공화국입니다.

 

이처럼 헌법을 기준으로 시대 구분을 하면 지금도 여전히 6공화국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태우 대통령부터 치면 여덟번째니까 6공화국 8기 대통령입니다. 언젠가 권력구조를 바꾸는 개헌이 이뤄진다면 7공화국이 되겠지요.

 

그런데 지금 이 시대를 6공화국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김영삼 대통령이 자신은 전임자인 노태우 대통령과 다르다고 차별화하면서 6공화국이라는 말 자체를 금기시했기 때문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198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면서 대표 구호를 군정 종식으로 삼았습니다. 군 출신으로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박정희-전두환 대통령 시기를 군정으로 규정하고, 민간인 출신인 자신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1987년 대선에서 떨어진 뒤에도 문민을 자신의 정치적 상징으로 삼았습니다. 1993년 대통령 취임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오늘 우리는 그렇게도 애타게 바라던 문민 민주주의의 시대를 열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늘을 맞이하기 위해 30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마침내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를 이 땅에 세웠습니다. 오늘 탄생되는 정부는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불타는 열망과 거룩한 희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자부심이 느껴지십니까?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이 이끄는 정부를 문민정부라고 불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이 이끄는 정부를 국민의 정부라고 명명했습니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부 수립 50년 만에 처음 이루어진 여야 간 정권 교체를 여러분과 함께 기뻐하면서, 온갖 시련과 장벽을 넘어 진정한 국민의 정부를 탄생시킨 국민 여러분께 찬양과 감사의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인수위원회의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새 정부의 명칭을 참여정부라고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과 집권 과정, 그리고 21세기를 막 시작한 시기의 시대정신을 담은 이름이었습니다. 새로운 정부의 별칭이 사라진 것은 이명박 대통령 때부터였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실용주의를 강조한 대통령이었습니다. 새 정부의 명칭을 실용 정부로 하지 않고 이명박 정부로 정한 이유를 회고록에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명칭을 놓고 논란이 있었다. 역대 대통령은 자신들의 정부를 스스로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라고 칭했지만, 임기 후에 국민들은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실용 정부라고 하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그냥 담백하게 이명박 정부라고 하기로 결정했다.”이명박 대통령은 본래부터 자신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습니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 정치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대통령 설명대로 대통령 이름 뒤에 그냥 정부라고 붙이면 담백한 것이 사실입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성을 분명하게 한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후 당선된 대통령들은 별다른 명칭을 짓지 않고 그냥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 윤석열 정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대통령 이름 뒤에 정권을 붙이는 경우도 있지만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처럼 주로 독재 시대에 타도 대상으로 삼았던 경우입니다. 지금은 대통령에게 적대적인 사람들도 문재인 정권’ ‘윤석열 정권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 이름 정부의 두가지 부작용

그런데 대통령 이름을 정부의 명칭으로 사용하면서 좀 이상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두가지입니다. 첫째, ‘제왕적 대통령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제는 의회와 대통령이라는 두개의 권력을 각각 선출해서 서로 견제하고 협력하도록 만든 분립형 권력구조입니다. 총선 한번으로 하나의 권력을 창출하는 의원내각제가 융합형 권력구조인 것과 대조적입니다.

대통령제 원조 국가인 미국에서는 트럼프 행정부, 바이든 행정부라고 하지, 트럼프 정부, 바이든 정부라고 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기도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삼권분립 체제의 행정부 수반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이름 뒤에 곧바로 정부를 붙일 수 있는 근거가 있습니다. 헌법 편제를 보면 3장 국회, 4장 정부, 5장 법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4장 정부 안에 1절 대통령, 2절 행정부가 있고, 2절 행정부 안에 1관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2관 국무회의, 3관 행정 각부, 4관 감사원이 들어 있습니다. 정부라는 단어를 입법, 행정, 사법 전체를 포괄하는 단어가 아니라 행정부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1948년 제헌 때부터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언젠가 개헌을 하면 4장의 제목을 정부가 아니라 행정부로 고쳐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둘째, 정치 불신을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21세기에 디지털 혁명, 모바일 혁명이 시작되면서 유권자들의 확증편향이 심해졌습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이 찍지 않은 사람이 당선되면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대선 불복심리가 점점 더 퍼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면 오히려 그 대통령을 싫어하는 유권자들의 분노와 증오를 자극해서 정치 불신을 더 깊어지게 만드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라는 말 자체를 싫어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문재앙이라고 불렀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윤석열 정부라는 말 자체를 싫어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성을 뒤집어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제왕적 대통령과 정치 불신 부작용은 결국 정치 양극화를 부추겨 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약화할 위험이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선거 결과에 구성원들이 승복한다는 전제 위에 성립하는 제도입니다. 제왕적 대통령과 정치 불신 부작용은 다음 대선에서 대통령만 바꾸면 정부의 정책이 바뀔 것이다. 버티면 이긴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시장 기득권 세력에게 줄 위험이 있습니다.

 

두가지 부작용이 아니어도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대통령이 바뀌었을 뿐인데 정부의 이름이 5년마다 바뀌는 것은 좀 이상한 일입니다.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만 있으면 되는 것이지, 문재인 정부, 윤석열 정부가 따로 있는 것일까요? 대통령이 바뀌면 정부가 바뀌는 것일까요?

대안은 우리도 미국처럼 문재인 행정부, 윤석열 행정부로 부르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바꿔 부르기 곤란하다면,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는 사람부터 바꿔 불러도 될 것입니다.

 

○○○ 행정부라는 호칭의 가장 큰 장점은 삼권분립의 원리를 각인시키는 효과입니다. 대통령이 입법, 사법, 행정을 총괄하는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행정부의 수반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수 있습니다. 국회나 법원이 대통령의 지배를 받는 기관이 아니라는 점을 국민에게 인식시킬 수 있습니다. 대통령의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대통령이 야당과 협치를 통해 국회 입법으로 대한민국 정부의 정책을 만들어내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이름으로 만드는 5년짜리 정책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의 수십년짜리 정책을 만들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장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연초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이런 문답을 했습니다.

2024년 총선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다. 그런 점에서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가 중요한데, 지금 당에서는 윤심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윤심은 뭔가.

선거 때는 무슨 윤핵관이라더니, 대통령이 되니까 윤심 이런다. 제가 검찰에서 수사팀을 구성할 때는 이 수사를 성공시키는 데 가장 필요한 사람들을 뽑았지 옛날에 같이 일했다고 데리고 오는 경우는 없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총선에서도 여당이 다수당이 돼야 공약했던 정책을 차질 없이 할 수 있고, 그러지 못하면 거의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이다. 결국 선거는 저의 2년 동안의 일에 대한 평가이자 앞으로 얼마나 일을 잘할 것이냐에 대한 기대다. 결국은 국민한테 약속했던 것들을 가장 잘할 사람들과 함께 가야 한다. 여의도 정치를 내가 얼마나 했다고 거기에 무슨 윤핵관이 있고 윤심이 있겠나.”

 

아시겠습니까? 윤석열 대통령은 20244·15 국회의원 총선거에 대해 큰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총선에서 이기면 공약했던 정책을 차질 없이 할 수 있고, 지면 거의 식물 대통령이 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진실은 총선에서 이겨도 공약했던 정책을 차질 없이 할 수 없고, 총선 승패와 관계없이 야당과 협치하지 않으면 식물 대통령을 면할 수 없습니다.

 

그리 어려운 얘기가 아닙니다. 첫째, 전례가 있습니다.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제출한 법안이 모두 국회를 통과하지는 못했습니다.

둘째, 국회 선진화법과 국회 관행이 있습니다.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이겨도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민주당에 양보해야 합니다.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윤석열 대통령이 제출하는 법안을 임기 말까지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야당 외면태도 이제라도 바꿔야

마무리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은 선진국입니다. 대통령 개인의 리더십으로 국정을 이끌어갈 수 없습니다. 대통령과 국회, 여당과 야당이 협치로 국정을 함께 이끌어가야 한다고 인식을 대폭 전환할 때가 됐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3년 새해 첫 행사로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켄터키주 코빙턴을 방문해 초당적 법안 처리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중앙일보><동아일보>가 상세히 보도했습니다. 대통령 취임 뒤 8개월이 넘도록 야당과의 대화를 외면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좀 보고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한겨레 2023.01.21.

 

 

사회적 연대가 약해져 간다

여러 조사결과에서 확인되는 것은 201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연대에 기초한 정부의 소득재분배와 평등에 대한 지지가 크게 약화됐다는 점이다. 가난이나 불평등이 사회구조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의 문제로 돌리는 경향이 강화됐다는 뜻이다. 경향 자료사진 | 강윤중 기자

 

귀하는 다음의 주장에 얼마나 찬성 또는 반대하십니까?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혜택을 줄여야 한다.” 한국사회종합조사에서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 중의 하나다. 얼마 전 발표된 2021년의 조사결과가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질문에 대해 반대하는 이들이 이전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전체 응답자 중 다소 반대와 매우 반대를 포함한 반대의 비율은 200978.3%에서 201465%, 202131.3%로 낮아졌다. 찬성의 비율은 20099.7%에서 201412.8%, 그리고 2021년에는 27.4%로 높아졌고, 찬성도 반대도 아니다라는 응답의 비율도 200911.4%에서 202141.2%로 높아졌다. “소득 격차를 줄이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다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찬성하는 비율이 200974.9%에서 202153.6%로 낮아졌다.

 

혹시 코로나19의 경험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영향은 불분명하다. 다른 조사에서는 팬데믹으로 소득이 줄어든 이들이 불평등 정도가 크다고 인식할수록 분배에 대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응답하고 소득재분배에 더 많이 찬성했기 때문이다.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 결과도 이미 팬데믹 이전에 이러한 결과가 나타났음을 보여준다. 이 조사는 1981년부터 약 40년 동안 전 세계 사회과학자들이 참여하고 4~5년마다 결과를 발표한다. 그 문항 중 하나로 소득이 더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개인의 노력에 따라 더 차이가 나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응답자들은 이에 대해 평등에 대한 찬성의 정도가 가장 높으면 1이고, 그 반대이면 10으로 해서 1에서 10까지의 척도로 대답한다.

 

결과의 평등보다 격차를 지지하는 목소리 2010년 실시된 한국의 6차 조사에서는 이 질문에 대해 1에서 4까지 대답해 평등에 찬성한 사람들의 비율이 23.5%였다. 2018년 실시된 7차 조사에서는 그 비율이 12.4%로 크게 감소했다. 특히 12라고 대답한 강한 찬성의 비율이 20107.6%에서 20181.2%로 대폭 줄어들었다. 반대로 7에서 10을 대답해 격차에 찬성한 비율은 6차 조사에서 58.7%였는데 7차에서는 64.8%로 높아졌다. 국제적으로 비교해보면 한국인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도 평등보다 불평등을 찬성하는 비율이 훨씬 높게 나타난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통합 실태 진단 및 대응 방안 연구보고서도 소득 격차를 줄이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라는 질문에 대한 동의 정도가 2017년 이후 매년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201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서 정부의 저소득층 지원과 소득재분배에 대해 찬성하는 목소리가 약해져 왔고, 결과의 평등보다 격차를 지지하는 경향이 더 높아졌음을 시사한다. 한국사회종합조사는 한국인의 주관인 계층의식에 관해서도 질문한다. 2년 단위로 실시하는 이 조사결과는 2014년 이후 주관적으로 스스로가 소득 상위계층이라 응답하는 비율이 계속 증가한 반면 하위계층이라 응답한 비율이 하락했다. 객관적으로는 상·하위 계층의 상대적 비율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이는 사람들의 생각의 변화를 보여준다. 자신이 하위계층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아무래도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지확대에 찬성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이를 고려하면 정부가 가난한 이들에게 주는 혜택을 줄여야 한다는 데 찬성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반대하는 이들이 크게 줄어든 현실을 이해할 만하다. 실제로 이 조사는 2년마다 정부지출 중에서 실업수당을 늘려야 하는지 아닌지에 관한 질문도 던진다. 2014년 이후 실업수당을 늘려야 한다는 응답의 비율도 계속 줄어들었다.

 

결국 한국사회에서는 사회적 연대에 기초한 정부의 소득재분배와 평등에 대한 지지가 2010년대 이후 크게 약화됐다. 이제 과거에 비해 더 많은 한국인이 가난이 사회구조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의 문제로 생각하며 자신이 실제보다 더 상위계층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의 생각이 그렇다면 정치에서도 보수적인 정당이 권력을 잡기 쉽고 경제와 복지정책이 더욱 보수적으로 되기 쉬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의 이러한 생각 변화가 현재 한국 정부가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사회복지 확대에 소극적인 1980년대의 낡은 경제정책을 펴는 배경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쩌다가 우리 사회와 사람들의 생각이 이렇게 됐는지 많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변화와 함께 불공정이나 기회의 불평등에 관한 불만은 더욱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가치관조사의 다른 질문에 따르면 노력하면 성공하는 대신 운이나 연줄이 있어야 성공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비율이 계속 증가해왔다. 일견 모순적으로 보이지만 이러한 사회 분위기가 결과의 평등 대신 노력에 대한 보상의 차이가 더 벌어져야 한다고 대답하는 이들이 많아진 이유일 수 있다. 즉 사람들은 개인의 노력에 대해 지금보다 더 많은 보상을 원해서 격차를 지지하고, 소득의 평등과 그를 위한 정부의 소득재분배에 대해서는 점점 더 반대하고 있다.

 

형식적 공정 추구가 불러올 불평등 악화 이러한 흐름은 아마 최근 몇 년 동안 널리 퍼진 불공정에 대한 반감이나 능력주의의 흐름이 강화된 현실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불평등이 심각하다 해도 그것이 불공정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결과의 불평등 개선보다 과정의 기계적 공정과 능력주의의 실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실제로 청년들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입시제도 등을 둘러싸고 공정을 외치며 지난 정부에 등을 돌렸다. 물론 수능시험에 기반을 둔 대입제도의 결과가 오히려 고소득층에 유리하듯 형식적인 공정만 추구한다면 결과의 불평등과 부의 대물림을 악화시킬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성공을 돕는 다른 사람들의 기여를 무시하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는 불평등을 정당화할 우려가 크다.

 

그럼에도 소득분배의 개선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다면 불평등과 싸우기 위한 정치적 노력이 약해지고 사회적 갈등은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의 2021년 국제적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빈부격차와 계급 사이의 갈등이 크다고 응답한 사람들의 비율이 세계 최고로 높았다. 한국인 91%가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갈등이 크다고 대답했고, 87%가 서로 다른 사회적 계급 사이의 갈등이 크다고 대답했다. 세계 평균은 각각 72%, 67%였다. 놀랍게도 정치적 지지, 교육 수준, 성별, 연령 그리고 심지어 종교에 따른 갈등이 크다고 대답한 비율도 한국이 세계에서 제일 높았다. 불평등으로 인한 갈등이 한국사회를 갈라지게 만들고 가난한 이들뿐 아니라 모두가 살기 힘겨운 곳으로 만들고 있다. 지금 한국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질문은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사회적 연대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이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경제학부 교수> 주간경향 2023.01.30.

 

 

처벌만 있고 책임이 사라진 사회

법이 할 수 없는 일.” 용산참사가 벌어진 2009년 쓰인 한 칼럼 제목이다. 처벌을 위한 진상 규명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내용이다.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사람이 사망했다. 사망의 원인은 화재였다. () 그렇다면 농성하던 사람들이 시너를 붓거나 화염병을 던졌느냐, 경찰의 물대포에 시너통과 화염병이 넘어졌느냐 () 이런 사실을 낱낱이 나열하여 정확히 확인하는 작업이 진상 규명이라면, 그 결과로 기대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껏해야 그에 맞는 법적 책임을 추궁하는 절차이다. () 철거민의 고통과 분노, 정권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오만한 경찰력의 행사 () 민주주의에 대한 오해와 안타까움 같은 진정한 논쟁의 요인까지 법적 절차의 종료와 함께 사라져버린다.”

 

한가한 주장이라는 비판은 가능하다. 유가족의 애끓는 절규에도 처벌(법적 책임)을 위한 진상 규명조차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하기 일쑤다. ‘기껏해야가 아니라 언감생심이다. 그럼에도 위 칼럼은 더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현실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법적 책임이 아니라 정치적 책임을 따지고 묻는 일이다.” 법이 할 수 없는 일이 있고, 그 할 수 없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 하지만 정치가 사법화되고, 사회가 사법화된 사회에서 법이 할 수 없는 일은 쪼그라져 왔다. 사회가 없어지고 법정만이 남았다.

 

10·29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다음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과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사실관계 자체도 틀렸지만, 방향은 더더욱 틀렸다. 국가의 실패와 치안의 실패를 인정하고(사과), 처벌을 전제로 한 수사 절차로 국한되지 않는 정부 차원의 진상 규명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이며(진실 규명), 피해자에 대한 조치(피해 회복),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지 밝혔어야 했다. 그것이 생때같은 목숨이 도시 한복판에서 죽어간 초유의 사태에 대해 장관이 져야 할 정치적 책임이다. 그런데 장관은 직무유기나 업무상 과실치사가 아니라는 취지의 답변을 했을 뿐이다.

 

이후 정부와 여당은 책임을 묻는 질문에 경찰 수사 이후라고만 답했다. 범죄로 인정되는 행위의 범위는 극히 제한적이다. 경찰은 범죄로 의심되는 행위에 대해서만 수사할 수 있을 뿐 구조의 결함이나 인식의 부재에 대해 조사할 수도 판단할 수도 없다. 그러나 참사 이후 경찰만이 온전히 작동했고, 진상 규명도 정의 구현도 경찰의 몫이었다. 누가 조사를 받았고, 누구에게 영장이 발부되었는지 따위의 뉴스로 수개월이 흐르며 처벌 이외의 책임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처벌의 범위와 책임의 범위가 동일시되면서, 비판하는 쪽은 꼬리 자르기다, 윗선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라고, 그 반대쪽은 무죄다, 정치적 공세다라고 싸울 뿐이었다.

 

처벌 이외의 책임이 사라진 사회에서 책임의 주체들은 유죄면 책임지겠다고 한다. ‘유죄가 아니면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해 111수사 결과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처신을 하겠다고 했다. 지난 6일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국회에서 사퇴 의사를 묻는 질문에 사법부의 엄중한 판단과 조사에 의해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책임지겠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본인들에게 어떤 부족함이 있었고,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는 본인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14만 경찰의 최고책임자가, 23만 용산구민의 자치행정 책임자가 그저 수사 결과에, 재판 결과에 따르겠다고 답변을 하는 것 자체가 자격 없음의 자백이다.

 

처벌이 아닌 책임은 무엇인가. 법이 할 수 없고, 정치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경찰과 지방자치단체가 보장해야 할 안전의 수준이란 무엇이고, 그것이 현재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지, 20221029일 이태원에서는 어땠는지, 만약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어떠한 보완이 필요한지를 정치가 살펴야 한다. 국가의 예산과 인력을 투여해 신속하게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고, 제도의 변화까지 구현해야 한다. 참사 생존자와 유족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들의 요구사항을 세밀하게 구분하여 최우선 대응과 중장기 대응으로 나눠 그들에게 약속하고, 사회적으로도 공표해야 한다. 이 책임을 이행하지 않은 권력에 처벌보다 더 큰 불이익이 있어야 하지만, 불행히 우리의 눈과 귀는 처벌만을 좇고 있다.

임재성 | 변호사·사회학자 한겨레 2023.01.24.

 

밥그릇을 지키는 현명한 방법

수능시험 한달 전까지 교육부가 해당 연도 대학입시 제도를 확정하지 않고 뭉그적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수험생은 물론이고 교사와 학부모들까지 분기탱천해서 일대 혼란이 일 것이다. 무책임한 행정에 대한 불신과 비난으로 동맹휴학까지 일어날 만한 상황이다. 차마 상상도 할 수 없는 황당한 가정이지만.

 

그런데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져도 누구 하나 책임지거나 소환되지 않고 스리슬쩍 넘어가는 곳이 있다. 대한민국 입법부 국회가 그렇다. 201620대 총선은 선거일을 한달여 앞두고 228일에야 선거구가 확정되었다. 202021대 총선은 더 늦어져서 36일에야 간신히 선거구 확정이 이루어졌다. 공직선거법 제24조의2(국회의원지역구 확정) 1항은 국회는 국회의원지역구를 선거일 전 1년까지 확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법을 무시한 채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지역구를 쪼개고 합치느라 총선 한달 전까지 배 째라전략으로 나가는데도 유권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주어진 선택지에 기표 도장을 누르고 돌아오는 일뿐이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헌법재판소는 당시 선거구의 인구편차가 3:1까지 허용되는 것은 표의 등가성을 부정한다며 헌법불합치를 선고하고 20151231일까지 개정안을 만들 것을 명했다. 그러나 국회가 차일피일하는 바람에 201611일부로 모든 선거구가 무효가 되는 법적 진공상태를 맞았다. 선거구가 사라졌으니 현직 국회의원들도 자격 상실이 되었다고 봐야 하지 않느냐는 논란도 일었다.

 

21대 총선에서는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과 다당제 환경을 위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지만, 비례대표 의석을 가로채기 위해 거대 양당이 나란히 위성정당을 만드는 기발한 꼼수 경쟁이 벌어졌다. 원 소속 정당에서 탈당이나 제명 등의 방법으로 국회의원을 꿔주는 위성정당 위장전입도 선거가 임박해서 번갯불에 콩 볶듯 이루어졌다.

 

다음 22대 총선은 내년 410일이다. 법대로 하자면 총선 1년 전인 올해 410일까지 선거구를 확정해야 한다. 오늘부터 두달 반 남았다. 그 기간 안에 선거구를 확정하려면 그 이전에 공직선거법 개정부터 완료해야 한다. 한 선거구에서 한명 뽑는 소선거구제를 유지할지, 선거구의 규모를 키워서 2명 이상 뽑는 중대선거구제로 할지, 어느 지역구를 통합하고 어느 지역구를 분할할지,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

 

지난 11일 김진표 국회의장은 신년 기자간담회를 통해 “(국회가) 법정 시한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현역 의원들이 총선 경쟁에서 엄청난 이득을 누리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도덕적 해이라는 질타를 받아도 할 말이 없다고 자성을 촉구하며 집중 토론, 국민 참여, 신속 결정을 3대 원칙으로 세우고 3월 안에 선거법 개정을 끝내자고 촉구했다. 그러나 국회의장의 호소에도 지금까지 보름여간 크게 진척된 사항은 보이지 않는다.

 

현재 국회에 정치개혁특위가 구성되어 있고 여러 선거법 개정안이 올라와 있지만 정작 다수 국회의원의 관심사는 다른 데 있다. 국민의힘은 38일 전당대회에서 누가 당대표로 뽑힐 것이냐에 사활을 걸고 있다. 친윤이냐 비윤이냐, 결선투표에서 비윤 후보들의 연합이 성사될 것이냐를 두고 하루하루 주판알 튕기기에 분주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가 사법 리스크를 뚫고 총선까지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누구 밑에 줄 서야 공천을 받을 수 있을지 윗전에 보이는 모습이 중요하지 국민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듯.

그런데 윗전만 신경 쓰다가 국민에게 철퇴를 맞는 수가 있다. 윤심과 명심만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다가 민심을 놓치면 정치생명 끝이다. 그래서 국회의원들께 당부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밥그릇 지키기에 연연하지 말라고 하면 씨알도 안 먹힐 테니, 밥그릇 지키기를 위해 지금보다 조금은 더 현명해지시길 바라며 드리는 고언으로 들어주시길.

 

첫째, 위성정당 금지를 선언할 것: 연동형 비례대표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바지사장 세우듯 꼼수 정당을 만든 게 문제다. 사과하고 재발 방지 조항을 만들라.

둘째, 공천 기준을 공개하고 민주적이고 투명한 공천 시스템을 확립할 것: 줄 세우기 공천은 자멸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러다 망한 정당 여럿 봤다.

셋째, 원내교섭단체 기준을 완화하고 소수정당이 국고보조금을 더 받을 수 있도록 할 것: 건강한 국회개혁을 위해서는 거대 양당의 기득권 내려놓기가 중요하다. 그런 자세 없이 개혁을 논하는 위선에 국민은 속지 않는다. 국민들이 힘은 없지만 뭘 모르는 건 아니다.

이진순 |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 한겨레 2023.01.24.

 

 

윤 대통령, 성급한 방일·방미 꿈 깨야하는 이유

# 2010년 일본은 중국에 무릎 꿇었다. 그해 2월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9월 동중국해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주변에서 일본 해상보안청이 순시선과 충돌한 중국 어선 선장을 체포했다. 중국은 보복으로 일본인 4명을 간첩죄로 체포했고, 중일 총리회담을 취소했으며, 일본에 대한 희토류 수출을 막았다. 첨단 전자제품 생산에 필수적인 희토류의 9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던 일본은 며칠 버티지 못하고 중국인 선장을 석방했다. 2012년에는 일본 정부의 센카쿠 국유화에 반발해 중국 내에서 연일 대규모 반일 시위와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중국의 강경 외교는 당시 일본을 이끌던 민주당 정부가 지향하던 미국으로부터 독립적인 외교·아시아 공동체의 가능성을 침몰시켜버렸다. 중국은 아시아 국가들과의 평등한 관계보다는 중화주의의 위계적 질서를 선택했다. 군사력을 대폭 강화하고, 남중국해·동중국해·대만해협에서 힘을 과시하며 아시아 패권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 ‘아시아 공동체로 향하는 길이 끊긴 일본에 2012년 아베 총리가 돌아왔다. 중국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주요 국가들과 일본을 연결하는 겹겹의 안보 네트워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인도·태평양 전략이다. 2015년 자위대가 세계 어디서든 미국과 함께 군사작전을 할 수 있도록 헌법 해석을 바꿨다. 아베는 암살당했지만, 지난달 일본 정부는 3대 안보문서를 개정해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하면 선제적으로 적 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5년 동안 방위비를 2배로 늘리기로 확정했다. 평화헌법을 사실상 사문화시킨 군사 강국 일본의 재등장이다. 지난 13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미국 단독으로는 중국의 도전을 견제하는 데 힘이 부치는 상황, ‘군사강국일본과 손잡고 반도체·우주·원자력·에너지 분야 등에서도 전방위로 협력하기로 했다.

 

중국의 패권 추구, 북한 핵 위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도전에 대응하면서 일본 외교는 꾸준히 전략적 승리를 확보했다. 미일동맹에서 일본의 위상이 높아졌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인도, 호주 등과 일본이 주도하는 안보 네트워크를 만들었고, 영일동맹도 다시 맺었다. 제국들이 부활하는 시대에 일본은 주요 열강의 자리를 선점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의 경제 관계도 흔들리지 않았다.

 

# 이 시기 동안 한국의 전략은 무엇이었나. 극과 극을 오갔다. 박근혜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나란히 천안문 망루에 올랐지만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을 도와주지 않자 사드 배치와 한일 위안부 합의로 질주했다.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움직이고 남북관계를 강화해 상황을 돌파하려 했지만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나면서 좌절했다. 한반도 미래·한일 과거사 문제에서 아베 노선과 충돌했고, 일본의 수출규제와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를 거치며 한일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한일관계를 신속하게 개선하고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외쳐온 윤석열 대통령은 이르면 다음달 강제동원 해법 최종안을 발표하고 2~3월에 일본과 미국을 잇따라 방문하는 일정을 추진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가 하지 못한한일관계 개선을 해내고 한미일 협력으로 안보를 강화하는 업적을 도쿄와 워싱턴에서 지지층을 향해 과시하고 싶을 것이다.

 

중국이 제대로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패권을 추구하고, -중 갈등을 기회로 여긴 북한이 핵 위협을 본격화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쟁 없는 시대는 막을 내렸다. 각국은 극히 이기적인 국익 게임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핵무장론에 빠지지 않고 안보 상황을 개선하려면 한미일 협력은 필요하다. 동시에 한국이 이를 활용해 장기·단기적으로 무엇을 추구할지 명확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 중국이 북한 비핵화의 목표로 되돌아오고 대만해협에서 전쟁이 벌어지지 않도록 지렛대로 삼아야 하고, 일본의 재무장이 위험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한미일의 틀안에서 한국의 발언권을 강화해야 한다. 한국은 동아시아의 안보·경제에서 중요한 키를 쥔 국가다. 한국이 미일동맹의 종속변수가 되지 않도록 평등한 관계를 요구하면서, 급변하는 첨단기술, 경제 질서에서 한국의 자리를 확보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지나치게 조급하게 미·일만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 과거사 문제 등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치열하게 요구해 왔는가. 대통령이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여론을 설득하기 위해 진심어린 노력을 했는가. 일본은 미국과 단단히 손을 잡고 판을 짜놓았으니, 조급한 한국에 양보를 할 필요가 없는 느긋한 상황이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가해 기업의 배상 참여에 대해 일본은 여전히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2년 일본과 지소미아 체결을 추진하다 여론이 악화하자 서명 50분을 남겨두고 취소하더니, 그해 8월 반일로 지지율을 높이려고 독도를 방문하고 천황 사과를 요구해 한일관계를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윤 대통령이 경계해야 할 반면교사다.

박민희 | 논설위원 한겨레 2023.01.24.

 

 

뉴스공장' 퇴출의 방조자들강준만과 유창선은 왜 틀렸나

대다수 언론이 침묵왜곡할 때 낸 옳은 목소리, 그것이 본질이다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윤석열 정권과 오세훈 서울시에 의해서 계속 압박을 받다가 지난 연말 사실상 강제로 폐지됐다. 그 과정은 너무나 문제가 많았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돈줄목줄을 쥐고서 한 방송사 구성원들의 생존권을 벼랑 끝으로 몰아서 결국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는 폭력적 과정이었다. 그 과정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이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그후 김어준 씨는 유튜버로 옮겨가서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을 만들었고, 19일부터 시작된 방송을 통해 지금 놀라운 수준의 조회수와 구독자 규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김어준과 <뉴스공장>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내놓는다.

 

먼저 국민의힘과 <조선일보> 같은 보수언론들은 김어준과 뉴스공장은 정치적으로 너무 편향적이고, 오보와 가짜뉴스를 많이 냈고, 잘못된 음모론을 펼쳐왔다. 국민의 세금으로 이런 방송을 지원할 수는 없는 일이다라고 공격하며 <뉴스공장> 폐지를 정당화했다. 이를 보면서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쓴웃음을 흘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보수우파 정치평론가마저 자신들의 마음에 안 들면 출연 정지와 징계를 요구하고 고소고발에 나서는 국민의힘이 정치적 편향성을 말할 자격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와 이 정치적 편향가짜뉴스를 비판하기에는 낯간지럽지 않냐는 생각 때문이다. ‘5.18 북한군 개입설을 보도했던 것이 바로 과 <채널A>였다.

 

이러한 보수 종편들에 국가가 채널 할당과 의무 송출을 보장해주고 각종 특혜성 지원을 해주고 있는 것이 이 나라 방송의 현실이다. , 한쪽으로 기울어진 방송 구조 속에서 가장 정치적으로 편향적인 사람들이 누군가를 정치적으로 편향적이다라고 말하면서 내쫓는 상황은 너무나 그로테스크했다.

 

그런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토록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해 오던 수많은 개혁언론과 진보적 지식인들도 침묵, 방관했다는 사실이다. 보수진영은 물론 진보진영에서도 이번에 벌어진 강제 퇴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찾기는 어려웠다. 그보다는 김어준은 이런 잘못을 했었다’, ‘뉴스공장은 이런 문제가 있었다’, ‘나는 이런 이견과 거부감이 있었다이런 이야기들이 더 많이 보였다.

 

대표적으로 강준만 언론학자는 나는 김어준 옹호자들이 역겹다고 했고,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이는 탄압이 아니라 정상화’”라고 했다. 하지만, 정말 나와야 할 것은 김어준과 뉴스공장에 대해서 어떤 이견과 다른 평가가 있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정치권력이 자신이 마음에 안 드는 언론의 입을 막고 강제로 퇴출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말이어야 했다.

 

, 지금이야말로 나는 당신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견해 때문에 당신이 탄압받는다면 누구보다 앞장서 당신을 위해 싸우겠다는 저 유명한 자유주의적 원칙이 불려나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예컨대 2년 전 홍콩에서 폐지된 <빈과일보>는 사실 진보적 언론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전형적으로 재벌이 만든 황색 언론으로 출발해, 지나치게 친서방적 관점뿐 아니라 여러 선정적 보도로 비판받아 온 언론이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이 홍콩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억누르는 과정에서 <빈과일보>를 폐간시키고 있다는 것은 명백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것에 반대했다. ‘나도 빈과일보의 이런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빈과일보는 그동안 이런저런 잘못들을 했고이런 식의 말을 우선하며 탄압을 방조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강준만의 당신이 진보라면 보수의 김어준을 옹호하거나 용인할 수 있는지라는 물음은 번지수가 틀린 것이다. 지금이 “‘언론 탄압편파 방송’, 두 가지 끔찍한 보기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하는 가혹한 밸런스 게임”(박영흠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이라는 기계적 중립도 말이다. 지금 던질 질문은 정치적 편향과 가짜뉴스가 문제의 핵심이라면 왜 보수종편들은 더욱 더 날개를 달아주고 뉴스공장만 폐지하는가라는 것이어야 했다.

 

더구나 보수종편과 <뉴스공장>이 진영만 다른 쌍생아라고 보기도 어렵다. 이 점에서 뉴스공장도 문제고 보수종편도 문제다라는 일부 사람들의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분명 여러 비판들처럼 김어준 씨의 태도와 주장에는 여러 오류와 문제들이 있었다. 최승호 전 MBC 사장이 지적한 틀린 것은 틀렸다고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족함이 대표적이다.

 

개인적으로 미투 음모론만이 아니라 전형적인 맨스플레인을 보여주는, 여성 기자가 브리핑을 하면 김어준 씨가 설명해주는 포맷도 거슬렸고, 최근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러시아를 은근히 편드는 식의 발언을 들을 때마다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런 점들이 <뉴스공장>의 높은 청취율을 가져온 근본적 원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보다는 다른 어떤 언론에서도 듣기 힘든 목소리들이 <뉴스공장>에서 나왔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많은 언론이 침묵할 때 <뉴스공장>은 정의연 마녀사냥에 반대했고,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문제, 대장동 수사와 보도에서 사라진 ‘50억 클럽을 파고들었다. 이태원 참사 직후에 윤석열 정부의 책임을 정면으로 지적하면서 집권여당으로부터 가짜뉴스와 선동이라고 공격당한 것도 <뉴스공장>이었다. 게다가 <뉴스공장>은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범죄에 대해 끈질기게 지적하고 비판한 드문 매체였다.

 

근래의 쟁점들만 봐도 대표적으로 <뉴스공장>은 전장연을 괴롭히는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를 야만이라고 비판했고, 정부와 언론의 십자포화 속에 있는 화물연대 노동자가 직접 나와서 억울함을 호소했고, 노란봉투법을 위해 단식농성하고 있던 시민단체 대표가 나와서 취지를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개악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사례는 일일이 꼽기 어려울 정도로 허다하다.

 

반면 이 같은 문제들에서 보수언론과 종편들은 정부와 여당과 기업의 편에서만 보도하고, 대부분의 언론은 객관성과 중립을 내세워 양쪽을 중계하는 데 머물렀다. 또 언론의 최대 광고주인 삼성과 이재용에 대한 비판보다 찬양 기사들을 훨씬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뉴스공장>은 분명 다른 점이 있었고 시민들의 갈증을 풀어줬던 것이다.

 

그것이 5년째 모든 라디오 프로 중에서 청취율 1, 실시간 청취자 10~15만 명, 매일 유튜브로 50만 명 시청이라는 놀라운 성적의 바탕에 있었다고 봐야 한다. <뉴스공장>의 단골 출연자이자 최고 인기 게스트 중 하나는 민주당 의원이 아니라 진보정당 소속인 고 노회찬 전 의원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보수종편의 시청률과 인기를 볼 때 느끼는 것과는 다른 감정을 여기서 얻게 된다.

 

이제 공중파 라디오에서 권력에 의해 강제로 쫓겨난 김어준과 뉴스공장은 같은 시간대 유튜브에서 모든 아침 시사 라디오 프로들을 다 합쳐도 비교하기 어려운 시청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또 다른 종편’, ‘진보의 가세연이라고 깎아내리며 강제 퇴출을 방조하고, 무시한다고 해서 이런 현상과 의미가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그 강점과 약점을 모두 직시하면서 저널리즘의 대안적 발전 방향을 모색할 때이다.

전지윤 사회운동가·'연속성과 교차성' 저자 시민언론 민들레 2023.01.25.

 

 

대통령의 주적, 국민의 주적

올 명절에도 정치인들은 전통시장을 찾았다. 시장마다 정세(政勢)가 달라서, 누가 어디를 가는가에 따라 완전(?) 환영, 반만 환영, 계란 세례까지 반응이 다양할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서울 마포구 망원 시장 방문은 지지자는 좋아하고 상인에게는 영업 방해였다. 그럭저럭 평균점이지만 그렇다면 안 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여성 민방위 훈련을 발의한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이 여성 모임에 갔다면 환영받지 못했을 것이다. 여성은 민방위 훈련을 안 받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남성의 민방위 훈련도 재고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민생 무지에서 나온 발상이다. 대한민국 여성들이 얼마나 바쁜지 정말 모르는 듯하다. 기혼 직장 여성, 부모님 간병하는 여성, 아르바이트하면서 취업 준비하는 여성여성은 시간이 없다. 김 의원은 여성의 전시 무방비 상태를 걱정하는데, 그런 걱정도 고맙지만 더 급한 것은 평상시 안전 보장이다. 김 의원처럼 이번 정권의 돌발적인 젠더 정책들의 이유가 표를 의식하는 사건이길 바란다. 무지라면 정말, 절망이다.

 

김건희 여사는 시간이 많은 듯하다. 정치인도 아닌 사람이 재래시장을 방문, 어묵을 먹는 행위는 맥락이 없다. 대통령 배우자는 배우자일 뿐, 임기 중에 정치적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어묵은 길고 국물이 흐르기 때문에 먹는 자세가 불편하다. 팔을 직각으로 세워야 국물이 옷이나 바닥에 떨어지지 않는다. 입은 최대한 벌려야 한다. 그런데 사진을 보니 어묵을 먹으며 손까지 흔들고 있다. 가능하지 않은 포즈다. ‘어묵쇼의 필수인 어린아이 안는 사진도 등장했다. 이런 사진은 대개 비슷하다. 아이는 울고, 안은 사람은 웃고, 아이 엄마로 추정되는 여성은 아이를 달래느라 진땀이다. 어묵쇼가 아니라 패션쇼 느낌이 강했다.

 

전통시장 - 어묵 - 민생의 연결은 계속 문제시되어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1618, 대선 출마 선언 직전까지만 해도 시장에서 오뎅 먹는 정치쇼 안 하겠다고 했다. 물론 이후에는 어묵을 먹었다. 왜 순대, 라면, 튀김, 삼각김밥은 아니고 어묵이 민생의 상징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묵쇼는 더 이상 안 봤으면 한다. 언론이 정신을 차려서 보도를 하지 말든가. 평소 그들이 먹는 음식도 아닐 것이다. 서민과 같은 음식을 먹는다면, 정치와 민생의 대립을 상정한 쇼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쇼도 중요한 정치다. 업데이트를 요구한다 .

 

고달프지 않은 삶이 없으니, 조금만 생각하면 적은 비용으로 개선할 수 있는 민생은 지천이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출발, 강남역까지 운행하는 146번 시내버스는 청소노동자들이 주로 이용한다. 서울시는 이들을 위해 출발시간을 15분 앞당겨 주었지만’, 그래도 빠듯해서 여전히 종점에서 직장까지 뛰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현재 동시 출발하는 세 대를 더 늘리거나, 운전기사에게 임금을 더 주고 더 빨리 운행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울까. 이런 정책에 큰 비용 안 든다. 청소는 굉장한 육체노동이다. 청소노동자의 로테이션 근무도 한 방법일 수 있다. ‘겨우이런 일로 한덕수 국무총리는 자기 사진을 마구 방출했다. 대통령 배우자를 필두로 이 정권의 인사들은 모두 피사체 욕망이 대단한 듯하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는 각자 바쁜 것 같다. 대개는 두 사람의 민폐 경쟁인데, 이번에는 김건희 여사가 조금 낫다. 국내에서 어묵 시식은 그리 큰일이 아니다. 윤 대통령의 발언과 이후 우리 정부의 대응은 대형 사고다. 이란 측은 여전히 불쾌감을 표시했고, 이후로도 쉽게 잊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나는 미국 사람들은 참 창피하겠다고 생각했다가 대통령과 국민을 동일시하는 나의 국가주의에 스스로 놀란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통령의 역량 부족 때문에 국민이 심각한 피해를 본다면 얘기가 다르다. 내 일 같을 수 있다.

적은 누가 정하는가

이번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대통령의 발언은 이미 많은 우려와 비판을 받았지만 부언을 피할 수 없다. 첫째, 주적(主敵·main enemy)의 본래 범위는 국가 단위가 아니다. 영주나 군주, 즉 근대국가 이전의 개념이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대화가 무엇인가. “적은 (우리 조직) 내부에 있다가 아닐까. 이는 전시나 평시나 마찬가지다. 조직 내부는 어디에나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전에 대한 미국의 성찰을 담은 올리버 스톤 감독의 <플래툰(Platoon)>(1987)의 대사 적은 우리 자신이었다(The enemy was in us)”는 항상 옳다. 피아의 구분은 유동적이다. 나쁜 통치자는 구분되지 않는 전선을 억지로 만들어내 공포정치를 하는 이들이다.

 

나는 예전에 여러 분야의 남성들이 실제로 주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연구한 적이 있다. 사병부터 장교는 물론 일반인, 밀리터리 마니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한국 사회에서 주적 논쟁은 북한 대 미국의 관점에서 구성되고, 이는 진영 논리로 이어진다.

 

나는 남한의 자주국방을 누가 방해하나요? 주적이 미국인가요, 북한인가요,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다. 일병은 병장이요”, 하사는 강남 애들”, 소령은 진급 갖고 장난치는 상사그밖에 마누라” “변심한 애인” “(해군과 공군의 입장에서)육군”, 국방 연구자들은 그게 특정할 수 없고 미국의 관리 체제에서 우리가 정하는 것도 아니죠라고 말했다. 이처럼 군 관련 인사들도 주적 개념을 특정하지 않았다. 이는 정치인의 이슈, 국내용 이데올로기다.

 

외교 문제는 담대하지 않았으면

전통적인 국제정치에서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선공(先攻)하려면 무력, 경제력, 심리, 국제 여론 등 모든 분야에서 3배 이상 국력이 앞서야 한다고 본다. 준비되지 않은 침략 행위는 지금 러시아처럼 자멸이다. 현재 북한은 남한 인구의 2분의 1(2600만명), 경제력은 시민사회에서 정부, 미국 연구기관까지 모두 다르게 평가하지만 대략 17배에서 33배 차이다. 두 배만 해도 엄청난 격차다. 한마디로, 북한의 사정은 이유야 어떻든 세계 경제 10위권인 남한의 상대가 아니다. ‘백두 혈통일가만이 자기들 살 궁리로 허세를 부릴 뿐이다 .

 

이제 북한은 남한의 적이 아니라 부담이 된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대북 로드맵이라는 담대한 구상은 마치 동네의 덩치 큰 아저씨가 어린아이를 패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담대? 나는 이 말이 이번 정권의 가장 이상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

 

게다가 왜 남의 나라 주적까지 지정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3자가 한국의 주적이 누구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어떻겠는가. 나는 대통령의 발언으로 국제사회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지, 위기감을 느꼈다. 윤 대통령은 1960년생인데, 어렸을 적에 호메이니옹이 미국을 물리치고” “이란 콘트라 사건등에 대해 들은 바가 없는가. 미국과 이란은 오랜 갈등 관계에 있고 국제사회에서 남한은 미국의 추종자로 인식된다. 더구나 최근 이란은 자국 여성들에 대한 히잡 착용 강제 때문에 국제 여론에 예민한 상태다 .

 

통념과 달리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시대에도 주적이라는 말이 없었다. 국방백서에 주적이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은 (북한의 도발과 보수 진영의 요구로) 1995년 김영삼 정부 때이고, 노무현 정부 때 삭제되었다. 사실 국방백서에 주적을 명시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국가 기밀 누설이나 다름없다. 주적을 정해놓은 나라는 없다. 만일 그렇다면 외교부는 왜 있으며, ‘국가 전략이니 한반도 정세 연구소같은 허다한 말들이 왜 필요하겠는가.

 

개인의 인생에서도 주적은 매번 바뀌고, 주적이 있는 삶은 어마어마하게 피곤하다. 평생을 구조적으로 정해진 혹은 자신이 설정한 주적에게 끌려다니는 일상을 바라는 이는 없을 것이다.

 

전자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후자는 내가 바꿀 수 있다. 국가든 개인이든 주적을 선언해서 좋을 일 없다. 오히려 포커페이스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나는 이 시기 한국인의 주적이 있다면 대통령이라고 말하겠다. 이유는 대통령께서 몰명(沒明)지기 때문이다. ‘몰명지다는 제주어로 멍청하다” “정신 나갔다” “바보 같다는 뜻이다.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경향 2023.01.25.

 

 

대통령과 영업사원 사이

대통령이 쓰는 언어는 잠꼬대와 귓속말 빼고는 공적언어다. 레토릭이라 불리는 수사학은 공적언어를 사용하여 정치무대에 서는 사람이라면 배워야 하는 언어의 기술, 설득의 기법이다. 외교적 수사는 특히 국가의 이익과 운명이 걸린 주요사안이므로 직설화법보다는 완곡한 표현이 주로 사용된다. , 보복, 침략, 전쟁 등의 단어는 대표적 금기어다.

 

바이든/날리면듣기평가에 이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적은 이란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은 양국이 대사를 초치하는 등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했다. 외교부는 부랴부랴 불필요한 확대 해석이 없기를 바란다고 해명했지만, 여당은 아무 문제가 없다며 엇박자를 내고 있다. 이전 북한의 드론 침범에 대해 윤 대통령은 응징, 보복, 전쟁이라는 금기어를 사용했다. 차라리 군 수뇌부의 대응이었다면 모양새가 나았을지도.

 

정치적 수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색시 외교론에 잘 드러나 있다. 4대국 사이에 낀 한국이 자칫 찢기고 당할 수도 있지만, 4대국이 협력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는 마치 색시 하나를 두고 신랑감 넷이 프러포즈하게 만들 수 있는 것과 같다. 위기를 구애로 만드는 웅변술, 이것이 외교다.

 

UAE의 한국 투자 300억달러 선물 보따리를 든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며 세계 경제 포럼 연례 회의가 열리는 스위스 다보스로 날아갔다. 그의 특별연설이 있었고, 이어 클라우스 슈바프 회장의 질문이 이어졌다. 첫 번째는 공급망의 역할과 재편에 있어서 한국의 역할을 위한 실질적 대책은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이었다. 윤 대통령은 우리가 지닌 반도체 기술을 세계 곳곳에서 생산할 수 있게 하고, 우리의 앞선 기술을 협력사업을 통해 공유할 것이라 답했다. 누가 들으면 대한민국이 국영 반도체 기업을 가진 줄 알겠다. 반도체 공장 건립은 인건비, 노동력, 부지, 용수 및 전력 등의 인프라와 세제 혜택 등 각국 정부의 지원 등을 고려해 기업이 결정하는 것이지 정부가 관여할 사안은 아니다. 또한 나라마다 반도체 등 자국의 핵심 산업 기술 보호 체계를 강화하는 마당에 1호 영업사원의 답변에 적잖이 당황했다.

 

두 번째 질문은 에너지 전환에 있어서, 한국의 원전과 넷 제로로 가기 위한 전략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대통령의 답변과는 달리 현재 한국의 원자력 발전 비중은 20%가 아닌 30%대에 근접한다. 대통령은 원전 추가 건설 및 신재생에너지 기술 강화도 덧붙였다. 그러나 정부의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보면 2030년까지 원자력 발전 비율을 33%대로 확대하고, 신재생에너지는 30.2%에서 21.5%로 대폭 축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신재생에너지는 이제 기업의 사활과 연관된다. 민간 주도의 RE100은 세계적 기업들의 자발적인 탄소중립 프로젝트로, 기업이 쓰는 전력 100%2050년까지 태양광, 풍력 등 재생 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약속이다. 원자력은 RE100에 포함되지 않는다. 20227월 말 기준으로 RE100에 가입한 세계적 기업은 376곳이고, 우리나라의 경우 20229월 가입한 삼성전자를 포함해도 30개 미만이다. 우리나라의 재생 에너지 발전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애플사는 이미 RE100을 달성한 기업이다. 영업사원의 영업전략이 어째 어눌하다.

 

눈길을 끄는 건 글로벌 위험보고서 2023’이다. ‘생활비가 앞으로 2년 동안 글로벌 위험 요소 1위라는 사실이다. 사회 취약층은 더 심각하게 타격받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번 세계경제포럼의 주제는 조각난 세계에서의 협력이었다. 브렌데 총재는 폐회 연설에서 공평한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함께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조각난 지금 대한민국에서의 답은 야당, 노조, 장애인, 이태원 참사 가족과 함께하는 것임을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경향 2023.01.25.

 

 

공포에서 벗어나기

우리 달력을 보면, 양력으로 신정이 있고 음력으로 설날이 있다. 희망찬 새해를 맞는 기대가 크다면,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를 여러 번 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올 초에는 여기저기서 새해는 작년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는 언사들이 쏟아졌다. 그래서인지, 새해 인사에도 좀처럼 흥이 나지 않는 분위기였다.

 

2022년의 격변의 효과가 2023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단언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미래는 미리 결정되어 있다기보다는 현재의 행위자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도 있는지라, 공포가 전염·확산하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엇갈리는 시그널을 함께 점검해보는 것이 섣부른 비관과 공포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우선 세계경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충격에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20222월 급작스러운 전쟁 발발 후 에너지·식량 시장이 크게 흔들렸으나, 이후 4~5개월이 지나면서 시장은 어느 정도 안정세를 회복했다. 러시아는 원유, 정제유, 천연가스, 밀 등을 주로 수출하는 나라다. 원유가격을 보면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가격은 전쟁을 전후하여 배럴당 90달러대에서 120달러대로 폭등했다. 이는 20226월 이후 하락세를 보여 202211월 이후에는 70달러대로 하락했다. 천연가스 가격도 비슷한 추세를 보였다. 국제 밀 선물가격도 20222월 말에서 6월 중순까지 부셸당 800달러 수준에서 1200달러대 수준까지 폭등했다가, 20227월 이후에는 800달러대 수준으로 다시 내려왔다.

 

2022년 세계경제를 결정적으로 뒤흔든 것은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이다. 미국은 202250.25~0.5%이던 기준금리를 12154.25~4.5%까지 인상했다. 불과 7개월 만에 4%포인트를 올린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2021년부터 시작되었으나 공급망 교란이 더해지자 과격한 조치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억누르려 했다. 지표상으로만 보면, 20226월 인플레이션율은 9.1%로 정점을 찍고 하강하는 추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202212월의 6.5% 인플레이션율도 높은 수준이고, 2% 인플레이션율까지 긴축을 지속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장단기 금리 격차는 202211월 이후 계속 확대되는 중이다. 시장은 연준의 목표가 비현실적이고, 경기침체를 유발하는 고금리는 유지되기 어렵다고 보는 것 같다.

 

미국 이외의 국가들은 미국의 긴축정책을 그대로 추종할 상황이 되지 못한다. 세계은행은 연초에 2023년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1.7%로 하향 수정했다. 미국은 0.5%, 유로존은 0% 성장률을 나타낼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도 경기하강 방어가 중대한 과제가 되고 있다.

 

중국의 상황은 세계경제의 성장세에 큰 영향을 미친다. 2022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3%에 그치면서 세계경제에도 충격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았다. 그러나 중국은 시진핑 체제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성장 회복을 위한 확장 정책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시장에서는 중국이 곧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고 볼 수 있다.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에 따른 코로나19 확산세는 곧 진정되고, 봉쇄 해제에 따른 서비스업 회복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부동산시장과 IT기업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고 대대적인 내수확대 정책도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 2위의 경제규모를 지닌 중국이 급격히 주저앉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 같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 속에서 한국은 나름대로 적응과 혁신의 길을 찾고 있는 중이다. 2022년 한국의 최대 무역 흑자국은 베트남(3425000만달러)이었고, 미국(280억달러), 인도(100억달러)가 그 뒤를 이었다. UAE300억달러 투자 공약, 사우디아라비아의 300억달러 투자협약 등도 낭보이다.

 

미국과 일본이 참여하는 인도·태평양 구상에 한국이 참여하는 것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최대 시장인 중국도 섣불리 포기할 수 없다. 또한 동남아, 인도, 중동을 잇는 시장 벨트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찾아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치열하게 갈등하는 중에, 한국과 같은 민첩한 산업 능력을 찾는 수요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교과서적인 말이지만, 현실에서 창의적인 균형을 찾는 것은, 어렵지만 꼭 해야 할 일이다.

 

오랜 친구들과의 새해 덕담에서, 지나친 걱정은 떨치자고 다짐했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자”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가자고 다독였다. 2023년에는 부디 경제가 좋아지기를 기대해본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 경향 2023.01.25.

 

 

4·3 유복자, 반세기 만에 입 열다

제주의 많은 동네와 집안에서 4·3은 아직도 금기어이다. 1949년 음력 7월생, 4·3 유복자인 내 이모부 가족에게도 그렇다. 그 누구도 이모부로부터 그 비극의 전말을 들은 사람은 없었다. 3년 전 돌아가신 막내이모가 몇마디 해주지 않았다면 나 역시 지나쳤을지 모른다. 그런 이모부가 이번 설에 입을 열었다. 다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자신의 상처를 70 평생 처음으로 드러냈다. 이제는 기록으로 남겨야 하지 않겠느냐는 나와 사촌여동생의 설득 끝에.

 

이모부는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도 아버지가 6·25 난리통에 돌아가신 줄로만 알았다고 한다. 초등학교까지는 호적도 없이 무적자로 지냈다. 중학교 입학을 하면서 가장 가까운 친족인 7촌 삼촌이 이름을 짓고 호적에도 올렸다. 이때 어머니로부터 아버지가 4·3에 희생됐다는 말을 들었다. 그저 난리를 피한다고 이웃마을 처가의 광 속 항아리에 숨어 지내다 이제는 나와도 좋다는 말을 믿고 나왔다 인근 마을 청년들과 함께 한꺼번에 총격 피살당했다는 것이다.

 

사실을 알고부터는 이모부도 그냥 있을 수 없었다고 한다. 14세 때 아버지 무덤을 찾아내 정식으로 장사를 지냈다. 무덤을 연 그는 충격을 받았다. 이모부는 몸통은 가지런히 놓였는데라고 한 뒤 말을 잇지 못했다(더 이상 구체적으로 물을 수 없었다. 아니, 이모부가 답변을 얼버무린 것도 같다). 그냥 시신만 겨우 수습해 서둘러 묻었던 것이다. 이모부의 충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970년대 초 4·3 희생자를 신고하라는 공고가 나왔다.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끌려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이웃마을 생존자를 찾아가 증인을 서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따라오라고 했다. 같은 마을 어떤 사람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더니 그 사람에게 도장을 찍으라며 이 사람이 네 아버지를 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순간 약관의 청년이었던 이모부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침묵만이 어두컴컴한 방에 흘렀다. 그 집 아들들이 방으로 들어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도장을 찍었다. “아버지의 억울한 희생을 확인했다는 것을 고마워해야 할지, 아버지를 죽인 사람을 원망해야 할지 순간적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순간, 내 몸에 소름이 쫘악 돋았다. 감정이 없는 듯 증언하는 이모부의 표정에 가슴이 더 아렸다.

 

4·3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새로운 사실과 증언이 나오고 있다. 그것도 바로 우리 곁에서. 지난해 12월에는 4·3 당시 내란죄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옥살이한 박화춘 할머니(95)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박 할머니는 동네 사람들이 끌려가는 것을 보고 밭에 숨어 있다 붙잡혀 고문 끝에 산사람(무장대)에게 보리쌀 2되를 줬다고 허위로 자백했다. 군사법원에서 1년 징역형을 받아 복역했다. 자녀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내내 숨기다 최근에서야 아들에게 사실을 털어놨다. 할머니는 어제 일처럼 당시를 생생히 기억해냈다.

 

박 할머니는 창피해서 그동안 말하지 못했다. 나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생한다며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걱정했다. 내 이모부도 자신의 상처보다 가족을 더 염려한다. 이모부의 부친을 쏜 사람은 증인서에 도장을 찍은 몇년 후 사망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박 할머니처럼 재심으로 명예를 회복한 4·3 피해자가 521명이다. 드러나지 않은 피해·피해자들이 더 있을 것이다.

 

4·3은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 폐쇄된 한 섬에서 동서 냉전이 불꽃을 일으킨 세계사적 사건이다. 올해는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이다. 휴전선뿐 아니라 제주에서도 협정 체결 즈음 총성이 멈췄다. 4·3의 진상 규명과 함께 피해자에 대한 보상도 시작됐다. 4·3 희생자마다 최대 9000만원의 국가보상금이 지급된다. 하지만, 아버지 얼굴도 모른 채 평생 살아온 내 이모부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상이 없다. 마지막으로 풀어야 할 비극의 퍼즐인 미국의 책임론도 규명돼야 한다. 국가가 책임 있게 나서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4·3폭동이며 반한국·반미·반유엔·친공 투쟁이라는 사람이 진실화해위원장이 됐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처럼 4·3의 규명과 치유가 또 질곡에 빠지지 않을까 유족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유족회에 대한 정부지원금도 줄어드는 등 그런 조짐이 도처에서 나오고 있다. 역사의 퇴행은 안 된다.

이중근 논설주간 경향 2023.01.25.

 

힙합은 죽었다

그를 처음 보았던 건 <고등래퍼>라는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에서였다. 풋풋한 고등학생이 아주 인상적이고 단단한 무대를 선보였다. 심사위원 한명이 멋이 무엇인지 잘 아는 친구라 평가했던 걸로 기억한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이름은 장용준, 지금은 노엘이라는 예명을 쓰는 힙합 뮤지션이다.

 

노엘이 장제원 의원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듣고 많이 놀랐다. 보수정치가 노동운동가와 외국인 노동자, 페미니스트를 품기까지 외연을 확장했어도 힙합 음악과의 교점을 찾기는 이른 것 같아서였다. 보수정치인 아버지에 힙합 뮤지션 아들이라니. “권력에 맞서 싸워라!”(‘fight the power’, 퍼블릭 에너미), “세금은 매일 오르고 임금은 점점 내려가. 차라리 나가서 놀자!”(‘it’s like that’, 런 디엠시)는 선동을 조상으로 삼는 음악을 아버지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언젠가부터 아버지의 의정활동보다 아들의 사건사고 기사가 더 많아졌다. 나는 마음속으로 아들을 응원했다. 인간적 미숙함은 차츰 나아질 것이지만, 그가 낸 용기는 지울 수 없는 미덕으로 보였다. ‘아버지가 화도 내고 반대도 심했을 텐데 큰 결심을 했구나. 실력이 상당히 진지한 걸 보니 방송에 얼굴 한번 내밀고 싶어서 치기 부리는 건 아니겠고. 멀리까지 왔으니 아버지와 갈라서서 자기 길을 개척할 수밖에 없겠네. 편한 길 놔두고 하고 싶은 거 하겠다고 참 어렵게 살려고 하네. 쟤는 삶이 힙합이구나. 저런 건 응원해줘야지. 정치적 유전자는 물려받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세상 참 재미있어!’ 내 상상은 정치적 안위를 위해 음악판에서 아들을 제거하려는 아버지와, 국회의사당 앞에 마이크를 들고 나타나서 외쳐 f*ck the politics!(정치 엿이나 먹으라 그래) 내가 퍽도 쫄겠니!”라 랩 하는 아들의 전쟁까지 치닫고 있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부자의 유대는 끈끈했다. 정치도 힙합도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게 진짜 세상이었다. 노엘은 아버지의 유산을 걷어차는 대신 힙합의 멋을 걷어차고 아버지의 유산 위에서 행동하기 시작했다. 아들 문제에는 입을 굳게 닫고 정적 자녀들의 부정 입학을 소리 높여 비난하는 아버지. 자신의 전 재산보다 가격이 비싼, 실제 주인이 의심스러운 벤츠를 타고 음주운전하다 운전자 바꿔치기를 시도하는 아들. 국회에서 툭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경찰을 폭행하고 “3대 가업을 물려받기 위한 몸싸움 체험이라며 아버지의 입법 폭력을 응원하는 아들.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까지 출세한 아버지. 비서실장의 비서실장이라도 된 것처럼 대깨문은 사람이 아니라 벌레들이다라며 거친 정치적 메시지를 전파하는 아들. 마침내 아들의 기행은 전두환 시대였다면 나 건드리면 가지 바로 지하실!”이라는 가사까지 도달하고 말았다.

 

정말 전두환 시절이었다면 벌어졌을 일은 이렇다. 가사에 욕이 들어가는 노래를 발표하려면 절름발이가 될 각오를 해야 했다. 그런 일을 담당하는 기관이 따로 있었으니까. 불경하게 가사에 대통령 이름을 언급한 가수와 그 아버지가 가장 먼저 지하실로 끌려갔을 터다. 대머리라는 이유로 유명 코미디언이 방송 출연 금지를 당하던 시절이었다. 힙합, , 쇼미더머니,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대중의 관심까지 누리는 래퍼 노엘의 삶까지, 모든 것이 전두환이 아니라 전두환을 끝장낸 민주주의의 유산이다. 어떤 노랫말이든, 심지어 권력의 지하실을 농담으로 소환하는 노랫말마저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권리를 위해 남영동 취조실에서 열사들이 쓰러졌던 것이다.

 

눈을 감아 들어봐, 온몸으로 느껴진 전율, 주는 대로 받아먹는 건 이쯤에서 그만두어야 해드렁큰 타이거가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를 부르던 때가 문득 그립다. 그땐 몰랐지만 주는 대로 받아먹는 음악에선 정말로 아무런 전율이 느껴지질 않았다. 국회의원 아빠가 주는 대로 받아먹는 음악에선 더더욱. 그건 힙합에서 허용되는 게임의 법칙이 아니라 제도권 권력의 법칙이다. 그 권력은 미국의 전설적인 힙합 그룹 엔더블유에이(N.W.A)가 정규음악판 장외인 길거리에서 인기몰이 하던 태동기부터 힙합을 지하실에 처박으려 시도하지 않았나? 그 모진 수모를 버틴 힙합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권력을 아버지로 삼고 세상의 나머지 부분이 지하실로 끌려가는 길을 터준다. 미국 래퍼 나스(NAS)의 말에 동의한다. “힙합은 죽었다(hiphop is dead).”

손아람 | 작가 한겨레 2023.01.25.

 

 

민주노총의 쓸모

민주노총에 대한 악의에 찬 귀족노조’ ‘종북프레임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181225일 고용노동부가 ‘2018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 현황을 발표했을 때가 기억난다. 일부 보수언론과 경제지의 논조는 한마디로 히스테릭했다. 그들은 노동조합 조합원 전체 수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민주노총의 조합원 수가 96만명에 이르러 한국노총을 추월했다는 사실을 두고 이제 곧 나라가 망할 것처럼 썼었다.(2021년 민주노총 조합원 수는 113만여명이며, 한국노총이 다시 제1노총이 되었다.) 그들은 노동조합에 대한 상투적인 공포를 조장하고 반민노총선동에 성의를 다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오히려 그때 고용노동부 발표에서 걱정해야 할 것은, 여전히 한국 전체의 노동조합 조직률이 11%에 머무르고 그나마 대부분 대기업과 공공 부문에 치중돼 있으며, 30명 미만 작은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은 0.1%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종북’ ‘좌파인 문재인 정권은 사실 민주노총과 사이가 별로 안 좋았다. 김명환 위원장과 양경수 위원장을 구속했었고, 2021년 민주노총은 문 정권과 전면 대결을 선언하기도 했다. ‘노동 존중’ ‘눈 떠보니 선진국문재인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로부터 핵심협약 비준 노력에 진전이 없다고 지적도 여러차례 받았다.

 

그럼에도 이는 지난 118일에 국정원에 의해 연출된 를 넘어서지는 못한다. 그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총괄기획자로 진행되는 총체적인 역사 퇴행의 상징적인 광경이었다. 카메라 앞에 서는 걸 참 좋아했던 간첩 조작의 달인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되살아온 듯, ‘국가정보원다섯 글자를 자랑스레 달고 북한의 주적들도 지켜보고 있을 TV에 등장한 그들의 쇼는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 검찰세력에 대한 국정원의 애타는 인정투쟁이고, 그 배경은 정권의 민주노총 제물 만들기일 것이다.

 

그런데 이와 별도로 적지 않은 시민들의 민주노총에 대한 인식은 분명 심각하게 다루고 개선해야 할 과제이다. 대부분의 노동자가 중소기업에 고용돼 있으며 여전히 90%에 가까운 임금 생활자에게 노조가 없는 상황에서, 단결권과 쟁의권의 행사가 특권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런 현실이 정권과 보수언론, 검찰, 부자들의 특권동맹이 들을 갈라치기에 기막히게 좋은 소재로 사용된다.

 

그러나 노조란 헌법상 가장 중요한 기본 권리의 응결체다. 그것은 매일 직장에 나가 일하며 살아야 하는, 임금, 인사고과, 월차 연차, 출퇴근 시간, 성희롱과 갑질, 출산 육아 등에 걸린 문제 때문에 열 받고 가슴 졸이는 모든 사람들의 권리에 관한 것이다. 평범한 사람 중에 이런 경험과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다. 분노가슴 졸임을 같이 해결하고자 할 때, ‘종북’ ‘빨갱이딱지를 붙여서 지레 겁먹게 하고 부당함을 감수하게 하는 수법은 한국 고전에 속한다.

 

민주노총은 단지 소속 노동조합원들의 연맹만은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보장하는 참된 민주사회를 건설하고,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실현하고 제민주세력과 연대한다는 강령을 가진 민주노총은 한국 시민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주체이자 공공재다. 또는 그런 가능성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민주노총은 기업의 일방통행과 의 횡포, 사람을 갈아서 돌리는 체제로부터 인간을 방어하는 드물게 실체 있는 조직이다. 그러니 민주노총은 (박완서처럼 표현하면)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 3”에 있다. 이는 바로 경향신문사의 주소와 같은 곳이다. 그 회의실과 강의장은 다른 많은 시민사회 단체들과의 연대와 회의, 기자회견 공간으로 쓰인다. 9층 구내식당에는 5000원짜리 밥을 판다. 그 건물에 이런저런 일로 왔다 갔다 해봤지만 그 안에서 (경향신문 기자 포함) ‘귀족을 본 적이 없다. 대신 작업복 잠바와 노조 조끼 입은 남녀들과 모범생처럼 생긴 사람들은 많이 보았다. 그런 이들이 귀족이라면 국민의힘이나 대통령실에 있는 수십, 수백억 자산가들은 뭐라 불러야 할까?

 

뭔가 시대에 안 맞는 듯한 정파의 활동가들이 민주노총에서 주류의 자리에 있다든지, 청년·여성·비정규직·영세 사업장의 노동자를 위한 민주노총의 행동이 불충분하고, ‘산별 노조로서의 실질적 기능이 약하다든지 하는 일들은 단지 민주노총의 한계만이 아니라 생각한다. 우리 모두의 삶과 생활세계 전체에 깊이 침투한 다원화되고 심화된 불평등과, 한국 민중운동의 사회·역사적 한계가 거기 반영돼 있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경향 2023.01.26.

 

 

기막힌 윤 정부의 교육개혁, ‘담대한 시장화 구상

현 정부가 추진하려는 교육개혁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연초부터 잇달아 나온 교육부의 업무보고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서다. 그중 눈길이 간 것은 한국형 차터스쿨이었다.

 

교육부는 지난 5일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며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지원방안으로 미국 차터스쿨, 영국 아카데미 사례 등을 참고해 학교 운영 방식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차터스쿨은 외부 기관이 주정부와 협약(charter)을 맺고 운영하는 공립학교로, 재정지원과 함께 학생 선발과 교사 채용, 교육과정 등의 자율권을 보장받는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중앙일보 116)에서 내년부터 한국형 차터스쿨, 이른바 협약형 공립고를 시범운영하겠다고 다시 못 박았다. 이 부총리는 좋은 학교를 많이 만들어 공교육 전반을 끌어올리겠다. 대표적인 게 협약형 공립고다. 혁신도시에 대규모 투자를 했지만 교육 때문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많다. 기업과 연계해 민간의 자율성을 부여하면 명문고들이 생겨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작도 전에 미안하지만, 교육부 뜻대로 안 될 공산이 크다. 이유는 여럿이다. 우선 이 부총리 본인이 책임자였던 MB 정부 당시 자율형 공립고의 성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자공고 역시 일반고의 선도모형으로 추진됐으며, 추가 재정지원과 함께 교육과정 편성, 운영 자율 범위 확대 등 특례가 주어졌다. 그러나 객관적인 평가는 “(자사고와 함께) 일반고의 황폐화를 가속화시켰다”(한국교육개발원 <고교다양화 정책의 성과 분석 및 개선방안 연구>)는 것이다. 학교 평가가 대입에서의 성과로 결정되는 풍토가 바뀌지 않는 한 특별 지위를 부여받은 학교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나머지는 낙후될 수밖에 없다. 협약형 공립고는 또 하나의 특별학교 추가다. 게다가 일찌감치 자율을 강조해 온 영·미와 공통의 교육과정과 평가체계를 가지고 있는 한국은 교육 토양도 다르다.

 

차터스쿨은 한 가지 예일 뿐이다. 교육자유특구 운영, 민간 에듀테크 기업과의 파트너십, 사립대 재산 처분 유연화 정책 등 위험천만한 정책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MB 정부식 규제 완화와 경쟁 심화 범위를 한층 더 넓힌 담대한 교육 시장화 구상이다. 교육의 키가 맡겨진 시장에서는 수요자의 욕망대로 명문대 입학과 좋은 일자리 얻기가 교육의 지상과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교육부의 업무보고를 받은 윤 대통령은 상당한 경쟁시장 구도가 돼야만 가격이 합리적으로 형성되고 소비자가 원하는 다양한 상품이 만들어진다교육도 마찬가지라고 화답했다. 시장이 먼저 반응했다. 다음날, 한 경제지는 사교육 관련 기업의 주가 소식을 전하며 윤 대통령, “교육, 국가독점 안 돼한마디에교육주 날았다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경쟁과 서열화를 부추기는 정책들을 추진하면서, 교육개혁의 방향성엔 모두를 위한 맞춤교육이라 말한다. 이 부총리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교육개혁의 방향성은 분명하다. ‘모두를 위한 맞춤교육’.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놓치지 않고 맞춤형 교육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학생이 어떤 자질을 타고나든,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든, 어느 지역에 살든 질 높은 교육을 보장해 4차 산업 맞춤형 인재를 양성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전국 단위 자사고 지역인재 선발 의무화 추진, 외고·국제고 재편 등 최근 기사들만 봐도 모두가 아닌, 한 줌의 특권교육층을 중심에 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반고 살리기 대책은 뭘 내놨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청년들은 물가 인상과 고금리, 생활고에 시달리는데, 등록금 인상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반값등록금을 포퓰리즘으로 규정한 서울시의회가 지원금을 대폭 삭감하며 시립대의 반값등록금은 위기에 처했다. 모두를 위한 맞춤교육을 하겠다면, 고등교육 예산은 사학 퇴로 열기가 아니라 대학 무상교육을 앞당기는 재정지원에 써야 한다. 통일보다 어렵다는 유보통합 비용도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 명확지 않다. ‘누리과정 사태당시 갈등 심화 속 보육료 핑퐁의 악몽이 떠오른다.

 

올해가 교육개혁 원년이라는 정부·여당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교육개혁의 무게에 비해, ‘상품으로의 인적 자본을 말하는 개혁 방향은 한없이 가볍다. 경쟁시장, 합리적 가격, 다양한 상품 따위가 교육개혁을 논하는 대통령의 언어다. 한국 교육의 격이 부끄럽다. 이게 무슨 교육이고, 교육개혁인가.

송현숙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경향 2023.01.26.

 

 

스스로 빈곤 속에 있으나 빈곤을 혐오하는 시대

노동과 삶이 '불안정''프레카리아트'

설 연휴를 하루 앞두고 서울 구룡마을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번 화재로 약 60채의 주택이 소실되었고, 62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구룡마을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집단 무허가촌'이라고도 불리는 구룡마을에는 가건물 형태의 주택이 밀집되어 있어서 화재 위험이 높다. 한 언론 보도에 의하면, 2009년부터 현재까지 구룡마을에서 발생한 화재 건 수만 해도 최소 16건이다.(관련 기사: <연합뉴스> 120일 자 '열달 만에 또 큰불 구룡마을지지부진 재개발 속 위험 노출')

 

화재에만 취약한 것은 아니다. 작년 여름에는 폭우로 인해 36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번 사고에서 인명피해가 없어 '다행'이긴 하지만 구룡마을에서 주거 재난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결코 '다행'이라고 말할 수 없다. 타오른 불이 꺼지자 구룡마을에 대한 관심도 사그라들었다. 한 사회 내에서 불안정한 위치에 있는 집단들은 서로 다른 정도로 주목받으며, 서로 다른 정도로 말할 권리를 부여받는다.

 

빈곤을 연구하는 인류학자 조문영은 누가 프레카리아트(precariat)인가에 대해 규정하기를 넘어, 프레카리아트 내 위계에 주목하면서 '말할 수 있는' 프레카리아트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프레카리아트는 'Proletariat(프롤레타리아트)''precarious(불안정한)'이라는 형용사가 합쳐진 단어다. 이 단어는 신자유주의의 확산으로 노동 시장이 유연화되면서 발생한 노동 불안정과 삶의 불안정의 얽힘을 탐색할 때 주로 사용된다.

 

조문영은 청년들을 프레카리에트에 포함시키지만, 이 집단 내부에 위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정부의 여러 플랫폼이나, 언론의 칼럼을 통해 청년 정책을 직간접적으로 의제화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 청년은 교육자본과 문화자본을 갖춘 청년에 국한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들을 '말할 수 있는' 프레카리아트라고 명명한다.

 

오늘은 '말할 수 있는' 프레카리아트들이 또 다른 프레카리아트(빈민)들과 마주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안정성을 드러낸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바로 가기 : 말할 수 있는 프레카리아트: 서울의 교육받은 청년과 도시 빈민) 문화인류학과 교수이기도 한 연구자는 2018<빈곤의 인류학> 수업에서 40여 명의 수강생들과 함께 한국의 반빈곤 활동가 10명을 심층 인터뷰하는 협동 프로젝트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 프로젝트 연구는 한 학기라는 짧은 연구 기간을 고려하여, 빈민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방식 대신에 반()빈곤 활동가를 인터뷰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이 연구에 참여한 이들이 곧 연구 대상이 된 '말할 수 있는' 프레카리아트들이다.

 

연구에 의하면, '말할 수 있는' 청년 프레카리아트들에게 불안정성이란 공정성에 대한 위협이었다. 논골신용협동조합 이사장과 인터뷰에서 한 학생은 신용협동조합에서 무임승차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지 물었다. 이사장이 무임승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아해하자, 다른 학생이 무임승차의 뜻을 설명하며 '청년들이 무임승차 문제에 민감하다'고 덧붙였다.

 

이는 프레카리아트 간의 마주침에서 발견되는 첫 번째 충돌이다. 연구자는 이 장면에서 피할 수 없는 경쟁과 자기계발을 체화해 온 청년들이 사회 내에서 자신들의 위치가 정당하다는 감각을 가지고 있음을 읽어낸다.

 

오랜 시간 체화된 감각의 흔적은 또 다른 장면에서도 발견되었다. 연구자의 강의에서 학생들은 자립을 빈곤 통치의 기술로 보는 연구들에 관심을 보였으나, 몇몇 학생들은 인터뷰를 위해 '활동가들은 홈리스의 자립을 어떻게 돕는가'라는 질문을 준비했다. 여전히 자립을 '공정한 보상'을 위한 전제조건이자 달성해야 할 목표로 바라본 것이다.

 

말할 수 있는 프레카리아트들, 특히 여성 청년에게 있어 불안정성이란 여성의 안전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했다. 프로젝트 초반에 학생들이 빈곤사회연대 활동가에게 질문한 것 중에는 여성 활동가로서 겪는 어려움이나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 다수였다. 이와 관련해 활동가는 젠더와 빈곤 사이의 교차점을 강조했다.

 

여기서 연구자는 빈민들이 잠재적 위협을 재현하는 정치에 취약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미투 운동' 이후 언론의 성범죄 보도가 사회적 시스템보다 개인 범죄자에 초점을 맞추어 가난한 남성들이 여성의 안전을 위협하는 잠재적 범죄자로 여겨지고 있는 현상을 설명한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며 학생들의 관점이 확장되었고, 몇몇 학생은 빈곤 연구와 활동을 지속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는 교육자본과 문화자본을 갖춘 프레카리아트들이 자신의 불안정성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다른 프레카리아트에 대한 차별과 위계가 재생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문제적 현상은 빈민의 타자성을 전제하는 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에 맞서기 위해서는 '빈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재정의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는 작년에 출간된 연구자의 저서 <빈곤 과정>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연구자는 빈곤을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빈곤의 외부인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금 사회는 노력을 공정의 기준으로 삼고서 빈민을 차별하고 빈곤을 혐오한다. 하지만 불안정한 노동과 삶의 조건 속에 힘겨워 하고 있는 우리 대부분 역시 빈곤의 과정 속에 있는 것 아닐까? 빈곤을 우리 모두의 문제로 새롭게 이해하는 데에서부터 서로 돌보고 의존하는 대안적 사회를 만들어가는 여정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서지 정보

- Cho, M. Y. (2022). The Precariat That Can Speak: The Politics of Encounters between the Educated Youth and the Urban Poor in Seoul. Current Anthropology, 63(5), 491-518.

 

- 조문영, <빈곤 과정: 빈곤의 배치와 취약한 삶들의 인류학>, 글항아리, 2022.

권시정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 프레시안 2023.01.26.

 

 

UAE 주적 이란' 논란 덮은 순방 성과 보도

여당, 언론 앞세워 '외교 실패' 정당화...'용바어천가' 꼬리표 못 떼

윤석열 대통령의 “UAE 적은 이란발언 파문이 여전한 가운데 대통령보다 앞서 경제성과를 가져올 다음 행보와 한일관계 개선 기대감까지 내다보는 보도들이 늘어나고 있다. 논란의 발언이 나온 지 고작 일주일 만이다.

 

대통령의 실수를 서둘러 덮어주고 다독이는 보도들은 120일 윤 대통령의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를 기점으로 터져 나왔다. 윤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북핵 위협에 대한 미국 확장억제에 상당한 신뢰 가지고 있다” “정부는 NPT(핵확산금지조약) 시스템 매우 존중한다며 지난 11자체 핵무장발언을 수습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처음으로 한국 대통령이 꺼낸 핵무장론이 미국 내에서도 미국을 향한 불신으로 주목받은 상황이 이례적인 톤다운의 배경으로 꼽힌다.

 

또한 윤 대통령은 한미일 간 북핵 위협에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공동 대처 해나가기 때문에 (일본의 재무장은) 크게 문제가 안 된다며 재차 일본의 반격 가능 국가선언을 두둔했다. 이란을 향한 발언과 직접 관련된 인터뷰는 아니었으나 적국발언으로 우리 대사를 초치한 이란이 ‘NPT 협정 위반을 지적한 다음날 나온 인터뷰라는 점에서 한국 언론도 관심을 보였는데 그 양상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아주경제>는 지난 23<'1호 영업사원' 대통령의 차기 출장지...일본폴란드 유력>에서 윤 대통령은 올해 첫 해외 순방지인 아랍에미리트(UAE)·스위스 68일 기간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며 경제 외교 행보를 이어갔다면서 “300억 달러 투자 유치” “100여개 기업으로 구성된 경제사절단은 48건의 양해각서 체결경제성과를 앞세웠다. 윤 대통령이 일본의 군사력 강화 움직임문제 되지 않는다고 평한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를 두고는 최대 현안인 '일제 강제동원 배상 판결 문제'가 가닥이 잡히는 대로 한·일 정상회담이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했다.

 

이란 적국발언 파문에 대해선 “'UAE의 적은 이란'이라는 발언으로 외교적 후폭풍을 자초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경제 외교' 성과는 확실하다는 것이 대통령실 안팎의 평가라고 간단히 매조지면서 윤 대통령이 올해 안에 일본, 폴란드 등을 방문해 경제 외교 행보를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UAE의 적은 이란발언 논란은 아쉬움정도로 축소하고 전체적 순방 평가는 경제성과로 포장하면서 한일관계 개선 급물살을 앞으로의 기대로 삼은 것이다. 전쟁 범죄인 강제동원마저 한일 정상회담 급물살을 위해 가닥이 잡혀야 할 수단 정도로 취급했다.

 

핵무장발언과 NPT 관련 발언에는 더 극단적인 사례도 많다. <‘핵무장서 톤다운한 윤 대통령북핵 환기하고 확장억제 강화 이끌어내>(문화일보 1.20.)는 대통령의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의 핵무장론 톤다운발언에 ·미 동맹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미국 확장억제 수준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 “전술핵 배치, 자체 핵 보유 가능성을 미·중과의 협상 지렛대로 쓰되, 동맹국과의 상호 신뢰를 깨뜨리지 않는 적정선을 찾았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전례 없는 수준에 달했는데도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미국을 압박할 필요가 있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미국 워싱턴 조야에서도 한국의 자체 핵무장 필요성이 거론된다워싱턴 조야라는 정체불명의 출처로 미국의 입장까지 핵무장론에 동원했다. 미국 조야한국 핵무장론에 정말 동의하는지 의문이지만 북핵 위협이 심각하고 미국이 핵을 안 주니 우리가 핵무장을 하겠다는 논리가 한국 보수언론과 현재 여당이 그토록 북한, 이란에 쏘아붙였던 깡패국가논리라는 사실이 더 섬뜩하다.

 

아크부대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의 'UAE의 적은 이란' 발언을 보도한 채널A 라이브 보도 화면 갈무리.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 보도가 아니더라도 대통령 귀국 즈음하여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UAE 적은 이란발언의 심각성을 지우려는 갖가지 프레임이 횡행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19<“핵 관련 발언은 NPT 위배”... 핵개발 의혹 이란의 적반하장>에서 이란이 동결자금, 핵무장 발언을 문제 삼는 것 보니 초점이 흐려졌다. 오히려 오해라는 게 증명되어서 우리도 주한이란대사를 초치해 설명했다는 대통령실 입장에 맞춰 외교적 결례를 넘어 외교 당국의 대응이 필요하다역공을 주문했다.

 

지난 21<한국경제><"미국의 종" "단교할 것" 이란의 말폭탄발언 전 4번 초치 있었다>에서 2018년 미국의 이란 제재 이후 호르무즈해협 한국케미호 나포 사건등으로 발생한 4번의 이란 대사 초치를 나열하고 이란의 히잡 시위 탄압까지 동원해 이란이 윤 대통령 발언을 문제 삼는 데에는 이번 실언이 아니라 다른 억하심정이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 <나흘간 5차례 정상회동UAE, 첫 국빈방문에 전례없는 환대>(조선일보 1.22) 등 윤 대통령이 UAE에서 받은 환대경제성과를 앞세운 보도들도 ‘UAE 적은 이란발언의 문제점을 뒤덮고 있다.

 

자연스럽게 대통령 실언에 따른 현재진행형인 근본적 우려들은 보도에서 사라졌다. 우리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선 호르무즈해협 항행 선박들의 안전문제, 한국과 이란 관계의 뇌관인 석유 수출 대금이나 ‘UAE 파병 시 비밀군사협정 의혹등은 이제 보도에서 찾아보기도 어렵다. UAE와 이란이 정말 인지 자세히 따져보는 보도는 사태가 발생한 115일부터도 그리 많지 않았다.

 

일부 언론의 재빠른 봉합과 달리 이란 외무부는 23일에도 한국 정부의 조치는 충분하지 않다며 재차 동결 자금 상환을 촉구했다. 대통령 발언이 이란과의 외교적 불화를 야기한 점은 명백하다. 하지만 25일에도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UAE의 주적이 이란이라며 그 근거로 이란을 주적으로 명시한 과거 언론 보도들을 나열했다.

 

최근 대통령 발언의 외교적 문제점과 UAE-이란-한국 관계의 현황을 면밀히 따져본 소수 언론은 억울하겠으나 집권여당 원내대표가 명백한 외교 실패 사안을 언론을 앞세워 정당화한다는 현실에 언론은 화가 나고 부끄러워야 한다. 반복되는 대통령의 외교 리스크는 비단 대통령실의 실책만은 아니다. 오랫동안 언론에 가해진 용비어천가라는 비판도 이젠 철이 한참 지났다. 언론 스스로 꼬리표를 떼어내야 한다.

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 [PD저널 2023.01.26.

 

방해받지 않는 '자기만의 방

횡성에 있는 '예버덩 문학의 집' 전경. ©조명 시인

 

생애 첫, 독립된 공간은 군 제대 후 들어간 고시원이었다. 두 평 남짓으로 소음에 취약했지만 나름 안락하고 평온했다. 4남매가 얽히고설키며 자라온 탓에 나만의 방은 오랜 꿈이었다.

 

당시 접한 박영한의 <지상의 방 한 칸>은 마치 내 처지를 소재로 삼은 소설 같았다. 한 지붕 아래 네 가구가 모여 사는 곤궁한 현실에서 창작공간을 찾아 고군분투하는 작가의 이야기다. 오디세이 같은 떠돎 끝에 주인공은 시내 변두리, 작은 다락방에 안착하면서 소설은 마무리된다.

 

글쓰기와 공간, 그 둘 사이의 밀접한 상관관계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으로 더 너른 설득력을 얻는다. 두 번의 대학 강연을 정리한 이 책에서 그는, 후세에 인용 빈도가 높은 말을 남겼다.

 

한 개인이 최소한의 행복과 자유를 누리려면 연간 500파운드의 고정 수입과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현 가치로 약 4500만 원이 넘는 500파운드는 지금으로서도 요령부득인 경우가 많겠으나, ‘자기만의 방만큼은 시대를 떠나 글쓰기에 전제 조건이 될 법하다.

 

물이 고이려면 움푹 팬 골이 있어야 하듯 생각이 고여 글이 되려면 지상의 방 한 칸은 필요하다. 시간이 응축되는 공간,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은 비단 글쓰기뿐만이 아니라 인간적인 삶의 싹을 틔우는 데도 주요한 밑거름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의 문제의식을 일깨웠다면, 아래 소개할 소설가와 시인은 그 밑거름을 현실에서 구현한 분들이다. 그들이 마련한 공간에 머문 경험은 작가가 아닌 나에게도 무척 값졌다.

 

원주에 있는 토지문화관은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마련한 레지던스형 창작공간이다. 그릇에 다소곳이 담긴 쌀밥처럼 오봉산 자락에 살포시 얹어진 이곳은 이미 국내외 작가들에게 꽤 인기가 높다.

 

작가들이 들으면 기분 나쁠지 모르지만 생명과 생존이 첫째고 정치나 예술은 둘째입니다. 생명과 생존 이상의 진실은 없습니다. 그게 있음으로써 문학도 있는 거죠.”

 

생전 그분의 말처럼, 선생은 손수 텃밭에 채소를 길러 입주자들을 먹였다. 토지문화관은 꼭 글을 쓰지 않더라도 글을 읽게 하는 분위기가 가득한 곳이다. 그 힘에 기대, 나는 선생이 25년간 가다듬었던 <토지>를 완독할 수 있었다.

 

조명 시인은 횡성에 예버덩 문학의 집을 열었다. '높고 평평한 들'이라는 뜻의 버덩에 ''이라는 접두어를 붙여 문패로 삼았다. 주천강을 앞에 두고 야트막한 언덕 위에 지어진 이곳의 지형을 시인답게 말맛을 살려 붙인 이름이다.

 

정확한 언어를 찾고 문장에 리듬과 호흡을 불어 넣기에 안성맞춤인 예버덩은 조 시인의 시아버지가 남긴 땅을 물려받아 세워졌다. 해마다 이곳에서는 소박한 시 낭송회가 열린다. 이름 모를 꽃들 사이에 꽂혀’, 풀벌레 소리를 배음(背音)에 깔고 시 낭송을 듣는 여름밤의 풍경은 무척이나 몽환적이다.

 

현실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힘이 비판력이라면 현실, 그 너머를 내다보는 힘은 상상력이 아닐까? 비판력과 상상력을 키우는 자기만의 방, 그 창작의 인큐베이터는 오롯이 작가들에게만 필요한가? 아니다. ‘창작공간이 아닌 생활공간에서도 자기만의 영토는 확보되어야 한다. 한 평이 아니라면 책상 하나의 크기라도 온전히 자신을 의탁할 쉼터는 절실하다. 그칠 줄 모르고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고단한 삶의 탄식 저음을 내려놓을 곳도, 나이가 쌓일수록 대외비로 분류돼 쌓여가는 내밀한 사연들을 조용히 갈무리해야 할 자리도, 누구에게나 필요한 법이다.

 

그러니 자력으로 이 지상에 자기만의 방을 마련한 이는 행운아다. 애를 써도 그것이 어려운 이들에게 그런 거처를 조력해주는 사람들, 말해 무엇할까마는 그들은 더없이 복된 존재다.

박재철 CBS PD : PD저널 2023.01.26.

 

 

풀무질 문 닫았다는 ㅁ일보 논설위원님께

지난주에 황당한 기사를 읽었다. <문화일보> 이현종 논설위원은 문재인의 책방이라는 칼럼에서 사회과학 서점의 죽음을 이야기했다. 80년대 대학가에는 빨간 책을 팔면서 운동권 학생의 아지트 역할을 하는 책방이 많았는데, 지금은 다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문재인 전 대통령이 양산 평산마을에 책방을 열기로 했다. 친문 계파가 모이는 정치적 공간이 될 것이 뻔하다. “잊혀진 삶을 살겠다는 전직 대통령의 행보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이 글의 요지였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잘못 알렸다. 이 위원은 과거 유명했던 대학가 인문사회과학 서점을 차례로 읊었다. 서울대 앞 광장서적’,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운영한 대학서점’, 김부겸 전 총리가 운영한 백두서점’, 연세대 앞 김영환 충북지사와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동 운영한 알서림' . 876월 항쟁 당시 서강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이 위원에게는 친숙한 이름일 것이다. 끝으로 또 하나의 추억을 호출했다. “사회과학 서점의 마지막인 성균관대 앞 풀무질이 지난 2019년 문을 닫으면서 이젠 대학가에 사회과학 서점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나는 <한겨레>전범선의 풀무질을 벌써 4년째 쓰고 있다. 서점 풀무질은 나와 동지들이 2019년 은종복 전 대표님께 물려받아 멀쩡히 잘 이어가고 있다. 장경수, 고한준, 홍성환, 지금은 김치현이 매일 문을 열고 자리를 지킨다. 오후 1시부터 10시까지 불을 밝힌다. 풀무질은 문화일보 쪽에 정정을 요구했으나 아무런 조처가 없었다. 언론중재위에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 위원은 글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아시리라 믿는다. 칼럼을 쓰다 보면 나도 팩트를 틀릴 때가 있다. 대부분 한겨레에서 바로잡아 주신다. 실수하면 사과하고 고치면 된다. 그런데 일주일째 묵묵부답이니 실망스럽다. 문재인을 비판하기 위해 풀무질을 죽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최대한 이해해 보려고 노력한다. 본인이 생각하는 사회과학 서점 기준에 풀무질이 더는 미치지 못한다는 뜻인가? 운동권이 모여서 빨간 책을 읽어야 진정한 사회과학 서점인데, 그렇지 않아서 안 쳐주는 것인가? 선배가 후배를 데려와 <해방전후사의 인식>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의식화 필독서를 사주는 그런 정겨운 곳이 그리울 수 있다.

 

풀무질의 베스트셀러는 더는 리영희가 아니다. 우리가 인수한 뒤 제일 먼저 했던 일이 서가 정비다. 노동해방, 민족해방, 민중해방과 관련된 책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빨간 책옆에 보라 책을 두었다. 여성해방, 성소수자해방 관련 서가다. 장애, 청소년, 난민 등 다른 소수자 인권도 다룬다. 그 옆에 초록 책을 보강했다. 동물해방, 기후·생태위기 등 녹색운동 관련 서가다. 오늘의 풀무질은 적녹보가 무지개처럼 어우러진다. 비거니즘, 페미니즘, 에콜로지를 비롯해 21세기가 요청하는 담론으로 판올림했다. “사상의 불을 지피는 책방으로서 인문학, 사회과학 전문서점의 명맥을 당당히 잇고 있다.

 

80년대 사회과학 서점의 추억은 작당 모의에 있었다. 뜻있는 젊은이들이 모여서 더 나은 세상을 꿈꿨다. 물론 풀무질에서 더 이상 엔엘(NL·민족해방)과 피디(PD·민중민주)가 혁명을 계획하지는 않는다. 대신 에이엘(AL·동물해방)을 주장하는 청년들이 삼삼오오 모여 워크숍과 세미나를 연다.

 

풀무질은 지난해 동물권단체 동물해방물결과 한 살림을 꾸렸다. 2017년 동물해방과 종차별 철폐를 내걸고 비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발족한 단체다. 솔직히 도서 판매만으로는 책방을 유지하기 힘들다. 종이책 수요가 너무 적다. 하지만 운동권 아지트로는 제격이다. 원래 풀무질의 존재 이유다. 동물해방물결은 최근 강원도 인제군 남면 신월리의 폐교를 임대해 축산 동물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곳에 생명평화교육을 위한 인제 풀무질도 만들 계획이다. 풀무질은 죽기는커녕 불씨가 커지고 있다.

문화일보는 오보를 정정해주길 바란다. 이 위원은 풀무질에 한번 모시고 싶다. 80년대를 생각하면 낯설 수 있다. 책도 바뀌고 사람도 바뀌었다. 그러나 해방세상을 향한 열망은 같다. 책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믿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전범선 | 가수·밴드 양반들리더 한겨레 2023.01.27.

 

 

김건희는 치외법권인가

김응교 시인은 용산을 내 고향 식민지 1번지라고 과감하게 호명한 바 있다. 그의 시 도쿄 타워속 용산은 일제 때 히노마루 휘날리고/ 지까다비 각반 찬 포병대원 행군하던 거리/ () 껌 씹는 백인과 흑인이 거닐고/ 트럼펫 소리에 성조기 오르는”(도쿄 타워’) 곳이다. 실제 용산은 1905년 이래 아직껏 외국군 주둔지의 운명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군 조선사령부가 군림하던 그곳을 광복 이후 미군이 그대로 물려받았다.

 

미군 주둔의 역사까지 식민지 1번지로 아우른 건 논쟁적인 대목이다. 나라를 빼앗은 점령군과 공동의 안보 위협에 맞선 동맹군을 동일선상에 둘 수 있느냐는 물음을 불러일으킨다. 다만 각반 찬 일본군의 총칼 때문이냐 동맹에 바친 자발적인 대가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용산 기지 차단벽 앞에서 우리의 주권이 지속적으로 정지해왔다는 사실만큼은 다르지 않다. 용산 100여년 역사를 주권의 차원에서 갈파한 시적 통찰이 예리하다.

 

주권 정지는 두 층위를 이룬다. 군사 주권에 해당하는 작전지휘통제권 이양이 핵이라면, 주한미군의 특수지위를 인정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소파)은 표층이다. 둘 중 한-미 주권의 비대칭을 일상적으로 드러내는 건 소파이다. 서구 열강들이 분점했던 중국 상하이 조계처럼 노골적이진 않지만, 소파 역시 주한미군의 범죄에 관한 한 일종의 치외법권을 허용한다.

 

노무현 정부 이후 용산기지 대부분은 평택으로 옮겨갔다. 현 정부 들어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가 용산으로 옮겨왔다. 이른바 용산 시대. 용산은 이제 식민지 1번지에서 벗어나는 걸까.

내 생각은 부정적이다. 또다른 측면에서 법적 주권이 정지하는 특권의 선이 용산에 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이전 8개월여 만에 용산은 불통과 배제, 특권의 상징으로 퇴락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대통령 부부 지인의 자제들과 윤핵관의 수하들로 채워진 엽관들의 거소로 전락했다. 한남동 관저는 윤심에 맹종할 새 여당 대표를 간택하는 신구 윤핵관들과의 만찬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윤심에 밉보인 비윤·반윤, 야당 대표는 초대 명단에 없다.

 

가장 불길한 건 용산이 치외법권의 성역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정 운영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대통령에겐 재임 중 형사상 불소추 특권이 주어지지만, 가족은 다르다. 헌법 11조는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2) ‘훈장 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다’(3)고 규정하고 있다. 지금 대통령 부인에게 이 조항들은 어떤 의미가 있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거래에 김건희 여사가 핵심 공범들과 연락하며 직접 참여한 정황이 재판을 통해 수차례 드러났다. 다른 누구도 아닌 공판 검사가 밝힌 내용이다. 그러나 정작 검찰 수사는 시작될 기미조차 없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야당 대표에 대해 불법적 수사지휘에 해당할 법한 발언을 쏟아내면서, 김 여사에 대해선 오랫동안 철저하게 수사가 진행돼왔다.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될 것이라는 소리만 구간 반복하고 있다. 공범들이 기소된 지 1년 넘게 지났고, 210일엔 1심 판결이 나온다. 그러도록 손을 놓고 있으면서 뭔 철저한 수사라는 건지, 말장난만 하고 있다.

 

점령군과 동맹군의 주둔사를 주권의 작동 여부를 기준으로 묶을 수 있다면, 용산 시대 이전과 이후를 하나의 범주로 아우르는 일 또한 가능할 것이다. 치외법권, 특권이란 범주다. 기지 이전이 진척될수록 서울 용산도 우리 주권의 작동 범위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외국 군대건 내부 권력자건 여전히 특정 거주자에게 우리 형사 사법권이 정상적으로 도달하지 않는 한 그걸 온전한 주권 회복이라 부를 수는 없다. 민주공화국에서 국가 주권은 곧 국민 주권이기 때문이다. 외국군 기지 앞에서 국가 주권이 정지되는 것과 권력자 일가의 범죄 의혹을 국민 주권이 비켜가는 것은 주권의 제약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국민 주권이 닿지 않는 성역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특권지대와 내부 식민지로 분할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21세기 민주공화국에 특권지대는 외부에 대해서도 내부에 대해서도 허용될 수 없다. 김 여사 의혹을 다른 공범들과 똑같이 수사해서 법정에 세울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국민 주권 국가에 살고 있음을 자긍할 수 있을 것이다.

손원제 | 논설위원 한겨레 2023.01.27.

 

 

어른 김장하가 있어 우린 우리가 되었다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봤다. 설 연휴의 세상은 얼어붙었지만 화면은 따스했다. 남녘에서 올라온 봄바람 같았다. 김장하 선생(79)은 경남 사천과 진주에서 60년 동안 한약방을 운영하여 큰돈을 벌었다. 그 돈을 아낌없이 나누었다. 우선 수없이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었다. 고등학교를 세우고 학교가 번듯하게 솟아오르자 국가에 헌납했다. 시민주로 출범한 지역신문을 매달 지원했다. 경상국립대와 여러 문화예술단체를 후원했다. 환경운동연합, 가정법률상담소 등 시민사회단체를 도왔다. 신분 타파와 차별 철폐를 외쳤던 형평운동기념사업회는 직접 회장을 맡았다. 의미 있다고 여기는 모임에는 조용히 찾아가 뒷좌석에 앉았다.

 

선생은 반세기 동안 일체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도와준 일을 얘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몰랐다. 지난해 5월 한약방 문을 닫은 선생은 이제 다 나눠주었기에 가진 것 없는’, 놀아보지 않아 놀 줄 모르는평범한 노인이 되었다. 그저 좋아하는 산을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오를 뿐이다. 그의 삶을 추적한 김주완 기자는 감동했다. “줬으면 그만이지, 아무런 보답도 보상도 반대급부나 심지어 고맙다는 인사치레도 바라지 않았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주상보시, 그 삶을 실천해온 분이다.”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누구에게 베풀어도 그 흔적이 마음에 남아있지 않은 최상의 경지를 말한다. 누구나 남을 도우면 희열을 느낀다. 하지만 깨달은 사람은 남을 도왔다는 사실까지 잊어버린다. 이런 일화가 있다. 청담 스님의 딸 비구니 묘엄이 탁발을 나갔다. 찬 바람이 가슴팍을 파고드는 동짓달이었다. 서른 집 대문을 여닫고 나서야 걸망이 묵직했다. 탁발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다리 밑에서 걸인들이 먹을 것을 달라 했다. 묘엄은 탁발한 쌀을 모두 퍼주었다. 또 한참을 걷다보니 여인이 어린 아들과 함께 떨고 있었다. 묘엄은 여인에게 속옷을 벗어주었다. 찬 바람에 온몸이 시렸지만 기분은 날아갈 듯했다. 묘엄은 청담에게 보시를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묵묵히 얘기를 듣던 청담이 말했다. “기쁜 마음이 있으면 진정한 보시가 아니다. 도와주었다는 생각도 없어야 하거늘 어찌 기뻐하느냐.”

 

남을 돕고 그 흔적을 지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김장하 선생은 자신을 철저히 다스렸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비로소 노년에 자유와 평화를 얻었을 것이다. 선생은 김장하 장학생이 성공해서 은혜를 갚겠다고 하면 정색을 하고 물리쳤다. 그럴 작정이라면 이 사회에 갚으라고 했다.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인물이 못 되어 죄송하다는 사람에게는 등을 토닥였다. “무얼 바란 게 아니다.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다.”

 

이렇듯 가슴 따뜻한 얘기를 접하면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이 떠오른다. 선생은 평생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남을 위해 살았다. 진실한 삶과 진정한 사랑을 작품으로 남기고 하늘로 떠났다. 권정생의 삶을 추적했던 필자는 선생이 남긴 일화 중에서 몇 장면은 품고 다닌다. 그중에서도 작은 마을교회 종지기로 일하며 새벽종을 치는 모습과 그때 하늘에 올렸던 선생의 기도는 잊을 수가 없다. 그가 문명(文名)을 날리기 전의 일이다.

 

새벽하늘에 반짝이는 별의 수만큼 나의 바람은 한없이 많다. 종 줄을 한 번 한 번 잡아당기면서 하느님께 기도드리듯 쏟아지는 나의 바람들. 불치병을 가진 아랫마을 그 애의 건강을, 이 새벽에도 혼자 외롭게 주무시는 핏골산 밑 할머니의 앞날을, 통일이 와야만 할아버지를 뵐 수 있다는 윗마을 승국이 형제의 소원을, 그러고는 어서어서 예수님이 오시는 그날이 와서 전쟁이 없어지고, 주림이 없어지고, 슬픔과 괴로움이 없어지고, 사막에도 샘이 솟고, 무서운 사자와 어린애가 함께 뒹굴고, 독사의 굴에 어린이가 손을 넣어 장난치고, 다시는 헤어짐도 죽음도 없는 그런 나라가 오기를.” (권정생 새벽종을 치면서’)

 

권정생 선생의 기도는 하늘에 닿았을 것이다. 당신도 별이 되어 가난하고 약한 자들의 기도와 눈물 속에 내릴 것이다. 이렇듯 남을 위한 기도가 모여서 우리는 우리가 되었다. 우리 곁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권정생, 김장하가 있을 것이다. 지상에 남아있는 또 다른 권정생이 일어나 새벽종을 치고, 그 종소리에 잠을 깬 김장하가 한약방 문을 열 것이다. 이 글이 김장하 선생 노년의 평화를 깨뜨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죄송한 일이다.

김택근 시인·작가 경향 2023.01.28

 

 

윤 대통령 극우 질주는 중도층에 대한 배신이다

대분열의 시대

국론분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할 것인지를 놓고 국왕과 총리의 의견이 맞서면서 그리스 전체가 두 진영으로 갈라졌던 사건을 의미합니다. 대분열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이 통째로 갈라지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정치 현안과 정책 과제에 대해 두가지 상반된 여론이 존재합니다. 뻔히 바라보면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얼마나 심각할까요?

 

정치 양극화, 갈라진 민심

지난 설 연휴를 전후해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와이티엔>(YTN)이 여론조사를 했습니다. 응답자가 지지하는 정당이 어디냐에 따라 견해가 크게 엇갈리는 현상이 확연합니다. 같은 나라 국민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지금부터 인용하는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한국방송> 여론조사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안한 영수회담에 대한 질문에, 민주당 지지자의 87.8%필요하다’, 8.3%필요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국민의힘 지지자는 29.2%필요하다’, 64.9%필요하지 않다였습니다.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개헌해서 4년 중임제로 변경하자는 의견에 대해, 민주당 지지자는 ‘5년 단임제 유지’ 34.6%, ‘4년 중임제 변경’ 59.9%였습니다. 반면에 국민의힘 지지자는 ‘5년 단임제 유지’ 58.1%, ‘4년 중임제 변경’ 37.6%였습니다. 개헌에 대한 양당 지지자들의 생각이 정반대입니다.

 

두가지는 정치 현안이기 때문에 양당 지지자들의 의견이 갈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요 정책 과제라고 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도 양당 지지자들의 의견은 크게 달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노동개혁 추진에 대한 평가를 물었습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22.0%잘못된 관행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혁 추진이라고 했고, 68.8%노동계를 적대시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일방적 추진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83.7% 8.1%’의 압도적 비율로 정반대의 평가를 했습니다. 정부가 제시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한 의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13.7%·일 양국의 관계 회복을 위해 동의한다고 했고, 81.8%강제동원 피해자의 의견 반영이 미흡하여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62.4%가 동의한다고 했고, 30.7%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문화방송> 여론조사에서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두개의 문항을 살펴보겠습니다.

이태원 특별수사본부 수사 결과에 대한 견해를 물었습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11.3%진상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수사가 충분했다고 본다는 쪽을 선택했고, 84.9%진상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수사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본다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57.3% 28.1%’로 정반대의 견해를 보였습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거취에 대해 민주당 지지자들의 81.9%사퇴해야 한다고 했고, 13.5%사퇴할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24.5%가 사퇴해야 한다고 했고 68.4%가 사퇴할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와이티엔> 여론조사에서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문항 두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69.8%야당 탄압용 정치 수사라고 했고, 21.7%이재명 대표 개인에 대한 비리 수사라고 답변했습니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7.4% 86.6%’ 압도적 차이로 정반대의 견해를 보였습니다. 검찰이 이재명 대표를 기소할 경우 이재명 대표의 거취에 관해 물었습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33.4%사퇴해야 한다고 했고, 60.7%사퇴할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90.8% 6.4%’, 압도적 차이로 정반대의 견해를 보였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거의 국론분열 수준인 것 같지 않습니까? 이러다가 한반도 주변에서 전쟁이라도 벌어지면 나라가 두 쪽이 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국론분열이라는 말이 탄생한 그리스처럼 말입니다. 이를테면 중국이 대만을 침공했을 때 미국이 우리에게 참전을 요구하면 우리가 그 전쟁에 뛰어들어야 할까요? 군 통수권자인 윤석열 대통령은 참전을 결정하고, 국회 다수 세력인 민주당은 참전에 반대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정치 현안과 정책 과제에 대한 여론이 지지 정당에 따라 크게 엇갈리는 이유가 뭘까요?

첫째, 정치 양극화 때문입니다. 정치 양극화는 정보화 혁명과 모바일 혁명으로 유권자의 확증편향이 점점 심해지는 현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대통령제 권력구조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미국이 특히 심각한 것 같습니다.

 

여당과 야당이 모두 유권자의 분노와 증오를 자극해 지지층을 결집하는 전략을 선택하면서 점점 더 폐해가 커지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거대 양당이 적대적 공존을 추구하는 모양새입니다. 어느 쪽이 더 나쁘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둘째, 윤석열 대통령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했던 모든 정책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경제·복지는 물론이고 외교·안보까지 뒤집기를 시도하며 극우 노선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향 설정이 윤석열 대통령의 철학과 가치관에서 나온 것인지, 국정 지지율 하락을 막고 20244·10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술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두가지 다일 수도 있습니다.

 

중도 지지층에도 배신 행위

어쨌든 윤석열 대통령은 고정 지지층 결집에 총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내세웠던 대선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총선 승리가 필요하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끊임없이 내보내고 있습니다. 야당과의 대화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정면으로 맞서면서 모든 정치 현안과 심지어 정책 과제까지도 정쟁화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극우 노선 질주가 자신을 당선시켜준 중도층 지지자들을 배신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정치공학적으로도 올바른 선택이 아닙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202239일 대통령 선거를 이틀 앞두고 한국갤럽이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는지,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는지 물었습니다. 43%가 이재명 후보를, 44%가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실제 선거 결과는 이재명 47.83%, 윤석열 48.56%였습니다. 여론조사에서 지지 정당별로는 민주당 지지층의 90%가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국민의힘 지지층의 95%가 윤석열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지지 정당 없다는 무당층은 이재명 27%, 윤석열 33%였습니다. 윤석열 후보는 무당층의 지지 덕분에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의미입니다. 그랬던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 지지율을 만회하려고 극우 노선으로 고정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는 것은 잘못된 선택입니다. 중도층, 무당층의 여론을 악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와이티엔> 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잘한다’ 38.9%, ‘잘 못한다’ 54.2%였습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6.5% 90.5%’였고,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79.7% 17.1%’로 크게 엇갈렸습니다. 그런데 무당층은 ‘24.6% 58.2%’로 전체 수치와 비교하면 여론이 매우 나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 지지자들에게 기대어 겨우 버티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3·9 대선에서 겨우 0.73%포인트 차로 당선됐습니다. 표 차가 너무 적어서 개표가 진행되는 동안 제작한 310일치 조간신문 가운데 몇곳은 마지막 판 1면 기사의 제목을 윤석열 당선 유력이나 박빙 리드라고 뽑았을 정도였습니다. 거의 모든 신문이 당선자의 첫번째 과제로 국민통합을 주문하는 사설을 실었습니다.

 

경향신문: 초박빙 당선 윤석열, 민심 겸허히 새겨 통합에 매진해야

국민일보: 20대 대통령의 국민통합 행보를 기대한다

동아일보: 통합과 미래가 새 정부의 시대정신이다

서울신문: 윤석열 당선인, 정의·공정·혁신에 매진하라

세계일보: 윤석열 당선인, 통합과 협치로 새 대한민국 열어야

조선일보: () 당선 유력, 통합하라는 국민의 뜻

중앙일보: 새 대통령 당선인, 갈등 치유하고 통합 나서길

한겨레: 이제 분열과 갈등 끝내고 통합의 시대열어야

한국일보: 초접전 끝 이긴 새 대통령, 협치·통합은 국민의 명령

 

지켜지지 않는 약속

윤석열 당선자도 310일 오전 당선 인사에서 자신의 대통령 당선을 국민을 편 가르지 말고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간절한 호소라고 해석한 뒤 정치적 유불리가 아닌 국민의 이익과 국익이 국정의 기준이 되면 우리 앞에 진보와 보수의 대한민국도, 영호남도 따로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 10개월, 대통령 취임 8개월이 지난 지금 윤석열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약속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2022310일 아침의 다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바로 대한민국을 통합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자신이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경향 :2023-01-29

 

 

민주당은 이재명 로펌말고도 할 일이 많다

재야정당의 준말로, 정당 정치에서 정권을 잡고 있지 않은 정당이다. 여당과 대립되는 말로, 여당의 정책이나 시책 등에 대하여 건전한 비판과 견제를 통하여 여당의 잘못된 독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국가적인 폐해를 막는다.’ 야당이 무엇인지에 대한 <21세기 정치학대사전> 설명 중 일부분이다. 한국에서 이런 역할을 해줘야 할 정당은 전체 의석의 절반이 넘는 169석을 보유한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에서 민주당은 야당으로서 해야 할 일이 많다. 현 정부 출범 후 한국 사회는 퇴행하고 있다. 노사 법치주의를 명분으로 친기업 반노조 정책이 노골화되고 있다. 파업은 불법화하고 협박과 응징으로만 대응한다. 69시간으로 노동시간 연장도 추진된다. 시장주의 교육 정책은 위험천만하다. 교육당국은 상품으로서 인적 자본 확보에만 관심이 있고 공교육 강화는 뒷전으로 밀렸다. 국가정보원이 간첩단 사건이라며 민주노총 본부를 압수수색하는 등 공안정국도 예상된다. 대통령은 야당과의 협치에는 아예 관심이 없고, 여당 전당대회에도 노골적으로 개입한다. 검사 출신 인사들이 주요 권력기관에 포진했다. 민주화 이전 군사독재와 비슷한 검사독재라는 말까지 나온다. 1990년대도 아닌 1980년대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와 여당의 독주를 견제해야 할 제1야당의 존재감은 미약하다. 한국갤럽의 1월 셋째 주 여론조사를 보면 윤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한다는 응답은 36%에 불과했다. 잘 못한다는 평가가 55%로 훨씬 많았다. 그런데도 정당 지지율에서는 여당인 국민의힘 지지가 37%로 민주당 지지 32%보다 높았다. 서울에서는 국민의힘 40%, 민주당 32%로 격차가 더 컸다. 시민들은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실망하고 있지만 민주당을 대안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무당층 25%는 여야 골수 지지층을 제외한 중도층의 현 정치 상황에 대한 좌절감을 보여준다.

 

민주당 지지율 저하의 가장 큰 원인은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에 있다. 민주당은 검찰 수사로부터 이 대표를 지키는 데 온 힘을 쓰고 있다. 지난 10일 이 대표의 첫 검찰 출석 당시 40여명의 민주당 의원들이 그를 둘러싸고 엄호했다. 18일 두 번째 출석 때도 이 대표는 혼자 가겠다고 했지만 10여명의 의원들이 현장을 찾았다. 당의 주요 회의는 검찰의 이 대표 수사에 대한 비판의 장이 됐다. 민주당은 그러면서 윤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도 압박한다. ‘악은 이토록 거침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데 어째서 선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가’(드라마 <환혼>)라는 생각인 듯하지만 틀렸다. 시민들이 보기에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는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다. 야당 의원 수십명이 이 대표를 호위하는 모습은 조폭 영화 <범죄와의 전쟁>을 떠오르게 할 뿐이다. YTN의 지난 25일 여론조사에서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는 개인 비리 수사라는 응답이 53%로 야당 탄압용 정치 수사라는 답변 33.8%보다 많았다.

 

이재명 지키기에 집중하는 민주당은 여권에 방탄이란 공격 빌미를 줄 뿐이다. 여당과 정부는 민주당이 뭘 해도 방탄이라고 몰아세운다. 이태원 참사를 비판해도,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회담을 제안해도, 법안 심사를 위해 국회를 열자고 해도, 심지어 가스값 폭등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해도 이 대표 방탄용이라고 공격한다. 검찰의 편파적 수사와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도, 민생 정책 제안도 시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 메신저에 대한 불신은 메시지의 신뢰도를 떨어트린다. 그러니 과반 의석을 갖고도 정국에 별 영향력을 미칠 수가 없다.

 

방탄 프레임을 깨지 않는 한 민주당은 제1야당으로서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 검찰은 두 차례 조사에 이어 추가 조사까지 요구하며 민주당을 사법 리스크에서 해방시켜줄 마음이 없음을 보여줬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 처리 문제, 기소 시 당무 정지를 규정한 민주당 당헌 80조 적용 문제 등을 두고 사법 리스크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대표는 본인의 사법 리스크가 당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결단해야 한다. YTN 여론조사에서 이 대표는 기소 시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은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33.4%나 됐다. 1야당 대표라는 보호막 없이 검찰의 부당한 정치적 수사에 당당하게 맞서 승리한다면 그의 정치적 위상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 게다가 민주당은 이재명 로펌말고도 해야 할 일이 많다.

박영환 정치부장 경향 :2023-01-30

 

 

난방비 문제와 에너지 대수선

겨울철 혹한이 계속되면서 집집마다 난방비 때문에 난리다. 우리 집도 10만원 정도 올라간 것 같다. 12월 난방비 고지서가 마침 정치적 논의가 폭발하는 설과 겹치면서 정치권 한가운데 논의가 되었다. 아주 정밀하게 내가 못했냐, 네가 못했냐, 그야말로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몇 원 아니 몇 전 단위까지 들여다보는 정치 논쟁이 되었다. 만약 총선이 1월이나 2월에 있었다면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이 벌써 나왔겠지만, 우리의 총선은 늘 4월이다. 조상들의 절기는 기가 막혀서, 24일 입춘이 지나면 봄의 기운이 시작된다. 꽃이 피기 시작하면 난방비 얘기는 다 잊혀져 간다. 수많은 총선을 보았지만, 난방비가 총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못 봤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12월에 있던 대선에서도 난방비가 논란이 된 적이 없었고, 5월 대선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여름의 냉방도 마찬가지다. 만약 총선이 더운 8월이었다면 아마 지역 난방이 아니라 지역 냉난방개념이 벌써 자리 잡았을 것이다.

좀 큰 눈으로 보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로 심해진 LNG 시장의 위기 속에서도 물량 확보에 성공한 것 자체가 잘한 거다. 비싼 것과 공급 실패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위기다. 국가가 해야 할 1차적인 의무는 공급이다. 그런 얘기를 하는 언론은 거의 없지만, 어쨌든 이건 칭찬받을 일이다. 물론 칭찬은 거기까지다.

 

대통령실에서 에너지바우처를 두 배로 늘린다고 하는데, 이게 그렇게 미리 알기 어려운 급격한 변화인가 싶다. 지난 7~8월에는 이미 올겨울에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거기에 대해 아무런 대비가 없었다는 것이 칭찬받을 일은 아니다. 뻔히 혹한기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견되는 상황에서 에너지바우처에 대한 예산을 확보하지 않은 것은 에너지당국과 예산당국의 행정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은 증거다. 그렇다고 누구 물러나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최소한 산업부 장관과 기재부 장관이 고지서를 들고 황당해하는 많은 사람들 특히 난방비를 감당할 수 없는 저소득층에게 사과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지난여름에 이미 뻔히 알 수 있는 일들을 그냥 손 놓고 쳐다보고 있던 것은 결코 잘한 일이 아니다. 이 모든 게 문재인 정권 때문이라고 하는 국민의힘 얘기는 사태의 본질과는 좀 먼 딴소리. 행정 능력을 동원해 문제를 풀어야 하는 여당이 할 얘기는 아니다. 비 새는 지붕에서 전 주인 탓하는 격이다.

 

이제 대통령의 대책에 대해 언 발에 오줌 누기라고 말한 이재명의 72000억원에 대해 생각해보자. 중산층까지 폭넓게 난방 지원금을 주자는 얘기다. 의미는 알겠지만, 노름 용어로는 7조원의 돈을 그냥 허공에 태우는일이라고 할 수 있다. 매달 주기도 어렵고, 더더군다나 매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온실가스 대책이라는 관점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와도 안 맞는다. 7조원을 쓸 정도의 정책적 의지가 있다면 좀 더 중장기적인 대책을 생각해볼 수 있다.

 

건설에서는 신축과 구축을 구분한다. 새로 짓는 아파트와 건물들은 제로에너지건축물인증을 실시할 정도로 기준이 많이 높아졌다. 문제는 기존의 건물들 특히 저소득층이 주로 사는 쪽방촌을 비롯해 관리가 아주 어려운 빌라 등 오래된 건물들에 있다. 좀 복잡한 인허가 등 행정적 절차가 있지만, 정부가 마음먹고 한다고 하면 못할 일은 아니다.

 

증축을 한 아파트들의 경우는 베란다가 없어져 바로 유리로 된 외벽이 외부에 노출되고, 이로 인한 열손실이 크다. 중문을 달면 열효율이 아주 높아진다. 추울 때에는 닫고, 일상적일 때에는 열어놓으면 크게 불편해지지 않는다. 중문만으로도 난방은 물론 냉방 효율도 같이 높아진다. 이런 데 돈을 좀 쓰자. 그냥 개개인에게 손실 보상으로 나누어줄 게 아니라, 국가 차원의 효율성과 개인의 지출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

 

오래된 건물이나 저소득층 주거지는 훨씬 복잡하다. 도면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아 지붕 단열 같은 복잡한 대수선이 아예 어렵다. 리모델링같이 크게 벌이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제도적 미비점으로 추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국토부와 산업부 사이에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이런 기존 건물들에 대해 특별법을 만들어 한시적으로 에너지 대수선같은 것을 추진하면, 7조원 정도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지붕에 단열 공사를 하면서 태양광 패널을 올리고, 창호 교체 등 단열 시공을 하고 가스보일러를 전기보일러로 교체하면 외부 에너지 의존 없이 자체적으로 냉난방을 해결하는 패시브 하우스 수준의 에너지 대수선도 가능하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게 아니라 행정적으로 어려운 거다. 국토부 장관인 원희룡이 할 수 있는 행정이고, 이재명이 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는 법안이다. 유럽에서는 일반화된 기술이지만, 우리가 못한 건 난방비가 너무 쌌기 때문이다. 이제는 국가적으로 해볼 만하다. 구축 건물에 대한 전면적인 에너지 대수선, 그런 게 비 새는 지붕을 고치는 근본적 해법이다.

우석훈 경제학자 경향 :2023-01-30

 

부끄러운 문필 공화국

글값이 싸서 문제라고 한다. 인터넷 매체에 기고하는 글은 물론이고 주요 일간지에 한 바닥을 써도 품삯이 형편없다고 불만이다. 뜨거운 정치 평론이나 시론은 그나마 인사치레를 겸해서 대우를 받기도 하는데, 쿨하게 쓴 분석이나 서평은 오히려 대접이 싸늘하다. 번역은 말할 것도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언론매체에 기고문을 준비하면서 조사를 많이 할수록 손해라는 인식도 있다.

 

시장논리로 이 문제를 해명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첫째, 당신이 아니더라도 언론이 요청하면 쓰겠다는 글쟁이들이 줄 서 있다고 한다. 둘째, 인터넷 매체에 떠다니는 유사한 내용의 글이나 영상물을 본 시민들이 당신 글을 돈 내고 읽겠냐는 것이다. 이런 해명들은 어쩐지 설득력이 있어서 자기 글에 값 매기는 일이 민망한 작가들은 품삯 흥정에 주저한다. 그래서 글값은 다시 후려쳐지고 흥정하지 못하는 글쟁이는 시장을 떠난다.

 

적나라한 해명이 사안을 해소하고 사태를 해체하는 경우라 해야 할까. 해명에 휘둘리지 말고 살펴보자. 나는 어려서 동아·조선에서 칼럼을 요청받고도 원고료를 놓고 흥정했다던 전설 같은 기고자들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나는 그게 글값에 대한 흥정이 아니었다고 믿는다. 기고자의 문단의 지위에 대한, 정치적 위세에 대한, 그래서 우리가 데려온 사람이라는 세간의 인정에 대한 보상이라고 본다.

 

주요 언론사의 외부 필진 명단을 보자. 글쟁이로 명성이 자자한 분들도 있지만, ‘오 이런 분도 쓰는구나싶은 경우도 있다. 명단 전체를 놓고 보면, 이미 각종 매체에서 읽히는 글을 쓴다고 확인된, 글값을 하고도 남는작가들은 소수다. 무슨 대학교 선생, 어느 법무법인 직원, 언제 등단했다는 시인 등 그 프로필 사진만큼이라도 재미있게 쓰면 다행이겠다 싶은 분들이 다수다. 앞서 말한 적나라한 해명 때문에 또는 다른 보상 때문에 애초에 글값을 후려쳐 모신 분들일 가능성이 높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 이유는 다른 기회에 풀기로 하고 해석만 하나 더하자면, 나는 문필 공화국이 빈약해서 벌어지는 일이라 본다. 글쟁이가 적고, 읽히는 글쟁이는 더욱 귀하다. 왜냐하면 읽는 자들(이들 중 왕눈이가 곧 잠재적 글쟁이인데)이 애초에 적기 때문이다. 누가 얼마나 읽히는지, 누가 무엇을 쓰는지, 내가 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하지 못한 채 쓰기는 하는데, 그 일로 보상받지 못한다. 읽히는 글을 쓰는 자를 천대하는 풍조도 문제다. 새로운 문체, 장르, 그리고 사상으로 인터넷 유료 플랫폼, 드라마 공모전, 그리고 무료 교류매체에서 이미 필명을 날리는 글쟁이들이 있다. 창작이든, 번역이든, 번안이든, 아니면 동영상이든 이미 선수들끼리는 아는 작가들이 있는데, 그들은 기회를 얻지 못한다. 반대로 이런 사정을 외면하는 일이 체면치레가 되고, 그래서 재미없는 글을 잘도 써대는 자들이 오히려 작가 대접을 받는다.

 

마리우스 잰슨에 따르면, 일본 17세기 막부시절에 이미 아사이 료이와 같이 글을 써서 먹고사는 작가들이 등장했다고 한다. 이들은 읽힐 만한 소재라면 무엇이나 썼으며, 또한 알기 쉽게 썼다. 예컨대 이하라 사이카쿠의 끝도 없는 이야기들은 주제도 흥미로웠지만 묘사와 문체가 발군이었으며, 곁들인 그림도 독자를 사로잡았다. 잰슨은 일본의 근대 문화의식을 형성하는 데 통속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유통한 서민매체가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문필 공화국이란 서로 읽고 참조하는 잠재적 글쟁이들의 연결망이다. 이 공화국에서 다른 지위나 위세는 소용없고, 오직 얼마나 대단한 글을 쓰는지가 중요하다. 그곳은 또한 서로 읽는 자들의 나라이기에 얼마나 읽혔는지 관건이 된다. 읽히는 글이 명성을 만들지 못하고, 다른 요인들이 글쓰기 기회를 만드는 여기 이 나라에서 글값을 논하자는 게 부끄럽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경향 :2023-01-30

 

 

집계되지 않는 사람들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021327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연 변희수 하사를 기억하는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공동행동기자회견에 참석한 시민들이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분홍·하늘·흰색 우산을 들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6세기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널리 대중화시킨 근대적 정치조직을 의미하는 국가’(state)라는 용어는, ‘공공의 상태’(status rei publicæ) 공화국의 상태를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나왔다. 국가에서 파생된 용어 중 하나가 통계’(statistics). 통계는 근대 이후 국가의 특징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한데, 근대국가의 대다수 정책은 철저히 통계에 기반을 두고 수립·운영·평가되기 때문이다.

통계 없는 국가를 상상해보자. 당장 국가는 권리와 의무를 어떻게 분배해야 할지 알 수 없다. 국민의 삶에 관한 정확한 사실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의 할 일이 구성원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이라면 필연적으로 대다수 결정은 통계에 기반을 두게 된다. 이에 더해 국가가 수행한 정책을 평가하는 중요한 근거 역시 통계다. 이렇게 보면 공공의 상태를 가장 잘 알려주는 것 중 하나가 통계라고 할 수 있다.

 

통계가 공화국의 상태에 관한 중요한 지표이기에 모든 권력은 통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때론 통계 하나가 정권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권력은 자신에게 불리한 통계를 잡기를 꺼리는 성향이 있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비정부기구(NGO) 조세정의네트워크의 최고경영자인 앨릭스 코범은 <불공정한 숫자들>(2020)에서 권력이 언머니’(unmoney)언피플’(unpeople)이란 두 방식으로 불리한 통계를 외면한다고 밝힌다.

 

우선 언머니란 부자들이 가진 돈을 제대로 집계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지만 한 예로 (흔히 우리가 조세피난처라 부르는) ‘조세천국’(tax haven)으로 향하는 돈을 생각해보자.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이 돈은 국가의 공식 통계에 제대로 집계되지 않는다. 조세정의네트워크가 찾아낸 사실에 따르면, 1970년에서 2010년 사이 우리나라에서 조세천국으로 빠져나간 돈은 총 7790억달러(870조원)의 규모로 중국, 러시아에 이어 세 번째다.

 

한편 언피플은 주로 소외된 최하층 계층의 사람들을 집계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집단에는 소수민족이나 인종,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뿐만 아니라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같은 성소수자들이 있다. 국가가 이들을 통계에 잡지 않는다는 것은 정책 우선순위 결정에서 이 집단이 밀려나 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이들을 위한 실질적인 공공정책 토론 자체가 없다는 의미다.

 

20223, 국가인권위원회가 국무총리, 보건복지부 장관, 행정안전부 장관, 여성가족부 장관, 통계청장에게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가 정부의 정책 대상으로 가시화될 수 있도록국가승인통계조사 및 실태조사에서 존재를 파악할 수 있게 지침을 마련하라는 권고를 전달했다. 이와 함께 트랜스젠더를 질병으로 보지 않는 세계보건기구의 견해에 발맞춰, 통계청이 관리하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서 성전환증을 정신장애로 분류하는 항목을 삭제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권고를 받은 모든 정부 부처는 10개월 만에 이를 수용할 수 없다고 회신했다.

 

특히 통계청장은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는 조사 항목에 대한 응답 거부가 증가하고 있기에 성소수자를 통계에 포함하는 데 있어 사회적 합의를 비롯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성전환증 정신장애 분류 삭제 건과 관련해선 검토는 하겠지만 “2026년부터 적용되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9차 개정 고시에 반영하는 건 어렵다고 답했다. 성소수자들의 사생활 침해를 막기 위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이와 관련해 사회적 낙인처럼 정신장애로 분류하는 통계는 사실상 장기간 내버려두겠다는 모순된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소외된 집단이 국가 통계에 포함된다는 것은 국가의 보호라는 우산 아래로 들어가는 첫 단계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그들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특히 성소수자는 우리나라 국가 통계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집단이다.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집단이기에 이들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이들에게 낙인이 되는 통계는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숫자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지만, 국가가 만드는 통계는 존재의 의미를 바꿀 수 있다.

김만권 |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한겨레 :2023-01-30

 

 

한반도 평화와 대통령의 리더십

2023년 새해 벽두, 안보위기와 경제위기, 통합위기가 뒤엉켜 엄습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우려되는 것은 안보위기다. 이를 거론하는 미디어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다. 설 명절을 앞두고 회자한 한반도 전쟁 때 생존확률 ‘0’보다 약간 높아서울 탈출은 불가능이라는 제목의 <파이낸셜 타임스> 기사가 대표적이다. 근거 없는 억측일 뿐일까. 2022년 한해 평양이 보여준 핵미사일 전력 강화와 일련의 공세적 행보를 고려하면 위기는 충분히 현실적이다.

 

정부의 대응은 단호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진행된 외교·국방부 연두 업무보고에서 우리가 공격을 당하면 백배 천배로 때릴 수 있는 대량응징보복 능력을 확고하게 구축하는 것이 공격을 막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선제타격 교리는 이미 기정사실에 가깝다. “북한의 도발 수위가 더 높아지면 대한민국이 전술핵을 배치한다든지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 과학기술로 더 이른 시일 안에 우리도 (핵무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머리발언에서는 무슨 종전선언이네 하는 상대방 선의에 의한 그런 평화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가짜 평화라고 단정하며 가짜 평화에 기댄 나라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하는 국가들은 그 나라의 문명을 발전시켜오면서 인류사회에 이바지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로마 군사전략가 베게티우스의 평화 철학에 맥이 닿아 있는 이러한 메시지는, 역대 어느 정부와 비교해도 수위가 높다. 그러나 압도적인 힘을 바탕으로 북한의 도발 의지 자체를 무력화해 평화를 얻겠다는 현 정부의 평화정책은 내재적 안보딜레마를 수반한다. 우리가 백배 천배 보복을 위협하고 압도적이고 우월한 전쟁을 준비하는 동안 평양 역시 재래식은 물론 핵전력 증강으로 맞선다. 한반도의 군비경쟁은 격화되고 위기와 우발적 충돌의 가능성은 한층 더 커진다. 베게티우스의 평화란 협상과 타협을 통한 평화가 아니라 침략, 폐허, 정복을 전제로 한 카르타고식 전쟁 평화라는 사실을 평양은 끊임없이 되뇌며 의심할 것이다.

 

안보는 평화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군사적 억제력과 동맹은 안보에 필수적이나 평화 자체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외부의 위협이 계속 존재하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전쟁, 대량살상, 폐허, 그리고 승리 후에 찾아오는 평화 역시 진정한 평화라 말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정부가 지향하는 힘에 기초한 평화론은 평화의 가면을 쓴 안보론이며 전쟁불사론이라 하겠다.

 

평화는 과정이다.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해서는 남북한 간에 긴장 완화, 신뢰 구축, 군비 통제를 추진하는 동시에 종전선언의 채택을 통해 정전협정을 평화 협정이나 조약으로 전환하려는 평화 만들기작업이 병행돼야 한다. 그 과정에서 비핵화의 돌파구도 마련될 수 있다. 이는 상대방의 선의에 따른 것이 아니다. 상호 불신과 적대에 따른 우발적 전쟁 발생 가능성을 예방하고 안정적 평화의 여건을 만들기 위한 계산된 행보다. 냉전기 미국과 소련이 상대의 선의를 신뢰해 다양한 조약을 체결해가며 군비경쟁을 최소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를 두고 순종적행태이고 가짜 평화라고 폄훼하는 것은 다분히 상식에도 맞지 않고 불공정해 보인다.

 

이러한 평화 만들기작업도 불안정한 평화를 관리하는 소극적 방안에 지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항구적인 평화는 전쟁의 구조적 원인을 제거할 때 가능해진다. 전쟁은 국가 간 갈등을 말한다. 남과 북이 통일돼 하나의 국가가 되면 자연히 전쟁 걱정은 없어진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모두가 통일을 염원하는 것이다. 무력통일과 적화통일 모두 대안이 될 수 없다. 흡수통일도 여건이 만만치 않다.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고 있듯이 남북 합의에 따른 평화통일이 가장 바람직하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비핵화, 전면적인 남북 경제 사회 교류, 협력, 그리고 남북연합의 큰 얼개를 잡아나갈 때 한반도 영구 평화의 길도 열린다고 본다.

 

거듭 강조하지만 강한 안보’ ‘전쟁불사론만으로 평화가 담보되지 않는다. 명민한 외교력으로 비핵화와 평화 만들기의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역사는 군사적 억제를 통한 안보와 외교적 협상을 통한 평화라는 이들 두 지렛대를 정교한 균형감각으로 운용하는 나라만이 전쟁을 피하고 평화의 시간을 최대한 유지했음을 보여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균형된 리더십이라 하겠다.

문정인 | 세종연구소 이사장 한겨레 :2023-01-30

 

 

나경원 나오고 또 나오고 공해 수준으로 전락한 정치 뉴스

[미오 사설] 미디어오늘 1386호 사설

 

좀 너무한다 싶다. 정치 뉴스 과잉을 두고서 하는 말이다. 그동안 정치 뉴스 과잉 폐해에 대한 지적은 많았다. 뉴스 집중을 넘어서 중독에 이르러 여타 중요 뉴스를 지워버리는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지적이 뉴스 콘텐츠 제작자들에겐 소 귀에 경읽기다.

 

나경원 전 의원이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느니 마느니하는 뉴스가 대표적이다. 불출마로 결론이 난 여파까지 나 전 의원 관련 뉴스는 근 한달 간 주요 매체의 뉴스로 도배됐다. 나 전 의원의 당 대표 출마 문제는 윤심에 역행해 반윤의 중심에 서는, 대단히 비장한 선언으로 포장됐다. 그의 출마를 둘러싼 여러 설들은 사실 이면의 진실인 양 보도됐다. 지난해 11월부터 1월 말까지 나경원 출마키워드로 집계된 종합일간지(11) 보도는 1297건에 이른다.

 

전당대회 룰이 개정되고 윤석열 대통령의 당무 개입 논란으로 확대되면서 국힘 지도부 선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건 사실이지만 나경원 전 의원을 포함한 당권 주자들의 역학관계, 출마 기싸움, 출마 여부에 따른 파장 등 이렇게까지 많은 뉴스가 필요한지 의문이다. 대통령과 나 전 의원의 악연까지 분석한 보도에 이르면 나 전 의원의 선거 출마 문제가 마치 한국 정치에 있어 엄청난 명분을 갖는 착각마저 일으키게 된다. 국민의힘 당권주자들이 어떤 정책을 통해 당을 바꾸고 정치 개혁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없고 하루가 멀다하고 특정 정치인의 출마설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떠드는 게 주요 정치뉴스가 돼버렸다.

 

아침 라디오엔 똑같은 패널이 요일만 바꾸고 출연해 나 전 의원 출마 문제를 논평한다. 어제 한 얘기가 오늘 또 반복된다. 조그마한 변동 사항이 있으면 그게 곧 뉴스가 되고 논평의 대상이 된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정치뉴스는 채널 구분을 가늠키 어려울 지경이다. 시사평론가라고 출연하는 사람의 패널 구성뿐 아니라 진영의 대표주자로 나오는 전현직 국회의원 구성도 거기서 거기다. 다른 뉴스를 들으려 라디오 채널을 바꿔도 똑같은 정치 뉴스만 양산된다. 엄밀히 말해 정치 뉴스가 아니라 정치 논평만 난무한다.

 

보도채널 뉴스도 비슷하다. 한 시사평론가가 오전에 한 방송에 출연해 논평하고, 오후 시간 다른 방송에 출연해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아침 종합일간지 뉴스가 패널의 말로 옮겨지고, 다시 그 패널의 말은 인터넷 뉴스로 쏟어진다. 지라시에 나온 내용은 뉴스로 내보낼 수 없지만이라는 단서를 달고 나 전 의원이 출마할 수밖에 없는 이유나 반대로 불출마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보도된다. 국민 실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정치 뉴스 과잉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데 문제는 이런 현상이 전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치뉴스 프로 좀 확 줄이면 안되나. 진짜 공해수준, 어차피 다 똑같은 내용이면서 왜 하루종일 떠드는 거냐라는 한 누리꾼의 말은 뉴스 제작진에게 미칠 가능성은 극히 적지만 울림은 크다. 생각을 전환해야 한다. 정치 뉴스가 만연한 건 소위 가성비 좋은 건 말고는 원인을 찾기 어렵다.

정치 고관여층에겐 손쉽게 먹힐 수 있는 정보일지 몰라도 일반 뉴스소비자들에겐 고역이다. 여의도 밖의 세상에 눈을 돌리고 국민 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에 집중하자. 정치공방 중계식 보도 관행을 과감히 버리고 선거 제도 개혁 문제를 정치 의제로 던져 역으로 여의도의 변화를 이끄는 게 좋겠다. 멀쩡히 돈을 지불했는데 전세 사기를 당하는 현실, 고금리에 신음하는 서민 대책 등 정치 뉴스를 줄이고 지면 혹은 방송을 특별히 배치할 이슈가 널려 있다.

영국 BBC뉴스 홈페이지 갈무리.

영국 BBC뉴스 홈페이지 첫 화면 카테고리는 이렇게 구성돼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 바이러스’ ‘기후’ ‘동영상’ ‘세계’ ‘아시아’ ‘영국’ ‘산업’ ‘기술’ ‘과학등이다. 역량 부족이라고 한다면 외신 보도라도 충실하고 정확하게 번역해 보도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정치 공방 평론가만 양산하는 정치 뉴스, 이제 좀 바뀔 때도 됐다. 하루종일 라디오 뉴스를 듣는 택시 기사분들의 귀만이라도 제발 해방시켜주자.[미오 사설] 미디어오늘 1386호 사설

 

 

영업사원 윤석열의 글로벌 무지

나라꼴이 어찌될까. 보라. 자신이 영업사원이란다. 대한민국 대통령 말이다. 그것도 외국 대기업 회장들 앞에서다.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그는 호텔에 마련한 글로벌 CEO와의 오찬에서 우리 글로벌 기업인 여러분을 한 번 뵙고 점심이라도 한 번 모시는 것이 대한민국 영업사원으로서 도의라고 생각해 이 자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언론들은 크게 부각했다. 어느 언론은 대통령 취임 후 세일즈 외교’ ‘모든 순방은 경제 중심으로등 정상외교를 통한 경제 산업 활성화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윤 대통령의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썼다. 전두환의 굳은 의지를 칭송하던 1980년대가 스쳐간다.

 

그가 한국 대통령으로서 인사드리고 얼굴도 알려드려야 여러분이 한국을 방문할 때 제 사무실을 편하게 찾아오실 수 있지 않겠나라 했는데도 그랬다. 외국기업인들에게 대통령집무실을 편하게 찾아오라?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걸까.

 

언론의 부추김에 우쭐한 그는 서울로 돌아와 국무회의를 열고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다시 자임하며 국무위원 모두 영업사원 각오를 가지라고 에헴 했다. 이어 외국기업 CEO이 방문할 때 사업상의 애로사항을 많이 경청하라고 지시했다. 고용부 장관까지 외국기업인의 애로를 들어주라는 말이다. 실제로 노동을 콕 집어 글로벌스탠다드를 거듭 강조했다.

 

언론이 지금처럼 망가지지 않았을 때는 일본 주식회사용어를 천박한 듯 꼬집었다. 그런데 지금은 영업사원 대통령과 함께 내놓고 한국 주식회사를 외쳐댄다. 나라 품격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백번 양보해서 경제를 위해서라고 하자. 하지만 대체 누구의 경제란 말인가. 외국기업인들이 대통령 집무실을 편하게 들락거리면, 고용부장관이 그들 애로사항을 경청하면, 민생이 나아지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민생은 되레 악화되고 부익부빈익빈은 깊어간다. 스위스 호텔에서 국민 혈세로 점심을 사며 자기 집무실에 편하게 오라는 한국 대통령을 그들은 어떻게 보았을까. 신뢰가 기본인 영업을 말로만 영업사원이 너무 쉽게 떠벌인 것은 아닐까. 자세를 한껏 낮춘 듯 행세하는 날리면 대통령의 언행에 저마다 내심 웃지 않았을까.

 

글로벌스탠다드를 부르대는 영업사원에게 묻고 싶다. 무엇이 글로벌 표준인가. 그가 최소한의 균형조차 저버리고 한껏 쏠려있는 미국을 보자. 바이든은 규제개혁을 불러대는 윤석열과 달리 반독점 규제에 앞장서고 있다. 법무장관 갈런드는 124일 구글에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선택적인 정파적 수사에 골몰하면서도 노상 자부심 넘치는 한동훈과 참 대조적이다.

 

그럼에도 조중동 신방복합체와 경제지들은 앵무새처럼 노동개혁을 복창한다. 어느 경제지는 고용부장관 이정식이 노조의 사회적 책임(USR)을 들먹이자 국제표준화기구(ISO)201011USR을 국제표준(ISO26000)으로 선포했다며 노동운동을 비판했다.

 

기막힌 일이다. 국제표준화기구가 글로벌스탠다드인 것은 맞다. 그런데 그 기구가 선포한 ISO26000이 중점 둔 대상은 노조가 아니다. 기업이다. ISO260007개 핵심 주제는 지배구조, 인권, 노동, 환경, 소비자, 공정경쟁, 지역사회 참여발전이다. 기업을 비롯한 모든 조직이 수평적 운영과 결사의 자유, 단체교섭권, 사회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인권 조항이 들어있다. 노동조건을 국제노동기준에 따르는지 확인은 물론 사회적 대화의 적극 도입을 명시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언급하면서도 정작 그 글로벌스탠다드인 국제표준화기구의 기준을 우리 언론은 편향적으로 보도해왔고, 그도 모자라 영업사원 정권의 노동 개악을 뒷받침하는 논리로까지 악용하고 있다.

 

대통령부터 참모와 장차관들까지 조중동 신방복합체, 특히 조선일보의 구린 논리를 맹종하며 케케묵은 낙수효과를 맹신할 때, 영업사원 윤석열이 자신의 무지와 만용으로 앞으로도 4년 넘게 대한민국 최고의사결정권을 휘두를 때, 어찌될까. 나라꼴은, 민생은.

손석춘 칼럼니스트철학자 미디어오늘 2023.01.30

 

 

 

횡재세

난방비 고지서를 받아보니 듣던 대로 휘청한다. 작년 같은 달보다 족히 30만원은 올랐는데, 며칠 전 생각지도 않게 연말정산 폭탄을 맞은 뒤끝이라 이달 월급은 허공으로 사라진 기분이다. 나보다 더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더 큰 고통을 느낄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다른 나라들이 다 시행하고 있는 횡재세를 제도적으로 확실하게 도입해 난방비 지원에 쓰자고 제안했고, 야당은 법안을 발의하거나 혹은 정유사들에 기금 출연 요청을 한다고 한다. 누가 나 대신 난방비 내주면 기분이야 좋겠지만, 이게 맞는 건가 좀 따져볼 필요는 있겠다.

 

정유사와 여당의 반론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자체 유전에서 원유를 생산하는 메이저 석유회사들과 달리 한국 정유사들은 원유를 구입해 정제만 하기 때문에 원가가 곧 시장가격이라는 반론이다. 다른 하나는 기름값 올랐다고 정유회사에 횡재세 부과하면 반도체 가격 오르면 반도체 회사에, 코로나19로 마스크 가격 오르면 마스크 회사에 횡재세를 매겨야 하느냐는 반론이다. 둘 다 일리는 있는데 그것만으론 부족한 느낌이다. “다른 나라들이 다 시행하고있다지 않는가.

 

얼핏 보면 유럽은 온통 횡재세를 도입한 것처럼 보인다.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루마니아는 이미 일종의 횡재세를 도입했고, 체코와 폴란드는 법안이 나와 있는 상태이며, 프랑스, 벨기에, 아일랜드, 독일, 네덜란드, 핀란드는 검토 중이다. 그런데 이탈리아는 위헌 논란에 휩싸여 있고, 세수 110억유로라는 예상과 달리 20억유로밖에 걷지 못했다. 폴란드는 기업들의 줄도산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고, 스페인은 은행에 횡재세를 매겼다가 유럽중앙은행으로부터 은행의 지불능력을 훼손했다며 혼쭐이 나고 정책을 다시 만드는 중이다.

 

영국은 작년 5월 횡재세를 도입하면서 세율 25%2025년까지 적용될 것이라고 했다. 불과 석 달 후인 8월에는 말을 바꿔 세율 35%2028년까지라고 발표했다. 이 말만 들으면 영국이 대대적으로 횡재세를 도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디테일을 보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우선 과세 대상은 영국 땅에서 석유와 가스를 채취함으로써 얻어진 이익이다. 석유를 정제하거나 주유소에서 판매함으로써 얻어지는 이익은 횡재세와는 무관하다. 노동당은 횡재세가 영국 땅에서 채취된 화석연료에 대해서도 1파운드당 91페니까지 조세감면을 해준다고 반발하고 있다. 영국 최대 석유회사는 셸과 BP이다. BBC 보도에 따르면 셸은 2022년 횡재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셸의 석유 채취는 전부 북해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영국 땅에서 채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023년에는 약간은(some)” 내게 될 것 같다고 한다. BP2022년에 8억달러(9600억원)를 냈으니 적은 돈은 아니다. 그런데 이 두 회사는 2015년부터 횡재세 도입 이전까지 영국에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거꾸로 보조금을 받아갔다. 적자, 감가상각, 시추시설 해체 비용 등 이런저런 비과세·감면 혜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횡재세의 경험이 있다. 1970년대 오일 쇼크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카터 행정부 때인 1980년에 도입했다가 레이건 행정부 때인 1988년 폐지되었다. 가장 큰 원인은 횡재세가 오히려 미국에 손해를 끼쳤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당시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에 따르면 횡재세 도입에 따른 세수의 순증가분은 예상액의 약 5분의 1에 불과했다. 횡재세로 인해 기업의 이익이 줄게 되자 법인세가 따라서 줄었기 때문이다. 반면 세금으로 인해 석유의 국내 생산은 줄고 수입은 늘어 국제유가 변동에 따른 취약성이 늘어났고, 석유산업과 유관 산업에 종사하는 수많은 중소기업과 개인들이 피해를 봤다. 결과적으로 안 하느니만 못한 세금이었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얼마 전 횡재세를 거론하면서 석유회사 엑손이 작년에 신보다도 많은 돈을 벌었다고 했다는데, 신께서 소득이 그리 많은지 이번에 처음 알았지만 횡재세 도입 이전에 신께 소득세 고지서부터 발부해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에서 횡재세는 사회주의이거나 아니면 포퓰리즘이라는 강력한 반발에 직면해 있다.

 

그러면 허리가 휘청하는 난방비는 어떻게 해야 하나. IMF의 권고사항은 이렇다. 횡재세를 고려한다면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지대추구 행위에 대한 항구적 제도로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기영합적인 포퓰리즘 정책이 아니라 차분히 나라의 근간을 튼튼히 하는 데 전념하라는 뜻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경향 2023.01.31.

 

검찰, ‘아닌 수사

별것을 다 가지고 논란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검찰 조사 때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고 국민의힘과 일부 언론이 트집을 잡는다. 이 대표는 지난 28일 검찰 출석 때 33쪽 분량의 서면진술서를 제출한 뒤 검사의 질문에는 그 진술서로 답변을 갈음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엄밀한 의미의 진술거부라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진술거부권은 헌법과 법률에 보장된 기본권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자신의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진술하지 않고도 당당할 수 있는 이유다. 형사소송법에는 진술을 하지 아니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미국에서는 진술거부 의사를 밝히면 원칙적으로 더 이상 조사를 진행하지 않는다. 멋있으라고 헌법에 써놓은 권리가 아니다. 이 권리가 부정되면 수사기관 앞에서 개인은 인격을 부정당한 채 강압적 추궁의 객체로 전락하게 된다. 그래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를 민주주의의 징표이자 고귀한 원칙이라고 표현했다.

 

진술거부권 보장은 또 하나의 형사사법 원칙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혐의를 입증할 책임은 오로지 수사기관에 있다는 원칙이다. 수사기관은 당사자를 압박해 진술을 끌어내는 편리한 방식에 기댈 게 아니라, 스스로 증거를 수집해 혐의를 입증해야 한다. 이를 위해 막강한 수사권이 주어지는 것이다. 얼마 전 한동훈 장관은 이 대표를 향해 공허한 음모론에, 다수당 힘자랑 뒤에 숨는 단계는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고 생각한다이제는 팩트와 증거로 말씀하시라고 했는데, 팩트와 증거를 내놓을 쪽은 수사 대상자가 아니라 수사기관이다.

 

이런 원칙들에 비춰 보면, 검찰이야말로 14개월 수사를 통해 수집된 증거를 바탕으로 이 대표에 대한 처분을 내릴 단계가 이미 지난 듯하다. 지금 상황에서 소환조사를 반복하며 수사를 끄는 것은 원칙과 정도를 벗어난 보여주기식 수사라는 인상만 준다.

 

실제 검찰은 법원으로부터 그런 지적을 받았다. 이 대표 측근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기소하면서 공소장 일본주의원칙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기 위해 공소장에는 기소된 혐의 사실 이외에는 사건에 대한 선입견을 줄 수 있는 어떤 내용도 포함해서는 안 된다는 중대한 원칙이다. 그런데 검찰이 제출한 19쪽 분량의 공소장 중 혐의 사실은 3쪽에 그치고, 나머지는 김 부원장과 이 대표의 관계 등 불필요한 전제 사실로 채워졌다. 법원은 지난 19일 재판에서 공소장에 이렇게 상세하게 전제 사실을 기재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 같다며 이를 간략히 하도록 명했다. 이와 별개로, 검찰은 김 부원장 등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실효성이 의문스러운 민주당사 압수수색을 잇따라 강행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압수수색은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는 것도 형사사법의 중요한 원칙이다.

 

현 정부가 들어선 뒤 하루가 멀다 하고 압수수색, 소환, 구속영장 청구, 기소 등 수사기관의 활약상이 뉴스의 앞머리를 장식한다. 이런 활약은 대개 야당과 전 정부 인사들, 정권을 불편하게 하는 이들을 향하고 있다. 가뜩이나 정권과 검찰이 한몸이 됐다는 지적을 받는 상황이다. 그럴수록 검찰은 더욱 형사사법 원칙에 충실하게 정도를 걸어야 한다. 요란하게 압수수색하고, 공소장을 현란하게 꾸미고, 실효성 없는 소환조사를 되풀이하는 모습은 절제된 수사가 아니라 하나의 쇼처럼 비칠 뿐이다.

 

이런 인상을 받는 더욱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이라는, 수사기관이 가장 중시해야 할 원칙이 위태롭기 때문이다. 그 리트머스 시험지는 바로 살아 있는 권력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이다. 대통령실은 30일 김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을 추가로 제기한 김의겸 민주당 대변인을 고발하면서 아무 의혹이나 제기한 후 주가조작이 아닌 것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법치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이 대표든 김 여사든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음을 입증할 책임은 당연히 없다. 수사기관이 할 일이다. 다만 두 사안에 다른 점이 있다. 이 대표 사건은 검찰이 총력전으로 수사 중인 반면, 김 여사 사건은 숱한 의혹에도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야말로 법치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검찰이 원칙대로 김 여사를 수사한다면 그때 김 여사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든 서면진술서로 갈음하든 누구도 시비하지 않을 것이다.

박용현 | 논설위원 한겨레 2023.01.31.

 

 

러시아 난민들을 환영해야 하는 이유

세상은 참 이상합니다.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러시아 사람들에게 침략전쟁에 참여하지 말라, 푸틴 정권의 침략을 거부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처럼 침략전쟁에 동원되기를 행동으로 거부하면 선뜻 받아주는 데가 없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이상하지 않나요? 왜 말과 행동이 이렇게 다르죠?”

내게 이 말을 했던 사람은 시베리아 출신 러시아인 알렉산드르(30). 그는 우리가 통상 생각하는 병역거부자와는 꽤 다른 모습을 보인다. 실은 그가 병역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다. 러시아군 특수부대에서 병역을 수행하고 예편한 젊은이다. 한데 가족이 우크라이나 출신인 그는, 왜 자신이 조상의 고향인 우크라이나에 가서 러시아를 위협한 적이 없었던 형제자매들을 죽여야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다고 한다.

 

게다가 그는 현재 러시아에서 수감 중인 재야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를 따르는 민주화 운동가다. 그는 우크라이나 침공뿐만 아니라 교육·복지예산 삭감,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 양산, 그리고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 탄압 등 푸틴 정권의 신자유주의적인 국가주의 정책 전체를 비판적으로 본다. 그가 본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와 같은 반민주·반민중적 정책의 일환이다. 그래서 지난 10월 전쟁 동원을 의미하는 입영통지서를 받자마자 그는 비밀리에 국경을 넘어 투쟁해서 민주주의를 쟁취했다고 알려진 민주주의 나라 한국으로 향했다. 민주주의 선진국한국에서, 그는 입국조차 거부당한 채 인천국제공항에서 노숙 생활 중이다.

 

잠시 한국에서 머물던 나는 지난달 15일 서울을 떠나기 전 인천국제공항에서 그를 잠깐 만났다. 내가 탈 비행기가 기다리고 있었던 출구와 그가 머무는 곳은 그리 멀지 않았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기약 없이 터미널에서 사는 러시아 국적자로 코카서스 출신인 자샤르와 부랴트 자치공화국 출신인 블라디미르 등 몇명이 있었다. 세 사람 모두 러시아의 소수 종족 출신이었다.

 

나와 자세한 이야기를 나눈 23살 대학생 블라디미르는, 푸틴 정권의 인종차별에 분노했다. 그의 고향인 부랴트 공화국 출신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장 간섭이 시작된 2014년부터 계속해서 동부 우크라이나 지역 전투에 동원됐다. 러시아 권력자들에게 그들은 값싼 총알받이대접을 받아온 것이다. 소수자가 총알받이로 내몰리는 데에는 경제적 배경도 있었다. 부랴트 같은 소수민족들이 모여 사는 변방지역들은 투자에서 소외되는 차별을 겪어온 탓에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군이 거의 유일한 고용주로 군림한다.

 

소수민족 거주 지역 차별이 푸틴 독재의 속성과 유기적으로 결부돼 있다는 점을 알아차린 블라디미르는, 비록 예비역 출신이지만 우크라이나 침공에 동원되기를 거부하고 역시 비밀리에 출국해 몽골 등을 거쳐 모든 희망을 걸고 민주주의 국가한국에 왔다. 다른 나라에도 갈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자랑스러운 민주화 투쟁의 역사를 가진 한국이 자신을 도와주리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한국행에 명운을 걸었던 그들의 기대는 하나하나 차례로 무너졌다. 그들은 일단 입국심사대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알렉산드르는 반정부 시위 경력과 경찰로부터 구타당한 경험 등 자신이 말한 이야기들이 제대로 통역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침략전쟁과 인종차별 등을 포함한 독재정권의 만행에 반대해 한국에 왔지만, 법무부는 그들을 단순한 징집 기피자로 여겨 징집 기피는 난민 지위 부여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심사받을 기회 자체를 부여받지 못한 그들은 이의를 제기하고 응답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사이 본인들 표현대로 동물원의 동물처럼터미널에 갇혀 노숙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민주주의의 나라로 여겨졌던 한국은, 민주주의에 대한 그들의 열망을 환영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블라디미르는 끝까지 참고 견딤으로써 우리가 단순히 부자 나라에서 살아보려는 목적으로 온 것이 아니고 진정한 정치 망명자임을 증명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밝혔지만,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몇개월 동안 공항에 갇혀 사는 것은 감옥살이와 과연 얼마나 다를까.

 

그들과 헤어지고 비행기를 탄 뒤에도, 그들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의 말을, 나는 계속 반추했다. 그들 얘기대로, 지금 우리에게 자랑인 한국 민주주의는 처절한 투쟁 속에서 태어났다. 그 투쟁의 과정에서 한국의 많은 민주투사는 불가불 공항에 갇힌 이 러시아 난민들처럼 망명길에 올라야만 했다.

 

나중에 대통령이 된 김대중은 1982~85년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나중에 한국방송(KBS) 이사장 등을 지낸 지명관 전 한림대 교수는 1972~1993년 망명지인 일본에 체류하면서 한국 민주화운동을 전세계에 알렸다. 훗날 한겨레신문 기획위원이 된 남민전 활동가 출신 홍세화는 1979~2002년 프랑스에서 망명객으로 지내야 했다. 김대중, 지명관, 홍세화가 민주화된 조국에서 각각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는 바로 망명지에서 그들이 받은 지원연대였다. 이런 역사를 지니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고자 하는 외부자들에게 지원과 연대를 베풀어주는 것은 일종의 도덕적 책무아닐까?

 

인천국제공항에 갇힌 러시아 난민들은 단순히 민주화만을 도모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은 침략전쟁에 참여하기를 거부해서 한국에 왔다. 이야기하자면 일제 학도병에 강제 징집됐다가 결국 탈출에 성공한 김준엽이나 장준하와 같은 한국 현대사의 영웅들도 일제가 중국에서 벌인 침략전쟁 참여를 행동으로 거부한 이들 아닌가. 김준엽이나 장준하, 아니면 베트남에서의 침략전쟁을 비판한 리영희 같은 한국의 양심적 언론인은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는 역사 인물들이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온 침략전쟁 거부자들을 우리는 왜 이렇게 문전박대하는가?

 

민주주의나 제국주의 침략 반대는 우리를 지탱해주는 역사적 가치들이다. 이 가치들은 국내외 차별 없이, 보편적으로 적용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외국의 침략반대자와 민주화 운동가에 대한 박대는 우리로서는 자기 배신에 해당한다. 민주주의 국가 한국의 역사에, 왜 이런 오점을 남기려 하는가?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한겨레 2023.01.31.